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 김보름 . . . . 223회 일치
*2016-2017시즌 대한빙상경기연맹 최우수선수<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417_0014836624&cID=10501&pID=10500|제목=김보름·이정수·차준환, 2016~2017 빙상연맹 최우수선수|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2007년 2월 22일 고양어울림누리에서 열린 제8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 준결승 3조에서 김보름은 3분05초02로 5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4&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3일 열린 3000m 준결승 1조에서는 김보름이 경기중 포기를 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5&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4일 열린 2000m계주에서는 김보름, 신아름, 김보라, 박연정으로 구성된 대구선발이 3분04초88로 동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7&rhCd=9&page=17&gameDate=&baseClassName=2000M%EA%B3%84%EC%A3%BC&rhName=%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T&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07년 12월 15, 16일 이틀간 대만에서 열린 2007 아시아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황현선(과천중), 송재원(연성중), 김보름(성화중)이 2000m릴레이 주니어부 1위를 차지했다. 1000m에서는 이소연(평촌중)이 1위를 김보름이 2위를 차지했다.<ref name=":3">{{뉴스 인용|url=http://hs1206.tistory.com/108|제목=2007 아시아 쇼트트랙 선수권 결과|날짜=2007-12-15|뉴스=hs1206|언어=ko|확인날짜=2017-03-03}}</ref>
2008년 2월 19일 탄천종합운동장빙상장에서 열린 제89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에서 김보름(성화중 3학년)은 2분38초35로 동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02G089&detailClassCd=04&rhCd=9&page=17&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5분34초04로 6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02G089&detailClassCd=05&rhCd=9&page=17&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09년 2월 10일 탄천종합운동장빙상장에서 열린 제9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에서 김보름(정화여고 1학년)은 2분35초64로 5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0902&detailClassCd=04&rhCd=9&page=16&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11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6분19초03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0902&detailClassCd=05&rhCd=9&page=16&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0년 2월 2일 탄천종합운동장빙상장에서 열린 제91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 준결승에서 김보름(정화여고 2학년)은 실격을 당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1001&detailClassCd=04&rhCd=5&page=16&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6분00초10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1001&detailClassCd=05&rhCd=9&page=16&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김보름은 스피드스케이팅 전향 1년차인 2010-2011시즌에 동계아시안게임 30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ref name=":1" />
2011년 1월 14일 막을 내린 2011 전국남녀 주니어빙상선수권대회 1500m와 3000m에서 김보름은 각각 2분3초93과 4분21초30의 대회신기록을 찍으며 1위를 차지했고, 최종순위에서도 167.430포인트로 대회기록을 갈아치우며 정상을 밟았다.<ref name=":1" />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실내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서 펼쳐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3000m에서 김보름이 4분10초54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김보름은 3000m 결승전에서 3조로 출발해서 앞서 출발한 1,2조 선수들에 비해 기록차를 크게 벌리며 1위에 섰지만 곧바로 4조 일본의 호조미 마사코에 2.72초 뒤졌다. 3위에 오른 중국의 왕페이는 4분19초77을 기록했다. 함께 경기에 나선 박도영(17, 덕정고)은 컨디션 난조로 아쉽게 5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t.co.kr/mtview.php?no=2011013118485662311&code=column91&vgb=column|제목=[동계AG]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女3000m '깜짝'銀 - 머니투데이 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2월 5일 열린 5000m에서는 한국의 박도영(18, 덕정고)이 3번째 조로 일본의 호즈미 마사코와 함께 레이스를 펼쳐 6초40 뒤진 기록으로 골인했으나, 전체 2위(7분15초63)를 차지했다. 김보름은 7분22초92의 기록으로 4위를 차지해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ref>{{웹 인용|url=http://m.cnbnews.com/m/m_article.html?no=128516|제목=[동계아시안게임] 박도영,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은메달|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9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고등부 3000m에서 1위는 대회신기록인 4분17초42의 박도영(덕정고)이 차지했고 2위는 대회신기록인 4분22초21의 김보름이 차지했고 3위는 4분24초04의 임정수(청학고)가 차지했다. 1500m에서는 1위는 대회신기록인 2분4초37의 박도영이 차지했고 2위는 2분5초49의 김보름이 차지했고 3위는 2분7초16의 임정수가 차지했다.<ref name=":4">{{저널 인용|제목=제9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 스케이팅|url=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A0%9C92%ED%9A%8C_%EC%A0%84%EA%B5%AD%EB%8F%99%EA%B3%84%EC%B2%B4%EC%9C%A1%EB%8C%80%ED%9A%8C_%EC%8A%A4%ED%94%BC%EB%93%9C_%EC%8A%A4%EC%BC%80%EC%9D%B4%ED%8C%85&oldid=8386539|날짜=2012-03-11|언어=ko}}</ref>
2011년 11월 18일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2011-2012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2초38로 2위를 차지했다. 19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4위를 차지했다.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 노선영, 김보름이 3분05초79로 4위를 차지했다. 2011년 11월 2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13초61로 20위를 차지했다. 26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58로 20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7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한국체대)이 7분26초85의 기록으로 첫 동메달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033550|제목=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날짜=2011-11-28|뉴스=SBS NEWS|언어=ko|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12월 2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26초10으로 12위를 차지했다. 3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노선영(한국체대)-김보름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3초18의 기록으로 캐나다(3분00초01)와 러시아(3분02초38)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월드컵 시리즈 팀 추월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f name=":17">{{웹 인용|url=http://m.yeongnam.com/jsp/view.jsp?depth1=3&depth2=4&nkey=20111206.010260719320001|제목=한국 빙속 팀추월 사상 첫 메달|성=영남일보|확인날짜=2017-03-06}}</ref> 2012년 2월 12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끝난 월드컵 5차 대회 팀추월 경기에서 이주연(25)과 노선영(23), 김보름(18)이 출전하여 3분05초65의 기록으로 폴란드(3분05초57)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3000m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5초66의 기록으로 16위에 머물렀다.<ref name=":2">{{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EC%B0%A8%EB%8C%80%ED%9A%8C-%ED%8C%80-%EC%B6%94%EC%9B%94-%EB%82%A8%EB%85%80-%E9%8A%80-%E9%8A%85|제목=빙속 월드컵 5차대회, 팀 추월 남녀 銀, 銅|날짜=2012-02-1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24로 10위를 기록했다. 디비전B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과 노선영(한체대)이 각각 1위(2분01초53)와 3위(2분01초82)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000m-13%EC%9C%84-%EA%B9%80%EB%B3%B4%EB%A6%84-%EC%97%AC%EC%9E%90%EB%B6%80-1500m-10%EC%9C%84|제목=이승훈 '빙속월드컵' 5000m 13위... 김보름 여자부 1500m 10위|날짜=2012-02-12|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1}}</ref> 2012년 3월 1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1500m에서 김보름은 1분59초52로 12위를 차지하며 73점 22위로 시즌을 마쳤다. 11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53초69로 7위를 차지하며 110점 7위로 시즌을 마쳤다.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이주연, 노선영이 3분03초29로 은메달을 차지하며 320점 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2011년 제66회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2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woorikangsan/20201685972|제목=한국 빙상 유망주 - 김보름 선수,한국, 토렌티노 동계 U대회 종합 3위…빙속 김보름 최다 메달 획득,|뉴스=네이버 블로그 {{!}} 사진과 여행하기|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2년 3월 3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박도영이 1위, 김보름이 2위를 차지했다.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위, 박도영이 4위, 남예원이 33위를 차지했다. 1000m에서는 김보름이 6위, 김현영이 7위, 박도영이 10위, 임정수가 27위를 차지했다. 종합에서는 김보름이 3위, 박도영이 5위, 임정수가 14위를 차지했다. 4일 열린 팀추월 경기에서 김보름은 박도영(한국체대), 임정수(청학고)와 팀을 이뤄 출전하여 3분07초36의 기록으로 일본(3분13초67)과 러시아(3분14초41)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7">{{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8A%A4%ED%94%BC%EB%93%9C-%EB%B0%95%EB%8F%84%EC%98%81-%EC%A3%BC%EB%8B%88%EC%96%B4-%EC%84%B8%EA%B3%84%EC%84%A0%EC%88%98%EA%B6%8C-2%EA%B4%80%EC%99%95-%EC%B0%A8%EC%A7%80|제목=스피드 박도영, 주니어 세계선수권 2관왕 차지|날짜=2012-03-05|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1}}</ref>
2012년 3월 22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2012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11초09로 11위를 차지했다. 25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 노선영, 김보름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3초86으로 6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2년 11월 4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7회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18초60으로 박도영(4분21초18-한국체대)과 임정수(4분25초23-한국체대)를 여유있게 제치고 대회신기록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6일 열린 1500m 경기에서도 김보름이 2분02초98로 역시 한체대 출신인 노선영(2분05초00-용인시청)과 박도영(2분05초71)을 꺽고 대회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다.<ref name=":6">{{웹 인용|url=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799136|제목='빙속 질주' 스피드스케이팅 시즌 시작됐다|날짜=2012-11-07|확인날짜=2017-03-10}}</ref>
2012년 11월 16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2012-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0초81로 1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41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 부문에서는 김보름이 4위를 차지했다.<ref name=":8" /> 18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3분03초13으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2년 11월 2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매스스타트에 출전한 김보름은 8분40초7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박도영(20-한국체대)은 8분41초26으로 5위, 노선영은 8분41초82로 10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05로 전체 선수 20명 중 5위를 기록하며 한국 여자 장거리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0초74로 5위, 박도영이 2분02초34로 15위를 차지했다. 25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도 김보름은 4분06초13의 기록으로 7위에 오르는 등 장거리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박도영은 4분12초3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30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4분13초51로 16위를 차지했다.<ref name=":9">{{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A%B9%80%EB%B3%B4%EB%A6%84-%EC%8A%A4%ED%94%BC%EB%93%9C%EC%8A%A4%EC%BC%80%EC%9D%B4%ED%8C%85%EC%9B%94%EB%93%9C%EC%BB%B5-%EB%A7%A4%EC%8A%A4%EC%8A%A4%ED%83%80%ED%8A%B8-1%EC%9C%84|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매스스타트 1위|날짜=2012-11-26|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2012년 12월 1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11초19의 기록으로 전체 12명의 선수 중 5위를 기록,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5000m 디비전B에서는 박도영이 7분30초18로 16위, 노선영(23, 한국체대)이 7분35초47로 19위, 임정수가 7분39초23으로 2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38의 기록으로 17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2초47로 9위, 박도영이 2분03초10으로 11위를 차지했다. 팀추월 경기에 출전한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은 3분00초5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ref name=":14">{{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C%9B%94%EB%93%9C%EC%BB%B5-10000m%EC%84%9C-%E9%8A%85|제목=이승훈, 월드컵 10,000m서 銅|날짜=2012-12-0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2월 9일 독일 인첼에서 열린 월드컵 7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13초80만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대회에서 김보름은 월드컵 포인트 100점을 추가, 총점 260점으로 네덜란드의 마리스카 휘스먼(240점)을 제치고 여자 매스스타트 월드컵 랭킹 1위로 올라섰다. 함께 레이스를 펼친 박도영(8분16초82)과 노선영(8분17초64)은 각각 10위, 15위에 그쳤다. 1500m 디비전A에도 김보름은 출전했으나 1분58초43의 기록으로 10위에 머물렀다.<ref name=":10">{{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2306875|제목=김보름, 빙속월드컵 매스스타트서 두 번째 金... 이승훈 부진|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3초04로 13위에 머물렀다. 2013년 3월 1일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열린 월드컵 8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41초22로 1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80으로 18위를 차지했다. 2013년 3월 9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8초51로 8위를 차지하며 185점 10위로 시즌을 마쳤다. 10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58로 16위를 차지하며 133점 1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3위로 골인했지만 앞서 치른 2차와 7차 월드컵에서 1위를 한 바 있어 총점 365점으로, 330점에 그친 마리스카 후이스만(네덜란드)을 제치고 종합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ref name=":12">{{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woorikangsan/20201685972|제목=한국 빙상 유망주 - 김보름 선수,한국, 토렌티노 동계 U대회 종합 3위…빙속 김보름 최다 메달 획득,|뉴스=네이버 블로그 {{!}} 사진과 여행하기|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2년 12월 22, 23일 이틀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7회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과 박도영이 각각 170.241점과 174.147점을 기록하며 1, 2위를 차지했다. 22일 열린 30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4분16초19의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 중간합계 선두에 올랐다. 23일 1500m와 5000m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22일 열린 500m에서 남지은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목 1위에 오르며 대회신기록으로 우승을 확정지어서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중국 창춘에서 펼쳐지는 2013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의 출전자격을 획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8B%A4%EC%8B%9C-%EB%B3%B4%EB%8A%94-%EB%B0%B4%EC%BF%A0%EB%B2%84%EC%8A%A4%ED%83%80-vs-%EB%AF%B8%EB%A6%AC-%EB%B3%B4%EB%8A%94-%EC%86%8C%EC%B9%98%EC%8A%A4%ED%83%80|제목=다시 보는 밴쿠버스타 vs 미리 보는 소치스타!|날짜=2012-12-24|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월 7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3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2초3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8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20초37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팀추월에서는 박도영, 김보름, 임정수로 구성된 한국체육대학교팀이 3분11초86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8&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T&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김보름은 2013년 1월 21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3 전국남녀 종별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m에서 41초33으로 3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1&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2일 열린 1000m에서 1분20초38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1500m에서 2분00초9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3일 열린 3000m에서 4분18초0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4&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 박근혜 . . . . 107회 일치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차녀<ref group="주">박정희의 전처소생 [[박재옥]]이 있으므로 박근혜는 차녀가 된다.</ref>이자 [[육영수]]의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나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청와대]]에서 자랐다. 1970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에 졸업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모친 사후]] 귀국하여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사실상 대통령 배우자 직무를 대행하였다. 아버지가 서거한 후에는 청와대에서 나와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에서 전시(戰時)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현재 이에는 돈부리집이 있는 상가가 위치해 있다.<ref name="kys">[[강용석의 고소한 19]] 1화</ref> 어머니 [[육영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형제로는 이복언니 박재옥이 있고 동복동생인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이 있다.
어머니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재의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봉직한 경력이 있었다. 외조부 육종관은 딸이 과거 혼인 경력이 의심스럽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박정희와의 결혼 결심을 굳힌 육영수가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박정희가 있는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하였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이 다수(133석/273석)이던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제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소추]]하였다. 박근혜도 당론에 따라 탄핵안 발의와 가결에 참여하였다. 비슷한 성향의 언론과 학계의 지원이 있었으나 극심한 역풍이 불면서 대다수 국민의 반발을 샀고 한나라당은 최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제16대 대선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SK]]그룹 등으로부터 수수했다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유례없이 급락해 [[최병렬 (1938년)|최병렬]] 대표마저 사퇴하게 된다.
한나라당이 '역풍 위기'에 처했을때, 착실하게 당 내에서 입지를 쌓고 있던 박근혜가 그의 뒤를 이어 [[3월 23일]] 당 대표가 되었다.<ref>대한민국에서 여성 정당 대표 중 [[박순천]]에 이어 두 번째다.</ref> 기존의 다선 의원, 중진 의원, [[운동권]]에서 포섭해 온 세력 등과 다르게 박근혜는 여러 차례 기자 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사죄를 표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제17대 총선|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원내 1당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121석을 차지하여 예상 외의 선전을 하였다. '탄핵 역풍 위기'에서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구해낸 것이다. 이때부터 박근혜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잠재적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0071934& 2004 정치권 뜬별진별]</ref>
[[2005년]] 12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여 처리하였다. 당시 대표인 박근혜는 곧바로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조차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한나라당이 무슨 장외 투쟁이냐"라는 비아냥도 있었고, 국회 등원에 대한 여론의 압박도 심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는 장외 투쟁을 계속했고, 결국 여야는 한나라당의 장외 투쟁 3개월 만에 사학법 재개정 논의에 합의하게 된다. 박근혜 대표는 주변의 반대와 원외 투쟁에 소극적인 한나라당의 체질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재개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었다. 2004년 17대 총선의 '한나라당 천막 당사' 역시 "쇼 아니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상징물로 기억됐다.<ref>[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27709&year=2010 MB·박근혜 '세종시' 문제 왜 타협 못할까]{{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27709&year=2010 }}</ref>
폭로전은 경선 때부터 시작되었다. 전당 대회를 3일 앞둔 2007년 8월 17일, 박근혜 경선후보는 "거짓으로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할 수 있습니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056525|제목 = 되돌아 본 대선|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12-20|확인날짜 = 2013-03-23}}</ref> 이명박 후보측은 도곡동 땅에 대한 검찰 발표가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체 조사와 각 언론사 조사를 종합할 때 10% 이상 차이로 낙승할 거라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제목 = |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08-17|확인날짜 = 2013-03-2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927121334/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보존날짜 = 2013-09-27|깨진링크 = 예}}</ref> 이와 관련해 진수희 대변인은 "1위 후보가 압승을 해야 경선 후유증이 최소화 된다라는 생각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우리가 15% 격차로 압승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 그러나 박근혜 후보측은 자체 전수 조사 결과 근소하게나마 앞서기 시작했다면서 각종 의혹으로 이 후보에 불안감을 느낀 당심이 옮겨온다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 당시 세대별 지지율을 보자면, 이명박 후보는 3,40대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은 반면,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ref name="imnews.imbc.com"/>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모두 승리하였지만, 1표를 실제의 5표로 환산한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명박에게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표의 등가성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었으나, 박근혜는 깨끗이 승복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명박,박근혜에 2452표차 승리…경선결과 집계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20/2007082000855.html |출판사 = 조선닷컴 |저자 = |쪽 = |날짜 = 2007-08-20 |확인날짜 = 2009-07-07}}</ref> 하지만, 논란의 연장선상으로 이후에 대선 후보 자리를 박근혜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5336 세상을 보는 다른 눈 "뷰스앤뉴스" - 이동복 "이명박, 박근혜에게 후보 양보하라"<!-- 봇이 따온 제목 -->]</ref>
[[대한민국 제18대 총선|2008년 총선]]에서 친이계의 이재오, 이방호 두 명은 적극적으로 이명박 계열의 정치인들을 후보로 내세우고, [[대한민국 18대 총선 한나라당 후보 선출|공천]]에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박근혜는 이에 대하여 공천의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수차례 비판하였으나 공천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가 있었던 2008년 6월 박근혜는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한 차례 한 뒤 줄곧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본격적인 거리 투쟁으로 비화된 5월에도 그는 당을 떠난 친박 측근들의 복당 문제 얘기를 주로 했다. 이후 계속되는 복당 요구에 네티즌들의 의해 '복당녀'라는 별명이 생기며 비판받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에서 2010년 6월 29일에 북한의 천안함에 대한 군사 도발 규탄 및 대응 조치 촉구 결의(의안번호 1808656)의 원안가결에 찬성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kms_data/record/data2/291/pdf/291za0008b.PDF "제 291회국회-제8차 (임시회) 국회본회의회의록"]</ref>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에서 2010년 11월 24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대연평도를 향하여 170여 발을 포격하여 대한민국 해병 2명 및 대한민국 국민인 민간인 2명을 살해한 [[연평도 포격]]을 규탄하기 위한 북한의 무력도발행위 규탄 결의안(의안번호 1810030)을 찬성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kms_data/record/data2/294/pdf/294za0014b.PDF "제 294회국회-제8차 (정기회) 국회본회의회의록"]</ref>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에서 2010년 3월 2일에 탈북자들을 위한 지역적응센터, 상담사제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설립등을 위해 발의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의안번호 1807771)에 찬성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kms_data/record/data2/287/pdf/287za0012b.PDF "제 287회국회-제12차 (임시회) 국회본회의회의록"]</ref>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에서 2009년 12월 29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결혼 이민자,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우수 외국 인재로서 특별귀화한 자, 국적 회복 허가를 받은 자로서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우수 외국 인재로 인정되는 자, 해외 입양 되었다가 우리 국적을 회복한 자, 그리고 외국에 장기 거주하다가 국내에 영주 귀국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한 65세 이상의 자들을 대상으로 [[복수 국적]]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기 위하여 발의한 국적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807200)의 수정가결에 찬성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kms_data/record/data2/289/pdf/289za0008b.PDF "제 289회국회-제8차 (임시회) 국회본회의회의록"]</ref>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에서 2009년 2월 5일에 대한민국 헌법 제24조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거주하는 약 240만명 대한민국 국민의 금지되었던 [[재외국민]] 참정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발의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의안번호 1803725), 주민투표법 일부개정법률안 (의안번호1803724), 그리고 국민투표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800737)에 모두 찬성하였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2050342 재외국민 투표 허용 법안 국회 통과 ] <<[[동아일보]]>> 2009-05-25 작성</ref><ref>[http://likms.assembly.go.kr/kms_data/record/data2/281/pdf/281za0004b.PDF "제 281회국회-제4차 (임시회) 국회본회의회의록"]</ref>
박근혜는 [[2010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달성군수]]로 출마했던 한나라당의 이석원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지만 이석원 후보는 무소속의 김문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박근혜는 "달성군민이 판단한 것도 존중한다"고만 입장을 밝혔다.<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상처입은`선거의 여왕 박근혜, 침묵 끝 한마디] {{웨이백|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date=20100607172404 }} 매일경제 2010년 6월 3일</ref> 차기 대선 후보로써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25.1%를 기록하는 등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ref>(http://www.ccdailynews.com/section/?knum=152755 박근혜 지지율 2.3% 하락) 충청일보 2010년 6월 3일</ref> 박근혜는 2010년 하반기부터 차기 대선 행보에 초점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20일 열린 공청회에서 복지를 화두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박근혜는 인사말을 통해 "서구 선진국들의 전통적 복지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맞춤식 생활 보장형 복지 국가를 제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3860 박근혜 대권 행보 시작‥공청회 '대선출정식' 방불] mbc 2010년 12월 20일</ref> 이후 12월 27일 박근혜의 대선 구상을 내놓을 '국가미래연구원'이 출범했다. 출범식에는 대한민국 내 학자들과 [[이한구 (정치인)|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박근혜, 빨라진 대권 행보‥'싱크탱크' 출범] {{웨이백|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date=20130927121326 }} mbc 2010년 12월 27일</ref> 그러나 [[심재철 (1958년)|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 얘기는 감추고 무조건 복지만 잘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4333 한나라당 심재철 "박근혜 복지, 솔직하지 못해"] mbc 2010년 12월 25일</ref>
그리스 외무부 장관 디미트리스 드루차스와 함께 한 박근혜
국회의원 재직 중 대선 경선을 맞이하게 된 박근혜는 대선 경선 캠프 선대위원장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 '경제 민주화'의 입안자인 전 [[민주정의당]] 헌법개정위원 [[김종인]]을 임명하는 등 [[사회양극화]] 문제 해소에 적극적 의지를 보였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20628031405843] 김봉기 기자, '경제 민주화' 원조 김종인… 내달 출범 박근혜 캠프 맡는다, 조선일보, 2012.6.28.</ref> 박근혜는 재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경제력 남용을 바로잡는 데 방점을 뒀다.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긍정적 역할은 인정하자는 쪽이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820160408085] 이제훈, 재벌이 싫어하는 헌법 조항, 한겨레21,2012.8.20.</ref> [[사회양극화]] 해소가 목적인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세수확보가 중요한데 박근혜 의원은 2012년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법인세는 가능한 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야기했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6%(지방세 포함)보다 낮은 편이다. 일본과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각각 39.5%, 39.2%에 이른다.<ref name="hani.co.kr">[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42826.html] 류이근, 성연철 기자, 박근혜 "법인세 인하"…친박서도 "경제민주화와 모순", 한겨레신문, 2012.7.17.</ref> 현재 법인세는 내국세 총액 가운데 부가가치세(33.0%) 다음으로 높은 비중(28.6%)을 차지한다.<ref name="hani.co.kr"/>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법인세를 낮추겠다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에서 ‘박근혜식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ref name="hani.co.kr"/> '법인세 인하와 경제민주화 간의 모순성' 및 '법인세 감소분에 따른 대체 세수 확보' 등의 논란은 대통령 선거일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한편 경선 8일 뒤인 [[2012년]] [[8월 28일]] 박근혜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유족과 노동자들의 거부와 반대로 무산되었다. [[전태일]]의 여동생이자 구 [[민주통합당]]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인 [[전순옥]]은 진정으로 [[전태일]] 정신을 생각한다면 쌍용차나 용산참사 희생자 등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먼저 찾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른바 국민대통합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현안이 일어나는 현장을 먼저 찾아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현재의 진실은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거의 삶이 일치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5·16 쿠데타와 유신, 군사 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8/28/0200000000AKR20120828048951001.HTML?did=1179m 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 연합뉴스, 2012년 8월 28일</ref> 그러나 [[이상일]] 대변인은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대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거 기간 중이던 2012년 11월 22일 무소속 이건개 후보가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선언, 사퇴하였다. 이튿날 무소속 [[안철수]] 후보 역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 단일화를 이뤄냈다. 이후 후보로 등록하였으며 기호 1번을 차지하게 되었다. [[2012년]] [[11월 25일]] 국회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을 갖고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이후 [[2012년]] [[12월 10일]] 박근혜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하였고, 국회의원직 사직서를 [[강창희 (1946년)|강창희]] [[국회의장]]이 수리함에 따라 박근혜 후보는 15년간의 의정 활동을 마치게 되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95회 일치
* Strength(전력): 육군, 해군, 공군 모두 존재하는 능력치. 부대를 구성하고 있는 병사, 장비 그외 등등. 전투나 보급 부족, 위험 지역에서의 주둔 등으로 떨어지며 증원에 생산량을 투자해 인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조금씩 회복된다. 해당 수치가 0%가 되면 부대가 몰살당한 것으로 처리되어 삭제된다. 동원령을 발동할 경우 예비군 소집 이벤트와 함께 모든 육군 사단의 조직력이 회복된다. 반면 동원령을 해제할 경우 모든 육군 사단의 조직력이 30%로 하락한다. 어차피 나중에 동원령 소집하면 예비군 소집 이벤트 뜨며 회복되니 인력과 공업력 부어서 회복시키려고 하지는 말자.
* Reserves(예비): 방어 지원과 비슷하다. 차이라면 지정 대상이 인근 프로빈스 전부라는 것.
* Strategic Redeployment(전략적 재배치): 기차를 이용한 병력수송. 잠시동안 사라졌다가 지정한 아군 프로빈스에 나타난다. 조직력이 약간 깎인다. 부대를 먼 곳에서 불러올 때 쓰인다. 전략적 재배치 도중 목적지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수도로 목적지가 변경된다. 이를 이용해 먼곳에 있는 부대를 수도로 워프시킬 수 있다.
>보병은 아마 당신 군대의 대부분을 구성하게 될 사단입니다. 이들은 비교적 저렴하고 운용하는데 연료를 정기적으로 공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차량화 운송수단의 부족으로 진격 속도가 제한됩니다. 그럼에도 보병은 넓은 지역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병력들이 점령한 땅을 넘겨받을 수 있으니까요.
기동 사단 중 처음 보게 될 녀석. 처음에는 말을 탄 기병대지만 테크가 올라갈수록 오토바이를 탄 "반-차량화 기병", 장갑차에 올라탄 "기갑 기병" 따위가 나오더니 최종 테크에는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는 "공중 기병대"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테크가 올라가면서 연료를 처먹기 시작하는데 그 양도 겁나게 늘어난다. "기갑 기병" 단계에서는 기갑 부대 수준으로 연료를 퍼먹는다. 테크 올리기 겁나 복잡한게 특징.
==== Motorized(Mot, 차량화보병) ====
>차량화보병은 다른 보병들보다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 트럭과 같은 바퀴달린 이동수단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도로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제 성능을 내지 못합니다.
>기계화보병은 반궤도차량과 같은 전천후 이동수단을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차량화사단처럼 도로에 의존하지 않으며 기갑 부대와 함께 작전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특수한 장비를 사용하기에 가격이 비쌉니다.
하프트랙에 올라탄 보병 사단. 사실 기갑 사단으로 취급된다. 차량화보병보다 강하지만 생산하는데 공업력이 많이 든다.
==== Light Armored(L Arm, 경전차) ====
1936년 연구인 "초기 전차"와 1934년 교리 연구인 "기갑 사단 편제"를 연구해야 생산할 수 있는 사단. 1939년 연구인 "진보한 경전차"에서 테크가 끝난다. 이후 1939년 연구인 "기본 중형전차"를 연구하면 중형전차로 업그레이드 된다. 하지만 도태되지는 않으므로 계속 생산할 수 있다. 쓸모는 좆도 없을테지만.
==== Armored(Arm, 전차) ====
>기갑 부대는 전장에 진정한 전투력 투사를 보여줍니다. 이들의 속도와 화력은 전장의 모두, 특히 참호 안에 숨은 보병에게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전차가 점점 무거워지며 이들의 속도도 점점 느려졌습니다. 또한 이들은 전장에서 행동하기 위해 많은 양의 연료를 보급해야합니다. 만약 연료 보급이 중단된다면 기갑 부대는 무력해질겁니다.
1939년 연구인 "기본 중형전차"와 1934년 교리 연구인 "기갑 사단 편제"를 연구해야 생산할 수 있는 사단. 빠르고 강력하지만 비싸며, 석유를 퍼먹고, 지형빨을 비교적 잘 탄다.
>포병 제대는 당신 부대의 "소프트 어택" 능력을 높여 보병과 차량화 부대에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게합니다.
대보병 공격력을 중심으로 늘려준다. 대전차포 연구로 대전차 공격력을 늘릴 수 있으며, 로켓포 연구로 대보병 공격력을 늘릴 수 있다.
공수부대 전용 포병. 일반 포병 여단보다 성능이 딸린다. 대전차포 연구를 풀업하면 대보병 공격력보다 대전차 공격력이 더 좋아진다.
열차포. 일반 포병 여단보다 성능이 딸리고 최고 속도도 2나 깎아먹지만 공격시 방어력을 늘려준다. 요새에 있는 적을 공격할 때 60% 보너스가 붙는다.
* 부착 가능 사단: 부착 가능 사단: 보병, 주둔병, 민병, 산악병, 해병, 기병, 경전차, 전차, 사령부
* 부착 가능 사단: 보병, 산악병, 해병, 기병, 차량화보병, 기계화보병, 경전차, 전차, 사령부
- 김재규 . . . . 64회 일치
* 관련 문서: [[박정희]], [[차지철]], [[김재규/항소이유 보충서]], [[10.26 사건]]
[목차]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 해방 후 안동농림고등학교,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후, 그 해, 대구농업전문학교 중등교원양성소[* 이 당시에는 2년제 전문학교였다. 해방 후 대구농과대학을 거쳐 1951년 대구사범학교 등과 통합하여 경북대학교로 개교한다.]에 입학하여 1945년 수료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중등교원의 수가 부족한데 반해, 조선 내에는 고등사범학교가 없었다. 문과의 경우 [[경성제국대학]] 졸업자 등으로 수요를 채울 수 있었지만, 이공계 쪽의 교사가 부족하여 일제는 각종 전문학교에 2년제 '교원양성소' 과정을 도입하여 교사인력을 충원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이 징집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군 해군]]의 [[카미카제]] 양성을 위한 예과 후보생으로 차출되었으며 카미카제의 생존률이 0%라는것을 감안해보았을때 만약 일본이 빨리 몰락하지 않았다면 김재규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방 후 김천중학교[* 現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1946년 12월 졸업하였는데, 졸업당시성적은 196명 중 14등으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 대리로 복무 중에 군경체육대회 때 [[미 육군]]과 충돌을 일으킨 죄로 면관당한 후 잠시 낙향하여 김천중학교와 대륜중학교[* 現 [[대륜중학교]]&[[대륜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복직되어 22연대 정보주임으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의 공을 인정받아 3사단 22 연대 제 2 대대장으로 부임하는데, 공교롭게도 부임일에 6.25 사변이 발발한다. 김재규는 2대대를 지휘하며 의정부·대구·영덕 지구의 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 혈전을 벌였고, 6.25의 전투 중 치열하기로 손꼽혔던 황간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국군과 연합군의 북진에 선봉에 서서 함경남도의 땅까지 밟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어 남으로 후퇴하게 되고 이후 여수 제 2 보충연대장으로 부임한다.[* 참고로 박정희는 6.25때 후방에서 보급병과 장교로 근무하느라 전공은 커녕 북한군과 마주친 적조차 없다.] 1970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7년에 [[육군대학]] 부총장을 지낸 후 방첩부대장, 육군보안사령관, [[제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우려해서 [[육군참모총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에는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만 앉혔고, 정말 유능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육군 장군은 [[사단장]], [[군단장]] 수준에서 전역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김종오]], [[박병권]], [[민기식]], [[김용배]], [[김계원]], [[이세호]], [[임충식]] 등은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들이 아니다. 다만, 12.12 군사반란 때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노재현]]이 보여준 추태가 워낙 커서 앞의 인물들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까이는 경우가 많다.] 김재규도 이런 케이스로, 월남전의 영웅인 [[채명신]] 장군 또한 [[대장(계급)|대장]]을 못 달고 중장에서 전역해야 했다. 이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 건설부 장관을 거쳐 1976년 12월에 제8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73년 초 3군단장으로 전역 후 제9대 국회에서 [[유신정우회]] 1기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 12월 [[이후락]]의 뒤를 이어 [[신직수]]가 중앙정보부장이 될 때 중앙정보부 차장이 되었다. 이 때 김재규는 신직수를 매우 껄끄러워했는데 자신이 제5보병사단 참모장일 때 육군 [[군법무관|법무]][[소령]] 신직수가 그 밑에서 법무참모를 지냈기 때문이다. 1974년 9월 개각 때 건설부 장관이 되었다. 건설부 장관 부임 당시 8000만 달러 밖에 안되던 해외건설 계약고를 3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공을 세워 근정훈장을 받았다. 1976년 12월 신직수의 뒤를 이어 중앙정보부장이 되었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위의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나왔듯이, 청와대 내에서 실세 권력이 높았던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 방법이 없어서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는 단순한 [[공주]]가 아닌 육영수의 분신이었고,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 사건]]으로 죽은 영부인의 딸이란 동정표까지 더해져, 당시 노인들은 박근혜만 보면 '''"[[공주]]님 오셨다"'''며 큰 절을 올리며 눈물 흘릴 정도였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1042107005|#]] 더욱이 마음에 안드는 경찰청장이나 도지사를 호출하여 호통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최태민에게 분노한,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으라고 직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언을 듣기는 커녕 박근혜를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직에 올리고 최태민을 명예총재직에 올리는 조치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절망감이 [[10.26 사건]]의 동기가 되었다고 김재규는 증언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인맥]]의 영향력이 더 컸다. [[박정희]]와 고향 후배이며 육사 동기라는 2중의 인맥인 김재규는 그야말로 심복이었다. 하지만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을 [[발터 PPK]] [[권총]]으로 저격하여 [[암살]]했다.[* 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박정희 암살에 성공한 총기는 [[M36 치프 스페셜]]이다.] 이것이 이른바 [[10.26 사건]]이다.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이 경호원들과 함께 현장에 동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저격할 줄 생각 못한 경호팀은 무력했고 그들 모두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제압당한다. 경호실 요원 중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 당시 경호계장이던 [[박상범]]이고, 그는 나중에 [[김영삼]] 정부에서, 민간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 경호실장을 맡게 된다.
특히 박정희를 암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평소 차지철은 대통령 경호라는 미명으로 온갖 월권행위와 [[경거망동]]을 서슴치 않았고, 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주동자 1순위는 단연 차지철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실제로 사건이 터진 후 청와대로 들어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유고 소식을 들은 김치열 당시 법무장관은 "그 새끼가 까불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군!!" 하고 호통을 쳤는데, 그 새끼는 물론 차지철을 지칭한 것이었다.
* ② 김재규가 [[박정희]]를 순전히 우발적으로 저격했으므로 거사 후 사태장악에 대한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설. 사건 수사결과에 의하면 거사 후 김재규는 [[정승화]]와 승용차에 동행하여 사건현장을 떠나 이동하던 중,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에게 "정보부와 육본 중 어디로 가는게 좋겠느냐"고 묻자 정승화가 말을 가로채어 "육군본부로 가는게 좋겠다"고 제의하였고, 김재규는 아무 생각 없이 운전기사에게 육군본부 행을 지시했다. 이때 정승화는 안가 본관(연회장은 나동)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가 사건을 저지른 김재규와 차에 동승한 것이었는데, 그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가 육본으로 갈 때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박흥주 대령의 구두를 빌려 신을 정도로 우왕좌왕했던 행동을 볼 때, 이 견해도 설득력은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비판[* 옹호든 비판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등은 김재규 부장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당시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와 말년의 박정희는 대한민국은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기에 김재규가 10. 26 사태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박정희 역시도 여타 독재자처럼 말년이 비참했을 것이고 후세의 평가도 좋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쪽에서는, '''그 또한 과거 유신정권하에서 한자리를 해먹던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며, 박정희를 암살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를 국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심판할 기회를 빼앗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 갖은 압제와 고문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해오던 자신들보다, 단순히 박정희 한 명 암살했다고 김재규가 포커스를 더 받는 건, 몇십 년을 민주화 투쟁한 사람들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의해 투쟁해온 이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게 애초 김재규는 박정희와 친형제 같은 사이였고 중정부정이라는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10.26 단행 이전의 행보를 보더라도 정보수집과정에서 유신정권도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박정희도 말년에는 20년 절대 권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10.26 단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는 차지철, 이후락 같은 다른 유신인사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근데 전두환 노태우꼴을 보면 심판도 안받았을 확률이 높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재규를 비판하는 재야/민주운동가들은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동기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의한 기여도 및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시도 “박정희 정권은 당시 [[부마항쟁]]을 비롯한 일련의 민중저항을 통해 어차피 붕괴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며 “김재규의 행위가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홍구는 하단의 긍정론에 서술되어 있듯 2013년을 기점으로 김재규에 대한 견해가 바뀌었다.] 진보적 사회운동가 백기완도 “당시는 박정희 유신독재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항쟁이 거셌고, 박정희 내부 권력의 모순이 더 격화되어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조그마한 사건일 뿐이며 민주화운동의 본체, 기본적인 흐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라고 주장하였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1784.html|출처]]
'''요약: "비록 김재규가 박정희 정권에 충성하며 부역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재규가 아니었다면 민주화는 10년, 20년 미루어지거나 심지어 아직도 박정희의 [[차지철|후]][[전두환|계]][[노태우|자]][[박근혜|들]]이 [[북한|북쪽]]마냥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라는 주장.'''
김재규는 정권 내에서 온건파였고, 당시 [[부마항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때 [[박정희]]는 먼저 이승만과 곽영주 운운하며 총기사용을 지시했고 [[차지철]]도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거론하며 아부를 하여 무력사용을 부추겼다. 결국 대통령인 박정희가 직접 유혈진압을 지시한 이상, 김재규가 [[10.26 사건]]으로 박정희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부마항쟁 때 [[5.18 민주화운동]]이나 [[천안문 6.4 항쟁]]처럼 사격명령이 동반된 진압이나 심각한 경우 차지철 말대로 킬링필드급 학살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차지철이 킬링필드같은 개소리를 지껄여도 박정희가 저지하지 않은 점은 김재규나 차지철 입장에서는 박정희가 학살을 묵인하겠다는 암시로 해석될 수 있다. [[김재규/항소이유 보충서|김재규의 항소이유 보충서]]를 보면, 김재규는 부마항쟁에 대해서 대단히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었고 자칫하다간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기라고 판단했다. 또한 박정희의 곽영주&총기 사용과 [[차지철]]의 [[킬링필드]] 운운하는 발언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음이 나타난다.
김재규는 [[차지철]]과의 갈등 이전에도 유신의 방향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자주 내비쳤고, [[장준하]] 등의 민주화 운동 인물들을 비밀리에 도우면서 관련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박정희를 '환자'로 비유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고, 법정에서도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보이며 사형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자세를 보았을 때 단순히 차지철과의 갈등으로 인한 우발적인 권력 싸움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결정적으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결단했던 건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대응책 방향이었는데, 박정희와 차지철은 강압적인 진압을 요구했으나 김재규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이것이 10.26이라는 도화선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이밖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의 구속을 반대하는 동시에 [[김대중]]의 가택 연금을 일시적으로 해제시키고 김영삼과 만나게 승인했으며, [[차지철]]과의 갈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승진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발생한 갈등이 아니라 국정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조갑제조차도 김재규가 사욕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칼럼을 개시했을 정도였다. 김영삼의 측근이었던 김봉조의 회고에 의하면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 시절 자신을 방으로 불러 격려하며 김영삼은 한국을 위해 큰 일을 할 인물이고 앞으로 김영삼이 정치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자신있게 잘 모시라며 격려하였다고 한다.[[http://m.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773|#]]
1970, 80년대에도 국정 방향에 대해서는 뒤에서 "[[박정희]]에게 실망했다"는 의사를 자주 표명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으며, 7대 대선에서 마지막만 하고 다시는 안 하시겠다는 약조를 김재규가 청원했다는 증언과 더불어, 한 때 진지하게 하야를 권고하려 했다는 증언도 있다. 결국 10.26은 박정희에게 오랫동안 직언을 통해 온건한 설득을 하려 했지만, 박정희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지철을 중용하며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동안 쌓였던 실망감과 울분이 폭발하여 강경한 수를 두었다는 주장이다.
>김재규의 거사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지만, 여성 연예인들이 저런 식으로 대통령의 술자리에 불려가는 일만큼은 확실히 차단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김재규의 구명을 호소하면서 우리의 민주화가 김재규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민주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그 여성 연예인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에는 또다른 10·26 사건이 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쏜 날이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70년을 두고 2개의 10·26 사건이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군사독재가 왔는데,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이토의 제삿날과 군사독재의 상징인 박정희의 제삿날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중략)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득세한 나라에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구]]로 상징되는 보수우익 의사의 계보는 대가 끊어졌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으면서도 박정희의 명예는 끝까지 지켜주고자 했던 김재규는 대가 끊겼던 한국 보수우익의 계보학에서 돌출한 마지막 대륙형 인간이었다.
- 세정(구구단) . . . . 63회 일치
[목차]
여러 명의 뛰어난 연습생들 사이에서 실력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훌륭한 인성으로도 주목을 받았고, [[프로듀스 101]] 방영 내내 각종 투표 및 평가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며 '''갓세정, 퀸세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후추닷컴의 [[최동원]]-[[선동열]] 평가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 [[프로듀스 101]] 사상 단 한 명의 여자 연습생을 뽑는다면 아마도 그 1등은 [[SIXTEEN|식스틴]] 팬덤을 안고 출연한 [[JYP엔터테인먼트|JYP]] 연습생 [[소미|전소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소미([[선동열]])를 출연시키고도 승패의 결과가 가장 불확실할 것 같은 연습생 한 명을 꼽는다면 그건 바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젤리피쉬]] 연습생 김세정([[최동원]])일 것이다.] [[프로듀스 101/11회|마지막 방송]]에서는 [[소미|전소미]]에 이어 최종 순위 2위를 차지하여 프로젝트 걸그룹 [[I.O.I|아이오아이]]에 합류했고, [[2016년]] [[5월 4일]]에 [[데뷔]]하여 [[I.O.I|아이오아이]]의 멤버로 활동했다.
[[I.O.I|아이오아이]]의 미니 1집 활동을 마치고 나서 [[2016년]] [[6월 28일]] 원래 소속사인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으로 런칭하는 [[걸그룹]]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멤버로 재[[데뷔]], 미니 1집 <Act.1 The Little Mermaid> 활동 후 [[10월 17일]], [[I.O.I|아이오아이]]로 돌아가 미니 2집 <miss me?>의 [[타이틀 곡]] 너무너무너무로 '''첫 음원 1위, [[음악 방송]] 1위'''를 달성하고 다음 달 발표한 [[솔로]]곡인 '''꽃길'''로 다시 한 번 각종 음원 사이트와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며 '''[[데뷔]]한 해에 그룹과 [[솔로]]로 1위를 차지한 유일무이한 [[아이돌]]'''이 되었다.
그리고 2016년 4월 16일 [[I.O.I]]로서의 첫 활동을 시작했다. 약 오후 1시 무렵 [[I.O.I]]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깜짝 이벤트 관련 영상이 올라왔다. [[I.O.I]]가 총 두 팀으로 나누어져 [[용산]] 아이파크몰, 상암 CJ E&M 센터로 갔는데, 세정은 상암 팀의 멤버였으며 현장에는 커피 차 한 대가 있었고 팬들은 커피 차에서 커피를 주는 역조공이 아닐까 추측했다.[* 당시 반응으론 동성로에 비해 별로일 것이다, 커피만 나눠주고 끝이라 별로일 것이다 등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안방충의 패배~~]
오후 3시 진행 예정이었던 행사가 비로 인해 40분이 지연되고 난 뒤 총 선착순 200명의 팬에게 커피를 나눠 주었는데 상암 팀은 3명씩 조를 이루어 나눠 주었다. 3명은 커피 차 안에서 커피를 만들고, 3명은 커피를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세정은 101번부터 밖으로 나와 커피를 나눠줬다.[* 앞 번호에서는 안에서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다른 이벤트와는 달리, 같이 사진 찍을 시간, 싸인 받을 시간[* 앞 번호 때만.]을 주어 엄청난 혜자 이벤트가 되었다! ~~ I.O.I는 게릴라를 꼭 가야 한다~~ 당연히 실시간 중계만 보던 팬들은 배아파하며 통곡했다는 후문이...
이벤트는 총 1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행사장을 떠나고 10분 후 다시 돌아와 남아 있는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되게 열일했다고 한다. 말 걸기 미안할 정도로 ~~[* 실제 현장 실황을 찍은 영상을 보면 커피 만드는 멤버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고 있고, 나눠주는 멤버는 밖에서 번호표 받고 커피 주고 악수하고 사진 찍어 주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에 리액션해 주는 등 정신없이 각자 할 일들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자기와 같은 언니 라인에게는 존중의 모습을 보인다. 맏언니인 나영, 청하와의 나이차가 겨우 몇 개월 정도임에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나영 언니 힘내요! 언니는 훌륭한 리더에요!"라는 등의 존중의 표현을 한다.
* 2016년 4월 24일부터 [[KBS 2TV]] 신작 예능 [[어서옵SHOW]]의 홈쇼핑 요정 역할로 고정 출연했다. V앱, 네이버TV로 방송되는 생방송과 KBS 본방송에 모두 출연한다.[* 1회차 본방송은 5월 6일 9시 30분에 방영.] 첫 방송에는 [[I.O.I]] 모든 멤버들이 게스트로 출연했고, 이후 방송에는 다른 I.O.I 멤버들이 돌아가며 한 명씩 게스트로 출연하는 추세다. ~~넘나 귀엽다~~
그리고 2번째 생방 분량인 본방 3회차부터 본 방송 내에서의 분량도 매우 늘어났다. [[이서진]]이 적극적으로 세정을 챙겨주는 부분이나 퀴즈 등의 진행과 같이 제작진도 적극적으로 세정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이 날 각 호스트별 방송 중에 참여했다가 시간 종료를 매우 적절하게 활용하여 웃음을 주는 등 활약이 많아졌다. 특히 이 날은 같은 [[I.O.I|아이오아이]] 멤버인 [[소미|전소미]]의 출연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하여서 1~2화 대비 더욱 방송에 활력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박수홍]]과 함께한 웨딩편에서는 [[어서옵SHOW]]에서 레전드로 남은 '''등근육'''을 보였다. 11회부터는 방송 초반부터 3MC와 같이 진행하고 [[김준현]]과의 먹방 검증에서도 먹는 모습이 화면에 많이 잡히는 등 [[어서옵SHOW]]에서 아예 MC로서의 지분을 톡톡히 했다. [[어서옵SHOW]] 출연진들 중 가장 많은 이득을 보았으며, 이후 [[어서옵SHOW]]가 종영된 후에도 타 예능 출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2016년 8월 11일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소녀시대]] [[써니(소녀시대)|써니]], [[EXID]] [[솔지]],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예린(여자친구)|예린]], [[멜로디데이]] 차희, [[라붐(아이돌)|라붐]] [[솔빈]]과 함께 "[[부산행|예능행]]"이라는 타이틀로 출연하였다. 띠드버거 애교를 벌이는 과정에서 호탕하게 웃어버리는 반전 매력을 보여 폭탄웃음을 선사했다.
출연자는 [[김수로(배우)|김수로]], [[이수근]],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 [[이기광]], [[김신영]], [[박하나]], [[ASTRO|아스트로]] [[차은우]], 비보이 [[하휘동]]이 출연했다. 결승전에 진출해 [[이기광]]과 맞붙었으나, [[이기광]]에게 패해 준우승했다.[* 최종 결과 30곡 중 세정이 23곡을 성공했고 [[이기광]]이 세정보다 1곡 더 성공했다. [[이기광]]이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에서 메인댄서고 아이돌 중에서도 춤으로 인정받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것이다.] 세정의 숨은 댄스 본능을 알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 2016년 12월 17일 [[불후의 명곡 2]] [[전영록]]편에 출연해 [[https://tv.naver.com/v/1313994|'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불렀다. 대결 상대는 솔로 활동으로 잔뼈 굵은 [[에일리]]였으며,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701404|결과는 12표 차이]](404: 416)로 석패.
* 2016년 12월 11일 기사를 통해 [[JTBC]] [[한끼줍쇼]]에 출연을 밝혔으며, 12월 21일 방송되었다. 시청률은 3.518%가 나왔다.[* 전 주에 비해 1프로 상승했으며, 심지어 [[아는 형님]] [[I.O.I|아이오아이]] 2번째 출연 시청률인 3.453%보다 높다.][* 한끼줍쇼 최초의 게스트이자 단독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세정이 실수로 숟가락을 길바닥에 떨어뜨린 것을 보고 '밥숟갈을 놓으면 어떡해!'라고 이경규가 지적하며 불길한 징조로 몰아가려는 이경규와 강호동의 공세에 '숟가락을 놓는다는 것이 배부르게 먹었다는 의미잖아요. 저희도 그렇게 된다는 뜻이죠.'라고 답하는 재치를 보여줬다. 강호동이 이경규에게 세정은 유재석 라인이라며 소개하자 라인은 서른살 즈음 정하는 것이라고 즉석에서 답하며 이경규를 감탄시켰으며 외국인이 사는 집을 맞이해서 망설이지 않고 용기있게 영어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까지 보여 급기야 '세정아 너 고정하자!'는 표현까지 이경규가 하게 되었다. 강호동 역시 세정의 센스와 담력에 감탄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으며 해당 프로그램의 방현영 PD는 방송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끼줍쇼의 은인, 복덩이라고 세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 세정이 설명한 구구단과 IOI의 차이점은 [[구구단]]의 경우 언니들이 많아(미미, 하나, 해빈, 나영 - 나이서열 5위) 귀여움을 받아 힐링이 되고 동생들이 많은 IOI(나이서열 3위)에서는 동생들이 많이 몰려와 언니하면서 안겨 엄마로서의 힐링을 느낀다고 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30348|#]] 방송이 끝난 후 [[https://1.bp.blogspot.com/-ootuIEvL8EQ/WGuuwyPjEkI/AAAAAAAAUZs/8OHqkcPbFl84wbZtGr1VR5YGQjJCYIw_wCLcB/s1600/1483449475.png|실시간 검색어]]와 [[https://1.bp.blogspot.com/-h3GSBayy9M4/WGuuwefja0I/AAAAAAAAUZg/gVKC0aaNQtoBpXfvwJ3moVq9deoRrTo3gCLcB/s1600/1483448677.png|메인 기사]]를 장악했다.
* 2017년 1월 20일 자 [[http://www.sedaily.com/NewsView/1OAW3RCG0X/|보도자료를 통해]] [[온스타일]]의 [[Get it beauty|겟 잇 뷰티]] 2017을 통해 케이블 뷰티쇼 고정 진행자로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첫 방송은 2월 19일 예정이며, 해당 시즌 MC진([[이하늬]], [[이세영(배우)|이세영]], [[박산다라]]와 공동 진행)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된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3회부터 출연하게 되었으며 학교 2017 드라마 촬영 등의 일정이 겹쳐지며 먼저 하차하게 되었다. 세정이 [[겟 잇 뷰티]]에서 빠진 뒤 [[박나래]]가 투입되었다. 2017년 4월에는 TVING live 겟잇뷰티 치킨먹방을 선보이기도 했다.
* 2017년 1월 27일 [[KBS 2TV]] 설날특집 걸그룹 대첩 가문의 영광에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들과 함께 출연했다.[* 이특: 선배팀을 깨부숴야 하거든요. 양세형: 어느 선배들을 부수고 싶으세요? 김신영: 도장깨기죠!로 이어지는 MC들의 짓궂은 질문에 '이게 계급장을 떼고 하는 거잖아요. 그럼 위~아래가 없다는 뜻으로... '라고 답하며 EXID를 지목하는 기지를 발휘해서 환호를 받았다.][[구구단(아이돌)|팀]] 대표로 흥대표로 출전해서 상위 4명의 결선에 오른 후 [[아웃사이더(가수)|아웃사이더]]와 '외톨이'를 같이 불렀으며, 수준급의 랩 실력을 보여서 --솔직히 수준급은 아니지만 보컬이 그 정도 한 거면 준수한 거다. 더구나 '''[[아웃사이더(가수)|아웃사이더]]'''의 랩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비난받는 와중에도 [[Apink|에이핑크]] [[윤보미]]와 함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오마이걸]]의 [[베테랑]] 보컬 [[승희(오마이걸)|현승희]]에게 밀려 우승에는 실패했다.[* 걸그룹 자리 배치가 같은 [[I.O.I]] 멤버인 [[정채연]]과 나란히 배치되어서 [[I.O.I]] 이별이 되면서 더욱 더 관심을 받았다.]--사실 마지막 무대로 [[고음]] 내지르는 [[소찬휘|Tears]]를 [[승희(오마이걸)|현승희]]가 불렀는데, 이건 솔직히 [[승희(오마이걸)|현승희]]가 이기라고 밥상 차려준 거나 다름없다--
* [[I.O.I]] 활동 종료를 앞두고 녹화가 있었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7년|2017 설날 아육대]]에 출전하며 2017년 1월 30일 방영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은 세정과 [[하나(구구단)|하나]]가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7년|아육대]] 육상 60m에 출전했는데 [[어서옵SHOW]] 웨딩편에서 레전드로 남은 '''등근육'''을 눈여겨본 캐스터 [[정은지]]가 세정이 육상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거라고 언급했고, [[정은지]]의 예상대로 보란 듯이 예선에서 중간에 삐끗한 [[TWICE|트와이스]]의 [[채영(TWICE)|채영]]을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채영(TWICE)|채영]]마저 [[펠레의 저주|윤여춘의 저주]]에 걸려들게 만들었다.[* 이 날 [[와일드카드(스포츠)|와일드카드]]를 받은 출전자는 [[베리굿]]의 [[서율(베리굿)|서율]](10.25)뿐이다. 여자부가 5개 조로 경기했기 때문.] 결승전에서 [[비니(오마이걸)|비니]]보다 단 0.03초 늦은 기록으로 4위에 그쳐 아깝게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첫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메달을 놓쳤지만, 첫 출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승전 기록은 [[구구단(아이돌)|그룹명]]이 딱 연상되는 '''9.90'''.[* 예선 통과 때 기록은 10.02였다. 결선 때 기록이 더 좋았지만, [[루이(H.U.B)|상대들이]] [[유주(여자친구)|너무]] [[비니(오마이걸)|강해서]]...] 이 날 [[I.O.I]]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연정(우주소녀)|유연정]]도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세정과 달리 [[연정(우주소녀)|연정]]은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리듬체조]] 동메달 이후 울고 있는 [[성소]]를 위로해 주는 장면만 나갔다.] 뒷이야기지만, 이 날 [[유주(여자친구)|유주]]를 무너뜨리며 강한 인상을 남긴 [[루이(H.U.B)|와타나베 루이]]는 세정이 말동무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루이(H.U.B)|루이]]가 혼자 팀을 대표하여 나서다 보니, 세정이 [[루이(H.U.B)|루이]]에게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들이랑 이야기하고 같이 있자고 했다고 한다.[[차오루]]의 [[리듬체조]]([[클럽|곤봉]]) 때는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2017년 2월 13일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인 [[나영(구구단)|나영]]과 함께 [[KBS 2TV]] [[배틀 트립]]에 출연을 밝혔으며, [[프로듀스 101]] 게릴라 콘서트를 했던 [[대구광역시|대구]]로 내려가서 [[김광석]]길, 디아크문화관, [[이월드]], 안지랑네거리 곱창골목, 앞산전망대 일대를 투어했다.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1252478&cloc=|#]] 결과는 여수로 내려간 [[김대성(코미디언)|김대성]] - [[박소영(개그우먼)|박소영]] - [[오나미]] 팀에게 2표 차로 석패했다.
* 2017년 4월 24일에 방영된 [[JTBC]] [[비정상회담]]의 차회 예고편을 통해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인 [[나영(구구단)|나영]]과 출연을 밝혔다. 5월 1일 방영. '수면의 세계'라는 주제로 각 나라의 수면 습관이나 자장가 등 수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2017년 5월 20일에 방영된 [[채널A]] [[사심충만 오!쾌남]]의 차회 예고편을 통해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인 [[미나(구구단)|강미나]]와 출연을 밝혔다. 5월 28일 방영. [[행주산성]]을 방문하여 [[행주 대첩]] 및 [[권율]] 장군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진행된 투호, 줄넘기, 이어달리기 3종목으로 진행된 단합대회를 실시했다.
- 권혁 . . . . 61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
[목차]
[[한화 이글스]]의 [[투수]]. 포철공고 출신이며 2002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불펜 투수가 이렇게 화제성이 높은 경우는 최근 한국야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성근]] 감독의 엄청난 혹사를 꿋꿋히 버텨내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내는 모습이, 꼴지를 전전하던 한화가 2015시즌 가을야구 싸움을 하면서 얻은 투혼의 팀컬러와 잘 맞았기에 가장 언급이 많은 선수중 한 명이 되었다. 기존의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1982)|김태균]]과 더불어 2015년 한화의 아이콘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나 그만큼 큰 키에 힘이 좋고 투구 동작도 내리찍는 파워풀한 스타일이라 포텐셜을 뒤늦게 폭발시키고, 2002년에 누구나 1차 지명을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구고등학교의 [[윤길현]][* 현 [[롯데 자이언츠]]]을 제치고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오승환]]이 뻗어버려서[* 이는 삼성의 2009년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로 직결된다.] [[정현욱]]과 번갈아가면 마무리로 올라오게 되었으며,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인지 갈수록 성적이 처참해져서 시즌 후반에는 심심하면 털리는 야라레 투수가 되어 버렸다. [[지못미]]. 그래도 어찌어찌 21홀드를 기록함으로서 홀드왕 타이틀은 차지하였다.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65&page=3&bbs=|#]]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54&page=3&bbs=|#]]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플레이오프 2차전 : 4타자 상대하여 0.1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2볼넷 1희비 1실점(1자책) '''ERA 27.00'''.
플레이오프 3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 볼넷 1실점(1자책) [[한기주|'''ERA 99.99''']].
플레이오프 4, 5차전 : 등판 못함.[* 등판을 하지 못한 거 자체가 치명적이었다. 팀이 3, 4차전 모두 7명의 투수를 쏟아부었기에 4, 5차전에서 투수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권혁은 중심 불펜 역할을 예정중이었으므로 더욱 타격이 컸다.]
한국시리즈 1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볼넷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99.99, 패전'''[* [[오승환]]이 [[김재현]]에게 [[분식회계(야구)|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결승점을 득점한 주자를 내보낸 권혁이 패전투수가 되었다.].
좌완 중계로서 권혁의 역할은 삼성내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46015=|선감독 왈 '유일무이']]라고 불리운 그는,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 시리즈 2차전, 팀이 스코어 1:3으로 지던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박정권]]을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박경완]]을 상대로 홈런을 맞았다. 이 피홈런 때문에 또 다시 멘탈이 붕괴했는지, 다음 타자인 [[나주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권혁의 한계라고 보기엔 2010시즌 자체의 그의 성적은 그렇지 않았기에 삼성 선수단과 삼성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결국 권혁은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등판하지 못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3패로 몰린 10월 1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 팀이 스코어 4:1로 지던 8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박정권]]을 상대로 내리 3볼을 던지고 투구폼이 평소보다 매우 불안하다는 평을 받으며 1타자밖에 상대하지 못했다. 권혁은 이날 ⅓이닝 5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페이스를 좀 되찾은 모양인지 ~~왠일로~~ 호투하면서 살아나는가 했더니, 8월 24일 청주 한화전에서 8회 3:2로 앞선 상황에서 나와 미친듯이 처맞고 1사 만루에서 강판, 바로 교체한 안지만이 그의 뒷처리를 하려다 오히려 역전을 허용하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타선 침체로 인해 3연패에 빠져 있었던 팀을 오히려 4연패로 몰아넣고... 결국 이날 안일하게 경기 운영하다 경기를 내준 [[류중일]], 9회말 흔들리던 [[데니 바티스타|바티스타]]를 상대로 영웅스윙을 시전하다 폭풍삼진당한 [[채태인]]과 함께 삼성 팬들에게 개같이 까였다.[* 2011시즌 권혁의 성적은 1승 3패인데 '''3패가 모두 한화전'''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삼성은 이 시즌에 유일하게 한화에게 상대전적에서 뒤졌다. 1승은 7월 19일 SK전.] 역시 이놈은 [[답이 없다]]...라고 생각하던 차 8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에 등판하여 또 ~~왠일로~~ 호투하면서 2연승의 밑거름을 다져놓았다. 좀 들쑥날쑥해도 두산에게만큼은 강한 점도 있었는데다가 무엇보다 이날은 구속이 어느정도 돌아와서 고무적이었다. 올시즌 내내 원래 부족한 제구에 구속까지 안나와서 고전하던 차에 나온 이날 호투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나와 ⅓이닝 2피안타 1볼넷으로 부진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로 '''실점은 0'''이다. 사실 권혁 다음 투수가 1차전에서는 [[오승환]], 4차전에서는 [[안지만]]인지라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를 안 당해서 실점이 없는 것뿐이었다.[* 상세하게 따지면, 1차전에서는 1타자 상대 1피안타, 3차전에서는 팀이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SK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4차전에서도 1타자 상대 1볼넷을 기록했다.]
2013년 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재활 차원으로 2군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시범경기에도 출장했고 개막전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에는 나오지 못했고, 결국 3월 31일 2군으로 내려갔다. 4월 25일 1군에 복귀했다.
4월 25일 넥센전에는 점수차가 큰 상황이긴 했으나 2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6월 4일 허리 통증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는데, 권혁은 5월 20일 이후로는 등판하지를 않았다(...). 대신 [[백정현]]이 올라왔다.
7월 27일에는 1:1 동점 상황에서 등판해 1안타와 1볼넷을 기록했으나 삼진만 2개를 잡았다. 삼진/볼넷 비율이 4를 왔다갔다 할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 [[차우찬]]의 페이스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좌우놀이를 사랑하는 감독 특성상~~ 왼손 투수로 필승조에 포함될 듯 하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57회 일치
로마노프는 T-80 중대를 지휘해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 구역을 확보한 후, 말라셴코와 협동해 교차로 하나를 확보한다. 하지만 몰트케 다리 확보를 맡은 중대는 미군 공격헬기의 공격으로 괴멸당하기 직전이었다. 오를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대공차량을 지원해 주며 몰트케 다리 확보를 지시한다. 로마노프는 그의 명령대로 몰트게 다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나서 4개월 뒤. 아무런 표시가 없는 컨테이너선이 시애틀 항구에 나타난다. 신고를 받은 순찰차가 시애틀 항구에 도착하자 컨테이너선에서 소련군 Mi-24 공격헬기가 이륙, 순찰차를 공격해 쫓아낸다. 이후 소련군 부대와 장비가 시애틀에 상륙하기 시작한다. 소련군 사령관은 침공부대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방송국 헬기를 내버려두었다가 보여줄만큼 보여줬다고 생각되자 ZSU-23-4 자주대공포로 방송국 헬기를 격추시킨다.
배넌은 브래들리 장갑차 부대를 지휘하는 파커에게 항구의 정찰을 지시한다. 파커의 부대가 항구에 갔을 때는 민간 화물선에서 소련군 차량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이때, 워싱턴 주방위군의 핸슨 하사가 도움을 요청한다. 일부 주방위군 병사들이 항구 근처에서 소련군에게 포위당한 것. 배넌의 명령을 받은 파커는 주방위군 병사들을 구출해낸 후, 항구 근처 주방위군 보급고에서 브래들리 한대를 추가로 확보한다.
핸슨은 킹돔[* King Dome. 시애틀에 있던 종합경기장. 안전 문제로 2000년에 철거되었다.]으로 대피한 민간인들의 구조를 주장한다. 배넌은 후퇴하는 것도 바쁘다며 이를 거부하지만 민간인을 죽게 놔둘 수 없다는 핸슨의 반발에 파커에게 구조를 맡긴다. 파커는 부대를 이끌고 킹 돔으로 향한다. 킹 돔 앞 주차장에서 다수의 소련군을 발견하지만 파커의 부대는 킹 돔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헬리콥터로 도착한 증원군이 포격으로 킹 돔이 무너지기 직전에 민간인들을 구출해낸다.
미군은 시애틀을 포기하고 후퇴하기 시작한다. 미군 부대가 괴멸하고 탈영병이 발생하는 가운데, 파커는 시애틀 곳곳에서 포위된 주방위군 보병들을 구출하고 시애틀에서 빠져나가는 지하차도를 확보해 탈출한다.
파커와 배넌은 소여가 올 때까지 소련군을 막기 시작한다. 파커는 소련군을 막는 동시에 소련군에게 붙잡힌 민간인과 레빈슨 준장의 일가족을 구조했다. 배넌은 파커를 도와 소련군을 막고, 파커가 처리할 수 없는 소련군의 위치를 소여에게 알렸다. 소여는 배넌이 알려준 소련군의 위치에 화력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파커에게 M60 패튼 전차를 지원했다. 소련군은 BTR 장갑차로 강을 건너 방어선을 뚫으려고까지 했지만 미군은 민간인들이 다리 너머 후방으로 이송될 때 까지 다리를 방어하는데 성공한다.
수송헬기로 병력을 공수하는 소련군을 막기 위해 버려진 대공포 세문을 수리한다. M60 전차 한대를 공짜로 증원받을 수 있게된다.
로마노프 중대는 다리를 지키던 미군들을 무력화시키고 다리를 확보한다. 뒤이어 말라셴코 중대 휘하 A 소대가 다리를 건너오고, 그 뒤 올로프스키 중대의 잔여 병력들 역시 다리를 건너오기 시작한다. 이때 미군 전투기가 날아와 다리를 무너뜨린다. 자신의 부하들이 고립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말라셴코는 당장 교량전차로 다리를 만들 것을 요청하지만 올로프스키는 너무 위험하다며 서쪽의 얕은 부분으로 건너가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말라셴코는 지금은 우회 공격 따위를 할 시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올로프스키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올로프스키의 예상대로, 오리건 주방위군 소속 미군 부대가 다리를 탈환하기 위해 들이닥친다. 로마노프 중대는 요새화된 방어선과 Su-25 편대, 박격포 지원의 도움을 받아 미군의 대부대를 격퇴한다. 미군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전진해 방어선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린다. 오리건 주방위군은 후퇴하고, 강가와 다리는 소련군의 차지가 된다.
* M1 전차 파괴
미군의 전차 에이스가 지휘하는 M1 에이브람스 전차를 파괴한다.
파커는 오리건 주방위군 소속 공중기병대의 M551 셰리던 전차 지원을 받으면서 주유소를 점령한다. 이후 배넌 중대도 슈퍼마켓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자 소여는 파커에게 마을 중앙의 소련군 거점들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웹이 소련군 증원군이 마을 근처에 접근했다는 보고를 하자 소여는 최대한 빨리 거점을 처리할 것을 지시한다. 파커는 배넌과 웹이 북쪽 방어선을 돌파하는 동안 중앙의 소련군들을 쓸어낸다.
중앙과 북쪽이 무너지자 파인밸리를 점거하고 있던 소련군들은 남쪽의 TV 방송국으로 후퇴하고는 자신들과 미군 사이에 포격을 가한다. 소여는 파커에게 포격을 피해 숲으로 우회해서 방송국의 소련군들을 처리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고는 소련군 보병과의 전투에서 쩔쩔매는 배넌을 "유럽 전선에 있었을 때는 좀 더 활기차지 않았나"고 하며 디스한다. 그 동안 파커는 방송국의 소련군들을 처리한다. 방송국 전투를 마지막으로 마을을 점거한 소련군 공수부대가 완전히 와해된다.
소여는 또다시 휘하 중대장들을 마을회관 앞 광장에 불러 브리핑을 시작한다. 소련군 증원군은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질주하고 있으며, 약 한시간 내에 파인밸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소여는 배넌에게 북동쪽의 주유소를 사수하도록 하고 웹에게는 남동쪽 진입로를 사수하도록 지시한다. 마지막으로 파커에게는 북쪽 슈퍼마켓에 방어선을 피라고 명령한다. 이후 소이어 대대는 제1차 방어선을 그럭저럭 유지하지만, 소련군 포병대가 슈퍼마켓에 포격을 가해 파커의 중대를 후퇴시키고 웹의 중대가 피해를 감당하지 못해 후퇴하며 제2차 방어선을 치게된다.
>험비 뒤에는 또다른 미군 병사가 주저앉아 있었다. 늦게 온 병사는 먼저 온 병사에게 손을 뻗어서 조심스럽게 밀친다. 먼저 온 병사는 죽은 듯이 쓰러진다. 늦게 온 병사는 험비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소련군 전차 한대가 험비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병사는 황급히 모습을 숨긴다. 그때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와 폭음이 들린다. 갑작스러운 폭음에 놀라 머리를 감싸쥐던 병사는 다시 험비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소련군 전차가 산산조각난다. 전차의 포탑이 험비 바로 옆에 나뒹군다.
배넌이 지휘하던 C중대 휘하의 전차가 궤도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C중대 소속 구난전차는 이미 박살난지 오래다. 배넌을 대신해 전차를 수리한다.
지연 작전은 파커가 전차가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얕은 여울 두 곳을 확보하면서 시작되었다. 웹은 파커가 확보한 여울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두개의 여울을 확보하고 난 뒤, 소여는 파커에게 다리를 확보하고 배넌의 C 중대가 돌아올 때 까지 버틸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배넌이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전멸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다리를 폭파할 생각이었다. 웹은 전차 중대인 C 중대를 잃으면 포트텔러 방어전이 어려워질거라고 주장하지만, 소여는 만약 다리를 온전한 채로 빼앗긴다면 다음 전투고 뭐고 없다고 말한다.
전투 도중 눈보라가 치기 시작해 공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된다. 그럼에도 소여 대대는 소련군 선발대를 막으며 배넌과 C 중대를 기다린다.하지만 배넌은 어느 순간부터 무전을 받지도 않게 된다. 결국 소련군 대규모 전차 부대가 접근하자 소여는 C 중대가 전멸되었다고 판단해 다리를 폭파하고 후퇴하려 한다. 이때 배넌이 C 중대를 이끌고 소련군 전차 부대 바로 뒤에서 나타난다. 파커의 중대와 C 중대는 소련군 전차 부대를 격파한다. 소여는 딱 좋은 순간에 왔다며 배넌을 칭찬하고는 부대를 데리고 후퇴한다.
선전 방송은 미국에 상륙한 소련군이 북미의 서쪽 절반을 해방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소련군은 워싱턴 주의 민병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군은 네개 대대를 캐스케이드폴스라는 마을로 투입하였다. 그곳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소련군 지휘부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올로프스키 대령 마저도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몰랐지만, 소련군 장병들은 그 무언가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대대들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캐스케이드폴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올로프스키 대대는 시골에서 민병대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번 진압 작전의 목표는 근처 민병대 기지에 있는 민병대 지휘관을 생포하는 임무였다.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로마노프가 이끄는 보병 중대가 한 농장을 습격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이 농장은 민병대가 무기와 밀수품을 저장하는 곳이라 폭격으로 날려버려야 하는데 대공 장비가 배치되어서 항공기가 접근할 수 없었다. 로마노프의 일은 민병대가 운용하던 모든 대공 장비를 파괴해 농장을 폭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농장에 있던 민병대는 주방위군이 지원해 준 브래들리 장갑차와 험비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로마노프의 중대는 모든 대공 장비를 파괴한다. 이들은 기화폭탄으로 날아가는 농장을 뒤로 하고 수송 헬리콥터에 몸을 싣는다.
- 박명수(MC) . . . . 46회 일치
[목차]
표현을 정확히 해야 하는 문제로, 무한도전 이전에는 S급, 하다못해 A급의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B급으로 대중들에게 존재감은 확실한 편이었던 나름대로 어느정도 성공한 연예인에 속해있었다. 유재석이 오랜 무명기간을 끝내고 대형스타가 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지금처럼 A급 이상으로 대박난 연예인이라는 의미에서는 "과거에는 인기있는 연예인이 아니었다"라고 말할 수 있고, 상당히 인지도 있는 연예인이라는 의미에서는 초창기부터 "예전부터 인기가 있던 연예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초기 대박으로 신인으로서 엄청난 인지도를 쌓았지만, 박명수가 무한도전으로 터지기 전까지 그의 주된 유명세와 활약은 대부분 데뷔 초기에 집중되어 형성[* 특이한 외모와 제품과 유사한 이름으로 인한 붐은 곧 식을 수밖에 없다.]되어 있다. 콩트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에서도 결코 주연급이 아니었다. 주연급을 맡기려 했다는 김성원 작가의 발언도 있었지만 워낙 말을 더듬는데다 연기력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캐릭터의 폭이 제한되어 있어 이뤄지지 못했다 밝힌 바 있다. 90년대에서 이어지는 MBC의 코미디 프로 황금기 때는 김작가가 메인 작가가 아니었으므로 '주연급을 맡기려 했다'는 발언이 나온 시점은 결국 코미디 하우스 방영중일 때일 것인데, 이때 박명수는 데뷔 5, 6년차에서 10년 이상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상당한 고참 개그맨에게 메인을 못맡겼다는 소리이다. 즉 초창기에 대박이 확실히 터졌지만 이후 큰 발전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90년대에의 콩트 프로그램에서는 현재의 버라이어티 예능쇼처럼 무작정 한 장면이나 단락적으로 웃기고 그걸 유재석과 같은 중재자가 받아서 잘 정리해주는 게 아니라, 일정한 스토리의 틀이나 흐름 속에서 희노애락 등을 나름대로 표현해 가면서 김국진이나 홍기훈, 김진수처럼 기본적인 연기력+반전으로 웃기는 패턴이었기 때문에 대본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박명수는 자연스레 그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순발력이 중요해진 이후 시점의 코미디 하우스 등에서의 무대에서조차 '약방에 감초'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박명수는 콩트에서는 특이한 얼굴이나 말투를 바탕으로 극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이었다. 종종 회자되는 박명수의 대표코너격인 [[코미디 하우스]]의 3자 토론이 대표적인데, 이회창 역으로 출연하며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기에서조차 박명수는 약방의 감초 역할에 불과했다. 코미디 하우스의 대표코너는 [[정준하]]의 출세작 노브레인 서바이버, 조혜련의 골룸 개그, 김현철의 1분 논평 등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대 박명수의 위상을 대략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3자토론은 코미디 하우스 내에서 반응이 그렇게까지 좋진 못했던 코너여서 자주 편집되기까지 했으니...
박명수 본인이 음반활동에 집중했던 것도 당대 행사진행에서 개그맨이었던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요소였다. 나이트 행사를 진행하면서 본인은 한시간이나 붙어있어야 비로소 출연료를 지급받는 것과 달리 가수는 잠깐 방문해 한 두곡 부르고 가 버림에도 불구하고 페이가 더 세다는 사실을 알곤 아예 내가 진행하고 내가 노래하겠다는 식으로 나왔던 것.[* 그래서 앨범이 자꾸 망하는데 왜 계속 내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다른 데서 써먹기 때문에 망해도 망한 게 아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히트곡이 되면 좋겠지만, 실패해도 본인 행사에서의 레퍼토리는 늘어나기 때문.] 실제로 박명수의 앨범의 구성을 살펴보면 행사음악용 구성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클럽음악에 진출하게된 현재 시점에서도 마찬가지. 2000년대 중후반이나 되어서야 개가수가 비로소 자리를 잡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인상적이다.
이렇게 무한도전 대박까지 캐릭터에 큰 변경이 없는 박명수의 흥망성쇠는 2000년대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 트렌드의 변화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본인에게 한계가 있는 콩트라는 장르는 명백히 몰락하고 있었고, 인지도는 어느 정도 있지만 방송사를 대표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개그맨들은 소속 방송사라는 둥지를 떠나 활동하기 시작한다. 박명수 역시 그러한 개그맨의 하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만의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던 박명수는 무한도전과 X맨에서 출연과 하차, 재투입을 거듭하여 리얼버라이어티에 적응해냈고 이윽고 대표 예능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리얼버라이어티의 선봉장에 위치한 것이 무한도전인 점을 생각해보면, 오늘 날 박명수를 논함에 있어 무한도전 전후는 커다란 기점임에는 분명하다. ~~하하 曰 : 형수님이 무한도전 보고 결혼한 건데 하차한다고 하니까 난리가 난 거야~~
방송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 친한 주변 사람들을 은근히 챙기는 면모도 있다. 박명수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한경호 전무도 <4가지쇼>에서 방송의 모습과는 달리 친절한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사실 방송의 모습과 일상생활이 똑같았다면 매니저가 상당히 자주 바뀌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한 걸 생각하면 분명 사실인 듯. 코디나 매니저와 같은 주변인에게 생일 선물로 고가의 [[맥북 에어]] 등을 사주기도 하며, 자신과 오랫동안 일한 한경호 전무에게는 고깃집을 차려주기도 했다.[* 뮤지컬 [[무한상사]]에서 정준하 과장이 퇴직하고 차린 고깃집 -> 연탄불 후라이집이 바로 한경호 전무의 가게이다.] 그래서 한경호 씨는 자신은 박명수가 아니면 매니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고도 한다. 또한 [[유재환]]에게도 무한도전 방송에 출연할 때에나 SNS에 사진을 올릴 때에는 호통을 치거나, '인기 많은 재환이 나가라' '뭐가 귀엽다는 거지 어이없어' 등의 말을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는 반면에 실제로는 너무나 잘 대해 줄 때가 많다고 한다. --츤츤 데레데레--
사실 이보다는 다른 방송사 공채 출신을 기용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라고 볼 수 있다. 실상 방송국 간 희극인들의 교류가 시작된 것 자체가 몇 년 되지도 않았고, 그전까지만 해도 타 방송사 연예인은 방송 출연은커녕 프로그램 내에서 언급조차 안하는 것이 관례였다.[* KBS 출신인 김국진, 김용만(감자골) 등이 일요일 밤에에 출연하려고 했을때 MBC 공채 코미디언들이 몰려와 때려잡으려고 할 정도.] 게다가 무한도전에서 수시로 강조하듯이 박명수 스스로도 MBC 공채 출신이란 점에 대해 자부심이 상당한 편인데, 이런 분위기에 덜컥 KBS 출신 예능인이 영입된다니 달가울 리가 없다. 후술되는 특채에 대한 박명수의 까칠함도 같은 이유다.
박명수가 종종 써먹는 레파토리인 "유재석 자동차 세차"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쉬는 날 유재석이 전화해서는 "형 뭐해? 할 일 없으면 와서 세차 좀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박명수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 유재석이 당황해했고, 박명수는 "했냐 안 했냐? 했냐 안 했냐?"하면서 공격했다. 유재석은 다시 장난인 걸 다 알면서 왜 그러냐고 넘어가고, 박명수는 PD에게 "이거 방송 꼭 내보내라"면서 마무리지었다. 평소에 저런 농담을 하는걸 보니 진짜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아니면 진짜 [[노예]]거나...~~ 2016년 중반엔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아이디라며 '''SOO LOVES YOU'''라고 유재석과의 셀카를 올리며 ~~아부~~ 친분 인증을 한 바 있다. "피만 안섞인 형제"라는 글귀에서 그가 유재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와중에 비교샷으로 조세호와의 셀카에는 '동료^^'라고 적어놓은게 압권(...).
이훈은 분명 방송국에서 박명수를 만나면 "네가 깡패냐?"하면서 엄청 혼날테니 바짝 긴장하고 방송국에 갔다가 놀랐다고 한다. 박명수는 이훈이 그냥 얌전하고 헬스만 하는 애인줄 알고 막 갈궜는데, 빡치면 사람을 팬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뒤로는 안 건드렸다고 한다. 강호동 목차에도 있듯이 박명수는 강자에겐 좀 약한 편이다.[* 딱히 박명수만 그렇다고도 볼 필요는 없는 것이, 주변 사람 중에 성격 건드리면 다 뒤집어 버리고 주먹 좀 쓸 줄 아는 사람 있다면 어떻게 마음껏 덤비면서 지내겠는가... 특히 이훈, 강호동 처럼 절륜한 스포츠맨들이라면 더더욱. 특히 어릴 적 친구가 아니라 사회에서 만난 사람일 수록 더 할것이다.]
"G-Park World"라는 자기 스튜디오를 차리고 음악활동을 진행하면서 같이 일하게 된 사람들과의 인맥도 지니고 있다. DJ Charles로 알려진 양철수, Ice Breaker 김주형, 그리고 [[무한도전]] 이후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재환]]-- 등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유재환에 대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여담이지만 무한도전 방송을 타서 가장 유명해진 게 유재환일 뿐, 다들 박명수가 출연하는 방송(<4가지쇼>, <무한도전>, <디제잉의 명수> 등)에 한 두 번씩은 다 출연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DJ 찰스는 무한도전 방송 [[무한도전 라디오 스타|라디오스타 특집]]에서 도움을 주고 [[무한도전 쩐의 전쟁|쩐의 전쟁 특집]]에서 회오리감자를 파는 알바생으로 출연하였다.
강호동의 [[케이스]]만 봐도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기가 센 사람과 궁합이 잘 안 맞는다. [[신인]] 시절 '''[[이경실]]'''에게 군기가 제대로 잡혀버리고 그 후 지금까지 어려워할 정도이다.[* 사실 [[이경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그맨을 찾기가 더 힘들다. 심지어 연상인데다 훨씬 선배인 [[이경규]]나 [[이성미]]조차도 이경실을 어려워해 피해다녔을 정도이며, 원래부터 주먹으로 유명했고 늦게 데뷔해서 선배들이 어려워하던 [[홍기훈]]조차도 데뷔 초 이경실한테 군기를 잡혔을 정도.][* 2010년 각각 뜨거운 형제들과 런닝맨에 출연했었는데, 뜨거운 형제들에서는 아바타 소개팅 상황을 철저히 파괴하며 제멋대로 행동해 엄청난 비난의 소리를 들었고 런닝맨에선 특유의 쎈 기로 유재석 마저도 쩔쩔매게 만들었다.]
입춘특집당시 앙케이트 --호객행위-- 홍보용 자기 PR를 하는데 이때 출신지역이 서울로 소개되었다.[* 박명수가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라 자막으로 나간 것으로 PD가 확인을 하지않고 작성한듯 하다. 초등학교 4학년에 상경하여 초중고를 모두 서울에서 졸업하여 착각한듯 하다.] 소원을 말해봐 특집에서 박명수의 일생에 관한 자서지[* 자서전을 써야 하는데 책한권 분량이 아닌 종이 한장뿐이라 자서지가 되었다.]를 쓰면서 출생에 관해 언급하게 되는데 당시 [[군산]]시 조촌동[* 군산 시청 소재지이다.]에서 출생하였다고 했다가, 여섯이 내고향 특집에서 박명수의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군산시 선양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밝혀젔다. 그런데 박명수는 명수는 12살 특집 당시[* [[뒤집어 엎퍼]]의 지역간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출신지역을 밝히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본인 출신지를 군산시 선양동으로 밝혔다.추측컨데 박명수는 조촌동에서 출생하여 선양동에서 살았다고 생각한듯 하다.
종종 '집에 들어가기 싫다' '해외로 가자'식의 가정사 개그를 치는 것과 달리,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는 부부관계가 깨가 쏟아지는 수준인 듯 하다. 서로의 애칭은 왕자님과 마뽀. (마이 뽀로로) 지금도 하루 20통 정도는 통화한다고 하며, 촬영 끝나거나 쉬거나 하면 틈틈이 연락한다고 한다[* 과거 2009년 세계여행 특집 당시 차안에서 이동 중 본인이 지금 뭐하고 있는지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2014년 라디오 특집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별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식의 애정표현은 여전한 모양.] 아내인 한수민이 [[인스타그램]]으로 [[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177526606314256&DCD=A10102|이런 사진]]을 업로드해서 누리꾼들 사이에 '미녀와 아저씨'라면서 폭소하는 분위기가 화제가 되었다.
부부간 교류가 가장 많은건 의외로 유재석도, 집이 가장 가까운 정준하도 아닌 하하&별 부부인 것 같다. 별은 가장 사이가 좋은 멤버의 아내로 한수민 씨를 지목했고, 종종 쇼핑도 같이 다니는 모양. 한번은 철 지나 폭탄 세일하는 모피 코트 5벌을 사는 바람에 명수옹 뒷목을 잡게 했다. 별의 증언에 따르면 5벌 합쳐 1벌 값도 안되는 파격 세일이었다고. 그럼에도 박명수는 비싸다고 진저리를 쳤다. 근데 이 증언이 나온 때가 웨딩 싱어즈 중간 점검 회차인데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특급 누나 [[김희애]]가 "남자가 그렇게 쪼잔하게 굴면 안돼." 라고 특급 어택을 날려주신다. 어디까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위의 SNS 일화를 전후해서 꾸준히 하하 부부 입에서 '수민 형수는 연예계에 데뷔하고 싶어한다'는 식의 언급이 나오는데 박명수는 일관되게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언급만 되고 지나가기만 했던 아내 한수민이 무한도전 방송 이래 12년 만에 처음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하였고 별과 함께 노래방에 와 있었다. 별이 자기가 밤늦게 놀면 보안관 드립 치며 체포하러 오는 하하에게 뿔나 있던차에 저번에 한번 무도 카메라까지 있는 상황에서 잡으러 온걸 기억하고 한수민을 물귀신 작전으로 함께 나오게 한것. 덕분에 박명수는 방송인 24년, 무도 12년 역사상 가장 크게 당황했다. 아내의 얼굴이 확인되자마자 이어폰을 집어던지고 전화하러 녹화장소를 이탈한다. 피부과 의사답게 피부관리를 아주 잘해서 상당히 동안이다.[* 박명수의 아내가 엄청난 미인이라는 복선이 이날 방송하기 이전에도 조금 있긴 하였다. 2012년 하하의 결혼 축의금 관련 특집을 할 당시 시민들한테 특정 멘트를 들으면 들은 횟수만큼 정해진 축의금에 변화를 주는 미션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때 박명수가 들을 말은 '''"어려보여요"'''였고 그말을 듣기 위해 시민 한 명을 끌어들여 어때보이냐고 하자 부인 분이 아깝다는 소리를 들었다.~~해골 펑!~~] 이 때의 박명수의 모습은 영락없는 [[애처가]].~~박명수랑 같이 있으면 부부가 아니라 딱 삼촌과 조카 같다 하는 네티즌도 있다 카더라~~ 한수민 본인은 방송 출연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다고 하지만 출연한다면 CF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일반인이라 섭외가 안되니 방송 데뷔를 해서 인지도를 쌓아 CF에 나오겠다고 한다. 찍고 싶은 CF는 마트 CF. 그리고 처음 방송 출연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털털하고 거침없는 멘트를 날려 웃음을 자아냈다. 심지어 남편보다 더 재미있다. 또한 웃는것도 매우 호탕하고 명랑하다. 직접해보니 녹화가 어렵고 힘든것임을 알았다고 하면서 그간 남편이 날로 먹는줄 알았다고 한다. 자막도 적절하게 '방송인의 나쁜 예 박명수' 라고 뜬다. 방송인 박명수와 남편 박명수의 차이에 대해 묻자 집에서는 재미 있는데 TV에선 재미가 없는걸 보니 방송 울렁증이 있는거 같단 발언으로 측근인 무도 멤버들 포함 좌중을 술렁이게 하고 --경력 24년차가 방송 울렁증?-- --명수 : 대상까지 탔는데 무슨 소리야!-- 박명수가 지방 재배치 한후 어떤거 같냐고 하자 크게 달라진건 없는데 자기가 정말 잘생겨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냅두셨단다. 바로 날아오는 해골은 덤. 박명수 3행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이...
그리고 아내와 함께 정규 편성된 [[싱글와이프]]에 출연중이다. 정확히는 명수는 파일럿 시절부터 MC로써 참가하다가 정규 편성이후 한수민이 합류한것. 둘이 같이 나올땐 한수민의 아직은 불안한 예능감을 명수옹이 적절하게 받쳐줘서 많이 재미나고 8살차 연상연하 부부라고 보기 힘든 친구같은 케미가 돋보인다.
2016년에도 한 호텔에서 박명수의 차를 발렛 파킹하던 아르바이트생이 차를 파손하자, 알바생에게 피해가 갈까봐 자신이 수리비를 모두 부담한 것도 알려졌고,[[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3036624|#]] 이와 함께 이전에 택시 기사의 실수로 접촉 사고가 나고도 오히려 택시 수리비까지 부담한 일이 알려졌다. 이에 생긴 별명이 도로위의 성자.
그래서 그런지 방송에서 악역 캐릭터를 맡고 있음에도 악성 루머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박명수 본인은 방송에서 자꾸 자신의 선행을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부끄러워서 그런 것도 있겠으나, 컨셉이 독설, 호통인데 너무 '착한 사람' 이미지가 강해지면 웃길 수가 없어서인 듯하다. 실제로 캐릭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미담이 밝혀지는 걸 꺼린다고 하하가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9802012&ctg=1502|인터뷰]] 했다. 무한도전에서 만들어준 컨셉인 '''억지기부'''도 엄청 껄끄러워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이런 류의 잘 알려지지 않는 미담이나 방송상에서는 펄쩍 뛰면서도 잊을 만하면 억지기부 컨셉을 반복하는 걸 보면 그냥 개그를 위해 그런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가장 압권은 춘향전편에서 그네를 타면서 외친 '이제 더 이상 기부할 수 없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유재석한테 꼬투리 잡혀서 에어컨과 햄버거 100개를 기부하게 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경악할만한 발언인데, 박명수가 하다보니 다들 빵 터졌을 뿐 누구도 논란으로 삼지 않았다.]. 알바생이나 택시 기사의 실수로 인한 사고도 자신이 수리비를 부담한 것도 무한도전에서 얘기가 나오니 "보는 눈이 많아 이미지 관리하려고 그랬다."[* 택시의 경우 블랙박스도 있는데다가 여자 승객들이 스마트 폰을 들고 있어서 겁 먹었다고 드립을 쳤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드립이고, 실상 그렇게 보는 눈이 많다면 더더욱 본인 실수가 아닌데 수리비를 부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택시측 수리비까지 내줬으니 선의를 의심할 여지는 별로 없다.], "스트레스 풀려면 제 차를 받아라." 라고 말하고, 이 순간 생긴 '도로 위의 성자'란 별명도 멤버들이 줄여서 '도성'이라 하는 등 개그로 승화시켰다. 무한도전 300회 특집에서 나온 노홍철의 말에 따르면 일부러 실생활에서도 캐릭터를 연기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나오게 유도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형은 그게 진짜 같은데...~~ 노홍철도 그 가르침을 받아 사기꾼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실생활에서도 평소 선행과는 별도로 생활하는 습관을 고수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2010년 9월 경 '[[거성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으며 후배 개그맨 [[김경진(코미디언)|김경진]], 유상엽, 권영기[* 이 쪽은 가수로 키울려는 목적으로도 영입했다.], 가수 김단아를 영입을 했다. 특히 아끼는 후배 김경진을 위해서 차도 고급차로 바꿔주고출연료도 4배나 올려주게 만들어 격한 후배사랑을 보여주었다. 오오 박거성.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44회 일치
각 국가의 장관진을 차지하는 인물들은 각자 하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해당 특성은 여러가지 요소에 보너스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패널티를 주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내각진 중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을 제외한 8명을 자기 입맛대로 갈아치울 수 있지만, 민간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2%, 군사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1% 올라간다.
>무정한 짐승은 계급을 차례대로 올라온 간단한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둘로 나뉜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가끔은 야수같으며, 가끔은 소시오패스같은 무정한 짐승은 돌아보지 않고 정책을 짜낸다.
* Tank Proponent(전차 지지자)
>전차 지지자는 유능한 관리자 겸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대전략에도 고개를 들이미는 인물이다. 그는 전차가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긍정적인 효과: 포병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중포병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글라이더 경포병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자주포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경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중형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중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수륙양용 경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글라이더 경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구축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6%
* 긍정적인 효과: 전차 사단의 공격 능력 +5%, 기계화 보병 사단의 공격 능력 +5%, 차량화 보병 사단의 공격 능력 +5%, 보병 사단의 공격 능력 +5%, 전술폭격기 사단의 공격 능력 +5%, 전술폭격기 사단의 방어 능력 +5%
* 부정적인 효과: 전차 사단의 방어 능력 -5%, 기계화 보병 사단의 방어 능력 -5%, 차량화 보병 사단의 방어 능력 -5%, 보병 사단의 방어 능력 -5%
>이 육군 사령관은 기갑 선봉 교리에 따라 지상군을 지휘한다. 선봉을 맡은 전차들의 빠른 공격과 그 뒤를 이은 보병들의 포위 작전으로 적을 소모시켜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 긍정적인 효과: 경전차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전차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차량화 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구축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자주포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자주대공포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경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중형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중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수륙양용 경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글라이더 경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경전차 사단의 공격 능력 +5%, 전차 사단의 공격 능력 +5%, 차량화 보병 사단의 공격 능력 +5%, 구축전차 여단의 공격 능력 +5%, 자주포 여단의 공격 능력 +5%, 자주대공포 여단의 공격 능력 +5%, 경전차 여단의 공격 능력 +5%, 중형전차 여단의 공격 능력 +5%, 중전차 여단의 공격 능력 +5%, 수륙양용 경전차 여단의 공격 능력 +5%, 글라이더 경전차 여단의 공격 능력 +5%
* 긍정적인 효과: 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3%, 포병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3%, 중포병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3%, 공병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3%, 중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3%, 보병 사단의 공격 능력 +3%, 포병 여단의 공격 능력 +3%, 중포병 여단의 공격 능력 +3%, 공병 여단의 공격 능력 +3%, 중전차 여단의 공격 능력 +3%
* 긍정적인 효과: 차량화 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기계화 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자주포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자주대공포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구축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차량화 보병 사단의 방어 능력 +5%, 기계화 보병 사단의 방어 능력 +5%, 자주포 여단의 방어 능력 +5%, 자주대공포 여단의 방어 능력 +5%, 구축전차 여단의 방어 능력 +5%
* Under-Secretary of War(전쟁부 차관) -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파리아니
* 부정적인 효과: 경전차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전차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기계화 보병 생산 비용 및 시간 +5%
* 긍정적인 효과: 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10%, 수륙양용 경전차 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10%, 수송선 전대 생산 비용 및 시간 -10%, 구축함 전대 생산 비용 및 시간 -5%
- 전효성 . . . . 42회 일치
||<#00CED1> '''{{{#000000 별명}}}''' ||<(> 전리다, [[닭튀김|치킨]] 부사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알리사 보스코노비치]], 잇몸돌, 잇몸소녀 ||
[목차]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광역시|광주]]에서 열리는 오디션[* 당시에 그룹 [[신화(아이돌)|신화]]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었던 회사에서 열린 오디션이었다.]을 보러 갔다. 부모님은 딸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효성이 서울로 갈 차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결국에는 허락했다고 한다. 차비까지 직접 벌어서 치른 1차 오디션에서는 합격을 했으나 이어 치른 2차 오디션에서는 탈락을 하고 말았다.
2차에서 탈락했으나, 그녀를 눈여겨본 회사 관계자의 권유로 [[엠넷]] <배틀신화> 서바이벌 공개 오디션에[* 여기서 배출한 가수들로는 [[빅뱅(아이돌)|빅뱅]]의 [[승리(빅뱅)|승리]],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브라운 아이드 걸스)|손가인]], [[G.NA|최지나]]가 있다. 정작 배틀은 [[모닝구 무스메]] 7기 오디션 합격자처럼 [[가든파이브|대박 망했다.]]--그리고 [[G.NA|지나]]도 불미스러운 일로 [[망했어요]]--] 참가하게 되고, 참가자 200명 중 당당히 12명 안에 들면서 우승까지 하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fSARVWG4d9Q|우승]] 후 효성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는 연습생 중 막내였다. 연습생 시절 학교 성적이 좋은 편으로, 전교 3등까지 해봤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연습생들의 성적 저하를 걱정하는 보호자들에게 회사 관계자들이 해주는 고정 멘트로 "본인 [[의지]]가 있고 [[노력]]이 있으면 전교 3등도 해요"가 생겼다고 한다.[* 1대100에서 2번 1인으로 나가서 2연속 7단계까지 진출했고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는 8인의 멤버들 중 쪽지시험에서 유일하게 3연속 합격하였다.]
이후 곰티비의 곰뮤직차트쇼라는 인터넷 방송에 [[아이유]]의 후임으로 발탁되어 두번째 단독 MC 프로그램을 맞게 되었지만 5주만에 하차했다(...). 이유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7&aid=0000327156|이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http://www.gomtv.com/414050|그 당시 방송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PnGo1ahHvg|GMC 막방 당시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2012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도 시구를 하였다.
2016년 2월 12일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 시즌 4에 합류한다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888639&cid=1012951&gid=999339|#]] 자세한 내용은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출연 멤버/여군 특집]]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여담으로 [[차오루]]는 2세 아래의 "전효성 선배님은 몸매가 좋다"고 말했다.
드라마 캐스팅으로 MC에서 하차한 [[차오루]]와 바통터치하여 [[비디오 스타]]에 합류했다. TS와의 법정 공방 중인 2018년 4월에 MC를 [[써니(소녀시대)|순규]]에게 넘겼다.
연초 <처용> 방송 직후에 가진 인터뷰를 통해 솔로 떡밥을 던지곤 했는데 2014년 4월 17일 [[이단옆차기]]의 곡으로 솔로앨범을 발표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41708135750788&type=1&outlink=1|앨범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가며 큰 변수가 없는 한 5월 12일에 음반과 음원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493077|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음악프로가 결방함에 따라 발매가 연기될 것으로 보였으나]] 5월 2일 소속사가 공식 SNS를 통해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712240712173658&substory_index=0&id=181948985202836|티저 이미지를 공개함에 따라 컴백이 확정되었다.]]
첫 솔로 활동 성적은 공중파 음방 성적이 다소 아쉬울 수 있겠지만 각종 음원차트에서 좋은 순위를 유지하였고 앨범도 만장 이상 판매하면서 첫 솔로 활동 치고는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듯 하다. 이번 솔로 앨범으로 행사 등에도 많이 초청되었는데, 여솔로 혼자서 행사를 도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이번 솔로 앨범은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11월 19일 초청된 <상명대 지하방송제>에서는 팬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인해 앵콜 무대를 하기도 했다. "원래 저 이러면 혼나는데..."라고 하면서도 앵콜 무대를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워서 팬들은 이 무대가 가장 신났다는 평을 할 정도.]
2015년 4월 23일 미니앨범 티저 이미지가 공개되었다. 앨범 이름은 판타지아, 타이틀곡은 '반해'. 작곡은 <Good - night Kiss>를 작곡했던 이단옆차기. 기사에 의하면 ‘판타지아’라는 제목은 총 다섯 곡이 수록된 첫 미니 앨범에 가장 나다운 모습과 그룹 활동을 통해서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함께 담아냈다“며 ”전효성에 대한 ‘판타지’를 채울 수 있는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본인이 말했다고 한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382103|기사1]]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09511|기사2]]
선 음원 후 뮤비 공개 마캐팅 전략 역시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아마 뮤비 공개 전까지 음방버프로 어느정도 버티고 난 후 뮤비로 다시 화제성을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으로 보이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차라리 첫날에 음원과 뮤비를 동시 공개하여 화제성을 한방에 쓸어담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듯...[*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전효성은 섹시가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뮤비에 좀 더 관심이 가는게 대중들의 일반적인 생각일 탠데~~TS는 먼 생각일까...~~]~~첫날 실검 올킬했을 때 공개했으면 하루만에 조회수 칠십만은 찍었을듯...~~
6월 13일과 15일 타워레코드 시부야점 데일리 차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였고 위클리 차트에서는 4위에 올랐다. 일본에서의 반응은 괜찮은 모양...또한 중국 최대 음원사이트 인위에타이에서 6월 15일~21일 뮤비차트에서 5위에 올랐다.
8월 5일에 약 15분 가량 시범방송을 선보이기도 했다.[[http://www.vlive.tv/video/1138/JUN-HYO-SEONGs-Trailer|#]] [[http://www.vlive.tv/video/1322/JunHyoSeong-TopSecret|8월 17일]]과 [[http://www.vlive.tv/video/1756/JunHyoSeong-TopSecret|9월 8일]]~~텀이...~~에 다시 한번 시범방송을 하였다. 9월 11일에 [[http://www.vlive.tv/video/1843/전효성의-불금|시범방송]]을 한 차례 더 하고는 3시간 뒤 드디어 [[http://www.vlive.tv/video/1827/JunHyoSeongs--TGIF1화장대공개|첫방송]]을 시작했다. 첫방송 주제는 본인의 방과 화장대를 공개하여 자신만의 화장법 등을 알려주는 내용.~~그런데 이런건 뷰바에서도 해도 되는데...~~
2012년에 20대 남성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 중 [[아이유]]를 누르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역시 군통령~~
2011년 8월 25일경 자신의 미투데이에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826083809313&ts=212519|"제 남자친구 어때요?" 라는 말과 함께 남긴 사진]] 때문에 한동안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으나 그냥 같은 [[힘찬|소속사 후배가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소속사 동생이라고 밝힌건 씹히고(...) 남차친구라는 말만 부각돼서 그렇지...~~
다이어트로 인해 [[가슴]]이 작아져 많은 사람들이 살빨이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search&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umorbest&no=463310&page=1&keyfield=subject&keyword=%C8%BF%BC%BA&mn=&nk=%B3%EB%BD%C3%C6%C8&ouscrap_keyword=&ouscrap_no=&s_no=463310&member_kind=|빈유모에]]-- 단, 여자들의 가슴이 남자들 생각과는 달리 은근히 사이즈가 유동적인 데다가, 수술하지 않았다면 옷이나 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꽤 나 보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 2012년 4월의 사진에서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절대 절벽은 아니다. [[http://news.nate.com/view/20120512n08848&mid=e0403&cid=350114|5월 12일 드림콘서트에서 보여준 사진으로 보면 여전히 훌륭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도 계속 사진마다 모습이 달라보이는 걸로 보아, 남자들이 잘 모르는 [[브래지어]]의 힘이 작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남자]] [[위키러]]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의 브래지어가 가진 무기는 '''[[패드]]만이 아니다.''' 푸시업을 어느 정도 해 주느냐, 혹은 어떤 옷에 맞추느냐 등 활용 폭에 따라서 절벽이 글래머로, 글래머가 슬렌더로 변신하는 마법을 부리는 게 여자 속옷이다. 특히 드림콘서트 당시 사진에서 나온 사이즈는 단순히 패드만으로 나올 수 있는 형태가 아닌지라, 옷발과 컨디션발이 상당히 심하게 영향을 주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슴에 약간 여유를 두고, 즉 푸시업이 좀 덜한 브라를 착용하거나 폭에 여유가 있는 누브라, 혹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어께걸이 등의 지지가 없어져서 유방이 약간 처지는데, 보형물을 넣은 게 아니라면 이때 가슴골이 퍼져서 볼륨이 줄어들어 보인다. [[박로미]]가 가슴이 작아보이게 한 방법이 바로 이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효성은 다이어트 등으로 인해 몸매가 상당히 유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섹시컨셉으로 활동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숱하게 겪는 [[가슴성형]]에 대한 의혹만큼은 확실하게 없어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뭘 집어넣은 거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왔다갔다 할 수가 없으니...
2013년 1월 22일 방송된 [[강심장]]에 출연한 송지은이 2012년 말에 발생한 시크릿 차량 전복사고에 대해 입을 열었는데, 사고 당시 몸이 거꾸로 뒤집히고 상체는 아예 유리파편이 가득한 차체 밖으로 노출되어 있었던[*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송지은 자신도 안전벨트 미착용이 잘못이었음을 방송에서 인정했다.] 자신을 지탱해준 것이 전효성의 다리였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 전복과정에서 전효성의 다리가 송지은의 상체를 받치게 되어 송지은이 유리파편에 얼굴을 다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정작 1년 전에도 크게 부상을 입었던 전효성의 다리는 또 다시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 또한 눈앞의 유리조각을 보고 송지은이 울음을 터뜨리자, 전효성은 침착하게 사태를 수습하자면서 송지은을 다독였다고 한다.
7월 22일 [[소나무(아이돌)|소나무]] 컴백 무대에 깜짝 응원을 가기도 했다.[* 사실 시크릿과 소나무는 한솥밥을 먹는 친언니와 친여동생의 관계와 같으므로 서로 친분이 매우 깊다. 실제로도 [[소나무의 펫하우스]]에 시크릿 멤버들이 [[한선화]]만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 전원이 출연해줬다.] 처용 촬영날에 가서 그런지 복장은 교복차림(...) 그리고 소나무는 멤버 7명 중 5명이 170cm이상이라 체격들이 장난이 아니다. 그 틈바구니에 전효성이 끼어서 이질감이 좀 있다. [[https://twitter.com/Secretimehs/status/623808326954921984|#1]]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411|#2]]
11월 28일에 수수한 차림으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사진을 찍어도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친절하게 대해줬다는 후문.
- 최다빈 . . . . 41회 일치
'''최다빈'''([[2000년]] [[1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다섯 번의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 은메달 세 개와 동메달 두 개를 차지했다. 2015-2016 주니어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모두 동메달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시니어 데뷔 무대인 2016 4대륙 선수권에선 8위, 2017년 대회에선 5위, 2018년 대회에선 4위를 차지하며 꾸준히 순위를 높혔다. 본격적으로 시니어에 데뷔한 2016-2017 시즌엔 초반 부진을 딛고 2017 [[동계 아시안게임]](일본, 삿포로)에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우승했고, 이어 열린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선 10위(Top10)에 오르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티켓 2장을 확보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김연아]] 이후 역대 최고 성적인 7위에 올랐다.
2010년 한국종합선수권 여자싱글 노비스 부문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또한 2012년, 2013년 연속으로 한국종합선수권 여자싱글 시니어 부문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기록이 있다.
2013-2014 시즌에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데뷔하여 각각의 대회에서 4위(벨라루스)와 5위(멕시코)를 차지했다. 2014년 출전한 주니어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개인 기록을 경신하며 종합 6위에 랭크되었다.
2014-2015 시즌에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하여 각각의 대회에서 4위(프랑스)와 5위(일본)을 차지했다. 이후 2015년 목동에서 열린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박소연]]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시즌의 마지막 대회인 2015 주니어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또 한 번 Top10에 랭크되는 성과를 보였다. (종합 9위)
2015-2016 시즌에 마지막으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은 생애 처음으로 모두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보였다. 처음 출전한 라트비아 리가 그랑프리에서 3위, 이어 출전한 오스트리아 린츠 그랑프리에서 역시 3위를 차지했다. 특히 4차 대회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선수가 많아 메달 입성이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무너지지 않는 멘탈과 정신력, 안정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시니어 첫 데뷔 무대에선 극심한 긴장감으로 8위(탈린 트로피)를 차지했으나 회장배 랭킹전에서 다시 1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높였고 2016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8위, 그리고 2016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보스턴)에서 14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니어 그랑프리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최다빈은 2차 대회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선전했으나 종합 7위에 머물렀고 6차 대회인 [[NHK 트로피]]에서는 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종합 9위에 그쳤다. 이후 랭킹전에선 [[박소연]]에 이어 5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티켓을 놓쳤다. 또한 2017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도 동료 선수인 [[김나현]]에 밀려 종합 4위를 차지해 메달 획득 및 피겨 세계선수권 티켓 역시 놓치고 말았다. 시즌 초중반 잇따른 악재로 실망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특유의 강한 정신력으로 절치부심하여 이어 출전한 동계체전 고등부 피겨 여자싱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김나현]]의 부상이 심해져 또 한번 대체 출전하게 된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헬싱키)에선 쇼트에서 클린 연기를 선보여 62.66을 받았고 또 한번 쇼트 개인 최고를 경신했다. 쇼트 11위로 한 순위만 끌어올리면 올림픽 티켓 2장을 확보하는 상황에서 프리 클린으로 128.45를 받아 프리 역시 개인 최고를 경신하였으며 종합 191.11을 기록해 종합 점수도 갈아치움과 동시에 [[김연아]] 이후 프리, 종합 점수 최고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했던 종합 순위에서 당당히 10위를 차지해 올림픽 여자싱글 티켓 2장을 가져오는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상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순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8월 1일, 소속사를 통해 쇼트프로그램은 영화 [[에비타]]의 OST <Don't cry for me Argentina>로, 프리스케이팅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으로 선곡했음을 밝혔다. 9월 중순 온드레이 네펠라 트로피에 출전할 예정이고, 전후 사정에 따라 다른 한 개의 챌린저 대회도 나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올 시즌 그랑프리 두 개 대회에 초청 받았다. 첫 대회는 2차 <스케이트 캐나다>이며, 두 번째 대회는 4차 <NHK 트로피>이다. 두 대회는 시니어 첫 데뷔 시즌에 나간 적이 있었으며 각각 7위와 9위를 한 경험이 있다.
| align=left | {{small|GP}} [[컵 오브 차이나]] || || || || || || || 9 ||
| 2017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국가대표 2차 선발전
| 2017 [[컵 오브 차이나]] (중국, 베이징)
| 2017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국가대표 1차 선발전 (대한민국, 서울)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39회 일치
돈을 챙겼으니 탈출할 차례. 탈출 경로인 2층으로 올라가야한다. 옆에 계단이 있지만 로비를 통해 가는 이유는 경찰이 금고 옆 계단을 막아버렸기 때문. 계단 올라가봤자 셔터로 닫힌 문 밖에 못 본다.
C4가 폭발해 벽에 구멍을 내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 카운트다운 내에 탈출 구역까지 가야한다. 구멍으로 들어가 화장실, 사무실을 거쳐 계단으로 내려가자. 노말 난이도부터 사무실에 특수 경찰이 있으니 조심하자. 이후 지하실 통로를 통해 주차장까지 가는데 테이저나 불도저가 양 옆에 있는 문을 박차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후 주차장에 온 쓰레기차에 올라타면 하이스트 성공.
브루스가 오다가 경찰 총에 맞아 죽었다. 브루스의 차는 벽에 그대로 박아 못쓰게 된 상황. 그냥 가자. 노말 난이도 부터는 브루스의 차 트렁크에 돈이 들어있다.
맷의 차도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지점으로 가자.
* 맷을 주차장까지 끌고간다
결국 견디지 못한 맷이 밴에서 기어 나왔다. 서류가방은 맷의 손목에 수갑으로 묶여있는 상황. 베인은 일단 맷을 데리고 주차장에 와보라고 한다. 맷에게 주차장으로 가라고 명령하며 이동하자.
갱단의 마약 공장을 기습, 마약 공장에 설치된 패닉룸[*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소형 대피소.] 자체를 훔쳐가 그 안에 든 돈을 차지하는 하이스트.
>오후 4시 2분, 주택 단지 - 차베스의 본거지
* 차베스를 찾아 열쇠를 얻는다
패닉룸이 있는 방 문이 잠겨있다. 마약 공장 어딘가에 숨어있는 차베스를 찾아 열쇠를 빼앗자. 차베스를 포박하거나 죽이면 열쇠를 빼앗을 수 있다.
죄수호송차를 습격, 지역 사업가의 아들을 빼낸 후 풀톤 회수장치로 빼돌리는 하이스트.
>오후 10시 45분, 그린 다리 - 남행 차선
베인이 다리에 설치된 폭탄을 터뜨려 호송차들을 정지시켰다. 호송 행렬로 가자. 경찰이 저항하니 주의.
이제 의뢰인의 아들을 찾을 시간. 죄수호송차 네대에 톱을 설치하고 막아내자. 호송차 네대가 넓게 널려있는데다가 경찰들이 헬기를 타고 오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다. 죄수 호송차가 열리면 다가가서 죄수에게 상호작용을 시도하자.
머키워터 용병단이 수송 중인 금괴운반차를 습격해 금괴를 컨테이너로 빼돌리는 하이스트.
공범이 대형 교통사고를 내 운반차의 경로를 바꿨다. 운반차가 페이데이 갱의 위치를 지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건물 사이를 잇는 다리로 가자.
머키워터 차량 두대-금괴운반차-머키워터 차량 두대로 이루어진 행렬이 나타난다. 이때 금괴운반차의 운전석을 공격할수도 냅둘수도 있다. 공격을 하건 하지않건 공범이 탄 포크레인이 등장, 금괴운반차를 옆으로 밀어버린다.
포크레인이 금괴운반차를 도로 옆 낭떠러지로 밀쳐버렸다. 옆건물 비상계단, 포크레인 옆 계단을 타고 내려와 도살장 건물에 들어가자. 머키워터 용병이 강하니 주의. 도살장 안에 있는 경비 두명을 처리하면 천장에 박힌 금괴 운반차가 보일 것이다. 기습 때 운반차를 쏘지 않았다면 운반차의 뒷쪽이 밑으로 가있다. 이 경우 뒷문에 C4를 설치해 금고를 떨어뜨려야 한다. 운반차를 쏘았다면 운반차의 앞쪽이 밑으로 가있다. 이 경우 전선을 쏴 운반차를 떨어뜨린 후, 뒷문에 C4를 설치해 금고를 꺼내야 한다. 전선을 쏘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려도 운반차가 떨어지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끔씩 차량 안에 불도저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38회 일치
[목차]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선수였던 큰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 이후 원곡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17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아[* 사실 16살이 160 후반대면 꽤 큰 키에 속하지만 배구선수에게는 작아도 정말 작은 키이다.] 벤치 멤버를 전전했다. 출전할 때도 센터나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했다. 본인은 이때 배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로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독하게 훈련을 하기 시작한다.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으며, 11시가 되어서야 운동을 끝내고 귀가하였고, 잘 때조차 공을 안고 잘 정도였다고 한다. [* 이때 익힌 기본기들이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장신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와 토스가 안정적인 이유가 이때 익힌 기본기의 산실이다.] 이후 한일전산여고로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적적으로 키가 20cm나 자라면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고[* 키가 갑자기 자란 이유에 대해서 김연경은 방송에서 [[콩나물]]을 비롯해서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147257|기사]].], 초고교급 선수로 각광을 받게 된다. 처음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것도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5년이었다.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배구선수)|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반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 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이라 쓰고 [[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개소리]]~~[* 인삼공사 감독 시절 보면 답이 나온다. 주전들이 모두 은퇴하자 갑작스레 구단에서 사퇴하여 이후 인삼공사 망가뜨린 주범이다.]을 남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이후 2009-10시즌에 [[일본]] JT 마블러스로 임대 이적[* 첫 해에 좋은 성적을 거두면 옵션으로 그 다음 해에도 뛸 수 있는 1+1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2010년 9월 국내 컵대회에 출전했다. 일본 리그가 오프 시즌인 때에는 9월에는 국내 컵 대회 출전이 가능했다.], 일본 여자배구계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김연경이 빠져나간 흥국생명은 2009-10 시즌 10연패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사실은 2008-09 시즌에도 흥국생명은 정규 시즌을 겨우 3위를 해 플레이오프부터 봄배구를 시작했지만 김연경과 카리나 오카시오의 크레이지 모드로 우승을 차지했던 것. 어쨌든 흥국생명의 [[리즈 시절]]을 이끌고, 게다가 국가대표팀에서도 [[사기 캐릭터|캐사기 유닛]] 소리를 듣게되자 '국내 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라는 여론과 김연경 본인의 외국 리그 진출 의지가 합쳐져 결국 2009 오프시즌에 외국 리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사실 김연경은 완전 이적을 바랐겠지만, 흥국생명이 선수 임대 방식을 이용, '''당시 V-리그 선수 이동 규정에 없던 방식'''으로 제대로 신분 정리도 안 한 채 이적을 진행했고, 이것이 3년 후에 이적 파동의 도화선이 된다.
어쨌든 이런 사정을 접어두고라도, 김연경은 일본 프리미어리그에서까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으니 일본 리그의 감독들까지 '''일본에서조차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만들었다.[* 물론 당시 일본 여자배구에는 오야마 카나(大山加奈), 구리하라 메구미(栗原惠), 기무라 사오리(木村沙織) 등 대형 거포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야마는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구리하라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이후에 폼이 급격히 무너졌으며, 기무라는 이 둘보다는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기는 했지만, 2010년대 초반 들어서는 예전만도 못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여자 배구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좋은 케이스. 2009-10 시즌 초에 신종 독감으로 고생하더니 2010-11 시즌 초에 역시 독감으로 몇 경기 결장한 바 있다. 그래서 팬들의 가슴을 졸이기도. 하지만 결국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JT 마블러스의 시즌 우승을 또 한 번 이끌어 냈다.[* 2011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 V리그는 잔여경기에 상관없이 시즌을 강제 종료했다. 이로인해 정규 리그 최종 성적이 시즌 통합 성적으로 인정되어 정규 시즌 1위였던 JT 마블러스와 사카이 블레이저스가 2010-11 시즌 우승팀이 됐다.]
2012-13 시즌에는 김연경 본인이 이적 파동 때문에 힘든 시즌을 보내기도 했고, 소속팀 페네르바흐체 역시 주전 세터였던 나즈 아이데미르가 페네르바흐체의 라이벌 팀인 바키프방크로 이적하면서 팀은 2011-12 시즌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쉽게도 페네르바흐체는 시즌 3위에 CEV 컵[* 유럽 배구판 UEFA 유로파 리그 급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사기캐 팀이 이 정도 성적을 거둔거라면(...)~~
2013-14 시즌에 김연경은 소속팀 페네르바흐체의 CEV 컵 우승의 선봉장으로 서며 또다시 MVP가 되는 위엄을 보여줬다. 오오. 갓연경. 게다가 [[엠스플]]에서 김연경 출전 경기를 중계해 줄 정도로 김연경의 위상을 다시 한번 올려주는 시즌이 되었다. 그런데 아로마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페네르바흐체는 바키프방크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경은 득점 1위, 공격종합 1위를 기록했다. 역시 갓연경. 한편, 챔피언 결정전 1차전 때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김연경은 실종자·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태극기 문양을 넣은 검은색 팔꿈치 보호대를 하고 경기를 치렀고, 팀 동료들도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같이 달고 뛰었다. 김연경의 본가가 안산에 있고, 또한 초·중학교를 안산에서 나온 만큼 귀국 후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할 일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6-17 시즌 정규리그에서는 바키프방크에 이어 2위를 차지해 포스트시즌에 올라갔다. 준결승에서 골든 세트에 듀스까지 간 끝에 엑자시바시를 꺾고 먼저 결승전에 진출했고, 남은 한 자리에 [[갈라타사라이]]가 올라오면서 무려 리그 결승전이 [[이스탄불 더비]]로 치러졌다. 과연 1경기부터 응원열기가 과열되다 못해 2경기에서 경기 중 관중이 총을 쏘는 대형 사고가 터져 결국 2층 관중 전체가 퇴장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양 팀 감독이 경기 중 서로 말싸움을 벌인다던가 하는 등 살벌한 더비전 끝에 페네르바체가 3연전 모두 3-0으로 셧아웃시키면서 우승을 달성했다!
남은 것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이 ~~표면상~~ '대승적인 차원' 에서 배려해주는 것 뿐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아보였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전에 결정짓겠다던 이적 문제가 [[2012 런던 올림픽|올림픽]]을 지나 9월 초가 되도록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김연경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대한배구협회]]의 [[높으신 분]]의 말씀 한마디이면 해결될 문제이긴 하나 사실 진짜 일해야 할 곳은 계약기간과 신분부터 확실히 해줘야 할 [[한국배구연맹]](KOVO)고 [[대한배구협회]]는 이적동의서 쓰는 것이 할 일. 따라서 이 일이 [[대한배구협회]]로 가는 것부터가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그 높으신 분은 김연경 이적 파동 발생 때 대통령 해보고 싶으시다고 나대셔서...~~[* [[대한배구협회]] 회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으로 18대 대선 새누리당 경선후보로 나선 바 있다.]
마침 흥국생명이 [[임의탈퇴]] 공시를 한 즈음,팀 내부의 고민이 있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류현진]]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포스팅을 허락해 준 [[한화 이글스]]와 비교되어 더욱 까였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의 행보야말로 전형적인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도 못 가지게 하겠다 혹은 망가뜨려버리겠다' 라는 전근대적인 쓰레기 마인드라 할 수 있겠다.
결국 7월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7월 25일까지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국가대표팀 은퇴도 불사하겠다'''' 는 초강수 배수진을 쳤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8&aid=0002811844&date=20130715&type=1&rankingSectionId=107&rankingSeq=1|#]] 사실상 선수로서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셈이라 팬들은 말 그대로 복창이 뒤집어질 지경. 그리고 흥국생명은 가루가 나노분자로 분해되도록 까였다. 그런데 ~~기레기~~[[기자(직업)|기자]]들은 오히려 노골적으로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16936|김연경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288125|깠다]]. 그것도 모자라서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87546|김연경보고 귀화하라고 하는 팬들을 싸그리 디스하며 하등 쓸모없는 애국심만 들먹였다]]. 이런 와중에도 흥국생명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491478|언플이나 하면서]] 자신들의 멘탈이 쓰레기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쯤 되면 정말로 [[답이 없다]].
다만 국가대표 자리를 담보로 흥정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김연경을 비판하는 입장도 좀 있는 편. 사실 흥국은 선수를 쓰고 6년이나 보낼수 있었음에도 대승적 차원에서 임대를 해주었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을 악마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꼭 그런것만도 아니다. 그래서 사실 국가대표 은퇴란 카드를 꺼내들 필요도 없었다. [[임의탈퇴]] 조항은 '''V-리그에서만''' 적용될 뿐이고 협회가 이적동의서만 써 주면 어디서든 뛸 수 있다. '''문제는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가는데 한 몫 했던 협회가 순순히 이적동의서를 써줄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출하지 않기로 했던 서류까지 이용해 가면서 노골적으로 구단편을 들고 구조적으로도 구단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협회에게서 공정성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어려웠다.
이후 긴급 기자회견이 기자회견이 아닌 김연경 측의 일방적인 발표였고 에이전트가 기자들의 질문을 전면 차단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김연경은 7월 24일 [[기독교방송|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입장을 [[http://www.youtube.com/watch?v=6rryyZA0-GI|자세히 밝혔다.]] 한편, 협회와의 대화를 하러 변호사와 에이전트와 대동했으나, 협회에서는 이 조력자 둘을 빼고 김연경과 직접 대화를 했으며, 협회 관계자가 김연경에게 폭언을 했다는 후문을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남기기도 했다.
추가적으로 김연경 이적 파동과 직접 당사자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구단,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의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얽히고설켜 삽질을 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박상설 KOVO 前 사무총장이 기금전용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었고, 대한배구협회 임태희 회장은 김연경 이적 파동이 생기려고 하던 시점에 공석이었던 KOVO 총재 자리에 눈독을 들이며 물밑 작업을 시도했었다. 여기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이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주최인 [[대한배구협회]]에 떡밥을 던졌고,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권광영 단장은 당시 KOVO 총재 추대위원회에 속해있어 KOVO 총재에 눈독을 들이던 임태희 회장의 [[대한배구협회]]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또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온갖 비리혐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박상설 총장에게도 추파를 던져 박 총장에 대한 연임 지지를 약속하며 김연경의 해외진출건을 KOVO 이사회 차원에서 막아달라는 ‘딜’을 성사시켰다. 이후에 임태희 회장이 새누리당 18대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하고,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의 ITC 발급 불가에 대해 SNS 구명활동에 응하는 엉뚱한 짓으로 우왕좌왕하며 망신을 자초했다. [[http://m.mk.co.kr/entertain/home/2014/213724|해당기사]]
중국무대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며 소속 팀의 [[http://m.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90876&page&total#cb|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상하이 팀은 17년 만에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이쯤 되면 김연경은 우승 청부사가 맞다.~~
2018년 3월 11일 본인 SNS를 통해 샐러리캡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연경은 "여자부와 남자부 샐러리캡이 너무 차이가 난다. 좋아지는 게 아닌 점점 뒤쳐지고 있다. 이런 제도라면 나는 한국서 못 뛰고 해외에서 은퇴해야 할 것 같다."라고 샐러리캡 ‘성차별론’을 제기하면서 그 논란이 더욱 커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연경은 KOVO가 발표한 샐러리캡 25% 조항에 의문을 표했고, 국내 언론들은 기사에 '성차별'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내걸었기 때문에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다음 시즌 남녀부 샐러리캡 차이는 11억 원이다. 최근 상승중인 여자배구 인기만 보면 이를 여자배구에 대한 차별로 볼 수 있다. 샐러리캡은 그러나 외견상 액수만 갖고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여자부와 남자부의 시장가치, 티켓파워, 그리고 프로배구 출범시 태생적 차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한, "남자부 신인의 경우는 대부분 대학을 마치고 들어오는 선수들이 많다. 평균 나이도 여자부에 비해서 높고 대학 시절의 경력을 무시하지 못한다."라고 전했다. A구단 관계자는 또 남녀간 연봉 격차가 시장 가치가 오랫동안 쌓여 반영된 결과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여자부가 최근 상승세에 있고, 좋은 분위기인 것은 맞지만 한 두해만으로 남녀부가 엇비슷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대표팀을 떠나서 프로만 보면 남자부가 쌓아온 것이 더 많다. 여자부는 더 쌓아가야하는 단계로 본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국내 프로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프로배구 역시 구단 입장에서는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구단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분은 입장수익과 중계권 정도다. 그러나, 이마저도 미약한 실정이다. [[성차별]]에 나오듯이 남녀스포츠 리그에서 여성 선수 수익이 적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모호하다.
- 울릉군 . . . . 38회 일치
[목차]
[[국회의원]] 선거구는 엉뚱하게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와 묶여있다. 그런데 정작 포항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포항 구항은 북구에 있다.--신나는 [[월경지]]-- 이는 포항 남구보다 포항 북구 인구가 미묘하게(2~3만 명 정도) 많아서 그렇게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비례를 생각하면 경상북도의 농촌 선거구에 옮기는게 맞겠지만, 선거운동하기가 힘들어지는 문제가 있다. 배편이 있는 울진군에 엮으면 될 것 같지만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만으로도 벅차다. 네 군 모두 벽지 중의 벽지긴 한데 울진은 그나마 낫다. 다시 [[강원도]]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로 행정구역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쉽진 않다. 행정적으로 경상북도에 속한 이후로 말투도 경상북도 사투리가 발달했다. 거기다 원래 울릉도에 살던 강원도 사람들은 대다수 이미 사망하였거나 외지로 떠났고 현재 울릉군 주민들은 경북 출신들이 대다수. 경계가 애매한 지역들은 양쪽 사이에서 소속감이 애매한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면적도 좁은데다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경북쪽 정서로 비슷해진 느낌이다.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지역이 되면서 남한령이 되었다. [[6.25 전쟁]], 남북 분단에 이르는 격변기에는 매우 드물게 참화를 비껴갔다. 옛부터 주변에서 별로 간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잘 지냈기 때문에 이념 대립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육지와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진지라 6.25 전쟁조차도 바다 건너 불구경이었다.[* 어떤 위키러가 들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자를 실은 배가 들어오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육지에서 전쟁이 났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넓이가 지나치게 넓어 사람도 많이 몰린 [[제주특별자치도]], 남한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백령도]], [[연평도]]의 안습한 역사와 비교해보자(…). 마찬가지로 육지와 꽤 멀리 떨어진 가거도도 역시 바다 건너 불구경...그러므로 종속국의 역사와 행보가 떨어진 섬이라는 점에서는 [[대만]], [[오키나와]]와도 비슷하다.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2017년 8월 20일, 해병대가 최초로 중대급 병력 전개 훈련을 한 것이 확인되었다. 영상 중후반부에 초등학교가 나오고 운동장에 군용차량들이 정차된 것으로 보아 그곳을 주둔지로 사용할 계획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TEggXx89JQ4|#]] 그리고 8월 22일 국방TV 보도에 따르면 당초 언론보도에 알려진 중대급이 아니라 대대급의 해병대 병력이 울릉도에 배치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0xtG0uFhE|#]]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자유한국당]]의 텃밭[* 사실 강원도도 군인 인구가 많고, 높은 인구비중을 차지하는 노인들이 그들과 접하기 쉬운 환경특성상 ~~안보팔이가 잘 먹혀서~~ 준텃밭에 해당한다. 다만, 도지사나 교육감 등 도 단위 선거에서는 영서와 영동간 갈등, 강릉,춘천,원주의 자존심싸움 등으로 변수가 만들어진다.]인 [[경북]] 및 다수의 영남지역의 특성상 이 곳에서도 예외없이 자유한국당의 텃밭에 포함되어 있다. 경북 본토도 그렇지만 이 지역도 경북 지역에 속하는 영향 때문에 국회의원 출신정당이 대부분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선거구가 [[포항]] 남구와 묶여서 포항 남, 울릉 선거구에 속하기 때문에 포항 남구 지역과 함께 자유한국당의 밭으로 불리고 있다. ~~어차피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 유세도 못 한다~~
2013년 기준 울릉군 산업별 비중은 기타서비스업이 86.3%, 농림어업 10.9%, 광업제조업 2.9% 으로 울릉군의 산업은 서비스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타서비스업의 사업체 중 관광업과 연관된 사업체 수는 685개로 서비스업체수의 71.7%를 차지하며, 종사자수는 49.9%를 차지한다. 즉, 주민의 대부분은 관광업에 종사한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2013년 경상북도 시군단위 지역내총생산(GRDP) 추계결과 및 분석자료]
* B 코스-울릉도 관광업계에서 보통 B 코스라고 부르는 게 있는데, 도동에서 출발해서 봉래폭포와 내수전을 돌아보는 코스이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면 바닥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내수전을 전망대 조금 전까지 차로 올려주는 점이 장점.
* 죽도-울릉도 주변 부속 도서 중 가장 큰 섬으로, 도동항에서 죽도로 가는 관광용 유람선이 있다. 울릉도에서 매우 가까워서 멀미를 걱정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지만,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다. 섬에 도착해서 1시간 정도 섬을 돌아보며 트래킹하고 다시 도동으로 돌아오는 코스.
* 섬일주 유람선-울릉도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유람선으로 유명하다.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유람선을 타다가 [[새우깡]] 손에 쥐고 있으면 [[갈매기]]들이 와서 새우깡을 낚아채 간다.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맨손으로 잡는 것도 가능. 유람선에서 보이는 울릉도의 모습도 굉장히 아름답다. 유람선은 3층까지 있고, 1층은 드러누울 수 있는 곳이고, 2층은 좌석, 3층은 입석이다. 섬 주변만 항해하기 때문에 배멀미를 걱정할 정도의 흔들림은 적은 편이지만,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오른쪽이 명당이므로 참고하면 좋다. --망망대해를 보고 싶다면 왼쪽으로 가자.--
다만 그렇다고 바가지로 받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는 아이스크림을 시가보다 비싸게(천원이 정가라면 천삼백~오백정도)받았다고 하지만, 현재는 그냥 정가로 판다. 관광업이 주 수입원이다 보니 식당의 가격이 비싼 건 맞지만, 일반 생필품 등의 가격이 육지랑 크게 차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울릉도가 물가가 비싸다라는 말이 유행해, MT나 친목도모회를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류/안주류를 사들고 오는데, 울릉도에서 구매하지는 않고 빈 병들만 투척하고 가는 바람에 입도비를 따로 받지 아니하는 울릉도는 벌이가 시원찮은 편.
그 외에도 [[LPG]]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LPG 배관망을 오는 [[2020년]]까지 구축을 완료될 예정에 있다. 저 멀리 끝자락 남쪽 섬인 [[제주도|이 섬]]은 [[LNG]] 저장 탱크를 [[대림산업]]이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어, 제주도의 LNG 도입, 울릉도의 LPG 구축을 연계하려는 의도가 있다. 울릉군에 LPG 배관망이 설치될 경우, 기존에는 지금과 같이 [[석유]]와 [[LPG]] 가스 용기를 구매해서 난방 및 취사를 해야 하는 현재와 같은 번거로움도 줄어들고 도시가스 공급을 원활하게 편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차라리 돈을 더 들여와서 전기 보일러, 전기 쿡탑을 설치해서 [[난방]]과 [[취사]]를 둘 다 [[전기]]로 떼우던가..~~
배가 언제 뜰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육지와 왕래할 때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그 자체. --그런데 항공기는 오죽할까-- 심지어 전직원 휴가를 울릉도로 정한 대기업 납품 중소기업이 '''기상악화로 발이 묶여''' 납품 실패, 돈은 돈대로 나가고 아예 회사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설같이 전한다. 사설 헬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높은 파도로 인해 배가 뜨지 않을 때 사설 헬기를 이용할 시 비용은 약 500~700만원정도 든다.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 도달해 어떻게든 나가야할 시 유일한 병원인 보건의료원에서 응급 후송 헬기를 이용할 수 있으나, 그조차 의학적 증거가 명백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마찬가지로 내륙지방과 고립되어 있는 탓에 특산식물이 많이 분포한다. 우리나라만의 특산식물이 328종 정도 인데, 울릉도에만 존재하는 특산식물이 36종으로 전체 특산식물 종의 1/10 이상인 셈. 넓이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편으로 제주도는 2배 정도인 75종이다. 대표적으로는 섬잣나무와 고추냉이, 명이나물 등. 식용은 아니지만 피부미용에 이용하거나 말려서 차로 끓여먹기도 하는 어성초도 있다. 명이나물은 요즘 뭍에서도 유명해지고 있다. 참고로 명이나물은 깊고 기묘한 맛으로 유명한데, 수가 적어져서 현재 울릉도산은 반출이 금지되어있다.
특별한 식당 먹거리로는 약초해장국(항구 근처에서 멀미에 좋다며 대접하는데 효과는 과연...), 호박막걸리(봉래폭포 입구 가게가 원조라고 한다. 맛은 톡 쏘지 않고 아주 부드럽지만 취기가 빨리 올라온다는 평. ~~하지만 단 한번도 주민들이 마시는 모습은 본적이 없다~~ ~~주민도 외면하는 그 맛~~), 약소 고기(추가바람)가 있다. 횟감은 어차피 포항에서 실어오는 것이고(그래서 물회 한 그릇 시세는 포항보다 비싸다), 오징어와 전복 등은 현지 산물이라고 한다.
공항이 없기에 고정익기 취항은 불가능하지만, [[헬기]] 노선은 몇 차례 시도된 바 있다. 울릉도행 첫 항공노선은 1989년 7월 25일에 개설된, 포항-울릉도 간 (주)우주항공의 16인승 헬기 노선이었다. 우주항공은 울릉도행 선박 노선을 운항하는 (주)대아고속해운의 계열사였다. 당시 편도요금은 46,200원이었고, 이걸 2010년대 물가로 환산하면 10만원쯤 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고작 취항 3일만인 [[7월 27일]], 노후된 기체가 기관 고장을 일으켜 추락, 13명이 숨지고 물론 헬기 운항은 중단되었다. 그 이후로도 몇차례 헬기가 취항한 적이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철수하여 현재 울릉도에 가는 교통수단은 배밖에 없다.
울릉도에서 굴러다니는 차는 딱 2종류라고 봐도 좋다. [[경차]] 아니면 [[현대 싼타페|싼타페]]같은 [[SUV]]. 우선 도동이나 저동 등 대부분의 마을길 폭이 좁기 때문에 [[경차]]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경차]]로도 울릉도의 가파른 산길을 타는 데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일본]]식 경차처럼 배기량 0.66리터 엔진을 달면 상대적으로 산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퍼지기 쉽다고 하여 [[대한민국]]에서 티코가 나올 때부터 0.8리터로 내놓았고 [[2008년]]부터는 정부에서 배기량 1.0리터로 규정을 변경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퍼질 듯... 그래도 산길이 많고 해안도로에 절벽에서 떨어지는 돌들이 많기 때문에 차량 하체도 긁히기 쉬워서 경차보다 튼튼한 차를 산다면 같은 급의 중형 세단보다는 SUV를 사게 된다고. 심지어 '''이 동네의 경찰 [[순찰차]]와 [[택시]]도 전량 SUV다.''' 거기에 울릉도는 눈이 꽤 오는 곳이니 '''SUV가 아니면 [[답이 없다]].''' 거기에 군 내에 [[LPG]] 충전소가 없다는 점을 유의하자. 따라서 택시가 다니더라도 LPG 차량이 없고 100% 디젤차다. 그리고 세단을 대여해 오는 관광객들을 보다못한 택시나 관광차량이 중앙선침범을 빈번하게 하니 아예 택시를 이용하자. 요금은 기본 2,800원으로 포항 시내와 동일하다.
[[경상북도]] 관할인데다 외지와의 교류가 어려운 특성상 이 지역에서의 차량 번호판은 모두 '''경북'''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자동차면허 관장도 경북지방경찰청에서 관리한다. 여기에서도 운전면허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는 포항운전면허시험장에서 울릉도출장소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37회 일치
항해 33일 째 날. 의문의 선박이 프로비던스를 쫓아온다. 프로비던스가 맞서 싸우는 동안, 프로비던스의 선장은 헤이덤이 아무 도움도 못될 것이라 판단해 헤이덤을 선실 밑으로 내려보낸다. 선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건 루이스 밀즈. 밀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항복을 제안한다. 헤이덤은 명예는 지켜주겠다는 밀즈의 말에 차라리 검을 달라고 대꾸, 밀즈에게서 검을 넘겨받고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 이후 헤이덤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와 의문의 선박이 노리는건 자신임을 밝힌 후, 선장을 암살검으로 협박해 폭풍 속으로 프로비던스를 몰게 한다. 폭풍 속에서 헤이덤은 돛를 고정시키고, 돛을 펴는 일을 돕는다. 그러던 중 제임스가 돛대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돕기도 한다. 제임스를 돕고 난 후, 헤이덤은 쫓아오던 선박의 돛대가 폭풍에 부러져 더이상 쫓아오지 못하는걸 확인한다.
이후 헤이덤 일행은 마차를 뒤집어 수송대를 가로막은 후에 기습, 수송대의 옷과 마차를 빼앗는다. 헤이덤은 자신을 풀어달라는 원주민 여인에게 사우스게이트 요새에 도착하면 풀어주겠다고 말하고는 수송대인 척 사우스게이트 요새로 마차를 몬다. 헤이덤의 일행이 길을 수송대를 검문하려는 영국군을 암살하는 동안, 헤이덤은 수송대 마차를 몰며 옆에 묶여있는 여인에게 말을 건다. 여인은 대답하지 않는다.
렉싱턴에서 만난 헤이덤과 찰스 리. 여인은 렉싱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야영중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야영지로 가지만 여인은 간발의 차로 사라진 상황. 두 사람이 눈에 난 자국을 따라 여인을 쫓아가지만, 찰스 리의 실수로 인해 또다시 여인을 놓치게 된다. 헤이덤은 찰스 리를 브래독[* 핏케언을 빼앗기면서 화가 단단히났다.]에게 돌려보내고 다시 여인을 추격한다.
브래독의 요새 근처에서 만난 두 사람. 헤이덤은 보급품을 운반하는 마차에 숨어들어 요새에 잠입한다. 조지 워싱턴과 존 프레이저의 대화를 도청해 브래독이 듀케인 요새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낸 헤이덤은 작전 지도를 훔쳐 요새에서 빠져나온다.
* 화약 마차 세대를 파괴
추격전 도중 화약 마차가 총 세대 나오므로 하나라도 놓치면 안된다.
라둔하게둔이 정신을 차린 때는 어둑어둑해진 무렵이었다. 개머리판에 맞은 머리를 감싸쥐며 마을로 돌아가는 라둔하게둔이 본 건 불타는 마을이었다. 라둔하게둔은 어머니인 카니에티오를 찾아 집에 들어가지만 카니에티오는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상황. 라둔하게둔은 자신을 놓고 가라는 카니에티오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구하려고 했지만, 무거운 건물 잔해를 들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라둔하게둔만이 다른 마을 사람에 의해 구조되고, 카니에티오는 불타는 집 안에서 생을 마감한다.
고프리와 테리는 임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무를 베다가 테리가 강에 떠내려간 것. 두 사람이 제재소를 차리고 싶어하자 코너는 저택 근처 언덕 땅을 내어준다.
약속장소인 몰리뉴 여관에 도착한 코너, 애덤스는 코너에게 몰리뉴 여관의 주인인 윌리엄 몰리뉴와 경영자 겸 주방장인 스테판 샤페우를 소개시켜준다. 스테판 샤페우는 아까 전에 코너와 함께 싸웠던 집주인이었다. 대화가 격해지던 중, 코너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윌리엄 존슨이 차를 밀수해 땅을 살 돈을 벌고 있다는걸 알아낸다. 애덤스와 샤페우는 부두에 있는 차를 파기하고, 밀수꾼들의 배달을 막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여관 밖으로 나간 코너는 상자를 들고 가던 남자와 부딪힌다. 남자가 운반하던 물건은 밀수된 차였다. 코너는 존슨의 부하들이 배달하던 차를 파괴한 후 부두로 가 쌓여있던 차 상자 역시 파괴한다.
* 밀수된 차를 파괴하는데 화약통 사용 2회
코너와 샤페우가 도착한 곳은 한 광장. 그곳에서는 밀수하던 차를 파괴당했다는 말을 들은 세금징수인이 부하를 갈구고 있었다. 샤페우는 세금징수인의 어깨를 클리버로 내리쳐 꽃아버린다.
코너는 구 남부 예배당(Old South Meeting House) 앞에서 샤페우, 몰리뉴와 만난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몰리뉴에게 코너가 대체 무슨 신호냐고 물은 순간. 애덤스가 "이 모임으로는 더이상 나라를 구할 수 없소"라고 선언하며 예배당에서 나와버린다. 코너가 끌려다니기 싫다며 뭘 할건지 물어보자 애덤스는 나다니엘 브래들리의 집에서 사람을 모은 후 그리핀 부두로 가서 배에 있는 차를 모두 내다버릴것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이것은 잉글랜드에 메세지를 보내는 동시에 존슨의 재정에 손상을 줘 코너의 마을을 지키는 일이라며, 코너한테 선두에 서보라고 권유한다.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코너가 부두를 지키던 경비병들을 처리하고 신호를 보내자 애국자들이 배에 올라타 차 상자를 바다로 내던진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영국 정규군이 부두로 들이닥친다. 코너는 애국자들이 차 상자를 모두 내다버리는 동안 영국군과 맞서 싸운다.
결국 모든 차를 내다버린 애국자들은 환호한다. 코너는 배에서 내리며 자신을 지켜보는 핏케언, 존슨, 찰스 리를 목격한다. 이때 샤페우가 코너 몫으로 남겨둔 차 상자 하나를 건내주고, 코너는 템플기사단이 보는 앞에서 차 상자를 떨어뜨린다. 그 광경을 본 템플기사단원들은 이를 갈면서 가버린다.
코너는 아킬레스에게 돌아가 끝났다고 말한다. 이에 아킬레스는 존슨을 죽였냐고 물어본다. 차를 파괴했다는 대답을 들은 아킬레스는 또다른 계략을 꾸밀 뿐이니 죽였어야 했다고 대답한다. 코너는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하지만 아킬레스는 그게 사실이라면 시간이 말해줄거라 한다.
6개월 후, 카나도곤이 황급히 집으로 달려와 라둔하게둔을 부른다. 존슨이 땅을 살 수 있을만한 돈을 가지고 돌아온 것. 차를 파괴했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냐는 코너의 말에 아킬레스는 템플기사단은 풍족함 빼면 시체라고 대답한다.
* 차 10 상자를 바다에 던짐
* 해당 임무를 완수하면 저택 2층에 로빈손 차 상자(Robinson Tea Chest)가 생긴다.
1776년, 지하실에서 코너와 아킬레스는 암살단으로써의 일에 논쟁을 벌인다. 코너가 아킬레스의 말을 받아치며 1층으로 올라왔더니 한 남자가 아킬레스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킬레스는 그 남자, 벤자민 톨마지를 소개하며 그의 아버지가 암살단원이므로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다고 한다.
- 정용화 . . . . 37회 일치
* [[2010년]] [[1월 14일]] 락밴드 씨엔블루(CNBLUE)의 리더로 팀 안에서 보컬과 기타와 랩을 맡아, [[bluetory]]<ref name="album1">[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315286592871176&DCD=A10102 씨엔블루, '씨엔블루토리'서 1집 전곡 첫 라이브 연주]{{깨진 링크|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3DEA31%26newsid%3D01315286592871176%26DCD%3DA10102 }}《이데일리스타in》, 2010년 2월 16일 작성.</ref> 음반 발매와 함께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수건남 효과에 힘입어 첫 방송후 각종 차트를 올킬하였으며,<ref name="all">[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17/6857237.htm “블루돌풍” CNBLUE, 첫 방송후 각종 차트 ‘올킬’]《재경일보》2010.01.17 작성.</ref> 한국 가요계에서 신인이 데뷔 후 14일만에 1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ref name="chleks">[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29/7708991.htm 씨엔블루, 최단기간 1위 기록 세우며 정상 등극! ]《재경일보》2010.01.29 작성.</ref> 이는 지상파 데뷔 최단 기간 1위 기록이었지만 위너 이후에 기록이 깨졌다.* [[2010년]] [[5월 19일]], 씨엔블루는 두 번째 미니 앨범 《[[Bluelove]]》를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todaykorea.co.kr/news/contents.php?idxno=109805|출판사 = 투데이코리아 |날짜 = [[2010년]] [[5월 19일]]}}</ref> [[5월 20일]], [[Mnet]] 《[[엠카운트다운]]》을 통해 컴백하였는데,역시 큰 인기를 얻으며 각종 음원차트에서 1위는 물론, 음악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Love’, 포털사이트 점령… ‘올킬’ 시동|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33629§ion=sc4|출판사 = 프레이크뉴스 |날짜 = [[2010년]] [[5월 19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LOVE’ M카운트다운 1위 수상!
* [[2010년]] [[6월 23일]] 일본에서 발매한 《The Way》앨범 타이틀 One Time 을[[작사]], [[작곡]] 하였고 이 곡으로 씨엔블루로는 오리콘 싱글차트 11위에 진입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日 싱글 'The Way' 오리콘 데일리 11위|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500570|출판사 = 조이뉴스24 |날짜 = [[2010년]] [[6월 24일]]}}</ref>
* [[2010년]] [[9월 15일]]에는 [[일본]]에서 두 번째 싱글 ''[[I don't know why]]''를 발매하였는데, 정용화의 자작곡 "I don't know why"는 [[오리콘]] 싱글차트 데일리 8위,<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싱글 日 오리콘 8위 진입 ‘쾌거’|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917094222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0년]] [[9월 17일]]}}</ref> [[오리콘]] 인디즈 차트 주간 1위를 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새 싱글 'I don't know why'로 오리콘 차트 1위|url=http://autotimes.hankyung.com/apps/news.sub_view?popup=0&nid=81&nkey=90590|출판사 = 오토타임즈 |날짜 = [[2010년]] [[9월 30일]]}}</ref>
* [[2011년]] [[1월 9일]], 일본에서 세 번째 싱글 ''[[RE-MAINTENANCE]]''를 발매하였다. 타이틀 "Try again, Smile again"을 작곡 및 작사하였고 오리콘 싱글차트 데일리 2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 = '씨엔블루' 日 투어 전석 매진 신기록…오리콘 챠트 2위 겹경사 |url = 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26803 |출판사 = 마이스타뉴스 |날짜 = [[2011년]] [[1월 10일]] |확인날짜 = 2012년 8월 19일 |보존url = https://archive.today/20130111191550/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26803 |보존날짜 = 2013년 1월 11일 |깨진링크 = 예 }}</ref>
* [[2011년]] [[3월 21일]], 첫 정규 음반 발매 및 게릴라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컴백 씨엔블루 오늘(21일) 앨범발매→쇼케이스→게릴라콘서트 3단콤보|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321112618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1년]] [[3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과 함께 게릴라 콘서트…팬들 “역시 실력파 밴드는 달라”|url = 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출판사 = 마이스타뉴스|날짜 = [[2011년]] [[3월 21일]]}}{{깨진 링크|url=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 }}</ref> 선주문 10만장이 넘은 이 앨범은 발매 직 후 실시간차트와 일간차트 등에서 1위를 하였고, 컴백 일주일 후 [[3월 31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시작으로 하여 공중파인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 1주 만에 '엠카' 1위··"초심 잃지 않겠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3115421314776|출판사 = 아시아경제 |날짜 = [[2011년]] [[3월 3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직감' 잇따른 1위, 'FIRST STEP'의 놀라운 '직감'|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402140007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날짜 = [[2011년]] [[4월 2일]]}}</ref> 데뷔 후 처음으로 [[Mnet]] 《[[엠카운트다운]]》과 [[KBS]]《[[뮤직뱅크]]》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 [[2011년]] [[9월 1일]]에 일본에서 인디즈 마지막 앨범인 《[[392(Thank you too(much))]]》를 발매하여 오리콘 데일리 앨범 3위와 인디즈 위클리 1위를 차지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日 앨범 ‘392’, 오리콘 데일리 앨범 차트 3위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93705691|출판사 = 맥스뉴스 |날짜 = [[2011년]] [[9월 2일]]}}</ref> 또한, [[2011년]][[9월 10일]]에 일본에서 열린 일본 마쿠하리 멧세(MAKUHARI MESSE)에서 열리는 [[린킨파크]](Linkin Park) 단독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CNBLUE), 린킨파크(Linkin Park)와 '오프닝 무대' 가져|url= http://www.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출판사= 톱스타뉴스|날짜= [[2011년]] [[9월 9일]]|확인날짜= 2012년 8월 19일|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0120220518/http://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보존날짜= 2013년 1월 20일|깨진링크= 예}}</ref>[[9월 17일]]~[[9월 18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 "BLUE STORM"을 이틀에 걸쳐 진행하고,<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아시아투어 콘서트…9월 제주에서 출발한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10801001713&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 |날짜 = [[2011년]] [[8월 1일]]}}</ref> [[9월 25일]]에는 인디즈그룹으로는 유례없이 1만 5천석의 Yokohama Arena에서 인디즈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단독 콘서트, 요코하마의 밤을 불태운 ‘열정의 무대’|url=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24&nid=119144|출판사 = SSTV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이것이 밴드다…'씨엔블루' 日콘서트,1만 5천 팬 열광 |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27290|출판사 = 노컷뉴스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
* [[2011년]] [[10월 19일]]에 2년여 시간의 인디즈 생활을 마감하고 《[[In My Head]]》로 메이저 데뷔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워너 뮤직 재팬과 계약 체결…日 메이저 사냥 나선다|url =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출판사 = 티브이데일리|날짜 = [[2011년]] [[9월 1일]]|확인날짜 = 2012년 8월 19일|보존url = https://archive.today/20120720005549/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보존날짜 = 2012년 7월 20일|깨진링크 = 예}}</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10월19일 'In my head' 발매 日정식데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90609394071723&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 |날짜 = [[2011년]] [[9월 6일]]}}</ref>《[[In My Head]]》의 타이틀 "In My Head" 를 작곡 하였고 "Mr.K.I.A(Know It All)" 작사 및 작곡, "In My Head(Inst.)"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첫 날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3위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메이저 데뷔곡 '인 마이 헤드' 오리콘 3위 '쾌거'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1020094523113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1년]] [[10월 20일]]}}</ref> 메이저 음반 발매 기념으로 한 이벤트에 1만4000여명이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이벤트 1만4000명 동원 ‘日 메이저 데뷔 성공적’|url= 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출판사= 스포츠동아|날짜= [[2011년]] [[10월 25일]]}}{{깨진 링크|url=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 }}</ref>
* 오리콘 싱글 위클리 차트에 일주일 만에 7만 1200장을 팔아 치우고 일본 메이저 데뷔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 데뷔싱글 일주일 만에 7만장 판매|url=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110270100197960017298&ServiceDate=20111026|출판사 = 스포츠조선|날짜 = [[2011년]] [[10월 26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인 마이 헤드', 日 오리콘 주간 차트 4위 랭크 |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9589921221164011 |출판사= 티브이데일리 |날짜= [[2011년]] [[10월 26일]] |확인날짜= 2012년 8월 19일 |보존url= https://archive.today/20120715225340/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9589921221164011 |보존날짜= 2012년 7월 15일 |깨진링크= 예 }}</ref> 《[[In My Head]]》는 [[2011년]][[11월 10일]]에 일본 레코드 협회에서 선정하는 골드 레코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일본 데뷔싱글 10만장 넘겨, 日 '골드 레코드' 선정|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21064770229443011|출판사= 티브이데일리|날짜= [[2011년]] [[11월 12일]]|확인날짜= 2012년 8월 19일|보존url= https://archive.today/20130112003527/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21064770229443011|보존날짜= 2013년 1월 12일|깨진링크= 예}}</ref>
* [[2012년]] [[2월 1일]]에 일본에서 두 번째 싱글앨범인 ''[[Where you are]]''를 발매하였고 타이틀인 "Where you are"를 작사 및 작곡하고 "feeling" 작사 및 작곡, "Where you are(Inst.)"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하루에 3만 2천여장이 나갔고 ''[[Where you are]]''는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1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日오리콘 차트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20208385422373&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2월 2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아시아 대세 씨엔블루, 두 번째 싱글 ‘웨어 유 아’로 오리콘 차트 1위|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202020838404&sec_id=540101&pt=nv|출판사 = 스포츠경향|날짜 = [[2012년]] [[2월 2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록 한류' 통했다..인디서 日오리콘까지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20715142874966&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2월 7일]]}}</ref>
* [[2012년]] [[3월 16일]] 작사 및 작곡한 <아직 사랑한다>를 선공개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아직 사랑한다’ 16일 선공개|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출판사= 티브이데일리|날짜= [[2012년]] [[3월 15일]]}}{{깨진 링크|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 }}</ref> <아직 사랑한다>는 공개하자마자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새로 나올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신곡 '아직 사랑한다', 실시간 차트 1위…기대 이상 반응|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20316000850&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날짜 = [[2012년]] [[3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아직 사랑한다’ 선공개 반응 폭발…컴백 기상은 ‘쾌청’|url=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45015|출판사 = NSP통신 연예|날짜 = [[2012년]] [[3월 16일]]}}</ref>
* [[2012년]] [[3월 26일]]에 기자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컴백 쇼케이스를 왜 아침에?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69721|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3월 23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음반 낼때 마다 부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3261244591132&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음원은 발표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헤이 유' 음원공개 직후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32608080291572&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앨범은 3일만에 4만장이상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3일 만에 4만장 돌파…'3월 전쟁' 최후의 승자 |url=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2년]] [[3월 29일]] }}{{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새 미니앨범 판매량 1위, 최단 시간 4만장 돌파|url=http://interview365.mk.co.kr/news/19427|출판사 = 인터뷰365|날짜 = [[2012년]] [[3월 30일]]}}</ref> 또한, 한터 주간 순위에서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EAR FUN’, 한터 주간차트 1위! '승승장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3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61211/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보존날짜= 2014-09-08 |깨진링크= 예 }}</ref> 컴백 무대를 가진 일주일 후 [[4월 5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무세운 상승세로 컴백 1주만에 '엠카 1위'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출판사= 엑스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4월 5일]]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ref> 《[[EAR FUN]]》의 타이틀 곡인 '''Hey you'''가 가온차트 4월 1주차에 1위를 등극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가온차트 4월1주차 1위 등극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78505|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4월 8일]]}}</ref> 그리고 [[2012년]] [[4월 10일]]에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EAR FUN Special Limited Editio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미국화보+DVD 수록된 'EAR FUN' 특별한정판 발매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6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925085809/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보존날짜= 2015-09-25 |깨진링크= 예 }}</ref>
* 공식적인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활동을 [[2012년]] [[4월 22일]]에 마무리하고, [[2012년]] [[5월 5일]]에 드디어 첫 번째 [[씨엔블루]] 팬미팅을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국내팬미팅 헤드뱅잉+제기차기 ‘폭발반응’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5090735301002|출판사 = 뉴스엔|날짜 = [[2012년]] [[5월 9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팬들과 오붓한 팬미팅 개최 ‘함박웃음’ |url=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87198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년]] [[5월 9일]] }}{{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87198 }}</ref>
* 같은 소속사 가수 [[주니엘]]의 데뷔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고 듀엣곡과 뮤직비디오 출연소식이 연이어 들리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으며, 직접 출연한 선공개곡 ‘바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의 티저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팔에 키운 완두콩, 주니엘 뮤비서 공개 |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275926599530232|출판사 = 이데일리|날짜 = [[2012년]] [[5월 18일]]}}</ref> [[2012년]] [[5월 22일]]에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와 주니엘의 듀엣곡 ‘바보’ 22일 선공개 |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120521022078&subctg1=&subctg2=|출판사 = 세계일보|날짜 = [[2012년]] [[5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주니엘-정용화 듀엣곡 '바보', 실시간 차트 2위로 기분좋은 출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5월 22일]]}}</ref>
* [[2012년]] [[8월 29일]] 일본에서 첫 번째 정규앨범인 《[[CODE NAME BLUE]]》를 발매하였고<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일본 정규 1집 ‘CODE NAME BLUE’ 29일 발매|url=http://artsnews.mk.co.kr/news/214267|출판사 = 아츠뉴스|날짜 = [[2012년]] [[8월 2일]]}}</ref> 타이틀인 "Time is over"를 작사 및 작곡하고<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영화 '어벤져스' 영감 얻어 日 정규앨범 타이틀곡 제작 |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20807095344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bnt뉴스|날짜 = [[2012년]] [[8월 7일]]}}</ref> "Intro 02" "Have a good night" "No more" "Where you are(English Ver.)"를 작사 및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하루에 2만 2천여장이 나갔고 ''[[CODE NAME BLUE]]''는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1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첫 정규앨범으로 日오리콘 주간 1위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90416303911913&type=1&outlink=1|출판사 = 파인낸셜뉴스|날짜 = [[2012년]] [[9월 4일]]}}</ref>
* [[2012년]] [[12월 5일]] 일본 음원 사이트 드완고(www.dwango.jp)에서 케이팝 OST 부분 휴대 전화 벨소리 차트에서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 OST가 2012년 연간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일본 OST 벨소리차트 정상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662558|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12월 5일]]}}</ref>
{{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신곡 'I'm sorry' 공개 직후 음원 차트 '1위' 올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14/2013011401752.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3년]] [[1월 14일]] |확인날짜= 2013-04-25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60808070808/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14/2013011401752.html |보존날짜= 2016-08-08 |깨진링크= 예 }}
* [[2013년]] [[1월 25일]]에는 4번째 미니앨범 리:블루가 월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리:블루', 美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1위 '쾌거' |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103751 |출판사 = enews24 |날짜 = [[2013년]] [[1월 25일]] }}</ref>
- 최홍만 . . . . 36회 일치
|| 신체 ||<(> 217cm[* 입식 격투기 데뷔 당시 [[거인]] [[기믹]]을 위해 7피트 2인치(218cm)로 표기하고 다녔지만 꾸준히 [[본인]]은 216cm라고 밝혔고,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엔 [[본인]]의 키를 216.5cm라고 밝혔다(본인의 키를 부각시키는 걸 몹시 싫어하는 듯 하며, 의도적으로 조금이나마 더 줄이려는 모습이다.). SBS 스타킹에 출연 당시에는 본인 입으로 217cm로 밝혔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서 재본 건 사람이 재는 거고, 단순히 책으로 머리를 눌러보는 거라 다분히 오차도 있어 보이는 데다 워낙 커서 일반인이 이런 식으로 재서 정확하게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의미 없고 또한 기계식으로든 앉은키 측정하는 것과 같은 수동식 기계로든 공식적으로 재본 적은 없다.] 161.5kg[* [[2016년]] [[9월 23일]] 기준 측정.], [[B형]] ||
[목차]
하여간 그 특유의 상품성 덕택에 프로씨름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대학교]] 시절부터 [[텔레비전]] 등에 나오며 엔터테이너성을 쌓았다. 218㎝에 165㎏이라는 엄청난 체구에 [[파란색]], [[노란색]]으로 눈에 띄게 [[머리]]를 [[염색]]하여 처음 본 사람도 인상에 남는 외모였고, 씨름에서 이기고 나면 세레모니로 춤을 춰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좀 더 먼저 활동한 [[김영현]]이 이미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영현과 비슷한 체격이면서 구분하기 위해 앞에 '테크노'를 붙인 것이다.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가던 씨름에 대한 관심을 간간히 지켜가는 역할을 해냈다. 처음 시작이 이런 것을 보면 본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하여간 씨름판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 듯 했으나... 차츰 씨름판이 [[막장]]이 되자[* 최홍만의 K-1 진출, 씨름팀들의 잇단 해체 등으로 씨름판 자체가 존속 자체에 대해 위기가 팽배했고, 그 과정에서 씨름협회 내부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나며 극한 막장 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혁신세력이었던 [[이만기]]가 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하기도 할 정도로 씨름판은 막장 그 자체였다.] 다른 업계로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한 듯 하다. 때마침 [[K-1]]도 한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고민않고 K-1으로 전향.
엄청나게 큰 덩치와 씨름 선수였을 당시의 경력으로 인해서 꽤 주목을 받았으며, 격투기 실력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단 등장과 동시에 2005년 3월 서울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아시아 챔피언이 돼 버렸기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근데 이 토너먼트 출전 선수들과 대진표가 '''막장'''이었다. 당시 출전했던 선수들 중 ('''그나마''')가장 강한 선수가 카오클라이였는데 최홍만과의 체중 차이가 거의 '''80kg''' 가까이...게다가 최홍만이 있는 토너먼트 블럭에서는 그 유명한 [[아케보노 타로|아케보노]]와 당시 '''45세'''였던 ''''심판'''(선수가 아니다!) [[카쿠다 노부아키]], 당시 39세 스모선수 와카쇼요 등의 ~~사실 선수라고 불러주기 좀 민망한 수준의 파이터들만~~있던 반면, 카오클라이의 블럭에는 수십 전 이상의 킥복싱 경력이 있는 파이터들인 호리 히라쿠와 이면주 등이 포진해 있었다. 여러 모로 최홍만 띄우기 대회라고 팬들 사이에서 적잖이 까였다. 덕분에 최홍만은 지역 대회 우승이라는 나름대로 대단한 경력을 갖고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밥 샙을 이기기 전까지는 한동안 검증 안 된 서커스 파이터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초창기의 대부분의 시합이 실력이야 어찌됐든 간에, 니킥과 럭키 펀치에 의한 시원한 KO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같은 해 6월 히로시마에서 프로레슬러 '그린베레' 톰 하워드를 1라운드만에 [[KO]]시키면서 '살인 니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최홍만의 니킥을 맞은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또한 7월 하와이 대회에서 아케보노와 2차전을 가져 1라운드에 다운만 2번 뺏어내며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경기 후 관중석에 앉아있던 [[마이크 타이슨]]을 도발을 한 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타이슨:내가 15년만 젊었어도...-- ~~사실 붙었어도 타이슨이 이겼을거다~~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절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반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초반과 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만큼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이후 2006년 2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카이를 상대로 두 차례 다운을 뺏고 피 튀기는 난타전과 체력 고갈로 고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별 거 아닌 프로레슬러에게 고전했다고 까는 여론이 있었으나, 애초에 터카이는 '''5일 준비하고''' [[레미 본야스키]]를 고전 시키며 판정에서 한 라운드를 가져올 정도의 포텐셜이 어느 정도 있는 파이터였던데다 경기 전 발목 부상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며 까이는 게 많이 줄었다.] 2006년 6월 서울에서는 슈퍼 파이트 초청 선수로 참가, K-1 2005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인 세미 슐트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우주괴수 슐트의 무난한 KO승이 예상되었으나 최홍만이 예상 외로 선전을 보이며[* 세미 슐트는 실력이 분명 뛰어나지만 어디 가서도 안 꿀릴 무지막지한 피지컬도 겸비한 만능형 선수인데, 최홍만은 세미 슐트의 피지컬을 더욱 능가하는 세상에 얼마 없는 인간 중 한 명이므로 슐트가 여지껏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유형의 상대라 파이팅이 좀 꼬인 부분이 있다.] 슐트가 등을 돌리는 장면까지 나오게 만들며 선전했다. 다만 판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유효타와 전박적인 경기 운영에 앞서나가던 슐트가 잦은 클린치로 인해 감점을 받았기 때문에 연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슐트의 세컨은 거세게 항의했고[* 루머로는 세컨 중 한명이 저지들의 스코어 보드를 뺏어서 보려고 했다고도 한다.] 승자인 최홍만과 한국 관중들조차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최홍만의 승리에 환호가 나오다가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흥행 안되는 절대 강자'''였던 슐트의 상승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K-1측의 견제였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최홍만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승부가 가장 적절한 판정이었을거라며 자신의 판정승에 홈 어드밴티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2007년 4월과 8월 각각 마이크 말론과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홍만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한다. 요코하마에서의 패배를 의식한 듯 가드를 굳히고 로우킥을 내는 전법을 들고 나온 최홍만은 결국 우세한 경기를 펼쳐내며 판정승을 거둔다.[* 1차전에서와 같은 오버 핸드가 수차례 적중했지만 이때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홍만이 모에게서 빼앗은 다운이 실은 [[로블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모는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반면 최홍만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친 지나친 어드밴티지와 데뷔 때부터 제자리걸음인 기량 등을 이유로 안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http://www.mfight.co.kr/serial/viewbody.php?code=mfight_board_serial2&number=203|당시 인터뷰. 마이티 모의 표정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마이티 모가 너무 빡친 나머지 판정 결과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요구를 했으나 K-1측의 답변은 '''다운이 로블로인 건 인정하는데 니가 진 건 맞음 ㅋ'''이었기 때문에 K-1도 상당히 많이 까였다. 2006년 밴너와 레미의 대결 당시 판정 논란이 일자 비디오 판독을 통해 결과를 정정한 것과는 반대되는 부분.
* 주요 승: 바비 올로건(...), [[호세 칸세코]](...), 루오췐차오(...), [[아오르꺼러]]
최홍만의 MMA 데뷔는 2006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입식 뿐 아니라 MMA로의 진출도 시도하고 있던 K-1의 의도에 따라 이벤트성 매치에 얼굴마담으로 출전한 것이다. 상대는 [[나이지리아]]의 개그맨 겸 무술가인 바비 올로건이었다.[* 일본에선 꽤 유명한 방송인으로 [[시릴 아비디]]에게 이기기도 했다. 유명세 덕에 비디오게임 호혈사에서 캐릭터로 등장했으며, 일본인들에게 일반인 중 최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결과는 11초 초살 KO승으로 데이터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입식에서도 잘나가고 있던 때였고 전직 씨름선수로서 차라리 MMA에서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겹쳐 "최홍만은 MMA로 진출하면 최강자가 될 것이다"라는 떡밥이 한국의 전 격투 커뮤니티를 달구기도 했다.
2008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8에서는 [[PRIDE]] 2006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자 [[미르코 크로캅]]이라는 또 하나의 빅네임과 대결했다. 최홍만은 6분 내내 바디 킥과 레그 킥에 난타 당하다 결국 왼쪽 무릎에 인사이드 레그 킥을 맞고 TKO로 패했다. 첨예했던 사전 대립 각본과는 달리 거의 일방적인 경기였고 게다가 2007년 입식에서 밴너에게, MMA에서 효도르전을 시작으로 5연패를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호의적인 여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2009년 10월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워크'~~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였다. 자신의 체중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미노와를 상대로 2라운드에 체력 난조를 보이며 힐 훅으로 패배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도 졸전 끝에 패배했기 때문에 '''MMA 파이터로서는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시합 내용'''이었다. 미노와 이쿠히사는 최홍만 이외에도 많은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많은 경기들은 '''미노와 자신이 패배한 경기 조차''' 워크 의혹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력 있는 선수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런데 최홍만과의 시합에서만큼은 의혹이 전혀 없다(...).
그러나 12월 26일 벌어진 로드 FC 27 중국대회에서 루오췐차오를 펀치 TKO로 화끈한(?) ~~떠먹여준~~ 승리를 거두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물음표가 많아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일단 TKO이긴 한데... 상대가 쓰러지지도, 심각한 대미지를 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자진 포기했다. 추후 밝혀진 바로는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었다고 한다.~~이때 최홍만이 '아 뭐야~'하는 것도 들린다.~~] 이 경기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상대가 신장 193㎝에 체중 110㎏에 육박하는 나름대로 거구였다곤 하나, 그 거구란 것도 최홍만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정도고 MMA 전적도 아예 없는 걸 감안하면 최홍만이 전혀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력에서도, 체격 조건에서도 월등히 앞서는데도 수세에 몰린 모습만 보여주다가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https://m.youtube.com/watch?v=HiNa8nVTFQs|영상]].
[[http://sports.mk.co.kr/view.php?no=1218231&year=2015|최홍만의 다음 상대는]] 로드FC027에서 김재훈을 광폭하게 난타해서 유명세를 탄 [[아오르꺼러]]가 될 예정이다. 최홍만은 당차게(?) 아오르꺼러의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604/sp20160416221832136560.htm|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https://m.youtube.com/watch?v=aA08N65pMks|영상]].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마이티 모의 펀치에 몇 차례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고, 최홍만도 나름 반격한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이티 모의 펀치를 허용한 최홍만이 미소를 보였고, 곧 바로 마이티 모의 오른손 훅이 최홍만의 얼굴에 적중하면서 그대로 KO패 당했다.
근육이 빠진 상태에서 이전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눈에 보일 만큼 벌크업에 성공했으나[* 특히 팔 근육은 아오르꺼러 전에 비하면 확실히 근육이 드러날 만큼 불어있었다.] 맞추질 못했으니... 이 날 마이티 모는 챔피언이 됐음에도 환호성은커녕, 박수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젠 관중들도 별 기대를 안했다는 뜻이다.[*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지에 상당히 기대를 했는데도 이 모양이기에 실망의 부분도 있고.]
ROAD FC와 계약 중이었을텐데, 어찌된 일인지 11월 6일 중국 후난의 PFC에서 입식 시합을 가졌다. 그런데 상대방과의 스펙 차이가 신장 41cm·체중 88kg... 원래 70kg에서 활동하는 선수와 시합을 가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졌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저우진펑은 K-1 max 2013 wgp 8강에서 쁘아카오와 맞붙었을 정도로 실력있는 선수이긴 하다. 그러나 체급차이를 감안하면 정말 충격적인 패배이다. 생각해봐라. 쁘아카오가 70kg에서 레전드라고 한들 [[세미 슐트]]같은 선수를 이기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 황효진(기업인) . . . . 36회 일치
[목차]
|| 병역정보 || [[제8기계화보병사단]] 직할전차대대(현 81전차대대) K1전차 승무원[br](복무기간: 2008년 9월 16일 ~ 2010년 7월 29일) ||
이후 초창기 [[아프리카TV]]로 진출하는데 당시 [[고소미#s-2|고소미]]를 좋아하던 [[유신(스트리머)|유신]](BJ)과 합작으로 스타 중계방송인 '노는대학'을 개설, 인터넷방송 플랫폼에서의 스타중계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이 둘은 2011년경 관계가 단절되었고 [[망치부인]] 다음으로 유신과 가장 대립각을 세운 인물중 하나였다. 유신의 여론이 예나 지금이나 워낙 나빠서 이때만해도 황효진이 차라리 낫다는게(물론 황효진도 까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절대적으로 까이는 수준은 아니었다) 여론의 대세였으나... 황효진이 지금처럼 추하게 몰락하리라고는 대부분이 생각치도 못했엇다.]
2008년 9월 16일에 군 입대해서 [[제8기계화보병사단]] 직할전차대대(현 81전차대대)에서 K1전차 승무원으로 군 복무를 하다가 2010년 7월 29일에 전역했다. 이등병 때 [[고무신#s-4|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그래서 관심병사가 되었지만 주위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BJ 활동 이력 덕분에 대대장배 스타리그 진행을 했다. 중대별로 대표 1명씩을 뽑아서 대회에 출전하였고, 군용 PC에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설치할 수 없었기에 소대장들의 개인 PC를 이용하여 대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일명 전승리그(전차대대 명칭 이 전승대대)로 매년 열릴 것이라 기대하였으나 1회성으로 끝났다. 본부중대가 1등을 하였으며, 황효진과의 번외 경기에서 황효진이 1등에게 패배하였다.
심지어 이렇게 대금 지불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작 황효진 자신은 법인 명의로 [[페라리 458 이탈리아|페라리 458 스페치알레]], [[벤틀리 컨티넨탈]],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메르세데스-벤츠 CLS]] 등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외제차들을 마구 뽑았으며 심지어 피소 직전까지도 [[여자친구]]에게 2,000만 원 정도의 [[피아트 500]]을 선물하고[* 2,000만 원 정도의 소형차라 고가의 차량이라고는 볼수 없지만 [[결혼]]이나 [[약혼]]한 사이도 아닌 [[여자친구]]에게 주는 선물로는 상당히 과하다고 볼 수 있다.] 4억 원을 훌쩍 넘기는 [[롤스로이스 레이스]] 등 다른 고급차들을 뽑고 있었다.[* 황효진이 사용한 방법은 법인리스로 [[스베누]] 명의로 자동차를 리스 구입한 것이다. 차는 황효진이 타지만 소유주와 대금 지불은 [[스베누]] 회사 몫이다(아닌 경우도 있으니 자세한건 추가바람). 일반적인 경영자라면 회사가 큰 이익을 보지 않는 이상 리스차량을 마구 지르지 않는다. 회사가 리스금액을 낸다는 것은 곧 회사 순이익이 그만큼 줄어듦을 말하기 때문.][* 중소규모 사업자가 법인리스로 비싼 차를 사는 경우는 대체로 버는 금액에 비해 쓰는 돈이 적을 경우 세금이 왕창 나오기 때문에 그 세금 낼 돈으로 리스값을 비용 처리 하는 경우이다. 그래봤자 보통은 EQ900, 더 쓴다면 S클래스 한 대 뽑는 정도지, 어지간히 장사가 잘 된다 해도 저 차량 모두 비용처리를 해야 할 만큼 버는 게 많았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황효진이 [[코무로 테츠야|이 인간]]을 몹시 따라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똑같이 사기꾼으로 전락한 것도 함정~~[* 하필 이 둘은 자신이 얻은 돈을 툭하면 흥청망청 써버리기 일쑤고 평소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매우 나빴다는 점도 똑같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이 개정되어 비영업용소형승용자동차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고 법인차량과 개인사업자의 차량에 대해 감가상각비와 그 자동차의 유지에 관련된 모든 비용에대해 제재가 가해지게 되었다. 요약하면 법인명의 차량으로 이런 고가의 차량을 구입해서 대표이사가 개인목적으로 타고다니면 업무 미사용으로 보아 법인세법상 감가상각비,자동차세,수선유지비는 물론이고 리스료나 렌트비용 등 일체의 비용을 부인하여 법인세를 물리며 그 법인의 대표이사에게는 자동차를 운용하면서 얻은 이익상당액을 소득으로 보아 소득세까지 왕창 물려버린다[* 예를들어 2억짜리 고가의 차량인경우 감가상각을 5년 정액법으로 강제상각시켜 4천만원의 감가상각비용을 계산하고 그에대한 유지비용까지 전부 가산해서 상여처분을 때려버린다. 만약 위에서 계산된 금액이 감가상각비 4천만원을 포함해서 5천만원이고 업무에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거나 전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5천만원을 대표이사의 근로소득으로 보아 소득세를 물린다. 대표이사는 이미 법인에서 근로소득을 얻고 있으므로 저렇게 상여처분이 된 금액이 더해져 높은 한계세율이 적용되면 만만치 않은 소득세를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직장에 취업해서 연말정산영수증을 떼어 본 사람들은 그 영수증에 인정상여라는 칸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저런 상여처분을 때려맞은 금액이 찍히는곳이다. 보통의 일반 근로자들이 인정상여처분을 받을 일은 없으니 당연히 0원으로 찍혀있다. 한편 위 5천만원이 법인세법상 손금부인되어 5천만원에 대해 법인세를 법인이 별도로 부담하는건 덤.]. 또한 이러한 자동차를 팔아서 손실이 난다고 해도 연간 800만원 한도로 손실을 인정하여 처분할 때 까지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세법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황효진~~
[[철구(BJ)|철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가 부산 신발공장에서 일하는데 스베누의 신발 발주대금 미지불로 인해 부산 거의 대부분의 신발 공장들이 줄도산 났다고 한다. 당연히 공장주들은 파산하였고 공장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더 웃기는 건 이상호, 랜딩 등의 BJ들도 이미 신발팜 때부터 비제이들 스폰비도 못 줄 정도로 소닉의 사업은 망할 위기였다고 증언했다. 이후 소닉이 위기를 맞은 신발팜을 기사회생하겠답시고 만든 기업인 스베누는 맨유에 돈을 퍼주며 --마지막 발악-- 계약을 하거나 [[아이유]]같은 비싼 연예인들로 광고를 하는 등 노이즈 마케팅만 줄창 했지만 정작 신발은 원가 절감을 위해 저급한 원단으로 신발을 제조하게 했고 이 와중에도 황효진 본인은 여친에게 고액의 선물을 퍼주고 자신은 비싼 집 외제차 등으로 허세력을 과시하며 살았다는 것.
군 복무 중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흡연을 시작한 이후로 더욱 안 좋아졌다고 하는데, 사례들로는 대표적으로 비가 오는 날 고등학생인 동생 BJ에게 우산도 없이 웰치스를 사오라고 한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ib&no=344076|웰치스 사건]]과, 군 생활 중 같은 소속 BJ들에게 부탁하여 개인적인 물건을 사서 보내라는 심부름, 당시 [[구로디지털단지역]] 부근의 노는대학 스튜디오 방문을 위해 지방에서 온 BJ들을 본인 집에서 하룻밤 숙박시켜주며 청소와 많은 잡일을 시키는 등 평소에도 방송 세팅과 방송매니저 보기, 그리고 본인이 할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잡일들을 동생 BJ들에게 떠넘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소닉은 방송에서 [[웰치스]]를 자기 머리에 쏟으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사회생활은 녹록치가 않다는 둥 궁색한 소리를 했다. 현재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결과적으론 좋지 않게 끝난 거 같다.
[[박지호]]는 소닉이 오프라인 스타리그를 주최할 때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수들 출연료는 커녕 기본적인 차비조차 주지 않자 개인방송에서 대놓고 소닉을 디스한 적이 있는데 이후에 소닉한테 그런 말은 방송에서 하지 말아 달라고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소닉이 다른 선수들이나 방송 스태프들이 있는 그 중간에 대놓고 자신에게 차비 금액을 세며(...) 주는 걸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차비를 계좌로 입금해도 되고 나중에 따로 봉투에 넣어서 주면 되는데 자신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너무 대놓고 보여주기식 생색이라...
2016년 상반기에[* 자세한 날짜는 [[추가바람]].] [[조선일보]]에서 "성공한 '''강소기업''' 대표"로 황효진을 취재한 적이 있다.[* 본지의 별도 부록으로 나왔으며, 기사 1면을 차지했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이미 스베누에 관련된 진실들이 차츰 드러나면서 한창 좋지 않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던 때였다. 인터뷰 당시에 황효진은 "사업이 어렵고 빚이 조금 있긴 하지만, 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런 거 없다|신발은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인 만큼 금방 성장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말로 비판을 무마하듯 답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시궁창이었고, 이 인터뷰는 그의 마지막 변명이 되었다.
- 박석민 . . . . 35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
[목차]
> (동료들에게) '''이기려 하지 말고 즐기자고 했습니다.'''[* 2016년 KBO 플레이오프 2차전 인터뷰에서.]
[[NC 다이노스]]의 ~~[[개그맨]]~~ ~~[[브로콜리]]~~ [[내야수]]. 주 포지션은 3루수다. 1차 지명을 받은 연고지 출신 유망주였으며, 데뷔 초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상무에 입대한 후 타격 재능이 꽃피기 시작해 2000년대 후반 노쇠한 삼성 타선의 리빌딩을 이끄는 젊은 중심 타선의 한 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절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태인]]과 함께 삼성의 새로운 개그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었다.
삼성 팬들에게 평생 삼성에서 함께할 프랜차이즈로서 사랑받았지만 2015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며 원소속팀과의 협상 결렬 후, 2015년 말 총액 최대 96억에 NC로 이적했으나... '''현재는 먹튀 그 자체.''' ~~이젠 3루수 [[노진혁]]한테 줘야할듯~~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삼성의 새 외국인선수 [[루넬비스 에르난데스|에르난데스]]와 쌍콜돼 콤비를 결성했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차분해진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이 해도 어김없이 많이 웃겨줬다~~.
2010년 10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스코어 5:5이던 11회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결승 안타를 쳤다. --그리고 상대 투수 [[임태훈(야구선수)|임태훈]]은 [[송지선|멸망]][[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했다.]]--[* 박석민은 내야 땅볼을 친후 살기 위해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고..~~카메라가 손시헌을 비춰서~~]
2010 시즌 후 투수 정홍준이 방출당하면서 18번이 비게 되었는데, 때마침 18번을 달고 싶었던 박석민은 이 번호를 차지하게 되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번 타자로 출장했지만, 5차전까지 14타수 1안타(타율 0.071)로 지독한 부진을 겪었다. 더군다나 5차전부터는 6번 타순으로 밀려나는 굴욕까지 겪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박석민의 타격이 부진했던 이유는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하다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타격 밸런스가 깨져 타격감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서 압박 수비로 2루 주자를 3루에서 잡는 활약을 하는 등 수비에서만큼은 정말 제몫을 다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선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스코어 1:0으로 앞선 4회초 1사 1루에서 '''투런홈런'''을 날리며 부진에 마침표를 찍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여러모로 2002년의 [[이승엽]]과 비견되었다.[* 반면 이 해의 [[이승엽]]은 2002년의 [[마해영]]+[[양준혁]] 포지션.] 이 홈런은 근소하게 앞서던 삼성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삼성은 여세를 몰아 '''볼넷 3개+ 적시타 2방 4타점'''을 묶어 '''시리즈 세 번째 1이닝 6득점'''으로 SK를 완전히 도륙내며 스코어 7:0으로 승리했다. 이날 박석민은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박석민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3, 4차전은 선발 3루수 겸 4번타자, 5, 6차전은 선발 3루수 겸 6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3안타 1홈런 3볼넷 1사구(死球) 3타점 2득점, 타율 .167, 장타율 .333, 출루율 .318을 기록했고, 팀은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격전지인 3루수 부문에서 [[최정]]과 2년 연속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결국 수비율과 홈런 등에서 앞서고 [[20-20]]을 달성한 최정에게 아쉽게 밀렸다.~~사실 최정도 박석민 이상의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기에 받을 만했다.~~ 아무튼 최정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3루수로 인정받을 만큼 성장했다.~~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자석남~~ 이를 위로라도 하듯(?)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소감에서 '제가 받을 자격이 있나 잘 생각해 보았는데 정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역시나 개그 본능을 보여주었다.
[[KBO 리그]]의 대표적인 배드 볼 히터인 [[이병규|병규옹]]에 밀려 그다지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박석민도 만만찮은 배드 볼 히터다. 특히 컨디션이 만렙일 때는 그 어떤 공도 희한하게 갖다맞춰 안타를 많이 만들어 낸다. 바깥쪽 빠지는 공을 당겨친다거나 몸쪽 공을 밀어치는 장면에서는 허구연 해설조차 기겁할 정도. ~~물론 타격감 바닥일때는 선풍기질만 해대지만...~~ 그리고 [[선구안]]도 좋은편이여서 볼넷도 많이 얻고 출루율도 매우 높다. 2010년에 시즌 말 잠깐 출루율 1위를 기록하며 [[이대호]]의 7관왕을 위협했으며[* 당시 [[홍성흔]]이 시즌 아웃된 후 이대호의 7관왕을 저지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었다.] 2009~2016시즌중에서 2011년을 빼고는 '''매년 출루율 4할 1푼'''을 넘겼다. 2013년까지 통산 BB/K가 0.74 정도로 양호한 편. 그러니까 좋게 말하면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을 괴랄하게 넓게 가져가는 눈야구형 타자다(...) 대부분 풀스윙으로 일관하는 풀스윙 히터이나 의외로 [[밀어치기]]에도 능하다.
[[팩트폭력|펑퍼짐한 몸 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만]] 젊었을 땐 민첩한 수비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해설위원 [[이순철]]과 [[허구연]]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히 공수를 가리지 않고 삼성 라이온즈 내야의 코어라고 부를 만 했으나 NC 이적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부상과 노쇠화가 겹치며 수비는 크게 망가져, 2018년 기준으로는 더이상 수비를 잘 한다고 불러주긴 힘들고 소속팀에서도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게 되었다.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주원|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박기혁|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데릭 지터|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강정호|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황재균|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롯데 자이언츠|이 팀]] 팬들한테는 [[이대호|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양준혁|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구자욱|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풀스윙을 할 때 배트를 놓쳐 배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잦다. 카메라맨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고 상대 투수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위험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http://cfile287.uf.daum.net/image/184C3B194C2DD67D70ABC2|팀킬도 한다.]] 2011년 6월 21일 경기에서 [[오넬리 페레즈|오넬리]]의 투구에 삼진당하면서 놓친 배트가 오넬리에게 날아가는 바람에 오넬리는 당황, 박석민은 헉, [[신경현]]은 알밤 + 예끼~~[[한대화|니미 X발]]~~를 시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다행히 배트가 오넬리 정면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험했던 상황.[[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category=kbo&id=3478&gameId=20110621HHSS0&listType=game&date=20110621&page=1|영상]]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다행히 빗나갔기에 '역시 브콜돼' 소리를 듣는데 그쳤다. '''__하지만 박석민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왼쪽 중지 부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__''' 2010 시즌부터 수비할 때 중지에 테이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격할 때 중지와 약지를 테이프로 감아 하나로 묶어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격할 때 순간적으로 왼손에 힘이 빠지면서 배트를 놓치는 것. 중지를 총 두 번 수술해야 한다는데 2010 시즌 끝나고 한 번 했었고 2011 시즌이 끝나고 두번째 수술을 했다. 그 결과 100% 정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 2013 시즌까지도 휴식일을 잡아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SNS에 올라온 글로 보아 히쓰마부시(장어모듬덮밥) 팬인 것 같다. ~~갈 때마다 먹는다~~
중심타자의 숙명(?) 비슷하게 포스트시즌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 2012 KS 6차전에 2점 홈런, 2013 KS 7차전에 6:2로 도망가는 쐐기 적시타를 제외하고는 별 활약이 없었다. 2014년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은 1할대극초반에 머물렀다. (그래서 삼성이 최정 정도로 제시했을지도...) 이러한 점은 팀이 바뀌어도 그대로 였고, 2016년 플레이오프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내긴 했지만[* 9타수 2안타 2홈런], KS에서는 무려 '''1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완전히 말아먹었다.
몸개그, 홈런타자 등 확실한 캐릭터 요소 덕분에 차세대 [[김별명|별명의 신]]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는 선수다.
* 퇘가놈, [[정현욱|박그분]] : 주장인데도 팀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는 이유. 박석민이 당연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삼팬들이 많았으나 FA이적으로 차세대 [[이호준|엔전드]]의 길을 걷자 바로 금지어로 등극했으며 박석민 팬은 [[노리타(야구)|퇘리타]]로 격하되었다. ~~두산팬 : [[홍성흔|우리가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 더불어 브콜돼 이놈 대구로 오기만 해 봐라고 잔뜩 벼르는 중. 하지만 예상이 무색하게 첫 대구 원정에서 삼성팬들이 기립박수로 반겼다.[* 물론 여전히 온라인 반응은 안 좋은편. 일부는 박수친 팬들을 비난했는데, 이유는 우리 팀 투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 다만 이 경기에서 1회 말이 끝났을 때 삼성은 '''7대1'''로 이기고 있었다! 직관 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난 경기인데 예전에 삼성에서 뛰던 선수가 왔으니 반갑다고 박수나 쳐 준 것.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거 한 방에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점수차였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이날 삼성 선발이었던 [[윤성환]]은 상대 타자가 자팀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두 번이나(한 번은 자신의 피홈런으로!) 받는 것을 마운드에서 지켜봐야 했다.] 꽤나 오랜 시간 이후 당시 삼성 스포츠단의 지원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정유라]] 지원으로 인한 지원금 축소 의혹으로 계약금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과 친정 팀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재평가되고 있다. 혹자는 괜히 오버해서 안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고도 하는 편.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34회 일치
* 중전차(Heavy Tank)
* 공격능력: HEAT탄 - 대전차고폭탄을 발사한다. 경장갑 차량에게 쥐약이지만 IFV 이상의 장갑만 되어도 피해가 감소한다. 중형전차 이상의 적들에게는 주포를 사용하는게 더 낫다.
[[미국]]은 M1A1 에이브람스, [[소련]]은 T-80U, [[NATO]]는 독일군 레오파르트2A4. 강력한 체력, 방어력, 공격력을 가진 유닛. 차량과 건물에는 주포를, 보병과 헬리콥터에는 기관총을 사용한다.
* 중형전차(Medium Tank)
* 경전차(Light Tank)
* 공격능력: 실레일러 미사일(미국)/AT-4 스피곳 미사일(소련)/HESH탄(NATO) - 차량과 전차에게 강력한 대전차 미사일이나 점착유탄을 발사한다.
미국은 M551A1 셰리던, 소련은 PT-76, NATO는 영국군 FV101 스콜피온. 빠르지만 나약한 전차. 경전차 TA로 공수받을 수도 있다.
* 장갑수송차(Armoured Transport)
* 공격능력: TOW 미사일(미국)/AT-5 스팬드럴 미사일(소련) - 차량과전차에게 강력한 유선 미사일을 발사한다.
미국은 M2A2 브래들리, 소련은 BMP-2, NATO는 영국군 FV510 워리어. 기관포로 무장한 장갑차.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다.
* 수륙양용수송차(Amphubious Transport)
미국은 AAVP7A1, 소련은 BTR-80, NATO는 독일군 룩스. 기관포로 무장한 장갑차.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으며 물 위를 이동할 수 있다. 쓸모없다.
* 공격능력: 헬파이어 미사일(미국)/AT-6 스파이럴 미사일(소련)/HOT 미사일(NATO) - 먼 거리의 차량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한다.
소총수 두 명, 대전차병, 대공미사일 운용병, 위생병으로 구성된 분대. 모든 병과에 대처할 수 있는 화력을 가지고 있지만 보병의 나약함으로 인해 숲이나 건물에 짱박아두고 써야한다. 사족으로 NATO 보병은 프랑스군.
* 대전차 보병 분대(Anti-Tank Infantry Squad)
대전차병 중심의 분대.
* 병력수송차(Troop Transport)
* 공격능력: 철갑탄 - 일정 시간동안 철갑탄을 사용한다. 공격력과 중장갑 차량에 대한 공격 효율이 상승한다.
미국은 [[HMMWV]], 소련은 UAZ-469, NATO는 영국군 D-90. 기관총으로 무장한 고기동 차량.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으며, 손상된 차량을 수리할수도 있다.
* 중 대공 차량(Heavy Anti-Air Vehicle)
- 송병구 . . . . 33회 일치
2004년 삼성전자 칸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고, 첫 진출한 CYON 2004 챌린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리그#EVER 2005 스타리그|EVER 스타리그 2005]] 4번 시드를 따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주목받았던 신예 프로토스 [[오영종]](당시 [[화승 OZ]]), [[박지호]](당시 [[MBC게임 히어로]])가 각각 우승, 4강 진출로 이름을 알리는 동안, 송병구는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1승 2패, [[스타리그#2005 So1 스타리그|So1 스타리그]]에선 전패로 탈락하는 등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또한 삼성전자 칸 소속의 많은 선수들이 개인리그에 진출했던 2006 시즌 중후반에도 유독 송병구는 하부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16강에서 3승으로 가볍게 8강 티켓을 따낸 송병구는 8강에서 김택용, 4강에서 도재욱을 꺾으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이는 프로토스 최초 스타리그 4회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이다. 송병구는 도재욱, 김택용을 꺾으면서 최고조에 달한 기량을 선보였고 당시 결승상대는 김준영을 3:1로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로열 로더를 노리는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 (당시 [[SK텔레콤 T1]], 현 데드픽셀즈)이었다. 2008년 11월 1일, [[스타리그#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인크루트 스타리그]] 결승에서 정명훈을 3:2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2년 가까이 따라붙었던 만년 준우승의 꼬리표를 떼어냈다. 이는 스타리그 최다 진출만에 우승이자, (9회 진출만의 우승이며, 종전까지의 기록은 7회 진출만에 Daum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김준영 (프로게이머)|김준영]]) [[삼성전자 칸]] 선수 최초의 개인리그 우승이었다. 한편 이 경기들에서 송병구는 2경기, 5경기서 물량의 힘을 선보이며 승리를 성취했다. 이때 당시 송병구는 8강부터 결승까지 skt에 소속된 선수들을 꺾으며 skt 킬러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차기 스타리그인 바투 스타리그 8강에서 이제동에게 2:1 역전패를 당하며 우승자 징크스만은 깨지 못했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에서는 박찬수를 꺾고 팀의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2007]] 그랜드 파이널 8강에선 진영수를 꺾고 결승에선 마재윤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던 중국의 [[샤쥔춘]]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으며, WCG 2008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2회 연속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도 건재를 알리며 삼성전자 칸의 2연속 광안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WCG 2009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부분 WCG를 최초로 3회연속 진출에 성공한 후 이제동과의 결승에서 안타깝게 패배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IEF2008에서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준우승을 기록하였으며 IEF2009에서는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대회에서 '송순신'등으로 불리며 대활약을 벌였다.
10-11시즌 1라운드에서 송병구는 승보다 패가 많을 정도로 부진에 빠졌다. 당시 송병구는 조금씩 하락세를 타는 추세였으나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송병구는 회복세를 보였다. 승수를 차츰차츰 쌓아나갔고 팀의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굳혀 나갔다. 2라운드와 비슷한 시기 개인리그에서도 송병구는 상승세를 타는 분위기였다. 3라운드 위너스리그서는 10-11시즌 MBC게임과의 경기에서 첫 역올킬을 달성하였고 본인의 첫 공식전 올킬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는 화승OZ와의 경기에서 팀의 에이스 이제동을 꺾으며 3킬을 달성하며 프로리그 8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4라운드에 접어들면서 다시 패가 많아지게 되었다. 근근히 승리를 쌓는 송병구였지만 마침내 시즌 막판에 접어들면서 연패를 겪었고 택리쌍에 비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0-11시즌에서 40승을 기록하며 본인의 첫 프로리그 40승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 2set - [[김재훈 (프로게이머)|김재훈]] 승 - [[차명환]] 패
* 2004년 12월 10일 사이온 2004 3차 챌린지 D조 9강 1경기 송병구 승
* 2004년 12월 10일 사이온 2004 3차 챌린지 D조 9강 2경기 송병구 승
* 2005년 1월 11일 Cyon 2004 3차 챌린지 E조 3경기 송병구 승
은퇴한 박지수에게는 크게 앞서 있다. 두선수는 공식전에서는 9차례, 비공식전까지 합쳐서는 11차례 만났는데, 프로리그에서만 1차례를 만났고 나머지 공식전 8번 및 비공식전까지 합쳐서 10번은 개인리그 및 비공식전에서만 만났다. 상대전적에서 공식전만으로는 7:2,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9:2로 앞서 있는데, 박지수가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와서 국내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서, 송병구의 해외대회가 아니고서는 맞설 기회가 없다. 따라서 전적 변화 가능성은 있으나 힘들어 보인다.
* 2008년 8월 23일 15차 서바이버 토너먼트 12조 승자전 송병구 승
함께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이성은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인다. 프로리그에서는 한차례만 만났고, 나머지 8번은 개인리그와 비공식전의 전적인데,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 6:2, 비공식전까지 합쳐서 7:5로 앞서 있다. 여담으로 비공식전에서 맞붙었을 때 경기는 올스타전이었는데, 이성은은 저그로 맞붙었었고, 송병구는 주종인 토스였다. 그 후 스타리그 2012 시즌2 예선 4강에서는 이성은에 1:2로 패했다. 참고로 스타1에서 테란이 주종인 이성은은 스타2에서는 프로토스다. 이성은이 은퇴해서 이 전적은 그대로 이어진다.
* 2009년 7월 26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준플레이오프 2차전 CJ vs 삼성전자 1세트 송병구 승
* 2010년 7월 9일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2 36강 K조 2차전 1경기 송병구 승
* 2010년 7월 9일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2 36강 K조 2차전 2경기 송병구 승
송병구가 ‘대형신인’으로 주목받던 시절 유독 홍진호에게는 약한 모습이었다. 데뷔 당시 송병구는 CYON 챌린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차기 스타리그에 4번 시드로 직행하게 되었는데,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우승자 출신 선수를 지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EVER 2005 스타리그에서 준우승 이력만 가진 홍진호를 지명했다. 이후 펼쳐진 16강에서는 송병구는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하게 되며, 16강 재경기에서도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하게 된다. 또, 홍진호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 24강에서 송병구를 제압하고, 이 대회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송병구는 직후 진행된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F조 패자전에서 홍진호를 제압하면서, 이 패배로 홍진호는 예선으로 추락했고 지금까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2009년 5월 12일 송병구는 894일 만에 펼친 홍진호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다시 거두었다. 2009년 7월 7일 08-09 프로리그 5라운드 6주차 삼성전자-공군의 에이스결정전에서 송병구가 홍진호를 상대로 또 한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 2006년 12월 1일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F조 1경기 김준영 승
* 2006년 12월 1일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F조 최종전 김준영 승
* 2007년 4월 20일 2007 1차 듀얼토너먼트 E조 승자전 김준영 승
* 2007년 4월 19일 11차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G조 승자전 송병구 승
- 하현우 . . . . 33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학력}}}''' ||<(>[[안산고등학교]][br][[배재대학교]](중퇴)[* 미대를 다니다가 음악을 하기 위해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25|중퇴]]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설이 있다. 2016년 전국투어 콘서트 대전공연에서 배재대학교를 다녔다고 밝혔다. 참고로 하현우는 다른 록커들과 비교할 때 음악도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미술 역시 매우 늦게 시작했다. 고등학교 이후에 미술에 흥미가 생겨 미술학원을 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카스텐 심야식당에서 나온 바로는 CC클럽 회장이었는데, 고3 때 정신 차리고 학교에서는 자고 남은 시간에 새벽까지 학원에서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목차]
||<rowbgcolor=#90EE90> [[차지연]] || → || '''하현우''' || → || [[더원(가수)|더원]] ||
특유의 카랑카랑한 보컬과 엄청난 [[발성]], 폭 넓은 음역대로 유명하다. 본인의 음역대가 '''3옥타브 시(B5)'''까지 올라간다고 인터뷰에서 밝혔고,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과거 '''4옥타브 도(C6)'''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2016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매일 매일 기다려]]'의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였고, 예전에는 '''4옥타브 도(C6)'''까지도 부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힘들다고. 콘서트에서 부른 꼬리는 진성으로 '''3옥타브 라♯(A♯5)'''까지 올라갔고 2012년도에 부른 푸에고가 가성으로 '''4옥타브 라(A6)'''까지 올라갔다.[* 물론 깨지는 소리라 실가창에선 써먹을수 없다. 라이브에서 운용 가능한 그의 최고음은 3옥타브 시인걸로 추정된다.] 이렇듯 고음으로 유명한 보컬이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만큼 높이 올라가는지의 문제는 내게 중요하지 않고, 의미 또한 없다' 라는 입장.[* 고음으로 강한 보컬들은 대부분 최고로 올라가는 음보단 기승전결이나 무대에 더 신경쓴다. 그 [[박완규]]조차도 [[임재범]]의 파워에 반해 창법과 목을 뒤틀어가며 바꾸기도 했었고.]
국카스텐 라이브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하현우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노래 뿐만 아니라 모션도 열정적이어서[* 하현우가 정신 놓고 기타 치는 모션을 팬들은 '기타지랄'이라 부른다.], 관객들 혼을 빼는 데 도가 텄다. 자기 말로는 [[담배]]를 피울 뿐[* 구정모 매니저에 의하면 간헐적으로 금연과 흡연을 반복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3월 19일 HELLO 콘서트 기준으로 금연 2주차라고 밝혔으며, 계속 금연 중이라고. 그래서 작업 도중 담배를 피우는 대신 초콜릿과 스카치 캔디를 먹는다고 한다.] 등산이나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것도 잘 챙겨 먹는다고 하지만, 인터뷰에서 반쯤 농담 섞인 얘기로 '인이어 때문에 공연할 때마다 몸이 망가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한 이후로 많은 이들의 걱정이 커졌다.[* 다만, 이는 모든 가수들의 피할 수 없는 직업병이기도 하다. 한쪽 귀만 인이어를 삽입해서 노래를 불어야 하는 보컬의 특성상, 고막에 문제가 생기는 느낌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대학 1학년 때, 하현우가 대학교 앞의 길을 걸어가는데 슈퍼 앞에서 지저분한 행색으로 [[거북알]]을 빨아먹던 한 남자[* 이 사람이 현재 [[국카스텐]]의 드럼을 맡고 있는 이정길. 첫 만남 당시 너무 너저분한 행색으로 인해 거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하현우는 콘서트나 인터뷰에서 틈만 나면 이정길에게 거지 같다, 더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가 자신에게 다가와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 밴드하는데, 펑크 음악인데, 노래 잘 못 불러도 돼요"라며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머리를 녹색으로 염색하고, 녹색 바지에 녹색 신발에 [[너바나]] 티셔츠를 입고 다닌 하현우의 차림새만 보고 던진 말이었다고. 그러나 막상 오디션에 데리고 가 마이크를 쥐어주고 실력을 확인했을 땐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후문.[* 그럴 만도 한 게 길 가다가 주운 돌멩이가 알고 봤더니 다이아몬드였던 격이니...] 그렇게 대학 스쿨 밴드 오디션을 거쳐 보컬로 들어가면서 드디어 하현우의 정식 음악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국내 로커들이 보통 중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앞서 미술계에 입문한 것과 같이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이다.
허나 남은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는 밴드의 꿈을 놓지 못 했고 세 사람은 밴드명을 'the c.o.m(the compass of music)'으로 바꾸고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여성 멤버를 더해 밴드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형편으로 생계를 위해 음악 학원에서 합주하고,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현장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 무렵 '나침반'을 비롯한 자작곡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가사를 쓰게 되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됐다고 한다. 허나 이후로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2004년 쌈지 락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로 뽑혀 참가했던 것을 끝으로 the c.o.m마저 해산. 하현우는 군대[* 군대에서도 하현우는 부모님께 "제대 후에도 정신 안 차리고 계속 음악할 거니까 마음 다잡고 계세요"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로, 이정길은 산업체로, 전규호는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가게 된다.
2006년 제대 후 하현우는 도자기를 배우려 했지만, 한 음악 학원 원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다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는데, 때마침 기타리스트 전규호가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며 하현우에게 연락해와 전규호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강원도 펜션으로 내려가 방 하나에서 7개월여 간 곡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정길 역시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2007년에 팀에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는 실내 포차 '천둥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강원도와 서울을 오갔다고 한다. 강원도에선 곡 작업과 실내 포차를, 서울에선 라이브를 했던 모양.] [[https://www.youtube.com/watch?v=utNXeburWTM|그 시절 영상]]. 여기에서 밴드 [[국카스텐]]과 그들의 1집 앨범이 탄생한다.
* 듀엣 무대에서 '''덤덤하게 부르는 중고음이 다른 가수의 고음역을 묻어버릴 정도'''[* 예당 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같은 소속사 식구였던 [[알리(가수)|알리]]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콘서트 때 게스트로 등장해 알리와 같이 '저 바다에 누워'와 '해야'를 듀엣으로 열창했는데, 알리의 고음역 성량을 그냥 담담하게 중음역을 부르는 성량으로 본의 아니게 강제 음소거 시켜버린 적이 있다. [[https://youtu.be/Rmsqv18Oo0Y|#]]]로 폭발적이며, 고음의 경우엔 음역대가 빈틈 없이 꽉 들어차 있다. 특히 3옥타브대의 초고음역을 1분여 가량 동안 연속적으로 파괴하는 특유의 고음 처리가 압권. 궁금한 사람은 국카스텐의 대표곡 [[https://youtu.be/Ew5LZwcHb6I|'거울']]과 [[나는 가수다 2]]에서 부른 [[http://tv.naver.com/v/26652|'모나리자']]를 들어보자. 사실 국카스텐의 곡(커버곡 포함) 대부분에서 3옥타브대를 넘나드는 극악무도한 초고음역을 들려준다.
* 그렇다고 저음은 못하느냐 하면 아니다.[* 2집 타이틀곡인 오이디푸스를 들어봐라.] 복면가왕만 봐도 0옥타브 초반대의 저음을 상당한 실력으로 구사하는 데다가, 현재 기준으로 한국 대중음악 라이브 상으로 가장 낮은 음을 보여준 것이 바로 하현우다. 하현우의 '''현재 음역대는 저음 -1옥타브 파(F1)에서 고음 3옥타브 시(B5).'''[* 저음 '''-1옥타브 파(F1)'''는 복면가왕 기준이 아니라 요즘 콘서트에서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곡을 키를 낮춰서 부르는데 '''일상으로의 초대'''를 키 낮춰 부르면서 낸 음이고 고음 '''4옥타브 도(C6)'''는 [[섹션TV 연예통신]]에서 나와 확실히 음역대 측정을 해서 나온 수치라고 밝혔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출연했을 때의 발언으로는 예전에는 '''4옥타브 도(C6)'''까지 올라갔는데 지금은 안된다고 한다. 저음도 측정한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물론, '극저음을 낼 수 있는 것'과 '저음을 잘 부르는 것'에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당장 국내에서 중저음이 매력적인 가수를 이야기할때 항상 거론되는 김동률, 이적, 박효신 같은 가수들이 단순히 음이 많이 내려간다고 언급된다 보기는 힘들다. 중요한 것은 저음이 얼마나 많이 내려가든 간에 '더 원숙한 표현이 가능하고 깔끔하게 가창 스킬을 구사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음역대가 넓은 것은 충분한 장점이고, 표현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 현재 방송 중에 나온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 2018 인생술집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 콘서트 중에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에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를 보여준 적 있다. 가성으로는 '''3옥타브 라♯(A♯5)''' [[https://www.youtube.com/watch?v=f2JhDE6__6E|#]], '''3옥타브 시(B5)''' [[https://www.youtube.com/watch?v=ffl9JCKSPDs|#]], '''4옥타브 라(A6)''' [[https://www.youtube.com/watch?v=tDby__0o4Sg|푸에고(2012 Live.ver)]] 를 보여준 적이 있다.[* 다만 샤우팅을 하다 삑사리처럼 찢어지는 비명으로 터져나온 것이라 가창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긴 하다..] 또한 [[두성]]으로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 [[2018년]] [[7월 12일]] [[인생술집]] 방송때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까지 발성할 정도로 음역대가 무지막지하다. [[http://www.10years.co.jp/guckkasten/|국카스텐 일본 사이트]]에서는 '''3옥타브 시(B5)'''까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한 곡 안에서 최저음과 최고음이 3옥타브 이상 차이가 나면 저음이나 고음 둘 중 한 쪽은 흔들리는 것이 보통인데, 하현우는 초저음역대와 초고음역대를 짧은 순간 안으로도 자유자재로 오간다. 일반적인 고음, 저음으로 유명한 보컬들의 음역대가 비교적 하이톤의 고음 특화거나, 로우 톤의 비교적 저음 특화로 생성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양쪽이 모두 가능한 하현우의 음역대는 숙고할 만하다. 오죽하면 음역대로 광고를 찍었을까.
* 다른 록 보컬리스트들에 비해서 가성 활용도가 높다. 성대가 많이 벌어진 부드러운 가성도 종종 사용하지만 그것보다는 성대가 많이 근접해 있는 날카로운 가성을 주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성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강렬하고 흐느끼는 듯한 느낌을 많이 준다. 이 가성은 국카스텐 본연의 곡들 대부분과 일부 커버곡 등 폭 넓게 사용된다. 록 보컬리스트들 대다수가 스크래치를 쓰는 것 처럼 하현우도 스크래치를 사용하는데 스크래치를 사용하는 빈도는 해를 지날수록 점점 줄고 있다. 아마추어때를 포함해 2012년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스크래치를 자주 사용하였으나, 나가수 출연을 기점으로 점차 노래를 깔끔하게 부르는 빈도가 높아졌다. 이 점은 하현우 본인도 콘서트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스크래치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발성 문단에 작성되어있듯이 그로 인해 스크래치의 질감도 다른 락커들과는 약간 다르다. 성대를 살짝 벌리고 호흡을 사용해 스크래치를 내는 경우는 좀 더 찌르는 듯한 소리이고 그 소리가 불규칙적이나, 하현우는 비교적 둔탁하고 바퀴가 구르는 소리 같은 느낌이 든다. 스크래치의 소리도 비교적 규칙적이다. 이 외에도 창법적인 특징은 발음 하나 하나에 힘을 실어 부르는 특징이 있는데, 이 덕에 발음이 상당히 정확하게 들린다. 이 것의 연장선적인 버릇이 있다면, 라이브 할 때 발음 끝 부분에 '으' 소리가 자주 붙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걱정말아요 그대에서 '새로움을 잃어버렸죠'를 하현우는 '새로움을 잃어버렸죠으' 이런 식으로 발음 하는 것이 많다.
*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창법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정석적인 창법만의 장점도 존재한다. 우선 한 우물만 파듯 자신의 개성을 극대화 한 가수들에 비해서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 할 수 있다. 이 점은 하현우와 비슷한 발성적 특성을 가진 가수들(ex:김범수, 김연우, 윤도현, 최근의 박효신 등)도 공통적으로 가지는 장점이다. 거기에 더해 성악처럼 개성이 극히 줄어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차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차이을 주면서 개성을 살리기도 한다.
* 창법의 개성에 대한 비판은 어쩔 수 없는게, 위에 작성되었듯이 성대를 붙이는 발성은 가수의 창법적 개성을 줄일수 밖에 없는 발성이다. 성대를 안전하고 강하게 접촉시키기 위해서는 후두를 어느 정도 내리고, 성대가 아닌 목이 조여지지 않게 신경써야 하고, 가사를 발음 할 때 모음도 순화해야 하는 등 개성이 들어 갈 여지가 적어진다. 개성적인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들도 이러한 요소들을 신경쓰긴 하지만 본인들의 개성을 위해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완벽한 발성을 요구하는 성악에 비해 실용음악은 발성적 요소들을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프로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성대결절이 오는 경우들도 빈번한 것이다. 이에 비해 건강한 발성은 성대결절의 위험에서 좀 더 벗어나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가수 본인의 필요에 의해 개성적 창법을 가질 수 는 있으나, 이런 개성적인 창법이 가수 개개인에게 강요되어질 필요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창법 외에도 가수만의 음악 스타일이나 음색으로도 개성은 충분히 표현 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성대&구강 구조나 몸 구조가 사람마다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는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당장에 성악가들조차도 잘 들으면 서로 노래 부르는 목소리나 방식이 100% 같지는 않다.
* 이 외에도 다른 장점은 라이브 기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카스텐]]의 거의 모든 곡들이 3옥타브를 넘나들고, 거친 밴드 사운드로 상당한 성량을 요구함에도, 라이브에서 음이 불안하거나 파워가 모자라는 일이 거의 없다. 하현우가 라이브에서 매우 격한 기타 연주와 액션까지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부분. 감기에 걸리거나 많은 스케줄로 목이 안 좋거나 고열에 시달리는 등 몸이 아플 때조차도 컨디션 난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라이브를 선보이곤 한다. 당장 [[복면가왕]]만 생각해 봐도, 20주동안 라이브 기복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무작정 약 빤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운 것이, 표현의 문학성이 상당한 데다가 팬들 사이에서 가사 해석의 시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그렇게 나온 다면적인 해석들이 또 설득력을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 국카스텐의 모든 곡, 특히 2집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에 대한 하현우의 설명(해석이 아님)을 보고 나면 소재를 따온 방식, 담고 있는 의미, 뛰어난 비유에 감탄하게 된다. 주로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사물의 이미지나 신체 기관에 자아를 투영하거나(1집), 자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상황을 성찰하는 것(2집)이 큰 테마를 이루는데, 어휘 선택과 연출에서 한때 시인을 꿈꿨던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 실제로 여러 장에 걸쳐서 메모한 노트를 줄이고 줄인 결과가 한 곡의 가사라고 하니까, 무의미한 단어의 연결이 아니라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모르겠는데 알 것 같은 이 의미의 모호함이 팬들 사이에서 수많은 2차 창작물(캘리그라피, 일러스트, 문학 등)을 양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2집부터는 가사 난이도가 하향 조정되고 전체적인 색깔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평도 있다.
하현우의 송라이팅은 한국에서 대중음악의 성공 요건이나 다름없는 로맨틱한 감성과는 거리가 멀다. 가사의 난해함과 더불어 부드럽고 편안한 정서 대신 불편한 정서를 파헤치기 때문에, 국카스텐의 음악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카스텐 음악의 독특한 점이자 매력은 패배주의적인 모티브가 짙게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이기보다는 희망적인 에너지가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나'의 '허상'과 '위선', '뒤틀림', '무기력'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지만, 이 우울한 이미지들은 어떻게든 결국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차 있는 '나'의 모습을 엮어낸다.
음악 활동 자체를 늦게 시작한 탓에 악기 연주 역시 상대적으로 늦게 배운 편이다. 노래 실력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기타는 20살 이후에 배운 것으로 보인다. 음악에 인생을 걸어보겠다며 대학 자퇴 후 이정길(현 국카스텐 드러머)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 때만 해도 기타의 C코드도 잡을 줄 몰랐다고 한다. 이런 일화도 있었다. 하현우가 밴드를 같이 할 기타리스트를 찾는 광고를 인터넷에 냈는데, 이를 보고 온 전규호(현 국카스텐 기타리스트)는 당시 C코드도 잡을 줄 모르는 하현우의 실력에 황당해하며 그냥 집에 가버렸을 정도였다고. 전규호는 섹션 TV 연예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하현우와 이정길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당시엔 그들과 4마디 이상의 합주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백두산(밴드)|백두산]]을 대신해 2012년 6월부터 국카스텐이 합류했다. 다른 멤버들을 제치고 단독샷을 독차지했는데, 이런 현상은 이미 국카스텐이 다른 방송에 출연해서 인터뷰를 할 때도 종종 나타나던 현상이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비주얼이 훌륭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잔의 추억' 을 부를 때는 고시생 스타일이었다가 '가장무도회' 를 부를 때는 까마귀 깃털 같은 걸 단 블랙 코트 차림으로 나타나서 아이돌 같은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박상민]] 왈, "촌놈이 용 됐다." 혹자는 아예 하현우가 섹시해서 나가수 본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32회 일치
조금 더 과거로 가서 그날 아침. 맥스는 다수의 총상과 뇌진탕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온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그는 살아난다. 맥스는 손목에 꽃힌 링거를 빼내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는 "그녀는 죽었다"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맥스는 자신의 옷을 차려 입고 병원에서 도망가기로 한다.
전날 밤, 맥스는 한 창고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건 강력반이 맡을 일이 아니었지만, 그 창고는 전의 사건으로 알게 된 [[블라디미르 렘]]의 소유였다. 맥스는 보고를 접수한 후 차를 몰아 창고로 향한다.
청소부는 맥스를 데리고 가 셔터를 올려 주지만, 맥스가 셔터 너머로 들어가자마자 그곳에 있던 동료와 함께 공격해온다. 맥스는 이들을 처리하고 청소부들을 죽이면서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서는 청소부들이 카우프만이라는 자가 차를 대기해놓고 있으니 모든 증거를 처리해야한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로 총기 작업장 입구에 있는 총기 보관소는 텅텅 비어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맥스는 범죄현장에서 도망치려는 청소부들을 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몇몇 청소부들이 카우프만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는데 성공한다. 맥스가 출구를 도망치기 위해 질주하는 차에 치일 뻔한 그 때, 맥스의 동료 형사인 윈터슨 형사가 그를 구해준다.
놀이공원 출입구 너머에는 60년대 미국 도시의 모양을 한 드라마의 배경 "느와르 욕"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곳은 음산한 음악. 여성의 시체 모형, 건물 안에서 방문자들을 감시하는 모형 등이 섬뜩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맥스가 길 끝에 놓여진 철장 안에 들어가자 의사 차림을 한 모형들이 나타나며 철장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철장이 도착한 곳은 정신병원이었다. 맥스는 놓여있는 길을 따라 가며 정신이상자들의 모형과 그것에게 드릴을 들이대는 의사들의 모형, 분홍 플라밍고, 붉은 액체로 차오르는 샤워실 등을 보게된다. 맥스는 그것들을 지나 또다른 철장 안으로 들어간다. 철장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맥스와 [[모나 색스]]는 이너 서클 내 계약자를 만나기 위해 출발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모나는 이너 서클의 온갖 곳에 부패와 암살이 판을 친다고 말한다. 둘이 계약인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아파트 앞에는 [[스쿼키 청소회사]]의 밴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아파트 1층의 경비들은 이미 죽어있었다. 맥스는 모나와 무전기[* 경비원들의 시체에서 얻었다.]로 정보를 전달받으며 이너 서클 내의 계약자. 코커런이 사는 방으로 향한다.
맥스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소부들을 해치우고 그 건넛집으로 들어간다. 그 집도 이미 청소부들의 습격을 받은 뒤였다. 맥스는 모나의 지령대로 발코니로 나와 차양을 타고 밑집 발코니(28층)로 옮겨간다. 그 집도 청소부의 습격을 받은 집이었다. 그 집에서 증거인멸 작업을 하던 청소부들을 모두 해치운 맥스는 한 남자가 집에서 도망치려다가 청소부들에게 죽는 광경을 보게된다. 맥스는 그 남자가 살던 집을 통해 28층에서 27층으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맥스는 모나가 애니 핀이 있던 창고에 온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맥스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뉴욕 경찰을 보고 손을 든다. 그 자리에서 모나를 체포하고 있던 윈터슨 형사는 맥스에게 뭘하고 있었냐고 묻는다. 재차 묻는 윈터슨을 보며 맥스는 고개를 떨군다.
전화를 걸고 난 후, 유치장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청소부들이 모나를 죽이기 위해 습격한 것이었다. 모나는 침대 밑에 숨어있다가 죽은 경관의 열쇠를 훔쳐 철장문을 열고 도망간다. 이를 CCTV 화면으로 본 맥스는 캐비넷에서 총을 꺼내들고 모나를 쫓아간다. 그는 청소부들을 해치우며 주차장 밖으로 나갔지만 모나는 사라진 뒤였다. 이때, [[블라디미르 렘]]이 차를 몰고 나타난다.
블라드는 맥스에게 코니 아일랜드까지 차를 태워다준다. 블라드의 차 뒷자석에는 머리가 큰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 인형탈이 놓여있었다. 고그니티와의 전쟁에서 쓸 트로이 목마라나 뭐라나. 맥스는 블라드에게 이너 서클과 모나 색스에 대해 들어본 적 없냐고 한다. 블라드는 둘 다 알고있었다. 그는 이너 서클에 대해서는 범죄조직에 가깝다고 말하며 이들이 고그니티와 계약을 맺은 것 같다고 하고, 모나에 대해서는 유명한 살인청부업자라고 말하며 여우 같으면서도 굳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헤어지기 전, 블라드는 맥스에게 선택지가 잘못된 방법밖에 없으면 그건 진짜로 잘못된게 아니라 운명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한다.
맥스는 청소부들을 해치우며 길을 찾아 무대 뒷편을 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무대로 나온 맥스가 본 것은 드라구노프와 잉그램을 들고 구조물 위를 뛰어다니며 청소부들을 해치우는 모나였다. 모나는 맥스에게 차고 뒤에서 만나기로 하고 함께 청소부들을 해치운다.
차고로 나온 맥스는 청소 밴들이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는걸 본다. 맥스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비어있는 밴 짐칸으로 뛰어든다. 밴은 맥스가 탔다는 것도 모르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열려있던 밴 문을 닫고 그 안에 숨은 맥스는 모나가 무전기를 통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모나에게 청소부들의 차에 탔다고 말하고는 권총을 들고 밴에 실려 갔다.
밴이 도착한 곳은 캐슬링 보험회사 부지의 건설현장이었다. [[스쿼키 청소회사|청소부]]들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는 증거를 건물 최상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맥스는 자신의 위치를 모나에게 전하고는 밴 밖으로 나온다. 증거품들이 있다는 최상층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때, [[스쿼키 청소회사|청소부]]들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황급히 숨는 맥스를 보고 총을 난사하지만, 뒤늦게 그 방이 폭발물로 가득 차 있었다는걸 깨닫고 도망친다. 맥스도 이들을 뒤쫓아 도망치려고 하지만 폭발에 휩쓸려서 부상을 입는다. 폭음을 들은 [[모나 색스]]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맥스는 빌딩이 폭발하고 있다고 말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불길에 갇혀서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맥스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공사용 구조물에 매달린다. 건물이 폭발하며 일어난 충격파로 맥스는 땅에 떨어지고 그 뒤를 철판 하나가 덮친다.
맥스는 비상계단을 타고 내려가 지하 주차장으로 탈출한다. [[모나 색스]]가 답이 될거라고 생각했던 맥스는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모두 찾아다녀봤지만 결국 모나를 찾지 못했다. 맥스는 [[알프레드 우든]]에게서 답을 얻기 위해 그의 저택으로 향한다.
맥스는 블라드의 부하들을 해치우며 블라드를 찾아 보드카 이곳 저곳을 누빈다. 맥스에게 덤비는 이들 가운데에는 [[스쿼키 청소회사]] 청소부들도 있었다. 제일 결정적인 증거는 지하주차장에서 발견된 스쿼키 청소회사 점프슈트와 스쿼키 청소회사 밴이었다.
* 지하주차장의 TV에서는 "로드 앤 레이디즈"가 방영되고 있다. 남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주인공에게 독을 탄 와인을 먹여 죽이려고 하지만 남주인공이 대신 마시고 쓰러진다. 남주인공이 쓰러지며 화재가 발생하자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도망가게 한 후 자신의 어머니를 붙잡아 함께 죽는다.
결국 맥스는 비니가 운영하는 자동차 판매점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왜 이런일이 일어난거냐며 징징거리는 비니가 있었다. 비니는 블라드가 가지고 있던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 인형탈을 입고 있었다.
이때. [[스쿼키 청소회사|청소부들]]이 자동차 판매점에 들이닥친다. 비니는 뒷문으로 도망쳐야 한다며 맥스에게 엄호를 부탁한다. 하지만 인형탈의 머리가 너무 커서 뒷문으로 나갈 수 없게되자 비니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있는 자기 집을 통해 도망가자는 계획을 짠다.
- 희빈 장씨 . . . . 30회 일치
일부 역사학자들은 희빈 장씨가 아비의 사후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당백부 [[장현 (조선)|장현]]이 [[경신환국]]에 휘말린 후 가세가 기울자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남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였다고 주장하여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졌지만, [[경신환국]]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ref group="주"> 궁녀의 통상 입궁 연령은 4세부터 16세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법적 혼인 연령은 14세~20세이다. 부모가 50세를 넘긴 경우엔 관아의 특별 허가를 받고 12세 이상의 자녀를 혼인시킬 수 있는데 16세기 이후엔 수 차례에 거듭된 외란으로 남성의 숫자가 급감하였고 처녀를 차출하여 청으로 진상하거나 궁녀로 뽑는 분위기로 인해 법금을 어기고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희빈 장씨가 [[경신환국]] 당시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궐하였다는 [[인현왕후]]의 주장으로 불거진 것인데, [[경신환국]]과 같은 해 말에 장씨가 강제 출궁이 되었다가 7년 후인 [[1686년]]에 다시 입궁했던 만큼 이미 궁녀인 신분으로 출궁을 당한 후에 [[남인]]과 연계하여 돌아왔다는 것이 오역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조선 효종|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 (조선)|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조선 현종|현종]] 5년에 대왕대비전의 궁녀로 뽑혔다가 이미 사주가 오간 상대가 있으니 정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출궁된 역관 최우의 딸의 전례<ref>현종실록 5년(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12월 30일(정해) 2번째기사</ref> 도 있는 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에 불과하다.
흔히 장씨가 출궁된 당시에 궁핍한 삶을 살았고, 숭선군 부인 신씨와 [[장렬왕후|자의대비]]를 자주 방문하여 다시 입궁하길 간절히 소원하였다고 알려졌는데 이 해석에는 오차가 존재한다. 출궁된 궁녀는 왕궁 출입은 고사하고 엄중한 감시 아래 사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장씨가 출궁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당숙부인 [[장현 (조선)|장현]]과 장찬 형제가 유배형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이는,
[[1683년]] 10월, [[조선 숙종|숙종]]이 두질(豆疾: 두창, 마마, [[천연두]])을 앓았다.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왕대비(王大妃)]] 김씨는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함께 [[조선 숙종|숙종]]의 쾌차를 기원하기 위해 무당의 권고대로 절식을 하고 매일 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치성을 올리다가 감질(感疾: 감기)에 걸렸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와병 중이라 쉬쉬하며 치유치 않다가 점점 위중해졌고, [[조선 숙종|숙종]]이 온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12월 5일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ref group="주">이 사실을 발고한 [[박세채]]의 상소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명성왕후|대행왕대비(사망한 왕과 왕후에겐 대행을 붙인다)]] 김씨가 무속을 싫어하였다며 강력히 부정했다. 『숙종실록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12월 15일(임자) 2번째기사』 하지만 다음해 2월 박세채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어 무녀 막례가 유배되었다.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2월 21일(정사) 3번째기사』 실제로 [[명성왕후 김씨]]는 전속 무당을 두었을 만큼 무속을 신봉했고, [[조선 숙종|숙종]]도 무속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ref>
궁으로 돌아온 장씨를 향한 숙종의 총애가 지극하자 [[서인]]과 [[인현왕후]] 민씨의 반발이 격렬했다. [[인현왕후]]는 장씨를 견제하기 위해 서인과 합세해 1686년 3월, 서인 영수 [[김수항]]의 종손녀인 [[영빈 김씨]]를 간택후궁으로 입궐시켰다. 숙종 12년인 1686년 2월 27일 기사에 [[인현왕후]]가 여러차례 간택후궁을 들일 것을 종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장씨가 재입궁 한 것을 [[인현왕후]]가 후회하였거나 애초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서 1683년에는 [[인현왕후]]의 큰아버지인 좌의정 [[민정중]]이 장씨의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정명공주]]의 생일잔치에서 노래를 부른 첩 안숙정<ref group="주">안숙정은 숭선군저의 가비(歌婢)로서 노래 실력이 장안 최고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김씨의 간택을 전후로 [[서인]]은 천재지변의 원인으로 장씨를 지목<ref group="주">[[인현왕후]]의 가례일에는 지진이 있었으며 [[인현왕후]]가 복위하자 초여름에 서리와 눈이 내린 것, 장씨에게 자진의 명이 내린 후부터 여러 달 심각한 천재지변이 계속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ref> 하거나 제왕은 여색을 멀리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장씨를 궁 밖으로 쫓아낼 것을 수차례 종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김창협]]은 "후궁으로서 가까이 사랑할 사람이 간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진실로 관어(貫魚: 궁인들의 순서)를 순서대로 할 수 있게 하여 종사(螽斯)의 경사가 있게 하고 미색(美色)에 마음이 현혹될 근심과 치우치게 사랑에 빠져 은총을 열어 준다는 비난을 없게 한다. (중략)"<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9월 13일(갑오) 1번째 기사</ref> 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는데, 이는 장씨의 미색에 현혹되지 말고 궁인의 지위 순서로 성총을 내려 후사를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서 승은궁녀인 장씨보다 정궁인 [[인현왕후]]와 당시 유일하게 후궁의 지위를 갖고 있던 [[영빈 김씨|숙의 김씨]]([[김창협]]의 5촌 당질녀이다)에게 사랑을 주어 그들에게서 후사를 보아야 비난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ref group="주">1689년 2월에 [[김창협]]의 아비 [[김수항]]이 [[송시열]]의 상소를 막지 못했다는 죄로 삭탈관직이 된 것에 대해 사관은 [[김창협]]이 장씨를 지목하여 간한 이 발언으로 [[조선 숙종|숙종]]의 노여움을 얻어 보복받은 것이라고 기록했다.</ref>
[[인현왕후]]는 직접적으로 숙종에게 숙원 장씨를 쫓아낼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숙종에게 [[명성왕후]] 김씨가 꿈에서 계시를 내리길 장씨가 원한을 품고 환생한 짐승의 화신이며 불순한 무리(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궁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발언했던 기록이 숙종실록에 실려 있다.<ref>숙종실록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2일(정유) 2번째기사</ref> 또한, '장씨 팔자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노고하셔도 공이 없을 것이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는 모두 훗날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되어 폐출되는 이유가 된다. [[조선 숙종|숙종]]은 원자([[조선 경종|경종]])가 탄생하자 [[인현왕후]]가 매우 노여워했으며, 급작스레 주가(主家: 공주의 처소.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 혹은 [[명안공주]] 등을 의미한다)와 더욱 친밀해지고 [[1688년]] 2월, '[[조사석]]이 장씨 친정의 청촉으로 상신에 제배되었다'는 소문을 유포했던 것이 발각되어 유적에서 삭제되고 위리안치된 [[홍치상]]의 방면을 종용했던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ref group="주">[[1688년]] 4월에 발발한 [[기사환국]]의 여파로 [[노론]] 과격파였던 [[김만중]]이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문되었는데 소문의 근원지가 [[조선 숙종|숙종]]의 고모인 [[숙안공주]] 들에게서라는 자복이 있자 [[홍치상]]에게 교형이 내려졌다. [[갑술환국]]으로 [[홍치상]]은 다시 복관되었지만 [[조선 숙종|숙종]]은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높은 연세인 공주가 집에 있으니, 내가 차라리 떳떳하지 않은 데에 빠지겠다. 특별히 복관(復官)하라'하며 불쾌함을 드러냈으며, 1702년 [[홍치상]]의 아들이 [[홍치상]]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하자 '[[홍치상]]의 지은 죄는 만번 통분할 일인데 아들이 감히 격고하였다'며 분노를 터트렸고 곧 '지은 죄가 낭자한데도 관작이 그대로인 탓이다'하여 복관한 관작을 다시 거두었다.</ref>
그러나 서인의 반응은 싸늘하여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상(喪) 중임을 앞세워 숙종의 득남에 축하연은커녕 하례인사조차 드리지 않았다. 또한, 다음 달인 11월 12일에는 숙종에게서 입궁하여 장씨의 산후조리를 도우라는 어명을 받고 입궁하는 장씨의 생모 윤씨를 지평 [[이익수]]가 명을 내려 사헌부 관원들이 그녀를 가마에서 강제로 끌어내리고 그녀의 하인들을 눈 앞에서 매를 때리고 체포하였다.
옥교 사건은 그때까지 장씨에 대한 [[서인]]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조선 숙종|숙종]]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같은 당하관의 아내인 귀인 김씨의 어미도 옥교를 타고 수시로 궁에 드나들지만 문제 삼아진 적이 없으며, 장씨의 생모는 후궁이 해산할 때 교자를 타고 입궁할 수 있다는 왕실 규례에 따라 [[조선 숙종|숙종]]의 어명을 받고 입궁한 것이며, 어명을 상징하는 선소동패(宣召銅牌)를 보였음에도 입궁치 못하고 내쫓긴 것은 왕을 능멸하는 행위임을 선포하며 [[이익수]] 및 사헌부 관원을 체포하여 엄형을 내리고 사형할 것을 명하였고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도 벌을 내릴 것을 선포했다. 하지만 [[조선 숙종|숙종]]의 척신이자 최측근이기도 했던 우의정 [[조사석]]마저 윤씨가 탄 가마가 8인교<ref group="주">옥교에는 2인교, 4인교, 6인교, 8인교 등이 있는데 이후 사치풍조가 만연해져서 12인교도 생겨났다. 임금과 왕후가 타는 가마는 연으로 20명이 들었고, 세자의 연은 16명으로 규정되어 있다. 공주와 옹주가 타는 덩은 8명이 든다. [[조사석]]은 윤씨가 공주와 옹주의 덩보다는 못하지만 8명이 드는 8인교를 탄 것은 부당하다고 고발한 것이다.</ref><ref>《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정연식 저</ref><ref group="주">사람이 드는 가마의 상급은 말이 끄는 가마인데 쌍교와 독교로 나뉜다. 말 두 마리가 앞뒤로 가마를 끄는 쌍교가 상급으로 2품 이상과 승지만이 탈 수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영조시대엔 이미 예사로와진 일이 되어 여인들도 쌍교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는 숙종시대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신생왕자의 외조모이자 왕명을 받고 입궐하던 윤씨가 8인교를 탄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행위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윤씨가 옥교를 탄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ref> 였음을 강조하며 [[영빈 김씨|귀인 김씨]]의 어미는 비교 대상이 아님<ref group="주">귀인 김씨의 어미는 당상관의 아내는 아니지만 판서였던 [[이정영]]의 딸이다. 또한 귀인 김씨의 종조부인 [[김수항]], [[김수흥]]이 정승이었기에 [[조사석]]은 귀인 김씨의 어미는 역관 가문 출신인 윤씨에 비해 옥교를 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ref> 을 주장함으로써 숙종은 서인 대신은 물론 윤씨를 모욕한 하리에게 내린 벌조차도 취소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서인]]은 장씨의 생모는 앞으로도 옥교를 탈 수 없는 명을 내릴 것을 종용함과 동시에 윤씨의 옥교 사건을 예로 삼아 가마에 대한 법을 개정하여 선포하라는 보복성 주장을 제기하여 [[조선 숙종|숙종]]을 재차 굴욕시켰다. 이 사건의 발발한 지 불과 2개월 후, [[조선 숙종|숙종]]은 반격을 가한다.
[[1689년]] 1월 11일, [[조선 숙종|숙종]]은 아들 윤에게 원자(元子: 왕의 큰아들)<ref group="주">원자는 공식적인 왕의 장자(=장남)로서, 조선은 장자상속을 원칙으로 했다. 이에 후궁 소생이라 할 지라도 원자로 정해지면 왕비가 뒤이어 낳은 왕자는 엄연한 적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차자가 되어 왕위 계승에서 뒤로 밀려난다.</ref> 명호를 내릴 뜻을 알린다. [[조선 경종|왕자 윤]]이 후궁 소생이라는 사실에 방심<ref group="주">숙종 시대까지 조선 왕실 역사에 후궁 소생이 원자가 된 경우는 없었다. [[조선 중종|중종]]의 아들 [[복성군]]은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6살 연하인 [[조선 인종|인종]]이 원자가 되었고, [[조선 선조|선조]]의 장자 [[임해군]]은 평생 원자는커녕 세자도 되지 못했다.
[[서인]]이 차지하고 있던 삼사(三事: 삼정승)와 승정원, 사간원의 중앙 최고 요직이 경신년에 조정에서 밀려나 은신 중이었던 [[남인]]으로 교체되자 조정으로 돌아온 [[이현기]](李玄紀)·[[남치훈]](南致薰)·[[윤빈]](尹彬) 등은 먼저 원자 윤의 탄생과 [[조선 숙종|숙종]]의 원자가 정해진 것에 대해 경하와 찬사를 올려 [[서인]]과는 극적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경신년에 [[남인]]에게 대역죄를 씌워 [[경신환국]]을 일으켰던 [[서인]]을 향한 정치 보복의 시작이었다. [[송시열]]에게 유배령을 내리고 [[김수항]] 및 일부 [[서인]]을 조정에서 내쳐버리긴 했지만 분노가 가시지 않았던 [[조선 숙종|숙종]]은 [[남인]]의 부추김으로 [[송시열]]을 최고 유배지인 제주로 유배할 것을 명하고 [[김수항]] 등에게도 진도 유배령을 내렸다. [[민암]]을 위시한 [[남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6판서·참판·참의 등 남인 경재(卿宰) 수십인과 사헌부·사간원이 합계(合啓)하여 과거의 환국([[경신환국]])을 위해 역모를 날조하여 무고한 남인 영수 [[허적]]과 [[윤휴]] 들을 살해하였고 과격한 처벌로 죄없는 [[남인]] 인사를 학살한 [[김석주]]와 [[김익훈]]의 죄를 묻게 하였으며 이들을 옹호하였던 [[송시열]]과 [[남인]] 옥사의 위관으로서 [[남인]] 재상 [[오시수]] 등을 죽게한 [[김수항]]의 가중처벌을 맹렬히 주장하였다.
다음날 23일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생일이었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국상기간 등을 이유로 탄일 하례 의식을 생략하라는 어명을 내렸지만 국모의 당연한 권한이라는 이유로 어명이 무시되고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하례가 올려졌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이 분노하여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크게 다투고, 조정 대신들에게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교사스럽고 간특한 부인'''으로 칭하며 평소의 언동<ref group="주">시부모([[조선 현종|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계시를 빙자하여 희빈 장씨가 아들을 낳을 수 없는 팔자라고 거짓을 고한 것, 원자가 탄생하자 노여워하며 주가(主家: 공주의 시가.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를 의미)와 급격히 친밀해지고 [[홍치상]]의 무죄방면을 종용한 것, 궁인들의 당파를 나눠 핍박한 것, 폐출되는 [[귀인 김씨]]에게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가마를 타지 말고 걸어서 빨리 궁에서 나가라고 재촉한 것 등</ref> 을 비난하며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국모로서 군림할 자격이 없으니 고사를 찾아보라는 명을 내렸다. 이는 민씨를 폐서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이에 [[서인]] 대신 뿐만 아니라 [[남인]]조차 당황하여 [[권대운]] [[목래선]] [[김덕원]] [[민암]] 등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올려진 '''탄일 문안은 신자(臣子)들의 상례'''이니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는 죄가 없음을 주장하며 강력히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변호하였고, [[권대운]]은 고사를 찾으라는 [[조선 숙종|숙종]]의 명에 불복하며 사직을 청하였다. 이러한 조정 안팎의 반발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서인]]은 처벌하고 [[남인]]은 용서하는 차별을 보임과 동시에, 24일에는 [[인현왕후|중전]]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과 크게 말다툼을 하면서 그녀 자신의 입으로 '진실로 나의 죄이다. 어찌할 것인가? 폐출시키려거든 폐출시키라.'는 과격한 언사들을 입에 담았던 사실을 폭로했다.
1690년 7월 19일, 중전 장씨가 숙종의 차자(次子)이자 첫 대군(大君)인 성수(盛壽)를 출산하였다.<ref group="주">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 저)에 장씨의 차자가 여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오류]]이다. [[조선 숙종|숙종]]의 딸은 인경왕후 소생의 조졸한 공주 2명 뿐이다.</ref>
신당의 존재가 1699년부터 존재하였다면 [[숙빈 최씨]]를 비롯한 궁인 전원은 물론 [[조선 숙종|숙종]] 또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자학을 신봉하는 조선 사회에서 무속 행위는 국법으로 엄중히 금하였지만 궁 밖은 물론 궁 안에서도 자주 치루어졌고<ref group="주">광해군 부부, 인조, 민회빈 강씨도 굿을 즐겨 하였다.</ref>,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 김씨]]도 [[인현왕후]]와 함께 숙종의 두창의 쾌유를 기원하는 굿을 하였던만큼 장씨의 신당 설치 자체는 굳이 문제 삼을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숙빈 최씨]]는 신당의 존재에 이견을 주장하였고, [[조선 숙종|숙종]]은 [[숙빈 최씨]]가 거론한 신당의 존재를 조정 대신들에게 공식화하며 장씨가 몰래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를 시해하는 저주굿을 하였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사건 조사 당시의 편파성, 증거의 부족, 고문으로 인한 증언의 신빙성 문제 등으로 인해 희빈 장씨가 신당을 차려 굿을 한 것이 정말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세자의 쾌유를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혹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때에 소론은 고문 과정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주장하며 희빈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미 희빈을 죽일 결심을 한 숙종의 뜻이 단호하였다. 이에 영의정 [[최석정]]과 소론은 희빈에게 죄가 있다고 치더라도 세자의 어미이니 처우에 관대하게 하자고 주장을 바꿨지만 이 역시 기각되었고 [[최석정]]은 부처되었다.<ref group="주">같은 해 12월부터 숙종은 다시 최석정을 조정으로 부르지만 최석정은 수십 차례 사직을 고집한 후 은거하였다.</ref> 1701년 10월 7일, [[조선 숙종|숙종]]은 빈어(嬪御:임금의 첩)에서 후비(后妃:임금의 정실)로 승격되는 일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고, 다음날 10월 8일에 승정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장씨에게 자진의 명을 내렸다. 10월 10일, [[조선 숙종|숙종]]은 희빈 장씨가 이미 자진하였음을 공표하였다. 향년 43세였다.
1701년 10월 10일, [[조선 숙종|숙종]]은 이미 장씨가 자진하였음을 통보하며 아들인 [[조선 경종|세자 윤]] 부부에게 상주로서 거애식에 참여하여 망곡례를 행할 것을 명한다. 다음 날인 10월 11일에는 [[조선 경종|세자 윤]] 부부의 상복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서자(庶子)로서 아버지의 후사가 된 자는 그 어머니를 위해서 시마복(緦麻服)3개월복)을 입는다.'는 예조의 말에 따라 그대로 시행하라 명을 했지만 이후 숙종은 이를 번복하여 장씨를 위해 3년복을 입도록 한다.<ref group="주">정확히는 3년복이 아닌, 3년이 되기 며칠 전에 상복을 벗게하라고 명한다. 이는 왕후와 차별을 두기 위함임을 알 수 있는데 왕비 아래 후궁 이상이었던 장씨의 신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 영조|영조]]는 생모 숙빈 최씨를 위해 시마복을 입었으며 장례를 마친지 닷새 후에 이마저 벗으라는 어명을 받아야 했다. 덧붙여 영빈이씨(사도세자 사친)와 수빈박씨(순조 사친)의 성복은 시마복이었다.</ref>
장씨의 상례부터 장례까지의 모든 절차는 궁에서 주관하고 치루어졌으며 종친부 1품의 예로 받들어졌다.<ref group="주">숙종의 다른 후궁인 명빈 박씨와 숙빈 최씨의 상장례는 법도대로 궁 밖 사가에서 이루어졌다.</ref> 그녀의 무덤 역시 여느 후궁들<ref group="주">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무덤은 아들인 연잉군과 환관 장세상, 풍수에 밝은 노비 목호룡이 구하였다.</ref> 과는 달리 친정 식구나 궁속 환관이 구한 것이 아니라 왕실 종친인 금천군 이지와 예조참판 이돈이 지관들을 거느리고 여러 곳을 다니며 구하였다. 경기도 양주 인장리로 결정된 장씨의 묘는 숙종의 명으로 종친부 1품의 예<ref group="주">사방 100보의 규모로 경내에 농사와 목축을 금한다. 품계가 한 등씩 내려갈 수록 10보씩 감소된다. 문무관은 종친부와 비교해 10품씩 감하여 정1품은 90보, 6품은 40보로 한정되었으며 7품 이하는 6품과 같다. 왕실의 여인을 제외한 외명부 여성은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ref> 로 단장되었다. 장씨의 장례 역시 여느 후궁의 장례처럼 3월장<ref group="주">세상을 떠날 달을 포함한 세 번째 달에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 짧게는 30일, 길게는 80여일이 장례기간이 되는데 숫자가 클 수록 상급이다. 4품 이상의 품계를 가진 이들의 장례이며 후궁, 왕자녀는 물론 왕세자 부부의 장례 또한 3월장으로 치루어진다. 1718년 3월 9일에 사망한 숙빈 최씨는 5월 12일에 장사됨으로써 정상적인 후궁의 장례인 3월장을 치렀다.</ref> 으로 치루어지지 않고 4월장으로 치루어졌는데, 왕과 왕후의 장례인 5월장보다 단지 하루가 부족한 1702년 1월 30일에 치루어졌다.<ref group="주">이 또한 후궁의 위, 왕후의 아래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왕세자의 생모인 탓에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도 해석되기도 하지만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와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도 3월장을 치렀던 점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ref> 장례식 전날에 세자가 친림하였고, 수일 전부터 입관 당일까지 궁에서 식을 거행하였다.
1717년 12월, 장씨의 묘가 용맥(龍脈)은 있으나 혈(穴)이 없고 수법(水法)도 합당하지 못하여 완전한 곳이 아닌 것 같다는 함일해의 상소가 올라왔다. 1718년, 숙종은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장리 묘의 천장(=이장)을 명하였다. 예조참의가 지사로 이름난 자 10여 명을 대동하여 1년 간 기내(畿內) 길지(吉地)를 간심한 끝에 가장 평가가 우수한 광주 진해촌으로 와병 중인 숙종이 직접 택점하였다. 1719년에 치루어진 천장식 역시 궁에서 주관하였으며 숙종이 왕세자 부부에게 망곡례를 명함으로써 노론의 극렬한 반발이 있었다.<ref group="주">인장리(仁章里)에서 영구(靈柩)가 발인(發靷)하여 진해촌(眞海村) 신산(新山)으로 향하였는데, 세자가 경현당(景賢堂)에서 망곡(望哭)하고, 세자빈(世子嬪)도 궐내(厥內)에서 망곡례(望哭禮)를 거행하였다.『조선왕조실록 숙종 45년 4월 5일 기사』당시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세자(경종)가 정사를 보던 경현당에서 망곡례를 하는 것을 맹비난하던 노론은 경현당은 대리청정 업무를 보는 곳으로 곧 법전(法殿)과 차이가 없는데 세자의 사친(희빈)을 위한 예절이 지나치다고 비판</ref> <ref group="주">이러한 숙종의 처사는 숙종의 사후에도 논란이 되어 영조시대에도 경종이 숙종의 적자이며 희빈 장씨가 숙종의 제2계비로 기록한 서적이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경종이 즉위한 후 유학 조중우는 숙종의 처사가 아들인 경종이 희빈 장씨를 추존하라는 은밀한 뜻이었다고 주장하였다.『조선왕조실록 경종즉위년 7월 21일 기사』 이에 반해 영조가 즉위한 후 노론은 숙종의 처사를 다시 거론하며 맹렬히 비난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영조1년 3월 25일 기사』</ref> 천장지 또한 초상 때와 마찬가지로 종친부 1품의 예장으로 단장되었으며 청룡(靑龍: 주산(主山)의 좌향(坐向)에서 본 좌측의 산맥)에 앞서 자리하고 있던 종친의 묘와 많은 민전도 모두 값을 치루어 옮기도록 하였다.
**** 차남<ref group="주">조선왕조실록 숙종 16년 9월 16일 2번째 기사에 새로 태어난 왕자가 죽었는데, 이가 장씨의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고, 《선원계보기략》 또한 성수를 남자(男)라고 기록하고 있다.</ref><ref group="주">중궁전(장씨)이 해산한 뒤 약방에서 대전등의 안부를 물음 『1690년 숙종16년 7월19일 승정원일기』
- 윤종신 . . . . 29회 일치
[목차]
[[1969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장흥군|장흥]]에서 2남 중 [[광주]]으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살다가 5살 무렵 [[대구광역시|대구]] [[중구(대구)|중구]]로 상경, 그 뒤 [[대원 외국어학교]][*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절이다. 일반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사람들이 가던 그 시절 맞다. 대원외고 동창으로 현재 [[메르세데스-벤츠|벤츠]]의 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세일즈맨으로 알려진 가수 [[김민우]], 작곡가 [[MGR(음악가)]]이 있다.] [[스페인어]]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88학번으로 입학 후[* 본래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워낙 많아서 어릴 적부터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지만 성적으로 인해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로 입학하게 되었고,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1, 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리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2006년, 9세 연하의 前 [[테니스]] 선수인 와 결혼했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한 경력이 있다. 당시 상대는 훗날 1990년대 중후반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스위스]]의 [[마르티나 힝기스]]. 전미라는 200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이듬해 윤종신과 결혼했다. 현재는 [[MBC SPORTS+|엠스플]]의 테니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고 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부부 자녀 동반으로 출연했으나, 최하위에 그쳤다.] 힐을 안 신어도 가 더 크다[* 윤종신은 (프로필상) 170cm, 가 175cm이다. 각자 프로필 상 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차이날 수도.]...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이름은 의 이름 끝 글자를 돌림자로 썼다고 한다. 를 거의 빼다 박은 수준으로 닮았다.
[[2013년]] 음악취향Y라는 웹진에서 발라드 베스트 100곡을 뽑아봤더니[* http://cafe.naver.com/musicy/16642] [[이문세]], [[유재하]], [[이승환]], [[신승훈]], [[김동률]], [[김형석]] 같은 내로라하는 80~90년대 음악가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곡을 실어 총 7곡으로 최다 노미네이트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러 분야에서 각각 골고루 차트에 올린 것도 주시해볼 만하다.
[[2016년]] 이후에는 월간 윤종신 수록곡들을 통해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제외한 다른 주제들도 자주 노래하는 편이다. [[2017년]] 1월호 '세로'에서는 차트 줄세우기 위주의 음반계를, [[2016년]] 12월호에서는 촛불정국을 노래했다. 중장년층, 혹은 나이든 뮤지션으로서의 심경도 자주 노래하는 것 같다. [* 마지막 순간, Old school, 나이, Birdman 등...]
이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소위 윤종신의 '음악노예'들인 [[유희열]], [[하림(가수)|하림]], [[조정치]]. 셋 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한 정통파들로 전부 윤종신이 발굴하다시피한 인물들이다. 윤종신 본인도 방송에서 자기 자신은 천재가 아니지만 천재를 보는 안목은 있다고 자부했듯이 셋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음악인들이다. [[유희열]]은 군에서 제대한 후 정신을 못 차릴 때 낚아챘다고 하며 [[조정치]]는 세션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김C]]를 통해 세션 기타로 추천받았다가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왔으며 심지어 하림의 경우 해당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윤종신이 군 복무 시절에 알아보고 계약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윤종신 본인은 이를 예능 소재로 써먹고는 있지만 본인의 한계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뒤에 그 점을 보완하려고 재능 넘치는 원석들을 계속 발굴해서 성장시키며 가까이 두고, 서로 윈윈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후 [[015B]]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015B]] 2집 '두 번째 에피소드'의 수록곡 '친구와 연인', 'H에게", 3집 '제3의 물결'의 수록곡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박선주]]와의 듀엣곡), '1월부터 6월까지' 등 간간히 [[피처링]]으로 [[015B]]를 돕고 있다.], 솔로 앨범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2집 '[[Sorrow]]'(TITLE : 너의 결혼식)[* 원래는 작곡가 박강영에게 편곡을 맡기려고 아는 사람한테 번호를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실수로 작사가 박주연의 번호를 알려 줬다고 한다. 차마 잘못 걸었다고 할 순 없어서 작사를 부탁드렸는데, 그 잘못 걸린 전화로 인해 윤종신의 초기 양대 명곡으로 꼽히는 너의 결혼식과 [[오래전 그날]]이 탄생하게 되었다.] 때가 윤종신의 전성기로, 개그맨 [[박휘순]]이 윤종신의 팬이었다고 한다. 판매량 38만 장.
2017 전국투어 콘서트가 결정되었다. 콘서트명은 무려 '''윤종신 좋니?'''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7012241|링크]] 광주 (10월 28일)부터 순차적으로 일정 공개.
'좋니'에 이어 10월에 발표된 [[월간 윤종신]] Special 곡인 '너를 찾아서'도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다. 지니, 벅스, 소리바다 등에서
10월 13~14일, '부르지 않은 노래' 라는 제목으로 여태껏 라이브한적 없는 노래만 모은 콘서트를 열었다. 7집 루시, 6집 나의 이십대 등 숨겨진 명곡뿐만 아니라 심지어 2집 귀퉁이에 박혀있는 '이세상에 가장 외로운 너' 같은 올드팬조차도 생경할 수 있는 노래로 셋리스트가 메워져있어 골수팬들에게는 여러모로 뜻깊은 사건. 뿐만 아니라 공연 실황은 2018년 행보 앨범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또, 비슷한 컨셉의 공연을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라고.
애초에 윤종신의 캐릭터는 촐싹맞고 얄밉게 깐족대기. 아무래도 나이도 나이고 몸도 몸이니만큼,[* 항문이라든지 무좀이라든지] 몸을 쓰는 일(몸개그를 포함하여)은 어려웠던 듯하다. 대신 쉴 새 없이 말로 태클을 걸거나, 특히 다른 사람이 던진 말장난을 한번 더 받아치는 '주워먹기' 개그에 뛰어나다. 그래서 기프갤에서 얻은 별명이 '''[[필리포 인자기|윤자기]]'''. 본인도 주워들었는지는 몰라도, 2010년 [[놀러와]] 283회에서 갑자기 윤자기 드립을 쳤다. 그 날 윤종신의 활약으로 놀러와는 음악성과 웃음을 함께 거머쥐며 흥했다. 윤종신은 자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모든 드립을 주워먹는다.''' 특히 독한 것은 그 깐족대는 캐릭터와 겹쳐서 독한 드립은 더 독하게 치는 바람에 '''말리는 시누이''' 포지션으로 정착한 것. 김구라조차도 명랑 히어로에서 '''난 최소한 앞에서 때리지 저 형은 뒤에서 친다고'''라면서 질색했다.
제대 후 활동 폭을 넓힌 그는 [[2000년대]] 초반에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영화감독 [[장항준]]과 함께 비실형제로 [[카메오]]로 출연, 이후 본격적으로 예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 2002년 [[똑바로 살아라]][* 심지어 주제곡까지 불렀다. 2번째로 나온 에피소드에선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설정이었는데 나중에 TV에 출연해서 이 노래까지 불렀다.]에 또 카메오로 2번정도 출연했고, 2003년 [[논스톱4]]에서 교수 역할을 맡는 등 점차 활동의 폭을 넓혀 3사를 종횡무진하는 예능인으로 성장했다.
패밀리가 떴다 시즌 1이 마감하면서 같이 하차. PD와 접촉하여 시즌 2를 노렸으나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려던 방침에 맞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애는 늘었는데 프로그램은 줄었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예능선수촌의 경우 초기에는 최양락의 레전드급 토크로 흥하였으나 결국 놀러와를 이기지 못하고 그 해 가을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 뒤 SBS는 월요예능을 화요일로 옮겨 [[강심장]]으로 재기한다.
2011년 [[나는 가수다]]에 가수가 아니라 3대 MC로 출연했는데 시즌1이 마무리되면서 하차했다.
SBS [[맨발의 친구들|일요일이 좋다 - 맨발의 친구들]](2013.11.17 폐지)에 출연했었다.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화신]]은 [[2013년]] [[5월 14일]]을 끝으로 하차했다. [[SBS]]에서 윤종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은 족족 조기 폐지된 감이 있다.
[[슈퍼스타K4]]부터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싸이]]가 참여한다.] 하차하고 나서 대체로 '윤종신 특유의 섬세한 심사평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슈퍼스타K 2, 3의 PD인 안준영 프로듀서는 트위터 상에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다! 감사합니다! 잘 빠졌네요^^' 라며 슈퍼스타K를 하차하는 윤종신을 저격하는 뉘앙스의 트윗을 남겨 잠시 논란이 됐었다.
프로그램 하차 이유에 대해서 인터뷰를 통해 '난 사실 음악을 말하는 걸 참 싫어했다. 그냥 듣고 느끼면 그게 다인데.. 트위터 시작하고 부쩍 음악을 말한다. 고치려고. 심사를 관둔 이유도 그 이유가 큰데. 열심히 만들고 부르고. 이 새벽도 그러면서 지샙니다'라는 트윗을 남겨 간접적으로 슈퍼스타K 하차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슈퍼스타K5]]로 복귀했다.그리고 하차 건으로 [[김구라]]에게 슈파스타K의 [[장성택]]이라며 디스를 당하기도 했다.
[[슈퍼스타K7]]를 끝으로 하차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차후 언제든 다시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한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29회 일치
* 부관이자 [[지크 예거|짐승 거인]]을 계승한 콜트는 적의 참호를 뚫기 위해 "턱의 거인"과 "차력의 거인"을 동원하자 제안하지만 거절 당한다.
* 적은 대거인용 열차포를 동원하는데 파괴하기 위해 엘디아인 부대 800명이 총알받이로 동원될 뻔하나 가비가 단독돌격으로 활로를 열겠다고 제안해 보류된다.
* 가비는 속옷바람으로 투항하는 척 적의 기관총 참호에 접근, 기습 적으로 수류탄 다발을 선로에 투척해 열차포를 탈선시킨다.
* 철벽같은 요새 앞. 포연이 가시지 않은 전장에서 한 소년병이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향해 손을 뻗는다. 소년은 포화 속에 쓰러져 있는 주제에 날아가는 새를 보고 거기는 위험하다고 중얼거린다. 소년병은 마레의 군복을 입고 있지만 엘디아인을 나타내는 완장을 차고 있다. 피투성이의 소년은 새가 나는 것이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다가 이윽고 마음을 바꾼다.
가비는 누가 선택될지 기대된다는 얼굴이지만, 매우 자신감에 차있다. 모든 것이 기억난 파르코. 그는 가비의 표정을 보고 "너 말고는 비교대상이 없다는 말투"라며 장난을 건다. 그러자 가비는 시시할 정도로 깨끗하게 "그야 달리 없잖아"라고 인정한다. 우도와 조피아도 현재 성적상으론 그렇다고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비는 그들의 말에 반박한다.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면서.
* 한편 그 옆의 콜트는 마가트 대장을 상대로 설득에 들어간다. 현재 그들 부대의 목표는 기관총 진지 뒤에 있는 열차 선로다. 하지만 보병들이 참호만 파대서는 승산이 없게 됐다. 적 측의 참호가 훨씬 견고하게 구축돼있다. 요새의 지원포격도 있기 때문에 전진하는건 말도 안 되고 여기서 버티는 것 조차 의미가 없다. 이대로는 전부 포탄의 밥이 될 뿐.
>여기서 "턱"과 "차력"을 해방하죠.
* 그때 관측병이 "놈"이 나타났다고 알린다. 그것은 "장갑열차"다. 거기에 달려있는 열차포는 "대거인포"라 불리는 연합의 신병기다. 장갑열차에 총 4문이 장착돼있다. 100mm짜리 철갑포로 보통 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홉 거인"이라 해도 한 방이면 처리할 수 있는 괴물. 마가트가 우려한 것이 저것이었다. 콜트는 턱과 차력은 재빠른 거인이므로 목덜미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마가트는 도박의 여지를 두고 싶지 않다. 만약 당하면 어쩔거냐는 반문에, 콜트는 거인의 힘과 전사를 잃고 거인의 힘을 되찾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가트 대장은 거기에 9년 전 있었던 "시조탈환 계획"의 처참한 실패를 덧붙인다. "여성형 거인" [[애니 레온하트]]와 "초대형 거인" [[베르톨트 후버]]를 잃은 실패 말이다. 이 전력의 상실이 지금의 전쟁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다. 마레의 군사력이 저하됐다고 본 주변국들과 분쟁으로 전쟁이 시작,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팔라디섬 공략은 한없이 뒤로 밀렸다.
* 열차포가 부대를 향해 오고 있다. 거인이 나오기 전에 이쪽 부대를 먼저 없애버릴 생각인 듯 하다. 마가트는 오히려 열차포를 파괴할 기회라며 좋아한다. 그때 가비가 난데없이 끼어든다. 그녀는 수류탄 다발을 마가트에게 보이며 황당한 소릴 떠든다.
>저라면 혼자서 장갑열차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요.
걱정과 공포로 일그러지는 파르코와 친구들. 파르코는 그녀를 말리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허락이 떨어지자 차라리 환희에 차오른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 열차포가 부대에 가까워진다. 그 말은 방금 전까지 총알을 퍼붓던 그 기관총 진지에도 가까워진다는 말이었다. 가비는 투항하는 척, 두 손을 들고 진지로 다가간다. 수류탄 다발은 줄로 오른발이 묶어서 질질 끌고 간다. 적이 보기엔 투항자가 다리를 절며 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적들은 그녀를 발견하지만 투항자라고 생각해서 바로 사격하지 않는다. 적도 상대가 엘디아인일 가능성을 상정하지만 소녀이고 투항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인지 주저한다. 게다가 가비의 계산이 대충 들어맞아서 다리에 건 수류탄을 족쇄라고 잘못 관측한다.
그녀는 쓰러진척하며 오른발의 수류탄 다발을 끌른다. 그리고 열차가 최적의 위치에 다가오길 기다린다. 적당한 시기가 되자 선로 위, 열차포의 코 앞에 힘껏 던진다. 정확한 위치에 떨어진 수류탄은 적들이 대응할 틈도 없이 폭발한다. 열차는 폭발의 여파로 탈선하며 그 앞에 있는 기관총 진지로 굴러떨어진다. 열차포 파괴와 진지파괴를 동시에 이룬 쾌거. 최적의 결과다. 마가트는 곧바로 갤리어드를 부르라고 명령한다.
* 둘의 안전을 확인한 갤리어드는 기관총 진지를 향해 달려든다. 열차포가 파괴된 지금 그를 막을 수단은 없다. 겁에 질린 소총수가 기관총을 난사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고, 갤리어드는 진지를 짓뭉개버린다.
* 열차포, 막대 수류탄 등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하던 병기들이 등장. 파라디섬 '바깥 세계'의 문명은 양차대전 수준으로 보인다.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28회 일치
불교의 한 분파인 일향종을 기반으로 한 농민 반란 세력. 에치젠을 본거지를 두며 카가도 다스리고 있다. 난이도 보통. 잇코라는 별개의 불교를 믿기 때문에 종교 차이로 인한 외교 패널티를 기본적으로 퍼먹는다. 그럼에도 아네가코지와 무역 중.
처음 시작하면 양 옆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다행히 동쪽의 오우치 가문하고는 사이에 해협을 두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있는 오토모 뎃포 코바야로 해협을 틀어막고 쇼니 가문부터 상대하자. 브리핑부터 경계하라고 말해주는 시마즈 가문은 처음에는 이토 가문이 막아주지만 이토 가문을 먹어치운 다음에는 카타나 사무라이를 잔뜩 데려와서 싸움을 건다. 이토 가문이 역으로 시마즈 가문을 먹어치우면 어떻게 되냐고? 종교 차이 때문에 금방 사이가 나빠진다.
혼슈의 이세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기타바타케 하루모토.
혼슈의 빈고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깃카와 오키츠네.
혼슈의 우고, 우젠을 차지하고 있는 가문. 다테 가문, 혼마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모가미 요시모리.
혼슈의 시나노 북부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진보 가문과 동맹 중이며 다케다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무라카미 요시카요.
시코쿠의 아와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미요시 조케이. 벳쇼 가문과 동맹을 맺고 하타케야마 가문과 전쟁중이다.
큐슈의 히고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사가라 하루히로.
혼슈의 미노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오다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사이토 도산.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혼슈의 와카사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다카오카 가문, 하타노 가문과 동맹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사카이 히로치카.
혼슈의 시모쓰케, 히타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아시나 가문과 전쟁 중.
큐슈 북서쪽의 히젠, 쓰쿠시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오토모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쇼니 스케모토. 실제 역사에서는 오우치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혼슈의 야마토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하타케야마 가문과 동맹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쓰츠이 준쇼.
혼슈의 히다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아네가코지 나오요리
혼슈의 이와미, 이즈미, 호키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야마코 가문과 동맹 중이며 모리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아마코 아키히사. 실제 역사에서는 모리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혼슈의 오미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원래 "아자이"라고 읽지만 어째선지 아사이로 번역되었다.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아사이 히사마사.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 가문에게 패배해 멸망했다.
혼슈의 후쿠시마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사타케 가문과 전쟁 중. 다이묘는 아시나 모리키요. 실제 역사에서는 다테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교토]]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아시카가 막부를 꺾고 새로운 막부를 세우는게 게임의 승리 조건인지라 반드시 멸망시켜야 한다.
혼슈의 코즈케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우에스기 가문의 봉신이다. 원래 이름은 야마노우치 우에스기로 원조 우에스기 가문 중 하나다.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야마노우치 노리마사.
혼슈의 무사시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으로 원래 이름은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원조 우에스기 가문 중 하나다. 호조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오기가야츠 노리카츠.
- 트로피코 4/건물 . . . . 28회 일치
||돼지 우리와 먼지 구덩이, 그리고 집 사이의 차이가 모호해질 때가 종종 있곤 합니다. 보수 공사를 하지 않으면 그 차이는 더 좁아지기만 할 뿐이죠. 서민 아파트는 저 세 개의 생활상을 모두 수용할 수 있으며 보통 또 그렇기도 합니다.
* 통상 유지: 주거 환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감소하겠지만, 기술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건물 그 자체는 멀쩡할 거라고 합니다.
||종교는 시민들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교회를 건설해서 그들의 신앙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좋겠지요. 이 건물은 작은 공동체의 종교인들을 수용하기엔 충분하겠지만, 각하께서 얼마나 신을 섬기는지 보여주시기 위해선 더 장엄한 건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도시 개발: 모든 건물의 건설 비용을 20% 감소시킵니다. 다수의 은행에서 이 운영 계획을 유지한다면 최대 60%까지 중첩할 수 있습니다. 효과는 점차 나타나나, 은행원들의 숙련도에 따라 속도가 결정됩니다.
||낭만적인 밤을 영화와 함께 보내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이곳에선 그레타 가르보, 험프리 보가트, 마릴린 먼로를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영화관은 오락을 제공하며 시민들을 깨우치게 해줍니다. 커플들에겐 손을 마주잡고 영차영차할 장소도 제공하지요.||
* 2차대전 명화: 전쟁은 완전 지옥이지요! 군국주의자들의 존경심이 10 상승합니다.
||반짝이는 빨간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안심되지요. 화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도 딸려온답니다.
이 건물이 있어야만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 헬기로 물을 뿌릴수도 있지만 5,000 딸라가 옆집 멍멍이 이름은 아니잖는가. 소방관이 화재 지역으로 소방차를 타고 가서 진압하는 방식이니 교통에 신경쓰는게 좋다.
* 바하 바차타: 매월 인근에 거주하는 학력 미취득자 한 명 당 숙련도 만큼의 수익을 챙깁니다.
* 연구비 조달: 우리의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뜯는 데에 도가 텄습니다. 모든 설계도의 비용이 점차 감소하여 최대 50% 까지 삭감될 수 있습니다.
* 전파 차단: 반역자나 해외 라디오 방송국의 통신을 차단하여 파괴공작이 발생할 확률을 낮춰줍니다.
||이스트 포인트 사관학교는 트로피코의 군인들이 조국을 위해 영광스럽게 죽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며, 여기 사관생도들은 재미없는 졸업 시험보단 차라리 기꺼이 전장에 나가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조미료 광산은 전례 없던 시도입니다. 후추 광산은 개발에 착수하기엔 차질이 좀 있지만, 머스타드 광산은 계획대로 착수할 예정이지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 주차장 ===
||시민들은 교통수단이 필요할 때 마다 주차장에 들어가는데, 신기하게도 몸뚱이가 차로 바뀌어 나와서 목적지까지 가지요. 트로피코에선 기적이 사람을 일으킵니다.
주차장 근처에 거주하거나 근무하는 시민들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더 먼 거리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트로피코인, 관광객, 대통령 각하가 자동차를 타는 곳. 이게 없으면 먼 곳까지 뚜벅뚜벅 걸어가야한다.
||해외의 엘리트들은 사람들에 치여 다니는 걸 기피합니다. 호텔은 반드시 별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하며, 집사는 반드시 프랑스인이어야 하지요. 그리고 바나나 다이커리는 반드시 차갑게 대령해야 한답니다. 고급 호텔은 이 걸어다니는 돈가방들을 만족시켜줄 것입니다.||
=== 관람차 ===
- 마재윤 . . . . 25회 일치
Spris MSL 2004에 진출한 때와 비슷한 시기인 2004년 7월 13일, 마재윤은 [[KTF 매직엔스]]와의 [[팀리그]] 승자전 4강 경기에 선봉으로 출전한다. 당시 KTF 매직엔스는 주요 대회 우승, 준우승자 출신인 [[홍진호]], [[강민 (프로게이머)|강민]], [[박정석]], [[변길섭]], [[조용호]] 등이 포진한 최고의 팀이었으며, 이미 2004년 2월 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다.
마재윤은 CYON MSL 결승전에서 [[조용호 (프로게이머)|조용호]] 에게 1:3으로 패배해 개인리그 첫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 프링글스 MSL Season 1 에서 [[강민 (프로게이머)|강민]] 을 꺾고 두번째 우승을 달성했고 또한 WEF 2006 스타크래프트 결승전에서 [[이윤열]]에게 승리해 우승했다. WEF 스타크래프트 부문 2연속 우승이었다. 이어서 프링글스 MSL Season 2 에서 [[심소명]]을 3:1로 이기며 MSL 3회 우승과 함께 금배지를 획득했다.
[[우주닷컴 MSL 2005]]에서 박정석(당시 KTF 매직엔스,현 [[KT Rolster]])을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한 이래<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87478&db=issue&cate=001&page=8&field=&kwrd= e스포츠 타임머신 마재윤, 우주배 MSL 우승 등] [[포모스]], 2008년 8월 6일)</ref> MSL 3회 우승<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14659&c_no=2&control=view CJ 마재윤 ‘본좌론’에 종지부 찍었다!(종합)] [[파이터포럼]], 2006년 11월 11일)</ref> 을 차지한데 이어, 2007년 2월에는 MSL 5회 연속 결승 진출하여 [[김택용]]과 대결하게 되었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16411&c_no=2&control=view CJ 마재윤V, 패스트 디파일러-럴커 러시로 5회 연속 MSL 결승 진출] [[파이터포럼]], 2007년 2월 15일)</ref>
한편, MSL에서의 눈부신 활약과 달리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예선 탈락도 여러차례 하는 등<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12276&c_no=1&control=view 안상원 듀얼토너먼트 본선 진출 등 오전 1조 종료] [[파이터포럼]], 2006년 6월 28일. 온게임넷 예선에서 안상원에게 패배한 모습)</ref> 부진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5번째 MSL 결승전을 앞두고 벌어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결승에서 [[이윤열]](현 [[위메이드 폭스]])을 3:1로 꺾고 로열로더로써 우승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16484&c_no=1&control=view CJ 마재윤V, 3대1로 이윤열 꺾고 현역 최고 선수 등극!] [[파이터포럼]], 2007년 2월 24일)</ref> 당시 [[엄재경]] 해설위원의 '사람이 신을 어떻게 이깁니까!' 발언과 인상적인 퀸 사용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그만큼 당시 마재윤의 실력과 기세는 모든 이들을 압살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결승전 당일, 김택용은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마재윤을 3:0으로 제압하며 김택용 기준으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control=view&board=news_esports&c_no=2&b_no=16530 파이터포럼, 2007년 3월 2일]</ref> 김택용은 3세트 모두 커세어와 다크 템플러를 주축으로 한 견제 플레이에 주력하였고,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완벽한 운영으로 마재윤을 무너뜨렸다. 이는 훗날 '3.3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충격적인 결과였고, 이후 마재윤은 정상의 자리에서 급격히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시즌에서 선전하였으며,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도 택마록에서 완승을 거두고 8강까지 진출하였다. 이로써 부진을 조금 덜었고, 동시에 차기 MSL 시드를 확보함으로써 MSL 12연속 진출까지 달성했다.
그러나 위너스리그가 시작되면서 마재윤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재윤은 스파키즈전 1:1 상태에서 차봉으로 나와 [[문성진]], [[신상문]],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를 연달아 물리치고 3킬을 기록하였고, 이스트로전에서는 1:2 상황에서 중견으로 출전해 [[박상우]], [[신상호]], [[신대근]]을 잡아내며 또다시 3킬을 기록, 마삼킬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09-10|신한은행 위너스리그 08-09]]에서 마재윤은 2번 연속 3킬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어 마삼킬이란 별명과 함께 팬들에게 기대를 안겨주었고 로스트사가 MSL 2009 16강에서도 신희승에게 압승을 거두며 부활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2009년 7월에는 e스타즈 스타크래프트 헤리티지 대회에서 이윤열을 2:1로 꺾고 우승까지 하였으나 위너스리그 종료 이후 점차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스타리그 예선을 계속 뚫지 못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며, 저그전에서는 기량 난조를 보였다. 그러나 10월 29일 서바이버 토너먼트를 뛰어난 경기력으로 전승 통과하며 13시즌 연속 MSL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어지는 [[NATE MSL 2009]]에서 32강 2패로 초반 탈락하며 오프라인 예선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 양대리그 예선에서 모두 탈락하였고, 프로리그에서도 출전할 때마다 어이없는 졸전을 펼치며 전부 다 연패하는 등 데뷔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그리고 2010년 3월에는 로스터에서 말소 되는 등 최악의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마재윤은 영구제명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12월 5일, 중국에서 개최된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출전했고 2 vs 2 팀리그에서 우승을 해 상금(15만 위안)까지 챙겨 논란이 되었다.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재윤은 중국 대회에 또 출전할 계획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중국 측에서 요청이 온다면 출전할 생각이 있다는 대답을 하였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짓을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어, 여전히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결승전에서 만나 마재윤이 3:1로 이기고 본좌에 등극하게 되는, 본좌 검증의 마지막 상대였다. MBC Movies 팀리그 결승전에서 한번 패하였으나 그 후 2007년 2월까지 거의 마재윤이 전승하며 상대전적이 한때 비공식전을 포함해 11:3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12월1일 펼쳐진 3회 슈퍼파이트에서 마재윤이 [[이윤열]]을 3대1로 잡아내며 한 발 먼저 앞서간 바 있고, 다음해 2월 24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결승전에서도 마재윤이 이윤열을 3대1로 잡아냈다. 그러나 이후 신한은행 마스터즈 결승전에서 역으로 이윤열이 3:1로 이긴데다가 마재윤이 슬럼프의 늪에 빠지면서 상대전적의 폭도 대단히 좁아지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마재윤은 [[에버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서 2연패로 탈락하면서 오프라인 예선으로 가게 되었다. 다시 2009년 헤리티지 리그에서 풀리그때 1번 이기고 결승에서 2:1로 우승하면서 두 선수간의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5:5이나, 비공식전을 포함하면 20:11로 마재윤이 우세하다.
집요하게 마재윤만을 타겟팅하는 이성은 선수는 MSL에서 두 차례 마재윤 선수를 지목했고 매경기 승리를 거머쥐었는데, 급기야 이에 흥분한 마재윤이 헤드셋을 내팽겨치고 GG를 치기 전에 나가 버리는 일도 생겼고(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 12월 30일 경기), 결국 이로 인해 경고까지 받았다.
10번째 대결에서 패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마재윤이 '이성은 선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는 것을 인정한다,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당분간은 이성은 선수를 만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하면서 이성은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송병구]]와의 첫만남은 비공식전인 [[CYON MSL 2005]] 3차 챌린지 예선 D조 결승으로 이때 1:2로 패배, [[WCG 2005]] 1차예선 9조 4강에서도 0:2 셧아웃, 이어 공식전에서의 첫만남은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플레이오프 삼성전자전 7세트였는데 여기선 송병구에게 패했다. 하지만,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삼성전자전 5세트에선 승리했다. 이어 이듬해 [[곰TV MSL 시즌2]] 16강 D조 경기에서 다시 만났는데, 마재윤이 2:0으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올스타전 열정팀전 7세트에서 다시 마재윤 승리, [[곰TV MSL 시즌3]] 16강 D조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때는 두 번째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끝내 마재윤이 2:1로 승리하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듬해 여름 비공식전인 2008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1:2 패배, 그해 겨울 역시 비공식전인 [[IEF 2008]] 8강 A조에서는 0:3 셧아웃 패배, 역시 비공식전인 올스타 종족 최강전 프로토스전 6세트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5:2로 우세,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2:8로 더 강세.
[[이제동]]과의 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3:3 무승부, 비공식전까지 따지면 4:5 약간 열세. 첫만남은 비공식전이었던 스타리그 24강 진출전 예선 M조 결승으로 이제동이 2:1 승리, 공식전에서의 첫 만남은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C조 승자전으로 이때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곰TV MSL 시즌1]] 16강 패자전 1경기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르까프전 2세트에서 패하면서 2전전승이 끊겼다. 이어 [[박카스 스타리그 2008]] 16강 A조 1경기에서도 패했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3라운드 위너스리그 결승전 화승전 3세트까지 패하면서 이제동전 3연패를 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화승전 2세트에서 승리하면서 이제동전 3연패를 끊었다.
테란전의 최종병기 [[이영호 (1992년)|이영호]]에게는 매우 약했다. 첫만남은 [[다음 스타리그 2007]] 16강 A조 3경기로 여기선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2007 2차 듀얼토너먼트 C조 승자전에서는 이영호에 패했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KTF전 1세트에서도 패했으며, [[에버 스타리그 2007]] 16강 D조 5경기에서도 패하면서 이영호전 3연패를 했다. 하지만 16강 D조 재경기 3경기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하면서 이영호전 3연패를 끊었다. 이어 비공식전인 [[XNOTE-인텔센트리노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 A조 1경기에서는 다시 이영호에 패배, 3월 열린 올스타 스킨스 매치 이영호전에서는 3:0이었다가 내리 4개의 세트를 내주며 리버스 스윕 3:4 대역전패,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1]] 특별전 4강 B조에서 0:2 완패, 다시 비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올스타전 열정팀전 3세트에서는 마재윤 승리,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KT전 3세트에서 패배, 2라운드 KT전 2세트에서도 패했다.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2:5로 열세,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6:12이다
이전 팀 동료였던 [[변형태]]와는 8차례나 만났었는데, 모두 팽팽했다. 개인리그와 비공식전에서만 만난 기록들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4강 B조 경기에서 마재윤이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스타리그 2007]] 8강 A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서 2:1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2007년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2:1 승리.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4:4로 무승부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6:5로 앞선다.
[[고인규]]와는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SKT전 4세트에서 패했으며, 2007 3차 듀얼토너먼트 E조 1경기에선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아발론 온라인 MSL 2009]] 32강 G조 경기에서는 1경기와 최종전에서만 모두 패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상대전적 1:3로 열세.
[[STX 소울]]의 저그 [[김윤환 (1989년)|김윤환]]과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STX전 5세트에서 패했으며, 14차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L조 승자전에서도 패했다. 그러나 2008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시즌3 7조 최종전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하며 MSL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2라운드 STX전 1세트에서 또 패했다. 상대전적은 1:3로 마재윤이 열세였다.
2009년 8월에 은퇴하여 지금은 없는 [[김준영 (프로게이머)|김준영]]에게도 약했다. [[CYON MSL 2005]] 3차 챌린지 C조 2경기와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한빛전 2세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2라운드 한빛전 4세트에서 패했다. 상대전적은 0:3 무승으로 초약세.
[[안상원]]과는 비공식전에서 먼저 만났었는데, 다음 다이렉트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0:2 완패, 2006 2차 듀얼토너먼트 1조 결승에서 1:2 패배, 공식전에서의 만남들인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온게임넷전 4세트에서 마재윤이 승리했으며, [[곰TV MSL 시즌2]] 32강 B조 최종전에서도 안상원에 승리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며, 14차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L조 최종전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하며 MSL 진출에 성공했다. 공식전만으로는 0:3 열세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4:4 동률이다.
- 이승현(농구선수) . . . . 25회 일치
[목차]
초등학교 5학년 무렵 95Kg이나 나간 몸무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유도를 시작했는데, 유도를 하면서 오히려 살이 더 찌는 바람에(...) 농구로 전업을 해서 농구 선수가 되었다.[* 이때 유도를 계속 하고싶었지만 농구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고, 만약 결승에서 이기면 유도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이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농구를 하면서 살을 30Kg을 뺐고, 키가 크면서 중학 무대와 고교 무대 모두에서 최고급 [[파워 포워드|4번]]-[[센터(농구)|5번]]을 맡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최고의 센터로 불린 이승현을 두고 대학팀 간 경쟁이 붙었고, 거의 연세대로 진로가 확정이 되는 듯 싶던 이승현은 고려대학교 이민형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결국 고려대로 진학하게 되었고, 1학년 부터 주전 자리[* 이전에 1학년부터 [[파워 포워드]]였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의 입학 이전인 1,2학년 시절에는 [[센터(농구)|센터]]를 맡았었고, 이종현 입학 이후 파워 포워드로 전향하게 된다. 2011~2012년 고려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는 [[정희재]]였다. 이승현은 센터 시절에도 입학과 동시에 [[장재석]], 김종규를 제치고 리바운드상을 수상하는 등 적어도 대학농구 내에서는 수위급 [[센터(농구)|5번]]의 면모를 보였다.]를 차지하면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승현이 프로에 와서는 대학시절의 파괴력 넘치던 인사이드 플레이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시 슈터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외곽 플레이의 비중을 늘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승현은 현재 오리온스에서 공격시 외곽과 인사이드의 조합을 1:1정도로 가져가며 [[파워 포워드|4번]]보다는 3.5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들이 기대했던 파괴력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팀에서 궂은일을 하고 외곽에서 필요할때 3점슛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플레이에 대한 팬들의 변명으로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 외에는 포지션의 엄격한 구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추일승]] 감독에 의해 그렇게 플레이하도록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2015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2015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 MVP를 수상하였다. 특히 결승전에서 모교 후배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기량차이를 보여주었다.
'''입단 2년차에 오리온 포워드 농구의 핵심전력이자 KBL의 두목으로 거듭나다''' --2015-16 시즌 농구기자들의 연민의 대상--[* 외국인 선수 수비가 되기에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출전하지 못한 1라운드를 제외하고는 전 경기에 나서서 추일승의 노예로 장신 외국인 선수들을 수비했다. 2월 22일자 바스켓카운트에서 기자들이 노가다 수당이라도 줘야 되는게 아니냐며 동정하는 모습이었고 이는 정규시즌 시상식 최우수수비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외국인 선수들과 하승진을 마크하면서도 그 선수들을 끌어내느라 3점까지 던져가면서 온갖 개고생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15-16 PO MVP를 받게 된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최진수, 장재석과 함께 동부 공격의 중심인 로드 벤슨과 웬델 맥키네스의 멘탈을 뒤흔드는 압박을 선보였고, 시즌 중 매우 떨어졌던 외곽 성공률 때문에 수비를 등한시했던 동부 수비수들에게 빅엿을 날리는 3점슛을 1,2차전 합계 5개나 성공시키면서 홈 2연승의 주축으로 평가받았다. 3차전에서는 2쿼터 중반 무릎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가서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지만, 승부에 쐐기를 박는 4쿼터 3점슛 2방으로 동부를 스윕하고 울산행 티켓을 거머쥐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3차전 기록은 3점슛 4개 포함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인 20점을 득점하였다. ~~이승현 3점 갯수의 절반밖에 못 넣은 동부 선수들은 반성해야된다. 25개 던져서 2개가 뭐냐?~~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상대 빅맨들이 이전까지 붙었던 빅맨들의 상위호환이어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 더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매치업 상대가 하승진인 것을 이용하여 3점을 던지고 있고, 붙으면 돌파까지도 하는 동시에 수비에서는 그동안 갈고 닦았던 대인 방어와 박스아웃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 덕분에 정규시즌에선 잘 나오지 않았던 파울트러블을 많이 기록하기도 했다. 4차전에서는 9점 5리바운드에 그쳤지만 하승진을 9점(필드골 3/9) 9리바운드로 막았고, 5차전에서는 오리온이 패하긴 했지만, 감기몸살에도 불구하고 23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필드골 7/10, 3점슛 5/8)을 기록하면서 하승진(8점 7리바운드 필드골 4/6)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진정한 졌잘싸~~ 6차전에서는 4쿼터 막판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어버리는 연속 5득점 포함 14득점 7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그 결과 그 동안의 개고생[* 4쿼터 중반 허일영의 3점 세레머니 때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한 보답으로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였다!!''' 평균 기록은 [[조 잭슨(농구선수)|조 잭슨]]이, 임팩트 면에서는 [[김동욱(농구선수)|김동욱]]이 좀 더 앞서는 느낌이 있어 수상에 약간의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도 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최고조의 컨디션을 보이던 하승진을 잠궈버린 수비공헌도와 기록,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수상에 부족함은 없다.
2월 초 부상에서 복귀하였는데, 수비는 여전하지만 공격에서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 팬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2월 15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개인통산 한 경기 최다 득점인 33점을 쓸어담는 활약을 선보여 자신이 왜 KBL의 두목인지를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이 경기를 승리함으로써 선두권과의 격차를 한 경기로 좁혔다.
2017 윌리엄 존스컵에 같이 군에 입대한 [[허웅(농구선수)|허웅]], [[임동섭]]과 함께 발탁되었다. 1차전 대만 B전에 18득점 3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경기 중 좋은 슛감을 뽐냈고, 대만의 귀화 용병 선수를 잘 막아 대만 B전의 승리를 이끌었다.
신장은 197cm로 아주 큰건 아니지만 웨이트가 105kg이기 때문에 버티는 힘이 상당하다. 대학때는 포스트업을 곧 잘 쳤지만 프로에서는 조금은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년차때는 좀 더 힘도 좋아져서 포스트업도 비교적 잘 먹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 득점은 외곽 3점슛, 롱2가 주력이고 속공 참여로 받아먹는 모습도 능하다.
이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용병 수비가 가능하다는 점. 용병을 상대로 압도하진 못하더라도 버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팀의 수비옵션이 더 늘어난다. 더불어 수비의 마무리라는 리바운드도 2년차때 상당히 업그레이드 되었다. 또한 상당히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인사이드에서 자리를 잡다가도 상대 앞선에 가드가 막히는 것 같으면 하이로 와서 스크린을 서주는 등 높은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볼 없는 움직임도 상당히 좋은 편. 2m가 안되는 신장에 비교적 평범한 윙스팬, 낮은 점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리바운드를 비롯한 볼 경합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낙구지점 파악 능력이 굉장히 좋으며, 볼 없는 움직임도 우수하며 BQ까지 높기 때문에 탭아웃이나 박스아웃에 의한 타 선수들의 리바운드 가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안티들은 빅맨인데 리바 스탯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면서 깐다~~
다만 슈팅 모션이 느리기 때문에 오픈찬스가 아니면 득점하기 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체력 저하가 시작되는 3쿼터 막판부터 야투 성공률이 급감한다는 단점이 있다.[* 70점 이하의 득점으로 패배하는 경기를 보면 이 단점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지샷도 놓치는 모습이 4라운드 이후 점차 늘어나는 추세.] 문제는 1대1 능력이 부족하다는점. 본인이 공을 잡고 득점하는 기술이 거의 없으며, 라이벌이자 동기인 김준일에 비해 밀린다고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KBL이 용병이 에이스롤을 맡아 국내선수는 롤플레이어 역할로 그쳐도 크게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대학때 모습에 비하면 아쉽다. 물론 워낙 BQ가 좋고 볼 없는 움직임도 좋은 선수라 매경기 10점 정도는 가능하다. 그 외에는 속공 가담 후 받아 먹기나, 포스트업 이후 페이드 어웨이 점퍼. 조 잭슨이 살아나면서 볼 없는 움직임이 좋은 이승현도 덩달아 득점력이 상승하기도 했다. 16-17시즌 이후에는 포지션의 구분없이 피지컬에서 미스매치가 나면 곧장 인사이드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이에따라 포스트업이나 훅슛 등 공격스킬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여 페인트존 공격기술이 없다는 비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1라운드 1순위로 프로에 지명된 이후, 첫해엔 신인상만 타고 우승엔 인연이 없었지만 2년차엔 팀의 주축으로 도약하면서 팀을 14년만의 챔피언을 이끌고 본인은 챔결 MVP까지 수상했다.
* 이승현에 이어 2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한 [[김준일]]과는 선의의 라이벌 관계이자 오랜 친구사이이다. 1년차때는 실제 신인왕 경쟁을 치열하게 다퉜는데 마지막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한 이승현이 신인왕을 차지했다. 팀 성적 역시 이승현이 더 좋은것도 컸다. 다만 김준일이 끝까지 경쟁력이 있었던건 용병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공격해 득점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신인왕 평가 기준이 전에 비해 팀 성적을 덜 보는 풍토가 시작된 점도 컸다. 둘 다 상당히 힘이 좋은 선수들인데 이승현의 말로는 순수 힘에서는 [[김준일]]이 본인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2년차 이후 완전히 변하게 되었는데, 1년차에는 비교적 비교가 가능했다면 2년차에는 김준일이 PO에서 보여준 삽질과 비교되어 이승현에게 미안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 이윤열 . . . . 25회 일치
2001년 데뷔 후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당시 임요환의 뒤를 잇는 새로운 신예 테란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들어 전성기를 맞이한 이윤열은 그 당시 개인리그 중 하나였던 iTV 랭킹전에서 임요환과 변길섭을 꺾고 2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KPGA(MSL의 전신)에서 3연속 우승을 하면서 기염을 토했다. 특히 2003년 초반엔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배스킨라빈스배 2002 KPGA 4차리그는 물론 GhemTV 3차 스타리그까지 동시에 석권하면서 전무후무한 그랜드 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Stout MSL에서 준우승, 천적 최연성의 등장으로 기세가 조금 꺾이긴 하였지만 꾸준히 MSL 결승에 오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5년에는 IOPS 스타리그에서 당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던 저그 박성준을 3:0으로 완파하고 우승하였다. 또한 2006년 11월 18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 우승을 차지하며 골든 마우스의 첫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골든 마우스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부상으로, 이윤열과 박성준(STX SouL), 이제동(화승 OZ), 이영호(KT 롤스터)만이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Sony Ericsson STARCRAFT 2 OPEN Season 3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겪었으며 심지어 본선진출조차 하지 못했다. 라이벌 임요환이
* [[2002년]] iTV 랭킹전 3차리그 우승 (3:1 [[임요환]])
* 2002년 2002년 KPGA 투어 1차리그 8강
* 2002년 GhemTV 1차 스타리그 3위
* 2002년 '''2002년 리복배 KPGA 투어 2차리그 우승''' (3:2 [[홍진호]])
* 2002년 iTV 랭킹전 4차리그 우승 (3:0 [[변길섭]])
* 2002년 GhemTV 2차 스타리그 8강
* 2002년 '''2002년 펩시트위스트배 KPGA 투어 3차리그 우승''' (3:0 [[박정석]])
* 2002년 '''2002년 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리그 우승''' (3:2 [[조용호]])
* 2003년 GhemTV 3차 스타리그 우승 (3:0 [[강도경]])
* 최초의 단일대회 3회 연속 우승 (2002 KPGA 2차/3차/4차리그, 2002~2003년)
| 현재 요약 아래 = [[2002년 리복배 KPGA 투어 2차리그]], [[2002년 펩시트위스트배 KPGA 투어 3차리그]], <br />[[2002년 스타우트 & 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리그]] 우승
|내용='''[[MBC게임 스타리그|MSL]] 우승자''' <br /> '''[[MBC게임 스타리그#2002년 KPGA 2차리그 (리복)|리복배 2002 KPGA 2차리그]]'''<br>'''[[MBC게임 스타리그|펩시트위스트배 2002 KPGA 3차리그]]'''<br>'''[[MBC게임 스타리그|2002년 스타우트 & 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리그]]'''
- 임수정(탤런트) . . . . 25회 일치
[목차]
2005년 많은 인기를 얻은 그녀는 영화 《새드무비》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높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최고의 주가였던 임수정을 포함 [[정우성]], [[신민아]], [[염정아]], [[차태현]], [[손태영]], [[이기우(배우)|이기우]], [[여진구]]가 나오는데 흥행하지 못한 게 신기할 뿐;; 정우성이 2000년대 중반 놈놈놈을 제외하고 '새드무비’ ‘데이지’ ‘[[중천(영화)|중천]]’ ‘호우시절’ ‘검우강호’ ‘아테나: 전쟁의 여신’까지 모조리 망해가던 침체기였고 임수정도 거품이라는 말이 생기던 시점에서 차기작을 흥행필패로 여겨져서 여배우건 남배우건 기피하던 동물영화로 선택했다. 영화 《각설탕》 이 그것이다. 2006년 개봉한 영화는 동시기에 개봉한 《[[괴물(영화)|괴물]]》 강세 속에서도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이 작품의 후속작은 [[김태희]]가 출연하여 16만 관객으로 폭망~~
곧이어 2007년 개봉한 《[[행복(한국 영화)|행복]]》에서는 다소 나이 차가 있는 [[황정민]]과 커플 연기[* 당시 영화 개봉 전 나온 예고편에서의 베드신과 영화 내용 때문에 [[황정민]]은 없던 안티 카페가 생겨 버렸다.(...)]를 보여주었다. 그 동안의 소녀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나왔다. 2006년에 이어 2007년 역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은 [[허진호]] 감독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이다.
이후 휴식을 취하며 차기작을 고르다가 2010년 뮤지컬 원작의 《[[김종욱 찾기(영화)|김종욱 찾기]]》에 [[공유(배우)|공유]]와 함께 촬영을 했고 그 해 12월에 개봉이 되었다.
예능은 아니지만 2010년 12월 [[라디오]] 방송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좋아 라디오 고정 출연하는게 어떻냐고 했을 정도. ~~이왕에 고정출연 좀 따내지.~~ 그리고 2012년 10월, MBC 라디오 '성시경의 음악도시' 에 일주일간 임시 DJ를 맡기도 했다. 평은 좋은 편이어서 다음 개편 때 프로그램 하나 맡아 보는 게 어떻겠냐는 대화도 오갔다. [* 아쉽게도 내 아내의 모든것의 연정인처럼 통통튀는 목소리나 투덜이가 아닌, 평소의 진중하고 진한 목소리로 1주일간 놀다가 갔다. ;; 초반에 신청곡 바이브의 노래를 언급하다가 5번정도 말이 꼬여서 잔실수를 했고, 임수정 갤러리에서는 바이브CD조공으로 화답했다.] 1주일간의 임시 DJ 활동 중 마지막 곡은 본인이 부른 제비꽃 이었고, DJ맛에 푹 빠졌는지 2013년 개인 팬미팅에서도 DJ식으로 본인이 진행하며 라디오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다. 예능보다는 라디오 고정출연이 차라리 빠를 듯.
그리고 2017년 10월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김제동의 톡투유]] 이후로 2년만의 예능 출연.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 차영군 || 737,165명 || ||
* [[현대자동차]] [[i30]] :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나온 광고로 '달라 달라 달라 난 달라'라는 가사의 '달라송'이 묘한 느낌을 준다.
2007년 야심만만에서 [[슈퍼주니어]]의 멤버 [[기범]]이 두 차례 언급하였다. 7월 17일 방송분에서 언급한 내용은 꿈에서 3일 연속으로 미녀와 데이트를 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고 꿈에서 깨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임수정이었다는 내용. 11월 26일 두번째 언급에는 그 발언 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직접 봤는데 앞에서 말한 내용 때문에 부끄러워서 마주칠수가 없었다는 내용. [[http://www.tvreport.co.kr/ArticleShellView.asp?art_id=200707170004|#]] [[http://www.tvreport.co.kr/ArticleShellView.asp?art_id=200711270004|#]]
>난 원래 ‘장화, 홍련’의 수미에 가깝다. 차갑고 어둡고 건조하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표정도 없다. 이번 연기 속에서 나는 변했다. 긴장되고 갇혀져 있던 것에서 열림으로, 차가운 것에서 따뜻함으로.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됐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소녀인데 여자인… 이런 복합적인 민아의 캐릭터가 나를 끌어당겼다. 민아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왼손가락에 장애를 갖고 있다. 처음 연기에 고민했다. 장애의 슬픔과 10대의 사랑이 내 안에서 충돌했기 때문이다. 장애를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마음속 멍울로 해석하면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실제 내 손은 아주 차갑다. 낯선 이와 악수할 때는 쑥스럽고 미안한 감정도 든다. 민아도 그런 감정의 상태가 아닐까.
> 저는 처음에 언니를 '학교 4'에서 봤어요. 너무 예쁜 언니가 나와서 이름도 외워놓고 한참 예쁘다 그러고 있었는데 '장화 홍련'의 장화 역에 임수정이라는 언니가 됐대요. 리딩하러 가서 처음 봤는데 언니 첫 인상이 좋았어요. 제가 좋아했던 사람이라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이쁘고 언니가 차가운 매력도 있고, 너무 설레여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촬영을 하면서 언니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면서 배울게 많은 언니구나 그런 생각도 많이 들고. 언니가 매력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줘요. 만날때마다 사람을 반하게 하는 그런 점이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요만큼 좋다가 다음에는 이만큼 좋고. 촬영할때는 그냥 그랬던 언니가 촬영끝나고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어요.
> 오디션 때 임수정은 다른 또래 연기자들과 달리 말의 깊이가 느껴졌다. 다른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말이 붕붕 떠다니는 듯했는데, 수정이랑 말할 때는 말이 착 달라 붙는 것 같았다. 또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폐쇄적인 부분이 있었다.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사회성도 없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사려깊게 생각하고. 이미지로는 그 또래 다른 연기자들이 발랄하고 가볍고 거침없고, 여성이기보다 중성적으로 다가왔는데 수정이는 고전적인 의미의 여성스러움과 차가움을 주는 것 같았다.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차가운 카리스마랄까, 그리고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느낌도 각별했고. 또 입술이 도톰하면서도 약간 위로 올라간 게 외형적으로도 매력적이었다. 막 물에서 건져내 씻은 복숭아 같은 상쾌함이랄까.
> '장화 홍련’을 찍을 때 촬영장에 찾아가 임수정을 훔쳐봤다. 소녀같이 작고, 맨발에 창백한 얼굴, 차갑고 도도하고 자존심 센 분위기가 좋았다. ‘예뻐서 배우 된’ 것과는 달랐다. 그런데 임수정과 대면하니 생각보다 키가 크더라...
> 지난해 임수정은 ‘장화,홍련’ ‘…ing’ 등 두 편의 영화로 스크린 무대에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말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다시피한 이유도 그녀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이다. ‘2004년 모든 상을 휩쓸 것 같다’(오정완) 등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높다. ‘연기를 잘하는,진중한 배우’(오승욱) ‘가능성이 열려 있는 스펙트럼이 기대되는 배우’(송해성) 등 그녀에 대한 평가는 가능성에 집중돼 있다. 아직 차기작을 고르지 않은 임수정. 50인 가운데 무려 13명이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참고적으로 이 때 뽑힌 배우는 윤진서, 강혜정 등)
> 항상 차분하면서도 대범한 면이 있어요. 신인답지 않게 긴장하지도 않는 것 같고요. 평소엔 착한 여동생 같은데, 함께 연기를 할 때 보면 만만치 않은 파워가 느껴지는 잠재력 있는 배우예요.
"작품에 캐스팅 된 배우들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것이다. 나는 그걸 탐하지 않고 보며 감탄할 뿐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사실 대박난 작품의 경우 간단한 캐스팅 제의만 받거나 시나리오만 받았을 뿐이거나 심지어 관련조차 없는데도 "이거 원래 내 역이었음. 근데 다른애가 해서 대박친거임"라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연예인들이 많다.]
2003년경 '[[얼짱]]' 열풍이 일었을 때 [[박한별]]과 같이 얼짱 연예인의 대표격으로 보도가 되었는데, 임수정은 얼짱 출신이 아니다. 임수정 본인조차 카페에 해명글을 올릴 정도. --그런데 그 중 한 명인 5세 아래의 [[구혜선]]과 알고 지낸다는 것--
[[은지원]], [[장나라]]와 더불어 동안으로 유명하다. [[장화, 홍련]]에서도 여동생 역의 [[문근영]]보다 엄마 역의 [[염정아]]와의 나이차가 더 적었을 정도.
- 정형돈 . . . . 25회 일치
* [[KBS]] 《쇼! 행운열차 - 별것도 아닌 뉴스, 요리천하, 범벅스 합창단, 작전타임》
*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차승원의 헬스클럽》
* 좋은 운전 캠페인 - 주차선 지키기
* 1차 - 2011년 6월 28일 20:40 ~ 21:35 (쇼핑호스트 - 박소윤, 이민웅)
* 2차 - 2011년 7월 19일 22:40 ~ 23:30 (쇼핑호스트 - 박소윤)
* 3차 - 2011년 8월 23일 21:40 ~ 22:40 (쇼핑호스트 - 박소윤, 최유석)
* 4차 - 2011년 9월 27일 21:40 ~ 22:40 (쇼핑호스트 - 박소윤)
* 5차 - 2011년 10월 19일 19:35 ~ 20:40 (쇼핑호스트 - 김세은, 최유석)
* 6차 - 2011년 11월 9일 22:40 ~ 23:50 (쇼핑호스트 - 김세은, 심용수)
* 8차 - 2011년 12월 7일 19:40 ~ 20:40 (쇼핑호스트 - 김세은, 심용수)
* 12차 - 2012년 1월 11일 18:40 ~ 19:40 (쇼핑호스트 - 김세은, 심용수)
* 15차 - 2012년 2월 7일 18:40 ~ 19:40 (쇼핑호스트 - 김세은, 심용수)
* 21차 - 2012년 3월 27일 21:40 ~ 22:40 (쇼핑호스트 - 김수연, 심용수)
* 24차 - 2012년 4월 25일 18:40 ~ 19:40 (쇼핑호스트 - 장지은, 심용수)
* 28차 - 2012년 5월 28일 19:35 ~ 20:40 (쇼핑호스트 - 김수연, 심용수)
* 33차 - 2012년 6월 26일 19:35 ~ 20:40 (쇼핑호스트 - 장지은, 심용수)
* 38차 - 2012년 7월 24일 19:35 ~ 20:40 (쇼핑호스트 - 김수연, 심용수)
* 42차 - 2012년 8월 21일 21:40 ~ 22:45 (쇼핑호스트 - 김수연, 심용수)
* 46차 - 2012년 9월 17일 21:40 ~ 22:45 (쇼핑호스트 - 김세은, 심용수)
* 50차 - 2012년 10월 24일 19:35 ~ 20:35 (쇼핑호스트 - 김세은, 최유석)
- 이시영(배우) . . . . 24회 일치
[목차]
[[네이버]] 뉴스 댓글 등의 포탈 댓글란에서는 전진 [[빠]]순 파워가 더해져 자신의 취미를 강요하는 안 좋은 아내의 표본이라며 대차게 까이고 있지만 [[루리웹]] [[프라모델]] 게시판이나 [[이글루스]] 등에서는 상대인 전진이 아내 취미 하나 이해해주지 못하고, 억지로 자기 소원을 강요하며 주도권이나 잡으려하는 못된 남편이라고 욕을 먹고 있다(…).
그러나 2010년 맨즈헬스 인터뷰에 따르면 프라모델 수집은 상당히 오래된 취미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프라모델 모두 본인 소장품인 듯 하며[* 30여 개 이상 모았단다.], 배우 데뷔 초에 일거리가 없어 취미 삼아 시작했다고 한다. 홍석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베어브릭이 장식된 걸 보고는 반가웠다고. 일반적인 [[서브컬쳐]]의 매니아들처럼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프라모델을 접한 게 아니라, 프라모델을 먼저 접한 케이스. 때문에 우결의 경우 이시영의 취미를 오타쿠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제작진측의 캐릭터 만들기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하는 거지 서브컬쳐를 즐기는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인데 프라모델을 다루는게 오타쿠가 아니냐고 하면 사실 미묘한 부분이다. 일반 밀리터리물이나 자동차 프라모델러에서 건프라로 넘어온 사람들이 특히 자신은 '''건프라는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는 거나 남이 만든 완성품을 모으는 게 아니고 만드는 과정도 즐기는 쪽이다. 일본에서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좋아하면 훌륭한 오타쿠이기 때문이다. 단지, '서브컬쳐 -> 피규어' 순으로 빠져든 매니아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피규어 모으기가 취미"라고 하면 이쪽인 경우도 적지만 있다.[* YG의 [[양현석]]이나 MBK의 [[김광수(음반기획자)|김광수]], 드림팩토리의 [[이승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아톰인형 매니아로 알려진 [[조민기]]도 아톰의 스토리 자체를 파고들기 보다는 '아톰 인형(피규어)'에 꽂혀사는 경우이다. 베어브릭 같은 류의 캐쥬얼한 피규어쪽으로 빠지자면 그 수는 더 많다. [[이승연]]도 남편의 취미를 따라 베어브릭을 모으고 빅뱅의 [[탑]] 역시 베어브릭 수집매니아. [[원피스(만화)]]같은 경우에도 피규어 퀄리티가 좋은 편이라 만화책은 제대로 안 읽고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건담과 일반 인형 매니아를 동일시 하면 곤란하다. 여자아이들의 인형 취미와 건프라가 똑같겠는가? 어찌 부정해도 건프라를 좋아하는 이상 일단 오타쿠라 봐야 할 점은 사실이겠다. [*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3/read/31977670|여기서도 그렇지만]] 건프라를 좋아하면 충분히 오타쿠로 여겨진다.]
2009년 6월 19일 [[전진(신화)|전진]]과 봄부터 사귀어왔던 실제 연인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나, 2009년 9월 3일, 전진과 결별 뉴스가 나왔다. 원인은 성격 차이, 스케줄 문제, 소속사 문제, 전진의 허리뼈 부상 발견, 서로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차원에서의 이별 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뭐 연예인도 사람이니 여러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하기 마련이지만..
2015년 5월, 6월 방영된 [[OCN]]의 미니시리즈 [[아름다운 나의 신부]]의 차윤미 역으로 출연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 취득 이력에 대해 참 화려했으니 남들은 1종보통 또는 2종 보통만 취득하는데, 본인은 2종 소형에 1종 대형과 특수 트레일러까지 취득했다.--이러다 특수 래커까지 따면 유명인중에 차량운전 마스터할 수 있으니까 능력자로 등극되는거다.--
2010년 11월 28일 2010 KBI(한국권투인협회)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 '여자부 -50kg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기사가 났다. 예선전에서는 KO승, 결승에서는 판정승을 거뒀다는 듯.
2012년 7월 7일 제42회 서울시장배 아마추어복싱대회 겸 제93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여자부 48kg 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해당 체급에 출전 선수는 3명뿐이었다는 점에서, 빈약한 여자 복싱의 상황을 엿볼수 있다. 어쨌든, 두명의 선수를 각각 준결승에서 20-0, 결승에서 21-7 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이름 그대로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우승시 전국체전에 나갈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어야 하는데, 출전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국체전에 여자부 48kg 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회의 51kg 급 우승자와 평가전을 추진하여 전국체전 출전권을 노릴 예정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618|관련기사]] 전국체전에는 출전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한국체대 소속의 국가대표 선수와 대전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53399|관련기사]]
2012년 12월 7~11일 제66회 전국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겸 2013 국가대표 1차선발대회 에 여자부 48kg 급에 출전했다. 같은 체급의 출전 선수는 5명인데, 대진 뽑기운은 정말 없는지 부전승 없이 3전을 치룬다. [* 출전 선수가 5명이므로 3명은 부전승으로 바로 준결승행이지만, 나머지 2명은 한 경기 더 치뤄야 하는데 그 2명중 1명에 걸렸다.] 12월 7일 1차전에서 18-16으로 승리했고, 12월 10일 준결승에서는 7-1로 승리했다. 12월 11일 결승전에서는 박초롱 선수에게 4-10으로 판정패 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공식전 첫패배이며 현재까지 공식전적은 9전 8승 1패. 국가 대표 선발은 1차전 1,2위, 2차전 1,2위가 크로스토너먼트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시영은 2위 자격으로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진출하게 됐다.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2/12/11/1007000000AKR20121211108251007.HTML|관련기사]]
2013년 4월 23일부터 시작된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출전했다. 대전 상대는 2차전 48kg급에서 1위를 한 김다솜 선수. 만약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당당하게 태극 마크를 획득하게 된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101633|관련기사]] 당초 이시영의 무릎 부상으로 인한 훈련량 부족으로 고전이 예상됐다.
갑자기 배우와 병행해 복싱 선수의 길을 걷자 당연히 논란이 있었지만 대다수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단히 호의적인 편. 사실 연예인이 이런 투잡(?)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레이서로 활약하고 있는 [[류시원]], [[이세창]] 뿐만 아니라 연예인 중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으면 OO홍보대사를 맡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연예인들 중 상당수가 간판만 그럴싸하게 달고 실제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이시영은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꾸준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물론 종목과 난이도,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솔비의 피겨스케이팅과 비교할 때 이시영의 성장은 매우 뚜렷하게 결과로 증명된 것이다.]
2015년 6월 30일 '이시영의 섹스동영상이 발견돼 검찰이 조사중'이라는 내용의 속칭 '찌라시(증권가 정보지)'가 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 확대 재생산됐다.
|| 2015년 || OCN || [[아름다운 나의 신부]] || 차윤미 ||
- 장갑차 . . . . 24회 일치
장갑을 씌운 [[자동차]]. 통상 차량과 달리 두꺼운 장갑이 사용되어서 높은 방어력을 얻는다.
장갑차라는 의미가 장갑이 달린 차라는 의미기에 일반 승용차도 장갑을 달면 장갑차라 부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장갑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군대에서 쓰는 군용 장갑차량이 많다. 그리고 군용이라 해도 흔히 탱크라 부르는 현대의 전차와도 구분하는 이미지.
많은 장갑차들이 화기를 장비하고 있으나 전차에 비하면 딸린다.
장갑차가 전쟁터에서 처음 사용된 1910년대에는 "장갑을 씌운 자동차=닥치고 장갑차"로 분류되었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고 여러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여러 종류로 나뉘게 되었다.
=== 병력수송장갑차 ===
병력을 수송하는데 중점을 둔 장갑차. "전장의 택시"로써의 능력에만 중점을 뒀기에 자체적인 전투 능력은 보병전투차보다 떨어진다.
대표적인 APC로는 소련의 BTR 계열 차량들이나 미국의 M113, 대한민국의 K200이 있다.
=== 보병전투차 ===
병력을 수송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전투 능력에도 중점을 둔 장갑차. 대부분의 APC가 기관총으로 무장한다면 대부분의 IFV는 기관포로 무장한다. 여기에 적지 않은 IFV가 대전차미사일을 달고다닌다.
대표적인 IFV로는 소련의 BMP 계열 차량들이나 미국의 M2 브래들리, 대한민국의 K21이 있다.
=== 정찰장갑차 ===
말 그대로 정찰 임무에 쓰이는 장갑차. 솔직히 널리 쓰이지는 않고 몇몇 군대에서나 사용한다.
- 정인숙 (1945년) . . . . 24회 일치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에 의해 살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2829&mcode= 믿을 수 있는 인터넷 언론 CNBNEWS<!--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3>[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70314114210288&p=hankooki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정인숙은 현장에서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정인숙은 [[1945년]] [[2월 13일]] [[대구직할시|대구]] 남산동에서 후일 해방 뒤 대구직할시 부시장을 지낸 [[정도환]]과 부인 전덕조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도환은 자수성가형 인물로, 행정공무원으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권에서 대구부시장까지 올라갔다. 아들만 넷을 둔 정도환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그의 형제는 7남매로 위로 오빠 다섯 명과, 쌍둥이 자매가 1명 있었다. 쌍둥이 딸이 태어나자 정도환은‘금이야 옥이야’길렀는데 이름도 금지(金枝)와 옥지(玉枝)로 했다. 두 쌍둥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옥지는 생후 1년 반 만에 병사하고, 살아남은 금지가 후일의 정인숙이다.
정인숙은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출처|날짜=2014-3-2|자존심 강하고 다소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에게는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 하나를 따로 두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 정도환은 본래 자식 교육에 엄격하였는데, 정인숙의 오빠들 중에는 자신들에게는 차비도 짜게 줄 만큼 인색하면서 딸 하나 둔 것을 버릇없이 길렀다며 불평불만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터울 차이가 났던 두 오빠는 일찍 결혼하여 분가하였으나, 정인숙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정인숙은 장사공과의 동거 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비밀요정을 경영하던 마담 김씨를 만난다. 그리고 김마담의 소개로 패션모델로 몇 차례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인숙은 김마담이 경영하는 서울 한남동 고급 요정에 접대부로 나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뒤 유명한 요정 선운각으로 옮겼다. 타고난 미모와 영어실력으로 얼마 뒤 선운각의 인기 있는 1급 접대부가 되었다.
고급 요정에 종사하며 큰 돈을 거머쥐면서 씀씀이도 늘어났는데, 선운각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대한민국 정치계 인물인 모 씨다. 모씨와 계속 만나다가 그를 통해 [[민주공화당 (대한민국)|공화당]]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도 만나게 됐다. 그때부터 그녀는 저명인사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한다. 그 뒤 또다른 정부 고위 인사 모씨를 만났고, 그와는 관계는 석 달 남짓 계속된다. 그러다가 당시 그녀의 미모를 접한 정부의 각료 모 씨가 정부인사 모 씨와 한달간 그녀를 서로 차지하려고 갈등하였고, 그 뒤 정인숙은 선운각을 그만두고 비밀요정으로 옮긴다.
{{인용문2|청와대 모임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2백여명의 아가씨들이 차출됐는데, 그 중에서 성적순으로 50명을 뽑고, 다시 신원 조회를 통해 25명을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모 순으로 다섯 명을 뽑았습니다. 5명 중 정인숙이 1등으로 뽑혔지요.<ref name="ilsa01"/>}}
출국을 한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갑갑해 한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국내로 들어온 정인숙은 홀로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이 때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 쓰는 사람들을 상대했고, 재일교포와 사업가 등 유력 인사들이 그녀를 거쳐 갔다. [[1969년]] [[10월 10일]] [[국무총리]] [[정일권]]의 주선으로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주변에게“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 한때는“이젠 미국 안 갈래”라고 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17일]] 낮, 자동차 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 6기통짜리를 흥정을 했다.
내가 카운터에 앉자 그 여인은 나한테 술을 한잔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이런 경우 술을 권하는 사람은 대체로 남자 쪽이 아닌가? 나는 솔직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쑥스러웠다. 내 느낌으로는 그녀에게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인데다가 우울한 분위기였다. 더욱 더 나를 묘하게 만든 일은 그녀가 밴드에게 연주해 달라고 주문한 노래 때문이었다. 그 노래는 ‘릴리스 미(Release Me)’였다. 이것은 영국의 엥겔버트 험퍼딩크라는 가수가 부른 곡이고 그 당시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하고 있었다. “나를 좀 놔 주세요. 떠나갈 수 있게 놔 주세요.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나한테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답니다. 당신의 입술은 차갑지만 그이의 입술은 따뜻합니다.” 이런 가사 내용이다.<ref name="han01"/>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에 의해 살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2829&mcode= 믿을 수 있는 인터넷 언론 CNBNEWS<!--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3>[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70314114210288&p=hankooki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정인숙은 현장에서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사후 현장에 있던 친정 오빠 정종욱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사고 당시 발표에 의하면 '정종욱은 난잡한 생활을 하는 데다 자신을 멸시하는 동생을 죽일 결심을 하고 소지하던 권총으로 살해 했다', '정인숙을 쏜 후 혐의점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를 쐈다'고 발표했으나 정종욱은 진술에서 건너편 차선에 의문의 차량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정인숙의 자택에서 발견된 포켓용 수첩과 장부에 적힌 이름과 일시, 장소, 명단 때문에 희대의 정치스캔들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시 경찰과 검찰 직원의 부주의로 언론에 드러난 정인숙의 수첩에는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김형욱]]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장관, 차관급 인사들, [[대한민국 국군]] 장성, 5대 재벌그룹 회장,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 27명을 포함한 권력 실세들 수십여 명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ref>[[이제는 말할 수 있다]]'땅에 묻은 스캔들-정인숙 피살사건' 2000년 10월 8일 26회</ref>
조윤형 의원은 또 이 사건에 청부살인의 혐의가 없는가, 검찰이 [[3월 22일]] 밤까지 철야 신문하면서 복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변호사]]를 접근조차 못하게 해서 정씨를 범인으로 자백케 한 것은 아닌가, 정종욱이 병원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 없고 모 인사를 불러달라고 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ref name="kim101">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1페이지</ref><ref>여영무, <추척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동아일보사, 1983) 171</ref> [[조윤형]] 의원에 이어 [[신민당]]의 [[김상현]]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과 정인숙이 관계했을지도 모른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ref name="kim101"/>
김상현의 발언은 즉각 본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민주공화당 (대한민국)|공화당]] [[차지철]] 의원을 필두로 고함과 욕설이 튀어나왔고, 이에 맞서 신민당 의원들도 고함을 지르며 공화당 의원들과 맞섰다. 한 여인의 의문에 찬 죽음은 국회 본회의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의 호기심만 부채질했을 뿐이었다.<ref name="kim101"/> 야당에서는 그의 암살 사건을 정치 공세로 활용하려 했고, 정부와 공화당은 이를 수습하려 했다.
사망 사건 당시 경찰 발표에 의하면 “정인숙이 요정에 나가면서 많은 남자와 사귀었고, 심지어 아들까지 낳아 기르는 등 사생활이 좋지 않아 운전을 하던 오빠(정종욱씨)가 권총으로 살해했다.<ref name="han01"/>” 이것이 사건의 개요였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은 오빠인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해 누이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동생의 문란한 행실을 보다 못한 오빠 정종욱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 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다.<ref name="jon0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070585&ctg=-1 정인숙 피살 사건 미스터리 의혹 ‘누가 정인숙을 죽였나?’] 중앙일보 2010년 03월 20일자</ref> 사건에 대한 의혹은 지난 40년간 계속됐다. 당시 사건 수사가 정인숙 여인 주변에 대해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빠의 범행동기가 석연치 않았으며 중요한 범행현장인 사고차량은 사건발생 몇시간만에 다른 곳으로 치워버렸다. 무엇보다 범행도구인 권총조차 발견하지 못했다.<ref name="jon01"/>
[[201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검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당시 수사기록의 공개를 요청, 현장감식 기록, 그리고 피해자 정인숙의 부검기록 등을 입수했다. 아울러 의문의 총기사진을 바탕으로,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권총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해 나갔다.<ref name="kyung0101"/> 사건 검증 결과 직접 차량 안에서 총격을 가하지 않고도 정인숙을 저격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SBS‘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정인숙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을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다각도로 조명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오빠 정종욱씨와 함께 검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당시 수사기록의 공개를 요청, 현장감식 기록과 피해자 정인숙의 부검기록 등을 입수했다.<ref name="jon01"/>
제작진은 이를 근거로 오빠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만든 결정적인 증거였던 탄도검사와 화약흔 반응 등이 또 다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봤다. 당시 수사기관은 소매 끝에서 나온 화약흔 반응을 근거로 총을 쏘지 않았다면 오빠의 소매끝에서 화약흔이 나올리 없다며 오빠 정종욱씨의 범행을 확신했다.<ref name="jon01"/> 하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이 당시 사고차량의 내부와 동일한 크기의 세트를 바탕으로 총기발사 실험을 한 결과, 정종욱씨의 주장처럼 직접 총을 쏘지 않은 상황에서도 화약흔이 검출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ref name="jon01"/>
[[2000년]]대 이후 정성일의 생부가 정일권이라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2007년]] 초 언론의 취재 결과 당시 주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숨겨진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실체를 벗고 있다. 일요신문은 정성일의 판사 납치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 당시의 여야 국회의원을 찾아다녔고, 이들에 따르면 정 씨의 친아버지는 정일권 전 총리일 가능성이 높으며 정 전 총리는 정 씨 측의 요구로 생전에 적잖은 금전적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 여인의 살해범은 그 가족들조차 넷째오빠로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f name="ilyo01"/>
60~70년대 중정에 몸담았던 이 아무개 전 의원은 “정인숙의 둘째오빠와 고교 동창생으로 아주 친한 사이여서 비교적 그 집안 사정을 잘 안다. 선친은 대구부시장을 지낼 정도로 집안이 괜찮았고 형제들도 모두 똑똑했다. 그런데 다른 형제들에 비해 넷째가 변변한 직업이 없었고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서 좀 따돌림을 당했던 것 같다. 그런 오빠를 안되게 여겨 정인숙이 운전기사로 자신의 일을 돕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돈 씀씀이가 헤퍼 형제들은 물론 여동생과도 불화가 잦았다고 한다”고 전했다.<ref name="ilyo01"/> 이 전 의원은 “사고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친구를 비롯한 그 가족들 모두 넷째오빠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다. 가족들이 그렇게 확신하는데 무슨 다른 의문이 있을 수 있나. 그래서 지금도 넷째는 가족들과 왕래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 친구는 ‘어떻게 우리 집안에 이런 일이 생기나. 오빠가 동생을 돈 때문에 쏴 죽이다니. 정말 집안 망신이다’라며 심하게 자괴했다”고 전했다.<ref name="ilyo01"/>
한편 정성일은 [[2005년]] 귀국하기 전까지 15년 이상 [[미국]] LA에 머물렀는데 당시 한인사회에서는 비교적 정 씨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교포사회의 한 관계자는 “이곳 현지 명문대 출신으로 화술이 좋고 생김새가 번듯했던 정 씨는 자동차 세일즈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하는 일에 비해서 씀씀이도 컸고, 스캔들도 제법 많았다. 자신을 ‘정 전 총리의 아들’이라고 자랑삼아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항간에는 정 전 총리로부터 많은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전했다.<ref name="ilyo01"/>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정인숙을 혹평하였다. 정숙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밤이면 밤마다 성욕에 미친 여자로 혹평했으며, 대통령과 총리, 재벌 회장, 고위 관료들이 모두 연루되어 있어 김형욱의 중정에서조차 처치 곤란해서 쩔쩔맸다고 한다.<ref>김형욱 회고록 참조</ref>
- 창원시 . . . . 24회 일치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는 바둑판 모양의 주택가 '''설경'''.[* 창원지역은 '''정말로 눈이 안 오는 지역이다.''' 창원뿐만 아니라 [[부울경]] 쪽에는 거의 눈이 안 온다. 몇 년에 한 번씩 눈이 나풀거리기라도 하면 SNS에 마구 올라오며, 적설량이 3cm를 넘어가면 마산합포구 일대의 산복도로는 교통지옥이 되어버린다. 제설차 따위는 당연히 본 적도 없고, 사람들이 눈길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모른다. 체인이라는 것도 자동차 처음 살 때 끼워주지 않으면 구비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리고 눈이 1cm라도 쌓이면 무조건 휴교이다. 학교가 산이면 산일수록 휴교 확률이 높아지고 시험날이라도 선생님부터 등교가 불가능 수준이라 시험을 뒤로 미뤄버리거나 12시 등교해 시험을 치는 경우도 있다. 2018년 8월 기준으로, 눈이 많이 내려 하루 이상 쌓여있던 날은 2015년 2월 이후로 없다(...)]
[목차]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수원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 전반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을 돌파했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영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영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주는 정도다.]
19대 총선 때는 시청사 소재지를 두고 후보들 간에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옛 창원 지역에서는 현 청사 리모델링을, 옛 마산 지역에서는 마산으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옛 진해 지역의 야권, 무소속 후보들은 진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해구에서 막판에 간신히 야권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꽤 큰 차이로 여당 후보에게 패한 것을 볼 때, 다시 나누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통합의 후유증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위에서 나왔듯 타 시군에서도 자신이 사는 지역을 명확히 나타내기 위해 시군명이 아닌 하위 지명을 말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산, 진해는 여타 시군의 하위지명보다 인지도가 높은 편인 까닭에 외지인들도 웬만하면 거의 알아듣는다는 점.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단지 물이 얼음이 될 뿐~~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그날 따라 택시요금이 2배나 나왔다 카더라.~~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창원 버스 103|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바다에 바로 접해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와 강풍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 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미터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다'''.[* 이는 연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개씩 통과하는 해는 연 강수량이 2000mm 가까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장마가 짧게 끝나고 태풍이 통과하지 않는 해는 1000mm도 채 안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2016년만 하더라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776mm(9월 20일 기준)로 평년의 66% 수주밖에 되지 않는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에는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거의 100일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일기예보에서만 윗 지방의 홍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고.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단,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가지만 창원도 정말 만만찮게 덥다. 게다가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후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경제 규모로는 이미 [[광역시]]급이다. 덕분에 [[경상남도]]는 [[부산광역시|부산]]에 이어 [[울산광역시|울산]]을 뱉어내고도 지역총생산이 '''광역자체단체 3위'''이다. 두산([[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LG([[LG전자]]), 한화([[한화기계]],[[한화테크윈]][* 구 삼성테크윈]), 현대차그룹([[현대위아]],[[현대로템]]) 등 많은 재벌기업들이 창원에 [[공장]]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정부, 정확히는 대한민국 육군에서도 [[종합정비창|초대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경제]] 항목 참조.
* [[전동차]] ~~[[탱크]]~~ ~~자주포는 왜 빼냐~~ ~~터져서~~
* [[자동차]] 부품 ~~중에서도 기어~~
1980년대 창원에 공단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시작될 무렵 이 지역의 중심 상업지역은 마산 창동과 오동동 일대였다. 당시 창원의 개발로 인구는 급증한데 비해 문화시설은 확충이 되지 않아서 창원 노동자들이 낮에는 창원공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마산으로 넘어와서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마산아재]]가 탄생했다~~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그런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던지, 창원시 차원에서 이 지역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그렇다고 장사가 잘 되고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지역에서 장사가 그나마 되는 곳은 어시장과 롯데백화점 마산점(구 대우백화점) 뿐으로, 구 원마산지역의 전통 상권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수준. 30년 전만 해도 추석 전날 부림시장 인파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 못지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없다.
창동, 오동동 지역이 망한 이유는 창원에도 곧 상업지역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창원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상업지구는 중앙동 일대로서, 이 곳에는 창원시청과 용지호수가 인접해 있다. 중앙동 상업지구의 중심지는 정우상가이다. 창원 중앙동에서 약속을 잡을 때는 정우상가 앞에서 만나는 것이 불문율일 정도이다. 지금은 상남동 등 다른 지역에 다소 밀리는 감이 있지는 않으나 그래도 주로 30~40대들은 다른 곳보다도 중앙동에서 만나는 것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주변에 창원시청 등 관공서가 많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자주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아니 누가 보면 중앙동하고 상남동하고 엄청 떨어져 있는줄 알겠네 도로 하나 차이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상업지구는 [[더 시티7]]이다. 2008년 문을 연 이 거대한 복합상업건물은 창원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산지역과도 멀지 않아 마산과 창원 두 지역 모두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평이 있다. 이 곳에 위치한 오피스텔은 창원시는 물론이고 경남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가 현재는 [[창원 메트로시티 2차]]가 추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티7을 창원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라고 하기도 한다. 바로 옆에 통로로 연결된 [[창원컨벤션센터]]와 풀만호텔이 위치한다.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산업체들이 몰려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다음 폭격 지역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전쟁나면 일단 창원을 뜨라고들 말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박살나게 되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본진 군수공장이나 관문을 장악당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 때 [[소련]]이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으로 옮겨, [[독일]]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무리한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이다.
[[창원대로]]가 10km 넘는 길이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비상시 수도 역할을 하기 위한 활주로 대용이다. 지금은 중앙분리대와 지하차도로 인해 활주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으나 본 목적이 전시상황에서 비상활주로 역할이니만큼 창원은 [[계룡시]] 못지 않은 비상용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 [[창원 메트로시티 2차]]
* --[[전동차]] [[http://changwon.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2201229|창원 특산물.jpg]]-- ~~[[http://www.facebook.com/photo.php?fbid=312873228787154&set=a.119878014753344.22907.100001934391879&type=1|시청의 특산물 인증]]~~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24회 일치
[목차]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며 전직 [[국가정보원]] 제2차장이다. [[우병우]]의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이자, 우병우의 최측근으로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0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에서 특수2부장을 맡았으며, 2015년 2월에는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인 [[우병우]] 민정수석과의 친분관계가 주목을 받았다. 물론 우병우보다 사법시험은 2년 더 늦게 합격했지만, 사석에서 말을 놓을 만큼 우병우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2월에는 우병우의 추천(?)으로 [[국가정보원]] 제2차장[* 국내 정보 및 공안 부문을 담당하는 국정원 내 핵심 요직이다.]에 발탁되었다. 이때 청와대가 이 자리에 우병우의 측근인 최윤수를 발탁했을 때부터 사정당국 내부에서는 국정원을 통해 본격적인 총선과 대선 관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게다가 최윤수가 2015년 말 검사장급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정원 2차장으로 전격 발탁된 점도 ‘정치적 인사’라는 뒷말을 낳았다.[* 참고로 최윤수는 전임 김수민 2차장보다 무려 9기수 아래였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24444379242d545ae3e855a102f4499|#]] ] 어쨌든 그 후 2017년 6월까지 국정원 제2차장 업무를 수행했다.
국정원 제2차장으로 일하면서 2016년 6월 ‘[[정운호 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수사를 받았다. 서울지검 제3차장 시절이던 2015년 2월경 [[홍만표]] 변호사로부터 청탁을 받아 정운호의 무혐의 처분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실제로 2016년 6월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는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홍만표 변호사에게 사건 청탁 명목으로 3억원을 건넸고, 홍 변호사가 당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3차장 검사에게 청탁하겠다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닌 게 아니라 2015년 2월 당시 최윤수 차장검사가 홍만표 변호사의 청탁 알선을 받고 정운호의 뒤를 봐줬기 때문인지 정운호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그 후 검찰은 홍만표 변호사의 통화추적 등을 통해 홍 변호사가 최윤수 차장을 두 차례 찾아갔고, 최윤수와 무려 20여 차례나 통화한 사실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결국 최윤수 국정원 제2차장을 소환하지 않고 서면으로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당시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 당시에도 최윤수와 우병우 간의 관계가 입길에 올랐다. 우병우는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이듬해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기용될 때까지 1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고, 이 기간에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사실상 ‘2인 1조’로 움직이면서 정식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정운호 대표 등의 ‘몰래 변론’을 맡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홍만표와 우병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수사기획관과 1과장으로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우병우가 변호사 활동을 할 때 사무실을 연 곳이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로, 홍만표의 사무실(1010호)과 같은 건물 아래 위층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홍만표와 최윤수 차장 간의 연결 고리가 우병우 아니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de4c88fecae9760b9b6c86f97f5e042|#]]]
국정원 제2차장 시절에 '국정원 문화·예술인 배제 보고서'를 수차례 보고 받고 지시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우병우 전 수석에게 ‘비선 보고’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24444379242d545ae3e855a102f4499|#]] 그러한 이유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2017년 12월 2일 [[오민석(법조인)|오민석]] 부장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물론 검찰 내부에서는 최 전 차장의 구속영장이 '가담 정도'를 이유로 기각된 것에 불과하고 범죄 사실 소명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731.html#csidxe6517123a8063c9aaa12e8244fa6d69|#]]
* 前 [[KBS]] [[아나운서]] [[황수경(방송인)|황수경]]의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2013년, 이들 부부의 ‘파경설’이 악성루머로 떠돌자 최 전 차장 부부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한 종합일간지 기자가 루머 유포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http://koridol.tistory.com/6471|#]]
전주지검 차장검사 2013.4.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검사 2015.2.
부산고검 차장검사 2015.12.
국가정보원 제2차장 2016.2. 2017.6.
- 맥스 페인/줄거리 . . . . 23회 일치
2호선으로 간 맥스는 멈춰있던 교통경찰용 차량을 운전, 공사로 인해 설치된 나무 방벽을 들이받아 부순다. 방벽 너머에는 괴한들이 있었다. 맥스는 그들을 해치운 후 선로 옆에 있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호텔 밖으로 나간 맥스는 잭 루피노를 잡기 위해 그의 본거지로 향한다. 그러던 중 본거지 앞 자동차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메르세데스 벤츠 한대가 그 자리를 벗어나는걸 목격한다. 그 벤츠의 조수석에는 펀치넬로 마피아의 눈엣가시였던 러시아계 범죄조직의 두목, [[블라디미르 렘]]이 타고있었다. 블라드가 탄 벤츠는 루피노의 본거지에서 달아나던 중 유조차 한대를 엎어지게 해 큰 화재를 일으킨다. 이후 블라드가 루피노의 본거지에 설치한 폭탄이 폭발한다.
순간, 맥스는 정신을 차린다. 그는 의자에 묶여있었다.
차고문으로 나간 맥스는 호텔 정문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마피아들의 전화 통화를 엿듣게 된 맥스는 [[모나 색스]]가 안젤로 펀치넬로를 죽이려다가 실패해서 붙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이 듣고 있던 라디오를 통해 자신이 라그나록에서 죽은걸로 알려졌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맥스는 안젤로가 그런 정보를 퍼뜨렸다고 추측했다. 함께 발견된 편지에 따르면 안젤로는 프랭키에게 맥스를 개처럼 죽일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맥스는 자동차를 몰고 호텔을 떠난다. 하지만 그를 미행하는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한대가 있었다. [[블라디미르 렘]]은 맥스의 차를 세우고는 그에게 손가락총으로 장난을 친다. 블라드는 맥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며 말을 시작한다.
맥스는 펀치넬로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펀치넬로는 누군가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맥스가 총을 겨누자 펀치넬로는 어떤 여자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으며, 그 여자는 정부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맥스는 펀치넬로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이때, 정장을 차려입고 콜트 코만도를 든 남자 세명이 방에 들어온다. 이들을 본 펀치넬로는 자기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외치며 도망가려하지만 남자들의 총에 맞아 죽게된다. 남자들은 맥스마저 죽이려고 하지만, 맥스는 역으로 남자들을 죽이고 방에서 빠져나온다.
맥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토사물 위에 식은땀을 흘리며 엎어져 있었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들었던 말을 떠올린 맥스는 뉴욕 바깥에 위치한 "콜드 스틸"이라는 공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트럭들이 오가고 있었다. 맥스는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 베레타 한 정만 가지고 콜드스틸 지붕 위 채광창을 통해 잠입한다.
엘레베이터가 내려간 곳은 기계장치가 즐비한 지하 시설, 딥 식스였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 그리고 용병 한명이 있었다. 용병은 자신들이 맥스를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장을 입은 남자들은 용병을 쏴죽이고는 장치를 조작해 자폭 절차를 발동시킨다.
단서를 찾지 못하고 일주일 지난 도넛과 엔진오일 같은 커피로 연명하는 맥스. 그런 맥스에게 B.B.가 전화를 걸어온다. B.B.는 문제가 생겼다며 주차장에서 만날 것을 제안한다.
만나기로 한 날, B.B.는 맞춤 정장과 금시계, 금 커프스 단추를 끼고있었다. 모두 다 경찰 한명의 월급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니었다. 배신을 직감한 맥스가 B.B.가 "뒷통수치는 새끼"[* Backstabbing Bastard]의 약자였냐고 따지자 B.B.는 지금 일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아냐며 맥스를 회유하려 든다. 하지만 맥스가 넘어오지 않자 B.B.는 미리 준비해둔 자동차에 올라타고 주차장 안으로 도망친다. 맥스는 덤벼오는 B.B.의 부하들을 해치우며 주차장 안으로 진입, 알렉스의 복수를 하기 위한 추격전을 시작한다.
B.B.를 쫓던 맥스는 주차장 안에 놓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는다. 죽은 줄 알았던 맥스 페인이 살아 있으며, 그가 안젤로 펀치넬로 저택에 불을 질렀다는 뉴스였다. 이를 들은 맥스는 자신이 질렀던건 아니지만 불길을 보았던 기억은 있다고 생각했다.
B.B.는 타고있던 차가 다른 차와 부딫혀 전복되자 잭해머를 들고 차에서 뛰쳐나온다. 그는 수류탄을 던지고 잭해머를 쏴갈기지만 맥스는 그를 죽여 볼더의 원수를 갚는다. 그 직후 주차장의 공중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 주차장 입구 옆에 놓인 드럼통과 에어컨 실외기를 밟고 옥상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다음 옥상 구조물을 보면 색이 약간 다른 철판 벽이 보일텐데, 이를 쏴서 떼어내면 비밀 공간이 나온다. 제작사인 레메디 엔터테이먼트가 유통사인 락스타 게임즈에 감사를 표하는 곳인 듯.
아스가르드 빌딩 지하에 들어간 맥스는 수많은 캐비넷을 발견한다. 그 캐비넷들은 파일로 꽉 차 있었다. 이너 서클은 발할라 계획 외에도 수많은 것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맥스는 알프레드 우든이 다른 이너 서클 멤버들을 단칼에 제거해 권력을 얻고, 우든 자신의 일을 맥스에게 떠맡기는 음침한 권력 투쟁을 벌이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이후 경찰이 펜트하우스까지 도착하자 맥스는 손을 들고 항복한다. 경찰에게 체포되는 맥스를 구경하는 인파들 중에는 알프레드 우든도 있었다. 우든은 미소를 지었다. 승자의 미소였다. 맥스 또한 경찰차 뒷자석에 앉아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 몽키 D. 루피 . . . . 23회 일치
[[목차]]
동료나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무모함의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정부(원피스)|도저히]] [[임펠 다운|승산이]] [[정상결전|없는 상황]]이라도 동료가 위험하면 싸움을 건다. 어느 때나 동료의 강함을 믿는 것은 루피가 가진 리더십의 원천이지만, 오히려 일당 전체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샤본디 제도에서 천룡인만 때리지 않았어도 밀짚모자 일행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밀짚모자 해적단 선원 대부분이 평범하고 상식적인 대응을 하는 해적단이었으면, 처음부터 입단할 일이 없었다. 실제로 정작 당사자인 선원들은 하찌가 총에 맞아서 천룡인을 때린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조로는 천룡인을 베려고 검을 뽑았다가 루피가 선수를 치자 검을 다시 집어넣기도 [* 선장의 행동이라고 무조건 허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무모하게 행동할 때는 선원들도 저지한다.][* 즉 루피가 무모하고 정신나간 성격인 것은 맞지만 어차피 여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죄다 비슷한 인간들이다.(…) 나미, 조로, 상디, 우솝 등은 자신들이 루피보다 상식적인 인간이라 여기며 실제로도 루피보다'''는''' 상식적인 인간이지만 주변 평가는 '''다 똑같은 미친 것들'''(…)]
아론 파크를 공격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나미(원피스)|나미]]에게 밀짚모자를 씌워준 뒤 아론 파크로 가는 장면이 있다. 또한 드럼 섬에서는 [[상디]]와 함께 나미를 데리고 의사를 찾기 위해 드럼 록키를 올라가던 중, 라판이 일으킨 눈사태에 의해 상디가 눈 속에 파묻히자 나미에게 잠시 밀짚모자를 맡기고 상디를 찾기 위해 눈으로 뛰어든다. SBS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이므로, 이걸 남에게 맡긴다는 건 '''너는 내 동료이며,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루피가 처음으로 동료에게 밀짚모자를 씌어준 것도 나미가 처음이다. 아론 파크편에서 나미가 더 서글프게 눈물을 흘렀던 것은 그런 루피의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
모두가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고, 일단 루피부터가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타입인 만큼 안 친한 멤버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해적단 내에서는 [[우솝]]과 가장 친한 편이다. 우솝이 좀 심한 겁쟁이에 평범한 인체스펙과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루피는 무모한 성격과 악마의 열매로 인한 특이체질과 엄청난 힘 정도만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정신세계와 개그코드는 그야말로 [[소울메이트]]급으로 죽이 잘맞는다. [[남자의 로망]]을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둘다 [[빨간 머리 해적단]]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알다시피 [[샹크스(원피스)|샹크스]]는 루피의 '''인생 나침반''' 같은 존재이고, 동료인 [[야솝]]은 우솝의 '''아버지'''이다.] 그와 연령까지 똑같다.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참 많은 콤비. 그래서인지 우솝이 루피의 바보짓에 태클을 많이 거는 만큼 루피의 장난에 가장 많이 받아주고 같이 행동하는 것도 우솝이다. 해적단에 별일 없으면 항상 루피 옆에는 우솝이 붙어 있다. [[토니토니 쵸파|쵸파]]가 합류한 이후로는 이 셋이 늘상 붙어다닌다. 일명 '''막내라인.''' 그렇기에 이 둘이 다투는 모습은 [[워터 세븐]]에서 [[고잉 메리호]]를 놓고 싸운 것이 유일했을 정도로,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가장 친했던 멤버와의 처절한 결투를 비극적으로 그려내었다. 물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프랑키|새로운 동료]]와 [[사우전드 써니 호|새로운 배]]가 생겼고, 배에 대한 트러블로 잠시 해적단을 이탈했던 우솝도 다시 돌아왔지만. 추가로 우솝이 루피에게 해적단에 멋대로 나간 점을 사과하고, 자신을 다시 넣어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런 우솝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눈물콧물범벅이 된 루피의 모습은 참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솝의 재합류 이후로는 역시나 쵸파랑 항상 셋이서 붙어다닌다.
[[드래곤볼]]의 [[손오공(드래곤볼)|손오공]][* 사실상 거진 오마쥬 캐릭터 같은 느낌에 가깝다. 먹보에 감으로 행동하고 동료를 중요시하며 자유로운 성격에 강한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호승심, 적을 잘 죽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그리고 반죽었다가 살아나면 강해지는 사이어인스러운 면까지] 으로 대표되는 먹보 캐릭터로 식사를 하루 다섯 끼로 계산하고[*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 [[크로커다일]]과의 전투 후 의식을 잃고 자신이 3일만에 깨어났다는걸 알자마자 한다는 말이 '15끼를 건너뛰어 버렸어!!(...)'. 하루에 '''5끼'''씩 3일로 계산하면 15끼가 된다. 그런데 원래 뱃사람들은 환경 적응과 육체 활동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서, 보통 식사를 다섯 끼 정도로 계산하여 섭취한다. 그렇지만 원피스의 세계에서는 뱃사람들도 세 끼를 먹고, 다섯 끼를 '유독 많이 먹는' 편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한 끼에 먹는 양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아서 뱃사람도 세 끼만 먹는 걸지도. 작중 식사 씬을 보면 연회가 아니라도 확실히 양이 많다.] 특히 고기라면 환장을 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게 고기일 뿐이지 다른 음식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고, 더불어 고기가 많다고 고기를 우선적으로 먹거나 하지도 않고 있는 대로 다 집어먹기 때문에 사실 영양이 치우쳐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무엇보다 상디가 영양 밸런스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어수룩한 요리사도 아니다. SBS에서 독자가 "루피는 그렇게 많이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나요?" 라고 작가에게 물어봤는데 작가 왈 '''"저렇게 날뛰고도 살이 안 빠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하루 이상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고기라는 발언에 반응해 깨어나기도 했다. 다쳐서 의식 없이 드러누워 있으면 굶어야 하는 게 싫어서 그런지 후반 들면 자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등 좀 이상한 데로 발전하기도 했다.[* [[CP9]]의 [[로브 루치]]와 싸우고 이틀간 자면서 먹는 스킬을 썼다. [[몽키 D. 가프]]가 사랑을 실은 주먹으로 때려서, 강제로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일어나면 밥 먹은 기억 없다고 또 처먹겠지~~ ~~대표적인 먹보 캐릭터인 손오공도 차라리 잠을 푸욱 자면 잤지, 자면서까지 저리 먹어대지는 않는다.(...)~~ 비명이 나올정도로 맛이 없다는 악마의 열매를 와작와작 잘 씹어 먹은걸 보면 맛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싫어하는 음식은 하나뿐이고 그 하나도 맛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다.
완력에 있어서는 사실 극초반에는 고무의 특성을 위시해 강력한 공격을 가하는 듯한 연출이 많았지만, 알라바스타와 하늘섬을 거치면서 완력이 점점 '''이상할 정도로''' 강해진다. 아론과 싸울 때까지만 해도 피스톨을 아론에게 잡힌 적이 있고 철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오는 장면의 임팩트가 강한 정도였다. 그리고 피날레에서는 고무고무 도끼로 전력을 다해 두들겨서 아론 파크를 내려앉게 한 정도인데, 에니에스 로비 시점에서는 손이나 발 어디든지 대충 뻗으면 '''석조 건물'''들(…)이 스티로폼이라도 된 듯이 우르르 무너질 정도니 초반과 위대한 항로 중반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여타 주인공들과 가장 차별화가 되는 점은 역시 필살기에 과하게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간판기에 가까운 필살기 하나로 전투를 종결짓거나 아니면 새로운 필살기의 각성으로 위기를 타파하는 것이 배틀만화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전투 스타일이고, 이런 스타일이 원피스에 없는 것도 아니지만[* 특히 조로같은 경우는 길게 대치하다가 강력한 한방으로 끝내는 장면이 많이 보인다.] 정작 주인공인 루피는 특수한 한방 필살기를 사용하지 않고 서로 끝이 날 때까지 강력한 공격을 주고받다가 마지막 한 방으로 적을 끝내버리는 그야말로 시원시원한 격투 스타일을 선보인다.
또한 임펠 다운에서 혁명군인 [[엠폴리오 이반코프]]와 인연을 맺고 아버지가 세계급 혁명가란 걸 고려하면 해적행위를 제외하고도 위험 인물인 데다가 '''[[천룡인]]을 폭행한 적도 있다.'''[* 이걸 들은 뇽 할멈 가라사대: "그짓은 신조차도 두려워 않는 자만이 할 수 있다."~~이미 하늘섬에서 신을 때려눕혔다.~~]
이것은 딱히 도플라밍고처럼 해적이 일개 국가를 소유한다거나 산하에 두는 것은 아니기에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무력을 행사하여 적개심을 사지 않아도 루피 본인 의향만으로 여러 국가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으로, 국가마다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워터세븐 시장이 손수 해적선을 조선해준 일이 있고[* 얘가 해적왕이 되기라도 하는 '''순간 불법행위로써 인정'''된다. 그렇게 되기 전이라 해도 루피가 에니에스 로비를 개작살내고 온 직후이니 세계정부에게는 미움받고도 남을 일이다. [[톰(원피스)|톰]]역시도 그저 해적왕의 '''배를 건조했다는 죄로 사형'''당한 상황을 보면 아이스버그도 스승과 똑같이 끝장날 수 있다. 다만 나서서 도와줄 이가 없었던 톰과는 달리 아이스버그는 그를 열렬하게 존경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있다. 물론 밀짚모자 일행들도 아이스 버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만큼 이들이 아이스버그의 사형을 순순히 묵인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톰의 경우에는 스팬담의 온갖 방해공작이 있었다. 더군다나 워터세븐 마무리에서 아이스버그가 설계하고 있던 '워터세븐 전체를 바다에 띄우는 일'이 성공한다면 그의 위상이 과거의 톰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밀짚모자 일당의 새 해적선 [[사우전드 써니 호]]에 대한 건조는 밀짚모자 일당과 소수의 관계자만이 아는 일인 만큼 죄를 묻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톰의 경우, 본디 조선공은 해군이건 해적이건 일반인이건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한 배를 건조하는 행위 자체는 죄를 묻지 않으나 톰의 경우는 그가 건조한 배가 다름아닌 '''해적왕 골 D. 로저의 기함, 오로 잭슨 호''' 였던만큼, 해적왕과 관계된 이들을 전부 숙청하려는 해군 본부의 표적이 된 것이다. 또한 스팬담의 음모로 [프랑키|커티 프람]이 만들었던 전투함들이 사법선을 습격했을 당시, 오로 잭슨 호의 건조 건은 바다열차 퍼핑톰의 제작으로 사면받는다 쳐도 사법선 습격 건이 그대로 죄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바다열차 건으로 사면받고 [아이스버그|자신의] [프랑키|제자]들을 위해 오로 잭슨 호 건조에 대한 죄를 받아들여 처형된 것이었다.][* 다만 문맥상 중요한 것은 일개 도시의 시장, 세계관 상으로는 국왕하고도 맞먹을 정도의 권력자가 세계정부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르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 주었을 정도로 밀짚모자 일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처벌 받는다 안 받는다 여부가 중요한 점은 아닌 것(…)~~병림픽~~]어인섬의 경우는 언젠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국왕이 못을 박아두는 장면이 나왔고[* 밀짚모자 일당에게 감사인사란 감사인사는 죄다 퍼부은 뒤였기 때문에 단순히 엄청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출은 아니다. 어인섬에는 루피에게 붕괴당한다는 플래그도 서 있기 때문에 차후 재등장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알라바스타 왕녀는 비공식적이나마 밀짚모자 일당에 소속되어 있는 등 그 정도가 '''여차하면 특정 세력에게 적대 성향을 가지게 할 여지도 충분히 있기에''' 이미 심상치 않다고 말할 수준을 몇 단계 뛰어넘었다.
물론 신문 뿐만이 아니라 책에도 관심이 없어서, 사우전드 써니 호의 서재에는 해적단 멤버 각자의 책들이 전부 모여 있는데 루피의 책만은 그 안에 없다고 한다. 심지어 조로조차도 그림만 대충 보는 수준이라곤 해도 일단 책을 보긴 하는 편인데.
* [[모옴]] - 상디와 함께 한방에 발라버린다. 아론 파크에서 다시 맞붙을 때도 뿔을 잡고 고무고무 풍차로 아론 해적단 졸개 전원과 함께 날려버렸다.
* [[Mr.5]] - 조로가 진정하라며 발로 차서 건물로 날렸는데 거기 있던 Mr.5와 조우, 소화할 겸으로 신나게 때려팼다(...).
* '''[[돈 칭자오]]''' - 고무고무 토르 엘리펀트 건을 머리통에 제대로 꽂아넣는다. 칭자오는 물에 쳐박혀버리면서 리타이어. 루피가 리즈시절의 가프의 실력에 어느정도 근접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스피드를 포기하고 오직 파워만 극대화한 기어3 주먹과 거프의 그냥 주먹이 비슷한 것이므로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
*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그로기 상태에서 신 기술인 기어 4를 두 번이나~~몇 달의 연재분도~~ 사용한 혈투 끝에 최강기술 킹콩건으로 끝내 버렸다~~부서진 선글라스는 덤~~ 보면 알겠지만 주인공 보정과 주변인물들의 도움이 굉장히 많이 작용되어 이긴 전투다.[* 일단 도플라밍고는 로우의 '감마 나이프'로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고 , 전투 내내 로우의 능력인 '샴블즈'의 도움을 수차례받는다. 기어4의 휴우증으로 10분간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 쳐했을때 콜로세움 아나운서 '가츠'와 여러 콜로세움 자코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10분을 때운다. 원피스에서 루피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 최종보스를 이긴 흔치않은 사례. 루치와 싸울당시엔 우솝이 시간을 끌어주고 크로커다일과 싸울 당시엔 로빈이 해독제를 주는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은 많지만 이들과의 싸움은 결국 루피 개인의 무력으로 1:1로 겨뤄내서 승리라는 점에서 도플라밍고와의 결전과는 사례가 다르다.] 둘다 풀피 상태에서 1:1 클린 매치로 붙었다면 '''루피는 질, 아니 사망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칠무해를 주인공 보정으로 겨우 이기는데 다음 적인 '''사황'''은 우째 이길라나.--
* [[볼사리노]] - 파시피스타 때문에 이미 궁지에 몰린 상황에, 나타나 루피 일당을 더욱 몰아 붙였다. 루피도 '''"지금의 우리들로는 이녀석들을 못이겨"'''라고 인정. 그러자 키자루는 '''"솔직해서 화가 나네."'''라고 반응한다. 이후 전쟁터에서도 루피를 공격하거나, 광속 발차기로 루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 '''[[마젤란(원피스)|마젤란]]''' - 루피를 독독 열매 능력으로 꺾는다. 어차피 죽을 거라 생각하고 버려두는데, 실제로 놔뒀으면 죽었을 상황이지만 Mr.2와 [[엠폴리오 이반코프]]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는다.
* [[패트릭 레드필드]] - 원피스 언리미티드 월드 레드 한정. 처음 봤을 때도 딱 2번의 공격으로 루피, 조로, 상디를 떡실신시키고 죽이려고 하다 그냥 떠난다. 이후에 [[박쥐박쥐 열매]]를 먹어서 파워업하고 루피를 축구공 차듯 발로 뻥뻥 차고 다닌다. 하지만 루피의 수정펀치를 맞고 깨달은 것이 있는지 전성기의 육체를 포기하고 싸운 뒤 노환 때문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패배를 인정한다.
* [[라분(원피스)|라분]] - 라분을 진정시킬 목적으로 고무고무 꽃꽂이를 시전하는 등 한 차례 짧게 맞붙은 후 라분의 이마에 밀짚모자 졸리 로저를 그려놓고 다시 만나서 한 판 붙을 것을 약속하고 쌍둥이 언덕을 떠난다.
* [[모네(원피스)|모네]] - 시저가 루피와의 싸움에서 밀리자 난입. 이글루 속에 루피를 가둬두고는 루피를 완전히 잠재울뻔 하다가 정신을 차린 루피가 바닥을 뚫고 지하 쓰레기통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승패가 나지 않았다.[* 참고로 이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 아주 자세하게 나왔는데, 루피가 눈을 감고 완전히 잠드려는 찰나에 조로가 말했던 '''신세계는 이제부터다''' 라는 말과 함께 동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패왕색의 패기를 발산한 뒤 모네를 붙잡 기어 세컨드를 사용한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승부가 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모네의 승리다. 모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벌기였으니.]
- 배영수 . . . . 23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2000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
[목차]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 애초에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였던 [[장준관]]이 1999년 대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미 1차지명은 장준관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준관이 계속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던데다 지명을 앞두고 계약금을 올리고자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에선 배영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장준관은 [[LG 트윈스|모 팀]]으로 드래프트 지명이 되는데...--] 1999년 11월, 팀 고졸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던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이 금액은 1년 후 대구상고 [[이정호]]가 삼성에 입단하며 '''5억 3000만원'''이라는 계약금에 입단하며 경신된다.]
그 전설적인 [[https://youtu.be/eXpj5w0AVm4|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당시의 모습.
2004년 35경기 동안 4완투(2완봉) 하면서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로 다승과 승률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990년 [[선동열]] 이후 14년 만에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전체 투수로는 선동열 이후 배영수가 받기 전까지 1996년 [[구대성]]이 구원 투수로 정규리그 MVP에 오른적 있다.][* 이후로 2008년까지 매년 투수가 MVP를 수상하게 된다. 순서대로 [[손민한]](롯데)-[[류현진]](한화)-[[다니엘 리오스]](두산)-[[김광현]](SK)] 특히 [[2004년 한국시리즈#s-3.4|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으나, 팀 타선 또한 한점도 못내는 바람에 0대0 상황에서 연장 11회초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며 해당 경기의 개인 노히트 노런 기록은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서 시간 제한[* 2004년 당시에는 경기 시작 후 4시간을 넘기면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고 바로 무승부로 처리되는 ~~병맛같은~~ 규정이 있었다. 결국 [[2004년 한국시리즈]]는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무려 '''9차전'''까지 가는 등 역대 한국시리즈 중 제일 길게 간 시리즈였고, 무승부가 제일 많은 시리즈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경기 후 4시간을 넘기면 무승부로 처리되는 규정은 2004년 한 해에만 시행되고 사라졌다.]에 걸려 0:0 무승부로 끝났는데, 경기 중 권오준이 안타를 맞아 팀 노히트 노런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안습]].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하지만 이 후 5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번의 ND와 4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는데, 8월 11일 사직 롯데전의 3이닝 7실점을 제외하면 선발로써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지만, 유난히 배영수의 선발 등판 때 상대팀 역시 에이스를 출격시키면서 타선의 지원을 --여름삼성 치고는-- 적절히 받지 못한 것이 패를 쌓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후 배영수를 다시 계투로써 활용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했고, 8월 22일 무등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차우찬이 3⅓이닝 만에 6사사구를 남발하며 투구수가 폭발하자 다음 투수로 구원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하며 시즌 6승을 챙겼다. 특히 전광판에 시속 146km까지 찍히기도 했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일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스코어 8:7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⅓이닝 17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 을 기록했고, 한 점차를 지키는 퍼펙트한 피칭을 보여준 배영수는 시리즈 전적 2승 2패를 만드는 중요한 세이브를 따냈다, 이 경기에서 거의 전성기급 구속인 최고 구속 '''147km/h''', 포크볼은 '''140km/h'''까지 찍어서 삼성 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마침내 결정된 곳은 야쿠르트로, 등번호까지 결정되었을 정도로 계약이 거의 다 되었는데 메디컬 테스트 결과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로 계약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원래 배영수는 선천적인 이유로 간 수치가 높다고 한다. 그것때문에 2006년 시즌끝나고 수술을 미룬것.] 이걸 계기로 배영수는 'B형수', 'B영수'란 별명을 얻었다. 안티들은 배영수가 대구출신이고 간염 보균자다 보니 상어를 염장하여 구운 경북 대구 음식인 돔배기에 빗대 '돔배영수'(...)로 부르기도 한다.[* 기존 위키는 돔배기가 상어를 삭힌 경상도 음식이라 하였으나 주로 경북 대구 지역서 염장한 상어고기를 구워 주로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이다. 돔배기는 경북 영천이 유명하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으로 앞선 2011년 10월 28일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팀이 1:2로 뒤진 8회말에 등판하여 [[정근우]]에게 안타, [[박재상#s-2|박재상]]에게 희생번트, [[최정]]에게 유격수 땅볼 진루타를 허용, 2사 3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권혁]]이 [[임훈]]을 운 좋게도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어 이닝을 끝낸 덕분에 배영수의 실점과 자책점은 없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295773&date=20141204&page=1|배영수가 삼성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리된 바에 의하면, '''연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과 한화가 제시한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의 루머와 달리 배영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661070|내가 구단 측에 선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760892|배영수 CBS 인터뷰 전문]] 참조. 팬들이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너무 감사하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은 이틀 전 그가 한 "누구도 원망 안한다.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라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를 통해 "30경기"도 못나왔으니 홀대받았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삼성 프론트의 삽질여부와 별개로 11년, 13년, 14년 4점대 평자를 찍었는데도 묵묵히 기다려 준 코칭스태프와 팬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렸고 사이영수상까지 만들었던 삼갤은 배영수의 이름이 언급되면 반드시 30경기 이야기를 추가로 붙히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이 후 정철우는 본인이 경솔한 기사를 썼던 것을 사과한다며 애플 베이스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네이버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 애플이 아무리 봐도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그 [[애플(기업)|애플]]을 떠올리게 해서 사과는 커녕 의도적으로 비꼬는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FA 2년차에 [[속구]] 구속이 130km/h도 안나오는 37억 선수'''
2017년 4월 27일 롯데전 [[https://youtu.be/d4GnOa4lvvg?t=1m35s|일정하지 않은 키킹 동작]]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잠시 멈췄다가 던지는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던진다. 명백히 다른 시간차로 던지는 동작은 부정투구이며 부정 투구를 떠나 타자를 농락하는 것에다 명백한 룰 위반이다. [[https://youtu.be/OcQCi86XpFI|SBS 주간야구]]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다. 이 사건을 두고 몇몇 소수의 악질팬들이 아니라고 반박~~난리부르스~~하지만 이는 더욱 더 배영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소수 악질 빠들이 해커를 예시로 반박하지만 해커는 꾸준히 같은 패턴으로 던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영수 역시 본인이 사과했지만 이는 배영수 커리어에 두고두고 남을 흑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100km 짜리 직구를 던졌다고 한다.~~
이후 KBO측에서 [[http://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140133|부정투구가 맞으며]] 차후 적발시 엄중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배영수는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7월 12일 경기에서 [[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kbo/322960/324897|로진백으로 2루심에게 지적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출장 정지를 먹자,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은 다음 날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이대호|이 선수]]를 1군에 처음으로 등록한다.[* 그리고 호세는 그해 KBO 역사에 남을 성적을 올리고도 '폭행사건으로 깎인 이미지'+'투표단의 용병 차별'로 여러모로 본인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타자들에게 밀려서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는데 공교롭게도 [[이승엽|두]] [[양준혁|선수]] 모두 배영수와 같은 삼성 소속이었다.(다만 양준혁은 2001 시즌 LG에서 뛰다가 골든글러브 수상즈음 삼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 하지만 배영수가 이적 후 대구야구장에 처음으로 왔을 땐 그래도 삼성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남기기도 했으며, [[라팍]]에서 열렸던 2017년 올스타전 때에는 3루쪽을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고 이승엽한테 2루타를 맞아주었~~다. 또한 2017년 이승엽의 은퇴 투어 때는 이승엽/다른 삼성 출신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와 삼갤에서도 동정여론이 생겼다. 오히려 올스타전 때에는 팬들이 [[최형우|누구]]와는 다르게 성대한 박수로 맞아주었다. 금지어 자리도 '''[[최형우|지역차별 운운하며 팬들을 엿먹이고 떠난 후 입은 입대로 털면서 사진찍을 때 코빼기도 안 비치셨던 모 선수]]'''에게 옮겨간 상태.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그가 등판했던 4월 23일 넥센전의 선발투수는 그와 동갑이자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김성태(1982)|김성태]]였는데,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이젠 데뷔 18년차, 나이도 36세라 노장 맞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배영수 아줌마,[* 현지 대구쪽의 삼성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영수아지매.] 배영수 이모, 꽹가리 이모 등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유명한 팬이 있다.[* 원래는 [[김실]]의 팬이어서 실이아줌마라고도 불렸었다.] ~~직관팬들은 시끄럽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항상 배영수 유니폼을 입고 와서 꽹가리를 두들기며 응원하는 중년 여성으로 예전에는 [[김실]]을 응원하셨으며, 이 후에는 아들이 배영수와 동갑이라서 배영수를 응원했다고 한다. 삼성팬들에게 워낙 유명인사였던 지라 2014년 7월 29일 경기에서는 삼성 구단에서 이 배영수 이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1&article_id=0000388502|#]] 하지만 이 날 경기는 [[차우찬]]이 [[차르봄바|핵폭발]] 하면서 패배... 이 분은 배영수 이적 후 [[김상수(타자)|김상수]]로 갈아타셨다고 한다. ~~이젠 상수아지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22회 일치
차량화보병 사단에 관련된 연구. 1931 Infantry Division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차와 화포를 담당하는 기술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극초기형 전차들을 연구하는 곳. Secret Weapons 탭의 Heavy Tank 연구와 Armor & Artillery의 Great War Heavy Field Artillery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탱켓과 경전차들을 연구하는 곳. Great War Tank 연구와 Improved Great War Heavy Field Artillery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중형전차를 연구하는 곳. 1950년 쯤 되면 주력전차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Improved Light Tank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구축전차를 연구하는 곳. Light Tanks 트리의 Early Tank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중전차 여단과 초중전차 여단을 연구하는 곳. Light Tanks 트리의 Early Tank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장갑차 여단을 연구하는 곳.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보병 사단과 산악병 사단, 포병 종류 여단들의 대전차 공격력을 올려주는 연구. Great War Heavy Field Artillery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주포 여단과 구축전차 여단의 대보병 공격력과 보급품 소모량을 올려주는 연구. Basic Medium Tank 연구와 Early Rocket Artillery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어뢰 부속의 성능 및 차세대 어뢰 개발에 대한 연구. 중간에 있는 Airdropped Torpedo 연구는 함재기 계열 부속들과 해군폭격기의 효율도 증가시켜 준다.
이후에는 꼴랑 두개 연구밖에 안 되는 Inter War Doctrine 테크를 타고 나면, 본격적인 제2차 세계대전의 전술들을 연구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술들은 다음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이외에 병력 소모율을 감소시키고 부상병 회복 확률을 올려주는 Hospital System 테크와, 기갑 사단과 경전차 사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Armored Division Formation 연구가 있다. Armored Division Formation의 경우에는 각 제2차 세계대전 교리의 특정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Mobility Focus Doctrine과 Manpower Focus의 경우 1937년 연구지만 나머지 교리의 경우에는 1940년이다.
모든 전차 연구의 시작.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Armor & Artillery 탭의 Great War Armored Car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병의 효율을 늘려주는 Mobile Land Mine 연구와 경전차 계열 여단의 효율을 늘려주는 Remotely Controlled Tank 연구로 이루어져 있는 트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Armor & Artillery 탭의 Basic Armored Car 연구와 Industry 탭의 Improved Decimeteric Radar Warning Sites 연구, Improved Computing Machine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군 유닛에게 효율을 주는 기술들. 제1차 세계대전의 기본적인 전술들부터 시작한다. 이들을 전부 연구하고 난 뒤에는 전략 폭격기를 지원하는 트리, (수송기를 포함한)나머지 폭격기를 지원하는 트리, 전투기와 요격기를 지원하는 트리로 나뉜다.
세가지 제2차 대전 전술 트리는 1946년 연구인 Modern Air Combat Theory 트리에서 통합된다, 그러고나서 총 다섯개의 트리로 분리된다.
- 도영(1996) . . . . 22회 일치
[목차]
[[일곱 번째 감각]]에서 중간중간 나오는 가성이나 백 코러스를 주로 도영이 담당했다. 재현과 쌍둥이 안무를 이루며[* 실제 무대에서는 라이브를 위해 수정되었다.] 같이 노래하거나, 혹은 재현의 바로 뒤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NCT 127의 소방차 활동은 참여하지 않아 같이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무한적아 때부터 127 정식 멤버로 합류하게 되면서 재현-도영-태일로 이어지는 보컬 파트를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무한적아, Cherry Bomb, Chain 등이 대표적인 예.
2016년 4월 29일 뮤직뱅크에서 [[TWICE]] [[지효]]와 듀엣으로 <All for you>를 불렀다. ~~듀엣 상대와 상당히 어색한지 차렷자세로 노래를 부르지만~~ 그의 깨끗한 음색을 엿볼 수 있다.[[https://youtu.be/N6oIUsqNfNg|160429 All For You - NCT U Doyoung (도영) X TWICE Jihyo (지효)]]
2017년 2월 5일부터 [[SBS 인기가요]] MC를 맡아 약 1년 간 매주 일요일 생방송을 진행했다. 공동 엠씨는 갓세븐 [[진영(GOT7)|진영]], 블랙핑크 [[지수(블랙핑크)|지수]]로 셋의 이름 첫 글자를 따 진지도라고 불렸다.[* 출생년도는 진영 94 지수 95 도영 96으로 셋 중 막내 포지션.] 엔딩 멘트는 '''우리랑 함께 가요~'''[* 손목이나 모자, 선글라스, 마이크 등에 '인기가요'라는 글자를 붙이고 숨겨줬다 보여준 후 '인기가요~ 우리랑 함께 가요~'를 외치는 방식.] 진영의 증언에 따르면 3MC 중 제일 대본을 틀리지 않는 멤버라고 한다.[* 딱 한 번 틀린적이 있는데 928회에서 엔딩 멘트인 '우리랑 함께가요~' 타이밍을 놓친 것. 실수를 눈치채고는 그 회차 1위였던 선미의 '가시나'를 패러디해 '인기가요 함께 가시나~' 로 마무리했다. 앵콜 무대에서 웃으며 팔을 툭 치는 진영과 아쉬워하는 도영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은 덤.] 2018년 2월 [[마크(NCT)|마크]]가 [[쇼! 음악중심]]의 새 MC가 되자 마크에게 음악프로 진행을 알려주는 V live를 기획하려고도 했다는데 그즈음 갑자기 인기가요 MC를 그만두게 되며 무산. 마지막 방송에서 인사를 하며 눈물이 살짝 맺히기도 했는데 방송 후 열린 막방 기념 V live에서는 울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m47M3qOhp8|또잉가요 모음1]] [[https://www.youtube.com/watch?v=PZi7_MLGYn8|또잉가요 모음2]]
그 외에도 쇼케이스나 V live 등에서 크고 작은 MC 역할을 종종 맡고 있으며 인기가요 하차 이후로도 다른 음악방송의 스페셜 MC로 몇 번 출연하였다. 자세한 것은 하단의 개인활동 참조.
* 도영의 형은 남성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인 [[공명(배우)|공명]]이다. 형인 공명과는 사이가 좋은 형제였던 것 같다. 어릴 적 서로 싸운 일도 별로 없고 부모님이 모두 집안에서 막내였던터라 막내인 도영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위기여서 형도 도영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어린 시절 다리가 부러져서[* 아이스크림을 사오다 차가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한다. --다리를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지켰다-- 차에 치이자마자 바로 그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3달 넘게 휠체어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때 형이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이야기했다. 형이 다정하고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앨범이 나오거나 도영이 방송에 나오면 종종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고. 레귤러 활동 당시 첫방 날에 공명이 직접 찾아와서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였다.
* 좋아하는 음식은 [[https://www.youtube.com/watch?v=phLpN6Or48c|치즈가 들어간 음식]][* 치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빵집에 가도 치즈가 들어간 빵을 주로 먹고 좋아하는 케이크도 치즈 케익.]과 팝콘, 화이트 초코, 팥빙수 등 단 음식, 수박과 복숭아, 마라탕, 훠궈 등이며 카라멜 커피를 즐겨마신다고 밝혔다. 또 우도 땅콩크림 프라푸치노[* 제주도 스타벅스 한정메뉴], 명란 바게트[* 스케줄 차 일본에 갔을 때 먹어보고 반한 것 같다.]를 추천하기도 했다. 싫어하는 음식은 오이. --재현:오이!!! 도영:나 오이 너무 좋아해-- 사실 오이가 싫은게 아니라 오이 냄새를 싫어하는 것. 피클은 잘 먹는다고 한다. --별명이 토끼임이 무색하게--당근도 싫어하는데 당근 케이크는 또 괜찮다고 한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잘 못 먹는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Dlf2rUo22gM|커피]].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서 카페에 갈 때도 가능하다면 디카페인 주문을 하는 편이라고 한다. 새벽에 잠을 깨려고 억지로 커피를 많이 먹은 날이면 자기 전에 심장이 두근거려서 못 잘 정도.
* 목이 안 좋을 때 관리하는 방법은 말을 안 하는 것과 젖은 수건을 걸어 놓는 것. 그리고 가끔씩 일부러 마스크를 끼고 연습을 해서 입과 목 쪽에 습기가 차도록 하기도 한다고.
* 스스로를 '''스엠빠'''라고 지칭하며 곡 추천 리스트에도 소속사 선배들의 노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SM 가수들의 신보가 나오면 거의 100% 확률로 그 주 라디오에서 수록곡을 추천한다.] --재현:당신 스엠 가수에요-- 스엠빠인만큼 존경하는 선배 가수는 [[EXO]]의 [[디오]]라고 한다. 듀엣해보고 싶은 선배로도 여러번 디오를 꼽았다. 롤모델은 [[샤이니]]. 그 전까지는 노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노래 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샤이니의 Dream Girl 무대를 보고 퍼포먼스가 노래를 표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음악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좋은 아티스트, 좋은 퍼포머가 되고 싶었다고. [[MBC]] [[쇼 챔피언]]을 진행했을 때도 [[샤이니]]의 모든 노래들을 다 들었다고 밝힌 적 있으며 샤이니의 4집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Odd Eye>를 뽑았다.
*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은 소속사 선배들의 컨셉은 [[소녀시대]]의 PARTY. 태국 해변에서 맨발로 춤을 추며 행복하게 노는 느낌의 뮤직비디오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비슷한 느낌으로 [[샤이니]]의 View 같은 컨셉도 너무 좋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컬러풀한 헤어와 가벼운 옷차림의 여름 느낌 컨셉을 좋아하는 듯.
* [[재현(NCT)|재현]]과는 데뷔 전 쇼챔피언 MC나 루키즈쇼 MC를 하였으며 함께 한 활동이 가장 많은 멤버이다.[* NCT U로서는 일곱 번째 감각, Without U, 텐데, Boss, 그리고 소방차를 제외한 NCT 127의 모든 곡을 함께 하였다.] 재현의 별명 '우재'를 지은 멤버가 도영이며 도영을 처음으로 토끼라고 부른 멤버가 재현이라고.
* NCT U 최애로 [[정우(NCT)|정우]]를 꼽은 적이 있다. 정우가 NCT U 최애가 된 것은 함께 Boss 뮤비 촬영을 하러 우크라이나에 갔을 때 정우가 의외로 여린 면이 많은 아이라는 걸 느껴서 챙겨주고 싶어져서라고. 정우가 비공개 연습생이던 시절부터 함께 연습을 했던 사이라 도영이 데뷔한 이후에도 종종 연습하는 것을 찾아갔다고 한다. 항상 동생이었던 정우가 연습생들을 이끌어 연습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정우가 127로 데뷔 한 후 미국 프로모션 차 함께 LA에 1주일 정도 머물렀을 때 룸메이트였는데 정우의 깔끔함에도 많이 놀란 것 같다. 정우는 도영을 '잘 돌봐줘요. 하지만 이 형을 다 헤아릴 수 없어요. 그래도 상냥해요'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 KBS [[안녕하세요(KBS)|안녕하세요]]에 출연해서 직장 동료들이 사연자의 아내를 무시한다는 사연을 듣고 '너희나 잘해라'라는 돌직구를 날려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이전 회차에 출연했던 [[공명(배우)|친형]]이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렸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어서 더 큰 재미를 주었다.
* 쇼챔피언, 인기가요 MC 경험 때문인지 하차 이후에도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멤버들 사이에서는 장난식으로 '인기가요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본인이 스스로 아들이 아니라 (전)아들이라고 정정하자 제작진이 아들 맞다고 이야기하였다. 제작진이 인정한 아들답게 유독 인기가요 무대에서 도영의 클로즈업이 많은 편이며 도영에 대한 인기가요의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는 무대가 2018년 2월 25일 boss 무대. 노래가 시작하고 초반 30초 가량이 계속 흑백으로 처리되다가 도영의 파트가 시작되는 순간 컬러로 전환되는 효과를 보여준다.
* 데뷔 전~초기의 NCT Life에서 부릉부릉 토크쇼라는 작은 코너를 밀었었다. 현재는 망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 부릉부릉 대신 새로 밀고 있는 컨텐츠로 또잉캠이 있다. --재현:부릉부릉2 아니야?-- 촬영현장이나 대기실 등에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휴대폰으로 여러 영상을 찍어 트위터에 올려주고 있다. 본인 피셜로 고정컨텐츠화 시키려고 노력중이라고 하며 따로 영상을 전문으로 찍어주는 스탭이 있지만 진짜 내추럴한 모습은 멤버들에게만 보여주기 때문에 멤버가 찍는 영상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고 언급하였다. 비슷한 맥락으로 유투브에 올라오는 N시리즈나 트위터에 올라오는 조각 영상들, V live 등을 촬영할때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인 것 같다. 거의 SM 직원 수준이라고. 보스 뮤직비디오 촬영차 우크라이나에 갔을 때도 영상을 엄청 많이 찍어놨는데 공개되지 않아서 담당 직원분께 계속 얘기했다고. 후에 V live+를 통해 일부 공개되었다.
* 운전면허는 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시간도 없었고 딸 생각도 없어서라고 한다. 지금은 따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고. 차를 사게 되면 어떤 차를 사고 싶냐는 질문에 차 이름은 잘 모르고 그냥 비싼 차 사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 가보고 싶은 여행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자주 얘기하는 곳은 [[베네치아]](베니스). 수상도시에 대한 낭만이 있다고 한다. 또한 [[코타키나발루]]도 가보고 싶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 가서 사자상도 보고 유명한 실내정원에도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2018년 9월 공연차 싱가포르에 가게 되었다.]
- 백정현 . . . . 22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8번, 삼성)]] ||
[목차]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10 시즌 5월에는 [[김현수(1988)|김현수]]와 빈볼 때문에 벤치클리어링 일어날 뻔했다. 2010 시즌에는 [[김효남]], [[임진우]]와 함께 1군 불펜 추격조에 속해 있는데, 불펜이 약한 팀에서는 충분히 필승조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앞의 두 선수와는 달리 '''[[조원수박차]]'''의 재림을 노리는 듯한 플레이를 펼쳐주며 삼팬들에게 집중적으로 까였다.
[[차우찬]]과 [[정인욱]]과 더불어 '''[[선발 투수|선발]] 경쟁'''--아이고 또 백정현을 [[평균자책점|ERA]] 7점대로 만들려고 작정했나?--을 하고 있으나, 백정현은 [[권혁]]의 이적과 [[차우찬]]의 선발 복귀로 인해 좌완 셋업맨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
장원삼이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박근홍이 좌완 불펜 No.1을 하고 있는 삼성인지라 큰 기대를 걸고 육성하는데 당최 안터져서 안타까운 선수. 동갑내기 차우찬은 부침이 있었지만 결국 리그 수위급 선발투수로 정착하는데 성공했기에 더더욱 아쉬운 상황.
[[2015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1이닝을 퍼펙트로 틀어막으며 개인 포스트시즌 첫 승을 올렸다.
한국시리즈에서 핵탄두를 맞은 마운드에서 그나마 차우찬 다음으로 잘 던졌으나 팀의 준우승을 막지 못했다.
7월 21일, 두산과의 3차전에서 7회에 또 등판. 선두타자 김재환을 김상수의 실책으로 내보냈고, 이어 폭투로 김재환을 2루에 보내며 무사 2루의 위기를 맞았다. 허나 민병헌-오재일-양의지에게 '''147km'''에 육박하는 공을 던지며 세 타자 모두를 뜬공으로 잡아내고 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시즌 6번째 홀드를 기록해 냈다. 이후 꾸준히 필승조로 나오다 팀내 선발진 붕괴로 인해 9월 들어 선발진에 편입되었다.
9월 16일 SK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2⅓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지만 팀은 역전승을 거뒀다. 이후 선발진이 개편될 예정이라 다시 계투로 복귀했다가 복귀하는 선수는 없이 [[윤성환]]이 어깨 염증으로 보호 차원에서 시즌 아웃되면서 다시 선발로 복귀했다.
5월 25일 '''두산전에서 8이닝 5k 무실점'''[* 무려 2018시즌 크보를 지배했던 두산을 두산의 홈인 '''잠실'''에서 완벽투를 선보였다.]으로 본인 야구인생 최고의 투구를 펼치며 2승을 수확, 2015년 9월 이후 32개월 만의 팀 5연승을 이끌었다. 위력적인 공을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 꽂아넣는 완벽한 투구내용을 보여줬다. 완봉도 가능했지만 100구를 넘기는 등 많이 던졌기에 관리차원에서 8이닝만 던지게한듯. 이날의 호투로 본인의 평균자책점을 3.86으로 끌어내렸다.
6월 6일 기준으로 WAR 1.51을 기록하며 삼성 투수진들 중 WAR 1위를 마크하고있다. [[리살베르토 보니야]]가 5월들어 각성하며 1선발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기록으로 보면 실질적인 에이스는 [[백정현]]이라고 봐도 좋을 수준.
6월 7일 SK전에서 4이닝 1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하다가 허리 결림 증세로 5회말에 [[장필준]]으로 교체됐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8일 1군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2017년 체인지업의 완성도가 올라가면서 선발로 각성, 차우찬이 이적하고 장원삼의 기량이 하락하며 생긴 좌완 선발자원의 부족현상을 훌륭히 채워주고 있다.
2017년의 활약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바로 디셉션 동작이다. 디셉션 동작은 이름 그대로 공을 던지기 전까지 머리 뒤에 숨겨 타자가 구질을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동작인데,차명석 해설위원이 백정현 특유의 유연한 투구폼은 이 디셉션을 잘 활용하는 폼으로 공을 끝까지 숨기기 때문에 체감속도가 빠르고 구위가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여담으로 2016년까지 같은 팀 소속이었던 좌완투수 차우찬의 투구폼도 공을 숨기는 디셉션 동작을 많이 활용하는 투구폼이다.]--그리고 여지없이 머리가 더 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드립을 시전했다-- --양준혁도 투타겸업 하지--
여담으로 유급자의 1차지명 불가 조항을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2005년 고3 시절에 백정현이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것으로 인해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로 유급했는데 하필이면 발표 시점이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2006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때라 다른 구단에서 유망주 빼돌리기가 아니냐며 태클을 걸었다. 즉 백정현이 유급함으로써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음 해에 백정현을 1차지명하지 않겠냐는 뜻. 당시 백정현은 2차지명 1라운드 상위 지명이 충분히 가능한 선수였다.
결국 회의 끝에 이후로 유급자의 1차지명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백정현은 그 첫 번째 수혜자가 되었고~~ 십자 인대 파열이라 선수로서 재기가 힘들지 않겠냐는 말도 있었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에서 백정현을 지명했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진 것으로 평가된다.
- 유승민(정치인) . . . . 22회 일치
[목차]
그러나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차차 사이가 멀어졌고, 이때부터 소위 "탈박"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된다. 저 당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중 대표적인 예로, 박근혜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유승민이 "새누리당은 당명으로 쓰기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종교적인]] [[영세교|색채]]가 너무 짙은 이름이다"라는 이유로 정면으로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80346&news_area=020&news_divide=&news_local=20&effect=4|반대했던 일]]이 있다. 그 뒤로는 소위 탈박 내지 [[비박#s-4|비박계]] 인사로 분류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박근혜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청와대]]와 여러 차례 충돌을 벌이다가, 2015년 7월 원내대표 당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5년 4월에 있었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대표되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였다. 그 연설 이후, [[박근혜]]로부터 이른바 '찍박'으로 낙인찍혀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이르게 된다.
1999년부터 시상된 '백봉신사상'은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상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상이며, 사실상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상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상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대선 1차 토론회가 열리는 SBS 프리즘타워 앞에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조합원과 마주쳤는데,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입장하는 몇몇 후보와는 달리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며 사뭇 진지하게 대화하는 유승민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래의 동영상에서 마이크를 든 연사 역시 2012년 유승민의 언론사 파업 지지를 언급하며 꼭 부탁드린다고 연설 중이다,
반면 [[대한민국 공군|공군]]력 건설, 특히 [[KFX]]나 [[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KFX 관련 주요 기술의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방사청과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며 여권 소속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대안으로 KFX F-35 도입으로 전환,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력 강화를 선호하는 이상주의적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산 무기의 여러 결함 때문에 검증된 미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현실주의적 [[밀덕]]들에게는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KFX의 경우, 실패하면 그대로 [[대한민국 공군]] 미래전력을 다 말아먹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차라리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접고 검증된 미국제 전투기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이 [[밀덕]]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많다.]
|| ▲ 대구 K2비행장에서 찍은 사진 --[[손석희]]??-- || ▲ K-9자주포, K-2전차 모형을 선물받는 유승민 ||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도 절차상의 하자와 국민동의 미흡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찬성입장을 보이고, 사드 조기배치 및 추가 2~3포대 설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 핵무장은 반대하지만, '공포의 균형'을 근거로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미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NATO식 핵공유를 모티브로 삼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NCND(Neither Confirm Nor Denied) 즉 전술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토론에서 밝혔다.
대선토론부터 시작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에도, 유승민 후보는 일관되게 사드배치 조기완료와 추가도입을 주장했고, 전략성 모호성이라는 개념과 국회비준 운운하는 문재인정부를 '''사드배치를 왜그리 머뭇거리냐''' '''운동권식 사고로는 국정 망친다''' 고 거세게 비난하였다. 그 이후 북한의 잇다른 ICBM도발과 6차 핵실험이 발생하자 결국 9월 7일 사드배치를 완료하였다. 또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에서도, 유승민 의원은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 자체는 찬성' 의 입장이였다. 2016년 당시 야당이였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배신한 밀약''' 이라고 거세게 비난하였고, 당시 문재인 전 대표도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으나, 2017년 8월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연장되었다.
하지만, 당내 주류에게 밉보인 탓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 논란을 겪으면서 본인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게 되었고 정치적으로 위기가 찾아왔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비대위 결정으로 세간의 예상보다 빠르게 [[새누리당]]으로 복당함으로써 여러 언론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차기 대권 주자]]로써 이름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바른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 [[남경필]]을 누르고 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념적 부분에서는, 유승민 의원 스스로는 공화주의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의 정치사상을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흔히 자유주의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상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이 분류도 정확한 것은 절대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며, 안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화주의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친이세력과도 사상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딱히 그가 정계에 입문한 뒤에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변화가 있을지언정) 사상적 노선에서는 일관된 자세를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화주의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이다.
>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중부담-중복지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부담과 복지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정도 수준을 장기적 목표로 정하자는 의미입니다. 이는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현재의 [[미국]], [[일본]]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을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낮은 목표라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여야 간에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이 목표에 합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한나라당]] || '''7,613,660 (35.76%)''' || '''당선 (14번)''' || [* 2005년 9월 의원직 사퇴 / 대구 동 을 지역구 재보궐 출마 - 부연 설명하자면,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당선된 사람이, 같은 17대 국회의 지역구에 공석이 생기자 의원직을 사퇴하고 해당 지역구 재보궐에 출마한 거다(...)--재선 같은 초선-- 이에 대해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던지라 당시에도 말이 많았는데, [[박근혜]] 당시 당 대표와 김무성 당시 사무총장의 의중이었다. 사실 이건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가 워낙에 쎘던 것도 있다. 실제로 두 후보는 후보등록 마감 직전에도 오차 범위내에서 접전을 벌였고, 당일에도 유승민은 정권 레임덕 + 현역 의원 공천 + 텃밭 프리미엄 + 일반적으로 민주당계가 열세인 재보선임에도 고작 8% 차로 신승했다.] ||
부친인 [[유수호(정치인)|유수호]] 의원도 [[박정희]] 정권 때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어야 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축출된것은 2대에 걸친 악연인 셈이다. 자세한 내용은 유수호 문서 참조.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로 마무리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 자신을 [[유시민|유''''시''''민]]이라고 혼동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유시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유시민을 제대로 쓰면 류시민이 되기 때문에, 유승민과는 성씨가 아예 다르다.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삼국지)|유비]] 할 때 劉 씨를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음에서도 차이가 있다. ~~성향도 [[친노]]와 [[비박#s-4]],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다르다~~ 다만 이건 정치 행적 이야기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에 중학교도 선후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유승민은 [[빠른생일|빠른 58년생]]에 76학번 유시민은 59년생 78학번.]~~ 유시민이 JTBC 신년토론에서 말하면서 실제로는 깔 거 다 깠다~~[* 게다가 의외로 두 사람이 양 진영의 경제통으로 대립을 하기는 했지만 유승민은 전형적인 [[공화주의]]식 복지관을 가진 인물로, 경제 이야기에서는 좌파라는 오해를 들을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 경향을 보인다. 한편 유시민은 진보세력치고는 기본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동안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다.(사회민주주의 쪽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정의당에서는 그의 리버럴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대단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을 정도) 즉 경제 이야기를 할 때는 두 사람이 생각만큼 사상적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애초에 유시민의 정치적 대부인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하였다~~ 실질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평당원으로 정치평론에 주력하는 과정에서는 유시민도 전보다 소폭 왼쪽으로 이동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경제 이야기에서는 서로 겹치는 면이 많은 편.]
* 2005년 12월 사학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국회가 난장판이 된 와중에 [[정봉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몸싸움이 빚어졌다. 아무래도 체격 차이도 있고 정 의원이 어릴 때부터 무술을 연마한 전적이 있다보니 상당히 밀리는 모양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5/1980921_19610.html|MBC 뉴스]]
그리고 2017년 1월 2일, [[JTBC]]에서 [[이재명(1964)|이재명]] 성남시장, [[전원책]] 변호사, [[유시민]] 작가와의 뉴스룸 진행 후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이 토론에서 유승민은 재차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본인의 복지 노선과 개혁보수신당의 향후 진행방향에 대해 밝혔다. --전원책의 맹공을 뚫고 본인의 소신을 밝혔다.--
- 김국진(MC) . . . . 21회 일치
[목차]
나이는 1965년생인 김국진이 1972년생인 [[유재석]]보다 많지만, 어린 나이에 데뷔한 [[유재석]]과 동기다. [[유재석]]은 당시 대학에 입학한 만 19세에 공채개그맨 시험에 합격해서, 최연소 공채 데뷔 기록에 올랐고,[* 다만 [[유재석]]은 졸업을 하지 못했다.] 김국진은 군 복무를 마치고[* [[11사단]]에서 보병으로 복무했다.] 4년제 대학교까지 졸업한 상태에서 합격했기 때문에 나이 차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감자골의 인기로 인한 혹사. 이들은 스케줄이 너무 빡세서 방송사에다 조정을 요구했으나 KBS는 전속 계약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김용만이 무리한 스케줄에 탈이 나서 드러눕고 만다. 그러자 열받은 김국진이 [[1993년]] [[1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하고 박수홍, 김수용이 동참, 나머지 둘도 결국 하차를 하게 된다. 사실 이 때 화가 나서 가장 먼저 도피성 유학을 제안하고 계획을 짠 사람은 박수홍이었다는 모양
그런데 미국행 직전에 박수홍은 입대 영장이 나왔고, 김수용은 미국 비자가 나오질 않아서(…)[* 2016년 10월 26일 라스에서 박수홍이 밝힌 바로는 귀차니즘으로 인해 비자 발급 인터뷰 문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마약 경험과 총기소지 상황에 '예'를 체크하는 바람에 실제로 미국에 몇년간 입국 금지처분을 받았다고(...). 김국진과 김용만은 처음엔 김수용이 미국에 오기 싫어 거짓말 하는 걸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김수용은 캐나다를 통해 밀입국(!)을 할 생각으로 [[밴쿠버]]로 건너갔다고 한다. 골프장을 가로질러서 국경을 건널 생각이었으나 절벽이라 못 넘었고, 멕시코 마약 밀매단에 섞여서 건너오는 방법(...)과 국경 근처에서 헤엄쳐서 건너는 방법 등을 알아보기만 하고 돌아왔다고...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 본인이 출연해서 직접 언급.] 결국 감자골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후 김국진은 김용만과 함께 미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이것저것 한 모양. [[이현도]]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트 클럽까지 인수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큰 규모는 아니고 쌀국수집 옆 지하의 작은 규모였다고.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는데 장기적인 커리어가 아닌 단기적인 최정점의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물론 예능계에 있어서 종합적인 인기와 지지도, 커리어까지 본다면 유재석이 훨씬 더 앞선다. 비유하면 '''김국진은 2등과의 점수차가 굉장히 큰 전국 1등을 3~4년 한것과 같고 유재석은 2등과 점수차가 그리 크지는 않은 전국 1등을 15년 가까이 차지한것과 같은 느낌이다.''' 전성기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지만 그 절반 정도의 기간을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공존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개그계에서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가수나 배우들을 통틀어서 인지도와 인기로 그를 넘볼 대상이 없던, 그야말로 연예계 혼자 1등이라 할만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정말 몇 안되는 희귀 사례로 꼽힌다.[* 개그맨, 예능인이 가요계, 연기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 걸쳐 최고의 위상을 지닌 톱스타가 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다.현재 예능계 최고의 MC들인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도 연예계 종합 최고 스타의 위상을 가져본적은 없으며 역대로 꼽으면 80년대의 이주일과 심형래, 전성기 김국진, 현시대 유재석 정도만이 달성한 매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국진은 '''코메디 30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한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대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2위가 대중가요의 황제이자 전설 [[조용필]]'''.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가왕 조용필을 이겼다는 건 그야말로 당시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의 인기마저도 지배했다는 이야기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코미디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 최강의 포스를 보여준 코미디언은 1980년도에 말 그대로 2주일만에 원톱이 되어 80년대 초중반 내내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했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화로도 전국 300만 관중을 돌파할 수 있었던 전성기 [[심형래]] 정도 밖에 없다.
~~개그맨 부문 1위와 2위의 득표율 차이를 보라~~ ~~다른 항목의 1위와 그 아래 순위와의 격차가 많이 안나는 상황에서 독보적인 1위를 한것만 보더라도....~~ ~~솔직히 은퇴 후에, 그것도 H.O.T를 내려앉히고 1위를 찍고 있는 서태지가 더 대단한데?~~ ~~근데 배우랑 탤런트 차이가 뭐지...[* 90년 대까지만 하더라도 배우는 충무로에서 주로 활동하는 영화 출연 연기자, 탤런트는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로 구분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영화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며, 현재는 배우와 탤런트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반달곰 내사랑>에서 김국진이 맡은 배역에는 당초 [[유오성]] [[차승원]]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이들이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하자 김국진이 대신 들어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첫 회(2001년 9월 26일)부터 2001년 10월 11일까지 <신화>와 경쟁했다. <반달곰 내사랑>은 삼각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인지 주인공들의 주변 이야기가 없었던 데 이어 극이 너무 잔잔하게 진행됐다는 혹평을 받았고 결국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참고로 <반달곰 내사랑> 출연진이었던 이세은, [[박정수(배우)|박정수]] 등은 차승원이 출연한 드라마인 KBS 2TV [[보디가드]] 조연이었는데 이 드라마 출연진 중의 한 명인 [[이원종(1966)|이원종]]은 김국진의 대학 1년 후배다.] 결국, 김국진은 <반달곰 내사랑>의 실패 후 2006년 MBC 진짜진짜 좋아해로 연속극 출연을 간신히 할 수 있었다.[* [[이영자]]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정극 드라마 출연을 했다. 그전에는 시트콤이나 특집극 위주로 출연했다.]
[[2005년]] 토요일 밤 6-8시대 버라이어티 꼭지에서 고전하고 있던 MBC에서 회심의 카드로 제작된 [[토요일]]이라는 버라이어티[* 이 프로그램에서 [[무한도전]]의 전신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로 복귀를 선언하고, 당시 [[김용만]], [[박경림]] 등과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우며 여행하는 "커이 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간만에 주말 버라이어티에 출연했다.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특대형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기획이 된 프로인데다가, 유학 후 복귀하는 [[박경림]]과 함께 다시 전성기를 맞이 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참신한 기획보다는, 유명 MC의 복귀라는 회제성에만 치우친 분위기였고,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코너가 없어졌고 프로그램명도 [[토요일]]에서 강력추천 토요일로 바뀌었다. 이후 그는 다시 방송활동이 스톱된다.
2016년 3월 22일 [[tvN]]에서 첫 방송을 한 [[집밥 백선생]] 시즌2에 출연하게 되었다. 요리실력은 그냥 없다고 보는게 맞을 정도(...). 팔순인 김국진의 어머니가 '내가 너 이렇게 밥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얘기를 한게 출연 계기라고 한다.[* [[집밥 백선생]] 시즌2 첫 방송에서 김국진이 말하기를 김국진의 어머니가 얼마전 큰 수술을 하셔서 언제나 차려주시던 밥이 없었고 미안하다라는 메모가 남겨져있었다고...] 방송에선 백주부가 가르쳐주는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국진, [[박수홍]] 등과 함께 감자골 4인방이면서 연예계에서 세 손가락에 들만큼 그와 가장 친한 [[연예인]]들이던 [[김용만]]은 김국진과 젊었을 때 같이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김국진의 사주가 "평생 돈이 얼마가 들어가고 나갈 지 모를 사주"라고 했다는 걸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국진이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잘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본인이 돈을 빌렸던 것도 잘 잊었다는 점. 더 웃긴 일화는 감자골의 또다른 멤버였던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이 신인 시절 이를 알고 역이용해 김국진에게 "아 형, 저번에 빌려준 거 왜 안 갚아?"라고 하면서 빌려주지도 않은 돈을 3번이나 받아봤다는 것이다. 김국진은 깜빡 속은 나머지 아무렇지도 않게 "어 잊어버렸구나. 미안."이라고 하면서 김수용이 말할 때마다 계속 그 돈을 줬다고 한다. 물론 큰 돈이 아니었으니까 쉽게 속은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으나 정말 돈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김국진급의 억대 수입/지출을 내는 사람이면 개인 [[대한민국 공인회계사]]가 필요하다.) 다만 이런 성향이 어차피 번 돈이 많아서 돈 쓰는데 무신경한게 아니냐고 오해 할 수도 있는데 김용만이 김국진의 모친께 들은 바에 따르면 ' 등록금을 빌리러 온 친구에게 선뜻 돈을 주면서 정작 자신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었다'라는 일화가 있는걸로 봐선 부의 유무와 상관없는 원래의 성격인 듯하다. 어려운 시기에 [[결혼]]했던 김수용에게 ~~비록 빌려 주지도 않은 돈을 여러 번 받아가긴 했지만~~ [[하이난]]으로 [[신혼여행]] 다녀올 경비를 대줬다는 미담은 [[덤]].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걸로 보인다. 김국진이 [[인창고등학교(서울)|인창고등학교]] 시절에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공부를 했고, 2005년 경에 김용만과 같이 중국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점, 공백기 기간에도 중국어 공부를 했다는 점에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 [[f(x)]]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당시 [[빅토리아(f(x))|빅토리아]]에게 중국어로 인사하거나 간간히 중국어를 하는 점, [[효연]]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 중국어로 음식 주문을 할 때도 이해하던 모습, [[차오루]]와 라스에서 대화할 때도 중국어가 말끝마다 나온 점을 보면 중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 실력인 것으로 보인다. [[불타는 청춘]]에서도 멤버들과 [[홍콩]]에 갔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중국어 실력을 보여 주었다.
[[차오루]]는 김국진을 처음 보았을 때 "안경 쓰고 공부 많이 하신 분같다"며 방송국 국장님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몸은 마른 편이지만, 생각보다 힘이 좋고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인 듯 하다. 남격 절대권력 편에서 [[윤형빈]]과 [[레슬링]]을 했는데, 윤형빈은 프로필상 181cm에 75kg, 김국진은 171cm에 58kg으로 20kg 가까이 차이가 남에도 허리힘으로 윤형빈을 번쩍 들어 내동댕이쳤다. ~~김국진 > 윤형빈 > 타카야.~~ --대선배라 봐줬을 거라는 생각은 안하냐?--
[[축구]]도 굉장히 잘 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출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깊은 [[이유]]. [[홍기훈]]의 증언으로는 30대 시절 연예인 축구 동호인끼리의 축구 경기에서 김국진 혼자 5점을 득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이 강냉이 [[드립]][* 김국진이 방송에서 10년 넘게 자주 하는 [[애드리브]]로 본인이 젊을 때 [[권투]]를 배워서 자신한테 덤비는 사람은 주먹을 툭툭 쳐서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지게 했다고 하는 말장난 개그.]처럼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연예계의 파이터들 중에 하나인 [[홍기훈]]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표영호]], [[지석진]], 김용만 등에게도 데뷔 초에 [[형]]이라고 못 불러주겠다고 선언하여 [[반말]]을 사용하는 데에 반해 김국진에게만은 매우 깍듯하게 모시는 선배 형님이라고 하니 김국진이 의외로 어느 정도의 깡과 운동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싸움]]으로 홍기훈을 이길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예선 전에서 맹활약한 "독수리" [[최용수]]와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공차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핫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김국진이 공을 몰고 나오며 큰소리로 "최용수 나와!" 라고 외치기도 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최용수에게 공을 빼앗긴다.
- 식극의 소마/223화 . . . . 21회 일치
* 제 1카드 [[쿠가 테루노리]]와 [[츠카사 에이시]]의 대결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황. 쿠가는 조리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데도 주재료인 "녹차"를 쓴 흔적이 없다.
* 반면 츠카사는 엽차, 옥로, 현미차, 찐 엽차, 총 네 가지 찻잎을 최상의 현태로 블랜딩하며 맛을 이끌어 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 이제 2라운드 대결도 중반으로 접어든다. "녹차"를 소재로한 1카드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 "고추"를 소재로한 2카드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 "참치"를 소재로한 3카드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
쿠가가 유독 열의를 보였던 제 1카드 쪽. 일단 조리는 한창 진행되고 있는 듯 한데, 그 조리대를 보던 [[이부사키 슌]]이 경악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한참 조리에 몰두한 쿠가는 주재료인 녹차에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그가 너무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주제까지 잊은게 아닌가 우려하며 "녹차를 써라"고 목청을 높인다.
* 소마는 찻잎을 다루는 츠카사의 자세를 보고 감탄한다. 그는 무려 네 종류에 달하는 찻잎을 한 꺼번에 다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루이 젠지]]가 지금껏 완전히 잘못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녹차라는 소재는 당연히 요리의 선택지가 제한될 거라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오산이었다. "녹차"라는 카테고리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그걸 살리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녹차는 본래 채취한 찻잎을 그대로 쪄서 발효를 막는 "비발효 차"류를 통칭하는 말. 대표적인 엽차나 옥로, 호지차 등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그걸 요리로 옮기면서 떫은 맛이나 쓴 맛에 악센트를 주는 식으로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 하지만 녹차에 조예가 부족한 후배들은 "그렇다고 찻잎을 여러가지 섞어도 괜찮은가?"라며 츠카사의 조리법에 의문을 표한다. 저래서는 마구잡이로 섞어서 서로 향을 죽일 것 같다는 소감이었다. 하지만 소마는 츠카사가 "대화쪽은 확실"한 것 같다며 과연 1석이라 감탄한다.
츠카사는 매우 섬세하고 능숙하게 네 가지 차의 향을 끌어냈다. 우선 엽차는 뜨거운 물에 30초 간 담궈 떪은 맛 성분 카테킨을 끌어냈다. 옥로는 60도 물로 2분. 저온에서 맛을 확실하게 뽑아내는게 포인트. 현미차는 떪은 맛 등 녹차의 특성이 적고 95도에서 30초 간 담그는게 가장 향이 잘 난다. 오래 찐 엽차는 성분이 잘 우러나서 80도 물에서 단기간에 맛을 뽑아낸다.
* 츠카사는 우리는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서인지 쿠가 쪽 조리대에 훈수를 둔다. 쿠가는 분명 찻잎에는 손도 대지 않고 중화 철냄비로 고기만 다루고 있었다. 츠카사가 이런 부분을 꼬집으며 "하나에 집중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자기 필드에 틀어박히는건 나쁜 버릇"이라고 충고했다. 지금 쿠가는 녹차, 일본의 식재를 덤으로 여기고 있다. 소재를 살리기 위해선 자기 스타일을 억누르는 것도 필요한데 자기 고집에만 연연하면 새로운 맛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말로는 쿠가가 지닌 열의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나에게는 못이긴다"며 통렬한 도발을 날린다. 쿠가는 이에 대해서 단지 눈을 한 번 흘겼을 뿐, 별다른 반론을 펼치지 않는데.
* 마치 쿠가를 대신한 것처럼 누군가 "글쎄다"라고 빈정거린다. 그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들린 소리였다. 동시에 거기에서 검은 액체가 담긴 병이 날아온다. 쿠가가 그걸 받더니 기다렸다는 듯 녹차봉투를 끌른다.
- 장재인 . . . . 21회 일치
[목차]
지향하는 음악은 포크 음악이며,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고.. 첫 자작곡은 7살 때 쓴 동요고, 자신이 '노래다운 노래를 만든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의 자작곡은 중3 때 처음 썼다.[[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00915175413774|#]] 실용음악과 중에서도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한 호원대 싱어송라이터과에 합격하면서(교수 [[정원영]] 현재 정원 '''5명'''...) 본가인 광주를 떠나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슈퍼스타K2에 참가하기 전부터 클럽 등에서 '''재인(才人)'''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재인밴드를 결성, 슈퍼스타K2에 참가하기 전까지 활동하게 된다. 이 때문에 후에 '[[이승철]]이 홍대클럽에서 장재인을 봤다.(이승철이 3차예선 시작할 때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한 게 원인)', '사실 제작진이 장재인을 홍대에서 섭외해 왔다.' 라는 --기본--기초적인 루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2년 3월에 소속사와의 계약이 종료되어서 혼자 활동하다가 전 매니저와의 인연으로 나뭇잎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였다. 하지만 나뭇잎으로 이적한 이후 근긴장이상증으로 인해 활동에 차질을 빚었고 2013년 여름에 다시 계약이 만료되었다. 이후 학업에 열중하다가, 2013년 12월 3일 슈스케2에서 심사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바가 있는 [[윤종신]]의 [[미스틱89]]에 합류했다.
=== 3차 예선 ===
장재인은 서울 예선 2차(심사위원 : 싸이, 아이비, 이승철)에 지원했다. 거기서 장재인은 '''[[앨라니스 모리셋]]의 Head Over Feet'''과 '''자작곡인 그곳'''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승철은 '뮤지션의 모습이 보여서 좋다', 싸이는 '고비의 순간, 행복했던 순간에서 울컥했는데, 많이 좋은 음악 하셨으면 좋겠다. 고맙다는 인사 많이 받으실 것 같다.'라고 평했다. 무난하게 합격.
첫 사전투표 결과, 장재인이 2위 김지수하고도 많은 표차로 첫 사전투표 1위를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생방미션인 ''' '리메이크 미션' '''에선 '''남진의 님과함께'''를 색다르게 소화하여 93(승), 98(엄), 97(윤)의 점수를 받고 '''첫 슈퍼세이브'''의 영광을 안았다. 윤종신의 '좋은 가수가 될 것 같습니다'라는 발언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방송이 끝난 후, 윤건이 '귀인 장재인, 넌 소름이였어.'라고 트위터에 쓴 글도 화제를 낳았다. 장재인 내정설이 슬슬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두 번째 사전투표 결과도 2위 [[존박]]과도 많은 표차로 2주 연속 사전투표 1위를 달성하게 된다. 두번째 생방미션은 ''' '[[이문세]] 미션' '''. 여기선 이문세의 명곡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을 장재인 특유의 감수성과 양반다리 스킬까지 발동하며 89(승), 88(엄), 98(윤), 95(문)의 첫 방송보다는 약간 저조하였으나(이 방송 다음주에 방영된 백스테이지 프로에서 이날 장재인의 몸상태가 저조했다는 게 밝혀졌다.), 고루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탑6으로 진출하게 된다. 이날 윤종신은 '장재인을 누가 잡죠?'라는 약간의 폭탄 발언을 했고, 이문세는 '기타로 서술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라는 평을 했다.
저번의 저조한 무대와 그에 반해서 포텐셜을 팍 터뜨린 존박에 의해서 전과는 다르게 사전투표는 박빙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최종 결과는 몇천 표의 약소한 차이로 장재인이 4주 연속 1위를 '아슬아슬하게' 지켰다. 용산미션에서는 미군들 앞에서 '''Duffy의 Mercy'''를 불렀다. 그리고 4주차 미션은 ''' '심사위원 미션' '''... 방송 며칠 전부터 장재인이 '''[[엄정화]]의 초대'''를 부른다는 소문과 증거사진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많은 팬들이 안 어울릴까봐 불안해 했는데...
2011년 2월 26일엔 이승환이 주관하는 차카게 살자 Season2 공연에 본공연 게스트로 참여했다.
* '''그곳''' : 3차예선에서 부른 화제의 그곡. 장재인의 자작곡 중 아마 제일 유명할 듯? 나중에 장재인의 개인 앨범이 나오다면 타이틀곡이 매우 유력해보이는..[[http://www.youtube.com/watch?v=NrCGM9C6h5U|#]]
12월 14일 2화에서 처음 짧게 등장하였고, 16일엔 [[http://pann.nate.com/video/215920747|티저영상]]이 공개되었다. 나오는 장면으로만 추측해보면(이지아 중심으로 차승원, 정우성이 나옴), 차승원-이지아-정우성의 삼각관계 신 혹은 이지아 테마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21일 자정에 음원과 [[http://gall.dcinside.com/list.php?id=jji&no=34423|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4화 마무리를 Please 티저영상으로 했다.(...)
감성적이고 슬픈 곡이다. 덕분에 '''사망씬'''에 나올 거라는 추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jji&no=98229|#]] 발매 초기엔 차트에서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현재 각종 차트 중상위권을 차지하는중. 다만 아이유의 강세--3단 꺾기--가 너무 강한 탓인지, 1위를 하는 모습은 몇번 보여주지 못했다. --근데 드라마 자체가 시망직전 아니, 거의 시망했다.--
Please는 놀랍게도 장재인과 영화 [[아저씨]]의 OST를 작업한 매드소울차일드가 공동작업으로 작곡하였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이때부터 장재인의 묘한 19금스런 가사가 시작되었다. 이곡과 차후에 등장한 love me do - velvet으로 이어지는 3곡의 가사는 미묘하게도 살짝 야하다. 특히 밥을 먹어요의 가사는 해석에 따라서 마치 원나잇을 보내고 난 뒤의 여자의 심경을 그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전 앨범이던 밥을 먹어요에 비해 가사는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가사가 해석에 따라서 굉장히 야하게 느껴진다. --설마 장재인도 [[김지수(가수)|김지수]]의 절차를 밟아가는 걸까...--
* [[운전면허]]와 [[자가용]] [[승용차]]는 아직도 없는 듯 하다. 이동할 때는 회사소속 차량이나 [[택시]]를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 차선우 . . . . 21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2, other1=드라마 내일도 승리의 등장인물, rd1=차선우(내일도 승리), other2=성경에 나오는 왕 바로, rd2=파라오)]
||<:> '''본명''' ||<(> 차선우(車善玗)/Cha Sun Woo ||
||<:> '''본관''' ||<(> [[차(성씨)|연안 차씨]] ||
||<:> '''가족''' ||<(> 여동생 [[차윤지]][* 2017년 "[[차윤지|아이]]"라는 이름으로 [[W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에서 데뷔하게 되었지만 2018년 10월 5일 WM과의 전속계약을 종료하게 되면서 남매가 모두 WM을 떠나게 되었다.] ||
||<:> '''종교''' ||<(> [[천주교]]([[세례명]]: [[레오]])[* 언젠가부터 [[바로]] 팔목엔 천주교인들이 차고 다니는 묵주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2014년 [[1월 24일]], [[한국방송공사|KBS]] [[뮤직뱅크]]에서 1위 수상소감을 전할때 가장 먼저 '먼저 하느님 아버지, 감사드리고요' 라는 멘션이 있었다.] ||
||<:> '''별명''' ||<(> 다람쥐~~공주~~[* 이와 비슷한 별명으로 바람쥐, 차람쥐 등이 있다.], '''야수왕'''[* 떠오르는 별명. 근데 본인이 이 별명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것같다.], 바우[* [[tvN]] [[할매네 로봇]]에서 얻은 별명. ~~바우야, 똥 싸냐!~~] ||
||<:> '''취미''' ||<(> 그림그리기[* 아이돌 사생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시기는 정규 1집 리패키지.], ~~잘 믿기지는 않다만~~독서, ~~복근자랑~~[* 2012년에는 막 벗어재꼈지만, 점점 안 벗기 시작했다.] ||
[목차]
팀에서 데뷔 초부터 분위기 메이커로 불렸다. 덕분에 별명이 차나댐. 혹은 나대미. 현재에는 보통 후자로 불리곤 한다. 나대미 기질이 폭발할 때는 외계어를 발사할 때. ~~혹은 [[홍빈|초코]]를 [[https://youtu.be/YkygSRI9Fr8?t=2m46s|놀릴 때]]~~ 그런데 갈수록 기복이 심해지고 조용해져서 캐릭터가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무대에서는 그 누구보다 더 잘 논다. 콘서트 때마다 다이나믹하게 물을 뿌리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다면 필히 조심해야하는 멤버(...).
랩 실력은 미지수. 라이브에서의 호흡마저 불안한 편이었으나 매력적이고 독특한 저음과[* 음악에서 음색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해서.] 독학으로 새로운 랩 스타일을 꾸준히 시도하는 모습은 발전 가능성이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랩을 잘해도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없다면 진정으로 랩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바로는 스타일만큼은 확실한 편. 소프트 랩이 주 장르이나 톡톡 튀는 랩까지도 무난하게 소화한다. 스스로 많이 연습하는지, 해가 갈수록 라이브에서의 랩이 안정적으로 굳어졌으며 랩 메이킹은 주로 그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거나 곡의 주제를 축약해 담는 등 곡에 맞게 쓰는 편이다. 래퍼답게 힙합을 좋아하는 듯 하나 경연프로그램에는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고 음반도 발매한 적 없으니 아직까지는 아이돌 래퍼에 머무는 포지션.
다만 고려해야 할 점은 바로가 신인 축에 속했었던 11~13년에는 스스로 전곡 가사를 쓰는 아이돌 래퍼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아이돌이라면 무조건 배척하고 보는 힙합 커뮤니티에서도 진영의 자작곡과 더불어 바로의 자작랩도 꽤 호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돌 래퍼가 가사를 쓰는 2018년에는 자작랩으로서의 희소성은 옅어지고 랩 실력도 눈에 띄게 발전하지 않아 래퍼로서의 강점을 많이 잃어버린 편이다. 하지만 연차가 쌓인만큼 아이돌 노래의 래퍼로서 랩의 완성도와 안정감은 보장받는 수준이 되었다. 최근 아이돌 음악에는 랩이 너무 튀어 곡 전체의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의 랩은 진영의 작곡과 산들의 가창력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b1a4의 음악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수준이란 평도 있다.
96회 육군과의 족구 대결 편에선 입족구 멤버로 확인 사살 당했다(...) ~~[[왼손은 거들 뿐|바로는 그저 팬들과 시청률 셔틀일뿐]]~~ ~~그것보다 군식을 맛있게 먹어서 독특했다는 평이 많았다~~ 안면이 있는 [[샘 오취리]]와 [[정형돈]], [[강호동]][* B1A4는 신인때부터 지금까지 나온 예능 중 가장 많이 나온 예능은 [[놀라운 대회 스타킹|스타킹]].]도 출연했고, 친구 불러온 특집에는 [[육중완]]과 [[샘 해밍턴]]도 잠깐 출연해서 은근 아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 ~~사실 팬들도 이젠 해탈해서 그냥 하차하길 바란다 [[카더라]]~~ 우리동네 예체능 팀의 응원군 중 십중팔구가 바로의 팬이었다.
||<:> 드라마 ||<:> [[MBC]] ||<:> [[앵그리맘]] ||<:> 홍상태 역 ||<:> [* [[2015년]]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의 차기작, '[[앵그리맘]]'에 캐스팅 확정되었다. 배역 이름은 '홍상태'. 명성재단 사학재벌 홍회장의 아들로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학교 내에서 일진짱도 움직이는 교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한다. ~~인소세요?~~ 한마디로 흔히 말하는 [[흑막]] 또는 [[최종보스]]. ~~근데 생김새가 위엄이 없다~~ [[김희선]], [[김유정(배우)|김유정]], [[지현우]], [[박수아|리지]] 등과 호흡을 맞춘다고 한다. ~~돈많고 재수없고 위엄있는 캐릭터~~ 그 중에서도 문제아와 입바른 소리하는 아이로 [[김유정(배우)|김유정]]과 많이 부딪힌다고 하지만 작중에서 계속 부딪히는 건 [[김희선]]이다. ] ||
출연 영역이나 배역이 매우 독특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케이블 드라마와 지상파 드라마는 물론 단편영화, 웹무비, 웹드라마, 장애 인식 개선 드라마 등에서 연기했으며 여지껏 맡은 배역으로는 순수한 '''의대생''', '''지적장애인'''[* 그것도 두 차례나 맡았다.], '''싸이코패스''', '''시각장애인'''[* 정확히는 시각장애인인 척 하고 살아가는 남자] 등 다양하다.[* 축구 마니아, 연예인, 일진짱, 조금 어눌한 친구 같은건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하게 되었다... ]
* [[소녀시대]], 그중에서도 [[태연]] 짱팬이다. 나오는 예능마다 하도 언급하고 소시 춤을 춰서 팬들의 쿠크가 깨진다... 안습. 팬미팅에서도 "전 태연 선배님이 좋아요."라 발언. 산들 曰 "제가 혼내줄게요 여러분" 숙소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를 모시고 있다고(...) ~~너도 현직 아이돌이야..~~ 결국 팬싸인회에서 팬들에게 선물로 소녀시대 CD를 받았다. ~~그리고 2014년 6월 19일 태연이 열애를 인정했다! 본격_바로_멘탈_깨지는_소리~~ 언제부터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후(2017년 기준) 좋아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탈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더이상 차소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는 아니게 된 듯.)
* 데뷔 1년차 될 때쯤에 [[B1A4|비포]]가 예능감 없다는 소리에도 그나마 [[산들]]과 티격태격대며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광산같은 엽사를 남기던 멤버가 바로 얘. 그런데 2014년부터 급격히 성격이 바뀐것같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탓인지. 성숙해졌달까, 옛날 리얼리티에서 ~~다람쥐공주 춤을 추는~~ 까부는 행동은 요즘 자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주먹을 부르는 애교와 외계어와 조증을 가지게 됐다~~ 그래도 별명이 나대미, 차나댐인 만큼 요즘도 주목 받을땐 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도 원래 바로는 학생 차선우 시절에는 조용하고 직설적인 사람이였다고 했으니. ~~멤버들이 말한 A형의 B형화 B형의 A형화가 괜히 한 말은 아닌 것같다(...)~~
* 멤버들 사이에서 엽사를 굉장히 잘 찍는다. 본인의 말로는 얼굴근육이 유연하다고 한다. 눈썹도 유연한 편이다. ~~그래도 [[블락비]] 앞에선...~~ [[http://blog.naver.com/nowly/70142184006?p__g=n__w|하품하는 차바로]]
- 하정우(영화감독) . . . . 21회 일치
||<#878787> '''{{{#EEE156 가족}}}''' ||<(> 아버지 [[김용건]], 동생 차현우 여동생 [[윤하|김윤하]]||
[목차]
중학교([[전라북도]] [[임실군]]에 소재한 [[예원예술대학교]] 출신)때 전교 선도부장을 맡으며 학교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더욱 멋진 것은 하정우는 남자 후배들에게도 흔히들 선배가 잡는 허세나 똥군기를 하나도 안 잡고 살갑고 따뜻하게 대해줌으로써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학생으로 기억된다는 것. 그래서 동문들 사이에서는 하정우의 성공을 두고, "성훈이 형이 잘 되어서 정말 좋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분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시절 성적이 안 나오자 담임이 '[[김용건|너희 아버지]]가 [[패드립|그러니 니가 그 모양이지 않느냐]]' [* 당시 [[김용건]]은 에로 영화에도 간간히 출였했었고,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빨간 양말을 신고 다니며 춤을 가르치는 [[제비족]]으로 출연 중이었다.] 라는 식으로 혼을 내 충격을 먹고 성적을 올려 모범생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가 암울한 인물이기도 하다. 20살에서 21살로 넘어가던 시점에 부모님이 이혼했는데, 어릴 적 부터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가 홀로 기르다시피 했고, 결국 어머니가 젓갈사업이 망한 것을 계기로 아예 이혼을 해버리게 된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 부도가 났고 전 재산을 압류당한 후,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차 1대를 가지고 '''7년 동안 닥치는 대로 일만 해서 빚을 갚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추후 연기 과외를 상당히 많이 해서 입시연기과외 세계에서 유명인사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다음 해인 [[2008년]] 영화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드라마 《히트》와 영화 《추격자》는 둘 다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하정우는 《히트》에서는 검사 역을, 《추격자》에선 반대로 살인마 역을 맡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실제 사건에 대한 분위기가 흡사하게 조성된 《추격자》와 달리 《히트》는 경찰, 검찰과 범죄자의 심리 싸움 등이 주된 서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그냥 유영철 사건에서의 모티브만 따온 것이고 내용이나 분위기나 인물들 자체가 실제 사건과는 차이가 많이 있어 그렇게 유영철 사건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은 아니다.] 《추격자》는 하정우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엄중호 역할이었던 [[김윤석]]도 살벌한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연기인지 실제인지도 모를 무아지경의 장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지영민이 중호에게 쫓기며 한밤중 골목길 추격전을 벌이다 코너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장면은 원래는 NG였는데 너무 리얼했던 나머지 [[나홍진]] 감독이 그 장면을 버리지 않고 그냥 썼다는 일화는 상당히 유명하다. 이렇게 영화는 성공했지만, 그 덕(?)에 험악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돼 고생 좀 했다고 한다...[* 실제 살인마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사실 브라운관의 악역 역할을 맡는 배우들이 시장에서 험한(?) 꼴 당한다더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세계 어디서나 다반사다.] 주변에서 연쇄살인마 역할을 맡는 것을 말렸으나 전작 《프라하의 연인》에서의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싫어서 이 역할을 선택했다고 한다.
[[2013년]]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영화)|베를린]]》에서 주인공 [[표종성]]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가 관객 수 700만 명을 넘기면서 당대 최고의 흥행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 또한 같은 해 7월에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는 하정우의 단독 주연작에 같이 개봉하는 《[[설국열차]]》가 있어서 흥행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550만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차기작인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영화)|아가씨]]》에서는 백작 역을 맡아 2015년 11월 초 크랭크업 되었으며 2016년 6월 1일 개봉.
[[소재원]]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터널(영화)|터널]]》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터널 속에 갇힌 38세 자동차 딜러 [[이정수(터널)|이정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2016년 8월 10일 개봉되어, 개봉 12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여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최종관객은 712만 명으로 흥행 대성공.
2018년 1월 현재 [[신과함께-죄와 벌]]과 [[1987(영화)|1987]]이 동시에 흥행하면서 약 2,10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단숨에 누적 관객수 9,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한국 영화]] [[배우]] 누적 관객수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18년]] 8월, [[신과함께-인과 연]]이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나가며 개봉 6일 차인 8월 6일, 만 40세로 역대 최연소 1억 관객 돌파 기록을 세웠다. 주연작만 계산하면 [[송강호]]에 이어 역대 두 번째 1억 관객 돌파 기록이며, 주조연작을 포함하면 역대 다섯 번째 1억 관객 돌파 기록, 전체 동원 관객 수 5위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판타지오]] 소속으로 활동해 왔으나 2016년 10월에 계약 만료 후 2017년 1월에 아티스트 컴퍼니와 새로 계약했으며, 아티스트 컴퍼니의 지분을 일부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10월에 결별 소식이 떴으며, 독자적으로 회사를 차려서 활동한다고 한다.
하정우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역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연기력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의 에이스 병장에서부터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의 양아치 [[호스트바|호스트]], 《[[추격자]]》의 냉혹무비한 [[연쇄살인마]], 《[[국가대표]]》의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 스키점프 선수, 《[[황해]]》의 조선족, 《[[의뢰인]]》의 변호사,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조폭과 《러브픽션》의 찌질한 소설가, 《[[베를린(영화)|베를린]]》의 비밀요원, 《[[더 테러 라이브]]》의 오만하고 가식적인 앵커, 《[[허삼관]]》속 아버지와 《[[암살(2015)|암살]]》의 낭만자객 하와이 피스톨, 《[[터널(영화)|터널]]》의 자동차 딜러까지 전혀 다른 배역을 위화감없이 소화해낸다. 연기력만으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다.
하정우 라이트 팬이 신분을 속이고 친구 대신 다녀온 캠프 인증글이 디시인사이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에 올라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각종 사이트로 배달되며 화제가 된 사건. 하정우가 더 테러 라이브, 군도 촬영 전 팬미팅 성격의 캠프를 주최하였다. 하정우와 정경호를 비롯한 후배들 대거 참여(전날 롤러코스터 크랭크업을 했다고) 피의 선착순 댓글을 뚫고 캠프에 당첨된 하정우 팬 80명은 경기도 모처 살얼음이 낀 논두렁 위에서 팀을 나누어 단체 티셔츠를 입은 후 각종 게임을 하였다. 퀴즈 1등 상품은 하정우 그림액자(하정우가 직접 시상). 참가 후기에 따르면 하정우는 동네 형과 싱크로율이 100%라는 이야기가.. 본인이 질식할 만큼 말보로 화이트를 석션했다카더라.. 80명의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털털하게 소맥을 마는데 이 때 머리 크기가 배우치고가 아니라 일반인 치고도 크고 아름다운 사이즈라 카더라. 마지막날 1대1 딥포옹 셀카 촬영 등 지옥의 팬서비스. (하정우에겐 호된 경험이었는지.. 그후 2차 캠프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없는 실정이라고) 이후 하정우 캠프에 대타로 참가한 글쓴이는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마다, 하정우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하정우 앞에서 단체 줄넘기 하던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캠프 이후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썰이 있다.
* 발이 유난히 커서 별명이 '''왕발이'''였다. 발 사이즈가 무려 295mm... 군복무 당시 '''농구 선수 크기인 300mm [[군화]]를 신었을 만큼''' 발이 컸다. 이러한 왕발 때문에 영화 베를린 촬영 도중 자동차에 매달리는 장면에서 자동차가 코너를 돌 때 발이 쏠려 차체에 밟혀 고생했다.
* 걷는 걸 광적으로 좋아해서 바쁜 일이 없으면 서울 시내를 걸어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거리가 엄청나서 화제. 최근 신과함께 인터뷰에서 밝히길 차태현과 만나기 위해 집에서 '''홍대까지 걸어 갔는데 하정우의 집은 서초구 [[잠원동]]이다'''(...) [[http://news.nate.com/view/20171224n13285|#]] 잠원동에서 홍대까지는 대충 속보로 걸어가도 3시간이 넘는 거리다 ㅎㄷㄷ 걷기 좋아하기 때문인지 공효진과 국토대장정을 하는 577프로젝트라는 영화도 출연했다.
* 남동생 차현우는 1997년 '예스 브라운'이라는 남성 듀오에서 래퍼로 데뷔해 활동한 적 있다. [[https://youtu.be/omRKIR99cCk|#당시 활동영상]] 하정우에겐 연예계 선배인셈이다. 이후 배우로 전향해 연극 무대와 영화 '이웃사람' 등에 출연했다. 2014년에는 배우 [[황보라]]와 연애가 알려졌고, 현재 결혼은 앞두고 있는 깊은 관계라고 한다.
심지어 v앱에서 본인의 별명이 하대갈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여 옆에 있던 차태현을 빵 터지게 했다.
[[신과함께-죄와 벌]]에서는 김자홍의 장례식에서 육개장을 먹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이건 나도 못먹겠다” 라고 하는 배우개그를 선보였다. 중간에 육개장을 뱉은 이유가 동양에서 빨간색이 귀신을 쫓는다는 풍습이 있어 저승차사인 하정우가 못 먹고 뱉었다는 말이 있다.
||<|4> 2009 || [[국가대표(영화)|국가대표]] || 주연 || 밥/차헌태 || 8,487,894 || 성공 ||
* [[GM대우 토스카|토스카]] 광고를 촬영한 뒤 하정우는 2억의 개런티와 함께 2010 토스카 프리미엄6의 1호차를 받았다. 아직까지 잘 타고 다니는 모양. [[김용건|아버지]]에게는 [[벤틀리 플라잉스퍼]] 1대를 선물해 드렸다고 한다.
- 김민희(1982) . . . . 20회 일치
[목차]
특히 [[김효진(배우)|김효진]], [[원빈]]과 함께 출연했던 [[한솔엠닷컴]]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주제의 광고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래 동영상) 이어 [[차태현]], [[신민아]]와 출연한 CF에서는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명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는 당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다.[[https://youtu.be/0GsJpuPUEVo|1편]][[https://youtu.be/Ax8EIOyGF34|2편]][[https://youtu.be/ZVxij2AQel0|3편]][[https://youtu.be/Hh74Xv_kq80|4편]]
그리고, 다수의 잡지와 CF 등을 통해 활동하다 1999년 드라마 <[[학교 2]]>의 반항아 신혜원 역을 맡으면서 배우로도 자리잡게 된다. 여러모로 [[배두나]]와 닮은 경로다. [[1998년]] 길거리 캐스팅 → 1년간 [[모델]]로 성공 → [[학교 시리즈]]에 반항아 포지션으로 성공 → 이후 승승장구 테크를 탔다.[* 한 가지 차이라면 [[배두나]]의 이미지가 개성 있는 외모, 이단아 등이었던 것에 비해 김민희는 CF스타로서 어필이 가능한 비주얼적인 면 역시 가지고 있었다. 포지션에 있어 배두나와 좀 더 유사한 쪽은 [[공효진]], 양미라 등.]
물론, 가요계를 포함한 대중문화계 전체에서는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이라 불리는 가수들에 의해 이미 96년에 아이돌 문화가 시작된 상태였다. 실제로 한국에서 아이돌 문화를 주도한 것은 가요계였지만, 당시 이들은 70년대생과 80년대생이 혼재된 형태였으며 시기적으로도 엄연한 1990년대라 이후 등장한 (비가요계의) 아이돌과 세부적으로는 개념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팬층도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배우나 모델들처럼 10~20대를 상대로 어필을 하던 아이돌로 봐도 부족하지 않았다.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상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영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순수의 시대]]가 방영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상 거의 김민희--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그 뒤로 [[2012년]] 《[[화차(영화)|화차]]》, [[2013년]] 《연애의 온도》, [[2014년]] 《[[우는 남자]]》, [[2015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6년]] 《[[아가씨(영화)|아가씨]]》 등을 통해 좋은 연기[* 데뷔 때와 비교하면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자연스러워지고 섬세한 표현력이 증가하였다.][* 《서프라이즈》와 《[[아가씨(영화)|아가씨]]》의 편집 감독이 같은 사람인데, "그 때의 김민희와 지금의 김민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며 극찬했다.]를 선보이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흥행에 있어서도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새롭게 듣게 되었다.
2016년 영화 《[[아가씨(영화)|아가씨]]》를 통해 영화감독들이 선정하는 제16회 디렉터스컷 여자연기상을 수상하여 감독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16년 11월 25일 모든 한국 영화인들의 로망인 제37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같은회차 청룡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은 배우 [[이병헌]]이 수상했다. 비록 남녀주연상을 받은 두 배우가 사생활 논란이 있었지만 연기력으로는 충분히 받을만 했다는 평가다.
|| 2012년 || [[화차(영화)|화차]] || 주연 || 강선영/차경선 ||
* 다른 작품은 다 해도 [[공포 영화]]만큼은 정말 못한다고 한다. 공포 영화의 경우에는 시나리오를 읽는 것조차도 무서워한다고. 그래서 [[나홍진]] 감독의 《[[곡성(영화)|곡성]]》도 아직 못 보았다고 한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242885|관련 기사]]
현재 [[홍상수]]와 함께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같이 있어?~~ 두 사람이 [[중혼]]이 합법인 [[유타 주]]에서 비밀 결혼을 올릴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으나 이것은 오보로, 당연히 [[미국]] 내 50개주 모두 중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동거]]라면 모를까 결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Sister Wives>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 [[몰몬교]] 일가의 [[일부다처제]] 허용 신청에 대해, 판사가 "법을 위반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사실상 중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애초에 이 판결은 이후 뒤집혔다. 어차피 재판 자체가 기각되었어야 할 사안이었고, 해당 사건 담당판사 역시 논란이 많은 인물인지라, 판사는 거의 전방위로 비판을 받았다. [[여담]]으로 [[유타 주]] 내의 중혼 금지 관련 규정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라 한다. 애초에 2013년 [[유타 주]] 연방지법의 [[중혼]]관련 판결은 중혼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그간 [[유타 주]]에서 금지되어 있던 부부+[[사실혼]] 관계 여성의 동거를 금지한 유타주 법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홍상수]]와 김민희가 유타 주에 간들 결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애초에 그들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또한 이 판결이 2016년 항소법원에서 무효판결이 나온 것의 근거는 유타주가 애초에 이런 종류의 동거집단이 범죄행위와 연류되지 않을 경우 기소를 하지 않는다는 유타주 검찰청의 정책으로 인해서 사실상 원고들이 피해를 볼 일이 없다는 근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유타의 중혼관련 법이 강해지기는 힘들 것이다. 애초에 이런 법 자체가 [[몰몬교]]에 시달려온 유타주의 독특한 사례이기도 하고.]
사실 여하를 떠나서 두 사람의 태도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 최초 해명 당시 국내로 돌아와서 설명하겠다 했으면서 여태까지 침묵을 지켰으며, 사건 초기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이혼]] 절차를 밟는 중이다. 김민희 역시 국내로 돌아온지 꽤 된 것으로 보이나,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포함한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팬들 앞에 나타나지조차 않았고 소식 통보도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이 여지껏 해명은 고사하고 뒤에서 신작 촬영이나 준비해 온 것으로 드러난 셈인데, 이는 누가 봐도 좋게 봐줄 수 없는 행보이다.
만약 김민희와의 불륜 때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로 이혼을 원하는 것이며, 부인이 이혼 사유를 불륜이라고 추측하는 상황이라면, 본인들의 커리어나 이미지는 물론 이혼 소송에도 지극히 불리한 불륜 혐의부터 벗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불륜남녀라고 지목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긴 시간 내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거기다 침묵을 고수하여 팬들조차도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고, 잠수를 탄 기간 동안 둘이서 영화 촬영을 준비해왔다고 하면 이를 좋게 받아줄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이러한 추측은 맞아떨어졌다. 2017년 3월 13일, 홍상수와 김민희는 공개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간통]]을 인정한 것 뿐 아니라 인터뷰에서 대놓고 자신들의 간통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 포장하였고 이 과정에서 '''기자석에서조차 탄식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062293|#]] 이러한 두 사람의 유례없는 행보 덕에 김민희의 배우로서의 연기력과 홍상수의 감독으로서의 능력 및 영화적인 작품성과는 별개로 두 사람의 '''국내에서의 이미지는 거의 파렴치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현실이다.'''
사실 국내는 당연지사고 간통을 개인의 사생활이라면서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본다고 하는 서구권의 간통 사례와 비교해도 홍상수와 김민희의 현재 태도는 대담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뻔뻔하다. 기자회견을 열고 눈물까지 그렁이면서 명백히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대상이 되는 간통을 아름다운 사랑이라며 미화를 하거나 아예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서 출품까지 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덕분에 대중들은 "이 둘에 비하면 [[이병헌]]은 차라리 양반이다." 수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민희의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한 이후에 똑같은 간통 논란을 의식한 기자가 이병헌에게 누가 봐도 대놓고 노린(...) 인터뷰까지 한 적도 있다.
2017년 3월 13일,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에서 김민희가 홍상수 감독과 함께 간통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몇몇 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론에게 많은 비난을 받게 되었다. 기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울컥했다는 부분에 대해 홍상수의 본부인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냐는 등의 비난이 대부분이고 이 행동조차도 연기였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 2012년 || 제21회 부일영화상 || '''여우주연상''' || 화차 ||
- 김영철(배우) . . . . 20회 일치
|| [[차인표]][br](2000) || → ||<#FFFFA1> '''김영철[br](2001)''' || → || [[유동근]][br](2002) ||
[목차]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남편 "강세풍"역할을 맡아 부인 역할을 한 [[이미숙]]과 사실적인 코믹함을 바탕으로 한 부부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 이 드라마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부부들이 주인공으로 [[길용우]]-[[양미경]], [[유동근]]-[[이미영]], 김영철-이미숙이 각각 다른 3가지 부부생활을 보여줬다. 당시 김영철은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기가 센 부인에게 그게 잘 먹히지 않아 부인과 매일 부딪히는 남편 '강세풍'연기를 통해 코믹한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당시 [[이영애]]가 조연(길용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이영애의 첫 TV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하다.]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백미로 꼽히는데,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S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했고 1회 대상을 이 드라마의 [[이미숙]]이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시청자들(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출연한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는 극 중 [[신현준(배우)|신현준]]과 [[이병헌]]의 친형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집안에 입양된 신현준이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하차한다. 이듬해 방영한 '머나먼 나라'에서는 [[김민종]]의 아버지이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절름발이로 등장하는데 방영한지 20년이 다된 지금도 이 드라마의 팬이라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연기일만큼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1990년대는 개인사업 등의 사정으로 활동이 약간 줄어들어 TV에서는 [[아침 드라마]] 전문 불륜 배우[* 이 기믹으로 MBC의 2002년작 [[월화 드라마]] [[위기의 남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정도로 소비된 시절이다. KBS 일일드라마 히트작인 [[정 때문에]]의 남기남 역이 대표적인 이 시절 김영철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 역도 중간에 하차하는 역이라 큰 인상은 주지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맞이한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할은 [[태조 왕건]]의 [[궁예(태조 왕건)|궁예]]와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이 두 역할은 김영철의 대명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연기에서 엄청난 포스를 뿜어냈다.[* 물론 최고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했던 궁예와는 다르게 김두한 역을 맡았을때는 기존의 인기요소였던 격투, 활극에서 정치드라마로 바뀌는 바람에 1부보다 떨어지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였는데 몇년 후 [[고자라니]]가 발굴되어 현재는 이쪽 김두한이 안재모 김두한보다 더 인기가 좋다.]
<태조 왕건>의 궁예는 원래 일찍 하차할 캐릭터였는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120부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태조 왕건은 총 200부작인데 절반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다웠고, 궁예가 죽으면서 1기가 끝나고, 견훤이 죽으면서 2기가 끝났다. [[진 주인공]] 맞다. 결국은 연기대상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개소문(드라마)|6년 뒤]]에 [[수양제|한 번 더]] [[김갑수|재현된다.]][* 다음 해에는 주인공인 왕건 역의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받았다. 한 드라마가 2년 연속 연기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1987년부터 1989년에 방영한 [[토지(소설)|토지]]([[임동진]]-[[반효정]])와 태조 왕건 둘뿐이다.] 김영철은 장기간 한쪽 눈으로 연기한 탓에 시력에 이상이 와서 드라마가 끝나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력을 회복한 상태. 덧붙여서 궁예 역을 할때 실제로 삭발을 하여 연기에 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스님들이 분장과 가발을 한 것과 달리 한눈에 봐도 진짜로 머리를 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려시절, [[종간]]과 같이 있을 때.]. 어느 사극에서나 나오듯, 궁예 역할 역시 고증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논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김영철의 절등한 연기력에 그런 지적들은 힘을 못 쓰고 묻혀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드라마 1기 후반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기를 부리거나 똘기어린 감정표현을 하거나, 주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김영철은 특히나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였기에 시청자들 뇌리에 깊이 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가령 술취한 궁예가 사람을 쳐죽이는 장면에선 취중에 혀가 꼬이는 것에서부터,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진짜 술취한 것처럼 재현하였다.
대왕세종이 기존의 대하사극의 느낌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가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 되버렸고 시청률도 부진해서 덩달아 태종 이방원역까지 아쉽게 묻힌데 비해 공주의 남자는 달랐다. 기대치 않았던 젊은 주연배우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이긴 했으나 주연은 아니었으며 애초에 분량이 적고 조용한 캐릭터였다. 당시 공주의 남자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더군다나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아가씨를 부탁해]] 이후 소속사 계약만료로 약 2년간 공백기가 있었다가 [[괜찮아, 아빠딸]]로 복귀한 후였다. [[박시후]]도 사극 출연은 2008년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가 전부이며 사극의 메인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일지매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연기여서, 공주의 남자 방영전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 게다가 [[송종호]]는 아예 사극 첫 출연이라 당시 극 초반에 발성이 무척 어색했다. 결국 촬영 중에 이순재로부터 사극 발성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너무 불안한 캐스팅이라 느꼈는지, 서브조연 커플인 경혜공주와 정종 역은 [[왕의 여자]],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에 출연해 나이에 비해 사극 경험이 풍부했던 [[홍수현]]과 동 나이대 사극본좌 [[이민우]]가 캐스팅되었다.] 속에서 이순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예상치 못한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얻게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김종서]] 역을 맡은 [[이순재]] 옹과의 연기 대결은 이 드라마 초반부의 백미. [[박시후|드라마 두]] [[문채원|주인공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훌륭하다고도 볼 수는 없었는데[* 실제로 연기대상에서 두 주인공이 남녀 최우수상을 싹쓸이하자 드라마 인기빨로 수상했다는 말이 조금 있었다.] 베테랑 김영철이 중간에서 미칠듯한 연기를 뽐내는 바람에 더 그래보였다(…). 이순재가 극의 1/3 지점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홀로 미친존재감을 선보이며 끝까지 열연했다. 이 작품은 최고시청률 25%까지 기록했는데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수양대군 캐릭터는[* 궁예나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포지션이다. 그냥 '''악역 그자체'''. 아마 김영철이 연기한 배역중 최악이자 최고의 악역이 아닐런지.] 욕을 한사발 얻어먹으며 '''[[천하의 개쌍놈]]'''이라 씹혔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서 나름 반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시청자들의 평가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mNFY4R3IA5A|마지막회영상(스포주의)]] 한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김영철의 열연 덕에 24화동안 쌓아온 욕들 어디로 가고 수양대군을 안쓰러이 여긴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황당했다고.(...)[* 사전제작이었던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 퀄리티가 떨어졌으나 순전히 김영철만의 광기어린 열연으로 극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물론 박시후와 문채원도 제 몫을 다해줬다.] 종영 직후 나온 기사에도 수양대군의 마지막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에 감탄하는 댓글이 많았다.[[http://news.nate.com/view/20111006n35385?mid=n1008|당시기사]]
2012년 [[KBS 2TV]]의 [[수목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대기업 사장 서정규 역으로 25살 차이나는 여성([[박시연]])과 결혼하려고 하며 [[공주의 남자|전생에도]] [[문채원|딸이었던 딸]]과 대립한다. --그런데 그 [[김서라|딸의 친엄마]]도 [[공주의 남자|전생에]] 아내.--[* 극 중 김서라가 맡은 엄마 역할은 3회에서 회상 장면으로 잠깐 나온 것이다. 원래 나오는 역할이 아닌데 이경희 작가가 대본을 쓰다보니 어머니 역할이 한 컷 나오게 되었고 전작의 재미도 살릴겸 카메오 격으로 김서라를 출연시킨 것이다. 공주의 남자와 착한 남자 모두 KBS 수목드라마이기도 했기에...] 다만 이 작품에서는 서정규 역할이 조기퇴장하면서 큰 활약은 없었다.
2014년에도 KBS 2TV의 [[월화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2014)|태양은 가득히]]에 출연했는데 위에 나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맡은 역할과 비슷한 대기업 회장 '한태오' 역할을 맡았다. 딸과 대립[* 착한남자의 '서정규'처럼 말 안 듣는 딸을 속으로는 사랑하고 걱정하지만 자신이 시한부 환자라 딸을 그대로 남겨두고 가는 것이 답답해서 초반부터 구박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포지션의 대립. '한태오'는 자기 사업에 대해서는 냉혈하고 지독하지만, 딸만큼은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사랑하며 길렀는데, 너무 사랑한 나머지 후반부가 되어서야 자신의 비리와 딸의 과거 연인을 암살하도록 했던 사실을 딸에게 들킨 뒤에도 바로 막지 못하고 조금씩 공격당하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대립하는 구도.]한다는 점, 부인이 어리다는 점[* [[전미선]]이 재혼한 아내 역할을 했다. 물론 30대인 박시연보다는 덜하지만 전미선과도 20년 가까운 나이차이가 난다. 극중 나이차이는 실제 배우끼리의 나이 차이보다는 적은 듯 묘사된다.], 여주인공인 딸 외에 아들[* 딸의 이복남동생.]이 있다는 점[* '착한 남자'에서의 아들은 늦둥이라 어린이지만,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아들은 성인(후술될 항목에 예능에 같이 출연한 '아들' [[손호준]]이 맡은 역할)이다.], 결국 남자 주인공과 딸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점 등 스토리상 '유사점이 많은 역할'을, '같은 방송국'에서, '같은 배우'가 연기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 보면 다른 점도 많기는 하다. 결국 마지막에 감옥만 갈 뿐 드라마 끝까지 살아있는 채로 끝났다는 점에서, 중간에 죽은 '착한 남자'에서의 역할보다는 행복한 역할인 듯.]
2017년 초에는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타이틀 롤인 아버지 변한수 역을 맡게 되었다.[* 드라마 오프닝에도 첫 등장.] 여기서는 평생 일과 가족밖에 모르고 산 그야말로 부정의 끝판왕. 과거 카리스마를 겸비한 강한 역할을 많이 맡던 김영철이 이런 가정적인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 것을 보아 그의 연기폭이 얼마나 넓은지를 알 수 있다. 주로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상한 아버지 역할에 아무 위화감이 없다. 여담으로 이 극에서 딸인 변혜영 역은 이전 출연작인 가화만사성에서도 김영철의 딸 [[봉해령]] 역으로 출연한 배우 [[김소연(배우)|김소연]]이 맡을 예정이었으나 하차하고 대신 [[이유리(배우)|이유리]]가 그 역을 맡게 되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데.. 여담으로, 자신을 생부로 착각하는 [[이준(배우)|이준]](안중희 역)의 모친이 [[김서라]](안수진 역). 두번의 [[공주의 남자|전]][[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작]]에서 '''아내'''..
[[2001년]] 7월 승용차를 몰다가 앞차를 들이받고 달아났으며 이 때문에 도로교통법상 조치불이행혐의로 불구속입건이 된 바 있었고, 그 이후에는 본인이 속해 있었던 매니지먼트사 사건과 관련되어 한동안 안방극장에서 활동이 뜸해졌다가 [[2006년]] [[KBS 1TV]] [[서울 1945]]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2011년 [[문화방송|MBC]]의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참가해 첫방송에서 1등까지 했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였다.
|| 1981년 || 야행 열차 || KBS1 || ||
- 김윤아(1974) . . . . 20회 일치
[목차]
진성의 음역도 점차 넓어졌는데 4~5집에 이르러서는 3옥타브 레(D5)를 원활하게 내고 있다. 드디어 6집의 'Oh Mama!'에서 처음으로 __3옥타브 파(F5)__를 냈다! 여담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중 '죽기 전에~'라는 가사 끝부분에서 지르는 부분이 진성으로 3옥타브 파(F5)이다. 참고로, 가성의 음역은 3옥타브 라(A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1994년 어느 늦은 밤' 후반 애드립]~3옥타브 라#(BB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후반 애드립]은 원활하게 내며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얘기할 수 없어요' 중반 애드립에서는 __4옥타브 레(D6)__까지 냈고 자우림 8집 타이틀곡 'IDOL' 마지막 지르는 고음에서도 4옥타브 레(D6)를 냈다고 한다! 단, 원래 음역대가 넓은 편이 아니고 성량이 엄청난 수준이거나 하진 않은[* 물론 [[일반인]]에 비하면 엄청난 성량이지만. 애초에 성량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부족하면 [[록밴드]]에서 악기 소리에 묻히기 십상이다.] 탓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라이브에서 의외로 삑사리가 잦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다 눌러버리지만... 성량의 경우 최근 나온 [[듀엣 가요제]]나 몇년 전 [[나는 가수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상당한 파워를 자랑한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성량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졌다. 콘서트를 가면 훨씬 더 잘 알 수 있는 부분. 예를 들자면 김윤아가 콘서트에서 부른 4집 '타인의 고통' 수록곡 '다 지나간다'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레(D5)를 거뜬히 소화하였고, 듀엣가요제 5연승 명졸 무대를 장식한 빅뱅의 'LAST DANCE' 2절 후반부 애드립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미(E5)를 깔끔하게 소화하였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전보다 더 높은 음(3옥타브 미(E5)~3옥타브 파(F5))을 진성으로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보다 확실히 파워라든가 성량이 업그레이드되었다.
2015년 12월에 3번째 재연을 올리는 뮤지컬 <[[레베카(뮤지컬)|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역으로 출연이 결정되었다. 뮤지컬은 오랫동안 김윤아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분야였고 데뷔 18년만에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일단 팬들의 반응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나뉘는 듯 하다. 일단 일부 뮤덕들의 외부 가수 주역 캐스팅 불만 및 비난이야 늘 있었던 것이니 차차하더라도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 요구되는 폭발적인 넘버 소화력을 김윤아가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가장 많다.'''
결국 사단이 났다. 후두염을 이유로 혹평을 받은 첫 공연 이후 모든 스케쥴이 트리플 캐스트인 [[차지연]]과 [[신영숙]]으로 변경되었다. 그 덕에 [[명성황후(뮤지컬)|다른 작품]]의 스케쥴도 변경되었으니 졸지에 다른 배우들에게 엄청난 실례를 한 셈. [[레베카(뮤지컬)#s-4.3|해당 항목]] 참조.
곡 제공과 더불어 피처링 역시 정말 드문데, [[김수철(가수)|김수철]], [[이적(가수)|이적]], 백현진, 킹조의 앨범에 각각 한 곡씩 피처링을 한 적이 있다. 김수철과 이적이야 말할 것도 없는 대가들인데 킹조는 누군가 하면 김윤아의 남편인 김형규가 결성했던 힙합 그룹이다(…). --[[한조(오버워치)|THE KING☆HANZO]]가 아니다-- 나가수에서 '사랑 밖엔 난 몰라'의 듀엣무대를 함께 한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 앨범의 '어른용 사탕'이라는 곡에서도 피처링을 했다. 그런데 2012년, '''굉장히 놀랍게도''' [[G.DRAGON]]의 2번째 솔로 앨범에서 'Missing You' 라는 곡에 피처링을 했다. 그리고 'Missing You' 는 타이틀곡인 'Crayon' 을 팀킬해버렸다. 9월 4째주 [[뮤직뱅크]] [[케이 차트]]에서 Crayon은 9위에 Missing You는 2위에 랭크된다. 참고로 1위는 [[싸이|월드 스타]]의 [[강남스타일]].
2011년에는 비슷한 (약 10년의 세대차이는 있지만) '홍대 마녀'라는 별명을 가진 [[오지은(가수)|오지은]]과 한 음악프로그램에서 듀엣곡을 부른 적이 있다. 김윤아의 'Tango Of 2'[[http://www.youtube.com/watch?v=GRLEsw3amJI|링크]][* 김윤아 1집 수록. 본래는 [[유앤미블루]]의 방준석과의 듀엣곡이다. 1절은 [[한국어]], 2절은 [[스페인어]]로 된 곡인데, 오지은의 전공을 살려 고른 노래인 듯.][* 노래를 부르고 김윤아가 "역시 전공자는 뭐가 다르군요"라는 멘트를 치자 오지은이 "전국에 계실 진짜 전공자 분들께 미안하다"라고 하기도.]와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따로따로 진행된 김윤아와 오지은의 무대는 각각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무대였다. 오지은은 아주 좋아하는 무대라며 트위터에 올렸을 정도. [[https://twitter.com/heaventomorrow/status/756530445878038528|링크]]
자우림, 김윤아의 음악에 대한 개인의 견해야 다양한 것이지만 작곡가의 곡을 받아서 연주하는 가수가 아닌 '''자신이 직접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에게 '자의식 과잉' 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만드는 노래' 에 '자의식을 빼야' 한다는 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주장이다. 차라리 "자의식에 진정성이 없다" 라든가 "자의식을 지나치게 패셔너블하게 다룬다" 라는 식의 비판이 그나마 나을 수 있으나 이것들 역시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허세 같다, 그냥 싫다" 는 비판은 유효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정성이 없는지 판단할 기준도 없고 패셔너블한 것도 죄는 아니다. 스타일리쉬한 영화 감독은 칭찬받는데 김윤아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자우림이 '미쓰코리아', '실리콘벨리'를 부를 당시, "김윤아는 성형했으면서 외모지상주의와 성형 하는 X들 비판하는 노래를 부른다"며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라는 김윤아 안티들의 개소리가 많았는데 사실 무근이다. 그들은 김윤아의 졸업 사진과 90년대 후반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과거 사진을 들먹이며 "쌍꺼풀이랑 코 성형했다"라든지 "쌍꺼풀 수술하고 붓기 감추려고 선글라스 끼고 방송하는 걸 봤다.", "이마에 뭐 넣은 것 같다", 심지어는 "김윤아가 시달렸던 안면신경마비의 원인은 성형 부작용이다~~라는 말 그대로 헛소리~~."등의 개소리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실어 나르며 김윤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위를 그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하고 있다. 그들이 김윤아 성형설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과거 사진과 현재 사진이 차이가 난다는 것인데, 과거 사진과 현재 사진이 차이가 나는 것은 90년대 후반 당시의 화장법이나 헤어스타일이 지금의 화장법이나 헤어스타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헤이헤이헤이 이전에도 홍대 앞에서 미모는 알려져 있었고, 그 때나 지금이나 ~~무려 20년 동안~~얼굴이 똑같다. 눈코입은 예쁘지만 동양인답게 평면적인 편이라 카메라 잘 안 받는 얼굴이라, 직접 보면 화보나 영상에서보다 실물이 더 예쁘다.
2011년 7월 25일부터 [[자우림]]으로서 나가수에 합류한다고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락밴드인 [[YB]]와의 대결 구도 등 여려가지 흥미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목소리 또한 높았다. 자우림이 출연하는 5차 경연은 31일 방영되었으며 비록 (처음 경연에 참가하는 관계로) 7번째 경연이라는 혜택이 있었지만 특유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중저음을 내뿜으며 1위에 등극했다. 이후 비밀번호 776이라는 최악의 코드 달성까지 하지만 '재즈카페' 라는 곡으로 다시금 1위를 달성하며 이후 원곡의 코드를 자우림화 시켜 시청자들의 대찬사 를 받은 '가시나무',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함께 꾸민 조용필 특집의 '꿈' 퇴폐적인 술집 마담과 항구의 뱃사장의 끈적한 사랑을 연상시켜 곱디곱게 노래한 심수봉도 깜짝 놀랄 법한 무대를 꾸몄던 '사랑밖에 난 몰라' 실향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모던록 편곡의 '라구요' 그만 '자브라교'를 창시해 버린 '아브라카다브라' 깊은 감정몰입을 해 모두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던 록발라드 표 '1994년 어느 늦은 밤'. 이 사람의 비주얼의 끝은 어디인가 하며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얘기할 수 없어요." 내마주교를 창시하며 산울림 특집 2위를 차지했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김윤아가 사랑하는 인디 친구들 후배들이 함께한 멋진 무대였고, 그 후 인디밴드 후배들과 함께 만든 신나고 유쾌한 무대인 '정신차려' 그리고 스페니쉬 리듬을 가미하여 초상집 복장으로 처연하게 부른 '하루 까지. 총 14곡의 팔색조 변신으로 모든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당시 위탄 멘토 및 앨범 준비 등으로 인해 악화된 스트레스성 안면신경마비 증상으로 얼굴 한쪽이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꽤나 심각하게 진행됐었다. 이로 인해 위대한 탄생 시즌1 멘토로 생방송 결선 당시 중도 하차하게 됐고 공장에서 나온 첫 CD를 자우림 멤버들이 병문안차 들고 갔을때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이게 내 마지막 앨범이 되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듀엣가요제]]에 채보훈 씨와 [[빅뱅(아이돌)|빅뱅]]의 "IF YOU",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총 3곡을 3회에 걸쳐 출연하여 모두 우승하고 장렬히 하차하였다. 우승하고도 하차를 한 이유는 김윤아의 앨범 작업 때문. 김윤아의 4집 앨범 '타인의 고통'이 발매된 후 [[2017년]] [[1월 6일]] [[듀엣가요제]] 35회부터 재출연하여 [[김광석]]의 "일어나", [[박효신]]의 "눈의 꽃", [[들국화(밴드)|들국화]]의 "제발", [[빅뱅(아이돌)|빅뱅]]의 "LAST DANCE" 총 네곡을 4회(35회, 36회, 37회, 40회)에 걸쳐(1,2라운드 합산) 모두 우승하여 5연승으로 듀엣가요제에서 명예졸업하였다.(13회, 14회, 15회, (35회, 36회), (37회, 40회))[* 주목할만한 점은 첫 무대(빅뱅의 "IF YOU")와 마지막 명졸 무대(빅뱅의 "LAST DANCE") 모두 빅뱅 노래를 선곡하였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양민학살하시고 돌아오셨다.--
||<rowbgcolor=white> All Night (Unique Remix) || '''All Night (Unique Remix) (Feat. 김윤아)[br](현대자동차 PYL 광고 삽입곡)''' || Parov Stelar || 2012.09.04 || '''1''' ||
* 우승회차는 볼드 처리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CF89D7><rowbgcolor=#CF89D7><tablewidth=90%> {{{#ffffff 회차}}} || {{{#ffffff 제목}}} || {{{#ffffff 원곡 가수}}} || {{{#ffffff 득표수}}} || {{{#ffffff 음원 공개 여부}}} ||
- 김희철(1983) . . . . 20회 일치
[목차]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안그래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그룹이고 그중에서도 유독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 쉬워보이는 성격과 캐릭터덕에 오해를 받기 쉽지만 의외로 희철은 사생활 관리도 매우 철저하고 '''사건 사고가 전무하다.''' 음주운전이라던가 팬들을 속상하게 할만한 열애설이 거의 없었단 게 그 증거. 최근 [[강인]], [[성민]] 등의 멤버들이 잇따라 보이콧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지만 희철은 슈주 멤버들 중에선 의외로 모범적인 태도를 가진 멤버 축에 속한다. 그외에, 팬들과의 소통도 활발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멤버들을 상당히 잘 챙겨주고, 멤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본인 SNS에 많이 올려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탈퇴한 중국 멤버 한경과 친하게 지내서 미니홈피에도 글을 자주 올리곤 했는데 한경이 탈퇴하자 충격에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최근 한경이 매니저없이 한국 여행을 와서 희철과 찍었단 사진을 게재하는 걸 보면 여전히 교류는 이어가고 있는 듯.] 또한 스스로 '''꽃은 꽃잎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팬들을 자신의 꽃잎이라고 부르는등 자기 사람, 자기 팬은 확실히 챙기고 아이돌로서의 태도도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다. 교통사고로 부상 당했을 당시 팀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자기 빼고 활동하라며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최근에도 다리 부상때문에 팀에 차질을 주고 짐이되는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자신의 아픔은 자신만 알면 된다는 생각에 방송에서 이 얘기를 섣불리 꺼내지 않았던 일화도 있다. 자신은 다리가 아파 활동을 덜 하는 만큼 예능에서 슈퍼주니어를 더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대중성 있는 꽃미남 비주얼에, 호불호가 갈리는 마니아적인 캐릭터라는 특이한 조합 외에도, 기본적으로 성실한 태도와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기에 인기를 끄는 것.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세계 단위 개인 팬덤[* '꽃잎'이라고 한다. 영어권 팬덤은 'Petal', 중화권 팬덤은 '花瓣', 일본 팬덤은 '花びら'라고 한다. 모두 꽃잎이라는 뜻이다.]을 거느리는 이유가 있다. 팬들을 내새끼들 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기도. 활동도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많아서 사실상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활동한 슈퍼주니어를 알리며 잊히지 않게 하는 멤버.
2011년 9월 1일 입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동안 복무하고 2013년 8월 30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익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입소 당시 좀 난리였는데 2006년도에 같은 멤버인 [[동해(슈퍼주니어)|동해]]의 부친상에 조문하고서 상경하다 차가 중앙분리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어[* 대퇴부와 발목 부분 골절상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뼈에 철심 7개를 박는 대수술이었다.]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 [[아이돌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든 인터뷰든 저보다 아픈 분도 훨씬 더 많을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다는 얘기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핑계 대기 싫었거든요." 실제로 [[아는 형님]]에서 [[이승기]]의 훈련병 당시 중대장이자 희철의 중대장이었던 분의 제보에 따르면 희철이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군대에서 태만하다는 이미지를 떨치고 싶어서 다리가 죽을 듯이 아파도 훈련에 다 참여했다고 한다.] 다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실제로도 활동을 하면서 과격한 동작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음악방송을 예로 들면 제대 후인 2014~15년에는 약하게라도 무대를 전부 소화할 수 있었으나,([[https://youtu.be/4y1yRNJ9iuk|#]]) 2017년 [[Black Suit]]에서는 후반부에만 등장했고,([[https://youtu.be/_PMkWwo6xaw|##]]) 반년 뒤 나온 리패키지 [[Lo Siento]]의 무대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수술을 [[2008년]]에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왼다리로 넘어졌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굉장히 아파했고, 아는 형님에서도 닭싸움이나 다리를 심하게 쓰는 코너에서는 제외된다.] 콘서트 무대는 아직까진 잘 소화하는 중이지만, 과격한 안무나 무대 퍼포먼스 후에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익 활동 당시엔 트위터도 없애고 팬들에게 절대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고, 성실히 복무했다.[* 성실히 복무를 한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파일:external/contents.dt.co.kr/2013083002019919794015.jpg]]]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8819&imp=whot|관련기사]] 단, 공익근무시간에 LOL을 한 전적이 있었으며(당시 닉네임: 김기복), 이에 대해 해명하길 친구가 했다고~~대ㄹ..~~ 했다. 아무튼 군 문제에 관해서 대중들의 여론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호(1987)|이민호]]와 같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던 명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범적으로 사회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는 편.
잦은 해외스케줄로 얻은 감기증상이 슈퍼주니어의 해외 콘서트 투어인 슈퍼쇼7 남미 투어중에 심각하게 악화되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이마에 고름이 차고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완치될 때까지 장거리 비행 금지를 병원에서 처방받았다고 웨이보 라이브 방송에서 밝혔다.
* 광동제약 헛개차
그 외에도 소속사 선배인 [[강타]]와도 상당히 친하고 잘 따르는 걸로 알려져 있다. 2016년 강타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와서 한 말에 따르면, 게스트로 초대하고 싶은데 부를까 말까 한참 고민하며 속 끓이고 있던 강타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직접 받아가면서 저 나갈게요!를 외쳤다고 하며, 소속사 디스용 뒷담화를 한다거나 뭔가 고민이 있거나 하소연할 일이 있을 때 등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찾아와서 상담한다고. 강타는 그래서 김희철과는 늘 진지한 대화밖에 나눈 일이 없다고 밝혔다. --정작 본인 말로는 '''"형이 너무 재미없으니까 나까지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당일 이 말을 직접 들은 강타의 팬들은 이미 아재개그에 노출된지 22년 차라 아무렇지 않게 익숙해져서 재미있다고 옹호했으며, 김희철은 그 말에 "님들이 이러니까 강타 형이 본인 개그가 재미 없는지 인식을 못한다!!!"고 팩폭했다.--
인맥이 많아서 약간 신뢰 없는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김희철은 인맥 관리에도 매우 철저하고 자신이 친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챙기고 잘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평가가 높다.[* [[강은비]]가 한창 100만 안티에 시달리던 시절인 2006년, 레인보우 로망스 시사회에서 동방신기와 김현중의 팬들의 협박 때문에 강은비가 실신하자 강은비의 안부를 직접 챙기고 촬영장에서 무개념 팬들의 접근을 막는 등 강은비를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강은비는 지금도 김희철에게 고마워한다고.] 특히 여사친이 상당히 많기도 한데, 김희철은 일단 본인이 여자와 친구가 된 이상 그 여자를 절대로 이성으로 보지 않으며 본인이 이성으로 느껴지거나, 상대방이 자신에게 감정을 가지고 다가올 경우 친해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캔들 한 번 없는 것도 철저한 인맥관리 때문일지도. 또한 주위 인물이 여자 연예인을 소개 시켜달라고 하면 바로 차단을 시켜버리는 등,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초아 열애설 때 중개를 자신이 시켜줬다는 추측성 기사 때문에 엄청 불쾌했다고.
[[데프콘(가수)|데프콘]], [[심형탁]], [[정준영]]과 함께 대한민국 연예인들중 자타공인 오덕으로 유명하며, 이중에서도 수장이라 할만큼 유명하다.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아스카]]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으며, [[데프콘(가수)|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가수가 또 있다. 재미있게도 둘다 [[주간아이돌]] MC 출신이다.]][* 실제로 김희철 &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아스카]] 관련 게시글이 올라오면 댓글에는 반드시 [[데프콘]]이 언급이 된다.] 소집 해제 후 아예 인증을 했다. [[겨울왕국]] 공개 이후 불러도 대답 없는 아스카를 버리고 [[안나(겨울왕국)|안나]]로 갈아타겠다고 선언(...). 차가운 엘사보다 안나가 좋다고 한걸 보니 취향이 확실한 듯하다.[* 본인이 선이 뚜렷하고 쌍커풀이 진해서 여성분은 쌍커풀 없고 화장이 연한 게 좋다고...~~애니캐를 현실 여자처럼...~~] [[http://i.imgur.com/vjMPTi8.jpg|코스프레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까 [[https://twitter.com/HeeZZinPang/status/519142782602989570|다시 아스카로 갈아탔다.]] 2018년 1월 18일 친분이 있는 트위치 스트리머 케인의 방송에 게스트로 나왔을때 드러난바에 따르면 휴대폰 벨소리가 무려 [[잔혹한 천사의 테제]]. [[https://clips.twitch.tv/WittyWanderingPlumageSquadGoals|해당 클립]] 오래 전부터 그 벨소리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게임도 즐긴다. [[리그 오브 레전드]] 랭크 게임에서 다이아 티어에 서식하고 있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 [[이현우(게임 해설가)|이현우]]와 친해서 방송에 시시때때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박정석]]과는 서로 욕설(...)까지 주고받는 동갑내기 친구 관계다. 2016년 롤드컵 당시에는 게임방송국 [[OGN]]에서 객원해설로도 출연하며 적당히 게임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OGN 측이 나름 챙겨준다고 출연료를 챙겨줬지만 원래 희철의 몸값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나가겠다고''' 적극 주장해 출연했으며, 원만한 진행 능력&게임 지식을 발휘해 일반적인 객원 해설보다 훨씬 더 퀄리티 높은 해설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dwEu2bY5KI|해설영상]]. 이 해설을 기반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견해도 알 수 있다([[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65285&iskin=esports|인터뷰]]). 그 밖에 트위터에 이특과 [[킹 오브 파이터즈]]를 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린 것을 보면 롤 이외의 게임도 즐기는 모양. 이특이 [[야가미 이오리|이오리]] 안 시켜주고 시원이 닮은 [[로버트 가르시아]]로 얍삽이만 쓴다고 폭로했다. 또한 2017년 2월에 있었던 SBS [[게임쇼 유희낙락]] 녹화중 트위치 스트리머 [[케인(스트리머)|케인]]의 킹오브 방송을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다고 언급하였고, 실제로 케인을 해당 방송에 섭외해서 녹화도 했다.[* 이때 섭외 과정에서 5개월 구독을 끊었다가 희철을 사칭으로 오해한 케인에게 생방으로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는데, 이를 계기로 케인과 친구를 먹고 이후로는 케인의 방송에서 시청자들과 채팅도 종종 주고받고 있다.]2018년 1월18일 케인의 방송에 출현했다[* 출연 계기는 다른 연예인들과 술마시던 중에 갑자기 케인이 보고싶어서 전화했더니 왔다고 한다. 그에 고마움을 느껴 합방제의를 했고, 뒤늦게 정신차렸지만 이미 뱉은 거 책임진다는 마인드로 합방을 하게 됐다고]~~케조씨도 희님덕분에 만명찍었다 그와중에 만명이면 적게보네라고한 희님 흠좀무 인스타라이브만 3~4만명보는데~~ 이 방송에서 단 1초도 오디오가 비지 않게 게임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제발 그만..." "차라리 죽여줘..." "야 누가 00게임 얘기 꺼냈냐" "뇌 용량이 얼마인거냐" "박찬호를 능가하는 투머치토커다" "귀에서 피 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단하기도 대단한 것이 게임 캐릭터의 인상착의, 배경음악, 스킬, 줄거리와 엔딩, 감상평까지 자세히 말을 하여 정작 방송의 주인인 케인은 아주 가끔 한 마디씩 끼워넣는 것 말고는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음성 도네로 에미넴 비트를 깔며 랩 드립을 쳤다.
2016년 5월 [[아는 형님]]에서 [[I.O.I]]와 경쟁한다는 컨셉의 꽁트를 위해서 다른 [[아는 형님]] 멤버들과 함께 여장을 한 모습이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4300100250410018004&servicedate=20160429|나왔다.]] 문제는 모든 멤버들은 벌칙 여장수준인데 김희철만 진짜 잘어울린다는거(...). I.O.I 멤버들도 감탄했다. 단 [[결경|주결경]]에게 미모 도전을 했다가 정작 카메라가 다가오자 피하며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옛날에는 투샷 안 두려워했는데!"(...) 하고 탄식했다.[* 둘의 나이차는 15살차이다]
초아와 이석진의 열애설이 보도 되자 마담뚜 논란에 휩싸였는데, 그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로 자신은 초아 양과 그리 친하지 않으며, 이석진 군과는 친하지만 자신이 무조건 사귀라고 그들이 연애를 할 거라는 발상은 황당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또한 자신은 인맥이 넓어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와 연결시켜달라는 연락을 자주 하며, 그럴 때마다 쓰레기라며 차단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자기 열애설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열애설에만 엮이는 것이 속상하다며 능청스레 글을 마무리지었다. 결론적으로 마담뚜 논란은 터무니없는 거짓 루머고 희철 본인의 글로 논란은 일축되었다. 이 역시 아는 형님에서 오작교 드립으로 승화하기도 하였다.
* 라디오 DJ 경력이 있어서 말 빨이 좋다. 2014년 만우절 날 [[려욱]] 대신 [[슈키라]] 1부를 진행하고 2부를 함께하는데 [[김영희(개그우먼)|김영희]]가 '김희철만 이기면 라디오 끝판왕인거야'와 같은 말을 했다. 순발력도 좋은 편이라 도박 크리로 하차한 신정환 대신 라디오 스타의 MC 자리를 꿰찼다. 연말 시상식 MC로도 자주 활약한다.
* '''착한 아이돌'''의 전형을 깬 [[연예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미니홈피]]에 자신에게 악플을 다는 네티즌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하고, [[유노윤호]]에게 본드 음료수를 준 안티팬을 디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충분히 까일 만한 짓이었다. 아이돌이 대놓고 이걸 디스 하는 게 드물어서 그렇지.] 소속 연예인의 이미지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SM엔터테인먼트|SM]]답지 않게 김희철의 미니홈피 이용만큼은 크게 터치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고분고분 들을 사람도 아니고(...) 그냥 놔두는 편이 그의 괴상한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것 같다. 김구라는 썰전에서 이를 [[SM엔터테인먼트|SM]]의 레옹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 상술했듯 괴상한 패션 센스와 머리 때문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제대로 차려입으면 진짜 잘생겼다. [[https://tv.kakao.com/embed/player/cliplink/300240117?sercie=kakao_tv|링크]]
* [[2016 롤드컵]]의 [[리그 오브 레전드 2016 시즌 월드 챔피언십/16강/D조|D조 2주차]] 객원 해설을 맡았다. 처음 섭외 소식이 나왔을 때 [[롤 인벤]]에서는 웬 연예인이냐고 까는 [[급식충]]들이 많았지만, 김희철이 워낙 롤쪽으로 쌓아온 이미지가 두텁고, 예전 나캐리에서 출연해서 보여줬던 뛰어난 롤 지식과 티어도 다이아로 나름 높다[* 다이아면 롤 유저 상위 1.7%이다.]는 건 유명하기도 해서, 알던 사람들 중에선 "객원의 의미나 사전에서 찾고 와라 아그야.", "신의 섭외." 라는 등 되려 급식충들을 까는 여론이 더 많아졌다. 여담으로 김희철의 객원 해설 출연 계기는 아프리카 특집 방송인 '승부의 신'에서 깜짝 전화통화 후 객원해설 섭외가 들어왔는데, 스케줄이 빡빡했지만 객원 해설이 너무 하고 싶은 나머지 쿨하게 바로 승낙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소속사 결정 없이 자의로 한 거라, 소속사에서 엄청 멘붕했다고 한다. 출연료는 때마침 출시 예정인 '별 수호자 스킨'[* 컨셉이 마법소녀다. 프로모션 영상도 딱 일본 애니처럼 나왔다.]때문인지는 몰라도 RP(롤 게임머니)로 달라고(...). 정작 출연해서는 아프리카 갠방으로 하는 편안한 객원해설인 줄 알고 수락했는데 알고 보니 OGN에서 본격적으로 하는 객원 해설이라 당황했다고 한다.
* 본인이 몸개그, 체면 구기는 거, 지저분 한 거, 입맛에 안 맞는거 등 슬랩스틱 전반을 부정하는 연예인 생활을 해온지라 아는 형님에서도 후반부가 되면 비중이 꽤 줄어드는 편. 타이밍에 따라 멘트를 던지지만 나서서 연기를 하는 편은 아니라는 게 시청자들의 평이다. 또한 메인MC 자리가 별도로 없는 아는 형님에서 은근히 방송 흐름에 따라 적절한 멘트로 진행을 시키는 걸 맡는게 영향인지 그 후 생긴 고정 프로그램에서도 전부 메인MC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경력차이가 엄청나지만 근래의 예능스타들 중에 대세가 된 이후 고정 프로그램이 생기고, 거기에 MC까지 맡게되는 경우는 꽤나 드문 편.]
* 2016년 강타의 콘서트 게스트로 왔을 때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SM 내부에서는 현 동방신기의 두 사람과 함께 후배 연예인들의 군기반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윗대의 가수들이 대부분 소속사를 떠난 상황이고 그나마 남아 있는 강타 등의 선배 연예인 대부분이 현재의 후배 가수들과 나이로 보나 데뷔연차로 보나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다 보니 서로 교류가 잘 안 되어서 슈퍼주니어와 동방신기가 돌아가며 군기반장을 하게 된 거라고 한다.
- 울진군 . . . . 20회 일치
[목차]
[[신라]] 시대에는 [[명주]], [[고려]] 시대에는 동계, [[조선]]~[[대한민국]] 시대(1962년)까지 1000년이 넘도록 강원도 관할이었고, 현재 [[경상도]](경상북도) 관할로는 2014년 현재 겨우 50여 년이 되었다. 경상도 다른 지역보다 강원도 정서가 좀 더 강한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도급 행정구역의 경계지역은 완전히 그 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것도 강원도같이 도내에서도 지역차가 확고한 지역이라면.
외딴 [[섬]]이나 [[반도]] 지형이 아니면서도 [[철도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과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 구]](정확히는 금강송면 서부지역에 200m가량 영동선철도가 지나긴 한다. 하지만, 정차역은 없다.) 에 모두 이름을 올린 얼마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과거에는 [[승부역]]이 울진군에 속해 있었다. [[양원역(영동선)|양원역]]이 군 경계에서 가깝기는 하나, 교통 오지의 역이므로 그 마을에서만 이용하는 실정, 그나마 울진군 이용객이 있는 역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있는 [[분천역]]이기는 하다. [[분천역]] 서쪽으로는 [[영동선]]보다 [[36번 국도]]가 좀더 나은 관계로 울진군의 철도 이용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2010년 12월 말 [[7번 국도]]의 확장 공사가 끝나면서 [[삼척시]]와 영덕읍까지 4차선 직선도로가 완공되었다. 삼척부터 포항까지 4차선 국도이다. 이로 인해 동해안에 대한 접근성이 상당히 좋아졌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울진종합버스터미널|울진]]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소요시간도 4시간이면 도착한다. 요건 [[7번 국도]]를 경유하는 [[강원여객]] 차량에만 해당된다. [[경북코치서비스]]와 [[경기고속]] 차량은 경유지도 더 많은데다 불영계곡으로 지나가서 속까지 울렁거린다. 버스 타다 토하기 싫으면 [[강원여객]]이 오는 시간으로 타도록 하자. 소요시간도 좀더 빠르고 울진군 주민들도 [[강원여객]]/[[강원흥업]]을 훨씬 선호한다.
의외로 거리는 서울-영주-봉화-울진이 서울-동해-삼척-울진보다 짧다. 전자는 300km, 후자는 340km. 하지만 [[36번 국도]]의 상태는 굉장히 나쁘다. 반면 [[7번 국도]]는 거의 준 고속도로급이기 때문에 [[강릉시]]에서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으며 예전에 3시간 가까이 걸리던 [[포항시]]도 역시 버스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무정차에 한해서지만....완행노선은 여전히 3시간 정도 걸린다
[[울진공항]]이 개항할 뻔했으나... 결국 수요 부족으로 조종사 양성을 위한 [[비행교육원]]으로 전환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 교통 커뮤니티에서는 [[울진공항]] 건설할 돈으로 차라리 [[동해고속도로]] 울진 연장이나 7번 국도 포항-삼척 확장의 공기 단축에 투입할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울진의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워낙에 교통이 불편한데다 그나마 근처에 대도시(울산,부산,광주)가 있는 다른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근처에 도시다운 도시도 없다. 인구 15만 이상 도시를 기준으로 삼으면 강릉이 북쪽으로 110km, 안동이 남서쪽으로 117km, 포항이 남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다. 대신 근처에 큰 도시가 없다는 건 만약 방사능이 유출될 시에 위험지역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니 국가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좋은 거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근무 지원자가 적어서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10년 이상 한울원전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전제로 하는 특별채용도 실시하고 있다.
백암[[온천]], 덕구[[온천]], 성류[[동굴|굴]], 불영계곡, [[불영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이 가운데 불영계곡을 지나가는 불영계곡로는 매우 구불거려 이곳을 처음 지나가는 초행자는 자칫하면 토할수도 있다.--[[흠좀무]]-- 아예 이곳을 지나가는 [[시외버스]]에는 [[M6724|비닐봉지를 달아놨을 정도다.]]그러나 반대로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계속되는 왕복2차선짜리 곡선도로을 지나가는 스릴또한 있어서 나름 [[버스 동호인]]한테 유명한 코스이며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온정면에 위치한 온천관광지. 온천물 온도는 53℃로 충분히 뜨겁다. 데울 필요가 없을 정도. 약알칼리성을 띄는 방사능 온천인데 방사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인지 울진군 측에서는 실리카 온천으로 홍보한다. 물론 해가 될 정도의 방사능을 함유한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말자. 일제강점기 때부터 온천관광지로 개발이 되었고, 1970년대에 현대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꽤 큰 온천관광지이다. 온천호텔도 여러 곳이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위쪽에 있는 백암관광호텔이 원탕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거기서 끌어오는 곳인데, 어차피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다. 취향껏 선택하자.
동굴에 조명시설이 되어있긴 하지만, 밝은 손전등을 들고가는것이 좋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좁은곳이 있으므로, 편한 옷차림으로 가야 한다.
[[관동팔경]] 중 제 1경. 가장 남쪽에 있다. 동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산 위의 정자로, 주변에 소나무가 많다. 풍경 이외에는 볼 거리가 없지만 울진읍에 가까워 접근하기도 쉽고 각 관광지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 잠시 들르기 좋은 곳이다. 정자 자체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헐어버린 뒤 터만 남아 있다가 1960년대에 콘크리트로 어설프게 지은 것을 다시 철거, 1980년에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실상 잡는곳은 둘다 크게 차이가 없으나 과거 울진이 교통이 너무 안좋아서 잡은 대게들을 대부분 영덕에서 출하를 했다. 이때문에 영덕대게가 유명했으나 요즘은 교통도 괜찮아져서 울진 대게 홍보도 만만치 않게 하는중이다. [[SBS]]의 목요일 심야 예능프로인 [[자기야 - 백년손님]]의 남재현과 그의 장인부부의 활약으로 울진 대게의 홍보를 제대로 해서 요즈음 들어서 [[영덕군]] 부럽지 않게 효과를 보고있다고 한다.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 깃발을 달고도 불과 19표(0.03%)차로 낙선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중요한 건 낙선했다는 거지만. 당시 [[김광원]] 후보도 같은 울진 출신이었을 뿐더러, [[삼척시]] 산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해 낙선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분열에 따라 당을 탈당, [[서울특별시]] [[마포구]]을 출마를 포기하고 열린우리당 후보가 정해진 이 지역구로 다시 무소속 출마했다. 탄핵열풍에도 열린우리당 후보(박영무, 24.02%)와 표를 나눠먹으며 26.9%로 낙선. 이때 탄핵열풍을 타러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으면 당선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러진 않았고,민주당 후보가 없던 18대 총선에서도 38.9%를 얻으며 낙선.
울진은 [[봉화군]], [[영덕군]], [[영양군]]과 선거구가 같은데 울진에서는 김중권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봉화는 비등한데 영덕에서 밀리는 식이다. 영양은 애초에 판세에 영향줄 만큼 인구가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2012년]]에 있었던 19대 총선의 경우, 김중권 후보는 울진에선 51.63%를 득표해 40.21%를 득표한 새누리당 [[강석호]] 후보를 이겼으나 나머지 지역에서 강석호 후보에게 밀렸다. 특히 영덕에서는 강석호 후보가 70.64%를 득표했다. (물론 이는 강석호 후보의 고향이 영덕인 까닭이다.) 격차는 55:36으로 19%나 났는데 민주통합당 후보가 4.5%, [[녹색당(대한민국)|녹색당]]이 3%를 득표했다. 김중권 후보의 울진 득표는 16대 이래 50.90 -> 31.95%(범민주를 더하면 53.36%) -> 55.69% -> 51.63%으로 건재하나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 출마가 될 것 같다.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05/2013020501995.html|#]]
다만 다른 성향을 보인다는 것도 경북 내에서는 그렇다는 것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준을 생각하면 안된다. 단적인 예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79.99%를 득표했다. 다만 이게 경상북도의 군 지역에서는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옆동네엔 영덕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87.11%를 득표했다. 읍면별로 뜯어보면 득표율 격차가 군치고는 꽤 나는 편인데 남쪽 끝인 후포면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90.9%(...)라는 어마어마한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강원도랑 인접해 있으며 원전이 있는 북면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30.68%를 득표하였다. 이건 강원도의 영향이 아니라, 원전으로 인해 젊은 층이 많아서 이다. 그 이외 지역들은 울진읍을 제외하고는 박근혜 후보가 전 지역에서 8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그나마 울진읍도 76% 이상 득표하였고.
- 은지원 . . . . 20회 일치
[목차]
젝스키스 1집에만 해도 랩만 했으나 2집부터 보컬도 맡게 되면서 노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힙합으로 전향한 이후 노래를 안 한지 꽤 됐지만 기본적으로 음색이 [[비성]]이 섞인 [[미성]]이다. 1세대 아이돌의 비보컬 멤버가 대개 그렇듯 진지하게 가창력을 논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중에서는 중고음이 가능하고[* 조금 무리하면 2옥 솔 정도는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음감이 있어 라이브에서도 음을 제대로 찍어부를 정도로 중간 이상은 하기때문에 상당히 괜찮은 편. 현대적인 관점에서 메인보컬을 받쳐주는 서브보컬의 역할을 당시에 상당히 충실히 해냈다.[* 이런 서브보컬 라인이 강해야 메인보컬을 적재적소에 꽂아넣는 프로듀싱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물론 1세대 아이돌 당시에는 그런 거 없고 후렴과 어려운 파트는 메인보컬이 몽땅 하고 그나마 몇 없는 쉬운 파트를 나머지 멤버들이 나눠가지는 식이었다. 은지원, [[이효리]], [[손호영]] 정도가 그나마 괜찮은 서브보컬이었다.] 그 예로 3집 활동 후속곡인 '무모한 사랑'에서는 은지원의 파트가 과장해서 노래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 많다. 보통 젝키에서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르는 강성훈이 이 노래에서는 후렴구만 부르는 반면, 은지원은 이 노래에서 서브보컬, 랩, 리드보컬까지 웬만한 파트는 거의 다 맡는다. 심지어 고음으로 지르는 부분도 있다.--느낄 수 있어써!!!!-- 또한 4집 후속곡 예감에서도 초반부 파트를 통으로 끌고 간다.
등장 이후 H.O.T.의 라이벌다운 화려한 흥행을 기록하였으나, 2000년 5월에 젝스키스가 해체되면서 모든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그 와중에 은지원은 홀로 꾸준히 준비하여 2000년 10월에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이 후에 이재진과 강성훈도 솔로로 활동했고, 김재덕과 장수원은 [[제이워크]]로 그룹 활동을 하게 된다.] 솔로로 전향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힙합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당시에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이 강해 힙합 리스너들에게 많이 공격받았다. 그 영향인지 당시의 노래 중에도 자학 가사가 많다. 하지만 그 당시 '''[[문희준|넘사벽급의 광역 도발러]]'''가 있었으니 저 분에 비하면야 악플로 입은 피해는 미미한 수준. 게다가 은지원은 [[무브먼트(크루)|무브먼트]] 크루 소속이다 보니 무브먼트 빠들에게 옹호를 받은 편이다.[* 무브먼트 크루가 가지고 있는 한국 힙합계의 입지와 인기를 생각해보면, 무시할 수 없는 옹호를 받았다.] 또 음악성에 있어서도 드렁큰타이거의 마이너 카피 정도라는 평을 받긴 했지만, 심한 비판을 받은 것은 없다. --애초에 은지원은 타이거JK에게 랩을 배웠다.-- 아군 하나 없이 악플에 시달려야 했던 문희준과는 비교도 안 된다(...). 본인도 이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아이돌을 그만두고 힙합으로 전향했을 때 [[타이거 JK]]한테 배움을 받아서인지, 2003년 9월에 발매된 3집을 들어보면 [[드렁큰 타이거]]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3집 이후로는 점차 자기 색깔 찾아가는 듯. 이후 '힙합'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데 2005년 2월 4집에 들어서 자기 색깔이 두드러졌고 4집에서 국보급 플로우를 만들어낸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 힙합 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8톤 트럭'의 원조이다. 흔히들 다듀의 고백이 원조라고 알고 있는데, 은지원의 8톤 트럭이 고백보다 8개월 더 먼저 나왔다!]2009년 5집에서는 당시 음악적인 트렌드를 반영하여 2002년 2집처럼 댄스에 가까운 힙합으로 선보였지만 이질적인 느낌이라 호불호로 갈라졌다. 대신에 당시 개그 유행어를 소재로 수록된 '''160'''이 힙합 장르를 떠나서 흥겨운 음악 덕분에 반응이 좋은 편. 2013년 11월, [[20세기 미소년]]에 타이거 JK가 "은지원의 부탁으로 출연했다"며 친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아 친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2~2013년까진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시즌1]], [[쇼미더머니2|2]]에 출연했었다. 그것도 참가자나 프로듀서가 아닌 MC로 지금이야 쇼미MC하면 [[김진표]]가 제일 유명하지만 이 사람이전에는 쇼미MC라는 소리를 들었었고, 아이돌 출신으로서 최초로 쇼미더머니에 출연하였다. 그것도 진행자로.[* 쇼미[[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시즌1]], [[쇼미더머니2|2]]와 [[쇼미더머니3|3]], [[쇼미더머니4|4]], [[쇼미더머니5|5]], [[쇼미더머니6|6]]의 MC맨트가 다른걸 알수 있다.] 쇼미더머니 MC를 하차한 이유는 음악에 순위를 매기는 것에 회의감이 느껴져서라고 한다.
젝스키스가 해체한 뒤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예능은 [[전파견문록]]과 [[강호동의 천생연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젝스키스의 카리스마 리더 이미지가 강했으나 그 이후 수년간 예능에 자주 출연하면서 지금의 은초딩과 비슷한 4차원+철없는 이미지를 얻었다.~~ 젝스키스를 모르는 요즘얘들은 은지원이 아이돌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한다. 오죽하면 [[작렬! 정신통일]] 프로그램을 진행했을때 신정환이 '요즘 초등학생들은 개그맨인줄 알아'라고 말했을정도다.~~심지어 당시 강호동이 [[신정환]]과 [[윤정수]]보다 은지원이 더 무섭다고 밝혔을 정도.
다만 이러한 뛰어난 미션 수행 능력과는 반대 급부로 복불복 운은 정말 지지리도 없는 편. 대표적으로 전남 벌교 편에서 5000원쓰고도 20만원을 쓴 이수근의 꼬막 2000개를 같이 캤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일명 '꼬막의 저주'라 불리우는 08년도~09년도의 겨울 내내 야외취침과, [[1박 2일/낙오일람|낙오된 횟수]]도 4회로 가장 많은 편.[* 2번째로 많았던 경우는 [[이승기]]의 3회인데 전북 장수편에서는 이수근과 함께 낙오했으며, 녹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짰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반면에 은지원은 3회는 복불복으로, 1회는 날씨운 때문에 낙오한 것이며, 4회의 낙오를 모두 '''혼자서 겪어야 했다'''.] 낙오된 것도 굵직 굵직한 것들만 걸렸는데 첫번째 낙오는 '''무인도인''' 사승봉도, 국토대장정 특집에서 대중교통 이용해서 혼자 베이스캠프까지 찾아오기, 복불복 특집에서는 악천후에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복불복에서 단순히 '서해 어촌마을' 정도만 정해졌고 정확한 위치는 가면서 정한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차림을(바보 분장에 등에는 [[지게]]를 멨다.) 하고 혼자 찾아오기, 5대섬 특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호도에 걸려서 운이 좋은 듯 싶었으나 '''풍랑주의보로 인한 결항'''으로 혼자서 다큐 3일을 찍기도 하였다.
이후 라디오 스타 촬영분도 마쳤는데 멤버들을 배려하고 토크도 넘겨주는 등 계속 동생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 관계자들과 은지원과 방송을 해본 경험이 많은 [[김구라]]조차도 '''예능인 은초딩과 젝스키스의 은지원은 아예 다른 사람'''이라며 당황했다고 한다. 김구라는 심지어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 젝스키스와 관련된 일이면 일단 책임감이 넘치고 진지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2년 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이동국]]과는 남남이 되었다.[* 은지원은 정식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결혼을 아예 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동안 [[카더라]]로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2016년 [[신서유기|신서유기 2]]에서 본인 입으로 '''"저는...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었습니다. 근데 아직도! 게임을 처자빠져 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삭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악행을 고백해야 정답을 맞힐 기회를 주었다. 즉, 오답을 내려 하더라도 자신의 악행은 고백해야 한다는 것. 이에 [[나영석|나PD]]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멤버들은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포복절도했고, [[이수근]]은 '''"그냥 사오정을 하든 손오공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라며 병뚜껑을 집어던졌다.]라고 발언했으나, 장소가 예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우스갯소리를 섞어서 한 말이다. 게다가 은지원의 전부인이 뉴스킨 이라는 [[다단계]]에 빠져 재산을 많이 탕진하는 이중고도 겪게 된다. 결국 은지원 본인은 가정에 소홀했고 부인 역시 다단계로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점을 보면[* 물론 좋은 뜻으로 은지원에게 잘해줄려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다단계]]의 구조를 보면 서로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 이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부부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지원 본인은 부인의 행적보다도 자신이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에 대해서 자책감을 더욱 느꼈을 것이다.
2013년 출연한 [[나 혼자 산다]]에서는 보다 더 진지한 분위기로 "성격차이로 인해 부딪히는 점이 많았다.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라고 언급했다. ~~게임도 성격 차이라면 성격 차이다~~ 이혼 이후 가끔 방송상에서 본인의 이혼을 자폭 소재로 삼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꽤 상심이 컸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성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뭉쳐야 뜬다]]에서 이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를 듣고 [[정형돈]]은 "요즘에 그런 건(이혼) 절대 흠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당사자가 안 돼봐서 모를 것이다"라고 답했다.]
* 2003년 당시 은지원은 신촌에 실내 포장마차 점을 개업했다. 보통 개업을 하면 여기저기 동료 연예인들을 불러 포장마차를 꽉 채워야 홍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은지원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탓에 동료 연예인들이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다른 곳에서 전해 듣고 달려왔다. 그 중 [[이효리]]가 새벽에 제발로 찾아왔는데, 은지원은 이효리를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으니 가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종업원들이 "남들은 이효리 못 불러서 안달인데 그냥 보내면 어떡하냐"며 은지원을 혼냈다고 한다. "자리는 여분의 탁자로 만들면 된다"며 흥분하는 종업원들의 말에 은지원은 '왜 난리지'하는 표정으로 대답 없이 눈만 껌벅거렸다고 한다.[[http://news.joins.com/article/1804295|기사]][* 2003년 당시 이효리의 인기는 엄청났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엄청 대접해서 가게를 홍보하려 했을 것이다. 젝키 핑클의 대성기획 시절부터 친했으니 저랬을 수도 있겠다.]
* 데뷔 당시 고지용이 '''[[학원별곡|폼생폼사]]'''로 활동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으나, 은지원이 이 곡으로 무대에 오르자고 밀어붙여 수록곡으로 묻힐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외 3.5집을 준비할 당시 [[이호연]] 사장은 은지원의 똥고집에 머리를 썩히다 은지원의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는 말에 결국 두손두발 다 들었고, 그렇게 "[[커플(노래)|커플]]"이 3.5집 타이틀곡이 되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은지원의 선견지명-- --괜히 착한 독재라 불리는 게 아니다-- [[커플(노래)|커플]]은 사장이 반대했던 탓에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는 소문이 있다.[* 참고로 [[커플(노래)|커플]]의 작곡가 마경식은, 노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슬래쉬메탈 그룹 아발란쉬의 보컬이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zSq38-Zn1RA|가창력이 엄청나다.]] [[http://img.maniadb.com/images/artist_t/260/106/106553-k.jpg|커플을 작곡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 만약 그 카더라 통신이 사실이더라도,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소속사와 이호연 사장을 비난하기는 힘들 것이다. 마경식은 작곡가로서 그때까지 제대로 된 히트곡이 없었다.[[http://www.ikaraoke.kr/isong/search_musictitle.asp?sch_sel=5&sch_txt=%B8%B6%B0%E6%BD%C4&c_ctry=|#]] 게다가 기존에 해오던 음악과 정반대 느낌의 곡을 작곡해왔다. 우려가 클 수 밖에 없었다. 반면 3.5집의 '너를 보내며'를 작곡한 김석찬은, 얼마 전에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로 초대박을 쳤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너를 보내며' 노래 자체도 충분히 타이틀곡으로 지정할만한 퀄리티다.[[https://youtu.be/mEGviByCMnc|#]] 회사 측에서는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하는 것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면 은지원의 선구안이 뛰어났던 것이다. 젝키의 대부분 뮤비가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커플(노래)|커플]] 뮤직비디오는 사무실 문짝을 로케로 촬영하는 등 유독 저퀄리티다. 선술한 바와 같이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채택할 것인가를 두고 사장과 담판을 지은 것이 맞다면, 뮤비 퀄리티가 유독 그런 것이 이해가 간다.
* H.O.T.의 [[문희준]]과 1세대 아이돌그룹의 리더였던 공통점이 있어서 방송을 통해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둘이 목욕탕도 같이 가는 사이라고(...) 아이돌 현역 시절 문희준은 은지원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은지원에게 괜히 멋있는 척하며 말을 걸었던 적도 있었고, 놀러와에서는 [[H.O.T.]] 시절 [[문희준]]이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려다가 은지원과 마주쳐서 안절부절했는데 은지원은 계속 화장을 고치며 나가질 않더라는 일화를 이야기한 적도 있다.[* 정작 은지원도 딱 그 ~~똥~~타임(...)이었는데 문희준이 계속 안 나가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젝키 팬들 사이에서는 은지원의 차를 문희준이 빌려갔다가 부숴놓고 청테이프를 붙여서 돌려줬다는 루머도 있었으나 [[20세기 미소년]]에서 둘다 우스갯소리로 넘기며 부정했다.
* '''같은 1978년생인 [[최현우(마술사)|최현우]], [[나얼]]과 같이 사기급으로 [[동안]]이다.''' --사실 젝키 멤버들 전체가 동안이다.-- 실제로 은지원은 연예계에서도 알아봐주는 동안연예인이면서 하는 짓도 초딩같고 그렇지만 벌써 '''마흔'''이다. 다만 얼굴이 너무 동안인데다 은초딩의 싱크로율이 너무 적합해서 그다지 부각되지도 않고(...) 지금 얼굴과 젝키활동 시절의 모습을 비교하면 얼굴선이나 눈매가 다소 부드러워진 것만 빼면 거의 차이가 없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치열 교정을 하라고 했음에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는 일화나[* 실제로 풀샷이 잡힐 때나 입을 벌리고 있을 때(뭔가에 집중하거나 오디오 겹침 때문에 멘트 대기중일 때 자주 그런다) 보면 위쪽 치열이 상당히 앞으로 나온 편이다. 그래서 일부 캡쳐에서는 앞니가 튀어나와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연예인임에도 피부 관리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의외로 외모를 꾸미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2016년 [[젝스키스]] 재결합 이후 생전 처음으로 피부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은지원 본인의 말로는 젝스키스 해체 이후 솔로 가수로서 출연한 모든 방송에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고...] 젝스키스 재결합 이후 은지원의 관리 받은 사진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흠많무. 현역 10, 20대 아이돌을 압살하는 포스를 보여준다. 흡연이라는 동안 유지에 치명적인 디메리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재는 팬들을 위해 금연하는 중이다.] 최근 동안 얼굴이 큰화제가 되어 뜻밖의 월드투어(기사로)를 하는중이다.
* 위에서 밝힌 바 처럼 숙소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은지원은 제일 마지막에 태우러 갔다. 2009년 6월 15일 MBC 놀러와 방송([[https://youtu.be/ob09scxZhz0|7분부터]])에서 장수원의 증언에 따르면, 젝키 시절 은지원이 독재자여서, 사장님이 두 명있는 셈이었다고 한다. 원래 사장님이랑 은지원 이렇게 2명이었다고.. 지원이 형을 제일 마지막에 데리러 가서 집 앞에 기다리고 있으면, 스케줄이 늦었는데도 2~30분 후에 이쑤시개 물고 나왔다고 밝혔다. 그래서 왜 늦었는지 물어보면 엄마가 아침밥 차려주는 것 먹고 나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은지원은 "리더로서 힘든 것도 많은데 그 정도 권한은 있어야 하지 않냐?"라고 반문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음주운전 단속에 두 차례나 적발된 적 있다. 2004년 초 음주운전에 걸려서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었[[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323|는데]], 그 와중에서 2001년에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적이 있었다는 게 알려졌다.
- 조성모(가수) . . . . 20회 일치
[목차]
이 중 [[2000년]]에 발매된 2.5집 리메이크 앨범(타이틀곡: 가시나무)은 '''160만 장'''이 팔렸으며 타이틀곡 아시나요가 수록된 정규 3집 앨범은 '''출시 당일 하루 만에 40만 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고 총 '''20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2000년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두 앨범들이 2000년 한 해 앨범 판매량 순위에서 1위와 2위를 석권했다[* 조성모의 두 앨범 외에 2000년 출시 앨범 중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은 god 3집과 서태지 6집 뿐으로 2000년 음반 판매 순위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2000년은 가히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로 [[넘사벽]]급의 '''[[리즈 시절]]'''이었다. 특히 2000년에는 서태지의 전격 컴백을 비롯하여 인기 아이돌 그룹과 톱 가수들이 대거 컴백하여 경쟁이 치열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정규 4집 '잘 가요 내사랑'부터 한계를 보이더니 기존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과의 불화로 인해 소속사를 바꾸어 출시한 5집 '피아노'를 기점으로 점차 내리막길을 타고 정규 6집 이후로 지금까지 히트곡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필래가 2010년 8월 마지막 주 [[엠 카운트다운]]에서 [[http://www.nocutnews.co.kr/news/748873|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는 했으나]] 조성모 본인은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211/sp2012111915515496010.htm|바람필래를 실패작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사실 4집 이후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지 음악방송 1위는 꾸준히 하였다.]
전성기로 평가되는 전반기에 구사된 그의 창법은 미성이 특성이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으나, 전성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과 자신 스스로 창법을 바꾸고 싶단 생각으로 5집 때부터 '''창법이 바뀌게 된다.''' 후반기의 무대 영상이나 음원을 찾아 창법을 비교해 보면 전반기 시절에 보여주었던 1집의 '불멸의 사랑'이나 3집의 '아시나요'와 같은 폭발적인 미성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노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히든 싱어]]에서도 원조 가수 최초로 2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무한도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도 출연 자격을 얻게 되는 노래방 기기 95점을 넘기기 위해 몇 차례나 재도전한 끝에 겨우 출연을 확정짓기도 했다. 윤종신과 더불어 예전 목소리가 그리운 가수. 아마도 창법이 변화된 후부터 팬의 이탈이 많았던 듯 싶다. 남아있는 팬 중에도 과거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병역을 마치고서 컴백한 후에 여태까지 발표해오던 슬픈 발라드 곡 대신 갑자기 <바람필래>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사실 조성모는 예전부터 타이틀곡으로는 선정하지 않긴 했어도 댄스곡을 정규앨범에 한 두곡 씩 넣곤 했었다. 반응은 발라드보다는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To Heaven도 댄스 버전이 있다. 이건 그냥 리믹스 버전 정도로 조성모의 변신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였고, 1집 수록곡인 '후회'가 댄스 비트를 가진 첫 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며, 2집 '상처'는 후회를 잇는 댄스곡으로 이 또한 인기를 끌었으며, 인기 절정이었던 3집 당시 후속곡으로 활동했던 '다짐'[* 원래는 비비 1집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다. 리메이크곡이 원곡과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매우 드물기에 이 사실이 한참 지나서야 알려지기도 했다.]이 수록곡 차원이 아닌 3집의 후속곡으로 선정되며 인기를 얻었던 바이다.[* 사실 '다짐'으로 활동했을 때에 조성모가 댄스곡을 잘 소화했기 보다는 당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었기에 그에 따른 후광효과가 컸다고 봐야 하며, 실제 댄스를 소화하는 조성모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사실 이때마저도 일부 팬들로부터 어그로를 끌기도 했었다.]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붐을 처음으로 그리고 완벽히 일으켜준 가수로서, 'To Heaven'을 시작으로 4집 타이틀곡 '잘 가요 내 사랑'까지, '''드라마 타이즈 뮤직비디오 붐'''을 일으켰다. 조성모가 가수로서 성숙기에 접어들 때인 4집까지의 뮤직비디오들은 조성모를 통해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세훈]] 감독이 전담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발매된 앨범의 곡 'Never'의 뮤직비디오 연출은 [[차은택]]이 맡았다. 그 차은택 맞다.] 하지만 일부 뮤직비디오는 수위가 좀 있는데, 조폭들을 주제로 하여 주인공이 배신당하거나 결말이 좋지 않게 끝나는 새드앤딩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 [[http://youtu.be/ynlG1-OQgxg|To Heaven (1집)]] : [[이병헌]], [[김하늘]], [[허준호]], [[조민수]], ~~꼽사리~~[[정웅인]][* 이병헌의 친구 역으로 연기하였음.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탐문수사하는 형사 허준호한테 ~~X나게~~ 두들겨 맞고 멱살잡히는 장면이나, 이병헌의 도움요청에 이병헌과 김하늘이 악당들에게 기습당하는 곳에 쳐들어가 함께 싸워주는~~(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장면에서만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최종원]][* 간주 중 회상씬에서 잠시 등장. 이병헌과 조민수의 아버지로 이들의 어린 시절에 경찰로 근무중 순찰을 돌다가 동네 양아치들의 집단 폭행으로 살해당한다. 누나와 함께 살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 어린 이병헌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양아치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성장하여 복수하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주요 스토리다.] ~~[[오상훈]]~~[* 명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계에서 조연급으로 얼굴이 익숙한 배우이며, 특히 조성모의 대표 뮤직비디오들에서 악역으로 인상깊게 각인된 배우다. 'To Heaven' 뮤직비디오에서는 김하늘을 승용차에 가둬놓고 석유를 뿌려대고 불붙이는 대머리 조폭 역으로 짧지만 상당히 인상 깊게 등장한다.]
- 불멸의 사랑 (1집) - [[http://www.youtube.com/watch?v=SqqEH4OXLKc|1부]], [[http://www.youtube.com/watch?v=S8r5LC_daW8|2부]] : [[이병헌]], [[황수정]][* 2001년 말 최음제 마약 복용 사건으로 연예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어 지금은 거의 잊혀진 여배우이지만, 이 뮤직비디오가 나오던 1998년 당시만 해도 황수정은 떠오르던 블루칩이었고, 이 뮤직비디오의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에 MBC 드라마 허준의 주연급인 예진아씨역으로 캐스팅되어 탑클래스 여배우로 등극하게 된다.], [[김승우]], [[김정은]][* 촬영 당시 이미 출연중이었던 드라마 '해바라기'에서 머리를 삭발한 것 때문에 여기 뮤직비디오에서는 가발을 쓰고 나오는데, 티가 좀 나긴 한다.], [[강성민]][* 뮤직비디오에서 이병헌이 일하는 전차회사 후배직원으로 등장한다. 청소년기에는 Uno라는 그룹으로 잠시 아이돌 가수 활동도 했지만, 현재는 배우로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며 연기활동을 하고 있다. [[켠김에 왕까지]]에서 맹활약중이다.]
- [[http://youtu.be/C9CMZ35vTYs|아시나요 (3집)]][* 영화 '플래툰'의 촬영지인 [[필리핀]] [[마닐라]] 올로케로 촬영되었으며 2000년 당시 총 제작비로 15억원이 들어간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사상 전무후무한 대작 스케일을 내뿜는다. 스토리 내용은 주인공 조성모가 월남전쟁에 파병되어 베트남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함께 죽는 슬픈 결말로 구성된다. 극중 파병 부대로 마크까지 등장하는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베트콩에게 전멸당하는 전투장면 및 얼차려 등의 병영생활 등이 나오는 장면들과 관련하여 거센 항의를 받고 법정공방까지 가기도 했다. 한편 [[천국의 눈물|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도 만들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http://www.youtube.com/watch?v=oB4oCDXFXhE|수정판]][*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항의로 인해 부대마크를 모자이크 처리 및 전반부 국군이 베트콩에 전멸하는 전투장면을 삭제하고 후반부 전투에서도 주인공 조성모가 베트콩 수장을 죽이는 장면을 추가 삽입하는 등의 수정작업을 거쳤다.]) : [[신민아]][* 1999년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로 데뷔하였고, '아시나요'는 그녀가 출연한 두 번째 뮤직비디오 작품이자 실질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알린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조성모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인 베트남 소녀 역할을 맡았으며, 전투를 떠나는 부대원의 지리정보를 주기위해 겁도 없이 총도 안가지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결국 베트공의 총에 맞아 죽는다.], [[허준호]][* 주인공 조성모가 소속된 월남파병 부대의 [[말년병장]] 쯤으로 추정된다. 방탄모도 안쓰고 지멋대로 두건을 하고 다니는 등 군기가 제대로 빠져있는데, 중간에 민간인 구출 작전 과정에서 베트공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되고, 베트공 대장의 살해 협박에 아군의 부대 위치를 알려주는 병크를 저지르고 결국 살해 당한다.], [[정준호]][* 조성모가 있는 파병부대의 소대장으로 계급은 중위.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 구해낸 현지 월남 주민인 신민아가 현지 지리에 밝은 것을 활용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 전투에서 숲속에 [[네이팜탄]]을 뿌리며 불을 지르다가 베트공의 습격에 폭사당한다.], [[신지수]][* 극중에서 신민아의 여동생으로 연기한다.], ~~[[오상훈]]~~[* To Heaven에 출연했던 악역 전문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국군과 대치하는 베트콩의 대머리 수장 역할로 거의 주연급 악역으로 출연한다.], ~~[[김대진]]~~[* '여름아 부탁해'를 부른 그룹 인디고의 멤버 맞다. 그 이전에는 지오에서 활동했다. 조연급 배우로 활동중이며,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서 조성모의 동료 병사로 출연하는데, 극중에서 전투중에 아역배우였던 신지수를 비롯한 월남 민간인들을 구출하려다 총상을 입고 전사한다.]. ~~[[한나나]]~~[* 가을동화에서 송승헌의 약혼자로 나왔던 그 배우 맞다. 뮤직비디오에서 간호장교로 간간히 등장한다.]
- [[http://youtu.be/6xEsEArWAa0|다짐 (3집)]] : [[강동원(배우)|강동원]][* 홍수현이 바람피며 만나는 새 남자친구 역할로 잠깐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무명이어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강동원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재조명 받게 된 케이스다.], [[홍수현]], ~~[[김대진]]~~[*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다짐' 뮤직비디오에서는 홍수현의 남자친구로 홍수현이 바람피는 것에 충격을 받고 싸우다 홍수현한테 차이는 역할로 나름 열심히 연기했다.]
- [[http://www.youtube.com/watch?v=NPGiZyh0yR4|잘 가요 내 사랑 (4집)]][*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창시자인 김세훈 감독의 한계가 느껴졌던 작품이다. 배용준, 이나영 이라는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그에비해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지 못한데다, 마지막 부분의 이나영이 자전거 교통사고로 죽는 씬은 충격 그 자체. 더불어 신예감독 [[차은택]]의 참신한 구성과 홍콩스타 장쳰이 특별출연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인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 년'과 같은 시기에 맞붙어서 경쟁하게 된 덕분에 더욱 타격이 컸다. 이 뮤직비디오 작품을 끝으로 김세훈은 조성모표 뮤직비디오에서 손을 떼게 되고 점차 뮤직비디오계에서의 영향력도 줄어들게 된다.] : [[배용준]], [[이나영]], ~~[[제롬]]~~[* 교포출신 VJ 및 방송인이고, 명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중있는 역할이어서 넣는다. 극중에서 자전거 전문 절도단의 대가리격으로, 자전거로 신문 배달하며 입에 풀칠하며 사는 가난한 유학생 욘사마의 자전거를 쌔비는 것도 모자라, 애지중지하던 자전거 찾아 삼만리 다니다 절도단이 자기 자전거 가지고 가는 모습을 본 욘사마를 붙잡아 협박해 절도단 활동할 때 경찰 오나 안오나 짱보게끔 시켜 잠도 못자게 하며 이용해 먹다가, 욘사마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경찰 신고해서 결국 구속되었는데, 절도단 밑에 애들 시켜서 욘사마를 집단 구타해 애꾸눈으로 만들어 버리기 까지 하는 비열한 악당으로 연기했다.]
- [[http://www.youtube.com/watch?v=Coqyg79s4Ok|Never (4집)]][* 김세훈 감독을 떠난 첫 작품이다. 브라운 아이즈의 데뷔곡 '벌써 일 년'의 뮤직비디오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차은택]] 감독이 기획한 뮤직비디오. 하지만 후속곡으로 별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이승연]], [[지진희]]
- [[http://www.youtube.com/watch?v=wsvC0aQiaCE|Ace of Sorrow (베스트)]][* 조성모와 GM을 떠나 소속사를 옮기면서 잡음이 많아지던 2002년 가을에, GM이 조성모와 체결한 계약기간 막바지에 당사자와 협의 없이 발매한 조성모 디스코그래피의 [[흑역사]]로 일컽는 베스트 앨범 'Best Of Best: Don't Forget To Remember'에 수록된 신곡이다. 이런 형태의 베스트 앨범은 조성모 뿐만 아니라 소속사를 바꾸는 가수들에게 비일비재했던 전 소속사의 횡포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조성모의 경우 새소속사를 통해 발매할 5집 활동을 방해할 목적과 더불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조성모의 단물을 마지막까지 빨아먹어 보겠다는 속셈으로 발매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 구입하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조성모의 역대 히트곡들이 모두 담기고 라이브 실황 음원까지 담은 4CD 구성으로 가요계를 평정했던 명가수의 베스트 앨범으로서는 괜찮은 것 같다.] : [[권상우]], [[신은경(배우)|신은경]], [[정준호]][* 이로써 정준호는 허준호를 한 표차로 따돌리고 역대 조성모 뮤직비디오들에서 최다 출연한 배우가 된다.]
3집 타이틀곡인 아시나요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가 파월 상이용사 출신들과 [[대한민국 육군]] [[제9보병사단]](백마부대) 측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베트남으로 파병된 조성모의 부대가 9사단의 부대표지(부대마크)을 단 장면이 그대로 노출 된 것이었는데, 하필 이 부대가 [[베트콩]]에게 전멸된다는 내용이었기에 백마부대와 해당 부대 출신 참전용사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항의의 주요 원인이었다.[* 부수적으로 극중 허준호가 방탄모를 안쓰고 두건 착용을 하거나, 파병된 신병들을 길들이기 형식으로 얼차려 주는 모습 등에 대해서도 사실이 왜곡되었다며 항의했었다. 심지어 백마부대 측에서 GM기획 측으로 공문까지도 보냈다고 한다. 이 부분을 공식 항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송기]]를 타고 파병되는 장면 역시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당시 국군 파월 병력은 [[대한민국 해군]] [[LST]]나 임차한 민간 수송선 등 해상운송수단으로 파병되었지 수송기를 타고 오지 않았다.]
- 창작:좀비탈출/5-1-1-1 . . . . 20회 일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허무맹랑한 말에 설득 당했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멸망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산더미 같은 보증과 떠안은 옥장판 때문에 동맥을 긋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보다 단순명쾌한 전개로 이어졌겠지.
나는 치워버린 장독을 다시 담벼락에 대면서 부러진 골프채가 정말 다시 쓸 수 있을 물건인지 자문했다. 그리고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면서 그럼 저게 필요한지를 자문했다. 모르겠다. 정신나간 소리지만 버리긴 아깝다. 솔직히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첫 실적을 올린 무기였다. 계속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군인은 처음 쏴본 탄피를 평생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 군인은 2차대전에서 살아남았고 베트남에도 갔지만 역시 살아남았고 훈장을 받았다. 그 사람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군.
이제 다른 목표도 달성할 차례다. 나는 담벼락 밑에 쌓여있던 것들을 적당히 치우려 했다. 일을 하자면 어쩔 수 없이 벽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러자면 등 뒤가 너무 허전했다. 담 하나 차이지만 여긴 우리 집이 아니다. 아직 앞 마당 쪽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단 말이다. 녀석들이 거기 모여서 티타임이라도 갖고 있다면 내가 부수럭대는 소리로 관심을 끌어 버릴지도 모르잖아?
물론 토트넘의 집은 우리집처럼 대대적인 공사를 거치지 않았다. 그래서 담벼락은 적당히 넘기 좋을 정도로 낮았고 쇠창살도 달려있지 않다. 마당의 구조도 약간 다른데 뒷마당 쪽에 대문이 있고 앞마당으로는 차고가 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뒷문이고 차고쪽 문이 대문이려나? 아무튼 우리 집에 비해서 약간은 옵션이 더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집보다는 이쪽이 항상 조금 더 비쌌다.
'''다이너스티'''. 옛날에 현대에서 내놨다는 고급형 차량이다. 토트넘이 이 차를 아끼는 것은 우리 아버지가 창밖의 풍경을 아끼는 것 만큼이나 각별했다. 내가 알기로 이건 90년대 말에 나온 골동품인데 이걸 아직까지도 좋아서 끌고 다니는 사람은 토트넘 뿐이다. 내가 아직 동네에서 살던 시절엔 어쩌다 마주치면 곧 차 얘기로 넘어가고 차얘기는 곧 다이너스티에 대한 예찬으로 끝이 났는데 아직도 그 레퍼토리를 기억하고 있다.
"이 차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리무진 모델이 있어. 그랜저도 체어맨도 그런 라인업은 없는 거여. 그러니 이 다이너스티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최초이자 최후의 고급 차종이었던 거제."
주인의 애정이 가호가 된 것일까? 다이너스티의 외견은 깨끗했다. 어쩌면 토트넘이 죽어서도 이 근처를 배회하던 것은 이 차를 떠날 수가 없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 가까이 가서 보니 그저 깨끗한게 아니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였다. 혹시 탈출을 준비하다가 녀석들에게 당해버린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토트넘의 행운의 아이템은 소용이 없었던 셈이겠지.
다시 집 얘기로 돌아와서, 앞마당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눈으로 보기엔 녀석들은 없다. 귀에 정신을 집중해도 녀석들 특유의 그르렁대는 소리도, 절규하는 듯이 짖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냄새를 맡아보려고도 했는데, 어차피 바깥에는 녀석들의 냄새가 언제나 떠돌고 있다. 아무리 희미해도 말이다.
나에게는 전선을 딱딱 튕겨서 시동을 걸 재주는 없다. 그러니 다이너스티는 쓸모가 없다. 그런데 차키가 있다면? 당연히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어떤 계획을 현실화 시킬지도 모르는 엄청난 일이다.
이 모든 문제가 차의 존재로 달라진다. 단순한 망상이 매우 현실적인 탈출 플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나는 차창으로 운전석을 확인했다. 아날로그식 계기판은 분명 휘발유가 만땅으로 차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좋았어! 정말 좋은 징조다.
단 한 발 앞에, 망상에서 현실을 끄집어낼 열쇠가 존재한다. 토트넘은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토트넘은 아끼는 차키를 어디에 흘리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설사 죽어서도 걷는 몸이 되었다 해도. 그러니 키는 집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건 아주아주아주 설득력이 있고 이성적인 결론이다.
- 청도군 . . . . 20회 일치
[목차]
남북과 동서의 교통 인프라가 크게 차이나는 기이한 곳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분지 지형이긴 하지만 동서쪽으로 지형이 남북 지형보다 험한 편이다. 남북으로는 [[경부선]], [[대구부산고속도로]], [[25번 국도]]가 [[밀양시]]ㆍ[[경산시]]로 향하지만 동서로는 [[20번 국도]]가 [[경주시]]ㆍ[[창녕군]](그것도 2차로로 좁은 데다 선형도 좋지 않다)으로 향하며 [[30번 지방도]]가 이서면에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팔조령 터널을 넘어간다.], 902번 지방도가 각북면에서 [[가창면]] 정대리[* 그것도 구배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헐티재를 넘어가야 한다.]로 향한다. [[창녕군]]으로 가려면 그나마 낫지만, [[달성군]]([[현풍면]] 방면)으로 가려면 [[창녕군]] 성산면을 거쳐 [[유가면]]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각면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비티재를 넘어 고암면 방리에서 1034번 지방도를 타고 성산면을 거쳐 등지교차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 이래저래 골 때린다. 더 난감한 것은 청도에서 [[달성군]]([[현풍시외버스터미널]])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전무하다. 청도군 또한 산이 만만찮게 많은 고장이니 결과적으로 이런 식이긴 하지만 수요에서부터 벌써 넘사벽이다. 게다가 청도군은 동서로 긴 지형이고 산서(풍각, 각북, 각남)과 산동(매전, 운문, 금천)으로 나뉘는데 중심지인 청도읍과 화양읍이 산서와 한 분지에 속하고 산동과는 산이 가로막은 형세라 같은 행정구역이면서도 산동으로의 교통연결은 사실상 2차선 [[20번 국도]] 뿐이다. 그마저도 선형이 좋지 않아 돌아서 가는 편. 언제부턴가 4차선+선형개선 공사중이다.
그나마 시외버스의 몇몇 구간(경주 등)은 20년 전에는 있지도 않았다.(...) [[청도공용버스터미널]]이 있는 청도군 읍내에서 청도군 내의 다른 읍을 잇는 버스들도 밤 9~10시면 다 끊긴다. 배차간격이 1시간인 아스트랄한 읍내도 많으며 이 때문에 읍내로 학교를 보내야 하는 외곽 지역 학부형들끼리 돈을 모아 승합차를 운행하거나, 역 앞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드물지만 근처에서 자취를 하거나 아니면 학교에 있는 조그마한 기숙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곤 한다. 여담으로 이 고등학교는 고3들에게 3끼 급식을 다 제공해서 학부모들이 참말로 편하다 [[카더라]].
사실 오래된 걸로 치면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하는 진주전국민속투우대회가 오래되긴 했지만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는 하나 정확한 시기는 불명), 청도소싸움대회가 여러가지 부대행사(로데오,콘서트,루미나리에 등)를 준비하면서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지라 진주시에서도 바짝 긴장한 듯.
여기엔 청도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립지대로 흙이 특이하다는 설, 마찬가지의 이유로 개화기에 수정매개곤충이 침입하기 힘들다는 설, 혹은 모든 나무가 암나무라 수정되지 않는 열매를 맺게 되어 그렇다는 설 등이 있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아시시]]의 가시 없는 장미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굳이 차이점을 논한다면 어떠한 '분기점'이 있느냐 없느냐--
그 외에 [[복숭아]]도 유명했으나, 복숭아 농장이 점차 줄어들어서 지금은 현지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아졌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청도 반시와 청도 한재 [[미나리]]가 등록되어 있다.
--[[경상도]]답게-- [[경상도 사투리]]. 단, 지리상으로는 [[경상북도]]에 속해 있으나 경북의 최남단에 위치한데다 [[경상남도]]와 접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경북 방언에 비교해 볼 때 억양과 강세가 그것보다 좀 더 뒤에 있는 편이다. 경남 방언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경북 방언을 구사한다. 쉽게 비유해서 [[안동시]]에 사는 사람이 이 곳 청도군에 놀러왔을 때 꼭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카더라]] 식. 그렇다고 해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사람들이 듣고 경남권 억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억양만 들어도 경상도 사람들은 경북/경남권인 거 [[악센트]]를 들어보면 딱 알 수가 있다. 2의 E승, 2의 2승, E의 E승, E의 2승의 위엄.(...) 엄밀히는 [[대구광역시]]와 더 가까운 형태의 방언이지만, 저런 [[이유]]로 딱히 다른 경북 지역만큼 경남 방언과의 차이를 느껴 어색해하지는 않는 면이 있다. 물론 방언 특징상 사람마다 편차는 큰 편.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사실 이 사건의 경우, 사회의 민주적 의식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적 제도를 시행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사례로써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해당 사건들의 배경으로 금권, 관권, 부정선거가 판치는 시기를 겪었던 노인층의 도덕적 해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실제로 금품을 살포한 후보자 및 선거본부가 제일 나쁜 놈들인 건 분명하지만, 선거라고 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런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하여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에게 '''뭔가 없냐'''고 채근하고, 금품을 줄 수 없다고 하면 '''그러면 선거에 왜 나왔느냐'''고 힐문하기까지 했다는 지역주민들의 책임 역시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금품 살포가 공공연히 일어난 최악의 [[부정선거]]가 일어난 것이다.''' 인구 5만명이 채 안 되는 청도군에서 동(반)단위로 금권 선거운동 책임자가 500명, 금품을 받은 주민 수가 5000명에 이른 상황은 실로 참극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선거 몇 번 하고 나니 지역 주민의 10% 이상이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자살자 2명의 사례 역시 한심하면서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위 기사 링크에 나온 이야기처럼 전문 선거꾼이나 협잡꾼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도 얻었던 그냥 동네 아저씨들이 이런 인맥구조에 얽혀 선거운동원이 되었다가, 결국은 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살포한 범죄자가 되어 경찰 수사를 받던 끝에 자살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하여 비꼬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차라리 전문 선거꾼이라면 이런 일로 자살 안 한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 ~~[[칭다오|青岛 / Qingdao]]~~ [[한국어]] 발음이 두 곳 모두 '청도'로 동일하고, [[중국어]]로도 성조에서 차이가 있지만(岛 3성, 道 4성) 역시 '칭다오'로 동일하다. 이 때문에 칭다오와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개그가 있다. 그런데 칭다오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는 윗동네 [[대구광역시]]다.
* 영화 부산행에서 [[천안아산역]]을 통과한 KTX101 열차가 지나가는 장면이 청도군 일부지역에서 촬영되었다.[* 극중 청주시]
- 최준석 . . . . 20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1년/신인드래프트|2001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 전체 49번]] ([[롯데 자이언츠|롯데]]) ||
[목차]
대단히 몸집이 크고 느린 선수.[* 사직구장 펜스 직격타에도 2루에 못갈 정도다.] [[KBO]] 프로필 상 187cm/130kg 라고 나와있지만, 최소 150kg~~[[김정은]]~~은 넘었다는게 중론이다. [[이대호]]와 옆에 있으면 이대호가 날씬해보일 정도. 이대호가 더 키가 크긴 하지만(194cm) 비슷한 키에 이대호가 125kg라는걸 생각하면 190cm 가까운 장신에 비대한 체격을 가진 최준석은 일반 체중계로 잴수있는 체중(150kg)은 훨씬 넘었을 확률이 높다. 야구선수 특성상 기본적인 체중만 해도 100kg에 가까울 테니...[* 삐쩍 마른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조차 키가 192cm이다 보니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간다. 최준석과 비슷한 신장에 같은 [[1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병호]], [[오재일]], [[채태인]]등도 100kg 전후의 거구. 최준석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로 2017년 kt에 입단한 1루수 한기원이 있다. (지금은 살을 뺀 상태) 프로필 상으로는 182cm/130kg이지만 실제로는 141kg라는게 기사에 나온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성적 편차가 큰 것도 있었지만.)]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6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입단시 포지션은 [[포수]]였다.
이 때는 신인이라 2002년부터 2004년까지 12경기에 포수로 출장했다. 그리고 절친 [[이대호]]와 그의 형 이차호와 같이 동래 모처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더블사이즈 [[침대]] 하나에 [[이대호]]와 같이 누워서 잤다(…).~~ 침대가 뭔 죄래? 침대: 아니 이 녀석들이?~~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는 출장하지 못했으나 10월 1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 스코어 1:0으로 팀이 앞선 1회초 2사 1루 첫 타석에서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선발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사도스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내며 팀의 스코어 7:2 승리에 공헌했다.
하지만 다음 타석부터는 안타를 쳐내지 못하면서 준플레이오프에서 3, 4차전에 선발 지명타자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6타수 1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 2볼넷, 타율 .167, 장타율 .667, 출루율 .375를 기록했고 팀은 1승 3패로 탈락했다.
상대적으로 지명타자 자리에 여유가 있는 KT와 삼성이라면 한번쯤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17시즌 후 이승엽의 은퇴로 최준석이 지명타자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지명타자 자리에는 박한이가 있다. 당장 김한수 감독이 박한이 안쓴다고 2017년에 엄청 욕먹었었는데 그런 박한이를 뒤로한채 최준석을 영입한다면 대구아재들은...][* KT의 경우 지명타자 자리에 [[이진영]]과 1루수, 지타를 병행하는 [[윤석민(타자)|윤석민]]이 있다. 또한 KT는 2017년 [[황재균]]을 '''4년 88억원'''에 영입한 데다 KT는 넥센 다음으로 돈을 적게쓰는 구단인 만큼 삼성보다도 영입할 가능성이 낮다.~~[[남태혁]], 한기원의 체중 관리 문제로도 벅찬데~~] 막상 어느 팀도 트레이드조차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6027|관련기사]]
최준석의 가장 큰 단점은 '''[[똥차(야구)|발이 엄청나게 느리다는 것]].''' 주자로써 평균은 커녕 압도적 꼴찌 수준의 주력을 자랑해서 타격으로 벌어놓은 점수의 반쯤은 베이스 러닝으로 날려먹기 마련이다. 게다가 빠른 타구속도 덕에 넓은 [[잠실 야구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구장에서 '''담장 맞추는 1루타''' 같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마디로 '''주루에서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타자다.''' 2017 시즌 종료 기준 통산 [[병살타]]도 162개로 은퇴선수까지 포함하면 10위, 현역선수 중에서는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통산 1위는 ~~당연히~~ [[홍성흔]]의 230개, 현역 1위는 [[정성훈]]의 211개.] 단순히 주루가 느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 대타 출장시나 경기후반에는 이 느린 발과 수비포지션이 없는 것 때문에 거의 반드시 [[대주자]]나 [[대수비]]를 대동해야 하는데, 보통 대수비를 겸하는 대주자까지 2명, 어쩌다 수틀리면 대주자 대수비 따로 해서 3명까지 한번에 쓰게 된다. 조원우 감독이 최준석의 기용을 꺼리고 결국 FA에서 잡지 않은 데에는 단순히 발이 느려서 점수 덜 먹는다는 것이나 병살 잘 치는 생산성 문제도 있지만 이 로스터 낭비 문제가 더 크다. 알다시피 프로야구 로스터는 매우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최준석 때문에 좌완이나 사이드 원포인트 혹은 패전조급 릴리프를 타팀보다 한명 덜 써야 한다고 하면 확 와 닿을 것이다. 최준석의 타석에서의 생산성이야 전성기 때는 그걸 감안하고도 쓸 만큼 좋았고 노쇠화가 진행된 지금도 꽤 좋은 편이지만 릴리프 한명 덜 쓰는 단점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특급까진 아닌지라.
원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두산 베어스 이적 후 [[1루수]]나 [[지명타자]]로만 출전하고 있다. 그래도 타격 스킬에 기대를 걸었던 롯데에서는 외야수 수비 연습까지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수비 능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며 군면제를 받을 정도로 심각했던 무릎 부상 탓에 1루 수비 범위도 대단히 좁다. 이 때문에 타격 생산력에 비해 WAR이 높은 타자는 아니다. 특히 수비기여도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스탯티즈]] WAR이 처참하다. 선수 본인이야 지금도 포수로 뛸 수 있다고 하지만 안되도 된다고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인만큼 진지하게 믿어선 곤란하다. 과체중으로 인한 무릎 문제로 9회말 대수비로 출장하는 것조차 힘들다. 1년에 한두번, 포수가 없는 비상사태 때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1루 수비도 9회 대수비 정도 아니면 1주일에 두어번 정도만 가능하고, 사실상 풀 타임 지명타자이다.
절친인 이대호와 플레이 스타일까지 정말 똑같다. 물론 클래스는 차이가 나지만. 또한 이대호는 최준석에 비해 유연성과 내구성이 월등해 주전으로 1루 수비를 소화할 수 있는 반면 최준석은 풀타임 1루 수비도 힘들다. 1루 수비가 가능한 것은 의외로 가치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여기에 최소한의 주루 플레이조차 안되니 최준석을 영입한 팀은 최준석 하나 쓰려고 대주자, 대수비까지 3명을 기용해야 한다.
* 잘 안 알려져 있는데, '''[[팬 서비스]]가 정말 나쁜 선수다.''' 사인해 달라고 하면 그 큰 덩치로 째려보면서 인생 최고의 주루플레이로 자기 갈길 가는 걸로 악명높다. 뒷사정 잘 아는 롯데 팬들에겐 이대호만큼 야구도 못하면서 팬서비스는 더 거지같다고 욕 엄청 먹었다. 덧붙여 사직 볼보이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평이 안 좋은 선수였다. 사인 받기 힘든 선수는 많이 있지만 볼보이들 인사조차 전부 무시하고 홱 지나가는 선수는 최준석 뿐이었다.
* [[강민호]]와 포철공고 선후배 사이인데[* 3년 차이라서 같이 뛴 적은 없었지만.], [[강민호]]는 고등학교 시절 최준석을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이 안되겠지만, 100m를 11초에 끊는 호타준족의 [[포수]]였었으니깐.[* 덤으로 이 시절에는 굉장한 훈남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또 다른 별명은 '''[[http://cfile225.uf.daum.net/image/121511404DB12A142256FF|장돈건]]''']
* 2000년대 후반부부터 군대 언제 가느냐는 게 두산 팬들의 만년 떡밥이던 시기가 있었다. 2010년을 기점으로 나이가 꽉 차 상무 입대 시기는 지났고 공익요원으로 가야 하는데,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거듭된 수술 때문에 면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리고 2012 시즌 후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920907|기사가 떴다.]]
* 《[[2015년|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15. 3. 23.)》행사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s-1|주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배지현|사회자]]의 "[[홈런]] 세리머니[* 각 루를 차례로 돌고난 뒤 홈 베이스를 밟을 때 하늘을 향하여 두 번 손짓.]의 의미가 혹시 경기 끝나고 [[족발]] 2인분?"이라는 질문에...[*스포일러 "[[중학교|중]]1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이 [[홈런]]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대답하여 빵터졌던 장내를 일시에 숙연하게 하였다.] [[https://youtu.be/11ez9dbOz94|백문이 불여일견(유튜브 링크)]] ...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 세리머니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407001&redirect=false|홍성흔과의 합작품.]] 원래는 홈런친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외부에 드러냄으로서 동료의 사기를 높이고 상대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고... 이후 세리머니 논란을 의식했는지 대외적으로는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2016년부터는 세리머니를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kbotown2&id=2203353|안 하기로 결정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19회 일치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제2차 세계대전]] 대전략 게임인 [[Hearts of Iron II]]을 인디 개발자들이 뜯어고친 게임. 보통 DHR이라고 줄여 부른다. 국내 팬덤에서 부르는 애칭은 "데찰" 또는 "데챨".
=== [[Hearts of Iron II]]과의 차이점 ===
유닛과 기술 등이 대규모로 수정되었다. 이 때문에 대전차포나 로켓포, 자주로켓포 같은 유닛은 사라졌지만, 중포와 같은 새로운 유닛이 생겨나기도 했다. 기술의 경우에는 테크트리의 연도가 19세기 말~1960년대까지 확장되었다.
1914년 6월 27일 시작하는 시나리오. 약 한 달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주요 동맹도 동맹국, 삼국 협상, 코민테른으로 다르다. 1920년이 끝나는 순간 게임도 끝나므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 할 수는 없다.
1933년 3월 4일 시작하는 시나리오. 3월 4일에 독일에서 선거가 치뤄진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 때 히틀러가 당선되어 권력을 잡는다. 기본적으로 1936년에서 시작하는 HOI2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선지 이 시나리오 전용 이벤트/디시전이 꽤 많다. 이 시나리오로 할 경우 인공지능 독일이 실제 역사보다 더욱 강해지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을 기준으로 한 시나리오.
제2차 대전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한다. 이외에 소규모 동맹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 전차나 항공기, 군함과 같은 연료를 소모하는 유닛들이 소모한다.
공업력을 보급품에 할당해 생산하는 자원. 모든 종류의 유닛들이 소모한다. 보급품을 충분히 받지 못한 유닛들은 차츰 사기와 조직력이 떨어지다 보급 부족으로 전멸한다.
유닛 생산하듯이 10개씩 찍어낼 수 있다. 바다 건너 영토에서 자원을 가져오고, 바다 건너에 주둔한 부대에 보급품과 석유를 전달한다. 전쟁이 시작하면 적국의 통상파괴전으로 몇척씩 침몰하기 시작한다. 필요량보다 수가 적으면 보급망에 큰 차질이 생기니 주의.
실제 역사를 따라가려고 할 경우 일본의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 디시전 발동→"난징 대학살", "파나이 사건" 이벤트→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 발동→일본의 "진주만 공습" 디시전 발동과 같은 절차를 걸쳐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보통 이렇게 되면 똑같이 일본에게 선전포고 당한 연합군 세력이 동맹에 초대한다.
보통 제일 먼저 핵무기를 투하하는 나라다. 2차 대전에 참전하며 해금되는 디시전으로 10,000의 자금을 부어서 핵 관련 연구 청사진 모두를 습득하는 "맨해튼 계획"이 있기 때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 AI가 발트 3국을 침공해 잡아먹는데, 이건 특별한 디시전으로 발동하는게 아니라 그때 선전포고 하도록 트리거가 짜져있는거다.
1936년 시작하면 아비니시아와 전쟁 중. 이후 디시전으로 알바니아까지 처묵한 다음 제2차 세계대전을 기다리면 된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털리기 시작하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는 디시전이 활성화된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발리고 강화조약을 맺으면 인도차이나 연방의 소유권을 넘겨 받을 수 있는 디시전이 발동한다. 이러면 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이 해금되는데, 미국은 중일전쟁과 그에 딸린 각종 이벤트 때문에 일본을 싫어할게 뻔하므로 이 디시전을 발동한다.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면 미국의 애완견[* 민주화, 중국 지역을 중화민국에게 반환, 모든 괴뢰국 해방, 한반도가 대한민국으로 독립, 영미와 군사 통행권&불가침 조약 체결, 불만도 +20%, 미국의 괴뢰국화.]으로 전락한다. 인공지능이 잡을 경우 100% 미국과 네덜란드령 동인도에게 엠바고 처먹기를 선택하고, 이후 "진주만 공습" 디시전을 갈긴다.
독일의 괴뢰국. 독일이 단치히 요구 디시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면 자동으로 독일에게 합병된다.
아비니시아를 집어먹은 이탈리아가 세우는 괴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면 영국군에게 털리고 합병당한다.
- 거미(가수) . . . . 19회 일치
[목차]
'''차세대 OST의 여왕, 소울 디바.'''
2003년 정규 1집 'Like Them' 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그대 돌아오면",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등 히트곡을 내며 이름을 알렸으나 데뷔 두 달만에 성대결절 진단을 받아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1년간의 재활치료 후 정규 2집을 발매하며 돌아온다. 이때 "기억상실" 이라는 곡으로 SBS 인기가요에서 처음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3집과 4집을 발매하는데 4집에 실린 "미안해요" 라는 곡 역시 [[Mnet]] 카운트다운 1위를 차지한다.
2015년 12월 12일에 방송된 JTBC [[히든싱어]] 4에 원조 가수로 나왔다. 1, 2라운드에서는 모창 능력자에게 밀려 1위를 하지 못하였고, 3라운드에서 1위, 4라운드에서 2위와의 11표 차이로 우승했다.
* 그래서, 그녀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면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 일화며 [[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8014312|본인도 역시 잘 알고 있다.]] 공연에서 조차 [[https://www.youtube.com/watch?v=z9nAcUc-GxA|본인이 직접 드립을 쳤다.]] 사실, 어떻게 보면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수혜자로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실제로 거미가 신인 시절부터 이름을 알리고 점점 유명해졌던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rowbgcolor=#90EE90> [[소냐(가수)|소냐]] || → || '''[[거미]]''' || → || [[차지연]] ||
|| 9라운드 1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난 행복해 - [[이소라(가수)|이소라]] || 2위 ||
|| 9라운드 2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또 - [[인순이]] || 7위 ||
|| 10라운드 1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비처럼 음악처럼 - 故 [[김현식]] || 4위 ||
|| 10라운드 2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개구쟁이 - [[산울림]][* Feat.[[빅뱅(아이돌)|빅뱅]] [[TOP]].] || '''1위''' ||
|| 11라운드 1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날 떠나지 마 - [[박진영]] || 6위 ||
|| 11라운드 2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P.S. I Love You - [[박정현]] || 5위 ||
|| 12라운드 1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 [[임희숙]] || 5위 ||
|| 12라운드 2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애인 있어요 - [[이은미]] || 4위 ||
|| 13라운드 1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영원한 친구 - [[나미]] || '''1위''' ||
|| 13라운드 2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흐린 기억 속의 그대]] - [[현진영]] || 2위 ||
||'''박시춘'''||'''돌지 않는 풍차(문주란)'''||'''430'''||'''1승'''||
||회차||곡명||대결상대||승패||
- 고유민 . . . . 19회 일치
[목차]
2차전 흥국생명전에서 정미선이 부상당하고 다음날 도로공사전 준결승 경기에서 김연견이 부상당하자 예상하지도 못한 리베로를 보게 되었다. 이 경기는 난리도 아니였는데 리베로가 없자 2세트는 없이 치루고 3세트는 코치가 딱 5분간 리베로 강습을 한 다음에 내보냈다. '''사람들은 리시브도 안 좋은애가 얼마나 버티겠냐'''며 수비붕괴로 인한 현대건설의 패배를 예상했으나 목적타 집중을 --한유미와 김주하가 같이 온몸으로 받으면서-- 어찌어찌 버텨냈고 4세트에는 리시브 정확을 6번[* 이날 총 8번의 리시브 정확판정을 받았는데 4세트에 6개를 받았다.] 얻어내기 시작하더니 5세트에서는 장기인 디그 능력을 십분 살리며 팀을 결승으로 이끈 주역중 하나가 되었다. 5세트의 퍼포먼스는 웬만한 백업 리베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체선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2014년 10월 30일 시즌 두번째 경기에 시즌 첫 출장을 했다. [[황연주]]의 공격성공률이 떨어지자 교체로 3,4,5세트를 뛰고 4득점을 하면서 64.29%의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하며 팀의 풀세트 승리에 기여,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의 전위에서 원포인트 블로커로 교체되거나 [[황연주]]가 부진할때 간간히 교체되어 나왔다. 다만 전자의 역할은 선배 [[한유미]]가 주로 맡게 되었고 후자의 역할은 코칭스테프가 황연주를 교체하는 것에 별로 마뜩치 않아 했기 때문에[* 경기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때에도 코트에 황연주를 남겨놓을때가 많았다. --차라리 폴리를 뺀다는 마음가짐--] 출장시간이 점점 뜸해졌다. --그것보다는 보통 지는 경기에 교체출장하는데 리시브 범실, 공격범실로 감독 화돋구고 나가는 때가 많았다.-- 19경기, 39세트 출장 13득점 공격성공률 28.26% 리시브 성공률 22.5%을 기록했다. 좋게말하면 작년과 비슷한 기록을 냈고 나쁘게 말하면 성장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러나 더 웃긴건 [[고예림|전 시즌 신인왕]]은 폭망했고 나머지들도 그닥이었다.--
이렇게 시즌이 허무하게 끝나나 했는데 플레이오프 1차전 1세트 0득점을 기록하며 극도에 부진에 빠진 황연주[* 사실 황연주 팬들 사이에서도 마지막 몇경기는 빼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올정도로 점프력이나 스윙스피드가 완연히 떨어졌었다. 코칭스태프는 그녀의 경험을 믿었으나...]를 대신해 2세트 부터 선발출장해 --리시브는 역시나 였지만-- 팀 분위기를 바꿔놓았었다. 7득점을 하며 감독이 "예상치도 못하게 아주 훌륭한 활약을 했다. 몸상태를 봐서 2차전에 출전시킬 것"이라고 언급할 만큼 인상적이었지만 무너져가는 팀을 구할수는 없었다.
2차전에도 1세트를 제외하고 2세트 부터 선발출장을 하여 괜찮은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폴리 몰빵 상태여서-- 큰 활약이 없었다. 다만 교체되어 나온 세트에 팀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 앞에서 까다로운 서브를 '''갑자기''' 구사해 경기를 반전시킬 뻔 했으나 팀은 3-1로 패배. --팬들은 이럴거면 스타팅으로 넣지 왜 세트 헌납질 하냐고 감독을 깠다.--
2차전 인삼공사 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이날도 현대건설은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컵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연주-양효진-고유민의 삼각편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것보다도 [[이다영]]이 잠시나마 경기감각을 되찾고, [[한유미]]의 정밀서브, [[염혜선]]의 닭장거부서브가 인상적인 경기였지만-- 13득점(팀내 2위, 12공격득점), 공격점유율 17.52%(팀내 3위), 공격성공률 '''50%(팀내 1위)''' 백어택(후위공격) 1[* 프로데뷔 첫 백어택], 1블로킹, 6디그, 리시브 성공률 28.57%--1차전 보다 3배 더 잘받았는데 그냥 그날그날 로또다--를 기록하면서 컵대회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현대건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주로 황연주와 양효진이 상대 블록커를 몰고 다니면 어디선가 나타나 그 빈틈으로 공격을 성공시켜 상대팀의 블록 포지션을 찢어놓거나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스크린성 플레이로 혼란을 주는 역할이 주효했다.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컵대회 후반엔 아쉬웠지만 2013-14시즌 이후 박슬기[* 전 현대건설 레프트. 현 대구시 체육회 실업배구 선수. 공격수로는 작은키(176cm)에 공격력은 발군이었으나 수비력은 별로--절망에 가까운--였다.]가 자의로 팀을 나가 팀의 공세를 담당할 공격형 레프트가 없었는데 이번 컵대회때 보여준 활약으로 현대건설은 외국인 트라이아웃 제도로 약화된 공격력을[* 폴리나 라히모바는 세계적인 공격수였으나 올해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은 수비력에 중점을 둔 선수라고 평가받아 선발되었다.] 어느정도 보완해줄 선수를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말해 가능성이 있으나 보여준게 적었던 선수에서 한계[* 리시브 능력]는 노출하고 있지만 공격력이 어느정도 검증이 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신인드랩 최종 승자인 건 덤[* 2015 컵대회 조차 고예림은 폭망 준결승 까지 공윤희는 25득점, 고유민은 40득점(결승 포함 48점)으로 공윤희 득점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
다만 3차전 도로공사전에서 1세트에 안정적인 리시브를 보여주면서 백어택을 성공시키는 등 코보컵 때 모습을 잠시나마 보여준 건 위안거리. -결국 정미선과 자리를 바꾸어 닭장을 달구다 2015년 12월 12일 인삼공사전은 2세트 37:37까지 간 상황에서 연속 2득점으로 2세트를 끝냈다. 이날 경기에서 본인 한 경기 시즌 최다득점인 9점 기록.[* 이 기록은 2016년 2월 1일 인삼공사 전에서 11점으로 갱신했다.]
고질적인 문제를 이겨내지 못해서 시즌 후반엔 내내 닭장에 있었고, 2016년 3월 13일 흥국생명과의 플레이 오프 2차전에서 [[한유미]]와 [[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이 수비라인이 동시에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에 양철호 감독이 2세트부터 선발 출장을 시키는 강수를 뒀고 4세트엔 여지없이 붕괴되어 한유미와 교체되었지만, 그런대로 근근히 3세트까지 버텨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특]][[대전 KGC인삼공사|정]]팀들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정시영의 공격을 블로킹하여 포스트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챔피언 결정전에 교체멤버로 분류되었으나 2차전에 교체출장으로 생애 첫 챔피언 결정전에 무리없이 출장했고, 3차전 마지막 세트에 출장하면서 팀의 우승에 한몫 거들었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컵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스페셜 브이 프로그램에서 밑도 끝도 없는 드립으로 선배들을 쇼크에 빠지게 했는데, '''"내가 [[수지(miss A)|수지]] 닮았다."'''고 하는 이상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해서 보니 당시 1년차 고유민 이었다. 이는 [[황연주]]와 [[양효진]][* 양효진의 경우 심지어 본인이 [[전지현]] 닮았다고 말한 걸 들었을 정도다.]이 직접 들었고 아니겠지 하고 넘겼으나 동기 정현주가 당시 주장이던 황연주에게 일러바치면서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또 방송에서 과감히 선배들의 외모를 상중하로 등급 먹이고,[* 그래서 가장 유명한 별명인 '라마'를 만든 조예진에게는 자신보다 얼굴 수준이 떨어진다고 굴욕을 안겼다.] '교정 3년만 하면 된다.' 말도 안되는 아이유 흉내, 수지 흉내까지 내면서 방송 지분을 많이 차지 했다. 그 덕분에 당해 현대건설 숙소탐방편은 레전드 편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다.[* 방송 컨셉이 섞여 있는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그냥 조용조용한 20대 여자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낯을 꽤 가린다.]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19회 일치
Red Orchestra: Heroes of Stalingrad.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한 FPS 게임. [[킬링 플로어]]를 제작했던 게임 제작사 [[트립와이어 인터랙티브]]가 제작 및 유통했다.
대전차병. 대전차 소총, 대전차 수류탄으로 무장한 병과. Frontline Solder 등급까지 올라가면 권총(C96/TT33)이, Veteran 등급까지 올라가면 휴대용 폭약이 해금된다.
공병. 기관단총, 대전차 수류탄, 휴대용 폭약으로 무장한 병과. Frontline Solder 등급까지 올라가면 권총(C96/TT33)이, Veteran 등급까지 올라가면 반자동소총(G41/SVT-40)이 해금된다.
전차장. 전차를 조종하는 병과로 전차에서 내릴 수 없다.
* 대전차소총
Anti-tank Soldier의 주무장. 전차의 약점에 맞추면 피해를 줄 수 있다. 들고 쏠 수 없기에 반드시 거치해서 사용해야 한다.
* 대전차 수류탄
Engineer와 Anti-tank Soldier에게 지급되는 무기. 총 2개가 지급된다. 럭키샷을 때리면 적 전차를 한큐에 날릴 수 있지만 보통은 두개를 맞춰야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
* 전차
Tank Commander가 타고 나오는 물건. Tank Commander는 여기서 내리지 못한다. 두꺼운 장갑을 두르고 전차포를 발사할 수 있지만 시야 확보가 어렵다. 해치를 열고 머리를 내밀면 나아지지만 그러면 머리에 구멍이 뚫릴 확률이 올라간다.
승무원이 대전차 소총에 피격당해 사망할 경우, 자리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해당 승무원이 맡았던 일도 해야한다.
2인승 경전차.
* 4호 전차
주축군이 공격, 연합군이 방어인 맵. 시가지다. 최초의 두 포인트는 시가지가 아니지만 광속으로 돌파되니 사실상 시가지. 연합군의 방어가 거센 곳은 중간의 강과 마지막 포인트인 레닌 광장. 주축군 측은 4호 전차를 사용할 수 있다.
- 신지애 . . . . 19회 일치
[목차]
2005년 아마추어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2006년 프로로 전향해 KLPGA 무대를 평정하였다. 신인왕과 대상, 상금왕과 평균타수 1위 등. 2007년이 되자 프로 경험의 예열이 끝났는지(!) KLPGA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7년 9승[* 통계가 완전치 않아 확인은 어렵지만, 아마도 KLPGA 역사상 시즌 최대승일 것이다.]을 기록하고 최단기간 통산 상금 10억원을 돌파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저 상금을 단 30개 대회 출전만에 경신하였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MVP를 포함하여 최저타수상,상금왕,다승왕 차지하여 4관왕에 올랐다.[* 2006년은 신인상으로 인하여 5관왕.]
2010년 부로 이미 KLPGA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를 다 채웠다. 단지 10년 연차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입회가 2015년으로 지연될 뿐이다. 그리고 결국 2015년 말 현재 KLPGA의 유일무이한 영구시드권자가 되었다.
2006년 ~ 2008년까지 KLPGA 주요 4부분, 즉 대상 - 다승 - 상금 - 평균 타수 부분 1위를 3년 연속 독차지 한 바 있다. 웬만한 선수는 커리어 중 한번 할까 말까한 대기록. 더우기, KLPGA를 1년이라도 속된 말로 '지배'를 하면 모두 LPGA, 하다 못해 JLPGA라도 이동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절대 깨질 일이 없는 기록이다.
2009년에는 세계 4대 투어(LPGA, JLPGA, KLPGA, 유러피언투어) 시드권을 Q스쿨 없이 통과하였지만, 주로 LPGA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신지애는 LPGA에서 3승을 기록하였고, 신인상, 상금왕, 다승왕 등을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이는 [[대한민국]] 여자 골프의 영웅이자 선구자인 [[박세리]]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며, 1978년 낸시 로페즈의 달성 이후 30여년만에 등장한 새로운 기록이었다. 같은 해에는 [[미래에셋증권]]과 스폰서 계약을 했다.
2010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비앙 마스터스 클래식[* 이 대회는 5번째 메이저라고 불리울 만큼 규모가 큰 대회였으며, 2013년에는 정말로 '5번째 메이저 대회'로 승격되었다.] 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들이 이 대회에서 줄줄이 준우승 아니면 TOP 10에만 드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그것을 신지애가 시원하게 깨 버린 것. 그 외에도 JLPGA 대회도 우승하였다. 그리고 2010년 첫 '''세계 랭킹 1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 전까지 [[아니카 소렌스탐]]의 뒤를 이어 여제로 군림하던 [[로레나 오초아]]가 결혼으로 인하여 은퇴하고 본인 또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쟁취해 낸 결과이다.
그리고 부상을 털고 일어난 2012년 1박 2일에 걸친 9차 연장 끝에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재기를 알리더니,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에서 -9를 기록하면서 2위와 9타 차, 혼자 언더파 기록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면서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본인의 무언가를 느꼈는지[* 아시아 -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 선수들을 견제하기 위해,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장비 때문에 LPGA에서 전체적인 전장을 늘였던 점도 부담이 있었다는 설이 있고, 어린 나이에 이룰 것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심적으로 고생이 심한 투어생활을 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와 관련된 인터뷰도 있으니 읽어보고 판단해 보도록 하자. [[http://golf.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122142001]]] 2015년 현재는 주로 JLPGA에서 뛴다. 거기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이보미]], [[안선주]] 등과 JLPGA의 최강자 중 한명으로 활약 중이다. 그러나 JLPGA 집중을 선언하자, [[미래에셋증권]]은 스폰서 계약 만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했다.
2015년 11월 말에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인 투어 챔피언십 리코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장정 - [[전인지]]에 이어 커리어 한/미/일 메이저 타이틀 석권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로써 2014년 4승에 이어 3승을 거두며 클래스를 재확인시켜 주었고 마지막 대회 우승으로 총 상금이 1억엔을 돌파하며 시즌 상금 3위 - 메르세데스 랭킹(대상) 5위 - 평균 타수 4위 등의 뛰어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2018년 2월에 유러피언 투어 '캔버라 클래식'에서 19언더를 몰아치며 호주교포 선수인 [[이민지]]를 6타차로 따돌리는 압도적인 플레이 끝에 우승을 차지하며 18년 시즌을 기분 좋게 스타트하였다. 통산 50승째라는 대위업을 달성한 것은 덤.
그리고 18년 5월에 열리는 JLPGA 첫 메이저 대회인 ''살롱파스컵 -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JLPGA 시즌 첫 승 및 JLPGA 통산 2번째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2006 KLPGA 투어 '''태영배 한국 여자 오픈'''[* 현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2007 KLPGA 투어 2007 KB 국민은행 Star Tour 3차대회[* 3주 연속 우승]
2007 KLPGA 투어 2007 KB 국민은행 Star Tour 4차대회
2008 KLPGA 투어 '''KB국민은행 Star Tour 4차 대회'''
* 개인사는 평탄하지 못한 편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한빛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원자력발전소 진입로에 신지애의 출생지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던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나, 청소년기에 어머니가 뺑소니 차에 치여 숨지는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그리고 그 때 받은 어머니의 보험금을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가족이 아닌 그녀만을 위해 썼고, 그녀는 아버지의 뒷바라지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결국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신지애의 아버지는 후에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15층짜리 아파트를 1층부터 15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훈련을 시켰는데, 이 때 훈련을 너무 혹독하게 시켜서 키가 크지 않은 것이 가슴 아프다" 라고 밝힐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동생들을 끔찍히 아끼고 잘 챙긴다. 신지애의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지애도 자신이 번 돈을 가족들을 위해 쓰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라고 밝힐 정도. 신지애의 동생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였는데, 그 때 신지애는 서울대 앞에 카페를 차려서 동생과 함께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 이승엽 . . . . 19회 일치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1997년]]에 장타력에 돋보여 홈런 1위(32개), 타점 1위(114개), 최다 안타 1위(170개)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 [[2002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벌여 47개를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LG 트윈스|LG]] 투수 [[이상훈 (1971년생 좌완 투수)|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쳐 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곧 [[마해영]]의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이어져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게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안겼다.
재팬 시리즈에서 처음 맞붙은 [[센트럴 리그]] 소속의 [[한신 타이거스]] 투수들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는데, 1차전에서 만난 [[한신 타이거스]]의 에이스인 [[이가와 게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고, 2차전에서도 에구사 히로타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3차전은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됐지만 4차전에서는 [[스기야마 나오히사]]로부터 선제 홈런을 쳐 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이 재팬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이마에 도시아키]]에게 밀려 제팬 시리즈 MVP 수상에 실패했다.
[[2012년]]에는 3할대 타율,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해 여전히 강타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그는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해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홈런 타이기록을 수립했고 6차전에서 결정타였던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첫 번째이자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상대적으로 1루수로 출장한 대구가 적어 처음으로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13년]]에는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2할대 타율, 13홈런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527668 이승엽의 무서운 다짐 "내 이름, 꼭 되찾겠다"] - 노컷뉴스</ref> 이는 9홈런에 그친 [[1996년]] 이후 가장 적은 홈런이었다. 정규 시즌 막판에는 허리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격 부진이 계속돼 7대구에서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에 그쳤다. [[2013년]] [[11월 1일]] 7차전까지 단 1타점도 기록하지 못하다가 7차전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동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당시 감독이었던 [[류중일]]의 믿음에 보답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136917 이승엽, 홈런이 전부가 아니다… 부진 털어낸 동점 적시타 ‘우승 발판’] - 스포츠월드</ref> 하지만 주춤한 성적으로 인해 그 해 골든 글러브(지명타자)를 타격왕을 차지한 [[이병규 (1974년)|이병규]]에게 내 줬다.
[[2014년]]에는 타격 자세 교정을 받았고, 그 결과 전년도의 부진을 털고 역대 최고령 3할 - 30홈런 - 100타점을 달성하며 국민 타자의 부활을 알렸다. [[2014년]] [[6월 17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였고, [[7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7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9월 10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역대 최고령 30홈런을, 한 달 후 [[10월 1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으로 최고령 시즌 100타점을 돌파했다.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하였지만 2차전에서 홈런을 쳐 내며 [[타이론 우즈]]를 제치고 포스트시즌 역대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시즌 기록은 3할대 타율, 32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며 2년만에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는 1루수로써 7번 받은 것을 포함해 총 9번을 수상하며 역대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 신기록을 경신했다.
* 일본 진출 첫 출장 · 첫 안타 : [[2004년]] [[3월 27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1차전([[세이부 돔]], 상대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
* 일본 진출 첫 홈런 : [[2004년]] [[4월 4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3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상대 투수 [[아라가키 나기사]])
* 한·일 통산 400호 홈런 달성 : [[2006년]] [[8월 1일]], 대 [[한신 타이거스]] 11차전([[도쿄 돔]], 만 29세 11개월 13일, 상대 투수 1회 [[이가와 게이]])
* 일본 통산 100호 홈런 달성 : [[2007년]] [[7월 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9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상대 투수 [[아오키 디카히로]])
- 정칠성 . . . . 19회 일치
귀국 후 [[1927년]]에는 [[신간회]]와 [[근우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여성 계몽 강연 활동과 칼럼, 논설 발표, 편물과 수자수 강사 등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 선전조직부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 1930년 제2차 경성학생시위사건(일명 근우회사건) 주동 혐의로 투옥당하였다.
해방 후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해 부위원장이 되고, [[조선공산당]]과 [[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 [[1948년]] [[4월]]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남북협상]]에 참가한 뒤, 그해 [[8월]] 미군정의 좌익 탄압을 피해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 대회차 월북했다가 내려오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48년]] [[8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8년]] [[10월]]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 1955년 민주여맹 부위원장, 1956년 4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57년]] [[8월]]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58년]] 국내파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을 제거할 때 숙청되었다.
19세 때에는 말 타고 나라를 구하는 외국여걸들의 전기를 읽고 자신도 그와같은 유명한 여장부가 되려고 승마를 배우기까지 하였다.<ref name="dispose">[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19971223.00000014.000010&newsType=old < 대구.경북 근.현대인물사 . 38 > 정칠성]</ref> 여자가 집 밖으로 다니는 것을 꺼려하고, 말을 탄다는 것은 금기시되기조차한 사회에서 그녀의 행동은 도발적인 것이었다. 정칠성은 이때의 경험을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유쾌했던 일로 회고하는 글을 잡지 '별건곤(別乾坤)' 에 싣기도 하였다.<ref name="dispose"/>
이후 [[일본]]에 건너가 체류 중, [[1925년]] [[3월]] [[도쿄]]에서 무산계급 및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이현경]], [[황신덕]] 등의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의 조선여성단체인 [[삼월회]](三月會)를 조직, 삼월회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3월 8일]] [[대구]]부내 노동공제회에서 [[대구여자청년회]] 주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에 연사로 초빙되어 '국제부인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3월 22일]]에는 [[대구청년회관]]에서 경북지역 인사들이 모인 사회주의 연구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3월 31일]] 다시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여자기예학교]]에 복학하였다.
[[1928년]] [[9월]] 신병 요양차 울산으로 내려가 요양하였다. [[9월 5일]] 요양차 울산 체류 중 경남울산청년회와 동아일보 울산지국 후원하 울산예배당에서 개최된 강연회에서 '여자의 불평과 남자의 각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8년]] [[근우회]] 임시전국대회자격심사위원, 1929년 제2회전국대회준비위원회 의안부책임자를 거쳐 [[1929년]] [[8월]] [[서대문경찰서]]에 체포,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929년]]말 다시[[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근우회 위원장으로서 순회강연으로 항일 의식을 고취하다가 수차례 검거되었다. 이후에도 합법적·비합법적 투쟁에 종사하여 요시찰 인물로 감시당하였다.
또한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의 해방과 [[붉은 사랑]]의 여주인공<ref name="seoji193"/> 왓시릿샤(바실리샤)의 해방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칠성은 '노라는 '[[개인주의]]적인 자각'으로서 개성에 눈을 떠 남편의 집을 뛰쳐나갔지만 거리에서 얼어 죽은 '공상적 여성'인 반면, 바실리사는 노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해방되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진 여성이라 대답한다.<ref name="seoji194">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4페이지</ref> 이렇게 당시 사회주의 조선 신여성들에게 콜론타이는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성적, 경제적으로 해방된 진정한 자유를 얻은 여성"의 상징으로 수용되었다.<ref name="seoji194"/> [[콜론타이]]의 이론을 적극 수용, 조선에 소개시킨 여성운동가로는 정칠성 외에도 [[허정숙]], [[정종명]] 등이 있었다.
{{참고|광주 학생 항일 운동|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
[[1929년]]에는 [[광주 학생 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그러나 [[1930년]]에는 [[조선공산당]]과 관련하여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의 관련자로 지목, 투옥되었다.
[[5월]] 근우회 각 지역순회강연 대표자를 전국에 파견할 때 근우회 중앙상무집행위원으로 경의선 라인 담당을 맡아 순회강연에 나섰다. [[5월 8일]] 그의 강연지는 장단, 개성, 사리원, 해주, 재령, 연백, 평양, 진남포, 정주, 의주, 신의주로 정해지고, [[5월 12일]] 경성에서 열차를 타고 황해도, 평안도를 다녔다.
1930년 [[1월]] [[경성]]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인 제2차 경성학생시위사건(일명 근우회사건) 주도 혐의를 받고 [[1월 18일]] [[경기도]][[경찰부]] 고등계에 체포, 다시 투옥당하기도 했다. 이후 [[경기도]][[경찰부]] 감옥에서 취조받다가 [[2월 25일]] [[종로경찰서]]로 이감되어 취조를 받았으나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1930년]] [[3월 15일]] [[근우회]] 경성지회 대의원에 선임되었다.
[[1930년]] [[3월 29일]] 열차 운전사들의 파업에 관련자로 지목되어 용산경찰서에 체포되었다가 혐의가 없어 [[4월 3일]] 석방되었다. [[4월 15일]] [[신간회]] 경성지회 대회에서 [[정종명]] 등과 함께 [[신간회]] 경성지회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31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31년]] [[1월]] 《조선지광》 1931년 정월호에 '연애의 고민상과 그 대책'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그녀는 연애로 인한 고민과 여성의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였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종속적인 관계의 결혼을 하게 되는 여성들과 남자에 대한 애정으로 자신의 길을 포기하는 여성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성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연애도 결혼도 모두 평등한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상적인 사랑을 위해서는 이러한 불합리한 사회적 제도와 환경과 싸워야한다고 하였다. 그녀는 '연애의 고민상과 그 대책'으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여중, 여고를 다니며 강연활동을 하였다.
[[1946년]] [[2월]]에는 범좌파 연합 단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이 조직되자, 그 간부가 되었다. 그해 [[2월 14일]]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중앙상임위원 겸 조직부 차장에 피선되었다. 이후 미군정의 좌익 탄압으로 은신처를 마련하여 전국 각지로 피신생활을 하였다.
[[1948년]] [[4월]] [[남북 협상]] 직전 [[삼팔선]] 이북 지역으로 탈출하였다. [[4월]]부터 [[5월]]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남한측 여성단체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으며, 제1차 남북협상을 마친 뒤 [[서울]]로 귀환하였다.
[[1948년]] [[6월]] [[황해남도]] [[해주]]에서 열린 제2차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그해 [[8월]] [[해주]]에서 개최된 남조선인민대표자 대회 참가차 3.8선을 넘어 월북했다가 내려오지 않고 [[북조선]]에 머물렀다. 그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1948년]] [[9월]]에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선출되고 [[민주여성동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10월]]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 [[박차정]]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18회 일치
[목차]
이후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출연하는 등 차츰 차츰 연기력과 경력을 쌓아 가다가,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작별"[* 여담으로, 이 드라마에서도 김수현 작가는 '연출자를 1주일 만에 갈아치운' 무서운 작가였고, 배우의 발음과 연기 지도가 혹독하기로도 유명했다. 고현정의 정확하고 약간 빠른 대사전달력도 그냥 된 게 아니다.]이나 [[최재성(배우)|최재성]]과 함께 출연한 [[SBS]] 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 그리고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 등 연기력으로도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했고,(이 당시 라디오 디제이나 토요일 예능 mc도 뛰었다) 1995년 1월,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 출연하여 최고의 여배우가 되었다.[* 앞에 작별이나 엄마의 바다 등으로 고현정은 이미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모래시계 한 번으로 스타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케이스에 들어맞는 사람은 오히려 이정재인데, 고현정이나 이정재 모두 모래시계 이후 톱 스타 중의 톱 스타로 군림하게 된다. ]
그러나 모래시계의 종영과 동시에 [[신세계그룹]] 부회장인 [[정용진]]과 결혼함과 동시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여 마지막으로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다... 1995년의 연예계 뉴스의 시작과 끝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고현정의 인기는 진짜 어마어마했다. 더구나 장안의 최고 화제작 [[모래시계]]를 통해 연기력까지 검증받은 상황이라 [[충무로(은어)|충무로]]의 러브콜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지고 있던 차에( 당시 영화계는 여배우 기근이 심각했던 상황이어서 고현정의 등장은 그야말로 가뭄중에 만난 단비격이었다) 느닷없는 결혼발표가 나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말이 나오는 형편이었다. 일부에서는 [[그레이스 켈리]]와 비교하기도 하는 등 엄청난 파장이 일었었다.]
[[SBS]] 드라마 [[대물(드라마)|대물]]이 첫방송에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함으로써 여자 배우 중 유일하게 5작품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권상우|누군가]]의 다크 오라를 상쇄하고 있다-- '고현정은 못해도 중박'이라는 말을 입증하듯 평균시청률에서 15% 이하를 찍어본 적이 없으며,[* 봄날 tns 평균 28.4 / 닐슨 평균 27.3 여우야뭐하니 tns 평균 17.4 / 닐슨 평균 16.7 히트 tns 평균 15.5 / 닐슨 평균 15.7 선덕여왕 tns 평균 35.4 / 닐슨 평균 33.9 ] 배우의 스타성에 따른다는 높은 첫방시청률을 뽑아주는 배우다. 선덕여왕 직후 찍은 대물에서는 광고 100억 완판.[* 못해도 중박배우에 해당되는 배우는 고현정 외에도 [[장혁]], [[소지섭]], [[최진실]] 등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다만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에서 희대의 악역 [[조필연]]을 연기한 [[정보석]]을 제치고 받아서 논란이 많았다.]
2016년에는 3년 만의 후속작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에 출연했다. 그런데 고현정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들이 엄청나게 후덜덜하다.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주현]], [[김영옥(배우)|김영옥]], [[신구(배우)|신구]]''' 등 고현정보다 연기를 먼저 시작한 대선배들이 줄줄이 출연한다. 그래서, 특별출연을 제외하고 고현정이 막내(...)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인지라 우스갯소리로 '''고현정이 막내라서 커피심부름 하는 드라마'''(...)라는 드립이 나오고 있다. ~~위 라인업 보면 실제로 그럴것 같다. 데뷔 28년차가 막내라니~~ 이 작품은 워낙에 고현정 본인뿐만 아니라 나머지 배우들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연기력 + 뛰어난 작가의 스토리 + 감각적인 연출이라는 3박자가 절묘하게 떨어진 작품이라 전작의 시청률 만회는 물론이고 다시 한 번 고현정의 주가를 상승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 특히 14회 마지막 장면에서 이기적인 자신을 반성하며 자학--셀프 싸대기--하는 장면은 압권.
2018년 SBS 수목드라마 '[[리턴(드라마)|리턴]]'이 최고 시청률 16.0%까지 찍으며 승승장구 하던 중, 제작진과의 분쟁으로 촬영을 거부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촬영중 담당PD를 폭행하고 욕설을 했다는 폭행설까지 불거졌다.[[https://entertain.v.daum.net/v/20180207205715764?f=m|*]] SBS 측에서는 주연배우 교체를 검토했고, 2월 8일 자정 경에 결국 확정되었다. 고현정 측에서는 "제작진 과의 의견 차이를 더 이상 극복할 수 없어서 하차하게 되었다"고만 밝히고 욕설, 폭행설 등의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특별히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820766|공식입장 전문.]] 그리고 8일 오전 11시쯤 고현정 소속사 측에서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753456| "밀치며 언쟁" 폭행 간접 인정]]이라는 추가적인 입장을 밝혔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고현정 측은 기존 언론 보도에서 멱살잡이와 발길질 같은 행동은 하지 않고 서로 간의 언쟁이 오가던 중 밀쳤다고 입장을 밝혔다.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80208133712383?rcmd=rn|하차와 폭행에 대한 양측의 견해 차이가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네이트판]]에 고현정이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겸임교수 신분으로 강의를 했을때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현재는 삭제되었다.] 그 글에 따르면 고현정은 교수 시절 지각을 상습적으로 했으며, 밥먹듯이 학생들을 노래방으로 데려가 술을 마셔서 즐기고 여학생과 남학생간의 똑같은 성적이라도 학점을 차별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글에서 가장 고현정이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것은 매 수업시간마다 그것도 환기가 안되는 지하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는 중에 매 강의마다 10회 정도 [[흡연]]을 했다는 것인데, 이에 한 학부모가 이 문제에 대해 대학에 항의전화를 했으나 오히려 과 대표가 고현정 교수의 흡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넘어가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에도 계속된 학부모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종강 때까지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한다.[* 당시 이 글을 올렸던 당사자가 몰래 찍었던 사진이다. [[파일:교수의 자격.png|width=65%]] ] 그리하여 '''교육자로서 결격사유'''인 모습만 보였다는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 주연 출신이어서, 정확하고 약간 빠른 발음을 구사한다. 연기력은 엄마의 바다나 두려움없는 사랑이 인기였던 모래시계 이전에도 주연을 맡을 만하다는 평이었는데,(우는 장면에서 근성의 노메이크업으로 펑펑 울거나) 모래시계 때 레전설 소리를 들었다.~~그리고 총알은퇴. 관광지 [[정동진역]]을 남기고.~~ [* 김종학 감독은 연기력이 아까워 결혼을 말렸다고 이후에 인터뷰한 바 있다.] 김종학 감독은 20대 초반의 고현정을 두고 한 줄의 대사로도 파급력을 갖는 배우라고 이야기했으며 복귀 후의 고현정은 봄날의 실어증 여주인공, 여우야 뭐하니의 음란 잡지 기자, 히트의 강력반 형사 등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를 펼쳤다. 트레이드마크인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디테일한 연기[* '무언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미덕(단순히 매력이 아닌)을 지니고서도 나쁜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미실을 얼굴의 오른쪽과 왼쪽, 입과 눈과 눈썹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며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로 강렬하게 소화해낸 고현정은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이자 일등공신이다.' -이영미(문화 평론가). 시사IN 기사 중] 는 선덕여왕 때 처음 화제가 되었다. 비결에 대해, '사극이라 몸이 안움직이니 얼굴이라도 움직여야 시청자들을 잡겠다 싶어서...'라고 코멘트. 같이 촬영했던 [[이순재]]도 인상적이었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이순재]]는 헐리우드로 지금 당장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김명민]], [[김희애]], 고현정을 꼽았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주인공에 비해 많지 않았던 분량임에도[* 어느 팬의 편집 결과에 의하면 62부작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나온 시간은 1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주요 시상식을 휩쓸고 그해 실시된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38%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51965|#]] 차기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대물은 방영 내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작가, 감독이 바뀌는 등 내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드라마 내용은 산으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의 연기는 호연이었다는 반응과 함께 2년 연속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때 2위와의 격차가 무려 23%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156691|#]] 여왕의 교실은 시청률 면에서는 고현정 필모그래피에서 최하를 기록했지만 무표정에서 종종 보여지는 미세한 표정 연기(일명 나노 연기)는 미실을 능가했다는 반응도 얻어 원작과 다른 마여진을 만들어냈다며 호평을 받았다.
* 선덕여왕 후 [[YB]]의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나와 멀쩡한 드레스 차려입고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열창하며 힘껏 망가지고 갔다. 팬카페에 남긴 글로 보면 평소에도 [[오아시스(밴드)|오아시스]]나 [[U2]]를 듣는다는 것 같고, <2시의 데이트>에 나와서 [[자우림]]의 20세기 소년소녀를 추천하고 갔는데, 무릎팍에서는 [[빅뱅(아이돌)|빅뱅]]의 [[T.O.P|탑]]과 [[샤이니]]를 매의 눈으로 찍어내질 않나, 고쇼 빅뱅편은 화기애애하질 않나… 그러나 '[[보그]]'에 실린 인터뷰에 의하면 클래식(듣던 게 '펠리시테 로트'의 아리아.)을 자주 듣는데 뭐 좋아하세요 질문받으면 가식떤다는 소리 들을까봐 어디가서 말은 못한다고.
|| 2007 || MBC || [[히트(2007)|히트]] || 차수경 || 18.5% ||
* 차남:[[성문준]]
- 상디 . . . . 18회 일치
|| 좋아하는 음식 ||<:> 매콤한 해물 파스타[[br]]홍차에 어울리는 먹을거리 ||
|| 해적단 가족 포지션 ||<:> 차남(불량) ||
[[목차]]
늘 검은 수트를 입고 있고 전투에서는 오로지 다리를 이용한 공격을 한다. 이는 전투에서 요리사의 도구인 손이나 식칼을 쓰지 않으려는 신념의 발로로, 은인이자 스승인 붉은 발 [[wiki:"제프(원피스)" 제프]]에게 배운 것이다. 다만 '[[매드매드 완제|라면 면발을 갑옷으로 입은 상대]]'처럼 상대방이 식재료로 간주되는 경우라면 드물게 식칼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완제가 입었던 라면 면발 갑옷 한정으로, 갑옷을 해체한 뒤에는 식칼을 집어넣고 완제 본인은 원래대로 발차기만으로 상대했다.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태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더불어 여자라면 할머니건 추녀건 간에 그래도 여자라면서 인정해준다. [[Dr. 쿠레하]]에게 던져진 쿠로마리모의 털뭉치를 막으면서 "헤이헤이, 이봐 뽀글머리. 숙녀분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지면 쓰나? 매너교육을 다시 받아야겠는데?" 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쿠레하가 씩 웃으면서 "얘가 제법 뭘 좀 아네" 란 말도 해줬다. 실제로 상디가 여자를 못 때리는 것을 한심하다거나 호색한도 정도껏 하라는 식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성별이 여자라면 로라같은 애들도(심지어 하마 상태인데도) 못 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도 진짜 기사도라고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 ~~물론 안 때리면서 보이는 태도에 있어서는 꽤나 차이가 있다.~~
흔히 2차 창작에서는 [[벽안]]으로 자주 묘사되지만 공식 설정 상으로는 그냥 까만 콩눈. 그런데 애니판에서 등장한 상디의 눈이 벽안이다! 정확히는 상디 in 나미의 눈이 갈색에서 벽안으로 바뀌었는데 눈동자가 워낙 작은 [[삼백안]]이라서 벽안이 검은 콩눈으로 보였던 것이다.
왠지 적들에게 모습이 알려지지 않는 징크스가 있는데 [[바로크 워크스]]와 싸우게 되었을 때 위스키 파크에서 초상화가 그려지지 않거나 Mr.3일당과 전투에서도 열외되었고, [[Mr.2 봉쿠레]]가 왔다 갈 때 일당중 유일하게 그 자리에 없어 본의 아니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게 되어 [[크로커다일]]을 두 차례나 낚았고, [CP9]와 싸울 때도 혼자 해상 열차에 숨어들어 화려하게 깽판을 쳐주는 등 의도치 않게 중요한 순간마다 히든카드가 되어 대활약. [[에니에스 로비]]에서 깽판쳐서 수배서가 배부 될 때에도 상디만 렌즈 커버를 안 벗겼는지 사진이 새까맣게 나와서 거의 추상화급 몽타주로 현상 수배서 사진이 대체된 상황이라[* 그리고 상디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에서는 그 수배서를 받아보고는 주인인 [[제프(원피스)|제프]](그만 쿡쿡거리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긴 했다)를 제외한'''요리사들 모두가 눈물나도록 배터지게 웃어가며 그 수배서를 손님들에게 광고지 뿌리듯 쫙 돌리기까지 했다.'''] 상디가 계속 '''히든카드'''로서 활동해 나갈 가능성에 힘이 더해져가는 중. 하지만 이렇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이 후 [[엠폴리오 이반코프]]에게 자신이 루피의 동료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무진장 고생했다.[* 이반코프는 이게 어디가 닮았냐고 믿지 않았지만 반대로 [[오즈(원피스)|오즈]]는 이걸 보고 상디를 바라보곤 "판박이네."라고 공격했었다. ~~오즈는 [[바보]]니까~~]
* [[모옴]] - 발차기 한번으로 리타이어 시킨다.
* 부쟈크 - 극장판 2기 한정. 처음에는 거의 맨발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싸웠기 때문에 졌지만 나중에 신발 신고서는 각종 발차기로 뼈를 작살내고, 막타로 내장파열로 끔살시켰다.
* 헷지 - 극장판 3기 한정. 헷지의 자칭 '세계 최고의 매력남' 언급에서부터 갈등 시작, 나중에 쵸파를 구하고자 대결을 신청했고 헷지의 독성 검에 고전하지만 4번 정도 걷어차니까 그냥 끝. 이어서 '네녀석의 검은 [[롤로노아 조로|그 녀석]]의 검의 발톱의 때일 뿐이다.'라고 언급.
* [[스칼렛 대장]] - 극장판 10기 한정.[* 극장판 8, 9기는 각각 알라바스타, 드럼 왕국 재탕이니 생략한다.] 로빈을 두고 대결하는데 초고속으로 건물을 타고 올라가 디아블 잠브 시전, 가볍게 끝내버린다. ~~그리고 로빈은 브룩이 차지~~[* 이는 상디의 [자업자득]인데, 로빈이 붙잡혔음에도 상디는 로빈의 구출보다 고릴라를 패는 것을 우선했다가 로빈을 깜빡했다.(...) 어떤 의미로는 가장 상디답지 않은 행동.]
* [[바솔로뮤 쿠마]] - 1차전에서는 동료들 대신 희생하려는 조로 대신에 자신이 희생하려 했으나 조로에게 기절당했다.~~덕분에 조로한테 멋있는 장면 뺏겼다. 안습.~~ 2차전에서는 상디를 그랜드 라인 제2의 여인섬 핑크빛 아일랜드로 날려버린다.[* 그런데 이 때의 상디는 하필 분노로 '''[[멘탈붕괴]]'''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승산이 없었던 싸움이었다. ~~근데 제정신으로 덤볐어도 발리는 건 마찬가지일 거 아냐?~~ ~~상디 안습.~~] [* "젠장, 난 대체 뭘 하는 거야! 눈 앞에서 동료를 둘이나....!!"라며 '''머리를 쥐어뜯는다거나''' 루피의 만류를 '''전혀 듣지 않는''' 모습에서 당시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결론은 상디 안습.~~]
> [[쿠로오비(원피스)|네 녀석]]의 펀치가 40단이면, 늘 맞았었던 [[제프(원피스)|영감탱이]]의 걷어차기는 400단이겠군.
> 담뱃불이 필요하던 차였거든...[* 에넬로부터 나미, 우솝을 구해주는 대신 번개로 자기 몸이 타버린 상황에서 에넬에게 한 도발. 다만 KBS 더빙판에서는 심의 때문에 "'''추워서 따뜻한 번개가 필요한 참이었거든...'''"이라고 대사가 변경되었다. ~~춥다고 일부러 번개 뒤집어 쓰는 이 무모한 사람(...)~~]
* 공식 가족 포지션은 차남이지만 하는 행동이 '''엄마같다'''는 평이 많다. 일단 동료들의 모든 식사를 책임져주고 있으며 평소에는 [[츳코미]]를 걸거나 잔소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상냥하게 챙겨주는 면도 있기 때문. 팬들에게는 가끔 お母サンジ[* 어머니라는 뜻의 お母さん과 상디의 이름인 サンジ를 합친 말장난]라고 불리기도 한다.
- 성훈(배우) . . . . 18회 일치
[목차]
첫 작품을 끝낸 뒤 조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 작품인 《[[신의(드라마)|신의]]》에서는 주인공 일행의 적인 천음자로 출연했다. 다음 작품인 《[[가족의 탄생(드라마)|가족의 탄생]]》에서는 드라마 중반부에 투입이 됐는데, 여주인공을 두고 남주인공과 대립하는 서브남주의 위치였지만, 마지막엔 주인공을 밀어내고 진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배우 본인이 연기한 작품들에서 거의 다 주연을 맡았다. [*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게 연기력과는 별개로 성훈은 하는 작품마다 배역 운이 좋은 편이다. 대체로 주연이거나 주연이 아닌 작품도 최소 비중 높은 조연을 많이 맡았다. 참고로 촬영 예정이자 데뷔 후 첫 영화에서도 주연으로 캐스팅. 거기다 맡은 캐릭터 운도 좋은 편인데 드라마 내의 등장인물들 전원이 산으로 간 케이스라도 성훈이 맡은 캐릭터만 정상적인 경우가 제법 있다. 심지어 [[가족의 탄생(드라마)|주인공이 아니었는데도 나중에 주인공이 되어버린 작품]]까지 있다. 출연작품의 폭도 상당히 넓은 편으로 장르 안가리고 이곳저곳 많이 나온다. 임성한 드라마 출신의 배우들 대부분이 막장 드라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걸 감안하면 상당히 돋보이는 행보이다.]
[[2017년]] [[7월 7일]] 방영분 [[나 혼자 산다]] 무지개 라이브에 출연했다. 자취 생활은 말 그대로...[[건어물녀|건어물남]]. 하는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그리고 오덕 기질이 보이는데, 인터뷰 영상을 보면 [[토니토니 쵸파]] 일러스트와 퍼즐, 케로로봇 프라모델, [[진격의 거인]] 일러스트, [[로이 머스탱]] 피규어 등이 내비쳤다. 나 혼자 산다 인터뷰에서 본인은 관심도 없었는데 팬미팅때 원피스라는 애니가 좋다라고 한적이 있는데 그후 팬들이 퍼즐, 장난감을 보내줬다고 말했다. 즉 본인이 산게 아니라 팬의 선물인 것. ~~방송 보신 분들은 앞으로 [[콘푸로스트|호랑이 기운 씨리얼]]을 보내줄듯~~ 이후로도 해당 방송에 수 차례 출연하였으며 그 때마다 그의 굉장한 먹성이 화제가 된다. 선수 출신답게 압도적인 기세로 엄청난 양을 단 시간 내 먹어치우기 때문. 다른 고정 멤버들에 비하여 출연 빈도가 높지 않음에도 화제성이 높은 것은 모두 이 때문. 덕분에 함께 출연한 양치승 트레이너까지 세간의 관심을 사고있다.
||<|3> 2017 || [[OCN]] ||《[[애타는 로맨스]]》 || 차진욱 ||
* [[오 마이 비너스]] : 장준성 역. 극 중 [[UFC]] 챔피언이자 [[소지섭]]의 의형제 역할로 출연. 공교롭게도 소지섭도 수영선수 출신이다(...) 예체능의 영향이 컸는지 수영 챔피언으로 나오는 게 더 낫겠다는 네티즌의 말이 많다. 드라마 주제가 헬스라서 그런지 ~~리얼리티를 살리는 차원에서~~ 실제 운동선수 출신들을 데려다 썼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참고로 성훈의 첫 KBS 드라마 출연작이자 처음으로 SBS가 아닌 타 방송사 출연작이다.
* [[애타는 로맨스]] : 차진욱 역. 전작인 [[아이가 다섯]]에서 로코에 갈증을 느껴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계기로 로코킹, 키스 장인등의 별명을 얻었으며 내면 연기도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반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반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절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반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반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태,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남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남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 [[Mnet]] || 《Sing스트리트》 || 출연[* 2016년 10월 26일~12월 14일 방송. EDM의 선구자~~(?)~~인 박명수에게 디제잉을 배웠다..막방공연 전에 박명수에게 청국장파스타를 해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우월한 기럭지에 조각같은 외모, 노래도 수준급, 요리도 잘해, 거기다 성격도 좋고 겸손함까지.. 도대체 못하는게 뭐임?~~ 막방 공연때 허리통증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고 대중은 환호했다.. 결국 3표 차이로 봉태규에게 1위를 내 주었다.] ||
|| [[SBS]] || 《[[정글의 법칙]]》[* 와일드 뉴질랜드편. 2017년 05월 19일~2017년 06월 09일방송. 섭씨 11도 정도 차가운 물 속을 병만 족장을 업고 건너고 집을 짓기 위해 톱질을 하는 등 촬영 내내 상남자다운 면모를 보였다는 후문. ] ||
* 맡는 역할마다 어째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캐릭터가 많다. 거기다 입양아 역도 좀 있는 편이다. 가족의 탄생, 오 마이 비너스 둘 다 미국으로 입양된 역할(...) 아이가 다섯은 부모님이 있기는 한데 떨어져 사는 설정이라 절반 가량이 지났음에도 부모님의 아직 얼굴조차 안나오다가 드디어 40회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근데 이번에는 엄마가 [[박해미|이 분]]... 게다가 엄마는 상민과 태민을 차별하며 태민을 편애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이번에도.....?-- [[애타는 로맨스]]에서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혼 가정의 재벌 2세. ~~이 쯤 되면 그냥 팔자인 듯~~
* 배우 자체가 진지한 분위기의 정극이나 사극보다는 밝고 가벼운 로코나 일상물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평이 많다. 특이하게도 이는 역대 임성한이 발탁한 남자배우들과는 확연한 차이점.[* [[김성민(1973)|김성민]], [[이태곤]], [[오창석(배우)|오창석]], [[서하준(배우)|서하준]], [[강은탁]] 등 성훈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배우들이 정극을 위주로 활동하는 중. 이는 신기생뎐에서 상대역이었던 임수향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마찬가지로 임 작가가 발탁한 여배우들도 임수향을 제외하고 [[이다해]], [[윤정희]], [[전소민]], [[박하나]] 등등이 주로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활동한다.~~2017년 4월부터 [[전소민]]이 [[런닝맨]]에 고정이 되면서 임 작가가 발탁한 배우들중 다른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훈과 임수향이 예외적인 케이스. 거기다 위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임성한이 발탁한 남자배우들이 이후 좀처럼 막장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성훈만 예외적으로 정극, 사극, 느와르, 로코, 소설 원작 작품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 길었던 선수생활(초등5년부터 27세까지 만 14년 햇수로 16년)탓인지 지금의 모습에 대해 불편해서 차라리 스포츠머리로 시원하게 깍아 편하게 있고 싶다고 한다.
- 잘츠부르크 . . . . 18회 일치
[[목차]]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랄까 모차르트 말고 유명한 사람도 없다.(…) --우리 동네에서 모차르트가 태어났다는게 자랑--
잘츠부르크=모차르트 수준으로 모차르트 팔아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 집은 물론,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았다는 성당, 모차르트 광장, 모차르트 동상, 모차르트 초콜렛(!!!), 모차르트 향수(!!!) 까지 팔고 있다.
이 가운데 모차르트 쿠겔른(Mozart Kugeln)이라는 초콜렛은 1890년 처음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잘츠부르크의 명물 취급이다.
하지만 정작 모차르트 자신은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기만 했지 별로 오래 머물지 않았고, 주로 [[빈]]에서 활동했다.--모차르트가 우리 동네 별로 온 적 없는건 안 자랑--
매년 여름 모차르트를 기리기 위하여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린다. 아무튼 모차르트 도시라는 컨셉에 걸맞게 구도심 지에서는 거리 연주회가 자주 열린다고 한다.
- 정승환(가수) . . . . 18회 일치
|| '''별명''' ||<(> 싕, 시크싕, 싕화이, 정차요, 숲지기, 숲디 ||
[목차]
'''오디션 중 사상 처음으로 5주간 멜론차트 1위 6개월 이상 차트인.'''[* '사랑에 빠지고 싶다'가 3주동안 1위 '슬픔속에 그댈 지워야만해'가 2주동안 1위를 차지했다.]
[[SBS]]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 시즌4]]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6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태어나 2000년 [[인천광역시]] [[연수구]]로 이사했다.
본선 2라운드인 '랭킹오디션'에서 김조한의 '사랑에 빠지고 싶다'를 놀라운 가창력과 감정으로 열창했다. 심사평으로 유희열은 "가요로, 특히 남자 참가자가 심사위원 셋의 마음을 뺏어간 건 정승환이 처음이다. 바로 음반을 내도 된다"고 극찬했다. 이어 "내가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발라드 남자 가수 특집을 하면 정승환을 가장 마지막에 넣어서 스페셜 무대를 꾸미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3주에 걸쳐 음원차트 1위를 했는데, 이는 오디션계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또한 '사랑에 빠지고 싶다' 네이버TV의 조회수도 680만을 돌파했는데 이는 2014년 전체동영상 조회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고 아직도 조회수는 올라가고 있으며 역대 조회수 순위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 유희열이 7집 <Da Capo>를 발표했었는데 '사랑에 빠지고 싶다'에 자신의 앨범이 음원차트에서 밀렸다. --그 사실에 박장대소하는 박진영--] 한편 작곡가 윤일상 역시 정승환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선물을 전하는 등 고마움을 표했다.
캐스팅오디션에서 박윤하와 '감성돔' 을 구성해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를 불렀다. 깊은 감정과 연기로 또 한 번의 큰 호평을 받으며 여성 보컬과의 목소리 케미도 확실하게 입증했다. 이날 그는 YG의 캐스팅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부른 곡은 또다시 음원차트를 1위를 2주일넘게 쓸게된다.
4월 12일 열린 결승전에서 ‘니가 있어야할 곳’, ‘만약에 말야’ 등을 열창하며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경쟁자인 [[케이티 김]]과 근소한 점수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정승환은 “그동안 받은 많은 관심과 격려가 경연을 하는데 큰 힘이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5년 7월 7일 [[SBS]] 측은 “정승환이 SBS 주말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정도윤 이하나 극본, 조수원 연출)의 OST에 참여 한다”고 밝혔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719799|#]] 이 곡은 멜론차트 최고 12위까지 상승했다.[* 그리고 네이버뮤직에서 40,50대가 가장많이 듣는 음악에 랭크되었다.]
9월에는 [[현대 쏘나타]]의 30주년 기념 고객 소통 뮤직 프로젝트(Sing the road)로 [[박진영]]과 함께 '잠수교'를 불렀다.[[http://kjoim143.egloos.com/9782155|#1]], [[http://m.news.nate.com/view/20150908n48872|#2]] 광고 음원이지만 일부 음원차트들에서 100위권내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1월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샤이니의 [[종현]]과 함께 쇼맨으로 출연하였다. 역주행송으론 --노래방 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izi]]의 '''[[응급실(노래)|응급실]]'''을 불렀다. 현재 '슈가맨' 네이버TV에서 전체 조회수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I.O.I의 엉덩이]
제목은 '너였다면'이고 실시간 최고순위를 기록하자면 멜론 6위,엠넷 1위,올레뮤직 1위,네이버뮤직 1위,소리바다1위,카카오 1위,몽키3 1위, 벅스 2위, 지니 3위 를 기록하고있다. 6달이 넘게 지난 지금도 페이스북 같은 곳으로 인해 역주행을 거듭해서 모든 음원차트의 20~40위권에서 OST 중 가장 길게 롱런하고 있다.[* 새로운 곡들이 나오면 잠시 순위가 밀려났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순위가 더 높은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OST계의 우아하게?--]
2016년 11월 29일 0시 "이 바보야" 라는 곡으로 데뷔, 약 세시간만에 멜론 차트 실시간 순위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앨범 초고가 하루만에 매진되었고 8개 음원사 1위를 모두 석권하였다. 멜론차트 12월 첫째주 주간 1위를 기록했다. 정승환의 실제 만취 연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소주 4병을 마신 상태에서 뮤비를 촬영했다고 한다. 참고로 주량은 1병이라고..](...) 때문인지 뮤비가 [[19금]]이 되었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18회 일치
차량 유닛이 생산되는 건물. 군수공장이 많을수록 차랑 생산이 빨라진다.
차량 유닛을 수리하는 건물. 수리하는데도 돈을 퍼먹는다.
지정한 지역의 차량 유닛을 다른 지역으로 순간이동시키는 슈퍼무기. 보병한테 쓰면 즉사한다.
* 군수공장: 플레이어의 차량 유닛이 베테랑으로 훈련됨
쌍권총과 폭발물로 무장한 특수요원. 보병을 일격사시키고, 건물도 폭발물을 설치해 한번에 파괴하며, 수영도 할 수 있지만 차량 유닛에게는 무력하므로 컨트롤이 필요하다.
== 차량 유닛 ==
연합군의 기본 전차. 그럭저럭.
승차한 보병에 따라 무장이 변하는 차량. 빠르지만 내구성이 약하다.
* 엔지니어: 대형 집게. 차량 유닛을 수리할 수 있다.
* 구축전차
차량 유닛에 강한 전차.
건설소로 배치할 수 있는 차량.
프리즘 빔을 발사하는 전차.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방벽을 넘어 공격할 수 있다. 목표 근처에도 피해를 입힌다.
정지시 나무로 위장하는 전차. 무슨 탄을 쏘는지는 몰라도 한두방에 보병을 태워죽인다.
* 수륙양용차
- 손담비 . . . . 17회 일치
소속사에 들어가서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의 시트콤 《[[논스톱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준표도 담비도 출발은 단역 아이돌 스타 무명 시절 살펴보니 |url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나지연 |날짜 = 2009-05-03 |확인날짜 = 2009-09-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1011100530/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보존날짜 = 2009-10-11 |깨진링크 = 예 }}</ref> 이처럼 원래 손담비는 가수보다 배우가 꿈이었으며 기획사에 들어간 계기도 사실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ref name="news">{{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인터뷰③)|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유현진, 정유진|날짜=2009-04-17}}</ref> 2004년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크럼핑을 배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내 이름은 손담비, '몸치'였던 나의 이야기 들어볼래?"|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DCD=A606&newsid=02086086583165328&OutLnkChk=Yl |출판사 =이데일리|저자 =박미애|날짜 = 2007-06-25|확인날짜 = 2009-09-02}}</ref> 크럼핑을 배울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국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과 크럼핑 댄스의 창시자 릴C 등 유명인사들에게 배웠다.<ref>{{뉴스 인용|제목=미쓰에이 연습생 시절 보다 더 파워풀한 '손담비 연습생 시절' 영상|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출판사=ENS|저자=뉴스팀|날짜=2010-12-31|확인날짜=2010-12-31}}{{깨진 링크|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 }}</ref> 당시 릴C는 손담비에게 "너는 예쁘니까 그냥 연기나 해라"라고 할만큼 재능이 부족했지만, 오랜 연습끝에 춤을 잘 출 수 있게 되었다.<ref name="10아시아"/> 같은 해 2005년에는 CJ 뮤직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을 결성해 초창기 멤버로 발탁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 |제목 =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 |url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 =머니투데이|저자 =김원겸|날짜 = 2007-05-06 |확인날짜 = 2014-05-15}}</ref> 2007년 5월에는 [[가희]]와 함께 에스블러쉬 멤버로서 〈It's My Life〉를 발매했고, 미국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2위까지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5-06|확인날짜=}}</ref> 하지만 팀 내부 사정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2008년 2월 29일 게임 [[프리스톤테일2]]의 주제가 "Change the World"를 불렀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36656 네이버 뮤직 - Change The World (프리스톤테일 2) O.S.T] 《[[네이버]]》</ref> 같은 해 4월 29일 손담비는 첫 미니 앨범 ''[[Mini Album Vol.1]]''을 발매하며 컴백 했다. 앨범의 타이틀 곡 "Bad Boy"로, 전 에스블러쉬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가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 때 손담비는 주로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활동했다. "Bad Boy"는 발표한지 2주만에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때마다 검색어 순위는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배드 보이', 29일 미니앨범 공개 후 '대박 조짐'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27079|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08년 4월 20일|확인날짜=2011-02-06}}</ref>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에는 조회수가 20만 건이 넘었고, 무대에서 입고나온 코르셋 스타일의 파격적인 의상도 많은 관심을 받아 홈페이지가 폭주하기까지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코르셋패션 "열기"...홈페이지 또 "혼수상태" |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3|출판사= 깜뉴스|저자=신명희 기자|날짜=2008년 5월 25일|확인날짜=}}</ref>
5달 후인 2008년 9월 17일 두 번째 미니 앨범 ''[[Mini Album Vol.2]]''의 타이틀곡 〈미쳤어〉의 티저 영상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티저 영상은 공개후 각종 동영상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받으며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미쳤어' 티저 영상에 팬들의 반응 뜨겁네~ |url=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11539|출판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연예|저자=스포츠연예팀|날짜=2008-09-19|확인날짜=}}</ref> 이어 18일에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타이틀곡인 〈미쳤어〉 열풍이 한국에 불었는데, 특히 처음 후렴구부분의 의자춤이 인기를 끌었다. 각종 연예인들은 의자춤 패러디를 했는데, 재일 먼저 배우 [[허이재]]가 패러디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 허이재, 손담비 ‘미쳤어’ 의자춤 깜짝공개 눈길 확~|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0191843251001 |출판사= 뉴스엔 연예|저자=이현우|날짜=2008-10-20|확인날짜=}}</ref> 계속해서 김효진, 신봉선, 양정아, 현영, 노홍철 등이 예능에서 따라했으며, 《[[내 사랑 금지옥엽]]》의 유인영, 《[[수상한 삼형제]]》의 오지은 등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를 했다. 또한 일반인들도 UCC를 통해 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올렸다. 너도나도 다 따라한탓에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쳤어〉 금지령까지 내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 방송가, 손담비 '미쳤어' 이제 그만!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80986|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박재덕 기자|날짜=2008년 12월 22일}}</ref> 2008년 11월 17일에는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의 싱글 〈[[Family (Special Edition)|패밀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이티마우스, 이번에는 손담비‥'패밀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372273|출판사=네이버|저자=유상우|날짜=2008-11-11|확인날짜=2012-05-20}}</ref> 가수 활동 이외에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우리결혼했어요]]》에 [[마르코 (배우)|마르코]]와 함께 가상 부부로 나와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베스트커플상 수상했다.<ref name="2008MBC"/> 또한 각종 CF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는데, 1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몸값, 1년만에 3배 이상 높아져 '미쳤어' |url=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0966034|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날짜=2008-11-12|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반 ''[[Type-B]]''의 발매로 컴백을 준비했다. 음반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영상, 팬들 반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백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백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영상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상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백,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순|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반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순위가 0순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순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에서 수상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상 손담비, 뉴스타상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백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백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백…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영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반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백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백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상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상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절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영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절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절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2012년 11월 12일 손담비는 네 번째 정규 앨범 《[[눈물이 주르륵]]》을 발매하면서 컴백했다. 동명의 타이틀곡 〈눈물이 주르륵〉은 [[용감한 형제]]가 작곡한 노래로, [[가온 디지털 종합 차트]] 10위까지 올랐다. 2013년 1월 26일부터는 [[tvN]]의 드라마 《[[PLAY GUIDE]]》에 손담비 역으로 출연한다.
2009년 데뷔한 [[NS윤지]]는 비슷한 장르와 외모때문에 제2의 손담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NS윤지는 직접 "더 많이 노력해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나 연기력 등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고,<ref>{{뉴스 인용|제목=NS윤지 "제2의 손담비? 다양한 모습 보여드릴게요"(인터뷰)|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9579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10-06-02|확인날짜=2011-08-13}}</ref> 프로듀싱을 맡은 [[용감한 형제]]는 "프로듀서로서 제2의 손담비, 차세대 섹시디바로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가수이다"라고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용감한형제, ‘제2의 손담비’로 NS윤지 찜!|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심재걸|날짜=2010-10-20|확인날짜=2011-08-1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08194946/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보존날짜=2014-08-08|깨진링크=예}}</ref> 같은 플레디스 소속이었던 [[헬로비너스]]는 "저희 롤 모델은 손담비 선배님이에요. 일본 등 해외 활동도 하고 계시고,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와 퍼포먼스가 정말 멋지세요. 선배님들의 장점만을 모아 저희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라며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헬로비너스 “머리가 불에 타도 족발이 먼저!”…신개념 ‘털털 아이돌’ 등장|url=http://news.donga.com/3/all/20120615/47030992/2|출판사=[[동아닷컴]]|저자=박영욱, 오세훈|날짜=2012-06-15|확인날짜=2012-06-15}}</ref>
- 슈가(방탄소년단) . . . . 17회 일치
||<:><#00CED1>{{{#fff '''신체'''}}} ||<(> 174cm[* 정확히는 173.8cm.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다 같이 병원을 갔었는데, [[지민(방탄소년단)|지민]]과 키가 [[https://twitter.com/ah1069111/status/836601297583419392|2mm가 차이난다고 밝혔다.]] --[[정국(방탄소년단)|전루살이]]: 본인은 지민이 형보다 크다고 하지만 보기엔... 팀에서 제일 작아 보이죠--], 57kg[* [[LOVE YOURSELF 承 `Her`]] 활동 당시 바뀐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에서 확인.], O형, 265mm ||
[목차]
본인의 믹스테이프의 마지막 트랙인 "So Far Away"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가수 [[SURAN|수란]]의 디지털 싱글 "오늘 취하면(Feat. [[창모]])"을 작곡 및 프로듀싱하여 2017년 4월 27일 음원이 발매되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인 슬로우 래빗과 공동 작곡, 프로듀싱이다.] [[http://m.sportschosun.com/news.htm?id=201704220100204200014681&ServiceDate=20170421&f_url=#_adtep|기사]] [[방탄소년단]]과 본인이 아닌 타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에는 처음 참여한 곡으로, 슈가와 수란에게는 꽤나 의미가 큰 곡인데, 수란의 경우 언더 가수에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슈가는 발매 이후 각종 음원 사이트 순위 1-2위를 다투고 멜론 [[http://www.melon.com/chart/month/index.htm#params%5Bidx%5D=1¶ms%5BrankMonth%5D=201705¶ms%5BisFirstDate%5D=false¶ms%5BisLastDate%5D=false|5월 월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리스너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과 함께 뛰어난 곡 퀄리티로 큰 호평을 받으며 본인의 프로듀싱 역량을 인정받았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15269|#]] 멜론 [[http://www.melon.com/chart/age/index.htm?chartType=YE&chartGenre=KPOP&chartDate=2017#params%5Bidx%5D=1|2017년 연간 차트 9위]]를 달성하였다.
하얀 피부로 인해 주로 톤다운 메이크업[* 무대 위 조명이 강하기 때문에, 피부가 너무 하얗다면 화면 상에서 이목구비가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톤다운 메이크업을 한다.]을 하기 때문에 간간히 실제 피부색과 차이나는 얼굴색을 발견할 수 있다. [[https://twitter.com/rolminsugaex/status/870401381546561536?ref_src=twcamp%5Ecopy%7Ctwsrc%5Eandroid%7Ctwgr%5Ecopy%7Ctwcon%5E7090%7Ctwterm%5E3|참고하자]] 뿐만 아니라 화보집에서 얼굴, 손과 차이나는 피부 색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https://twitter.com/helloygya/status/899626631307812865|본격 피부색 #FFFFFF 확인]]
과거 데뷔 전, 초 트위터에서도 꽤나 애교스러운 말투를 보였었다. 예를 들면 안녕하세여 슈간데여, 슈가 부끄럽슙 응캬캬:) 등... 이러한 애교 넘치는 말투는 연차가 쌓이며 자연스럽게 사라져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으나 최근 들어 다시 "방울토마토를 씻자 챱챱챱" --폭풍 귀싸대기 챱챱챱-- 등 조금씩 예전처럼 애교 있는 트윗을 하기도 한다. [[https://twitter.com/BTS_twt/status/934744803660636163|2017년 11월 26일 '날이 많이 춥다능' 이라는 글과 셀카]]
유튜브 채널을 잘 보다 보면 슈가의 똘끼가 눈에 띈다. 주로 옛날 영상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대표적인 링크는 [[https://youtu.be/OpKUc8IeUrc|아미들의 성지 방탄밤에서의 슈가의 똘끼]], 좀 더 차분한 반응이 필요하다면 [[https://youtu.be/pYd3rqxPG6k|앞으로 못 나가 매우 서러운 슈가형]]을 참고. [[WINGS|정규 2집]] 활동 때는 [[https://youtu.be/aniSCuwXJ7s|제이홉을 향한 샤우팅]]을 비롯해 무대, 방송 등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했다. 이럴 때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흥슈가'. [[https://youtu.be/M3xMTYfVo2E|흥 타신 슈가씨]]
[[방탄소년단]] 꿀FM[* 방탄소년단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실제 라디오 방송은 아니며 데뷔 n주년, 크리스마스 등 불규칙한 시기에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업로드된다. 여담으로 6.13mhz라고 한다.]에서 '슙디(슈가+DJ)'로 DJ를 맡기도 했다. 라디오식 방송의 특성상 차분한 저음과 능숙한 진행 능력 때문에 지목된 듯. 신인왕 때도 MC다래[* 당시 다래끼가 나 있었다.]로 발탁돼 매끄러운 진행을 보여준 바 있다.
말빨이 좋아 달려라 방탄, 방탄가요 등 멤버들끼리의 콘텐츠에서 주로 MC를 담당한다. 진행 능력이 꽤나 좋은 편임을 본인도 아는지, MC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MC를 즉석에서 정할 경우 멤버들이 "슈가 형이 해야겠네~" 하면 마지못해 하는 척하며 스무스하게 진행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보통 정말 하기 싫어하는 적이 없지만, 대부분 슈가를 시키는 편이다. 딱 한 번, 정말 게임을 하고 싶어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조차도 MC를 맡았다.
뮤직비디오의 컨셉은 방황하는 청춘으로 무너진 집에 갇혀 있던 슈가가 사투 끝에 탈출, 마침내 어거스트 디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해당 곡 또한 어거스트 디의 등장을 알리는 곡으로, 당차고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비트와 래핑 실력이 돋보인다.
||내 본질을 부정했던 게 수 차례
수 차례 정신을 파고들던 고뇌 방황의 끝 정답은 없었네
* 슈가가 대구에 부모님을 위한 국밥집을 차려드렸다. 상당히 맛이 좋다는 평이 많다. 슈가의 부모님을 만나뵙기 위해 대구까지 직접 내려가 국밥을 먹으러 갔다는 팬들이 있을 정도이며, 실제로 [[탁재훈]]의 딸이 슈가의 팬인데, 슈가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국밥집까지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kSF6JWQJEc|링크]] 맛도 좋고 팬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아 장사도 잘 되는 듯 하였으나 부모님께서 최근 건강상의 문제로 가게는 다른 분에게 넘기시고 서울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계명대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고, 이름은 "큰맘할매국밥집"이다.
* 같은 팀의 막내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을 정복한 일이 있었다. [[https://youtu.be/hTnKOO48jio?t=20m22s|20분 22초부터 21분 21초까지를 보자.]] 후에 라디오에 나와서 해명했다. 당시 속옷을 모조리 빨아서 입을 게 없던 차에, 건조대에 널려있는 멤버의 속옷을 입기로 했다고. 이왕이면 깨끗한 걸 입고 싶었는데, 생각하기에 평소 정국이가 가장 깨끗한 것 같아 그걸 빌려 입었다고.
* 빅히트 윤석준 이사에 따르면 멤버들과 화양연화라는 단어를 통해서 청춘을 표현하자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되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슈가였다고 한다. "사실 그 나이 때의 슈가를 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농구코트에서 홀로 농구공을 던지다 땀에 젖은 채로 앉아 있는 슈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런 얘기를 슈가에게 전달하였더니 슈가도 실제 그런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하더라. 그 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랩으로 만들어주면 그게 곧 청춘 그 자체일 거 같다고 얘기했고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왔다. 자신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젊음의 단면을 농구하는 소년을 통해 그려낸 우화라고 받아들여주면 될 거 같다. 내 입장에서 이 곡은 단순히 이번 음반만의 인트로가 아니라 화양연화 2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그려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http://www.mbn.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31260|인터뷰 전문]]
* DNA 컴백 기념 [[엠넷]]에서 진행된 컴백쇼에서 Genius Lab의 내부가 공개되었다! 작업실을 가진 멤버들 중 가장 작업실이 넓고, 유일하게 이중보안이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타인이 와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아 작업실 문 밖에 초인종이 있어, 벨을 눌러야만 Genius Lab에 들어갈 수 있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17회 일치
|| '''가족''' ||<(> [[아버지]]: [[심상우]], 2남 3녀 중 [[차남|다섯째]] ||
[목차]
SBS <러브 투나잇> [[MC]] 자리를 맡으면서 MC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며 해당 프로그램으로 SBS 복귀를 했다 심현섭 뿐 아니라 또다른 보조 진행자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이태식]] [[김숙]]은 메인 MC [[이홍렬]]과 같은 기획사(스타밸리) 소속이었다. '김혜수 플러스유' 이후 이어진 SBS의 수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를 만회하기 위해 예전 [[이홍렬쇼]] 1기로 인기를 누린 이홍렬을 메인 진행자로 내세웠으며 당초 30~40대 부부들이 편안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플쇼를 표방했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가 출연하여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퀴즈로 풀어보고, 부부가 할 수 있는 건강체조를 소개하는 등의 코너를 주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자 퀴즈 코너는 사라졌으며 건강체조도 야한 옷차림의 슈퍼모델들과 남성 개그맨들이 짝지어 머리로 박을 깨고 퀴즈를 맞히는 것으로 바뀌어 연예인 학대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보조 진행자였던 심현섭, 황승환, 박성호 이태식 김숙이 아이디어 고갈 등의 이유로 하차한 뒤 2003년 1월 15일부터 이홍렬 단독 진행으로 변경되었으나 표절 논란을 빚게 되자 11회(2003년 2월 5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김준호(개그맨)|김준호]][* 심현섭과 SBS 공채 동기였으나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김대희]],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황승환의 경우는 10월 말경에 사고로 팔을 다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2002년 11월 초경의 그의 출연 장면을 보면 깁스를 한 채로 출연하고 있다. 황승환은 약 1년 후에 개콘에 복귀하지만 특유의 '여장연기'를 계속 하는 바람에 '식상하다'는 반응을 얻고는 곧 하차했으며, 이후에는 엔터기술의 최대 주주 겸 황마담웨딩컨설팅 [[CEO]]로 [[연예인]] 주식부자 겸 CEO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11&aid=0000175748|회사자금 횡령으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이때 황승환의 [[본명]](오승훈)과 그가 사실은 [[바지사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병진]], 이태식, 김미진, [[김숙]], [[강성범]] [* 심현섭, 김준호와 SBS 공채 동기였지만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등의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을 개콘에서 이탈하게 한 것을 주동한 계기로 해서, 정치적인 면과 연예적인 면 양쪽에서 [[어그로]]를 끌어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웃찾사는 개콘을 이탈한 개그맨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든 프로지만, 정작 개콘 출신 개그맨들은 형님뉴스로 성공한 강성범, 난다김으로 성공한 김숙을 제외하면 성공한 경우가 없었고, 대부분이 소리소문 없이 하차한 다음 개콘으로 복귀했다.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 [[김기욱]]의 얘기에 의하면, 시사개그는 꿈도 못 꾼다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규제가 많았다고 하며, 이러니 웃찾사에서는 개콘 출신 개그맨들은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웃찾사를 통해서 스타가 된 [[김기욱]]조차도 이런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면 말 다 한 거다. [[여담]]으로 [[9시 언저리뉴스|언저리뉴스]]를 넘겨주고 나와서는 웃찾사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심지어 그게 계기가 되어 [[다중이]] [[캐릭터]]를 박성호에게 빼앗기기까지 한 [[김준호(개그맨)|김준호]]는 이 이야기만 하면 속이 터져한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종편]]행을 선택, [[채널A]]의 [[개그시대]]에 출연했으며 해당 프로의 다른 OB 3인방인 [[최양락]]이나 [[남희석]]에 비해 비중이 매우 적었다. 코미디 프로그램 외에 채널A의 뉴스 및 시사프로그램에 수차례 패널로 출연하며 주요 [[정치인]]의 성대모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의외로 나이가 많으며 [[박명수]]랑 [[동갑]]이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데뷔가 늦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데뷔 년수도 1년 밖에 차이가 안 난다. 2018년 기준 데뷔 24년차 개그맨이다.
전남 광주 출신이다. [[아버지]]가 호남전기 사장, 전남매일신문 사장, 광주일보 회장이자 [[대한민국 국회의원|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던 [[심상우]]로,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심상우가 떠나기 전 아들에게 당시 돈으로는 상당한 2천 원을 용돈으로 줬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버렸고, 심현섭은 지금도 그걸 간직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돈가치로 따지면 9만 원~10만 원 정도이다.] [* 훗날 테러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듣었는데,[[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0271525151001|평소 밝고 활달했었던 아버지가 테러 당일에는 표정이 어두웠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그것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목에 실린 참석자들의 마지막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래서 한때 잘 나가던 부잣집 도련님(할아버지부터가 호남전기공업[* 1945년 창립 이래 심씨 가문이 소유했으나, 1970년 큰아버지 심상하 회장 사후 부인 진봉자의 전횡으로 회사가 어려워져 1976년에 남봉 김남중(1917~1987) 전남일보 회장 등 호남 연고 기업가 6명에게 팔렸으나, 경영권 분쟁 발생 후 1978년에 김남중이 단독으로 인수해 1982년부터 '로케트전기'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에너자이저 등 해외 건전지들에 밀려 1998년부터 '로케트' 브랜드를 질레트에 팔고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2015년에 회사가 정리되었다. 반면 같은 '로케트' 브랜드를 쓰는 자동차 배터리 부문은 1978년에 세방기업 매각 후 '세방전지'로 분리되어 현재 잔존중이다.] 창업주 심만택이었다.)이었다가 아버지 타계 이후로 상경하여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1976년에 숙모 진봉자 여사의 전횡과 사촌 심홍근 사장의 운영미숙 등으로 호남전기를 팔았으며, 1980년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전남매일을 잃게 된다.]
보수 네티즌들은 심현섭의 몰락이 [[참여정부]] 시절의 정치압력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 시대의 [[김미화]]·[[김제동]]·[[윤도현]]·[[김C]] 등의 방송 하차가 정치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을 역공하는 근거로 삼았다. 정권이 확실히 바뀌어버린 후에도 여전히 방송에 얼굴을 잘 비치지 않으며 가끔 나와도 추억속 개그맨 이상의 모습은 보이지 못하는걸 보면 그냥 본인이 개그쪽을 더이상 중시하지 않는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렇듯 주관이 뚜렷하고, 행동력도 거침이 없고 한때 최고의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잘 나갔던 개그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 가지 사실로는 [[후배]]들의 [[군기]]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들과도 친한 개그맨들 중에 1명이었다고... 슬럼프 시절에는 [[김진철(코미디언)|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때는 대놓고 국민들에게 웃음을 줘야할 개그맨들이 웃지 못할 모습을 보여줬다며 씁쓸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이 여자 후배들에게까지 범행을 저지르게 되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그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디시인사이드]] 예능 프로그램 갤러리에 올라왔다. 글을 올린 L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가을, 심현섭과 소개팅을 했고, 첫 만남에 간 영화관에서 계속 허벅지를 주무르는 심현섭에게 불쾌감을 표현했으나 그는 L씨를 차에 태운 후 CCTV가 없는 장소를 찾아갔고, L씨가 차에서 내리려 하자 문을 잠그고, 자신을 애무할 것을 요구했고 "만지기 싫으면 이것만 봐달라"며 바지를 벗고 자위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99831|JTBC]]
L씨는 그냥 도망쳐서는 안 될거 같아 상황을 살힌 후, 증거물까지 챙겨 그 다음 날 바로 신고했다고 한다. 이후 경찰과 검찰 조사까지 진행됐고, 돈을 받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 판단해 합의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정확히 내비쳤지만 형사는 합의하자고 했으나 합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찰에서 실시한 [[거짓말 탐지기]]로 대질신문 조사에 심현섭은 전부 응했지만[* 그의 증언 또한 모두 진실로 나왔다.] L씨는 두 차례 다 응하지 않았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1022220|기사]] 결국 검찰에서 날라온 결론은 증거불충분이었다고 말했으며 무혐의로 종결.
- 아이린(레드벨벳) . . . . 17회 일치
[목차]
팀의 연장자이자 리더이다. 팀에서 아이린보다 어린 멤버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은데, [[슬기(레드벨벳)|슬기]]와 [[웬디(레드벨벳)|웬디]]와는 3살, [[조이(레드벨벳)|조이]]와는 5살, [[예리]]와는 8살 차이다.
SM의 다른 늦깎이 멤버들인 [[슈퍼주니어]]의 [[이특]]과 [[김희철]], [[EXO]]의 [[시우민]], [[f(x)]]의 [[빅토리아]]와는 늦깎이인 만큼 모두 팀에서 맏형이나 맏언니를 담당하고 있다.이특, 희철, 시우민과는 동생들보다 키가 작거나 어려보인다는 공통점이 있고 빅토리아와는 팀의 리더이며 멤버들과 나이 차이가 조금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래할 때 음색은 말할 때와 비슷하며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여성스럽다. 라이브도 안정적으로 소화하기 때문에 신인 시절에 '''비보컬''' 멤버로 보였던 것에 비하면 파트의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곡의 분위기에 맞게 음색의 톤을 조절하려는 게 보이는데 그때 웬디랑 목소리가 종종 겹치는 경우가 있다.
비주얼이 우수하기로 유명한 [[레드벨벳]]에서도 메인 비주얼로 꼽힌다. 단순히 얼굴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http://theqoo.net/square/461793167|옆선]]도 예쁘다. 또한 피부가 굉장히 하얀 편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확 띄며,[* [[레드벨벳]]이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에는 머리색뿐만 아니라 피부톤으로 멤버들을 구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분위기 차이가 크다. 게다가 얼굴이 '''[[황금비율]]'''.[[https://www.instiz.net/pt/2455125|#]] '[[Mnet]] '[[문희준의 순결한 15+]]' 방송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뽑은 마스크 비율 깡패로 아이린이 여자 아이돌 2위로 뽑혔다.[* 1위는 소속사 선배 [[윤아(소녀시대)|윤아]]. ~~[[SM엔터테인먼트|SM]]은 꽃밭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04&aid=0000080352|기사]]
[[예리]]의 영입으로 5인조로 개편되었을 때 인터뷰 대형과 거의 모든 무대 엔딩에서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엔딩센터뿐만 아니라 안무가 있는 타이틀곡이나 수록곡 무대에서 센터 비중이 제일 많고 포인트 안무와 댄스브레이크를 [[슬기(레드벨벳)|슬기]]와 분담한다. [* 사실 레드벨벳은 컨셉상 공식적인 센터 담당이 지정되지 않았다.] 아이돌 비주얼 센터로도 늘 상위권에 꼽힌다. 특히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2017년 걸그룹 최강센터 총선거 1위'''에 등극했다. 흥미를 위한 콘텐츠이지만, 그 정도로 최근 여자아이돌계의 새로운 비주얼 멤버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
|| 2017년 12월 ~ || [[현대자동차]] 어드밴티지 프로그램 || 단독 ||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몸이 굉장히 유연하다. [[주간 아이돌]]에서 체전굴로 유연성을 측정했는데 1차 시도에서 35cm로 2위였던 [[AOA(아이돌)|AOA]] [[초아(AOA)|박초아]]의 기록(34cm)을 깨고 2차 시도에서는 40cm로 1위였던 [[원더걸스]] [[혜림]](37cm)까지 제쳐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박초아, 혜림과 마찬가지로 [[정형돈]]이 신기록을 위해 억지로 한 손만 당겨서 나온 것이다. 순위와 상관없이 아이린의 정확한 체전굴 기록은 원칙대로 측정한 1차 시도의 35cm 정도이며 이는 현 체대입시 실기에서 만점을 받는 기록이다.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생각하면 굉장한 유연성이다.
* 2016년 6월 24일, [[뮤직뱅크]] MC에서 하차하면서, Goodbye Stage로 [[유승우(가수)|유승우]]와 [[우효]]의 '선'을 [[https://youtu.be/wGCg8yyKFsc|불렀다.]]
* [[레드벨벳]]의 양궁 에이스. [[예리]]와 함께 양궁 주전 멤버다. 비록 결승전에서 [[EXID]]에게 패해 준우승했지만 처음 나섰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설날 아육대]] 양궁에서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와 디펜딩 챔피언 [[마마무]]를 무너뜨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고, 1년 후 돌아온[* 2016 추석에는 SM 창립 20주년 단합대회 관계로 불참했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7년|2017 설날 아육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예리]]가 세트 직격을 저지르고 [[슬기(레드벨벳)|슬기]] 대신 양궁에 나선 [[웬디(레드벨벳)|웬디]]마저 과녁을 빗나가는 0점을 기록하는 최악의 부진으로 인해 [[레드벨벳]]은 [[러블리즈]]에게 7점 차로 패해 예선 [[광속 탈락|광탈]]의 수모를 당했다.
레벨업프로젝트 시즌1과 2에서 굉장한 승부력을 보여주면서 거의 모든게임에서 1위를 차지하여 게임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 생일을 앞두고 2017년 3월 말 [[대구 버스 937]]번 시내버스 차량에 아이린의 생일 축하 광고가 붙었다. 이 노선은 아이린의 모교 중 하나인 운암중학교 근처의 구암네거리로 다닌다.[* 학교 바로 앞으로는 [[대구 버스 939|939번]]이 다닌다.]
- 영천시 . . . . 17회 일치
[목차]
[[경상북도]] 남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10만명을 간신히 넘기는 인구가 거주 중이다. 인구 변동폭이 워낙 작아서 2013년 8월 '''100,999명'''으로 인구가 10만 명대로 하락한 이후 4년 가까이 10만 명선에서 정체되어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서서히 아주 조금씩 인구가 늘고 있다!!'''] 행정구역면적은 920.29㎢ 에 1개 읍(금호읍), 10개 면(청통, 신녕, 화산, 화북, 화남, 자양, 임고, 고경, 북안, 대창), 행정동 5개 동(동부, 중앙, 서부, 완산, 남부), 법정동 30개 동(망정, 야사, 도남, 도동, 조교, 녹전, 오수, 조교, 대전, 매산, 신기, 문내, 문외, 언하, 괴연, 채신, 성내, 화룡, 오미, 과전, 창구, 봉동, 완산[*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완산구]] 완산동과는 전혀 상관없다.], 금노, 본촌, 서산, 쌍계, 범어, 작산, 교촌)이 있다. [[대구광역시]]와 접한 도시인 만큼 대구 생활권에 대체로 속하고, 다만 [[포항시]]와 접하는 고경면은 포항 생활권에 좀 더 가깝다...고 하지만 실상은 둘 다 차타고 넉넉잡아 1시간 정도의 거리라(...) 그냥 독자 생활권이라고 보면 편하다. 굳이 대도시에 볼 일이 있을 때 그쪽으로 간다는 것.
인구밀도는 1㎢당 117명, 가구원은 1가구당 2.4명 사업체수 7,354 , 상수도 1인당 417톤, 출생/사망 1일당 2.1명/2.7명, 혼인/이혼 1일 1.6쌍/0.6쌍 전입/전출 1일 45명/43명, 시직원 시민 114명당 1명, 1일 전력사용 2,808Mwh, 교원 학생15명당 1명, 화재 1일당 0.5건 지방세 1명당 771.826원, 교통사고발생 1일 2건, 의료인 시민 163명당 1명, 자동차 시민 2.5명당 1대이다.(2008년 통계- 최신자료로 갱신 바람)
인구 증가를 유도할 만한 것이 없어서 감소세를 보이며 2010년에는 9만 5천여 명으로 10만 이하로 감소했었으나 이후 10만명 으로 소폭 회복했다. 차후에 영천하이테크파크경제자유구역, [[렛츠런파크 영천]]이 들어올 예정이라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은 편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분지에 위치하여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심한편이며, 연평균 기온은 12.5℃, 최저기온은 영하 18℃이다. 연중 강수량 평균은 1,052.7㎜로 다른 지역보다 적게 내리는 편이며, 6,7,8월에 1년 강수량의 반 이상 내린다. 최고기온은 2004년 37.2℃, 2005년 37℃, 2006년 37.2℃ 2007년 36.5℃이며 최저기온은 2004년 -13.6℃ 2005년 -14.5℃ 2006년 -13.3℃ 2007년 -10.8℃ 이다. 평균 해면기압 1,016.7hPa, 이슬점 온도 6.7℃ 일조 시간 2,168.4h, 평균 풍속 1.6m/s 최대풍속 10.6m/s, 최대순간풍속 20.7m/s 상대습도는 평균 69.1, 최소 10.0이다.
지역특성으로 [[경상북도]] 동남부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경부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철도]]([[대구선]], [[중앙선]]), [[국도]]([[4번 국도]], [[28번 국도]], [[35번 국도]])가 통과하여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다. 그러나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실제 차량과 철도는 그냥 지나쳐 가기만 할 뿐이라 정작 도시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나마 과거에는 구미 - 대구 - 포항 으로 이어지던 국도를 이용할 때 반드시 영천을 통과해야 했지만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위로는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 아래로는 [[경부고속도로]]라는 완벽한 육지의 섬으로 탈바꿈...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나서 국도 주변의 기사식당과 휴게소들 태반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상주영천고속도로]]도 열렸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인구에 대비해서도 절대적인 규모로 봐서도 5일장이 굉장히 크며 아직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덕에 시장으로의 출근길이나 시장을 통과하는 출근길이나, 성남여중•여고를 제외한 시내 주요 중•고등학교의 등교길은 평소보다 지각할 확률이 배로 늘어난다.][* 특히 [[영천IC]] 근처 가와인아파트쪽에서 오는 버스는 원래 등교길이나 출근길이 오래걸려 2,3분씩 늦기 마련인데, 장날은 지각하는날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런사정을 알고 학교선생님들이 넉넉히 10분내외로 봐주신다.]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품의 도매 거래활발하며 이를 통한 한약유통이 옛날부터 유명해 매년 한약축제도 벌인다.[* 한약은 생산량도많지만, 유통량이 조금 더많은데 큰 한약시장이 있기때문이다. 대구약령시장보다 더크며, 전국 유통량의 30%한약재중에 3분에1이 영천 것이라고 보면된다.] 내륙임에도 상어고기인 [[돔배기]]의 전국 물량 중 50%가 영천에서 팔린다. [[대구광역시|대구]]보다 높은 기온과 적게 오는 비로 포도를 많이 키워 '''전국 포도 생산량과 재배량 모두 1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똑같이 포도가 유명한 [[김천시]]는 생산량과 재배량이 2위이다.][* [[금호읍]]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미국으로 수출도 한다.'''] 이 때문인지 21세기 초부터 한약재 대신 포도를 시에서 밀어주며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별빛포도' 라는 자체 브랜드도 존재.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영천 포도는 53로 등록되어있다. 비는 적게 와도 수리시설이 발달한데다 전국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활용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유명하며, 우수 특산물에 '별빛촌'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위에서 서술햇듯이 [[렛츠런파크 영천]]의 건설지로 승인되어 금호읍 성천리•대미리, 청통면 대평리 일원 148만㎡ 부지에 [[2015년]] 8월 착공에 들어가 2018년초에 개장할 예정이다. 이때문에 요즘 금호읍에서 이쪽으로가는 가는 도로를 '''2차선에서 6차선까지 확장한 상태다!!!!'''
영천사람들이 주로 말하는 곳은 정식명칭과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서문통 : 서문오거리[* 총 육거리인데 동네로 들어가는길을 취급하지 않은탓인지 정식명칭은 '''서문오거리'''이다.] 가 있는 일대를 말한다[* 서문육거리쪽이 옛 영천성의 서쪽문이 있던곳이라서 그렇게 불리는것 같다 이외에 남문통과 북문통도 있다.] 영천에서 서문오거리는 가장 큰 교차로이며 과거에는 로타리방식으로 영천에 맞닿아 있는 다른지역이나 그지역 주변의 큰도시로 가는길이 거의 한방에 갈라지는 교차로 역할[* ([[대구광역시|대구]],[[경산]]) 금호, ([[울산]],[[경주]]) 북안 및 [[영천IC]], ([[안동]],[[의성]],[[군위]]) 화산•신녕•청통, ([[포항]],[[청송]])오미동•화남 및 [[북영천IC]], 영천시내, 영천실내체육관, 주거지역 등.][* 이 때문인지 서문육거리에서 시내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영천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서문통이라 불리오고 있다. 그래서 주로 서문오거리에 있는 아파트(스카이아파트, 녹원맨션등)에 사는 사람들도 주로 서문통에 산다고 한다. 이렇게 교통의 요지이나 발전이 수십년간 되지않고 원래있던 조그마한 상권마저 죽어버리는 등 영좋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공병대 : 영천 내에선 최근 가장 핫한 지역으로 완산동 영천시내와 영천시장 뒷편에 옛 공병대 부지로 상당히 넓은 면적을 빈 공터로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현재 공병대 앞쪽에 [[미소지움]]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으며 e편한세상같은 브랜드 아파트까지 건설예정이다. 공병대 부지도 영화관과 고은힐즈라는 복합몰이 들어오게 되면서 개발하고 있는데 고은힐즈가 완공되어도 몇년 간은 계속 공병대라고 불릴것 같다.
시장통에 있는 말죽거리터에는 육군 공병대와 함께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미 25사단 산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이곳에서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수용했었지만 전쟁 중후반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대립이 절정에 달하자 문제를 인식한 미군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분리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주로 반공포로와 민간인 포로를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곳은 이승만 대통령이 시찰차 방문한 적이 있었고 훗날 반공포로 환영식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었을 만큼 규모가 큰 수용소였는데 규모가 있는 수용소였던 만큼 탈도 많았는지 1952년 5월 29일에는 포로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었고 그 후에도 포로들의 시위가 간간히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군들이 공산당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모의했다며 경북도의원을 무단 체포, 납치하는 사건도 발생해 지역민들의 빈축을 샀었다고. 그 외에도 격전지였던 영천전투에서 발생한 인민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서 현재의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부지 근처에 임시수용소를 설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 [[차승원]] : 배우
- 원빈(배우) . . . . 17회 일치
[목차]
'''대한민국 대표 미남 배우[*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2010년 영화 [[아저씨]]로 이후 작품활동 없는 휴식기간동안 40여편 이상의 광고를 찍었으나 정작 배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지나치게 긴 휴식기간으로 전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CF만 매진하고 있어서 안 좋은 의미로 'CF 스타, 광고 모델, CG 배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화 아저씨에 함께 출연했던 [[김새론]]은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이미 원빈의 작품 수와 엇비슷해졌을 정도이다. 꼬마 아역배우였던 김새론이 훌쩍 커서 차세대 여배우로 주목받는 언론기사를 보면 얼마나 원빈의 휴식 기간이 긴지 느낄 수 있다.]'''
[[1997년]]의 [[KBS]]의 TV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비중 있는 조연[* 자주 개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다니며 여주인공 [[김희선]]의 이웃에 살면서 그녀를 짝사랑하며, 몽상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약간 4차원스러운 청년역할이었다. 그래서 스토커라는 단어도 안 쓰이던 시절인데도 자기 주위를 자주 맴도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가족과 지인에게 상담도 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는 여주인공 쪽에서 먼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살짝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몽상적인 대답만 한다. 직업도 대략 시인 비스무레한 사람인 듯이 말하는데 드라마 내용 자체에 자세한 부분이 나오지 않아 그냥 시를 좋아하는 청년인지 진짜 시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여주인공은 그가 폭력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좋아하는 남자(주인공)가 있다고 설득한 뒤 안심하며 좋게 마무리된다. 사실상 나쁘게 보면 스토커 같은 역할이라 원빈의 외모나 현재 이미지와 그렇게 많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워낙 심하게 잘생긴 외모라 역할 자체의 부정적 측면이 안 보일만큼 미화되어 보이기도 했고 아직도 그가 프로포즈에서 멋진 역할로 나왔다고 기억하는 팬이 있을 정도. 당시 남자주인공이자 김희선의 상대역이었던 배우는 [[류시원]].]으로 출연하여 주목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레디, 고!'라는 드라마에서도 주연으로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1999년]] [[광끼]], [[2000년]] [[꼭지]], 단막극 '그가 간이역에 내렸다'를 찍은 뒤 드디어 [[가을동화]]를 통해 슈퍼스타가 된다. 2002년에는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 등에 출연했다. 프렌즈에는 [[일본]] 여배우 [[후카다 쿄코]]가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후 드라마 대신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품 횟수는 적으나 출연한 작품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 [[아저씨(영화)|아저씨]] 이후로 작품 활동 없이 계속 CF만 찍고 있어서 지나치게 [[신비주의]]를 고수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소속사에서는 원빈이 작품을 고를 때 신중하게 골라서 차기작이 늦는다고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결국 광고는 계속 찍고 연기는 안 하냐는 식의 기사도 나왔다. 사실 [[2018년]] 현재 기준으로 [[아저씨(영화)|아저씨]]가 개봉한지 거의 8년이 다 되어가는데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 아저씨의 상대역이었던 [[김새론]]이 아역배우인 것을 감안해도 차기 영화 7편, 드라마 11편으로 현저히 비교된다. 김새론 기사가 올라오면 '''얘가 이렇게 클 동안 원빈은 작품을 하나도 안했다니...'''같은 네티즌들의 반응이 줄을 잇는다. 심지어 황정민은 원빈이 아저씨 한 편 찍는 동안 영화 15편 드라마 한 편에 뮤지컬까지 찍고 있다.
2013년 7월에 나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은 [[경기도]]의 소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연쇄살인자]]와 [[연쇄살인자]]를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창녀|몸을 파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 형식의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하며 [[연쇄살인자]] 역할에 원빈을, [[형사]] 역할에 [[설경구]]를, [[창녀]] 역할에는 [[장쯔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내용은 전반적으로 [[구원]]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 본인이 이 프로젝트를 엎었다고 한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43337|이창동이 배우들에게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인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31022092808979|파인하우스 필름의 관계자가 뉴스엔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 '제작 무산이라고 볼 수 없으며 제작이 열려 있는 작품' 이라고 해명]]했다고 하니까 좀 기다려봐야 할 듯. 2014년 1월 말부터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탈고된다는 루머가 여러 웹사이트에 떠돌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없다. 2014년 5월에 원빈 본인은 한 인터뷰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12249|당장은 아니지만 차기작은 분명히 있다]]라고 밝혔다. 그 차기작이라는 것이 이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하는 영화인지는 불확실.
최근에는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인 영화 《[[군함도(영화)|군함도]]》도 고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91352|관련 기사]]. 기사에 나온 바에 따르면 《[[신과 함께]]》나 《[[군함도(영화)|군함도]]》와 같이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보다도 작가주의적 성향의 영화를 찾고 있는 듯.
그러나 원빈이 근무한 지역은 '''[[http://cfile236.uf.daum.net/image/17748E384D86B9ED29A392|이따위로 생겨먹은 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http://cfile222.uf.daum.net/image/1879FA384D86B9EC1A407C|오르고 내리기를 몇 달 동안 매일 반복해야 되는 곳이다]]'''.[* 저긴 한두 번만 왔다갔다 해도 사고가 나기 쉬운데 그 이유는 겨울철에 빙판길이나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고 좁은 지역에 총은 긴데 기둥들이 많아서 기동이 힘들다. 특히 겨울철 밤에 몸이 얼어있는 경우에 시야가 차단되어 갑자기 움직일 때 조그만한 사고라도 큰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원빈이 근무하던 곳은 속칭 '네발 계단', 처음엔 두 발로 걷다가 나중엔 네 발로 걷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무시무시한 곳이었으며 현재는 그 험준함 때문에 해당 구역이 폐쇄되고 길을 새로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그나마 나은 길로 변경되었음에도 무릎 혹은 허리에 이상이 생겨 후송되거나 진료를 받은 사람이 많다. 게다가 무릎 십자인대는 파열시 완치가 되지 않는 부위로 '''평생 통증과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된다.'''. 쉽게 설명하면 대한민국 가장 험준한 지역중 하나인 7사단 GOP에서 가장 힘든 8연대구역으로 발령받고 거기서도 워스트로 드는 최악의 곳에 발령 받은셈이다. 일반인도 장기간 복무하면 쉽게 다치는 곳에 환자가 직접 찾아갔으니...
하지만 원빈이 다친 후에 육군에선 가능한 한 배려해줬다. 민간병원에서 수술 이후 [* 군 복무중 중대한 부상이나 수술을 해야 될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부상당한 군장병은 사비로 민간병원에 치료할 것인지, 국비지원으로 국군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통상 국비지원 민간병원 위탁치료는 지방소재 국군병원 군의관의 진단에 의해 결정된다. 원빈은 국군수도병원 후송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비로 민간병원에서 수술받은 것으로 보이나, 실제 민간병원 수술이 이례적으로 국비지원 하에 이루어졌는지, 사비 부담인지는 당시 기사에서 정확히 다룬 것이 없어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요양은 군병원이 아니라 병가를 얻어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다만 재활치료는 춘천병원에서 받았다. 의병제대 판정도 여기서 받았고.] 군복무 중 중대한 부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하였더라도 요양이 필요한 군장병은 수술이 끝나고 나면 군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자택에서 장기간 요양하거나 장기 병가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례적이다.--쉽게 말해 수술을 위해 병가 10일 정도 혹은 가지고 있는 휴가를 합쳐도 20일을 넘기기 힘들고 그 안에 수술을 마치고 복귀해야 한다.-- 게다가 걸을 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 단순히 다리를 절고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의 후유증이면 의병제대를 받지 못하고, 요양은 커녕 자대에서 군복무기간을 마저 채우고 만기전역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2010년 이후나 되어서야 후자(걸을 수 있으나 후유증과 통증)와 같은 유형을 [[복무 부적격자]]로 판명하여, 아예 군병원에서 환자에게 한 달짜리 휴가증을 줘서 집에 보내고 전역일까지 계속해서 휴가증을 연장 발급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제대시키는 편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공식적인 의병제대와의 차이점은 전역일까지는 군인 신분이라 만약 휴가 기간에 사고를 치면 헌병대에 끌려간다는 것과, 전역 전에는 여권 발급이 제한된다는 점, 그리고 '''예비군이 면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원빈의 경우는 그러한 경우에 비해서는 이례적으로 혜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 당국이 연예인이기 때문에 언론 등을 통해 행정의 미비점 등이 알려지지 않기 위해서 각별히 배려를 한 것이지, 원빈 본인이 편법을 썼다고 볼 수는 없으며, 실제로 십자인대 부상이 매우 심각하여 의병 제대 이후에 스크린 복귀작이던 마더까지 걸린 시간이 2~3년으로 꽤 길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록 의병제대일지라도 군복무 중에 부상을 당한 것이고 절차에 따라 의병제대한 것이므로 병역의 의무는 다 한 것이다. 비록 조기에 의병제대하여 군복무기간 자체는 짧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군복무를 빌미로 원빈을 비난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본인이 편법을 쓸려고 굳이 군생활하면서 생활에 중요한 무릎 십자인대를 파괴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면제도 충분히 받을만한 방법도 많은데 현역으로 간 사람인데다 몸이 재산인 연예인이 무리해서 십자인대를 스스로 파괴하는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 2010 || [[아저씨(영화)|아저씨]] || 주연 || [[차태식]] || 6,282,774명 || 성공 ||
* 소문에 따르면 집안에 모든 종류의 콘솔 및 매니저에게 부탁해 매년 업그레이드하는 현존 최고사양의 PC 가 구비되어 있고 각종 촬영시엔 인근 PC방에 들리거나 게이밍 노트북을 사용하는 게 일상이며 방에 게임 디스크가 빽빽히 들어찬 모습이 행여나 TV에 노출될까봐 누나가 걱정할 정도라는 이야기가 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나가서 조기축구를 하거나 간혹 연예인 친구들을 초청해 작은 위닝 대회를 여는 정도가 그의 취미 생활이라고. 거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스캔들이 생기지 않는 비결이라고 한다.[* 밖에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들조차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방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에 집중하기 쉬운 것으로 보인다.] 단 2012년 11월에 개최된 팬사인회에서 한 팬이 '아직도 게임하세요?' 라고 묻자 '요새 게임 안해요' 라고 말한 일화가 있긴 하나 이미지 관리에 불과할수도 있다.
* [[아저씨(영화)|아저씨]]의 대성공 이후 [[미국]] 진출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가 맡았던 역할이 원래에는 원빈을 염두에 둔 역할이었다고 한다. 왜 성사가 안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2년에는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가 맡았던 역할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거절하였고[* 다만 이 경우에는 원빈이 이재규 PD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깨지고 언론에 원빈의 [[더킹 투하츠]] 출연설이 나돌면서 하차하게 된 것이다.] 2013년에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거부하면서 차기작 선정은 2018년까지 미정이다.
* 일본의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원빈 때문에 굴욕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2006 WBC 우승 이후 귀국해서 호텔에 들어가려다 거기서 원빈을 기다리는 수많은 팬들을 보고 그 앞에 차를 세우고 "나는 어때?"라고 물었는데 원빈인줄 알고 몰려갔던 팬들이 "뭐야 이치로잖아"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QUC-DOU4Rco|싸늘하게 무시해버렸다고...]]
- 유키히라 소마 . . . . 17회 일치
attachment:SOMA003.png?align=right [[목차]]
주인공답게 천재적인 요리 솜씨의 소유자로 그 실력은 토오츠키 십걸조차 경계할 수준. 그만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입학식 때 단상 위에서 말할 때도 "손님 앞에 서 본 적도 없는 바보들에게 질 생각은 없습니다" 라며 어그로를 광역으로 끌기도 했고, 학원 졸업생에게 진심으로 이기길 바라면서 식극을 걸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아버지의 식당인 '유키히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매우 깊어서 땅을 팔라는 부동산 투기꾼의 제안이나 고급 식당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십걸 제9석 에이잔 에츠야의 스카웃 제의를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아버지의 언급에 의하면 평범한 요리사는 뛰어난 요리사를 보고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재능있는 놈에게 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승부를 포기하고 마음에 뚜껑을 닫아버리지만, 소마는 평범한 재능이면서도 그런 뚜껑이 없다고 한다. 상대방의 쩌는 타이틀/실력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악착같이 달려들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 요리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때까지 골두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설사 그럼에도 패배하다고 분한 마음은 분한 마음이고 그것과 별개로 그런 실패/패배 조차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실력을 증진시킨다. 단지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정말 그대로 실천한건 소마 뿐. 이런 재능은 천재인 소마의 아버지조차 없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선천적인 천재라기 보단 [[노력하는 범재]] 타입인 셈. 초반이야 그렇다치고 쟁쟁한 이벤트를 거치며 실력을 증명했는데도 소마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소마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그 처럼 노력하지 못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다른 이들(하야마, 료 등)에 비해 소마는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가을 요리대회 결승전에 들어서자 서서히 소마를 인정하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한다.]
> "그럼─ 짤막하게 두세 마디 정도만…. 어어… 유키히라 소마라고 합니다. 이 학교에 대해선 솔직히─ '''발판으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뜻하지 않게 편입하게 됐지만 손님 앞에 서본 적도 없는 인간들에게 질 생각은 추호도 없고요. 일단 들어온 이상은 '''정점을 차지할 거니까.''' 3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이때 [[잇시키 사토시]]와 (식극이 아닌 평범한)요리대결을 펼치게 되며 그가 '''토오츠키 학원 십걸(十傑) 평의회 7위'''의 실력자임을 알게 된다. 이때 선보인 요리는 유키히라 비밀 메뉴 20번인 연어 주먹밥 차밥을 개조해서 만든 삼치 주먹밥 차밥. 승부는 무승부로 판정된다. 다만 이때 잇시키는 제대로 실력을 내지 않은 듯 하다.[* 이부사키 슌이 그의 요리를 보고 '''본 실력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구미와 소마의 요리는 일곱 가지의 야채를 사용한 '무지개 테린[* 테린은 잘게 썬 고기, 생선 등을 그릇에 담아 단단히 다져지게 한 뒤 차게 식힌 다음 얇게 썰어 내는 전채요리이다.]으로 소스는 스다치[* 유자의 한 품종으로 과실은 유자보다 작으며 푸를 때 따서 향미료로 이용한다.]로 만든 젤리와 차조기를 중심으로 한 허브로 만든 페스토 두 종류를 내었다.
1회전에서는 상대는 예선 당시 통합 1등을 차지했던 니카리 아리스. 주제는 바로 도시락. 분자요리학, 첨단기술을 이용한 장비를 쓴 기상천외한 요리를 만드는 아리스에 대항하기 위해 오히려 일본 도시락의 왕도라 할 수 있는 김도시락으로 승부한다. 평범하지만 왕도적인 어묵튀김/생선까스/된장국 이후 파격의 김의 풍미만을 추출, 캡슐형태로 가공한다는 파격적인 구성의 김도시락으로[* 일종의 분자요리 기술인데 소마는 어렸을 때 체험용 교육과자로 이 방법을 접한 다음 된장국 구슬 등을 독자적으로 만드는 등 써먹어보고 있었다.] 도시락만이 느낄 수 있는 맛과 풍미를 강조하면서 단지 자신의 기술을 도시락통에 담았을 뿐인 아리스에게서 승리. 2회전에 진출한다.
== 삼치 주먹밥 차밥 ==
> 설마 주먹밥 속을 프렌치 기술로 만들어 내다니 국경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이 얼마나 자유로운 요리인가?! 그리고 푸알레는 껍찔이 두툼한 소재에 적합하다. 연어…. 그리고 삼치는 껍질이 적당하게 두툼한, 바로 이 조리법에 딱 맞는 생선! 그는 그걸 삽시간에 간파하고 메뉴를 어레인지한 거야…. 순백색으로 빛나는 쌀은 마치 눈과 같고 그 안에서 힘차게 나타나는 삼치는 그야말로 봄의 생명력 그 자체! 그는 봄이 시작되는 그 한순간을 이 요리로 표현한거야─.
8화에서 등장. 유키히라의 비밀 메뉴 20번인 연어 주먹밥 차밥[* 진짜 이름은 나오지 않았으나, 본래 연어를 이용해 만드는 요리라는 발언으로 볼 때 연어 주먹밥 차밥이라는 이름일 듯 하다.]을 개조하여 만든 삼치 주먹밥 차밥이다. [[잇시키 사토시]]와의 요리 대결에서[* 식극은 아니다] 응용했다. 푸알레로 구어졌다고 하는데 정작 소마는 그 푸알레를 모른다(…).
* 고등어 통조림(익힌 것)…1캔(190g), 양파…1/2개, 참기름…1큰술, 폰즈…2큰술, 물에 갠 녹말가루…적당량, 차조기임, 무즙…적당량
4. 햄버그에 ③의 소스를 뿌리고 무즙과 차조기임을 토핑해주면 완성!
- 조안(배우) . . . . 17회 일치
[목차]
|| [[2004년]] || [[돌려차기(영화)|돌려차기]] || 수빈 || ||
|| [[2009년]] || [[KBS1]] || [[다함께 차차차(드라마)|다함께 차차차]] || 강나윤 || ||
|| [[MBC]] || [[황금마차(드라마)|황금마차]] || || ||
||<|2> [[2009년]] || [[KBS 연기대상]] || 일일극부문 여자우수연기상 || [[다함께 차차차(드라마)|다함께 차차차]] ||
- 차광렬 . . . . 17회 일치
| 이름 = 차광렬
| 본관 = [[연안 차씨|연안]](延安)
| 기타 이력 = [[연세대학교|연세대 의과대학원]] [[의학]][[석사]] 출신 <br /> [[의사]] 겸 [[기업인]] <br /> 차병원그룹 [[차바이오컴플렉스]] 총괄 회장
'''차광렬'''(車光烈, [[1952년]] [[12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사]]이자 [[차병원]]의 연구소장이다.
* 현재 차병원그룹 글로벌종합연구소장
*2006 차병원 통합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 설립
*2000 차의과학대학교 대체의학대학원 설립, 차의과학대학교 학원장
*1997.02 ~ 1997.12 제1대 차의과학대학교 (구: 포천중문의과대학교) 총장, 포천중문의과대학교 의학과 산부인과학교실 교수
*1992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외래교수
*1984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부원장, 강남 차병원 산부인과 의사, 강남 차병원 부원장
*1984 차병원 설립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연안 차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소련군 . . . . 17회 일치
차량 유닛이 생산되는 건물. 군수공장이 많을수록 차랑 생산이 빨라진다.
차량 유닛을 수리하는 건물. 수리하는데도 돈을 퍼먹는다.
지정한 지역의 차량 유닛을 일정 시간 동안 금강불괴로 만드는 슈퍼무기. 보병한테 쓰면 즉사한다.
테슬라 방호복을 입고 전기로 적을 지지는 보병. 보병과 차량에 강하며, 차량에 깔리지도 않는다.
대공포를 사용하는 보병. 공중 유닛에 강하고, 보병에 그럭저럭 먹히지만 차량한테는 쓰지 않는게 좋다.
== 차량 유닛 ==
소련군의 기본 전차.
재빠른 소형 로봇. 적 차량에 기어들어가 데미지를 입혀가며 조금씩 죽여나간다. 숙주 차량을 죽이고 나면 또다른 차량으로 기어들어간다. 차량에 기어들어간 테러드론을 제거하려면 숙주 차량과 함께 죽이거나 수리하면 된다. 보병도 한번에 제거 가능.
* 대공장갑차
대공포를 올린 장갑차. 보병 유닛을 수송할 수 있다. 빠르다.
쌍열 포탑을 장비한 전차. 강하고 단단하지만 느리고 비싸다. 미사일로 적 공중유닛을 공격할 수 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16회 일치
오스트리아 측은 정부수반인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나치 당원들에게 살해당해 사용할 수 없게 되며, 그 자리를 쿠르트 슈슈니크가 차지하게 된다. 또한 불만도가 10 증가하는 동시에 정치 슬라이더가 독재로 한 칸 이동한다.
* First New Deal(제1차 뉴딜)
* 발동 조건: "제1차 뉴딜" 디시전 발동, 국가 원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발동 조건: "제1차 뉴딜" 디시전 발동, 국가 원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발동 조건: "제1차 뉴딜" 디시전 발동, 국가 원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금 50
* 발동 조건: "제1차 뉴딜" 디시전 발동으로부터 최소 90일이 지남, 국가 원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금 1,000
* 발동 조건: "제1차 뉴딜" 디시전 발동으로부터 최소 180일이 지남, 국가 원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금 1,000
* 2nd New Deal(제2차 뉴딜)
* 일본이 괴뢰국으로 인도차이나 연방을 소유
* 일본이 괴뢰국으로 인도차이나를 소유
* 발동 조건: 페차모, 소르타발라, 비푸리를 소련이 지배하지 않아야 함.
핀란드에게 페차모, 소르타발라, 비푸리 할양을 요구한다. 핀란드와의 관계도가 10, 스웨덴과 노르웨이와의 관계도가 5 떨어진다. 인공지능 핀란드는 100% 확률로 할양을 거부하므로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이 벌어질 경우 영국, 노르웨이와의 관계도가 10, 스웨덴과의 관계도가 5 떨어지며 소련의 호전도가 10 오른다.
* Second Campaign against the North East Anti-Japanese United Army(제2차 대 동북항일연군 작전)
* Second Italo-Abyssinian War(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스페인 내전에서 스페인국을 지원하는 디시전. 인력 30과 자금 200을 소모하며 스페인 내전이 끝날 때 까지 스페인국에게 주기적으로 보급품 20을 공급한다. 스페인국, 독일과의 관계도가 상승하며 영국, 프랑스, 스페인 공화국, 소련과의 관계도가 하락한다. 또한 호전도가 1 올라간다. 스페인 내전이 끝나면 지원군 귀환 이벤트와 함께 청사진 둘, 차량화 보병 사단 하나, 인력 20을 획득한다. 분명 지원군으로 보낸 인력은 10인데 왜 20이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다.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과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통해 이탈리아군을 개편한다. 보병 사단 19개가 생겨나지만 원래 있던 사단을 쪼개서 사단을 만들기 때문에 모든 보병 사단의 병력 최대치가 30% 감소한다.
- That 70's show . . . . 16회 일치
오일 파동이라 어쩔 수 없이 연비가 많이 나가는 비스터 크루저를 포기할 수 밖에 없어서, 도요타 자동차를 구입하고, 에릭에게 그동안 타던 비스타 크루저를 주게 된다.
레드는 이 기회에 제럴드 포드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지려고 결심하지만, 마을 유지들 협의회에서는 레드에게 미리 할 질문을 정해주었다. 자동차 공장이 묻을 닫아가면서 거의 실직한 상태에 놓여있던 레드는 경제가 이 모양인데 이제는 자기 할 말도 못하게 하는거냐고 크게 상심한다.
8시즌에서는 교사가 되기 위한 장학금을 따내려고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등장하지 않는다. 에릭의 학자금으로 저축해놨던건 레드가 차량 머플러 가게를 차린다고 써버렸기 때문. 마지막 화에서만 겨우 재출연.
[[경찰]]로 취업하려고 하다가, 시카고에서 플레이보이 클럽 경비원 직을 따내면서 8시즌에서는 하차. 최종화 부근에서 복귀한다.
8시즌에서는 켈소가 하차하면서 재키와 룸메이트가 되고, 급속도로 재키와 맺어진다.
8시즌에서 에릭이 하차하면서 새로 들어온 인물. 하이드의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 잘 생기고 매너 좋고 센스 좋은 쿨가이이며, 8시즌에서 도나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랜디가 이전에 다른 여자들과 엄청 많이 사귀었다는걸 알고 도나가 질겁하게 되고, 서서히 헤어지면서 8시즌 최종화에서 완저히 헤어지고 떠난다.--에릭과 마주쳐서 수라장이 벌어지는 전개가 되지 않아서 유감.--
본래 직업은 자동차 공장 노동자였지만, 초반 시즌에서 폐업하는 단계가 되면서 한동안 무직이 되었으며 밥의 가게에서 일했던 적도 있다. 프라이스마트가 들어서자 관리직으로 취업했으나, 로리와 페즈가 결혼을 발표했던 충격으로 [[심장마비]](…)에 걸리면서 그만두게 된다. 이후 에릭의 학자금을 털어서(…) 자동차 머플러 가게를 차렸으나 그다지 잘 되지는 않았고, 대형 머플러 체인이 들어서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 때 체인점에 항의하러 갔다가 거액의 돈을 받고 주차장으로 팔아버리고 대신 노후자금을 득템한다.
리사 로빈 켈리는 알콜중독 등 사생활 문제로 5시즌에서 하차. 6시즌 부터는 배우가 크리스티나 무어로 바뀌면서 뭔가 위화감 넘치게 된다. 8시즌에서는 [[캐나다]]로 갔다는 언급만 남기고 그나마 나오지도 않는다.
본래 마을에서 전자제품 상점 '바겐 밥'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지만, 프라이스 마트가 들어서면서 폐업하게 된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발명품과 몇가지 사업에 성공하면서 다시 부자가 된다. 8시즌에서는 [[플로리다]]로 이주하고 낙시용품점을 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사진관 체인점 포토헛(Foto Hut)을 경영하는 [[히피]]로 등장. 과도한 대마초 사용으로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으며,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 그런데 8시즌에서 사실 과거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퍼플하트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수송병으로 참가했지만 수송 트럭으로 독일군 탱크 부대를 뚫고 들어가서 소대원을 구출한 경력이 있다고. 귀국하고 차를 타는데 대마 연기를 풍풍 풍기는 수상한 재즈 뮤직션의 차를 얻어탓다가 그 이래로 히피화 된 것으로 보인다.
- 백승주(정치인) . . . . 16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0대 국회의원[br]국방부 차관[br]자유한국당 경북도당 위원장[br]한국정치학회 부회장[br]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br]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목차]
제40대 [[국방차관]]을 역임했으며,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1년]] [[3월 20일]]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에서 태어났다. 구미 오로초, 대구 성광중,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3월]]에 국방차관으로 선임되었다. 보통 국방차관은 예비역 [[중장]]이나 드물게 재정 전문가가 보임되는데 비해서 순수하게 안보 연구(북한군사 전문)를 해온 [[민간인]]이 선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역대 최연소 차관이며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거의 독점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몇 안 되는 민간인[* 여기서 민간인은 비장성 출신.] 출신이다. 참고로 병역은 [[중위]]로 마쳤다.[* 아무래도 보직이 보직이다 보니 예비역 병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이 파격적이다.]
[[카운터파트]]가 누구인지로 국방 차관의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 [[미국]]에 방문했을 때는 국방부장관[* United States Deputy Secretary of Defense. 국방부 장관이 아니라 국방 부장관이다.]인 [[로버트 워크]]와 군수차관[* 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Acquisition, Technology and Logistics. 언론에서는 획득차관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인 [[프랭크 켄달]]을 만났다. 일본 [[방위성]]과 만날 때는 [[카운터파트]]로 사무차관[* [[의원내각제]]라 국회의원이 임명되는 방위대신, 방위부대신, 대신정무관과 달리 방위성 [[내부승진]].] [[니시 마사노리]]를 만난다.
1.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0804&yy=2016|불법이지만 단 1달러도 줄 수 없다!]] 국방부 차관 재직당시인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나라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이 MS 소프트웨어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사용료 지급을 요구했다. 윈도 서버 접근 권한인 '사용자 서버 접속 허가'(CAL·Client Access License) 구매 숫자를 훨씬 초과해 윈도 서버에 접속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MS사는 피해 액수가 무려 연 2011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으나, 백승주는 '''라이센스 등록 안하고 접속하는 곳 만큼 등록해놓고 접속 안 하는 곳도 많다! 라이센스 관리를 미숙하게해서 그렇지 플러스 마이너스 따져보면 우린 정당하게(?) 돈 내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 1달러도 못 준다! => 우리가 자체 조사해보니 불법 사용자도 없더라![* 말이 자체 조사지, 군부대와 군시설에 공문 보내서 혹시 불법으로 쓰는 곳 있으면 자백해라 정도 였을 것이다.] => 못 믿겠으면 니네가 니네 비용으로 전수조사해서 증명해라! => 대신 군사기밀을 건드려서는 안되고 당연히 우리는 조사에 협조도 못해준다!!!'''라는 식의 --어거지--주장을 강력하게 펼쳤다.
2. 한국국방연구원 소속 연구자인 동시에 국방부 차관을 엮임하였기에 차관 임기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조기퇴직과 함께 국회의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주변인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전(前) 국방부 차관은 예비역 중장에 준하는 대우를 해줘야하는데, 한국국방연구원장도 예비역 중장이기에 모양새가 이상해져서 그냥 국회의원을 하기로 했다고...--한 하늘에 두 개의 4스타는 있을 수 없다!--
4. 국방연구원 출신이 사석에서 밝힌 카더라에 따르면, 백승주가 처음 국방연구원에 입사했을 당시 관상을 좀 본다던 임원급 연구원이 백승주를 보고는 '상당한 또라이상'이라 평하며 '옳은 길로 걷거든 최소 국회의원, 잘하면 차관은 찍고 내려올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정작 현지의 표심이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고 한다. 백승주가 국방차관 재직 시절에 구미가 국방신뢰성센터 유치에 나섰지만, 결국 대전에 패배하면서 "고향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것.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4702&yy=2015|대구 매일신문의 사설 참고]]
- 신화용 . . . . 16회 일치
[목차]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포항이 리그 최소 실점을 달리게 만들었다. [[전북 현대]]와의 2013 FA컵 결승전에서는 레오나르도의 결정적인 슛팅을 '''한 손'''으로 막아내고, 이후 승부차기에서 1,2번 키커의 슛을 연달아 막는 활약 속에 포항의 FA컵 2연패 및 최다 우승에 일조하면서 FA컵 결승전 MVP로 뽑혔다.
약점이던 수비 리딩도 발전하여 포항은 2013 시즌 리그 실점 순위에서 2위(38실점)를 달성했고 신화용 본인도 경기당 실점율 0.93을 달성했다. 하지만 신화용 보다 더 낮은 실점률을 기록한 [[울산 현대]]의 [[김승규]]가 시즌 베스트11의 골키퍼 자리를 차지했고 [[신화용]]은 우승팀 골키퍼 에도 불구하고 생애 두 번째 베스트11에 실패했다.
하지만 [[FC 서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FA 컵]]에서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패배하면서 리그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와중 11월, 울산전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김다솔]], [[김진영]] 등 백업 키퍼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으나 그 누구도 신화용의 자리를 제대로 메꾸지 못 했다. 이에 팀은 리그 4위까지 떨어져 아챔 출전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다시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포항 팬들은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신화용의 거취에 촉각을 기울이게 됐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감독은 바뀌었고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자 미드필더진이 무너졌고 수비진에는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감독은 그냥 3백에 수비위주 전술을 썼다 그래서'''신화용에게는 지옥같은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은 5월 현재 0.89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15시즌 초반에도 지옥이었으니까~~] 게다가 15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여파가 남았는지 16시즌 들어서는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후배인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이 무서운 선방을 보이며 신화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부상으로 신화용이 경기에 못 나올 경우 한정이며 컨디션이 좋을때는 여전히 신화용이 No.1이다. 그리고 ACL, FA컵에서 조기 탈락하며 리그에만 집중하면 되는지라 부상만 아니라면 신화용이 시즌 내내 포항의 뒷문을 책임질 것 같았으나...
2016년 12월 우선 협상기간 동안 신화용의 거취에 관심이 쏠렸다. [[http://news.donga.com/View?gid=82057389&date=20161227|기사]] 그리고 해를 넘겨 1월 3일수원과 이적 협상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이미 [[문창진]], [[김원일(축구선수)|김원일]], [[신광훈]] 등 신예 베테랑 가리지 않고 핵심 멤버들을 보낸 마당에 마지막 프렌차이즈 스타마저 떠난다는 소식에 포항팬들은 [[멘붕]] 중. 게다가 팀을 떠나는 이유도 '''16시즌 종료 이후 구단이 직접 나서 신화용을 팔기 위해 여러 구단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포항 프런트와 수뇌부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4월 3일 ACL 시드니와의 5차전 홈 경기에서 무리하게 튀어 나왔다가 선제 실점을 허용하는 실수를 범했고
9월 19일 전북과의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3실점을 해 다소 아쉬운 모습도 보였다. 다만 이 날 수비가 구멍이었다는 점에서는 참작의 여지가 있었는데[* 특히 두 번째 최보경의 골은 수비진이 아예 골 넣으라고 공간을 내준 셈이었다.] 후반 추가 시간 때 아드리아노의 결정적인 PK를 막고 승부차기에서도 김신욱과 이동국의 킥을 방향을 읽어 막아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쳐 팀의 준결승행을 이끌었다. 당연히 경기 MVP는 신화용의 것이었으며, 해설진이나 팬들도 "떨어질 뻔한 수원을 신화용이 멱살 잡고 끌어올렸다"와 같은 찬사를 받았다.
국내 리그 활약상은 국대 주전 골리 [[정성룡]]과 [[김승규]]에게 밀릴 게 없지만 기량 차이가 월등하지 않는 이상 변화를 잘 주지 않는 골키퍼 포지션의 특성 때문에 김진현, [[김승규]] 경쟁구도에 경험많은 [[정성룡]]이 후배들을 받쳐주는 형태가 구축된 대표팀 골키퍼 라인업에서 신화용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김승규가 나오지 못한 2014년 9월 A매치에서 조차 김진현과 [[이범영]]에 밀려 국대 승선에 실패했다.
키가 큰 골키퍼를 선호하는 김봉수 코치 때문에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저 소문일 뿐이다. 김봉수 코치는 오히려 김병지, 이운재, 카시야스를 거론하며 골키퍼는 키보다 경기 운영능력,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ttp://www.sportnest.kr/1564|관련 기사]] 정성룡 때문에 덩달아 미운 털이 박혀서 본인이 한 말과 정반대의 말이 퍼져 인터넷에서 공연히 욕을 먹고 있다.[* 덧붙여 굳이 김봉수의 양아들을 찾자면 정성룡이 아니라 A매치 달랑 1경기 뛰어본 이범영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가르친 선수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4강 UAE전에서 한국에서 패널티킥 방어가 가장 뛰어난 김승규를 빼고 승부차기 대비용으로 넣을 정도로 신뢰를 보였다. 정성룡은 부진할 때 코치로서 변호해준 게 다인데 어쩌다 보니 양아버지란 낙인이 찍혔다.] 신화용이 뽑히지 못한 건 잘한다고 무한정 돌려 쓸 수 없는 골키퍼 포지션의 특수성 때문이지 다른게 아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 최악의 경기인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 울산과의 경기를 슈틸리케 감독이 보도진 몰래 [[포항 스틸야드]]에 암행정찰을 왔다. --왜 잘 할 때는 안 오고-- 이 날 모습을 생각한다면 국대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신화용 >>>>>> 정성룡을 외치던 K리그 팬들을 입 다물게 한 반면에, 오히려 K리그까들로부터 '''정성룡이랑 뭐가 다르냐, 정성룡보다 더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롱받고 있는 중. 기량이 제대로 폭발한 이후로 실수가 상당히 줄어든 키퍼인데 역대급 실수를 엄청나게 보여주면서[* 그것도 공중파 전국 생중계였다. [[KBS]]가 올 시즌부터 K리그 클래식을 전격 중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아니, 왜 잘할 때는 중계를 안 해주고-- 참고로 KBS의 K리그 클래식 전격 중계는 [[이영표]]가 해설위원이 되면서 내건 조건으로 KBS는 이를 받아들였다라고만 서술하면 이영표 해설위원 혼자서 다 한 거 같게 느껴지는데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에서 따낸 계약 조건이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이영표의 기여도 차이가 있는 일이다.] 엄청 평가가 떨어졌다. 다만 이 경기를 관람한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에서는 언제든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실수였고, 선수들은 이런 실수가 나오는 데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7475|관련기사 1]],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8&article_id=0002396186|관련기사 2]]
본인이 뛰어난 실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국대 키퍼들 때문에 국대 자리에 못 올리는 것처럼, 포항의 서브 키퍼들도 전부 연령별 대표팀이라던가 한 실력들 하는 후배들임에도(...) 신화용의 벽에 막혀서 전부 빛을 못 보고 있는데 본인은 오히려 이에 대해 미안해하기보다 '''"나는 후배들이라고 긴장을 푼 적이 한 번도 없다. 후배들이 잘해서 넘어야 한다."'''한다고 단칼에 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용 본인이 [[김병지]], [[정성룡]] 밑에서 구르고 구르며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후배들에게도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데 포항의 차세대 수문장으로 손꼽히는 [[김로만]]에 대한 평가도 신화용의 반응은 귀여운 후배가 아닌 10년 아래의 신인 선수임에도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포지션의 경쟁자"''''라고 칭할 정도. 그러다 보니 신화용에 막혀 이미 팀을 떠난 황교충, 김다솔을 비롯하여, 이준희는 결국 경남 FC로 2016 시즌 임대를 가서 주전 자리를 먹고 있고, 포항에 남은 [[김진영]], [[강현무]], [[김로만]]은 말 그대로 속이 타들어가다 신화용이 2017 시즌 이적함으로서 겨우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사실 포항의 키퍼 라인은 지금까지 무혈입성한 선수가 거의 없다. 유일한 예외가 김병지뿐인데 포항 이적 당시 김병지는 이미 국대 주전이었기 때문에 무혈입성이 가능했던 거지 당장 그 후임이었던 정성룡도 신화용과 로테이션을 돌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으며 신화용도 정성룡이 떠난 뒤에 김지혁과 로테이션을 돌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다. 어떻게 보면 신화용은 포항의 팀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그런 이유에서인지 포항은 김병지 이후 정성룡, 신화용, 강현무를 거치는 동안 주전 백업 가리지 않고 골키퍼로 문제를 겪은 적이 없을 정도로 K리그 최고의 골리진을 유지하게 되었다. ~~문제는 수비~~] ~~그리고 그 자리를 무혈입성(...)한 것은 [[노동건]]...~~ --노동건이 결장한 사이 [[강현무]]가 인생경기를 펼치며 신화용의 장기집권이 얼마나 어마무시했는지 증명했다.--
* 하지만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신[* 2015년까지 K리그 최단신 골키퍼였으며 2016년 제주의 박하람이 1cm차이(신화용-183cm/박하람-182cm)로 최단신 골키퍼 타이틀을 가져갔다.]이라는 점이 부각되어 아직까지 국가대표로 뛰어본 적이 없는 불행한 선수이기도 하다.
- 안기효 . . . . 16회 일치
[목차]
2003년 4차 Ghem TV 스타리그 5조 8강 (VS[[이운재(프로게이머)|이운재]] 1:2)
2004년 iTV 7차 랭킹전
2008년 [[BATOO 스타리그 2008]] 36강 2차전 (VS[[박명수(1987)|박명수]] 0:2)
쇼맨쉽이 매우 뛰어난 선수로, 남자다운? 외모와 과격한 승리 세리머니로 인상이 깊다. 날아차기, 엄지손가락으로 목긋기, 유리창 두들기기 등의 역동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많은 환호를 받은 선수였다.
개인리그에서는 16강 ~ 8강을 왔다갔다했지만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 - 팬택 EX 팀에서는 [[심소명]]과 더불어 [[이윤열]] 다음가는 2, 3번째 카드로 손꼽혔다. [[심소명]]과 팀플을 하면 '안심'조합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한때 양대 PC방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EVER 스타리그 2007에서는 챌린지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며 4번시드를 확보했다. 하지만 [[위메이드 폭스]]로 재창단된 후엔 새로운 신인들이 자리를 차지해 점점 팀 내에서의 비중이 떨어졌다.[* 2007년 후기리그까지 잘 해주다가 2008시즌부터 [[박세정]]이 세로운 프로토스 에이스로 등극하게 된다.]
[[위메이드 폭스]]팀이 별로 인재가 없어서 그랬는지(...) 프로리그에 가끔씩 얼굴을 비췄다. 근데 매번 [[OME]]급 경기를 선보이고 져버렸다.(...) 팀 에이스 자리도 나중엔 [[박세정]] 차지가 됐다.
승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먹튀라 불리며 까이던 [[차재욱]]과는 다르게 팬들도 나름 안기효를 인정하는 분위기.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차재욱]]과는 다르게 기대치가 낮았고,(...) 딱히 인성면에서 비난받을 점이 없었던 것[* 차재욱은 과거 자이언트 킬러라는 별명이 있을만큼 네임밸류가 높은 게이머를 잘 잡았던지라 기대하는 이들이 어느정도 있었고 X밥발언으로 인성면에서 꽤 까였다.]과 10-11시즌 공군의 무서운 기세가 본인의 장단점(판을 잘 짜지만 피지컬 부족)을 공군의 선수들이 커버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점이 공군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그는 개인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거나 ~~스타 챌린지 우승도 나름 우승이라면 우승인가?~~ ~~어쨌든 공식전 우승이니깐.~~ 프로리그에서 엄청난 승수를 쌓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특유의 쇼맨쉽과 입담으로 많은 스타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선수였다. 어떤 길을 가든지 간에 앞으로 살아갈 그의 인생을 응원해주도록 하자.
2014년 10월에는 아프리카 스타판에 불을 지폈다. [[박지호]]와의 스폰 매치중 박지호의 방플을 의심하며 그를 세차게 디스했다. ~~현재는 화해~~ 그런 어그로로 시청자를 끌어모은 뒤 주로 WWE 레슬러를 흉내내는 리액션과 심심하면 블랙리스트를 거는 컨텐츠로 별풍을 팔고있다. 방송중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는데 꽤 잘하는 편이다. 임창정스러운 감성에 연규성과 비슷한 창법, 목소리를 구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SbUITb5-M|슬픈 혼잣말]] [[https://www.youtube.com/watch?v=o049dPIyACM|또 다시 사랑]] 등등 임창정의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WFRzK0KUku0|내가 저지른 사랑]]. 노래를 부를 땐 방금 실연을 당한듯한 리얼한 표정을 보여주며 임창정 특유의 창법을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한다. 철구같은 억지 뇌성이 아니라[* 말이 좋아 뇌성이지 완전 목을 긁어내는 발성이라 성대가 남아나질 않는다. 철구는 성대 수술을 받기도 했는데 뇌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프로 가수들도 샤우팅을 자제하는 이유가 구사하기도 어렵지만 목을 긁어내지 않으면서 발성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고음과 정확한 샤우팅을 구사했다. 다만 콧소리가 상당히 들어간걸로 보아 발성을 따로 배우진 않은듯 하다.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는 면성이라는 새로운 창법을 창조해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2016년 8월자 방송에서 보면 근처 중국집 배달원이 엄청 불친절하고 난폭하다는듯 하다. 문을 발로 차면서 배달온다고 하는데 안기효 왈 [[조선족]]으로 추정되며 좋게 말하니깐 정색 빨면서 아 예 하고 문을 쾅 닫고 나갔다고 한다.
현재 배틀그라운드도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1부 2부로 나누어 방송하고 있으며 석궁만으로 2등을 하고 불과 4일차 만에 1등을 하는 기염!을 토하며 싸움을 회피하는 메이웨더 아웃복싱같은 게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무분별한 전투 배그보다 실제로 저 상황에 떨어져 있을때 나올법한 두려움과 신중함(실제로 온갖 화기로 중무장한 생면부지의 아흔몇명의 사람들과 외딴섬에 떨어져 한사람만 생존 가능하다고 할때 생존하기 위해 가질 당연한 소심함)으로 숨을 죽이는 멘트와 함께 시청자들의 큰 호응과 공감을 얻는 듯 보인다.
2018년 2월 25일 ASL 시즌5 부산 예선에 참가하였다. 예선 3조 2라운드에서 [[박수범]], 예선 준결승에서 [[김봉준]]을 차례로 격파하고
- 윤채경(가수) . . . . 16회 일치
[목차]
'''[[I.B.I]]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멤버'''[* 실제로 [[I.B.I]]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눈물날 정도로 안 끝나는 불운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해인(1994)|이해인]]은 새로운 소속사를 찾았으나 공황장애 때문에 스스로 나와야 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마지막 걸그룹 도전이라고 했던 [[아이돌학교]]에 도전했으나 끝내 최종 문턱에서 탈락한 후 서바이벌 은퇴를 선언하고 근황이 묘연하다. [[한혜리]]의 경우 [[스타제국]] 자체가 이미 망해 가고 있는 기획사인 데다가 [[올망졸망]] 데뷔가 무산되어 2017년 7월 25일 스타제국과 결별한 후 재기를 노리며 [[믹스나인]]에 출전했지만, [[빅뱅(아이돌)|빅뱅]] [[승리(빅뱅)|승리]]에게 큰 혹평만 받고 [[광탈]]의 수모를 당함과 동시에 실력 문제가 제대로 까발려지면서 [[프로듀스 48]]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사실상 끝났다. [[이수현(1996년 9월)|이수현]]은 소속사가 공중분해되어 예정되었던 걸그룹 데뷔가 무산됐고, 더군다나 [[펜타곤(아이돌)|펜타곤]] [[홍석|양홍석]]과의 열애설 해프닝까지 불거지면서 본인의 이미지도 급추락한 후 역시 근황이 묘연하다. [[김소희(1995)|김소희]]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긴 했으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여성 솔로 가수가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고, 더불어 동 시기에 '''[[레드벨벳|너무]] [[EXID|강한]] [[TWICE|상대]]'''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차라리 [[THE iDOLM@STER.KR|아이돌마스터]] [[리얼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실제로 김소희 외에 [[프로듀스 101]] 출전자들 중 [[김주나]], [[황인선]], [[강시라]]가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나 뚜렷하게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으며, [[NCT]] / [[세븐틴(아이돌)|세븐틴]] / [[마마무]] / [[에이핑크]] / [[레드벨벳]]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오마이걸]]과 엠카 및 쇼챔에서 맞짱뜬 '''[[청하(가수)|청하]]'''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단, 절대적으로 보면 [[I.B.I]] 출신 중에서 가장 성공한 멤버가 채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I.B.I 출신 중 상대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아진 멤버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려서 [[김소희(1995)|김소희]]라는 의견도 많다. 윤채경의 경우 퓨리티 - 카프 등을 이어오면서 얻어온 인지도 및 팬층이 적지 않게 있고 나름 중요성을 인정해 DSP에서도 계약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이나 I.B.I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데뷔했거나, 예능출연 등 방송인으로 나갔을, 즉 지금만은 못해도 나름 연예인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소희의 경우 프듀 출연이 아니였다면 영원히 일반인으로 남았을(즉 대중들이 전혀 몰랐을) 확률이 높다. 잘해 봐야 타인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던가 타인의 뮤비에 단역으로 나오던가.]
2013년 2월부터는 4월까지 SBS [[꿈의 보석 프리즘 스톤]] 차밍스쿨에 출연했다. 여기서 채경은 헤어담당을 맡았다.
씨바의 마지막 멤버로 [[음악의 신|전작]]에 출연한 ~~LSM 엔터테인먼트 소속 18년차 연습생~~ 이수민이 합류했는데, 모든 역할을 이수민에게 몰아주고 윤채경은 '''구설수 담당'''을 맡았다. “힘들겠지만 구설수를 많이 만들어보겠습니다”라고 인터뷰 하였다.
C.I.V.A 첫 번째 행사곡 녹음을 진행하다 김소희와 함께 귀신몰카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러나 펑펑 울었던 김소희와 달리 윤채경은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이현우와 이지혜가 LTE에 방문하여 이상민과 C.I.V.A 멤버들을 만난다. 가수는 예능을 나가면 안된다는 이상민 대표의 말에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백미. 이상민과 진영이 연기 트레이닝을 하면서 드라마 《차칸남자》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2013년 2월 13일~4월 3일, SBS [[꿈의 보석 프리즘 스톤]] 차밍스쿨에 출연했다. 채경은 헤어스타일 고민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 2017년 1월 28일 JTBC <[[아는 형님]]>에 게스트로 '아는 누님 특집'편에 출연했다. 개인기로 개짖는 소리를 내면서 나름 분량을 챙겼다. 이 날 출연자들이 연예계 대선배들인 [[박미선]], [[조혜련]], [[솔비]], [[차오루]], [[홍진영]] 등이었음을 감안하면 선전했다는 평이 많았다. 오랜만에 `음악의 신2` ~~예전 소속사 사장님~~ [[이상민(룰라)|이상민]]과도 재회했다.
* [[기희현]], [[김소희(1995)|김소희]], [[한혜리]]가 뽑은 가장 민낯이 예쁜 사람으로 뽑혔다. 메이크업했을 때와 차이가 없이 똑같다고 한다. [* 그래서 그런지 [[헬로 아이비아이]] 2화 호텔 습격 신에서 '''민낯'''으로 다른 멤버들과 인터뷰를 했다. 본인의 민낮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160420 온스타일 기부티크 E05)
* 프로듀스 101 방송에서 불쌍한 이미지로 잡혀서 놀랐다고 한다. 모든 장면이 불쌍하다고 나왔다고 웃으면서 인터뷰. 그러한 이미지가 잡히게 된 6화 양화대교 미션에서 방송과 달리 본인은 정말 재미있게 미션에 임했다고 한다.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921780|‘프로듀스101’ DSP 윤채경 조시윤, 연습생 5년차의 반란 (인터뷰)]]
* 2016년 한해 [[소녀온탑|서로]] [[시계(음반)|다른]] [[C.I.V.A|4개]] [[I.B.I|그룹]]으로 나와 4번 모두 [[멜론(웹사이트)|멜론]] 100위 안에 차트인했다.[* 한 해 데뷔하는 걸그룹 중 [[멜론(웹사이트)|멜론]] 실시간차트 100위 안에 한시간이라도 차트인한 그룹의 비율이 10%가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성과.]
* 두 캐릭터 모두 윤채경 본인 역할. ~~세월의 차이 때문인지~~ 동일인물 모티브임에도 불구하고 두 캐릭터가 너무 다르게 생겨서 괴리감이 상당하다. 꿈의 보석 프리즘 스톤은 너무 홀쭉하고 오묘 작가 버전은 너무 토실토실해서 이미지가 너무 다르다. --푼핸의 싱크로율은 꽤 높은데..--
* 나이에 비해 이력서에 들어간 게 매우 많다. 퓨리티 - 카라 프로젝트 - [[프로듀스 101]] - 채채 - C.I.V.A - I.B.I - APRIL 등 해 본건 정말 많다. 윤채경이 나중에 음반기획사를 차리게 되면, 이 경험들이 엄청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가수 출신 [[연예 기획사]] 사장이 많이 있다. [[연예 기획사]] 사장 [[삼대장]]부터 마삼트리오의 [[이수만]], 비닐바지의 [[박진영]],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다. [[WM엔터테인먼트]]의 이원민 대표도 가수와 매니저를 거친 사람이다.]
* 2017년 3월에 출연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요리연구가 홍성란과 함께 출연했을때 서로 불꽃튀는 빈말 배틀을 펼쳤고, 마치 기계를 방불케하는 립서비스를 보여주며 '프로빈말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http://tv.naver.com/v/1510718|영상]] 이후 [[배성재의 TEN]]에 [[김채원(APRIL)|김채원]]과 함께 나왔을 때 [[배성재]]의 요청으로 [[배성재]], 작가들, PD 아들을 차례대로 칭찬하는 빈말 시범을 보였는데 준비도 안했는데 쏟아져나오는 현란한 빈말 스킬에 스튜디오에 있는 전원이 감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_D5JbiKxyM|영상]] 본인의 말로는 상대의 특징을 잘 잡아내서 말하는게 포인트라는 듯. 지난 2017년 7월 6일에도 배성재의 텐 비연애 참피언스리그코너에 [[박문성|박펠레]]와 같이 출연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낯가리는 듯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룩빈말, 제습돌, 물먹는 채마 등 많은 별명을 만들정도로 빈말을 쏟아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ok4FbKvL0&t=1521s|천하의 찌파치노도 두 손든 빈발]]
* [[I.O.I]] 탈락자들 중 최초로 음방 1위 후보에 올라간 사람이다.[* 2번째는 [[모모랜드]]의 [[태하(모모랜드)|김태하]], 3번째는 [[(여자)아이들]]의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 4번째는 [[공원소녀]]의 [[서경(공원소녀)|김서경]]이다. 그 중 [[태하(모모랜드)|김태하]]와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은 음방 1위를 먹었다.] [[APRIL]] 합류 후 [[SHOW CHAMPION|쇼챔]]과 [[THE SHOW|더 쇼]]에서 몇 차례 1위 후보에 들었다. 그러나 만난 상대가 하필이면 [[APRIL]]에는 '''너무 강한 상대'''인 '''[[레드벨벳]]'''[* [[APRIL]]은 [[레드벨벳]] 상대 '''3전 3패'''로, [[레드벨벳]]에 [[천적]] 수준으로 굉장히 약하다. 그런데 실제로 두 그룹은 꽤 친한 사이다. [[I.B.I]]에도 [[레드벨벳]]은 가장 큰 [[천적]]이나 다름없는데, 전술한 윤채경은 말할 것도 없고 [[김소희(1995)|김소희]]는 정식 솔로 데뷔 때 [[아이돌 드라마 공작단]]으로 안면이 있는 [[슬기(레드벨벳)|강슬기]]의 [[레드벨벳]] 바로 정면에서 데뷔했다가 한 방 얻어맞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덤으로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 [[태하(모모랜드)|김태하]]는 윤채경과 달리 [[레드벨벳]] 상대 1승도 있다.], '''[[방탄소년단]]''', '''[[볼빨간사춘기]]''', '''[[마마무]]''', '''[[NCT]]([[NCT DREAM|DREAM]], [[NCT 127|127]])'''인지라 [[청하(가수)|김청하]] 뺨치게 전혀 대진운이 안 따른다. [[eternity]] 때는 컴백 첫 주에 [[THE SHOW|더 쇼]] 1위 맞대결을 하며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의 [[위키미키]]를 만나 [[프로듀스 101]] 이후 첫 리턴 매치를 벌였으나, 결과는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의 근소한 판정승.--[[지못미]]--[* 그런데 의외로 [[I.O.I]] 멤버들이 프듀 리턴 매치에서 이긴 게임이 적다. 그 이유는 바로 [[프로듀스 101/8회|8회]] 탈락자인 [[태하(모모랜드)|김태하]]인데, [[태하(모모랜드)|김태하]]는 '''[[청하(가수)|김청하]],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 [[연정(우주소녀)|유연정]], [[세정(구구단)|김세정]], [[미나(구구단)|강미나]]'''까지 이겼다!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은 [[프로듀스 101]] 파이널에서 고배를 마신 후 2년 만에 다시 만난 [[나영(프리스틴)|돌]][[결경|결]]에게 제대로 복수의 '''[[핵펀치]]'''를 먹여 버렸다.] 하지만 2018년 10월 21일에 다시 만난 도댕에게 복수에 성공했다.
- 전인범 . . . . 16회 일치
'''전인범'''(全仁釩, [[1958년]] [[9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1981년 4월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임관하여 30사단 90연대 15중대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 이래 9사단 29연대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부 전작권 전환 추진단장, 27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특수전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2016년 7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2004년 12월에는 [[:en:Multi-National Force – Iraq|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공정한 선거업무의 주역으로 외국군(미국, 영국, 호주, 루마니아)을 지휘·감독,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이 [[이라크 전쟁|이라크전]] 때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냈는데 다국적군사령부 참모 중에 한국군이 그 외에는 없어 처음에는 직속 부하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낀 그였다. 그래서 바쁘다는 외국군 장군들 대신 브리핑을 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자 노력해 점차 조직을 장악하였다고 밝혔다.<ref name="a"/> 그는 [[:en:United States Armed Forces|미군]]과 [[:en:British Armed Forces|영국군]], [[:en:Australian Defence Force|호주군]] 장교 10여 명을 지휘해 5400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이라크 유권자 1400만 명의 투표를 지원 및 감독하였으며, 3500t에 이르는 선거 관련 물자를 각 투표소에 공급하고 치안 유지를 지원하는 일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30323 이라크 총선지원 전인범 대령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 기여에 자부심”], 《서울신문》, 2005년 1월 31일</ref> 선거가 무사히 끝난 뒤 이라크 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대한민국 국군|한국 군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정부]]로부터 [[:en:Bronze Star Medal|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046950 노 대통령 전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 《연합뉴스》, 2005년 7월 11일</ref><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50706&parent_no=7&bbs_id=BBSMSTR_000000000004 이라크 총선 성공지원 공로, 전인범 육군 대령 美 동성무공훈장 받아], 《국방일보》, 2005년 7월 6일</ref>
2011년 11월 18일 [[:en: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미국 국방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 《[[:en:Spider-Man in film|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시사하는 교훈을 언급하였다. 그는 “《[[:en:Spider-Man (2002 film)|스파이더맨 1]]》은 우리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en:Uncle_Ben#.22With_great_power_comes_great_responsibility.22|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것을 가르쳐 주고 《[[:en:Spider-Man 2|스파이더맨 2]]》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알려준다”며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미국인들은 《스파이더맨 1, 2》를 평생 동안 적어도 세 번 이상 보아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VrILCHQl1M Korean General tells Americans to watch Spiderman 1 & 2], 《USAG-Humphreys》, 2011년 11월 18일</ref> 같은 달 21일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영전했으며, 1년 5개월 뒤인 2013년 4월에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7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문재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ref name="b"/> 왜 문재인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이) 저를 한번 보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만났다. 그 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만나보니까 좋은 분이고, 지적이더라. 공부하는 분이고. 근데 그날 제가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했다. (- 안보관을 지적했나) 음…. 하여튼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다 받아주더라.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득하는 건 둘째고, 일단 잘 들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범 중장의 전역식 때 전역사를 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정호용을 고마운 선배로 언급한 것에 관해서는 “저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잘못된 부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거지, 5·18과 관련해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5·18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호남 분하고 이야기를 하며 ‘저는 언젠가 광주 5·18묘역에 그때 죽은 군인들이 같이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무도 모르잖나.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당시 군의 잘못이지 하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 특전사가 살인마처럼 비춰지는 건 바뀌었으면 한다. 하여튼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감옥에도 가고 그런 것 아닌가. 정호용은 그런 책임이 있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건 그분이 인간적으로 부하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본받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그의 5·18에 대한 견해에 우파 언론인임에도 5·18을 반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는 “여러 번의 국가적 수사와 조사에서 광주 사태 초기엔 상급 지휘부의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으며 현장 상황이 워낙 급하여 자위적 차원의 대응발포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물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전인범의 발언을 옹호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5656 제목으로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末期 증세], 《뉴데일리》, 2017년 2월 10일</ref>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2017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전인범 중장은 이례적으로 [[예비역]] 한국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현직 육군 최고 수뇌부가 참석하는 이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예비역으로는 유일하게 발표했는데, 현직 미군 주요 지휘관들은 물론 전직 미군 수뇌부들로부터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 연합전력 극대화 해법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출신으로 평가받고 있어 이 심포지엄에도 초청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528010015215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미 군사 혈맹, 한국군 주도적 역할 중요”], 《아시아투데이》, 2017년 5월 28일</ref> 그는 발표문에서 “한미간 긴밀한 연합작전과 지휘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⁴I)가 기반되어야 하며 양국간 언어장벽의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리나라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46579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美 'LANAPC'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 및 발전 방안 발표], 《뉴데일리》, 2017년 5월 26일</ref> 또한 심포지엄이 끝나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군 발표자들 대부분은 기조연설과 발표문에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rising adversary)’으로 지칭했다”면서 “미국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질주하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292284 "美, 아태 지상군회의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 지칭"], 《연합뉴스》, 2017년 5월 25일</ref>
2018년 6월 예비역 신분인 그의 주도로 국회의원회관에서 특수작전 전술 및 장비 현대화를 위한 세미나 ‘제1회 특수작전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그간 국가 안보전략과 국방 관련 정책 토론회는 많았으나, 일선 전투원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술 및 장비 관련 세미나가 공개적으로 개최된 적은 없었기에 눈길을 끌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4045225 창끝 전투원들을 위한 '제1회 특수작전 세미나' 큰 호응], 《파이낸셜뉴스》, 2018년 6월 24일</ref> 세미나에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효율적인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육군의 특전사를 비롯해 수색·특공부대, 해군 및 해병대, 공군의 지상작전 부대의 정예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해외의 사례를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면서 “실전에 맞지 않는 전술 및 장비소요(구매 요청 및 구매)는 과감하게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중장은 세미나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형식과 틀을 깬 어법과 행동으로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해당 세미나는 특수·지상작전연구회, 군사전문지 플래툰 등 민간이 주도한 최초의 개방형 군사 세미나로, 세미나 준비를 해온 특수·지상작전연구회 소속 정진만 아세아항공전문학교 교수는 “당초 100명 미만의 규모로 세미나를 준비했는데 150여 명 이상이 참석했고 상당수 인원이 참석을 원했는데 장소가 비좁아서 받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같은 달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에 임명, 9월에는 그를 단장으로 하는 자유총연맹 대표단이 [[:en:West Potomac Park|웨스트 포토맥 공원]] 내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들어 설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 추모벽 건립에 1만 달러를 기증했다.<ref>[http://dckoreannews.com/featured/%ED%95%9C%EA%B5%AD%EC%9E%90%EC%9C%A0%EC%B4%9D%EC%97%B0%EB%A7%B9-%EB%AF%B8%EA%B5%AD-%EC%9B%8C%EC%8B%B1%ED%84%B4%EC%97%90%EC%84%9C-%EB%8F%99%ED%8F%AC%EA%B0%84%EB%8B%B4%ED%9A%8C-%EA%B0%9C%EC%B5%9C/ [한국자유총연맹] 미국 워싱턴에서 동포간담회 개최], 《워싱턴코리안뉴스》, 2018년 9월 12일</ref><ref>[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2597 한국자유총연맹,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건립지원금 1만 달러 기탁], 《월드코리안뉴스》, 2018년 9월 13일</ref> 그는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추모의 벽이 설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 차원에서 1만 달러를 즉석에서 마련, 기탁하게 됐다”면서 “한국자유총연맹은 특정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 중립을 지키면서 국가에 이익이 되고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국리민복을 기본 가치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ref>[http://www.koreatimes.com/article/1202198 한국전 참전 ‘추모의 벽 건립’ 1만달러 기증], 《미주한국일보》, 2018년 9월 11일</ref>
* 2008. 합참 전략기획부 전략기획차장
* 2011.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차장
통역이 필요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주한미군 지휘부와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리고 있다.<ref>[http://news.donga.com/People/3/06/20110512/37149041/1 ‘전작권 전환 기여’ 전인범 소장이 받는다], 《동아일보》, 2011년 5월 12일</ref>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그를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0/2013042000200.html 박지만씨 육사 37기 동기들, 청와대·국정원·軍 요직 올라], 《조선일보》, 2013년 4월 20일</ref> 주한미군사령관 [[:en:Curtis Scaparrotti|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그를 일컬어 ‘가장 절친’이라 칭할 정도로 미군들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116010009522 주한미군사령관 "한반도 평화·안정 온힘 쏟겠다"], 《아시아투데이》, 2014년 11월 16일</ref> 미 8군사령관 버나드 샴포 중장 역시 ‘한국 군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절친이며 항상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고문(顧問)이자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라고 강조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208010005247 주한 미8군사령관 "한미 군사동맹 강력하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8일</ref>
{{인용문|(육사 37기생인) 박지만 씨에 대해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육사 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 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고 했다. (중략) 37기 동기회의 한 간부는 “하도 36기 선배들에게 들볶이다 보니 38기 후배들을 교육시킬 여력이 없어 동기들 사이에선 38기들이 기어오른다는 이야기도 했었다”며 “동기생 중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잔인범’ 소리를 들어 가며 후배들 교육을 시키지 않았으면 선배 노릇도 못할 뻔했다”고 했다.|오동룡. 2013. “朴志晩 同期 陸士 37期生들.” 『月刊朝鮮』 2013년 12월호, 98-115.}}
*** 내종형 : [[:en:Howard Koh|고경주]]<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olink.asp?aid=14888937&serviceday=20140721 사명, 목적 있는 삶… 나를 이끈 건 부모 가르침], 《중앙일보》, 2014년 7월 21일</ref> (高京珠, 1952년 ~ , [[:en:United States Assistant Secretary for Health|미국 보건복지부 보건담당 차관보]])
- 표창원 . . . . 16회 일치
||<:>'''가족'''||<(>2남 중 [[차남]][* 그의 친형은 표창해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표창원이 그의 부인을 만나서 [[결혼]]하게 된 계기도 친형과 관계가 있는데, 형수가 자신의 지인이었던 현재의 부인을 소개해 줘서 연애를 하여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
[목차]
이때 표창원 옆에서 바라본 당시 대한민국 경찰 수사라는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치밀한 범인의 완전범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피고 버린 담배부터 해서 증거가 차고 넘쳤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영...(..)] 결국 사건이 미제로 남게되자 패배감을 느꼈고, 당시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울때가 마땅치 않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후 1993년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엑서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찰학을 수학해 1997년까지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다. 범죄학이 아니다! 애초 엑서터 대학에는 경찰 및 범죄관련 석박사 과정이 없고 학사만 있다.[* 2015년 기준 [[http://www.exeter.ac.uk/undergraduate/degrees/sociology/criminologybsc/|학부과정]]은 개설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여전히 사회학만 [[http://www.exeter.ac.uk/postgraduate/research-degrees/sociology/mphil-phd_sociology/|개설되어 있다.]]] 다만 박사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확실히 경찰과 관련이 있다.
박사학위청구논문의[* 'The police and crimewatch UK : a study of the police use of crime reconstruction and witness appeal programmes in Britain'] 주제만 놓고 보면 봤을 때, 표창원의 원래 전공분야는 미디어 매체[* [[http://www.bbc.co.uk/programmes/b006ppmq|Crimewatch UK]]는 우리나라의 [[경찰청 사람들]], [[공개수배 사건25시]]와 비슷한 TV 프로그램이다.]와 경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위청구논문 이후의 연구 성과에 따라서 전공분야가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표창원 박사의 경우 형사사법분야의 전반에 걸쳐서 연구를 하는 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찰에서는 [[경찰대학]] 졸업생 중 유학한 경찰들을 통해서 내부역량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학을 갔다온 경찰대 졸업생들의 논문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대개 집회시위법, 행정법, 형사절차 or 형사법에 관한 논문이 많다. 물론 표창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에는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나 프로파일링(Profiling) 전문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증거는 없고 이에 관한 전문적 연구 또한 미미하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죄심리학(Forensic psychology) 박사학위자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 재직중인 [[박지선(교수)|박지선]] 교수가 있다.]
방송 쪽으로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여 유명해졌고, 케이블 채널의 <살인자는 말한다>등의 자기 이름을 걸고 나오는 프로를 진행한 적도 있다. 2012년 경찰대학 정교수 퇴직 이후에는[* 개인 [[블로그]] 및 [[트위터]]를 통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의혹]]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돌연 "경찰대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대학 교수직을 사퇴했다.] [[JTBC]] [[표창원의 시사 돌직구]]라는 프로그램에 MC로 발탁돼 방송인을 겸했으며, 범죄심리분석 전문가로서의 행보는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면서 본 문서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했던것 처럼, "저명성에 걸맞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냐."는 지적들이 나왔지만, 어쨌거나 [[대한민국]]에 프로파일 기법이나 범죄자에 대한 복합적 연구를 처음으로 대중화한 점에서 공로가 있다는 것은 인정 받고 있다.
일부에선 '흉악범죄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가. 사회에게 있는가'에 대한 시각차이로 이전부터 논쟁의 중점에 있던 인물이란 말이 있는데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데, 모든 형법이론들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형법학자들은 전부 저것을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범죄론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는 행위론, 구성요건론에서 위법성론, 책임론까지 모두 구이론인 객관주의와 신이론인 주관주의를 따라 견해가 나뉘며, 현대 형법은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있는 형법 저서 하나 없는 사람이 저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학계의 관점에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단지 그러한 논쟁을 '''일반 대중에게 던져준 사람'''으로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러한 표현이 들어맞을 것이다. 실은 국내에서는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이유를 "그 범죄자 개인의 인성보다 자라온 환경, 못 가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냉혹한 사회 탓이 적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튀는 것이다.
원래 자신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수 차례 밝혔다. 2015년 10월 26일에 [[트위터]]를 통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7&aid=0000867351|'정치 안 합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개월 뒤인 2015년 12월 27일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했다.[[https://www.facebook.com/cwpyo/posts/1133948603312544|본인 입당 sns 인사글]]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그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예전의 입장을 거두어들인 것에 대해 사과의 표시를 했다.
2016년 2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용인시]]에 신설된 [[용인시 정]] 선거구[* 구성동, 청덕동, 마북동, 동백동, 보정동, 죽전1동, 죽전2동]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경찰대학]]이 있던 지역이었고,[* 그가 공천을 받기 직전인 2016년 2월에 경찰대가 충남 아산시로 이전해갔다.] 그가 원래 거주하던 지역이다.[* 선거 기간 중 지역구 내에서 [[어린이집]] 차량사고가 났는데, 이때 자기 딸들도 그 어린이집을 다녔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전부터 살던 곳이 맞는 듯 하다.] 그리고 [[2016년]] [[3월 7일]] 당에서 표 전 교수를 [[전략공천]]하기로 확정 발표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7080865|#]]
[[TV조선]]의 인기 시사 예능 프로그램인 [[강적들]]의 5월 5일자 방송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이날 출연한 다음에는 아예 고정 게스트로 계속 출연을 이어오고 있다가 의정 활동에 집중하기 위하여 하차하였다.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절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남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남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반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2018년 6월 22일, [[조국]] 민정수석에 의해 검경 수사권 합의안이 발표되었다. 표 의원이 주장한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고, 검찰은 금융 비리, 정재계 사건 특검 등 일부만 직접 맡고 다른 것은 모두 경찰에 맡긴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 업무 중에서도 중하지 않은 사건, 즉 민생 관련 건은 자치경찰로 넘기게 되며, 이를 위해 현재 제주도에만 있는 자치경찰을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실시하고, 차후 확대한다고 한다.
범죄학자라는 직업 상 다큐멘터리에 주로 나오는데 가끔 예능에 나오면 묘하게 굴욕을 당한다. 크라임씬2에 탐정으로 캐스팅 됐을 때도 실제 현장과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홀로 진범 지목에 실패하여 [[장동민|출연]][[하니(EXID)|자들]]에게 놀림받고 런닝맨 최강자전에서는 미션 도우미로 [[개리(리쌍)|개리]], [[지석진]]과 함께 도둑잡기를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개리 손에 있던 도둑 카드를 바로 집어가고 그대로 패배. 비정상회담에 출연 당시엔 나이지리아 부자(父子)이야기를 하면서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이니까, 사자가 자주 나타나잖아요.'라고 말했다가 아프리카라고 사자를 항상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며 [[샘 오취리]]에게 팩트폭력을 당했다.
*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범죄심리학은 경찰학(Police science)의 한 분파가 아니다. 정확히는 심리학에서 출발한 심리학의 응용분과이다. 물론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가 학계의 추세이지만 경찰학과 범죄심리학은 엄연히 다른 분야다. 오히려 경찰학은 예방과 인권보호를 중심으로 하기에 형사절차(Criminal procedure), 범죄학(Criminology)과 관계가 깊다. 따라서 법학, 사회학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한편 범죄심리학은 법정공방이나 피의자 및 피해자 증언. 그리고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통한 귀납적 추리를 하는 프로파일링과 연관되며 이들은 모두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등 심리학을 기반으로 응용된 분과이다. 물론 이런 분류를 할 수도 있겠지만, 범죄학이라 하여서 심리학 부분이 없는 게 아니다! 즉, 범죄를 다루는 모든 분야가 범죄학 범주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형법의 형벌론이라든가, 사회학의 일탈 이론이라든가, 심리학의 인지, 학습 분야라든가... 다만 현재 범죄학 중심이론들이 사회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학을 사회학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 장기간 [[그것이 알고싶다]] 출연을 통해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차분하고 침착한 이미지로만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화를 안 내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단, 화를 내기 힘든 공적인 자리에서는 화가 나도 참다가, 끝나고 혼자 있을 때 '''욕(?)'''을 해서 스트레스 해소를 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대신 현역 경찰 시절에는 취조 중 일부러 경찰을 놀리는 듯이 행동하는 무례한 범죄자에게 대놓고 화를 낸 적도 꽤 있다고 한다. --근데 이 정도면 화 잘 안 낸다는 이미지가 실제랑 꽤 맞는 거 같은데, 준석이만 보면 화가 난다 카드라.--
>범죄수사 절차상 피해자 보호문제에 대한 고찰, 2003
>한국과 영국의 경찰수사 절차상 인권보호 장치에 대한 비교 연구 = A comparative study of police investigation procedure between Korea and England, focusing on 'human rights' aspect, 2007
- 하이큐/249화 . . . . 16회 일치
* [[미야 아츠무]]의 서브로 경기가 시작. 아츠무의 서브는 소문대로 날카롭지만 이나리자키의 응원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 덕에 2회차 서브는 빗나간다.
* 공식 워밍업 시간 중에도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는 주목의 대상이다. [[오오미 타로]] 감독은 마지막 공을 미야 형제에게 띄운다. 그런데 둘은 동시에 뛰어 올라서 "유체이탈 시간차" 같은 장난이나 친다. 둘이 쌍둥이란 걸 이용한 장난. 딱히 시간차도 뭣도 아니지만 객석에는 멋지다고 호평한다.
* 이제 본게임의 막이 오른다. 어제도 객석에 자주 보였던 커플이 이번에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양팀 선수들이 코트 위에 정렬한다. 심판의 호각과 함께 힘차게 "ㅈ잘 부탁드립니다!"고 인사한다. 효고현 대표인 이나리자키 고교는 3년 연속 봄고 진출에 31회차 참석이란 성적. 그에 비해 미야기현 대표 카라스노 고교는 5년만에 9회차라는, 상당히 차이나는 성적이다.
선수들이 힘차게 "웨이"라고 외쳐 화답한다. 이제 시작이다.
* 첫 공격은 이나리자키의 선공. 아츠무의 서브다. 고교 NO.1 세터의 서브는 서버가 위치를 찾아가는 것 조차도 특별하게 보였다. 카라스노는 [[니시노야 유]]를 중심으로 [[사와무라 다이치]], [[타나카 류노스케]]를 리시버로 기용,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한건지 잘 모르는 쌍둥이 자매도 신이나서 아츠무의 이름을 연호한다. 아이돌팬스러운 커다란 부채에 "오사무"라고 써져있는 걸 보면 그의 개인적인 팬들인 것 같다. 그녀들은 아츠무가 2회차 서브에 앞서 자신들 쪽을 바라보자 좋아라하는데 아츠무의 소감은 기대와 딴판이다.
다소 뒤숭숭한 채로 들어가는 2회차 서브. 이 작은 소동이 영향을 준 탓일까? 서브는 여전히 카라스노의 반응보다 한 박자 빨랐지만 라인을 벗어난다. 서브 실패. [[스가와라 코시]], [[야마구치 타다시]] 등은 안도의 한숨. 아츠무가 낙담하며 "이런"이라고 고함친다. 오사무가 "허접하다"고 디스하자 아츠무가 신경질을 낸다.
* 스코어 1 대 1. 카라스노의 공격. [[아즈마네 아사히]]의 서브. 스가와라가 신중하게 가자고 조언하려 하는데 이번에도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성가시다. "우-!"하는 큰 소리로 아즈마네의 정신을 흐트려놓는다. 타케다 고문은 이쪽의 첫 서브부터 이런 견제가 들어오자 의아해한다. 케이신 코치는 차라리 감탄하는 쪽. 자군 서브 때는 철저하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적군에겐 소란과 동요를 야기한다. 정말로 잘 훈련된 응원단이다.
이것이 효과를 봤는지 아즈마네의 서브는 네트에 걸리며 실패. 아즈마네가 사과하는데 이 조차도 응원단이 내지르는 소리에 묻힌다.
* 경기가 초반부터 신경전이 거세자 중계석도 바빠졌다. 해설자는 이 경기는 고교 No.1 세터 아츠무와, 역시 전일본 유스 출신의 유망주 카게야마의 "동서 세터 대결"로 정의한다. 그러는 사이 양 진영을 오가던 공이 이나리자키에서 카라스노 쪽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랠리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힘차게 뛰어오르는 히나타. 한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점프다. 히나타 자신도 "좀 괜찮은 느낌!"이 오고 카게야마와 중계석 모두 놀랄 정도로 눈에 띄는 점프.
카게야마의 "동시에 할 수 없으면 하지 마"라는 가차없는 면박이 뒤따라온다. 오지로는 황당해하며 스나에게 방금 "치는거 잊어버렸다고 한게 맞냐"고 확인한다. 담담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스나.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15회 일치
* Vehicle Engineering(차량공학): 아이콘은 트럭과 톱니바퀴.
* Blitzkrieg Tactics(전격전 전술): 아이콘은 전차에게서 뻗어나가는 화살표 두개.
* Combined Arms Focus(합동군 중심): 아이콘은 병사와 전차.
* Daimler-Motoren-Gesellschaft(다임러 자동차회사)
* Gothaer Waggonfabrik(고타 마차공장)
* Ford Motor Company(포드 자동차회사)
* Detroit Arsenal Tank Plant(디트로이트 병기창 전차 공장)
* Igor Kurchatov(이고르 쿠르차토프)
잉글랜드 출신 컴퓨터 공학자이자 수학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튜링 기계와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다. 하지만 전후 당시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여성호르몬을 투여받았고 그 결과 1954년 자살하였다.
* Leyland Motors(레일랜드 자동차)
* Vauxhall Motors(복스홀 자동차)
이미지에 있는 Mk.IV 전차가 인상적이다.
* China Motor Corp.(중화기차공업)
* Universita' La Sapienza(라 사피엔차 대학교)
* FIAT(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 토리노 이탈리아 자동차공장)
- 김갑수(배우) . . . . 15회 일치
[목차]
이상하게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사망전대|극중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단명]] [[전문]] [[배우]]라는 평을 얻고 있다. 특히 [[2010년]] 들어 출연작에서 맡은 배역들이 연이어 사망해서[* 아이리스, 거상 김만덕, 제중원, 신데렐라 언니, '''즐거운 나의 집'''.] [[사망전대]]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의견이 있다.[* 연륜이 많아 비교적 비싼 준주연을 일찍 극에서 하차시킬 수록 제작비는 세이브된다는 원리도...] 이게 본인에게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해서 달갑지 않은지 아예 [[무릎팍도사]]에 한 번 나와서 '이 신세를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겠느냐'고 고민 상담을 했을 정도.[* 물론 프로그램 특성상 진지한 질문일 리는 없다.] 떠오르는 [[사망 플래그]]시다.
* 2011년 4월 12일 방영된 [[김승우의 승승장구]]를 끝으로 [[예능]] [[은퇴]] 선언을 했다...~~그러면 [[시트콤]]부터 접어야겠지?~~ 그런데 [[XTM]]에서 2011년 하반기부터 방송하는 [[탑기어 코리아]]의 멤버 중 1인으로 발탁되었다. ~~뭐??? 예능 은퇴한 거 아니었어??~~ 탑기코 시즌1에선 큰 형님 포지션 겸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을 좋아하는 기믹으로 활약. 그럭저럭 무난한 진행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자동차에 관한 식견이 수준급이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폭스바겐 골프]]를 엔진종류 별로 딱1번만 주행해보고 정확하게 차종을 구분하는 미션을 완벽하게 완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1의 백미로 꼽히는 슈퍼 카 택시 에피소드에서 [[험비]]의 민수형인 허머(Hummer) 택시를 담당하여 주목 받기도. 그러나 개인사정 상 시즌1에서만 나오곤 하차했다. 그러나 후임들이 워낙 평이 안좋은 지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으로 보인다.
* [[군기반장]]이기도 한데, 어느 정도냐면 김갑수처럼 군기반장인데 그 악명이 자자한 [[이경실]]([[이경규]]와 [[홍기훈]]조차도 꼼짝 못한다.)이 알아서 눈치를 볼 정도다.
|| 2010년 || [[악마를 보았다]] || 기획2차장 || 특별출연 || ||
|| [[잠복근무(한국 영화)|잠복근무]] || 차영재[* 승희([[남상미]]분) 아버지] || 특별출연 || ||
|| [[돌려차기(영화)|돌려차기]] || 석 교장 || 특별출연 || ||
||<|2> 2003년 || [[똥개(영화)|똥개]] || 차 반장 || 주연 || ||
||<|2> 2002년 || [[KT(영화)|KT]] || 김차운 || 주연 [*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한일합작품으로, 그는 여기서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된 모종의 인물을 연기한다. 줄거리 내용을 보면 [[중앙정보부]] 요원이라는 듯.] || ||
|| 2017년~2018년 || MBC || [[밥상 차리는 남자]] || 이신모 || 조연 || ||
|| KBS2 || TV소설 새엄마 || 허동택 || 조연 || 사망[* [[전주시]] 출신 알[[부자]]로, 어린 여주인공을 [[임신]]시킨 것도 모자라서 그래 [[재산]]까지 [[사업]]으로 날려먹질 않나, [[노름]]으로 날려먹질 않나... 결국 집안을 대차게 말아먹다가 [[내연녀]]인 오마담과 [[야반도주]]하지만, 노름빚에 쫓겨다니고 결국엔 오마담에게 버림받고 '''길거리에서 [[객사]]한다'''.] ||
- 김재박 . . . . 15회 일치
[목차]
'''[[MBC 청룡]]-[[LG 트윈스]]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김재박]] - [[이종범]] - [[박진만]] - [[강정호]]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야구 간판 유격수 계보의 원조'''
[[MBC 청룡]]-LG 트윈스를 거치면서 선수로서는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선수로서는'''
* [[추신수]]에 대한 검증 드립 또한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상. 도하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추신수를 빼버리면서 '''"추신수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는 드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추신수가 아무리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타국에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에게 덕담이나 위로는 커녕(당시 추신수는 군면제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런 말로 후배 기나 꺾는다며 대차게 까였다. 그 이후 추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거 봐,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했잖아."''' 라며 '''"추신수를 왜 안뽑았냐 하는 말은 야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욕을 사서 먹는게 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마지막에 '추신수 출신 고교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이 유독 유난을 떠는 것 같다' 라고 하며 지역감정 탓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인 말대로 검증된 선수들을 뽑아 치른 아시안게임은 대만전 뿐 아니라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전까지 패배를 당하며 [[도하 참사]]를 야기했다.~~
* 2008년 시즌 종료후 LG구단 자체 행사로 펼쳐진 역대 올스타 경기에서 현역 선수가 무색해질 만큼의 유격수 수비와 송구를 보여주어, '''차기 시즌 LG 주전 유격수는 김재박'''이라는 LG팬들의 자조섞인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 역대 [[LG 트윈스]]의 감독 중에서도 매우 나쁜 성적~~[[666858766|587]]~~을 거뒀지만 나름대로 [[프랜차이즈]] 스타라서 그런지 경질론과 재계약론이 비등비등했던 뭔가 희한한 감독이다. ~~사실 재임 기간 동안 승률은 이순철보다 낮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이순철이 말아먹어서 그렇다고 이유를 대면 된다. 지금까지도.~~ 결국 2009년 9월 26일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만료되어 감독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엘지 팬...아니, 대한민국 야구 팬들한테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까이고 또 까이고 있다.'''
그 내용이 걸작인데, 정리하자면 '''난 잘했는데 [[프런트]]가 못했고, 선수들이 잘 안따라줬고, 구단이 안밀어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나. 모든 책임은 내가 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438&issue_item_id=8531&office_id=295&article_id=0000000306|이런 인터뷰]]. LG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팬들은 김재박이 앞으로 프로구단 감독을 맡기는 힘들다고 단언할 정도로 치를 떨었다. 이 와중에 묻힌 사실 중 하나는 [[이광은]] 전 감독 때부터 이어지던 LG 감독 임기 중 하차를 끝낸 인물이라는 것.
* 2012년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가 감독을 잇달아 경질하면서 현장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러 언론들의 보도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전구장]]과 한화 2군경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것이 목격되면서 사실상 김재박으로 결정된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 한화 프런트는 김재박을 감독 단수 후보로 상부에 보고했지만, 수감중이던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서 그룹 경영 총괄하던 장남이 무조건 최고를 데려오라면서 김재박 대신 [[김응용]]을 찍어서 지시했다는 카더라가 인터넷에 퍼졌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김응룡]]을, [[넥센 히어로즈]]는 [[염경엽]]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지었다.
* 2013년 [[kt 위즈]] 창설로 또다시 감독 후보로 올랐으나, 이번에도 패하여 [[조범현]]이 그 자리를 가져갔다. 이후 사상 최악의 추락을 경험한 기아의 선동열, SK의 이만수 감독이 흔들리면서 기회를 찾는 듯 했지만 두 팀 모두 일단 감독의 임기를 지켜주기로 결정. 당분간 야인으로 남게 되었다. 다만, 2014 시즌이 끝난 후에는 감독 임기가 만료되는 팀이 3팀에다 도중하차 가능성이 있는 팀도 2팀이나 있어서 다시 얘기가 나오는 중. 그러나 기아는 일단 선동열의 임기를 2년 연장했다는 발표를 하고, SK는 [[김용희]]를, 한화는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는 발표가 나면서 야인 생활은 연장될 전망이다. 그리고 기아는 선동열이 팬들의 여론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사퇴를 하면서 또 얘기가 나왔으나 [[김기태(1969)|김기태]]가 선임되었다는 발표가 나면서 무산.
* 후배가 운영하는 군월드라는 기업의 고문으로 있다고 한다. 기온이나 습도의 차이에 따라 투구나 타격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하며 이를 분석해 야구에 과학을 접목시키고 있다고 한다.
* 1998년 8월 26일, [[이승엽]]과 [[타이론 우즈]]가 치열하게 홈런경쟁을 펼칠 때[* 8월 26일 당시에는 이승엽 36홈런, 우즈 29홈런이었다. 이후 우즈는 9월에만 11홈런을 치며 역전하게 된다.] 현대가 삼성에 크게 이기고 있음에도 이승엽 타석에서 [[고의사구]] 지시. 수많은 삼성 관중들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승엽의 홈런을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이승엽을 고의4구로 걸렀고 경기장에는 빈병이 날아들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19대 4로 점수차가 크게 난 상황에서 [[안병원(야구선수)|안병원]]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때 1루주자였던 [[양준혁]]이 도루를 성공하자 보복성으로 고의사구를 던진 것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82800329126008&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8-28&officeId=00032&pageNo=26&printNo=16524&publishType=00010|<스포츠 기자석> 팬들을 죽이는 프로야구]]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09&aid=0002580212|[한국프로야구 난투사](29) 대구 관중들, 현대의 ‘이승엽 고의 볼넷’에 분노 폭발]] 당시 [[허구연]]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9020020912601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9-02&officeId=00020&pageNo=26&printNo=23976&publishType=00010|신문 기고]]를 통해 '우리 프로야구는 이승엽이란 슈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들의 지나친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2000년 5월 19일 한화전, [[박경완]]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5번째 타석에서 교체'''(…). 당시 팀메이트 [[조웅천]]에 의하면 사실은 [[빈볼]]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상대였던 [[한화 이글스]]가 이 한 경기에서만 '''10홈런'''을 쳐맞는 추태를 보이며 처참하게 격침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빈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15년 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데, 2015년 5월 26일 마산 대 두산전에서 [[에릭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 그것도 투런 홈런만 한번 더 치면 되는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는데, 한 타석만 남겨둔 상황에서 7회 대수비 [[조평호]]로 교체된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차피 이긴 게임이었으니 이참에 후보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했다고 밝혔으며, [[에릭 테임즈]]에게 2번을 물어봤는데 테임즈가 쿨하게 승낙해서 교체했다고.]
* 2000년 시즌 후반 [[박종호]]의 타격 1위를 굳히기 위해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5경기에서 박종호를 출전 제외했으며, 10월 12일 SK전에서 타율 2리 차이로 근소하게 추격하고 있던 [[틸슨 브리또]]에게 고의적인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부상시켰다. 결국 열받은 브리또는 "더러워서 타격왕 안 해먹는다" 라며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다음날 출국해버린다.
* 2005년 [[KBO 올스타전]]은 [[장종훈]] 선수생활 마지막 [[올스타전]]이었는데, 당시 장종훈을 계속 기용하지 않다가 9회 마지막 투아웃 이후에, 그것도 원스트라이크 이후에 선수들과 팬들이 웅성거리니까 그제서야 마지못해 내보냄. 이 부분은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다. 2005년 올스타전은 장종훈 은퇴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장종훈이 대타로 나간 타석은 본래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의 타석이었다.[* 조인성이 빠지면 감독추천이었던 [[신경현]]이 포수 마스크를 썼어야 했는데, 당시 [[신경현]]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다.] 당시 중계화면을 보면 김재박 감독도 옆에서 말하기 전까지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머쓱 웃으며 출장을 지시하는데, 그 표정이나 상황이 아무리 봐도 '마지못해서'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 경기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KBO 역사의 한편을 장식한 거포를 은퇴식임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리고' 출전시키지 않은 것도 '마지못해' 내보낸 것 이상으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런데 당시 기사에는 조금 다르게 적혀 있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99326.htm|원문은 여기]]
* 이외에도 2000년 시즌은 특히 기록 밀어주기로 인해 시끄러웠다. [[임선동]], [[김수경]], [[정민태]]의 등판을 조정해가며 결국은 3명 공동 다승왕을 만들어냈으며, 다승왕 나눠먹기라고 크게 비판받았다. [[박종호]] 타격왕 밀어주려고 한 거야 위에 써져 있고, [[박재홍(야구)|박재홍]]의 타점왕 수성을 위해 10월에 들어서면서 득점 찬스 때마다 대타로 내보내 경쟁자였던 [[타이론 우즈]]와 [[훌리오 프랑코]]를 각각 4, 5점 차로 따돌리며 타점왕 수성에 성공시키는 등의 추태를 보여주었다.
- 마기/348화 . . . . 15회 일치
* 알리바바의 "새로운 계획"이란 신드바드와 알라딘의 안을 합친 것으로 상하좌우로 둘러싸인 차원의 벽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 [[아르바(마기)|아르바]]의 무시하는 태도는 여전했지만 어쩐지 그의 말에 점차 귀를 기울인다. 알리바바는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있는가? 분명 자기 한 사람 뿐이다. 아르바가 끼어들어서 자신도 해당하지 않냐고 하는데, 그녀는 정신체로 잔류하는 것이니 알리바바와 경우가 다르다.
자기 개인의 힘만이라면 신드바드는 커녕 아르바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대단한 일을 달성하는 것, 이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르바는 그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하면 결국 네 힘이 아니다"고 하는데, 그의 말은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고 보통을 능가하는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드바드와 아르바 조차 알리바바에게 휘말린 인간이다. FANFAN상회 때도 그렇다. 신드바드는 그때 왜 알리바바를 도왔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끌어냈고 "운명" 조차 초월하는 성공을 거뒀다. 신드바드 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운명을 초월하는 알리바바. 그렇기에 그는 "나도 대단한 인간"이라 자부한다.
* 신드바드와 알라딘이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그 개혁안은 어떤 것일까? 알리바바는 둘의 차이부터 지목한다. 우선 신드바드는 세상을 수직 구조로 보고 "세로로 연결하는 작전"이다. 계속 천장을 뚫고 올라가 거기서 운명을 쥐고 있는 신을 쳐부순다, 더이상 쳐부술 신이 없을 때까지 그걸 반복한다. 결과적으론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가 사라지지만 모든 생명이 루프로 환원된다. 알라딘이 맞장구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데, 알리바바는 일단 제지하고 자신의 설명을 이어간다.
알리바바는 다시 자신이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가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 것은 문자 그대로 "차원의 벽"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차원의 벽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즉 그가 돌아올 때 사용한 "대마법"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 그의 "대마법"은 차원과 차원을 순간적으로 연결하는 마법이었다. 이론적으론 일 일라가 있는 차원 조차 현세로 연결할 수 있고, 알리바바 자신이 실증했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말한다. 그의 주장은 마치 파르테비아의 고층건물처럼 높은 건물을 1층부터 꼭대기까지 주파하는 식이다. 대마법을 사용한다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층 그 자체"를 없앨 수 있으니까. 각 층의 천장이 없어지면 맨 꼭대기에 있던 존재 조차 "같은 층"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모두 같은 층에 있게 되면 누가 누구의 운명을 쥐고 있는건 불가능하다. 신드바드의 방법은 "거대한 힘"이 필요한 반면, 알리바바의 방법은 적은 힘으로도 가능성이 있다.
설명을 듣던 알라딘이 드디어 감을 잡는다. 신드바드의 꿈은 모두를 죽이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알리바바는 이 힘을 "루프의 구분", "가로의 벽"을 없애는 데도 적용할 것이다. 알라딘이 말하지 않았는가? 루프의 구분은 좋지 않다. 알마트란의 사람들, 검은 루프에 동화된 사람들, 알 사멘. 이들과는 죽어서 조차 만나지 못한다. 죽음 조차 각각으로 단절된 세상. 이런 비극이 세상의 절대적인 섭리여야 할까?
- 이광수(배우) . . . . 15회 일치
[목차]
'''아시아 프린스, [[런닝맨]]의 최대 수혜자[* 런닝맨 고정 7인 중 프로그램 시작 당시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으나, 현재는 런닝맨의 실세가 되었다. 특히 해외 팬들의 인기는 가히 압도적. 그에 걸맞게 중국 최대의 SNS인 [[웨이보]] 팔로워 수만 봐도 약 830만 명인데, 웨이보 한류 스타 순위 TOP 100명 중에 12등이다. 런닝맨 내에서도 팔로워가 두 번째로 많은 송지효와 200만 이상 차이가 난다.][* 런닝맨이 시작하던 2010년 7월 기준, [[유재석]]-[[지석진]]은 이미 십수년간 대중에게 인정받은 톱 개그맨이자 MC였고, [[김종국]]은 가수로서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X맨을 찾아라]]과 [[패밀리가 떴다]] 등 예능에서도 맹활약한 스타였다. [[하하(가수)|하하]] 역시 X맨,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 잔뼈가 굵었고, [[송지효]]는 배우 경력이 꽤 길고 패밀리가 떴다 등의 예능 출연 경험 등이 있었다. 이들에 비해 [[개리(리쌍)|개리]]와 이광수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었다. 개리의 경우 그룹 [[리쌍]]은 많은 히트곡과 힙합계에서 오랫동안 쌓아올린 명성, [[길(리쌍)|길]]의 무한도전 출연 등으로 그룹 자체는 유명했지만 개리 개인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이광수는 시청률 20%를 넘겼던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주요 조연으로 나와 갓 이름을 알렸던 때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화제성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이광수도 적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는 덜 알려진 상태였던 것.]'''
상대를 괴롭히는 쪽이든, 본인이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든 예능인으로써 이런 쪽으로 망가지는 것에 거부감 없이 매우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라 런닝맨을 보면 유재석이 이광수를 매우 아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특히나 2018년 쇠퇴기에 이른 무한도전은 여러모로 원초적인 웃음에 대한 슬럼프가 온 와중에 또 다른 주력 방송인 런닝맨에서는 이런 인재가 있으니 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이 괴롭힌다-- 런닝맨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방송 전체적인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 대부분의 웃음이 다 이광수를 통해서 나오고 멤버들도 대부분 다 이광수를 공격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게스트들까지도...특히나 비슷한 캐릭터인 전소민이 투입된 이후로는 '광돌남매' 관계가 구축되며 서로간 시너지가 창출됐다.
거기다가 예능 캐릭터가 독이 된 [[송지효]]와 달리 예능 이미지를 드라마의 배역과 통일시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또한 예능 캐릭터를 일부분을 차용한다. 대표적으로 [[괜찮아, 사랑이야]]의 박수광[* 아예 이광수의 [[본명]]에서 따왔다.]이나 [[좋은 친구들]]의 민수.[* 극중에 민수가 [[실수]]한 장면이 있는데 감독이 맘에 들어서 본편에 넣었다고 한다.]
또 배우로서의 친한 연예인으로는 연예계의 사조직 멤버로는 [[배성우]], [[조인성]], [[송중기]], [[임주환]],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 [[차태현]], [[박보검]] 등이 있다고 한다. 특히, 송중기하고는 동갑내기 절친인데, 런닝맨 때부터 인연이 이뤄졌다. 주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맛집이나 영화 시사회, 팬미팅, 콘서트에 자주 간다고.
의외로 [[무한도전]] 멤버들하고도 친하다.[* 여기서 말하는 무한도전 멤버는 전현직 멤버 모두를 의미한다.] 비록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단, 바보전쟁 특집에서는 본인 명의로 보낸 화환이 있었다.] 런닝맨에 출연하는 [[하하(가수)|하하]]와 [[유재석]]이 무한도전 출연진이다 보니 종종 같이 술자리를 한다. 또한 [[노홍철]] 생일에 축하 메세지를 보내거나 [[정준하]]와 만나서 바보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런닝맨에서 [[길(리쌍)|길]]하고 차 타고 같이 간 적도 있었는데 동작대교에서 버렸다고 폭로했다.
또한 경쟁 프로인 [[1박 2일]] 일부 멤버들과도 친한데 차태현은 김종국의 절친인 동시에 본인 역시 차태현 라인에 속할 정도로 친하다. [[윤시윤]]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 함께 출연하였다. 가끔 1박2일을 케이블 방송으로 모니터링 한다고 언급했다.
|| [[안투라지(tvN)|안투라지]] || 차준 || 주연 ||
||<|3> 2012년 || [[원더풀 라디오]] || 조연 || 차대근 ||
*[[KBS]]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게스트 출연( 영화 원더풀라디오 홍보차에 출연)
*[[KBS]] [[볼륨을 높여요]] - [[정소민]]과 마음의 소리 홍보차 출연
*[[KBS]] [[가요광장]] - [[김대명]]과 마음의 소리 홍보차 출연
* 모바일게임 히어로스 차지
* 타고 다니는 차는 [[토요타 시에나]]인듯 하다.
- 이수민(야구선수) . . . . 15회 일치
||<:> '''프로입단''' || 2014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
[목차]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신인 [[투수]]. 2009년 이후 5년만에 부활한 연고지 1차 지명의 대상자이면서, 같은 년도에 [[kt wiz]]에 1차 지명된 [[박세웅(1995)|박세웅]]과 함께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다. 고교 시절 별명은 [[이계인|모팔모]].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대신 다른 팀의 1차지명 선수들과 달리 계약은 좀 늦어져서, 1차 지명자의 입단 협상 기간인 9월을 넘겼다. 그래서 해를 넘긴 2014년 1월 8일 계약금 2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수민의 계약이 늦어진 건 상원고 감독인 [[박영진(야구)|박영진]]이 제자를 위한답시고 계약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었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228230025367&gid=110341|#]]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이수민 본인과 이수민의 부모님만 돈을 밝혀 계약을 질질 끌었다고 욕을 먹었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다른 신인들과 달리 이수민은 개인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무리 훈련은 물론이고 KBO에서 실시하는 신인선수 교육에도 불참했다.
2014년 전지훈련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했다. 2013년에 많이 던진 탓에 관리 차원에서 입소한 것이지 부상으로 인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 마디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스프링캠프에서 훈련한 후 곧바로 실전에 많이 투입하면 그것도 혹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배려인 듯.
6월 1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10회에 등판해 1점차의 상황에서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볼질]]도 안 하고[* 볼넷을 1개 내줬는데, 좌투킬러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을 고의사구로 걸렀다.] 선배인 [[김헌곤]]이 파울타구를 끝까지 쫓아다가 놓치자 괜찮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등, 신인답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0⅔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1볼넷을 기록한 후 [[김건한]]으로 교체됐고, 팀이 승리하면서 첫 홀드를 챙겼다.
6월 20일 [[NC 다이노스]]전에서 3:3으로 맞선 6회말 2사 2루에서 [[김건한]]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박민우(야구선수)|박민우]]에게 볼넷을 주었으나 후속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플라이로 처리하였고 7회말 타선이 대폭발하며 상대 구원 [[이민호(야구선수)|이민호]]를 박살내버리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다. 여유 있는 점수차에서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류중일]] 감독은 이수민이 9회까지 경기를 책임지게 하였고 이수민은 9회 1실점하긴 했으나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며 경기를 마무리짓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날 기록은 3.1이닝 1피안타 6볼넷 1사구 1탈삼진 1실점. 볼넷이 많긴 했으나 그 유명한 [[김풍기]] 주심의 괴악한 스트라이크존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 어지간한 베테랑 투수도 멘탈이 붕괴될 만한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 공을 던지며 실점을 최소화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한국프로야구/2014년/신인드래프트|2014년 신인 2차지명 회의]] 후 열린 신인 인터뷰에서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열심히 해서 '''왼손 투수가 없으니까''' 빨리 자리잡겠습니다."라고 말해, 본의 아니게 [[장원삼|팀]] [[권혁|선배]] [[차우찬|좌완]][[조현근|투수]][[백정현|들을]] [[박근홍(야구선수)|모조리]] 디스해 버렸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15회 일치
* 하지만 지금의 메라스큐라는 심장을 몸 어디로든 옮길 수 있어 실패, 오히려 "데들리 포이즌"이란 맹독에 당해 불사의 육체 조차 녹아내린다.
*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메라스큐라의 퇴로를 차단, 멀린에게 그녀를 처리할 것을 부탁한다.
* 한편 멜리오다스는 완전히 마신족의 모습으로 변해 에스카노르 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하찮은 인간"이라 부른다.
*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이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부활과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각성으로 기뻐했던 것도 잠시. [[메라스큐라]]가 암담의 고치로 감금했던 [[멜리오다스]]가 심상치 않은 상태로 풀려난다. 그의 등 뒤로 드리운 검은 날개.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조차 위험시 해 "너 조차 어쩔 수 없다"고 경고하나 오만의 죄 [[에스카노르]]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아이 돌보기"를 하러 다가선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난건 코란도의 중심부였으나, 그 힘이 내뿜는 여파는 외곽에 있는 일행에게까지 날아왔다. 멀린은 일찌감치 퍼팩트 큐브로 엘리자베스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를 보호했다. 엘리자베스가 멜리오다스의 상태를 보고 폭주했다고 생각하나 멀린의 말에 따르면 통상적인 폭주와는 전혀 다르다. 그를 감싼 검은 기운이 주체할 수 없이 용솟음쳐서 걸치고 있던 갑옷 조차 하나씩 터져나간다. 엘레인과 상공에 있던 [[반(일곱 개의 대죄)|반]]이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적인 메라스큐라 조차도 일곱 개의 대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그녀는 저 상태의 멜리오다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십계" 통솔자 시대, "십계" 조차 두려워한 "섬멸상태"!
언령에 따라 메라스큐라가 자랑하던 맹독이 순식간이 정화되어 간다. 뼈 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가던 반이 빠르게 회복했다. 메라스큐라가 엘리자베스를 "더러운 여신족"이라 욕했지만 그녀에게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심상치 않은 땅울림과 함께 대지가 뾰족하게 치솟았다. 메라스큐라가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잇따르는 대지의 융기. 메라스큐라가 급하게 몸을 피하며 보니 그것은 대지의 마력이었다. [[디안느]]였다. 농락 당한 원한을 갚으러 왔다. 힘의 정체가 그녀라는 걸 알자 메라스큐라가 코웃음을 쳤다. 거인족은 그저 힘만 셀 뿐인데 지금 상태의 자신은 거인족 조차 힘으로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메라스큐라가 디안느의 대지의 마법을 유유히 피하며 빠르게 쇄도했다.
디안느는 벌레를 잡는 것처럼 가볍게 메라스큐라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상상을 초월한 충격에 메라스큐라는 어이가 없었다. 멍청하게 비틀거리는 메라스큐라의 머리를, 다시 한 번 기데온을 휘둘러 골프공처럼 처날렸다. 이 두 공격으로 메라스큐라는 이미 피투성이. 자랑하던 독니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분명 메라스큐라에겐 거인을 능가하는 힘이 있었지만 디안느는 그것 조차 아득히 초월했다. 마치 거인왕 [[드롤]]을 연상시키는 힘. 메라스큐라는 경악과 함께 날아갔다.
* 놀랄 일은 아직도 한참 남았다. 이번엔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분풀이 차례였다. 그 몸이 바닥에 채닿기도 전에 무수하게 분열된 영창이 벌떼처럼 덮쳤다. "버블비". [[그로키시니아]]에 필적하는 신수의 힘이었다. 긴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더로 잘게 저며진 메라스큐라는 맥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의 말이 맞았다. 멀린을 앞세운 일곱 개의 대죄가 마지막 처분을 내리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멀린은 그녀를 "어리석은 메라스큐라"라고 지칭했다. 대죄를 얕보고 뱀의 형태를 드러낸게 메라스큐라의 패착. 차라리 통상의 모습으로 마력을 발휘했다면 골치 아픈 상황으로 전개시킬 수 있었을 거라고 멀린은 혹평을 내렸다. 반박할 말은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라스큐라는 분함을 억누르고 달아날 방법을 모색했다.
* 그리고 그 마지막 시도는 엘레인이 틀어막았다. 각성한 그녀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몇 개나 생성해서 메라스큐라의 퇴로를 차단했다. "템페스트 펄스". 지금의 그녀로서도 상당히 무리를 요하는 기술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신경쓸 이유가 없었다.
* 메라스큐라가 우왕좌왕하는건 고서에게 좋은 기회였다. 그녀에 머리에 올라타고 장기를 발휘했다. "브레이커 오프". 이제 10초 동안 메라스큐라의 신경이 완전히 차단됐다. 그정도면 충분하고 남는 시간이다.
- 전태일 . . . . 15회 일치
[[1963년]] [[3월]] 대구 청옥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지만<ref>1971년 문교부 시책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분리되기 전까지 한국의 학교들은 중고등학교가 함께 운영되었다.</ref>, 가정 사정으로 1학년 재학 중 그해 [[12월]] 자퇴하였다. 1963년 겨울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아들에게 자퇴를 강요하였다.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재봉]]일만 돌보라고 강요했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에 좌절하여 한때 가출, 집을 뛰쳐나갔다가 3일만에 귀가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를 발길질로 차고 구타하여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아버지에게 재봉 일을 배웠으나 [[1964년]] 동생 전태삼을 데리고 다시 가출, [[서울]] 청계천으로 올라와 서울 평화시장의 의류제조회사에서 시다(견습공)로 일하였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배운 재봉 기술로 서울 평화시장의 피복점 보조로 취업해 14시간 노동을 하며 당시 차한잔 값이던 50원을 일당으로 받았다. [[1965년]] 구두닦이로 구두통을 메고 [[평화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그해 가을 의류제조 회사인 [[삼일사]]에서 시다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삼일사에 입사했다.
[[1968년]]에 우연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ref>[[위기철 (작가)|위기철]]이 쓴 전태일 위인전(산하)에 의하면, [[노동운동]]을 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읽게 되었다고 한다.</ref> 그 뒤 해설서를 구입해 그 내용을 공부하면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의로운 분노를 느끼고,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ref>바보회라는 이름은 전태일의 노동자로서의 반성이 담긴 이름이다.노동자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투쟁을 하기보다는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에 순응한 바보라는 뜻이 담긴 것이다.</ref> 를 창립하여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하고 설문을 통해 현재의 근로실태를 조사하였다.
그는 밤이 새도록 [[근로기준법]] 조문을 찾아 암기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불이익에 저항하였다. 그는 [[동대문구청]]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 대해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근로기준법]]상의 감독권 행사를 요청하기 위해 시청 근로감독관실을 찾아갔지만, 근로감독관은 평화 시장의 참혹한 얘기에 관심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노동청]]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ref name="chungg">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 《한국 현대사 이야기 주머니, 2권》 (녹두, 1993) 265페이지</ref> 가뜩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전태일에게 그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노동이나 근로 기준법조차 사업주들의 편이라는 현실은 그를 한동안 허탈 상태로 몰아 넣었다.<ref name="chungg"/> 그는 청계천 일대의 노동 실태를 직접 조사, 설문하여 이를 토대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노동청]]에 냈으나 돌아온 답변은 경멸과 비웃음 뿐이었다. 처음에 약간 말투가 어눌했던 그는 부랑자로 몰리거나, [[노동청]] 공무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노동자 권리 청원은 언론들도 외면했고, [[경향신문]] 등에만 간략하게 보도되었다.
이에 따라 전태일은 삼동회 회원들을 이끌고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고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경찰의 방해로 플래카드를 빼앗기고 시위가 무산된 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화시장 골목 근처에 있다가 오후 1시 30분경, 시장 골목에서 몸에 [[석유]]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켠 뒤,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왔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시장 앞길을 뛰어다녔다. 이때 전태일의 친구였던 이름 미상의 남자가 그에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조영래]]는 [[1983년]]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며 이 남성의 이름을 김개남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김개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민종덕이라는 설도 있다. 그에 의하면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가명인 전태일의 벗의 이름 '김개남(가명)'은 민종덕의 창작물이라고 본다. 그는 전태일을 자신의 고향, 고부에서 출정한 동학 전봉준에 비견하였고 비슷한 위용을 떨쳤던 김개남을 전태일 친구의 가명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042 전태일·조영래와 함께한 휴가] 오마이뉴스 2007.08.08</ref>'는 것이다.
어머니 이소선이 다시 의사에게로 가서 매달리자 의사는 고개를 흔들며, "그 약이 지금 여기에는 없으니 성모병원으로 옮기도록 하라"고 했다. 이때까지 전태일은 간단한 응급치료 외엔 서너 시간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ref name="chock289"/> 명동 성모병원으로 전태일을 옮기는 앰블런스가 오자, 이때 근로감독관이 다시 나타나 전태일 등과 함께 타고 병원을 떠났다. 차 안에서 전태일은 근로감독관이 어머니와 하는 소릴 듣고 나서, "사람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감사가 끝났다고 그렇게 배신할 수가 있소? 내가 죽어서라도 기준법이 준수되나 안되나 지켜볼 것이오" 라고 마음 속으로 분개하였다.<ref name="chock289"/>
오후 4시경 그는 그는 구급차에 실려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로 다시 후송되었지만, [[11월 13일]] 오후 10시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그는 한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그날 저녁 눈을 떠서 힘없는 목소리로 "배고프다……" 라고 하였다.<ref name="chock289"/> [[11월 13일]] 혼수상태에 있었던 그는 그날 오후 10시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시신은 마석 [[모란공원]]([[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 산)에 안장되었다.
회사의 [[착취]]와 [[해고]]를 당하면서도 단결하여 투쟁할 생각을 못하던 [[노동자]]들이 [[죽음]]으로써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 열사를 보면서 각성한 것이다. [[1970년]] [[11월 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년]] 9월 한국회관(음식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8월 [[신진자동차]] 노조 조합원과 가족 1900여명의 [[파업]]투쟁, [[한진상사]] 파월 노동자 400여명의 [[대한항공]] 빌딩 옥상 방화 농성 등이 주요한 사건들이었다. [[1971년]]의 노동자의 단결투쟁은 1600여건에 이르렀는데, 이는 전년도 165건에 비해 10배가 넘는 규모였다.<ref>지명관,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98~ 101쪽, 다섯수레, 1996년; 한국정치연구회, 《한국정치사》 352~ 353쪽, 백산서당, 1990년; 역사학연구소, 《강좌 한국근현대사》 347쪽, 풀빛, 1995년</ref>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에 후송되었으나, 그는 3~4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그는 치료다운 치료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채 응급실 한 구석에 방치되었다.<ref>대구사학회 편, 《영남을 알면 한국사가 보인다》 (푸른역사, 2005) 430페이지</ref> 그는 병원 도착 직전까지 사망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전태일은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후송되었다가 다시 서울 성모병원으로 후송된 뒤에도 3~4시간 정도 방치되었다고 한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의사는 전태일에게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3~4시간 가량 그를 진료하지 않았다.
입원실에서도 별다른 치료없이 환자를 거의 방치해두다시피 하였다.<ref name="chock289"/> 어머니 이소선은 목이 마르다면서 물을 달라고 수없이 졸라대며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물을 마시면 화기가 입 속으로 들어가서 영영 살릴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물을 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어서 갈증이라도 면하게 해주려고 물을 적셔서 입에 축여주었다.<ref name="chock289"/> 저녁이 되면서부터 전태일은 기력이 탈진해 가는 듯 잠잠히 누워 있었다.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듯하더니 눈을 떠서 힘없는 목소리로 "배고프다…" 라고 하였다.<ref name="chock289"/> 그리고 누구도 전태일의 진료비를 내지 않았다.
* 당시 [[노동자]]들의 참혹한 [[노동]] 현장의 상황이 세상에 적나라하게 알려졌고 이로 인해 전체 노동자들이 겪고있는 인간이하의 고통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일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학생]], [[지식인]]등 각계각층을 망라한 연대는 종전에는 보도조차 하지 않던 [[노동문제]]를 사회 이슈화 했다. [[신문]], [[방송]]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되고 이로써 정치계와 정당들도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에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없게 되었다.
[[2002년]] [[11월 28일]] 그는 보상금 930만원을 받았다. 19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全泰壹)에 대한 보상금은 930만원에 불과한 반면 91년 분신자살한 노동운동가 [[윤용하]]는 2억 3천만원을 받게 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다.<ref name="boboss">[http://www4.hankooki.com//nation/200211/h2002112817562214510.htm 전태일씨 보상금 930만원 지급] 한국일보 2002/11/28</ref> 위원회는 이에 대해 "[[국가배상법]]은 희생 당시 월급액을 기준으로 [[보상금]]을 정하도록 돼 있어 당시 월급이 2만원에 불과한 전태일씨와 90년대 들어 노동자의 월급이 급격히 오른 후의 대상자와 보상금이 수십 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ref name="boboss"/><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128215 민주화 보상금 첫 지급…형평성 논란] 국민일보 2002.11.28</ref>
'''태일의 동무들에 대해''': "나 그대들 없었으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어. 태일이가 죽고 병원에 찾아와서 이제부터 지들이 내 아들이라는거야. 그리고 지금 40년 가까이 지났어. 변치않고 엄마 이상으로 잘해줘. 얼마나 챙겨주는지 몰라. 난 정말로 태일이 친구들을 내 아들이라 생각해. 배곯아가며 두들겨 맞아가며 청계노조를 만들고 지켜냈지. 이들이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태일이와의 마지막 약속도 지킬 수 없었을거야. 난 그냥 미쳐 죽었을테지. 어머니라고 얼마나 생각해 주는지, 순덕이 결혼할때도, 손주들 대학들어갈때도 이들이 태일이 노릇 다했어. 열서너살 먹은 여공들, 그 어린 것들이 얼마나 고생했냐. 이들이 없었으면 청계노조를 지탱해올 수도 없었을꺼야. 명절때마다 한복 차려입고 세배하고 그랬어. 지금 다 시집가고 애낳고 살지만 그래도 떡이랑 사들고 찾아오고 그래 이 엄마 준다고."<ref>오도엽《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177,203,273,285쪽</ref>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15회 일치
Company of Heroes. [[제2차 세계대전]], 그중에서도 서부전선을 배경으로 한 [[RTS]] 게임.
보병 유닛들이 기관총 사격이나 박격포 공격같은 걸 당하면 제압 상태가 된다. 제압된 보병 유닛들은 그대로 포복하기 때문에 생존성은 올라가지만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이 상태에서 추가적인 공격을 당하면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엎드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기 저하 상태가 된다. 이 경우에는 총을 쏠 수 조차 없기 때문에 다른 유닛의 도움을 받거나 후퇴를 통해 본부로 돌려보내야 한다.
차량 유닛들은 뒤에서 공격하면 "후방 피격!"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추가 피해를 받는다. 또한 공격을 받으면 여러가지 상태이상이 생길 수 있다.
기관총 사수가 차량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는 차량에 발생한다. 사수가 사망해 기관총을 사용할 수 없게된다. 개별 업그레이드로 기관총 사수를 올린 차량이라도 수리를 통해 기관총 사수를 소생(?)시켜야 한다.
차량 유닛들이 죽을 때 일정 확률로 일어나는 현상. 그대로 돌진해 어딘가에 꼴아박고 폭발한다. 이 상태의 차량 유닛은 공격할 수 없다. 만약 꼴아박힌게 보병 분대였다면 걔네들한테도 피해가 간다.
숙련도 시스템은 전투 유닛들에게 버프를 주는 지휘관 유닛-중위, 대위, 크롬웰 지휘전차-등이 버프를 주는 유닛들의 전투를 통해 승급하는 방식.
==== 전차군단 ====
어포징 프론트에서 지원되는 캠페인. 주인공 세력은 전차군단. 볼프헤제부터 오스테르베이크까지 독일군이 마켓 가든 작전을 좌절시키기 위해 치룬 전투를 다루고 있다.
테일즈 오브 발러에서 지원되는 캠페인. 막시밀리안 보스 대위가 전차장인 티거 전차가 주인공. 보스 대위와 포수인 조셉 슐츠 하사, 그리고 그 외 티거 전차의 승무원들이 빌레르-보카쥬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를 다루고 있다.
영국군 세력과 이들이 주인공인 "캉 해방" 캠페인, 전차군단과 이들이 주인공인 "마켓 가든 작전" 캠페인이 추가되는 확장팩.
- 한명회 . . . . 15회 일치
그는 종조 할아버지들인 [[한상경]](韓尙敬)과 [[한상덕 (조선)|한상덕]]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종조 할아버지 한상환(韓尙桓)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자망산]]을 찾아가 [[류태재]](柳泰齋)의 문하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친구 [[권람]] 등을 만나 사귀었는데, [[강원도]] 자망산의 유학자 [[류태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 등을 만나 사귀게 된다. 이후 그는 [[권람]], [[서거정]] 등과 함께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웅지를 품게 된다.
[[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영통사]](靈通寺)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상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중추원사]](中樞院使) [[민대생]](閔大生)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남 4녀가 태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조선 예종|예종]]비 [[장순왕후]]와 넷째 딸이 [[조선 성종|성종]]비 [[공혜왕후]]이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같이 불우한 처지였던 [[권람]](權擥)과 친하게 지냈는데, 둘이 함께 오랫동안 마차에 책과 술을 싣고 전국 각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유람을 다녀오기도 했다. 관례를 치룬 뒤에도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오랫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며 [[권람]]과 더불어 전국을 떠돌며 산천을 주유했다.
[[권람]]의 진언을 받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그를 불러들였고, 한명회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였다. 한명회의 진언을 들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상께서는 비록 유충(幼沖)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守成)은 할 수는 있는데, 대신들이 간교하여 [[안평 대군]] 이용(李瑢)에게 포섭되어 선조(先朝)의 충자(冲子)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祖宗)의 선령(先靈)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하고,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자, 한명회는 이에 감격하여 [[쿠데타|반정]](反正)의 책략을 남김없이 말하였다.
[[1456년]](세조 2) [[2월]] [[성삼문]]과 [[집현전]] 학사들이 [[조선 세조|세조]] 3부자를 연회장에서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후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을 좌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조선 세종|세종대왕]]으로부터 [[집현전]] 학사들이 [[조선 단종|단종]]을 부탁한다는 유지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명회는, 연회장에 별운검으로 임명된 [[성승]], [[유응부]], [[하위지]] 등을 의심하고 이들의 출입을 차단한다.
[[6월 1일]] [[명나라]]의 사신이 [[한성부]]에 도착하자 운검(雲劒)들이 출입하려 하였다. 그러자 그는 미구의 사태를 대비해,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는 [[광연루]]에 사신이 많아서 자리가 좁다는 이유로 세자는 연회에 참석하지 말 것과, [[홍달손]]과 [[홍윤성]]을 시켜서 병력을 동원할 것이니 운검의 제장(諸將)들도 입시하지 못하게 하기를 주청하여 [[조선 세조|세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윤허하였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이 운검을 차고 곧장 들어오려 하기에 운검은 안 들어와도 된다며 제지하였다. 이에 거사의 실패를 우려한 운검의 병력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민첩하게 피하였다.
셋째 딸을 [[조선 세조|세조]]의 차남 [[조선 예종|해양대군]]에게 출가시켰으나, 셋째 딸은 아들 인성대군을 낳고는 산욕으로 요절한다. 외손자 [[인성대군]] 마저 요절하면서 한명회는 [[조선 예종|해양대군]]과는 다소 껄끄러운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조선 예종|해양대군]]이 곧 [[조선 예종|예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조선 세조|세조]]의 장자 [[조선 덕종|의경세자]]가 요절하고 그의 빈인 [[소혜왕후|수빈 한씨]]는 궁궐에 살아도 좋다는 시아버지 [[조선 세조|세조]]의 배려를 사양하고 사가로 물러나 있었다. 그는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친정과는 10촌도 더 차이가 나는 먼 친척이었으나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집에 자주 방문했는데, 그는 수빈 한씨에게 야심이 있음을 간파하였다. 한명회는 [[소혜왕후|인수대비]]에게 사돈을 맺는 조건으로, 그녀의 아들을 임금으로 만들겠다고 제의를 한다.
이때 그는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자 자신의 넷째 사위인 [[조선 성종|자을산군 혈]]을 적극 지지하여 차기 왕으로 즉위시킨다. [[1469년]] [[조선 성종|성종]]이 즉위하자 [[이조판서|판이조사]]와 [[병조판서|판병조사]]를 겸했고 성종의 즉위를 지지한 공로로 순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洪弘佐理功臣) 1등의 공신호를 받았다. 이어 그해 [[춘추관]]영사로서 [[최항 (1409년)|최항]](崔恒), [[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는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측근이 된 이후 계속 [[조선 세조|세조]]의 책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고, 세조의 즉위 이후 성종조까지 고관요직을 역임, 군국대사에 많이 참여하였는데, 세조는 특히 그를 총애하여 "나의 장량(張良)" 이라고까지 하였다. 또한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성장했지만 스스로 정난공신, 좌익공신, 익대공신, 좌리공신 등 4차례나 공신으로 책록되어 가세를 일으키고, 많은 [[토지]]와 [[노비]]를 상으로 받아 말년에는 권력과 함께 호부(豪富)를 누렸다.
[[1484년]](성종 14년) 70세가 되어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한편 그의 정자 [[압구정]]이 화려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명나라]] 사신과 [[일본]]의 사신들이 와서 구경하려 하자, 그는 궁중에서만 쓰는 [[용봉차일]](龍鳳遮日)을 쳐서 화려하게 꾸미려 하였다. 그러나 [[조선 성종|성종]]이 허락하지 않자 이에 노골적으로 좋지 않은 기색을 보이게 되었다. 이어 [[대간]]과 [[사헌부]]로부터 무례하다는 이유로 탄핵 대상이 되어 외지로 유배되었으나 배소로 가던 도중 사면되어 곧 풀려났다.
** 차녀: 한씨 - 영천부원군 [[윤사로]]의 장남 영천군 윤반(鈴川君 尹磻)의 처. 슬하 2남 5녀.
** 차남: 한복(韓福)
후배 연일 정씨는 통의원사(通議院事) 정종화(鄭宗和)의 딸이며 포은(圃隱) [[정몽주]]의 손녀이니 그가 서북 양도의 관찰(西北兩道 觀察)사로 재직할 때 마음과 몸차림이 단엄한 것을 보고 함께 왔다. [[전주 이씨]] 선천공조의 딸은 아버지의 이름이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 그가 서백(西伯)이 되었을 때 이름 미상의 전주 이씨에게 사위 되기를 위협 받았는데 한명회가 승낙하지 않자, 그가 칼을 들고 사생결단하여 부득이 배필로 취하여 데려왔다.
왕조실록에 의하면 밀양 사는 박씨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억지로 이혼시키고 조카의 아내가 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세조조(世祖朝)에 한명회(韓明澮)가 한언(韓堰)의 숙부로 밀양 사는 박씨가 재산이 많다는 말을 듣고 세조에게 청하여 전부(前夫)와 이이하게 하고 언의 아내로 삼았는데, 성종조에 이르러 무릇 재가(再嫁)한 사족은 청현직(淸顯職)에 서용하지 않게 되자, 홍윤(弘潤)이 형조의 낭관이 되어 대간의 논박을 받고 체직당하였기 때문에 상소하여 원통함을 호소하였으나, 끝내 변명(辨明)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현아 . . . . 15회 일치
이후 2009년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포미닛]]의 멤버로 합류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 1월에는 첫 솔로 싱글 〈[[Change (현아)|Change]]〉를 발매했고, 골반춤이라는 안무를 유행시키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했다. 이어 2011년 7월에는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차트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장현승]]과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해 2014년까지 활동하였다. 2012년 10월 두 번째 EP 음반 《[[MELTING]]》을 발매해 타이틀곡 〈Ice Cream〉으로 활동했고, 2014년 7월 세 번째 EP 음반 《[[A Talk]]》를 발매해 타이틀곡 〈빨개요〉로 활동했다. 2015년 8월 네 번째 EP 음반 《[[A+]]》을 발매했다. 2016년 그룹 [[포미닛]] 해체 후 8월 1일 다섯 번째 EP 음반 《[[A`wesome]]》을 발매했다. 2017년 5월 [[펜타곤 (음악 그룹)|펜타곤]] 멤버 후이, 이던과 함께 [[트리플 H (음악 그룹)|트리플 H]]로 활동 하였다. 8월 29일 여섯 번째 EP 음반 《[[Following]]》을 발매했다. 12월 4일 두 번째 싱글 앨범 《[[Lip & Hip]]》을 발매했다.
이후 [[현아]]는 [[JYP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원더걸스]]의 두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그룹에서 랩퍼를 맡았다.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 싱글 〈[[The Wonder Begins]]〉를 발매했고, 타이틀 곡은 〈Irony〉였다. 파워풀한 랩과 춤으로 "야생마"라는 별명도 얻었다.<ref name="as">{{뉴스 인용|저자=남안우 기자|제목=‘원더걸스’ 김현아, 건강상의 이유로 팀 탈퇴|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73017515011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7-30|확인날짜=2008-12-31}}</ref> 2007년 5월 24일에는 [[안소희|소희]], [[브라이언]]과 함께 《[[쇼! 음악중심]]》 MC로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소희·현아 ‘쇼!음악중심’ 새MC|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5242109433&sec_id=54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조상인|날짜=2007-05-24|확인날짜=2014-06-29}}</ref> 하지만 MC에서 하차하고 나서 7월 [[원더걸스]]의 광고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탈퇴설이 돌았다.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멤버 교체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며 요양이라고 말했다.<ref name="세계일보">{{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멤버교체 위기 - 현아 이탈하나|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7/31/20070731002528.html|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린|날짜=2007-07-31|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원더걸스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현아, 건강상 이유로 팀 탈퇴|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73016565270766&type=1&outlink=1l|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7-30|확인날짜=2014-06-29}}</ref> 실제로 [[현아]]는 [[만성장염]]을 앓고 있었고 세 번이나 탈진으로 쓰러지는 등 부모님의 반발을 샀다.<ref name="세계일보"/>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영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식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반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남연희|제목=김현아 '골반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백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2011년 4월 5일 [[포미닛]]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4Minutes Left]]》를 발매해 타이틀 곡 〈거울아 거울아〉로 활동했다.<ref name="아시아경제"/> 또한 비슷한 시기 [[임정희]]의 〈[[Golden Lady]]〉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임정희 ‘골든 레이디’ [[포미닛]] [[김현아]] 랩 피처링 지원사격 |확인날짜=2011-07-24|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030905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1-05-03}}</ref> 2011년 6월부터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6월 솔로컴백 동시 '댄싱위드더스타' 출연|확인날짜=2011-06-04|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5220943330511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영웅|날짜=2011-05-22}}</ref>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다섯 번째 탈락자로 결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댄싱 위드 더 스타’ 탈락..심사위원 “심사할 수 없는 지경”|확인날짜=2011-07-24|url=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78679§ion=sc4|출판사=브레이크뉴스|저자=한누리|날짜=2011-07-16}}</ref> 현아는 2011년 7월 5일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다. 이에 앞서 2011년 6월 30일 발라드풍의 수록곡 〈[[A Bitter Day]]〉를 공개했다.<ref name="Pop!">{{뉴스 인용|제목=김현아, 30일 발라드 ‘A Bitter day’ 선공개…‘솔로 출격’ 신호탄|확인날짜=2011-06-29|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629111326420&ts=130703|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곽민구|날짜=2011-06-29}}</ref>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가온 디지털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f name="가온">{{웹 인용|url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Bubble+Pop%21&x=43&y=19|제목 =가온 차트 > Bubble Pop! |출판사 =[[가온 차트]]|확인날짜 =2011-07-19}}</ref> 그러나, 201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Bubble Pop!"의 안무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인다며 안무를 수정할 것을 요정했지만, 소속사측은 안무를 수정하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활동중단 '또 선정성 논란, [[김현아]]가 추면 다 야해' |확인날짜=2011-08-05|url=http://artsnews.mk.co.kr/news/163166|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하얀|날짜=2011-08-05}}</ref> "Bubble Pop!"은 평론가들로부터 혼합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즘》에서 "캔디 팝의 요소가 잘 녹아들었음에도 제대로 방점을 찍지 못해 솜사탕같은 트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ref>황선업.[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3086&bigcateidx=8&subcateidx=10&cTp=4 이즘 - Bubble pop!] 《이즘》. 2011-07 작성. 2011-12-16 확인.</ref> 영국의 《팝저스티스》는 "오늘의 노래"에 선정했고,<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英 팝사이트 '오늘의 노래' 선정… "가장 섹시" 찬사 |확인날짜=2011-07-22|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107/sp2011072010252095510.ht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성한|날짜=2011-07-20}}</ref> 미국의 《스핀 매거진》은 "2011년 올해의 베스트 노래 20" 순위 중 〈Bubble Pop!〉을 9위에 선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美스핀 선정 '2011 베스트송20'|확인날짜=2011-12-16|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121209445192085&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박영웅|날짜=2011-12-12}}</ref> 이후 2011년 8월부터 [[도끼 (가수)|도끼]]가 피처링한 노래 "[[Just Follow]]"로 후속곡 활동을 잠깐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김현아 just follow 무대 공개, 선정성 '제로' 카리스마 '폭발' |확인날짜=2011-08-13|url=http://artsnews.mk.co.kr/news/164401|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풀잎|날짜=2011-08-13}}</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백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남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남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상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남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 강구열 . . . . 14회 일치
2005년 하반기 드래프트에서 POS(현 MBC게임 히어로)의 4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이후 두 선수는 한동안 어색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MBC게임의 스타 무한도전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또한 MBC게임 히어로-온게임넷 스파키즈간의 이벤트전인 라이벌 배틀 브레이크에서도 둘은 줄곧 맞대결했고, 팬들 역시 이들의 경기를 '열창록'이라 칭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강구열과 김창희의 대결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2008년 초에 열린 올스타 스킨스 매치로, 이날 경기에서 김창희는 강구열을 7:0으로 꺾으며 500만원의 상금을 차지했다.
본래 '강라인'이란 호칭은 실력보다 부풀려진 성적을 낸 선수들을 조롱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수장'으로 불린 강구열의 유쾌한 성격, 그리고 매체 인터뷰에서 보인 겸손한 모습에 팬들은 점차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DC 인사이드엔 '강구열 갤러리(일명 날갤)'가 생기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많은 팬들은 날갤 등을 통해 '강수장'과 활발히 교류하며 '충성'을 다하고 있다.
** 2. 이 후 차기 시즌에서 광속 탈락해야 하는 것.
* 강구열([[MBC게임 히어로]]) : 2009년 9월 은퇴. 강라인의 수장. [[곰TV MSL 시즌2]] 8강에 오르며 시드 획득. 8강에선 송병구에게 0-3으로 완패하며 탈락.차기 시즌 32강에서 손주흥과 김윤환에게 패하며 탈락. 또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오영종]]과 [[한동훈 (프로게이머)|한동훈]]에게 연패하며 탈락.
* [[주현준]]([[CJ 엔투스]]) : 2009년 6월 은퇴. [[곰TV MSL 시즌3]] 8강에 오르며 시드 획득. 8강에선 당시 신예였던 [[박성균]]([[위메이드 폭스]])에게 1-3에게 완패하며 탈락. 차기 시즌에 Face Off의 저주에 걸리면서 32강에서 신희승, 박찬수에게 패하며 탈락. [[아레나 MSL 2008]]에서도 손주흥에게 패한뒤 김윤환(STX)을 잡아냈으나 박성균에게 패하며 탈락.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16강에서 허영무에게 패배하며 탈락.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1승 2패로 탈락.
* [[신희승]]([[이스트로]]) : 2010년 6월 영구제명. 신희승의 강라인 가입은 험난(?)했다. [[EVER 스타리그 2007]] 4강 2007에서 [[이제동]]([[르까프 오즈]])에게 0-3으로 완패, 3,4위전에서 김택용과의 졸전 끝에 2-3으로 패배했지만 시드가 없었다. 당시에는 스타 챌린지를 통과한 선수가 D조의 시드권을 잡았기 때문에 신희승은 시드를 잡지 못했다. (스타챌린지가 없어지면서 시드권은 박카스 이후 공동 3위에게 넘어감) [[곰TV MSL 시즌4]] 8강에서 마침내 시드를 딴 이후 [[허영무]](삼성전자 칸)에게 0-3으로 완패하는 '삼고초려' 끝에 강라인의 일원이 되었다. 항간엔 "신희승의 네임밸류는 기존의 강라인과 다르다"는 반론이 일어 논쟁에 휩싸였으나, 신희승 본인이 "나는 강라인이다"고 인정하면서 '공인' 강라인이 되었다. 팬들은 전략가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 '와룡희승'이란 애칭을 붙였다. 이 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선 [[안기효]], [[김민제 (프로게이머)|김민제]]에게, 아레나 MSL에서 고인규, [[박찬수]]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최종전에서 이제동에게 발목을 잡혔다.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와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는 각각 16강에 진출하였다.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1승 2패로 탈락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또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2패로 탈락했다.
* [[손찬웅]] (현 [[화승 OZ]]) : 2011년 7월 은퇴. 손찬웅의 행보는 강라인이 되는 데 정말 완벽했다. 2007 스타챌린지 S2에서 손찬웅은 [[변길섭]]과의 최종전에서 변길섭을 꺾고 박카스 [[스타리그]]에 올라가 김동건, 박명수, 박영민에게 패하며 탈락했고, 그 다음 시즌 [[에버 스타리그 2008]] R1에서 [[이제동]]과 [[한동욱]]을 떨어트리는 충격적인 대진으로 2R에 진출했다. 그 후 R2에서 [[김택용]], [[박성균]], [[박영민 (1984년)|박영민]]과 같은 조가 되어 김택용과 박영민을 이기고 박영민과 8강에 진출하며 김택용과 박성균의 진출을 기대하였던 관계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또 8강에서는 강력했던 로얄로더 후보 [[허영무]]를 2:1로 역전시키며 4강에 진출하여 시드를 얻었다. 하지만 4강에서 [[프로토스]]전을 제일 잘 하기로 유명한 [[박성준 (1986년)|박성준]]에게 3:1로 패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탈락하였으며, 끝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16강에서도 [[송병구]], [[염보성]],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전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강라인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인크루트 스타리그 3패 탈락의 영향으로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김택용, 박영민에게 2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이 후에도 서바이버 시즌 3에서도 [[박태민]]과 STX의 저그 신예 [[조일장]]에게 연패하며 탈락, 강라인의 일원임을 입증했다. 이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박태민]]과 [[서기수]]를 이기고 16강에 진출은 하나 [[문성진]], [[송병구]],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무난한 3패로 광탈하며 강라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차기 시즌에서는 36강에서 탈락하며 본선 진출 실패. 그 뒤로는 스타리그에도 MSL에도 복귀하질 못하였고, 계속 탈락만 하다가 2011년 7월 은퇴.
* [[문성진]]([[하이트 스파키즈]]) : 2010년 6월 영구제명.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에서 도재욱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충격적인 데뷔를 한 끝에 4강까지 올라가는 활약을 하면서 [[EVER 스타리그 2009]] 4번 시드를 확보하지만 3패로 16강에서 광속 탈락, 강라인에 가입하게 되었다. 차기 시즌 36강에서는 [[김구현]]에 패하며 탈락.
* 그밖에 [[박카스 스타리그 2008]] 4강에서 완패한 [[박찬수]]([[KTF 매직엔스]], 현재 영구제명), [[네이트 MSL 2009]] 8강에서 셧아웃당한 [[김대엽]]([[KT 롤스터]]), [[빅파일 MSL 2010]] 8강에서 [[김택용]]에 1대3으로 패해 탈락한 [[염보성]]([[제8게임단]]) 역시 강라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네임밸류가 높다는 이유로 인해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박찬수는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우승함) 최근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박찬수에게 셧아웃당한 [[김명운]]([[웅진 스타즈]])등이 신규 멤버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8강에 진출하면서 광속 탈락을 피해가 가입 실패하고 말았다. 이중 1명은 영구제명, 1명은 사실상 은퇴. 또한 [[박카스 스타리그 2010]] 4강에서 [[송병구]]에 셧아웃당한 [[김현우 (프로게이머)|김현우]]([[STX 소울]])도 차기 [[진에어 스타리그 2011]] 8강에 진출해 강라인 가입에 실패했다. [[유병준 (1993년)|유병준]]([[삼성전자 칸]])도 [[ABC마트 MSL 2011]] 8강에서 [[이제동]]에게 3대1로다가 패하면서 다음 MSL에서 광탈하면 강라인이 될 뻔했으나, MSL이 없어지면서 유병준도 강라인 가입은 면했다. 유병준도 2012년 6월 은퇴. [[진에어 스타리그 2011]] 4강에서 [[허영무]]에 셧아웃당한 [[어윤수]]([[SK Telecom T1]])도 강라인이 될 뻔했으나 [[티빙 스타리그 2012]] 8강에 진출하면서 강라인 가입은 면했으며, [[김정우 (프로게이머)|김정우]]도 본래 강라인이었으나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1]]에서 우승하면서 탈퇴가 확정됐고, 영구제명된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준우승하면서 탈퇴, 임의탈퇴한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도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 준우승하면서 탈퇴, [[이영한]]도 8강에 3전전승으로 진출하면서 강라인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 강동우 . . . . 14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8년/신인드래프트|1998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
[목차]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단국대학교|단국대]]를 졸업하고 [[199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삼성의 외야에는 [[최익성]], [[신동주(야구)|신동주]], [[양준혁]]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전년도 맹활약했던 최익성-신동주 우타 외야 라인에 부진 및 부상이 닥치자 데뷔 첫 해 주전 자리를 꿰차며 맹활약했다. 그 해 신인왕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고졸로 12승을 거둔데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누린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김수경(투수)|김수경]]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줬다. 또한 그 해 개최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어 있었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 토박이인지라 프랜차이즈성도 탁월하여 향후 삼성의 주전 [[외야수]]가 될 것으로 기대받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16일]] 벌어진 사건으로 인하여 강동우의 지독한 불운이 시작되었다.'''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상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상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를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097584|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이 부상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 어쨌거나 이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조범현]]의 양아들이라는 욕을 대차게 먹으면서도 시즌 초반 잠깐 동안은 꾸준히 기용되었지만 타율 1할대를 기록하였고, 부상당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커리어 로우 기록을 남기며 줄곧 2군 신세를 졌다.(...)
후반기에 타율을 많이 끌어올린 덕분에 타율 0.288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 내 '''타자 고과 1위(!!)'''에 홈런 개수로 커리어 하이고, 타점도 순도높은 타점들이 상당히 많아 38살 나이임에도 차기 시즌에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한편 [[FA 제도|FA]] 대상자였지만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봉은 고작 5천만원이 올랐는데, 강동우의 생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인상액이 너무 적다는 인상이 짙다. 물론 노장선수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은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시기 한화 프런트진의 연봉 인상 정책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강동우는 물론이고 [[이대수]], [[박정진]] 등 A+급 활약을 보인 선수들의 연봉 인상폭이 똑같이 5천이었다. 이는 선수들의 동기부여 실패로 이어졌고, 2012년 한화가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는데 적지 않은 일조를 한다.
[[2015년]]에는 2군 주루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는데, 기동력 강화 차원에서 [[4월 7일]]에 1군 1루 주루코치로 콜업되었다. 대신 [[장원진]] 타격코치가 말소되고 기존의 1루 주루코치이자 수비코치 겸임이었던 [[강석천]]은 수비코치만 맡는다. [[장원진]] 타격코치는 [[박철우(야구)|박철우]] 타격코치를 보조하기로 했다.
- 승리(빅뱅) . . . . 14회 일치
[목차]
예능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잘하는 편이나, 가끔 의욕이 너무 넘쳐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근래에는 연차가 되면서 --나이가 들면서-- 치고 빠지는 것에 능숙해졌으므로 원만한 진행을 한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잘한다. 특히 일본어는 간사이벤(오사카 사투리)까지 구사할 정도로 유창한 실력이다. 이는 멤버 형들의 특색이 너무나 뛰어나서 본인만의 특기를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이라 한다.
연차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형들이 넘사라 그렇지 어디가서 꿇릴 스펙은 아닌데 형들이 꾸준히 놀려먹는다. 근데 이게 빅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고 승리에 대해 오해하게 만들 때가 있어서 문제다. --[[황광희]]-- --우리 승리 노래 잘해--
승리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AND HERE는 와플을 주로 판매하는 카페로, 와플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 [[벨기에]]까지 다녀왔다고 라디오 스타에서 직접 이야기하였다. 그 외에 [[FT아일랜드]]의 최종훈과 함께 운영하는 밀땅포차와 라운지 바인 몽키 뮤지엄을 비롯해 뷰티 사업에 투자하는 등[* [[http://hei.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1195704H|청담동 장악…빅뱅 승리의 사업은 계속된다]] ] 요식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승리는 음반발매 후 [[멜론]]차트에서 실시간 진입순위 13위를 달성하였다. 아이튠즈에서는 앨범차트 기준으로 아르메니아, 브루나이, 캄보디아,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마카오, 말레이시아, 멕시코, 페루,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등 15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중국차트에서는 발매 당일 주간 1위를 차지 하는 글로벌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또 보이그룹 개인 브랜드평판 2위에 올랐다
그 덕분인지 현재 음원 순위에서 선방하고 있다. 가온 차트 기준 최고 순위는 13위로 그리 높지 않지만 곡이 나온지 10주가 넘어서도 30위권 안에서 놀고 있다.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연간 차트 진입도 가능할 듯하다.
* [[복면가왕]] 82차 경연(가명: [[우리 엄만 내가 제일 예쁘대요 고슴도치]])[* 참고로 라디오에서 밝히기를 3라운드 준비곡은 김준수의 'Beautiful thing'을 부를 예정이었다고 한다. [[http://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57160#08e1|관련 기사]] 그 외에도 보면 알겠지만 복면가왕에서도 빅뱅의 노래들이 자주 경연되었으며 대표적으로 [[거짓말(빅뱅)|거짓말]], [[FANTASTIC BABY]], [[뱅뱅뱅]], IF YOU 등이 있다.]
* 심지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차피 잘못할 거라며 아무 이유없이 혼내기도 한다고 한다.
* 중국 영화의 주연 자리를 꿰차게 해줬다.
- 식극의 소마/228화 . . . . 14회 일치
* 양측 인원 모두 5명씩 남은 채로 연대식극 1일차 종료. 그런데 소마는 아예 미리 대전자를 확정해 놓는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는데.
* 2rd Bout종료. 그 결과는 3 대 0. 전패라는 충격적인 결말. 최종스코어는 물론 세부평에서 조차 단 한 점도 따내지 못한 완패였다. [[미마사카 스바루]]가 반발하고 있었다. 어째서 완벽한 트레이스에 어레인지까지 가미한 자신이 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심사한 샤름은 담담한 어투로 패인은 "칼집 넣기"라고 단정했다. 더욱 모를 말이었다. 칼집이라면 미마사카도 철저하게 트레이스했다. 초밥에서 칼집은 먹는 순간 밥과 재료가 녹아 섞이는 것 같은 식감을 주며 참치의 맛을 입안 전체로 퍼뜨린다.
* 미마사카의 트레이스 상대였던 [[사이토 소메이]]는 뭐가 문제였는지 짐작이 갔다. 확신에 가까웠다. 미마사카는 그가 놀랄 정도로 완벽한 트레이스를 보여줬지만 딱 한 가지를 간과했다. 지금 만든 초밥은 보통 에도 초밥이 아니라 "알스시"였다는 것. 그 말을 듣자 미마사카도 짚이는 데가 생겼다. 칼집을 너무 넣었다. 크기가 작은 알스시에 보통 초밥과 같은 칼집을 넣으면 재료가 너무 빨리 녹아버려서 충분히 여운을 주지 못한다. 사이토는 그가 미처 몰랐던 것도 그의 탓은 아니라고 했다. 이건 얼마나 "스시도"를 익히고 단련했는가 하는"경험의 차이"였으니까. 이제 미마사카도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러나 2rd Bout에서 가장 주목할 음식은 [[안(식극의 소마)|안]]이 심사한 [[츠카사 에이시]]의 "네 가지 녹차를 사용한 그라데이션 퓌레 스프"였다. 각기 사용한 녹차와 가장 상성이 좋은 채솟, 버섯, 콩을 사용한 퓌레를 한 접시에 담은 요리다. 각각의 퓌레는 옥로와 아티쵸크, 찐 전차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현미차와 병아리콩, 전차와 포르치니의 네 가지 조합.
병아리콩은 물에 삶아서 준비하고 아티쵸크와 아스파라거스는 손질해서 슬라이스로 썬 뒤 버터로 소테한다. 살짝 익으면 각각 조합된 차와 함께 푸드 프로세서로 퓌레 제작. 마지막엔 버터와 후추소금으로 간을 해서 크넬 모양으로 장식. 거기에 함께 나온 카푸치노 스프를 곁들여 먹으면 맛의 그라데이션이 놀랍도록 깊어진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졌던 퓌레의 맛이 한데 모여 부드럽게 연결되는 풍미.
안은 [[쿠가 테루노리]]의 흑초 탕수육을 맛봤을 때만 해도 쿠가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츠카사의 퓌레를 먹은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이 요리는 쿠가의 요리를 능가하는 임팩트가 담겨 있었다. 주제가 결정되고 조리 시작까지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깊고 다층적인 맛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안은 츠카사 쪽이 쿠가보다 녹차라는 소재를 다루는 격이 훨씬 높다고 평했다.
* [[잇시키 사토시]]는 냉정하게 승부를 관망하는 에리나를 보고 대장으로 풍격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흐뭇해했다. 한편 결국엔 지고 만 쿠가는 돌아오자 마자 벌렁 드러누워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에리나가 충분히 공헌했다고 말해줘도 "위로는 됐다"며 생떼를 부렸다. 결국 투정을 감당하는건 소마의 몫이었다. 어깨를 주무르라는 둥, 땀을 닦으라는 둥, 차를 내오라는 둥 실컷 소마를 부려먹고 나서야 조금 잠잠해졌다. 하지만 소마가 기껏 차라고 가져온게 츠카사가 우려놓은 거여서 다시 발끈. 한동안 그 차를 들여다 보던 쿠가는 냉큼 들이켜 버렸다. 그는 츠카사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하던 표정을 다시 떠올렸다. 따지고 보면 그의 목적은 거의 완수된 거나 다름 없었다. 츠카사에게 자신을 각인시킨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말이다. 쿠가는 츠카사의 곤란한 표정을 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오늘에 한해서는.
소마의 말에 타쿠미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동의했다. 반역자팀의 3rd Bout 출전자는 이 셋으로 확정. 1학년 삼총사가 나간다. 잘 부탁한다고 외치는 소마. 이걸로 양측 모두 5명의 선수를 남긴 채, 연대식극 제 1일차가 종료됐다. 그런데 소마는 또다른 제안을 했다.
- 이선희 . . . . 14회 일치
그녀는 대학 시절이던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학과 선배 임성균과 "4막 5장"이란 팀으로 출전하여 《J에게》를 불렀다. 애초에 2학년 때 노래가 하고 싶어 작곡가 [[장욱조]]의 음악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어떤 무명 작곡가([[이세건]])가 말하기를 "아직도 내가 만든 노래를 아무도 아니 불러 준다."며 [[악보]]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그 악보 뭉치를 주우면서 차라리 마음대로 불러도 되는지 물어 보아 결국 허락을 받았고, 그 더미 속에 있던 노래가 바로 <J에게>였다. 3년이 지난 이후 1984년, 이 노래로 참가를 하여 MBC 강변가요제 대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으며 데뷔하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쉬한 매력으로 ‘언니 부대’가 만들어졌으며, 특히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 등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다.
아직 정규 앨범 한 장 없이 오직 <J에게>란 곡 하나만으로도 11월 25일부터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여 골든컵을 차지하였고, 1984년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1984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85년 첫 음반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고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 등의 곡도 히트하여 KBS 가요 톱텐에 자신의 노래 7곡을 진입시키는 등 큰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로 1985년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하였다.
1986년 3집 앨범 《[[알고 싶어요]]》가 발매되었다. 1987년, 대표곡 <알고 싶어요>가 KBS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하며 골든컵을 두 번째로 차지하고 한 달 방송 횟수 107회, MBC 라디오 음악차트에서 15주 1위 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 외 <영>, <어둠은 걷히고>, <청아한 사랑> 등이 히트했다. 또한 학생가장돕기를 위한 전국 투어를 계속 진행했다.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에서는 <나의 거리>가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로 4번째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한바탕 웃음으로>는 1990년에 3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1989년, 1990년 한 앨범으로 2년 연속 골든디스크상을 차지했다. 그 외 <겨울애상>,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등의 노래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2016년에는 [[SBS]] "판타스틱 듀오"의 첫방송에 출연하여 5주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최고의 아이돌 가수들과 경쟁하는 모습에 "역시 이선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016년 9월부터 2017년 3월까지 "The Great Concert LEESUNHEE" 전국 13개도시 23회 공연을 전회 매진으로 진행하였고 2017년 5월 미국 LA와 9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해외투어 공연을 열었다.
* [[1984년]] [[삼양식품]] 포장마차 (남성 그룹 [[송골매 (밴드)|송골매]]와 함께 출연)
* [[10월 26일]] 가배상 수상, TV가이드 10대 차트 최다곡 기록
* [[2월 23일]] '괜찮아' TV가이드, 뮤직박스 차트 1위
* [[4월]] ~ [[6월]] '나 항상 그대를' TV가이드, 뮤직박스, DJ연합회 등 각종 차트 1위
* [[5월]] ~ [[9월]] '나의 거리' TV가이드, 뮤직박스, DJ연합회 등 각종 차트 1위
- 이순재(1935년 10월) . . . . 14회 일치
[목차]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 이 시절의 철학계는 [[독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독일어가 필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전공책들을 '''[[독일어]] 원서'''로 읽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독일어]] 실력이 동년배에 비해 썩 나은 편임을 [[꽃보다 할배]] 스위스편에서 독일어로 쓴 지명을 부드럽게 읽음으로써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 팬들과 일본어로 문제 없이 소통 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명문대 출신들은 비록 회화는 어렵더라도 왠만한 일본어 원서는 그냥 읽을만큼 일본어가 능통하다. 애당초 대학교 교재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거나 국내에서 쓸만한 교재들이 쓰이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도 [[박정희]] 군부독재시절이라 마땅히 읽을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자본론을 일본어로 읽었다.]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연극부 부원 중에는 --요즘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채현국 이사장을 건너 [[고건]] 전 국무총리와도 아는 사이. 사실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 박사가 이순재를 가르쳤던 주임교수였다. 한 번은 4학년 때 연극 합숙 연습 때문에 수업을 두 차례 빠져야 해서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라며 흔쾌히 봐주었다고.]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가상의 대통령 역도 몇 번 맡았는데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대물(드라마)|대물]], [[한반도(드라마)|한반도]] 등이 그 예. 그런데 이렇게 가상의 대통령일 때는 주로 차기 대선을 앞둔 임기 후반이고, 후임 대통령이 될 등장인물에게 우호적이다. 대체역사물인 [[마이 프린세스]], [[더킹 투하츠]]에서는 국왕이 아닌 국왕의 최측근 역을 맡았다.
활동 초기에는 텔레비전 외에 [[연극]] 무대에서 열연하기도 했는데, 2010년 12월 10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되었던 [[돈키호테]]에서 오랜만에 연극 배우로 출연했다. 기존에 많이 상연되던 [[뮤지컬]] 버전인 [[맨 오브 라만차]]의 각색이 아닌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중후한 희곡 버전을 택했고, 여기에 일부 한국식 풍자 요소를 더해 연출했다고 한다. 이순재의 배역은 타이틀 롤인 돈키호테. 다만 단독 캐스팅은 아니고, 후배인 한명구가 번갈아가며 출연했다. 종연 후에도 꽤 인기가 있었는지, 2012년 초순에 같은 극장에서 한 차례 더 공연했다.
항상 먼저 모범을 보이는 자세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보통 이순재 정도 되는 원로 배우는 촬영 시간을 앞당겨 주는 것이 관례인데도 다른 배우들이 자신 때문에 촬영 시간이 늦춰지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몇 시간씩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 4월 20일에 공개된, 차이를 넘어 묻고 차이를 넘어 답하다(차문차답) 캠페인에서 5세, 8세, 10세 어린이들이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을 이순재에게 묻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중 한 여자아이가 '미투가 뭐에요?' 라고 묻자 '그런 말을 알 필요도 없고 그런 말을 생각할 필요도 없어. 너희 때는 그럴 일 절대 없을 테니까' 라고 답을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지만 [[대한민국]]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8년]]의 [[13대 총선]]에도 [[민주정의당]]으로 나왔지만, [[평화민주당]]의 이상수에게 근소한 차이(32.3% 대 31.4%, 759표 차이)로 패했다. 첫 번째 선거에서는 따로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당(1991년)|민주당]] 이상수 후보를 제치고 [[서울]] [[중랑구]] 갑에서 당선되었다(48.7% 득표, 46,297). 이후 [[1993년]] 잠시 민자당 부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비록 선거에서 경쟁 후보로 만났지만 이때 만난 이상수 전 의원과 친해져서 이후 총선에서 이상수 전 의원이 [[2006년 재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했을때 선거운동(정확히는 선거후원회장)도 해줬다고 한다. [[http://www.bucheon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44|#]]
* [[허준(드라마)|허준]](1999, MBC)/유의태[* 위에 소개된 작품인 "동의보감"과 같은 역할로 출연했다. 최근 시청자들은 드라마 "동의보감"보다는 "허준"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어서 어차피 같은 역할이긴 하지만, 동의보감에서의 유의태보다는 이 역할로 더 기억하는 것 같다.]
* 막차로 온 손님들(1967)
- 이유리(배우) . . . . 14회 일치
[목차]
2001년 KBS 일일극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최강희(배우)|최강희]]의 동생이자 한차례 대입 실패로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재수생 '오윤아'역으로 분했으며 2003년 한 해에만 KBS 드라마 《아내》에서는 '상호([[김승수]])'의 연인 '김윤주'역으로, SBS 일일 드라마 《스무살》에서는 '준([[공유(배우)|공유]])'과 사랑에 빠지는 꿈많은 대학생 '한채리'역으로, KBS 드라마 《노란손수건》에서는 '나미령'역으로 MBC 국방 홍보원 공동 제작드라마인 《[[아르곤]]》에서는 특전사 중사 '강강희'역으로 총 4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이 때에 《스무살》의 주연 제의를 받으면서 《아내》에서 중도하차하게 되자 방송사에 미운털이 박혀 KBS에서 출연정지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스무살》은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영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로 또 한번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의 대가족 막내딸로 출연한다. 극 중 이유리는 '한자([[김혜자]])와 '일석([[백일섭]])'의 막내딸로 대기업 홍보팀에 다니는 야무지고 심성 착한 막내딸로 부모님 속 한번 크게 썩인적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으나 가난한 대학원생인줄 알았던 '정현([[기태영]])'과 결혼을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정현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제력 차이가 큰 집안간의 결혼과정에서 한 번, 결혼 후 우아한체 하나 속물적이고 이중적인 시어머니 '은아([[장미희]])'때문에 또 한번 속앓이 하는 '나영미'역으로 열연했다.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이유리는 복수극이나 대립물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들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2012년 [[tvN]] 아침드라마 《[[노란복수초]]》에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복수의 화신으로 재탄생하는 '설연화'역을 맡았다. 드라마는 당초 10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반응이 좋아 케이블에서는 이례적으로 8회가 연장됐고 23주간 케이블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선보이며 2012년 《[[응답하라 1997]]》과 함께 tvN 드라마의 부흥을 이끌었다.
2015년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tvN 미니시리즈 《[[슈퍼대디 열]]》에서 열혈 엄마 '차미래'역을 맡았다. 오랫만에 트렌디 드라마 출연이었으며 첫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맡았다.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악녀 이미지와 거리를 두는 상큼발랄한 연기를 선보였다.
|| 2015년 || tvN || [[슈퍼대디 열]] || 차미래 || ||
|| 2012년 2월 9일~2012년 3월 29일 || O'live || 이유리의 새댁상차림 ||<|2> 진행자 || ||
* 데뷔초부터 활발하게 주조연으로 활동했기에 여러 작품에서 만난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있다. 특히 [[이동욱]]이 대표적이다. 우선 학교 시리즈의 선후배 사이이며 《사랑은 이런거야》, 《러빙유》, 《부모님전상서》 총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이유리와 이동욱이 각각 재수생과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나와 커플연기를 펼쳤는데 그로부터 1년 후, 《러빙유》에서 재회했다. 초반에 이동욱이 이유리를 좋아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악녀본색을 내뿜는 이유리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다. 그 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작품이 《부모님전상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게 대가족이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유리는 4남매 중 각각 3호와 4호를 맡았다. 전작들보다 극중 상황이 더 나빠져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현실 남매 연기를 보여주었다.
* 이유리의 형제관계는 4남매 중 막내로 큰 언니, 오빠, 작은 언니 그리고 이유리가 셋째 딸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은 [[이효리]]가 대표적[* 공교롭게도 이효리의 둘째언니 이름은 이유리 본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 가족의 막내딸이라 곱게만 자랐을 것만 같지만 이유리는 어릴 때부터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랬다며 지나가듯 푸념하면서 식구가 많아 어릴 때 [[짜장면]] 같은 걸 시키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식탐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이러한 형제관계였다. 허나 실제로 이유리는 1남 3녀 중 막내이고, 극중 변혜영은 1남 3녀 중 장녀이며, 둘째이다. 이유리 실제 형제의 맏이는 여자고, 극중 맏이는 남자라는 것이 차이점.] 10년 전 방송 '좋은 아침'을 통해 작은 언니의 얼굴이 잠시 비춰졌는데 막내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당시 언니는 성경책을 보고있는 동생 이유리에게 "지금 니가 대본을 봐도 모자랄 판에 성경책을 보냐"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이유리가 '만원의 행복'에 출연당시 부모님이 등장했는데 부모님과는 반반씩 얼굴이 닮은 듯하다. 이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 2006년 인기리에 연재된 박소희 작가의 동명의 순정만화가 드라마 《[[궁(드라마)|궁]]》으로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으로부터 주인공 '신채경'역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준수한 연기력과 만화 원작의 신채경 모습과도 싱크로율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여주인공으로는 [[윤은혜]]가 낙점됐다. 이유리는 인터뷰에서 제의를 받았으나 연기자로서 차근차근 한 발을 내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다만 '《[[궁(드라마)|궁]]》의 전작이 바로 이유리가 출연한 《영재의 전성시대》였는데 바로 다음 작품을 출연하는게 말이 안된다.', '제작사는 이유리에게 캐스팅 제의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등을 근거로 들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으나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이유리는 주인공도 아니였을 뿐더러 전작을 했다고 다음 작품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견에 불과하고 제작사에서 캐스팅 제의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 또한 이유리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캐스팅 제의 사실을 분명히 언급했던것과는 달리 출처가 불분명 하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 데뷔 후 개신교에 귀의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인터넷에서 간증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9월 6일]] [[띠동갑]] [[연상]]의 당시 [[전도사]]였던 조계현씨와 결혼했다.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군소 교단 소속 [[목사]]이다. 남편이 없었다면 연예계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남편이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바쁜 촬영 스케줄에도 아침마다 남편에게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주기도 한다고. 목회자의 사모는 삶의 운신에 제약이 많이 생기는 편인데, 남편이 연예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한다.
- 이준(배우) . . . . 14회 일치
[목차]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역시 같은해 8월 26일 방영분에서도 허리부상으로 고생하는 [[개리(리쌍)/런닝맨|개리]] 대신에 대타로 출연했다. 2012년 들어 런닝맨 출연만 4번째. 고정으로 합류했다가 얼마 안가 하차한 리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많이 출연한 게스트이다. 비록 승률은 4전 4패급이지만, 아이돌 치고는 예능적으로는 상당한 선방인 셈.
2012년 하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태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상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순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태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순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상황.
1월 12일 방송된 '''우결에서 오연서가 직접''' 이준에게 스캔들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를 하였다. 이부분에 대해 시청자들은 "어차피 연기면서 ㅉㅉ"라는 반응도 있지만, 오연서의 사과를 받을 때 이준의 표정이 진짜 심각해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이준 어떡하냐 진짜 불쌍하다"라는 반응. ~~그리고 이장우는 엄청 까이고 있다~~ 특히 위의 고영욱과의 일까지 겹쳐서 정말 불쌍한 이미지가 돼버렸다.
여기서 끝나면 모르겠는데 1월 23일 경, 팬카페에 '''내가 로봇도 아니고 거짓연기는 더 이상 못 한다. 참을만큼 참았다'''라는 식으로 글을 올렸다가 삭제. 이에 대해서 [[우리 결혼했어요|거짓 연기]]라는 게 우결인지 관심이 쏠리는 찰나, 빠르게 소속사에서 해명을 했다. 쓴 글은 이준 본인이 썼으며, 소속사와 차후 활동에 대해서 의견조율이 잘 안되어서 쓴 것 이라고... 결국 우결에서 [[http://news.nate.com/view/20130130n26719|하차]]하여 2월 2일까지만 출연.
[[화폐|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장부를 쓰고 있다. 백원까지도 다 받아내려 하지만 팀의 리더인 [[승호]]는 갚는 일이 없다고 전해진다. 돈을 재테크로 불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안쓰고 모아서''' 잠실에 집을 샀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많이 돈을 쓰는 품목은 [[이온음료]]. 부모님께 번 돈을 다 드리고 자신은 [[체크카드]]로 용돈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래들보다 수입이 많다고 자칫 그것이 평생 갈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모님이 편찮으셔서 간병도 하고 치료비 일부를 지원한 바 있는데 그 일이 외제차를 사는 것보다 훨씬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깨달은 이후로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하고 싶다고 했던 말을 실천하듯, 아이돌계 최강 짠돌이라고 알려진 이준이 아이돌 중 최초로 세월호 기부를 해 많은 칭찬을 받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03857|기부 기사에 댓글이 만 개 가까이 달리기도 했다. 놀랍게도 거의 다 선플.]] 그것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고 혼자 본명으로 몰래 했다가 기부처 측 확인 절차 중에 알려진 거라고.. ~~왠지 기부도 이준답게 한다~~
[[고영욱]]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 불거진 후, 이준이 2011년 3월에 방송된 [[강심장]]에서 고영욱에게 여자친구를 두 번 뺏겼다는 발언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2315925|해당 기사]] 방송 당시에는 선배인 고영욱에게 버릇 없이 군다며 야단을 맞는 등 굉장히 억울한 대접을 받았다.[* 그 당시 예능이라고 옹호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예의 없다며 곱지 않은 시선이 더 많았다. [[http://loganel.tistory.com/entry/%EA%B0%95%EC%8B%AC%EC%9E%A5-%EC%9D%B4%EC%A4%80-%EB%8C%80%EC%84%A0%EB%B0%B0-%EA%B3%A0%EC%98%81%EC%9A%B1-%EB%82%A8%EB%B4%89%EA%BE%BC-%EB%A7%8C%EB%93%A0-%EC%B5%9C%EC%95%85%EC%9D%98-%EB%94%94%EC%8A%A4|그 당시 올라온 글 참고.]] ~~글쓴이 이불킥 각~~ 유투브에서도 리플을 보면 과거와 현재의 반응 차이를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AjN0XJdESlg#!|유투브]]]
- 장범준 . . . . 14회 일치
! scope="col" style="width:3em;font-size:90%;"|[[가온 앨범 차트|KOR 주간]]<ref>가온 앨범 차트: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nationGbn=T&serviceGbn=ALBUM&targetTime=35&hitYear=2014&termGbn=week|제목=장범준 1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4-08-28}}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week&hitYear=2016&targetTime=13&nationGbn=T|제목=장범준 2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6-03-31}}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week&hitYear=2019&targetTime=12&nationGbn=T|제목=장범준 3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9-03-28}}</ref>
! scope="col" style="width:3em;font-size:90%;"|[[가온 앨범 차트|KOR 월간]]<ref>가온 앨범 차트: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4&targetTime=08&nationGbn=T|제목=장범준 1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4-09-11}}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6&targetTime=03&nationGbn=T|제목=장범준 2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6-04-07}}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9&targetTime=03&nationGbn=T|제목=장범준 3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9-04-11}}</ref>
* 대한민국: 11,162+<ref>{{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4&targetTime=08&nationGbn=T|제목=2014년 08월 Album Chart |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4-09-11}}</ref>
* 대한민국: 10,000+<ref>{{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6&targetTime=03&nationGbn=T|제목=2016년 03월 Album Chart |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6-04-07}}</ref>
* 대한민국: 5,856+<ref>{{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9&targetTime=03&nationGbn=T|제목=2019년 03월 Album Chart |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9-04-11}}</ref>
{{가온 차트 K-POP 어워드 - 올해의 가수상 음원}}
- 정승화(육군) . . . . 14회 일치
[목차]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때 신군부측에 납치당하고 만다. [[10.26 사건]] 문서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대령]]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대통령이 연회가 있으면서도 정승화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궁정동으로 불러냈다.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정 차장과 저녁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의 치밀한 계략인지, 순간적인 기지인지, 본능적인 직감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 피살 현장에서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김재규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다만 뭔가 수상쩍다는 건 느꼈는지 차 안에서 김재규가 "목이 마를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라." 하면서 준 사탕을 바로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사탕 대신 껌을 준다.]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통령이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고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시도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사실은 정승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훗날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현장에서 막지 못한 죄인이니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인데 뻔뻔하게도(?) 자리를 보전하길래 의로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이에 대해 정승화는 청문회 등에서 평소 차지철의 행보와, 당시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이 차지철이라고 오판해서 수경사 병력을 장악해 차지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고 자기 변호하였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구속 사건]]이 87년에 제정된 헌법이후 최초로 발생하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증언하였다. 그의 기대대로 [[전두환]]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평생의 한을 푸는 듯 했으나,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가 [[특별사면]] 혜택을 받아 풀려나자 "반성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래도 풀어준다니 이 나라가 진정으로 법치주의 국가입니까?" 라며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 10.26 당시 자신을 몰라보는 육군본부의 초병에게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그 초병이 대답하기를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요?"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대통령 저격이라는 비상사태가 일어났으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정승화 대장은 군복이 아닌 사복, 즉 [[정장]] 차림이었고,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 육본의 초병도 "한밤중에 갑자기 민간차량을 타고 나타난 사복 차림의 장년 남성"이 설마 육군참모총장이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다른 장교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알아보고 무사통과시켰다고.
- 진격의 거인/95화 . . . . 14회 일치
* 차력의 거인은 지속시간이 차원이 다르고 전용장비를 사용할 수 있으며 피크가 머리가 좋아 다양한 지형, 다양한 국면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 [[라이너 브라운]]과 [[가비 브라운]]은 이른 아침부터 본부로 향했다. 그들은 시장을 가로질러 출근을 했는데 지나가던 엘디아인 시민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반기고 우러러보며 인사를 건넨다. 출입구를 통제하는 마레인 병사들 조차도 그들에게만은 친근하게 대하며 안부를 물을 정도. 그런데 평소와 같은 라이너와 달리 가비는 어쩐지 침울하고 풀이 죽은 모습이다. 마레인 병사도 그걸 눈치챘다. 그는 "이번에는 활약했다며?"하고 말을 붙이나 가비가 반응이 없자 조금 집요하게 말을 건다. 가비는 그게 들리지도 않는지 "평소대로 본부에서 훈련한다"고 적당히 대답하고 통제소를 통과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병사들은 가비의 우울한 기색이 마음에 걸려서 왜 저러는 건가 고민할 정도다.
* [[파르코 그라이스]]는 대단한 의욕을 과시했다. 본부에 모인 다른 친구들이 너무 이른 소집을 놓고 툴툴거렸지만 그는 묵묵히 몸을 풀면서 "그렇게 투덜거리면 차기 전사후보생에서 떨어진다"고 주의를 주었다. 우도가 그에게 기합이 잔뜩 들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은 각오가 다르기 때문이다.
* [[지크 예거]]가 이른 아침부터 마레의 전사들과 차기 짐승거인 [[콜트 그라이스]]를 소집했다. 라이너와 콜트는 진작 도착해 있었고 포르코와 피크가 마지막이었다. 피크는 기껏 걸어온 보람도 없이 긴 소파를 독차지하고 네 발로 웅크린다. 지크는 커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포르코가 전사장의 방에 전원 집합, 게다가 마레인 군인이 없는게 별난 일이라고 말하자 그가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 여성형 거인과 갑옷 거인이 전장을 달린다. 마레는 어떤 전선에 마레의 전사들을 투입했다. 마레인들은 차량에 타고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그들은 각 거인의 특징과 현재 계승자들의 적성, 적응도를 눈으로 확인하며 평가를 내렸다.
차력의 거인은 차원이 다른 지속력이 장점. 장기간 임무에 적합하며 그런 만큼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 전술의 폭을 확연하게 넓힌다. 머리가 좋은 피크에게 맡기는 것이 적격. 지금 차력의 거인은 강줄기를 통해 전선을 통과, 적의 배후를 잡았다. 아직도 피난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이었다. 피크는 그 근처에 상륙해서 어떤 케이스를 내려놓고 돌아가는데, 자신의 동료 [[베르톨트 후버]]였다.
이 일곱 거인의 위력을 검증하는 자리에는 마가트 또한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저런 것들이 들이닥치게 될 "섬의 악마들"이 불쌍하다는 동료에게, 그도 동감을 표했다. 현 세대 계승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단련시킨 값을 충분히했다. 분명 전세대 보다 강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팔라디 작전과 그 작전을 인가한 상층부를 불신했다. 고작 네 명의 전사들에게 시조 거인 탈환을 맡긴다? 그는 "제정신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동료는 "방금 전 그 애들이 나라 하나를 짓뭉개는 걸 봤잖아"라며 전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하긴 이 녀석은 훗날 밀실 대화를 듣고도 지크의 꿍꿍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놈이다.
* 명령은 명령이다. 마가트는 시조 거인 탈환 작전의 상세 개요를 전달한다. 실제 투입되는 인원은 턱, 갑옷, 여성형, 초대형의 네 명. 짐승과 차력은 본토방위를 위해 참전하지 않는다. 마가트가 설명 막바지에 라이너, 애니, 베르톨트, 마르셀을 거명하며 작전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유일하게 한 사람, 포르코만 소외된다. 그는 아무 거인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하마터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은 걸까? 라이너는 표정은 감춘 채 "응"이라고 힘차게 동의했다. 사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한 동의였다. 어머니와, 동포들의 환대를 받으며 항구를 떠나던 날, 그는 자신을 설득했다.
* 라이너의 어머니 [[카리나 브라운]]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들을 사랑했으나 신분 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걸로 나오지만, 정황으로 보면 아버지는 그저 원나잇으로 카리나를 농락했을 뿐이며 자식이 생기거나 그 자식이 마레의 전사가 되는 상황은 전혀 의도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대사로 보면 따로 "가족"을 가지고 있고 카리나나 라이너를 가족으로 보지 않았다.
- 차희식 . . . . 14회 일치
|이름 = 차희식 (車喜植)
|본관 = [[연안 차씨|연안]]
|웹사이트 =[http://mpva.go.kr/narasarang/month_hero_view.asp?id=360 국가보훈처 - 차희식]
'''차희식'''(車喜植, 1870년 ~ 1939년)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차희식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태어나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에서 성장하였다. [[장안면 (화성시)|장안면]]은 동리마다 서당이 있어 책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교육과 문화의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또한 일찍이 [[동학]]과 [[기독교]]가 전파되어 민족독립의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민족주의적 의식을 함양하며 성장한 선생은 어릴 적부터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술이 좋고 힘이 장사여서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자질이 뛰어났고, 3·1운동 당시에는 장년층으로서 이 지역의 젊은이들을 통솔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점점 높아가는 때에 서울의 3·1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한 지역의 지도자들은 구장회의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구체화했다. 차희식은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인근 주민들에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우정면 주곡리와 석포리 주민들의 선봉에 서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4월 3일 군중은 점차 늘어나 1천여 명에 이르렀고 시위 행렬은 인근의 쌍봉산으로 이동하여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선생은 차병혁, 차인범과 함께 군중들을 인솔하여 우정면사무소, 화수주재소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일본 순사가 쏜 총에 주민이 피살되자 차희식을 비롯한 군중들은 격분하여 도망가는 일본 순사 가와바다를 추격하여 처단했으며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시위 후 일제는 장안면, 우정읍내 25개 마을을 포위하고 선생을 비롯한 204명을 시위 주모 혐의로 검거하였다. 차희식 선생은 소요 등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5년 형을 언도 받았고 9년 2개월 만에 출옥하였다. 출옥 후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6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f>[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08356 화성 3·1운동 주도… 차희식 선생을 아시나요], 경인일보, 2010년 3월 23일</ref>
* [http://mpva.go.kr/narasarang/month_hero_view.asp?id=360 국가보훈처 - 차희식]
[[분류:1870년 태어남]][[분류:1939년 죽음]][[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연안 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창작:IDF . . . . 14회 일치
IDF는 모병에 있어서 선진국의 사관학교 출신자, 군복무 경험자를 우대하며, 특히 장교급 지휘관이나 특수부대 출신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다. 그 결과, IDF의 영관급 이상 장교는 선진국 사관학교 출신자나 퇴역장교 출신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반면 병사들은 상당수 생계를 위해서 IDF에 개인적으로 참가한 제3세계 출신이며, 선진국 출신자 역시 저소득 계층 출신이 많다.
IDF 항공대는 IDF 군 부대의 수송 임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수송기와 수송헬기를 주로 운용한다. 이는 가맹된 각 국에서 IDF가 굳이 공격성이 높은 항공전력을 보유해야 할 필요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 대신 수송기나 수송헬기가 다소 과도한 수준으로 보이는 '방어용' 무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IDF 사령부 측은 이러한 상황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투기 구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IDF 사무국 측은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군축으로 몇몇 선진국에서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위태롭게 돌아가면서, IDF에 전투기 구매가 타진되는 경우도 있다.
전차
*3세대 전차 : 0대
*3.5세대 전차 : 85대
전차의 경우 특성상 높은 기동력으로 적 기갑전력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평화유지 부대가 이러한 전차부대를 운용하는데 필요성이 적다는 이유로 정규군에 준하는 군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2개 정도의 여단만 보유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중 1개 여단은 현재 [[IS]](이슬람 무장 단체)로 인해 바그다드에 주둔중. 1개 여단은 중앙아프리카에 있다고는 하나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쿠데타가 일어났을때 즉각적으로 조치하기 위해 숨겨놓는것 이라고 추정된다.
병력수송장갑차(APC)
*[[http://blog.naver.com/jjy0501/220463509531|L-ATV]] : 1,240대[* 현재까지도 손실분이 가장 많은 차량이고, 집계한 이후 무력화된 차량도 존재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측정 불능]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대전의 흐름상 보병의 높은 기동력이 중요해지고 도시 지역과 근방을 순찰하는 일이 많은 만큼 상당수의 보병전투차량을 운용중에 있다. 험비는 미군이 L-ATV 사업을 도입하면서 일부 물량을 IDF에 기증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수가 존재하지만 L-ATV 사업 비용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IDF가 차세대 병력수송장갑차인 L-ATV를 상당수 구매하기로 하였다.
*정보통제 : ?[* 대외비 자료에서는 '통신 도중' 이 부분이 심하게 손상되어 어떤 정보가 쓰여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자료 목차에는 이 부분이 있는 만큼 일단 이런것도 있다는 걸 알아두는게 좋겠죠.]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14회 일치
한때 [[오락실]]을 풍미했던 [[캡콤]]의 [[아케이드]] 게임으로, 제목의 캐딜락은 원작에서 주인공 잭이 몰고 다니는 캐딜락 자동차(1952 Cadillac Series 62)를 뜻하며, 디노사우르스는 말 그대로 공룡. 즉 현대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와 중생대 생명체인 공룡을 붙여서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 4스테이지(아지트를 되찾아라!) - 잭의 차고(라기보단 자동차 공장)
보너스 성격이 강한 스테이지, 보통 차를 타는 아이템이 나오면서 차를 타게 된다. 다만 차를 타고 적들을 깔아뭉게는 것을 전제로 하여 디자인이 되어 있다 보니 수많은 적들이 바글바글 튀어나오며 '''회복 아이템이 전혀 나오지를 않는다.''' 시간 배분도 캐딜락을 타고 가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냥 가면 타임오버에 걸려서 무조건 한 번 죽는다.''' 이 게임에서 [[스코어링]]의 길을 선택한 경우, 보너스 게임의 성격이 강했던 3스테이지는 [[플레이어]]에게 커다란 시련이 될 것이다.(...)
따라서 [[스코어링]]을 하지 않는 이상 그냥 차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스코어링의 경우에도 3스테이지의 난이도가 난이도인지라 [[전일]]을 찍을게 아니라면 어느정도 벌어먹다가 타협을 보는 걸 추천한다.
캐딜락을 타고 돌진하며 적들을 깔아 뭉개는 재미가 쏠쏠하다. ~~[wiki:"무스카" 우하하!! 사람이 쓰레기와도 같아!!!]~~ 더구나 이 판에서는 총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총 좋아하는 유저는 실컷 총질도 할 수 있다. 잘하면 주먹은 딱 한 번만 쓰고 스테이지 클리어가 가능하다. 단 스코어링을 노릴시 차를 타면 그대로 [[망했어요]] 신세가 되니까 스코어링시에는 차는 거뜰떠 봐서도 안 된다. 정확히 말해서 가끔 나오는 안테나 달린 라디오 아이템을 먹으면 안된다. 먹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자동차 호출...
1인이나 2인 플레이 시에는 캐딜락 내 좌석에 탑승하는데, 3인 플레이 시에는 한 명은 캐딜락의 트렁크 위에 탑승한다(!) 그리고 보통 차량을 호출하면 잭이 몰고 오는 편이지만, 이미 플레이어가 잭을 선택했다면 무스타파 -> 한나 -> 메스 순으로 몰고 온다.
요약하면 차를 타고 진행할 경우 보너스 성격이 강한 스테이지지만, 스코어링 혹은 [wiki:"전일" 극한의 플레이]를 추구할 시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스테이지를 차로 적들을 치면서 진행할 것을 상정해서, '''적들을 바글바글, 길게 배치해 놓았기 때문.''' 이걸 정면으로 돌파하려면 정말 미친다.] 비약해서 말하면 [死ぬがよい]급.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크게 달라지는 사례가 되시겠다.
- 한교원 . . . . 14회 일치
||<:><-3> DF [br] [[차두리]] ||
[목차]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축구명문 축에 드는 [[조선대학교]]의 스카웃망에 잡히기는 했으나, 조선대에서도 우선순위로 선발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선대 축구부 쿼터가 꽉 차는 바람에 조선대 입학이 무산되었고 [[조선이공대학]]으로 입학하게 된다. 조선대와 조선이공대는 같은 재단 소속. 이를테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입단했는데 팀에 자리가 없어서 바로 위성구단인 엑셀시오르로 임대 간 [[김남일]]과 비슷한 케이스. 갓 창단한 조선이공대 축구부에서 한교원은 [[메시]]놀이를 시작한다. 2010년 [[U리그]]에서 한교원이 찍은 스탯은 20경기 출전 18골 (...)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이름을 날리게 되고 그 결과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지명된다. 조선이공대가 배출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K리거이다.
팀메이트인 발리슛의 제왕 [[이동국]]이 특훈이라도 시켜주는지 윙어인데도 불구하고 발리슛을 꽤 능숙하게 한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다이빙 헤딩슛을 보이는 등 공중볼 타이밍을 잘 잡는 편인듯 하다. 하지만 두번째 시즌에 들어서는 [[레오나르도]]보다 못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에게조차 스탯 사기꾼으로 판정받고 있는 와중에... 후술할 [[박대한]] 폭행 사건까지 터져서 징계를 받고 오래도록 징계로 그라운드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전북에서 '''[[이근호]]'''를 영입하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지고 말았고, 결국 시즌 내내 리그에서 1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이근호가 떠난 2016 시즌에도 주전 경쟁은 험난했고, 한교원에게도 힘든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그나마 저번 시즌보다 득점력이 좋아져서 간간히 득점을 선보였지만, 2014년의 임팩트가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모았다. 그렇게 점차 뒤로 사라져가는가 했지만...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에서 전반 2분만에 무릎 인대부상을 당한 [[히카르도 로페즈]]의 교체멤버로 들어왔고, '''[[이재성(1992)|이재성]]의 코너킥을 그대로 갈겨 선취점을 뽑아내고 이 골로 전북 현대를 10년만의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간의 힘든 상황을 털어내는 극적인 득점이었다.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부상당한 [[구자철]]대신 선발되어 파라과이와의 후반전에 투입되었다. 만회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린 파라과이 수비진을 손흥민과 함께 수차례 침투하며 좋은 기회들을 만들고 날카로운 슛을 때렸지만, 아쉽게 골을 넣지는 못했다.
11월 14일 [[요르단]] 원정 평가전에서 [[차두리]]의 크로스를 깔끔한 헤딩슛으로 연결해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고, 이 경기가 1-0 승리로 끝나면서 이 골이 결승골이 되었다. 이날 원톱으로 출전한 [[박주영|어느 부두술사]]가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에 공격측면에서 지리한 경기가 될 뻔했는데 한교원의 득점 덕분에 의미있는 평가전이 될 수 있었다.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안컵 대표에 선발되었다.
2015 아시안 컵 이전에는 [[이청용]], [[손흥민]], [[이근호]]의 백업 정도 위상이었으나 오만 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했고 이청용이 실금 진단을 받고 대회에서 빠지면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조금 억울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창수가 반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상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선발되어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까지 출장했다.
그러나 리그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14시즌만 못하던 차에 박대한을 폭행하고 퇴장당한 경기를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10&aid=0000243677&|슈틸리케가 관전했기에]]''' 여름 평가전 차출에 적신호가 커졌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역시 사고를 친 [[이범영]]과 함께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재성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이청용이 부상에서 회복한데다 이종호, 김승대 등이 동아시안컵에서 자신을 어필할 기회를 잡은지라 대표팀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슈틸리케호에서도 갑자기 흥분해서 옐로 카드를 받은 전적이 있었는데, 물론 커리어를 통틀어 보면 이런 일이 거의 없는 선수이긴 하나 슈틸리케 감독 눈 앞에서 두 번이나 저질러 버린 터라 천천히 그런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사실 국가대표에까지 오르내리는 스타가 된 이후 받는 압박감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 새롭게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없다면 국대에 재승선은 어려울 것이다. ~~전북 현대에서 빨리 심리상담 시켜라~~
활동량, 체력이 상당히 좋으며 발도 빠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훌륭한 윙어가 될 자질은 타고났다. 그리고 공에 대한 집착과 투지도 상당하여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는 것은 물론, 팀의 수비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선수이다. 라인을 타고 돌파하여 밀고 올라가는 돌파 능력을 지니고 있고, 한 번 분위기를 타면 무서운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 최전방부터 센터백까지 온갖 포지션을 경험하면서 얻은 경험이 독이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가 된 듯. 아쉬운 부분은 판단력과 크로스. 그리고 유효 슈팅은 꽤 잘 만들어내지만 정작 만들어내는 기회에 비해 실제 득점으로 연결되는 수도 다소 아쉽다. 입단 당시보다도 훨씬 전북의 스쿼드가 두꺼워지면서 더는 과거처럼 전북의 핵심으로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화되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지닌 선수인지라 최강희 감독의 신임을 계속 받고 있다.
전북구단은 베이징 궈안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명단에서 그를 제외시켰고 자체적으로 벌금 2,0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의 징계를 내렸다. 프로축구연맹은 28일 열린 상벌위에서 6경기 출정정지와 제재금 600만을 부과했다. 다이렉트 퇴장으로 인한 2경기 출장정지까지 합쳐 총 8경기 출장정지에 구단 자체징계까지 합쳐 벌금이 2,6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이다. 팬들은 한방에 1,300만원하는 주먹질이라며 혀를 찼다. 연봉의 거의 절반이 날아갔다.
세계일보에서는 야구계의 민병헌 사건과 함께 들먹이며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5/28/20150528005252.html?OutUrl=naver|솜방망이 처분]]이라고 비난했다. 수아레즈의 4개월 출장 정지에 비하면 징계가 약하다고 볼 수 있으나 수아레즈는 같은 반칙을 2번이나 해서 그런거고 경기 중 이단옆차기 날린 이청용에게 아무 징계도 안 주던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나아지긴 했다. 전북 팬들은 옛날 [[서정진]]이 그랬듯이 대표팀 다녀와서 발전할 생각은 안하고 겉멋만 들어왔다고 걱정하고 있다.
- AEC 장갑차 . . . . 13회 일치
AEC Armoured Car.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사용했던 [[장갑차]].
[[버스]]를 만들던 회사인 AEC(Associated Engineering Company)에서 제작했기에 AEC 장갑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부 AEC 장갑차들은 [[유고슬로비아]]의 [[파르티잔]]을 지원하기 위해 보내졌다.
* AEC 장갑차 Mk.I
2파운드 전차포를 장비한 초기형. [[발렌타인 보병전차]]의 포탑을 그대로 달았다.
* AEC 장갑차 Mk.2
6파운드 전차포가 탑재된 3인 포탑으로 교체했다.
* AEC 장갑차 Mk.3
주포를 75mm 전차포로 교체, 화력 지원 용도로 사용되었다.
* AEC 대공장갑차
* 슈팅게임 워썬더에서 사용 가능한 장비로 대공장갑차 버전이 등장한다.
- 김상중(배우) . . . . 13회 일치
[목차]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타급 연기자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1996년]] KBS 주말연속극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고고한 독신주의자였던 목욕탕집 맏딸 김윤경([[배종옥]] 분)을 능글능글함으로 쥐락펴락하면서 마침내 결혼에까지 골인하는 노총각 강호준 역할을 맡으면서부터이다. 그 후 SBS 드라마 홍길동에서 주인공 김석훈과 대립하는 이업 역, 경찰특공대에서의 대장 역, 제국의 아침의 광종 역, 추적자의 강동윤 역, 개과천선의 차영우 대표변호사 역 등 중량감 있으면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냉철한 역할로 이름을 알렸다. 특유의 강렬한 눈빛 연기는 위 작품들을 거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데, 이때부터 쌓인 내공을 [[나쁜 녀석들(OCN)|나쁜 녀석들]]에서 제대로 폭발시킨다...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배우로 악역을 맡았을 경우 특유의 카리스마가 특징적으로 잘 나타나 추적자에서 손현주와 대립하는 강동윤 역 등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으로 잘 소화해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찌질하고''' 코믹한 연기도 잘 소화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투사부일체]]에서 오상중역으로 대표적인 찌질+코믹연기를 보여줬고[* 지금도 인터넷에 하하와 호흡했던 연기장면이 잘 알려졌는데 정말 찌질하게(...) 나온다.[[티비플|--미안해요 보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에서의 홍준표 역으로, 두 여자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찌질한 모습을 보여 많은 욕을 먹었다. 김희애와 동급에서 연기하는 본인의 커리어 정점을 장식한 작품인데, 여기서 희대의 표정연기는 유명한 대사인 "감자 좀 쪄줄래?"와 함께 짤방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인 [[엄마가 뿔났다]] 에서도 짧은 특별출연에 불과했으나 홍준표를 생각나게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 아줌마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에서는 능력있는 차도남이지만 가족에게는 다정한 삼촌역을 맡아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다.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의 지문 중 [[레전설]]급인 MBC 청소년 드라마 [[사춘기(드라마)|사춘기]]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육체미 소동]]에서 체육선생님으로 나온다. 극중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수학선생님[* 이 선생님도 좀 과하게 엄격한 타입이지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극중 노총각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사이를 줄여주려고 수학 선생님 이사하는데 데려가 짜장면 먹는 모습은 상당히 훈훈했다.]과는 대비되는 역할로 학생들 편에 선 자상한 선생님 역할이었다.
결국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으로 2012년 S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https://youtu.be/X8MMNItNQGc|수상 장면]] 김상중은 수상소감으로 “고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나이에 공로상을 받기엔 이른 것 아닙니까? [[아재개그|상중의 상중소감]]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대상후보를 대상으로 그것이 알고싶다를 패러디한 그들을 알고싶다라는 코너도 생방송으로 진행하여 만만치 않은 예능감을 보였다. 실제로 몇 차례 예능 프로그램 출연섭외 요청도 있었으며 팬들도 예능출연을 원하는 분위기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을 위해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277982|관련 기사]] ][* 그알싶을 맡기 이전에는 [[상상플러스]], [[일요일이 좋다]]-엑스맨, [[여걸 식스]] 등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영화홍보 등을 위해 게스트로 종종 출연했었다. 외모만 보면 [[엄진근]]스러울것 같은데 막상 토크나 게임에선 부드러운데 어딘가 허당스러운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추적자 종영 후 추적자 외전으로 런닝맨에 장신영과 출연했다. 당연히 컨셉은 극 중 강동윤 캐릭터.
힐링캠프에도 2015년, 그 선배가 하차한지 한참 뒤에 출연해 입담을 과시하는 한편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겸 배우의 고충(연기폭 제한)을 털어놓았다.
* 2012년 8월 19일 런닝맨에 [[장신영]]과 함께 출연했다. 이 때 중고차 시장에서 [[이광수(배우)|이광수]]를 낚아채는데 이광수보다 작은 키임에도 몸을 날려 순식간에 멋지게 압도했다.
* 정장과 매우 잘 어울리는 남자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회차마다 선보인 다양한 수트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2015년]] [[8월 31일]] 자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서는 수트핏을 위해 식단까지 조절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수트]]를 매우 좋아한다.
* 2015년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드라마)|징비록]]에 주인공 [[류성룡]] 역으로 캐스팅되었는데 기사가 나오자마자 덧글에는 '그런데 말입니다'를 비롯한 그것이 알고싶다 관련 드립들이 달리고 있다. 그런 드립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방영 초기에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톤과 겹쳐서 [[디시인사이드]] 징비록 갤러리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바 있다. 멘트의 고조가 사극의 전형을 구현하면서 자신의 장기인 조곤조곤하면서 정확한 대사전달을 능히 하고 있어 연기력 자체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고 볼 것이다.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두운 세트에서 깔끔하게 슈트를 차려 입은 중년이 생각나는데 조선시대 공복을 입고 있으니 그리고 마침내 징비록 40화에서 '그런데 말입니다'가 대사로 나와버렸다! 덧붙여서, 선조의 찌질함에 열받은 네티즌들은 김상중의 훌륭했던 악역 연기에 힘입어 [[https://www.youtube.com/watch?v=qR_0MJVAnGY|선조를 대놓고]] [[https://www.youtube.com/watch?v=Q4jfZU9um2M|비난해대는 영상을]] [[https://www.youtube.com/watch?v=D9HYf8cTLk8|만들고 있다.]]
* 예능이나 광고에 출연은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종종 예능에 출연해서 활약을 하곤 한다. 생각보다 예능감도 괜찮은 편이라서 워낙 날카로운 차도남 이미지가 강한 그가 예능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갭모에|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최근 EXID의 위아래를 BGM으로한 야쿠르트 CF를 찍었다. 그의 댄스 실력도 같이 확인할수 있다.[* 이 광고속 위아래 BGM이 워낙 귀에 확 꽂히다보니 제품보단 위아래와 김상중의 춤 밖엔 기억에 안남는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롯데리아]]의 [[모짜렐라 인 더 버거]] 광고를 찍었다. 컨셉은 역시 그것이 알고싶다.
* 과거 대학교 소극장에서 유준상을 별다른 이유 없이 구타한 일이 있다. [[http://theqoo.net/square/249161400]] 자세히 설명하면 당시 유준상은 소극장 청소를 하고 있었다. 청소 중 의자에 앉아있는 김상중을 발견했고, 청소 도중이라 가벼운 목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김상중의 표정이 굳더니 유준상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고 가까이 가자 갑자기 폭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건이 있은 후 유준상은 왜 자신을 때렸는지 몇차례 물어봤으나 그럴때마다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을 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 나오자 그제서야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2016년 방영 목록#s-3.4|똥군기에 관련된 사고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올때]]마다 이 일은 더욱더 흑역사로 부각될 것이다.~~
* [[토마토(드라마)|토마토]](SBS 1999) - 차기준
* [[개과천선(드라마)|개과천선]](MBC, 2014) - 차영우
- 김윤환 . . . . 13회 일치
|| '''약력''' || [[조선일보]] 기자[br][[영남일보]] 기자[br][[대구일보]] 기자[br][[문화공보부]] [[차관]][br]제13대 [[대통령비서실장]][br]제1정무장관[* 1988년, 1990년, 1994~1995년 무려 3번이나 제1정무장관직을 역임하였다.][br][[민주정의당]] 원내총무[br][[민주자유당]] 대표 ||
[목차]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식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상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이렇게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김윤환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내 자신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이회창]]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면서 다시 '킹 메이커'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당내 민정계와 영남세력을 대거 규합해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김윤환은 3회 연속으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정작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이때부터 김윤환의 정치적 생명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이 밀었던 이회창 총재에게조차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토사구팽|팽]]당해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 당시 이회창의 참모가 [[윤여준]]이었는데, 그간 총선의 화두는 공천이었음을 상기시키며, 김윤환을 위시한 민정계, 구시대 인물들을 쳐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회창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윤여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윤여준의 전략대로 중진급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 수십여명을 날리고 정치 신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운 개혁 공천은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순(1928)|조순]],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3김 정치 + 이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허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상당히 그럴싸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체성이 불문명한 정당으론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양당 구도에 밀려 지역구에선 [[춘천시]]의 [[한승수]] 前 경제부총리, 전국구에선 후보 1번이던 [[강숙자]] 등 총 2명 당선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본인 역시 자기 지역구인 구미시에서 한나라당 [[김성조]] 후보를 상대로 10% 차의 패배를 당했다.(41.7%:32.1%)
* 사후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의 오상중고교 뒷편에 안장됐다. 오상중고교는 김윤환의 아버지인 [[김동석]] 전 국회의원이 세운 학교다.[* [[대구 버스 칠곡3|칠곡3번]] [[경운대학교|경운대]]행이 장천시외버스터미널에 정차하기 전에 오상중고교를 지나지만, 무정차 통과한다.(상장1리에는 정차한다.) [[대구 버스 칠곡3|칠곡3번]]을 탔다면 장천터미널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
* [[시인(문학)|시인]]으로도 활동했는데, [[경북대학교]] 정문과 학생주차장 사이에 새롭게 단장한 KNU 센트럴 파크에 그의 시비가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잠깐 교수로 재직한 적이 있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 작품인 "꽃"도 KNU 센트럴 파크에 새겨져 있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13회 일치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다. ([[강민 (프로게이머)|강민]](당시 [[KTF 매직엔스]]), [[박지호]](당시 [[MBC게임 히어로|POS]]), [[박성준 (1986년)|박성준]](당시 [[MBC게임 히어로|POS]]), [[송병구]](당시 [[삼성전자 칸]]), [[오영종]](당시 [[화승 OZ|Plus]]와 공동 기록 보유)
[[2007년]] 여름,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변형태]](당시 [[CJ 엔투스]])에게 두 경기를 먼저 내주고도 나머지 세 경기를 연달아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스타리그]]에서 처음 우승한 선수의 본선 진출 횟수는 4회 미만"이라는 징크스를 깬 기록이자(5회 진출만에 우승), 스타리그 결승전 최초의 리버스 스윕이다.
김준영은 데뷔 직후 온게임넷의 2004년 1차 챌린지 리그를 통해 최초로 개인리그에 등장했고, [[김환중]](당시 [[G.O 팀|G.O]], 은퇴)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세 차례의 챌린지 리그 도전 끝에 2005년 CYON [[듀얼토너먼트]]에 진출했고, 2승을 거두면서 [[EVER 스타리그 2005]]에 진출하며 최초로 메이저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두 시즌의 공백기 이후 김준영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로 개인리그에 복귀한다. 김준영은 [[차재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CJ 엔투스]] 코치), [[박태민]](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 [[변형태]](당시 [[CJ 엔투스]], 현 [[공군 ACE]])와 24강 F조에 편성되어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서 1년여만에 만난 오영종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그 다음 대회였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도 김준영은 재경기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힘겹게 16강에 진출했지만, [[이성은]](당시 [[삼성전자 칸]], 현 [[공군 ACE]])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훌륭한 기량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16강을 넘지 못하는 김준영에게 게임팬들은 '16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안겨 주었다.
진영수와 이영호와 펼쳤던 경기들도 한 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명승부였지만, 결승전에선 2:0으로 밀리고 있다가 3, 4, 5경기를 연이어 승리하면서 전용준 캐스터의 표현대로 "천재도 못하고, 본좌도 못하고, 누구도 못하고, 황제도 못했던" 리버스 스윕을 역상성 종족으로 달성하며 최고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특히 파이썬에서 펼쳐진 5경기는 종료 직전까지 승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던 명경기로, 김준영은 변형태의 바이오닉 병력에 중원을 빼앗기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연이은 멀티 견제를 극적으로 막아내며 신들린 스콜지의 활용으로 사이언스 베슬을 지속적으로 줄여 주며 항전했고, 종국에는 가까스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해 내는 데에 성공하며 생애 최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경기 종료 후 김준영은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려 승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변형태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스타리그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김준영과 변형태의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은 그 스코어로나 경기 내용으로나 그 안에 얽힌 드라마로나 역대 최고의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시드보유자로 참여한 [[바투 스타리그]]에서는 1승 2패로 16강 탈락, 차기 대회 36강 시드를 부여받았으며, 다음 대회인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36강 2차전에서 과거 팀동료였던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당시 [[CJ 엔투스]], 현 [[SK 텔레콤 T1]])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스타리그 참여가 되었고 이후 김준영은 은퇴를 선언하며 차기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
* [[MBC게임]]에서의 방송경기 중 컴퓨터 기술팀이 자신의 PC를 손보는 동안 김준영은 경기석 뒷편에 차렷 자세로 서 있었는데, 이 모습이 찍힌 사진을 계기로 그에겐 '차렷저그'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이 사진은 각 커뮤니티의 [[짤방]]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 데뷔 리그인 EVER 2005 스타리그부터 So1, 신한은행 시즌 2와 3 스타리그까지 16강에만 머물러 ‘16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적이 있었으나, 다음 스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에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 마기/345화 . . . . 13회 일치
* 현재 차원은 마고이가 없어 마법도 쓰지 못하는데, 알고보니 여기 사람들이 쌓고 있는 돌은 현세에서 날아온 것이라 마고이가 있다.
* 알리바바를 현세로 돌려보내는 연구로 차원은 전에 없이 활기를 띈다. 테스를 비롯한 사람들은 생전의 마음을 되찾기 시작한다.
* 사람들은 대규모 마법진과 알리바바의 육신을 대신할 구조물을 건축하고 알리바바는 차원을 뛰어넘기 위한 특훈을 거친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살아돌아가고 싶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고 그와 통성명한 [[와히드]], [[셋타]], [[테스]] 조차도 돌 쌓는 놀이나 하라며 심드렁하게 반응한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포기 않고 보이는대로 현세로 돌아갈 방법을 묻고 다닌다. 테스는 셋타에게 "살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어떤 거냐고 묻는다. 셋타는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원래 그건 테스 또한 가지고 있던 거라고 대답한다.
그는 돌쌓기 놀이에 쓰는 돌을 가리킨다. 이 돌들은 "차원의 구멍"이 올렸을 때 거기서 떨어진 것이다. 다윗이 현세로 돌아갈 때 열린 구멍. 거기서 나온 것이니 이건 현세에서 온 물건이다. 셋타는 그때 기억을 더듬으며 구멍 저쪽에서 전쟁이 일어난 듯 보였고 "검은 거인"도 봤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매그노슈탓트 전쟁에서 나타난 "매개체"였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중요한건 그 문제가 아니다. 차원의 구멍에서 나왔다는 이 돌. 이것만은 환상이 아니라 현세에서 온 실제 물질, 루프와 연결된 물체다. 알리바바는 떨리는 손으로 돌맹이를 집어들면서 엄청난 수확이라고 말한다. 이게 현세의 물질이고 마고이가 깃들어 있다면 이걸 써서 마법을 사용하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 알리바바의 생각대로 이곳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마법의 전문가들. 셋타가 돌맹이를 분석해서 여기에 연결된 것은 하얀 루프도 알마트란의 것이 아니라서 자신들이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결론낸다. 하지만 곧 다른 의견도 나오는데 어차피 사용할 것은 하얀 루프에 속한 알리바바이니 자신들의 적합성 문제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알리바바가 현세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을 개발해야하지만.
* 알리바바는 셋타와 와히드의 특훈을 마쳤다. 그는 주변의 돌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있게 됐다. 하지만 그건 1단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만든 수식은 차원과 차원을 잇는 대마법이다. 그걸 통과해서 현세로 갈 것이다. 알리바바는 혹시 그걸 통해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냐고 묻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차원을 연결한다 해도 산 육신으로 버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죽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마법인 셈. 지금부터 알리바바는 가짜 몸에 들어가서 연결된 차원을 건너가는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이곳 시간으로 100년, 혹은 200년으로 느껴질만큼 길고 험난한 훈련. 와히드는 그걸 견딜 수 있겠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제가 받은 이 마법은 차원을 이어주는 거죠?
지금 세상은 죽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지 않고 루프에 따라 격리된다. 알마트란시절 죽은 이들은 이 일 일라와 연결된 차원에, 현세에서 죽은 이들은 하얀 루프로 환원돼 "거대한 흐름"으로, 그리고 알 사멘처럼 타전된 자들은 검은 루프로 돌아간다. 알리바바는 이렇게 죽어서 뿔뿔히 흩어지기 보단 모든 이들을 이을 수 있다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그 말은 곧 이들이 자신의 그리운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재회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마기/349화 . . . . 13회 일치
* [[우고(마기)|우고]]가 나타나 "차원 연결"은 엄청난 마고이를 소모하므로 알리바바의 "적은 마고이로 가능"하다는 주장은 불가능하다고 격렬히 반발한다.
* 신드바드는 각 차원을 각각의 나라에 대입해서 연결은 하되 불가침한 채 대화한다, 즉 "동맹"으로서 교류하자는 제안을 내는 것이다.
*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아주 적은 마고이로도 차원 간의 벽을 부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알리바바 사르쟈]]. 그는 자신이 저 세상에서 돌아올 때 쓴 "대마법"으로 세상을 감싸고 있는 가로의 벽과 세로의 벽 모두를 파괴해 세상의 다중 구조를 없애고 루프도 전부 통합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아르바(마기)|아르바]]는 획기적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반신반의하는 듯한데, 특히 아르바는 여전히 미심쩍은 인상이다.
* 그런데 하늘에서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우고(마기)|우고]]가 나타난다. 맛이 간 눈이다. 그는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을 적은 마고이로 쓰는건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우고가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더 놀랐다. 우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과 [[솔로몬(마기)|솔로몬]] 대왕이 한 계층의 차원에 간섭하기 위해 일 일라의 모든 마고이를 총동원했던 사례를 들면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단순히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은 자신도 예전에 고안했지만 신 하나 분량의 마고이가 필요한 무지막지한 마법이다. 그러니 차원끼리 연결시키려면 솔로몬이 만든 세상을 루프로 환원시켜 동력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다.
* 알라딘은 우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다가간다. 그는 우고에게 "우고군은 망가진게 아니고 여전히 우고군"이라며 위로한다. 우고는 알라딘을 보고 조금 진정되는 듯 하다. 그는 곧 차분해진 태도로 설명을 이어간다.
논쟁은 격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최종적으론 "운명을 쟁취하자"는 입장으로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자는 우고 와 알리바바, 반대로 "운명은 독립해야 한다"며 차원간의 벽을 더 두껍게 만들어 서로 분리되자는 알라딘과 아르바의 입장이 대립했다.
신드바드가 끼어들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니? 토론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신드바드는 차원의 구분을 나라에 빗대고 차원의 벽을 국경으로 친다. 그렇게 친다면 현재 논쟁의 두 의견은 각기 "쇄국"과 "침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다른 차원 입장에서 말하면, 그쪽에도 이쪽과 비슷하게 사회성을 가지고 지성과 의지를 겸비한 존재들이 살고 있을 수 있다. 단지 알마트란 시대의 이종족들처럼 말이 통하지 않을 뿐. 그런 존재들이 있다면 자신들이 취해야할 행동은 무엇일까?
신드바드는 우선은 국경을 올바로 관리하되 미지의 세상에서 미지의 생명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먼저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그걸로 발전적인 관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없는 자원을 교류하며 유익한 거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토론자들은 그 점을 놓치고 있는가? 비로소 우고와 알라딘, 알리바바가 아차하면서 맞는 말이라 맞장구친다. 물론 처음부터 "커뮤니케이션은 된다"고 주장했던 아르바는 왜 이제야 그 말을 듣냐고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 스틸오션/일본 . . . . 13회 일치
>네척의 순잠1형(巡潛一形, Type J1)과 한척의 순잠1형개(巡潛一形改, Type J1 Mod.)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이 발발할 때 순잠1형의 무장은 95식 어뢰로 강화되었다. 이들은 전쟁 초기 알류산, 인도양, 하와이 등에서 활동했다.
>순잠3형(巡潛三形, Junsen III)을 기반으로 여덟척의 병형(丙形, Type-C)이 건조되었다. 어뢰 발사관과 어뢰 탑재량은 증가했지만 일본 잠수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수상정찰기가 제거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갑표적(甲標的, Ko-hyoteki) 모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네카제급 구축함은 일본제국해군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이 대형 구축함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8-4 함대 계획과 8-6 함대 계획에 의해 건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낮은 내구력으로 인해 호위함이나 구조임무만을 수행했다. 몇몇 미네카제급 구축함은 가이텐 모함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무츠키급 구축함은 일본이 워싱턴 해군조약에서 탈퇴하며 건조된 전선 구축함이었다. 이들의 수뢰전 무장은 전까지의 구축함과 달랐다. 제4함대사건 당시, 세척의 무츠키급 구축함이 큰 피해를 입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무츠키급 구축함은 호위와 화력지원을 주로 맡았다. 몇몇 함선은 "도쿄급행"이라고 불리는 고속 선박으로 개장되었다.
>후부키급 구축함은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 해군이 건조한 구축함급이다. "특형 구축함"으로 설계된 만큼 전에 만들어진 어떤 구축함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초도함인 후부키는 엔다우 전투에서 연합군 구축함 한척을 격침시켰으며, 순다해협 전투에서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후부키는 에스페란스 곶에서 격침되기 전까지 과달카날에서의 몇몇 전투에 참전했다.
> 병형구축함(丙形驅逐艦, Type-C destroyer)로도 알려져 있는 시마카제는 2차대전 중 건조된 일본 구축함중 가장 강하고, 가장 진보된 함선이었다. 일본의 수뢰전 중심 전략에 의한 산물이었지만 과도한 가격과 태평양 전쟁의 중심이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바뀌는 바람에 후속함은 건조되지 못했다. 1944년 11월, 오르목 만 전투에서 미국 항공기에게 공격받아 격침되었다.
>순수히 일본제국해군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함급이다. 그 당시 제일 큰 구경이었던 410mm 주포를 장비한 나가토급 두척은 미국의 콜로라도급 세척, 영국의 넬슨급 두척과 함께 "빅 7"이라고 불렸다. 1930년대 전면적인 현대화 개수를 거쳤다. 야마토급이 취역하기 전까지 나가토급은 연합함대 기함을 맡았다. 나가토급 두 척은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다. 1943년 6월, 하시라지마에 정박해있던 무츠가 후방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다. 나가토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미육군에게 나포되어 교차로 작전(Operation Crossroads)의 표적함으로 함생을 마쳤다.
>유바리급은 히라가 유즈루가 설계한 실험용 경순양함이었다. 오로지 한척만이 건조되었다. 연장 포탑의 사용과 연장 어뢰 발사관 두개를 중심선에 배치하는 걸로 갑판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유바리의 설계는 이후 일본 군함 설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1차 상하이 사변에 참가하였고, 1937년 광저우에서 중국 순양함 차오호에게 피해를 입혔다. 제1차 솔로몬 해전에서는 미국 순양함 빈센스(Vincennes)를 뇌격했다. 1944년 초반 대규모 개장 이후 뛰어난 대공 성능을 보였다. 1944년 4월 26일, 수송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국 잠수함 블루길(Bluegill)에게 격침되었다.
>카가는 토사급 전함이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체결 이후, 카가는 관동대지진으로 파손된 아마기를 대신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발진의 용이함을 위해 삼단 비행갑판으로 설계되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1935년, 다시 개장된 카가는 비행갑판을 하나로 감소시켰다. 카가는 제1차 상하이 사변 당시 일본제국육군을 지원했다.
>카가는 토사급 전함이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체결 이후, 카가는 관동대지진으로 파손된 아마기를 대신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발진의 용이함을 위해 삼단 비행갑판으로 설계되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1935년, 다시 개장된 카가는 비행갑판을 하나로 감소시켰다. 카가는 제1차 상하이 사변 당시 일본제국육군을 지원했다.
- 식극의 소마/178화 . . . . 13회 일치
* 하지만 3차시험부터 이동루트가 흩어지면서 다른 기숙사 일행과 떨어지게 된다.
* 2차시험 합격자들은 새로운 열차 티켓을 배포받는다.
* 적혀있는 발차시간 10분 전에 역에 도착해 열차에 탑승해야 한다.
* 사실 에리나는 과거에도 몇 번 홋카이도에 온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나키리 가문의 후계자로서 비지니스 차원에서 왔던 것.
* 몇 시간 후. 일행은 열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향한다. 그런데 다른 기숙사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 일행이 기차에 탈 무렵 히사코에게 연락이 오는데, 벌써 열차는 30분 전에 출발했다는 것. 이미 다른 일행은 또다른 열차로 이동하고 있었다.
* 린도는 당연한 일이라며, 원래 3차 시험부터는 "이동루트"가 갈린다고 설명해준다.
* 반역자팀의 3차 시험은 전원 십걸이 상대.
* 객관적으로 십걸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할 수 있는 기숙사 인원이 별로 없기 때문에 3차 시험에서 대량으로 탈락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영덕군 . . . . 13회 일치
[목차]
원래 일제강점기 말기에 [[동해선]]([[동해중부선]]) 계획이 있었고 노반까지 남아있을 정도였으나 해방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결국 70년이 넘는 세월을 걸려서 [[동해선]]이 개통되어 영덕군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KTX]]가 정차하는 [[포항역]]을 출발해 [[장사역]], [[강구역]], [[영덕역]]에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영해역]]을 지나 [[강원도]] [[삼척시]]의 [[삼척역]]까지의 공사가 진행중인데 영덕역 북쪽 구간이 완공되면 [[부산]]부터 영덕을 지나 [[강릉시]]까지 동해선 철도가 쭉 이어질 예정이다. 남쪽으로도 [[모량역]]부터 [[신경주역]]을 지나 [[태화강역]]까지 이어져서 최종적으로는 동해선의 실질적인 종점인 [[부전역(동해선)|부전역]]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개량중이다. 2018년 2월 기준으로는 중간 일부 구간들이 미완성이다. 동해선 외에 김천에서 의성을 거쳐 영덕을 이어주는 [[경북내륙선]]이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 이다.
[[영덕버스]]가 지역 내 농어촌버스를 운영하고 있으나, 현재 [[교통카드]]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았지만, 2016년에는 영덕도 교통카드 도입 예정이었다. 영덕군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2016년 예산을 보면 버스회사에 대한 교통카드 지원금이 들어가 있다. 대중교통 주무과는 새마을경제과이다. 예산은 12개월로 되어 있는데 단말기 설치 같은 징조가 연말에도 없었다. 알고보니 2016년 2차 추경에서 전액삭감 크리.
군청 차원에서 관광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14/0200000000AKR20161214100700053.HTML|관련기사]]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보수 성향 정당의 지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상북도에서도 보수 정당 지지율이 유독 압도적으로 높은, '''전국에서 [[자유한국당]] (구 새누리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가 여기서 '''84%'''를 득표해서 앞섰고, 또다른 보수 후보인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표가 무려 '''90%'''에 달했다. 2012년 말의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무려 '''87.11%'''를 득표해 '''대구경북권 2위이자 전국에서 2위'''[* 근소한 차이로 [[군위군]]이 1위.]를 기록했다. 이는 경상북도에서의 박근혜 후보 평균 득표율(80.82%)보다 무려 6.29%나 높고, 경북에서 가장 낮은 [[영주시]]와는 9.14%나 차이가 날 정도로 매우 압도적인 수치이다. 이윽고 열린 2014년 제 6회 지방선거에서도 [[김관용]] 새누리 경북도지사 후보의 득표율이 의성에 이은 2위를 차지했고[* 의성도 경북 평균보다 6~7% 높은,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보수 정당 강세지역이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대 총선]]에서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새누리당 득표율이 70%를 넘겨(70.83%)''' 경북 평균(58.11%)보다 무려 12.72%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평균(33.50%)의 무려 '''2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최근 새누리 계열 정당에서 여러 악재와 논란이 터지며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있는 와중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꿋꿋이 새누리당 계열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성격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깃발만 꽂아도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된다는 수준, 민주계열 정당에 있어서는 완전한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파탄에 이른 뒤 치뤄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62.96%'''를 득표해 군위, 의성에 이은 전국 3위를 기록했다. 2위 [[문재인]]과는 무려 '''48.35% 차이'''가 날 만큼 압도적인 1위를 수성했다. 2012년 대선에 비해 득표율이 다소 깎였다고는 하지만, 깎인 득표율이 60% 이상으로 5자대결 + 보수정당의 국가적 재앙 사태라는 전례없는 대선이었음에도 꿋꿋한 민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대선은 5자대결 구도 속에 치뤄졌기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득표율 전국 1위 문재인 후보조차 4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할 만큼 표 분산이 많이 되었던 선거였다.]. 여러모로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도 '''군위, 의성과 묶어 보수정당 최고의 텃밭 중 텃밭'''이라 하겠다.
- 영주시 . . . . 13회 일치
[목차]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철도]]교통 중심지로서 시내에 있는 [[영주역]]에서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교차한다. [[철도청]] 시절에는 전국에 5개밖에 없었던 지방철도청이 자리잡기도 했다.(2013년 현재는 코레일 경북본부) 과거 철도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오히려 지금은 노후되고 도심을 이리저리 관통하며 찢어놓는 철도가 도시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여론도 높아진 상태다.
기후는 분지가 다 그렇듯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강수량을 보인다. 또 내륙 지역이니만큼 일교차와 연교차가 굉장히 크고, 겨울 기온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필적한다.
2018년 6월 26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영주시청이 2019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소수서원)~단산면 병산리(선비세상 관광단지) 2.8㎞ 구간에 총 사업비 100억원(국비 50억, 경북도비 5억, 영주시비 45억원)을 투입해 모노레일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노레일 설치와 함께 탑승장 3곳과 정거장 5곳, 회랑(1548㎡)을 설치하고 모노레일 차량 14량(8인승)을 투입한다고 한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65078|꿈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rain&no=868480|이루어진다]].
* [[헌혈의 집]]이 없다. 하려면 [[안동]]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헌혈의 집은 대부분 특별시, 광역시와 지역 중심 도시에나 있지 영주시보다 인구가 많은 곳조차도 헌혈의 집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므로 특이한 사항은 아니다. 비정기적으로 헌혈 버스가 학교로 오지만 1년에 1번꼴.(...)
* 사람이 줄어든 탓인지 밤에 별로 할 게 없다. 늦은 저녁이 되면 시내의 상가들은 문을 다 닫아버리기 때문. --그래도 17시만 되도 가게 닫는 호주, 뉴질랜드 같은 곳보단 그나마 양반-- 심지어 PC방마저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어 분명 금요일 밤인데도 정말 사람들이 어디갔나 싶을 정도로 늦은 저녁의 영주 시내는 정말 조용하다. 그래도 육거리 경북전문대 근처가 나름 대학가라고 밤에는 정말 활발해진다. 기차역에서 죽 이어지는 나름 신도시(80, 90년대 건설한 지역이다)이고, 바로 앞에 현대아파트가 있어 인구가 많은 탓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가흥동 택지 개발이 되면서 거기도 사람들이 몰리는 추세. 하지만 학생들은 육거리 위주고 여행객이나 직장인인 경우엔 택지 쪽을 더 찾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예전처럼 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는다. 특히 청소년층의 경우 억양에서는 어느 정도 어른 세대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지만 그 정도가 매우 약하며 어휘는 대부분 표준어와 별 차이가 없다.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19대 대선에서는 ~~당연히~~ 홍준표가 압도적으로 이겼으나, 영주시청과 [[영주역]]이 인근에 있고 한국폴리텍 영주캠이 있는 시내 지역인 가흥 1동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26.77%를 기록했고, 시내 지역에서는 그리고, 재외투표에서는 문재인이 압도적으로 승리. 여기다가 이 지역은 택지지구 개발로 인해, 김천시처럼 도시-농촌 간 지지도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 [[PC방]] 가격이 비싼 편이다. 대부분 1시간에 1,200원이고 5,000원에 4시간 30분, 10,000원에 9시간 30분이다. 과거 영주시에 사람이 많을 때는 PC방이 상당히 많이 있었으며 1,000원 미만의 피씨방 또한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들어 많은 PC방이 문을 닫게 되었고, 남은 PC방들 중 일부는 24시간 운영을 위해 가격을 평균보다 비싸게 받게 된다. 일례로 꽃동산 회전교차로쪽 PC방을 가보면 가격이 저렴한 대신 새벽시간 때가 되면 문을 닫으며 1,200원 이상을 받는 곳은 24시간 영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기에는 더 싼 곳이 있지만 가는데 교통비가 더 든다는 게 함정~~ ~~그런데 풍기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동양대, 경북항공고 주변 PC방은 회원가입해도 5천원 5시간이다~~ 여담으로 시내의 PC방 2곳은 업주가 부부라 가보면 모니터도 똑같고 의자, 탁자, 본체 등도 같다고 한다.
* 교통편에서는 회사원 기준으로 택시, 버스를 타는 것보다 자동차를 타는 게 더 이득이라고 한다.
- 우현(배우) . . . . 13회 일치
[목차]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드라마에도 데뷔하였으며, 그 뒤로 감초 역할로 활약했다. 특유의 [[노안]]과 작은 키 덕에 전형적인 동네 촌놈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최근에는 연기변신을 시도하면서 악역으로도 연기폭을 넓혔다. 특히 [[뿌리깊은 나무(드라마)]]에서 [[이방지(뿌리깊은 나무)|이방지]] 역을 맡아 강채윤의 스승이자 노회한 무공의 고수 역할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 젊은 [[이방지(육룡이 나르샤)|이방지]] 역을 맡은 [[변요한]]과 비교하면 외모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마스터 - 국수의 신]]에서 고대천의 라이벌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맡았던 배역이 삭제된 것인지 중도하차하였다. 대신 다른 드라마에 캐스팅이 되었는데, 그게 바로 [[미녀 공심이]].[* 그것도 여주인공의 아버지 역이며, 미녀인 아내와 큰 딸이 있다. 진정한 승리자.]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으로 드라마가 대박을 쳤다.
친구인 [[안내상]]과만 몇 번 출연하다가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 가족과 함께 출연한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능에 진출했다. 본래 예능 울렁증이 있다 보니 우현보다는 가족들의 활약이 대단했었고 빵빵 터졌지만, 어느 정도 예능을 하다보니 본인도 평타를 치기 시작했다. 또한 극초반에 드라마 촬영 일정 때문에 아내와 외아들만 출연하다가, 잠깐 하차했다가 다시 매주 고정출연 중이다. 그 후 장모님이 타계 후 잠깐 쉰 적이 있지만, 그 후에도 프로가 종영할 때까지 꾸준히 참여하였다.
2014년 3월부터 [[SBS]] [[자기야 백년손님]]에 장모인 소설가 곽의진 씨와 같이 출연을 하였다. 부부 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장모인 곽의진 씨가 타계 이후 하차하게 되었다. 대신 2주간 추모 방송을 하였다.
또한 [[시트콩 로얄빌라]]에 콩트를 펼치기도 하였고, 아내 조련과 함께 <내 나이가 어때서> 후속 코너인 <리그 오브 차일드>에서 동반출연한다.
* 플라이 대디 (2006) - 포장마차 주인 역(우정출연)
* [[자기야 백년손님]](SBS, 2014) - 고정출연. 장모인 곽의진 씨와 출연했으나 곽의진 씨의 타계 이후 하차. 그리고 2년 후에 아내 [[조련(배우)|조련]]과 함께 재출연하였다.
* 키즈돌직구쇼 - 내 나이가 어때서(jtbc, 2015) - 코너인 리그 오브 차일드에서 아내인 조련과 함께 출연할 예정이나 1화만 하고 끝났다.
본래 가족과 방송 출연은커녕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그나마 아내는 인터뷰나 [[라디오스타]] 등에서 자주 언급했었고 부부가 영화 동반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유자식 상팔자]] 계기로 온 가족이 방송에 출연했다. 하지만 출연 후에도 아내는 방송에서 자주 모습을 비추는 것에 비해 아들은 고정 프로그램인 <유자식 상팔자>와 [[무한도전]]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잠깐 출연한 것 이외의 다른 프로그램에는 전혀 출연하지 않는다.
장모님은 유명 소설가인 故 곽의진 씨로, 백년손님에 함께 출연했다.[* 곽의진 씨는 103세의 아버지와 함께 [[인간극장]]-세월이 가면편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었다. 또한 우현 가족도 아주 잠깐 출연했었다.] 또한 장모님이 실제로 워낙 [[동안]]이고 우현이 워낙 노안인 데다가 나이차도 얼마나지 않아, 장모-사위 관계가 아닌 부부 관계로 종종 오해를 받았았었다.[* 사실 처가 자체가 동안인 인물들이 많으며, 아내와 아들도 나이에 비해 어리게 보이는 편] 실제로도 <백년손님 자기야>에 출연 당시에도 오해하는 장면이 잠깐 나왔다.
* 엄청난 마성의 매력 소유자다. 본인 말로는 "처음 볼 때는 엄청 싫어하다가, 몇 번 보고 나면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도 이런 매력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배우 [[조민희]]나 박남정 딸 [[박시은(2001)|박시은]]도 잠시 동안에 빠졌었다. 그래서 못친소에 나온 것이 싫었다고.[* 못친소에서 밝히길 아들 준서도 처음엔 엄청 싫어했지만 5살 즈음에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우현의 아들은 못친소 특집에 우현이 나간다고 하자, "아빠가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고 우현이 왜냐고 반발하자, "아빠가 잘생긴 걸로 1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못생긴거)로라도 꼭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과 본인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사실 단순히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의 마성이라기보다, 실제로 인성이 훌륭하고 부드러우며 심지도 곧은데다가 포용력과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쉽게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즉 [[진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청춘을 던진 것만 봐도 정신이 올바른 것이 보인다. 본인도 삶의 목표가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온다고 하면 기분 좋아지고 환영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단지 본인의 외모와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 표독스럽거나 독특한 성격의 느낌을 준 적이 많아, 사적으로 보면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친소에서도 결국 그 대인친화적인 인성으로 우승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노홍철]]이 1등을 했던 못친소 1과 다르게 우현이 나온 못친소 2는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남자' 컨셉으로 출연자들이 정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을 뽑았던 사실상의 인기투표였다.]
*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셀프카메라에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송일국]]의 차남 민국이와 상당히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민국이가 후에 우현이 되는 게 아니냐"며 드립이 성행하는 중. 또한 아들의 아기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상당히 아빠와 [[붕어빵]]이었다.[* 사실 <유자식 상팔자>에서도 공개된 내용인데, 당시 우준서는 사진을 공개한 내내 상당히 좌절했고, 본인은 조기관리에 들어가겠다고 당돌하게 발언하였다. 이때 밝혀진 것인데, 아기일 적의 엄마와도 닮았다고 한다.]
- 이강돈 . . . . 13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1985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br]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1985년]] 지명권 양도 ([[빙그레 이글스|빙그레]]) ||
[목차]
전 [[한화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풍미한 선수다.
왜냐면 당시 빙그레는 막 생긴 신생팀으로서 기존의 6개 구단들보다 전력이 한참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원년 참가 팀들을 제외하고, 1군 첫 시즌을 보낸 팀들 중 최저승률 기록을 갖고 있다.] 여기에 당시 빙그레의 초대 단장인 노진호는 바로 직전까지 삼성에서 [[프런트]]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결국 삼성은 전관예우 + 신생 구단에게 선심쓰는 차원에서 무상으로 그의 지명권을 양도했다. 그래서 이강돈은 빙그레에 입단할 수 있었고,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드래프트 질서를 거부하고도 별 일 없는 선수가 되었다.
이 사건의 전말은 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개되었는데, 군대부터 다녀오라는 [[삼성 라이온즈]]의 요구를 거부한 이강돈이 다른 팀으로 보내 주기를 희망했고 놀랍게도 [[삼성 라이온즈]]가 신생 팀에 대한 예우 차원인지 [[빙그레 이글스]]에 조건 없이 지명권을 양도하여 보내 주는 [[대인배]]스러운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강돈뿐만 아니라 중장거리형 1루수 [[강정길]]도 삼성의 지명권 양도로 빙그레에 입단했다.
하지만 빙그레는 결국 해태의 벽을 넘지 못하며 1988, 1989, [[199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패했고, 1992년에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3위로 올라온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하면서 또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 때 이강돈은 모두 출전했고, 그리고 이강돈이 은퇴한 시기가 1997년이니 이강돈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비록 한국시리즈 우승은 못 했지만, 선수 시절 이강돈은 1번 [[이정훈(1963년생)|이정훈]]의 뒤를 받치는 강한 2번 타자로서 맹활약했다. 1990년에는 .335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7사 차이[* 할푼리모 다음 오는 단위가 사. 1모 차이가 났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반올림하면 0.3349로 모 단위까지 똑같았다.]로 [[한대화]]에게 밀려 타격 1위를 놓쳤고,[* [[한대화]] 0.334928, 이강돈 0.334862.] 1992년에는 다시 .320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래도 이강돈 본인은 타율보다 안타에 더 애착을 가졌던 만큼, 타격왕을 놓친 것에 큰 아쉬움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0 시즌 막판 한대화 등과의 타격왕 경쟁에서도 마음만 먹었다면 타율 관리 명목으로 쉴수도 있었지만, "정정당당히 승부하겠다"면서 이를 사양했다. 대신 그해 이강돈은 최다 안타 1위를 차지했고, [[KBO 리그]] 역사상 최다안타 부문에서 정식으로 시상을 받은 첫 주인공이 되었다.
어쨌거나 빙그레의 주축으로 매년 10개 가량의 홈런을 기대할 수 있고, 3할 근처의 타율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 결과 이강돈은 두 차례 최다안타 1위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강돈은 1992년의 최후의 전성기를 끝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슬럼프에 빠지고, 여기에 여러 부상이 겹치면서 조금식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벅지, 무릎, 어깨가 아프고 점차 그 자리를 신인들이 메우면서 이강돈의 입지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결국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하기에 이른다.
특이한 기록도 두 가지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1987년 8월 27일 [[OB 베어스|OB]]전에서 수립한 프로야구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 기록이다. 그런데 이강돈은 전날 저녁,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밤새 술을 들이붓고 고주망태가 되었는데, 정작 경기 당일 비가 오기는 커녕 쨍쨍한 날씨인지라 정상적으로 경기가 거행되었다. 당연히 [[숙취]]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하던 이강돈은 대충 휘두르고 죽자는 생각으로 출장했지만 뜻밖에도 홈런에 2루타, 번트 내야안타, 3루타를 차례로 때려내며 대 기록을 작성하였다. 나중에 이강돈은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대한 소감으로 "술기운이 남아서인지 공이 수박만하게 보이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찬가지로 술기운에 7타수 7안타 날린 [[오시타 히로시]]와 오버랩된다~~
201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를 이끌고 결승까지 올라가 지역 라이벌인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와 맞붙었는데, 0:4로 끌려가던 중 상대 [[선발 투수|선발]]인 [[김훈호]]의 볼질로 한점차까지 따라간 상황에서 뜬금없는 스퀴즈를 지시했다. 결과는...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주고는 [[김경문]]이 활약하며 [[MVP]]로 선정됐던 1977년 이후 36년만의 대통령배 우승이었다. 이 날 경기는 월요일에 목동야구장에서 진행되었으며 공주고 동문인 손혁, 박정배, 조동화가 와서 관전했다. 박찬호는 아예 덕아웃 옆에 있었고...]
- 이경실 . . . . 13회 일치
[목차]
[[문화방송|MBC]] 1기 공채 코미디언. [[1966년]] [[2월 10일]]생으로 [[전라북도]] [[군산]] 출생. 1987년 제 1회 MBC TV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원래 코미디언이 될 생각은 없었고 배우를 지망했는데, 4학년 2학기 등록금이 필요하던 차에 열린 개그 콘테스트의 대상 상금이 100만원이란 얘길 듣고 응시한다. 하지만 상금이 70만원인 금상을 타게 되고, 불로소득세 33%를 떼고 지인들에게 수상 턱을 내고나니 남는 돈이 없어서 그대로 MBC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과거 MBC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도루묵 여사' 코너로 대인기를 끄는 등 전성기를 보내면서 '''1994 MBC 방송대상 코미디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코미디계에서 일컫기를 '''여성의 몸으로 정상을 차지해본 3명'''중 하나. 1대가 [[김미화]], 2대가 이경실, 3대가 [[이영자]]다. 이 시기의 영광 덕에 [[응답하라 1994]]에 성동일의 첫사랑이자 당대 최고의 톱스타로 특별출연을 하기도 한다.
[[이성미]], [[박미선]], [[조영남]] 등과 가깝다. 거센 성격으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꺼리거나 두려워한다. 무서운 [[군기반장]]으로 유명한데다 선배인 이성미조차도 예전에는 이경실을 피했다가 [[이홍렬]]의 중재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역시 군기반장인데다 선배인 [[이경규]]조차도 유독 그녀에겐 한 수 접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이경실보다 연상에 [[선배]]들이다. [[박명수]] 역시 그녀를 두려워한다. 박명수는 자신보다 선배인 사람들 앞에서는 특유의 사나운 캐릭터를 못 살려서 얼어붙는다. [[http://youtu.be/GNautvauUcA?t=4m52s|요즘은 호통 컨셉 믿고 떨면서도 들이댈 때도 있다]]. 예전에 이경실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명수는 웬만해서는 이경실과 방송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세바퀴]]에서 상황극도 해봤지만, 박명수가 시작부터 굳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동갑이지만 5년 후배인 [[지석진]]도 이경실을 굉장히 어려워 한다.[* 사실상 남자들은 [[군대]] 문제 때문에라도 동갑내기 여자들보다 [[기수]]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김구라]]조차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거의 최초로 기를 못 편 게스트다.[* 다만, 일상생활까지 포함하면 이순재의 큰아들에게도 독설하다 맞을 뻔했다고 한다.]
참고로, [[신인]] 시절 [[홍기훈]]이 꽤나 유명한 [[터프가이#s-1|터프가이]]로 [[대전광역시|대전]]에서 알아주는 [[주먹]]에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아현|전 여친]]도 팼나?-- 게다가 [[나이]]도 많고 성깔도 더러워서 웬만한 선배들조차도 쉽게 터치를 못 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그런 홍기훈조차도 한방에 [[군기]]를 잡아버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 이경실이다. 또 하나는 군기반장은 아니지만 [[이재포]]. 이재포도 [[유도(스포츠)|유도]] 전공자답게 주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경실 역시 개그계에서는 알아주는 군기반장이다. 방송에서 김구라의 [[턱]]을 최초로 잡은 [[연예인]]이기도 하니...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의 말을 끊고 진행을 몰아붙이는 김구라가 짜증이 났던지 가까이 와보라고 한 다음 턱을 잡고 흔들었다. 이후부터 김구라를 능욕할 때 김구라의 턱을 잡고 흔들거나 소원을 비는 김구라의 턱하르방 컨셉이 여기서 생겨났다.
2015년 8월경 현 남편이 지인의 아내를 차 안에서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처음엔 그저 개그우먼의 남편으로만 알려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경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남편이라고 밝혔다. 처음엔 이경실도 나서서 '남편의 결백을 믿는다,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라고 했지만, 남편인 최씨는 1차 공판에서 혐의를 완전히 인정했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선 '범죄 사실을 인정한 게 아니라 만취사실 만을 인정한 것'이라고 교묘한 거짓말로 언플을 했지만... 그리고 2차 공판에서도 공소사실을 고스란히 [[http://news.joins.com/article/19270472|인정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 문제사항이 없어보이지만 문제는 이경실 역시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등 정신이 이상한 여자로 몰아간 병크를 일으켜 이경실에 대한 비판이 커지며 해당 프로(특히, 유자식 상팔자)에 하차하라고 아우성거리고 있단 거다. ~~그런데도 하차를 안한다.~~[* 참고로 유자식 상팔자는 이경실의 소속사에서 제작된 프로다.]
- 이경영(1960) . . . . 13회 일치
[목차]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영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상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상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영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두 번째 사건 때는 소개하는 말을 했던 유정현은 당황했고, 이소라는 웃느라 아예 정신을 못 차렸으며, 이영애는 조금 웃기만 하며 가만히 있었는데, 이경영도 당황은 했으나 더 이상 멘트가 안 나오면 더 큰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여 미소와 함께 차분하게 "아 예,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로맨스》에 출연하고 있는 이경영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유머로 받아쳐 넘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소라의 웃음터진 게 이미 너무 심해서, 이경영의 자연스러운 --아재-- 유머에 계속 터져 버려 한동안 방송사고가 지속되었다. 이 두 개가 1997 ~ 98년, 1년 사이에 터진 일인데, 홍보를 해야 하는 이경영 본인의 입장에서는 단기간 연속으로 발생된 방송사고로 출연작에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면 위험하기에 당혹스럽고 누가 봐도 화가 날 만한 상황[* 드라마, 영화 외의 방송출연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 정도 상황까지 온다면 어떤 주연급 배우도 심하게 빡칠 만한 상황이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혼자 의연하게 대처했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져서 "역시 젠틀맨 이경영"이라는 식으로 평판이 더 좋아졌었다.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영창]]은 이경영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영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영 신상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2002년에 [[원조교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미성년자 L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으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게 되었다.
* 3차례의 성관계를 가질 동안 이경영은 L양이 미성년자임을 알았는가? 몰랐는가?
||1심 재판결과 이경영이 미성년자인 L모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인정되었는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정확하게 표현하면,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무죄, 두 번째와 세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형량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이었다. 아래는 당시 판결을 보도한 기사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성룡ㆍ李性龍 부장판사)는 25일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화배우겸 감독 이경영(41)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대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모(18)양과의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를 맺을 때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인정,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보여 검사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57848|#]]
위 인터뷰를 보면 이경영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런 기사들 때문에 이경영이 무죄판결을 받은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경영의 말은 1/3만 진실이고, 2/3는 거짓이다.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만 무죄고, 나머지 두 번의 성관계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니까.
* '''형사재판''':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임을 몰랐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 번째와 세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의 형이 선고됨.
법원은 이경영이 L양(당시 18세)과 가진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는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설령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도, 성매매한 사실만으로 첫 번째 성관계 역시 유죄(일반 성매매죄) 아닌가?'라며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3||[[더 테러 라이브]]||차대은|| 5,584,139 ||
- 이채영(fromis_9) . . . . 13회 일치
||<bgcolor=#BBB3D8> '''{{{#white 신체}}}''' ||<(><bgcolor=#ffffff> 169cm[* 2017년 8월 25일 카카오TV 라이브방송에서 직접 언급.], 54.6kg[* 팀 내 최장신, 2차 라이브방송에서 실수로 몸무게 뒷자리가 4라고 간접인증] ||
||<bgcolor=#BBB3D8> '''{{{#white 가족}}}''' ||<(><bgcolor=#ffffff> 부모님, 언니 이혜인^^(1993년생)^^, 언니 이혜지^^(1996년생)^^[* 채영 왈 큰 언니랑 2살차, 작은 언니랑 7살차라고 한다. 특히 큰언니 이혜인은 종영 이후 채영의 일상 사진을 많이 올리고, 채영 팬과 소통을 자주한다. ~~챙덕은 계탔다~~] ||
[목차]
[[아이돌학교]]에서 보컬 기초실력 평가와 댄스 기초실력 평가에서 모두 4위를 차지하고 종합성적 '''3위'''를 기록한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 학기말고사 [[OOH-AHH하게]] 무대에서도 [[나띠]]와 함께 댄스 브레이크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팀내 1위를 차지하는 등 본인의 실력을 증명해냈다.
* [[유용근밴드리즈]]의 최장신이다. 두 번째인 [[장규리]], [[백지헌]]과는 불과 1cm 차이. 때문에 이 둘이 팀의 양쪽 끝에 서는 경우가 많다.[* 5회차 약속회에서 채영 왈 아버지가 정육점을 하셨는데 그때 고기를 많이 먹어서 키가 많이 큰 것 같다고 한다.]
* 데뷔하고 나서 해보고 싶은 예명 중 하나가 '''[[엘리자베스]]'''였다고 한다. 여왕 이름으로 많이 나오다 보니까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 얘기를 들은 멤버들에게 돌아온 건 안 어울린다는 말 뿐(...) 2차 약속회에서 해보고 싶은 머리색으로 금발을 꼽은 걸로 보아 이런 이미지를 좋아하는 듯하다. ~~다만 [[fromis_9]]은 멤버 전부 본명을 쓰기 때문에 이 예명이 쓰일 일은 없었다.~~
* 2018년 2월 5일 학교 등교길에 한 V앱에서 등교할 때는 숙소 근처 카페에서 빵과 커피로 아침으로 먹는다고 한다.[* 근데 당일에는 차가 막히는 바람에 카페도 못가고 지각 인증....~~댓글 왈 : 국내 아이돌 최초 학교 지각 인증~~]
* 아래는 [[fromis_9]]의 1~4차 약속회에서 나눠준 무료 간행물에서의 이채영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
* [[SHOW CHAMPION|쇼 챔피언 비하인드]] 80회에서 실시한 쇼챔올림픽 제자리 멀리뛰기에서 245cm[* 실제로는 195cm에 보너스 기록 50cm가 추가된 기록이다. 2003년 고3 여학생들의 평균 기록이 165cm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 ~~사실 245cm면 거의 모든 대학의 체대입시에서 만점을 받는 수준이다ㅡ~~]를 기록하며 은메달[* 금메달은 [[모모랜드]]의 [[데이지(모모랜드)|데이지.]] ]을 차지했다. 추가로 중학교 때도 멀리뛰기로 1등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챙람쥐 인증--
* 5회차 약속회에서 채영이 [[아이돌학교]] 전에 인터넷에 돌던 [[송하영|하영]]의 춤 영상을 즐겨봤다고 한다. 근데 정작 [[아이돌학교]]에 가니까 하영과 너무 똑같은 언니가 들어와서 놀랬다고 한다. 하영이 그 영상의 주인공임을 알고나서는 이 덕분에 정말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 이철희(1964) . . . . 13회 일치
[목차]
12월 24일 [[새정치민주연합]]이 이 소장을 내년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할 총선기획단장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다른 기사에선 성사 직전까지 왔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7&aid=0000865862|#]]
2016년 1월 7일 방송분(148회)으로 썰전에서 하차하였다. 해당 회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에 대해 노코멘트를 하였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2016년 1월 20일 [[권미혁]] 대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입당 인사에서 그동안 방송 덕분에 얻은 유명세를 내려놓는다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워봐야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 정계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와이프마저도 평소 '''당신이 한 말[* 썰전 등의 방송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지지해줬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흑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며 '''핫하게 싸워보고 지더라도 쿨하게 떠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나가던 시민이 잘 한다며 커피 한 잔 사주며 더 잘 하라고 격려하고 싶은, 그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썰전 출연 당시 그는 끝까지 썰전에 남을 것이며, 국회의원 출마는 안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강용석이 몇차례에 걸쳐 "총선쯤 되면 우리 둘다 여기 없을 수도 있는데~"라는 드립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부정했기 때문. 결국 둘다 나가게 되기는 했다.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이에 대해 그는 본인의 가장 큰 목표인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지역구 사안도 챙겨야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보다는 전략 수립에 몰두할 수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사실 다선을 노리려면 처음부터 지역구에 나가는 것이 수월할 만큼, 다선보다는 정권 교체를 1차적인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차기 [[21대 총선]]에서 [[부산]] [[동래구]]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래구 지역위원장을 맡고있던 [[김우룡]] 지역위원장은 동래구청장에 당선되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하며 지역위원장에 공모하지는 않았다.[* 사직동 소재 [[동인고등학교]] 출신으로 지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가진 편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정확한 발음이나 발성, 톤 조절 등 기초적 발언 능력이 상당히 뛰어날 뿐만 아니라, 토론에서의 치고 빠지는 타이밍(?)[* 평론가 시절 방송 토론에서 --노답-- 상대가 억지 논리로 나올 때도 이철희는 처음엔 참고 있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큰 헛점이 표출될 때)에 치고 나오며, 막판에 상대와 같이 깽판을 치더라도 상대 빈틈을 파고들 타이밍을 안 놓치고 맹공격하곤 했으며, 상대의 억지 논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받아치는 것도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왔고, 역으로 소위 막가는(?) 언쟁을 끝낼 때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칼같이 끊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 봐도 상대가 먼저 깽판을 쳤고, 이철희는 그에 잘 맞섰다는 인상을 주었다. --상대는 콧김만 씩씩, 사회자는 그냥 멘붕--] 설정 능력, 짧은 시간에 상대 논리의 빈틈을 찾아내는 능력, 상대와 상황에 맞춰서 발언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탁월하여, 농담으로 '말 못하는 사람도 토론은 잘 한다'[* 말투가 어눌하거나 목소리 톤이 별로거나 하는 등 대화에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조차도 상대의 뜻을 빠르고 정확히 찾아내어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문장을 구성하고, 그 상황에 맞는 비언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단점들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대화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뜻이다. 즉, 언어라는 요소만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것에는 그 사람만의 [[포스]]나 [[카리스마]]도 포함된다. 한국 근대 민주화의 뿌리였던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 연예인들이 그 말투를 흉내내어 당대에 가장 유행한 개그 패러디 소재가 되었을 정도로, 발음이나 말투가 매력적인 편이 아니었음에도 평생 수많은 진보 인사들을 연설과 대화로 매료시켰던, 한국 정치사 최고의 웅변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대한민국사 최초의 [[필리버스터]]도 김대중이 했다.) 그와 대화했던 정치인들의 경험담들을 보면 짧은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우리 박동지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라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말을 못해도 말을 잘한다는 개념과 일치한다. 물론 이런건 김대중처럼 정치인생의 험난한 경험과 그런 고난들을 수없이 극복한 뒤에만 얻어지는 절대적 카리스마가 많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초선의원 이철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다.--원래 말 잘하는 사람은 그냥 말 잘하면 된다--]는 소리도 있는 스피킹의 달인들이 모인 정치인 집단들 중에서도 정상급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는 그를 '전략가'로서 영입했으나 사실 그 이전까지 이철희 자신을 대중적 인지도 높은 스타로 키운 건 그의 발언 및 토론 능력이다. 침착하게 말하다가도 상대의 공격에는 바로 강하게 맞설 수 있고, 강하게 말하다가도 이내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능력이 굉장하다. 그러나 전략가라는 분야는 말을 잘해서 특정 상황을 잘 넘기거나 옳은 말로 물러나지 않고 맞서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전체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는 설계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데, 연륜과 언변으로 인한 기대치에 비해서 전략 측면에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전략가가, 합리적으로 상대가 잘못했고 자기 진영이 잘못이 없더라도, 정의와 논리로 이기기만 할 뿐이고 상대를 협상의 장으로 흡인력있게 끌어들이는 판을 만드는 설계 능력은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정치에서 항상 떠넘기기식 상황 전개를 유지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실질 이득을 얻을 수 없어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기 쉽다.
* 썰전에 출연할 당시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말을 잘 했으나, 경제적인 의제와 관련해서는 식견 부족으로 그저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얘기만 늘어놓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강용석과 복지를 주장한 이철희의 성향차이라고 보면 된다. 썰전에서 차라리 정치적 부분은 양자가 타협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기도 했으나, 경제적 문제를 보는 인식 차이는 완벽한 평행선이었다. 썰전에서 즐겨 인용한 말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였으니.
- 정찬성 . . . . 13회 일치
[목차]
2007년 6월 SSF로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 2007년 12월 판크라스 한국대회와 2008년 5월 횡성 한우배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전적을 쌓아갔다.[* 다만 현 시점에 와서 SSF에 대한 기록은 어딜 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Q채널에서 방영한 리얼격투 스트리트파이터 라는 격투기 토너먼트 프로그램에 2007년 6월경 출연한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SSF는 그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 당시 토너먼트 규칙은 3인 1팀으로 팀전이었는데, 정찬성 선수는 계속 이기며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결승에서 합기도 선수에게 판정패당한다.][* 참고로 정찬성 선수는 해당 토너먼트에 킥복서 베이스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대회 룰 자체가 연속니킥 금지에 링도 없어서 펀치 러쉬가 이어지질 못하는 등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괴랄한 대회였다.]
같은 해 5월에는 역시 일본의 신성인 카네하라 마사노리를 상대로 8강전을 치르지만 아깝게 분패하고 말았다. 카네하라가 상위를 차지하고 정찬성이 하위에서 서브미션을 시도하는 형태로 흘러갔다. 카네하라는 정찬성의 타격을 봉쇄하며 초반을 뚜렷한 우세를 보였다. 스탠딩에서는 정찬성의 우세였고 중반 이후에는 전체적으로 호각인 양상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카네하라의 만장일치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경기 후 정찬성이 포이리에를 상대로 수술을 요하는 어깨 회전근 부상을 안고 싸웠던 게 뒤늦게 확인되었다. 수퍼액션 중계에서 김대환 해설위원이 미트조차 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고 말할 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중에 외신의 보도 등으로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감탄을 넘어 황당해할 정도였으며 이 소식을 전한 미국의 <어포우징 뷰스>는 정찬성을 가리켜 정말로 좀비 같은 근성을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국내 격투기계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정찬성이 도전 기회를 잃었지만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깨가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제 알도와의 타이틀전을 추진했다면 그나마 없는 승산이 더욱 적어졌을 것이고, 만일 본래 계획대로 프랭키 에드가가 12월 페더급 데뷔전을 치르고 승리하게 되면 정찬성이 에드가와 타이틀 도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었으므로, 알도와 에드가가 먼저 맞붙기 때문에 정찬성이 타이틀전을 앞두고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이 내년 복귀시기에 맞춰 바로 타이틀전 직행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후 랭킹 4위였던 [[컵 스완슨]]이 6위 [[브라이언 오르테가]]에게 패배하며 오르테가가 4위, 스완슨이 5위가 되면서 정찬성이 6위가 되었고, 3위이던 리카르도 라마스가 라이트급에서 랭킹 밖에 있던 [[조쉬 에밋]]이라는 선수에게 1라운드 KO패를 당하면서 에밋이 '''무려 4위'''로 랭킹 진입하면서 정찬성의 랭킹은 한 계단 더 떨어져 7위가 되었다. 2018년 1월, [[최두호]]가 [[제레미 스티븐스|스티븐스]]에게 TKO패를 당하면서 스티븐스가 8위, 즉 정찬성 바로 아래가 되었고 스티븐스가 계속 정찬성과 싸우고 싶다고 했으나 [[조쉬 에밋]]과의 대결이 확정되었다. 정찬성 본인은 랭킹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모두 자신 아래에 있어야 할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우선 정찬성의 승리 전적을 살펴보면, 14승 중 KO가 4승, '''[[서브미션]]이 8승'''을 차지한다. 좀비 스타일을 버리고 난 조지 루프 전 이후에 거둔 2KO 와 2 서브미션을 제외해도 2KO 6서브미션이다. 좀비 스타일이었을 때나 좀비 스타일을 버리고 난 이후나, 정찬성은 '''MMA [[주짓수]]와 서브미션 중심의 [[그래플러]]'''이다.
물론 정찬성의 타격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일단 4KO 의 비중은 결코 적은 게 아니며, [[조지 루프]] 전 이후를 보면 4번의 승리 중 절반을 KO가 차지하고 있다. 특유의 맷집을 바탕으로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인파이팅은 상대 선수에게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으며, 긴 리치 덕분에 원거리 전도 가능하다. 189cm에 달하는 정찬성의 윙스팬은 동양인 선수로서는 가히 축복받았다고 할 만하다. 승리 전적에서 타격은 모두 [[펀치]]로 마무리했다.
단점이라면 명확하게 하나의 강한 무기가 없다는 점. 좀 막말하자면 '근본이 없다.' (...) 정찬성은 타격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다. 테이크 다운 디펜스가 뛰어난 다른 스프럴&브롤 선수들과 다르다. 레슬링은 다른 선수들이 명백한 약점으로 지목하며, 그나마 강점인 주짓수 쪽에서도 정통 주짓떼로 수준의 깊이가 있지는 않다. 한 마디로 내가 불리할 때 '이거 하나만은 내가 너보다 잘한다' 며 상대를 찍어 누르고 제압하는 내 안마당이 없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는 중~원거리 타격에서는 명백히 마이클 존슨에게 밀렸지만, 몇 대 맞아주며 근거리로 붙어 레슬링으로 마이클 존슨을 갈아버렸고 [[코너 맥그리거]]는 페더급 스탠딩 타격전에서는 진 경험이 없으며, 김동현은 [[콜비 코빙턴]]에게 패하기 전 까지는 그라운드/그래플링 싸움에서 져 본 적이 없다.[* [[데미안 마이아]]에게도 그래플링 싸움에서 지진 않았다. 김동현의 TKO패는 클린치 상황에서 당한 갈비뼈 부상으로 인한 것이다.] 다행히 주짓떼로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현대 MMA이며 페더급이지만, [[데미안 마이아]]나 [[호나우도 소우자]]같은 정통 주짓떼로에 타격, 레슬링이 보완된 선수가 페더급에 나타난다면 정찬성은 어느 점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좀비 스타일'은 불과 다음 경기 루프전의 뼈아픈 KO패로 그 한계를 확실히 드러냈다. 이 때 얻은 교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찬성의 회고가 '나는 싸움을 하러 들어갔는데 루프는 스포츠를 하려고 나와 있더라' 라는 말이 있다. 한때는 정말로 낙담해서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지만, 다시 심기일전하여 '좀비 스타일을 버리겠다'며 새로운 각오를 보였다. 유라이아 페이버의 알파 메일로 캠프를 옮겨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것이 가르시아 2차전에서 결실을 거두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UFC 첫승을 거두게 된 것. 가르시아와의 경기 이후 호미닉 전은 6초만에끝나서 뭐 달리 보여줄 것도 없었지만 포이리에와의 경기에서는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어 계속해서 성장중인 파이터라는 것을 어필했다.
경기마다 명장면을 만들어 내는 초특급 슈퍼스타다. WEC 48의 난타전, UFN 24의 트위스터에 이어 UFC 140에는 최단시간 KO까지 만들어내는 등 그가 싸우는 곳에는 언제나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경량급에는 스타가 확실히 적은걸 보면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 마치 BJ 펜이 라이트급의 서막을 열었듯이. 이미 한국 안에서 뿐 아니라 Zuffa 페더급의 흥행을 책임지는 스타 플레이어. 한국에서의 MMA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오히려 북미에서의 인기가 더 높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연이은 명경기로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급상승했지만 북미의 찌를듯한 인기에 비하면 아직은 국내인기는 약한 편이다. 실제로 코리안 좀비 티셔츠는 2010년 MMA 티셔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는 WEC 데뷔전과 UFC 데뷔전에서 만나며 매번 명승부를 펼친 사이다. 판정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적도 있지만 정작 두 선수는 꽤 친하다고 알려져 있다. Fight of The Night 보너스만 수 만 달러를 받았으니 그럴 수밖에. 본봉에 Submission of The Night까지 포함하여 가르시아전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렸으며 보너스는 세금조차 없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13회 일치
[[진격의 거인]] 93화. '''밤의 열차'''
* "차력의 거인" [[피크]]는 갤리어드를 "포코"라고 부르는 사이. 전쟁 중엔 두 달 가량 거인으로 생활하다 돌아온 여파로 두 다리로 걷는 데 익숙지 않아졌다.
* "마레의 전사"들과 전하 후보생들은 본부인 "리베리오"로 돌아가는 밤 열차에 탄다. 열차에서 취한 콜트는 가비를 동지들 앞에 세워놓고 여신으로 추켜세운다.
* 자신을 "사냥"하러 오는 리바이, 그리고 입안에 뇌창을 쑤셔박았던 미카사. 배후를 빼앗겨 무너지던 베르톨트. 갑옷의 거인 [[라이너 브라운]]은 악몽에서 일어난다. 그는 꿈에서 본 것들을 향해 "기다려"라는 말을 하며 손을 뻗는다. 꿈에서 깨어나고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방에 혼자만 있는게 아니었다.
그녀는 "차력의 거인". 거인일 때의 모습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흑발의 여성이다. 체구는 오히려 보통보다 작다. 그녀는 목발을 짚고 있는데 인간으로 돌아온게 두 달만이라 그 동안 2족 보행하는걸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그녀가 걷는게 불편한건 분명하다. 그녀는 라이너의 맞은 편 침대에 앉는다. 그리고 가비 일행이 라이너를 쭉 걱정하고 있었다며, 일어날 수 있게 됐으면 얼굴을 보여주라고 권한다. 라이너가 그 말을 듣고 바깥으로 나간다. 둘만 남게 되자 피크는 피곤하다며 벌렁 눕는다. 몹시 피곤한 기색이다. 갤리어드가 문득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고 하는데, 피크는 "전장에선 언제나 같이 있었지 않냐"며 무슨 소리냐고 핀잔한다. 갤리어드는 그 말에 대신에 "피곤하다"고 했던 말에 붙여 "한동안은 쉴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피크는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 가비는 떠들썩하게 전사단이 리베리오의 본부로 돌아가게 된 소식을 전한다. 그녀는 목소리 좀 낮추라는 라이너의 제지는 무시하고 "그 전까지 마을을 돌아보자"며 그의 손을 잡아 끈다. 파르코는 내키지 않는지 라이너에게 "자두는게 좋지 않겠냐"고 권하는데 라이너는 괜찮다며 사양한다. 가비가 "너야 말로 가서 자라!"고 쏘아붙이자 파르코도 기운차게 "나도 간다!"고 결정한다. 우도는 가비가 "애들이 가면 안 되는 거리"로 가려는 걸 신경쓰는데 조피아는 "그래도 마가트 대장이 가는 걸 봤다"며 은근히 충동질한다. 시끌벅적한 네 명의 소년소녀들. 마레의 전사, 후보생. 라이너는 익숙한 장면이 떠오른다. 유년기의, 없어진 친구들이 있던 풍경. 꿈에서 처럼, 라이너는 그 풍경을 향해 손을 뻗는다.
* 가비의 말처럼 그날 밤에는 전사단이 리베리오의 본부로 돌아간다. 병사들은 밤열차에 탔다. 마레의 전사들과 후보생들, 전사단은 화물칸 같이 생긴 허름한 칸에 모여있다. 얌전한 타입인 콜트가 의외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한 잔 걸친게 문제였다.
완전히 취한 콜트는 가비와 전사 후보생들을 동지들 앞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가비를 옆에 끼고 "엘디아의 여신"이라 과장한다. 작전 막바지에 가비가 수류탄만 가지고 적 진지로 돌격, 장갑열차를 파괴한 공적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떠들어 댄다. 가비는 콜트가 술냄새를 풍기면서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얼굴을 들이미는데 질색한다. 콜트는 다시 동지들을 향해 외친다.
* 엘디아인의 객실은 흥분의 도가니. 모두가 가비의 이름을 연호하며 고맙다고 외친다. 가비는 크게 감동하는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이제는 분위기에 취해서 술에 취한 녀석들과 아무 차이도 없다.
일순 라이너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그는 보통의 마레인 어른처럼 파르코를 무섭게 다그친다.
파르코가 아차할 틈도 없이 라이너는 추궁이 이어진다. 거의 협박조다. 이 발언은 곧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 들었다면 밀고할 감이라는 것. 이렇게 되면 콜트가 짐승의 거인을 계승하기는 커녕 그의 그라이스 일가가 모두 반역자로 몰려서 "거인병기행"이다. 다음 작전에서 비행선에서 투하되는건 다름아닌 파르코와 콜트, 부모님이 될 것이다. 겁에 질린 파르코는 뒤늦게 발언을 정정하겠다고 한다. 라이너는 다시 아홉 거인을 계승하는 명예를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밤열차가 새까만 어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차명진 . . . . 13회 일치
|이름 = 차명진
|본관 = [[연안 차씨|연안]]
'''차명진'''(車明進, [[1959년]] [[8월 14일]] ~ )은 [[대한민국]] 정치인이자, 제17, 18대 국회의원이다.
* [[2010년]] [[7월 23일]] 에서 24일까지 참여연대가 실시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에 참여한 이후 후기가 논란이 됐다. 이 후기에서 차명진 의원은 "나는 왜 단돈 6300원<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00727034204810 “6300원짜리 황제의 삶” 차명진 의원 최저생계비 체험 수기 논란]</ref> 으로 황제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물가에 대한 좋은 정보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글을 써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응하여 민주노총은 개드립(개+애드립(ad lib))과 오버질에 불과하다며 비난했다. 차명진 의원은 결국 물의를 빚어서 죄송하다는 말로써 사과했다.
* [[2011년]] [[9월 18일]] 국민일보의 "[정치자금 겉과 속-(4) 정치 후원금은 쌈짓돈] 이발비 12만원·안경 구입비 45만원 쓰고 “의정활동용”"이라는 기사 <ref>{{뉴스 인용|제목=`[정치자금 겉과 속-(4) 정치 후원금은 쌈짓돈] 이발비 12만원·안경 구입비 45만원 쓰고 “의정활동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364841&code=11121100|출판사=국민일보|날짜=2011-09-18}}</ref> 에 의하면 차명진은 2010년 5월 27일 업무용 안경 10만원, 6월 23일 다시 업무용 안경 45만원, 7월 1일에도 업무용 안경 45만원, 9월 8일 진료비 21만 9100원, 11월 28일 목도리 4만5천원, 12월 8일 셔츠 3만9천원을 각각 '의정활동용'으로 신고했다.
* {{트위터|#!/sosachachacha|차명진}}
* {{페이스북|sosacha|차명진}}
* {{싸이월드|44281773|차명진}}
|후임자 = 차명진
|전임자 = 차명진
[[분류:민중당의 정치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연안 차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친이]][[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
- Drunken Sailor . . . . 12회 일치
Early in the morning! ||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Early in the morning! ||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Early in the morning! ||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Early in the morning! ||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어기어차 돛을 펼쳐라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12회 일치
신성로마제국 소속 국가들은 황제국 전용 디시전을 8단계까지 마치면 신성로마제국을 형성할 수 있다. 다만 황제자리는 군주국만 차지할 수 있다. [* 굳이 제국 소속 국가가 아니더라도 일단 황제국만 되면 자기나라를 제국령에 포함시키는 형식으로 제국에 가입할 수 있다. 편입시킬때마다 쌓이는 제국권위 1퍼는 덤.]
본격 자기가 안싸우고 자기 동맹이랑 자기가 동군연합한 국가들만 싸우는 국가. 헝가리랑 보헤미아를 동군연합하는 미션이 있으며, 이둘은 굳이 퍼유미션을 안받아도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1500년이전에 둘다 퍼유해버릴수 있다. 이후에 부르고뉴 분할 상속 이벤트등으로 세를 불릴 수도 있다. [* 단, 최신버전부터는 부르고뉴 상속방식이 결혼국 70퍼, 카스티야 20퍼, 황제국 10퍼형식으로 바뀌었다. 부르고뉴가 오스트리아를 자주 라이벌지정하지 않게 바뀐지는 한참됬으니 왠만해선 결혼은 해두자. 취향에 따라선 초반에 부르고뉴랑 동맹해 프랑스를 견제하는 방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최신버전에선 카스티야랑 사이가 좋으면 '''아예 카스티야에 합스부르크가 들어서는 이벤트도 생겼으니!''' 잘알아두도록 하자. 신대륙확장은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고 하기도 어려우니, 프랑스나 오스만등과 치고 받고 해서 구대륙쪽으로 확장하는걸 주력으로 삼자.
주문화권이 프러시아 문화권이거나, [* 시작지점에서 이걸 만족하는 국가는 튜튼 기사단과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 그리고 리가 정도다.] 아니면 자신의 국가가 브란덴부르크일경우에, 쾨니히스베르그를 가지고 있고, 국교가 개신교(protestant)나 개혁교회(reformed)일경우, 프로이센을 형성할 수 있다. [* 브란덴부르크는 어차피 국가이념이 프로이센이랑 같기 때문에 취향따라 그냥 브란덴부르크로 가도 상관없다 ~~대신에 프뽕을 못느낀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상당히 힘들다. 오스트리아는 아우구스부르크나 잘츠부르크같은 남독일지방 소국들 문제로 분쟁을 겪을 일이 많으며, 신롬내 2위국이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을 라이벌로 지정하는 경우가 잦다. 팔츠같은 좀 만만한 국가를 패려고 들어도, 옆에 붙어있는 국가들이 거의다 신롬내 자유도시들이며, [* 자유도시 국가는 기본적으로 황제국이 보호를 해주며 방어전때 앵간하면 거의 무조건 딸려온다.] 잘츠부르크랑 아우구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진출 방향과 겹쳐서 무조건 얼마안되 싸운다고 봐도 무방하며(...) 팔츠는 오스트리아나 보헤미아와 동맹하는 경우가 잦다(...) 다행히 주변국들중 안스바흐가 그나마 만만하고 관련 미션도 있으므로, 공격해 자신의 속국(vassal)로 삼는게 좋다. 일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신롬내 강국들에게 다굴맞아 쪼그라들기 쉬우므로, 동맹하기 적당한 강국부터 찾아야 된다. 가장 좋은 동맹은 헝가리, 최근 리투아니아의 개발도가 너프되 폴란드의 힘이 상당히 빠져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으므로 가장 좋은 동맹이다. 폴란드도 괜찮긴 한데, 이 녀석이 뭔 생각인지 브란덴부르크나 실레시아등 자기랑 맞닿아 있는 신롬국가들을 공격해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잦으므로(...)그냥 하지 말자. 어차피 이젠 헝가리나 모스크바한테 털리는 호구다. 그외에 부르고뉴는 분할 상속이벤트로 저지대를 통채로 주기도 하니, 결혼정도는 해주는걸 추천한다.
초반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절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상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백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상태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그 다음 공세는 잉글랜드령 프랑스로 정해두자. 메인 할양 이벤트로 프랑스와 싸우게 되든, 그 할양 이벤트에서 잉글랜드가 메인을 넘기든, 잉글랜드는 결국 프랑스와 싸우게 되어있는데, 그틈에 잉글랜드를 쳐서 칼레와 노르망디일대를 먹어두자.(AE가 남으면 알렝송까지 먹어도 상관없다.) 이후 확장방향은 취향따라 다른데, 브르타뉴를 먹고 북프랑스쪽으로 확장하든, 북프랑스를 장악한뒤 신롬쪽 영역을 먹든, 신롬 영역을 치든, 그건 취향차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다만 위치상 어디로 확장하든 신롬 소국들이 빼액대면서 반국가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것에 주의하도록 하자.
'''하나님은 세계지도가 더 영국령 색으로 칠해진 것을 원하신다. 가능하다면 나는 밤 하늘조차도 영국령으로 병합하고 싶다. -세실 로즈'''
확장방향은 우선은 노보고로드 정복미션을 얻어내서 노보고로드를 치고, 그 이후에 폴-리투 동군연합이 뜨면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후에 폴란드랑 사이가 안좋은 국가랑 동맹을 해둔뒤 폴란드를 치는것. [* 폴란드가 동군연합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경우엔 리투아니아를 패면 된다.] [* 다만 중간중간 틈틈히 골든 호드(킵차크 칸국)과 카잔등을 패면서 남진역시 해두어야 한다.] 이 경우엔 오스트리아랑 헝가리, 오스만정도가 물망에 오른다. 그이후 확장방향으론 스웨덴을 쳐서 북유럽쪽으로 확장하거나, 폴란드에게서 단치히등 프로이센지방을 뜯어내 발트해노드를 장악하는 방향, 그리고 오스만으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뺏어 진짜 [[제3의 로마]]가 되는 방향(...)등이 있다.
본격 동유럽 깡패국가. 시기상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랑 동군연합 맺고 신나게 깡패질 할때라 매우 강력하다. 거기다가 국가이념중에 기병전투력 33퍼센트 추가가 달려있어서 [* 그다음으로 강력한 헝가리기병 전투력증가가 20퍼다...다만 이쪽은 국가전통이라 처음부터 달려있다는게 차이점.] 올기병 플레이[* 보병은 버리고(사람에 따라선 포병까지) 기병만으로 플레이하는것]에 가장 추천되는 국가기도 하다. 선거군주정 특징을 잘이용해 오스트리아를 뛰어넘는 동군연합의 제왕이 될수도 있고, 이후에 대홍수이벤트까지 끝내면 다른 나라보다 몇 십년 빨리[* 다만 프랑스보단 느리다. ~~주인공 보정~~] 절대군주정이 될수 있다.
두번째로, 땅덩어리는 프랑스보다 살짝 작은수준으로 넓으면서 병력수는 카스티야보다 딸린다(...) 땅차이는 상당하지만 병력양은 헝가리랑 맞먹는 보헤미아나 오스트리아[* 황제국 버프를 제외하고. 버프까지 받으면 헝가리보다 더 쎄다.]를 보면 괜히 안습해진다...
우선 시작지점에서 공위상태인데, 헝가리의 왕이 오스만과의 바르나전투에서 패배해서 그렇다.[* 같은 이유로 폴란드와 보헤미아도 공위상태다.] 오스트리아와 시작하자마자 동맹을 해두고 약간만 기다리면[* 앞에 오스트리아와 동맹해두고를 적었지만 꼭 오스트리아와 동맹안해둬도 일어난다. 어차피 역사적 친구보정덕에 냅둬도 동맹을 걸고] 000섭정의회로 갈지, 야노슈 후냐디를 섭정으로 세우는지[* 능력치 455]가 갈릴텐데 능력치도 후자가 더좋고 역사적이기까지 하므로 얌전히 야노슈를 섭정으로 올리자.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도가 깎이겠지만 역사적친구보너스 덕에 이거 가지고 동맹이 풀리거나 동맹을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이후 보헤미아와 튜튼기사단중 헝가리를 라이벌로 삼지않은 국가와 동맹하고 폴란드가 튜튼기사단을 치길 기대하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전엔 폴란드가 거의 프랑스급으로 쎘지만 너프이후론 야노슈가 이끄는 헝가리군정도에 기사단 둘정도면 해볼만해질정도다.[* 다만 한타한번 밀리면 끝장이긴하다(...)] [* 만약 튜튼이 헝가리를 라이벌로 삼았다면, 독립보장을 걸어두자. 방어전 한정으로 따라서 싸울수 있다.] 그리고 이걸 하기전에 가장 중요한건 일단 미리 외교탭으로 가서 폴란드가 들고 있는 지방중 일부를 관심지역으로 지정해두는것. 전쟁기여도가 높으면 관심지역중 일부를 주는(아니면 전부!) 경우가 있으므로 굉장히 유용하다. 이상태로 10년이 지나고 헝가리왕의 후계자가 없으면 [* 만약에 생겨버렸으면 1470년까지 어떻게든 후계자를 없애야 한다. 후계자가 좋을경우엔 그대로 합스부르크가로 유지하면 되지만.] 두가지 선택지가 생기는데, 첫번째는 야노슈의 아들인 마챠시 1세를 왕으로 세우는것이고, 두번째는 랜덤한 합스부르크국가에게 동군연합되는것이다.
물론 두번째 선택지를 고를 사람은 없을것이므로(...) 얌전히 역사적인 선택지인 첫번째를 고르자. 마챠시 1세의 능력치로 455로 상당히 좋은편이므로 잘써먹을 수 있을것이다. [* 다만 오스트리아와의 역사적 친구보정이 사라지는게 조금 단점이긴 한데, 어차피 오스만과 폴리투를 제거하면 헝가리의 칼끝은 오스트리아쪽으로 가기때문에...] 만약 섭정이 끝나자마자 마챠시 1세를 선택했다면, 3년간의 섭정기간이 더추가된다. 알아두자. [* 섭정기간동안은 선전포고가 불가능해지기 때문.] 섭정이 끝나면, 모스크바랑 폴-리투랑 싸우는 때가 있을거다. 타이밍봐서 동맹들을 이끌고 폴란드를 치자. 폴란드를 패면서 동유럽의 패왕이 된 이후부터야 크게 문제없다.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면 간단하게 처리가능하고, 오스만은 16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약해지기에 상대가 가능하다. [* 굳이 초반에 오스만땅을 먹고 싶다면 맘루크와 싸울때를 노리자. 맘루크가 육상에서야 박살나겠지만 해군은 오스만보다 우위이기에 보소포로스 해협이 막히게 되있는데, 이때 오스만 주력이 오기전에 콘스탄티노플과 에디르네를 함락시키면 적절히 오스만의 발칸반도쪽 땅을 뜯어낼수 있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2회 일치
[[목차]]
이후 레드라인에 도착하지만 어인섬에 가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던 중, 우연히 만난 인어 [[케이미]]와 아론 파크에서 싸웠던 문어 어인 [[하찌(원피스)|하찌]]의 도움으로 [[샤본디 제도]]에서 배에 코팅을 한 후 잠수해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하지만 케이미가 납치당해 경매장에서 팔릴 위기에 처하고, 하찌가 도와주려다 [[천룡인]]의 총에 맞자 루피는 가차없이 천룡인을 두들겨 팬다.[* 천룡인을 때린다는 것은 작중에서는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평가된다. 행콕도 처음 루피가 천룡인을 때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런 엄청난 바보가 또 있을줄은 몰랐다'고 평할 정도. ] 그 때문에 [[볼사리노]], [[센토마루]], [[파시피스타]]가 출동하고, 쿠마때문에 루피는 동료들과 뿔뿔이 흩어진다.
탈출 직전에 아오키지에게 바다가 얼려 잡힐뻔하고 [[볼사리노]]에게 무차별 레이저 난사를 당했으나 천운으로 잠수함은 무사했고, [[보아 행콕]]도 자신의 뱀 살로메를 이용해 추적에 성공해서 뒤따라온다. 루피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 숨을 곳이 필요함을 안 행콕은 쿠쟈 해적단을 불러 로 일행과 루피를 여인섬으로 데려간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반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상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태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남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반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상인 몸을 반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정상결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심지어는 뭐가 해적왕이냐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사실 에이스랑 동료들을 못 지키고, 봉쿠레를 자신 때문에 또 한 번 희생시켰다. 심지어 에이스는 마린포드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친할아버지인 가프에게 주먹을 날렸다. 루피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루피가 정말 처절하게 절망했다. 이런 사실은 샤본디에서 동료를 모두 잃은 일이 첫 번째 좌절이다. 다만 샤본디에서 동료들과 흩어지고, 잠시도 못 쉬고 정상결전까지 겪었다. 결국 좌절을 곱씹을 겨를도 없지만, 이때는 모두가 살아남았으니까 본인이 겪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에이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끔 하고 몸을 해치는 일을 말리려는 징베와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사실 징베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속이 상할 만한 상황이다. 흰수염 본인과 에이스 외에도 흰수염 해적단의 수많은 해적들이 루피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정작 그 본인은 상처가 벌어지는데도 날뛰어 대서 혼자 개죽음을 겪으려 하는 상황이니 징베까지 덩달아 격동해서 루피를 죽이려고 까지 했었다.] 불안정한 상태였다. 징베가 '''"잃은 것만 보지말고 남아 있는 것도 봐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일갈하자 울며 날뛰던 루피도 '''[[밀짚모자 일당|사랑스런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자기 해적단'을 남아있는 것 한 가지로 세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손가락을 일일히 하나씩 꼽아가며 세고는 남아 있는 것이 잔뜩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습이 참으로 루피다운 모습.
601화에서 정체가 드러나면서 [[파시피스타]]와 [[센토마루]]와 전투에 들어갔는데 파시피스타의 레이저 빔을 가볍게 피하며 몸에 부담이 가는 부작용을 최소화 혹은 없앤 부분 기어 2(세컨드)를 사용한다. 이때 예전처럼 다리를 펌프질하는 게 아닌 한 팔만 기어를 발동했다. 그리고 고무고무 JET 총(피스톨)을 사용해 파시피스타의 머리를 땅에 박아놓으면서 단 한 방에 파괴해 버리는 등 미칠 듯한 [[간지폭풍]]을 보여준다. 이때 센토마루는 루피가 무장색 패기로 팔을 강화시킨 것을 알아차렸다.--역시 2년동안 수련해서 강해졋다고 해도 패기도 없이 팔 하나로 파시피스타를 파괴하는건 무리인가보다(...)--
반면 어인은 수중에서는 오히려 이동범위에 있어 부자유가 없어지고 속도와 힘도 더 붙고 기술폭까지 늘어나 전체적인 컨디션이 대폭 상승한다. 이건 '''ES를 과다복용한 호디를 기준으로 해도 압도적인 실력차가 있지 않고서야''' 이기기 힘든 게임이다. 그런데 루피는 이걸 이긴다음에 체력이 남아서 노아를 때려부순다. 사실 따지면 따질수록 이 상황에서 못 이긴 호디가 보스로써 수준미달 이었다는 결론이 난다.(…)
.신세계에 도착해 우연히 '[[펑크 하자드]]'에서 있으니 구해달라는 전보벌레를 받은 루피는 조로, 로빈, 우솝과 펑크 하자드로 향한다. 펑크 하자드의 뜨거운 땅을 지나 차가운 땅에서 예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트라팔가 로]]를 다시 만나게 된다. '[[사황]]'을 치기 위해 동맹을 맺자는 말에 쉽게 승낙한다. ~~루피의 마이페이스에 트라팔가 로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지고 있다.~~
이후 피카에 의해 조로, 로, 리쿠 드루드 3세, 퀴로스, 비올라와 함께 궁전 정원으로 떨어지고 도플라밍고가 새장을 펼치며 시작한 게임[* 도플라밍고를 먼저 죽이느냐, 그가 지목한 12인을 먼저 죽이느냐.]에서 별 3개[* 별 하나당 1억과 동급]를 배정받았다.[* 같은 입장으로 리쿠 드루드 3세와 트라팔가 로, 사보가 있다. 하지만 우솝은 입장을 떠나 도플라밍고를 제일 열받게 해서 별이 5개가 걸렸다.] 그리고 로빈에게 걸려온 전보벌레로 레베카에게 퀴로스의 정체를 알림과 동시에 도플라밍고를 작살내놓겠다 선언한다. 로는 동맹의 본래 목적을 다시 말하며 카이도와의 연전도 각오한 거냐고 물어보지만, 그에 대한 입막음으로 말한 루피의 대사가 실로 압권. 그리고 조로, 로를 끌어안고 도플라밍고의 궁전으로 직행하였고 도플라밍고를 포함한 돈키호테 패밀리앞에 등장하였다. 루피의 발을 잡고 [[마하바이스]]와 [[델린저(원피스)|델린저]]가 그를 막으려 했지만 마하바이스의 무게공격은 피했고 델린저는 조로가 뒤에서 차버려서 델린저와 마하바이스를 쌍방으로 데미지를 입히게 한다. 그리고 돈키호테 패밀리사이에 일반인이 끼여있자 그들을 패왕색으로 기절시키려는 찰나에 [[후지토라]]가 나타났고 조로가 그를 막아선다. 그리고 [[피카]]의 고음을 듣고 미친듯이 웃는바람에(...)[[어그로|그것이 피카를 도발한 꼴이 되어]]. 그래서 빡친 피카의 주먹에 의해 조로, 로와 함께 멀리 날아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그리고 781화에서 새장의 크기를 줄이며 시민 모두를 죽이려 하는 도플라밍고에게 격노하여 문답무용으로 정면 돌진...하는가 했더니 사실은 거기까지가 이미 죽은 줄 알았던 로의 작전이었다. 공격하려던 순간 샴블즈로 뒤쪽에 있던 로와 위치를 교체, 방심하고 있던 도플라밍고에게 로가 능력으로 치명상을 입히는 데에 성공한다. 도플라밍고는 깡으로 버티며 로를 공격하려 하지만 이어서 루피가 도플라밍고를 공격하고, 그로기 상태가 된 도플라밍고에게 로가 혼신의 카운터 쇼크를 날린다. 그 동안 로를 막으려던 트레볼은 루피가 발차기 한 방으로 날려버린다. 하지만 정작 치명상을 입었던 도플라밍고가 자신의 실실 능력으로 부상을 치료하고 로를 짓밟으려 하는 순간 루피가 뻗은 발이 도플라밍고의 발을 받아내고, 서로 발을 맞댄 채로 노려보는 장면으로 781화 종료.
782화에서 패기의 대결에서 밀렸지만 나름 엇비슷하게 싸웠다. 그러나 도플라밍고의 발차기에 맞아서 날아가고 난입한 트레볼에게 붙잡히지만 로우가 기지를 발휘해 트레볼에게 치명상을 입힌 탓에 빠져 나왔다.
784화에서 드디어 기어4가 등장. 명칭은 '''기어4 바운스 맨'''. 무장색 패기를 이용해서 탄력을 극한으로 강화한 모습이다. 고스트 루피를 연상시킬 정도로 몸집이 커지며 무장색으로 강화된 부분이 문신처럼 보인다. 이 상태에서는 신체를 몇 단으로 압축, 발사하는 것으로 강력한 파워와 놀라운 스피드를 겸비할 수 있으며 육식의 월보처럼 허공을 차며 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고무고무 총에 추적기능이 추가되어 도플라밍고의 움직임을 쫓아가 명중시키기도 한다.~~올레인지 공격?~~
- 박화요비 . . . . 12회 일치
[목차]
화요비의 음악적인 강점을 고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음도 고음이지만 화요비가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창법으로 다양한 음색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이제껏 내왔던 정규 앨범은 물론 미니 앨범까지 각 앨범마다 전부 창법과 음색이 다를 정도로 10년이 넘는 가수 생활에서 다양한 음색을 선보여 왔다. 때로는 음악적 지향에 맞추어서, 앨범 컨셉에 맞추어서 팔색조 같은 목소리의 매력을 자랑하는 그녀. 화요비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는 올드 팬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이게 몇 년도에 불렀던 노래인지를(!) 짐작하기도 한다.
특별히 논란이라고 부풀려 말할 만큼 논란은 아니었지만, '디바 이미지'가 흔들릴 만큼의 행보는 '스타 화보'에서 다시 드러났다. 두 차례에 걸쳐 '스타 화보'를 찍어 디지털 판매를 한 이력이 있었는데, 노출도가 '스타 화보다워서'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전의 그녀는 라이브 무대든 어디서든 신체적인 노출이 거의 없었고,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주목은 클 수 밖에 없었다. 화보 자체도 팬이든 아니든 본 사람은 입을 벌리게 될 만한 수위였기도 했고.
초기 창법은 머라이어 캐리와 매우 흡사했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인 1집 앨범 제목도 머라이어 캐리 5집 후속곡 제목인 <My All>을 그대로 가져왔다. 머라이어 캐리와 창법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여, 그만큼 파워풀한 실력파 가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타이틀곡 Lie 뿐만 아니라 전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도 될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1집을 내고 타이틀 곡 <Lie>의 인기에 힘입어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인기와 실력에 힘입어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업적을 남겼었다.
예능의 파급력은 음원에도 미쳐, 그 때를 즈음 하여 냈던 음원인 <반쪽>, <나 같은 여자>, <마취> 모두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KISS KISS KISS>는 논외로 친다~~ 정규 7집 타이틀 곡 <BYE BYE BYE>는 당시의 음원 강자였던 [[원더걸스]]의 <2DT>를 위협하는 성적을 냈다.
2014년 12월 30일, 앨범 발매 전 연말공연 중 실신하여 병원에 후송되어 콘서트가 도중 취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전액 환불 조치를 해주고, 소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요비가 무릎을 꿇고 사과 동영상을 올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 까지했다. 다음날 공연에는 차질 없이 진행하여 잘 마무리 하였다.
[[복면가왕]] 37차 경연에서 [[아씨가 타고 있어요 꽃가마]]로 참가해 [[통금 12시 호박마차]], [[참 외롭다]]를 차례차례 꺾었으며 결승전 상대인 [[뫼비우스의 띠(복면가왕)|뫼비우스의 띠]]에게 밀려 준우승했다. 자신은 방송에서 타이틀 곡만 하게 되니까 다른 장르의 노래를 해보고 싶어서 나왔으며, 또한 데뷔한 지 16년이 되었는데도 부모님이 자신 노래를 휴대폰 컬러링으로 안 해 놓아서 기왕이면 모두가 사랑하는 프로그램에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밝혔다.
* [[언터쳐블(가수)|언터쳐블]]의 랩퍼 슬리피와 공개연애를 했었다. 차후 공개 연애는 안할 거라고.
* 뛰어난 가창력에 대한 일화들이 상당히 많으며 [[성시경]]이 여러 차례 그녀의 가창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 소지섭 . . . . 12회 일치
| 차무혁
| [[쌍용자동차]] 제작, 단편영화<br />영화채널 [[OCN]], [[수퍼액션]] 동시 방송.
| 밤도깨비 야차
! 최고 차트 <br> 순위
! style="width=3em;font-size:90%"|[[가온 차트|대한민국<br>가온]]<br><ref name="Gaon">{{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title=Gaon Chart|website=[[가온 차트]]}}</ref>
| colspan="5" |<small>"—" 표시는 차트에 진입하지 못함을 의미함(2010년 이전 자료 없음).</small>
| [[쌍용자동차]]
| 자동차
| 카페 전문프랜차이즈
| 자동차
| 치킨 브랜차이즈
- 연정(우주소녀) . . . . 12회 일치
[목차]
또 다른 장점으로는 라이브에 거의 기복이 없다시피하다는 것. 항상 뛰어난 라이브를 선보인다. 감기에 걸렸거나 하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고음이건 아니건 마이크를 꽉 채워 노래를 부르는데, 거기다 안정적이기까지 해서 음원과 라이브가 큰 차이가 없다.
2016년 8월 10일 방영된 걸스피릿 4회에 다원을 지원사격하러 출연, 마마무의 <넌 is 뭔들>을 소화했다. 방송에 나오기도 전에 걸스피릿 연관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2ab4c22af6c22aaf7aef85e746&no=29bcc427b38b77a16fb3dab004c86b6f113d37b1bcb96f74596c07c47348a17c44487b07c9662c1671ff75596f818e9797dea0e370aa9c87aaddc7bab3971b7329923d|#]] 그러긴 하나 연정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오히려 다원이 묻혔다는 비판이 있다.
2016년 8월 17일 미니앨범 《The Secret》을 통해 본격적으로 컴백했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기존의 12성좌에서 연정이 합류해 13성좌로 되는 과정'''이 중심으로 연정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같은 사자자리인 보나가 연정을 처음 마중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뮤비뿐만 아니라 타이틀곡의 분량도 독보적으로 많이 주어졌으며[[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2067965&page=1&search_pos=-2056951&s_type=search_all&s_keyword=%EC%9A%B0%EC%A3%BC%EC%86%8C%EB%85%80+%EB%B9%84%EB%B0%80%EC%9D%B4%EC%95%BC|#]] 무대에서도 메인보컬 겸 '''센터''' 포지션을 맡았다. 한때는 중심에 섰단 이유만으로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으나, 이번 활동에서는 그 직책과 명성에 걸맞은 카리스마를 뽐내며 무대를 이끌어가고 있어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2074650&page=468|#]]
2016년 12월 25일,2017년 1월 1일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하얀시 눈이군 쌓이면 우리마을]]이라는 가명으로 출연했으며 [[집 나가면 고생 컴백홈]]에 이은 우주소녀 멤버 중 두번째 참가자다. 1라운드에서 [[김군 최군 우리 모두 구세군]]을 이긴 뒤 2라운드 상대인 [[지방방위대 디저트맨]]에게 밀렸다. 참고로 2라운드에서 부른 유미의 '별'은 1년동안 활동하다가 해체를 앞둔 본인 그룹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선곡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경연에서는 그 뒤 복면가수로 나온 [[가왕? 별들에게 물어봐~ 첨성대|또다른 멤버]]와 동명이인인 [[주전자부인 펄펄 끓었네|혼성 그룹 여성 가수]]가 2라운드에서 [[사랑은 관람차를 타고|복면가수 출신 여성 판정단]]의 곡인 '멍'을 불렀으며 이들도 같은 성적을 보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담으로 프로듀스 101 출신이자[* 이 조건으로만 한정하면 최초는 아니다. 권은빈이 속한 CLC가 쇼! 음악중심에 출연했고 2016 추석특집 아이돌 요리왕에 한혜리가 출연했었다. 그 이후 솔로로 데뷔한 김주나와 키미, 김형은, 세이, 지니가 속한 불독이 쇼! 음악중심에 출연했다.] '''I.O.I 멤버들 중 가장 먼저 MBC에 입성'''했고[* '''지상파TV''' 최초며 라디오를 통해서는 본인 포함 8명의 멤버가 꿈꾸는 라디오에 출연했다. 다만, 최초 MBC 지상파 출연은 2016년 12월 10일, 12월 17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며 성소를 지원사격하기 위해 비밀이야와 Bebe를 불렀다.] 한 때 최연소 참가자의 기록이었으며 그 뒤 73차 경연에서 [[한 뚝배기 하실래예 로버트 할리퀸|최연소 기록]]이 깨졌다. 훗날 우주소녀 공식 인스타그램에 의하면 3라운드에서는 아이유의 너랑 나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30107|선곡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http://tv.naver.com/v/2366623|1라운드 듀엣곡 풀잎사랑(With 허경환)]], [[http://tv.naver.com/v/2366635|2라운드 솔로곡 별]][* 최근에 복면가왕 스페셜로 I.O.I가 출연했던 방송분의 '''풀영상이 올라왔다'''.] 참고로 프로듀스 101 시즌 1 출신 중에서는 최고 성적이다.[* 시즌 1 출신으로 나온 8명은 모두 1라운드에서 가면을 벗었으며 시즌 2에 나온 6명 중 2명은 2라운드 진출/2명은 준우승/2명은 우승했다.]
2018년 11월 5일, [[2018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 초청되어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에 맞게 아주 정확하고 깔끔하게 불렀고 야구 팬들에게도 호평 일색이다.
* 비글미가 넘치는 I.O.I 내에서도 최고의 비글이라는 멤버들의 증언이 있다. 약간 조증이 있어 차분할 때와 신날 때의 갭이 큰 편인데, 체력적으로는 최유정, 소미에 밀릴지는 몰라도 한번 신나고 흥이 넘치는 순간부터 아무도 말릴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그 활발한 소미조차 업된 유연정이 옆에 앉자 '벌써 기를 다 빨린 느낌이다' 고 할 정도니(...)[* 160518자 뮤비뱅크 스타더스 참고] 그래도 그런 유연정의 에너지에 멤버들이 기운을 얻기도 한다고.
* 2018년 4월 4일 비가 세게 오는 날 쇼챔피언 야외 특집으로 실외에서 리허설을 하는 도중 초반에 아주 세게 넘어지면서 머리를 박아서 잠시 음악을 중단시켜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본방 때엔 맨발투혼을 선보였다..--
* 유독 [[소녀시대]]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와 인연이 깊다. 데뷔 전 [[프로듀스 101]] 때 이 곡을 부르고 뜬 것부터 시작해서 데뷔 후에 I.O.I 멤버들이랑도 부르고 이 곡으로 2016 KBS 가요대축제 때 [[I.O.I]], [[레드벨벳]], [[TWICE|트와이스]],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합동무대를 했으며, 2018 DMC페스티벌에서는 [[우주소녀]] 멤버들과 같이 불렀다.[* 파트가 없었던 가요대축제 때를 빼고 시간 순으로 보면 점차 실력이 늘어남을 알 수있다.]--부를 때 마다 기분이 묘할거 같다-- 게다가 유연정 본인은 SM에서 [[연습생]]으로 있었고.
* 2018년 10월 2일 [[THE SHOW|더 쇼]]에서 [[우주소녀]]가 데뷔 첫 1위를 차지함에 따라, [[정채연]]에 이어 [[I.O.I]] 활동 종료 후 2번째로 [[WJ PLEASE?|음방 1위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날은 연정 - [[서경(공원소녀)|서경]]의 8번째 프듀 리턴 매치가 성사됐는데, 연정은 [[프로듀스 101]] 이후 2년 만에 다시 만난 [[서경(공원소녀)|서경]]과의 리턴 매치에서도 압승했다.
- 월드 인 컨플릭트/전술지원 . . . . 12회 일치
=== 공수 수송차량(Airdropped Transport) ===
지정한 지역에 병력수송차를 투하한다.
=== 공수 경전차(Airdropped Light Tank) ===
지정한 지역에 경전차를 투하한다.
공격기가 날아와 일자로 30mm 기관포와 로켓을 난사한다. 전차와 차량을 잡는데 권장된다. TA 중 싸고 빠르고 강한 편이기에 자주 쓰게된다.
== 무차별 공격(Indiscriminate Attacks) ==
전장 밖의 포병대가 박격포 몇발을 발사한다. 보병과 경장갑 차량에 효과적이다.
공격기가 날아와 집속탄을 투하한다. 전차, 보병, 차량에 좋다. 진입 방향을 잘못 설정하면 건물이나 언덕에 꼴아박으니 주의.
미국과 NATO 전용. 대형 수송기가 날아와 7.7t 짜리 폭탄을 투하한다. 보병, 숲, 경장갑 차량에 효과적이다.
소련 전용. Su-25가 날아와 기화폭탄을 투하한다. 보병, 숲, 경장갑 차량에 효과적이다.
- 이정재(영화배우) . . . . 12회 일치
[목차]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이러면서 《젊은 남자》에도 캐스팅이 되고 《[[느낌]]》에도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품은 역시 90년대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당시 [[최민수]]보다 오히려 더 인기를 모으면서 백재희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가 SBS에 쇄도하는 등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1995년에 SBS 신인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정우성]]과 공동수상).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 찍고 난 후 20대 초반에 찾아온 쏟아지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입대를 해버린다. 방위로 갔다고 비판받았으나 [[평발]]이라 방위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유재석]]과 군 동기다.[*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이른바 '마지막 방위' 세대다. 같은 날 방위병으로 입대한 다른 동기로 좌회전의 리더였던 [[김진(배우)|김진]](복무를 마친 후 연기자로 전향), [[투투(가수)|투투]]의 멤버였던 유현재 등이 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유재석이 자신을 업어 키웠다고... 당시 유재석은 [[압구정]], 이정재는 [[논현동]]에 살았는데 둘이 [[카풀]]을 했다. 그런데 이정재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차를 끌고 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기다리던 유재석이 자신의 차를 가지고 논현동까지 가서 이정재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고.
* 차는 [[벤츠 G클래스]]. 영화 <도둑들>에서 이 차가 출연한다. 영화 후반부 부산 장면에서 웨이홍일행이 타고 등장하는 차가 있는데 실제 이정재의 차량. 코멘터리에 '어디서 많이 본 차'가 등장한다고. (김윤석이 지나가는 말로 이정재 본인의 차라고 언급)
2번 적발됐다. 첫 번째 음주운전은 1999년 9월 13일, 자신의 [[자동차]]인 [[BMW]]를 혈중 알코올 농도 0.222%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당시 23살 여성(회사원) 송모씨가 타고 있는 [[마티즈]] 옆 부분을 들이 박은 것이다. 당시 동료배우 정모씨와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었고, 이씨는 사고 직후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운전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며 출동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정재는 경찰에서 "내가 운전하지 않고 매니저가 대신했다"라고 혐의 사실을 부인을 했었다. ~~[[강정호|17년 뒤 똑같은 수법을 쓴 메이저리거가 등장하는데...]]~~ 경찰서에서는 시인하였다고 한다. 이 음주운전으로 인해 불구속 입건 및 면허 취소가 되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1400209122009&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9-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4301&publishType=00010#|기사]] 그리고 첫 번째 음주 운전 사고가 난 3년 뒤 또 한 번 2002년 7월 22일 [[강남구]] 청담동 청담초등학교앞에서 음주단속 중인 경찰에게 적발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47301|기사]]
2015년 1월16일 '동양 사태' 항소심 5차 공판…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투기자본감시센터는 배우 이정재·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 배임 혐의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또한 동양그룹 사태로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들이 동양네트웍스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이정재가 동양사태와 관련이 있으며 배임혐의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아직 재판중이다.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2978127|기사]]]
- 진격의 거인/92화 . . . . 12회 일치
* 마레 지상군은 턱의 거인 "갤리어드"와 차력의 거인의 힘으로 적의 참호를 돌파하는데 성공한다.
* 작전 지역이 가까워지면서 공수부대 지휘관은 강하를 앞두고 간략히 상황을 전달한다. 방금 전 보고로는 지상군이 장갑열차 파괴에 성공했다. 그러나 요새 내부엔 위협적인 야전포가 있을게 뻔하다. 지휘관은 그 점을 강조하며 브리핑을 마친다.
공수부대를 실은 마레의 비행선이 스라바 요새 상공에 도착한다. 주력은 물론 마레의 전사 [[라이너 베르너]]와 [[지크 예거]]다. 하지만 마레의 전사는 그들만이 아니다. 비행선의 공간 대부분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특이한 적재물이 차지하고 있다. 하나같이 약에 취한 것 처럼 눈에 초점이 없고 입가가 침으로 번들거린다. 이들도 "마레의 전사"다. 자아를 잃었음이 틀림없는 엘디아인들이 정육점의 고기처럼 천장에 매달려서 도하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마레의 지상군은 최후의 돌격을 감행한다. 턱의 거인 "갤리어드"가 최전방을 해집어 놓으며 활약한다. 장갑열차가 다니는 선로는 적의 최종 방어선이다. 게라이드는 참호 속의 병력을 쓸어버리고 선로를 철저하게 파괴한다.
* 중동연합의 저항도 거세다. 다가오는 마레의 병사들은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쓰러진다. 사격에 몰두하던 적 병사들은 곧 그들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기관총 포탑을 짊어지고 다니는 "차력의 거인"이다. 매우 특이한 거인으로 엎드려 걸어다니며 등에는 한 쌍의 기관총 포탑이 올라가 있다. 얼굴은 말이나 개처럼 길쭉한데 묘한 형태의 철가면을 썼다. 각 포탑에는 병사가 타서 기관총을 난사한다. 적의 기관총 진지 코 앞까지 돌진한 차력의 거인. 포탑의 기관총이 진지 앞의 병력을 섬멸한다. 차력의 거인은 길쭉한 얼굴을 진지로 들이밀어서 지붕을 들어내 버린다. 그 사이 보병들이 진격, 적의 최종 방어선은 이렇게 무력화된다.
같은 시각 스라바 요새 안의 병사들은 하늘로 쏟아지기 시작한 흰 점의 행렬을 발견한다. 마침내 도하의 시작이다. 레일을 따라 매달린 적재물이 하나둘 허공으로 던져진다. 자동으로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적재물은 곧 낙하물로 입장이 바뀐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레의 전사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어차피 꽁꽁 결박돼 있어서 사정을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 갑옷의 거인이 낙하. 가비는 그것을 보고 "라이너, 조심해"라고 작게 속삭인다. 옆에 있던 파르코가 그걸 의식한다. 거기까지 들리진 않았겠지만 라이너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 그는 낙하와 동시에 요새 벽 위의 야전포를 차례 차례 쓸어버린다. 문자 그대로 벽 위의 먼지를 쓸어내는 것처럼. 적들은 대거인전용 철갑탄으로 응수한다. 이 철갑탄은 라이너의 갑옷을 꿇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라이너는 첫 응사를 막아내지만 오래 노출돼봐야 좋을게 없다. 다음 탄을 장전하는 사이 라이너가 철갑탄을 쏜 쪽으로 우선 달려든다. 하지만 충분히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사격 준비가 끝난다.
* 지크는 마지막 쐐기를 박는 역이다. 요새 뒤의 항구. 거기에 정박한 연합함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크는 부서진 창고 밑의 포탄 무더기를 움켜쥔다. 그리고 항구의 함대를 향해 힘차게 투척한다. 산탄처럼 날아가는 포탄들. 참호의 후보생들은 이걸로 전쟁이 끝났다고 안도한다. 가비는 마치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은다.
그런데 전쟁은 쉽게 끝나주질 않는다. 투척한 포탄이 날아가는 동안 적 함대가 얌전히 기다리질 않았다. 그들은 짐승 거인, 지크를 향해 함포로 일제 응사한다. 포탄이 함선에 명중했을 땐 이미 첫 응사가 끝난 뒤였다. 양측의 포격이 교차하는 순간, 지크는 생각과 다른 전개에 당황한다.
- 차민수 . . . . 12회 일치
|이름 = 차민수
'''차민수'''(車敏洙, Jimmy Cha, [[1951년]] [[1월 15일]] - )는 [[대한민국]] [[한국기원]] 소속 프로 [[바둑 기사]](2014년 현재 5단)이다. 프로 [[도박사]]이기도 하며 종교는 [[불교]]이다.
차민수는 198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세계바둑계에서는 미국 이민 이후 프로기사로서 별다른 대회 참가가 없었던 차민수가 일본 프로바둑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사 [[마이클 레드먼드]]를 꺾고 미국의 대표로 선발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여겼다. 하지만 차민수는 대회가 열리자 일본의 두 기사를 연파하고 8강에 오르더니, 8강전에서는 친구이기도 한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 일보 직전까지 가며 바둑계를 경악하게 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검토실에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은 "종반 30수 이상 실수를 거듭한 것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라며 격노하였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제목=19*19 인생퍼즐|저자=이홍렬|출판사=명상|연도=2002|isbn=9788972323914}}</ref>
다음해에도 역시 차민수는 미국 대표로 대회에 참가했는데, 1차전에서 [[조치훈]]을 꺾는 대파란을 일으키며 다시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루이나이웨이]] 9단이 미국에 망명중일 때 한국 기원행을 권유하며 조훈현에게 소개시켜 준 이가 차민수이다.<ref name="hani">{{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43818.html |제목=‘반상’에서 천국을 쫓다 한국에서 행복을 찾다|저자=김창금 기자 |출판사=한겨레 |날짜=2009-03-12}}</ref>
* 차민수는 [[쿵푸]] 공인 7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2004년에 회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올인' 실제주인공 차민수씨 미술전|저자=이홍렬 기자|출판사=조선일보|날짜=2004-07-30}}</ref>
* [http://www.baduk.or.kr/info/player_view.asp?prpl_code=10000085 한국기원 기사정보: 차민수 5단]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미국의 포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미국의 미술가]][[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미국의 불교 신자]][[분류:더 지니어스 참가자]]
- 최채흥 . . . . 12회 일치
||<:> '''프로 입단''' ||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2018년 1차지명 (삼성 라이온즈)]] ||
[목차]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2018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계약금 3억 5천만원[* 역대 삼성 신인선수 중 2001년 [[이정호]](5억 3000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계약금이다. 원래는 박한이가 2위였으나 밀어냈다.], 연봉 2700만원의 조건으로 1차 지명을 받았고 2018 시즌부터는 삼성에서 뛰게 된다.
이렇듯 엄청난 퍼포먼스로 뛰어난 커리어를 쌓으면서, 대졸 선수들의 연속된 실패로 대학 졸업반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여론이 굉장히 부정적임에도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신인드래프트]]에 참가 예정인 투수 중에서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 [[안우진]]과 함께 전체 1번을 겨룰만한 선수로 거론되었다. 거기에 삼성이 이 해 1차지명 후보로 최채흥 외에 강력한 후보가 없었던 만큼, 지명 전부터 최채흥의 1차 지명은 기정 사실 수준의 평가를 받았고 2017년 6월 26일, 2018년 1차 지명에서 고향팀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퓨처스리그에서 시즌을 시작, 첫 경기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시즌 중반 이후 선발진에 가세 가능한 희망을 되살리고 있다. 외국인은 차치하고라도 믿을 만한 선발이었던 윤성환마저 노쇠화의 징후를 드러내는 시점에서 양창섭과 최채흥의 가세는 큰 도움이 될 전망.
1살 차이 나는 --아름다우신-- 여동생이 있는데,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539514|동생은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직했다고 한다.]] 보통 고마운 사람하면 부모님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최채흥 본인은 여동생이 가장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래서인지 인터뷰때 여동생에게 차를 사준다고 했다.--대신 유지비는 알아서 내라--] 최채흥은 삼성에 1차지명으로 입단했는데, 정작 여동생은 [[두산 베어스]] [[박건우]] 팬이라고...
오해들을 하는 것이, 최채흥을 단지 흙수저 출신의 깜짝 활약 선수로 많이 인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틀린 것이 최채흥은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고교]]시절 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나, [[한양대학교|대학]]야구의 에이스 투수였고 대학야구 3대명문중의 하나인 한양대를 나왔으며, 대표팀 역시 아시아선수권 우승,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동메달, 23세 이하 세계선수권 3위 등을 이끌고 대표팀 역시 u-18,u-21,u-23 등 연령대 대표팀을 단계적으로 밟았을 뿐만 아니라 핵심투수로 활약하며 엘리트 코스는 차근차근 밟은 선수다. 오히려 대표팀 경력만 보면 또래인 95년생 동기들보다 화려하다.
- 카라스노 고교 . . . . 12회 일치
[[목차]]
도쿄에 있는 [[네코마 고교]]와는 유서 있는 [[라이벌]] 관계이다. 두 학교의 [[더비 매치]]는 아예 '''쓰레기장의 결전'''이라고 불린다. 네코마와는 여러차례 연습 시합을 가졌지만 공식 무대에서는 한 번도 붙어보지 못한 [[안습]]한 역사가 있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는, 작은 거인이 있던 시절(=즉 가장 강했던 시절)에도 연습시합에서 네코마 고교를 이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그렇다고 이 둘 말고 다른 선수들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어째 배구 외적인 일로 더 유명한~~ [[아즈마네 아사히]]와 [[타나카 류노스케]] 등 준수한 공격 자원들이 있으며, 공격과 수비 모두 다재다능한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있다. [[히나타 쇼요]]는 봄고 대회에서, 신장이 2m인 상대학교 선수와 대등하게 매치업하면서 타교 선수들에게 꽤 이름이 알려진 모양이다. 또 부원수가 적은 팀 치고, 주전과 벤치조 간 전력차가 그리 큰 편이 아닌 것도 장점이다. 1학년들 중 유일하게 벤치 멤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도 원포인트 서버로 활약하고 있으며, 존재감 없는 2학년 둘도 속공 없는(즉 카게야마가 없을 때)히나타 보다는 더 뛰어나다는 언급이 나온다.
|| 3 || 인터하이 || 1차 예선 1회전 || [토코나미 고교] || 승리 || 2 : 0 || 센다이시 체육관 || 6월 2일 || 5권 ||
|| 4 || 인터하이 || 1차 예선 2회전 || [다테 공업 고교] || 승리 || 2 : 0 || 센다이시 체육관 || 6월 2일 || 5권 ~ 6권 ||
|| 5 || 인터하이 || 1차 예선 3회전 || [아오바죠사이 고교] || 패배 || 1 : 2 || 센다이시 체육관 || 6월 3일 || 6권 ~ 8권[* 애니화 1기까지의 줄거리.]||
|| 6 || 봄고 || 1차 예선 2회전[* 카라스노는 인터하이 시드배정교로 2차전에 자동진출했다.] || 오기미나미 고교[* 인터하이에서 1차전부터 시라토리자와를 만나 참패했던 팀.] || 승리 || 2 : 0 || 카지 고등학교 || 8월 11일 || 12권 ||
|| 7 || 봄고 || 1차 예선 3회전 || 카쿠가와 고교 || 승리 || 2 : 0 || 카지 고등학교 || 8월 11일 || 12권 ||
|| 8 || 봄고 || 2차 예선 1회전 || 조젠지 고교 || 승리 || 2 : 0 || 센다이시 체육관 || 10월 25일 || 13권 ||
|| 9 || 봄고 || 2차 예선 2회전 || 와쿠타니미나미 고교[* 줄여서 와쿠난.] || 승리 || || 센다이시 체육관 || 10월 26일 || 13권 ~ 14권 ||
- 홍주찬 . . . . 12회 일치
|소속그룹 = [[골든차일드 (음악 그룹)|골든차일드]]
'''홍주찬'''(洪周燦<ref>[http://weibo.com/6246751871/F6J9ju3zw 골든차일드 공식웨이보 홍주찬 한자]</ref>, [[1999년]] [[7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보이 그룹]] [[골든차일드 (음악 그룹)|골든차일드]]의 메인보컬이다.<ref name = "position">[http://woolliment.phps.kr/artists/about_goldenchild.php 울림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프로필]</ref><ref>[http://imgur.com/W3ioHll 홍주찬 메인보컬]</ref>
* [[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 (재학) <ref>[https://www.youtube.com/watch?v=K66_cnUupYQ 골든차일드 Golden Child _ 인사 멘트 ment _ 전체직캠 _ 백석예대 OT _올림픽홀], 유튜브.</ref>
{{참고|골든차일드의 음반 목록|설명=골든차일드 그룹으로 발매한 음반에 대해서는}}
{{참고|골든차일드의 음반 외 활동 목록|설명=골든차일드 그룹으로 참여한 음반 외 활동에 대해서는}}
{{골든차일드}}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201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골든차일드의 일원]][[분류:서울증산초등학교 동문]][[분류:숭실중학교 동문]][[분류:리라아트고등학교 동문]][[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백석예술대학교 동문]][[분류: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GLA . . . . 11회 일치
GLA의 대전차/대공 보병.
몸에 폭탄을 매단 광신도들. 주변에 방치된 민간용 차량[* 비행기도 된다.]에 타 이동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돌, 권총, 화염병으로 무장한 군중들. 떼로 몰려다녀서 차량이나 건물에 쑤셔박을 수 없지만 모든 지상유닛에 강하다. AK 소총을 나눠줘 공격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사망한 군중은 시간이 지나면 보충된다.
적의 차량을 탈취할 수 있는 보병. 공격을 할 수 없는 대신 정지시 스텔스 상태가 된다. 탈취한 차량이 파괴되면 탈출한다.
영웅 유닛. 모든 보병을 일격에 제거할 수 있는 저격수다. 차량의 조종수를 저격해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투박하게 생긴 전차. 업그레이드로 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 잔해를 먹어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제너럴 스킬을 사용해 해금 가능한 전차. 포탑이 돌아가지 않아 목깁스라는 별명이 있다. 잔해를 먹어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폭탄을 가득 싣고 자폭하는 트럭. 다른 차량으로 변장할 수 있다. 각 유닛마다 서플라이를 소모해 폭탄에 독소 성분을 추가하거나 자폭시 공격력을 늘려줄 수 있다.
로켓을 난사하는 차량. 사정거리가 길어 방어탑을 안전하게 팰 수 있다.
거대한 스커드 로켓을 발사하는 차량. 폭발성 탄두와 독소 탄두 중 하나를 발사할 수 있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 . . . . 11회 일치
* '''Tank Experiments(전차 실험)'''
* '''전차 실험'''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전차 공장'''을 건설 가능하게 함.
* '''전차'''를 해금시킴.
* '''Tank Exploits(전차 활용)'''
* '''전차 활용'''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전차 실험''' 발명을 발견하지 않았을 시 '''{{{#red -5%}}}'''
* '''전차 활용''' 발명을 발견하지 않았을 시 '''{{{#red -3%}}}'''
* '''Light Tank(경전차)'''
* '''Armoured Cars(장갑차)'''
* '''전차 활용''' 발명을 발견하지 않았을 시 '''{{{#red -6%}}}'''
- 김동욱(배우) . . . . 11회 일치
[목차]
2018년에는 아직 차기작은 없으나 트레이드 러브[* 하지만 출연진 중 한명이 미투 논란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와 [[신과함께-인과 연]]이 개봉하였고 [[탐정 리턴즈]]에 우정출연한다고 한다.
탐정 리턴즈에서는 우정출연임에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젊고 지나치게 원칙주의적인 경찰서 형사과 팀장이지만 옳고 강직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를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는 전작에 비해 캐릭터가 차지하는 임팩트는 많이 약해졌지만 능글능글한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 2015년 || 쓰리 섬머 나잇 || 차명석 || ||
|| E채널 || 라이더스: 내일을 잡아라 || 차기준 || ||
||<|3> 2008년 || 롯데칠성음료 || 봄 녹차 비오기 전에 ||
* 2012년 [[후궁: 제왕의 첩]] 홍보 차 출연한 해피투게더에서 [[조여정]]의 증언으로 촬영장에서 ~~왕 옷을 입은채~~ 춤을 추는 것이 알려지고, 그 시기에 친구들의 생일 파티가 클럽에서 자주 열려 클럽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때, 본인의 말에 따르면 파라다이스라고.. 실제 복면가왕이나 해피투게더를 보면 춤을 꽤 잘추는 편. 대학시절 댄스 동아리였는데 축제 동아리 공연 때 센터를 담당했다.
* 아들과 친구처럼 영화를 보러 다니는 차태현이 부럽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나의 바람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 [[안성기]]를 존경했다고.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 과정이 매우 즐거웠기 때문에 이 때 출연했던 배우들과 함께 다시 한번 작품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그 바람을 이뤘다~~ [* [[손 the guest]] [[김재욱(배우)]] ]
* 일상을 공개한다는 것이 어색한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SNS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핸드폰에 셀카 기능이 없어 셀카 사진 한 장도 없다고 한다.[* 팟캐스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동욱의 핸드폰은 아이폰6로, 당연히 셀카 기능이 있다. 아마도 셀카 기능이 있어도 어딨는지 모른다는 뜻으로 보인다.] 당연히 셀카 찍는 법을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차태현은 셀카를 자연스럽게 찍는 반면 김동욱과 하정우는 셀카를 매우 어색하게 찍었다.] 그래도 미니홈피는 존재한다.
* [[신과함께-죄와 벌]] 언론 시사회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LZGwijzUpJo|환생한다면 되고 싶은 인물이 있냐는 질문]]에 [[하정우]]·[[정우성]]·[[주지훈]]·[[이정재]]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해 웃음을 주었다. 이유는 '''키크고''' 잘생긴 배우로 태어나고 싶다고 ~~여기서 차태현의 말이 진정한 웃음포인트. "너나 나는 별 의미가 없어..."~~
- 김승대 . . . . 11회 일치
[목차]
초기에는 슈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골은 많지만 거의 모든 골이 가볍게 밀어넣은 골이고 강력한 슈팅으로 넣은 골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데뷔 시즌 한정으로, 그 이후 시즌에는 슈팅 성공률 66.6%를 전반기 넘어서까지 유지했을 정도로 일취월장해서 [[감아차기]], 툭 밀어넣기 등 다양한 슛을 구사했다. 그리고 위의 부정적인 평가는 좀 억울할 법 하기도 한 것이, 플레이 스타일 상 골키퍼와의 1대1 경합이 주로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경우에는 [[손흥민|손세이셔널]]같은 강슛보다 정확하게 차 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옳은 평가가 아니라는 것. -- [[풋볼매니저|선호 플레이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침투' , '패스하듯 정확한 슛팅을 구사'가 달려있다 하더라]]--
2014년 전반기 [[이명주]]와 더불어 포항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그리고 이명주는 월드컵 휴지기를 지나고 후반기가 시작하면서 중동으로 50억에 팔려갔다.~~ ~~그리고 다음 시즌 본인도 포항의 다른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20억에 중국으로 팔려갔다~~
같은 포지션인 황진성이 계약 만료로 방출되어서 주전자리를 꿰차나 했지만,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이 팀에 복귀하면서 주전경쟁은 계속 될 듯 했다. 그런데 자신의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이명주에게 넘겨주고 원톱으로 올라갔다. 전 시즌에는 가짜 9번(False 9)으로 뛰면서 제로톱의 역할을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아예 포처로 뛰고 있는 것. 그래서 다들 실험적인 전술이라며 반신반의 하던 상황이었다.
폼이 어찌나 좋았는지 [[원투펀치]]에서 [[한준희]], [[장지현]] 두 해설위원이 입을 모아 [[홍명보호]] 발탁을 추천했을 정도였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502133605970&gid=110282|#]] --하지만 현실은 이명주조차도 안 뽑은 홍명보가 김승대를 뽑을 리가 없었다--
2017년에는 재차 부진에 빠지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정리될 [[외국인 선수]]로 거론되는 등 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2017년 6월 13일 '''포항이 김승대 임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5693|단독 기사]]가 떴다. [[K리그]] 여름 이적시장 최대어인 [[이명주]]가 [[포항 스틸러스|친정]]과 [[FC 서울|마음 급한 황새]]를 사이에 두고 K리그로 복귀한다는 소식으로 시끌벅적한 와중에 김승대까지 포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포항 팬덤은 순간 들끓어 올랐다.
옌볜 푸더가 알바니아 국대 출신인 발데트 라마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황일수]]를 영입하면서 김승대가 [[FA]]로 풀리게 되었고, 임대가 아닌 '''완전 이적'''으로 포항으로 복귀했다! 게다가 [[FC 서울]]로 도망간 [[이명주|자신의 옛 파트너]]와 다르게 제주에서 황일수와 트레이드를 제안하고, 복수의 K리그 구단이 러브콜을 보냈음에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포항행을 결정지은 것이 알려지면서 근래에 숱하게 통수를 맞은(...) 포항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이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19326&redirect=true|#]] --특히 포항 거주 팬들 사이에서 '''쌍사드립'''[*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쌍용사거리'''라고 알려진 동네가 있다. 옛날에 쌍용차 대리점이 있던 자리인데 대리점이 옮기고 나서도 고유명사로 붙어버렸다. 술집과 노래주점이 많아서 포항 사람들이 술먹고 노는 주요 거점이다. 김승대가 포항 토박이다 보니 --친구따라-- 쌍사에 출몰했다는 썰이 많아서 흥한 드립.]이 흥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뽑혔다. 당초 발탁이 유력시됐던 [[손흥민]]과 이명주 차출이 불발로 끝나면서, [[김신욱]]과 함께 공격진을 이끄는 중책을 짊어지게 되었다.~~하지만 현실은 김승규, 이재성과 함께 하드캐리...~~
2015년 8월 2일 중국전에서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유럽파를 차출하지 못해 [[기성용]]이 빠진 상태에서 미드필러 라인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우려가 많았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뜻밖에도 원톱 이정협 밑에 김승대 [[이종호(축구선수)|이종호]] [[권창훈]] [[이재성(1992)|이재성]] 등 드리블러가 아닌 공간 침투와 패스에 능한 선수들을 배치하며 4-5-1과 4-3-3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형을 선보였다. 경기 초반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보였으나 차츰 이들의 연계가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중국 미드필더들은 속수무책, 글자 그대로 능욕을 당했다.
- 김준현(코미디언) . . . . 11회 일치
[목차]
KBS 22기지만, 방송 출연은 그 전부터 이미 하고 있었다. KBS 신인 개그맨 발굴 프로그램인 [[개그사냥]]에서 허영심 가득한 Mr 귀족을 선보인 후 2006년 11월 [[폭소클럽2]]에 고정출연하게 된다. 이때 Mr 귀족 코너로 폭소클럽2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알렸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김준현이 와인잔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여기까지는 정말 화려한 귀족의 모습이지만 '''"응, 맞아! ○○○야!"'''라며 깨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로 들면 자기가 모은 재산을 왜 네가 마음대로 하느냐면서 동생과 재산 싸움을 벌이는 듯했지만 실상은 중국집 쿠폰으로 인한 형제 싸움. 이때 김준현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마다 '''"아, 미안, CHEERS!"'''[* 김준현이나 폭소클럽 제작진이나 글로 쓸 때는 '''치어스'''라고 썼지만, 김준현이 발음할 때는 '''췰스'''에 가까웠다.]라고 했는데, 나름대로 김준현의 첫 유행어였다. [[김구라]] 아들 [[그리(래퍼)|김동현]]과 함께 폭소클럽2가 발굴한 대형 신인.
[[2012년]] [[4월 29일]] [[네가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0대까지만 해도 날씬한 체형이었다고 한다.[* [[백종원의 3대 천왕]] - '전'편에서 김준현의 과거 사진들이 나왔다. 참고로 날씬했을 땐 체격좋은 훈남이였다.] [[http://dryicess.tistory.com/129|링크]] 그러던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비만|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김준현은 중학교 재학시절까지 검도선수 출신으로 군에서 제대 할 때 까지만 해도 많이 먹는 대신 활동량도 많아서 살이 찌지 않았는데 운동을 그만둔 상태에서 먹는 양은 그대로고 활동량은 없어졌기 때문에 쪘다고 한다. 이 내용은 맛있는 녀석들 포장마차 특집에서 나온 것이며 김준현의 말을 빌리자면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 이미 예정된 비만이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유민상이 툭하면 먹는데 끌고 다녀서 신참이다보니 따라다니며 먹어재껴서 그꼴이 났다고 네가지에서 그러던데 그게 개그용 멘션인지 진짜인지는 미지수.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초반에는 [[김원효]]에 밀리던 듯 했으나 사실상 투탑 체제를 굳혔으며, 라디오 [[CF]] 개수는 "고뤠?" 쪽이 "안돼!~"보다 앞서고 있었다.~~[* 물론 점차 [[인지도]]를 높인 건 사실이지만, 사실 투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김준현이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도 상관없지만, [[김원효]]가 빠지면 비상대책위원회 코너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김원효와 김준현의 비중이 7:3 정도로 차이가 난다... [[라디오]] [[CF]] 개수가 많다고 해서 인기가 더 많다고 볼 수도 없다. "고뤠?"는 한마디로 간단하게 끝나지만 "안돼!~"는 [[유행어]]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현란한 대사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짧은 CF엔 "고뤠?"보다 약간 부적합할 뿐.]
* 음담패썰 - 개편으로 프로그램 포맷이 바뀌면서 하차.
2010년 5월 4일, '''[[음주운전]]으로 보행자를 치는 사건'''으로 개그 콘서트에서 잠시 하차한 흑역사가 있다. 본인은 음주를 한 뒤 5시간쯤 지나 술이 깼을 줄 알고 이른 아침 운전대를 잡았다고 교통사고를 해명했지만... 이후 미끼로 복귀할 때까지 자숙 기간을 가졌다. 다만, 자숙 기간이 4개월로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 주로 뚱캐 성향의 개그를 하나 다른 뚱캐 기믹의 개그맨들처럼 소모성으로 사그라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지만 특유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원패턴 비호감 소모성 캐릭터를 버럭뚱캐, [[갭 모에]] 뚱캐 등 다양한 호감형 캐릭터로 잘 살리는 능력을 발휘하여 사랑받고 있다. 때문에 역시 뚱캐 컨셉인 유민상과 겹치는 일이 많은데, 유민상은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인상으로 나가는 반면 김준현은 우직하고 강한 인상으로 나가고 있다. 참고로 김준현 [[본인]]에 따르면 둘의 배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 고교시절 [[검도]] 대회에서 검도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고[* 20대 초반까지는 날씬했다. 덧붙여 모교인 [[광명고등학교|광명고]]도 ~~그나마 내세우는 게 검도.~~ 검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광명고 학생들은 매주 1회 검도 수업을 한다. 게다가 맛있는 녀석들에서 [[본인]]이 언급한 바에 의하면 [[http://m.ytn.co.kr/ent_view.php?s_mcd=1406&key=201512052151017860&ref=10|초등학생 시절부터]] 검도시합을 하러 [[일본]]에 갔다온 적이 있다고 한다. 상당한 엘리트 체육인이었던 셈.][* 이름이 무슨 피구왕 통키스러워서 우스워 보이지만 김준현이 참가했던 SBS 검도왕대회는 개최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내 검도대회 중 가장 큰 규모의 대회다.], [[http://media.daum.net/entertain/enter/newsview?newsid=20130205154907565|비만체형인 지금도 근육량은 운동선수급이라고 한다]].[* 사실 특정 부위 비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전반적으로 비만인 사람들은 원래 근육이 많다. 살 찌면 지방만 잔뜩 늘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육중한 체구를 움직이기 위해 몸이 근육을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 이런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하면 몸도 일종의 구조조정을 해서 근손실이 엄청나게 일어난다.]
* [[이휘재]]의 [[차남|둘째아들]]인 이서준이 김준현과 쏙 빼닮았다. --이서준현.-- 더불어 전 [[거북이(가수)|거북이]]의 리더 고 [[터틀맨]]과도 닮았다.
* [[복면가왕]] 80차 경연에서 [[오빠 몸이 완전 돌덩이야 모아이]]로 나와 2라운드에 오르면서 선전했으며 제작진의 배려로 3라운드 준비곡인 장미여관의 '봉숙이'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 김태우(god) . . . . 11회 일치
[목차]
처음에는 '인기가수 [[박진영]]'이 심심풀이로 만든 그룹인 줄 알았던 god가[* 사실 그룹 멤버 자체를 구성한 건 싸이더스였고 박진영은 여기에 김태우를 추가하고 프로듀싱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프로듀싱의 비중이 상당했던 지라...]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신화와 맞짱을 뜨는 상황이 되면서, 메인보컬 김태우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샀다. 물론 여성팬들의 인기는 [[손호영]], [[윤계상]], [[데니 안]]이 차지.그러나 god가 신인가수시절에는 박준형과 함께 인지도는 높은편이었다. 손호영 윤계상 데니안은 비슷비슷한 비주얼에 랩만하였지만 누가봐도 아재얼굴인 박준형과 덩치크고 뚱한 체형에 안경까지 쓴 튀는 비주얼로 인해 god내에서는 이 2명이 인지도가 높았다. god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멤버. 외모도 별로인 데다 오버하는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기 지분과는 다르게 김태우가 압도적으로 보컬을 책임졌기 때문에 사실상 중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핑클]]의 [[옥주현]]을 떠올리면 될 듯.
2009년 2월 25일 제대 후 그 해 9월 3일 EP 'T-Virus'를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타이틀곡은 '[[사랑비(김태우)|사랑비]]'. 곡도 세련된 멜로디와 김태우의 목소리와 창법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고, 또 앨범 전체적으로도 [[박진영]]의 느낌이 아닌 김태우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찾은 앨범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190cm이 넘는 키로 곡과 잘 매치되지 않는 ~~군인 냄새 나는~~ 춤을 추는 바람에 '춤만 좀 빼달라'는 부탁을 많이 들었음에도 꿋꿋이 춤을 췄다. ~~god 때도 춤은 못 췄다~~[* 김태우는 춤을 못추지 않고 오히려 잘 추는 편이다. [[문희준]]도 [[20세기 미소년]] 방송분에서 김태우에게 "190 넘는 사람 중에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평가해준 바 있다.]
참고로 2차 도전을 했을 때 '''[[이하늬|여친이 있는]] 윤계상이 god 멤버 중 가장 먼저 결혼할 것'''으로 그가 예측했는데 정작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서 아닐 거라고 예상했던 '''[[박준형(god)|박준형]]이 2015년에 먼저 결혼했다.''' 참고로 박준형 역시 2017년 7월에 인터뷰에서 god 멤버 중 다음 결혼을 할 멤버는 장기간 이하늬와 연애중인 윤계상을 예상했다.
1인으로 3차 도전을 한 490회 방송에선 상금을 타면 후배의 뮤직비디오 제작비에 보탠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간 인터뷰 때 중학교 시절 당시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던 [[김제동]]에게 "가수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었더니 그가 "넌 안돼!"라고 말하는 것에 상처를 받아서 독기를 품어 노력을 한 끝에 가수에 데뷔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데뷔 이후 김제동이 "태우야,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는 김제동에 "형은 안돼요!"라고 받아쳐 [[역관광|제대로 복수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9차 경연에서 [[슬램덩크(복면가왕)|슬램덩크]]라는 가명으로 나와서 [[쿵푸하는 팬더]], [[달달한 초콜릿]]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으며 결승전 상대인 [[신비한 원더우먼]]에게 7표 차로 밀리면서 준우승했다. 이 때 목소리 때문에 안그래도 티가 나던 상황이었는데 개인기로 했던 이름 모창에서 김건모 모창한답시고 그냥 본인 목소리가 튀어나와 완전히 촬영장을 초토화시켰다.
[[청춘불패 시즌1]]에서 [[구하라]]가 다리찢기를 하고 있는데 "넌 어려서 골반이 안 벌이지네"라고 말한 게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신영]]이 잠깐 발끈하기도 했고... 이걸 '어려서 경험이 없어서 안 벌어진다'는 식의 [[성희롱]] 발언으로 해석한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가 있었으나 크게 불거지는 일 없이 금새 묻혔다. 이것을 두고 성실한 군복무로 인한 실드가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애초에 [[여성]]은 2차 성징이 끝나면 추가적으로 골반이 성장하지 않으며 골반이 벌어지는 문제와 성경험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출산시 고통을 수반하며-거의 틀어지는 수준으로- 벌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출산=섹스'라는 개념에 꽂혀있는 게 아니라면, 너무나 먼 이야기라 관련성이 적음을 알 수 있다. 즉, '어려서 골반이 안 벌어졌다'는 발언은 '2차 성징도 안 온 어린 애'라는 뉘앙스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라는 것.
이 외 그의 또 다른 개드립인 [[빈유|'목 돌아간 애']] 드립 등을 생각해보면, 그냥 '2차 성징이 안 온 꼬맹이'라는 의미로 쓴 게 맞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더 유연한 것이 '''[[상식]]'''이지만, 이건 그냥 그가 '''무식'''하다고 보면 될 문제다. 주로 성인 여성의 성적 특징과 관련한 드립을 치는 것이니 섹드립이라면 섹드립이지만, 직접적으로 [[섹스]]와 관련한 드립이라기 보다는 [[나르샤(브라운 아이드 걸스)|나르샤]]가 사과 두 개로 글래머 흉내를 낸 것과 같은 수준의 색(色)드립인 것.
* GOD로 잘 나갔을 당시 박진영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는데 그 이유는 잘 나간다는 자만심에 술먹고 놀기만해 차기 앨범의 연습이 하나도 안 된 상태로 녹음에 임해서라고... 그래도 박진영과는 꾸준히 친분이 있는 듯하다. 박진영이 [[라디오 스타(황금어장)]]에 나왔을 때 계약이 끝난 후에도 같이 술을 먹어줄 수 있는 동생 둘로 비와 김태우를 언급했다. GOD라고 하지 않고 김태우라고 개인을 집어서 말한 걸 보면 각별한 사이인 듯하다.
- 김형준(배우,가수) . . . . 11회 일치
[목차]
* 어릴 적 압구정에서 SM 실장에게 길거리 캐스팅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SM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다음날 2차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DSP 연습생을 중2때 시작했으니 그 전에 캐스팅 된 듯 하다.
* 2005년 9월 15일 [[엠카운트다운]]에서 첫 1위를 차지 했을때 울먹거리며 MC멘트를 보다가 쉰목소리를 내었고 앵콜 무대때 울먹 거렸다.
* 8월 7일 SS501 전원과 함께 [[도전 1000곡]]에 출연했다. 첫번째로 제일 먼저 노래를 불렀는데 설운도의 '차차차'를 불렀다.
* 4월 24일 [[도전천곡]]에 출연했다. [[나윤권]], [[테이]]를 제치고 [[박상민]]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https://youtu.be/IGbp4mlzVsw|영상]]
* 2012년 2월 27일 KBS 드라마 자체발광 그녀 프로모션차 일본으로 출국했다.
* 2009년 4월 14일부터 [[SBS 파워FM]]에서 매일 새벽 2시에 방송하는 김형준의 뮤직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 활동했으며 2013년 8월 현재 4년을 훌쩍 넘겨 장수 DJ 목록에 합류후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정확히 5년째가 되는 2014년 4월 14일 끝으로 종방했다. 본인도 이 프로그램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듯. 10년 이상 활동하고 싶다고 라디오에서 몇번 밝혔다.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 새벽 2시 마지막 날 선곡표에는 자신의 곡 두 곡, 프로그램을 시작했던 날에 선곡했던 SS501의 '내 머리가 나빠서' 가 올랐다. 2014년 후반기 즈음으로 예상되는 군입대도 DJ 하차에 한 몫 하는 듯
* 2016년 3월에 허영생 김규종이랑 기차를 탔는데 허영생 빼고 둘이서 기차는 처음 타봤다고 한다.
- 박주영 . . . . 11회 일치
[목차]
고등학교 때인 2001년 [[포항 스틸러스]]의 후원으로 1년간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가 되었다. 2005년 후원해준 [[포항 스틸러스]]가 아닌 [[FC 서울]]에 입단해 놀라운 득점력으로 그 해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 등을 휩쓸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 모나코]]로 이적한 박주영은 첫 경기에서 1득점을 기록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10월에 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동료를 이용하는 움직임,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날카로운 감각과 창의성 높은 플레이, 뛰어난 볼 컨트롤, 기존의 한국 공격수들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문전 앞에서의 침착한 볼처리와 정확한 슛으로 한국에서 '축구천재'로 불렸었다.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인 2001년 프로구단 포항스틸러스의 후원으로 브라질에 1년간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2003년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2004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득점왕과 MVP 등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6><:> FW [br] [[레안드루 마샤두|마차도]] ||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백호와 동급이다~~)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나코 이적 이후 한동안은 몸싸움에서 너무 밀려서 스피드에만 의존해야 해서 예상보다 저조한 커리어를 찍게 됐지만, 그대로 도태되는 대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몸싸움과 제공권 능력은 아주 크게 보강했다. 모나코 2,3년차 09/10~10/11시즌 사이의 박주영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중앙 공격수 였다. 이 최고의 중앙 공격수라는게 무슨 골을 많이 넣는 선수라는게 아니다. 한국 최고의 스코어러는 아니었지만 현대 축구에서 필수적인 원톱 역할, 수비진과 경합하며 골문 부근에서 공을 따내고 지키는 공성추 역할은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 반동으로 청대때의 화려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현대축구에서 중앙 공격수는 무조건 포스트 플레이가 우선이고, 득점력은 다음이다.''' 어정쩡한 올라운드 원톱이나 고전적인 스트라이커는 현대 축구, 특히 세계무대에서 언더둑 입장인 한국같은 팀에겐 효용성이 떨어졌다. 현대 축구는 대체적으로 원톱이 직접 때리는 임무보다 상대 수비수의 집중력과 힘과 어그로를 빼면서 2선 공격수들에게 도움과 공간을 주는게 첫번째 이며 이게 커리어 중반기 스코어러론 더 빼어났던 이동국을 제칠 수 있었던 이유다.
인지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엄청 까이는 인물이다 보니 별명이 무식하게 많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추가시 유의 바람. 야구의 김별명 같은 항목에서 명확하게 영향을 받아 생겼으며, 김별명 등 이 위키의 별명 항목은 까는 별명 좋은 별명 무차별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위키 전체적으로 볼 때 박주영만 이상한 항목이 아니다.
* 버블팍 : 아스날 입단 후 여러모로 거품(버블)에 가까운 모습이 보여지며 붙은 별명. 발음 자체는 [[현아(가수)|현아]]의 히트곡인 [[Bubble Pop!]]의 패러디이다. 기사 댓글에서 주로 "버블버블 팍팍"[* Bubble Pop!의 가사 'Bubble Bubble Pop! Pop!'의 패러디.] 하면서 조롱할 때 자주 쓰였다. 곡의 연차가 오래되고 박주영의 거품도 꺼지면서 점차 생명력을 잃었다.
* 선례왕(先例王) : 합법적 병역 연기 및 면제는 물론 포항에서 서울로의 도주 등 박주영 인생 전반을 걸친 선구자적 면모가 일반인들에게는 상상의 영역조차 초월한 바, 박주영에게는 감히 왕의 칭호가 어울리다고 뭇사람들이 기림과 함께 얻은 영예로운 별명. 인간 박주영의 생애 전반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축구)|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박진성(시인) . . . . 11회 일치
[목차]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http://www.gqkorea.co.kr/2017/09/29/%EC%A0%95%EC%A0%95%ED%95%A9%EB%8B%88%EB%8B%A4/?_C_=18|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백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남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남의 최후' 라던가 하는 식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박진성 시인이 이후에 공개한 카카오톡 내용을 보면 익명으로 폭로한 최초 폭로자는 박진성 시인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자 "그럼 본명 말해도 돼요?"라고 실명 폭로할 것임을 협박하며, "주실려면 저는 돈이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37|#]] 전형적인 [[꽃뱀]]의 수법으로 보인다.[* 이후 사건 전개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본인이 그 트윗 내용을 스스로 삭제했다. 이는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폭로자가 한 말과 [[탁수정]]이 한 말이 비슷한 내용이라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박진성 시인은 2018년 2월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7662925585432576|최초 폭로자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계정을 폭파했다]]고 했고 7월 22일엔 이 사람이 김○○이라고 밝혔다(이름을 밝히게 된 것은 7월 19일에 자신이 그 최초 폭로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사과를 했는데 이 트위터 계정이 박 시인의 다중계정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 의혹에 대한 자세한 건 '자살 시도와 이와 관련된 그의 이후 행적'을 참조.).]
이 주장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것은 [[한국일보]] 소속의 황수현 기자이며, [[http://www.hankookilbo.com/v/0564032fc2164032b7c5c3af3f668c50|이 기사]]([[https://archive.is/uTwCo|@]])를 보면 [[메갈리아]] 성향의 [[페미니스트]]로 보인다. 위의 보도 이후로는 대표적인 [[기레기]]로 평가되고 있다. 박 시인은 2017년 2월에 한국일보와 황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에 말하길 26일이 1심 6차 변론 기일이었는데, 한국일보 측이 정정보도를 할 것은 확실해졌고 손해배상의 규모 정도만이 남은 기일 동안 정해질 것 같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895731627474944|#]] 그리고 7월 18일에 1심에서 승소, 한국일보와 황수현 측이 정정보도와 함께 5천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06&aid=0000092780|#]]
그러나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많다. [[아몰랑|조리돌림해놓고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양반이고, 아직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804441760350208|#1]][[https://archive.is/LXMJh|@1]][* 첫번째 예시에 나온 사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을과 시옷이라는 닉네임을 쓴 적 있고 김여선 또는 이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점 레스토랑 Cooper Room(카퍼룸)([[https://twitter.com/Copper_Room_|#트위터 계정]][[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37996846|#네이버 플레이스 정보]])에서 일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지망생[[https://twitter.com/satoy_0045/status/928626634474663936|#]][[https://archive.is/Nhple|@]]인데, 이 사건에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6453624502284288|박 시인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2명 중 한 명]]([[https://archive.is/yofTZ|@]])이다. 무고죄로 기소유예를 받은 뒤에 트위터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가 파란이 사그라들자 다시 계정을 복구하였다. 여러 문학 작품들만 인용하는 식으로 한동안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탁수정]]과 박 시인 간의 설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2월에 갑자기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었는데, 김여선의 전과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다 도리어 대중들이 자신의 죄를 역으로 캐묻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것을 직감했는지 다시 트윗들을 삭제했고, 사태가 다시 잠잠해지자 자신을 비판했던 이들을 고소할 것을 선언했다. 3월에 또 박 시인을 공격했지만 예전에 비해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며칠 후부터는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듯했는데, 4월 16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887446482042883|'이후의 삶' 펀딩을 망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서 거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려는 수작이 들켰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http://web.archive.org/web/20171127054338/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 유진목이라는 1인 영상 제작사 목년사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다.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71395|#]]] 심지어 이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776705218068482|송승언]]([[https://archive.is/HxWyl|@]])이라는 사람은 [[http://moonji.com/bookauth/9173/|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2017년 5월 17일 이후로 주로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만 단정짓고 이야기했으며, 무혐의 처분 후에도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https://twitter.com/search?f=tweets&vertical=default&q=blanknoose%20박진성&src=typd|#]][[https://archive.is/286Iy|@]] 이후 박진성 시인의 무고가 확실해지면서 자신에게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한동안 [[https://twitter.com/blanknoose|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였다가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웃긴 것은 2017년 5월 24일부터 자신의 전 연인이자 후배 문학도에게 '문단창녀'라 성희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진성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송승언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거나 박진성 편을 드는 자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는 정신승리로 침묵하고 있으며 박진성 시인을 모욕했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있다(증거 자체는 예전부터 삭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67579611017658372|#1]][[https://archive.is/z5QTN|@1]][[https://twitter.com/blanknoose/status/936928452875186180|#2]][[https://archive.is/IMg8R|@2]][[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99014088801386496|#3]][[https://archive.is/IdmMq|@3]]]
그리고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5282180711837697|ㅁㅊ]]([[https://archive.is/GZrdp|@]])이라는 전형적인 [[트페미]]는 자기 말로는 이미 등단한 실제 시인인데도 익명을 쓰고 있다고 추측되는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947768753299457|글]][[https://archive.is/uk1hs|@]]을 올렸다. 심지어 ㅁㅊ은 저 글 전체에서 간이 부었는지 트페미,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박가분]]과 [[유아인]]과 박진성을 같이 엮어 비꼬고 있다.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5280720691437568|#]][[https://archive.is/nKyFQ|@]][* 그리고 ㅁㅊ은 박진성을 비하하는 과정에서 '''문단_내_성폭력''' 태그를 처음 돌렸다고 자처했으며, 카페 창비에서 자기 편을 들거나 자기와 처지 같은 모임에 모인 사람 몇몇과 같이 뒷담화와 무차별 고소를 모의했다는 간접적인 자폭 시인(是認)을 해버렸다. 이는 박진성처럼 무고죄 처분을 받은 피해자들의 조사에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436470416334849|#]] [[https://archive.is/9IZbK|@]] 여담으로 [[http://www.hankookilbo.com/v/59c63886250945728a1b52d81920104c|이 기사]][[https://archive.is/eNOrA|@]]에 나온 비공식 모금 출판 책 '참고문헌없음'에는 박진성 작가를 허위사실로 조리돌림한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유진목 작가, 탁수정(책은탁)이 공동 저자로 표기되어 있다([[https://tumblbug.com/baumealame4|해당 펀딩 주소]]). 즉, 저 자료도 무고죄 소송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965482632808026112|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 이 때 그녀는 '좋은 소식'이라고 웃었는데 이 반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https://blog.naver.com/poetone/221212096465|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이들은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아전인수]]와 [[내로남불]] 그 자체인 상황.
그 와중에도 페미니스트들과 박진성 시인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하면 죄가 없어지냐' 같은 소리를 하거나 '박진성이 자살하기 전에 여성 습작생들에게 집적거렸다', '과거에도 자살을 빌미로 여자들을 꼬시고 동정심을 유발했다(본인의 고백 내용)' 같은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2017년 12월 7일 기준으로, 트위터를 이용해 마녀사냥한 주요 오프라인 가해자들은 비판을 받아 재판에 불리해질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계정을 폭파시키기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편을 드는 SNS에서의 옹호자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9276420290576384|#]][[http://archive.is/meecs|@]][* 이 사례는 Holden 🔻Weatherfield라는 닉네임과 psychokinesis23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페미니즘]] 계정이다. 성향은 [[메갈리아]] 옹호자이자 가해자 [[이준행]]에게 [[재기#s-6|재기]]라는 [[남성혐오]] [[고인드립]]을 들은 피해자 [[전우용]]이 [[전우용#s-4.3|고소하다 용서한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https://twitter.com/psychokinesis23/status/772794350883315713|#옹호증거1]][[http://archive.is/gGvKe|@1]][[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772787036306546688|#옹호증거2]][[http://archive.is/QG3O0|@2]]). 특히 박진성의 자살시도가 성공해야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라는 조롱을 일삼은 점을 자신의 취향으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염동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면 저 시인을 자살로 몰고갈 수 있을 텐데''''라는 입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진영논리]]에 휩싸인 나머지 [[사이코패스|자기 진영 일원의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소시오패스|공감을 잃은]]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은 아예 사건에 입을 다물거나 익명의 계정에 숨거나 검색을 막기 위한 부계정과 스팸계정을 아직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https://twitter.com/No_JS_OK|해당 트위터 링크]] 이들은 어쨌든 관계를 맺고, 인정한 사실을 발설하더라도 [[지랄 옆차기 하네|해당 상황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보호 조치라고 설명한다.]]
* 2018년 2월 초에도 [[트페미|어떤]] [[위근우#s-3.8|사람]][[페미니스트|들]]이 열심히 박진성 시인의 트위터로 계속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길 멈추지 않고 있다([[http://archive.is/Di77O|@]] [[http://archive.is/4nRQ2|@2-1]] [[http://archive.is/zevjR|@2-2]]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sisa&no=1019438|#3]][[http://archive.is/UwWpI|@3]]). 결국 박진성 시인이 다시 고소 예고([[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59747957577850880|#]][[http://archive.is/4fn3p|@]][[http://down.humoruniv.org//hwiparambbs/data/editor/pdswait/e_4874374550_17a4b38c35c9327bb9b850b6f454c7fcb0b6aeae.png|#2]][[http://archive.is/WcO2d|@2]])를 하였고, 우선 자신의 해명 요청을 여러 차례 묵살했던 [[위근우]]에게 먼저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0171592985624576|선전포고를 날렸다.]] 그러나 위근우는 이에 대해서 여전히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저와 그 당시 여성들만 당한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문단에서 굴러먹은 지 17년째, 고En 시인의 그런 만행들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2018년. “30년 전 격려 차원에서 그랬다”는 고En 시인의 변명을 보고 또 한번 경악했습니다. 30년 전이면 1988년인데, 그 이후에 제가 들은 똑같은 패턴의 희롱과 추행들은 유령이 한 짓입니까? 어제 "부끄러울 일 안 했다, 집필을 계속하겠다", 고En 시인의 입장 표명을 보고 다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정말 궁색한 변명입니다. 그의 추행과 희롱을 보고 겪은 시인만 적게 잡아 수백명이 넘습니다. 수십년 간 고En 시인이 행해온 범죄입니다. 문단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왜 노 시인은 부정하는 것입니까.
- 봉준호 . . . . 11회 일치
[[프랑스]] 만화를 각색한 《[[설국열차]]》를 준비한후,<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50627 네이버 책 '설국열차'], 뱅자맹 르그랑, 장 마르크 로셰트, 자크 로브 저, 김예숙 역, 현실문화, 2009년 8월 5일</ref> 2012년 초 크랭크인하여 2013년 7월 31일에 개봉하였다.<ref name="설국열차">[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6&cid=307165&iid=364668&oid=020&aid=0002268463&ptype=011 프랑스 만화 각색한 ‘설국열차’ 400억대작 이끄는 봉준호 감독], 동아일보, 2011년 8월 16일</ref>
* 봉준호의 외조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소설가]] [[박태원 (1909년)|박태원]]으로서, [[한국전쟁]] 당시 장녀를 데리고 [[월북]]했고, 봉준호의 어머니를 포함한 그 외 2남 2녀는 서울에서 자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1951696 '천변풍경'의 구보 박태원, 청계천변서 다시 만나다] 프레시안. 2009년 06월 15일</ref> 2006년 6월 제14차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이들 모녀가 재회화여 화제가 되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1988703 호랑이가 고양이 낳으랴..3대 이은 예술명문가] 스타뉴스. 2009년 06월 30일</ref>
! 배우 !! [[플란다스의 개 (영화)|플란다스의 개]] !! [[살인의 추억]] !! [[괴물 (2006년 영화)|괴물]] !! [[마더 (2009년 영화)|마더]] !! [[설국열차]] !! [[옥자]]
| style="text-align:left;"| [[설국열차]]
| {{small|*}} 《[[설국열차]]》|| ||2013년<ref name="설국열차"/>
* [[르노삼성자동차]] NEW SM5 (2010년) ※[[고현정]]과 공동출연
;설국열차 (2013년작)
- 블랙 클로버/126화 . . . . 11회 일치
* 어린시절 [[핀랄 룰러케이트]]는 부모님의 냉대와 매도를 당하며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동생 [[랜길스 보드]]는 형이 경쟁상대 조차 못 된다고 여겼다.
* 핀랄은 보드가 차기 당주의 아내로 정해진 "피네스"양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당주가 될 리 없으니 랜길스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말하곤 했다.
* 랜길스의 E팀은 1회전처럼 [[셋케 브론자차]]의 청동마법으로 접근해 랜길스가 공격을 가하나 핀랄이 공간마법을 공간마법으로 상쇄하며 제압한다.
* [[핀랄 룰러케이트]]의 유년시절은 부모님의 매도로 가득했다. 어머니에게 핀랄은 자식 조차 아니었다. 그는 동생 [[랜길스 보드]]와 비교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 정도였다. 공부든 운동이든 랜길스가 월등한 것에 만족하며 핀랄은 자기 자식 조차 아니라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자식은 오직 랜길스 뿐. 그런 말을 핀랄의 면전에서 하는 말이었다.
* "피네스"양이 나타나면서 형제싸움은 전혀 다른 양상이 된다. 피네스 양은 아버지가 점찍은 며느리감이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피네스양을 형제에게 소개했다. 차기 보드가 당주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면서. 그녀는 형제보다도 연상이었고 지병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기준에선 문제가 없었다. 그녀가 유서 깊은 마력을 계승한 사람이라는게 중요했다.
랜길스는 당연히 자기 약혼녀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이미 형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보드가의 차기 당주는 당연히 자신이고 저 여자도 내 약혼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피네스가 싫었다. 재미없어 보이는 여자, 그게 다였다. 피네스와 만남을 운명적이라 여긴건 핀랄 쪽이었다.
저 시시한 여자가 나를 형보다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랜길스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그때까지 경쟁 상대 조차 못 된다고 생각했던 돼먹지 못한 형이, 우등생 동생이 확실히 짓밟아야할 상대로 재인식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핀랄이 끝내 가문을 등지고 나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 핀랄이 속한 E팀은 크리스탈을 중심으로 세 명이 밀집해 있었다. G팀은 1회전에서 써먹은 전법을 다시 들고 나왔다. 랜길스가 [[셋케 브론자차]]의 청동마법 탈것에 타고 맹렬한 속도로 접근 중. [[레오폴드 버밀리온]]이 전방에서 나타난 적을 확인했다. 레오폴드는 1회전에서 보여준 랜길스의 공격형 공격마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대처를 핀랄에게 일임했다. 작전이 있었다. 랜길스는 1회전에서 했듯 크리스탈이 적당한 거리에 들어오자 공간마법을 날렸다. 그리고 핀랄이 작전의 1단계를 실행했다. 랜길스가 던진 공간마법이 핀랄이 펼친 공간마법과 부딪혀 사라졌다. 한 방에 게임을 끝내겠다 자신했던 랜길스가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방금 전 상황은 속임수도 요행도 아니었다. 핀랄은 고브를 통해서 "공간마법과 공간마법이 부딪히면 소멸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핀랄이 있는 한, 멀리서 공간마법으로 쉽게 이기는 일은 없다.
* 반면 랜길스 쪽은 볼일이 길어질 모양이다. 핀랄이 기대이상으로 잘 막고 있었다. 랜길스가 날리는 공간마법을 자신의 마법으로 족족 지워버리며 크리스탈에는 손끝 하나 닿게하지 않았다. [[마법제]] 또한 공간마법 공방은 쉽게 볼 수 없다며 둘의 기량을 칭찬했다. 항상 형을 깍아내리던 랜길스 조차 "형이 천적이 될 줄은 몰랐다"고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우세한건 여전시 자신 쪽이라 확신했다. 이쪽은 얼마든지 공격을 날릴 수 있지만 핀랄은 한 방이라도 놓치면 그걸로 끝. 과연 언제까지 막고 있을 수 있을까?
* 셋케가 "시시하고 시원찮은 마법"이라며 그런게 물이 오른 자신에게 맞겠냐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탈것의 궤도를 살짝 비틀어 가볍게 회피,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에 탄 랜길스는 비켜나간 마법이 반원을 그리고 뒤따라 오는걸 볼 수 있었다. 호밍 기능.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랜길스가 셋케를 버리고 뛰어내렸다. 셋케는 조금 늦게 눈치챘지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방어마법 "셋케매그넘 캐논볼"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럴 거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마법이 닿는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건 랜길스 조차 예상치 못했던 공격. 하지만 이걸 시전한 핀랄은 스스로를 안스럽다고 자조했다.
- 스틸오션/영국 . . . . 11회 일치
>왕립해군은 1916년 부터 1917년 까지 55척의 R-클래스 구축함을 건조했다. 이 숫자에는 이중 굴뚝을 장비한 개량형도 포함되어있었다. R-클래스 구축함은 초기 M-클래스 구축함의 개량형이었다. 두척을 제외한 대다수의 R-클래스 구축함이 1930년대 퇴역하였다. 레이디언트(Radiant)는 왕립태국해군에 넘겨져 1957년까지 현역이었으며, 스케이트(Skate)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기뢰부설함으로 개장되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살아남았다. 스케이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호위선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A/B-클래스 구축함의 설계는 영국 구축함사(史)의 이정표다. 소해임무에 중점을 둔 A-클래스와 대잠임무에 중점을 둔 B-클래스의 가장 큰 개선점은 파슨즈 기어드 증기 터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A/B-클래스 구축함은 활동적이었다. 1940년, 여섯척의 A/B-클래스가 노르웨이 전역에 참전해 훌룡한 성과를 거뒀다. 코드링턴(Codrington)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에 참가해 네덜란드 왕가를 구출했다. 아카스타(Acasta)와 아던트(Ardent)는 항공모함 글로리어스(Glorious)를 호위하던 중 독일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를 격침시켰지만 독일군 어뢰에 피해를 입었다. 대서양 전역에서 불독(Bulldog)은 독일 잠수함 U-110을 나포해 처음으로 에니그마 암호 작성기를 확보하였다. A/B급에 의해 U-110외에도 7척의 주축군 잠수함이 최후를 맞았다.
>HMS Argus는 일반적인 항공모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최초의 왕립해군 소속 항공모함이었다. 원래는 콘테로소(Conte Rosso)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1918년 9월, 콘테로소는 갑판 전체에 비행갑판을 두르고 Argus로 명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반기에 Argus는 독일 함대의 공습을 받았다. 전간기에는 느린 속도로 인해 훈련 임무에만 머물러 있어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HMS Argus는 몰타와 지브롤터에 보급품을 보내는 하푼 작전(Operation Harpoon) 동안 H 기동부대의 항공 지원을 맡았다. 1942년, Argus는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에서 항공 지원을 맡았다. 이 함선은 주로 훈련용으로 사용되다가 1946년 퇴역했다.
>알미란테 코치라네(Almirante Cochrane)는 칠레 해군이 영국에게서 구매한 선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이 함선은 영국왕립해군이 사용하게 되었다. 여러번의 재설계 끝에 항공모함 "이글"(Eagle)로 개장되었다. 1930년대에는 홍콩에 배치되어 해당 지역의 많은 해적을 소탕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지중해로 옮겨가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Admiral Graf Spee)를 쫓는 임무를 맡았다. 1940년 7월, 토브룩에서 세척의 이탈리아 구축함과 한척의 잠수함에 의해 함재기가 파괴되었다. 고장으로 타란토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42년 8월, 몰타로 가는 네번째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중 독일 잠수함 U-73에 의해 스페인 마요르카 근처에서 격침되었다.
>HMS 유니콘은 정비실이 설치된 항공기 수리함 겸 경항공모함이었다. 1943년 3월에 건조된 후, 대잠임무와 훈련임무에 주력해왔다. 1943년 12월, HMS 유니콘과 다른 호위항모 4척으로 구성된 V기동함대는 아발란체 작전(Operation Avalanche)에 투입되었다. 1944년, 태평양으로 보내져 MONAB(Mobile Naval Air Bases)의 창설을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잠시 예비역으로 있다 싱가포르에 배치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기 수송과 영연방 항모 보급 임무를 맡았다. 1953년에는 북한 해안에서 포격 당하기도 했다. 1959년 6월 퇴역하여 해체되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이후, 영국은 두척의 대형 경순양함 HMS 뱅가드(HMS Vanguard)와 HMS 커레이져스(HMS Courageous)를 항공모함으로 개장시켰다. 이는 1920년대 있었던 HMS 퓨리어스(HMS Furious)의 개장에 기반을 두고있었다. 우현에 연돌을 추가한 두 선박은 당시에는 최신 항공모함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한 후, HMS 커레이져스는 아일랜드 해안 초계 중 독일 U-보트 U-29에게 공격받았다. 어뢰 두개가 좌현에 명중했고, 커레이져스는 침몰했다. 글로리어스(Glorious)는 그라프슈페(Graf Spee) 수색을 위해 지중해에 파견되었다. 1940년 4월에는 노르웨이 해전을 도왔다. 1940년 6월 8일, 나르비크에서 귀환하던 중 독일 순양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에게 격침되었다.
>리벤지급 전함은 R급이나 로열 소버린급(Royal Sovereign class)으로도 알려져 있다. 예산 한계로 인해 그 전에 건조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보다 느리고 작았다. 총 여덟척이 계획되었지만 두척은 리나운급(Renown-class) 순양전함으로 변경되었고, 한척은 취소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퀸 엘리자베스급이 받았던 대규모 개장을 받지 못하고 장갑과 대공포가 소량 추가되었을 뿐이다. 전시에도 대단한 활약은 하지 못했다. 로열 오크(Royal Oak)는 1939년 10월 스캐퍼플로(Scapa Flow)에서 독일 잠수함 U-47에게 격침되었고, 로열 소버린(Royal Sovereign)은 소련 해군에 공여되어 아르항겔스크(Arkhangelsk)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 제2차 전함트리 ==
- 식극의 소마/175화 . . . . 11회 일치
[[식극의 소마]] 175화. '''토오츠키 열차는 달린다'''
* 2회전 시험 장소는 토오츠키 전용 열차로 밤새 이동해 새벽에 도착한다.
* 에리나는 열차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여념이 없는데 기숙사생들은 에리나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쓴다.
* 1차 시험 종료. 대부분의 학생들이 무사히 1회전을 통과한다.
* 토오츠키 학원은 홋카이도 지역의 열차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다.
* 합격자들은 식사를 마친 후 열차에 탑승, 밤새 달려서 내일 새벽 2회전 시험장에 도착하게 된다.
* 그들이 타게될 열차는 호화열차 "츠키카게"
* 최고급 관광열차로 유키노는 이게 진급 시험만 아니었으면 최고의 여행이었을 거라며 피눈물을 흘린다.
* 열차는 출발하고 기숙사생들은 늦게까지 공부에 여념이 없다.
* 이번엔 타도코로가 현미차를 가져와서 전해준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11회 일치
* 레분 섬 결전 2일차. 대회장 출발에 앞서 반역자들이 대기하는 동안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나타나 [[유키히라 소마]]와 정담을 주고 받는다.
* 레분 섬 결전의 1일 차 종료. 그리고 다음 아침이 밝았다. 반역자의 숙소는 센트럴 측과 같은 레분 섬 내의 리조트 시설 "설원화" 호텔이었다. 토오츠키 계열의 리조트였다. 2일차 결전의 아침. 대회장으로 향하는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반역자들은 호텔 로비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출전이 결정된 [[타쿠미 알디니]]는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요시노 유키]]는 그가 긴장감에 짓눌리지 않나 우려했지만 동생인 [[이사미 알디니]]는 저건 주방에서 집중할 때 보이는 표정이라며 안심했다. [[사카키 료코]]는 다른 출전자들의 상태를 걱정했는데 적어도 [[미토 이쿠미]]의 눈에는 아주 괜찮아 보였다.
*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이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아라토 히사코]]의 지도를 받으며 때아닌 서예 삼매경이었다. 백지에 쓰는 건 사람 인. 이제와서 때아닌 복수전공 지망인가? 하지만 손바닥에 사람 인 자 써서 삼키는 짓을 매번 하던 차였으니 거기서 스케일만 좀 커졌을 뿐 문제는 없었다. 반대로 [[유키히라 소마]]는 풀어야할 긴장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분명했다. 태평하게 설원화 호텔의 아침식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으며 트럼프를 펼치고 있었다. 상대는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소마를 뺀 둘은 제법 본격적인 심리전을 펼치며 역시 복수전공을 고려 중인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반역자의 대장 [[나키리 에리나]]는 이 놀이에 끼지 못한 채 우두커니 구경 중이었다. 이 모든게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 문제는 없었다. 이쿠미는 새삼 어제의 대전카드 추첨 결과를 떠올렸다.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놀라봐야 소용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메구미는 사람 인을 쓰며 연대식극 2일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십걸 평의회 시절 알아차린 거지만, 그녀가 저런 식의 별명을 붙이는 상대는 정해져 있다. "자기보다 낮은 상대" 뿐.
* 메구미도 이 별명 놀이에서 빠져나갈 순 없었다. 모모는 그녀를 직접 거명해 "메구먕"으로 명명했다. "먕". 특히 좋아하는 별명. 모모는 그 별명을 붙여주며 "잘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차이는 메구미도, 소마나 타쿠미나 에리나도 알 수 있었다.
* 결전 2일차에도 여전히 맛이간 [[카와시마 우라라]] 등장. 묘한 하이텐션 상태 그대로 오늘의 참전자들을 소개했다.
제 2카드는 타쿠미 알디니 대 에이잔 에츠야. 의외로 타쿠미에 대한 소개는 평범하다. 이탈리아 태생의 유학생. 그의 눈에 보이는건 파멸인가 영광인다? 딱 상식적인 수준의 멘트. 그런데 또 에이잔에겐 가차없다. "돈과 미식의 망자". 아무튼 편파적인 건 변함없다.
- 유민상(개그맨) . . . . 11회 일치
[목차]
아직 120kg이 안 되던 시절 개그맨 신인들의 등용문이었던 [[폭소클럽]]에서 [[마른인간연구 엑스파일]]이라는 코너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개그콘서트]]로 넘어온 후 <솔로브레이크>라는 코너에서 석호필을 패러디한 '석호피그'로 '''영리한 돼지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1대 100]]에서 우승하면서 캐릭터만이 아님을 보여줬다. <아빠와 아들>, <안생겨요>, <큰 세계> 등의 코너도 히트시키는 등 몇 안 되는 개콘 장수 개그맨으로서 그 능력을 입증했다. 다만, [[비호감]]이라는 약점이 살짝 있었는데, [[맛있는 녀석들]]이 대히트하면서 그것조차도 다 날려버렸다.
[[개그콘서트]] [[사랑이 라지]] 코너에서 [[김민경]]과 연인역할로 호흡을 맞췄으며, [[1대1]] 코너에서 출연자들이 [[김민경]]과의 러브라인을 강제로 엮었는데[* 예를 들면 작중 [[내부자들]]의 [[이병헌]]을 패러디한 이병원으로 출연 중인 [[이세진]]이 유민상이 내준 문제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글자배열을 뒤죽박죽 엉망으로 못 맞히고(정답은 프리마돈나, 이병원이 제시한 오답은 1차 시도때 마, 돈프--뿌--리나? 2차시도때 프--푸--~니돈마나?) "장난 나랑 지금하냐? 풀어야지 궁금증 풀어야지. 진짜 [[김민경]]이랑 사겨?"라는 등] [[맛있는 녀석들]]에서도 김민경과 러브라인까지.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이수지|그녀]]와 [[님과 함께(JTBC)]] 시즌2를 찍으면서 김민경과 러브라인은 날아갔다.
6월에는 이수지가 자신의 라디오 프로 가요광장에서 '진짜 오빠가 고백한다면 사귀어줄 수도..'라며 여운을 만들긴 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어하다가, 2018년 1월 이수지가 일반인과 열애설이 터진다. 교제 기간은 1년으로 이미 첫 녹화 언저리부터 일반인과 교제 중이었던 것. 어차피 예능은 예능일 뿐인데 별로 욕하는 사람도 없고 유민상 역시 쿨한 반응이었다. 2018년 4월 14일 [[아는 형님]]에서 '이수지 열애설 터지고 심경 인터뷰가 밀려올 줄 알았는데 기자들에게 전화 한 통조차 없었다'며 씁쓸해 했다.
그 외에도 먹방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데, 언제는 후배들을 집합시켰을 때 누구도 왜 혼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다들 왜 그러냐고 하자, [[피자]] 박스를 발로 차면서 "이거 안보여? 엉!?". 자기 없을 때 맛있는 거 먹었다고 삐진 것. 후배들이 그때 빵 터졌는데, 문제는 그가 진심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애들이 박살났다고 한다.
* 2014년 8월 15일 드레노어 월드 프리미어의 진행을 맡았으며 빵빵 터지는 와우드립으로 모든 와우저들을 만족시켰다.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56005|아즈샤라 얼라이언스는 뭘 먹고 사나요? 거긴 작업장조차 없는 서버잖아요]]
* 2015년과 2016년에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남자 최우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참고로 2년 연속 최우수상은 꽤나 드문 기록 중 하나며 2년 연속 대상은 의외로 많지만. 그리고 2016 연예대상에서 스케치북을 이용해 개그맨 후배들 시상때 코멘트를 날려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었다.[* 송영길 우수상 시상에서 "제가 키운앱니다." 홍현호의 신인상 경우에는 "송필근 아님"등등] 그리고 최우수상을 타면서 말한 수상소감이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마음을 들게 했다. ~~맛있는 녀석들 이후로 부쩍 훈훈해진 이십끼형~~
* [[GTX1080]]이 국내출시되자 바로 구매했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한다. 이 게임의 열정은 상당히 그 역사가 긴데, 어린 시절 플레이스테이션1을 사기 위해 엄마 몰래 신문배달까지 할 정도였다고. 2018년 4월 경 [[갓 오브 워 4]] 출시 때 개인방송을 했는데 몇년 전 구입한 ps4로 플레이 중임을 밝혔다. 1080ti나 ps4 pro로는 바꾸지 않고 있으며, 주로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때만 업그레이드를 하는 편이라고. 그의 스팀 라이브러리는 게임으로 꽉 차 있다. 소장 게임 수가 어마어마.
* 2016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최우수상[* [[http://anitown.net/humor/1360369|#]] 당시 여기서 주차비 문제를 제기했고 현재는 해결된 상태]
- 이지은(2000) . . . . 11회 일치
||<:><#fcb4bd>'''{{{#white 별명}}}'''||<#ffffff>여장부[* 고등래퍼 출연 당시, 남자출연진들에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모로 당차게 리딩하는 모습을 보여 프로듀서들이 감탄하곤했다.], 안소희 닮은꼴[* 고등래퍼 선공개 영상에서 안소희 닮은 꼴로 소개가 되었으며, 좌우로 긴눈과 전체적인 얼굴형태가 닮았다는 평가], 코지은[* 코가 꽤 오똑하고 이쁜편이라 힙갤에서 불리는 편], 찐[* 학교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이라 한다], 햄[* 햄토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나온 별명], 자영업자[* 믹스나인 방송내에서 콩알만한 분량으로 알아서 여자 직캠조회수 3,4위를 먹은 김시현, 이지은을 통칭하는 별명. ]||
[목차]
==== 7회(2차 순위발표식) ====
전체순위 83위, 여자연습생 37위로 2차 순위발표에서 생존했다! 여자 연습생 중 자그마치 40위(77위 -> 37위)가 올라버리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분량도 10초 정도 나왔다. 마지막엔 시청자들에게 9ood 9irl 멤버들이 큰절을 하기도...
8화는 2차 경연을 주제로 여자연습생들이 포메이션 배틀을 준비하여 공연하는 장면이 잡혔다. 데뷔조 멤버들이 5곡을 지정한 후, 댄스, 보컬, 랩으로 각 멤버들을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경연결과는 684점을 받아 허니조 1위, 여자연생 전체 3위를 차지했다.
12월 3주차 순위에서 15위로 22계단 급상승했다! 제작진에서도 이것을 띄워주려는 듯, 여자연습생 그 쥐꼬리만큼의 분량 중에서도 15라는 순위를 크게 표시해서 4~5컷 정도 보여 주는 편집을 했다.
==== 10화(2차순발식) ====
음원미션 준비와 3차 순발식이 방송이 되었다. 같은 조에서 살아남은 게 이지은 혼자였다. 최종 순위는 여자 24위.
==== 13화(3차 순발식) ====
3차순발식과 파이널 무대 곡선정 에피였다. 18위까지 합격이고, 2개의 곡을 선택해 파이널 무대를 준비하는 내용이었으나 23위로 최종탈락하게 된다.
- 전소민(배우) . . . . 11회 일치
[목차]
2017년 [[한국시리즈]] 3차전 시구자로 선정되어 시구를 하였다.
2013년 12월 29일 [[개그 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코너에 출연하여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를 패러디--라고 쓰고 폭풍디스--했다(...) [[http://tvpot.daum.net/mypot/View.do?ownerid=NFCuTYsUzgw0&clipid=55449486|#]] 컵 들고 부들부들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뺨을 때리고 발로 차며 "나, [[오로라(오로라 공주)|오로라]]에요"라질 않나, 스토리랑 아무 상관 없다고 태클받자 "막장 이렇게 하는거 아니에요?"라며 천연덕스럽게 굴고, --[[브라우니(개그 콘서트)|브라우니]]의 탈을 쓴-- 떡대가 ~~암세포~~감기세포=생명이라 말하자 ~~개가 말을 해~~ "[[개소리]]"라며 때리고, 주변 사람들이 다 죽자 "왜 나랑 있으면 다 죽는 거야?"라며 디스의 정점을 보여주며 떡대가 죽을 차례가 되자 자기 발로(...) 차고는 "떡대야~ 으흑흑"하며 돌변하는 태도가 압권.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그래도 자기를 키워준 [[임성한]] 작가한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고,[* 실제로 [[인어 아가씨]] 주연이였던 [[장서희]]의 경우 "[[임성한]] 작가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방송에서 수 차례 말한 바 있고, 심지어 [[인어 아가씨]]가 막장이 아니라고도 하였다.~~말은 바로 해야지...~~] 이에 소속사를 통해 "드라마는 드라마, 예능은 예능으로 봐달라"며 수습(?)에 나섰다. ~~왠지 진심이 느껴졌었던 것은 논외로 치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422927|#]]
* 술에 취하면 [[이광수(배우)|불쌍한척 하거나 울거나]], [[송지효|때리고 발로 차거나]], [[하하(가수)|잠든 아내 깨워가며 떠들어대고]]하는 주변 사람들 비슷하게 술버릇이 제법 있는 모양.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같이 술을 마신 양세찬이나 이광수 입에서 뭘 자꾸 훔쳐가려고 한다거나, 개 될까봐 술을 물로 바꿔치기한다는 등의 증언이 나왔다. 처음 술자리를 가진 후 이광수 왈 "술버릇이 아주 안좋더라구요, 아주!"라고. 술도 좋아하지만 술자리 게임도 좋아하는지 런닝맨에서 술자리 게임을 매우 잘한다거나 하고싶다는 어필을 수차례 한 적이 있다.
* 2015년 초 [[윤현민]]과 공개연애를 하다 2016년에 헤어졌는데, 이 때의 경험때문인지 [[https://mnews.joins.com/article/22469099|공개연애는 하지 않을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덤으로 진지하게 연애를 한 경험은 세번이라고 한다. 2017년에 런닝맨 고정으로 첫 합류한 방송에서 직접 밝힌 적 있으며, 2018년 위험한 파트너 특집 때도 “20대 때 세명이랑 결혼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개중 두명은 눈물의 커피숍 휴지인 J와 윤현민인가....~~그리고 세번 다 차였다고 한다. 그 중 한번은 상대가 바람피는 걸 눈치채고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라며 차인건 두번이라고 주장했는데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글쎄...]][* 우습게도 바로 직전에 거의 동일한 경험담을 털어놓은 광수에게 그건 차인거라며 돌직구를 날려놓고 자긴 다르다고 주장하다 뜬금없이 그 전남친에게 “너, 나한테 연락하지마!”라며 영상편지를 시전하기도]
- 전지수 . . . . 11회 일치
* [[2014년]] 제 29회 전국남녀 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겸 2014/2015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 2차 대회 여자 500m 2위, 1000m 4위, 3000m(S.F) 7위
* [[2006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컵 1차 여자 3000m 계주 1위
* [[2006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컵 2차 여자 1000m(1) 3위, 3000m 계주 2위
* [[2006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컵 3차 여자 500m(2) 3위, 3000m 계주 2위
* [[2006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여자 1000m 4위, 3000m 계주 3위
* [[2007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컵 6차 여자 500m(1),500m(2) 3위, 3000m 계주 2위
* [[2014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컵 1차 여자 500m 4위, 1000m(1) 4위, 3000m 계주 1위
* [[2014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컵 2차 여자 500m(1) 3위, 500m(2) 2위, 3000m 계주 1위
* [[2014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컵 3차 여자 3000m 계주 1위
* [[2014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여자 500m 2위, 3000m 계주 2위
* [[2015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컵 6차 여자 3000m 계주 2위
- 창작:티겔 왕국 . . . . 11회 일치
동부대룩의 중남부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 호랑이족 맹수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쪽엔 황소족 거수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그외에 무릉과 인접한 곳엔 맹호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일부지만 라이거일족들도 살고있다. 북쪽으론 메말사막을 기점으로 서쪽부터 해서 라이겐프름 공국, 상인연합, 츄프 왕국과 접하며, [* 다만 앞에 두국가들은 일단은 티겔의 봉신이다. 사실상 독자적인 외교권과 주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독립국 취급이지만.] 동쪽으론 아래드 산맥을 기점으로 무릉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낭마 연합과 접하고 있다. 제국을 칭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유일황제' 샤를 7세가 이끄는 레이먼 제국군한테 박살나고 잠깐 레이먼 제국의 봉신이 되었을때 왕국으로 격하되었다. 그뒤로는 레이먼 제국한테 괜히 트집잡히기 싫어서 일부러 왕국으로 유지중.
과거, 현재 티겔의 강역은 거의 다 숲이었으며, 거기에 스스로를 '사냥꾼'이라 부르는[* 현재도 존재하며 티겔의 영토의 25%를 차지하는 미개척지에 알박으면서 살고 있다. 보통 티겔에서 용병으로 일하고 있다.] 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들 분파중 가장 세가 컸던 무리의 족장의 장남이었던 '달구'란 자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 그과정에서 자기를 막으려던 자기 무리들을 싹다 죽이고 떠났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전부 죽이지는 못했다.]북쪽으로 올라가서[* 가는 와중에 지금의 메말사막 일대에 존재했던 늑대족 마을들을 전부다 약탈해버리고 거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메말사막의 생성원인중 하나. 그것때문에 메말사막에 사는 늑대족 마적들은 호랑이족을 증오한다.] 중북부에 적당한 위치에 티겔이라는 도시를 세우고 거기서 자기가 왕노릇을 한게 시초.[* 이때부터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중북부를 통합하기전까지 유지됬던 때를 상티겔왕국이라 한다.]그렇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되지 못했는데 10여년뒤, 그의 막내여동생인 '달순'이 그를 죽이고 자기가 직접 왕위에 올랐기 떄문. [* 이게 또 대단한게, 잠깐 행차를 나간사이 달순이 달구의 경호원 10여명을 혼자서 죽인뒤(....)살해했다. ~~리얼 소드마스터~~] 달순의 통치하에 상티겔왕국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데, 그전까진 그냥 일개도시국가수준이던 상티겔왕국을 전제군주국가로 바꿔버렸다는 평을 받을정도이다. 그의 치세하에 상당한 량의 농지를 얻어내 이후 티겔이 본격적으로 중북부의 패자가 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달순여왕은 한편으론 음유시인들의 이야기로도 자주나오는데, 그녀의 모험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만 십몇편은 될정도.
상티겔 왕국은 달순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순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순때 상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순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상속법을 장자상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상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태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상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남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태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며, 태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반란에 따랐으며, 태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한편으론 남쪽으로의 개척도 활발히 진행했는데, 이문제로 인해 사냥꾼들과 갈등이 상당히 있었다. 전왕조의 일족이었던 '달'씨족은 문제없이 복속했지만, 그외에 '고'씨족과 '문'씨족은 쉽사리 복속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과 충돌직전상태까지 온다. 결국 이들과 협정을 하게되고,[* 국력상으론 티겔이 절대우위였으나 전선의 길이와 이들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소모될 물자가 문제였다.] 고씨일가와 문씨일가는 그들의 영역에서 사냥을 자유롭게 벌이는걸 허락하는 대신, 다이잔 강 북부를(동부대륙 중남부의 최하단.) 개간하는걸 허락받는것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다이잔 강 남부가 주거점이었고, '달'일족이 약화되면서 겸사겸사 챙긴 구역이라 크게 손해보는건 없다는 생각하에 수락했다. '''그리고 남쪽에선 흉폭한 거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밀려난 거인족들은 대부분 다이잔 강 인근에 정착했고, 곧 그곳에서 대대로 살고있던 사냥꾼들과 충돌하게 된다. 갈등의 원인은 사료가 제각각이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각집단의 젊은이들이 사냥감의 소유권문제로 다툰것이 시작인건 확실해 보인다. 아무튼 이 갈등은 점차 종족들간의 갈등과 충돌, 혐오로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갈등의 시작이었던 '물소사건'의 일원이었던 '라가트렁'를 중심으로 집합한 거인족들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된다.
- 최지우(영화배우) . . . . 11회 일치
[목차]
1994년 MBC 공채 탤런트 23기[*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유태웅]], [[이현경]],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1995년 말 영화 <귀천도>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으나 부족한 연기실력탓에 도중하차한다. 1996년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열린 한국의 [[이자벨 아자니]]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여 비로소 얼굴을 알리게 된다.[* 이자벨 아자니와 샤론스톤이 주연을 맡은 영화 <디아볼릭> 국내 상영기념 이벤트였다.]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7년으로, 한창 인기 있던 드라마 <[[첫사랑(KBS)|첫사랑]]>과 영화 <[[올가미(영화)|올가미]]>에 출연하게 된다. 그 외에도 CF와 뮤직비디오 등으로 점차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국어책을 읽는 듯한 [[발연기]] 때문에, 데뷔작인 [[박봉곤 가출사건]](1996년)에 출연했을 때에는 아예 '벙어리 정육점 여주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올가미(영화)|올가미]]가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1996년에 개봉하여 똥폼만 잡고 끝난 '귀천도'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기로 하였으나, 건강문제로 인하여 도중 하차한다. ] 흥행은 못했지만 나름 호연과 더불어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문제는 1997년 <올가미> 출연 이후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였으나, '''흥행작이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출연했지만, 일단 이 영화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비중이 워낙 큰 데다 [[장동건]]이 조연으로 출연했기 때문에 아무도 최지우가 나온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겨울연가>의 대박으로 멜로 여주인공 이미지로 먹고 살 수 있었던 드라마판에 비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판에서조차 연약하고 약간은 엉뚱한 이미지를 고수하여 연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본인이 영화판에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이미지 변신이 시급한 문제일 듯하다.
2007년 <에어시티>를 홍보하기 위해 [[무한도전]]에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그 때 [[노홍철]]이 최지우의 앞에서 [[저질 댄스]]를 추는 '만행'을 저질렀다. 최지우는 차마 노홍철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여담으로 EXO의 세훈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최지우가 MAMA 시상자로 나왔을 때, 수상자였던 EXO가 대기하는 동안 시상대에 있는 최지우를 보고 올라가는 광대뼈를 주체하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짓는 직캠까지 있다(...). 일설로는 그가 연예인 데뷔 후 처음으로 실물로 본 것이였다고. ~~최애 영접~~ 이후 EXO 90:2014에서 보아와 최지우 중 누가 더 좋냐는 질문에, 이제껏 잘 익힌 처세술을 한껏 발휘하던 그가 최지우 이름이 나오자마자 얼어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격 회사 상사와 10년차 짝사랑 상대의 대결~~ 결국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보아가 좋다고 말했지만, 보아 왈 "엎드려 절 받는 느낌이다?" ~~근데 질문이 너무 가혹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온갖 종류의 [[술]]에다 해장음료용 [[코코넛]]워터, 그리고 주당의 끝판왕이라는 [[하몽]]에 [[멜론]], 차갑게 한 [[샴페인]] 조합까지 나와서 결국 지우히메에서 알콜히메로 캐릭터가 변경되었다(...)
* 2016년 [[문화방송|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 - 차금주 역
* 별을 사랑한 왕자의 꿈 - [[차태현]]
- 태종무열왕 . . . . 11회 일치
성은 [[김 (성씨)|김]](金)이고, [[휘]]는 춘추(春秋)이다. [[진골]](眞骨) 출신으로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飡)에 이르기도 했던 [[김용춘]](金龍春)과 진평왕의 차녀 [[천명공주]](天明公主)의 아들이다.
이듬해인 [[648년]] 12월에 김춘추는 드디어 아들 [[김문왕|문왕]](文王)과 함께 직접 [[당나라|당]](唐)에 입조하였고<ref>《자치통감》 권199 唐紀十五太宗文武 貞觀 22년(648)</ref> [[당 태종|태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김춘추는 이곳에서 당의 [[국자감 (중국)|국학]](國學)을 방문하여 [[석전대제|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였으며, 신라의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했다. 당 태종으로부터 특진(特進)의 벼슬을 받고, 당에 체류하던 중에 태종의 호출로 사적으로 불려가 만나게 된 자리에서 김춘추는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조(天朝)를 섬긴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사온데, 백제가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해 왔습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폐하께서 천병(天兵)을 빌려주시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주시지 못한다면, 우리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요,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태종에게 원병 파병을 호소해, 태종의 허락을 받아냈다.<ref>《삼국사기》 [[:s:삼국사기/권05/진덕왕|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 “二年... 遣伊湌金春秋及其子文王朝唐 ... 嘗召燕見 賜以金帛尤厚 問曰 “卿有所懷乎” 春秋跪奏曰 “臣之本國 僻在海隅 伏事天朝 積有歲年 而百濟強猾 屢肆侵凌 況往年大擧深入 攻陷數十城 以塞朝宗之路 若陛下不借天兵 翦 除凶惡 則敝邑人民 盡爲所虜 則梯航述職 無復望矣” 太宗深然之 許以出師 春秋又請改其章服 以從中華制 於是 內出珍服 賜春秋及其從者 詔授春秋爲特進 文王爲左武衛將軍 (2년... 이찬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보내 당나라에 조공하였다. ... 어느날 [춘추를] 불러 사사로이 만나 금과 비단을 매우 후하게 주며 물었다. “경(卿)은 무슨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가?” 춘추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자(天子)의 조정을 섬긴 지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더욱이 지난 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개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희 나라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 군사의 출동을 허락하였다. 춘추는 또 장복(章服)을 고쳐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니, 이에 내전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 춘추와 그를 따라 온 사람에게 주었다. 조칙으로 춘추에게 관작을 주어 특진(特進)으로 삼고, 문왕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았다.”</ref>
[[성덕왕]](聖德王)은 태종 무열왕의 명복을 빌고자 [[봉덕사]](奉德寺)를 지었으며,<ref name="유사-성덕왕">《삼국유사》 권제2 기이 성덕왕</ref> [[혜공왕]](惠恭王)은 오묘(五廟)를 정하면서 김씨로서 처음으로 왕이 된 [[미추왕]](味鄒王)과 더불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을 대대로 헐지 않는 신주(世世不毁之宗)로 삼았고,<ref>《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祭祀)</ref> 이것은 [[애장왕]] 2년([[801년]])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만 따로 떼어 모시는 사당을 지어 신주를 옮길 때까지 계속되었다.<ref>《삼국사기》 권제10 신라본기 제10 애장왕 2년(801)</ref> 9세기 중엽 신라의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郞慧和尙白月普光塔碑)』([[890년]]경 건립)에서 무열왕의 8세 손으로 당에 유학하여 불법을 배우고 돌아온 승려 [[낭혜화상]]의 행적과 무열왕의 업적을 교차대비시켜 "이때(태종 무열왕의 입당 후 귀국)부터 우리는 한 번 변하여 [[노나라]]가 되었다(自玆吾土一變至於魯)", "두 적국(敵國)을 평정하고 문명에 접하게 하여 주셨다(平二敵國俾人變外飭)"고 하여 태종 무열왕이 신라 국내의 제도를 당풍으로 개편하여 '문명화'시키고, 당시 신라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적국으로 여겨지던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여 평화를 가져왔다고 찬양하였으며, 또한 [[진성여왕]] 7년([[893년]])에 당의 태사시중에게 보내는 글에서 옛날 고구려와 백제의 강성함과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그 직후 무열왕이 당으로 들어가 수교를 맺고 원병을 청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과 이후 고구려의 유민들에 의해 세워진 [[발해]]와 당, 신라의 충돌 등의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3백여 년 동안 한쪽 지방은 무사하고 넓은 바다가 편안한 것은 곧 우리 무열대왕의 공로"라고까지 평가하였다. [[고려]]나 [[조선]]의 유학자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인식이었다.
《[[구당서]]》 등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이 서로 말과 풍속이 같았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를 '동류'로 파악하는 의식이 있었을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부여]] 계열인 고구려, 백제<ref group="주">토착세력은 [[삼한]] 중 [[마한]] 계열</ref>와 [[삼한]](三韓) 중 [[진한]] 및 [[변한]]([[가야]]) 계열인 신라는 시조 신화나 제사, 정치 체계 및 혼인풍속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었고, 특히 수백년에 걸쳐 계속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특화된 이질성과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적대감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다. 4세기 백제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는 당시 백제와 대립하고 있던 고구려와 연대했지만,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5세기 후반에는 다시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서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나제동맹 역시 552년 한강 유역을 둘러싼 갈등으로 파탄났으며, [[554년]] 백제의 [[성왕]]이 신라의 매복에 걸려 전사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백제]]의 영토를 흡수하고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차지하게 된 신라는 후대의 한반도 통일국가인 [[고려]], [[조선]]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에 7세기 말에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삼한일통'이나 '삼국통일'과 같은 말은 [[19세기]]까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계속 쓰였다.<ref>박노자,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163000/2008/07/021163000200807160719009.html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인가]. 《한겨레21》 제719호 (2008년07월16일)</ref>
* 제1왕후 : [[문명왕후|문명왕후 김문희]](文明王后) - [[김서현]]의 차녀, [[김유신]]의 둘째 여동생, 무열왕의 제2왕후인 [[영창부인|영창부인 김보희]]의 동생.
** 차남 : [[김인문]](金仁問)
** 5남 : [[김노차]](金老且)
** 차녀 : [[요석공주]](瑤石公主) - [[원효]]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
** 8남 : [[김차득]](金車得) -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13대 [[풍월주]] [[용춘공]]의 딸 용보(龍寶) 소생이라고 했다. 《[[삼국유사]]》에 그가 [[무진주]] 방면으로 잠행을 나갔을 때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 하이큐/263화 . . . . 11회 일치
* 동료들은 언제나 타나카의 성격상 금방 털어낼 거라 생각하지만, 타나카에게 세트업이 와야할 상황에서 조차 차례를 양보하게 되자 견디기 어려워한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아쉬운 기색 없이 좋은 코스였다고 타나카의 등을 두드려 준다. 타나카도 힘차게 대답하며 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굴었으나, 역시 뼈아프다. 통한의 실책. 한편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는 타나카의 스파이크가 나름대로 깔끔하게 스트레이트를 잡으려 했던 거라고 평가한다. [[츠키시마 케이]]는 타나카의 실수 보단 아까 [[스나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여전히 신경 쓰였다. 확실히 막는 코스였다. 못해도 건드린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스파이크는 통과하는 것처럼 지나갔다. 무슨 마술을 부린 건가?
* 좋은 유명세는 아니지만, 관중석에서 "빡빡머리"라는 이름으로 타나카가 자주 오르내렸다. 바보 커플 중 남자 쪽은 결정적으로 컨디션이 망가지기 전에 타나카를 빼야 한다고 말했다. 가차없는 말 같지만 여자 쪽은 더 했다. 이미 망했으니 당장 빼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잔인한 것에 가까운데다 현 상황에서는 교체도 어렵다.
*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벤치는 타나카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멘탈을 믿었다. [[키노시타 히사시]]가 맨 처음 "타나카니까 괜찮다"고 입을 열었다. [[엔노시타 치카라]]도 같은 의견이었다. 시합에서 언제나 튼튼한 타나카. 팀이 어떤 상태이든 팀에 남아주었던 건 타나카 뿐이다. 적어도 2학년 중에선. 3학년 [[아즈마네 아사히]] 조차 한 번은 팀을 등진 적이 있고, [[니시노야 유]]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잠시 팀을 떠나있었다. 도중에 열정이 식었던 엔노시타나 키노시타, [[나리타 카즈히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다시 불러모은 것도 어찌보면 타나카였다.
그런 멘탈의 힘일까, 팀원들의 믿음대로 아직 타나카는 무너지지 않았다. 적어도 겉모습만은 여느 때와 같이, 활력에 차서 기합을 외쳤다.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그를 견제하고 있던 린타로는 슬슬 말이 없어지거나 팀원들과 서먹해질 타이밍인데, 전혀 그런 모습이 없어 조금 기가 질렸다.
타나카의 시점. 방금 전 실수는 떨쳐냈을까? 언젠가 그는 히나타와 니시노야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꼴사나운 건 승부에 졌을 때보다 승부에 "겁먹는" 것. 그 말대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힘차게 외친다.
히나타는 그걸 다테 공고의 블록 같았다고 말하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그게 잠시지만 타나카의 저조한 텐션을 끊어줬다. 서브 위치로 가다 그 대화를 들은 츠키시마는 "바보" 주제에 웬일로 "제대로 된 말"을 한다며 칭찬인지 비꼬기인지 모를 생각을 했다. 우카이 코치도 그걸 긍정적으로 본 것 같다. 그리고 츠키시마의 서브. 리시브는 [[오지로 아란]]. 자세는 좋지 않았다. 불안정하게 중앙으로 향하는 공. [[미야 아츠무]]가 세트업하며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어차피 블록은 한 장이라 생각하며 뛰어오르는데, 한 장이 아니다. 정면을 막은건 히나타. 거기까지는 히나타도 오사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트에서 타나카가 받쳐주러 올 줄은 몰랐다. 그 압박에 급하게 루트를 바꾸는 오사무. 오른쪽. 그 위치에는 사와무라가 대기하고 있었다. 정확한 리시브. 니시노야는 히나타와 타나카의 블록의 진가를 알아본다.
* 타나카가 확실하게 기운을 차렸다. 숨기는 것과는 다르다. 츠키시마는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히나타가 "천연 띄우기 왕"이든 타나카가 "천연 띄워지기 왕"이든 어느 쪽이든 "무섭다"고 드라이하게 평한다. 그리고 왠지 타오르는 건 다시 벤치. [[스가와라 코시]]와 니시노야가 합세해 "죽을 각오로 넣어라!"고 폭주한다. 근처에 있던 진행요원들이 얌전해 보였던 카라스노 2번의 돌변에 혀를 내두른다.
문득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카노카, 한 사람은 [[시미즈 키요코]]. 타나카 입장에선 둘 다 차인 상대. 왜 지금 떠오를까? 어쨌든 그는 평범하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절감하게 된다.
- 강영식 . . . . 10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2000년 2차지명 2라운드]] [br] (전체 10순위, [[해태 타이거즈|해태]]) ||
[목차]
매년 욕은 대차게 먹으나, 꾸준한 경기 출장과 시즌 종료 시 귀신같이 평균 정도의 스탯이 되어 있다(…). [[패스트볼]]-[[슬라이더]]만 구사하는 투 피치 투수로 좌완으로서 143~150km/h의 [[패스트볼]]과 130km/h대 중반의 [[슬라이더]]를 보유하였다. 굳은 듯한 폼에서 나오는 각도는 리그 최고 수준. 단 긁혔을 때'''만'''. 아주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좌완 계투가 전통적으로 약한 롯데이기에 오랜 기간동안 팀의 필승조에 속했다. 강영식이 롯데에서 보낸 10년간 불펜에서 수많은 투수들이 등장했다 사라져 갔고 개중에는 강영식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투수도 여럿 있었지만, 1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등판한 선수는 강영식 뿐이었다.
여담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첫 KS 우승이자, 드라마틱했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승리 투수가 바로 강영식이다. 삼성에서 나름 의미있는 기록을 남긴 투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하여간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롯데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랜디영식을 찬양하였다. 그 당시 팬 사이에서는 롯데의 차기 [[마무리 투수]]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괴상망측한 '우타자 더 잘잡는 좌완'[* [[KIA 타이거즈]]의 [[박경태(야구)|박경태]]도 이런 성향을 가진 좌완투수다.] 이라는 딱지는 떼지 못했다. 수치를 보면 좌타자에게 약한 것도 아니지만...
평소에도 그랬지만 이 시즌엔 유독 전반기와 후반기의 성적 차이가 심했다. 전반기엔 6.14의 평균 자책점과 18삼진을 잡는 동안 14볼넷, 4홈런을 허용했으나 후반기엔 '''0.47'''의 평균자책점과 1할 7푼대의 피안타율, 21삼진을 잡는동안 8볼넷, 1홈런만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반기 0.47의 평균자책점은 '''이 해 [[오승환]]과 동급'''!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2년 10월 19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4:1로 앞선 8회초 2사 2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1⅓이닝동안 탈삼진 2개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스코어 1:4 승리를 지켜내고 [[세이브(야구)|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하였다. 11월 16일 4년 17억원에 롯데에 잔류하였다. 계약금 4억, 연봉 '''3억''', 옵션 1억으로 대체적으로 좀 많이 준 것 같긴 해도 나름 깔끔하다는 평가. 그래도 어쨌든 쓸만한 좌완투수이긴 하다. 연봉이 3억이라 억삼이란 별명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도 포인트(...)[* 3년전 FA권리를 획득했으나 권리를 포기하면서 얻은 3년 9억과 FA총액 17억을 합산하면 7년간 26억에 쓰는 격이다. 나이대도 30~37세로 불펜투수치고는 저렴한 편이다. 성적차이는 나지만 [[정현욱]]이 4년간 28억6천만에 계약한것과 비교하면 FA이후 금액은 상당히 저렴하다.] 계약 자체는 마지막 날에 했지만, 강영식은 그동안 쭉 사직야구장에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팬들 사이에서는 맛난 호텔 밥 더 먹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개드립이 나돌고있다. 애초에 딱히 떠날 마음도 보이지 않았던 선수니만큼. 어쨌든 이로써 롯데는 삼성의 뒤를 이어 집단속에 성공한 두번째 구단이 되었다.
4월 4일 9회초에 팀이 4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정대현을 뒤이어 등판하였다. 채태인에게 2루타를 맞고 최형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그 후에 난타당하면서 (물론 정훈과 손아섭의 콜 플레이 미스도 있었지만)0.1이닝 2실점하고 강판되었다. ~~이로써 자기보다 비싼 선수들 삼진잡겠다고 말한 것을 실천하였다.~~
극혐에 가까운 볼넷질에 [[샤다라빠]]가 [[꼴데툰]]에서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1802849&page=1&exception_mode=recommend|대차게 까버리기도 했다]].~~그리고 이때쯤부터 랜디영식모드 돌입~~
- 구승빈 . . . . 10회 일치
[목차]
2013년 들어서는 [[LOL 클럽 마스터즈]]와 [[OLYMPUS the Champions Spring 2013]]에서 원딜러 중에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한국 최고 원딜이라고 불리는 [[김종인(프로게이머)|프레이]]에 비벼볼만한 국내 A클래스 원딜이라는 평가가 있을정도로 활약이 뛰어났다. 임프의 극 공격적인 플레이가 마음에 안든다는 마타조차도 실력만은 인정하는 모양.
그러나 롤 마스터즈 플레이오프 CJ와의 1차전에서 2세트 블레이즈와의 경기 탑과 정글이 상당히 말려버린 상태에서 마타와 함께 봇듀오가 종횡무진 맵을 휘저으며 게임을 뒤집어버렸다. 러보와 앰비션의 부진 탓도 있었지만 임프 마타 듀오의 클래스를 보여준 경기였다는 평.
플레이 스타일을 정의하자면 '''캐리형 원딜류 완전체'''. 데프트가 강점이라 평가받는 부분이 코어템 하나의 격차 정도는 뒤집을 수 있는 끝판왕의 딜링이라면 임프의 강점은 게임을 뒤흔드는 변수 생성능력. 임프가 게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항상 아군도 적도 예측하지 못하는 공격적이고 리스크가 큰 스타일의, 원딜의 정석이라기보단 변칙의 정석을 보는 듯 하다. 마타라는 목줄이 없다면 게임을 끝도없이 던진다고 평가받을 정도. 삼성 화이트의 운영의 핵심이라 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중반의 '''원딜이''' 갖게되며[* 본래 중반 타이밍에는 미드 라이너나 딜러 챔피언을 고른 탑 라이너가 캐리를 맡고 원딜은 후반을 담당하는 것이 EU스타일의 정석이다.], 탑의 끝판왕이라고 평가받는 루퍼와 함께 팀의 전략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건 그 어떤 팀의 어떤 원딜러도 가질 수 없는 최고의 강점인 것이, 아무리 마타의 서포팅을 받는다 하더라도 오더를 넘어서는 전과를 내는 건 데프트 정도의 피지컬과 게임을 보는 눈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데프트는 상대적으로 수비적이고, 오뀨나 애로우는 이런 운영적인 면에서 약세를 보인다. 데프트가 항상 모든 팀이 꿈꾸는 이상적인 원딜의 이미지라면, 임프는 대조적으로 모든 팀원을 자기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타입의 원딜의 이미지. 팀원들이 맞춰줄 경우 가장 기계적이고 정형화된 포지션인 원딜임에도 극한의 변칙플레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섬머시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다시한번 EDG를 만나서 3:0으로 완파하고 결승행을 확정지으며, 중국 1등시드로 롤드컵진출을 확정지었다. 대부분의 평가는 임프가 데프트 상대로 원딜 클라스 격차를 보여줬다는 것이 중론.~~임프센세의 데프트 참교육 현장~~결승에서도 임프는 정규시즌 원딜 MVP 포인트를 쓸어담던 QG의 원딜러 TnT를 압도했다. 결과는 3대2의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사실상 중체미라던 Godv의 똥. 임프가 상대원딜과 cs 100개 벌릴때 Godv도 상대 미드한테 cs 100개나 뒤졌으니..~~[* 오히려 정글러인 TBQ의 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qG의 미드인 ~~간신~~도인비는 다데 스타일의 미드라 스위프트가 미쳐 날뛰지 않으면 혼자 라인전 압살하는 경우는 적다.] 이로써 임프는 SKT의 페이커 벵기 와 더불어 2회 롤드컵 우승을 노릴수있는 선수중 한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폭망한 LPL에서 믿었던 마린의 현지화와 티비큐 2호기, 3호기 같은 정글러, 그리고 IEM때 부터 제정신을 못차리는 중2병 골드 5에 고통받으며 다신 안할꺼같던 MVP White 시절의 소년 가장역을 또 다시 맡고있다.
* [[트래쉬 토크]]도 잘하기 때문에 안티도 상당히 많다. 실력은 좋지만 멘탈이 워낙 글러먹었다고. 핫식스 롤챔스 4강 VS SKT T1전에선 티원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을 쓱 지나가면서 '''3 대 0'''!이라고 소리지르고 갔다고 한다. ~~[[HOT6 Champions Summer 2013/4강|그리고 빡친 티원선수들은 임프의 멘탈에 집단린치를 가했다]]~~ 그러나 경기는 오히려 티원이 압도적인 실력차로 찍어눌러버렸고, 임프는 경기 도중 멘탈이 나간 표정이 잡히는가 하면 우물에서 체력을 채우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 후 승자 인터뷰에서 피글렛에게 '''"저희가 이겼는데 어떡하죠?"'''라는 말로 조롱당했다.
* 2014 시즌 월드 챔피언십 16강 2일차 터키팀 Dark Passage와의 경기에서 펜타킬을 기록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게 '''롤드컵 최초 펜타킬'''이라고 한다. 그 뒤 인터뷰에서 깨알같이 피글렛을 언급하였다.
2014년 12월 4일 ~~커플티를 입고~~ [[김보겸]] 방송에 등장했다. 2박 3일 동안 김보겸집에서 먹고 자면서 합동방송을 한다.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차차 보겸과 친해진 [[인섹]]과는 달리, 초장부터 보겸의 개그에 ~~심하게~~빵빵 터지는 등 어색함 없이 매우 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보겸은 새벽부터 사골국과 한라봉을 들고 300km 떨어진 임프네집을 찾아가 데려왔다고 한다. 그러한 정성이 본인은 꽤 마음에 들었는지 닉네임을 보겸셔틀임프로 바꿨다.
- 김만수(정치인) . . . . 10회 일치
[목차]
200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김문수가 ~~[[도지삽니다]]~~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집권여당의 인기가 최악이어서 낙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은 뉴타운 광풍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 최악의 패배를 당한 선거여서 김만수 역시도 그 광풍을 빗겨가지 못했다. 2006년과 2008년 모두 김문수의 보좌관 출신으로써 지역구를 물려받은 한나라당 [[차명진(정치인)|차명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2010년에 부천시장으로 당선되었을때 당이 다름에도 차명진 당시 의원이 축하 연설을 해 주기도 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방향을 바꿔,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홍건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본래는 3차례 연속 낙선을 하고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정계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일어섰다고 당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여론의 반전과, 현직 시장이었던 홍건표의 연이은 실정으로 인한 심판론으로 인해 22%, 7만표 차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당선되었고, 드디어 선거 첫 승리를 맛봤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 출마 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부천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다만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면 3월까지 시장직을 사퇴하여야 하는데, 본인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중도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번 공헌했고, 실제로 공직자 사퇴시한까지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차기 총선 출마 쪽으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였던 소사구의 현직 국회의원인 김상희나, 자신의 선임이었던 오정구 국회의원 원혜영, 서울에서 부천 원미구 을로 옮겨온 동교동계 중진 설훈 의원 모두 고령이라 다음 총선 공천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일찌감치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네 번째 국회의원 도전을 준비하는 것. 아마도 본래 지역구가 소사구였던 지라 차명진 전 의원과의 3번째 대결이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인이 시장직을 재임하면서 2016년 일반구를 폐지했기 때문에 갑을병정식으로 선거구 명칭 변경은 물론 선거구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 김정태(영화배우) . . . . 10회 일치
[목차]
외모부터가 범상치 않은 인상으로 실제 조폭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의 남다른 포스를 가진 탓에, 초창기 배역의 거의 80% 정도는 조직폭력배이거나 그거와 연관된 직업군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특히 조폭 연기를 했던 [[친구(영화)|친구]], [[해바라기]], [[똥개]]등의 작품에서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조폭전문배우, 조폭 연기의 스페셜리스트 소리도 자주 들었다.
아내와는 19년간의 연애 끝에 [[2009년]]에 결혼했으며, 2011년에 아들 지후를 얻게 되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장현성]]의 지인으로 방송에 등장 시 아들 지후군의 관심에 힘입어 2014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명 야꿍이로 알려진 지후군과 함께 아빠는 슈퍼맨 티셔츠를 입고 새누리당 [[나동연]] 양산시장 유세를 하여 논란이 되었다. 당초에는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하였지만 후보 홍보물에 이미 방문 계획이 나와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과 함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하차하게 되었다. 다만 거짓말 논란 이전에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특정 성향 네티즌들의 비난 및 하차요구로 뭇매를 맞고 있었다. 즉, 단순히 거짓말 -> 비난 -> 하차 수순이 아니라 선행된 부당한 비난에 대한 자구적 해명이었다는 걸 참작할 여지가 있다.
2018년 10월 [[간암]] 투병으로 인해 출연 중이던 SBS 새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을 하차했다.[[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841860|#]] 드라마 촬영 도중 건강 이상을 느껴 검사를 받았고 [[간경화]]에 작은 종양이 발견된 것. 다행히 간암은 초기인 상태라 간 수치를 낮춘 후에 수술할 예정이라고 한다.
|| 2011 || SBS || [[싸인(드라마)|싸인]] || 정차영 ||
|| 2014 || KBS2 || 해피 선데이 - 슈퍼맨이 돌아왔다 || [* 선거 유세 논란으로 자진 하차했다.] ||
|| 2015 || MBC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 17차 경연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가명으로 나와 듀엣 파트너인 [[히트제조기 프레시맨]]과 1표 차 접전을 벌였다. 참고로 이 때는 3파전이어서 총 101명의 평가단이 참여했으며 김승우에게 나가보라는 추천을 받고 나왔다고 한다.] ||
- 김지수(배우) . . . . 10회 일치
[목차]
《[[보고 또 보고]]》와 《[[태양의 여자]]》로 흥행력을 인정받은 데다가, 《여자, 정혜》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며 괜찮은 여배우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야심차게 출연했던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에서는... 해당 항목 참조.
2012년 5월 [[JTBC]] 드라마 [[러브 어게인]]에 출연했다. 근데 [[종편]] 시청률이 시청률이라... [[태양의 여자]]가 너무 쎘던 탓인지 특유의 눈물 연기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 때 극중에서 김지수의 딸로 나온 [[김소현(1999)|김소현]]은 "지수 언니--뭐?--[* 둘의 나이 차이는 27년, 김지수가 동안이고 미혼이라 그렇지 그냥 모녀 나이 차이다. ~~김지수가 언니라 하라고 시켰나?~~] 옆에 있으면 나는 [[노안]]"이라고 [[자학]]한 적이 있었다...
[[2000년]] [[7월 30일]] 혈중알코올농도 0.175% 만취된 상태로 자신의 [[토요타 아발론]] 승용차를 몰고 강남구 학동교차로에서 인도로 돌진해 경계석을 들이받았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심지어 '''무면허''' 상태였다고 한다. 불구속 입건되었고, '''342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당시 진행 중이던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 마이크를 [[김정은(배우)|김정은]]에게 넘겨야 했고, 이때문인지 이듬해 방송했던 MBC의 드라마 "네 자매 이야기"는 [[황수정]]이 김지수의 [[대타]]로 나서야 했다.[* 우연히도 당시 [[황수정]]은 [[김정은(배우)|김정은]]의 후임으로 2001년 3월부터 [[밤을 잊은 그대에게|밤그대]]의 DJ를 맡고 있었는데, 거액의 출연료를 요구하는 등 갑질을 하면서 다른 배우들에게도 이미지가 나빠진 상태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불과 3개월 만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밤그대]]에서 하차했고, [[성시경]]이 DJ [[대타]]로 나섰다. 그리고 마약 + 스캔들의 2연타석 역대박이 터지면서 그 이후의 [[황수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디오]]까지 합치면 3연타석 역대박--]
이 탓인지 [[KBS 2TV]] 내 사랑 누굴까 캐스팅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제외되었으며, 당시 김지수의 자리에는 [[명세빈]]이 [[대타]]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이 막 방영되기 직전 시기라서, 네티즌들은 김지수를 드라마에서 하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끝끝내 하차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 안 그래도 내용이 시망이어서 막장테크를 타고있던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 촬영 중 눈 주위가 파랗게 멍이 들어서 나타나 특수제작팀이 동원되어 그녀의 눈의 멍을 지워야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자고 나오다가 넘어져서 그랬다는데, 보통 그런 경우에 눈 주위에 멍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눈 주위에 멍이 드는 이유는 맞아서인데(...)] 프로 배우답지 못한 김지수의 태도도 문제였지만, 보통 이런 거 잘 기사화 안 되는데 그 당시 근초고왕 팀의 분위기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비단 김지수뿐만 아니라 [[감우성]] 또한 스태프들과의 폭행시비로 구설수에 올랐었고, [[서인석]]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석 입건되는 등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은 이래저래 김지수의 [[흑역사]]로 남을 듯(...)
- 마기/327화 . . . . 10회 일치
[[마기]] 327번째 밤. '''차였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모르지아나가 신드바드를 두둔하며 황제국의 국제동맹 탈퇴를 비판하자 말다툼을 벌이고 멋대로 차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황제국이 국제동맹에 복귀하자 귀왜국도 복귀하고 뢰엠 조차도 국제동맹에 가입한다. 이들도 똑같이 신드바드에 찬동하며 찬양하는데.
* 매우 쓸모없는 모양이 된 알리바바 사르쟈. 오로지 모르지아나에게 차였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알라딘에게 자기 대신 즐겁게 살아달라고 자살이라도 할 것처럼 내뱉는다. 알라딘은 차분하게 뭣 때문에 이지경이 됐냐고 묻는데 알리바바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 시시껄렁한 논쟁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알라딘은 "가치관의 골을 메꿔가는게 남녀의 사귐"이라고 최대한 진지하게 조언한다. 그 조차도 지금의 알리바바에겐 잘난척하는 얼굴로 보인다. 알라딘은 모르지아나를 좋아하지 않느냐,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는데 알리바바는 별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좋다고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는다. 알라딘은 어른스러운 태도로 그쯤하면 됐으니 가서 모르지아나에게 사과하라고 권하는데 알리바바는 자기는 잘못한거 없고 사과는 여자가 해야 한다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 결국 글러먹은 태도에 폭발하는 알라딘.
* 그때 문을 박차고 모르지아나가 들이닥친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던 커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과를 꺼낸다. 그 꼬라지에 알라딘도 "못해먹겠다"고 혀를 찬다. 몰래 지켜보고 있던 연백룡도 "시시하다"고 혹평, 알리바바의 분노를 유발한다.
* 어떤 과정을 거친 건지 황제국의 수뇌는 입을 모아 신드바드를 적임자로 고른다. 하황문 조차도 신드바드를 친송하며 그라면 믿을 수 있다고 말을 보탠다.
너무 일변한 태도 때문에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어리둥절하다. 홍옥도 너무 입장이 바뀌어서 이상하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원래 황제국은 "하나의 세계"를 표방하던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수긍하려 한다. 알라딘도 적당히 동의하고 어차피 나라의 일은 자기들이 관여할게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문득 알라딘이 같이 국제동맹을 등진 뢰엠과 귀왜국의 상황을 궁금해한다. 사실 이들 나라의 지도자 무 알렉키우스나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를 매우 경계하는 인물들.
알라딘은 아직도 그의 성궁 정복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유난 조차 영향을 받고 있는데 알라딘이 감지를 못하고 알리바바 또한 영향을 받지 않는걸 보면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신드바드는 세계의 대적자이자 희생양으로 알라딘과 알리바바를 골랐을 수도 있다.
- 박경림(MC) . . . . 10회 일치
[목차]
[[대한민국]]의 방송인. 개그맨 [[박수홍]]의 팬클럽 회장으로 시작해 그 인연으로 [[고등학생]] 때 MBC의 심야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 돌발소녀라는 기믹으로 라디오 출연을 시작했고, 차츰 인지도를 높여가다가 좀 다른 의미지만 연예계의 정상에 올랐다. 당시 여고생답지 않은 걸걸한 입담과 특유의 당당함으로 많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첫 등장은 장기자랑 코너였는데 청취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결국 고정을 꿰찼다. 물론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
그 뒤 [[1대 100]] 498회에서 절친인 [[이수영(가수)|이수영]][* 참고로 [[이수영(가수)|이수영]]은 25회 전반전, 412회 전반전에서 1인으로 나와 모두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412회 전반전 2단계에선 실수로 답을 잘못 누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과 같이 3차 도전을 했다. 이 날 이들은 7단계를 통과하면 100인들에게 커피를 쏜다는 약속을 했으며 8단계 1:23까지 생존하면서 약속을 지켰다.
* 대표적인 연예계 마당발이라 할 정도로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결혼식 당시 참석한 하객들이 ㅎㄷㄷ하다…[* [[강경준]], [[강수정]], [[강타]], [[강혜정#toc|강혜정]], [[강호동]], '''[[거스 히딩크]]''', [[김규리(1979년 6월)|김규리]], [[김기수(코미디언)|김기수]], [[김동완(신화)|김동완]], [[김민종]], [[김수미]], [[김아중]], [[김용만]], [[김을동]], [[김장훈]], [[김현철(가수)|김현철]], [[노홍철]], [[주종혁|라이언]], [[바다(가수)|바다]], [[박명수]], [[박상민]], [[박수홍]], [[박신혜]], [[별(가수)|별]], [[서경석]], [[솔비]], [[스윗소로우]], [[신혜성]], [[안재모]], [[양파(가수)|양파]], [[우승민]], [[유재석]], [[유진(배우)|유진]], [[윤다훈]], [[윤종신]] & [[전미라]] 부부, [[윤해영]], [[이루(가수)|이루]], [[이수영(가수)|이수영]], [[이지연(1975)|이지연]], [[이지훈(1979)|이지훈]], [[이혁재]], [[이효리]], [[임창정]], [[자두(가수)|자두]], [[장근석]], [[장나라]], '''[[정몽준]]''', [[정선희]], [[조인성]], [[조정린]], [[주영훈]] & [[이윤미]] 부부, [[지상렬]], [[차예련]], [[차태현]], [[채연]], [[하하(가수)|하하]], [[한효주]], [[현영]],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 [[황보라]]가 찾아왔다. 더불어 대표적인 하객들이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사람들이다(...)''' 결혼식에 총 5000여명의 하객들이 왔다갔다.]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반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백인 남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절, 순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전성기 시절의 위업을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대 여성이 연예대상 최연소 수상'''으로 설명 할 수 있다. 20대 연예대상은 최초이자 최후이고, 여자 연예대상은 이효리의 공동대상을 빼면 단독수상으론 박경림이 유일. 다만 과거 연예대상이아닌 방송대상 코미디 부분이나 코미디대상에선 여성으로는 김미화와 이경실, 20대로는 이경실, 서경석, 박준형이 수상을 한 적은 있었다. 다만 최연소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경림의 수상 당시 나이는 만22세. 지금 잘 나가는 여자MC들 전부를 합쳐도 박경림 인기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로[* 시상식 수상자로 나와 꺅꺅 소리지르는 소녀팬들을 몰고다닐 정도였으니..그것도 여자 예능인이..더 웃긴 건 그 소녀팬들한테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센스까지..] 2000년대 초반 당시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녀 이후 당시 그녀의 예능계 포스에 조금이라도 비교할만큼 잘 나가 봤던 연예인은 그나마 [[이효리]] 한명뿐이다.[* 배우와 예능 MC를 병행하며 박경림보다 더 오래 예능계 몸담은 [[김원희]]도 있지만, 그녀는 미모의 여배우치고 코믹연기가 능해 이미지가 재미있고, 남자MC와 호흡맞추며 하는 진행을 잘하여 롱런한게 훌륭한 것이지 박경림처럼 3년 정도 장기간 예능계 여성 원탑이었던 적은 없었고, 잘 나갈때의 이효리조차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 [[유재석]]이라는 대스타 MC의 받쳐주기 후광으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예능만으로는 2000~2002년 박경림이라는 여성 예능인의 파괴적 인기점유율에 미치지 못한다. 전성기 박경림은 박수홍 같은 남자MC들과 출연하더라도 그녀가 웃음과 진행을 이끌어가는 메인이었지 남자MC의 보조만으로 끝났던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당시 잘나가던 남자 MC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또한 다른 여자연예인들은 다른 분야 활동에서의 인기가 예능에도 미쳤던 영향이 있지만 박경림은 자신이 혼자 진행하는 인기프로그램까지 있었을만큼, 예능만으로 절대적 블루칩이 되었던 인물이다.]
* 결혼 후 예능에서의 활동은 잘 안 보이는 상태. 애엄마가 돼서 그런 듯하다. 케이블에 간혹 드문드문 보이는 경우도 있다. 과거 코미디 얘기만 얘기하던 시절의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코갤]]에선 8대 [[신]] 다음으로 여신 라인의 수장을 차지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방송에서의 인맥 자랑 + 같은 이야기 여러 번 울궈먹기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 전성기 시절에는 자기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에 서슴이 없었고 과감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으나 복귀 이후에는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여자MC와 차별점을 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복면가왕]] 82차 경연에서 [[너나 노래 잘하세요 금자씨]]라는 가명으로 참여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0회 일치
카라는 맥스웰 로드의 신형 열차 슈퍼레일의 테스트를 감시하는 걸 자청해서 나선다. 루시는 제임스에게 메트로폴리스로 돌아가겠다고 하며 키스를 나누고 헤어진다.
역에서 표가 없어서 당황하던 카터는 맥스웰 로드를 만나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윈은 표가 없어 가로막힌 탓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동시에 에단 녹스가 열차에 타고있는 것을 목격한다.
공항이냐 열차냐 하는 상황에서 카라는 윈의 말을 믿고 열차로 향한다. 카라는 열차에 나타나서 카터와 맥스웰에게 승객들을 대피시키라고 부탁한다.
제임스는 공항에서 루시와 재회하여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행크는 알렉스를 내보내고 혼자서 폭탄을 상대한다. 카라는 에단을 쫓아가는데 에단은 폭탄을 몸에 두르고 고도계가 장착되어 있어 열차를 벗어나면 폭발한다고 외친다.
카라는 열차에서 에단을 설득한다. 에단은 이 모든게 딸을 위한 것이라고 하며 카라의 설득을 듣지 않고, 다른 자들이 있다는걸 암시한다. 그리고 폭탄을 작동시키고 30초 남았다고 말한다. 카라는 에단이 탄 열차칸을 분리시키고 열차를 정지시키며, 에단의 열차칸은 혼자 날려가서 폭발한다.
- 스틸오션/사령관 . . . . 10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독.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전함 티르피츠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독.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포켓전함 아드미랄 셰어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장교. 당시 독일군 경순양함 엠덴의 함장으로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장교. 통상 파괴 임무를 수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장교. [[USS 뷰캐넌|폭발물을 실은 구축함]]으로 생나제르의 항구 시설을 들이받아 파괴하는 작전에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제독. 전후 [[IRA]]에 의해 폭사한걸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해군 참모총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육군 비행사. [[B-25 미첼]] 폭격기를 항공모함에서 이륙시켜 [[도쿄]]를 공격한 "둘리틀 공습"을 이끌었다.
- 식극의 소마/224화 . . . . 10회 일치
* [[쿠가 테루노리]]는 알루미늄 호일로 간이 훈연기를 제작, 튀긴 돼지고기를 녹차잎으로 훈연해 소재에 차의 향을 직접 입히는 조리를 택한다.
* 훈제 간장에 발사믹 식초, 흑초, 설탕, 분쇄 한 찻잎을 넣어 소재와 소스에 두루 차향을 씌워 다층적인 향을 내는 것이 목적.
* [[쿠가 테루노리]]는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마사카 스바루]]가 검은 액체가 든 병을 넘기자 대결의 주제 "녹차"에 손대기 시작한다.
*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는 쿠가의 조리법이 중화요리의 "홍샤오"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홍샤오는 재료를 튀긴 후 간장 베이스의 양념으로 걸죽하게 졸여내는 방법. 쿠가가 돼지고기를 튀길 때만 해도 전형적인 홍샤오의 조리법이었으나 조리는 공정을 훈연하는 공정으로 바꾼 점은 대단히 신선하다. [[마루이 젠지]]는 쿠가가 녹차엔 손도 안 댄다고 우려에 우려를 했으나 훈연으로 찻잎의 향기를 스트레이트하게 식재로 옮기는 방식을 보고 탄성을 내지른다. 이는 십걸 1석 [[츠카사 에이시]]와도 차별화된 접근법이다. [[유키히라 소마]] 또한 철냄비를 저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에 감탄한다. 그런데 정작 미마사카가 건낸 액체는 아직 쓰지 않는 것 같은데?
* 쿠가는 그것도 착착 준비하고 있었다. 그 검은 액체는 "필살 소스"를 만들기 위한 핵심 재료였다. 그 정체는 "훈제 간장". 발사믹 식초를 푹 졸여 맛과 향을 응축하고 흑초, 설탕, 분쇄한 녹차를 넣고 훈제 간장을 넣어 마무리. 훈제 얘기가 나오니 [[이부사키 슌]]도 말이 많아진다. 이부사키가 보니 미마사카가 줄곧 준비하고 있던건 바로 이 훈제 간장. 조리대에 철냄비와 훈제용 도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간장은 본래 부드러운 향을 내는 칩으로 훈연하면 부드러운 풍미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뒷맛에 남는 여운도 한층 강화. 여기서부터는 향기의 스페셜리스트 [[하야마 아키라]]의 차례다. 그는 고기 뿐만 아니라 소스에도 훈제 향을 더해 먹었을 때 향기의 중층감을 극대화하는 것을 노린 조리법이라고 설명한다.
* 사이토의 조리대 맞은 편에 거울이 놓였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조리를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복사한다. 사이토의 손이 멈추자 비로소 미마사카도 멈춘다. 그는 놀라운 속도와 힘으로 재료를 다듬어가는 사이토를 완벽하게 카피하고 있었다.
* 침울하기 이를 데 없던 반역자 팀의 분위기가 바뀐다. 미마사카의 새로운 필살기는 기존의 트레이스를 아득히 넘어선 기술이다.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타쿠미 알디니]] 조차 "믿음직하다"고 말할 정도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저 감탄. 소마는 이 상황을 츠카사가 쿠가와 미마사카라는 두 명의 요리사와 싸우는 거라고 요약한다.
- 안영준 . . . . 10회 일치
[목차]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해 활약이 절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원주 DB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신인답지않은 레이업을 하는 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차전 4쿼터 막바지, 버튼의 팔꿈치에 얼굴이 접촉된 후 몸이 뒤로 넘어진 것이 플라핑이라고 지적받으며 성숙하지 못한 플레이라고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슬로우로 봤을 때 버튼의 팔꿈치가 명백하게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접촉의 강도가 약했음 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과했다는 지적이 존재했다. 정규리그 동안 안영준이 이러한 플레이를 한 적은 없었고, 플라핑은 본래 근절되어야하는 플레이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농구 월드컵 아시아 예선 2라운드 1차전에서 15분 출장하며
1년 선배인 최준용에 비해 돌파라는 '확실한 득점 루트'가 있는 것이 장점이다. 운동능력을 이용해 미리 떠서 상대의 블락을 피하는 경우가 많고, 몸으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볼 핸들링이 나쁘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외곽에서 헤지테이션에 이은 크로스 오버 돌파를 자주 시도하는 편이다. 데뷔시즌 4강 플레이오프 때부터 챔피언결정전 6차전까지 내내 터졌던 3점슛은 SK 나이츠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 [[서울 SK 나이츠]]에서 지명을 한다면 1년 선배인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인 [[문경은]]이 "[[허훈]], [[양홍석(농구선수)|양홍석]], [[유현준(농구선수)|유현준]]은 어차피 앞에서 뽑힐 것이고, 우리 순번에서는 [[안영준]]과 [[김국찬]]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는 [[김국찬]]보다 [[안영준]]이 더 어울린다"고 애기하였다. 왜냐하면 슈가를 뽑아봤자 변기훈과 화이트와 롤이 겹치는데다, SK의 백업 포워드가 [[김우겸]], [[함준후]] 정도라는 걸 감안한다면 포워드인 안영준을 뽑는 것이 선수풀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좋다는 시각. 그리고 이 예상처럼 문경은 감독은 안영준을 뽑았고, 김국찬은 다음 순위로 KCC로 갔다.
- 영양군 . . . . 10회 일치
[목차]
현재의 군역이 대강 갖추어진 1914년 당시 영양군의 인구는 37,400명으로 지금의 두 배(...)였다.[[http://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999&tblId=CS010001942&conn_path=I2|#]] 이후 1979년 영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인구 70,791명을 기록했다. 당시 기준으로 웬만한 군은 10만~20만 사이의 인구를 찍고 있어서 애초에 7만 겨우 남짓했던 영양군의 인구는 상당히 적은 축에 속했다. 물론 그땐 아무리 적다 해도 적어도 [[가평군]] 같은 곳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75년 당시 7만 명) 지금은 그 가평군 인구조차 영양의 3배이다. 그리고 영양군은 안 그래도 적었던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2017년 기준 17,000명 대로 떨어졌다. ~~[[유바리]]?~~
해발 고도가 대부분 200m 이상이고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제대로 된 평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고봉은 일월산(日月山, 해발 1219m)이다. 여름은 한여름에도 해가 떨어지면 쌀쌀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고 서늘한 편이다. 이로 인해 영양고추의 맛이 좋다고... 겨울은 [[봉화군|윗동네]]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이 곳도 여타 남부지방에 비해 매우 추워 겨울 기온이 -10°C 이하로 심심치 않게 떨어진다. 많이 추울 때는 영하 25도 안팎까지도 떨어진다. 또한 눈도 제법 많이 내리는 편이며 지형적인 영향으로 수비면 동부 일대에는 상당히 많은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철도]]&[[고속도로]]는 --당연히-- 없다. 모든 도로는 (왕복)2차선도로. 그 흔한 4차선도로가 없다.
[[스펀지(KBS)|스펀지]]에 의하면([[2004년]] 방영) 영양군에 신호등은 단 '''1개'''밖에 없다고 한다. 물론 이는 3색 신호등 이야기고, 노란색 불만 번쩍거리는 [[점멸등]]은 꽤 있다. 도시에 사는 [[위키러]]들은 이해가 잘 안 될지도 모르지만,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너무 어두워서 7 ~ 8미터 앞(헤드라이트 켠 상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점멸 신호등은 대체로 "여기 교차로가 있으니 조심해라."라는 의미가 되겠다. 2014년에 입암면 우회도로 개통으로 신호등이 몇 개 더 설치되어 있다. 스펀지 방영 당시 한 개 있던 신호등은 점멸등으로 바뀐 지 오래이며, 입암면 우회도로 개통으로 신호등이 두 개가 생겼다!--1개 늘었다.--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 [[공무원]] 경쟁률은 3:1밖에 되지 않는다. [[경상북도|같은 도]]인 [[포항]]의 23:1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수준. 그만큼 공무원들도 가장 기피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공무원에 합격해서 영양군에 배치가 됐는데 영양군의 실태를 보고 [[멘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운제부인 . . . . 10회 일치
'''운제부인'''(雲帝夫人,雲梯夫人, 생몰년 미상) 혹은 '''아루부인'''(阿婁夫人)은 [[신라]] [[남해 차차웅]]의 정비(正妃)이며, 사후 신격화되어 운제산신으로 존숭되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서 발견되어 [[경주 이씨]] 족보에 참고용으로 실린 '35대 실전세계'에 의하면, 운제부인은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의 손자인 계림후(鷄林侯) 이타(李它)의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적 고증의 어려움과 용어의 모순 등을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자료이다.
운제부인은 [[신라]]의 2대 군주 [[남해 차차웅]]의 부인으로 아루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해왕과의 사이에서 [[유리 이사금]]과 [[아효부인]]을 낳았다. 사후에는 신격화되어 무속 신앙의 주신 중 하나가 되었다. [[운제산]] 또는 [[선도산]]에 산다 해서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로 불리며, [[고려|고려시대]] 영일현(지금의 [[포항시]])의 서쪽에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가 있는데 가뭄 때에 여기에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하였다. 운제산은 현재 [[포항시]] 남구 오천읍과 대송면 사이에 있다.
* 남편: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
** 차남: 박나로(朴奈老)
** 차녀: 공주(公主) - 상장군 김명옥(金嗚玉)에게 하가
* [[남해 차차웅]]
- 원우(가수) . . . . 10회 일치
[목차]
{{{#aaa {{{-3 힙합팀 눕방 중}}}}}}}}}속 쌍꺼풀의 가로로 긴 눈과 날렵한 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멤버. 첫 대면에선 차갑고 무심한 인상을 받기 쉬운 편이다. 담백하고 큰 이목구비가 여백 없이 꽉 들어차 있는 비교적 성숙한 외모로 정적이고 담담한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모난 데 없는 얼굴형이지만 그에 비해 유약한 느낌이 아닌 이유는 턱이 상당히 강하고 다부지기 때문으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턱과 선이 선명한 콧대가 합쳐져 사뭇 날 것의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때문에 방송에서 주로 비쳐지는 차분한 모습에 비해 실제로 멤버들과 있을 때에는 장난도 많고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하는 멤버이다. 일례로 [[2017년]] 2월에 개최된 첫번째 팬미팅에서 [[원우]]의 롤링페이퍼에 익명의 멤버가 "야, 장난 좀 그만 쳐! 맨날 간지럼 태우고 죽겠어!"라고 적었으며, 또 다른 익명의 멤버는 [[2016년]]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동안 휴식에 들어갔던 [[원우]]에게 아프지 말라는 감동적인 당부로 메시지를 시작했다가 [[https://youtu.be/hSl4uYzLYUg?t=1m24s|"옆구리 그만 찔러라 진짜."]]라는 경고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승관]]이 "이 형만큼 애교 없는 사람 없어요."라고 평할 만큼 애교를 부리는 것에 어색해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데뷔 후 열심히 연습했는지 [[2015년]] [[11월 8일]]에 열린 미니 팬미팅에서 [[https://youtu.be/wLJTh9HwbVM?t=46s|티아라의 뽀삐뽀삐]]를 추며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정한]]은 [[2018년]] 한 방송에서 [[원우]]를 두고 은근히 애교가 있는 성격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민규]]가 의아해 하자 "아냐, 있어. 형들한텐 있어."라며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민규]] : 엉?? 헣.. 궁금하다ㅎ..~~ 동갑인 [[준(세븐틴)|준]]도 [[원우]]가 상대방의 눈치를 볼 땐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문자로 돌려 물어본다는 일화가 밝히며 은근히 귀여운 행동을 많이 한다고 말해 동생들에겐 멋있~~는 척을 하~~고 동갑과 형들에겐 귀여운 그의 갭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트위터]] 멘션 파티 방송에서 팬클럽 이름인 "캐럿"으로 [[https://youtu.be/9VFFr0z8nzE?t=2m29s|"'''캐'''럿 '''럿'''키 인 마이 라이프"]]라고 2행시를 완성하거나, [[2017년]] 12월에 방송된 세븐틴 눕방에서 다들 수학여행 어디로 다녀왔냐는 MC [[정한]]의 질문에 "2차 함수요!"라고 대답하는 등 꾸준히 재치있는 말장난을 시도하며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내 N행시 장인 [[조슈아(세븐틴)|조슈아]]와 함께 "원조" 라인을 결성해 각종 [[언어유희]]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평소에도 저음의 목소리이지만 랩을 할 때는 더 낮아져 모두 로우톤 래퍼인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내에서도 가장 낮은 톤으로 랩을 하고 있다. 또한 랩에도 본인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 다소 공격적인 가사에서도 감정을 모두 드러내기보다 침착하고 담담하게 표현할 때가 많으며, 딕션이 무척 정확해 딜리버리가 대단히 좋은 것이 [[원우]]의 가장 큰 강점이다. 빡빡하게 들어차 거의 쏟아내야 하는 가사에서도 어떤 내용인지 모두 알아들을 수 있으며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믹스테이프 중 [[세븐틴(아이돌)/믹스테이프#s-2.6|No Flex Zone]]의 [[원우]] 벌스에서 이 정확한 딕션이 도드라진다.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모든 랩 메이킹에 참여하는데, 보통 네 멤버 중 가사를 가장 빨리 내놓는 멤버가 바로 [[원우]]이다.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언어유희]]에 관심이 많다는 본인의 특성이 가사에도 반영되어 펀치라인에 라임을 많이 맞추는 편이고 추상적인 표현과 은유법을 많이 사용한다. 본인이 가장 생각이 많았을 때 쓴 가사가 <[[Al1]]> 수록곡 "Check-In"의 "꽉 차 있던 머리 위에 쓸모없는 짐에 불 지르는 듯이"부분이라고 한다.
* [[헬로비너스]] - Venus [[https://youtu.be/zU3Ug5pw7sw|#MV 출연]] / 차마실래? [[https://www.youtube.com/watch?v=PphG5G9w08s|#무대 백댄서]]
* 점프력이 남다르다. 177cm의 [[호시(세븐틴)|호시]]를 도움닫기 없이 그냥 뛰어넘거나 책상도 손으로 집지 않고 뛰어넘어 곧바로 다음 안무 동작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이는 아무래도 몸이 가볍기 때문인 듯 하다. 데뷔 전 [[세븐틴TV]]에서는 10명도 넘는 멤버들 가운데 멀리뛰기로 여러 차례 1등을 했던 전적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https://youtu.be/QoCypgmIvxQ|영상]] 참조.
- 육성재 . . . . 10회 일치
||<#42B4E6> '''별명''' ||<(> '''육잘또'''[* '''육'''성재 '''잘'''생긴 '''또'''라이.], 육덕, 육성숙, 성뎨, 뎨뎨, 김홍진[* 비투비 멤버 서은광, 이창섭의 라디오 스케줄 도중 청취자와 전화 연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바로 육성재. 처음 전화를 받고서 본인을 '김홍진'이라고 소개했다. 서은광과 이창섭 둘 중 좋아하는 멤버는 이창섭이라고 밝혔으며 ~~이창섭 덕후 육성재~~ 이창섭은 기뻤던 나머지 급기야 "감사합니다, 형님!"이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화 연결 도중 한 청취자의 지적으로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창섭 : "내가 육성재에게 형님이라 그래써...!" 서은광 : "성재야 나도 좀 좋아해 주라."~~ [[https://youtu.be/N4qMyDvabDE|김홍진 대란(47:57부터)]]] , 육둘기, 뎨깅이, 육태광[* 후아유 - 학교 2015의 "공태광"역을 해서 육태광이라 불린다.], 감성재, --메인 막내--[* 2018년 8월 13일 민혁이가 리더로 뽑인 후에 멤버끼리 막내를 새로 정하자고 해서 돌림판을 성재가 직접 돌렸는데 자기 자신이 나왔다.... --어차피 막내는 육성재--] ||
[목차]
2015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3차 경연에 나와서 [[마스카라 번진 야옹이]]와 [[도와줘요 실버맨]]을 이겼으며 [[딸랑딸랑 종달새]]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구라]]는 그가 출연하기 전부터 남자 아이돌 같은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수시로 언급했었다.
2017년 판타스틱듀오 거미, 양희은 편에서 블랙핑크 로제, 뮤지컬 배우 손준호등을 제치고 거미의 듀엣파트너로 선정되었고, 양희은&산들 듀오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최후의 3인이 함께 부른 '날 그만 잊어요'에서는 짙은 감성과 이어지는 듀엣으로 호평을 받았다.
([[카리스마 LP소년]]) || [* 1라운드 결과는 거울공주가 승리해서 LP소년이 패자의 전통에 따라 가면을 벗었는데 4차전이 끝났을 때 기계의 집계 착오로 밝혀져서 두 사람을 급히 불러와 방송사고였음을 알려준 다음 진짜 승자인 육성재에게 다시 가면을 씌우고 음성변조를 했지만 이미 정체를 다 아는 상황에서 육성재 본인이 복면가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면서 기권했다.] ||
|| 황문섭 || 사차선도로 || 피처링 ||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설날 아육대]]에서 [[주몽|육몽]] 코스프레(…)를 선보이며 혼성 양궁 경기에 출전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서은광|같은 팀 리더]]는 [[켄타우로스|말]] 코스프레를 했다~~ ~~타 팬들은 역시 [[BTOB|비투비]]라며 칭찬을, 멜로디들은 역시 내 새끼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추석 아육대]]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는 [[레골라스]]를 패러디한 육골라스(…) 분장을 하고 나왔으나, 개그만 일삼다가 [[몬스타엑스]]에게 18점 차로 KO패를 당해 광탈했다. 첫번째 사수로 나온 [[서은광|광피트]]가 부진한 상태에서 3번째 사수로 나오자마자 3점과 5점을 쏘는 치명적인 실수를 연발했고, 마지막 슈팅 후 오버하는 포즈를 취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쏜 [[I.M|아이엠]]이 카메라 엑스텐을 기록한 후 육성재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는 것. [[서은광]]이 마지막 사수로 나왔을 때 [[레골라스]] 가발을 벗어던지고 말았다. 결국 [[서은광]]과 육성재의 어이없는 실수로 [[BTOB|비투비]]는 양궁 예선에서 [[광속 탈락|광탈]]했다.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비교적 감성이 올드한 편이다. 대기실 비하인드 영상, 직접 촬영하여 트위터에 업로드한 영상 등에서 자신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었을 시기인 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의 곡들을 즐겨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각종 비하인드 영상에서 부른 곡들은 '제비([[김건모]])', '너를 보내고([[윤도현]])', '열정([[스티브 유|유승준]])', '가위(유승준)', '마지막 콘서트([[이승철]])' 등이 있다. ~~선곡만 보면 1995년생이 아니라 95학번이래도 믿을 수준~~ [[https://youtu.be/yKsTJNQIjnI|#]] (0:00~0:21)~~누나팬들은 이렇게라도 세대 차이를 덜 느껴서 좋다고 한다~~
- 윤상현(배우) . . . . 10회 일치
[목차]
이후 차기작으로 예능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패밀리가 떴다 시즌 2]]... 모두가 알다시피 프로그램과 함께 주가가 폭락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드라마)|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인간미 넘치는 차관우 역할을 통해 2년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너목들이 2013년 최고의 드라마로 꼽히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다.
[[갑동이]]에 출연[* 너목들 감독이 형사시절 차변의 모습에 반해 윤상현을 캐스팅하기 위해 영화촬영장까지 찾아갔다한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남성적인 형사 이미지로 변신에 선공하여 극전체를 이끌며 연기 호평을 받았다.
|| 2013년 || SBS || [[너의 목소리가 들려(드라마)|너의 목소리가 들려]] || [[차관우]] || ||
|| SBS || [[피노키오(드라마)|피노키오]] || 차관우[*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같은 배역. 《피노키오》가 '너목들' 제작진(조수원 PD, [[박혜련]] 작가)의 차기작이었기 때문에 이 인연으로 특별출연 하였다.] || 특별출연 ||
|| MBC || [[쇼핑왕 루이]] || 차중원 || ||
|| [[해피투게더(KBS 2TV)/3기|해피투게더 3]] || 게스트[* 한 해에만 두번 출연했다. 6월 25일에 가수 [[이승철]]과 출연해 'Never Ending Story'를 라이브로 들려주었다. 그리고 8월 13일, 《아가씨를 부탁해》 홍보차 [[윤은혜]], [[정일우]], [[문채원]]과 함께 출연.] ||
|| [[MBC FM4U]] || [[박경림]]의 [[두시의 데이트]] ||<|3> 게스트[* 《욱씨남정기》 종영 직후, 싱글 앨범 'Yoon Sang Hyun Ballad' 홍보차 방송 3사 라디오를 일주일 안에 한바퀴씩 다 돌았다.] ||
- 윤진식(국회의원) . . . . 10회 일치
[목차]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는 [[관세청]]장,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장관 역임 당시에는 대북송금 특검을 반대할 정도로 꽤 진보적이었다. 기회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투자유치TF팀 팀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노선을 변경하였다. --[[우디르|윤진식급 태세전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이시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래도 이때 일방적으로 패할 것이란 여론조사 예측을 깨고 이시종과 2% 차의 격전을 벌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여담으로 이시종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충주시장을 맡았으나, 2003년 돌연 시장직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했으며, 2004년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다. 이는 2010년에 제대로 참패한 새누리당의 전략적 선택이었는데, 2010년 당시 [[정우택]] 후보는 나름 중진이고 거물임에도 인구가 적은 진천이 출신지여서 '''충주 출신의 이시종'''에게 그야말로 처참히 발렸다. 이때 정우택은 이시종에게 36,267표차로 졌는데 청주권(구 청주시, 청원군)에서 29,606표차, 이시종의 텃밭 '''충주에서 23,963표차'''로 패했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같은 충주 출신인 윤진식으로 맞불을 놓은 것.(사실 다른 경선 후보들이 모두 중도하차하면서 후보가 윤진식 혼자밖에 남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친구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시종 후보에 밀려 또 낙선하였다.~~친구하고 선거에 붙으면 운이 없다~~ 충주권 맞불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충주에서 오히려 4,473표차로 앞섰으나[* 충주는 원래 매우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다. 이시종 지사의 개인기로 민주당이 가져왔던 것일 뿐인데, 윤진식 후보도 같은 충주 출신이라 이번에는 새누리당 이긴 것. 참고로 윤진식 후보가 충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벌어진 재보궐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의 [[이종배]] 후보가 당선되었다.] 충북 최대 인구밀집지인 청주권에서 17,262표차로 패했다. 참고로 양 후보간 표 차이는 14,963표.~~충북지사 선거는 원래 청주만 이기면 90%는 먹고 들어간다~~
- 은혼/605화 . . . . 10회 일치
*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하는 에도. 그 모습에는 긴토키 조차 전의를 상실할 지경.
* 해방군의 지상군 전차부대까지 나타나 일행을 추격하는데 그때 또다른 전차 부대가 나타나 이들을 쓸어버린다.
* 에도성엔 소요 공주가 차분한 자세로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그때 긴토키 일행에게 포격이 떨어진다. 이쪽은 해방군 지상부대로 전차를 앞세워 진공 중이었다.
* 일행은 달아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또다른 전차 부대에 퇴로를 차단 당한다.
* 전방을 막고 있던 전차 부대는 맞은 편의 해방군 전차 부대에 공격을 가한다.
* 해방군 측 전열이 쓸려나가자 전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 이지아(배우) . . . . 10회 일치
[목차]
스캔들 5개월 후 [[201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나도 꽃]]의 여주인공 순경 차봉선 역을 맡았다. 아래 후술된 스캔들의 여파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빨리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이때까지 드라마에서 이지아와 함께 출연한 배우는 배용준-김명민-김혜수-정우성으로 죄다 연기대상 수상자이고 정우성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남 배우로 이름을 알렸었다. [* 다만 정우성과 출연할 당시엔 드라마의 메인 히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역은 [[윤시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쟁작인 [[뿌리깊은 나무]]의 임팩트가 워낙 독보적이라서 예상보다 그렇게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배우의 연기나 드라마 자체는 그럭저럭 입소문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영광의 재인]]과 [[뿌리깊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시청률 참패를 당하면서 조기 종영되었다.
[[디아블로 3]] 공식 홈페이지에 [[리쌍]], 작곡가 [[윤일상]]과 함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http://kr.battle.net/d3/ko/blog/1468860/회상_디아블로를_추억하며-2012_05_03#blog/|"회상: 디아블로를 추억하며..."]]. 실제로 [[왕십리역]]에서 발매기념 사인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근데 서태지의 자동차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디아블로]]였다--
[[이탈리아]] [[피아트]] 그룹 산하의 최고급 스포츠 승용차 브랜드인 '''[[마세라티]]'''가 이지아 때문에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지아는 [[마세라티]]의 플래그쉽 [[FR(자동차)|후륜구동]] 대형 세단인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 5세대의 오너(사실은 리스차량)인데, [[2013년]] 4월의 어느 날에 음주한 후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이동하다가 논현동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현대 쏘나타|쏘나타]] [[경찰차]]와 접촉 사고를 내는 바람에 [[마세라티]]가 더 알려졌다. 6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의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실제로 [[마세라티]]/[[페라리]] 수입사인 FMK 측에서는 이지아의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 접촉사고 때문에 [[마세라티]]의 인지도 상승에 득이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본의아닌 노이즈가 있고 난 후 출시되었던 [[마세라티 기블리|기블리]], 6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의 판매량이 늘어 [[마세라티]]의 국내 판매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고마워요 이지아~~
친일파 건으로 인해 여전히 비판하는 시선들이 많으며 특히 친일파 논란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많다. 자기가 해명하고 싶은 루머만 해명하고 본인한테 불리한 논란은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것.[[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626402|#]] 이지아 팬들중 일부의 지나친 동정론과 쉴드로 오히려 더 반감을 느낀 사람도 많다. 특히 이지아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물타기하거나 그냥 넘어가자는 사람들에 대해선 너나할 것 없이 비난이 많다. 말하는게 지적이다는 의견도 있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두루뭉술한 문어체로 말해서 답답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방송상에서 앞으로는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6년 2월 13일 [[연예가중계]]에 영화 <무수단>과 관련하여 홍보차 출연하여 애교를 선보였다.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60214065110719|#]]
|| 2011년 || MBC || [[나도 꽃]] || 차봉선 || ||
- 이현우(배우) . . . . 10회 일치
[목차]
[[태왕사신기]]에서 어린 처로 역으로 몇 분 나오지는 않았으나 엄청난 눈빛연기로 여러 사람들의 뇌리에 박힐만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대왕 세종]]에서 아역 [[세종대왕|세종]]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어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청소년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러다가 [[문화방송|MBC]]에서 제작한 [[돌아온 일지매]]에서 '차돌이' 라는 당돌한 소년 캐릭터를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때 머리를 기르고 살짝 여성적인 모습으로 나온 것이 원인인 듯.
선덕여왕의 어린 [[김유신(선덕여왕)|김유신]] 역 등장을 기점으로 [[유승호]]를 잇는 국민 남동생의 자리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어린 김유신을 맡으면서 귀여움과 훈훈함을 동시에 안겨주어 2~30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나이에 비해 똑부러진 연기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성인 역인 [[엄태웅]]으로 교체되면서 유신랑의 인기는 급강하하고 만다. 물론 엄태웅의 어색한 사극 연기도 한 몫 했다. 그를 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누나팬들이 적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 하차한 후에는 [[막장 드라마]] [[밥줘]]에서 차화진의 아들 토미 역을 맡기도 했다. 2010년 1월에 시작한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드라마)|공부의 신]]에서 [[홍찬두]] 역을 맡아 유승호와 함께 국민 남동생 투톱이 나란히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계백(드라마)|계백]]에서 주인공 계백의 아역으로 등장했다. [[브레인(드라마)|브레인]]에서 소년가장 박동화 역으로 나왔다.
2012년 3월 방영된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다시 한 번 [[엄태웅]]의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나 캐릭터와의 싱크, 발성의 한계 및 대사조절에서 아역 연기를 벗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드덕들 사이에 연기에 대한 논란을 안겨주었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때와는 달리 이제 얼른 아역 분량이 끝나고 [[엄태웅]]이 나오기를 바라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 사실 적도의 남자에서의 김선우는 그동안 이현우가 해왔던 역할과는 좀 많이 다른 성격이긴 했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같은 아역으로 나왔던 [[임시완]]의 연기가 예상외로 훌륭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8월 방영되는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드라마)|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차은결[* 일본 원작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남 파라다이스]]에서 [[이쿠타 토마]] 역.]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이로서 일본 드라마 원작 드라마에서 두번째 출연을 달성. 2012년 12월 16일부터 2014년 2월 9일까지 [[아이유]], [[황광희]]와 함께 [[SBS 인기가요]]의 진행자를 맡았다.
영화판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리해진]]'''역을 맡고 영화 관객수가 500만이 넘어간 상황이 되면서 10대 여성 및 20대 초중반 여성층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본 영화 내에서도 여전히 학생 역이지만, 아역 이미지는 어느 정도 벗은 듯 보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흥행을 끌면서 이현우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져, 2014년에 기대가 되는 배우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약 1년만에 영화 [[기술자들]]로 돌아왔다. 귀여운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차기작을 나름 신중히 선택한 듯 하다. 해커 박종배 역으로 분해 연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가 [[에이브러햄 링컨|김우빈의 김우빈에 의한 김우빈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에 이현우 분량이 상당히 안습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인지도를 높였으나 그것은 이현우 자신의 외모적 매력에 힘입은 것이므로 성인 연기자로서 아역이미지를 벗고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검증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
* [[노래]] 실력이 나쁘지 않은 듯 하다.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OST 청춘예찬을 불렀었는데, 목소리가 이현우 목소리 같지 않다는 소수의 평을 제외하면 괜찮다는 평. --노래 자체가 트로트 같긴 하지만 중독성 있다.-- --청춘예차아안 두두두두두뚜우두두두-- 칠성사이다 광고 모델에 발탁됐을땐 광고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사가 좀 오글거지만--- 반응이 괜찮았는지 뮤직비디오 상의까지 하여 팬들에게 김칫국을 투여했으나... 1분 30초도 안되는 짧은 분량으로 등장했다.
||<|3> 2009년 ||<|3> MBC || [[돌아온 일지매]] || 차돌이 || 조연 ||
||<|2> SBS || [[아름다운 그대에게(드라마)|아름다운 그대에게]] || [[차은결]] || 조연 ||
|| 한국 코카콜라 || 코카콜라 - 차두리, 이동국편 || ||
- 진격의 거인/94화 . . . . 10회 일치
* 라이너가 마레의 전사에 지원한 이유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마레인과 사랑했으나 신분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식에게 희망을 걸었다.
* 길고 길었던 전쟁이 끝나고 마레의 전사들은 그리운 고향 레벨리온으로 무사히 귀환한다. 열차가 도착하자 마자 가비가 날아차기를 하며 뛰쳐나온다. 뒤이어 [[라이너 브라운]]이 내린다.
소음 공해에 가까운 가비의 귀환인사가 역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그리고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콜트 그라이스]]의 머리도 울린다. 잘 마시기도 못하는 주제에 분위기를 너무 타버린 탓이다. [[포르코 갤리어드]]가 그 점을 지적했다. 어제 그 현장에 있었던 [[파르코 그라이스]]도 누가 시작한 거냐고 투덜거린다. 범인은 피크. "마시고 싶은 얼굴이라 줬다"고 책임회피한다. [[지크 예거]]는 어쨌든 콜트 쪽 문제로 간주해서 "피크의 배려를 차량 곳곳에 토해냈다"는 예술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 마가트 대장도 그 개판을 보고 어제 말리지 않은걸 후회했다.
* 라이너의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비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무장열차를 끝장냈는지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라이너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흥분되고 자랑스러운 눈길로 그녀에게 집중한다. 가비의 자랑이 끝나자 카리나가 아들에게 "가비가 다음 전사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라이너는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말에 부드럽게 대답한다.
[[사샤 브라우스]]의 일이었다. 교관이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때 조차 "맛있어 보여서 훔쳤다"고 대답하던 그녀. 이런 악당인데다 상황이 위험하다가 판단되자 교관을 매수하려고 감자의 반을 제시했다. 하지만 거기서 내민 양은 절반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다. 정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야비함. 이 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 가더니 뭘 싸러 갔는지 잊어버려서 그냥 돌아오는 얼간이, [[코니 스프링거]]도 있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 안 쓰는 불성실한 [[장 키르슈타인]]. 반대로 남을 끔찍하게 챙겼던 [[마르코 보트]]. 그리고...
* 당시에도 대장은 마가트였다. 그때는 마레의 전사들 지원자들의 교관이었다. 지원자들은 폭풍 속에서 각개전투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숨이 차고 치가 떨리는 훈련이지만 라이너는 버텼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앞서나갔다. 라이너가 다급한 마음에 기다리라고 손을 뻗어보지만 멈출 리가 없다. 이건 경쟁이다. 결국 그를 앞서간 [[마르셀 갤리어드]]가 합격을 거머쥔다.
* 백병전시험은 더 형편 없었다. 상대인 [[애니 레온하트]]는 "아주 좋다"는 격찬을 받으며 합격했다. 그녀는 그때이미 완성된 투사였고 그녀의 실력에 라이너가 공중에서 완벽하게 한 바퀴 굴렀다. 그리고 다른 시험에서도 그건 마찬가지. 뭐하나 쉬운게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는 언제나 "제길"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필기시험에서도, 옆자리의 [[포르코 갤리어드]]가 여유로운 얼굴로 답안지를 채워가는데 자신은 사색이다.
단 한 사람만 제외된다. 라이너는 지크의 말을 듣자마자 희망에 차올랐다. 그는 흥분했다. 그토록 바라던 미래가 아주 빨리 도착했다.
* 그렇지만 그가 환희에 차있도록 놔두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마르셀의 동생 [[파르코 갤리어드]]였다. 그는 "해냈다"는 말에 트집 잡았다.
- 천해성 . . . . 10회 일치
'''천해성'''(千海成, [[1964년]] [[8월 15일]] ~ , [[서울특별시|서울]])은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통일부 차관]]을 맡고 있는 공무원이다.
2016년 7월 행시 후배인 김형석 차관이 부임하자 퇴임한 뒤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2017년 6월 제24대 [[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통일부 차관]]에 임명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차관으로 복귀한 통일부 대표 정책통 천해성|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31/0200000000AKR20170531136600014.HTML|날짜=2017-05-31|뉴스=연합뉴스}}</ref>
* [[대한민국 통일부|통일부]] 차관
|직책 = [[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통일부 차관]]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영양 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등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
- 추경호 . . . . 10회 일치
|경력 = 제6대 [[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br/>제4대 [[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기획재정부 제1차관]]<br/>제2대 [[대한민국의 국무조정실장|국무조정실장]]
2013년 [[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기획재정부 제1차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4년 7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에 임명됐다.
* 2013년 3월 ~ 2014년 7월: [[기획재정부]] 제1차관
* 2017년 12월 ~ 2018년 5월: 제20대 국회 4차 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
* "각 기관에서 공공, 민생, 경제·금융 분야 등 3대 분야에서 우선 추진할 과제를 선정하고, 즉시 실행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마련해달라.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척결해가되 비리의 환부만을 정확히 찾아 제거함으로써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유념해달라. "(2015/03/20 서울청사에서 추 실장의 주재로 열린 부정부채 척결 관계 차관회의에서)
|직책 = [[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기획재정부 제1차관]]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10회 일치
전통적인 중세 유럽의 제국 관념에서 '동쪽의 제국'[* 서쪽은 신성로마제국]을 차지하던 비잔티움제국은 11세기부터 이어진 튀르크의 지속적 공세앞에 아나톨리아[* 지금의 소아시아반도] 내륙을 영구상실했고, 그 이후 내륙지방을 지배해온 룸 술탄국의 멸망이후 부상한 오스만의 공세에 아나톨리아 최후의 거점인 니코메디아까지 함락당하며 아나톨리아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는 중세까지 비잔티움을 지탱하던 아나톨리아의 풍부한 생산력[* 지금도 터키는 유수한 농업국이다.]과 그에 따른 인적 자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반대로 오스만은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은 꾸준히 확장하여 트라키아와 발칸의 패권까지 장악하기에 이른다.
거기다가 제위과정도 순탄치 않아서, 제위를 노리고 동생 데미트리오스가 반통합파의 지지를 얻고[* 정작 그는 피렌체 공의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위를 차지하려하기도 했다. 그에겐 다행히도 이 문제는 태황태후인 엘레나 드라가시가 직접 콘스탄티노스를 황제로 지명해서 끝이 났다.
한편, 메흐메트가 그를 유럽의 기독교 군주들처럼 애송이로 생각한 카라만의 이브라힘 베이가 게르미얀,아이딘,멘테세의 지도자들과 연합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한 뒤, 그는 예니체리의 봉급 인상문제로 한차례 곤경을 겪는다. 이문제는 봉급을 인상시키는대신 지휘관을 강등하는것으로 끝이 났으나... 이걸로 술탄의 지배력이 어느정도 약화된다. 이틈을 노렸던건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메흐메트에게 사절을 보내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머물고 있던 오르한의 생활비를 더욱 지급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추종자를 다시 풀어놓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을 하기 이른다.
사절의 요구를 들은 메흐메트는 생각해보겠다며 차갑게 대꾸한 이후, 보소포로스 해협의 가장 협소한 지역에 요새를 짓기 시작한다. 이소식을 들은 황제는 경악하면서 사절을 보내 외교적으로 해결을 하려하지만, 술탄은 그들을 쫓아내는것으로 대답을 해줬다. 황제는 그 대응으로 도시내의 튀르크인들을 투옥하는걸로 맞대응했으나, 별 소용없는 행위였고, 결국 모두 풀어주었다. 그렇게 당대에 '보코하즈 케센', 그리고 현재는 '루멜리 히사르'라고 불리는 요새가 완공되었고, 이로인해 이곳을 왕래하는 모든 함선들은 요새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이는 이곳을 통해 무역을 하는 이탈리아 상업국가들에게 큰 위협을 줬는데, 단적인 예로 베네치아인 안토니오 리초가 이끄는 함선이 요새의 검문요구를 무시했다가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살아남은 선원과 선장모두 사형을 당했다. [* 선장은 특별히 말뚝형에 처해졌다.] 더더욱 급해진 황제는 교회통합을 요청하며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건 겨우 200명정도의 병력뿐이었다.[* 별 수 없는게, 당시 교황령의 군사력은 제국보다 별볼일 없었다.(....) 차라리 모레아 전제국이 훨씬 더 국력이 탄탄했을거다.] 하기야 소피야 성당에선 교회통합을 선언하는 미사가 열렸지만, 해당 미사는 황제와 그 일부 측근들, 일부 통합파 사제들과 교황청에서 온 주교들 일부만 왔을뿐이었다.
우선 서유럽 국가와 비잔티움 사이에 묵혀뒀던 감정이 4차 십자군때 콘스탄티노플 약탈과 라틴 제국 성립으로 폭발한게 컸다. 이 때문에 정교회를 믿는 제국민들은 서유럽의 가톨릭 교회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고,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내세우는 동서대통합은 종교계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제국에서도 종교적 보수성이 매우 강한 지역[* [[모레아 전제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이라 반발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서대통합이 '확실하게' 정교회 전통을 단절시키는 반면 별다른 군사적 보호는 제공하지 않고, 이슬람의 정복은 아직 술탄의 관용에 호소하여 정교회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가망이 더 크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교황의 삼중관보다 차라리 터키인의 터번을 택하겠다."는 말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제국이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국가는 백년전쟁의 틈을 타 저지대를 차지하며 프랑스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부르고뉴 공국이었으나, 그곳의 지배자였던 '선량공'필리프는 아버지인 '대담공'장이 니코폴리스 십자군에 참여해서 어떤 치욕을 봤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제국의 문제에 섣부르게 나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건 본토와 저지대의 영토를 연결하는것과 라인강 인근의 아헨 등의 영토를 확보하는것이었다.
이후 선발대가 4월 2일에 도시 근처에 오게 되고, 이에 황제는 요격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점차 튀르크의 후방부대들이 오기 시작하자, 황제는 병력을 도시안으로 물리고, 해자 위의 다리를 파괴하고 성문을 닫으라 명한다. 그리고 같은 날, 그는 금각만(골든 혼)에 배가 통행하는걸 막기위해 페라 방파제의 탑에서 성채 아래 에우게니오스 탑까지 이어지는 방책을 세우게 됀다.
전투가 주로 이루어질거라 예상됬던 곳은 육지 성벽이었는데, 왜냐하면 금각만쪽으로 진입하는건 4차십자군때 베네치아처럼 제해권을 완벽히 장악하지 않는 이상은 무리였기때문이다.[* 둘레에 급류가 흘러 상륙용 배를 성벽밑에 대는게 쉽지 않았고 모래톱과 암초또한 있었기 때문.] 그중에서도 리쿠스 계곡을 가로질러 뻗어있는 성벽인 메소테이키온쪽이 가장 취약한 곳이었기에, 황제와 주스티니아니 모두 튀르크 군의 공격이 여기에 집중될것이라 여겼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10회 일치
==== 임차 농장(Tenant Fields) ====
>하늘은 장차 뿌리를 내릴 때 어둡게 변한다.
=== 차 계열 ===
>차는 문화인들의 전유물이다.
==== 차 농원(Tea Plantation) ====
* 해당 지방에서 확보되는 차 더미: 20
==== 말차 공장(Matcha Plant) ====
* 해당 지방에서 확보되는 차 더미: 40
==== 차 수출업체(Tea Exporter) ====
* 해당 지방에서 확보되는 차 더미: 60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10회 일치
[목차]
2017년 3월 17일에는 '그래'라는 이름의 디지털 싱글을 냈었다. 실시간 차트 40위까지 올라갔다. 9월에는 'The Original' 이라는 솔로 콘서트까지 열었다. 앵콜 콘서트도 있었다.
2017년 11월 15일에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로서 '너의 계절'이라는 동명의 타이틀곡을 내세운 미니앨범으로 컴백했지만 홍보의 부족 때문인지 차트에선 힘을 쓰지 못 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을 진행했다.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은 비자문제로 중도하차하여 환희 단독 DJ라고 봐야되지만 이름은 일단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이다. [[김연우(가수)|김연우]], [[린(가수)|린]], [[김범수]], [[김현성]], [[서영은(가수)|서영은]] 등등 실력파 가수들이 게스트로 나와 같이 노래부르던 삼색떡볶이라는 코너가 유명했다. 노래만 편집해서 [[MP3]] 파일로 인기리에 떠돌아다녔을 정도.
[[화요비]]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촬영했었다. [[화요비]]에게 지어준 별명은 다름아닌 개똥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쁜 남자 기믹이었으나 ~~네티즌들이 무서웠는지~~ 점점 온순해졌다. 당시 "싸가지 없다"라거나 "차갑다"라는 식의 여론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는지 이후에 방송에서 예능이라 그런 점이 과장됐을 뿐, 실제로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쁜 남자는 아니라며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게다가 후반에 나쁜남자 기믹을 좀 죽였더니 이번엔 전보다 재미없다며 난리~~ 결국 금방 하차했다. 가장 빨리 하차한 커플 중 하나. 현재도 [[화요비]]와는 음악적 동료이자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 중이다. 화요비의 [[화요비/음반 목록|앨범]] 인터뷰 당시, 앨범 공개전에 미리 노래도 들려줘서 환희의 조언도 받고, 다시 우결을 해도 환희와 다시 하고 싶다는 등을 언급했었다.
* [[Over The Rainbow#s-3|오버 더 레인보우]](2006) - '렉스' 역[* [[드라마]]는 [[망했어요|망했으나]] 환희가 부른 'Tomorrow'라는 OST 곡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노래방 OST 차트 상위권에서 보이는 노래지만 드라마 제목은 커녕 이게 [[OST]]라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워낙에 상남자 이미지라 예전 소속사였던 [[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 사이에선 매니저 차 안타고 늘 바이크 타고 출근하더라는 둥 회사 주변 주민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처리했다는 둥 일명 '환희 선배님 전설'이라는게 도시전설처럼 떠돌았다고 [[슈퍼주니어]]가 방송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9회 일치
K리그는 2011시즌까지 상당한 잡음이 일어왔었는데, 그 잡음 중 하나가 바로 관중 수 집계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은 좋지만 인기가 정말 없기로 유명했던 구단으로 성남 일화 천마를 꼽을 수 있었는데, 이 성남의 홈 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수용 가능 인원은 2만여명이 넘지만,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러 들어온 관중은 2000여명이 채 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경기장 전광판에서는 전반전이 끝나고 관중 수를 발표하는 걸 보면 4,000 ~ 5,000명을 발표하는데... 이건 경기장에 최소한 20~25%는 채워져야 가능한 이야기임에도 방문한 팬들조차 갸웃거릴 정도였다.[* 가령 2010시즌 경남과의 홈 경기에서 당시 발표로는 5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결코 그 정도로는 아니었다.]
이게 성남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남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남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실 집계를 시작하고 나서 가져온 파장이 엄청났는데, 2012시즌 348경기가 종료되자 2011시즌 246경기동안 300만명이 넘었다는 관중이 250만명으로 50만명이나 줄었다. 단순계산만으로도 평균관중이 1만 1천~2천여명 정도였던 2011시즌 성과와는 달리 2012시즌은 7천여명으로 경기당 근 4~5천명이나 차이가 나는 것.[*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382&aid=0000079171|스포츠동아, "-33.2%…거품 빠진 관중수 각 팀 마케팅 강화 긍정효과"]]
결과가 상당히 처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K리그 팬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로 '''간만에''' 연맹이 제대로 된 일을 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특히 직관을 나가는 팬들의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점철되는 걸 바라보느니 차라리 까발릴 건 까발리고 제대로 된 마케팅 활동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
특히 무료티켓을 어느 정도 뿌렸는지 팬들이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팬들이 구단에게 공평함과 내실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2016시즌 기준, 수원 삼성의 경우는 무료티켓을 거의 발행하고 있지 않아 실제 관객수 당 지불비용이 가장 높은 "객단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평균관중이 줄었음에도 입장 수익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신기한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무료티켓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연맹의 요청으로 군경활동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구단은 무료티켓을 발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연고지에서 지원하는 유소년 클럽의 경험 향상차원에서도 매 경기마다 무료티켓을 일정 이상 발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거의 각 구단마다 경기당 최소한 수백장 정도 무료티켓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팬들도 이런 구단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수긍하고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인구 수를 매년 잘못 파악한다고 치면 해당 도시의 인구가 왜 늘어났는지, 혹은 반대로 왜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초현상이 발생했으면 왜 여초현상이 발생했는지, 여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헌데 2011시즌까지의 K리그는 사실 이게 불가능한 정도를 넘어 구단들이 알아서 뻥튀기를 했고, 또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걸 공식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K리그가 지금 흥행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대대적인 실패를 하고 있는건지 진단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사실 허수로 부풀린 관객수로 투자를 받아 봤자 투자자는 관객수에 비해서 수익이 적다는걸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된다. 차후에 실제로 관중이 발표한 만큼 늘어나도 축구=수익이 안 되는 사업이라는 인식에 가로막힐 수 있기 때문. 부풀린 데이터를 제시하는건 일종의 '투자 사기'이며,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투자에 필요한 신뢰를 얻는데는 기본적인 사안이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9회 일치
대회요강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과 동일하였다. 이에 따라 1차전은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인 수원 FC의 홈에서, 2차전은 클래식 11위 부산의 홈에서 경기를 가졌다.
== 1차전 ==
양 팀은 단 한번도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기에 클래식에서 쌓은 내공이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었다. 게다가 수원 FC는 후반 6분경에 수비수 임하람이 거친 백태클로 경고 없이 레드카드를 받아 나가는 상황까지 겹쳤지만 경기는 단 1골로 승패가 가려졌고, 수원 FC가 선승을 가져가면서 2차전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게 된다.
== 2차전 ==
부산은 1차전의 패배 때문에 반드시 2골 이상을 넣어야지만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반면에, 수원FC는 1차전(홈)에서 1골을 넣었기 때문에 역으로 1골만 넣어도 3실점 이상 먹이지만 않는다면 승격이 눈앞에 있던 상황.
이런 이유로 1차전에서는 수원이 점유율을 가져가는 축구를 했던 반면에, 2차전은 부산이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며 강력하게 압박하는 축구를 구사하였다. 전반만 보면 부산의 점유율은 60%에 슈팅 숫자는 4개(유효슈팅 3)였던 반면에, 수원은 점유율 40%에 슈팅 2(유효 0)뿐이었다.
- Victoria II/상품 . . . . 9회 일치
=== Tea(차) ===
차를 생산하는 국가들은 풍년으로 발생한 차들을 처리하는 "우리 나라의 모든 차"[* 해당 이벤트 이름은 영어 표현인 All the Tea in China에서 따왔다. 매우 값진것을 의미하는 표현. 보통 "중국의 모든 차를 다 준다고 해도 거부하겠다," 같은 식으로 쓰인다.] 이벤트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차를 비축할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빈민들에게 나눠줘 투쟁성과 의식도를 감소시킬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자본가들에게 나눠줘 소지 자금에 보태게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 Automobiles(자동차) ===
=== Tanks(전차) ===
고무, 기계 부품, 전기 장치, 자동차를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 권희동 . . . . 9회 일치
[목차]
10월 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4타석 3안타 3타점을 기록하여 팀의 6-2 대승을 이끌었지만 쓰리런 홈런을 날린 [[나성범]]에게 활약상이 묻히면서 ~~그 나성범조차 10승을 거둔 [[이재학]]에게 묻혔지만~~ 빛이 바랬다. 시즌 2번째 3안타 경기로 타율은 0.199 유지.
5월 20일 [[SK 와이번스]]와의 2차전에서 좌익수로 선발출전해 ~~누가 슼나쌩아니랄까~~ 2루타 1개 포함 4타수 3안타로 맹활약했다.~~하지만 경기는 선발 [[이재학]]이 무너지면서 패했다.~~ ~~안습~~
그 외에도 군 문제 또한 과제로 남았는데, 인천 아시안게임을 노리기에는 아직 보여준 게 적은데다 이재학과 나성범이 팀내에서 1차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에 국대 승선보다는 상무or경찰청 입대를 노리는 것이 수월할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8월 8일, LG 트윈스와의 2차전에서 신재웅을 상대로 시즌 4호 홈런을 때려냈다. 그런데 스코어는 9:3으로 한참 뒤쳐져 있었고 엔씨 팬들도 쫄깃했던 다른 구장 경기들을 보러 간 상태라 언급이 잘 없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1경기 출장 221타수 63안타 0.285 7홈런 36타점 39득점을 기록했다. 13 시즌에 비해 홈런 갯수는 줄었으나 이는 이종욱의 영입으로 주전에서 백업으로 밀려나 많이 출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오히려 13 시즌에 지적받았던 선구안이나 타격 면에서는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규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해 합격해 15시즌과 16시즌을 퓨쳐스리그에서 보내게 되었으며 팬들도 크게 성장하여 차기 NC 다이노스의 클린업 트리오를 맡아주길 바라는 상황. 그런데 2015년 2월 24일 NC 다이노스의 연습 경기에서 권희동이 등장했다. 어찌 된 상황인지는 이후 위키러의 [[수정바람]]
10월 21일 플레이오프 1차전 4번타자로 출장한다.[[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7&aid=0002831242|기사]] 무사 1, 3루의 상황의 폭풍삼진(..)으로 아무래도 경험부족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편.
10월 22일 플레이오프 2차전 7번타자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의 성적으로 경기중 [[김준완]]과 교체됐다. 22일 기준 타율은 1할4푼3리. 타격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2경기 연속 선발 기용한 [[김경문]] 감독의 예상과 달리 최악의 부진을 계속해서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당일 기아와의 경기 반짝 활약 이후로 계속 기용되어 모든 NC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근데 이건 팀 타선이 다 부진했던 상황이라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루키 시즌(2013년 시즌)때는 타율과 출루율은 심각하게 낮았지만 장타력은 여전히 좋았던 타자였다. 1군 데뷔 시즌 맞이한 397타석에서 '''15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을 정도로 힘이 있는 선수. 특히 2사 후 타점이 [[http://sports.donga.com/3/all/20130913/57652988/1|많고]], 홈런 상당수가 2점차 이내의 접전에서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599691.html|나오는]] 등, 타점의 영양가가 높아 [[공갈포]] 논란이 거의 없다. 이런 장점을 갖고 있기에 2013 시즌은 뎁스가 얇은 신생 팀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즌 내내 주전으로 뛰었었다.[* 사실 2013년의 타격이 공갈성이 있긴 했지만 [[BABIP]]이 0.214에 불과할 정도로 운도 따라주지 않던 시즌이었다. 이는 압도적인 리그 꼴지의 기록. 그 이후에는 3할 초중반 대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동아에서는 1할 타율을 가지고 있던 당시 공포의 1할 타자, 숫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32146|타자로 소개했다.]] 힘있는 타자는 상당히 귀하고 귀하기 때문. 2013 시즌에는 팀의 뎁스가 워냑 얇았고, 일발 장타력이 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낮은 타율과 출루율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출장 기회를 부여받았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2/무기 . . . . 9회 일치
== 차량용 무기 ==
정비소에서 달 수 있는 차량용 무기.
* 기관총 차량 정면에서 기관총 두정을 발사한다.
차량 후면에서 기름을 뿌려 기름 웅덩이를 만든다. 웅덩이를 밟은 차량은 미끄러진다. 물가의 도로 근처에 뿌려두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차량에 5초짜리 시한폭탄을 설치한다. 이걸로 차를 터뜨려도 수배레벨이 붙는다.
차량 후면에서 지뢰 하나를 설치한다. 이걸로 차를 터뜨려도 수배레벨이 붙는다.
- 김미숙(1959) . . . . 9회 일치
[목차]
어린 시절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알고보니 돈만 주면 합격하는 학원이었다고... 눈물이~~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思考)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배우는 포기했다. 그 당시로써는 큰 키와 마른 체구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세터. 그래서 손 힘이 굉장히 센 편인데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 영화 [[말아톤]]의 DVD 메이킹 필름에서 세차게 --강스파이크로--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아웃된 듯한 [[백성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드라마)|기분 좋은 날]] 9회 초반에 극중 집 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멀쩡한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마지막엔 결혼에 골인하고 [[내 딸, 금사월]] 44회에서 손창민은 김미숙과 여고 동문인 [[신득예]]에게 낭떠러지에서 위협받는다 뺨에 강스파이크~~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이 대회 대상은 [[원미경]].]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다. 상태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Fail.'''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 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
이 때부터 주목할 것이 김미숙이 구축한 독특한 악역의 이미지이다. <[[로비스트]]>의 마담채, <[[황금의 제국]]>의 [[한정희]], <[[여왕의 꽃]]>의 [[마희라]], <[[부탁해요, 엄마]]>의 황영선 및 <[[옥중화]]>의 [[문정왕후]]까지 악역을 맡은 횟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워낙 임팩트가 커서 기억에 강하게 남는 편. 보통의 악역들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과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 '''우아한 나쁜 X'''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는 큰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 캐릭터가 가진 양면성이 드러나는 악역이지만 끝내 이해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본래 김미숙의 자연스러운 연기 스타일에 역할에 대한 영리한 해석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셈. ~~예쁘고 우아하고 무서워요~~[* 부탁해요 엄마의 황영선 역할은 그렇게 악역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렇다. 대부분 시어머니들이 솔직히 아들을 더 아끼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차라리 악역이라면 이형규 역할을 맡은 오민석이 더 잘 어울린다.]
* [[유치원]]을 오랜 기간 운영했다. 특이하게도 한창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유치원을 시작했다고... '''항상 선택되기만 하던 배우''' 생활에 염증을 느낄 때 유치원 교사였던 여동생의 권유로 유아교육 공부를 시작한다. 처음엔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학했으나 나중에 방송대에서 유아교육 학위까지 받았다. 그 후 '사랑' 유치원을 차리고 원장 선생님으로 18년을 운영했으며 꽤 입학 경쟁률이 치열하고 평판도 좋았다고. 외환 위기 이후 유치원 운영을 접었다.
* 연하남들과 연기를 많이 했다. [[장동건]], 故 [[안재환]], --안 그래 보이지만-- [[최재성(배우)|최재성]], [[손창민]] 등 많은 연하남들과의 연기가 많았던 편. 특히 <[[바람불어 좋은 날]]>의 [[이현진(배우)|이현진]]과는 26살 차이로, 이현진의 실제 어머니와 동갑(...)임에도 꽤 괜찮은 케미를 보여줬다. 후에 두 배우는 황금의 제국에서 모자 연기를 해서 다른 의미의 케미를 보여준다. ~~몰입이 안 된다고 거...~~ 그리고 2016년작인 [[우리 집에 사는 남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남자]]에서는 28살 연하인 아들 뻘인 [[김영광]]과 혼인신고 후 사망하는 설정이 나온다. 이쯤 되면 연하 킬러라고 해도 될 듯. 참고로 김미숙의 '''실제 남편도 5살 연하'''.
* [[2017년]] [[문화방송|MBC]] 《[[밥상 차리는 남자]]》... 홍영혜 역
* [[2008년]] [[르노삼성자동차]] [[SM5]]
- 김영환(1955) . . . . 9회 일치
[목차]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선거 이전에는 [[새누리당]] 후보인 [[홍장표(정치인)|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패배할거라는 여론조사와, 김철민 후보와 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는 김철민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와 3당구도로 가면 홍장표 의원이 오차범위의 한참 밖에서 안전한 당선이 가능하다는 결과치가 나왔기 때문에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후보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3파전이 되었다.
3파전 속에서 [[홍장표(정치인)|홍장표]] 전 의원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게 중론이었으나, 실제로는 김영환 후보가 33.5%를 얻어 새누리당 홍장표의 32.5%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당선된 건 34%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의 [[김철민(정치인)|김철민]] 전 안산시장으로, 당선인과 김영환의 득표수 차이는 399표 차이(...)'''.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2018년]] [[6월 5일]]에 진행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2차 토론회([[KBS]], [[MBC]], [[SBS]] 공동주최)에 참석하였다. 기조연설에선 지난 토론회에서의 네거티브를 사과하면서도, 여전히 [[이재명(1964)|이재명]]의 해명을 거짓말로 규정했고, 이재명과 본인 중 한명만이 진실이라며 끝장승부를 예고했다. 1대1 정책토론에선 다른 후보들과 정책검증을 이어갔으나, 주도권 토론에선 자신의 차례가 오자 이재명에게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에 대한 네거티브를 걸었고 시간이 없다며 해명을 무시하고 예/아니오로만 대답할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다가 사회자에게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재명도 이것을 문재인에게 했다가 크게 비판받은 적이 있다. 토론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김부선에게 자신의 허락 없이 스캔들을 언급해 2차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사실 확인을 안한 정도가 아니라 김부선과 사전 합의조차 없이 논란을 제기했던 것. 짬도 꽤 찬 중견 정치인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대책없는 행동을 했는지 의심이 가는 수준이다. 가뜩이나 김부선이 단 하나의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증거 조작이나 하고 있어 자신과 김부선에 대한 여론이 싸늘해진 상황인데 고소까지 당했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 남보라(배우) . . . . 9회 일치
[목차]
2006년 [[KBS 2TV]] [[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하였지만 극 중에서 비중이 작은 역할이었고 시트콤 자체가 큰 재미가 없어서 [[망했어요]]..... ~~그리고 이 때는 [[발연기|연기도 더럽게 못 했다]]. 차라리 시트콤이 망한 게 본인의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될 정도로..~~
평소 부모님의 식당 일을 밝은 모습으로 도우면서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돕는게 부끄럽지 않다"는 발언을 했고, 연예인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개념 연예인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지하철 이용건에 대해선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배려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배려석에 앉다니 무개념이다"라고 까는 의견과 "저 좌석은 일반인도 앉아있다가 주변에 임산부나 영유아 동반자가 있을 때 양보해주면 괜찮은 거다"라며 옹호하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통약자 배려를 위해 설치된 좌석들은 좌석이 부족한 경우 노약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즉시 양보해 주면 된다.] 써니 이후 친해진 배우 [[박진주]]를 태우고 가는 장면이 나간 [[나 혼자 산다]]에서는 [[현대 아반떼|AD]] 1.6 디젤을 몰고 다니는 듯. 탑기어 코리아7 8화에서 본인의 첫 차가 [[폭스바겐 CC]]이며 10년 탈 생각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동안]]''' 외모의 소유자 중 하나다. 하지만 [[동안|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모양. 2018년 현재 30살인데, 아무리 봐도 20대 초반으로 보이며, 교복 입고 중고등학생 역을 해도 아무 위화감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차차 해결될 문제이긴 하다.
보이그룹 [[보이프렌드]]의 [[민우]]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75&aid=0000155333|남보라의 조카라고 한다.]] 고로 남보라는 [[민우]]의 '''고모.''' ~~이모 아닌가??[* [[고모]]는 [[아버지]]의 [[누나]] 혹은 [[여동생]]이므로, ~~'남보라'에게 [[오빠]]와 [[남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남'''보라가 '''노'''민우에게 ~~부계쪽으로~~ '친[[삼촌]]'의 '고모'는 아닐 것이다. 다만 [[민우]] 본인이 ~~5살차이나는~~ '고모'라고 언급했다. 또한, 손위 언니가 없는 [[장녀]]이므로 [[이모]]도 불가능하다.]~~
2016년 2월 15일 '''오전 9시 30분''', 오후 5시에 방송되는 [[K STAR]] 생방송 스타뉴스는 남보라 열애설을 단독 보도한다는 예고성 기사를 지난 '''11일 데이트 사진'''과 함께 제휴사인 [[YTN]][* [[K STAR]]는 iHQ에 팔리기 전까지 YTN의 연예 채널이었다.]을 통해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2&aid=0000777641|내보냈다]]. 이에 남보라의 소속사는 양측이 최근 결별했다고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49573&gid=999339&cid=1013067|밝혔다]]. 이에 K STAR는 밸런타이데이였던 지난 '''14일 데이트 사진'''을 첨부해 재차 기사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2&aid=0000777828|내보냈다]]. 이에 ~~당황한~~ 소속사는 결별 시기는 최초 기사 발행 직전인 '''오늘(15일) 오전'''이었다고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844744&gid=999339&cid=1013067|밝혀]] 네티즌들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2017년 4월, 여성조선 잡지에서 쉬는 대부분의 시간을 본인은 혼자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한마디로 [[집순이]]로 불릴만큼 집을 굉장히 편안해한다고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그냥 종이에 쓴다고(...)... 화나는 일, 답답한 일, 힘든 일. 그 순간 차오르는 여러 뒤섞인 감정에 이름표를 붙인다고.
매주 새벽 기도를 드릴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그리고 개신교 관련 악세사리를 항시 차고 다닌다고 한다.
- 니엘(가수) . . . . 9회 일치
||<#ad84db> {{{#white '''가족'''}}} ||[[부모님]], 3남 중 차남[* 집안이 개신교인지라 형의 이름은 안다윗이다. 허나 남동생은 개신교와는 상관없이 안보성이라고.] ||
[목차]
2012년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2년|제4회 아이돌 스타 육상·수영 선수권대회]] 높이뛰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해설위원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보여 줬다. 2012년 설특집 알까기 대회에서 손쉽게 다른 참여자들을 격파해 준우승까지 올랐으나, 결승전에서 [[걸스데이]]에 패했다. 그 밖에 [[정글의 법칙]] 시즌 11, [[주먹쥐고 소림사]] , 정의본색 등의 예능에도 출연하였었다. 현재는 E채널 [[태어나서 처음으로]]에 공작단원으로 출연중이다.
[[틴탑]]의 메인보컬로 데뷔곡인 '박수'에서는 거의 혼자 노래를 다 부르다시피 했다.[* 니엘:천지:나머지 멤버의 파트비율이 약 70:20:10 정도로 차이가 났다 개인파트가 있었던 멤버는 니엘, 천치 ,캡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파트가 줄어 '향수 뿌리지마' 활동 때는 천지와 파트를 나눈 수준이었으나, 미치겠어부터 후렴구 담당이 되더니 To You에서는 [[창조(틴탑)|창조]]에게 파트를 많이 빼앗겼다. 데뷔 때에 비해서 파트가 많이 줄었다고 해도 곡의 비중은 상당하다.
||<tablealign=left><tablewidth=500px><#DCDCDC><-3><:> '''가온 앨범 차트 [[2015년]] 주간 1위''' ||
||<#F6CECE><:> '''8주차''' ||<#F5F6CE><width=230px><:> '''9주차''' ||<#D8F6CE><:> '''10주차''' ||
[[2월 27일]], [[KBS2]]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달성했다. [[2월 28일]], [[MBC]] [[쇼! 음악중심]]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마쳤다.
- 대한민국 FA컵 . . . . 9회 일치
그러던 것이 1996년도부터 FA컵이 탄생하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협회 차원의 통합 챔피언을 가리는 개념이 정립하게 되며, FA컵의 우승팀은 모두 이 1996년의 우승팀부터 기록된다.
FA컵은 KFA에 등록된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자격을 갖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이 명백하기에 토너먼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라운드를 차별 배정받는다.
단, 이건 2015시즌까지의 이야기이며 2016시즌 FA컵부터는 8라운드에 한해 홈 & 어웨이로 경기를 치루기로 하였기 때문에 원스타 시스템은 결승 1차전이 어디에서 열리는지 결정하는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가령 1번과 ★번이 결승에 진출하면 ★번팀의 홈에서 1차전을 치루고, 3번과 ★번이 결승에 진출하면 3번팀 홈에서 결승 1차전이 열린다는 이야기.
FA컵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자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모든 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FA컵은 상금규모와 대회 진행에 따른 보상이 너무나도 초라했던 관계로 초창기에는 리그컵 내지는 그보다 못한 대회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대회라는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AFC에서 차기 ACL티켓을 부여하고부터는 K리그 클래식 다음가는 권위있는 대회로 탈바꿈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 올라가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국제 무대에서 팀의 이름을 알려서 팀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별히 보상을 줄 수 없었던 리그컵 대회는 점차 인기가 떨어지다가 폐지되는 수순을 밟으면서 FA컵과 명암이 교차하였다.
과거 포항이 더블을 달성했을 때는 3.5장이 아니라 4장을 부여하였기에 '''어차피 똑같은 1장'''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FA컵 우승팀이 들어가야 할 F조의 자리를 당시 리그 4위였던 서울에게 바로 넘겨줬기 때문에 서울이 F조 자리로 갔었다. 그리고 0.5장이란 개념이 없던 미비했던 동아시아 조추첨의 경우는 각 국가별로 조별단계에서 겹치지 않도록 국가별 조추첨을 통해 조편성이 이루어졌기에 한때는 리그 2위였던 성남이 E조에 들어가고 우승팀인 전북이 F조 들어가는 등의 상황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동아시아 조편성에 0.5장이라는 특수성이 과거에 비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조편성이 난감해질 우려가 생겼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복잡한 구조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K리그 뿐만이 아니라 똑같이 3.5장을 부여받는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도 비슷한 논리로 조편성을 위한 티켓부여가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 레스터 길리스 . . . . 9회 일치
1931년 시카고에서 은행 강도를 벌였다가 체포된 길리스는 졸리엣(Joliet)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벌였던 또 다른 은행강도의 재판을 받으러 잠시 이송되었는데, 돌아오던 중 탈출해 캘리포니아 주 소살리토(Sausalito)로 도망친다. 그곳으로 도망친 길리스는 존 폴 체이스(John Paul Chase)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지역 갱단원으로 밀주 운반을 돕고 있었다. 길리스는 체이스와 함께 밀주 운반차의 호위를 하게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11월 27일, 길리스 일당은 시카고에서 차를 훔쳐 위스콘신 주로 향하던 도중 FBI 차량에게 발각된다. 곧이어 FBI와 길리스 일당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길리스 일당은 FBI를 피해 도망쳤지만 또다른 FBI 차량을 만나게 된다. 새뮤얼 P. 코울리(Samuel P. Cowley) 감찰관과 허먼 E. 홀리스(Herman E. Hollis) 특별 수사관이었다. 첫번째 차량과의 총격전으로 라디에이터가 파손되어 제대로 도망칠 수 없던 길리스 일당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일리노이 주 배링턴(Barrington)에서 차를 세운다. 그러고는 뒤쫓아 오는 FBI 차량에 자동화기를 난사한다. 배링턴 전투라고 불리는 이 총격전으로 홀리스 특별 수사관은 사망하고, 코울리 감찰관 역시 치명상을 입어 다음날 사망한다. 하지만 길리스 역시 치명상을 입는다. 체이스와 헬렌 길리스는 FBI 요원들이 타고있던 차를 훔쳐 길리스와 무기들을 옮겨 싣은 다음 그 차를 몰고 도망친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9회 일치
이후 기욤이 죽고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드로고가 형의 영지를 상속받을때, 기스카르는 아무 영지도 받지 못했고, 이를 그의 바로 위의 형인 옹프루이가 딱하게 여겼는지 그에게 라벨로 성을 준다. 이후 그는 카푸아 공작 판돌포 4세와 연합해 살레르노 공국을 치려하지만, 공작이 약속했던 공작의 딸과의 혼인과 영지 할양을 거부하자 그와의 협조를 거부하고 돌아가버린다. 이후 칼리브리아로 간 기스카르는 거기서 칼리브리아를 정복을 진행중이던 드로고에게 자기몫의 영지를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드로고는 최근에 쌓은 성채인 스크리블라성[* 현재의 스페차노 알바네세]을 그에게 준다.
한편, 멜피 공의회 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더더욱 치고 올라, 그해 겨울이 끝나기전 레조를 제외한 칼리브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타란토와 브란덴시에 있던 비잔티움 요새들도 모두 박살냈다. 이후 동생인 로제르와 함께 레조까지 힘락한 기스카르는 콘스탄티노스 10세가 남이탈리아를 되찾기 위해 보낸 군대까지 격파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우세를 확실히 한다. 이후 그는 1061년에 로제르와 함께 메시나를 정복하면서 시칠리아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고, 1071년에는 바리를 함락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 비잔티움 세력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듬해 초에는 팔레르모를 함락하면서 시칠리아섬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1075년에 살레르노 공국을 정복하면서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그의 야심은 남이탈리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원한건 동방제국의 제위를 차지 하는것이었다.
코르푸를 얻어낸 기스카르가 발칸침략의 첫 교두보로 삼은 곳은 일리리아[* 지금의 알바니아]의 중심지이자 주요항구였던 디라키온[* 현재의 두러스]였다. 이곳을 통해 에그나티아 가도를 타고 동쪽으로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지나면 곧바로 콘스탄티노플로 갈 수 있기에, 이곳을 차지하는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냈어야하는 기스카르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약간의 불운이 있었는데, 북쪽으로 가서 아크로케라우니아 곶을 도는 순간 갑작스러운 폭풍으로 인해 일부함선과 거기타고 있던 병력이 물고기밥이 되버리고, 간신히 그곳연해에 병력을 상륙시키고 나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두고볼 수 없었던 베네치아 도제가 직접 함대를 이끌고 기스카르의 해군을 공격한것이다. 노르만 해군은 대응하려 했지만 해전경험에서 베네치아 해군에 비해 한참 밀린데다가 '그리스의 불'까지 사용하던 베네치아 해군을 이길 수는 없었고 결국 베네치아 해군은 디라키온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윽고 회전이 시작되었고,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바랑기안 근위대로 구성된 비잔티움군의 우익이 시켈가이타가 지휘하는 노르만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바랑기안들은 평소보다 유난히 광폭한 상태였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 복무한 바랑기안중 대다수가 노르만 군주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했을때 잉글랜드편에서 복무한 군인이었기 때문이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복수에만 정신이 팔려 지나치게 앞으로 가 본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버렸고, 시켈가이타가 직접 말을 몰고 도망자들을 쫒아 이들의 사기를 회복하고, 한편으론 보에몽의 좌익이 이들을 구원하러오자 차단되어버린다. 결국 화살세례를 버티지못한 근위대는 인근의 예배당으로 피신했지만, 노르만 병사들이 불을 질러 대다수가 타죽고 말았다.
한편 황제는 중앙에서 용감히 싸우고 있었지만, 정예병들 대다수가 만지케르트에서 궤멸되어버렸고, 중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야만인 용병들은 오합지졸인데다가 비잔티움에 대한 애국심도 없었다. 게오르기오스가 이끄는 디라키온 돌격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두클라의 왕인 콘스탄틴 보딘과 룸술탄 슐레이만이 보낸 병력이 배신하고 멋대로 돌아가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나 버렸다.
답은 바로 비잔티움 전통의 외교술이던 이이제이였다. 예전부터 비잔티움은 외국의 이민족들이 자국을 위협하면 천혜의 무역입지를 통해 쌓인 돈과 보물로 경쟁이민족을 끌어들여 견제하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외교술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것이다. 우선 그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피신해있던 기스카르의 조카인 아벨라르를 끌어들여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쥐여 이탈리아로 비밀리에 보내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한편으로는 하인리히 4세에게 사절을 보내 아풀리아 공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장차 위험해질거라고 충고하면서 금괴 36만개와 진주가 박힌 황금 가슴장식, 그외 수많은 귀중한 보물들을 선물해 그를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기스카르는 즉각 이탈리아로 돌아와 1083년 한여름 안에 아벨라르와 그의 형제인 에르망의 난을 진압하고, 산탄젤로성에서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교황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군대를 모집했고, 이듬해 초여름에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는 기스카르와 직접 싸움을 걸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로마성문으로 들이닥치기 사흘전에 군대의 대부분을 거느리고 롬바르디아로 숨어버린것이다. 한편, 기스카르는 5월 27일 밤에 병력을 거느리고 조용히 도시의 북쪽으로 돌아가,섀벽에 공격을 개시했고, 순식간에 돌격대의 선봉이 플라미니우스 성문을 뜷고 도시로 진입했다. 로마 시민들은 노르만군에게게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마르티우스 광장 전역이 불타는 지역으로 변했다. 이후 노르만 병사들은 로마를 약탈하고, 말그대로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한때 군중들이 기스카르를 포위해 그대로 끔살시킬뻔하기까지 했다(...) ~~아깝게도~~ 그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차남인 로제르 보르사가 병력 1천명을 이끌고 그를 구원해 겨우 목숨을 건진 기스카르는 노르만군들에게 도시를 모조리 불태우라고 명령한뒤, 교황을 데리고 남이탈리아로 돌아가 비잔티움에 대한 후속 원정을 준비한다.[* 참고로 이때 기스카르의 나이는 예순 여덟이었다!! 그것도 서양식이니 한국식이면 칠순(....) 대단한 집념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기스카르는 아직도 자신만만했다. 초여름이 되자 그는 다시 병력을 이동시키기로 결정했고, 차남인 로제르에게 선발대를 맡겨 케팔로니아를 점령하도록 한뒤, 몇주뒤에는 그도 거기서 아들과 합류하러 출발했다. 그러나 남쪽으로 항해중 그는 그역시 해당 역병에 걸린걸 느꼈다. 함대가 섬의 북단에 있는 아테르 곶에 닿았을 무렵 그의 병세는 더더욱 심해졌고, 그의 배는 황급히 피스카르도만에 정박했다. 그리고 1085년 7월 17일에 거기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끝마친다.
그는 11세기~12세기에 비잔티움을 침략한 야심가들[* 차카 베이, 그의 아들인 [[보에몽|보에몽 1세]]등]중 가장 그의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았던 자였다. 동시대 서방황제와 동방황제들 모두 그와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야전에서 알렉시오스를 패퇴시키기까지 하는등, 군재로써는 당시 최고를 달렸던 자였다.
- 문무왕 . . . . 9회 일치
[[태종 무열왕|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김유신]]의 둘째 누이)의 맏아들로, [[김 (성씨)|김]](金)이고,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 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당나라]]의 군대를 [[나당 전쟁]]에서 격퇴함으로써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다. 왕후는 파진찬 [[선품공|김선품]]의 딸 [[자의왕후]]이다.
평양이 함락된 뒤 이적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福男)·덕남(德男) 그리고 대신 등 20여만 명을 이끌고 돌아갔고,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助州)가 이적을 따라 인태·의복·수세·천광·흥원 등과 함께 당으로 들어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문무왕은 한성을 출발해 평양으로 가던 중, 힐차양(肹次壤)에 이르러 당의 여러 장수가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한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8"/> 신라 측은 긴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에게 약속된 은택을 얻을 것이고 공을 세운 장군들도 포상을 받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당나라에 들어갔지만, 당의 총사령관 이적은 “지금 신라는 아무도 공이 없다”며 싸늘한 태도를 보였고, 이적의 태도가 신라 군영에 전해지면서 신라군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로서는 그들의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당군을 도와 주변의 적들을 쓰러뜨렸는데, 막상 신라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당은 백제와 고구려에 이어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백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백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백제의 남은 세력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백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반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순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백제령을 모두 백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백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년([[672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봄 정월에 백제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기고, 2월에는 다시 백제의 가림성 공격을 시도했다.<ref name="삼국사기-672">《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2년(672)</ref> 7월, 당나라 장수 고간(高侃)의 한병(漢兵) 1만, 말갈족 출신의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 3만이 함께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머물렀다.<ref name="삼국사기-672"/> 이들은 8월부터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馬邑城)을 쳐서 이기고 백수성(白水城) 5백 보 거리까지 전진해 주둔하는 등 신라 땅을 침식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72"/>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이들을 쳐서 이기고, 추격하는 당병을 석문(石門) 벌판까지 뒤쫓아가 싸웠지만, 군 내부에서의 논공행상 및 전략에 대한 견해차로 분열된 사이에<ref name="김원술">《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전 부록 원술(元述)</ref> 당병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대아찬 효천(曉川), 사찬 의문(義文)·산세(山世), 아찬 능신(能申)·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安那含)·양신(良臣) 등이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72"/> 태대각간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원술]]도 여기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아버지 유신은 자신의 아들을 군법으로 처형해야 한다며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ref name="김원술"/> 한편 각자 맡은 곳을 지키며 방어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자는 유신의 진언에 따라, 한산주에 둘레 4,360보 되는 주장성(晝長城)을 쌓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ref name="삼국사기-672"/> 9월에는 앞서 신라 땅에 억류하고 있던 웅진도독부 소속의 백제인 관원들과 앞서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면서 왕이 직접 표문과 많은 물품을 바치는 등 당에 대해 유화책을 폈다.<ref name="삼국사기-672"/>
* 모후 : [[문명왕후 김씨]](文明王后 金氏, 생몰년 미상) - [[김서현]]의 차녀, [[김유신]]의 누이동생
** 남동생 : [[김노차]](金老且)
** 차남 : [[정명태자]](政明太子) - 형인 [[소명태자]]가 사망한 바람에 태자가 되었으며 훗날 [[신라 신문왕|신문왕]]이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9회 일치
그러던 그가 어쩌다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는데, 이 신임을 받는 경위는 사서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레슬링 경기에서 여러차례 챔피언을 차지한 불가르족 거한과 맞붙어 한번에 매다꽂아버려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하며, 또다른 설은 미카엘 3세가 성질이 사나운 말을 한마리 얻어냈는데, 아무도 그 말을 다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직 바실레이오스만이 말의 귀를 쓰다듬는 것으로 그 말을 고분고분히 다룰 수 있었고, 이를 본 미카엘이 그를 자기밑에서 일하게 했다는것이다.
이후 바실레이오스가 미카엘과 절친해지면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자, 당시 실권자였으며 사실상 후계자로 점찍혔던 황제의 외삼촌 바르다스와 바실레이오스와의 관계는 나날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바르다스는 바실레이오스를 그저 변방 촌뜨기로 보고 무시했었으나, 점차 그가 미카엘과 친해지자 자신의 위치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실레이오스도 바르다스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밀려나리란것도 예상하고 있었고, 이에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는 유약한 미카엘을 교모히 충동해 바르다스가 그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거라고 이간질했으며, 그에게 바르다스를 제거하는게 그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부추겼다. 음모는 바르다스가 크레타에 원정을 갈 준비를 할때 준비되었던걸로 보이는데, 바실레이오스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암살음모가 바르다스의 첩보망에 걸려버렸다. 그러자 바르다스는 원정을 취소하고 수도로 가서 미카엘에게 따졌으며, 결국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성모 마리아 칼코프라테이아 성당에서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공식 선언서에 서명하게 된다.[* 바실레이오스는 글을 몰라서 서명란에 십자가만 그리게 된다.] 이후 바르다스는 크레타 원정전 막사에서 황제에게 작전을 의논하던중 바실레이오스에게 죽는다.[* 죽기전에 미리 칼을 뽑았으나 바실레이오스가 그냥 맨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고(...)] 해당 행위는 미카엘도 어느정도 관여를 했던게 확실한듯 한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포티우스에게 바르다스가 반역죄로 즉결 처분되었다고 암살이 실시된 후 바로 알린것으로 알 수 있다.이후 포티우스의 조언에 따라 수도로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돌아갔고, 이후 성령강림절에 바실레이오스는 공동황제로 임명된다.
그러나 이후 바실레이오스는 미카엘과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데, 미카엘이 국정에 흥미를 읽고 전차 경주나 술에 열중해 있었고, 에우도키아 문제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건 바실레이오스의 야망이 단순한 공동황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을것이다. 결국 867년에 바실레이오스는 미카엘을 암살하고 단독 황위에 오른다
본래 바실레이오스는 전처인 마리아사이에서 태어난 콘스탄티노스를 아끼고 후처인 에우도키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 세아들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 그들중 차남인 레온은 특히나 싫어했는데, 이러한 면모는 아마도 그가 레온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전임황제 미카엘의 아들로 의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레온 본인도 바실레이오스가 죽고난뒤, 미카엘의 명예를 복원시키기도 했다.]
이후 황제는 정신을 차린뒤 자신의 몸에 칼을 댔다고 허리띠를 자른 경호병을 죽이고(....) 황궁으로 갔다가 거기서 복부 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향년 74세.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썬 낙제점중에 낙제점이었는데, 차남 레온이야 그의 아들이 아니란 의혹이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에우도키아의 탯줄에서 난(자신의 아들이 확실한) 두아들들까지 미워하고 싫어했고, 오로지 전처인 마리아 사이에서 난 콘스탄티노스만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후 레온 다음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데르의 막장짓은 어찌보면 어릴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게 컸을것이다.
- 박옥수 . . . . 9회 일치
[목차]
기쁜소식강남교회[*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때 보이는 그 [[교회]]이다. 참고로, 이 교회 건물은 불법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내에 건축제한이 있는데, 그걸 상큼하게 씹어먹은 것. 서초구청에서 강제 집행을 하려고 했었으나, 교인들이 죄다 나와서 막았다고...] 담임[[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외 기성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도 없고, 한국에 구원파 [[신앙]]을 들여왔다고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딕 욕에게 안수를 받았다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 선교사가 공식 선교사거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닌 등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세한 것은 [[구원파]] 참조. 게다가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목사안수 논란 문단을 볼 것.] 물론 어디까지나 [[신흥종교]]인 만큼 해당 교단 내에서 쓰는 직급으로 볼 수는 있다.
핵심교리의 해석 차이만 있는 경우라면 일단 [[개신교]]부터 먼저 [[가톨릭]]으로부터 그런 식으로 갈라져 나온 교파이기에 도찐개찐이다. 문제는 박옥수측이 주류 개신교단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교회라 홍보하는 것. 구원파 신도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라고는 하기 어렵고 주류 개신교단과는 다른 [[이단]]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아래의 또별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내부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옥수의 교회인 기쁜소식선교회에서는 신도가 운영하는 기업 운화의 제품인 또별~~[[무안단물]]~~이라는 식품을 마치 의약품이자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홍보하였다. [[산삼]]배양근 등에서 추출한 식물 [[줄기세포]]를 함유했다는 이 제품은 허가조차도 건강기능식품이나, 음료(차류)로 받은 제품이다. 박옥수는 이를 직접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약품처럼 과대 광고를 했던 것이다.[* 의약품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질병 치료기능 선전은 건강기능식품이어도 금지된다.]
또별을 개발한 후 주식으로 ~~상장~~[* 상장한 적 없다. 주식회사로 설립하는 과정 주주로 참여했거나 비상장 장외 거래로 구주 매출을 했을 것.]하여 870명의 교인들에게 주식 200억치를 판매하였다. 또별이 만병통치약으로 선전되면서 또별 개발사인 운화의 주식이 유망한 줄 알고 산 사기피해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1/0200000000AKR20170711109100004.HTML|관련 기사]] 피해자 측에서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기적의 약이라는 '또별'이 알고보면 그냥 ~~[[나주 성모동산|율신액]]~~녹차가루라며 사기죄로 고소하자, 박옥수 측에서는 "해당 제품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홍보한 적은 없었다."라며 발뺌하였다.
증언에 따르면 또별을 사서 알고 보니 산삼 성분에 녹차가 섞여 있었다고 한다. 이는 또별 제품의 하나인 '또별차'일 가능성이 높다. 또 잡지나 방송에 등장한 제품 중 또별 브랜드인 DDB20은 녹차가 들어있지 않다고...
- 보루토/5화 . . . . 9회 일치
* 사스케가 뒤따라와 두루마리에서 경고하던 존재가 이들이며 이들은 차크라의 열매, 곧 미수를 사냥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 이들은 미수를 "단"이란 형태의 알약으로 만들어 자신의 차크라를 끌어 올리는데 그걸 위해 미수들을 사냥한 것.
*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카타스케는 혀를 차며 "나설 수밖에 없겠다"고 한다.
* 그가 가져왔던 두루마리의 내용은 이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는 내용이었으며 "차크라의 열매", 즉 미수를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 단이란 차크라를 강화시켜주는 비약. 모모츠키는 잘도 알아냈다며 진짜 단을 꺼내보여준다.
* 이것 조차도 회장 한 구석이 날아가는 폭발적인 위력인데, 나루토가 미수 모드를 사용해 이것을 막는다.
* 나루토의 미수 차크라 모드를 처음 보는 보루토는 아버지의 힘을 느끼고 놀란다.
* 사스케는 나루토가 당하면 끝장이라며 자신의 차크라까지 넘겨준다.
* 모모츠키는 계속해서 자잘한 인술을 날리는데 나루토가 미수 차크라 모드에서도 힘겹게 버틸 정도다.
- 식극의 소마/219화 . . . . 9회 일치
* 쿠가와 츠카사의 대결 주제는 "녹차". 찻잎을 이용한 요리다. 찻잎을 주제로 한 요리는 낯선 주제로 특히 쿠가와 츠카사의 전공 분야와는 아주 무관하다.
* 당시 "대패배" 후 충격에 빠졌던 쿠가는 [[잇시키 사토시]]가 "1학년 중에선 유일하게 츠카사와 대결"했다고 위로하자 기운을 차린다.
* 그런 김에 츠카사에게 리벤지 매치를 신청하러 가는데, 거기서 츠카사가 다른 2학년과 대화하던 중 사실은 "쿠가"가 누구인지 조차 모른다고 말하는 걸 듣게 된다.
* 대결 상대가 정해졌으니 이제 주제를 정해야 할 때. 사이토가 뽑기 차례를 반역자측에 양보하자 린도가 정색한다. 왠지 이게 꼭 하고 싶다고. 하도 적극적이라 별 수 없이 메기시마의 양해를 구해 이쪽만 린도가 뽑기로 합의한다. 그동안 사이토는 메기시마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까지 같은 십걸이던 자신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것. 메기시마는 요리사로서 내세우는 마음가짐이 다 다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대꾸한다. 사이토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언제나 자기 길을 걷던 메기시마가 "저 하급생" 편을 드는 건 의외였다고 말한다. 메기시마도 동감이다.
>녹차(찻잎)
어떻게 보면 가장 생소한 재료. [[요시노 유키]]와 [[사카키 료코]]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유키는 "맛있는 차로 대결"인 거냐고 의문을 표하는데 료코는 "찻잎의 맛이나 향을 살리는 요리"를 하라는 걸거라 추측한다. 메구미는 하다못해 이 대결이 [[잇시키 사토시]]나 [[키노쿠니 네네]]가 낀 대결에서 나왔다면 일식 요리사인 만큼 어떤 요리를 할지 이미지가 나왔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토 이쿠미]]도 같은 의견이다. 사천 요리 전공인 쿠가, 프랑스 요리 전공인 츠카사와 너무 동떨어진 주제다. 그 증거로 츠카사는 주제가 정해지자 한참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자신의 장르를 못 살리는 주제라면 남은건 2시간 뿐인 제한시간 동안 고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게 관건이다.
* 그런데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엔 적의 것도 있었다. 대결 상대인 츠카사다. 뜻밖에도 그는 쿠가의 실력과 중화요리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빠른 출발도 "방대한 조리법을 구사하는 중화요리인에게만 가능한 센스"라며 칭찬한 뒤 역시 십걸에서 물러나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적이지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데, 쿠가는 차가운 비아냥으로 받아쳤다.
쿠가가 묵은 원한을 원료삼아 타오르고 있을 때, 츠카사는 매우 차분하고 정돈된 상태로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있던게 아니었는지 "슬슬 집중하자"고 중얼 거린다. 그 손에는 찻잎이 들려있다. 그는 그것을 흩뿌리며 마치 말을 거는 듯 한데.
- 예천군 . . . . 9회 일치
[목차]
인구의 대다수가 1차 산업에 종사, 예천읍내 한정으로 상업, 공무원, 교원 종사자가 있다. 그 외에 [[제16전투비행단]]의 영향으로 [[군인]]도 제법 있다. 낙후한 [[군]] 지역이다 보니 상업지역이 빈약하기 때문에, 상당수 사람들은 문경, 안동, 영주 등으로 나가서 일을 해결한다. 풍양면, 용궁면 지역은 상주·문경권에 속해 있으며, 감천면 지역은 영주권에 속해있다. 나머지 지역은 대체로 안동 [[생활권]]에 속한다.
[[예천공항]]이 있었지만 이용객 급감으로 2004년에 폐쇄된 후 군용으로 전환되어 현재는 이용불가하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전에는 [[김포국제공항]] - 예천 항공편이 수요가 꽤 있었으나(안동/예천/문경에서 서울까지 자가용 5시간, 기차 4시간 30분, 여객기 1시간)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이용객 급감으로 폐쇄되었다. 현재 예천 비행장에는 [[공군]] [[제16전투비행단]]이 주둔.
철도는 [[경북선]] 39.3km 구간이 예천을 지나 [[용궁역]], [[개포역]], [[예천역]]에서 여객열차가 정차한다. 하지만 [[애초에]] 여객 수요 숫자 자체가 적고 타 지역 접근성도 떨어지며([[경북선]] 참조), 때문에 바로 역 앞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용궁-예천 노선)이 수요를 다 잡아먹어 하루에 각 방향으로 4대 정도의 여객 열차가 다닐 뿐이다.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예천은 [[활]]의 고장으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예천군의 [[양궁]]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를 참조. [[http://www.ycinews.co.kr/ArticleView.asp?intNum=47617&ASection=001002|링크]]. 예천 출신의 양궁 국가대표 [[김진호(양궁)|김진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 대회에서에서 사상 첫 5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1983년 남·여 2개의 양궁팀을 창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100여명이 넘는 선수들이 예천양궁선수단을 거쳤고, [[황숙주]], [[김수녕]], [[장용호]], [[양승현]], [[김성남]], [[한희정]] 등 10여명의 [[국가대표]]를 배출, 각종 국제 및 국내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300여회의 입상과 각종 훈·포장을 수상했다고 한다. [[http://ycg.kr/open.content/ko/organization/archery/stadium/|출처]].
- 원피스/869화 . . . . 9회 일치
* 그러던 벳지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데, 바깥에서 정신이 돌아온 빅맘이 벳지를 가차없이 공격, 빅 파더가 파괴되고 벳지가 빈사에 처한다.
* 빅맘 [[샬롯 링링]] 암살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탈출 루트조차 차단되어 궁지에 몰린 해적동맹군. [[카포네 갱 벳지]]는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살아있는 거성 "빅 파더"로 변신, 전원을 성 내부로 피신시킨다. 이걸로 당장의 괴멸을 막긴 했지만 이미 빅맘 해적단은 벳지의 배신은 물론 [[시저 크라운]]의 연루까지 알아차렸다.
* 이제 해적동맹은 빅맘 해적단에 둘러싸인 채 괴로운 "농성전" 상태로 돌입했다. 빅맘 측은 느긋해졌다. 어차피 퇴로의 퇴로까지 차단해버린 마당이니 서두를게 없다. 한숨 돌리며 상황을 정비한다 페로스페로는 나오는 순서대로 처리할 생각으로 즐거워한다. 카타쿠리는 브륄레를 풀어주며 이제껏 이용당한 부분을 질책한다. 브륄레는 억울하다고 항변. 스무디는 레이쥬에게 당한 독을 짜낸다. 잠깐 교전했지만 성가신 상대라 생각한다.
* 빅 파더 안, 해적동맹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인물이 없다. 벳지의 부하 비트 조차도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제르마에 정신이 팔려있다. 루피와 쵸파는 빅 파더에 꽂혀서 환호, 시저는 KX런처의 유폭에 대해 변명하기 급급하다. 벳지가 보기엔 속이 터진다. 벳지는 빅 파더에 환호하는 루피를 쏘아붙인 뒤 작전은 실패했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토로한다. [[브룩]]은 "과연 사황은 격이 다르다"고 감탄, 한가하게 차나 홀짝인다. [[징베]]가 앞으로 대책을 붙지만 솔직히 그런건 없다. 벳지는 빅 파더는 자기 자신이며 충분히 튼튼하지만 무적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성이 파괴되면 당연히 벳지도 죽고 일행은 바깥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 뒤는 그저 학살.
* 빅맘이다. 빅맘이 눈을 뜨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빅맘이 제일 먼저 눈 앞의 빅 파더를 깨부수고 있다. 일행에게 전부 성에서 튀어나오라며 공격한다. 그녀는 빅 파더에 달라붙어 설탕세공 부수듯 무너뜨린다. 빅 파더가 무너지자 벳지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친다. 어느새 피투성이. 물론 빅맘은 벳지가 배신한 것도 알고 있었다.
- 유해진(배우) . . . . 9회 일치
[목차]
* 2007년 '이장과 군수' - 공동주연 [[차승원]]
예능면에서는 2006년 [[차승원의 헬스클럽]]으로 처음 모습을 보인 뒤, 2013년 4월부터 [[1박 2일]]에 [[김승우]] 대신 출연했다. [[삼시세끼/어촌편|삼시세끼 어촌편]]에 [[차승원]],[* [[장근석]]도 둘과 함께 출연 예정이었으나, 본인의 [[탈세|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자세한 건 [[장근석]] 항목으로.] [[손호준]][* [[장근석]]의 하차로 4회부터 고정으로 합류했다.]과 같이 출연했다. --그리고 [[참바다]]라는 별명도 덤으로 얻었다 카더라.-- --이 문서는 [[참바다]] 문서 검색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여기서 본인의 이름이 "바다 해(海)에 참 진(眞)"임을 밝혀 자막을 통해 참바다라는 별명을 얻었다.
삼시세끼에서 손호준과 처음 만났을 때 그 전에 작품 등으로 만난 적이 없는 초면이었는데, [[존댓말]]을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친해진 후에는 편하게 했지만. 유해진이 14살의 나이차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상황이고 게다가 경력에 따라 위아래가 확실하다고 하는 배우계에서 말이다. 평소 인성으로도 좋은 얘기들이 흘러나왔던 만큼 후배연기자를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여준것.
[[차승원]]과는 동갑내기 친구로 --네?-- 신인시절 부터 같은 작품에 여러번 출연하면서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함께 출연한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환상의 캐미를 자랑하기도 했다. 예전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에서 차승원이 그를 처음 봤을때 감독에게 조용히 다가가 아무리 영화의 리얼리티가 중요해도 진짜 건달을 데려오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9월 11일]]에 열린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서 [[LG 트윈스]]로부터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2차 3라운드]]의 지명을 받고 입단한 강진고등학교 야구부의 내야수 [[최현준(야구선수)|최현준]]이 유해진의 조카로 알려졌다.
- 윤보라 . . . . 9회 일치
[목차]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박서준]]과 함께 뮤직뱅크 메인 MC를 맡았다. MC직은 공동 하차 후 [[박보검]]과 [[아이린(레드벨벳)|아이린]]으로 넘어갔다.
*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 삼성-두산의 경기에서 시구를 한 보라의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운동신경을 보면 저 허벅지는 역시 장식이 아니다. 여담으로 보라는 [[삼성 라이온즈|삼성]] 팬이라고 한다.
* 보라의 차가 [[티파니(소녀시대)|티파니]]의 [[아우디 A5|A5]]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사진이 찍혔는데, 보라의 차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레인지로버 이보크]]다.
|| [[Mnet]] || [[프로듀스 48]] || 진행 ||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808760|스페셜 MC]]. 그가 직접 방송에서 밝힌 그대로, "[[프로듀스 48|국민 프로듀서 대표]] [[이승기]] 선배님을 대신하여" 2차 경연대회(방송분량상 [[프로듀스 48/6회|6회]] 및 [[프로듀스 48/7회|7회]])진행] ||
||<|2> [[2012년]] || [[현대자동차]] || 벨로스터 터보 || 자동차 || [[https://m.youtube.com/watch?v=gyDTkcDvt2Y|화보 촬영 현장]] ||
- 이성희(배구감독) . . . . 9회 일치
[목차]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서는 감독 대행만 2번 맡았다. 2006년 1월 20일에 [[박삼용]]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했다. 2007-2008 시즌 중에는 [[이희완(배구)|이희완]] 당시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이 [[위암]] 투병으로 물러나자 다시 한 번 감독 대행을 맡아 정규 리그 3위를 기록,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대전 KGC인삼공사|KT&G]]를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을 꺾고 '''{{{#ffc000 우승}}}'''을 차지했다.
전년도의 우승으로 2008-2009 시즌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그는 베띠 데라크루즈를 앞세워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어창선]] 감독대행이 이끌던 ~~당시 굉장히 어수선했던~~ 흥국생명에 지며 준우승에 그쳤다. 2009-10 시즌에는 베띠가 떠나고 성적이 맛이 간 것을 후반기 합류한 [[데스티니 후커]]의 맹활약과 후반기 일정 덕[* 이 당시부터 GS칼텍스가 연고지를 서울로 옮겨 홈으로 [[장충체육관]]을 쓰게 되었는데, 전반기 때 홈 경기가 단 2번(그나마 한 번은 천안에서 했다.)에 불과했다. 즉, 반대로 후반기가 두 경기 빼고 모두 홈 경기였던 거.]으로 겨우 3위로 올렸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대전 KGC인삼공사|훗날 감독 자리를 맡을 팀]]에게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내주며 감독직에서 사퇴하였다.
2013-2014 시즌에는 새 외국인 선수 조이스의 활약에 힘입어 14승 16패(3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 진출[* 인삼의 홀수해 시작 시즌의 무조건 봄배구행 진리도 있었지만, 사실은 잘해서가 아니라 밑의 3팀이 못했던 게 [[이유]]. [[져주기 게임|옛 버릇]] 버리긴 커녕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대놓고 핵노답이었던 팀]], [[602 대첩|주장이 시구]]했더만 [[타어강]] 옮아서 [[김연견|병원 차릴 정도로]] [[김주하(배구선수)|부상 선수가]] [[정미선(배구선수)|속출해서]] [[수원 현대건설|강제 탱킹한 팀]],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이상의 [[경북 김천 하이패스|최악의 트레이드로 탱킹한 팀]]들 덕분에 거둔 3위였다. 즉, 이성희의 역량 발휘로 3위를 한 건 절대로 아니라는 소리다.]하였으나,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 스윕당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2014-2015 시즌은... '''말 그대로 2012-13 시즌의 재림'''. 뚜렷한 전력보강도 전무했고[* 다른 팀들이 FA 영입, 보상선수 이적 등으로 정신없이 오프 시즌을 보낸 반면 KGC는 조용한 것도 모자라 은퇴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김세영이 [[한유미]]와 같이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로 이적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겨우 1명([[문명화]])만 지명하는데에 그쳤다. [[안양 KGC인삼공사|농구단]]과 마찬가지로 KGC 고위층의 투자 의지가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떠돌 정도. --농구단은 [[양희종|누구]]한테 [[화폐|돈]]이라도 썼지...--], [[백목화]]와 [[이연주(배구)|이연주]]의 기량 하락, 조이스만 바라보는 팀 공격진,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센터 [[이보람]]의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겹치며 --늘어나는 [[흰머리]]처럼--[* 실제로 인삼공사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흰 머리였으나, 2016년 1월 9일, 검게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패만 줄창 쌓이면서 8승 22패를 기록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점에서 2점 모자라 최하위에 그쳤다.
특히 인삼공사 감독 부임 후 꼴찌에서만 빌빌거리는 등 부진한 성적 때문에 인삼공사 팬들 사이에선 '''돌성희'''라며 대차게 까이고 있는데, 특히 경기를 패하면 용병 탓만을 하는 그의 고질병 때문에 그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로부터 한해 전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모 팀]]의 [[류화석|모 감독]]도 이랬던 거 같았는데?--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헤일리가 복귀한 2월 16일부터 20일까지 2연승 행진을 하긴 했지만, 나머지 3경기를 모두 내주며 결국 '''7승 23패, 승점 22점'''으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헤일리 복귀 후 여전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성희의 질책은 계속되었고, 문제의 3월 2일 경기에서는 2세트 범실에 [[빡]]쳤는지 3세트에선 헤일리를 아예 빼버리기까지 했다. 그 사이 헤일리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 방송에 포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진정시키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웜업존에 처박아두는 비정함을 보인 이성희는 더 이상 그를 코트에 출전시키지 않았고 팀은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헤일리의 어머니까지 직관을 왔는데도''' 말이다. 진짜 이건 '''사람이 아니라 [[백정]]이다'''. 얼마나 감독의 질책이 누적되었으면 저렇게까지 안타까운 모습이 포착되었을까? 평소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성실한 선수에게 저런 되도 않는 [[군기]]를 시전하는 행동은 어떻게 봐도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이에 대한 답례로 자팀팬들에게는 물론이고 타팀 팬들에게까지도 대차게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인삼공사와 계약이 만료됐는데, 4년 동안 최하위만 3차례(6위 - 3위 - 6위 - 6위)나 세우는 무능함을 보여주며 프로 팀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말도 안되는 개[[막장]]스런 성적을 낸 탓에 재계약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저런 한심한 성적까지 낸 주제에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용병을 갈구는 고질병까지 감안한다면, 거의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인삼공사를 거쳤던 역대 감독들이 모두 금지어에 등극되어 있긴 하나, '''이 KGC란 팀 자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비박산내어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그래 외국인 선수에게까지도 폭언을 일삼는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감독은 이성희밖에 없다'''.
저렇게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이성희에게도 유일한 [[장점]]이 있긴 한데, 그것은 바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비디오 판독]]을 의외로 잘 활용한다는 것.[* 실제로 2016년 2월 1일,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챌린지]]로 두 차례나 오심을 이끌어냈다.][* 이와 180도 대조되는 사람으로는 [[박미희]]가 있다.] 이 말인 즉슨, [[심판]]의 오심을 잘 캐치해 낸다는 것이다. 오심을 이끌어서 오심의 달인으로 등극했다. 이는 어찌 보면 인삼공사의 수석코치로 영입되기 전에 실제 2010년 KOVO컵 대회부터 2010-2011 V리그 대회까지 재직한 경기감독관 경력에도 한 몫 하는 듯.
- 이연희(배우) . . . . 9회 일치
[목차]
[[http://m.hankooki.com/m_dh_view.php?WM=dh&FILE_NO=ZGgyMDE3MTAxOTAwMTAxMzEzOTAyMC5odG0=&ref=m.search.naver.com#_enliple|심지어 자타공인으로 인정받는]]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oyumeeee&logNo=220935048795&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sm%3Dmtb_hty.top%26where%3Dm%26query%3D%25EC%259D%25B4%25EC%2597%25B0%25ED%259D%25AC%2B%25EB%25AA%25A8%25ED%2583%259C%25EB%25AF%25B8%25EB%2585%2580%26oquery%3D%25EC%259D%25B4%25EC%2597%25B0%25ED%259D%25AC%2B%25EC%2597%25AC%25EC%258B%25A0%26tqi%3DTCz1uspVuqVsstlVdJ0ssssssjK-150893|타고난 모태미녀로 유명해서,]] [[http://m.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88240|학창시절에도 그 미모가 빛을 발했다.]] 그래서 그런지, 안티들이 여배우들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과거사진 문제나 성형수술 논란같은 문제도 그냥 종결시켜버릴 정도로 전혀 없다. 위의 링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성형수술 안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학창시절과 지금의 얼굴을 비교해도 거의 똑같다. 과거 모습은 아니지만, [[http://naver.me/5cFgCe6n|화장기 없는 민낯조차도]] 전혀 문제가 없다!
(2015년 드라마 <[[화정]]>에서 나온 오열 연기이다. 분명 차라리 자기를 베라고 오열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데, 얼굴 표정은 제발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은 억울한 표정(...)인 것이 개그 포인트.)||
물론 인신공격이나 모독성 발언들은 문제가 되고도 남겠지만, 연기력에 대해 지적(비판)하고 충고하는 글들마저 모두 악플로 치부하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는 늬앙스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을 해서 까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너는 내 운명(드라마)|발연기로 경쟁하던]](...) [[박재정]]이 [[https://www.google.co.kr/amp/news.kbs.co.kr/amp/view.do%3Fncd%3D2919210|"하하, 발연기라니요? 그런 말은 오히려 발한테 너무 미안하죠."]]라며 자신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모습과 대비되며 더 까였다. 더구나 박재정은 그 당시 OCN [[신의 퀴즈]]에 출연해 해당 회차에서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해서 그와 비교해서 발전할 기미가 안 보인다고 또 까였다.
무게감이 필요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아직도 불안한 발음, 발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 에덴의 동쪽에서나 유령에서나 발성과 발음에서 전혀 나아진 게 없어서 본인도 연기 연습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 언급되었던 '악플은 무시한다'는 태도가, 악플뿐 아닌 비판조차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질 여지가 많은데다가, 줄곧 발연기로 혹평을 듣던 다른 배우들인 [[황정음]], [[박재정]] 등이 점점 연기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지어 노력조차 안 한다는 이미지가 박혀버리게 되었다. 아예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는데 이연희보다 어리고 연기도 더 잘하는 후배들[* 심지어 연기에 도전하는 아이돌 멤버들까지.]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김태희]]로 대표되는 '''미모만 되고 연기력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던 선배들마저도 연기력 향상에 투자하게 되면서 배우로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 2008년 승용차 《쌍용자동차 액티언》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9회 일치
* 차원의 뒤틀림을 해결하기 위해 성채도시 코란도에 들린 일곱 개의 대죄 일행. 거기서 뜻밖에도 [[젤드리스]]와 맞딱뜨린다.
* 십계에 점령된 카멜롯을 해방시키기 앞서, 카멜롯을 둘러싼 "차원의 뒤틀림"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일곱 개의 대죄는 발생지로 지목된 성채도시 코란도에 먼저 들러 차원의 뒤틀림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코란도에서 기다리고 있는건 카멜롯에 있어야 할 [[젤드리스]]. 그는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생명을 조롱하며 [[멜리오다스]]를 도발했다. 함정임을 직감한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경고하나 멜리오다스는 격분해 뛰쳐나가 단숨에 젤드리스를 베어버린다.
* 멜리오다스는 마신족의 힘을 끌어냈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고 분노가 담긴 공격은 코란도의 입구 부근의 지형이 바뀔 만한 위력이었다. 어마어마한 파편이 발생해 사방으로 떨어지는데, 일부는 유성처럼 카멜롯 방향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서둘러 처리해야겠다고 하지만 멀린은 문제 없다고 한다. 파편은 일정한 지점에서 사라져 버린다. 수면에 떨어진 돌이 파문을 남긴 것처럼, 허공에 크고 작은 원이 생겨난다. 이것이 차원의 뒤틀림이다. 멀린은 이것이 카멜롯에 접근하는 모든 것을 막는 성가신 "벽"이라 말한다. 그리고 멜리오다스의 돌발행동이 결과적으론 차원의 뒤틀림의 위치와 강도를 확인한 셈이 됐다고 덧붙인다.
* 메라스큐라와 악연이 깊은 [[반(일곱 개의 대죄)|반]]이었다. 그는 그 검은 구체가 멜리오다스를 감싸는 걸 보고 메라스큐라의 속셈을 눈치챘다. 다른 일행보다 한 발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하지만 한 발 늦었다. 멜리오다스를 삼킨 구체가 코란도의 지면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반은 간발의 차이로 구체를 놓친다.
* 일어난 해골병들이 대죄 일행을 공격한다. 그러나 단순한 해골일 뿐이라서 지금의 일행에겐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다. 반이 맨 처음 덤벼든 녀석을 깨부수며 딸리 차원의 뒤틀림을 처리하고 단장을 구하러 가자고 목청을 높였다. 단원들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해골병들을 분쇄했다. 그 약해 빠진 호크 조차도 필살 "초지조 스트라이크"라는 필살기로 때려부술 수 있는 수준이었다.
- 정재학 (1856년) . . . . 9회 일치
정재학은 26살 연하인 사카모토 순지(板本俊資 1884~?) 란 일본인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사카모토는 20살이던 1904년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와 상점 점원으로 일하다 대구에서 잡화상을 차렸다. 사업이 번창해 대구역 앞에서 창고사업도 병행했다 . 이 때 [[경상농공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정재학과 안면을 트게 됐다. 정재학은 일본 젊은이로부터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는 [[자본주의]]경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다. 나아가 사카모토는 후일 [[대구은행]]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는 일본인들의 경영권찬탈 시도가 이어지자 경찰 출신의 일본인 지배인을 선임하는 등 경영권 방어전략으로 맞섰다. 또한 총독부와 일제강점기 중앙 은행이었던 조선은행이 자신을 행장 자리에서 줄기차게 몰아내려 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다. 주주총회에서 한국인 주주들이 정재학 행장에게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15일 9면 경제인록 = 금융계 일제하의 금융인</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7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7편</ref> 31년간 민간은행장 자리를 유지한 사례는 전 세계 어디 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 치하에 설립된 수많은 [[민족계은행]]이 있었지만 일제의 강제합병 과정에서 사라져갔지만 정재학 행장은 생의 마감 직전까지 저항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창조사, 1970) P.674 "조흥은행 되기까지"</ref>
그 흡수과정의 첫 단추는 1928년 3월 단행된 [[한성은행]]에 대한 정리 작업이었다. 총독부는 한성은행에 조선은행 출신 일본인 임원을 진입시켜 경영권을 장악했다. 일본인 임원의 진입은 조선은행의 일반은행에 대한 차입금 지원의 대가란 성격이 짙었다. 일반은행이 경영상 어려움으로 중앙은행 격인 조선은행으로 돈을 빌리기 위해 핵심 임원 자리를 일본인에게 내줘야 했다.
이 같은 일본인 임원의 침투전략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한국인은행은 일본인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어미새(국가)가 둥지를 틀고 품어줘야 새끼(자본주의)가 알을 깨고 나와 먹을 공급(은행)받아 성장할 수 있지만 남의 둥지를 독점한 뻐꾸기(총독부 산하 특수은행과 일본인은행)는 둥지의 원주인(조선인은행)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죽인다. 식민지자본주의 조선인은행의 모습이었다."고 강조했다.<ref>정태헌, <<한성은행의 경영권 대주주 구성추이와 일본인은행화과정>> 한국사연구 P148~149 2010년</ref>
앞서 두 가문은 1930년대 말 [[경상합동은행]]의 경영권 공방전에서 극한 대립상황에 놓였었다.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찬탈시도과정에서 정재학 가문을 돕기로 했던 민영휘 가문이 돌연 오구라에 지분을 넘김으로써 정재학가문에 크나큰 상처를 안겼다.<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 오구라는 다른 여러 주주들의 주식까지 매수 한 뒤, 경상합동은행 주식 4500주 가운데 39.4%를 차지하면서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
최대주주 자리를 잃은 [[정재학]]은 1940년 4월2일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f>동아일보 1940년 4월 9일 4면 합은두취사거</ref> [[정재학]]의 장례식은 1940년 4월8일 거행됐다. 당시 20대의 자동차가 영구차를 뒸따랐다고 한다. 전국 각지의 부호들이 대거 영면을 빌기 위해 찾아들었다고 전해진다. [[고승제]] 박사는 " 당시 그의 영구차 행렬 가운데 '고통정대부연일정씨재학공지구 ( 故通政大夫 延日鄭氏在學公之柩 )란 [[영건]](靈巾)이 내걸렸고 이는 상민으로 태어난 정재학이 양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상징"이라고 평가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0</ref>
일본제국주의 통치 시절 정재학 행장의 27년 은행경영 노하우는 해방후 아들과 손자에게 이어졌다. 일제가 강요한 민족자본은행 간 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계은행]] 자본의 총집결지였던 [[조흥은행]]에서 정재학 행장의 아들과 손자가 행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5대 [[정종원]] 행장과 해방 후 첫 한국인 행장에 오른 2대 [[정운용]] 행장이 각각 그의 3남이고 장손이다. [[정재학]]행장이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 투입한 민족자본은 정씨 가문 지분으로 상속되면서 [[조흥은행]]지분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ref name="ReferenceC"/><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412~431쪽 역대임원</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2003 )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 조응천 . . . . 9회 일치
[목차]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지를 받아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상대 후보인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는 [[남양주시]]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던 지역 토박이였던 데다가 지역구 관리를 상당히 갈고닦았던 반면, 조응천 후보는 [[남양주시]]와는 어떠한 연고도 없는 정치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최종 개표 결과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를 249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꺾고 신승했다.[* 조응천이 [[수동면]]과 [[화도읍]]에서 심장수에 밀렸지만 젊은 층 인구가 많이사는 [[호평동]]과 [[평내동]]에서 심장수를 앞섰다.] 이는 경기도 내에서는 최소표차로 당선된 것이다. 또한 정권 심판론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신승에는 [[문재인]] 전 대표의 막판 호소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선거 전날 문 전 대표는 본인 [[SNS]]에 유난히 두 사람이 눈에 밟힌다면서 [[국가정보원]] 출신의 [[김병기(정치인)|김병기]] 후보와 함께 조응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선거에서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었다. 아마도 문 전 대표가 여론조사 상황 등을 들으면서 두 사람의 당선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고 한 것 같다. [[국가정보원]] 인사처장을 지냈던 김병기 후보와 [[대한민국 검찰청|검찰]] 및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조응천 후보를 콕 집어 지지를 호소했다는 점에서, 이는 [[문재인]] 전 대표가 [[국가정보원]]과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행동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의 보좌진들을 의원실 보좌관으로 채용했는데, 그중에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연관된 인물들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조응천 의원이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국정원]]의 [[국정원 댓글 사건|범죄]]를 수사하다 피해를 봤던 인물이라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에 수사 총책을 맡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던 발언이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다스 뵈이다]]에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과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오히려 증인 보호 차원에서 이들을 채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 많은 사람들이 검사,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맡은 경력으로 인해 법조인으로 인식하고 있어 묻히는 느낌이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첫 현직 [[자영업자]] 출신 국회의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 중에는 [[자영업자]] 출신 의원이 몇몇 있다.] [[자영업]]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 세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 자영업자들을 위한 법안에도 적극 매진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친 바 있다. ~~법조계에서 좀 날리다가, 먹는 장사로 업종을 바꿔 보니 녹록치가 않더라고~~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00655&CMPT_CD=MSUB1_2015#cb|##]]
* [[TV조선]]의 [[강적들]]이란 프로그램에 나와서 밝힌 바에 의하면 조응천은 본래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차관급 공직 아무 곳에나 임명되어 기사가 모는 관용차를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어찌됐건 꿈은 이루었다고 인정하였다.[* 국회의원의 지위는 일반적으로 장관보다는 낮지만 차관보다는 높다.]
- 지석진 . . . . 9회 일치
||<#FFA500> {{{#FFFFFF ''' 신체 ''' }}} ||<#ffffff><(> 176cm, 71kg[* 몸무게를 밝힌 회차는 런닝맨 416화에서 최종미션 때 밝혔다.], [[B형]] ||
[목차]
이 사건 이후 지석진은 1994년 SBS '''[[MC]]'''공채 시험을 봐서 1기로 합격했으나[* SBS의 전문 MC 공채는 MBC의 시스템을 본따서 각종 프로그램의 '진행'을 전담하는 인재 선발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였다. 지석진과 공채 동기로는 리포터 [[조영구]], 2001년 최음제 사건으로 활동을 접은 배우 [[황수정]] 등이 있다.] 예능에는 기존 방송사에서 이적해 온 베테랑 코메디언들이 중용되었고 교양은 [[아나운서]]들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마땅한 활동영역이 존재하지 않자 결국 다시 개그맨으로 복귀했다. 다만 심형래 사건 당시 충격이 컸는지 꽁트 코메디 프로그램 출연은 거의 없고[* 지석진 본인도 가끔 예능에서 꽁트같은 걸 할 때 영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 왈 "나 꽁트 많이 안해봤어..."] 주로 예능 프로그램 리포터나 라디오 쪽에서 활동했다. 이 때문인지 MC란 이미지가 강하고 개그맨이란 이미지가 상당히 적다. 런닝맨에 출연하게 된 [[전소민]]은 "석진 오빠 개그맨이셨어요?"라며 화들짝 놀라기도 했을 정도.
MC 공채 출신답게 재치넘치는 입담이 전매특허로 [[송은이]]와 더불어 유재석의 방송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주로 [[사이다]], 여유만만, 진실게임[* 본래 유재석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지석진이 이어받아 진행했다.] 등 토크쇼 프로그램의 MC를 많이 맡았으며, 설날이나 추석 등의 특집 프로그램 MC 경력도 많다. 이 중 많이 알려진 프로그램은 '[[보야르 원정대]]', '[[스타골든벨]]'[* 스타골든벨에서는 메인보다는 현장에서 분위기를 조절하는 분위기 메이커역을 주로 맡았다. 소속사가 PD에게 로비를 한 것이 드러나서 잠시 구설에 올랐고 그 시기가 개편과도 맞물려서 잠시 프로그램을 하차한 적이 있지만 메인 MC가 여러 차례 교체됐음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 시즌2에 해당하는 '스타골든벨 1학년 1반'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실은 숨겨진 실세~~], '[[여걸 파이브]]', '[[여걸 식스]]'[* 여걸식스의 후속작 하이파이브에서도 MC를 맡았으나 프로그램 자체가 사실상 여걸식스의 끝물빼기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던지라 오래 가지 못하고 증발했다.], '[[런닝맨]]'.
네이버 지식in에서 '조동아리' 멤버(김수용 박수홍 김용만 지석진)들 중 누가 가장 기대되냐는 설문조사에서 35.9%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 순으로는 박수홍, 김수용, 김용만.]
주변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 중 하나로, 김용만과 함께 '''팔랑귀'''로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유재석이 '임팔라'란 별명을 붙인 것도 여기저기 온갖 소리에 나서서 반응하는 모습이 초원에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임팔라와 꼭 닮았다는 이유. 유명한 사건으로, 김용만과 해외여행 가서[* 황당한 것은 날짜 맞추다 보니 이게 '''허니문 코스'''였다고 한다(...).] 잠시 휴식하던 사이, 가이드가 사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도 현지 장사꾼들한테 속아서 ~~호구 왔는가~~ 가짜 악어 지갑 수십 개를 그 자리에서 샀다고 한다. 사실 압축 종이로 만들어진 지갑이라 물에 젖더니 순식간에 찢어졌다고... 유재석한테도 선물로 줬는데 모르고 썼던 유재석은 뒷주머니에 넣어 뒀더니 땀 때문에 퉁퉁 불어서 돈이랑 엉겨붙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모양. 이 방면에서 워낙 유명하다보니 세일즈맨들 사이에선 "김용만이나 지석진한테 물건 못 팔면 이 바닥 떠나라"는 말까지 돌았다고...이 때문에 주식이나 사업도 여러번 날려먹은 뒤로는 사업은 안하고 주식도 안전한 주식만 한다고 한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대표적 악역인 [[알버트 웨스커]]가 가끔 지석진과 닮은 외모로 언급된다. 재미있게도 지석진은 2015년 [[런닝맨 좀비 전쟁]]을 찍었는데, 웨스커처럼 팀원들과 건물에 들어갔다가 배신을 시도했으나 자신이 당해버린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지석진은 그냥 좀비가 되어 런닝맨 동료들을 바로 가로막지만 웨스커는 죽은 줄 알았다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부활해 흑막이자 최종보스로 나왔다는 것이다.
=== 하차/종영 프로그램 ===
- 진격의 거인/96화 . . . . 9회 일치
* 실책으로 작전의 리더였던 [[마르셀 갤리어드]]를 희생시킨 [[라이너 브라운]]. 정신없이 도망치다 어느 나무 아래 이르러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라이너는 그 장면으로부터, 현실로 부터 달아났다. 영웅이 되겠다던 맹세로부터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뻥 뚫린 벌판을 향해 그저 달리던 그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베르톨트 후버]]도, [[애니 레온하트]]도 없었다. 섬의 악마들도 없고 거인들도 없었다. 라이너는 혼자였다. 마르셀은? 죽었다. 그가 두고 오려고 했던 현실은 한치의 거리도 없이 따라와 있었다. 무서운 고통이었다. 라이너가 머리를 감싸며 엎드렸다. 절규가 터져나오지 않고 목구멍에서 멤돌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같이 잡아먹혔을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여전히 머리 속이 새하얗다. 막연히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오늘 여기서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였다. 거인의 이빨 대신 누군가의 매서운 발차기가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고통보다도 놀람 때문에 눈을 들어보니 달리느라 파김치가 된 애니와 베르톨트가 도착해 있었다. 애니는 아직 라이너를 팰 정도의 기력은 있었지만 베르톨트는 그대로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정말 애니와 베르톨트는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런 확신에 근거가 있냐고 라이너가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현실은 아팠다. 라이너는 거길 계속 파고들었다. 턱을 회수한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 넓은 섬을 헤매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녀석이 턱을 손에 넣었다면 더 빠르고 잽쌀 것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있을까? 속도에서 턱에 비할 수 있는건 피크의 차력의 거인 뿐. 베르톨트가 설사 힘을 얻었다 해도 바로 거인을 쓸 순 없을 거라 지적했다. 라이너는 다시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그 말을 한 베르톨트 자신은 처음부터 초대형 거인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같은 케이스가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턱의 거인을 회수하지 못한 채 탈진하기라도 하면, 그래서 또다시 무지성 거인에게 누군가 먹힌다면 그 실책은 몇 배로 불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미래는 뻔하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뭔가 "실적"이 필요하다. "시조의 거인"의 획득 말이다.
베르톨트는 그 서슬에 말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라이너는 턱을 걷어차이는 동안에도 그녀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의식이 좀처럼 날아가지 않았다.
* 애니가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한 덕에 예상보다 많은 무지성 거인이 몰려왔다. 라이너는 갑옷의 거인으로 변해 거인화를 푼 애니를 보호했다. 그리고 베르톨트를 벽 앞에 내려주었다. 이제 베르톨트의 차례다. 벽을 부수고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처음 마주한 벽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기가 약한 베르톨트는 금방 "내가 이런걸 파괴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다. 그의 눈 앞에 있는건 윌 마리아의 본체가 아니라 미끼 구역의 장벽, 방어선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그에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행은 두 개의 벽을 전부 돌파할 수 잇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무지성 거인들이 산사태처럼 쏟아져오고 있었다. 여기서 벽을 파괴하지 못하면 작전은 시작도 못한다. 일행은 벽과 무지성 거인 사이에 끼어 죽을 것이다.
* 사정은 몰랐지만 베르톨트는 위기를 넘겼다. 갑옷의 거인이 베르톨트를 낚아채고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대형의 거대한 몸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수챗구멍으로 물이 빠지는 것처럼 무지성 거인들이 흘러들어갔다. 라이너는 벽 위에 베르톨트를 내려놓고 탈진한 애니를 맡겼다. 그리고 벽 너머로 내려갔다. 자신의 차례였다. 벽 밑은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이 지옥을 좀 더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전하자, 갑옷의 거인이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어머니의 바람을 이루어주고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건 거짓된 희망이다. 어머니의 꿈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은 선택 받을 리가 없는 전사에 불과했고 원래는 오늘 죽었어야 했다. 마르셀이 아니었다면.
오늘 애니가 가져온 정보는 세간에 알려진 "프리츠 왕"이 가짜라는 이야기. 모든 것이 가짜다. 이 섬을 지배하는 체제는 전부 날조된 것이다. 표면에서 프리츠 왕을 연기하는 작자는 실권도 뭣도 없는 꼭두각시. "유미르의 백성" 조차 아니다. 백년 전 진짜 프리츠 왕가에 아첨해 특권을 받아낸 타인종계 엘디아인이다. 그들은 시조의 거인의 힘이 미치지 않아 비밀과 충성을 유지하는 대가로 섬 안을 지배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종합하면 그런 그림이 나왔다.
애니에겐 별로 좋은 방안같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한테 듣고 싶은 얘긴 아니겠지만, 하며 입을 열었다. 고작 이런 이야기를 조사하는 것 조차 2년이 걸렸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라이너는 그동안 자신들은 나무나 뽑고 있었고 왕도를 왕래할 수 있는건 애니 밖에 없었다고 대꾸한다. 애니는 좀 더 핵심적인 부분을 지적했다.
- 차르 . . . . 9회 일치
그리하여 후기의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는 칭호화 되어, 공동 황제나 차기 황제(사실상 [[황태자]])가 사용하는 제2위 칭호가 되었다. '카이사르' 칭호에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서 이어지는 '로마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가부장제'의 부자상속에 따라서 계승하는 상속자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앞으로 '황제권'을 세습하게 될 차기 황제의 칭호로서 적합한 것이다.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서 로마 황제들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카이사르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카이사르 칭호는 점차 위상이 하락하였다. 이는 고대세계의 가부장제에 따른 상속 계승보다, 종교적 권위가 중요하게 된 비잔티움 시대의 사회상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렉시오스 1세가 황제의 부칭으로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kratōr)를 제정하면서 제3위격의 칭호가 되었고, 데스포테스(Despotēs,[[전제공]])가 지정되면서 제4위격까지 떨어졌다. 황제가 보유하는 칭호의 위격순은 바실레우스->데스포테스->세바스토크라토르->카이사르 순서가 된 것이다. 이렇게 격식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고위의 칭호로 여겨졌다.
이 칭호는 드물게 외국의 군주에도 수여되었으며, 슬라브어를 따라서 '차르'라고 쓰게 되었다. 불가리아의 시메온 대제가 비잔티움 황제로부터 해당 칭호를 받은게 그 시초다. 이후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이 해당 칭호를 사용했고,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통일한 모스크바 대공이 해당 칭호를 썼다.[* 그리고 이게 가장 유명하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군주의 칭호를 그냥 서구식의 황제칭호인 임페라토르로 바꿨지만[* 여성의 경우엔 임페라트리자] 전부 그냥 차르라 불렀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카이사르는 제4위 까지 권위가 떨어진 칭호였으나, 비잔티움의 쇠퇴와 멸망 이후 슬라브 사회에서 차르는 황제와 별 다를 바 없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슬라브인들은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을 차르그라드라고도 하는데, 차르의 뜻을 생각해보면 황제의 땅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이 황제의 영역일때 그들이 차르칭호를 사용한걸 보면 어찌보면 그건도 맞다고 할 수 있다.
- 차오루 . . . . 9회 일치
|이름 = 차오루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better_me_caolu|차오루}}
'''차오루'''({{zh|s=曹璐|p=Cáo Lù}}, [[1987년]] [[8월 30일]] ~ )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대구광역시|대구 출신]] [[가수]]로 과거 걸 그룹 [[피에스타 (음악 그룹)|피에스타]]의 구성원이었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출신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인 [[먀오족]](묘족)이며, 2004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시]]에서 솔로로 데뷔하여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10대 신인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404436 ‘라디오스타’ 피에스타 차오루, 중국 CCTV서 10대 신인상 받았다고?] - 스포츠경향</ref>
[[대구광역시|대구]]에서는 [[장나라]]와 같은 기획사에서 활동했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555331 차오루 "중국 활동당시 장나라와 같은 소속사"] - 엑스포츠뉴스</ref> 장나라가 [[대한민국]]에서 중문 에디션 음반인 《비상》을 발매할 당시 홍보 활동을 도우면서 [[대한민국]]과 인연을 맺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0067007 장나라, 이번엔 합류 대사?] - 쿠키뉴스</ref>
*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2008학번)<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976276 '라디오스타' 차오루, 학교 동기 “박신혜 롤모델 삼아"] - 세계일보</ref>
* {{웨이보|caolufiestar|차오루}}
* {{인스타그램|better_me_caolu|차오루}}
* {{트위터|FIESTAR__Caolu|차오루}}
- 차일목 . . . . 9회 일치
|선수명 = 차일목
|드래프트 순위 =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9년]] 2차 5라운드([[해태 타이거즈]])
'''차일목'''(車一木, [[1981년]] [[1월 26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포수]]이자,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재활군 코치이다.
[[2014년]] [[4월 9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이정훈 (1977년)|이정훈]]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 내 승리를 이끌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827159 차일목, 넥센전서 개인 통산 2호 만루포 폭발] -OSEN</ref>
2015년에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였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511271413222931 차일목 한화행, KIA 떠나는 2009 우승 멤버] -뉴스앤미디어 </ref>
* [http://www.statiz.co.kr/player.php?opt=1&name=%EC%B0%A8%EC%9D%BC%EB%AA%A9&birth=1981-01-26 차일목 - 스탯티즈]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연안 차씨]]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9회 일치
토트넘의 집은 우리 집하고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고 구조나 면적도 거의 비슷하다. 그렇게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앞마당이 이쪽이 좀 넓었는데 그건 차고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뒷문이 따로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문제의 차고는 차고문이 활짝 열려 있고 차는 보이지 않는다. 가만 토트넘네 차는 분명…… 그래 '''다이너스티'''. 분명 그런 차였다. 토트넘이 생전에 애지중지하면서 끼고 살았다. 이 불쌍한 양반은 죽어서도 편히 눕질 못하더니 아끼던 차까지 털린 것이다.
볼건 다 봤으니 슬슬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겠다. 이대로 탐색을 계속 하려면 이 앞마당에서 해야할 일이 몇 가지 있다. 안전을 확보하려면 우선 저 차고문을 닫아야 하고 멍때리고 있는 저 녀석도 처리할 필요가 있겠다. 아니면 번거로운 일이지만 일단 돌아가서 태세를 정비한다거나. 어느 쪽이든 리스크는 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차고문을 닫는다.]]
- 청송군 . . . . 9회 일치
[목차]
군청 소재지인 청송읍보다 진보면의 교통사정이 훨씬 좋다. 진보면을 관통하는 [[34번 국도]]가 청송 관내 국도 중 포장이 가장 빠른 [[1975년]]에 이루어진 곳이다. [[동서울터미널|서울]], [[부산종합버스터미널|부산]],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북부정류장|구]], [[안동터미널|안동]], [[영천시외버스터미널|영천]], [[영덕군|영덕]], [[포항시외버스터미널|포항]] 방면으로 시외버스가 운영되지만, 영천을 제외하면 어느방면이든 진보 쪽의 횟수가 훨씬 많다. 이는 인접한 [[영덕군]], [[영양군]]과 [[안동시]], [[서울특별시]] 등지를 잇는 시외버스들이 모두 진보를 경유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송읍과 안동, 서울을 잇는 시외버스도 진보를 경유한다. 안동으로 가는 시외버스편이 그나마 배차가 많은 편이다. 동서울 및 부산에서 청송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주왕산까지도 가니 참고. 다만 진보면에서도 안동이나 영덕으로 갈땐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U자 코스이니 자가용은 운전에 조심할 것. 가랫재(안동 방향)와 황장재(영덕 방향) 두 고갯길 모두 터널 계획이 있다. 터널이 개통 되면 기존의 시간에서 10분 정도는 가볍게 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청송읍 방면은 [[동대구터미널]] - 진보면, 파천면, 부동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소재지 포함. 진보면은 하루 1대 첫차만 운행하고 부동면은 면소재지가 아닌 [[주왕산]]으로 하루 2회 운행한다.
[[농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사과]]와 [[고추]]가 있다. 실제로 [[청양고추]]가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의 '[[청]]', [[영양군]]의 '[[양]]'을 따서 이름지었다는 [[가설]]이 있다. [[청양고추]] 문서 참고. 그 외에도 [[담배(식물)|담배]]와 [[파프리카]], [[야콘]]등이 있다.
||1||청송초등학교[* 1912년 설립된 역사 깊은 학교이며, 특이하게도 졸업생의 졸업회차와 출생년도가 일치한다. 가령 90년생은 90회 졸업생. 단, 빠른년생은 제외 ]|| 청송읍 중앙로 229-10||
||6|| || 청송자동차정보고등학교[* 자동차계열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 부남면 대전로 66 ||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 하이큐/256화 . . . . 9회 일치
* 점수는 1점차까지 따라잡긴 하나 [[이나리자키 고교]]가 도망치면서 동점 만들기에는 이르지 못한다.
* 숨겨진 "괴짜 속공 킬러"로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의 괴짜 속공을 칼같이 차단한 [[츠키시마 케이]]. 중계진은 그를 [[카라스노 고교]] 최장신이라 소개하며 상대 코트를 끝까지 잘 살핀 냉정한 플레이를 칭찬한다. 관중석에서 보고 있던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도 방금 전 블록을 호평하며 자신이었으면 놓쳤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여친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채지 못한다. 다이쇼의 설명이 이어진다.
* 점수는 17 대 16. 1점 차. 아즈마네의 2회차 서브를 앞두고 이나리자키의 첫번째 TO 신청. 벤치로 돌아가면서 타나카는 츠키시마가 "든든하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맹활약한 츠키시마는 들뜬 기분이 아니다.
* TO 종료. 아즈마네의 2회차 서브. 그러나 물리적인 흐름이 끊긴 탓에 감을 잃어 버렸다. 네트에 걸리는 공. 스코어는 18 대 16으로 다시 2점차. 추격세가 주춤한다. 한참 기세를 올리던 카라스노 응원단에서 실망한 한숨이 막 터지려고 하는데, [[타나카 사에코]]가 한 발 먼저 "한숨 금지"를 선언하면서 풀죽음을 방지한다.
* 츠키시마가 공수를 가리지 않고 날뛴다. 벤치의 야마구치와 히나타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활약. 중계진의 말처럼 그야말로 "빛을 발한다". 그런데 이런 파인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그걸 성공시킨 세터와 스파이커는 그 흔한 하이 파이브 조차 하지 않았다. [[스가와라 코시]]도 그걸 지적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언제라도 후려칠 것 같은 썩은 눈빛 교환. 이 눈빛에 관해서는 엔노시타가 해설한다. 츠키시마는 "잘 되고 있는건 인정하지만 거슬린다"는 눈빛, 카게야마는 "니가 노려보니까 나도 노려보겠다"는 눈빛.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걸 읽어내는 엔노시타가 더 신기한 모양이다.
* 18 대 17. 다시 1점차. 우카이 코치가 여기서 승부수를 띄운다. 로테이션이 돌아 니시노야가 들어가고 히나타가 들어온다. 간만에 얼굴을 비춘 바보 커플이 "블록 잘하는 애", 츠키시마가 후위로 내려가고 히나타가 올라온 상황을 "10번이 다시 필살기를 날릴 수 있게 된 상황"이라고 간략하게 요약한다.
* 그 말대로 히나타가 기회를 잡은게 맞았다. 히나타가 전열에 나오자 아츠무가 "카라스노 블록 허름하다~ 쉽게쉽게 단숨에 따자~"는 즉흥곡을 불러 도발한다. 히나타가 도끼눈을 뜨는데 사와무라는 도발에 넘어가지 말라고만 하지 틀린 말이라고 부정해주지 않는다. 물론 카게야마는 "맞는 말이긴 하다"고 확인사살. 심지어 응원단의 시마다 조차 "블록보단 득점꾼"이라며 애초에 블록을 포기한 말만 늘어놓는다. 도대체 아군이 없다.
- 하이큐/264화 . . . . 9회 일치
* 부단히 쓴맛을 보았던 [[이나리자키]]전에서도 타나카는 다시 기운을 차려서 공격에 나선다. 그는 [[스나 린타로]]의 블록도 따돌리고 마침내 득점에 성공한다.
* 부진을 떨쳐낸 타나카, 그리고 1세트를 가져가는 [[카라스노 고교]]. 경기를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과 동료들 조차도 어이없을 정도로 굉장하다 여긴다.
* 계속되는 부진에도 불구하고 [[히나타 쇼요]]의 칭찬에 힘을 얻은 [[타나카 류노스케]]는 자신은 평범한 선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닥을 보고 좌절하고 있을 여유 조차 없다고 자신을 다잡는다.
* 하루 전. 봄고 1일차를 마친 [[카라스노 고교]]의 숙소에선 타나카의 소꿉친구인 [[아마나이 카노카]]가 화제에 올랐다. 2학년 [[엔노시타 치카라]], [[나리타 카즈히토]],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린 라이트"라며 이대로 타나카에게 여친이 생기겠다고 수다를 떨었다. 정작 당사자인 타나카는 왜 그렇게 되냐며 "이기지도 못할 상대에겐 덤비지 말아야 하냐"고 항변한다. 자신에겐 [[시미즈 키요코]]라는 반한 상대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동기들은 하나같이 회의적이다. 그보단 애초에 타나카가 진심으로 키요코를 좋아하는 건지도 처음 알았다는 반응. 타나카는 카노카가 그린라이트라고 갑자기 그쪽으로 갈아타냐는 말이냐고 따진다. 그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동기들의 여론은 대체로 그런 편. 나리타는 "고백 받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인다. 잠자코 있던 [[니시노야 유]] 조차 "차려진 밥상을 안 먹으면 남자도 아니다"고 드립을 치며 타나카를 압박한다. 타나카로서도 그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도 착하고 예쁜 누님들이 놀자고 하면 얼씨구나 따라나서겠지만, 이건 문제가 좀 다르다, 그렇게 절규했다.
언제나처럼 체육관으로 달려오던 키요코. 교복에 실내화 차림으로, 운동화는 두 손에 들고 있었다. 항상 제일 먼저 체육관에 도착하는게 그녀의 일과였고 그날도 그런 줄로만 알고 멋지게 체육관으로 뛰어들었다. 그때가 타나카와 처음 마주친 순간이었다. 약간 민망해하는 키요코에게, 타나카는 인상적인 첫마디를 던졌다.
* 그리고 오늘. 봄고 2회전 vs [[이나리자키 고교]]전. 1세트를 따오느냐 마느냐 분기점에서 타나카가 힘차게 외쳤다. 오늘의 불운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제 밤의 일도, 그때 했던 말도 그럴 것이다. "[[하이큐/246화|나한테는 마음에 담아둔 여성이 있다.]]". 이제 카노카가 인정할 차례였다. 그녀는 옆에서 "류 쨩"의 활약을 칭찬하고 있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 홍진기 . . . . 9회 일치
'''홍진기'''(洪璡基, [[1917년]] [[3월 13일]] ~ [[1986년]] [[7월 13일]])는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언론인이다. 아호는 '''유민'''(維民)<ref>{{한국민족문화대백과|E0064442}}</ref> 배우자는 [[김윤남]](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딸)이다. 당시 천재라 불리었으며 일제 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이 일본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선인 차별정책에 의해 그의 꿈인 교수가 될 수 없게되었고 이후 법을 공부하여 전주에서 판사를 역임하였다.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성=유진오|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정부의 법무부 차관, 장관, [[대한민국 내무부|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법무부 차관이던 1954년 4월부터 7월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 정치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2/12/200802120500004/200802120500004_1.html | 제목=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저자=최운상 | 뉴스=신동아 | 출판사=동아일보 | 날짜=2008-02-01 | 보존url=http://archive.is/DTdrZ | 보존날짜=2016-08-18 }}</ref>
| 차남 || [[홍석조]] || [[1953년]] [[1월 8일]] || || [[BGF리테일|보광훼미리마트]] 장, 전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 차녀 || [[홍라영]] || [[1960년]] [[1월 10일]] || || 삼성문화재단 상무
|직책 = [[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법무부 차관]]
[[분류:혁명재판 기결수]][[분류:1917년 태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한국의 일제 부역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내무부 장관]][[분류: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서울무학초등학교 동문]][[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이승만]][[분류:남양 홍씨 (당홍)]]
- 히나타 쇼요 . . . . 9회 일치
[[목차]]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네코마 고교]]와의 연습 시합에서 [[코즈메 켄마]]의 예측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네코마 고교에서 가장 민첩한 [[이누오카 소우]]에 의해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의 속공이 점점 통하지 않게 된 것. 그러나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믿고 계속 공을 올려 보내주나, 히나타가 평소와 달리 토스를 보고 스윙함으로써 공격은 실패한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다이렉트 딜리버리로 올려 주었던 공을 인 다이렉트 딜리버리[* 원래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손바닥 핀 포인트에 맞춰서 바로 토스를 보내줬다. 왜냐하면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 이걸 약간이나마 시간차가 생기도록 토스해서 히나타가 스스로 판단해서 스파이크 할 수 있도록 한 것. 이걸 계기로 히나타는 보통의 속공과 괴짜속공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로 주어 다른 공격 방법을 찾아내었다.
이후 꾸준한 연습으로 신 속공의 성공률도 점점 높아져가고, [후쿠로다니 학원]의 에이스 보쿠토 코타로에게 페인트와 리바운드 플레이를 전수받아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해져, 차차 최강의 미끼가 아닌 차기 에이스(작은거인)의 길을 밟게 될듯 하다. ~~허나 아직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기싸움에서 밀린다.~~ ~~한 번은 아사히가 쫄았고, 한 번은 히나타가 쫄았으니 1대1이다.~~
* 여타 다른 소년만화의 열혈계 주인공들과 다르게 의외로 겁이 많다. 특히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키 큰 사람 앞에만 서면 잔뜩 위축되서 겁을 집어먹고 다른 키 큰 사람 뒤에 숨는다.~~모에~~ 그랬던 놈이 시합에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서 자신이 겁먹었었던 그 큰 놈들을 상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 눈 희번뜩이고 달려드는 것이 포인트. 이 때의 기백과 기세가 굉장해서 상대팀의 강자들조차 살짝 움찔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런 그를 보고 '워밍업 존에서 갈망을 가득 쌓고 올라 온 작은 짐승'이라 표현하며 잔뜩 의식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 공식 인기투표에서 1회에선 2위였고, 2회에선 '''1위'''를 차지했다.
*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동생 히나타 나츠와 사이가 굉장히 좋다. 항상 놀아달라고 보채는 모양.[* 소설판 1권에서 볼 수 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8회 일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K리그의 승강제가 도입된 2013시즌부터 적용된 공식경기이며 리그 외 대회의 성격을 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나온 기록은 클래식-챌린지 어느 쪽에도 기록되지 않는 대회이기도 하다. 이 승강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는 차기 [[K리그 클래식]]에 등록되고, 패자는 [[K리그 챌린지]]에 등록된다.
2013시즌은 클래식 팀이 14개팀, 챌린지가 8개팀으로 챌린지의 운영일정을 짜기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팀 수가 적었다. 이에 클래식에서는 최하위 2개팀이 무조건 강등되고 차하위 1개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챌린지에서는 리그 우승팀만 승강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수 있었다.
클래식 팀은 스플릿 B의 차하위 팀(=11위)이, 챌린지 팀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차기 K리그 클래식 진출을 두고 겨루게 된다.
1. 경기진행은 [[홈 & 어웨이]]를 골자로 한다. 1차전은 챌린지 팀의 홈에서 치루고, 2차전은 클래식 팀의 홈에서 치루게 된다.
1. 연장전도 무승부일 경우에는 승부차기로 결정이 난다.
이런 이유로 팬들에게 강등은 우승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전은 한시적으로나마 [[슈퍼매치]]를 뛰어넘는 라이벌전이 탄생하게 된다.
- 고경표(배우) . . . . 8회 일치
[목차]
연기도 평가가 좋은 편이다. 명량에 출연했던 배우 [[최민식]]은 인터뷰에서 고경표가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제몫을 다했다며, "고경표가 눈물을 글썽이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칭찬하기도 했다([[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72510325039379|배우 최민식 인터뷰]]) 또한 영화 [[무서운 이야기 2]]를 본 배우 [[김태우(배우)|김태우]]가 "쟤는 어떻게 노팬티 상태에서 바지 지퍼 올리는 것도 저렇게 실감나게 연기해?"고 했다는 깨알같은 칭찬은 덤. 차이나타운을 함께했던 배우 [[김혜수]]는 "숨기려해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한 친구다"라는 평가를 하였다.
특이하게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2014년 이후 [[박보검]]과는 여러 작품에서 만나고 있다. [[명량]], [[내일도 칸타빌레]], [[차이나타운(2015)|차이나타운]], [[응답하라 1988]], [[꽃보다 청춘]] 등.
[[블랙넛]]이 여성혐오 논란으로 비판을 받고있을 때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블랙넛의 노래가 좋다는 글과 블랙넛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스트리밍 인증샷을 올려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사람들이 인스타에 고경표와 고경표의 가족에게 [[모욕죄|모욕]]과 [[명예훼손죄|인신 공격성 테러]]를 가하였고, 설전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사실 해당 노래는 여성 혐오에 대한 가사로 논란이 일었던 노래조차 아니였다. 이후 사과글을 게시한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일부 네티즌들의 의도적 판 키우기와 언론인들의 가쉽성 보도 때문에 고경표 일베설이라던가, 여성혐오자라더라 같은 [[냄비근성|루머가 돌게 된 것이다.]]
2015년 11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화 [[도리화가(영화)|도리화가]] 시사회 현장에서 [[류승룡]]이 "[[수지(1994)|수지]]를 보러 촬영이 없어도 현장에 갔다", "여배우의 덕목은 기다림과 애교다" 등의 발언을 비판하며 쌍욕으로 점철된 [[메갈리아]]의 글을 링크하며 "이게 무슨 헛소리냐", "저 댓글 쓴 사람들 일상생활 가능한가?"라는 글을 올렸다가 비난을 받았다. 당시 현장에 응원차 방문했었다던 고경표는 이에 대해, 선배를 감싸는 목적에서 글을 올렸다고 해명했다.
|| [[차이나타운(2015)|차이나타운]] || 치도 || 조연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8회 일치
[[아마지키 타마키]]는 벽에 붙어 있는 주제에 잘도 그 말을 듣고 "그게 너희의 한계"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은 프로 복서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여기긴 해도 뭐가 어떻게 대단한 건지는 모른다. 밀리오가 지금껏 쌓아온 연구와 노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강하다, 무적이다"라고만 여긴다면 대결은 커녕 한 방 먹이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 미도리야 다음으로 [[이이다 텐야]]가 당하고 나머지 인원들도 차례차례 다운 당한다. [[하도 네지레]]는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타마키에게 "토리가타는 당해졌다"고 말을 건다. 타마키는 그는 원래 강했고 오히려 "힘조절"하는 걸 배우는게 좋겠다고 대꾸한다. 마지막으로 키리시마와 [[오지로 마시라오]]까지 쓰러지면서 대련은 종료. 밀리오의 일방적인 승리다.
밀리오의 개성은 사실 엄청난 패널티가 있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개성을 발동하는 중에는 모든 감각이 차단된다. 우선 공기도 그의 몸을 그저 통과하므로 "호흡이 불가능"하다는 엄청난 패널티가 생기고, 빛이 망막을 그냥 통과해서 시야도 차단된다. 물론 소리나 냄새도 마찬가지.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로 허공을 허우적대며, 그저 "추락"할 뿐인 감각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 이들의 생각대로 처음엔 밀리오도 개성을 활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금방 남들보다 뒤쳐졌으며 옷 조차 제대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위"를 노리려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성의 약점을 끊임없는 연구와 "예측"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가능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보다 대련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직업체험에서는 말하자면 "손님"으로서 견학하는 것 뿐이지만, 인턴에 참가하면 한 사람의 "사이드킥"으로서 "프로"로 취급된다. 그건 엄청난 공포와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지만, 반대로 학교에선 절대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아직도 노망기가 좀 있는 그랜토리노는 미도리야의 목소리를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미도리야도 이제 익숙해져서 무시하고 대화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랜토리노는 따로 착수한 일이 있어서 인턴십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 말고는 지명도 못 받은 엉터리 계승자"라고 가열찬 디스를 날린다. 하지만 역시 내성이 생긴 마당이라 가볍게 넘어가고 "엉터리 계승자라 뭐든 하고 싶다"고 대꾸한다. 그랜토리노는 웃으면서 "그런 도움이라면 스승에게"라며 [[올마이트]]의 인맥을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예를 들어 그의 "사이드킥"도 있다고 하는데...
- 디도(성우) . . . . 8회 일치
[목차]
다만 턱시도 가면은 본인이 노력해서 매 시리즈마다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등 현재는 어느 정도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 톤이 내향적인 캐릭터마냥 다소 힘이 빠지고 여려지는 문제점은 끝까지 개선되지 않은 것[* 이 때문에 [[이지현(성우)|이지현]]의 완전히 안정된 [[츠키노 우사기|세일러문]] 연기에 비하면 호평이 덜하다. 이지현의 경우 밝은 소녀 캐릭터에 특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완전히 안정된 세일러문 연기는 [[최덕희|추억 보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혼연일체 수준이었다.]과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트 캐치 프리큐어!]]의 [[묘도인 사츠키]][* 이 쪽은 병약 속성이라서 여린 톤의 목소리가 어울린다.]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보면 차분한 캐릭터 중에서도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보다는 여리고 내향적인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사실 이는 디도 본인이 진지한 캐릭터에 완전히 적합한 성우가 되었다기보다 비록 디도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레온(턱시도 가면)의 캐릭터성이 상대적으로 디도가 맡기에 적합하게 바뀌어간 게 크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1기|1기]]의 레온은 쿨시크한 성격과 장난기가 공존하는 캐릭터였는데 디도는 비슷한 시기에 맡은 듄 또한 혹평을 들은 것처럼 쿨시크한 캐릭터에서 좋은 평을 들은 적이 없었으며 그 때문에 1기에서 디도의 레온 연기는 장난기만 살아있고 쿨시크함과는 거리가 먼 가벼운 느낌이라서 대차게 까였다. 그러다가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2기]]를 기점으로 점차 레온의 성격이 부드럽게 바뀌어가고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3기]] 이후로는 개그로 망가지는 일도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디도가 소화하기에 편한 캐릭터성이 되었던 것. 부드럽고 온화하거나 소심한 캐릭터 내지는 밝고 활발한 개그캐릭터에 특화된 디도의 입장에선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한 캐릭터성도 어디까지나 1기 때에 비해 그럴 뿐이지 기본적으로 레온은 시종일관 온화한 캐릭터도, 시종일관 코믹스러운 캐릭터도 아니고 1기 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지라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가 KBS판 성우인 [[김일(성우)|김일]]처럼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간 톤이 되어야 하는데 다소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된 건 아쉬운 부분. 김일이 1기에서의 쿨시크한 레온과 2, 3기 이후로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하는 레온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더해진다.] 그 이후로 비슷한 캐릭터는 [[키즈 CSI 과학수사대]]의 [[키즈 CSI 과학수사대/등장인물#s-3.1|고진]]을 한번 더 맡았는데 1기 때의 레온 연기에 비하면 평가는 나았지만[* 하지만 디도가 진지한 배역을 맡을 때마다 나오는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그렇게까지 큰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레온과 고진 이후로는 진지한 배역에 많이 캐스팅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후에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 맡은 [[이고르(가면라이더 고스트)|이고르]]의 경우 처음에는 나름 진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28화를 기점으로 점차 개그형 악역으로 변해갔으니[* 애초에 이고르를 연기한 배우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도 중후한 카리스마 악역보다는 가볍고 얍삽한 3류 악역에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특촬물을 포함한 외화 더빙의 특성상 담당 배우의 외모까지 고려한 캐스팅을 해야 했으니 가벼운 인상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에 맞춰 가벼운 배역에 특화된 디도가 캐스팅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까지도 더빙 업계에서는 그를 진지한 배역에 그다지 적합한 성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원판 세일러문이 종영된 후에는 더 이상 애니메이션에서 새롭게 주연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이 대원방송에서 더빙되었다면 턱시도 가면 역할로 계속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투니버스에서 자막으로 방영하는 바람에 그나마 맡고 있던 주연 캐릭터에서도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주인공 송진우를 맡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원판 세일러문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맡은 다른 성우들([[치비우사|꼬마 세라]] 역의 [[이유리(성우)|이유리]] 제외) 및 [[김일(성우)|김일]]의 또다른 대표배역인 [[원피스(만화)/애니메이션|원피스]]의 [[상디]] 역할을 이어받은 [[박성태(성우)|박성태]]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커리어도 초라하다 보니 디도의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통 특정 배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 심하게 혹평을 듣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많이 나아지면 해당 성우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 [[이용신]]의 [[코야마 미츠키|루나]]나 [[서유리]]의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엔비]]처럼 해당 성우를 대표하는 배역으로 자리잡아 그 성우가 스타 성우로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디도는 세일러 문 시리즈에서의 레온 연기가 후반에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성우와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세일러 문은 디도의 출세작이 되지 못했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아진 레온 연기조차 KBS판의 김일과 같은 큰 호평은 끝내 못 받았던 점이 한 몫한 셈. 결국 하트 캐치 프리큐어와 대원판 세일러문이 크게 작용 한 듯하다.
[[김자연]] 성우가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으로 인해 [[티나(클로저스)|티나]] 배역을 하차한 후 김자연을 위로하는 트윗을 올렸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adio_actor&no=288586&page=5|#]] 하지만, 옹호가 아닌 위로글이기만 해서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 마기/343화 . . . . 8회 일치
* 알리바바가 "일 일리가 봉인된 차원에 갔었었다"고 말하자 정색하며 혹시 일 일라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이 없더냐고 매달린다.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 솔로몬 왕의 의지라고 주장한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없이 성궁에 가는 것이나 한 번 루프로 환원되고도 살아돌아온 일을 들어 자신이야 말로 솔로몬의 의지가 택한 자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다윗이나 [[아르바(마기)|아르바]], [[우고(마기)|우고]] 조차 그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생겨났을까? 그거야 말로 솔로몬의 의지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 자신의 생존과 성공이야 말로 선택받은 증거라고 믿는 신드바드는 그렇기 때문에 알라딘 일행의 단순한 설득으로는 물러서지 않을 거라 말한다. 알라딘은 다윗이나 아르바가 "그런 동료"인 거냐고 재차 묻고 신드바드는 다윗이 호시탐탐 자기 목을 노리는, 대등에 가까운 동료라고 둘러댄다.
>일 일리가 봉인된 차원에
아르바는 정색하며 "그분"을 만났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데, 아르바는 다시 냉정한 태도로 돌아오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허튼소리 취급한다. 그러나 알리바바가 차분히 설명을 하자 점점 귀를 기울인다.
알리바바도 자신이 왜 거기까지 갈 수 있었는지 자세한 원리는 모른다. 단지 베리알의 마법 덕분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셋타가 나름대로 추정한 가설도 들려주는데 아르바와 그녀의 일당이 매그노슈타트에 차원 구멍을 낸 탓에 차원의 구분이 흐릿해진 영향일 수도 있다. 거기까지 듣자 아르바도 더이상 흘려듣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그곳을 일종의 "사후세계"라고 부르는데 자신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현세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 알리바바는 그때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백룡과 싸우다 패해서 망연자실했던 그는 정신을 차려보니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기묘한 공간에 있었다. 우두커니 정좌하고 있을 뿐인 그는 이윽고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기록영상처럼 보게 되었다. 그건 거기 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몇 십, 몇 백 번이나 그 영상을 보면서 "아무 것도 못했다"는 좌절감과, "나는 죽었다"는 자각이 자라났다. 그는 다른 이들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좌절감을 삭히고 있었다.
- 마기/344화 . . . . 8회 일치
* 알마트란의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것 조차 그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았다.
* 결국 그의 계획대로 차원이 열리고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라는 "특이점"에 연결되어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 [[알리바바 사르쟈]]는 [[아르바(마기)|아르바]]에게 자신이 사후세계,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겪었던 일을 알려준다. [[연백룡]]과 싸우다 패한 것만이 기억에 있는 그는 갑작스럽게 아무 것도 없고 시간 조차 흐르지 않는 곳으로 날려져 당황하지만 곧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던 삼인조와 말문을 트는데 이들은 [[알마트란]] 시대 솔로몬 대왕의 동료였던 [[와히드]]와 [[셋타]], 그리고 와히드의 자식 [[테스]]였다.
* 다윗은 두말할 것도 없는 원수고 증오해 마땅한 대상이건만,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생전의 감정을 급격히 잃었다. 즉 지금 알리바바가 보는 것처럼 무기력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매우 의기양양한데다 쾌활하기까지 했다. 그는 "확신"을 가진 채 "예상대로 반타전의 특이점이 연결됐다!"고 환호했다. 그는 종종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이름을 언급했다. 차원에 구멍이 생기면 이 특이점과 일체화하는 것으로 현세로 돌아갈 수 있으며 자신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안다고 했다.
* 그러던 생활은 마침내 끝났다. 아무 이변도 없느 고요한 공간이 요동치더니 다윗이 입이 닳도록 외치던 차원의 구멍이 생긴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장담한 대로 지상으로 돌아갔다. 열려진 차원의 문으로 향하며, 다윗은 "성궁"의 힘을 얻으러 간다고 했다. 열쇠는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도. 무력하기만 했던 사람들도 이때만은 충격과 두려움 속에 다윗을 올려다 보았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주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셋타는 테스와 놀아주면서도 설명을 계속한다. 다윗은 말하자면 사이코패스. 살육도 그에겐 수단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이곳에 있는 그의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면전에서 "너희는 포석"이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에겐 동료도 가족도 의미가 없다. 그러니 현세로 돌아간 다윗이 성궁에 가기 위해 또 한 번 세상을 "포석"으로 삼을 건 말할 것도 없다. 알리바바가 그럴 수는 없다며 막으러 가겠다고 하지만 와히드가 비웃음조로 손사레를 친다. 차원의 벽은 넘을 수 없다면서. 셋타는 어차피 알리바바도 머지않아 과거의 기억과 무한한 시간만 남은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갈 거라 예견한다. 방법이 없다는 말에 알리바바는 크게 낙담한다.
- 배슬기(배우) . . . . 8회 일치
[목차]
그러나 2010년 소속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트러블이 생겨 영화는 하차. 영화사가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오랜 기간동안 제대로 촬영하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새 소속사는 티엔터테인먼트로 [[박정현]], [[차승원]], [[유지태]] 등이 소속 중.
사실 작은 사과 덕에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으나, 2007년부터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는 등 중국 활동을 이미 오래 한 상태라 통역이 필요없을 정도로 중국어 실력도 좋다고 한다. 작은 사과 히트 이후 다시 중국에 진출해서 신곡 발표로 차트 7위에 올랐다고 하며, 각종 예능이나 라디오 등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런닝맨]]의 히트 이후 [[X맨을 찾아라]], 연애편지 등 배슬기가 과거 출연했던 예능들이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고 한다. tvN '명단공개2016'에서 공개한 신 한류스타에서 [[김수현(배우)|김수현]], [[조세호]], [[이준기]] 등과 함께 꼽히기도 했다.
[[2011년]] [[8월 27일]] 사건이 하나 터졌다. 배슬기 소유인 핑크색 [[아우디 A4]]를 몰던 모친은 교차로에서 먼저 주행 진입 중이던 [[싼타페]]를 들이받아 피해를 입히고 나서, 본인 과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신고했을 뿐만 아니라 보험사 직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차에서 내리지도 않아 비난을 받고있다. 먼저 진입한 차량 싼타페는 수리비 60만 원가량이 청구되었는데 과실 비율 40% 적용으로 인해 6:4로 하면서 보상금으로 피해자는 자기 차량 수리비의 6배 가까운 360만 원 상당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더욱 [[어그로]]를 끌고 있다. 이로 인해 쌍방 과실의 비율을 묻는 현행 [[도로교통법]]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 스틸오션/독일 . . . . 8회 일치
>7형(Type VII)의 기본 시험형이었던 7A형(Type VIIA)은 독일 해군의 공격 잠수함으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3형에 기술적 기반을 둔 VIIA형 유보트는 1933년 설계되었다. 7형은 뛰어난 성능과 빠른 잠항 속도를 자랑했다. 모두 합쳐 11대의 7A형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이중에는 대서양 해전의 첫 희생양인 여객선 아테나(Athena)를 격침시킨 U-30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32는 배수량 42,348톤 정기선 엠프리스 오브 브리튼(Empress of Britain)을 격침시켰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손실된 7A형 잠수함은 U-29와 U-30 단 두척이었다. 살아남은 7A형 잠수함은 모두 자침되었다.
>필라우는 러시아 제국의 주문으로 단치히에서 건조중인 경순양함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이 순양함을 독일에 의해 몰수되어 독일 해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전시에 필라우는 제2 정찰대에 배속되어 북해와 발트해에서 활동했다. 1915년 리가 만 해전에 참가해 러시아 해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뤘다. 1916년 5월, 필라우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해 대구경탄에 맞아 큰 손상을 입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전투순양함 자이들리츠(Seydlitz)가 항구까지 도달하는걸 도왔다. 1917년 헬리골란트 바이트 해전에도 참가했다. 종전후 전쟁보상함으로 이탈리아에 양도, 바리(Bari)로 개명되었다. 바리는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엠덴은 바이마르 시기 건조된 첫 경순양함이다. 전체적으로는 쾰른(Köln)급과 닮았지만, 배수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제거했다. 계획되었던 어뢰발사관 네문은 연합국의 반대에 부딫혔다. 엠덴만이 건조가 완료된 엠덴급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훈련함으로 개장되어 사용되었다. 1940년 4월의 노르웨이 침공에 동원되었으며 그후 어느 전투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독일이 항복한지 2틀 후에 킬에서 자침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3~4척만의 경순양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자 독일은 각각 6,000톤에 달하는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순양함 세척을 설계했다. 초도함인 쾨니히스베르크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에서 훈련함으로 활동하다 북해의 기뢰 부설 임무를 맡게되었다. 베저위붕 작전 도중, 베르겐 해안포에 의해 쾨니히스베르크가 피해를 입었고, 다음날 최소 다섯대의 영국 폭격기에 의해 격침되었다.
>P급 장갑함은 D급 장갑함의 후계자로써 도이칠란트급과 같은 설계와 전술을 사용했다. P급은 독일 해군의 Z 계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37년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타국의 8인치 순양함포를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2척이 계획될 예정이었으며, 1940년에 첫번째 P급 장갑함이 건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Z 계획의 변경으로 P급은 O급으로 교체되었고, P급은 마지막까지 완공되지 못했다.
- 스틸오션/미국 . . . . 8회 일치
>1916년 건조된 O급 잠수함은 N급 잠수함의 대형화 버전이었다. 예비 부양성과 생활 환경 또한 개선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O급 잠수함의 대다수가 미합중국 동해안에서 대잠 임무를 수행했다.
>홀랜드(S-1, S-42), 레이크(S-2), 미해군(S-3, S-48) 세곳이 설계한 미국의 S급 잠수함들은 해안 방어용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1930년대 활동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많은 수가 현역이었다.
>"평갑판" 구축함이라고도 알려진 칼드웰급 구축함은 1917년 취역하였다. 대서양, 주로 동해안에서 수송함대 호위를 맡았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칼드웰급 구축함 한척이 윌슨 대통령 호위를 맡기도 했다.
>해군력 이론가인 알프레드 마한 제독(Admiral Alfred Mahan)의 이름을 딴 마한급 구축함은 패러것급의 강화형이다. 강화된 어뢰 발사관이 특징인 마한급 잠수함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미해군의 주력으로 활동했다. 마한은 마셜 제도와 길버트 제도 습격에 참가했으며,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항공모함 호넷(Hornet)을 엄호했다. 마한은 전시동안 다섯개의 수훈성장을 받았다.
>기어링급 구축함은 알렌 M. 섬너급의 하위 개량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에 건조된 이 배들은 카미카제 공격에 맞서 피켓 레이더함으로 활동했다. 종전 이후, 많은 기어링급이 미사일과 레이더를 업그레이드했고, 몇몇은 해외로 매각되었다. 오늘날 최소 한척의 기어링급 구축함이 대만에서 사용되고 있다.
>애틀랜타급 순양함은 원래 선도구축함으로 설계된 경순양함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효과적인 대공구축함이라는걸 증명해냈다. 애틀랜타급 순양함 총 네척과 개선형인 오클랜드급 순양함(Oakland-class) 네척이 발주되었다. 애틀랜타는 1942년 11월 13일에 일어난 과달카날 해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격침되었다. 주노(Juneau)는 인디스펜서블 해협에서 후퇴하던 도중 일본 잠수함 I-19에게 격침되었다. 이때 사망자에는 설리반 오형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설리반 오형제의 죽음으로 미 전쟁성은 솔서바이버 정책[* Sole Survivor Policy. 형제들 중 전사자가 있을 경우 병역이나 전투병과에서 제외되는 정책.]을 채택한다.
>15문의 6인치 함포로 무장한 브루클린급 순양함은 일본 모가미급의 대항마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들은 최전선 각지에서 활동했다. 헬레나(Helena)는 쿨라 만 해전에서 어뢰에 맞아 격침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몇몇 브루클린급이 다른 나라로 양도되었다. 그중 하나인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예전 이름은 피닉스(Phoenix)-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구축함에 의해 격침되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올-빅-건" 설계를 채용한 첫번째 미국 전함이다. 영국의 드레드노트급보다 먼저 설계되었지만, 드레드노트보다 늦게 완성되었다. 화력, 방호 능력, 항해 속도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 오랜 시간 사용되었다. 총 두척의 사우스 캐롤라이나급 전함이 건조되었다. 1921년 말~1922년 초 퇴역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8회 일치
* [[메기시마 토스케]]를 포섭하는데 실패했으나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권유하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선다.
* 메기시마는 자신의 "라면도"를 연마하기 위해 포장마차를 끌고 전국을 돌던 도중, 분쟁이 일어난 가게들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주며 명성을 쌓았다.
그들이 건네준 신문에는 척봐도 [[나키리 아자미]]가 흉계를 펼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진정한 미식가를 표방하는 그 원칙을 대외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진급시험이 진행됐던 홋카이도가 그 시작점이었다.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십"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대고 실제로는 각 식당들을 센트럴이 정한 원칙에 따라 요리하게 시키고 있다. 거부할 경우엔 유통루트에 손을 대서 식자재를 납품 받는 것 조차 막는다. 이런 횡포로 인해 벌써 폐점의 위기에 처한 점포가 부지기수. 듣고보니 소마도 짚이는 구석이 있다. 전에 [[츠카사 에이시]]가 그렇게 말했다.
* 라면장인들이 도련님이라 부르며 우러러 보는 남자, 홋카이도 라면 장인들의 요청을 받고 한 걸음에 날아온 메기시마 토스케였다. 그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일단 자신의 독자적인 인맥으로 유통루트를 다시 뚫고 가게를 지키는데 최대한 협조하기로 약조한다. 장인들이 그것만으로도 마치 만사가 해결된 것처럼 기뻐한다. 무리도 아닌 것이, 메기시마는 이미 라면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하고 인망이 두터웠다. 일찍이 자신의 "라면도"를 갈고 닦기 위해, 홀몸으로 호장마차만 달랑 끌고 전국을 누볐던 메기시마. 그러던 과정에서 여러 라면 가게를 접했고 그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라면 장인들의 네트워크를 타고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그들 사이에서 "도련님"이나 "두목"으로 불리며, 어느 새 라면계의 젊은 왕으로 우뚝 서 있었다.
지키기 위해 부디 힘을 빌려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메기시마의 의지는 확고했다. 자신도 지금의 라면 문화를 지키고 싶으며 그 일만 해도 벅차 힘이 되어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지켜보던 장인들도 메기시마는 한 번 정한 원칙을 번복하지 않는다며 포기를 권했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메구미가 듣기에도 그랬다. 애초에 실력면에서 보면 연대식극에 승리했을 때 제 1석은 메기시마의 차지였다. 그렇게 지적하자 소마는 "그럼 그때는 메기시마 선배도 쓰러뜨린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메기시마는 이제 불쾌해졌는지 식극도 싫지만 "입만 산 녀석"은 더 싫다며 등을 돌려버린다. 그가 이정도로 의사를 드러내는데 소마는 돌아갈 의향이 없다. 그가 자신의 힘을 실제 시험해 보지 않으면 입만 산 건지, 진짜배기인지 모르지 않겠냐며 승부를 청한다. 자신이 메기시마보다 맛있는 라면을 만들면 그 증명이 될 거라면서. 물론 이것도 메기시마에겐 "입만 산 녀석이란 증거"나 다름 없었다.
* 그리고 당연한 듯 패배가 이어진다. 메기시마는 소마가 뭘해도 이기지 못한다고 단언할 정도로 차이가 완연했다. 소마는 숫제 억제를 쓴다. 한 판 가지고는 실력을 알 수 없다, 그런 핑계로 대결은 재전, 삼전으로 이어진다. 그때마다 난타에 가까운 일방적인 패배. 보는 이는 누구라도 무의미한 객기라고 여겼다. 아무리 연전을 거듭해도 메기시마의 집중력이 떨어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승부를 거듭해, 마침내 날이 바뀌었다. 소마는 또다시 패배했다. 계속된 승부로 체력은 바닥났다. 반면 메기시마는 분명 집중력이 떨어지진 않았으나, "이젠 충분하지 않냐"고 말하게 됐다. 그는 소마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무의미한 승부를 받아들인 자신도. 소마의 눈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 버리고 만다. 메기시마는 그 점을 곱씹으며, 아무리 동료를 구하고 싶어도 이런다고 실력차가 뒤집히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마가 이렇게 나오는건 동료들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 신민아 . . . . 8회 일치
[목차]
한 때 CF쪽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유독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지,--드라마라고 아닌건 아닌데..-- 아니면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낮은건지 출연한 작품 중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말아먹었다'''. 그 덕분에 ''''한국 영화사 최고의 [[핵잠수함]]'''', ''''[[충무로]]의 흥행 [[부도]] [[수표]]''''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의외로 이름난 드라마작가나 유명 [[영화 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CF나 영화에 캐스팅되고 있어서 '[[스폰서]]가 빵빵하다',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라는 의견도 다수 가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공히 '히트작이 없음'에도, 'CF에 있어서는 가히 도배'를 하고 있는건 미스테리다. 흥행 관련해서는 비슷한 내용이 [[봉태규]] 항목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남배우로 봉태규보다 ~~새로 떠오르는 국밥배우~~ ~~흥행전선 먹구름~~[[김강우]]와 더 많이 비교되는 것 같다. 다만 김강우의 경우 2017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살아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지금까지 영화를 말아먹은 개수를 생각하면 [[김태희]], [[고소영]] 라인을 그대로 따라갈 듯. 다만 둘에게는 그나마 영화, 드라마에서 대표작이 하나 씩은 있으니.... 더구나 이쪽은 내세울 흥행작조차 없다. 거기에 연기력까지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으니.. 그나마 그 CF 시장 마저 [[이민정]], [[수지(miss A)|수지]] 등 다른 여성 스타들이 야금야금 갉아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연기|연기를 못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조정석과 합을 맞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하자 연기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많이 사라졌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멜로 연기에 능숙한 편. MBC 수목 드라마 [[아랑 사또전]]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또한 비교적 최근작인 [오마이 비너스], [내일 그대와]에서는 그나마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은 선보여 주었다. 근데 폭망했다. 부족한 작품성 때문인 듯...--못 해도 망 잘해도 망-- 국내에서는 비록 망했을지라도 해외에서는 [오마이비너스],[내여자친구는구미호]의 팬층이 상당히 두터웠다. 특히 내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중국에서도 1등을 차지했을 정도...
그러나... 연기력이 서서히 나아지고는 있으나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똑같이 잡지모델로 출발하여,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역시 발연기로 까였던 김민희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김민희는(불륜으로 유명세를 치룬 것과는 별개로) 절차부심한 끝에 발연기의 오명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하여 끝내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은데 반해 신민아는 여전히 연기력에서는 인정을 받았다고 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표정연기의 문제이기보다는 발성과 발음의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 2005 || [[KBS2]] || [[이 죽일놈의 사랑]] || 차은석 || 주연 ||
이후 다시금 [[건축학 개론]]과 [[시그널(드라마)|시그널]]의 [[이제훈]]과 뭉친 [[내일 그대와]]도 또 망했다. 그냥 망한 정도도 아니고 폭망했다. 내일 그대와 바로 전에 방영되었던 작품이 [[도깨비(드라마)|도깨비]]였음을 생각했다면 안습중에 안습. 나름 2016년들어 tvN 금토 드라마들이 자리를 잡아 평균 4~6%정도의 시청률을 올려주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1~2%의 시청률은 폭망했다고 봐야한다. tvN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에서 방영 내내 중간 광고에서 수차례 미뤄줬는데도 망했으니 푸쉬받지 못했다고 변명도 어려운 상황. 물론 이 작품에서 신민아의 연기가 별로 인것은 아니다. 나름 자신이 가장 잘하는 캐릭터를 골랐고 상대배우, 소재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으나 드라마의 전개나 진행방식이 매우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고르는 안목 또한 배우의 역량이기에 기본적인 선구안이 매우 부족한 느낌. --제발 누가 옆에서 보고 골라줘. 원하는거 하지말고 시키는거 하세요.--
사실 위에 언급된 작품 중에서 신민아가 연기를 완전 발로 해서 다 망했다라고 여길만한 작품은 마왕 정도밖엔 없다.--이죽사에선 비도 못했지-- --물론 잘한 건 아니다.-- 물론 제작진의 잘못이나 다른 부분들이 많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드라마가 푸쉬를 받는다고 무조건 뜨면 어떤 드라마가 안 뜨겠는가?
- 야차원숭이 . . . . 8회 일치
멸종 위기에 달한 크립티드 급 생물. 본래 [[칼]]든 [[사무라이]]도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이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특징으로, 마치 [[야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을 초월한 괴력과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흉폭한 짐승은 아니고, 상당히 지능이 높아서 가족이나 친구의 개념, 원수를 갚는 의식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감정적 교류도 나눌 수 있는 알고보면 좋은 생물.
고대 일본에는 다수의 야차 원숭이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에 확인 된 것은 바키의 친구가 된 야차원숭이와 그 자식 야차원숭이 Jr. 뿐.
야차원숭이는 그래플러 바키 2부에서 바키와 대결을 하며, 싸움 끝에 친구가 된다. 그러나 [[한마 유지로]]에게 살해당하고 유지로는 바키에게 그 목을 던져서 분노를 돋군다.
그래플러 바키 3부 최대 토너먼트 편에서는 야차원숭이 Jr.가 출전. 한마 유지로에게 복수전을 노리지만, 실패.
[[바키도]]에서는 무사시 역시 야차원숭이를 과거에 베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야차원숭이 부, 자 모두 주인공 바키와는 친구이다.--왕따 바키의 몇 안되는 친구--
- 원피스/868화 . . . . 8회 일치
* 작전이 실패하고 [[시저 크라운]]이 탈출용 거울을 준비하나 역시 빅맘의 패기와 풍압 때문에 깨지고 퇴로가 차단된다.
* 빅맘은 몰랐지만 그 사건엔 목격자가 있었고 그것도 둘 씩이나 됐다. 그들은 빅맘도 인식하지 못한 부분까지 모든 걸 목격했다. 우선 한 사람은 엘바프의 전사. 그는 양의 집과 카르멜이 신경 쓰여서 보러오던 길에 그 사건을 목격했다. 그 터무니없는 광경이라니. 그는 차마 양의 집에 와보지도 못하고 그 길로 섬을 떠났다. 엘바프로 돌아간 그는 사건의 전모를 전파했고 [[원피스/867화|이전의 사건]]에 더해서 빅맘은 거인족들에겐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존재로 낙인 찍혔다.
* 빅맘이 추억하는 카르멜의 기억. 그저 연극이고 위선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는 좋은 보호자였다. 카르멜은 항상 "종족끼리 차별이 없고 다들 같은 눈높이에서 살 수 있는 나라"에 대해 말했고, 양의 집을 세운 그 섬에 그런 "꿈의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비록 어렸던 빅맘은 그 뜻을 "다들 나처럼 덩치가 커진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엘바프의 섬 시절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닌 착각이었다. 좌우간 카르멜은 이런 나라를 이야기하고, 이런 나라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 찰 거라고 가르쳤다. 그건 곧 링링의 꿈으로 이어졌다.
* 회장 안을 들여다 보고 음흉하게 웃던 [[시저 크라운]]. 그러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작전이 어찌됐건 자신의 차례는 변하지 않는다. 일행을 탈출시켜야 한다. 설마 탄두를 파괴할 줄은 몰랐다며 투덜거리며 탈출용 대형 거울을 챙겨서 날아오른다. 그가 날아오자 회장에 흩어져 있던 연합군이 재빠르게 집합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탄두를 파괴할 정도로 무식한 압력이 그대로 몰아쳐서 거울까지 깨뜨렸다.
* 사색, 그 태평한 루피 조차도 절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미는 물론 [[쵸파]]나 [[징베]] 조차 이 참담한 실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끝이다. 여기는 홀케이크 성 옥상. 도망칠 곳도 없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
설상가상. 샬롯가의 형제들이 몰려온다. 그들이 떡 귀마개를 차는 것도 계획에 없던 일이다. 도저히 승산이 없는 상황.
- 원피스/874화 . . . . 8회 일치
* 빅맘 해적단은 [[샬롯 브륄레]]에게 미러 월드에 1만 병력을 대기시켜 어디든 급습할 수 있게 하고 각 섬에서 차출된 해상병력으로 남서쪽 해안도 봉쇄한다.
* 다과회와 결혼식이 엉망이 되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고대해 마지 않았던 웨딩 케이크까지 엉망이 되어 먹을 수 없다. 숨가쁘게 이어진 기막힌 사건들 때문에 빅맘 [[샬롯 링링]]의 식탐이 폭주한다. 한때를 모면하기 위해 [[샬롯 페로스페로]]는 웨딩 케이크는 밀집모자 일당이 가져갔다는 거짓말을 하고, 빅맘은 그 말에 따라 직접 밀집모자 일당을 뒤쫓는다. 뇌운 "제우스"에 탄 빅맘은 놀라운 속도로 돌아와 "킹밤"을 타고 도주하던 밀집모자 일당을 따라잡았다. 역시 밀집모자 일당을 추격하던 빅맘 해적단의 병력들은 빅맘이 하늘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앞질러가자 이상하게 여기나 곧 그녀의 먹부림이 도진 것임을 알아차린다.
[[몽키 D. 루피]]는 좋지 않은 낌새를 차리고 일행에게 경고하고 킹밤에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빅맘이 자신의 모자 "나폴레옹"을 검형태로 바꿔서 쓰는 기술 "위국". "엘바프의 창"이란 명칭대로 빅맘이 팔을 휘두른 방향으로 직선의 충격파가 꿰뚫고 지나간다. 충격파는 킹밤의 좌반신을 깨끗하게 삭제하고 계속 나아가 홀 케이크 아일랜드 외곽의 절벽에 구멍을 냈다. 터무니 없는 위력. 일행은 직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위력을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루피는 그 순간에도 엘바프 거인족의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을 간파한다.
* 빅맘은 킹밤이 있다는건 공격하고 나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킹밤의 이름을 부르는 빅맘. 겁에 질린 킹밤이 [[원피스/843화|전에도 한 번 그런 것처럼]], 이번에도 협박을 당해 어쩔 수가 없다고 절절맸다. 그런다고 빅맘이 다음 공격을 주저할 것 같진 않았다. 루피가 내려서 싸우자고 제안했다. 그때 [[나미(원피스)|나미]]가 킹밤에게 말을 걸었다. 일행과 마주치기 전 같이 있었던 여자 나무가 누구냐는 것. 레이디 트리. 킹밤은 그녀가 피앙세(약혼자)라고 밝혔다. 나미가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그 말이 킹밤의 마음을 바꿨다. 맞는 말이다. 살아야 한다. 킹밤은 충성이고 뭐고 일단 살기 위해 유혹의 숲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킹밤이 속도를 내자 빅맘이 더 괘씸하게 여겼지만 어차피 살려줄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그런 심리까지 이용해 먹는 나미가 귀신 같다고 혀를 찼다.
나미의 판단이 정확했다. 느긋한 얼굴로 빅맘을 태우고 다니던 제우스는 근처에 떠다니는 작고 검은 뇌운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빅맘이 다시 한 번 위국을 쓰려고 나폴레옹을 치켜들었던 그때, 제우스는 임무도 팽개치고 블랙볼을 따라 방향을 돌렸다. 빅맘은 발 밑이 흔들리면서 땅바닥에 위국을 꽂았고 자신도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주인을 닮아도 너무 닮은 제우스는 빅맘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줄로 늘어선 블랙볼을 차례로 맛보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때까지 상공에서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이 어이없는 실수에 뜨악해한다. 나폴레옹도 황당해한다. 둘이서 질책해도 간식에 정신 팔린 제우스는 들은 척도 없었다. 그 사이 킹밤은 반토막난 몸으로도 바람 같이 달려서 유혹의 숲으로 향했다.
빅맘의 진노가 담긴 외침. 방금까지 킹밤을 향해 경례를 올리던 나무들이 태도를 바꿨다. 보스보다는 보스의 보스가 훨씬 무서우니까. 제우스도 그 노성을 듣고 나서야 "마마가 진짜 화났다"며 얌전히 꽁무니를 뺀다. 이제 유혹의 숲은 적의 소굴이다. 곧 닿을 거만 같았던 써니호로 향하는 길이 사라지고 유혹의 숲의 살아있는 지형지물들이 막아선다. 상디는 유혹의 숲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적당히 걷어차주고 뚫고 가자"고 했다. 숲의 무서움을 아는 루피는 머리를 감싸며 골치아파했다. 싸우더라도 나무들이 방해하면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처지였다. 제일 큰 문제는 킹밤. 그 역시 빅맘의 피조물인 만큼 그녀가 진지하게 호령하면 견디기 어렵다.
* 탱크모드로 변형해 도주하던 벳지의 파이어 탱크 해적단도 추격대에게 따라잡혔다. "타르트 탱크"였다. 정말로 파이 같이 생긴 전차들이 포격을 가하며 벳지의 꽁무니를 따라왔다. 하지만 벳지는 곧 해안가가 나올 테니 탈출은 성공할 거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도 마법의 양탄자에 탄 [[샬롯 푸딩]]이 갑자기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벳지는 설사 "아가씨", [[샬롯 시폰]]의 여동생이라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며 총을 들이댄다. 푸딩은 거기에 대해선 상대도 않고 "시폰 언니를 만나게 해달라, 당장 꺼내라"고 청했다.
- 원피스/875화 . . . . 8회 일치
* 나미가 제우스에 웨더 에그가 가득 차 비대해진 걸 알아차리고 단숨에 웨더 에그를 발동, 제우스는 몸 안의 웨더 에그에 휘말려 거대한 번개가 되어 떨어진다.
* 써니호가 정박한 남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상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순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상까지 남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상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백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루피는 "태양" 녀석이 다가오자 킹 밤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무장색을 두른 "JET 개틀링"으로 프로메테우스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언뜻 프로메테우스의 몸이 흩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주 잠깐. 아무 소용도 없었다. 루피는 당황해하며 패기 조차 통하지 않으면 "자연계"보다 성가신 적이 아니냐고 소리쳤다. 다행히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데리고 가는게 우선이어서 그런지 일행에게 반격할 기미는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거듭 마마에게 돌아가자고 재촉하자 헤롱거리던 제우스도 조금 정신을 차렸다.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단, 마지막으로 맛있는 구름을 원껏 먹고 나서. 부모를 똑닮은 자식.
일행이 다리에 올라서자 징베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생각이 있었다. 그는 일행을 먼저 건너게 하고 자신은 프로메테우스를 요격했다. "창파 소나기". 징베가 강물을 휘감아 프로메테우스에게 퍼부었다. 루피의 공격 조차 아무렇지 않게 씹었던 프로메테우스가 물세례에는 어이없이 쪼그라들었다. 징베는 일행에게 저것이 "응축된 불꽃의 화신"이며 "대화재"가 말을 하고 다니는 거라고 여기라고 말했다. 그러니 다른 건 통하지 않아도 불의 성질을 이용한 공격에는 여지가 없는 것이다.
* 제우스가 크리마텍트를 빨대처럼 빨아먹은게 그때였다. 나미가 거절할 틈도 없었다. 제우스는 원액을 빨아먹은 셈인데 그 여파인지 녀석의 덩치가 삽시간에 불어났다. 숲의 상공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래진 제우스. 몸체가 검고 방전이 흘러나오는 초거대 뇌운으로 성장해 버렸다. 나미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놀랐다. 상디가 잽싸게 그녀를 붙들고 뛰었다. 적이 코 앞이라면서. 그 말대로 빅맘과 합세한 추격대의 대병력이 물딜 듯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미는 불현듯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 때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지금 제우스 안에는 크리마텍트로 뿌린 웨더 에그가 가득 차있다. 나미는 일행에게 적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라고 말하고 자신은 크리마텍트를 치켜든다.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굳이 제우스를 복종시키지 않아도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 적당한 거리가 되자 나미가 크리마텍트를 내리쳤다.
시폰의 말에 벳지는 반박하지 못했다. 여자의 의리. 그리고 사람의 의리. 의리를 지킨다는건 이런게 아니냐고 윙크를 보내는 아내를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아내의 결의는 진짜였고 갓난 아들조차 떼어놓고 갈 정도로 단호했다. 그녀는 아들을 부탁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푸딩과 함께 반대편, 남서쪽 해안을 향해 날아갔다.
- 유미(가수) . . . . 8회 일치
[목차]
당시 뮤직비디오에는 [[정우성]], [[전지현]]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수의 CF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노래와 뮤직비디오의 인기에 반해, 가수 유미의 방송 활동은 거의 없었다.[* 앨범 발매 후 뒤늦게 동일 앨범 수록곡인 '차라리'와 함께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엠넷, KM, MTV 등에 몇 차례 출연한 것이 전부다.]
이후 몇 차례 드라마 OST, 동료 가수의 앨범에 참여하지만 여전히 노래에 비해 얼굴 없는 가수로서 또 다시 긴 공백기를 갖는다.
2012년 12월 10일 녹화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엄정화]] 편[* 무대의 방영은 2013년 1월 12일.] 2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당시 함께 출연한 [[손호영]]은 방송에서 "실력이 좋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배반의 장미'를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출전으로 우승은 못 했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몰랐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하루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고 불후의 명곡 시청자 게시판이 폭주할 정도로 그녀의 재출연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2월 16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 [[김민종]] 편에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수 활동 영역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불후의 명곡 [[임재범]] 편, [[들국화(밴드)|들국화]] 편, [[설운도]] 편, [[장미화]]&임희숙 편, [[최진희]] 편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종 출연 중이다. 또한 '눈물나는 얘기(나인 OST)', 'Last One([[주군의 태양]] OST)' 그리고 2013년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싸구려 반지'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2002년 1집 Sad (타이틀곡 :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01.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02.차라리, 03.Why, 04.잊어요, 05.It's You, 06.가지말아요, 07.Dream Of Life(Inst.), 08.D&B, 09.볼 수 없는 너, 10.시간속으로 사라진 너, 11.불꽃놀이, 12.That Old Feeling(Inst.), 13.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Scat), 14.다.]
* 2005년 2집 Another Story (타이틀곡 : 추억은 시간이 지운다)[* 01.짧은 사랑..긴 기다림..그대 그리움.., 02.소녀의 고백, 03.추억은 시간이 지운다, 04.I Lost My Mind, 05.애가(愛歌), 06.저 하늘도 모자르죠, 07.잘한건가요, 08.마지막 너를 보내며, 09.시계를 돌리면, 10.차라리.]
2016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독을 품은 백설공주]]'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1라운드에서 [[슈퍼 히어로(복면가왕)|슈퍼 히어로]]와 듀엣을 한 결과 2라운드에 진출했으며 [[봄처녀 제 오시네]]에게 7표 차로 밀렸다.
- 은혼/612화 . . . . 8회 일치
오니와번슈는 이런 점을 이용하고자 움직인다. 적은 대군이지만 지금처럼 통신이 끊긴 상황에선 빠른 연락이 불가능해 이변이 다발하면 군 전체가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 핫토리 젠조는 다방면에서 계속 혼란을 야기하면 자중지란에 빠질 거라 예측한다. 다만 물량차가 압도적인건 변하지 않으므로 결코 적진 깊숙히 들어가선 안 된다고 지시한다.
* 진선조도 지상군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전령이 준비가 끝났다고 알리자 곤도 이사오가 움직인다. 이들은 지상군 병력이 가부키쵸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게 목적. 쭉 늘어진 병력의 허리를 끊어 분단시키고자 한다. 곤도는 자신이 신호하면 "그것"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이후는 1인당 200명 씩만 베어버리면 되는 심플한 작전. 곤도가 200명만 베면 보너스를 준다고 하자 오키타 소고가 "그럼 1000명을 베면 부장자리는 내것"이라고 말한다. 왠일인지 히지카타 토시로는 "생각해두겠다"고 쿨하게 반응한다. 대원들은 오키타다 부장이 되는 날엔 세계가 멸망하는거 아니냐고 드립을 치고 야마자키 사가루는 어차피 망할거 그 편이 재미있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곤도가 망하고 안 망하고는 중요하지 않은 거냐면서, 자신도 사실 그런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 한편 우주. 해방군 본진의 도쿠가와 노부노부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다시 감옥으로 옮겨진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무츠는 지구의 동향과 현상황에 대해 묻는다. 다츠마는 기적적으로 잘 버티고 있지만 병력차가 너무 커서 한계가 있다며, 그들이 버티는 동안 자신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반대편 감옥에서 "무슨 수라도 있냐"고 말을 거는 이가 있는데.
* 원상 황자에게 축출된 자작 제독이다. 자작은 설사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이미 늦었다며, 자신이 원상 황자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이미 부풀어 오른 해방군의 복수의 불꽃은 어찌할 바가 없다고 하는데, 다츠마는 불꽃이라면 다른데로 옮기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천도중은 이미 처리된 상태. 다츠마는 아직 해방군과 자작이 모르는 또다른 적이 있다고 말한다. 해방군의 고향을 불태운 장본인이자 천도중 조차 처리해버린 괴물. 우츠로의 존재다. 다츠마는 이대로 계속 싸우면 복수는 커녕 우츠로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거라고 말한다.
* 실은 다츠마 일행과 헤어진 직후 어떤 사고가 생겼던 것. 생각보다 긴 시간 다츠마와 연락이 두절되자 가츠라는 언제든 역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 그때 부하들이 스크린에 나타난 적전함을 보고 놀라는데, 가츠라는 본함은 스텔스 함이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촌구석 사무라이. 스텔스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부하들은 정말 안 보이는 거냐고 미심쩍어하는데 가츠라가 투명해지는 그런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설명하던 즈라 조차 방향이 이상해져서, 전함은 투명해져도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며, 우주공간에 둥둥 떠있는 걸로 보이는게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 유일하게 정상인인 엘리자베스가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해주는데, 이번엔 가츠라가 "우리도 투명해진다 해도 우리가 섭취한 내용물은 완전 노출되는게 아닌가"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한다.
엘리자베스 조차 손 놓고 포기하는 가운데 능숙한 카모플라쥬 기술을 과시하나 부하들은 곧 "전부 꺼버리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난 맹점을 깨닫는다. 그러나 수정할 틈도 없이 정체불명의 거대 우주선을 들이받아 버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총을 든 묘한 천인들 사이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해방군 소속이 아니다. 가츠라는 "이마에 외설물 같은게 자라나 있는 천인"이라고 표현하는데.
* 이들은 포로로 잡힌 가츠라 일행에게 "붙잡으려 하는게 아니라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멸망해가는 지구에서 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렇다. 이 배는 하타 황태자의 배였다. 이미 우리에는 지구의 동물원 등에서 무단으로 털취한 각종 동물들이 즐비하다. 할아범은 어차피 망할 별이고 항의할 놈도 없게 될 테니 보이는 족족 납치했다고 말한다. 하타 황태자도 멸종할 생물들을 거둬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라고 말한다.
- 은혼/654화 . . . . 8회 일치
* 우주의 전쟁이 끝난 뒤. 그 소식은 하타 황태자의 배에도 전해졌다. [[하타 황태자]]는 전쟁은 혼자 다 해먹은 것같이 폼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전투 중엔 화장실에 처박혀서 압사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황태자가 이만한 군세가 단번에 백기를 들 줄은 몰랐고 "전쟁을 결정짓는건 숫자가 아니라 각오"라며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기백에 해방군이 패배를 깨달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전직에 실패해 내세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하세가와 다이조]]는 써놓은 유서가 첨부된 그 대로 어디서 기어나와서 그 개드립에 "나도 매일 각오를 다지며 죽음과 마주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영감 [[네스]]는 거기에 일일히 츳코미하며 어차피 이 전쟁에 조력한 것도 억지러 한거 아니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됐건 하타 황태자의 도움이 있어 이길 수 있던게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쓸데없이 훈훈하게 뭉뚱그려지고 있는 찰나, 해방군 모선에 진입했던 부대와 연락선을 잇는 작업 도중 적의 모함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하타 황태자는 전리품을 쓸어담고 도주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접 추격할 것을 명한다.
시생인 부대와 싸우던 진선조의 [[곤도 이사오]], [[히지카타 토시로]], [[오키타 소고]]는 터미널에서 발하는 강렬한 빛을 목격했다. 시생인들이 제어하던 "문"이 파열하는 빛이었다. 제어가 풀린 용혈, "용"이 하늘로 치솟았다. 터미널이 가두고 있던 막대한 에너지가 하늘을 가르고 가부키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용이 되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해결사 일행에게, 노부메는 문이 파괴됐고 우츠로 조차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츠로가 바라보는 용은 대기권에 돌입 중인 해방군 모선에서도 보였다. 자작 제독은 창 너머로 그것을 보며 "용이 입을 벌리고 세계를 집어삼치려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사루가쿠]]는 함선 내를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제어를 되살려보려 했지만 역부족. 지구로 추락하는건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영웅들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다카스기 신스케]]는 빈사에 달해 누워있고 이 배는 너무 손상돼서 키 조차 잡을 수 없는 상태. 속수무책. 다른 말이 없었다.
자작은 자신도 모르겠다며 대답을 아꼈다. 단지 그가 알 수 있는 건, 누구 손을 빌리지 않아도 어차피 선내의 인원들은 죽을 거라는 것. 지구와 함께. 반대로 하타가 자신들을 죽이면, 지구는 살 거라는 것.
* 모네는 아네를 스쿠터에 태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터미널에서 용이 튀어나온 뒤 시생인의 추적은 사라졌지만 상황은 좋아진게 없었다. 중상을 입은 아네는 그 시끄러운 입이 조용했다. 모네가 정신 차리라고 실컷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겨우 "시끄럽다"고 대꾸하는 정도였다. 아네는 괜찮다며 어서 터미널로 가길 원했지만 모네는 무리라고 대꾸했다. 이미 검력도 다 소진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네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문이 파괴된 이상 그걸 멈출 수 있는건 자신들 뿐. 모네는 자기가 아네 몫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아네는 그것도 안 된다고 고집했다. 그랬다간 모네는 그렇다쳐도 두 이누카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만다. 그게 문제였다. 이누카미는 영성을 띄면서 동시에 육체도 지닌다. 하지만 그 육체는 영성에 의해 유지되는 것. 대량의 검력을 써버린 지금의 이누카미들은 육체를 유지할 힘도 부족했고 그래서 몸이 작아진 것이다. 여기서 더 부담을 주게 된다면, 몸이 작아지는 걸론 끝나지 않는다. 코마코와 사다하루는 확실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가츠라, 다츠마, 신스케가 동시에 리타이어 하면서 제일 바쁜 사람. 우주의 전쟁은 끝났지만 해방군 모선은 여전히 폭주 중이며 제어도 불가능해서 지구로 추락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동생 하타 황태자에게 방아쇠를 맡기는 것. 어차피 함내에서는 탈출도 불가능하고 지구와 함께 죽는게 기정사실이라면, 그 전에 모선이라도 파괴해서 지구와 이 우주는 살려보자는 계산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병력은 현시점에선 하타황태자의 함대가 유일. 동생에게 가혹한 선택지를 주는게 거리껴졌는지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전투 내내 화장실에 짱박혀 있던 주제에 끝난 뒤에는 혼자 다 싸운 것처럼 생색내며 베르세르크의 가츠같은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났다. 하세가와는 이 와중에도 자살시도를 멈추지 않다가 역시 다 끝나고 나서야 "나는 항상 죽음을 마주하고 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고 하타와 드립을 주고 받는다. 다들 싸우느라 떠나서 츳코미 역이 없어 네스 영감이 열심히 츳코미를 넣고 다닌다. 어쨌든 하타 황태자가 도와줘서 전쟁에 이긴 건 사실. 하세가와가 "맨날 지구를 멸망시킬 뻔 했던 너네에게 도움 받을 줄은 몰랐다"며 감사를 표한다. 만일 여전히 공무원이었으면 지구 대표로 하타황태자에게 정식으로 감사할 뻔 했으니 차라리 짤린게 다행이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그런데 해방군 모선이 지구로 향하는 걸 보고 돌입했던 일행이 전리품을 들고 튄다고 오해해서 접근했다고 우주의 운명을 건 선택지를 받고 만다. 그의 형인 자작 제독이 모선을 도저히 멈출 수 없고 차라리 자기들이 탄 채로 우주공간에서 날려버리는게 낫다고 판단, 그 날리는 역할을 하타황태자에게 맡긴 것이다. 하타 황태자는 "나더러 사람을 살리라는 거냐 죽이라는 거냐"고 반문했지만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힘든 선택이 눈 앞에 놓였다.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8회 일치
*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이 긴장하고 그레이로드 조차 "무척 위험한 인간"이라며 경계한다.
* 헨드릭슨이 당황하며 멀린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정작 멀린은 "오감을 차단 당한 듯하네. 재미있어"라며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 그레이로드 조차 왜 계금이 통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그리고 십계조차 "반칙"이라고 입을 모은다.
* 멀린도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원래 계금에 내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 너무나 오래 전 일이라 그녀 조차도 잊고 있던 일. 그녀의 진정한 정체.
* 그 이름을 듣자 십계 조차도 "틀림없다"고 인정하며 움츠러 드는데.
* 어쨌든 각성한 멀린은 엄청나게 강력. 멜리오다스 조차 십계를 겁먹고 도망치게 만들지는 못했다. 멀린 외엔 에스카노르가 갈란을 도망치게 만든 전적이 있다.--먼치킨 커플--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8회 일치
* 카멜롯은 차원의 뒤틀림으로 보호받고 있는데 이를 뚫고 침입하기 위해 뒤틀림의 발현지인 성새도시 코란도로 향하기로 한다.
젤드리스의 반응은 차갑고 삐딱했다.
* 이제 대죄는 온전한 성기사로서 임전태세를 갖췄다. 오랜만에 갑옷차림으로 모인 그들. 멜리오다스가 단장으로써 대원들을 소집해 작전 개요를 설명한다. 그들의 목적은 전날 설명한 대로 십계에 점령 당한 카멜롯의 해방과 인질 구출. 하지만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멀린에게 부가설명을 부탁한다. 멀린은 카멜롯에 특수한 보호수단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한다. 직경 백 마일에 달하는 차원의 뒤틀림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텔레포트도 앱솔루트 캔슬도 불가능해 접근이 몹시 어렵다. 반은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냐고 묻는데 당연한 말이다. 멀린은 리오네스 왕국으로부터 남동으로 250마일 지점에 차원의 뒤틀림을 유발하는 발현지점이라 특정했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할리퀸은 막연히 이스탈보다 남쪽이라는 것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 멜리오다스가 그곳이 "성새도시 코란도"라고 알려준다. 몇 백년 전 대학살이 일어나 멸망한 폐도시다. 에스카노르가 "대학살"이란 말만 듣고 무서워 벌벌 떤다.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코란도 자체 보다는 "남동쪽"이란 단어에 반응을 보인다. 그는 그 방향이라면 "거기"도 통과할 거라면서 조금 옆길로 샐 순 없겠냐고 건의한다. 어차피 하루이틀 거리도 아니니까.
* 간만에 친구 곁을 떠난 헬브람은 그 여동생 엘레인의 집에 와있다. 엘레인은 오빠의 친구가 방문하자 별 일이라며 오빠를 부탁하지 않았냐 질책한다. 헬브람은 가끔씩은 괜찮지 않나며 그 말을 흘렸다. 그리고 엘레인에게 일곱 개의 대죄를 떠나보내도 괜찮냐고 화제를 바꿨다. 엘레인은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헬브람의 모습을 볼 수 있는게 그 증거다. 지금 엘레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 달리 말하면 그 어느 것도 아닌 존재다.
* 반은 엘레인을 걱정하지만, 엘레인이야 말로 반이 걱정됐다. 그녀가 예지한 반 일행의 앞날. 엘레인은 그들이 그걸 알아차렸을 때 어떻게 될지가 걱정이라 말했다. 그들의 앞에 있는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십계 [[메라스큐라]]. 터무니없이 흉흉하게 부활한 모습이었다.
- 정몽규 . . . . 8회 일치
| 경력 = [[현대자동차]] 회장<br>[[동아시아축구연맹]] 부회장 (2014년 3월 ~ )<br />[[대한축구협회]] 회장(2013년 1월 ~ )<br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 (2000년 ~ )<br />[[아시아축구연맹]] 부회장 (2016년 9월 ~ )
1996년 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현대자동차]] 회장을 역임했고, 1999년 3월부터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2018년 5월부터 [[HDC]]그룹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 2000.03 : 제33차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측 대표연사
* 1997.02 ~ 1999.01 : 제5대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
* 1996.01 ~ 1998.12 : [[현대자동차]] 회장
* 1988.11 : [[현대자동차]] 입사
*1996.11 1997년 세계차세대지도자 선정 – 세계경제포럼
|직책 = [[현대자동차]](주) 회장
- 정창영 (공무원) . . . . 8회 일치
| 경력 = [[한국철도공사]] 사장<br />[[대한민국 감사원|감사원]] 사무총장<br />감사원 제1사무차장<br />감사원 제2사무차장<br />감사원 국장<br />[[대한민국 국회|국회]] 예결위 입법심의관<br />[[대통령비서실|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br />감사원 과장<br />감사원 감사관<br />청와대 [[대통령경호실|경호실]] 감사담당관<br />감사원 부감사관<br />경북도 / 대구시 / 서울시 행정사무관<br />행정고시 24회
* 감사원 제2사무차장
* 감사원 제1사무차장
|직책 = [[대한민국의 감사원 사무차장|감사원 제2사무차장]]
|직책 = [[대한민국의 감사원 사무차장|감사원 제1사무차장]]
- 차수연 . . . . 8회 일치
||<#D7D8CA> '''{{{#584A41 이름}}}''' ||<(> 차수연 ||
[목차]
|| [[여기보다 어딘가에]] || 차수연 || [* 이 영화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
|| [[화차(영화)|화차]] || 강선영 || 특별출연 ||
|| 2015년 || SBS || [[내 마음 반짝반짝]] || 차예린 || ||
* 쌍꺼풀이 없는 눈이 매력적이었으나, 2010년경 쌍꺼풀 시술을 하여 --아쉽게도-- 쌍꺼풀이 생겼다. 그전에 느껴졌던 신비로우면서도 차가운 느낌이 예전만큼 나지 않아 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배우 본인은 정작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842873|만족한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차가운 이미지의 배역 밖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밝아진 배역도 맡을 수 있어서 좋다고.
- 킹덤/508화 . . . . 8회 일치
* 열미성 개문. [[왕전(킹덤)|왕전]]과 [[몽념(킹덤)|몽념]]이 기막혀할 정도로 빠른 속도다. 이제 [[비신대]]의 차례다.
* 바지오는 누구보다 먼저 적진으로 뛰어든다. 그가 솟구칠 때마다 적의 핏줄기와 머리가 함께 솟구친다. 열미군은 방진을 만들어서 바지오를 저지해보려 하지만 그의 날아차기 한 방에 방패벽이 몇 겹이나 깨져나가가고 방패병들이 압사하면서 진형이 무너진다.
이신은 하료초를 데리고 [[비신대]]로 돌아간다. 이게 그들의 차례였다.
* 지휘부의 감탄이야 어쨌든 전장에서는 치열한 난전으로 전개된다. 열미군은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여차하는 순간 역전 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기세가 강했다. 비신대의 신병들은 지나친 긴장과 첫전투의 흥분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간두]]는 노평 등과 함께 황오장 밑에 있었다. 다들 숨쉬기도 버거워할 정도로 첫 전투의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간두는 그들 중에선 오를 유지하라고 강조하며 훈련받은 대로 하자고 부대원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흥분한 노평이 실수를 저지른다.
* 노평의 죽음과 함께 그나마 정신을 붙잡고 있던 간두도 겁에 질린다. 주춤거리는 사이 혼자 적을 막던 황오장은 결국 쓰러져서 창을 맞는다. 앗하는 사이에 간두의 분대는 뿔뿔히 흩어졌고 간두 자신도 어느 틈에 그랬는지도 모르게 창을 잃어버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황오장을 죽인 적병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주저 앉은 그를 꼬맹이 취급하며 가차없이 창으로 찌르려 할 때, 그는 정말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는가하며 참담한 심정이다.
* [[수원]] 보병장이 직접 신병들을 구하러 왔다. 그는 신병들에게 "기대에 못 미치는건 아닌가"라며 오를 유지하라고 하지 않았냐고 야단친다. 간두는 노평 탓이라고 변명하다 걷어차인다. 수원은 간두같이 깝죽거리는 것들이 첫 출진 때 죽기 십상이라며 쓴소릴 한다. 간두와 친구는 울상을 짓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 수원이 돌아서며 말한다.
- 토이 솔져스: 콜드 워 . . . . 8회 일치
장난감 병정 [[타워 디펜스]] 게임인 [[토이 솔져스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1편인 [[토이 솔져스]]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했다면, 토이 솔져스: 콜드 워는 미국과 소련 간의 [[제3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다뤘다.
미국은 M134. 소련은 발칸-1. 둘 다 부무장으로 유탄발사기가 달려있다. 미국이 미니건을 사용하는 대신 소련은 유탄기관총을 사용해서 컨셉에 차이가 약간 있다. 미국이 시원한 연사력으로 쇼부를 본다면 소련은 한방한방으로 쇼부를 보는 느낌.
대전차포. 차량을 상대하는데 최적화 된 포탑.
중전차. 주무장은 전차포, 부무장은 기관총.
날아가며 적 보병과 장갑차를 투하하는 적. 투하하는 위치는 붉은색 연막으로 표시된다. 장난감 상자를 노리지는 않지만 격추시킬수는 있기 때문에 격추시켜서 자금 확보용으로 쓸 수 있다. 적 유닛을 투하하기 전까지는 체력이 뻥튀기되어 잘 안죽는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8회 일치
* 순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순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식.
* 순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순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식.
* 순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순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식.
* 순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순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식.
- 하이큐/259화 . . . . 8회 일치
* 자신의 "경험치" 속에서 "가장 꺼림직한 블록"을 발견한 [[히나타 쇼요]]. [[미야 오사무]]의 공격 루트를 차단하면서 [[미야 아츠무]], 오사무 형제의 괴짜 속공을 저지하는데 일조한다. 공은 [[사와무라 다이치]]에게 전해져 득점으로 연결, 스코어는 20 대 20으로 동점을 이룬다. 주춤했던 추격세는 부활, 고조된다. 히나타는 자기 자신이 뿌듯해 어쩔 줄을 모른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니가 득점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트집잡자 "나는 공격에만 재주가 있는게 아니다"는 말로 되갚아 주려 했지만 카게야마 측에서 무시.
* 예상을 뛰어넘은 카라스노의 선전. [[히바리다 후키]] 감독은 싸움의 구도를 "더 높은 차원에 도전하는 새내기"라고 표현했다. 하긴 강호 이나리자키도 어디까지나 도전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카라스노 라는도전자를 맞아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특히 카라스노에 대해선 정보량이 적긴 하지만 계속 새로운걸 시도한다는 걸 알겠다고 말한다. 이런 점은 [[우카이 케이신]]코치가 의도이기도 했다. 그런 시도들을 계속 던지는 것으로 경기의 균형을 잡고 있으며, 멈추게 되면 판도가 단숨에 기울 거라는 걸 안다.
*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로 경기 재개. 서브는 잘 쳤지만 오사무가 막아낸다. 흔들리며 떠오른 공. 좌익의 [[마지로 알랭]]에게 이어진다. 카라스노는 사와무라, [[타나카 류노스케]], 히나타까지 합쳐 총 세 장의 블록으로 대항하나 마지로는 그 셋의 블록 위에서 때리는 스파이크로 간단히 블록을 뚫는다. 이거야말로 할 말이 없어지는 공격. 카라스노 벤치와 관중석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 경기는 시소게임을 되풀이하며 22 대 21까지 왔다. 이나리자키가 한 점 차 리드를 지키는 가운데 마지로의 서브. 그는 독특한 동작으로 공을 튕기며 정신을 집중한다. 마지로의 파워풀한 서브는 카라스노에겐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 걱정을 입증하듯 무겁고 강렬한 서브가 날아온다. 위치는 정확히 타나카. 하지만 리시브하기도 버겁다. 공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높이 뜬다. 이것을 히나타가 처리한다. 자신도 놀랄 정도로 의외로 깔끔하게 아즈마네에게 향하는 공. 자기 나름은 괜찮은 리시브였다고 들뜨지만 옆에서 본 카게야마는 뽀록이라 일축한다.
* 아즈마네가 달려나온다. 이나자키는 기다렸다는 듯 블록 세 장이 올라온다. 그런데 아즈마네가 유독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 차이는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 정도가 눈치챈다. 아즈마네가 노리는건 명백했다. 블록 위에서 치는 스파이크. 하지만 그 의욕이 독이 됐을까? 타점이 빗나갔다. 공에 겨우겨우 스친 손. 공은 공중에서 튀어올라서 간신히 블록을 넘기고 떨어진다. 스파이크라고만 생각했던 이나자키의 후위가 황당해하며 달려온다. 하지만 공이 코트에 닿는게 먼저다. 어이없지만 득점 성공. 공격에 성공한 카라스노 측 조차 헛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즈마네는 속으로 왠지 미안하다고 씁슬해한다. 어이없어하는 이나리자키 진영.
* 로테이션이 돌아 다시 [[츠키시마 케이]]가 들어오고 니시노야가 나간다. 히나타의 서브 차례. 지금 히나타는 의욕이 최고일 뿐 아니라 묘한 자신감이 넘친다. 사실 블록이나 리시브에 비해서 서브는 훨씬 별로다. [[스가와라 코시]]는 그저 서브를 치려고 기합이 들어간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딱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1학년 선발 합숙 이후 히나타의 리시브는 뭔가 변했다. 거기에 방금 전 블록과 리시브 성공이 히나타의 기세를 올린 원동력일 것이다.
- 하이큐/265화 . . . . 8회 일치
* 봄고 1일 차의 밤은 살아남은 모든 팀에게 주어졌다. 당연히 [[네코마 고교]]에게도 싱숭생숭한 밤이 왔다. 3학년 [[쿠로오 테츠로]], [[카이 노부유키]], [[야쿠 모리스케]]는 숙소 로비의 쇼파를 차지하고 시시덕 거렸다. 그들에게도 첫 전국대회였다. 인터하이와는 또다르게 들뜨는 밤이었다. 야쿠가 좀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칸센을 타고 싶다면서. 카이는 은퇴하고 나면 올해 인터하이 때 응원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야큐가 나갈 수는 있겠냐고 반쯤 빈정대자 쿠로오가 후배들을 좀 믿으라고 면박했다. 마침 그 후배가 근처에 있었다. 카이가 자판기에 들른 [[코즈메 켄마]]를 발견했다. 음료를 뽑으려는데 다른 학교 학생 둘이 그 앞에서 잡담 중이었다. 숫기가 없는 코즈메는 비켜달라고도 못하고 뒤에서 머뭇대고 있었다. 그러자 학생들 쪽에서 먼저 그를 발견, "자시키와라시"인 줄 알고 자리를 양보해준다.
쿠로오의 쇼크. 본인이 정말 그렇다고 말하니 꽤 충격이다. 하지만 코즈메는 다시 "조금 그렇다는 얘기"라며 소꿉친구의 호들갑을 차단했다. 단지 신경 쓴다는 이유만으로 몇 시간씩이나 연습할 수는 없고 애초에 배구가 싫었다면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세상에는 [[히나타 쇼요]]처럼 100%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동기로 배구를 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쪽이 오히려 드물고, 그건 일종의 병이다.
두 소년은 공을 들고 공터로 갔다. 둘이서 시작한 레벨 노가다. 코즈메가 레벨 업이라고 말하게 된 계기였다. 이 그리운 시절을 회상하는 쿠로오에게, 야쿠가 가차없이 분위기를 깼다.
쿠로오는 야쿠가 정서란 말을 알기는 할지 궁금했다. 야쿠가 현재 최대로 신경 쓰는건 팀의 승리도 보람찬 플레이도 아니라 남은 봄고 4일차 동안 자신이 가장 튀어야 한다는 쇼맨십이었다. 여기에선 쿠로오도 지지 않았다. 자기는 벌써 여자 아나운서하고 인터뷰할 구상까지 해놨다고 대항했다. 이렇게 둘이서 투닥거리며 소란이 일었다. 아까 자판기를 선점하고 있던 타학교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렸다. 소란을 사과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사람은 카이 뿐이었다.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네코마의 봄고 1일차가 끝난다.
* 봄고 2일차. 카라스노 고교가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아 1세트 승리를 거머쥐기 30분 전.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가 괴짜 속공을 꽂으며 B코트의 관중석 분위기에 불을 질렀다. 여친 미카와 동행한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본래 C코트에서 진행 중인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보던 중이었다. B코트 쪽에서 환호성이 오르자 미카가 먼저 그쪽 분위기가 달아올랐다고 말하자 다이쇼도 그쪽을 신경쓰기 시작했지만 당초 관전 포인트는 네코마였다.
미카에겐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녀가 보기엔 사루카와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을 퍼붓는 중이었다. 하지만 선수 출신인 다이쇼가 보기엔 달랐다. 공격이 약하단 이야기가 아니다. 네코마 고교니까 이정도 점수 차로 막고 있지만 보통 상대였다면 훨씬 점수를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플레이 양상은 득점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네코마 측의 리듬을 무너뜨리는데 주안하는 인상이었다. 물론 그걸로는 결정타를 줄 수 없다. 아마도 진짜로 노리는 건 이것이었다.
- 한확 . . . . 8회 일치
[[1427년]]에는 그를 공격했던 좌군 도사(左軍都事) 최징(崔澄)이 역으로 무고죄로 처벌을 받았다.<ref>세종실록 38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12월 5일(무오) 2번째기사 "한확과 홍인을 무고한 죄로 좌군 도사 최징을 의금부에 가두라 명하다"</ref> [[142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는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진 내관 백언(白彦)이 그의 어머니에게 주는 단초(段綃)와 성(成)·차(車)·정(鄭)·노(盧)·안(安)·오(吳)·최(崔)씨 등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여인들이 쓴 편지를 고국의 가족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는 [[중국어]]와 [[한자]]에 능통했는데, 이후 명나라 사신이 입국할 때마다 선위사(宣慰使)로 파견되어 접대하였다.
동생 한전(韓磌)·한질(韓)이 모두 일찍 죽었는데, 한확이 그 고아를 무육(撫育)하기를 자기 자식과 다름이 없었다. 작품으로는 [[고려]]말기의 문신 [[차원부]]를 애도하는 치제문이 있다. 그가 죽자 [[조선 세조|세조]]는 9월 22일까지 정사와 조회를 중단하였다. 이때 강무까지 중단하려 하였으나 [[승정원]]의 반대로 강무는 계속하였다.
한확의 저술은 전하는 것이 없다. 다만 "[[차원부]] 치제문"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으나 실제와 다르고, 《차원부설원기》의 이본인 《차운암설원록》에 실려 있는 응제시 1편이 있으나 그의 저술이 아님이 논증되었다.<ref>[http://cafe.daum.net/moonwharyu/Gh3E/111 양성지와 한확의 차원부관련 글에 대한 고찰]</ref>
** 차녀 : 정선군부인 한씨
그러나 태종·세종 때 차례로 두 누이 동생을 공녀로 보낸 한확은 우의정과 좌의정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가 간통을 저질렀을 때도 세종은 "내가 죄 줄 수 없는 사람"이라며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4/19/2011041902632.html 나라가 힘이 없어 중국에 바쳐진 인간 진상품… 貢女(공녀) 잔혹사] 조선일보 2011년 04월 20일자</ref>
- 홍명희 . . . . 8회 일치
[목차]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우리에게는 소설 <[[임꺽정]]>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단 한편의 소설 《임꺽정》(林巨正)이 1928년부터 13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을 비롯해 1930년대 그가 쓴 거의 모든 글은 조선일보와 자매지 '조광'에 발표됐다. 여담으로 일제치하에서 수감된 문인들중 유일하게 옥중집필이 허용된 작가가 홍명희 였다. 홍명희가 수감된이후 임꺽정이 연재중단되자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총독부 관리들조차 임꺽정에 맛들려서 제정신을 못차렸던 상황. 옥중에서 임꺽정 집필이 완료되면 총독부 관리들이 먼저 읽고 조선일보에 넘겼다고 한다.
[[1928년]] [[11월 21일]] 연재되기 시작된 <[[임꺽정]]>은 홍명희의 투옥과 개인 사정 등으로 연재가 4차례 중단됐으며, [[1940년]] [[조선일보]]가 폐간된 뒤에는 ‘[[조광]]’에 발표됐다. 이 소설은 토속어 구사가 뛰어나서 ‘살아 있는 최고의 우리말사전’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소설에 대해 만해 [[한용운]]은 “연재기간의 연장으로는 세계적으로 최고 기록일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훗날 손자 홍석중이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으므로 대를 이어서 창작한 셈이다. 홍석중 씨가 완결을 발표하기 전에는 미완성 작품이라서, 홍명희가 북한에서 소설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었는데, 홍석중의 발언에 따르면 홍명희는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의 생각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임꺽정을 완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김일성]]과 친했던 점,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잘 대우받은 점 때문에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1990년대 중순부터에서야 서서히 알려졌는데, 그의 이름을 재발굴하려던 국내 학자들도 홍명희와 더불어 [[이태준(소설가)|이태준]]이라든지 여러 월북 작가와 더불어 꽤 여러가지 골치아픈 문제를 겪은 바 있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한용운이 홍명희보다 9살이나 많음에도 저렇게 서로 격의없는 것이 좀 의아할 수도 있을텐데, 지금은 1, 2년 차이로도 형동생이 나뉘지만 당시에는 위아래로 10년 정도는 그냥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 年長以倍(연장이배) 則父事之(즉부사지) - 나이가 배나 더 많은 사람에게는 아버지 섬기듯 하고, 十年以長(십년이장) 則兄事之(즉형사지) - 십년이 더 많으면 형님 섬기듯 하며, 五年以長(오년이장) 則肩隨之(즉견수지) - 오년이 더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되 조금 뒤서서 따라간다. 群居五人(군거오인) 則長者必異席(즉장자필이석) - 다섯 사람이 한데 모여 있을 때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자리를 따로 하는 것이다. - 예기]그런데 홍명희의 장남 홍기문은 아버지와 열다섯 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자기 친구가 알고보니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행사 때 아버지 친구이자 자기 친구인 사람이 오면 대하기가 꽤 곤란했다고.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7회 일치
*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
이는 승점이 같을 경우에는 골득실 차이를 통해 동점간 순위를 결정하며, 이것마저 똑같을 경우에는 다득점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데 2016시즌부터는 다음과 같이 변경된다.
*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
즉, 말하자면 실점까지 고려한 골득실차보다 얼마나 많이 넣었느냐에 따라 동점간 우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분데스리가의 10-11시즌부터 14-15시즌까지 과거 5시즌동안의 평균 골 수와 골당 관중 수의 변화추이를 확인하면 위의 링크한 기사와는 달리 연맹의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걸 알 수 있다. 13-14시즌을 제외하면 '''골 수가 줄어들었는데 전년보다 관중이 늘어나고, 골이 늘었는데 관중이 직전년도보다 줄어드는''' 상황이며, 이 13시즌조차도 증감폭에 의미를 두기 어렵다. 14-15시즌은 골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평균관중은 수십명 수준의 변화폭만 보여 여기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상황.[* 그마저도 그래프를 그려보면 반대방향을 그린다.] J리그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2012시즌부터 2015시즌까지는 골이 얼마가 되었든지간에 평균관중은 17000명에서 500여명 정도의 변화밖에 없고, 오히려 2011시즌에는 경기당 2.8골이 넘었지만 평균관중은 15000명 수준이었던 것이 2012시즌에 2.8골 미만으로 줄어들었음에도 17000명까지 평균관중이 증가한 것은 연맹의 주장이 뭘 어떻게 봐도 틀렸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컵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상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AFC 회원 랭킹 . . . . 7회 일치
보다 상세한 점수 집계방식은 아래 소목차에 따로 소개한다.
[[UEFA 계수]]와는 달리 국가대표팀의 성과를 클럽의 성과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AFC의 기본적인 시각이 드러나 있다. 클럽이나 국대나 어차피 종국에는 협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이므로 이 둘을 분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 말하자면 "협회국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측정하여 하나의 지표로 통합"하겠다는 점에서 UEFA 계수와는 차별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FIFA 랭킹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UEFA는 월드컵 진출이나 유럽 국가대항전과 관련한 시드배정에 UEFA 계수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사우디는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지난 4년동안(2012~2015) ACL 준우승을 두번 차지한 적이 있으니 그럭저럭 인정할 수 있겠고, 이란은 국가대표가 준수하게 활약하고 있어 국대점수를 최대로 받았으니 이 부분도 충분히 납득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주와 중국이 아랍에미레이트보다 낮게 나오는 점수는 그 누구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2013시즌, 2015시즌 ACL을 우승한 중국과 2014시즌 ACL을 우승한 호주의 2015년 클럽 점수가 각각 46.793에 41.273이다. 반면에 동 기간동안 준우승 1번밖에 없는 아랍 에미레이트는 54.503이다(...).
UEFA에서는 클럽의 성과를 측정하여 협회의 성과를 측정하고, 또 이로 인해 순위에 변동이 생기면 협회가 획득한 순위에 맞는 티켓을 다음 시즌에 부여함이 명료하게 적시되어 있다. 만약 잉글랜드가 뻘짓을 해서 UEFA 계수가 10위에 떨어지면 차기 시즌은 10위에 해당하는 UCL 티켓과 UL티켓을 받게 된다. 만약 리히텐슈타인이 갑자기 엄청 잘해서 UEFA 계수 1위에 올라오면 UL에만 참가가능한 대우가 UCL 4장, UL 3장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엔 별도의 의결이 필요없다.
하지만 AFC 회원 순위는 그 정도로 강력한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다. 차기 시즌에 부여할 수 있는 티켓은 모두 의결에 의해 판단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별도로 성적이 딱히 뚜렷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AFC의 의결에 의해 ACL로 올라올 수 있다. 즉, 객관적인 수준판단에 대한 신뢰성을 AFC 스스로가 버리고 있는 셈.
- FN 에르스탈 . . . . 7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벨기에 정부는 FN을 독일인들에게서 몰수, 벨기에 기업에 팔아넘긴다. 이때 쯤 FN은 총기와 자전거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30년대 대공황이 닥치며 자동차 사업은 군용차만 생산하는걸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FN도 독일 정부에게 징발당한다. 이 때 경영진들이 제작공구를 빼돌리는 등의 저항을 했다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가 되어 독일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까 싶자마자 독일군의 로켓병기로 보복폭격을 맞았다.
1960년대에는 자동차 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땠다. 대신 엔진 제작사들의 엔진을 조립하는 항공우주분야에 손을 뻗쳤다.
- Victoria II/POP . . . . 7회 일치
* Ideologies(사상): 해당 POP들이 가진 사상의 분포. 사상의 종류는 [[Victoria II/정당]] 페이지를 참고하자. 예시의 POP는 자유주의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사치 욕구: 탄약, 소화기, 비행기, 연료, 클리퍼 호송대, 증기선 호송대, 아편, 자동차, 전화기, 라디오
* 사치 욕구: 탄약, 소화기, 비행기, 고무, 석유, 연료, 클리퍼 호송대, 증기선 호송대, 아편, 자동차, 전화기, 라디오
자신의 돈으로 재료를 사 상품을 제조한다. 아직 공장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원자재 외 상품은 이들이 제조하게 된다. 뭘 어떻게 하는건지는 몰라도 전차와 항공기도 만들 수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 공장과 기능공들에게 밀려나 쇠락한다.
* 일상 욕구: 석탄, 유리, 종이, 담배, 차, 술, 일반 의류, 가구
* 사치 욕구: 비행기, 연료, 커피, 아편, 자동차, 전화기, 포도주, 사치품 의류, 사치품 가구, 라디오
가질 수 있는 육군 병력의 수를 제공한다. 만약 육군 병력이 피해를 입는다면 같은 지방, 같은 문화의 군인 POP들이 보충병으로 차출된다. 수가 부족하다면 병력이 보충되지 않는다.
- World Of Guns: Gun Disassembly . . . . 7회 일치
기본적으로는 [[부분유료화]] 게임이지만 총기나 골격, 차량 등등을 추가해주는 [[DLC]]가 있다.
=== 2차대전 총기 ===
* [[보이즈 대전차소총]]
* [[루거 22 차저]]
==== 자동차 ====
==== 군용차량 ====
* [[BMP-3|BMP-3 보병전투차]]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7회 일치
김모씨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6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정도로 불안정한 정신상태였다. 그의 병력은 조현증, 즉 정신분열증이었으며 평소 여성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대체로 수사관과 범죄심리학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기존 묻지마 범죄의 전례와 완전히 일치하며 특정한 편견에 의한 범죄가 아니므로 묻지마 범죄로 봐야한다는 여론이 강세이나 반대로 사회학자, 페미니즘 학자들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여성혐오범죄이며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며 강력 범죄에 취약함을 주지시키는 사건이라는 여론이 강세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극명하여 때아닌 성대결 양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경찰은 우선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묻지마 범죄는 그 어감 탓에 무차별 살인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다르다. 정신이상자가 비정상적인 동기에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정상인일지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묻지마 범죄로 부른다.
반대로 혐오범죄는 일종의 정치성을 띈다고 할 수 있는데 특정 대상에 대한 편견이나 비하에서 비롯된다는 차이가 있다. 김모씨는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 형태가 "여성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나 "여성의 음해로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다 같이 편견보다는 전형적인 망상의 형태이므로 혐오범죄의 유형과 다르다는 것이다.
사건이 격화되면서 나타난 의견으로 사건 자체가 여혐사건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입장도 있다. 사건 자체는 여혐으로 보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 전반이 여혐적인 사회인가, 혹은 여성범죄에 취약한 사회인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실제로 일부 통계에서는 강력범죄의 피해자 90%가 여성이라는 결과도 있는 반면, 통계를 왜곡했고 실질적으로는 의미있는 성차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작 피해자와 유가족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특히 피해자의 오빠는 여혐논란에 대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여초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유가족의 목소리 조차 "한국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비하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발언과 미러링이라는 핑계 조차 내다 던진 노골적인 남성혐오 때문에 "남성을 강간하자"라는 일베스러운 논의를 하다가 발각되어 기사화되기도 하는 등, 여초사이트의 명암을 극명히 드러내게 되었다.
- 김상조 . . . . 7회 일치
[목차]
훗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영수 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에는 특검에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는 조언을 하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과정 등에 대해 특검에 '''족집게 강의'''를 함으로써, 제2차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7/2017051702090.html|#]] 2016년 12월에 열린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상당한 손해를 봤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http://v.media.daum.net/v/20170315111345502|#]]
6월 12일 결국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었지만, 청와대에서 임명을 진행하여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이 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피링에서 길어진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며, 각종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이미 국민의 청문회를 통과했다는 발언을 하며, 공정거래의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원래부터 찬성 입장이었던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모두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7/06/20170613327266.html|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투쟁해나가겠다"며 맹렬하게 비난하였으며, 바른정당은 "오만한 문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 비판하였다. 국민의당은 당초 김상조 후보자의 임명 자체에는 반대가 없었던 터라, "국회 청문회 보고서 통과없이 임명되는 것에는 유감스럽지만, 이는 여당의 고집과 야당의 아집이 빗어낸 것이다"며 공동책임론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9334195&date=20170613&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9|대체적으로 야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3741|문 대통령의 연설 중 조는 모습]]이나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8&aid=0003847763&date=20170612&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24|원내대표 회담에 불참]]하는 등 애초에 협치를 바라지 않는 듯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애초에 협치를 바란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많다.
취임 이후에 각종 대기업의 부정한 내부거래 감사와 프랜차이즈 갑질 조사와 징벌적 손해보상 도입 등 정력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국민적 여론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특히, 그가 오랜 기간 강력하게 비판해온 재벌의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개선에 적극 힘 쓰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 취임 1년 사이 대기업집단(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순환출자 고리가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119&aid=0002254122&sid1=001|*]]
가족과 함께 2차례 위장전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주민등록초본을 보면 김 후보자 가족은 1994년 3월부터 경기 구리시 교문동의 동현아파트(현 구리두산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3년 뒤인 1997년 1월 김 후보자를 제외한 부인 조모 씨와 아들은 길 건너편인 교문동 한가람아파트로 서류상 분가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2개월 앞둔 때였기에 이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것.
목동의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다운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3068512|관련기사1]][[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9/2017052990167.html|관련기사2]][[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7&aid=0001129568|관련기사3]] 김 후보자가 제출한 자료에는 1999년 3월 양천구 목동의 현대 2차 아파트를 1억 7천 550만 원에 매입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국토 교통부가 제출한 부동산 거래 내역에는 5천만 원에 매입한 것으로 신고되어 있다는 것.
다만 당시를 기억하는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네 보고서 공개하기 어렵거나 혹은 연구자 업적에라도 도움이 되게 해준다고 따로 논문 내도 된다고 하던 시절이었고, 그것을 조건으로 액수를 적게 주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 기사 내용에도 2000년 3월부터 8월까지 총 5개월간 3명이 공동 연구비로 받은 비용이 700만 원으로, 월당 1인 비용으로 치면 50만 원이 채 안 되는 비용이기는 하다. 자료 수집 비용조차 제대로 안 주던 시절의 이야기. 게다가 학계의 관행에 비추어 봐도 2000년 당시에는 자기표절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건의 경우 악의적인 표절이라기 보다는 한 보고서 가지고 두 번(용역보고서+연구논문) 활용했다는 것이 문제인데, 당시에는 이러한 경우가 흔히 용인되었다. 지금도 레퍼런스만 달면 용인해 주는 경우가 많다. 연구용역 발주기관에서 이를 용인해주지 않는다면, 미리 계약서에 연구논문 출판 불허를 명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용역비를 주던가 한다.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7회 일치
이러한 주장의 또 다른 맥락은 독일국방군을 '유능'으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작전 차원의 유능과는 달리, [[전략]] 측면에서 독일국방군은 '무능'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간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독일방위군은 구 독일제국군의 직계로서, 독일제국군의 인적 자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제국군 당시 독일군의 장교단은 주로 [[프로이센]] 귀족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한편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기사도적 충성 사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또한[[반유대주의]]나 [[슬라브 민족]]에 대한 [[인종차별]] 같은 사상도 널리 퍼져 있었다.
실상은 이미 독일은 11월 혁명으로 거의 국가 체계가 붕괴할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빌헬름 2세]]는 방금 전까지 전쟁하던 [[네덜란드]]로 망명해서 내빼버리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 무렵 독일 내의 정당들 가운데 많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군부에 의하여 패전과 혁명이 겹쳐 거의 다 망하게 생긴 나라에 등떠밀리듯이 올려가서 수습하게 된 거나 다름 없는 상황(…)[* 물론 독일 사회민주당 역시 애국주의에 따라서 1차 대전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책임이 없는건 아니다.]이었다. 사실상 '''군부가 싸놓은 똥을 치우는 상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군부는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이 국가적 위기를 사민당과 좌파 세력이 만든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려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익 정치 세력과 결탁하게 되었으며, 베르사유 조약으로 [[무직]](…)으로 전락한 많은 독일군 퇴역 장교들은 우익 민병대로 흘러 들어갔다. [[나치 돌격대]]나 [[철모단]] 같은 우익 정치 조직은 퇴역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물론 좌익으로 흘러들어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독일군 내부에도 우익 세력이 침투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우익 단체들 가운데 [[나치]]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연합군의 허가와 지원을 얻을 수 있게 된 전직 국방군 장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사를 자신들의 시점에서 저술할 수 있게 되었다. 1946년 6월에, 프리츠 할더 육군 참모장이 책임자가 되어 328명의 독일 장교들이 제2차 대전 시기의 군사 서술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저술하였으며, [[독소전쟁]]에 대한 주요 자료 제공을 독점할 수 있었다.
- 동군연합 . . . . 7회 일치
맨앞에게 너무 유명해서 그렇지. 이 경우도 상당히 유명하다. 당시 헝가리왕이 아들없이 오스만제국한테 죽으면서 생겨난 동군연합. [* 다만, 2차 빈포위때 뽕을 뽑기 전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공세덕에 슬로바키아 지방만 겨우 지키고 있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발전한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전하면서 해체.
당시 보헤미아지방을 차지하던 룩셈부르크가가 단절되면서 생긴 연합. 다만, 보헤미아는 선거왕정이었기에 중간중간 오스트리아가 왕위를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생기면서 합병되었으며,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이 패배하면서 상실된다.
남프랑스 전역을 거의 장악하던 아퀴텐의 여공인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왕의 헨리2세와 혼인하면서 결성된 동군연합. 이로 인해 당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령에서는 명목상 프랑스 왕의 봉신이면서 정작 프랑스 왕보다 더 쎈 기묘한 위치를 차지했다(...). 사실 이 플랜태저넷 왕조 - 일명 '앙주 제국'의 정체성은 단지 '잉글랜드 영토'라는 식으로 국한하기는 좀 복잡했다.
다만 부부관계는 최악이라 헨리나 엘레오노르 둘다 정부를 거느렸으며, 둘의 불화는 악화되어 헨리가 엘레오노르를 가두기까지 한다. 이에 둘사이에 나온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단체로 대항했으며, 결국 리차드가 헨리를 투옥시키고 잉글랜드 왕위를 상속받으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됀다
이후 리차드의 동생인 '실지왕'존이 프랑스의 필리프 2세한테 탈탈털리고 기스코뉴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랑스령을 빼앗기고, 이후 백년전쟁때 프랑스령을 전부 빼앗기면서[* 칼레는 메리 1세까지 보유했다.] 사실상 해체.
- 로힝야 . . . . 7회 일치
로힝야는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에 80만명 가량이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에는 2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로힝야의 언어는 방글라데시 남부지방의 [[방언]]과 유사하다. [[미안먀]]에서는 [[불교]]가 다수 [[종교]]를 차지하고 있으나, 로힝야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 미얀마의 차별 ===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영국 통치 이후 미얀마에 이주하게 된 방글라데시 인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을 방글라데시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 정부는 '벵갈리'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를 차별하는 배경에는 [[종교]]가 있는데, 미얀마 [[불교]] 신도들의 '반 이슬람' 감정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 박해는 20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1962년 군부 쿠데타 집권한 네윈 정권은,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다수 불교도 위주의 정책을 펼쳤으며, 소수민족 탄압이 본격화 되었다. 1978년 네윈 정권은 무슬림 반군 토벌을 명분으로 하여, ‘킹 드래건 작전’ 을 펼쳐서 로힝야를 대규모로 체포했다. 로힝야 2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갔으나, 방글라데시에서도 지원을 별로 받지 못하여 1만 2천명이 아사나 병사했으며, 생존자는 미얀마로 송환됐다.
1982년에는 시민권법이 개정되어, 로힝야는 미얀마 국적도 박탈되었다. 1982년 시민권법은 미얀마 국민을 ‘태생시민’(Citizen), ‘제휴시민’(Associate Citizen), ‘귀화시민’(Naturalized Citizen)으로 분류하는데, 태생시민은 미얀마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종족과, 미얀마-영국 1차 전쟁이 있었던 1824년 이전부터 현재의 미얀마 영토에 거주했던 조상을 둔 주민에게 부여된다. 미얀마 정부는 130개 이상의 소수민족을 인정하고 있으나, 공식 종족으로 포함되지 않아 시민권을 얻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국제위기그룹의 보고서는 로힝야 무장단체가 국제무장세력과 연관이 있으나, 미얀마 내 불교도를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보다는 차별을 끝내고 시민권을 확보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종교적 주장을 펼치는 단체이고 국제 지하드 조직과 연결이 있어 언제나 목표가 바뀔 수 있으며, 미얀마 정부가 군사작전에만 치중하지 말고 로힝야의 고통을 외면하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 미얀마의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 신도들이 로힝야 탄압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민주화 투사인 그녀라 하여도, 정계에 몸을 담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며 다수 미얀마 국민의 여론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 리그컵(K리그) . . . . 7회 일치
|| 회차 || 연도 || 반기구분 || 타이틀 ||
리그컵이 갖는 의의는 제법 큰데, 한국프로축구계에서 돌아가는 상업시스템과 現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격축구를 향한 도전정신"(...)의 기반은 어느 정도 이 리그컵에 시행되었던 부분들을 다수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첫 아디다스컵 이후에도 흥행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회 운영방식을 바꾸는데, 하나같이 팀이나 팬이나 지치게 만드는 요인밖에 안 되어 결국은 흥행은 흥행대로 날려 종국에는 "리그컵은 종이컵"이라는 조롱을 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공격축구를 하겠다고 무승부시에 승부차기를 한다거나 서든데스제도를 도입하는 등, 골 수를 늘려보겠다고 별별 짓거리를 다 했지만, 1회차 대회부터 수비축구를 한 일화가 우승을 함으로써 지나친 실험정신은 변화를 꾀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말았다.[* 첫 대회때 우승한 일화는 3승 4무 2패에 골득11 골실10로 공격축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오히려 일화보다 더욱 공격적인 축구를 했던 LG가 4승 1무 3패 골득15, 골실11로 2위가 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촌극 끝에 결국에는 승점체계가 국제경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승3무1 방식으로 감으로써 당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흥행이라는 미명하에 한 행동이 모두가 뻘짓이 된 것.
아디다스컵이 처음 열렸던 시점만 하더라도 K리그와 사실상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과거 한국프로축구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리그컵이 처음 열렸을 당시에는 정규리그보다는 아디다스컵 관련기사를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10만달러 규모의 상금은 당시 국가대표 대회로 간주할 수 있었던 대통령배 대회를 빼면 축구계 최고액이었으니 당연히 화제를 몰고 올 수 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상황. 물론 이건 총 상금규모고 실제로 우승팀은 3000만원, 준우승팀은 1500만원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백히 K리그와 차별할 수 있는 위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K리그도 상금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K리그가 스폰을 받기 시작한 94시즌에는 1년동안 정규리그를 마치고 우승팀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 이때는 우승상금만 보면 아디다스컵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규리그와 리그컵간에는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하고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직후인 95년도에는 최대 획득가능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981096|우승상금이 1억 5천만원으로 책정]되며 리그컵과 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1억5천만원을 셋으로 나눠 전기리그 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 종합우승팀(통합챔피언 우승)에게 주었다. 한 팀이 전기리그 우승과 후기리그 우승을 둘 다 차지하면 1억5천을 그 팀 혼자서 갖고,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다른 팀이라면 5천만원은 준우승자에게 주는 상금이 되는 셈.] 전기나 후기 중 하나만 우승해도 리그컵보다 더 큰 업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그컵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 마기/329화 . . . . 7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신드바드 조차 루프에 간섭할 수 없었다. 그 덕에 세뇌를 피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자신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걸 뛰어넘을 수 있고 신 조차 능가하겠다고 선언한다.
* 알라딘은 그가 잘못됐을 뿐더러 인간 조차 아니라고 하지만 신드바드는 광기에 휘둘려 듣지 않는다.
신드바드가 자신의 루프만 그냥 뒀을리 없으니, 지금 자신의 생각은 신드바드가 주입한 사고가 아니냐는 것이다. 알라딘도 그 가능성은 잊고 있었는디 아차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성궁을 장악한 신드바드 조차도 알리바바의 루프만은 손을 댈 수 없었다. 인간이던 시절 그토록 알리바바를 "평범한 인간"이라 여겼던 신드바드는 신이 되고 나서야 "너는 신비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알리바바는 자신이 한 번 죽어서 틀에서 벗어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 알라딘은 그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부정한다. 자신은 인간이다. 그렇기에 꿈을 좇는다. 그 어떤 차원의 신보다 욕망스러운, 인간 "왕".
그는 우고를 미쳤다고 하지만 그 자신도 광기에 휘말리고 있는 듯 하며 우고와 마찬가지로 그를 중심으로 사물이 일그러지는 묘사가 있다. 현실 상으로는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분명 성궁에서 루프를 다시 쓰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한 번 죽어서 루프에 환원되기도 했다. 모두 정신적 소모가 심한 작업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우고 조차 정신줄을 놓게 만든 강대한 힘이 주어졌으니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 문근영 . . . . 7회 일치
||<#f08080><:> {{{#ffffff '''가족'''}}} ||<(><#ffe4e1> 외조부 [[후카다쿄코]][br]부모님, 여동생[* 여동생 김남주과는 5살 정도의 나이 차가 있다.] ||
[목차]
[[2012년]]에 SBS주말극 [[청담동 앨리스]]로 다시 메인 스트림에 복귀하였다. 이 작품은 부자와 사귀어 신분 상승이라는 통속적인 트렌디 드라마.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주말극으로 복귀한 것은 놀라운 시도. 보통은 평일 미니시리즈나 여하튼 평일 드라마로 나와야 맞다. 역할이 패션 [[디자이너]]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컸다.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 [[신데렐라 언니]]에서 톰보이... 우리 근영이 예쁜 옷좀 입혀주세요~~ 그러나 예비 패션 디자이너라기엔 너무나 안목 없는(...)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까였다. 드라마 쓸 줄 모르는 신인 작가들의 발질로 명장면, 명대사 하나 없는 드라마로 남고 말았다. ~~그래도 박시후가 맡은 차승조의 '한마디만 더하면 죽여버릴거야'[* 참고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한세경에게 내뱉는 대사다...], 한세경의 '내 죄에요' 등이 있다.~~
연예계 활동 때문에 학교 생활을 등한시하기 일쑤인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학창시절부터 성실하게 수업을 듣는 편이었다. 수업마다 편차가 좀 크긴 했지만 대체로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려 하는 등, 일반 학생들에 비해 참여도가 크게 뒤지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 2012년 1학기(문근영의 졸업 학기)에는 여러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떠드는 문근영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06년]]도만 해도 평범한 티셔츠에 월남치마 차림으로~~[[일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터라 자주 볼 수 있었다.[* 2012년 즈음에는 한겨울 학교에 야상+츄리닝 차림으로 도서관에 출몰해 고학번 ~~[[복학생]]~~ 포스를 풍겼다. 애석하게도 사진은 나돌지 않는다.] 학교에서 사인은 해주지 않았지만(같은 학생이니까) 성균관대 근처 식당엔 문근영의 사인이 많이 있다. 한때 [[미스터피자]] 광고를 했던지라, 그녀가 그룹 스터디 등을 할 때면 성대 근처 [[미스터 피자]]에서 항상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음식값은 공짜였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확인바람.[* 사실 '그 피자집 제가 가도 돈 다 내고 할인도 없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참 그 광고가 나가던 시절은 모르겠지만.]
2017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가운데 한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아이디가 문근영에게 외할아버지의 일을 바탕으로 "빨갱이 이미지"를 덧씌워 비방했던 사실이 드러났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70398&iid=5054248&oid=032&aid=0002820225&ptype=052|[단독]‘문성근 합성사진’ 유포 ID, 비방글 무차별 양산…최근 일제히 삭제]]
- 문희(배우) . . . . 7회 일치
[목차]
벽 속의 여자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과 다른 자기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역을 맡았다. 한복과 수수한 원피스 차림 중심의 전근대적 여성상과는 다른 롱코트와 부츠를 착용한 서구적인 면을 가진 역을 연기하였다.[* 옷차림이 지금이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세련되었다.]
[[서울특별시]]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남매 중에서 형제들은 모두 남자형제여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1965년 [[영화]] <흑맥>에 출연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 1967년 《[[막차로 온 손님들]]》
* 1969년 《[[차라리 남이라면]]》
* 1968년 제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 《[[막차로 온 손님들]]》
- 보루토/4화 . . . . 7회 일치
* 나루토는 시카마루에게 보루토의 2차 시험 돌파 소식을 듣고 환호한다.
* 3차 시험은 개인 대련으로 보루토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몰래 "과학닌구"를 사용하다 나루토에게 적발된다.
* 2차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안절부절하는 나루토. 시카마루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이미 들통나 있다.
* 나루토가 주먹을 내미는데, 과학닌구를 차고 있던 보루토는 차마 주먹을 부딪히지 못한다.
* 3차 시험은 개인 대련.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 "잘해주고 있다. 슬슬 우리 차례다"라고 말하는데...
- 보통국가 . . . . 7회 일치
[[목차]]
우익들이 말하는 '보통국가'는 사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기준이다. 현재 [[국제연합]] 체계의 '보통국가'는 일본의 평화헌법과 마찬가지로,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전쟁만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평화헌법이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전쟁 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실 내용상으로는 별 차이 없다. 따라서 현재 체계에서 딱히 일본이 다른 나라들보다 국제적 권리에 있어서 더 강한 제약을 받는 것은 '''전혀 없다.'''
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의 '[[전쟁]]에 대한 [[상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걸 무시하고, 1차대전 이전 기준으로 마음대로 다른 나라에 '침략'(그네들 말로는 '출병')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는 것이 일본 우익들의 주장인 것이다.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는걸 의도적으로 국민들에게 감추고, 1차대전 이전의 질서가 올바르다고 주장하고 있는 어이없는 모습이다.
- 붐(연예인) . . . . 7회 일치
[목차]
중3 때 혼성그룹 "키"로 데뷔했다. 이후 1999년과, 2001년 각각 뉴클리어, 레카[* 붐이 방송에서 과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요계를 이끌어가는 [[렉카차]] 드립을 치고 자막에서도 '렉카'로 표기해 '렉카'인 줄 아는 사람이 많으나,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인 '[[레카]]'의 실사판 그룹이다. '레카'가 나름 인기를 얻자 업체 쪽에서 여러가지 사업 시도를 했었는데 그 중 하나. 물론 결과는(...)... 참고로 [[거북이(혼성그룹)|거북이]]의 금비가 이 그룹 멤버였었다.]의 멤버로 활동했으나 셋 다 쫄딱 망했다. 이후 그룹명을 '가요계의 열쇠가 되자'고 해서 '키' 라고 했는데 자기네가 잠기고, '핵폭탄급 반응을 일으키자' 해서 뉴클리어라고 했는데 자기네들이 터지고, '가요계를 이끌어보자' 해서 렉카라고 했는데 끌려갔다고 스스로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Key 2집 타이틀인 'Forever love'는 청각장애인인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의 친형을 모티브로 뮤비를 만들었다. --정작 열쇠가 된 건 [[샤이니]]의 [[Key(샤이니)|키범이]]...--
'''그리고 아래의 차고 넘치는 사건사고들로 인해 그가 그 이전부터 엄청나게 까였음과 동시에 과거부터 엄청난 비호감이었다는 걸 잘 알 수가 있다'''.
2009년 10월 29일 현역으로 입대하여 국방부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에서 근무. 보통 국방홍보지원대는 [[일병]]선 이상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붐처럼 훈련소 퇴소하자마자 바로 배치받는 것은 특이한 경우다. 게다가 배치받자마자 바로 위문열차 MC로 깜짝 발탁되었다.
2013년 11월에 [[이수근]], [[탁재훈]], [[토니 안]], [[앤디(신화)|앤디]], [[양세형]] 등에 이어 붐도 11일 불법도박 혐의로 소환 당했다. 가뜩이나 잦은 사건사고 및 군대 문제로 이미지가 원래부터 안 좋았던 마당에 맞대기 도박 혐의까지 밝혀지면서 그런지 넷상은 일제히 [[위 아 더 월드#s-2|위 아 더 월드]]. 현재 소속사 측에서는 결국 검찰 조사 받은 걸 인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것에 상관없이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31111201004280?f=m|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는 뜻을 밝혔다]].
* 《위문열차》국군방송(KFN) 진행
* 《20세기 차트쑈 소년중앙》(중앙일보 QTV)
- 블랙 클로버/104화 . . . . 7회 일치
* 그런데 바로 뒤에 나타난 [[야미 스케히로]]는 축제 차림이랍시고 훈도시 하나로 돌아다니고 있다.
* 자신의 가문과 영지의 주민들까지 휩쓸리게 되어 절망하고 있던 차에 그녀를 구하러 온게 야미였다.
* 아스타를 적당히 던져좋은 솔은 원래 목적대로 자신이 구해온 드레스를 샬롯에게 입힌다. 샬롯은 남자한테는 과격하지만 여자끼리는 약한지 순순히 그 옷을 갈아입어준다. 솔과 아스타를 비롯해 구경꾼들이 그녀의 드레스 차림을 칭송한다.
* 샬롯이 이런 꼴은 다른 단장들에겐 못 보여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소란이 일어난 걸 듣고 [[야미 스케히로]]가 찾아온다. 일전에 드러났다시피 사실 야미에게 반해있는 샬롯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쓴다. 야미는 샬롯이 평소에 안 하던 드레스 차림을 한 걸 보고 "반짝거리는걸 다 입었다"라며 웃는데 샬롯은 가까스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야미 쪽이야 말로 묘한 의상이라고 지적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냥 훈도시 차림이다.
어떤 마도사가 로즈레이 가문에 원한을 품는다. 그는 기괴하고도 무서운 저주를 걸었는데 로즈레이 가문의 딸이 18세가 되는 날, 저주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 시간의 감옥에 가둘 것이라했다. 샬롯의 부모님은 그저 울 뿐 아무런 대책이 없었는데 어린 샬롯은 그 누구보다 강해져서 저주 조차 이겨내겠다는 담대한 의지를 밝힌다.
이후 그 말대로 샬롯은 끊임없이 강해져서 푸른 들장미단에 들어갔을 땐 이미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그 강함과 미모 때문에 구혼자가 줄을 이었지만 샬롯은 자기를 이길 수도 없는 구혼자 따위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기도 이길 수 없는데 앞으로 발동할 저주를 이겨낼리가 없기 때문이다. 약해 빠진 구혼자들에게 실망한 샬롯은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저주를 이겨내겠다고 결심한다.
- 블랙 클로버/119화 . . . . 7회 일치
* [[릴 부아모르티에]]는 어리숙한 첫인상과 달리 분명 단장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팀의 총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상대측의 두 마법기사를 간단히 제압, 손쉽게 I팀의 승리로 연결시킨다. 동료들도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두말이 없어졌지만, 정작 그는 방금 전 "한 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쓴 회화 마법은 시합장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으나 그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구석이 많다며 반성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좀 더 시합에 집중해주질 바랐지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집사 "발터"는 이런 태도 조차도 "도련님이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니까 주변 사람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는 거다"고 이 또한 그의 재능이라고 포장한다. 어리숙한 걸론 안 빠지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설명이었다.
* 이어지는 6시합은 [[락 볼티어]]의 차례였다. K팀은 검은 폭우의 5등 하급 마법기사 락과 금색의 여명의 3등 중급 마법기사 [[클라우스 류넷]]이 한 팀이었다. 락은 이런 전투광 답게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클라우스는 고지식하게 "진지하게 임해라"고 한 소리 늘어놓아서 티격태격한다.
로브의 강함은 락의 힘을 더욱 끌어냈고 한 차례 더 가속시켰다. 락은 로브도 반응하지 못하는 속도로 쐐기같은 킥을 꽂아넣었고 로브와 크리스탈을 단 일격에 파괴한다. K팀의 승리. 락은 엄청 재밌었다고 만족한다.
* 시작 전만 해도 사이가 나쁠 거 같았던 세 사람은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주고 받는다. 클라우스 조차도 기뻐하며 락에게 달려왔다. 푸리는 두 사람 모두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스타와 매그너는 동료의 승리를 기뻐하며 "너무 강해진게 아닌가" 투덜댔다.
- 서강준 . . . . 7회 일치
서강준은 2013년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웹 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정식 데뷔하였고, 이후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에서 은한결([[김소현]] 분)의 밴드부 선배 최수혁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당초 다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수상한 가정부》 오디션을 권유 받게 되었고 얼떨결에 합격했다고 한다.<ref name="enews24">{{뉴스 인용|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300988|제목=[인터뷰] 서강준, "대형신인이요? 천천히 가고 싶어요"|저자=안소현|날짜=2013-12-09|출판사=enews24|확인날짜=2014-05-17}}</ref> 그러다가 [[MBC]] 단막극 《[[드라마 페스티벌|드라마 페스티벌 - 하늘재 살인사건]]》을 연출한 최준배 감독이 서강준이 출연한《수상한 가정부》를 보고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문소리]]의 상대역인 윤하 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enews24"/> 2014년 초, 서강준은 [[MBC]] 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에서 여주인공 나애라([[이민정]] 분)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연하남 국승현 역을 연기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그는 2014년 5월 4일부터 2015년 4월 14일까지 [[S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 [[룸메이트 (텔레비전 프로그램)|룸메이트]]》에 고정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서강준, ‘룸메이트’ 멤버들과 쫑파티 인증샷…“자주 봐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47007|출판사 =OSEN |저자 =정소영|날짜 = 2015-04-21|확인날짜 =2017-09-07}}</ref> [[삼성그룹]]에서 제작한 웹드라마 《[[최고의 미래]]》에 이어,<ref>{{뉴스 인용|제목=‘최고의 미래’ 서강준 “민아 첫인상, 신기했다…동갑이라 빨리 친해져”|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336999|출판사=매일경제|저자=|날짜=2014-10-27|확인날짜 =2017-09-07}}</ref> [[KBS2]]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했다. 이후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 영화)|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연달아 출연하며 차근 차근 연기 내공을 쌓아갔다.
2015년 서강준은 [[MBC]] 대하 드라마 《[[화정 (드라마)|화정]]》에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어 소신과 명석함을 지닌 꽃도령 홍주원 역을 맡아 6개월여동안 최종회까지 대장정을 소화해내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2016년에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드라마)|치즈 인 더 트랩]]》에서 ‘츤데레’ 매력남 백인호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때는 촉망받던 피아노 천재로 까칠한 겉모습과 달리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백인호 캐릭터를 극대화 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서강준, 물오른 4년차 '치인트'로 폭발|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123528|출판사=한국일보|저자=황지영|날짜=2016-01-20|확인날짜 =2017-09-07}}</ref> 그는 실제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데뷔 이후 드라마와 예능, 해외 팬미팅 등에서도 간간히 연주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치인트’ 서강준, 여심저격 피아노 신 진실 밝혀…“그 정도 실력 안돼”|url=http://m.hankooki.com/m_sp_view.php?WM=sp&FILE_NO=c3AyMDE2MDEyODEwMzQyMzEzNjY3MC5odG0=&ref=m.search.naver.co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수민|날짜=2016-01-28|확인날짜 =2017-09-07}}</ref> 2016년 11월, 서강준은 대한민국 차세대 스타와 그를 둘러싼 연예계 일상을 그린 100% 사전제작으로 제작 된 [[tvN]] 드라마 《[[안투라지 (2016년 드라마)|안투라지]]》에서 연예인들의 연예인, 가장 핫한 배우 차영빈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개연성 부족한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불협화음으로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미드 리메이크' <안투라지>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36516|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윤현|날짜 = 2016-12-26|확인날짜 =2017-09-07}}</ref>
| 차영빈
| 〈차 마실래?〉
- 송원근(배우) . . . . 7회 일치
[목차]
이후 MBC 예능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7차 경연에서 [[오필승 코리아]]라는 닉네임으로 참가해서 2라운드까지 갔다.[* 참고로 2라운드에서 9표 차로 가면을 벗었으며 일반인 기준으로는 2표 앞섰다.] 과거의 가수 활동에 많은 상처를 받아 다시 무대에 서기가 두려웠는데, 복면덕분에 무대에서 노래부르는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공교롭게도 메인 악역을 맡은 [[최필립]] 역시 [[한 꼬마 인디언 보이]]라는 이름으로 복면가왕에 참여했다. --결국 [[나홍주|남주인공]]과 [[차선우(내일도 승리)|최종보스]]만 복면가왕에 출연했구만--
* 2014년 1차 [[쓰릴 미]] - 그 역
* 2014년-2015년 2차 [[쓰릴미]] - 그 역 [* 2월 17일부터 2월 25일까지 신성민 배우와 5회 특별 공연을 했다.]
* [[쓰릴 미]]에서는 그(리차드)가 나(네이슨)의 멱살을 잡아 올리는 장면이 있다. 2013년 [[쓰릴 미]] 에서 배우 [[정상윤]]과 본페어였는데, 연습을 하기 전 정상윤 배우에게 "형, 연습이지만 막 해봐도 돼요?" 라고 물었고 정상윤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연습할 때 그는 정상윤의 멱살을 잡아올렸는데 정상윤이 아프다고 했고 ~~그 날 아프다는 소리를 40번을 들었다고.~~ 그는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공연을 하던 [[전성우(배우)|전성우]] 배우가 전에 이렇게 아파한 배우가 있었는데, 병원에 갔더니 연골뼈가 끊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말해주었고 엑스레이로는 안나오고 초음파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정상윤 배우가 병원에 갔고 검사를 해보니 골절이 되었다고(..). 그 길로 백화점에 달려가 칼슘제를 사 먹였는데, 정상윤 배우가 약을 잘 챙겨먹는 편이 아니라서 서운했다고 한다(......). 그 후로는 멱살 잡는 동작을 조심해서 했는데, "자세히 보시면 아직도 제가 잡으려고 할 때 상윤이 형이 살짝 피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웃음)"'''.
- 식극의 소마/202화 . . . . 7회 일치
* [[나키리 아자미]] 진영은 마찬가지로 열차로 이동 중. 십걸들은 반역자들을 일소할 기회라며 즐거워한다.
* 한편 아자미는 양측의 열차가 교체하는 순간 접촉해 연대식극의 세부 룰을 정리하자고 계획을 잡는다.
* 한편 십걸 측도 열차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나키리 아자미]]로부터 연대식극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는다. 아자미나 소마측처럼 흥분된 분위기는 없지만 "한꺼번에 반란자를 일소할 수 있으니 좋다"는 정도의, 뜨뜻미지근한 호응이다.
* 그때까지 요리란 완전히 계산되고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것이라 여겼던 에리나는 평소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갑자기 스테이크를 굽는, 옆에서 보면 정신나간 짓에 합류하는 결단을 내린다. 아쉬 파르망티에는 고기가 쓰이긴 하지만 다지거나 잘게 썬 것을 쓰지 스테이크를 통채로 쓰진 않는다.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의미를 모르겠다고 혀를 차지만 소마와 죠이치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이러는 사이 센트럴 측에서는 아자미가 연대식극의 세부 룰에 대해서 조율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한다. 그는 그들의 열차와 다른 열차들이 교차하는 어떤 지점에서 세부룰을 확정하고 딸 에리나에게서 자신이 바라던 대답을 듣겠다고 기대하고 있다.
- 식극의 소마/212화 . . . . 7회 일치
* 먼저 심사를 받는건 [[키노쿠니 네네]]. 적과 아군의 모든 이목이 그녀의 한 그릇으로 모인다. 갇혀있는 반역자들 조차 너무 맛있게 보인다고 혀를 내두르는 소바. [[샤름]]은 면의 윤기와 결을 "우아한 여성의 살결"에 비유하며 [[이스트와르]]는 에도소바의 가계 답게 기술을 멋지게 계승했다고 평한다.
이번엔 진정하고 차분히 맛을 음미하려는 두 심사의원. 그런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 젓가락씩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빈 그릇만 남았다.
* 허둥대는 두 사람과 달리 안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차근차근 이 음식의 비밀에 대해서 밝혀낸다. 우선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벚꽃 새우 카키아게. 내용을 다 외우고 있단 말이 허풍이 아닌지, 그 많은 교전 더미에서 망설임없이 한 권을 골라낸다. 그리고 서슴없이 펼친 페이지에는 지금 필요한 정보가 정확히 기록돼 있다. 유명한 식당 "무라마치 스나바"는 보리 새우 카키아게로 명성을 떨친 바가 있다. 키노쿠니는 여기서 강한 맛의 보리새우 대신 섬세한 맛의 벚꽃 새우로 대체해 자신이 만든 섬세한 맛의 9할 소바와 궁합을 맞췄다. 이 조합은 서로의 시너지를 이끌어내서 다 먹을 때까지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 파괴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맛에 취해서 언제 다 먹었는지도 모르게 만들 정도. [[요시노 유키]]는 그 위력이 차라리 무서울 정도라고 경악한다.
* 네네의 평가가 끝나자 이번엔 소마가 음식을 내놓을 차례. 그런데 압도적이기까지 한 네네의 평가를 보고도 소마는 전혀 주눅든 기색이 없다. 그는 오히려 이런 말을 꺼내 네네를 도발한다.
차회는 잡지 휴간에 따른 휴재
- 식극의 소마/225화 . . . . 7회 일치
* 종래의 한계를 뛰어넘은 [[미마사카 스바루]]의 새로운 필살기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강적 중의 강적인 십걸 4석 [[사이토 소메이]]의 기술을 완벽하게 따라하며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선전을 펼쳤다. 환호하는 반역자 동료들.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도 감탄을 마지 않는다. 아무리 동료와 연계가 허용된 연대식극이라지만, 동료를 서포트하는 행동은 리스크가 크다. 십걸들 조차 자기 조리에 매진할 뿐 동료와 협조하진 않는 것도 그 탓. 이런 상황에서 서포트와 자기 조리를 양립할 수 있는 미마사카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이스트와르는 미마사카야 말로 반역자 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최고의 전력이라 단언한다.
듣고 있던 [[코바야시 린도]]가 정색한다. 이어서 [[츠카사 에이시]]도, 외야의 모모나 적인 [[메기시마 토스케]] 조차 한다고 증언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사이토가 의외로 얼빠진 구석이 있는걸 알게 되자 "재미있는 사람이다"고 평한다. 메기시마도 "상당한 별종"이라고 동감한다.
정작 사이토는 미마사카를 "정말이지 재미있는 남자"로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애도 "이사나키리"을 뽑아 남은 참치 해체를 단숨에 마친다. 그러고는 칼을 잘 닦아낸 뒤에, 놀랍게도 미마사카에게 건네준다. 이걸로 남은 해체를 마치라는 소리였다. [[타쿠미 알디니]]는 처음에는 무슨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다.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 "대등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다. 미마사카가 설령 같은 수준의 기술을 구사해도 도구에서 수준 차이가 난다면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사도"에 어긋난다는게 사이토의 생각이었다. 린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메기시마도 "귀찮은 버릇"이 나왔다고 중얼거렸다. 사실 사이토는 진지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온갖 만사에 무사도를 들이대며 별 것도 아닌데서 무사도를 발견하고 집착하는 성미.
*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솜씨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었지만 역시 힘이 들었다.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의 고행에 가까운 노력은 연대식극에 멤버로 지목된 이후부터 시작됐다. 월영 열차 식당칸. 미마사카는 거기서 연대식극에 대비한 "십걸 전원 트레이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던 그도 무릎에 힘이 빠질 만큼 고된 훈련이었다. 연대식극에서 누구와 상대할지 모르는 만큼 십걸 전원 트레이스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요리사에 대해 동시에 트레이스를 진행하는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 연습단계에서 이정도라면 실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 훈련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열차를 통제하는 진행요원이 소등시간을 한참 지났는데도 조리실에 불이 들어와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안에 있는 사람을 서둘러 객실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문을 여는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십걸 전원 분의 코스프레를 시도하고 있는 미마사카가. 린도나 츠카사, [[에이잔 에츠야]]와 키노쿠니, [[아카네가쿠보 모모]] 조차 재현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기가죽은 진행요원은 차마 아무 말도 못한 채 동상같이 굳었다.
- 신동주(야구) . . . . 7회 일치
||<:> 주재필(2003) || → ||<:> '''신동주(2004)''' || → ||<:> 차민규(2006~2007) ||
[목차]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태(1969)|김기태]](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상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태(1969)|김기태]]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러나 [[김기태(1969)|김기태]]와 [[마해영]] 등 거포영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상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초 [[강영식]]과의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해태-KIA에서도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후 KIA로 이적한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친정팀인 삼성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오고 이듬해인 2006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영식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 요괴:냉장고 . . . . 7회 일치
커다란 [[장롱]] 모양을 한 요괴. 언듯 보기에는 평범한 장롱으로 보이지만, 문을 열어보면 안이 매우 시원하고 차가워 요괴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 안에서 주로 나타나지만, 밖에서 볼 수 있는 때도 있다. 냉장고가 우글우글 모여있는 곳도 있다.
문을 열면 그 뱃속이 차가워서 얼음을 만들거나 먹을 것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언듯 편리하게 여겨져서 좋은 요괴라고 여기지만, [[요괴:선풍기|선풍기]]처럼 친근하게 다가갔다가 마각을 드러내는 무서운 요괴이다. 주로 냉기로 사람을 유혹해서 집안에 들여놓게 하지만 그 집의 전기를 한없이 퍼먹어 집주인에게 재액을 끼치는 흉흉한 요괴이다. 여름철 이상하게 많이 나오는 전기세의 원인이 이 요괴이며 집주인은 영문도 모른채 쓸데없이 [[요괴:에어컨|에어컨]]만 탓하게 한다. 아종으로 [[요괴:김치냉장고|김치냉장고]]가 있다.
집 밖에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냉장고는 배 안이 차갑지 않다. 하지만 이 역시 숨바꼭질을 하다가 혼자가 된 아이를 덮처서 먹어버리는 경우가 있어, 얼른 멀리 쫓아서 퇴치해야 한다.
뱃속을 차갑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애의 조금 징그러운 상상을 알아차렸죠. 우린 아직 초등학생이었지만, 어른 커플들이 그런 말을 주고 받는다는 거나 그러고 나서 뭘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그애도 그런 짓까지 생각했는진 모르지만, 어쨋든 조금 더 친밀한 일을 하고 싶었던 거겠죠. 나는 솔직히 그런게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해서 어색해지고 싶지도 않았아요. 그래서 핑곗거리를 만들어냈죠.
그리고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 것도. 그 애가 고르라던 두 가지 쥬스 조차도. 네 박자와 함께 사라져 버렸던 거에요. 나는 서둘러 문을 닫아버리고 동생의 손을 잡아 끌었어요.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결국 햄스터는 사주지 않은 것과, 그 애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는 거에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길에서도. 그 애가 잘 다니던 어디에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죠. 걔네 부모님들은 필사적으로 찾아다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죠. 나는 차라리 나타나지 않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돌아온다면...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무엇을 하다 온 걸까요? 그 애가 원래 살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건 물어볼 일이 없는 편이 나았죠.
- 원피스/843화 . . . . 7회 일치
* 일행은 홀 케이크 성으로 향하던 제르마의 고양이 마차와 마주치고 상디는 밀집모자 일행을 발견하고 크게 당황한다.
* 그리고 나미에게 빅맘의 자식들 조차 가지지 못하는 비브르 카드를 어떻게 손에 넣었냐고 묻는데 나미는 "그만큼 중요한 물건인가 보네"하며 입맛을 다신다.
* 그때 킹바움이 "운이 좋다"는 말을 하는데, 마침 전방에 빈스모크 가가 탄 고양이 마차가 보인다.
* 그 말을 듣고 잠에 깬 루피가 단숨에 마차로 달려간다.
* 나미도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하는데,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이 눈이 하트가 되며 정신을 못 차린다.--형제 맞네.--
* 다짜고짜 마차에 달려드는 루피. 일행의 근황을 전하며 돌아가자고 말한다.
* 루피를 걷어차 떨구는 상디.
- 원피스/863화 . . . . 7회 일치
* 루피는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노리나 미래를 예지한 [[샬롯 카타쿠리]]에게 걷어차여 제지, 게다가 왠지 카타쿠리에게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 카타쿠리가 루피에게 "사진에 대해 누구에게 들었는지" 캐물을때 [[징베]]가 홍차로 해수 업어치기를 시전해 카타쿠리의 다리에 끼얹어 녹여버린다.
그때 페드로가 루피를 원호하려고 달려오는데 징베가 자신에게 맡기라며 테이블에 있던 홍차로 "해수 한 판 엎어치기"를 시전한다. 그가 노린 것은 루피를 붙잡은 카타쿠리의 다리였다. 물기가 덮치자 루피는 아주 손쉽게 빠져나온다. 징베는 카타쿠리가 자연계 "탱글탱글 열매"(모치모치, 떡떡열매)라고 밝힌다. 물기를 붙히면 빠져나올 수는 있지만 될 수 있는 한 접근하지 말라고 루피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마더 카르멜의 정보를 넘긴건 자신이라고 밝힌다. 그건 혹시라도 벳지가 노출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 자신이 산하에 있는 동안 주워들은 거라고 얼버무린다.
한 번 그에게서 "포기"를 받아낸 빅맘은 이번에도 희희낙락하게 "대가를 내놔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자 징베는 "다른 이에게 손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당신이 거둬갈 수 있을 만큼 수명을 내놓겠다"며 응한다. 루피 조차도 "죽으면 동료가 될 수 없다"고 만류하지만 징베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빅맘은 동정은 하지 않겠다며 곧바로 소울 보커스로 "스테이(잔류) 오어 라이프(목숨)"이라 묻는다. 징베는 망설임없이 "라이프"를 선택한다.
* 모간즈 조차도 여기서 징베가 죽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징베에게선 영혼이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빅맘이 당황한다. 그녀의 능력을 아는 하객들도 술렁거린다. 결국 누군가가 "저건 빅맘을 1mm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해버린다. 그 말대로다. 징베는 자신이 빅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한다.
뒷끝을 부리는 것은 빅맘. 그녀는 징베가 내려놓은 술잔을 밟아 부수며 "축하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곧바로 귀신상을 하며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적!"이라며 가차없이 징베를 공격한다. 어지간한 건 넘어가는 루피도 "구질구질하다"고 내뱉을 만큼 지저분한 뒷풀이다.
차회는 잡지 휴간으로 인한 휴재.
- 윤태진(아나운서) . . . . 7회 일치
[목차]
[[2010년]] [[남원춘향제#s-2.3|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서 선이 된 뒤 진([[효영]])과 함께 [[아침마당]]에 출연했었는데 [[이금희(방송인)|이금희]]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고. '아나운서는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단다. 계약직이긴 해도 단 5개월만에 공채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당시 부모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서 무용을 포기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있던 차에 이금희에게 권유를 받으며 방송이라는 새로운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붙으니까 좋아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계속 무용을 할 걸하는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안 경제 상황의 변화가 없었다면 계속 무용을 하고 성공해서 나중에 교수까지 되는 걸 목표로 노력했을 거라고.]
* 온라인 축구게임 [[차구차구]]의 모델로 활동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wwH6C5H4MM=0|영상]]
* KBS joy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 재연 배우로 6회, 11회 2번 참여했다. 6회에서는 권태기인 남자친구를 잡기 위해 다이어트와 성형을 감행하고 남자친구를 사로잡는데 성공했으나 자신이 권태기에 빠진 미녀의 모습으로 나왔으며, 11회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차였다가 남자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매달리자 다시 만날까 고민하는 학교 선생님 역할로 나왔다.
* 2018년 5월 29일 [[배성재의 TEN]] 생방송에서 추억의 탈것중 기차의 먹을거리 업체를 사람 이름의 아저씨으로 말하는 엉뚱한 매력의 흑역사를 표출하였다.. [[홍익회]]
* 개인 사정으로 2018년 7월 31일을 마지막으로 [[배성재의 텐]] 화요일 코너 <아재판독기> 고정 게스트 자리에서 하차한다....인줄 알았으나 2018년 8월 7일부터 파일럿 코너로 함께한다. 즉 <아재판독기>는 코너 마지막이다. 하지만 제작진들의 장난에 속아서 2018년 7월 24일 방송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 은혼/611화 . . . . 7회 일치
* 우주의 해방군 본대는 지구측과 통신조차 두절되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대기 중이선 함대까지 이상이 오고 최종적으론 더이상 병력을 충원하는건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상 황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원상에게 사카모토 다츠마는 "장군님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줄 생각이었겠지만 습기가 차버렸군"이라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서있기도 지친다며 그냥 감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원상은 돌아가려는 그들을 불러세우지만 도쿠가와 사다사다는 "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 3대 용병민족 중 하나인 다키니는 이 과정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해방군 본진과 단절된 걸 기회삼아 얼렁뚱땅 전군 지휘를 자처한다. 다키니의 리더 오우가이는 지구인들이 재미있는 짓을 해줬다고 좋아하는데, 현재의 전장이 기계 위주가 되면서 시시해졌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덕분에 과거의 "멋진 전쟁"으로 돌아갔다며 병기라면 "훼괴전차"라 불린 자기 자신들이 건재하다고 투지를 과시한다.
* 같은 용병민족이지만 신라 측은 드라이하게 관망하고 있다. 리더인 소타츠는 다키니는 이끼 낀 고대 유물들이라고 비하하며 어차피 현시점에선 통솔도 어려울 병력 따윈 다키니에게 던져주자고 한다. 저들이 지구측과 교전해서 교착상태가 되면 그때야 말로 자신들이 목표를 달성할 때라는 것.
* 오우가이는 병사들을 모아서 병기는 못 쓰게 됐지만 적도 마찬가지며 병력 자체는 자신들이 압도적이라고 교시한다. 그리고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파괴하고 본대와 통신을 복구하는걸 목표로 하여 진격을 명령한다. 따라서 이들은 가부키쵸를 향해 진격하게 되는 셈. 해결사 일행은 이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구라와 신파치는 가부키쵸의 동료들을 걱정하는데 긴토키와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정도는 가부키쵸에서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본진과 단절된 이상 해방군의 행동은 정해져 있던 셈이고 가부키쵸에서는 그걸 감안해서 미끼역을 자처한 것이다. 핫토리는 전쟁에서 중요한 점은 적의 행동을 먼저 아는 것이라 강조하고 곤도 이사오는 에도 전체를 상대로 무차별 파괴를 하던 해방군이 뚜렷한 목표로 일정한 작전을 수행하게 됐으니 오히려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때라고 말한다.
* 한편 가부키쵸의 주민들은 오토세 여사의 지휘를 받아 마을을 요세화시키고 있다. 가부키쵸는 "지구방위도시"라는 이름으로 해방군을 맞이해 버틸 준비를 마친다. 타에 조차도 완전 무장을 하고 임전태세로 나선 상태. 이들이 표적이 되어 있는 동안 외부의 저항 세력이 적의 배후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외부의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캐서린은 외부와 연락할 수도 없는 마당에 과연 와줄 사람이 있을지 우려하지만 타에는 분명 올거라 장담한다.
- 은혼/625화 . . . . 7회 일치
* 간신히 정신을 차린 오우가이는 얕봤던 지구인들에게 밀려 퇴각하는 다키니와 [[신라(은혼)|신라]] 부대를 보며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 [[사카타 긴토키]]를 중심으로 반격을 펼쳐온 가부키쵸 주민들은 전황이 차츰 바뀌어감을 체감한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적들이 지휘계통을 잃고 사기가 꺾여 도주하기 시작했다고 논평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상황은 좋지 않다. 당장 전투에서는 이기고 포위를 풀었지만, 지구가 우주 전체에 의해 포위된 상황은 변함이 없다. 이 가부키쵸 하나만 놓고 봐도 마을 내부로 진입한 적들이 후퇴하는 것일 뿐, 이들이 다시 마을 밖의 본대와 합류한다면 원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여전히 마을은 포위되어 있고 코끼리한테 바늘을 찔러넣은 정도의 반격을 한 것 밖에 안 된다.
작전에 참여 중인 지로쵸 조차도 이건 말도 안 되는 도박이라고 중얼거린다. 물론 후퇴하는 전위를 보고 지레겁을 먹어준다면 술술 풀릴 일이다. 하지만 코끼리가 놀라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면, 개미는 그대로 밝혀죽을 뿐이다. 지금은 기적적으로 작전이 먹혀들고 있지만, 야쿠자인 자신 조차도 이런 정신나간 도박은 하지 않는다며 웃는다.
* 긴토키는 선봉에서 적진을 누비며 더 기세 좋게, 더 난폭하게 날뛰라고 동료들을 부추긴다. 어차피 지면 멸망 밖에 당하지 않으니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질러버리라며 마구잡이로 적들을 도륙한다. 그러자 도박이 먹혀들어간다. 3대 용병부족 조차 적이 되지 못했다면 자기들이 어떻게 상대하겠냐며, 해방군 병사들이 등을 보인 채 도망친다. 그렇게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하자 전체의 붕괴는 빠르게 시작되었다. 신파치는 이대로 전부 무너져 버리기를 비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녀석이 태연하게 그의 앞을 지나쳐 간다. 오우가이는 듣지 못했냐는 말과 함께 가차없이 철괴를 머리위로 떨어뜨린다. 도망치는 놈은 자신이 죽이겠다는 말과 함께.
- 은혼/633화 . . . . 7회 일치
[[은혼]] 633훈. '''놀이꾼과 현자는 종이 한 장 차이'''
가츠라는 어쨌든 나라에 적대하고 정부에 반하는 자들은 모두 "반란군" 취급이며 최종적으론 막부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지 않으면 "정부군"은 될 수 없다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성적인 대답을 한다. 긴토키는 이때나 그때나 드퀘빠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그럴 바엔 차라리 마왕 바라모스로 전직하고 만다"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이때도 뭔가 핀트가 빗나간 놈이라 놀이꾼으로 전직하면 레벨 20에 정부군으로 전직할 수 있다고 헛소릴 한다. 그건 현자라고 얼간아.[* 원래 드퀘3의 현자는 "놀이꾼"이 레벨 20에서 무료로 전직할 수 있는데 놀이꾼이 막장스런 직업이라 레벨 20을 달성하는게 꽤 어려웠다. 그래서 리메이크판에선 "깨달음의 서"를 추가해서 난이도를 낮춘 것.]
신스케가 뭐라 불리든, 이해를 받든 어떻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알고 있으니 된거 아니냐고 정리한다. 그러면서 어차피 우리들은 정부군이 될 주제가 아니며 역적, 국적, 반란군 같은 별명이 잘 어울리는 족속들이라 말한다. 긴토기가 발끈해서 그건 중2병인 신스케한테나 괜찮은 거라고 디스한다. 하는 김에 "귀병대"라는 이름도 걸고 넘어지는데 이딴 이름을 잘도 얼굴에 철판깔고 떠벌린다며 차라리 진주단(珍走)이란 이름이 낫겠다고 해서 옥신각신한다.
* 다츠마는 그들이 우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환영한다. 적어도 그만은 신스케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가츠라는 겁먹고 우주 구석탱이에서 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기한테 베이고 싶어서 돌아왔냐고 험악한 말을 한다. 신스케가 돌격을 멈추지 않으며 "해방군 말고 네놈들이랑 먼저 한 판 해도 상관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어차피 온 우주와 거하게 한 판 해야 할 참이니까. 가츠라는 그 뒤를 따르며 나라를 뺏은 다음엔 우주를 뺏을 심산이냐며 그놈의 허풍은 우주에 나와서도 못 고쳤다고 비꼰다. 다츠마가 따라와 "이참에 그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 보자"고 끼어든다. 해방군한테 몰살 당하는 것 보단 낫지 않은가?
* 신스케는 멋대로 지껄이라고 하면서 나라를 빼앗는 거나 우주를 빼앗는거나 별반 차이가 없는 거라고 말한다. 뭐가 됐든 "그 녀석"이 막아서고 있을 테니까. 지구의 긴토키가 있는 이상 나라든 우주든 뺏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무츠(은혼)|무츠]],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가 뒤를 따르며 병력을 이끈다. 노부노부는 이들을 따라 달리며 신스케의 진의를 떠올린다. 그가 당부하지 않았더라도 알고 있다. 나라에 위기에 처하고 가신들 조차 나라를, 장군을 버렸을 때 누가 손을 내밀었는가? 국적이라 불리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싸운게 누구인가?
- 이기택 . . . . 7회 일치
[목차]
그러나 1978년 신도환 계보에서 이탈하였고, 1979년 5월 [[전당대회]] 때에는 따르는 의원 1명도 없이 원외인사들로만 독자 계보를 형성하여 1차 대회에서 신도환을 뛰어넘는 92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전당대회 2차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사퇴하여 자신의 표들을 김영삼에게 몰아 주어서 김영삼이 이철승을 꺾고 신민당 총재로 선출되는 데 기여하였다.[* 이때 신민당 내에서는 중도통합론을 내걸고 사실상 독재정권과 야합하던 이철승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래서 2차 투표를 앞두고 [[선명야당]]을 내걸고 박정희 정권과 정면대결을 공언하고 있던 김영삼으로 반이철승 세력들이 결집한 것이다. 이기택의 후보사퇴는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도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철승을 떨어뜨리고, 김영삼을 총재로 당선시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김영삼은 이들의 표를 모두 모아서 [[중앙정보부]]의 정치공작 속에서도 총재경선에서 승리하였다.]이 때 박정희 정권은 이기택이 이철승이 아닌 김영삼을 지지하려 하자 자형 이임용이 운영하는 태광그룹의 장부를 압수하기까지 하였다.
이후 김영삼에 의해 부총재로 임명되면서 [[김대중]]-[[김영삼]]의 뒤를 잇는 차세대 기수로 인정 받았다. 당시 겨우 42세의 나이였다.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신군부 정권하에서 ‘야당 외길’을 걸으며 이른바 ''''[[4.19]] 세대''''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1970~1980년대에는 민주진영에서 김대중, 김영삼의 바로 아랫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으며, 김영삼이 여권으로 넘어간 이후에는 김대중에 이어 제[[2인자]]의 위상을 유지했다.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7회 일치
[목차]
||[[https://youtu.be/vFqkm999xzc|흡연 10년차 신상담배 레종 프렌치 번 솔직리뷰]]||
||[[https://youtu.be/kXm9ZPhT89Y|레종 프렌치 요고 요구르트맛 담밴데 왜 소독차 맛이나지?]]||
||[[https://youtu.be/cNX326Je5YM|흡연 15년차 담배를 하루에 2갑 피는 남구의 "돌아가신 아버지 사연이 있는..." 에쎄 스페셜 골드 솔직 후기]]||
'''현재 [[트위치]] 최악의 스트리머들 중에 손꼽혔던 인물 중 하나.'''[* [[유신(스트리머)|유신]]과 더불어 '''트위치에서 논란을 수차례나 저질렀다!''' 정지나 경고를 당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따름.]
게다가 비슷한 사건을 벌인 김윤태는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반면에 이병욱은 법정 출두 관련 이야기 조차도 없다. --푸워와 다시 친해져서 그런건가...--
* [[2017년]] 초기(?)에 대신송[* 시청자들이 신청한 노래를 이병욱 본인이 직접 부르는 컨텐츠.]이라는 컨텐츠를 진행할 예정이였으나 당시엔 로고도 만들지 않은 상황이였다. 물론 지금까지도 로고를 만들지 않았으며 아예 진행조차 하지도 않고 있다. 정확한 날짜는 [[추가바람]]
- 이상무(만화가) . . . . 7회 일치
[목차]
이상무는 데뷔작이 고교생이 주인공인 청춘 개그물이었고 스포츠 만화나 가족 드라마를 주로 그렸지만,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성인 취향의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 형제를 주인공으로 그린 [[현해탄 너머]]에서 동시대 만화가들처럼 단순히 일본인들의 재일교포 차별만 넣는 대신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2세대 교포의 모습도 다루었다. 독고 탁이 투수로 나오는 한국인 시리즈가 그 극이라 할수 있다. [[비둘기 합창]]에서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버림 받는 여자를 그렸는가 하면, [[달려라 꼴찌]]에서 일본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한국의 흑인 혼혈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묘사하였다. 밝은 그림에 비해서는 주제가 무거운 편.
이현세 만화의 마동탁에 해당하는 악역 주인공은 김준 또는 옥기호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형제로 나올 땐 독고 준, 일본을 무대로 했을 경우에는 악역은 십중팔구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 이름을 쓴다. 안경을 쓰고 나올 때도 많아서 캐릭터 이미지가 마동탁과 매우 비슷하다. 다만 성격은 원래 나쁜 놈으로 나올 때가 많은 마동탁과 달리 처음엔 주인공 독고탁과 친했지만 재일 한국인 차별이나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열해진 인간일 때가 많다.
[[유작]]은 바로 [[전인권]] 신곡 눈눈눈눈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림. 그래서 전인권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웹툰]] 진출도 기획하며 차기작을 기획 중이던 터였다고 한다. 결국 웹툰은 그리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 포장마차
- 이소선 . . . . 7회 일치
전상수는 어렵사리 다시 자리를 잡고 술도 끊고 일을 했다. 남편이 남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사이 이소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 앞이며 도동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532 전쟁과 가난이 어린 전태일을 조숙하게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1), 2014.06.12</ref> 열심히 일을 해서 1년 만에 판잣집을 장만했고 다시 공장을 차렸다. 이 즈음 막내 [[전순덕]]이 태어났고 전태일은 초등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 즈음 있었던 큰 규모의 학교 체육복 납품 과정에서 브로커가 대금을 가로채 잠적하자 집안은 다시 주저 앉았다. 전상수는 도망다녔고 이소선은 신경 쇠약에 걸려 밤마다 집 밖을 헤맸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617562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5) - 소년가장 된 전태일],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이소선이 서울에 올라와 일을 알아보는 사이 대구에선 아버지의 매질에 견딜 수 없던 전태일이 동생 순덕이를 데리고 상경하였다. 전태일은 순덕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시청 미아보호소에 맡겼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917524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1) - 태일이 막내동생과 생이별], 경향신문, 2009년 4월 9일 </ref> 그 사이 이소선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예전 서울 살 때 알았던 남산 판자촌의 지인에게 얹혀 살았다. 전태일이 그 집을 물어 물어 찾아와 이소선이 일하는 식당 앞에 나타났다. 모자는 다시 만나게 되어 끌어 안고 울었다. 식당에서 고되게 일하던 이소선은 어느날 심하게 하혈을 하였고 그 길로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경향4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317503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2)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13일 </ref>
하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식당에서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쓰였다.<ref name="오마이뉴스2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699 애들 부끄럽지 않게... 미군 지프차를 돌려보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7), 2014.06.12</ref> 이소선은 병원을 나온 뒤 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워 삶아 팔았다.<ref name="경향42" /> 이소선과 함께 살게 된 전태일은 남대문시장을 돌며 구두닦이며 신문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지들 틈에서 동생 전태삼을 발견하였다. 전태삼은 어머니와 형을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온 뒤 거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후 전태일은 남대문에서 돈을 벌고 태삼은 달동네의 물지게를 지어 생계를 도왔다. 전태일은 아동보호소에 맡긴 순덕이를 찾아오기 위해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었고 [[평화시장]]의 미싱 보조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27" /> 가족은 지인 집 마루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9181908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4) - 봉제공장‘시다’로 첫 출근],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26일</ref>
전상수는 서울 [[서울중부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가족을 찾고 있었다. 이소선은 남편과 사는 것이 싫었지만 전상수가 다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남산동 50번지 무허가 판잣집을 셋방으로 얻고 다시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다. 아동보호소에서 대려온 순덕이는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 지 웃음이 싹 사라져 있었고 새벽에 홀로 깨서 머리를 빗고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났다고 한다.<ref name="오마이뉴스30" /> 그러나 전상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남산동 살림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66년 판자촌에 불이나 이재민이 된 것이다. 이소선은 그 때의 충격으로 눈이 멀었고 이웃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멀었던 눈은 차츰 돌아왔고 모든 식구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7 이소선, 화재 충격으로 눈이 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1), 2014.7.18</ref>
* 1950년 6월 15일(음력) 차남 태삼 태어남.
* 1960년 4월 15일(음력) 차녀 순덕 태어남.
* 1985년 9월 19일-10월 24일 청계노조 1,2차 합법성 쟁취 대회.
- 이재용(배우) . . . . 7회 일치
[목차]
--[[이재용|이름에 걸맞게]]--주로 [[높으신 분들]] 역할을 많이 맡는데 '''[[조폭]] [[보스]]''', 군 장성, 금융기관 회장, 펀드매니저, 재벌 총수 --재벌 총수가 [[이재용|재벌 총수]] 연기를 하네--, 대기업 오너, 언론사 사주, 경찰청장, 국회의원, 장차관, 고위관료, 검찰·국정원 고위층 역할을 맡는다. [[사극]]에도 자주 얼굴을 비춘다.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묵직한 부산 사투리로, 동수([[장동건]])를 앞에 두고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미친 존재감]]을 알렸다.[* 실제로 이재용은 유년시절을 마산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산 사투리가 능숙한 건 일도 아니다.] [[이재용|동명의 재벌 후계자]]가 있는 관계로 이재용이라는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친구의 차상곤, [[야인시대]]의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제5공화국의 [[이학봉]] 등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냄들은 내보고 행님 등에 칼을 꽂느니 배신이니 해싸도 그거 다 내 모함한다고 하는 소리다. 내 솔직히 말해서 행님한테 배신 때릴 생각 눈꼽만큼도 없다. 단지 내가 원하는 거는, 항상 1등만 있으면 썩으니까 내가 2등이 되가꼬 1등 정신도 좀 차리게 하고 또,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우리 세계를 이끌어나가야 된다 이긴기라. 원래 [[건달]]의 역할이 뭐꼬? 그거는 바로 [[국가안전기획부|자신들은 비록 음지에 살면서도 양지를 더욱 밝고 환하게 해주는 게]] 건달 아이가? 안 그렇나?"
날카로운 용모 때문에 주로 [[악역]]을 맡으며,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장동건을 스카웃한 조직 보스 차상곤 역할로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가끔은 가뭄에 콩 나듯(...) [[선역|좋은 역할]]을 하기도 하며, 주인공과 대립하지만 악역은 아닌 배역도 많은 편인데, 이런 배역을 맡을 땐 보통 완고한 원칙주의자나 보수파라 원칙을 벗어난 주인공이 못마땅하거나 오해가 있어 대립했으나, 후반엔 조력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개그 캐릭터]]에도 일가견이 있어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이다.
* '''굉장한 [[노안]]이다.''' [[놀러와]]에서 배우 [[이계인]] 씨는 [[본인]]보다 나이가 적다는 사실을 알고 놀랬다. [[제5공화국(드라마)|드라마 제5공화국]] 후반부에서 안기부 실세 콤비로 함께 호흡을 맞춘 [[장세동]] 역의 배우 '''[[홍학표]]보다 2살 동생'''이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공깽]]. 물론 이건 [[홍학표]]가 상당한 [[동안]]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학봉]](1938년생)이 장세동(1936년생)보다도 2살 동생이다.] 사실 그거보다 더 [[충공깽]]인 게 있는데,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이재용의) 부인 역으로 나온 서승현은 사실 이재용보다 '''20살 누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딱 3개월 차이이긴 하지만, '''[[최수종]]보다도 한 살 어리다'''[* [[최수종]]은 1962년 12월 생이고 이재용은 1963년 3월 생이다.]. 그래도 본 위키에 항목이 있는 [[동명이인]]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다.
* OCN 오리지널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정치인 국한주 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배우 [[조민기]]가 [[성범죄|과거 저질렀던 악행]]이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밝혀져]] 프로그램에서 하차하자, 그를 대신해 국한주를 연기할 배우로 결정됐다. ~~악역 연기가 아주 그냥 일품이다~~
- 이철우(1955) . . . . 7회 일치
[목차]
2018년 8월 15일 첫 시행된 리얼미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에서 8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지방선거 득표율 대비 직무수행 지지도 증감을 나타내는 주민지지 확대지수는 3위를 차지했다. [[http://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6586|17개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권영진 시장 6위·이철우 지사 8위]]
2018년 9월 4일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하락하는 경북 경제의 해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제시하였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추어 포항, 울릉, 울진, 영덕을 중심으로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풍력, 수소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 확장에 나서고 농어업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스마트팜 혁신 밸리와 스마트 양식장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http://www.etnews.com/20180903000231|[인터뷰]이철우 경북도지사...'동해안에너지클러스터와 4차 산업혁명 일자리 창출']]
2018년 9월 10일 두번째 시행된 리얼미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에서 4위[* 1위 김영록 전남지사, 2위 원희룡 제주지사, 3위 권영진 대구시장]를 차지하며 포스트 [[김관용]] 체제의 틀을 닦아나가고 있다.[[http://news1.kr/articles/?3422005|#]]
[[2017년]] [[6월 20일]] 제주도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타운홀미팅에서 문재인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얼마 못 갈 것"이라는 발언[* 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위해 지지층 결집용으로 격한 말을 던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으로 파문이 일었다. 내년 지선과 총선에서 당이 승리를 결의한 것과 달리, 문재인의 현재 하는 행동이 박근혜처럼 탄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면서 비난을 한 것.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야당의 막말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정부 흔들기를 그만하라고 비판했다. [[http://m.news.naver.com/rankingRead.nhn?oid=001&aid=0009348444&sid1=100&date=20170620&ntype=RANKING|연합뉴스]] 본인은 이 사태를 단순히 문재인이 경각심을 가지기 위한 것으로 해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830754|한국당 이철우 '문 대통령 탄핵 암시 발언' 논란에 "경각심 차원의 말"]]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7회 일치
사건 전날 밤, 타쿠마 마모루는 전화번호안내로 알아낸 이케다 초등학교의 전화번호를 네비게이션에 셋트하였으며, 8일 아침에 이케다 시내의 칼가게에서 부엌칼을 2개 구입하고, 이케다 초등학교에 간다. 남쪽정문이 닫혀 있엇기 때문에 계속 나아가서, 자동차 전용 게이트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왔다. 동쪽 문 앞에 정차된 차에서는 나중에 [[아이스픽]] 2개, 녹슨 식칼이나 손도끼도 발견되었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2001년 6월 8일 오전 10시,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는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들어가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학교 앞에서 타쿠마 마모루는 자동차 전용 게이트로 침입하여, 체육관 앞을 지나갔다. 이 때 아이들과 화단으로 가던 교사 1명과 엇갈려 지나갔지만, 교사는 [[학부모]]라고 생각하여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인사를 했다.
체포 직후 타쿠마는 "한큐이케다역(阪急池田駅)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100명 정도 난도질해왔다.", "요즘 계속 잠을 못 잤다. 초등학교에는 가지마."같은 이상한 발언을 반복했다. 타쿠마의 집에서는 진정제 등 10여 종류 200정 가량의 약품이 발견됐다. 체포되고 얼마쯤 지나서, "정신장애가 무거운 것처럼 위장했다."고 인정했다. 두 차례의 정신감정 결과 '인격장애'로 진단 받았으나, 책임 능력이 있음이 인정되었다.
8월 28일에 판결이 내려왔고, 타쿠마는 "사형이 되잖아. 마지막으로 말하게 해줘."라고 호소하고, 재판장은 그것을 무시. 그러자 타쿠마는 "3장 정도잖아! 빨리 끝내! 마지막으로 말하게 해줘! 이떄까지, 나, 얌전하게 있었잖아. 어차피, 사형당하잖아"라고 소리쳤다. 재판장이 퇴정명령을 내리고 타쿠마는 끌려갔다. 이후 재판장은 사형을 선고했다. 9월 10일에 변호인단이 오사카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26일 타쿠마가 철회하여 사형은 확정되었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7회 일치
* 왕녀 [[마가렛 리오네스]]는 납치 당한 [[길선더]]와 마녀 [[비비안]]의 수색이 지지부진하자 성을 박차고 나가 직접 연인을 되찾으려 한다.
* 한동안 조용했던 리오네스 성에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하녀들이 절절매며 리오네스 왕가의 장녀 [[마가렛 리오네스]]를 쫓아다닌다. 하녀들이 지금 마가렛이 하려는 행동은 "[[바트라 리오네스|폐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고 설득하지만 마가렛은 "아버지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고 대꾸하며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보다 일전에 내린 명령에 대해 확인한다. 납치된 성기사 [[길선더]]의 수색과 구출. 그리고 그를 범인 마녀 [[비비안]]을 토벌하라는 명령이었다. 하녀들이 주저하며 밝힐 바로는 진전이 없다. 리오네스 왕국은 한 차례 위기를 넘겼으나 아직 십계 토벌이 완료되지 않았고 언제 재차 침공당할지 모르는 상황.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의 명령으로 현역 성기사들은 모두 성의 수비로 투입되어 도저히 차출할 병력이 없었다. 마가렛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녀들은 끝내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 얌전했던 마가렛이 성을 박차고 마신족이 우글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다니.
* 대지의 모자정 옥상에선 낮잠에서 깬 디안느가 기지개를 켰다. 느긋한 옥상과 달리 식당 안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방은 심각한 분위기. 지난 밤 연회 이후로 멀린이 무섭게 앓았다. [[핸드릭슨]]이 용태를 보러와 있다. [[에스카노르]]가 그저 안절부절. 핸드릭슨의 주위에서 알짱대면서 상태를 묻는다. 핸드릭슨은 이것이 무서운 저주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체 멀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에스카노르가 아는 거라곤 어젯밤부터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 걱정돼서 아침에 와보니 이렇게 악화되었다. 열도 엄청나고 의식을 차릴 기력 조차 없다. 핸드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드루이드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할 거라고 말한다. 갑자기 드루이드를 어디서 모셔올 건가? 에스카노르가 절망한다.
- 장서희(1972) . . . . 7회 일치
||<width=25%><:>[[차인표]][br](2001)||<:>{{{+1 →}}}||<width=25%><#FFFFa1><:>'''장서희[br](2002)'''||<:>{{{+1 →}}}||<width=25%><:>[[이영애]][br](2003)||
[목차]
바로 2002년 여름에 방영되기로 예정된 《[[인어 아가씨]]》의 '''주인공'''으로 추천되었던 것이다. 《[[온달왕자들]]》에서 [[임성한]] 작가가 장서희가 마음에 들어 차기작 주연을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작품 후반에 타임워프가 나오니 여배우들은 그 때에 맞춰 헤어 스타일을 바꾸라는 [[임성한]] 작가의 요구에 장서희가 유일하게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를 서브도 아닌 주인공으로 쓰는 것을 MBC에서 찬성할 리가 없었고, 결국 MBC와 임성한의 신경전 끝에 '''“장서희 아니면 드라마를 갈아엎겠다”'''고 임성한이 엄포를 하고 나서야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MBC 고위층들은 첫방 전까지 《인어 아가씨》를 냉대했고, 남자 주인공도 캐스팅이 잘 되지 않아 신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인어 아가씨》 이후의 국내 작품들은 결과가 영 좋지 못해 점점 하락세를 타게 된다.[* 《[[회전목마(드라마)|회전목마]]》는 용두사미 스토리로 큰 비판을 받았고, 영화 《[[귀신이 산다]]》는 [[차승원]] 원맨쇼(...)였던지라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특히 희대의 괴작으로 꼽히는 《[[사랑찬가]]》의 출연은 장서희의 인기에 직격탄을 날렸고, 결국 《사랑찬가》의 조기종영 이후 3년 동안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사랑찬가》 이후 [[SBS]] 《[[그 여자가 무서워]]》, [[KBS 2TV]] 《[[내 사랑 금지옥엽]]》등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 자신을 과감히 주연으로 기용한 [[임성한]], 재기를 도와준 [[김순옥]] 작가를 자신의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임성한 또한 장서희를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배우들과 교류가 없기로 유명한데도 본인의 결혼식에 장서희를 초대했다고 한다.[* “호텔에서 밥을 사줄 테니 차려입고 오라”고 임성한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갔더니, 그녀의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순옥과는 1살 차이라서 자매 내지는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 드라마[* 워낙 어렸을 때부터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수 차례 단역으로서 출연했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서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서술되어 있는 드라마는 나무위키에 문서가 작성되어 있는 작품들이다.] ===
- 장세용 . . . . 7회 일치
[목차]
- 주차난 해소를 위한 공영 주차장 및 화물 터미널 신설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반,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8월, 북삼역 신설은 장기적 과제라는 의견을 밝히면서, 구미역에 다시 KTX를 정차하는 것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당연히 김천혁신도시/김천상공회의소에서는 반대 의견을 밝혔다.[* 김천구미역을 이용하는 사람은 혁신도시 주민이 아무리 이용하더라도 구미의 인구가 김천의 3배정도 되기에 당연히 수요는 구미에서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혁신도시 인구는 약 2만명이다.][* 그런데, 애초에 김천구미역이 위치가 그렇게 된 이유 생각해보면... 그리고 원래 지어질 위치는 김천 시내 서부였다, 거기에 지었으면 아마도 김천시민만 이용했을 것이다. 지금 위치도 구미역에서 꽤 가야하는데, 더 멀면 안 봐도 뻔하다.]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에서는 구미 공단 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이 먼저라고 하였으며, 대구는 당연히 폐수 무방류라도 결국 방류되기에 폐수가 완전히 처리되지 않는다고 취수원 이전을 고집한다. 하지만, 대구시의 주장에서 모순되는 점이 하나는 대구 성서 공단에서도 폐수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며,[* 당연히 대구가 낙동강 삼각주 주변에 위치한 도시가 아니기에, 대구보다 하류인 부울경도 같은 논리로 취수원 이전을 시도할 수 있다.] 둘은 대구의 차세대 산업 중 하나가 물 산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공단에서 방류된 폐수의 유해물질 농도가 구미공단에서 방류된 폐수보다 높다는 조사가 나오면서 결정타를 먹었다.
8월 29일, 구미시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돋보이는 키-- 구미의 현안(5공단, KTX 구미역 정차 등)을 언급하였지만, 이해찬 당대표에게서 구미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구미가 더불어민주당의 대경권 공략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임은 확답을 받았다.-- --이러면 그렇게 찬밥 취급은 안 당할 거 같다.--
- 장원준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1차 지명([[롯데 자이언츠]])
2004년에 1차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고교에서 꾸준한 성실함을 인정받아 프로에 입단했으나, 당시 선발진은 [[손민한]], [[염종석]] 등 출중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로 이뤄져 있어 입지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2015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데뷔 첫 등판이었던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 KS]] 3차전에서 7.2이닝 동안 1점만을 내주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그 경기의 MVP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팀으로서는 14년만의 우승, 그로서는 데뷔 첫 우승팀 소속이자, 이적하자마자 우승을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두산 베어스]]에 이적할 당시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는 그의 보상 선수로 투수 [[정재훈]]을 지명했는데, 1년 뒤 [[두산 베어스]]가 2차 드래프트에서 마지막 순위에 [[정재훈]]을 지명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 FA 계약 선수와 보상 선수가 1년만에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챙겼으며, 이는 좌완 투수 최초의 기록이다. 팀 내에서 그와 [[더스틴 니퍼트]], [[마이클 보우덴]], [[유희관]] 등 4명의 선발 투수가 70승을 합작했고 일명 '판타스틱 4'로 불렸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8.1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적 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고 역대 최고의 모범 FA로 꼽혔다. 시즌 후 3번째로 [[최동원]]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프로 2년차이던 [[2005년]] [[7월 26일]] [[KIA 타이거즈|KIA]]전 9회말에 [[이종범]]의 깊은 타구를 당시 [[1루수]]였던 [[라이언 잭슨|라이온]]이 잡았지만, 그의 1루 베이스 커버가 늦으면서 내야 안타를 허용해 안타깝게 [[노히트노런]]을 기록하지 못하였다.
- 정동기 . . . . 7회 일치
* 1999년 6월 ~ 2001년 6월 :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 2000년 : [[인천지방검찰청]] 제1차장 검사
* 2006년 8월 ~ 2007년 3월 : [[법무부 차관]]
* 2007년 2월 ~ 2007년 11월 : [[대검찰청]] 차장검사
|직책 = [[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법무부 차관]]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위]][[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전주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원광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동 정씨]]
- 정웅인 . . . . 7회 일치
|제목= 인기절정의 순간 떠나는 '세친구'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42263 |출판사=국민일보|날짜= 2001-02-07 }}</ref> 이후 영화 《반칙왕》(2000년), 《두사부일체》(2001년), 《돈 텔 파파》(2004년), 《투사부일체》, 《마법사들》(2006년), 《유감스러운 도시》(2009년) 등과 드라마 《홍국영》(2001년), 《발칙한 여자들》(2005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선덕여왕》(2009년), 《커피하우스》(2010년), 《오작교 형제들》(2011년) 등에 사극과 여러 장르의 현대극을 넘나들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제목= 배우 정웅인, 띠동갑 연하 신부 맞아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1316507 |출판사=연합뉴스|날짜= 2006-06-03 }}</ref> 두 사람에게는 현재 장녀 정세윤([[1999년]] 출생),<ref>{{뉴스 인용 |제목= 유웅인, 3kg 첫 딸 얻고 싱글벙글 |url=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5220842000009 |출판사= 세계일보 |날짜= 2007-05-21 |확인날짜= 2014-08-24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070520221239/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 |보존날짜= 2007-05-20 |깨진링크= 예 }}</ref> 차녀 정소윤([[1998년]] 출생),<ref>{{뉴스 인용
| [[2000년]] || [[현대자동차]] || 《베르나》 || 자동차 || 윤다훈, 박상면
| [[2011년]] || || 《장차》(Jangcha) || 아동복 쇼핑몰 || 정세윤, 장차인<ref>{{뉴스 인용 |제목= '유웅인 딸' 세윤이도 벌써 모델 포스…스타들은 '유전자'도 우월해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75527 |출판사= 엑스포츠뉴스 |날짜= 2011-06-21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75527 }}</ref>
- 정인선(탤런트) . . . . 7회 일치
[목차]
|| [[JTBC]] || [[으라차차 와이키키]] || [[으라차차 와이키키/등장인물#s-1.4|한윤아]] || ||
*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출연 중 [[매직키드 마수리]]에 같이 출연했던 [[한보배]]가 특별출연하여 16년만에 재회했다.
- 조원진 . . . . 7회 일치
[목차]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 당시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상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반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영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영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송영선은 비례대표로 옮겨가 당선되었고, 이후 남양주시 갑으로 옮겨서 현직 당협위원장인 심장수의 지역구를 빼앗아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송영선은 이후 비리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친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1955)|최경환]], [[윤상현(정치인)|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정치인)|홍문종]], [[유기준(1959)|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http://h21.hani.co.kr/arti/politics/42751.html|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4월 8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자유한국당]]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753080|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로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조원진의 대선출마에 대한 여론은 꽤 싸늘하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2519|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뉴스타운은 대선후보로 [[남재준]]을 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난할 수밖에 없다.] 그의 대선출마로 인해 보수진영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버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보다 더 극우인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국정원장인 [[남재준]] 역시 출마함에 따라 보수표도 성향에 따라 강성친박 표인 조원진과 남재준, 온건친박 표인 홍준표, 비박 또는 반박의 중도보수 표인 유승민과 이재오 이렇게 다섯 갈래로 갈려져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만 34세에 [[대우자동차]]를 거쳐 [[포스코대우|대우]] 중국기획조사부 부장까지 했었다. 그 후 [[황병태]]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16대 총선 선거공보물에는 명동판매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 진격의 거인/80화 . . . . 7회 일치
* 하지만 초대형거인이 내뿜는 열풍은 뇌창조차 튕겨냈고 앵커까지 뽑아내서 입체기동으로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다.
* 일행은 아르민에게 "일발역전의 책략"을 묻지만, 그조차도 아무 것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 리바이 조차 패주를 준비해야 한다며 척후를 맡겠다고 자청한다.
* 원래 적당한 지형물이 없어 불가능해보였지만, 리바이는 짐승 거인 옆으로 차례로 도열한 거인들을 입체물로 이용하여 입체기동과 척살을 반복한다.
* 병사들은 "어차피 죽을 거 싸우고 죽으라는 거냐"고 자조적인 발언을 하는데 엘빈은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고 연설하기 시작한다.
- 진격의 거인/97화 . . . . 7회 일치
회심의 돌려차기는 남자의 관자노리를 정확히 노렸다. 애니가 아는 한 그런 일격이 빗아갈 일은 드물었다. 그게 하필 미행이 실패하고 뒤를 잡힌 순간에 일어날 가능성은 더더욱. 케니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고 발차기는 벽에 박히며 벽돌을 박살냈다. 케니로선 그녀가 늘어놓은 드라마보다 이 발차기 쪽이 훨씬 감동적이었다. 케니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진 순간 애니는 몸을 날렸다. 지나온 골목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케니가 뒤쫓아오며 "벌써 아빠가 싫어지는 시기냐고"고 도발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애니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케니는 뚜껑이 열린 배수구를 발견했지만 그의 몸집으로는 통과할 수 없었다. 그가 혀를 찼다.
>됐다. 아빠를 차서 죽이려고 하는 딸은 필요없어.
병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가 이 시설에 와서 생각한 것들. 며칠 동안 그는 "왜 이렇게 됐을까"하고 고심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 몸도 정신도 피폐해지고 자유를 빼앗기고 종국엔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이런 끝이 예정된 줄 알았다면 누구도 전쟁에 나서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누구든 "무언가"에 등을 밀려 전장에, 지옥에 떨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그 "무언가"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다.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하나같이 같은 지옥에 발을 들인다. 예외가 있다면 단 하나. 스스로 등을 민 녀석들이다.
빌리는 그 평을 가차없다고 말했지만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 말을 한 뒤 이 방문의 진짜 목적, "본론"을 꺼낸 걸 보면 말이다.
- 진격의 거인/98화 . . . . 7회 일치
* 후보생들은 수용구 출입통제소를 지날 때까지 떠들썩하게 파르코의 승리를 축하해준다. 파르코는 각오를 다진 탓인지 가비가 도발을 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할 일을 할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는다. 가비가 "어차피 너희 형이 있어서 명예마레인 확정인 주제에 왜 그렇게 기를 쓰냐"고 안달하자 마침내 "널 위해서"라고 고백하지만 가비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낙담한 파르코는 병원으로 향하는데 요즘은 거의 항상 가고 있다고 한다.
* 축제의 전야제 격으로 전세계에서 모인 요인들이 본부에 모여 파티가 열렸다. 전사 후보생들은 급사로 차출되는데 주변에선 "더럽혀진 피가 급사를 하고 있다"고 투덜거린다. 우도는 그 험담에 신경쓰다 실수를 범하는데,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의 옷에 흘리고 만다. 그런데 그 여성은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도가 실수한게 알려지면 그가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옷을 버렸다고 조용히 얼버무린다. 그녀는 심지어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도 문제삼지 않았는데. 가비는 그녀가 동양의 "히즐"국에서 온 사람인걸 알아본다.
크루거의 조언을 받으며 훈련에 매진해 마침내 가비를 이기는 기염을 달성한다. 가비에게 "너를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고 싶다"고 고백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파르코가 가비를 좋아하는건 수용구 출입구를 통제하는 병사들 조차 뻔히 알고 있던 사실이라 안습. 크루거를 계속 방문하고 있었으며 그의 편지배달도 계속했다. 축제가 시작되자 즐겁게 즐기다가 빌리의 연설이 시작될 무렵 그를 크루거에게 안내한다.
파르코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파르코가 "널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려 한다"고 사실상 고백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걸로 나를 위한다는 거냐"고 반응하며 전혀 의미를 읽지 못한다. 이후 우도, 조피아와 수용구 안에서 준비 중인 무대 건설 현장을 보는데, 가비는 타이버가의 선전포고 선언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도나 조피아가 회의적인 의견을 어필하자 "그럴 수록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인다. 전야제에선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우도가 히즐국 부인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식겁한다. 가비가 그 부인을 보고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다음날 축제에선 완전 별천지를 본 것처럼 즐거워한다. 요즘엔 "처음 있는 일" 뿐이라며, 앞으론 뭔가가 변할 것 같다는 말을 라이너에게 하고 동감을 받는다.
파르코가 가비를 처음으로 이기자 조피아와 함께 기뻐해준다. 수용구에서 축제 준비와 무대 건설이 한창인 걸 보게 되는데, 가비가 희망적인 발언을 하자 일이 쉽게 풀릴리가 없다고 회의적으로 반응한다. 이때 원래는 국외의 엘디아인 수용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외국의 반엘디아인 감정은 더 심한데다 수용구에서의 처우도 열악하다고 한다. 그렇게 악감정이 심한 세계인들이 빌리 타이버의 연설 한 번으로 협조해줄리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축제 전야에 파티가 시작되자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큰 실수를 한다. 주변에서 "엘디아인이 급사다"고 험담을 하자 거기에 신경쓰자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에게 흘리는데, 그 부인이 뜻밖에 너그럽게 처리해준다. 부인은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을 문제삼지 않는데가 그가 이 일로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감싸주기까지 한다. 조금 후에 가비가 "그녀는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다음날엔 가비 등과 함께 즐겁게 축제를 즐긴다.
- 차동엽 . . . . 7회 일치
|이름 = 차동엽
|본관 = [[연안 차씨|연안]](延安)
|별명 = 호(號)는 초수(草樹)· 호우(互遇)· 문협(汶浹) <br /> [[닉네임]]은 '''희망 멘토''', '''인생 해설가''', '''차돌'''
'''차동엽'''(車東燁, [[1958년]] [[5월 31일]] ~ )은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부|사제]]이며, 세례명은 '''노르베르토'''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77학번으로, [[1981년]]에 학사 학위하였다. [[대한민국해군 사관후보생|해군학사장교]] 72기 출신이며, 현재는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차동엽 신부는 해군사관후보생 훈련기간 중 작은 체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성적이 우수하였다. 그래서 동료들이 '차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위]][[분류: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유한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빈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
- 차선화 . . . . 7회 일치
| 이름 = 차선화
'''차선화'''([[1987년]] [[1월 7일]] ~ )는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이다.
* [[2012년]] - 부산국제모터쇼 쌍용자동차 레이싱모델
* [[2010년]] - 르노삼성자동차 레이싱팀 모델
* [http://cafe.daum.net/luvCSH 차선화 다음 팬카페]
* [http://www.cyworld.com/csh1336 차선화 미니홈피]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B0%A8%EC%84%A0%ED%99%9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09675 차선화 네이버 인물]
- 차용학 . . . . 7회 일치
|이름 = 차용학
|직업 = [[배우]] & [[연극 배우]] & [[뮤지컬 배우]]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B0%A8%EC%9A%A9%ED%95%99&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85071 차용학-네이버인물정보]</ref>
'''차용학'''([[1982년]] [[11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541511 차용학-다음인물정보]</ref>
* 《[[최강 배달꾼]]》 (KBS2, 2017년) - 차검사 역
*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2012년) - 야생소년 역 <ref>{{뉴스 인용|제목= 차용학 배우, “변신의 귀재를 꿈꾸죠“ |url=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27912 |출판사=뉴스컬처 |날짜=2013-01-17}}</ref>
* [http://guide.gomtv.com/celebrity/people.gom?manid=381466 차용학 - 곰가이드]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7회 일치
그러니까 나는 좀비로 가득한 동네에서 유일할지 모르는 생존자로서 집안에만 갖혀 있다가 오늘 하루만에 옆집 주인을 죽이고 그 집 차를 훔치려고 녀석들이 득실 거릴지도 모르는 집안으로 들어가 보는 거야. '''정말 완벽하군!'''
예상했듯이 집안의 구조는 우리 집과 별 차이가 없다. 좁은 현관은 거실 겸 응접실로 이어지고 그 뒤에 주방이 있다. 거실과 구분되는 벽 같은 건 없으므로 한 눈에 주방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나는 토트넘이 꽤 이른 시기에 당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집 안에서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실 쪽이 어수선하게 떨어진 물건들이 많은 데 비해 주방 쪽은 깨끗하다. 사용감을 느낄 만한 흔적이 없다. 그야 녀석들은 주방을 쓸 줄 모를 테니까. 반대로 토트넘이 오래 버텼다면 주방에 흔적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현관에는 키가 없다. 막연히 현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건 잘못이었다. 그런 물건이야 어디에든 있을 수 있으니까. 토트넘이 그 차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감안하면 그걸 움직이는 키도 신주단지 모시듯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방에 있는 걸까? 나는 더 들어갔다. 어느 덧 거실 한 가운데에 있었다. 사방이 적막하다는 점이 오히려 대범하게 만든다. 녀석들은 여기엔 없어, 근거없는 확신이 차오른다.
그 옆에는 장롱이 넘어져 있다. 이건 앞으로 넘어져 있다. 매우 부자연스럽다. 녀석들이 창궐한 거지 지진이 난게 아니다. 녀석들에겐 장롱 정도로 무거운 걸 넘어뜨릴 힘은 없을 것이다. 이건 장롱 앞에서 당겨서 넘어진 형태다. 이런건 사람이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존자가 다녀갔을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주장이 너무 깨끗하다. 여기까지 들어온 생존자라면 뭔가 찾으러 왔을 것이다. 나처럼 다이너스티를 노렸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일부러 어질러놨을까? 차키가 장롱 밑에 있을 것 같아서?
확인하고 싶다. 다이너스티의 키만큼 해답을 찾고 싶다. 하지만 키는 결국 발견되지 않겠지. 토트넘이 그걸 가지고 다니다 흘렸을 가능성을 무시한게 잘못이었다. 만약 내가 추론대로라면 그는 제일 먼저 병원으로 가고 싶었을 거고 자신의 애마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지. 하지만 예상보다 감염은 빨랐고 그가 미처 차에 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차키를 손에 들고 어디로든 돌아다녔을 것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슬픔을 나누고 다녔겠지. 아내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 최광수 (공무원) . . . . 7회 일치
| 직책 = [[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대한민국 제16대 국방부 차관]]
| 경력 = 국방부 차관 <br/> 대통령 비서실 실장 <br/> 체신부 장관 <br/>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 <br/> 외무부 장관 <br/>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1956년]] [[2월]]을 기하여 외무부에 입부되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의 [[외교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주미 3등서기관, 주일 2등서기관, 동북아주과장, 주미 참사관, 통상진흥관, 아주국장, 국방부 차관, 대통령비서실장, 제1무임소장관, 체신부장관,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주유엔 대사, 외무부장관, [[하버드 대학]] 아시아문제연구소 초빙연구원([[1992년]]-[[1993년]])을 역임하였다.
|직책 = [[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국방부 차관]]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무임소장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창신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주 최씨]]
- 최동수 (야구인) . . . . 7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4년]] 2차 4순위 ([[LG 트윈스]])
[[1994년]]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포수]]로 입단했으나, 이후 [[내야수]]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전 자리를 잡지 못했고, 데뷔 첫 해에는 1군에서 1경기에 그쳤다. 방위 복무를 마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서용빈]], [[유지현 (야구인)|유지현]] 등의 걸출한 [[내야수]]들에 밀려서 주목받지 못하였다. [[2001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뒤늦게 중용되기 시작하였고, 2군에서 훈련하였을 때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옥 훈련을 많이 소화한 결과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549603 야구, 야구,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바보'… "동네 게임도 작전 짤 사람"] - 조선일보</ref> 당시 그가 훈련이 끝나고 손이 펴지지 않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그의 손을 펴 주었다고 할 정도였고,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훈련을 멈추도록 했던 유일한 선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2855814 12년 전, 잊혀질 뻔했던 한 선수의 은퇴식] - 이데일리</ref> [[2002년]] 시즌 중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서용빈]]의 자리를 이어받아 주전 [[1루수]]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준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2007년]]에는 최초로 풀 타임 출장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여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그리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29경기에 출전해 1할대 타율에 그쳤다.
[[2010년]] 시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그는 그 해 [[7월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내야수]]가 필요하였던 [[SK 와이번스]]와 [[투수]]가 필요하였던 [[LG 트윈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는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LG 트윈스]]는 [[SK 와이번스]]로부터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 [[김선규 (야구 선수)|김선규]], [[포수]] [[윤요섭]]을 받았다. 그 때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3연전 중이어서, 트레이드 된 선수들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7월 28일]] 당일, 트레이드 당사자인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그는 같이 이적한 [[안치용]]과 함께 선발 출장하였고 [[권용관]]은 도중에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선수 중 [[윤요섭]]이 대타로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경기에서 그는 3점 홈런을 쳐 내는 등 4타점을 쓸어담아 맹활약하였다. 그 날 [[SK 와이번스]]는 연장전에서 [[권용관]]이 [[정성훈 (1980년)|정성훈]]의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여 패했다. 특히 그에겐 프로에서 눈을 뜨게 해 준 [[김성근 (야구인)|김성근]]과의 재회여서 더 의미가 컸으며, 2차 드래프트가 있기 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감독직에서 경질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해 시즌 후 32번을 쓰고 있었던 [[외야수]] [[박윤]]이 보류 선수에서 빠져 [[신고선수]]로 전환되자, 자신의 번호였던 '32'번을 되찾았다. [[2011년]]에는 [[박경완]]의 재활이 장기화되어서 10년 만에 그의 본업인 [[포수]]로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이후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후 [[2011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친정 팀 [[LG 트윈스]]로 1년여 만에 복귀했다. 1차 드래프트인 신인 지명회의와 2차 드래프트를 통틀어 최연장자로 지명된 선수였다. [[2013년]] 개막전 명단에 올라 시즌 개막전을 통해 2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무안타에 그친 후, [[SK 와이번스]]와의 2연전이 끝나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에는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사실상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3년]] [[10월 5일]] [[두산 베어스]]전이 끝난 후 공식 은퇴식을 가졌으며, 이 경기에서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정규 시즌 2위를 확정해,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의미있는 경기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30892 '은퇴' 최동수,'정든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 OSEN</ref>
[[2009년]] [[5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그는 프로 데뷔 15년 만에 [[투수]]로 첫 등판하였다. 이와 더불어 팀 동료이자 [[포수]]인 [[김정민 (1970년)|김정민]]은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은 역할 분담이 철저하고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KBO 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는 데뷔한 후 [[포수]]에서 [[내야수]]로 전향했고, 이 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연장 12회 초에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대량 실점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창민]]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몸에 맞는 볼|빈볼]]성 투구를 던지고 퇴장당했다. 남아 있는 [[투수]]가 선발로 등판해야 할 [[심수창]] 외에는 없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궁여지책으로 [[지명타자]]로 나선 그를 [[투수]]로 내보냈다.<ref>[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news&mode=view&no=60005 무박 2일 잠실 혈투 진기록 양산] 《시민일보》 2009년 5월 15일 9:25, 2009년 5월 16일 23:55 확인</ref><br>마운드에 오른 그는 상대 타자 [[박경완]]을 공 2개(1구 128 km, 2구 131km로 스피드 건에 찍힘)로 플라이 아웃 처리했는데, 당시 [[박경완]]은 경기 후 "차마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휘둘러서 아웃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와중에 외야에서 그의 등판을 지켜본 [[이진영]]은 "본래는 내가 등판하려 했다. 내가 아무래도 동수 형보다는 구속이 빠르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1992073 (어젯밤 이야기) 박경완 "'투수 최동수' 공 솔직히 칠 수 없더라"] 《스포츠조선》 2009년 5월 14일 10:18,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그의 공에 대해 "[[오승환]]인 줄 알았다. 돌직구를 던지더라" 라며 감탄하기도 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140203 (베이스볼 브레이크) SK-LG 대혈투…'무박 2일' 뒷담화] 《동아일보》2009년 5월 14일 8:01,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 최태원 (야구인) . . . . 7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3년]] 2차 1순위([[쌍방울 레이더스]])
[[서울미성초등학교|서울미성초]], [[성남중학교|성남중]]을 거쳐 그는 [[성남고등학교 (서울)|성남고]]-[[경희대학교|경희대]] 체육대학 시절 내내 국가대표 [[2루수]]로 활동하며 연고 팀 [[OB 베어스]]의 1차 지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OB 베어스]]는 [[건국대학교|건국대]] 출신의 [[내야수]] [[추성건]]을 지명했고, 그는 당시 꼴찌 팀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로 밀렸다.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 2차 1순위를 받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입단하였다.
신인 시절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2루수]] [[송태일]]에 밀려서 주로 [[우익수]]로 활동했으나, [[송태일]]이 이적 2년째인 [[1995년]] 슬럼프에 빠지자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타격을 앞세워 [[1995년]] 최다 안타상을 수상하며 주전 [[2루수]]를 차지했다.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을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6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에 들어갔고, 그는 이 때부터 붙박이 [[2루수]]로 활약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1995년]] [[4월 16일]] [[해태 타이거즈|해태]]와의 시즌 2차전에 대타로 출장한 이후, [[2002년]]까지 기록적인 1014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쌓아 갔고, 이것이 팀의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과 맞물리면서 [[1997년]] [[12월 11일]]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는 연속 출장 기록을 쌓아 가면서 '철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로 인해 [[200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에서 트레이드된 [[2루수]] [[정경배]]에 밀려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끈질기게 이어오던 연속 경기 출장 기록도 당시 [[SK 와이번스]] 초대 감독이었던 [[강병철 (야구인)|강병철]]에 의해 [[2002년]] [[9월 10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을 결장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 후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시절의 은사인 [[조범현]]의 감독 부임 이후 재기를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주전 자리를 탈환하지 못하고 33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3년]] [[10월 5일]] [[삼성 라이온즈]]과의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츠키시마 케이 . . . . 7회 일치
[[목차]]
인터하이 3차 예선, 아오바죠사이와의 시합에서 [wiki:"스가와라 코시" 스가] 및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가는 카게야마와 교체되면서 카게야마에게 '츠키시마는 '''정면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직접적으로 생각을 물어보아야 한다'는 뉘앙스의 조언을 했다. 이 조언을 들은 카게야마가 경기 중 츠키시마 본인에게 방금 토스는 어땠냐고 정면으로 물어오자 처음에는 '닥치고 이 공을 때려, 서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짜증난다고 답했다. 이후 카게야마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생각을 하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다, 내게도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으니 균일한 토스를 달라'고 --웬일로 짜증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듣고 고분고분하게 츠키시마가 본인의 생각대로 공을 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한 토스를 올려준다. 이 토스를 활용하여 츠키시마는 수준급의 페이크를 여러 번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스파이크로 결국 점수를 따낸다. ~~장하다 츳키~~
공부를 잘 한다. 부활동이 끝나고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츠키시마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에? 싫어(...).' 히나타가 재차 부탁하자, '[wiki:"히나타 쇼요" 작은 쪽]에게만 부탁하게 했다니 비겁하네, 그 쪽의 [wiki:"카게야마 토비오" 큰 쪽].'이라며 카게야마에게도 부탁을 요구했다. 결국 카게야마에게는 엎드려 절 받기로 부탁을 받아 냈다. --공부르으을!! 가르쳐주세요 이 자식아아아!!!-- 이후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성격부터 안 맞다보니 여러모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식 인기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다. 제 2회 인기투표에서 4위를 차지했다.
츠키시마가 '불타오르는 녀석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형[* 츠키시마 아키테루(月島明光). 케이가 초등학교 5학년일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나 아키테루가 빠른년생(3월 8일생)이라 나이차는 6살.] 때문이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7회 일치
[[리비아]]의 [[군인]], 정치 지도자. [[카다피]]의 동료였다가, [[차드]]의 포로가 되었다가, [[CIA]]에 포섭되어 [[미국]]에 가고, 카다피 사후에 리비아로 돌아온 기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2014년 부터 리비아 동부 지역의 군사적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1980년 년대 중엽,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은 리비아-차드 전쟁(통칭 토요타 전쟁)에 리비아 군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차드]] 군은 [[프랑스]]의 후원과 [[토요타]] 픽업트럭을 이용한 기동전술로 리비아 군을 참패시켰다. 1987년에 하프타르 장군은 병사들과 함께 차드 군에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카다피는 하프타르와 관련성을 부인하여 그를 [[투사구팽]]해버린다.--딱히 토끼를 잡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이 뒤의 행적은 묘연한데, 수년간 차드에서 옥살이를 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행적은 불분명하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이 시기에 차드에서 카다피 축출, 암살 작전에 투입할 리비아 무장세력을 훈련하는 작전에 CIA가 자금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된 바 있는데, 하프타르가 여기에 참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4년 2월, 하프타르는 TV를 통하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회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라고 선언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로 공격하여 의회 권한 정지를 선언했으며, 국민군은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 샤리아' 등 이슬람계 세력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사실상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리비아 국민군에는 세속주의 반군 세력이 모두 결집하게 된다. 2014년 6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를 거쳐 동부지역에서는 대표자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가 2014년 8월 4일 창립되어 일반 국민회의를 대체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국민군(the Libyan National Army)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 피우진 . . . . 7회 일치
[목차]
매우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피우진과 같이 군 생활을 한 장병들은 모두 그녀를 '''"매우 훌륭하고 인성도 상당히 좋은 참 군인"'''이라며 칭송했을 정도. 그런데 피우진이 군 생활을 할 당시 [[소령]]이었는데, 하필 자신은 [[소대장]]이 되었다.[* 보통 [[소대장]]은 [[소위]]~[[중위]]가 배치된다.] 게다가 [[중대장]]이라는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남군 [[대위]]였는데 '''이는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나마 해당 남군 대위가 개념이 있어서, 자기보다 직급은 낮아도 계급이 높기 때문에 피우진을 존중해주고 서로 상호존대를 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했다만.
2006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수술로 인한 유방 절제를 이유로 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 조치되자,[* 참고로 유방절제로는 장애인복지법 기준으로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피우진 중령이 받은 장애 판정은 군 내부 규정에 따른 것.] 복직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 후 2008년 5월에 복직하였다. 암 수술을 받았다지만 군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강한 군인을 강제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전역시킨 군 내부의 문제가 이때 알려진다. 강제 전역당했던 기간인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었다. 어쨌건 강제로 민간인이 된 상태라서 출마가 가능했다.]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2.9%에 머물러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다. 피 보훈처장이 비례대표로 당선되려면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약 5.56%를 넘었어야 하는데,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조건인 정당득표율 3%에 0.1% 차이로 아깝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1명도 나오지 못 한 것.
[[여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여성의 병 복무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군 간부직을 늘려달라는 여성단체의 요구에 대하여 "군대를 모른다"고 비판하며 "내가 겪은 '남자들로만 이뤄진 징집 군대'로선 여군 간부는 자리가 비좁다. 여군 간부직을 늘리자면 여군이 더 필요한데, 여자는 죄다 간부직만 차지할 것이냐."고 한 바 있다. 위 일화도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현 국군 안에서 여군들이 마주하는 부당한 처우와 차별들에 대해서 직접 겪고 싸워본 사람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발언. 다만 일반 여군들이 병 복무 시 마주하게 되는 부당처우 및 성차별적인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이 같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모범 군인으로서 소령까지 진급했음에도 번번이 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피우진 본인의 일화만 생각해봐도...)
- 하이큐/250화 . . . . 7회 일치
* 스파이크에 실패한 [[히나타 쇼요]]는 안 어울리게 미안해하며 [[카게야마 토비오]]의 눈치를 보나 가차없이 야단 맞는다.
* 절호의 속공 찬스를 어이없이 놓친 [[히나타 쇼요]]. 중계석에서는 [[카라스노 고교]]의 경기 초반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그런데 히나타가 답지 않게 죽을 만큼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물론 상대편 [[미야 아츠무]] 조차 "너무 풀죽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코트 바깥의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실수했다고 저렇게까지 좌절한 적이 있던가? 의문을 표시한다.
* 아니나 다를까, 미안하긴 커녕 그냥 [[카게야마 토비오]]의 눈치를 본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적당히 넘어가 주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잔머리.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가차없는 독설이 응징을 가한다.
* [[이나리자키 고교]]의 서브. 서버는 [[스나 린타로]]. 아츠무와 달리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시끄럽게 응원한다. 스나는 시끄러워도 영향을 안 받는 타입. 1회차 서브는 우측 구석, [[사와무라 다이치]] 쪽으로 뚝 떨어지는 서브. 받기 힘든 코스지만 사와무라가 어떻게든 리시브한다. 하지만 공이 흔들리고 히나타가 살려서 그대로 타나카의 스파이크. 그러나 [[미야 오사무]]의 블록에 걸린다. 그대로 찬스볼. 응원단이 "찬스볼"을 합창하듯 입을 맞춰 외친다. 스나가 받으러 오는데 여기서 아츠무가 묘기를 부린다.
* 스나의 2회차 서브. 스나는 의도적으로 주심이 호각을 부는 타이밍을 잰다. 그리고 호각이 떨어지는 순간에 맞춰 곧바로 서브. 카라스노 측에 서브를 예측할 여유도 주지 않을 속셈이다. 이번에도 사와무라를 노리고 오는 서브. 또다시 리시브가 흔들린다. 공은 네트 쪽으로. 살리는건 카게야마. 중계석은 카라스노 측이 "휘말린다"고 표현한다. 그 말대로 카라스노는 페이스를 잃은 상황.
* 그들이 대등한 "도전자"임을 입증하듯, 이나리자키의 좌현을 관통하는 스파이크. 코트 위의 선수들은 반응하지도 못했고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얼어붙은 듯이 서서 야유하는 것도 잊었다. 관객들은 물론 관중석 조차 한순간 정적. 마치 시간을 멈추로 때린 것 같은 스파이크였다. 단숨에 기세를 되찾는 카라스노 고교.
연재 5주년 기념 센터 컬러는 모처럼 등장한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차지. 원래 히나타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텐도 사토리]]가 히나타에게 사기를 쳐서 엉뚱한 곳으로 보내고 카메라를 스틸했다... 라는 설정. 텐션이 오른 텐도가 "이번 에피소드는 전편 실사화"라는 개드립을 쳐대서 후배들이 말리는 내용이다.--이딴 걸로 귀중한 컬러를 날려먹는 거냐--
- 헌경왕후 . . . . 7회 일치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영조]]의 차남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ref>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ref> [[대한제국 고종|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로도 알려져 있다.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가 83세에 서거하고, 대리청정하던 세손 이산이 25세의 젊은 나이에 등극하니, 곧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장헌(莊獻)'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어머니 혜빈 홍씨 역시 '혜경궁(惠慶宮)'으로 궁호가 높아졌다. 당시 왕실에서 혜경궁 홍씨가 제일 연장자였으나, 서열상 10살 아래인 [[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가 대비의 위치를 차지하여 왕실 서열상 제2위의 위치에 있었다.
****** 차남 : 제22대 [[조선 정조|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1752~1800)
****** 차녀 : [[청선공주]](淸璿公主, 1756~1802)
홍이상의 둘째 아들 홍영(1584년생)과 넷째 홍탁(1597년생)은 13년 나이차였고, 홍영의 증손자 홍중기(홍만용의 아들)와 홍탁의 손자 홍만기가 동갑이었고, 홍탁의 손자 홍만기는 40세가 다된 늦은 나이에 아들 홍중후를 봤다. 홍중후는 1687년생으로 8촌인 홍중해(홍국영의 고조부), 홍중기(혜경궁 홍씨의 증조부)와는 29세와 38세의 나이차이가 난다. 따라서 같은 항렬임에도 나이차가 많이 나게 되었다.
- 홍학표(배우) . . . . 7회 일치
[목차]
1987년 MBC 드라마 '푸른교실'에서 주요인물 배역으로 첫 모습을 보인 홍학표는, 이듬해인 1988년 MBC 베스트극장 '[[샴푸의 요정]]'에서 신예 탤런트 [[채시라]]와 호흡을 맞추는 남자 주인공[* 극중 CF모델 채시라를 흠모한 나머지 그녀가 나오는 CF를 제작하는 광고회사에 취직하는 어리숙하고 선한 이미지의 남자 주인공이다. 그의 대학동기인 탤런트 [[이효정(남배우)|이효정]]은 홍학표와 정반대의 이미지로 채시라를 [[스토킹]]하는 괴한으로 나와 후반부에 홍학표와 격투씬도 벌인다. [[지못미]]]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깨알같은 [[이홍렬]]과 [[윤석화]] ㅋㅋ-- 이후 신인배우임에도 베스트극장 차기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까지도 주인공 역할을 거푸 따내는 행운을 얻었고, 그때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를 펼쳐 '과연 그 사람은 누굴까' 하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부풀려 놓았다.
한 연예계 선배의 감성어린 호소에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압구정동에 있던 집을 날리고 2년간 미국에서 원단장사를 했다고 한다. 2년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으나, 다행히 수지가 맞았고 환율이 폭등했을 때라서[* 이 당시 1달러당 '''2천원대'''까지도 찍었고 점차 안정되면서 1천원대 중반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들어 지금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교적 빠르게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선배와 연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한다며, 이자는 안받을테니 원금이라도 받고싶다고...[[지못미]]
홍학표의 친구 중에 미술학원 원장이 있었는데, 그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홍익대 미대 1학년인 '''9살 연하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홍학표는 아내의 모습에 첫 눈에 반했으나 당시에 최고의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내 때문에 8개월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이 차이도 많은데다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마음에 안들었던 장인, 장모의 반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너무 나이차가 많다 보니 심지어는 장모가 "애 데리고 그러지마"라는 충고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중간에 헤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중간에 홍학표의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졌고 아내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다시 마음이 돌아섰다고 한다. 결국 대학 1학년때 처음 만나 졸업하고나서까지 5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한 믿음과 성실한 모습을 통해 결국 장인, 장모로부터 결혼승낙을 받아내고, 1994년 아내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다고 한다.
* 2001년 : KBS 일일연속극 《[[사랑은 이런거야]]》- 차상범 역
* 2002년 : MBC 아침드라마 《[[황금마차]]》 - 이강석 역
- TableOfContentsMacro . . . . 6회 일치
제목줄을 찾아서 목차를 만들어 줍니다.
* ''simple'' : 목차의 링크는 번호에만 걸리게끔 기본적으로 되어있으나, simple을 옵션으로 쓰면 목차 전체가 링크가 걸린다.
* ''toggle'' : 목차를 보여주거나 감출 수 있게 한다. {{{[[TableOfContents(toggle)]]}}}
* ''title'' : 목차의 제목을 다르게 바꿀 수 있다. {{{[[TableOfContents(title=차례)]]}}}
- 고인범 . . . . 6회 일치
[목차]
* 2013년 SBS 월화드라마 [[야왕(드라마)|야왕]] - 차심봉
* 2013년 SBS 주말 특별기획 [[돈의 화신]] - 이차돈의 작은 아버지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라스트(드라마)|라스트]] - 문 차장 (특별출연)
* 2015년 SBS 일일드라마 [[돌아온 황금복]] - [[차승만]]
* 2016년 SBS 드라마스페셜 [[원티드(드라마)|원티드]] - [[원티드/등장인물#rfn-1|차승인]]의 아버지
- 기간트 . . . . 6회 일치
[[미래소년 코난]]에 등장하는 거대 비행체. 말 그대로 공중요새에 가까운 물건이다. 과거 세계를 멸망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원흉으로, 당시에는 소형 양산기들이 셀 수조차 없을 만큼 하늘을 뒤덮었다고....... 본 작품의 시기에는 인더스트리아의 [[삼각탑]] 옆에 숨겨진 격납고에 대형기 1기가 잔존한 상태였다. 국내 방영판에선 우주 비행기라고 부른다.
이름의 유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운용한 거대 수송기인 [[Me323 기간트]]다.
레프카의 최종병기.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한 강력한 비행체다. 플라잉 머신이나 몬스리의 팔코 [[비행정]], 하이하바에서 코난 일행이 사용한 비행체와는 차원이 다른 거체를 지닌 비행요새나 다름없는 존재로 곳곳에 무기가 설치되어 있다.
작중 등장한 다른 비행체는 물론 어떠한 무기와 견주어도 대단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작중 시대에서는 정상적인 교전에서 대등하다고 볼 존재가 없으며, 그야말로 전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한 존재다. 그렇기에 레프카는 기간트를 부활시켜 세상을 지배하는데 쓰려 했다. 그러나 이런 기간트조차도 코난과 그의 친구들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최후에는 코난이 탑승하게 된 탈출용 부분 외에는 바다에 추락한 후 대폭발한다. 이 과정에서 레프카와 심복들은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걸 봐도 이들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다. 불타던 기간트가 바다로 추락할 당시 엄청난 파도와 그 압력을 봐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거니와 그 거리에서 떨어진 충격을 봐도. 게다가 마지막에 바다로 추락하며 기간트가 터진 위력은 거의 핵폭발급이었다.
여기에 자동소화설비도 갖추어져 있으며, 엔진이나 수직꼬리날개등의 경우에는 손상을 너무 입어서 복구가 불가능하거나 연쇄폭발 위험성이 있으면 임의로 비행중에 분리가 가능하다. 그리고 기체 각부의 수리나 유지를 위해 승무원을 빨리 보낼 목적으로 동력이 있는 열차가 움직이는 통로가 동체와 날개의 각 부분에 매설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서 최종전쟁 이후의 지구는 [[대공포]]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이 상황에서는 단 1기만 동작이 가능하더라도 [[세계정복]]이 가능해진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며, 그걸 충족할 에너지는 태양 에너지뿐이다. 레프카가 기간트를 굴리기 위해 태양 에너지를 손에 넣으려고 광분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길용우 . . . . 6회 일치
[목차]
[[MBC]]의 정치드라마 [[공화국 시리즈]]에서 [[제1공화국(드라마)]]부터 [[김영삼]] 역할도 여러 차례 맡았다.[* 실제 김영삼의 열혈 지지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2016년 11월 11일, 아들 길성진 이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외손녀 선아영[*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의 딸이다.] 과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려 많은 재벌가, [[정치인]], [[연예인]]들까지 모인 흔하지 않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흔치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길용우는 [[이상달]]의 장례식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정계, 재계에 친분이 꽤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강부자]]와 같이 말이다.
그런데 바로 길용우가 매입한 이태원동 건물에서 2016년 10월, 아들 길성진 이름으로 된 수제 맥줏집을 건물 옥상에서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용산구청 조사로 적발되었다.당시 '영업장 면적 변경과 변경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음에도 2017년 5월 2차 점검에서도 여전히 옥상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을 적발했다. 구청은 식품위생법에 의해 7일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려 했지만 그 대신 616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길성진은 "손님 또는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이 일반 대중에 공개된 옥상에 자발적으로 올라가 음식물을 취식한 것이지, 옥상에서 영업한 사실이 없다"며 소송을 냈다. 또 구청의 처분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 판결 조사 결과 "당시 건물 옥상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비치됐고 조명도 설치됐으며 옥상에 가기 위해선 해당 맥줏집 내부를 통과해야만 한다"며 "단속을 전후해 건물 옥상에서 나오는 음악·이야기 소리로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된 점을 들어 불법 영업을 옥상에서 했다는 증거가 된다라고 짚었다.
[[아이언맨]](?)을 연상케 하는 복장과 유려한 [[CG]], 그리고 웃는 얼굴로 증기기관차와의 정면 충돌을 시도하는 아스트랄한 전개가 일품이다.
- 김경식 (1960년) . . . . 6회 일치
'''김경식'''(金景植, [[1960년]] [[1월 1일]] ~ , [[대구광역시]])는 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차관이다.
* 2014.02 ~ 2015.05 : 국토교통부 제1차관
|전임자 = [[박기풍]]<br/>(국토교통부 제1차관)
|직책 = 제2대 [[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차관|국토교통부 제1차관]]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차관]][[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보미(1958) . . . . 6회 일치
|align="center"|[[다 함께 차차차 (드라마)|다 함께 차차차]]
- 김석훈(탤런트) . . . . 6회 일치
[목차]
원래 [[금남리토종순대국]](구 가평예전)에 들어가 연극영화를 전공했었다. 본인의 회고에서 금남리토종순대국는 실전 연기와 실기를 충실히 단련해 지속적으로 익히는 점에서 최고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에 머물지 않고 연기내면의 깊이와 표현력을 높이는 한 방식인 이론 탐구도 갈구해 [[금남리토종순대국]]에 입학한다. 입학 후 연기이론에 정통해 진 것 외에도 철학과 심리 등 인문계통 학문을 여럿 접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했다. 거기다 학문소양도 차근차근히 다져, 자신의 연기로도 폭 넓게 반영 하고 배울 수 있어 뜻 깊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배우에게는 인간에 대한 관심 및 인간심리, 각종 군상들을 다각도의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다지는 일이 필수다. 이런 사안을 본인이 이미 그 중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큰 성적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한강수타령]]이나 [[폭풍속으로]], [[경찰특공대(드라마)|경찰특공대]]를 찍으며,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쌓으며 꾸준히 실력 있다는 평을 이어간다. 27살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영상예술에 데뷔를 했음에도 말이다. 극단에서 차근차근 다진 실력이어서, 신인 때도 안정감 및 무게감에서도 뒤지지 않는 연기를 펼쳤다. 자질을 보자면 배우로서 믿고 볼 수 있는 뛰어나고 탄탄한 연기력에, 노력하는 성실하고 신뢰받는 배우이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1999년 || SBS || [[토마토(드라마)|토마토]] || 차승준 ||
- 김원주(가수) . . . . 6회 일치
[목차]
2013년에 [[퍼펙트싱어 VS]]에 나와서 [[성시경]]의 차마를 불른 결과 좋은 점수를 받으면서 MVP가 되었으며 금은 받지 못했다.
자존심이 강해서 지는 걸 싫어하는지 [[불후의 명곡]]에 그룹 포맨 전원으로 첫 출연했을 때 4표 차이로 [[1승만 하라고 스막 시발들아|1승조차 못하자]] 얼굴이 빨개지고 잠을 못 잤다고 하며 한 번 [[실수]]를 하면 그 [[실수]]가 계속 생각난다고 한다. 그 뒤 2번째 출연 때는 우승했다.
* [[기계치]]며 아무리 설명을 해도 영화 예매조차도 못했고 잘하는 건 게임뿐이라고 한다. ~~기계치인데 기계공학과 출신~~
* 전역 이후 복면가왕 66차 경연에서 [[누르면 나옵니다 노래자판기]]라는 가명으로 참여해서 준결승에 올랐다.([[내맘을 들었다 놨다 인형뽑기]]에게 승리, [[널 깨물어주고 싶어 초록악어]]에게 패배[* 참고로 이 대결에서는 [[뜨거운 심장 양철로봇|가왕을]] [[신비주의 아기천사|배출]]한 그룹의 팀원이 대결했다.]) 그는 전역 이후 솔로 무대는 처음이고 떠나간 팬들이 이 무대를 보고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참고로 이 경연에서 그와 같이 듀엣으로 [[잘자요 꿈의 요정 드림캐처|음반 활동을 했던 가수]]도 참여했으며 가왕 도전자가 되었다.
- 김진환(iKON) . . . . 6회 일치
[목차]
* 자신을 밤에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자주 소개한다. 실제로 목소리가 좋으며 말투가 느리고 차분하다.
* 2014년 가을까지 관람차를 타 본 적이 없었다. 믹스앤매치 오사카 자유시간 편에서 [[구준회]]와 함께 탔던 것이 난생 처음이라고. ~~탄 후에 감상평은 " 경치는 좋으나 남자 둘이서는 타긴 좀.. "~~
* 장남지난, 차남지난이라는 말장난(발음이 동음)과 '곤니치와와'라는 인사에 빠져 있다. 일본어로 지난(ジナン)의 뜻이 차남(次男)이나 정작 본인은 팀의 맏형이라는 점이 재미있는 포인트다. 일본 팬들은 진환을 표기할 때 次男이라고 쓰기도.
* 복면가왕 84차 경연에서 [[야! 타! 산악 오토바이]]로 참가했으며 iKON 멤버로는 3번째 참가자다.
- 김처선 . . . . 6회 일치
[목차]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방탕한 생활로 고생을 한 덕에 꼬장꼬장하면서도 곧은 성품을 지니게 되었다. 때문에 연산군이 음란한 짓을 하고 놀 때마다 늘 직언을 아끼지 않으며 만류하려 하였다. 일각에는 김처선의 성품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그 김처선조차도 눈뜨고 보기 힘들만큼 연산군이 방탕하게 놀았다고도 한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장항선(배우)|장항선]] 씨가 연기하였으며, 연산군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몇 되지 않는 충실한 심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장생과 [[공길]] 일당이 왕에게 풍자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자 왕을 정신 차리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들을 궁중에 스카웃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되려 연산군의 광기만을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 역사에서처럼 [[연산군]]에게 직언했으나 분노를 사서 쫓겨났으며, 후반부에 반정 세력들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절했고 [[반정]]이 일어나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 이때 연산군은 처선이 어디 있냐며 술마시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가 결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중 매체에서 이렇듯 제법 자주 나온 이유인지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의 전체 누적(실록 홈페이지 '''개설 때'''부터 누적된 것이라고 한다) 인기 검색어 검색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다. 참고로 실록 홈페이지의 전체 누적 인기 검색어 1위는 [[이순신]].
그것으로도 안 차서
그것으로도 안 차서 양자 본관인 충청도 전의 고을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6회 일치
* 타마키는 밀리오를 "태양 같은 히어로"가 될거라 말하곤 했는데, 그는 겸손해하며 오히려 타마키야 말로 "태양 조차 먹어버릴 히어로"가 될 거라 격려한다.
타마키는 공언한 대로 자기 혼자서 이 셋을 상대하겠다 재차 선언한다. 단발머리는 세츠노. 개성은 "절도". 대머리는 호죠. 개성은 "결정". 빵봉투는 타베. 개성은 "식". 이상 세 명이다. 타마키는 패트껌 사무소에서 타코야키를 충분히 먹어서 문어다리의 숙련도도 최고조에 달했고 지난 번 사건의 경험으로 원거리 공격에도 민감해진 상태다. 그는 이런 조무래기들 상대로 프로히어로가 몇 명이나 묶여 있는 거야 말로 적들이 바라는 일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후배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가 주저하나 이런 상황일 수록 프로들의 개성을 아껴두는게 좋다고 상사인 패트껌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 키리시마와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타마키를 혼자 두는 패트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 그러나 패트껌은 실력으로 치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중 타마키가 제일이라고 단언한다. 단지 마음이 약하고 네거티브가 심한 것이 흠이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런 상태로도 웅영고의 빅3 중 일각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세츠노는 본래 자신들이 인생을 버린 종자들이라 말한다. 오히려 히어로에게 구해졌을 땐 살아남은 것에 절망했던 패배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재활용"해준 것이 오버홀, 시에핫사이카이의 차기 두목 치사키다. 호죠가 그런 사실을 밝히며 묵직한 주먹을 날린다.
>차기 두목은 쓰레기를 주워서 재활용해준다.
>태양조차 먹는 자(선 이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6회 일치
* [[시가라키 토무라]]가 진심을 보였다.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가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시가라키의 결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에핫사이카이의 사무실에 갔다. 토가는 시가라키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트와이스는 용서 못한다, 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개성넘치게 입단인사를 마쳤다. 어차피 핫사이카이측에서도 랏파 정도나 이들을 환영하고 환영인사로 싸우려 들었다. 나머지는 모두 시큰둥.
[[오버홀]]은 이들의 신고를 받으며 심심한 유감을 표시했다. [[마그네]]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죽음에 대해서]]. 오버홀도 "그"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고 이젠 지나간 일이니 한 식구가 된 이상 잘 해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이 트와이스의 신경을 긁었다. 우선 마그네의 아이덴티티는 "그녀". 트와이스가 그걸 가차없이 지적하며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포장만 잘했다"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그 오락가락하는 성격대로 곧바로 태도를 바꿔 "그래서 뭘하면 되냐"고 적극 협조적으로 나온다. 어지간히 어처구니 없는 녀석들은 철포옥 핫사이슈들 조차도 그 성격에는 어이가 없다고 평한다.
* 이리나카가 차라리 귀를 막아버렸더라면, 토가의 말을 무시했더라면 기회는 여전히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력은 분노조절 능력과 함께 망가졌고 터져나오는 울분을 고함의 형태로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고함은 비명처럼 들렸다. 토가가 찌른 핵심이 아파서 지르는 비명.
미도리야는 두 번째 들려온 기성을 놓치지 않았다. 위였다. 원 포 올 풀 카울. 벽을 차며 솟구쳐서 목표에 정확히 SMAASH. 그 위력에 벽이 무너지고 이리나카의 본체가 노출됐다. 이제 아이자와의 차례였다. 그의 무효화가 번뜩였다.
- 라미란 . . . . 6회 일치
[목차]
[[KBS 드라마 스페셜]]의 정마담 역으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에 출연했으며, 2017년 많은 단편작들 중, 제일 높은 시청률을 달성하여 시청률 순위 1위를 차지했다. 그 기세를 이어 다음 웹툰원작의 tvN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케이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들과 경쟁하여 2위를 기록하였다.
2017국내 빅5 투자 배급사가 선정한 충무로 티켓파워 순위에서 [[오달수]]와 함께 최고점, 최다 득표율을 받으며 만장일치로 남녀 조연부문 공동1위를 차지했다.
|| [[차형사]] || 송 선생 || 1,346,754 ||
||<|6> [[2013년]] || 연애의 온도 || 손 차장 || 1,865,354 ||
||<|2> [[KBS 연기대상]] || 베스트커플상 (with [[차인표]]) ||<|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
- 류명선(야구선수) . . . . 6회 일치
||<:> '''프로입단''' || 1988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
[목차]
계명대 재학 중인 1988 신인지명 때 삼성에 1차 지명을 받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참가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실업팀인 [[세일통상 야구단]]에 입단해 1989년에 삼성에 입단했다.
프로 첫해인 1989년 4월 12일에는 첫 완투승을, 5월 24일에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14승 8패 1세이브의 성적을 기록하며 당시 [[김시진]]의 이적으로 자칫 약화될 수도 있었던 삼성 투수진을 [[김성길]]과 함께 같이 지켰다. 타격 2위를 차지한 강기웅과 함께 그해 삼성의 대표적인 유력 신인이었지만, 신인왕은 19승을 거두며 맹활약한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야구선수)|박정현]]이 차지했다. 이듬해 [[이태일]]이 입단하며, 김성길 등과 함께 1990년대 초 삼성 선발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물론 이 시기에는 [[김상엽]]도 있었지만 1990년을 제외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입단 동기였던 [[정윤수]]가 1990년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며 혹사 당한 끝에 1991년 이후에는 위력이 크게 저하된 것을, 생각하면 내구성도 좋았던 편.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태한]] - [[김상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 마기/305화 . . . . 6회 일치
[[마기]] 305번째 밤. '''교차하는 의지'''
* 바로 오늘날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절차였다고 한다.
* 백영(아르바)는 그냥 둬도 되겠냐고 묻는데 "어차피 갈 곳도 없다"며 내버려 둔다.
- 알라딘. 자신이 겪은 모든 괴로움은 "성공을 위한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는 신드바드에게. 달편으로 일관하던 신드바드도 여기에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 신드바드의 계획도 결국은 연홍염이 하려던 일을 제도적으로 이루려는 것 뿐으로 차이점이라면 그 과정에서 "대전쟁"이 있느냐 없느냐에 지나지 않는다.
- 마기/312화 . . . . 6회 일치
* 아르바는 소용없다는걸 알면서도 알라딘에게 돌진, 이 세상 조차도 솔로몬의 오만의 산물이라고 악담한다.
* 백룡은 이 상태의 알라딘은 누구도 건드릴 수 조차 없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알 사멘의 모든 공격이 닿지도 않는다.
* 아르바의 정신체는 다른 차원에 있고 그걸 절반만 이 차원으로 옮겨 간섭하는 것이다. 무한 재생도 저쪽에서 제공되는 마고이를 쓴 것.
* 위기의 순간마다 저쪽 차원으로 돌아갔다가 돌아와 몸을 갈아타왔다.
* 아르바는 백룡의 왼손으로 접근하는데, 어차피 그 팔은 홍염이 준 팔이라 찔러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 문문 . . . . 6회 일치
[목차]
'비행운'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을 하며 인기를 얻게 되면서 2017년 12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 하우스 오브 뮤직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화장실]] [[몰카]]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의 명성에 먹칠을 하면서 경력이 사실상 끝났으며 소속사인 하우스 오브 뮤직과도 계약 해지되었다.
기존의 팬들조차 대다수가 ‘실망이다,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문문의 팬카페 또한 폐쇄된 상황이다.
문제는 해당 내용이 범행 당시 혹은 수사 도중이 아닌, '''적법한 절차로 죗값을 다 치르고도 한참이 지난 이후에야''' 폭로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디스패치#s-4.1]] 문서에 서술.
다만 놀랍게도 사건이 알려진 후에도 차트에 비행운 등 그의 곡들이 꽤 오래 남아 있었다. 또한 TJ노래방 차트에는 2018년 10월에도 그의 곡들이 남아있다.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6회 일치
그러나 미즈우치는 경찰관 신분이나 오사카에서 온 것을 밝혔으나, 후에 아내가 될 여성과 간사이에서 이미 교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즈우치는 반년도 되지 않아 시라타 히카루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이 해 가을 무렵 시라타 히카루는 친구에게 미즈우치가 연락을 무시하고 데이트도 자주 취소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라타 히카루는 "어차피 나는 '센다이의 여자'일까", "(미즈우치가) 스노 보드만 하고 있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걸까."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미즈우치는 교제에 불성실해져서 시라타 히카루는 12월에 생일을 맞았지만, 미즈우치는 생일인데도 만나주지 않고, 놀아주거나 선물을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에 시라타 히카루는 "괴롭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미즈우치 역시 미야기에서 파견을 마치고 오사카로 돌아와, 아베노 경찰서(阿倍野署)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여전히 시라타 히카루에게 차갑게 대하여, 오사카에서 주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6월에 미즈우치는 갑자기 시라타의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공판에서 진술에 따르면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해서 막차를 놓쳤다. 돌아가는 것이 귀찮아져서, 시라타 씨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이후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미즈우치는 시라타와 단 3번 만나게 된다. 그리고 2014년 8월에 '''미즈우치 타카시는 한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오사카 경찰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성대한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사실 결혼식 뒷풀이 때, 미즈우치 타카시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지 않도록 간사를 맡은 A에게 부탁을 했으며, 그 이유로 "아직 끊어내지 않은 여자가 있다."고 댔다. 그러나 주위에 모두 세심하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참석자 한 명이 페이스북에 올리고 시라타가 그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시라타는 1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혼을 눈치챈 것을 암시하는 "사정이 나쁜 건 눈치채지 못한 척 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올렸다. 또 시라타 히카루는 "몰랏다. 결혼을 알았다고 그에게 말조차도 할 수 없다."고 심하게 우울해졌다고 그녀의 지인들이 말했다.
그리고 오전 10시 55분, 독신자 아파트의 작은 욕조에 엎드린 채로 떠있는 시라타 히카루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겨울 코트에 바지차림으로, 양말도 신고 있어 밖에 나가려는 복장이었다. 시신의 목에 졸린 흔적이 남아 있어 사인이 대략 판명되었다.
미즈우치 타카시는 당초에는 의심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 박철우(배구) . . . . 6회 일치
[목차]
2008-2009 시즌에 기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폼을 잠시 잃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소속 팀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로서는 박철우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맡겨서 현대캐피탈을 '철우캐피탈'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시즌 정규리그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55.32%를 기록하며 공격상과 함께 정규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2013-20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올린 점수에 비해 인상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4차전에서 1세트에 팀 동료 [[이선규]]와의 충돌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던 아가메즈와 언쟁을 벌인 다음 아가메즈의 스파이크를 단독 블로킹으로 깨끗하게 막아낸 장면과, 3세트 23:22로 앞서는 상황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두 번 연속 블로킹해 내 결승점을 딴 장면은 백미.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 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시|수원]] [[권선구|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왼손잡이 라이트다. 공격시 직선이나 블로커 사이를 통과하는 경우가 잦다. 국내 선수중 손꼽히는 득점력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그 분이 오신날엔 아무도 못 막는다고 할 정도. 임팩트 있는 [[벽치기]]덕에 벽철우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기록상으로 크게 차이 날 정도는 아니다. 오픈과 퀵오픈, 후위공격에서 모두 준수한 성공률을 보이는 윙스파이커다. 심지어 최근에는 시간차 공격도 보여주고 있다. 왼손잡이 세터와 궁합이 잘맞는다는 말이 있다. 199의 우월한 신장을 바탕으로 사이드 블로킹도 단단히 세워준다. 스파이크 서브도 좋은 편이지만 서브 토스가 불안해 범실이 '''매우''' 많다.
- 변요한 . . . . 6회 일치
[목차]
2015년 5월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는데, 멋지게 차려입고도 누가 쫓아오는 듯한 빠른 워킹을 보여주는 바람에 일부에서는 동공지진 뿐만이 아니라 손바닥, 발바닥 지진까지 같이 왔다며 놀려댔다.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작품인 [[단편영화]] 《[[토요근무]]》로 데뷔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활동기간 동안의 작품활동이 대부분 [[독립영화]]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필모그래피에 등록된 영화보다 등록되지 않은 영화들이 더 많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약 30편 정도가 더 있다고. ~~역시 독립영화계의 송중기.~~ 그 예로 영화《[[들개(영화)|들개]]》로 이미 합을 한 번 맞춘 적이 있는 배우 [[박정민(배우)|박정민]]과 함께한 《어쩔 수 없어요》, 《FLAMINGO》 등이 있다. ~~《FLAMINGO》 감독님 내한 기원[* 변요한이 직접 《FLAMINGO》에 애착이 있으나 공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유는 감독님이 미국으로 가셔서 연락이 되지 않기 때문.]~~ 육룡이 나르샤 이후에는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한다.[* 육룡이 나르샤 촬영 시기와 겹쳐 1차, 2차까지 공개된 캐스팅 목록에 올라가 있지 않았다. 마침내, 4월 27일로 첫공 날짜가 정해졌다.] 이 작품은 평소에 외워 부르고 다닐 만큼 좋아하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 넷상에서는 일명 '변요한 패밀리'~~[[AKB48|BYH48]]~~로 불리는 연예계 친목 모임이 핫하다. 주로 독립영화나 대학 동기 등의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같이 노래방에 가거나 생일파티를 하는 등 ~~아주 건전하게~~ 친분있는 인사끼리 어울리는 듯하다. 이 무리들이 변요한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며 알려지기 시작했고, ~~여러 남친짤들과~~ [[류준열]]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확 뜨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류준열]], [[지수(배우)|지수]], [[이동휘(배우)|이동휘]], [[김희찬(배우)|김희찬]], [[수호(EXO)|수호]], 이현욱, 권시현, 이기혁, 차영남, 김동환 ~~일명 연예계의 어벤져스~~ 등 연극, 단편영화, 독립영화에서 보이는 다수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변요한 패밀리'라고 부르는 것은 변요한이 가장 먼저 떠서이기도 하고 사진 등이 가장 많이 올라오기 때문인 듯 하다. 영화 '글로리데이'와 관련한 연예가중계 인터뷰에서 류준열은 BYH48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변요한의 집에서 자주 만나기 때문이라는 심플한 답변을 했다.[* 사실 이 별명은 자신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장난스럽게 부른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름의 기원(...)은 앞서 서술한 이유가 더 신빙성 있다. 물론 여러모로 변요한의 인맥과 관련된 모임이라는 점에서 류준열이 언급한 이유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변요한 패밀리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한 명씩 뜨고 있어 다음 차례는 누구일지 네티즌들이 눈에 불을 키고 있다~~
- 보루토/2화 . . . . 6회 일치
* "적은 노력으로 한없이 큰 성과를 이끌어낸다. 그것이 차세대의 닌자"라며 보루토에게 넘겨준다.
* 체구가 작은 쪽은 미수화한 8미를 보고 "차크라의 열매가 짐승의 형태로 바뀌어있다"고 말한다.
* 그러면서 "짐승으로 변한 차크라의 열매가 인간에게 빙의해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것이 미수의 차크라 구슬로 보인다.
* 킨시키는 킬러비를 버리면서 "보다 큰 차크라 반응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한다.
* 그건 바로 나루토의 구미. 자신들이 원하는 최대의 차크라라고 한다.
- 블랙 클로버/105화 . . . . 6회 일치
* 그리고 2위는 예상을 뒤엎고 만년 꼴찌 검은 폭우단이 차지했다. 이들도 유망한 신인을 소개해야 하는데... 막장 기사단이라 단상에 올라있지도 않았다.
* 올해 공적 발표는 [[마법제]] 율리우스가 몸소 행차해 거행한다. 마법제는 시민들의 환호를 잠재우며 잠시 기념사를 한다. 올해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만큼 공적발표는 마법제 자신이 직접 맡고 잠시 뒤에는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참석, 간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법제의 발언들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번영하는 듯 보이는 클로버 왕국은 내외 양면에서 많은 악재에 처해있다. 외교적으로는 다이아몬드 왕국과 스페이드 왕국의 침략을 받고 있고 내부에선 "백야의 마안"이란 테러조직의 횡행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싸움이 계속되면서 국민들 중에서도 희생자가 생기는 등 민생과 치안, 안보가 악화일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성과제를 개최하는게 바람직한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마법제는 곧 본론인 실적발표를 진행한다. 근처에 있던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군중들은 당연히 금색의 여명이 1위를 할 걸로 예상하는데, 매그너는 어차피 꼴찌는 자기네들일 거라며 관계없다고 자학적인 개그를 한다.
그때까지 오로지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챠미 퍼밋슨]]은 유노의 이름이 거명되자 정신을 차린다. [[클라우스 류넷]]과 [[미모사 버밀리온]]은 그를 축하해주지만, 그의 성공이 고까운 자들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무대 뒤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분을 삭힌다.
* 이어서 2위의 발표. 이번 2위는 경쟁자가 많다. 작년엔 홍련의 사자단이 차지했지만 올해는 전단장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이 사고를 당하면서 기세가 주춤했다. 대신 은익의 참수리가 푸른 들장미단이 언급되는데 쉽게 누구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 [[핀랄 룰러케이스]]는 단원 중에서도 가장 프리하게, 정말로 실적발표엔 1g의 신경도 안 쓰고 헌팅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폭우인데 너무 쉽게 들통나서 영 실적이 오르질 않는다.
* 문제는 시민들의 반응. 놀라는 건 잠시고 과연 이게 제대로 산정된 건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카호노]], [[키아토]]처럼 순수하게 기뻐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소수. 대부분 여론은 부정을 저질렀다는 쪽이다. 하지만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레베카처럼 검은 폭우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거라고 변호한다. 그 중엔 왕도에 백야의 마안이 침입했을 때 구원 받은 꼬마도 있다. 이런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군중들도 쉽게 검은 폭우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때 마법제가 중재를 해서 비록 검은 폭우는 작년엔 마이너스 50이란 전대미문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올해는 분발해서 성과를 낸 거라고 설명한다. 그게 가능했던 건 검은 폭우의 신인 덕인데, 소개를 할라치니 단장은 커녕 관계자 조차 참석하지 않아 난처해졌다. 마법제는 군중을 향해 누구 관계자 없냐고 묻기에 이른다.
- 블리치/698화 . . . . 6회 일치
* 차드는 복서가 돼서 헤비급 세계 챔피언 자리에 도전 중. 이치고와 친구들이 TV로 그 경기를 보고 있다.
* 차드는 복서가 되었으며 WBO 세계 챔피언에 도전 중. 친구들은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 이시다도 가업을 이었으며 병원 옥상에서 혼자 차드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루키아는 어차피 사신이니 인간한테 다칠 일도 없다며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이치고는 "인간에게 시비 걸만한 녀석이냐"며 빨랑 찾으러 가라고 한다.
* 삶과 죽음 조차도 경계를 없애서 필멸자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 한 것이다.
* 차드의 마지막 출연은 간접출연. 이치고 일행의 그의 경기를 Tv로 시청 중이다. 타이틀 매치 정도는 직접 보러 가줘야 하는거 아닌가?
- 송언석 . . . . 6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차관]]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0대 국회의원[br]기획재정부 제2차관[br]기획재정부 예산실 실장[br]자유한국당 경상북도 김천시 당협위원장[br]국민대학교 특임교수[br]제29회 행정고시합격 ||
[목차]
제29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박근혜 정부]] 때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실 실장, 제2[[차관]]을 지냈다.
계파는 [[친홍]]계로 분류된다.[* 송언석 의원이 [[박근혜정부]] 시절에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일하면서 친박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아시다시피 송언석 의원은 [[배현진]], [[길환영]]과 같이 [[홍준표]]에 의해 자유한국당에 영입되면서 친홍 인사로 분류된다.]
그리고 무소속 [[최대원]] 후보와의 접전 끝에 493표 차이로 당선이 되었다.
- 식극의 소마/205화 . . . . 6회 일치
* 센트럴 측의 기차가 떠난 뒤 소마는 에리나에게 "드디어 말했구나"라고 말을 붙이는데, 에리나의 상태가 이상하다. 생애 첫 반항이 지나치게 자극이 됐는지 뭔가 폭주하고 있다. 에리나는 아드레날린 과잉 상태가 돼서 "내가 현 십걸을 쓰러뜨리고 1석에 앉아 진정한 여왕이 되는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소마를 포함한 학생들은 자신의 종자인 셈이니 영광인줄 알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해댄다.
* 하지만 소마는 불만이 많은데 정상을 차지하는건 자신이라며 에리나와 티격태격한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를 동원해 뭔가 한 마디 해주라고 하는데 의외로 죠이치로는 평범하게 "에리나가 벽창호 아버지에게 대들 줄은 몰랐다"며 칭찬하는 투로 말한다. 에리나는 그제서야 진짜로 이 부자에게 감화된 걸지도 모르겠다고 마음 속으로 인정한다.
* 도지마는 학생들에게 언급하진 않았지만, 죠이치로가 사라진 이후 그도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 항상 괴식메뉴의 괴롭힘 대상이던 [[시오미 준]] 조차 죠이치로가 사라진 충격을 받을 정도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도지마도 일류 요리인이었던 만큼 여러 레스토랑에서 초청을 받지만 어느 것 하나 응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도지마 또한 폐인이 될 것 같았는데, 그때 그를 일깨운 것이 센자에몬이었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한 달 뒤. 일반 학생들의 4, 5차 시험이 진행된다. 그 사이 눈 등으로 열차 운행정지가 다섯 번 정도 있었지만 일정은 차질없이 진행됐다. 소마 일행은 그러는 중에도 특훈에 전념했고 이윽고 최종시험,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센트럴과 반역자팀은 모두 레분토 섬에 도착.
- 식극의 소마/230화 . . . . 6회 일치
* 연대식극 2일차. 3rd Bout의 시작. 대결 제 3카드 메구미 vs [[아카네가쿠보 모모]]의 대결주제를 선정한다. 메구미가 추첨용지를 집었다. 결정된 주제는 "사과". 반역자 팀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본래 사과라면 요리에도 많이 쓰는 만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초일류 파티셰 모모. 사과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특기 중의 특기 분야. 하다못해 채소였더라면 메구미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실망이 우세했다.
* 요리를 시작한 모모의 기백은 십걸다웠고 메구미는 단숨에 위축될 뻔했다. 실제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메구미는 다시 시노미야 셰프에게 가르침 받았던 그때를 떠올렸다. 고양이와 쥐, 뱀과 개구리, 사자와 토끼 같은 조합의 특훈조. 둘은 개인 주방에 들어섰지만 그저 서로 쳐다보는 채로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옆 방에선 소마와 죠이치로, 타쿠미와 도지마도 개별 훈련을 시작해야 했지만 메구미조가 어떻게 하는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지어 [[나키리 에리나]] 조차도. 전원이 유리창 너머로 메구미 조의 주방만 기웃거리고 있자 도지마가 각자 훈련을 시작하라고 한소리 했지만 죠이치로가 "넌 메구미가 걱정도 안 되냐"고 일갈하자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모든 건 긴장 때문, 정확히 말하면 시노미야의 존재 자체 때문이다. 아예 주방까지 들어와서 구경하던 소마가 "시노미야 사부가 온 게 문제였다"고 가차없는 돌직구를 날리다 시노미야한테 욕을 먹는다. 같이 구경하러 온 타쿠미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같은 생각. 은근슬쩍 끼어있던 에리나는 슬슬 돌아가서 각자 특훈을 시작하자며, 메구미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상황을 수습한다.
>다음에는 내가 누군가를 이끌 차례일지도 모르겠어...
* 그렇게 해서 지금의 메구미가 있다. 사과를 집어드는 메구미는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있었다. 그녀는 이 며칠간 시노미야 "코치"에게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하겠다고 다짐했다.
- 신고은(가수) . . . . 6회 일치
[목차]
현재는 [[더퀴즈라이브]]의 진행자, [[국민은행|KB]]차차차 모델을 하고 있다.
그 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41~50회 #s-4|2016년 2월 21일]]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4차 경연에서 [[만나면 좋은 친구 엠빅]]이라는 가명으로 나와 파트너인 [[부활한 백투더퓨처]]와 3표 차 접전을 벌였다. 이 때 연예인 판정단 대부분은 가수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나중에 리포터로서의 모습만 알고 있는 판정단은 "리포터가 저렇게 노래를 잘 하다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88명의 일반인 판정단에선 동점이었고 연예인 판정단에서 승부가 갈렸다.]
- 안석환 . . . . 6회 일치
* 2005년 [[KBS2]] 단막극 《[[드라마시티]] - 다함께 차차차》
* 2016년 [[SBS]] 드라마 스페셜 《[[돌아와요 아저씨]]》 ... 차회장 역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드라마)|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 차회장 역
* 2011년 《[[사랑이 무서워]]》 ... 포차 주인 역
- 연경흠 . . . . 6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한화 이글스 2차 12라운드]](전체 90순위) 지명[* 대학 진학으로 인해 실제 입단은 2006년.] ||
[목차]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2순위(전체 90번)에 지명되었으나 [[송광민]], [[김태완(1984)|김태완]]과 마찬가지로 대학행을 선택했고[* 당시 신인드래프트는 지금처럼 지명권 2년 유효 제도가 아니어서 하위픽은 지명만 해놓고 대학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대학입학에 필요한 전국대회 8강 경력이 없어 진학이 어려울 뻔 했으나 봉황대기 우승으로 극적으로 인하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하대에서 4번타자를 맡았다. 위의 둘과는 달리 외야수를 봤기 때문에 미래의 외야자원감으로 꼽혔으며 졸업 후 2006년에 입단했다. 장타력이야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차세대 거포 외야자원으로 촉망받았다.
수비에서도 별 좋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발이 느려서 수비 범위가 좁았던 데다가 타구 판단도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어깨조차 좋은 편이 아니었다. 쉽게 말해 [[이영우]]의 몇단계 다운그레이드. 하지만 좌익수라는 포지션이 수비력이 좋지 않은 선수가 맡아도 별 문제는 없는 포지션이었기에 꾸준히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이후엔 2018년 대전서구유소년 야구단의 감독으로 한화에서 활약했던 외야수이자 현재 코치인 [[박상규(야구선수)|박상규]] 와 함께 창단 3년차에 불과하지만 양구대회에서 4강 진출, 인제군수배에서는 준우승을 거두는 등 유소년야구대회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501|관련기사]]
- 오재희 . . . . 6회 일치
|경력 = 제25대 [[대한민국 외무부|외무부]] 차관
'''오재희'''(吳在熙, 1932년 ~ )는 대한민국의 제25대 [[대한민국 외무부|외무부]] 차관을 역임한 외교관이다. 본관은 [[해주 오씨|해주]]이며,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주미·주일 공사, 주 파키스탄 대사,<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070009920101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3-11-07&officeId=00009&pageNo=1&printNo=5439&publishType=00020 | 제목 = 韓國, 파키스탄과 修交 | 날짜 = 1983-11-07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 인용문 = 政府는 7일 파키스탄 정부와 공식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외무부가 발표했다. 外務部는 이날 발표에서 韓․파키스탄 국교수립으로 양국 주재 총영사관이 각각 대사관으로 승격되고 양국 주재 대사 임명에 앞선 잠정조치로서 吳在熙 駐파키스탄총영사와 자베드․마수드 駐韓파키스탄 총영사가 각각 대사대리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ref>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차관|외무부 차관]], 주일 대사를 역임하였다.
|직책 = [[대한민국 외무부|외무부 차관]]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공사]][[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파키스탄 주재 대한민국 대사]]
- 오현근 . . . . 6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4차 7라운드 ([[두산 베어스]])<br>[[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3차 6라운드 전체 45순위([[SK 와이번스]])
성남고 졸업 당시 [[두산 베어스]]에 2차 7라운드로 지명되었으나 [[고려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지명권이 소멸되었다.
2008년 SK 와이번스의 2차 6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에서 29서울 91타석 동안 타율 0.418에 9도루 17타점을 기록하였다. 때마침 부진했던 외야수 [[조홍석]]이 시즌 중 현역으로 입대하자, 정식 선수로 전환됨과 동시에 1군으로 등록되었다. 등번호도 조홍석의 번호를 갖고 왔다.<ref>롯데는 [[백민기]], [[임종혁]], 조홍석을 2015 시즌 중 현역으로 입대시켰다. 롯데 구단에서 선수들의 병역관리 취지로 시즌 중 입대를 희망하는 선수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들은 모두 외야수인데, 롯데에 외야 자원들이 어느 정도 모였다고 판단하여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미필자인 이들을 군에 보내서 유망주들의 유출을 차단했다.</ref>
- 원피스/862화 . . . . 6회 일치
* 푸딩의 성격이 비틀린건 빅맘 [[샬롯 링링]] 조차 기분나빠하는 3의 눈 때문이었는데, 그걸 칭찬받자 자기도 모르게 오열해 버리고 만다.
* 뇌운 제우스가 짊어진 찻잔을 타고 새신랑 새신부가 나타난다. [[샬롯 푸딩]]과 [[상디]]는 겉보기엔 너무나 행복한 한쌍이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한 쪽은 죽일 생각이 만만, 한쪽은 죽을 판인데도 헤롱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상디는 죽을 거라는걸 뻔히 알고 정신차리자고 하는데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모른다.
레이쥬는 자신들의 테이블 근처를 샬롯 가문의 형제들이 둘러싸고 있는 걸 보고 이미 포위당한 걸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녀는 제르마라는 가문과 함께 죽기를 각오한 몸.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지만 상디 만큼은 살아나가기를 바라며 루피에게 비책이 있기를 기도한다.
* 상디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번진다. 그가 방심하는 동안 푸딩은 치마 속에서 총을 준비한다. 그대로 상디의 이마를 꿰뚫어줄 차례인데... 상디의 반응이 예상을 초월했다.
푸딩이 제 3의 눈을 가리게 된 이유는 빅맘 때문이었다. 어머니인 그녀 조차도 푸딩의 눈을 기분나빠 해서 이마로 가리라고 성화를 부렸다. 물론 다른 형제 자매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빅맘의 딸인데도 또래 사이에선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눈을 놀리고 혐오했다. 그게 지금의 푸딩을 만들었다. 처음 사람을 찌른 것도 자신의 눈을 가지고 괴롭히던 남자애였다. 잠자코 비웃음 당하느니 전부 없애버리는 걸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혐오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자신은 괴물이라고 독백한다.
* 총성은 결혼식장 전체에 파문을 일으킨다. [[빈스모크 저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신부가 총에 맞았다고 외친다.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걸 눈치챈다. 레이쥬도 이 이변에 당황한다.
- 원피스/864화 . . . . 6회 일치
* 빈스모크 형제들 조차도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난하며 자기들이 죽을 위험에 처해있는데도 냉소할 뿐이다.
* 그리고 또다시 울리는 총성. 이번엔 [[샬롯 푸딩]]이 쏜 것이 맞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더니 상디를 상대로 난사한다. 하지만 그의 견문색 패기 때문에 맞추지 못한다.
* 그땐 혼란한 다과회장을 "살려줘"란 다급한 목소리가 뒤흔든다. 루피는 그 목소리를 듣고 벳지의 "연기"를 뿌리치고 달려가려 하고 상디는 "얘기가 다르다!"고 분개한다. 어느틈에 샬롯가의 형제들이 빈스모크 일가를 둘러싸고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제야 암살계획을 알아차린 [[빈스모크 저지]]가 빅맘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악의 세계에도 인의는 있다"는 말을 하는데 누구하나 수긍하지 않는다. 그의 자식들 조차도.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은 자기들도 머리에 총알을 박을 판인데 오히려 냉소한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웃으며 어차피 이제 살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그들의 몸을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무기도 레이드 슈츠도 지금은 없다고 내뱉고 [[빈스모크 니디]]는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 하하하"라고, 게임에 진 정도의 반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지는 자식들의 냉담한 태도에 "제정신이긴 하냐"고 대꾸하지만 [[빈스모크 레이쥬]]는 그것도 자업자득이라 여긴다. 그들을 감정없는 기계로 기른 것은 저지 자신이다. 설사 가족이나 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무감정할 수밖에 없다.
* 벳지가 말한 "좋지 않은 상황"이란게 바로 이것이었다. 빅맘은 쇼크가 너무 겹치고 겹친 나머지 대혼란상황. 패닉을 일으킬 정신 조차 없는 것이다. 브룩은 빅맘의 상태가 저러니 "깨어진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고 제안한다. 벳지는 이제와서 효과가 있을지 미심쩍어하다가,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접근하는걸 발견하더니 대번에 태도를 바꿔서 "작전은 성공할 거다"고 확신한다. 지금 카타쿠리는 새파랗게 질린 낯짝이다. 벳지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을 경우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원피스/876화 . . . . 6회 일치
* 한동안 빅맘 조차 무사하지 않은게 아닐까 했지만 그녀는 건재했고 땅을 먹어치우며 일해을 추격해왔다.
* "제우스 브리즈 템포"가 유혹의 숲 한복판을 꿰뚫었다. 추격에 열을 올리던 빅맘 해적단이 한 순간에 증발. [[밀집모자 일당]]은 간발 차이로 폭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무사했다. [[몽키 D. 루피]]와 그 일행은 도망치던 것도 잊고 폭뢰가 만든 거대한 구멍을 바라봤다. 누구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술을 시전한 [[나미(원피스)|나미]] 조차 통상적으로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라고 경악에 경악을 거듭했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추격대가 전멸했을 거라는 추측을 내놨다. 그렇다면 관건은 빅맘 [[샬롯 링링]]. 그녀의 생사였다. 분명 그녀는 폭심지 한 가운데 있었다. 직격.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저 시커먼 구멍에 삼켜진 건 분명하다. 과연 그녀는 그 충격을 견뎌낸 걸까?
어지간해서는 장단 맞춰주는 루피 조차 짜증이 났다. 그딴 소릴 할 거라면 빨리 사라지라고 항의하자 시폰이 다급하게 상황 수습에 들어갔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 보다 빅맘을 멈추는게 먼저다. 그녀는 상디에게 과자 만드는 솜씨도 뛰어나다고 들었다 말한다. 상디는 어떤 요리에 관한 거든 일류라고 자신했다. 시폰이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 상태가 회복된 "프로메테우스"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제우스"를 닥달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기들까지 말려들게 했냐고 꾸짖자 제우스는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시무룩해했다. 조금은 반성하는 것 같더니만 금방 "그 구름 알 맛있었다"고 군침을 흘리는 걸 보니 전혀 정신을 못차렸다. 하긴 그 주인도 웨딩 케이크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판이었다.
- 원피스/877화 . . . . 6회 일치
* [[브룩]]과 [[쵸파]]의 선전도 거기까지였다. 적을 아무리 쓰러뜨려도 소용없었다. [[샬롯 브륄레]]가 미러월드에서 보내오는 병력은 끝이 없었다. 거울에 있는 나미의 방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모두 브룩과 쵸파를 노리고 오는 적들이었다. 먼저 제압된 건 쵸파였다. 브룩도 얼마 시간을 두지 않고 잡혔다. 적의 수도 만만치 않았지만 [[샬롯 페로스페로]]의 사탕 공격이 결정적이었다. 쵸파는 벌써 몸의 대부분이 사탕으로 코팅 당했다. 사탕 코팅에 당한 이상 변신도 무리였다. 브룩은 아직 팔다리 뿐이지만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페로스페로는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비웃었다. 정말 자기들로부터 배를 탈환할 줄 알았냐면서. 그는 겁에 질린 쵸파를 잔인하게 조롱했다. 이미 한 번 기회를 줬지만 그들이 차버렸으니, 전부 "캔디 인간"으로 만들어서 핥아먹어주겠다고 말했다. 사탕 코팅은 이제 쵸파의 얼굴까지 도달했다. 쵸파가 사탕에 익사당할 것 같았다. 완전한 "캔디 인간"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은 단 3분. 마침내 쵸파의 머리 끝까지 사탕에 쌓이며 머리 위엔 남은 시간을 나타내는 사탕 타이머까지 생겼다.
쵸파가 눈물 범벅인 채 캔디 인간이 되고 이젠 브룩 차례였다. 끈적거리는 사탕이 무서운 속도로 팔다리를 감아올라갔다. 브룩이 "달콤해지고 싶지 않다"고 절규했지만 페로스페로의 가학심만 충족시켰다.
* [[샬롯 카타쿠리]]가 유혹의 숲에서 묘한 움직임을 주목한 건 그때였다. 숲이 심상치 않은 굉음을 내고 있었다. 곧 호미즈들이 뿌리째 뽑혀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곧장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타쿠리가 그 움직임을 형에게 알렸다. 빅맘 [[샬롯 링링]]이 틀림없다. 페로스페로는 그렇게 여겼다. 이제 마마가 왔으니 장난질도 끝마칠 때다. 빅맘을 [[샬롯 푸딩]]이 웨딩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카카오 섬으로 유인해야 하니까. 행여라도 빅맘이 이 배에 웨딩 케이크가 없다는걸 알아차리면 그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숲을 유심히 관찰하던 카타쿠리는 "그럴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곧 페로스페로도 그걸 깨달았다. 숲을 무너뜨리듯이 가르고 나타난 것은 빅맘만이 아니었다. 빅맘에게 죽었다고 생각했던 밀집모자 일당, [[몽키 D. 루피]]와 그 일당들이었다. 여전히 빅맘의 추격을 피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선상을 점거한 페로스페로와 카타쿠리를 보고 "귀찮은 녀석들이 앞질렀다"고 불평했다. 이제 선상에 남은 빅맘 해적단은 카타쿠리와 페로스페로 단 둘. 페로스페로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일행에게 잘도 도망쳤다고, "감동 받은" 데 대한 선물을 날렸다. "캔디 메이든". 캔디로 된 아이언 메이든. [[캐롯(원피스)|캐롯]]은 그게 사탕 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벽일리 없었다. 캔디 메이든의 날카로운 이빨이 일행을 덮쳤다. [[징베]] 조차 여기선 우회하자고 했지만 루피는 강행돌파를 고집했다. 루피의 전력을 다한 "고무고무 레드호크"가 불길을 일으키며 캔디 메이든을 꿰뚫었다. 관통력에 불까지 붙은 레드호크는 페로스페로에겐 천적 같은 기술이었다. 당황하는 페로스페로.
* 앞에는 카타쿠리, 뒤에는 빅맘. 협공을 당할 판이었다. 징베는 루피에게 카타쿠리를 쫓아내라고 했다. 그 사이 자신들은 어떻게든 출항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승부를 내고 싶었던 상대였다. 루피는 맡겨달라고 외치며 카타쿠리에게 달려들었다. 카타쿠리는 어쩐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선공은 루피의 차지였다. "고무고무 호크 개틀링". 머신건 같은 속도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 징베가 나미를 옆구리에 끼고 선상으로 뛰어 올랐다. 페드로와 캐럿은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페드로는 캐럿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루피 일행이야 말로 자신들이 기다려온 자들이라 말했다. 밍크족과 "코즈키 가"가 수 백 년간 기다려온 "세계를 여명으로 이끌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페드로는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캐럿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윤균상(1987) . . . . 6회 일치
[목차]
2012년에 [[SBS]] [[드라마]] [[신의(드라마)|신의]]로 데뷔하였으며, 2년 뒤에 같은 방송사의 [[피노키오(드라마)|피노키오]]에서 주인공의 형 역할인 [[기재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후 또 같은 방송사의 [[너를 사랑한 시간]]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차서후 역으로 지지를 받기 시작하고, 그리고 같은 해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앞서 방영했던 이후의 세계관을 다룬 [[뿌리깊은 나무(드라마)|뿌리깊은 나무]]의 내금위장 [[무휼(뿌리깊은 나무)|무휼]]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다. 앞서 연기했던 차서후가 귀공자적인 매력을 가진 엘리트 피아니스트였다면 무휼은 우월한 신장과 제대로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금사빠]]에 허당기가 넘쳐서 [[갭모에|귀여운]]모습까지 보이는 야생 ~~[[개그 캐릭터|개그]]~~무사의 이미지. 메이킹 영상이나 인터뷰를 보면 배우의 실제 성격은 그간 맡아온 배역들 중 무휼에 가장 가까운 듯 하다.
차기작을 포함한 4개의 작품을 연속으로 SBS와 함께 해 '스브스 직원' 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게다가 그 네편중 세편이 월화드라마이다. 스브스의 월화직원--. --그리고 드디어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MBC에도 취직했다.]]--
||<|2> [[2015년]] ||<|2> SBS || [[너를 사랑한 시간]] || 차서후 || 주연 ||
* [[기아자동차]] 기업광고
- 은혼/583화 . . . . 6회 일치
* 우미보즈는 "가솔린 차에 디젤을 넣은 것과 같다"며 "폐차결정"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도 무릎을 꿇고 쓰러지고 만다.
* 퇴각하기 전, 우츠로는 우미보즈에게 "몇 백년 만에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종말 전의 여흥"이라며 조만간 "그쪽"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 우미보즈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우츠로가 돌아간 걸 알아차린다.
* 카무이는 승부는 아직 나지 않았다며 일어서라고 소리치지만 아부토 조차 그만두라고 말린다.
* 우츠로의 불사신 능력은 코우카와 차이가 있다는 의견과, 결국 본체가 죽고 가까스로 피한 오른팔이 살아남은 거니 결국 같을 거라는 의견이 충돌 중.
- 은혼/628화 . . . . 6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는 범용 오니형 결전병기 헤반도로곤을 이끌고 당당히 한 세력을 차지한다.
신파치와 가구라는 유례없이 차가운 눈길로 비행장년기를 맞은 사장을 쳐다봤다. 그러나 긴토키는 싱크로율이 순조롭다는 헛소리를 하며 헤바를 출동시키고 싶어서 안달이다. 신파치가 본적도 없는 파벌이 생겼다고 빈정거리고 가구라는 헤바가 뭐냐고 노골적으로 묻는다. 그러나 긴토키는 헤바를 출동시킬지, 대기시킬지, 혹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해결사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주절주절 묻는다. 신파치가 너도 해결사라고 츳코미하는데 헤바 파일럿은 귀가 먹는 직종인지 전혀 듣지 않는다.
이윽고 긴토키는 헤바... 아니 [[헤도로]]에게도 묻고 자빠진다. 그러나 정작 개조 당한 헤도로 본인 조차도 헤바가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 바퀴벌레 때문에 당한 일격이 결정타가 되어 긴토키는 자리보존하고 눕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시무라 타에]]는 "악마가 아니라 신이었다"며 원래 안 쉬려고 할게 뻔한 긴토키를 이렇게라도 쉬게해주니 신이 휴가를 준거나 다름 없다고 포지티브하게 해석한다. 헤도로는 긴토키에게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타에는 "사람을 조종하려 한 이 인간 잘못"이라며 다독이지만 여린 심성의 헤도로는 쉽게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긴토키도 바퀴벌레만큼이나 소중한 지구의 친구"라고 말하며 사과하지만 바퀴벌레와 비교된 당사자는 툴툴거린다. 타에가 헤도라의 인격을 살짝 열어서 긴토키가 정신차리게 만든다.
히지카타는 어차피 세상이 멸망하면 쉬는건 얼마든지 할 테니 사바세계를 즐겨두라고 대꾸한다. 하지만 세상은 겐가이포의 영향으로 전등불 조차 없는 깜깜한 어둠. 오키타는 이런데서 할 수 있는건 자는 거나 그거 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대정전이 일어난 도시는 이듬해 출생률이 오른다는 도시전설도 주절거린다. 우연의 일치인지 막 잠자리에 든 긴토키는 사루토비가 이불 속에 숨어들어와 내쫓는 중이다.
- 은혼/634화 . . . . 6회 일치
* 역시 해방군을 상대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놈"들이 나설 차례는 없을 거라고 호언한다. [[키지마 마타코]]는 어차피 자신들이 나선 이후 세상을 지키든 부수든 둘 중 하나라며 히노카구츠치의 해석은 어떻게 되었냐 묻는다. 사실 이들은 대책없이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뒤쪽으로는 기술자를 잠입시켜 해방군 모함의 데이터를 해킹하고 있다. 이 자료는 그대로 헨페이타의 전함으로 송신, 적 병기의 헛점을 찾을 단서가 됐다. 헨페이타는 "별을 파괴할 수 있는 병기"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구식 병기라며 데이터를 분석하면 파고들 틈이 있다고 장담한다.
지금 해준 협조 정도라면 엉덩이나 좀 걷어차였더라도 충분히 해줬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협조에 대해서 말이지만, 안티나노머신을 퍼뜨리는데 쓰는 폭약은 좀 특수한 것이다. 온도변화에 민감해서 사람이 좀 만지는 찰라의 온도변화로도 폭발을 일으키는 놈이다. 가령, 노사가 잠시 실린더를 들고 있는 정도만으로도.
* 노사는 이런 별에 어째서 동족이 있는지 의아해한다. 가구라에게 "설마 지구에 붙은 거냐"고 묻는데 가구라는 "이딴 시시한 싸움은 그만해라"고 대꾸한다. 가구라는 지구가 날아가면 어차피 너네도 다 같이 산산조각나고, 그걸 하려는건 우주에 있는 네놈들 동료라고 쏘아붙인다. 노사는 담담한 말투로 대답한다.
>애송이, 네놈은 이 별이랑 같이 끝나는 일 조차 못할 게다.
* 이어서 달려들던 병사들이 차례로 나가떨어진다. 그의 등장으로 야토족 부대의 움직임이 멈춘다. 가구라를 구한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후드를 벗는다.
- 의성군 . . . . 6회 일치
[목차]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군. 2018년 6월 기준 인구는 약 5만 3천여명이다. 북쪽에 안동시, 동쪽에 청송군과 영천시, 남쪽에 군위군, 서쪽에 구미시와 상주시가 위치해있다. 의성군의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며, 낙동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인 위천이 의성 군내를 관통하며, 경작지가 넓고 평야지대가 비교적 많다. 때문에 농업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1970년대 중반에만 하더라도 인구가 20만을 넘을 정도로 제법 큰 군이었으나 이후 농촌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리즈 시절]]보다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철도 교통은 [[안동역]] 외의 역이 모두 통과역이 된 안동과는 달리 [[의성역]]과 [[탑리역]](금성면)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다만 [[중앙선]]의 이설[* [[안동역]] ~ [[영천역]] 구간은 복선노반 단선 전철로 건설한다. 단선이긴 하지만 나중에 별도의 토목공사 없이 선로만 옆에 하나 더 깔고 [[가공전차선]]도 추가로 올리면 그대로 복선이 되는 구조다.] 과정에서 [[탑리역]]은 폐역될 예정이다.
국내 최초의 [[컬링]] 전용 빙상장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읍 충효로 104에 위치해 있으며, 의성군 내의 중, 고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엔 [[컬링]]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는 의성군 출신의 체육인이자 국내 컬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의 노력이 컸다. 전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김 회장은 컬링이라면 동양 선수와 서양 선수의 체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라 생각해서 의성군에 컬링훈련원을 개설했고 실제로 그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아서 한국은 단기간[* 1994년에 컬링 연맹 설립, 곧바로 세계 연맹에 가입했으며 2001년 아-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정도면 단기간이 아니라 초단기간 급성장이라고 봐야할 지경(..)] 내에 세계 랭킹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선수들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컬링은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었고, 결정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외면 받았다. 이 시기를 거쳐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아직 우리 컬링은 멀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낸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던 2013년 당시에도 컬링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식사도 못할만큼 인지도나 후원이 열악했다.]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상정||<:>격차||<:>투표율||
- 이명주 (축구선수) . . . . 6회 일치
[[2012년]] [[4월 8일]] [[성남 FC|성남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시즌 초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후로도 [[6월 27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전과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에서 1도움씩을 기록했고 팀의 [[FA컵 2012]] 우승에도 일조했지만 7월 1일 이후로 공격 포인트가 없어 "출장 수로만 신인왕 후보"이라는 비아냥을 받다가 10월 28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했고 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 MVP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 11월 1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전 1골, 11월 25일 [[경남 FC|경남]]전 1골 1도움, 11월 29일 [[FC 서울|서울]]전 2도움, 12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 1골을 터뜨리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5골 6도움 11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이명주는 [[12월 3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광주 FC]]의 [[이한샘]], [[전남 드래곤즈]]의 [[박선용]]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K리그 영플레이어상|신인 선수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대상) ‘신인왕’ 이명주 “포항의 축구스타일, 나랑 잘 맞았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45236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2-12-03}} }}</ref>
2013년에는 시즌 내내 에이스로 활약하며 [[포항 스틸러스|포항]]이 국내 최초로 [[더블 (축구)|더블]], 즉, [[K리그 클래식 2013|K리그 클래식]] 우승과 [[FA컵 2013|FA컵]] 우승을 이루어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 받아 프로 데뷔 2년차에 연말 시상식에서 MVP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을 놓쳤고, 그 해 [[K리그 베스트 11|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되었다.
[[2014년]] [[6월 9일]], 포항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주의 [[알아인 FC|알아인]] 이적을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총 95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총액 95억원' 이명주 알아인 이적, K리그 이적사 다시 썼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406100100083460005726&servicedate=20140609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4-06-9}} }}</ref> 7월 '알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9월 30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 (리야드)|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반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CL) ‘이명주 선제골’ 불구 알아인 결승 좌절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1108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4-10-1}} }}</ref> 한편 정규리그에서는 12월에 열린 10, 11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13라운드 [[샤르자 스포츠 클럽|샤르자]]와의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15년 AFC 아시안컵|아시안컵]] 이후 복귀한 14라운드 [[알샤바브 (두바이)|알샤바브]]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알아인 FC|알아인]]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2014-15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홍명보]] 감독 하의 대표팀에서도 초반 꾸준히 승선했으나 [[2014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탈락하였다. [[2014년]] [[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0-1로 뒤지고 있던 전반 33분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감아차기를 시도하여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어 후반 17분 상대 진영에서 수비의 공을 가로채 곧바로 크로스를 올려 이동국의 쐐기골에 기여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이명주, 우리가 바라던 공격형 MF 모습 보였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1020 |출판사=베스트일레븐 |date={{날짜한글화|2014-09-05}} }}</ref>
- 이민호(1987) . . . . 6회 일치
[목차]
그리고 그런 그가 선택한 작품은 [[SBS]] 드라마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 이민호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는 처음부터 원작과 다르게 기획되었고 프리퀄을 표방하여 제작되었으며, 원작자가 주인공으로 이민호가 캐스팅된 것에 대해 대단히 만족감을 표시하고 싸인까지 보내 제작발표회에 공개하기도 했다. 오히려 원작과 차별화된 시나리오로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되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민호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매력이 돋보였고 특히 눈빛, 액션 연기는 굉장히 호평을 받아 "이민호의, 이민호에 의한, 이민호를 위한 드라마"라는 평가들이 나왔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로 이민호는 [[중국]]에서 거의 신드롬급으로 인기를 끌었다. 거기다 해외 팬덤이 강력해서 드라마 수출 계약도 호조를 보이는 엄청난 한류 배우.
2016년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허준재, 김담령 1인2역을 연기하였고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를 넘나들며 섬세하며 차별화된 연기로 역시 이민호라는 찬사를 받았고 대만, 중국 등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고 한국 영화 및 드라마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이트인 HanCinema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 1위에 선정됐다.
[[정일우]]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일우는 거침없이하이킥에 캐스팅되고 이민호는 다른데로 캐스팅된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83784|#]] 둘이 바다로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일우]]는 재활 치료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하이킥에 출연했지만 이민호는 혼수 상태까지 가서 7개월 간 입원했을 정도로 크게 다친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의 계기로 하이킥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사고로 둘 다 [[병역판정검사|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둘 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에서 사격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전증이 있다. 이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를 찍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남1970]] 촬영 당시 한쪽 다리만으로 발차기 액션 씬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2> 2007년 ||<|2> KBS || 달려라 고등어 || 차공찬 || ||
|| '''1''' || '''Extreme (Feat. 제시카 에이치오)''' || 차은택[br]정병기 || 박근태 || Tommy Park ||
- 이보림 . . . . 6회 일치
[목차]
||<:><#3F00FF> {{{#fff '''회차'''}}} ||<:><#7FFFD4> {{{#202020 '''순위'''}}} ||<:><#FEF127> {{{#202020 '''등락'''}}} ||<:><#FFA500> {{{#202020 '''득표 및 비고'''}}} ||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3~14회|1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8계단 상승한 17위를 기록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9~20회|2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유닛G의 대표 비주얼'이라고 소개한 16위를 기록했다. 이에 '고비가 많았었는데 한 단계 순위를 높여주신 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 이재학 . . . . 6회 일치
[목차]
'''[[NC 다이노스]]의 초대 토종 에이스이자, [[투수]] [[프랜차이즈 스타]].'''
기대를 받고 입단을 했지만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과 팔꿈치 부상까지 겹치면서 [[2012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앞두로 40인 보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이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NC 다이노스]]의 지명을 받으며 팀을 옮기게 되었다.
2017년 2월 14일, 드디어 검찰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무혐의'''.[* 법적으로 죄를 입증할 만한 요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재판을 청구조차 못한다는 뜻이다.] [[http://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9032683|기사]]. 심지어 그동안 공소시효가 지나 죄가 입증되지 않는 것이라고 수많은 네티즌들이 화살을 날렸으나, 오히려 '공소권 없음' 판결을 받은 것은 진야곱이다. 결국 공소시효가 성립할 만한 법적 구성요소조차 없었다는 것. 이것 덕택에 이재학은 논란에서 벗어났다. 이런 덕분에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윤성환|해외 도박 의혹을]] [[안지만|받은 핵심]] [[임창용|투수 셋을]] [[삼성 라이온즈|제외한 팀]]을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음에도 [[진야곱|불법 스포츠도박 의혹이 있는 투수]]를 제외시키지 않은 두산은 더 심각하게 까였다.[* 결국 두산은 2017 시즌 후 [[진야곱]]을 방출했다.]
- 이홍렬(코미디언) . . . . 6회 일치
[목차]
일반적으로 방송국에서는 연예인들이 비상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주차 자리를 한두 자리 비워 놓는데 때마침 스케줄 때문에 방송국에 늦게 도착한 이홍렬에게 경비가 "주차장에 자리 부족해요. 나가세요."라면서 진입을 막았고, 이홍렬은 결국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때 경비의 대응에 서운함을 느껴서, 내가 MBC에 바친 열정이 얼만데...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SBS로 옮길 때는 SBS에 전용 주차석을 요구했다고. ~~경비원 입장에선 자리가 없는데 어쩌라고...~~
* --[[여명808]]의 등장을 예견했다.(중국배우 여명이 나와서 건강차를 만드는 내용...) [[https://youtu.be/yVWmRa_8ZRM|예언]].--
- 이희근 (1929년) . . . . 6회 일치
| 지휘 = 공군참모차장 <br/> [[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공군참모총장]]
* 1960년 공군본부 감찰차감.
* 1968년 국방부 행정차관보.
* 1969년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국 차장.
* 1970년 공군본부 군수참모부 부장 보임 3개월차 재직시에 [[대한민국 공군|공군]] [[3성 장군|중장]] 진급(1970년 10월).
* 1979년 공군참모차장.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6회 일치
* 에스카노르의 비상식적인 전투력은 십계 조차 경악하는 수준.
* 십계들 조차도 그 강함에는 혀를 내두른다.
* 에스카노르를 절벽 밑으로 처박아 버리고, 다시 차올려서 성위로 올려놓는다.
* 일곱개의 대죄와 성기사들은 그 조차도 십계엔 안 되는 거냐고 우려하는데.
* 젤드리스 조차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놀란다.
* 에스카노르는 그 조차도 "건방지다" 한 마디로 일축하며 공격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6회 일치
* 몇 날을 보내며 도착한 코란도. 멜리오다스는 서둘러 차원의 비틀림을 처리하고 카멜롯으로 향하려 하나, 그를 반기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 자리에 마신족이 있었다. 하급 마신은 어린애가 한 말 조차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곧 마을 광장에서 어처구니 없는 결투가 시작됐다. 마을 사람 전부가 입회인이란 명목으로 불려나왔다. 하급 마신족은 덩치가 큰 마신과 함께였다. 그는 페리오를 일방적으로 두들겨패며 본보기로 삼았다. 주민들 대부분은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페리오의 친구인 소녀 메라는 저대로는 페리오가 죽을 거라고, 어떻게든 말리려고 해봤지만 어른들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어른들은 차라리 나았다. 어떤 사람들은 촌장에게 다가가 당신의 바보같은 자식 때문에 모두가 위험해졌다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촌장은 쏟아지는 눈물을 삼켰다. 죽어가는 아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 덩치가 큰 마신이 포효했다. 영혼을 먹고 싶다는 아우성이었다. 작은 지 친구보다도 훨씬 멍청했던 그 마신은 상황파악 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그에게 그런 능력은 필요가 없었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파워업한 진 영창 샤스티폴이 "인 크리스"의 형태로 마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날개가 돋기 전보다 한층 정교하고 강력해진 위력. [[헬브람]]이 그 성장을 축하하지만 할리퀸은 아직 온전하게 역량을 시험하기엔 상대가 너무 약했다고 투덜거렸다.
* 멜리오다스가 단원 전원을 정렬시키고 빨리 차원의 비틀림을 처리하기로 한다. 그런데 에스카노르가 성문 앞에 누군가 서있는걸 발견한다. 그 그림자는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게다가 일행이 여기에 왜 왔는지, 엘리자베스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림자는 여기엔 엘리자베스 때문에 온 거냐며, 아직 살아있다면 참 끈질긴 여자라고 빈정거렸다. 그를 알아본게 멜리오다스 만은 아니었다. 멀린이 이것이 함정임을 간파하고 멜리오다스에게 경고했다.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6회 일치
* [[젤드리스]]를 미끼로 사용해 [[멜리오다스]]를 함정에 빠뜨린 [[메라스큐라]]. 멜리오다스를 삼킨 "암담의 고치"는 부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메라스큐라가 부리는 사령의 힘을 강화한다. 그 힘이 부여된 해골병들은 점차 강해져 손귑게 상대하던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을 당황케 한다. 강해진 해골병의 힘은 거인인 디안느가 떠밀라나갈 정도가 됐다.
* 마을 한 복판에 거대한 꽃이 피어났다. 꽃은 덩쿨을 뻗어 땅위를 활보하는 해골들을 하늘로 내던졌다. 잔 영창 샤스티폴의 제 4형태 "선 플라워". 할리퀸의 성장에 따라 그 힘과 규모도 무지막지해졌다. 그 크기는 이전과 비교를 거부했고 하늘로 쏘아대는 화력은 강화된 해골병이 잔해 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였다.
*자랑하던 해골병들이 차례로 박살나는 게 느껴졌다. 자신만만했던 메라스큐라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얼룩졌다. 멜리오다스는 "안타깝게 됐다"고 그게 비웃었다.
그러나 메라스큐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강해지던 해골병은 비정상적으로 비틀리고 팽창했다. 멀린이 단숨에 문제점을 진단했다. 너무 강한게 문제였다. 멜리오다스는 차기 마신왕으로 거론되던 강력한 마력의 소유자. 평범한 소재로 그 힘을 감당할 리가 없었다.
* 턱이 빠져라 경악하는 메라스큐라. 이번엔 멜리오다스가 그녀의 안색을 걱정할 차례다. 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무슨 생각이 났는지 금방 미소를 짓는다. 새로운 음모가 방금 떠올랐다.
* 해골병들을 정리한 일행은 여유가 생겼다. 호크는 녀석들의 잔해에 화풀이를 하며 혼자 싸운 것 같은 생색을 냈다. 그때 멀린은 주위에 감도는 수상한 기운을 알아차렸다. 정신지배의 징조였다. 일행에게 정신을 최대한 유지하라고 경고했다. 할리퀸도 느낄 수 있었다. 해골에서 빠져나온 원념들이 이제 산 사람에게 달라붙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곧 디안느의 상태를 걱정한다. 그러나.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6회 일치
그런데 나자는 여기 너무 오래있었다며 돌아가려고 한다. 고서는 "두고가지 마"라며 그녀를 붙잡는데 나자는 그의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서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금방 다시 오겠다고 하자 이번엔 고서가 환하게 웃는데 나자는 "커다란 아기 같다"고 표현한다.
나자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얼른 자러가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힘차게 뛰어가지만 바트라는 어딘지 슬픈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 나자가 눈을 떴을 땐 그녀의 방이었다. 동생 바트라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트라는 그녀가 비밀 입구 근처에 쓰러져 있는걸 시녀가 발견했다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그 소년"과 관련해 무서운 일이라도 겪었냐고 묻는다. 나자는 "그렇다"고 말하며 그는 멜도르도 마법사도, 인간 조차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나자가 그렇게 말하자 바트라는 커튼을 향해서 "그렇다고 합니다"라고 신호를 준다. 그러자 커튼 뒤에 숨어있던 고서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메이드차림이다. 바트라는 병사들 눈도 있으니 이렇게 하는 쪽이 눈에 덜 뛰고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나자는 고서에게 이상한 버릇이 들면 어쩔 거냐고 따진다. 아무튼 고서는 나자를 끌어안으며 미움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기뻐한다. 이건 멜도르 이야기에서 공주가 일어났을 때 멜도르가 껴안아 준 것을 따라한 것이다. 나자는 동생의 눈을 의식해서 얼른 떼어놓지만 어쨌든 자신이 고서를 싫어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확언해준다.
하루는 나자가 고서에게 새로운 선물을 줬다. 부왕이 젊은 시절 입던 곳인데 이걸 차려입은 고서는 정말로 이야기 속의 멜도르처럼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그는 나자를 보고 맑고 작은 목소리를 듣고 차갑고 부드러운 피부를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입을 맞춘다.
- 임채무 . . . . 6회 일치
[목차]
원래는 해병대 제대 후[* 기수는 228기였다.] 70년대 중반 데뷔하여 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주로 MBC)에서 선 굵은 배역을 자주 맡은 연기파 배우로 중장년층에게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TV 드라마계의 남자배우 투톱이던 [[노주현]][* 60년대 후반까지는 미남 주인공 역할은 노주현 원탑이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갔다 올때쯤 한진희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 임채무까지 등장하며 원톱의 자리는 내려놓게 된다.], [[한진희]]의 미남역할 주인공 독점을 사실상 임채무가 막은 셈일 정도였고, 본인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영역을 늘렸었다.[* 물론 그들보다 선배였던 노주현은 "아무리 한진희, 임채무 걔네가 잘 나갔어도 나한테는 안 됐지"라고 방송에서 너스레를 떤 적도 있으나, 그도 사실 그들의 커리어를 인정해온 편이다.] 맡은 역할 이미지가 젠틀맨 이미지로 겹치면서도 각자 조금은 다른데, 노주현은 잘생기고 부드러워보이는 신사지만 때로 터프하고 호쾌한 이미지, 한진희는 큰키의 훤칠하고 부드러운 멋쟁이 꽃미남 이미지, 임채무는 중후하고 우수에 찬 남성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셋 다 외모도 시대상과 어울리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애정 연기와 잘 어울려, 여성 시청자에게 엄청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미녀스타들이나 인기 배우들과 연기했으나, 그들보다 임채무의 인기가 더 많았다. 꽃미남과는 아니지만 멜로 드라마에서의 중후한 표정 및 목소리 연기, 그로 인한 이미지 때문에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폭넓은 여성시청자의 인기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80년대의 레전드급 임팩트 배우 중 하나'''. 그래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는 드라마쪽은 노-한-임 트로이카 남주시대라 봐도 될 정도.[* 물론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던 노주현, 한진희에 비하면 당대에도 커리어가 살짝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최소한 당대 다른 남자배우들은 압도할만한 인기와 경력을 쌓았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채시라와 멜로 연기를 한 작품도 있다. 당시 가십지에서 키스신을 어떻게 찍었는지 자세히 써낸 기사도 있을정도. 입술에 테이프를 붙이고 찍었다고..최근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듯. ~~그래야 놀이공원 빚을 갚지요~~
해병대 228기로 군 복무를 했으며, 진짜사나이 해병대편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황금어장]] 출연 당시, 본인의 해병대 생활에 대해 스스로 방송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똥군기가 심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선임한테 그렇게 많이 맞았다고 하는데, 하루는 가장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선임이 휴가를 가게 되자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밤 해병대 전통대로 본인이 선임 군복을 빨고 각잡는 다림질을 할때, 일부러 군복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얇아지도록 미리 준비한 돌로 몰래 그 부분을 열심히 갈았다고 한다. 다음날, 선임이 부대에서 나가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고향가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빡''' 소리와 함께 엉덩이 부분이 완전히 터졌고 결국 민간인들 많은 곳에서 --헉 빤쓰 다 보임--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ㅇㅋ 복수 성공!! [[PROFIT]]--, 분노에 가득차 씩씩대며 바지를 갈아입기 위해 부대로 돌아온 선임한테 평소보다 더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어?-- 맞는 중에도 임채무 본인은 복수에 성공한 게 좋았다고..
|| 2016 || 롯데렌터 || 롯데렌터카 || 차사장 역 ||
- 전태규 . . . . 6회 일치
*[[2002년]] [[5월]] ghemTV 1차 스타리그 4위
*[[2002년]] [[9월]] 2002 Pepsi Twist배 KPGA 투어 3차리그 6강
*[[2002년]] [[9월]] ghemTV 2차 스타리그 3위
*[[2002년]] [[12월]] 2002 스타우트 & 배스킨라빈스배 KPGA TOUR 4차리그 6강
*[[2014년]] [[1월]] 픽스 9차 소닉 스타리그 32강
*[[2014년]] [[12월]] 스베누 10차 소닉 스타리그 32강
- 전혜빈 . . . . 6회 일치
[목차]
이후 완전히 연기자로 전업했지만 초기에는 연기보다 예능 쪽의 출연이 많았고, [[해피 선데이]] [[여걸 식스]]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그 후 연기 활동에의 전념을 이유로 여걸 식스에서 하차했으나, 그 이후에 딱히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도 없고 소식이 뜸했었는데...
정글의 법칙 이후 또 다른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심장이 뛴다]]에 홍일점으로 출연했다. 방화복을 현직 [[소방공무원]]보다도 빨리 착용하는가 하면--[[트란잠]]-- [[말벌]]집을 제거하는 훈련도 가뿐하게 해냈을 뿐더러 실제로 말벌집을 제거하러 출동했을 때도 처음치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전사 캐릭터가 어디 가진 않는 모양이다. --말벌 종류를 잘못 외우긴 했지만-- 전혜빈의 정신력에는 함께 출연한 [[박기웅]]도 감탄했다. "방화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면 15~20㎏이 된다. 착용순서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입어야 한다. 틀릴 때마다 멘토에게 얼차려를 받는다. 혜빈 누나는 여자니 무릎을 꿇고 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똑같이 벌을 받더라. 남자도 힘든 건데 정말 대단하다"라는 [[박기웅]]의 증언처럼 전 훈련과정을 소화해 내었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것이 육체적인 한계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2> 2010년 || [[OCN]] || [[야차]] || 정연 || ||
|| [[2005년]] || SBS || 온리 유 || 차수재 || ||
|| 2011년 || 제4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케이블TV상 || 야차 ||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6회 일치
* [[효부 쿄스케]]는 앞장서서 [[츠보미 후지코]]의 방으로 들어간다. 예상대로 후지코는 일행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기대고 있다가 일어나며 일행이 너무 늦장을 부려서 기껏 차려입은게 쓸모없어졌나 생각했다고 말한다. 일행은 그녀의 차림세를 보고 기겁한다.
그녀는 국민의 의지를 반영해 조직을 재편한 거라며 초능력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에스퍼에게 관용적인 지휘관을 경질한다, 이것이 모두의 바람대로가 아니냐고 묻는다. 지금의 그녀에겐 소수 에스퍼의 안녕보다는 사회 전체의 평화가 중요한 문제다. 만약 그녀가 이대로 블랙 팬텀이나 "보통 사람들"같은 조직을 분쇄하면 그걸로 끝날까? 인간은 배타적인 생물이다. 설사 그들이 사라져도 또다른 조직이 나타나 에스퍼를 배척할 것이다. 교육이나 홍보로 그걸 극복할 수 없고 그런데 연연하는건 시간낭비다. 그럼 차라리 그들이 원하는 대로 둬버리면, 반대로 에스퍼도 "원하는 대로" 해버릴 명분이 생긴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면 결국 이기는 건 에스퍼. 세상은 한 번 망하겠지만 에스퍼의 주도로 재건될 것이다.
* 왜곡돼 버린 후지코의 목표는 사실 판도라의 이상과 큰 차이는 없기 때문에 "에스퍼 주도의 재건"이란 부분에선 적당히 찬성한다. 게다가 가만히 있던 [[사카키 슈지]] 조차 "기분은 이해하겠다"며 편승하고 나선다. 하지만 그가 하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추구하는게 당신 아닌가"라고 것이었다.
* 후지코가 생각하는 미래는 일견 PANDRA 측의 대의명분과 비슷한 데가 있지만, 이 쪽은 에스퍼들의 권익 추구보다 '파국'의 확대로 인한 극한대립의 조장과 파괴를 우선시한다는 차이가 있다.
- 진격의 거인/86화 . . . . 6회 일치
* 남녀노소를 할 거 없이 팔에 하얀 완장을 차고 다니는데, 이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비행선이 지나간다.
* "클루거"라는 호리호리한 군인은 가차없이 두들겨 팬다. 함께 있던 뚱뚱한 군인 "용서가 없는 녀석"이라면서 여동생을 먼저 돌려보낸다며 데리고 사라진다.
다이나가 가져온 거인대전의 정보도 날조를 의심할 수 있는데, 정작 벽 안에 있는 레이스 왕가는 분명 시조 거인의 힘을 이어받았을 것이며 역사의 모든 기억이 있을 텐데 깊은 죄의식을 가지고 있고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말로 엘디아인이 대륙에 번영을 가져온 거라면 왜 그런 죄의식에 시달리는 걸까?
복권파는 올빼미가 마레 정권에 침투해 있는 내부 정보원이라고 주장하지만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선 엘디아인이 차별받고 있는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로 기용될 수 있는지가 문제. 설사 그렇다해도 정보원 개인이 조직 하나를 먹여살릴 정도의 자금과 무기를 융통해주는게 가능한지 미지수. 게다가 올빼미가 제공하는 정보는 수상한게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그는 엘디아인에게 금지된 고대의 역사서 따위를 제공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 스스로 번역한 자료를 보내지 않는 것일까? 혹은 그 자신 조차 읽을 수 없는 자료라면 어째서 그런 불확실한 자료를 골라서 보내는 것일까?
유미르가 60년이나 세상을 방랑한 것이나 라이너 일행의 친구를 잡아먹고 정신을 차리게 된 경위도 밝혀졌다.
- 진창현(음악인) . . . . 6회 일치
[목차]
일본이 패전한 뒤에도 남아서 계속 육체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이후 [[요코하마]]로 옮겨가 [[인력거]]를 몰면서 학비를 모아 [[메이지 대학]]의 영문과 야간학부에 입학했다. 여기서 영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당시 조선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 때문에 일본에서는 교사로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 인력거꾼으로 일할 때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주로 주일[[미군]]을 고객으로 맞이했고, 덕분에 수입이 꽤 좋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톰(Tom)이라는 이름의 [[루이지애나]] 출신 [[흑인]] 병사와 친해졌는데, 톰의 소속 부대가 [[한국전쟁]]에 투입되기 위해 일본을 떠나기 전에 같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미국에서 차별받던 흑인과 일본에서 차별받던 조선인의 심정을 나누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 혼자서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막노동과 바이올린 제작으로 소일하다가 [[1961년]]에 일본인 여성 나미코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 진창호와 차남 진창룡은 각각 현악기 제작자와 현악기용 현 제작자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자서전에 의하면 바이올린 제작을 위한 연장들을 찾기 위해 골동품 가게를 전전하다가 가게를 보고 있던 나미코를 처음 만났다고 하며, 가난한 조선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처음에는 결혼 승낙을 받기 어려웠지만 예전에 근무했던 건설 회사 사장이 장인에게 사위의 인품을 칭찬해 주면서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미코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할 때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 식으로 이남이(李南伊)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차내 피난생활 . . . . 6회 일치
[[재난]]이 일어난 상황에서, [[피난소]]에 가지 않고 [[자동차]] 안에서 숙박을 하며 생활하는 것.
차내 피난생활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비상시에 자동차를 타고 빨리 도망칠 수 있다.
* 나쁜 자세로 차내에서 장시간 머물다 보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차내 피난생활에 대비하여 궁극의 방재용품(…)으로서 [[캠핑카]]를 추천하는 의견도 있다. 캠핑카는 쉽게 거주지를 확보할 수 있고, 난방, 조명, 샤워, 화장실 등을 쉽게 구비해둘 수 있다. 또 여차하면 이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차성훈 . . . . 6회 일치
| 이름 = 차성훈
| 출생지 = {{KOR}} [[서울특별시]]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B0%A8%EC%84%B1%ED%9B%88&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555067 차성훈-네이버인물정보]</ref>
'''차성훈'''(본명 : '''김성훈''', [[1972년]] [[5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ref>[http://movie.daum.net/movieperson/Biography.do?personId=111300&anchor=filmography 차성훈-다음인물정보]</ref>
* 《[[개과천선 (드라마)|개과천선]]》 (2014년, MBC) - 영우비서 역 <ref>{{뉴스 인용|제목= 김성훈, 차성훈으로 개명 |url=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40522181705403 |출판사=세계일보 |날짜=2014-05-22}}</ref>
* 《[[녹색마차]]》 (2009년, SBS) - 오 변호사 역
- 창작:좀비위키 . . . . 6회 일치
* 좀비기관차 : 좀비력 5년 전후에 모 생존자 조직에서 제작. 좀비를 수거하여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 연료(?) 식 [[증기기관]] 차량. 작동방식은 단순하여, 기관차 위에 있는 화부들이 기관차에 다가오는 좀비를 갈고리로 낚아서 끌어올린 다음, 토막을 내고 말려서 연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한 연료를 보일러에 투입하여 좀비 시체를 보일러에서 불태워서 그 화력으로 증기기관을 돌려서 작동하는 차량이다.
건조 기후에서는 마른 좀비가 잘 타서 이동이 쉽게 되지만, 우기나 비가 많은 지역에서는 좀비가 물기가 많아서 연료로 쓰기 부적합하여 이동이 어려운 것이 단점. 이 때문에 미리 토막을 내서 좀비를 말려서 연료 보관고에 보관하는 방식을 택한다. 제작자에 따르면 원래는 차가 고장나서, 어쩔 수 없이 나무로 가는 증기기관이라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좀비들 사이에서 고립되어 할 수 없이 좀비를 잡아다가 태우게 되었고 생각보다 효율이 좋아서 여러 생존자 캠프에 보급되었다고(…).
- 창작:좀비탈출/0-1-2 . . . . 6회 일치
벼락처럼 의식이 돌아온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구조대인가? 결국 온 건가? 현관으로 향했다. '''쿵 쿵……'''
'''"정신차려. 구조대가 저런 소리를 낼 리 없잖아."'''
차마 인터폰을 켜고 싶진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내 인생에서 그놈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순간이 되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집 담벼락은 다름 집보다는 한 뼘 이상이 더 높고 그 위엔 뾰족하게 휘어진 창살도 박아놨다. 이 녀석은 실제로 한 번 도둑을 막기도 했는데, 그 무모한 양반은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했는지 뛰어넘지 못하고 영 좋지 않은 곳이 걸려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뭐, 감옥에 가는건 차라리 별 일이 아니었겠지.
담을 넘어도 문제다. 현관문은 엄청 두껍고 고급 아파트에나 쓰는 소재로 된 걸 달아놨다. 아버지는 이걸 달면서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와도 끄떡없어"라고 했는데, 나는 다 쓰러지고 허물어진 잔해 위에 문만 굳건히 서있는 장면을 상상했었다.
첫번째는 구조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만들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옳겠지. 일주일 넘게 살아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전화를 받는 사람도. 하긴 전화는 114 조차 안 받게 됐지만.
- 채동욱 . . . . 6회 일치
|경력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제2부 부장검사 <br>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차장검사 <br/>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br />[[대한민국의 검찰총장|검찰총장]]
* 2006년 :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고발사건과 관련해 당시 사장이던 허태학씨 등을 기소했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로비사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사건 등도 지휘.)
* 2007년 :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
* 2011년 : 대검찰청 차장검사
[[군법무관]] 시절 고등학교 동창인 양경옥과 결혼했고, 사이에 2녀를 두었으나 장녀는 어릴 때 앓은 패혈증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게 된 후 [[2009년]] 23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녀의 간호를 위해 아내는 [[중학교]] 교사를 그만뒀고, 채동욱은 장녀에게 소홀할까봐 장녀를 얻은 지 10년 만에 차녀를 얻었다고 한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6/2013031600201.html 與대표(2003년 당시 정대철 민주당 대표) 구속 후 좌천… 작년 檢亂때 총장(한상대) '비토(veto)'] 조선일보(2013년 3월 16일), 류정 기자</ref>
- 채수빈 . . . . 6회 일치
|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br /> (2019.3.15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ret>{{웹 인용|title=채수빈,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차기작 결정 |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20905|website=Naver}}</ref>
| 패스트푸드 전문 프랜차이즈
| [[기아자동차]]
| 자동차
| 옥수수수염차
| 차음료
- 추미애 . . . . 6회 일치
[목차]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판사 생활 10년 차이던 1995년, 추미애는 법원에 사표를 내고, 정계에 입문하여 이후의 삶은 [[정치인]]으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정치인이 된 이후의 생애는 아래 '정계 활동' 문단에서 서술한다.
* [[2003년]] 차세대 지도자감 1위 <시사저널> (시민단체 활동가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 2016년 9월 22일, 추 의원에 대해 허위 기사를 쓴 지역 매체 기자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졌다. 법원은 "기자로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고 허위 기사를 작성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도 피해자의 고소가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해 범행 이후의 정황도 좋지 않아 징역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60919_0014394041|#]]
* 2017년 10월 25일 녹화되고, 사흘 뒤 인터넷에 공개된 [[김어준의 파파이스]] 최종회에서 [[친노|친노무현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이해찬]]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 출마한 사람을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할 만한 사람들을 언급해달라는 [[김어준]]의 요청에 추미애를 언급하였다.
- 콜 오브 듀티 . . . . 6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FPS [[게임]]. 플레이어는 [[미군]] 마틴, [[영국군]] 에반스, [[소련군]] 이바노비치를 차례대로 이끌어 전투를 벌인다.
>1907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처음 등장한 리엔필드는 영국 보병의 제식 소총입니다. 강력하고 장거리 사격에 적합한 볼트액션 소총입니다. 10발을 장전할 수 있으며, 두개의 5발들이 스트리퍼 클립으로 장전됩니다.
* 88mm 대전차포
보통은 파괴 대상으로 등장하지만 휘트르겐 임무에서 독일군 전차를 조지는데 사용된다. 독일군 전차에게 파괴당할 수 있는데, 파괴당하면 근처 벙커에서 판처파우스트를 가져와야 대항해야한다.
- 킹덤/528화 . . . . 6회 일치
* 견융왕 "로조"는 조군 조차 적대시해 총대장 순수수를 베려하나 그가 유창한 흉노의 말로 교섭을 시도하자 그를 주목한다.
>소문에 따르면 놈들은 무단으로 "영역"에 침범한 상대에겐 가차없다고 하더군.
* 양단화의 대응은 빨랐다. 산민족 군에서도 한 무리의 기마가 출발했다. [[슌멘]]이었다. 양단화가 그에게 평지의 적이 아니니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당부하자 그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슌멘이 기마대의 선두로 나서 쇄도하는 적진으로 치달았다.
* 격돌. 그러나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슌멘이 적의 선두를 베었지만 뒤따르던 부하들은 죄다 목이 달아났다. 벽이 그 모습에 경악했다. 언제나 귀신같은 돌파력을 자랑하던 산민족이, 철저학 봉쇄되고 있었다. 슌멘이 낭패한 듯 혀를 차며 주위를 애워싼 적들에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늦었다. 슌멘이 적의 기마병을 베려 하자 그 적이 말과 함께 뛰어올라 슌멘의 머리 위를 뛰어넘는 신기를 펼쳤다. 진군의 장수들은 보고도 그 광경을 믿지 못했고 양단화 조차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적은 허공에서 슌멘의 텅 빈 어깨를 베며 땅에 내려섰다.
농담 같은 진담. 그 뿐인가? 결국 순수수의 말은 "살려주는 대가로 싸워라"고 엄포를 넣는 거나 다름 없었다. 진군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심지어 견융왕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이 달린 사람이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조군들 사이에서 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제 그들은 총대장의 시체를 수습할 방법이나 찾아야 했다.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잠시 뒤 그들은 자신들도 살아남고 총대장의 시체를 처리할 방법도 필요가 없어졌다.
- 토리코/391화 . . . . 6회 일치
* 아카시아는 스카이디어의 백채널과 데로우스의 이차원 레이저, 기네스의 기네스 서치와 페어, 사천왕들과 남은 팔왕들의 분노의 집중공격에 당한다.
* 그때 한동안 보이지 않던 용왕 데로우스가 나타나 이차원 레이저를 조준한다.
* 아카시아는 어차피 차지에 시간이 걸리는 기술이라며 코웃음을 치는데 록왕 스카이디어의 백채널로 순식간에 차지가 끝난다.
* 원왕 밤비나와 경왕 문이 차례로 잡아먹히고 스카이디어는 기공파에 맞아 머리가 날아간다.
- 토탈워: 쇼군 2 . . . . 6회 일치
플레이어는 일본 전국 시대의 9(+3, DLC 구매시)개 가문 중 하나를 이끈다. 게임의 목표는 아시카가 막부가 차지하고 있는 교토를 빼앗아 쇼군이 되는 동시에 일정 지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 종교 차이
자동 전투는 양측 군대의 전투력을 비교해 양측의 피해와 승패여부를 결정한다. 수동 전투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과 같이 진행된다. 전력차가 압도적이라 이길게 뻔한 전투에서는 자동 전투를, 비슷하거나 약간 밀려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전투에서는 수동 전투를 하는게 좋다. 전력차가 압도적으로 밀린다면 열심히 짱돌을 굴려보자.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별로 좋은 결과는 못 내겠지만.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는 사기이다. 사기는 공격을 받거나, 아군이 패주하거나, 장군이 전사하면 감소한다. 사기가 0이 된 부대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전장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그걸 본 아군 부대는 또 사기가 떨어진다. 이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다보면 더이상 싸울 부대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 트로피코 4 . . . . 6회 일치
시민들은 가까운 거리를 갈 때는 걸어가지만, 먼 거리를 갈때는 되도록이면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온다. 시민들이 먼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간다는건 그 동안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주차장을 곳곳에 배치하자.
반란군을 상대하는데 도움이 되는 칙령이 일부 있다. 섬이 발전했을 경우에는 "사면" 칙령을 내려 반란군의 수를 줄일 수 있고, 반란군의 수가 불어나기 전에 밟아놓고 싶다면 "반란군 낚기"로 지금 당장 공격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통신 차단"으로 반란군의 행동을 봉쇄할 수도 있다.
* 장식용 시설로 경비소, 감시탑, 위장망 씌운 탄약고, 콘크리트 바리케이드, 장갑차 추가
* 장식용 시설로 저수지, 풍차, 급수탑, 꽃침대1, 꽃나무1 추가
- 페어리 테일/502화 . . . . 6회 일치
* 페어리 하트 추출에 박차를 가하는 아이린.
* 하지만 절벽을 내려가더라고 일행과 합류하려면 적진을 가로질러야 하는 상황. 메이비스 조차 뾰족한 방법은 없다.
* 가질은 자신도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잃을 뻔한 목숨 동료를 위해 방패가 되는건 당연"이라 말하며 격사적으로 싸운다.
* 제이라는 메이비스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녀가 의식을 차리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 레비가 유감을 표하는데 자신은 어차피 100년 전 죽은 사람이라며 개의치 않는다.
* 메이비스는 제이라는 돌아갔고 이젠 자신들이 길드로 돌아갈 차례라고 말하며 전의를 고양시킨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6회 일치
* [[제레프 드래그닐]]은 [[라케이드 드래그닐]]이 그저 잘 만든 제레프서의 악마일 뿐인데 자신을 아버지라 여기고 방해한다고 걷어차버린다.
* [[길다트 클라이브]], [[카나 알베로나]] 부녀는 합심해서 [[오거스트]]에게 공격을 퍼붓지만 어떤 마법으로도 오거스트의 몸에 상처를 낼 수가 없었다. 카나의 카드를 오거스트가 피하면서 빈틈이 생기고 길다트가 "올크래쉬"를 명중시키지만 이또한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반격까지 허용하고 만다. 길다트는 자신의 마법은 물론 페어리 글리터 조차 통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지만 해답을 낼 틈도 없이 오거스트의 공격이 카나에게 향한다.
라케이드는 제레프의 자식 같은게 아니었다. 그저 [[나츠 드래그닐]]을 END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실험체일 뿐이다. 단지 그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기에 "드래그닐"이란 성을 부여한 것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인 주제에 자신과 나츠의 싸움을 방해하다니, 그는 라케이드를 "덜 떨어진 놈"이라 부르며 걷어찬다. 너무 심한 처우에 보고 있던 나츠 조차 그만두라고 끼어든다. 오로지 나츠와 대결에 정신이 팔린 제레프는 라케이드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돌아서버린다.
* 과거 [[마스터 하데스|프레히트 게이볼그]]가 [[메이비스 버밀리온]]에게서 적출한 "생명"은 골치 아픈 존재였다. 아이는 건강한 신생아였지만 프레히트는 곧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생긴 아이임을 알게 된다. 메이비스에게 아이가 생긴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아이는 빛도 어둠도 아닌 강대한 마력의 소유자였다. 살려뒀다면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예상한 프레히트. 그러나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는지 외딴 곳에 아이를 버리는 걸로 문제를 묻어버린다.
>존재조차 알아차려주지 않았기에...
- 풍운 . . . . 6회 일치
당초에는 흡사 '''분노조절장애'''를 연상케 하는, 잔인하고 과격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나, 만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정신적으로 성장해서 침착하고 진중해진다. 다만 웬만해서는 미친듯이 날뛰지만 않게 되었을 뿐, '죽음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함이 있는 성품은 여전하다. 분노조절장애가 심했을 때는 말을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장에 패죽이는(…) 과격함이 특징.
이후 어찌어찌 흘러가서 '천문'에 가담. 그러나 이미 풍운과의 실력차가 어마어마하게 나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은근슬쩍 퇴장한다.
초반에 독고명의 항룡신퇴 vs 섭풍의 풍신퇴처럼, 이쪽은 석무존의 여래신장 vs 보경운의 배운장 같은 구도로 라이벌을 형성한다. 아마도 기존에 이름이 알려진 유명 무공들을 차용하여, 풍신퇴와 배운장이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천상권은?--
'''풍신퇴''' : 섭풍이 사용하는 무공. 퇴법. 회오리바람을 연상케하는 재빠른 발차기가 특징이다. 후반까지 섭풍의 주력기로 쓰인다.
'''성령검법 검입삼''' : 웅패와의 대결에 나서던 검성이 노령으로 기력이 다하여 미처 대련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순간에 완성한 성령검법의 궁극형태. 검성이 죽음을 맞는 순간의 의지로서 구현된 검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양기와 생명의 표상인 무명의 '천검'에 대응하는 죽음의 검법. 무림의 신화, 검성을 능가하는 실력을 지닌 영웅 무명 조차도 검입삼은 천하무적의 무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을 정도. 그 설명에 걸맞게 위압감은 엄청나다.
그 실체는 검법인지 무공인지도 불확실한 것으로서(…)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을 멈추고''' 자기 혼자만이 움직이면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 적에게 일격을 날리는 검법이다.--[[더 월드]]-- 단순히 혈도를 찌르거나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천지를 검기로 억압'해서 시간이 멈춘 상태로 다가가면서 걸리는건 전부다 죽음을 맞게 하는 무차별 살상기술이다. 시간을 멈추는 공격이므로 당연히 검입삼은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듯. 엄청난 사기성에 웅패도 죽음을 각오했으나, 검성이 웅패도 같이 하늘로 데려가기 직전에 보경운이 검성의 시체에 발길질을 날려서 계단에서 날려버린 탓에(…) 검입삼이 깨지고 검성의 영혼이 그대로 승천하면서 웅패는 살아남는다.(다만 검성의 영혼이 찌른 손가락에 심한 내상을 입었다.)
- 하이큐/225화 . . . . 6회 일치
* 공격의 핵이어야 할 히나타 조차 다테의 블록에 막혀 득점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경기는 점점 다테에 유리하게 흘러간다.
* 반대로 아즈마네 아사히는 "나한테는 차라리 말해달라"는데,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공이 줄었다는걸 알면 충격을 받는 섬세한 타입이기 때문.
* 다테의 전략은 서브로 폭격하고 블록으로 반격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서브&블록
* 카라스노는 아슬아슬하게 1점 차 우위를 지키는 상황. 스코어는 16대15
* 스코어는 23대21. 카라스노의 2점 차 우위. 카라스노는 결정타가 필요한 상황.
* 그러나 이를 눈치챈 아오네가 블록 위치를 급하게 변경, 사와무라의 스파이크를 차단한다.
- 하이큐/246화 . . . . 6회 일치
* 봄고 1일차. 살아남는데 성공한 [[카라스노 고교]]는 역시 1회전을 돌파한 [[네코마 고교]]와 조우, 악담 섞인 격려를 나누고 헤어진다.
* 그런데 사실 그는 카노카의 사촌오빠였고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는데... 타나카의 씁쓸한 썸을 뒤로하고 봄고 2일차 돌입. 시드교가 참전한다.
* 힘겹게 봄고 1일차를 버텨낸 [[카라스노 고교]]. 돌아가는 길에 영원한 라이벌 [[네코마 고교]]와 조우한다. 네코마 측에서 "기껏 왔는데 금방 돌아가지 않아서 잘 됐다"고 도발 섞인 축하를 하자 [[스기와라 코시]]는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고 받아친다. 이렇게 악담에 섞인 격려를 주고 받은 양팀 선수들.
* 민박집에 도착해 보니 옆의 호화호텔로 여자 대회의 우승후보인 "여왕" 니야마 고교가 귀가 중이다. 여자부와 남자부의 차이는 있어도 저쪽은 우승 후보. 번쩍거리는 호텔로 들어가는 데서 격차를 느끼고 만다. 그러고 보니 카라스노도 여자부 쪽은 인터하이에서 우승한 시드교. 문자 그대로 "여왕" 같은 그녀들이다.
드디어 봄고 대회 2일차. 시드 교가 참전한다.
- 하이큐/247화 . . . . 6회 일치
[[하이큐]] 247화. '''2일차'''
* 그리고 봄고 1일차가 끝난 밤. 2회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우카이 코치는 잠시 집에 연락해서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한다. 사실 그는 할아버지가 현장에서 쓰레기장 결전을 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진 잇케 감독은 도저히 도쿄까지 올 상태가 아니었다. 우카이 코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가올 2회전 대책에 골몰한다.
10번 [[스나 린타로]]도 그에 맞먹는 선수. 이쪽은 MB 치고는 키는 좀 작지만 플레이 센스의 결정체 같은 인물이다. 괴짜 콤비에게 마이너스 템포 조차도 금방 적응할게 분명하니 공격 각을 넓게 잡으라고 조언한다.
이미 구면인 카게야마가 "스파이커가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치기 쉬운 세트를 올리고 흔들림 조차 없다고 극찬한다. 워낙 약점이 없어서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카게야마가 그렇게 말할 정도냐며 새삼 놀란다.
리시버인 [[니시노야 유]]가 바로 눈치챈다. 실제로 어떻게 칠지는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타나카도 리시브 진형 짜기 힘들겠다고 투덜댄다. 여기에 카게야마는 중학생 때, 인터하이 때 모두 베스트 서버 상을 탔다고 정보를 추가한다. 아즈마네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다고 좌절한다.
우카이 코치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문제의 라이트가 코트에서 몸을 풀고 있다. 그런데 히나타과 카게야마는 눈을 비비며 재차 확인한다.
- 하이큐/248화 . . . . 6회 일치
[[하이큐]] 248화. '''격차'''
* 이나리자키 고교는 언론도 밀착마크할 정도로 주목도가 높은 팀. 잘해야 다크호스 수준인 [[카라스노 고교]]와는 "격차"가 심했다.
* 카라스노 선수들은 흥분이 앞서 긴장을 잊어버렸고 [[사와무라 다이치]]는 적과 아군의 엄청난 "격차"에 오히려 불타오른다.
[[야마구치 타다시]]와 [[히나타 쇼요]]는 유명인이 카메라 앞에 서자 괜히 싱숭생숭한 모양이다. 야마구치가 자기들한테도 인터뷰하려 오면 어쩌냐고 김칫국을 마시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츠키시마 케이]]가 "강호 밀착 취재"라며 카라스노한테는 오지도 않는다고 핀잔한다. 히나타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브이"하러 가자고 꼬득이는데 츠키시마의 차가운 구박만 받고 만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그렇게 음침한 소릴 하자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는 그가 실성한 줄 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그런 엄청난 "격차"가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 안 그래도 시끄러웠던 관중석이 이제는 코트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묻힐 정도로 커다란 환성으로 바뀐다. 사와무라가 치지지 않고 "가자"고 외치려고 하지만 계속 소리가 묻힌다. 투지에 분노까지 끌어올리고 나서야 "가자"는 구호가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봄고 배구 2회전 B코트 제 2시합. 카라스노 고교 대 이나리자키 고교 개전.
- 하이큐/251화 . . . . 6회 일치
히나타는 이대로 자신의 서브 차례가 오는걸 상상한다.
히나타는 거의 경련을 일으킬 것처럼 흥분한다. 그런데 주심이 팔을 들어올리는 순간 이나리자키의 야유가 뚝 그친다. 그리고 타악기를 이용한 빠르고 짧은 박자의 연타로 바뀐다. 탄탄탄, 마치 축제에서 치는 북소리 같다. 이러한 변화에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뭔가 낌새를 차린다.
* [[오지로 알렝]]의 서브. 이나리자키의 서브 플레이 때는 느리고 침착한 박자가 연주된다. 오지로는 차분하게 서브 에이스를 따낸다. 이걸로 이나리자키의 두 번째 서브 에이스. 점수는 7 대 4로 벌어진다.
관중석에 와있는 노헤비 학원 배구부의 전주장 [[다이쇼 스구루]]는 나이브한 태도로 "이나리자키가 가차없다"고 평한다.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가 카게야마, 히나타, [[야치 히토카]], [[니시노야 유]]의 초등학생 시절 사진을 감상하는 것. 단연 눈에 띄는건 니시노야. 초2 때 사진인데 키나 차림새가 거의 변한게 없는 느낌이다. 사와무라는 "니시노야는 초2때 완전체"라는 놀라운 표현력을 과시한다. 아즈마네는 "저렇게 나뭇가지 들고 있는게 잘 어울리는 애가 있나?"라고 감탄한다.
차회, 잡지 휴간에 따른 휴재
- 하이큐/252화 . . . . 6회 일치
* [[히나타 쇼요]]는 이나리자키의 더블 퀵을 알아차리고 좋은 위치를 선점하나 리시브에서 실부, 발로 받는 실수를 연출한다.
* 히나타가 매우 쪽팔렸지만 결과적으론 카라스노가 점수차를 좁히며 분위기를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 마침내 히나타의 1회차 서브. [[호시우미 코라이]]는 히나타가 이나리자키 응원단의 부추김에도 동요하지 않고 희미하게 웃기까지 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매우 좋은 흐름이다. 그런 그가 어떤 공격에 나설 것인가? 점프 플로트? 스파이크 서브?
* 히나타가 명예회복을 다짐하며 네트 앞으로 튀어나간다. 카게야마가 세트업을 준비하고 있다. 히나타는 당연히 자기한테 올 거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속으로 "후방 마이너스 템포"라고 힘차게 외치며 뛰어오르는데...
그의 차례다 아니다. 공은 우측의 사와무라에게. 히나타에게 정신이 팔렸던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깨끗하게 속으면서 사와무라에게 1점을 헌납한다. 점수는 7 대 6. 카라스노가 추격세를 이어가지만 히나타 본인은 흑역사가 하나 늘었다.
- 하이큐/253화 . . . . 6회 일치
* 그러나 그건 단지 "스타트라인"에 지나지 않았고 [[니시노야 유]] 조차 그의 강력한 서브에 빌려 리시브에 실패한다.
생각이 복잡한건 코트 바깥의 세터도 그랬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아카아시 케이지]]가 그랬다. 옆의 [[보쿠토 코타로]]는 완전히 히나타한테 올리는 건 줄 알았다며 카게야마를 칭찬하지만, 아카아시는 차라리 소름이 돋았다. 단순한 미끼를 던져 봐야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방금 전 세트업은 퍼스트 터치가 코트 중앙으로 올라가서 각도상으로 보면 완전히 히나타한테 가는 흐름이었다. 그걸 교묘하게 라이트로 보낸게 성공의 이유. 이는 카게야마가 시야가 넓기만 한게 아니라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까지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은 요소는...
이도류란 스파이크 서브와 점프 플로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보통 선수마다 주력 서브는 정해져 있다. [[아즈마네 아사히]]나 히나타는 스파이크 서브, [[야마구지 타다시]]는 점프 플로터, 이런 식이다. 아츠무는 어느 쪽이든 때릴 수 있어서 서브가 날아오기 전에는 구분할 수 없고, 그래서 리시브할 위치를 선점하기 어렵다. 거리로는 단 한 걸음이지만, 실제 플레이에선 그 작은 차이가 실점으로 이어진다.
우카이 코치가 찾아낸 구분법은 엔드라인에서 서브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걸음걸이의 차이. 아마 그게 아츠무 나름의 "루틴"일 것이다. 엔드라인 기준으로 네 걸음은 점프 플로터, 여섯 걸음은 스파이크 서브다. 아즈마네가 눈을 번쩍 뜬다. 뭐가 올지 안다면 대응이 빨라진다. 하지만 서브 때 동작 전체를 찍은 영상은 구하기 어렵다. 타케다 고문은 용캐 그걸 찾아냈다고 감탄한다. 이걸 찾기 위해 우카이 코치는 엄청나게 헤맸으며 인터넷 영상부터 지인이 구한 영상까지 보지 않은게 없었다.
아츠무의 서브. 방향은 정가운데, 니시노야. 정확히 위치를 포착했다. 하지만 니시노야가 밀렸다. 카라스노의 서버인 야마구지와 [[키노시타 히사시]] 니시노야 조차 받지 못하는, 눈 앞을 순식간에 스쳐가는 아츠무의 서브에 경악한다.
* 스코어는 10 대 7. 아츠무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네 걸음. 점프 플로터다. 카라스노의 리시버들이 한층 긴장한다. 이번에도 서브는 니시노야에게. 그렇지만 니시노야는 두 번 실패하지 않았다. 상당히 버거운 공이었지만 잘 받아낸 니시노야. 공은 카게야마에게. 카게야마가 아즈마네에게 올려서 스파이크, 하지만 아카기가 받는다. 그 순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달려나가는 오사무. 그리고 이어지는 플레이에서, 카게야마는 눈을 의심한다.
- 하이큐/260화 . . . . 6회 일치
* 봄고 대회 첫날. [[야마구치 타다시]]가 츠바키하라전에서 원포인트 서버로 기용돼 좋은 활약을 했다. 야마구치의 개인코치였던 [[시마다 마코토]]가 그를 찾았다. 야마구치는 자랑스럽게 3층 비상등을 "리셋포인트"로 삼았다고 말하고 시마다는 내일도 그렇게만 하라고 격려해줬다. 그게 복선이었던 걸까? 오늘도 그 비상등을 리셋포인트로 삼으려뎐 야마구치의 예정은 뜻밖의 적재물이 비상등을 가리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은 그 사실을 응원석에 있던 시마다가 알아차렸다는 것. 그런 사소한 차이 조차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아는 그는 필사적으로 3층 비상등을 향해 뛴다.
* 카라스노의 역전으로 경기의 흐름이 반전됐다. 과연 카라스노는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야마구치에게 달렸다. 야마구치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공은 오지로에게. 하지만 그도 두 번은 실패하지 않는다. 정확힌 리시브. 아츠무가 방금 전 무안준 것을 보상하듯 "나이스 리시브!"라고 힘차게 외친다. 그와 동시에 세트업, 강렬한 스파이크로 카라스노 진영에 돌아온다. 이번엔 야마구치의 리시브. 공인 야마구치를 날려보내다 시피하며 멀리 튕겨나간다.
* [[타나카 류노스케]]가 필사적으로 공을 쫓는다. 공은 벽까지 날아갔고 타나카가 몸을 날린다. 간발의 차, 공을 따라잡지 못한다. 타나카가 보람도 없이 벽이 부딪힌다. 분명 무리한 플레이였지만 그 투혼만큼은 인정받는다. 스코어는 23 대 23. 다시 동점. 하지만 이제 이나리자키의 추격세다.
- 하이큐/266화 . . . . 6회 일치
* 그런 의견 차이 때문에 다투기도 했는데, [[후쿠나가 쇼헤이]]의 묘한 중재가 없었더라면 큰 싸움으로 번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하지만 팀으로써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서로의 장단점이 눈에 들어왔고 피차 큰 실적을 내게 되자 더는 티격태격할 필요도 없어졌다.
야마모토가 삐딱하게 나왔다. 노력해온걸 발휘하려는데 어떻게 쉽게 힘을 풀겠느냐며, 자신에게 "근성이 부족했던" 거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엔 코즈메가 삐딱하게 나올 차례였다.
하지만 코즈메의 주장은 야마모토의 근성론 이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슬슬 싸움은 몸싸움으로 번지려는 조짐이었다. 야쿠 조차 너무 나갔다 싶어서 말리려고 했는데, 뜻밖의 인물이 둘의 싸움을 종결지었다. 후쿠나가였다. 진작부터 둘의 다툼을 지켜보던 그가 물 한 바가지와 애드립만으로 둘을 제압했다.
* 상대를 달리보기 시작한건 야마모토 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마모토가 투자한 근성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국대회 예선이 시작될 쯤에는 스파이커로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세터인 코즈메와 함께 "네코마의 1학년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코즈메는 단순한 세터가 아니라 팀의 사령탑, 네코마의 뇌로써 소질을 보였다. 둘의 개인적인 감정은 딱히 해소된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피차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여길 정도로 실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봄고 2일차. 코즈메는 결국 야마모토를 "토라"라고 불렀다. 사루카와의 스파이크가 쿠로오를 맞고 좌측으로 빠졌다. 코즈메의 신호에 맞춰 야마모토가 커버했다. 공은 다시 코즈메에게. 코즈메는 다시 야마모토에게 세트업. 그러나 사루카와의 블록이 빨랐다. 사루카와의 득점. 하지만 네코마 벤치에서 지적한 건 코즈메 쪽이었다. 방금 또 "귀찮음"이 발동한 걸 들킨 것이다. 오버로 올릴 수 있는 공을 언더로 올렸기 때문이다. 올리는 입장에선 오버 쪽이 조금 더 공이 드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버로 높은 지점에서 올리는 쪽이 언더에 비해 안정적이고 정확한 컨트롤이 가능했다.
- 하이큐/273화 . . . . 6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온화 모드" 발동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스코어는 20 대 12. 카게야마의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을 기점으로 [[이나리자키 고교]]가 첫 번째 TO를 쓴다. 중계진은 경기가 서브 경쟁으로 흐름이 바뀌는 걸로 보고 있고 과연 카게야마의 서브로 [[카라스모 고교]]의 반격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완벽한 서브. [[미야 오사무]]가 손을 뻗었지만 리시브 실패. 연속 서브 에이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세 번째 서브에 임한다. 이번엔 긴지마 쪽. 리시브에는 성공했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공은 [[오지로 아란]]에게 연결. 2세트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오지로.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의도도 그것이다. 아주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 피로감이 평소 플레이를 조금씩 뒤흔든다. 그리고 지금 미스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오지로의 스파이크엔 블록 세 장이 따라붙었다. [[사와무라 다이치]], [[히나타 쇼요]], [[타나카 류노스케]]. 오지로는 우카이 코치가 노린대로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블록을 의식하게 됐고 우측으로 길게 찌른 스파이크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0 대 14. 우카이 코치는 이것이 전환의 1점임을 단언한다. 관중석의 [[다이쇼 스그루]]와 여친 미카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그 아웃은 오지로에겐 "꺼림직한 아웃"이다.
* 카게야마의 4회차 서브. 이번에도 역시 강력하다. 긴지마가 받은 공은 크게 떠올라 다시 카라스노 진영이로. 여기서 카게야마가 또 묘기를 부린다. 서브 이후 "직결 셋업".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카라스노의 9번 카게야마를 보면서 "봄이 한 번에 돌아왔다"는게 무슨 말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10번, 히나타도 그랬다. 카게야마의 신속한 세트업 만큼이나 히나타가 날아오른 것도 빨랐다. 이나리자키 블록은 미처 따라붙지 못했고 완전 노마크로 스파이크. 하지만 득점하지 못한다. [[미야 아츠무]]가 귀신같이 루트를 꿰뚫어보고 리시브해낸다. 공은 오사무를 거쳐서 다시 오지로에게. 오지로는 방금 전 꺼림직함을 떨쳐내려는 듯 강렬한 스파이크로 1점을 되찾아 간다. 카게야마의 득점 행진은 여기서 멈췄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변했다.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와 미야 아츠무 간의 신경전. 그대로 고조된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오사무의 차례. 아츠무는 카게야마를 의식했는지 신경질스럽다. 오사무를 상대로 2세트를 마무리 지으라고 말하면서 왠지 또 "오늘 서브 에이스는 내 압승"이라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오사무도 그못지 않게 신경질적이다. 그게 영향을 줬는지 오사무의 서브는 크게 뜨면서 아웃. 코트를 한참 벗어나 스코어보드를 맞추는 홈런이다. 옆에 있던 [[야치 히토카]]가 화들짝 놀란다. 중계진은 원래 이나리자키는 가끔 이런게 나온다며 웃어넘긴다. 아츠무에게 "누가 홈런 경쟁을 하랬냐"고 갈구다가 "네가 쓸데없는 소릴해서 그렇다"며 오지로에게 쥐어박힌다. 사실 오사무는 대범한 척해도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있다. [[스나 린타로]]는 자기랑 동류라고 표현한다.
그것과 별개로, 막상 주장을 맞이한 이나리자키의 선수들도 경직된 기색이 완연하다. 그 미야 형제 조차도 기합이 잔뜩 든 모습이다. 후배들의 "나이스 서브" 응원을 받으며, 버티는 역할의 키타가 서브 위치에 선다.
무려 2연속 서브 에이스에 3연속 득점을 이끌며 2세트를 뒤집어놓았다. 4회차 서브도 득점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서브 직후 바로 세트업을 올리는 묘기를 보여주면서 이나리자키를 압박했다. 미야 아츠무의 저지로 득점행진은 끊어졌지만 아츠무가 심하게 의식하게 된 건 분명하다.
블록에 빠릿빠릿하게 참가하고 카게야마가 4회차 서브 직후 직결 세트업을 올릴 때 쏜살같이 달려나와 스파이크를 날렸다. 이쪽도 카게야마 온화모드 못지 않게 팔팔한 상태지만 아쉽게도 득점은 하지 못했다.
- 한진희(1949) . . . . 6회 일치
[목차]
현재는 이미지나 무거운 톤의 목소리 덕에 [[높으신 분들]](회장이나 사장) 전문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엔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덕에 [[노주현]]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미남으로 불리며 드라마 남자 주인공역을 독차지했었다.[* 노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한진희씨, 임채무씨가 나오기 전까지 (미남 남자 주인공 역할은) 나뿐이었다. 내가 군대갔다오니까 한진희 나오고 조금 있다가 임채무 나오더라"하며 직접 한진희를 언급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노주현이 두 사람보다 형이고 선배이다.) 그러나 상술된대로 둘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임채무]]도 70년대 후반부터 합류해서 이 두 사람의 영역을 나름 가져갔다. 정 말하자면 드라마 남자 주인공으로 3대 트로이카 정도 된다.][* 1990년대부턴 [[개그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노주현과 한진희가 함께 1980년대 초에 양복 모델을 한 적도 있다. <안녕 자두야> 대한전선 사건편에서 컬러 티비로 티비를 보면 티비가 더 재밌지 않겠냐는 자두의 질문에 자두 엄마 이난향이 "그래~저번에 혜리네 집에 가서 <결혼 행진곡>을 봤는데, 한진희가 더 잘생겨보이더라ㅋ"라고 답하며 언급하기도 했다. [[http://bbs1.telzone.daum.net/gaia/do/board/photo/read?articleId=573735&bbsId=A000010|#]]
[[장용]]과는 [[동양방송|TBC]] 선후배 관계기도 하고, 시간 차이는 많이 나지만 [[동화약품]]의 까스[[활명수]] 모델로 같이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때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한진희가 한 대사.
[[김동엽(1938)|김동엽]] 감독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방송이 끝나고 [[여의도]]의 한 포장마차에서 김동엽 감독과 합석하게 되었는데[* 당시 김동엽 감독은 여의도 근처의 술집을 자주 들락거려 일부 연예인들과 안면이 트인 사이였다고 한다. 한진희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연예계에서 주당으로 이름 날리던 한진희는 김동엽 감독에게 술내기를 제안했고, 김동엽 감독이 레몬을 주문하자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동엽 감독이 즐겨 마시던 일명 '레몬소주'[* 레몬 하나를 '''맥주잔에''' 짜서 즙을 낸 후 소주랑 섞어 마셨다.]를 한번 마셔본 한진희는 "이게 술이냐 주스냐."라고 비아냥거리고 자신만만해했으나 결과는 한진희의 완패로 끝났다. 이 때문에 병원신세도 지고 거진 한달을 후유증에 시달린 한진희는 이후 "김동엽 그 괴물같은 인간이 주는 레몬소주는 절대 마시지 말아라." 라고 했다고 한다.
* [[청담동 앨리스]](SBS, 2012~2013) - [[차일남]] 역
* [[녹색마차]](SBS, 2009) - 윤성근 역
- 현진건 . . . . 6회 일치
| 자녀 = 슬하 3녀 <br/> 장녀 현경숙(玄卿淑) <br/> 차녀 현애경(玄愛卿) <br/> 3녀 현화수(玄和壽)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한 조선인 선수 [[손기정]](孫基禎)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에 실은 사건으로([[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해야 했으며,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5번지로 이사하여<ref>당시 부암동은 서울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5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그곳에서 땅을 빌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한편, [[1938년]] 7월 20일부터 다시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역사소설 「무영탑(無影塔)」을 연재한다.(~ 1939년 2월 7일) [[1939년]] [[7월]]에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 역사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 연재를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문예지 「문장」과 가진 인터뷰에서<ref>「침묵의 거장 현진건 씨의 문학종횡담」, 『문장』 1939년 11월. p.116~120.</ref> 현진건은 당시의 소설들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던 때에 비해) 문장이라든가 소설 만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할 만큼 진보.... 그러나 구상의 도약이 드뭅니다"라며 "동경(東京) 문단의 말기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또한 현재가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문학의 빈곤시대가 아닌가 싶다며 "문은 실상 기(氣)이며 기가 없으면 아무리 진주같다 해도 곧 사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같은 잡지에 또 한 번 「역사소설의 제(諸)문제」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인용문|나는 역사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태도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br />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순수한 역사소설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코트의 제(諸)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 「단종애사」, 상허의 「황진이」 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br />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놓은 경우입니다. 쉔키비치의 「쿠오 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춘원의 「이차돈의 사(死)」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br /> 제1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大作)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2의 경우에야말로 웅편(雄編)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가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니 아니오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
* [[1932년]] 7월 1일자 『삼천리』기사에서, '만일 금주법이 실시된다면'이라는 질문에 현진건은 "돈이 없어서 못 먹으니 차라리 끊어 버리는 것도 나을 듯 싶어서 벌써부터 끊으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날 보고 애주가로 인증하니 참 딱한 일입니다. 우선 귀사에서도 많은 인사를 제쳐 놓고 나에게 물어 보시는 것은 내가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구태여 물어보시는 줄 암니다. 혹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배운 재주라 그렇케 쉽게 버릴까 하는 것도 의문은 됩니다. 정, 먹고 싶으면 [[카포네]] 노릇이나 해야 먹게 될 줄 압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부부생활과 관련해서는, 지인 대부분이 "아내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실 그 시절에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하며 따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었으며, [[김동인]]처럼 아예 자기 아내를 버리고 평양에서 서울로 거처까지 옮겨서 기생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기만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내를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을 뿐이요, 다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었다"고 했으며, 방인근은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기생이 옆에 와서 지근덕거리면 미남에다가 신문기자라면 기생들이 홀딱 반해서 덤벼드는 시절이니 그러면 빙허는 좋아하는 체 대꾸를 하면서도 쌀쌀하게 범접치 못할 기상으로 난잡하게 굴지 않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현진건의 아내 이순득도, 남편이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황라 두루마기와 비단 마고자가 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들어와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f>문인들의 이러한 '딴집 살림'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교육을 받은 소위 '구여성'과의 조혼을 괴로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데서 온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8~5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생가는 주소만 남아있을 뿐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인왕산]] 밑의 부암동 자택은 종로구에서 공용주차장을 짓기 위해 2003년에 헐어버려서 지금은 터와 '현진건 집터'라는 표석만이 남아 있다. 당시 그 생가의 철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행정당국은 '민간인 소유자와 부지 매입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는데<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1/h2007110618342324420.htm#none 편집국에서-사라지는 문학의 고향, 한국일보 2007년 11월 6일자 기사]</ref> 2012년 10월 4일에 [[안평대군]]의 사저와 함께 법원경매에 부쳐졌다. 유언에 따라<ref name="cho"/> 화장되고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서장리에 매장됐었으나 그 후 남서울 개발관계로 묘소가 사라져 유해는 한강에 뿌려졌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6회 일치
||<:> [[장동건]] [br] ([[태극기 휘날리며]]) ||<:> {{{+1 → }}} ||<:> '''황정민[br]([[너는 내 운명(영화)|너는 내 운명]])'''||<:> {{{+1 → }}} ||<:> [[안성기]], [[박중훈]][* 둘 다 2회차.][br]([[라디오 스타(영화)|라디오 스타]]) ||
>'''솔직히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나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 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저한테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2005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소감 中. 흔히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문은 저게 맞다. 그 때 후보가 '''[[박해일]](연애의 목적)''', '''[[류승범]](주먹이 운다)''', '''[[이병헌]](달콤한 인생)''', '''[[조승우]](말아톤)''']
[목차]
||<:>2016||<:>[[아수라(영화)|아수라]]||박성배||주연||259만명||손익분기[* 극장 손익 분기점 약360만이며 추후 2차시장에서 손익 분기점을 넘겼다.]||
||<:>2012||<:>[[맨 오브 라만차]]||<:>돈키호테||
||2011||<:> 르노삼성자동차 SM5|| ||<:>[[https://youtu.be/KgztMHmDV-E|#]][[https://youtu.be/mXL5fGU5G6E|#]] ||
- 흥친왕 . . . . 6회 일치
이는 [[조선 철종|철종]] 사망 당시 12세의 미성년자였던 [[대한제국 고종|이명복]]([[흥선대원군]]의 차남)이 성인인 흥친왕보다 조종하기 쉬울 것이라는 [[흥선대원군]]의 계략과 [[신정왕후 조씨|조대비]]의 묵인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일부를 포섭할 때, [[김병학]](金炳鶴)의 딸, 혹은 [[김병문 (조선후기)|김병문]]의 딸 중에서 둘째 아들인 [[대한제국 고종|명복]]의 배필로 맞이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것 역시 재면 보다는 명복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한때 그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큰아버지 [[흥완군]] 이정응의 양자로 보내지는 것이 고려되기도 했다. 그의 흥완군 양자 지정 논란은 [[1864년]] 고종에 의해 취소되어 최종 종결되었다.
[[1893년]] 그는 동학 농민군이 상경하여 [[경복궁]] 앞에서 복합상소운동을 벌이는 기회를 이용하여 [[이준용]]을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다. [[정교]]는 1893년 [[2월 11일]]부터 [[2월 13일]]까지 3일간 박광호를 소두로 하는 약 50명의 동학교도들이 상경하여 궁궐 앞에서 교조 신원을 탄원하며 연좌시위를 벌인 사건을 대원군이 시킨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때 [[정교]]는 대원군이 은밀히 동학당 수만 명을 서울로 불러 모임을 갖고 장차 불궤를 도모하여 그의 손자 이준용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하였다.<ref name="p316">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2007.4, 경인문화사) 315~316쪽.</ref>
[[1895년]](고종 32년) [[을미사변]]이 일어났을 때 그는 난에 가담하지 않고 수수방관하였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제거되자, 그는 [[흥선대원군]]과 주한[[일본]]공사관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밀약에 의해 김홍집내각(金弘集內閣<ref>제1차 김홍집 내각</ref>)의 궁내부대신이 되었다.<ref name="daum1"/>
이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임명되었다. [[1898년]] [[1월]] 어머니 [[여흥부대부인]]에 이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임종을 지켰다. [[흥선대원군]]은 죽기 직전 어가가 대궐을 떠났느냐며 고종의 행차 여부를 물었으나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흥선대원군]]이 사망한 직후에도 고종에게 아버지의 임종을 알렸다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침묵하였다.
[[1900년]](광무 4년) [[4월]] 완흥군(完興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을미사변]]의 관련자로 지목되어 언관들의 탄핵을 받았다. 이재면이 [[을미사변]]에는 직접 참여하거나 동조하지 않았으나, 을미사변으로 생겨난 제1차 [[김홍집]] 내각에서 궁내부 대신을 역임한 것이 비난의 이유였다. 한동안 벼슬이 없던 그는 생활이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ref>"韓國의 名建物 (2) 雲峴宮", 경향신문 1984년 10월 10일자 9면, 생활/문화면</ref>
*** 양손자 : [[이우]]([[1912년]] ~ [[1945년]]), 조카 [[의친왕]]의 차남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5회 일치
* 고명으로 쓸 차조기는 마당에서 후다닥 뜯어온다.
* 아카리는 겨울에는 10장에 100엔씩하는 차조기가 여름에는 무한정 나온다며 기뻐한다.
* 히나는 아예 "돈 열리는 나무란 차조기"라며 환호한다.
* 나메리카와는 미스미가 둔 "고키겐중비차"를 좋다고 평하며 "부디 그 수에 어울리게 기분 좋게" 두라고 권한다.
* 그 타나카씨도 무언의 대화에 합류하며 "너의 고키겐 중비차를 보여줘라"고 격려한다.--뉴타입 장기기사들이냐--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 . . . . 5회 일치
* Richard Kahn(리차드 칸)
* Bankruptcy Proceedings(파산 절차)
* Annual Report Proceedings(연차보고서 절차)
* Quality Assurance Procedure(품질 보증 정차)
- 곽결호 . . . . 5회 일치
| 경력 = 대구대학교 겸임교수 <br/> 환경부 차관 <br/>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 2003년 : 환경부 차관
|직책 = [[대한민국의 환경부 차관|환경부 차관]]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대구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
- 규성 진씨 . . . . 5회 일치
전완 이후로 전씨는 제나라에 자리를 잡고 점차 제나라의 유력 씨족이 되었으며, 마침내 태공망의 후손인 강성(姜姓) 여씨(呂氏) 왕조를 단절시키고 제나라의 군주가 된다. 제왕 건은 다시 진씨로 복성하며, 제나라 왕실에서 왕씨가 일부 갈라져 나온다.
=== 차씨 ===
차(車). 한나라의 승상 전차주가 이름을 차천추로 바꿔서 생겨났다.
- 김기섭 (1939년) . . . . 5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아남산업]]에서 근무하다가 삼성계열사로 이직, [[신라호텔]]과 삼성전관 등에서 이사, 상무, 전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김영삼]] [[민주자유당]]의 총재특보로 발탁되었으며, 대선 당시 총재특보와 이미지메이킹 등을 담당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후 [[안기부]]의 기조실장과 운영차장을 역임했다.
* [[1993년]] [[6월]] [[안기부]] 운영차장
* [[1997년]] [[3월]] 안기부 운영차장 겸 기조실장에서 면직
|직책 = 초대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국가안전기획부 운영차장]]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녕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호텔 경영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영삼]][[분류:김영삼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김다솜(배우) . . . . 5회 일치
[목차]
네 살 차이 나는 오빠가 한 명 있다. 그런데 오빠는 ~~친오빠답게~~ 동생보다도 정작 다른 멤버들을 더 챙긴다고 한다.(...) ~~역시 친오빠답다.~~
그러나 현재 보컬 실력이 데뷔 초에 비해 상당히 늘었다. 라이브시 안정감은 덤. 파트도 늘었다! ~~아니 근데 명색이 6년차 [[아이돌]]인데 안 느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꾸준히 안 느는 보컬도 있는데 [[나름]] 늘어가는 건 기특한 일.~~ 거기에 수록곡을 보면 [[윤보라]]와 같이 랩도 한다.
연예활동 이외에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시를 잘 쓴다고 칭찬했다거나 30살 전에 수필을 직접 쓰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는 등. 또한 일기도 자주 쓰는 것 같다. ~~언니들이 애써 외면해서 그렇지.~~ 일기장에는 인종차별 문제를 우유에 빗대어 썼던 것으로 보아 의외로 생각이 깊은 것 같다. 멤버들 말로는 문자도 평소 길고 장황하게 쓰는 타입이라고...
2013년 4월에 발표된 [[K.WILL|케이윌]]의 곡 <Love Blossom>의 뮤직비디오에 [[인피니트]]의 [[엘(인피니트)|엘]]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해당 곡은 발표와 동시에 음원차트 1위를 석권하였다.
- 김상희 (1951년) . . . . 5회 일치
* 2002.02 ~ 2002.08 :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
* 2004.06 ~ 2005.08 : 법무부 차관
|직책 = [[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법무부 차관]]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성현 (1989년) . . . . 5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8년]] 6차 1라운드([[현대 유니콘스]])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 활동했고, 대구고 1학년 재학 중이던 2005년, 대구고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맞상대가 프로 야구를 주름 잡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이끌던 [[동산고등학교|인천 동산 고등학교]]. 결승전에서 대구고는 먼저 8점을 내지만, 경험 부족으로 9점을 내주면서 대역전패하게 되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1차 지명이 있던 시기라 오랜만에 나온 유망주에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관심을 가진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현대는 과감하게 그를 2차 1라운드에서 지명했다. 대구고 시절 보여 준 강속구 능력과 하드웨어를 잊지 않고 있다가 빠른 지명으로 채간 것. 그리고 계약금 1억 1,000만 원에 입단시켰다.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절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상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영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프로야구 매니저|프로 야구 매니저]]에서는 본명에서 '신성수'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게이머들 중에는 차라리 신조작이라고 하지 그랬냐는 의견도 있다. [[마구마구]]에서는 장유엽으로 카드명이 변경되었다.
- 김시진 . . . . 5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ref> 정규시즌 MVP 자리에서 밀려나야 했고 [[1983년]] 홈런-타점 2관왕으로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이만수]]는 그 해 최다승(30승)(28선발승)을 기록한 [[후쿠시 히로아키|장명부]]가 재일동포란 이유 탓인지<ref>{{뉴스 인용
| 제목 = [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올스타 투표의 ‘오차범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기 전까지 투수 코치로 계속 활동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아마추어 실업 야구 팀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에서 잠깐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나, 이내 곧 [[1998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임명되어 프로에 복귀했고, 그 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그는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오주원]], [[황두성]], [[박준수]],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에 뛰어났으며 [[투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투수 코치를 맡은 기간 동안 그는 '명 조련사'로 불렸는데, [[1998년]]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 등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수상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투수 코치로서 선수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생활에도 이어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최초 1차 지명으로 선발한 좌완 투수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 역시 [[2009년 한국 프로 야구|2009 시즌]]에 옥석으로 평가받았다.<ref>[[스포츠 서울]]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013951 "히어로즈가 끝까지 지킨 강윤구는 누구?"]</ref> 시즌 전 트레이드로 홍역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걸출한 신인 우완 투수 [[고원준]]을 배출하였으며, 트레이드로 영입한 [[금민철]]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가 투수 코치로 있는 동안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10년 한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에는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 [[이택근]], [[황재균]] 등의 이적 공백으로 인해 팀 전력에 큰 손상을 입으면서 하위권으로 쳐졌지만 어려운 팀 상황 속에서도 [[손승락]], [[고원준]], [[김성현 (1989년)|김성현]], [[김성태 (1982년)|김성태]], [[금민철]] 등 뛰어난 새 투수들을 키워 내 "투수 조련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때 갓 제대하고 마무리로 전향한 [[손승락]]이 [[이용찬 (야구 선수)|이용찬]]을 제치고 세이브왕을 차지하였다. 한편, 경북 포항 운영 면에 대해서 일부 팬들에게 "작전 능력이 미숙하다", "선수 교체 타이밍이 좋지 못하다"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 김재홍 (1958년) . . . . 5회 일치
* 2013년 3월 ~ 2014년 7월 :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전임자 = [[윤상직]]<br/>(지식경제부 제1차관)
|직책 = 초대 [[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정혁 . . . . 5회 일치
[목차]
그러나 조동찬이 ~~유리몸답게~~ 2일 만에 부상으로 빠지며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롬 발디리스]]와 [[구자욱]]이 차례대로 복귀하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7월 22일 선발로 내정된 [[아놀드 레온]]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9일 전날 얼굴에 공을 맞아 시즌 아웃된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이성규]]가 등록됐다. 10월 3일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 [[사자사랑방|모 카페]]에서는 [[장성우|아이돌]] [[갈매기 마당|취급을 받고 있다]]. ~~사사돌~~ 이 카페의 운영자는 단지 김정혁을 1군에 올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류중일]] 감독을 상대로 입에 차마 담기 힘든 수위의 욕설을 수 차례 올렸을 정도. 자세한 건 항목 참고. 이후 2016년과 2017년에 출장 기회를 받아 활약할 때만 난리치고 이후 좋지 않은 선구안으로 붕붕거리며 부진하면 입을 닫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 김필곤 . . . . 5회 일치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3월 31일에 모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판자로 가려줘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모텔 종업원에게 항소심에서 "해당 조항에서 처벌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 근거 조항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관리와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일반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7248.html]</ref> 7월 8일에 "지하철에서 장갑을 팔았다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한다"며 강제연행하려는 서울메트로 질서기동팀 소속 공익근무요원을 폭행한 홍모씨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한 피고인을 강제 연행하려 하거나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체포한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의 정당한 직무상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에 대항해 폭행을 가했다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0907080856516671?t=y]</ref> 12월 9일에 비자발급 심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부러 직무를 포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전 영사 황모씨에 대해 "중국 현지 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가 보완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자의적인 비자 발급으로 불법 체류자가 생긴 만큼 죄질이 나쁘지만 그동안 국가에 헌신해 왔고 나태한 마음으로 범행을 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09120911405515959&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2010년 2월 11일에 면허정지 기간에 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되자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차를 몰아야 성립하는데 최씨가 정지처분 통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경찰 당국이 통지를 대신하는 공고를 거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면허 정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002110848419738?t=y]</ref>
*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8월 25일에 두차례에 걸쳐 이통사에 통신자료를 요청해 이름·주민번호·이동전화번호·주소·가입일·해지일 등 통신자료를 수집한 [[서울지방경찰청]]을 대상으로 제기한 통신자료 요청서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기각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ref>[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915_0000096846&cID=10201&pID=10200]</ref>
- 김형기 (법조인) . . . . 5회 일치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반공법]]위반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된 영화배우 [[박노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반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순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반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8년 8월 3일에 이리역 화약 열차 폭발사고로 1심에서 징역8월을 선고받은 한국화약 사장에게 벌금20만원을 선고하면서 한국화약 인천공장 공장장과 총무이사, 총무부장에게 징역8월 집행유예2년, 인천역 화물과장 징역8월 집행유예3년, 인천역 화물과 직원 징역6월 집행유예1년, 대한통운 인천지점 육운계 직원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8년 8월 4일</ref>
*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형사합의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8년 9월 25일에 만화가 [[미현세[[의 어머니를 살하는 등 20여 차례에 걸쳐 강도, 강간 등을 했던 18세 피고인에게 "피고인들이 미성년이지만 잔혹한 범행으로 사회에 충격을 줬다며" 강도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하면서 공범인 3명의 19살 소년에게 무기징역, 징역15년~12년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9월 26일자</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5회 일치
* 요아라시는 토도로키가 엔데버와 마찬가지로 안하무인하고 차가운 성격이라 생각해 거슬려했다.
* 미도리야 이즈쿠의 일갈로 정신을 차리나 한 발 늦어서 갱 오르카의 공격에 무력화된다.
* 그 중에서도 특히 용기있는 히어로에 열광하는 소년이었지만, 그 안하무인하고 차갑기 그지없는 엔데버 만은 좋아하지 못했다.
* 하지만 정신을 차린 신도가 진동의 개성으로 진로를 무너뜨린다.
토도로키와 요아라시의 다툼은 별거 아닌 감정싸움으로 보이는데, 어차피 당시 이들은 중학교를 막 졸업한 소년들이었고 지금도 고작 고1 정도. 어른스럽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5회 일치
* 올마이트가 본론을 꺼낸다. 그는 [[시가라키 토무라]]의 행방을 묻는다. 하지만 올 포 원은 "너와는 달리 내 손을 떠났다"고 답한다. 짜증을 느낀 올마이트는 대체 뭘하고 싶은지, 뭘하고 싶었는지 묻는다. 그토록 긴 수명에 타인을 착취하고 기만하면서 대체 뭘 이루려는 거냐고 묻느낟. 올 포 원은 생산성 없는 대화라고 일축한다. 들어봐야 이해하지도 못할 거라며 단지 올마이트는 정의의 히어로를 동경했고 자신은 마왕을 동경했을 뿐,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 대화가 한창이지만 형무소 측에선 3분 남았다고 통보한다. 올 포 원은 정말로 즐거운 듯 조금만 더 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올마이트의 은퇴로 세상이 동요하고 있을 거라며 세상의 동향을 묻는다. 그는 세상과 교류가 단절돼 있고 이 순간 조차 올마이트에게 바깥 일에 대해선 함구하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올 포 원은 바깥의 사정을 매우 정확하게 추정하고 있다. 올마이트의 은퇴가 야기한 혼란들. [[엔데버]]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하지만 세상은 불안해지기만 하고 억지력이 사라진 그늘 속의 인생들이 할거한다. 시가라키는 잠시 동안 잠복할 것이며 대두하는 세력들을 파악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빌런들 간의 경쟁, 대립도 심화.
올마이트는 더이상 참기 어려운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 방송으로 올마이트에게 물러나라고 통보된다. 올 포 원은 "유감스럽게도 여기선 날 때릴 수 없다"며 조롱한다. 올마이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모든 걸 아는건 너 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차피 올마이트도 올 포 원의 생각은 짐작하고 있다. 그는 올마이트가 가장 싫어하는 것만 생각하니까. 분명 스승의 자식인 시가라키가 올마이트를 죽이고 그의 제자 미도리야 이즈쿠도 죽이게 하려는 계획이다. 올 포 원은 여유롭게 "그래서?"라고 되묻는다. 올마이트는 잠시 [[그랜토리노]]의 말을 생각한다.
* 올마이트를 타르타로스로 안내한건 [[츠카우치 나오마사]]였다. 돌아가는 길고 그의 차를 이용한다. 츠카우치는 하필 임시면허 시험일자와 날짜가 겹쳤다고 사과한다. 그러면서 어땠냐고 묻는데 올마이트는 유감스럽지만 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예상했는지 "장기전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츠카우치는 또 수속 관계로 정리를 못했다며 "스팅"과 면회는 어쩔 거냐고 묻는데 그때 전화가 울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5회 일치
* [[키리시마 에지로]]와 미도리야가 적극적으로 대련에 나서고 특히 미도리야는 "웅영고 톱과 차이를 알고 싶다"며 의욕적으로 덤빈다.
* 학생들은 체육관에 다시 모인다. 몸을 풀고 있는 선배에게 [[세로 한타]]가 "정말로 합니까"라고 묻는데 역시 진심이다. 체육관에서 조차 벽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아마지키는 "밀리오"에게 "적당히 설명해주고 말자"며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작정 싫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모두 다 상승지향에 가득 차 있는게 아냐.
* 밀리오도 "문제아, 역시 기운이 넘친다"며 만족스러워한다. 미도리야는 웅영의 톱과 대련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는 기회라며 현재의 자신과 그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다짐한다. 미도리야가 선두를 맡고 키리시마, 오지로, [[사토 리키도]]의 근접전 특기자들이 포위를 맡는다. 나머지 학생들도 각자 몸을 풀며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한다.
미도리야가 힘차게 달려나간다. 대련 시작.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5회 일치
나이트아이는 차갑게 잘라말한다. 그는 서두르면 망치고 어설프게 쫓가단 더욱 도망치게 만들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미도리야는 구하고 싶을 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지 않다. 오버홀에 대해서는 나이트아이도 다른 사무소와 팀을 구성하기 위해 구상 중이고 상대의 의도와 정보를 분석해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 미도리야는 전부 알고 있었냐고 묻는다. 나이트가 아이가 원 포 올에 대해 아는 것, 밀리오가 사실은 후계자 후보였다는 것. 그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왜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궁금한 건 전부 거침없이 묻는다. 거기에 돌아오는 올마이트의 대답은 뜻밖에 차갑다.
그러던 것이 6년 전, 올마이트가 불의의 부상을 당한 그때 콤비를 해산했다.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나이트아이는 대답을 회피한다. 대신 그가 은퇴해도 다음 No.1이 나타날 거고 단지 잠깐 소란스러워질 뿐이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그 조차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올마이트는 거절한다. 그 "잠깐"의 소란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겁을 먹은 채 살아야 하냐는 것이다. 게다가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빗나간 적이 있었던가? 나이트아이는 이제 사정조로 이야기한다.
* 이것이 그들의 진상이었다.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콤비는 해산. 이즈 네즈의 소개로 토오가타 밀리오와 만날 예정이었지만, 그 전에 미도리야와 만나고 말았다.
- 남유진 . . . . 5회 일치
[목차]
극렬 [[친박]] 성향의 정치인 중 하나로, '''[[박정희]] [[반인반신]] 발언의 당사자'''라고 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시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그게 논란이 됐다.[* 남유진 재임기간 중 구미시 1년 예산은 1조 가량 되는데 매년 수백억을 박정희 관련해서 낭비했고 임기 말에는 1400억짜리 박정희 타운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석해서 비판을 받았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인용([[파면]]) 판결에는 존중한다고 하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15500010|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신격화 논란]] [[http://www.idaegu.com/?c=4&uid=357752|남유진 구미시장, 기초 지자체장 중 첫 탄핵반대 집회 참석 논란]]
이쯤 되면 TK에 얼마나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구미 같이 평균 연령이 낮은 TK 지자체에서도 더민주는 각 선거구별로 후보가 아예 없거나 1명 정도만 내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교하면 후보 수 자체(시의회 후보 더민주 7명 VS 한국당 17명, 2.5배 차이다.)가 딸리기도 하고, 그 자유한국당 쪽 의원도 여러 명이 공천이 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더민주 후보(혹은 무소속)를 제끼면 최소 한명은 당선되는 시스템인데다가 그마저도 선산읍, 도개면, 무을면, 옥성면, 해평면처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외 읍면 지역에서 당선된 인물이 5명이다. 나머지 동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휩쓸었다. 사실, 도의원 결과만 봐도 바로 설명 끝난다. 구미시의 도의원 당선자 6명 중 3명이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3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 중 1선거구, 4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52.22%, 50.33%)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당선된 선거구 중 2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3선거구는 (비록 1:1이 아니고 보수표가 갈렸지만) 단 254표(0.8%p) 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6선거구는 읍면 지역. 그만큼 자유한국당이 TK에서 그 동안 견제 세력 없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무기로 남유진이 자신의 사리사욕+덕질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 얼마나 구미 시민들을 만만하게 봤는지를 알 수가 있다.
- 대군 . . . . 5회 일치
거대한 규모의 군대라는 뜻.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대군'의 기준은 달라지는데, 이는 각 국가마다 인구수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1만명 정도면 대군으로 여겨졌으나, 점차 십만 이상은 되어야 대군으로 여겨지게 된다.
근대에는 국가 총력전 체계가 갖추어지면서 양차대전을 거쳐서 몇백만~몇천만 규모의 인구가 전투에 투입될 지경에 도달하였다. 역사상 최대의 대군이 투입된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현대전에서는 첨단 병기가 발전하고 총력전이 없어져 제한전에 국한되면서 군 인원 자체의 규모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예외적으로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명나라로부터 일본 국왕(日本 國王)으로 칭해진 사례가 있다. 하지만 명나라에 보내는 국서 외에는 이러한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고, 그조차도 후세에 일본 우익들에게 덴노를 놔두고 국왕을 참칭했다고 까였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5회 일치
* 라운드 배정은 기본적으로 [[대한축구협회]](이하 KFA)에서 고려하는 리그의 등급과 성적에 따라 차등 부여된다. 즉, KFA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높은 수준의 리그일수록 본선에 가는 길이 빨라진다.
[[K리그 클래식]]에 속한 팀들은 본선 자동진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K리그의 12개 팀과 예선을 통과한 20개팀이 합류하여 32강 대진으로 토너먼트가 이루어진다. 4라운드(32강)~6라운드(8강)까지는 예선전과 마찬가지로 추첨을 통해 대진과 홈팀을 결정하며, 7라운드 대진은 추첨제와 원스타 시스템을 통해 홈팀과 결승 1차전 경기장을 정하게 된다.
|| 경기번호 || 일시 || 홈팀 || vs || 원정팀 || 결과(승부차기) ||
|| 경기번호 || 일시 || 홈팀 || vs || 원정팀 || 결과(승부차기) ||
|| 경기번호 || 일시 || 홈팀 || vs || 원정팀 || 결과(승부차기) ||
- 마기/323화 . . . . 5회 일치
*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격을 멈추지 않는 신드바드.
* 우고는 가차없이 그 진격을 쳐내며 그가 성궁에 도달할 가능성은 0%라고 못박는다.
* 재차 공격 태세를 취하는 신드바드에게 "소용없다"고 단언하는 우고.
* 그는 아르바 조차 아무 것도 모른다며 성궁에 도달할 가능성은 1%가 아니라고 한다.
* 우고의 말투는 오히려 잔인하게 들리는데, 그 말 조차 지금의 신드바드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 마기/341화 . . . . 5회 일치
하지만 신드바드는 어차피 그의 대답은 뻔할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알라딘은 분명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라고 답할 것이다. 신드바드는 그렇게 말하며 재차 공격한다. 알라딘은 재차 날아오는 소리마법을 방어하며 다급하게 움직인다.
그가 신이 된 다음엔? 아무도 없고 그의 예상을 벗어난 일 조차 일어나지 않는 이런 곳에서, 그야말로 무한한 시간을... 알라딘은 그런 걸 아무도 버틸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냐고 질문한다.
* 알라딘은 그저 반박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신드바드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지, 어떤 괴로움에 처할지를 헤아려 말한 것이었다. 신드바드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대답하기 보다는 미소를 짓는다. 알라딘은 뜻밖의 반응에 놀란다. 신드바드는 그제서야 입을 연다. 그에게 "신이 된 이후의 고독까지 걱정해주는 거냐"고 묻는다. 알라딘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신드바드는 알라딘이 "착하다"며 자신에게 "지배자의 고독"은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한다. 알라딘은 우고도 그것 때문에 미쳤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재차 묻는다. 그러자 자신에겐 다윗과 아르바가 있어서 괜찮다고 말하는데, 알라딘은 믿지 않는다.
- 박동진 (1922년) . . . . 5회 일치
1951년 외무부에 들어와, 의전국장, 주 영국 참사관, 외무부차관, 주 월남 대사, 주 브라질 대사(1962년 10월~1968 2월)<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82100329201006&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62-08-21&officeId=00032&pageNo=1&printNo=5173&publishType=00020 브라질 大使에 朴東鎭氏] 《경향신문》1962년 8월 21일, 1면. <!--“最高會議 第63次 常任委員會는 21日 越南共和國駐箚大使 朴東鎭氏를 「브라질」合衆國特命全權大使로,...”--></ref><ref>{{서적 인용 |저자 = 외교통상부 |제목 = 한국 외교 60년 |url = 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장 = 부록 |확인날짜 = 2015년 2월 21일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3211841/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보존날짜 = 2016년 3월 3일 |깨진링크 = 예 }}</ref>{{Rp|496}}, 페루 겸임대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0429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04-29&officeId=00020&pageNo=1&printNo=13079&publishType=00020 朴東鎭브라질大使 駐『페루』大使兼任]〉 《동아일보》(1964년 4월 29일) 1면 <!--“政府는 駐「브라질」大使朴東鎭씨를 駐「페루」大使도 겸임토록 28일하오 國務會議에서 議決했다.”--></ref>, 주 제네바 대사, 주 유엔 대사,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11대.12대), [[대한민국 통일부|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다. 외무부장관으로서, 1976년 3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리타우딘 말레이시아 외무부 장관과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319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3-19&officeId=00032&pageNo=1&printNo=9377&publishType=00020 |제목= 貿易強化에 합의...韓․말聯 공동성명 |출판사 = 경향신문 | 날짜 = 1976-03-19 |인용문=<!--朴東鎭외무부장관과 리타우딘 말레이시아외상은 19일 공동성명을 발표, 평화․자유․번영이라는 공동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제국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朴장관은 지난 17일부터 3일간 말레이시아를 공식 방문한 후 발표한 이 성명에서...--> }}</ref> 1988년 4월 22일 한국 정부는 박동진을 주미대사에 임명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4220020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4-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0477&publishType=00020| 제목 = 駐美大使 朴東鎭씨| 날짜 = 1988-04-22| 출판사 = 동아일보}}</ref> 박동진은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었으나, 주미대사로 부임함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하였고, 민정당 전국구 예비후보 11번인 김종열이 5월 13일자로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전임자 = [[김재순 (정치인)|김재순]](10대 정무차관)<br/>[[이수영 (1921년)|이수영]](10대 사무차관)
|직책 = [[대한민국 외무부|외무부 차관]]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국토통일원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최규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베트남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브라질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민주정의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밀양 박씨]]
- 박영진(코미디언) . . . . 5회 일치
[목차]
>'''“분명 웃음을 줄 수 있는 소재인데 사람마다 시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비하, 폄훼, 조롱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 -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 中-
허경환이 봉숭아 학당에서 '있는데가이' 역할에서 퇴출당하자 조금씩 주춤했다. 게다가 PD는 재미도 없는 [[박휘순]]과 박영진을 연결시켜 재미를 보았다[* 처음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최근은 그나마 좀 나아진 상태인 듯.][* 박휘순과 박영진의 개그코드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허경환이 [[두캅스]]의 기믹으로 화려하게(?) 귀환해서 이때까지 허경환을 괴롭힌 업보를 톡톡히 받고 있는 상태이며 2010년 2월 18일 자 해피 투게더에서는 박성광과는 달리 크게까지는 활약하지 못했다.
2010년 12월 25일,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09년에도 수상이 유력했으나 --[[뿌레땅뿌르국]]을 봤을 때 무언가 이해가 되었다면 기분탓이겠지-- 본인이 개그콘서트에서 신나게 갈구던 [[허경환]]과 그 전해 [[황현희]]에 밀려 우수상을 놓쳤던 [[윤형빈]]이 상을 차지하여 1년을 더 기다린 끝의 결실. 확실히 [[두분토론]]의 화력이 강했다.
* [[8차원 주식회사]]
- 박하나(배우) . . . . 5회 일치
[목차]
|| 2019년 || MBC || [[이몽]] || [[차정임]] || 주연, 방송예정 ||
|| 2012년 || 차가운 체리 || Mr. Crazy ||
|| 7월 10일 || MBC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SOS 해양구조대]] || [* 듀엣 파트너인 [[상큼한 산토리니]]와 한 표차 접전을 벌였으며 마지막에 투표한 [[공찬]]의 선택으로 승부가 갈렸다. 그녀는 가수 활동 때 음이탈을 저지르는 바람에 무대 공포증을 크게 겪은 게 있어서 [[음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나왔음을 밝혔다.] ||
||<|7> 2017년|| 2월 22일 || Mnet || 제6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 || 시상자 || ||
- 병거 . . . . 5회 일치
兵車. 전차(戰車)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채리엇'.
전투용으로 쓰이는 [[마차]]를 뜻하는 말. 좁은 의미의 병거는 고대의 청동기 문명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이후로는 [[기병]]에 밀려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용성을 거의 상실했다.
[[청동기 시대]]의 병거는 여러 마리의 말이 끄는 2륜 마차가 주로 쓰였다. [[마부]]와는 별도로 [[활]]로 적을 저격하는 [[궁사]]가 탑승하였는데, 대개 이 궁사가 병거가 가진 전투력에서 핵심이자 리더를 맡았으며 병거를 탄 전사들은 청동기 문명에서 [[귀족]] 계급을 차지하였다. 전장에서는 빠른 기동성과 돌파력으로 보병을 이끌었다.
그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과 속도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보병이 여러 마리의 말이 끌고 고속으로 이동하는 병거에는 근접하기 어려웠다. 병거에 탑승한 귀족 전사는 노련한 솜씨로 [[활]]을 쏘며 보병을 저격할 수 있고, 설사 보병이 병거에 근접한다고 해도 병거에 탑승한 전사는 병거의 높은 위치와 빠른 속도를 활용하면 유리한 위치에서 폴암류의 장병기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위력적인 병거의 개발과 생산, 운용에는 많은 수의 말의 보유, 마차의 제조와 유지, 전사의 육성 같은 과제가 필요하여 고등한 문명 지역에서만 대규모로 운용될 수 있었다.
- 블랙 클로버/113화 . . . . 5회 일치
* 적뿐만 아니라 아군에게도 어그로를 끄는 잭스. 얌전한 미모사 조차 깊은 빡침을 느낀다.
* 그렇게 있는대로 어그로를 끌더니, 이번엔 아스타에게 한 팀인 모양이니 잘 부탁한다며 악수를 청한다. 어리숙한 아스타는 방금 전 그따위로 나오는 걸 보고도 일단은 그 악수를 받는데, 아니나 다를까 악수를 가장해 클로버 왕국에서 최악의 악취를 자랑하는 "무지개 노린재"를 쥐어준다. 함정. 이 곤충은 일곱 빛깔의 가스를 내뿜는 정말로 극악한 마법생물. 아스타가 뒤늦게 그의 본색을 깨닫지만 잭스는 "얼빵한 얼굴에 텐션만 높고 무식한걸 까발리고 다니는 시끄러운 꼬맹이"라고 더욱더 독설에 박차를 가한다. 말주변 없는 아스타가 받아친답시고 "입 주위에 뭔가 멋있는걸 두른 녀석"이라고 해보지만 칭찬도 욕도 아닌 애매한 무언가다.
이어서 발표된 팀 별로 인원이 나눠진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가 P팀으로 묶였다. 헌데 피차 첫인상이 좋지 않은 입장이다. 유노는 노엘을 "아스타를 따라다니는 촐랑대는 여자"로 생각하고, 노엘은 유노를 "아스타의 소꿉친구라는 점잔떠는 인간" 정도로 치부한다. 이외에 "엔 린가드"라는 인물이 한 팀.
노엘은 1회전부터 껄끄러운 오빠 솔리드 노엘의 팀과 붙게 됐다. 긴장하는 노엘과 대조적으로 솔리드는 "직접 끝장내주겠다"고 즐거워한다. 핀랄도 대진운이 묘해서 1회전만 넘기면 자신의 아우이자 차기당주, [[랜길스 룰러케이트]]와 맞붙게 된다.
* 아스타는 이러다 뭘해보기도 전에 끝장나겠다며 셋이 힘을 합쳐 상황을 돌파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 세 명 중 하나인 잭스가 문제다. 아직 마법이 뭔지도 밝히지 않은 그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코를 골고 있다. 표정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지는 아스타. 좀처럼 열받는 일이 없는 미모사 조차 깊은 빡침을 느낀다.
- 블랙 클로버/117화 . . . . 5회 일치
* [[키르슈 버밀리온]]은 밥맛 떨어지는 나르시시스트였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키르슈의 지휘에 따라 [[매그너 스윙]], [[솔 마론]]이 활약한 결과 C팀이 무난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클라우스 류넷]]은 그 점을 지적하면서 과연 산호의 공작의 차기 단장감이라고 평했다. [[잭스 류그너]] 또한 그를 묘하게 쳐다보지만 딱히 쓴소리를 하진 않았다. 그 실력을 인정해서일까?
* 오빠가 한 없이 부끄럽기만 한 [[미모사 버밀리온]]과 달리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경탄을 금치 못하며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면 예의상으로라도 좋게 대꾸할 법도 한데, 키르슈는 아스타에게만은 가차없었다.
키르슈가 다음에는 아스타 차례라며 지목한다. 그를 "금이 간 그릇"에 비유하며 산산조각 내주겠다고 하는데, 아스타는 그 말을 듣고도 태연히 웃는다. "그릇은 금이 가고 나서야 오래 쓴다"는 관용구를 인용했지만, 그건 그냥 빈곤을 뜻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예전에 시스터가 아스타를 키우면서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인데, 그냥 비유삼아 했던 말을 아스타가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렇게 해서 시작된 시합. 핀랄은 자신이 장담한 것 이상의 대활약을 펼친다. 레오와 하몬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뿐만 아니라 적의 약점을 꿰고 있어 두 사람을 적당한 상대와 대전시켰고 지형도 정확히 파악해 예측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해줬다. 적은 물론이거니와 평소 검은 폭우를 얕보고 있던 하몬 조차도 대단한 공간 마도사이며 왜 지금껏 무명이었는지 몰라한다.
* 이제 시합은 4시합으로 넘어간다. H팀과 G팀의 대결. G팀에는 아스타하곤 악연으로 얽힌 청동 마법의 [[셋케 브론자차]]가 있었다. 취록의 당랑 소속 5등 하급 마법기사. 대부분 튀고 싶어서 안달난 기사들 가운데, 셋케만은 여기에 와서 대후회, 못 올 곳에 왔다는 기분이다. 시합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들이 난무하자 자신감을 상실해 버린 것. 그가 참가한 것도 단장인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가 권한 걸 넙죽 받은 탓이었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5회 일치
* 네르슈는 마론이 접근해 간신히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데, 하층민 노이로제 때문에 제대로 싸울 상황이 아니다.
* 잭스의 독설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만큼 상대의 상태도 가리지 않았다. 아스타의 일격으로 네르슈는 기절. 계속 마력을 빨리도록 그 위에 반마법의 검을 얹어 봉인조치까지 했다. 그래도 잭스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원시적인 함정"에 걸렸으니 기사단이고 부단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라고 빈정거린 그는 "어쨌든 기분 나쁜 나르시스트"라는 원색적인 욕설까지 잊지 않았다. 이 상황을 합작한 아스타 조차 적당히 봐주라고 한소리했다.
가차없는 잭스는 그냥 그 자리에서 함정을 발동시켜서 아예 네르슈를 묻어버렸다. 덤으로 아스타의 단마의 검까지 묻어버렸지만.
네르슈가 그 시절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호되게 깨웠다. 마론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따귀를 때려서 그를 겨우 깨웠다. 잭스가 미리 발동한 함정의 두 번째 말썽. 네르슈에게 접근하는 팀원을 저지하지 못했다. 마론은 골렘으로 단마의 검을 치웠다. 정신을 차린 네르슈는 자기 아름다운 얼굴을 때린 것부터 따졌으나 사실 그 전부터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계속 하층민에서 당한 탓에 노이로제 상태인 그는 마론에게도 하층민 아니냐고 물었다. 마론은 평민이긴 했지만 그런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마법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분 차이를 넘어서 싸우라고. 그도 구태여 남자를 구해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언니를 위해서, [[샬롯 로즈레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마론은 샬롯이야 말로 살아갈 희망을 준 사람이며 네르슈에겐 그런 존재가 없냐고 물었다.
- 블랙 클로버/63화 . . . . 5회 일치
* 베토의 마력은 야미 스케히로 조차 초월
* 하지만 마음에는 들었는지 "상을 주마"라며 짐승마법 "치타 차지"와 짐승마법 "베어 클로"로 지오를 공격
* 대신관은 해저신전에서 가장 강한 지오 조차 간단히 당하는걸 보고 경악한다.
* 그러나 대신관의 마법은 규칙대로 게임을 끝내야지만 해제되고 본인 조차 마음대로 풀 수 없다.
* 야미는 무명참으로 베어버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이미 바깥에선 베토의 부하가 공간마법 "이차원의 구체"로 막고 있다.
- 서신애 . . . . 5회 일치
[목차]
[[1대 100]] 476회 후반전 방영분에서 1인으로 참여했으며 5,000만원을 타게 되면 등록금 지불하는 데 쓰고 싶고 차를 사서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녀는 뛰어난 실력, 적절한 시기에 사용한 찬스, 그리고 모르면 3번을 찍겠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푼 결과 8단계에서 최후의 3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여기서 1, 3번을 고민하다가 3번이 너무 많이 나와서(선지분배 2:0:5) 정답 3번 대신 1번을 고르는 바람에 적립금 616만원과 우승 상금 5000만원 모두 [[안드로메다]]로......(최후의 3인 결과를 먼저 공개)
[[문화방송|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6년 5월 29일 방영분에서 [[복면자객]]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으며 1라운드 상대인 [[외줄타기 인생 왕의 남자]]와 같이 어쿠스틱 콜라보의 '그대와 나 설레임'을 불렀다. 그 뒤 [[여전사 캣츠걸|가왕 출신]]의 뮤지컬 곡인 <살다보면>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그녀는 이 출연으로 복면가왕에서 가장 짧은 가명의 참가자 6인 중 1인(4글자), 당시로는 최연소 참가자의 기록(17세 222일)을 보유했으며 그 뒤 전체 최연소는 73차 경연에 나온 [[한 뚝배기 하실래예 로버트 할리퀸]]이다.[* 81차 경연 기준으로 최고령 참가자는 [[얼굴되지 노래되지 꽃돼지]]며, 여성 최고령 참가자는 [[문어...지지 않아요... 점쟁이 문어]]다.]
|| [[2014년]] || 제19회 국제 청소년 차(茶) 문화대전 || 고등부 대통령상 || ||
- 서지석(배우) . . . . 5회 일치
[목차]
백화점에서 주차요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당시 [[윤손하]], [[한채영]], [[원빈]] 등이 소속되어 있던 사무실의 매니저에게 수 차례 길거리 캐스팅되어 데뷔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8년]] [[3월 4일]], [[복면가왕]]에서 [[이거 그린 라이트인가요 마스크맨]]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성대 매트릭스]]와 미스미스터의 '널 위한 거야'를 불렀으며 2라운드 준비곡은 하동균의 '그녀를 사랑해줘요'였다. 그 뒤 74차 경연에서 판정단으로 참여했다.
* 2018년 [[복면가왕]] 72차 경연 - 가명: [[이거 그린 라이트인가요 마스크맨]]
- 송주훈 . . . . 5회 일치
[목차]
니가타에서의, 실질적인 데뷔 시즌. 니가타에서도 송주훈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는지 [[등번호]]로 팀의 핵심 [[센터백]]들이 주로 받는 4번을 받았으며, 시즌 초에는 부상 완치에 집중하느라 출장하지 못하다가 완치된 후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자신이 상위 리그에서도 실력이 통하는 선수임을 보여주었다. 다만 본인의 활약과는 별개로 소속팀인 니가타가 시즌 내내 꼴찌를 차지하다가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31795869929652224|강등이 확정되면서]] [[J1리그]] 경험은 1년만에 끝났고, 이전 소속팀이었던 미토와 대표팀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다음 시즌은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니가타와 재계약을 맺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51257265041887232?s=17|#]] [[아시아 쿼터제]] 폐지로 인해 이적해봤자 [[벤치워머]] 신세일 것이 뻔한 [[중국 슈퍼 리그]]로 가느니 일본에서 주전으로 뛰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2010년 [[나이키]] U-16 친선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2012년 [[발렌시아]] U-20 친선 대회 때 故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은 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왔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했고,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하차한 후 출범한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2015년 [[킹스컵]],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꾸준히 주전 센터백으로 발탁되어 [[뿌뿌뿡|팀의 수비를 책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있던 4개국 초청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올림픽 직전 입은 발가락 부상으로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의 대체자로는 [[김민태]] 선수가 발탁되었다.
한편 성인 대표팀 경험은 없었는데, 前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백]]으로 [[김기희]], [[김영권]], [[김주영(1988)|김주영]], [[장현수]] 등의 [[중국 슈퍼 리그]] 소속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인지 [[J리그]]에서 뛰는 송주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같이 J리그에서 뛰는 센터백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이 몇 차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긴 했으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슈틸리케가 떠난 후에 새로 출범한 [[신태용호]] 체제에서 커리어 최초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http://m.sportsseoul.com/news/read/554778?refer=facebook|#]] 이후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U-23 대표팀에서도 중용했던 송주훈이 올림픽 직전의 부상으로 안타깝게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 겸, 성인 대표팀에서의 기량도 확인해볼 목적으로 이번 대표팀에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KoreaFootballTeam/photos/pcb.10155941753318836/10155941751838836/?type=3&theater|#]] 그리고 10월 1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대패를 당하게 되는데 첫번째 실점이 되는 수비에 기여하는둥 데뷔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수비 실력으로 신태용 감독 눈 밖에 나게 되고 다음번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하게 된다.
- 슈퍼히어로 . . . . 5회 일치
슈퍼히어로 장르가 다른 액션물, 배틀물과 차별화 되는 점은 슈퍼히어로인 주인공은 사회(사회는 도시, 세계, 때로는 우주가 되기도 한다.)를 악으로부터 수호하는 '[[영웅]]'이라는 점이다. 즉, 슈퍼히어로 장르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건 사회의 영웅으로서 활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 특성상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사회는 일반적인 경찰이나 군인이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미치광이 과학자가 거대한 로봇을 만들어 도시를 공격한다던가, 사악한 목적을 가진 비밀결사가 암약한다던가, 파괴적인 외계인이 침공해온다던가, 엄청난 괴력을 가진 슈퍼 빌런이 날뛴다던가. 그러다보니 경찰이나 군대조차 버거워지고, 그러기에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부패해서 빌런은 물론 경찰, 군대와 싸우게 되기도 하며 이럴 경우 슈퍼히어로는 부패한 권력에 맞서서 무고한 약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혁명가이자 자유의 투사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단순한 이야기가 많아서 관점에 따라선 유치하고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슈퍼히어로 물은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였는데, 갈수록 단순한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아니라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지거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이야기들을 내놓았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슈퍼히어로의 존재의의, 슈퍼히어로의 갱니적인 내면 갈등 등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리하여 역으로 독자에게 다양한 생각할 점을 던지는 깊이있는 작품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실사영상매체에서 히어로들의 힘에 대한 묘사력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초능력에 대한 묘사만이 아니라 격투같은 액션도 마찬가지. 다만 딱히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5회 일치
Sid Meier’s Ace Patrol. 제1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을 배경으로 한 턴제전술게임. 플레이어는 4인 편대를 지휘해 서부전선의 여러 전투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탄약을 긴급 운송하는 열차를 보호하는 임무.
아군의 신형 전차가 급유하는 동안 적 편대의 공격에서 지켜내는 임무.
급유중인 적 전차부대를 공격하는 임무.
지뢰를 운송중인 적 기차를 공격해 파괴하는 임무.
- 식극의 소마/185화 . . . . 5회 일치
* 아리스는 필요없다며 "어차피 다 같이 3차시험을 통과해서 시험회장에서 만날 텐데 그때 불평해주면 된다"고 말한다.
* 냉정한 말투 때문에 차가운 사람인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딸바보에 애처가.
* 소마는 선발시합 때 처럼 서로 먹어서 비교해보자고 제안하고 하야마는 뭘하든 실력차이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잘라말한다.
* 쿠가는 어차피 어제밤 이후로 무슨 말을 더 해준다고 요리가 나아지진 않을 거라며, 소마 자신의 역량에 달렸다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94화 . . . . 5회 일치
* [[나키리 센자에몬]]은 대결장소는 "레분토"섬으로 결정하고 세세한 사항은 차후 논하기로 한다.
[[사이바 죠이치로]]는 "거래재료"는 있다며 [[나키리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다.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런 룰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편 [[유키히라 소마]]는 대체 아버지가 말한 "거래재료"란게 무엇인지 신경쓴다.
* 하지만 아자미는 차갑다. 이미 [[나키리 센자에몬]]에게서 총수 자리를 빼앗고 계획의 90%를 완료한 상황. 그런 거래에 응할 "메리트"가 전혀 없다. 지금 반역자들을 처리하는 것도 "뒷처리"일 뿐, 계획의 완성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자 죠이치로는 뜻밖의 미끼를 던진다.
* 아자미는 이 떡밥에 보기 좋게 걸려든다.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 일이 결정되자 센자에몬이 결전의 장소는 최종시험 장소였던 "레분토" 섬으로 하고 세세한 사항은 차후에 협의하는 것으로 정리한다.
* 열차로 돌아온 소마 일행. 죠이치로는 식당 칸의 바에서 혼자 한 잔하고 있다. 그때 소마가 찾아와 진짜 유키히라를 걸 건지 묻는다. 소마는 지금껏 몇 년이나 가게를 비워놓고 이젠 또 그 가게를 식극에 건다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죠이치로는 설마 이길 자신이 없는 거냐고 몰아세우고 소마는 그렇건 아니라고 대꾸한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5회 일치
* 반역자 군단의 최후의 카드는 놀랍게도 [[잇시키 사토시]]. 십걸의 자리를 잃었다곤 하나 여전히 고학년으로서 이런 자리에 나올 필요가 없는 그였다. 하지만 후배들을 돕기 위해 매우 정상적인 차림으로 레분토까지 날아왔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은 잇시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한다. [[사카키 료코]]는 이 승부에서 지면 잇시키까지 퇴학처리 되는거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잇시키는 귀여운 후배들을 위해 그런건 싸우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일동을 감동시킨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탈락한 반역자들에게 전용석을 안내하는데, 어느모로 보나 우리다. 카와시마는 어차피 보러 올 수도 없는 입장인데 [[나키리 아자미]]의 자비로 올 수 있엇던 거지 불평하지 말라며 반역자들을 처넣는다.
* 각 대결은 메뉴가 적혀진 제비를 뽑아서 결정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첫 대결의 메뉴선택을 상대인 [[키노쿠니 네네]]에게 양보한다. 하지만 그녀는 공정한 승부를 원한다며 소마 쪽에게 우선권을 준다. 그녀는 속임수를 싫어하는 성격으로 같은 십걸인 에이잔도 부정한 짓을 저지른 녀석이라며 경멸한다. 관중석에서 반역자를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것도 "더러운 야유는 싫다"고 차갑게 노려보는데 어쩐지 관중석의 남학생들은 그 차가운 시선이 더 좋다며 심쿵한다. 그리고 쿠가는 왠지 구경하는 주제에 "저 땋은 머리는 언제나 날이 서 있고 오늘은 아마도 생리"일 거라고 도발해댄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메뉴 선정. 마치 조작이라도 가해진 것처럼 최악의 카드가 뽑혔다. 정적에 휩쌓이는 대회장. 반역자 측은 물론 센트럴을 응원하는 관객들과 네네 조차 얼어붙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환호성. 카와시마와 관객들은 벌써 네네의 승리가 정해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한편인 잇시키와 메기시마는 태연하게 카드를 뽑을 뿐. 잇시키는 "변함없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뜻모를 소릴하고 메기시마는 흥미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헤프닝처럼 시작돼버린 연대식극.
- 식극의 소마/214화 . . . . 5회 일치
* 반면 [[유키히라 소마]]의 소바는 풍미가 살아있고 전체적인 맛이 네네의 것보다 앞섰다. 차이를 납득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네네.
십걸 네네가 흔들리자 관중들은 더이상 야유 조차 퍼붓지 못한다.
>실온이야. 유키히라 군은 실온에 의한 영향을 알아차린 거야.
이스트와르도 그의 설명에 공감하며 온도는 물론 습도 등, 이 회장의 환경 자체가 소바 요리에 부적합한 장소였다고 인정한다. 안은 네네가 만든 구할 소바와 벚꽃 새우 튀김은 옅고 섬세한 향이 얽히는 맛을 즐기는 것이라 이 작은 차이가 치명적이었지만, 소마는 소바향 자체도 강한 데다 철냄비에 굽는 공정으로 기름과 불맛이 내는 향기까지 더 해 풍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조리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소마. 네네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소 잇시키는 그런 속내를 꿰뚫어봤다. 이젠 네네도 그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먹는 사람을 위해 작은 변화까지 알아차리고 임기응변하는 대응한다. 그것이 유키히라 소마의 힘.
- 식극의 소마/217화 . . . . 5회 일치
* 카와시마는 새로운 십걸의 5석을 차지한 강자 [[카부라기 사치코]]를 소개한다. 2학년으로 배틀로얄에서 3학년들을 전부 꺾고 올라온 강자.
그래도 시제품에 자신도 없는 술을 멋대로 징발당한 [[사카키 료코]]는 "아직 화가 안 풀렸다"고 츤츤댄다. 이 언쟁을 들은 [[안(식극의 소마)|안]]은 직접 잇시키에게 료코의 시제품을 시음하고 싶다 청한다. 당혹해 하는 료코. 그런데 안은 그 맛을 보더니 "당신이 이 식극으로 지키고 싶은게 뭔지 이해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음식을 WGO가 공명정대하게 심사하겠다 재차 공언한다.
* 어쨌든 1라운드는 반역자팀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이대로 1승을 더 추가할 가능성도 타진한다. 소마도 거기에 호응해 그렇게만 된다면 꽤 큰 차이를 내는 거라고 하는데, 이 좋은 분위기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MC인 [[카와시마 우라라]]다. MC 주제에 마이크까지 내던져 놓고 호쾌한 뻐큐부터 들이민다. 그녀는 반역자팀의 전승 가능성을 "그렇겐 안 된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연대식극은 각 대결 대결에서 한두판 앞서 가도 최종승리하고는 상관없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센트럴에 넘어간 관중들이야 이 드립에 크게 호응하지만 반역자팀의 분위기를 죽이진 못했다. 쿠가가 태연하게 "그러다 얼굴에 주름 생긴다"고 극딜을 넣자 이성을 놓고 Fuck을 연발, 역으로 도발 당한다.
카와시마가 전승이 불가능하다고 한 이유는 신 십걸[[카부라기 쇼코]]의 존재 덕이었다. 그녀 또한 2학년이나 신 십걸을 정하는 배틀로얄에서 3학년 선배들을 연거푸 쓰러뜨리며 5석의 자리를 차지한 강자. 이렇게 카부라기에 대한 절찬을 쭉 들은 쿠가는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에 감사를 표한 뒤 말한다.
* 순살. 카와시마가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카부라기의 순살. [[메기시마 토스케]]가 방금 전 잇시키의 압승이 무색할 정도로 순살시켜 버렸다. 요리장면은 커녕 대사 조차 없는 안습한 패배.
- 식극의 소마/226화 . . . . 5회 일치
* 아직 심사가 시작된 것 조차 아니건만 반역자 팀은 벌써 축제 분위기.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성공적인건 사실이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그것은 미마사카가 어레인지한 마지막 한 조각의 초밥에 달렸다. [[나키리 에리나]]와 소마는 친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말없이 승부를 주시한다. 소마는 항상하던 대로 까불거릴 만도 하건만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데.
* 메기시마의 음식도 주재료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 심지어 "아프리칸 라면"이란 컨셉 조차도 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라면으로 보일 뿐. 게다가 주제인 고추가 어디에 쓰인 건지도 알 수 없다.
* 반명 "녹차"를 주제로 대결한 쿠가와 츠카사는 각기 컨셉이 뚜렷했다. 쿠가는 흑초를 사용한 탕수육 풍의 요리. 하지만 장식이나 플레이팅은 고급 이탈리아 음식을 연상시키는 세련미가 있었다. 과연 쿠가는 자신의 주전공인 사천요리로 살리기 어려운 차의 맛을 어떤 식으로 요리했을까?
* 츠카사의 음식은 4종류의 샤베트처럼 보이는 차가운 요리. 뜨거운 중화요리인 쿠가의 요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요리도 은은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는데. 그 이색적인 모습부터가 반역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 식극의 소마/227화 . . . . 5회 일치
* 쿠가는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라는 프랑스 소스를 이용해 발사믹 식초와 훈제 간장으로 탕수육 고기의 맛을 정리해 녹차의 향을 극대화했다.
* [타도코로 메구미]]는 자기가 심사받는 선수들보다 더 긴장해서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짓을 반복하고 있다. [[요시노 유키]]나 [[사카키 료코]]도 같은 심정. [[유키히라 소마]]는 비교적 차분하게 선전을 기원하는 중.
그런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안은 그렇게 주장했다. 좌우간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격찬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흑초 탕수육"이었다. 흑초 소스가 발라져 장식물처럼 반짝이는 탕수육. 그걸 먹는 순간 숨겨져 있던 녹차의 강렬한 향이 시야를 신록으로 물들이는 극상의 맛. 관건은 흑초 소스다. 발사믹 소스에 미마사카가 준 훈제 간장을 함께 졸여 향을 극대화했다. 쿠가는 기존 탕수육의 틀을 철저히 파괴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텁텁한 뒷막과 기름기를 신맛과 감칠맛으로 잡았다. 그 자리를 녹차의 향으로 채우면서 돋보이게 만들어 단연 요리의 주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 쿠가는 츠카사에게 패배한 날로부터 오늘까지, 자신의 요리를 바꾸기 위해 뼈를 깎는 시간을 보내왔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녹차라는 테마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 온주완 . . . . 5회 일치
[목차]
|| 2012년 || [[tvN]] || [[일년에 열두남자]] || 차진오 || ||
||<|3> 2014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단막 2014 시리즈 “부정주차” || 노정도 || ||
|| 2017년~2018년 || [[MBC]] || [[밥상 차리는 남자]] || 정태양 || ||
|| 2018년 || 제11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남자 우수연기상 || 밥상 차리는 남자 ||
- 운전기사 . . . . 5회 일치
[[자동차]] 등을 [[운전]]하는 사람. 다른 수식어 없이 '운전기사'라고만 하면 보통 승용차 운전기사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 운전기사라는 말이 붙는 직업으로는, [[대리 운전 기사]], [[택시 운전 기사]], [[화물차 운전 기사]] 등이 있다.
== 승용차 운전기사 ==
승용차 운전을 대행해주는 직업.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 많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보통 [[높으신 분들]]이 고용한다. [[회사]]에서 대리 고용해주거나, 개인적으로 고용하기도 한다.
- 원피스/837화 . . . . 5회 일치
* 루피의 공격은 크래커의 방패를 뚫지 못하고 루피는 압도당한다. 나미는 빅맘의 부하 조차 루피에게 우위를 점한다며 경악
* 카포네는 그 과정에서 빅맘에게 복속, 가족이 되었으며 나머지는 빅맘의 얼굴 조차 보지 못했다.
* 최근 2년 동안 캡틴 키드, 스크래치 아푸, 갱 벳지, 괴승 우르지가 차례차례 빅맘의 영역을 침번했다.
* 하지만 어차피 "죽여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진 판이라고 말하는 파운드.
- 원피스/840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상디가 아무리 노력해도 차이는 줄어들지 않는다.
* 니디는 안면이 구부러질 정도로 걷어차이고 날아간다.
* 전격이 추가된 무릎차기. 쓰러지는 상디에게 전격을 감은 주먹도 날린다.
* 욘디가 거북이를 걷어차버리자 상디가 화를 낸다. 그러나 욘디에게 철저하게 보복 당한다.
* 이러한 차이를 이상하게 여딘 저지는 조사를 하게 한다.
- 원피스/852화 . . . . 5회 일치
* [[빈스모크 레이쥬]]는 의무실에서 정신을 차리나 기억이 혼란한 상태. [[상디]]가 경비를 때려잡고 침입해 레이쥬를 확보하고 사정을 설명한다.
나미는 징베가 이 섬에 있는 까닭을 묻는데,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태양 해적단이 빅맘 산하에 들어갔으며 지금 자신의 행동은 "모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성 내에는 죄수도서실의 파란이 전파되며 병력들이 몰려온다. 루피는 전투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데다 공복까지 겹쳐 시들시들한데 [[샬롯 푸딩]]이 상디를 속이고 있는 걸 전해줘야 한다며 억지로 일어나 죄수도서실을 박차고 나선다. 징베와 나미는 성내엔 강자가 쫙 깔렸다고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레이쥬는 상디는 그냥 밀집모자 일행과 도망치라고 말한다. 상디는 "발라티에" 의 제프는 어떻게 하냐고 반박하는데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다 죽을 뿐이니 그건 도망치면서 생각하라고 대답한다.
그녀는 자신에게도 가혹한 "제르마"의 굴레를 씌운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다며 상디가 차고 있는 수갑은 자신이 가짜로 바꿔치기 했다고 알려준다. 이제 도망치지 못할 이유가 있냐며 상디를 다그친다.
>정신차려 상디!
- 원피스/871화 . . . . 5회 일치
* 시저 내부의 탑승자들이 환호한다. 제르마 오덕인 괴총 비트는 눈 앞에서 펼쳐지는 필살기 난무에 어쩔 줄을 모른다. 언제나 시저를 쓰레기 취급하던 [[나미(원피스)|나미]]나 [[쵸파]], [[브룩]] 조차 시저를 응원한다. 결국 쓰레기라고 부르지만. 시저가 새삼 일행을 위해 헌신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제 한 몸도 걸린 일이라 사력을 다한다.
루피가 기어4로 주먹을 날리자 빅맘도 팔에 무장색 패기를 둘러 맞부딪힌다. 패기와 패기의 격돌. 그 여파로 주위를 번잡스럽게 하던 샬롯가의 조무라기들이 쓸려간다. 루피는 약속대로 딱 한 방만 주먹을 날린 뒤 상디에게 회수된다. 어차피 저 한 방에 기어4의 힘을 다 써버려 늘어진 상태다. 레이쥬가 이들의 호위로 따라붙는다.
>불과 66일의 꿈의 흔적에 남겨진, 고향의 땅도 밟지 못할 망령들에게 마주할 얼굴조차 없다!
* 이치디가 카타쿠리에게 생포. 루피 일행은 [[샬롯 스무디]]와 [[샬롯 다이후쿠]]에게 제압됐다. 저지는 정신을 잃었고 욘디와 니디는 빅맘의 손아귀에 인형처럼 붙들려 있다. 전부 당했다. 벳지 조차도 "여기까진가"라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징베]] 등은 이렇게 된 바엔 자신들도 싸우러 나서겠다고 하지만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빅맘은 이미 승리를 확정하고 일행을 처분하려 한다.
- 원피스/873화 . . . . 5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는 [[몽키 D. 루피]]가 장차 빅맘 [[샬롯 링링]]에 위협이 될지 모른다 보고 반드시 자기 손으로 목을 따겠다 다짐한다.
* 물론 카타쿠리도 치가 떨리는 상대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루피를 상대했던 카타쿠리는 그가 장차 빅맘에 위협이 될 존재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목을 거두겠다, 그런 생각이었다.
* 자초지종을 물을 것도 없었다. 빅맘의 폭주. 또 식탐을 부리고 있다. 그 가차없는 먹부림에 이미 [[샬롯 오페라]]가 희생 당했다. 넋이 나가서 빅맘 손아귀에 인형처럼 들려있다. 케이크를 찾으며 보이는 건 전부 파괴하고 입에 쑤셔박는 빅맘. 괴수가 따로 없다. 분명 웨딩 케이크를 못 먹게 된게 세삼 분해서 저럴 것이다. 몬도르가 눈치 빠르게 오페라가 당한 걸 보고 누구도 빅맘 주위에 다가가지 말라고 주의시킨다.
나미는 일행을 루피가 상디를 기다렸던 그 벌판으로 인도했다. 거길 가로질러 유혹의 숲을 돌파하는게 최단 경로. 루피는 그 숲에 또 들어가도 될지 걱정한다. 그런데 전방을 보니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에 탈것으로 애용했던 킹 바움이었다. 그런데 "레이디 트리"라는 여자 나무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의 간호를 받으며 상처를 치료하던 차였다. 루피와 나미는 킹 바움을 금방 알아봤다. 물론 킹 바움도 그들 얼굴을 알아봤지만,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반가워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추격대 조차 추월하며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하늘 위였다. 어느새 일행의 머리 위로 눈이 뒤집힌 빅맘이 덮쳐오고 있었다. 일행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 유동근(배우) . . . . 5회 일치
[목차]
연기력은 한국 배우 중에서도 순위권이고, [[김명민]]을 제치고 '한국의 멜 깁슨'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남자. [[사극]] 연기(성우로 비유하면 [[이정구]], [[신성호(성우)|신성호]]를 연상시키는 배역), '아내'에서의 기억을 잃은 순박한 이중 결혼한 남편 역 등을 보면 정말로 연기를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 있으며 미중년이 뭔지 보여준다.
유동근은 '용의 눈물'로 KBS 연기대상을, [[전인화]]는 '여인천하'로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남편은 왕으로, 아내는 왕비로 대상 차지한 부부.''' 그것도 '''[[태종(조선)|태종]]'''과 '''[[문정왕후]]'''라는, '''[[조선]] 역사상 최강의 권력을 누린 왕과 왕비''' 역할이다.
[[놀러와]]에 나와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쌈박하다'라는 발언을 즐겨하며 약한 남자 기믹을 잘 소화해냈다. [[유재석]]이 방송이 끝나갈쯤에 "제가 아는 왕은 한 명 사라졌지만 옆집 동근이 형을 알게 되었네요"라고 발언. [[공처가|실제 생활에서도 아내에게 쥐어 잡혀 산다고 한다.]] 아내가 한번 째려 보면 바로 알아서 긴다고... 다들 알겠지만 아내가 [[신득예|해더신]]이다. 한번은 밤 늦게 술에 취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전인화에게 음식 준비를 포함한 손님 접대를 시키며 허세를 부렸고 그 다음날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도망가듯이 집 밖으로 나갔다고 하며 같은 실수를 할까봐 한달동안 술은 입에도 못 댔다고 한다.
정도전이 종방한 후 정말 짧은 휴식기를 가지고 바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하였었다. 바로 전작에서 박력 넘치는 무골 이성계를 연기했던 것과 정 반대로 여기서는 나이들어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자식 걱정에 마음을 쏟는 순박한 아버지 [[차순봉]] 역할로 나와서 정도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보면 엄청난 괴리감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유동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과 그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야말로 1년 내내 KBS 드라마의 주역으로 미칠듯한 활약을 했고 그 열연의 결과로 2014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 3번째 대상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이번 대상을 수상한 당시 나이 만 58세로 [[김혜자]]의 뒤를 잇는 최고령 연기대상 수상자로 남자 배우 중에선 두번째로 최고령 수상자.[* 2014년 수상 당시에는 남자배우 중 최고령 수상자였으나, 2017년에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열연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의 대상 수상으로 그 기록이 깨졌다.(수상 당시 만 64세.)]
- 유인촌 . . . . 5회 일치
[목차]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 [[문학구장]]에서 개막전 시구를 두 차례 한 적이 있다.(2008, 2009) 2008년에는 날씨 때문에 관중이 적긴 했지만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것에 비해 2009년에는 만원 관중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받았다. 왜냐면 아래의 찍지마 X발 때문에...
뒤에서 말리고 있는 사람은 [[신재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2010년]]에 유인촌의 뒤를 이어 장관이 될 뻔 했으나[* [[청와대]]에서 지명.]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등이 밝혀져서 후보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SLS조선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가 선고되었고, [[2013년]], [[대법원]] 판결에서 [[징역]] 3년 6월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차관들이 말리고 회의장을 나가면서 또 '''"XX, 성질이 뻗쳐가지고 정말... [[씨발|X발]]!"'''이라고 욕설을 했다.[* 일부 방송사에서는 삐~ 처리를 하거나 아예 [[소리]]를 안 내보냈다. 다만, 그냥 그대로 내보낸 방송사도 있었다.] 당연히 유인촌 장관은 [[구설수]]에 오르면서 푸짐하게 욕을 먹었고, 더불어서 유인촌을 데려온 [[MB]]도 싸잡혀서 [[세트]]로 욕을 무진장 먹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유머와 합성물의 소재가 되면서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
- 유태웅(탤런트) . . . . 5회 일치
[목차]
|| [[2002년]] || [[MBC]] || [[황금마차(드라마)|황금마차]] || || ||
|| [[2017년]] || [[마차 타고 고래고래]] || 모터사이클 남 || 우정출연 ||
* 골프와 스키와 수영과 검도에 취미가 있으며, 카레이싱도 수준급이고 아마추어 복싱 헤비급 신인왕을 차지했다.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한다.
- 은혼/604화 . . . . 5회 일치
[[은혼]] 604훈. '''끈질기다와 집요하다는 종이 한 장 차이'''
* 노부메 조차 숨을 죽이고 긴토키는 여기엔 스승도 제자도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 아무리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나며 차츰 일행을 궁지로 몬다.
* 긴토키는 히츠기를 뿌리치며 다른 불사신 군단의 공격까지 막아내야 하기 때문에 점차 수세에 몰린다.
* 노부메에게 뒤를 맡기고 퇴각하던 가구라와 신파치도, 자아가 사라진 불사신 군단 조차도 행동을 멈추고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 은혼/606화 . . . . 5회 일치
* 야마자키 사가루 조차 각성하여 새로운 힘을 뽐내는데 해결사 일행은 아무래도 뉴 진선조에 적응하지 못한다.
* 해방군의 전차 부대를 쓸어버리는 제 3세력.
* 그들은 행방군 전차를 탈취해 역으로 해방군을 공격하고 있다.
* 차를 세워두고 길을 막고 있길래 딱지를 끊고 사정청취 중이라고 말하는 이들.
* 그는 머리띠를 풀어서 던지는데 놀랍게도 땅이 움푹 패일 정도의 중량. 너무나 강해진 힘을 제어하기 위해 차고 있었다고 한다.
- 은혼/610화 . . . . 5회 일치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가 발사된 직후부터 해방군의 모든 기계화 병력이 정지된다. 이는 지상군만이 아니라 상공의 함대까지 겪는 현상. 통신조차 차단되고 함선들은 고도를 유지할 수도 없게 돼서 서서히 추락한다. 이것이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의 진짜 목적. 이것은 포격을 위한 대포가 아니라 기계를 죽이는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나노머신 병기였던 것이다.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의 정비 작업을 하던 사카타 킨토키는 주저없이 그 역할에 자원한다. 금혼 사건 이후로는 쭉 겐카이 공방 지하에서 정비업무만 맡고 있던 듯 하다. 이런데서 "나사"만 돌리던 일이 질력난다며 즐겁게 자원하는데 겐카이 영감은 무슨 임무인지 이해는 하는 거냐고 묻는다. 뜻밖에도 킨토키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 않으면 세계가 끝나지". 킨토키는 어차피 끝나는 거라면 어떻게 끝내는게 나을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싸우는 상대는 해방군이 아닌 사카타 긴토키. 그가 구하려는 세계를 한 발 앞서 구해낸다면 그거야말로 자신의 복수가 될 거라고 말한다.
*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가부키쵸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해방군 함선이 추락하는걸 발견한다. 긴토키는 무전으로 모든 기계를 다 파괴할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겐카이 영감은 무전을 꺼버린다. 이 포격으로 촉발된 사태를 누구보다 이해하는건 그 자신이다. 그는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유지하기 위해 버티다 하나씩 쓰러지는 기계들을 바라본다. 그는 차라리 원망이라도 해보라고 생각하지만 기계들은 묵묵히 할 일을 다할 뿐이다.
* 킨토키는 그들이 할 수 있겠냐고 미심쩍은 말투로 말하지만 타마는 "칙칙하던 금빛을 세계의 절반을 구해낼 정도로 빛나게 만든 사람들"이라며 틀림없다고 답한다. 그 말을 듣고 킨토키는 어차피 해결사가 한 번 구해준 목숨이미 맡아주겠다고 말한다.
- 은혼/614화 . . . . 5회 일치
[[은혼]] 614훈. '''차남은 잊혀지기 마련'''
*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그의 생존과 정체를 믿기지 않아 한다. 그를 보좌했던 가신 단 조차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바루카스는 그를 설득하며 칭코의 크기 같은 걸로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단은 바루카스는 이미 죽었고 작은 칭코파를 혼란시키려는 망령이나 다름 없다고 사격하라 명하지만 부하들은 이미 동요하고 있다. 단이 재차 사격을 가하라고 하니 부하들은 이렇게 말한다.
* 단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엘리자베스, 아니 드라고니아를 쏴버리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드라고니아는 구두룡섬이란 필살기를 사용해 이들을 쓸어버린다. 그야말로 아홉개의 귀두--결국 귀두했어 지금?--를 가진 구룡의 이름에 걸맞는 기술. 네스의 이같은 해설에도 하타 황태자는 구룡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술 아니냐고, 그냥 쓰레기 용섬이 아니냐고 의심한다.--귀두룡섬이겠지--
방금 설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하타 황태자는 대체 그 설명을 어떻게 해야 지금의 형태가 되냐고 따진다. 그러나 칭코만능주의자 네스는 아무튼 칭코가 크고 드라고니아 본인이라니까 됐지 않냐며 콧방귀도 뀌지 않고 눈 앞의 엘리자베스를 차기 국왕으로 떠받든다. 뒤늦게 소동을 듣고 달려온 부하들. 하타 황태자는 이 개판을 보고 한 마디 해달라고 하지만 부하들은 사정도 모르는 주제에 칭코만 보고 그쪽에 붙어 버린다. 결국 이놈의 종족은 칭코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 은혼/629화 . . . . 5회 일치
소요 공주는 해결사가 두고 간 보디가드, [[사다하루]]가 있어 괜찮다며 그녀에게 취침을 권한다. 그런데 문제의 보디가드가 공주의 잠자리를 척하니 차지하고 꿀잠을 때리고 있다. 노부메가 그 꼴을 보고 발끈하는가 싶더니 한술 더 떠서 사다하루의 폭신폭신 모피 위에 걸쳐서 꿈나라로 출발해 버린다. 온실 속 화초인 공주님은 이런 하드한 보케질 난무에 영 적응이 어렵다.
게다가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고 있어서 신파치가 뛰면서 조금 흔들거리자 가차없이 신파치의 머리 위로 토악질을 퍼부어댄다. [[가구라]]는 마신거 같진 않지만 잠에서 헤어나질 못해서 [[야마자키 사가루]]가 질질 끌고 가고 있다.
히지카타는 전시에 토할 정도로 퍼마시는 놈이 어딨냐고 깐다. 사실 긴토키도 라스트 보스 직전의 마지막 세이브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푹 쉬고 풀회복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독늪에서 뒹굴거리다 상태창이 녹색으로 물들어버린 판이었다.
일행은 너무 퍼마셔서 하반신이 못쓰게 된 책임자들을 전부 버린 채 다시 추적에 나선다. 히지카타가 다 너네들이 퍼마신 탓이라고 돌리는데 긴토키는 추리가 틀렸으니 곱창을 꺼내라고 응수한다. 히지카타는 그런 논리라면 오키타도 할아버지를 데려와야 하지 않느냐고 방어한다. 오키타는 어차피 자기 할아버지는 옛날에 죽었으니 히지카타도 죽어야 한다며 패드립을 감수하고 히지카타를 공격한다. 이젠 추리도 뭣도 아니게 된 초딩 말싸움. 보다 못한 신파치가 그딴 소리나 할 때가 아니라고 중재한다.
>왜냐하면 나 조차 어떻게 멈추는지 모르거든.
- 은혼/636화 . . . . 5회 일치
* "진자 야토"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노사에 대항해 그 야토를 수천년 동안 지켜봐온 어머니 [[쿄우카]]의 피를 가지고 있다 응수하는 [[카무이(은혼)|카무이]]. 카무이가 노사를 막는 동안 쿄우카의 피를 이은 또다른 자식 [[가구라]]가 노사의 뒤를 노린다. 가구라가 노사의 머리를, 카무이가 고간을 걷어차는데.
* 공격이 먹히지 않지만 가구라가 지지 않고 난타를 가하는데 노사는 이번에도 어느 순간 몸을 줄여서 빠져나가 버린다. 그리고 가구라의 발차기는 뒤에서 접근하던 카무이를 멋지게 명중시키는데. 일단 의도한 공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구라가 미안하다 사과한다. 카무이도 코피가 터졌지만 웃는 얼굴로 "신경쓰지 마"라고 훈훈하게 답해주는가 했는데.
*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도 이 바보남매는 노사는 재쳐놓고 서로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고 있다. 실수인데 이렇게까지 하냐는 가구라와 발목이나 잡는다고 디스하는 카무이. 서로 "죽거나 물러나라"며 치열한 접전으로 치닫는다. 부관인 아부토만 속이 터지는 상황. 이 한심한 작태에 그렇게 혈통드립을 쳤던 노사 조차도 "너무 오래된 혈통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한다.
* 오빠의 전술을 이해한 가구라가 곧바로 응용한다. 가구라는 다시 노사의 후방을 향해 뛰어드는데 노사는 이정도의 정직한 기습에는 이골이 난 인물이다. 기공을 오른발로 옮기면서 돌려차기로 반격하는데, 이번엔 가구라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 발을 밟고 반대편으로 넘어간 가구라. 텅 빈 머리통이 목표다.
* 그러나 지나치게 방어에 의존한 금구슬의 비대화 때문에 기동성을 스스로 봉쇄하는 최악의 결과가 되었다. 가구라는 그의 절대방어를 가볍게 걷어차 건물 밖으로 날려보낸다. 자유낙하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금구슬. 남매는 긴 싸움 끝에 마지막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 은혼/644화 . . . . 5회 일치
>알겠냐? 우리도 너희와 별반 차이없어. 다들... 똑같은 기분이라고.
피차 같은 불이 질러진 사내들. 하지만 불이란 불로 끌 수 없는 법이 아니던가? 모든 걸 불로 태워버리기 전까진.
* 엔쇼는 여유로운 태도로 양이지사들을 처리하는건 전혀 어렵지 않다고 입을 열었다. 잔당들이 다시 힘을 얻고 있었다. 그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해방군을 파멸시키는 것 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엔쇼는 지금 시점이야 말로 진정한 성전이 시작된다고 선언했다.
그에겐 히노카구츠치를 발사할 수 있느냐 마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불이 꺼지지만 않았다면. 그 에너지가 모선에 깃들어 있는 한은 아니었다. 방아쇠가 고장났다면 모선 째로 에너지를 지구에 때려박는다 해도 아무 차이도 없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부하들이 경악하거나 말거나, 양이지사가 저항하거나 말거나.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가츠라와 다츠마. 피차 같은 불이 질러진 사내들.
- 이관섭 (1961년) . . . . 5회 일치
|직책 =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 2014년 7월 ~ 2016년 8월 :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직책 = [[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국철 . . . . 5회 일치
2011년 9월, [[신재민]] 전 [[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그동안 수십억 원을 건넸다고 폭로했다.<ref>《시사저널》(2011.09.21),[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6092 <단독>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에게 수십억 원대 금품 줬다” ]</ref> 민주당 국회의원 [[박지원]]은 회장 이국철에게서 전 차관 [[신재민]]이 대선 전후 [[미국|아메리카합중국]] 출장 시 현지 법인카드를 사용한 내역을 가지고 있고 다른 여권 실세에게 돈을 주었다는 주장을 들었다고 밝혔다.<ref>《손석희의 시선집중》(2011.09.27), [http://www.imbc.com/broad/radio/fm/look/notice/?list_id=5667955 " 이국철 게이트 터지나"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 터뷰]</ref>
2012년 5월 23일, 징역 8년이 구형됐다. 2012년 6월 4일엔 전 차관 [[신재민]]과 징역 3년 6월이 확정되었으나 2012년 11월 30일,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됐으나<ref>《노컷뉴스》(2012.12.03)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333935 이국철 보석으로 석방, 신재민도 풀려날 가능성 커신재민 항소심 재판 연기되면서 이국철 구속만기 중 선고 불가능]</ref> 재수감됐고 2013년 1월 31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고서<ref>《아시아투데이》(2013.01.31) [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61723 이국철 SLS그룹 회장, 항소심서 징역 2년6월로 감형]</ref> 2013년 6월 13일, 징역 2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ref>《연합뉴스》(2013.06.1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13553 대법, 이국철 SLS 회장 징역 2년6월 확정(종합)]</ref>
- 이석훈 . . . . 5회 일치
[목차]
여성에게 어필이 가능한 목소리와 외모인지라 노래도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의 곡들이 많은 편이다.[* 이석훈 솔로 미니앨범 [[인사]]의 선공개곡이었던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가 대표적.~~10가지 이유를 다 들으면 노래가 끝나지만 높은 항마력이 요구된다~~ 물론 이 곡의 경우, 발표하자마자 싸이월드 뮤직 1위, TJ나 금영 등의 노래방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흔한 발라드를 부르는데, 이석훈이 부르기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시력이 굉장히 좋지 않아 평소에도 안경을 착용하지만 도수가 너무 높아 눈이 작아 보인다는 이유로 방송활동에는 렌즈+알 없는 안경을 쓴다.(진짜 자기 안경을 착용한 이석훈은 '원나잇 푸드트립'에서 볼 수 있다.)
남자 보컬리스트 특집에 2번 참여했으며, 1승 했다. 이 때 타 남자가수들 평이 '첫 무대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거임?' 이후 2011년 11월 말부터 불후의 명곡 2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최백호]] 편에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는데...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적이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을 때와 편곡의 방향이 아주 묘하게 비슷하다. 착각이거나 혹은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의 차이 때문일 수도...][* 참고로 이 「낭만에 대하여」 무대는 이석훈 불후의 명곡 무대 탑 중 하나다.] 여러 번 참여했으나 번번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의 특징상 풍부한 중저음보단 높고, 개성있고, 자극적인 무대를 선호하기 때문인듯 하다.
복면가왕에 [[십오야 밝은 둥근 달]]이라는 닉네임으로 참여해서 준우승했으며 묘하게도 [[노래덕후 능력자|그 후에 참여한 멤버]]와 마찬가지로 예선 1차전에서 첫경연했으며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장기 집권]] [[우리 동네 음악대장|가왕]]의 첫 경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5회 일치
[목차]
[[한국프로야구/2014년 포스트시즌]]을 맞아 [[XTM]]의 [[베이스볼 워너B]]에서 제작한 치어리더 배틀 영상에 출연했다.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30M67wdL7Fw|여기]].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했는데, 각 팀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댄스 배틀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이수진은 넥센 치어리더 임경미와 대결을 했다. 여기서 자신의 키만큼 발차기를 하고 다리 찢기를 하는, 놀라운 유연성을 선보였다.
춤을 한번도 배워본적이 없는 박기량, 김연정과 달리 전문적으로 댄스 교육을 받아본 치어리더라서, 확실히 여러 댄스 동작에서 정석에 가까운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러 안무들도 원본에 가깝게 소화를 잘 하는 경우가 있다. 단점이 있다면, 춤을 정석적으로 많이 배운지라 즉흥적인 프리 댄스 같은 건 잘 하지 못한다. 2014년 XTM 댄스배틀이 그녀의 프리댄스를 보여주는 부분인데, 동작이 상당히 어색해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1년차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위에 서술한 것처럼 즉흥적인 프리 댄스는 상당히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 ~~풋풋한 3년차 치어리더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치어리더의 아이콘인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치어리더보다 우승 경험이 많다.'''[* 박기량은 [[롯데 자이언츠|롯데]]에서만 7년을 보냈는데도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롯데가 장기적 암흑기가 확정이라서 박기량이 치어리더를 그만둘 때까지도 [[우린 안될꺼야 아마|우승하긴 영...]]]
*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다보니 [[한화 이글스]]의 [[김연정]],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과 더불어 야구장을 대표하는 치어리더로 불린다. 그리고 [[1992년|92년]]생으로 가장 어리다. 그리고 [[2015년]], 마침내 위에 서술했던 대로 인기투표에서 3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입증했다. 오오 이수진 오오.
- 이재룡(1964) . . . . 5회 일치
[목차]
[[예능]]에도 출연을 한 바 있는데 [[1995년]]에 [[일밤]][* 당시에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다.] [[MC]]를 본 적이 있었으며, 이후 한동안은 배우에만 전념하다가 [[2014년]], [[에코빌리지-즐거운 가!]]로 예능에 오랜만에 발을 내딛었고, 2015년 [[MBC]] 경제 리얼리티 예능 [[옆집의 CEO들]]에서도 출연했다가 하차했다. 과도한 리액션이 없었기 때문인지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다.
|| 2017년 || MBC || [[밥상 차리는 남자]] || 케빈 밀러 || ||
|| 1997년 || MBC || [[정 때문에]] || 차대기 || ||
|| 1988년 || MBC || [[전원일기]] || 서울 모 포장마차 커플 남자 손님 || ||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5회 일치
* 자라트라스와 핸드릭슨은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을 상대로 선전하지만 점차 수세에 몰린다.
* 자라트라스는 그것이 뭔지 단번에 알아차리는데, 프라우드린은 어리둥절해하며 집어든다.
* 그때 호크가 잔반 브레스를 내뿜고 그 흉악한 냄새는 프라우드린 조차 치를 떤다.
* 어느새 정신을 차린 드레퓌스가 공격을 가한 것이다.
* 드레퓌스의 마력은 십계한테도 통한다는게 증명됐는데 기존엔 마력차가 너무 나면 씹혔기 때문에 매우 사기적인 게 된다.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5회 일치
* 정신을 차려보니 기억이 왜곡되어 있고 할리퀸과 디안느가 어디론가 사라진 뒤다.
* 뜻밖의 헤프닝으로 알몸을 보인 할리퀸과 디안느. 서로 등진 채 사과한다. 할리퀸은 침울한 기색으로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데 조금도 날 기색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자 디안느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나지 않아도 부끄러울 건 없다"고 위로하는데 대화에 위화감을 느낀 할리퀸은 "내가 말하는건 날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정정하다가 다시 알몸을 보인다.
* 마트로나와 디안느를 중심으로 숲의 모든 이가 춤을 춘다. 게라이드는 그 시선을 경계해서인지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차츰 분위기에 동화되어 어느새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끼어드는데.
* "눈을 떠", 어디론가 옮겨진 디안느와 할리퀸은 그 목소리에 의식을 되찾는다. 숲에서 춤을 추다가 기억이 끊겼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때 할리퀸의 투구에 깃든 헬브람이 "최악의 전개"라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할리퀸은 곧 엄청난 이변을 깨닫는데 바로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등장이었다. 두 사람을 납치한 것이 바로 이들. 할리퀸은 둘 모두 도망치는건 불가능하다 여기고 자신이 막는 동안 디안느를 도피시치려 한다. 그러나 디안느는 함께 싸우자며 "마지막이 할리퀸과 함께여서 다행"이라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13화 . . . . 5회 일치
*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스티그마의 병사들을 무차별 학살하지만 싸움을 말리려는 [[게라이드]]를 공격하진 않는다.
* 게라이드는 로우에게 살인을 멈추라고 호소하지만 그는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말할 뿐이다. 로우가 칼을 줍는 다시 어디선가 나무 마법이 날아와 다리를 찌른다. 어린 요정족의 전사였다. 이미 겁을 먹은 상태지만 로우는 가차없이 칼을 들어올린다. 게라이드는 이 어린 전사라도 보호하려고 로우의 앞을 막아선다.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라고 말하지만 뒤에 올 말을 잇지 못한다. 로우는 자신을 죽일 거라면 해보라며 다가오는걸 멈추지 않는다.
로우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게라이드를 데리고 나무 둥치 밑에 앉는다. 게라이드가 정신을 차리자 로우는 "왜 나를 죽이지 않았냐"고 씁쓸하게 묻는다.
* 로우는 울다가 눈물 조차 나오지 않게 될 무렵 복수를 결심했다. 그는 피와 살이 뿌려진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엄청난 수의 시체가 되어 널려있고, 그 사이엔 그의 친구 셋의 모습도 보인다. 하나같이 시체가 돼서 누가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로우는 결국 복수를 달성했다고 말한다.
* 로우는 문득 [[멜리오다스]]가 이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막막해진다. 그는 멜리오다스가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라이드의 오빠, 그로키시니아가 어떻게 할지는 알 것 같다. 분명 자신을 죽일 것이다. 게라이드는 자신이 사정을 설명할 테니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로우는 그럴리 없다고 고개를 젓지만, 게라이드는 어차피 자신도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시인한다. 그녀는 [[뤼드셀]]이 대량학살을 저지를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전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경도돼 그것을 묵인했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5회 일치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전날 [[반(일곱 개의 대죄)|반]]에게 부탁 받은대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태를 돌본다. 시름시름 앓던 엘레인이 엘리자베스의 힘을 쐬이자 조금 기운을 되찾는다. 여행은 계속되고, 정신을 차린 엘레인과 [[디안느]], 엘리자베스 셋이서 티타임을 가진다. 이날은 엘리자베스가 사실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엘레인은 참 기묘한 이야기라 말하며 디안느는 3천년 전 성전시대에서 목격했던 엘리자베스가 지금 눈 앞의 당사자였을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떤다. 정작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상태. 디안느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 아니냐고 떠본다.
* 고서는 발코니에서 코란도에서 느껴지는 강한 마력을 감지하고 분명 십계가 있을 거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그것 말고도 부자연스러운 기척이 가득차 있다. 고서는 코란도에서 벌어질 결전을 기대하는 듯보 보이지만, 그 전에 다른 할 일이 있다고 중얼거린다.
* 돼지의 모자정 옥상. 반과 멜리오다스과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때 반이 조금 별난 부탁을 한다. 이번 임무에서 빼달라는 부탁. 의외로 멜리오다스는 "알았다"고 단박에 승락한다. 반이 놀라운 눈으로 그를 돌아본다. 멜리오다스는 그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다. 엘레인 때문이다. 그녀를 이 세상에 되돌린 "차원의 비틀림"은 분명 [[메라스큐라]]의 짓이다. 그녀는 마신왕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어찌보면 별종. 그래서 교섭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그녀가 살아있는 이상 반드시 다시 싸우게 될 텐데, 메라스큐라를 죽인다는건 곧 엘레인 또한 이 세상에 더 있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반은 고통에 가득차서 이제 엘레인은 이제 한계라 말한다. 설사 메라스큐라를 죽이지 않더라도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하다못해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해주고 싶은 것이다. 멜리오다스는 그런 반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반은 그 말을 가로채 가시돋친 말투로 내뱉었다.
* 그동안 멜리오다스가 숨기려 한 것, 엘리자베스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각오"가 필요했던 이야기. 멜리오다스는 이거야 말로 자신들의 운명이며 더는 숨길 필요도 없게 되었다며 모둔 진상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것은 멜리오다스의 삼천년에 걸친 여행의 목적이었다.
- 장유환 . . . . 5회 일치
* 아차차차차차(유전자)
- 장태영(야구선수) . . . . 5회 일치
[목차]
투수로 전향한후 출전한 1947년 제2회 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140km/h의 매우 빠른 공을 던져 타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황금사자기]]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끌어 내자 세간에서는 그를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빠른 직구 뿐 아니라 제구력도 매우 좋았는데 당시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중등학교]]의 에이스였던 [[어우홍]]은 그를 회고하며 "좌완에 아주 빠른 볼을 던졌다. 또한, 몸쪽, 바깥쪽 로케이션이 좋았고, 볼도 낮게 깔려 들어왔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2009|기사]]
1949년 6월 13일, 뜨거운 태양 아래 5천명 수용가능한 [[동대문야구장]]에는 15,000명의 관객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들어차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눈은 두명의 투수가 그라운드에서 모든것을 쏟아 붓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경남중은 당대 최강의 야구팀이었고 그 누구도 우승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1,311명을 대상으로한 현장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4%가 경남중학교 우승을 점쳤고 광주서중의 우승을 점친사람은 단 8명, 0.6%의 인원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남중은 2년간 15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모든 트로피를 쓸어 담은 최강의 팀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장태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4회 청룡기에서도 1차전 전주공업을 상대로 13:1로 6회 콜드게임승, 2차전에서 춘천중학을 상대로 10:0 5회 콜드게임 승, 준결승에서 막강한 상대였던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둬 들였다.
- 장헌식 . . . . 5회 일치
[[1907년]] [[7월]] [[역대 한성판윤|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부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7월]]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강제로 퇴위하였을 때는 [[훈3등]] [[팔괘장]]을 받았고, 1907년 10월 한성부민회 설립에 참여하였다. [[한성부윤]]으로 근무할 때인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살해하자 이토 추도회를 여러 차례 여는 등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전부터 적극적인 친일파로 활동했다.
[[1921년]] [[2월 12일]] [[조선총독부]] 사무관(朝鮮總督府 事務官)이 되고, 3월 10일 종4위(從四位)로 승급하였다. [[1921년]] [[3월 18일]] 조선총독부 총독관방실(總督官房室) 행정관이 되었다. 1921년 3월 20일 칙임사무관(勅任事務官) 민정시찰관에 임명되어 4월 7일부터 6월 19일 [[평안남도]], [[평안북도]] 일대를 민정시찰하였고, [[10월 16일]]부터 [[12월 27일]]까지는 민정시찰관으로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민정시찰을 다녀왔다. 이때 그는 관용 차량이 주어졌지만 거부하고 열차와 대중교통으로 시찰을 다녔다. [[1922년]] [[2월 15일]]에는 [[전라남도]]를 [[3월 5일]]부터는 [[전라북도]]를, [[7월]]에는 [[강원도]]를 시찰다닌 뒤 [[7월 22일]] 귀환하였다. [[9월 4일]]에는 [[황해도]] 수해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장헌식은 관직에서 퇴임한 뒤로도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37년에는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만주 사변]] 이후 일본군을 후원한 활동을 인정받아 [[1937년]] 일본 육군대신 명의의 표창을 받은 바 있고,<ref name="실록친일파" /> 37년 8월 21일에는 애국금차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로는 시국강연반에 가담하여 전쟁 지원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38년]] 친일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뒤 [[1941년]] [[국민총력 조선연맹]]과 [[조선 임전 보국단]]에도 가담했다. 이때는 이미 70대의 노구였으나, 학병 지원을 독려한다며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38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 칙임관대우 참의에 임명되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며 부인인 [[임정재]]도 친일 여성 단체인 [[애국금차회]]에서 활동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5회 일치
* 소년 시절 마기 시로는 효부의 차량을 조작해 적당히 차를 빼앗으려 하지만 효부에게 걸린다.
* 마기의 소년 시절. 지난 회에서 교섭을 망치고 돌아가던 효부와 머슬 오오카마는 차량 고장으로 도로 한 가운데 정차한다.
* 연료가 소모되길 기다렸다가 기회를 봐서 차량을 탈취하려고 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5회 일치
* 두 사람은 견해차를 여실히 드러내며 혈투를 벌인다.
* 교복차림으로 돌아와 병원을 나서는 효부 쿄스케.
* 약간 4차원인지 자기에게 반한거냐고 수다를 떠는 소녀. 아카시 카오루의 언니인 아카시 요시미였다.
* 기사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지시대로 적당한 해안가의 창고 구역에 차를 세운다.
* 효부는 꽤 거추장스러운 절차를 거친다며 전엔 더 직선적이지 않았냐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5회 일치
* [[산노미야 시호]]는 카본 와이어임을 간파하고 전기충격으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미나모토 코이치]]가 급하게 말린다. 시호가 충격기를 들어올리자마자 섬유들이 일제히 충격기를 향해 날아온다. 간발의 차로 시호는 무사했지만 충격기는 산산조각난다.
* 모습을 드러내는 마기시로. 언제나 검정 슈츠 차림이던 것과 달리 몹시 캐쥬얼해진 차림이다. 그는 누구든 0.2초 만에 절단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일행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너무 자유롭고 해방감이 느껴져서 요우는 "쉬는날 같잖아. 대체 얼마나 마기를 몰아붙이고 있었던 거냐"고 효부를 탓한다.
* 효부와 카오루가 막아보려 하지만 그들이 염동력을 발동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날 것이다. 미나모토는 차라리 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효부나 카오루가 일제히 덮치는건 마기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고 상황은 난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군 중 누군가는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사카키 슈지]]가 있다지만 츠보미 후지코를 조치하고 있는 중이라 그 이상을 대처할 수는 없다. [[마츠카제 코우이치]] 또한 같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뛰어들어서 칠드런이 다치는 것도 안 될 말이다. 이 상황은 아무리 계산해도 처음부터 길리엄이 짠 함정이 너무나 철저하게 걸려든 것이다.
* 카오루는 자신이 어떻게든 할 테니 쏘라고 소리친다. 미나모토는 더이상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블래스터를 들어올린다. 하지만 그때 효부가 제지한다. 그는 마기가 정신을 잃긴 했지만 로봇이 된 건 아니라며 어떤 행동을 저지른다. 그가 저지른 행동에 일행은 물론 마기 조차 한순간 얼어붙는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5회 일치
* 작전은 세뇌된 이들을 관리하는 블랙 팬텀의 감응 네트워크 포털을 탈취, 붕괴 것. 그러자면 포털의 3분의 1 이상을 탈취해야 하나 아직 포털의 위치조차 모른다.
문제는 이런 정세 속에선 에스퍼의 능력을 활용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에스퍼 개개인의 손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리섬은 시대상으로 보면 에스퍼 능력을 제약하고 격리시킬 수록 사회의 능률은 떨어진다. 그는 반대로 이런 상황을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려는 자들은 없는가 자문한다. 그건 에스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해 에스퍼 자원을 독점하려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 카가리는 어쨌든 일본에서도 에스퍼에 대한 차별과 이지메가 시작되었다며 뭔가 손을 써야 한다고 건의한다. 효부는 친구가 걱정되는 거냐고 묻는데, 아닌게 아니라 [[하나이 치사토]]와 [[토오노 마사루]]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텔레파시스트인 하나이는 말할 것도 없고, 토오노는 그런 그녀를 지키겠다고 무모한 짓을 할 수도 있다. 꽤 진지한 걱정이지만 파티는 둘이 모에로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흥분해서 카즈라의 태클을 당한다.
그런데 정작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들이 글러먹었다. 효부와 츠보미는 피차 사념체만 남은 주제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 바보라고 매도하더니 한쪽은 누나한테 대든다, 한쪽은 누나의 잔해인 주제에 말이 많다고 초딩같은 디스를 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신경전은 분신체서 선배인 우츠미에게 제지당한다.
- 정명훈 (지휘자) . . . . 5회 일치
[[1968년]]에 [[미국]] [[뉴욕]]의 [[메네스 음악원]]에 [[입학]]해 나디아 라이젠버그와 칼 밤베르거에게 각각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다. [[1974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피아니스트]]로 참가해 2위로 입상해 화제가 되었고,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에도 초대되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김문관의 클래식 산책 스승의 노래|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39830|출판사=아시아투데이|날짜=2012-05-14}}</ref> 이 만찬에서 정명훈은 콩쿨 상금으로 [[러시아]]에서 산 [[캐비어]] 5 kg 중 일부를 [[선물 (물건)|선물]]로 들고 갔다. 당시 소련 정부는 국부 유출을 금지해서 받은 상금을 [[모스크바]]에서 모두 써야 했다.</ref> 이듬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추가로 [[공부]]한 후 [[1978년]]에 [[졸업]]했다.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정명훈은 19세 때부터 누나 [[정명화]]의 시누이로 다섯 살 연상의 구순열을 짝사랑했고, [[가족]]에게 숨긴 채 교제를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 3000루블로 비행기 티켓을 사서 [[카리브 해]]로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79년]]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식에는 어머니 이원숙 여사만이 참석했으나 나중에는 [[부모]]에게도 인정받았다.<ref>황호택, 《신동아》 [[2004년 2월]]호</ref>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 정진, 정선, 정민을 두고 있다.
*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산타 체칠리아 음악원]][[분류:줄리아드 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수상자]][[분류: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수훈자]]
- 차금봉 . . . . 5회 일치
'''차금봉'''(車今奉, [[1898년]] [[12월 8일]] ~ [[1929년]] [[3월 10일]])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노동운동가이다. 서울 출신.<ref name="역대">{{웹 인용|성1=김|이름1=혜영|제목=차금봉(車今奉)|url=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7HIL_A1898_1_0025739|웹사이트=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출판사=한국학중앙연구원|확인날짜=2015-12-15}}</ref>
서울 미동보통학교(渼洞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용산(龍山) 기관차 화부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노동자들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식민지 현실의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20년 2월 조선노동문제연구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같은해 3월 [[김명식 (1890년)|김명식]]·[[오상근]] 등과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조직하여 교양부 간사를 맡았다. [[1922년]]에는 최상덕 등과 함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공제회의 쇄신운동을 폈으며, 동년 9월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조선금물직공조합·경성신문배달조합 창립을 지도했으며, 1923년 9월에는 조선노농대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4년 5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각지의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했다. 192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노동운동 단체와 농민운동 단체를 분리하는 정책을 실행시키기 위해 힘썼다.<ref name="역대"/>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결성한 [[신간회]] 단체가 결성되자, [[1928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경서(京西)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간사를 맡았으며, 한편으로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3·1운동 기념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지시하여 선전전단 20만장을 도쿄의 동성사에서 인쇄했는데, 우송 도중 서울우편국에서 발각되고 말았다. 1928년 7월 제4차 조선공산당이 발각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피신했으나 도쿄에서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당한 뒤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1929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했다.
*[http://narasarang.mpva.go.kr/person_search/merit_search_view.asp?idx=10270&page=1&search_1=&search_2=차금봉&search_3=&search_4=&search_5=출생지&search_6=내용&orderByName=&orderBy= 국가보훈처]
- 차재욱 . . . . 5회 일치
| 이름 = 차재욱
'''차재욱'''(車宰旭,[[1985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출신 프로게임단 코치였다. 당시에는 [[CJ 엔투스]] 소속이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에서 온게임넷 스파키즈와 [[삼성전자 칸]]이 맞붙게되었는데 대구 전 차재욱이 상대 팀 삼성전자 칸 소속 프로게이머인 [[이성은]]에게 '''x밥'''이라는 발언을 하게된다. 이후 대구에서 승리한 이성은이 상대 팀 부스를 향해 공깃밥을 던지고 빠삐놈 병神 디스코 믹스를 배경음악으로 춤을 추면서 빠삐코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 [http://www.ognsparkyz.com/mboard.asp?exec=view&strBoardID=chajaeuk&intPage=1&intCategory=0&strSearchCategory=s_id|||&strSearchWord=&intSeq=13 차재욱 하이트 스파키즈 프로필]{{깨진 링크|url=http://www.ognsparkyz.com/mboard.asp?exec=view&strBoardID=chajaeuk&intPage=1&intCategory=0&strSearchCategory=s_id%7C%7C%7C&strSearchWord=&intSeq=13 }}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연안 차씨]][[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
- 차정아 . . . . 5회 일치
| 이름 = 차정아
'''차정아'''([[1993년]] [[6월 20일]] ~ )는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B0%A8%EC%A0%95%EC%95%8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640252 네이버 인물 정보]</ref>이다.
* [http://cafe.daum.net/chajunga 차정아 다음 팬카페]
* [https://www.facebook.com/jungamodel 차정아 페이스북]
* [https://www.instagram.com/cha_jung_a/ 차정아 인스타그램]
- 챈슬러 (음악가) . . . . 5회 일치
|관련활동 = [[이단옆차기]], Oneway
'''챈슬러'''({{llang|en|Chancellor}}, [[1986년]] [[10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프로듀서이다. 과거에 힙합 트리오 '''Oneway'''와 프로듀싱팀 '''이단옆차기'''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참고|이단옆차기#작품 목록|설명=이단옆차기로 활동한 작품에 대해서는}}
| Track 2 <차 안에서 (Drive)>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5회 일치
[목차]
현재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출구조사의 10%의 차를 뚫고 한 때 앞서나가기도 했으나 아깝게 간발의 차로 낙선하였다. 감천면과 본인의 고향인 조마면, 혁신도시권역인 율곡동과 농소면을 제외한 모든 읍면동에서 패배했는데, 율곡동에서의 몰표로 표차를 500표차 이내로까지 좁힌 것.
- 추봉 (배우) . . . . 5회 일치
[[1922년]] [[경성부]]에서 3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편집위원회). 이승학(李升學)의 문하에서 5년간 음악을 배웠으며, 1940년부터 극단 성군(星群)에서 활동했다. 영화데뷔는 1952년 손전 감독의 《공포의 밤》에 배우 양일민의 추천으로 출연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조,단역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1999년 제3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한겨레신문).
* 1969년 《북경열차》
* 1969년 《부인행차》
* 1969년 《주차장》
* 1969년 《차라리 남이라면》
- 킹덤/503화 . . . . 5회 일치
호주는 그들이 서부공략을 빌미로 거병해 급히 진로를 틀어 한단으로 처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수는 20만. 이목이 이 같은 사실을 알려왔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말을 하니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곽개와 도양왕도 조금 듣는 척을 한다. 호주는 이목이 한단군을 움직여 요지 "열미"를 막아 진군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계책을 올렸다는 것도 전한다. 그런데 도양왕이 또 뜻모를 고집을 부린다. 그는 정예 한단군이 수도를 떠나면 누가 자기를 지키냐는 논리로 그 계책을 거절한다.
도양왕은 한단군 대신 주변 지역에서 모은 병사를 움직이자고 하는데 그 또한 이목이 "한단군을 움직이지 않거든"하며 일러둔 차선책. 곽개는 그것마저 트집을 잡으며 대책이 있는데 왜 이제야 말하냐며 호주를 구타한다.
* 호주는 기가 차면서도 차마 욕은 할 수 없고 걱정하지 않아도 이목은 군대와 함께 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목은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의 진군을 하고 있다.
* 진군 중에 십화에 있던 [[순수수]]가 합류한다. 그 먼 거리에서 여기까지 합류했다고 이목의 부하들 사이에서도 놀라워한다. 순수수는 자기가 전방에 있으면서도 눈치채는게 늦었다며 용서를 구하는데 이목은 오히려 빨리 눈치채 전서구를 날릴 수 있었고 이 차이가 승패를 가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 토리코/368화 . . . . 5회 일치
* 토리코는 그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드디어 GOD의 출연이 가까워졌음을 깨닫는다.
* 토리코만이 아니라 코코, 써니, 제브라도 차례로 악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 죠아는 어떤 균을 "요리 재료"로서 공간에 퍼뜨려 놓았다. 이 균은 니트로 조차 단 1초면 부식시키는 강력한 곰팡이.
* 그러나 그런 상황조차 미도라에겐 타격이 되지 않았고, 순식간에 재생하며 이번엔 이치류의 기술이던 마이너리티 월드를 발동한다.
* 나루토가 혈통빨, 지연빨, 학연빨이라고 규탄 받았는데, 이 만화는 그 조차 아니고 운빨만화 등극(...)
- 페어리 테일/507화 . . . . 5회 일치
* 그 시각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 어떻게 된 일인지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이 널부러져 있다. 핫아이, 레이서가 쓰러져 있고 코브라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다. 미드나잇은 멀쩡히 서있지만 상당히 타격을 받은 상태다. 그리고 이들을 통솔하는 제라르 페르난데스 조차 고전을 금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은 바로 스프리건 12 최강의 마도사 오거스트를 상대하고 있었다. 제라르 조차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차.
*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시 공격을 감행한다. 코브라가 오거스트의 마음을 읽는데 오거스트도 똑같이 코브라의 마음을 읽는다. 공격은 해보지도 못하고 지팡이에 맞고 날아가는 코브라. 완전히 리타이어한 듯 했던 레이서도 다시 한 번 스피드를 살려 접근해 보는데 오거스트는 "느리다" 한 마디로 일축하며 기절시킨다. 미드나잇은 "스파이럴 페인"이란 기술로 오거스트 주변의 땅으로 옭아매는데, 그는 "재미있는 마법이지만 나도 습득한 것"이라며 그들이 있는 일대를 회전시켜서 반격한다. 꼼짝도 못하고 당하는 일행. 제라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한다.
오거스트는 상대방의 마법을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치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데 위력이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오거스트의 마법이 사실은 반사&배가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떡밥이 나온다.
- 페어리 테일/542화 . . . . 5회 일치
* 멸룡마도사들은 힘의 차이가 절망적임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분투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투지를 잃지 않는다.
* 매그놀리아를 침공한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신. 그것을 막기 위해 페어리 테일을 비롯한 마도사 길드 연합군이 작전을 수립한다. [[미네르바 올랜드]]가 이끄는 연합군이 아크놀로기아를 작전지역인 하르지온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받았지만 솔직히 마땅한 방법이 없다. 마룡은 자아를 잃고 무차별 공격을 해대는데 이쪽의 반격은 마법이든 물리적 공격이든 무효. 그렇다고 마룡을 유도할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다.
* 적어도 한 가지 문제는 막 해결되었다. 아크놀로기아가 매그놀리아를 뒤흔드는 와중에도 루시 일행은 임무를 완수했다. 한 차례 지진으로 지하도서관의 서가가 엉망으로 무너졌다. 다행이 일행은 무사했지만 [[레비 맥거딘]]이 루시가 보이지 않는걸 깨달았다. 그녀는 쏟아진 책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그게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던 페어시 스피어 발동법이 담긴 책이, 루시를 덮친 책더미 속에 있었던 것이다.
코브라의 소중한 동료들, 오라시온 세이스도 지상의 아크놀로기아를 무찌르기 위한 작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추론대로였다.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은 마력을 숨긴 채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차례로 마력을 해방했다. 순차적으로 해방되는 마력을 따라서 아크놀로기아가 반응, 그들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5회 일치
* 2층 자동차 가게의 자동차. 창문과 사이드미러를 깰 수 있다.
금고가 긴급 개방되면 금고 안의 케이스를 열고 핵탄두를 꺼내자. 베인은 블라드가 가져오라고 한 물건이 핵탄두였다는 것을 알고 기겁한다. 이제 핵탄두를 확보해야 하는데,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매우 먼 데다가 핵탄두는 겁나게 무거워서 걸어서 옮기는건 미친 짓에 가깝다. 전리품 세개를 한번에 수송할 수 있는 지게차나 전리품 네개를 한번에 수송할 수 있고 빠르기까지 한 롱펠로(머슬카)를 이용하자. 가는 길은 SWAT 저격수와 난간과 컨테이너 위에 올라간 경찰들, SWAT 터렛이 기다리고 있으니 주의하자. 할당량 만큼의 핵탄두를 옮긴 후 탈출하면 클리어.
==== 1일차 ====
==== 2일차 ====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5회 일치
플레이어는 갱단들을 쓸어버리며 3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신고가 들어갔지만 지금 경찰이 오지는 않으므로 여유롭게 메스암페타민과 현금, 거대 칫솔 등을 확보하자. 3층의 붉은 철문을 조사하고 나면 "차베스"라는 갱단원에게서 열쇠를 빼앗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차베스는 아파트 방 어딘가에 다른 갱단원들과 함께 있다. 방탄조끼를 입고 쌍권총을 들고 있는 이가 차베스. 그를 찾아내서 죽이면 열쇠를 드랍한다. 차베스가 죽는 순간부터 경찰이 도착한다.
톱질이 끝났으면 대피소를 빼낼 통로를 만들 차례. 바일이 통로를 만들 C4를 투하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온다. 하지만 경찰 저격수들 때문에 아파트에 가까이 갈 수 없다고 하니 저격수들을 처리해야 한다.
- 피수영 . . . . 5회 일치
| 자녀 = 피윤범(장남), 피윤성(차남)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아버지 [[피천득]](皮千得)과 어머니 임진호(林珍鎬) 사이에서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 [[피천득]](皮千得)의 1965년 수필 〈피가지변(皮哥之辯)〉에서 "… 피(皮)씨의 직업은 대개가 의원이요, 그 중에는 시의(侍醫, 임금·왕족의 진료를 맡은 의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 의학을 공부하는 우리 아이는 옥관자는 못달더라도 우간다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올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수필에 나오는 아이가 바로 당시 23세로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피천득]]의 차남 피수영이다.
* 피수영 교수는 미국에서 신생아과 전임의(醫)로 자리잡은 38살이 돼서야 결혼하고, 늦은 나이에 두 아들을 얻었다. 장남 피윤범·차남 피윤성이다. 맏아들 피윤범은 [[뉴욕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영화를 공부하였고, 차남 피윤성은 [[미국]] 명문인 [[코넬 대학교]] 법대를 다녔다.
- 하이큐/230화 . . . . 5회 일치
* 히나타 쇼요는 차창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도쿄에 올라온 카라스노는 시골출신답게 도시풍경 하나하나에 감탄한다. 특히 히나타, 니시노야 유, 타나카 류노스케 3인방은 일일히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을 취한다. 츠키시마 케이나 엔노시타 치카라 같은 차분한 멤버들은 얌전히 있다.
* 잠시 뒤 카라스노는 현지의 체육관에서 마지막 연습에 돌입한다. 평범하게 적응하는 멤버도 있지만 히나타는 잔실수가 늘었고 아즈마네 아사히는 평지인데도 산소가 부족하다며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소심이들이 제실력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한다. 타케다 고문은 히나타는 긴장하는 편은 아니지만 첫 전국대회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팀 전체가 경직된 분위기라 매니저인 야치 히토카 조차 호흡곤란을 호소할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카게야마 토비오가 런닝을 하겠다고 숙소를 이탈하려 한다. 히나타까지 편승해서 나서는데 엔노시타는 제일 문제아 두 명을 콘크리트 정글에 풀어놓을 수 없어 반대한다. 게다가 쓸데없이 밤잠을 설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진짜 곤란하다. 엔노시타는 츠키시마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말도 꺼내기 전에 거절부터 당한다. 츠키시마의 짐작대로 그에게 인솔을 부탁하려는 것. 엔노시타는 어차피 츠키시마도 괜히 어슬렁거리는게 진정이 안 되는거 아니냐고 꼬집는다. 츠키시마는 부정은 못하면서도 "내가 저 바보들을 따라갈 수 있겠냐"고 대꾸하는데 거기에 대한 대비는 완벽하다.
엔노시타는 수완도 좋게 여관 주인에게 자전거를 빌려왔다. 꼼짝없이 끌려가게 된 츠키시마. 그 짜증 탓인지 한층 무서운 태도로 "내가 간다고 하면 바로 돌아가는 거고 말 안 들으면 돌아오기 어려운 곳에 방치"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어차피 히나타나 카게야마가 길눈이 어두운 관계로 절대 복종한다.
- 하이큐/236화 . . . . 5회 일치
>발은 떨어지지 않고 숨은 금세 차오른다.
>정신을 차려보면 돌아가는 버스 안.
* [[카게야마 토비오]]의 파인 플레이로 관중석의 여론은 단숨에 카라스노 쪽으로 기운다. 스코어는 16 대 15. 위태로운 한 점차 리드. 츠바키하라는 침채된 분위기를 절감한다. 이때 첫 번재 TO.
* 양측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 공은 수 차레 양 진영을 오가며 화려한 랠리가 이어진다. 이쯤에서 츠바키하라가 승부수를 던진다. 높이 공을 띄우며 테라도마리의 스파이크를 준비한다. 카라스노는 츠키시마를 주축으로 세 명이 블록에 나선다. 이미 츠키시마에겐 테라도마리의 특징과 습관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 높이도 파워도 초고교급이지만 코스는 대각선으로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
잡으러 간 것까진 좋았지만 한 발 차이로 제대로 리시브가 안 되고 가슴팍으로 스파이크를 받아버리는데, 아무튼 받긴 받았다.
- 하이큐/238화 . . . . 5회 일치
* [[히나타 쇼요]]의 3회차 서브. 츠바키하라에서 받아서 공격. 하지만 [[츠키시마 케이]]가 블록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지금 한창 물이 올랐다고 표현하는데 츠키시마는 히나타에 대한 대항심이 좋은 플레이로 이어지고 있다. 츠키시마가 막은 공을 [[타나카 류노스케]]가 살려 찬스볼로 만든다. 그리고 후방으로부터 마이너스 템포로 뛰어드는 히나타. 공중을 나는 것처럼 뛰어오르는 히나타를 보며 [[스기와라 코시]]가 "후방 마이너스!"라고 외친다.
점수는 20 대 18로 2점차. 여기서 츠바키하라가 두 번째 TO를 사용한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적의 흐름을 끊고 자군 선수들을 격려하려고 하는데 TO에서도 선수들이 신경스는 건 마이너스 템포. 보고 반응은 할 수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늦어버린다.
* 카라스노가 2점 앞서가면 츠바키하라가 한 점 따라붙는 식으로 점수차는 1, 2점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카라스노의 꾸준한 리드. 츠바키하라에서 9번 아테마가 나가고 5번 [[미카와 다이]]가 들어온다. 그때 우카이 코치가 살짝 "조금 앞으로 나와라"는 조언을 한다. 그것이 적중해서 미카와의 서브는 앞쪽으로 떨어진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정확히 그 위치에 있다가 받는다. 하지만 살짝 흐르는데 니시노야가 잽싸게 커버,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연결한다.
아즈마네의 스파이크는 아쉽게도 블록에 막혀 공이 카라스노 진영으로 떨어지는데 니시노야가 다시 몸을 날려 살린다. 그 공을 이번엔 츠키시마가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어 카라스노의 득점으로 연결한다. 다시 벌어지는 점수차.
* 츠바키하라의 마루야마의 서브로 플레이가 다시 개시. 니시노야가 받아서 타나카가 스파이크를 꽂아넣는다. 점수는 2점차. 24 대 22로 카라스노 고교가 세트 포인트를 달성했다. 그리고 여기서 카게야마의 서브. 츠바키하라 측에선 하필 이 타이밍이냐고 혀를 찬다. 카게야마는 점프 서브로 과감하게 공격하지만 네트에 걸리면서 민망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히나타는 괜히 잘난척하는 태도로 "신경쓰지 마"라고 말했다가 카게야마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린다.
- 하이큐/241화 . . . . 5회 일치
* 타나카의 2회차 서브. 이번엔 카이카제가 받아서 마이코에게 연결한다. 마이코는 스파이크를 때리려 했으나 [[아즈마네 아사히]]와 [[히나타 쇼요]]의 블록으로 주저, [[공]]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2연속 득점. 점수는 18 대 17로 역전.
* 타나카의 3회차 서브. 잘 치는 것 같더니 3회차에서 사고를 친다. 공을 너무 앞에 띄운 바람에 급한 대로 주먹으로 펀칭 서브, 공이 넘어가긴 했지만 순간 비웃음거리가 된다.
츠바키하라의 서브. 테라도마리가 서브한다. 테라도마리에는 서브도 깨끗하게 꽂아넣으며 서브 에이스를 딴다. 20 대 20으로 따라잡은 츠바키하라. 하지만 다음 서브에서는 니시노야가 리시브, [[사와무라 다이치]]가 공격에 성공하며 다시 스코어는 21 대 20으로 한 점 차 리드.
* 아즈마네의 2회차 서브. 마루야마는 큰소리쳤던 만큼 묵직하게 내리찍는 서브를 받아낸다. 공은 어떻게든 네트 쪽으로 올라가고 그때 에치고가 마무리한다. 에치고는 능숙한 밀어넣기로 츠키시마가 반응할 새도 없이 득점에 성공, 벼랑 끝에 몰렸던 스코어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 하이큐/254화 . . . . 5회 일치
* 아츠무의 3회차 서브. 점프 플로터였다. 이번엔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공은 [[니시노야 유]]에게, 니시노야가 띄워서 [[아즈마네 아사히]]가 막바로 스파이크. 득점에 성공하면서 스코어는 11 대 8. 3점차. 간신히 아츠무의 연속 서브 에이스를 끊었다.
조언에 따라 주먹을 쥐었다펴는 아즈마네. 그리고 곧바로 1회차 서브에 들어간다. 서브는 아카기와 마지로 사이로 뚝 떨어진다. 마지로가 리시브해보지만 엉성했다. 손에 맞고 코트 밖으로 나가는 공. 아즈마네의 첫 서브 에이스, 동시에 카라스노의 오늘 첫 서브 에이스였다. 스코어는 11 대 9. 다시 2점차.
* 이어지는 경기. 이번엔 타나카의 스파이크로 카라스노의 득저. 응원단의 [[타나카 사에코]]가 동생의 활약에 환호한다. 스코어는 12 대 10. 여전히 2점차. 이 시점에서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가 빠지고 히나타가 투입된다. 의욕이 넘쳐서 투입되자마자 오사무 쪽을 노려보는 히나타. 이때 이나리자키 진영은 아츠무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는데.
- 하이큐/255화 . . . . 5회 일치
* [[미야 아츠무]]의 정확한 예측으로 [[카라스노 고교]]의 원조 괴짜속공이 차단당한다.
* 경기는 여전히 [[이나리자키 고교]]가 3점 차 우위를 유지하며 우세한데, 아츠무가 다시 괴짜속공을 시도한다.
또다시 이나리자키의 괴짜 속공. 기세가 올랐다. 점수차는 14 대 11. 여전히 3점차. 아나운서는 "이나리자키는 매 경기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 칭찬한다. 그야말로 "최강의 도전자"답다.
* 3점의 차이를 놓고 치열하게 진행되는 경기. 로테이션이 한 바퀴 돌아서 히나타가 코트를 나가고 다시 아츠무의 서브. 그런데 이 서브가 네트에 걸려서 넘어간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다급하게 몸을 날려서 받는데 공은 그대로 다시 네트를 넘긴다. 공은 다시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또다시 괴짜 속공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르다. 카라스노의 블록엔 [[츠키시마 케이]]가 있었다. 그는 공이 아츠무에게 넘어가고, 그가 공에서 손을 떼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 하이큐/258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카라스노 고교]]는 공수 양면에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간신히 1점차 추격을 이어간다.
* 다시 이나리자키의 공격 기회. 아츠무는 세트를 올리려다 한 가지가 눈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공은 오미미에게. [[카게야마 토비오]]가 원터치로 블록한다. 라인 밖으로 빠지는 공을 사와무라가 살리지만 네트에서 너무 가까웠다. 타나카의 스파이크도 오미미, [[마지로 알렝]]에게 차단되나 싶었는데, 마지로의 팔이 네트에 걸렸다. 터치넷으로 카라스노의 득점 인정. 무안해하며 사과하는 마지로. 일단은 한숨 돌린 카라스노.
* 스코어는 20 대 19. 1점 차를 유지했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두 번째 TO를 전후로 명백히 기세가 꺾였다. 이런데다 이나리자키의 사령탑은 채찍질을 그치지 않았다. 아츠무가 오사무의 플레이에 트집을 잡았다. "꾀를 부린다"는 것. 방금 전 아츠무의 눈에 걸린게 그거였다. 오사무가 "일단 미끼할게요" 식의 불성실하게 들어왔다. 오사무도 그걸 부정하진 못하고 "전력으로 뛰면 어떻게 끝까지 뛰냐"고 투덜댄다. 그러다 아츠무는 "치면 들어간다"며 일단 전력을 다하라고 질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작은 블록"이 두렵냐는 것.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오사무. 그런데 이 논쟁은 뜻밖의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 히나타가 생각에 잠긴 동안 공은 다시금 아츠무에게. 거의 염파에 가까운 눈빛으로 오사무를 쏘아본다. "꾀부리지마". 그 구박에 떠밀려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그때였다. 오사무가 뛰는 것과 동시에 히나타도 뛰었다. 뛰는 거야 벌써 여러번째지만, 이번엔 달랐다. 히나타가 1 대 1에서 가장 꺼림직해했던 블록. 그 차이를 눈치챌 만큼 예리한 사람은 [[니시노야 유]] 뿐이었다.
"경험치"의 차이.
- 하이큐/267화 . . . . 5회 일치
쿠로오의 2회차 서브. 사루카와 진영 우측을 파고들었다. 2학년 "야마시로"가 리시브. 공은 무난하게 3학년 "시가"에게 연결, 강렬한 스파이크가 네코마 우측을 가른다. 다시 한 점 달아나는 사루카와. 쿠로오는 로테이션으로 [[야쿠 모리스케]]와 교대하면서 잊을만 하면 시가의 공격이 튀어나온다고 투덜댔다.
* 이어지는 경기. 랠리와 랠리가 이어지며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2점의 점수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 스코어는 22 대 20. 사루카와의 작전은 순조롭게 계속됐다. 그건 코즈메가 쏟아내는 땀을 봐도 명백했다. 아직까지는 위태로운대로 잘 따라오고 있었지만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그때 리에프의 득점. 스코어 22 대 21로 한 점 따라잡는다. 서브는 네코마 측. 동점을 노릴 기회였다.
다이쇼는 이 시점에서 세터를 교체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어차피 이번 세트는 사루카와의 우세. 마지막 세트를 고려하면 체력을 보존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마침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코마 진영에서도 교체선수를 준비했다. 다이쇼는 1학년 세터일거라 예측했다. 교체를 준비하는 선수는 [[테시로 타마히로]]. 1학년 세터.
코즈메를 거쳐 쿠로오의 스파이크. 시시오 감독의 불안과 달리 사루카와는 빈틈이 없었다. "와쿠라"의 블록에 원터치로 걸린다. "카나자와"와 "후카타니"가 차례로 살려서 다시 떠오른 공. 좌측에서 "시라미네"가 뛰어오른다. 카이, 쿠로오과 블록을 뛰었지만 우측에 치우친 탓에 중앙이 텅 비었다. 놓치지 않고 그 위치로 밀어넣는 시라미네. 후쿠나가가 눈치 빠르게 달려나왔지만 리시브가 불안정했다. 짧고 흔들거리게 떠오르는 공.
* 매치 포인트 직전에서 동점. 주장 시라미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상대가 자신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말로 독려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동의했다. 다만 코트 밖의 시시오 감독은 조금 달랐다. 뭔가가 석연치 않다. 분명 불안요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을 뿐. 이런 상태에서 플레이가 재개됐다. 야마모토의 2회차 서브. 네트에 걸리며 실점. 서브권이 다시 사루카와에 돌아왔다. "와쿠치"의 서브. 느리고 앞쪽에 떨어지는 서브였다. 야쿠가 있는 위치였다.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공이었지만, 실수가 생겼다. 어중간하게 흘리는 리시브. 다이쇼는 이 어이없는 실책이라 쓴소릴 했지만 눈을 의심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시오 감독도, 상황을 낙관하던 시라미네도 같은 걸 보았다. 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마치 친절하게 안내하는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하이큐/272화 . . . . 5회 일치
* [[오지로 아란]]의 세 번의 스파이크 끝에 1점을 우격다짐으로 뜯어간다. 역시 스파이커인 [[히나타 쇼요]]에겐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전날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보투코 코타로]]와 함께 전국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스파이커"라고 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타케다 잇테츠]] 고민은 타임을 건의하지만 우카이 코치는 조금 더 기다린다. 어차피 방금 적 "주포"의 공격의 위험성은 선수들도 깨달았을 거고, 고작 30초라도 저 주포에 쉴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 긴지마의 2회차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의 리시브로 공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카게야마는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세트업. 타나카는 좌측에서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 [[스나 린타로]]의 블로킹을 따돌리며 우측으로 꽂아넣는다. 네트에 바짝 붙은 스파이크. 한동안의 침채를 씻어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중계진도 1세트 이후부터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호평. [[츠키시마 케이]]의 서브 순서에서 선수교체. 츠키시마가 빠지고 [[스가와라 코시]]가 투입된다.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 유]]가 빠지고 히나타가 진입. 스가와라는 실컷 두들겨 맞은 니시노야에게 "원수를 갚아준다"고 농담했지만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라는 신경질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스가와라가 빠르게 투입된 이상 [[키노시타 히사시]]가 나갈 차롄 없겠다며 내심 아쉬워했으나 정작 키노시타는 머릿속으로 25 번째 서브 에이스를 따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멈추지 않는다. 투입 여부와 상관없이 준비는 완료.
* 비록 자신이 코트에 있는건 10초, 혹은 20초 남짓이겠지만 단 5초라도 이나리자키를 열받게 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각오로 스가와라의 1회차 서브. 역시 아슬아슬한 코스로 오지로를 노렸다. 네트에 가깝게 떨어지는 공. 오지로가 달려와서 받는다.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리시브하는 오지로. 리시브는 성공했지만 일어서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공은 [[미야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미야 오사무]]에게 세트업. 우측의 스파이크를 히나타가 블록. 손에 받고 뒤로 튕겨나온 공을 스가와라가 잡아낸다. 공은 산 채로 카라스노 진영으로. [[아즈마네 아사히]]가 이어서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돌린다. 카게야마는 우측 네트 앞에서 공을 받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오지로 쪽으로 밀어넣는다. 오지로는 이것도 받아내긴 했지만 역시 성가셔하는 느낌. 공은 이나리자키 좌측에서 높이 뜬다. 오지로가 신경질적으로 "레프트"라고 외치자 아츠무가 허겁지겁 달려오는데, 세트업이 조금 낮다. 그대로 오지로 뛰어올라 스파이크, 하지만 낮은 만큼 블록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손에 맞은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서 아웃. 오지로나 아츠무에겐 가슴이 철렁한 플레이였다. 스코어는 20 대 9. 스가와라와 츠키시마가 다시 교대한다.
* 리세키는 선배들에게까지 "그러니까 승부해야 했다"라는 말을 듣고 주장 [[키타 신스케]]에겐 "우리팀에 들어가기만 하는 서브는 필요없다"며 잔뜩 쓴소리를 들은 채 돌아간다. 스코어는 20 대 11. 이번엔 카라스노의 서브. 카게야마의 차례다. 헌데 카게야마가 뭔가 달랐다. 서브 위치에 선 카게야마는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서브를 넣는다. 이나리자키의 손에 닿지도 않고 코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서브.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 코스와 스피드를 모두 갖춘 완벽한 서브였다.
- 한규복 (1881년) . . . . 5회 일치
일본 정부는 한규복에게 여러차례 훈장을 수여해 공적을 인정했다. [[1929년]] 훈3등 서보장을 받는 등 퇴관할 때에는 정4위 훈3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수록된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ref>{{뉴스 인용
{{인용문2|자수 편지<br /><br />천운(天運)이 순환하사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되니 산천(山川)과 초목이 다시 금빛이 나고 잃었던 자유가 우리 몸에 다시 오니 일반의 환희는 무엇으로 형용하리요. 하물며 일제시대에 허다의 압제를 견디면서 관리생활을 계속한 본인으로서는 더욱더욱 감개무량이외다. 본인은 대한제국시대에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조도전 대학早에서 정치경제과를 졸업한 고로 행정관으로 출세하여 민중지도에 노력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관계(官界)에 투신하여 도지부 서기관으로 재임한 채로 병합을 당하여 임시토지조사국 감사관에 임명되었을 때 본인은 자신처리에 대하여 재삼 고려한 결과 나의 지력과 성력의 한도대로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견해로 관리생활을 계속하여 [[도지사]]를 역임하고 正4位 勳3등까지 되었으니 가위 고급관리의 지위까지 점진하였다고 하겠으며 30여 년간 관리생활을 하는 중에 민중의 계발을 여하(如何)한 정도로 하였느냐 하면 구체적으로 진술할 재료는 제공치 못하나 다만 양심적으로 민중을 지도하고 또한 민중의 의지를 대표하여 항거할 점은 어디까지든지 항론도 사양치 아니 하였으며 평범한 정치로 민중에 임하고 공정렴근(公正廉謹)으로서 관계일생(官界一生)의 목표로 삼은 것은 천인(天人)이 공인(共認)하는바 옵니다. 그러하니 민중에 대하여 행복이 되고 이익이 된 점을 일일이 수거치는 못하고 다만 장구한 세월의 관리생활을 하였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며 무엇이라고 변명하오리까. 금일에 지하여는 전일의 양심적으로 민중을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보도, 노력한 점은 무형(無形)으로 돌아가고 다만 관계생활(官界生活)을 하여 일제에 아부한 자로 추인되어 이 점이 기탄불기(慨歎不已)할 뿐더러 관리생활로 일생을 보낸 것이 참회되는 바이며 근신(勤愼)할 뿐이 옵니다. 오직 현명한 당국의 선악을 분별하사 관대한 처분만 바라옵고 감히 소회(所懷)의 일단을 진백(陳白)하나이다.<br><Br>단기 4282년 8월 12일<br />위 인 한규복<br><br>반민행위특별조사위원회 귀중|[[1949년]] [[8월 12일]] 자수 직전에 [[반민특위]]에 보낸 편지}}
** 형수 : 연안 차씨
** 차녀 : 한미화(韓美和, [[1931년]] - )
** 차남 : 한용관(韓鏞官, [[1937년]] [[4월 1일]] - ), [[부이사관]] 퇴직, [[근정포장]] 수상
- 함인섭 . . . . 5회 일치
|자녀 = 함양호(장남) <br/> 함춘호(차남) <br/> 함선호(장녀) <br/> 함연호(차녀)
함인섭이 태어날 당시 할아버지 [[함태영]]은 [[대한제국]]의 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함태영이 본처 밀양손씨와의 사이에서 장남 함병석을 1889년에 얻었고, 함병석은 다시 1년 연하인 강성흠(姜星欽)의 딸 진주강씨와 결혼하여 그를 얻었다. 친할아버지인 [[함태영]]과는 나이 차이가 34살 밖에 나지 않았기에 비슷한 시대인 [[제1공화국]]에 사회활동을 하였다.
장례식은 [[강원대학교]]장으로 거행되었고 상주는 차남 함춘호 였으며, 묘소는 [[춘천시]] 공원묘지에 있다.
** 제수 : 이차례(李次禮, [[1912년]] [[1월 4일]] ~ ?)
- 현이와 덕이 . . . . 5회 일치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반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1984년 10월 [[이미례]] [[감독]], [[김진아]] · [[남궁원]] [[주연]]의 개봉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장덕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를 비롯 <사랑의 꿈>, <사랑과 인생>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조용한 편이었다. 이에 장덕은 솔로 활동에의 어려움을 느끼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게 된다. 어린 시절 뭣 모르고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그 때와 한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가 성인이 되어 복귀, 겪게 되는 지금의 연예계는 너무도 달랐다. 혼자 라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 또한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어요"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현이와 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된다. 장덕의 볼 위에 장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덕은 오빠가 너무 고마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오빠에게 차마 부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1986년 5월 장덕은 훗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또 그녀가 작곡한 가장 훌륭한 곡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는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모습처럼>을 작곡, 동료가수인 [[이은하]]에게 주어 빅히트를 안겨준다. 그리고 6월 오빠 장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달랐던 장덕은 솔로로서의 욕심으로 인해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타이틀곡 <님 떠난 후>를 비롯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사랑해줘요>, <소외> 등이 수록된 솔로 정규 3집 《[[님 떠난 후]]》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포크뮤직]]에 [[디스코]]가 섞인 타이틀곡 <[[님 떠난 후]]>가 [[KBS]] [[가요톱10]]에서 5주(1987년 2월 18일 ~ 1987년 3월 18일) 연속 1위를 차지,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MBC 라디오 인기가요, KBS 2FM 인기가요 광장,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뮤직박스(도서출판), 전국 DJ 연합회 등 각종 인기 순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된다. 1986~87년 장덕은 제 2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인정받았다.
- 현주엽 . . . . 5회 일치
현주엽이 대학진학후 첫 출전한 대회인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대는 연대를 맞아 28점차로 대패하게 된다. 이 경기후 고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라와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다시 최종결승전에서 고대는 연대에 시종일관 리드를 당했으나 시합종료 1분을 남기고 고대 양희승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동점상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하였고 연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고대의 우승을 이끌었다.<ref>경향신문 1994년 4월3일 “안암골 호랑이 "大(대)역전쇼””</ref> 대학무대 첫 대회에서 세간의 기대만큼의 활약을 벌이지 못한 현주엽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면에서 선배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ref>스포츠서울 1994년 4월 2일 [http://kids.olivercho.com/SportsLeisure/148 “현주엽,고려 우승의 "일등공신",인터뷰”]</ref> 그러나 이 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의 팀내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고, 고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무대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처럼 고려대학교가 연승가도를 질주하자 세간의 관심사는 고려대가 70년대말에 이룩했던 최다연승 49연승을 깨고 50연승을 달성할것인가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1995년 가을철 대학농구 연맹전 예선 첫 경기에서 현주엽이 발목 부상으로 빠진 고대는 당시 약체였던 홍대에 3점차로 덜미가 잡히며 20연승에서 연승을 마감했다.<ref>경향신문 1995년 10월30일 “고려대 20연승 마감 약체 홍익에 덜미”</ref> 이후 고대는 다시 한동안 연승을 이어갔지만 50연승에 근접하지는 못하였다. 고려대학교는 충분한 전력을 갖췄음에도 현주엽이 졸업하기전까지 끝내 농구대잔치에서는 연세대학교가 이루어내었던 대학팀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1998년 3월 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순위로 청주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구슬 뽑기로 1순위 지명권을 받게 되자 ‘우승이야’를 외쳤다고 한다. SK는 그 지명권으로 바로 현주엽을 지명했고 이렇게 해서 현주엽은 SK에 이미 영입돼 있던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SK의 운명은 안준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고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하고 만다.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주엽의 프로 첫해 개인성적은 뛰어났다. 3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94 득점, 6.35 리바운드, 4.65 어시스트를 기록했다.<ref name=sports /> 이듬해 시즌에서 현주엽은 스몰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며 서장훈과 전년보다 나아진 팀웍을 보였다. 이에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트레이드 신청 마감일 하루전인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담한 승부수를 띄웠다.<ref>경향신문 1999년 12월25일 “현주엽=조상현+4억원'빅딜'”</ref><ref>[최창환의 백 투 더 KBL] [http://news.jumpball.co.kr/news/view/cd/82/seq/4.html ‘X-MAS 빅딜의 추억’ 현주엽-조상현 맞트레이드]</ref> 이는 최인선 감독이 이원재 단장에게 한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인선은 현주엽의 3번자리(스몰 포워드)가 불만이었다. 우승을 위해 3번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보다 기동력 좋고 확실한 슛터를 원했던 그는, 이대로라면 챔피언전에 진출하더라도 현대를 만나면 승산이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SK는 창단 이후 현대에게 12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트레이드 효과를 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챔피언전에서 만나게 된 현대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실패했으면 최악의 자충수로 기록됐을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찾기’로 농구역사에 기록되었다.
또한 이 매체에 따르면, SK는 골드뱅크와 접촉하기전 삼성과 먼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이원재 단장은 현주엽을 내보내더라도 좋은 팀에 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 현주엽은 SK의 지명을 받기전 삼성으로의 입단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 역시 현주엽의 영입을 간절히 원해 드래프트 1차 지명권을 딸 목적으로 전년도 시즌 막판 경기에서 고의 패배를 했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7일 “삼성 ‘부끄러운 져주기”</ref> 그러나 실상 SK는 우승 가능권에 있던 삼성의 전력증가를 원하지 않아 삼성에 대한 현주엽 트레이드 타진은 시늉내기로만 끝났다. 결국 현주엽은 SK의 우승에 장애가 되지않는 약체 골드뱅크로 트레이드된다.
- 홍경인 . . . . 5회 일치
[목차]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영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 더불어 영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 HMMWV . . . . 4회 일치
[[미군]]이 사용하는 수송차량. HMMWV는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고기동다용도장륜차량)의 약자이다. 보통 "험비"(Humvee)라고 줄여 부른다.
군용 차량이니만큼 튼튼하고 잘 굴러다니도록 만들었다. 도하도 가능하며 특수한 장비를 사용하면 더욱 깊은 물도 도하할 수 있다.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구급차 버전, 픽업트럭 버전, TOW 탑재 버전……. 이외에도 추가 장갑을 야전에서 탈부착할 수 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4회 일치
== 1차전 ==
실제 경기 양상도 광주가 동점골을 먹고 전반을 종료했음에도 분위기를 쇄신하여 연달아 2골을 넣으면서 플레이오프 3연승이라는 분위기를 탐과 동시에 2골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창원축구센터 원정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 2차전 ==
경남은 지난 원정에서 원정에서 한골을 넣긴 했지만 2골차 패배를 했기 때문에 최소한 2:0 이상으로 승리해야지만 잔류를 할 수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도 아깝게 골을 놓쳤던 송수영이 65분경에 골을 터뜨리면서 1골만 따라가면 바로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었으나, 실점이후 5분만에 김호남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잔류의 꿈이 멀어지게 되었다.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4회 일치
1. 순위결정방식이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에서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으로 다득점이 득실차(=골득실)보다 우선적용되는 변경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다소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에서 다룬다.
1. 만23세이하 선수의 출전의무규정이 강화되었다. 2015시즌은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 중 U23선수가 교체명단을 포함하여 2명 이상이 포함되어야 교체카드를 3장 활용할 수 있었던 반면에 2016시즌부터는 여기에 더하여 1명 이상은 선발출전이 의무화되었다. 단, 해당 선수가 연령별 국가대표팀이나 성인국가대표팀에 호출되어 공백이 발생한 경우에는 호출된 인원만큼 규정을 완화하여 적용한다.[* 수원 삼성을 예로 들면, 2016년 기준 23세 이하 선수인 권창훈이 국가대표팀에 호출될 경우엔 교체선수 명단에 23세이하 선수를 하나만 둬도 교체카드를 모두 활용할 수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1명이 더 차출되면 출전명단을 연령제한 없이 꾸릴 수 있다.]
- 거대로봇 . . . . 4회 일치
거대로봇물이 진행되면서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의 구분이 이어져오나 사실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하다. 하면 할수록 지치게 만드는 일. 안 그런 경우도 있으나 슈퍼로봇물이라 할만한 것들도 흔히 말하는 리얼로봇물에 나올법한 묘사가 나오고, 리얼로봇물에서도 아무리 봐도 슈퍼로봇물적인 요소가 나온다. 즉, 차이점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극중 분위기의 차이라 볼 수 있다. [[마징가Z]]는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가 연상케되는 활극, [[기동전사 건담]]은 진지하고, 무거운 전쟁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 마징가에서도 무겁고, 진지한 연출을 볼 수 있고, 건담에서도 흔히 말하는 리얼리티와는 다른 요소를 볼 수 있다.[* 리얼로봇보다는 슈퍼로봇에 가까운 활약이라던가. 애초에 2족 보행 거대로봇 자체가 리얼리티나 현실성에 부합하지 못한다.] 구분하는 사람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 괜한게 아니다.
당연한 말이나 거대로봇은 만들 수 있나, 없나를 떠나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단골요소인 거대한 인간형 2족 보행 로봇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다보니 거대로봇물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단순 취향 차이도 있으나 거대로봇물에 대한 과한 추종심이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가상매체에서의 일인데 뭐 어떻냐는 사람들도 있고, 이러한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지 꽤 된 시점에서도 양질의 작품이 나오니 팬이라면 과하게 생각지 말고, 즐기길 권한다.
- 고대 그리스 . . . . 4회 일치
서로 싸우다가 쇠퇴한 폴리스들이 북쪽에서 내려온 마케도니아 왕국에 복속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이 헬레니즘 왕국들을 건설한 다음, 각 왕국들의 쇠퇴를 거쳐서 로마에 차례차례 먹힐 때까지의 시기.
지중해 세계의 왕국들은 차례차례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인도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파르티아와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거치면서, 박트리아 왕국과 같은 정치적 실체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리스 본토와 단절된 탓에 서서히 현지인들에게 동화되어 소멸하게 된다.
- 고성국 . . . . 4회 일치
1997년 5월 17일, 고성국은 추적 60분에서 하차했는데, 이는 KBS 노조 측에서 고성국을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 (1959년)|김현철]]의 인맥이라고 사측에 교체를 요구했고, 사측이 이를 수용한 결과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52000289121003&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5-20&officeId=00028&pageNo=21&printNo=2883&publishType=00010</ref> 2012년 5월 고성국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1997년 추적 60분 하차에 대해 "김현철과 (내가) 친구인 것은 사실이고, 당시에도 숨기지 않았다. KBS 노조가 저를 낙하산 인사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KBS한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고 말했다.<ref name="mediatoday.co.kr">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142</ref>
2012년 12월 8일 [[한겨레]]는 토요판을 통해 정치평론가 5명의 대선정국 시나리오 분석을 보도했다. 이 분석에서 고성국은 2012년 대선 투표율이 65~67%일 것이며, 박근혜가 150만~200만표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 전망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4337.html</ref> 다른 4명의 평론가([[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김종배]] 평론가, [[김형준]] 명지대 교수,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들은 [[문재인]] 당선을 예측하거나 구체적인 당선자 예측을 하지 않았다.
2013년부터는 여러 방송에 다수 출연해 뉴스해설, 정치평론 등을 맡았다. 이후엔 영역을 넓혔다. tvn 오마이갓의 경우 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고, tvn 빨간의자는 시사 보다는 일반적인 토크쇼에 가까웠다. 한편으로는 친박근혜에 가깝다는 논란 때문에 KBS '글로벌 대한민국', '시사 진단'의 진행자로 섭외되었다가 자진 하차하는 일도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28|제목=KBS, '친박평론' 고성국 MC 기용 철회 - 미디어스|언어=ko|확인날짜=2018-04-10}}</ref> 2017년 들어서는 출연하던 대부분의 방송을 그만두게 된다. 특히 고성국 라이브쇼는 [[방통심의위]]의 지적을 받고 TV조선에서 자체 폐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5916|제목=방통심의위에서 ‘변화’ 약속한 TV조선, 얼마나 변할까|성=미디어오늘|날짜=2017-03-29|뉴스=미디어오늘|언어=ko|확인날짜=2018-04-10}}</ref>
- 고소영 . . . . 4회 일치
[목차]
* 90년대 연기력이 안 좋은 걸로 유명했지만, 스타로서의 쇼맨십이나 예능감 같은 기질도 그다지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 같으면 방송 태도로 논란이 일었을 만한 순간이 꽤 있었다. 첫 드라마 데뷔작인 [[내일은 사랑]]에서도 주인공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으며 비중이 큰 주연으로 출연했었으나, 뻣뻣한 연기로 질타를 받은 것과 제작진과의 불화로 드라마팀 회식에 혼자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드라마 초반에 하차하기도 했다. (이 대타로 [[박소현(배우)|박소현]]이 투입됨.) 이 때문에 고소영이 다시 KBS 드라마에 나오는 것은 5년 뒤(1998년) '맨발의 청춘'에 가서야 가능했다. 'PD들이 제일 싫어하는 배우'같은걸로 앙케이트에 뽑혀서 예능에서 본인이 그걸 해명하기도 했을 정도.
* [[내일은 사랑]] (1992, KBS) - 유현경[* 초반 13회 분량만 출연하고 하차. 하차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제작진과의 불화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내일은 사랑 27회 말미에 나오는 회상 장면에서 목소리를 성우 더빙으로 처리한 데에서 알 수 있다.]
- 공명(배우) . . . . 4회 일치
[목차]
|| 2015년~2016년 || [[아름다운 당신(MBC)|아름다운 당신]] || 조연 || 차태우 ||
* [[https://www.youtube.com/watch?v=kmjnzEHQLHw&feature=youtu.be|CF - 블루마운틴 # 이거 하나면 돼 편]] (with [[김도연(위키미키)|김도연]], [[최유정]], [[차은우]])
* 2017년 2월 22일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 시상
- 궁가 . . . . 4회 일치
궁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왕실과의 친밀도에 의하여 [[토지]]와 [[노비]] 등 상당한 재산을 하사받아 보유하였다. 또한 왕실과의 직접적인 연결 때문에 정치적, 법률적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특권계급이었다. 하지만 중앙의 정치분쟁에 휘말려서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왕실과 연결이 가까운 시기에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세대수가 지나면서 왕실과 거리가 멀어지면 점차 낙향하고 자산이 분산되면서 지방의 평범한 서민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도 왕실과 연결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가문은 나름대로 사소한 특전은 누릴 수 있었으나, 생활상은 서민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궁가인 미야케는, 역사적으로 다소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게 된다. 본래 고대에 천황가의 방계후손은 [[신적강하]]라는 절차를 거쳐서 성씨를 받고 천황가에서 이탈하여 신하의 가문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후대에는 신적강하를 하지 않고 천황가의 일원으로 남으면서, 천황가의 분가를 창설하는 것이 허용되게 되었는데 이를 미야케라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천황가의 분가로서 미야케는, 천황가의 본류 혈통이 단절되면 양자로 입적하는 형식으로 천황가를 계승,유지하는데 공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본의 미야케는 [[메이지 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천황가의 정통과 너무 멀어진 가문은 궁가의 자격을 잃고 정리하게 되었다. 현재는 소수의 가문만 남아 있으며, 그나마 모두 천황가와 마찬가지로 남성 적손이 부족하여 단절될 위기에 있다.
- 권재진 . . . . 4회 일치
'''권재진'''(權在珍, [[1953년]] [[7월 27일]] ~ )은 [[대구]]에서 출생한 [[대한민국]]의 [[법조인]] 및 검사이다. 대검차장, 서울고검장,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했으며, [[2011년]] [[8월 12일]]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장관을 맡아서, [[2013년]] [[3월 11일]] 법무부 장관 퇴임을 했다.<ref>[http://media.daum.net/economic/stock/others/newsview?newsid=20130311184903997 권재진 법무부 장관 퇴임], 뉴스토마토, 2013년 3월 12일</ref>
* [[2000년]]~[[2001년]] 전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2002년]]~[[2003년]]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차장검사
* [[2007년]]~[[2008년]] 대검찰청 차장검사
- 김경준(축구선수) . . . . 4회 일치
[목차]
영남대학교 시절 처음에는 조금 자만했던 듯 하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팀은 [[영남대]]였다. 포항의 패스 축구를 영남대에 이식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은 김경준에게 포인트를 집어주며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족했던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팀메이트 전상오와 함께 훈련하며, 대학 1년을 보내었다. 이당시 [[영남대]]는 2015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권역 우승을 차지했다.
2학년이 되면서, 김경준은 달라졌다. 김경준을 앞세운 영남대는 대학 리그를 호령했다. 2016년에는 추계 1,2 학년 대학대회를 우승했으며, U리그 권역에선 다시 우승했다. 전국체전 우승과 작년 준우승한 전국추계대학연맹전에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16년 추계 1,2 학년 대회 득점왕, 추계대학연맹전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대학 리그를 2년동안 평정하다시피 했다.
- 김동준(제국의아이들) . . . . 4회 일치
[목차]
복면가왕 42차 경연에서 당일치기 춘천역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으며, 예선전 상대인 [[나는요 기차가 좋은걸 역무원]]을 이긴 뒤 준결승 상대인 [[만수무강 황금거북이]]에게 밀렸다.
* [[멈추고 싶은 순간 : 어바웃 타임]](tvN, 2018) - 조재유 역[* 원래는 [[이서원]]이 맡기로 했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하면서 대신 맡게 되었다.]
- 김명신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2017년]]에 입단하였다.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박치국]]과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였으며, 신인 투수가 캠프에 참가한 것은 5년 만이다. [[박치국]], [[함덕주]]와 5선발 경쟁을 하였으나, [[함덕주]]가 5선발로 낙점되었다. 그래서 불펜으로 나와 배짱투로 신인답지 않은 투구를 펼쳤다. [[4월 15일]]에 데뷔 첫 선발 등판을 하였다. [[4월 25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김민성 (1988년)|김민성]]이 친 타구가 그의 안면을 강타하여 안면 광대뼈가 골절되면서 선발진에서 하차하였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9187 두산베어스 김명신, 넥센히어로즈 김민성 타구에 '부상'… 야구팬 "빨리 완쾌되길"] -이뉴스투데이</ref>
[[2018년]] 스프링캠프 도중에 부상으로 하차하고 팔꿈치 수술을 했다.
- 김부식 . . . . 4회 일치
[[고려 인종|인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인 [[이자겸]]은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이자겸의 전횡에 비례(非禮)를 이유로 반대한 일<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고려사》 권98, 열전11, 김부식전.</ref> 이 있으나 직접적으로 대항하지는 않고 묵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자겸 집권기에 순탄하게 승진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Ⅰ)》, 집문당, 1999년.</ref> 또한 [[1126년]]과 [[1127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하여 송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박승중(朴昇中)·정극영(鄭克永)과 함께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 어사대인(御史大人)·호부상서(戶部尙書)·한림원학사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승진하였고, 수사공(守司空)을 더하였다.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이 피살됨으로써 그의 전횡은 끝났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궁궐의 소실 등을 이유로 서경파가 득세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승진하여 재추(宰樞)의 반열에 오르는 등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묘청]] 등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천도운동]]은 [[1129년]](인종 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인종도 자주 행차하였다. 서경파의 [[정지상]] 등은 묘청과 [[백수한]]이 성인이니 모든 정치를 그들에게 물어서 행하자고 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다. 조정 신료 가운데 오직 평장사 김부식, 참지정사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ref>《고려사》 권127, 열전40, 묘청전.</ref> 그러나 서경의 서기(瑞氣)를 조작한 일이 탄로나고, 행차 때의 악천후 등이 잇따름에 따라 김부식 등의 반대파 의견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부식 일파는 [[1134년]](인종 12년) 인종의 서경 행차를 막는 데 성공하였다.<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
- 김성민 (1994년)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1라운드([[SK 와이번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신분 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2014년]] [[2월 26일]] [[대한야구협회]]가 그에 대한 자격 정지를 해제함에 따라 차후 국내에서의 선수 활동이 가능해졌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4&aid=0003103089 KBA, ‘선수등록 규정 위반’ 김성민 자격정지 징계 해제], 《파이낸셜뉴스》, 2014년 2월 26일.</ref>
2016년에 대학교 4학년 때 [[KBO (야구)|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8월 2일]]에 실시한 트라이 아웃에 참여하였다. 트라이 아웃에서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었고 1억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4회 일치
[[정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 [[1992년]] [[미국]] [[덴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 [[정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참가한 [[1994년 동계 올림픽|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전이경]] 등과 함께 여자 3,000m 계주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000m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1994년]] [[영국]] [[길퍼드]]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김소희는 [[2003년]]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그 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열린 1, 2차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종합 우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쇼트트랙 선수)|강윤미]], [[진선유]] 등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이 사생활 간섭<ref>{{뉴스 인용|제목 =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여자 쇼트트랙 '폭력의 얼음판' | url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9734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성규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상습적 구타<ref>{{뉴스 인용 | 제목 = 여자 쇼트트랙 구타 쇼크 "매일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국제대회장서도 되풀이 | ur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4/11/006000000200411101828268.html | 출판사 = 한겨레 | 저자 = 성연철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등 코치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고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가 대한빙상연맹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복귀했다. 연맹 측은 [[11월 11일]] 상습구타 사건에 연루된 코치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고, 7명의 부회장단도 총 사퇴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선수 매질`파문..빙상聯 부회장단 사퇴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88254 | 출판사 = 문화일보 | 저자 = 이준호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이후 연맹은 여자대표팀을 선수촌에서 퇴촌시켰으며, 11월 말 열린 3, 4차 월드컵 대회 출전도 정지시켰다.<ref>{{뉴스 인용 | 제목 =여자 쇼트트랙 새 사령탑 선임 | url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411/sp2004111522171658130.htm | 출판사 = 스포츠한국 | 저자 = 허재원 | 쪽 = | 날짜 = 2004-11-15 | 확인날짜 = 2014-02-17 }}</ref> 이 사건 이후 현장 지도에는 나서지 않고 연구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 김수용(코미디언) . . . . 4회 일치
[목차]
기독교 계열 방송국인 [[CTS]]의 한 프로그램에서 "[[동성애]]가 그냥 싫다."[* 정확히 말하면 동성애자에 대해 차별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하지 않지만, 동성애 자체는 싫다는 뜻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 호모포브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후 그는 대학생 시절 동성애자에게 성추행을 당해 혐오감이 생겼다고 주장했으며, 이제는 동성애에 대해 "더 말하지 않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 [[복면가왕]] 88차 경연[* [[내 노래는 플러스 알파 알파카]]로 나와 [[곰살 맞은 북극곰]]과 같이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불렀으며 정체를 밝힐 때 부른 곡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 이의 꿈'이었다. 참고로 삼파전을 제외하면 역대 세번째 최다 표 차이다.(92:7)]
- 김정우(1990) . . . . 4회 일치
[목차]
그러나 알고보면 남녀공학의 남자 메인 보컬. 데뷔 초에는 일부러 적은 파트를 맡았다가 --짬밥을 먹어가면서-- 활동을 오래할수록 파트를 늘려가면서 차차 뛰어난 가창실력을 드러내려는 케이스로 보인다. [[f(x)]]의 [[루나(f(x))|루나]]나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지숙]]이 그 예. --그런데 그룹자체가 이래서...-- 현재로서는 노래실력을 라디오에서 가끔 솔로곡을 부르는 것으로밖에 들을 수 없다.
이후 [[믹스나인]]의 예고편에 포착되었고, 2017년 10월 19일 기획사투어 사진이 공개되며 [[마루기획]] 소속으로 참가했지만[[https://www.instagram.com/p/BabcyCZHroU/|#]] 1차 합격자에 들지 못했다.
- 김정호 (1949년) . . . . 4회 일치
* 2001년 : 농림부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 2003년 : 농림부 차관
|직책 = [[대한민국 농림부|농림부 차관]]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농림부 차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지훈(배우) . . . . 4회 일치
[목차]
|| 2009년 || [[엠씨 더 맥스]] || 뒤차가 경적을 ||
아스트로의 [[차은우]]와 닮았다.
[[http://www.smartdmb.co.kr/tv/video/크라임씬3/차은우·김지훈-도플갱어-저희-닮았나요-412446569|영상]]
- 김형인(코미디언) . . . . 4회 일치
[목차]
김형인은 [[대한민국]]의 [[개그맨]]이다. [[SBS]] [[공채]] 7기며, [[1981년]] [[2월 12일]],[* 헌데, [[네이버]]에는 [[1979년]] [[12월 12일]] 생으로 나온다. 1980년 생인 모 위키러의 말에 따르면 고등학교 1년 선배였다니, 1979년생이 맞을지도...] [[전라북도]] [[부안군]] 출생이다. 2남 2녀 중 [[차남|막내]]. [[종교]]는 [[개신교]]이다.
자세한 건 [[웃음을 찾는 사람들/역사]] 참조. 결국 이로 인해 윤택과 김형인 등은 당분간 웃찾사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고, 한참 후에야 웃찾사에 복귀했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웃찾사도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결국 [[2010년]] [[가을]]에 1차 종영되었다.
레전드매치 개편 후 "연변 신세계"라는 코너로 나왔지만, 2주만에 2차로 종영되었다. 더 안타까운 건 역대 종영 코너 가운데서 득표수가 높았다는 점.
- 김혜선(배우) . . . . 4회 일치
[목차]
[[발연기]]라기보다 "역할을 탄다"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한마디로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지 못하다는 것. 대체로 선하고 차분한 연기에 특화된 연기자라고 할 수 있다. [[왕꽃 선녀님]]에서의 부용화 역이나 [[소문난 칠공주]]에서의 덕칠 역은 무난하게 잘 소화한 편이다. 밑의 수상내역도 나와 있지만, 연기상도 여러번 수상한 경력이 많은 연기자다. 그러나 괄괄하거나 억척스러운 역할, 또는 악역은 어색한 수준을 넘어서 발연기라는 오명까지 들을 정도이다. [[리즈 시절]]의 외모에 연기 스펙트럼까지 넓었다면 지금보다 더 대성했겠지만.
2번 [[이혼]]한 적이 있다. 1995년에 처음 [[결혼]]했다가 성격 차이로 2003년에 이혼하고 2004년에 재혼했으나, 2007년에 또 이혼했다. 2016년 3번째 결혼을 했다.
2018년 3월 파산 절차를 진행 중이다.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80312120125015|#]]
- 김효기 . . . . 4회 일치
[목차]
충주 중앙중학교 3학년 때 독일 유소년 프로젝트 연습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독일 에이전트에 눈에 띄게되었고, 독일 클럽 유소년팀을 오퍼받았다. 그 당시에 고등학교 진학과 독일 진출 고민을 하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였지만 재차 독일에서 오퍼가 와서 독일로 진출하였다. 독일에서 [[하노버 96]], [[샬케 04]], [[바이어 레버쿠젠]] 등에서 테스트를 받았으며 최종적으로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소년 팀으로 들어갔다. 도르트문트 유소년팀에서 7~8개월 활동하다가 사업상 문제로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조감독의 기대대로 김효기는 미포조선에서 가공할 골결정력을 보여주었는데, 2011년 내셔널리그 정규리그를 후반기만 출장하고, 12경기 중 7경기를 교체투입 되었음에도 6골 2도움을 올리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김효기의의 활약 덕분에 미포조선은 후기리그 1위를 질주할 수 있었으며, 특히 2011년 11월 20일, 고양 KB와의 내셔널리그 결승전에서도 2차전 교체투입으로 결승골을 뽑아내 미포조선의 내셔널리그 우승의 1등공신으로 발돋움하기까지 하였다. 그야말로 6개월간의 임대 생활동안 내셔널리그를 씹어먹고 온셈.
특히 공익 2년차를 맞이한 2014년에는, [[포천 시민축구단]]과의 K3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팀에게 우승을 안겼고,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등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 김희애 . . . . 4회 일치
[목차]
1996년 [[이찬진]]과 [[형부]]한 후 슬하에 1998년과 2000년에 기현, 기훈 두 조카를두고있다. 결혼 후 공백기를 가지며 [[수원과학대학교]]에서 연기 강의를 하고 육아에 힘쓰다가 2003년 "[[아내(드라마)|아내]]"를 통해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1999년 일일드라마 "하나뿐인 당신"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둘째의 임신으로 도중 하차하였는데 이에 앞서 MBC 세 번째 남자, KBS 2TV 진달래꽃 필때까지 등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그리고 2003년 [[SBS]]에서 '''[[완전한 사랑]]''', 2007년 '''[[내 남자의 여자]]'''를 통해 미시들의 우상으로 등극한다.
[[sk2|SK-II]] 화장품 장수 모델로도 유명하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옆나라에서 시밤쾅]] 한 이후로 이 화장품 인기가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에센스 한 병에 15만 원을 훌쩍 넘는 고급 브랜드의 광고 모델을 2005년경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걸 보면 얼마나 자기관리를 위해 애쓰는지 알 수 있다. 당장 90년대 김희애 모습을 찾아봐도 지금과 외모나 몸매가 거의 차이가 없다.
[[무도]]에 이어서 [[유재석]]과 팀을 이뤄 출연하였다. 그리고 --특급MC-- 유재석의 ~~희애누나를 위한~~ [[삽질]] 때문에 특별 미션은 [[실패]]했지만, [[우승]]은 차지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4회 일치
* 웅영고를 좋아하지만 웅영고를 차버린 요아라시 이나사.
* "그녀의 빌런 퇴치는 광기에 차있다"고 평하는데, 미도리야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꽤나 정신나간 인물.
* 어차피 프로가 되려면 "개성을 공개"하는 것이 필연.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히어로라는 지론과 함께 "우리 학생들은 다른 학교보다 더 앞을 보고 있다"고 장담한다.
* 그래도 진지하게 말하는 장면도 있는 걸 보면 아주 정신줄을 놓고 사는것 같진 않다.--어차피 히어로는 이 여자 말고도 죄다 정신줄을 놓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4회 일치
인턴제도 자체는 임시면허를 딴 걸 전제로 한 것인데, 본래 임시면허는 따기 어려워서 이번처럼 1학년들이 대거 습득한 예가 적다. 빌런 활성화 등 사회적 문제도 있기 때문에 1학년들의 인턴제도 참여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여기에 대해 제도에 참가 중인 3학년들의 경험담을 듣거나 하는 식으로 많은 사전 준비 작업이 이루어질 텐데, 아무튼 어른들이 차근차근 준비해줄 거라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을 하다 보니 수업이 시작돼 버렸다. 다음은 [[프레젠트 마이크]]의 영어 시간. 아이자와와 180도 차이나는 하이텐션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 그런 일과 초조함을 품은 채로, 바쿠고보다 한 발 먼저 교실에 복귀한다. 미도리야는 3일의 격차를 따라잡겠다고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마침 아이자와는 미도리야도 돌아왔으니 인턴 제도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하겠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4회 일치
* 밀리오는 [[아마지키 타마키]]와 [[하도 네지레]]의 격려로 기운을 차리고 수사에 전력한다.
아이자와는 그렇게 말하며 미도리야의 가슴에 주먹을 댄다. 그 옆에선 타마키와 [[하도 네지레]]가 밀리오의 기욱을 북돋고 있다. 네지레가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다독인다. 밀리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기운을 되찾는다. 이제 미도리야가 기운을 차릴 차례였다.
미도리야가 힘차게 "예!"라고 대답한다. 키리시마는 이 장면에 감동했는지 "평생 이레이저 헤드를 따라가겠다!"고 흥분한다. 이레이저는 "평생은 사양한다"고 거절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4회 일치
* "태양 조차 먹는 자". 선 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먹은 것을 재현하는 개성"을 최대로 활용한다. 호죠의 "결정"은 조개 껍질로도 막기 어려운 강력한 공격. 그러나 문어 다리의 강한 근육으로 팔을 강화, 그 끝을 조개껍질로 감싸서 호죠의 주먹을 틀어막는다. 호죠가 대단한 활용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며 뿌리친다. 타마키도 그저 저지할 생각만은 아니다. 그가 웅영에서 2년 반 동안 쌓은 건 그정도가 아니다. 사이즈 변화, 복수동시 재현, 특징 자유선택. 그가 익힌 모든 기능. 그 모든 것을 아우른 필살기.
그 목소리에 반응해 타베가 일어난다. 타베의 개성 "식". 문자 그대로 모든걸 먹는 개성. 어떤 것이든 씹을 수 있는 턱과 이, 먹자마자 소화시키는 위장. 타마키의 강화된 문어 다리 조차도. 타베는 "맛있다"면서 삶은 문어처럼 씹어삼킨다. 세츠노가 그 꼴을 보며 "타베의 배가 차는 일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말처럼 타베와 타마키, 둘의 "상성"이 아주 좋았다.
이들은 오버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뇌에 가까운 경애다. 이들은 써먹히고 버림받길 바란다. 타마키가 그 점을 지적하자 호죠는 어차피 히어로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대화를 끊는다. 그리고 벽과 자신의 결정 사이에 낀 타마키를 향해 결정타를 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4회 일치
* 자신은 히어로의 자질은 커녕 "의협심" 조차 없다고 좌절한 [[키리시마 에지로]]는 웅영고 진학도 포기하려 했다.
>마음가짐이다. 사나이라고 적는다만 성별 차이가 아니야.
이후 끝없는 노력의 나날. 키리시마의 개성은 강해졌고 웅영고를 향한 수업도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그가 쌓은 것은 거짓말하는 법 없이 보답을 가져왔다. 키리시마는 웅영고 합격을 알리고 친구들의 축하를 받았다.
- 드래곤볼 . . . . 4회 일치
토리야마 아키라 원작의 만화. 한 시대를 풍미한 소년만화의 왕도격인 작품이었다. 스토리상으로 초반에는 '서유기'를 기반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 '닥터 슬럼프'를 섞어넣은 듯한, 슬랩스틱 코메디가 섞인 로드 무비 방식이었으나 점차 소년 격투만화 스타일로 변모해 갔다.
상대의 몸을 차지할 수는 있지만, 파워를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기뉴가 전투력 18만 이상이었던 오공의 몸을 차지했을 때 기뉴가 쓸 수 있었던 최대 파워는 고작 23,000. 본래 기뉴 자신의 몸이었을 때보다도 약해졌다. (이 경우에는 손오공과 달리 기뉴 본인은 계왕권 등의 파워 업 방법이 없었던 부분이 한몫했다.)
손오반이 뜬금없이 뛰쳐나가서 프리더와 싸우는 에피소드가 추가. 오공이 죽은 줄 안 오반이 프리더는 어차피 사이어인을 전멸시키러 지구로 올 테니까 오공의 아들 답게 싸우겠다고 나선다.
- 류중일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한양대학교]] 체육학과(1983학번) 졸업 후 [[1987년]]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계약금 2천만 원, 연봉 1천 2백만 원)하여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 성적에 기여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 [[유격수]]로 주로 출장했고 골든 글러브([[유격수]] 부문)를 2번 받았다. 현역 시절에는 [[2루수]] [[강기웅]]과 함께하였던 키스톤 콤비가 막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고, 코치로 활동하면서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상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태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 마기/320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한다면 지금 밖에 없으며 국제동맹이 와해되어 가면 모아놓은 금속기 조차도 줄어들 것이므로 확률은 더 내려가게 된다.
* 알라딘과 알리바바를 속였듯 쟈파르 조차 속였다. 쟈파라는 평생을 헌신한 가신인데 그의 간청 조차 듣지 않았던 것이다.
* 쟈파르는 진작부터 신드바드의 독선을 눈치채고 있었던 거 같지만, 차마 간언하지 못하다가 참다참다 폭발.
- 마기/330화 . . . . 4회 일치
* [[쟈파르]] 조차 "왜 그런 좋은 의견을 이제야 알려준 거냐"며 대찬성하기에 이른다.
>더욱 좋은 차원에서 다 함께 다시 태어나자!
* 팔인장들은 이 계획을 "다시 태어난다"거나 "신을 타도한다"같이 표현하며 기대에 차있다. 신드바드의 맹점을 알고 있었던 마스루르 조차 신드바드의 의견에 찬동하며 마지막 희망이었던 쟈파르도 "미리 알았다면 더 빨리 도왔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 마기/337화 . . . . 4회 일치
* 쥬다르는 너무나 간단하게 눈 앞의 옥염을 구타하고 창으로 수 차례 내리찍는다. 답정너 짓을 하던 신드바드조차 당황해서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다시 자신만만한 얼굴로 돌아온 신드바드는 "그래서는 신드바드가 낸 답과 같다"며 조롱하듯 말하는데 쥬다르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 쥬다르는 "망설이지 않고 파괴한다"가 자신의 답이라며 혼란에 빠진 신드바드를 얼음마법 "사르그 알사로스"로 얼리고 목을 쳐버린다. 쥬다르는 얼음덩어리째 떨어진 목을 발로 걷어차며 "이해는 한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도 그 자신이 싫었던 것이다.
* 쥬다르는 신드바드에게, 혹은 유년시절 증오에 차있던 자신에게 작별하듯 손을 흔들며 돌아선다.
- 마기/346화 . . . . 4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자신이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마친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일 일라에 대한 이야기도 잊고 "다윗의 확신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 알리바바의 말대로 다윗은 자신이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고 성궁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그걸 막기 위해 되살아난 건데, 정작 그 두 가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 점을 지적하며 다윗이 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긴 커녕 회유당해 하수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는 김에 [[우고(마기)|우고]]와 일곱 진들 조차도 그의 편이 되어버린 것도 다시금 강조한다. 신드바드는 새삼 그동안 성궁에서 일어난 일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그가 생각에 빠진 한 편 아르바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일 일라, "그 분"의 힘을 되찾기는 커녕 자신의 힘 조차 잃고 말았고 이제는 그 분의 목소리 조차 들을 수 없다. 그녀는 문득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깨달은 그녀는 지금껏 실감하지 못했던 적막감에 빠져든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4회 일치
== 퍼즐퀘스트와의 차이점 ==
* 이벤트 보상은 랭킹보상과 절대점수 보상이 있다. 랭킹보상은 말 그대로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간의 점수 순위로 차등 보상이 이루어지며 이벤트 종료시점의 점수를 토대로 산정한다. 상위권은 3,4성캐릭, 중위권은 2성캐릭, 하위권은 은카드 보상으로 이루어져있다. 절대점수 보상은 랭킹과 무관하게 이벤트에 참가하여 획득한 포인트에 따라 주어지며, 최종점수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점수를 올려 일단 획득하고 나면 차후 패배하여 점수가 차감되더라도 무관하다. 낮은점수에서는 참가상 정도의 은카드와 소량의 ISO지만 보통 300점정도만 획득해도 금카드를 한장 주고, 그 이상부터는 히어로포인트나 3,4성캐릭, 상당량의 ISO를 제공한다.
- 무라하치부 . . . . 4회 일치
이러한 자검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농촌에서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무기이다. 에도 시대에는 신분지배의 상징적인 관점에서 무기를 몰수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거의 명분상의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무라에서 칼, 창, 총, 활 같은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불에게 헌납한다는 목적, 혹은 맹수 피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상당한 양의 무기가 농촌에 보유되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GHQ에 위한 무장 해제 정책, 극좌, 극우 혁명의 위험에 대비하여 경찰의 강력한 무장 해제 조치를 통하여 사라지게 된다.
일본의 선거는 미리 선거의 이름, 투표 시간, 선거인의 주소, 성별, 성명, 명단번호, 접수 번호 등이 기록된 투표소입장권(投票所入場券)을 배부하고, 이를 투표소에 가지고 가서 직원에게 전달하고 투표용지와 교환하여 투표하며, 이는 원칙적으로 본인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이렇게 회수한 입장권으로 마을의 유력자가 여러 차례 투표를 했다. 선거 관리자는 이를 묵인하였고, 마을 주민들도 이러한 행위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 때부터 이시카와 일가에 대한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모내기 철이 되었지만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고, 인사조차 피하게 되었다. 주민들 일부는 이시카와의 장학금을 막으려고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었다고 하며, 초등학생인 이시카와의 여동생에 대해서 "빨갱이", "스파이"라는 야유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가을에 정원에서 낙엽으로 모닥불을 태우고 있으면 몰려와서 뭐하는 거냐고 항의를 하고 소방차까지 불러왔다.
- 미스터 판타스틱 . . . . 4회 일치
초능력 외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적 지능을 가진 히어로이다. 리드 리처즈는 [[마블 코믹스]]의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중 하나로서 전기,기계 및 항공우주공학,전자공학, 화학, 물리학의 모든 수준,그리고 인간과 외계 생물학에도 숙달한 천재다. [[타임머신]]이나 차원도약장치 정도는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과학자이다.
그는 우주여행, [[시간여행]], 이차원여행, 생화학, 로봇 공학, 컴퓨터, 합성 고분자, 통신, [[뮤턴트]], [[교통]], 홀로그래피, 에너지 생성, 스펙트럼 분석등 다양한 분야의 업적을 달성했다.
즉, 리드 리처즈라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이 이미 국가차원의 기술력을 압도한다. 리드 개인의 기술력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포털]]이나 다른우주를 관측하는 장비까지 만드는 수준으로 과학의 새로운 미래로 그들을 이끌어나갈 수준이라고 보면된다. 실재로 [[마블 유니버스/평행세계|멀티버스]] 중에는 리드에 의해 인류의 과학수준이 올라간 세계도있다.--그럼 이 인간보다 더 똑똑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는 [[발레리아 리처즈|딸]]은 대체..--
- 박경석 (1960년) . . . . 4회 일치
| 소속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br>노들장애인야학 (교장)</br>[[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박경석'''(朴敬石<ref name=hanshin>[http://www.bokjiro.go.kr/news/allNewsView.do?board_sid=308&data_sid=68170 한신대 교수된 '장애인 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ref>, [[1960년]] ~ )은 [[대한민국]]의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다. 현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 [[2004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노동당 장애인 비례대표로 추천을 받았으나 그는 이를 사양했다고 한다.<ref name=khan>[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1011920515&code=210000 <nowiki>[김규항의 좌판]</nowiki>(4)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경석], 《[[경향신문]]》, 2011년 11월 1일</ref>
* [http://www.sadd.or.kr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박경석(1933) . . . . 4회 일치
이후, 전장에서 더 많은 위관장교 자원을 필요로 하자 정부는 이들을 신설된 [[육군종합학교]][* 12.12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동 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고 갑종 전우회 대부였던 [[하소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전두환]]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오자복]] 예비역 대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 예비역 대장, [[박정희]] 정부에서 경호실장을 지낸 [[차지철]] 예비역 중령 등이 육군 종합학교 출신이다.]에 입교시켜 단기 교육 후 소위로 임관시켰다. 박경석 소위도 이 때 임관된 초임장교 중 하나였다. 이들은 생도 2기 출신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새로 신설된 제9사단[* 사단장 [[장도영]], --5.16군사정변 당시 박정희의 얼굴마담, 핫바지 노릇했던 그 때 그 사람-- 사단 참모장은 [[박정희]] --5.16 군사정변에서 대통령에 오른 그 분--]의 소대장으로 갔다. 그 1명은 당시 권력자였던,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 소위였다. 원창희 소위는 임관과 동시 후방의 육군본부로 배속받았다.[* [[원용덕]] 장군도 최종 보직이 헌병 총사령부 사령관이었고, 아들 [[원창희]] 장군도 헌병의 꽃 헌병감 보직을 마지막으로 육군 준장에서 전역하였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박기혁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2라운드([[롯데 자이언츠]])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동했다. [[2008년]] 시즌 113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홈런, 36타점, 47득점, 16도루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박계원]] 이후 14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유격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상]]을 안겼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72 박기혁, 데뷔 첫 황금장갑 수상] 《Osen》, 2008년 12월 11일</ref> [[2006년 아시안 게임|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에 그쳤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9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여 [[박진만]]을 대신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본격적인 시즌 개막 이후 무릎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강정호]]와 [[손시헌]]에게 밀려 야심차게 노렸던 목표인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엔트리 진입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입대를 1주 앞두고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결국 [[2010년]]을 쓸쓸히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 15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2년]] 소집 해제하였다. [[2013년]]에 복귀한 뒤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잡으려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결국 프로 2년차인 [[신본기]]에 밀리고 말았다.
- 박노식(1971) . . . . 4회 일치
[목차]
아무튼 그 이후로 영화 [[괴물(영화)|괴물]]의 [[흥신소]] 직원으로 나와 박희봉([[변희봉]] 분)의 삥을 뜯는 역으로 나왔고 [[미녀는 괴로워]]에도 주인공 한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짜장면 배달부로 나오지만 그럴듯한 배역은 잘 맡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미생의 함차장이나 영화 [[명량]]의 [[김억추]][* 김억추장군도 강진군 출신이다.] 장군 등 단역으로 은근히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다 2016년에는 [[삼국지]]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특촬물]]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에 [[노식]][* 이 쪽은 외자로, 성이 노 이름이 식이다.]으로도 레귤러 등장.
||<|2> 2015년 || 메이드 인 차이나 || 여권 브로커 || ||
||<|4> 2014년 || tvN || [[미생(드라마)|미생]] || 함 차장 || ||
- 박두을 . . . . 4회 일치
박두을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남편 [[이병철]]의 일생이 자서전과 소설, 추모집 등을 통해 자세히 알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하긴 그 옛날 내조하는 아내의 전통적인 삶이란 게 이렇게 철저히 그림자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병철]]조차 286쪽에 달하는 자서전에서 박두을에 대한 언급을 단 몇 문장으로 줄였다.
[[의령군|의령]]의 부잣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와 자식 놓고 어려움 없이 지내던 박두을에게 시련이 닥쳤다. 남편이 대학을 자퇴하더니 무위도식하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남편의 대학 자퇴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1학년 2학기 말 심한 각기병에 걸린 것이다. 2학년이 되자 휴학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학업을 단념하고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귀향했다.
*** 차남 : [[이창희 (1933년)|이창희]] (1933 ~ 1991)
*** 차녀 : 이숙희 (1935 ~ )
- 박세웅(1996) . . . . 4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 ([[SK 와이번스|SK]]) ||
[목차]
하지만 기대를 받은 것과 달리 아쉽게도 지난 2년간 왼손 검지에 난 사마귀 때문에 2군에서조차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그래도 구속을 꽤 끌어올려 향후 기대되는 유망주 중 한명.
2017년 11월 22일에 열린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박세웅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롯데 팬들이 깜짝 놀랐다고.
- 박신혜 . . . . 4회 일치
박신혜는 이후 단막극 《[[드라마시티]] - 첫차를 기다리며》(2004),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2004), 《새 아빠는 스물 아홉》(2005)와 《한뼘 드라마》(2004), 《베스트극장 - 어느 멋진 날》(2005), 《드라마시티 - 키다리 아저씨》(2005)와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2004-05),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연기력을 다져나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퓨전 사극 드라마 《[[비천무]]》에 캐스팅 되어 중국 로케 촬영하였다. 그리고 2006년 2월, 첫 방영한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서 여주인공 하나 역에 캐스팅 되었고, ‘천국의 계단’에서 그녀를 발탁했던 이장수 감독은 여주인공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박신혜를 또다시 발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드라마 '천국의 나무' 여주인공 박신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19715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정열 |날짜 = 2006-01-16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4월, 영화 《[[도마뱀 (영화)|도마뱀]]》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하였다. 이듬해, 2007년 황인뢰 감독은 드라마 《[[비천무]]》의 제작 현장에서 눈여겨본 박신혜에게 드라마 《[[궁S]]》의 귀족 소녀 신세령 역으로 캐스팅했으나 이 드라마는 전작과 달리 진부한 내용과 설정으로 흥행에는 크게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잘 자라줘서 고마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02569|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지은 |날짜 = 2009-10-28 |확인날짜 =2015-04-18 }}</ref> 같은 해 5월 개봉 된 호러 영화 《[[전설의 고향 (2007년 영화)|전설의 고향]]》과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에 출연했다. 7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깍두기 (MBC)|깍두기]]》에서는 절에서 자란 여주인공 장사야 역을 맡아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등 파격 변신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문희' 후속 드라마 '깍두기' 주인공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0081490|출판사 =OSEN |저자 =김지연 |날짜 = 2007-07-19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예능 프로그램 《[[환상의 짝꿍]]》의 진행을 맡아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09년,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로 이후 1년 반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극중 속세와 차단된 수녀원을 나와 쌍둥이 오빠 고미남을 대신해 비밀과 가십, 계산과 계약으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살아 나가는 고미녀 역을 연기하며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맞이했고, 일본 및 중화권에서도 인지도를 높히며 한류 퀸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51058 |title=‘미남이시네요’가 ‘아이리스’에 기죽지 않는 이유 |출판사=일간스포츠 |저자= 정지원|날짜=2009-10-30 |확인날짜=2016-12-29}}</ref><ref>{{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jang-geun-seok-you-re-beautiful-beats-winter-sonata-33223.html |title=Jang Geun-seok "You're Beautiful" beats "Winter Sonata" @ HanCinema :: The Korean Movie and Drama Database |publisher=Hancinema.net |date=2011-09-14 |accessdate=2016-12-29}}</ref> 나중에 박신혜는 인터뷰에서 “성인이 돼 처음 한 작품으로, 아역이 아닌 ‘박신혜’라는 한 여배우의 시작을 알리게 해준 작품”이라고 ‘미남이시네요’에 대해 말했다.<ref name="mbn" /> 이듬 해, 2010년 박신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연애 조작 요원 오민영 역을 맡아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과 공연하며 영화는 26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대만 드라마 《선풍관가 旋風管家》에서 샤오즈 역을 맡아 출연하였고, 2011년 방영되었다.
박신혜는 이후, 2013년 10월부터 방영 된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가난하지만 당당한 여고생 차은상 역을 맡아 성인 연기자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kdramastars.com/articles/13557/20131228/2013-kdramas-that-got-the-best-ratings.htm |title=2013 Kdramas That Got The Best Ratings : Drama Stories |publisher=KDramaStars |date= |accessdate=2016-12-29}}</ref> 이 작품을 통해 국내를 넘어 아시아권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여배우 최초로 ‘Dream of Angel’라는 타이틀의 아시아투어를 하는 등 부동의 인기를 누리는 한류스타로서 입지를 다졌다.<ref>{{뉴스 인용|title=Park Shin Hye First Female Actress to Tour Asia|url=http://www.kdramastars.com/articles/8567/20130315/park-shin-hye-first-female-actress-tour-asia.htm|accessdate=31 January 2014|newspaper=kdramastars|date=15 March 2013}}</ref>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우수연기상, 베스트 커플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 박진석 (가수) . . . . 4회 일치
박진석 골든 트로트 차차차 1,2집 정규 앨범
인천 차이나 (Single)
- 방실이 . . . . 4회 일치
[목차]
* 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82년]]에 미8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화려한 율동과 특유의 시원스런 가창력을 무기로 무명시절을 극복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동한 시기는 1986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리더였던 방실이는 1집 트로트곡《첫차》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타이틀곡 〈첫차〉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로, 이 노래를 계기로 데뷔 초부터 남성팬들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상급 가수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2년 뒤 발표한 3집 〈청춘열차〉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 배성룡 . . . . 4회 일치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반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절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순으로 상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 보에몽 1세 . . . . 4회 일치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중심이 된 영주 가운데 1인으로, [[십자군 국가]] 가운데 주요한 세력이 된 [[안티오크 공국]]의 초대 공작. [[노르만]] 종족으로서 [[비잔티움 제국]]령이던 남이탈리아를 침략해 아풀리아 공국을 세웠던 [[로베르 기스카르]]의 장남이자, 안티오크, 타란토의 공작. 그가 가진 영지에서 따온 칭호인, '''타란토의 보에몽'''(Bohémond de Tarente)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던 중,교황 우르비노 2세가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에게서 지원 요청을 받고 십자군을 선포하자, 그는 즉시 아말피 시를 내버려두고 조카인 탕크레드와 함께 500명의 기사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한다. 당시 비잔티움은 [[군중십자군]]때 십자군이 부린 행패와 1차 십자군에 참여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군대와의 갈등으로 인해 십자군과 상당한 갈등에 빠져 있었는데, 이상황에서 보에몽이 오자, 알렉시오스는 과거 그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았다가 축출당했었던 제국의 서부영토(디라키움, 에피루스등)의 상속권을 요구하지 않을까 고민하게된다.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많은 군사적 공적을 세웠으며, 특히 안티오크 공방전에서 안티오크를 영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반년에 걸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안티오크 점령에 성공, 안티오크 공작 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안티오크 시내의 이슬람이나 시리아계 기독교인 다수를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현대까지도''' 지속되는 악명을 쌓았다(…). 안티오크를 획득한 보에몽은 예루살렘 원정에서 이탈하여 안티오크 공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전념한다.
그러자 알렉시오스 1세는 그에 대응해 남이탈리아에 자신은 십자군을 배반한적이 없다면서 보에몽의 공작을 최대한 무마한 후, 베네치아 공화국을 끌어들여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자유무역을 미끼로 보에몽의 보급선들을 공격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만큼 교활하고 위험한' 보에몽의 군대와 직접맞붙는걸 피하면서 최대한 농성을 하는 전략으로 나섰고, 보급이 차단되면서 진격이 지지부진해지자 보에몽군의 사기는 날로 떨어져간다.
- 부산광역시 . . . . 4회 일치
녹산국가산업단지에 있는 르노삼성자동차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동래역에 정차한 전동차
부산-김해경전철 공항역 부근을 지나는 전동차
- 블랙 클로버/101화 . . . . 4회 일치
그녀가 바네사에게 달려가 안기는 동안 [[핀랄 룰러케이트]]도 끙끙대며 의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조종이 덜 풀린 건지 아직 얼떨떨한 얼굴이다.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는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를 회복시킨다. [[라드로스]]는 앙상해진 몰골인 채 그런 둘을 보며 휘파람을 분다. [[판젤 크루거]]는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 궁전으로 돌아온 마녀왕은 곧 마녀의 숲과 사상자들을 정상으로 회복시킨다. 핀랄은 그녀의 어마어마한 마력에 또 한 번 경악한다. 마녀왕은 아스타 일행을 궁전으로 불러들이고 그동안 귀걸이로 차고 다녔던 보석을 던져준다. 그것이 마녀의 숲에 있는 마석이다. 그녀 자신에겐 원래부터 필요없던 물건이라는데.
*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검은 폭우단의 아지트. 아스타는 힘차게 대문을 열며 깨끗하게 나은 두 팔을 들어보인다.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로 [[야미 스케히로]]에게 팔이 다 나았다고 소리친다. 아지트에는 단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야미만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아스타의 나은 팔을 보고도 "오 그러냐" 정도로 심드렁하게 반응한다. 심지어 마석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는데 그런 것 보다는 술심부름부터 보낸다. 참 더럽게 바람직한 단장이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4회 일치
* 1회전을 치르기도 전부터 팀은 붕괴 상태. 그 원흉은 전혀 자각이 없을 뿐더러 상황에 박차를 가한다. 자기들도 만만찮은 막장 팀이건만, 아스타는 이 팀이 정말 괜찮은 건지 진심으로 우려했다. 그러는 동안 키르슈는 여동생에게 아는 채 한다. 그는 여동생이 자기 아름다움을 보러 왔고 그 아름다움에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여동생 건강까지 챙겨준다. 미모사가 화답한다.
키르슈의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과 극상성이지만 자기 좋을 대로 살기는 마찬가지인 아스타에겐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약하다거나 못 생겼다는 말에는 이골이 난 아스타였다. 덤덤하게 인정하고 "이제는 강해졌다"고 자신하는 아스타에게 키르슈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사람마다 날 때부터 마력의 그릇 크기가 정해져 있어서 아스타처럼 발버둥쳐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면서.
* 솔 마론도 생각없이 뛰쳐나가기는 똑같았다. 그녀가 흙 창조마법 "날뛰는 대지모신"으로 거대한 고렘을 만들어내자 적은 진흙 구속마법 "프레쉬 보그"로 늪을 생성해 발을 묶었다. 귀찮게도 마론에겐 상성상 밀리는 마법이다. 그녀가 애를 먹자 어김없이 키르슈가 달려왔다. 괴악한 포즈와 함께. 그는 하나같이 단세포적인 인간들 뿐이라 매도한 뒤 명령을 내릴 정도의 골렘을 만들 수 있다면 쓸데없이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딱히 양동을 거는 상황도 아니니 차라리 작은 골렘 다섯을 만들어 분산시키면 적을 혼란하게 할 수 있다. 지면에 숨겨 복병으로 삼는 것도 고려할 법하다.
- 블랙 클로버/118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정중한 사람이긴 했다. 그는 아스타를 발견하더니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대접했다. 릴과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발터". 역시나 릴의 집사였다. 그가 대접하는 차는 너무 상류층 취향이라 아스타로선 맛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마시는 시늉을 하긴 했다.
발터는 릴에게 친구가 생기는건 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라고 감격의 눈물까지 보였다. 릴이 옛날 얘길 꺼내지 말라고 투정부리는 사이 슬슬 시합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릴은 기합을 넣고 힘차게 시합장으로 향했다.
* 발터는 그가 처음 그리모어를 얻었을 시절에도 그의 집사였다. 정확히는 그의 집안의 집사였다. 부아모르티에 가문의 저택은 릴이 일으키는 마법사고로 성할 날이 없었다. 그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뭔가가 망가졌다. 자기 방이 박살나는 것도 예사였다. 언제 인명사고가 나더라도 그건 예정된 수순으로 보였다. 릴은 본래 조금 이상한 아이라는 평가였지만 그리모어를 얻으면서 평가가 곤두박질쳤다. 방에 틀어박힌 채 날뛰는 아이, 집안의 고용인들조차 그렇게 수군거렸다. 그의 아버지 도 릴을 억누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어머니는 "어쩌다 저런 아이가 되었을까"라고 한탄하며 정신이 병들고 있었다.
- 블랙 클로버/70화 . . . . 4회 일치
* 부모님은 재능의 차이라며 랜길스를 차기 당주로 낙점해 버린다.
* 하지만 조건이 열악한걸 넘어 아예 마력 조차 없는 아스타가 포기하지 않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 베토는 굉장한 집중력이나 평하면서도 어차피 한계에 가깝다며, 누구하나만 실수해도 끝이고 곧 마력도 바닥날 텐데 언제까지 할 수 있겠냐고 도발한다.
- 블랙 클로버/79화 . . . . 4회 일치
* 유노는 아스타가 자신의 자랑이자 라이벌이라며 장차 마법제가 되자는 약속을 했다고 반박한다.
* 윌리엄 밴전스는 "보여줄만한게 못 된다"고 일단 거절하는데 야미는 재차 요청한다.
* 맨얼굴의 이목구비 조차 리히트와 닮았는데 흉터에선 마법으로 인한 조작의 낌세가 없다.
* 핀랄은 아스타에게 간만에 만난 친구인데 금방 헤어져서 괜찮냐고 묻는데, 아스타는 어차피 전장에서 또 만날 거라며 신경쓰지 않는다.
- 블리치/673화 . . . . 4회 일치
* 그걸 보고 "희망에 차 보인다"며 놀랐다고 하는데, 이시다는 "내가 희망에 찬 모습은 그 눈으로 보지 못해서 놀란 거군?"이라며 비꼰다.
* 차드가 이치고와 오리히메를 노리는 석상들을 쳐내고 둘을 선행시킨다.
* 차드 홀로 많은 석상을 상대하게 됐는데, 때마침 간류가 튀어나온다.
* 차드는 "재미없는 일을 좋아하냐"며 자신들의 일은 "성안을 정리해 이치고가 돌아올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석상들과 싸운다.
- 빅터 차 . . . . 4회 일치
아버지 차문영은 한국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도자기, 자개, 병풍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 가게를 열었으며, 동양 화병에 미국제 갓을 얹고 중국제 나무로 받침대를 한 --기괴한-- 동양램프라는 상품을 백화점에 납품하여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차문영은 2001년까지 40년간 아시아하우스를 운영하고, 2005년 타계했다.
차문영에게는 빅터, 마이클이라는 두 아들이 있으며, 브롱스 리버베일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빅터 차는 아버지와 똑같이 콜럼비아 대학에 진학했고, 정치학 학사와 박사학위를 얻었다. 또한 영국 옥스퍼드에서 석사 학위를 얻었다.
- 서든어택 2/무기 . . . . 4회 일치
하지만 반동이 크다 해도 기관총과 별 차이가 없는 과거의 자동소총에 비해서는 다루기 쉬운 편이었으며, 2~3발씩 끊어 쏠 때만큼은 라이벌이 M16 못잖은 높은 명중률을 보인다.||
||M4A1 소총은 베트남전 때부터 제기된 M16의 카빈(단축형 소총) 소요를 맞추기 위해 등장한 M4 소총의 개량형으로, 총열을 굵게 만들어 연사 능력을 높힌 총이다. 1997년에 제식 채용되어 장갑차량 승무원과 기계화보병, 특수부대 중심으로 보급이 시작되었으며, 2001년 대테러 전쟁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다양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어 전군에 지급하기 시작, 이제는 미군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버릴 정도로 모든 병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기존의 M16 및 M4 시장을 대체하기 위해 야심차게 개발된 신형 돌격소총으로, 모듈화된 부품들을 다양하게 조합해서 필요한 환경 및 임무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둔 소총이다.
||1951년에 등장한 펌프액션식 산탄총이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근접전 및 실내전에 산탄총을 즐겨 써 온 미군과 각국의 군 기지경비대, 경찰들이 대량으로 사용해 온 베스트셀러로, 총 생산량은 민간 사냥용을 포함해서 1천만 정을 넘는다.
- 서상일 . . . . 4회 일치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5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론에 떠밀려 제일야당 민주당과 진보당은 후보단일화협상을 갖게 되었는데 협상장에서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은 민주당 [[대통령]] [[신익희]]에게 양보의사를 밝히는대신 [[부통령]] 후보는 중요하지 않으니 민주당측이 양보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ref name="서158">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8 페이지</ref> 일단 [[신익희]]는 이 제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민주당 (1955년)|민주당]] 으로서는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왜냐하면 당시 신구파연합체였던 민주당은 당내경선에서 구파의 영수 신익희와 신파의 영수 장면을 나란히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던 것인데 신익희가 신파를 설득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익희ᆞ조봉암 회동이 이루어진지 6일만에 호남유세에 나섰던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안에서 뇌출혈로 급사함으로써 사실상 후보단일화는 엉뚱하게 조봉암으로 되어버렸지만 민주당은 당차원에서 조봉암을 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민주당 최고위원 김준연은 조봉암의 사상적 문제점을 들어 이승만 지지를 공개선언하기까지 했다.
- 서영춘(코미디언) . . . . 4회 일치
[목차]
사실상 말이 트로이카지 사실상 구봉서, 배삼룡의 인기가 조금 식어갈 시기에 서영춘이 원톱급으로 발돋움한 시기가 맞물렸으며 사실상 당시를 보면 완전한 트로이카 체제보다는 구봉서, 배삼룡 - 서영춘으로 이어진 세대교체로 봐도 좋을 정도였다.[* 정확히는 악극단 시절부터 70년대 초까진 구봉서, 배삼룡이 우위였고 70년대 중후반 경부터 서영춘의 우위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다만 서영춘 역시 악극단 시절부터 최고의 톱스타였으며 구봉서, 배삼룡 역시 70년대 중후반에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렇듯 전성기 시절 3명이 팽팽하게 인기를 가져갔으며 트로이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다.] 즉, 시대적으로 약간의 개인차가 있었을 뿐 누구 한 명이 어느 특정 시대에 완전히 압도했던 상황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이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던 시기가 한동안 지속되던 때에 [[이주일|다들 알다시피 어느 얼굴천재가 홀연히 나타나 모든것을 뒤바꿔 버렸으니....]]
서영춘은 특히 무대 위 애드립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희극인이었다. 변화무쌍한 얼굴 표정과 판타스틱한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TV가 대중화되면서 실질적으로 1세대가 된 당시 악극단 출신 코미디언들 대부분이 그랬듯, 연기 패턴은 왜정 시대부터 내려온 악극, [[만담]]에서 출발한 것이 많고 내용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번안한 것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서영춘이 공중파에서 선보였던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어쩌고 하는 긴 이름 가진 아이 이야기도 일본 설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60년대 극장쇼 무대에서 콤비로 활약했던 [[백금녀]][* 악극단 출신의 코미디언. 드센 뚱녀 컨셉으로 1960-197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음반도 취입했다. [[이국주]]와 흡사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노래도 매우 잘 해 지금의 이국주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다. 1995년 작고.]와 함께 한 음반. 이런 음반엔 주로 재미있는 가사의 노래가 들어갔는데, 노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꽁트, 개그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서영춘의 대표작 "시골영감 서울 가는 기차..."노래가 이런 판에 들어간 종류.
- 손정혜 . . . . 4회 일치
[목차]
[[1982년]], [[충청북도]] [[충주시]] 출생. 30대의 젊은 여성 변호사로 현재 [[이혼]], [[가정]][[법률]]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속은 비엔아이 법률사무소.[* 임방글, 백성문 변호사도 이 소속이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해 47회 사법고시를 1차와 2차를 한꺼번에 합격할 정도로 수재이다.(2차는 재수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 [* http://yurajun.tistory.com/3740 ] 근거 링크 혹은 확인 요망). 37회 사법연수원 출신이며, <청년변호사협회>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 손지창 . . . . 4회 일치
| 자녀 = 슬하 2남 (장남 손성민(Scott son), 차남 손경민)
1992년에 "내가 너를 느끼듯이", "혼자만의 비밀" (작곡 [[유정연]], 작사 손지창)를 타이틀로 한 1집 앨범(이 앨범에서 작편곡은 [[유정연]]과 작사는 손지창이 모두 했다. 박준배 작곡 "세상 모든이에게" 제외)을 발표하여 가요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그 당시 가수로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 1992년 SBS 《[[금잔화 (드라마)|금잔화]]》 ... 차송주 역
* 1992년 [[기아자동차]] K3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4회 일치
DEO기지에서 행크는 인터뷰를 저지른 카라에게 화를 낸다. 카라는 연쇄 충돌 현장으로 날아가서 차 안에 갇혀 있던 피해자를 구해주는데, 그 순간 공격을 받고 날려간다.
윈은 같은 빌딩의 한 방[* 심장마비로 죽은 보험설계사가 쓰던 곳]에다가 사무실을 차리고,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하여 슈퍼걸 서포트를 위한 사무실을 만든걸 카라와 제임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방사능을 추적해서 리액트론을 잡을 방법을 알려준다.
맥스웰 로드는 자기 소유의 연구소에서 시속 500km까지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자기부상열차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리액트론이 연구소에 난입해와서 핵분열 기술자를 찾는다. 리액트론은 기술자를 한 명 납치가려고 하는데, 맥스웰 로드는 자신이 나서서 잡혀간다.
카라는 어린애처럼 책임감이 낮다고 묘사한 그랜트가 쓴 자신의 기사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슈퍼걸은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바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윈의 정보에 따라서 리액트론이 숨어 있는 폐차장으로 향한다.
- 식극의 소마/173화 . . . . 4회 일치
* 1차 시험은 5인1조 [[조별과제]]. 학교 측에서 정한 멤버로 시험을 치른다.
* 1차 시험은 5인 1조를 이뤄 주어진 과제를 클리어하는 조별과제.
* 시험관은 이들을 비웃으며 "불만이 있다면 스스로 재료를 조달해도 좋지만 어차피 불가능"할 거라고 조롱한다.
* 쿠로키바 조차도 이 연어로는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을 정도.
- 식극의 소마/176화 . . . . 4회 일치
* 열차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학생들.
* 호화열차 츠키카게는 훗카이도의 중심지 삿포로에 도착한다.
* 이번 시험도 조별로 치뤄지는데 학교측은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조부터 순차적으로 출발시킨다.
* 비행기가 결항하고 도로망이 마비될 정도의 폭설이라 택시 조차 시험장에 올 수 없다.
- 식극의 소마/179화 . . . . 4회 일치
* 반역자의 3차 시험은 "십걸"과 정면승부라는 린도의 선언.
* 에리나는 이 3차 시험이야 말로 아자미가 띄운 승부수라고 판단한다.
* 오전 중에 열차는 호텔에 도착했다.
* 하야마는 새로운 십걸의 9석 자리를 차지하고 센트럴의 일원이 되었다.
- 식극의 소마/200화 . . . . 4회 일치
* 센자에몬의 진행으로 팀부터 정해진다. 죠이치로, 소마, 에리나의 사이바 팀. 도지마, 타쿠미, 타도코로의 도지마 팀. 각각 죠이치로와 도지마가 리더다. 시합 장소는 소마 부자가 대결한 열차 내의 조리실. 차장이 대결장소도 빌려줄 겸 대결을 관전한다. 시작이 치졸한 자존심 싸움이라 그런지 대결이 시작하기 전에 리더들의 신경전이 첨예하다.
학생들이 황당해할 틈도 없이 대결은 시작된다. 말도 안 되는 규칙같지만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리를 시작한다. 사전에 역할을 조율할 틈도 없었는데 본래 조리실의 주인인 열차의 셰프와 스텝들은 도저히 될만한 시합이 아니라고 여긴다. 차장도 이 방면에 경험이 있는지 "급조된 팀으로는 어려운 과제"라고 잘라말한다.
- 식극의 소마/218화 . . . . 4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는 방금 전 상황과 이상할 정도로 츠카사와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이번 2회전에선 빠지겠다고 선언, 쿠가에게 차례를 양보한다.
* 동료들이 수읽기로 골몰하는 동안 쿠가는 돌발행동을 취했다. [[유키히라 소마]]는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그의 행동을 목격한다. 쿠가는 적측에 개인적으로 식극 신청을 하고 있었다. 다음 라운드에서 자신과 싸우자고. 그 상대는 [[츠카사 에이시]]. 십걸의 제 1석. 상대방은 물론 현재 연대식극 참가자 중 최강자다. 쿠가는 방금 전까지 촐랑거리고 있더니 승부를 신청하는 이 순간, 전에 없이 진지하다. 그걸 받은 츠카사 또한 푼수떼기같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을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 소마는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모퉁이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본다.
멋대로 무언가를 양보한 소마가 "에리나가 벌써 3명을 정했을지 모른다"며 서둘러 돌아가자고 한다. 쿠가가 분위기에 휩쓸려 그를 따라가지만 곧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츤데레스럽게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 답지도 않은 연극까지 한다고 툴툴대는데 소마는 모른척하며 그런거 보단 자기는 [[식극의 소마/162화|전에 츠카사 에이지와 싸운 적]]이 있으니 이번엔 쿠가 선배의 차례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이게 쿠가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신과의 대전은 한사코 피하는 츠카사가 왜 소마하고는 승부했단 말인가?
* 연대식극 2회전의 무대가 시작됐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반역자 측에서 나타난 출전자들은 이 셋. 쿠가, 메기시마, [[미마사카 스바루]]다. 셋 모두 더할나위 없이 자신감에 차 보이지만 관중들의 평가는 미묘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는건 역시 전 3석 메기시마. 그를 누구와 싸우게 하느냐가 2라운드 승패를 가늠할 것이다. 미마사카는 그저 "기분 나쁘다" 외에는 논외. 그리고 쿠가는 전 십걸 출신인데도 "3학년을 꺼내면 무난하게 이길 상대"라고 상당히 평가 절하 당한다. 어느 정도는 쿠가 자신도 그런 평가를 알지 모른다. 센트럴 측 출전자가 발표되려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재점검하고 소마의 승리를 떠올린다. 소마도 이겼는데 여기서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쿠가 테루노리의 이름이 운다면서. 그는 호기를 부려서 센트럴 측을 향해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 식극의 소마/220화 . . . . 4회 일치
* 1카드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의 주제는 녹차
* 1라운드가 센트럴의 전폐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나자 센트럴의 개가 된 [[카와시마 우라라]]가 안절부절 못한다. 오로지 센트럴의 승리만을 바라며 2라운드 대결 카드를 소개한다. 1카드는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 주제는 녹차다. 2카드는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 주제는 고추. 3카드는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 주제는 참치.
* [[츠카사 에이시]]는 새삼스럽게 감탄하지도 않는다. 그는 린도의 실력을 익히 알았고 진짜 대단한건 칼솜씨 보단 식재료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십걸의 2석을 차지하게 만든 힘. 그녀는 십걸에 들자마자 그 권력을 십분 활용, 전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다. 중국 고산지대부터 사막지대, 북극권, 아마존의 오지까지. 1학년 때 이미 일본 국내의 희소 식재에 대해서 정통해 있었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재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그 여정 중에는 린도와 현지 스태프의 협력으로 새롭게 발견된 종도 있었다. 그녀는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 모든 것을 식재료로 만들었고 손수 맛을 보았다.
가령 토오츠키 학원의 축제인 "월향제"에서도 그 탐구심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매해 참가하는 연구회 중에는 "곤충식 연구회"라는 끔찍하게 매니악한 동호회도 있었다. 소마 같은 괴식 마니아 조차 "어떤 별종이 관심을 가질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이너. 그런 동호외의 단골손님이 린도였다. 그녀는 언제나 "120점포 올 클리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물론 곤충식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그저 목표나 달성하자고 억지로 먹는게 아닌, 정말로 즐겁게 "귀뚜라미 풀코스" 같은걸 먹어치우곤 했다.
- 신성우(가수) . . . . 4회 일치
[목차]
데뷔 시절에는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이덕진]]과 함께 '''원조 테리우스''' 논쟁을 벌일 정도로 꽃미남 가수였다. 당시의 인기는 대단한 편이여서 지금의 [[윤도현 밴드]] 이상 가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데뷔 때부터 그가 하는 음악보다는 그의 외모가 먼저 주목받았는데, 동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소비(?)되었던 이덕진과 비교해 본다면, 이덕진은 들국화 최성원의 기획하에 그냥 곡 하나로만 주목받았던[* 사실 음악 빼고 외모 덕을 본 건 이 사람이 더 하다면 더 했다.] 것에 비해 신성우의 경우 꾸준히 자신 앨범에서록 음악의 작사, 작곡을 해 왔던 사람이다. 즉, 신성우는 외모 때문에 그 음악성이 역차별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집은 자기의 원류인 헤비메탈/하드록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복장도 헤비메탈 시대의 끝물인 LA메탈 시대 보컬리스트의 상징인 가죽점퍼/가죽바지/롱부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타이틀곡 <노을에 기댄 이유>는 마이너의 헤비한 록 발라드인데 그리 대중적인 곡은 아니었지만, 후반부의 샤우팅에서 신성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1집에 비해 영 신통치 않았고, 급하게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밝고 부드러운 미드템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건>으로 주력노래를 바꾸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한다. 2집에는 특이한 곡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을 연상시키는 첫 곡 <요람에서 무덤까지>, [[데이빗 커버데일]] 의 솔로 시절을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브래스 사운드가 가미된 셔플리듬의 록넘버 <민아의 일기>등 앨범 발매년 1993년을 무색케 하는 세련된 넘버들로 가득하다.
* 1997년 [[채시라]]와의 파혼 이후 오랫동안 스캔들 없이 솔로로 지냈는데, 2016년 16세 연하의 플로리스트 직업을 가진 여성과 결혼했다. 2018년에는 [[득남]]했다. 아들과의 나이차가 50살에 달한다.
- 신적강하 . . . . 4회 일치
현대에 황족이 해고된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다수의 궁가가 신적으로 강하된 것이다. 이들을 '구황족'이라고 한다.
결국 재정난에 시달리던 [[숭정제]]는 재정건전화를 위해서 역졸을 대대적으로 정리해고했다가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이 반란군으로 변질되어 [[이자성의 난]]을 일으켜서 멸망했다. 물론 그 많은 명나라 황족들은 명나라가 멸망하는 와중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명]] 정권에서도 유력 황족들이 서로 싸움질이나 할 뿐, 제대로 협력해서 가문을 일으켜보려는 사례는 찾을 수가 없다.--역졸이 아니라 황족을 해고했어야지.-- 그들의 조상 [[주원장]]이 가난하고 빈곤한 떠돌이의 신분이었음에도 가문의 도움 따윈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정말 '헝그리 정신'의 차이처럼 보일 정도.
물론 일본과 명나라와는 시대적 차이, 관습적 차이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서 명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섬나라라서 대외 침략의 위험이 적었고, 일본 황족은 관습적으로 친족 내의 근친혼이 권장되었기 때문에 근친결혼으로 황족의 숫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약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황족 문제에 대처가 거의 없으면 고작 200년 만에 국가 재정이 파멸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신혜진 . . . . 4회 일치
[목차]
>[[얼굴]]도 [[매력]] 중 하나지만, 늘 차분한 [[성격]]이다. 우리가 들떠서 놓치는 부분을 바로 잡아준다. [[언니]]로서 충고도 잘 해준다.
'[[러블리]] [[보컬]]'이라는 이명처럼 [[목소리]]가 [[여성]]스럽고 예쁘다. [[https://m.youtube.com/watch?v=rsD2wbbvhNo|#1]][[https://m.youtube.com/watch?v=xZ2RyG1EaxA|#2]] [[비니(오마이걸)|비니]] 다음으로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음역대도 비교적 좁아 주로 낮은 음의 파트를 [[소화]]하는 편. 팀 내에선 [[보컬]] 면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데, [[본인]]이 못한다기보단 다른 멤버들이 지금까지의 곡 [[콘셉트]]에 더 잘 맞는 편이라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보는 게 맞을 듯.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 올라오고 어째 [[안습]]~~ 다만 [[오마이걸]]은 멤버 수가 8명이나 되는 만큼 [[서브보컬]] 또한 3명으로 많기에 파트의 배분이 그만큼 세분화된다. 때문에 진이는 여타 [[걸그룹]]의 [[서브보컬]]들처럼 주로 [[포인트]]가 되는 파트를 맡음으로써 [[오마이걸]] 내에서 '[[서브보컬]]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듯.
* 여유롭고 조용해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 흥이 폭발하고 망가질 때에는 철저히 망가지는 [[성격]]. 이른바 [[아재개그]]를 즐겨 한다고 하며 웃을 때도 시원하고 호탕하게 웃는다. ~~부두술사 짤을 참고하자~~
- 실업팀 . . . . 4회 일치
실업대회 출전과 실업팀의 성과는 조직을 홍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지역 공헌 차원에서 실업팀이 운용되기도 하는데, 주민에게 스포츠 시설을 개방, 대회를 개최하여 지역에 공헌하는 것이다.
자전거 경기, 모터 스포츠 같은 경우는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목적에서 실업팀 활동이 이루어진다. 실업팀을 위한 레이스 차량 개발이 일반 제품 개발에 연결이 되며, 대회의 성과는 회사의 홍보와 상당히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실업팀 체계에서는 스포츠 팀이 전적으로 기업에 종속되어 있다. 팀은 독립된 법인격이 아니며, 선수의 신분은 기본적으로 '사원'인 경우[* 실업팀이라고 해서 계약 선수를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가 많고, 팀의 운영과 활동은 선수 개인이나 팀 자체 보다는 기업 차원의 이득을 위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20세기에는 '사내'에 조직을 두는 것을 우선시 하던 한국, 일본에서도 21세기에는 스폰싱과 그로 인한 홍보 성과 계산이 일반화 되었다. 이로 인하여 조직이 분리되는 것이 실업팀의 쇠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일본의 경우는 과거의 실업팀들은 법인화를 통해 독자적인 클럽팀으로 전환하고, 기존의 실업 모체는 스폰서로 전환되어 조직이 아예 분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안내상 . . . . 4회 일치
* 2006년 《[[플라이 대디]]》 ... 교차로 운전자 역 (우정출연)
* 2008년 《[[숙명 (영화)|숙명]]》 ... 차강섭 역
* 2012년 《[[음치클리닉]]》 ... 포장마차 손님 역 (특별출연)
* 2015년 [[문화방송|MBC]] 수목드라마 《[[킬미힐미]]》 ... 차준표 역 (특별출연)
- 안재욱(배우,가수) . . . . 4회 일치
[목차]
1997년 1집 Forever를 발매한 그는 탤런트 겸 가수로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으며, 2000년대 초엔 [[중국]], [[대만]]에서 <[[별은 내 가슴에]]>가 방영되면서 중화권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우즈베키스탄과 중남미에서도 수출된 덕택에 거기서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생겼다. 사실 상 1세대 한류스타 중 한 명이 된 시기에 안재욱은 중국을 무대로 배우보단 가수로서 활동에 더욱 집중했다.
2007년~2008년 [[차태현]]과 함께 진행하던 [[KBS 2FM]]의 [[라디오]] 프로그램 '안재욱 차태현의 미스터라디오'의 DJ로 진행을 맡았다. 맡을 당시 KBS 라디오 청취율 1위는 물론 방송 3사 청취율 1위도 기록하였다.
- 애로우 . . . . 4회 일치
초기에는 영웅이라기보다는 복수자에 가까운 인물상을 보이지만, 점차 자신만의 정의감을 찾아가게 된다. 로럴, 사라, 팰리시티 등 연애전선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전처럼 난봉꾼은 아니지만 약간 썸만 타다보면 뿅뿅씬이 나와주는(…) 매력남.
퀸 코퍼레이션에 근무하는 미인 여성으로 유능한 천재 해커. 올리버를 도와주다가 점차 애로우 팀에 끼어들게 된다. 올리버와 연애 전선을 쌓아가다가, 3시즌에서 연인이 된다. 팀에서는 주로 정보 탐색과 통신지휘 역할을 맡으며 가끔 현장에 뛰어들기도 한다.
올리버의 여동생. 올리버와 아버지가 실종된 뒤, 미성년이면서도 음주와 마약에 빠져서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으며 올리버가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사고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나이트 클럽 경영을 시작하고, 점차 철들고 강인한 여자로 성장한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사실 올리버와는 씨다른 남매로서 그 아버지는 무려 말콤 멀린(…). 3시즌에서 말콤에게 단련을 받게 되며, 올리버의 정체를 알게 되고, 팀에 들어오게 된다.
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팔머 테크의 사장. 뛰어난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천재 미남 사업가. 가볍고 밝으며 허당스러운 성격이다. 3시즌에서 팰리시티를 사이에 두고 올리버와 삼각관계를 연출하지만, 이미 올리버는 팰리시티에게 마음이 있어서 성공하지 못한다. 라스 알 굴의 음모 때문에 애로우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여 적대시 하며, 자신이 개발한 아톰 아머를 입고 애로우와 대결하지만 팰리시티의 설득으로 올리버가 누명을 썻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합류하여 아톰으로서 올리버를 돕게 된다. 팰리시티와 잠시 연인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팰리시티는 올리버와 맺어지게 되면서 차인다.
- 양예나 . . . . 4회 일치
[목차]
하지만 포근함과 차가움 두가지 상반된 매력을 자연스럽게 모두 갖춘 캐릭터는 아마 예나가 유일할 것이다.
무표정일 때 한없이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를 살려 '봄의 나라 이야기' 활동 당시 아예 센터 포지션을 맡기도 했다.
2015년 8월 데뷔한 원년 멤버들 중에서 가장 외모가 그대로라고 평가받고 있다. 데뷔 초와 비교해 봤을 때 볼살이 빠지고 얼굴 라인이 슬림해진 [[김채원(APRIL)|김채원]], 어린 티를 완전히 벗고 거의 완벽한 성인 여성의 외모를 갖춘 [[이나은]], 덧니 교정과 더불어 얼굴형, 이목구비가 뚜렷해진 [[이진솔]]에 비해 예나는 데뷔 3년차로 접어들었어도 데뷔 때나 지금이나 완전 판박이 수준으로 똑같다.
- 오중기 . . . . 4회 일치
[목차]
[[참여정부]]가 무차별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역사적 사명감을 느꼈다. 동서로 갈라진 지역주의 타파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여겼다. [[김근태]] 전 의장의 권유로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정치에 투신한다.
차후 총선이나 지선때 TK지역 공천을 계속 고집한다는 전제하에 그 지역에서 당선이 된다면, 머지 않아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이분은 [[친박]]이라는 아킬레스건때문에 [[이정현 장 지진다|막말까지 해서]] 문제였지 비례대표에 한번 공천한걸 제외하면 호남지역만을 고집하며 끝내 당선까지 했던 사람이다.], [[김부겸]], [[오거돈]], [[송철호]], [[장세용]] 등에 이어 험지에서 당선된 [[인간승리]]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경북도당위원장 경선을 앞둔 2016년 8월 4일 오후 10시 30분께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 지역위원회 간부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5만원 상당 음식물과 현금 5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정당법 위반으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16/0200000000AKR20170216180200053.HTML|관련기사]] 당세가 약한 경북지역 특성상 고생하는 지역위원회에 대한 격려 및 경비 지급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당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사려깊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 오지철 . . . . 4회 일치
'''오지철'''(吳志哲, [[1949년]] [[12월 30일]] ~ , [[서울특별시|서울]])은 대한민국의 공무원, 언론인이다. 제9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차관]],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TV조선]] 대표이사이다. 본관은 [[함양 오씨|함양]].
* 2003.03 ~ 2004.07 :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차관]]
|직책 =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차관]]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차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함양 오씨]]
- 요괴:선풍기 . . . . 4회 일치
* 바람을 내뿜어서 점점 몸을 차갑게 만든다. 잠든 사람은 마침내 [[저체온증]]에 걸려서 동사한다.
그래요 자포자기였던 거죠. 별짓을 다 해봤으니까 이짓도 못할건 없겠다, 차라리 이쪽이 "재미"는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왜 일부러 폐가 같은데 뒤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종종 민원이 들어가서 잡으러 갈 때가 있죠. 남의 사유지를 멋대로 들쑤시면서 심령어쩌구 저쩌구하는 또라이들. 어쩌다 보니 나도 그 짝이 됐네요.
나는 피해자들의 마지막 표시를 보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세 사람 분의 하얀 선들. 막상 그렇게 들어앉아 있다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더군요. 뭘 기대한 거야? 당연히 아무 것도 없지, 뭐하러 이런데 왔어...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시간은 벌써 3시가 가까웠고 침대에서 자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더군요. 그런데 마침 있더란 말입니다. 피해자가 쓰던 거지만. 그건 더운 바람을 토해내면서 돌아가고 있고 저는 멍청하게 방 가운데 앉아 있었죠. 아무 변화도 없는 방에서 아무 생각도 행동도 안 하면서. 졸린건 억지로 참으면서 말이죠. 미친 짓 같지만 이건 수사활동이다, 수사활동이다 하면서 어느 정도 버텼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자야 돼. 자면 어때 이런 생각으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언제라고 할 것도 없이 몸은 침대 위로 올라갔고 그대로 한동안 푹 잤습니다. 그건 순찰차에서 자는 쪽잠 같은 거하곤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죠.
그때까지도 나는 그게 문제를 일으킨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그저 이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침대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문까지 불과 한 평도 안 되는 거리를 기어가는데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그 바람. 뜨거운 바람이 계속 얼굴에 닿고 있는 거에요. 나는 침대에서 반대방향으로 기어가고 있었는데. 그리고 번쩍 생각이 났어요. 잠들기 전까지는 회전시켜 놨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침대를 향해 고정돼 있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벼락에 맞은 것 같았어요. 탈출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들었죠. 그래요 그놈은 또 거기에 있었어요. 마치 지키고 있는 것처럼 문 앞에요. 시야에는 돌아가는 날개만 보였지만, 나는 그걸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어요. 이쪽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게 가물거리는 시야에서는 마치 커다란 눈알처럼 보이더군요. 숨이 점점 막혀오는 데도 눈을 뗄 수 없더군요. 못으로 박아놓은 것처럼 멈춰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짜맞춰보려고 별별 가정을 다해봤어요. 하지만 침대 앞에 있던 선풍기가 문으로 가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저렇게 노려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이 될 리가 없었죠.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놈이 "행동"을 보여준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산통 다 깨졌다"고 본게 아니었을지 모르겠네요. 내가 깨어났다는걸 좀 늦게 알아차린 거에요. 그러고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범한 기계로 돌아간 척 했던 거죠.
- 우찬양 . . . . 4회 일치
[목차]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으로 차세대 풀백 자원으로 주목받는 선수다. 곧바로 리그 데뷔전을 치른 2016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같은 팀의 [[이승모]]와 같이 2017 U-2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정도로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는 이미 검증을 마친 기대주다. [[신태용호]]에서는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출전하는 편이었다가 U-20 월드컵에서는 센터백은 [[정태욱]], 이상민 주전에 [[이정문(축구선수)|이정문]] 백업으로 굳어지고 풀백 두 자리를 놓고 [[이유현]], [[윤종규]], 우찬양 세 선수가 경합하는 판도가 되었다.
아직 성인 대표에는 차출된 적이 없다.
* 2012년 맨유 프리미어컵 대회에 참가하였고, 소속팀 포철중은 8위를 차지하였다.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4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나치 독일이 세상을 지배하는 1960년을 다루고 있다.
1960년, 블라즈코윅즈는 폴란드의 정신병원에서 눈을 뜬다. 나치에 의해 학살의 장이 된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블라즈코윅즈는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세상을 지배한다는걸 깨닫는다. 블라즈코윅즈는 나치에 대항하기위해 레지스탕스 조직을 찾아 나선다.
일명 데스헤드. 재능있는 과학자이자 장군. 친위대 특수계획부서의 수장이다. 양심의 가책 없이 신기술로 실험을 하는 인물이며 그 실험들은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데스헤드의 기계 부대의 차세대기. 인간의 뇌를 사용하기에 저급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로봇보다 우월하다.
- 원피스/842화 . . . . 4회 일치
* 발라티에는 여성 쉐프는 없었는데 제프는 요리사들을 뻥뻥 걷어차면서 가르치는 타입인데 여성 쉐프들에겐 그럴 수가 없다는 이유.
* 상디를 비롯해 부하 요리사들은 모두 여성 쉐프를 원했는데, 상디는 제프에게 "여자라도 말을 못 알아들으면 걷어차면 된다"고 했다가 혼구멍이 난다.
* 상디를 비롯한 빈스모크 일가가 탑승한 마차--묘차--가 홀케이크 성으로 출발한다.
- 원피스/849화 . . . . 4회 일치
* [[브룩]]은 보물전의 열쇠를 입수하는게 성공하지만 빅맘 [[샬롯 링링]]이 직접 행차, 대치하게 된다.
* 객실의 빈스모크 일가는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빈스모크 레이쥬]]가 보이지 않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빈스모크 욘디]]가 [[빈스모크 저지]]에게 결혼 후 [[상디]] 부부가 어디서 지낼 거냐고 묻자, 저지는 당연히 제르마 왕국이라고 답한다. 그는 [[샬롯 푸딩]]을 볼모로 잡을 생각이며 그래야지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요리가 무르익으면서 이제 캐럿을 삶을 차례다. 랜돌프가 칼을 들어올려 가짜 캐럿이 매달려 있는 줄을 끊으려 한다. 캐럿은 돌팔매로 랜돌프를 제압하고 재빨리 뛰쳐나가 가짜 캐럿에 매달린다. 디젤은 이런 움직임을 눈치챘지만 한 발 늦었다. 브륄레도 토끼가 두 마리라며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캐럿이 솥을 뒤집어 엎는데 휘말려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다.
* 보물전 바깥에서 대기하던 [[샬롯 스무디]]는 "어머니"의 행차를 보고 자기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확실히 화가 나있다. 빅맘 [[샬롯 링링]] 등장. 빅맘은 그냥 문을 부수고 보물전에 들어선다.
- 원피스/861화 . . . . 4회 일치
* 비트는 게스트들도 그렇지만 빅맘의 부하들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라 놀란다. 우측 상단은 장남 "캔디 대신" [[샬롯 페로스페로]], 좌측 상단은 장녀 "후르츠 대신" [[샬롯 콩포트]], 우측 하단은 차남 "장성" [[샬롯 카타쿠리]], 하단 가운데 14녀 "장성" [[샬롯 스무디]], 좌측 하단 3남 [[샬롯 다이후쿠]]와 4남 [[샬롯 오븐]]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결집했다. 비트는 자기도 모르게 "동료일 때는 든든했지만 적이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고 말하는데, 그 "적"이란 표현을 대문이 놓치지 않고 듣는다.
* 대문이 열리며 요리사들이 밖으로 나온다. 이들도 위장한 벳지의 부하다. 이들은 다과회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전부 봉쇄하고 "뿔 전보벌레"를 사용해 전보벌레를 이용한 통신도 차단했다. 벳지는 만족해하며 이들에게 원래 옷으로 갈아입게 지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 속에 숨겨둔 [[시저 크라운]]을 불러낸다. 시저는 계획대로 거대한 거울을 들고 대기 중이다. 시저는 벳지가 자신을 본명으로 부르는 것에도 짜증을 내고 회장 안에 있는 게스트들도 "세계의 쓰레기들"이라며 멸시한다. 벳지는 "너도 쓰레기"라고 대꾸해준 뒤 거울을 근처에 숨겨두라고 지시한다.
* [[상디]]와 푸딩은 9층 신랑신부 대기실에서 준비를 마쳤다. 상디는 아직까지는 "좋은 신랑"을 연기해야 한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결혼하지 않을 셈으로 이 섬에 왔는데 이렇게 둘만 있게 돼서 꿈만 같다고 말한다. 진상이 밝혀진 줄 모르는 푸딩은 "좋은 신부" 연기에 한층 박차를 가한다. 그녀는 귀여운 척하며 그 꿈은 "좋은 꿈? 나쁜 꿈?"이냐고 애교를 떤다. 그런데 그게 먹힌다. 답이 없는 변태신사인 상디는 뻔히 알면서도 홀라당 넘어가서 심장이 멈출 뻔 한다.
* 차회 휴재.
- 원피스/867화 . . . . 4회 일치
* [[샬롯 링링]]은 고작 다섯 살에 불과했지만 전설적인 거인족 전사 [[요를]] 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역공을 당한다.
* 링링을 거둔 것도 그녀가 장차 해군 대장에 오를 만한 자질이 있어서. 그녀를 비싸게 팔아치우고 은퇴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야를에게도 뜻밖의 결론이었다. 야를이 고민하는 사이, 한때 링링의 친구이기도 했던 [[하이루딘]]은 "왜 링링을 죽이지 않느냐"고 아우성친다. 그 또한 링링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야를은 자비심이 생긴 건지, 카르멜을 결단을 봐서인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칼을 거둬들인다. 그리고 링링이 정신을 차리는데, 폭주했을 때의 일을 기억 못할 뿐더러 요를의 죽음을 슬퍼하는 등, 남의 일처럼 행동해서 더욱 거인족들의 분노를 산다.
* 그로부터 63년 후.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다과회장.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깨어지고 패닉에 빠진 빅맘 샬롯 링링. 패왕색 패기가 깃든 길고 긴 비명을 지른다. [[몽키 D. 루피]]는 근거리에서 몸이 날아가 버릴 것은 괴성을 견뎌내고 있었다. 점차 과거의 기억에서 깨어나는 빅맘의 목소리는 비명에서 절규로 바뀌고 있었다.
- 원피스/870화 . . . . 4회 일치
* 빅파더 내부의 방. 벳지의 분신체가 고통에 겨워 몸부린친다. 빅파더의 위용에 환호하던 [[몽키 D. 루피]]도 상황의 위급성을 인식한다. 본래 빅파더는 보통 대포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 방어력을 지녔지만 빅맘은 차원이 너무 달랐다. 루피는 더는 못 보겠다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빅맘을 날려버리겠다고 성화다. 그걸 [[쵸파]]와 [[나미(원피스)|나미]]가 찍어누르다시피 막는다. 나미는 그가 화풀이로 싸우려 드는 것에 불과하다며 밀집모자 일당의 목표는 모두 달성됐다고 쏘아붙였다. 그들은 [[상디]]를 탈환하고 [[포네그리프]]의 사본을 확보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 본래 목표는 아니지만 뜻밖의 부수입도 있었다. "가족을 구하고 싶다"는 상디의 의지도 이루어진 것이다. 나미가 큰소리로 루피를 꾸짖으며 그렇게 말한다. 빈스모크 일가에게도 들릴 정도로.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던 [[빈스모크 레이쥬]]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빈스모크 저지]], 그리고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 조차도 벌레 씹은 표정이다. 상디는 자기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감격에 겨워하는 벳지의 패밀리. 놀랍게도 벳지는 딱 한 가지 탈출루트를 구상해냈다. 사실 지금 이들이 있는 방은 벳지의 열매 능력. 벳지가 인간으로 돌아가도 아무 영향이 없다. 그래서 벳지는 일행을 넣어둔 채로 "인간" 모드로 돌아가, 시저가 자신을 들고 하늘로 도망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럴듯하지만 시저는 "내 목숨을 희생하는게 전제지 않냐"고 반발, 자살행위라고 치를 떤다. 틀린 말 만은 아니다. 이미 샬롯가의 형제들이 진치고 있으니. 벳지가 인간체로 돌아가는 순간 벌집이 되는 미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장색 패기 구사자도 차고 넘치니 가스화한 시저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건 덤.
* 이윽고 저지는 돌아서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다시는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이스트 블루"의 발라티에도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로써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됐다. 레이쥬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었는지 작게 미소짓는다. 그러는 동안 탈출방법에 대한 논쟁은 답도 없이 치열해졌다. 무조건 성공확률 0%라고 주장하는 시저, 어차피 이대로도 죽는다는 벳지의 의견이 평행선이었다.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저지. 그는 제르마가 호위가 될 테니 작전을 실행하자고 한다. 시저는 왜 너희 맘대로 하냐고 반발하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벳지는 듣고 보니 제르마도 하늘을 날 수 있었다며, 다만 그럴 경우 제르마를 두고 가게 될 텐데 괜찮겠냐고 반문한다.
- 원피스/879화 . . . . 4회 일치
미러월드에서 [[샬롯 카타쿠리]]와 일기토 중.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카타쿠리가 모치모치 열매 능력이 고무고무 열매의 상위호환이라 주장하며 루피가 쓰는 기술을 배껴서 더 강력하게 어레인지해서 사용하는데 전혀 대응을 못하는 중. 카타쿠리는 미래예지 가능한 견문색 패기까지 갖췄기에 전혀 사각이 없고 유효타 한 번 맞추질 못한다. "레드 호크 개틀링"이나 "호크 스탬프" 같은 기술이 전혀 통하지 않다 "엘리펀트 건"으로 공격하는데 이마저도 카타쿠리가 훨씬 크고 아름다운 스케일의 엘리펀트 건으로 부딪혀온다. 힘과 스피드, 기술에서 조차 완전히 밀리면서 그대로 처맞고 천장에 처박힌다.
써니호의 키잡이로 흔들림없이 일하는 중. [[밀집모자 일당]]이 해안을 빠져나오고도 페드로의 희생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자 강하게 질타해 정신을 차리게 한다. [[브룩]]에게 가장 페드로와 친했으면서 매정하다고 항의받기도 했지만 정말로 페드로를 희생시킨게 아무렇지 않아서 그런건 아니었다. 페드로가 일행을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희생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가 만들어준 기회를 헛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행처럼 통곡을 하진 않았지만 울음을 삭히는 모습을 보였다. 징베의 다그침을 듣고 쵸파가 일을 달라고 소리치자 금방 정신을 차리고 날씨를 파악하고 배의 방향을 우측으로 돌리게 한다.
지난 회에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자폭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사실 무사히 견디진 못했다. 오른팔을 잃어버려서 사탕으로 대체 중. 자신은 팔 정도는 사탕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뜨거운 홍차를 마실 때마다 손이 찐득하게 녹아내리는걸 봐야 한다"고 말하는걸 보면 엄청 분해하고 있다. 실제로 이젠 웨딩 케이크고 뭐고 그냥 밀집모자 일당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생겨서 추격하는 거라고 단언. 빅맘의 모자 나폴레옹에 타고 있는데 나폴레옹 상대로 "평생 페드로의 얼굴이 떠오를 거다"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
- 원피스/886화 . . . . 4회 일치
* 다시 일어선 오븐은 곧바로 일행을 추격해 재료를 옮기던 마차에 올라탄다. 시폰을 다시 사로잡았을 때, 마침 전보벌레가 울리는데 파이어탱크 해적단의 [[카포네 갱 벳지]]가 카카오섬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내를 버릴 수 없었던 벳지는 결국 카카오섬으로 시폰을 마중하러 온 것. 오븐은 곧바로 벳지의 배에 연락해서 시폰을 인질로 잡고 카카오섬 항구에 정박할 것을 명령한다. 시폰은 자기 때문에 "진짜 가족"을 희생시킬 수 없고 꼭 살아남아 언젠가 복수해달라고 외치지만 벳지는 끝내 상륙을 받아들인다.
* 마차도 마침 항구 근처에 있어서 벳지의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벳지가 해안으로 들어오자 빅맘의 선단이 해안을 봉쇄해 벳지는 독 안에 든 쥐신세. 벳지는 그렇게 순순히 잡히는가 싶었지만, 배 위에서 마차의 오븐을 저격해 버리고 아들과 아내 앞에서 "이게 내가 살아가는 법"이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이 저격 덕에 오븐이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시폰은 놓여나지만, 결국 항구는 봉쇄되고 일행이 달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데.
- 은혼/608화 . . . . 4회 일치
* 핫토리는 어차피 점프도 매거진도 발매중지라며 그런데도 서점에 가겠냐고 말한다.
* 지상군도 새로운 전력이 도착하는데 단순한 전차 부대만이 아니다.
* 오키타 소고 조차 "주말은 커녕 오늘 버틸지도 알 수 없겠다"고 시니컬한 말을 내뱉는다.
* 겐가이 영감은 자기들이 나설 차례라며 "저쪽에서 총공세라면 이쪽도 총출동해서 싸우면 된다"고 말한다.
- 은혼/627화 . . . . 4회 일치
지로쵸는 차라리 노망났다고 하라겨 질색하지만 오토세는 호쾌하게 웃는다.
그때 [[사이고 토쿠모리]]가 항상 으르렁대던 가부키쵸 사천왕이 오늘 밤은 즐거워보인다며 자리에 끼어든다. 오토세는 마침 그도 부르고 싶던 참이라며 자리를 내어준다. 어차피 이들과는 지구가 멸망하지라도 않으면 얼굴 보기도 힘든 사이이니 이런 기회도 없다면서. 그래서 오토세는 차라리 이 상황에 감사하고 있다. 이럴 때이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게 있다. 덕분에 이전보다 조금은 인간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게도마루와 식신들은 판데모니엄으로 차린 다채로운 급식과 배식자들의 호러블한 비쥬얼로 배식을 익사이팅하게 해주며,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순찰대를 빙자해 서로 식신이 더 흉악하고 무섭다고 싸우며 소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은 기도로 싸움하게 좋은 날씨를 만들며 싸움을 조장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은혼/632화 . . . . 4회 일치
* 도주했던 마타코가 돌아와 작전의 배후인 헨페이타에게 접근, 신스케를 해방시키려 하나 알고 보니 그 또한 신스케의 권유를 받고 고민하던 차였다.
>어차피 나라가 재판해서 이런 꼴이 된 몸이라면
반사이가 구하려던 이들은 모두 신스케에게 포섭된 자들이었으며 관리 조차 포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회 잡지 휴간에 따른 휴재.
- 은혼/635화 . . . . 4회 일치
* 노사는 그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한때 "하루사메의 뇌창"이라 불렸던 우주해적 하루사메의 7사단. 그러나 하루사메 그 자체는 망해버리지 않았던가? 노사는 "망한 해적 나부랭이"라 부르며 그들이 왜 여기에 있냐고 묻는다. 카무이는 해적이란 없어지는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질서가 생기면 혼란도 생기듯 우주를 하나로 묶으려 들면 그 체제에 저항하는 자들도 생긴다고 말한다.
* 카무이는 우주는 그들에게 맡겨뒀고 뭣보다 해방군을 부숴봐야 변하는건 없다고 단언한다. 카무이는 "진정한 적"을 쳐부숴야 한다며 [[우츠로(은혼)|우츠로]]를 지목한다. 그 우츠로를 쳐부수기 위해, 카무이는 가구라에게 이제 일어서라고 말한다. 그 [[우미보즈(은혼)|대머리]]의 자식이 이런데서 당한 채로 끝나선 안 된다면서. 그리고 자신은 다시 일어나 우미보즈에게 "최강"의 칭호를 뺏어간 우츠로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약함"을 들추고 이기고 도망친 "여동생"에게 이겨보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일어나는 거야 말로 "최강"이라는 걸 알려준 것은 바로 가구라. 그러니 이젠 가구라가 일어날 차례이다.
* 남매 간의 대화에 끼어드는 노사. 노사는 야토와 야토가 싸우게 된 이상 어떻게 될지는 잘 알 거라고 말을 시작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겐가이가 쓸모없어진 이상 타계책은 하나. 새벽이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노사는 이제 야토가 적으로 나타났으니 시간이 좀 부족할 거 같다고 말한다. 아부토는 "우리가 없다면 손쉬웠다는 얘기냐"고 받아치는데, 노사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그렇지 않냐"며 7사단은 별도 멸망시키는 최강 부대라더니, 그것도 전대 [[야왕 호우센]] 시절 얘기에 지나지 않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자기한테는 "나보다 젊은 세대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고 호우센 조차 "애송이"라고 부른다. 그는 호우센의 강함을 인정하긴 하지만, 자기가 태어났을 땐 그정도의 강자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고 말한다. 야토는 모성 황안에 있을 때는 분명 최강이었으나, 그 별을 떠나면서 점차 피는 옅어졌고 힘은 약해졌다. 그래서 노사의 입장에서 보면 현세대의 야토는 "부정한 피가 섞인" 세대에 불과하며 야토로 취급할 수도 없는 결격품이다.
- 은혼/639화 . . . . 4회 일치
* [[엔죠]] 황자는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을 앞당기기 위해 불필요한 구역의 전력공급을 차단, 그대로 폭파시켜 침입자를 처리하려 든다.
>내가 전원 하늘에서 차서 떨궈줄 거거든.
>그렇다면 그 희망, 해방군의 유해와 함께 지상에 차서 떨궈줘야 겠군요.
* [[엔죠]]황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인물이다. 그게 불필요해진 모든 아군을 버리는 일이 되더라도. 그는 지상의 아르카나 캐논 보다 먼저 히노카구츠치를 발사하기 위해 모선의 전 에너지를 그쪽으로 돌리고 가동에 불필요한 구역의 전력을 전부 차단, 산소공급마저 끊는다. 각 구역에서 침입자들과 교전하던 병력들은 당연히 몰살. 황자는 그것도 공멸이 불러올 참사에 비하면 싼값이라 합리화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그는 희생자들을 위한 대책도 세워놨다. 마지막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 이민우(배우) . . . . 4회 일치
[목차]
데뷔하자마자 뛰어난 연기력으로 청소년 배역을 독차지했다. 당시 KBS 연기대상 남자아역상은 장장 7~8년 동안 이민우와 다른 배우들의 경합이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아역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만 18세가 되던 해 --그러니까 그 연산군으로--에도 아역상을 받았다!
그러나 큰 기대를 모았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실패하고 진지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출연한 시트콤 [[뉴 논스톱]]에서도 대두 캐릭터(...)만 얻고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면서 주춤하기 시작한다.
||<|2> 1985년 || 은빛 여울 || 차돌 || [* 상당히 인기 있었던 역할이라고 한다.] ||
- 이보희(배우) . . . . 4회 일치
[목차]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유방이 풍만하다. 그런 데다가 허리는 가냘프고 다리는 날씬하며 아래로 곧게 뻗었다. 물론 피부도 매우 곱다. 아쉬운 것은 힙이 좀 작다는 것 정도...]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영화)|공포의 외인구단]]'을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 하자 항상 그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맏던 이보희가 자동적으로 [[최엄지|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배우)|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 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1984년 '[[무릎과 무릎사이]]'의 흥행으로 영화제작사로부터 [[스텔라]]를 선물받았다. 1986년에도 차를 몬 기사가 있다.
1987년 8월에 LA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재미교포 함윤식[*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전념했다고 한다.]과 1988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활동에 복귀하였으나 아들은 다시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함윤식과는 이혼하고 한의사와 건설업체를 겸직하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이혼 사유는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 이상백 (1904년) . . . . 4회 일치
[[일제 강점기]] 당시 서자들을 차별대우하는 문제인 '서얼차대(庶孽差待)의 연원에 대한 일문제'를 [[진단학회]] 학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전기와 건국 초기 분야에 대한 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 이조 태조의 사전개혁운동(私田改革運動)과 건국 후의 실적, 위화도회군고(威化島回軍考),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취하여', '[[고려]]말 이조초에 있어서의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운동(田制改革運動)과 그 실적' 등 고려 말, 조선 건국, 조선 전기 분야의 정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였다.
또한 [[1910년]]까지도 [[고려]]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아들, 손자라는 주장의 허구성을 논증하고, 조선의 건국 세력이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손인 것처럼 유포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를 근거로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취하여'를 발표하였다. 또한 조선 전기의 서자 차별 문제에 대한 연구 외에도 과부 재가 금지법인 '재가금지습속(再嫁禁止習俗)의 유래에 대한 연구' 등의 논저를 발표하였다. 그밖에 진단학회에서 편찬한 《한국사-근세전기편-》과 《한국사-근세후기편-》의 편집을 담당하였다.
**** 당조카사위 : [[서정귀]](徐廷貴, [[1919년]] ~ [[1974년]]), 4대·5대 국회의원, 재무부 차관(1960년), [[호남정유사]] 사장 역임
- 이영욱 (1980년)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9년 2차 8라운드]]([[쌍방울 레이더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8라운드 59순위로 지명을 받은 후 [[홍익대학교]] (1999학번) 진학 후 재학 시절 [[차일목]]과 배터리를 이루었다.
[[2013년]] [[11월 22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로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하였으나, 2군에서 2패 1홀드, 9점대 평균자책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시즌 종료 직전에 방출됐다.
- 이요원 . . . . 4회 일치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반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순정 (드라마)|순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16년 [[JTBC]] 드라마 《[[욱씨남정기]]》에 출연하여 물오른 연기로 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극찬을 받았다. 2016년 11월 [[MBC]] 《[[불야성 (드라마)|불야성]]》에서 이요원이 연기하는 서이경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거대한 야망을 품은 황금의 여왕이자, 탐욕은 죄가 없다고 믿는 냉정과 열정의 화신이다. 여리한 외모와는 달리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얼음여왕. 말 한마디에 거액이 오가는 협상 테이블에서도 평온한 말투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철의 여인이다. 디즈니 배급 영화 《그래,가족》는 2017년 2월 15일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핏줄이고 뭐고 모른 척 살아오던 삼남매에게 예상치 못한 막내동생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치열한 가족의 탄생기를 그린 코미디 가족영화에서 잘난 체해도 결국 흙수저인 둘째 오수경 기자 역할을 연기했다.
* [[현대해상]] 하이카 자동차보험
- 이은수(육군) . . . . 4회 일치
[목차]
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 이전환 . . . . 4회 일치
* 국세청 차장
|직책 = [[대한민국의 국세청 차장|국세청 차장]]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 차장]][[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종배(국회의원) . . . . 4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19~20대 국회의원[br]제35대 [[충청북도]] [[충주시]]장(민선5기)[br][[행정안전부]] 제2차관[br]행정자치부 차관보[br]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br][[충청북도]] 행정부지사[br]충청북도청 기획관리실장[br][[충청북도]] 청주시 부시장[br][[대통령비서실]] 행정비서관[br][[충청북도]] [[음성군]]수(관선)[br]제23회 행정고시 합격 ||
[목차]
1957년 충청북도 중원군 주덕면(현 충주시 [[주덕읍]])에서 태어났다. 주덕초등학교, 충주중학교,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학사장교]]로 병역의무를 이수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주로 충북도나 행정자치부-행정안전부에서 근무하였다. 공직 사퇴 직전에는 행정안전부 2차관을 역임하였다. [[이시종]], [[윤진식]]처럼 충주 출신으로 고위관료 테크를 탄 사람이다.
- 이종혁 (배우) . . . . 4회 일치
| 자녀 = 이탁수 (장남), 이준수 (차남)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그는 이후 1998년 영화 《[[쉬리 (영화)|쉬리]]》로 데뷔하였고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름이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종혁, '엄마의 공책: 기억의 레시피'로 스크린 복귀|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64179|출판사 = 헤럴드POP |저자 = |날짜 = 2016년 11월 8일|확인날짜 = }}</ref> [[2002년]] [[6월 4일]] 최은애와 결혼식을 올려 장남 이탁수([[2003년]] 출생), 차남 이준수([[2007년]] 출생) 두 아들을 두었다. 2013년 MBC 예능프로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여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국민 아빠'로 불리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엄마의 공책'..이종혁, 철부지 아들로 변신 |url = 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9&aid=0003723802|출판사 = OSEN |저자 = |날짜 = 2018년 2월 22일|확인날짜 = }}</ref>
*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 - 차종훈 역
* [[2014년]] [[tvN]] 《[[코미디 빅리그]]》 - [[캐스팅]], [[코빅열차]]
- 이주승(영화배우) . . . . 4회 일치
[목차]
* 태권도 선수출신이다. 겨루기 선수였던듯. 9살때부터 9년동안 태권도를 했다고. 태권도 관장이 꿈이였을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때리고 맞는 게 싫어서 그만 두게 되었다. --나중에 태권도 관장도 생각하고 있다고-- 심심할때 혼자 발차기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메이킹필름에 발차기하는 모습이 종종 잡히곤 한다.
|| 2016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동정없는 세상 || 차준호 || 주연 ||
- 이준승 . . . . 4회 일치
1934년에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이듬해 졸업한 이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61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처음으로 검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1963년 [[청주지방검찰청]]과 1966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를 하였으며 1969년 [[국회사무처]]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파견되었다가 1971년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검찰에 복귀하였다. 이후 1973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1977년 [[서울지방검찰청]] 1978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였으며 1978년에 차장검사로 승진하여 [[청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되어 1979년에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전보되어 차장검사로 재직하였다.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에는 [[동백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상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상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반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 이중환(법조인) . . . . 4회 일치
[목차]
비록 국민 정서에 반하는 변호를 맡았던 탓에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대리인단의 일부 변호사들처럼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품격을 잃지는 않았고 소통이 전혀 안되고 돈도 안주는 의뢰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나름 동정표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박근혜같은 중범죄자도 자기 입장을 말할 권리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왜 하필 저런 사람을 변호하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어차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누군가가 이 일을 맡았어야 한다는 것은 상기하자.][* 물론 '변호사 전원 퇴진'이라는 카드를 보여주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래도 '법조인'으로써 할수 있는 선에서의 카드였고 결국 이 카드를 쓰지는 않았다. 후에 박근혜 재판의 대리인을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변호인 전원퇴진을 진짜로 강행하여 재판을 지연시켜버리며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것을 보면 여러모로 대조적인 부분.]
* 2006년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차장검사
||<#5c6bc0><-2> [[최순실|{{{#white __최순실__}}}]] {{{#white 측근 / 변호인}}} ||<-3> ^^故^^[[최태민]] · ^^故^^[[임선이]] · [[최순득]] · __[[정윤회]]__ · __[[정유라]]__ · __[[장시호]]__ [br] ''[[최재석]]'' · ^^故^^''[[조순제]]'' · __''[[고영태]]''__ · __[[차은택]]__ · [[윤영식]] / [[이경재(법조인)|이경재]] ||
- 이지현(1983) . . . . 4회 일치
[목차]
[[1998년]] '[[써클#s-1]]'이라는 그룹의 멤버로 먼저 데뷔했다.[* 이 때 같이 있었던 멤버가 [[한보람]]이다.] 재미있게도 이 때 써클 오디션을 같이 본 [[박정아]]는 떨어지고 이지현만 붙었다. [[아무로 나미에]]가 프로듀싱한 이 그룹은 다국적 그룹 컨셉으로 앨범 2장을 냈으나 대차게 말아먹고 멤버들의 불화 끝에 2000년에 해체했다. 이후 이지현은 [[스타제국]]으로 이적해 [[쥬얼리]] 원년 멤버로 합류한다.
||<|2> 2004년 ||<|2> [[KBS2]] || 쇼 행운열차 || || ||
* [[MBC]] [[코미디 하우스]]의 [[꽃보다 남자]] 코너에서 여주인공 산차이역을 맞은 적이 있다. 대략 [[2003년]]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출연 기간을 아는 [[위키러]]가 [[추가 바람]].
- 이카르부스 . . . . 4회 일치
1923년 11월 20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도시 [[노비사드]]에서 코뇨비치 형제[* 디미트리예 코뇨비치(Dimitrije Konjović)와 두산 코뇨비치(Dusan Konjović).]와 밀리보이 코바체비치(Milivoj Kovacevic), 조코 라둘로비치(Djoko Radulovic), 요시프 미클(Josif Mikl)에 의해 항공기 및 자동차 회사로 설립된다. 이때는 이카루스(Ikarus)라는 이름이었다. 최초의 세르비아계 항공기 회사였다고. 설립된지 다음해에 최초의 항공기인 "브란덴부르크"를 만들어낸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며 공장이 독일의 손에 넘어간다. 이 때문에 1944년 4월 벌어진 연합군의 폭격 작전으로 공장이 파괴된다.
1954년에는 [[오스트리아]] 회사 [[자우러]][* 총기 회사 SIG 자우어와의 관련은 없다.]의 [[버스]]를 라이센스 생산한다. 이는 현재 이카르부스의 밥줄이 될 버스 제작의 시초가 되었다. 이카루스는 1961년 군사분야의 산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자동차 회사가 된다.
1992년 공산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며 이카루스는 합자회사가 된다. 이후 1993년 이카루스는 현재의 이카르부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이카루스는 [[메르세데스]]와 [[MAN]], [[투쉬노 자동차]]와 협력관계를 맺게 된다.
- 이태현(씨름) . . . . 4회 일치
[목차]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씨름판을 지배했던 천하장사. [[의성고등학교]]를 거쳐 1993년 청구건설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 씨름계에 데뷔했다. 1993년 데뷔부터 2006년 1차 은퇴까지의 전적은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고,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 지역장사 12회, 백두장사 20회를 기록했다. 특히 백두장사 20회 기록은 [[이만기]]의 백두장사 18회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2006년까지 역대 총 상금 역시 5억 9,000여 만원으로 1위. --모래판의 황태자의 위엄. 오오!--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절친이자 라이벌인 [[백승일]][* 백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태 후 순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백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백승일을 비롯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태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영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태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 이현우 (가수) . . . . 4회 일치
| 가족 = 자녀는 슬하 2남 <br/> 형제자매 관계는 2남 2녀 중 차남 <br /> 친척 관계는 5촌 당숙 [[이경영 (1960년)|이경영]](영화배우)
* [[르노삼성자동차]] SM5 ([[2004년]]) (faet.[[김광민]])
* [[현대자동차]] [[현대 스타렉스|그랜드 스타렉스]] ([[2007년]])
2007년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는데 당시 이현우가 가지고 있던 국제 면허증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상태였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0.114%의 만취상태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6&aid=0000053562 이현우, 무면허 음주 운전 적발]</ref> 그 뒤 자숙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자동차 광고 출연, [[대부업]] 광고 출연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4회 일치
* 원래 암수 구분 조차 없는 하급 마신족이었다가 갑작스런 변이로 상위급으로 성장했다.
* 과거 핸디가 지배당하고 있을 때 한 실험과 비슷하지만 전혀 실패하지 않고 순도 높은 "진짜 마신족"을 만드는 차이가 있다.
* 일행은 그의 등장에 경악하고 프라우드린 조차 눈을 의심한다.
* 정체가 비비안이란건 길프로스트가 차고 있는 반지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사실. 하지만 전혀 갱생한 면모가 없고 또 길선더만 살리겠다고 도망쳐버리는 졸렬함을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4회 일치
* 여기에 비해 멜리오다스의 총 전투력은 6만에 달하고 마신화를 하면 그것 조차 뛰어넘는다.
* 가차없이 프라우드린을 소멸시킨다. 비웃음과 함께.
프라우드린의 죽음. 이로써 리오네스를 침공했던 십계는 전원 재기불능이나 생사불명에 처했다. 특히 프라우드린은 완전히 소멸된 것 같고 멀린에게 포획된 그레이로드도 해방될 일은 없을 듯. 현재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건 그로키시니아와 드롤 정도다. 당초 십계 측의 총전력이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론 십계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한 수준. 아군측 주전력이라 할 수 있는 십계나 성기사 측에선 대단히 경미한 희생만 치렀을 뿐이다. 특히 실질적으로 십계는 멜리오다스와 에스카노르 두 사람에게 철저하게 당한 셈인데 십계 중 누구도 1대1로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멜리오다스가 한 번 죽은 것 조차 2대1로 멜리오다스에게 지다가 십계 전원이 모여서 다구리를 놓은 것이니...
멜리오다스는 그저 잔인해진 것만이 아니라 상대를 농락하다 죽이는, 매우 악역스러운 면모를 보이는데 그와 가장 오래 알고 지냈을 멀린 조차도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4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데리엘을 설득해 교섭이 거의 성공했지만 이것 조차 [[뤼드셀]]은 이용한다.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말하자 몬스피드는 차분하게 자신들의 용건을 말한다. 근래에 마신족의 수만 가량이 차례로 사라졌는데 이후에 이 숲에서 마신족 특유의, 그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마력이 발신되고 있다. 그들은 사라진 동포들이 여기에 포로로 잡혀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듣고 짚이는 데가 있지만 일단은 뤼드셀이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으니 돌아가 달라고 요청한다. 사대천사 뤼드셀의 이름은 십계들도 알고 있다. 데리엘은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냐고 반박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증거는 없지만 믿어달라고 사정하며 "이 싸움을 끝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 그것은 마신족을 가두고 있는 거대한 아크(정화)였다. 그건 현장으로 달려가는 멜리오다스 일행에게도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킹은 이게 게라이드가 말한 "산 미끼"라는걸 깨닫는다. 멜리오다스도 이게 뤼드셀의 음모라는 걸 알아차린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4회 일치
* 다시 정신을 차린 엘리자베스는 뤼드셀을 물러나게 하고 직접 인듀라화한 십계와 싸우려 한다.
본래 마계에서만 존재하며 마신들조차도 두려워하는 전설 상의 존재다. 그 실체는 일곱 개 이상의 심장을 가진 마신이 자신의 여섯 심장을 바치고 계약을 맺어 본성을 드러낸 형태다. 전투력이 최소 5만이 되지 않으면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죽는, 자폭과도 같은 기술이다. 갈란은 십계 두 명이 인듀라화를 결심하게 만들 만큼 뤼드셀이 강한 거라며 감탄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젠 "끝"이라고 말한다.
* 그 사이 데리엘은 뤼드셀을 꼬리로 공격하나 간발의 차이로 빗나간다. 하지만 그 공격은 요정왕의 숲에 떨어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그러는 동안 정신을 차린 엘리자베스. 멜리오다스는 그녀를 진정시키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 것도 막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멜리오다스만 상처입게 둘 수 없다며 혼자 전장을 향해 날아간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4회 일치
* 할리퀸은 긴 악몽을 꾼 것처럼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 그는 더이상 3000년 전 성전 시대에 있지 않았다. [[디안느]]와 그로키시니아, [[드롤]]에게 끌려온 나무 속이었다. 할리퀸은 아직도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자기 몸을 만져보며 원래대로 돌아온 걸 깨닫는다. 그때 진짜 그로키시니아가 말을 건다.
할리퀸은 자기도 모르게 "그로키시니아님"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한다. 그는 방금 자신이 본 장면에 대해 묻는데 그로키시니아가 말하길 "본 그대로 자신은 로우를 죽였다"고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로키시니아는 감당할 수 없는 증오와 분노에 휩쓸린다. 로우를 죽이고도 성에 차지 않아 모든 인간과 게라이드를 지키지 못한 "스티그마" 전체로 분노의 화살을 놀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땐 십계의 일원으로 싸우고 있었다.
* 하지만 그가 가장 최악으로 생각하는 것은 게라이드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한 채 분노에 몸을 맡겼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4회 일치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돼지의 모자"정의 리뉴얼 오픈을 앞두고 한껏 흥분했다. 자신있게 낙성신을 선언했으나 정작 보러온 것은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 둘 뿐. 모처럼 일곱 개의 대죄도 다 모이지 않았냐 따지니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일정이 있어 오지 못했다 한다. 차가움을 느끼는 호크. 게다가 개막 역할도 자신이 하려고 했는데 멜리오다스와 반이 얼렁뚱땅 가로챈다.
* 이래저래 빈정 상한 호크가 "돼지에 치어 죽어라!"고 욕한다. 반이 오늘 저녁 연회 때 최고의 잔반을 먹게 해주겠다고 달래자 "반만 용서한다"는 걸로 완화된다. 반과 멜리오다스에겐 호크의 분노 같은것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안방을 차지하는 거였다. 치고 받으며 스위트룸으로 달려가는 두 남자. 거의 동시에 방문을 열어재낀다. 서로 "우리방"이라며 자신과 연인의 침실로 삼으려고 성화인데 일단 승기를 잡은건 반. 사이즈의 차이로 딱 한 발 먼저 방에 밀어넣었다. 멜리오다스는 "개축비를 낸게 누군거 같냐"고 떡밥을 던지는데 반은 [[바트라 리오네스]] 국왕이 낸걸 뻔히 알았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멜리오다스가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내자고 하는데.
할리퀸은 과거의 은원이 정리됐으니 서로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주절거렸다. 하지만 막상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술집에 와본 건데, 고서는 그 말을 자르며 "술 기운을 빌리는 거냐"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이에 낀 에스카노르가 그가 감정을 되찾아서 더 날카로워진거 아니냐고 안절부절 못한다. 할리퀸이 다시 아저씨 모습으로 변해 "툭 까놓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여기에 고서는 어차피 1시간 후 그가 이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 확률은 5% 밖에 되지 않는다고 조소한다. 곧바로 할리퀸이 노멀폼으로 돌아와 하는 말은, 도저히 고서의 대답과 이어지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4회 일치
* [[디안느]]에게 씌워진 주박을 벗겨낸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이제 여신족의 힘에 완전히 각성했다. 그녀의 등장에 가장 경악한 것은 [[메라스큐라]].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이 난처해하는 것을 보고 즐기며 승리를 확신했으나 엘리자베스의 등장으로 일거에 상황이 뒤집혔다. 그녀가 당혹해 해서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그녀의 "암담의 고치"에 갖혀 있던 [[멜리오다스]]가 엘리자베스가 눈을 뜬 거냐고 묻는다. 메라스큐라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없이 어차피 엘리자베스는 이제 3일 후에 죽겠지만 자신이 직접 죽여주는 것도 좋겠다며 전장에 나서려 한다. 멜리오다스는 자신을 당장 꺼내주는게 좋을 거라고 다시금 경고하나 그녀는 무시한 채 암담의 고치를 나선다. 혼자 남겨진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읊조리며 격렬한 분노를 쌓아가는데.
전생의 기억이 깨어난 것이 어떤 영향을 준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전의 착란 같은 증세와는 차이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대신 멀린 쪽이 어색하게 머뭇거리고 있었다. 동료들이 그걸 이상하게 여길 때 쯤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멀린하고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엘리자베스의 증언에서 튀어나왔다. 동료들이 수군거리고 십계가 부활했을 때조차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던 멀린이 사색이 된다. 엘리자베스는 거침없이 자신이 아는 멀린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자신을 진짜 언니처럼 따랐던 12살 시절의 멀린이었다. 멀린이 당황해서 "언제적 얘기냐"고 하는 걸 보면 거짓 없는 사실. 할리퀸과 디안느는 저 멀린이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신기해했다. 그리고 [[에스카노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엘리자베스에게 요구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멀린은 더이상의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쓸데없는 캐묻기라고 정색했다.
* 사냥감을 어이없이 빼앗긴 메라스큐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는 건 이제부터다. 코란도 중심부에 있던 거대한 건물이 알 수 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아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메라스큐라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멜리오다스를 암담의 고치에 가둬 숨겨놓은 곳. 거기서 이변이 생겼다는 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거대하고도 사악한 파동. 그 기는 분명 그 사람의 힘이었다. 이젠 일곱 개의 대죄 일행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멜리오다스. 그가 결국 자력으로 암담의 고치를 파괴했다. 메라스큐라만이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한 암담의 고치는 십계 중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는 술법이었다. [[젤드리스]] 조차도 마신왕의 마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럴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멜리오다스는 흉흉한 기운을 날개의 형상으로 뻗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마신왕의 마력 없이는 젤드리스도 깨뜨릴 수 없다. 그렇다면 멜리오다스에 내뿜은 사악한 힘의 정체는 분명했다. 마신왕의 힘. 그는 그 힘에 잠식된 듯 보였다.
- 임백천 . . . . 4회 일치
[목차]
[[1958년]] [[5월 30일]], [[전라남도]] [[순천시|순천]]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순천시|순천]] 소재의 [[초등학교]]를 입학했으나, [[서울특별시|서울]]로 상경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해 [[1978년]] 고영선과 함께 참가한 [[MBC 대학가요제|대학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고 곧바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가수 활동보다 [[MC]]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말에 [[TBC 젊은이의 가요제|해변가요제]] 출신의 [[왕영은]]과 함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더블 DJ/MC로 방송에 데뷔해 큰 인기를 얻은 게 MC로 진출한 계기였다.
DJ로도 활동 중이며, [[KBS 2FM]]의 오후 2시 프로그램인 "뮤직쇼"[* 김연주와 결혼하면서 그만뒀다가 2001년 4월부터 2003년 봄 개편 전까지 DJ를 맡았다.]등을 진행했다. 현재는 [[KBS 제2라디오]]에서 낮 12시 10분에 시작하는 "임백천의 라디오 7080"의 DJ를 맡았다. 하지만 2016년 9월 5일부터 라디오 7080이 수도권 방송으로 전환되어 지역에서는 들을 수 없다.--[[KBS 2FM]] 지방에 허가 안 할래?--[* 왜냐하면 [[한국방송공사|KBS]] 본사가 지역국 음악FM 방송을 [[KBS 1FM]]으로 취급하고 있어서 광고방송이 안 되기 때문이다. [[KBS 2FM]]이 2002년부터 광고방송 중인데, 2001년 10월 개편 때 광고방송을 위한 사전 작업 때문인지 2FM은 굿모닝팝스를 빼고 지방에서 모두 릴레이가 중단됐다. 게다가 굿모닝팝스도 광고가 나가는지라 지방에서 [[DMB]]와 라디오로 잡아 보면 약간 차이가 났으며, 2017년 3월 6일부터 굿모닝팝스가 [[KBS 제2라디오]] 수중계로 변경되면서 KBS의 지역국 음악 FM 방송은 사실상 1FM으로 완전히 전환됐다. 이후 2008년에 지상파 [[DMB]] 채널인 U-KBS 뮤직을 통해 [[키스 더 라디오]]를 제외한 나머지 2FM 프로그램들을 송출 중이며, 2016년에 라디오쇼(일부 지역국만)와 [[가요광장]]을 광고방송이 가능한 지역 [[KBS 제2라디오]]를 통해 릴레이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KBS 본사도 지속적으로 2FM 지역 릴레이를 추진하고 있지만, 주파수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주파수 없다면서 종교방송 허가는 왜 막 하냐고! 특히 [[극동방송]] 왜 허가했냐고!--] 2018년 가을 개편으로 [[KBS 제2라디오]]에서 아침 11시에 방송하는 "골든팝스"를 진행 중.
* [[아모레퍼시픽]] 캔설록차
- 임성은(가수) . . . . 4회 일치
[목차]
그리고 2018년 1월 슈가맨 시즌2에서는 자신이 직접 멤버들과 소속사 사이의 정산 문제를 해결해 보려다, 돈을 밝힌다는 악성 루머가 생겨서 자진 하차했다고 고백했으며 1집 활동 시기 때도 데뷔를 위해 연습 중인 다른 멤버들이 투투 2집 활동 후 맏언니 겸 메인 보컬로 들어온 임성은을 '다된 밥에 숟가락 얹는다'며 은근히 싫어했다고 한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다른 멤버들과의 춤 실력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열심히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팀 탈퇴 이후에는 1997년 10월에 본인이 작사한 '미련'이라는 타이틀곡으로 활동했다. 작곡가 윤일상이 참여했으며 영턱스 시절의 음악과 연장선인 트로트를 차용한 곡으로 활동한 결과 가요 프로그램에서 10위 권에 안에 드는 등 제법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 임현식(배우) . . . . 4회 일치
||<#878787> '''{{{#EEE156 생년월일}}}''' ||<(> [[1945년]] [[12월 31일]][* 하루 차이로 해방둥이가 되었다! --날때부터 예사롭지 않다.--][* [[싸이]]와는 정확하게 32년 차이, 생일이 같은 날이다.] ([age(1945-12-31)]세) ||
[목차]
위에서도 언급했듯 [[주당]]이라는 점 때문에 흑역사도 있는데 '''[[음주운전]]으로 [[무려]] 7차례'''[[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91537|나 적발되었으며,]] 그 중에 '''무면허 음주운전'''도 여러 건이 된다고 한다.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중상을 입혀''' 재판을 받은지 불과 1년 만에 또 다시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적이 있다. 지금 기준에서는 언론이 발달하고 [[삼진아웃]] 제도가 있으니 턱도 없을 일이지만, 당시 시대 환경이 그랬던 만큼 이런 사실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 장기오 (공무원) . . . . 4회 일치
| 기타 이력 =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차관]] <br/>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장관]] <br/> [[한국근로복지공단]] [[이사 (법인)|이사장]] <br/> 민주자유당 특임위원 <br/> 자유민주연합 특임위원
1958년 창설된 특전사의 전신인 공수특전단의 창설멤버로 차지철 대위(포병간부 임관), 전두환 대위(육사 11기), , 장기오 대위(육사 12기), 최세창 중위(육사 13기)와 함께 1958년 미국에 유학하여 특수레인저 코스를 수료하고 한국군 최초로 윙뱃지를 달았던 군인으로 유명하다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12기]] 출신으로 [[하나회]]의 일원이었다.
* [[1986년]] [[대한민국 총무처|제10대 총무처 차관]].
|직책 =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차관]]
- 전형필 . . . . 4회 일치
| 자녀 = 전성우(장남), 전영우(차남)
'''전형필'''(全鎣弼, [[1906년]] [[7월 29일]] ~ [[1962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다. 자는 천뢰(天賚), 호(號)는 간송(澗松), 지산(芝山), 취설재(翠雪齋)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훈민정음]] 원본 등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찾아와 1938년 조선 최초의 근대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웠다. 해방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중에 한국의 문화재들을 지켜내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사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유족들과 지인들에 의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으로 개편되었고, 간송미술관에서는 [[1971년]] 봄부터 '겸재전'(謙齋展)주제를 시작으로 2014년 가을까지 일년에 2차례씩 무료 일반공개를 하였다. 현재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간송컬렉션을 선보이고자 동대문디자인프라자&파크에서 간송문화전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2012년 12월 14일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전형필의 가옥]]을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하여 지정 관리하고 있고, 2014년 10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1962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화포장]] 과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들을 연구정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로 개편되었고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의 이름으로 봄과 가을 일년에 두차례 일반공개를 하고 있다.
* 1906년 7월 2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가 112번지에서 중추원의관 전영기와 밀양 박씨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 본관은 정선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4회 일치
* 시호의 사이코메트리로도 감지가 되지 않아서 적은 다른 차원에 숨어 있을 걸로 예상된다.
* 유리는 다중차원 이용자라면 텔레포트 기반의 합성 능력자일 거라고 예측하는데, 마츠카제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텔레포터(아오이)를 어떻게 포획할 수 있었던 건지 의문스러워한다.
* 아오이는 알 수 없는 공간에 갖혀 능력조차 사용할 수 없는데
* 마츠카제는 유리가 잡혀가는 도중 차원의 문이 열리는 기미가 없었다는 걸 확인하고 발상을 바꾼다.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4회 일치
* 그때 막 정신을 차린 마기가 안 될 말이라고 끼어든다. 후지코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효부가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더이상 방법이 없다.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백신이 접종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절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남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츠카제는 지휘관인 미나모토가 남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반발한다. 차라리 자신이 남아서 폼을 좀 잡게 해달라고 드립을 친다. 카오루가 심쿵할지도 모른다고. 정작 카오루는 관심이 없다.
- 정난정 . . . . 4회 일치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차실(次室) 남씨(南氏)의 2남 3녀 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모친은 본래는 상민이 아니었으나 난신에 연좌된 부녀로서 노비가 되었고, [[정윤겸]]의 집에 분배되었다. 그는 정윤겸과 노비가 된 반가 여성 사이에서 서녀(庶女)의 신분으로 태어났다.<ref>그러나 그 모친의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ref> 그리고 정난정은 어릴 때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職帖)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또한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승려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禪敎)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度牒制度)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승하한 지 5개월 후인 1565년 9월 8일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의 계모 강씨는 정난정이 김씨를 독살했다며 [[의금부]]에 고발하였다. 이 사건으로 점차 사대부의 공격이 심해지자 [[1565년]] [[11월 13일]] 독술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윤원형]]도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사후 [[사림파]]에 의해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다. 조선의 사대부는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는데, 구전과 민담을 통해 작품과 희극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는 자신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측근인 점을 이용,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서자 서녀도 능력이 되는 인물을 등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남편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ref name="yunnaev"/> 이는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ref name="yunnaev"/>
- 정성룡(야구선수) . . . . 4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4년/신인드래프트|1984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
[목차]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절 김성범[* 1982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태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결국 백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고교 시절 그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 본다면 졸업 후 바로 프로 입단한 게 독이 됐다. 만약 [[류명선]]이나 정윤수 등의 동기들처럼 대학에 진학했었더라면 1980년대 말 삼성 외야진이 세대 교체를 할 즈음에 입단해, 입단하자 마자 많은 기회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당시 정성룡과 같이 포철공고의 타선을 이끌었던 김성범과 염창무는 아예 프로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
- 정종원 . . . . 4회 일치
|자녀 = [[정운철]] (장남) <br /> [[정운익]] (차남)
1950년대 중반 [[정재학]] 가문과 [[민영휘]] 가문의 [[조흥은행]] 최대주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급부상한다. 이병철은 장내 외에서 조흥은행 주식을 대량 매수하여 무려 50%를 확보한다. 그뿐 아니라 한일은행 80%, 상업은행 30% 등 주요 시중은행 주식까지 대거 차지했다. 금융계를 독점하려는 재벌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ref>경향신문 1982년 7월 27일 5면 삼성총수 이병철</ref> 기타 은행 지분까지 사들이며 이병철은 전체 시중은행의 주식 50%를 확보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종원 행장은 행장 자리를 유지했다.
정종원은 공교롭게도 1961년 5.16군사혁명 발발 보름 전 4년 반 동안 이어온 행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후 검찰이 추진한 3.15부정선거자금에 대한 특검에서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공소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종결됐다.<ref>경향신문 1961년 3월 5일 3면 특검천하 42일 (3)</ref> 그러나 [[군사혁명]] 발발 직후 [[이병철]]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시중 은행 주식을 모두 강제 환수당했다. 이병철은 [[조흥은행]] 70%, [[한일은행]] 60%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ref>경향신문 1961년 10월 15일 1면 대주주소유 오개은에 환수통고</ref>
정부가 조흥은행 등 시중은행의 주식을 모두 거둬들이면서 주요 은행의 지배주주는 정부가 차지하게 됐다. [[관치금융]]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부는 1960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금융산업을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자금공급은 은행 자율보다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 조진호 (축구인) . . . . 4회 일치
조진호는 [[대륜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아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남북단일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은 대부분 북한 선수들이었지만, [[서동원]]과 더불어 남한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조진호는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되며 당시 최연소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하였으며, [[1994년 FIFA 월드컵|미국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였으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과의 월드컵 직전 두차례 평가전서 연속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별리그 3라운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하였으며, [[구이도 부흐발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의 2:3 패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컵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식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상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태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2000년]] 대한화제컵 포항과의 A조 2차전서 멀티골, 연장전 골든골을 기록하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으며,5월 5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전남 드래곤즈]]와의 대회 결승전서 연장 전반 4분 [[전경준]]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골을 기록하며 부천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 주상욱 . . . . 4회 일치
| 배우자 = [[차예련]]
* 2014년 [[MBC]] 《[[앙큼한 돌싱녀]]》 - 차정우 역
* 2019년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2]]》 - 톱스타 강민호 역 (특별출연)
- 주현미 . . . . 4회 일치
[목차]
[[화교]] 출신이라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주현미가 상을 타면 왜 외국 가수에게 국내 가수상을 주냐고 비아냥대는 기자도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차별받던 흑인 혼혈인 [[인순이]]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중고를 모두 [[화교]] 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어]]도 잘 하며 방송에서 중국어 노래도 곧잘 부른다.
*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1억원'''의 빚이 있었다. 승용차가 100만원하던 시대에 그 정도의 빚이 있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었지만 워낙 인기있는 가수이다 보니 비교적 빠르게 빚을 다 갚았다. 사실 1년에 364일을 공연했다고 할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로 돈을 벌었으니 그 정도의 빚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4회 일치
* [[그리샤 예거]]의 수기는 이와 같이 적으며 "바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바다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들을 향해, 그는 "지표의 7할을 점한 광대한 소금물"이라고 무기질적으로 적고 있다. 그의 기억 속에선 거인으로 변한 올빼미, 크루거가 마지막 남은 마레의 병사를 살해하고 바다에 던지고 있다. 그리샤는 마레당국이 끌고 온 모든 것들, 그리고 마레인 자신들이 모조리 바다에 삼켜지는 것을 경이에 차서 바라본다. 짙은 색을 내기 시작한 석양이 거인의 등 뒤에 걸려있었다.
그는 복권파의 전의를 고양할 목적으로, 그리고 원할한 작전 진행을 위해서 고의로 이 사실을 숨겼다. 만일 이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지크 예거]]를 마레의 전사로 만드는 계획은 입안 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홉 거인의 힘은 계승자가 힘을 넘기지 못하고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혈연과 시간과 거리를 초월해서, 사용자가 죽은 이후 시점에 태어난 유미르의 백성에게 갑자히 발현된다. 이것으로 볼때 유미르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이어져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어떤 계승자는 "길"을 봤다고 증언했는데 엘런도 같은 것을 본 듯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길로 거인의 신체가 오는 것이다. 전해진 기억이나 의자도 그 길을 통해서 온다. 그리고 그 길은 모두 하나의 "좌표"에서 교차한다.
크루거가 이야기할 수록 죽어있던 눈동자에 새로운 힘이 차오른다. 그리고, 그리샤는 외면했던 사진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들의 가족들에게. 그날의 여동생의 손을 이끌던 자신에게.
- 진격의 거인/90화 . . . . 4회 일치
로이 사장은 조사병단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면서도, 과연 자신들이, 벽 안의 인류가 어떻게 되는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평온을 가장하고 있지만 벽 바깥의 진실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엘디아 인이 "악마의 민족"이라 불리는 것이나, 인간 조차 아닌 괴물로 취급되고 전세계가 그들의 멸망을 바라고 있는 것 등.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들이 전멸할 때까지 지옥은 끝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로이 사장의 손은 떨고 있다.
아르민은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알지 못하지만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리바이도 이 대화를 듣고 있다. 엘런은 닥치라고 위협하지만 프록은 입을 다물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고집을 부린 엘런은 말 안 듣는 꼬마같았다고 표현하면서 미카사는 차라리 어른스러웠다고 말한다.
그러는 동안 아르민은 바닷 속의 소라를 들어올린다. 미카사도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들어온다. 하지만 차갑고 계속 밀려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파도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미카사는 신중한 표정으로 아르민의 표정이 놀라움에서 웃음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본다. 아르민은 너무나 만족한 목소리로 그 앞에 있는 엘런에게 말한다.
엘런이 바다에서 느낀 것은 행복도, 기쁨도 아니었다. 그가 지하실에서 찾아낸 것은 한 없이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엘런은 꿈이 꺾인 것처럼, 실망에 가득차게 말했고 예상과 다른 대답에 아르민과 미카사는 충격을 받는다.
- 진동한 . . . . 4회 일치
|| 프로입단 || 1984년 1차 지명 ||
[목차]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 때 3회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7회말까지 잘 막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다가 해태팬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고 교체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투수는 [[김시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김시진이 불을 지르며 역전패했다. 한창 잘 던지고 있던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되고 경기마저 패하자 [[대구아재|삼성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3차전 대구경기에서도 삼성이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한 삼성 팬들은 경기 후 해태 구단버스에 불을 질러 분풀이를 한 것. 이 구단버스 방화사건은 프로야구 관중 난동 사건하면 늘 언급이 되며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 진선유 . . . . 4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2007/2008 6차 월드컵에서 중국 선수의 몸 싸움에 밀려 오른쪽 발목 바깥쪽과 안쪽 인대에 모두 손상을 입었다.<ref>{{뉴스 인용
- 창작:좀비탈출/5-1-2 . . . . 4회 일치
다시 냉정해질 차례다. 팔자에도 없는 액션 영화 촬영 탓에 머리에 피가 너무 몰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잊지 말자. 나는 식량이 필요하다. 게다가 토트넘을 보라. 녀석은 90kg는 나갈 것이다. 저 무거운 덩어리를 어디로 치운단 말인가? 애초에 그런게 가능한 체력이 나한테 있는 걸까? 땀을 뻘뻘 흘리고 노동을 한 뒤에 몸살이라도 나서 쓰러져 버리면 토트넘에게 물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머릿 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녀석들의 개인차. 하체가 발달한 녀석이 있으니 다른 것이 발달하거나 썩지 않은 녀석도 있을 법하다. 그래 예를 들자면…… '''후각이 멀쩡한 녀석.''' 이제 토트넘은 시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썩은내 스팟'''으로 활약하겠지. 녀석들 중에 후각이 남은 녀석이 있다면? 녀석들의 뇌는 냄새의 호불호를 분별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자극이 있다는 것 정도는 감지할 것이고 그게 녀석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면…….
어제 남은 죽으로 아침인지 야식인지 모를 끼니를 때웠다. 졸음이 몰려왔고 나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항상 같은 침대였는데 오늘만큼은 깃털처럼 부드럽다. 20시간이 조금 못 되는 인간적인 생활의 여파인지 피로와 공복감 밑에 숨어있던 다른 욕구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 미학적 욕구나 지식욕처럼 점잖은 거면 좋겠지만... '''나는 인간이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고 살아가는 실감이 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끔은…… 아니 '''어차피 혼자 있는데''' 눈치 볼게 뭐가 있어? 나는 졸음을 잠깐 미뤄뒀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4회 일치
전기를 되살리는 문제도 궁리해봤는데, 내가 아는 전기지식이라곤 차단기가 내려가면 전기공급이 안 된다는 것 뿐이다. 그래도 내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긴 한데, 약간 위험이 따르는 부분이라 보류한다.
다시 차분하게 정리해 보면 당장 찾아볼만한 곳이라곤 이 집안. 그리고 더 있다고 해봐야……
토트넘의 집은 우리 집을 지을 때 같이 지은 집이라 들었다. 들어가본 적은 없지만 겉에서 보기에는 우리집하고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론 우리 집에는 없는 차고가 있다는 점은 다르지만.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4회 일치
||<:>→||<:><#008000>'''{{{#white 차고문을 닫는다.}}}'''||
나는 앞마당을 가로질러 차고문으로 갔다. 혹시 바깥 쪽에서 뭔가 있을까 싶었지만 딱히 기척이 느껴지진 않았다. 확정하기엔 부족하지만 아마도 토트넘처럼 정오에도 잘 돌아다니는 녀석은 소수일 것이다. 그 다음 나는 차고가 전동문이 아닌 걸 확인했다. 만약 그렇다면 닫을 방법이 없으니까. 다행이 옛날식 도르레가 달린 셔터문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철컹철컹 소리가 나며 문이 내려갔다. 기름칠을 한지 오래됐는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잠깐 아령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겨우 차고문이 닫혔다.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4회 일치
천경원양포(天傾元禳布) : 츠키노 아스카의 기본 보구 중 하나, 장착할 시 아스카에게 강대한 기력과 늙지 않는 불로불사의 능력을 부여하고, 적의 공격을 전방 100% 차단, 후방 10%만 차단하는 방어 능력을 부여해준다. 또한 공중부양 능력을 아스카에게 부여해주며, 장착하고 있지 않을 시에는 아스카의 홍염의의 망토 부분에 감춰져 있다가 스르륵하고 장착된다.
형태는 거대한 하얀 천 2개가 교차되어 구성된 하얀 숄.
모습은 다소 야한 형태의 롱슬릿 차이나 드레스에 팔을 넣어서 입을수 있게 망토 같은 파츠가 붙어있다.
- 최민호(유도선수) . . . . 4회 일치
[목차]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영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순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남]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식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남]]이다.]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순박해 보이는 인상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남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반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상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최승자 . . . . 4회 일치
[목차]
천천히, 차갑게 융해되어 갔어.
누군가 줄기차게 오줌을 깔기고,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 최재성(배우) . . . . 4회 일치
||<#878787> '''{{{#EEE156 가족}}}''' ||<(> 3남 1녀 중 차남. 배우자 황세옥[* [[1994년]]에 데뷔해서 "결론" 이란 노래로 인기를 끌었던 신세대 가수였다. 이후, 2집 "알라딘의 램프", 3집 "너만의 이유" 를 내며 가수 활동을 이어가다 [[1997년]] 최재성과 결혼했다.] 6촌 동생 [[최진실]], [[최진영]] ||
[목차]
최재성의 아버지는 최상현(KBS 드라마 연출가)이고, [[최진실]], [[최진영]] 남매가 6촌 동생들이다. 혈통이 혈통인지라 최재성, [[최진실]], [[최진영]] 모두 미남미녀들이다.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뒤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같은 직업에 종사한 덕에 최재성과는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최진실]] 사단"과 [[최진실]]의 어머니, [[최진영]] 이외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슬퍼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최재성과 [[최진실]]이 [[1994년]]에 방송된 [[드라마]]에서 극중 연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20500209121002&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4-02-05&officeId=00020&pageNo=21&printNo=22421&publishType=00010|#]] [[여담]]으로 어린 시절에는 [[최진실]]과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었다. 자라면서 외모의 차이가 생긴 것.
* [[1998년]] MBC 단막극 《일요베스트-땅끝으로 가는 마차》
- 카네다 쇼타로 . . . . 4회 일치
철인 28호를 조종하는 소년 [[탐정]]. 쾌활하고 기민한 행동력과 어른을 압도하는 추리, 발상으로 사건을 해결해서 철인을 조종하기 이전부터 소년 탐정으로서 명성을 날려왔다. 경시청에도 출입하며 수사에 협력할 정도. 뛰어난 사격실력에 자동차 운전, 제트 전투기 탑승, 헬기 조종 및 잠수 작업 등도 해낸다. 철인 28호를 얻은 후부터 철인과 함께 사건을 해쳐나간다. 집은 서양식 저택으로 혼자서 생활. 부친은 [[카네다 박사]]이며 중요한 동료로는 [[오오츠카 서장]], [[시키시마 박사]]가 있다.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재세편]]에 등장해선 모범생의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쇼타콘의 어원답게 연상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모습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애쉬포드 학원 이벤트에서 여고생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하악 거린다던가(...).] 나이 대가 비슷한 [[무적로보 트라이더 G7]]의 [[타케오 왓타]]와 [[무적초인 점보트3]]의 [[진 캇페이]]와 친구. 갓마즈의 [[묘진 타케루]]하고도 서로 믿고 지내는 형동생 사이로 나온다. 참고로 왓타 또한 쇼타로처럼 원작에서 악당을 자비심 없이 끔살시켰던 초딩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리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솔레스탈 빙]]이나 [[흑의 기사단]] 같은 전직 테러리스트와 동료로서 같이 싸워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나중엔 그냥 받아들이지만.
[[제3차 슈퍼로봇대전 Z 시옥편]] 원작대로 구라 왕자와의 우정이 묘사되었다. 원작의 철인 자폭도 재현됐지만 타케루가 초능력으로 주워다줘서 이후로도 계속 쓸 수 있다.
복장은 블레이저에 반바지 차림. FX에서는 정장에 트렌치 코트 등 서양 느와르의 탐정풍 복장을 입다 이후 인터폴 장관이 되면서 장관복을 입는다.
- 켄카킥 . . . . 4회 일치
동작 자체는 특별한 것은 없고, 비교적 평범한 [[앞차기]]이다. 선 채로 신체를 굽히거나 하지 않고, 한쪽 발에다가 체중을 실어서 정면으로 걷어차는데, 거칠고 무자비한 느낌을 주는 동작이라 야쿠자 킥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 하다.
프로레슬러 쵸노 마사히로(蝶野正洋)의 경기에 기원이 있어, [[로프 반동]]으로 돌아온 상대 선수에게 발차기를 날렸는데 이 때 해설이 "마치 야쿠자의 발차기 같습니다!"라고 외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4회 일치
플레이어가 적을 죽일수록 화면 왼쪽 위에 위치한 리볼버 모양 게이지가 차오른다. 이 게이지를 소모해 집중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오른쪽 위에 위치한 해골 모양 게이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오른다. 해골 모양 게이지가 다 찼을때, 플레이어는 죽음의 감각을 발동할 수 있다.
사다리를 타다가 공격당했다던가, 개틀링에 공격당했다던가 하는 등, 상식적으로 총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발동되지 않는다. 또한 죽음의 감각을 발동한 후 죽어도 게이지가 다시 차있거나 하지도 않는다.
실존 인물. 본명은 제시 우드손 제임스. 열차 강도를 전문으로 하는 전설적인 무법자. [[남북전쟁]] 당시에는 남군의 게릴라로 참전했었다.
- 킹 오브 드래곤즈 . . . . 4회 일치
여기서 전사,성직자,드워프 간에는 차이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파이터는 HP 성장이 뛰어나고 성직자는 방어가 조금 더 나은 차이가 있으며 드워프는 D&D TOD,SOM 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창이나 화살을 날리는 적들의 공격을 가만히 있으면 맞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의외로 원거리 공격에 아차 하는 순간 맞는 경우가 있어서 드워프가 살짝 좋은 점도 있었던 셈. 게다가 다른 캐릭터는 슬라임이 점프할때만 타격되지만, 드워프는 그냥 쳐도 슬라임을 타격할 수 있다. 하지만 3인용 시 원거리 캐릭 두명+좀더 멋지게 생긴 파이터를 주로 고른다.
- 킹덤/497화 . . . . 4회 일치
* 몽념은 조의 서부 공략은 어차피 가로막혔고 애써 흑양을 따냈지만 이목의 수비는 그보다 빠르고 견고해서 의미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그걸 걱정하던 차였는데 창평군은 벌써 거기에 대한 해답까지 내놨다고 감탄하며 "가능성은 둘째치고 이목까지 속일 수 있는 무서운 수"라고 호평한다.
* 이번엔 창평군이 직접 나서 발언한다. 이들 셋을 부른 이유는 작전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차 전략상 이들 셋의 부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업은 한단의 수비망에 속하고 아무리 미리 대비해도 이목이 존재하는 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전력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상정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중요한 점이 현장의 적확한 판단.
* 정은 장차 이들의 힘은 더욱 중히 쓰일 것이니 이번 전투에서 꼭 공을 세워 장군의 지위를 얻으라고 지시하며 결코 죽지 말라고 말한다.
- 킹덤/511화 . . . . 4회 일치
* 그의 말대로 왕전은 부하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성을 빠져나왔다. 소수의 호위병력만 대동한 그는 이목이 말하는 "그것"을 보러 향하고 있다.
몽념은 신을 진정시킨다. 자신도 비신대와 산민족이 강하다고 여기긴 하나 성의 설계 자체가 위화감을 준다. 몽념은 이틀간 성을 돌아본 뒤 확신을 얻었다. 열미성은 묘하게 동선이 흐트러져있고 성벽의 높이도 미묘하다. 이곳은 분명 의도적으로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진 성이다. 왕전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기 때문에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이신은 그렇다쳐도 왜 총대장이 사라지는 거냐고 묻지만 몽념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며 설명을 마친다.
만일 함곡관처럼 난공불락의 요새였다면, 반대로 조나라로서는 업의 코 앞에 적의 전진기지가 생긴 꼴이다. 하지만 쉽게 빼앗겨도 쉽게 되찾을 수 있게 만든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적이 열미를 뚫고 왕도에 진입했을 때 조는 그 병력에 대응하는 한편 미리 태행산맥에 잠복시킨 병력을 운용해 열미성을 급습, 열미를 탈환함과 동시에 적이 후퇴할 "출구"를 차단해 버린다. 이것만으로도 적 병력은 포위섬멸되는 형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당연히 신은 그럴 수는 없다고 격렬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창평군의 제자인 하료초 조차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왕분은 글허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20만 대군이 전멸할 수도 있다며 몽념의 제안에 힘을 더한다. 양단화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에 수긍하는 것 같은데, 문득 그녀는 환의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걸 발견하고 왜 웃는 거냐고 묻는다.
- 타쿠마 마모루 . . . . 4회 일치
범인 타쿠마 마모루는 1963년에 이케다 시의 서쪽에 있는 이타미시(伊丹市)에서 출생했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7살 차이가 나는 [[형]]이 있었다. 6학년 때 오사카 교육대학 부속 이케다 중학교에 수험을 하고자 했으나, 모의시험 결과가 나빠 포기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가정폭력을 받게 되었다. 중3때는 칠판에 자신의 경력이나 "[[항공자위대]]에 들어가겠다."고 쓰고 [[군가]]를 노래하는 등의 기행을 벌였다. 하지만 동급생들은 무시했다. 이 때부터 "나는 IQ가 높다."고 말했으나,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1990년 6월에 [[의사]]라고 거짓말을 하여, 18세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으나, 거짓말이 들켜서 3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였던 19세 연상의 여성(오사카 교육대학 출신)과 결혼했다. 1993년에 이타미시 교통국에 노선 버스 운전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동료와 싸움을 벌이거나, 버스에서 운전석 뒤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향수 냄새가 나니까 뒷자리로 가달라"고 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1994년 9월 21일에 아내와 이혼한다.
1998년 부터 이타미 시내 초등학교에 기술자로 근무했다. 1999년 3월에 교사 4명에게 정신안정제를 넣은 차를 먹여서 상해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간이감정에서 "정신분열증 의심"이라고 진단을 받고, 니시노미야 시(西宮市)의 정신병원에 입원조치 된다. 사건은 불기소가 되었다.
2000년 10월 14일에, 택시 운전사로 근무하다가 오사카 시내의 호텔에서 벨보이와 말다툼을 벌여서, 폭행으로 체포된다. 11월에는 이케다 시 건축자재 판매회사에 10톤 트럭 운전사로 채용되었고, 이케다 시의 원룸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신호대기를 할 때 나란히 서있던 차에 타고 있던 여성을 "눈이 마주쳤다"고 트집을 잡으며 침을 뱉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서 2001년 2월에 그만둔다. 2001년 5월 하순에는 스스로 하룻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 토리코/382화 . . . . 4회 일치
* 용왕 데우로스도 이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이차원 레이저를 준비한다.
* 데로우스의 이차원 레이저가 발사되지만 가볍게 튕겨낸다.
* 페어의 언행으로 볼 때 아카시아 자체도 네오가 먹어야할 "풀코스"의 일부였던 걸로 보인다. 즉 현재 팔왕을 가지고 노는 네오 조차 완전체는 아닌 것.
* 풀코스를 다 먹은 아카시아는 현재의 네오 조차 "강하다"고 인정하고 순순히 잡아먹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전투력 자체는 현재의 네오보다 위로 보인다.
- 토리코/386화 . . . . 4회 일치
* 한 차례 폭발같은 공방이 오가고 두 번째 공방.
* 지금의 아카시아는 무한 대못 펀치 조차 두 번만으로 저지한다.
* 팔왕은 커녕 GOD 조차 가뿐히 상화하는 네오의 포획레벨.
* 스카이디어의 백채널 공격에서 부활한 시점에선 8천 보단 낮겠지만 스카이디어 조차 간섭 못하는 백채널을 전개했으므로, 팔왕보단 높은 레벨일 것으로 추측이 가능.
- 토리코/394화 . . . . 4회 일치
청귀와 제 3의 악마는 결국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끝나게 됐으며 특히 제 3의 악마에 대해선 정확한 명칭 조차도 밝혀진게 없다. 팬덤에서는 최초에 "흑귀"라 불렀으나 "백귀"로 명칭이 바뀌었고 구현화됐을 때 몸체가 흰색으로 보여서 대체로 백귀란 명칭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세 번째 악마가 어떻게 네오를 흡수할 수 있었는지, 어디서 온 존재인지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다.
왜 토리코만 세 마리의 악마가 들어있었는지도 설명 되지 않았다. 사실 구르메 악마에 대한 떡밥은 거의 해결된게 없는데 사천왕들 조차 토리코의 적귀 외엔 제대로 각성한 악마가 없고 특히 코마츠의 경우는 구르메 세포가 활성화된 걸로 묘사됐지만 결국 지나가는 떡밥에 지나지 않았다.
죽은 것 같았던 팔왕도 대부분 소생했는데 낭왕 기네스와 사왕 마더스네이크의 생사는 불분명. 사왕은 경왕 문의 뱃속에 있어서 영향을 못 받은 걸 수도 있다. 기네스는 네오에게 당했을 때 즉사해 버린 건지 등장이 없는데, 어차피 네오가 식재를 토해냈으므로 분명 기네스도 다시 나왔을 것이다.
토리코의 최후의 풀코스는 네오가 아니라 엔드 매머드라는 고대의 매머드가 차지했다. 처음 네오를 풀코스로 지목했을 때 인육을 먹는 셈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엇고 뭣보다 아카시아가 네오를 보살펴달라고 했으므로 네오를 잡아먹는 전개를 피한 듯 하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4회 일치
* 관용: 파벌 차이로 생기는 불행도 -3
* 오즈 번 - 시코쿠 북서쪽의 이요를 차지하고 있는 번. 토사 번과 전쟁 중이며 마루가메 번과 동맹 및 무역 관계이다. 다이묘는 가토 야스아키.
* 도쿠시마 번 - 시코쿠 동쪽의 아와를 차지하고 있는 번. 다이묘는 하치스카 나리히로.
* 쿠마모토 번 - 큐슈의 히고를 차지하고 있는 번. 노베오카 번과 전쟁 중이다. 다이묘는 호소카와 요시쿠니.
- 트로피코 4/칙령 . . . . 4회 일치
과거 베네수엘라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가 출연했던 TV쇼 [[알로 프레지덴테|https://en.wikipedia.org/wiki/Al%C3%B3_Presidente]]가 모티브로 보인다.
=== 통신 차단 ===
=== 소셜 네트워크 차단 ===
메신저, 블로그, 페이스북, 직장 내의 수다를 금지시킨다. 시민들이 소셜 네트워크에 홀리지 않고 일에 집중하기에 생산력이 5% 상승한다. 게임 자체의 페이스북/트위터 연동 기능도 차단된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4회 일치
[[위플래쉬]]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마일즈 텔러가 '리드 리차드/[[미스터 판타스틱]]'을, [[케이트 마라]]가 '수잔 스톰/[[인비저블 우먼]]', 크로니클에서 학생 회장이자 초능력자인 스티브로 열연했던 마이클 B. 조던이 '쟈니 스톰/[[휴먼 토치]]'를 맡으며 [[제이미 벨]][*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 역, [[설국열차(영화)]]의 에드가 역.]이' 벤 그림/[[씽(마블 코믹스)|씽]]'의 역할을 맡는다. [[닥터 둠]]의 역에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코바]] 역을 맡은 바 있으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듀로탄]] 역을 맡을 예정의 배우 [[토비 캡벨]]이 맡는다.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배트맨과 로빈]]보다 형편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단 사람에 따라 평에 차이가 생길 수는 있으나 적어도 앞의 두 영화와 같은 대열에 서게된 것은 확정되었을 듯.
* 마찬가지로 마블 코믹스 원작에 폭스에서 영화화한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멘 실사영화 시리즈]] 세계관과 크로스오버를 얘기하는 팬들도 있는데, 사실 판타스틱 포 영화의 리부트 계획 당시 엑스맨 영화의 세계관과 병합시키고자 하는 '''크로스오버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계획 진행이 예상과 달라지면서 세계관 병합은 무리라고 판단한 20세기 폭스가 독자적인 영화로 만들고자 했는데, 제작자의 현재 입장은 "엑스맨과의 크로스 오버는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판타스틱 4는 그 자체 작품만으로 집중할 것이다. 마블이 그들만의 세계관을 합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엑스맨과 판타스틱 4 역시 그러한 방면에서 융합이 시도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 페어리 테일/508화 . . . . 4회 일치
* 심지어 제레프 조차도 이 마법에는 괴로워하는데 라케이드는 뒤늦게 마법을 회수한다.
* 페어리 테일도 하나둘 영향을 받으며 쓰러지는데 렉서스 드레아 조차도 견디지 못한다. 메이비스 버밀리온은 어른들만 걸리는 마법인가 생각하지만 모든 어른이 다 걸리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 자신도 영향을 받는다. 메이비스는 "저항할 수 없다"고 말하며 쓰러지는데. 지금까지 무적의 포스를 자랑하던 길다트 클라이브 조차도 갑자기 쓰러져서 딸 카나 알베로나가 걱정하는데... 왠지 승천할 것 같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어서 한 대 맞는다.--가정폭력의 현장--
제레프는 아이린이 유니버스 원을 발동했을 때도 당황했을 뿐인데 라케이드의 마법에 진짜로 괴로워하는 걸로 나와서 END보다 이쪽이 훨씬 효과적인거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그 길다트 조차 저항을 못하고 당한 마법은 이게 처음. 오거스트는 당한거 같긴 한데 동요하는 것 같진 않아 진 대마법사설이 나오고 있다. 아이린은 역시나 걸리는데 꽤 괴로워하는 걸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엘자나 웬디가 안 걸리는걸 보고 "꼬맹이들"이라고 하는걸로 봐서는 역시 이 마법은...
- 페어리 테일/523화 . . . . 4회 일치
* 대상을 영원히 가두는 마법 "아이스드 셸". [[그레이 풀버스터]]는 과거 "아바타르"에 잠입했던 시절 익혔던 "로스트 속성"을 더해 위력을 증폭시킨다. 로스트 속성은 마법의 위력을 수십 배로 배가하지만 사용자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무서운 대가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예 사라지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면 차라리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 로스트 속성으로 강화된 아이스드 셸은 [[제레프 드래그닐]] 조차 저항하지 못한다. 그는 이런 마법을 써봤자 자신을 멸할 수는 없다고 도발한다. 그레이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츠를 죽이지 않고 제레프를 쓰러뜨리려면 이 방법 뿐이라고 강변한다. 제레프는 아이스드 셸이 대상을 영원히 가둔다고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자신이 부활할 거라고 경고하는데, 그레이의 결심은 꺾을 수 없다.
* 나츠는 전에도 똑같은 짓을 해서 말리지 않았냐고 그레이를 타박한다. 그레이는 한때의 감정에 휩쓸려 나츠를 죽이려들었던 자신은 길드에 있을 자격이 없고 이 길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항변한다. 나츠는 피차일반이 아니냐고 소리친다.
* 한편 [[아이린 베르세리온]]을 힘겹게 이긴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은 상처를 치료하고 길드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웬디는 아직도 [[마카로프 드레아]]가 죽음을 결심했을 때 옆에 자신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엘자는 그건 마카로프가 죽음을 각오한 결과였으므로 차이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 아이린이 그런 것처럼.
- 페어리 테일/527화 . . . . 4회 일치
* 차마 어머니를 죽일 수는 없었던 그는 영창을 멈추고 그대로 소멸하는 길을 택한다.
[[나츠 드래그닐]]은 자신의 동료 조차 미련없이 지워버리는 제레프의 행동을 보고 치를 떤다. 제레프는 이런건 동료도 자신의 아이도 아니라고 말하는데 분노한 나츠의 주먹이 날아온다. 제레프를 날려버리며 나츠가 말한다.
오거스트는 자신이 선천적으로 강대한 마력을 타고난 탓에 버려지고 소외 받았으며 살아갈 길 조차 막혔는데 그때 자신을 구해준 것이 제레프라고 말한다.
* 매그놀리아 전역에 흩어져 싸우고 있던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은 또다시 광범위한 마법 공격에 당황한다. 길드로 향하던 [[메이비스 버밀리온]] 역시 마법의 영향으로 무릎 꿇는다. 메이비스는 이것이 고대의 마법 "아르스 마기아"라는걸 눈치챈다. 생물의 피를 증발시키고 대지를 녹여버리는 금지된 마법이다. 메이비스는 즉시 텔레파시로 길드원 전원에게 방어하라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오거스트의 방해인지 차단되고 만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4회 일치
* 비장의 수, 드래곤 포스를 해방한 [[나츠 드래그닐]]. 그것으로 [[제레프 드래그닐]]의 마법은 끊어버릴 수 있었으나 제레프를 상대로 얼마나 통할 지는 미지수다. 제레프 본인은 "그럴로는 역부족"이라며 차라리 나츠도 [[아크놀로기아]]처럼 용화할 수 있엇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나츠는 자신은 인간이고 아크놀로기아처럼 되지 않겠다며 그것이야 말로 아버지 [[이그닐]]의 의지라고 일갈한다. 제레프의 빈정거리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메이비스는 "제레프를 쓰러뜨릴 방법"이 떠올랐다고 설득을 시도한다. 마법의 천재인 그녀가 하는 말인 만큼 제레프도 동요한다. 하지만 결국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이미 자신은 죽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해봤고 END 조차도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 블루 페가수스와 아크놀로기아의 추격전은 끝에 다다랐다. 크리스티나 호가 한계에 봉착했다. 아크놀로기아를 떼어내어도 뒷날개가 파손됐고 속도도 유지할 수 없다. [[이브 티름]], [[렌 아카츠키]]가 안간힘을 쓰지만 아크놀로기아는 차츰 따라잡고 있다. [[제니 리아라이트]]가 예비 마도 부스터를 점화한다. 일시적으로 거리를 벌리지만 아크놀로기아에겐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 조차 뛰어넘는 신의 힘.
- 페어리 테일/544화 . . . . 4회 일치
각각의 작은 힘들이 모여들어 아크놀로기아 조차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거듭났다.
* 마룡의 압도적인 힘에 깨질 것만 같았던 빛의 구슬이 밝게 빛난다. 유대의 힘이 구슬을 더 강하게 부활시켰다. 마룡 조차도 이 벽만은 깨뜨릴 수 없었다.
* 나츠가 각성한 칠염룡의 힘조차 압도할 것 같은 힘의 소용돌이. 그러나 나츠는 그것에 놀라지도 두려워하지 않앗다. 그저 "혼자서는 못 끝낸다"고 중얼거릴 뿐. 마룡의 움직임이 멎은 건 그때였다. 거침없이 모든 것을 파괴해왔던 그의 오른팔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뭔가에 붙들린 것처럼. 마룡의 육체를 묶은 페어리 스피어, 사람들의 유대가 시간의 틈새 조차 넘어 정신체마저 구속한 것이다. 나츠의 말대로였다. 혼자서는 끝낼 수 없다. 그러나 동료들과 함께라면 끝낼 수 있다.
- 프로 스포츠 . . . . 4회 일치
프로 스포츠 선수는 전통적으로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주 소득을 얻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반면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선수란 [[취미]]로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에 아마추어 스포츠는 상당히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무렵에 아마추어를 프로 스포츠와 구분한 이유는 프로선수는 돈 받고 전념하니까 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같은 틀에서 경쟁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프로 선수를 낮게 보았고[* 일종의 '사회적 차별'로서, '유산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에서 '노동자 계급'과 같이 여겨진 프로 선수를 배제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올림픽에 '아마추어' 규정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각 종목과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가 규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종목에 따라서 상황이 상당히 다르지만,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대회와 그렇지 않은 대회는 어느 정도 방향성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프로 종목은 흥행 때문에 규칙을 변경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경기의 아마 종목과 차별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로 복싱과 아마 복싱은 프로 단체와 아마 단체에서 스포츠의 '규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으나 동시에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기가 되어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보호구로 헤드기어를 장착하는 아마 복싱은 프로복싱처럼 흥행에 도움을 주는 '화끈한 [[KO]]'를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때문에 포인트와 기술 위주의 운영을 강요받게 된다. [[농구]]의 경우 [[NBA]]는 [[쿼터제]]나 [[덩크슛]] 같은 흥행 요소를 도입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 하리수 . . . . 4회 일치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첫사랑을 경험했다"고 한다.<ref>[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832 하리수 첫사랑 고백 자살시도에 성전환 수술 결심은 고 2때… '기구한 인생'] 경인일보 2012.05.15</ref> 그는 "첫사랑 상대는 탤런트 [[이창훈 (배우)|이창훈]]을 닮은 외모로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남학생이었다"며 "첫사랑 이후 [[우울증]]이 있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하리수는 "고등학교 2학년때 교제했던 남자친구로 인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하였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5151446181110 하리수 "중학교 시절, 첫사랑때문에 자살시도"] 마이데일리 2012.05.15</ref> 이후 남자로 살아보기 위해 평소 그녀를 동경하던 부근 학교 여학생을 사귀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53478 하리수, “남자로 살기위해 여학생과 사귄적 있다”] 마이데일리 2006.07.11</ref> 하리수는 또 “두번째 사랑을 사귀던 남자친구로부터 "[[미스젠더링|넌 어차피 남자잖아]]"라며 결별을 통보받고 성전환수술을 결심하게 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59418 하리수, 성전환에서 결혼까지] 스타뉴스 2007년 02월 21일자</ref>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전환 수술을 결심했다 한다.<ref name="heimagge"/>
[[2013년]] [[8월 16일]] [[중화인민공화국]] [[저장 성]] [[항저우 시|항저우]]에 방문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소속사에 의하면 "행사차 중국을 방문한 하리수가 [[상하이]](上海)로 입국해 [[항저우]](杭州)로 이동하던 중 타고 있던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고 한다.<ref name="ssss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564823 하리수, 중국서 교통사고 당해…상태는?] 세계일보 2013.08.18</ref> 소속사는 이어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추정된다"며 "차량 일부가 파손됐지만 다행히 하리수 일행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아 스케줄을 마치고 오늘 오후 항저우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설명했다.<ref name="sssss"/> 사고가 수습된 뒤 바로 귀국하였다.
- 하이큐!! . . . . 4회 일치
[[목차]]
1회전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약체팀들에도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을 단순히 주인공 학교의 1승 제물로 등장시키지 않고, 그들 역시 배구와 함께 고교시절을 보내는 청춘임을 묘사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부분의 팬들이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꼽을 때 꼭 언급되는 40화 '승자와 패자' 편(애니메이션에서는 16화). 인터하이 1차전이 끝난 후 1회전에서 탈락한 23개 팀 모두를 '''한 컷씩 다 그려냈다''' .[* 애니메이션에서는 분량 문제인지 23개교가 전부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 "우리들도 했어 배구" ''' 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후루다테 작가가 졸업한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졸업 후 찾아왔었다는 포스팅이 어떤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댓글에서 어떤 팬이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을 묻자 '작가님이 직접 공개하지 않으신 사생활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철통방어(...)를 하기도 했다. 종합 1000만 부 이상 팔린 만화책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심지어는 인터뷰조차도 그의 활동은 적어 필명이 본명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품들이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을 작중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으므로 출신지가 그 쪽인 것은 분명하다. 작가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팀메이트 간의 감정 묘사, 이름 및 생일의 의미와 관련성까지도 계산한 ~~설정덕후의~~ 섬세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면 작가가 남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wiki:"니시노야 유" 니시노야]와 [wiki:"타나카 류노스케" 타나카]의 [wiki:"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빠질을 저렇게 완벽하게(...)그려내는 것은 남자밖에 하지 못한다.', '[쿠로코의 농구]도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등을 근거로 남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점치고 있다.
- 하이큐/223화 . . . . 4회 일치
* 카라스노의 공격. 점수차는 아직 좁혀지지 않았다.
* 3점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은 채 스코어는 17 대 20.
* 다테공고의 공격. 츠키시마는 속공이라고 생각해서 뛰어오르는데 시간차를 이용한 백어택이었다.
* 다테의 공격이 성공, 점수차는 더욱 벌어진다.
- 하이큐/233화 . . . . 4회 일치
* 정밀한 세트를 올리는 [[카게야마 토비오]] 조차 미묘하게 플레이가 흐트러지는데, 굴하지 않고 금방 "수정"하기로 한다.
* [[츠바키하라 학원]] 측은 2년 연속 출전에 2년차 출전을 맞이했다. 작년 이들은 첫 출전 당시 [[시라토리자와]]와 격돌한 듯 한데, 그때가 첫 전국이었던 마루야마는 "정신차려보니 돌아가는 버스"였다며 같은 악몽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오오사도 감독도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 어차피 여기에 올라온 이상 각지의 강호를 꺾고 올라온 학교들이다. 그리고 봄고에선 그런 강자들도 또다른 강자에게 쓰러지며 "이 회장에 먹히는 쪽"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 하이큐/237화 . . . . 4회 일치
* 수비능력 자체는 장식이나 다름 없었던 [[히나타 쇼요]]가 차츰 한 사람 몫을 하기 시작한다.
* 히나타의 서브 2회차로 공격이 재개된다. 츠바키하라는 에치고가 세트를 올리는데 아테마에게 올릴 것 같다. 그러나 눈치 빠른 [[츠키시마 케이]]는 속지 않고 마루야마의 백어택을 정확히 예측한다. 하지만 마루야마도 순순히 막히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블록을 피해 공을 떨어뜨린다.
사실 츠키시마가 딱히 토스를를 잘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올리는 토스는 확연이 달라졌는데 스기우라는 "약간의 어색함과 최대한의 정성"이라 표현한다. 합숙에서 [[코가네가와 켄지]]에게 잔뜩 쓴소리를 들은 탓인지 높고 깔끔한 세트가 올라온다. 아즈마네는 "왠지 감동적"이라 여기며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러나 츠바키하라 쪽에선 블록 3장으로 덤비는데.
한편 히나타는 수비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자꾸 몸통으로 공을 받아서 관중석에선 "몸으로 받지 말고 손으로 받아라"고 웃음거리가 된다. 본인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부끄러워하는데 사와무라는 전에 "야생의 감"으로 공을 따라가던 것과 달리 상대의 플레이를 보고 공이 올 곳을 예상해서 움직인 점을 좋게 평가한다. 그 뿐만 아니라 카게야마나 츠키시마 조차도 "경쟁심을 발동시킨" 얼굴로 히나타를 주시한다.
- 하이큐/244화 . . . . 4회 일치
* 보쿠토는 쇼맨십이 강한 성격으로 관중의 상태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가령 지난 전국대회에선 8회전에 비슷하게 난조를 보였는데, 이때도 저녁 시간에 시합이 잡혀 관객이 적었고 보쿠토는 보는 사람이 적다고 풀죽어버렸다. 올해는 낮시간이라서 방심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경기장이 메인 아레나가 아니라 서브 아레나라는 걸로 삐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방금 전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보러 메인 아레나에 갔던게 결정적. 관객 수가 너무 차이가 나는 걸 자각해 버린 것이다.
어차피 보쿠토가 항상 컨디션이 좋은 적은 거의 없다. 사실 이런 풀죽음도 그의 배구에 대한 열정, 성실성에 기반한 것이지만, 반대로 긴장이나 압박감 때문에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일은 없다.
* 그 말처럼 여기서부터 후쿠로다니의 반격이 시작된다. 보쿠토는 여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지만 다른 동료들이 분발하면서 한 점씩 따라잡기 시작, 어느새 스코어는 15 대 14로 한 점차까지 따라온다. 중계석에선 에이스가 저조한데도 착실하게 점수를 버는 후쿠로다니를 칭찬한다. 반대로 에이와 고교는 에이스가 봉인됐는데도 선전하자 혼란스러운 양상.
* 경기는 부활한 보쿠토의 활약으로 여세를 몰아 세트 스코어 2 대 0으로 후쿠로다니의 완승. 카라스노 경기를 보다 넘어온 바보 커플도 후쿠로다니의 활약을 지켜본다. 경기 종료후 아카아시는 [[사루쿠이 야마토]]와 "카라스노의 1학년들이 와서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카아시는 설사 그들이 없었더라도 다른 계기를 만들어서 분위기를 띄웠을 거라 장담한다. [[코노하 아키노리]]는 가끔은 보쿠토를 아주 무시해버리는게 속편할 거라고 말하는데, 아카아시는 어차피 자신이 끌어내는 보쿠토의 힘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무엇보다 절호조인 그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사루쿠이는 그걸 본인에게 말해주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코노하는 그러면 괜히 까불게 된다고 말린다.
- 하이큐/262화 . . . . 4회 일치
* 오지츠 중학교 출신으로 막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한 [[타나카 류노스케]]는 인상부터가 존재감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1학년인데도 반삭 금발. 제법 험악한 인상에 목소리마저 우렁차서 자기소개 시간엔 옆의 [[엔노시타 치카라]]나 [[나리타 카즈히토]]가 눈에 안 띌 정도였다. 당시 2학년이었던 [[사와무라 다이치]], [[아즈마네 아사히]], [[스가와라 코시]]는 이 신입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아즈마네는 거의 겁 먹었고 스가와라는 언제나처럼 속을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와무라는 간단하게 표현했다.
* 얼마 뒤에도 또 졌다. 오기미나미 고교였다. 꽤 큰 차이로 져서 마지막 세트는 19 대 25로 내줬다. 이땐 이미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던 길, 오기미나미 고교 선수들이 떠드는 날이 타나카의 귀를 괴롭혔다. 다음주에도 카라스노랑 연습시합한다는 대화였는데, 그들은 상대가 카라스노여서 실망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때까지 타나카는 고작 한 살차이라도 선배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을 기점으로, 그런 수준을 한참 넘는다고 생각을 바꿨다.
다음날 나타난 타나카는 단숨에 스가와라의 장난감 취급을 당했다. 그때까지 트레이드 마크였던 반삭 금발을 지금의 빡빡머리로 바꿨기 때문이다. 본인은 "기합을 넣는 차원에서 바꿨다"며 나름대로 의지표명을 했건만 스가와라는 자비없이 만지작 거리며 장난감으로 전락시켰다. 씁쓸한 기억이다.
- 허준 (1981년)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1년]] 7차 6라운드([[현대 유니콘스]])
오랫동안 2군 생활을 하다가 [[2009년]]부터 [[강귀태]]의 백업 포수로서 본격적으로 1군 무대를 밟는다. 그 이후로 많은 기회를 받지만 부상으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2011년]] [[허도환]]의 등장으로 1군 경기 출전 횟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2011년]] [[11월 22일]] [[2012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차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팀 동료 [[조평호]]와 함께 [[NC 다이노스]]로 이적하게 된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45598 NC, 전체 1순위로 넥센 조평호 지명 '총 7명 영입' ] - 스타N뉴스</ref>
- 허준호(배우) . . . . 4회 일치
[목차]
청소년 시절에 방황이 길었다고 한다. 처음에 서울예대 무용과로 들어갔는데 입학해서도 겉도는 허준호에게서 그래도 소질을 꿰뚫어본 교수가 "너를 괜히 붙여준줄 아느냐?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거라" 라고 말을 남겼는데 알고보니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인이었다고. 무용과를 졸업하고 나서 뮤지컬을 하고 싶어 서울예대 연극과로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 1996년 《꽃잎》... 용달차 사내 역
* 1995년 SBS 《[[아스팔트 사나이]]》... 기룡자동차 대표이사 한기수 역
- 헌터X헌터/369화 . . . . 4회 일치
* 빌의 추정으로는 스틸 체인을 공유하는 대상은 크라피카와 연결돼 있어 상태가 영향을 받는 것. 크라피카가 눈을 뜨자 곧 왕비도 정신을 차린다.
* 왕위계승전의 무대가 되어버린 BW호. 그러나 배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바다 위에 떠있었다. 목적지는 암흑대륙. 출항 2일 째. 항구를 떠난지 18시간이 되는 시점이었다. [[크라피카]]가 눈을 뜬 시각이었다. 끔직한 파열음을 끝으로 기억이 끊겼던 크라피카. 그는 여전히 [[오이토]] 왕비의 주침실에 있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빌"이었다. 그는 크라피카가 의식을 되찾은 걸 보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리스크를 감수해더라도 의사를 불러야 되나 망설이던 참이었다. 크라피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몇 시냐고 물었다. 빌은 그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크라피카가 실신했던 사실을 함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경호원들은 그가 임무 수행 중인줄 알고 있다. 크라피카가 안달하지 않아도 빌은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잘 전달해주었다. 그가 쓰러진지는 약 9시간. 크라피카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렇게나 지났을 줄이야. 크라피카는 왕비의 안위도 확인했다. 그리고 빌은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왕비는 잠에서 깬 것처럼 일어났다. 그녀가 시마노에게 와블 왕자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 빌이 크라피카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같은 시간에 쓰러지고, 다시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크라피카가 무리해서 쓰러지면 능력을 공유하는 인물도 같이, 그런 패턴이었다. 크라피카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혹시 엠퍼러 타임의 한계 시간이 3시간이란 의미인가? 그 한계를 넘으면 3배인 9시간의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는 걸까? 아니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빼앗은 능력에 따라 시간에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엠퍼러 타임은 여전히 발동 중이고 다음 번에도 3시간 만에 쓰러진다고 장담 할 수 없다. 정신을 잃기 직전 들었던 끔찍한 파열음. 그 폭음 같은 맥동이 신호일지 몰랐다.
벤자민이 보낸 "휴리코프"는 몹시 음험해 보이는 남자였다. 일단은 텐후토리처럼 정찰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진짜 "임무"는 따로 있다. 설마 와블 측에서 먼저 초대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좋은 기회다. 적의 넨능력을 파악할 수단은 많다. 외견, 수업방식, 언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계통이나 능력 자체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건 휴리코프만의 기술이었다. 넨능력이 아닌, 경험에 의한 노하우. 어찌보면 이거야 말로 그의 생명선이었으며, 그런만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장의 수였다. 가령 능력자와 비능력자는 안구의 움직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옆에서 안구를 봤을 때 그 주변의 흔들림을 보는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구분법이었다. 지금도 그는 1014호실 거실에 모인 안구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 헤소린 가스 . . . . 4회 일치
여러가지 재난에 시달리는 진구를 위해서 도라에몽이 헤소린 스탠드를 꺼내서 헤소린 가스를 주입해준다. 진구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되어 혼나거나 넘어져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퉁퉁이와 비실이에게 맞거나, 개에게 물리거나 차에 치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서 효과가 떨어지자 진구는 다시 헤소린 스탠드를 사용한다.
사실 이 단편이 발표된 1979년은 일본에서 [[각성제]](히로뽕)이 남용되어, 제2차 각성제 남용기라 불리던 시기이다.[* 제1차 각성제 남용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물자로 남은 히로뽕이 남용되던 시기.]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헤이즈 (가수) . . . . 4회 일치
2015년 [[언프리티 랩스타 2]]를 통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2016년에 발매한 싱글 《돌아오지마》와 《And July》의 음원 차트 순위권 진입이후 《저 별》이 주요 음원사이트 차트 1위<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217896|제목=[SS차트] 헤이즈 '저 별', 1위 장기집권 예고…新 음원 강자 등극|언어=ko|확인날짜=2017-06-26}}</ref>를 기록하였다.
학과 내에서 1등을 하면 서울로의 상경을 허락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과 수석을 하게 된 그는<ref>{{뉴스 인용|제목=‘여자 도끼’ 헤이즈, 친오빠 재조명...“세상에서 제일 친한 남자”|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3265032&page=1|날짜=2017-06-27|뉴스=MBN 뉴스}}</ref> 대구에서 상경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음원깡패★헤이즈, 하루에 알바 3건+종이가방 스타일링...털털4차원 인성甲|url=http://star.mk.co.kr/v2/view.php?sc=40900002&cm=%EC%97%B0%EC%98%88%20%EC%A2%85%ED%95%A9&year=2017&no=428641&relatedcode=|날짜=2017-06-27|뉴스=스타투데이}}</ref>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어 그는 한 번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ref>{{뉴스 인용|제목='최파타' 챈슬러X헤이즈가 밝힌 음악열정·공개연애(종합)|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6599|날짜=2016-11-29|뉴스=JTBC}}</ref> [[언프리티 랩스타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다.<ref name="s" /> [[크루셜스타]]와 교제하기도 했으나 [[2015년]] 헤어졌다. 헤이즈는 라디오방송에서 크루셜스타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했고 아직 잊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디오쇼' 헤이즈 전 남친 언급, '이별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91114132351596|날짜=2016-09-11|뉴스=아시아경제}}</ref> 헤이즈가 겪었던 이별의 경험은 그녀가 미니 앨범 《/// (너 먹구름 비)》를 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
- 현재윤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5차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신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 입단 대신 [[성균관대학교]](1998학번)에 입학한다.
트레이드 후 1군에 복귀했으며, [[2013년]] 데뷔 첫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나 [[7월 9일]] 잠실 NC전에서 [[찰스 쉬렉|찰리]]의 투구를 맞고 왼 손목 골절상을 당해 올스타전 출전권을 [[김태군 (야구 선수)|김태군]]에게 넘겼고, 주전포수는 [[KIA 타이거즈]] 포수 [[차일목]]이 나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4&article_id=0002930096 NC 김태군, 현재윤 부상으로 올스타전 합류] - 파이낸셜뉴스</ref> 이후 고질적인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으로 [[2014년]] [[12월 29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300457 LG 포수 현재윤 ‘현역 은퇴’] - 스포츠동아</ref>
* 2008년 10월 20일 잠실구장 PS 4차전 두산 전 : 프로 데뷔 포스트 시즌 첫 선발 출장
- 홍양호 (1955년) . . . . 4회 일치
* 통일부 차관
|직책 = [[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통일부 차관]]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은희(배우) . . . . 4회 일치
||<#C69770> {{{#FFFFFF '''가족'''}}} ||<(><#FBFAFB> 남편 [[강호순|강호순]], 자녀 슬하 2남[* 장남 강동우 (2003년 출생), 차남 강민재 (2009년 출생)] ||
[목차]
[[대한민국]]의 여배우.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출신으로 1998년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MBC 베스트극장에서 [[강호순]]과 함께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무려 1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였다. 결혼식을 [[3.1절]]에 하여 식장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남편 강호순은 만세삼창을 하였으며, [[신혼여행]]도 [[상해임시정부]]로 갔다고 한다. 결혼 후 한동안 [[육아]]에 힘쓰며 연예계에서 물러나 있다가 복귀하여 드라마, 예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출연해 과거에 [[수영장]]을 [[나체]]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그 때 수영장 안에 수경을 놓고 와서 급히 가지러 간다는 게 순간 발가벗고 있다는 걸 깜빡하고 그 상태 그대로 수영장 안에 들어가버렸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제야 나체 상태인 걸 알아차린 홍은희는 몸을 가리자니 손이 3개가 있어야 될 것 같아 얼굴만 가리고 급히 뛰어 나갔다고 한다.
- 홍헌표 . . . . 4회 일치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다. 광복 후 [[미군정]]에서 관료로 발탁되어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과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에서 내무부 차관, 체신부 장관 등을 지냈다. 체신부 장관으로 재임했을 때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입건되었으나,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
* 1950년 : 내무부 차관
|직책 = [[대한민국 내무부|내무부 차관]]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내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황희두 . . . . 4회 일치
2009년 하반기 드래프트에서 [[MBC게임 히어로]]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Gas[fOu]'''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종족은 [[테란]]이다.
2016년 7월, 서울시가 주최한 [['광장은 시장실']]에 참석하여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e스포츠]]의 발전과 게임 문화의 인식 개선을 제안하였고 체택되었다. 학부모들과 청소년들에게 게임 문화가 마냥 안좋은게 아니란걸 알리기 위한 목적과 또한 중국 시장에 밀려 뒤쳐진 대한민국 e스포츠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실제 2014년도 기준으로 중국은 약 4조원대의 금액을 [[e스포츠]]에 투자하며 세계 e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였으며, 정작 e스포츠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점차 중국에 밀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현직 프로게이머, 게임단 관계자, 지자체, 정부 등과 협력하여 '대한민국 e스포츠 시장 살리기'를 추진중이다. <ref>http://www.sportsseoul.com/news/read/417966|턱 밑까지 쫓아온 중국...한국 e스포츠는 어디로?
*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무척 아쉽다. 공부 외의 게임의 길에서도 충분히 인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으며, 선수 시절 게임에 더 미치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 그래도 무언가에 미쳤던 경험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고 생각하여 무척이나 행복하다." - 《Global Leaders Club 게임 관련 특강 中》<ref>http://www.kns.tv/news/articleView.html?idxno=358096|프로게이머 출신 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Global Leaders Club 포럼에서 게임관련 특강 실시</ref>
* [[2015년]] BLT 대표, 북레터365운동 사무차장
- 1만 시간의 법칙 . . . . 3회 일치
미국 미시간 주립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력이 실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게임은 26%, 음악은 21%, 스포츠는 18%라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공부로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533053 (기사)]]
따라서 우리들은 선천적 재능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부에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노력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게임에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 AT4 . . . . 3회 일치
[[스웨덴]]의 기업 [[SAAB]]에서 제작한 대전차화기. 구경은 84mm. 어깨에 올려서 사용하는 일회용 지원화기다. 미군에서 부르는 명칭인 M136으로도 알려져있다.
* AT4 HEAT(대전차 고폭탄두)
유효사거리 20-400m, 좁은 공간에서 사용 가능. 벽돌벽, 콘크리트 벽, 경장갑차량을 대상으로 사용하란다.
- Crusader Kings 2 . . . . 3회 일치
같은 제작사가 만든 [[Europa Universalis 4]]랑 자주 비교되는데, 크킹이 이름 높은 가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유파는 ~~강성대국~~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 제3차 십자군전쟁 (1187. 1. 1.) ====
7. 그 외 여러가지 정보들. 해당 정보들을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덤으로 자신의 정보들은 화면 오른쪽 위에 항상 표시된다.
- K리그 . . . . 3회 일치
2013시즌도 승강구조가 한시적으로 운영된 케이스이다. 클래식 스플릿 B의 최하위 2개팀은 챌린지로 자동강등, 마찬가지로 스플릿 B의 차하위 1개팀은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에서 잔류 여부가 결정되었다. K리그 챌린지의 우승팀은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하며, K리그 클래식 스플릿 B의 차하위 팀과 겨뤄 승격 여부가 결정된 시즌이다.
1. 클래식 스플릿 B의 차하위팀은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결과에 따라 잔류냐 강등이냐가 결정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3회 일치
준플레이오프는 K리그 챌린지 3위팀과 4위팀이 3위팀의 홈에서 경기를 갖는다. 리그 3위와 4위의 차별을 두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둔다.
1. 무승부로 끝나게 되면 연장전, 승부차기 등의 추가게임은 없으며 3위팀이 승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1. 무승부로 끝나게 되면 연장전, 승부차기 등의 추가게임은 없으며 2위팀이 승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 LORAN . . . . 3회 일치
[[미국]]에서 개발된 [[전파항법]] 시스템이다. [[MIT]]에서 개발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미 해군]]이 사용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파]]를 이용한 [[등대]]. 기지국에서 발산하는 펄스 전자파를 수신하여 전자파의 위상차, 시간차 등을 사용하여 위치를 측정한다.
- MC메타 . . . . 3회 일치
[목차]
2015년 여성 래퍼 최삼과 같이 뉴스타파 설파에 출연하여 힙합씬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문화를 꼬집는 '쇼미더힙합'을 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P_UN-Zrj8&feature=youtu.be&app=desktop|영상]] 여기서 블랙넛을 간접적으로 디스한다. 이 곡은 이후 [[블랙넛]]이 인디고 차일드에서 그를 디스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력은 공식 데뷔로는 14년차 블렉스시절까지 합하면 거의 20년 동안 랩을 하고 있지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수준급 스토리텔링과 시적인 가사, 특유의 한국어 라임 구성, [[붐뱁]] 비트, 재지(Jazzy)한 비트, [[트랩]] 비트 등에서도 랩을 할 수 있는 넓은 비트 스펙트럼. 플로우는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고, 엇박을 잘 타는 것도 아니지만 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포스가 그 모든 걸 덮는다. 2018년 현재 48세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이다. 가리온 2집의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에서 아직 본인의 랩 실력이 꺾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대부분의 1세대 래퍼들이 현재 랩을 안 하거나 퇴물 취급 받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실제 마스터플랜 멤버 중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랩 작업물을 내는 건 메타와 나찰 정도 밖에 없다.--더럽게 안내지만--]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3회 일치
자동차 사업가. 서민들의 경제력에 맞춘 자동차를 개발해 자동차를 사치품에서 일상용품으로 만들었다.
- 가상 메모리 . . . . 3회 일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서 가상 메모리 운용의 필요성은, [[GUI]] OS로 전환하고 [[멀티 태스킹]]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났다. 멀티 태스킹 기능은 다수의 어플리케이션을 하나의 OS에서 돌릴 수 있게 했으나, 프로그램을 마구 올리다가는 [[램]]이 [[으앙 죽음]] 수준으로 심각하게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OS차원에서 고도의 메모리 관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제시되었다.
이래서 가상 메모리를 사용하여 많은 용량의 메모리를 교체할 때는 [[하드 디스크]]와 [[램]]의 억세스 속도 차이 때문에 엄청난 [[랙]](…)이 발생하여, ‘일단 돌릴 수는 있지만 체감 스피드는 좆망’이 되버린다.
이것이 한동안 작업 표시줄에 내려놓고 전혀 안 건드리던 프로그램을 켜면 버벅거리는 일차적인 이유. 그리고 [[램]]을 확장하고, 하드 디스크를 억세스 속도가 훨씬 빠른 [[SSD]]로 바꾸면 체감 속도가 아주 빨라지는 이유이다.
- 가석방 . . . . 3회 일치
[[목차]]
== 절차 ==
== 석방과의 차이 ==
- 강기웅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7년]] 1차 3순위 ([[삼성 라이온즈]])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상 등의 이유로 [[백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백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영입] - 연합뉴스</ref>
- 강우영 . . . . 3회 일치
제1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1950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대구지검,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61년 법무부 검찰과 과장을 하다가 1961년 서울고검 검사, 1962년 부산지검 부장검사, 1966년 전주지검 차장검사 1968년 서울지검 부장검사 1970년 부산지검 차장검사를 하였으며 1971년에 서울지검 영등포지청장이 되었다. 지청장 임기를 마친 이듬해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대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전주지검 검사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구지검 검사장, 법무부 법무실장을 하는 등 박정희 정부에서 법무부와 검찰 주요 요직을 거쳤다. [[전두환]] 등 신군부 집단에 의해 권력이 장악된 1980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22대 서울지검장을 하고 1981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으로 재직중인 1981년 4월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임기 5년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대법관에 재직중이던 1984년 7월 제6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대법관 퇴임이후인 1987년에는 대한공증협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 강원 FC . . . . 3회 일치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민들은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창단한 [[대구 FC]]에 주목하게 된다. 그 이전부터 몇번 창단 준비를 했었는데[* 2005년도에 잠깐 논의는 있었으나 실제 참가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01&aid=0001156686|참고기사]] 딱히 성과가 나지 않았으나 대구에 이어서 인천, 경남이 차례대로 창단과정을 거듭함은 물론이고, 컨소시엄의 붕괴로 팀이 해체할 뻔한 대전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는 장면까지 본 강원도는 '''"오려는 축구단이 없으면 시민구단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허나 이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도의회와의 협조는 특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에 관해서는 다소 논란이 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강원도축구협회와의 협의는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깜짝 쇼는 시민들에게는 이벤트였을지는 모르나 축구 및 도의회 관계자들에게는 뜬금포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강원도청측은 당초 발표한 대로 일정에 맞춰 절차를 밟아 창단이 이루어지게 된다.
'''딱히 없다.''' 챌린지 플레이오프 등 주목할 만한 이슈가 생기면 차후에 생기는 대로 추가예정.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3회 일치
대부분의 인류가 선천적으로 타고나게 된 초능력. 비록 스케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말 그대로 거의 누구나 다 갖고 있어서 개개인만의 특성이란 의미에서 '개성'이라 불리게 된 듯 하다. 다만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면이 있고, 중복되거나 비슷한 개성도 존재하며 개성없이 태어난 무개성도 존재한다.
개개인마다 차이점이 있다보니 매우 강력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맥빠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뭐가 됐건 개성 자체는 단련해서 상승시키는 것이 가능한 듯 하다. 게다가 개성에 따라서는 별도의 단련이 필요하다.
* 개성의 영향 탓인지 보편적인 인간과 다른 이형적인 외모를 볼 수 있는데 조금 특이한 외모인가 하면 아예 이종족으로 보일 정도로 동떨어진 경우도 존재한다. 개성이 일반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별일 아닌 듯하나 이형계를 혐오하는 세력도 나오고,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빌런 연합의 스피너가 이런 경우.]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7화 . . . . 3회 일치
* 차를 준비해온 타이헤이가 사진을 보고 봄바의 어린시절이라고 알아본다.
* 봄바는 차조심하고 다니라고 참견하다가 키리에가 또 짜증부릴 거라 생각해 아차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6화 . . . . 3회 일치
* 그때 모토바 키리에의 어머니 "모토바 카에데" 여사도 등장. 왠지 록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 그런데 별다른 멋내기도 없이 평소 입던 티셔츠 차림.
* 평범한 슈트 차림이지만 학부형 중 유일한 청일점, 젊은이라 쓸데없이 주목을 받는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3회 일치
* 처음엔 우마루가 앞서갔으나 시간이 흐르자 히카리의 우위, 격차는 계속 커진다.
* 한참 게임을 하고 쉬는 우마루. 히카리는 집에 가서도 혼자 플레이해도 되겠냐고 하자 우마루가 그러라고 답한다. 자기도 짬짬이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론 식음을 미뤄놓고 게임에만 전념한다. 그저 레벨을 잔뜩 올려서 다음 번에 히카리가 왔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들 목적. 하지만 후반이 되자 우마루 조차 고전하는 적들이 나오는데, 그걸 깨면서 히카리를 도와주고 우쭐 댈 생각에 젖는다.
* 막상 다음 플레이 때 합류해 보니 히카리 쪽이 레벨이 더 높다. 게다가 우마루가 고전했던 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 약점 속성을 찌르며 수월하게 진행한다. 서포트해주려 했던 상대에게 서포트를 받게 되자 굴욕감을 느낀 우마루. 다음 번에야 말로 역전해주겠다는 각오로 또다시 게임에 매진하지만 오히려 레벨차는 더 벌어져 버린다. 히카리는 기본적으로 시간도 많이 투자하지만 게임 센스도 있다. 특히 메뉴얼로 시스템을 숙지하고 그 내용을 실전 플레이에서 검토해서 최고로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플레이 방식이라 무작정 닥돌하는 우마루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 건포인트 . . . . 3회 일치
$8,000. 문을 발로 차 떼어낼 수 있게된다. Vault Door는 안되니 주의. 발로 차서 떼어낸 문은 짧은 거리를 날아가는데, 여기에 맞은 경비원을 기절시키거나 유리창을 깰 수 있다.
건포인트 초기 버전과 개발에 대한 40분 분량의 동영상, 특전 음악, 제작자들이 차후에 만들 게임의 비밀 베타 버전을 플레이 할 권한 등이 포함된 DLC.
- 건포인트/도전과제 . . . . 3회 일치
게이트크래셔로 문을 걷어차 떼어내십시오.
게이트크래셔로 문을 걷어차 경비원에게 날리십시오.
게이트크래셔로 문을 걷어차 창문을 깨십시오.
- 경대수 . . . . 3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19~20대 국회의원[br][[새누리당]] 충북도당 위원장[br][[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br]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br][[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1, 2차장검사[br]법무부 보호과장[br]제21회 사법고시 합격 ||
[목차]
[[2009년 재보궐선거]] 당시 김종률의 피선거권 상실로 치뤄진 고향 충북 진천, 음성, 괴산, 증평 선거구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정범구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하였다. 정범구 후보는 음성 출신이라 음성쪽의 지원을 받았고, 경대수는 괴산 출신이라 괴산의 지원을 받았는데 그만 공천에 탈락한 진천군수 출신 김경회가 무소속 출마하여 진천쪽의 표심을 잠식하고 나아가 여권 성향의 표를 분산한 것이 원인이었다.
- 경마 . . . . 3회 일치
기원전 800년 경 [[호메로스]]의 [[서사시환]] 〈[[오디세이아]]〉에서 경마를 묘사하는 기록이 등장한다. 기원전 776년 경 그리스의 장군 [[아킬레우스]]가 친구를 위하여 장례식을 올리며 마차 경주를 벌였다. 제23회 고대 올림픽 제전에서 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이용한 전차 경주가 경마로 등장하였으며, 제33회 올림픽에서는 사람이 직접 기승하는 경마가 등장했다.
- 고아성 . . . . 3회 일치
| 어린 차화정
| [[설국열차]]
| rowspan="5"| [[설국열차]]
- 공주님 안기 . . . . 3회 일치
대중문화에서는 이 자세로 안는 쪽이 안기는 쪽을 완전히 품 안에 끌어앉는 형태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인간의 신체비례상 이 자세로 상대를 품 안에 완전히 끌어 안는 구도가 되려면, 안는 쪽과 안기는 쪽의 신체 크기가 거의 어른과 어린아이 만큼 차이가 있어야 한다. 비슷한 나이 대의 남녀처럼 신장차가 크게 없이 골격 크기가 비슷하고, 신장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완전히 품 속에 끌어안는 모습은 성립하기 어렵다. 다리나 어깨 등, 상체 일부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은 안는 쪽의 품 밖으로 이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세로는 안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버티는 것 만으로는 안정을 얻을 수 없어, 안기는 쪽에서도 목이나 어깨 등을 안아서 단단히 붙어주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정 상태가 되지 않는다.
- 곽월 . . . . 3회 일치
[[1546년]](명종 1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56년]](명종 1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그 뒤 권지, 승문원정자, [[1566년]] 영천군수(榮川郡守) 등을 지냈으나 4년 만에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572년]](선조 2년)에 [[선조]]의 여러차례의 간곡한 부름으로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사헌부]]지평, [[1573년]] [[사헌부]]장령, [[1574년]] [[사간원]]사간 등을 지냈다.
***** 차남 : 곽재록(郭再錄)
***** 차녀 : 현풍 곽씨, 성천조(成天祚)에게 출가
- 구성윤 . . . . 3회 일치
[목차]
결국 2015년 출장 기회를 찾기 위해 세레소 오사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J2리그]] 소속의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이적 후 삿포로에서 개막전부터 기용[* 여담으로 이는 삿포로의 최연소 골키퍼 데뷔(20세 206일)라고 한다.]되며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하였고, 2016년에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과 [[J1리그]] 승격, 최소 실점 2위(33실점)에 크게 공헌했다. 또 2017년에도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면서 팀의 [[J1리그]] 잔류에 기여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https://twitter.com/Asia_Fball_News/status/937427111991697408|2018년에도 삿포로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삿포로의 붙박이 1선발 골키퍼로 맹활약하고 있다.
- 구자춘 . . . . 3회 일치
[목차]
1963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경찰로 근무하여, 치안국(현 경찰청) 정보과장, 서울시경(현 서울지방경찰청) 국장, 경찰전문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뒤이어서 제주도지사, 수산청장, 경상북도지사를 차례로 맡았다.
1974년 9월 2일부터 1978년 12월 21일까지 제16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원래는 영등포-왕십리로 계획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거대 순환선으로 만든 사람이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만에 만들었다는 레전설이 나름 유명. 웃긴건 그렇게 날림처럼 노선이 정해졌음에도 정작 공사할 때 [[영등포역]] 경유 예정 구간이 [[신도림역]] 경유로 바뀐 것, 딱 한 곳만을 제외하면 딱히 난공사라 할만한 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자춘 시장이 포병 출신이어서 지도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레전설 일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근데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손정목]] 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다만 이는 좋게 봐줘도 2호선 한 노선 한정이고, 바로 다음 노선인 3호선부터 서울 지하철 노선의 선형은 '''온갖 병크'''가 터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서울/강남|강남]]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 이외에도 [[강남8학군|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의 명문고 이전]],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다만 본인이 기안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고속터미널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지하철 3호선|3호선]]을 무리해서 끌어오느라 3호선의 선형에 '''지랄맞은 ㄷ자 드리프트'''가 생기는 원흉이 된다.], 금화터널 건설 과정에서의 [[독립문]] 이전, [[한양도성]] 일부 복원, 도심부 주차장 확충--당시 도시계획국장 [[손정목]]의 말을 안 듣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등을 추진하였다. 이런 그의 별명은 대표적으로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0110020920202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0-11&officeId=00020&pageNo=2&printNo=17237&publishType=00020|황야의 무법자]]'''였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별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1190032920600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1-19&officeId=00032&pageNo=6&printNo=9891&publishType=00020|붙었다]].~~관료계의 [[김태균(1982)|김별명]] [[박용택|별명택]]~~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3회 일치
네가 추돌사고를 냈을 때 상대방 차주가 이걸 들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총 한번 겨눠서 주제를 가르쳐주자.
그냥 쓰면 휘두르고 달리다가 쓰면 가아앙한다. 일반 상태는 물론이고 이 상태로도 어그로를 안 끌지 않는다. 차 문을 떼어내기 좋다.
한발 쏘고 철컥하고 한발 쏘고 철컥하는 산탄총. 경찰차에 타면 가끔씩 준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3회 일치
[목차]
2015년 9월 29일, MBC뮤직 추석특집 '미코 ON-AIR :캐스팅데이'에서 벤의 '오늘은 가지마'를 열창하며 [[김예림]]과 발라드 대결을 펼쳤다.[* 첫 단독 출연.] 두 사람 모두 막상막하의 가창력을 보여줬지만, 우승은 금조가 차지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XaKEU6yNS0|금조 cut]]
2017년 4월 11일 ~ 6월 27일, 참가자로 출연했다. 데뷔 후 첫 개인 고정 출연. 정확한 대사구사력과 감정변화의 표현력이 풍부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초반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5월 16일자 방영분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마지막 회에서도 평소와 같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아쉽게도 2위를 기록하여 1위를 놓치는 바람에 1등 혜택이었던 웹드라마 출연도 놓치게 되었다.
- 기동전사 건담 . . . . 3회 일치
당시 만연했던 '로봇 프로레슬링'[* 매 화마다 특정 메카와 1대 1, 혹은 1대 다수로 일회성 대결을 펼치는 방식. '마징가 Z' 등을 떠올려보면 쉽다.] 플룻에서 벗어나 전쟁 서사적인 면을 다룬 스토리로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마니아 층에게 어필하여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인기를 끌어모아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로봇물에서 이른바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이라는 구분법이 생겨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 21세기 시각에서 돌이켜 보면 여전히 옛날 로봇애니의 요소들도 많이 담고 있기도 한 '과도기적 작품'이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21세기 작품들이 '옛날 로봇애니 요소'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유행은 돌고 돈다)~~]
전반적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태동된 우주개발 붐 문화('아폴로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작품[* 아폴로 붐 당시 우주개발에 대한 열기는 경제적인 문제로 본격적인 우주개발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현대와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이다. 또한 당시 인기를 끌었던 SF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다. 소년병들이 다수인 집단이 지구와 우주 각지를 떠도는 부분은 '15소년 표류기'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마징가Z가 이미 10가지 이상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고, 콤바트라 V 같은 것은 수십종류 이상으로 무기 만으로도 도감을 차릴 수 있을 정도. 이러한 로봇물에서 후반 20여분 대의 핵심 전투씬은 매화마다 적절한 무기 뱅크씬을 돌려쓰고, 무기가 적당히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대사를 외치다가, 최종적으로 필살기로 마무리 하는 형식이었으며, 때때로 '신무기 추가'라는 이벤트로서 뱅크씬을 교체했다.
- 긴나라 . . . . 3회 일치
인도학자 아스코 파폴라(Asko Parpola)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고대 드리비다어에서 기원했으며, 소리를 뜻하는 킬(Kil)과 현악기를 뜻하는 나람(Naram)을 합성한 것으로, 이는 곧 '악사(樂士)'를 뜻하는 단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반대로 킴푸루사가 고대 산스크리트어 킨나라를 산스크리트어로 음차한 것이다. 제사의 희생물로 '킴푸루샤'를 제단 밑에 묻었다는 단서로 보아 악사들을 희생 제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마이어호퍼(Mayerhoper) 역시 긴나라는 악사를 뜻하는 말이었을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왕자 수다나는 이 나라에 초대를 받아 가는데, 제물로 잡혀온 마노하라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수다나는 이웃 나라의 왕에게 불법을 설교하여, 마노하라를 죽이지 말고 살려서 구출하고 자신의 왕궁에 데려온다. 둘은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히스티나푸라 왕국의 사제는 수다나 왕자가 왕이 되면 자신이 사제로서 남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계략을 꾸민다. 사제는 왕에게 왕자를 위험한 변방으로 보내서 반란을 진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간언하여, 수다나 왕자는 변방으로 떠나게 되는데 [[야차]]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천룡팔부 자체가 아수라, 야차 등 몇가지를 제외하면 사실 크게 관심을 못 받지만 긴나라는 독보적이다.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2006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SouL(현 STX SouL)의 3차 지명으로 입단해 그 해 프로리그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4,5R에서 연패를 하며 부진에 빠져있다가 6R에서 김구현 자신만의 플레이로 [[차명환]]을 잡아내고 환상적인 셔틀리버 플레이로 상대전적에서 0:6으로 밀리는 [[김명운]]을 잡아내며 부진을 털어내는듯 했으나 그 후 연패는 계속되었고, 김구현은 6강 PO에서까지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며 [[STX Soul]]의 준PO 진출은 다시 좌절되었다.
2011년 9월 22일, 단 한 명만을 모집하는 2011년 8회차 공군 e스포츠병 전형의 최종 합격자로 선정됐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 1R 중반부터 [[공군 ACE]]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김근백(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목차]
곰 TV 12차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오프라인 예선에서 [[서지수]]에게 0:2으로 패배한 것을 마지막으로 [[2007년]] [[9월 12일]] 은퇴하였다.
이후 2005년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에서 [[박지호(프로게이머)|박지호]], [[김준영]] 등을 내리 잡아내며 3시즌만에 스타리그 16강에 진출. [[안기효]]를 잡았으나 [[최연성]], [[차재욱]] 등에게 패해 탈락한다.
- 김대륙 . . . . 3회 일치
|| '''프로입단''' || [[2015년]] [[롯데 자이언츠]] 2차 5라운드 48순위 ||
[목차]
그런데 요즘 문규현이 2군 내려간 다음에 유격수로 나오고있는 [[오태곤|오승택]]이 수비에서 미친존재감을 보여주면서 점점 7회쯤 오승택과 교체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수비에서는 10년차 베테랑 유격수에 맞먹는 노련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타격은 부진하다.
- 김대환 (법조인) . . . . 3회 일치
[[인천지방법원]] 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6년 2월 15일에 대우자동차 농성 사건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2년 10월 2일에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홍사덕]] 후보의 사생활을 비방하는 흑색 선전물을 살포하다 1심에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를 선고받은 안기부 대공수사국 소속 한기용(37세) 사무관과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박재규(29세) 김일환(32세) 전우경(27세) 등 4명에게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대공 수사관으로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성실히 일해온 모범 공무원인데다 유죄판결로 공무원 자격 박탈되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원심대로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2년 10월 2일자</ref> 1993년 2월 26일 [[5공화국]] 비리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받은 전 치안본부 정보1과 분실장 서정희(48세 당시 청와대 정부수석 비서관실 파견)에 대해 혐의사실 중에 일부만 유죄를 인정하여 선고유예 판결했으며<ref>동아일보 1993년 2월 26일자</ref>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은폐, 조작하여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전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65세)에게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1심대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자격정지3년을 선고하면서 박일룡 전 안기부 1차장에게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자격정지2년, 임광수 전 101실장과 임경묵 전 102실장 등 전직 안기부 간부 4명에게 징역8월~1년6월 집행유예2~4년 자격정지1~2년을 선고하면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X파일 시리즈를 게재한 격주간지 인사이더월드 발행인 손충무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1월 23일자</ref> 4월 26일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선거공보에 실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벌금150만원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4월 27일자</ref> 5월 20일에 [[자민련]] 후보가 시장 후보를 결정하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새정치 국민회의]]의 추천을 받았다며 선거운동을 했던 경기 안성시장 [[한영식]]에게 원심대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5월 21일자</ref> 8월 31일에 성남시 지하상가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오성수]] 전 성남시장에 대해 징역5년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선고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벌금100만원, 업무상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9월 1일자</ref>
- 김도균 . . . . 3회 일치
[목차]
약간(?) 4차원적인 면이 있고 거기에 키도 큰데다가(183) 장발에 파마까지 하고 조용한 성격이다보니 언뜻 보면 기인같기도 하다. --기인같은 게 아니라 기인 맞다.--
2017년 1월 3일 방송된 [[불타는 청춘]]에서 차량을 2007년식 [[GM대우 토스카]]로 교체했다고 밝혔다.--실키식스라 하면서 매우 좋아하는건 덤--
- 김병옥(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 [[다찌마와 리|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 왕서방 || ||
[[맥심(잡지)|맥심]] 2015년 9월호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는데, 악역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느와르]] 컨셉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실제 범죄를 연상[* 일반적인 느와르 느낌보다는 그냥 강력범죄 설정에 가까운 화보들이었다. 남자끼리 총격전을 하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 조폭 설정으로 스타일링한 김병옥이 납치한 여성을 트렁크에 실어서 차로 옮겨 땅에 묻는 설정의 사진이었다. 실제로 잡지사 여직원이 피해자(?) 역할까지 했다. --[[취향|여긴 왜 자꾸 자기네 여직원들을 시켜]]--]시켜서 혐오감과 공포감을 일으킨다고 논란이 되었다. 다만 이것이 배우 본인의 잘못은 아닌지라, 어쩌다 논란에 끼여 버린 피해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김성곤 . . . . 3회 일치
[목차]
박정희의 친위대를 자처하면서 3선개헌에 회의적이던 김종필계와 대다수 공화당 인사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3선 개헌]]을 성사시켰다.[* 3선개헌이 처음 불거졌을때 김종필을 선두로 해서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장기집권한 이승만의 최후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부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회유, 협박해서 결국 모두 찬성으로 돌려놨다. 당내에 막강한 독자계보를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압박하는데 선봉에 선게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4인방][* 한때 60명이 넘던 공화당내 개헌반대파 국회의원은 결국 3명 [[정구영]], [[예춘호]], [[이만섭]]만이 남았고, 결국 정구영-강제 정계은퇴, 예춘호-제명, 이만섭-낙선으로 모두 숙청되었다. 예춘호는 야당으로 넘어가서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만섭은 야인으로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이후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총재로 재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와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박정희를 대리해서 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재벌]]에게 해외차관과 정부발주공사의 10%를 무조건 자신을 통해서 상납하게 하면서 ~~[[뇌물]]의 제도화~~ 정권의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재벌,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그가 [[쌍용그룹]] 회장(재벌총수), 동양통신 사장(언론인)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정치인)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석원(기업인)|김석원]](전 쌍용그룹 회장), 차남 김석준(쌍용건설 사장), 삼남 김석동(전 쌍용증권 사장)이 있다.
- 김성주(축구선수) . . . . 3회 일치
[목차]
연장 24분에 라이언 존슨과 교체되며 나갔다. 팀은 1:1 무승부를 거두고 승부차기에서 5:6으로 석패, 16강전 진출에 실패했다.
일명 Z+D 슛이 키퍼가 닿지않게 감기는 궤적을 그리며 득점에 성공하며 팀은 5대1 큰점수차로 리그 첫 승리를 달성했다.
- 김장섭 . . . . 3회 일치
[목차]
1958년부터 1959년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1959년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김익노]]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상북도)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반민주주의자로 결정되었다. 이에 공민권 제한 대상자가 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김종호(1935) . . . . 3회 일치
[목차]
이후 주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서 관료로 근무하였다. 1980년 1월부터 9월까지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 1981년 3월까지 내무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태(정치인)|김완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경질되었다.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세력, 학생운동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해서 [[박종철]]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으론 김종호 장관이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다. 정치일정이 있으니까 3월 개학 때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선 경찰들은 장관이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개학전까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무리한 강압수사(=[[고문(범죄)|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 김종훈 (1952년) . . . . 3회 일치
* 2010년 5월 : 제66차 UN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 총회 의장
* 2008년 4월 : 제64차 UN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 총회 의장
새누리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4.11 총선거를 앞두고 홍사덕, 김종훈 후보 등 새누리당 후보들의 트위터 계정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며 트위터 계정폭파를 신종 사이버 공격으로 규정하고, "검찰은 트위터 계정폭파 범죄에 대해 즉각 수사에 나서 선거를 방해하려는 집단의 배후를 밝혀내라"고 촉구했다.<ref>[http://news1.kr/articles/608133 새누리 "김종훈 트위터 폭파는 조직적 테러"] 《뉴스1》 2012년 3월 28일 차윤주 기자</ref> 그러나 "트위터 계정폭파란 존재하지 않으며,<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745518&ctg=1200 트위터 본사 "계정폭파?...이용규정 위반으로 정지는 된다"] 《중앙일보》 2012년 3월 30일</ref> 오히려 사용자가 반복된 글을 일방적으로 보내는 등 이용규정 위반할 경우 정지된다"는 트위터 본사 측 반박<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330800080 트위터 측 “새누리당, 반복 글 보내 정지된 것” 반박] 《서울신문》 2012년 3월 30일</ref> 으로 새누리당 측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329031607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새누리당, 새 됐네"] 《프레시안》 2012년 3월 29일 이명선 기자</ref><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84981 보수지 신봉하던 새누리, '국제적 대망신' 자초] 《뷰스앤뉴스》 2012년 3월 29일</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5874.html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당했다더니…“국제적 망신살”] 《한겨레》 2012년 3월 29일</ref>
- 김진우(WINNER) . . . . 3회 일치
[목차]
* 같은 방송에서 요즘 [[목포]]에 안 내려가려고 한다는 것이 이승훈에 의해서 밝혀졌다. 차가 없어서 못간다고 하다가 설날에는 차가 많고 멀어서 가지 않는다고..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뵌 건 아버지가 [[서울]]로 오셨을 때라고 한다.
- 김태희 . . . . 3회 일치
2004년 김태희는 헤럴드경제 기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6&aid=0000148878 'I Love Companies'`기업사랑 캠페인` 본궤도 올랐다] ''헤럴드경제'' 입력일자 2004-09-21</ref> 2005년에는 남편 [[이완 (1984년)|이완]]과 함께 수호천사로 위촉돼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스위스]]에서 친선문화대사로 선정 돼 "독도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리메이크 앨범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ref name="광주일보"/><ref>[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SWISS FRIENDS 2005] {{웨이백|url=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date=20110813103724 }}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ref><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0217085145988&p=yonhap 김태희, 스위스친선문화대사 선정] 연합뉴스 입력일자 2005.02.17</ref> 이후 2007년 유방암의 위험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홍보대사로 활동을 했고, 7월 22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ref>[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419123412761&p=SpoChosun 김태희, 유방암 조심하세요 핑크리본 홍보대사] 스포츠조선 입력일자 2007.04.19</ref> 또한 12월에는 [[BC카드]]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밥차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밥차 배식 봉사활동 펼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0027316|저자=탁진현|출판사=[[네이버]]|날짜=2007-12-05|확인날짜=2011-09-15}}</ref> 김태희는 2005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도 난치병 어린이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계속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난치병 어린이들과 따뜻한 만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6672|저자=김가희|출판사=[[네이버]]|날짜=2006-05-16|확인날짜=2011-09-15}}</ref>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난치병 아동들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앨범에 참여했는데, "Make-A-Wish"를 녹음했다.<ref>조성훈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배우 김태희,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음원 참여] {{웨이백|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date=20120316165433 }}, 《[[가온 차트]]》, 2011-09-15 작성. 2011-09-15 확인.</ref>
- 김효진 (배우) . . . . 3회 일치
</ref> 2003년 개봉 된 사극 영화 《[[천년호]]》에서 '자운비' 역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이후 김효진은 이지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2년에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에서 주체적인 여성 윤나미 역을 통해 재조명받았고,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칸레드카펫을 밟았다.
2011년 12월에는 8살 연상의 배우 [[유지태]]와 5년여의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2014년 7월 5일, 첫 아이인 아들 유수인을 출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 유지태 부부 5일 득남 "가슴 벅차다"|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906672|출판사 =뉴스1 |저자 =권수빈 |날짜 = 2014-07-05 |확인날짜 =2017-09-29 }}</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3회 일치
* 올 포 원 풀 카울 8%의 위력은 [[미도리야 이즈쿠]]의 예측마저 벗어났다. 수치적으론 5%에서 8%로 올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약간의 차이가 [[바쿠고 카츠키]]의 반응 속도를 초월하게 했다.
* 미도리야의 연속된 돌려차기를 바쿠고가 폭발로 밀어낸다. 이것도 바쿠고는 바로 앞에서 터뜨리려고 했지만 미도리야의 속도가 빨라서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안전하게 착지한 미도리야는 자세를 바로잡아 다시 달려든다.
* 바쿠고는 자신도 올마이트처럼 강해지고 싶었지만 약했기 때문에 그를 그런 모습으로 만들고 말았다고 자책한다. 올마이트는 자신은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일이 없었어도 이렇게 됐을 거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다시 한 번 바쿠고는 강하다고 말하며 단지 자신이 그 강함에 매달려서 부담을 준거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3회 일치
미도리야는 마지막 동작에서 그대로 벽을 박차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올마이트]]의 태피스트리를 발견하기 전까진 그러려고 했다. 미도리야는 거기에 상처를 입히느니 차라리 벽에 부딪히는걸 선택한 것이다. 나이트아이는 그가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줄 알았지만 지금보니 올마이트 굿즈를 최대한 피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집기를 집어던질 때도 이것들만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 썼다.
* 다음날 미도리야는 인턴으로서 첫 일을 받는다. 임무는 패트롤과 "감시". 팀은 나이트아이와 버블걸, 밀리오와 미도리야로 나뉜다. 현재 나이트아이는 "시에핫사이카이"라는 과거의 야쿠자, 현재의 "지정 빌런 단체"를 비밀조사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차기 보스 "치사키", 통칭 [[오버홀]]은 요주의 인물. 나이트아이는 밀리오와 미도리야에게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가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전달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3회 일치
* 밀리오는 여기서는 여자아이를 돌려보는게 답이라고 생각하나 에리가 가지말라고 애원하자 미도리야는 차마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한다.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가 "밀리오를 보고 절감해라"고 했던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올마이트]]가 그의 존재에 대해 숨겼던 것도 다시 마음에 걸린다. 이런 내심을 모르는 밀리오는 편한 말투로 서로 히어로 네임을 모르고 있었다며 미도리야의 히어로 네임을 묻는다. 미도리야가 "데쿠"라고 답하자 포지티브한 밀리오 조차도 "그런 히어로명으로 괜찮은가"라고 확인한다.
* 팽팽하게 긴장된 상황은 오버홀의 한숨과 함께 종료된다. 그는 자기가 졌다는 듯이 "히어로는 정말 남의 사정에 민감하다"고 물러난다.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보는 눈을 피하고 싶으니 이쪽으로 와달라며 골목으로 들어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밀리오도 그냥 가는건 포기한다. 그는 미도리야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자신이 대처하겠다고 신호한다. 어차피 이제와서 에리를 놓고 갈 수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미도리야는 에리를 안은 채 오버홀을 따라 들어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3회 일치
타마키는 한도 끝도없이 네거티브해져서 이 스카우트도 자길 괴롭히려고 결정된 거라고 믿고 있다. 키리시마는 패트껌이 나름대로 격려해주는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는 어떻게 해도 키리시마나 밀리오처럼 포지티브해질 수가 없다고 한다. 키리시마는 "나도 뭔가 하고 싶은데 실력도 경험치도 차이가 생겨 아무 것도 못할 때가 있더라"고 나름대로 공감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메꾸고자 인턴 생활에 뛰어든건 엄청나게 포지티브한 태도이기 때문에 결국 타마키는 도저히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 이것이 타마키의 개성 "재현"이다. 먹은 것을 몸으로 재현할 수 있는 범용성 높은 개성. 키리시마는 선배의 활약은 멋지지만 자신이 나설 차례가 없어 안달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3회 일치
* 밀리오와 미도리야는 자리를 박차며 "다음에는 반드시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이것이 나이트아이가 이번 작전의 목표로 삼는 바였다.
나이트아이가 이렇게 변호하고 있을 때, 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있었다.
차회 잡지 휴간에 따른 휴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3회 일치
* 미도리야는 끝없이 밀려드는 벽을 계속해서 때려부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절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를 필요로하는 아이, 에리쨩이 있다.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류큐]]팀, 많은 히어로와 경찰들, 패트껌 일행이 만들어준 길이 끊기게 할 수는 없었다.
* 아이자와는 최악의 상황이란 생각과, 그래도 여기서 한 명을 처리하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붕대를 끌어당겼다.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은 토가가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무효화는 잘 작용하고 있었지만, 토가의 전투력은 개성에서 나오는게 아니었다. 토가는 아이자와가 팽팽하게 당기는 붕대를 잡고 축으로 삼아 공중제비를 돌았다. 몸이 재쳐지면서 아이자와의 머리 위를 지났다. 그때 미도리야를 찌르려던 나이프가 아이자와의 어깨 뒤쪽에 깊이 박힌다. 아이자와가 나이프를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 반격했으나 붕대만 잘려나갔을 뿐. 토가는 아이자와의 후방에 착지하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 몸에 감긴 붕대를 팽개친다.
* 그리하여 "출향조"로 차출된 것이 토가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트와이스는 나이트아이 앞에 나타났다. "랏파"의 복제로 벽을 뚫으면서.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머리통은 엉망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3회 일치
* 오버홀이 변화시킨 지면이 손가락처럼 뻗어오는 순간, 미도리야는 그것들을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진다. 어리둥절해하는 오버홀 위로, 천장이 폭발하듯이 무너지고 미도리야는 어느새 지상으로,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있었다. 자신은 그저 오버홀의 공격을 차내려 했을 뿐인데, 힘 조절이 안 돼 여기까지 날아온 것. 그런 거라면 자신의 다리가 멀쩡할리 없다고 서둘러 확인해보는데.
* 류큐 팀은 오버홀을 저지해보려고 하지만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그때 [[서 나이트아이]]는 류큐팀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고 이 다음 오버홀은 다른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곧바로 미도리야를 쫓아가 그를 죽일 거라고, 그런 미래를 "봤다"고 고백한다. 류큐팀은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나 나이트아이는 어차피 그녀들 몸으로는 무리라고 잠자코 있으라 말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크게 반발하며 "미래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일갈하고 나이트아이는 그녀의 대답에서 "미래를 비틀겠어"라던 [[올마이트]]의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 [[아스이 츠유]]에겐 근처에 있을 밀리오의 구조를 요청하고 류큐, 우라라카에겐 자신을 데리고 위로 올라가 달라 부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3회 일치
attachment:기차.png
* 목적지는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카미노구. 기차로 이동한다.
* [[키리시마 에지로]]와 [[토도로키 쇼토]]는 일단 다른 급우들과도 작전을 얘기했으나 더 말리려는 사람 뿐이었다. 특히 [[우라라카 오챠코]]는 "바쿠고는 모두에게 도움 받는게 더 굴욕이라 여길 것"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미도리야 조차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3회 일치
* 현역 히어로의 순위글 집계하는 "히어로 빌보드 차트 JP"
* 어머니는 대사건 조차 "바쿠고가 약해서 폐를 끼친 것"이라고 할 정도로 강인한 성격. 반대로 아버지는 미도리야가 연상될 정도로 유약하다.
* 어머니는 "이즈쿠가 도달하는 곳이 그런 피범벅인 미래라면" 차라리 무개성인 채로 히어로의 활약을 기쁘게 바라보던 때가 행복한건 아닐까, 그런 물음을 던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3회 일치
* 본인은 물욕이 없어서 그렇다는데 그 미네타 조차 "이건 변태"라고 평한다.
* 야오요로즈 모모의 방 차례.
* 히어로 면허는 매우 어려운 시험이고 임시 면허 조차도 난이도가 높다. 합격률은 약 5할.
- 남치근 . . . . 3회 일치
포도대장으로서 남치근은 한 차례 임꺽정에게 크게 얻어맞았는데, 명종 15년 좌포도대장으로 있던 남치근은, 서울에 기습공격해온 임꺽정 패거리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서울 내에서 시가전을 벌였으며, 포도부장이 활을 맞고 사망하는 참패를 겪었다. 임꺽정은 유유히 달아났으며, 남치근은 임꺽정의 처 3명을 체포하였으며 임꺽정 일당을 계속 추적하려 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는다. 이에 명종은 남치근을 파면하지는 않고 체직(벼슬을 깍는 것)하는 처분을 내렸다.(우포도대장 이몽린은 이 때 와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참조 : 조선의 포도대장]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을 실행하여, 임꺽정 일당에 협력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면서 임꺽정을 포위한다. 임꺽정이 구월산으로 도주하자 포위망은 더욱 좁혀들어갔으며, [[서림]]을 이용하여 임꺽정 일당을 회유하고 참수하였다. 결국 임꺽정은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백과사전 등에서는 임꺽정이 체포되어 효수당했다고 소개되지만, 실록에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고, 다만 "도적의 괴수를 처단했다"는 짤막한 기사만 있다.]
을묘왜변, 임꺽정 토벌에서 대단한 공적을 세운 장군이다. 하지만 서민의 대변자로서 [[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임꺽정을 토벌했다는 점, 그리고 황해도에서 상당히 잔혹한 토벌작전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사실 관서(황해도)에서의 토벌 당시 외에도 "제주 목사 시절에 왜선 5∼6척이 당물(唐物)을 가득 싣고 풍랑을 만나 표류해 와 정박해 있을 때, 왜인들을 전부 죽이고 금은 보화와 비단들을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고서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
- 단기대학 . . . . 3회 일치
미국의 주니어 컬리지, 혹은 커뮤니티 컬리지에 해당하며, 한국에서는 전문대에 해당. 물론 나라마다 특징이 있으므로 세세하게는 차이점이 있다. 비슷하게 전문대학과 비교되는 ‘전문학교’와 ‘단기대학’은 또 다른 것이므로…. 혼란스럽다.
이름으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단기대학은 주로 여학생이 다닌다. 일본에서 단기대학은 주로 여성의 고등 교육과 직업 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유치원 교사, 보육사. 영양사, 개호복지사 등 지역 대상 전문 직업인 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4년도 학생 통계로 보면 교육분야가 37.4%로 비율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은 가사 분야. 통계에서도 여성이 많이 다니는데, 1999년 통계에서는 여학생이 33만 9742명(89.9%)로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2014년 통계에서도 졸업생 58,797명 가운데 "취업을 한 여학생"만 40,901명으로 69.6%를 차지했다.
-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 . . . 3회 일치
= 전작과의 차이점 =
주사위 굴림에 대한 중요도가 전작에 비해 비중이 떨어졌다. 타워 오브 둠(이하 TOD)과 마찬가지로 모든 공격과 방어시에 피해를 입게 될때마다 주사위 굴림이 이루어지지만 전작만큼 엄청난 수준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똑같은 일반 공격인데 대미지가 2배이상 차이난다거나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3회 일치
~~사실 책 뒷표지의 개요는 너무 에로해서 차마 실을 수 없었다.~~
* 귀스카르 : 마녀의 영역과 인접한 카산드라 왕국의 왕족으로 선왕의 아들이자 현왕의 조카. 자중하면서 왕위를 되찾을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에, 나가 일행의 활약으로 에인 요새가 탈취당하고 군대가 큰 타격을 입는 바람에 왕이 그를 국왕 전권 대리로 임명한다. 야심만만하면서도 자신의 한계 또한 파악하고 있지만, 갑자기 얻은 권력으로 인해 마녀 토벌을 종용하는 구교회에 대해 의심을 품어 대립하게 된다.
* 마녀 : 이능력을 가진 여자들을 일컫는 말로, 과거엔 인간들과 공존했으나 마녀들을 배척하는 유일신 신앙의 확대와 마녀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질투한 인간들에게 박해를 받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제각각 인간들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인간들에게 숫자로 밀려서 점차 밀려나고 있으며, 또한 아이를 낳게 되면 마력이 약해지는데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부 마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능력을 용이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다들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이 부분 또한 편견에 일조하고 있다.
- 레프카 . . . . 3회 일치
냉혈한 악당이며 그에 어울리게 극중의 악당들 사이에서도 가장 사악한 모습을 보인다. 인더스트리아의 지하 거주민들을 억압하고, 어린 아이인 라나의 목을 조르는 등 정말 사악하다. 약속을 해도 자기가 유리해지면 휴짓조각처럼 내버리며 지키지 않고, 자신을 거역하면 부하라고 해도 가차없이 제거.
나중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라오 박사를 확보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최고위원회를 위협해 이용하는데 결국 코난 일행의 대활약으로 실패하며 몸이 망가진 라오 박사와 대화할수 있는 라나를 끌고 도망치려 하나 역시 코난에 의해 실패하고 추락한다. 그러나 사실은 살아있어서 최후의 부하들[* 이중에 한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고 사살했다.]과 같이 기간트를 움직이는데 이것조차 코난 일행에 의해 실패한다. 최후에는 기간트 선두 쪽의 소형 탈출선으로 탈출하려 하나 이것조차 실패하고 결국 기간트와 같이 바다에 침몰한다.[* 코난이 손을 잡아주기는 했으나 이때 다른 부하들이 몰려와 매달렸고, 이에 손을 놓쳐버렸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3회 일치
* 롬니아 제국 : 변방 소국 중 하나인 '롬니아 왕국'이 정복활동 끝에 서방 세계의 8할을 차지하면서 성립된 제국. 이름은 물론 지도부터가 로마제국의 전성기 판도를 연상시키는 모양.
* 리 인 : 사이파카르의 식객으로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글래머. 사이파카르야말로 제국의 통치자에 합당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다.
* 소피 : 사이파카르의 시녀. 유사시에 전쟁터에서도 수발을 들 경우에 대비해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 기술도 연마했다.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의외로 가차없는 성격이기도 있다.
- 마기/316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거기로 가기 위한 열쇠가 "솔로몬의 지혜". 어차피 그건 알라딘에게 있다.
* 어차피 아르바가 이기지 못했다면 자신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 알라딘의 견해를 헛소리로 일축하며 마기인 그 조차 통찰력이 무르기 짝이 없고 오로지 자신만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고 자만한다.
- 마기/319화 . . . . 3회 일치
* 이사회는 술렁이기 시작하고 신드바드 조차 동요를 감추지 못한다.
* 무는 그가 자신들을 얕봤을 거라 보고, 동맹이면서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홍옥을 용기있다고 칭찬한다.
* 신드바드는 자신이 신이나 다름 없고 신으로부터 인정받은 "특별한 인간"이라는 아집으로 가득차 있다.
- 마기/321화 . . . . 3회 일치
* 아르바는 루프를 통과하려면 인간의 몸으론 안 된다며 금속기를 차라고 하는데, 이또한 신드바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 아르바 조차 왜 그가 침착하게 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그리고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과 나 사이엔 차이가 없다"는 것까지 인정하게 된다.
- 마기/324화 . . . . 3회 일치
* 우고는 성궁의 무한한 시간을 이용해 끝없이 연구한 결과 원래 신이었던 다윗과 일 일라 조차 능가하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 "차원마저 다층구조화 되어 있다면 신에게도 계층이 있을 수 있잖아?"
* 이제 그는 인간의 형태 조차 유지하지 못하는데 거대한 부정형의 형상이다.
- 마기/326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3일 후. 알리바바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모르지아나가 알리바바를 차버렸다는데
|| 모르지아나에게 차였어. ||
모르지아나의 변심은 신드바드가 운명을 주무른 영향으로 보이는데, 운명 차원에서 알리바바는 솔로로 살 거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마기/331화 . . . . 3회 일치
* 고민하는 알리바바 앞에는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가 있다. 둘은 함께 차를 마시며 좀 더 좋은 방으로 이사가자는 둥 평범한 대화를 나누려 한다.
* 그날 밤 알리바바 부부는 차를 나눠마시며 평범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알리바바는 이 방은 빌린 방이니 좀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자는 둥, 알라딘이 사랑 싸움 좀 적당히 하라고 간섭한다는 둥 잡담을 시작한다. 모르지아나가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부른다. 그녀는 문득 그가 2년 간 죽어있던 시간을 언급하며 "그때는 이렇게 살 수 있단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부탁할게 너는 정신을 차려줘. 루프로 돌아가고 싶단 말은 하지 말아줘.
- 마기/350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신드바드는 아직도 한 가지 문제가 아있다며 [[우고(마기)우고]]가 지적했듯 다른 차원과 연결은 막대한 마고이가 소모되지 않냐고 지적한다.
* 신드바드는 일행을 향해서 "동맹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지만 실현 가능한지는 별개"라고 지적한다. [[우고(마기)우고]]가 분명 "차원을 연결하는 대마법"은 불가능하며 엄청난 마고이를 소모해야만 겨우 되는 거라고 말했었다. 그 문제가 해결된건 아니다.
* 알라딘은 들뜬 목소리로 알리바바에게 어서 "차원을 연결하는 대마법"을 사용해 보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멋쩍은 태도로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는걸 털어놓는다. 우선 그는 마법사가 아니고, 그 대마법은 살아있는 몸으로 쓸만한게 아니라고 [[셋타]]가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우고는 "그럼 글렀잖아!"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마니교 . . . . 3회 일치
마니는 사산 가문으로 마이선 총독 미프르 샤에게 접근하여, 빛의 천국을 환영으로 보여주고 개종시켰다. 마니는 자크, --어느새 인도에서 돌아온-- 파티크, 시메온과 함께 사푸르 1세를 알현한다. 마니는 자신의 교리를 정리한 사프라간(Shabuhragan)이라는 서적을 사푸르 1세에게 바쳤는데 우주론・종말론・예언자론의 3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요한 신격을 주르반, 아흐리만, 아후라 마즈다, 미트라 같은 이란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차용하였다. 마니는 이 책을 [[페르시아어]]로 저술하고, [[아람 문자]]를 변형한 [[마니 문자]]를 사용하였다. 마니 문자의 발명으로 이란어는 모음의 표기가 가능해지고, 이전까지 쓰였던 불편함이 혁신되어 중세 이란어 표기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마니의 아버지 파티크는 장로의 지위에 올랐는데, 메소포타미아→이란→인도→이란에 귀국→재차 인도→메소포타미아에서 사푸르 1세 알현에 동참→시리아 전도→메소포타미아로 귀환 하는 등, 몇년 동안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272년, 마니의 포교를 용인하던 사푸르 1세가 사망, 마니와 인연이 있던 아르메니아 왕 오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가 페르시아 왕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사푸르 1세의 차남, 바흐람 1세가 즉위하였다. 이와 함께 우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 때부터 조로아스터교의 대신관 킬데르가 대두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 국교화 정책이 더욱 강경하게 밀어붙여졌다. 마니는 궁정의사에서 해임되어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종속국 코라살의 시의로 좌천되는데, 몇몇 문헌에서는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를 실패한 것을 질책받았다는 언급이 있어 이 역시 신망을 잃은 원인으로 추측된다.
- 막부 . . . . 3회 일치
중국에서 이러한 부의 개설은 반란의 평정이나 대외 원정 등. 중대한 군사 작전 사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일반적인 행정조직으로서는 대응하기 어려워, 장군이 전권을 행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설치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전장에서 평시 행정조직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중앙 정부에 모든 사안을 보고하고 지시를 따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일본 국내에서 '거의' 유일[* 사무라이와 다른 경우로는 사원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한 [[승병]] 같은 사례가 있다.]하게 무력을 보유하게 된 사무라이들이 점차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결국 이 사무라이들 가운데 유력해진 겐지(原氏) 일족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케|헤이지(平氏) 일족]]과의 항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덴노에게 정이대장군 칭호를 받고 가마쿠라에 막부를 열면서 조정을 제치고 일본 전역에 할거하고 있던 무사들을 통솔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이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다.
히데요시 사후에 권력투쟁 끝에 일본의 실력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의 도쿄 지역인 에도에 막부를 세운다. 이 [[에도 막부]]는 이전과는 달리 간토 지역을 독립적으로 장악하고, [[산킨고타이]] 제도를 비롯한 대책을 사용한 덕에 이전의 막부들에 비해 통제력이 매우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 때조차도 각 번의 다이묘들은 해당 지역의 군사와 사법, 행정을 독립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등 여전히 지역분권이 강했다.
- 맥스 페인 . . . . 3회 일치
* 왼쪽 아래의 사람 모양으로 생긴 것은 맥스의 [[체력]]이다. 체력이 붉게 차버리면 맥스는 죽는다. 화염과 접촉하면 체력 상관 없이 불춤을 추며 죽으니 주의. 돌아다니다가 주울 수 있는 [[진통제]][* Tab이나 백스페이스로 사용함.]로 체력을 천천히, 약간씩 회복할 수 있다. 진통제의 소지 유무와 수는 체력 옆에 표시된다. 총 8개 까지의 진통제를 소지 가능.
* 체력 오른쪽에 있는 모래시계 모양 게이지는 아드레날린 게이지. 불릿타임을 시전하는 동안 아드레날린이 소모된다. 아드레날린을 모두 소모하면 불릿타임을 사용할 수 없다. 적을 죽이면 게이지가 차오른다.
마약단속국 요원. 마약단속국 내에서 맥스와 아는 유이한 사람 중 하나. 다른 하나는 당연히 알렉스 볼더다. 로스코 지하철 역에서 맥스와 알렉스를 만나게 했다. 맥스가 펀치넬로를 죽인 후 다시 연락을 걸어와 만나게 된다. 이때 그는 양복을 맞춰입고 금시계와 금으로 된 커프스 단추를 끼고 있었다. 경찰 월급으로 살 수 없을 물건을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본 맥스는 B.B.가 뇌물을 받고 볼더를 죽였다는걸 깨닫고 그를 추궁한다. 정체를 들킨 B.B.는 주차장으로 도망치지만 맥스에게 붙잡혀 죽는다. 무장은 잭해머와 수류탄.
- 명예백인 . . . . 3회 일치
[[인종차별]]을 벌이는 정권에서 [[백인]]이 아닌 인종을 백인으로 쳐준다는 의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색인종 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백인 국가에 뒤지지 않게 성장하자, 국책상의 이유로 이들 국적의 아시아인에게 백인과 같은 대우를 주고 '명예백인'으로 취급하였다.
[[분류:인종차별]]
- 모나 색스 . . . . 3회 일치
이후 맥스와는 에이저 플라자에 쳐들어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회한다. 이때 모나는 니콜 혼에게 맥스를 죽이기 위해 니콜 혼에게 고용된 상태였지만 맥스에게 호감을 느껴 그를 죽이지 않고 동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습격해온 혼의 경호원들에 의해 사망한다. 맥스는 엘레베이터 안에 쓰러진 그녀의 시체를 보며 "솔직히 그녀는 차디찬 킬러가 아니라 좋은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차디찬 시체였다,"[* She was a nice girl, not a stone-cold killer, and now she was stone-cold dead.]라고 독백한다.
맥스가 [[블라디미르 렘]] 소유의 창고에서 [[스쿼키 청소회사]]와 총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등장. 경찰차 사이렌을 듣고 도망가려던 청소회사 직원들을 데저트이글로 죽여버렸다. 맥스에게는 이런식으로 만나는건 그만해야 한다는 말만 하고 사라진다.
- 모레아 전제국 . . . . 3회 일치
현재의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에 있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국이다. 이 지역은 본래 전통적으로 비잔티움의 유럽 방면 영토였으나, 통치력이 잘 미치지 않아 독립성향이 강했고 [[제4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이 지역에 세워진 '아카이아 공국'의 영향으로 비잔티움의 봉신국이 되었다.
전제공(δεσπότης,despótēs,데스포테스,데스포티스)이란 비잔티움 제국의 작위로서, 본래 이 말은 '전제 군주'라는 의미였으며, [[로마 제국]] 시기에 라틴어 '도미누스(주인, 군주)'의 번역어로서 그리스어에서 쓰이게 되었고, 그리스어권에서 [[로마 황제]]의 별칭이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이를 군주와 혈연이 있는 고위 귀족, 황족에게 주는 '작위'로서 사용했으며, 제4차 십자군 이후 망명정권의 하나였던 에페이로스의 군주가 황제를 칭하기 이전에 전단계로서 '데스포테스'를 사용하면서 독립 국가 군주의 칭호로 등장하게 되었다. 에페이로스의 '데스포테스'는 니케아 제국에 패배하였으나 니케아 제국은 에페이로스를 봉신으로 삼고 '데스포테스'의 칭호를 쓰는 것을 인정하여, 데스포테스는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 작위로 여겨지는 관례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전제공','전제후'로 번역된다.[* 다만 이는 확고하게 널리 쓰이는 번역어는 아니다.]
[[제4차 십자군]] 시기 이 지역에서는 '아카이아 공국'이 세워졌다. 아카이아 공국은 [[니케아 제국]]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포로로 붙잡힌 기욤 2세는 콘스탄티노플 탈환 이후 영토를 할양하고 풀려났다. 비잔티움 제국은 펠로포네소스 영토에 케파리(군정관)을 두고 이들에게 펠로폰네소스 방면의 전권을 위임했다. 케파리는 연단위 임명이었지만 이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종신 임기가 되었고 팔레올로고스 황족이 부임하게 되었다. 영토가 확장되면서 지역을 다스리는 멜리키 케파리와 전역을 다스리는 카소리키 케파리로 분화된다.
- 무료로 책 읽는 사이트 . . . . 3회 일치
전자도서관들은 현재 각 도서관의 정책에 따라 일정한 가입절차 및 인증절차에 의해서 자신의 기기에서 전자도서를 대여할 수 있다. 위키러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도 전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을 테니 학교에 문의하면 사용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으니 참고.
- 문희옥 . . . . 3회 일치
[목차]
1991년 엔카 풍의 정통 트로트 <성은 김이요>를 발표했는데 때마침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김씨 후보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당시 선거 유세장에서는 가사 바꿔부르기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OO 알파벳 약자로 OO이지요.~~ 1990년대 문희옥은 <순정>, <해변의 첫 사랑> 등을 히트시키며 다시 한 번 트로트 여제로 군림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락]], [[댄스]] 음악이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의 세를 확장해 나가자 포크, 트로트 음악은 점차 슬럼에 빠졌고 그 중 문희옥의 방송 비중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화병이 한 때 심각했었다고 한다. 너무 어릴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살고, 심지어 큰언니의 암투병과 남동생의 군복무 중 사망으로 더 화병이 심각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심각해지자 노래 부르는 것도 기술과 요령으로 간신히 버텼고 당시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한다. 2011년 오페라스타 출연 제의를 받으면서 화병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차츰 화병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고, 종교 활동과 해외봉사 활동을 통해 화병을 더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화병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3회 일치
대참사 당시 지구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우주선이 불시착하여 우주선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 곳으로 여기서 코난이 태어났으며 코난의 부모를 비롯한 코난의 할아버지 동료들이 차례대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1화 시점에서는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 두 사람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는 자신들만 살아남은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코난의 할아버지가 라나를 잡으러 온 몬스리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군인 2명에게 저항하다가 죽은 뒤, 코난은 이 곳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화에서 남겨진 섬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대륙이 되면서 코난이 살던 집은 산 정상에 위치하게 되었는 데 대륙이 된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에 다이스, 몬스리, 류케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피난민과 테라를 비롯한 하이하버의 일부 주민이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하게 된다.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은 작 중에서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지역이다.
라나의 고향으로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전원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참사 이전에는 주민들이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에 종사하지 않았지만 대참사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다만 국가의 형태를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오로와 같이 전원생활에 대해 불만이 있는 반항적인 청년들이 독자적으로 무리를 이룬 경우도 있다. 17화에서 하이하버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나를 잡아가려는 데 혈안이 된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20화에서는 점령군으로 왔었던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이 하이하버의 주민이 되어 일을 하며 정착한다. 라오박사의 반중력 비행정이 하이하버에 있었는 데 인더스트리아에서 파르코 비행정에 의해 격추된다.
- 미저리 . . . . 3회 일치
소설가 폴 셸던은 자신이 새로 쓴 소설을 출판사에게 전해주기 위해 차를 운전한다. 그는 "미저리"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시리즈 "미저리"[* 작중 묘사에 의하면 근세 배경의 신데렐라 스토리 소설인 것 같다.]로 성공을 거둔 작가지만 폴은 그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새로 낸 미저리 시리즈인 "미저리의 아이"의 최후반부에 아이를 낳던 미저리가 사망하는 내용을 넣어 시리즈를 끝내버린 후, 차도둑을 소재로 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한다. 소설을 완성한 폴은 자신이 쓴 소설의 작품성에 흥분하며 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빙판길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한다.
- 바키도/121화 . . . . 3회 일치
* 최종형태로 변한 피클을 눈 앞에 두고 과거 히다국에서 야차원숭이를 베었던 것을 회상하는 무사시
* 과거 히다국에서 괴물원숭이, 지금의 야차 원숭이의 조상을 베었던 일을 회상하며 덤비라고 도발한다.
* [[야차원숭이]]가 오랜만에 등장. 예전 설명에는 [[사무라이]] 정도는 가볍게 먹어치웠던 것 같은데(…).
- 바키도/125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도쿠가와는 또 절차상 문제를 거론한다.
* 작은 주머니가 터지면서 모래가 흩뿌려진다. 무사시는 눈에 모래가 들어가며 시야가 차단된다.
* 시야가 차단되고 머리부터 처박힌 무사시는 무력하게 기술에 당한다.
- 바키도/131화 . . . . 3회 일치
* 무사시는 생전 구마모토 성주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여흥에 어울린 일이 있다. 세키의 도공이 만든 뛰어난 "강철투구"를 쓴 무사를 벨 수 있겠냐는 것. 성주는 이미 같은 실험을 해서 진검 조차 이가 나간다는걸 확인했기 때문에, 다분히 무사시를 곤란하게 하려고 장난을 치는 듯 했다.
* 시간은 다시 현대. 무사시의 칼이 모토베 이조의 왼팔을 가른다. 분명 보호대를 차고 있을텐데도 팔이 꺾일리 없는 방향으로 꺾인다. 무사시는 "가죽 한 장"으로 붙어 있는 거라며 보호대도 무시할게 못 된다고 중얼거린다.
* 모토베도 지지 않고 오른손으로 암기를 쓰려고 하나 무사시는 가차없이 다리를 베어낸다. 역시 잘려나간건 아니나 뼈가 부러지고 모토베는 무력하게 주저앉는다.
- 바키도/141화 . . . . 3회 일치
* 바키를 포함한 현세의 투사들은 무사시가 자아내는 아우라, 그 참된 무사도와 차원이 다른 전력에만 눈길을 줬을 뿐이었다. 그탓에 그가 가진 '''고고한 고독'''에 대해선 주목하지 못했다.
현대를 태어난 인물들도 현대라는 삶의 틀 때문에 고독해 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가족이 있고 친구와 연인이 있다. 그러나 400년 전 전국시대에서 현대로 던져진 무사시에겐 그런 것 조차 없다. 그는 지금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 그때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가 나타난다. 무사시에게 당한 눈에 안대를 찼다. 무사시는 절친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자네인가"라며 아는 척을 한다. 그러나 오오츠카의 표정은 차갑다.
- 박상면(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복면가왕 74차 경연에서 [[집 있는 남자 슈퍼리치 소라게]]라는 가명으로 참여했다.
* 2008년 KBS 제2라디오 안재욱 차태현의 미스터라디오 - 게스트
- 박세직 . . . . 3회 일치
[목차]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계급)|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상태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그러나 곧 다시 [[전두환]]에게 중용되어 1982년 [[한국전력공사]] 부사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1983년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에 임명되어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보좌하였다. 그러면서 노신영과 함께 그 해 5월에 일어난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을 해결하였다.
- 박승임 . . . . 3회 일치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 때 [[조선 태종|태종 이방원]]을 도운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된 [[박은 (1370년)|박은]]의 5대손이다. 아버지 박형은 원래 안동 출신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며 뒤에 안동을 떠나 처가가 있던 영천(榮川)으로 이주해서 살게 됐다. 어머니는 영천 지역의 명문가인 예안김씨 출신으로, 김만일(金萬鎰)의 딸이다. 박승임은 7형제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 차남 : 박록(朴漉),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 박용우(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중앙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1994년]] [[문화방송|MBC]] 공채 탤런트 24기로 데뷔했다. 1995년 MBC 인기 드라마 [[아파트]]에서 [[최진실]]을 쫓아다니던 호민 역, 영화 [[올가미(영화)|올가미]]에서 고부갈등에 끼인 남편 역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핸섬한 외모로 데뷔 당시 포스트 [[차인표]]로 주목받고 영화 쉬리의 [[낙하산]] 역으로 출연해[* 이때 이 배역으로 박용우와 캐스팅경쟁을 벌이던 배우는 [[이범수]], [[강성진]], [[공형진]]이었고, 최종적으로 [[공형진]]과 경합 끝에 이 배역을 따냈다고 한다.(공교롭게도 모두 [[중앙대학교|중앙대]] 선후배 사이였다.)] 관심을 모으기도 했으나, 이후 [[조재현]], [[김명민]] 등과 함께 작업했던 영화 [[스턴트맨]]이 제작 중단되는 등 잠시 힘든 시기를 거쳤다.
2년 후인 [[2005년]]에는 영화 [[혈의 누(영화)|혈의 누]]에 [[악역]]으로 출연, 주인공 [[차승원]]마저 능가하는 악마적 연기를 선보여 대대적으로 재조명된다. 그 다음 해인 [[2006년]] [[최강희(배우)|최강희]]와 함께 주연한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혈의 누와는 대비되는 소심하고 코믹한 남자 주인공으로도 어필했다.
- 박정민(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2> 2013년 || [[감기(영화)|감기]] || 조연 || 차철교 || 311만 명 || 성공 ||
||<|2> 2011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휴먼 카지노 || 조연 || 차태오 ||
- 박종준 . . . . 3회 일치
[목차]
경찰대학 졸업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평창군|평창]][[경찰서장]], 공주경찰서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 [[마포구|마포]]경찰서장, 충남[[지방경찰청]] [[지방경찰청장|청장]],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 [[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박수현(정치인)|박수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13년 6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차장을 역임하였다.
- 박홍우 . . . . 3회 일치
* 연차유급휴가권, 재판자료 제39집: 근로관계소송상의 제문제(상), 법원행정처 (1987)
* 헌법심판절차진행중 청구인 등의 사망과 관련되는 문제점 검토, 법과 인간의 존엄: 청암 정경식 박사 화갑기념논문집, 박영사 (1997)
* 국회의원지역선거구간 인구편차의 헌법상 한계, 현대 공법의 이론과 판례의 동향, 세계헌법학회 한국학회 편, 도서출판 관악사 (2014)
- 박휘순 . . . . 3회 일치
** 《코빅열차》
* 라디오니하오 차이나 진행ebs
* 《떡국열차》
- 박희광 . . . . 3회 일치
|| 가족 ||<(> 아버지 박윤하, 부인 유문기, 장남 박근용, 차남 [[박정용]], 박정희, 박선용, 박수용 ||
[목차]
뤼순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로써는 최장기 복역중 일본천황 즉위와 황태자 출생 등 두 차례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 박희부 . . . . 3회 일치
[목차]
정치경력은 분명 원로급이지만 총 7차례의 총선 출마 중 당선은 1번, 그것도 14대 총선에서 공천에서 떨어지자 충청도서 비교적 약진한 통일국민당에 입당한 덕분이었다. 이는 상도동계 주류가 PK, 일부가 수도권에 기반한 것과 달리 고향 출마를 고집한 덕분이었다. 그는 7차례의 총선을 모두 고향 연기군(세종시도 연기군의 후신이니...)에서 출마했다.
- 배천석 . . . . 3회 일치
2011년 7월, 숭실대를 중퇴하고 일본 [[J리그]] [[비셀 고베]]에 입단하였으나, 리그 3경기, 컵대회 1경기 출장에 그친 뒤, 양 정강이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고 9개월간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일본에서 시련, 강한 정신력 가져”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805|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4-02}} }}</ref><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대학 후배 앞에서 체면 차렸죠"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251282|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13-05-09}} }}</ref>
[[K리그 클래식 2013|2013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하여 3월 2일 [[FC 서울]]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며, 3월 30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4월 13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18분 교체투입된 뒤 6분 만에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AFC 챔피언스리그 2013]]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데에 이어 3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뒤 결승골을 넣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 베를린 보병여단 . . . . 3회 일치
이름 그대로 베를린, 그 중에서도 서방 국가들의 구역이었던 서베를린에 주둔하는 부대이다. 주요 부대로는 1989년 기준으로 세개 [[기계화보병]] 대대와 [[치프틴 전차]]를 운용하는 한개 기갑 대대가 있었다. 이외에 방공부대, 공병부대, 헌병부대와 같은 지원 부대가 있었다. 항공 전력으로는 헬리콥터와 훈련기가 있었는데, 이 중 훈련기는 주독소련군과 연락하는데 사용되었다.
지상의 섬이었던 서베를린 특성상 전쟁이 나면 100% 녹아 사라질 부대였다. 다행스럽게도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해체되었다.
베를린 보병여단 소속 차량들은 사각사각한 흰색-회색-갈색 위장무늬를 사용했다. 아마 시가전용 위장이었겠지만 아무리봐도 누더기나 레고 블록 쌓아둔 것 같다. 구글에 Berlin Brigade Camo라고 치면 이미지 나오니 알아서 찾아봐라.
- 변현제 . . . . 3회 일치
2010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STX SouL]]의 4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2012년 4월 Tving 스타리그 8강 진출로 2012년 6월 Kespa 랭킹이 대폭 상승하였다. 그러나 스타2에서 부족한 실력과 약점을 많이 보여 한때 KeSPA랭킹이 가장 높았을 때에 비해 10계단 정도 낮았다. 변현제는 패배만 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때문에 '패배왕 변현제'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 [[2014년 2월]] 픽스 9차 소닉 스타리그 8강
* [[2015년 2월]] 스베누 10차 소닉 스타리그 8강
- 보루토/6화 . . . . 3회 일치
*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보루토는 도중에 정신을 잃었다.
* 사스케는 아직 나루토의 차크라가 느껴지니 죽은건 아닐 거라며 빨리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 보루토는 힘차게 "다녀온다니깐!"하고 인사한다.
- 블랙 클로버/102화 . . . . 3회 일치
마법책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아 [[혼모노]]로 각성해버린 두 사람. 심각한 수준의 마법 [[오타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도 결국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역시 건재해진 아스타를 보고 제정신을 차린다. 둘은 자기들이 고쳐준댔는데 왜 멋대로 나았냐며 저주를 걸려고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봐야 중증의 [[시스콘]]과 [[자폐증]]환자라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의 형상을 포기한 [[챠미 퍼밋슨]]. 마법버섯에게 기생 당해 자기 몸에서 자라난 버섯을 자기가 먹는 기이한 마법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챠미의 먹성으로 먹어도 하나 먹으면 세 개가 자라는 미친 번식 속도 때문에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레이는 차마 이 꼴로는 변하지 못했는데 변신을 똑바로 못했다며 자학하고 있다. 역시 아스타의 치료법은 찾지 못한 채 이상한 버섯이나 산열매 따위나 잔뜩 가져왔다. 야미는 챠미만큼은 자리 비운 만큼 급료에서 제한다. 버섯은 매그너가 태워서 없애준다.
* 대충 개판이 정돈되자 야미는 핀랄이 소개하려고 했던 "시간 때우기 적당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축제다. 신참인 아스타와 [[노엘 실버]]는 모르는 일이다. 마법기사단은 공적에 따라 별을 받고 경쟁한다. 1년에 한 번씩 이 별의 숫자를 발표하고 1위 기사단을 정하는 축제를 벌인다. 그게 "성과제". 클로버 왕국에서 가장 큰 축제기간이며 모든 클로버 국민들이 즐긴다. 뜻밖에도 야미도 이 축제를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입으로는 "의욕은 없다"고 하지만 차려입은 것부터가 의욕 만빵이다. 고슈처럼 답없는 시스콘은 틀어박혀있겠다고 하지만 핀랄처럼 헌팅 매니아는 한껏 설레고 있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3회 일치
국왕은 당당한 걸음 걸이에 한 눈에 봐도 남을 내려다 보는 눈빛을 가진... 뭔가 모자라게 생긴 아저씨다. 별 건 없는데 오만한 낯짝이 기분 나쁜 아저씨다. 그의 이름은 "A 킬러 클로버 13세". 명실상부한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맞지만 어딘지 격이 떨어지고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마법제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그가 곁에 서있는 것도 불편해 한다. 하긴 키 차이가 머리 하나 정도로 나니 더욱 그럴 것이다.
새파란 신입들이 국왕을 물고 뜯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단장들 조차 아무 말참견을 안 하는데다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 같은 경우는 재밌다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 잠시 뒤 마법제는 아스타와 유노, 두 사람을 잠시 뒤쪽으로 불러낸다. 아스타는 방금 전에 있었던 꽁트 같은 사건에 대해 힘차게 사과하지만 마법제는 애당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에게 로열 나이츠 건에 대해 조언한다. 이건 지금까지 이상으로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찬스다. 그는 두 사람을 격려하면서 아울러 "그래도 아직 신인"이라고 선을 긋는다. 다음주 선발시합에선 많은 강자들이 나올 터.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라며 자신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122화 . . . . 3회 일치
* 2회전 첫 시합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미모사 버밀리온]], [[잭스 류그너]]가 나갈 차례.
* 로얄나이트 선발시험 1회전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알렉드라 산드라]]와 [[솔리드 실버]]는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에게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솔리드 쪽은 문자 그대로 몸과 마음 양쪽이 격파, 진행요원들에게 회수 돼 치료 받는 중이다. 여전히 노엘에게 질리가 없다고 중얼거리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에 비하면 알렉드라는 몸쪽은 무사했지만 정신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는 고작 하층민에게 완패했다. 단지 정령 마법에 선택받은 운좋은 애송이. 그러나 그 운좋은 애송이가 정령 마법도 쓰지 않은 채 알렉드라의 최강마법을 가볍게 분쇄했고 [[윌리엄 벤전스]]의 꿈을 이뤄준다는 그의 바람까지 꼴사나운 것으로 전락시켰다. 패배한 그 자리에서 떠나지 조차 못하는 알렉드라.
아스타가 고작 생각해낸 반론은 함정 위치를 공개하라는 거였다. 정말로 전술이고 팀 플레이의 일환이라면 어째서 그 위치를 숨기는가? 잭스는 그것도 "너한테 알려주면 적도 알아차린다"는 핑계로 넘어갔다. 그는 철저히 자기 방식대로 할 생각이었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3회 일치
역대 가장 쓰레기같은 마법기사단 인증. 이전에도 단장이 비리를 저지르다 마법제 차원에서 조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부단장인 잭스 류그너가 인덕으로 유명하다는 둥의 얘기가 나와서 이미지 쇄신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에피에서 하층민이 동료가 됐다는 것만으로 팀킬을 자행하질 않나 그 성자라던 잭스는 인간말종이질 않나 최악의 기사단으로 전락했다. 사실 하층민 동료를 차별하는 묘사는 마법기사들 전반에 흔했지만 대놓고 팀킬을 해버리는 예는 이번이 처음. 금색의 여명이나 은익의 참수리 조차 선민의식은 쩔어도 아스타 등이 대활약하자 생각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쪽은 만회의 여지가 없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3회 일치
* 노엘은 아스타 조차 당한걸 보고 베토의 강함에 치를 떤다.
* 그러나 이것 조차도 베토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 지금 노엘의 마력은 베토 조차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 블랙 클로버/72화 . . . . 3회 일치
* 새로운 어둠마법 "암전 차원참"으로 공간째로 베토를 베어버리며 종결을 짓는다.
* 야미는 네 마력이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없고, 이 마법은 "차원 째로 벤다"고 말하는데.
* 어둠 마법 "암전 차원참"
- 블랙 클로버/98화 . . . . 3회 일치
* 라드로스는 어이없어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한참 웃은 라드로스는 진짜 못이기겠다며 차라리 속이 후련하다고 말한다. 아스타는 원래 그런 성격이었냐고 묻는데 라드로스도 마도석이 깨진 영향인지 인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 것 같다. 어쨌든 라드로스는 아스타가 "더 위로 올라가겠다"고 하던 것을 떠올리며 아스타라면 그럴만도 하겠다고 생각한다.
*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까마귀 떼가 몰려온다. 까마귀들은 곧 뭉쳐서 형상을 이루며 지상으로 내려온다. [[마녀왕]] 강림. 무슨 꿍꿍이인지 마녀왕이 직접 아스타 일행을 맞이하러 왔다. 이때 [[바네사 에노테이커]]도 정신을 차리지만 여왕이 있는걸 보고 심상치 않은 예감을 받는다.
바네사와 노엘이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구속 당한 뒤로 방법이 없다. 여왕은 아스타를 지배하고 상처를 치료해준다. 노엘은 고등 마법 세 가지를 아무렇지 않게 동시에 사용하는 여왕의 힘에 놀란다.
- 샘 윗위키 . . . . 3회 일치
고등학생 때 중고차 가게에서 차를 하나 샀는데 그게 하필 [[오토봇]]인 [[범블비]]였다. 그 이후 [[고등학생]] 때 한번, [[대학생]] 때 한번, [[사회인]] 때 한번씩 죽을 위기를 겪고도 살아남는다. 이후 배우인 샤이아 라보프가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에 하차하며 등장하지 않게된다.
- 서영무 . . . . 3회 일치
삼성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구에 1급 차량 정비공장을 차려 운영하였다. [[1984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초대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은 조건으로 스카웃하여 차기 감독으로 영입하게 되자,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는 이에 맞서 그 해 [[4월 13일]] 서영무를 자문역 역할인 관리 이사로 영입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 분석을 맡기기도 하였다.
- 서태화 . . . . 3회 일치
* 1999년 《[[닥터 K]]》 ... 3년차 역
* 2010년 [[OCN]] 미니시리즈 《[[야차 (드라마)|야차]]》 ... 내관 도시평 역
- 서현진 (방송인) . . . . 3회 일치
* [[2008년]] [[1월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고교 동창생의 차량에 탑승했다가 다른 차량과 부딪혀 차량이 완파되는 사고를 당했으나 큰 외상은 입지 않았으며, 교통사고 직후 병원 치료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894890§ion_id=106&menu_id=106 서현진 교통사고] 《연합뉴스》</ref>
- 성시경 . . . . 3회 일치
|《10살 차이》
|[https://www.youtube.com/watch?v=bT0wr6xS7mM 성시경 <차마>]
* '''차마... (총 1회)
- 소냐(가수) . . . . 3회 일치
[목차]
그 뒤 13차 경연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에게 가왕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번 출연을 통해서 혼혈이라면 이런 음악을 해야한다는 편견을 깰 수 있었고 또 다른 혼혈계 사람들에게 혼혈이라는 장벽을 깨는 희망을 주어서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 뒤 34, 36차 경연에서 연예인 판정단으로 합류했다.
- 손병조 . . . . 3회 일치
* 2008년 : 관세청 차장
|직책 = [[대한민국의 관세청 차장|관세청 차장]]
- 손예진 . . . . 3회 일치
손예진은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영화 《[[비밀 (2000년 영화)|비밀]]》에서 홍미조 역을 맡아 출연(목소리 출연)한 후, 오디션을 통해 이듬 해 2001년에 방영 된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여주인공 장희애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885703|title=Young, Charming and Innocent ? What More Could You Want?|date=12 March 2001|work=Korea JoongAng Daily}}</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00807 '방송'손예진 MBC 최고 루키 선정], 《한국일보》. 2001년 9월 25일 작성.</ref> 첫 드라마 작품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특유의 청순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이어 《[[선희 진희]]》에 출연하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손예진은 픽션사극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되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2002)는 233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클래식 (영화)|클래식]]》(2003)은 154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회자되며, 손예진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인해 단숨에 청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f>{{웹 인용|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606101410484008937_2|title=Korean stars dubbed ‘Nation’s first love’|website=The Korea Herald|date=10 June 2016}}</ref> 이 작품들을 통해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제4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396132|출판사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저자 =김병규 |날짜 = 2003-06-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3년 TV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여주인공 심혜원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한류 (문화)|한류 문화]]의 주역인 [[윤석호 (연출가)|윤석호]] PD의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잇는 계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 2004-2006: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연애시대'' 차세대 여배우로 주목 및 성공 ====
2008년, 손예진은 TV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드라마)|스포트라이트]]》로 2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8/05/201_24097.html "Spotlight Shows Lives of Reporters"]. ''The Korea Times''. 13 May 2008.</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as a Criminal Kingpin|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741|work=Korean Film Council|date=26 July 2007}}</ref> 같은 해 영화 《[[무방비도시 (2008년 영화)|무방비도시]]》에서 소매치기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리더 백장미 역을 연기했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섹시함 유지, 가장 힘들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0088606|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김경민 |날짜 = 2008-01-04 |확인날짜 =2017-09-16 }}</ref><ref>{{웹 인용|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02223903/http://twitchfilm.com/2006/09/alone-in-love-review.html|title=Alone in Love Review|성=|이름=|date=1 September 2006|work=Twitch Film|출판사=|확인날짜=2018-04-12}}</ref><ref>{{웹 인용|title=Actress Son Ye-jin's Movie Picks|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2317340286147|work=10Asia|date=23 December 2011}}</ref> 박현욱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조건으로 달고 결혼한 후에도 다른 남자를 사랑하길 멈추지 않는 주인아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SON Ye-jin puts a new spin on marriage|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914|work=Korean Film Council|date=11 February 2008}}</ref> 그녀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제2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1210837541003|제목=눈물의 손예진 유일무이 3관왕 석권 기염, 청룡 여우주연상-인기스타상-베스트커플상 |출판사=뉴스엔|날짜=2008-11-21}}</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제목=손예진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출판사=한국일보|날짜=2008-12-11|확인날짜=2014-02-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24030924/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보존날짜=2008-12-24|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411169|제목=김윤석.손예진, 영화학도가 뽑은 최고 배우|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8-12-15}}</ref><ref>{{뉴스 인용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022720042800689&type=1&outlink=1|제목=손예진, '아내가 결혼했다'로 여우주연상 3연패 |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09-02-27}}</ref> 2009년,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백야행 (영화)|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욕망으로 가득찬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 유미호 역을 연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차기작 ‘백야행’서 고수와 멜로호흡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1996689|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남안우 |날짜 = 2008-12-15 |확인날짜 =2017-09-16 }}</ref><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9/11/141_53971.html "Son Ye-jin, Ko Soo to Bring Mystery Romance"]. ''The Korea Times''. 21 October 21 2009.</ref>
- 손지현(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2017년 12월 어머니의 성인 손씨를 따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687740|손지현이라는 예명을 쓰기로 했다.]] 법적으로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지(개명) 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성도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데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본명은 남지현, 활동명을 손지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며 본인도 [[대군 - 사랑을 그리다|대군]] 종영 후 인터뷰에서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805140943490310|모친의 성씨를 갖고 와서 예명으로 쓰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성씨를 바꿔서 예명을 쓰는 케이스는 아니지만, 배우 [[조진웅]]은 아버지의 성함을 활동명으로 쓰고 있다.] 걸그룹 활동과 배우 활동을 병행하던 시절과 달리, 전업 배우의 길을 걷는데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2014258|예전에 관련 기사가 나온 것도 있고 그런지]] 5세 아래의 동명이인인 [[남지현]]의 존재가 활동명을 바꾼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MBC LIFE <그녀와 자동차> (2012)
- 송재호(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4남1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2000년 막내아들이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장남 송영춘은 대학생 시절, 아버지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의 속편(1982년) 주인공으로 배우 데뷔를 한 적 있다. 부자가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 주연을 맡은 이례적인 케이스였으나 이후 배우를 그만두고 현재 용인아멘교회 목사로 재직중이다.
* [[케세라세라(드라마)|케세라세라]] - 차형민
- 송진현 . . . . 3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송하윤 . . . . 3회 일치
[목차]
|| [[화차(영화)|화차]] || 한나 || ||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3회 일치
카라와 제임스는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난다. 제임스는 차에 치일 뻔한 카라를 구해주지만 카라는 땅에 부딪쳐서 팔이 부러지고 만다. 아픔을 느낀 카라는 굉장히 괴로워한다. DEO 기지는 젬이 탈출하여 봉쇄된다. 행크는 정신파 차단기를 가지고 젬을 막으려 하지만, 알렉스는 행크의 조치에 의구심을 느낀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의혹을 드러내며, 행크의 지시를 어기고 젬과 상대하러 나가려고 한다. 알렉스는 젬의 능력에 대항할 수 있는 신경 차단기가 행크의 말과는 달리 아직 작동하는 것을 발견한다. 도노반 대원이 젬에게 조종당하여 알렉스를 쏘려고 한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3회 일치
* 소마는 "실력차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하며 담담하게 넘긴다. 그러자 할 말이 없어진 에리나.
* "신의 혀"라는 칭호 때문에 온갖 요리사들이 요리를 선보이러 왔지만, 에리나의 입에 차는 요리는 없었다.
* 정작 센자에몬이나 에리나의 어머니는 아자미의 야망이나 이념에 별로 상관하지 않는 듯 한데,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걸까?--사위라고 하나 있는게 노답 중2병--
- 식극의 소마/174화 . . . . 3회 일치
* 에리나는 이런 모습을 차갑게 지켜보고 있다.
* 이들이 구해온 연어는 여름 연어. 산란기 직전의 연어로서 알이나 이리로 소모되는 영양이 몸통에 꽉차 있어 몸통의 맛만 놓고 치면 최상의 연어다.
* 시험관은 이들의 인맥과 지식에 감탄하지만 어차피 시간 안에 조리는 불가능할 거라고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 식극의 소마/181화 . . . . 3회 일치
* 원래 그는 진급 시험에서 시험관으로 차출된 듯하다.
* 힐책하는 린도에게 "어차피 이제 자신은 십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 그는 하야마가 선발시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성장했다 평하며 지금까지의 소마라면 상대 조차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 식극의 소마/184화 . . . . 3회 일치
* 사정을 들은 소마는 목욕탕을 박차고 나가 "사람을 호구취급하지 말라"라며 "요리 외에 딴데 한눈 팔지 마라"고 일갈한다.
*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소마.
* 그리고 3차시험 당일이 왔다.
- 식극의 소마/189화 . . . . 3회 일치
* 드디어 나온 나키리 일족 특유의 리액션. 소스를 찍은 프라이드 베어는 이전엔 없었던 "풀어헤침"을 유발시킨다. 소우에는 일족의 풀어헤침이 변형된 "터지기"라는 리액션을 구사하는데 문자 그대로 옷이 터져나간다.--그게 뭐야 무서워-- 그 맛을 "공포 조차 느껴지는 맛."이라며 엄청난 완성도를 칭찬한다.
* 베르타와 실라가 다시 소스를 찍은 멘치까스를 시식하는 순간, 소스를 더했을 뿐인데 맛의 표정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소마의 소스 또한 요리의 맛을 끌어 올리는데 단순히 완성도를 더한다기 보단 전혀 다른,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듯한 향상이다. 매우 복잡미묘하면서도 곰고기의 달콤한 풍미를 배가시키는 신기한 소스다. 베르타와 실라는 소스를 다루는 것만큼은 소마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식을 마치는데
* 하야마는 단지 그것만으로 저렇게 극적인 맛이 날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카라멜리제"에 생각이 닿는다. 그것이 정답. 당류를 가열하면 나타나는 산화현상으로 소마는 벌꿀의 카라멜리제를 핵심으로 삼았다. 벌꿀을 카라멜리제 시키고 발사믹 식초를 넣어 점성을 만들고 잘게 썬 마늘과 양파, 오미자를 더해 곰육수를 붓고 간을 맞추는 것으로 소스가 완성. 그 맛은 리액션으로 본대로다. 참고로 이걸 만들고 있을때 쿠가는 옆에서 차나 마시며 빈둥대고 있던 모양.--결국 별 도움은 되지 않는 놈이다.--
- 식극의 소마/190화 . . . . 3회 일치
* 이 같은 상황은 당연히 시오미 준에게도 전해진다. 시오미는 당장 센트럴에서 나오라며 하야마를 타이른다. 하야마는 이 방법 말고는 프로젝트를 존속시킬 방법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시오미는 어차피 아자미가 그런 걸 허용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반박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어떻게든 세미나를 유지하고 준을 지키고자 하는 하야마는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다그치던 시오미는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길 바라지 않았다"고까지 말하는데, 거기에 상처를 입은 하야마는 어떻게든 세미나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된다.
* 대머리 군단은 그제서야 이 꿀을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지 수군대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엔 황벽나무 꿀을 쓴다는 발상도 없었던 모양. 무작정 산을 뒤지며 소재가 될만한건 뭐든 채집하는 하드코어한 수색을 펼쳤다. 쿠가 테루노리는 처음부터 황벽나무 꿀의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하지만 자칭 "쉽게 알려주면 소마가 성장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내며 그냥 차만 먹고 놀고 있었던 모양. 산에서 고생한건 소마와 대머리 군단이다.
*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원점. 시작은 순수하게 시오미를 위한 것이었다. 소년시절부터 시오미의 조리실에 들락거렸는데 어린 그의 요리를 시오미는 진지하게 시식해주고 칭찬도 해주었다. 하야마는 자연스럽게 토오츠키 학원의 정점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식극을 위해 준비하던 요 며칠 간. 그는 요리에 쓸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 무심코 시오미의 의견을 구한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던 시오미는 없다. 그는 그것 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 식극의 소마/196화 . . . . 3회 일치
* [[도지마 긴]]은 죠이치로에게 묘한 버릇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죠이치로는 당시 중1이던 [[시오미 준]] 등 후배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괴식요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시오미는 질색하지만 결국 선배의 권력을 남요하는 죠이치로에게 잡혀 시식의 고통을 맛본다. 그런데 어떤 여학생들은 그 해괴한 맛에 중독돼서 자청해서 먹으러 오는 등 기묘한 흐름이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상적이고 즐거운 생활이었다.
* 그렇게 해서 실현된 50 대 1의 연대식극. 그 자체로 엽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죠이치로는 연승가도를 달리며 상대 진영을 압살한다. 오히려 "10명 씩 덤벼봐라"고 호기를 부리는데 상대가 어떤 수로 나오든 죠이치로는 그 이상가는 발상력과 기술이 가미된 요리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불만자들의 리더였던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도 그의 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를 비롯한 불만자들 진영에선 "어차피 천재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있다.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한 죠이치로. 상대였던 요리사에게 악수를 청하지만 그쪽은 아주 불손한 태도로 "어차피 못 이길 줄 알았다. 천재를 상대로 화낼 수도 없지"라며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 식극의 소마/197화 . . . . 3회 일치
그의 상태를 걱정하던 도지마도 이렇게 나올 때는 그저 기우인 것처럼,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도지마 자신 조차 죠이치로는 어떤 풍파에도 맞서 싸워 이겨낼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 TV에서 조차도 그는 칭송의 대상이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어 요리관련 채널이라면 어디든 그의 이름을 들을 수있다. 그럴 수록 학교 내에서 그를 숭상하는 발언은 수위가 높아지지만, 이 또한 죠이치로 본인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는 무감동한 얼굴로 바라볼 뿐, 다시 그의 여정으로 돌아간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망의 THE BLUE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기대와 기대가 모여서 터무니없는 높이가 되어 있다. 모두가 그를 격려하고 내일의 선전을 기대하는 말들 뿐이다. 그 중에서도 현재 죠이치로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는 것은 후미오 여사 뿐이다. 그녀는 긴말 없이 일단 푹 쉬고 THE BLUE 이후엔 쉬는 걸 고려하라고 말한다. 평소 그를 걱정했던 도지마 조차도 석연치 않은 부분을 감지한 것 같지만 결국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함께 돌아간다. 그를 우러러 보기만 하는 아자미는 "당신의 진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기쁘다"라는, 가혹할 정도의 기대를 떠넘기고 간다.
- 식극의 소마/198화 . . . . 3회 일치
* 소문이 자자한 [[사이바 죠이치로]]가 나타나지 않자 The BULE 회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스텝들은 어떻게든 죠이치로를 찾기 위해 허둥대고 해외에서 그를 보러 왔던 요리사들은 어이가 없다며 "겁 먹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토오츠키 학원에선 그의 실종 소식이 전달되면서 "맨날 수업을 빼먹더니 더 블루까지 빼먹은 건가"라며 경악해 한다. [[시오미 준]]은 그렇다쳐도 이유가 뭔지, 왜 참석 조차 하지 않은 건지 의아해한다. [[나키리 아자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에비사와 리코]]는 그가 적어도 새벽에는 모습을 감췄을 거라고 추론하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더 블루가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면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니냐"고 불길한 소릴 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던 학생들도 진지하게 자해나 자살을 떠올리며 우려한다.
* 도지마는 이렇게 그를 찾는 시점이 돼서야 죠이치로의 행동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다. 죠이치로가 괴식요리에 푹 빠졌던 것은 일종의 휴식.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올라도 만족이란 것을 몰랐으며 더 높고, 더 완벽한 요리를 요구했다. 거기에 응하야 한다는 부담감, 그걸 요리로 이어가는 피나는 노력은 "천재"라는 한 마디로 일축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괴식은 그렇게 평가받는 요리에서 도피처로 이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 조차 하지 않게 됐을 땐 "도망치는 것 조차 할 수 없이 궁지에 몰린" 상태였던 것이다.
- 식극의 소마/210화 . . . . 3회 일치
* [[잇시키 사토시]]가 펼친 놀라운 실력은 적들 조차도 할 말을 잃게 만든다.
* 잇시키의 솜씨에 놀란건 카와시마만이 아니다. 적 십걸들 조차도 그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으며 에이잔 같은 경우는 저 실력만 잘 활용하면 돈을 무한대로 벌 수 있는데 왜 센트럴에 반역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탄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다. [[코바야시 린도]]는 [[시라츠 쥬리오]]에게 지지말고 실력을 보여주라고 응원하는데, 정작 시라츠는 잇시키의 본실력에 감동해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다. 이 위험분자는 잇시키의 기술이 아름답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자기 조리까지 잊어버린다. 어쨌든 린도는 쥬리오가 기죽지 않고 의욕이 생긴거 같다고 잘됐다고 생각한다.
잇시키는 죽은 생선을 손질하듯이 너무 간단히 배가르기를 해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도 히사토의 해설을 듣고 보니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이 난다고 감탄한다. 그러는 한편 평소의 알몸 에이프런 차림에선 상상도 못했다고 수군거리는데, 그 말을 들은 [[나키리 아리스]]가 비서코, 니쿠미라는 별명을 부르며 "알몸 에이프런"이 뭐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둘 다 별명을 부른 점에만 투덜대고 정작 "알몸 에이프런"에 대해선 노코맨트를 고수한다.
- 아돌프 히틀러 . . . . 3회 일치
이후 [[독일 제국]]로 건너갔는데, 그 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제국군에 자원하였다. 이때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적도, 영국군 병사가 히틀러를 쏘지 않고 살려보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 제국의 패배로 끝나 왕정이 붕괴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진 후,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일명 나치당에 가입한다. 이후 그는 나치당의 중심적 인물이 되었다.
1945년 4월 30일.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가 눈 앞에 닥치자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시체는 측근들이 화장했다.
- 아키즈키 리츠코 . . . . 3회 일치
== 2차 창작 ==
* 사실 리츠코가 전업 프로듀서로 나온건 2와 애니마스 뿐. 하지만 2차 창작에서는 대부분 전업 프로듀서다. 왜일까 원포올에서 복귀했음에도 복귀를 그리는 작품이 드물다.
* 대부분의 2차 창작에서 상식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디어리 스타즈의 세계관을 적용하면 리츠코는 사촌 남동생을 여장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버린 코토리도 소름끼쳐할 변태다. 디어리 스타즈가 상당히 흑역사이기는 한데 아무튼 이쪽도 존재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으므로, 이 점은 대부분의 세계관에서 변하지 않게 된다. 765프로덕션에서 숨은 최강 변태.
- 안지만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6차 5라운드([[삼성 라이온즈]])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5순위(전체 4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5년]]에 [[오승환]]과 함께 불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며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권혁]], [[정현욱]]과 함께 불펜의 '안정권' 트리오라는 별칭이 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200005 오치아이 코치가 바라보는 안정권 트리오] - OSEN</ref>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4홀드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8월 17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우완 [[투수]]로써 최초의 100홀드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77859 삼성 안지만, 우완 투수 최초 100홀드 대기록] - 스포츠조선</ref> 그리고 [[2014년]] 프로 데뷔 12년 만에 FA 자격을 획득하여 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원으로 총액 4년 65억에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재계약하였다. 그 뒤 [[2015년]] [[6월 5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 개인 통산 150홀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해외원정 불법도박 혐의로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년 한국시리즈]]에 승선하지 못했고 [[2015년 WBSC 프리미어 12|2015년 프리미어 12]]에도 탈락하였다. [[2016년]] [[7월 20일]]에 검찰로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자금 투자와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다음날 계약 해지를 발표함에 따라서 유니폼을 완전히 벗게 되었고, 구단에서 퇴출되었다. 퇴출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중화 타이베이]]([[중화민국]])와의 결승전에서 1점차로 뒤진 7회말 [[양현종]]으로부터 무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삼진 1개를 잡아낸 후 뒤따른 두 타자를 모두 외야 플라이로 처리하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냈고, 8회에도 등판하여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이때 위기 상황에서 등판할 시 자주 나오는 기합소리가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고, 이 경기를 통해 팬들로부터 '안순신'이라는 별명을 받았으며, 결승전 MVP로 선정되었다.
- 연광철 . . . . 3회 일치
1994년부터 2004년 까지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런던 로얄오페라, 파리 바스티유,바이로이트 음악축제, 잘츠부르크 음악축제등에서 베토벤, 베르디, 바그너, 푸치니, 구노, 도니제티, 모차르트 등의 오페라와 음악극을 공연하고 있다.
가곡의 해석에도 일가견이 있어 정명훈의 반주로 <겨울여행(Winterreise)>를 소니 레이블로 출반하기도 했다. 그의 독일어에 대한 해석은 시대와 지방에 따른 뉘앙스와 억양의 차이까지도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분석적인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JCC아트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성악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 오다 노부나가 . . . . 3회 일치
그 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격파하고 미노 지역을 흡수한 뒤 상락을 단행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일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에치젠 지역을 공격하다 매제 [[아자이 나가마사]]의 모반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포위망'을 펼쳐 견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치 및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차례차례 타개해 나가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후에 서쪽의 [[모리]] 가를 공략하던 도중에 혼노지에서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에서 사망하고 만다.
당시 기준으로 여러 방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행보를 보인 인물로, 상공업 촉진을 위해 [[관문]]을 철폐하거나 종교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등 선진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군사적으로 최강은 아니었으나 이를 전략적인 밑그림을 통해 역전시켜 다른 다이묘들을 차근히 압도해 나갔다. 한편 성정이 폭급한 부분이 있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왕]]'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으나 사적인 부분에서는 당대 기준으로 오히려 자상한 부분도 보인다.
- 오세창 . . . . 3회 일치
위창 오세창은 [[1864년]](고종 1년) [[8월 6일]] [[한성부]] 출생으로, 중국어 [[역관]](譯官)이자 구한말의 선각자로 잘 알려진 [[오경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 아버지 역매(亦梅) [[오경석]]은 역관으로 [[숭록대부]](崇祿大夫, 종일품)까지 올랐으며, 구한 말의 개화당의 이론적 지주이기도 했다. 그의 집안은 [[역관]] 가문으로, 대대로 외국어를 익혀 개화 사상에 일찍 눈을 뜬 중인 집안에서 자란 데다 개화파의 거두인 스승 [[유홍기]]의 영향까지 받아 자연스럽게 개화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인용문2|청년시대의 제우(諸友)<br><br>먼저 청년시대의 나의 동무들을 말하면... 그때 동경에 망명하였든 인물들은 [[박영효]], [[조희연]](군부대신 다니든 분), [[장박]](대신 지난이), [[유길준]](수상 지낸 이), [[권영진]](나의 중씨로 [[경무사]]), 유세남(내무차관 다니든 이), [[김옥균]], 그러고 우리 동렬로는 [[조희문]], [[이범래]], [[우범선]], [[이두황]], 유혁로, 신응희, 정난교, [[윤효정]], 오세창 또 우리보담 조금 늦어 들어온 소장파에 이신(李申), [[유동렬]], [[권석하]], [[이동휘]] 등 제인물이 있었다. 이 가운데는 1,2차 대면에 끈친 이도 있었지만은 대개는 여러 번 만났고 일도 도모하여 본 분들로 비교적 사람됨을 알 수 있었다.<ref>서정민, 《이동휘와 기독교》 (연세대학교출판부, 2007) 161페이지</ref>}}
- 우건도 . . . . 3회 일치
[목차]
2015년 말 더불어민주당 지방자치행정위원으로 임명되었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충주시장으로 재도전하나 후술할 미투 운동에 휩쓸렸다. 본인도 강력히 부인했고 흐지부지되었지만 최종적으로 1.33% 차의 격차로 패배했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앞두고 사실상 미투 파문을 시인함으로서 선거 후 소환조사를 받는 등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나버렸다.
- 우라센케 . . . . 3회 일치
* 차남 이치오우 소우슈(一翁宗守) : 칠기 가문에 [[양자]]로 나갔다가 돌아왔다.「무사시노코지 센캐(武者小路千家)」를 일으켰다.
삼천가가 나누어진 연유는, 소우탄이 은거를 결정하면서 그가 거주하던 후신안(不審庵)을 삼남 소우사가 이어받았으며 소우사의 후손은 오모테센케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소우탄은 후신안의 뒷편에 콘니치안(今日庵)을 지어서 살게 되었는데, 이것을 함께 거주하던 사남 소우시츠가 상속받아 소우시츠의 후손은 우라센케로 불리게 된다. 오모테는 앞, 우라는 뒤라는 뜻으로, 콘니치안이 후신안의 뒷편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쉽게 풀이하면 "앞집 센가", "뒷집 센가". 그리고 차남 소유슈는 나중에 돌아와 이보다 좀 더 남쪽에 있는 무사시노코지라는 거리에 칸큐안(官休庵)을 지어 다도에 전념하게 된다. 그래서 무사시노코지센케로 불리게 되었다.
여러 다도 유파 가운데서도 명성이 높다. 특히 우라센케는 16대 센 겐지츠(千玄室)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親王)의 차녀 마사코 내친왕(容子内親王)과 결혼하여, 황족과 인척 관계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 황족, 일본을 [[국빈]]들이 와서 다도를 배우기도 한다.
- 운니의 차 . . . . 3회 일치
구름(雲)과 진흙(泥)의 차이라는 뜻.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뜻으로서, 우리 말로 '천양지차'와 비슷하다.
- 원피스/833화 . . . . 3회 일치
* 상디는 어린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전사만을 가치로 여기는 제르마에서는 낙오자 취급을 받고 가족들 조차도 그를 학대한다.
* 상디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돌아오는건 차가운 독설.
* 그가 아는 제르마 조차 과거의 군대라고 일갈하는 저지.
- 원피스/834화 . . . . 3회 일치
* 단지 브룩과 페드로에 대해서는 행방을 모른다고 하는데, 어차피 둘에 대한 수배전단도 만들어져 있어 시간문제다.
* 사실 타마고 남작은 페드로의 옛 콤비. 병정들에게 페콤즈를 찾으라고 지시하고 혼자 차를 마신다.
* 하지만 페콤즈는 그 제안을 걷어차고 벳지는 그가 정에 너무 얽매여서 이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 원피스/839화 . . . . 3회 일치
* 욘디는 "차라리 양쪽 다 없애버리는게 돈을 더 벌 수 있는거 아니냐"고하는데, 그건 "해적이나 다를바 없는 짓"이라는걸 보면 나름 프라이드와 원칙은 있는 듯.
* 그러나 니디는 그걸 "거지 근성"이라 일축하며 상디를 걷어차려 한다.
* 저지는 상디의 그릇됨에 "박차"가 가해졌다며, "이 남자"의 악영향이냐고 묻는다.
- 원피스/841화 . . . . 3회 일치
* 그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이 붙여져 있어서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들 조차도 누구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고 있다.
* 그러던 어느날, 형제들이 상디가 있는 감옥을 알아차린다.
* 그러던 차에 자기가 알아서 사라져준다니 다행이라는 것이다.
- 원피스/845화 . . . . 3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를 태운 고양이 마차가 스위트 시티를 지나고 있다. 시민들은 크래커의 복수전을 벌일 "분노의 군단"이 편성됐다고 소리치며 그들의 진군로를 피해주고 있다. 니디, 욘디는 그 군단이 밀집모자 일당을 처리하기 위해서 가는 거라며 시시덕거린다.
* 루피 쪽에서도 분노의 군단이 다가오는게 확인된다. 나미는 물론 킹 바움 조차 조금만이라도 피해있자고 간청하지만 루피는 결심을 굳힌 상태다. 드디어 군단 쪽에서 루피를 발견, 임전태세에 들어가지만 루피는 상디가 오기 전엔 한 발짝도 움직일 마음이 없다.
* 홀케이크 성에선 푸딩이 상디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푸딩은 루피 일행과 했던 약속에 대해 말하고 상디를 데려가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 상디는 어차피 자신은 해변에 가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며 그녀의 사과를 사양한다. 푸딩은 초대장 때문에 그런 거라면 자신이 죄를 뒤집어 쓰는 걸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빅맘이 도망칠 것같은 결혼상대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 말하는데, 설명 들을 것도 없이 상디 본인이 폭발수갑을 보여준다. 상디는 이미 빅맘이 손을 써놨다고 말하며 지금껏 얼굴을 씌우고 있던 마스크를 벗는다.
- 원피스/847화 . . . . 3회 일치
인간까지 컬렉션으로 책 속에 보관하는 모습에 그 비정한 빈스모크의 형제들 조차도 인상을 찡그린다. 빈스모크 저지는 자신이 이곳에 와서 다양한 종족과 생물을 봤지만 딱 하나 "거인족"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 그러자 한순간이지만 빅맘이 발끈해서 인상을 구긴다. 하지만 곧 안색을 바꾸며 "어쩌다 보지 못했을 것"이라 얼버무린다.
뜻밖에 격노하는 빅맘. 나미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빅맘은 어디있는지 당장 불라며 킬러를 보내겠다고 한다. 심지어 "아직도 부모자식인줄 알다니 기가막히다"는 발언도 한다. 빅맘은 자식은 부모맘을 모른다며 로라를 "역대 최고의 결혼 상대를 걷어차고 도망친 멍청한 딸년"이라 매도한다.
>난 진작에 "카이도"도 "빨간머리"도 "흰수염"조차 박살내고 지금쯤은...
- 원피스/854화 . . . . 3회 일치
* [[샬롯 몬도르]]는 오페라의 증언을 의심해서 독자적으로 순찰 병력을 차출한다.
침입자들은 이렇게 정리됐다 치고 상디와 빈스모크 일가도 문제가 없다는걸 확인하자 몬도르는 모든 방해꾼이 사라졌고 결혼식 준비만 무사히 마치면 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역시 오페라를 신용할 수가 없어서 따로 병력을 차출해 일대를 감시하게 한다.
발끈한 상디는 일갈과 함께 보빈을 걷어차 버린다.
- 원피스/857화 . . . . 3회 일치
* 상디는 루피가 대뜸 그렇게 말하자 당황한다. 자신의 사정만으로 일행에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들린다. 브룩, 캐럿, 쵸파는 루피와 상디가 싸웠다는 얘기를 듣고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는거 아닌가 걱정했다며 대성통곡을 하며 기뻐한다. 나미 조차도 상디가 돌아오는 걸 기뻐하는데 상디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이렇게 말한다.
루피 조차도 그런 이야기는 오싹하다고 하는데, 그 오싹한 부분은 조직 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돼있다. 벳지는 영역이나 지위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항상 다른 조직의 "보스의 목"만을 노렸으며 항쟁때에도 보스의 목만을 노리는 기괴한 취미를 보였다. 그렇게 상대를 무너뜨리고 철저하게 금품을 빼앗고 이후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패권경쟁이나 뒷배경이 되어주던 권력자들이 당황하는걸 보고 즐기는 것이었다.
루피는 질색하는 것 같았지만 곧 생각을 정리해 "그도 그렇다"며 징베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징베는 그럴 줄 알았다며 껄껄 웃는데, 사실 사전에 나머지 일행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고 일행은 4대2로 이 동맹에 반대했다. 상디 조차도 제정신이냐고 반발, 징베와 나미, 루피를 제외한 일행은 이 해적동맹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 원피스/859화 . . . . 3회 일치
* KK런처는 시저가 직접 제작한 독가스를 치사량 이상으로 때려박는 극악한 생화학 무기. 그러나 이 조차도 빅맘에겐 통하지 않는다.
빅맘의 다과회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다과회의 주역들이 원탁에 둘러 앉을 때 빅맘의 맞은 편은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놓인다. 이것은 빅맘이 가장 아끼는 보물로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 사진은 액자에 담겨 정중히 자리에 놓이며 사진이 놓인 자리엔 누구도 앉거나 건드려선 안 된다. "마더 카르멜"은 미지의 인물로 가족들 조차도 "빅맘의 은인"이란 것만 알 뿐,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폰은 이 인물이 실종됐다고 하는데.
나미는 미끼나 다름 없는 일이라고 반발한다. 그때까지 벳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던 시폰 조차 [[샬롯 로라]]의 은인인 이들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는 없다고 반발한다.
- 원피스/860화 . . . . 3회 일치
징베는 일이 이렇게 되었음을 설명하면서 어인 해적단 동료들은 다과회로 경비가 홀 케이크 성 근처에 집중되는 틈을 타서 도망치라고 지시한다. 부선장 알라딘은 여기에 반발하는데 그대로 뒀다면 징베도 밀집모자 일당과 함께 죽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징베는 알라딘에게 차분히 말한다.
* 다과회 시간에 맞춰서 귀빈들을 태운 돼지마차가 스위트 시티로 들어온다. 내린 사람들은 빅맘의 지인들 중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 뿐이다.
벳지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다. 3장성 [[샬롯 카타쿠리]]. 샬롯가의 차남이자 현상금 10억 5700만 베리가 걸린 괴물. 그는 지그라가 빅맘에게 복수하러 온 "미래"를 보고 그를 쐈다.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3회 일치
이 이야기의 원한대상은 보험금 살해범 아지야마. 첫번째 아내는 만취하여 욕조에서 이사, 두번째 아내는 자동차 사고, 세번째 아내는 투신자살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세번 모두 유유히 풀려났고, 거액의 보험금을 손에 넣었다.
미노리카와는 원한해결사에게 잘 처리했다는 칭찬을 듣고 보수를 받는다. 그날 목욕을 하던 아지야마는 갑자기 엄청나게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바람에 기겁한다. 수리공은 외부에서 주파수 리모컨을 사용해서 조작하는 장난을 친 것 같다고 말하고, 미노리카와가 리모콘을 들고 나와서 음침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위협을 가한다. 다음에 차를 타고 나간 아지야마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서 사고를 당하게 되며, 브레이크 오일이 새고 있었다는 이유로 정비불량으로 감점을 당한다. 미노리카와는 몽키스패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아지야마 앞에 나타나서 수상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어제는 목욕탕, 오늘은 자동차라면서, 마치 죽은 3명의 아내들 같다고 아지야마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에는 '투신자살'을 언급. 미노리카와의 위협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 아지야마는 다가오는 미노리카와를 복도 쪽으로 밀치는데, 미노리카와는 그 순간 복도에서 뛰어내리면서 자신은 '죽어주는 역할'이라는 말을 남기고 떨어져 사망한다.
- 원한해결사무소/4화 . . . . 3회 일치
마사토는 돈문치와 마약봉지를 발견했다가 들어온 야쿠자들에게 걸린다. 마사토의 가방에는 피킹 도구나 면허증이 들어 있고, 게다가 들어오기 전에 원한해결사가 야쿠자의 차에 송곳으로 낙서를 해놔서 완전히 누명을 쓰게 된 것이었다. 야쿠자는 차 수리와 손해배상으로 '3천'을 요구하고, 마사토는 차용증을 쓰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여자가 있다고 말하며 집으로 가게 된다.
- 월드 인 컨플릭트 . . . . 3회 일치
World in Conflict.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제3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실시간전술게임.
* 2단계: 대전차 미사일 진지가 설치된다.
[[냉전]]이 막바지에 달한 1980년대 말, 경제적 위기에 몰린 소련은 서방과의 군비경쟁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 원조를 요청한다. 이를 두고 소련과 서방간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소련은 서베를린을 침공,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 유병수 . . . . 3회 일치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K리그 2010|2010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7라운드까지 무득점으로 일관하다가 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네 골을 터뜨린 것부터<ref>{{웹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13432 |제목=유병수 4골 '펄펄' 6년 만에 진기록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인일보}}</ref> 시작해, 강원전까지 네 경기에서 아홉 골을 몰아쳤다. 비슷한 시기에 [[김영후]] 또한 득점포를 터뜨려 언론은 이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재조명했다.<ref>{{웹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080011 |제목=유병수-김영후는 전생에 부부?...득점 사이클 '비슷'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OSEN}}</ref><ref>{{웹 인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508870 |제목='찰떡궁합(?)' 김영후-유병수, 올해도 경쟁은 계속된다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아이뉴스24}}</ref> 이후 유병수는 대전전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리그 20골을 기록, K리그 최연소 한국인 득점왕과 최연소 20골을 달성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22골을 기록하며 17골을 기록한 [[호세 오르티고사]]를 5골로 따돌리고 [[K리그 2010|2010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1071805472239&ext=na |제목=유병수, 올시즌 정규리그 득점왕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1-07}}</ref> 2011년 2월 22일 유병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2013년 12월까지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2230096 |제목=유병수, 인천과 2013년까지 계약 연장 |출판사=OSEN |날짜=2011-02-23}}</ref>
- 유지인(1956) . . . . 3회 일치
[목차]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남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순위나 수입 순위에서 절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태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태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태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 윤다훈 . . . . 3회 일치
[목차]
* 2015년 MBC [[불굴의 차여사]] - 오달구 역
* 2000년 [[현대자동차]] [[현대 베르나]]
- 윤용현(1969) . . . . 3회 일치
[목차]
이후 1987년부터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94년 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안재욱]], [[이현경]], [[유태웅]], [[최지우]], [[이민영]]과 동기다.]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34003|#]] 데뷔 당시 1년 선배가 [[차인표]], 동기가 [[안재욱]], 1년 후배가 [[정준호]]여서 그런지 방송국 내에서 강한 인상으로 주목을 받았고 특히 [[조형기]]는 "방송 생활 10년만에 강간범 할 수 있는 놈이 드디어 후배로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연기 외에도 2002년에 경기도 일산에서 "도끼와 뻘"이라는 조개구이 전문점을 차려서 나름 성공한 맛집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식당경영은 친형에게 맡기고 2018년부터 세종시에서 "오티움"이라는 이름의 웨딩홀을 운영하고 있다.
- 윤철종 . . . . 3회 일치
그런데 정작 와보니 연습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홍대거리]] 길바닥에 주저앉아 연습을 하니 사람도 몰리고 돈도 벌어 '어? 이거 괜찮은데?' 싶어 알바도 다 끊고 --[[버스킹]]-- 길거리 연습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권정열의 성량이 웬만한 앰프를 쓴거보다 커서, 멀리서도 들리는 목소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그렇게 '''6개월'''을 길거리에서 보내다 보니 겨울이 됐는데, 추운 날씨를 피해 그들이 눈길을 돌린 곳은 [[홍대거리/공연장|라이브 클럽]]이었다. 연주를 하려면 팀 이름이 필요하다길래 대강 '''10cm'''[* 두 사람의 키 차이에서 따 왔다.]로 짓고 활동을 했다. 근데 그 이름으로 유명해지다 보니 바꿀 수도 없고 여차저차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 윤휘 . . . . 3회 일치
[[1618년]](광해군 11년) [[5월]]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 겸 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여 체차되었으나 다시 성절사로 임명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이 기간 중 [[누르하치]]와 [[여진족]]의 움직임을 수시로 장계를 올려 조선 조정에 보고하였고, 염초(焰硝)를 구해서 [[조선]]조정으로 보냈다. 그 뒤 [[공조]][[참판]]·[[예조]][[참판]]을 역임했다.
[[1618년]] 궁궐 영건 도감 제조가 되고, [[1621년]] [[승문원]]제조의 한사람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공조 참판, [[1622년]] [[의금부]]당상, [[비변사]]의 유사당상, [[예조]][[참판]]이 되었다. [[1623년]] 초, 차언심(車彦諶) 등과 함께 역적으로 몰려 죽은 [[허균]]의 노비들을 차지하여 자신의 노비로 부리다가 [[박홍도]] 등의 공격을 받고 스스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광해군]]이 이를 듣지 않았다.
- 은혼/582화 . . . . 3회 일치
* 아무리 유효타를 날려도 우츠로는 되살아나며 목이 꺾였는데도 죽지 않는 걸 보고 "이 자를 상대하기엔 살아있는 것 조차 방해다"라고 생각한다.
* 우츠로의 칼이 우미보즈를 깊게 찌른다. 우츠로조차 그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데, 그는 "매달리는건 그만뒀다. 불사신의 영혼을 육체에서 끄집어내는 것이니 이쪽도 맨몸으로 치고 받을 각오를 했다."며 우츠로의 심장을 찔러 움켜쥔다.
* 용맥의 불사신들은 별과 함께 태어나 그 별의 아르타나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체내의 아르타나가 다하면 사라지고 만다. 비록 황안은 이미 죽음의 별이라 아주 적은 결정석만을 구할 수 있었고, 이것 조차 잠시 생명을 연장하는 정도 밖엔 되지 않았다.
- 은혼/607화 . . . . 3회 일치
* 어느 순간 진선조 대장진 조차 재치고 중심인물이 되어버린 야마자키 사가루.
* 긴토키는 이들을 세금도둑이라 까고 히지카타는 어차피 그동안 급료도 못 받았다고 티격태격한다.
* 막 포격하려던 함선들이 연막이 폭발하며 공격이 차단된다.
- 은혼/613화 . . . . 3회 일치
단은 문화를 무시할 수가 없으니 그 자체에는 반박을 못하지만 칭코가 큰 것만으론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안보론으로 맞선다. 그러나 그 자신이 열폭해서인지 "칭코따위가 다 뭐냐"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네스는 "지금 폐하도 칭코 큰 것만으로 왕위에 오르셨는데 무시하냐"고 따진다.--예송논쟁이네-- 네스는 은근슬쩍 "칭코 큰거 빼면 물만 남는 양반"이란 폭언도 끼워넣는데 단은 어떻게든 반박하기 위해 달리 좋은 점을 찾아내려 하지만 택시를 잘 잡는거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네스는 그 조차도 칭코가 큰 덕이라며 논쟁의 승기를 잡아간다.
* 모든 것을 갖췄던 형을 떠올리며 "왕이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라 자조하는 바루카스. 하타는 그 말을 부정하며 "형님은 그 못지 않다. 단지 칭코가..."라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무심결에 그의 결점을 찔러버린게 돼서 사과한다. 바루카스는 너그럽게 용서하며 이 평화에 시대는 하타처럼 상냥한 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여기에 있는다면 왕위를 놓고 내전이 일어날 테니, 지금의 평화조차 지킬 수 없는 인물이라 자학한다.
* 그의 발언을 듣고 하타 황태자와 그 부하들은 물론 무전으로 상황을 전해듣던 자작 제독과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까지 경악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오우고쿠 행성과 지구의 동맹. 하지만 사카모토 조차 이런 상황에서 가능할리 없다고 여긴다. 그 멍청한 하타 황태자도 고작 지구인들을 위해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란 소리냐고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가츠라는 단지 동맹이 되라는 거지 싸우란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노리는건 해방군이 "설마 지구에도 동맹이 있었다니"하고 동요하는 것. 일시적으로 해방군의 이목을 끌고 나면 그대로 달아나든 말든 상관없다. 일시적으로 생긴 틈으로 해방군 본부를 단숨에 점령, 전쟁을 멈춘다는게 카츠라의 구상이다.
- 은혼/621화 . . . . 3회 일치
* 그때 뜬금없이 [[쿠로고마 카츠오]]가 팔자에도 없는 안경을 쓰고 나타난다. 그는 겐가이포는 자신과 흙탕쥐파 야쿠자들이 만든 거라 주장한다. 그는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어떻게 만든 건지 말해주라고 부하들을 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나 부하들이나 일자무식한 인생이라 "덧셈 뺄셈으로 만들었다"는 황당한 대답 밖엔 나오지 않는다. 카츠오는 그걸 한심해하지만 어차피도 그도 도찐개찐이다.
어차피 내막은 잘 모르는 소타츠는 정말 니가 만든 거냐고 물으면서도 "구구단도 못 외는 바보들이 저런걸 만들었을리가"하며 의심한다.
* 해결사 일행은 곧바로 계단으로 뛰어오른다. 긴토키가 먼저 난간을 넘어 뛰고 [[시무라 신파치]]가 뒤따른다. [[가구라]]는 신파치를 차서 추진력을 붙여주고 신파치는 먼저 뛴 긴토키를 발판 삼아 한 번 더 도약한다. 아슬아슬하게 추락하는 타에에게 손이 닿을 것만 같은데.
- 은혼/623화 . . . . 3회 일치
지로쵸는 짭새나 막돼먹은 여자한테 손대는 부하같은 건 둔 적이 없다며, 어차피 저런 놈들은 자기 손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다면서도 지금은 일단 짭새랑 한 판 붙어보고 싶어졌다고 말하며 시비를 건다.
* 첫 대결은 지로쵸의 패배. 접전이었지만 타츠고로는 지로쵸의 부하들까지 때려눕히고도 일어서 있었다. 그날 씁쓸하게 포장마차에 앉은 지로쵸 옆에 타츠고로가 찾아와 술을 권한다. 오토세는 그렇게 주먹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내들을 지켜본다.
타츠고로는 자신은 혼자 멋대로 사는데 너무 익숙하지만 지로쵸는 가족을 꾸리는데 이미 익숙한 오야붕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지로쵸는 피차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지 모르는 얼간이들이지만, 눈 앞에 있는 놈이야말로 반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거라 믿는다고 자조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겐 더 빠른 길이 있다.
- 은혼/630화 . . . . 3회 일치
* 다츠마는 병력차는 있을 지언정 자신들은 이미 모함 내부에 있고 현재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모함을 제압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황과 자신들의 메시지를 지구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천도중]]으로부터 사람과 별을 해방한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그들의 대외와 전혀 달랐다. 병사들 조차 그걸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싸우는 대상은 천도중이 아니다. 그런 싸움을 위해서 동료들을 희생한다니? 그것은 천도중이 한 짓과 같은 짓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총구를 겨눈 자든, 그저 당황한 자들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 끝내 부하들 조차 등을 돌린 엔죠 황자. 그는 의외로 간단히 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전쟁에 대의란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대의란 것 자체가 이유가 없으면 싸우지 못하는 약자를 위해 준비된 궤변에 불과하다. 설사 천도중이 쓰러져도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목에 걸고 있던 팬던트를 연다. 그가 잃어버린 사랑했던 사람. 엔죠 황자가 사진 속의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 은혼/641화 . . . . 3회 일치
* 해방대 함대의 총공세는 수위를 높여가고 귀병대 함대는 점차 밀려난다. 아군함이 급격히 줄어들자 귀병대 대원들은 사력을 다해 전선을 지키며 [[다케치 헨페이타]]가 어떻게든 작전을 성공시킬 거라고 믿는다.
* 신스케는 영웅이다. 영웅이란 죄많은 생물이다. 함께하던 동료의 시체와 쓰러뜨린 적의 시체를 쌓아올려 밟고 가는 잔인한 생물이다. 그럼에도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자들. 그렇기에 그 등에 이끌린 사람들이 영웅을 쫓아 앞으로 나아간다.
반사이의 모습이 무너진 잔해 뒤로 사라졌다. 이제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반사이가 무전으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수비가 엄중하다면 차라리 적을 이쪽으로 집중시킬 테니 신스케와 마타코가 선행하라고 말한다. 물론 신스케가 납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사이는 자신도 곧 뒤따라가겠다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비록 복부의 총상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지만.
- 이갑성 . . . . 3회 일치
[[1951년]] [[5월 16일]] [[이시영]] [[부통령]]의 사퇴로, [[부산 피난지]]에서 열린 [[제2대 국회]]에서 실시한 제2대 부통령선거에서 여당격인 [[대한국민당 (1948년)|대한국민당]] 소속 [[부통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 재적 국회의원 210명 중 재석의원 151명에 의해 선출된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1949년)|민주국민당]] 소속 [[김성수 (1891년)|김성수]]와 경합했는데, 1차 투표와 2차 투표에서 당선표수 미달, 3차 투표에서 73표를 얻어 낙선, 78표를 얻은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3회 일치
2013년 3월 13일 [[AFC 챔피언스리그 2013]]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데뷔하였고, 후반 22분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비록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였으나, 당시 팀은 어린 선수 위주로 출전 명단이 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주목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데뷔골’ 이광훈, 측면 공격수 경쟁 점화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61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3-14}} }}</ref>
[[K리그 클래식 2013|K리그]]에서는 4월 13일 6라운드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K리그 클래식 2014|2014 시즌]]에는 차츰 출전을 늘려가는 듯 보였으나,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8월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ref>{{뉴스 인용 |제목='대전 임대' 이광훈,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어야죠"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1/sp2015010809201993650.htm |출판사=스포츠한국|date={{날짜한글화|2015-01-08}} }}</ref>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년 만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이란과의 8강전에서는 결승골을 성공시켜 한국의 4:1 승리에 기여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FC U-19챔피언십)한국, 이란 꺾고 4강 진출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4822065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12-11-12}} }}</ref>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는 후반 5분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왔으나 실축해 한국의 4강 진출이 실패되었다 .<ref>{{뉴스 인용 |제목=(U-20 월드컵) 빛나는 용병술, 이광훈 천금 동점골...현재 2-2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2001848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3-07-08}} }}</ref>
- 이민호(1969) . . . . 3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3년/신인드래프트|1993년]] 2차 3순위 지명 ||
[목차]
1993년 빙그레 이글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3년에는 [[강석천]]의 백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한화 타선에 [[박지상]]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식]]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고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이상호 (1989년) . . . . 3회 일치
[[10월 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 [[차우찬]]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977238 NC 이상호, 차우찬에게서 데뷔 첫 홈런] - OSEN</ref>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2경기에 대주자로 출장하였으나 도루실패를 2회 기록하였다.<ref>[http://www.sportsseoul.com/?c=v&m=n&i=126252 준플레이오프 2차전, NC 이상호 뼈아픈 도루 실패] - 스포츠서울</ref>
- 이열희 (1924년) . . . . 3회 일치
[[1954년]] [[소아과]][[의사]]이자 [[내과]][[의사]]였던 [[박부남 (1931년)|박부남]]과 결혼했는데, 그는 구한 말, 일제 강점기에 [[도지사]]를 지낸 해악 [[박중양]]의 손녀이며, 상주,청도[[군수]] 등을 지낸 [[박문웅 (1890년)|박문웅]]의 차녀였다.
[[1963년]] 치과의학회 경상북도지회장에 선출되었다. [[1963년]] [[8월 1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 논문 "인태아(人胎兒) [[소화기]]계의 [[점액]]선에 대한 발생학적 급조직 화확적연구"를 제출하고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3월 3일]] [[경북대]] 의대 부교수로 승진하였다. [[1967년]] [[10월]] [[대한구강악안면외과협회]] 제9차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에서 부회장에 선출되어 [[1969년]] [[10월 17일]]까지 재임했다. [[치과]]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한 그는 경북대 의과대학에 치의학과 재설치를 꾸준히 청원하게 됐다.
*** 사촌매부 : [[서정귀]](徐廷貴, [[1919년]] ~ [[1974년]]), 4대·5대 국회의원, 재무부 차관(1960년), [[호남정유사]] 사장 역임
- 이인영(정치인) . . . . 3회 일치
[목차]
참고로 이때 20대 총선에서 이인영이 고향인 충북 충주로 사실상 '''하방'''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2016년 당시 충북 충주는 민주당에게 사지(死地)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이시종]]이 충북지사로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을 사퇴한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64% 이상의 득표를 했던 것. [* 다만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34.4% vs [[홍준표]] 30.4%로 문재인이 약 4%차로 승리했다.] 이인영이 아무리 야당 당대표 경선까지 출마한 나름 거물일지라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 지역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최근 각 종교단체는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는 종교시설을 활용하여 문화복지의 증대를 도모하는 봉사적 차원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도들과 일반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고 있음. 특히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종교시설은 부족한 문화기반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 그러나, 현행법에 따른 생할문화시설의 범위에는 종교시설이 누락되어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상·재정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종교시설은 유휴공간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음. 이에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종교시설을 포함하고 공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임(안 제2조제5호)]
- 이장훈(배우) . . . . 3회 일치
드림: 평범하였고 있던 청소년 시기를 거쳐 검정고시를 통해 어간을기 틀카 이장훈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가수로서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한다.
*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영화감독 역 (특별출연)
- 이정훈 (1963년)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2차 1순위([[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198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7년 신인 지명]]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내야수]] [[강기웅]]과 [[류중일]]을 1차 지명해, 연고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신인 첫 해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냈고,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다.
- 이주호 (1961년) . . . . 3회 일치
* 2009년 1월 ~ 2010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직책 =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이혜숙(영화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 [[돌아온 황금복]] - [[차미연(돌아온 황금복)|차미연]]
- 이홍우(1959) . . . . 3회 일치
|| '''경력''' ||[[민주노총]] 사무총장[br][[진보정의당]] 최고위원[br][[정의당]] 노동위원장[br][[현대자동차]]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br][[심상정]] 대통령후보 노동선대본부장[br][[정의당]] 경기도지사 후보 ||
[목차]
현대자동차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 이훈(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1994년 MBC 특채 탤런트로 들어와 드라마 데뷔작인 [[서울의 달]]에서 차인근 역을 맡으면서 꽤 인기를 얻었지만 아래 서술할 조규찬 폭행 사건 등 여러 가지 폭력시비가 잦아서, 한때는 '''[[김창렬]]보다 앞서서''' 연예계 폭력사건의 대표 인물이 되는 바람에 이제는 배우보다는 돈만 된다면 사채광고도 마다 않는 '''생계형 연예인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 [[서울의 달]] - 차인근
- 일곱개의 대죄/185화 . . . . 3회 일치
* 십계는 물론 공격을 당한 에스타롯사 조차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따라가질 못한다.
* 상대의 전투력이 지금까지 이상으로 부풀어 오르자 에스타롯사 조차 경악한다.
* 차회 제목은 "리오네스 방위전"
- 일곱개의 대죄/201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홈을 가진 디안느와 킹은 십계 조차 압도한다.
* 하지만 그 공격은 그로키시니아의 몸을 가진 킹에겐 닿지도 않는다. 킹은 "내 디안느에게"라고 분개하며 강렬한 일격을 카르마디오스의 배에 꽂아넣는다. 그 위력에 십계 조차도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 십계 조차 압도하는 요정왕과 거인왕의 "본래 힘"을 깨달은 킹. 지금의 자기들이라면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자신감을 얻는다. 한편 쓰러진 카르마디오스는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진 않았다. 그는 일행을 "여신족의 개"라고 비하하며 독설을 내뱉는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3회 일치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한 발 먼저 고서의 퇴로를 차단했다. 고서가 측정한 요정왕의 전투력은 41600. 고서는 도망치던 것도 잊고 단기간에 이토록 전투력이 급상승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킹은 그런 질문을 듣는거 자체로 만족하지만 곧이어 고서가 "그 조그마한 날개 때문이냐"고 날개 크기를 걸고 넘어지자 분개한다.
>정신차려 고서!
* 사건이 일단락된 후, 디안느는 그럼 "마법의 심장"은 뭐였던 거냐고 멀린에게 물었다. 그녀는 십계 고서가 자신을 인형이라 한탄하는 아들을 위해 준비한 부적 같은 거였을 거라고 답변한다. 그러는 동안 멜리오다스와 반이 도착한다. 하지만 상황이 끝나서 그들의 차례는 없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서 [[에스카노르]]도 도착. 지쳐서 다죽어가는 판이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3회 일치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어차피 그도 집결한 대죄의 적은 못 된다고 얕보는데 멀린은 적을 과소평가 말라며 과잉반응한다.
* 일곱 개의 대죄가 당면했던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종결되고 일행이 다시 뭉쳤다. 무너졌던 돼지의 모자정도 리뉴얼을 완료하고 일곱 개의 대죄 재집결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렸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와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도 참석. [[에스카노르]]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떨고 마시기에 바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시낭송이 끝나고 에스카노르가 울적해하지만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만은 좋은 시였다고 호응한다. 하지만 어차피 잔반 처먹느라 제대로 듣진 못해서 "바람에 춤추는 백성의 외침"이란 싯구를 "바람에 춤추는 잔반"이라고 들었다.
* 다시 술잔이 한 바퀴 돈다. 디안느는 문득 성전시대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을 고서에게 물었다. 대체 진짜 고서는 어떻게 성전을 종결지었냐는 것. 할리퀸도 자기도 궁금했다고 말을 보탠다. 하지만 고서는 난처한 기색이다. 그리고 성전시대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른 인워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어지간히 지식이 있는 멀린이나 당시 참전했던 멜리오다스 조차 고서가 직접 성전을 끝냈다는 말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일단 에스카노르가 "여신족이 자신들의 몸을 희생해 마신족을 봉인해서 끝났다"는 전승을 읊는다. 멜리오다스는 "어둠의 관"을 혹시 고서가 만든게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멀린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건 거인 명공 "다프즈"란 인물이 만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3회 일치
그저 많이 닮은 타인이 아니었다. 멜리오다스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다시 태어난 엘리자베스라는 걸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인간의 모습이었고 멜리오다스를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상관 없었다. 그는 무수히 걷어차이고 거부 당하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곁을 따랐다. 결국 그의 열성에 엘리자베스가 항복했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진 못했지만, 둘은 친구가 되었다.
* 마신왕과 최고신은 힘을 합쳐 무서운 저주를 내렸다. 영원의 삶과 영겁의 윤회. 멜리오다스는 죽음 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는 더는 자라지도 않게 된 그 육신으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인간으로 되살아나 극히 짧은 삶을 반복하며 그때마다 모든 기억을 잃는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는 순간 그 누가 어떻게 보호해도 그녀는 3일 후 반드시 죽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저주가 정말 잔인한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 멜리오다스가 통곡하려는 디안느를 달래며 지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환기시킨다. 디안느는 슬플 지언정 그걸 잊진 않았다.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에서 차원의 비틀림을 부숴야 한다. 단원들이 슬픔을 나눠준 것일까? 멜리오다스는 한결 평소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3회 일치
걷어차인 킹이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헬브람의 투구가 지켜준 덕에 직격만은 면했지만 의식을 잃었다. 고서가 상태를 보려고 다가갔는데, 그는 할리퀸 곁에 찌그러져 있는 투구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곧 멀린이 다가과 상태를 물어서 깊게 신경쓰지 못했다.
* 원념이 일행을 괴롭히는 방법이 직접 공격만은 아니었다. 고서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가 소중한 동료의 멋대로 하게 두지 않겠다고 말하자 원념은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흉악한 크기의 전투망치는 쓸모가 많다. 가령 이 날카로운 모서리로 사용자의 머리를 찍는다던가. 원념은 그걸 실행에 옮겼다. 일행은 기겁하면서도 쉽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반이 "스내치"를 사용해 보지만 힘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할리퀸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그것도 할리퀸 밖에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 임관빈 . . . . 3회 일치
||<#ffa500><:> {{{#ffffff '''주요보직'''}}} ||<#ffd700> 국방대학교 총장[br] 육군 참모차장[br] 수도군단장[br] 제6보병사단장 ||
[목차]
준장시절 육군 제2군단 참모장, 육군본부 비서실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육군 기획관리참모부 정책처장을 지냈다. 소장진급 후 제6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정책홍보실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이후 중장으로 진급하여 수도군단장과 육군참모차장, 국방대학교 총장, 국방부 정책실장을 지냈다.
- 임대윤 . . . . 3회 일치
|경력 = [[민주당 (대한민국, 1991)|민주당]] 대구동구(갑)지구당 위원장<br/>[[민주당 (대한민국, 1991)|민주당]] 총재비서실 차장<br/>대구·경북지방자치연구소 이사<br/>제일리서치 이사장<br/>제22·23대 [[대구 동구청장|대구광역시 동구청장]]<br/>[[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 1비서관<br/>[[더불어민주당]] 대구광역시당 위원장<br/>[[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 1992.06 ~ 1994.02 민주당 총재비서실 차장
* 1992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공보차장·홍보특보
- 임은정(법조인) . . . . 3회 일치
[목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0799|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상당히 의외인 인터뷰인데 검찰 내에서 언론과 대응하는 공식 직책은 차장검사로 차장검사를 제외하고는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언론과의 접촉이 금기시 되는 게 검찰 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윤리강령상 이런 인터뷰는 기관장 승인 사항이다. 또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특정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의 ‘사건’에 대한 인터뷰가 아닌, 검찰 전체에 대한 비판을 SNS에 쏟아냈던 임은정 검사의 평소 견해를 중심으로 이뤄진 인터뷰였기 때문에 훨씬 더 이례적이다. 임은정 검사도 인터뷰에서 “대검찰청에서 (인터뷰) 허락을 해주다니 얼떨떨하다. 정말 세상이 좋아졌나 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천지개벽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도가니 사건, 백지구형 사건 등 여러 뒷이야기들과 검찰과 검찰 개혁에 대한 임은정 검사의 얘기와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시라면 역시랄까, 이 인터뷰를 가지고 상부에서 뭐라고 했다고.[[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273053|#]]
- 장민호 (1962년) . . . . 3회 일치
* [[1989년]] 1차 밀입북
* [[1998년]] 2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입국
* [[1999년]] 3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입국
- 장석조 (판사) . . . . 3회 일치
1961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대전고등법원]] 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는 등 민사, 형사, 행정, 헌법재판소 근무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으며, 집행절차에 있어서의 채무자 보호, 판결의 편취와 절차적 기본권, 우리 헌법상 절차적 기본권, 조세법상 실질과세원칙의 적용한계, 헌법과 민사소송법, 민사재판과 헌법적 판단, 재판받을 권리의 헌법상 보장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2008년에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을 받았다.
- 장은숙 (가수) . . . . 3회 일치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활동 후 1995년 일본 [[토라스레코드]]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로 일본 무대로 진출하였고, 그 후부터 '장수(チャン・スー)'라는 예명을 사용하였다.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첫해 일본 유선 방송 신인상을 받았고,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 으로 방송 및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상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장의 앨범 판매 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지금까지 20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2015년 5월에 발표한 "눈물의 공항 대합실"을 포함해 총 14곡이 유선방송 1위에 랭크되었다.
현재 일본 [[테이치쿠 레코드]]에 소속되어 있으며, 2009년부터는 일본에서의 활동명을 본명인 장은숙(チャン・ウンスク)으로 바꿨다. 2003년에는 연예 기획사인 "오피스 장수"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점차 한국에서의 활동 비중도 늘리고 있다.
- 전상우 (1953년) . . . . 3회 일치
* 2004.10 ~ 2006.01 : 특허청 차장
|직책 = [[대한민국의 특허청 차장|특허청 차장]]
- 절대가련 칠드런/433화 . . . . 3회 일치
* 이차저차해서 화장실에 데려다 주는데 오래된 열차의 화장실이라 오물이 선로에 그대로 버려지는 구조였고, 바깥에서 칠드런이 대기하고 있던 탓에 마츠카제의 사회적 입장이 끝장날 뻔 했다.
- 정기고 . . . . 3회 일치
'''정기고'''(Junggigo, {{본명|'''고정기'''}}, [[1980년]] [[9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큐빅 (Cubic)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정기고는 2002년 [[넋업샨]]의 제의로 [[아이에프]]의 "Respect You (Urban Night Mix)"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ref name="interview">[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94151.htm 피처링으로 경력 다진 정기고 "이제 제 이름 알려야죠"], 《스포츠서울》, 2011년 12월 18일</ref> 그 후에도 [[데프콘]], [[재지 아이비]] 등 여러 힙합 뮤지션의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명성을 쌓아가던 정기고는 2005년 재지 아이비와 2인조 힙합 그룹인 서울스타 (Seoulstar)를 결성하고 1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나 그 후에 서울스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2006년 [[더 콰이엇]]의 "그 남자 그 여자"에 참여하며 정기고 (Junggigo)라는 예명을 큐빅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ref name="interview"/> 정기고는 그 후에도 [[이루펀트]], [[에픽하이]], [[매드 클라운]], [[도끼 (가수)|도끼]] 등과 작업을 지속하며 보컬 피쳐링 아티스트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 "Byebyebye"를 발표했고, 2012년까지 총 5장의 싱글 음반을 발매했다. 2011년에 발매한 "Waterfalls"는 영화 《[[오싹한 연애]]》의 공식 티져 영상에 삽입되어 화제를 모았다.<ref>[http://www.newstown.co.kr/?m=newstown&bid=bd&cat=bdj&uid=108452 정기고, 영화 오싹한 연애 OST 'WATERFALLS' 발매], 《서울타운》, 2011년 12월 2일</ref> 2013년 12월에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47433 "정기고, 매드클라운 이어 씨스타와 한솥밥 “숨은 보석”" 《스포츠월드》, 2013년 12월 4일]</ref> 그 후 2014년 2월 7일, [[씨스타]]의 [[소유 (가수)|소유]]와 "썸"이라는 곡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썸"은 공개 즉시 8대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2015년 1월 28일 제4회 《[[가온 차트 K-POP 어워드]]》([[소유 (가수)|소유]]&[[정기고]]) -〈썸〉올해의 가수상 2월 음원부분, 올해의 롱런 음악상
{{가온 차트 K-POP 어워드 - 올해의 가수상 음원}}
- 정몽헌 . . . . 3회 일치
그는 현대가의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형제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었는데, 이후 [[2002년]] [[9월]]에 5억 달러 [[대한민국의 특별검사제도#대북송금 특검법|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2003년]]에 검찰 조사를 받았고, 추진하던 [[현대아산|대북사업]]의 차질과 현대그룹의 경영 악재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 1975년 11월 ~ 1977년 1월 현대중공업 차장
**** 차녀 : 정영이 (1984 ~ )
- 정진호(1956) . . . . 3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3년/신인드래프트|1983년 1차 지명]] ||
[목차]
은퇴 후에 태평양 수비코치를 시작으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현대 유니콘스]] 수석코치를 맡았다. [[김재박]] 현대 감독이 LG로 부임하면서 오랜 기간 현대의 수석코치를 맡았던 정진호도 현대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김재박을 따라 [[LG 트윈스]]로 갔다. LG에서도 수석코치로 있다가 2009년 말 김재박을 이어 [[박종훈(1959)|박종훈]]이 신임 감독이 되면서 정진호도 LG에서 나왔다. 2010년 7월, [[이광은]]을 이어 연세대 야구부 감독이 되었다.
- 정혜선(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김희애]]와 [[전광렬]]하고 모자(녀) 관계로 수 차례 출연한 인연이 있다. 김희애의 경우 [[1991년]] 산너머 저쪽, [[1993년]] [[아들과 딸]], [[2003년]] [[완전한 사랑]]에서 모녀관계로 출연했으며, 전광렬의 경우 [[1999년]]판 [[허준(드라마)|허준]], [[2010년]] [[제빵왕 김탁구]], [[2017년]]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모자관계로 출연했다.
* [[밥상 차리는 남자]] : 34회에서 이루리 [[고모]] 역으로 특별출연하였다.
- 정흥채(배우) . . . . 3회 일치
[목차]
1987년 연극 '''끝없는 아리아'''를 통해 연극 배우로 데뷔하였다. 주로 연극 분야에서 활동하다 32세이던 1996년, SBS 드라마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서 주연 임꺽정 역을 맡아 무명을 씻고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단발성이긴 하지만 그간 [[백일섭]]이 전담하던 [[우루사]] 광고까지 따냈다.] 큰 체구와 부리부리한 눈매 때문인지 사극에 출연할 때는 [[차지철|힘세고 무식한 개그 캐릭터]]나 우직한 장수 역으로 등장할 때가 많다.
2004년 MBC [[영웅시대]] 차지철 역
- 조재윤 . . . . 3회 일치
* 2014년 [[KBS2]] 《[[KBS 드라마 스페셜]] - 부정주차》 - 한정훈 역
* 2010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그대를 사랑합니다]]》 ... 군봉 차남 역
* 2017년 《[[비정규직 특수요원]]》 ... 박 차장 역
- 존 루터 존스 . . . . 3회 일치
1900년 4월 30일 오전 3시, 존스는 [[미시시피]] 본에서 열차 충돌로 사망한다. 그는 열차가 충돌하기 전까지 경적을 울리며 제동기를 작동시켰다고 전해진다. 이로인해 기관차의 속도가 최대한 감속되었고, 이 사고의 사망자는 존 루터 존스 한 명 뿐이었다.
- 존 헨리 . . . . 3회 일치
미애니 "마이 리틀 포니 프랜드쉽 이즈 매직"에서 애플잭 일가와 플림플럼 형제의 사과주스 만들기 대결 에피소드에서도 존 헨리의 이야기가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민담에서 비슷한 인물로 벌목꾼의 영웅적인 인물인 '폴 버니언' 같은 것이 있다. 다만 폴 버니언은 미국 서부 개척사를 대변하는 상징인 반면에 존 헨리는 산업화의 여파로 희생당하는 하층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이라는 연구가 있다. 이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 중년 이후에 그 간 무리한 탓에 건강이 손상되어 고통을 받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서, 80년대, 셔먼 제임스라는 청년 연구가가 소작농 출신 존 헨리 마틴이라는 사람의 사례를 기초로 하여 “존 헨리 척도”를 제안했다. 이는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는 등의 문항에 얼마나 동의하느냐 하는 것으로 측정된다.([[http://newspeppermint.com/2017/01/31/john-henryism/ 참조]])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는 흑인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던 현상인데, 기계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이야기 속의 존 헨리처럼 존 헨리이즘은 현실과 싸우다가 스스로 피폐해진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3회 일치
현실적으로 보자면, 한줌 밖에 안 되는 대만 밖에 영토가 없는 중화민국과 중국 전토를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애초에 압도적인 존재감 차이가 있었고, 결국 모든 나라들이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상태였다.
[[대한민국]]에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6.25 전쟁]]에서 [[적]]으로 여겼던 [[중공]]이 아군으로 여겼던 [[UN군]]에 들어가서 단번에 유엔 상임이사국의 자리까지 차지해버렸기 때문. 대한민국은 애초에 유엔가입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반대표를 던지지도 못했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3회 일치
* 모두가 그 작전 때문에 공포에 몸부림치며 죽어갔다. 프록 조차 숨이 붙어 있는 엘빈을 찾아냈을 땐 죽이려고 생각했다.
* 그리고 한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인건 끝없는 지옥도.
* "다들 무언가에 취해있지 않으면 해먹을 수 없는 거겠지. 다들 무언가의 노예였어. 그 녀석[* 레이스 왕가의 힘을 계승했던 "울리". 로드 레이스의 동생이고 케니의 친구였다.] 조차도..."
- 진격의 거인/85화 . . . . 3회 일치
* 리바이는 혀를 차고 엘렌이 설명을 제대로 못했다고 걷어찬다.
* 그 괴로워하는 모습에 아르민을 살린 엘런과 미카사 조차 죄책감을 느낀다.
* 베르톨트는 벽 안 인류를 "악마의 자식들"이라 불렀고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짐승거인 또한 차이는 없는 듯. 따라서 바깥 인류와 벽 안 인류는 적대관계로 추정할 수 있다.
- 진격의 거인/87화 . . . . 3회 일치
* 그의 동료, 처음으로 그리샤와 접촉했던 복권파인 그라이스가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끌려온다. 그리샤가 무심코 그를 부르자 그라이스는 곧 그리샤를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는 왜 지크가 자신들을 밀고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그리샤가 아무 말도 못하는게 더 화를 돋궜는지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파냐고, 그리샤의 교육이 잘못됐던게 아니냐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리샤는 깐죽거리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는 놈이 아니었다며, 다이나와 복권파를 이런 놈에게 맡긴게 실수였다고 한탄한다. 그리샤가 얼 빠진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의 절망을 부채질할 뿐인지 힘없이 "왜 이런 녀석에게..."라고 중얼거리며 엘디아는 끝이라고 내뱉는다.
클루거의 거인이 그리샤를 거쳐 엘런에게 전해진 걸로 보인다. 그런데 어차피 정체를 드러내면 조직을 포기하게 되는 셈이며 마레로 복귀하는 것도 자동으로 포기하게 된다. 그런 그가 굳이 그리샤에게 거인을 계승시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어지는 전투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서 그랬다는 설도 있지만, 그는 사전에 그리샤에게 "거인으로 변하는 방법"을 보여주면서 가르치고 있다. 이미 다음 계승자로 선택했다는 얘기다.
- 진종채 . . . . 3회 일치
|| 16대 [[김종수]] || → || 17대 진종채 || → || 18대 [[차규헌]] ||
전두환의 후원자여서 그런지 12.12 군사 반란 이후 세 명의 야전군 사령관 중 유일하게 유임되었고[* 12.12 군사반란 당시 야전군 사령관은 김학원 제1군사령관(중장), 진종채 제2군사령관(대장), [[이건영]] 제3군사령관(중장)이다. 이 중 반란군에게 호의적이었던 진종채 제2군사령관을 제외한 제1, 3군사령관은 반란 이후 보직 해임되었다. 그리고 제1군사령관에는 반란군의 회유에 넘어갔던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이, 제3군사령관에는 반란군의 핵심 맴버였던 [[유학성]] 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가 임명되었다. ] [[1980년]] [[대장(계급)|대장]]에 진급하였다. 제2군사령관 임기 중이던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의 계엄군의 지휘계통 상에 있었지만 발포 명령 여부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유혈 진압에 있어서 진종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 차승재 . . . . 3회 일치
| 이름 = 차승재
'''차승재'''([[1960년]] [[3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영화 프로듀서|영화 제작자]]이다. 2012년 현재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원장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8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교육학 학사(졸업)<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B0%A8%EC%8A%B9%EC%9E%A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08544 차승재-네이버인물정보]</ref>
- 창작:좀비탈출/4-1-2-1 . . . . 3회 일치
하긴 생각해 보면 놈들에게 "소리"가 감지되는지는 알 수 없다. 관찰에 따르면 놈들은 개인차가 상당하다. 그야 부패 정도나 생전의 몸 상태가 영향을 줄 거란건 명백하다. 하지만 고막은 어떨까? 안구나 피부는 썩어 버린다. 고막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야 호되게 싸다귀라도 맞으면 터지겠지만 놈들이 그럴 일이 있을까? 설사 고막이 있더라도 자극을 느낄 뇌가 녹아 버린 놈들이 소리를 들을 수는 있을까?
토트넘이 담을 넘고 있었다. "그놈"들이 개인차가 있다지만 어떻게 저런 동작이 가능한 걸까? 생전엔 담장공사 가지고 주거침입이라며 악을 쓰던 인간이 몇 주 동안 우리 집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단 거야? 이런 X같은 꼰대!
토트넘이 나를 봤다. 눈깔이 남아 있다면 봤을 거다. 어쨌든 녀석은 나에게 똑바로 다가오고 있다. 담장을 넘는게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만 죽어라 차대더니 죽어서도 하체는 튼튼한가 보다. 보통의 놈들에 비해서 빠르고 정확한 걸음을 하고 있으니까. 그 썩어 문드러진 면상만 아니었다면 프로 입단이라도 권해야겠어.
- 창작:좀비탈출/5-1 . . . . 3회 일치
토트넘이 다가오는 순간 그 속도와 무기의 위치와 내가 손을 뻗는 속도의 차이에 대해서 계산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 머리를 괴롭히는 사이 몸은 직관적인 행동을 취했다. 자세를 낮추고 팔을 뻗어 손아귀에 싸늘한 손잡이가 잡히는 동안, 토트넘은 '''정확히 2m 앞'''에 있었다.
부지깽이 끝을 헤벌어진 주둥이로 찔러넣었다. 생각해 보면 그러다가 이빨에 손가락이라도 물리면 끝장인데. 아니, 그런 생각하고 있을 겨를이 어딨어. 어차피 아차하면 끝장이라고. 그대로 토트넘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송곳처럼 찔러 들어간 골프채가 입천장을 부수고 녀석의 정수리로 튀어나왔다. '''그르륵-''' 녀석들 특유의 울림이 멈췄다. 녀석은 뒤로 쓰러지고 나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녀석을 짓밟고 시맨트 바닥으로 쓰러졌다.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3회 일치
'''무기는 전혀 없다.''' 이럴 줄이야. 설마 그럴 듯하게 쓸 수 있는게 단 하나도 없을 줄이야. 창고에 있는 물건 중에 그나마 길죽한건 마당 쓸 던 플라스틱 빗자루가 전부다. 길이는 약 1m에 죽창만한 강도 조차 기대할 수 없는 물건이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무기가 없이 돌아다닐 방법은 없다. 사실 무기가 있다고 해서 돌아다닐 맘이 나는건 아니지만, 안전면에서 차원이 달라져 버린다. 토트넘의 습격을 막을 수 있었던건 허접하게나마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나는 두 가지를 배웠는데, 하나는 녀석들이 썩은 채로 걸어다니는 그냥 인간이지 캡틴 아메리카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놈들이라도 때려눕히려면 뭔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기는 녀석들 이빨이 내 목덜미에 닿기 전에 막을 수 있도록 충분히 길어야 한다.
물론 매번 외출할 때마다 완전무장을 할 수는 없다. 뭣보다 이 방치복은 혼자 입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당장 돌아다니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장차 농삿일을 비롯해 작업을 시작하면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이꼴로 작업을 하다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찜구이가 되겠지. 녀석들에겐 포장도 못 뜯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고.
- 천호진 . . . . 3회 일치
| 차 반장 역
| 황놀부 차남 황대철 역
| 차 반장
- 최성원(가수) . . . . 3회 일치
[목차]
대학 재학 중이던 1979년 고려대 동문인 이영재, 이승희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이영재, 이승희, 최성원'에 참여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우리동네전시회'라는 프로젝트 앨범에도 솔로 가수로 참여하였다. 고대 동문이자 친구였던 조덕환[* [[들국화(앨범)|들국화 1집]]에 최성원과 함께 참여하였다. 1집에서 '[[세계로 가는 기차]]', '[[축복합니다]]',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등이 그의 곡이다.]과 이영재는 1978년 [[대학가요제]]에 '고인돌(코리아스톤스)'이라는 밴드명으로 참가했지만, 최성원은 거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 생각으로 대학가요제는 그저 학예회일 뿐이며, '음악하는 장'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1983년 들국화에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였다. 이후 잠시 빠졌다가 다시 합류하여 1985년 [[들국화(앨범)|들국화 1집]] 앨범작업에 참여하였는데,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리스트 1위를 차지한 전설적인 명반이 되었다. 최성원은 여기서 1집에서 가장 유명하며 아직도 명곡으로 회자되는 '[[그것만이 내 세상]]', '[[더 이상 내게]]', 1집에서 전인권과 최성원이 유일하게 듀엣으로 부른 노래인 '[[사랑일 뿐이야]]', 자신이 메인보컬이 되어 부른 노래이고 그것만이 내 세상과 함께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곡 '[[매일 그대와]]' 등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였다.
- 최영이 (종교인) . . . . 3회 일치
포장은 그녀가 배교하고 동료 [[천주교]]인들과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종교]] 물품들의 주인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였다. 최영이는 배교치 않았고, 교우들과 알고 지내기에 자신은 너무 젊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녀는 2 차례의 [[주뢰형]]을 260 여대의 [[태형]]을 받았다. 그녀는 [[형조]]에서도 3 차례의 [[형벌]]과 [[고문]]을 견뎌내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인용문2|[[순교]]로 제 부모를 잃었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하지만, 제가 [[천국]]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위로가 되며 [[순교]]의 특권을 주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최은희 . . . . 3회 일치
[목차]
1943년 극단 <아랑>의 연구생이 된 후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데뷔, 연기력과 미모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다. 이 때 촬영기사 김학성과 만나서 동거했다.[* 최은희가 언니처럼 잘 따르던 선배의 남동생이었다. 나이차이가 열 살 이상 났고, 김학성 슬하엔 자녀도 있었다. 다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결별. 이 때 최은희는 서울에 있다가''' [[심영(배우)|심영]]'''[* 우리가 아는 그 ~~[[내가 고자라니|고자]]~~심영이 맞다. ]에게 '''1차로 납치된다'''.--[[내가 고자라니|내가 납치범이라니]]-- 하지만 [[청천강]] 인근에서 탈출했는데, 이 때 '[[북한군]]에게 [[윤간]]당했다.'라는 괴소문이 돌게 된다. 문제는 이후 국군을 따라 위문공연을 하고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진짜로 [[한국군]]에 의해서 [[성폭행]] 당했다는 것이다. 윤간은 아니지만 머리에 총을 겨누고 성폭행했다니 빼도박도 못한다. 이는 최은희 본인의 증언에 의한 것이다.
- 카치구미 . . . . 3회 일치
* 카치구미(勝ち組)는 '승자조'라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는 "어떠한 분야,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을 뜻한다. 반댓말은 마케구미(負け組)로서 '패자조'라는 의미이다. 21세기에는 [[연애]]나 [[인생]] 같은 분야에서도 흔히 쓰이게 되었으며, 특히 [[중산층]]이 '격차사회'가 되면서 '카치구미'에는 '인생의 승자', '성공한 1%' 같은 의미가 따라붙게 되었다. 한편, 또 다른 의미의 '카치구미'가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이겼다고 믿었던 브라질의 일본인 이민자 그룹'''. 간단히 말하자면 '''미친놈들'''(…) 1945년 부터 브라질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가운데 90% 가량이 일본의 승리를 믿고 발광과 폭동을 벌였던, 미친 사건이다.
1940년대 무렵 [[브라질]]에는 [[일본인]]이 약 30만 명 가량 거주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브라질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여 양국은 적대관계가 되었으므로, 브라질과 일본은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브라질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 캡틴 아톰 . . . . 3회 일치
와일드스톰 세계관을 여행중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타락]하고 [[슈퍼맨 프라임]]과 싸우다가 에너지를 감당 못하고 폭발해서 차원 하나를 날려버리며 사망. 그러나 돌아왔다.
여담이지만 대체 방사능 슈트의 설정이 어떻게 된건지 몰라도 무언가 폭탄이 터지려 함->캡틴 아톰이 폭발 자체를 몸으로 흡수해 막음->캡틴 아톰 사망한 듯?->하지만 그 폭발 에너지로 인한 다른 차원, 시간 여행중->현실 세계에서 또 폭탄 큰게 하나 터짐->그 속에서 캡틴 아톰이 돌아옴.
패턴만 벌써 네다섯 번 반복된 캐릭터다.(...) 그래서 요녀석이 죽어봐야 "또 어디서 여행 중이겠지" 하고 다들 쿨하게 넘긴다. 그리고 장례식조차 안 치러준다! 캡틴 아톰은 절대 죽지 않을거라고 다른 히어로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기때문에...이거 기뻐해야 하나?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3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했던 [[마르첼로급 잠수함]]. 이탈리아해군의 [[잠수함]]으로 시작해 독일해군을 거쳐 일본제국해군의 잠수함으로 함생을 마쳤다. 이런 함생 때문에 코만단테 카펠리니 뿐만 아니라 아퀼라 III, UIT-24, I-503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1939년 9월 23일, [[이탈리아]] [[라스페치아]]에서 코만단테 카펠리니(Comandante Cappellini)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 해군에 취역하였다. 함명의 기원이된 알프레도 카펠리니는 제3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당시 리사 해전에서 전사한 해군 장교였다.[* [[http://www.marina.difesa.it/storiacultura/storia/medaglie/Pagine/CappelliniAlfredo.aspx]]]
1940년 7월 1일,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이후 [[대서양]]에서 통상 파괴 작전을 수행한다.
- 콘도 마코토 . . . . 3회 일치
『어차피 죽는다면 암이 좋다(どうせ死ぬなら「がん」がいい)』(나카무라 진이치(中村仁一)와 대담)출판
『임차료로 살해당하지 않는 7가지 비결(がん治療で殺されない7つの秘訣)』 『여생 3개월이란 거짓말(余命3カ月のウソ)』출판
* 차녀[[윤수영]]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 . . 3회 일치
[[액티비전]]에서 발매하는 [[FPS]] [[게임]] 시리즈.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FPS로 시작했다가 현대전을 다룬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가 성공하며 배경 시간대가 미래로 가고있다. 결국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에서는 [[우주]] 진출.
트레이아크 제작.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최후의 2차대전 배경작. [[태평양 전쟁]]과 [[독소전쟁]]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슬렛지해머 제작. 다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돌아왔다.
- 킹덤/499화 . . . . 3회 일치
* 조 서부 공략군으로 지칭된, 실제론 "업 공략"을 위한 연합군이 출병한다. 수도의 병사들은 함양이 떠나갈 듯이 성원을 보낸다. 꺼림직하게 여겨지던 산민족이나 환의군 조차 엄청나게 응원을 받는다. 비신대의 활형제를 비롯한 신병들은 긴장으로 위축. 반대로 연을 비롯한 고참들은 자기들이 출세하긴 한 것 같다는 너스레를 떤다.
* 그때 근처에서 [[창평군]]과 함께 [[왕전]]의 모습이 나타난다. 최고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병사들 사이에서 드높은 함성이 터져나온다. 그를 바라보던 벽은 하료초에게 그가 대장군을 맞는 것에 대해 어떻게 여기냐고 의견을 묻는다. 아무래도 벽은 그를 신뢰하지 못한다. 산양전에서 미끼로 쓰였던 전례도 있지만, 그 속 모를 눈빛은 아군 조차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하료초는 자기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 "창평군 조차 왕전의 인간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하지만 그에겐 "그 불안을 채우고 남을 만한 힘"이 있기에 기용되었다고 밝힌다.
- 킹덤/500화 . . . . 3회 일치
이목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조치라고 평한다. 부저는 그 남의 일 말하는 듯한 태도에 "적을 칭찬하고 있을 때냐"고 지적한다. 특히 부저는 양단화가 이끄는 산민족이 개입한 것을 의식하고 있다. [[순수수]]는 이목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태도로 "반대로 이긴다면 큰 타격을 주는 셈"이라고 말한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목은 카이네에게 지시를 내려 수도 한단에 있는 호첩 장군을 움직이게 한다. 호첩은 "왕도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장수로 적이 총력전으로 나오는 이상 이쪽도 최선의 인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수도 회성으로 간 전 이안성주 기수도 불러들여야 한다고 의견을 낸다. 이목이 이를 받아들여 카이네에게 기수에게도 소식을 넣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부저는 곽성에서 1만을 차출해 오도록 한다.
이번 작전은 고소의 기만전술. 흑양으로 출병하지만 실제 노리는건 업이다. 중간에 진로를 바꿔 단숨에 업으로 처들어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세를 흘리거나해서 적이 알아차린다면 시작해볼 수도 없는 작전이다. 이목은 분명 진군 내부에도 밀정을 심어놨을 것이며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면 분명 그 사실이 이목에게 전달될 것이다. 양단화는 그렇게 말하며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충고한다. 그 의미를 이해한 하료초는 감사를 표한다.
- 킹덤/502화 . . . . 3회 일치
* [[벽(킹덤)|벽]]을 비롯해서 당혹하지 않는 지휘관이 없다. 이들은 이번 전쟁은 흑양 공략이고 또 업이라면 우리가 아는 그 업이 맞냐고 재차 묻는다. 왕전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는 하급 지휘관들이 의문을 표할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상황을 전달한다. 준비는 이미 끝났다는 그의 말처럼, 같은 시각 각 부대에는 금안에 축적되었던 병량이 지급되고 있다. 각 부대에선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병량을 수령 중.
* 이신, 왕분, 몽념은 셋이 모여서 조금 늦게 천막을 빠져나간다. 이신은 비신대에 이 사실을 전하면 노발대발하며 꿈지럭거릴 거라고 투덜댄다. 몽념은 어차피 밤이라 목적지를 밝히지 않으면 잘 모를 테니 끝까지 말 안 할 거라고 한다. 그런 문제와 별개로, 이들은 진짜 작전의 시작을 즐거워한다.
몽념은 밤 중이라도 지금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목(킹덤)|이목]]이 알아차릴 거라 본다. 그렇게 되면 양군 중 누가 먼저 왕도에 입성하냐는 경주가 되고 돌이킬 수도 없다. 이신은 첨부터 돌이킨다는 선택지 따윈 없었다며 웃는데 조용히 있던 왕분은 아직 왕도권 돌입이 실현된 것도 아니니 들뜨지 말라고 일침한다. 몽념은 잘 알고 있다며 "그러니 밤새 행군해서 이목을 뿌리치자는 얘기"라고 받아친다. 이신은 이목의 깜짝 놀란 얼굴을 기대하며 또 웃는다.
- 킹덤/504화 . . . . 3회 일치
이후에도 조군의 소규모 부대와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지만 왕전은 그때마다 별동대를 차출해 대응하였고 본대의 행군은 조금도 늦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순조로운 행군 소식은 진의 수도 함양에도 전달된다.
신은 병사들에게 기합을 넣어주려는 듯 "내일이든 모레든 정신차리고 가자"고 힘차게 외친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강외]]는 "모레가 아니라 내일"이라며 맞장구친다.
- 킹덤/506화 . . . . 3회 일치
예상보다 너무 빠른 이들의 진격은 성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비를 간발의 차로 뚫는다. 끄뜨머리의 한 명이 화살에 맞았을 뿐.
* 열미의 성벽을 기어오르는 산민족과 내리찍으려는 열미군이 뒤엉켜 아비규환. 사다리 밑으로 쌓이는 시체를 보며 비신대의 신참들이 몸을 떤다. 이제 문이 열리면 돌입할 테니 그들의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부분은 전투 미경험자인 탓에 어떤 자들은 부담감을 못 이기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그때 [[강외]]가 이들을 진정시키며 긴장을 풀라 한다. 어차피 한동안 성벽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면서.
- 킹덤/516화 . . . . 3회 일치
진군의 행로를 보니 의도가 명확하다. 그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차례차례 성을 점령해갔고 북쪽은 양단화군을 움직여 틀어막았다. 백성들이 갈 곳을 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가는 "동쪽"은 한 곳일 수밖에 없다. 이목이 다시 호주에게 묻는다.
* 마침내 난민 행렬에도 끝이 보였다. 업성의 서쪽 대망루에서도 행렬의 최후미가 육안으로 확인됐다. 진리간도 한숨 돌릴까 하던 차, 행렬을 뒤쫓 듯 봉화가 피어오른다. 총 세 개의 봉화. 세 갈래로 나뉘었던 진군이 전부 업성으로 몰려온다는 신호였다. 부하들이 적습을 알리는 종을 치는 동안 진리간은 진군이 드디어 이만큼이나 깊숙이 들어왔다고 이를 간다.
- 킹덤/518화 . . . . 3회 일치
* 이목은 산민족군이 가진 높은 잠재력을 경계해 신중할 것을 주문하고 장차 [[순수수]]가 도착하면 대장 자리를 이임하라는 것.
셋째, 필요하다면 요양에 "틀어박힌" 주력 부대를 끌어다 쓰라는 것. 이 또한 부관들은 의문을 표시한다. "틀어박혔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지금도 공손룡군은 9만, 양단화군이 5만으로 숫적으로 우세하다. 그런데 증원을 부르라는건 숫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쪽이 불리할 거라 봤다는 것인데. 공손룡은 이목을 대신해 "이목님은 순식간에 최를 해방시켰던 산민족 군세의 실제 역량을 가늠하려 하시는 것"이라 설명해 부하들을 납득시킨다.
>웃지마라. 양단화의 완력이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 킹덤/521화 . . . . 3회 일치
* 마정이 포위. 적 복병의 등장. 기수군에 좋지 않은 소식만 줄을 이었다. 낙화대 병력이 이제 몽념의 별동대로 모여들면서 총 5천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 반명 황각과 마정이 이끄는 기마대가 합류해도 병력차는 두 배 이상. 마정을 잃을게 불 보듯 뻔하다며 부관들이 원군을 보내자고 아우성친다. 기수는 그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으나 조용히, 냉정하게 상황을 다시 되짚는다. 벌써 1천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적의 수가 적다고 얕본게 문제였다. 분명 몽념은 수많은 전략을 능수능락하게 구사하는 인물일 것이다. 지금 펼치는 전술도 기마대의 기동력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 조군의 병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방치하면 외측의 보병대의 출혈을 피할 수 없고 어중간하게 기마대를 써도 덫에 걸린다. 뛰어난 전략적 안목을 옅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병력의 정체는 진군 본진, [[왕전(킹덤)|왕전]]의 오른팔 [[마광]]의 부대였다. 마광군 5천이 급격한 선회로 무방비하게 드러난 좌익을 빠르게 찔러들어왔다. 기수가 오판한데는 중앙과 이곳의 거리차가 큰 점도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빠르게 진군할 줄이야. 하지만 놀랄 일은 지금부터다. 마정의 뒤로 새로운 병력이 다가왔다. 기병 약 5천. 기수가 2파의 도착에 대비해 좌측으로 방어진형 구축을 명령한다. 또 급보. 2파는 기마 5천이 끝이 아니다. 5천에서 1만까지 추정되는 보병 병력까지 따라온다. 최대 2만 병력. 이대로라면 단순 병력 차이로는 여전히 유리하지만 정황상 기수 측이 수세에 몰리기에 기수는 당황하고 만다.
- 킹덤/522화 . . . . 3회 일치
*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가 기수군을 방심시키고 [[마광]]군이 좌익을 찔러들어가는 양동작전. 병력차이를 압도할 정도로 성공을 거둔다.
>이 숫자의 차이와 리안병의 질로 하여금 반드시 승리하리라!
이 호령은 완전히 붕괴할 뻔했던 군의 전의를 되살렸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기수는 거짓말을 했다. 분명 처음에는 3만대 2만의 싸움이었을지 모르나, 낙화대의 유인책에 놀아나고 마광의 기습을 허용한 바람에 병력차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 양군의 총전력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역전된 상황. 기수도 그 점을 모르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같은 선동까지 하면서 군을 물리지 않은건 "오른쪽"에 있는 존재가 너무나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몽념의 낙화대다. 기수는 그들이야 말로 지금 가장 위험한 요소라고 판단했다.
- 킹덤/526화 . . . . 3회 일치
* 옥봉대의 장교들은 눈 앞의 적도 잊어버리고 왕분의 눈부신 기량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에 한 번 왕분을 사경으로 몰고갔던 위화룡 [[자백(킹덤)|자백]]. 왕분은 본래 자신의 기교와 속도에 더해 이제 파괴력은 그 자백을 연상시키게 했다. 그런 파괴력까지 습득한 지금의 왕분은 분명 자백 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장교들이 입을 모은다. 함께 있던 왕분의 부장 [[반양]] 또한 의견을 같이 했다. 자백을 꺾고 더욱 성장한 왕분의 창술은 분명 중화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경지다.
* 마남자는 왕분을 붙잡은 채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 육중한 무게에 왕분이 말에서 끌어내려졌다. 마남자는 왕분의 몸 위로 덮치며 떨어지는 힘을 실어 머리를 내리쳤다. 간발의 차. 왕분이 고개를 뺐다. 그러나 창을 놓친 데다 마남자의 밑에 깔렸다.
* 진의 중앙.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은 이 같은 사태를 아는 것일까? 잠자코 있던 그가 후방에 배치한 [[비신대]]를 불러들였다. 그 지휘관 [[이신(킹덤)|이신]]이 왕전과 독대했다. 이신은 왕전의 부하가 "허가가 있을 때까지 장군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제지했지만 그 말을 무시했다. 왕전은 거기에 개의치 않았고 자기 생각에 잠겨 그가 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뻘쭘해진 이신이 "드디어 우리가 나갈 차례냐"고 막 떠들어대려 할 쯤, 왕전이 입을 열었다.
- 킹덤/530화 . . . . 3회 일치
의지. 비신대는 대장의 의지를 받들어 여느 때보다도 힘차게 깃발을 들어올렸다. [[왕전(킹덤)|왕전]]의 명을 받은 필살의 기동대 진격이다.
기수는 후방의 진을 풀고 최종방진까지 후퇴하도록 지시했다. 부장들은 난색을 표했다. 퇴로를 버리는 결정이었다. 차라리 후방을 그대로 두고 전방의 [[마정]]을 불러들여 본진을 방어함이 시급했다. 하지만 기수는 단호했다. 지금 국면에서 어떤 곳을 다른 곳보다 우선할 순 없다. 정면도 바늘 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명이 무너지면 그거야말로 끝. 부장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현실의 다급함을 지적했다. 지금 최종방진으로 물러난다 해도 채비를 다하기 전에 비신대가 들이닥친다. 기수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그때 유동장군의 친위대 200기가 기수의 고민을 덜어줬다. 그들이 비신대를 저지하기를 자청했다. 아니, 반드시 비신대 대장 이신과 부장 [[강외]]의 목을 따오겠다고 자청했다. 기수는 그 결의를 만류하지 못했다.
* 강외는 정면에서 나타난 유동의 친위대를 발견했다. 그의 깃발이 아직도 펄럭이고 있었다. 유동군이 비신대의 전열과 부딪혔다. 강외는 말 위에서 적들의 칼끝을 피하며 역으로 베어들어갔다. 첫 번째 기마를 베어넘기자 그가 품고 있던 물건이 흘러나왔다. 유동의 인형 "리안의 보모". 강외는 새삼 그가 떠올랐다. 친위대가 주인의 원수를 발견하고 핏대가 올랐다. 강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닥쳐오는 모든 적을 차례대로 베었다. 여느 때보다 더 정교한 솜씨. 그 검무를 펼치는 강외의 심정을 신만은 이해했다. 유동의 친위대를 베고 난 뒤, 이제 목표는 코 앞이었다.
- 토리코/374화 . . . . 3회 일치
* 청귀는 데빌 포크로 재차 공격하고 아카시아는 "구르메 펀치"란 기술로 받아친다.
* 페어는 어차피 말이 안 된다고 죽여버리라고 하는데, 토리코는 덤비라면서 자기도 "맨몸"은 아니라고 한다.
* 스타준은 여유롭게 "보스에겐 마지막에 정신을 차렸다고 얘기해주마"고 말하는데, 갑자기 토미로드와 그린패치가 녹아내리듯 무너진다.
- 토리코/375화 . . . . 3회 일치
* 오오타케는 제브라의 방어막이 약해지고 있는 것을 깨닫고 바깥의 이변을 알아차린다.
* 죠아는 운명따윈 식운이 없는 자들이나 하는 말이라며 발광균으로 그의 시야를 차단한다.
* 블루 니트로 아톰은 팔왕 전원이 집결하고 있다는걸 알아차린다.
- 토리코/377화 . . . . 3회 일치
* 아톰은 문의 뱃속은 완전한 이차원이라 빨려들어가면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빨리 백채널로 탈출하라고 외친다.
* 그때 네오의 신체 조차 녹이는 독이 뿌려진다.
* 아톰은 페어를 제지하며 네오는 어차피 몇 분 안에 돌아올 거라며, 그 사이에 이놈들을 철저히 분쇄하다고 한다.
- 토리코/385화 . . . . 3회 일치
* 사탄 홀이란 찌르기 기술이 발사. 그러나 미도라에겐 미동조차 없으며 타격을 주지 못한다.
* 미도라는 언제 어디서나 이것이 그와 함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 식운이 소진된 죠아의 몸부림은 힘엇이 튕겨져 나간다. 미도라는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음에도 죠아는 저항 조차 하지 못한다.
- 토리코/388화 . . . . 3회 일치
* 토리코는 적귀를 먹고 눈물에서 조차 극상의 맛이 났다며 여운에 빠져있다.
* 아카시아는 맛 조차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거라고 말한다.
* 아카시아의 반응으로 보면 이건 상당히 중요한 차이인 듯.
- 토리코/392화 . . . . 3회 일치
* 블루 니트로 페어는 토리코도 그걸 알아차린 거냐고 말한다.
* 토리코의 식운의 힘이 작용해 구르메 핸드, 네오의 식욕 조차 방향을 잃고 흘러가 버린다.
아카시아는 토리코에게 패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네오에게 먹혀 사라질 운명이었다. "진짜 풀코스를 먹으면 된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적합 식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고, 토리코 일행과 싸우며 자아를 먹혀간 걸로 보인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3회 일치
존왕파 정예병 150명. 막부파 근위 보병대와 비교해서 능력치 차이는 없다.
막부파 정예병 150명. 존왕파 근위 보병대와 비교해서 능력치 차이는 없다.
긴 사정거리와 민첩함으로 승부하는 소규모 사격전 부대. 체급의 차이로 전열보병을 대신하기는 좀 그렇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3회 일치
* 네츠케 조각가 달인 - "장인의 손을 거치면 아주 작은 것조차도 완벽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 의지력(Strength of Will) - "주군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자의 마음속에는 확고함으로 가득 차 있다."
* 실각한 야쿠자 - "자신의 배경에 등을 돌린 자는 장차 때가 올 때 최고의 사냥꾼이 된다."
- 특별고등경찰 . . . . 3회 일치
* 1922년 홋카이도, 교토부 외 7현애 순차적으로 설치.
1910년의 통칭 '대역사건'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의식이 심화되어 설치되었다. 당초 사회주의자에 대한 감시를 맡았던 특별고등경찰은 점차 조직이 비대해지고 권력이 강화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도 감시가 심해져서 악명을 떨쳤다.
- 페어리 테일/497화 . . . . 3회 일치
* 처음엔 그레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그레이 조차도 수상한 냉기를 느끼고 경계한다.
* 몸이 얼어붙을 것처럼 강한 냉기. 나츠는 일대를 불살라서 냉기에 저항하는데, 그 불 조차도 얼어붙어 버린다.
* 그레이는 자신 조차 저항할 수 없는 냉기에 크게 당황한다.
- 페어리 테일/509화 . . . . 3회 일치
* 근접에선 무방비하고 생각했던 라케이드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카구라의 검을 막는다. 라케이드는 스프리건12 중 몇 명을 쓰러뜨렸다고 착각에 빠졌다고 빈정댄다. 카구라가 당황해서 연거푸 검을 휘두르지만 어느 것 하나 라케이드에게 상처를 내지 못한다. 라케이드는 여유롭게 방어하면서 자신과 오거스트, 아이린은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현격한 전력차에 카구라는 패배를 예감한다. 라케이드는 바로 그 표정이 좋다고 도발하는데 카구라가 크게 내리친다.
* 카구라의 공격은 여지없이 막히고 단 한 순간에 라케이드의 반격이 날아든다. 라케이드의 손짓만으로 카구라가 베인다. 그 카구라 조차도 이 일격으로 무너진다. 라케이드는 그 고통도 곧 쾌락으로 변할 거라며, 카구라의 "품위없는 마법"이란 말에 수긍한다. 하지만 그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는 거니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카구라의 패배로 유키노 일행이 절망하자 "그것 조차 쾌락으로 물들여주겠다"며 촉수 마법을 다시 사용한다.
- 페어리 테일/522화 . . . . 3회 일치
* 의외로 제레프는 [[나츠 드래그닐]]의 주변인물에 대해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레이가 제레프 자신이 만든 악마 데리오라에 의해 양친을 잃고 마침내 스승 [[울(페어리 테일)|울]]조차 잃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원한이 있다는걸 정확히 알았다. 그레이는 그런 것도 아는건 의외라고 말하는데, 제레프는 "적의 정보를 파악하는게 전쟁의 기본"이라 대답한다.
* 그레이는 그런데 비하면, 자신들은 정말로 제레프에 대해 아는게 없다며 그의 진짜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 제레프는 그런 걸 알 필요가 있냐면서도 "목적은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마력"이라고 순순히 대답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이미 불사에 저만한 군대와 권력까지 가진 그가 그런게 왜 필요하냐고 재차 묻고, 이번에도 제레프는 순순히 대답한다.
제레프는 그 친구를 잃는 거라며 걸어온다. 하지만 그레이는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니까 제레프를 쓰러뜨리겠다고 선언한다. 게다가 그에겐 "죽이지 않고 쓰러뜨릴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여기에 온 이상 그도 비장의 수 정도는 준비해온 터였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3회 일치
* 승부가 끝난 뒤, 정신을 차린 [[메이비스 버밀리온]]이 쓰러진 제레프에게 다가가는데.
* [[나츠 드래그닐]]과 [[제레프 드래그닐]]의 혼신의 힘을 다해 격돌한다. 염룡왕의 붕권 vs 암흑폭염진. 두 힘이 충돌한 후폭풍이 페어리 테일 길드를 휩쓸고 퍼져나간다. 백중세인 듯 보였던 두 힘은 점차 나츠 쪽이 우세했다. 제레프는 자신의 마법이, 시간이 나츠의 불꽃에 타들어가는 걸 느낀다. 나츠는 자신의 영혼을 불꽃으로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안나의 외침처럼 그 강력했던 마룡이 저항 조차 못한 채 시간의 틈새로 빨려들어간다. 아크놀로기아는 뒤늦게 자신을 끌어들이는 힘을 깨달은 것 같지만 대처할 틈도 없었다.
- 페어리 테일/539화 . . . . 3회 일치
*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시간의 틈새 조차 아크놀로기아를 죽이지 못했다. 아크놀로기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라 말한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와 [[엘자 스칼렛]]은 그가 시간의 틈새 조차 먹어치웠다는 걸 직감한다. 마룡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힘을 손에 넣었다. 그는 넘쳐흐르는 시간의 마력에 전율하며 그 자신 조차도 제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원래부터 제어할 의지도 없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멸망을 고하며 이터널 플레어를 충전한다.
- 페어리 테일/541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마법은 물론 물리적 공격 조차 듣지 않고 멸룡마도사라는 대항수단도 없어 논의는 답소 상태. 그때 [[루시 하트필리아]]가 딱 한 가지가 있다고 제안한다.
* 그러나 차분하게 의논할 틈도 없이 아크놀로기아의 침공이 시작됐다. 매그놀리아의 가장자리가 아크놀로기아의 폭격으로 사라진다. 그가 다가오는 길마다 파괴와 소멸이 자행된다.
페어리 스피어가 방어마법이므로 그 자체로 타격을 주진 못하겠지만 그 안에 아크놀로기아를 봉하는건 어떨까? 그게 가능할지 어떨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루시는 이제 할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어차피 다른 기회는 없으니까.
- 페어리 테일/545화 . . . . 3회 일치
* 페어리 테일 길드 전원, 루시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바깥이든 수상식장이든 새기 마련. 자기네 길드에서 하던 대로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흥청망청 마시고 있다. 루시는 파티에 부르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지나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런 건 무리"라며 시원스럽게 약속을 어긴다. 사실 떠드는 정도로 그치면 별 일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기행이 문제. [[가질 레드폭스]]는 파티장의 식기를 "고급철"이라며 뜯어먹는데 사실 [[팬서 리리]]의 말에 따르면 이건 철 조차 아니다. 나츠는 정장을 갖춰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혼자 일상복으로 와있고, 그걸 지적하는 [[그레이 풀버스터]]는 또 어느 순간에 탈의를 자행하고 팬티바람이다. 이 문제로 또 시비가 붙자 [[엘자 스칼렛]]이 두들겨 패서 얌전히 만들고 [[쥬비아 록서]]는 취해서 그레이 대신 벗겠다고 탈의쇼에 돌입. 루시를 위한 파티가 개판으로 치닫는다.
나츠는 둘이 모여있는 걸 보고 새삼 "둘의 냄새가 같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차분해지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가질은 어린 시절 기억이 돌아온 건지 "나츠는 옛날에 안나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정작 나츠는 그래서 어쨋냐는 식이라 오히려 가질이 당황한다.
대망의 완결. 작가는 차기작 구상 중이라 한다.
- 페이데이 2 . . . . 3회 일치
수송차량을 습격하는 Transport 하이스트(의 5개 버전)와 기차에서 프로토타입 군용 병기를 훔치는 Transport: Train Heist 하이스트, 돌격소총(Commando 553), 기관단총(Swedish K), 권총(Gruber Kurz)이 들어있는 DLC
저격소총(Lebensauger .308)과 기관단총(Kross Vertex), 권총형 석궁(Pistol Crossbow), 수리검, 맨손무술, 쌍차, 수갑구, 쿠나이가 들어있는 DLC.
- 편차치 . . . . 3회 일치
일본에서 편차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학력편차치(学力偏差値)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의 표준점수(Standard score)와 비슷하다.
일본에서 학력편차치를 나타낼 때는 대개 50을 중간으로 잡고 정규분포를 나타낸다. 최소값은 25. 최대값은 75.
- 폴리스 . . . . 3회 일치
1893년에 파울러(W.W.Fowler)는 [[도시국가]](city-state)라는 말을 단어로서 폴리스를 표현하게 되었다. 이 표현은 프랑스어(cite-Etat), 이탈리아어(citta-stato)로 퍼져나갔으며,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도시국가(polis-kratos)라는 표현이 나타나게 된다. 반면 독일에서는 '도시국가'와 '폴리스'의 차이점에서 주목하여 폴리스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폴리스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중장보병과 자산 시민 계급은 동일시 되었다. [[스파르타]]는 이러한 체계에 극단적으로 집중하였으며, [[아테네]]는 [[해군]]의 발달과 영향력의 확대로 해군의 노잡이로 복무하는 무산 계급의 영향력이 커졌다.
에게 해 도서 지역이나 이오니아 연안 지역에서는 이주민들이 점차 다른 폴리스를 정복하거나, 계층 분화가 이루어지는 형식으로 발전되었다고 여겨진다.
- 하이큐/231화 . . . . 3회 일치
히나타는 전에 타나카가 "여왕"[* 니야마 여고는 여자배구계의 여왕으로 통한다.]이랑 아는 사이라고 자랑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 타나카는 "니야마 여고의 차기 에이스는 내가 키웠다"고 허풍을 떨었는데 반은 맞는 말이었다. 타나카의 소꿉친구로 초등학교 동창. 4학년 때까지 같이 놀았던 모양이다. 그때도 타나카보단 훨씬 컸다.
* 왁자지껄하게 있던 사이 드디어 봄철 고교 배구 전국 고교 선수권이 개막한다. 개회식이 시작하자 각 현을 대표하는 학교들이 차례로 정렬한다. 카라스노의 학년들은 처음 와는 오렌지색 코트에 감격한다.
* 무사히 체육관에 도착한 카라스노. 사와무라는 평상심을 중얼거리고 있고 스가와라는 그걸 지적하며 놀린다. 시미즈는 아즈마네 아사히가 출입증을 놓고 간걸 챙겨준다. 우카이 코치는 다들 딱딱해 보이지만 상정한 범위라며 오히려 자신이 긴장을 떨치려고 애쓴다. 그런데 히나타가 시합 직전 짐을 뒤적거리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한다. 모양은 같지만 자기 가방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러다 소름 돋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 하이큐/240화 . . . . 3회 일치
* 히메카와의 2회차 서브. TO로 한 번 흐름이 끊겼지만 히메카와의 감각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본래 천장서브란 천재적인 센터였던 "네코타 카츠토시"란 선수가 창안한 것이다. 리시브 시에 조명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낙하 속도가 빨라 정확한 위치를 잡기 까다로운 서브다.
* 히메카와의 3차 서브. 아즈마네가 오버 핸드로 받아내지만 공이 낮게 흐른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바로 공을 살려서 사와무라에게 연결, 사와무라는 스파이크를 칠 듯 하다가 살짝 밀어넣어서 블록을 재낀다. 하지만 히메카와가 직접 그걸 받아낸다. 원래 히메카와는 수비 능력이 뛰어나 발탁된 선수였다. 공수양면에서 대활약하는 히메카와.
* 히메카와의 4회차 서브. 서브가 자기 쪽으로 떨어지자 니시노야는 오길 기다렸다는 듯 "왔다!"고 외친다. 만회할 생각으로 가득했던 사와무라는 내심 실망, 그리고 아즈마네는 자기 쪽으로 안 와서 안심한다.
- 하이큐/245화 . . . . 3회 일치
* 이렇게 노닥거리는 동안 카모메다이 학원의 시합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팀원이 호시우미를 찾으러 온다. 팀원은 호시우미에게 시합 시간이 다 됐다며 감독에게 혼나게 생겼다고 핀잔을 준다. 원래 호시우미는 "근성 웃음 T셔츠"를 사러 왔던 건데 이건 히나타가 산 것과 같은 티셔츠. 호시우미는 끌려가면서 그 티셔츠를 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며 지각 사유를 밝히지만 팀원은 그런건 어차피 호시우미 밖에 안 살 거라고 디스한다.
* 호시우미는 그저 점프가 대단한 스파이커가 아니다. 수비면에서도 리시브와 블록, 위치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활약하는 좋은 선수다.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는 그는 중계진도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 빛나는 활약을 한다. 그 플레이에 관중들까지 단숨에 팬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서브 차례에서 깔끔한 점프 서브로 서브 에이스까지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전천후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봄고 1일차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날 1회전에서만 40개의 팀이 모습을 감췄다.
- 하춘화 . . . . 3회 일치
[목차]
대한민국의 원로급 가수이다. [[1955년]] [[6월 28일]]생. 하춘화가 대단한 이유는 데뷔년도가 6살 때인 [[1961년]] 인지라, [[2015년]] 기준으로 '''나이는 환갑인데 가수 경력은 55년차'''라는 점이다. 참고로 하춘화가 데뷔한 해는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그 해이다. 처음 데뷔했을 때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엘자 렁히니나 [[다코타 패닝]] 저리가라 급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엘자 렁히니와의 차이점은 어른이 되어서 인기가 죽어버린 엘자 렁히니와는 달리 하춘화는 늙어도 인기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남자 가수로서 레전드가 [[조용필]]이라면 여자 가수로서 레전드는 하춘화였던 것이다.
- 한가인 . . . . 3회 일치
| 차우린 녹차
| [[차인표]]
- 한동욱 . . . . 3회 일치
바로 다음 시즌, [[스타리그#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1]] 결승에 오른 한동욱은 전시즌 [[MBC게임 스타리그|MSL]] 우승자 [[조용호]](당시 [[KTF 매직엔스]])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온게임넷 스파키즈로 재창단된 소속팀에 안긴 첫 개인리그 우승컵이었다.
2007년 중반, 한동욱은 재차 슬럼프에 빠지며 개인리그 및 프로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소속팀과의 원만치 못한 관계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이를 둘러싼 e스포츠 팬들의 거센 논쟁과 관심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한동욱, 온게임넷 스파키즈, 이명근 감독을 둘러싼 이른바「한동욱 사태」는 2007년 9월 7일, 한동욱이 [[위메이드 폭스]]로 이적하면서 일단락되었다.
* [[2008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
- 한무숙 . . . . 3회 일치
| 자녀 = 슬하 2남 2녀 <br /> 장녀 김영기(金榮起) <br /> 장남 김호기(金虎起) <br /> 차녀 김현기(金賢起) <br /> 차남 김용기(金龍起)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과 [[한국여류문학인회]] 중앙위원 등을 맡았다. [[1958년]]에 단편 〈감정이 있는 심연〉으로 [[자유문학상]]을 수상했고, 신사임당상(1973)과 [[3·1문화상]](1989) , 예술원상(1991) 등을 차례로 수상했다.
- 한비야 . . . . 3회 일치
* 2014년 [[시사저널]] 2014 차세대 리더 100에 선정<ref>{{웹 인용|url=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3398
|제목=[2014 차세대 리더]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장으로서의 한비야|저자=정리, 안성모 기자|날짜=2014-10-23|출판사=시사저널|언어=ko}}</ref>
** 3권 ** 인도차이나 반도, 남아시아
- 한상대 (검사) . . . . 3회 일치
* 부산지방검찰청 1~2차장
* 인천지방검찰청 1차장
*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 한소정(1984) . . . . 3회 일치
* [[2003년]] [[부산 모터쇼]] [[현대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2007년]] [[서울 모터쇼]] [[쌍용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2008년]] [[부산 모터쇼]] [[현대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한창희(전공기업인) . . . . 3회 일치
[목차]
이시종을 시작으로 맹정섭까지 이어지는 충주시 보수정당 인사의 민주당계 전향자 라인이다.[* 웃긴건, 이시종, 한창희, 맹정섭 3인은 17대 총선에서 각각 다른 소속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넘어온 이시종이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한창희가 한나라당 후보로, 맹정섭은 무소속 후보로.] [* 아울러 한창희나 맹정섭이나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어지간히 섭섭했던 모양인지 그쪽 정당에서 있었던 일 자체를 거의 흑역사 취급하고 있다.]한창희 본인만 해도 열린우리당으로 갈아탄 이시종에게 패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조차 민주당으로 넘어와서 선거를 치뤘다. 그만큼 민주당계 정당이 충주에서 자생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반증일지도. 현재도 차기 총선의 민주당 유력 후보군이다.
- 한호문 . . . . 3회 일치
[[1633년]] [[9월]]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서원군(西原君)으로 호송관(護送官)에 임명되어 사신을 접대하였다. [[10월 4일]] [[명나라]] 사신을 [[모화관]]에서 접대한 것을 보고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1년 계유(1633) 10월 4일(계해)자 12번째기사, "모화관에서 금차에게 연향을 베푼 결과를 보고하는 호송관인 서원군 한호문 등의 계"</ref> [[1636년]] 겨울 [[병자호란]] 당시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으로 인조 등을 수행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1637년]] [[1월]] [[인조]]의 [[정축하성]] 직후 작성된 호종록에 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2월, "일기청 관원"</ref>
[[1637년]]에는 도정(都正)으로 그 해에 열리는 무과 정시(武科 庭試)에 좌참찬(左參贊) 이덕형(李德泂), 지사(知事) 변흡(邊潝), 동지(同知) 한명욱(韓明勖) 등과 함께 무과 정시(武科 庭試)의 명관(命官)으로 선발되었다. [[10월 13일]] 그 해의 무과 정시 합격자가 5천 수백명이라서, 본업무와 함께 합격자를 정하느라 보고가 40일이 지체된 것을 대죄하였으나 인조가 이를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13일(정미)자 16번째기사, "출방할 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잘못이 있으므로 대죄한다는 무과 정시 명관인 좌참찬 이덕형 등의 계"</ref> 이후 부총관(副摠管)으로 전직되었다. [[10월 21일]] 전시의 시관으로 논박을 나갔는데, 즉시 왔어야 하는데 궐문이 닫힌뒤 천천히 왔다 하여 추고를 청하는 승지 김휼의 계에 의해, 추고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21일(을묘)자 18번째기사, "전시의 시관인 부총관 한호문을 추고할 것을 청하는 김휼의 계</ref> 그해 [[12월]] [[도총부]] 부총관과 [[훈련원]]도정으로서 [[예조]]의 인사 포폄을 마감하는 좌기(坐起)에 참석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2월 14일(무신)자 2번째기사, "부호관 한호문이 예조의 포폄 좌기에 나아가므로 표신을 내줄 것을 청하는 도총부의 계"</ref> [[12월 16일]] 이를 두고 [[사헌부]]에서 그가 위인이 용렬하다며 반대했지만, [[인조]]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하여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6일(갑진)자 6번째기사, "사헌부의 계에 대해, 정시웅은 체차하고 엄종남은 추고하라는 비답"</ref>
이후 좌우포장 등 여러 벼슬을 거쳐 [[1637년]](인조 15) 정축 정시무과(丁丑庭試武科)의 시험관을 맡아보았고<ref>정축정시문무과방목 (丁丑庭試文武科榜目, 1637)</ref>, [[1638년]] [[12월 17일]] 장령 안시현(安時賢), 이여익(李汝翊), 지평 박수문(朴守文) 등이 훈련 도정은 무관의 극선(極選)인데 도정 한호문은 평소 이렇다 할 명성도 없고 나이도 늙어 기력이 쇠한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지 이미 오래이므로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손가락질 받는 것과, 일을 처리할 때 거칠고 비루한 행동을 많이하여 위인이 용렬하다며, [[훈련원]]의 장(長) 자리를 결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가 거부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7일(을사)자 7번째기사, "훈련 도정 한호문을 파직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2월 19일]] 장령 안시현(安時賢)ㆍ이여익(李汝翊), 지평 이운재(李雲栽) 등이 다시 그의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는 유시를 내렸다며 돌려보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9일(정미)자 14번째기사, "예장하라는 명을 속히 정지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644년]] 무렵 자헌대부(資憲大夫) 서원군(西原君)이 되고, [[1645년]] 포도대장이 되었다. [[1645년]] [[12월 25일]] [[사간원]]이 그의 추고를 청하여 논계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3년 을유(1645) 12월 25일(계묘)자 3번째기사, "사간원이 포도대장 한호문의 일을 청하였다"</ref> 추고를 청한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다. [[1646년]] [[1월]] [[소현세자]]빈 [[강빈]]이 인조 등을 저주했다는 [[강빈 옥사]]가 발생, 좌포장으로 궐내에 대기하였다. [[1월 5일]] 인조는 좌우포장 한호문(韓好問)ㆍ신경진(申景珍)을 명하여 불러서 전교하기를“지금은 기밀(機密)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으니 야금(夜禁)을 십분 더욱 엄하게 단속하고, 경도 또한 옛 전례에 따라 친히 순찰하여 흉한 무리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왕래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ref>연려실기술 제27권 /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강빈(姜嬪)의 옥사"</ref> [[1646년]] [[2월 5일]] 좌변포도대장으로 패초를 받았으나, 도착이 늦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때 출발하였다는 승지 여이재의 보고로 그는 문제되지 않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4년 병술(1646) 2월 5일(임오)자 7번째기사, "우변포도대장 신경진은 집이 멀어 조금 늦는 것이라는 여이재의 계"</ref> [[1648년]](인조 26년) [[10월]] 무과(武科)의 일소(一所)의 시관(試官)이었으나 병을 이유로 패초에 나오지 않았다가 그해 [[10월 14일]] [[승정원]]의 탄핵을 받고 추고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6년 무자(1648) 10월 14일(을사)자 13번째기사, "무과 일소 시관인 서원군 한호문이 칭병하며 패초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추고할 것을 청하는 본원의 계"</ref> 최종 관직은 정헌(正憲)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에 이르렀다.
- 허건엽 . . . . 3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2차 4라운드 전체 34순위]] ([[SK 와이번스]]) ||
[목차]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절 65회 [[청룡기]]에서 [[순천 효천고등학교 야구부|효천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다. 또, 63회 황금사자기에서 임찬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SK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 허위 . . . . 3회 일치
[목차]
||<#ffd700> 가족 ||허윤(조부) 허조(부) [br] 허훈(백형) 허신(중형) 허겸(계형) [br]허학(장남) 허영(차남) 허준(삼남) 허국(사남) ||
1907년 [[고종(조선)|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정미 7조약]]으로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 선봉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였으나[* 허위가 이끌던 13도 창의군이 최종적으로 머물었던 길을 그의 호를 따 명명하게 됐는데, 그게 현재의 [[왕산로]]이다.]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격퇴당하고, 총대장인 [[이인영]]이 부친상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 총대장이 되어 2차 진격을 계획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 허화평 . . . . 3회 일치
[목차]
1980년 9월 [[전두환]]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직함은 없었다. 말하자면 [[전두환]]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없던 직제를 일부러 만들어서 허화평을 임명한 셈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청와대 핵심 기획자 역할을 했고 차관급 관료임에도 유일하게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근무했다. 명칭만 비서실 보좌관이었지 실질적으로 부총리급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안사 시절부터 비서실장이었으니~~ [[허삼수]], [[허문도]] 등과 쓰리 허로 불리며 실세로 활동했다.
5공시절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매체에 노출되는 빈도가 매우 적은 데 반해 허화평은 방송 등 언론 노출 빈도가 높은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쾌도난마(채널A)|쾌도난마]]에 출연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윤선]]이 11개월 동안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자 "정무수석쯤 되면 대통령이 안 만나 주더라도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 된다."고 일갈했고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본인들이 앞장서서 이 정국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우기만 하면 안 된다."며 비판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문고리 3인방|권력의 문고리만 잡으면]] 출세할 수 있는 나라라며 ~~문고리 잡아본 사람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홍국영 . . . . 3회 일치
[[1772년]] 9월 정시(庭試:별시의 일종) 문과에 병과 11위<ref>15명 중에 15위였다. 출처 조선문과방목 영조48년 정시</ref> 로 급제하였다. 대과에 급제하고도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이듬해 2월부터 가주서(假注書)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 해 [[4월]] [[정민시]]와 함께 한림소시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영조]]를 보좌하는 사관으로 봉직하기 시작했다. [[한중록]]에서는 그가 사관으로 봉직할 당시 [[영조]]가 홍국영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쓰고 있다. 이듬해인 [[1774년]] 3월에는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다. 세간에 홍국영이 과거 급제와 동시에 설서에 임명되었다는 설이 많이 퍼져있는데<ref>박광용《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 1998)와 이덕일《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고즈윈, 2008)에서는 홍국영이 과거 급제한 달에 바로 세손의 시강원에 임명되었다고 적고 있다. </ref>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 정조|정조]]와는 동궁시강원 설서가 되면서부터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이 당시 궁료들이 서연에서 아뢴 말들을 모아 《현각법어》(賢閣法語) <ref>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규6836</ref> 라는 책을 펴냈는데, 실제로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홍국영의 언행이라고 한다. 《명의록》 등은 이 시기 홍국영이 "세손의 오른날개(右翼)"라고 불렸다고 적고 있다.
군문의 장임으로는 정조 즉위년 11월 수어사에 임명되었던 것을 시작으로 잠시 총융사를 거쳐 [[1777년]] 5월에는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대개 금위대장과 훈련대장을 돌아가며 맡았다.(그러나 훈척만이 맡을 수 있는 호위대장에 임명된 적은 없다.) [[1777년]](정조1년) 7월, 전술한 [[홍상간]], [[홍계능]]의 궁궐자객침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사건 연루자에 호위청의 무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이유로 호위청을 축소하였는데 <ref> 이 때문에 호위청은 3청에서 1청으로, 인원은 1000명에서 350명 가량으로 축소되었다. </ref>, 대신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하고 홍국영을 그 대장에 임명 하였다. 정조는 숙위대장에게 특별히 대장패와 전령패를 차게 하며, 안으로 위장, 부장, 금군과 도감의 군병, 각문의 수문장ㆍ국별장과 밖으로 궁궐 담장 바깥에 삼군영의 입직하는 순라까지 매일 숙위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런 보직들은 대개 겸직이었으며 그의 대표적인 보직은 도승지와 훈련대장/숙위대장, 약원부제조였다.<ref>홍국영은 (원빈 사후 2개월 가량을 제외한) 집권 기간 대부분 동안 약원부제조직을 맡았다. 이는 임금의 최측근인 그가 임금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하루동안 임금과의 공식적인 면대를 2회 이상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도 해석된다.</ref> 그외 각종 제거 역시 다수 겸직하였으며 잡류 제거직으로 인한 격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록도 종종 보인다.
* 《부패한 측근의 단호한 척결 - 정조》(2002, [[EBS]], 배역: [[차철순]])
- 홍인한 . . . . 3회 일치
노론 내 벽파의 주도로 사도세자 및 세손 제거론이 나올때 동조하였으며, 세손 제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1775년]] 이후 세손의 대리청정을 극력 반대하였으며 [[1776년]] [[조선 정조]] 즉위 후 [[정후겸]] 등과 함께 유배, [[전라도]] [[완도군]] [[고금도]]로 유배되었다가 위리안치된 후 [[처형]]되었다. 1855년(철종 6) [[조선 철종|철종]]이 그를 복권하였으나 여러 차례 반대로 취소되었다가 다시 1858년(철종 9) 복권되었다.
후에 [[조선 철종|철종]] 때인 1855년(철종 6) 철종이 그의 혐의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그를 복직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홍문관과 양사의 반대를 받았다. 결국 여러차례 반대로 철종은 홍인한 복권 명령을 취소하였지만 1858년(철종 9) 10월 25일 복권되었다.
**** 차남 : 홍낙술(洪樂述)
- 홍효의 . . . . 3회 일치
신장 190cm인 장신의 사이드암 투수로 고교 시절 [[우동균]]과 더불어 2008년 1차지명자로 꼽혔지만, 오른쪽 엄지발가락 골절상으로 1차지명은 커녕 2차지명 때도 지명받지 못했다. 게다가 대학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2년제 대학인 강릉영동대로 진학, 대학 시절에는 부상 때문에 타자(우익수/지명타자)로 나섰다.
- 황가히 . . . . 3회 일치
* [[2006년]] [[부산 모터쇼]] [[현대자동차]] 모델
* [[2008년]] [[부산 모터쇼]] [[쌍용자동차]] 모델
* [[2012년]] [[부산 모터쇼]] 쌍용자동차 모델
- 황광희 . . . . 3회 일치
스타제국 연습생 시절인 [[2009년]]에 [[Mnet]]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피스 리얼리티 - 제국의 아이들》과 《제국의 아이들 리턴즈》에 출연하여 이동식 무대 차량인 윙카로 전국을 순회하는 게릴라 공연을 펼쳤고,<ref>{{뉴스 인용|제목=연예계 뒷얘기 ‘제국의 아이들’… 100% ‘리얼’ 가능할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089654|저자=김보람|출판사=매일경제|날짜=2009-04-06|확인날짜=2012-08-25}}</ref><ref>{{뉴스 인용|제목=제국의 아이들, 거리공연으로 호된 데뷔 준비중|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000932|저자=이수현|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9-10-01|확인날짜=2012-08-25}}</ref> [[2010년]] [[1월 15일]]에 9인조 [[대한민국]]의 남성 그룹 [[ZE:A]]의 멤버로 데뷔하였다.
! 회차
| 하차
- 황병기 . . . . 3회 일치
|가족 = 황태문(부)<br>황혜경(장녀) <br /> [[황준묵]](장남) <br /> 황수경(차녀) <br /> 황원묵(차남) <br /> [[한석명]](장인) <br /> 장숙명(장모) <br /> [[한복 (1914년)|한복]](손윗처남) <br /> [[한무숙]](처형) <br /> 김진흥(윗동서)
* 슬하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세계적 수학자인 [[황준묵]]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좌교수이고, 차남은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물리학자 황원묵이다.
- 황병일(1960) . . . . 3회 일치
|| '''프로입단''' || 1983년 1차 지명 ||
[목차]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종 6차전의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나와, 해태 투수 [[문희수]]에게 삼진을 당하며 해태의 3년 연속 우승을 확정지어주는 제물이 되었다. ~~허용타자~~
- 황인숙 . . . . 3회 일치
* 《리스본行 야간열차》([[문학과지성사]], 2007) {{ISBN|8932018294}}
* 《자명한 산책》<br/>등단한 지 스무 해가 꽉 차간다. 스무 해, 그러니까 20년! 그동안 써온 시들을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시에 있어서도 후한 값을 받고 살았다. 그게 다 빚이다. 힘을 내서 빨리 빚을 까자!
* 《리스본行 야간열차》<br/>문득 궁금하다.<br/>내 속에 아직 시의 씨앗이라는 게 살아 있어,<br/>촉촉이 비 내린 뒤 햇빛 쏟아지는 날들엔 발아할까.<br/>아니면 이미 모래알처럼 굳어버린 걸까. 다른 이들도,<br/>근면해야 시를 거두는 걸까, 아니면 절로 풍요로운<br/>시의 정원을 홀홀히 거니는 시인도 있는 걸까.<br/>또 궁금하다.<br/>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졸린데 꾹 참고 일어나곤 하는 걸까,<br/>아니면 늘 나만큼 졸립진 않은 걸까.
- 황치열 . . . . 3회 일치
* 2015년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가족특집에서 [[인순이]]의 '아버지'를 불러 첫 우승을 차지함. 이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2015년 슈퍼루키특집'에서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부르며 공식적인 '2015년 슈퍼루키' 타이틀과 함께 우승을 거머 쥠.
* 2016년 1월 15일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첫방송에서 한국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OST로 중국에 알려진 [[이승철]]의 '그 사람'을 한국어로 부르며 8명의 가수 중 '''2위'''를 차지, 처음 가수 황치열을 선보인 이 무대를 통해 웨이보 팔러워 수가 50만에 육박. 황쯔리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중국 대륙의 가장 핫한 블루칩으로 부상함.
* 2016년 6월 09일 중국 성도 자동차 뮤직 페스티벌 게스트
- 휴먼 토치 . . . . 3회 일치
[[스파이더맨]]과는 초창기부터 티격태격하며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스파이더맨 그만둘까 고민하던 피터가 쟈니 스톰의 영웅에 대한 연설을 듣고 다시 기운 차려서 스파이더맨이 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자니 스톰도 스파이더맨하곤 스스로가 "친근한 [[라이벌]]" 관계였다고 말하기도... 그래도 가끔씩이 둘이 싸우면 아주 난장판으로 싸우기도 했다. 쟈니가 파티장에서 여자들에게 인기를 끈 것을 보고 질투한 스파이더맨이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둘이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둘이 협력해서 샌드맨과 싸우기도 하는 등 티격태격하는 라이벌 관계라고 보면 된다. 한번은 쟈니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관계가 서먹해지고 여친이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이 아닌 평상시의 모습)에게 관심이 있자 질투심에 피터를 찾아와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샌드맨등의 적을 힘을 합쳐 쓰러뜨렸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수 있는 친구가 되고 나중에 쟈니가 자신이 죽을 경우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란다고 말할 정도의 관계가 된다.
[[댄 슬롯]]이 스토리를 담당한 "스파이더맨 - 휴먼 토치" 미니 시리즈에선 10대 시절부터 피터가 학교 선생이 되고 불가피하게 휴먼 토치에게 정체를 드러낼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있는데 서로 심술부리며 싸우면서도 도와주고[* 일례로 닥터 둠이 휴먼 토치를 얼음속에 가둬두고 없애버리려 하자 스파이더맨은 닥터둠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숙적인 휴먼 토치를 없애게 해달라고 조아린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닥터 둠은 스파이더맨에게 휴먼 토치를 끝내라고 얼음 전체를 주지만 스파이더맨은 휴먼 토치를 들고 도망간다(...)] 마지막에 피터가 다니는 학교에서 휴먼 토치와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물리친뒤에 가면을 벗고 대면하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을 얘기한다[* 피터는 쟈니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판타스틱 포와 온갖 모험을 하고 언론의 음해를 당하지 않는 유명인의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쟈니는 피터에게 자상한 숙모가 있고(쟈니는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친한 미인 여자친구들이 많으며 미스터 판타스틱 못지 않게 머리도 좋고 사진도 잘 찍는 것을 부러워했다. 이러면서 피터처럼 운이 좋은 걸 파커 럭이라고 불렀다는데, 원래 파커 럭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피터의 삶을 얘기하는 단어이다(...)]. 슈피리어 이후 피터가 돌아온 것을 안 쟈니는 옥토퍼스가 몸을 차지한 기간동안 피터가 놓친 영화, 드라마, 음악등을 USB에 담아주기도 하며 자기가 죽었다 돌아온 시절을 얘기하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한다.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이나 울버린등이 어디까지나 가까운 "동료"라면 휴먼 토치는 몇 안되는 '''친구'''이다.
* 옛날에 나온 애니메이션 판에선 혼자 짤리고 허비(H.E.R.B.I.E)라는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먼 토치를 보고 아이들이 자기 몸에 불을 붙힐까봐-라고 짐작했고 80년대의 판타스틱 포 만화에선 이를 의식한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은 마블이 [[헐크]]처럼 실사화를 위해 휴먼 토치를 판권을 다른 회사에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판권은 넘겼지만 당시 기술론 휴먼 토치를 재현해낼수가 없어서 결국 실사화는 안되었다.
- 155밀리 롱 톰 . . . . 2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에서 디자인 된 M1917, M1917A1, M1918 GPF (Grande Puissance, Filloux)의 후속작으로 [[미국]]에서 도입했다. GPF를 기반으로 하여 개량하면서 M1 155mm 야포가 개발되었다. 1940년에 디자인이 개선되어 M2 155mm 야포가 만들어졌으며, 이 야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사용하여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M2를 개량한 모델이 M59 155mm 견인포가 된다.
- 2013 K리그 심판매수 . . . . 2회 일치
2013시즌은 K리그에서 승강제가 도입된지 두번째 시즌이었고, 경남 FC는 강등될 가능성이 아주 유력했던 팀 중 하나였다. 당시 경남의 사장이었던 안종복은 팀의 강등을 모면하고자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을 저지르고야 마는데, 바로 심판매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http://sports.news.naver.com/k_league/news/read.nhn?oid=015&aid=0003436896|외국인 선수의 몸값과 관련한 횡령혐의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차후 발표결과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41&aid=0002495741|심판매수]]로 알려져 K리그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게 되었다.
웃긴 사실은 매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남은 강등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는 동년 11월에 검찰이 공식으로 발표함으로써 경남은 매수구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연맹은 2016시즌에 들어가기 앞서 경남 FC에게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21&aid=0001794783|승점 -10점과 벌금 7000만원을 부과]]함으로써 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연맹차원의 제재까지 가해지게 되었다. 당시 경남팬들은 말도못할 [[멘붕]]을 겪음은 물론이고, 구단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정도. 그리고 이 사건은 잊혀지나 했는데...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2회 일치
* 아카리는 축제 때와는 달리 화사한 차림.
* 시마다도 그때 일이 떠올렸는지 아차하는 표정.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2회 일치
니카이도가 정말로 한 번만 이기면 소야 명인과 불 수 있는 거냐고, 꿈을 꾸는게 아니냐는 투로 묻는다. 항상 기운차던 니카이도가 이렇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키리야마는 오히려 자신이 부끄럽고 니카이도가 눈부시게 보인다.
키리야마도 니카이도처럼 기운차게 외친다. 니카이도는 맞장구치면서도 "아니 그건 내가 소야 명인한테 진다는게 전제 아니냐"고 딴죽을 넣는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귀가하는 두 사람.
- A-10 선더볼트 . . . . 2회 일치
1960년대 미 공군이 근접항공지원용 공격기를 공모했을 당시 [[페어차일드|페어차일드 리퍼블릭]]사가 내놓은 모델이 채택, A-10 선더볼트가 되었다. 1972년 첫 비행을 벌였고 1975년 실전 배치 되었다고.
- DQN . . . . 2회 일치
* DQN 카 : DQN 들이 타고 다니는 차. 차를 화려하게 개조하고 이상한 장식을 붙인 경우에 하는 말이다.
- HelpOnEditing . . . . 2회 일치
=== 목차 ===
{{{[[목차]]}}}가 아니라 {{{<<TableOfContents>>}}}를 입력해야 합니다.
- Hunting the Hun . . . . 2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불러진 노래. 작사 하워드 E. 라저스. 작곡 아치 고틀러.
제목의 Hun은 [[훈족]]이라는 뜻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을 비하하는 단어였다. 즉 이 노래의 제목은 "독일놈 사냥"이라는 것. 노래의 내용은 "독일놈 사냥"을 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K리그 클래식 . . . . 2회 일치
정규 라운드에서 획득한 점수는 그대로 이양되고 "자신의 팀이 속한 스플릿의 경쟁자와 한번씩 대결"을 통해 상위 스플릿에선 우승과 차기 ACL 티켓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되며, 하위 스플릿에서는 강등팀(꼴찌)과 승강 플레이오프로 갈 팀(꼴찌에서 [[홍진호|2등]])을 정하게 된다.[* 처음 도입되었던 2012시즌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걸 이해하지 못해 욕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게 되면 정규시즌의 기록이 다 사라지고 스플릿 라운드에서 얻은 기록만을 비교하여 우승팀을 가린다고 착각했던 것. 덕택에 [[샤다라빠]]가 신명나게 까댔다.]
스플릿이 나뉜 뒤에는 상하위 스플릿간 성적은 서로 비교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팀들의 1차 목표가 바로 이 상위 스플릿에 진입하는 것이다. 상위스플릿에 가면 나머지 경기에서 뻘짓을 해도 강등은 안 당하기 때문. 말인즉슨 상위 스플릿 팀은 5경기를 모두 져도 무조건 6위는 보장되며, 하위 스플릿에 속한 팀이 5연승을 달려 상위 스플릿 팀보다 승점이 더 높아도 최대 7위밖에 할 수 없다.
- MoniWikiTutorial . . . . 2회 일치
* [[Icon(diff)]] 페이지가 다른 사람에 의해 고쳐졌을때 그 변화를 보여주는 3차원 입체안경 아이콘입니다.
* `!TableOfContents` - 페이지의 목차를 만들어줍니다.
- NII 스탈리 . . . . 2회 일치
НИИ стали.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회사]]. [[방탄복]], 군용차량의 장갑 등을 연구하는 회사다. NII 스탈리라는 이름은 철강과학연구소의 약자이다.
소련 시절인 1942년 5월, 전차 장갑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 USS 뷰캐넌 . . . . 2회 일치
USS Buchanan.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미국-영국 [[구축함]]. 인상깊은 최후로 인해 원래 이름인 "USS 뷰캐넌"보다 영국식 이름인 "HMS 캠벨타운"이 더 유명하다.
취역한지 1년도 안 된 뷰캐넌은 대서양을 떠나 태평양에서 활동한다. 이후 뷰캐넌은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했다. 1922년 7월 7일 퇴역했지만 1930년 4월 10일 USS 소머즈(USS Somers)가 퇴역하며 재취역했다. 이렇게 태평양에서 활동하던 뷰캐넌은 1937년 4월 9일 다시 퇴역한다. 1939년 9월 1일,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미 해군은 해군력을 불리기 시작한다. 1939년 9월 9일, 뷰캐넌은 3번째 취역을 맞는다. 이후 뷰캐넌은 대서양에서 활동하다 1940년 9월 9일, 미국과 영국이 맺은 조약[* Destroyer for Bases Deal. 영국이 미국에게 기지를 대여해주는 대신 미국은 영국에게 구축함을 지원하는 조약.]에 의해 영국 해군에게 넘겨진다.
- USS 피닉스 (CL-46) . . . . 2회 일치
USS Phoenix. [[제2차 세계 대전]]과 [[포클랜드 전쟁]]에서 활동했던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해군 함정으로 활동하였으며 전후 [[아르헨티나]]에 넘겨져 ARA 헤네랄 벨그라노(ARA General Belgrano)라는 이름으로 취역하였다. 1982년 5월 2일, 영국 원자력 잠수함 [[HMS 컨쿼러]]의 뇌격으로 격침. 323명의 사망자를 내며 가라앉았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2회 일치
=== Water-wheel Power(수차 동력) ===
* Daimler's Automobile(다임러의 자동차)
- head to head . . . . 2회 일치
헤드 투 헤드를 통한 순위결정은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스페인 프로축구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2015-2016시즌 라 리가는 1위팀 바르셀로나와 2위 AT마드리드가 대회 막바지까지 승점이 같아질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 규정에 의해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くぁwせdrftgyふじこlp . . . . 2회 일치
정확하게 qwert 자판의 2번째 줄과 3번째 줄을 차례차례 치는 것으로 완성할 수 있다.
- 강정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5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5년]] 1차 1순위([[삼성 라이온즈]])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양도로 [[이강돈]]과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였고, 정교한 타격을 선보이는 중거리형 타자였다. [[이정훈 (1963년)|이정훈]], [[이강돈]] 선수와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565 강정길, "삼성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Osen》, 2008년 12월 10일</ref>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지냈다.
- 강타 . . . . 2회 일치
* [[H.O.T]] 1집 앨범 《전사의 후예》를 통해 데뷔한 그는, [[H.O.T]] 2집 앨범 수록곡인 <행복>에서 리드보컬로서의 기량을 뽐내며 가요계에서 대상을 차지.
* 2005년 차이나 패션 어워드 베스트드레서상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0화 . . . . 2회 일치
* 키리에는 화려한 가게 장식과 친구들의 차림을 보고 왜 자신은 후줄그레한 차림으로 왔는지 부끄러워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5화 . . . . 2회 일치
* 다른 게임도 차례차례 해보는데 히카리는 거의 다 서툴지만 유독 퍼즐 게임만은 잘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3화 . . . . 2회 일치
* 자신도 바깥에선 내숭 모드지만, 카나우는 차원이 다르다고 감탄하는 우마루.
* 하지만 "봄바도 자주 온다"는 말엔 "그 녀석하곤 같이 있고 싶지 않다"며 가차없는 디스를 날린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4화 . . . . 2회 일치
*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밖에 나가자는 우마루. 하지만 그것 조차 신작 게임 포켓햄GO를 위해서였다.
* 어른이 되어 신사를 둘러보며 감회에 감기는 타이헤이. 지금과 그때의 눈높이 차이라던가,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5화 . . . . 2회 일치
* 실핀은 너무 오랜만에 말을 붙여보는 거라 "오빠(오니짱)"이라 부른 것 조차 어색해 한다.
* 우마루는 오라버니라고 부르거나 "이런 데서 만나네"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보라고 하는데, 실핀은 그 조차도 "그 다음엔 뭐라고 해야 하나요"라고 물을 정도로 감을 잡지 못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2회 일치
* 이제 우마루의 차례.
* 희망직종은 아직 없다고 적었는데, 장차 무슨 일이든 전력으로 매진하고 싶지만 어느 것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는 것.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8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다른 장르 오타쿠인 우마루와는 온도차가 여실하다.
* 키리에는 스승님과 주제곡도 부르고 "요리댄스"도 추고 싶어하지만 차마 시도하지 못하고 일코한다.
- 검은 조직 . . . . 2회 일치
[[목차]]
정말 무서운 점은, '''어차피 얘들이 딱히 없어도''' 코난 월드에서 살인은 일상사이며, 신이치는 정기적으로 살인범을 잡고 다녔을 것이고, 얘들이 없어진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초에 작중에서 '''검은조직이 죽인 사람보다 그냥 일반인이 빡돌아서 죽인 사람이 훨씬 더 많다.'''--잡든 말든, 딱히 변하는건 없다.--
- 경관 . . . . 2회 일치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식 매장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식 매장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 경순왕 . . . . 2회 일치
|자녀 = 슬하 8남 3녀 <br/> (장남 [[마의태자|태자]])<br />(차남 [[김덕지|김황(굉,나주김씨)]])
그는 즉위 초 아버지 [[대아찬]](大阿飡)을 신흥왕(神興王)으로, 할아버지 각간(角干) 김실홍을 의흥왕(懿興王)으로 각각 추존하였다. 재위시에 국력이 쇠퇴하고 특히 여러 차례에 걸친 [[후백제]]의 침공과 약탈로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따라서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ref name="nate01">[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128 경순왕:네이트 한국학]</ref>
- 고다이고 덴노 . . . . 2회 일치
여러 차례 음모를 저지른 끝에 한 때 폐위되었으나, 유배되었던 낙도에서 탈출하고 전국의 [[사무라이]]들을 선동하는데 성공하여 [[가마쿠라 막부]]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덴노가 직접 지배하는 [[겐무 신정]]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본인도 귀족들도 무능하였기 때문에 정치가 완전히 개판으로 돌아갔고 보다못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막부]]를 다시 열어서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되었고 본인은 다시 폐위된다. 하지만 또 탈출했으며 나라를 말아먹은 주제에 끝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일본 남조|남조]] 정권을 세워서 끈질기게 발악하며 국가를 혼란에 몰아넣었다.
- 고수희 . . . . 2회 일치
* [[2007년]] : 《[[그놈 목소리]]》 - 차수희 역
* [[2019년]] : 《[[자전차왕 엄복동]]》 - 포목점 여주인 역
- 고원희 . . . . 2회 일치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 강서진 역
- 권민중 . . . . 2회 일치
[목차]
[[2011년]] [[12월 7일]]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를 낸 혐의(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등)로 불구속 입건됐다.
- 권수현(배우) . . . . 2회 일치
* 《[[으라차차 와이키키]]》 (2018년, JTBC) - 이준기의 선배 배우 역
- 금잔디 . . . . 2회 일치
[목차]
* 차달래 부인의 사랑 OST - Part.1 (2018년)
- 기계화보병 . . . . 2회 일치
[[보병]]의 한 종류. [[장갑차]]를 타고 이동하는 보병을 말한다.
유사품으로 [[트럭]]을 타고다니는 [[차량화보병]]이 있다.
- 길은정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종교]]는 [[불교]]이다. 1984년 가수로 데뷔하고 얼마 안 되어 [[뽀뽀뽀]] 제2대 뽀미 언니가 되어 [[인기]]를 끌었다. 가수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뽀뽀뽀에서 하차하였으나 92년 EBS의 프로그램 '만들어 볼까요'의 진행을 맡으며 어린이 프로그램에 복귀하였다.[* [[암]] 판정을 받은 뒤 방송에서 하차한 이후로는 [[여운계]]가 진행을 맡았다. 여운계도 4년후 신장암으로 사망.] 이후 가수활동과 만들어 볼까요의 진행을 병행하다가 직장암 선고를 받은 뒤 [[은퇴]]하였다. 암이 완치된 뒤 다시 방송에 복귀하였으며 당시 <찬찬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가수 [[편승엽]]과 [[결혼]]하나 곧 파경을 맞는다. 2002년 결혼생활에 대해 올린 글이 문제가 되어 전남편으로부터 고소당해 2004년 유죄 판결을 받고 같은해 직장암이 재발하여 이듬해 초 숨을 거둔다. 사망 전날까지 [[원음방송]]에서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안타까움을 샀다. 전재산을 원음방송에 기증하였다. 2002년 각막기증신청을 했지만 암세포가 너무 퍼졌다는 판단으로 실제 기증되지는 못하였다.
- 길은혜 . . . . 2회 일치
| 학력 = 신음금류3차아파트
* 신음금류3차아파트
- 김광석 . . . . 2회 일치
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 김광석 자택은 현재 내부 공사가 이루어져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2번 의문은 고 김광석씨는 메모광으로 유명하였는데, 아무런 유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3번째 이유가 된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 할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걸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김광석 타살의혹 제기 이유 3가지 들어보니..|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6191535352210|출판사=뉴스엔|저자=허설희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 김기창 (법학자) . . . . 2회 일치
* 법적담론 전개 양식의 차이 -성문법 국가와 판례법 국가의 비교-, 세계화지향의 사법: 그 배경과 한국과 프랑스의 적응, 세창출판사, 2006
* ''Les diff?rents techniques de l'?laboration de la loi: le code et les "cases"'' (법적담론 전개 양식의 차이: 성문법 국가와 판례법 국가의 비교), 세계화지향의 사법: 그 배경과 한국과 프랑스의 적응,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100주년 프랑스민법전 2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2005.12.03
- 김기철 . . . . 2회 일치
[목차]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8월부터 1961년 5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정무[[차관]]을 역임하였다.
- 김대호(축구선수) . . . . 2회 일치
[목차]
2016년에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아챔]] 조별 경기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지르며 포항 팬들의 큰 원성을 샀고 이후로도 자주 나오지 못하는 중... 인데 5월 12일 [[안산 무궁화]]로의 입대가 결정되었다. 사실 김대호가 떠난다 해도 그의 자리에는 다른 풀백 자원들이 있기 때문에 공백은 크지 않을 듯.
- 김미경(강사) . . . . 2회 일치
[목차]
2013년 3월 석사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논란이 일었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본인도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40309/61519891/3|표절 사실을 인정했다.]]
- 김민서(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현대자동차
- 김민수 (1991년)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2014년]] [[한화 이글스]]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 김민제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김민제'''([[1986년]] [[11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이다. 종족은 [[프로토스]]이며 아이디는 '''BestGod'''이다. 2005년 하반기 드래프트에서 Plus(현 [[화승 OZ]])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2008년 4월]]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
- 김민희(1972) . . . . 2회 일치
[목차]
[[복면가왕]] 8차 경연에서 [[따끈따끈 떡 사세요]]라는 가명으로 참여했다.
- 김병기(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1997년]] [[KBS2]] 수목드라마 《[[욕망의 바다]]》 ... 박 차장 역
- 김봉수(1953) . . . . 2회 일치
[목차]
키움닷컴증권은 설립 2년 6개월여 만인 2002년 말에 전체 주식시장 점유율 5% 수준으로 업계 8위를 차지하였다. 선물·옵션부문에서는 3, 4위권을 다투는 등 기존 대형 증권사들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 김상엽 (야구인) . . . . 2회 일치
'''김상엽'''(金相燁, [[1970년]] [[5월 11일]] ~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투수]]이자, 현재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재활군 투수코치이다. 부상 이전 촉망받던 고졸 강속구 투수였다. 최고구속 150km대에 근접한 강속구를 뿌렸으며, 당시에는 희귀한 낙차 큰 파워 커브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1990년대에는 당시 보기 드물게 야구 선수로서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부인 [[삼성물산|에스에스패션]]의 신사복 빌트모아 TV CF에 출연하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112& 김상엽 “파워 커브처럼 낙차 컸던 내 인생”] - 박동희 칼럼
- 김승환(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2012년]] || [[비처럼 음악처럼]] || 차 실장 ||
- 김용국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5년]] 1차 5순위([[삼성 라이온즈]])
그러나, [[류중일]]이 다음 해인 [[1988년 한국프로야구]] 때 팔꿈치 수술로 출장 입지가 줄어들어 [[오대석]]이 [[류중일]]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1988년 한국프로야구]]부터 [[1993년 한국프로야구]]까지 줄곧 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또한 1991~1992년, 2년간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다.<ref name="imaeil" />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그로 이어지는 내야 수비진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는 뛰어난 수비 실력에 비해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아쉽게도 매번 [[해태 타이거즈]] [[3루수]] [[한대화]]에게 밀려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3루수)|3루수 골든 글러브]]는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 김우중 . . . . 2회 일치
|자녀 = 슬하 3남 0녀<ref>장남 김선재, 차남 김선협, 3남 김선용</ref>
*** 차남 : 김선협(金善協)
- 김운용 . . . . 2회 일치
김운용은 연희전문대(현재의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미국 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오며 익힌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1군사령관 [[송요찬]]의 부관으로 일했다. [[4·19 혁명]] 당시 계엄사령관인 송요찬의 부관으로 근무하였으며, 경찰의 실탄 요청을 송요찬이 거부하였다고 증언하였다.<ref>이문영,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3473.html “4·19때 경찰이 계엄사령관에 총탄 10만발 빌려달라 요청”], 한겨레신문</ref>
* 1965년 : 제20차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참석함.
- 김정난 . . . . 2회 일치
[목차]
* [[1991년]] 12월 11일 첫 회가 나간 뒤 시간대가 자주 변경되어 오다가 [[1995년]] 2월 7일부터 화요일 오후 7시 5분으로 고정된 [[SBS]] [[코미디 전망대]]를 같은 달 28일부터 개그맨 [[김병조]] [[이봉원]], 아나운서 [[김성경]]과 공동 MC를 맡았으나 그 해 봄 개편으로 김성경 아나운서와 함께 두 달 만에 하차했다. 사족으로, 코미디 전망대는 김정난 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 활동해 오던 여자 진행자들이 정통 드라마 출연 경력을 가졌다.[* MBC 공채 MC 출신 [[이매리]], KBS - [[MBC]]에서 활동해 온 개그우먼 [[조혜련]]]
- 김주승 . . . . 2회 일치
[목차]
* [[2001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주차장에서 생긴 일》
- 김중혁 . . . . 2회 일치
[목차]
허은실은 미정의 얘기를 하는 자신에게 "그래서 동진이 얘기는 언제 나오는 겁니까?"하고 묻는 김중혁을 아예 감정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 단 하나뿐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재차 물었다. 오오....
- 김지석(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팬들과 차려입고 데이트 컨셉으로 술을 마신다거나, 팬레터에 전화번호를 적어놓으면 맘이 내키면 한번씩 걸어본다고 한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밝히기를 연예인을 가상의 연애대상으로 생각하는 팬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충섭 . . . . 2회 일치
[목차]
공직을 퇴직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김천시장에 출마하게된다. 김천시장직은 박보생 시장이 3선 연임제한에 걸려 출마할 수 없었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TK지역 여당인 [[자유한국당]] 공천을 바라며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공천을 정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등 여러 문제로 공천 잡음 들이 생겨나게된다. 이러한 문제 들로 인해 이에 불복한 [[최대원|시장 후보 중 한명]]은 아예 탈당하고 체급을 올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 공천 문제로 분열된 자유한국당은 원래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더불어 민주당|친여 세력]]의 지원사격까지 받으며 진보층 세력까지 흡수한 김충섭 후보에게 시장직을 내주고 [[이철우(1955)|전직 의원]]이 경북도지사 후보로 영전함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격인 [[송언석]] 후보는 최대원 후보에게 1%정도 차이로 초박빙 승부를 벌이는 모습을 보이며 국회의원직도 겨우 당선되는 등 옆동네인 구미와 함께 자유한국당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 김태한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2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199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2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 중 드물게 [[1993년]] ~ [[1994년]] 2년 연속 10승대를 기록하였다.
- 김태훈 (1987년)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3차 6라운드([[KIA 타이거즈]])
[[200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6년]] 4차 7라운드([[SK 와이번스]])
- 김현성(가수) . . . . 2회 일치
[목차]
복면가왕 74차 경연에서 [[나 빼고 다 가면 버섯! 버섯돌이]]로 참가해서 2라운드에 갔으며 30대가 되면서 음악 외에 하고 싶은 것을 찾다 보니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복면가왕에서 제 이름을 계속 언급해 주셔서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 김현철(교수) . . . . 2회 일치
|| '''약력''' ||<(> 쓰쿠바 대학 부교수[br]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위원[br]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br]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br]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br]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 ||
[목차]
- 김형일(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자녀를 늦게 낳았는데, 딸은 44살(2003년생)에, 아들을 46살(2005년생)에 얻었다. 아내는 1965년생으로 5살 차이라고 한다.
- 김혜옥 . . . . 2회 일치
* [[2009년]] [[MBC]] 아침드라마 《[[망설이지마]]》 ... 수현 모, 차영란 역
* [[2012년]] [[KBS2]] 주말연속극 《[[내 딸 서영이]]》 ... 차지선 역
- 김효원 . . . . 2회 일치
한편 [[심의겸]]과의 대립은 사림의 분열로 이어지고 점차 심해지자 우의정 [[노사신]]과 부제학 [[이이]] 등은 분쟁 완화의 조정안으로 두 사람을 한성을 떠나 외직으로 보낼 것을 선조에게 건의하여 김효원은 [[경흥부사]]로, 심의겸은 [[개성부유수]]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김효원이 더 먼곳의 외직에 배치되었다는 [[동인 (정치)|동인]]의 반발로 그 조정안은 실패로 끝났다.<ref name=autogenerated1 /> 김효원을 지지하던 측에서는 일부러 배경이 없던 그를 더 먼곳으로 축출한 것이라 반발하여 다시 부령부사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부령이 변방이라 하여 반발하므로 다시 [[삼척]][[부사]]로 옮기게 되었다.
선비들과 강론을 할 때면 가난한 살림에도 음식을 나누었고, 더러는 해가 저물 때까지 식사조차 잊을 정도였다. 또한 그는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여 [[이황]]과 [[조식]] 등에게서 배운 학문을 후대에 전수하여, 직접 후학을 양성하여 [[성리학]]자들을 길러냈다.
- 나다카 타츠오 . . . . 2회 일치
아내와는 공통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소개해줘서 만나게 되었다. 아내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여러 번 설득하여 맺어지게 되었다. 아내와 생일이 같으며, 생일에 청혼을 했다. 아내는 결혼 초기에는 요리가 서툴렀지만 점차 향상되었다고 한다.
* 대학시절, 쿄토의 히가시야마에서 야경을 보면서 차 안에서 첫 키스를 했다. BGM은 형에게 빌린 무드 카세트 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2회 일치
* 우라라차는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움직인다.
* 그리고 "서로 궁금해한다"고 웃으며 "이번엔 내가 물어볼 차례"라며 미도리야는 어째서 히어로가 되려는 거냐고 묻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2회 일치
* 이 시위는 엘리트로서 책무와 긍지를 길러온 자신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수준 차를 보이기 위한 것.
* 그 둘은 반의 리더도 중심인물인 것도 아닌데다 사이 조차 최악.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의 열기가 반으로 전파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2회 일치
* 슬슬 2차 시험을 준비하는 주최측. 그런데 이번 시험은 뭔가 황당한 사람들이 끼어든다?
* 그런데도 올해는 임시면허 정원 조차 대폭 줄어들었다. 이것은 "도태"의 시대가 왔다는 의미이며, 무분별하게 히어로를 양산하기 보단 우수한 인원을 선별하는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2회 일치
* 고대하던 결과발표. 웅영고 A반 인원들도 하나둘 합격이 확인된다. 미네타 미노루 조차도 명단에 들어가 있어 거진 다 합격한 듯 한데, 정작 A반 투탑 중 하나인 바쿠고 카즈키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 그리고 불합격자들을 계속 남겨둔 이유도 설명되는데, 이들은 이대로 탈락하고 끝나는게 아니다. 불합격자들은 3개월 동안 특별강습을 거쳐 재시험이 준비되어 있다. 장래에 "질 높은" 히어로가 더 많이 필요한 현실에서 1차 시험을 클리어한 100명을 최대한 활용하는게 이들의 목적. 탈락자들도 채점 결과 싹수가 없는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준비를 시켜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는 4월 시험이 재도전의 기회. 바쿠고, 토도로키, 요아라시 3인은 당연히 도전할 거라고 벼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2회 일치
* 바쿠고가 폭발력을 이용해 높이 도약한다. 미도리야가 움직임을 포착하지만 그는 공중에서 다시 폭발력을 일으켜 급강하한다. 미도리야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하지만 다시 폭발을 일으키고 그 추진력으로 속공을 퍼붓는다. 쉴 새 없는 연속공격으로 미도리야가 전술을 구상하지 못하게 할 속셈이다.
맹렬한 공격이 재개된다. 바쿠고는 어차피 또 무언가 꾸미고 있을 거라고 빈정댄다. 그러면서 섬광탄으로 시야를 가리고 급가속, 어퍼컷을 꽂아넣어 미도리야를 위로 띄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2회 일치
* 오버홀은 [[올마이트]]가 은퇴하고 뒷세계의 제왕인 올 포 원 조차 사라진 지금 사회는 양지와 음지가 동시에 혼란에 빠졌고 계승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토가 히미코]]는 극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Mr. 컴프레스]]는 "넌 중졸이라 모른다"고 은근히 디스하며 자세하게 설명한다. 원래 야쿠자들은 뒷세계를 기반으로 강성한 세력을 자랑했지만 "히어로"들이 보편화되고 특히 [[올마이트]]가 나타나면서 철저하게 분쇄되었다. 지금은 잔존세력만 남은 정도인데, 그 조차도 "예비 빌런"으로 취급돼서 경찰과 히어로들의 감시를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오버홀은 이런 설명도 틀린건 아니라고 인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2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가 교사이자 선배 히어로로서 미도리야의 각오를 확인한 그날, 다른 학생들도 거기서 참가가 결정되었다. 아이자와는 그들의 참가를 일단 허가하지만 "어차피 너희에겐 별로 활약할 여지가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알려준다. 물론 빅3, [[토오가타 밀리오]]와 [[하도 네지레]], [[아마지키 타마키]]는 다를 것이다. 이들은 이미 프로와 동등 이상의 평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1학년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러면서 미도리야는 어쨌든 나머지 셋은 자기들 의지로 여기 있는게 아니냐며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같은 메시지가 아이자와에게도, 빅 3에게도 전해졌다. 밀리오는 아직까지도 에리쨩과 관련해서 울쩍한 기분이었지만 네지레와 타마키가 적극적으로 위로해서 조금씩 기운을 차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2회 일치
시가라키는 맨 얼굴인 채로 아까 하려던 설명을 이어갔다. 시에핫사이카이, 오버홀은 빌런 연합의 기동력을 깎으면서 연합의 유용한 인재들을 회유하려는 속셈이다. 바깥으로 끌어내 구슬려서 정식으로 시에핫사이카이의 장기말로 만들려는 수작. 저쪽은 처음부터 이쪽과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 시가라키도 마찬가지였다. 세력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가. 그 부분이라면 시가라키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은 처부순다. 어차피 찾아가도 거부당해. 그렇다면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1화 . . . . 2회 일치
* 오버홀은 밀리오가 에리를 데리고 있는데도 가차없이 공격하는데 어차피 "망가져도 바로 수복하면 상관없고 이미 체험시켜줬었다"며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2회 일치
* 오버홀은 비참하게 무릎 꿇은 밀리오를 볼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든 순간 날아온 쿠로노가 시야를 가렸다. 밀리오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전황은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그는 쿠로노를 걷어차서 오버홀에게 날리고 동시에 빠르게 접근했다. 쿠로노의 몸에 떠밀리면서 오버홀은 방어할 기회를 놓쳤다. 묵직한 주먹이 몸통으로 들어왔다. 오버홀은 오른팔을 갖다대서 가까스로 클린 히트를 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몸이 후둘거리는 충격이었다. 그러고도 밀리오가 멈출 기색은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잘 보고 예측하는 것. 그리고 대응하는 것. 언제나 해오던 일이었다. 아무 것도 바뀐 건 없었다.
* 밀리오가 오버홀을 따라잡은지 15분. 그중 개성파괴탄을 맞은 5분. 2 대 1의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는 싸웠다. 그 중 3분의 1은 개성 조차 없어진 상태였지만, 전황은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2회 일치
* [[네모토 신]]을 먹고 파워업한 오버홀은 원 포 올 풀카울 20%로도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 [[미도리야 이즈쿠]]는 파편이 되어 오버홀이 접촉되지 않은 지면을 벽으로 삼아서 돌진한다. 그래도 오버홀은 자기 근처의 지면을 촉수처럼 뻗어서 공격을 가하는데 매우 빠르고 정교해서 피하기 쉽지 않다. 오버홀이 죽어도 공격을 머뭋지도, 에리를 포기하지도 않을 인물이라고 직감한 미도리야는 단기결전으로 치명상을 주는 걸 노린다. 미도리야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천장을 박차고 떨어지며 정수리를 노려서 공격을 가하나 오버홀은 몸을 비틀어 피해서 오른팔을 다치는데 그쳤다. 오버홀은 지금 미도리야가 빠르고 강하긴 해도 루밀리온 [[토오가타 밀리오]]나 [[서 나이트아이]]에 비하면 너무 움직임이 단순해 오히려 쉬운 상대라 평하며 반격을 가한다.
에리를 데리고 피신 중이었지만 몸은 걸레짝이 된 데다 긴장도 풀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회에 스승 나이트아이가 당하는 걸 본 뒤로 멘탈이 나가버린다. 꼼짝도 못하게 되자 에리만이라도 어딘가에 숨어있으라고 설득하지만 에리는 오버홀의 협박을 듣고 탈출의지를 접는다. 에리를 말려보려고 한 것같지만 그럴만한 힘조차 남지 않은 것 같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2회 일치
* 목적지에 도달한 츠유와 우라라카는 오버홀과 싸우던 미도리야를 보고 방금 전엔 가짜 미도리아였다는걸 눈치챈다. 그 정체는 미도리야의 피로 변신한 [[토가 히미코]].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탈출 목적으로 [[Mr.컴프레스]]의 카피를 생성했다. 컴프레스의 능력으로 굴을 파서 지상으로 나가려 한 것.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고, 당초엔 핫사이카이 조직의 "핵"인 "에리"와 접촉하는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내내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오버홀과 히어로들이 교전 중인 지금 접촉을 노리는 것이었다. 트와이스는 본체인 자신들은 위험부담을 지기 싫으니 카피인 컴프레스더러 임무를 수행하러 오라고 떠민다. 컴프레스는 투덜대면서도 지시에 따라 하강. 류큐팀은 컴프레스를 보고 [[빌런연합]]이 현장에 나타난 걸 알아차리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뭐가 뭔지 파악이 늦다.
* 그때 무슨 우연인지 루밀리오의 망토가 날아다니다 낙석에 휘감겨 스쳐 지나간다. 오버홀은 단지 기분 나빠하고 마는데, 에리가 문득 망토를 붙잡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오버홀은 에리의 뿔에서 기이한 빛이 나는 순간 섬뜩한 기분과 함께 에리에 내력에 대해서 떠올랐다. 에리는 두목의 딸이 낳은 딸. 즉 두목의 손녀였다. 두목의 딸은 "남편이 저주받은 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딸을 버리고 잠적해버렸다. 어느날 남편이 에리를 만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 조사 결과 에리는 양측 가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돌연변이. 저주도 뭣도 아닌,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에리는 너무 어렸던 관계로 자신의 개성을 자각하지도 컨트롤하지도 못했다. 두목은 "접촉한 상대가 소멸했다"는 점이 오버홀의 개성과 닮았다고 여겨 에리를 보살피고 그 개성의 실체에 대해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그게 오버홀의 "사업"의 시작이었다. 조사에 착수한 오버홀은 곧 해답을 찾아냈다. 에리의 개성은 "되감는 것". 두목은 오버홀과 에리의 개성이 닮았다고 했지만, 오버홀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고 두려워하게 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2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직원 11명은 구속, 전원 중상이라 타코다나의 빌런병원으로 이송 중이다. 호송 차량은 이들과 이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 문제의 탄환들과 아직 보고에 없는 캡슐을 전부 싣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렇게 작전은 끝나는 듯 했지만, 한 가지 사건이 남아있었다. [[빌런 연합]]과 [[시가라키 토무라]]. 그가 호송차량을 급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2화 . . . . 2회 일치
* 토도로키와 쇼지도 간발의 차로 구슬 하나는 놓치고 만다.
* 다비는 컴프레스에게 확인 차 "해제"하라고 하는데, 다비가 가져간 구슬이 바쿠고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8화 . . . . 2회 일치
* [[시가라키 토무라|시가라키]]가 믿었던 [[쿠로기리]] 조차 "[[엣지 쇼트]]"의 "지지"라는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으로 제압 당한다.
* 이미 뇌무는 엔데버의 커버 범위 조차 넘어선 상황.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 일행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지만 도망은 커녕 공포로 움직이지 조차 못하는 지경.
* 프로 히어로가 저항조차 못하고 당한 첫 사례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2회 일치
* 아이자와는 지금이라도 "정규의 루트로 정규의 활약을 해서 신뢰를 되찾아라"는 말을 하고 "기운차게 안으로 들어가자"며 기숙사로 향한다.
* 가차없이 공개되는 남학생들의 방.
- 나이츠 오브 더 라운드 . . . . 2회 일치
게임에서 점차 경험치를 쌓으면 캐릭터들의 무기와 갑옷이 보다 멋지게 향상된다. 다만 성능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템 중에서 커다란 아이템은 공격하면 쪼개진다. 이럴 경우 그냥 하나 습득하는 것보다 쪼개서 습득하는 것이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아이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금화상자는 3개이거나 확률에 따라 4개에서 6개까지 쪼개지기도 하고, 큰 과일 바구니는 과일 하나만 남기도 한다.]
- 남명렬 . . . . 2회 일치
* [[2016년]] [[문화방송|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 - 차수일 역
* 지차트콥스키의 갈매기 (2004년)
- 남효온 . . . . 2회 일치
[[조선]] 초기의 학자. 재야 [[사림]] 학자의 일원으로서, [[생육신]]의 일원이다.[* 단, 생육신은 사육신과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류한 점이 있는 개념으로, 당대에 세조의 집권에 반대한 이들은 생육신으로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몇 명 더 존재했으며, 특히 남효온은 다른 생육신들에 비해 한두 세대 이후의 인물로 시대 차이가 매우 커서 논란이 있다. (당대에는 '권절'과 같은 인물들의 인지도가 더 컸다.)]
남효온의 여러 저술 가운데서 가장 영향력이 돋보이는 것은 역시 육신전이다. 육신전은 사실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과는 차이가 있으며, 여러가지 오류가 존재한다. 또한 남효온의 연령이나 행적으로 보아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사림파 내부에서 전해지던 단종복위운동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여 남기는데 의의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 니시노 카나 . . . . 2회 일치
2nd 앨범 「to LOVE」로 오리콘 차트 1위, 95만장을 넘는 롱 히트를 기록.
2014년 11, 5th Album「with LOVE」를 릴리즈. 오리콘 차트 수위를 기록하였다.
- 닌자 거북이 . . . . 2회 일치
붉은 안대를 쓰며 무기는 쌍차. 성질이 급하고, 거칠어서 레오나르도와 충돌하기도 한다.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 슈레더와 협력한다.
- 담철곤 . . . . 2회 일치
중학교 3학년 서울에 있는 Seoul Foreign School 로 진학했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를 졸업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SFS에서 만난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에게 10년이 넘는 구애를 한 끝에 결혼했다.
담철곤은 1991년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일대에 모친의 [[묘|분묘]]를 조성했고, 추가로 1999년 부친의 [[묘]]를 만들어 2기의 합장묘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곳은 [[등기부등본]]상 농지인 '전(田)'으로 규정되어 있어 묘지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며, 묘소 부지는 담철곤 회장이 아닌 [[오리온그룹]] 직원이 등기권자로 돼 있어 토지 차명 보유 의혹을 받았다. 묘소의 총 면적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조성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264m²)의 8배에 달하는 2147m²(649평)으로 장사법에서 규정한 규모를 넘는다.<ref>[http://news.tf.co.kr/read/economy/1668728.htm 담철곤 오리온 회장, 직원 명의로 '호화 분묘' 불법 조성 의혹] 더팩트. 2016년 12월 16일</ref>
- 데모데모닷데 . . . . 2회 일치
비슷한 것으로 「하지만(でも,데모)」「그래도(だって,닷테)」「어차피(どうせ,도우세)」이 3가지를 묶어서 3D라고 칭하며,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의 말버릇으로 잡기도 한다.
그 한마디를 말하기 전에 : 「하지만」「그래도」「어차피」――사람이 상대해주지 않게 되는 "3D" 발언에 주의
- 데일리 야마자키 . . . . 2회 일치
[[야마자키 제빵 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프랜차일즈.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 마트 등의 대규모 편의점에 비해서는 보기 드물다.
본래 개인경영 빵집이나, 주점이 가맹점으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 점포 운영에 소유자의 자주성을 존중하며, 다른 편의점에 비하여 본부의 간섭이 적다. 이 때문에 서비스의 수준, 상품 전개에 격차가 심해서 "싫어하는 편의점 랭킹"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 도예종 . . . . 2회 일치
* 1차 인혁당 사건, 징역 3년
* 2차 인혁당 사건, 사형 (향년 50세)
- 라늬 . . . . 2회 일치
*[[2012]] ;[[디데이 ]]숨소리조차(남자편)
* [[2012년]] [[디데이]] - 숨소리 조차 (남자편)
- 라무네 . . . . 2회 일치
1953년에 라무네는 일본 내에서 팔리는 탄산음료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널리 팔렸으나, 여기에서 생산 피크에 도달해서 이후로는 다른 음료에 쉐어를 빼앗겨 점차 생산량이 감소하였다.
- 랄프 알거 배그놀드 . . . . 2회 일치
1915년 가족 전통에 따라 영국 육군 왕립 공병대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전쟁이 끝날 때 까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하였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배그놀드는 다시 현역이 된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LRDG|장거리 사막 정찰대]](Long Range Desert Group, LRDG)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한다. LRDG는 기존의 자석을 이용한 [[나침반]]이 대원들이 타고다니는 트럭 등에 교란될 것을 우려해 태양을 이용한 나침반을 사용했는데, 이 나침반 또한 배그놀드가 설계한 것이었다. 그는 전쟁 도중이었던 1941년에도 또다른 책을 펴내었다. 모래의 이동에 대한 연구를 담은 《바람에 부는 모래와 사막 사구의 물리학》[* The Physics of Blown Sand and Desert Dunes. 국내 정발된 책이 아니기에 임의로 번역한 제목이다.]이 그것이었다.
- 레이나 검랑전설 . . . . 2회 일치
레이나가 [[지구]]로 [[차원이동]]하여 [[여학생]]이 되어서, 학교에서 암약하는 악의 존재를 물리치는 내용이다. [[라이너 브라운|특별한 이유는 없는 뜬금없는]] 차원이동에, [[Equestria Girls|레이나가 별다른 묘사도 없이 학생들 사이에 끼어들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라진 뒤에는 친구들의 기억에서 애매하게 잊혀지는, 몽환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다.
- 레이프 . . . . 2회 일치
* 세컨드 레이프 - [[이차강간]]
* 서양권에서는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Rape가 아니라 Leif. 발음 상의 차이가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다.
- 로라 로라 . . . . 2회 일치
그녀가 대중에 첫 소개되었을 때는 구엔과 [디아나 소렐]과의 첫 파티때였으며, 지구측 최강 파일럿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적인 문레이스는 물론이고 지구인들조차 놀랐다고 한다.
잉그렛샤 뿐만 아니라 지구측의 전력은 문레이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약한 수준이기 때문에(첫 싸움 당시 달은 I필드 배리어를 쓰는데, 지구는 제1차 세계대전 수준의 병기를 운용했다) 정략적으로 지구측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구엔이 선택한 방법이다. 여장한 로랑을 보여주면서 "지구인들은 이렇게 연약해 보이는 여성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여장시켰던 것.
- 로손 . . . . 2회 일치
[[일본]]의 [[편의점]] 프랜차일즈 체인.
1974년 소매업계 대기업 [[다이에]](ダイエー)가 [[미국]] 식품회서 콘솔리데테드 푸즈(コンソリデーテッド・フーズ)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이 회사 산하에 있던 로손 밀크 프랜차일즈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 류지혜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 2011년 서울모터쇼 현대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2016년 CTCC 기아(중국)자동차 레이싱팀 전속모델
- 마기/303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는 분하지만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 그때 홍명이 차선책을 제출한다.
- 마기/334화 . . . . 2회 일치
* 어쨌든 동료가 추가되는건 반가운 일이라 알리바바가 악수를 청하는데, 네르바는 무례한 태도로 거부한다. 자기는 장차 위대한 황제가 될 텐데 소시민인 알리바바가 격의 없이 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쥬다르를 "나의 검은 마기"라 부르며 친한척한다, 정작 쥬다르는 무시로 일관한다. 자기는 네르바의 마기가 아니라는데.
백룡과 알리바바가 전신마장을 마친다. 알리바바의 가자는 말과 함께, 네 사람은 힘차게 성궁으로 가는 게이트에 돌입한다.
- 마기/336화 . . . . 2회 일치
* 바알을 비롯한 일곱 진들은 각각이 신드바드가 지닌 일곱 개의 신념을 인정해 왕의 그릇으로 선택했다. 이들 앞에 나타난 일곱 던전은 각기 신념에 따라 재구성된 것이며 역시 일곱 명의 신드바드가 지키고 있다. 알라딘은 바알의 의도를 알아차린다. 세상이 루프로 환원되는 걸 막고 싶다면 일곱 던전의 일곱 신드바드를 쓰러뜨리라는 것이다. 쥬다르는 이쪽이 네 명인데 7회전이냐 할 거냐고 디스한다.
* 일행은 난처해진다. 시간이 촉박한데 그저 힘으로 쓰러뜨리는 것 이상으로 신드바드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패널티가 크다. 그때 쥬다르가 코웃음을 치며 나선다. 그는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 뒤 홀로 신드바드를 상대하겠다고 선언한다. 쥬다르는 지금의 신드바드가 "열받아서 정신 못차리는 핏덩이"라며 그 입을 다물게 하는데엔 자신이 제격이라고 하는데.
- 마기/338화 . . . . 2회 일치
* 신드바드는 세상은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지며 전신마장 바레포르를 사용한다.
* 이번에 나타난 것은 15세의 신드바드. 그는 "운명"이라는 괴물과 맞서 싸운다. 그가 설명하길 이 던전 바레포르는 15세의 그가 공략한 던전이다. 그때 신드바드는 새로운 나라를 새우기 위해 동료들과 여행했으며 던전을 공략하고 타국과 동맹을 맺었으며 상회를 세웠다. 그때 "운명"이 앞길을 막았다. 운명은 죄없는 이에게 조차도 부조리를 쏟아부웠다. 전쟁, 공작, 노예, 고문. 이런 일은 모두 솔로몬 왕이 운명을 조각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 마기/339화 . . . . 2회 일치
* 바레포르는 얼음의 마법을 사용한다. "빙수 결정진"(가르폴 키레스탈)으로 백룡의 후방을 막고 꼬리로 때려서 얼음벽에 처박는다. 신드바드는 백룡 조차 아니라 그의 진 "자간"의 이름을 부르며 너무 허무했다고 빈정거린다. 환호하는 팔인장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백룡은 신드바드의 맹점도 꼬집는다. 바로 "주변 사람을 믿지 않는 점".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던전에서 조차 오로지 자신만이 강대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런 신드바드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백룡 자신도 누님 [[연백영]]은 그저 연약하고 지켜주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다르게 생각한다. 적어도 백영에게 만큼은 모든 것을 밝히고 힘과 위험과 책임을 나눠가질 "동료"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이 지금 백룡의 답이다.
- 마기/340화 . . . . 2회 일치
* 백룡은 신드바드를 추궁해 그가 동료 조차 전혀 믿지 않는 인물임을 인정하게 만든다.
신드바드는 세렌디네와 손을 맞잡고 던전 제파르의 이력을 설명한다. 이곳은 그가 17세 때 공략한 던전이며 그는 마침내 자신의 나라를 손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파르테비아로부터 어떤 섬을 사들였고 거기가 1차 신드리아 왕국이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세렌디네는 거래 상대인 파르테비아의 1황녀.
- 마기/347화 . . . . 2회 일치
이러한 허무감은 신이라고 피해가지 못한다. 우고 조차도 허무감을 이기지 못하고 미쳤으며 이는 새로운 목적 없이 타성적으로 세상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드바드는 "허무"를 쌓으며 끝없이 위로 올라가는 "운명이라는 지배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고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드바드나 알라딘 조차 생각해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전"을 떠올렸다고 자신한다.
- 마기/351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하늘에서 성궁의 사자들이 강림. 세상을 무차별 공격해 루프로 환원시키기 시작한다.
* 우고는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자책하지만, 다윗은 그가 아니라 신드바드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적어도 신드바드가 성궁에 온 이후에는 "그는 나의 신"이라 굳게 믿었다. 그게 오판이었다. 신드바드는 야심차게 준비한 계획을 폐기했다. 신들과 전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
- 마기/352화 . . . . 2회 일치
그렇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신드바드는 그것까지도 간파했다. 애초에 그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성궁을 자악하고 마법을 발동시킨 그는 이 앞에 나타날 필요 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행과 싸우려 하는건 뭔가 불안한 점이 있기 때문. 알라딘 일행의 행동을 방해하기 위해서다. 그 말을 듣자 알리바바도 짚이는 구석이 있는데.
>이걸 조종하는 정신체 본체는 이미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어.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2회 일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프랜차이즈.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영화만이 아니라 영화 기반 [[만화]], [[드라마]]를 포함하는 배경 세계 공유 프랜차이즈다. 케빈 파이기가 총지휘를 맡고 있다. 줄여서 MCU라 부르기도 한다.
- 마이클 페이 . . . . 2회 일치
1994년 당시 18세였던 마이클 페이는 싱가포르에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지는 기행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마이클 페이에게 태형 6대와, 35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으며, 미 국무부는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 [[빌 클링턴]] 대통령 까지 나서서 "태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 마철준 . . . . 2회 일치
[목차]
발 기술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 사이드 풀백으로 불렸다. 군더더기 없는 크로스 능력과 간결한 드리블로 SK 유나이티드 시절 전성기를 보내왔으며, 팀의 준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다. 수비력에 있어서도 악착같은 수비를 잘 보여주며 평균 이상은 해준다는 평. 그러나 점차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수비력이 떨어지고 공격 가담 상황에서도 크게 힘을 못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2회 일치
* 왼쪽 아래의 사람 모양으로 생긴 것은 캐릭터의 체력이다. 체력이 붉게 차버리면 캐릭터는 죽는다. 화염과 접촉하면 체력 상관 없이 불춤을 추며 죽으니 주의.돌아다니다가 주울 수 있는 진통제[* 최대 8개 까지 소지 가능]로 체력을 천천히, 약간씩 회복할 수 있다. 진통제의 소지 유무와 수는 체력 옆에 표시된다. 총 8개 까지의 진통제를 소지 가능.
* 체력 오른쪽에 있는 모래시계 모양 게이지는 아드레날린 게이지. 불릿타임을 시전하는 동안 아드레날린이 소모된다. 아드레날린을 모두 소모하면 불릿타임을 사용할 수 없다. 게이지는 자동으로 회복된다. 플레이어가 적을 죽인 직후에는 게이지가 노란색으로 변하며, 더 빨리 차오른다.
- 명탐정 코난 . . . . 2회 일치
만화가 오래된 만화다보니 애니메이션도 장기 방영하고 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화하다보니 생기는 세부적인 차이도 있다.
* '특별편'이란 것이 존재. 본편 만화와는 대략 평행세계적이며 사건 내용도 짧은 단편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그림체도 본편과 차이점이 있는데 이는 아오야마 본인이 아니라 어이스턴트들이 그려서다. 이 특별편의 에피소드는 조금 각색되어서 애니메이션에서도 활용되었다.
- 모레츠 사원 . . . . 2회 일치
1969년 마루젠 석유丸善石油(현재의 코스모 속유)의 CM에서, 미니 스커트 차림의 오가와 로자(小川ローザ)가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오는 차가 일으킨 바람에 치마가 올라가면서 동시에 「Oh!맹렬(モーレツ,모레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장면이 있어 여기서 모레츠가 일시적으로 유행어가 됐다. 여기에서 모레츠 사원이라는 단어가 태어나게 됐다.
- 몬스리 . . . . 2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행정국 차장인 28살의 여성. [[레프카]]의 행동대장이자 부관으로, 항상 최전선에 서는 우수한 지휘관이자 여전사. 두뇌가 명석하고 냉정 침착한 성격으로 [[브라이아크 라오|라오 박사]] 추적과 하이하버 급습 같은 중요한 작전의 지휘를 맡았다.
코난과 싸움을 거듭하면서 점차 서로를 인정하게 되었고, 하이하버 해일 이후 아군으로 합류.
- 문숙(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3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시험에 교복 차림으로 참가하여 최종 선발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은 너무 어려서 특채라면 몰라도 공채는 뽑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곧바로 엑스트라부터 시작하여 1년 뒤 영화 '태양 닮은 소녀'로 정식 데뷔.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외모로 각종 방송과 CF를 섭렵하며 충무로의 샛별이 되었다. 그리고 태양 닮은 소녀의 캐스팅 자리에서 만난 故 [[이만희(영화 감독)|이만희]]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시작하게 된다. 갓 데뷔한 파릇파릇한 신인 여배우가 23살 연상의 애딸린 이혼남과 연애한다는 사실은 당시 매우 화제가 되었다. 이만희의 딸인 [[이혜영(1962)|이혜영]]과도 당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2회 일치
풍차 마을의 책임자. 33세. 다이스에게 대장장이 일을 가르쳤다.
오로의 여동생. 9세. 처음에는 오로처럼 코난 일행과 충돌했으나 지무시와 만나면서 그에게 점차 호의를 품었다. 이후 오로와 달리 적이 되지 않으며 최후에는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했다.
- 바레브 라인 . . . . 2회 일치
[[이스라엘 군]]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고 [[수에즈 운하]]의 대안에 건설한 [[요새선]]. [[모래]]를 쌓아서 운하의 제방을 높여 장애물로 삼고, 수십개의 진지를 일렬로 배치하여 건설한 방어선이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군]]에게 돌파되었다.
* [[공군]]의 지원을 상정하여 포병의 배치가 적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군은 2000 문 이상의 박격포와 야포를 동원하여, 1분에 1만발 이상의 포탄을 쏟아부어 포격전에서 압도하게 된다.
- 바르나바 복음서 . . . . 2회 일치
바르나바 복음서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책은 내용적으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고, 대신 [[가롯 유다]]가 십자가에 매달린다. 전반적인 내용은 4대 공관복음서와 유사하나, 이 같은 차이점은 [[기독교]] 전통보다는 오히려 [[이슬람교]]에서 묘사하는 예수와 유사함이 많다. 또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부정하고, 메시아의 이름은 [[무함마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다만 정통 이슬람과도 내용 면에서 몇몇 차이가 있는데, 일단 무함마드를 이슬람교에서는 메시아로 보지는 않는다. 또 '하늘의 숫자'에서 이슬람교에서는 하늘은 7단계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바르나바 복음서에서는 9단계의 하늘을 묘사하고 있다.
- 바키도/126화 . . . . 2회 일치
* 무사시는 모토베가 태우던 담배를 넘겨받아 피우며 그 연기를 2차전의 봉화로 삼자고 제안한다.
* 그는 이 연기를 2차전 시작의 봉화로 삼자고 한다.
- 바키도/128화 . . . . 2회 일치
* 그 조차도 무사시의 몸에는 닿지 못했는데, 모토베는 거기에 성공했다.
* 모토베는 재차 사슬추를 날려 무사시의 칼을 휘감는다.
- 바키도/135화 . . . . 2회 일치
그날은 전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에게 탑 시크릿을 직접 전달하는 중요한 날이다. 일체의 언론 보도가 차단된 기밀 중의 기밀. 그런데 그 내용을 듣고 트럼프는 귀를 의심한다.
원래 바키 시리즈에는 정치인들이 본인에 가까운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트럼프는 그냥 본명으로 거명하고 있다는게 차이점.
- 바키도/137화 . . . . 2회 일치
* 한동안 그말대로 닥치고 있던 스트라이덤은 기어이 다시 입을 연다. 힐너리가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에 대해 이해가 너무 부족하고 차원이 다른 "몬스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힐너리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한다.
* 그렇게해서 유지로의 방에 들어간 힐너리. 그런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팬티만 걸친 유지로. 게다가 아침발기인지 힘차게 팬티 바깥으로 고개를 디밀고 있다. 말도 못하게 경악하는 힐너리와 달리 유지로는 태연하게 "선서는 안 받는다"고 통보한다. 그는 이미 거절한 바가 있는데 힐너리가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모양이다. 스트라이덤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 바키도/139화 . . . . 2회 일치
무사시는 우츠미 경시총감을 찾지만 그는 애초에 현장파도 아니라 오오츠카 경보부가 돌아가 달라고 말한 터였다. 오오츠카 경보부는 화제를 돌려 무사시가 차고 나온 칼을 두고 "임의 동행할 생각은 없는 듯하군"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차에 타줘야겠다"는 말은 거두지 않는데. 무사시는 하늘을 쳐다보며 "사양하지 말고 잡아가면 될 거 아니냐"고 대꾸한다.
- 박근영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6년]] 2차 18순위 ([[삼성 라이온즈]])
[[1996년]]에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8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지만 고작 1군 3경기에 그쳐 거의 2군에서만 머무르다가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1998년]]부터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 박녹주 . . . . 2회 일치
[[1960년대]]부터는 본인이 보유하고 있었던 바탕소리 녹음을 많이 남겼다. [[1963년]] 기독교방송에서 춘향가를 녹음하고, [[1972년]] 자택에서 기록보존용으로 심청가를 녹음하였다 흥보가는 총 4차례나 전판을 녹음하였는데 이 가운데 [[1967년]] 녹음(고수 : 정권진)과 [[1973년]] 녹음(고수 : 김동준)은 음반화 되었다. 전자는 [[지구레코드]]에서 출반되었으며, 이후 CD로도 복각되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문화재보호협회 소장 녹음으로 여러차례 음반으로 제작되었으나 CD로는 제작되지 않아 지금은 듣기 어렵다. 그 외에 출반되지 않은 녹음으로는 [[1976년]] 문예진흥원 판소리 조사 사업당시에 녹음한 것(고수 미상)과 녹음시기 미상의 기독교 방송 소장의 녹음(고수 : 정철호)이 있다.
- 박상원(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 박상철(가수) . . . . 2회 일치
[목차]
[[전국노래자랑]]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 이전에 [[미용사]][* [[강원도]] [[삼척시]] 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을 차렸으나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 미용사는 그만뒀지만 현재까지도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은 존재한다. 또한 이발은 잘 못했다. ~~[[장롱면허]]?~~], 단역 [[배우]] 등을 하다가 [[1993년]] [[7월 25일]] [[전국노래자랑]] [[삼척시]]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이후 가수로 데뷔했다.
- 박성환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프로 입단 연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10차 10라운드 (전체 100순위)([[두산 베어스]])
'''박성환'''(朴成桓, [[1998년]] [[5월 18일]] ~ )은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며 좌완 투수로 2017년에 2차 10라운드(전체 100순위)로 입단하여 현재 육성선수이다.
- 박승호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200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0 시즌]]부터 박승호는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겨 4년간 타격코치로서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고, [[2004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4 시즌]]부터는 팀을 옮겨 [[KIA 타이거즈]] [[김성한 (1958년)|김성한]] 감독, [[서정환]]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타격코치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027357 기아 김성한 감독 재계약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481897 <프로야구소식> 박관용 국회의장, KS 1차전 시구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9800 KIA, 서정환 2군감독 1군코치 임명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09720 최하위 기아 코칭스태프 개편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KIA 타이거즈]] 코칭 스태프 개편을 통해 [[서정환]]이 감독으로, 박승호가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190864 <프로야구소식> KIA, 코칭스태프 보직 확정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7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7 시즌]] 전반기에는 팀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6월에 대대적인 코칭 스태프 개편이 있었고, 수석 코치로 있었던 박승호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ref>[[마이 데일리]] - 2007년 6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6181438192229 "KIA, 조범현 전 SK 감독 영입 등 코칭 스태프 개편"]</ref><ref>[[한겨레]] - 2007년 6월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216991.html "기아 1·2군 코치진 맞교체… “분위기 쇄신” 효과 관심"]</ref> 2007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KIA 타이거즈]]는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을 경질하였고, [[2007년]] 시즌 중 배터리 코치로 영입했다가 새로 선임한 [[조범현]] 감독이 코칭 스태프를 새로 구성하면서 그는 구단과 재계약하지 못했다.<ref>[[스포츠 칸]] - 2007년 10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212230173&sec_id=510201 "조범현 감독 KIA 코치진 물갈이"]</ref> 하지만 그가 키워냈던 [[이용규]]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우뚝섰다.
- 박준규(1925) . . . . 2회 일치
[목차]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철언]]과 함께 자민련 내 대구경북세력을 대표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이는 박준규가 1공화국과 2공화국 시절 [[김대중]]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몸을 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기인한다.~~하지만 김대중은 신파, 박준규는 구파~~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준규는 여당으로, 김대중은 야당으로 진로를 달리 했지만 인간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박준규의 활약은 대구경북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이 상승하는 데(8.7%에서 13.1%로 상승)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에다 김대중과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국회의장 단일후보로 지명되었고, [[경선]]에서 무려 3차 투표까지 간끝에 당시 [[한나라당]]의 반란표가 쏟아져 나오며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준규는 이로써 의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 3선의 고지에 올랐다. 반면 [[한나라당]]은 [[오세응]]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패배하고 [[조순(1928)|조순]] 총재 이하 지도부 전원이 국회의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 박진영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5차 3라운드([[KIA 타이거즈]])
2008년 2차 3순위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2008년 포스트시즌 탈락 이후 후반 신예들을 주로 기용한다는 [[조범현]] KIA 감독의 방침에 의해 9월부터 김종국과 함께 주로 2루수로 기용되어, 26타수 8안타 0.308 타율를 기록하였다.<ref>[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layer.asp?player_id=78606 박진영 기록 페이지, 한국야구위원회]</ref>. 상무에서 퓨처스리그 등 2군 리그에서 주로 활약하다 2012년 시즌 이후 팀에서 방출당한다.
- 박창달 . . . . 2회 일치
[목차]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탄핵역풍 속에서도 자신이 영입한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텃밭 대구 동 을 지역구 공천을 받아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년 반여만에 의원직 상실 크리.(...) 그리고 그의 지역구는 바로 [[유승민]]이 차지하게 된다. 이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특사로 사면복권되었지만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미 지났다.(...) 사면복권되기 전에는 당원이 될 수 없기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후보 및 유세단 경호 등에 참여했다.
- 배트맨 . . . . 2회 일치
배트맨의 자동차. 그냥 차가 아니라 특수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 백남순 (1929년) . . . . 2회 일치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처음 남한을 방문하였고, 이후 [[남북회담]]에서 수차 모습을 나타내는 등 대남협상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지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103MW200805158998 백남순 북한 외무상 사망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폴란드]]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1989년]]에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취임했다.
[[2006년]]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지역포럼에서도 회의에 출석하면서 사적으로는 요양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3일]]에 사망하였으며, 사인은 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상으로 재임하던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상사에 해당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헌화를 받았다. 사망 당시 실질적인 외교 책임자는 [[강석주]] 제1 외무차관이었으므로, 사망 후의 외교 정책에 영향은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백남억 . . . . 2회 일치
[목차]
그 후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동부화재|동부화재해상보험]]의 전신인 한국자동차보험 회장을, 1991년부터 5년간 (재)성균관대학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 백성현 . . . . 2회 일치
| 어린 차송주
| [[차이나 블루]]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2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 5월에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39년 10월에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국가방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영국]], [[미국]]과의 동맹 체결, [[국제연합]]을 창설한 샌프란스시코 회의(1945), [[테헤란 회담]](1943), [[얄타 회담]](1945), [[포츠담 회담]](1945) 등 연합국의 각종 굵직한 회담에 모두 이름을 내밀었다.
- 변신합체로봇 . . . . 2회 일치
탈 것을 기반으로 변신합체를 하는 구조. [[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이 대표적이다.--그냥 그거 타고 다니면 되지 않냐는 질문을 하면 안된다.--
- 변정수(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가끔씩 라디오 DJ도 하는데, 예전에는 [[SBS 파워FM]]에서 낮 2시에 방송한 "변정수의 앗 2시다"의 DJ를 맡았다. 2015년 6월부터 [[KBS 제2라디오]]에서 "탐나는 6시"를 진행하고 있다가, 2016년 12월에 일신상의 이유로 하차했다.
- 보루토/3화 . . . . 2회 일치
* 2차시험은 깃발 뺏기. 보루토는 깃발을 지키는 역을 수행하다가 실패할 위기에 처하자 카타스케가 준 닌자도구를 사용한다.
* 사이가 시험관으로 나서 문제를 출제한다. "닌자 군사 기록첩"의 5권을 가지고 문제를 내는데, 그 책은 사라다 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책.
- 보루토/7화 . . . . 2회 일치
* 오오츠츠키 일족은 우즈마키 나루토에서 구미 쿠라마를 꺼내는 작업을 하나 너무 거대한 차크라라 시간이 걸린다.
* 황무지에 거대한 목둔의 꽃이 피어 올라있다. 오오츠츠키 모모츠키와 킨츠키는 여기에 우즈마키 나루토를 묶어놓고 구미 쿠라마를 뽑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거대한 차크라여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결국 모모츠키는 작업을 멈추고 잠깐 쉬는데 나루토는 "우리들 '닌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니깐"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 보증 . . . . 2회 일치
째째하게 사회적 '신용'을 엄밀하게 따지는 차갑고 냉정한 서양권과는 달리, 다른 사람이 타인의 인간성을 믿는다고 [[도장]] 하나만 찍으면 대출을 해주는 동양권의 '인심'에 근거를 둔 훈훈한 금융 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정(情)을 담보로 하는 제도로서, 이윤 밖에 생각하지 않는 차가운 금융 시장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 보쿠걸/99화 . . . . 2회 일치
* 타케루 조차 로키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애가 있었고 지금은 못 보게 됐더라도 언젠가는 연락할 수 있을 거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 하지만 미즈키는 "절대로 다시 볼 수 없다"면서 작별인사 조차 나누지 못했다고 눈물 흘린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2회 일치
북한의 역사왜곡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봐도 특색이 강한데, 너무 왜곡의 강도가 심해서 역사관이 다르다거나 견해차이가 있다는 수준이 아니다. 이미 '''북한 사람들의 역사관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선'''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 이에 따라 대 살육작전을 현지에서 조종 지휘할 데 대한 임무를 받은 남조선 강점 미군사령관 윅캄(위컴)은 의로운 항쟁자들을 ‘버릇없는 망나니’, 지어는 ‘들쥐’로 모독하면서 ‘공수특전대’ 5개 여단과 보병사단, 기갑부대, 항공대를 비롯한 7만 여명의 방대한 무력과 장갑차, 중포, 군용직승기와 지어는 항공모함전단까지 광주의 평화적 주민들을 살육하는데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 브로포스/브로 . . . . 2회 일치
차지샷이 가능하다. 모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발사하는 탄환의 수가 많아진다.
차지샷 가능.
- 블라디미르 렘 . . . . 2회 일치
맥스와 처음 만난 순간은 맥스가 프랭키 나이아가라를 죽이고 난 후였다. 블라드는 맥스의 차 앞을 자신의 벤츠로 가로막은 후 "[[대부|거부할 수 없는 제안]]"[* an offer you can't refuse]을 한다. 자신의 무기를 운송하다가 펀치넬로 쪽에 붙은 화물선 선장 보리스 다임을 죽이고 화물선을 탈환하면 운송하던 무기를 필요한 대로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제안이었다.
맥스가 경찰서에서 탈출한 [[모나 색스]]를 찾아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올 때 등장. 맥스를 모나가 숨어있는 폐 놀이공원까지 태워준다. 차 뒷좌석에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이 있었는데 그는 그걸 비니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트로이의 목마라고. 맥스를 태워주는 동안 잘못을 하는 선택지 밖에 없다면 그건 정말 잘못한게 아니라 운명에 가까우니 해야할걸 하면 된다고 조언해준다. 이에 페인의 대답은 "그렇게 쉬운 일이 절대 아냐."[* It's never that easy.]
- 블랙 클로버/100화 . . . . 2회 일치
*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각성한 "운명의 붉은 실"은 이미 일어난 사건 조차도 운명을 조종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대체할 수 있다.
* 마녀왕은 드디어 바네사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완성됐다고 생각하고 바네사 자체를 조종하려고 들지만 그 조차 실패하고 만다.
- 블랙 클로버/103화 . . . . 2회 일치
미인이 혼자 있으면 불청객이 찾아오는 법. 버밀튼 가문의 바르만 남작이란 자가 나타나 수작을 건다. 취한채로 나타난 바르만 남작은 제멋대로 "오늘밤 상대는 그대로 정했다며" 미인에게 추근거린다. 미인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고 꽂꽂한 시선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무시에 더 흥분한 바르만 남작은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팔을 잡아챈다.
항상 갑옷차림이던 [[쿨 뷰티]], 푸른 들장미 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였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2회 일치
아스타가 "너도 곧 익숙해진다"고 어영부영 놀고 있자 성질 급한 메레오레오나가 엉덩이를 걷어차며 빨랑빨랑 가라고 성화다.
* 메레오레오나의 도발을 당한 아스타가 이를 악물고 일어난다. 그저 "운"이라는 말에 반박하듯이 마법제는 결코 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꾸하자 메레오레오나가 "그렇다면 올라가봐라. 바보에겐 무리겟지만."이라고 재차 도발한다. 아스타는 반드시 올라가보이겠다며 "우리들의 꿈은 실적 위에 있다"고 일갈한다.
- 블랙 클로버/110화 . . . . 2회 일치
* 결국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근소한 차이로 정상에 도착하는데 성공하나, 컨트롤이 안 돼서 마그마에 처박힐 뻔한다.
* 바로 그 순간 그저 날아가던 아스타가 마법생물을 뺑소니치고 지나간다. 아스타가 다시금 그 상태를 하자 노엘이 경악한다. 레오폴드는 아스타가 익힌 신필살기라고 생각하고 "블랙 아스타"라는 센스없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아스타는 폭주자동차 같은 상태가 돼서 날아가는 중이라 듣지도 못한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2회 일치
* 이미 승부가 났음에도 랜길스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핀랄이 사라져야 한다며 의식도 차리지 못하는 형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가 저지하고 나선다.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어느 새 날아와 랜길스의 목을 겨눴다. 비록 대회장에 난입하진 않았지만 [[챠미 퍼밋슨]]도 그리모어를 펼쳐들고 요격할 태세였으며 [[노엘 실버]]는 제일 먼저 핀랄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갔다.
마법제가 냉담하게 내뱉자 랜길스는 그나마 억누르고 있던 호전성을 폭발시킨다. "그 자식", 핀랄과 함께 있어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아스타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아스타도 피차 일반.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으르렁거린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2회 일치
* 클로버 국왕은 눈 앞에서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파악할 역량 조차 없는지 "짐 앞에서 무슨 짓들이냐"고 아우성칠 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마법제는 할 테면 해보라는 듯 "당장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랜길스 보드]]의 요청을 허가한다. 하지만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이 붙으려 하자 시간 구속마법 "크로노 스테이시스"로 정지시킨다. 실전같이 싸워주면 좋긴 한데 어쨌든 이건 "시합"이라는 것. 하지만 둘의 열이 식기 전에 준비를 마치겠다고 말한다.
* 그래서 흩어져 있는 양팀 인원들이 소환된다. 검은 폭우의 아지트로 날려졌던 [[셋케 브론자차]]는 [[야미 스케히로]]의 고독한 화장실 타임을 방해한 죄로 잔뜩
- 블랙 클로버/130화 . . . . 2회 일치
* [[잭스 류그너]]는 자해를 감수하며 감행한 작전으로 [[랜길스 보드]]의 공간마법이 반사된다. 반사된 마법은 위력이 배가되어 시전자인 랜길스를 향해 날아가고. 궁지에 몰린 랜길스는 마법제 율리우스 조차 예상치 못한 저력을 발휘한다. 튕겨나온 마법을 모조리 공간마법으로 요격해 버린 것. 마력을 지금까지보다 두 배 이상 순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말이었다. [[클라우스 류넷]]은 그 저력에 경악하는 한편 그의 마력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데.
* 랜길스는 아스타의 블랙 모드를 경계하며 그게 뭐냐고 묻는다. 아스타는 딱히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다만 "랜길스가 바보취급하는 하층민이 발버둥쳐서 된 모습"일 뿐이라 답하는데. 랜길스에겐 그런 것 조차 거슬린다. 아스타에게서 [[핀랄 룰러케이트]]를 겹쳐보며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자신처럼 선택받은 자들과 같은 무대에 서려한다고 독설한다. 아스타는 그런 선택받은 자들의 대단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특별한 자들을 동경해왔다고. 그것은 잭스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나 아스타는 특별한 자들의 호감을 사고 싶은게 아니었다. 평범할지라도 특별한 자들과 함께 사람들을 지키고 함께 강해지고, 싸우기 위해서였다.
- 블랙 클로버/51화 . . . . 2회 일치
* 정작 고슈는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런데도 "차차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는데.
- 블랙 클로버/53화 . . . . 2회 일치
* 리히트는 터무니없는 마력의 덩어리를 방출하기 시작하며 기사단장들의 마법 조차 집어삼킬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다
* 단장들 조차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삼마안이 일제히 달려들어 봉인마법을 사용해 리히트를 막는다
- 블랙 클로버/58화 . . . . 2회 일치
* 정작 노엘은 언제나 차갑게 멸시 당한 기억만 떠올라서 기분이 상하고 만다.
* 애초에 자신에겐 따뜻한 기억 조차 없는데 집중이 될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 블랙 클로버/82화 . . . . 2회 일치
* 노엘은 아스타에 대한 고대 주술 마법에 대한 단서를 묻는데, 판젤 조차도 도저히 짚이는 곳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 바네사의 실 마법은 계속 연마하면 운명 조차 조종하는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87화 . . . . 2회 일치
* 마안을 개방한 파나의 위력을 점점 높아진다. 파나는 재차 공격을 펼치는데 검은 폭우로서는 속수무책이다.
* 전세는 다시 역전. 노엘이 자신의 실력을 봤냐고 우쭐거리자 아스타는 칭찬하며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고 외친다.
- 블랙 클로버/90화 . . . . 2회 일치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레이저가 마녀의 숲에서 항전하던 마녀들을 덮친다. 잠시 뒤 숲은 폭격으로 엉망이 되고 마녀들 대다수가 사상한다. 무차별적인 공격이라 다이아몬드의 병사들까지 휩쓸렸지만 라드로스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젤이 아직 살아있는지 찾아다닌다.
젤은 가까스로 도미나를 구하는데 성공했지만 치명상을 입었다. 그의 바람마법이 지켜줬지만 도미나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라드로스가 젤을 발견하고 내려와 그를 걷어차며 "소중한 사람이 정말 있었는데 당신은 여기 자빠져서 뭘하는 거냐"고 조롱한다. 그리고 젤을 괴롭히기 위해 그의 소중한 사람, 도미나를 잡아 올린다. 라드로스는 도미나의 얼굴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과 같이 도망쳤던 애인" 이라고 알아본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2회 일치
* 잠깐 침묵하는 듯 했던 라드로스는 환호성을 지르며 마법을 마구 쏴댄다. 본래 눈엣가시에 어차피 정점에 서려면 마르스를 제거해야 했다며,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고 엄청 좋아한다. 덤으로 젤과 그 애인 [[도미넌트 코드]도 처리할 수 있다며 혼자만 축제 분위기다.
마력을 흡수하는 라드로스는 그 마르스 조차 "무적"이라 말할 정도로 강력한 상대다. 그러나 쓰러뜨릴 방법이 없진 않다. 그는 허용량 이상의 마력을 흡수시켜 자멸하게 만드는 것인데 정령마법이나 마녀들의 여왕 정도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능성도 있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2회 일치
* 마르스는 차마 파나를 해칠 수 없다며 저항의사도 잃지만 아스타의 일갈을 듣고 파나를 구하기 위해 싸움에 나선다.
* 증오의 파나가 진짜 "파나"인지, 그런건 알 수 없지만 마르스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는 두통을 호소하며 상태가 나빠진다. 파나는 "왜 모두 날 방해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절망의 베토]]가 막판에 사용했던 자폭마법을 발동시킨다. [[핀랄 룰러케이터]]는 그걸 알아차리고 왜 저 녀석들은 죄다 저런걸 달고 있냐고 절규한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침착하지만 저것이 발동할 경우 일대가 날아갈 거라고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 블랙 클로버/93화 . . . . 2회 일치
그때 마르스가 자신의 불꽃 회복마법 "불사조의 날개옷"으로 화상을 회복시킨다. 그렇다곤 해도 열기를 차단할 방법이 없으므로 상처가 낫기 무섭게 다시 몸이 타들어간다. 마르스는 그래도 갈 수 있겠냐고 묻는데 아스타는 "숯덩이가 돼도 가겠다"고 의지를 꺾지 않는다.
* 마르스는 아스타를 보며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우기 전후로 많은 강자들을 상대했지만 이토록 포기를 모르는 인물은 없었다. 또한 신기한 인물이기도 한데 적인지 아군인지 불분명한 상대 조차 설득하고 도우려 하는 인물은 클로버 왕국에서도 아스타 정도였다. 끝없는 이타심을 가지고 그걸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아스타야 말로 "진정한 기사"에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 블랙 클로버/94화 . . . . 2회 일치
* [[증오의 파나]]의 자폭도 막고 "파나"의 인격도 되살리는데 성공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 마르스는 아스타에게 "너의 덕"이라며 악수를 청한다. 아스타는 던전에선 그토록 무감정하고 차가웠던 인물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아스타도 그의 힘이었다며 소꿉친구를 구한걸 축하한다.
>인간이란 같은 인간조차 상처입히지
- 블랙 클로버/95화 . . . . 2회 일치
그는 "재능만 가지고 으스대는 녀석들을 물리치자"는 그럴듯한 명분과 다이아몬드 왕국 측에는 자신이 잘 설명해서 출세가도를 달리게 해준다는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속셈은 언젠가 아스타의 반마법의 힘도 자신이 독차지하려는 것.
아스타가 그런 속셈을 딱히 알아차린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답은 정해져 있다.
- 블랙 클로버/97화 . . . . 2회 일치
여왕은 아스타를 치료하면서 한 가지 조작을 가했다. 그녀는 완력을 강화시켜줬다고 했는데, 그거말고도 반마법의 힘이 더 빠르게 흐르게 해 출력을 높인 것이다. 그래서 반마법의 힘이 격류처럼 아스타의 몸을 휘감고 일종의 "빙의체"로서 작용한 것이다. 아스타는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면서도 차가운 호수에 들어간 것 같은 서늘한 감각과 놀랄 정도로 선명해진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넘치는 힘에 내심 놀라고 있다.
* 라드로스는 멈추지 않는 아스타의 돌격을 보며 패닉에 빠진다. 그토록 모든 것을 걷어차며 올라왔는데 어째서 자신이 지는 거냐고 절규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가 검을 들어올리자 노엘은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나 아스타는 의심이 없는 중이면서도 지배되고 있는 오른팔을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여왕은 그 정신력에는 놀라지만 어차피 그녀의 마법이 아스타의 혈액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 오래버틸 수는 없다.
노엘은 아스타 조차 저항하자 "당신이 날 죽이게 하지 않겠다!"고 외치며 여왕의 마법을 풀기 위해 몸부림친다.
- 블루 마블 . . . . 2회 일치
강력한 능력을 지녔으나 60년대쯤 히어로로 활동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에게 불려나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기를 종용 당했다[* 흑인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이후 잠정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중단하다 [[피어 잇셀프]]에서 잠시 등장. '[[인피니티(마블 코믹스)|인피니티]]'에서는 뉴욕 한복판에 소환된 [[슈마고라스]]의 일부를 무찌르는데 일조했으며 [[루크 케이지]]의 마이티 [[어벤저스]]에 합류한다고 한다. 물체를 원자 단위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반물질을 조작해 체내의 양성자가 반양성자로 인해서 분해되는 상태의 [[스펙트럼(마블 코믹스)|스펙트럼]]이라는 여성 히어로를 구하기도 했다.
위에서도 조금은 언급했지만, 이런 초능력들을 제외하더라도 그 자존심 강하고, 누군가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닥터 옥토퍼스|우월한 스파이더맨]]조차 물리학계의 권위자로서 존중해줄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다.
- 블리치/683화 . . . . 2회 일치
만해한 켄파치 조차 쓰러지고 위기에 몰린 호정 13대. 토시로의 대홍련 빙륜환이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 '''정신을 차린 켄파치가 제라드의 다리를 건 것이다.'''
- 샤잠 . . . . 2회 일치
NEW 52가 진행되면서 캐릭터성에 차이가 생겼다.
NEW 52 이후에는 능력에 차이가 생겼으나 강함은 여전하다.
- 샬롯 링링 . . . . 2회 일치
[[위대한 항로]]를 주름잡는 최강의 [[해적]]인 '''[[사황]]''' 중 한 명이자 [[빅 맘 해적단]]의 선장이다. 통칭 '''빅 맘'''.[* 그녀의 배에 써 있는 글씨에 따르면 Big Ma'am이 아니라 Big Mom이다. 전자는 마담, 후자는 마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나온 바로는 빅 맘 해적단의 선원들은 샬롯을 '''"마마"'''라고 부르고 있다. 원피스 그린에서는 BIG MOM이라고 써 있는데 610화에서 파파구의 설명에서는 배경에 BIG MAM이라고 써 있다. Mam은 마마(Mamma)의 준말이니 의미상의 차이는 없지만. 다른 표기가 작중 또는 공식 설정집에 나왔다면 출처와 함께 [[추가바람]].] 생일은 [[2월 15일]].
의외로 부하들과의 관계가 훈훈하다. [[타마고 남작]], [[페콤즈]], 그리고 [[보빈]]이 샬롯을 부를 때 '''"마마"'''라고 부르는 걸 보면... [[흰 수염 해적단]]이 [[흰 수염]]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따른다면 이쪽은 샬롯이 어머니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느낌?[* 물론 빅 맘의 분노를 두려워하며 타마고 남작과 페콤즈가 서로 빅 맘이 건 전보벌레를 받는 걸 미루어 볼 때 흰 수염처럼 친숙하다고 보긴 힘들다.]
- 서도영 . . . . 2회 일치
|2010||OCN||[[야차 (드라마)|야차]]||이백결||
- 서림 . . . . 2회 일치
조선 인종 때 문신 박동량(朴東亮)이 저술한 기재잡기(寄齋雜記)에서도 임꺽정의 죽음과 관련되어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만 실록의 기록과는 상당히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며, 기록된 시기가 명종 시기와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설화적인 측면이 강한 기록으로 볼 수 있을듯 하다.
- 서수민 . . . . 2회 일치
[목차]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은 역시 미디어 노출이 너무 잦다는 점. 용감한 녀석들에서 매주 박성광이 그녀를 디스하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이게 딱히 재미있는 드립들도 아니었어서 많은 비판을 들었다. 대개 개콘 연출자의 이름은 연말 시상식에서 개그맨들이 수상소감으로 OOO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정도로 듣게 되는데 매주 들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나온 비판. 무한도전의 김태호, 1박 2일부터 지금까지의 나영석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얼굴이나 목소리가 공개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서수민은 그 과정조차 부자연스러웠다.
- 서울특별시/인물 . . . . 2회 일치
* [[차명석]] - 용산구
* [[차세찌]] - 용산구
- 서울특별시장 . . . . 2회 일치
* 서울특별시장은 '장관급'으로 대우받는다. 다른 광역시 등은 '차관급'으로 대우를 받는다.
* [[서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인구, 경제 측면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서울시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비전과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
- 서효림 . . . . 2회 일치
| [[밥상 차리는 남자]]
| [[밥상 차리는 남자]]
- 선거인단 . . . . 2회 일치
미국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단은 각 주의 [[투표]]로 선출된다. 각 주에 할당되어 있는 선거인의 숫자는 각 주의 인구에 비례하여 차이가 난다. 현재 미국에서 다수의 주는 주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선거인을 독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현대에는 선거인단 제도로 인하여 실제 투표수와 왜곡되는 경우가 있어, 이러한 측면에서 논란이 있다. 실제 투표수는 더 많이 받은 후보가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밀려서 패배하는 사례가 21세기에 몇 차례 나타나고 있으며,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직접 투표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선거인단 제도의 개혁론이 제기되고 있다.
- 세븐 솔저스 오브 빅토리 . . . . 2회 일치
* [[스터프 더 차이나타운 키드]](Stuff the Chinatown Kid)
* 스터프 더 차이나타운 키드II(Stuff the Chinatown Kid II)
- 세속주의 . . . . 2회 일치
[[목차]]
세속주의 사상에서는 특정 종교를 가졌다는 신념의 문제 떄문에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이는, 특정 종교의 신자가 특혜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봄과 동시에, 모든 종교의 신자는 물론 [[무신론]] 역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 소말리 족 . . . . 2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각각 영국령 소말리랜드와 이탈리아 령 소말리아로 식민지가 세워져 나누어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소말리 족 통일국가를 열망하는 '대 소말리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소말리랜드와 소말리아는 협력하여 통일-독립에 성공한다.
- 송아영 . . . . 2회 일치
[목차]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세종특별자치시장]] [[공천]]을 받았으나 현 시장인 이춘희 후보에게 큰 표차로 낙선했다.
- 송지효 . . . . 2회 일치
* [[아모레퍼시픽]] 가루설록차
* 주사위의 신 (중도 하차)
- 송창현 . . . . 2회 일치
[목차]
결국 장운호와 함께 작년 김기현처럼 군 팀에 들어가는 것으로 탈출할 듯 하다. 상무 1차 합격자 명단에 들어갔다. 홈 경기에서 평균자책 1.17로 매우 준수한 피칭을 보였다.--홈깡패--
- 송호창 (1967년) . . . . 2회 일치
'''송호창'''(宋皓彰, [[1967년]] [[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국회의원이자 인권 변호사이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8110317 민주당, 송호창·이학영·백혜련 전략공천] 프레시안 2012-02-28</ref>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TV토론에 출연해 촛불 정국으로 대변되는 촛불민심을 지지하여, '촛불 변호사' 로 활약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0662 '촛불 변호사' 송호창, 안상수 16년 아성 '탈환'] 오마이뉴스 2012.04.12</ref>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로 나선 [[박원순]]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65 ‘박원순 대변인’ 송호창, ‘보온병’ 안상수에 도전장] 미디어오늘 2012-02-06</ref>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의왕·과천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ref>[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깨진 링크|url=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ref>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2회 일치
비행순찰하던 카라는 서로 싸워대며 과속 운전하던 운전수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들을 칠 뻔한걸 막아낸다. 운전수는 자기 차가 망가졌다며 [[적반하장]]으로 카라를 때리려다가 제압당한다. 그런데 그것이 뉴스에 뜨게 되어서 카라는 폭행을 휘둘렀다는 악성 보도에 시달리게 되고, 맥스웰 로드도 거기에 한몫 끼게 된다.
카라와 제임스는 창고에서 각각 샌드백과 폐차를 달아놓고 두드리면서 화풀이를 한다. 계속 말을 내뱉다가 카라는 자신에게 잠재된 분노가 있었다는걸 깨닫는다. 카라는 자신에게 가장 큰 분노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라는 알렉스의 호출을 받고 DEO로 간다.
- 스탈리늄 . . . . 2회 일치
몇몇 [[월드 오브 탱크]]와 [[워 썬더]] 유저들은 제작사가 [[소련]]에 편향되었다는 주장을 해왔다. 소련 차량들이 비교적 성능이 좋은 편이었던데다가, 제작사들의 국적[* 월드 오브 탱크의 제작사인 워게이밍넷은 벨라루스 회사. 워 썬더의 제작사인 가이진은 러시아 회사.]도 구 소련의 구성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소련 전차&항공기들이 비정상적인 방어력을 뽐내는 상황이 목격되자 유저들은 저것들의 장갑은 일반적인 금속이 아니라 스탈리늄이라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었다고 드립을 치기 시작한다.
- 스틸오션 . . . . 2회 일치
[[중국]]의 게임회사 ICE Entertainment에서 만든 [[제2차 세계대전]] 배경 해전 [[슈팅 게임]]. 2015년 11월 12일 발매되었다.
[[월드 오브 탱크]]에 함선 스킨 씌운 것. 월드 오브 탱크와는 달리 여러가지 무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2회 일치
1940년,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프랑스를 점령했다. 나치는 프랑코 정부와 같은 파시즘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를 지원하여 공화국을 무너뜨린 세력이었다. 당연히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에서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는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서유럽에 망명하고 있던 많은 공화파 망명자는 정치범이 되어 나치 독일에 끌려가 수용소에 갇히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
1945년, 유럽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의 길을 걸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보게 되자 공화파 망명자들은 굉장히 기뻐하였는데, 연합국의 승리에 따라서 프랑코 정부가 무너지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시즘 세력에 점령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해방되었고, 나치 독일과 동맹하던 파시즘 정권은 패망하는 나치 독일과 함께 붕괴하였다. 스페인과 같은 처지가 되었던 망명정부들도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동유럽 지역은 소련에 점령되었기 때문에 공산화 된 폴란드는 망명정부를 지속했고, 유고슬라비아는 티토의 게릴라가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면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귀환하지 못했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2회 일치
알렉스 드라지는 구제불능의 불량배다. 그는 동료인 딤, 조지, 피트와 함께 주정뱅이를 린치하고, 난폭운전을 하며 우왕자왕하는 차를 보며 즐거워하고, 늙은 작가 부부를 속이고 집에 들어와 폭행과 윤간을 저지른다.
루드비코 요법을 마친 알렉스는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하지만 알렉스의 방은 다른 누군가가 차지한 상태였고, 알렉스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부모님이 팔아치운 상태였다. 알렉스는 집에서 나와 떠돌다가 한 주정뱅이를 만난다. 알렉스와 동료들이 린치했던 주정뱅이였다. 알렉스는 주정뱅이와 그 동료들에게 구타당하고 소지품을 빼앗겼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관들은 과거 그의 부하이던 딤과 조지였다. 결국 알렉스는 그들에게 물고문을 당하게 된다.
- 식극의 소마/170화 . . . . 2회 일치
* 에리나 조차도 생소한 음식인데다 내용물이 흰지가 살짝 굳고 노른자가 반숙 상태인 이상적인 상태라 놀라워한다.
* 밥에 양념소스를 끼얹고 튀김을 올린 다음 한 번 더 소스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튀김옷 없이 튀긴 차조기 잎을 곁들이면 완성.
- 식극의 소마/182화 . . . . 2회 일치
* 게다가 곰이 출몰하는 지역이라 그런지 총을 차고 사냥개까지 대동한 현지 사냥꾼이 동행 중.
* 그런데 쿠가는 추위에 약해서 오그라져 버렸다. 게다가 밀크티나 차이티가 아니면 싫다고 땡깡 중.
- 식극의 소마/183화 . . . . 2회 일치
* 학생들이 특훈에 지키자 히사코가 피로회복제로 준 것이 오미자차.
* 하지만 하야마가 잡으면 차원이 달라진다. 대머리는 이렇게 깊고 강한 케이준 스파이스는 처음이라고 극찬한다.
- 식극의 소마/187화 . . . . 2회 일치
* 그만큼 어려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인데, 자칫하면 역겨운 악취가 튀김옷에 가득 차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쿠가 조차도 끝난 승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극찬이 이어지는데, 정작 소마는 아직도 승부는 모르는 일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자신에겐 "너희를 쓰러뜨려서라도 지켜야할 장소가 있다"며 가차없이 승부를 내버린다.
어차피 소스를 묻혀 먹고 판정할 거라면 처음부터 그랬으면 됐을 텐데, 굳이 튀김을 따로 심사한 걸 보면 이들이 찍먹파라는 걸 알 수 있다.
- 식극의 소마/191화 . . . . 2회 일치
* 정신을 차려 보니 놀랍게도 그의 눈 앞엔 시오미 준이 나타난다. 하야마가 어리둥절해있는 사이 도지마는 그녀에겐 볼권리가 있어 초대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야마는 퉁명스럽게 뭐하러 왔냐고 투덜거리는데 시오미는 단호한 태도로 하야마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생각보다 파워풀해서 하야마가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보인다. 하야마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처음으로 시오미에게 맞은 거라 정신적 충격이 더 강했다. 시오미는 자신이 하야마의 부모 역할도 하고 있으니 훈육의 차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야마는 아직 애니까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야마는 거기에 반발해서 자기가 없으면 업무 진행도 안 되면서 애취급을 하냐고 대든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2회 일치
* 황당하기까지한 유키히라 소마의 제안. 소마는 하야마 아키라가 퇴학됐으니 남은 십걸 자리는 9. 나키리 에리나가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앞으로 네 자리만 차지하면 십걸의 과반 이상을 점거하는 거라고 설명한다. 살아남은 자신들이 말이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2회 일치
그들을 보는 죠이치로의 눈은 싸늘하다. 그러나 금방 웃는 얼굴로 돌아와 맡겨만 달라며 능숙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차가운 얼굴로 홀로 조리대에 선다. 항상 친구들과 함께 하던 그 황야로 향하면서.
도지마는 죠이치로의 기행을 언급하며 마치 자기는 정상인인양 굴지만 이 인간은 시식 리액션으로 세라복 차림으로 유원지에 놀러가는 기분을 만끽하거나 대중탕에서 당당히 나체요가를 하거나 하는 등 숨은 변태임을 잊지 말자.
- 식극의 소마/208화 . . . . 2회 일치
그렇다고 그런 압박감 때문에 승부를 망칠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키노쿠니는 차이가 있는 점은 분명하다고 못박고 이대로 승부가 진행된다면 분명 자신의 승리일 거라고 재차 확신한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변수를 만들 수 있다면 해보라는 것이 키노쿠니의 마음가짐이었다.
- 식극의 소마/209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똑같이 1회전 멤버인 [[잇시키 사토시]]가 아예 이쪽 조리대에 와서 관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마가 자기 요리는 어쨌냐고 묻자 어차피 숯불을 달구고 있는 중이라 한가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태평하다. 그는 소마의 요리를 흥미롭고 기특하게 바라본다. 그는 아군을 고무시키는 것도 팀워크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자기 혼자 고무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십걸인 [[메기시마 토스케]]는 반대로 아주 성실하고 묵묵히 조리를 하고 있다가, 이쪽을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후추 뿌리기 장인은 꽤나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잇시키에게 말을 걸었지만, 정작 상대방은 그를 모르고 있다. 같은 학년일 텐데 이름 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다. 그 사실에 충격에 빠진 후추 뿌리기. 그러는 동안 이들의 대결 주제가 공개된다. 주제는 "장어".
- 식극의 소마/215화 . . . . 2회 일치
*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유키히라 소마]]와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 [[미마사카 스바루]] 조차 하이파이브로 축하하는데 [[나키리 에리나]]만 츤츤거린다.
* 그런데 반역자들이 갇힌 감옥 곁에 멀뚱거리고 서있는 [[나키리 에리나]]는 츤츤거리며 거부한다. [[미마사카 스바루]] 조차 흥쾌히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말이다.
- 식극의 소마/216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뜻밖에도 이 요리가 엄청난 호평행진. 심사의원 [[안(식극의 소마)|안]] 등은 수영복 차림으로 장어에 휘감기는 리액션.
* 그런 과거를 뒤로하고 멀쩡한 인물인 양 대중 앞에 나타난 잇시키. 그는 심사의원 앞에 자신의 요리를 내놓는다. 그의 장어요리 "히츠마부시 쿄쿠세이 기숙사풍미". 히츠마부시는 일본식 장어덮밥으로 반찬과 함께 먹거나 육수나 차를 부워 오챠즈케 스타일로 즐길 수도 있다. 전형적인 일식이지만 그가 내놓은 한 그릇은 일식이라 부르기엔 대단히 이질적이다. 우선 플레이팅부터 양식 접시를 이용했고 쌀밥이 아니라 "치즈 리조또" 위에 장어구이를 올려놨다. 관중과 [[카와시마 우라라]]가 "어떻게 봐도 평범한 히츠마부시가 아니다!"고 경악한다. 게다가 쿄쿠세이풍이란건 또 뭔가? 별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코바야시 린도]]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2회 일치
* 이번엔 린도의 차례다. 손질된 악어 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자르고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서 전분을 발라 기름에 튀겼다. 린도는 이때 중화 철냄비로 튀겨내는데 [[쿠가 테루노리]]를 들먹이며 "중화냄비를 쓰는건 쿠가의 특기를 뺏어가는 것 같아서 좀 그렇다"고 너스레를 떤다. 좌우간 진짜 주목할 부분은 이 다음이다. 린도는 악어고기를 처리한 뒤 대량의 고추를 그대로 철냄비에 쏟아붓는다. 저 둘은 매운 맛 내기 경쟁이라도 하는 걸까?
* 메기시마는 그녀의 조리가 예상한 대로라고 중얼거린다. 그 말을 들은 린도가 발끈한다. 메기시마는 린도가 깔끔하게 잘 차려진 고추요리를 할리가 없으니 당연히 문답무용으로 대량 투입할 걸로 예상했고 그래서 이쪽도 같은 "파워플레이"로 맞서는 거라고 말한다. 린도는 "나에 대해 다 안 다는 듯이 말한다"고 성을 내지만 곧 히죽거리며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인정하고 만다. 곧 그녀는 놀라운 박력으로 철냄비를 휘두르며 기름에 고추를 볶는다. 한편 메기시마는 준비한 고추를 절구로 빻아 페이스트 상태로 준비. 모두 혼신의 힘을 쏟아붓는데 느껴진다. 소마는 이들의 싸움을 "초중량급의 싸움"이라 묘사한다.
- 식극의 소마/232화 . . . . 2회 일치
하지만 아주 황당한 짓도 아닌게 두유로 끓이면서 녹인 뒤 소금 후추로 간을 하면 거의 정식 레시피로 만든 화이트 소스와 비슷한 "유사 화이트 소스"가 된다. 이스트와르도 처음 말만 들었을 땐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마의 설명을 들은 뒤에는 납득. 어차피 화이트 소스는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루에 우유를 첨가해 만드므로, 성분적으로는 네모 떡을 두유로 녹이는 것과 큰 차이는 없어진다. 네모떡의 전분이 녹으면 점성이 있는 소스가 될 테고 다른 조미료도 포함돼 있을 테니 원조 화이트 소스보다 경쾌한 맛이 더해진다. 이후에 1cm 크기로 깎둑썰기한 닭고기에 양파, 새우, 생쌀을 함께 넣고 버터에 볶는다.
- 신기준 . . . . 2회 일치
* 《[[천국의 눈물]]》 (MBN, 2014년) - 차성탄 / 어린 이기현 역
* 《[[일편단심 민들레]]》 (KBS2, 2014년) - 어린 차용수 역
- 신동미 . . . . 2회 일치
* 2002년 [[MBC]] 아침드라마 《[[황금마차]]》
* 2015년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드라마)|그녀는 예뻤다]]》 ... 차주영 역
- 신현준(군인) . . . . 2회 일치
[목차]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
- 십자군 전쟁 . . . . 2회 일치
이렇게 남이탈리아의 노르만인들의 침략을 격퇴한 알렉시오스는 칼끝을 아나톨리아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룸 술탄국으로 돌렸고, 아나톨리아 서부해안가 일대를 되찾는등 어느정도 성과를 낸다. 한편으론, 룸술탄국의 완전한 축출을 위해 교황에게 남이탈리아의 노르만인 용병대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1차 십자군 원정]]
- 씽(마블 코믹스) . . . . 2회 일치
* [[피어 잇 셀프]]에선 [[워디]]의 일원이 되어 같은 힘캐인 [[헐크]]와 나란히 조종당하는 신세가 됐다.[* 다른 워디 멤버들과 다른 점이라면, 씽은 양 어깨에 입이 달린 촉수가 생겼는데, 입이 계속 나불대며 씽에게 악당 짓을 하도록 부추긴다.] 물론 발 구르기로 시가지의 건물 여러 채와 차를 박살낼 정도로 강해진 모습도 보였다. 결국 토르와 맞붙게 되지만, [[묠니르]]에 등짝을 뚫리고 죽기 직전이 된다. 그러나 운 좋게도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 덕에 겨우 목숨도 건지고, 프랭클린의 [[현실 조작]]능력으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 [[헐크]]와는 [[라이벌]] 기믹인지 여러 차례 대결했으며, 애니메이션에서도 헐크가 등장하면 이 구도가 재현된다. 다만 대체로 헐크가 더 [[강캐]]라서 결국 발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의 묘사를 보면, 헐크는 괴물 취급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환영받는다. 2006년에 나온 애니판에선 똑같은 괴물이니 잘 지내보자는 싱의 말에, 배너 박사가 "당신은 영웅이지만 [[헐크]]는 괴물일 뿐이오."라고 답했다.] 헐크 말고도 다른 괴력 캐릭터에 비하면 힘에 있어서는 뒤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만나면 시험 삼아 처발리고 보는 신세가...(…)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2회 일치
잔 다르크의 군기는 실물은 현존하지 않으며, 현대 프랑스에서는 '표준 도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도안은 순차적으로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잔 다르크의 군기는 개념은 있지만 특정한 실물은 아니고 유물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http://saint-joan-of-arc.com/banner.htm (참조)]] [[http://www.stjoan-center.com/j-cc/ (참조)]]
[[십자군]]은 수 세기에 걸쳐서 여러 차례, 여러 형식으로 이루어진 만큼, '십자군 군기'로 분류할 수 있는 깃발은 그 종류도, 형태도 매우 다양했을 것이다. 애초에 '특정한 깃발'이라고 볼 수 없다.
- 아웃워드 작전 . . . . 2회 일치
Operation Outward.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이 벌였던 작전. [[독일]]과 그 점령지에 풍선을 날려보내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에 피해를 입히는 작전이었다. 비슷한 시기 일본군이 사용한 [[풍선 폭탄]]과 비슷한 무기였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http://www.nww2m.com/2017/03/scitech-tuesday-operation-outward/|뉴올리언스 제2차 세계 대전 박물관 블로그의 기사(영문)]]
- 아카짱가에리 . . . . 2회 일치
* 아기를 유모차에 태울 때, 걷지 못하게 되거나 유모차에 타려고 한다.
- 악마의 대변인 . . . . 2회 일치
[[목차]]
본래 가톨릭 교회에서 시복/시성 절차에 있어 대상의 결점을 남김없이 조사하는 역할을 하는 Promotor Fidei 지위를 뜻했다. 정식 명칭은 아니며, 속칭이다.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2회 일치
>먼 옛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우주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렵
>빛도 열도 소리도 없는 시간의 흐름조차 없다, 아니 세계는 에너지 덩어리만이 있다
- 안전벨트 . . . . 2회 일치
[[차량]]에 설치된 안전기구의 일종. 사고가 나거나 했을 때 탑승자의 몸이 쏠려 자동차 내부에 박는걸 막기 위한 벨트다.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현기증이 심해서 암살자들은 호타루를 먼저 데리고 가서 차를 몰아오기로 하고, 살생님은 아즈사씨를 보살피고 있기로 한다.
* "덕분에 계획에 차질이 생길 뻔 했다"는 말과 함께 폭탄을 터뜨린다.
- 애니 일본어 . . . . 2회 일치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애니로 일본어를 배우고 그대로 쓰면 일본의 실생활에서 격렬한 위화감을 줄 수 있다.
일본어 같은 경우 남자와 여자가 쓰는단어나 어투가 꽤 나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 야간전투기 . . . . 2회 일치
夜間戰鬪機. [[전투기]]의 한 종류. 말 그대로 [[야간전]]에 특화된 전투기다. [[레이더]] 성능이 발달한 요즘은 거의 없고 2차 대전 당시에나 날아다니던 물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더의 발달과 함께 등장했다. 한국전쟁 이후 레이더가 발달하여 모든 전투기에 탑재가 가능해지면서 시대를 거쳐서 자연히 사라졌다.
- 양시칠리아 왕국 . . . . 2회 일치
붉은 셔츠 부대는 시칠리아에서 남 이탈리아에 상륙, 나폴리 왕국군과 본격적으로 교전을 벌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다. 게다가 북쪽에서 사르데냐 왕국군이 남하해오자 결국 나폴리 왕국 마저 항복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은 붕괴하고 만다. 두 지역은 신생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현재의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섬을 차지하였다.
- 양진성(배우) . . . . 2회 일치
||<#FFCC33> {{{#ffffff '''가족'''}}} ||<(> 3녀 중 [[차녀]] ||
[목차]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2회 일치
"대표 없이 조세 없다,"를 외치며 영국에 대항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당시 식민지인의 40~45%가 애국자를 지지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보스턴 한구석에만 자리잡고 있다가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왕당파를 몰아내기 시작, 스토리가 끝난 시점에는 전 지역을 차지한다.
이제야 좀 간지나는 제복을 입은 놈들. 민병이랑 별 차이 없다.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2회 일치
맵 곳곳에 템플기사단이 차지하고 있는 요새가 있다. 이 요새에 침입해 탄약고를 파괴하고, 요새 지휘관을 살해한 후 영국 국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계양하면 요새를 해방 시킬 수 있다.
국경지대를 다니다보면 왕당파의 호송대를 발견할 수 있다. 호송대를 호위하는 병사들을 조지고 호송대 마차를 뒤지면 짭잘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 얼티밋 에콜로지 . . . . 2회 일치
자원 개발의 미명아래 별들의 자원을 고갈시켜, 차례차례로 죽음의 별을 낳고 있는 무서운 악덕 우주 기업.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2회 일치
플레이어. 블레이즈는 TAC 네임으로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훈련생이지만 샌드 섬의 인원이 부족해지자 차출된다.
TAC 네임 초퍼. 훈련생이지만 샌드 섬의 인원이 부족해지자 차출된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2회 일치
한 임무를 끝낼 때, 플레이어가 파괴한 중립 타겟이 살려둔 중립 타겟보다 많으면 스타일 미터가 왼쪽으로 이동한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정도는 파괴한 양과 살려둔 양의 차이에 비례한다.
벨카가 개발한 레이저포. 스윽 그었더니 비행 중이던 [[수송기]] 편대가 격추될 정도로 강력하다. 사정거리도 생각보다 짧지 않은 듯. 근처에 건설된 네대의 [[발전소]]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고 있으며, 수많은 양의 [[대공포]]와 EMP 포드, 레일건을 탑재한 [[열차포]]의 방어를 받고있다.
- 여태조 . . . . 2회 일치
제4차 북속시기 이후 재건된 대월 여왕조의 초대 황제로 본명은 여리다.
명나라가 베트남을 점령하면서 제4차 북속시기가 시작되자 세력을 모아서 남산기의를 일으키고 명의 식민지배에 저항하였다. 처음에는 병력의 질과 수적 열세로 명나라군에게 패배를 거듭했다.
- 역행 . . . . 2회 일치
게임 산업의 발전과 함께, '게임을 보고 다시 플레이'하는 이미지가 창작물에서 나타난 형태이다. [[2차 창작]]에서 흔히 쓰이며, 판타지나 SF장르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역행이 여러 차례 반복하면 [[루프물]]이 된다.
- 예종 . . . . 2회 일치
세조의 차남. 부친의 찬탈과 형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다소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오른 인물.
세조가 싸지른 똥(권신들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이를 견제할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고 개인의 카리스마로만 억누른 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으나 그로 인해 심신을 혹사한 끝에 요절한 왕. 그가 죽은 뒤 왕위는 정희왕후(세조의 비)와 소혜왕후(훗날의 인수대비)의 뜻에 따라 형의 차남인 잘산군(또는 자을산군)이 이으니, 그가 바로 성종이다.
- 오대석 . . . . 2회 일치
[목차]
1982년 삼성의 원년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도 [[김재박]] 다음 가는 유격수 2인자 [[함학수]], 상업은행의 주전 유격수 [[장태수(1957)|장태수]], 포철의 주전 유격수 [[서정환]]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함학수]]는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기용되었고, 장태수는 빠른 발을 살려 외야수로 전향해 주전 중견수로 기용되었고, [[서정환]]은 경쟁에 밀려 백업 내야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1년 뒤 해태로 트레이드되며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史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준 국가대표 수준이던 삼성의 위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삼성의 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다. 1982년 6월 12일에는 구덕 삼미전에서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그 해 유격수 부분 [[KBO 골든글러브]]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몇 년간 유격수를 거의 혼자서 도맡다시피 해서 였는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서정환|아무래도 괜히 보낸 거 아닌가 싶다.]]~~
- 오마모리 . . . . 2회 일치
* 센본바리(千人針) : 천에다가 천 명의 여성이 한 땀씩 수를 놓아서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출정하는 남성에게 주기 위하여 많이 유행하였다.
* 센바즈루(千羽鶴) : 종이로 접은 학을 천 마리 모아서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행하였다.
- 오승근 (가수) . . . . 2회 일치
사업에 전념하던 오승근은 지난 [[2001년]], 《있을 때 잘해》(이건우, 김정혜 작사/ 박현진 작곡)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복직하였다. 《있을 때 잘해》는 아이넷TV 성인가요 7주 연속 1위란 기록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오승근은 두번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곡은 모든 연령층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노래방 애창곡, 성인가요 애창곡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3년]]에 발표한 《장미꽃 한 송이》(하지영 작사/ 이호준 작곡)는 쉬운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중, 장년층들이 즐겨 부르는 곡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잘 될 거야》, 《사랑하지만》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다 최근 [[2012년]]에 발표한 《내 나이가 어때서》(박무부 작사/ 정기수 작곡)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곡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트로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12 상반기 트로트계 최대 히트곡으로 주목받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 대표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KBS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 많이 불렸던 참가곡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근 성인가요 메들리의 메인 타이틀로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2014년]]에는 [[홍진영]]이 리메이크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오원 (조선) . . . . 2회 일치
1732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733년 교리(應敎), 1735년 [[대사간]](大司諫),<ref>[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ua_11108007_001 《영조실록》 40권, 11년(1735 을묘 / 청 옹정(雍正) 13년) 8월 7일(계유) 1번째기사]</ref> 1736년 [[대사성]](大司成), 1737년 승지(承旨)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740년(영조 16년) [[공조]] [[판서]]로 재임 중 41세의 나이로 졸(卒)하였다. 성품은 정직하고 성실하였고, 온후(溫厚)하였으며 총명하였다. 왕이 나라를 위한 일편 단심이 있는데도 일찍 죽은 것을 애석히 여겨 차탄하고 애도하였으며, 시호를 내리라고 명하였다.<ref name="대제학"></ref>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 오지호(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마이 리틀 베이비]] - 차정한 役
- 오창경 . . . . 2회 일치
* 《[[날아라 펭귄]]》 (2009년) - 지나던 차량 남 역
* 《[[방문자]]》 (2006년) - 중고차 딜러 역
- 왕당파 . . . . 2회 일치
[[영국]]의 경우, [[청교도 혁명]](영국 내전)을 시발점으로 하여 의회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의회파와 왕당파는 수차례 복권과 혁명을 거듭하며 경쟁하였으나,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기존의 절대주의 왕당파는 [[스튜어트 왕조]]의 복위를 주장하는 [[자코바이트]]로 분리되었고, 명예혁명으로 성립된 영국 왕실은 의회를 존중하여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절대주의 왕당파는 더 이상 영국 정계에서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제국]]을 건설하였다가 실각한 이후, [[보나파르트 왕조]]를 추종하는 왕당파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보나파르트 주의라고 한다. 부르봉 왕조는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다시 프랑스 왕위에 얻어 복고왕정을 시작했으나, 재차 혁명으로 타도되면서 왕당파는 몰락하게 되고 유의미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됐다. 보나파르트 주의는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을 거쳐서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하면서 실현되었으나, 역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면서 보나파르트 주의도 침몰하게 된다.
- 외척 . . . . 2회 일치
일본 귀족 정치가 몰락하고 무가(武家) 정치가 대세가 되면서 섭관가는 물론 덴노가 까지 쩌리가 되고 실권은 [[쇼군]]이 차지하게 되어 섭관가 역시 실권을 잃었으나, 그래도 덴노의 외척이라는 권위는 근세까지 이어질 정도로 독보적이었으며 덴노가의 황후를 배출하는 것은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 섭관가 출신으로 한정되었다. 관습적으로 후지와라 섭관가가 '왕비족'의 지위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 우동균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08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200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아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신인시절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장효조]]의 총애를 받아 팬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2202&yy=2008 아버지 꿈 이룬 우동균] - 매일신문</ref>
- 원피스/830화 . . . . 2회 일치
* 페드로는 과거 포네그리프를 모으기 위해 해적생활을 했던 것을 털어놓으며 루피는 분명 해적왕의 자질이 있으니 장차 로드 포네그리프를 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 루피는 아직 그렇게 뒷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페드로는 어차피 빅맘이 가진 로드 포네그리프도 필요해질 거라며, 지금이야 말로 최고의 찬스라고 말한다.
- 원피스/838화 . . . . 2회 일치
* 그의 정체를 아는 자는 극소수로 정부의 수배서 조차 가짜의 얼굴이 올라있다. 크래커는 이 가짜들을 즉석에서 여러개 만들어 "병사"로 사용한다.
* 정부에서 발행한 수배서 조차 갑옷의 모습이 올라가 있다.
- 원피스/844화 . . . . 2회 일치
* 상디가 고양이 마차에 오르자 빈스모크 일가는 다시 홀 케이크 성을 향해 출발한다. 그때 완전히 쓰러진 것만 같았던 루피가 일어선다. 루피는 상디가 했던 말은 거짓말일 뿐이라고 외치며 이딴 걸로 자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외친다.
* 루피는 멀어지는 마차를 향해 마지막으로 외친다.
- 원피스/846화 . . . . 2회 일치
킹 바움고 엉겁결게 반역자로 몰리는데 그가 상대하는 여성 검사, "귀부인" 아망도는 아무리 사정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가 쓰는 검은 명도 "시라오우". 슬로우 발라드라는 기술로 킹바움을 일도양단하려 든다. 원래 이 기술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베어서 상대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하는 기술. 킹 바움은 차라리 단숨에 끝내 달라고 애원한다.
* 이런 설명을 하는 동안 샬롯 가의 14녀이자 스위트 3장성 중 하나, "주스 대신" 샬롯 스무디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녀 하나를 잡아서 "쥐어짜고" 있다. 문자 그대로 걸레짜듯이 짜는데 놀랍게도 시녀는 "주스"를 흘리며 미라처럼 쪼그라든다. 현상금은 9억 3200만 베리. 스무디는 상당한 거체의 여성으로 등에 커다란 칼을 차고 있다. 시녀를 짜낸 "주스"를 잔에 담으며 "포네그리프가 중요한건 알겠지만 왜 이곳 경비를 강화해야 하냐"고 묻는다. 타마고 남작이 이들을 소집한건 보물전의 경비 강화 때문인 모양이다.
- 원피스/853화 . . . . 2회 일치
빅맘은 이제 자신도 로저와 같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며, 다음에 라프텔에 가는건 자신이라고 장담한다. 그 방법이란 바로 [[샬롯 푸딩]]. 그녀의 능력이다. 때마침 푸딩이 빅맘을 만나러 온다. 브룩은 그녀를 알아보지만 아직 내막을 모르고 있어서 그녀를 위해 모르는 척 한다. 푸딩도 브룩을 알아보지만 어차피 잡혔으면 그걸로 됐다고 여겨서 역시 아는 척하지 않는다.
레이쥬는 상디를 찾고 있지 않냐고 말을 꺼내며 그가 방금 전에 의무실을 떠났다고 알려준다. 루피는 빨리 상디를 찾아서 푸딩에게 모두 속았고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뒤늦게 레이쥬의 부상을 발견하고 괜찮냐고 묻는다. 레이쥬는 그 대답 대신 "상디는 이미 푸딩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녀는 상디에게 도망치라고 계속 설득했지만 그는 밀집모자 일행과 이스트 블루의 인질을 계속 걱정해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해준다. 루피는 이스트 블루의 인질이 발라티에의 제프 일행이란걸 알아차린다. 루피는 그들이 정말로 위험하다면 이스트 블루에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가서 싸우겠다고 외친다.
- 원피스/855화 . . . . 2회 일치
* 작전은 실패한 것 같았지만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가 간발의 차이로 브룩을 빼오는데 성공.
* 일행과 재회한 브룩은 깜짝 놀랐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나미는 놀란건 이쪽이라며 면박을 준다. 페드로는 브룩이 살아있어 다행이라며, 애초에 그런 상황에서 무리한 작전을 구상한 자신의 탓이라며 브룩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브룩은 그건 자신들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며 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또 포네그리프를 빼앗으려면 어차피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기 두게골을 열어보인다. 그런 기능이 있는줄 몰랐던 징베와 캐럿은 경악.
- 원피스/858화 . . . . 2회 일치
* 빅맘 해적단의 총 요리장 미식기사 [[슈트로이젠]]은 기묘한 노래를 부르며 다과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과회까지 남은 시간은 약 4시간.
그러나 웃음소리도 그대로라 전혀 의미없는 위장이다. 상디는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쵸파는 기껏 바꾼 이름이 "가스티노"여서 두 번 놀란다. 그런데 이런 성의없는 변장에도 루피는 한 번 속는다. 나미가 "시저가 맞다"고 지적해주고 나서야 다시 발끈한다. 루피 조차 속지 않자 시저도 위장은 때려치우고 루피일행 탓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고 원망한다. 그러면서 [[트라팔가 로]]에게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고 전하라며 아우성을 친다.
- 원피스/865화 . . . . 2회 일치
* [[샬롯 다이후쿠]]와 대치 중이던 [[상디]]는 가족의 목숨이 풍전등화가 되자 그 자리를 이탈했다. 당장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빈스모크 일가의 테이블로 달려오지만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은 그 조차도 "허둥지둥 뭐하는 짓이냐"고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빈스모크 레이쥬]]도 그의 모습을 보았다. 상디는 정신없이 달려오자 다이후쿠의 마인에게 붙잡혀 넘어졌다. 레이쥬 또한 그의 구조를 바라지도, 살고자 바라지도 않았지만 느끼는 감정은 형제들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가족들도 놔두고 도망치지 않는 상디에게 "너의 상냥함을 얕봤다"고 독백한다. 그녀는 평생을 빈스모크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다.
* 무엇에 화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워하던 빅맘. 루피가 눈 앞에 마더 카르멜의 깨어진 사진을 들이밀자 눈이 번쩍인다. 그녀는 경악한 표정으로 사진을 루피의 손에서 빼앗는다. 카타쿠리가 아차하지만 돌이키기엔 늦었다.
- 원피스/866화 . . . . 2회 일치
* 링링이 양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설립한지 37년 째가 되던 해였다. 이때 마더 카르멜의 나이는 80세. 카르멜은 링링을 받아들이며 "부모님은 곧 오실테니 여기서 함께 기다리자"고 안심시킨다. 양의 집에 사는 아이들도 그녀를 반갑게 맞이한다. 마더 카르멜이 공약했던 대로 이곳엔 다양다종한 종족의 고아들이 모여있었다. 신분과 처지도 그랬는데 카르멜을 안고 있는 왕관을 쓴 아이는 어느 나라의 왕족이지만 폭동으로 내몰려 여기까지 흘러왔다. 선글라스를 낀 뚱뚱한 아이는 부모가 빈곤한 나머지 노예로 팔려갈 뻔했던 과거가 있다. 이외에도 부모 손으로 벅차다 여겨졌던 문제아들이 대부분이다.
* 마침 거인족 마을의 어른인 "폭포수염" [[요를]]와 "산수염" [[야를]]가 행차한다. 둘은 거병해적단의 전 선장이었으며 거인족의 영웅이자 "전세계 최고령 전사"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 요를가 344세, 야를가 345세. 이들은 하이루딘의 수련을 보고 만족해한다. 그들은 카르멜이 "약탈보다는 교역이 좋다"고 한 말을 언급하는데 그 말은 좋지만 그래도 엘바프족이 전사라는 정체성을 잃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 원피스/881화 . . . . 2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이 소울을 부여한 거대 파도가 써니호를 덮친다. 파도 위에 파도타기하듯 올라탄 빅맘. [[나미(원피스)|나미]] 조차 대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다. 거울 조각으로 대화 중이던 [[몽키 D. 루피]]는 당황하나 손쓸 방법이 없다. [[쵸파]]가 쿠 드 버스트를 써보자 제안하나 [[브룩]]이 콜라가 부족해서 무리라고 답한다. [[캐럿(원피스)|캐럿]]은 그대로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모처럼 살려준 목숨이 쓸모없게 됐다며 [[페드로(원피스)|페드로]]에게 용서를 빈다.
거대한 파도가 칠때 생기는 공백지대 "그린 룸"을 찾아내서 일행을 구원했다. 이때 한 손으론 키를 잡고 다른 손으론 돛에 연결된 밧줄로 돛까지 컨트롤하는 놀라운 실력을 선보였다. 항해사로 베테랑인 나미 조차도 "그런건 듣도 보도 못했다"며 경탄할 정도. 루피가 일행을 안심시키려고 거짓말을 했을 땐 역시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안도했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2회 일치
토사쿠라는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돈을 뜯기고 차인 경험이 있어, 남자를 제물로 매춘을 하는 놈들은 누구든 재판을 해야 한다는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토사쿠라는 갑자기 경찰에게 가택수색을 받는데, 집에서는 속옷이 가득 든 상자가 발견되어 속옷도둑으로 체포되고 만다. 하루 뒤 토사쿠라는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지만, 곧바로 매스컴의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 그의 과거나 원조 OL 버스터즈에서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했던 것이 모두 폭로당한다.
토사쿠라는 저녁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다가 원한해결사와 만나고, 철도길에서 갑자기 쓰러진다. 원한해결사는 스코볼라민 용약을 넣어뒀는데, [[알콜]]과 섞이면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약물[* 과거에는 안약이 [[데이트 강간 약물]]로 쓰였다고 언급된다.]이었다. 결국 토사쿠라는 전철에 치어서 사망하고 만다.
- 원한해결사무소/6화 . . . . 2회 일치
원한해결사는 100만으로 의뢰를 받겠다고 하지만, 30만 정도 밖에 낼 수 없다고 해서 그걸로 의뢰를 받는다. 단, 일의 내용도 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3일이 지난 뒤, 우편함의 우편물이 모두 없어지고 새댁의 우편물만 남아 있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아줌마는 새댁을 우편물 도둑으로 몰고가고, 게다가 새댁의 집 열쇠나 차 열쇠가 모두 접착제로 붙여져 있었다. 새댁은 거의 미칠 지경.
범인을 조작한 것은 물론 원한해결사. 하지만 접착제 등은 차액 70만엔 분 만큼은 괴롭혀서 피해를 주었던 것이다(…). 참 재수없는 여자라고 하는 새댁에게, 원한핸결사는 보통 사람은 아무리 그래도 돈을 주면서 까지 원한을 풀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당신도 재수없는 여자라고 대답해준다.
- 월하노인 . . . . 2회 일치
[[목차]]
몇년이 지나, 위고가 그 일을 묻자,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첩은 군수(郡守)의 조카이며, 딸이 아닙니다. 일찍이 아버지는 송성(宋城)의 현령이었습니다. 첩은 강보(襁褓,포대기)에 있었던 때였는데, 어머니와 오빠가 차례로 죽어, 혼자서 송성의 남쪽의 저택에서 지내게 됐으므로, 유모 진씨(陳氏)와 함께 살았습니다. 점(店)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야채를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진씨는 어리고 불쌍하다고, 잠시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 위키규정 . . . . 2회 일치
어차피 회원제 내부의 폐쇄적인 위키이므로, 이 같은 항목의 필요성은 없다고 봅니다.
* 반달리즘 행위에 대해서는 IP차단을 하며, 식별이 된다면 NTX 아이디에도 제제 조치가 가해집니다.
- 유승옥 . . . . 2회 일치
[목차]
2월경 소속사 고소 문제로 인기가 땅에 떨어진 이전의 섹시 심볼이었던 배우 ]의 뒤를 이어 2015년 초에 인터넷상에서 차세대 섹시 심볼로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얼굴이 [[노안]]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딸의 유명세가 단지 몸매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지는 상황 때문에, 유승옥의 아버지는 심적으로 괴롭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 유하나(1986) . . . . 2회 일치
[목차]
2011년 당시 [[KIA타이거즈]]의 선수였던 [[김대한]]와 갑작스런 열애설이 터지면서 두 사람의 연인 관계가 확인되었다. 2011년 6월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한 뒤 연인 관계로 발전하였고, 만난 지 3개월만에 결혼소식을 알리면서 매우 빠른 진도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일련의 상황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다보니 당시에는 [[속도위반#s-2|속도위반]]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왕왕 있었다. [* 실제로 아들인 도헌군은 2013년 9월에 출산했으니 근거가 없는걸로...] 결혼 이후에는 연기생활을 중단, 이용규의 소속팀 연고지인 광주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내조에 전념했다.
- 윤덕주 (농구인) . . . . 2회 일치
'''윤덕주'''(尹德珠, [[1921년]] [[6월 23일]] - [[2005년]] [[7월 8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이자, 대한체육협회 부회장,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구한말의 계몽 운동가 [[윤필오]]의 손녀이자,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윤홍열]]의 딸이다. 4,5대 국회의원과 재무부 차관, [[호남정유]]사장을 지낸 [[서정귀]]의 부인이다.
* 남편 : [[서정귀]](徐廷貴, [[1919년]] ~ [[1974년]]), 4대·5대 국회의원, 재무부 차관(1960년), [[호남정유사]] 사장 역임
- 윤덕홍 . . . . 2회 일치
서울교육감 민주진보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던 '서울 좋은 교육감 시민추진위'는 "시민경선에 참가하시길 권유했음에도 참가하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단일화 경선을 요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에 맞는 진보적 행동인가?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을 뽑는 선거인데, 이렇게 규칙을 어기고서라도 자신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행동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였다.<ref>[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4285 "윤덕홍 탈당 시점은?"] 참세상 2014년 5월 9일</ref>
《한국인텔리서치》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한 조사대상 및 표본크기에 의하면, 응답률이 3.0%에 60대 이상이 530명으로 전체 표본의 52.4%를 차지하고 있고, 20~30대는 116명, 40대 130명, 50대 23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6191"뒤늦게 서울교육감 출마 선언한 윤덕홍, 이건 아니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30일</ref>
- 윤인조 . . . . 2회 일치
* [[2019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2]]》
- 윤정희(1944) . . . . 2회 일치
[목차]
사실 그녀는 단순하게 인기가 많은 데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배역폭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사에 굵직한 기여를 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cr333&logNo=120061757343&isFromSearchAddView=true|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당시 여배우의 맡는 통상적인 역할은 어머니상이나 요부상에 그쳤는데, 윤정희의 경우에는 이 두 역은 물론이고, 백치미까지 능숙하게 연기했다고. 단순히 트로이카들과 비교해도 이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하이틴 스타와 같은 통통 튀는 발랄한 역을 연기한 [[남정임]], 우수에 빠진 눈매로 비련의 여인을 연기했던 [[문희]]에 비해 폭넓은 역을 맡았다. 또 그녀의 이미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적인 세련미이다.
- 윤주상 . . . . 2회 일치
* [[2001년]] 《[[이것이 법이다]]》 ... 고 차장 역
* [[JTBC]] 《[[다큐 플러스]] 37회 : 표준, 4차 산업혁명 게임의 법칙》 (2018년) 내레이션
- 윤주희(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2004년 말, [[DHC(화장품)|DHC]] 코리아의 제1회 DHC 스베스베퀸 선발대회[* 우승상금으로 5백 만원과 DHC 적립금 2백만원 외 전속계약금 별도로 김희선과 함께 CF 및 지면 광고모델로 활약하게 되는 특전이 주어졌다.]에서 우승을 차지. 2005년도 초반부터 [[김희선]]과 함께 CF를 찍으며 대중에게 존재를 알리게 된다.
- 윤진솔 . . . . 2회 일치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 신디 역
- 윤진이 . . . . 2회 일치
|가족 = 2녀 중 차녀
| 피자 프랜차이즈
- 윤철형 . . . . 2회 일치
[목차]
* 2003년 : [[태양의 남쪽]] ... 차승욱 역(SBS)
- 윤태동 . . . . 2회 일치
[목차]
이후 [[만주]]로 건너가 간도성(間島省) 교육청 학무과장, [[만주국]] 민생부 교육사 독학관, 대신관방 이사관 겸 교학관, 자료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협화회]]의 분회(수도계림분회)에서 참여(參與)로 활동하였으며 협화회 주최 행사에서 '일본국민과 협화정신'이란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간도성 차장을 거쳐 [[1945년]] 4월에 간도성장(間島省長)에 취임했는데 조선인이 성장(省長)에 발탁된 것은 [[이범익]] 이래 두번째이다.
- 은혼/574화 . . . . 2회 일치
"그날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만든 무수한 무덤은 선생님이나 동료들 뿐만이 아닌 우리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요시다 쇼요와 함께 그 제자들은 죽었다. 그 길이 더이상 교차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선생님의 가르침만은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망설이며 굽어진 길을 가자고, 어떤 때는 실수로 꺾어진 길을 가자고. 각자의 무사도를 찾아 방황하고 번민하며 걷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은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들의 길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다. 그것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한 순간의 해후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검을 맞대며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겠지. 긴토키, 다카스기. 설령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다시 한 번 요시다 쇼요의 제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 은혼/577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가구라는 "네가 알던 여동생도 없다"며 오히려 카무이의 걷어차 날려 버린다.
* 그때 [[우츠로]]가 카무이를 기습한다. [[아부토]]가 알아차리고 경고하는데 카무이는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우미보즈가 대신 공격을 막아다가 의수가 떨어져 나간다.
- 은혼/579화 . . . . 2회 일치
* 이 죽음의 행성에선 오로치 조차 소중한 생명이며 사실 오로치는 우미보즈가 나타나 흥분한 것 뿐이었다.
* 그때까지 우미보즈를 무시하고 이름 조차 대지 않았던 코우카는 "여기는 원래 너희(야토)의 고향. 오로치는 흥분했을 뿐 거부한게 아니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
- 은혼/587화 . . . . 2회 일치
* 카무이는 재차 가구라를 공격하고 긴토키가 다시 달려들어 막아내지만 절벽까지 날려가 처박히고 만다.
* 또 다시 가구라를 공격하는데, 이번엔 아부토가 발차기를 날려 막는다.
- 은혼/590화 . . . . 2회 일치
* 살인마의 학당에 와봐야 흉흉한 것 밖에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우츠로. 그러나 오보로는 "정말 그렇다면 나는 진작 살인마가 되었을 것"이라며 자신도 이제 살인기술을 배우는 건 포기할 테니 "학당을 차리면 자신을 첫 제자로 받아달라"고 말한다.
* 오보로와 다카스기는 종이 한 장 차이의 접전을 벌인다.
- 은혼/596화 . . . . 2회 일치
* 하세가와 다이조는 마다오답게 자판기 밑에서 동전이나 긁어 모으며 구차하게 살고 있다.
* 하지만 에도가 멸망하거나 말거나 자기는 언제나 멸망 직전 상태라며 "이제야 겨우 나랑 같은 차원에 온 것"이라며 썩은 미소를 짓는다.
- 은혼/616화 . . . . 2회 일치
긴토키는 자기가 남은 쪽을 맡을 테니 사이고더러 어느 쪽을 택할지 고르라고 말한다. 사이고가 정말 그래도 좋겠냐고 하자, 긴토키는 댁이나 자기나 양이전쟁에서 "백훈의 사이고", "백야차"라고 부르던 처지가 이 마을에 물들어 하얗지 않게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사이고는 씩 웃으며 어차피 죽을 거면 대답은 모두가 한결 같을 거라고 대꾸한다.
- 은혼/618화 . . . . 2회 일치
* 기세를 올리던 [[니시노 츠카무]]가 인지 조차 못하고 리타이어. 오른팔을 잃는다. 야규가의 사무라이들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지고 [[오우가이]]는 [[야규 빈보쿠사이]]의 말을 받아치며 이들을 빈정거린다.
* 오우가이는 그런 잔꾀로 이 일격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엄포를 놓지만 긴토키는 그런건 상정한 바고 "네놈의 일격을 막진 못해도 네놈한테 일격을 먹여줄 방법은 있다"고 받아친다. 해결사 일행은 세 방향에서 오우가이를 동시에 덮치지만 오우가이는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모든 공격을 차단한다. 사실 이쪽으로 유인을 걸었을 때 이미 그 계책은 짐작한 바였다. 이곳이라면 기동성을 무기로 다방면에서 공격을 가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정도로는 오우가이의 철통같은 가드를 뚫어낼 수 없었다.
- 은혼/626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그 사내는 오우가이의 말조차 관심두지 않는다. 그는 짓밟힌 꽃을 들여다보며 이런 짓을 한 사람은 손을 들어 달라고 말한다.
게츠노 아나운서는 원래 게츠노슈는 에도 막부로부터 에도를 수호하도록 명을 받은 집단으로 꼭 귀신이나 요괴만 상대하는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상대해야하는건 또 하나, "친구"도 있다. 게도마루는 원래 더 빨리 오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마계에서 사탄과 누라리횬이 손잡고 3차 마계대전을 일으키는 바람에 진압하느라 늦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오는 동안 오컬트에서 SF로 바뀔 각오는 마쳤다.
- 은혼/640화 . . . . 2회 일치
신스케는 과거에 했던 맹세를 떠올린다. [[은혼/632화|반사이와 함께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반사이를 포섭한다. 어차피 나라의 심판으로 사라질 목숨이라면 자기를 위해 죽지 않겠냐고. 반사이가 "그럼 당신은 뭘 위해 죽을 거냐"고 묻자 그는 뻔뻔한 태도로 대답했다.
헨페이타의 함대도 대책을 마련하기엔 여의치 않다. 해방군의 함대가 총공세로 나온다. 적의 목적은 자명. 단 15분 간 귀병대 함대를 저지하는 것이다. 엔죠는 그렇게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에 차있다. 하늘이, 우주가 무너지는데 솟아날 구멍도 없는가? 고개를 떨구는 헨페이타.
- 은혼/645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엔쇼는 예상이나 한 것처럼 양손의 라이트 세이버를 교차해 후방을 찌른다. 빛의 칼끝이 가츠라와 다츠마의 복부와 어깨를 찌른다. 칼날은 그대로 둘을 밀쳐낸다. 적당히 거리가 벌어지자 엔쇼가 돌아서며 역공을 가한다. 둘은 피하는데 급급하다. 엔쇼의 불이 다츠마와 가츠라의 불을 끌 수 없다면 그 반대로 마찬가지.
어쩌면 엔쇼는 양이지사들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적이 있지 않은가? 해방군과 엔쇼라는 적이. 그에겐 적 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미워하기로 했다. 불로 꺼지지 않는 불을 품고 있는 자라면 자기 자신을 태워가며 꺼뜨러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은혼/647화 . . . . 2회 일치
* 신스케는 동료들이 자신에게 걸고 있는 영웅이라는 꿈에 부합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으나 그럴 기력 조차 바닥나고 다가오는 엔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루가쿠의 뇌리 속에서 그녀의 외침과 자신의 독백이 교차했다.
- 은혼/648화 . . . . 2회 일치
머지 않아 형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어떤 나라와 동맹을 체결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직 형수였던 시절엔 남편을 초연하게 배웅하는 법을 몰랐다. 형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쟁을 하러 가는게 아니며 영웅 초연의 황자가 지켜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엔쇼는 형의 곁에 있었다. 아무 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한 형의 함선이 기습을 당하고 동생에게 구원을 요청할 때조차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형을 내버려둔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슬픔을 가장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형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형수를 위로한 일이었다.
* 이제 다시 노부노부의 차례였다. 그는 한 번 끊겼던 발언을 마저 했다. 그는 아직도 총을 겨누고 있는 해방군을 향해 말했다. 계속 하고 싶다면 계속하라고. 하지만 그들은 이점을 알아야 한다.
- 이강덕 . . . . 2회 일치
[목차]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5% 안팎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고, 실제로도 불과 7.7%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 이경영(1958) . . . . 2회 일치
[목차]
* MBN [[대한민국 정치비사]] - [[이철희(1923)|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 역 (2013년)
- 이동흡 . . . . 2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선거 전담 재판부인 형사10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3월 22일에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03년 9월 선거구 아파트 조기축구회 창단식에 참석해 고사상에 현금 20만원을 기부하고 같은해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이장단 단합대회에 두차례 참석해 1100만여원 상당의 음식값과 술값을 후배를 통해 지급하여 기소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이장단 단합대회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여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19344]</ref>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2년이 선고된 정용천 전국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에 대해 징역6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51]</ref> [[열린우리당]]을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시스템클럽]]에 게시하여 1심에서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군사평론가 [[지만원]]에 대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74]</ref> 3월 29일에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경선 당시 인쇄물을 배부한 대상은 입당 원서가 지구당이나 중앙당에 제출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진정한 의미의 당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21828]</ref>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 집회 금지의 헌법 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에 헌법불합치로 결정할 때 "야간옥외집회 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정당한 입법목적 하에 규정된 것"이라며 합헌이라고 했다.<ref>백나리, 차대운,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8473.html 헌재,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연합뉴스]]</ref><ref>{{뉴스 인용 |제목 = 盧 지명한 2인 등 위헌, 검찰출신·한나라 지명자 합헌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41805005&code=940301 |출판사 = 경향신문 |저자 = 조헌철 기자 |쪽 = |날짜 = 2009-09-24 |확인날짜 = }}</ref>
- 이만섭 . . . . 2회 일치
그 해 11월에는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6대 국회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고,<ref name="경향_6311">共和黨,過半數線넘어, 《경향신문》, 1963.11.27</ref> 그 후 제7·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ref name="동아_67">當選確定者, 《동아일보》, 1967.6.9</ref><ref name="경향_78">10代總選당선154人의얼굴들, 《경향신문》, 1978.12.13</ref> [[1968년]]에 개최된 국제의원연맹 제5차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국회에 사사건건 간섭하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갈등을 겪었고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후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으로 권력을 휘두른 [[이후락]]과 [[김형욱]]을 연이어 탄핵하였고 [[박정희]]가 그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들을 낙마시키기도 했다. [[1979년]] 제10대 총선에서 [[대구 중구의 국회의원|대구시 중구]]·[[대구 서구의 국회의원|서구]]·[[대구 북구의 국회의원|북구]]에서 당선되었고 그해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의 당무위원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은 [[1987년]] [[10월]]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고 다음 해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제13대 총선]]에서 본인을 비롯하여 모두 낙마하였다. 이후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였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민주자유당|민자당]]의 상임고문을 거쳐 [[신한국당]]의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 이문식(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KIA 타이거즈]]팬으로 유명하다. 225블럭 기아 응원석에 앉아서 2016 기아vs엘지 와일드카드 2차전에 출연했다.
- 이방원 . . . . 2회 일치
[[이성계]]의 5남. 이성계 일파를 숙청하려던 정몽주를 참살하는 등 조선 개국에도 일조했으나, 이성계가 이복동생인 막내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 하자 다른 동복형제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켜 방석과 방번,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뒷배였던 정도전 등을 참살하여 실권을 장악한다(1차 왕자의 난). 그 후 조사의의 난이나 2차 왕자의 난 등의 도전을 제압한 뒤 정종에게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 이상화(1980) . . . . 2회 일치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KIA 타이거즈 2차 4순위 지명]] ||
[목차]
- 이시형 (1934년) . . . . 2회 일치
| 기타 이력 =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br /> [[삼성의료원|삼성의료원 서울강북삼성병원]] 원장 <br /> [[차의과학대학교]] 석좌교수 <br />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 <br/> [[원광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심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차의과학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이애란(가수) . . . . 2회 일치
[목차]
북한이 벌인 [[4차 핵실험]]에 대한 보복으로 재개한 [[대북방송]]에 [[백세인생]]이 포함되었다. 노래와 함께 남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북한보다 약 10~15년 정도 길다는 내용의 해설을 담는다(...)
- 이영희 (1936년) . . . . 2회 일치
* 외차손자: [[최준혁]]
* 외차손부: [[전지현]]
- 이인 . . . . 2회 일치
이후 언론탄압반대연설회 등으로 여러 차례 유치장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조선어학회]]를 비밀리에 지원한다는 혐의로 [[곽상훈]] 등과 함께 요시찰 인물이 되었고, [[1936년]]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소환하기도 했으며, [[조선총독부]]는 그의 변호사 면허를 취소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깨끗한 처신으로 흠을 잡을수 없었다.
** 차남 : 이춘
- 이자연(가수) . . . . 2회 일치
[목차]
* 젊은 시절부터 [[가수]] 활동을 하느라 대학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수시 1차 신입생 모집 연기자 전형에 응시, 예술문화대학 예술학부에 합격했다. 이후 언론홍보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 이재황(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두 명의 [[정다빈]]과 모두 작품을 했다. 2005년에 《그 여름의 태풍》에서 故 [[정다빈(1980)|정다빈]]과 작품 한 후 바로 차기작인 《다이아몬드의 눈물》에서 동명이인이자 그 당시엔 아역이었던 [[정다빈(2000)|정다빈]]과 함께 연기했다.
- 이정호 (1982년)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1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 이정훈(배우) . . . . 2회 일치
*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 (드라마)|제5공화국]]》 ... [[국가안전기획부]] [[박세직]] 차장 역
* [[2016년]] [[MBC]] 드라마 《[[워킹 맘 육아 대디]]》 ... 인사관리팀 차장 권정훈 역
- 이주현(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학력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전]][* 탤런트 [[차태현]]과 동기(방송연예과)이다]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편입)
- 이지우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4년 2차 3라운드]]([[NC 다이노스]])
율하초등학교를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좋은 타격성적을 보여주었다. 고교 통산 58경기 타율 0.357 출루율 0.441 장타율 0.464 74안타 1홈런 48타점 25볼넷 21삼진을 기록하였다. [[2013년]] [[8월 26일]]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에서 NC 다이노스에 2차 3라운드 26순위로 지명되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421 왼손 거포의 계보를 이어갈 NC 이지우] - NC 다이노스</ref>
- 이차영 . . . . 2회 일치
||<:> 제43대 [br] [[나용찬]] [br] ,,,권한대행 박기익,,, ||<:> → ||<:> 제44대 [br] '''이차영''' ||<:> → ||<:> 현임 ||
[목차]
- 이하율 . . . . 2회 일치
|2018||JTBC||[[으라차차 와이키키]]||서진우||특별출연
- 이헌일 . . . . 2회 일치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제2차 세계 대전]]
[[분류:1917년 태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희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육군 장교]][[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광복군]][[분류: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이호준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2007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이스트로]]의 5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2010년 2월 9일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3R 위너스리그 대 공군전에서 [[홍진호]], [[차재욱]], [[박정석]], [[민찬기]]를 연속으로 꺾으면서 올킬을 달성했다.
- 이효상 . . . . 2회 일치
* APU총회의장(2차)
* 차남 [[이문희]] ([[로마 가톨릭]] [[대주교]], 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 이효정(남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참고로 '''[[배우]] [[이기영(배우)|이기영]]의 친형'''이다. '''[[드라마]]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에서 함께 출연'''하며 형제지간임이 대외적으로 처음 알려졌는데[* 둘이 친형제임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미간의 川자 주름이다.] , 들 모두 '''데뷔한 지 30년 가까이 된 중견 배우'''이지만 '''한 작품에 함께 출연하는 건 자이언트가 처음'''이라고. 본인들은 배우로서 시청자의 극 몰입에 방해가 될까 우려하여 친형제라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그래서 데뷔 후 함께 인터뷰한 적이 자이언트 이전에 단 한 차례도 없으며, 형제라는 사실 역시 제작진 또는 홍보 담당자에 의해서 이따금 노출됐을 뿐이라는 후문이다.
- 이휘향 . . . . 2회 일치
* 1987년 [[MBC]] 미니시리즈 《[[막차로 온 손님들]]》
* 1995년 [[MBC]] 미니시리즈 《[[연애의 기초]]》 ... 한차숙 역
- 인교진 . . . . 2회 일치
* 2019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2]]》 ... 곽하니 역
- 인천광역시/인물 . . . . 2회 일치
* [[차준택]] - 부평구
* [[차주옥]] - 남동구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2회 일치
* 그는 헨드릭슨과 드레퓌스를 조종한 프라우드린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 자책한다.
* 그리고 자라트라스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데, 엘리자베스는 그것이 드루이드 마을에서 자네리가 멜리오다스에게 걸었던 것임을 알아차린다.
- 일곱개의 대죄/183화 . . . . 2회 일치
* 일곱개의 대죄와 리오네스 왕국의 성기사들은 십계의 공세에 대항해 최선을 다하지만 검을 들 수조차 없게 된다.
* 마신족과 전투 중인 성기사들은 힘을 잃고 칼을 들고 있지 조차 못한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2회 일치
* 반, 에스카노르, 멀린은 아직도 서먹해하는 멜리오다스를 위로한다. 멜리오다스는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리는 듯 한데.
* 리오네스 왕국의 민가. 아버지가 늦잠자는 아들을 깨우고 있다. 어느 가정이나 비슷할 법한 아침풍경. 부지런한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겨우 아침잠을 쫓으며 세수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칠칠맞고 여자한테 인기도 없다고 디스하는데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 아들은 바로 성기사 하우저. 평민출신 답게 서민적인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우저는 출근하기 전에 앞으로 수도 복구 때문에 늦게 올 거라고 말하는데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런거보다 왕궁에서 사자가 와서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고 전한 일을 말한다. 하우저는 "마신족 놈들 때문에 나라가 반붕괴했는데 그런거라니"하고 반발하는데 아버지는 하우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출근이나 하라고 내보낸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2회 일치
>드디어 우리가 나설 차례인가
* 은총의 빛의, 게라이드의 곁에서 생긴 이변은 곧 거인왕 [[드롤]],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에게 전해진다. 물론 그들의 몸 속에 있는 [[디안느]]와 할리퀸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정확하진 않지만 불길한 예감을 감지하고 서둘러 은총의 빛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멜리오다스]]도 함께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직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데리엘]]과 [[몬스피트]]도 지켜야 해서 그가 따라오기에 적당하지 않다. 할리퀸은 그들을 지켜주라고 말하고 디안느와 함께 복귀를 서두른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2회 일치
그 모습에 놀란 디안느가 무심코 "인형인데도 운다"고 말하고 아차한다. 인형 고서는 자신이 인형이기 때문에 두고가는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고서는 그런게 아니며, 무엇보다 그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고 가르쳐준다. 인형 고서의 가슴엔 무욕의 고서가 혼심의 힘을 담아 만든 "마음의 마법"이 깃든 심장이 있다. 이 마법의 심장이 인형 고서를, "진짜 고서"로 살게 한다. 고서는 인형 고서의 가슴은 짚는다.
디안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을 담아 "해볼게!"라고 승락한다. 그녀가 드롤의 거대한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한다. 그 손가락을 붙잡는 인형 고서의 팔이 나뭇가지처럼 보이는데, 디안느는 그 손을 잡아 힘차게 흔든다. 인형 고서가 정신이 없을 정도로.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2회 일치
젤드리스는 드롤과 그의 동료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의 용맹은 마계에서도 유명하다고 추켜세우고 동료가 된다면 지금 이상으로 큰 힘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디안느는 갑자기 적에게 그런 제안을 할리 없다고 믿기지 않아하지만, 젤드리스의 차가운 눈빛은 거짓이나 농담을 하는게 아니다.
* 현세에서 무서운 사실을 확인한 할리퀸은 차라리 디안느가 아무 선택도 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게 예정된 죽음을 회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잠든 디안느에게 아무 것도 선택하지 말라고 외친다.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2회 일치
*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디안느가 침묵을 깨고 할리퀸에게 등이 괜찮냐고 묻는다. 그는 그제서야 왜 옷을 벗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러고 보니 시련 직후에 왔던 격통도 사라졌다. 몸을 확인하던 그는 곧 자신의 등몸에 나타난 이변을 알아차린다. 날개였다. 그토록 바라던 요정왕의 날개였다. 그는 이제 자신도
꼭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했던 인형 고서. 디안느는 새삼 그를 떠올린다. 그녀가 힘차게 그러자고 대답하자 할리퀸은 오슬로에게 요정왕의 숲을 부탁하며 리오네스 왕국으로 향한다.
- 임기영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수창초등학교]], [[경운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로 [[한화 이글스|한화]]에 지명됐다.
| 제목 = '선발 3연승·QS 세 차례' KIA 임기영, 믿음직한 4선발
- 장문규 . . . . 2회 일치
* 《[[으라차차 와이키키]]》 (2018년, JTBC)
- 장발 (화가) . . . . 2회 일치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남대학교]] 교수 이태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 (1961년)|김민수]]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5-04-07|확인날짜=2008-03-05|제목=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저자=조호진|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7516}}</ref>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남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ref>{{뉴스 인용| url =| 제목 =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상에 일장기 부착| 저자 =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날짜 = 2001년 3월 3일| 출판사 = 오마이뉴스}}</ref>
- 장윤진 . . . . 2회 일치
|전임자 = [[차예린]]{{·}}[[서은미]]
| 이전명 = [[차예린]]{{·}}[[서은미]]
- 장진수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 2002 KPGA TOUR 2차 리그 8강
* 2002 KPGA TOUR 3차 리그 16강
- 저스디스 . . . . 2회 일치
|어차피
|어차피
- 전재용 . . . . 2회 일치
|제목 = 전재용-박상아, 2003년 이미 결혼...재산 차압 대비?
[[2012년]] 전직 대통령이 묻어둔 비자금의 일부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골프장 회원권 142개(약 355억원)가 매물로 나왔다. 매물로 나온 회원권 142개의 소유자는 에스더블유디씨라는 법인인데, 이 업체 임원으로 전두환의 차남인 전재용, 전재용의 부인 박상아, 전두환의 처남 이창석, 이창석의 부인 홍정녀 등 4명이 있다. 전두환 일가가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한 경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2322266 골프장 회원권이 전두환 비자금?] 동아일보 2012년 3월 23일</ref>
- 절대가련 칠드런/443화 . . . . 2회 일치
* 유리가 냉동차에 조작이 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아오이가 조치하러 접근한다.
* 난데없이 수류탄이 굴러들어온다. 가솔린이 도처에 있는 주차장이라 여기에 터지면 대형사고로 직결.
- 절대가련 칠드런/445화 . . . . 2회 일치
* 정보가 없다지만, 시호의 능력으로 조차 정보를 투시하는게 실패했다.
* 이것도 윗선의 지시인데,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조차 레어메탈에 의해 세뇌당한 듯 칠드런 일행에게 매정하게 대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2회 일치
* 그 이름은 장차 나타날 에스퍼들의 지도자 "파괴의 여왕"에게서 딴 것. 모미지가 이 점을 지적한다.
* 효부는 장차 그녀가 나타나 효부를 대신해 판도라를 이끌고 전세계의 에스퍼를 통솔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배는 그녀를 위한 왕좌.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2회 일치
* 효부는 근처에 있던 화물차를 들어올려 공격하려 하는데 갑자기 염동력의 출력이 약해지면서 자기 위로 떨어뜨리고 만다.
* 상당히 강력한 물건인지 효부 조차 일시적으로 능력이 저하됐던 것.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2회 일치
* 미나모토는 ESP록을 사카키의 왼팔에 채운다. 이것으로 무의식 수준에서도 세뇌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 사카키의 세뇌는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지만 본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사카키는 관리관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고 미나모토에게 뒷공작을 한 것도 자신이었던 거냐며 좌절한다. 미나모토는 다 적의 계략일 뿐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정보"로 사태의 확산을 막았으니 제대로된 반격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사정을 듣지 못했던 사카키는 그 "누군가"나 "정보"가 뭐냐고 묻는데 미나모토도 사실 그 이상은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정보를 아네 모르네 잠시 옥신 각신.
* 덤으로 지박령도 있는데, 좌절모드가 된 사카키였다. 붙박이장에 틀어박혀서 찌질대고 있다. 그는 아직도 블랙 팬텀의 세뇌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에 분개하며 설사 팔을 잘라내는 한이 있어도 복수하겠다고 과격한 발언을 한다. 그런데 정작 미나모토는 찬장에서 차나 찾으며 딴청을 부리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2회 일치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로 국장이 정신을 차린다. 블랙 팬텀의 수장도, 판도라의 2인자 [[마기 시로]]도 바벨의 정점 후지코 조차 이기지 못한 세뇌를 일반인이 풀러낸 것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2회 일치
효부는 일행 앞에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를 싫어했던 미나모토 조차 그를 동정한다.
* 아무튼 효부는 방금 전보단 이성을 되찾았다. 그는 차분해진 머리로 상황을 정리한다. 후지코는 즉사를 면했으며, 사실 이렇게 될 건 길리엄도 알았을 것이다. 그의 앞에서 실행하면 막힐 수 밖에 없을 테니. 따라서 이건 단지 효부를 동요시키고 모욕하기 위한 시위다. 후지코를 볼모로 그의 "과거"를 모욕했으니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될까?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2회 일치
* 효부는 이렇게 된 마당에도 "결과적으론 계획대로"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하지만 모미지나 요우 조차 그런 말에는 납득하지 못한다. 효부의 말에 따르면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은 레어메탈 버그로 효부의 감각과 감정을 중계, 효부의 절망감을 맛보려 했지만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다 오히려 효부는 그 링크를 이용해 길리엄 측을 엿보는데까지 성공했다.
효부는 어차피 칠드런은 바벨로 돌아갈 수 없게 됐고 미나모토나 [[츠보미 후지코]] 같은 잔소리꾼도 없으니 최고의 기회라고 말한다. 조금 이르지만 왕좌에 진정한 주인이 앉게 되는 거라며 오히려 기대감까지 내비춘다. 모미지는 직접 표현하진 않지만 과연 효부가 지금 하는 말이 어디까지 진심일지 의심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2회 일치
* [[미나모토 코이치]]가 테러리스트 혐의로 에스퍼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츠쿠시 미오]]는 격분해서 판도라의 거처에서 뛰쳐나온다. 그러나 기세 좋게 나온 것 치곤 아무런 계획도 전략도 없는 상황. 미오는 일단 형무소 담벼락은 초능력으로 통과할 수 있다는걸 알고 희희낙락한다. 차라리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쪽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데, 외벽 쯤에서는 초능력이 통해도 형무소 내부는 ECM으로 무장하고 있을 거라며 무작정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설치류도 알 만큼 뻔한 사실이지만 미오는 "그런건 들어가 보기 전엔 모른다"며 ECCM도 가져왔으니 어떻게든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 바로 그때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 [[파티 크루]] 일행이 뒤쫓아와 문자 그대로 미오를 밟아버린다. 지성이라곤 없는 그녀의 계획을 대차게 까면서. 미오가 어떻게 알고 따라왔냐고 하자 카즈라는 "설치류 둘이 사라져서 할 법한 일을 추리해봤다"고 당당히 밝힌다. 방금 전까지 설치류의 명예를 걸고 영장류를 뜯어말리던 모모타로는 억울해하며 "설치류에게 사과해라"고 항변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2회 일치
* 미오는 "여왕을 위해 미나모토 일행을 정찰하러 왔다"고 하자 두 사람의 마음에 빈틈이 생긴다. 망각에서 깨어난 것처럼 미나모토 일행이 억류된 직후의 일들을 떠올리는데, 직후 두 사람이 대기하던 장소에도 특수부대가 덮쳤으며 인질들을 죽인다는 협박 때문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오는 이들이 정신을 차리는 듯 보이자 더욱 강하게 나간다. 다시 블랙 팬텀의 부하가 되어선 안 된다고. 효과가 있는 건지 팀은 미나모토가 대기하라고 직접 지시했던 사실도 떠올린다. 미오는 그게 둘을 블랙 팬텀에 접촉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 참견하는데, 역효과를 내고 만다.
* 파티의 동류, 팀은 한층 강화된 갓로보로 미오를 압박하고 있다. 이것은 신장비 TUEE필드란 걸 장비했다는 설정인데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텔레포트를 차단한다. 모모타로 쪽은 바렛과 싸우는데 모모타로의 에어 미사일은 초탄도결계를 펼치는 바렛하고는 상성 상 좋지 않다.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2회 일치
그런데 카즈라는 그걸 빈틈이라고 판단, 자신의 "소닉 스팽크"로 가차없이 공격한다. 카즈라는 아키라가 다시 조종할 틈도 주지 않겠다며 결정타를 가하는데, 카가리가 황급히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호소하지만 공격이 날아간 뒤라 늦고 말았다. 공격은 카가리의 가랑이에 명중, 리타이어 시킨다.
더 칠드런 등장. [[아카시 카오루]], [[노가미 아오이]], [[산노미야 시호]] 도착. 아키라는 어차피 [[미나모토 코이치]]도 없고 그들도 효부의 동료이긴 마찬가지, 아무리 레벨7이라도 못 이길 상황이 아니라며 작전 속행을 주장한다. 하츠네는 "본능이 뭔가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2회 일치
* 효부는 [[아카시 카오루]]가 "아군의 회수가 최우선"이라 말한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쿠구츠가 "자신이 직접 '파괴의 여왕'을 칭했다"고 보고하자 "재미있게 됐다"고 웃음을 터뜨린다. 효부는 이것이 자신이 기대리고 있던 "파괴의 여왕"이 탄생, 혹은 부활하는 과정일 거라고 추측하며 지켜보자고 한다. 우츠미는 이호의 예지가 사라진 이 시공에서 조차 "파괴의 여왕"이 등장한다는건 웃을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효부는 그 말대로 이 세계의 미래도 장미빛은 아니겠지만 설사 어떤 세계가 된다 해도 자신이 평생을 기다린 여왕이 나타나는 거라며 즐거운 기색을 드러낸다.
* 한편 카오루는 갓로봇에서 팀을 끄집어 내기 위해 접근한다. 그런데 콕핏을 개방해 보니 텅 비어있다. 이것도 속임수. 그때 마츠카제의 무전이 들어온다. 적측의 특무 에스퍼는 더 칠드런 일행의 도착과 함께 전원 철수했다. 이제 ESP전을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마츠카제의 예측대로 곧바로 형무소의 ECM이 풀가동되면서 카오루의 능력 조차 완전히 억제된다. 그 바람에 카오루가 추락하는데 비상용 ECCM을 가동해도 출력에서 밀리는 상황. 간신히 다치지 않게 착지하는 정도로 끝났다.
- 절연금 . . . . 2회 일치
일반적으로 테기레킨은 ‘위자료(慰謝料)’로 번역된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자료라고 번역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테기레를 ‘절연’으로 번역하면서 ‘절연금(絶緣金)’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강제적인 지불 의무의 유무이다. 위자료는 상대방이 청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지불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반면, 절연금은 지불의무가 없으므로 강제력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임의로 손해보상 요구에 부응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 정규수(배우) . . . . 2회 일치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 최용수 역
- 정다정 . . . . 2회 일치
이광낙은 SLR클럽에도 글을 써 문제 제기를 했고, 정다정은 “그림 한 장 그려주는 거야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한다면 제 입장에선 정말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일전에도 무보수로 홍보용 일러스트 그려 드린 적이 있고요. 문제는 제가 요청 메일을 받은 적이 없어요”라고 재차 밝혔다. 이에 이광낙은 “정다정 씨,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다른 많은 트위터 유저님들의 말씀도 새겨듣고 반성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고, 정다정은 이 사과를 받아들였다.<ref name=xports /><ref name=chosun />
하지만 이후 한 누리꾼이 남긴 “야매요리 만화는 몇 번 봤는데 작가 사진은 이번 일로 처음 봤다. 예쁘다. 내 눈이 낮은 건가”라는 글에 이광낙이 “네, 눈 낮으심”이라고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답글을 달면서 재차 문제가 되었고, 정다정은 트위터에 “사람 외모 갖고 까는 게 제일 졸렬한 거다”라고 글을 남겼다. 결국 이광낙은 “정작가님, 비하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용히 살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SLR클럽과 트위터에서 탈퇴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정다정 이광낙 유행어 설전…외모비하 논란으로 번져 파국|url = http://boo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014050013|출판사 = 서울신문 Boom|저자 =Boom뉴스팀 |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정다정 이광낙 설전, 외모비하 발언까지 '술렁'|url = http://stylem.mt.co.kr/styview.php?no=2012101414111102232&type=1|출판사 = 머니투데이 스타일M|저자 = 마아라|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
- 정링컨 . . . . 2회 일치
* [[기아자동차]] Human-Driven 홍보영상 (2011)
* 현대자동차 지면광고 (2012)
- 정병희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85963 한화, 정병희와 입단 계약] 《한국일보》, 2001년 7월 13일</ref> [[2005년]] 시즌 후 [[내야수]] [[김민재 (1973년)|김민재]]의 보상 선수로 이적했다. 이후 입대하여 [[2010년]]에 제대하자마자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었다.
- 정욱(1973) . . . . 2회 일치
[목차]
* 2018년 《[[차달래 부인의 사랑]]》 (KBS2) - 강준호 역
- 정종 . . . . 2회 일치
정종은 조선의 2대 왕이다. '1차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쥔 정안군 이방원(후의 태종)의 의도에 의해 '[[징검다리]]'처럼 추대된 왕이어서 대중적으로 조선 왕 중에서 가장 이미지가 희박한 편이다. 부친 이성계에게도 신임을 얻은 등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괜찮은 구석도 있지만, 정치 역학적인 이유로 존재 자체가 묻혀버렸다가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정종이라는 시호를 얻게 된다.
※ 그런데 사실 왕위 계승은 서자라도 상관없다. 왕실은 사가와는 달리 정실 소생과 측실 소생 사이의 적서 차별이 없기 때문. 애초에 다수의 후궁을 두는 이유는 혈통 단절을 막기 위해 '왕위 계승이 가능한' 많은 자손을 얻기 위해서이다. 계승 서열 자체는 적자>서자이므로, 적자가 따로 있는데 서자가 계승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적자>서자이기 때문에 '적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바로 다음 순위인 서자가 계승하는데는 어떤 문제도 없다.
- 정종철 . . . . 2회 일치
| 자녀 = 정시후(아들) <br /> 정시현(장녀) <br /> 정시아(차녀)
* 《[[쇼! 행운열차]]》 ([[KBS2]])
- 정주관백 . . . . 2회 일치
이 단체가 새롭게 해석한 정주관백의 정의는 이러하다. 사실 관백은 조정에서 두번째 지위이며 덴노를 보좌하는 지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집 안에서 덴노란 곧 아내이다. 그리고 정주는 차를 내오는 사람을 뜻하므로, ‘정주관백’이란 사실 아내를 보좌하고 떠받들어 주는 남편을 뜻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오해하여 집안의 폭군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관백(간파쿠)은 일본 헤이안 시대에서 부터 덴노를 대신하여 실권을 행사한 지위이다. [[후지와라 섭관가]]에서 대대로 이어받았으며 덴노가 어릴 때는 섭정(摂政)이 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관백(関白)이 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이를 섭관정치(摂関政治)라 부른다. 헤이안 시대 이후로 권력이 쇠퇴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오툐미 가문이 일시적으로 관백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정차온 . . . . 2회 일치
'''정차온'''(鄭次溫, [[1399년]](정종 1) ~ ?)은 [[조선]]시대 전기의 학자,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 정씨|경주]]이고 자(字)는 공후(孔厚)이다. [[경상북도]] 출신.
* [[정차양]]
- 정충원 . . . . 2회 일치
평안남도 보안과 경시로 재직 중이던 1937년에 발발한 [[중일 전쟁]] 당시 공습에 대비한 방공 사무를 수행하는 한편 군용 자동차를 징발하고 운전수를 징집하여 [[관동군]]의 군사 작전에 협조했다. 또한 시국 범죄 위반 단속 차원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검거하여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2회 일치
고등고시(제10회) 사법과 및 행정과에 합격하여 1962년부터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차관]]을,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사법연수원]] [[원장]] 등을 지냈다.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습 차원에서 [[김성기(1935)|김성기]]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법무부 장관|장관]]이 경질되자 후임 [[장관]]으로 임명되어 1988년 12월까지 역임하였다.
- 제2편성제도 . . . . 2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은 소련군이 182개 사단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141개만이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동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극동지역 방어를 위해서 쓰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군은 제2편성제도를 바탕으로 그 배 이상의 사단을 편성할 수 있었다.
[[분류:소련군]][[분류:제2차 세계대전]]
- 조동혁(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 [[야차]](2010, OCN) - 이백록
- 존 딜린저 . . . . 2회 일치
딜린저는 인디애나 주 크라운포인트의 감옥에 갇힌다. 이스트시카고에서 벌인 은행강도 도중 경찰관을 살해한 죄를 재판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딜린저는 나무를 깎아 총 모형을 만든 다음 그걸로 간수들을 위협해 감방에 가둔 다음 자동화기을 가지고 탈출한다. 그 후에는 보안관의 차를 훔쳐타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까지 도망친다. 이로 인해 훔친 차량을 다른 주로 밀수했다는 혐의가 추가로 붙게 되며 FBI가 딜린저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함께 붙잡힌 동료 세명은 딜린저의 탈옥을 도와주며 보안관을 살해한 일로 재판을 받게된다. 재판 결과 피어몬트와 마클리는 사형을, 클라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사형을 선고받은 둘은 탈옥을 시도했으나 마클리는 탈옥 시도 중 사살되고 피어폰트는 부상을 입은채로 붙잡혀 한 달 후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친다.
- 주영(가수) . . . . 2회 일치
[목차]
* 2018년 9월 2, 9일에 [[복면가왕]] 84차 경연에서 [[엄마, 가왕하게 500원만! 500원 앞면]]이란 가명으로 참가했다.
- 죽으면 부처님 . . . . 2회 일치
이는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서 "일본에서는 죽으면 부처님. 그러니까 A급 전범 합사도 용인된다."는 식으로, 외국의 비판을 '문화적 차이'라고 실드치고 넘어가려는 움직임을 우익 논객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은 죽은 사람을 언제까지나 비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문화차별적 주장도 곁들여진다.
- 진격의 거인/81화 . . . . 2회 일치
* 연막 속의 거인들은 차례로 쓰러져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리바이병장의 사정거리다.
- 진격의 거인/83화 . . . . 2회 일치
* 한지는 그 외에도 묻고 싶은건 많지만 어차피 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라이너도 그렇다고 한다.
* 코니가 추격하려 하지만 어차피 가스도 없는 상황이라 한지가 제지한다.
- 진격의 거인/89화 . . . . 2회 일치
* [[크리스타 렌즈]], 히스토리아 레이스 여왕이 트로트스구에 행차했다. 그녀는 조사병단이 입수한 [[유미르(진격의 거인)|유미르]]의 편지를 읽고 있다.
크루거는 갑자기 누구도 모르는 이름을 댄다. 그리샤는 그게 누구냐고 말하는데 정작 그 말을 한 크루거 조차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대체 누구의, "언제"의 기억일까?
- 차영철 . . . . 2회 일치
| 이름 = 차영철
'''차영철'''(車榮澈, [[1959년]] [[7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하계 올림픽|올림픽]] [[국제식 사격|사격]] 은메달리스트이다.
- 창작:바벨 코스트 . . . . 2회 일치
미국의 국력이 커져가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음에도 유색인종 비율이 많은 탓에 거점 도시로의 역할이 주어지지는 못했다. 공업이 발달하기는 커녕 해군 부대가 들어서는 일도 없었다. 그저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업이나 소규모 상업 정도가 도시의 주요 산업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사람들의 재정 수준이 높아지자 고급 주택이 세워지고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이 생겨나며 휴양도시로의 이미지가 잠시 생겨났다. 공해도 적고 교통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곳에서 휴양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지라 수많은 부유층들이 들어오면서 경기가 활성화되었다.
==== 제 2차 세계대전 ====
- 창작:왕국 . . . . 2회 일치
북부 언더월드 남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국가. 북부의 해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띄고있으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사막의 비율이 높아진다. 현재 왕국은 "사막에 대한 전쟁"을 선포, 반세기에 걸쳐 농경지를 넓히는 작업을 하고있다.
수세기 전부터 유명했던 조선업과 철강, 원유 가공 등이 특기. 열차 분야에서도 상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 창작:좀비도시 . . . . 2회 일치
* 군의 투입으로 확산을 저지하기는 했으나, 이미 도시 내부의 좀비 숫자가 너무 많아 군을 투입하는 것이 어렵다. 몇 차례 생존자 구출을 위하여 부대를 투입했으나, 제한적인 성과만을 거둘 수 있었고 그로 인한 희생이 커서 현재 구출 작전은 주저하고 있다.
* 몇몇 경제학자들은 좀비를 청소하고 도시를 재건하느니, 방치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차라리 피해가 적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 창작:좀비탈출/0 . . . . 2회 일치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남성이다. 수수하지만 이럭저럭 흠은 없는 외향에 체형도 그리 둔하진 않다. 전문적인 운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체력관리 차원에서 가벼운 조깅 정도는 꾸준히 했다. 게임, 영화나 만화를 잡식으로 좋아했고 어딜 가나 있을 법한 남자 대학생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Tv는 잘 안 보지만 걸그룹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가 마지막까지 Tv로 보고 있던게 [[트와이스]]와 [[AOA]]였다.
전기와 통신이 살아있을 무렵 두 사람이 있는, 그렇게 추정하는 지역이 '''위험구역'''으로 선포되는 뉴스를 봤다. 정부는 이 일대를 통제할 것이고 더이상의 '''사태 확산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녀석들은 착실하게 진군해서 그날 저녁 때쯤부터 우리 동네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잠그고 커튼도 쳤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주로 체리필터였고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끄지 않았다. 나는 조명도 끈 상태에서 혼자 지냈다. 공복과 수면의 사이클이 몇 차례 지나가고 가끔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나 비명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게 내가 열어줘야 했을 사람들이 아니었기만을 빈다.
- 창작:좀비탈출/5-1-1-1-2 . . . . 2회 일치
나는 그대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에 그 계단을 처리해 버리는걸 잊지 않았다. 어차피 토트넘 네 뒷문도 닫혀있고, 이정도만 해도 당장 뒷마당을 침범할 놈은 없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성과로 치자. 다이너스티는…… 나중이라도 기회가 있어. 누가 차키를 집어갈 것도 아니잖아?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2 . . . . 2회 일치
다시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위험이 사라진 앞마당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일상감이 넘쳤다. 한쪽에 줄지어 둔 작은 화분이 그대로 있다. 모종은 시들어 버렸지만, 저것만 봐서는 집주인이 게으르다는 생각만 들 것이다. 텅비어 있는 차고도 주인이 마트라도 가서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현관문이 열리고 남의 집 마당에서 무슨 짓이냐고 외치는 토트넘네 아줌마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성이 마음대로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차고문을 닫았다. 토트넘네 집은 담장이 낮고 창살도 없지만 이것만 해둬도 대부분의 좀비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시간만 벌이만 돼도 충분하다. 토트넘의 조기축구 친구들이 얼마나 팔팔할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아 있는 친구'''에 비하면 느리겠지. 나는 담장 쪽을 수시로 돌아보며 앞마당을 한 번 돌았다. 언제든 우리집 쪽으로 뛰어갈 수 있도록.
- 창작:치킨교 . . . . 2회 일치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 흔히 "제1차 외식전쟁"에서 죽을 쑤자 나타난 종파였다. 제1차 외식전쟁은 미국의 위대한 선지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한반도에 선교를 하러 오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애매한 하이브리드인 롯데리아가 참전하면서 시장통을 지배하던 후라이드 치킨교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 결과로 치킨교는 제법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피해로 인해 후라이드 교는 일종의 종교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부에서도 별도의 총대주교(소스) 세력에 불과하면 양념파가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
- 채상병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8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2차 5라운드 34순위([[한화 이글스]])
[[199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인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한화에서는 [[심광호]] 등의 경쟁에서 밀려 몇 경기만 출전했다. 입단 후 1년 뒤인 [[2003년]]에 투수 [[문동환 (야구인)|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때 [[문동환 (야구인)|문동환]]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는데, [[정수근]]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왔다가, 불과 3시간 후에 채상병과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594734&cp=nv 채상병, 두산 40승 숨은 주역… 주전 홍성흔 부상 공백 완벽히 메꿔] - 쿠키뉴스</ref> 그러나 [[두산 베어스]]에서 채 자리잡기도 전에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05714 난처한 채상병, 그러나 놓칠 수 없는 기회] - 데일리안</ref> [[2007년]] 주전 포수였던 [[홍성흔]]이 허벅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홍성흔]]이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등 잡음<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271719545&code=980101 두산 홍성흔“작년 부진 잊지 말고 나만의 스윙을 하자”] - 경향신문</ref> 이 일자, [[홍성흔]]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하였다.
- 채형석 . . . . 2회 일치
**** 차녀 : 채수연 - 미국 코넬 대학교를 졸업하고, 2016년 4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손자이자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의 아들인 선동욱과 결혼했다.
- 천보영 . . . . 2회 일치
* [[2014년]] - 부산국제모터쇼 기아자동차 웨어러블K 시연 및 소개 모델
* [[2012년]] -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 현대기아자동차 모델
- 철인 28호 . . . . 2회 일치
* [[프라모델]]도 여럿 나왔다. 초대 철인, 태양의 사자의 철인, FX의 철인 모두 나왔으며 초대 철인의 경우에는 자석을 넣은 프라모델도 나왔다. 한편 초대 철인이 총화기나 검과 방패 등의 무기를 장비했거나 전차, 용, 자동차같은 탈것이 추가된 제품도 있었다.
- 청년 튀르크 당 . . . . 2회 일치
[[목차]]
내정면에서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정책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동맹국으로 참가하는 실책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오스만 제국이 무드로스 휴전협정에 조인하기 1개월 전, CUP 내각은 1918년 10월 9일 총사퇴, 청년 튀르크 당은 소멸했다.
- 체육회계 . . . . 2회 일치
* 선배를 보면 큰 소리로 인사하는 등 필요이상으로 예의를 차리는 것을 강조한다.
* 단체 책임을 중요시한다. 경기에서 패배하는 등 조직 차원의 문제가 있으면 전원이 삭발을 하는 등.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2회 일치
가족관계 3녀중 차녀
술을 굉장히 좋아하며 임무가 없을땐 거의 술을 입에 달다시피하고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간이 3배정도 튼튼하다고 병원에서 들었으니 3배는 더 마셔도된다는 괴악한 논리를 펼치고있다. 술뿐만이 아니라 홍차도 주로 자주 마시는 편이지만 이미 다른 발할라 요원이나 관계자들은 주당으로인식하고있으나 본인은 사실이니 신경쓰지않는 모양이다(...)
- 총기 . . . . 2회 일치
통칭 총(銃). [[화약]] 등을 사용해서 [[추진력]]을 얻어 관으로 [[탄환]]을 발사하는 무기. 화약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어 다른 모든 [[무기]]를 물리치고 개인무기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화약]]이 발명되고 나서 얼마 뒤에 초창기의 총기가 나타나게 된다. 중세 서양에서는 핸드 캐논 형태로 나타났다. 본래는 화약과 탄환을 따로따로 장전하고, 불도 따로 붙이는 매우 불편한 구조였으며 크고 무거웠으나 점차 사용하기 쉽게 개량되어 간다.
- 최계훈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4년]] 1차 3순위([[삼미 슈퍼스타즈]])
'''최계훈'''(崔桂勳, [[1961년]] [[6월 6일]] ~ )은 前 [[KBO 리그]]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이자, 현재는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현역으로 복무하여 제대한 이후 [[태평양 돌핀스]]로 복귀했으나 2군에 머무르다 은퇴하였다.
- 최공웅 . . . . 2회 일치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부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7월 27일 밤에 같은 재판부 구성원인 이범렬 부장판사와 동부서기 이남영과 함께 "1심에서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이 선고된 제주 김녕중학교 교장 이방택의 [[국가보안법]], [[반공법]]위반 피고사건의 항소심 증인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갈 때 피고인의 하경철 변호사로부터 왕복 항공료 3만3천원과 향응 비용 등 9만7천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조 사상 최초로 현직 판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800099203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1-07-28&officeId=00009&pageNo=3&printNo=1657&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1971년 7월 28일자]</ref> 이후 해당 피고인의 재판은 원심이 파기되어 징역1년6월 자격정지1년6월이 선고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900209207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29&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26&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1년 7월 29일자]</ref> 관행으로 이루어진 변호사의 경비 부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은 1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721000060]</ref>
* 2009년 ~ 현재: 차세대콘덴츠 재산학회 회장
- 최길성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6년]] 2차 7순위 ([[해태 타이거즈]])
[[2000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시즌 후 방출당하였다. [[2001년]] [[LG 트윈스]]에 이적하였으나 별 다른 행보가 없이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2006년]]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자신의 커리어 하이였던 83경기에 출장하여 0.256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7년]] 팀 동료인 [[최만호]]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박석진]]과 [[손인호 (야구인)|손인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고, [[200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방출되었다. 그 해 [[SK 와이번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였으나,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 최동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4차 2라운드([[LG 트윈스]])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후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4210253 “신인왕 누가 전세냈냐…여기 최동환도 있다”] 《동아일보》, 2009년 4월 21일 작성</ref>
- 최성국 (축구선수) . . . . 2회 일치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계약금 3억원에 울산 입단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32639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3-2-2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5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 임대되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가시와로 5개월간 임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92266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5-2-24}} }}</ref> 만족스러운 활약을 하지 못한 채 5개월 뒤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으로 복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K리그로 복귀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786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6-25}} }}</ref>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한 뒤 그 해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6년]] [[K리그 컵 2006|K-리그 컵]] 득점왕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성남 '컵대회 준우승', 최성국 '득점왕 우뚝'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16823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6-7-29}} }}</ref> [[2007년]] [[1월 17일]]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성남에 현금 트레이드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117152714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7-1-1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년]] [[8월 2일]]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축구 사상 첫 올스타 맞대결인 'JOMO CUP 2008'의 MVP를 차치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올스타, J리그 올스타에 3-1 대승...최성국 MVP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34725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8-8-2}} }}</ref>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예선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의 4강에 공헌하였다.
- 최수범 . . . . 2회 일치
[[2005년 3월]] 자신의 원래 이름이었던 최우범으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협회에 등록된 이름이 최수범으로 돼 있고, 이름을 변경한 후에도 협회 행정절차를 거쳐 프로게이머 등록 명을 최우범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활동명을 최수범으로 통일키로 하였다.
* [[2002년]]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워크래프트3 1차 시즌 16강
- 최승환 . . . . 2회 일치
[[LG 트윈스]] 시절에는 [[김정민 (1970년)|김정민]], [[조인성 (야구인)|조인성]]에게 밀려 주전이 되지 못하고 8년간 2군을 전전했다. [[2008년]] [[6월 4일]] [[이성열 (야구 선수)|이성열]]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두산 베어스]]에서 [[LG 트윈스]]로 간 선수들은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 [[김용의]] 선수이다. 두산 이적 이후에 본격적으로 1군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상대 투수인 SK 와이번스의 [[조웅천]]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뽑아내면서 자신의 한국시리즈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1년]] [[11월 22일]] 처음 실시된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 최원제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2차 1라운드([[삼성 라이온즈]])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으나, [[2008년]]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9년]] 시즌부터 1군 경기에 본격적으로 출장했다. [[2009년]] [[4월 24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데뷔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90424006847&subctg1=&subctg2= 진갑용 역전 투런… 삼성 2위 점프] - 세계일보</ref>
- 최재우 . . . . 2회 일치
이듬 해인 2010년 1월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생애 첫 [[FIS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월드컵]]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38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12월에 캐나다 퀘벡 주의 발생콤 리조트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서 캐나다의 [[마르크앙투안 가뇽]]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모굴 부문과 듀얼 모굴 부문에 출전했다. 모굴 부문에서는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레이헤르트]]와 일본의 [[우에노 오사무]],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바르마쇼프]]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듀얼 모굴 종목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바르마쇼프와 일본의 우에노, [[쓰키타 유고]]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후 2012년에 [[캘거리]], [[나에바]] 등지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손드리오 현|손드리오]]의 마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2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미국의 [[브래들리 윌슨 (스키 선수)|브래들리 윌슨]], 스웨덴의 [[루드비그 피엘스트룀]]의 뒤를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의 듀얼 모굴 종목은 11위를 기록했다. 그 해 8월 16일에는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듬 해인 2013년에는 [[노르웨이]] [[보스 (노르웨이)|보스]]에서 열린 [[2013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50.00점을 획득하여 캐나다의 [[미카엘 킹즈버리]], [[알렉상드르 빌로도]], 미국의 [[패트릭 데닌]], 오스트레일리아의 [[맷 그레이엄 (스키 선수)|맷 그레이엄]]의 뒤를 이어 5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으며, 듀얼 모굴 종목에서는 14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3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모굴 부문 29위, 듀얼 모굴 부문 5위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8위에 올랐으며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년 동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2월 10일에는 소치 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 부문에 출전하여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결승에 올랐다. 이후 결승 2차전에서 첫 번째 공중 회전을 하고 착지한 뒤 내려오는 과정에서 균형을 잃고 코스에서 이탈하여 실격 처리되었다.
- 최재웅 (배우) . . . . 2회 일치
|rowspan="4"|차정학 역
|차정학 역
- 최재원(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1990년]] [[광고]] [[모델]]로 출발해, [[TV]], [[연극]], [[영화]] 등에 얼굴을 비추다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의 슈퍼탤런트 1기[* 당시 수상자는 대상 [[박상아]], 금상은 [[송윤아]]/임세미/김광필, 은상은 [[차태현]]/정혜정, 동상은 [[이형철]]/이효진이었다.]로 선발되었다. [[SBS]]의 국민 [[시트콤]] [[LA 아리랑]]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선보였으며, 그 이후로 꾸준히 [[조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의 '양심추적'이란 코너 진행자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를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면 최재원이라는 이름보다 양심맨이라는 별명을 더 잘 떠올릴 것이다.
- 최정원(1981년 4월) . . . . 2회 일치
[목차]
2015년 신규 예능 [[용감한 가족]]에 출연이 확정됨으로서 첫 예능 출연을 하게 되었다.[* 시즌 1에만 출연하고 스케줄 문제로 하차했다. 시즌 2에는 배우 [[박주미]]가 대신 출연하였다.] 그런데 역시 예능 출연이 처음이어서인지 별다른 예능감은 보여주지 못했다.
- 최정원(남자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2016년 7월 5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UN이 [[유희열]] 팀의 마지막 슈가맨으로 출연하였고 김정훈과 함께 출연했다. 2017년 5월 28일 복면가왕에서 [[오빠차 뽑았다 캠핑카]]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 최정호 (성우) . . . . 2회 일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KBS]]) - 재판장(레기 파커) / 죄수
* 2000.12.17 차현숙 <아령>
- 최종원(국회의원) . . . . 2회 일치
[목차]
* [[혈의 누(영화)|혈의 누]]: 최차사 역
- 최진희(가수) . . . . 2회 일치
[목차]
참가 당시에는 복면가왕 여성 출연자 중 최고령 참가자였으며, 그 뒤 최고령은 81차 경연에 나온 [[문어...지지 않아요... 점쟁이 문어]]다.(61세 236일)
- 최창흡 . . . . 2회 일치
그는 [[1839년]] [[6월]]에 체포되었는데, 그때 그의 사위 [[조신철]]이 [[베이징]]에서 가져온 [[성물]]들이 발견되어, 극심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그는 일곱 차례의 극심한 [[주뢰형]]과 주장질을 받고 [[태형]] 150대를 맞으면서도 결코 배교하지도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하지도 않았다. 그는 [[형조]]에서도 세 차례를 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신심으로써 견뎌냈다. 그는 사형장으로 압송되기 직전에, 한 형졸을 불러 수감되어 있는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울지 말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순교]]로서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청했다.
- 최충연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2016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그러나 2016 시즌을 앞두고 옆구리 부상으로 재활군에 머물렀고, [[2016년]] [[8월 25일]]이 되어서야 1군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 최호중 . . . . 2회 일치
| 경력 = 상공부 차관<br />[[대한민국 외무부|외무부]] 장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1956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주유엔 유럽사무소 및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제네바대표부]] 공사, 말레이시아·[[주 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벨기에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84년]] 상공부 차관을 지낸 뒤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등을 거쳐 [[1988년]] 12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 합의 의정서에 서명, 북방외교의 첫 성과를 대외에 알렸다. [[1990년]] 9월 30일 유엔에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재임 중 동구권 국가를 비롯해 18개국과 수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1990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당시 남북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잇단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이후 통일원 통일고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한국외교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 최효진 (축구선수) . . . . 2회 일치
[[2010년]],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FC 서울]]로 이적한 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이적 첫 해 [[K리그 2010|2010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하였다. 시즌이 끝난 후,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상주 상무 피닉스|상무]]에 입단하였다. 상무에서 주전 라이트 백으로 활약하며 [[2012년]] [[9월 10일]] 전역할 때까지 53경기에 출전하였다. 전역 후 FC 서울에 복귀하였으나, [[2013년]] [[차두리]]의 입단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 최희암 . . . . 2회 일치
이후 [[현대건설]]에 취업하여 [[이라크]]에서 근무하였고, 귀국 후 [[현대건설]]에서 퇴사하여 에서 체육 교사로 임용되었으나 곧 사임하였고 [[1986년]]부터 [[연세대학교]] 남자 농구단 감독을 맡으며 지도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선수들의 역할을 철저하게 분업화하고, 외곽슈터 중심의 농구를 통해 연세대학교를 강호로 만들었다. 실업팀과 대학팀을 망라한 [[농구대잔치]]에서 세 차례 우승했고, 특히 [[1993년]]-[[1994년]] 농구 시즌 우승은 대학팀 최초의 농구대잔치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연세대 감독으로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2년]]부터 프로 농구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감독을 맡았다가 두 번째 시즌에 성적 부진으로 도중 하차한 뒤, [[2005년]] [[동국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거쳐 [[2006년]]부터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감독으로 프로에 복귀한 후, [[2008~2009]]시즌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나,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팀을 떠났다.
- 추성건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3년]] 1차 지명 ([[두산 베어스|OB 베어스]])
}}</ref> 같은 시기 롯데-현대에서 각각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손동일]] [[손차훈]], [[1998년]] 시즌 후 한화에서 방출된 뒤 한때 야구를 포기하기도 했던 [[길배진]]과 함께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 팀이 [[2000년]] 1월 해체된 후 그 주축 선수들을 필두로 창단된 신생 SK로 이적하여 [[2001년]]까지 재적했다.
- 츠라츠라 와라지 . . . . 2회 일치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할 때 영주와 장남이 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차남 '쿠마다 테루타카'가 가문을 이었고, 이에야스는 화친 후 쿠마다를 묶어놓기 위해 히데요시를 움직여 테루타카를 억지로 이혼시키고 도쿠가와 가문의 여식과 결혼시켰다. 이 때의 원한이 대를 이어 내려왔고, 이 때문인지 후임 영주 쿠마다 타카토시(테루타카와 전처의 소생)가 석연찮게 급사하고 그 아들 미츠타카는 2차례에 걸쳐 전봉당해 오카야마 지방에 자리잡게 되었다.
- 츠츠모타세 . . . . 2회 일치
현대의 츠츠모타세는 데이트 사이트나 전화방, [[SNS]]를 통하여 먹이감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흔히 있다. 과거에는 성관계를 가지기 직전이나 직후에 [[호텔]]에 나타나서 "[[불륜]]에 [[위자료]]를 청구하겠다." 등의 [[협박]]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대에는 [[호텔]]에서 [[피해자]]의 [[신분증]]이나 [[휴대폰]]의 번호를 알아내서 이를 차후 연락 수단으로 사용하며, 성관계 장면은 [[몰래 카메라]] 등으로 촬영하여 확보한다.
* [[호텔]]을 지정하거나, 약속장소에서 자신의 차에 태우는 경우
- 카케오치 . . . . 2회 일치
실종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의미에서, 서로 사랑하지만 (주로 신분 격차나 차별 등으로) 결혼이 허락되지 않은 남녀가 눈이 은밀하게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2회 일치
사일러스는 빌리가 숨어사는 스팅키스프링스 근처 버려진 농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편에 속해있었던 보안관, 팻 가렛의 추격대가 빌리의 은신처를 습격한 것이었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를 들은 사일러스는 서둘러 빌리의 은신처로 달려간다. 팻 가렛의 수많은 부하들이 빌리가 있는 농가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포위망을 정면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사일러스는 농가 뒷쪽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적들을 기습한다. 실력이 형편 없었던 적들은 기습을 당하자 마자 순식간에 무너진다. 사일러스는 빌리 일당의 엄호를 받으며 농가 뒷문으로 들어간다. 그는 계단에서 소총을 쏘던 [[https://en.wikipedia.org/wiki/Dave_Rudabaugh|더티 데이브]]를 지나 빌리와 [[https://en.wikipedia.org/wiki/Charlie_Bowdre|찰리 보우드레]]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사일러스를 본 빌리는 그를 "아미고"라고 부르며 소총을 건네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잭이 사일러스(현재)에게 빌리 더 키드랑 친구였던 거냐고 물어보자, 사일러스는 "응…그런 셈이지…."라고 대답한다. 어쨌든 사일러스는 소총을 받아 인해전술을 시전하는 가렛의 부하들을 쏴죽인다. 하지만 반대편을 담당하던 보우드레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가렛의 부하들이 개틀링을 가지고 와 농가에 쏴갈기는 상황까지 되자 빌리는 도망쳐야 하니 마구간에 가서 말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사일러스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니 명령에 따라야하는데ㅅㅂ"같은 생각을 했지만 일단 빌리의 말을 듣기로 했다. 사일러스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데이브를 지나, 농가 뒷문을 박차고 나와 마구간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가렛의 부하들을 해치운다. 결국 마구간에 도착한 사일러스, 하지만 그곳에서 가렛을 만나게 된다.
- 콩고(소설) . . . . 2회 일치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유럽 합작 기업의 탐사대가 추격 중이라 바짝 긴장한 연구소는 급히 과학자 카렌 로스를 팀장으로 삼아 소규모 탐사대를 재차 투입한다. [* 이렇게 급하게 탐사대를 다시 꾸린 건 경쟁 기업의 추격도 있었지만 해당 지역이 정부군과 식인종 키가니족이 내전 중이라 어렵게 따낸 탐사 허가를 또다시 따낼 틈이 없어 일단 탐사대의 전멸은 비밀로 한채 새로운 탐사대를 투입하는 걸 들키기 전에 얼른 투입시키기 위해 서둘렀다.] 영상에 집힌 고릴라의 이미지 때문에 영장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카렌은 수화를 할 줄 아는 [[고릴라]] 에이미와 그녀를 돌보는 동물학자 피터 엘리어트, 아프리카의 백인 용병 찰스 먼로 등이 이끄는 탐험대가 자이르 정글 깊숙한 곳으로 잃어버린 전설의 다이아몬드 광산도시 진즈(Zinj)를 찾는 모험이 중심 소재이다. 마치 전형적인 모험 소설 같지만, 탐험의 주체가 현대적인 광산 기업이거나, 위성으로 연락,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거나 NASA에서 개발된 탐험 장비를 사용하는 등 상당히 현대적인 가제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정글에 투입시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시작으로 식인종의 식인 행위를 목격하고[* 창칼로 무장한 원시인 수준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이라 닳고닳은 용병인 먼로도 경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이 멀쩡한 건 아니라 수틀리면 간빼먹는 건 일도 아니게 생각할 병사들이 그득하다고.] 하마의 공격에 혼쭐나기도 하고 피그미족에게 구출된 1차 탐사대원도 만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마디도 못하는 폐인이 된 상태였지만 에이미의 냄새를 맡자 극도로 흥분한다. 이들이 당했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 일본, 독일, 네덜란드의 합작 기업을 추격하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연구소의 소식에 좌절하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털레털레 가지만 정작 추락한 합작 기업의 수송기에 실린 물자는 그대로고 곧이어 찾은 합작 기업의 탐사대 캠프 역시 전멸당한 상태였다.
- 쿨 비즈 . . . . 2회 일치
쿨 비즈란, 여름 실내 온도를 28도로 설정하여 [[냉방]]을 억제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한편, 28도의 온도에서도 시원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여름에는 [[넥타이]]와 [[재킷]]을 벗고 반팔 와이셔츠 차림으로 활동하자는 비즈니스 모델 제안이다.
2005년 쿨비즈를 제창하고 보급한 환경성 대신 코이케 유리코가 유캔 유행어 대상을 수상했다. 환경성은 2012년에는 보다 가벼운 차림으로, 샌들 같은 것도 추천하는 슈퍼 쿨비즈(スーパークールビズ)를 제창하였다.
- 크루세이더즈 . . . . 2회 일치
Freedom Fighters #7 (April 1, 1977)에서 첫등장. 제2차 세계대전 시절에 지구1의 만화책에서 등장한 팀으로 이후 진짜로 등장. 오리지널 멤버들을 보면 마블의 인베이더즈가 모티브다. 비슷한 경우로 [[맥시멈즈]], [[챔피언스 오브 앵거]]가 있다.
The Invaders #14 (March 1, 1977)에서 첫등장.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영국에서 활동한 팀이다. 코믹스에서도 알수 있듯이 [[인베이더즈]]와 대면.
- 크림 전쟁 . . . . 2회 일치
[[흑해]] 연안이 아닌 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영국과 프랑스의 함대가 [[발트해]]의 [[크론슈타트]]를 봉쇄하고 [[백해]]의 [[콜라(도시)|콜라]]를 포격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캄차카 반도]]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롭스크]]를 공격했지만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철수한 이후에야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점령할 수 있었다.
당시 러시아의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2세]]는 크림 전쟁에서의 패배로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결과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 [[농노해방령]]을 선포했다.
- 킹덤/498화 . . . . 2회 일치
* 환의와 양단화가 차례로 거명되고 총대장은 왕전 대장군에게 돌아간다.
정치적 차원으로 생각하면 잡음이 많을 법한 에피소드. 우선 종전 전투에서 공을 세운 환의가 총대장이 되지 못했고, 비록 최 공방전의 댓가로 대장군과 동급의 지위를 얻었다곤 하나 출신과 편제가 애매모호하고 환의 군 이상으로 이질적인 군세를 이끄는 양단화가 환의와 동격으로 합류했다. 이들을 최종적으로 조율할 총대장 왕전도 공공연하게 흑심이 있는 걸로 비춰지는 인물. 이런데다 이신이나 왕분, 몽념같은 개성적인 하급 지휘관들이 독립부대 노릇까지 하게 됐으니, 지휘관 편재 상으론 콩가루 군단이 완성된 거나 다름없다.
- 킹덤/505화 . . . . 2회 일치
* 양단화의 지휘를 받는 산민족의 사기는 그 자체로 위협이 되어 열미군은 물론 아군들 조차 그 기세에 기가 질린다.
* 양단화의 연설은 단순하고 단호하지만 모든 산민족을 끝없이 고조시켰다. 그녀의 등장 전까진 헤이한 상태로 사다리나 만들고 있던 그들이 갑자기 용맹하고 무자비한 전사로 각성한 것이다. 이들이 사왕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적들은 물론 아군들 조차도 기가 질리게 만든다.
- 킹덤/510화 . . . . 2회 일치
* 그를 잘 아는 미평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은 첫 출진부터 대단한 공을 세웠다. 사감 평원에서 미평과 동료들이 포위되었을 땐 혼자 적진에 돌격, 20명을 베어넘기면서 활로를 뚫었다. 그 직후엔 어디서 말을 구해다 타고 적 대군 사이로 달려가 아군을 구해냈고 곧이어 처음 본 장갑전차를 날려버렸다. 마지막엔 [[표공]] 장군의 돌격으로 생긴 틈으로 파고들어 적장의 목을 취해, 이 첫 출진의 전공으로 단숨에 백인장 자리를 받았다.
하료초는 모든 고참들과 신, 그리고 자신 조차도 다양한 벽에 부딪혔고 그걸 극복해왔다고 말한다. 자신은 부대를 움직여 적을 죽이고, 때로는 아군도 죽여야 하는 일이 두려웠었다.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건 익숙해지는 일이다. 무섭다는 기분이 안 들 수는 없지만. 하지만 비신대는 그래도 괜찮은 부대이며 약함을 인정해서 전장에서 진정한 강함을 발휘하는 부대다. 오히려 첫 출병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희희낙락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녀석들은 전부 [[환의(킹덤)|환의]]군에나 가라고 한다.
- 킹덤/514화 . . . . 2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은 어느덧 난성에 도착, 추격에 박차를 가하나 [[왕전(킹덤)|왕전]]이 소도시 "오다"를 공략했다는 소식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천하의 이목 조차도 상식을 초월하는 이 같은 소식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킹덤/519화 . . . . 2회 일치
공교롭게도 총지휘관의 지시에 귀를 의심하는건 이목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기수]], [[마정]], [[금모]]가 정말 이 지시가 맞냐고 재차 확인한다. [[카이네]]와 [[부저]]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 그러나 이목은 확신한다.
몽념은 이신의 우려와는 달리 자신에 차있다. 그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에 말했다.
- 킹덤/523화 . . . . 2회 일치
* 조군의 좌익은 총 3만 병력에 보기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맹장 셋이 배치되었다. 우측부터 [[조아룡]], [[마남자]], [[악영]]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셋을 한 군으로 편성한 [[이목(킹덤)|이목]]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역시나 시작부터 신경전이 벌어진다. 선봉을 누가 맡는지 문제를 놓고 악영이 먼저 나서며 다른 두 장수를 무시했다. 마남자는 자기가 말을 꺼냈는데 냉큼 악영이 받아먹으려 들자 그를 "창쟁이"라 부르며 뭐하는 짓이냐 따졌다. 악영이 차가운 태도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둘에게 이 전장의 첫 칼날을 맡길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조아룡이 중재했다. 우선 악영이 마남자를 잘 모른다고 했으나 그럴 리는 없다. 마남자는 대단한 체격의 거한이면서 그 이목의 부관을 맡을 만큼 검증된 인물. 악영이 그 개인과 친분이 없을 지라도 그를 "보통내기"로 여기고 있을 리 없다고 지적한다. 악영도 그 지적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이번엔 조아룡을 두고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냐고 험한 소릴 입에 올린다. 조아룡은 쓴웃음을 짓고 말이 심하다고 할 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선전하지 않았다.
아광은 부대로 돌아가기 전, 누그러진 목소리로 타일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작전을 전달하러 온게 뭘 뜻하는지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옥봉대의 힘이 필요할 때, 괜한 교전으로 힘이 줄어있다면 전술적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디 냉정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하며, 왕분이 안절부절하지 않아도 어차피 이 전투는 아광군, 옥봉대가 함께 사력을 다 해야 겨우 승기를 잡을 거라고 말했다.
- 킹덤/524화 . . . . 2회 일치
* 그 차이야 말로 아광군이 정면에서 격돌해 결코 패배한 적이 없는 강군으로 만들었다. 곧 전선의 균형이 크게 깨지며 조군을 밀어냈다. 관상은 지금 옥봉대의 기마대도 충분히 강하며 진군 전체를 통틀어봐도 손꼽히는 수준이라 인정했다. 그러나 저같은 냉혹함 승부욕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 이제 마남자가 부관 [[월보]]를 데리고 제 2군을 맡아 돌진한다. 조아룡이 조금 빠르지 않냐고 묻는다. 마남자는 자신이 가슴에 품고 있던 생각을 밝히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본디 북방에서 나고자란 그는 딱히 애국심이란 걸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 그 조차 진나라의 이번 침공을 보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놈들은 진심으로 조나라를 멸망시키려 한다.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킹덤/527화 . . . . 2회 일치
한편 한바탕 소동을 겪은 양단화군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벽과 진군 장교들은 아직까지도 방금 자기들이 본 장면이 무엇인지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었다. 양단화와 톳지는 훨씬 차분했으나 분노를 삭히고 있었다. 양단화는 순수수가 죽인 병사들의 시체를 내려보며 이를 갈았다. 복수의 때였다.
* 진군 진영은 한창 싸우던 조군이 꽁무니를 빼자 술렁거렸다. 톳지는 대번에 부자연스러운 후퇴임을 알아차렸다. 그가 양단화에게 물었다. 이대로 추격해야 좋을
- 킹덤/529화 . . . . 2회 일치
벽에겐 무모한 돌진으로 보였다. 전술의 기본은 무시하는 공격이었다. 곧 언덕의 견융족 기마대가 양단화를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벽은 끔찍한 결과가 나오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끔찍한 결과는 견융족에게 일어났다. 보란 듯한 정면돌파. 양단화는 강했다. 그녀의 용기가 해냈다. 고지를 점한 군대가 유리하다는 병법의 기본이 그녀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듯 했다. 양단화가 선두에서 견융족을 난도질하며 고지를 빼앗았다. 바로 뒤에는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메라 족 기마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가면을 벗으며 견융 같은 낡아빠진 기마민족에게 개차반으론 당할 수 없었다고 빈정거렸다. 그말대로 이루어졌다.
* 다시 요양으로부터 북동으로 약 300리. 주해평원의 전장 또한 한 차례 이변을 맞이하고 있었다.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의 명령을 받고 [[이신(킹덤)|이신]]과 [[비신대]]가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진국 중앙에서 좌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비신대를 극구 숨겨뒀던 왕전은 어떤 명령과 함께 그들을 좌익으로 급파했다.
- 킹덤/531화 . . . . 2회 일치
* [[마광]]이 [[이목(킹덤)|이목]]의 얼굴을 알아차리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왜 여기 있는가? 한참 [[기수(킹덤)|기수]]를 몰아붙이고 있던 자군의 후방에서, 자신의 바로 후방에서 어떻게 적의 총지휘관이 나타날 수 있는가? 그런 의문을 해결할 겨를도 없이 칼날이 목에 박혔다. 마광의 부관은 그보다도 한 발 먼저 이목의 등장을 눈치챘다. 그러나 거리가 떨어져 있었고 설상가상 마광의 창은 자신의 손에 있었다. 이목이 일을 끝마치고 나서야 그가 목소리를 냈지만 닿을 일은 없었다. [[부저(킹덤)|부저]]가 뒤에서 부관을 처리했다.
* 진군에 마침내 마광이 죽었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조군은 현실을 인정하는 환호성이 퍼져나갔다. 기수는 이쪽을 향해 포권을 하고 말을 돌리는 이목을, 조나라의 삼대천을 보며 그 역량에 감탄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을 할 차례다. 기수가 기름처럼 끓기 시작한 병력에 불을 질렀다. 전부대, 전병력을 향해 조군 총대장 삼대천 이목이 직접 적장의 목을 쳤음을 선언했다. 그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전령을 통해 모든 하급부대에 급파했다. 마광의 목이 떨어졌다. 그 이상의 지시는 필요가 없었다. 위축을 거듭하던 군대가 단숨에 살아났다. 반면 진군은 대혼란. 마광이 죽었다는 말과 거짓선동이란 말이 뒤섞였다. 최전방은 마광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백 배 기세로 돌격하는 조군을 상대하면서 후방의 진위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럴 수록 조군이 외치는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는 구호는 섬뜩했다.
- 킹덤/534화 . . . . 2회 일치
* 조군이 물러난 자리. 시체들이 적도 아군도 없이 뒤엉켜 있다. 이신이 그 사이에서 몽념을 찾아냈다. 숨이 붙어있었고 곧 정신을 차렸다. 몽념은 맨 처음 기수군의 동향을 물었고 이신은 방금 전 막 물러났다고 대답했다. 이신은 그밖에 좋은 소식도 가지고 있었다.
마정이 중앙을 방치했을 때 미심쩍어 했지만 결국 다른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 마정보단 낫지만 결국 손을 쓰지 않았으니 유명무실하다. 낙화대 본진이 합류하고 우측에서 강한 저항이 일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조금 늦었다. 물론 전세가 기울어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기수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승기를 내줬다고 볼 순 없었지만, 결국 진군을 섬멸하지 못한 채 이틀째를 맞이했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2회 일치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할아버지 타이라노 타카모치(平高望)는 간무 덴노(桓武天皇)의 손자로서, [[신적강하]]하여 카즈사 국(上総国)[* 지금의 치바현 중부]을 다스리는 쿠니시(国司)였다. 그는 카즈사 국에서 임기를 마친 뒤에도 교토에 귀환하지 않고, 아들들과 토착하여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에서 개간을 거듭하여 방대한 장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방대한 장원은 자식들에게 상속되었는데, 장남 쿠니카(国香)는 히타치(常陸), 차남 요시카네(良兼)는 카즈사(上総), 삼남 요시마사(良将)는 시모우사(下総)의 영지를 나눠받게 된다.
마사카도는 삼남 요시마사의 아들로서, 소년 시절에는 교토에서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 [[후지와라 요시후사]]의 손자)를 가신으로 모셨다. 그러다가 요시마사가 사망하자 시모우사로 귀환하였는데, 귀향한 마사카도는 쿠니카와 요시카네가 요시마사가 남긴 장원을 마음대로 분배해서 나눠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니카의 동생 타이라노 요시마사(平良正)는 마사카도를 토벌하려 했으나 마사카도에게 격파당하여 패배, 타카모치의 차남 타이라노 요시카네가 마사카도를 공격했으나 역시 마사카도에게 패배한다. 요시카네 토벌은 조정에서 허가를 얻었으며, 934년에 요시카네는 결국 병사하고 만다.
- 태영호 . . . . 2회 일치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태영호는 공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태영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태영호 영사의 둘째 아들은 [[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팬으로, 누적시간이 368시간에 달하였다. 차남이 쓴 게임 아이디는 '북한이 최고의 코리아'(North Korea is Best Korea)[* 사실 북한을 까는 [[밈]]의 일종이다.].
- 토리코/361화 . . . . 2회 일치
* 어나더를 시식한 일행은 '''새로운 맛의 지평'''이 열려 사물 조차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며 구르메세포의 활성화로 세포의 기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스타쥰이 느껴온 "어떤 맛의 기억"도 구르메 세포의 기억.
* 써니의 구루메세포의 악마는 '''"헤어몬스터"''' 먼옛날 행성조차 집어삼키며 은하계 지배 했다고함
- 토리코/362화 . . . . 2회 일치
* 미식회를 나오는 와중에 구르메 일식이 시작되고, 아주 먼 곳 단 한 곳에만 빛이 비추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 오가이는 고대의 해양생물로 고동과 비슷한 종류다. 토리코 일행의 구르메 세포 악마들 조차 멸종된 줄 알았던 초고대의 생물. 겉보기엔 작지만 실은 내부에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 있다. 고대 바다의 모든 생물을 먹어봤다고 전해지며 악귀, 도깨비와 같은 식욕을 지녔다고 한다.
- 토리코/364화 . . . . 2회 일치
* '''네오는 이것 조차 먹어치워 버린다.'''
* 이치류는 이것을 관찰하면서 "영혼세계에 조차 식욕은 존재한다"면서 식욕이란 진화의 촉매이고 생물은 이 식욕을 바톤처럼 이어받으며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소견을 밝힌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저것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라고 하는데, "아카시아님"은 저것이 어디서 온 무엇인지, 그걸 알고 싶어하셨을 거라고 짐작한다.
- 토리코/376화 . . . . 2회 일치
* 네오가 상공으로 던져지자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던 용왕 데로우스가 "이차원 레이저"로 공격하려 한다.
* 이 위력은 네오 조차 먹어치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
- 토리코/379화 . . . . 2회 일치
* 그는 백채널을 겹겹히 쌓고 왜곡해서 죠아와 자신 간에 약간의 시간 격차를 만들어 그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 죠아는 이것을 알아차리고 스타준은 "원리를 안들 어떻게 대응할 거냐"고 도발한다.
- 토리코/383화 . . . . 2회 일치
* 그말을 듣고 토리코가 놀라며 몸을 일으키는데, 치치는 자신들은 어차피 식욕이며 언젠가 누군가의 식욕으로 부활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뒤를 부탁한다.
* "야심차게 꺼낸게 구닥다리 기술이라니"라며 나타난다.
- 토리코/389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아는 공격해 오던 배틀 울프 무리 조차 한 입에 삼켜버린다.
* 네오에겐 그 무엇이 됐든 먹이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재해는 물론 식운 조차도 포함된다.
- 토리코/393화 . . . . 2회 일치
* 지구가 붕괴하지 않는다는건 새로운 식재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주적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풀코스도 생성되지 않는다. 토리코는 그렇다고 지구를 붕괴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하는데, 듣고 있던 아카시아가 지구의 맛은 여기까지지만 지구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레벨의 맛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바로 네오 안에. 네오 안에는 그동안 먹어온 음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페어는 그거야 말로 해결책이라고 하고 토리코 안의 청귀도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고 환호한다.
* 블루 유니버스와 레드 유니버스를 오가며 어마어마한 음식을 먹어온 네오. 그 양은 아카시아 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의 "콤비"는 이미 새로운 식재의 조리를 마쳤다.
- 토리코/395화 . . . . 2회 일치
* 둘 만 참석한 장례식이 끝나고. 때마침 인간계에서 호출이 온다. 토리코와 린의 결혼식이 임박했다는 호출이다. 두 사람은 서둘로 코마츠가 일하는 구르메 호텔로 달려간다. 결혼식 준비는 이미 끝나있고 린도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 토리코도 턱시도로 갈아있고 합류. 린은 토리코가 예쁘다고 하는 말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도매상 톰을 비롯한 인연있는 요리사, 미식가들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결혼식과 더불어 오늘 피로연의 음식, 토리코의 "풀코스"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토리코는 빌리언 버드의 알을 이치류를 향해 건배한다. 빌리언 버드는 바로 이치류가 남겨준 식재였다. 이치류가 만족스럽게 잔을 들어올리는 순간,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그 인물이 나타난다. 미도라의 식혼. 이치류와 토리코가 먼저 알아차리고 코마츠도 그가 나타난걸 알고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 토리코/396화 . . . . 2회 일치
* 우주는 흑(아버지), 백(어머니), 적(장남), 녹(차남), 청(막내)의 다섯가지 우주가 있으며 각각의 세포 색을 가지고 있다.
이 가족들의 색이 각 우주의 색이 된 것으로 아버지가 흑, 어머니가 백, 장남이 적, 차남이 녹, 막내가 청색이다. 코마츠는 아카시아의 가족들가 닮았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아버지인 아카시아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 네오는 "검정" 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플로제는 "백색"이었을 거라고 추론. 그런 코마츠의 말을 듣자 토리코도 그럼 이치류 회장은 적색이고 지로는 녹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로에게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추측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의 손자인 텟페이의 머리는 녹색인데, 그게 격세유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도라가 청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듯하다고 말하고 참고로 자신의 세 번째 악마는 백색이라고 첨언한다.
- 토오리마 . . . . 2회 일치
* 마물의 이름에서 따와서, 무차별 살인마나 묻지마 살인 같이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로 피해를 입히는 범죄자를 뜻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을 토오리마 사건(通り魔事件)이라고 부른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2회 일치
1558년 부터 [[오다 노부나가]]를 모시고, 전공을 쌓아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하자, [[아케치 미츠히데]]를 공격하여 쓰러뜨리고 오다 세력을 승계하였으며, 차례차례 정벌하여 일본 전국을 제패한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 . . . . 2회 일치
=== [[토탈워: 쇼군 2]]와의 차이 ===
대부분의 시스템은 본편과 비슷하지만 몇가지 차이가 생겼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2회 일치
* 프로이센 스파이크 헬멧 - "오랑캐들은 품위있는 옷차림을 한 자를 두려워한다."
* 망원경 - "천상의 비밀조차 감춰질 수는 없다."
- 트럭 . . . . 2회 일치
[[자동차]]의 한 종류. 화물운반에 최적화된 차종이다.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 . . 2회 일치
평은 그리 좋지 않다. 오락적인 면이 강조됐음에도 액션신마저 지루하고 형편 없는 영화라는 평론가들의 평이 주를 이루며, 팬들 사이에서조차 평가가 안좋다. 90년대판이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나올 정도. 일단 손익분기점은 넘겼으며 이후 폭스는 2007년에 속편을 내놓았다.
- 페어리 테일/485화 . . . . 2회 일치
* 나츠는 메스트가 따라오고 있는걸 알아차린다.
* 스팅이 정신을 차리고 재정비한 세이버투스는 "5일만의 밥"이라며 적들을 쓸어담기 시작한다.
- 페어리 테일/493화 . . . . 2회 일치
* 팽팽히 대립하는 두 마도사. 브랜디쉬 조차도 긴장한다.
* 전력차는 당연히 있겠지만 미라젠이 아이린이나 오거스트를 상대로 너무 겁을 먹어서 밸런스 붕괴 논란도 있다.
- 페어리 테일/494화 . . . . 2회 일치
* 이 마법은 사고를 빼앗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법. 메이비스 조차 저항하기 어렵다.
*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그걸 보면서 "우정이란 좋다"고 오거스트에게 말을 붙이는데, 차가운 반응만 돌아온다.
- 페어리 테일/501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공격은 가볍게 막히고 브랜디쉬는 "어차피 질 일도 없다며" 승부를 받아들인다.
* 반격으로 걷어차이는 루시.
- 페어리 테일/503화 . . . . 2회 일치
* 브랜디쉬와 디마리아가 눈이 마주치는데 피차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 에버그린이 상황이 어찌된 거냐고 묻자 루시도 자세히 모르겠다며 나츠랑 같이 있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디마리아가 당하고 나츠는 사라졌다고 답한다.
- 페어리 테일/510화 . . . . 2회 일치
* 갑자기 나츠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폴류시카는 그 안의 "덩어리"가 이런 현상을 일으킨다고 본다. 루시가 확인해 보니 연기가 나는데도 몸은 차갑다. 루시는 나츠를 깨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 그때 거짓말 처럼 나타난 스팅. 라케이드를 걷어차 버린다. 스팅이 도착하자 세이버투스 일행의 사기가 오른다. 스팅은 라케이드를 거침없이 공격하지만 큰 타격은 되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2회 일치
* 그 말이 계기가 돼서 스팅과 렉터가 정신을 차린다. 렉터도 식욕을 참으며 스팅에게 희생하겠다고 하자 스팅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제외한 동료들을 기절시킨다. 이걸로 서로 해치지는 못하게 됐지만 남은 스팅은 극심한 공복감에 체력저하까지 겹쳐서 힘이 남지 않는다.
* 라케이드가 공복을 참아봐야 어쩔 거냐고 빈정거리자 스팅은 라케이드를 먹어서 해결하겠다며 달려들지만 이미 힘이 떨어진 상태라 농락만 당한다. "그래도 나는 세이버투스의 마스터니까"라고 외치며 덤비만 라케이드의 십자가가 가차없이 어깨에 박힌다.
- 페어리 테일/516화 . . . . 2회 일치
나츠의 몸안에는 용의 싹 말고도 "악마의 싹"이라 할 만한 것이 들어있다. 바로 그게 END의 증표. 두 개의 싹이 융합하려 하고 있고 나츠의 몸에 나차난 증세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나츠는 그게 자신이 죽는 원인이냐고 묻고 이그닐은 사뭇 냉정한 어투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엘자의 공격이 정통으로 명중한다. 하지만 아이린은 피를 흘리면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2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은 반격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나 웬디와 인연을 떠올리고 "이번엔 제가 당신을 지킬게요"라고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차마 손이 나가지 않는다.
페어리 힐즈 목욕탕에서 "이번에는 제가 엘자씨를 지킬 게요"라고 말하던 웬디. 한 번 벨 마음을 먹었음에도 차마 손이 나가질 않는다. 그런 점도 아이린에겐 비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18화 . . . . 2회 일치
아이린은 이것이야 말로 땅이나 바다같은 자연물조차 초월해 천체 자체에 인챈트가 가능해진다. 엘자가 꼼짝도 못하는 사이 아이린은 엘자를 흔적도 없이 부숴버릴 인챈트를 준비한다.
* 엘자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오른손으로 땅을 박차고 도약한다. 오른손만 간신히 갑옷을 감고 땅을 쳐서 운석을 향해 날아간다. 아이린은 경악하면서도 "운석을 들이받을 생각"이냐며 얼마나 머리가 나쁜 거냐고 독설한다. 그리고 인간이 운석을 막을 수 있겠냐고 외치는데.
- 페어리 테일/519화 . . . . 2회 일치
* 아이린이 숲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갓 낳은 아기를 안고도 그녀는 새로운 인생과 몸이 나타났다는 것 말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그릇을 환희에 차서 바라보는데, 그 아이는 어쩐지 웃고 있었다.
아이린은 결국 딸에게 인챈트하는 것을 포기했다. 한 번 유혹에 넘어갔던 그녀도 자식이 귀여워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결심이 흔들리고 다시 인챈트를 시도하게 될까봐 우려했고, 딸을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기로 결정했다.
- 페어리 테일/524화 . . . . 2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의 등장은 [[길다트 클라이브]], [[카나 알베로나]]와 교전하던 [[오거스트]]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이 다 됐다고 중얼거린다. 길다트와 카나 또한 익숙하고 기분 나쁜 마력을 알아차린다. 오거스트는 그 녀석이 오기 전에 폐하(제레프)가 페어리 하트를 흡수했다면 다른 결말이 됐을 거라고 말한다. 길다트는 오거스트가 싸움을 포기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니냐고 의아해한다. 오거스트는 아크놀로기아는 "인간의 미래를 검게 물들이는 어둠의 날개"라고 표현한다. 길다트는 그런 맥락이라면 댁들도 같은게 아니냐고 쏘아붙이는데 오거스트는 믿기 어려운 대답을 한다.
그러나 카나의 혼신을 다한 페어리 글리터 조차 오거스트 는 폭연을 헤치고 멀쩡한 모습을 보인다. 카나는 상당히 기력을 소진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하고조 아무런 상처도 줄 수 없다는데 경악한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2회 일치
엘자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휘청거리면서 잠시 러브코미디를 연출하는데 [[웬디 마벨]]이 사이에 끼어서 괴롭다. 그렇지 않아도 멀미로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여성이 웬디에게 다가온다. 그녀는 웬디를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보듬으며 "이 배는 멸룡마도사도 탈 수 있게 만들어진 배"이니 진정하고 심호흡을 하라고 말한다. 엘자는 어째서 그녀가 웬디를 아는지 의문스럽다. 웬디가 그녀의 말대로 심호흡을 하자 거짓말처럼 멀미가 멎는다. 정신을 차린 웬디가 여성의 얼굴을 마주본다. 그리고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아!"하고 탄성을 낸다.
* 크리스티나호는 아크놀로기아를 꽁무니에 달고 전속으로 날아간다. 항해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방금 전처럼 심한 흔들림은 사라졌다. 안나와 엘자 일행은 조금 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안나는 400년 전쟁 당시엔 아크놀로기아를 제압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당대의 드래곤들은 미래에 희망을 걸기로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키운 멸룡마도사 체내에 들어가 400년 후의 미래로 건너온다. 여기까지는 웬디가 그란디네에게 들어서 아는 내용. 그란디네는 이 시대가 가장 마력이 충만한 시대이기 때문에 선택됐다고 말했다.
- 페어리 테일/537화 . . . . 2회 일치
* 같은 시각 [[렉서스 드레아]]가 보호하던 [[마카로프 드레아]]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차리는데.
잠자코 있던 제레프가 오히려 그녀에게 "마음 쓸 것 없다"고 위로한다. 자신은 어차피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이 없으며 메이비스의 감정은 사랑보다는 "정"이라는걸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메이비스는 그 말을 부정한다. 그것은 정이 아니라 "모순"이었다. 제레프와 만났기에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와 만났기에 이 마을을 구했다. 그리고 그가 있었기에 페어리 테일이 탄생했다. 메이비스가 제레프에게 가지는 감정은 숭배에 가까웠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2회 일치
아크놀로기아가 읊조리는 소리를 듣고 나츠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걸 재미있는 농담 취급한다. 아크놀로기아가 남는 이상 용이 한 마리 남는 셈이다. 어쨌든 그도 멸룡마도사이자 드래곤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여긴 건지,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마룡이 입을 다문다. 나츠는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팩트를 던진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것. 모든 멸룡마도사들, 아크놀로기아 조차도 그저 드래곤의 힘을 받은 인간일 뿐이지 "자만"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진짜 드래곤"들은 강하고 품위있으며 "상냥하다"고 말한다. 시종 여유로운 웃음을 띄었던 아크놀로기아가 이를 간다. "드래곤은 상냥하다"는 말이 그의 성질을 긁었다. 그가 아는 드래곤은 모든 걸 빼앗는 존재다. 그의 가족을 먹어치웠고 마을을 불 살랐고, 어린 소녀까지 잔인하게 죽였다. 그게 아크놀로기아가 멸룡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나츠를 공격했던 아크놀로기아의 마력이 나츠에게 흡수 당한다. 마룡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 해답은 웬디에게 있었다. 의식을 잃은 줄 알았던 그녀는 나츠에게 자신의 인챈트 마법을 부여했다. 그 힘이 마룡의 힘마저 나츠에게 주입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웬디는 곧 모든 멸룡마도사들의 힘을 끌어온다. 정신을 차린 멸룡마도사들은 최후의 힘을 쥐어짜 나츠에게 전한다. 곧 마룡의 힘에 더해 그 자리에 있던 일곱 멸룡마도사의 힘 전부가 나츠에게 축적된다. 이제 나츠에게서 전에 없던 새로운 힘이 탄생했다.
- 페이데이 2/적 . . . . 2회 일치
신고가 들어왔을 때 순찰차를 타고 나타나는 적들.
가끔씩 플레이어에게 돌진, 걷어차서 넘어뜨리고는 구타한다. 돌진할때는 야시경에 녹색 불이 켜지며 "호롤롤로" 소리를 낸다. 클로커의 킥에 맞았을 경우 100% 다운되어 누군가 일으켜줘야 한다. 다만 클로커에게 다운당한건 4회 다운시 구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로크 . . . . 2회 일치
돈을 수송기에서 투하했으니 이제 회수할 차례. 돈이 실린 팔레트 세개를 찾아 신호탄을 터뜨려야 한다. 팔레트는 밑의 보기 중 세곳에 떨어져 있다. 팔레트 세개 중 하나는 착지시의 충격으로 산산이 흩어졌으니 주변에서 돈뭉치를 주워서 복구해야 한다.
* 차량 판매점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 . . . 2회 일치
흰색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경비원. 권총으로만 무장하고 있는 약한 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수갑차고 꿇어앉는 신세가 되니 주의.
녹색 야시경을 쓴 특수요원.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가까이 접근하면 플레이어를 걷어차 다운시킨 후 수갑을 채우고 구타한다.
- 편의치적 . . . . 2회 일치
편의치적은 오래된 관행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라이베리아]], [[파나마]], [[소말리아]], [[온두라스]], [[레바논]], [[키프로스]], [[바하마]], [[버뮤다]], [[싱가포르]] 등의 소국이 외국 자본 회사의 설립을 쉽게 하는 회사법을 제정하고, 선박세를 저렴하게 하고 법적 규제를 완화하여 외국의 선박 회사와 선박을 유치하였다. 여기에 [[미국]]이나 [[그리스]]의 선주들이 대거 이들 나라로 옮겨가면서 편의치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대부분 미국의 석유 메이저 회사와 그리스 계 선주(특히 선박왕 오나시스) 였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의 편의치적선은 1만 2553척, 4억 151만 톤으로 세계 선박의 56%를 차지하고 있다.
- 프로그램 규정설 . . . . 2회 일치
프로그램 규정설의 탄생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마르 헌법은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매우 이상적인 조항이 있었으나, 이는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의 경제적인 실태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헌법의 이념과 현실의 격차를 처리하기 위하여 프로그램 규정이라는 이론이 도입되었다.
- 프릭쇼 . . . . 2회 일치
[[목차]]
시간이 흐르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향상됨에 따라서, 점차 쇠퇴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이런 프릭쇼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인권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들이라고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보여주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특별히 제제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
- 핑커톤 . . . . 2회 일치
1850년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 앨런 핑커톤(Allan Pinkerton)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후 서부를 지나는 열차를 보호하거나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을 했다.
1861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서부개척시대]]에는 [[제시 영거 갱]]이나 [[와일드 번치]]같은 갱단을 추적하거나 열차강도를 잡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위해 [[신문]] 기사를 오려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 하동부대부인 . . . . 2회 일치
{{인용문|선묘(宣廟) 때에도 국장(國葬)이 세 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궐문 안에서 곡송만 하였다고 사람들이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동 부부인(河東府夫人) 발인 때에는 선조께서 궐문 밖에서 곡송하려고 하였으나 예조가 아뢰어 대내의 뜰 아래에서 망곡(望哭)만 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인조 12권, 4년(1626 병인 / 명 천계(天啓) 6년) 3월 2일(을사) 1번째기사}}
**** 차남 : 효정공 [[하릉군]] 인(孝貞公 河陵君 鏻, 1546~1592)
- 하수빈 . . . . 2회 일치
영혼마저 깨끗한 차가울 만큼 맑고 투명한 마치 하얀 눈꽃이 필 것 같은 눈 덮인 겨울 호수... 비오는 파리의 세느 강변을 거닐 듯 아련한 애수를... 그런 삶의 여정을 아름답게 표현해 가는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여전히 손이 차요 Iris Garden
- 하이큐!!/등장인물 . . . . 2회 일치
[[목차]]
일명 '노는 배구'를 하는 팀. 보는 사람마저도 즐거워지는 배구를 한다고 한다. 봄고 2차 예선 1회전에서 카라스노에게 2 : 0의 세트 스코어로 패배.
- 하이큐/213화 . . . . 2회 일치
* 사토리 조차도 "저럴 거까지 있느냐"고 생각할 정도.
* 합숙 3일차.
- 하이큐/218화 . . . . 2회 일치
* 미야기현의 강화합숙은 5일차, 마지막 날에 돌입한다.
* 미야기현 1학년 강화합숙 5일차. 마지막 날이다.
- 하이큐/234화 . . . . 2회 일치
* 스코어는 아직도 11대 7. 따라가고 있지만 점수차를 좁히기 어렵다. 우카이 코치는 아무리 여유를 찾아도 결국 초조함을 따라오게 되있으며 거기에 사로잡히면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심제"를 일찍 투입하기로 했다.
* 카라스노가 따라붙으면서 점수차는 더 벌어지지는 않지만 좁혀지지도 않는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그 점을 우려한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에게 세트를 올려 공격에 성공, 이제 그럭저럭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때 히나타가 코트 인. 들어오자마자 치고 싶어 안달난 눈빛을 보낸다. 사와무라는 그들을 보며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겐 "실수하는게 무섭다는 감각 자체가 없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 하이큐/239화 . . . . 2회 일치
* 관중석에서 시시덕거리던 커플 뒤에 있던 아저씨가 "츠바키하라는 긴장감이 없다"며 가벼운 분위기의 벤치를 질타한다. 하지만 커플은 그 말에 반박하며 "심각해져봐야 카라스노가 딴 1세트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침체된 분위기를 하고 있는 쪽이 오히려 패배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
경기는 테라도마리의 스파이크로 츠바키하라가 1점 차로 바싹 따라붙는다. 오오사도 감독은 또다시 히메카와의 서브엔 "가장 큰 아군"이 있지 않냐고 격려한다.
- 하이큐/257화 . . . . 2회 일치
* 키노시타는 상대가 유명인사들이란 점도 신경쓰고 있다. [[이나리자키 고교]]의 선수들은 방송 인터뷰도 하는 선수들이지만 자기는 센다이 역에서 일기예보 촬영할 때 조차 찍힌 적이 없는 무명 중의 무명. 불안한 마음가짐으로 코트로 향한다. 이때 우카이 코치가 그를 불러세운다.
* 20 대 18. 다시 점수 차가 벌어진다. 키노시타가 아무리 분해도 당사자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시 아츠무와 한 핏줄인지, 오사무의 도발력도 만만치 않다.
- 하이큐/261화 . . . . 2회 일치
* [[타키노우에 유스케]]는 [[시마다 마코토]]가 자리를 비웠다 좋은 장면이 다 지나가고 돌아오자 대차게 깐다. 아까 [[야마구치 타다시]]가 대활약했는데, 그 선생님인 시마다가 왜 자리를 비웠냐는 이유다. 물론 그는 시마다가 경기장 반대편까지 열심히 뛰다 온 걸 모른다. 그리고 그가 자기 태블릿을 무단으로 빌려갔던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마다는 그 짧은 순간에 "봉투 안에 타블릿을 끼워서 켜면 더 잘 보일 거다"는 계산까지 염두했던 것이다.
* 이어지는 공방전. 아즈마네의 공격을 아카기가 리시브, 산지마의 스파이크로 잇는다. 츠키시마, 카게야마가 블록. 카게야마의 팔에 맞고 뒤로 밀린 공을 사와무라가 커버한다. [[히나타 쇼요]]가 빠져있고 쓸만한 공격 자원들이 빠진 상황. 그래도 [[스가와라 코시]]는 기회는 있다고 희망을 놓지 않는다. 카게야마에게 이어진 공, 츠키시마가 뛰어오르나 진짜는 타나카다. 이 시간차가 먹힐까?
- 하이큐/268화 . . . . 2회 일치
여자친구 "미카"는 슬슬 배구 용어가 입에 붙어가고 있었다. 스코어는 24 대 24. 매치 포인트가 눈 앞. 미카는 아는 척을 하며 이게 "듀스"지 않냐고 말했다. 생각에 잠겨있던 다이쇼가 정신을 차리고 그렇다고 대답한다. 거기서 미카가 이어한 말은 꽤 의미심장했다.
* 야마모토의 리시브는 언제나 한 가지 원칙에 출실했다. 반걸음 빨리 공에 도달하는 것. 그 반걸음 만큼 공을 조작할 여유가 늘어난다. 그 차이는 코트 바깥의, 다른 학교 선수들이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은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저런 정성스런 리시브가 가능한지 감탄했다. 코즈메의 주문 대로다. 높게 네트 앞으로 띄워진 공. 정확히 코즈메의 머리 위. 상대는 코즈메의 유도와 양 사이드의 공격에 모두 유의하고 있었다. 들어갈 구멍이 있을까? 그렇다면 정중앙. 심플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쿠로오가 스파이크. 이것이 허를 찔렀다. 네코마의 득점. 스코어 29 대 28. 네코마가 마침내 역전. 매치 포인트에 도달한다.
- 하이큐/271화 . . . . 2회 일치
* [[미야 아츠무]]는 여전히 [[니시노야 유]]를 노리고 서브. 하지만 그것도 4회차에서 미스를 범하며 아웃된다. 그런데 완전히 승부욕에 불타던 니시노야는 오히려 그걸 아까워한다. 스코어 17 대 8. 이번엔 [[카라스노 고교]]의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가 서브한다. 서브는 [[마지로 아란]]에게, 마지로가 리시브에 실패하며 득점으로 이어진다. 아즈마네의 서브 에이스. 곧바로 이어지는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마지로를 정확히 노렸다. 이번엔 마지로의 리시브 성공. 공은 아츠무에게. 좌측에서 [[미야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그러나 이는 연막. [[츠키시마 케이]]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중앙에서 한 박자 늦게 달려나오는 린타로를 놓치지 않았다.
- 하재숙 . . . . 2회 일치
|| '''가족''' ||1남 2녀 중 차녀, 남편||
[목차]
- 하주석 . . . . 2회 일치
제대를 앞두고 [[타이완]] [[타이중 시]]에서 열린 [[201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제29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처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 이 대회에서 중심 타자로서의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대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여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4차전 일본전에서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1점차로 지고 있던 9회말에 [[윤영환]] 감독에 의해 [[오선진]]의 대타로 출전해 상대 투수 [[콘도 히로시]]를 상대로 끝내기 투런 홈런을 기록하였다. 일본전 승리와 함께 대한민국은 드림팀 2기가 활약했던 1999년 제 20회 대회 이후 16년 만에 아시아 정상 자리를 되찾았으며, 그는 이 홈런 한 방으로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 하준영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8년]] 2차 2라운드([[KIA 타이거즈]])
[[201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 하현정 . . . . 2회 일치
'''하현정'''(河賢貞, [[1987년]] [[6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2010년 미스코리아]] 미(美)이다. [[2010년]] [[9월 25일]] 미스코리아 미 자격으로 출전한 제18회 2010 미스 투어리즘 퀸 인터내셔널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 미인대회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9/h2010092601182621950.htm|제목=하현정 한국인 최초 국제미인대회 1위|저자=채석원|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0-09-26}}</ref>
* 경력 : 연극 '우리 읍내' & '꽃마차는 달려간다' · 뮤지컬 '페임' & '유린타운' 등 출연, 2010년 한마음혈액원 홍보대사, [[2011년]] 세계 7대 자연경관선정 홍보대사
- 한기웅 . . . . 2회 일치
* 《[[피고인 (드라마)|피고인]]》 (2017년, SBS) - 젊은 차민호 역
* 《[[밥상 차리는 남자]]》 (2017년, MBC) - 희철 역
- 한말숙 . . . . 2회 일치
|자녀 = 2남 2녀 <br /> 황혜경(장녀) <br /> [[황준묵]](장남) <br /> 황수경(차녀) <br /> 황원묵(차남)
- 한보배 . . . . 2회 일치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 윤맑음 역 (특별출연)
- 한상훈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9년]] 2차 6라운드([[한화 이글스]])
[[1980년]] [[6월 3일]] [[서울특별시|서울]] 출신으로 [[서울화곡초등학교]]와 [[신일중학교]]를 거쳐 [[신일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신일고등학교]] 시절 투수로도 활동하였고,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로 [[한화 이글스]]의 2차 6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99학번)에 진학하였다.
- 한성식 . . . . 2회 일치
* [[2002년]] 《[[울랄라 씨스터즈]]》 ... 리차드 역
* [[2015년]] 《[[KBS 드라마 스페셜]] -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한국방송공사|KBS]])
- 한승엽 (1985년) . . . . 2회 일치
2009년 9월 29일 군입대 예정이던 한승엽은 102 보충단에서 3일간 전반적인 신체검사과정에서 발가락부분에 뼈이상이 발견되어 1차적 귀가조치를 받았다. 그 이후 10월 20일 정밀 검사를 받은 한승엽은 1년의 치료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병무청의 검사결과 및 신체검사 판결로 1년 뒤 재검사를 받게 된다. 이로써 한승엽은 2009년 10월 27일 공식적으로 방송에 복귀하게 되었다.<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00349&db=issue MBC게임 한승엽 해설 입대 연기로 방송 복귀]《포모스》, 2009년 10월 28일</ref>
*[[2001년 10월]] 이노츠배 주장원전 10월 2주차 3등
- 한운사 . . . . 2회 일치
[목차]
특히 아로운 3부작은 작가 자신의 군경험이 녹아있는 자전적 작품으로 아로운(阿魯雲, [[영어]]로 alone) 자체가 한운사 [[본인]]이나 다름 없으며, 13부대 자동차 중대 제6내무반에서의 군생활을 다루었다. 참고로 같은 [[내무반]]의 동료 지하라(千原) [[이등병]]의 경우 실제 모델이 천응렬로 후에 한운사 작가의 자서전 '구름의 역사'에선 실명으로 등장한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모리 지로(森次郞) 일등병도 실존 인물이며 원래 실제 인물의 이름도 모리.
- 한재석(1973) . . . . 2회 일치
[목차]
부친은 [[기아자동차]]에서 부회장을 역임했던 한승준이다. 1995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인 째즈가 그의 데뷔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의 정식 데뷔작은 1994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마지막 연인이다. 첫 주연 작품인 째즈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여세를 몰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라는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영화가 흥행과 비평에서 크게 실패하게 되고 연기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하락세 테크를 탔다. 순식간에 주연급에서 서브 조연급으로 확 떨어지고 만다.
- 한재석(1991) . . . . 2회 일치
[목차]
[[SNL 코리아]] 시즌 5부터 합류한 남성 크루이다. [[본인]]의 [[인터뷰]]를 통한 바로는 SNL 코리아에서 맡는 포지션은 "어린 성인". [[나이]] 순으로 따지면 [[막내]]였다가 시즌6에 '''[[1994년]] 생 [[고원희]]'''가 합류하면서 막내를 벗어났으나 휴식기에 고원희가 하차하면서 다시 막내가 되었다가 시즌7에 '''1995년생 [[김혜준]]'''이 합류하면서 다시 막내를 벗어났다. 초기에는 남친 역, 부하 역 등으로 나왔지만 화를 거듭하면서 망가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대표적으로 뷰티박스.~~
- 한혜숙(배우) . . . . 2회 일치
[목차]
실제 성격이 직선적이고 도도한 편으로, 드라마에 반영되어 주로 꼿꼿하고 도도하고 고집이 있는 여자주인공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70년대에 '브라운관의 [[김지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자랑했다. 올곧은 성격으로 인해 [[PD(방송)|PD]]들하고 트러블도 있었는데, 그로 인해 하차하거나 방송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1970 ~ [[1980년대|80년대]] 미모 순위하면 항상 순위권에 들었다.
- 함대 컬렉션 . . . . 2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함을 의인화한 미소녀 캐릭터를 컬렉션 하는 게임. 약칭은 칸코레(艦これ). [[DMM]]에서 서비스 중이다.
플레이어는 2차대전 당시 군함을 의인화한 미소녀 캐릭터 "칸무스"를 데리고 바다에서 나타난 미지의 적 "심해서함"을 상대로 맞서 싸운다.
- 허준영 . . . . 2회 일치
* 1999.2 ~ 1999.11 : 경북지방경찰청 차장(경무관)
* 1999.11 ~ 2000.12 : 강원지방경찰청 차장(경무관)
- 현경련 . . . . 2회 일치
[[1893년]] [[기해박해|기해년의 박해]] 초기에, [[교리]] [[선생]]이 된 현경련은 박해를 피해 숨었지만, [[6월|6]] [[7월]] 경에 [[체포]]되었다. 관리들은 현경련이 [[선교사]]들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던 [[현석문]]의 누나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숨은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더 가혹하게 그녀를 고문했다. 그녀는 여덟 차례 [[심문]]과 두 차례의 [[주뢰형]] 그리고 300 여대의 [[장형 (형벌)|장형]]을 받았다. 형리들은 선교사들을 체포해서 포상을 받고 싶어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더 혹독하게 그녀를 고문했다. 그러나 현경련의 강한 의지로 인해서, 그들의 탐욕적인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그녀는 [[형조]]로 압송된 후에, 다리를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격심하게 매질을 당했다. 그녀의 온몸에 상처가 깊어서 피와 [[고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또한 그녀는 [[감옥]]에서 [[콜레라]]에 걸려 앓았다.
- 현재현 . . . . 2회 일치
* 2011년 Van Fleet상 수상. 현재현 회장은 한미재계회의를 이끌며 한미FTA체결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한미간 특허심사 하이웨이제도 도입 등 한미 양국의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2011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밴 플리트 상은 한미 우호증진과 양국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한 공이 큰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한국인 중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받았고, 미국인으로는 조지 W.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대사, 헨리 키신저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이 수상했다.
현재현 회장은 1980년대 금융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 선물•벤처투자 등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21세기 국가기간산업인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하며 제조업 중심의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해 종금, 보험, 투신업계에 무려 약 34조 9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동양그룹의 모든 금융계열사는 공적자금 지원 없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특히, 동양오리온투자신탁(현 동양증권)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대우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약 5,000억 원의 고객 손실을 전액 보전해주었다. 사회공헌차원에서 금융업을 제2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해온 현재현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동양생명은 부실한 태평양생명을 인수 합병하여 생명보험사 구조조정에 힘을 보탰다. 2007년 한일합섬 인수 이후 현재현 회장은 레저사업을 동양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의 골프장 사업에 리조트사업을 추가하고 강원도 삼척시와 연계한 레저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현재현 회장은 시멘트사업 중심의 그룹 제조부문을 친환경 에너지•자원 개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현 회장은 1989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매출 6,000억 원의 동양그룹을 제조•금융•서비스 부문 33개 계열사에 연 매출 9조 2,211억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 호소키 카즈코 . . . . 2회 일치
2008년, 갑자기 모든 방송에서 하차. 2013년 1월 까지 활동을 하지 않았다.[[http://www.excite.co.jp/News/entertainment_g/20131115/Cyzowoman_201311_post_1299woman.html (참조)]]
방송에서 하차한 원인으로 야쿠자와의 관련설이 있다.[[http://www.ikedahayato.com/20151007/32595427.html (참조)]]
- 홍광호 . . . . 2회 일치
* 2018년 《맨오브라만차》 - 돈키호테/세르반테스 役
* 2012년 《맨오브라만차》- 돈키호테/세르반테스 役
- 홍금주 . . . . 2회 일치
홍금주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제가 입을 빨간색 옷이 한 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순교자]]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녀는 [[최 필립보]]의 집에서 그의 제수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녀는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으며 배교할 것과 [[천주교]]인들이 숨은 곳들을 누설하기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형리는 그녀의 주뢰를 틀고난 뒤,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녀를 감방의 천장에 매달아 놓고서 그녀에게 매질을 가했지만, 그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사흘 후 그녀는 [[형조]]로 이송되었고 세 차례를 다리에 격심한 매질을 당했지만, 형조 [[판서]]에게도 굴복치 않았다. 그녀는 감옥에서 심한 열병을 앓아 거의 죽을 뻔 하였지만, 매우 빨리 회복되었다. 그녀는 [[사형]]이 집행 때까지 근 6개월을 형조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오직 사랑과 봉사로써 다른 수감자들을 돌보았다. 감옥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큰누이처럼 존경했다.
- 홍서범 . . . . 2회 일치
|가족 = 2남 4녀 중 둘째(차남)<br/>슬하1녀
홍서범은 [[1958년]] [[12월 7일]]에 [[경상북도|경북]] [[김천시|김천]] 대광동 (김천시) (환경로) 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재학 중 대학 2학년때 팀 '옥슨79'를 창설하면서 멤버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대학 캠퍼스 밴드 '옥슨80'의 멤버로 같은 해 [[동양방송|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출전하여 '''불놀이야'''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다. '옥슨80'의 멤버로 활동하다 [[1989년]] 32세에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자작 록 발라드 곡으로 솔로 가수가 되었다.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구인광고''', '''김삿갓''' 등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방송에도 출연, [[1994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프로그램 홍서범의 뮤직쇼 DJ를 진행하였으며 그 해 영화 《[[커피 카피 코피]]》의 주연(영화배우)으로 스크린에도 데뷔하였다. [[2003년]]에는 라디오 DJ를 복귀하면서 [[서울방송|SBS]] 라디오 프로그램 '홍방불패'의 DJ로 활동하였다.
- 홍세화 . . . . 2회 일치
[[1977년]]부터 '민주투위' 조직과, '남민전' 조직에 가담하였고, 이후 무역회사에 입사,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건너갔다.
* 《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 ([[타하르 벤 젤룬]] 지음)
- 홍순언 (1530년) . . . . 2회 일치
기방에서 석방된 류씨 소녀는 홍순언이 준 3천냥으로 빚을 청산하고 부모의 장례를 치룬 뒤 아버지의 친구였던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집에 하직인사차 들렸다. 오갈데 없던 그는 당시 [[석성]]의 본부인이 병환을 앓고 있었으므로, 석성 부인의 병구완과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류씨 소녀의 지극정성의 간호에도 석부인은 병환의 차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자신의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에 감격한 [[석성]]은 류씨 소녀를 자신의 계비로 맞이하였다.
- 홍인영 . . . . 2회 일치
||<#FF0000><:> {{{#FFFFF '''가족''' }}} ||<:>부모님, 1남1녀 중 차녀[br]배우자 [[전승빈]] ||
[목차]
- 홍진경 . . . . 2회 일치
홍진경은 2005년부터 [[여명학교]]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아동 보육 교육 시설, 청소년 공부방과 쉼터, 유니세프, 월드비전 등 총 12개 단체에 후원금과 물품을 지원했다. 특히 대한민국 내 보육원 아이들의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위한 후원과 아시아 지역 30명의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이 사는 지역을 살리기 위하여 매달 기부활동을 했다. 2012년 초에는 [[아프리카]] 차드 도바 지역에 자신의 딸 김라엘의 이름을 딴 '라엘탁아소'를 세우는 등 대한민국 외의 어려운 아이들에게까지 후원을 하기도 하였다.<ref name="이지">이지현.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71303 홍진경 7년째 선행, 국내외 기부+후원 아끼지 않아 '훈훈']. TV리포트. 2012년 10월 15일.</ref> 또한 《[[별에서 온 그대]]》에 천송이([[전지현]] 분)와 친한 만화방 사장님이자 동창생으로 등장하여 간간이 쇼스타퍼 역할, 약방의 감초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JTBC]] 《[[차이나는 클라스]]》
- 화석연료 . . . . 2회 일치
[[목차]]
고대로부터 인류는 지표면에서 채집한 화석연료를 소규모로 사용해왔지만, 기술 부족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고 채굴지 주변에서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불과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로 석탄과 석유가 본격적으로 대량으로 채굴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현대 문명 사회를 건설하게 된다.
- 화완옹주 . . . . 2회 일치
처음에는 강화도 교동, 나중에는 육지인 경기도 파주로 유배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대신들의 처벌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를 듣지 않다가 [[1799년]](정조 23) 화완옹주의 죄를 없애고 용서하라는 하교를 내렸다.
화완옹주는 영조의 여러 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영조는 옹주가 시집간 후에도 자주 그의 집에 거둥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8권, 89권, 112권 등. 영조가 해산을 앞둔 화완옹주의 집을 방문하거나, 환궁 도중에 옹주의 집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다</ref> 또한 문과에서 장원을 차지한 정치달의 형 [[정원달]]에게도 많은 특혜를 하사하였으며<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8권, 1756년 10월 2일</ref>, [[1757년]](영조 33) 정치달이 세상을 떠나자 곡반을 하였고 이를 말리는 신하들을 파직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9권, 1757년 2월 15일</ref>
- 황덕균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2차 4라운드([[두산 베어스]])
[[2002년]]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나,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004 시즌을 앞두고 방출되었다.
- 황두성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2차 3순위 ([[삼성 라이온즈]])
[[2008년]]에는 선발로 활약하다가 시즌 중반에 소속 팀이 마무리 부재로 불펜진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자진해서 잠시 마무리로 전향했다. 그러다 [[일본]]인 마무리 [[투수]] [[다카쓰 신고|다카쓰]]의 입단으로 선발 보직으로 다시 옮겼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으로 뽑혔지만 컨디션 난조로 중도 하차하여 [[임태훈 (야구 선수)|임태훈]]과 교체되었다.
- 황두진 . . . . 2회 일치
발코니, 테라스, 옥상마당, 중정 등 건물의 비워져 있는 부분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이다. 채광과 환기,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특히 한반도의 기후조건에 적합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공성 건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옥이다. 황두진건축은 그간의 한옥 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다공성을 확보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 다공성의 개념은 배치와 공간에서 시작하여 입면과 단면, 그리고 세부적인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porosit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다공성 porosity|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4/2015091400130.html?Dep0=twitter&d=2015091400130 |뉴스=조선일보|제목='구멍 숭숭' 벽돌 건물 차가운 유리도시 녹이다|저자=김미리 기자|날짜=2015-09-14|출판사=|확인날짜=}}</ref>
한 건물 안에 다양한 기하학이 공존하는 것이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이다. 이런 건축물은 사람에게 즐거운 놀라움과 지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기하학이 구조 및 재료와 결합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칸’(間)으로 대변되는 직교좌표계와 3차원 곡선으로 구성된 지붕이 공존하는 한옥이 그 대표적인 예다. 중첩된 기하학은 황두진건축의 독창적인 개념의 하나로, 근대건축의 무미건조한 상자의 미학에서 벗어나 삶의 공간 속에서 풍성함과 쾌적함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
- 황보관 . . . . 2회 일치
3전 전패로 탈락했던 [[1990년 FIFA 월드컵|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예선 2차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에서 [[안도니 수비사레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시속 114 km 캐넌슛을 넣어 화제가 된 바 있다.<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120523022576&subctg1=&subctg2= 축구 슈팅속도 얼마나 되나]</ref> 이 득점은 [[1990년 FIFA 월드컵|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기록했던 유일한 득점이었다.
은퇴 후 그는 지도자보다는 구단 경영자, 행정가로 더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은퇴한 후,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주관하는 'C,B,A 코스' 및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였다. [[199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은 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1년]] [[오이타 트리니타]] 유스 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4년]] [[오이타 트리니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5년]] [[요한 베르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으로 승격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4120600017 황보관 J리그 오이타 감독 승격]</ref> 감독 취임 뒤,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열린 [[통영컵]]에 참가하여 데뷔전을 치러 우승을 차지하여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으나,<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5022700011 황보관의 오이타, 2005 통영컵 패권]</ref> 성적 부진으로 9개월 만에 해임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20&g_serial=167328 황보관 오이타 감독, 전격 해임 '성적 부진 탓']</ref>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육성부장을 거쳐, [[오이타 트리니타]] 부사장 및 이사에 올랐다. [[2008년]] 팀이 [[J리그 컵]]에서 우승하자, 우승컵을 갖고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또한 [[일본문리대학]] 축구부의 테크니컬 디렉터도 맡았다. 오이타가 [[2009년]] 경영난 속에 [[J리그 디비전 2|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이듬해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2부 리그에서도 15위에 그치자 사임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황보관, J2 오이타 사령탑에서 퇴임|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300164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0-11-30}} }}</ref>
- 황상경 . . . . 2회 일치
* 《[[으라차차 와이키키]]》 (2018년, JTBC)
- 황재규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6차 5라운드([[한화 이글스]])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한화 이글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ref>
- 황정립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9월 14일]]<BR/>[[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BR/>연속경기 1차전 대수비
[[2012년]] [[KIA 타이거즈]]의 8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확대 엔트리 시행 후 1군에 올라왔고, 2012년 9월 14일 광주 무등경기장 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8:7로 뒤지고 있던 연장 12회말 2아웃 데뷔 첫 타석에서 [[투수]] [[강영식]]을 상대로 3구를 받아 쳐 동점 홈런을 날렸다.
- 황제성(코미디언) . . . . 2회 일치
[목차]
* 복면가왕 21차 경연에서 [[질주본능 사이클맨]]이라는 가명으로 참가했으며 유상무와 신봉선을 비롯한 판정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춤도 정체가 공개되기 전에는 추지 않을 정도로 정체를 완벽하게 숨겼다.
- 효령대군 . . . . 2회 일치
*** 차남 : [[서원군 (왕족)|서원군 친]](瑞原君), (1413년 ~ 1475년)
*** 차녀 : 현주 이씨, 전진형(全晉亨)에게 출가
- 1986년 에드먼드 우체국 총기난사 . . . . 1회 일치
패트릭 셰릴은 자신이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1986년 8월 20일 아침, 그는 우편 가방에 자동권총 3정을 숨기고 직장에 나타난다. 셰릴은 관리자였던 리차드 에서 주니어(Richard Esser Jr.)를 쏴죽인 후 다른 직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로인해 14명이 사망하였다. 이후 출동한 [[SWAT]]과 [[FBI]]가 우체국을 포위하자 셰릴은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다.
- 3월의 라이온/120화 . . . . 1회 일치
* 객관적으로 보면 라이도가 천하의 개썅놈이지만, 왠지 너무 불쌍하게 차여버린 데다 혼자 좋아라 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2ch 막장판에나 있을 법한 인물--
- 3월의 라이온/121화 . . . . 1회 일치
* 다가올 여름축제에서 포장마차 메뉴를 뭘로 할지 의논한다.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1회 일치
* 키리야마는 상대의 기묘한 행동이나 옷차림은 모두 상대를 겁주기 위한 허세라고 단정하고 어린애가 아닌 자신은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3월의 라이온/125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금세 정신을 차리고 피해버린다.
- 4,000-lbs HC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사용한 항공폭탄. 이름의 뜻은 4,000 파운드 고용량(High Capacity). "블록버스터", "쿠키"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 Crusader Kings 2/DLC . . . . 1회 일치
질병에 걸리면 질병 특성이 바로 붙지 않고 증상 특성들이 전조로 오게 바뀌었다. 또한 역병이 발생해 주변 영지로 퍼지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물론 캐릭터가 거기 있다면 높은 확률로 병에 걸린다. 역병 중 보스몹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흑사병]]도 있는데, 인도에서 나타나 "흑사병으로 황폐해진 XXX" 따위의 이벤트 창을 띄우며 서유럽으로 빠르게 다가온다.
- Daisy Bell(Bicycle Built For Two) . . . . 1회 일치
멋진 결혼식을 할 수 없고 마차를 장만할 수도 없지만 함께 자전거를 탈 수는 있다며 청혼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 E-4B 나이트워치 . . . . 1회 일치
[[핵전쟁]]에 대비한 만큼 그에 걸맞는 성능을 가지고 있는데, 핵폭발에서 발생하는 방사능과 [[EMP]]를 차폐하고, 공중 급유를 받으면서 3일 동안 비행할 수 있다. 완벽한 지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위성통신용 안테나를 갖추고 있어 핵잠수함이나 우주의 인공위성과 연락할 수 있다.
- EZ2AC . . . . 1회 일치
[[목차]]
- Europa Universalis 4 . . . . 1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인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서 만든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인 Europa Universalis 시리즈의 4번째 게임. 보통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Crusader Kings 2]]와 비교되는 편이 많으며, 실제로도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유사하다~~당연하지 둘다 같은 제작사니깐.~~[* 엔진이 클라슈비츠로 같은게 가장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크킹은 유저가 '''통치자'''에 입장에서서 자기 가문원을 늘리면서 확장해가는 방식이라면 유파는 유저가 말그대로 나라하나를 통째로 경영해가는 느낌이라는 것정도...?~~그러니깐 크킹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 유파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다~~
- Europa Universalis 4/동구권 . . . . 1회 일치
서구권다음으로 테크가 빠른 편이라 그래도 테크차이로 고통받을 확률은 적은 편이다. 중반때까지는 서구화가 필수적이지 않다.
- FrontPage . . . . 1회 일치
* 반달리즘 행위에 대해서는 IP차단을 하며, 식별 된다면 NTX 아이디에도 제제 조치가 가해집니다.
- GHQ . . . . 1회 일치
GHQ는 General Headquarters의 약자로서, '총사령부'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군]]--[[연합군]][* 소수의 영연방군이 참가하였으나, 대부분은 미군이었으므로 사실상 미군.]이 [[일본]]에 --[[막부]]--[[군정]]을 펼치기 위하여 설치한 사령부를 뜻한다. [[맥아더]]를사령관으로 하였으며, GHQ에서 지시하는 점령정책이 일본 정부에 의하여 시행되었다. 1945년에 설치되어, 1952년에 강화조약이 맺어지면서 폐지되었다.
- Hanging On The Old Barbed Wire . . . . 1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불려진 노래. 영국군 사이에서 구전 가요스럽게 불려졌다. 그 덕택에 여러 버전의 가사가 있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누구(주로 간부)는 놀고있는데 누구(주로 병사)는 가시 철조망에 걸려죽어 있다는 내용.
- House of the Rising Sun . . . . 1회 일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는 내용의 게임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는 [[https://youtu.be/x_artPecEaM|나치풍으로 개조된 독일어 버전]]으로 등장. "뉴올리언스"가 "노이베를린"으로 바뀌었다는것에 주목하라.
- I Didn't Raise My Boy to Be a Soldier . . . . 1회 일치
미국의 반전(反戰)가. 작사 알프레드 브라이언. 작곡 알 피안타도시.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이 참전하지는 않았던 1915년에 만들어졌다.
- IsbnMap . . . . 1회 일치
IsbnMap 에서 map 을 분리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 이 경우 출판년도에 따라서 옵션을 달리 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 ISBN 매크로를 고쳐서 (가능하다면 jpg가 없을 때 gif를 찾는 어떤 로직을 넣는 방법이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coding에 능력이 전혀 없는지라, 이게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논리적 차원에서는 이게 사용자 정신건강에 이로운 해결책이 아닐까합니다. (제 위키에서 책목록을 관리하는데 수작업으로 바꿔 줄 생각을 하니 조금 끔직합니다. - 스크립트를 돌려도 되기는 하지만 ... )
- K리그 챌린지 . . . . 1회 일치
K리그 챌린지는 대한민국 차상위 프로축구 리그의 명칭이다.
- MoniWikiOptions . . . . 1회 일치
* 기본값 `'./data'` ../data라고 지정하고 data디렉토리를 지정된 장소로 옮기면 외부에서 data직접 액세스를 차단할 수 있다.
- NEC 코퍼레이션 . . . . 1회 일치
본래 [[웨스턴일렉트릭]]과의 합작회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미일 관계가 악화되자, 스미토모 재벌이 인수했다. 전쟁 이후에 개편되어 지금과 같은 체계가 되었다.
- NTX위키 . . . . 1회 일치
써진대로 믿으면 곤란한 정보들이 있다. [[주토피아]]라던가. 교차검증을 거치자.
- Oh! How I Hate To Get Up In The Morning . . . . 1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노래. 작사 작곡 어빙 벌린(Irving Berlin).
- Oui Oui Marie . . . . 1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8년 발표된 노래로, "프레드 피셔"(Fred Fisher)가 작곡하였고 "알프레드 브라이언"(Alfred Bryan)과 "조 맥카시"(Joe McCarthy)가 작사하였다.
- Project:Union . . . . 1회 일치
이러한 불운한 사고에도 인류는 살아기기로 마음먹었고. 결국 레시마스에서의 새정착 생활을 시작햇다.허나 인류는 다시 [[전이 현상]]이라는 새로운 시련을 맞이햇고 차원 넘어에서 넘어온 존재들은 인류를 위협햇다. 이에 [[행성 연합]]은 전이현상에 대항하기위해 전우주의 뛰어난 영웅으로 이뤄진 대전이현상 특수작전팀 [[오퍼레이션 발할라]]를 창설하게 된다.
- TILTOWAIT . . . . 1회 일치
단점은 대미지 편차가 크다는 것과, 마법 무효화를 가진 적에게는 효과가 약하다는 것이다.
- UR임대 . . . . 1회 일치
우리나라의 LH 임대아파트(휴먼시아, 영구임대, 행복주택 등)와 비슷한 위치이나, 일본의 UR주택은 영구임대이면서 방이 넓고 시설 수준이 좋은 단지도 있다는 점에서 LH 영구임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
- U턴 취직 . . . . 1회 일치
지방에서 진학을 위해서 대도시권으로 상경하여 공부를 마친 학생이, 대도시권에서 취직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취직을 하는 것. 자동차 운전에서 [[U턴]]과 비슷하다고 하여 U턴 취직이라고 한다. 고향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취업하는 것은 I턴 취직이라고 한다.--I턴은 턴이 아니잖….--
- Victoria II . . . . 1회 일치
몇차례 개혁을 해서 서구화 진척도를 채운 다음 서구화를 하면 문명국이 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초기 메이지 유신" 디시전과 "메이지 유신" 디시전의 효과로 빠르게 서구화를 달성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비문명국 입문자용 튜토리얼 국가로는 보통 일본이 추천되는 편이다.
- Victoria II/개혁 . . . . 1회 일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2.1|수차 동력]] 기술 획득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 . . . . 1회 일치
* '''Empirical Interdiction Reports(경험적 차단 보고)'''
- Victoria II/정당 . . . . 1회 일치
국가와 국교는 하나다. 소수 종교는 차별받는다.
- 가면부부 . . . . 1회 일치
부부관계는 차가워졌고, 이미 애정은 없지만 이혼하지 않는 상태. 약 30%의 부부가 가면부부에 가까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 가열 . . . . 1회 일치
'매울 가(苛)와 '세찰 렬(烈)'을 써서 가혹하고 격렬한 상태를 이르는 말. 보통 '가열차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으나, 표준어로는 '가열하다'라고 쓰는 게 맞다. ~~그런데 표준어가 더 헷갈리기 딱 좋은데...~~
- 가족같은 . . . . 1회 일치
[[목차]]
- 강대식 . . . . 1회 일치
[목차]
- 강상재 . . . . 1회 일치
2016-17시즌 종료 후 [[서울 SK 나이츠]]의 [[최준용]]을 누르고 인생에 한번뿐인 신인왕을 차지하였다.
- 강세정 . . . . 1회 일치
|2009||SBS||[[녹색마차]]||홍금연||
- 강은탁 . . . . 1회 일치
[목차]
- 강재형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2003년]] :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2부 차장
- 강진(가수) . . . . 1회 일치
참고로, 이 [[노래]]는 [[나훈아]][* 고향역의 그 나훈아 맞다.]가 작사/작곡한 노래이며, 원곡도 나훈아의 곡이다. '''이 곡은 [[2007년]] [[9월 2일]]에 [[뮤직뱅크]] 시청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 [[트로트]] 곡이 뮤직뱅크에서 1위를 수상한 곡은 강진의 [[땡벌]]이 유일하다.'''
- 강호 . . . . 1회 일치
강(江)과 호수(湖)에서 출발, 점차 의미가 바뀌게 된다.
- 강화종실 . . . . 1회 일치
[[정조]] 시기에 권세가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였는데, 그녀를 원빈이라 하였다. 1980년 원빈이 사망하자, 홍국영은 은언군의 장남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서 장차 정조의 왕위를 이어받게 하려 했으나, 1786년(정조 10년) 담은 모반죄로 유폐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은언군은 강화도에 유배된다.
- 건담 시리즈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게임과 소설 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중에서도 기동전사 건담을 필두로 한 일명 우주세기는 건담 시리즈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건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뉴타입]] 등 건담 시리즈의 다양한 요소들이 우주세기에서 나왔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4화 . . . . 1회 일치
* 가구를 둘러보더 우마루는 전단지의 실내 풍경과 자기들 아파트의 다른 점은 가구의 차이라고 외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7화 . . . . 1회 일치
* 타이헤이 옆에 포장마차가 있어서 "에비나가 배가 고프다"고 생각해 버린다.--눈새 우마루--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2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봄바는 어차피 요리를 못해서 도움이 되지 않고, 그걸 보고 두 오빠를 비교하며 "봄바도 타이헤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한탄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3화 . . . . 1회 일치
* 원래도 우마루는 타이헤이에겐 무신경하지만 생일 조차 모르고 있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8화 . . . . 1회 일치
* 카나우가 요리를 잘못해서 "차갑고 얼음이 들어있는 라면"을 먹게된 이야기를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9화 . . . . 1회 일치
* 우마루는 차마 이런 욕망의 덩어리들을 보여줄 수가 없어서 전부 들고 장롱 속으로 숨는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2화 . . . . 1회 일치
* 마침 타이헤이는 차를 가지러 간다고 자리를 뜬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4화 . . . . 1회 일치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자 우마루는 어차피 배울 필요도 없는 기술이라고 위로한다. 키리에는 생각 끝에 자신의 고민을 고백한다. 우마루를 쭉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자신도 의미를 알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제자로 받아달라고 한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자신은 이상하게 오버하게 돼서 민폐를 끼치는 일이 있고, 지금도 스승님에게 민폐가 아닌지 걱정된다고 한다.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1회 일치
카놀리는 보니노 마피아들이 경영하던 스트립클럽으로 가 그곳에 있던 모두를 족치고 프랭키를 구한다. 이제 둘은 떠그타운에서 탈출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프랭키는 강 건너편 벨루치오 마피아 빌딩에 비행선이 있으니 그걸 타고 떠그타운에서 탈출하자는 의견을 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로 복무했다는 이야기는 덤. 하지만 비행선에 가려면 군대의 봉쇄를 뚫어야 했다. 카놀리는 프랭키와 함께 군대의 방어선을 돌파해 군대가 폭파시키려던 도개교에 도착한다.
- 경주시 . . . . 1회 일치
|align="center"|[[차인태]]
- 계력 . . . . 1회 일치
[[고공단보]](古公亶父)의 3남. 계력의 아들 창(昌)[* 후의 주문왕]이 태어나자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 고공단보가 창이 후에 주나라를 번창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장남 태백(太伯)과 차남 중용(仲雍)은 계력에게 뒤를 잇게 하고 남쪽으로 떠나 오(吳)의 왕이 되었다. 계력은 고공단보를 이어 정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 고독사 . . . . 1회 일치
고령화, [[핵가족]]화, 도시화로 인한 지역 커뮤니티 단절 등이 고독사가 증가하는 원인으로 여겨진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한신대지진]] 이후에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 붕괴와 경제불황에 따라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 고독의 요새 . . . . 1회 일치
여기에 설정이 덧붙여지면서 무한 지구 위기 이벤트에서 미치광이 컴퓨터가 지구를 제 2의 [[크립톤]]으로 만들기 위해 전초기지로 만든 것이 고독의 요새이고 슈퍼맨이 [[크립톤]]의 과학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 관리한다는 설정이 만들어졌다. 요새는 슈퍼맨의 아버지 조 엘이 아들을 걱정해서 백업으로 준비해 놓아다는 설정으로 보인다. 슈퍼맨 영화 시리즈도 이렇게 설정을 잡아놓았고 조 엘의 정신을 본딴 AI가 존재해 슈퍼맨에게 조언과 힘을 준다. 또 그 안에 외계무기나 맹수들을 보관하는 케이지도 존재한다. 물론 긴 세월 동안 이런저런 고독의 요새 뒷배경이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에피소드마다 고독의 요새 위치가 시시때때로 바뀌었는데 현재는 북극에 위치해 있다.
- 고세원 . . . . 1회 일치
* [[2014년]] [[MBC]] 일일 특별기획 《[[엄마의 정원]]》 ... 차성준 역
- 고스트 패트롤 . . . . 1회 일치
[[프랑스]] 외인부터 시절 상관으로부터 프랑스가 통제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기술자 헨리로부터 임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일단은 참여했는데 주민들을 죽이길 원치 않았던 셋은 안전한 곳에 투하했다. 문제는 헨리가 주민들을 지키려고 셋의 전투기에 시한폭탄을 장치했다는 것으로 결국 셋은 사망해버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3인은 [[유령]]이 되어 있었고, 이를 나치와 싸울 두번째 기회라 생각했다. 이후 고스트 패트롤이 된 삼인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대항했다.
- 고주원(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고준희 . . . . 1회 일치
||(주)오븐에 꾸운 닭||오꾸닭 치킨 (치킨 프랜차이즈)||
- 공산당 지도 원리 . . . . 1회 일치
아랍 사회주의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였는데, 시리아의 경우 시리아 바트당이 2012년 까지 헌법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2012년에 삭제되면서 다당제가 용인된다.--그러나 [[시리아 내전]]이 터져서 유명무실--
- 공의존 . . . . 1회 일치
>공의존이란,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타인의 인정으로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고, 그 때문에 호의를 얻으려고 자기 희생적인 헌신을 무리하게 행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 그 헌신은 결국 타인의 호의, 심지어 그 타인 자신을 컨트롤 하려는 동기와 결부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 행동이 자기 중심적이고 계략적인 것이 되어서 점차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된다. - 카토 아츠시
- 공중분해 . . . . 1회 일치
만일 운좋게 [[낙하산]]을 가지고 있어도 공중분해가 일어날 정도의 고도의 상공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일상복 차림으로는 피가 끓어오르거나 너무 낮은 기온에 얼어죽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살아나기 어렵고, 파편에 부딧치거나 하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릴 것이다.
- 곽성문 . . . . 1회 일치
* MBC 보도국 TV편집2부 차장, 라디오뉴스부 부장, TV편집2부 부장직대, 사회2부 부장직대, 국제팀 팀장, 편집팀 팀장,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뉴스데스크편집부 부장, 보도국 부국장, 스포츠국 국장
- 곽희성 . . . . 1회 일치
* [[2015년]] [[KBS2]] 월화드라마 《[[별난 며느리]]》 ... 차동석 역
- 광주 FC . . . . 1회 일치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상위스플릿, FA컵 결승 등, 상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상주 상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구명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4차 5라운드([[두산 베어스]])
- 구자욱 . . . . 1회 일치
U-21 야구 월드컵에 참가해서 4할이 넘는 타율과 6번의 도루를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도루왕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이 대회서는 2루수와 중견수로도 나왔는데([[상무 야구단]]에서는 1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로만 나오고 중견수를 본 적은 없었다), [[2014년]] 시즌에 투수, 포수, 유격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 국가원수 . . . . 1회 일치
북한의 경우는, 매우 복잡한데, [[김일성]]이 '영원한 주석'으로서 헌법상 영구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은 죽었으므로, 일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방위원장 지위의 김정일, 국무위원장 지위의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국부펀드 . . . . 1회 일치
펀드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대상국에서 반감을 초래하여 보호주의 성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지적도 있으며, 실제로 이 같은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 권민경 . . . . 1회 일치
미스코리아 대구 입상 후 모델 활동을 잠시 한 이후 그녀는 1990년 대구 출신의 변호사 조재원과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1남 2녀(1991년생 장녀, 1993년생 차녀, 1998년생 막내아들)를 두었고 자녀들 중 막내아들 조상우({{출생일과 만나이|1998|5|23}}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君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한림예고]] 출신인데 지난 2015년 TvN TV 프로그램 《[[고교10대천왕]]》에 10대천왕 패널 주인공 중 일원으로 출연한 전력이 있다.
- 권해효 . . . . 1회 일치
[목차]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 . . . . 1회 일치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차이나타운 워즈]]
- 그린 애로우 . . . . 1회 일치
배트맨과 유사점을 보이는 캐릭터. 초능력이 없고, 전투실력이 뛰어나며, 특이한 장비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정체인 인물은 이름 있는 부자. 심지어 이전의 그린 애로우는 배트맨의 박쥐 동굴을 의식한 듯한 기지와 배트모빌을 의식한 듯한 애로우카라는 자동차가 있었다.
- 금춘수 . . . . 1회 일치
* 한화차이나 사장
- 금형 . . . . 1회 일치
[[목차]]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 . . 1회 일치
'헤드 기어'에서 내놓은 [[거대로봇물]]. 레이버라는 작업용 로봇이 탄생하고, 이어서 증가하게된 레이버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에서 준비한 패트레이버, 그 패트레이버를 운용하는 특차 2과와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다.
- 기축통화 . . . . 1회 일치
1970년대 까지, 미국 달러화는 세계 경제의 2/3를 차지했다. 나머지 1/3은 영국 파운드화와 소련 루블이 양분(각각 1/6)하였다.
- 김가은(1989년 5월) . . . . 1회 일치
[목차]
- 김경태 (배우) . . . . 1회 일치
* 《[[퍼펙트 게임 (2011년 영화)|퍼펙트 게임]]》 (2011년) - 포장마차손님 1 역
- 김규철(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김기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목차]
- 김대진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2차 1순위 ([[삼미 슈퍼스타즈]])
- 김도연(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김동재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3년]] 1차 1순위([[삼성 라이온즈]])
- 김륵 . . . . 1회 일치
** 차남 : 김지선(金止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 김만제 . . . . 1회 일치
[목차]
- 김민기(가수) . . . . 1회 일치
[목차]
- 김범룡 . . . . 1회 일치
|5 집||[[1989년]]|| 《무지개빛 세상》, 《사랑의 열차를 타고》
- 김병윤 . . . . 1회 일치
1946년 동지교육재단을 설립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 때부터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교장]], 포항시의회 의원, 동지교육재단 [[이사장]],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포항[[시장(공무원)|시장]], 포항수산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 김병준(육상) . . . . 1회 일치
[목차]
- 김병찬(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목차]
- 김봉근(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김봉환(1921) . . . . 1회 일치
[목차]
- 김상훈 (1990년) . . . . 1회 일치
2016년 2차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지명을 받아 이적하였다.
- 김새해 . . . . 1회 일치
* 데스티니 차일드 - 스쿨드
- 김선길(국회의원) . . . . 1회 일치
이후 [[웨슬리안 대학교]], [[켄터키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하다가 1969년 귀국하여 과학기술처(현 [[미래창조과학부]]) 연구조정관으로 임명되어 공무원 경력을 시작하였다. 과학기술처,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근무하면서 상공부 [[차관]], 중소[[기업은행]]장, 대한증권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 김선영(1976) . . . . 1회 일치
[목차]
- 김성겸(탤런트) . . . . 1회 일치
[목차]
- 김성민 (1991년) . . . . 1회 일치
* [[1999년]] [[기아자동차]] 카렌스
- 김성윤 (1991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3라운드([[kt 위즈]])
- 김성조 . . . . 1회 일치
[목차]
- 김성주 (기업인) . . . . 1회 일치
1997. 2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차세대지도자(Global Leaders for Tomorrow) 100인으로 선정
- 김소혜(1992) . . . . 1회 일치
[목차]
- 김수자 . . . . 1회 일치
김수자는 1957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김수자의 화가로서의 근본은 그녀의 예술 발전에서 중요한 시작점이다.<ref>Arum Sok, Christina, Kimsooja: A Modern Day Global Nomad Transcending boundaries, re-constructing a global identity 2014, paper Abstract, in Kimsooja’s official website: http://www.kimsooja.com/texts/sok_2014.html</ref> 김수자의 "꿰매기" 시리즈는 세계의 뒤엉퀸 모습을 수평면과 수직면의 체계에 합성하여 십자형의 구조를 형성하는 천의 아상블라주를 만든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루초 폰타나]]가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캔버스를 날이 선 단도로 꽤뚫었던 것과 같이 김수자 또한 작품의 표면을 꿰매어 더 이상 환상의 화면이 이닌 3차원 구조의 예술을 창조하였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 김수학 (법조인) . . . . 1회 일치
*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5년 9월 18일에 [[대한민국 제1회 지방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를 "돈을 주고 공천을 받았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수 차례 유포한 김천시장 박팔용에 대해 "특별한 전과가 없어 벌금형을 선고한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ref>동아일보 1995년 9월 19일자</ref>
- 김숙자 (1389년) . . . . 1회 일치
[[1440년]](세종 22) [[선교랑]], 1441년(세종 23) [[1월]] 김해교수관 노호(盧浩)와 보직상환 변경되어 [[김해]]로 내려갔다. 이듬해 2월 남부령(南部令)이 되었다가 특별히 동반직을 받아 승의교위(承義校尉)에 제수되고,중군섭부사직 겸 성균관주부(中軍攝副司直兼成均注簿),남학교수관(南學校授官)이 되었다가 그해 11월 승훈랑(承訓郞)이 되어 고령현감(高靈縣監)으로 나갔다. [[1445년]] [[2월]] 승의랑이 되었다가, 지방의 수령들의 직급을 1계급씩 강하한다는 명에 따라 강임되었다. [[1447년]](세종 29) 10월 다시 승의랑으로 환급되고, 11월에 [[성균관]]주부 겸 남학교수관, [[1448년]] [[7월]] [[교서관]]교리가 되었다가 한달만에 전제경차관(田制敬差官)에 임명되어 [[전라도]] [[남원]], [[옥과]], [[장흥]], [[순천]], [[장흥]] 등을 순시하고 그해 [[10월]]에 봉훈랑으로 승진한 뒤, 12월에 도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ginyon"/> [[1450년]](문종 즉위) [[8월 13일]] 지풍기군사(知豊基郡事)로 발령, 부임하였다.
- 김승관 . . . . 1회 일치
[목차]
- 김승목 . . . . 1회 일치
[목차]
- 김쌍수 . . . . 1회 일치
[목차]
- 김연수(작가) . . . . 1회 일치
[목차]
- 김용준 (1904년) . . . . 1회 일치
[[1928년]] 귀국한 후로는 [[서울특별시|서울]]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길진섭]]과 함께 [[목일회]]를 창립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작품 활동 뿐 아니라 미술사 연구와 미술 평론계에서도 선구자 격의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본래는 서양화가로 출발하였으나 목일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된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화]]의 기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 그린 말년의 작품들은 조선화가 대다수이다.
- 김유미(1979) . . . . 1회 일치
[목차]
- 김인철 . . . . 1회 일치
[목차]
- 김일엽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고졸우선지명<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7260007 해외파들, 어떤 절차로 한국 팀에 입단했나?] - OSEN</ref> 을 받았으나 [[단국대학교]] (1998학번)에 진학했고 [[투수]] [[이승학]]과 함께 [[2001년]] 3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8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1년]] 외에는 제대로 뛰지 못했고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2003년]] 5월에 방출당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189169 김일엽 메이저 리그 꿈과 좌절] - 한국일보</ref>
- 김재엽 . . . . 1회 일치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4년 대구 [[남산초등학교]] 4학년때 유도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대구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국규모대회를 20여차례 석권하였다. 특히 계성고 3학년이던 1982년에는 100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983년 [[계명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였으며, 1982년 6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유도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김정재 . . . . 1회 일치
[목차]
- 김정행 . . . . 1회 일치
[목차]
- 김종호(1933) . . . . 1회 일치
해군1차장을 거쳐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그의 재임 기간인 1987년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되었다. 참고로 그의 뒤를 이은 17대 해군참모총장은 동명이인인 [[김종호(1936)|김종호]] 제독이다. 16-17대를 연임한 게 아니다!
- 김주환(탤런트) . . . . 1회 일치
단역 - 차력 혐오 남녀 2
- 김진선(군인) . . . . 1회 일치
[목차]
- 김찬돈 . . . . 1회 일치
*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10월 30일에 영덕 오십천 제방 공사 등과 관련하여 지역 건설업체 이사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1600만원의 뇌물을 받은데 이어 지역 건설업자 2명한테 예산확보를 위한 중앙부서 방문 경비 명목으로 모두 13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우연]] 영덕군수에 대하여 징역 2년6월 추징금 16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29917]</ref>
- 김창숙(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김청(1962년 6월) . . . . 1회 일치
[목차]
- 김태룡(정치인) . . . . 1회 일치
[목차]
- 김태연(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김태환(1943) . . . . 1회 일치
[목차]
- 김형태(정치인) . . . . 1회 일치
[목차]
- 김혜은(탤런트) . . . . 1회 일치
[목차]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모리 토모코는 [[기독교]] 계열 종교의 신자로서, 종교 권유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본래 모리 토모코와 오오우치 마리아가 만나게 된 계기는 모리 토모코가 종교 권유를 위하여 오오우치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오오우치 마리아는 문을 열어줬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들어주고, 살해되기 얼마 전에는 휴대폰 번호도 가르쳐줄 만큼 가까이 끌어들였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1회 일치
* 시험에서 A반을 마구 떨궈줄 작정인가 본데, 어차피 시험은 A반과 B반이 따로따로 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1회 일치
* 개전과 함께 시작된 1차 공격은 무사히 넘겼지만 2파가 다가오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1회 일치
* 이 폭파된 상태가 2차 시험장.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가차없는 감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1회 일치
* 가차없이 감점 당할 것 같았는데, HUC는 "우리는 경상자이므로 우선도가 낮다. 그걸 간파하고 스스로 이동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좋게 생각해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1회 일치
* 요아라시는 그의 눈에서 차가운 분노 밖에는 느끼지 못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1회 일치
방금 전 상점가를 털었던 빌런집단이 괴멸됐다. 그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 타이어, 도로 따위에 엉망으로 융합된 모습이 되어 있다. 어떤 삼인조의 소행인데 적어도 히어로로 보이진 않는다. 가운데의 리더로 보이는 인물은 "다큰 어른이 모여서 고작 편의점 털기"라며 빈정대며 이정도 모였으면 더 큰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1회 일치
놀랍게도 B반은 전원 합격. 모노마 조차 합격했다. 이 탓에 토도로키가 자책하느라 키리시마가 위로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1회 일치
* 웅영에서 전차로 약 한 시간. 이곳에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가 있다. 밀리오의 안내로 도착한 미도리야는 바짝 긴장해있다. 밀리오는 긴장하는건 좋지 않다며 나이트아이에 대해서 "아주 엄한 사람"이라 경고한다. 물론 히어로 덕후인 미도리야가 모를 리 없다. 그는 자타에 모두 엄하며 "스토익"한 일 처리로 유명하다. 미도리야에겐 매우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소름이 돋은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의 공격은 모두 차단되고 당황하는데 나이트아이는 "나는 원 포 올은 밀리오에게 계승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폭로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미도리야는 이미 그 이야기에 관심을 잃었다. 그는 올마이트가 죽는다는,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더 신경 쓰였다. 그 예지가 언제 일이고 절대로 바뀌지 않는 거냐고 묻자 올마이트는 태연한 태도로 당시 기준으로 6, 7년 후라면서 먼 미래일 수록 오차는 생기긴 하지만 예지로 본 장면 자체가 바뀌는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계산해 보니 예지가 실현되는 시기는 올해나 내년 정도. 미도리야는 현실을 부정하며 올마이트에게 살라고 애원한다. 미도리야는 웅영제 때 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1회 일치
* 빌런은 번화가를 피해 주점골목을 도주경로로 결정했지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거기도 유동인구는 여전히 있어서 목격자는 늘어만 난다. 그렇다고 키리시마를 떼어낼 정도로 발이 빠르지도 않았다. 곧 근소한 차이로 따라잡힌다. 키리시마는 "도망치지 말고 동료를 구하려고 해봐야 할거 아니냐"고 일갈하며 쫓아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1회 일치
* 통로는 계단으로 이어졌다. 계단이 끝나고 모퉁이를 돌자 그 앞에 예지에 없던 벽이 가로막는다. 록록이 설명해보라고 신경질을 부린다. 여기선 [[토오가타 밀리오]]의 개성 "통과"가 나설 차례다. 키리시마는 그가 또 알몸이 될 걸 우려했지만 그의 히어로 슈츠는 본인의 모발을 뽑아 만든 특수 소재라 "통과"의 개성이 그대로 적용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1회 일치
* 폭격을 맞은 것처럼 날아간 키리시마. 무적의 방패였던 언브레이커블이 깨졌다. 두 팔의 피부가 깨져서 피가 흘러나온다. 적의 공격력은 언브레이커블 조차 상회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는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 연합군. 그러나 [[이리나카]]가 판 함정에 빠져 [[아이자와 쇼타]]가 고립될 뻔한 걸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지키고 대신 희생한다. 함정에 빠진 이들 앞에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랏파"와 "텐가이". 랏파는 저돌적인 격투가로 개성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큰 덩치와 파워, 강력한 펀치연타가 특기다. 텐가이는 차분해 보이는 남자인데 굉장한 강력한 배리어를 치는 개성.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1회 일치
>뭐가 마음으로 커버냐. 그 마음조차 부족하잖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1회 일치
* 랏파는 뼈가 부러질 정도로 큰 타격을 입고도 다시 일어나서 "재대결을 하고 싶다"고 투쟁심을 불사른다. 랏파도 정신을 차리고 제지하려 하지만 무시 당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1회 일치
* 그때 [[토오가타 밀리오]]가 간호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병실로 들어선다. 밀리오는 자신도 중상인 것도 잊고 나이트아이에게 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나이트아이는 그저 "그릇"으로 받아들였을 뿐인데 밀리오가 자신을 믿고 존경해주면서 차츰 자신의 긍지로 변해갔다며 유언을 남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1회 일치
* 토무라는 차마 그러지 못하는데, [[빌런 연합]]이 그를 추스리고 바쿠고를 확보하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1회 일치
* 언제나 올마이트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결국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언제나 그의 등을 바라봐야 하는 나날. 그 절망이 그를 몰아세워 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1회 일치
* 올 포 원은 특례로서 재판절차를 생략하고 특수구치소로 이감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아직 해야할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랜토리노는 시라가키의 얘기라는걸 알아차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1회 일치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며 장차 "평화의 상징"이 될 인재라고 말한다.
- 나폴레옹 빠 . . . . 1회 일치
<<목차>>
- 나폴레옹: 토탈워/유닛의 종류 . . . . 1회 일치
값싸고 빨리 뽑히는 싸구려 보병. 성능도 싸구려다. 전열보병에게 있는 사기충격 저항도 없으므로 전투에 직접 투입하는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치안 유지 보너스가 있으니 후방이나 점령지에 쑤셔넣어 폭동이나 반란을 예방하자. 수성전을 치를 때에는 무장 시민(Armed Citizenry)이라는 유닛들이 무더기로 추가되는데 얘네들은 그냥 아무 총이나 들고 나온 군중들이니 총알받이로 써먹자. 어차피 수성전에만 나타나는 애들이다.
- 나폴레옹: 토탈워/프로이센 . . . . 1회 일치
프로이센은 다른 대프랑스 동맹 캠페인 국가와의 차이점이 하나 있다. 프랑스와는 전쟁 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충분히 힘을 기른 다음 나폴레옹 전쟁에 뛰어들 수 있다.
- 낚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 . . . 1회 일치
교제 전에는 상대에게 진지하게 접근해왔는데, 정작 교제를 시작한 뒤에는 차가운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왠지 남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있다.
- 난치병 모금사기 . . . . 1회 일치
* 애초에 난치병에 걸린 아이가 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다.
- 남기애 . . . . 1회 일치
|《차이메리카》
- 남능미 . . . . 1회 일치
[목차]
- 남명학파 . . . . 1회 일치
'''... 신이 일찍이 故 찬성 이황이 조식을 비방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오만하고 세상을 경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높고 뻗뻗한 선비는 중도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장(老莊)을 숭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운에 대해서는 청은(淸隱)이라 지목하여 한 조각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원통하고 분하여 한 번 변론하여 밝히려고 마음먹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 이황은 과거로 출신하여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은 채 서성대며 세상을 기롱하면서 스스로 중도라 여겼습니다. 조식과 성운은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산림(山林)에서 빛을 감추었고 도를 지켜 흔들리지 않아 부름을 받아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황이 대번에 괴이한 행실과 노장의 도라고 인식하였으니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더구나 조식과 성운은 비록 세상을 피해 은거하였다고 하지만 선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달려가서 한 번 임금을 존중하는 뜻을 폈고, 누차 상소를 올려 정성을 다해 치안과 시무를 발씀드렸는데, 이것이 과연 괴벽의 도리이며 이상한 행실입니까. 그때 나이 이미 70이었습니다. 어찌 벼슬을 그만두어야 할 나이인데 출임하려고 하겠습니까. 수레를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실을 닦고 삶을 마친 것이 과연 중도에 지나치고 괴이한 행실을 한 것이며 세상을 경멸하는 노장의 학문이란 말입니까 신은 의혹스럽습니다.'''
- 남윤정(탤런트) . . . . 1회 일치
* [[1991년]] [[KBS]] 미니시리즈 《[[밥상을 차리는 여자]]》
- 남창희(연예인) . . . . 1회 일치
[목차]
- 네드 켈리 . . . . 1회 일치
1887년 10월, 경찰은 켈리 갱을 체포하기 위해 무장한 경찰관 네명을 보냈다. 하지만 캘리 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경찰 팀이 야영지를 차린 스트링이바크 크리크(Stringybark Creek)를 습격했다. 이들은 경찰관들을 습격해 세명[* 로니건 순경(Constable Lonigan), 스캔론 순경(Constable Scanlon), 케네디 경사(Sergeant Kennedy).]을 살해하고 한명[* 매킨타이어 순경(Constabel McIntyre).]을 붙잡았다. 이후 켈리 갱은 호주의 [[은행강도|은행을 털었다]]. 1889년 2월에 네드 켈리에게 걸린 현상금은 8,000 파운드로 올라갔지만 켈리 갱은 잡히지 않았다. 켈리 갱이 최후를 맞은건 1880년 6월이 되어서였다.
- 노재우 . . . . 1회 일치
*** 차남 : 노성준 (盧星埈, 1964년 ~ )
- 니세코이/214화 . . . . 1회 일치
* 치토게는 새로운 일과 이전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차마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니세코이/215화 . . . . 1회 일치
* 결국 최대한 거리를 벌린답시고 회사에서 3시간 거리의 공원까지 가는데 거기서조차 마주친다.
- 니세코이/222화 . . . . 1회 일치
* 한편 오노데라는 치토게가 또 양보할 생각이라고 알아차리고 서둘러 치토게를 찾아 나선다.
- 니세코이/223화 . . . . 1회 일치
* 차라리 오노데라랑 이치죠가 빨리 맺어졌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 니세코이/225화 . . . . 1회 일치
* 차라리 치토게를 만나기 전에 말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이치죠가 어딘가 달라 보인다.
- 니세코이/227화 . . . . 1회 일치
* 비록 엉망으로 시작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좋아하게 되어 있었다는데
- 니쿠쟈가 . . . . 1회 일치
어차피 다 관광객 다툼이겠지만….
- 니트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처음에는 '무직'이라는 정도의 의미였으나, 점차 '일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 '일할 환경에 있으나,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되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 니트로글리세린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는 묘하게 자주 테러범이나 악당이 사용하는 폭약으로 나온다. 사실 니트로글리세린은 위험하지만 너무 민감해서 사용하기 불편한 화약일 뿐이고, 결국 폭발력 자체는 다이너마이트하고 별 차이도 없으니 생 니트로글리세린을 그대로 쓰는 것은 '''그냥 쓰기 불편한 화약'''(…)을 그대로 쓰는 것 뿐이지만 그 화끈함에 미디어에서 이상하게 이런데서 자주 주목받는 존재.
- 다운증후군 . . . . 1회 일치
[[염색체]]의 이상으로 생기는 선천성 질환. 1866년 존 랭던 다운(John Langdon Down)이 학계에 보고하였다. 다운은 이를 몽골증(mongolism)이라고 불렀지만, [[인종차별]]의 혐의가 있어 다운 증후군으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다운증(ダウン症)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 다키스트 아워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6주만에 GG치고 연합국 뛰쳐나간 막장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민주주의]]의 유일한 보루가 되어버린 [[영국]]은 소련과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 때까지 존버를 시전해 [[나치 독일]]의 몰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자신들의 유구한 혐성질 역사 위에 덧칠...읍읍.
- 단종 . . . . 1회 일치
즉위 초에는 주로 의정부의 보좌를 받아 정치를 행했는데, 단종실록 초기에는 의정부의 논의를 그대로 따르는 기록이 무척 많다. 하지만 즉위년 후반에는 점차 스스로 하는 정치가 많아지며 즉위 1년 쯤에는 이미 의정부의 의견에도 반론하고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대구광역시 . . . . 1회 일치
2017년 대구국제미래자동차엑스포
- 대구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차오루]] - 남구(대구)
- 대한민국 . . . . 1회 일치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국가. [[한반도]]의 남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더 선 . . . . 1회 일치
3면에 여성의 [[토플리스]] 사진을 싣는 전통(?)이 있다. 성차별적,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받는데 2015년에 이 전통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4일 만에 원상복귀.
- 도지한 . . . . 1회 일치
|2017||KBS1||[[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드라마)|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차태진||
- 독친 . . . . 1회 일치
아이가 여럿 있을 경우, 마음에 드는 아이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나눠서 차별하기도 한다.
- 돌비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액체를 데우면 온도가 끓는 점에 도달했을 때, 거품이 나오며서 점차 부글부글 격렬하게 끓어오르게 된다. 그러나, 액체가 끓는 점에 도달했음에도 드물게 거품이 일지 않고 끓지 않는 과열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과열된 액체는 진동이나 이물질을 혼입하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게 된다.
- 돌턴 갱 . . . . 1회 일치
Dalton Gang. [[서부개척시대|미국 서부시대]]에 활동했던 8인조 갱단. 갱단 멤버 중 밥 돌턴(Bob Dalton), 그랫 돌턴(Grat Dalton), 에밋 돌턴(Emmett Dalton) 세명이 형제였기에 돌턴 형제(Dalton Brothers)라고도 불렸다. 이 세명은 연방보안관으로 활동하였으나 1890년경 무법자가 되었다. 이들은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돌턴 갱을 이루었고, [[오클라호마]]주와 [[캔자스]]주에서 [[은행강도]]와 [[열차강도]]를 벌였다.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1회 일치
* 냉혈동물(Cold-Blooded) : 변온동물(endotherms)이라고도 한다. 내부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기능이 없고, 대신 주변 환경에서 열을 얻는다.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등이 있다. 냉혈동물은 의미를 곧바로 연결하면 '차가운 피를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체온에 변동이 있으므로 몇몇 동물은 인간 이상으로 체온이 치솟기도 한다.
- 둠 패트롤 . . . . 1회 일치
본명 클리프 스틸(Cliff Steele).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으며, 치프가 그의 [[뇌]]를 [[로봇]] 몸체에 이식하여 살려냈다. 자신의 몸 때문에 [[우울증]]이 있다. 로봇 신체에서 [[괴력]]을 발휘.
- 듄 2 . . . . 1회 일치
하베스터로 스파이스를 채집하여, 기지에서 각종 보병과 차량을 만들고, 적 기지를 격파하는 것이 목적이다.
- 드라이브 스루 . . . . 1회 일치
[[자동차]]를 타고, 직접 계산대에서 주문을 받아 상품을 구입하는 매장. 햄버거나 커피 등 패스트푸드 가게가 많다.
- 디펜더 2 . . . . 1회 일치
[[중국]]의 Droidhen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디펜스]] [[모바일 게임]].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디펜더의 후속작이다. 사실 기술 몇개, 몬스터 1종류가 추가된것 이외에는 디펜더1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심지어 배경과 음악, 몬스터 이미지까지 다 똑같다!!
- 딴따라 . . . . 1회 일치
오늘날에는 연예인의 지위가 향상되고 중요한 문화활동의 일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칭은 거의 사장되었고 일부 팬덤에서 적대시하는 연예인 등을 비하하기 위해서나 쓰고 있다. 잘 쓰이지 않게 되면서 비칭으로서의 의미도 점차 '탈색'되면서 몇몇 가수들이 스스로를 '딴따라'로 규정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스스로 딴따라라고 자칭하는 것은 일종의 겸양, [[언더독]] 의식을 드러내는 말이다.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1회 일치
지금의 프랑스에 있는 로데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두머리의'' 라몬 베렝게르 2세는 자신의 형제인 베렝게르 라몬 2세과 함께 바르셀로나 백국의 공동 통치자였는데, 형제와 불화를 겪다가 결국 동생에게 암살당한다.[* 이사건으로 인해 베렝게르 라몬 2세는 ''형제 살해자''칭호를 얻게 된다.] 이후 97년에 베렝게르 라몬 2세가 결투재판에 패해 1차 십자군에 강제로 떠밀려지게 된 이후, 그는 삼촌의 작위를 상속받게 된다.[* 베렝게르 라몬은 2년뒤(1097년에 바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거기서 횡사한다.]
- 랑그릿사 . . . . 1회 일치
어쨌든 시리즈는 2의 엄청난 성공으로 각종 기기로 컨버전되며 여러가지 요소들을 투입시켰는데, 이는 당시 [[드래곤 나이트]]와 같은 야겜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연애성 [[롤플레잉]] 요소가 가미되며 연인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빛의 용사로만 볼 수 있던 원본 엔딩 이외에 어둠엔딩이나 패왕 엔딩 등, 다양한 스토리가 존재하여 여러 차례 클리어 하는 것이 가능하다.
- 런너즈 하이 . . . . 1회 일치
장시간 달리면 [[엔돌핀]]이 분비되어, 괴로움이 점차 줄어들어 느껴지지 않게 되고, 달리고 있어도 괴롭지 않게 된다. 오히려 상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 런던 맥주 홍수 사건 . . . . 1회 일치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이 있는데, 이 런던 맥주 홍수를 소개하는 글 대부분이 당밀 사건과 혼동해서 당밀 사건 관련 사진을 맥주 홍수 사건 현장으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던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현장에 보인다.)
- 렉스 더 원더독 . . . . 1회 일치
푸치(Pooch)라는 형제가 있다. 푸치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히어로들인 거너(Gunner)와 사지(Sarge)의 마스코트였다.
- 렉스 루터 . . . . 1회 일치
외계인인 슈퍼맨을 유독 적대하고 배척하려는 모습 때문에 인종차별이나 제노포비아에 대한 담론에도 종종 인용되는 경우가 있다.
- 로버트 켈리 . . . . 1회 일치
* 공사 구분이 철저하여 차갑고 냉정하다고 느끼는 학생도 있으나, 영작문 조언을 얻으러 찾아가면 개인적인 조언도 해주는 면이 있었다고 한다.
- 로빈 . . . . 1회 일치
사이드킥으로 등장했으나 점차 젊은 히어로 느낌이 되었다.
- 록맨 시리즈 . . . . 1회 일치
[[록맨]]이라는 로봇이 주인공인 게임으로 캡콤의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한 프랜차이즈이며 서구권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더불어 캡콤의 주요 시리즈 중 하나.
- 루시우스 폭스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엣도 등장. 더 배트맨에서는 배트맨의 장비를 개발해냈다. 영화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도 등장하며 배우는 [[모건 프리먼]]. 브루스에게 특수 차량 등 다양한 장비를 제공하고, 배트맨 활동도 돕는다.
- 리얼리즘 FPS . . . . 1회 일치
* 1914-1918 1차대전 게임 시리즈
- 마~앙 . . . . 1회 일치
여기에서 「치~잉(웃음) / ち〜ん(笑)」이 나왔는데, 이는 본래 야구팀 한신 타이거즈를 뜻하는 멸칭이었다. 한신 타이거즈의 멸칭인 「한친(犯珍)」과 치-잉을 합쳐서 한신은 끝장났다는 의미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표현이 나온 것은 2008년으로 당시 시즌에서 한신이 10게임차 이상으로 선두를 달리다가 막판에 거인에 역전당했기 때문.
- 마기/294화 . . . . 1회 일치
* 두 사람은 견해 차이로 격한 설전을 벌인다.
- 마기/295화 . . . . 1회 일치
* 홍명은 "마도연구시설"을 공개한다. 황제국의 독자적인 마법연구시설로 그 규모와 수준이 "마그노슈타트"조차 능가한다. 원래 홍명의 지휘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전쟁 이후에도 비밀조직으로 바꿔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 마기/302화 . . . . 1회 일치
* 어떤 지도자도 차마 국민들이 두려우하는 일을 억지로 진행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 마기/306화 . . . . 1회 일치
* 그는 장차 신드바드도 다윗도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바로 그때가 "일 일라"의 부활의 때.
- 마기/309화 . . . . 1회 일치
* 아르바의 재생능력은 마법이란 개념 조차도 초월한 것처럼 묘사된다.
- 마기/311화 . . . . 1회 일치
* 어차피 죽이지도 못할 거 계속 누나의 몸에 상처를 입히기도 그러니 알라딘이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한다.
- 마기/314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는 모르지아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그녀가 이전에 받은 목걸이를 그대로 차고 있는걸 발견한다.
- 마기/325화 . . . . 1회 일치
* 우고와 아르바가 있는 성궁은 이변이 일어난다. 우고가 해파리처럼 만들어 수조에 봉해버린 다윗과 일 일라가 묘한 힘을 부리더니 루프로 환원됐던 어떤 이를 되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고 조차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데.
- 마기/332화 . . . . 1회 일치
성궁을 파괴한다는건 세상을 "위대한 힘"이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알라딘은 검은 루프를 되돌릴 방법만 연구했지만 이젠 아예 검은 루프든 흰 루프든 차이를 두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다. 알리바바는 그거야 말로 좋다고 맞장구치지만, 알라딘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걸 원하는건 이 세상에서 우리 뿐"이라고 말한다.
- 마기/333화 . . . . 1회 일치
쥬다르는 그가 너무 자신만만한거 아니냐고 투덜거리는데 [[연백룡]]은 알라딘은 구세계(알마트란)과 신세계의 마법을 전부 통달했으니 현재 실력은 그 솔로몬 왕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불만스러운 듯 하지만 한 마디도 반박을 못한다.
- 마기/342화 . . . . 1회 일치
알라딘이 했던 말, "아무 데도 못가고 아무 것도 변치 않는 것만큼 괴로운건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드바드는 누구보다도 그걸 견딜 수 없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사람들은 아무도 현실이 바뀌길 바라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심지어 그의 동료였던 인물들 조차도 그가 더이상 혁신가로 살길 바라지 않았다.
- 마루코메 . . . . 1회 일치
1854년에 창업한 전형적인 일본 노포이나, 정식 회사로의 발족은 2차대전 후인 1948년(...)에 했다. 또한 2000년대 이후로는 미소뿐 아니라 누룩[* 코우지, 밀을 이용하여 덩어리 형태로 만드는 한국식 누룩과 달리 낱알 형태이므로 입국(粒麴)이라고도 한다.]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1회 일치
1751년 12월 9일 [[파르마]]에서 출생,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왕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사실상 스페인의 국정을 통솔하였으나, 하급귀족 출신의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25살 청년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등 정치적 실책을 여러 차례 저질러, 결국 폭동이 일어나 카를로스 4세와 망명하는 신세가 됐다.
- 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영화 세계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도 등장하나 이쪽은 차이점이 있으며 이름도 [[인피니티 스톤]]이 되었다.
- 마의 2세아 . . . . 1회 일치
2세가 되면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여,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는 의미. '1차 반항기'라고도 불린다. 아직 언어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뭐든지 싫어(イヤ)라는 말로 대응한다고 하여, 싫어싫어기(イヤイヤ期)라는 표현도 있다.
- 마츠자카소 . . . . 1회 일치
* 2009년 3월에 마츠자카시 차원의 문제가 되었는데, 2004년 2월 24일 푸젠성의 한 식품회사가 송판(松阪)이라는 상표를 신청하여, 2008년 12월 20일 중국 상표국이 공고하였다. 마츠자카시에서는 2009년 3월 3일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를 통하여 이의를 제기하였으며 시장이 중국을 직접 방문할 계획도 발표했다.
- 마치킨 . . . . 1회 일치
마치킨은 일단 사업승인허가는 받고 있으나, 이조차도 받지 않은 회사는 야미킨(闇金)이라고 불린다. 마치킨 역시 이자율이 위험하거나 위험한 업체가 섞여 있기도 하지만, 야미킨은 완전히 법의 규제를 벗어나 있어 완벽한 불법사채이다.
- 만쥬 무섭다 . . . . 1회 일치
젊은이들이 화가 나서 "네가 정말로 무서워하는건 뭐냐?"라고 추궁하자, 남자는 "지금은 따듯한 차가 무섭군"이라고 대답한다.
- 맨불 . . . . 1회 일치
괴력을 지닌 빌런. 원래 잡범이었는데 미스터 클라인이 특별한 혈청을 얻고, 이 혈청을 실험해볼 사람을 납치차려는 목적에 몇명의 범죄자들과 같이 고용되었으나 [[데어데블]]이 이를 저지. 결국 클라인이 그에게 강제로 혈청을 주사하면서 지금의 황소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버린 것이 데어데블 책임이라며 몇번이고 그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1회 일치
풀네임은 타미클 로빙 3세. 일본 홋카이도 출신으로 정부군 대위이다. 아버지는 우수한 군인이었으며, 타마 또한 중학교 졸업 즉시 군대에 들어갔다. 20대에 대통령을 구했으며, 군대에서 사귄 친구인 마르코와 함께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메탈슬러그 이후 은퇴해 바이크샵을 차리려고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상부의 요청으로 연기되었다.
- 모던 워페어 시리즈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과거의 콜옵과는 달리 근미래[* 당시 기준에서] 전투를 배경으로 한 콜옵. 2010년대를 배경으로 러시아 극우파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한 영미권 특수부대들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 모리오리 족 . . . . 1회 일치
>마오리 족은 우리를 양 떼처럼 죽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겁에 질려 적을 피하기 위해 숲으로 도망치거나 땅을 파고 숨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우리는 곧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당했다. - 모리오리 족 생존자
- 몬스터버스 . . . . 1회 일치
2014년에 개봉한 [[괴수]][[영화]] 고질라를 포함한 배경 세계 공유 괴수 영화 프랜차이즈. 관련 회사는 [[레전더리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다.
- 무협/용어 . . . . 1회 일치
초창기 무협 번역에서는 '장풍'을 '손바람'으로 번역하는 등, 고유어 번역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이는 '정협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고유어 번역은 오히려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무협 번역에서 전문적인 작가의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화교]] 등 아마추어의 개입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 출판사가 영세화 되면서 번역의 품질이 나빠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어의 영향이 과도하게 들어간 일종의 '중국어 번역체'가 남발되게 되었고, 이를 무협 장르의 독자나 후발 작가들이 학습하면서 중국어 번역체의 영향을 받은 장르 고유의 문체가 형성되었다.
- 문지애 . . . . 1회 일치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 진행 첫 날인 2008년 1월 7일,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를 진행하는 동안 클로징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중징계를 받아 하루 만에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에서 하차했고,<ref>[http://www.dailian.co.kr/news/view/96911 문지애 아나, 뉴스 멘트 후 웃음 터뜨려], 데일리안, 2008년 1월 8일 작성.</ref> 2008년 1월 8일부터 [[하지은]] 前 아나운서가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를 진행하게 되었다.
- 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일단 기본적 줄거리의 토대, 등장인물의 이름 등의 공통점은 있으나 해당 소설과 미래소년 코난은 차이점이 있다. 극중 인물들의 역할과 비중이라던가. 주인공 코난은 나이대가 달라진데다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 발가락 힘이 애니메이션에서 생긴 것이다. 이는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폭 수정했기 때문인데 소설을 읽어본 미야자키는 이 애니메이션의 주시청자가 될 아이들에게 소설 내용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에 꺼렸다고 한다. 그래서 인물 설정과 줄거리의 대폭 수정을 조건으로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그래도 소설에 나왔던 것들이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온 것을 보면 아무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 미소지 . . . . 1회 일치
[[아라사]]와의 차이는 아라사는 25~34세를 뜻하며, 미소지는 딱 30살(혹은 30대)를 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25세가 되면 아라사에 진입하지만 아직 미소지는 아니다. 그리고 미소지가 되면 아라사가 된다.--라고 할까 정확하게 서틴--
- 미스터 마인드 . . . . 1회 일치
[[미스터 아톰]]을 부하로 쓰기도 했으며 사지 스틸을 조종해 백악관을 차지하려고도 했다.
- 민생위원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방면위원들이 국가통제에도 협력하면서 국민 억압에 앞잡이로 나선 어두운 역사도 가지고 있다.
- 민효린 . . . . 1회 일치
| 《[[자전차왕 엄복동]]》
- 바나나 공화국 . . . . 1회 일치
중남미의 소국 가운데 [[바나나]] 등 1차 산업 제품을 대국(주로 [[미국]])에 수출하여 경제가 성립되고 있는 국가를 뜻한다.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 . 1회 일치
15년 전 아버지는 여자와 나가고, 그 어머니도 재혼하여 집을 떠났다. 세 자매를 키워준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장녀 사치, 차녀 욧쨩, 삼녀 치카는 넓고 오래된 [[카마쿠라]]의 집에 남겨져 있다.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에 나간 그녀들은 다른 여동생 스즈와 만나게 된다.
- 바리어프리 . . . . 1회 일치
단차를 제거한 주택이나 도로, [[계단]] 대신에 설치하는 경사로, 공공장소나 도로에 [[점자 블록]]이나 음성 안내 설치, [[보청기]] 보급, 기능을 줄이고 쓰기 쉽게 만들어진 [[가전제품]] 같은 것이 바리어프리의 사례로 꼽힌다.
- 바키도/106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벽을 차고 피클에게 박치기를 해서 눕힌다.
- 바키도/107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가뿐히 떨쳐내고 "결과를 두려와 말라"고 하는데, 알버트는 그 절대적인 가치관 차이를 실감하고 항의할 의욕도 잃어 버린다.
- 바키도/108화 . . . . 1회 일치
* 오로치의 자택에서 차를 대접받는 바키
- 바키도/112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의 "신기하여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는 가이아.
- 바키도/113화 . . . . 1회 일치
* 분명 제목의 바키도는 바키의 이름에서 땄을 텐데, 정작 바키는 싸움은 커녕 등장조차 별로 없다.
- 바키도/114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티라노는 거기에 비교조차도 되지 않는 거대한 맹수.
- 바키도/117화 . . . . 1회 일치
* 좌중이 경악하고 무사시 조차 "좋은 고기"라며 황당해하는데.
- 바키도/119화 . . . . 1회 일치
* 어차피 과다출혈이 될 테니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래서는 꼴사납다고 말한다.
- 바키도/124화 . . . . 1회 일치
* 모토베는 그에게 차를 대접한다.
- 바키도/127화 . . . . 1회 일치
* 자기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선전하는 모토베 이조.
- 바키도/129화 . . . . 1회 일치
* 방심한 무사시에게 벼락같은 발차기가 꽂힌다.
- 바키도/133화 . . . . 1회 일치
* 본래 대전을 부정적으로 봤던 도쿠가와 조차도 "토를 달 수 없는 결과"라고 혀를 내두른다. 대결을 멈추려고 했던 한마 바키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지켜지고 말았다"고 인정한다.
- 바키도/136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아나운서는 화들짝 놀라며 "맞는 말이긴 하다"고 당황한다. 하지만 거기서 자중하지 않고 경망스런 말투로 "보통은 400년 전 검호라 하면 의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그 순간이다. 아나운서의 왼팔이 떨어진다. 무사시의 에어참격이다. 바키와 같은 격투가는 물론이고 문외한인 아나운서조차 "베여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는다.
- 바키도/138화 . . . . 1회 일치
* [[도쿠가와 미츠나리]]의 저택 앞을 경찰차가 애워싼다. 우츠미 경시총감이 직접 앞장서서 무사시를 체포하러 간 것이다. 총감은 생중계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도쿠가와는 자기는 현장에서 모든걸 봤다며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다고 잘라말한다.
- 바키도/140화 . . . . 1회 일치
* 눈의 상처를 지혈한 오오츠카는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살펴본다. 이미 무사시가 병력들을 쓰러뜨린 채 오오츠카 앞에 버티고 있다. 훗날 그는 다른 이에게 이 사건을 증언한다. 이때 무사시를 상대했던 경찰들은 한결 같이 "목이 날아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무사시는 칼 한 번 뽑지 않았다. 그렇게 되는 건 좀 더 뒤의 일.
- 박경석(1937) . . . . 1회 일치
1937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기자(직업)|기자]]로 근무하였다. 정치부 기자를 거쳐 경제부차장, 논설위원, 주일본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 박광정 . . . . 1회 일치
[목차]
- 박노식(1930) . . . . 1회 일치
== 목차 ==
- 박보생 . . . . 1회 일치
[목차]
- 박상규(가수) . . . . 1회 일치
[목차]
- 박상규(정치인) . . . . 1회 일치
[목차]
- 박상돈(정치인) . . . . 1회 일치
[목차]
- 박승호(정치인) . . . . 1회 일치
[목차]
- 박재현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6년]] 2차 4순위([[쌍방울 레이더스]])
- 박정수(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박정철(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박제균 (1887년) . . . . 1회 일치
이후 경북 지역에서 [[청송군]], [[영덕군]], 의성군 군수를 차례로 지냈고, [[1933년]]에는 [[영천군]] 군수가 되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영천군수로 재직 중이던 [[1934년]]을 기준으로 종6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 박지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2년에 입단하였다. 입단한 해에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나 7표를 받는데 그쳤다. 신인왕 수상은 [[넥센 히어로즈]]의 [[서건창]]이 차지하였다.
- 박진석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2012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삼성전자 칸(현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삼성 갤럭시]])의 3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박진수(1985) . . . . 1회 일치
CF 녹차베지밀
- 박진옥 . . . . 1회 일치
[목차]
- 박진주 . . . . 1회 일치
| 《[[자전차왕 엄복동]]》
- 박학기 . . . . 1회 일치
| 가족 = 형제자매 관계는 형 1명 <br/> 자녀는 슬하 2녀<br /><small>(장녀 [[마틸다 (음악 그룹)|박승연]], 차녀 박정연)</small>
- 박홍 (신부) . . . . 1회 일치
강기훈은 법원으로부터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와 정황에 따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으나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13일]]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ref name=gg>{{웹 인용|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제목=강기훈 유서대필의혹 사건 진실규명결정|출판사=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저자=정책홍보팀|날짜=2007-11-13|확인날짜=2012-04-29}}{{깨진 링크|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 }}</ref> 이에 따라 2012년 대법원의 재심이 개시되었으며, 2014년 2월 13일 재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혐의·무죄로 재판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137599</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41789</ref>
- 반지닦이 . . . . 1회 일치
참고로 이 망작 영화 때문에 그린랜턴 : 리버스, 시네스트로 군단의 역습 등, 코믹스 명작 시리즈의 흥행으로 인기가 치솟던 그린랜턴 프랜차일즈의 인기는 찬물을 뒤집어 썻으며, 영화 폭망의 악영향으로 잘 만들어서 평가도 좋던 그린랜턴 The Animated Series 마저 1시즌으로 취소 당하는 등 악재를 거듭 겪게 되었다..(…)
- 발달장애 . . . . 1회 일치
== 2차장애 ==
- 발암 . . . . 1회 일치
[[목차]]
- 배경 세계 공유 . . . . 1회 일치
장난감 회사인 하스브로와 관련이 있으며 준비 단계라 한다. <지 아이 조(G.I. Joe) 시리즈> 외에도 <M.A.S.K.>, <Micronauts>, <Rom>, <Visionaries: Knights of the Magical Light>가 등장한다는 정보가 있다. 또한 <트랜스포머(Transformers) 시리즈>가 리붓트되면서 이 프랜차이즈에 소속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이러한 것이 확정이라는 보장은 없다.
- 배기철(정치인) . . . . 1회 일치
[목차]
- 배상면 . . . . 1회 일치
* [[배영호]](차남): [[배상면주가]] 창업
- 백낙청 . . . . 1회 일치
*** 차남 :
- 백승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10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백이소 . . . . 1회 일치
[[1597년]](선조 30)에 왜적이 재차 침입해오자 적을 공격하던 중 탄환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부상당한 몸으로 고통을 무릅쓰고 다시 출전하자 경주 판관이 만류했으나 '신하된 도리로 죽을 뿐'이라 말하며 [[영천]] [[창암]]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장 [[최봉천]](崔奉天)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ref name="dg">《[[동경잡기]]》</ref>
- 백일섭 . . . . 1회 일치
* [[2002년]] [[MBC]] 아침드라마 《[[황금마차]]》 ... 순정 부 역
- 법요 . . . . 1회 일치
종파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일본 불교에서는 고인이 죽고 나서 49재까지 내세의 목적지가 정해진다고 믿는다.
- 베이지 . . . . 1회 일치
[목차]
- 벨트스크롤 게임 . . . . 1회 일치
레버 조작법은 대개 ←→으로 좌우로 이동. ↑는 화면 안쪽(위쪽)으로 이동, ↓는 화면 바깥쪽(아래쪽)으로 이동한다. 횡이동을 거쳐서 같은 선에 위치하지 않으면 플레이어와 적은 서로 공격을 할 수 없다. 라인 이동의 개념이 있다는 것이 횡스크롤 과의 차이점이다.
- 변질자 . . . . 1회 일치
성격이나 성질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 그 때문에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 특히 성적으로 이상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흔히 [[변태]]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는데 변태는 특별히 범죄를 저지르거나 폐를 끼치지 않아도 이상한 사람, 변질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에게 주로 사용한다. 즉, 변태가 범죄나 민폐를 저지르면 변질자로 클래스 체인지 한다.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1회 일치
[[런던 맥주 홍수 사건]]과 유사한 데가 있지만, 이 쪽은 원인이 뚜렷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국내에서 영국 맥주 홍수 사건을 소개하는 포스팅들 중 상당수가 이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의 자료 사진들을 영국 맥주 홍수 사건의 짤방으로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 보쿠걸/102화 . . . . 1회 일치
* 타케루는 "여자같은 얼굴로 항상 고민하고 갈등했으니, 차라리 여자애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면서
- 보쿠걸/104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당황하는데, 타케루는 당장 답을 할 필요는 없다며 답은 차분히 생각한 다음에 달라고 한다.
- 보쿠걸/106화 . . . . 1회 일치
* 타케루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차일 걸 두려워하고 있다.
- 보쿠걸/95화 . . . . 1회 일치
* 토르는 신이 인간계에 있으려면 변신을 하는 둥 절차가 복잡한데 그렇게까지 해서 인간계에 있는 걸 보면 "마음에 든 인간"이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한다
- 북유럽 신화 . . . . 1회 일치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 민족에 널리 퍼져 있었으나,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게르만 전통 종교가 [[악마]] 숭배 등으로 몰려서 박해를 받자 점차 사라지게 된다.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뒤에는 언어, 문화적으로 흔적만 남았다.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근대 [[민족주의]]가 발흥하자, [[독일]], [[스웨덴]] 등의 게르만 계열 민족 국가에서는 민족 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서 북유럽 신화를 다시 연구하게 되었다.
- 불단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매일 1회 불단을 청소하고, 종파에 따라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의식과 염불을 올린다.
- 불릿 타임 . . . . 1회 일치
슬로모션과의 차이점은 아는 사람이 추가 바람.
- 브라우닝 하이파워 . . . . 1회 일치
이후 [[제2차 세계 대전]]과 같은 여러 분쟁에서 사용되었다.
- 브라이아크 라오 . . . . 1회 일치
한편 코난과 라나가 샐비지선에서 '파치(パッチ)'라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사실 이 파치가 라오였다. 인더스트리아측의 꿍꿍이를 눈치채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이후 탈출하다 탑승한 비행정이 격추당했고, 그 탓에 생긴 부상에 의해 얼굴이 다른 얼굴이 된 것. 이후 정체를 위장한 체 살고 있다가 라나와 재회한 것이다. 처음에는 코난과 라나에게 차갑게 대한 것은 사정 탓에 어쩔 수 없었던 일. 이후 정체가 들통나면서 플라잉 머신을 타고 도주한다. 그러나 지각 변동 탓에 이대로 있으면 인더스트리아가 바닷속에 가라앉을 판이라 이를 알려주러 인더스트리아에 가서 최고위원회와 대화를 나누나 이때 레프카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잡히게 된다. 이후 오랜 전기고문을 당한 탓에 몸이 망가져버려 라나의 텔레파시가 없으면 보통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라다 덕분에 어느 정도는 세상을 봤지만. 최후에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결하고, 탈출선에 탑승해 최후를 맞이한다.
- 브레이니악 . . . . 1회 일치
역사가 오래된 캐릭터이다보니 시기에 따라, 매체에 따라 차이점이 있다. 초기에는 콜루 행성의 [[외계인]]이었다가 이후 설정이 변경되어 콜루 행성의 [[컴퓨터]]가 만든 기계인간이 되었다. 정신 능력을 지닌 [[천재]] [[과학자]] 브릴 독스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 이후 크라이시스라는 대형 이벤트를 거치면서 재설정되었는데 이 설정에서 브릴 독스는 콜루 행성 정복을 이루려다 행성을 다스리는 대형 컴퓨터에게 반역죄로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남으 새로운 몸을 얻어 브레이니악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 브와나 비스트 . . . . 1회 일치
후에 인종차별에 대한 평화적 시위 도중 총에 맞아 브와나 비스트에서 은퇴하고, 도미닉 믄다웨(Dominic Mndawe)에게 헬멧을 물려줬다. 이 도미닉이 바로 [[프리덤 비스트]]. 브와나 비스트란 이름이 백인 제국주의 같다며 프리덤 비스트로 바꿨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가 반사적으로 마법을 베어버린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작은 격돌의 여파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스타가 "왜 맨날 느닷없이 이런 짓을 하냐"고 발끈한다. 유노는 살아있으니 됐고 죽으면 그것 뿐인 녀석인게 아니냐고 얼버무린다. 둘에겐 일상같은 장난이지만 그걸 지켜 본 시민들은 인식이 바뀐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이고 그걸 또 간단하게 막아내는 걸 보고 더이상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사라졌다. 셋케 또한 자신이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른 둘을 보고 경악한다.
- 블랙 클로버/108화 . . . . 1회 일치
물빛의 환록의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쪽이 차라리 효과적이다. 그는 야미의 어그로를 문 단장들을 말리며 "야미는 대단한 사람"이라 추켜세운다. 자기는 꼴찌를 딱 한 번 한 걸로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맨날 꼴찌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야미는 매우 멘탈이 강한 거라며 멋진 돌려까기 솜씨를 과시한다. 맨날 잠만 자는 산호의 공작 [[도로시 앤즈워스]]도 야미에게 면박을 주려는 것 같지만 잠꼬래 같은 소리라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츳코미 당한다.
- 블랙 클로버/111화 . . . . 1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의 입욕 선언. 하지만 유트림 화산엔 온천 따윈 보이지 않았는데, 조금 기다렸더니 골짜기에 온수가 차올라 천연 온천욕장이 생긴다.
- 블랙 클로버/121화 . . . . 1회 일치
* 알렉드라가 자신한 그의 최강 마법은 그 위력을 선보이지도 못했다. 유노는 정령마법을 쓰지 않았다. 바람 마법. "폭풍의 탑"을 사용했다. 탑처럼 거대한 회오리의 마법. 그러나 그것은 알렉드라의 마법 내부에서부터 치솟았다. 거대한 기사가 허무하게 모래바람으로 흩어진다. 유노는 아무 수고도 없이 사용한 마법이지만, 그걸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경악했다. 알렉드라 조차도. 타인의 마법 내부에 자신의 마법을 발동하는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묘기였다. 모두가 목격해놓고도 저런게 정말 가능한 거냐고 하나같이 수군거렸다.
- 블랙 클로버/123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반마법의 검을 십자로 교차해 함정에 빠진 네르슈에게 처박는다.
- 블랙 클로버/132화 . . . . 1회 일치
* 유노는 신입 1위에 걸맞는 공격력으로 몰아붙이나 릴은 그런 공격 조차 재미있어 하며 여유롭게 방어한다. 공격이 릴의 그림으로 번번히 봉인되고 바람의 정령 벨이 짜증을 부리는데, 유노는 공세를 멈추고 "그걸"하자고 제안한다.
- 블랙 클로버/133화 . . . . 1회 일치
* 그러던 차에 불청객이 나타난다. 마나스킨 수업을 시켜주엇던 누님레온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이 다짜고짜 처들어왔다. 일단 문부터 다 때려부수면서 들어오더니 공습경보를 발동한 [[야미 스케히로]]에게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을 간병해준 보답"이라며 독한 술을 선물한다. 야미는 제대로된 물건일 리가 없다며 난색. 하지만 그녀의 진짜 용건은 로얄 나이츠 합격자들을 연행(?)하기 위해서. 직접 아스타, 노엘, 락을 붙잡아 데려간다. 매그너는 아무래도 떨어진 모양. 그런데 딱 한 명, 이 자리에 없지만 검은 폭우엔 합격자가 더 있다고 하는데.
- 블랙 클로버/50화 . . . . 1회 일치
* 이 마법은 야미 조차도 "위험하다"고 판단. 마력양 자체는 리히트가 터무니없이 높기 때문에 흡수에도 한계가 있는 듯 하다.
- 블랙 클로버/55화 . . . . 1회 일치
* 다른 단장들은 "쓸데없이 손을 댔다"며 자기들이 나설 차례가 사라져 아쉬워하는데, 릴은 "그대로 두면 이 건물이 날아갈 것 아니냐"고 대꾸한다.
- 블랙 클로버/57화 . . . . 1회 일치
* 매그너는 왠지 훈도시차림으로 수영한다고 설치는데 락이 전기로 불을 붙여서 소동이 난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1회 일치
* 야미는 활약할 차례라며 아스타더러 반마법의 검으로 베어버리라고 한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가 그 춤을 칭찬하는데 자신을 키아토라 밝히며 "장차 왕국을 매료시키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힌다.--참 뜬금없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1회 일치
* 사실 락은 매그너를 완전 얕보고 있었는데, 매그너가 장차 위협적으로 성장할 거라는 걸 간파하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던 것.
- 블랙 클로버/65화 . . . . 1회 일치
* 키아토가 측정한 바로는 베토의 마력 총량은 차원이 다르다. 흘러 넘치는 마력으로 온몸을 방어하고 있는데 그것 만으로도 보통 마법사들의 공격 마법을 막을 정도.
- 블랙 클로버/68화 . . . . 1회 일치
* 베토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 조차 초월할 정도의 힘으로 노엘을 공격하는데, 아스타가 부활해서 그 공격을 베어버린다.
- 블랙 클로버/71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지금까지 무시했던 아스타가 자신과 같은 짐승, 혹은 그 이상의 "절망 조차 삼키는 악마"로 보이기 시작한다.
- 블랙 클로버/76화 . . . . 1회 일치
* 라고스는 저항 조차 못하고 그대로 리타이어. 오른팔이 날아간다.
- 블랙 클로버/77화 . . . . 1회 일치
* 브로코스는 벤전스와 실력 차이도 있는데다 하필이면 세계수 마법 사용자. 적토 마법인 브로코스에겐 압도적인 상성이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1회 일치
* 여왕은 아스타가 바네사가 치료하고 싶어했던 아이임을 알아차리낟.
- 블랙 클로버/84화 . . . . 1회 일치
* 정신을 잃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꿈처럼 야미 스케히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자신이 "운명"에 묶인 몸이라고 말하지만 야미는 "그 녀석이 싫다"며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말하는데. 서서히 눈 뜨는 바네사의 시야에 그 야미의 등과 닮은 아스타의 등이 보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스타만이 아니라 노엘 실버, 핀랄, 게다가 젤 일행까지 있는걸 보고 당황한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1회 일치
* 마녀의 숲은 침략자를 상대로 여왕의 거대 골렘까지 꺼내며 항전하지만 증오의 파나는 가볍게 골렘을 날려버린다. 전력 차가 현격해서 마녀들 만으로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1회 일치
>누군가를 본보기 삼아 죽일 바엔 멍청이인게 차라리 나아!
- 블랙 클로버/96화 . . . . 1회 일치
* 라드로스는 최후의 마력을 쥐어짜내 탈출을 시도한다. 간발의 차이로 아스타의 검을 피해 몸을 빼냈는데 여전히 검이 어깨에 박힌 채라 움직임이 불편하다. 그는 남은 마력을 강화마법으로 돌려서 검을 어거지로 뽑아낸다. 남은 마력은 고작 마력탄 한두 발을 쏘는게 전부지만 그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파나를 향해 곧장 날아간다.
- 블랙기업 . . . . 1회 일치
용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는 [[야쿠자]]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세탁기업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일본에서 폭력단 대책법이 1992년 제정된 이후 경찰들이 야쿠자를 잡아들이기가 쉬워지자 야쿠자들이 명목상으로는 "나 야쿠자 아니요"라고 하기 위해 야쿠자들이 차린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기존의 야쿠자 조직은 '기업' 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결사'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다나카 요시키]]가 지은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에 등장하는 가상의 기업 '케이텐 흥업'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케이스. 이를 '프런트 기업'이라고도 부른다.
- 블리치/678화 . . . . 1회 일치
* 뱌쿠야와 토시로는 "신장차"를 가지고 옥신각신 실 없는 소릴 주고 받는다.
- 블리치/679화 . . . . 1회 일치
* 여전히 무슨 능력인지 알 수가 없다. 단순히 베어버리는 것 같은데...--그럼 해방 하나 안 하나 아무 차이도 없잖아--
- 블리치/687화 . . . . 1회 일치
* 우류는 "하지만 네가 본 미래는 변하지 않냐"고 비꼬는데, 하쉬발트는 유하바하의 올마이티는 자신과 차원이 다르며
- 블리치/688화 . . . . 1회 일치
* 이 상태의 이치고는 오리히메의 육화의 힘 조차 무시하고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 블리치/690화 . . . . 1회 일치
* "단지 미래를 보는 것만으로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함정을 설치해둔 것이."
- 블리치/691화 . . . . 1회 일치
* 전투신 조차 컷 당하고 누워있는 오리히메--눕만화--
- 블리치/692화 . . . . 1회 일치
* 모든 힘을 거둬들인 유하바하는 차원의 문을 열며 이치고에게 작별을 고한다.
- 블리치/695화 . . . . 1회 일치
* 아이젠과 힘을 합친건 잘한 일이지만 그 경화수월조차 자신에겐 미치지 못하며 렌지를 공격하는 여파에 팔이 날아간게 너라고 도발한다.
- 블리치/696화 . . . . 1회 일치
* 그는 자신이 죽은 미래 조차 개변하겠다고 발악한다.
- 블리치/697화 . . . . 1회 일치
* '''차회 최종화. 중대발표 예정'''
- 비니 고그니티 . . . . 1회 일치
블라드가 진정한 흑막이라는걸 알아낸 맥스가 블라드를 뒤쫓았을 때 재등장. 이미 블라드의 계략에 속아 폭탄이 설치된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을 쓰고 있었다. 걸을 때 마다 뾱뾱소리가 나는게 매력 포인트지만 벗으면 터진다고. 맥스에게 러시아 갱단의 습격으로부터 살아남게 해준다면 블라드를 잡는걸 도와주겠다고 애원해 맥스의 호위를 받으며 밴을 타고 도망친다. 맥스는 [[모나 색스]]가 폭탄을 해체할 수 있을거라며 모나가 숨어 사는 폐 놀이공원으로 차를 몬다.
- 빅맥 . . . . 1회 일치
빵+100% 순쇠고기 패티+양상추+빅맥 소스+치즈+피클+양파로 구성되어 있다. 빵은 위아래 뿐만 아니라 중간에도 끼어있고 패티, 양상추, 양파도 2개 층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히 큰 크기와 512kcal이라는 열량을 가지고 있다.
- 사회 . . . . 1회 일치
그런데 [[애덤 스미스]]가 어쨰서인지(…) 서로간에 특정한 이해관계나 안면조차도 없는 일반인들의 광범위한 상호작용까지도 소사이어티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의미로 확장되었는데, 이러한 의미의 소사이어티는 사실상 본래 뜻과는 거의 아무 상관도 없는 단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애덤 스미스는 왜 이상한 용도로 단어를 썻는지 모르겠다.
- 산바람 . . . . 1회 일치
[목차]
- 산킨고타이 . . . . 1회 일치
<<목차>>
- 생일파티 . . . . 1회 일치
서양에서는 [[케이크]]를 차리고, 나이 수만큼 [[촛불]]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면서 불어서 끄는 관습이 기본. 생일에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즐거움을 나누거나, 연인과 함께 알콩달콩 거리거나, 아니면 혼자서 쓸쓸하게 지내며 생일에도 만난 사람이 없는 자신의 대인관계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 서동민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6라운드]]([[SK 와이번스]])
- 서명선 . . . . 1회 일치
정조 때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내고 [[좌의정]]과 [[영의정]]을 또 한 차례 지냈다. 그리고 나중에 판중추부사와 영중추부사로 물러난다.
- 서상기 (1946년) . . . . 1회 일치
* [[1976년]] ~ [[1981년]] : 미국 [[포드 자동차 회사]] 선임연구원
- 서상돈 . . . . 1회 일치
[목차]
- 서영종 . . . . 1회 일치
'''서영종'''([[1952년]] 12월 17일 ~ )은 기아자동차의 前 사장으로 프로야구단 [[KIA 타이거즈]]의 구단주 및 사장으로도 활동하였다.
- 서용주 . . . . 1회 일치
[목차]
- 서울대공원 구미호 . . . . 1회 일치
* B형 O형 피를 가진 어린이만 잡아먹는다.--혈액형 차별--
- 서유정(배우) . . . . 1회 일치
문제는... 잘못된 행동으로 당시 주변 사람들한테 지적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자기 고집대로(그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진을 그대로 올려 어그로를 끄니, 아예 자기 과실을 자각하는 능력조차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서윤아(배우) . . . . 1회 일치
|2013||KBS2||[[굿 닥터 (2013년 드라마)|굿 닥터]]||차윤서 친구||
- 서정윤 . . . . 1회 일치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만남·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절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 등과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2012년, 대구[[영신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이었으나, [[2013년]] [[11월 12일]], 제자를 성추행하여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50대 유명시인 겸 교사, 학교서 여제자 성추행 '충격'(종합)| url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1112192806356|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3년]] [[11월 12일]]}}</ref>
- 서정환 . . . . 1회 일치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 성세현 . . . . 1회 일치
[목차]
- 성역 도시 . . . . 1회 일치
성역 도시는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들에게 차별 없이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방 이민국의 단속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선언한 지자체이다.
- 성인 . . . . 1회 일치
이 4개의 교단은 각각 성인으로 인정하는 대상이 달라서 제각각 별도의 성인 목록을 가지고 있다. 정교회의 경우, 각 지역 정교회 마다 또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대체로 모든 교단에서 성인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 성현아 . . . . 1회 일치
* [[2000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카이코우라로 가는 기차》 ... 수진 역
- 세미스텔스 . . . . 1회 일치
세미스텔스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밀덕들은, 결국 실전 상황에서는 다양한 무장을 하면서 RCS가 늘어나고 결국 스텔스기보다는 비스텔스기와 별 차이 없는 RCS 밖에 나오지 않게 되므로, 세미스텔스는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서 세미스텔스 옹호론자들은 그래도 큰 돈 들여서 여러 회사들이 만든 것이니까, 쓸모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런 주장은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도박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본격적인 스텔스만은 못해도 세미스텔스 역시 상당한 전술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 세이와 겐지 . . . . 1회 일치
요시이에의 아들 요시쿠니(義国)의 차남 미나모토노 요시야스(源義康)/아시카가 요시야스(足利 義康)는 아시카가 씨의 시조로서 요시이에의 손자이며, 그 후손이 무로마치 막부의 개창자인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이다.
- 세조 . . . . 1회 일치
[[세종]]의 차남. 보통 대군 시절의 명칭인 '수양대군'으로도 많이 불린다. 소싯적부터 야심이 많았던 듯 부왕인 세종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을 자주 보였다고 전한다. 형 [[문종]]이 즉위한 뒤에는 야심을 숨기고 서거할 때까지 문종을 써킹해 가며 비위 맞추기에 바빴다.
- 소금대응 . . . . 1회 일치
차가운 대응. 소금처럼 짠 느낌이라고 하여 이런 말이 생겨났다. 반댓말은 「신대응(神対応)」.
- 소년보도 . . . . 1회 일치
보도는 일단 행위를 중단 시킨 다음, 귀가 등의 조치를 시키고, 청소년 상담이나 다른 조치에 들어가는 절차를 밟는다.
- 소명(가수) . . . . 1회 일치
* 2005년 [[아이넷TV]] 성인가요 차트 50 상반기 6회 1위 수상
- 소학 . . . . 1회 일치
[[목차]]
- 송상진 . . . . 1회 일치
* [[1964년]] 7월 소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연행, 무혐의 석방.
- 숙녀 . . . . 1회 일치
[[한국어]]에서 '숙녀'라고 하면 '淑女'이지만, [[일본어]]에서 쥬쿠죠(じゅくじょ)라고 하면 '熟女'. 한자음이 둘 다 똑같이 '숙녀'이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지만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어서….
- 슈퍼걸(드라마) . . . . 1회 일치
별로 곤충 같지는 않은데 왠지 곤충으로 언급된다. 위장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형으로 변신하는 것 이외에는 크게 언급이 없다. 입이 마치 [[프레데터]] 마냥 벌어진다. 인간과 유전구조가 달라서, [[DDT]]를 식용으로 하는 특성이 있다. 지구에서는 DDT가 유일하게 먹을 만한 것인데 DDT가 금지되는 바람에 식료를 구하기 어렵게 된 나름 불쌍한 녀석(...) 후각이 뛰어나고, 손바닥에서 침 같은 것을 발사하는 능력이 있다. 벽을 기어다니고 점프를 하고 차 벽 정도는 가볍게 찢어낼 수 있지만 그리 강한 편은 아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2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캣 그랜트의 차를 들어올려 옥상에 올려놓은 다음 그녀와 인터뷰에 나선다.
- 스위스 방공호 . . . . 1회 일치
방공호를 2차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 . . 1회 일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프랜차이즈. [[워크래프트 시리즈]], [[디아블로 시리즈]]와 더불어 블리자드의 대표적인 게임 시리즈다.
- 스트리트 파이터 . . . . 1회 일치
플레이어가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선술한 1P인 류, 2P인 켄. 그나마 고정되어 있다. 두 캐릭터의 차이점이 없다보니 디자인만 살짝 다른 동일 캐릭터라 할 수 있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 . . 1회 일치
캡콤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많은 프랜차이즈가 뭐한 판에서 유지되고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 스파이 스매셔 . . . . 1회 일치
[[배트걸]]이었던 [[오라클]]과는 한때 대학 친구였으나 이상이 달라 갈라섰다. 이후 배트걸이 오라클이 되었을 때 자신을 위해 일하라 강요하며 [[버즈 오브 프레이]]를 빼았으려 했다. 하지만 대차게 패했다.
- 시계 . . . . 1회 일치
손목에 차는 시계.
- 시노자키 아이 . . . . 1회 일치
*차녀:[[고아성|시노자키 고아성]]
- 시장경제지위 . . . . 1회 일치
정부의 간섭으로 제품 가격을 조정하여 저렴한 가격에 수출할 경우, 수입국의 해당 산업은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가격 차별로부터 제품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반덤핑 규제를 받기 쉽다.
- 시치고산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에는 사무라이 집안에서 아들이나 딸의 3,5,7세 생일 때 약간의 행사를 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처럼 화려하게 축하하게 된 것은 [[다이쇼 시대]]에 [[간토 지방]]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간사이 지방]]에서도 시치고산을 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고도성장기 때부터 라고 한다.
- 시티락 . . . . 1회 일치
상체는 [[새]], 하체는 [[소]]를 닮은 [[괴물]]. 과거 [[새비지 랜드]](Savage Land)에서 폴 피플(Fall people)에게 숭배받기도 했다. 이후의 시기에 빙하가 녹아 깨어나고, 조사차 나타난 [[헐크]]와 대면했다.
- 식객 . . . . 1회 일치
맹상군, 신릉군 같은 전국사군자는 수백명의 식객을 육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식객들은 이 귀족들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점차 정부에서는 식객들을 위험시 하여 왕족이나 귀족이 식객을 두는 것을 정책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 식극의 소마/156화 . . . . 1회 일치
* 쿠스노키의 특기는 가열. 불의 미묘한 온도차를 조절해서 식재료를 최상의 상태로 조리한다
- 식극의 소마/157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오오이즈미 심사의원이 "다시 한 번 먹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재심사에 들어간다.
- 식극의 소마/158화 . . . . 1회 일치
[[식극의 소마]] 158화. '''그 차이'''
- 식극의 소마/162화 . . . . 1회 일치
* 잔당토벌 직후 아리스는 에리나에게 "나는 나라는걸 숙부에게 보여줘야 한다. 숨어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을 듣고 기운을 차린 것.
- 식극의 소마/171화 . . . . 1회 일치
* 이 상태라면 어차피 진급시험 결과도 뻔할 테니 자진해서 학교를 떠나는게 어떻냐고 극언을 한다.
- 식극의 소마/172화 . . . . 1회 일치
* 원래는 남쪽 끝에서 시작해 회차를 거치며 홋카이도를 종단하게 된다. 최종 도착지는 최북단인 "낙도"
- 식극의 소마/177화 . . . . 1회 일치
* 당황했던 감독관은 차츰 진정하며 "단지 면을 만드는 것 뿐이라면 의미가 없다. 만족할 만한 맛을 내야 한다"며 여유를 보인다.
- 식극의 소마/186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잠시 야간열차에서 소마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린다.
- 식극의 소마/192화 . . . . 1회 일치
* 예상을 뛰어넘는 탈락의 연속. 아라토 히사코를 시작으로 누구 하나 십걸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 가장 강한 멤버라 할 수 있었던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조차 패배하고 퇴학처분을 받는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1회 일치
* 관객들은 두 팀의 행보를 보고 "승부고 뭐고 두 팀 모두 완성 조차 못 시킨다"고 수군거린다. 하지만 타쿠미는 그 말을 들으며 스타지엘 시절을 떠올린다. 그가 일하러 갔던 요정 "후지사메"는 전통있는 요리정이었지만 딱히 스타지엘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센자에몬이 사정해온 탓에 12대 점장 "후지이 토모나리"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허락이야 했지만 못마땅한건 마찬가지고, 이력서로 본 타쿠미의 인상도 좋지 않아서 적당히 청소나 시키다 돌려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식극의 소마/203화 . . . . 1회 일치
* 이번엔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팀 사이바의 아쉬 파르망티에를 시식한다. 에리나가 구웠던 스테이크는 주사위 썰기 해서 건더기로 들어가 있고 [[사이바 죠이치로]]가 구웠던 크레이프는 이 스테이크와 소마의 치리멘차코, 그리고 머쉬 포테이토를 감싸고 있다.
- 식극의 소마/204화 . . . . 1회 일치
* 최종시험인 6차 시험이 결행되는건 한 달 뒤. 레분 섬 남단에 특설회장을 설치하고 연대식극을 거행한다. 현재 진급시험을 받고 있는 학생들도 최종적으로는 여기에서 식극을 관전하게 된다.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결국 반역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거리로 삼겠다는 악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회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이 십걸 자리를 전부 가져가는 심플한 결론. 그리고 대전에 참가할 인원은 딱히 규정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자미 측에서 먼저 [[사이바 죠이치로]]의 1대50 연대식극을 예로 들며 제안한다. 정말로 쿄쿠세이측에 가세하려는 인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도 좋다는 호기.
- 식극의 소마/206화 . . . . 1회 일치
* 특설회장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관객들이 가득차 있는데 모두 진급시험을 통과한 일반 학생들이다. 히사코는 이들 전부가 센트럴의 승리를 바라는 자들이라 말한다. 그때 슬슬 무대가 막이 오른다. 사회를 맡은 토오츠키 학원의 아이돌 [[카와시마 우라라]]가 무대에 올라오는데... 심하게 맛이 가있다. 센트럴 측의 세뇌를 당한 것 같은데 뭘 어떻게 당했는지 아이돌 컨셉은 때려치우고 심하게 펑크해져 있다. 그리고 대놓고 "아자미 정권의 승리를 바란다"는 멘트를 하는 둥 매우 편파적이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문자 그대로 면을 굽듯이 볶는다.[[요시노 유키]]와 [[이부사키 슌]]은 그야말로 경악. 일식에 조예가 없는 [[나키리 아리스]]는 원래 야키소바는 철판에 볶는 요리니 잘못된게 아니지 않냐고 의문을 표한다. [[나키리 에리나]]가 설명하길, 원래 야키소바는 소바의 이름만 딴 완전히 다른 요리. 사용하는 면은 평범한 중화면이나 밀가루면이다. [[사카키 료코]]는 야마구치현의 명물 "카와라소바"를 예로 들며 삶아서 굽는 소바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차소바"라고 해서 가루부터 특이한 별개의 요리다. [[타쿠미 알디니]]는 만약 전통있는 에도소바 가게에 일하러 가서 저런 짓을 하면 즉시 쫓겨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소마의 조리는 상식에서 벗어났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1회 일치
* 연대식극의 진행되면서 바깥의 날씨도 더 춥고 가혹하게 변했다. 실내에 있던 반역자들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차가워졌다.
- 식극의 소마/234화 . . . . 1회 일치
지난 회에 가지러 간다던 식재료는 아티초크. 타쿠미가 단맛이 강한 피자를 만들 걸로 예상하고 미각을 조작하는 식재료를 고르러 간 것이다. 아티초크의 시나린 성분이 미각을 조작해 단맛을 더욱 달게 느끼게 하므로, 자신이 요리를 먼저 먹인다면 타쿠미의 피자맛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반역자들은 당연히 비겁하고 자존심도 없다고 극딜하는데 어차피 이기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놈이라 노데미지. 어쩐지 심사의원 안도 그래도 상관없다고 허락해줘서 완전히 기세등등하다. 자신잇게 화이트 소스가 들어간 로스트비프를 내놓고 승리를 자신한다.
- 식극의 소마/239화 . . . . 1회 일치
* 타도코로의 회심의 일격. 부정적이었던 샤름 조차도 사과 도라야끼 자체는 뛰어난 과자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모모의 타르트에 비하면 약간 못 미친다고 선을 긋는다. 그런데 안은 그런 평가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타도코로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리고 아직도 요리에 뭔가 비밀이 있는게 아닌가 짐작하는데, 그 예상이 맞아떨어진다.
- 신경림(대학교수) . . . . 1회 일치
[목차]
- 신동일 (언어학자) . . . . 1회 일치
[[1990년]]에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영어과에서 응용언어학 분야 중 하나인 구술능숙도(spoken proficiency) 평가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99년]] 10월에 <진단목적으로의 영어 듣기 평가도구 타당도 검증: 수행능력 모형화 작업과 다차원구조 이슈 중심으로(Construct validation of a diagnostic L2 listening test: An operational model utilized and multidimensionality issues revisited)>라는 논문<ref>[http://www.slate.illinois.edu/people/graduates/#3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제 2언어습득 및 교육학과 동문]</ref>으로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 신영식(만화가) . . . . 1회 일치
[목차]
- 신웅 . . . . 1회 일치
| 제목 = ‘시계바늘’로 차세대 트로트 황제 예약한 신유
- 신은정 . . . . 1회 일치
* [[2014년]] [[tvN]] 금토드라마 《[[미생 (드라마)|미생]]》 ... 선지영 차장 역
- 신종령 . . . . 1회 일치
[[2017년]] [[9월]], 두 차례에 걸친 취중 상태에서의 묻지마 폭행을 벌이고 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물의를 빚었으며,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457793</ref>
- 신쥬 . . . . 1회 일치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자는 뜻으로 함께 죽는다는 것인데, 개념을 잘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대부분 불륜이라던가 근친상간, 신분차(가난한 무사와 기녀라던가...) 등으로 인한 자살이 많았고, 개중엔 짝사랑하던 상대를 죽인 다음 자기도 죽는 식의 막장스런 행패도 종종 일어났다.
- 신지훈(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심양홍 . . . . 1회 일치
[목차]
- 심학봉 . . . . 1회 일치
[목차]
- 아귀 . . . . 1회 일치
[[인도 신화]], [[불교]]에서 유래한 요괴. 본래 조상의 영을 뜻하였으나, 점차 굶주린 귀신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 아기발도 . . . . 1회 일치
[[고려]] 말 [[한반도]]를 침공한 [[왜구]]들 중 한 무리의 장수였던 인물이다. 음차로는 '아지발도'라고 한다.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1회 일치
* 아기발도는 본명은 불명하며 한 왜구의 장수에 대해서 고려인들이 붙인 별명으로, 아기는 '아이'라는 뜻으로 적이 [[소년]]이라는 것을 뜻하며, 발도는 몽골어 '바토르'를 음차한 것인데 '용사'라는 의미가 있다.[* 고려 말에는 몽골의 영향으로 몽골어가 사회에서 흔히 쓰였다. 바토르라는 말은 몽골사에서 자주 등장하며, 현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볼 수 있다.] 즉, '아기발도'는 그 의미가 '아기장수'와 매우 유사하게 된다.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1회 일치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성격이 약간 다르다. 원작에서 아멜리아의 성격 묘사는, 사실 왕녀로서 이지적이고, 무녀로서 신비함이 있으며, 거기에 약간 4차원 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원작의 아멜리아 묘사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정의를 외치면서 추락하거나 하는 것은 사실 부분적인 묘사. 그러니까 본래 아멜리아는 "전체적으로 멀쩡한 인간인데 가끔 이상한 짓을 한다(…)."고 볼 수 있다.
- 아사쿠마 . . . . 1회 일치
[[아이치 현]] [[나고야]] 시에 본사를 둔 기업. "스테키노 아사쿠마(ステーキのあさくま)"라는 스테이크 하우스 프렌차일즈를 전개하고 있다.
- 아스팔트 우파 . . . . 1회 일치
이 단어는 제도정치권의 보수 정당들과, 재야 정치단체의 차별화를 노리고 나타났다. 소위 '아스팔트 우파'들은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과 타협하고 투쟁정신이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이들을 '웰빙 보수'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을 아스팔트 우파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제도권 정당에 소속된 특정 정치인의 하부조직이나 다름없었다.
- 아이유 . . . . 1회 일치
| style="text-align:center;"| <ref>{{웹 인용|last=Kim|first=Ye-eun|url=https://entertain.naver.com/now/read?oid=311&aid=0001094885|title=[단독] 아이유, 이병헌 감독 차기작 '드림' 출연…박서준과 만난다|publisher=Naver|website=Xports News|accessdate=January 3, 2020}}</ref>
- 아테지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자의 음차 표기와 비슷하지만 일본어의 아테지는 좀 더 복잡하다. 일본어는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 있어, 음독은 한자의 '음' 자체를 읽고, 훈독은 한자를 고유어 뜻 표기로 읽는 것을 말한다. 음독으로는 오음(呉音), 한음(漢音), 당음(唐音)이 있어 이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테지에서는 음독과 훈독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테지가 아니면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아토노마츠리 . . . . 1회 일치
* 때를 놓쳐서 보람이 없는 것. 소 잃고 외양간, 행차 후의 나팔 등.
- 악평등 . . . . 1회 일치
사전에도 있는 용어지만 이명과 마찬가지로 그리 자주 쓰이진 않는다. 불평등과의 차이점은 불평등은 조건을 달리 적용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에 악평등은 모두에게 같은 조건을 제시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적용받는 모두에게 부당한 결과를 이끌어 낼 때 쓰인다.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1회 일치
[목차]
- 안종범 . . . . 1회 일치
2018년 3월 29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6부는 안종범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안종범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 재직 당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를 위해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에게 ‘대통령 조사’ 안건 부결 기획안 마련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ref>{{보고서 인용|저자=공보담당관 차장검사 문찬석|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download.jsp?attach_no=193667|제목=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 사건 수사결과|출판사=서울동부지방검찰청|날짜=2018년 3월 29일}}</ref>
- 안효민 . . . . 1회 일치
* 2017.09.18~2017.09.20 EBS 다큐프라임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대혁명> ([[EBS]])
- 알프레드 우든 . . . . 1회 일치
맥스가 BB를 죽인 직후 근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네 적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지금 당장 아스가르드 빌딩으로 와라"라고 전한다. 아스가르드 빌딩으로 온 맥스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과 함께 있는 우든을 목격한다. 그는 진범은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회장인 니콜 혼이라는걸 알려주며 혼을 제거하면 모든 책임을 져주겠다는 말을 한다. 그 직후 혼의 부하들이 맥스와 이너 서클 회원들이 있는 방을 습격한다. 맥스는 그때 그가 죽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죽은척을 했을 뿐이었다. 맥스가 CCTV로 본 그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이 죽은걸 보고 좋아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이 죽어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기를 바랬던 것. 이를 본 맥스는 우든을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판단, 혼이 우든에게 협박용으로 보냈던 캔디 던과의 섹스 테이프를 보험삼아 슬쩍했다.
- 암 . . . . 1회 일치
암은 사실상 다세포 동물과 함께 시작된 질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히드라와 같은 원시적인 다세포 동물조차도 암과 유사한 질병을 앓는 경우가 있다.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1회 일치
* 그거 조차도 마시자 마자 흐물흐물 녹는 수준인데, 그 상태에서도 잘만 공격을 피해서 암살자들의 열을 돋군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1회 일치
* 그 놀라운 스피드는 폭탄을 품고 있던 아즈사씨 조차 구할 수 있는 정도다.
- 애니프사 . . . . 1회 일치
* [[성차별]] 적인 일본 애니 문화에 미쳐있으며, 이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한다.
-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 . . . . 1회 일치
* [[야기훈]] : [[야규 슈메]] 의 차남이다
- 얀데레 . . . . 1회 일치
다른 데레계 용어와 함께 발생하여, 다른 데레계가 츤데레 유행의 종료와 함께 사멸하는 가운데도 생명력을 유지했다. 어떻게 보면 츤데레보다 생명력이 질기다고 할 수 있는데, 차별화와 특이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 양일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3년]] 1차 3순위([[삼성 라이온즈]])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1회 일치
헤이덤이 대처의 노예 수송차를 습격했을 때 처음 만난 여인. 헤이덤과 함께 행동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로인해 라둔하게둔을 낳는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1회 일치
* 차(Tea)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회 일치
데보라 "도비" 카터가 뉴욕 북부에 일어난 사건의 책임자를 알아냈다. 애국자들도, 영국군도 아닌 누군가가 모든것을 사들인 후 아찔할 정도로 비싼 값에 되팔고 있는 것. 책임자는 주 수원지 근처에 요새화된 캠프를 차리고 있었다. 코너가 그 곳에 어떻게 진입할지 묻자, 도비는 지역 사람 몇몇을 데려왔다고 한다.
- 엘디아 인 . . . . 1회 일치
마레 제국에서 엘디아 인이 박해받는 모습은 [[게토]]에 강제로 가두거나, 함부로 살해하는 등,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 독일]]에서 [[유태인]]을 박해하는 것과 유사하다.
- 엥겔 지수 . . . . 1회 일치
[[독일]]의 [[통계학|통계학자]] C.L.E.Engel〔1821-1896〕이 당시 [[노동자]]의 소득 수준과 가계 지출을 조사하여 발견한 수치. 가계의 총 소비 지출 가운데서 식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백분율]]로 나타낸다.
- 역적 . . . . 1회 일치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이러한 역적들에 대한 대우는 특히나 가혹했다. 역적으로 지목되는 것 자체만으로 해당 인물과 일족은 혹독한 고문이나 인간 이하의 차별 대우를 받았고, 확정될 경우에는 해당되는 이의 혈통을 끊어버리는 건 기본이고 심할 경우 그 지인이나 살던 지역의 주민들까지 모조리 씨를 말리기도 했다.
- 연규진 . . . . 1회 일치
[목차]
- 연정훈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동차 경주 선수]][[분류:광명시 출신]][[분류:곡산 연씨]][[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그리메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동문]]
- 염재욱 . . . . 1회 일치
* [[2002년]] [[MBC]] 아침드라마 《[[황금마차]]》
- 영국 . . . . 1회 일치
"영국"이라는 명칭은 잉글랜드의 한자 음차인 영길리(英吉利)에서 따왔다.
- 오경태 . . . . 1회 일치
* [[2015년]] [[3월 30일]]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
- 오국영 . . . . 1회 일치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경상북도자동차협회 이사를 지내고 [[남선전기주식회사]] 감사역으로 재직했다. [[1954년]]까지 남선전기 감사로 현직에 있었다.
- 오기노 쿄우사쿠 . . . . 1회 일치
1882년 3월 25일, [[아이치현]] 출생. 본래 성씨는 나카무라(中村). 아버지는 나카무라 히코사쿠(中村彦作)이며 차남으로 태어났다.
- 오봉 . . . . 1회 일치
「쇼로다나(精霊棚-제사단)」: 제단을 차려서 오이에 나무젓가락 같은 것으로 발을 달아서 말처럼 만들고, 가지는 소처럼 만들어 공양을 한다. 영혼은 말에, 짐은 소에 실어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 오석산 . . . . 1회 일치
불로장수, 건강증진에 효험이 있는 약이라고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복용하면 발얼을 하여, 열을 발신시키기 위해서 돌아다니며 '행산'을 할 필요가 있었다. 차가운 물을 먹어서 열을 식히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를 한식산(寒食散)이라고 했다.
- 오수미 . . . . 1회 일치
[목차]
- 오승근 (1908년)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 동안 대구지방법원, 대구복심법원, 경성지방법원에서 차례로 판사를 지냈다. 대구복심법원 판사로 재임 중이던 [[1943년]]을 기준으로 정7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 오승훈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09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고,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을 시작으로 [[체코]]와의 5,6위전까지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였다.
- 오싱 . . . . 1회 일치
작중에서 오싱의 인생이 참으로 파란만장한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일꾼으로 쌀도매상에 팔려가거나, 어른이 되어 상경한 다음 미용사가 되었다가 옷장사를 하는 남편과 만나고 상업재능을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쑥밭이 되서 망하거나, 그 때문에 시골로 내려나 시집살이를 하는데 학대 당한 탓에 자기 아이는 사산되고 시누이가 낳은 아이의 젖을 물리게 되거나, 2차대전으로 남편과 장남을 잃고 생선 장사를 시작하여 자기 가게를 일으켜 세우지만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면서 반발하거나 등등.
- 오영실 . . . . 1회 일치
[목차]
- 오오반후루마이 . . . . 1회 일치
원래는 밥과 전복, 매실장아찌, 해파리, 식초와 소금을 차린 밥상인 '오반'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국시대 시기까지는 정월에 아랫사람이 이 '오반'을 윗사람에게 헌상하는 것이 의례였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부하들을 대접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오유나 . . . . 1회 일치
* [[2017년]] 《[[마차 타고 고래고래]]》 ... 의사 역
- 오정태 (희극배우) . . . . 1회 일치
* [[2012년]] [[KBS]] 드라마스페셜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 - 자동차운전사 역
- 오정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8년]] 2차 4라운드([[KIA 타이거즈]])
- 오준 . . . . 1회 일치
* 2005년 7월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차석대사
- 오철환 . . . . 1회 일치
* 차남 ([[1992년]]생)
- 오충훈 . . . . 1회 일치
2006년 하반기 드래프트에서 SK텔레콤 T1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오토메 . . . . 1회 일치
오토메의 '오토'는 남자를 뜻하는 오토코(おとこ)와 같아서, 젊고 활기차다는 뜻의 동사였다. 메(め)는 여자라는 뜻이다.
- 오하라이 . . . . 1회 일치
* 교통안전(交通安全)이라고 해서 자동차가 안전하게 다니도록 하는 축원의식도 있다.
- 옴 진리교 . . . . 1회 일치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츠모토 치즈오)를 [[교조]]로 하는 [[컬트 종교]] 집단. [[불교]]와 [[요가]]에 바탕을 둔 신흥 종교 단체로서 1984년에 활동을 시작하였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수의 신도를 모았으며, 점차 급진, 과격한 교리에 몰두하게 되어 다양한 범죄 활동을 일으켰다. 1995년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로 일으킨 [[지하철 사린 사건]]을 계기로 하여 교주 아사하라가 체포되었으며, 2000년에 [[파산]] 선고를 받았다.
- 와일드 독 . . . . 1회 일치
상당히 안쓰러운 인생 끝에 자경단원으로 거듭난 인물. 원래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운동선수였으나 부상을 입으면서 팀을 나온데다 학교도 떠났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동료 대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제대, 이후 주립대학에서 야간수업을 받다 클레어 스미스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었으나 사실 그녀는 최근 살해된 시카고 갱단 두목의 딸인 클레어 카몬티였으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와일드독이 되어 범죄와 싸우기 시작했다.
- 와일드캣 . . . . 1회 일치
드라마 [[스몰빌]]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관련 에피소드에서도 짧게 등장. 이후 드라마 [[애로우]]에도 등장하는데 거의 카메오 수준인 [[스몰빌(드라마)|스몰빌]]과 달리 확실하게 등장한다. 다만 코스튬은 코믹스와 차이가 많다. 큐트한 고양이 가면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가리는 일반적인 검은 마스크를 쓰게 됐다. 주인공 올리버가 '애로우'로 활동하기 전부터 도시의 빈민가에서 활약하며 악당과 싸우던 가면의 영웅이었으나, 애로우가 등장하기 전에 은퇴한 몸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사이드킥'이었던 자가 악당이 되면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는 줄거리로 등장한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1회 일치
사회주의자들이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를 '불완전한 공산주의'라고 까면서 제시하는 사회. 일부 사람들은 '완전한 공산주의'라고도 한다. 현실 공산주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문서로 설명한다.--공산주의 문서가 없잖...--
- 왝더독/줄거리 . . . . 1회 일치
어찌어찌 귀환식장에 도착한 일행. 슈만의 영결식을 진행하는 동안 브린과 모스는 TV를 본다. TV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대까지 올라갔다는 내용의 방송을 하며 그 공을 홍보 영상에게 돌린다. 모스는 자신의 업적을 병신같은 홍보 영상 따위에 빼앗긴 것에 분노,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브린과 말싸움을 하다 자리를 떠난다. 이후 요원들이 모스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간다.
- 요괴:가면라이더 . . . . 1회 일치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다양한 요술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높이 뛰어올라 하늘에서 떨어지며 날아차기를 날리는걸 봤다는 목격담이 많아, 대체로 점프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불을 내뿜거나, 전기를 내뿜는 등. 어린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능력 이야기도 있는 편이다.
- 요괴:에어컨 . . . . 1회 일치
입에서 차가운 바람을 뿜어내는 능력과, 금전을 강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우메보시 . . . . 1회 일치
[[매실]]을 말려서 차조기의 입을 넣고, [[소금]]에 절여서 만든다.
- 우미나리 시 . . . . 1회 일치
주인공 타카마치 나노하가 사는 고장으로, 우선 나노하의 가문부터가 무력적으로 범상치 않은데다(나노하의 부친과 오빠가 익힌 '미카미류'가 먼치킨성 고류 무술) 온갖 종류의 괴기 및 초자연적 존재들이 존재하고~~(이 쪽은 원작 '트라이앵글 하트 3'의 설정까지 포함시킨 경우가 많지만)~~, 나노하 시리즈에 이르면 지구와 우주, 차원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전투들(1편 - 페이트와의 항쟁 / 2편 - 어둠의 서와의 전투)이 벌어지는 살벌한 동네이다.
- 우유 . . . . 1회 일치
[[소]]에게서 갓 짜낸 원유는 살균과정과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마시지 않는게 좋다.
- 우천석 . . . . 1회 일치
***** 차남 - 우칭(禹偁) : 좌대언(左代言), [[우현보]](禹玄寶, [[1333년]] ~ [[1400년]])의 조부
- 우키시마 . . . . 1회 일치
* 해안에서 떨어져서 섬을 봤을 때, [[신기루]] 현상이 일어나서 마치 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광학적인 현상으로, 수면에 가까운 곳에서 기온이 높고, 상층부의 공기가 차가울 때, 빛이 왜곡되어 발생한다.
- 워저드 . . . . 1회 일치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공룡처럼 생긴 [[드래곤]]. 불을 뿜는 것이 주공격. [[포켓 파이터]]에서는 류가 엔딩에서 대결하게 된다. 결국 류는 하우저에게 개발린다. [[타츠노코 VS 캡콤]]에서는 카라스의 엔딩에 나오지만 류와는 반대로 카라스에게 죽는다.(…) 캡콤 파이팅 잼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로 나오기도 했다. 보스를 상정하고 만든 캐릭터를 별다른 수정 없이 넣은 탓에 덩치가 타 캐릭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탓에 피격 판정도 거대해서 보통은 약캐릭터 취급이다.
- 원 포 올 . . . . 1회 일치
이 엄청난 힘을 올마이트는 무리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해왔으며 미도리야는 힘을 넘겨받은지 얼마 안된 입장이라 큰 힘을 쓰면 항상 부상을 입었다. 이 약점에 대처하기 위해 원 포 올을 손가락 하나에 집중시켜 쓰는 방식으로 피해를 줄이고 있다.[* 그렇다 해서 미도리야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USJ편에서 힘을 사용하고도 반동이 없는 등 점차 성장하고 있다.[* 일단 힘의 일부만 발휘되었을 수도 있으며 USJ편의 경우는 '사람에게 쓴다'는 점에서 마음 속으로 브레이크가 작동된 듯.] 일단 체육제편까지를 기준으로 미도리야가 쓸수 있는 힘의 안전선은 전체의 5% 정도. 그러나 이후 미도리야의 성장 덕에 8%까지 상향되었다.
- 원더우먼 . . . . 1회 일치
영화 프랜차이즈 DC 확장 유니버스에서도 등장. 단독 영화도 나올 예정이다.
- 원피스 . . . . 1회 일치
점프 황금기 이래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점프를 구원한 [[드래곤볼]]의 계승자. 일본에서만 치면 드래곤볼 조차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 원피스/818화 . . . . 1회 일치
* 각 로드 포네그리프에 적혀진 것은 라프텔의 위치는 아니고 어떤 '''"지점"'''. 네 지점을 모두 찾아내면 그 교차점에 '''진짜 라프텔의 위치'''가 나오는 것이다.
- 원피스/824화 . . . . 1회 일치
* 조우에서는 캐럿이 사라진걸 알아차린다.
- 원피스/827화 . . . . 1회 일치
* 빅맘의 아지트는 과자로 만들어진 세계. 그녀의 꿈은 "모든 인종의 차별없이 모여사는 나라"
- 원피스/828화 . . . . 1회 일치
* 조로는 상디가 결혼 때문에 불려갔다고 했을 때 "냅둬라"며 매몰차게 말했는데, 상디는 동료들에게 돌아오려고 하고 있는 점 때문에 조로의 인성을 의심하는 팬들이 많다.
- 원피스/829화 . . . . 1회 일치
* 그가 빅맘 입안에 음식을 처넣자 미친 것처럼 날뛰던 빅맘이 "맛있어!"라고 외치며 정신을 차린다.
- 원피스/831화 . . . . 1회 일치
* 결국 싸우게 되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기술로 부딪힌다.
- 원피스/832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그 욘디를 두들겨 팬 상디는 상처 조차 없으니, 제르마66 개개인의 실력은 밀집모자 일행보다 떨어질지도 모른다.
- 원피스/836화 . . . . 1회 일치
* 갑작스러운 변화에 브륄레가 당황하며 킹 바움을 다그치는데, 킹 바움 조차도 "호미즈는 저 아이를 거스를 수 없다"며, 비브르 카드에서 빅맘의 강한 소울이 느껴진다고 한다.
- 원피스/848화 . . . . 1회 일치
푸딩은 기뻤지만 어차피 그는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 한 일일 것이고 자신이 있음으로 여러 사람이 괴로워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결혼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놀라는 두 사람에게, 푸딩은 들어달라며 "어떤 고백"을 귓가에 속삭였다.
- 원피스/872화 . . . . 1회 일치
* 슈트로이젠의 쿡쿡 열매 능력이 무너지는 성을 통채로 케이크로 바꾼다. 거기에 슈트로이젠은 멋진 칼 솜씨로 케이크의 맨 윗 단, 다과회가 열리는 회장만을 베어서 안전하게 안착시킨다. 성 안에서도, 성 바깥에서도 모든게 끝났다고 절규하는 사람들 위로, 먼지와 잔해 대신 케이크와 생크림의 산사태가 쏟아진다. 홀케이크 아일랜드를 뒤덮을 기세로 쏟아지는 산사태. 폭풍같은 소란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누구나 뭉그러진 케이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 원피스/882화 . . . . 1회 일치
* 브륄레는 사실 루피가 [[나미(원피스)|나미]]와 하는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 곧바로 오빠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밀집모자 일당이 살아있다는 것과 카카오섬으로 향할 거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페로스페로는 아직도 빅맘 [[샬롯 링링]]과 함께 바다를 건너는 중. 써니호가 파도에 삼켜지는 걸 봤기 때문에 브륄레의 정보를 반신반의하나 어차피 [[샬롯 푸딩]]이 카카오섬에서 웨딩케이크를 굽고 있는걸 알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빅맘은 페로스페로의 뜻과 달리 근처에 있는 "너츠섬"으로 향하려고 해서 곤란해진다.
- 원피스/883화 . . . . 1회 일치
* 루피 대 카타쿠리 2차전. 루피는 드디어 기어4를 사용하고 카타쿠리는 루피의 공격을 피하는게 버거워진다. 콩건으로 공격해오는 루피.
- 원피스/884화 . . . . 1회 일치
* 우연히 [[샬롯 시폰]]과 엇갈렸던 "파운드"는 딸을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카카오섬까지 따라왔다. 한창 작업 중인 과자공장에 찾아와 시폰을 만나게 해달라 간청하나 "아무도 안에 들이지 말라"는 명령이 있던 차라 딸과 만날 수가 없다. 게다가 작업을 살피러 왔던 [[샬롯 오븐]]과 마주치는데, 그는 의붓아버지를 두들겨패서 쫓아내려 든다.
- 원한해결사무소/3화 . . . . 1회 일치
이틀 뒤, 우메모토 사유리는 회사 입구에서 마츠지리 신지 사장을 스토커라고 욕하고 달아난다. 그와 동시에 사내 컴퓨터에서는 사장의 성추문을 열거하며 공격하는 메일이 전 사원에게 전달된다. 사내에서는 우메모토가 범인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게 되었고, 그걸 전해들은 사장은 다혈질 성격 답게 변호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부하의 말은 듣지도 않고 당장 우메모토의 집에 달려간다. 우메모토의 집 앞에서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화내던 사장은 곧 [[경찰]]에 체포당하고 만다.
- 위안부 소녀상 망치 테러 사건 . . . . 1회 일치
최씨는 과거 조현병으로 2차례 입원[* 약 5년 전에 3개월, 1~2년 전에 2개월]한 적이 있었다. 최씨는 “망치를 [[철물점]]에서 구입해 소녀상을 내리치라고 (머리가) 지시했다”고 경찰에서 증언했다. 경찰에서는 조현병으로 인한 망상, 환청 증세로 보고 있는 듯 하며, 가족의 동의 하에 최씨를 정신병원에 입원 시킬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 유곽 . . . . 1회 일치
전근대시기에 있었던 매춘업소의 형태. 유곽의 곽(郭)은 성곽이라는 의미로서, 그 말에서 보여주듯이 외부와는 벽이나 도랑으로 차단하여 자유로운 출입을 막고, ㅊ출입구를 한 곳으로 하여 철저하게 관리되는 형태로 만들어진 매춘업소이다.
- 유기농 . . . . 1회 일치
[[목차]]
- 유다인 . . . . 1회 일치
[목차]
- 유열 (가수) . . . . 1회 일치
* [[현대자동차]] 엑센트 - [[이문세]], [[이수만]]과 같이 출연
- 유재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1차 7라운드([[LG 트윈스]])
- 유카타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 이후에는 나체로 입욕하게 되면서, 목욕을 한 뒤에 입는 [[면]]으로 만든 홀옷을 유카타(浴衣)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는 실내복이었지만, 점차 [[여름]]에 야간 등에 외출을 할 때도 입게 되었다.
- 유한식 . . . . 1회 일치
[목차]
- 윤지숙(배우) . . . . 1회 일치
* [[1997년]] [[KBS1]] 일일연속극 《[[정 때문에]]》 ... 차대자 역
- 윤찬수 . . . . 1회 일치
'''윤찬수'''는 [[KBO 리그]] 전 [[LG 트윈스]]의 선수이다. [[2009년]] 4분기 [[상무 야구단]]에 합격하여 2년간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원 소속팀인 [[LG 트윈스]]로 복귀하였고 [[2011년]] 가을 방출되었다. [[2012년]] [[5월 26일]] 새벽 [[국군체육부대]] 소속 시절 친분을 쌓은 승부조작의 장본인이자 전 프로 축구 선수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함께 [[서울특별시|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귀가하던 부녀자를 납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재 윤찬수는 공범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2013년]] [[1월 17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같은 날 김동현도 징역 3년이 선고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45507 `특수강도' 前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동현 법정구속]</ref>
- 율령 . . . . 1회 일치
고대 중국에서 [[법률]]을 뜻하는 말. 율과 령은 모두 법을 뜻하지만, 약간 의미에 차이가 있다. 율(律)은 주로 형벌(刑罰)에 관련된 법율을 뜻하며, 령(令)은 주로 행정(行政)에 관련된 법령이다. [[법가]] 사상에서는 율령을 통괄하는 통치 기술을 법술(法術)이라고 불렀다.
- 율리우스 네포스 . . . . 1회 일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일단 당대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다른 갈리아의 로마 장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참칭자'로 여겨졌으며, 네포스가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잃은 상태였음에도 네포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간주했다. 로물루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인정한 것은 로마 원로원, 아버지 오레스테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폐위한 오도아케르[* 오도아케르는 네포스가 있는데도, '서로마 황제 제위 반납'을 행했으므로 일단 당시 시점에서는 로물루스의 제위를 합법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정도였다. 그리고 로물루스 폐위 이후로는 당대에는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오도아케르 조차도 일단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는 네포스라고 여겼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대 시점에서 단 1년도 재위하지 못했고 대립황제로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던 로물루스[* 심지어 이 소년은 폐위된 뒤에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보다는 동로마에 인정 받고 달마티아라는 영지를 보유한 네포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컷던 것은 분명하다.
- 은혼/586화 . . . . 1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 카무이와 싸우며 그 격차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 은혼/592화 . . . . 1회 일치
* 쇼우가쿠는 "해적의 긍지도 갖지 않은 그런 남자에겐 버릴만한 충성심 조차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 은혼/593화 . . . . 1회 일치
* 마침내 시간이 흘러 그를 가뒀던 자들 조차 사라지고 감옥마저 썩어서 무너져 버리자 그는 세상으로 나온다.
- 은혼/594화 . . . . 1회 일치
* 천도중 조차도 우츠로에게 놀아나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루사메 원로원이 놀아난 것과 마찬가지.
- 은혼/599화 . . . . 1회 일치
* 게다가 해방군은 복리후생도 탁월해서 기지 안에 숙박시설과 츠타야[*일본의 비디오 대여점 프렌차이즈]까지 있엇다. 내친 김에 인디펜던스 데이와 스타워즈까지 빌린다.
- 은혼/600화 . . . . 1회 일치
* 저지르고 나니 뒤늦게 제정신을 차린 주작 제독.
- 은혼/602화 . . . . 1회 일치
* 원상은 그런 건 약해 빠진 너네 나라의 얘기라며, 자신의 나라에선 전장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남자 따윈 아내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돌려보내진다고 말한다.
- 은혼/603화 . . . . 1회 일치
* 소요는 도쿠가와 노부노부 조차 싸우고 있다며, 자신들은 그 노부노부에게 만큼은 질 수 없다고 말한다.
- 은혼/609화 . . . . 1회 일치
소라치의 빅픽쳐. 겐가이 영감 에피소드도,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 설정도, 킨토키와 타마의 네이밍 조차도 이 한 화를 위한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 은혼/615화 . . . . 1회 일치
* 양단 작전의 성공으로 해방군의 지상군이 허리가 잘린다. [[진선조]]의 [[곤도 이사오]], [[히지카타 토시로]], [[오키타 소고]]가 일제히 부대를 이끌고 돌진, 해방군의 후방을 공격한다. 해방군 내에선 후방으로 돌아가 원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지휘관 [[오우가이]]는 일언지하에 각하한다. 기책 정도로 뒤집을 전력차가 아니며 그대로 냅둬도 후방 부대가 그정도는 알아서 할 거란 논리.
- 은혼/620화 . . . . 1회 일치
* 츠쿠요는 이 싸움이 끝나면 "사신유녀"와 "야규가 차기당주"가 사이좋게 "브띠끄"에 가지 않겠냐고 하는데 큐베는 "그런것 보다 핫케이크를 먹으러 가고 싶다"고 대대답한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우가이의 철괴가 큐베를 덮친다.
- 은혼/624화 . . . . 1회 일치
* 지휘관이 쓰러지자 신라 부대는 원통해하면서도 퇴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승리의 일각을 담당한 카츠오는 "우주제일의 야쿠자" 지로쵸의 힘을 잘 보았냐고 과시하며 자신도 은근슬쩍 "우주 제일의 7 대 3 가르마"라고 포장하지만 가구라가 가차없이 태클을 건다. 가구라는 이상한 대항심을 발휘해 소타츠를 쓰러뜨린게 자기네 대장이니 해결사는 곧 "우주제일 야쿠자 해결사"라고 주장한다. 신파치는 언제 야쿠자가 됐냐고 태클에 태클을 거는 직업정신을 발휘한다.
- 은혼/631화 . . . . 1회 일치
모선에 있는 다츠마 일행도 썩 좋지 않은 상황에 몰렸다. 자작의 안내로 진군하고 있었으나 적이 한 발 빨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엔 미리 적들이 배치돼 있었고 퇴로까지 차단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시스템을 장악한 엔죠 황자 보다 빠를 순 없다.
- 은혼/638화 . . . . 1회 일치
* 해방군 본대는 [[천도중]]이 해방군을 전멸시키고자 본진인 지구 조차 버리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추측한다. 틀린 말이다. 엔죠 황자는 안다. 이미 천도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부하들에게 그걸 묻고 있을 순 없다. 천도중의 죽음을 숨기고 이 전쟁을 아득바득 고집한 이유가 사라지니까. 엔죠 황자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자신들의 모성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는지 자문하길 되풀이했다. 한 가지가 걸린다. 저 현상은 모성에서 일어난 것과 완전히 같은건 아니라는 것. 단 번에 대폭발을 일으켰던 모성과 지표 전역이 들끓듯이 연쇄폭발하는 저 현상은 다르다. 애초에 천도중은 죽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천도중이 아니었던 건가? 그들의 모성을 파괴하고 지금 지구를 파괴하려는 자. 그리고 천도중을 죽인 자. 이 전쟁을 계속하는 자.
- 은혼/642화 . . . . 1회 일치
* 반사이와 헨페이타 모두 신스케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 분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점차 한계를 드러낸다.
- 은혼/646화 . . . . 1회 일치
* 아직 엔쇼는 집중공격을 당하는 중이었다. 팔의 고통을 달랠 틈도 없이 뒤에서 가츠라가 라이트 세이버를 휘둘렀다. 엔쇼는 몸을 앞으로 날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동시에 바닥에 있는 라이트 세이버를 왼손으로 집어들었다. 그리고 몸을 뒤로 돌림과 동시에 아래에서 좌측 위를 향해 사선으로 크게 베었다. 라이트 세이버를 휘두른 직후의 가츠라는 어정쩡한 자세에서 그 참격을 받아냈다. 간신히 막았지만 몸통을 베였고 흉부 갑옷에 흉측하게 큰 빗금이 생겼다. 일단은 엔쇼가 한 고비를 넘긴 걸까? 여전히 그러기엔 멀었다. 가츠라를 베고 지나간 라이트 세이버의 끝에는 뜻하지 않은 습득물이 붙어 있었다. 가츠라의 폭탄.
- 은혼/649화 . . . . 1회 일치
* [[사다하루]]가 모습을 감춘 뒤 [[소요 공주]]와 [[이마이 노부메]]가 찾아나서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다.
- 음모론 . . . . 1회 일치
*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나치 독일은 달이나 금성 같은 다른 행성으로 도망가 살고있다.
- 이경석 (배구인) . . . . 1회 일치
'''이경석'''(李京錫, [[1961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의 세터 출신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모교 [[경기대학교]]에서 감독을 했으며, 2011-12시즌 [[김상우 (배구인)|김상우]] 감독이 경질된 후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LIG]]의 감독에 부임했다. [[2012년]]에는 KOVO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LIG의 KOVO 주관 대회 첫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2012-13시즌 성적이 부진하여 시즌 도중 경질당했다. <ref>{{뉴스 인용
- 이경희 (1880년) . . . . 1회 일치
동시에 현지 교민들의 문맹률을 보고 [[중국]] [[심양]](瀋陽)에서 달신학교(達新學校)와 중국어 학교를 세워 학생, 청년들을 가르치고, [[야학]]을 개설하여 성인들을 가르쳤다. 이어 마련한 돈으로 [[만주]] [[무송현]]에 둔전을 마련하여 다시 군자금을 만들고, 청장년을 훈련시켰다. [[1918년]] [[12월]] [[파리강화회의]]로 파견되는 [[김규식]] 박사와 일행의 차비와 여비로 일부 자금을 [[상하이]]로 보냈다.
- 이규한(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이근택(1865) . . . . 1회 일치
[목차]
- 이금서 . . . . 1회 일치
경주이씨 세보에 의하면, 이금서는 [[고려]]조정에 처음 출사하였다 한다. 또한 [[고려 태조|태조]] 때 [[고려]]의 삼한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런데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고려 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 일명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와 혼인한 것을 고려할 때, 여기서 태어난 [[경순왕]] 3녀 김씨가 이금서와 혼인할 연령이 되려면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이후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여기서 태어난 이금서의 아들들이 활약할 연령이 되려면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금서의 아들들이 [[경순왕]]의 [[고려]] 귀부 이전에 활약했다는 기록들은 이러한 사실과 30여 년 이상의 연대상 오차가 생기게 된다.
- 이기백(군인) . . . . 1회 일치
|| 18대 [[차규헌]] || → || 19대 이기백 || → || 20대 [[김홍한]] ||
- 이동찬(기업인) . . . . 1회 일치
[목차]
- 이동훈 (1996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 이미라 . . . . 1회 일치
* [[그 해 겨울 바다행 기차는...]] (1993년)
- 이병규 (1983년) . . . . 1회 일치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적하였다.
- 이병석(정치인) . . . . 1회 일치
[목차]
- 이사강 . . . . 1회 일치
수능 279점으로 중앙대학교 연극과 98학번 특차로 들어가서 1학년을 다니다가 언니가 있는 런던으로 유학 필름스쿨 영화학 학위를 받았다.
- 이상목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대표적인 [[포크볼]] 투수이며 [[199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지만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해 [[1993년]] 시즌 중에 [[포수]] [[박선일]]을 상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빙그레에 이적한 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였고 시속 140km대의 직구와 낙차 큰 [[포크볼]]로 많은 승수를 얻었으며 [[1999년]]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동했다. [[2003년]]에 15승 7패를 기록하여 한화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에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6년]]을 제외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2007년]]에 방출되었으며 [[선동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8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 이상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3년]] [[11월 22일]]에 열린 [[2014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적했다.
- 이상휘 . . . . 1회 일치
[목차]
- 이설주 . . . . 1회 일치
광복 이후인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대구여자상업학교(현재의 [[대구제일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문고판형 전집 《설주문학(雪舟文學)》을 비롯한 여러 시집을 출간했다. [[2011년]] [[3월 24일]] [[한국문인협회]]는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한국 현대 시문학과 시조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설주문학상을 제정했다.
- 이성계 . . . . 1회 일치
그러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전처 소생의 아들들을 외면하고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고 하여 그들의 불만을 사서, 결국 그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이방원(후의 태종)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과 방번, 정도전 등을 참살하고 이성계를 상왕으로 만들어 실권을 탈취한다. 이에 격분하여 자신의 옛 근거지인 함경도 지역에서 조사의 등과 결탁해 군대를 거병하고 태종을 공격하였으나(조사의의 난) 태종의 친정군에 패배한다. 그 후에는 완전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사냥 등으로 소일하다 서거.
- 이센고린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징집병을 칭하던 속어. "니센고린"라고도 한다.
- 이승현 (1985년 7월) . . . . 1회 일치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데뷔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였다. [[2007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한 후 슬럼프를 겪기도 하였지만,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였다. [[2007년]] [[터키 수페르리그]]의 [[베식타시 JK]]로부터 이적설이 떠돌기도 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41406 박병규-조용형-이승현, 터키 무대서 '러브콜' ]</ref>
- 이승효(탤런트) . . . . 1회 일치
[목차]
- 이시영 (1882년) . . . . 1회 일치
'''이시영'''(李始榮, [[1882년]] [[1월 10일]] ~ [[1919년]] [[7월 9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본관은 [[경주시|경주]](慶州). 본명은 이중현(李仲賢), 호는 우재(又齋). 친족 관계에 있는 동명이인인 [[이시영 (1868년)|이시영]](李始榮, 성재 이시영)과의 구별을 위해 '우재 이시영'으로도 부른다. [[성리학]]자 이관준의 차남으로 [[대한민국]]의 제1대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법무부 장관]] [[이인]](李仁)의 숙부이다.
- 이영수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4라운드([[해태 타이거즈]])
- 이영아(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이영은(1982) . . . . 1회 일치
[목차]
- 이영훈 (경제학자) . . . . 1회 일치
그의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와 여러 논문에서 이영훈은 무력이 아니라 법과 무역을 통해 전개된 식민지적 수탈을 논하였다.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영훈은 정신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점을 명확히 밝히고, 위안부는 강제 징집된 것은 아니나 배후에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 이원재(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목차]
- 이은혜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 2017년 3월 서울모터쇼 기아자동차 레이싱모델
- 이인성 (화가) . . . . 1회 일치
그는 [[1929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열린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했다. [[1930년]]에는 [[일본]] 다이헤이요 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 입학함과 동시에 일본 수채화 연맹(日本水彩畵聯盟) 회원이 되었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와 [[제국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기도 하였다.
- 이장섭 . . . . 1회 일치
* [http://www.nocutnews.co.kr/news/4867765 차기 충북도 정무부지사에 이장섭 청와대 선임행정관] 노컷뉴스 2017.10.27.
- 이재영 (뮤지컬배우) . . . . 1회 일치
1988년 [[MBC 강변가요제]] 본선까지 진출했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는데 이듬해 1989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가수가 되었고, 1991년 [[라틴팝]]을 어레인지한 노래인 '유혹'을 발표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9D%B4%EC%9E%AC%EC%98%81+%EB%82%98%EB%A5%BC+%EC%9E%8A%EC%A7%80+%EB%A7%88|'유혹' 음반에 수록된 곡들 중에는 좋은 노래들이 꽤 있다.]][* '유혹'은 '풍선', '새벽 기차'로 유명한 그룹 [[다섯손가락]]의 보컬리스트 이두헌이 작곡한 곡이다.] '유혹'으로 그 해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수상하는등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고 이후 '사랑은 유행이 아니야(1992)' '집시(1993)' '대단한 너(1996)'로 또한번 더 정상권 가수가 되었다.
- 이재율 (1993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4라운드([[NC 다이노스]])
- 이종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2라운드([[kt 위즈]])
- 이지찬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8라운드]]([[kt 위즈]])
- 이차강간 . . . . 1회 일치
성범죄 피해자가 성범죄의 특성상, 사회적으로 입게 되는 2차적 피해를 연구하면서 나타난 용어이다.
- 이판석 . . . . 1회 일치
1960년 주사보(현 [[7급 공무원]])로 공무원 경력을 시작하였다. 관선 [[춘천시]]장, 관선 [[마산]]시장을 거쳐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서 재정국장, 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등을 지냈다.
- 이평 (1572년) . . . . 1회 일치
이후 [[이항복]] 등이 신하들을 데리고 입계하여 그에게 존호 올리기를 청하기도 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1일 갑자 4번째기사, 우의정 이항복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릴 것을 재차 청하다</ref> 일설에는 [[이이첨]]이 이평을 사주하여 유영경의 추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4일 정묘 5번째기사, 양사에서 시관으로서 시험 출제를 잘못한 김시언을 국문할 것을 청하다</ref>
- 이하영(강사) . . . . 1회 일치
[[수능개념]]의 경우 중학교 개념, 고1 개념 등등의 수능 비출제 범위이지만 수능 수학의 기초가 되는 부분을 초반에 강의해 기초가 없는 학생들을 배려한다.이후 [[수능특강]], [[수능완성]]등에서 문풀을 할 때도, 어려운 공식 등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며[* 이 부분에서 최상위~~어차피 걔넨 ebs 무시하지?~~--무시하는게 아니라 자기들 공부커리에서 ebsi가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학생들은 잘 동의를 하지 않는다.] 공식을 잘 쓰지 않고 일일히 풀어 쓰는 편.
- 이현보 . . . . 1회 일치
**** 차남 : 이문량(李文樑)
- 이호재(연극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이홍기(군인) . . . . 1회 일치
[목차]
- 이희성 (1988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1년]] 3차 4라운드([[넥센 히어로즈]])
- 이희승(1913) . . . . 1회 일치
[[8.15 광복]] 후 충북자동차주식회사 취체역, 주한미군 제7사단통역관, 경기도청 및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통역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동청년단]]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대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UNKRA 및 KCAC 정치고문,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기술교육원부원장서리, [[미군]] 작전과 포로심사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김기철에 밀려 탈락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정상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인비저블 우먼 . . . . 1회 일치
[[미스터 판타스틱]]과 연인 → 부부 관계이다.[* 참고로 나이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거의 키잡에 가깝다.(…)] 판타스틱 포의 [[홍일점]]이며, 두 아이에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벤과 동생 조니, 워커홀릭 남편인 미스터 판타스틱이 그렇게 사고치고 속을 썩이는데도 용케도 끝까지 같이 사는 걸 보면 '''[[성녀]]''' 수준.(…) 게다가 퓨처 파운데이션 이후 집에 식구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것이, [[닥터 둠]], [[네이머]]와 서로 끌리는 관계에 있음을 그린 에피소드들이 많다. 수잔 스톰 자체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급의 미모를 자랑해서 그렇기도 하고.
- 인왕 . . . . 1회 일치
분황사지 9층 석탑 같은 경우, 금강역사 한 쌍에 사자 4쌍으로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탑'을 지키는 구조가 되어 있다. 사천왕 등이 나타나면서 금강역사는 점차 밖으로 밀려나서 절의 비교적 바깥 쪽에서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너무나 강대한 힘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형까지 다치게 하고 부모 조차 그를 저주받은 아이로 생각해 멸시하게 된다.
- 일곱개의 대죄/171화 . . . . 1회 일치
* 반 조차도 이런 전개는 예상도 못했는지 시종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일곱개의 대죄/172화 . . . . 1회 일치
멜리오다스의 풀파워 앞에서는 십계 조차도 무력하다.
- 일곱개의 대죄/173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가 전력을 다하면 십계라도 단독으로는 상대 조차 되지 못함이 입증됐다.
- 일곱개의 대죄/174화 . . . . 1회 일치
* 같은 십계여도 전투력 격차는 꽤 막심한 듯.
- 일곱개의 대죄/186화 . . . . 1회 일치
* 몬스피드와 델리엘은 리오네스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멜리오다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전의 나라면 그렇게 말했겠지"라며 데리엘을 허공으로 차올린다.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1회 일치
* 십계 중 프라우드린이 가장 뒤처지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어차피 자라트라스도 십계급의 전투력이 아닌데 핸드릭슨&자라트라스 페어에 밀리는 인상이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1회 일치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목적은 여전히 불명. 그들이 인간을 배신한 계기를 알아야 설명이 될 것 같다. 그들이 사용한 술법은 자라스트로가 사용한 것과 비슷하지만 그저 멜리오다스의 기억을 봤을 뿐인 반면 이쪽은 과거 시간대의 당사자의 몸에 정신을 집어넣는, 매우 고차원 술법. 주문으로 보아 이것도 드루이드의 마법으로 사료된다.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1회 일치
뤼드셀의 공손했던 태도가 한순간 사라진다. 그는 "모든 종족이 바라던 평화"를 주창해왔지만 그 안에 마신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스티그마인 멜리오다스 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눈을 떠야 한다며 멜리오다스와 갈라지라고 강요한다. 그에게 있어선 멜리오다스는 마신왕의 후계자일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요하면 엘리자베스에게 더 어울리는 사내도 준비할 수 있다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1회 일치
네로바스타는 뤼드셀이야 말로 진정한 사냥꾼이며 짐승에 불과한 십계는 사냥 당할 수밖에 없다고 떠들고 있다. 메라스큐라는 어차피 네로바스타가 자각하지도 못하는데도, 그 말을 비웃으며 대꾸한다.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1회 일치
엘리자베스의 눈동자의 소용돌이가 차츰 커지는 듯 하더니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가 되어 후광처럼 드리운다. 이 힘은 지금껏 거침없이 날뛰던 인듀라, [[데리엘]]과 [[몬스피트]]를 일시적으로 묶어둘 정도였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1회 일치
* 그때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메라스큐라]]다. 차원의 틈으로 천계로 가는 문을 조작하고 있는게 보인다. 그녀는 이제 문의 완성에 집중하고 싶으니 이쪽은 닫겠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1회 일치
지금의 고서는 자신이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 조차 잊어버린 상태. 그래서 디안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멀린은 디안느가 무심코 말한 "3천 년 전"이란 단어에 움찔했다. 반은 "꿈이라도 꾼 거겠지"라고 별거 아니라 여기지만 멀린은 진지하게 가능성을 점쳐 본다. 그녀도 여신족의 시간회귀술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디안느가 정말 3천 년 전으로 갔었을 거라 추정한다.
- 일본 니카타현 이토이가와시 대화재 . . . . 1회 일치
22일 오전, 한 라면집에서 발생한 화재는 강풍을 타고 인근 주택과 상점가로 번졌다. 10시간 넘게 지속되면서 약 4만㎡ 범위를 불태웠고, 화재범위 내에서 총 150여개의 주택과 점포가 전소됐다. 소방차 10여대가 출동하였으나, 너무 화재가 심하여 불길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 일즙삼채 . . . . 1회 일치
1종류의 국(汁,즙)과 3종류의 반찬(菜,채)로 구성되는 상차림을 뜻한다. 3채는 [[회]](膾), 조림(煮物), 구이(焼き物)로 구성한다. 다만 일상 가정요리에서는 요리의 종류는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임동규(정치인) . . . . 1회 일치
[목차]
- 임윤선(법조인) . . . . 1회 일치
[목차]
- 임인배 . . . . 1회 일치
[목차]
- 임지현(가수) . . . . 1회 일치
2015년에 들어 2월에 '지쳐가'라는 타이틀로 싱글앨범을 발표했고 8월 26일에 진준왕과 함께 부른 듀엣곡으로 '주차해놓고' 싱글을 발표했다.
- 임페라토르 . . . . 1회 일치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성립하면서 군단편성권과 같은 군권을 자신에게 독점시켜 황제는 유일한 '임페라토르'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구멍이 있었는데, 내전기의 로마 전통에 따라서 병사들은 자신의 지휘관을 [[투표]]로 선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군단 병사들의 지지를 얻은 지휘관은 언제든지 '임페라토르'로 승격될 수 있었다. 임페라토르의 칭호를 얻게 된 사령관은 사실상 '잠정 황제'가 되는 것이며, 여기에 [[원로원]]의 동의를 얻으면 진짜 황제가 될 수 있다. 평시에 황제(현임 임페라토르)의 권위가 높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만, 황제의 권위가 떨어지는 정치적 혼란기에는 언제든지 제국 각지에서 임페라토르가 난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는 로마 제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내전과 군인 황제들의 지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임현성 . . . . 1회 일치
[목차]
- 임효성 . . . . 1회 일치
그리고 그 시즌 종료 후 다시 [[신선우]] 감독의 유명한 시간차 트레이드의 일원이 되어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며 ~~이적 돌림빵~~ 저니맨 취급을 받다가 06-07시즌 종료 후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다. 전역 후 다시 [[한정원]]과 맞트레이드 되면서 전자랜드로 컴백. 전자랜드에서도 역할은 주로 백업 가드다. 그것도 [[강혁(농구)|강혁]]이 팀에 합류하고, [[정병국(농구선수)|정병국]]이 제대하면서 제 4의 가드. 2012-2013시즌 도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실상 은퇴했고 시즌 종료 후 공식적으로 은퇴함으로써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 임효준 . . . . 1회 일치
[[2018년]] [[2월 10일]]에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쇼트트랙 남자 15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무난히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분 10초 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1734.html#csidxc20cd80bba1b97989951bed5ea919c0</ref> 또한 이번 기록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세웠던 2:10.949의 기록도 경신하게 되었다.<ref name="2018olympics-final">{{웹 인용|title=Short Track Speed Skating Results - Men's 1,500m Final A|url=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website=[[2018년 동계 올림픽|2018평창올림픽 공식사이트]]|publisher=[[국제올림픽위원회]]|accessdate=10 February 20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10130015/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archivedate=10 February 2018|language=en|date=10 February 2018}}</ref>
- 자본통제 . . . . 1회 일치
금-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던 브레턴우즈체제(1944~1971년)에서 단기자금의 국가간 이동은 제약이 많았다. [[고정환율제도]] 때문에 단기자금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익을 얻기 힘들었고, 자본통제는 각국의 금융을 안정시켜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었다.
- 자시키로우 . . . . 1회 일치
미디어에서는 무작정 감금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당시에 일단 어느 정도 제한 절차는 있어서, 가구의 호주, 오인조(다섯 가구를 한데 묶어서 관리하는 조선시대의 오가작통 같은 제도), 그리고 의사의 확인서 등이 필요했으며, 도면 등을 경찰에 제출해야 하고 경찰에서 이를 관리하였다.
- 장기 . . . . 1회 일치
* 차 - 여러칸을 움직일 수 있다.
- 장기범(배우) . . . . 1회 일치
* 《[[글러브 (영화)|글러브]]》 (2011년) - 차명재 역
- 장남교 . . . . 1회 일치
또한 장남이 아닌 자식들(남동생들, 딸들)을 무시하거나 차별 대우하는 풍조도 장남교로 본다.
- 장대환 . . . . 1회 일치
* 1992년 12월 : 세계경제포럼 차세대 지도자선정
- 장두진 . . . . 1회 일치
1972년에 입단하였으며, 1997년 7단을 거쳐 2007년 7월에 8단으로 승단하였다. 1975년 제1기 국기전 준우승, 1987년 제12기 기왕전에서 각각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1988년 제18기 명인전에서 준우승했다.
- 장민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4년 2차 8라운드]]([[NC 다이노스]])
- 장성집 . . . . 1회 일치
포도대장은 그를 상급 [[재판소]]로 이송했다. 장성집은 관청의 아치들이 왜 자신을 아무런 [[심문]]이나 [[고문]]도 없이 내버려 두는지 알려달라고 외쳤다. 이미 그는 정신병자로 오해받고 있었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포장은 끊임없이 배교하라고 충고하였으나, 그는 포장의 충고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곤봉으로 수차례 맞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결국 그는 [[1839년]] [[5월 26일]], 54세의 나이로 [[한양]]에 있는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 장성환 . . . . 1회 일치
[[1950년]] 11월에 미 제5공군으로부터 수송기를 인수하자 한국 최초로 공수업무를 담당했다. 참모총장 재임 시절에는 제30방공관제단, 즉 지금의 공군방공관제사령부를 창설했다. 빨간 마후라는 그의 임기 중에 제작되었다. 전역 후에 주 태국 대사, 대한항공공사 사장, 한국관광공사 총재,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1비행단장, 5비행단장 등을 거쳐 1957년에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에 올랐다. 그후 1958년 공군참모차장을 거쳐
- 장수영 (방송인) . . . . 1회 일치
[[199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공채 [[기상 캐스터|기상캐스터]] 입사하였고 [[1996년]] 음악평론가 겸 영화평론가 [[이무영 (영화 감독)|이무영]](훗날에는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 더 큰 활약)과 결혼하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차렸으며 이후 [[1998년]]에 MBC 문화방송 기상 캐스터 직위를 퇴사하였고 이듬해 [[1999년]] [[수필|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 장우석 . . . . 1회 일치
'''장우석'''(張祐碩, [[1977년]] [[1월 9일]] ~ )<ref>[http://gs343.blog.me/106555039 "차별 · 편견 없는 세상 35mm 앵글에 담아요"], 《대구신문》스크랩 내용, 2008.9.9.</ref>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미디어공작소°노림(www.facebook.com/norim)에서 공작원(film maker)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 문을 연, 대구 최초의 '복합문화공간 헌책방' 물레책방(www.mulae.net)<ref>[http://www.atjob.co.kr/servlet/bbs.CBbsSe?hid_seq=3481&template=t_bbs_atjob_09 "헌책방, 돌고 도는 사람 세상"], 《앳잡》, 2014.4.21.</ref>의 대표이기도 하다.
- 장운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2차 6라운드]] ([[한화 이글스]])
- 장정희(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장종덕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2차 9라운드([[넥센 히어로즈]])
- 장진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 배우자 = 차영은
- 장진용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1차 지명([[LG 트윈스]])
- 장혁주 . . . . 1회 일치
일본 문단에서 활동하던 장혁주는 [[1933년]] 장편 《무지개》로 한국 문단에도 선을 보였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지개》도 초기의 사실주의적 작풍이 살아 있는 작품이나, 이후 남녀간의 복잡하게 얽힌 애정 관계가 묘사된 《삼곡선(三曲線)》(1934~1935) 등 점차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을 발표했다. 이 무렵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 재호 (배우) . . . . 1회 일치
《매일개서모도흔우상》에서는 다큐멘터리 촬영 차 중국에 왔다가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의 인기 배우 역할을 맡았고, 직접 중국어 연기까지 소화하며 현지 스태프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인간대포》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을 매력적인 남자로 거듭나게 도와주는 인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군’ 재호, 대륙이 먼저 알아본 라이징★|url=http://sports.donga.com/3/all/20180329/89357445/1|날짜=2018-03-29|뉴스=스포츠동아}}</ref>
- 저변교 . . . . 1회 일치
주로 고등학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가 있기 때문에 그 특성상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정한 수의 입시 낙오자가 나타나게 된다. 때때로 재수를 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를 재수하기에는 주변과의 연령차상 다소 곤란하기도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저변교를 가는 경우도 있다.
- 전가의 보도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군도]]를 대신하여 이런 '전가의 보도'를 가지고 전장에 나가는 사례도 많았는데, 그 탓에 이런 전가의 보도가 손상을 입는 사례도 빈발하였다. 아무리 이름 높은 명검이라고 해도 근대 공업제품과는 달리 품질이 일관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근대 기술로 만들어진 칼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전경협 . . . . 1회 일치
전경협의 친오빠는 이교도였으며, [[조정 (정치)|조정]]의 고위 관리였다. 그는 [[왕|임금]]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그녀를 배교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의 간청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죽이려 했다. 그는 독이 든 계란 과자를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보냈던 것이다. 수상스럽게 생각한 전경협은 과자를 비녀로 찔러 보았는데, 그 비녀의 색쌀이 금새 변했으므로 그 과자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오빠는 형리장을 매수하여 그녀를 몽둥이로 때려 죽이도록 시켰다. 하지만 형리장은 여러 차례 그녀를 때리되 죽이지는 않았다. 전경협의 조카 즉 오빠의 딸이 그녀의 상처가 하루만에 다 낫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경협은 그녀의 오빠가 그녀가 감옥에 영원히 갖혀 있도록 요청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위하여 [[참수]]되기를 [[기도]]했고, 마침내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 전국 BASARA . . . . 1회 일치
적을 공격하다 보면 바사라 게이지가 찬다. 바사라 게이지가 다 차면 강력한(?) 바사라기를 사용할 수 있다.
- 전근표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6년]] 2차 5라운드 35순위([[현대 유니콘스]])
- 전동휠 . . . . 1회 일치
* 갓웨이: 락휠의 엔지니어가 나와서 새로 만들었다는 회사. [[https://www.youtube.com/watch?v=iWWNdmB03UU|산중턱에서 냅다 집어던지는 테스트]]를 하고도 굴러가는 등 내구성은 괜찮은 듯. 차기작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QRUatyguFrY|5인치 휠]]을 연구중인데 엄청 작다. 거의 핸드백에도 들어갈 수준.
- 전라북도/인물 . . . . 1회 일치
무주군 - [[김광수(1925)]] [[권해효]] [[김민희(1982)|김민희]] [[김주환(탤런트)|김주환]] [[서영희]] [[차수연]]
- 전락원 . . . . 1회 일치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후 올림포스 관광호텔 대표이사로 관광업계에 종사하기 시작한 그는 [[1973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워커힐 카지노를 인수하며 국내 카지노 사업의 대표주자<ref name="카지노">[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408415 전락원회장 별세… 파라다이스그룹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로 활약하였다. 그는 워커힐 카지노를 통해 막대한 부와 인맥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차례로 부산, 제주, 도고, 인천, 아프리카 케냐 등에 파라다이스 호텔을 설립하고 부산과 제주, 인천에도 카지노를 개장하며 '카지노 업계의 대부'로 활동하였다.<ref name="카지노"/>
- 전상렬 . . . . 1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 전성군 (1488년) . . . . 1회 일치
[[1488년]](성종 19) [[7월 21일]] 사후 [[여양군]]에 추증된 여양정 이자겸(呂陽正 李子謙)과 훈도(訓導) 김기(金耆)의 딸 광산김씨<ref>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의 아들로 태어났다. [[효령대군]] 보의 차남 [[보성군]] 이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율원군]] 이종(栗元君 李終)이다. 그의 생일은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정사룡]](鄭士龍)이 쓴 그의 묘비문에 그의 생일이 [[7월 21일]]이라고 언급되면서 알려졌다.<ref name="heomyong">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조부 [[율원군]]은 적개공신이었다.
- 전성인 . . . . 1회 일치
2012년 [[안철수]] 후보의 대선캠프에 합류하여 안후보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일을 맡기도 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 장하성·전성인·이봉의 3인방 앞세워 安, 재벌개혁 선명성 놓고 文과 신경전 |url=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015031206108&type=& |출판사=조선일보 |날짜= 2012-10-15 |확인날짜=2013-02-10}} </ref> 향후 진로에 관한 이견 차이로 그만두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전성인 교수도 "안철수 정책 자문 그만하겠다" |ur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3112103960&d=2013112103960 |출판사=조선일보 |날짜= 2013-11-21 |확인날짜=2018-01-17}} </ref>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인 [[김상조]]의 공정거래위원장 청문회 과정에서 김상조를 “우리보다도 더 깨끗한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옹호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상조의 도덕적이고 청렴한 삶을 증언합니다” |url=http://m.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7666.html?_fr=gg |출판사=한겨레 |날짜= 2017-06-06 |확인날짜=2018-01-17}} </ref>
- 전수지 . . . . 1회 일치
*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2008년) - 주차장 여 역
- 전예용 . . . . 1회 일치
|제목 = 역대 정부부처 장차관 - 건설교통부
- 전인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9년]] 2차 6라운드([[히어로즈]])
- 전일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1년]] 1차 지명 ([[태평양 돌핀스]])
- 전정희 (배우) . . . . 1회 일치
**《쇼 행운열차》
- 전종화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2차 2순위([[롯데 자이언츠]])
- 전종환 . . . . 1회 일치
'''전종환'''([[1980년]] [[6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자 전(前) 기자이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를 졸업했으며, 2005년에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특히 MBC에선 대학 재학 중에 입사한 최초의 인물이다. 초창기에는 《[[불만제로]]》, 《[[우리말 나들이]]》같은 류의 TV방송에만 출연하였으나, 2009년 4월 13일부터 《[[뮤직스트리트 (MBC)|뮤직스트리트]]》의 진행자로 발탁되는 등, 라디오 방송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2011년 5월 9일까지 진행을 맡고 하차했다.
- 전형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4년]] 2차 3순위 ([[한화 이글스]])
- 전혜진(1970) . . . . 1회 일치
[목차]
- 전희숙 . . . . 1회 일치
[[2009년]] FIE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 여자 플뢰레 개인 부문에서 결승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러시아]]의 [[아이다 샤나예바]]에게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코리아타임즈2009" />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여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남현희]]를 이긴 뒤 결승에서 중국의 리후이린마저 15-6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단체에서도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ref name="한겨레2014" /><ref name="연합뉴스2014" />
- 절대가련 칠드런/435화 . . . . 1회 일치
* 마츠카제 코우이치는 "변동 확률치 7등급" 예언이란 "레벨7 에스퍼가 간신히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의미한다면서 사람이 늘어도 차이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1회 일치
* 후지코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무시해 버리라고 하면서,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경찰이든 뭐든 칠드런을 막을 수 없다고 충동질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1회 일치
* 결국 효부 쿄스케조차 이변의 낌새만 느낄 뿐, 정확한건 파악하지 못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1회 일치
* 마침 보기드문 고급차량이 대기 중인걸 보고 표적을 정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1회 일치
* 이런 상황도 모르는 헬기는 애송이들 뿐이라고 생각하고 재차 공격을 가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1회 일치
* 그러는 사이 마기일행은 차량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효부는 헤어지기 전 "네 덕에 내게 집이라 부를 곳이 남아있다"고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 바로 마기 덕에 안심하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됐으니 반대로 마기가 방황하는 순간이 되면 언제든 "시로"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다며.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이번에야 말로 마기를 쏴버리려고 염력을 집중하지만 결국 발사하지 못한다. 마기는 그 괴로워하는 얼굴 조차 비웃으며 이별을 선언한다. 때맞춰 블랙팬텀의 미사일이 폭발하며 물기둥이 치솟는다. 마기는 이것을 틈타 상공의 폭격기와 접촉, 이제부턴 길리엄을 섬길 거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1회 일치
* 와일드 캣 우메가에 나오미도 도착. 미나모토를 방해한 타니자키를 응징하자 그 익숙한 통증 탓인지 제정신을 차린다.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1회 일치
리더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옆에선 [[후지우라 요우]]가 왠일로 어른스럽게 "리더 따윈 누구든 상관없고 싸움은 리듬을 타고 타닷하고 접근해 파밧하고 이기면 된다"고 말한다. 진지한 말투와는 달리 내용은 대충. [[사카키 슈지]]는 거기에 태클을 걸며 어차피 용병으로 쓸 거면 [[마기 시로]]가 제일 쓸만할 것 같으니 데려 오라고 한다. 요우는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말한다.
- 정겨운 . . . . 1회 일치
* [[2008년]]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여자]]》 ... 태권도 사범, 차동우 역
- 정경호(1972) . . . . 1회 일치
[목차]
- 정광용 . . . . 1회 일치
[목차]
- 정광운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6라운드([[한화 이글스]])
- 정다흰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2차 3라운드([[LG 트윈스]])
- 정도복 (고려) . . . . 1회 일치
* [[제1차 왕자의 난]]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3라운드 ([[KIA 타이거즈]])
- 정몽근 . . . . 1회 일치
**** 차남 : 정교선 (1974 ~)
- 정범균 . . . . 1회 일치
**〈막고 차고〉학생 역
- 정병오 . . . . 1회 일치
*《바람의 노래》는 소외된 자아를 회복하고, 중심 찾기를 모티브로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위기의식을 찾아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 정상희(정치인) . . . . 1회 일치
정상희의 차남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삼성그룹 초대회장 [[이병철]]의 4녀 [[이명희(기업인)|이명희]]와 결혼 했다. 이병철과 사돈관계이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시아버지 그리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의 할아버지다.
- 정성곤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2차 2라운드([[kt 위즈]])
- 정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4년 2차 7라운드]]([[NC 다이노스]])
- 정성현 (배구선수) . . . . 1회 일치
신생팀이였던 팀에 데뷔 시즌부터 주전 리베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주로 공격외에 모든 것을 담당한다.
- 정세협 . . . . 1회 일치
** 〈하오&차오〉
- 정수성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7년]] 2차 12순위([[현대 유니콘스]])
- 정승우 (골프선수) . . . . 1회 일치
특히 [[2007년]] [[1월 27일]]에 탤런트 왕빛나와 결혼한 정승우는 ‘2006 제 1회 투어스테이지 프로티어 투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ref name="골프">[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5&artid=9198&pt=nv 프로골퍼 정승우씨와 결혼한 ‘빛나’는 1월의 신부 왕빛나] 김성욱 기자, 레이디경향(2007.02.14) 기사참조</ref>
- 정승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단국대학교|단국대]] 시절 강타자로 활약하며 에이스 [[오승환]](삼성)과 함께 수차례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끈 주인공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te.com/view/20070501n02649|제목=젊은 독수리들, 언제 날까|이름=노재현 기자|날짜=2007-05-01|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0-05-19}}</ref>
- 정영기(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정은표 . . . . 1회 일치
[목차]
- 정재안 . . . . 1회 일치
전국고물상연합회 정책위원장직도 함께 맡고 있다. 올바른 재활용정책 방향에 대해 경향신문에 폐기물 운반차량 규제 강화 ‘탁상행정’
- 정재용(1973) . . . . 1회 일치
[목차]
- 정좌관심 . . . . 1회 일치
유교의 정좌는 [[불교]]와의 대립, 영향 관계에서 나타난 수행법으로 보인다.--[[좌선]] 퍼가요~-- 실제로 주희는 자신의 저작에서 유교의 '정좌'는 [[불교]]의 [[좌선]]과는 목적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불교와의 관련성을 지적받게 되었다. [[정약용]]은 주희가 강조한 '본성'과 '명덕'이 『능엄경』의 '여래장'과 동일하며, 주희가 주장한 공부 방법 역시 불교의 [[좌선]]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주희가 불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반론도 있지만,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 정진욱(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목차]
- 정채진 . . . . 1회 일치
* 1980.08 : 내무부 지방차관보
- 정홍준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2년]] 6차 9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제303전투비행중대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활동했던 영국 공군의 비행중대. 망명한 [[폴란드]] 공군 조종사들로 이루어졌다.
- 제령 . . . . 1회 일치
* 심호흡을 하며, 몸 속에 있는 나쁜 것이 물로 녹아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어깨를 지나 팔을 통하여 손바닥에서 물 속으로 녹아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점차 물 색이 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며, 몸에 들어 있던 것이 나쁘면 나쁠수록 물이 까맣게 되어간다.
- 조긍하 . . . . 1회 일치
| 자녀 = 슬하 5남 3녀 <br /> 장남 조동완(1945년 출생) <br /> 차남 [[조동진]]([[싱어송라이터]]) <br /> 4남 [[조동익]]([[베이스 기타|베이시스트]] 겸 [[작곡가]]) <br> 3녀 [[조동희 (가수)|조동희]]([[싱어송라이터]])
- 조길형(1962) . . . . 1회 일치
[목차]
-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 . . . . 1회 일치
[[조선인민군]] 차량 정면에 자주 써져있는 [[프로파간다]]성 글귀. 별 가치는 없다.
- 조현근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05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 주나라 . . . . 1회 일치
약 기원전 1100년 전후, 상(商)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이 패망하고, 서백(西伯) 희창(姬昌)의 차남 무왕(武王) 희발(姬發)은 호경(鎬京)을 도읍으로 하여 왕으로 즉위한다.
- 주다영 . . . . 1회 일치
* 제10차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CAAP10) - 뮤지컬 퍼포머스 '블랙수트 뉴 걸'(2011.8.26)
- 주상철 . . . . 1회 일치
[목차]
- 줄리아나 도쿄 . . . . 1회 일치
1993년에는 경영 모체가 바뀌었다. 이 때, 줄리아나의 명물이었던 받침대는 점차 팬티를 보이고 팬티를 보여주는(…) 느낌으로 과격화 되어갔으며, 여기에 [[경찰]]이 클레임을 걸어 받침대는 1993년에 철거되었다. 결국 손님이 줄어들면서 1994년 폐점하게 되었다.
- 지수원 . . . . 1회 일치
[목차]
- 지증왕 . . . . 1회 일치
*** 차남 : [[입종 갈문왕]](立宗 葛文王)
- 지훈(TRCNG) . . . . 1회 일치
[목차]
- 진격의 거인/79화 . . . . 1회 일치
* 각오를 다진 베르톨트는 압도적. 냉철한 판단에 육체적 포텐셜까지 폭발하면서 갑옷거인을 제압한 엘렌 조차 속수무책이다.
- 진격의 거인/82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아르민을 살릴 거라는 의견도 있는데, 지하실에 있는 거인화 용액을 주사하는 방법이 있다는 의견이 있다. 이럴 경우 거인화된 아르민이 "누구"를 먹고 정신을 차리냐도 문제가 될 듯.
- 진시몬 . . . . 1회 일치
[목차]
- 질렸다 . . . . 1회 일치
>다 쓴 종이를 가지고 자고, 다음날에 종이가 없어지며, 지금까지와는 분위기에 차이가 나거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성공입니다.
- 짜르 . . . . 1회 일치
#redirect 차르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회 일치
피고인은 A를 도와서 일으키고, B쪽으로 손을 내밀면서 접근했다. 피해자 B는 이 모습을 보고 피고인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피고인은 이것을 [[복싱]]의 파이팅 포즈로 오해. B가 자신에게 덤비려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자신과 A를 지키기 위하여 순간적으로 왼발 [[돌려차기]]를 날렸다.
- 창작:Project NA . . . . 1회 일치
매일 가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저 커피나 차를 마시러 온 단골들이 보통이지만 가게주인의 과거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도 보이곤 한다.
- 창작:좀비탈출/2-1 . . . . 1회 일치
그 때, 소파에 앉아 있던 좀비가 나를 향하여 다가왔다. 옷차림과 대머리를 보니 옆집 아저씨가 틀림없었다.
- 창작:좀비탈출/4-1-1 . . . . 1회 일치
그런데 뒷골이 서늘하다. 아차. 열려진 문. 나는 돌을 들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 제일 보기 싫은 것이 있었다.
- 창작:좀비탈출/4-1-2-2 . . . . 1회 일치
그런데 뒷골이 서늘하다. 아차. 열려진 문. 나는 돌을 들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 제일 보기 싫은 것이 있었다.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1회 일치
결국 아저씨가 고를 수 있는 납골당은 여기 한 군데였다. 그렇게 아내를 보내고 나서 몸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것이고 다이너스티를 몰고 병원까지 가려고 했겠지. 이미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겠지만 설마 늦었을 거라곤 상상도 안 했고. 그렇게 차로 향하던 사이에…… 그는 '''토트넘'''이 되었다.
- 창작:좀비탈출/5-2 . . . . 1회 일치
이제 다음번 의식을 차릴 때는 없겠지. 유서라도 적어두고 싶지만 그런 부질없는 짓도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기록 . . . . 1회 일치
* 남아있는 감각은 개체마다 차이가 있다.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1회 일치
그리고 교실을 나가더니 곧 교감의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교문단속에 편집적이던 교감은 교문을 닫아걸고 나갔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죽었을 것이다.
- 창작:헤이즈 . . . . 1회 일치
그러나 구NTX 시절에 연재되었던 "담력시험"을 계속하지 않고 '''리부트'''되었다. 먼저 "담력시험"이라는 제목으로 계속할 경우 초점이 어디까지나 '학생, 담력시험, 청소년물' 등으로 소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 대략적인 세계관 설정이 없이 무작정 연재되었기 때문에, 선택지마다 내용이 상충되거나 진행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담력시험"의 경우 주인공급 캐릭터만 5명이었기 때문에 캐릭터 하나하나 행동과 대사를 부여하고 주인공들간의 대화를 마련해야 했다. 차라리 아래에서 언급한 "언틸 던"처럼 2명씩 다니는 걸로 설정해 두는 게 좋았을 것이다.] 뚜렷한 핵심 없이 선택지가 양산되기도 했다. 결국 수습이 되지 못한 채 말이 방치지 사실상 중단되었다.
- 채동선 . . . . 1회 일치
[목차]
- 채상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8라운드 ([[넥센 히어로즈]])
- 채영인 . . . . 1회 일치
[목차]
- 채현국 . . . . 1회 일치
아버지 [[채기엽]](1907~1988)은 1952년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차렸고 1956년 [[흥국탄광]]을 설립했다. 채기엽은 강원도 사북탄광을 개발할 때 큰 일을 했다.
- 천안함 침몰사건 . . . . 1회 일치
또 다른 천안함 생존 장병 강정원 하사는 2012년 한 교육에서 교육사령관은 "나약하고 방심하고, 제대로 정신 안 차리면 천안함 사건처럼 당한다."고 발언하여 수치심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패배한 전장에서 살아나온 것은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 철인 28호(로봇) . . . . 1회 일치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으나 점차 고성능 로봇들이 등장하면서 단순히 힘만이 아닌 기술과 지혜를 써서 싸운다.
- 청산콜라 무차별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1977년 1월 4일에서 중순까지, 도쿄와 오사카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인 사건.
- 초한춘추 . . . . 1회 일치
[[중국]] 한나라 시대의 역사서. 유방의 막료로 종사했던 육가(陸賈)의 저작이다. [[초한전쟁]]을 다룬 제1차 사료.--하지만 지금은 없다.--
- 최광식 . . . . 1회 일치
* 국립중앙박물관장(차관급)
- 최남선 . . . . 1회 일치
1914년 몇몇 뜻있는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다시 종합 계몽 잡지 《[[청춘 (잡지)|청춘]] (靑春)》을 발간하여 새로운 지식의 보급과 민중 계몽을 위해 공헌했으나 이 역시 총독부에의해 [[1918년]] 강제폐간되었다. 1918년 《[[청춘 (잡지)|청춘]]》에 역사 연구 논문인 《계고차존》(稽古箚存)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신문관에서 많은 책과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한민족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광문회]]’를 1910년 설립하였다.
- 최란(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최민창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7차 2라운드([[LG 트윈스]])
- 최별이 . . . . 1회 일치
* [[2010년]] - 부산모터쇼 현대자동차 모델
- 최석민 . . . . 1회 일치
[[한성부]]의 출신이며 본적은 [[경성부]] 북부(北部) 이동(泥洞)이다. 의정부와 내각의 관리로 일하다가 지방의 군수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최석민은 관제 정비와 지방 제도, 세금 분야 등의 실무 전문가로 점차 고위직에 올랐다.
- 최성관 (1925년) . . . . 1회 일치
* 겨울로 가는 마차 (1981년)
- 최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9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4차 4라운드([[LG 트윈스]])
- 최성민(1995) . . . . 1회 일치
[목차]
- 최성재(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최성조 . . . . 1회 일치
* [[MBC]] [[일밤]] [[차승원의 헬스클럽]]
- 최세창 . . . . 1회 일치
[[1980년]] [[5월 20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했으며 나중에 사단장, 육군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대한민국 국방부]]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장관]] 등을 역임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됐다.<ref>{{뉴스 인용
- 최아라 (모델) . . . . 1회 일치
* 서울컬렉션 필립 림, 리차드 니콜, 스티브제이 앤 요니피 모델
- 최연오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7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 최우석 (화가) . . . . 1회 일치
1915년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 입학하면서 [[안중식]]과 [[조석진]]의 문하생이 되었고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서화협회]] 전람회 정회원을 역임했다.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근대적인 채색화 수법을 응용한 풍경화와 한국의 역사 인물을 주제로 한 초상화 연작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연달아 수상했지만 그가 작품 활동 초기에 그린 풍경화와 인물화는 일본 화풍의 채색화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점차 한국의 전통적인 수묵 담채화의 관념적 작품으로 회귀하게 된다. 주로 산수화와 신선도 등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 최운정 . . . . 1회 일치
2015년 7월 19일 [[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에서 156전 157기만에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olf&ctg=news&mod=read&office_id=081&article_id=0002582231 최운정 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 우승, 156전 157기]</ref>
- 최원태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1차 지명([[넥센 히어로즈]])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1회 일치
[[세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2년 동계 올림픽|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과 [[한국체육대학교]] 3학년 때인 [[2006년 동계 올림픽|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2회 연속으로 3000m 계주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와 [[2004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2회 연속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005년]] [[중국]] [[베이징]]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 최은석 (배우) . . . . 1회 일치
* 《[[자이언트 (드라마)|자이언트]]》 (2010년, SBS) - 차부철의 부하 역
- 최은주(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최재환(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최진순 . . . . 1회 일치
[[1969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으며, [[1998년]] [[교수신문]]을 거쳐 [[2000년]] [[서울신문]]에서 본격적인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사)한국온라인신문협회 기획분과위원, 뉴스분과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4년]]에는 [[한국언론재단]] [[KINDS]] 태스크포스(TF) 팀장,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또 한국언론재단 [[뉴스ML]] 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미국언론연구원(API) [[온라인저널리즘]] 디플로마 과정을 수료했다.
- 최창홍 . . . . 1회 일치
[[1937년]] [[2월 20일]] [[평안북도]] 경찰부 보안과 경시로 임명된 뒤부터 군용 자동차 징발 및 운전수 징집, 지하자원 개발 및 공출, 시국 범죄 위반 단속 및 검거, 국내 물자 조사에 관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1938년]] [[3월]] [[평안북도]] 방공위원회 간사를 역임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 최한경 . . . . 1회 일치
[목차]
- 최혁 (1992년 3월) . . . . 1회 일치
* 《[[권법형사: 차이나타운]]》 (2015년) - 남학생들 역
- 최훈재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9년]] 1차 2순위([[MBC 청룡]])
- 최흥철 . . . . 1회 일치
[목차]
- 추일승 . . . . 1회 일치
| 소속팀1 = {{국기그림|대한민국}} [[울산 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 농구단]]
- 추자현 . . . . 1회 일치
2012년 [[중국]] [[드라마]] '마랄여우적행복시광'에 [[중국]] 배우 [[조동혁]]과 함께 출연하여 연인으로 발전<ref>[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8&aid=0002595616 추자현, 조동혁과 4월 아닌 올 하반기 결혼 "일정 때문"] 스타뉴스. 2017년 03월 07일</ref>, 2016년 9월 연인 관계임을 알렸다. 2017년 1월 18일에 배우 조동혁과 혼인신고를 했다.<ref>{{웹 인용|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996073|제목=[룩@차이나] "조동혁♥추자현, 1월 18일 결혼" 中매체 관심 보도|언어=ko-KR|확인날짜=2018-03-26}}</ref>
- 춘추 . . . . 1회 일치
춘추시대, 각국의 사관이 편찬한 공식적인 기록이다. 『[[맹자]]』에서는 진에 '승', 초에 '도올', 노에 '춘추'(晉之乘, 楚之檮杌, 魯之春秋)가 있다고 하였으며, [[묵자]]에는 주나라, 송나라, 연나라, 제나라에 춘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춘추는 점차 국가 기록이 아닌 개인에 대한 기록에도 쓰이게 됐는데, 여씨춘추, 노씨춘추, 안자춘추 등이 그것이다.
- 충완 . . . . 1회 일치
* 2015년 11월 30일 〈3호차〉
- 츤데레 . . . . 1회 일치
근래에 들어서는 '모에' 문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종류의 세부적인 유형이 새로이 분류되어 만들어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등의 이유로 '새침떼기' 등의 대체어를 권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부적인 개념 차이 등으로 인해 별로 선호되지 않고 있다.
- 칩과 데일 . . . . 1회 일치
2차 대전 도중인 1943년에 첫 등장. 이후 50년대 까지 23편의 카툰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 또 1989년에 칩과 데일의 레스큐 레인저(Chip 'n Dale Rescue Rangers)라는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 카시오리 . . . . 1회 일치
카시오리는 선물용 과자 세트를 뜻한다. 손님 댁에 방문, 영업차 방문, 사죄 방문 등에 비교적 필수적인 선물로 여겨진다. [[편의점]] 등에서도 구할 수 있다.
- 카타와 . . . . 1회 일치
현대에는 차별 용어로 간주되어 방송 금지 용어가 되어 있다.
- 칼렉시트 . . . . 1회 일치
이전에도 소수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2016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움직임이 폭발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링턴은 61.5%의 지지를 얻었으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인종차별]]이나, 여성에 대한 모욕 발언 으로 구설수가 많은 후보였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불만이 터져나오게 된 것이다. [[트위터]]에서 ‘칼렉시트’(#Calexit), ‘칼리브포니아’(#Caleavefornia) 등의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급격히 퍼져나가게 되었다.
- 캡콤 . . . . 1회 일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록맨 시리즈]] 등 유명한 게임 [[프랜차이즈]]를 보유한 회사이며 국내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오락실에 가봤다면 한번쯤은 캡콤 로고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만큼 다수의 게임을 만들었다. 다만 현재는 캡콤의 게임을 즐겨온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은 오너의 관심사는 와인이며 게임은 그냥 돈 나오는 지갑 취급이다.-- 까는 사람들은 '개껌'이라고 부른다.
- 캡틴 아메리카 . . . . 1회 일치
[[애국]] [[슈퍼히어로]]의 대표주자.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진 영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활동해왔으며 이후 세월이 지나 [[어벤저스]]에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1회 일치
194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타임머신을 만들어 [[아돌프 히틀러|히틀러]]가 정권을 잡기전에 제거한다. 그러자 [[제2차 세계대전]]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이 유럽을 침공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영국을 중심으로한 연합군이 소련군을 물리치고 스탈린을 제거한 후, 러시아 왕족이었던 알렉산더 로마노프를 소련의 서기장으로 세웠다. 로마노프는 공산당원이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처럼 보였고, 연합군에게 협조적인 인물로 보였다.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 . . . 1회 일치
중동의 분쟁에서 화학무기, 폭약함정, 급조한 차량 등이 목격될 때 마다 국내 인터넷에서는 미래를 예언했다며 언급된다. 외국 사이트에서는 그렇게 오버하지는 않고 [[IS]]를 예언했다고만 하는 정도.
- 켄카양성패 . . . . 1회 일치
싸움을 억제할 이유가 있었던 데는 사무라이들의 호전성도 있었다. [[무로마치 시대]]에서 [[일본 전국시대]]에 걸쳐서, 사무라이들은 불합리할 정도로 복수심이 강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피해자가 명백하게 자업자득인 경우조차도 집요하게 복수를 했다. 켄카양성패는 이러한 문화에서 전국 다이묘들이 불합리하더라도 질서를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법이다.
- 콜만스코프 . . . . 1회 일치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콜만스코프보다 더 나은 다이아몬드 광산의 발견 등으로 사람들이 떠나가게 된 것. 결국 1956년, 콜만스코프의 마지막 세 가구가 떠나가며 콜만스코프는 유령 마을이 된다. 이후 모래가 아무도 살지 않는 건물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금의 콜만스코프가 완성된다.
- 크리미널 마인드 . . . . 1회 일치
* 패턴이 어느 정도 있어서, 오프닝은 대개 범인의 범행 장면으로 시작, 수사팀의 시퀸스와 범행씬이 교차한다. 마지막 전개는 대개 범인이 (마지막) 피해자를 살해하기 직전에 난입해서 가로막는 장면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범인은 사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살율이 매우 높지만, 때때로 [[체포]]되는 경우도 있다.
- 크립토나이트 . . . . 1회 일치
단 복용을 자주 안하면 힘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런데 저거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수명이 깎이니 유해성은 마약과 차원이 다르다.
- 키드르 . . . . 1회 일치
쿠란 제18장 카흐프(동굴)에서 등장하며, 두 바다가 교차하는 점에서 [[모세]]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다만 쿠란에서는 '그'라고만 언급될 뿐. 직접적으로 키드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며, 이 인물이 키드르라는 것은 이슬람 학자들이 전통적으로 믿는 해석이다.
- 키프 . . . . 1회 일치
* 앗시 군 : 자가용으로 바래주는 남자를 뜻한다. 어원은 이동수단으로서 자동차를 다리(아시)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 킹덤/501화 . . . . 1회 일치
[[몽념]]도 그 의미를 깨닫고 옳은 판단이라 생각하지만 대체 어떻게 왕전이 기상을 미리 알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시한다. [[왕분]]은 조용히 술을 마시며 대기 중. 하료초도 이때는 휴식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왕전이 생각보다 치밀하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이미 왕전에겐 전쟁이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 킹덤/507화 . . . . 1회 일치
* 창인은 신들린 것처럼 열미군을 맞추고 그 솜씨에 양단화는 물론 추천했던 이신 조차 넋을 놓고 지켜본다.
- 킹덤/513화 . . . . 1회 일치
그렇게 해서 진군이 도달한 곳은 업 공략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소도시 오다. 그저 따를 뿐이라 했던 왕분 조차 당황하고 지휘관들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입을 모으는 작전이었다.
- 킹덤/517화 . . . . 1회 일치
* 이목은 그래도 언젠가는 함락될 거라 지적하나 그는 "나는 어차피 몸이 약해 그때 쯤엔 죽었을 것"이라며 알바 아니라고 일관한다.
- 킹덤/520화 . . . . 1회 일치
* 기수가 움직인다. 그 소식은 곧 낙화대에도 도달했다. 장교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몽념은 "어쩔 수 없다"고 담백하게 반응한 뒤 출진을 결정한다. 압도적인 물량차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덤덤한 반응이다.
- 킹덤/525화 . . . . 1회 일치
* 새파란 젊은이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마남자의 낯빛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진짜 아수라장 속에선 번드르한 말따윈 의미가 없는 법. 그는 곧 "진짜 아수라장"을 소개한다. 그것은 조나라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이야기. 대 흉노족 최전선인 "안문"의 이야기다. 나라 안팎으로 명성을 떨치던 장수들이 차례로 파견되었다가, 한 달도 채우지 못해 시체가 되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반양도 접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기마민족 흉노와 전쟁으로 대륙 중앙의 난전은 비할 것도 없는 "사지"였다. 반양은 마남자가 그 안문에서 온 장수라고 짐작했다.
- 타바사 . . . . 1회 일치
[[SVC Chaos]]에서는 기본기와 대공기가 매우 부실하지만 공대공 최강의 비둘기, 잡기거리가 매우 길면서 엄청난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커맨드 잡기, 맞으면 머리가 깨질듯한 심리전을 걸 수 있는 재밍 고스트, 그리고 맞으면 죽었다고 복창해야하는 익시드까지 가지고 [[가일]]과 함께 레귤러 캐릭터 최강자를 차지하고 있다.
- 타오파이파이 . . . . 1회 일치
레드리본군 편에서 등장하며, [[블루 대령]]을 [[혀]]를 사용하여 살해하는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레드리본군의 의뢰를 받아 손오공과 대결하여 한 차례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카린탑]]에서 수행하고 내려온 손오공에게 패배. 복수를 노리고 [[사이보그]]가 되어 부활했으나 [[천진반]]에게 패배한다.
- 타타리 . . . . 1회 일치
노로이와 타타리의 차이점은, 타타리는 신불이나 요괴에 의한 처벌 등 재난 발생이 예견되고 불가피한 경우를 뜻하며, 노로이는 어떤 주체가 저주를 하는 행위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념이 겹치는 경우도 많다.
- 탁석산 . . . . 1회 일치
*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직업에 관한 고찰 02)》
- 태의경 . . . . 1회 일치
* [[KBS 2TV]] : 기차 타고 세계 여행
- 태학 . . . . 1회 일치
태학의 규모는 점차 발전, 확대되었는데, 태학이 생겨난 당초에는 학생 50여명에 불과했으나 후한 시대에는 무려 3만명에 달하게 됐으며, 학교 건물은 240채,1850실을 갖추게 되었다. 엄청난 수의 태학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려는 의식도 높아서, 후한말기에 태학은 [[청류파]]의 거점이 되어 외척과 환관 등 부패한 중앙 정치에 저항하는 역할을 했다.
- 텐프레 . . . . 1회 일치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영어에서의 템플릿(Templet, Templete)은 어떠한 판형을 의미하며, IT쪽에서는 좁게는 플로우차트에서 넓게보면 프로젝트 관리상까지 포함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관습 및 서식화된 표준을, 디자인에서는 일반화된 패턴과 믹스[* 글렌체크라든가 스프라이트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본의 속어로는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 토리코 . . . . 1회 일치
점프 전통의 장르 배틀물에 요리만화의 요소를 차용한 만화이다.
- 토리코/357화 . . . . 1회 일치
* 구루메 일식의 정체는 태양 에너지를 차단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
- 토리코/367화 . . . . 1회 일치
* 밀리언 노킹은 네오에게 조차도 통하는 강력한 노킹.
- 토리코/369화 . . . . 1회 일치
* 아이마루는 구르메 세포의 악마는 커녕 시작하자마자 리타이어--야무차?--
- 토리코/370화 . . . . 1회 일치
* 아이마루는 자신의 눈엔 "스스로의 식욕조차 잃고 조종당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고 한다.
- 토리코/371화 . . . . 1회 일치
* 자기는 누구이며 이 괴물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기를 되풀이하며 식욕에 휘둘려 왔다. 운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세상의 식재를 모두 먹어채운 뒤였다.
- 토리코/372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막바지에 달해가고 있는데도 코마츠의 친구 우메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쪽도 죠아조차도 하나 밖에 보지 못한 테이스티 로드를 수 십개를 본 식운의 소유자.
- 토리코/373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거기에도 세포의 능력에 따른 차이가 있어서, 네오는 바깥시간으로 단 1초가 그 안에서는 한 달에 달하는 백채널을 만들 수 있다.
- 토리코/378화 . . . . 1회 일치
* 브란치 조차 완전히 접근하지 못한다. 아이마루는 그런 장소에 뛰어들려고 한다.
- 토리코/380화 . . . . 1회 일치
* 네오가 완전체가 된 이후에 밤비나의 공격을 먹을 수 있게 된 걸로 보아, 원래 공격 에너지 자체를 먹는건 어느 정도 수준이 차이가 나야 가능한 걸로 보인다.
- 토리코/381화 . . . . 1회 일치
* 죠아는 미도라 조차도 구르메 식운 앞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고 쏘아붙인다.
- 토리코/387화 . . . . 1회 일치
* 그 백채널엔 막대한 식운과 영양분으로 가득차 있었고 거의 정지돼 있던 시간 속에서 약 500년이 흘러가버린다.
- 토리코/390화 . . . . 1회 일치
* 미도라의 분노는 멈출 기색이 없이 잘려진 두 팔로 무차별 공격을 꽂아넣는다.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1회 일치
>질서와 혼돈은 한끝 차이이다.
- 톤데모 . . . . 1회 일치
톤데모라는 말 자체는 '톤데모본' 에서 나왔으며, 1990년대 부터 점차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1회 일치
* 2편에서도 역시 묶인 채로 갇힌 곳에 물이 차올라서 익사.
- 판타스틱 포 . . . . 1회 일치
한편 판타스틱 포의 코스튬은 [[어벤저스]], [[저스티스 리그]] 등이 캐릭터마다 개성적인 것과 다르게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맞춰입은 듯한 디자인이다. 파란색 코스튬이 대표적이다.
- 페어리 테일/484화 . . . . 1회 일치
* 아군 모드의 카구라는 심각한 4차원 캐릭터.
- 페어리 테일/486화 . . . . 1회 일치
* 어차피 평범하게 싸웠으면 자신들의 승리였다고 하면서 "게임판이 부숴졌다고 해야 하나, 룰 밖의 인물에 의해서..."
- 페어리 테일/487화 . . . . 1회 일치
* 차회 제목이 미리 예고되었는데 '''계속 둘이서'''
- 페어리 테일/489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이 마법은 아크놀로기아 조차 모르는 미지의 마법. 아이린은 이것이 400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시대의 마법"이라 밝힌다.
- 페어리 테일/496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너덜너덜한 미라젠의 옷차림을 보고 파렴치하다며 눈도 뜨지 못한다.
- 페어리 테일/506화 . . . . 1회 일치
* 나츠는 땅 속에서 불기둥을 터뜨리는 기술로 그레이를 압박하나 그레이는 그것 조차 얼려버린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1회 일치
라케이드는 모든 생물은 욕망을 거스르지 못하고 그 아크놀로기아 조차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자신이야 말로 아크놀로기아에게 이길지도 모르는 "궁극의 마도사"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스팅은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잠에 빠져들려 한다.
- 페어리 테일/513화 . . . . 1회 일치
꽤나 무정한 말이지만, 어차피 아이린도 별 신경쓰지 않는다. 그녀는 딸이 줄곧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살아있든 어떻든 상관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났으니 퍽 기구한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 엘자는 단호하게 "누가 됐든 길드를 공격한다면 적"이라고 잘라 말한다. 여기에 아이린도 "나의 알바레스 제국에 이를 드러내는 자도 적일 뿐"이라 응수하며 모전녀전을 보여준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1회 일치
그러자 아이린이 베르세리온의 말을 끊으며 자신도 싸우게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인간도 드래곤에게 대적할 수는 없다. 그녀는 그 격차를 메꿀 획기적인 비술을 개발해냈다. 바로 드래곤의 힘을 사람에게 "인챈트"하는 것이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1회 일치
아이린이 위악하는 것이고 실제론 차마 자기 아이를 이용할 수 없어 실험이 실패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페어리 테일에는 막장부모가 워낙에 많이 나오고 그 중엔 진짜로 사악한 인물도 있었던 만큼 어떻게 될지 아직은 미지수.
- 페어리 테일/520화 . . . . 1회 일치
심상세계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나츠는 아버지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며 꿈이 끝나듯 심상세계를 떠난다.
- 페어리 테일/525화 . . . . 1회 일치
그리고 루시의 응원을 받은 나츠는 힘차게 대답하며 제레프를 때려눕힌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1회 일치
>태양과 달이 교차할 때, 열두 열쇠를 이용하여 그 문을 열어라.
- 페어리 테일/533화 . . . . 1회 일치
* 저 여섯 중 루시, 그레이, 해피는 멀지 않은 곳에, 비교적 안전하게 있다. 루시 일행은 공원에서 END의 서를 펼쳐보던 동안 제레프가 방출한 힘에 휩쓸려서 쓰러졌지만 부상은 없다.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다. 그런데 책에서 튀어나왔던 방대한 문자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해피가 그 점을 묻자 루시는 책이 덮이면서 책 속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레이가 어떻게 그렇게 된 거냐고 묻는자 루시가 나름대로 추론을 설명한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1회 일치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네.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1회 일치
방탄복을 숨길 수 있는 가방. 이 장비를 선택하고 시작하면 정장 차림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 가방을 이용해서 자신이 선택한 방탄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스텔스 하다가 들키면 쓰라고 있는 것 같지만 보통은 그냥 리스타트 한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베인 . . . . 1회 일치
>토이어 전시실로 간다. 이번에 노릴 것은 새로나온 고성능 스포츠카다. 그것들을 끌고 나오자. 차에 기스가 나면 안되니 조용히 행동하자.
- 페이데이 갱 . . . . 1회 일치
Payday Gang. 게임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와 [[페이데이 2]]에 등장하는 범죄 조직. 페이데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멤버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광대 가면을 쓰기 때문에 광대(Clown)라고도 불린다.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에서는 기껏해야 [[은행강도]], 금괴 운반차량 탈취 정도나 하는 4인조 범죄집단이었지만 페이데이 2에서는 [[FBI]] 건물을 습격하거나 러시아의 비밀 연구소를 레이드 뛰는 뭔가 대단한 조직이 되어버렸다.
- 폐비 윤씨 . . . . 1회 일치
[[조선 성종|성종]]과의 슬하에 세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장남은 이효신(李孝信), 차남은 조선 10대 왕 [[조선 연산군|연산군]]이고 셋째 아들은 조졸하였다. [[신숙주]]는 윤씨의 외당숙이며, [[조선 명종|명종]] 때의 권신 [[이량 (조선)|이량]]은 윤씨의 오빠 [[윤구 (조선 전기)|윤구]]의 손녀사위이다.
- 풍계리 . . . . 1회 일치
2006년 부터 2016년에 이르기까지 5차례에 걸쳐서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 퓨어킴 . . . . 1회 일치
[목차]
- 프로라 . . . . 1회 일치
[[나치]]가 집권하던 1936년 당시 "Kraft durch Freude"[* 즐거움을 통한 힘. 기존의 사민당계, 공산당계 노조를 흡수하고 그 자산을 강탈하여 설립한 일종의 어용노조인 '독일노동전선' 산하의 단체로서, 노동자 복지와 레저 분야를 주로 담당하였다.]이라는 기관에 의해 건설을 시작했다. --쓸데없이 커다란걸 좋아하는 나치답게-- 20,000명의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로 설계되었다고.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건설이 중단되었다. 이후 프로라는 군사 시설로 사용되었고, 전쟁 막바지에는 피난민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소련군과 동독군의 막사로 사용되었다.
- 프리덤 파이터즈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시절에 결성되었으며 [[나치]]를 비롯한 추축국에 대항했으며 현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스에서도 등장했다.
- 프리터 . . . . 1회 일치
[[버블 경제]] 시기에 나타난 말. 당시에는 임금이 높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유롭게 일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는 이상적인 패턴이라는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 경기가 악화되면서 비정규직으로 어렵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 피난 . . . . 1회 일치
* [[차내 피난생활]]
- 피서영 . . . . 1회 일치
피서영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막내 딸로 수필 '서영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필 '서영이'에는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외에도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 등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딸에 관한 글을 남겼다.
- 하숙 . . . . 1회 일치
주택의 빈 방을 빌려주고, 임차인이 집주인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 영어로는 '홈쉐어'라고도 한다.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은근히 '필리아' 류가 '포비아' 류보다 더 악질이다.(…)--페도, 네크로, 하이브리스토, 필리아 3대장-- 물론 '포비아'류 또한 '차별'을 조장한다는 부분에서 역시 질나쁠 때가 많지만.
- 하이큐/209화 . . . . 1회 일치
* 히나타는 조금 충격 받은 것 같았는데, 체육관으로 슬금슬금 나가더니 "포지션은 볼보이. 잘 부탁합니다."라고 힘차게 자기 소개한다.
- 하이큐/211화 . . . . 1회 일치
* 텐도는 히나타의 얼굴을 발견하고 "때려눕혀주겠다"며 장난을 거는데, 히나타는 어차피 시합에 나갈 수가 없다.
- 하이큐/216화 . . . . 1회 일치
* 연습에 박차를 가하는 히나타와 츠키시마.
- 하이큐/219화 . . . . 1회 일치
* 자신의 세트업이 실로 뛰어나기 때문에 "이것조차 치지 못하면 정말 못하는 거다", 즉 "너가 잘해서 친 것이 아니다"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것. 위에서 코치진이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 하이큐/221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좋은 점프"는 "바닥을 차는 소리"가 다르다고 말한다.
- 하이큐/222화 . . . . 1회 일치
* 다테 공고의 블록은 모든 면에서 전보다 성장해서 카라스노의 공격이 거의 차단된다.
- 하이큐/227화 . . . . 1회 일치
* 2회차 서브는 실패, 스코어는 19 대 17. 서브권은 다시 다테에게 넘어간다.
- 하이큐/228화 . . . . 1회 일치
* 이를 갈면서도 서브를 올리는 키노시타. 이번엔 니시노야가 리시브에 실패하는데 자체패널티로 손가락 푸쉬업 10회를 달리며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 도중부턴 타나카 류노스케까지 끼어서 연습은 더욱 열기를 띈다. 보고 있던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리시브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데 "공을 어떻게 죽일지 생각한다"는 살벌한 표현으로 돌아온다.
- 하이큐/232화 . . . . 1회 일치
* 처음엔 "매니저 일은 최전선에 서지 않는것"이란 안도감을 가졌지만 차츰 "이거야 말로 나의 최전선"이란 사명감으로 바뀐다.
- 하이큐/235화 . . . . 1회 일치
* 적응이 끝난 카게야마는 문자 그대로 "해방"된 듯 신들린 플레이로 점수차를 좁힌다.
- 하이큐/243화 . . . . 1회 일치
[[다테 공업 고교]]는 [[후타쿠지 켄지]]가 혀를 차고 후배들을 이끌고 오후 연습을 하러 간다.
- 하태웅(가수) . . . . 1회 일치
| 가족 = 3남중 차남
- 한가빈 . . . . 1회 일치
* 2017년 MBC [[밥상 차리는 남자]] OST Part 1 “[[인생연습]]”
- 한규식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9년]] 2차 2순위([[롯데 자이언츠]])
- 한동근 . . . . 1회 일치
* 2017년 제6회 《[[가온 차트 K-POP 어워드]]》 올해의 발견상
- 한병주 . . . . 1회 일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심각한 긴장감이 도사리던 [[시흥시|경기도 시흥]]을 떠나 피난하면서 [[수원시|경기도 수원]]에 간이 거주하던 중 끝내 경기도 수원에서 부인(夫人)과 장남(長男) 내외 일가, 차남(次男) 내외 일가가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72세로 병사하였다.
- 한서진 (1989년) . . . . 1회 일치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디 데이 (드라마)|디 데이]]》 ... 차인 역
- 한성호 . . . . 1회 일치
- 자신의 회사(구 F&C뮤직)에 소속되어 있는 FT아일랜드(이홍기), 씨엔블루(정용화)가 출연하고 있는 SBS 《[[미남이시네요]]》 7회에서 까메오로 출연했다. 유일하게 버즈에 이어서 아이돌밴드를 만든 FT아일랜드, 씨엔블루를 무서운 신인으로 만들어 각종 1위, 상위권 차트를 휩쓸었다.
- 한송이 (방송인) . . . . 1회 일치
'''한송이'''([[1985년]] [[11월 16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리포터]] 및 [[모델 (직업)|모델]]이다. 가수로서는 [[허니쉬]]라는 듀오로 활동했다. [[그리피스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취득했다. [[2007년]] TV엔젤스 시즌 2에서 [[김시향]]을 물리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 한수연(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한수진 (1969년) . . . . 1회 일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에 앵커전문요원 공채로 [[SBS]]에 입사하였다. 이후 [[1994년]] [[4월]]부터 [[2002년]] [[4월]]까지 8년간 [[SBS 8 뉴스]]를 진행하였는데, 이 진행 기간은 [[SBS]] 개국 이래 여성 앵커의 최장 진행 기록이기도 하였다. [[2005년]] [[3월 6일]]부터 [[2007년]] [[4월 22일]]까지 [[SBS TV]]의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을 진행하였다. [[2009년]] [[3월 7일]]부터 2009년 [[10월 25일]]까지는 주말 [[SBS 전망대]]를 [[2009년]] [[10월 26일]]부터 [[2011년]] [[4월 1일]]까지 [[한수진의 오늘]]을 진행했고 [[2010년]] [[11월 3일]]부터 [[2011년]] [[3월 9일]]까지 [[SBS 뉴스추적]]을 진행했고 [[2011년]] [[3월 22일]]부터 [[2013년]] [[2월 19일]]까지는 [[SBS 뉴스추적]]의 후작인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을 진행했고 [[2012년]] [[12월 17일]]부터 [[2016년]] [[8월 20일]]까지는 [[한수진의 시사 전망대]]를 진행하다가 국제부장으로 발령나서 중간하차 하였다.
- 한승택 . . . . 1회 일치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조지훈 (야구 선수)|조지훈]], 2라운드 [[김강래]]에 이어 [[한화 이글스]]의 3라운드(전체 2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스프링캠프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눈에 들어와 좋은 전력으로 평가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3628 김응용 감독의 이례적 칭찬…“한승택, 물건이네”] - 경향신문</ref>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출장하는 등 유망주로 꼽혔지만 시즌 중 왼쪽 무릎 인대 부분 파열상을 당해 1군과 2군을 오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65331 KIA, 이용규 보상선수로 한승택 지명 이유는?] - OSEN</ref> 시즌 중반 이후에는 [[엄태용]] 등에 밀려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고, 데뷔 첫 시즌 후 일찌감치 군 복무를 결정하여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28015 한화 한승택, '포수 양성학교' 경찰청 지원, 제 2의 최재훈 되나?] - 스포츠서울</ref> 2013 시즌 24경기에 출전해 1안타, 0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 한용덕 . . . . 1회 일치
[[2006년]] 시즌 중반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지연규]]의 1군 합류와 함께 1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41623& 한화, 우완 조성민 1군 올리고 최동원 코치 2군행] 《Osen》, 2006년 7월 24일 작성</ref> [[2006년]] 시즌 종료 후 열린 전지 훈련에서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법을 전수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249270 신인 삼총사, '신무기 장착으로 2년차 징크스 넘는다'] 《조이뉴스》, 2007년 2월 21일 작성</ref> [[2007년]] 시즌 중반 [[이상군]]이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됨에 따라 재활군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733318& 한화, 1군 투수코치에 이상군]《연합뉴스》, 2007년 8월 22일 작성</ref>
- 한인수(탤런트) . . . . 1회 일치
[목차]
- 한준희 . . . . 1회 일치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한지우(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한채이 . . . . 1회 일치
* [[2012년]] - 부산 국제모터쇼 기아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한태균 . . . . 1회 일치
|프로 입단 연도 =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4년]] 2차 3순위([[OB 베어스|두산 베어스]])
- 한행 . . . . 1회 일치
* 칸고리(寒垢離/かんごり) : 겨울에 차가운 물로 몸을 씻으며 신불(神佛)에게 기원을 바치는 수행을 뜻한다. 코리(垢離)는 냉수를 써서 [[목욕재개]]를 하는 것이며, 평소에 하는 것은 미즈고리(水垢離), 수행(水行)이라고 한다. 칸고리는 이를 한겨울에 하는 것이다.
- 한혁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3년]] 2차 4순위([[쌍방울 레이더스]])
- 한현민(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목차]
- 함신영 . . . . 1회 일치
* 《[[불굴의 차여사]]》 (MBC, 2015년) - 회계팀장 역
- 함화진 . . . . 1회 일치
함화진은 [[이왕직 아악부]]의 수장인 제2세 아악사장을 역임한 함재운의 장자로 태어나 이병문에게서 거문고를, [[명완벽]]에게서는 [[가야금]]을 전수받았다.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국악이론 부문에서도 일인자가 되었다. 10대 시절인 [[1900년]]에 가전악(假典樂)이 된 뒤 [[1901년]] 전악(典樂), [[1913년]] 아악수장, 그 뒤 아악사를 차례로 지냈다. [[1932년]]에는 아버지가 맡았던 자리인 제5세 아악사장에까지 올랐고, [[1939년]]에 은퇴했다.
- 허용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8순위 ([[LG 트윈스]])
- 허일상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4차 3라운드([[롯데 자이언츠]])
- 허종 (1939년) . . . . 1회 일치
[[1939년]] [[4월 29일]] [[경성부]]에서 [[허헌]]과 그의 계비 [[유덕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8년]] [[4월]] 아버지 [[허헌]]이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차 온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갈 때, 허헌, 유덕희내외, [[허정숙]], [[허근욱]] 등과 함께 월북하였다.
- 헥사밀리온 . . . . 1회 일치
중세 그리스의 성벽.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중부를 연결하는 비좁은 코린토스 지협에 세워진 성벽으로서, 헥사밀리온이란 '6마일의 성벽'이라는 뜻이다. 이 지협은 좁아지는 구간이므로 방어에 유리하여 성벽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최초로 건설한 것은 비잔티움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로 여겨진다. 그는 야만족에서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헥사밀리온을 건설했다. 헥사밀리온은 여러 차례 파괴, 수복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펠로폰네소스의 방어 거점이 되었다.
- 현기증 . . . . 1회 일치
보통 [[눈]]을 감으면 괜찮아지기도 하지만 질병 등으로 인한 현기증의 경우 눈을 감아도 별 차이가 없기도 하다.
- 현덕 . . . . 1회 일치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남]],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 현민 . . . . 1회 일치
[목차]
- 현소환 . . . . 1회 일치
[[연합통신]] 사장 재직 당시 [[YTN]] 설립에 관여했지만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1959년)|김현철]]씨가 YTN 초대 사장에 [[김우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을 앉히기 위해 현소환 당시 연합통신 사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현정건 . . . . 1회 일치
[[1925년]] 5월 9일에는 상하이에 있던 [[조소앙|조소앙(趙素昻)]]ㆍ여운형ㆍ윤자영ㆍ김상덕(金尙德)ㆍ최창식(崔昌植)ㆍ김규면(金圭冕)ㆍ손두환(孫斗煥) 등 약 30명의 조선인 동지와 함께 서문 밖 체육장에서 배일(排日) 중국인 단체의 집합에 참가하였고 이곳에서 "중국과 한국이 합동하여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의 『상하이주간(上海週刊)』5월 9일자 특별호에 실린 사설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ref>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 의해 7월 1일에 일본 외무성의 외무차관에 보고되었다. 국회도서관(國會圖書館)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韓國民族運動史料)』(중국편), 1976년, 567~568쪽.</ref> 9월 8일에는 상하이교민단의 의사원(議事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 현제명 . . . . 1회 일치
[목차]
- 호농 . . . . 1회 일치
이들은 일본의 무라(농촌 마을) 사회에서 지도자 격인 촌역인(村役人, 무라야쿠닌)을 맡는 경우가 많았으며, 후기 에도 시대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메이지 시대에는 점차 호농형 생산이 줄어들고, 직접 농업이나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는 [[지주]] 계급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 호준석 . . . . 1회 일치
* [[2008년]] ~ [[2009년]] : [[YTN]] 보도국 앵커팀 차장
- 호환성 . . . . 1회 일치
[[목차]]
- 홍기(영부인) . . . . 1회 일치
[목차]
- 홍명찬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6년]] 4차 2라운드 12순위([[SK 와이번스]])
- 홍석형 . . . . 1회 일치
1936년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후 금속공학 학위를 받았다. 성진제강소 기술부기사장, 금속공업부 제1부부장, 김책제철련합기업소 기사장, 함북도당 제2비서 겸 김책제철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국가계획위원장([[1993년]]~[[1998년]]<ref name="ab" />), 함북도당 책임비서([[2001년]]~[[2010년]]<ref name="ab" />), 당중앙위원회 부장을 지냈다.<ref name="tongilnews">{{웹 인용|제목= 당대표자회, 40년대 해방전후 차세대 기수 전면 등장 |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972 |저자=정명진 |출판사=통일뉴스 |날짜=2010년 9월 29일 |확인날짜=2011년 10월 4일}}</ref> 그리고 2010년 9월부터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계획재정부장으로 있다.
- 홍승규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1차 5순위([[삼성 라이온즈]])
- 홍아름 . . . . 1회 일치
* 2014년 [[MBN]] 특별기획 드라마 《[[천국의 눈물]]》 ... 윤차영 역
- 홍정우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2차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홍정욱 . . . . 1회 일치
홍정욱은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http://www.jungheesohn.com/ 손정희](1974년~)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인인 손명원은 [[현대미포조선]], [[쌍용자동차]] 사장을 지낸 전문 경영인으로 정치인 [[정몽준]]의 손윗 동서이다. 처의 증조부는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제2대 의장을 역임한 [[손정도]] 목사이고, 처의 친할아버지는 [[대한민국 해군]] 창군 주역이자 전 국방부 장관인 [[손원일]] 제독이다. 처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前 외무부 장관이다.
- 홍준표(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목차]
- 홍지운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5라운드]]([[NC 다이노스]])
- 홍지호 . . . . 1회 일치
** 차녀: 홍세라 (2005년 ~ )
- 화이트워싱 . . . . 1회 일치
* 유색인종 배우의 역할을 조연으로 한정시켜, 유색인종에 대하여 사실상 직업차별이 된다.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1회 일치
화장실의 하나코 씨란, 학교의 화장실에서 '특정한 행동'을 했을 경우, 하나코 씨라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지역, 학교마다 차이가 있다.
- 황경태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 황동주(배우) . . . . 1회 일치
[목차]
- 황부인전 . . . . 1회 일치
제갈량은 운명에 따라 길에서 황소저가 타고 있는 교자를 만나고, 청혼을 하여 성례하게 된다. 하지만 혼례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갈량은 첫날밤에 신부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도망가려 하는데, 황부인이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서 옷이 찢어진다. 황부인이 옷을 꿰매줄 테니 꿰맨 옷을 입고 가라고 하여 옷을 꿰매게 된다. 바느질 하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바느질 한 옷이 [[천의무봉]]하여 감탄한다. 또 요기나 하고 가라고 해서 밥을 먹게 되는데, 밥을 만드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밥을 차린 것을 보니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라 감탄한다.
- 황성관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 황옥 (1885년) . . . . 1회 일치
의열단은 황옥, 김시현 등이 밀반입시킨 무기류를 통해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 등을 동시에 테러하는 제2차 국내 거사를 준비했지만 김재진이 밀고하여 실패했다. 김재진은 재판 이후 흔적이 증발하는데, [[유석현 (1900년)|유석현]]은 1983년 [[중앙일보]]에 기고한 회고록에서 김재진은 가명이고 [[권태일]]이 본명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원봉, [[김지섭]] 등 소수만 탈출했고 황옥, 김시현, [[김진기]], [[조동근]], [[홍종우]], [[홍종무]], 유석현 등은 1923년 3월 15일에 체포당한다.
- 황찬호 . . . . 1회 일치
* 《[[그남자 오수]]》 (OCN, 2018년) - 포장마차 건달 역
- 후예 . . . . 1회 일치
[[목차]]
- 후지와라 섭관가 . . . . 1회 일치
본래 이 무렵까지 황족이 아닌 신하, 후지와라 씨가 섭정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후지와라 씨는 천황가와의 혼인으로 인척관계가 강해졌고, 응천문의 변(応天門の変)이라는 사건을 처리한 것을 계기로, 반씨(伴氏), 기씨(紀氏) 등의 라이벌 씨족을 배척하여 섭정이 될 수 있었다. 이 때부터는 오히려 후지와라 가문이 섭정을 차지하는 것이 관례화 되었다.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범인과 피해자는 똑같은 [[예비교]]에서 국공립대 문과 코스를 배우던 동급생이었다. 사건 시간은 같은 국립대, 같은 학부의 2차 시험을 마친 직후였다.
- 휴전 . . . . 1회 일치
[[목차]]
- 히나마츠리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여자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날. 양력 3월 3일에 실시한다. 과거에는 음력 3월 3일에 실시했다. 지방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활동 내용은 범죄와의 싸움이나 재해현장에서 구조 활동 등도 포함되며 심지어 요리 분야에도 히어로가 있는 듯 하다. 이러다보니 활동양상에 따라 히어로들의 전문 분야도 달라져서 빌런 진압 전문, 재해 구조 전문 등 차이가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로부터 각 지구마다 일괄적으로 요청이 오고, 체포 협력이나 인명 구조 등의 공헌을 신고, 전문 기관을 거쳐 조사하고 나서 등급에 해당되는 돈을 받는다.
- 히치하이킹 . . . . 1회 일치
여행하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아무 자동차에게 태워달라고 부탁하여 목적지, 혹은 중간 지점까지 여행을 하는 것을 뜻한다.
- 히토모도키 . . . . 1회 일치
[[일본]]의 [[넷 우익]]이 [[한국인]]을 '쵸우센히토모도키'라고 불렀던 [[차별용어]]에서 유래한다.
11531의 페이지중에 2320개가 발견되었습니다 (0개의 페이지가 검색됨)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