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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 . . . 225회 일치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차녀<ref group="주">박정희의 전처소생 [[박재옥]]이 있으므로 박근혜는 차녀가 된다.</ref>이자 [[육영수]]의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나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청와대]]에서 자랐다. 1970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에 졸업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모친 사후]] 귀국하여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사실상 대통령 배우자 직무를 대행하였다. 아버지가 서거한 후에는 청와대에서 나와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ccourt.go.kr/cckhome/kor/event/adjuList.do|제목=선고목록 및 결정문 - 헌법재판소|확인날짜=2018-12-1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429073|제목=[영상]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3-10}}</ref> 탄핵 후에는 곧바로 3월 21일 검찰에 소환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ref>{{뉴스 인용 |title=[박근혜 검찰 출석] 최순실 ‘곰탕’·이재용 ‘자장면’…박근혜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 |url=http://news.donga.com/3/all/20170321/83428508/2 |work=동아일보 |date=2017-03-21 |accessdate=2017-05-18}}</ref> 3월 31일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최순실 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구속…"혐의소명·증거인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30/0200000000AKR20170330171251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3-31}}</ref>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17년 10월 16일 6개월인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으나 검사가 앞선 구속영장에 적시하지 않은 뇌물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기간이 최대 6개월 연장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 측은 반발하였고 모든 변호인단이 사임하였다.<ref>[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10171022138598395_1
박근혜는 대기업 관련 범죄·[[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혐의 18개 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정원]] 특활비 · 공천개입 등 혐의 3개에 대해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 전자는 2심, 후자는 1심 판결이 나온 상태이다. 2018년 4월 6일 18개 혐의에 대한 1심에서는 혐의 16개에서 일부유죄 및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으며,<ref name=":0" />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 징역 25년 및 벌금 200억 원으로 형량이 늘어났다.<ref name=":2" /> 2018년 7월 20일 혐의 3개에 대한 1심에서는 2개가 인정되어 징역 8년 및 추징금 33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이다.<ref name=":1">{{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20/0200000000AKR20180720096900004.HTML|제목=박근혜 '국정원 특활비·공천개입' 1심 징역 8년…33억 추징(2보)|성=송진원|이름=|날짜=2018-07-20|뉴스=연합뉴스|출판사=|언어=ko-KR}}</ref> 2개 재판을 합치면 혐의가 총 21개, 형벌은 총 33년형과 벌금 200억 원과 추징금 33억 원이다.
아버지 [[박정희]]는 [[1917년]]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어머니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재의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봉직한 경력이 있었다. 외조부 육종관은 딸이 과거 혼인 경력이 의심스럽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박정희와의 결혼 결심을 굳힌 육영수가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박정희가 있는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하였다.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순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남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영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영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박근혜가 태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961년 5월 15일 오후 10시 경,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던 육군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에게 부인 육영수가 "근혜 숙제 좀 봐주세요."라며 가족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면담을 에둘러 요구하였다. 이에 박 소장은 잠시 방에 들러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생 박근혜와 곁에서 잠든 장모 [[이경령]]과 3녀 근영, 장남 지만을 훑어본 뒤에 집을 나선다. 이 때 "무슨 숙제입니까?"라는 거사 동지 [[장태화]]의 물음에 박정희는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라고 답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버지의 기척은 알았으나 자신이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후술하였다.
{{인용문|"그날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저를 한번 보고 나가신 것은 기억나는데요.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요. 어머니께서는 집안을 정리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날은 집안이 평소와 다르게 긴장되어 있었으나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어머니께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변을 정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후 박근혜는 의전상의 [[대한민국 대통령의 배우자|대통령 배우자]] 권한대행으로서 아버지 [[박정희]]의 공식 행사와 해외 순방 등을 수행하였고 [[육영수 저격 사건]] 이듬해에 만들어진 [[육영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가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가 살해당하자 며칠 뒤 [[청와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특별시]] [[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박정희]] 피격 당시 슬퍼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최태민도 육영재단에 합류하였다. 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은 함께 [[1989년]] 육영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1년 뒤인 [[1990년]] [[9월]] 근화보는 1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고, 박근혜와 여동생인 [[박근영]]과의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육영수 숭모회는 다툼의 원인은 최태민이 박근혜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육영재단의 운영을 전횡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육영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영재단 운영을 좌우해온 최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박근혜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 퇴진 기자 회견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인용문|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 목사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이다.<ref>{{뉴스 인용|제목='반격의 세월'에 최태민이 있었다.|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0711|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7-07-05}}</ref>}}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이 다수(133석/273석)이던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제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소추]]하였다. 박근혜도 당론에 따라 탄핵안 발의와 가결에 참여하였다. 비슷한 성향의 언론과 학계의 지원이 있었으나 극심한 역풍이 불면서 대다수 국민의 반발을 샀고 한나라당은 최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제16대 대선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SK]]그룹 등으로부터 수수했다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유례없이 급락해 [[최병렬 (1938년)|최병렬]] 대표마저 사퇴하게 된다.
[[6월 13일]] 오전 신라호텔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학술 회의에 다녀오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대표와 악수 |url =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Photo/YIBW_showArticlePhotoPopup.aspx?contents_id=PYH20050613020400999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백승렬 |쪽 = |날짜 = 2005-06-13 |확인날짜 = 2009-07-10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2105546/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Photo/YIBW_showArticlePhotoPopup.aspx?contents_id=PYH20050613020400999 |보존날짜 = 2013-10-02 |깨진링크 = 예 }}</ref>
[[2005년]] 12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여 처리하였다. 당시 대표인 박근혜는 곧바로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조차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한나라당이 무슨 장외 투쟁이냐"라는 비아냥도 있었고, 국회 등원에 대한 여론의 압박도 심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는 장외 투쟁을 계속했고, 결국 여야는 한나라당의 장외 투쟁 3개월 만에 사학법 재개정 논의에 합의하게 된다. 박근혜 대표는 주변의 반대와 원외 투쟁에 소극적인 한나라당의 체질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재개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었다. 2004년 17대 총선의 '한나라당 천막 당사' 역시 "쇼 아니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상징물로 기억됐다.<ref>[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27709&year=2010 MB·박근혜 '세종시' 문제 왜 타협 못할까]{{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27709&year=2010 }}</ref>
[[2006년]] 5월 20일 지방 선거 유세 중 [[지충호]]가 휘두른 문구용 칼에 피습당하여 안면에 깊은 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당원들에게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여 오히려 당 안팎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지충호]]는 이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2006년]] [[5월 20일]] 박근혜가 [[경기도]] [[군포]]와 [[인천]] 지원 유세를 마치고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에 참가하던 중 19시 20분쯤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방선거 지원유세를 벌이다 지충호에게 피습당해 얼굴을 크게 다친 사건이다. 지충호가 휘두른 흉기는 10 cm 가량의 커터칼이다. 당시 지충호는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신촌까지 온 뒤 범행을 위해 4시간을 기다린 후 오세훈 서울시장 지원연설을 위해 단상에 박근혜가 오르는 찰나 지충호는 자신이 가진 커터칼로 11센티미터의 길이에 걸쳐 박근혜의 턱을 그었다.<ref>이상윤, 《안철수 등의 한판승부 - 박근혜 벗기기》, 높은새, 2011, p.19-24</ref> 당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박성효 후보는 열린우리당의 염홍철 후보에게 지지도에서 뒤지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직후 박근혜가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어본 것이 알려지면서 판세가 역전되었고 이후 지방 선거에서 박성효 후보는 염홍철 후보에게 근소하게 승리하였다.
2004년부터 한나라당의 위기와 재도약을 이끈 박근혜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예비후보 중 하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당권과 대권의 분리 방침에 따라 2007년 대선을 1년 남긴 [[2006년]] [[6월 16일]]에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 레이스에 돌입하였다. 박근혜의 가장 큰 상대는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으며, 그 과정에서 [[청계천]] 복원, 버스 노선 개편 등으로 인기를 끈 [[이명박]]이었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박근혜는 이명박의 부패 비리 의혹을 집중 제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BBK 주가 조작 사건]] 등이 처음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박근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나와 '줄푸세'라는 정책을 내세웠다. '세금은 '''줄'''이고, 각종 규제는 '''풀'''고, 법기강은 '''세'''운다'는 뜻으로 그의 대통령후보 경선시 주요 정책구호였다. 이 정책은 그녀의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정책이라는 평가가 있다. 자유주의(liberalism)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신분제 등으로부터 억압받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던 '고전적 자유주의자(liberalist)'라기보다는,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하고 각종 규제로부터 억압받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자(neo-liberalist)'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있다.<ref>[http://news.mt.co.kr/view/mtview.php?no=2007052913423936363&type=2 박근혜 바꿔야 산다.]<<[[머니투데이]]>> 2007-05-29 작성</ref> 이는 이후 제17대 이명박정부의 정책에도 많이 반영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3280135 李 “김정일은 만만치않은 터프가이” 朴 “줄푸세 운동해야”] <<[[동아일보]]>> 2007-03-28 작성</ref>
[[열린우리당]] [[윤호중]]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돈이 9억이 아니라 6억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을 빼고 하나도 새롭게 검증된 것이 없는 청문회였다"면서 "국민이 궁금해 하는 후보의 자질의혹을 검증하기보다 면죄부와 해명 기회만을 준 시간이었고 후보자의 맷집만 훈련시킨 청문회였다고 평가한다"라고 주장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범여권 "면죄부 청문회" 비난 |url = http://www.fnnews.com/view?ra=Sent0801m_View&corp=fnnews&arcid=070720062807&cDateYear=2007&cDateMonth=07&cDateDay=20 |출판사 = 파이낸셜뉴스 |저자 = 최승철 |쪽 = |날짜 = 2007-07-20 |확인날짜 = 2013-01-24}}</ref>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 김형탁 대변인은 "정치쇼에 불과하다"면서 "하나마나한 청문회, 시간낭비, 전파낭비일 뿐"이라고 깎아 내렸다.
폭로전은 경선 때부터 시작되었다. 전당 대회를 3일 앞둔 2007년 8월 17일, 박근혜 경선후보는 "거짓으로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할 수 있습니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056525|제목 = 되돌아 본 대선|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12-20|확인날짜 = 2013-03-23}}</ref> 이명박 후보측은 도곡동 땅에 대한 검찰 발표가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체 조사와 각 언론사 조사를 종합할 때 10% 이상 차이로 낙승할 거라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제목 = |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08-17|확인날짜 = 2013-03-2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927121334/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보존날짜 = 2013-09-27|깨진링크 = 예}}</ref> 이와 관련해 진수희 대변인은 "1위 후보가 압승을 해야 경선 후유증이 최소화 된다라는 생각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우리가 15% 격차로 압승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 그러나 박근혜 후보측은 자체 전수 조사 결과 근소하게나마 앞서기 시작했다면서 각종 의혹으로 이 후보에 불안감을 느낀 당심이 옮겨온다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 당시 세대별 지지율을 보자면, 이명박 후보는 3,40대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은 반면,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ref name="imnews.imbc.com"/>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18회 일치
[[모건(원피스)|모건]] 대령이 기지에 붙잡아둔 [[롤로노아 조로|조로]]를 만난다. 조로와 힘을 합쳐 모건을 쓰러뜨리는데, 기지의 해군들은 모건의 폭정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좋지만 해적은 용납할 수 없다며 어서 떠나 달라고 한다. 이 때, [[해군(원피스)|해군]]이 꿈인 [[코비(원피스)|코비]]와 억지로 싸운 뒤, 헤어진다.
골 D. 로저 처형대가 있는 로그 타운에서는 버기, 알비다와 재회하지만, 함정에 빠져 단두대에 붙잡힌다. 이때 참수당할 위기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담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 번개를 맞아도 멀쩡한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별 언급없이 지나간다. 그리고 앞으로 루피 일행을 추적하게 되는 [[스모커(원피스)|스모커]], [[타시기]]와 만나게 된다.
위대한 항로에 진입하자마자 리버스 마운틴 등대지기 [[크로커스(원피스)|크로커스]]와 거대한 고래 [[라분(원피스)|라분]]과 마주친다. 돌아오지 않는 동료를 만나기 위해 레드라인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하는 라분의 이마에 루피 표 졸리로저를 그려넣고 그것을 징표로 재회를 약속한다. 라분의 뱃속에서 만난 Mr.9와 미스 웬스데이를 데리고 위스키 피크에 간다.
현상금 사냥꾼들의 마을이었던 위스키 피크에서 Mr.5를 식후 운동삼아 때려눕힌다. [[알라바스타 왕국]]의 왕녀 [[네펠타리 비비]]를 동료로 삼고 [[바로크 워크스]]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알라바스타 왕국으로 향한다. 도중에 [[드럼섬]]에 들러서 [[와포루]]를 물리치고 인간 순록 의사(…) [[토니토니 쵸파]]를 동료로 삼는다.
자야에서 [[하늘섬]]에 흥미를 느끼고 [몽블랑 크리켓]의 도움을 받아 [[스카이피아]]로 간다. 스카이피아 신으로 군림하는 [[갓 에넬]]과 대결하게 되며, [[번개번개 열매]]의 능력을 고무고무 열매의 특성으로 씹어버린다. 그리고 4백년 전 카르가라와 [[몽블랑 노랜드]]의 약속의 징표인 황금종을 울린다. 마지막에 스카이피아의 거대한 뱀 노라의 뱃속에서 보물을 들고 튄다.
롱 링 롱 랜드에서 폭시와 결전한 이후 해군 대장 [[쿠잔]]과 마주쳐 위험에 처하지만 간신히 도망친다. [[워터 세븐]]에서 배를 수리하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로 인해 우솝과 결투한다. 몇 가지 해프닝에 휘말리고, 로빈을 끌고 간 [[CP9]]을 [[에니에스 로비]]까지 추격한 끝에 로빈을 되찾고, 새로운 배인 사우전드 써니 호를 제작 후 프랑키를 조선공으로써 동료로 들이고 어인섬으로 향한다.
어인섬으로 향하던 중 루피는 유령선에 탄 해골 [[브룩(원피스)|브룩]]을 만나고, 브룩은 [[스릴러 바크]]로 자기가 빼앗긴 그림자를 찾으러 떠난다. 이후 루피는 [[겟코 모리아]]를 만나 스릴러 바크의 정체를 알게 되고, 루피는 모리아와 싸우다 그림자를 빼앗기지만, 그림자를 되찾기 위한 장절한 사투 끝에 승리한다. 겟코 모리아가 루피에게 패배하자 그림자를 잃었던 모두에게 그림자가 돌아온다. 이후 나타난 [[바솔로뮤 쿠마]]때문에 스릴러 바크는 완전히 박살난다. 브룩을 음악가로써 동료로 받는다.
이후 레드라인에 도착하지만 어인섬에 가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던 중, 우연히 만난 인어 [[케이미]]와 아론 파크에서 싸웠던 문어 어인 [[하찌(원피스)|하찌]]의 도움으로 [[샤본디 제도]]에서 배에 코팅을 한 후 잠수해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하지만 케이미가 납치당해 경매장에서 팔릴 위기에 처하고, 하찌가 도와주려다 [[천룡인]]의 총에 맞자 루피는 가차없이 천룡인을 두들겨 팬다.[* 천룡인을 때린다는 것은 작중에서는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평가된다. 행콕도 처음 루피가 천룡인을 때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런 엄청난 바보가 또 있을줄은 몰랐다'고 평할 정도. ] 그 때문에 [[볼사리노]], [[센토마루]], [[파시피스타]]가 출동하고, 쿠마때문에 루피는 동료들과 뿔뿔이 흩어진다.
이후 금남의 섬 [[아마존 릴리]]에 떨어진 루피는 형 [[포트거스 D. 에이스|에이스]]가 임펠 다운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보아 행콕]]의 도움으로 임펠 다운에 잠입한다. 그리고 에이스가 갇혀있는 LEVEL 6로 가던 중 LEVEL 1에서 [[버기(원피스)|버기]], LEVEL 2에서 [[Mr.3]], LEVEL 3에서 [[Mr.2 봉쿠레]]와 합류해 임펠 다운을 휘젓는다. 그러다 LEVEL 4에서 만난 임펠 다운의 형무소장인 [[마젤란(원피스)|마젤란]]의 [[독독 열매]]의 능력 앞에 패배, 맹독에 중독된 채 LEVEL 5로 이송되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 때 [[Mr.2 봉쿠레]]는 '친구를 죽게 할 순 없다'며 LEVEL 5까지 내려와 감방에서 그를 꺼내주고 기적을 일으킨다는 전설의 오카마를 찾아 루피를 해독시켜주려 돌아다니다가 계속되는 늑대들의 습격으로 결국 쓰러진다. 이 때 루피가 무의식적으로 패왕색 패기를 발동. 늑대들을 쫓아낸 뒤 쓰러진다.
이런 무모함이 흰 수염의 마음에는 제법 들었고 또한 에이스를 구출하려는 공동의 목적이 있기에 에이스 처형을 앞당기려는 해군의 계획을 흰 수염에게 말해주기도 한다. 어쨌든 흰 수염 해적단의 엄호와 함께 적진으로 돌진해 나간다. 루피가 전장에 나서자 [[센고쿠(원피스)|센고쿠]]는 루피가 혁명가 드래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그도 위험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은 이어서 전세계에 생중계된다.
사형대 바로 앞까지 도착은 했지만, 해군 3대장이 버티고 있었고 [[쿠잔]]에게 죽을 뻔하다가 [[마르코(원피스)|마르코]]의 도움으로 또 목숨을 건졌으나, 직후에 탈진한다. 독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제대로 회복할 틈도 없이 텐션 호르몬을 맞고 임펠 다운을 뚫고 올라와 끝없이 전투를 했기에 당연한 일. 이반코프는 이제 더는 무리라며 뒤는 맡기고 쉬라고 하지만, 루피는 오히려 이반코프에게 '''"지금 에이스를 구하지 못하면 나중에라도 죽고 싶어질 거야"'''란 말로 우겨대 텐션 호르몬을 한 번 더 받아 강제로 회복하고, 포효하며 전장으로 돌격한다.
에이스를 구출해내고, 함께 놀라운 호흡으로 해군을 쓰러뜨리며 퇴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망 도중 추격해 온 [[사카즈키]]의 도발하자, 에이스는 방향을 돌려 사카즈키와 싸우기 시작한다. 이 때 루피가 흘린 비브르 카드를 주우려 할 때 그 틈을 노린 아카이누의 공격을 에이스가 대신 맞아 죽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red 에이스 구출실패.}}}'''에이스의 사망을 목격한 루피는 정신을 놔버린다.[* 여담으로 PS3으로 나온 원피스 해적무쌍에선 이 장면에서 루피가 패기를 사용, 사카즈키를 두들겨 패버린 후 기절한 것으로 나왔다.왜?] 에이스가 죽자 전황은 해군전체의 타겟이 된 루피를 흰 수염 해적단과 임펠 다운의 탈주자들이 어찌해서든 지키는 형태로 바뀌었고, [[징베]]가 루피를 업고 탈출을 시작한다.
약 2주일 뒤, 로의 치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몸은 아직도 만신창이 상태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끼던 형의 죽음을 보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탓인지 에이스를 잃은 충격을 받아들이기가 벅찬 듯 수시로 병상을 뛰쳐나가 에이스가 죽은 순간의 기억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여인섬의 숲 속에서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징베가 뒤따라와 루피를 제압하고, 에이스는 죽었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루피는 이미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흐느낀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반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상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태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남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반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상인 몸을 반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샹크스에게 밀짚모자를 받고 7살이 된 무렵, 가프가 [[컬리 다단]]에게 맡기러 갔는데 이때 에이스와 첫대면했다. 처음엔 에이스가 다짜고짜 루피 뺨에 침을 뱉는 등, 험악한 관계였다.
그뒤 '''3개월 동안'''이나 에이스와 친구하자며 포기하지 않고 뒤쫓아 다녔었다. 에이스 역시 루피가 따라오지 못하게 방해했으나 루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에이스가 당시 그레이 터미널에서 살고 있던 [[사보(원피스)|사보]]를 만났을 때 해적선을 살 돈[* 정확히는 한 나무 위에 몰래 보관해두고 있었다.]을 모은 장소를 루피에게 들키는 바람에 사보와 함께 루피를 죽이려 했으나 사람 죽이는 것을 몰라서 그냥 나무 밑에만 묶어뒀다.
에이스가 돈을 훔쳤던 해적단의 일원인 폴쉐미가 찾아와 '그 녀석이 오늘 우리 돈을 훔쳤는데 어디에 숨겼는지 아냐.'라고 했을 적에 거짓말로 '몰라~'라고 대답했으나 거짓말 못하는 게 다 티났다(…). 그래서 그 해적단에 의해서 어딘가로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거의 하루종일 폴쉐미에게 처참하게 가시가 달린 글러브로 개패듯이 얻어 터지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에이스와 사보에 대한 얘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았고, 결국 에이스와 사보가 직접 구하러 와서 폴쉐미를 관광태우고(…) 서로 친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세정(구구단) . . . . 117회 일치
||<#66AADD> '''{{{#white 학력}}}''' ||<#ffffff><(> 안양부흥초등학교 (졸업)[br]호계중학교 (졸업)[br][[인덕원고등학교]][* 인덕원고 재학 시절에 연극부 활동을 했다. 제22회 경기도 청소년 연극제에 '브리튼을 구출하라'란 작품으로 출전해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던 적이 있으며 2013년에 청소년 뮤지컬단 오디션에 합격한 경력 등이 있다. 연기학원은 이앤티트레이닝센터를 다녔다.] (졸업)[br][[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재학)[* [[I.O.I]] 앨범 자필 프로필에 따르면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서옵SHOW]] 11회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연예계 활동 때문에 학교를 계속 다닐지 자퇴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입시를 볼까 말까 고민하던 때, 당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연습생]] [[나영(구구단)|김나영]]이 세정을 상대로 대학 입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대학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 끝에 입시를 준비해서 합격했다고 구구단 눕방 중에 밝히기도 했다. [[민서]]와 동기다.] ||
||<#66AADD> '''{{{#white 별명}}}''' ||<#ffffff><(> 갓세정, 퀸세정, 킹세정, 원더세정, 빛세정, 세동[*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들이 자주 사용하는 별명이다.], 비데세정[* 비데에 '세정'이라고 써있어서 어릴 때부터 별명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비데를 보며 [[청하(가수)|청하]]에게 여기 자기 이름 있다고 말을 했고 그후로 청하는 비데를 볼 때마다 세정 생각이 난다고], [[치코리타|세코리타]][* [[파일:세코리타1.jpg|width=370]]][* 이 밖에도 센세, 천의얼굴, 슬픔이, 복숭아소녀, 홈쇼핑요정, 재능 치트키, 최종병기, 김크린, 생방요정, 우래기, 야세, 청정소녀, 적토마, [[세종]] 등이 있다. 센세의 경우는 [[김소혜(1999)|김소혜]]와의 관계에 한정된 별명이다.] ||
'''젤리피쉬와 구구단의 에이스'''
[[I.O.I|아이오아이]]의 미니 1집 활동을 마치고 나서 [[2016년]] [[6월 28일]] 원래 소속사인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으로 런칭하는 [[걸그룹]]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멤버로 재[[데뷔]], 미니 1집 <Act.1 The Little Mermaid> 활동 후 [[10월 17일]], [[I.O.I|아이오아이]]로 돌아가 미니 2집 <miss me?>의 [[타이틀 곡]] 너무너무너무로 '''첫 음원 1위, [[음악 방송]] 1위'''를 달성하고 다음 달 발표한 [[솔로]]곡인 '''꽃길'''로 다시 한 번 각종 음원 사이트와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며 '''[[데뷔]]한 해에 그룹과 [[솔로]]로 1위를 차지한 유일무이한 [[아이돌]]'''이 되었다.
이후 [[2017년]] 1월 [[I.O.I|]]로써의 마지막 활동인 [[타임슬립 - I.O.I]]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고 현재는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명실공히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에이스[* [[어서옵SHOW]], 붐샤카라카, 걸그룹대첩 - 가문의 영광,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해피투게더 예능행, 1 대 100, [[배틀 트립]](옹동투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말하는대로, 한끼줍쇼, 겟잇뷰티, SNL, 런닝맨, 꽃놀이패, 정글의 법칙, 주먹 쥐고 뱃고동, [[학교 2017]]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방송활동과 각종 CF 출연을 보면, 그냥 에이스가 아니라 '[[강병철|세정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 / [[최동원|네 알았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급의 특급 에이스임을 알 수 있다. [[프로듀스 101]] 당시 춤과 노래가 부족했던 [[김소혜(1999)|김소혜]]를 가르쳐주고 처음으로 나선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촬영에서는 [[H.U.B]]에서 혼자 참석한 [[루이(H.U.B)|와타나베 루이]]를 챙겨 주는가 하면 [[한끼줍쇼]] 첫 게스트로 출연해서 [[강호동]]과 [[이경규]]로부터 고정을 하자는 극찬까지 들었으며, 건장한 남자 연예인들도 힘들어 하는 [[주먹쥐고 뱃고동]] 촬영을 임자도 편에 이어 여수편까지, 그것도 상상 이상의 갖은 노역을 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훈훈한 멘트까지 덧붙이며 [[김병만]]에게 인정받는 모습에서 인성과 근성, 체력과 실력이 동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히 걸그룹 에이스계의 [[최동원]]. 게다가 후술하는 근육 덕분인지 첫 출전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육상에서 메달권까지 근접했다!]로 각종 방송에 출연 중이다.
무려 '''3000:1'''이나 되는 경쟁률을 뚫고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합격했다. 2년 3개월간의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프로듀스 101]]을 통해 최종 11인에 선정되어 프로젝트 [[걸그룹]] [[I.O.I|아이오아이]]로 데뷔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이앤티트레이닝센터라는 연기학원에도 다녔었다.[[https://cafe.naver.com/talent7942/253|학원 카페에 올라온 사진(가입을 해야하지만 네이버에 김세정 연기학원이라고 치면 그냥 볼수있다.)]] [[http://www.2ntstar.com/bbs/board.php?bo_table=05_03&wr_id=8|학원 홈페이지의 데뷔 축하 포스터]] 고등학생때 연극부 활동을 한것과 학원을 다닌 덕분인지 학교 2017에서 첫 주연을 맡은것 치고는 무난하게 연기를 해냈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과거 영상 역시 이 학원을 다닐때 찍은것으로 보인다.
[[2012년]] [[SBS]] [[K팝 스타 시즌2]]에 참가했다.[* [[악동뮤지션]], [[신지훈]], [[방예담]], [[다원(우주소녀)|남다원]], [[이천원]], [[전민주]]가 나선 그 시즌이다.] 본선 2라운드 랭킹 오디션에서 개성 보컬조로 참가해서 [[YG엔터테인먼트|YG]]가 [[와일드카드(스포츠)|와일드카드]]로 보류한 후, 본선 3라운드 캐스팅 오디션에서 듀엣 부문에서 [[YG엔터테인먼트|YG]] 캐스팅 조로 나와 캐스팅을 그대로 유지해 합격했으나 [[걸그룹]] 부분 중 [[YG엔터테인먼트|YG]] 캐스팅 조에서 탈락했다. [[https://youtu.be/Iy6kYAPTddg|관련 영상]]
오후 3시 진행 예정이었던 행사가 비로 인해 40분이 지연되고 난 뒤 총 선착순 200명의 팬에게 커피를 나눠 주었는데 상암 팀은 3명씩 조를 이루어 나눠 주었다. 3명은 커피 차 안에서 커피를 만들고, 3명은 커피를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세정은 101번부터 밖으로 나와 커피를 나눠줬다.[* 앞 번호에서는 안에서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다른 이벤트와는 달리, 같이 사진 찍을 시간, 싸인 받을 시간[* 앞 번호 때만.]을 주어 엄청난 혜자 이벤트가 되었다! ~~ I.O.I는 게릴라를 꼭 가야 한다~~ 당연히 실시간 중계만 보던 팬들은 배아파하며 통곡했다는 후문이...
이벤트는 총 1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행사장을 떠나고 10분 후 다시 돌아와 남아 있는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되게 열일했다고 한다. 말 걸기 미안할 정도로 ~~[* 실제 현장 실황을 찍은 영상을 보면 커피 만드는 멤버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고 있고, 나눠주는 멤버는 밖에서 번호표 받고 커피 주고 악수하고 사진 찍어 주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에 리액션해 주는 등 정신없이 각자 할 일들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I.O.I의 언니 라인 중의 한 명으로서 임나영이 든든한 아빠 포지션이라면 김세정은 김청하와 같이 동생 라인을 보살피는 엄마 포지션이다. 실제로 보고 있으면 동생 라인과 놀거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고 보살피는 등 엄마 역할을 하고있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들도 김세정을 잘 따르는 편이며, 특히 김소혜는 고민이나 걱정이 있으면 가장 먼저 김세정을 찾아간다고 멤버들이 증언했을 정도로 김세정을 잘 따랐다.
또 자기와 같은 언니 라인에게는 존중의 모습을 보인다. 맏언니인 나영, 청하와의 나이차가 겨우 몇 개월 정도임에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나영 언니 힘내요! 언니는 훌륭한 리더에요!"라는 등의 존중의 표현을 한다.
I.O.I의 예능 치트키. 고정 프로인 어서옵쇼에서 아재들을 들었다 놨다 하거나, 예능에서 I.O.I를 홍보하거나 직접 자기가 고정인 프로에 예능에 잘 나오지 않는 멤버를 직접 데리고 나온다. 김청하, 김소혜 등을 데리고 나온 뒤 본인이 팍팍 밀어준다. 실제로 김소혜는 어서옵쇼 출연이 첫 예능이다. 주로 미는 소재는 괴력소녀와 노래방 성우 목소리. ~~그리고 임나영에게 받은 병든 닭~~ 팔씨름과 허벅지 씨름에서 씨스타를 관광태우거나 다른 예능에서 멤버들과 게임을 하면 멤버들을 관광태우기도 한다. 최유정은 배게 싸움에서 김세정에게 카운터를 맞고 다운됐고, 김청하는 언니이지만 어서옵쇼에서 굴욕적으로 세정에게 끌려다녔으며 방송인 홍석천, 박지윤 등도 김세정에게 관광당했다. 멤버들도 평소에는 김세정을 놀리지만 힘쓰는 게임을 들어가면 긴장한다. 하지만 전소미와의 베개 싸움에서는 도발당하고 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뿐만 아니라 FPS 게임 대결에서 전소미와 대결했으나 전소미에게 진 적도 있다.
이렇듯 개인 활약상도 많지만 무언가를 주도해서 멤버들을 놀래키거나 계획하는 등의 활약이 많은 편이다. 예를 들자면, 5년 뒤 재결성과 임나영 몰카 등이 전부 김세정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몰이 대상이 되어 자주 몰이당하기도 하는데, 하도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과 지나치게 아재스러운(?) 리액션이 주 놀림대상. 여기에 전소미와 김도연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도 잘 안하는 양갈래를 자주 하면서 어린 척 귀여운 척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 자기도 소녀스럽고 어려 보이고 싶은데 너희가 너무 잘 어울려서 버겁다고 자폭 여기에 덤으로 마지막 완전체에서 맡은 파트에서 지나친(?) 호흡 실종 현상으로 거의 숨소리마냥 야하게 들리는 탓에 야세('''야'''한'''세'''정)라는 별명까지 추가되었다. 본인은 절대 야한 성격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춤추거나 할 때 뒤에서 뚫어져라 몸매 감상을 하거나, 나쁜 손을 시전(!)하는 등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넘치는지라... 여하튼 이런 식으로 멤버들에게 몰이를 많이 당하는 편이다.[* 특히 세정이 뷰티 프로그램 MC가 되자 동생들은 기념으로 그날 최고의 극딜과 디스를 선보였다. 소미는 잘할 수 있을지를 세정이 묻자 고민도 없이 아니요 라고 답하고, 소혜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에 언니에게 부족한 건 조신함이라는 팩폭을 날려준 도연과 뷰티 프로 MC를 맡았다고 하니 대놓고 놀라며 "뷰티요?" 라고 되묻는 채연까지...]
[[타임슬립 - I.O.I|마지막 콘서트]] 날, "이제 내일이면 I.O.I가 없어요." 라고 하면서 오열했고 멤버와 팬, 부모님께 감사의 소감을 전하며 말을 마무리했고,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1월 23일 그녀가 사랑하던 I.O.I 활동이 마무리됐다. 이 때 그녀는 "I.O.I 사랑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2번째 생방 분량인 본방 3회차부터 본 방송 내에서의 분량도 매우 늘어났다. [[이서진]]이 적극적으로 세정을 챙겨주는 부분이나 퀴즈 등의 진행과 같이 제작진도 적극적으로 세정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이 날 각 호스트별 방송 중에 참여했다가 시간 종료를 매우 적절하게 활용하여 웃음을 주는 등 활약이 많아졌다. 특히 이 날은 같은 [[I.O.I|아이오아이]] 멤버인 [[소미|전소미]]의 출연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하여서 1~2화 대비 더욱 방송에 활력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박수홍]]과 함께한 웨딩편에서는 [[어서옵SHOW]]에서 레전드로 남은 '''등근육'''을 보였다. 11회부터는 방송 초반부터 3MC와 같이 진행하고 [[김준현]]과의 먹방 검증에서도 먹는 모습이 화면에 많이 잡히는 등 [[어서옵SHOW]]에서 아예 MC로서의 지분을 톡톡히 했다. [[어서옵SHOW]] 출연진들 중 가장 많은 이득을 보았으며, 이후 [[어서옵SHOW]]가 종영된 후에도 타 예능 출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2016년 12월 11일 기사를 통해 [[JTBC]] [[한끼줍쇼]]에 출연을 밝혔으며, 12월 21일 방송되었다. 시청률은 3.518%가 나왔다.[* 전 주에 비해 1프로 상승했으며, 심지어 [[아는 형님]] [[I.O.I|아이오아이]] 2번째 출연 시청률인 3.453%보다 높다.][* 한끼줍쇼 최초의 게스트이자 단독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세정이 실수로 숟가락을 길바닥에 떨어뜨린 것을 보고 '밥숟갈을 놓으면 어떡해!'라고 이경규가 지적하며 불길한 징조로 몰아가려는 이경규와 강호동의 공세에 '숟가락을 놓는다는 것이 배부르게 먹었다는 의미잖아요. 저희도 그렇게 된다는 뜻이죠.'라고 답하는 재치를 보여줬다. 강호동이 이경규에게 세정은 유재석 라인이라며 소개하자 라인은 서른살 즈음 정하는 것이라고 즉석에서 답하며 이경규를 감탄시켰으며 외국인이 사는 집을 맞이해서 망설이지 않고 용기있게 영어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까지 보여 급기야 '세정아 너 고정하자!'는 표현까지 이경규가 하게 되었다. 강호동 역시 세정의 센스와 담력에 감탄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으며 해당 프로그램의 방현영 PD는 방송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끼줍쇼의 은인, 복덩이라고 세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 1월 3일 [[1대100]] 466회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여해 초등학교 때 [[방송부]] [[아나운서]]였고 [[성우]]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MC 조충현 아나운서와의 팔씨름에서 '''핸디캡 없이''' 완승을 거둔 뒤 애교와 성우 개인기도 보여줬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069492|#]] --[[SBS|S도장]], [[한국방송공사|K도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문화방송|M도장]]만 깨면 된다.[[한국방송공사|K도장]]의 [[송해]]도 할 수 있나-- 그녀는 5, 6단계에서 찬스를 적절히 사용했으며 7단계부터는 이전 방송 모니터링한 결과 본인이 생각한 답이 틀린 경우가 많아 반대로 고르는 전략으로 '''849만원을 받는 우승자가 결정된 9단계에서 5명과 접전을 벌였다.'''
* 1인으로 출연한 현직 아이돌 중 최초의 9단계에 갔으며 100인 쪽에서는 여자친구의 예린이 같은 단계에서 436만원의 우승자가 결정된 문제에서 5인까지 든 전력이 있다. 참고로 우승자 역시 세정과 마찬가지로 '아닐 것 같은 답'을 골라서 맞혔다고 한다. --다만 최후의 1인과는 달리 세정 본인은 감성이 앞서는 바람에 아쉽게 상금을 놓쳤다...-- 참고로 상금 849만원은 2013년 4월부터 2017년 1월 말까지 진행된 '''상금 진행 형식에서 100인 최고 우승 상금'''이다. 이 형식에서의 최고 적립금은 바로 전 주 465회에 출연한 김경호가 적립한 959만원이며 10단계에서 김경호와 최후의 4인 모두 떨어지는 바람에 우승 상금은 [[안드로메다]]로...
* [[황세준]] 대표가 똥고집(?)을 부렸던 [[구구단]]이라는 팀명에 관한 이야기와 어서옵쇼에서 선보인 등근육 얘기가 이어졌고 세정이 선보인 등근육에 관한 얘기가 나온 끝에 조충현 아나운서와의 즉석 팔씨름 대결이 이뤄졌다. 두 손가락, 세 손가락, 전체 손가락으로 대결이 이어졌고 조충현 아나운서의 샌드백 예능감이 발휘되는 가운데 세정의 전승으로 팔씨름 대결이 끝났다. S본부 [[배성재]]에 이어 K본부 도장깨기에 성공했다며 엄살을 부리는 조충현 아나운서의 예능감과 세정 특유의 털털함이 잘 어울려 여느 예능프로그램 못지 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파파야, 아보카도, 두리안 셋 중 한 과일을 고르는 문제를 맞춘 뒤에는 노래방 성우, 외화 더빙, 최화정, 해바라기 김래원 성대모사를 연이어 선보였다. 달팽이, 지렁이, 나비 셋 중 하나를 맞추는 문제를 푼 뒤의 토크에선 어려서부터 시쓰기를 자주 했다는 얘기를 했으며 1대100 삼행시를 선보였다.[* 1 - 1대100 나온다고 해서 제가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대 - 대략 20편 정도를 챙겨봤는데 100 - '''100인으로 나올 걸...''']
* 세정이 설명한 구구단과 IOI의 차이점은 [[구구단]]의 경우 언니들이 많아(미미, 하나, 해빈, 나영 - 나이서열 5위) 귀여움을 받아 힐링이 되고 동생들이 많은 IOI(나이서열 3위)에서는 동생들이 많이 몰려와 언니하면서 안겨 엄마로서의 힐링을 느낀다고 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30348|#]] 방송이 끝난 후 [[https://1.bp.blogspot.com/-ootuIEvL8EQ/WGuuwyPjEkI/AAAAAAAAUZs/8OHqkcPbFl84wbZtGr1VR5YGQjJCYIw_wCLcB/s1600/1483449475.png|실시간 검색어]]와 [[https://1.bp.blogspot.com/-h3GSBayy9M4/WGuuwefja0I/AAAAAAAAUZg/gVKC0aaNQtoBpXfvwJ3moVq9deoRrTo3gCLcB/s1600/1483448677.png|메인 기사]]를 장악했다.
- 현이와 덕이 . . . . 116회 일치
|이름 = 현이와 덕이
| 〈소녀와가로등〉
'''현이와 덕이'''는 1975년 데뷔한 [[대한민국]]의 2인조 [[싱어송라이터]] [[남매]][[듀엣]]/[[배우]]이다.<ref>{{웹 인용 |url = http://music.naver.com/artist/home.nhn?artistId=9526|제목 = 네이버 뮤직|저자 = |날짜 = |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70~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솔로로도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1990년 남매 모두 [[요절]]하게 된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1975년 [[미8군부대]]에서 데뷔한 [[장현 (1955년)|장현]](1956~1990)과 [[장덕]](1961~1990)은 이듬해인 1976년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고 한국 가요계에 데뷔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이들은 《선생님 안녕》, 《우리들의 고교시대》, 《내마음 나도몰라》, 《꿈초올 둘이서》등과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였다.(이들 남매는 10여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여 하이틴스타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장덕]]은 작사,작곡 능력이 뛰어나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장덕은 1977년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을 직접 [[작사]], [[작곡]] 하여 제1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작곡가로 입상하였다. 이후 3년 연속 이 대회에 입상하게 된다.)
<ref>{{뉴스 인용 |제목 = 듀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1978년 현이와 덕이는 그들의 첫 공식 레코드 모음집인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일기장》, 《순진한 아이》, 《작은소녀의 사랑이야기》등이 담긴 정규1집을 취입, 출반하였으며, 이 음반은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게 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90년 1월 [[장덕]]은 [[신년]][[드라마]] 《[[구리반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였으나, 어릴때부터 앓아 오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과다복용 하게 되어 [[1990년]] [[2월 4일]]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5동 1008호 자신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해 8월 [[장현]] 역시 설암으로 사망했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 2004년 1월 5일 [[테이]] 정규 1집 《The First Journey》 발표 : 장덕 작사/작곡 · [[진미령]] 노래 《소녀와 가로등》 [[리메이크]] 수록
* 2010년 8월 27일 혼성 그룹 퍼스트(F1RST) 싱글 1집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발표 : 장현 작사 · 장덕 작곡 · 현이와 덕이 노래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리메이크]] 수록(타이틀곡)
* 2014년 3월 3일 <음악여행 예스터데이 3회> : [[홍진영]]- 장덕 작사/작곡 · [[진미령]] 노래 <소녀와 가로등> [[리메이크]]
* 2014년 7월 7일 신인가수 [[김나영 (가수)|김나영]], [[이은하]]와 KBS 2TV 월화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OST 참여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수록
* 2014년 7월 <[[MBN]] [[TV]] [[아궁이]]> - 파란만장 가족사 ; 현이와 덕이
* 2015년 1월 27일 <[[KBS]] [[TV]]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가족은 즐겁다 편 : [[EXID]] - 장현 작사 · 장덕 작곡 · 현이와 덕이 노래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리메이크]]
* 2015.02~2015.05 [[KBS]][[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OST]] : [[어쿠스틱 콜라보]] - 장덕 작사/작곡 · [[진미령]] 노래 <소녀와 가로등> [[리메이크]]
* 2015년 5월 28일 <오마주 현이와 덕이 [[문화콘텐츠]] 사업 발표, 출범> ([[리메이크]] [[음원]], [[영화]], [[뮤지컬]], [[출판]] 등)
* 2018년 4월1일 <북한 평양공연 – 봄이 온다 中> 최진희 – [[뒤늦은 후회]] ([[현이와덕이]], [[작사]]/[[작곡]] : [[장현]]/[[장덕]])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북한 최고지도자) 요청곡
* 2018년 4월3일 <남북합동공연(평양) – 봄이 온다 中> 최진희 – [[뒤늦은 후회]] ([[현이와덕이]], [[작사]]/[[작곡]] : [[장현]]/[[장덕]])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북한 최고지도자) 요청곡
* 2018년 4월 6일 <[[TV조선]] [[별별톡쇼]] – [[현이와덕이]] 편>
* 2018년 4월 9일 <[[MBC]] [[섹션TV]] – [[현이와덕이]] 편>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15회 일치
모든것은 데스몬드 마일즈에게 달렸다. 암살단의 후예였던 그는 앱스테르고에 의해 납치되었었다. 이후 그는 조상들의 기억을 체험하는 기계인 애니머스를 통해 조상들의 지혜와 기술을 배웠다.
조상들에게 전해진 예언에 따라 데스몬드 마일즈와 그의 암살단 동료들은 한 유적을 찾아간다. 에덴의 조각을 만들어낸 초고대 문명 "먼저 온 자들"의 유적이었다.
항해 둘째 날, 바람을 쐬기 위해 갑판으로 나온 헤이덤은 선원들과 시비가 붙는다. 선원들과 싸우던 헤이덤은 그 광경을 프로비던스호의 선장에게 들키게 된다. 선장은 헤이덤을 디스한 후 선장실로 끌고간다. 둘 밖에 없는 선장실에서, 선장은 함상 반란이 일어날 것 같으니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헤이덤은 선장의 부탁을 수락하고는 "다시 한번 나를 모욕했다가는 망설임 없이 목을 잘라버릴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선장실을 나간다.
항해 33일 째 날. 의문의 선박이 프로비던스를 쫓아온다. 프로비던스가 맞서 싸우는 동안, 프로비던스의 선장은 헤이덤이 아무 도움도 못될 것이라 판단해 헤이덤을 선실 밑으로 내려보낸다. 선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건 루이스 밀즈. 밀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항복을 제안한다. 헤이덤은 명예는 지켜주겠다는 밀즈의 말에 차라리 검을 달라고 대꾸, 밀즈에게서 검을 넘겨받고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 이후 헤이덤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와 의문의 선박이 노리는건 자신임을 밝힌 후, 선장을 암살검으로 협박해 폭풍 속으로 프로비던스를 몰게 한다. 폭풍 속에서 헤이덤은 돛를 고정시키고, 돛을 펴는 일을 돕는다. 그러던 중 제임스가 돛대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돕기도 한다. 제임스를 돕고 난 후, 헤이덤은 쫓아오던 선박의 돛대가 폭풍에 부러져 더이상 쫓아오지 못하는걸 확인한다.
그린 드래곤 여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말다툼을 벌이던 여관 아저씨와 여관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헤이덤은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력자인 윌리엄 존슨 경에게 협조를 부탁하지만 존슨 경은 자료를 도둑맞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 존슨의 경호원인 토머스 히키가 조사 중이지만 헤이덤은 직접 나서기로 한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존슨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용병단 소굴앞에서 히키와 조우한다. 히키는 용병단이 자료를 훔쳐갔다는건 확인했지만 도적단 소굴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상황. 이에 헤이덤은 자신이 후방에서 습격하는 동시에 찰스 리와 히키가 정면에서 공격하는 작전을 짠다. 이 작전에 큰 피해를 입은 용병단은 성채 안으로 도망쳐 문을 걸어잠그지만 헤이덤의 화약통 쏘기에 몰살. 헤이덤은 자료가 든 상자를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 히키와 대화하기 전에 용병단의 본거지로 닥돌해 다 패죽여도 되는건 없다.
존슨의 계산과 지도가 잘 안 맞아떨어진다. 모호크의 도움을 받을까도 했는데 걔네들에게 해준것도 없는데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이때 히키가 방법을 생각해낸다. 노예상으로부터 원주민을 구출하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 벤자민 처치라는 사람이 노예상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찰스 리의 주장에 따라 헤이덤과 찰스 리는 처치의 집을 찾아간다.
헤이덤이 계책을 짜낸다. 대처와 같은편인 척 하며 사우스게이트 요새에 잠입, 노예를 풀어주고 대처를 죽이는 계획이다. 헤이덤 일행은 이 계획을 위해 노예 행렬을 습격하기로 한다.
찰스 리에게서 모호크 여인이 렉싱턴에 있다는 보고를 들은 헤이덤. 헤이덤은 찰스 리와 렉싱턴에서 만나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두 사람이 올라간 언덕 밑에는 콩코드라는 마을이 있었다. 카니에티오는 콩코드에 주둔하는 브래독의 병사들이 모호크를 몰아내려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많은 모호크가 희생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헤이덤은 카니에티오와 함께 브래독을 죽일 것을 제안한다.
* 싸우는 와중에 부술 수 있는 물체를 두번 사용
이들에게 접근하는 브래독의 군대. 브래독은 헤이덤과 카니에티오가 자신들을 보는지도 모르고 옆에 있던 워싱턴에게 이번 원정을 하는 이유[* 앞으로 더 많은 영토가 필요해지겠지만 프랑스가 이를 막고있다.]를 말한다. 카니에티오는 지금 기습해 부대를 와해시키자고 하지만 헤이덤은 브래독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영국군 군복을 훔치기로 한다.
브래독을 죽인 헤이덤. 카니에티오는 헤이덤을 유적으로 데려간다. 헤이덤의 기대와 달리 유적과 열쇠가 빛을 발했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헤이덤은 절망하지만, 카니에티오의 도움으로 해당 유적이 먼저 온 자들의 유적이라는걸 알아낸다. 이후 헤이덤은 가야 겠다고 말하고서는 카니에티오와 키스를 나눈다.
== 시퀀스 3와 시퀀스 4 사이 ==
애니머스에서 일어난 데스몬드. 헤이스팅스와 크레인 또한 이 상황에 놀라워 하고 있었다.
이제 깃털을 다 모았으니 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카나도곤. 라둔하게둔은 이제 고기와 가죽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에 카나도곤은 자긴 사냥을 잘 못한다며 겁부터 먹는다. 라둔하게둔은 카나도곤에게 시범을 보여주기로 한다.
* 미끼와 올가미를 조합해 동물을 사냥함
구 주청사의 군인들은 몰려든 군중들을 해산시켜 보려고 하지만 군중들은 해산을 거부하는 상태. 이 와중에 코너와 아킬레스는 헤이덤을 발견한다. 아킬레스는 헤이덤의 행동이 지금 상황에 불을 붙일 것이라고 판단, 코너를 시켜 헤이덤의 부하를 미행하게 한다. 코너는 헤이덤의 부하를 쫓아가 그가 군중에게 총을 쏘려는 순간 암살한다.
땅굴에 들어온 코너와 애덤스는 나가는 길을 찾는다. 밖으로 나가는 문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코너가 자물쇠를 따서 해결한다.
- 박명수(MC) . . . . 106회 일치
국내에서 가장 [[별명]] 많은 [[연예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칭 쩜오 연예인'''. [[애초에]] 그 쩜오라는 말을 쓴 것도 방송에서 [[본인]]이 애드립으로 썼던 것이다. [[무한도전]] 죄와 길 특집에서 유재석 심문을 하다가 박명수가 유재석의 1인자 위치를 얘기하다가 자기 자리로 들어가는데 [[유재석]]이 즉석에서 "박명수씨 정말 본인이 2인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들어가던 박명수가 순간 "쩜오" 라고 대답했고, 그게 방송에 나가고 시청자들에게 웃겼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자주 쓰이게 된 것이다. 사실 쩜오라고 불리는 것은 예능계에서 메인MC가 아닌 서포터이자 2인자 포지션인 본인을 재밌게 하기위한 말일 뿐이고 박명수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장수하고 있는 베테랑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나타내는 능력있는 연예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개그맨의 꿈을 품고 방송가에 데뷔하고 싶어했지만, 정작 그 방법을 몰라 한 동안 3사 방송사를 떠돌면서 무작정 부딪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국방송공사|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 방청객으로 참가했는데 소개를 받아 KBS FD로 일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때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mc [[손범수]]가 웃기고 재능있다며(...) 방송 데뷔를 권유했고''' 이후 [[MBC]] 4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본격적으로 개그맨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박명수는 데뷔하자 마자 이름을 알리고 무명시절이 거의없던 개그맨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오늘은 좋은 날>, <인생 극장> 개성적인 연기와 개그를 펼쳐보여 인지도를 확보하게 된다.
2012년 12월 29일. 데뷔 20년만에 '''[[MBC 방송연예대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2007년도에도 대상을 수상했지만, 그때는 [[무한도전]] 팀 6명은 물론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와 공동 수상한 것이었기에 단독 수상인 이번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국민예능으로 만든 영향력과 2011년 나는가수다 흥행 중심에 있어서 그때 받을시기를 2012년에 받은 셈.
90년대 중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MBC]] 방송국 수위 아저씨 역할로 나와서 독특한 표정으로 "우쒸~"와 "국민 여러분, 제발 ***하지 마세요~"라는 시리즈 유행어로 신인시절 인기몰이를 하였고 그 유행어 덕분에 CF도 촬영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CF에서 개그맨이 원톱으로 출연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아직 신인티도 완전히 벗지 못한 개그맨은 더더욱. 대중적으로도 당시 박명수는 상당히 유명했는데 일례로 1990년대 중반 한창 인기몰이를 했던 아이큐 점프의 연재만화 [[달숙이]]에서도 박명수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패러디 병맛만화 정도로 볼 수 있는 달숙이에서 언급된 것들은 전부 당대 대중문화에서 유명한 것[* KOF의 캐릭터라거나 터미네이터 등.]들이었는데 그 중에 박명수가 있었다는 점은 당시 이미 인지도가 상당하다 못해 높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당시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연예인이라든가 대중문화는 달숙이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외의 광고에서도 활동했었는데 특히 계속 복장을 바꿔가며 연기했던 아이스크림 광고가 유명하다. 그리고 본인의 이름 덕에 소화제 까스명수의 전속모델로 [[김구]] 선생 전문배우 [[이영후]]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이를 역이용해 박명수가 드디어 이름을 다 외웠지만 이름이 '프로메토 칸두라스 히드라 리바이탄 블리자드 자스카리투스 해저드 디아블로 레피쿠리우스 네메시스'처럼 더 긴 것으로 바뀌어 버려 다시 당하는 패턴도 있었다. <풍운의 별>에서 박명수의 역할은 선배 개그맨들이 짜놓은 틀에 맞춰서 개그를 적극적으로 살리는 역할로 이는 온전히 박명수의 캐릭터와 역량에 기대는 것이었다. 물론, 풍운의 별에 등장하는 홍기훈과 김효진, 이경실이 진 주인공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박명수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 그래서, 당시 신문에서 '앞으로 코미디계를 이끌 유망주' 비슷한 제목으로 박명수의 인터뷰가 크게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초기 대박으로 신인으로서 엄청난 인지도를 쌓았지만, 박명수가 무한도전으로 터지기 전까지 그의 주된 유명세와 활약은 대부분 데뷔 초기에 집중되어 형성[* 특이한 외모와 제품과 유사한 이름으로 인한 붐은 곧 식을 수밖에 없다.]되어 있다. 콩트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에서도 결코 주연급이 아니었다. 주연급을 맡기려 했다는 김성원 작가의 발언도 있었지만 워낙 말을 더듬는데다 연기력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캐릭터의 폭이 제한되어 있어 이뤄지지 못했다 밝힌 바 있다. 90년대에서 이어지는 MBC의 코미디 프로 황금기 때는 김작가가 메인 작가가 아니었으므로 '주연급을 맡기려 했다'는 발언이 나온 시점은 결국 코미디 하우스 방영중일 때일 것인데, 이때 박명수는 데뷔 5, 6년차에서 10년 이상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상당한 고참 개그맨에게 메인을 못맡겼다는 소리이다. 즉 초창기에 대박이 확실히 터졌지만 이후 큰 발전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개그콘서트의 부흥과 함께 콩트 프로그램의 몰락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MBC소속 개그맨들은 MBC라는 둥지를 떠나 다방면에서 활동하게 된다. 박명수는 놀러와 등에 출연하며 MBC와 연을 잇는 한 편, KBS와 SBS에도 게스트 출연을 이어갔지만 후술할 리얼버라이어티 붐 이전까지 상당한 침체기를 보내게 된다. 패널 역할로 많이 뛰긴 했지만 비슷하게 패널 역할로 많이 뛰었고 이따금씩 케이블 MC나 공중파 꼽사리를 끼는 김태현을 보고 인기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 역시 박명수의 이 당시 인기란 것은 미묘한 부분이 있다. 흔히 박명수가 방송에서 이야기하던 사업의 집중기가 바로 이 때다.
그러다가 방송의 시류가 리얼버라이어티 및 예능으로 바뀌게 되었고, 강렬하면서도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를 갖고 있었던 박명수는 유재석과의 인연을 통해서 [[놀러와]] [[X맨을 찾아라]]와 무한도전을 통해 비로소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리얼버라이어티 초창기 박명수가 제창했던 '제8의 전성기'라는 표현은 평소 꾸준히 잘 나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어떻게든 개그계에서 끈질기게 버텨왔다는 자괴감을 개그 소재로 승화시킨 기믹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꾸준히 잘 나갔으면 전성기가 8번 오는게 아니라 1번의 전성기가 쭉 계속 되는거니까...
[[유재석]] 외에는 몇 줄 안되는 것을 봐도 알겠지만, 유재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명수의 tv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모습은 모두 유재석과 같이 있을때, 편안해할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무한도전 대기실 몰래 카메라나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유재석에겐 맛있는 음식 등을 챙겨주면서 본인들은 거들떠도 안봐 왜 재석만 챙기냐고 불평하기도 한다고 한다.[* 해당 방송분은 2009년 김연아 특집때다. 물론 박명수는 "얘가 살아야 우리가 다 살아!!"라며 쿨하게 무시해주신다.] 그리고 대략 2012년 장기 파업간에 [[노홍철]]과 부쩍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을 보다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박명수는 항상 밥을 혼자 먹는다고 한다. 천하의 유재석에게도 밥먹자고 한 적이 없는데 그 파업기간동안 노홍철에게 같이 짬뽕 먹자는 전화를 해서 굉장히 놀라웠다고 한다. 또 노홍철 역시도 2009년 의좋은 형제들이나 2011년 짝 특집까지만 해도 유재석에게 쌀을 갖다주며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제일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 2014년 도둑들 특집때는 유재석을 튀통수치고 박명수와 짝을 맺음으로써 이들의 관계가 많이 발전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사실 방송분을 이미 2007년 부터 박명수가 노홍철만큼은 인정하고 이뻐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미존개오로 뜬 정형돈은 인정안해도 노홍철에게는 '너(노홍철)는 인정해'. and '길바닥출신이긴 해도 잘해'라며 박명수식 애정표현인 셈(...)] 또 프로그램 상에서는 티격태격하지만 정준하와도 잘 지내는 듯.[* 2011년 짝 특집때 서로 애정을 표하며 짝이 되기도 했고, 2014년 비긴어게인 특집때도 친구케미를 보여주고 2016년에 서로 국물을 떠다주는 sns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티격태격 하는건 방송컨셉이라는 건 이미 2013년 마이너리티 리포트 특집때 밝혀졌다. 싸움거는 박명수에게 뻘쭘해진 정준하가 왜 방송만 들어가면 그러냐고 묻자, 할게 없어서 라고 대단한 것이 좋은 예.] 또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시절에는 정형돈과도 많이 엮였고,[* 설문조사에서 정형돈이 5위, 박명수가 6위를 도맡아 해서... 다만 박명수와 정형돈은 성격상 서로 잘 맞는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직설적이고 마음에 없는 좋은 소리를 못하는 쿨남 박명수와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정형돈은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게 방송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했고.] 하하와는 소속사가 같아서 하하를 많이 도와줬다. 당시 하하는 웃음담당이라 하하가 별로 웃기지 않아도 크게 웃어줬다고 한다.
방송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 친한 주변 사람들을 은근히 챙기는 면모도 있다. 박명수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한경호 전무도 <4가지쇼>에서 방송의 모습과는 달리 친절한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사실 방송의 모습과 일상생활이 똑같았다면 매니저가 상당히 자주 바뀌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한 걸 생각하면 분명 사실인 듯. 코디나 매니저와 같은 주변인에게 생일 선물로 고가의 [[맥북 에어]] 등을 사주기도 하며, 자신과 오랫동안 일한 한경호 전무에게는 고깃집을 차려주기도 했다.[* 뮤지컬 [[무한상사]]에서 정준하 과장이 퇴직하고 차린 고깃집 -> 연탄불 후라이집이 바로 한경호 전무의 가게이다.] 그래서 한경호 씨는 자신은 박명수가 아니면 매니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고도 한다. 또한 [[유재환]]에게도 무한도전 방송에 출연할 때에나 SNS에 사진을 올릴 때에는 호통을 치거나, '인기 많은 재환이 나가라' '뭐가 귀엽다는 거지 어이없어' 등의 말을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는 반면에 실제로는 너무나 잘 대해 줄 때가 많다고 한다. --츤츤 데레데레--
[[이경규]]하고도 선후배 사이로 잘 지내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이유]]하고는 거의 G-PARK 식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양쪽으로 서로 사이좋게 많이 도와준다.[* 아이유와는 이상하게 접점이 많은 인물이다. 아이유가 뜨기 전 2010년에 게릴라 콘서트 할때 바쁜 제시카를 대신해 냉면 대타로 왔었고 2013년엔 런닝맨에 게스트로 둘이 동시에 출연하고 2015년 가요제에선 둘이 같은 팀이 되었다. 의도된 만남도 아니고 서로 접점이 그닥 없는데도 여러번 엮었던 신기한 운명(?)] [[무한도전]]에서 보면 집안팀이 조세호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때 아이유를 부르려 했던것도 보면 사이가 좋은듯 하다. 그리고 [[탁재훈]]과도 꽤 사이가 돈독하다.[* 사실 최근에야 어떤지 알수가 없지만 2010년 뜨거운 형제들을 할때 보면, 박명수는 무한도전에서도 웃을때 주변 눈치를 보거나 누군가를 쳐다보며 웃는 리액션을 하곤 하는데, 뜨거운 형제들에서 웃을때면 항상 탁재훈을 마주보며 웃는 편이고 부를때는 탁형 or 재훈이형 이라며 살갑게 부르는 몇 안되는 형들 중 한명이다. 밑에 서술되어 있기도 하지만 박명수는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기가 쎈거나 디스하는 사람과는 궁합이 상당히 좋지 않은데 탁재훈은 박명수에게 상당히 편한 형이다. 이를테면 런닝맨에서 지석진과 유재석 정도의 관계. 서로 성향과 웃음코드가 비슷하다 보니 잘 맞는 듯.] [[김구라]]와는 친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방송을 통해 말을 빌리자면 '서로 리스펙하는 사이'다.[* 참고로 이 말을 먼저 꺼낸 건 항상 박명수를 디스하는 김구라 본인이다. 겉으로는 무식하고 교양없다고 욕하는 김구라지만 내심 속으로는 인정한다는 소리. 둘이 동갑내기이기도 하고 미운정 고운정 정도 있는 듯] 후배이자 동갑내기인 [[김현철(코미디언)|김현철]]을 자주 챙기는 모습도 있다.[* 2008년에 땜빵이 부족하자 박명수는 친구 김현철을 섭외하려고 했는데 이전에 막말 전과가 때문에 꺼림칙 했던 PD가 가장 나중에 섭외하자며 만류했다. 그리고 머쓱해진 박명수는 "개 오지 말라고 그래' 라며 애써 쓴웃음을 짓기도..]
그리고 가끔가다 '''무한도전 스태프들이 어떤 주제로 멤버들을 평가할 때 보면 의외로 좋은 평가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 1위다.'''[* 누가봐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은 유재석은 친해서 장난으로 약올리려고 투표를 했을진 몰라도 워낙 FM적인 인생을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는 증언은 종종 있다.] 2009년 세계여행 특집에선 <같이 여행가고 싶은 멤버>투표는 2위[* 총 67명 중 17표, 이유 "방송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자상하다, 개인활동을 좋아해서 나한테 신경안 쓸거 같다."] /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에서 <잘생긴 멤버>투표는 하하와 함께 공동 1위(!)[* 투표를 누가 하든, 이런 외모 투표는 거의 대부분 인기투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누가봐도 잘생겼다고 보기 힘든 박명수가 스태프가 뽑은 외모 순위에서 1위를 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평소에 스태프들 사이에 박명수 이미지가 나빴다면 절때 불가능 했을 거란 소리.] 2012년 300회 특집에서 <멤버 전원 싱글이라면 사귀거나 소개시켜주고 싶은 멤버>투표는 3위[* 젊은 박명수라면 가능... 절때 바람 못 필거 같아서. 참고로 이때 정준하와 길은 0표였다.~~안습~~] 2015년 425화 오프닝에선 <오디오 끄고 싶은 멤버>는 5위[* 이때는 멤버가 5명이었다. 이유는 말을 별로 안해서] <사진 찍고 싶은 멤버>는 2위[* 박명수가 찍지 말라고 해서 거의 못 찍어서 그래서 더 찍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총각이면 이상형 순위>는 1위[* 한 명의 여자작가가 뽑은 순위에서 1위를 했다. 이유는 질리지 않을 거 같아서] 2017년 히든카드 특집에선 '스태프들이 돈을 얼마나 빌려 줄지' 배포를 적었는데 박명수 매니저가 5,000만원을 적음으로써 1위 및 배포킹으로 뽑혔다. 사실 이 스태프 투표가 의외로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은 멤버들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반해 스태프들은 사적인 모습도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는 안티의 대부분이 방송 때문에 생긴 것인데[* 보통 욕먹는 타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사생활은 매우 깔끔한 사람인데 오직 방송 모습때문에 안티가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 만약 방송 외적으로도 그랬다면 스태프들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렸을리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대체로 밥값을 잘 쏘는 멤버로 보인다. 멤버들끼리 떠들때도 큰 거는 재석이형과 명수형이 산다고 증언하기도 했고]
평소에 대인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닌 박명수에게도 의외로 여자들에게는 꽤나 친절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아내를 끔직히 생각하는 나름 공처가 이기도 하고, 2009년 품절남 특집에서 여자작가 몰카를 했을때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여자작가를 끌어내서 츤데레의 정석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 오프닝에선 빵을 한가득 사와 여자작가들에게 먹으라고 나눠주는 모습도 포착되고 같은 해 사생결단 특집에서 정형돈이 자기 코디에게 박명수와 정준하 중 누구를 구하겠냐고 묻자, 미선 코디는 고민도 없이 바로 명수오빠라고 대답했다.[* 의외로 속정,잔정이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010년에 있었던 '뜨거운 형제들' 에서도 막장 상황극을 통해 진단한 전문가가 의외로 가정적이고 자상한 면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고, 또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 여심 어워드때에는 여성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보다는 다른 방송사 공채 출신을 기용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라고 볼 수 있다. 실상 방송국 간 희극인들의 교류가 시작된 것 자체가 몇 년 되지도 않았고, 그전까지만 해도 타 방송사 연예인은 방송 출연은커녕 프로그램 내에서 언급조차 안하는 것이 관례였다.[* KBS 출신인 김국진, 김용만(감자골) 등이 일요일 밤에에 출연하려고 했을때 MBC 공채 코미디언들이 몰려와 때려잡으려고 할 정도.] 게다가 무한도전에서 수시로 강조하듯이 박명수 스스로도 MBC 공채 출신이란 점에 대해 자부심이 상당한 편인데, 이런 분위기에 덜컥 KBS 출신 예능인이 영입된다니 달가울 리가 없다. 후술되는 특채에 대한 박명수의 까칠함도 같은 이유다.
심지어 박명수의 부인도 유재석에게는 깍듯이 대한다고 한다. 출산 직후 몸이 불편해서 동네 어른들이 찾아와도 누워서 맞이했는데, 유재석이 방문하자 서둘러 양장을 입고 맞이했다고 한다...라고 말하긴 했는데, 유재석이 무한도전(16.06.11)에서 박명수네 집에 한번도 안가봤다고 하니 사실은 아닌것 같다. 병원이나 산후조리원에 동네 주민들이 찾아오지도 않을테고, 거기 양장을 갖춰두지도 않았을테고.
이후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실제로 형제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등 정말로 특별히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듯 하다. 그래서인지 프로그램 내에서도 다른 멤버들이 그럴 때는 별 반응이 없다가도 유재석이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면 진심으로 섭섭해하거나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 한가위 특집을 할 때 유재석이 박명수네 집 앞에 영수증을 두고 왔다는 것을 알자 "어떻게 재석이가 나한테..."라면서 계속 중얼거리는 걸 보면 진짜 가깝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특집에서도 미리 탈락된 멤버를 데려와야 통과할 수 있는 미션에서도 시종일관 유재석만 따라다니다 나중에 유재석이 정준하와 동행하게 되자 진심으로 서운해하여 나머지 둘이 당황하기도 했다. 자유로 가요제때도 유재석이 거머리 팀을 이길 수 있다에 투표하자 "너는 가요제 때 죽여버릴거야! 니네 둘(유재석과 유희열)은 내가 죽여버릴거야!"라며 격하게 반응한다. ~~덤으로 낀 유희열 지못미~~ 세븐티 핑거스가 눌러도 별 반응없다가 유재석이 눌렀다는게 나오자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박명수가 종종 써먹는 레파토리인 "유재석 자동차 세차"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쉬는 날 유재석이 전화해서는 "형 뭐해? 할 일 없으면 와서 세차 좀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박명수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 유재석이 당황해했고, 박명수는 "했냐 안 했냐? 했냐 안 했냐?"하면서 공격했다. 유재석은 다시 장난인 걸 다 알면서 왜 그러냐고 넘어가고, 박명수는 PD에게 "이거 방송 꼭 내보내라"면서 마무리지었다. 평소에 저런 농담을 하는걸 보니 진짜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아니면 진짜 [[노예]]거나...~~ 2016년 중반엔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아이디라며 '''SOO LOVES YOU'''라고 유재석과의 셀카를 올리며 ~~아부~~ 친분 인증을 한 바 있다. "피만 안섞인 형제"라는 글귀에서 그가 유재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와중에 비교샷으로 조세호와의 셀카에는 '동료^^'라고 적어놓은게 압권(...).
최근에는 박명수 딸 민서와 이승철 딸 이원이가 같은 유치원에 다닌다고 한다. 졸지에 학부모 사이가 되었다(....)
[[동명이인]]인 전 [[프로게이머]] --[[박명수(1987)|박명수]]--와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스카이라이프에서 런칭하고 있던 채널 '게임 tv'에서 이벤트전 형식으로 '스타 vs 스타'라는 이름의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연예인 박명수가 '연예인 게이머단 단장'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게이머 --박명수--와 경기를 했다. 경기 결과는 다들 예상하는 대로 발렸다. '''깔끔하게 발렸다.''' --당연하지. 프로게이머랑 일반인이 붙는데...-- [[디시인사이드]]에 박명수 갤러리가 생겼을 때 [[스갤]]러들에 의해 2~3일간 신명나게 털린 적이 있다. 첫 날은 심지어 '''프로게이머 --박명수-- 프로필이 공지로 올라가기도 했다.''' [[흠좀무]].
[[https://m.blog.naver.com/kaseclub/140047937139|2008년 2월 7일자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시즌 3]]에서 유재석이 먼저 밝혔고]][* 참고로 유재석은 박명수, 강호동과 모두 친하다.], 2012년 8월 25일자 [[무한뉴스]]에서 박명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식당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박명수에게 '''잠깐 나가 있어 봐요.'''라고 했고 나가자마자 와장창창 쨍강 쿵쾅쾅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후에 '''들어와요.'''라고 해서 들어가보니 그 시비걸던 그룹이 구석에 짱박혀서 언제 그랬냐는듯 얌전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겁먹을 만하다.
- 김재규 . . . . 93회 일치
고향은 경북 선산군이다. 현대의 행정구역은 경북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 이문리에는 김재규의 생가가 아직도 남아 있다. 김재규의 아버지는 정미소를 운영했다. 당시 정미소를 운영한다는 건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김재규도 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해방 후 김천중학교[* 現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1946년 12월 졸업하였는데, 졸업당시성적은 196명 중 14등으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 대리로 복무 중에 군경체육대회 때 [[미 육군]]과 충돌을 일으킨 죄로 면관당한 후 잠시 낙향하여 김천중학교와 대륜중학교[* 現 [[대륜중학교]]&[[대륜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복직되어 22연대 정보주임으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의 공을 인정받아 3사단 22 연대 제 2 대대장으로 부임하는데, 공교롭게도 부임일에 6.25 사변이 발발한다. 김재규는 2대대를 지휘하며 의정부·대구·영덕 지구의 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 혈전을 벌였고, 6.25의 전투 중 치열하기로 손꼽혔던 황간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국군과 연합군의 북진에 선봉에 서서 함경남도의 땅까지 밟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어 남으로 후퇴하게 되고 이후 여수 제 2 보충연대장으로 부임한다.[* 참고로 박정희는 6.25때 후방에서 보급병과 장교로 근무하느라 전공은 커녕 북한군과 마주친 적조차 없다.] 1970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7년에 [[육군대학]] 부총장을 지낸 후 방첩부대장, 육군보안사령관, [[제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박정희]]와는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 동기생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고향이 같고(경북 구미) 군에 몸담기 전에 교사를 지낸 경력이 같았다. 이후 1954년 9월경 김재규가 5사단 36연대장으로 근무할 때 박정희가 사단장으로 부임하여 상관이 되면서 재회하게 된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최태민]]의 조사를 지시했고, [[10.26 사태]]가 발생하기 3일 전 [[최태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었다. 이 보고서엔 최태민과 [[박근혜]] 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최태민의 문란하고 부적절한 사생활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를 처음 입수한 언론에서 공개한 시점이 2012년 말, 즉 [[18대 대통령 선거]]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직전]]이였기 때문에 당시엔 [[찌라시]] 취급을 받으며 묻혀졌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위 항소이유서에서 보다시피 '''현재 [[최순실]]이 [[박근혜]]와 함께 기업들에게서 돈을 뜯어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40년전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박근혜와 함께 부정한 방법으로 여기저기서 돋을 뜯어내었다. 1970년대 아버지가 했던 사기행각을 딸년이 그대로 2016년까지 써먹은 셈이다. 당연히 [[최태민]]의 범죄행각을 비판하는 민원이 빗발쳤으나,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에게 직언을 할 용기를 가진 관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소수만이 직언을 했다 핍박받는 실정이었다.
위의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나왔듯이, 청와대 내에서 실세 권력이 높았던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 방법이 없어서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는 단순한 [[공주]]가 아닌 육영수의 분신이었고,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 사건]]으로 죽은 영부인의 딸이란 동정표까지 더해져, 당시 노인들은 박근혜만 보면 '''"[[공주]]님 오셨다"'''며 큰 절을 올리며 눈물 흘릴 정도였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1042107005|#]] 더욱이 마음에 안드는 경찰청장이나 도지사를 호출하여 호통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최태민에게 분노한,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으라고 직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언을 듣기는 커녕 박근혜를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직에 올리고 최태민을 명예총재직에 올리는 조치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절망감이 [[10.26 사건]]의 동기가 되었다고 김재규는 증언하였다.
거기다가 김재규의 말이 아예 사실이라면, 박정희는 김재규를 불러 최태민을 대질시켜놓고 친국을 벌였다는 말이 된다. 당시 김재규는 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장으로 의전상 부총리였다. 대통령의 왼팔이 '''일개 사이비 종교인을 고자질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엄청나게 체면을 구긴 일이다. 2017년 기준으로 보자면 [[검찰총장]]이 사이비 교주 하나 기소했다고 대통령에게 친국을 당하는 것보다 더 심한 꼴이다. 거기다가 김재규가 최태민이 저지른 온갖 부정의 입증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오히려 최태민(정확히는 박근혜)을 신뢰하는 꼴을 보였다. 이는 김재규 입장에서 자신이 끝까지 모신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부장인 자신보다 어디서 굴러와 영애를 홀린 사이비 종교인을 더 신뢰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 있던 충성심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즉, [[10.26 사태]]를 결심한 동기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 [[박근혜]]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겼다. 김재규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가 지속될 경우 벌어질 잠재적 위험성을 알고 이를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기며 최후의 순간까지 경고 했지만, 그의 우려와 경고는 37년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월 26일날 최씨 일가도 같이 쏴버렸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인맥]]의 영향력이 더 컸다. [[박정희]]와 고향 후배이며 육사 동기라는 2중의 인맥인 김재규는 그야말로 심복이었다. 하지만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을 [[발터 PPK]] [[권총]]으로 저격하여 [[암살]]했다.[* 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박정희 암살에 성공한 총기는 [[M36 치프 스페셜]]이다.] 이것이 이른바 [[10.26 사건]]이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경호원들을 다 죽이고 [[확인사살]]까지 했으나 박상범은 기적적으로 총알이 치명적 부위를 피해간 데다 부상입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찧어 기절해 죽은 것처럼 보였고, 식사하던 경호원들을 중정 요원들이 습격하는 과정에서 경호원들과 같이 식사하던 중정 직원들[* 포섭해 두지 않아 내막을 몰랐던 이들]인 운전수와 [[요리사]]가 자신들의 총에 다치는 바람에 확인사살에 소극적이어서 죽음을 면했다.
특히 박정희를 암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평소 차지철은 대통령 경호라는 미명으로 온갖 월권행위와 [[경거망동]]을 서슴치 않았고, 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주동자 1순위는 단연 차지철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실제로 사건이 터진 후 청와대로 들어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유고 소식을 들은 김치열 당시 법무장관은 "그 새끼가 까불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군!!" 하고 호통을 쳤는데, 그 새끼는 물론 차지철을 지칭한 것이었다.
* ① 대통령의 그늘 밑에서만 권력을 휘두를 뿐 대통령 사망 후에는 특별한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특권을 휘두르는 군부의 협조가 절실하므로 이를 얻기 위해 육군본부로 갔을 거라는 설. 특히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는 김재규와 원만한 관계였으므로, 그에게 자신의 [[박정희]] 저격을 알리고도 그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으리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이었고 박정희 암살자에게 협조하여 그의 정권 획득을 도울 장성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김재규는 당시 군에 자기 인맥이라고 볼 수 있는 장군을 거의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 ② 김재규가 [[박정희]]를 순전히 우발적으로 저격했으므로 거사 후 사태장악에 대한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설. 사건 수사결과에 의하면 거사 후 김재규는 [[정승화]]와 승용차에 동행하여 사건현장을 떠나 이동하던 중,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에게 "정보부와 육본 중 어디로 가는게 좋겠느냐"고 묻자 정승화가 말을 가로채어 "육군본부로 가는게 좋겠다"고 제의하였고, 김재규는 아무 생각 없이 운전기사에게 육군본부 행을 지시했다. 이때 정승화는 안가 본관(연회장은 나동)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가 사건을 저지른 김재규와 차에 동승한 것이었는데, 그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가 육본으로 갈 때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박흥주 대령의 구두를 빌려 신을 정도로 우왕좌왕했던 행동을 볼 때, 이 견해도 설득력은 있다.
사건에 대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두환]]은 알려진 바와 같이 [[12.12 군사반란]] 때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긴급체포하여 군을 장악하게 되었고, 김재규는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980년 5월 20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박선호, 유성옥, 김태원과 같이 사형이 확정되어 기각 4일 만인 5월 24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소수의견으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내란목적이 아니라 자연인 박정희를 살해한 단순살인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형사3부 판사인 양병호와 서윤홍은 '''[[내란]] 목적이라기에는 암살후 김재규의 움직임이 너무나 어설펐기 때문에 내란을 목적하고 박정희를 죽인 게 아니고 그저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본 것'''이며 최종판결 당시 민윤기 등 6명의 판사들이 내란죄 불성립 의견을 냈다. 이로 인해 소수 의견을 낸 판사 6명은 신군부의 보복으로 전부 법복을 벗어야 했으며 특히 양병호는 보안사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였다. 훗날 양병호는 김재규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박정희를 사살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당시 판결문은 비공개 처리되어 묻혀버렸으나[* 80도306 판결 참조. 내란죄에 있어서 목적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미필적 인식, 즉 자신의 행위가 범죄발생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만 되도 행위자가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인해 구성요건이 충족된다. 즉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일 때 국헌문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목적은 없었으나, 대통령의 사망이 국헌문란을 가져올 것을 미필적이나마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으로도 국헌문란에 대한 목적의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소리다.], 훗날 공개되면서 당시 몇몇 재판관들의 용기있는 소수의견들이 밝혀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11034|한홍구,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 참조]].
반면 상대적으로 비판[* 옹호든 비판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등은 김재규 부장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당시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와 말년의 박정희는 대한민국은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기에 김재규가 10. 26 사태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박정희 역시도 여타 독재자처럼 말년이 비참했을 것이고 후세의 평가도 좋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쪽에서는, '''그 또한 과거 유신정권하에서 한자리를 해먹던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며, 박정희를 암살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를 국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심판할 기회를 빼앗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 갖은 압제와 고문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해오던 자신들보다, 단순히 박정희 한 명 암살했다고 김재규가 포커스를 더 받는 건, 몇십 년을 민주화 투쟁한 사람들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의해 투쟁해온 이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게 애초 김재규는 박정희와 친형제 같은 사이였고 중정부정이라는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10.26 단행 이전의 행보를 보더라도 정보수집과정에서 유신정권도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박정희도 말년에는 20년 절대 권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10.26 단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는 차지철, 이후락 같은 다른 유신인사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근데 전두환 노태우꼴을 보면 심판도 안받았을 확률이 높다---
다만, 소극적인 국민들의 성격과 견고한 기득권의 힘 때문인지 몰라도 근·현대사를 통틀어 당사자 개인에게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진 사례는 실제로 흔치 않다. 또한 [[박정희]] 본인은 [[이승만]]이나 [[전두환]], [[노태우]]와는 달리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해도 결코 자리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또,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게 잡아도 수천, 많으면 수만에서 수십만의 애꿎은 목숨이 필요할 터인데 그것을 대신 이루어준 것이 과연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실제로 [[장준하]]가 긴급조치로 구속되었을 당시 감방동기였던 이해학 목사는 "당시 장준하가 '이제 민중투쟁으로는 안 된다. 양심적인 군인을 포섭해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수 말고는 박정희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상당히 절망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재규는 [[차지철]]과의 갈등 이전에도 유신의 방향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자주 내비쳤고, [[장준하]] 등의 민주화 운동 인물들을 비밀리에 도우면서 관련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박정희를 '환자'로 비유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고, 법정에서도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보이며 사형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자세를 보았을 때 단순히 차지철과의 갈등으로 인한 우발적인 권력 싸움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결정적으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결단했던 건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대응책 방향이었는데, 박정희와 차지철은 강압적인 진압을 요구했으나 김재규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이것이 10.26이라는 도화선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이 [[박정희]]와 유신의 망령을 떨치고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게 될 때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 김희철(1983) . . . . 90회 일치
>'''횡성에서 유명한 게 딱 두 개 있어요. [[한우]]와 '김희철'. - [[김구라]]'''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예능인. 공식 이름은 희철이 맞지만 보통 그의 본명인 김희철로 잘 알려져있다. '''아이돌계 돌아이의 대표주자'''[* 아이돌계에서 비글미와 사건사고로는 어느 그룹보다 뒤지지 않는, 덜 미친 자는 있어도 안 미친 자는 없다는 [[슈퍼주니어|그 그룹]]에서도 멤버들과 팬들이 공인하는 가장 미친 놈...--[[유리(소녀시대)|이 분]] 왈 : 싹바가지--]이자 '''아이돌계 미모 종결자.''' 뚜렷한 이목구비와 미소년 이미지로 데뷔 초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한 줄로 설명 가능한데, 천하의 '''[[SM엔터테인먼트]]에 얼굴로 입사한 인물'''이다. 친구들과 서울에 처음 왔다가 오디션 시간에 30분 지각했는데 관계자가 얼굴을 보더니 어라? 하고 기회를 줬다고. 연예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다른 이유 없이, 2002년 어느 날 횡성 집에서 빈둥빈둥 TV를 보다가 마침 [[싸이]]가 3집 챔피언을 들고 가요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른 걸 보게 되었고, 그걸 보며 '어? 나도 연예인이나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가서 지원했다고 한다. 참고로 노래는 [[애국가]]를 불렀다. 그렇게 3년을 연습하다가 [[반올림]]2 에 출연하며 먼저 배우로 데뷔를 하고 8개월 후 [[슈퍼주니어]]에 합류하며 가요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팀 내에선 이특과 함께 맏형을 맡고 있다. 이 정도로 서로간의 캐릭터가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들 두명이서 맏형을 맡은 그룹도 참 드물지 않을까(...) 아이돌 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히 독보적이라 할 정도로 예쁘장한 미모를 가진 대표 [[미소년]] 비주얼의 아이돌. [[여장]] 사진이 진짜 여자보다 훨씬 더 예쁜 남자 연예인으로 정말 유명하다. [* 이 분야의 후임으론 같은 소속사 후배 출신의 [[태민]]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느낌이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특정 각도에서 보면 태민은 희철과 닮은 꼴이다. 덕분에 10년마다 나오는 얼굴이란 짤방도 있다.]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튀어 보이는 예쁜 얼굴과, 그와 정 반대로 솔직하고 할 말 다하는 성격과 자유분방하고 아이돌계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개성있는 ~~돌+I~~ 캐릭터 덕에 대중에게나 팬덤에게나 더 쉽게 각인이 되었다. 특히 이런 캐릭터가 소속 연예인 관리에 엄격하다고 알려졌던 [[SM엔터테인먼트|SM]] 출신에서 나왔다는 것에 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활동 초기부터 인지도로 최상을 찍은 멤버 가운데 하나였으며 예능 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멤버들 중 하나가 되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안그래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그룹이고 그중에서도 유독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 쉬워보이는 성격과 캐릭터덕에 오해를 받기 쉽지만 의외로 희철은 사생활 관리도 매우 철저하고 '''사건 사고가 전무하다.''' 음주운전이라던가 팬들을 속상하게 할만한 열애설이 거의 없었단 게 그 증거. 최근 [[강인]], [[성민]] 등의 멤버들이 잇따라 보이콧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지만 희철은 슈주 멤버들 중에선 의외로 모범적인 태도를 가진 멤버 축에 속한다. 그외에, 팬들과의 소통도 활발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멤버들을 상당히 잘 챙겨주고, 멤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본인 SNS에 많이 올려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탈퇴한 중국 멤버 한경과 친하게 지내서 미니홈피에도 글을 자주 올리곤 했는데 한경이 탈퇴하자 충격에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최근 한경이 매니저없이 한국 여행을 와서 희철과 찍었단 사진을 게재하는 걸 보면 여전히 교류는 이어가고 있는 듯.] 또한 스스로 '''꽃은 꽃잎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팬들을 자신의 꽃잎이라고 부르는등 자기 사람, 자기 팬은 확실히 챙기고 아이돌로서의 태도도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다. 교통사고로 부상 당했을 당시 팀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자기 빼고 활동하라며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최근에도 다리 부상때문에 팀에 차질을 주고 짐이되는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자신의 아픔은 자신만 알면 된다는 생각에 방송에서 이 얘기를 섣불리 꺼내지 않았던 일화도 있다. 자신은 다리가 아파 활동을 덜 하는 만큼 예능에서 슈퍼주니어를 더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대중성 있는 꽃미남 비주얼에, 호불호가 갈리는 마니아적인 캐릭터라는 특이한 조합 외에도, 기본적으로 성실한 태도와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기에 인기를 끄는 것.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세계 단위 개인 팬덤[* '꽃잎'이라고 한다. 영어권 팬덤은 'Petal', 중화권 팬덤은 '花瓣', 일본 팬덤은 '花びら'라고 한다. 모두 꽃잎이라는 뜻이다.]을 거느리는 이유가 있다. 팬들을 내새끼들 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기도. 활동도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많아서 사실상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활동한 슈퍼주니어를 알리며 잊히지 않게 하는 멤버.
2011년 9월 1일 입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동안 복무하고 2013년 8월 30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익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입소 당시 좀 난리였는데 2006년도에 같은 멤버인 [[동해(슈퍼주니어)|동해]]의 부친상에 조문하고서 상경하다 차가 중앙분리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어[* 대퇴부와 발목 부분 골절상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뼈에 철심 7개를 박는 대수술이었다.]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 [[아이돌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든 인터뷰든 저보다 아픈 분도 훨씬 더 많을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다는 얘기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핑계 대기 싫었거든요." 실제로 [[아는 형님]]에서 [[이승기]]의 훈련병 당시 중대장이자 희철의 중대장이었던 분의 제보에 따르면 희철이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군대에서 태만하다는 이미지를 떨치고 싶어서 다리가 죽을 듯이 아파도 훈련에 다 참여했다고 한다.] 다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실제로도 활동을 하면서 과격한 동작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음악방송을 예로 들면 제대 후인 2014~15년에는 약하게라도 무대를 전부 소화할 수 있었으나,([[https://youtu.be/4y1yRNJ9iuk|#]]) 2017년 [[Black Suit]]에서는 후반부에만 등장했고,([[https://youtu.be/_PMkWwo6xaw|##]]) 반년 뒤 나온 리패키지 [[Lo Siento]]의 무대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수술을 [[2008년]]에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왼다리로 넘어졌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굉장히 아파했고, 아는 형님에서도 닭싸움이나 다리를 심하게 쓰는 코너에서는 제외된다.] 콘서트 무대는 아직까진 잘 소화하는 중이지만, 과격한 안무나 무대 퍼포먼스 후에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익 활동 당시엔 트위터도 없애고 팬들에게 절대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고, 성실히 복무했다.[* 성실히 복무를 한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파일:external/contents.dt.co.kr/2013083002019919794015.jpg]]]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8819&imp=whot|관련기사]] 단, 공익근무시간에 LOL을 한 전적이 있었으며(당시 닉네임: 김기복), 이에 대해 해명하길 친구가 했다고~~대ㄹ..~~ 했다. 아무튼 군 문제에 관해서 대중들의 여론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호(1987)|이민호]]와 같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던 명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범적으로 사회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는 편.
멤버들과의 잦은 갈등과 2006년 교통사고과 인한 건강 악화로 3집 활동 전체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멤버 [[은혁]]이 '형, 형자리 만들어 놨으니 들어만 와요.'라는 말에 3집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뒤 발표된 8집 [[Black Suit]] 활동에서도 [[은혁]]은 희철을 활동에 참여 할 수있게 붙잡아 줬다.] 이로서 3집을 끝으로 탈퇴를 결심하였으나 이후 [[이수만]] 대표의 만류와 [[한경(배우)|한경]]의 소송을 계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팀 활동에 임하게 된다. '[[Sorry, Sorry]]'와 '[[너라고 (It's You)]]'에서 극후반부에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탈퇴를 생각했을 당시에는 잦은 개인 활동으로 인한 멤버들 간의 갈등과 본인의 정체성 때문에 가수보다는 연기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었다고 한다.
* tvN "[[SNL 코리아]]"[* 희철은 스케줄상 3분 시리즈만 출연했다. 그러나 역대급 18금 연기와 신들린 애드립으로 짧고 굵은 레전드 영상을 남기고 갔다는 평이다. 참고로 네이버 TV 35위 진입으로 역주행해 2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날 방송된 SNL 코리아 영상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와 조횟수, 좋아요 수를 기록했다.] (2017)
네이버 블로그도 시작했지만 지금은 트위터와 함께 찬밥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의리 있는 성격이라 친해지면 오래 간다고 한다. 데뷔 초부터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방송, 드라마, 라디오등에 출연하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분을 쌓아 나갔고 본인의 의리 있는 성격이 겹쳐져 2018년 현재 어마무지한 인맥 라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사실상 웬만한 메이저 아이돌들은 김희철과 친분이 있으며, 예능에 자주 출연하다보니 예능 MC들과, 데뷔 초 시트콤 출연 경력 등으로 배우들과도 친분이 있는 등, 연예계 다방면으로 인맥을 자랑한다. 가장 자주 만난다는 인맥그룹은 AB형 혈액형을 가진 남자연예인들의 모임인 쪼코볼[* '''쪼'''금 싸이'''코''' 같지만 '''볼'''수록 매력있는 남자들.]로 [[장근석]], [[이홍기(가수)|이홍기]], [[조성모]], [[미쓰라 진]], 낯선, [[쌈디]], 김정모 등이 멤버이다. 자주 술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인 [[BoA]]와도 친분이 두텁다. 게임 전문 아프리카 BJ나 소속사 대표들도 알 정도로 연예계나 비연예계 전방으로 엄청난 친목을 자랑한다. 근데 오히려 슈주 멤버들과 덜 친하다고 절친 노트에 나오기도 했다(...) 슈주에선 [[최시원]]과 [[동해]]와 가장 친하다. [[이특]]과는 성격이 정반대라 자주 싸우기도 하는데, 본인은 이 관계를 '''친하지 않은데 안 친하지도 않은 사이(....)''' 라고 표현하기도. [[한경]] 과도 절친한 사이여서 한경이 탈퇴한 이후 우울증에 걸려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미니홈피에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탈퇴 이후에도 만남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방신기]]에서는 [[유노윤호]]와 친분이 있으며, [[동방신기]]를 탈퇴하고 [[JYJ]]로 활동하는 멤버 [[김재중]]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절친노트 출연 이후 은혁과 서로 절친이라고 부르며 친함을 과시했고, 심지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절친그램, 사생그램 등의 태그와 함께 은혁의 사진들을 마구 업로드했다. 이 때문에 은혁은 덧글로 경찰을 찾았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시원이 유일하게 전도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한다.(...)
걸스데이 유라와도 꽤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희철을 인생술집 MC로 부탁한 건 유라.
[[태연]]과 김기복 남매라고 불릴 정도로 친하며, 그 외 [[소녀시대]] 멤버들과도 친하다. 전 멤버였던 [[제시카(가수)|제시카]]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현재는 서로 언급이 없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4가지쇼]] 김희철 편에서 소녀시대가 출연했을 때는 김희철에 대해 '싹바가지', '미친사람', '정신나감' 등이라고 표현하며 가식없이 대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밖에도 소속사 후배 그룹인 [[EXO]], [[레드벨벳]], [[NCT]]와 허물 없이 지낼 정도로 잘 챙겨주며[* [[NCT]] 멤버 [[태용]]에게 게임용 컴퓨터를 사줄 정도로 허물없이 잘 챙겨준다], [[카라(아이돌)|카라]]의 [[구하라]]와 [[EXID]]의 [[하니(EXID)|하니]],[* 팬들은 이 두 사람을 희남매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사실 희남매는 시리즈가 있는데, 1기는 김희철과 그의 누나 김희진을 합쳐 희남매, 2기는 데뷔 초 박희본과의 라디오 케미를 합쳐 희남매, 3기가 바로 EXID와 하니와의 케미인 희남매다.] [[윤보라]]와도 친하다. 또한 [[김신영]], [[AOA(아이돌)|AOA]] 멤버인 [[지민(AOA)|지민]] , [[설현]] 셋과 자주 놀러 다닐 정도로 친하다고 한다.[* 일명 '신김치파'. 2018년 6월 2일자 아는 형님 방영분에 따르면 희철이 하도 모임 참여를 안 해서 탈퇴 직전이라고 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1화 참조.
[[김구라]]의 [[흑역사]]였던 인터넷방송 시절 김구라의 열성팬으로 팬 정모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얼굴을 합성해 놓은 팬픽이 있지만 시각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찾아볼 사람만 찾아보자.(...) 때문에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와 스캔들(...)이 날 정도의 친근함을 과시했으며 희구라 커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비슷한 성향이라 할 수 있는 [[박명수]]도 추종하는 듯, [[무한도전]] 뒤끝공제 특집에 출연해 그 면모를 확실히 드러냈다.
[[김장훈]]과도 친하다. 데뷔 초부터 김희철이 김장훈 모창을 주로 밀었고 이로 인해 가까워졌다고. 입대하기 전 <이별 참 나답다> 라는 싱글을 낸 적도 있다. 음악방송에서는 [[예성]]이 김희철을 대신해 불렀다. 김장훈이 공황장애로 입원했을 때 문병안을 오기도 했다. 그때 김장훈은 미니홈피로 싸이와 돈가스 먹은 기사를 봤다며 자기도 돈가스 시켜달라고 했다면서 돈가스 먹으러 온 놈이라고 디스했다(....)
상당한 게임광이라 휴일엔 집에 틀어박혀 게임밖에 안 하고 온라인게임도 그럭저럭 손을 대는 중이라고 한다. [[와우]] 모 서버의 [[호드]](블러드엘프)였다가 [[얼음왕관 성채]]가 나왔을 때 즈음 [[얼라이언스]]로 전향했다. 소집해제 후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고 있는지, 2013년 11월 27일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나는 캐리다]]에 출연했다. '김희철 동호회'라 하여 [[강민]], [[박정석]], [[이현우(게임 해설가)|이현우]], 오기종과 함께 나왔는데 결국 [[김캐리]]급 멘탈 인증(...) 그리고 방송 후 [[롤갤]] 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받게 된다(...) 이때 공개된 김희철의 티어는 플5. 이즈리얼, 베인, 케이틀린이 모스트인 원딜러인 듯. 아프리카TV BJ들과 게임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해킹당한 이후 게임을 접겠다고 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물론 게임은 계속한다. 최애캐는 리신. 참고로 같은 팀 멤버인 규현도 상당히 겜덕이다.
2014년 초부터는 [[홍진호]]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홍진호의 라디오 출연 중 전화를 걸어서 반말을 까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물론 방송용으로 만들어낸 친분이 아니라 이전부터 같이 밥도 먹고 하던 사이였던 듯. 사실 홍진호와 김희철이 같은 동네의 주민이라는 것이 [[나 혼자 산다]]에서 홍진호가 게스트로 출연한 화에서 밝혀졌다. 또한 [[이두희]]와도 친분이 있는 듯. 인스타그램에는 홍진호 이두희와 찍은 사진과 함께 '여자한테 인기 없는 게임만 하는 오타쿠 셋이 모여'라는 멘트를 남기기도. 근데, 홍진호는 라디오에서 [[태연]]을 소개 받기 위해서 김희철을 더 만난다고 폭로했다.[* 물론 진심은 아닌 것이, 김희철은 과거 서로의 만남 주선을 해달라는 사람과의 인연은 바로 끊는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래서 [[박초아]]의 열애설 당시, 열애설 상대를 희철이 중개해줬다는 추측성 기사 내용에 심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이 시기, 아는 형님에서 서장훈의 재혼 드립이 언급 됐을 때, "그럼 그 소개는 내가 해주는 거네? 이런 젠장~"이라고 한다. 물론, 그 기사 때문에 분노한 거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타 연예 기획사 수뇌부들과도 친분이 많은데 주간아이돌 크리스마스 특집 때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게스트로 출연한 [[걸스데이]], [[TWICE]],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러블리즈]]의 기획사 임원들과 깊은 친분이 있음을 인증했다. [[울림 엔터테인먼트]] 실장, [[JYP 엔터테인먼트]] 정욱 사장,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와 절친이라고 한다.[* 소성진 대표의 경우는 SM에서 매니저 생활을 했었는데 이때 친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김희철&김정모]]가 출연한 슈키라에서 박진영, [[MBK 엔터테인먼트]] 김광수 대표,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김시대 대표 등 유력 굴지의 기획사 대표들과 형동생으로 지낸다고 언급했다. 예전에 [[플레디스]] 한성수 대표와도 친하다고 했었다. 그 친분 덕에 [[오렌지캬라멜]]의 샹하이 로맨스 작사를 '''우주대스타'''라는 필명으로 맡기도 했다.
심지어, [[아는 형님]]에서는 [[걸스데이]] 편의 소진의 별명인 '''이모''' --이 것도 모자라 슈주랑 평균나이대가 비슷하다고 팩트를 날려버렸다--[* 사실 이모라는 별명이 그래서 온 것도 있다(...)], [[TWICE]] 편에서 사나 별명인 '''사또떨('사'나가 '또' '떨'어트렸다)'''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자, 소진의 "맞아..." 하는 장면과, 나연의 "와... 대박이다!!!" 하는 장면은 포인트. 게다가, 걸스데이 소진의 나맞혀 정답 중 하나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걸스데이가 출연하며 했던 소개 멘트인 "아가아가 아가공주 소진"이였는데, 출처를 정확히 기억해내기도 했다. 민아의 머리가 노란색이였던 것까지 기억한 건 덤. --그 땐 완전 데뷔 초창기였을텐데???--
그 외에도 소속사 선배인 [[강타]]와도 상당히 친하고 잘 따르는 걸로 알려져 있다. 2016년 강타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와서 한 말에 따르면, 게스트로 초대하고 싶은데 부를까 말까 한참 고민하며 속 끓이고 있던 강타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직접 받아가면서 저 나갈게요!를 외쳤다고 하며, 소속사 디스용 뒷담화를 한다거나 뭔가 고민이 있거나 하소연할 일이 있을 때 등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찾아와서 상담한다고. 강타는 그래서 김희철과는 늘 진지한 대화밖에 나눈 일이 없다고 밝혔다. --정작 본인 말로는 '''"형이 너무 재미없으니까 나까지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당일 이 말을 직접 들은 강타의 팬들은 이미 아재개그에 노출된지 22년 차라 아무렇지 않게 익숙해져서 재미있다고 옹호했으며, 김희철은 그 말에 "님들이 이러니까 강타 형이 본인 개그가 재미 없는지 인식을 못한다!!!"고 팩폭했다.--
인맥이 많아서 약간 신뢰 없는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김희철은 인맥 관리에도 매우 철저하고 자신이 친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챙기고 잘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평가가 높다.[* [[강은비]]가 한창 100만 안티에 시달리던 시절인 2006년, 레인보우 로망스 시사회에서 동방신기와 김현중의 팬들의 협박 때문에 강은비가 실신하자 강은비의 안부를 직접 챙기고 촬영장에서 무개념 팬들의 접근을 막는 등 강은비를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강은비는 지금도 김희철에게 고마워한다고.] 특히 여사친이 상당히 많기도 한데, 김희철은 일단 본인이 여자와 친구가 된 이상 그 여자를 절대로 이성으로 보지 않으며 본인이 이성으로 느껴지거나, 상대방이 자신에게 감정을 가지고 다가올 경우 친해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캔들 한 번 없는 것도 철저한 인맥관리 때문일지도. 또한 주위 인물이 여자 연예인을 소개 시켜달라고 하면 바로 차단을 시켜버리는 등,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초아 열애설 때 중개를 자신이 시켜줬다는 추측성 기사 때문에 엄청 불쾌했다고.
- 몽키 D. 루피 . . . . 84회 일치
||<:>혈액형||<:>F형[* 징베와 같다]||
||<:>[[아미보]]와의 콜라보||<:>[[마리오(닌텐도)|마리오]]~~당연한 걸 가지고 새삼스럽기는~~||
'''~~초반엔 천재속성도 있었지만..~~뇌는 슬라임 급이지만 개념은 작중 최고인 자기 해적단 최고의 근육머리 바보(...)겸 개그캐''' 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다, 특히 머리 쓰는 일을 잘 못한다. 독불장군 기질이 심해서,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끌어가는 경우도 많다.정신력과 의지력은 초인적인 수준이며(쉽게 말하자면 그냥 멘탈이 강하다) 동료애도 강하다. 다른 사람의 동료애에도 공감하고(그래서 아론의 동료를 방패로 썼나?)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하며, 반대로 동료를 속이는 것을 혐오한다. 동료들이 루피를 따르는 이유 또한 루피가 매사에 솔직하고, [니코 로빈|동료의 ][바로크 워크스|과거가 어떠하든] [프랑키|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동료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프랑키|조선공]이나 [니코 로빈|고고학자]는 첫 만남 당시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일단 동료로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그런 과거는 일절 따지지 않고 대우해준다.--좋게 말하면 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거지만 루피 성격으로 봐선 멍청한 게 더 잘 어울린다.--물론 이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샹크스와 빨간 머리 해적단의 영향을 받은 건지 수직적인 관계보다 허물없이 대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모험과 스릴을 즐기는 취향이 원인 중 하나. "목숨보다 모험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섬의 위험도를 알려주는 기록지침을 보자마자 '''가장 위험한 섬'''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 탓에 나미와 우솝은 이런 기능은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원피스의 테마를 드러내기엔 가장 적절한 선택이지만, 한 집단 리더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아무래도 신세계를 [[에버랜드|에X랜드]]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모양--
>"그저 조금만 도와주거나 하면 친구라고? 이런 바보가 어디있어? 이용이나 당하기 딱이지, 젠장. 그래도 너같은 녀석에게 빚만 지는 건 사양이다!"
그리고 [[남자의 로망]]에 약하다. 합체, 광선빔, 브레스, 7단 변신 등등을 보면 눈을 빛내며 심하면 울기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소년들의 로망으로 통하는 장수풍뎅이도 굉장히 좋아해서, 자야에서는 사우스 버드를 잡느라 한창 바쁜 와중에 쵸파와 같이 곤충을 잡고 있었다(...)[* 사족으로 이 장면에서는 '''그 루피가 무언가를 설명하는 희귀한 장면이 나온다(!!!)'''--그 설명도 엉망인건 넘어가자.--]
물론 '''일반적인 루피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냉철한 구석도 있다는 뜻이지, 루피라는 인물 자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다. 물러설 때를 알기는 하지만 당장 동료나 친구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에니에스 로비|상]][[정상결전|황]]이면 몇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달려든다.
아론 파크를 공격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나미(원피스)|나미]]에게 밀짚모자를 씌워준 뒤 아론 파크로 가는 장면이 있다. 또한 드럼 섬에서는 [[상디]]와 함께 나미를 데리고 의사를 찾기 위해 드럼 록키를 올라가던 중, 라판이 일으킨 눈사태에 의해 상디가 눈 속에 파묻히자 나미에게 잠시 밀짚모자를 맡기고 상디를 찾기 위해 눈으로 뛰어든다. SBS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이므로, 이걸 남에게 맡긴다는 건 '''너는 내 동료이며,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루피가 처음으로 동료에게 밀짚모자를 씌어준 것도 나미가 처음이다. 아론 파크편에서 나미가 더 서글프게 눈물을 흘렀던 것은 그런 루피의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
정상 결전 후 레일리와의 수행을 시작할 때는 안전한 장소에 밀짚모자를 걸어둔 뒤 수행에 임한다. '해적 밀짚모자 루피는 휴업'이라는 의미.
한편, [[실버즈 레일리]]의 회상 장면에서 [[골 D. 로저]]와의 첫 만남이 나오는데, 당시 로저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또, 샹크스가 루피에게 모자를 맡길 때 '이 모자는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내 보물이다.'라고 말하였다. 게다가 레일리가 루피를 보며 '그 모자에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으므로, '''[[http://mypi.ruliweb.daum.net/mypi.htm?id=ky352729&num=12504&cut=1 루피의 밀짚모자는 본래 로저의 것이었다]]'''는 얘기가 된다.~~모자 하나를 몇십년동안 쓰고있는거냐~~~~최강 내구도 밀짚모자~~
=== 해적단 결성 후와 구성 멤버 ===
해적사냥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해적단을 결성하였으며 처음에는 단 둘뿐이었다. 루피가 계속되는 동료를 찾다가, 소규모 ~~[[어선]]~~해적단이란 소리를 들을 쪽수는 채웠다. 그런데 멤버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철철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며[* [[러시아식 유머|순록을 닮은]] [[토니토니 쵸파|너구리]](절대 오타가 아니다.), [[프랑키|로봇]]도 있는데 왜 또 [[브룩(원피스)|해골]]까지 동료에 추가하려 드냐고 상디한테 한 소리 들은바 있다.] 특히 [[위대한 항로]] 진입 이후에 들어온 동료는 전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 조로, 나미, 우솝, 상디는 '''일단은'''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지만 쵸파는 순록 + 악마의 열매 능력자, 프랑키는 사이보그, 브룩도 해골 - 악마의 열매 능력자다. 그나마 외모로는 멀쩡하게 생긴 인간인 로빈도 악마의 열매 능력자. 사실 나머지 멤버도 조로, 상디는 초인급 싸움을 보여주고 나미는 위대한 항로에서 관측할 수 없는 사이클론을 감으로 예측하며 우솝은 사법의 탑 꼭대기에서 저 멀리 떨어진 다리에 있는 해군들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등 나머지 네명도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고, 일단 루피부터가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타입인 만큼 안 친한 멤버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해적단 내에서는 [[우솝]]과 가장 친한 편이다. 우솝이 좀 심한 겁쟁이에 평범한 인체스펙과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루피는 무모한 성격과 악마의 열매로 인한 특이체질과 엄청난 힘 정도만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정신세계와 개그코드는 그야말로 [[소울메이트]]급으로 죽이 잘맞는다. [[남자의 로망]]을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둘다 [[빨간 머리 해적단]]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알다시피 [[샹크스(원피스)|샹크스]]는 루피의 '''인생 나침반''' 같은 존재이고, 동료인 [[야솝]]은 우솝의 '''아버지'''이다.] 그와 연령까지 똑같다.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참 많은 콤비. 그래서인지 우솝이 루피의 바보짓에 태클을 많이 거는 만큼 루피의 장난에 가장 많이 받아주고 같이 행동하는 것도 우솝이다. 해적단에 별일 없으면 항상 루피 옆에는 우솝이 붙어 있다. [[토니토니 쵸파|쵸파]]가 합류한 이후로는 이 셋이 늘상 붙어다닌다. 일명 '''막내라인.''' 그렇기에 이 둘이 다투는 모습은 [[워터 세븐]]에서 [[고잉 메리호]]를 놓고 싸운 것이 유일했을 정도로,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가장 친했던 멤버와의 처절한 결투를 비극적으로 그려내었다. 물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프랑키|새로운 동료]]와 [[사우전드 써니 호|새로운 배]]가 생겼고, 배에 대한 트러블로 잠시 해적단을 이탈했던 우솝도 다시 돌아왔지만. 추가로 우솝이 루피에게 해적단에 멋대로 나간 점을 사과하고, 자신을 다시 넣어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런 우솝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눈물콧물범벅이 된 루피의 모습은 참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솝의 재합류 이후로는 역시나 쵸파랑 항상 셋이서 붙어다닌다.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다이아몬드급 멘탈의 소유자로, 어린 시절에 해적에게 납치당해 피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지고도 끝까지 ~~자기를 처리하려 한~~ 사보와 에이스의 행방을 털어놓지 않았으며, 스릴러 바크 편에서는 어지간한 인간은 2~3개 이상 넣으면 의식이 못 버틴다는 그림자들을 100개나 넣고도 거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스토리를 맞추기 위한 사기급 주인공보정 능력~~ 정상결전 편 임펠 다운 탈출한 뒤에 벌어진 싸움도 이미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텨낸 것.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꼴을 당했는 데도 이런 낙천바보로 성장한 것 자체가 멘탈갑이다. 루피가 정신적 충격으로 [[멘탈붕괴]]를 일으킨 것은 에이스가 죽었을 때 뿐이며, 정확히는 에이스의 죽음을 기폭제로 그간 중첩되어 있던 막대한 정신적[* [[샤본디 제도]]에서 상황상 동료들이 [[바솔로뮤 쿠마|쿠마]]에 의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과 [[임펠 다운]]에서 탈출하기 위해 봉쿠레를 희생시킨것] , 신체적[* [[샤본디 제도]], [[임펠 다운]], [[마린 포드]]에서 받은 신체적 부담감] 부담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보아 행콕]]의 정신계 공격에 끄떡도 하지 않는다. 여성들도 예외없이 걸리는 능력인데다 전보벌레는 물론이고 무생물(벽)도 돌로 만드는 능력이다. 단지 [[동자공]] 혹은 [[고자]]라서 무사할 수 있었다는 변명만으로는 모자랄 듯. 게다가 보아 행콕의 알몸을 보고도 전혀 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는 [[나미(원피스)|나미]]의 알몸을 보고 두 번이나 코피 흘리기도 했던 걸 보면[* 한번은 [[Mr.2 봉쿠레]]가 나미 모습으로 변신한 뒤 '''이렇게도''' 변신할 수 있다며 나미의 알몸까지 재현해 보여줄 때(...)와 싸움이 끝나고, 여탕 엿보다가 나미가 보여줬을 때. 그러나 나미가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는듯한 표정으로 보고있는 듯했다. --고자는 고자일 뿐--]...그러나 루피가 이런 성적인 묘사에 흥분하는 건 옆에 우솝이 있을 때 (분위기를 타고)한정이라는 설정이 단행본의 SBS코너에서 나왔다.
또한 도플라밍고와 루피의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리더십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패왕색 패기의 소유자로써의 카리스마는 제각자 다른 형태로써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행콕의 경우는 그것이 절대적인 미모를 통한 매료로써 나타난 셈. 행콕과 같은 패왕색 패기의 소유자인 루피가 행콕의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카리스마]]에 매료되지 않는 건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드래곤볼]]의 [[손오공(드래곤볼)|손오공]][* 사실상 거진 오마쥬 캐릭터 같은 느낌에 가깝다. 먹보에 감으로 행동하고 동료를 중요시하며 자유로운 성격에 강한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호승심, 적을 잘 죽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그리고 반죽었다가 살아나면 강해지는 사이어인스러운 면까지] 으로 대표되는 먹보 캐릭터로 식사를 하루 다섯 끼로 계산하고[*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 [[크로커다일]]과의 전투 후 의식을 잃고 자신이 3일만에 깨어났다는걸 알자마자 한다는 말이 '15끼를 건너뛰어 버렸어!!(...)'. 하루에 '''5끼'''씩 3일로 계산하면 15끼가 된다. 그런데 원래 뱃사람들은 환경 적응과 육체 활동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서, 보통 식사를 다섯 끼 정도로 계산하여 섭취한다. 그렇지만 원피스의 세계에서는 뱃사람들도 세 끼를 먹고, 다섯 끼를 '유독 많이 먹는' 편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한 끼에 먹는 양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아서 뱃사람도 세 끼만 먹는 걸지도. 작중 식사 씬을 보면 연회가 아니라도 확실히 양이 많다.] 특히 고기라면 환장을 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게 고기일 뿐이지 다른 음식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고, 더불어 고기가 많다고 고기를 우선적으로 먹거나 하지도 않고 있는 대로 다 집어먹기 때문에 사실 영양이 치우쳐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무엇보다 상디가 영양 밸런스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어수룩한 요리사도 아니다. SBS에서 독자가 "루피는 그렇게 많이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나요?" 라고 작가에게 물어봤는데 작가 왈 '''"저렇게 날뛰고도 살이 안 빠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하루 이상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고기라는 발언에 반응해 깨어나기도 했다. 다쳐서 의식 없이 드러누워 있으면 굶어야 하는 게 싫어서 그런지 후반 들면 자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등 좀 이상한 데로 발전하기도 했다.[* [[CP9]]의 [[로브 루치]]와 싸우고 이틀간 자면서 먹는 스킬을 썼다. [[몽키 D. 가프]]가 사랑을 실은 주먹으로 때려서, 강제로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일어나면 밥 먹은 기억 없다고 또 처먹겠지~~ ~~대표적인 먹보 캐릭터인 손오공도 차라리 잠을 푸욱 자면 잤지, 자면서까지 저리 먹어대지는 않는다.(...)~~ 비명이 나올정도로 맛이 없다는 악마의 열매를 와작와작 잘 씹어 먹은걸 보면 맛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싫어하는 음식은 하나뿐이고 그 하나도 맛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다.
동인 쪽에서는 원작에서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하렘]]마스터 기믹으로 나오고 있다. [[주인공 보정|루피와 인연이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커플링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사실 동인계 쪽에서는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루피와 인연이 있는 '''남성'''들과도 커플링이 만들어져 있을 정도니(…) 마성의 페로몬에 더해 만인의 연인에 가까운 기믹이 있다고 보면 된다.
여타 배틀만화 주인공 캐릭터의 전투 스타일이라는 것이 그럭저럭한 내구에 위력적인 필살기를 주로 한 강력한 한방 공격력을 행사하는 경향을 주로 보이지만 루피의 경우는 사실 단타 기술 중에서 자신의 완력 이상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기술은 고무고무 '총탄'과 '라이플' 정도.[* 자신의 완력에 되돌아오는 고무의 탄성력이 더해진다. 라이플의 경우 회전력도.] 다른 위력적이라 할 수 있는 기술들은 전부 '''도핑''' 기술이다.[* 기어 3의 경우도 단타에 가깝게 사용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도핑기술이다.] 롤 플레잉 식으로 따지자면 쓸만한 공격 스킬이 없는 대신 기본 스테이터스와 셀프 버프 스킬이 개깡패라고 생각하면 된다.
완력에 있어서는 사실 극초반에는 고무의 특성을 위시해 강력한 공격을 가하는 듯한 연출이 많았지만, 알라바스타와 하늘섬을 거치면서 완력이 점점 '''이상할 정도로''' 강해진다. 아론과 싸울 때까지만 해도 피스톨을 아론에게 잡힌 적이 있고 철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오는 장면의 임팩트가 강한 정도였다. 그리고 피날레에서는 고무고무 도끼로 전력을 다해 두들겨서 아론 파크를 내려앉게 한 정도인데, 에니에스 로비 시점에서는 손이나 발 어디든지 대충 뻗으면 '''석조 건물'''들(…)이 스티로폼이라도 된 듯이 우르르 무너질 정도니 초반과 위대한 항로 중반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 희빈 장씨 . . . . 83회 일치
산림숭용과 국혼물실을 당의 제1강령으로 추구했던 [[서인]], 특히 [[인현왕후]] 민씨의 배경 세력이었던 노론의 강력한 적으로 규정되었다. [[1701년]](숙종 36년) [[숙빈 최씨]]의 발고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의를 받고 [[조선 숙종|숙종]]에게 자진을 명받았다.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 등의 소설 야사에서는 사약을 마시고 사사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숙종실록 등 정사기록은 주례의 규정에 따라 사사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목을 메어 자결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녀의 아들인 [[조선 경종|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조선 영조|영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 [[인현왕후|인현왕후]]의 폐위와 죽음의 범인이자 3대 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의 원흉으로 정의하여 비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어 민간으로 보급된 [[인현왕후전]], 수문록 등의 언문 소설과 야사집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 서적과 드라마 등에 중요 사료로 활용되었다.
{{인용문|오례가 신사를 행할 때에 숙정 등 여러 사람들이 또 같이 참석하여 축원하기를, ‘기해생(己亥生)【장씨(張氏)가 기해년에 났다.】을 몰래 도와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지난해 6월에 오례가 숙정에게 ‘10월에 마땅히 뇌동(雷動)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원컨대 상사(賞賜)를 받게 해 주소서.’라고 하니, 숙정이 ‘만약 그와 같이 된다면 마땅히 중한 상을 받을 것이니, 반드시 세자와 기해생을 몰래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기사}}
외할머니 변씨는 조선 최고의 갑부 역관으로 유명했던 [[변승업]]의 당고모로, [[변승업]]의 아버지이자 소설 《허생전》에 변부자로 등장했던 변응성의 사촌누이(백부의 딸)이다. 외삼촌 윤정석은 조선의 부를 장악했던 [[육의전]]의 면포 상인이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1권,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9일(갑진) 4번째기사</ref><ref group="주">윤정석의 본래 출신이 기록된 《숙종실록》에는 "시인(市人)으로 면포(綿布)를 파는 자"로 기록하고 있다. 17세기 조선의 한성에서 면포를 팔 수 있는 건 오직 [[육의전]] 상인 뿐이다.</ref>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공초되었을 때의 기록에 따르면 1680년 장씨가 출궁되어 은평구 친정에서 머물 당시에 담 하나를 두고 이웃에 살았던 만큼 누이인 윤씨와 관계가 매우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언니는 관상감 관원인 김지중에게 출가하여 1691년 당시 관직이 종7품 직장이었다. 오빠 장희재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희빈 장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후궁이 되기 7년 전인 경신년(1680년)에 키가 크고 외모와 무술이 뛰어난 명문가의 자제만으로 구성된 [[내금위]]에 재직<ref>《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ref> 하였으며 1683년에는 좌포청 부장으로 있었다.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사촌형인 [[장현 (조선)|장현]]은 [[조선 효종|효종]] 8년에 이미 정2품 자헌대부를 제수받고 숙종 1년에는 이미 종1품 숭록대부에 올라 공을 세워도 더이상 품계가 올라갈 수 없어<ref group="주">생전에 정1품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건 [[문관]]에게 한정된다. 《동의보감》의 저자이기도 한 명의관 [[허준]]은 [[광해군]]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제수받았다가 문관의 반발에 의해 취소되었고, 사후에야 비로소 추증됐다.</ref> 자식과 조카가 대신 승봉되어야 했던 거물 역관으로 재산은 국중거부의 명성을 얻을 정도였으며, [[장현 (조선)|장현]] 형제의 자식들은 무관 및 역관, 혹은 의관으로 고위직에 있었다. 그녀의 일족이 비록 문신 사대부 가문은 아니었지만 조선에서 손 꼽히는 대부호였으며 사회적 위치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같은 해,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에 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숙종실록이나 인현왕후전 등에는 숙종을 모시기에 장씨의 출신이 천하고 성품이 극악한 이유로 쫓아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경신환국]] 당시 [[장현 (조선)|장현]] 일가가 [[복평군]] 형제와 절친한 사이이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몰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명성왕후]] 김씨의 사촌 오라비 [[김석주]]였던 것으로 비추어 장씨의 보복을 견제한 탓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출궁된 직후인 [[1681년]] 1월 3일에 계비 간택령이 내려졌고, 3월에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대비 김씨]]와 [[송시열]]의 추천으로 민씨([[인현왕후]])가 간택되어 [[1681년]] 5월 14일 [[조선 숙종|숙종]]과 민씨가 가례를 올렸는데 본래 [[명성왕후|대비 김씨]]의 친정 가문과 원한이 있던 [[송시열]]과 [[민유중]]<ref group="주">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우명]]은 당파로선 엄연한 서인이었지만 [[조선 현종|현종]]의 척신으로서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판하고 [[남인]]의 손을 들어주어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민유중]]은 과거 [[김우명]]의 형인 [[김좌명]]과 심하게 다투어 벼슬을 버리고 지방에 은거하였던 경력이 있다.</ref> 의 혈육인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가 된 것은 [[경신환국]] 당시 [[서인]]과 손을 잡았던 명성왕후의 정치적 계약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인경왕후]]의 죽음 직후 계비로 내정된 민씨를 위해 장씨를 [[조선 숙종|숙종]]의 곁에서 치운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ref group="주">본래 정처의 3년상이 마치기 전에 재혼하는 것은 경국대전과 의례의 조항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이는 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 숙종|숙종]]이 [[인경왕후]] 김씨의 사후 3년상은 고사하고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을 한 것은 조선 왕실 역사 상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있어야 할 [[인현왕후]] 민씨와의 재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던 서인은 [[인현왕후]] 민씨의 사후 3년상이 마쳐지기 전에 [[조선 숙종|숙종]]이 계비 간택령을 내리라는 명을 내리자 반대를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권, 28년(1702 임오 / 청 강희(康熙) 41년) 8월 27일(병오) 2번째기사</ref>
1680년 겨울, 장씨가 출궁되자 [[장렬왕후|자의대비]]가 숭선군저에 친필서찰을 넣어 [[장렬왕후|자의대비]]의 친정 질녀이자 숭선군의 부인인 신씨의 보호를 받도록 하였다. 출궁된 장씨는 가장이 된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 부부의 집에서 어머니 윤씨와 함께 지냈다. 1701년 공초 당시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처 작은아기는 출궁된 당시에도 장씨가 무속에 기대었다는 사실을 발고한 바 있다.
흔히 장씨가 출궁된 당시에 궁핍한 삶을 살았고, 숭선군 부인 신씨와 [[장렬왕후|자의대비]]를 자주 방문하여 다시 입궁하길 간절히 소원하였다고 알려졌는데 이 해석에는 오차가 존재한다. 출궁된 궁녀는 왕궁 출입은 고사하고 엄중한 감시 아래 사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장씨가 출궁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당숙부인 [[장현 (조선)|장현]]과 장찬 형제가 유배형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이는,
라는 [[사간원]] 헌납 [[윤빈]]의 비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683년에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직위가 포도부장이었던 기록이 존재하며<ref>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장씨의 동복 언니는 [[관상감]] 직장이었던 김지중에게 출가한 상태였는데 1701년 [[김지중]]의 증언으로 미루어 김지중이 처가에 왕래하며 장희재와 밀접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는 만큼 생계가 어렵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장씨의 외삼촌 윤정석은 면포를 팔던 시전상인이었는데, 면포(무명)가 국법 상 [[육의전]]만이 매매가 가능한 독점 상품이었던만큼 윤정석이 일개 장삿꾼이 아닌 [[육의전]] 상인이었음을 뜻하며 이는 윤정석이 상당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윤정석은 장희재의 집과 담을 하나 두고 살았을 만큼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1683년]] 10월, [[조선 숙종|숙종]]이 두질(豆疾: 두창, 마마, [[천연두]])을 앓았다.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왕대비(王大妃)]] 김씨는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함께 [[조선 숙종|숙종]]의 쾌차를 기원하기 위해 무당의 권고대로 절식을 하고 매일 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치성을 올리다가 감질(感疾: 감기)에 걸렸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와병 중이라 쉬쉬하며 치유치 않다가 점점 위중해졌고, [[조선 숙종|숙종]]이 온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12월 5일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ref group="주">이 사실을 발고한 [[박세채]]의 상소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명성왕후|대행왕대비(사망한 왕과 왕후에겐 대행을 붙인다)]] 김씨가 무속을 싫어하였다며 강력히 부정했다. 『숙종실록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12월 15일(임자) 2번째기사』 하지만 다음해 2월 박세채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어 무녀 막례가 유배되었다.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2월 21일(정사) 3번째기사』 실제로 [[명성왕후 김씨]]는 전속 무당을 두었을 만큼 무속을 신봉했고, [[조선 숙종|숙종]]도 무속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ref>
==== 숙종의 총애와 후궁 책봉 ====
김씨의 간택을 전후로 [[서인]]은 천재지변의 원인으로 장씨를 지목<ref group="주">[[인현왕후]]의 가례일에는 지진이 있었으며 [[인현왕후]]가 복위하자 초여름에 서리와 눈이 내린 것, 장씨에게 자진의 명이 내린 후부터 여러 달 심각한 천재지변이 계속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ref> 하거나 제왕은 여색을 멀리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장씨를 궁 밖으로 쫓아낼 것을 수차례 종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김창협]]은 "후궁으로서 가까이 사랑할 사람이 간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진실로 관어(貫魚: 궁인들의 순서)를 순서대로 할 수 있게 하여 종사(螽斯)의 경사가 있게 하고 미색(美色)에 마음이 현혹될 근심과 치우치게 사랑에 빠져 은총을 열어 준다는 비난을 없게 한다. (중략)"<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9월 13일(갑오) 1번째 기사</ref> 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는데, 이는 장씨의 미색에 현혹되지 말고 궁인의 지위 순서로 성총을 내려 후사를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서 승은궁녀인 장씨보다 정궁인 [[인현왕후]]와 당시 유일하게 후궁의 지위를 갖고 있던 [[영빈 김씨|숙의 김씨]]([[김창협]]의 5촌 당질녀이다)에게 사랑을 주어 그들에게서 후사를 보아야 비난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ref group="주">1689년 2월에 [[김창협]]의 아비 [[김수항]]이 [[송시열]]의 상소를 막지 못했다는 죄로 삭탈관직이 된 것에 대해 사관은 [[김창협]]이 장씨를 지목하여 간한 이 발언으로 [[조선 숙종|숙종]]의 노여움을 얻어 보복받은 것이라고 기록했다.</ref>
숙종은 [[인현왕후]]와 [[영빈 김씨|김씨]]에게서 장씨를 떨어뜨리기 위해 중궁전과 후궁의 처소가 있는 [[창덕궁]]이 아닌 [[창경궁]]에 비밀리에 인부를 불러 장씨의 처소를 새로 건축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숙종이 직접 장씨를 종4품 숙원으로 봉해 정식 후궁으로 만듦<ref group="주">승은궁녀에게 첩지를 내리는 것은 내명부 수장인 중전의 고유권한이었다.</ref> 으로서 인현왕후의 처지를 위해 장씨의 출궁을 종용하던 서인은 더이상 숙종에게 장씨를 출궁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장씨를 숙원으로 봉하며 하사하기로 한 노비 100명과 전답은 흉년을 이유로 무기한 연기하도록 하였다.<ref group="주">[[조선 숙종|숙종]]이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최초로 관직을 내린 것은 원자 명호를 취소할 것을 주장한 [[송시열]]의 상소로 인해 [[남인]]이 정계로 돌아온 후이며, 승진이 아닌 부서 이동에 불과했던 것으로 미루어 장씨가 후궁이 되고도 친정이 혜택을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숙종 15년 2월 11일 (기유) 원본333책/탈초본17책 (5/26)』</ref>
[[인현왕후]]는 직접적으로 숙종에게 숙원 장씨를 쫓아낼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숙종에게 [[명성왕후]] 김씨가 꿈에서 계시를 내리길 장씨가 원한을 품고 환생한 짐승의 화신이며 불순한 무리(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궁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발언했던 기록이 숙종실록에 실려 있다.<ref>숙종실록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2일(정유) 2번째기사</ref> 또한, '장씨 팔자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노고하셔도 공이 없을 것이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는 모두 훗날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되어 폐출되는 이유가 된다. [[조선 숙종|숙종]]은 원자([[조선 경종|경종]])가 탄생하자 [[인현왕후]]가 매우 노여워했으며, 급작스레 주가(主家: 공주의 처소.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 혹은 [[명안공주]] 등을 의미한다)와 더욱 친밀해지고 [[1688년]] 2월, '[[조사석]]이 장씨 친정의 청촉으로 상신에 제배되었다'는 소문을 유포했던 것이 발각되어 유적에서 삭제되고 위리안치된 [[홍치상]]의 방면을 종용했던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ref group="주">[[1688년]] 4월에 발발한 [[기사환국]]의 여파로 [[노론]] 과격파였던 [[김만중]]이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문되었는데 소문의 근원지가 [[조선 숙종|숙종]]의 고모인 [[숙안공주]] 들에게서라는 자복이 있자 [[홍치상]]에게 교형이 내려졌다. [[갑술환국]]으로 [[홍치상]]은 다시 복관되었지만 [[조선 숙종|숙종]]은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높은 연세인 공주가 집에 있으니, 내가 차라리 떳떳하지 않은 데에 빠지겠다. 특별히 복관(復官)하라'하며 불쾌함을 드러냈으며, 1702년 [[홍치상]]의 아들이 [[홍치상]]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하자 '[[홍치상]]의 지은 죄는 만번 통분할 일인데 아들이 감히 격고하였다'며 분노를 터트렸고 곧 '지은 죄가 낭자한데도 관작이 그대로인 탓이다'하여 복관한 관작을 다시 거두었다.</ref>
덮개가 달린 가마인 옥교를 탈 수 있는 부녀자는 3품 이상인 동반(문관) 당상관의 어미와 처, 딸과 며느리로 국법이 정해져있는데 당하관에 불과한 천한 역관<ref group="주">문관은 역관을 천인으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수치스럽다하여 청국행(淸國行)을 기피한 문관을 대행(代行)해온 역관들의 직위와 부귀가 종내에는 문관을 넘어서기에 이르자 역관을 양민으로 분류되는 사노공상 중 최하층인 상인으로 분류하여 역상(譯商)으로 하칭하기도 하였다.</ref> 의 아내인 윤씨가 옥교를 탄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법은 여인은 얼굴을 공개하고 외출할 수 없다는 조선시대의 사정에 의해 오래전부터 지켜지지 않았고, 이에 서반(무관) 가문의 여인이나 당하관의 처첩은 물론 관직이 없는 양반가의 부녀자나 중인, 양인에 불과한 아속의 처는 물론 환관의 처부와 궁녀, 하물며 천민인 기녀와 침선비도 타고 다녔다. [[명성왕후]] 김씨의 친신 무당이었던 막례(莫禮)도 옥교를 타고 궁을 출입하며 굿을 했었던 만큼 사실은 아들을 생산한 소의 장씨에 대한 반감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옥교 사건은 그때까지 장씨에 대한 [[서인]]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조선 숙종|숙종]]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같은 당하관의 아내인 귀인 김씨의 어미도 옥교를 타고 수시로 궁에 드나들지만 문제 삼아진 적이 없으며, 장씨의 생모는 후궁이 해산할 때 교자를 타고 입궁할 수 있다는 왕실 규례에 따라 [[조선 숙종|숙종]]의 어명을 받고 입궁한 것이며, 어명을 상징하는 선소동패(宣召銅牌)를 보였음에도 입궁치 못하고 내쫓긴 것은 왕을 능멸하는 행위임을 선포하며 [[이익수]] 및 사헌부 관원을 체포하여 엄형을 내리고 사형할 것을 명하였고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도 벌을 내릴 것을 선포했다. 하지만 [[조선 숙종|숙종]]의 척신이자 최측근이기도 했던 우의정 [[조사석]]마저 윤씨가 탄 가마가 8인교<ref group="주">옥교에는 2인교, 4인교, 6인교, 8인교 등이 있는데 이후 사치풍조가 만연해져서 12인교도 생겨났다. 임금과 왕후가 타는 가마는 연으로 20명이 들었고, 세자의 연은 16명으로 규정되어 있다. 공주와 옹주가 타는 덩은 8명이 든다. [[조사석]]은 윤씨가 공주와 옹주의 덩보다는 못하지만 8명이 드는 8인교를 탄 것은 부당하다고 고발한 것이다.</ref><ref>《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정연식 저</ref><ref group="주">사람이 드는 가마의 상급은 말이 끄는 가마인데 쌍교와 독교로 나뉜다. 말 두 마리가 앞뒤로 가마를 끄는 쌍교가 상급으로 2품 이상과 승지만이 탈 수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영조시대엔 이미 예사로와진 일이 되어 여인들도 쌍교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는 숙종시대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신생왕자의 외조모이자 왕명을 받고 입궐하던 윤씨가 8인교를 탄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행위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윤씨가 옥교를 탄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ref> 였음을 강조하며 [[영빈 김씨|귀인 김씨]]의 어미는 비교 대상이 아님<ref group="주">귀인 김씨의 어미는 당상관의 아내는 아니지만 판서였던 [[이정영]]의 딸이다. 또한 귀인 김씨의 종조부인 [[김수항]], [[김수흥]]이 정승이었기에 [[조사석]]은 귀인 김씨의 어미는 역관 가문 출신인 윤씨에 비해 옥교를 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ref> 을 주장함으로써 숙종은 서인 대신은 물론 윤씨를 모욕한 하리에게 내린 벌조차도 취소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숙종 15년(1689) 2월 1일에 [[인현왕후]]의 외가 친척이기도 한 [[송시열]]이 이미 종묘에 고한 원자 정호를 철회하라는 비판상소를 올리자 [[조선 숙종|숙종]]은 진노하여 [[송시열]]을 치죄하라는 명을 내리지만 [[서인]]으로 이루어진 [[승정원]]에서 명을 받들지 않았다. 앞서 [[조선 숙종|숙종]]이 [[김만중]]의 치죄를 명할 당시와 흡사한 배경<ref group="주">[[김만중]]을 추포하여 문초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승정원에서 항명하여 전지를 봉입하지 않았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은 입직한 승지에게 전지를 쓰라고 명하였지만 붓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되었으며 사관 [[송상기]]는 붓을 빌려주라는 [[조선 숙종|숙종]]의 어명을 거부했다.</ref><ref>숙종실록 13년(1687 정묘 / 청 강희(康熙) 26년) 9월 11일(병술) 3번째기사</ref> 이었기에 [[조선 숙종|숙종]]은 분개하여 삼사와 [[승정원]], [[사간원]] 등 왕의 최측근 요직에 있던 서인을 파직하고 경신환국 때 실권하여 은신 중이었던 [[남인]]을 조정으로 불러 교체해버린다. 동시에 [[조선 숙종|숙종]]은 2월 2일 장씨의 선조 3대를 정승으로 추증(追贈)했다.<ref group="주">추증은 위로 올라갈수록 한 등급씩 감하는 것이 관례여서 장씨의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張炯)에게 영의정을 증직하면, 조부에게는 종1품 찬성(贊成)을 증직해야 했다. 숙종은 “사체(事體)가 다름이 있으니, 모두 의정(議政)을 증직하라”고 명해 [[장형 (조선)|장형]]은 영의정, 장수(張壽)는 좌의정, 장응인(張應仁)은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3대가 모두 정승에 증직된 드문 경우였다.</ref> 다음 달 3월엔 그녀의 외조부인 일본어 역관 윤성립을 2품 정경으로 추증하고, 외삼촌인 윤정석에게 사포별제<ref group="주">품계로는 6품에 이르나 녹봉이 없는 무록관이다.</ref> 직을 내려 장씨가 더이상 비천한 역관에 불가한 가문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서인]]이 차지하고 있던 삼사(三事: 삼정승)와 승정원, 사간원의 중앙 최고 요직이 경신년에 조정에서 밀려나 은신 중이었던 [[남인]]으로 교체되자 조정으로 돌아온 [[이현기]](李玄紀)·[[남치훈]](南致薰)·[[윤빈]](尹彬) 등은 먼저 원자 윤의 탄생과 [[조선 숙종|숙종]]의 원자가 정해진 것에 대해 경하와 찬사를 올려 [[서인]]과는 극적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경신년에 [[남인]]에게 대역죄를 씌워 [[경신환국]]을 일으켰던 [[서인]]을 향한 정치 보복의 시작이었다. [[송시열]]에게 유배령을 내리고 [[김수항]] 및 일부 [[서인]]을 조정에서 내쳐버리긴 했지만 분노가 가시지 않았던 [[조선 숙종|숙종]]은 [[남인]]의 부추김으로 [[송시열]]을 최고 유배지인 제주로 유배할 것을 명하고 [[김수항]] 등에게도 진도 유배령을 내렸다. [[민암]]을 위시한 [[남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6판서·참판·참의 등 남인 경재(卿宰) 수십인과 사헌부·사간원이 합계(合啓)하여 과거의 환국([[경신환국]])을 위해 역모를 날조하여 무고한 남인 영수 [[허적]]과 [[윤휴]] 들을 살해하였고 과격한 처벌로 죄없는 [[남인]] 인사를 학살한 [[김석주]]와 [[김익훈]]의 죄를 묻게 하였으며 이들을 옹호하였던 [[송시열]]과 [[남인]] 옥사의 위관으로서 [[남인]] 재상 [[오시수]] 등을 죽게한 [[김수항]]의 가중처벌을 맹렬히 주장하였다.
다음날 23일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생일이었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국상기간 등을 이유로 탄일 하례 의식을 생략하라는 어명을 내렸지만 국모의 당연한 권한이라는 이유로 어명이 무시되고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하례가 올려졌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이 분노하여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크게 다투고, 조정 대신들에게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교사스럽고 간특한 부인'''으로 칭하며 평소의 언동<ref group="주">시부모([[조선 현종|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계시를 빙자하여 희빈 장씨가 아들을 낳을 수 없는 팔자라고 거짓을 고한 것, 원자가 탄생하자 노여워하며 주가(主家: 공주의 시가.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를 의미)와 급격히 친밀해지고 [[홍치상]]의 무죄방면을 종용한 것, 궁인들의 당파를 나눠 핍박한 것, 폐출되는 [[귀인 김씨]]에게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가마를 타지 말고 걸어서 빨리 궁에서 나가라고 재촉한 것 등</ref> 을 비난하며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국모로서 군림할 자격이 없으니 고사를 찾아보라는 명을 내렸다. 이는 민씨를 폐서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이에 [[서인]] 대신 뿐만 아니라 [[남인]]조차 당황하여 [[권대운]] [[목래선]] [[김덕원]] [[민암]] 등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올려진 '''탄일 문안은 신자(臣子)들의 상례'''이니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는 죄가 없음을 주장하며 강력히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변호하였고, [[권대운]]은 고사를 찾으라는 [[조선 숙종|숙종]]의 명에 불복하며 사직을 청하였다. 이러한 조정 안팎의 반발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서인]]은 처벌하고 [[남인]]은 용서하는 차별을 보임과 동시에, 24일에는 [[인현왕후|중전]]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과 크게 말다툼을 하면서 그녀 자신의 입으로 '진실로 나의 죄이다. 어찌할 것인가? 폐출시키려거든 폐출시키라.'는 과격한 언사들을 입에 담았던 사실을 폭로했다.
5월 2일, [[조선 숙종|숙종]]은 당시 사대부 여성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던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언사를 낱낱이 폭로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킨 후 폐서인하여 강제로 출궁시켰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폐출은 폐비 윤씨와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녀의 인성이 여후<ref group="주">한고조([[유방]])의 아내 [[여태후]]를 의미한다. 여태후는 중국 3대 악녀(여태후, 측천무후, 서태후)로 꼽히는데, 투기와 잔혹성은 여태후가 단연 으뜸이다. 여태후는 남편 한고조가 사망하자 그녀의 정적이었던 척부인의 혀와 팔다리를 자르고 인간돼지라고 명명하여 변소에 장식하였으며 척부인의 소생을 살해하였다.</ref> 와 흡사하다고 비교하였다. [[인현왕후]] 민씨에게 물어진 죄는 죽은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여 왕에게 거짓을 고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를 말한다</ref>, 왕의 육체를 조롱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주상이 노고(勞苦)하셔도 공이 없을 것'''의 부분을 말한다.</ref>, 투기로 내전(內殿)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켜 국정을 어지럽힌 죄<ref group="주">서인이 장씨를 출궁시키도록 종용한 것과 옥교 사건,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삼은 것에 대한 서인의 반대를 의미한다.</ref>, 내전에서 궁인의 당파를 나누어 붕당을 일으킨 죄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폐서인]] 민씨의 남겨진 물건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명하였으며 그녀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장복은 대내에서 공개적으로 태우도록 했다.<ref group="주">이후 노론은 숙종이 옳은 주장을 한 [[송시열]]을 처벌하고 정권을 갈아치운 목적이 왕비 민씨를 내쫓고 후궁 장씨를 왕비로 올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왕비 민씨의 폐출은 장씨의 모략이었다고 기록한다.</ref>
- 김연경(배구선수) . . . . 77회 일치
불 같은 성격[* 의사와 상관없이 곧바로 화를 표출하는 불같은 성격은 신경계 연결 시스템이 유전된 것인데, 이것도 자식에게 유전된다고 한다.]과 승부욕이 있으며, 욕을 잘하는 편이고, 솔직한 걸 넘어서 직설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황하기도 한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때, 배구선수 한유미와 밥 먹는 자리에서 한유미에게 "언니는 성격이 드세고,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기 때문에 결혼하긴 힘들꺼다." 라고 해서 [[한유미]], [[양효진]]을 당황시켰다. 물론 한유미와 매우 친밀한 사이라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이렇듯 내면에 있는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하는 편.]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선수였던 큰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 이후 원곡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17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아[* 사실 16살이 160 후반대면 꽤 큰 키에 속하지만 배구선수에게는 작아도 정말 작은 키이다.] 벤치 멤버를 전전했다. 출전할 때도 센터나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했다. 본인은 이때 배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로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독하게 훈련을 하기 시작한다.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으며, 11시가 되어서야 운동을 끝내고 귀가하였고, 잘 때조차 공을 안고 잘 정도였다고 한다. [* 이때 익힌 기본기들이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장신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와 토스가 안정적인 이유가 이때 익힌 기본기의 산실이다.] 이후 한일전산여고로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적적으로 키가 20cm나 자라면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고[* 키가 갑자기 자란 이유에 대해서 김연경은 방송에서 [[콩나물]]을 비롯해서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147257|기사]].], 초고교급 선수로 각광을 받게 된다. 처음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것도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5년이었다.
또한 특유의 밝고 긍정적이며 승부욕 넘치는 성격은 어렸을 때부터 여전하다고.[* 특히 김연경의 개그본능은 배구팬들 사이에서 데뷔 초부터 유명했다. 그 덕에 각종 예능에 출연해 놀라운 예능감을 뽐내며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V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 스페셜v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MC를 자처하기도 했다. 덕분에 [[https://m.youtube.com/watch?v=pw-uQS7Ew7s|전]]보다 mc보는 실력이 [[https://m.youtube.com/watch?v=GjDlhxjaYJQ| 늘었다]]. ~~배구선수인데 왜?~~] ~~그 승부욕 때문에 피자 6조각 겹쳐 먹었다가 병원 실려간 건 안 비밀..~~ 더 궁금하다면 [[https://news.joins.com/article/3982719 |링크]]를 참고하자.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동기 [[김수지]]([[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 [* 이때 출전한 대회가 2005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득점 3위를 기록했다.]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배구선수)|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반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 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이라 쓰고 [[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개소리]]~~[* 인삼공사 감독 시절 보면 답이 나온다. 주전들이 모두 은퇴하자 갑작스레 구단에서 사퇴하여 이후 인삼공사 망가뜨린 주범이다.]을 남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어쨌든 이런 사정을 접어두고라도, 김연경은 일본 프리미어리그에서까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으니 일본 리그의 감독들까지 '''일본에서조차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만들었다.[* 물론 당시 일본 여자배구에는 오야마 카나(大山加奈), 구리하라 메구미(栗原惠), 기무라 사오리(木村沙織) 등 대형 거포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야마는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구리하라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이후에 폼이 급격히 무너졌으며, 기무라는 이 둘보다는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기는 했지만, 2010년대 초반 들어서는 예전만도 못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여자 배구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좋은 케이스. 2009-10 시즌 초에 신종 독감으로 고생하더니 2010-11 시즌 초에 역시 독감으로 몇 경기 결장한 바 있다. 그래서 팬들의 가슴을 졸이기도. 하지만 결국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JT 마블러스의 시즌 우승을 또 한 번 이끌어 냈다.[* 2011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 V리그는 잔여경기에 상관없이 시즌을 강제 종료했다. 이로인해 정규 리그 최종 성적이 시즌 통합 성적으로 인정되어 정규 시즌 1위였던 JT 마블러스와 사카이 블레이저스가 2010-11 시즌 우승팀이 됐다.]
여담으로, 팬들이 김연경이 뛰었던 팀중 선호도가 꽤나 높은 팀이기도 하다. 다케시타 요시에라는 일본의 명세터와 손발을 맞출 수 있는 기회였고, 김연경 본인또한 JT 마블러스에서 뛰며 배구 외적으로 문화, 음식, 예절 등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고 언급했기 때문. 팬들 입장에서는 초록색, 흰색의 유니폼과 아주 잘 어울려 좋아하기도 했다. 2년간 JT 소속으로 뛰어서 그런지 전세계적으로 배구 팬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은 김연경이지만 유독 일본에 열렬한 팬들이 정말 많다.
JT 마블러스의 흑취기 우승에도 큰 공을 세운 뒤 JT 마블러스와의 임대계약이 종료된 결국 2011년 5월 [[터키]] 명문 [[페네르바흐체 SK]]에 입단하게 된다. 역시 JT 때와 같은 임대계약. 여자배구에 있어서 터키 아로마 리그는 유럽 최대의 빅리그 중 하나인지라 얼마나 적응에 성공할 지는 미지수였던지라 페네르바흐체와도 1+1 계약을 맺었다. 그래도 일본에서도 ''''100년에 나올까 말까한 거포''''라고 칭송했으니.
페네르바흐체에서의 첫 시즌인 2011-12시즌의 활약은 아래와 같이 요약 가능. [[http://sports.media.daum.net/volleyball/news/breaking/view.html?cateid=100033&newsid=20120326081105330&p=xportsnews|#]]
터키 아로마리그에서 시즌 무패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했다.(플레이오프 최종 3위) 거기에 CEV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했다. [[MVP]]와 득점왕을 수상했다. 공격, 서브 분야도 1위이다.[* 한 선수가 죄다 독식하면 안 된다고 해서 2관왕 먹었지만 사실은 4관왕인 셈이라고.] 팀은 22연승. ~~홍진호~~ 뭔가 일본에서 본 것 같은 기사가 다시 보인다. ~~그냥 기분 탓으로 하자~~
그리고 종료 후 아제르바이잔 리그, 중국 리그 등 타국 리그의 팀에서 연 20억을[* 세계배구계에서는 사실상 최고 연봉 금액이다. 야구, 축구, 농구 등 리그 풀이 큰 리그의 고액연봉자에 비해서는 분명 많은 편은 아니지만. 참고로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로베르틀란디 시몬]]의 연봉이 이 정도다.]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 속에서도 거취 문제 당시 도와줬던 것을 잊지 않고 페네르바흐체와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8&aid=0002300250|관련 기사 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66&aid=0000247757|관련 기사 2]]
선수의 '자유 이적의 권리'와 구단의 '선수 운영의 권리'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2년이 넘게 벌어진 사건. 사건 당사자간 원만하게 해결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사건이었다.
2012년 들어 유럽 금융위기로 유럽 배구계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주전급 선수들이 [[러시아]] 리그나 [[아제르바이잔]] 리그로 옮겨가는 가운데 김연경 역시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다. 일단 2012 FIVB 월드 그랑프리 전까지는 거취를 결정짓겠다고 밝혔고, 결국 여러 이적설 끝에 [[페네르바흐체]]와 2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2012-13 시즌에 페네르바흐체가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김연경은 구단에서 팀내 최고 대우를 받으며 잔류 결정을 발표했다.
그런데 김연경의 임대 계약이 체결된 시점에서 KOVO 규정상 국외의 구단에 임대 계약시 선수 신분에 대한 조항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양측 모두 할 말이 있다.[* [[http://www.kovo.co.kr/info/museum/kovosystem_004.asp|한국배구연맹 선수등록 규정집]]에 따르면 '해외임대 선수의 국내 리그 복귀는 시한의 제한 없이 국내 원 소속 구단으로만 복귀가 가능하며 복귀 시점부터 소속팀의 당해 시즌 예상 잔여경기(정규 리그 및 포스트 시즌 진출시 해당 경기 포함)의 25% 이상에 참여할 경우 FA 선수 자격 취득 연수(年數)에 산입한다' 라고 나와있는데 이 조항은 2010년 8월 28일 개정되었으며 김연경은 소급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이 3항 위의 1, 2항에 해외임대선수가 선수 정원과 샐러리캡에 명시되어있는 이상 이 조항으로 해외 임대 선수의 국내 FA 선수 자격 취득 연수 여부를 가리는 데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게다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김연경을 [[JT 마블러스]]와 [[페네르바체 여자 배구|페네르바체]]에 임대했을 당시 기부금 명목으로 매년 선수 연봉 중 6천만 원을 갈취했다는 의혹이 있다.[* 원래는 1억이었는데 선수가 항의를 하니 무려 6천만원으로 깎아줬다. ~~대인배 코스프레~~] [[터키]] 아로마리그에 참가하는 배구팀인 [[페네르바체]]에 김연경을 임대하면서 김연경이 받아야 할 연봉인 100만 유로 중 20만 유로를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이 착복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선수의 신분을 두고 대립했던 문제가 구단의 금액 착복 문제까지 겹치자 결국 이 사건은 시궁창 싸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대한배구협회]]에서는 선수와 구단, 리그 어느 한쪽의 의견을 편향되게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제배구연맹(FIVB)의 유권해석으로 넘기게 됐는데 FIVB에서는 당사자인 김연경과 흥국생명과의 재협상을 명령했다. 이는 계약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된 선수도 소속팀이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단년계약으로 갱신하려는 행태와 함께 FA 신청 연한이 지났음에도 임대라는 이름으로 선수등록 권리를 가지려 하는 한국 배구계의 선수계약 방식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염두해둔 FIVB의 의중이었다. 다만 FIVB에서는 로컬 룰 존중이 우선이고 당사자 간의 숙고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우선적으로 제시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침 흥국생명이 [[임의탈퇴]] 공시를 한 즈음,팀 내부의 고민이 있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류현진]]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포스팅을 허락해 준 [[한화 이글스]]와 비교되어 더욱 까였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의 행보야말로 전형적인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도 못 가지게 하겠다 혹은 망가뜨려버리겠다' 라는 전근대적인 쓰레기 마인드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류현진]] 포스팅의 경우는 류현진의 소속팀이었던 [[한화 이글스]]도 상당한 포스팅비(이적료)를 챙길 수 있다는 점이 있었던 데 반해,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의 입장에서는 김연경이라는 선수를 거의 뺏길 판이었다. 김연경이 엄연히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소속 선수인 건 맞고 [[페네르바체 여자 배구|페네르바체]]에 임대를 간 것이었기 때문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입장에서는 정당한 것이고 KOVO와 FIVB은 그 점을 중히 여긴 건지 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제는 그 때문에 세계급 에이스가 국내에 발목잡히고 만 것. 이에 팬들은 ~~이런 흥국생명의 입장을 알려주면 알바 취급하면서~~ 흥국생명'''만''' 깠다. 하지만 김연경도 리그의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책임도 있다. 애초에 흥국은 임대료도 못받은것으로 알려졌다. '''그걸떠나 규정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구단이 리그 의사와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해 계약을 했고 리그가 이를 방치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KOVO의 주체 중 하나가 바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임을 고려하면...
결국 7월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7월 25일까지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국가대표팀 은퇴도 불사하겠다'''' 는 초강수 배수진을 쳤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8&aid=0002811844&date=20130715&type=1&rankingSectionId=107&rankingSeq=1|#]] 사실상 선수로서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셈이라 팬들은 말 그대로 복창이 뒤집어질 지경. 그리고 흥국생명은 가루가 나노분자로 분해되도록 까였다. 그런데 ~~기레기~~[[기자(직업)|기자]]들은 오히려 노골적으로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16936|김연경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288125|깠다]]. 그것도 모자라서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87546|김연경보고 귀화하라고 하는 팬들을 싸그리 디스하며 하등 쓸모없는 애국심만 들먹였다]]. 이런 와중에도 흥국생명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491478|언플이나 하면서]] 자신들의 멘탈이 쓰레기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쯤 되면 정말로 [[답이 없다]].
- 한명회 . . . . 70회 일치
압구정 한명회는 [[1415년]](태종 15년) [[음력 10월 25일]] [[한성부]]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며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사후에 [[증직]]으로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와 이초참판 겸 [[예문관]] 직제학 [[이척]](李逖)의 딸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모친 여주이씨 부인이 수태된 지 7개월만에 태어났다 하여 칠삭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태어날 때 배에는 태성과 두성 모양([[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영흥]]이라는 [[국호]]와 [[조선]]이란 국호 중 국호를 낙점받아왔다. [[한상질]]은 처음 [[경주 이씨]] [[문하시중]]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성림]](李成林)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딸만 1명 두고 요절하였으므로, 청풍송씨(淸風宋氏) 송신의의 딸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이 곧 한명회의 아버지 [[한기]]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10개월도 안되어 태어나 병으로 위기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몸 전체가 완전치 못하고 병약하여 온 집안이 거두려 하지 않으니 한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솜털 속에 싸서 정성껏 보살폈는데, 점점 자라서 몇 달 만에 웃고 안아 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가 태어날 때 배 위에 검은색 별 모양 점이 있었다고 한다.<ref name="hwan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42700&cloc=rss%7Cnews%7Csociety 한명회, 황보인 사위 될 뻔했다?] 중앙일보 2009년 6월 10일자 </ref> 이후 그의 몸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소문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 명진과 함께 고아가 된다. [[한학]]을 수학하였지만, 불행한 가계와 빈한함, 작은 체구로 주변의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고 민첩하였는데, 그의 종조 할아버지 [[한상덕 (조선)|한상덕]](韓尙德)은 그를 가리켜 집안의 천리마가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영통사]](靈通寺)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상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중추원사]](中樞院使) [[민대생]](閔大生)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남 4녀가 태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조선 예종|예종]]비 [[장순왕후]]와 넷째 딸이 [[조선 성종|성종]]비 [[공혜왕후]]이다.
{{인용문2|[[쿠데타|화란]]을 평정함에는 세상을 구제하고 난(亂)을 다스리는 것은 강력한 [[군주]](君主)가 아니면 할 수 없네. [[수양대군]](首陽大君)께서는 활달하기가 [[한 고조]](漢高祖)와 같고 영무(英武)하기가 [[당 태종]](唐太宗)과 같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천명(天命)이 그 분에게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지금 자네는 그 분의 필연(筆硯)을 모시고 있으면서 어찌 조용히 건의하여 일찍 결단하게 하지 않는가?}}
그는 강력한 군주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강력한 지도자와 엄격한 법 집행만이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느슨한 법집행과 온정주의는 도적과 부패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명회의 계책을 들은 [[권람]]은 [[수양대군]]을 찾아가 이를 고하였다.
{{인용문2|제 친구인 한생(韓生, 한명회)은 뜻이 웅대하여 간국(幹局)이 있고, 둘도 없는 [[국사]](國士)로 적합한 인물이며, 지금의 [[관중 (춘추)|관중]](管仲), [[악의]](樂毅), [[사마중달]], [[제갈공명]]과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께서 [[춘추 시대]] [[오나라]]의 계찰(季札)의 절개와 지조를 지키시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큰 뜻을 품고 이 세상을 평치(平治)하시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권람의 진언}}
수양대군이 머뭇거리자 한명회는 대의명분이 있음을 꾸준히 설득하였고,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국가의 안정을 구가해야 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유년 시절 [[조선 태종]]이 세종의 아들들을 데리고 산책을 갈 때 어느 점쟁이가 둘째 손자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한 말을 반복 언급, 주지시켰다. 확신이 선 수양대군은 그를 신뢰하였고, 모든 비밀 계략과와 밀모(密謀)는 그의 지휘에 맡겨졌다.
그는 거사의 준비에 앞서, 사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역할 분담을 할 인재들을 사전에 포섭해둘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각종 병장기와 함께 십만냥의 현금을 조달, 모집해 두었다. [[집현전]] 학사들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지지를 구하기도 했다.
그해 [[10월]]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의병(義兵)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김종서]]와 [[황보 인]]을 제거한다고 하자 실패를 걱정하고 군사들은 우왕좌왕하였다. 그러자 그는 칼을 빼어 들고 큰 소리로 말하며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한명회의 독려에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의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날 사병들을 동원하여 비밀리에 매복시키고, 그날 저녁 [[한성부]]를 점령하였다. [[홍윤성]]과 [[홍달손]]이 이끌고 온 군사들과 합류, [[김종서]]와 [[황보 인]]의 집을 습격하여 이들 일파를 제거하였다. 당시 [[집현전]] 학사들 중에는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황보인]]의 막강한 권력에 반발하는 뜻에서 한명회를 지지하는 여론도 조성되었다.
이어 한명회는 모사가들을 시켜 잔존 세력을 숙청한 후, 직접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황보인]]의 집에 찾아가 [[김종서 (1383년)|김종서]] 등과 [[황보인]] 일족을 참살케 한 후 군기녹사(軍器錄事)·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 1등관이 되었다.
[[6월 1일]] [[명나라]]의 사신이 [[한성부]]에 도착하자 운검(雲劒)들이 출입하려 하였다. 그러자 그는 미구의 사태를 대비해,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는 [[광연루]]에 사신이 많아서 자리가 좁다는 이유로 세자는 연회에 참석하지 말 것과, [[홍달손]]과 [[홍윤성]]을 시켜서 병력을 동원할 것이니 운검의 제장(諸將)들도 입시하지 못하게 하기를 주청하여 [[조선 세조|세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윤허하였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이 운검을 차고 곧장 들어오려 하기에 운검은 안 들어와도 된다며 제지하였다. 이에 거사의 실패를 우려한 운검의 병력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민첩하게 피하였다.
===== 변방 수비와 국방 활동 =====
그는 세조 집권 초반부터 변방의 성곽 수축과 병력 양성을 건의하고, 해안가에도 성곽을 쌓고 병력을 보내 방비를 튼튼히 해야 하며 미구에 있을 왜구와 [[여진족]]의 침략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56년]]부터 [[조선 단종|노산군]]과 [[금성대군]]을 처형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조선 세조|세조]]가 듣지 않았다. [[1457년]](세조 2년) 초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진하고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한 뒤,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었다. 그해 [[금성대군]]과 [[순흥부|순흥]][[부사]] [[이보흠]]의 모의를 적발하여 처형시켰다. 그해 겨울 [[조선 예종|해양대군]]의 [[왕세자]] 책봉을 주청(奏請)을 위한 [[세자]][[책봉]]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의 [[연경]](燕京)에 들어갔다.
세자 책봉을 성사시키고 [[1458년]] 봄에 귀국,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여름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의 3도에 흉년이 들어, 그를 특별히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3도 순찰사(巡察使)에 특별히 임명되어 구호물자를 싣고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순시하며 백성들을 구휼하고 돌아왔다.
또한 [[병조]][[판서]] 재직 중 [[평안도]]와 [[함경도]]에 병력을 이끌고 출정하여 변방을 출몰하는 [[여진족]]과 야인 부락을 토벌하고, 북변을 수습한 뒤, 북방에 축성하여 방어를 확실히 하고 되돌아왔다. 그 뒤 황해·평안·함길·강원도 도체찰사 등을 역임했다. 그해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고, [[1458년]](세조 3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승진했다.
[[1459년]]에는 황해, 평안, 함길, 강원 4도의 병권과 관할권을 가진 4도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임명되었다. 그는 당시 역할이 강화된 [[승정원]]과 [[육조]], 변방 등에서 왕명 출납권과 인사권, 병권 및 감찰권 등을 한손에 쥐게 되었다.<ref name="park115"/> [[1460년]] 그의 병권 장악을 경계한 [[조선 세조|세조]]는 [[평안도]]와 [[함길도]], [[강원도]]의 도체찰사 직은 [[신숙주]]에게 넘긴다.
한명회는 활쏘기에도 능했고 문예보다는 병법과 병권에 재능을 보였다. 오지였던 북방으로 파견을 나가는 일에도 망설임이 없었고 북방의 야인들을 토벌한 뒤에는 경계를 견고하게 하는데 남다른 공적을 쌓았다. 이 일로 한명회에 대한 세조의 또다른 신임을 얻게 되어 1461년 특명으로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다시 [[보국숭록대부]]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임명되고 [[판병조사]](判兵曹事)와 [[병조판서]], [[판의금부사]]를 겸임했다가 [[1462년]](세조 7년) 여름 [[대광 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우의정]]이 되었으며, 황해, 평안, 함길, 강원 4도 체찰사를 겸하였다. [[1463년]] [[의정부]][[좌의정]]이 되었다.
[[1463년]] 4도 순찰의 명을 받고 [[평안도]], [[강원도]], [[함길도]], [[황해도]]를 순찰하였다. 그가 순행을 갈 때 특별히 세자가 나와서 그를 전송하였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69회 일치
이야기는 한 저택에서 시작된다. [[모나 색스]]는 "맙소사! 내가 위기에 빠진 공주님이 되었네."[* God! I turned out to be such a damsel in distress. 맥스와 모나가 [[맥스 페인]]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맥스가 모나의 쌍둥이 자매인 리사와 헷갈려했다. 이에 모나는 리사는 위기에 빠진 공주님이고 자신은 눈 깜빡 안하고 사람을 죽이는 전문가라고 대답했다.]라고 읊조린다.
맥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청과 자신이 모나와 사랑을 나누는 환각에 시달리며 수술실에 도착한다. 수술실에는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이를 본 맥스는 베레타를 뽑아들고 남자를 조사하지만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때, 무장한 남성 하나가 맥스는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말을 하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온다. 맥스는 그와 싸움을 벌여 쏴 죽인다.
>과거는 퍼즐이다. 깨진 거울과도 같다. 조각을 모으려고 하면 손을 베인다. 이미지가 바뀐다. 그로인해 당신은 바뀐다. 그것은 당신을 박살낼 수도, 미치게 할수도 있다. 당신을 자유롭게 할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면서 선택한다. 가족에게 돌아가려 하지않고 [[알렉스 볼더|친구]]와 수다를 떨던 것 처럼 말이다. 그녀에게 키스, 나는 냉혹한 법의 원인과 결과를 생각했다. 난 두려웠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시작했다. 범죄현장으로의 내 발걸음을 따라갔다.
* 수술실 밖으로 나가서 아동실 창문에 붙어있는 그림을 보면 왠지 이야기가 된다. [[맥스 페인|아빠가 경찰인데, 어떤 자들이 아이와 엄마를 죽여서 아빠가 슬퍼하는 이야기]]…. 음?
맥스가 창고에 도착했을 때, 창고 안에서는 총소리와 여자가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 나고 있었다. 맥스는 베레타를 뽑아들고 지원을 요청한 후, 창고의 뒷문으로 진입한다.
청소부는 맥스를 데리고 가 셔터를 올려 주지만, 맥스가 셔터 너머로 들어가자마자 그곳에 있던 동료와 함께 공격해온다. 맥스는 이들을 처리하고 청소부들을 죽이면서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서는 청소부들이 카우프만이라는 자가 차를 대기해놓고 있으니 모든 증거를 처리해야한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로 총기 작업장 입구에 있는 총기 보관소는 텅텅 비어있었다.
맥스와 윈터슨은 각자의 일에 착수한다. 윈터슨은 경찰이 받은 "윈터슨 애인"의 전화를 넘겨받는다. 맥스는 컴퓨터에 스쿼키 청소회사와 카우프만을 검색해봤지만 나오는건 없었다.
이 와중 블라드의 방에 있는 자동응답기에는 애니 핀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 맥스는 그 메시지를 듣고 블라드가 "애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안심시키는 진짜 신사"라며 조롱한다. 한편, 블라드 방에 있는 화이트보드에는 만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주인공 모습을 한 인형탈이 그러져있다.
블라드를 찾던 맥스는 블라드의 동료인 카우보이 마이크가 단신으로 마피아 네명을 해치우는걸 목격한다. 마이크는 맥스는 보안관이니 부보안관이 필요하지 않냐면서 맥스와 동행한다.
맥스와 블라드가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자 마피아 언더보스인 [[비니 고그니티]]는 초조해 한다. 비니는 맥스 페인에서 맥스에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맥스를 포위해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부하들이 역으로 죽자 블라드를 욕하며 도망친다. 블라드는 맥스를 자신의 영웅이라고 부르며, 키스라도 해줄 수 있다는 농담을 한다.
* 상호작용키로 카우보이 마이크를 따라오거나 머무르게 할 수 있다. 또한 마이크는 죽을 수도 있다. 죽으면 칼라니시코프와 수류탄 두 발을 드랍한다.
맥스는 자고있던 소파에서 일어난다. 켜져있던 TV에서는 "주소지 불명"이 방영되고 있었다. 연쇄살인마 "존 미라"로 인해 범인으로 몰린 주인공은 싸구려 호텔에 숨어있었다. 그 때,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들겼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맥스의 집 현관문을 두들겼다. "주소지 불명"에서 문 밑으로 노트가 들어오듯이, 맥스의 집 현관문 밑으로도 [[모나 색스]]의 사진이 들어왔다. 맥스는 현관문을 열고 나와 미로로 된 아파트 복도를 달리고, 끝없는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맥스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다. [[짐 브라부라]]와 그가 이끄는 경찰들이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맥스가 손을 내리자 경찰들은 발포한다.
맥스는 취조실에 앉아있다. 윈터슨과 브라부라가 모나의 몽타주를 보여주며 맥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털어놓으라고 요구한다. 맥스의 가족이 죽은건 맥스 탓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맥스는 전화를 받겠다며 일어난 후, 책상에 놓여있던 권총을 집어든다. 그러고는 브라부라와 윈터슨을 쏴죽인다.
하지만 청소부들은 맥스가 사는 A동 3층의 계단으로 가는 문을 막아두었다. 이 때문에 맥스는 창문으로 나가 건물 외벽을 타고 건너편 B동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곳에도 청소부들이 있었다. 청소부와 총격전을 벌여 이들을 모두 처치한 맥스는 소음을 듣고 나온 B동 301의 할머니에게서 윗층이 리모델링을 한다는 것 치고 너무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말을 들은 맥스는 B동 벽에 설치된 공사용 구조물을 타고 302호로 올라간다. 그 방은 맥스를 저격했던 저격수가 있던 방이었다.
청소부들은 B동 302호에서 맥스의 행태를 감시하고, 그의 전화[* 저격수를 보고나서 윈터슨에게 건 전화와 폰섹스 통화에서 모나를 찾는 전화. 폰섹스 회사의 직원인 모나를 모나 색스와 착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전부 죽이니 뭐니 말한 결과 돌아온건 미친놈 취급.]를 감청하고, 그의 집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맥스가 그 방에 설치된 카메라로 자신의 방을 봤을 때는, 청소부들이 현관문을 열면 터지도록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 이후 상황파악 못한 청소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 A동에서 B동으로 건너가던 도중 들리는 집 TV에서 "로드 앤 레이디즈"가 방영되고 있다. 천한 신분의 여자와 귀족 남자의 러브스토리인데, 여자는 남자와 같이 있는걸 들키면 남자의 평판이 떨어질거라 생각해 남자를 뿌리치고 도망친다.
* B동 7층의 들어갈 수 있는 집 TV에서 "주소지 불명"을 방영하고 있다. 느와르욕이라는 도시에서 주인공이 존 미라와 여자친구를 찾아다니고 있다.
맥스는 504호에서 나와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4층에서 [[스쿼키 청소회사|청소부들]]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것을 본 맥스는 [[모나 색스]]가 이곳을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맥스는 문이 열리지 않아 화재가 발생한 3층 복도에 갇힌 남자를 발견한다. 맥스의 도움으로 구출된 그 남자는 노숙자였다. 그는 맥스를 보자 자신도 한때 경찰이었지만 아내가 떠난 후 술독에 빠져 해임되었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맥스는 노숙자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간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67회 일치
=== 고프리와 테리 ===
집이 털리는 줄도 몰랐던 고프리와 테리는 코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는다. 이후 두 사람은 네놈이 집에 남아있어야 했네, 네놈 혼자 있는건 무사할 줄 아냐하며 다투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 이 임무 이후 고프리와 테리의 레벨이 2로 오른다. 더 많은 종류의 물건을 제공한다.
테리와 고프리의 아이들이 지나가는 코너를 부른다. 테리와 고프리가 싸우고 있으니 말려달라는 것. 아이들을 따라간 곳에는 테리와 고프리가 싸우고 있었다.
싸움을 뜯어 말린 코너는 테리와 고프리 양쪽을 따로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 이 임무 이후 고프리와 테리의 레벨이 3으로 오른다. 더 많은 종류의 물건을 제공한다.
테리와 고프리가 함께 볼스 게임을 하고있다. 테리는 자기와 고프리가 여러 일로 다투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같이 일하게 된다고 한다. "테리가 나를 싸움에서 못 이겨서 볼스 경기장을 만들었는데 볼스도 못 이긴다"라는 고프리의 깝죽거림은 덤.
이후 코너는 고프리와 볼스 게임을 한판 한다.
* 이 임무 이후 고프리와 테리의 레벨이 4로 오른다. 더 많은 종류의 물건을 제공한다.
코너는 무장한 남자들이 수레를 불태우고 한 남자를 묶어 강제 번지점프를 시키는 광경을 보게된다. 이후 무장한 남자들을 해치우고 매달린 남자를 구해준 코너는 무장한 남자들이 그 남자를 노린 강도들이었고, 해당 남자가 빈털터리라는걸 알게 되자 그의 도구와 장비를 불태우고 그를 밧줄에 매달아 절벽에서 던져버렸다는걸 알게 된다.
코너와 랜스는 보스턴에서 만나 랜스가 운영하던 목공소로 찾아간다. 하지만 목공소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3주 전에 도제인 패트릭이 목공소를 팔아치워버린 것. 랜스는 패트릭을 찾아가 따지지만 패트릭은 안 돌아올줄 알아서 도구도 가게도 다 팔아치웠는데 어쩌겠느냐, 라는 반응. 랜스는 목공이 생명선인 도구를 팔리가 없다며 패트릭이 어디다가 꿍쳐뒀을 거라고 추측한다.
하얀 쿠거를 뒤쫓은 코너와 미리암은 언덕 밑에 있던 노리스에게 쿠거가 어디 갔는지를 묻는다. 하얀 쿠거는 노리스가 똥 누는 사이 노리스의 광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리암은 한 사람이 광산 안으로 들어가 쿠거를 끌어내고, 다른 하나가 쿠거를 쏘는 계획을 짜낸다. 코너는 광산 안으로 들어가 쿠거를 유인하고, 미리암이 쿠거를 쏘아 쓰러뜨린다.
미리암은 엘렌에게 약속한 모피를 모으러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코너는 미리암을 도와주기로 하고, 노리스는 도움이 될 거라며 칼을 선물한다. 미리암은 그 두명에게 감사를 표한다.
코너는 늑대 떼 하나를 사냥한 후 미리암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코너가 본 것은 전에 살려보냈던 밀렵꾼이 돌아와 미리암과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코너가 달려오자 밀렵꾼은 도망치지만, 코너는 그를 쫓아가서 끝장내버린다.
워렌이 코너를 보자 달려와서 도움을 청해온다. 프루던스가 뭔가를 모으러 나가서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것. 코너는 워렌, 그리고 개 한마리와 함께 프루던스를 찾아나선다. 프루던스를 찾으러 숲으로 가는 길에 워렌은 요즘 프루던스가 달맞이꽃에서 나는 기름에 집착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곰을 해치운 코너는 프루던스를 워렌에게까지 데려다 주며 달맞이꽃을 모으는 이유를 묻는다. 프루던스와 워렌은 오랜 기간 동안 아이를 가지려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달맞이꽃이 임신 확률을 높여준다는 이야기를 프루던스가 알게 된 것. 코너는 프루던스를 워렌에게 데려다 준 후 헤어진다.
코너는 보스턴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남자가 병사들에게 두들겨 맞는걸 본다. 코너는 남자를 도와 병사들을 쓰러뜨린다.
* 미리암에게 들켰을 경우 미리암이 하는 대사들 중 "도와줄까, 코너? 노리스에게 무슨 일 있어?"가 있다. 눈치도 좋지.
코너가 노리스와 만났을 때, 노리스는 짐을 싸고 있었다. 노리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합금으로 된 칼을 미리암에게 선물하고 싶어했고, 합금의 재료인 철을 얻으러 가려는 것. 노리스가 철을 얻으려는 광산은 영국 소유의 광산이었기에 노리스는 코너에게 망보기를 부탁한다.
노리스가 철을 얻기 위해 광산 안에 폭약을 설치하고 터뜨리자 영국군들이 노리스와 코너를 잡아 족치기 위해 몰려온다. 둘은 영국군들을 막아내며 세번의 폭파 끝에 필요한 철을 모은다.
- 배영수 . . . . 66회 일치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참교육|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 배영수의 성적 자체가 선발 확정시켜 줄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장원삼과 윤성환 둘 다 나이 30을 훌쩍 넘겨 언제 노쇠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5선발 육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선발을 육성하지 못한 것의 부작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주전 투수들이 이탈하자 바로 나타났다.] 지속적으로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영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 이는 플레이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 [*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리그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167949|#]]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1997488|#]]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6&aid=0000011149|#]]]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 하지만 과거 스터프에 의존하던 선수였던 만큼 제구파 투수로 플레이스타일이 변경되었어도 과거 플레이스타일에 영향이 있는지 경기당 기복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 배영수가 컨디션 기복이 있는 것이 이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볼넷도 적게 내주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쉽다는 것.]
배영수의 최대 전성기 시절. 당시 최대 150km/h대 중반의 광속구와 140km/h를 넘나드는 슬라이더 두 구질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다.무엇보다 경기내내 평균 140키로후반대의 공을 꾸준히 던졌는데, 이는 당시 다른 선발들중 구속하나론 비교할만한 상대가 없었으며 최근 리그 수준을봐도 평균구속 최상위권에 랭크될만한 구속과 강인함을 지녔었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입단 첫 해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임창용]]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13승을 거두고,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던 2002년에는 소모포어 징크스가 심하게 보이며 주춤했으나, 2003년 13승, 2004년 17승, 2005년 11승을 올리며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2005년에는 정규시즌 동안 11승을 올리면서 147개의 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오른적이 있다. 이 활약으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제1회 WBC]]의 국가대표 A팀에 승선하여 중간계투로 활약했으며, 특히 1라운드 A조 3경기 일본과의 경기에서 6회말 1사 후 봉중근을 구원하여 올라와 ⅔이닝을 잘 소화한 다음 7회말 일본의 공격 때 선두타자였던 [[스즈키 이치로|이치로]]를 초구부터 141km/h짜리 속구를 엉덩이 쪽으로 던져 맞춘 것이 유명해져 [[https://youtu.be/Gw8MEjLD3iM|배열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3월 31일 무등에서 펼쳐진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첫 선발등판을 한 배영수는 5이닝동안 1실점만 하며 무난한 출발을 알렸다. 당시 무등구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경기가 모두 우천순연 되었으며, 무등구장 역시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가 이어졌으나 1회와 4회를 제외하면 큰 위기 없이 첫 등판을 치룬 모습에서 팬들에게 이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다소 높이게 했다.
그리고 4월 7일 대구에서 펼쳐진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완벽투구를 보이며 344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2009시즌의 악몽을 떨쳐내는 정말 눈물의 감격투 그 자체였다. 이 기세를 몰아서 4월 13일 잠실에서 펼쳐진 LG와의 원정경기에서도 7이닝 무실점 또 한번의 완벽투구를 보이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 때 당시 평균자책점은 무려 '''0.47'''! 하지만 이 후 문학 SK전과 대구 두산전에서 각각 5이닝 6실점(4자책), 5이닝 3실점의 내용을 보이며 다소 아쉽게 4월을 마무리 했다.
이 후 5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동안 1실점하며 다시 승리투수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찾는가 했는데, 이 후 SK와 두산을 상대로 연속 5이닝 미만 투구로 조기강판되면서 강타선을 보유한 상위팀을 상대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5월 중순까지의 투구 내용을 보면 위의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절반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 문서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속구위주의 투구를 더 이상 보여주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으나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에서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심지어 5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⅓이닝 동안 5실점(4자책)으로 통타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결국 계투진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계투진에서도 다소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또다시 부진의 늪으로 빠지는게 아닌가 했던 배영수였지만, 여름이 되면서 구속이 오르자 반등하기 시작했다. 6월 11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장원삼이 3이닝만에 5실점하며 조기강판되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8회까지 이닝을 책임지며 5이닝 동안 3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당시 등판에서 비록 8피안타(1피홈런)를 허용하기는 했으나, 사사구가 하나도 없으며 어느정도 살아난 구위와 날카로운 변화구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 효율적인 투구수로 5이닝을 책임져 준 것이 위안 삼을만한 부분이었다. 이어 6월 16일 사직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이우선]]이 3이닝만에 6실점으로 무너지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3⅓이닝 동안 3탈삼진 무실점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이 후 삼성으로 경기를 가져오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역시 [[로나쌩 클럽]] 회원-- 이 경기로 인해 배영수는 3일 뒤인 6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하여 등판했는데 5이닝 2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이며 괜찮은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3일만의 등판이었기 때문에 4회, 5회에 피안타가 늘어난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선발진 복귀 이 후 4선발 정도의 역할로써 다소 퐁당퐁당하는 피칭을 보여주다가, 7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김상수(타자)|김상수]]가 5회에만 악송구와 쉬운 땅볼타구를 잡지 못하는 클러치 실책을 두 번이나 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yujwfjfTcX4|'상수야 상수야']] 이름 두 번 부르고 괜찮다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다시 돌아가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경기에서는 5이닝 동안 3실점(1자책)의 투구를 보이며 시즌 5승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전의 두산전 투구보다 훨씬 양호한 내용을 보여주었기에 남은 시즌의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후 5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번의 ND와 4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는데, 8월 11일 사직 롯데전의 3이닝 7실점을 제외하면 선발로써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지만, 유난히 배영수의 선발 등판 때 상대팀 역시 에이스를 출격시키면서 타선의 지원을 --여름삼성 치고는-- 적절히 받지 못한 것이 패를 쌓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후 배영수를 다시 계투로써 활용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했고, 8월 22일 무등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차우찬이 3⅓이닝 만에 6사사구를 남발하며 투구수가 폭발하자 다음 투수로 구원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하며 시즌 6승을 챙겼다. 특히 전광판에 시속 146km까지 찍히기도 했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일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스코어 8:7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⅓이닝 17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 을 기록했고, 한 점차를 지키는 퍼펙트한 피칭을 보여준 배영수는 시리즈 전적 2승 2패를 만드는 중요한 세이브를 따냈다, 이 경기에서 거의 전성기급 구속인 최고 구속 '''147km/h''', 포크볼은 '''140km/h'''까지 찍어서 삼성 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경기 4⅔이닝 4피안타 3사사구 3K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3.86,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결국 삼성에서의 잔류를 포기하고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팀은 [[야쿠르트 스왈로즈]][* 임창용의 야쿠르트행을 주선했던 매니저와 만났다고 한다.]와 [[한신 타이거즈]]가 있으나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강력한 야쿠르트보단[* 주요 선발진으론 이시카와 마사노리(13승 8패), 사토 요시노리(12승 9패), 타테야마 쇼헤이(12승 7패), 무라나카 쿄헤이(11승 10패) 등이 있고 주요 불펜진으론 마츠오카 케니치(34홀드), 마스부치 타츠요시(20홀드), 오시모토 타케히코(16홀드), '''[[임창용]](35세이브)''' 등 리그 수준급의 투수가 넘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주전경쟁 하기가 영 쉽지 않을 것이다.] '''비교적''' 약한 편의 한신으로 갈 확률이 높았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다. 최소한 선발로는 쿠보 요시모토(14승 5패), 제이슨 스탠드릿지(11승 5패)가 있고 불펜진으론 쿠보타 토모유키(28홀드), 니시무라 켄(14홀드), '''[[후지카와 큐지]](28세이브)'''가 있다. 어딜가든 쉽지않다.] 더구나 타격 면에선 한신이 야쿠르트보다 좋은 편.
팀이 시리즈 전적 2승으로 앞선 2011년 10월 28일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팀이 1:2로 뒤진 8회말에 등판하여 [[정근우]]에게 안타, [[박재상#s-2|박재상]]에게 희생번트, [[최정]]에게 유격수 땅볼 진루타를 허용, 2사 3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권혁]]이 [[임훈]]을 운 좋게도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어 이닝을 끝낸 덕분에 배영수의 실점과 자책점은 없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295773&date=20141204&page=1|배영수가 삼성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리된 바에 의하면, '''연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과 한화가 제시한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의 루머와 달리 배영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661070|내가 구단 측에 선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760892|배영수 CBS 인터뷰 전문]] 참조. 팬들이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너무 감사하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은 이틀 전 그가 한 "누구도 원망 안한다.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라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를 통해 "30경기"도 못나왔으니 홀대받았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삼성 프론트의 삽질여부와 별개로 11년, 13년, 14년 4점대 평자를 찍었는데도 묵묵히 기다려 준 코칭스태프와 팬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렸고 사이영수상까지 만들었던 삼갤은 배영수의 이름이 언급되면 반드시 30경기 이야기를 추가로 붙히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이 후 정철우는 본인이 경솔한 기사를 썼던 것을 사과한다며 애플 베이스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네이버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 애플이 아무리 봐도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그 [[애플(기업)|애플]]을 떠올리게 해서 사과는 커녕 의도적으로 비꼬는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재활이후 5월 20일 경희대와의 3군 경기에 등판했는데, 당일 경기에서 2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속구 최고구속이 131km/h, 평균구속이 129km/h'''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09&aid=0003322082|관련 기사]]
올해 배영수의 문제는 잃은 구속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 제구력 위주의 피칭을 해야 하는데 [[유희관]]과 다르게 제구와 구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피홈런이 많은 것은 물론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각각 3할대, 4할대 후반인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투수 본인의 자신감을 잃었다. 은퇴 드립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김성근|금지어]]와 연관 깊다. 학창시절 은사로 포장되고 인연이 되었다지만, [[살려조]] 못지않게 특유의 혹사 패턴에 걸려들었다. [[조인성(야구선수)|칰금님]] 못지 않게 성실하게 잘 따라주었으나, [[권혁]]과 함께 관리가 필요했던 선수를 선발과 불펜 구분 없는 하루살이 야구에 갈아 넣었던 것이 컸다. 이미 삼성의 우승에 팔을 바치고 토미존 수술을 받던 그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109&aid=0002067249|토미 존 수술을 창안한 프랭크 조브 박사가 직접]] 수술 결과를 점검했고 조브 박사의 제자가 집도했는데, 이리 엉망인 선수는 처음이라 평했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재활도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선수가 이적 후에 그 따위로 굴렀으니.. 결국 2015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시술을 받았다.
- 울릉군 . . . . 66회 일치
||<bgcolor=#F0F8FF> ▲ 울릉군청사 ([[울릉읍]] 도동2길 66)[* 이 군청사는 노후화와 열악한 시설, 교통 문제 등으로 인해 이전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
울릉군은 울릉도와 관음도, 죽도 등의 섬들, 그리고 [[독도]]로 이루어져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엉뚱하게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와 묶여있다. 그런데 정작 포항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포항 구항은 북구에 있다.--신나는 [[월경지]]-- 이는 포항 남구보다 포항 북구 인구가 미묘하게(2~3만 명 정도) 많아서 그렇게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비례를 생각하면 경상북도의 농촌 선거구에 옮기는게 맞겠지만, 선거운동하기가 힘들어지는 문제가 있다. 배편이 있는 울진군에 엮으면 될 것 같지만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만으로도 벅차다. 네 군 모두 벽지 중의 벽지긴 한데 울진은 그나마 낫다. 다시 [[강원도]]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로 행정구역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쉽진 않다. 행정적으로 경상북도에 속한 이후로 말투도 경상북도 사투리가 발달했다. 거기다 원래 울릉도에 살던 강원도 사람들은 대다수 이미 사망하였거나 외지로 떠났고 현재 울릉군 주민들은 경북 출신들이 대다수. 경계가 애매한 지역들은 양쪽 사이에서 소속감이 애매한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면적도 좁은데다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경북쪽 정서로 비슷해진 느낌이다.
포항시-영일군 통합 전에는 영일군과 같은 선거구에 소속하였다. 꽤 오랫동안 이상득 의원이 의원직을 6번이나 했다가 불출마했는데, 후임 김형태 의원은 성추행 논란을 일으키며 그 당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물론 재선 결과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박명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후보[* 당시 [[민중연합당]] 후보가 출마했다.]와 무소속 후보는 '''울릉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새누리당 텃밭이라 하지만 다른 후보들의 무관심으로 박명재[* 행정고시를 합격한 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기에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다가 2013년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였다.] 의원이 여유있게 몰표를 가져갔다.
뭍과 떨어진 지역이지만 의외로 [[청동기]]시대 유적이 확인될 정도로 사람이 산 역사가 깊다. 나리분지의 나리마을에는 청동기시대(BC 1000~300년)와 철기시대 전기(BC 300~1년) 고인돌 형태의 흔적(지석묘, 무문토기,갈돌, 갈판)이 남아있다.
[[조선]] 시대 때 [[왜구]]가 많이 습격하자 조정에선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고 공도(空島)정책을 쓴다.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어업을 하기도 했지만 [[안용복]]의 활약으로 1696년에 [[도쿠가와 막부]]에서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하고 막부는 일본인들의 출입을 금했다([[http://anyongbok.kr/ahn/ahn_01.php|안용복 재단]] 참조). 그 후 19세기 고종 시절에 울릉도를 개척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전남, 경남 지역 도서민을 이주시켜 다시 유인도가 되었다.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지역이 되면서 남한령이 되었다. [[6.25 전쟁]], 남북 분단에 이르는 격변기에는 매우 드물게 참화를 비껴갔다. 옛부터 주변에서 별로 간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잘 지냈기 때문에 이념 대립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육지와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진지라 6.25 전쟁조차도 바다 건너 불구경이었다.[* 어떤 위키러가 들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자를 실은 배가 들어오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육지에서 전쟁이 났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넓이가 지나치게 넓어 사람도 많이 몰린 [[제주특별자치도]], 남한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백령도]], [[연평도]]의 안습한 역사와 비교해보자(…). 마찬가지로 육지와 꽤 멀리 떨어진 가거도도 역시 바다 건너 불구경...그러므로 종속국의 역사와 행보가 떨어진 섬이라는 점에서는 [[대만]], [[오키나와]]와도 비슷하다.
[[대한민국|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서 [[제주특별자치도]]처럼 광역자치단체는 되지 못했다. 전 군수인 최수일 군수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여러 울릉도 만의 특수성이 있기에 "특별자치군"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기는 했다. 물론 실현되지 못했다.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울릉군]] 울릉읍에서 제일 큰 마을은 인구 약 5천명의 저동리이며 도동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도동의 인구는 약 2천 명으로서 [[포항시]]와 묵호항에서 오는 [[선박|배]]가 정박하는 곳이다. 그래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숙박업이나 음식점은 대부분 도동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저동리는 도동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로서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다. 강릉과 후포에서 출항하는 배는 이쪽에 정박하며, 포항에서 출항하는 배의 일부도 저동항에 정박한다. 이쪽은 보통 울릉도민들이 사는 마을로서 옆에 항구가 있으며 주민을 상대로 한 상점과 편의시설들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일제강점기]] 때 도동이 일본인 마을로 통했다면 저동은 조선인 마을로 통했다는 점. 실제로 도동에는 아직도 일본식 건축물이 약간 남아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으로 울릉도를 방문했을때[* 이후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였다.], 묵고 갔다던 당시 울릉군수 관사도 일본식 건물이다.
군 부대도 주둔 중인데, 1982년 도서 방어 임무가 [[대한민국 육군]]에서 [[대한민국 해군]]으로 이관되면서 해군 [[제1함대사령부]] 예하의 [[레이더 사이트|전탐감시부대]]인 [[제118조기경보전대]]가 들어와 있다. 이 부대에는 [[제1해병사단]]에서 전속된 해병대원들도 같이 근무한다. 상시 주둔하진 않으나, 독도나 울릉도 유사시 1함대와 1사단에서 함정 및 해병대 전력을 지원받을 수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
그 외 [[대한민국 공군]]의 319 관제대대와 [[777사령부|보안상 소속을 밝힐 수 없는 부대]] 등이 있다. 실제로 북면 북동쪽에 SEC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군은 아니지만, 경찰의 [[전투경찰]] 부대인 [[울릉경비대]]도 118전대와 함께 주둔하고 있다. 이들은 울릉경찰서가 아닌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며, 이 부대 소속 직원과 [[의무경찰]]들이 교대해가며 [[독도경비대]]에 투입된다. 현재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경비함을 위한 항만 시설이 건설 중이며, 완료시 해경 중형함정 1척+소형 경비정 몇척이 교대로 상시 입항해 있게 된다.
[[자유한국당]]의 텃밭[* 사실 강원도도 군인 인구가 많고, 높은 인구비중을 차지하는 노인들이 그들과 접하기 쉬운 환경특성상 ~~안보팔이가 잘 먹혀서~~ 준텃밭에 해당한다. 다만, 도지사나 교육감 등 도 단위 선거에서는 영서와 영동간 갈등, 강릉,춘천,원주의 자존심싸움 등으로 변수가 만들어진다.]인 [[경북]] 및 다수의 영남지역의 특성상 이 곳에서도 예외없이 자유한국당의 텃밭에 포함되어 있다. 경북 본토도 그렇지만 이 지역도 경북 지역에 속하는 영향 때문에 국회의원 출신정당이 대부분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선거구가 [[포항]] 남구와 묶여서 포항 남, 울릉 선거구에 속하기 때문에 포항 남구 지역과 함께 자유한국당의 밭으로 불리고 있다. ~~어차피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 유세도 못 한다~~
한편, [[독도]]에는 선거 당일에는 별도의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고, 주민인 [[김성도]]씨 부부와 독도경비대원들을 위한 [[거소투표]]용 임시 투표소가 매 선거마다 개설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선거에 참여하는 인원은 40명 안팎. 김성도씨 부부 말고는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타 시군구민일 가능성이 높은) 독도경비대원들이라, 울릉군에서 집계되는 위의 개표 결과와는 사실 별 상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6&aid=0001233450|기사(19대 대선)]]
섬 중에서 기독교 교세가 강한 점은 역시 섬이면서 [[천주교]]가 강세인 [[백령도]]와 비슷하다. 이 백령도는 실제로 지역 유지에 해병대 6여단 소속 해군 [[군종 신부]]가 들어갈 정도이다. 단, 울릉도의 천주교 교세는 개신교와 불교에 많이 밀린다. 본당도 도동에 있는 도동성당과 북쪽 북면소재지에 있는 천부성당 2개밖에 없다. 신자는 1천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제주도처럼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흔히 제주도처럼 울릉도만의 독자적인 사투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울릉도는 조선시대 공도 정책으로 사람들을 육지로 이주시켜 오랜 세월 무인도에 가까웠고, 오늘날 울릉도 주민들은 대부분 [[고종황제]] 시대 이후 이주민들이라 조상 대대로 울릉도에서 살아온 건 아니라서 울릉도만의 사투리는 없다. 다만 이주민들 대부분이 경북출신 특히 [[경주시]], 영일([[포항시]]) 출신이 많아서 경북 사투리가 많이 남아있다.
울릉군 관광은 푸른 바다와 섬, 독특한 모양의 바위와 지질 구조,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과 숲 등 수려한 자연 경관이 주를 이룬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군 단위 지자체인 까닭에, 울릉군 외부로 통하는 교통과 울릉군 내 대중교통이 비교적 불편하고, 배값에 따른 여행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시간과 경제력이 있는--장년층이나 노년층의 패키지 관광이 많은 편이다. 자유여행을 생각한다면 [[울릉군/교통]] 문서 또한 참고하면 좋다. 또한, 섬의 특성상 강풍이 불거나 풍랑이 거센 경우 통제되는 여행지가 여럿 있는데, 울릉군청 홈페이지에서 간편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이하는 행정구역에 따라 정리한 울릉군의 관광지들이다.
* B 코스-울릉도 관광업계에서 보통 B 코스라고 부르는 게 있는데, 도동에서 출발해서 봉래폭포와 내수전을 돌아보는 코스이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면 바닥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내수전을 전망대 조금 전까지 차로 올려주는 점이 장점.
- 전효성 . . . . 65회 일치
||<#00CED1> '''{{{#000000 신체}}}''' ||<(> 158.5cm[* 프로필에는 160cm로 되어있으나 본인은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160cm에 조금 미치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서 측정한 결과 158.5cm가 나와서 확인사살. 그래서인지 [[아는 형님]]에서는 (반올림을 한 듯) 본인의 입으로 159라고 하였다.], 49.5kg[* [[http://entertain.naver.com/tvBrand/4show/news/read?oid=109&aid=0003069631&pid=hot.030.106.998217&cid=1002187|4가지쇼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하였으나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서 측정시는 49.5kg이었다 인터뷰에서 비활동기라서 그렇다고 했다가 운동은 하지만 근육 운동위주라서 몸무게는 빠지지 않는다고 하는 등 횡설수설을 해서 웃음을 주었다.]]], [[B형]] ||
데뷔가 무산된 후, 소속사를 나와 [[시크릿(아이돌)|시크릿]]의 소속사인 [[TS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게 된다.
언터쳐블의 미니앨범 수록곡 <마이 부(My Boo)> 의 피처링 작업에 [[한선화]]와 함께 참여하면서 처음 노래할 기회를 잡았으며, 오랜 좌절을 딛고 마침내 2009년에 시크릿으로 데뷔하게 된다.
데뷔 초에는 [[유키스]]의 신동호와 함께 [[소년소녀가요백서]] MC를 맡았지만 얼마 못 가서 프로그램 자체가 종영했다.
2011년 4월 3일에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를 하였다. 시타는 송지은.
2011년 4월 15일부터 [[f(x)]]의 [[루나(f(x))|루나]]와 MTV의 새로운 음악방송인 더 쇼를 진행하였다.
전효성은 [[방용국]]과 [[젤로]]가 [[B.A.P]]로 데뷔하기 전 유닛활동 겸인 Bang&Zelo의 <Never Give Up> [[http://www.youtube.com/watch?v=Sd4s1aVXKpU&list=UULLlKJZVbeUTzwjVM7Lx9kg&index=130|뮤직비디오]]와 [[http://www.youtube.com/watch?v=b4AMbmqn05Q&list=UULLlKJZVbeUTzwjVM7Lx9kg|티져 영상]]에서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원래 Bang&Zelo 컴백무대에 특별 게스트로도 무대에 설 예정이었지만 [[http://junglegalaxy.wo.tc/3523|아래에 언급할 부상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안습...
2012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도 시구를 하였다.
2012년 12월 29일에 방송된 [[SBS]] [[가요대전]]에서 전효성은 '대즐링 레드(Dazzling Red)'라는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여 [[씨스타]]의 [[효린]], [[포미닛]]의 [[현아(가수)|현아]], [[카라(아이돌)|카라]]의 [[니콜(가수)|니콜]], [[애프터스쿨]]의 [[나나(애프터스쿨)|나나]]와 함께 <이사람>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세종대왕(문명 5)|아주 좋소!]]~~ 작곡은 [[용감한 형제]]가 했다.
2014년 2월 1일에 방영한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고난이도의 스턴트 치어리딩을 완벽하게 소화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사람을 공중으로 던지는 바스켓이라는 동작은 6개월 이상 하지 않으면 던져주지 않는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들 방과후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안전장치와 남녀 비율이 적합할 경우 바스켓은 시작한지 2, 3주만 되어도 할 수 있다. 물론 정석대로 안전하고 완벽하게 익히는 것은 아니다.][[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2130936551910|기사]]
[[http://eto.co.kr/Data/2014/12/02/N2014120217175935701.jpg]] 2014년 12월 2일 [[피파 온라인 3]] CF에 [[홍진호]]와 함께 출연하였다. [[http://www.youtube.com/watch?v=WzdM6hCTIr8|광고1]] [[http://www.youtube.com/watch?v=NW1P6pNnr9c|광고2]] ~~여기서도 콩은 2등이다(...)~~
12월 16일에 공개된 광고에서는 홍진호와 유저들에게 [[http://www.youtube.com/watch?v=LrVsdFQ7Yg8|전설 뿌리는 마술사]]로 나온다.
2015년 3월 27일 KBS W의 <뷰티바이블 2015>에 [[제국의아이들]]의 [[황광희]]와 [[모델]] [[강승현(모델)|강승현]]과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200&g_serial=889987&rrf=nv|공동 MC로 낙점되었다.]] 뷰티바이블 MC 발탁 후 시크릿 멤버들이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29583547890170019|개천에서 용났다고(...) 축하해줬다고 한다.]] 뷰티바이블 2015가 S/S 시즌(봄/여름)과 F/W 시즌(가을/겨울)으로 나누어지는데 F/W 시즌에 진행자가 변동되지 않음에 따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47452| F/W 시즌에도 MC로 출연하게 되었다.]]
2015년 4월 10부터 스타캐스트의 <아이엠 효성>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매주 금요일마다 올라올 예정이다. 총 8회로 구성되어있다. [[http://m.star.naver.com/SECRET/special/1037/news/end?id=4875047|1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085|2편]][* 왁스타블렛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전효성이 왁스타블렛을 만든 곳에서 직접 [[http://blog.naver.com/maeryoc/220335786716|후기]]도 써서 올려줬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134|3편]][* 새 솔로앨범 작업 과정이 담겨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142|4편]][* 다른 회와 다르게 수요일에 업로드되었다.] [[http://m.star.naver.com/SECRET/news/end?id=5054150&langCode=ko|5편]][* 새 솔로앨범 판타지아의 수록곡 하이라이트 메들리, 뮤비 촬영 과정 등이 담겨있다.] [[http://m.star.naver.com/SECRET/news/end?id=5075799|6편]][* 컴백 당일날 활동 과정이 담겨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193|7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204|8편]]
2015년 6월 16일 <[[정글의 법칙]] - 히든킹덤편>에 출연이 확정되었다.[[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729197|기사]] 일본 스케쥴을 모두 마치고 19일에 [[브루나이]]로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목격담에 의하면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ecret&no=566355&page=1&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ED%95%9C%EA%B5%AD|19일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20일에 브루나이로 출국했다고 한다.]]] 솔로활동 - 일본활동 이후 바로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일정이라 팬들은 걱정하는 눈치. 히든킹덤편 첫화에는 일본 활동으로 인하여 오프닝에만 살짝 출연했고 2화에도 꼴랑 3분가량(...) 나왔다. 2회에서 몰카를 준비했지만 바로 뽀록나고 말았고 그나마 [[정준하]]의 배려로 번외로 한번 더 시도하여 놀라주는 척 하는 장면이 같이 나갔다. 3회,4회에서는 카사바와 바나나 먹방과 도마뱀을 거침없이 손질하는 모습으로 나름대로 활약.[* 같이 출연한 [[정진운]]과 함께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758965|정글의 법칙 OST에 참여했으며]] 방송 중간중간에 삽입곡으로 깔리기도 했다.]
드라마 캐스팅으로 MC에서 하차한 [[차오루]]와 바통터치하여 [[비디오 스타]]에 합류했다. TS와의 법정 공방 중인 2018년 4월에 MC를 [[써니(소녀시대)|순규]]에게 넘겼다.
2018년 10월 29일 토미상회 엔터테인먼트와 새로 계약했음을 알렸으나, [[TS엔터테인먼트]]가 전속계약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 이후 11월 14일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TS와의 관계를 일단락했다. 승소로 TS 측에서 전효성에게 1억 3000여만원과 소송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경축 탈 TS!!-- 소송이 끝난 뒤 자신의 SNS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후련한 마음을 표출하기도...[[https://www.instagram.com/p/BqJLhWKgkdx/?utm_source=ig_share_sheet&igshid=10ae4h7tbvsnj|#]][[https://www.instagram.com/p/BqJ-IUlAaVT/?utm_source=ig_share_sheet&igshid=1my9qr2d0tmde|#]]
5월 12일 [[https://youtu.be/HbNqVJdHlr8|뮤직비디오]]와 음원이 공개되었고 같은 날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1551|쇼케이스]]가 열렸다. 앨범 공개 당일날 각종 포털사이트에 전효성의 이름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며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前 [[오소녀]] 멤버 [[G.NA]]와 함께 [* 2015년 6월 24일에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말하길 무대 끝나고 내려오는데 남자 가수들이 갑자기 아는 척을(...) 했다고 한다.] ~~첫번째 사진에서 [[크러쉬]]의 시선이...~~ ~~[[맨체스터 더비]]~~
사실 그 동안 공중파에서는 의상에 대한 단속 때문인지 위쪽을 꽁꽁 싸매고 나와서 아쉬워하는 남성들이 꽤 많았었는데 이것으로 여러 남성들의 소원이 성취되었다. ~~소리질러!!!~~ 그런데 사실은 코디의 실수때문에 만들어진 의상이라고 한다.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03327894718715010|인터뷰 참고]] ~~코디느님 찬양!!!~~
- 유키히라 소마 . . . . 64회 일치
[식극의 소마]의 주인공. VOMIC판 성우는 [오노 유우키]. TVA 성우는 [마츠오카 요시츠구].[* PV에서의 하이톤 때문에 방영 전부터 소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인기 성우를 주역으로 기용하려는 경향의 폐해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마츠오카를 비롯한 젊은 성우들이 주역으로 자주 기용되는 이유는 낮은 랭크 때문. --한마디로 저비용 고효율.--]
붉은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으로 작은 대중식당인 '유키히라'을 경영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1화에서 얼굴이 햇빛에 가려진 사진에 나왔었던 것 외에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현재 나이는 15살으로 요리 경력은 12년. 3살 때부터 부엌칼을 잡았다고 한다.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이 일생의 목표로[* 1권 시점에서 0승 489패] 그런 소마의 꿈을 눈치챈 조이치로에 의해서[* '유키히라'를 몇년간 휴업시키고 본인은 소마와 통화했을 때 '''뉴옥 맨해튼 로열 호텔 VIP 전용 리셉션 홀'''에 가서 요리하는 중이었다. 조이치로는 예전에도 세계를 돌며 요리를 했던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그럴 셈이었던 것.] 상위 3%만이 들어간다는 초일류 요리학원 토오츠키에 들어가게 된다.[* 원래 소마 본인은 고등학교에 가지않고 가게에서 요리 수련을 할 생각이였다.] 이후 고등부 편입생으로 쿄쿠세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방은 303호실. 우연히도 아버지 조이치로가 썼던 방이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할 때는 늘 왼쪽 팔목에 감고 다니는 두건을 풀어서 머리에 묶는다. 기본적으로 열혈스럽고 시원한 성격이지만, 일단 진지해지면 평소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눈매가 --간지--날카로워지고 검은자위의 하이라이트도 없어져서 거의 다른 사람 같다. 그리고 왼쪽 눈썹 부근에 흉터가 하나 있다. 요즘 만화 주인공 답지않게 [[간지]]를 제대로 살릴 줄 알아서 좋아하는 팬이 많다. 작 중 인물들에게도 매력적인지 쿠라세 마유미와 미토 이쿠미가 그를 좋아한다. 나중에는 [타도코로 메구미]도 포함. --과연 소년만화의 주인공.--
주로 요리하는 건 정식집 요리이며, 다른 캐릭터들이 양식으로 승부할 때도 혼자만 정식집 요리로 승부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 정식집 요리만 배워서 그렇다.[* 이는 아버지인 사이바가 직접 언급했다. 실제로 소마는 작업의 속도와 정확성 등은 졸업생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요리에 대한 지식 수준은 매우 얕다. 조식 뷔페 메뉴 대결에서 뷔페 메뉴에서 중요한 맛의 지속성과 겉보기에서 최악인 수플레 오믈렛을 선택한다거나, 113화에서 아벨이 프렌치의 기초도 모른다고 하는건 다 이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식집 요리 특성상 누구든지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이때다 싶을때는 과감하게 질러주기도 하는 점, 무엇보다 아버지와 대결하면서 강인해진 멘탈 덕분에 요즘 소년만화 주인공답지 않게 답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남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다른 만화 주인공들이 속터지는 행보 때문에 암유발 주인공이라 불린다면 유키히라 소마는 항암제 주인공이라 불릴 정도.
번화가의 작은 정식점인 '유키히라'를 경영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1화부터 아버지에게 요리대결로 489번째 패배를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인은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 중학교를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가게에서 연습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버지인 유키히라 조이치로에 의하여 요리학원인 토오츠키로 가게 된다.
편입시험 중에서 심사관이자 토오츠키 학원 십걸(十傑) 평의회 10위인 [[나키리 에리나]]와 만나게 되며, 유키히라의 비밀 메뉴 8번인 둔갑하는 [[후리카케]] 밥을 선보인다. 에리나 본인도 맛있다고 생각했지만 소마옆에서 심사받던 소마가 "안가고 먹길 잘했지~?" 라던가 "늬들같은 높으신 분들은 못만드는 요리도 있지" 라던가 "자 어때? 맛있지! 맛있지!" 라는식으로 좀 심하게 깐죽댄다가(...) 본인의 자존심 문제도 있고 해서 에리나는 홧김에 "맛없다"라고 발언. 불합격처리 당한다.
그렇게 토오츠키 학원에 떨어질... 뻔 하지만, 심사장을 들른 '''토오츠키 학원 총수인 나키리 센자에몬'''이 그의 후리카케 덮밥의 맛을 보았고 불합격 서류를 와작 구긴 후 그를 토오츠키 학원에 편입시킨다.
시업식 날, 편입생으로서 단상에 올라오게 된다. 소마는 고등부 1학년들을 상대로 대형 어그로를 끌고 다시 한 번 나키리 에리나와 대면. 중등부에서 올라온 내부 진학자에 대해 자신은 12년간 주방에 살았다면서, 자신의 가게 이름을 먹칠할 수는 없으니 에리나를 상대로 "맛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앞으로 E점[* 최하위에서 바로 위 평가등급으로 토오츠키는 A~E의 5등급과 최하위 평가 판정인 우리가 알고 있는 F에 해당하는 '불가'가 있다.]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면 강제 퇴학이라는 위기에 놓여있던 [[타도코로 메구미]]와 콤비가 되어 조 편성 시험을 치루게 된다. 다른 조원의 방해가 있었으나 벌꿀을 사용한다는 지혜를 발휘해 A점수를 받으며 통과하게 된다. 메구미는 소마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나, 이후 '''오징어 벌꿀 절임'''을 시식당한다(…).
시험이 끝나고, 쿄쿠세이 기숙사로 향하며, 기숙사 입사 테스트때해 남은 재료를 사용한 고등어 버그 정식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합격하여 소마는 303호실을 배정받는다. 이때 목욕을 하기 위해 탕으로 갔다가 메구미와 서로 알몸을 보여주었다(…). 목욕 후 [[잇시키 사토시]]와 만나며 환영회에 초대받는다. 처음에는 괴짜들인 쿄쿠세이 기숙사 맴버에 당황하지만 얼마 안 가 익숙해져서는 같이 괴짜 짓을 한다(…).[* 요리를 선보인다면서 실패작 요리를 건네주었다.]
이때 [[잇시키 사토시]]와 (식극이 아닌 평범한)요리대결을 펼치게 되며 그가 '''토오츠키 학원 십걸(十傑) 평의회 7위'''의 실력자임을 알게 된다. 이때 선보인 요리는 유키히라 비밀 메뉴 20번인 연어 주먹밥 차밥을 개조해서 만든 삼치 주먹밥 차밥. 승부는 무승부로 판정된다. 다만 이때 잇시키는 제대로 실력을 내지 않은 듯 하다.[* 이부사키 슌이 그의 요리를 보고 '''본 실력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덮밥 연구회에 찾아가며 미토 이쿠미와 식극을 벌인다.
그 후, 숙박연수를 가게된다. 알디니 타쿠미와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메구미는 상하기 시작한 콜리플라워의 문제를 보완하려고 와인식초로 데치는 방법을 썼는데, 재료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것을 칭찬은 못할망정 '''자신의 르세트(레시피)를 망가트렸다며 주저없이 퇴학'''시켜버린 것이다. 소마는 메구미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며, 식재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시노미야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전 주석에서는 테스트로 보기에는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 시노미야가 작중에서 말하듯 콜리플라워는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리플라워를 챙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태가 나쁜 콜리플라워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시노미야는 당황하여 이 점을 망각한 학생들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누군가가 꼭 떨어져야 하는 '상대평가'였다면 말이 되는 테스트고, 학생들의 역량을 공평하게 실험하는 '절대평가'였다면 말이 안 되는 테스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험관 재량에 따라 퇴학시킬 학생의 숫자를 0부터 무진장 많이(...)까지 고를 수 있어 보이므로, 그냥 시노미야의 성격이 더러운 걸로 해석하는 게 옳다.] 반론하나 시노미야는 '''조리장은 자신이라며 소마의 의견을 묵살. 더이상 대들면 조리장 권한으로 소마마저 퇴학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다.
메구미의 얼굴을 보고 격분한 소마는 시노미야에게 '''내가 식극에서 이기면 메구미의 퇴학을 없던 걸로 해달라'''며 팔에 담긴 두건을 풀어보인다. 이를 시노미야가 거절하려는 찰나, 이누이와 도지마 긴이 개입한다.
식극 시간이 되어 토오츠키 이궁의 별관 지하 1층 식당으로 간 소마와 메구미는 도지마와 시노미야를 위시한 강사들이 심사위원 자격으로 모여있는 걸 보게 된다. --그리고 이누이는 의자에 묶여있다--
그러나 도지마는 메구미가 메인으로 요리할 것을 요구한다.[* 원래 식극은 1대1이지만 이번은 소마와 메구미 페어 vs 시노미야의 형태였다.] 소마는 반발하지만 도지마는 '유키히라.. 네 요리로 이겨서 타도코로가 살아남았다고 치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남의 뒤나 쫓아다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결국 다른 과제에서 떨어져 버리겠지. 그때도 네녀석이나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건가? 토오츠키에선 자신의 가치는 그 팔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타도로코가 토오츠키에 남아야 하는 인재인지 아닌지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소마는 '오늘 한정의 타도코로 정식점 개점이다!' 라며 투지를 보인다.--그리고 이누이는 시노미야에게 '음식점(쇼쿠지도코로)의 도코로와 타도코로의 도코로가 같아서 좋은 어감이네요'라 말하고 묶여서 버려진다--
메구미와 소마의 요리는 일곱 가지의 야채를 사용한 '무지개 테린[* 테린은 잘게 썬 고기, 생선 등을 그릇에 담아 단단히 다져지게 한 뒤 차게 식힌 다음 얇게 썰어 내는 전채요리이다.]으로 소스는 스다치[* 유자의 한 품종으로 과실은 유자보다 작으며 푸를 때 따서 향미료로 이용한다.]로 만든 젤리와 차조기를 중심으로 한 허브로 만든 페스토 두 종류를 내었다.
- 정인숙 (1945년) . . . . 64회 일치
모델,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고급 요정의 종업원이 되어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당시의 정계 거물들을 상대했던 그녀는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 [[정일권]]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이것이 불문에 붙여졌다. 이는 당시 유행가인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으로 개조되어 확산되었다.<ref>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ref> 아들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느니, 정 전 총리라느니,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라느니 하는 소문들도 무성<ref name="ilyo01">[http://www.ily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889 <nowiki>[</nowiki>미스터리 추적<nowiki>]</nowiki> 정인숙과 그아들, 진실은 이것] 일요신문 2007년 04월 08일자</ref> 하기도 했다.
정인숙은 [[1945년]] [[2월 13일]] [[대구직할시|대구]] 남산동에서 후일 해방 뒤 대구직할시 부시장을 지낸 [[정도환]]과 부인 전덕조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도환은 자수성가형 인물로, 행정공무원으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권에서 대구부시장까지 올라갔다. 아들만 넷을 둔 정도환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그의 형제는 7남매로 위로 오빠 다섯 명과, 쌍둥이 자매가 1명 있었다. 쌍둥이 딸이 태어나자 정도환은‘금이야 옥이야’길렀는데 이름도 금지(金枝)와 옥지(玉枝)로 했다. 두 쌍둥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옥지는 생후 1년 반 만에 병사하고, 살아남은 금지가 후일의 정인숙이다.
=== 동거와 이별, 유흥업 진출 계기 ===
대학을 중퇴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던 그는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전전하였다. 또한 문학공부를 하고자 했던 정인숙은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쳐줄 마땅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1963년]] 정인숙은 시나리오 작가인 장사공을 만나 1년 정도 교제를 했다.<ref name="hp103"/> 이 때 정인숙과 장사공은 동거를 했다는 의혹<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8쪽</ref> 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장사공은 [[KBS]] 방송국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고, 정인숙은 곧잘 친구들에게“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라며 자랑했다. 또한 “장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인숙은 장사공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촌과 수유리 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정인숙과 장사공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타고난 기질과 장사공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장사공은 정인숙을 구타했고, 정인숙은 [[대구]]의 집으로 도망오기도 했다. 장사공을 사위로 여기던 정도환 내외와 두 오빠는 그때마다 아이가 철이 없으니 인내하고 데리고 살라고 거듭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했던 장사공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1년 만에 파탄으로 끝났다.
정인숙은 장사공과의 동거 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비밀요정을 경영하던 마담 김씨를 만난다. 그리고 김마담의 소개로 패션모델로 몇 차례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인숙은 김마담이 경영하는 서울 한남동 고급 요정에 접대부로 나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뒤 유명한 요정 선운각으로 옮겼다. 타고난 미모와 영어실력으로 얼마 뒤 선운각의 인기 있는 1급 접대부가 되었다.
고급 요정에 종사하며 큰 돈을 거머쥐면서 씀씀이도 늘어났는데, 선운각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대한민국 정치계 인물인 모 씨다. 모씨와 계속 만나다가 그를 통해 [[민주공화당 (대한민국)|공화당]]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도 만나게 됐다. 그때부터 그녀는 저명인사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한다. 그 뒤 또다른 정부 고위 인사 모씨를 만났고, 그와는 관계는 석 달 남짓 계속된다. 그러다가 당시 그녀의 미모를 접한 정부의 각료 모 씨가 정부인사 모 씨와 한달간 그녀를 서로 차지하려고 갈등하였고, 그 뒤 정인숙은 선운각을 그만두고 비밀요정으로 옮긴다.
그 뒤 그는 다른 요정에도 출입하는 등 여러 요정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주 무대는 처음 들어갔던 곳이고, 마담 김씨가 경영해 오던 한남동의 고급 요정이다. 정인숙은 2류급 여배우와 가수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마담 집 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접대부로 나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콧대가 높았다. 인기를 끌면서 그는 반드시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기도 했다. 한 회고에 의하면 당시 불려가는 여배우와 가수를 포함한 접대부 중 그의 미모가 1위였다 한다.
{{인용문2|청와대 모임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2백여명의 아가씨들이 차출됐는데, 그 중에서 성적순으로 50명을 뽑고, 다시 신원 조회를 통해 25명을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모 순으로 다섯 명을 뽑았습니다. 5명 중 정인숙이 1등으로 뽑혔지요.<ref name="ilsa01"/>}}
미스 코리아나 영화배우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요정에서 그녀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선운각, 옥류장 등 서울의 일류 요정들은 정인숙을 데려가기 위해 앞을 다투었다고 한다.<ref name="han01"/> [[선운각]] 등 최고급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며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쌓았다. 이때부터 정인숙은 저명인사들의 노리갯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인숙은 비밀요정을 주 무대로 정부의 A급 고관대작들만 상대했다고 한다. 평소 그는 주위에 “내 말 한마디면 안 되는 일 없다”며 자신이 정치권 고위인사와 ‘깊은 관계’라고 털어놓기도 했다.<ref name="ilsa01"/> 이같은 그의 명성 때문에 ‘정인숙 피살 사건’은 제3공화국 최대 ‘섹스 스캔들’로 비화됐다.<ref name="ilsa01"/>
이렇게 밤이면 이름 있는 사람들과 접하고 낮과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주로 필동 변두리의 집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냈고, 바로 위 오빠인 [[정종욱]]은 근처에 살며 자주 왕래하였다. 이곳에 살 때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가끔씩 아버지 정도환이 방문하였으나 딸의 집에 자주 출입하던 정계 인물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정도환은 주로 집을 비우거나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한다. [[정일권]] [[국무총리]]가 몇 번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목격되어 입담으로 전해지게 된다. 정관계 최고의 인사들과 어울리다 서너 번의 임신중절 수술을 받게 된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과도 술자리를 가졌다.
[[국무총리]]였던 정일권을 만난 뒤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데, 유독 정인숙을 좋아했던 정일권은 그녀의 집에 수시로 출입하다가 주민들의 눈에 목격되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유포되었다. 그 뒤 그녀가 임신사실을 알리자 정일권은 낙태를 권유하려다가 대신 애를 낳으라고 하였다. 정인숙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산하였다.
그녀는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내 말 한마디면 안 되는 일 없다”혹은“서교동 집도 아기아빠가 사준 거야” 등의 말을 공공연히 했다. 그러나 주변의 발설에 의해 정일권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설이 유포되었고, 이는 [[신민당]] 의원들이 국회와 언론에 언급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계속된 질문 공세에 가족들은 그 아이가 정인숙의 아이가 아니고 정인숙의 배다른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인용문|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뒤 자꾸만 고위층(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정 여인은 어쩌면 박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청와대를 귀찮게 하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골치가 아파졌다.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내보냈으나 자꾸만 귀국하겠다고 해서 일본에도 머물게 했다. 그때 [[일본]]에서 박종규 실장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정건영 씨였다. 마치이로 통하는 이 교포 사업가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암흑가의 신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정건영 씨에게 정인숙 모자를 돌보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건영은 그 대가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도록 실력자인 박종규 실장에게 부탁했다.<ref name="hp104"/><ref>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216쪽</ref>}}
출국을 한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갑갑해 한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국내로 들어온 정인숙은 홀로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이 때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 쓰는 사람들을 상대했고, 재일교포와 사업가 등 유력 인사들이 그녀를 거쳐 갔다. [[1969년]] [[10월 10일]] [[국무총리]] [[정일권]]의 주선으로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주변에게“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 한때는“이젠 미국 안 갈래”라고 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17일]] 낮, 자동차 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 6기통짜리를 흥정을 했다.
소문은 이미 [[대한민국 국회|국회]]와 [[청와대]]에도 확산되었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이라는 풍자곡이 시중에 유행하였다. 난감한 처지에 빠진 정일권은 오빠 정종욱에게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고, 동생 정인숙의 사생활을 잘 감시해줄 것을 부탁했다.
정종욱에 대해선 '권세가들에게 희생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설이 떠돌았다.<ref>윤재걸, 《청와대 밀명: 윤재걸 르포집》(한겨레, 1987년) 14쪽.</ref> 한편 정계의 유력자가 은폐하려 했다는 설과 정적관계에 있던 자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2010년]] [[3월 20일]]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는 20일 오후 11시10분 '나는 여동생을 쏘지 않았다 - 정인숙 피살 사건 미스터리'라는 주제로 오래전 정인숙 사건의 실체를 다시 추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15&nid=78947 정인숙·정일권 누구?…40년 전 미궁의 살인사건, 경과부터 의혹까지] SSTV 2010-03-21</ref>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정인숙의 자택에서 발견된 포켓용 수첩과 장부에 적힌 이름과 일시, 장소, 명단 때문에 희대의 정치스캔들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시 경찰과 검찰 직원의 부주의로 언론에 드러난 정인숙의 수첩에는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김형욱]]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장관, 차관급 인사들, [[대한민국 국군]] 장성, 5대 재벌그룹 회장,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 27명을 포함한 권력 실세들 수십여 명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ref>[[이제는 말할 수 있다]]'땅에 묻은 스캔들-정인숙 피살사건' 2000년 10월 8일 26회</ref>
{{인용문|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br>
당시 한 청와대 인사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어디서인지 변조된 가사 전문을 입수, 박 전 대통령에게 따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은 “내 아내한테까지 오해를 받고 재떨이까지 날아왔지만 참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씨는 ‘피살된 정인숙이 박 전 대통령의 여자였다’는 시중의 소문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고 한다.<ref name="ilsa01"/> 이 때문에 [[나훈아]]의 노래 [[눈물의 씨앗]]은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 평소 거느리는 주변 사람들의 여자문제에도 관대한 편이었다. 심지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직원을 시켜 정적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등의 사생활을 캐서 보고서로 제출하자 화를 내며 찢어버렸다. 그러나 자신과도 술자리 또는 잠자리를 같이 한 정인숙이 정일권과 관계를 맺어 자식까지 두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 직후 “정 전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위의 건의에 “남자가 여자 만나는 것은 예사”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후문이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민당]]의 정치 공세는 계속되었다. 정일권은 박정희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고, 바로 해임을 시키면 세간의 루머만 커질 것을 우려한 박정희는 정일권을 불러 자진 사퇴를 권고한 뒤, 정종욱이 구속된 이후 잠잠해질 무렵 정일권을 해임하고 바로 미국으로 내보냈다. 정인숙 문제로 박정희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한 정일권은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 최홍만 . . . . 61회 일치
|| 기타 ||<(> [[K-1]] 2005 [[서울]] 그랑프리 우승[* 카오클라이와의 결승전은 2009년 셔독이 선정한 '역대 괴상한 경기 베스트 10(10 Great Freak Matches)'에 8위로 랭크되어 있다.] ||
거구의 전직 씨름 선수로 한국인 최초[* 정확히는 한국 무에타이 챔피언인 이면주와 거의 동시에--물론 이면주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로 [[K-1]] 입식격투기 선수로 데뷔하며 한국의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 MMA 무대에서도 활동했으며 [[일본]]의 연예계에도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엄청나게 큰 덩치와 씨름 선수였을 당시의 경력으로 인해서 꽤 주목을 받았으며, 격투기 실력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단 등장과 동시에 2005년 3월 서울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아시아 챔피언이 돼 버렸기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근데 이 토너먼트 출전 선수들과 대진표가 '''막장'''이었다. 당시 출전했던 선수들 중 ('''그나마''')가장 강한 선수가 카오클라이였는데 최홍만과의 체중 차이가 거의 '''80kg''' 가까이...게다가 최홍만이 있는 토너먼트 블럭에서는 그 유명한 [[아케보노 타로|아케보노]]와 당시 '''45세'''였던 ''''심판'''(선수가 아니다!) [[카쿠다 노부아키]], 당시 39세 스모선수 와카쇼요 등의 ~~사실 선수라고 불러주기 좀 민망한 수준의 파이터들만~~있던 반면, 카오클라이의 블럭에는 수십 전 이상의 킥복싱 경력이 있는 파이터들인 호리 히라쿠와 이면주 등이 포진해 있었다. 여러 모로 최홍만 띄우기 대회라고 팬들 사이에서 적잖이 까였다. 덕분에 최홍만은 지역 대회 우승이라는 나름대로 대단한 경력을 갖고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밥 샙을 이기기 전까지는 한동안 검증 안 된 서커스 파이터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초창기의 대부분의 시합이 실력이야 어찌됐든 간에, 니킥과 럭키 펀치에 의한 시원한 KO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같은 해 6월 히로시마에서 프로레슬러 '그린베레' 톰 하워드를 1라운드만에 [[KO]]시키면서 '살인 니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최홍만의 니킥을 맞은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또한 7월 하와이 대회에서 아케보노와 2차전을 가져 1라운드에 다운만 2번 뺏어내며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경기 후 관중석에 앉아있던 [[마이크 타이슨]]을 도발을 한 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타이슨:내가 15년만 젊었어도...-- ~~사실 붙었어도 타이슨이 이겼을거다~~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절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반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초반과 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만큼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이후 2006년 2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카이를 상대로 두 차례 다운을 뺏고 피 튀기는 난타전과 체력 고갈로 고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별 거 아닌 프로레슬러에게 고전했다고 까는 여론이 있었으나, 애초에 터카이는 '''5일 준비하고''' [[레미 본야스키]]를 고전 시키며 판정에서 한 라운드를 가져올 정도의 포텐셜이 어느 정도 있는 파이터였던데다 경기 전 발목 부상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며 까이는 게 많이 줄었다.] 2006년 6월 서울에서는 슈퍼 파이트 초청 선수로 참가, K-1 2005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인 세미 슐트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우주괴수 슐트의 무난한 KO승이 예상되었으나 최홍만이 예상 외로 선전을 보이며[* 세미 슐트는 실력이 분명 뛰어나지만 어디 가서도 안 꿀릴 무지막지한 피지컬도 겸비한 만능형 선수인데, 최홍만은 세미 슐트의 피지컬을 더욱 능가하는 세상에 얼마 없는 인간 중 한 명이므로 슐트가 여지껏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유형의 상대라 파이팅이 좀 꼬인 부분이 있다.] 슐트가 등을 돌리는 장면까지 나오게 만들며 선전했다. 다만 판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유효타와 전박적인 경기 운영에 앞서나가던 슐트가 잦은 클린치로 인해 감점을 받았기 때문에 연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슐트의 세컨은 거세게 항의했고[* 루머로는 세컨 중 한명이 저지들의 스코어 보드를 뺏어서 보려고 했다고도 한다.] 승자인 최홍만과 한국 관중들조차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최홍만의 승리에 환호가 나오다가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흥행 안되는 절대 강자'''였던 슐트의 상승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K-1측의 견제였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최홍만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승부가 가장 적절한 판정이었을거라며 자신의 판정승에 홈 어드밴티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2006년에도 이렇게 상승세를 끌어 나가다가 전년도 8강 진출자 자격으로 월드 그랑프리 16강에 진출해 [[제롬 르 밴너]]와 대결, 연장까지 갔지만 내내 얻어맞으며 끝내 판정패한다. 슐트에게는 석연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고, 본야스키와 벤너에게 패했으나 K-1 최강자들을 상대로 꽤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선전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흥행을 책임지는 선수였기에 K-1은 여전히 최홍만을 중용하였다. 이때까지가 최홍만의 리즈 시절. 스펙빨이라고 까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래도 톱 파이터들을 상대로 판정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나이도 젊은 편에 속했기에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07년 4월과 8월 각각 마이크 말론과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홍만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한다. 요코하마에서의 패배를 의식한 듯 가드를 굳히고 로우킥을 내는 전법을 들고 나온 최홍만은 결국 우세한 경기를 펼쳐내며 판정승을 거둔다.[* 1차전에서와 같은 오버 핸드가 수차례 적중했지만 이때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홍만이 모에게서 빼앗은 다운이 실은 [[로블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모는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반면 최홍만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친 지나친 어드밴티지와 데뷔 때부터 제자리걸음인 기량 등을 이유로 안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http://www.mfight.co.kr/serial/viewbody.php?code=mfight_board_serial2&number=203|당시 인터뷰. 마이티 모의 표정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마이티 모가 너무 빡친 나머지 판정 결과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요구를 했으나 K-1측의 답변은 '''다운이 로블로인 건 인정하는데 니가 진 건 맞음 ㅋ'''이었기 때문에 K-1도 상당히 많이 까였다. 2006년 밴너와 레미의 대결 당시 판정 논란이 일자 비디오 판독을 통해 결과를 정정한 것과는 반대되는 부분.
이러한 여론은 2007년 12월 8일 월드 그랑프리에서 벤너에게 또 다시 패하면서 가속화된다. 그 와중에 연예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까이기도 했다. 12월 30일 야렌노카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보여준 선전[* 전직 씨름선수답게 표도르를 테이크다운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후 파운딩을 엄청나게 날렸다. 정타는 없었지만. 파운딩을 열심히 날리다가 암바로 패.]으로 잠시 가라앉았으나 2008년 9월 바다 하리전과 2008년 12월 레이 세포전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다. 특히 2008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하락세가 뚜렷한 세포를 상대로 졸전을 벌인 끝에 스피드에서 농락당하며 세포의 [[굴욕기]]인 노가드[* 세포가 한창 전성기였을 무렵 사용하던 전술로, 당시에는 기량의 하락으로 거의 봉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홍만에게 다시 썼다'''.]에 관광당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냈다.
* 주요 패: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미르코 크로캅]], [[미노와 이쿠히사]](...), 카를로스 도요타, [[마이티 모]]
2009년 10월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워크'~~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였다. 자신의 체중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미노와를 상대로 2라운드에 체력 난조를 보이며 힐 훅으로 패배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도 졸전 끝에 패배했기 때문에 '''MMA 파이터로서는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시합 내용'''이었다. 미노와 이쿠히사는 최홍만 이외에도 많은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많은 경기들은 '''미노와 자신이 패배한 경기 조차''' 워크 의혹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력 있는 선수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런데 최홍만과의 시합에서만큼은 의혹이 전혀 없다(...).
2015년 4월 27일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 [[ROAD FC]]와 계약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236284|#]] 동년 7월 25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는 ROAD FC 24 대회에서 첫 경기가 잡혔으며, 상대선수로 레볼루션에서 원래 맞붙기로 했다가 엎어졌던 카를로스 도요타와 다시 맞붙었으나 1R 1분 11초만에 상대 강력한 오른손 훅에 실신하며 KO로 허무하게 패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UpphV3sKg|영상]]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604/sp20160416221832136560.htm|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https://m.youtube.com/watch?v=aA08N65pMks|영상]].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그리고 2016년 9월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샤오미 로드FC 033 무제한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과거에 맞붙었던 코리안 킬러 [[마이티 모]]와 다시 겨루게 된다. 전성기 때 몸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도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한 전적이 있고, 승리를 한번 하긴 했지만 석연찮은 판정승이었기에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다 빠져버린 최홍만이 아무리 나이가 불혹이지만 베테랑 헤비급인 [[최무배]], [[명현만]]마저 잡아낸 마이티 모의 펀치를 버텨내기 힘들거란 관측이 많다.
ROAD FC와 계약 중이었을텐데, 어찌된 일인지 11월 6일 중국 후난의 PFC에서 입식 시합을 가졌다. 그런데 상대방과의 스펙 차이가 신장 41cm·체중 88kg... 원래 70kg에서 활동하는 선수와 시합을 가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졌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저우진펑은 K-1 max 2013 wgp 8강에서 쁘아카오와 맞붙었을 정도로 실력있는 선수이긴 하다. 그러나 체급차이를 감안하면 정말 충격적인 패배이다. 생각해봐라. 쁘아카오가 70kg에서 레전드라고 한들 [[세미 슐트]]같은 선수를 이기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그리고 일본의 노장 우치다 노보루를 판정으로 이겼다. 우치다는 과감하게 계속해서 최홍만의 얼굴을 노렸는데, 가드와 긴 팔에 막혀 유효타를 얻지 못했다. 3라운드에 레프트 펀치로 다운시킨게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 입식경기로는 무려 10년 만에 거둔 승리.
핵꿀밤, 도리도리 펀치, 오지마 킥 등 개그 기술로 악명이 높은데, 실은 리치와 파워가 워낙 사기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밥 샙]]이나 제롬 르 밴너같은 당시 K-1 최고의 멧돼지들도 최홍만과 정면으로 힘 대결하는 것은 피했을 정도다. 비록 최홍만이 수술로 근육이 다 빠져버렸다곤 하지만 160kg가 넘어가는 최홍만의 평체 무게를 실은 주먹은 어지간한 선수는 초살시킬 만한 무기다.
왼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잡이처럼 왼팔을 앞으로 향하는 오소독스 자세를 썼는데,[* 보통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반대로 [[사우스 포]]자세를 취한다.] 이는 타격 베이스가 없는 최홍만에게 빠르게 타격 기술을 연마시키기 위해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B급 선수들은 정확하고 강력한 왼손 잽만으로도 갖고 노는 수준이었으니 성공적인 전략이었던 셈.
하지만 스탭이 느리고 무엇보다 '''핸드 스피드가 너무 느려서''' 톱 클래스 선수들의 디펜스에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팔이 느린 대신 다리라도 빠르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아쉽게도 다리마저 느리다.[* 종양 제거 수술 이전에는 근육이 꽤 붙어있었던 터라 지금보다는 나았지만, 종양 제거 수술 이후 근육이 크게 줄어들면서 속도가 매우 안습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거대한 몸이 그의 강점이자 최대의 약점이 된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운동은 그 운동에 적당한 최적의 체격이 있다. 너무 작으면 파워면에서 한계가 있고 너무 커지면 움직임이 굼뜨게 되기 때문. 최홍만 정도의 키로 정점급을 찍을 수 있는 스포츠는 NBA 정도 말고는 떠올리기 힘들다.][* [[세미 슐트]]의 경우는 논외. 최홍만과 비교하기엔 커리어, 재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게다가 공격이 너무 정직해서(...) 기술이 너무 쉽게 [[파해]]된다. 대표적으로 레미 본야스키와의 경기에서는 제대로 된 정타를 한번도 먹이지 못하고 3라운드 내내 레그 킥만 당하다가 끝나버리기도 했다.
- 권혁 . . . . 60회 일치
불펜 투수가 이렇게 화제성이 높은 경우는 최근 한국야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성근]] 감독의 엄청난 혹사를 꿋꿋히 버텨내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내는 모습이, 꼴지를 전전하던 한화가 2015시즌 가을야구 싸움을 하면서 얻은 투혼의 팀컬러와 잘 맞았기에 가장 언급이 많은 선수중 한 명이 되었다. 기존의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1982)|김태균]]과 더불어 2015년 한화의 아이콘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65&page=3&bbs=|#]]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54&page=3&bbs=|#]]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좌완 중계로서 권혁의 역할은 삼성내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46015=|선감독 왈 '유일무이']]라고 불리운 그는,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 시리즈 2차전, 팀이 스코어 1:3으로 지던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박정권]]을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박경완]]을 상대로 홈런을 맞았다. 이 피홈런 때문에 또 다시 멘탈이 붕괴했는지, 다음 타자인 [[나주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권혁의 한계라고 보기엔 2010시즌 자체의 그의 성적은 그렇지 않았기에 삼성 선수단과 삼성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그러나 8월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로나쌩이던 [[정인욱]]이 초반 제구 실패로 무너진 후 팀이 스코어 1:6로 뒤진 상황에 패전처리로 등판하였으나, 실책과 본인의 여전한 제구난으로 인해 오히려 5실점하여 팀이 4:11로 대패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삼성팬들은 '삼성 핵심 불펜 중의 핵심이었던 권혁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것도 '''패전처리에서도'''…'라는 반응을 보이며 많이 씁쓸해했다. 분명 삼성의 특급좌완계투였던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성의 쓸만한 좌완계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1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정말로 절실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페이스를 좀 되찾은 모양인지 ~~왠일로~~ 호투하면서 살아나는가 했더니, 8월 24일 청주 한화전에서 8회 3:2로 앞선 상황에서 나와 미친듯이 처맞고 1사 만루에서 강판, 바로 교체한 안지만이 그의 뒷처리를 하려다 오히려 역전을 허용하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타선 침체로 인해 3연패에 빠져 있었던 팀을 오히려 4연패로 몰아넣고... 결국 이날 안일하게 경기 운영하다 경기를 내준 [[류중일]], 9회말 흔들리던 [[데니 바티스타|바티스타]]를 상대로 영웅스윙을 시전하다 폭풍삼진당한 [[채태인]]과 함께 삼성 팬들에게 개같이 까였다.[* 2011시즌 권혁의 성적은 1승 3패인데 '''3패가 모두 한화전'''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삼성은 이 시즌에 유일하게 한화에게 상대전적에서 뒤졌다. 1승은 7월 19일 SK전.] 역시 이놈은 [[답이 없다]]...라고 생각하던 차 8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에 등판하여 또 ~~왠일로~~ 호투하면서 2연승의 밑거름을 다져놓았다. 좀 들쑥날쑥해도 두산에게만큼은 강한 점도 있었는데다가 무엇보다 이날은 구속이 어느정도 돌아와서 고무적이었다. 올시즌 내내 원래 부족한 제구에 구속까지 안나와서 고전하던 차에 나온 이날 호투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나와 ⅓이닝 2피안타 1볼넷으로 부진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로 '''실점은 0'''이다. 사실 권혁 다음 투수가 1차전에서는 [[오승환]], 4차전에서는 [[안지만]]인지라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를 안 당해서 실점이 없는 것뿐이었다.[* 상세하게 따지면, 1차전에서는 1타자 상대 1피안타, 3차전에서는 팀이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SK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4차전에서도 1타자 상대 1볼넷을 기록했다.]
6월 27일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와 1군에 복귀했다. 이후 7월 5일 두산전에 등판하여 나쁘지 않은 투구를 보여줬다.
7월 27일에는 1:1 동점 상황에서 등판해 1안타와 1볼넷을 기록했으나 삼진만 2개를 잡았다. 삼진/볼넷 비율이 4를 왔다갔다 할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 [[차우찬]]의 페이스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좌우놀이를 사랑하는 감독 특성상~~ 왼손 투수로 필승조에 포함될 듯 하다.
2014년 11월 28일, [[한화 이글스]]와 FA 계약을 체결했다. 4년 총액 32억 원(계약금 10억 원, 연봉 4억 5,000만 원, 옵션 4억 원)으로, 거품이 가득 낀 FA 시장 상황에서 세간의 예상보단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맺었다. 정말 돈보다는 필승조나 마무리를 보장받길 원한 듯하였다.
이로써 한화는 20인 명단에서 빠져 [[KT 위즈]]로 이적한 [[윤근영]]이라는 좌완 불펜의 누수를 그 이상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로 대체하였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등번호가 동일하기 때문에, 한화 관련 커뮤니티에선 [[한화 이글스|주황색]] [[잉어킹]]이 [[삼성 라이온즈|푸른색]] [[갸라도스]]로 진화했다(...)는 식의 [[http://gall.dcinside.com/hanwhaeagles/5325218|드립]]이 인기를 끌었다.] 좌완 불펜이 부족한 한화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이며, 출장 기회를 원했던 그의 바람은 충분히 충족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좌완 투수 조련에 매우 능하며 권혁과 같은 와일드 씽 유형의 불펜자원을 정말 잘 활용하는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이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선수 본인도 계약을 체결하며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하고 싶었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오랜 감독 생활 중 처음으로 외부 FA 선수를 선물받은[* FA제도가 시행된 후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감독을 맡았으나 두 구단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외부 FA를 잡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양준혁]](LG), [[이진영]](SK) 등 내부 FA를 타팀에 내주는 등 김성근 감독에게 FA는 연이 없었다.] 김성근 감독의 기쁨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무통주사도 힘들 상황까지의 투혼 후 돌아온 것은 고교 선수만도 못한 감시와 차별 대우'''
놀랍게도 19일 kt와의 시범경기에서 9대 1로 크게 뒤지던 9회초에 등판했다. 직구 구위의 점검을 위해 직구 9개로 3타자를 상대해 뜬공 2개, 땅볼 1개로 처리하고 내려갔다. 다행히도 통증은 없다고 밝혔다.
22일 NC와의 시범경기에서 9회 말에 등판하여 2구만에 첫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이동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렇게 복귀가 순조롭게 진행되겠다 싶을 찰나...허리 통증으로 개막전 및 4월 복귀가 불투명하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한화 팬들의 우려를 낳고 말았다.
26일 이양기와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고, 안영명, 장민재, 심수창이 거하게 불을 질러 크게 뒤진 7회초 등판해 공 3개로 2타자를 범타처리하고 송신영에게 공을 넘겼다. 6점 차라서 비판 소지가 있긴 하나 수술후 첫 1군 첫 등판이기에 경기 감각 점검 차원에서의 등판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2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서 6-3으로 뒤진 상황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그닥 좋지 못한 구위를 보여주며 1이닝 1실점을 기록하였다.결국 팀의 추격 분위기에서 찬물을 거하게 끼얹고 말았다.
5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또 등판하며 '''기어이 3연투'''를 달성했고 아웃카운트 2개를 잘 잡은후 [[조용호]]에게 2루타를 얻어맞고 [[윤규진]]과 교체되며 물러났다.윤규진이 [[나주환]]에게 투런홈런을 허용해 권혁의 주자를 분식했다.이날 기록은 0.1이닝 1실점.
5월 1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2사 주자 2루상황에서 등판하였으나 [[강민호]]에게 쐐기 투런포를 맞으며 멸망했다.[* 당연히 [[김성근]]이 팔꿈치 피수술자를 억지로 떙겨써서 발생한 참사라는게 중론.] 결국 이날 기록은 0.1이닝 1실점을 기록했으며 시즌 ERA는 7.36을 마크했다. 김재영이 원 포인트로 쓰기 위해 기용된 투수라지만, 공도 4개밖에 던지지 않은채 2아웃을 잘 잡았던 상태라 감독이 너무 이르게 교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5월 초 시점에서 강민호는 잠수함을 상대로 극강이었고, 애초에 김재영은 최준석, 이대호 저격용으로 끌고 온 것이기 때문에 나름 납득이 가기도...
5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 친정팀을 맞아 불끄러 나왔다가 되려 1이닝 1실점으로 부진하였다.시즌 ERA는 4.70
6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 백투백 홈런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한 송창식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가 이번엔 김동엽에게 3타자 연속 홈런 기록을 달성하게 하는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역대 27번째 기록이다.] 이날 기록은 1.2이닝 1실점 ERA 2.93.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57회 일치
일부 민주주의 국가 전용. 30일 후 선거를 시행한다. 좌파와 우파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지원하게 되는데, 플레이어의 불만도가 10% 보다 낮다면 플레이어가 지원한 세력이 승리한다. 좌파 세력이 승리하면 정치 슬라이더가 좌익으로 한 칸, 중앙계획으로 한 칸 이동하며 우파 세력이 승리하면 정치 슬라이더가 우익으로 한 칸, 강경파로 한 칸 이동한다. 이후 600일이 지나면 또다시 총선을 시행할 수 있게 된다.
독일과 일본 전용.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돈이 필요하다. 발동 1주일 후 얼마 안되는 희귀 자원을 만든다.
세계 각국에게 독일은 평화를 바란다고 선전한다. 호전도가 1감소하는 동시에 프랑스, 영국, 소련, 폴란드, 이탈리아, 일본, 헝가리,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불가리아와의 관계도가 5-10 오른다.
세계 대공황으로 폭망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정부가 개입한다. 자금 500을 소모해 공업력 보너스 5%와 불만도 -5%의 효과를 본다. 정치 슬라이더가 중앙 계획으로 한 칸, 강경파로 한 칸 이동한다.
현대 독일 국기와 같은 바이마르 국기를 파기하고 흑백황 독일 제국 국기와 나치당 깃발을 사용한다. 불만도가 1% 감소하며 정치 슬라이더가 닫힌 사회로 한 칸 이동한다. 게임내 국기 역시 1936년의 국기로 변경된다.
독일의 성장을 방해하는 나약한 국제연맹에서 탈퇴한다. 자금 100을 소모해 불만도를 2% 감소시킨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영국, 폴란드, 덴마크,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와의 관계도가 50 감소한다.
돈 대신 사용 가능한 MEFO 채권을 발행해 재무장 비용을 확보한다. 공업력 보너스 5%와 불만도 -3%의 효과를 본다. 정치 슬라이더가 중앙 계획으로 한 칸 이동한다.
오스트리아 내 나치 당원들이 쿠데타를 벌이게 한다. 자금 100을 소모해 불만도를 2% 감소시킨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영국, 폴란드, 덴마크,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와의 관계도가 20 감소한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도는 10 증가한다.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란트에 군부대를 주둔시킨다. 불만도가 2% 감소하며 자금이 500 증가한다. 동시에 외교 슬라이더도 강경파로 1 이동한다. 호전도가 10 오르며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와의 관계도가 5-15 하락한다. 평화시 공업력이 10% 증가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역시 "전쟁 준비" 이벤트로 평화시 공업력 패널티가 10% 감소한다. 이벤트로 벨기에가 연합국에서 탈퇴한다.
1925년 맺어졌던 로카르노 조약을 파기한다. 불만도가 0.5% 감소하며 메츠, 콜마르, 스트라스부르, 룩셈부르크, 오이펜을 영토 분쟁 지역으로 만든다. 호전도가 1 오르며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와의 관계도가 -5 하락한다.
* 이탈리아가 아비니시아와 전쟁 중이 아님
스페인 내전에서 스페인국을 지원하는 디시전. 병력과 물자를 지원하는 선택지와 엄청난 양의 병력과 물자를 지원하고 스페인국 군사통제권도 가져오는 선택지가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스페인국, 이탈리아와의 관계도가 상승하며 영국, 프랑스, 스페인 공화국, 소련과의 관계도가 하락한다. 또한 호전도도 올라간다. 스페인 내전이 끝나면 지원군 귀환 이벤트와 함께 몇몇 공군 교리의 청사진을 획득한다.
*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 빈 점령.
* "이탈리아가 강철의 조약에 서명하다" 이벤트 발생. 이후 오스트리아와 관계도 200이거나 오스트리아와 동맹 상태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는 디시전. 오스트리아 국토를 획득하고, 300명의 인력과 지휘관을 습득하고 불만도도 10 내려가지만 호전도가 10 오르며 영국,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 헝가리와의 관계도가 하락한다. 또한 정치 슬라이더가 강경파로 한 칸 이동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평화시 공업력 패널티가 "전쟁 준비" 이벤트로 10% 감소한다.
뮌헨 조약을 통해 주데텐란트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주데텐란트 지역을 영토 분쟁 지역으로 만드는 동시에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해당 지역의 할양을 요구한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승인 여부에 상관 없이 영국,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관계도가 10-20 하락하며 독일의 호전도가 1 증가한다. 정치 슬라이더가 간섭주의로 3칸, 강경파로 1칸 이동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평화시 공업력 패널티가 "전쟁 준비" 이벤트로 10% 감소한다. 이를 체코슬로바키아가 받아들였을 시, 히틀러의 연설과 네빌 체임벌린의 연설이 재생된다.
* 발동 조건: 독일, 리투아니아 양 국 모두 괴뢰국 아님. 리투아니아와 독일이 동맹 아님, 쾨니히스베르크에 독일군이 위치해야 함.
성공적인 폴란드 침공을 위해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폴란드 동쪽, 발트삼국, 핀란드를 소련에게 넘겨주는 "역사적인 합의" 선택지와 폴란드 분할만 동의하는 "폴란드 분할에만 동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이후 소련의 응답에 따라 이야기가 결정된다.
* 발동 조건: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관계도 50 이상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협상을 벌여 캘리포니아 아라비아 스탠다드 오일이 사우디 아라비아 내 석유 자원을 탐사하게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관계도가 25 상승하며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자금 1을 주는 대신 석유 2를 받아오는 무역 협정을 맺는다. 이후 몇 년 쯤 지나면 사우디로부터 받는 석유의 양이 늘어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56회 일치
*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가 "랏파"를 카피해 [[서 나이트아이]]를 노리나 그는 뜻밖의 강자. 오히려 철저하게 패배한 뒤 겨우 달아난다.
* 나이트아이에게 당해 가면까지 찢어진 트와이스는 정신분열을 일으키나 그때 [[토가 히미코]]가 와서 그를 감싸준다.
* [[시가라키 토무라]]가 시에핫사이카이와 협력을 결정했을 때, 이들을 비롯해 [[빌런 연합]] 멤버들의 반발이 거셌다.
* 토가와 트와이스는 이미 동료들을 죽이고 부상입힌 그들과 협력할 수 없고, 뭣보다 왜 하기 싫은 일을 굳이 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 시가라키는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며 "나와 너희 모두를 위한 결단"임을 역설하고 두 사람을 믿기 때문에 토가와 트와이스를 파견하는 거라고 설득한다.
* 그의 진심을 이해한 토가와 트와이스트는 순순히 시에핫사키아에 협조하는 듯 보이나 진심은 여전히 빌런연합만을 위해, 자신들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 이리나카의 책략으로 분단된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뜻하지 않았던 [[빌런 연합]]의 개입. [[토가 히미코]]의 습격으로 이미 희생자가 나왔다. 자물쇠 히어로 [[록록]]이 당했다. [[미도리야 이즈쿠]]도 그럴 뻔 했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눈치 챈 덕에 제지했다. 대신 그가 부상을 입고 피를 빼앗기는 사태가 생겼지만.
아이자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미도리야에게 록록의 지혈과 주변의 경계를 먼저 부탁했다. 특히 토가가 남긴 나이프는 필히 회수해야 했다. 행동으로 보아 피를 취해서 사용하는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다. 날붙이를 방치하면 아픈 꼴을 당하겠지. 아이자와는 자신의 안일함을 통감했다. "사상자가 나올 정도의 다툼". 그 단편적인 정보를 너무 믿었다. [[시가라키 토무라]]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그 성격으로 누구 밑에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다퉜다면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안일함. 그 결과가 이 상황이다.
미도리야의 머리 속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토가가 사라진, 지금은 굳게 닫힌 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몸놀림과 개성은 낯이 익었다. 밀랍처럼 녹아내리던 모습. 임시면허 시험 때 본 적이 있다. 사걸고교의 여학생 "캐미". 어떻게 된 건진 모르지만,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단 한 가지 의미였다. 그녀가 빌런 연합이라는 것. 그도 아이자와 만큼이나 빌런연합이 왜 이런데서 나타났는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 [[서 나이트아이]]를 습격한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야쿠자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나이트아이를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비웃으며 "야쿠자를 얕보지 말라고" 뻔뻔스럽게 외쳤다. 하지만 상대하는건 자신이 아니다. "랏파"의 "카피"가 나이트아이에게 러쉬를 가했다. 트와이스의 개성은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두뇌파 히어로의 대위기. 그러나 다음 장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이트아이 자신만을 제외하곤.
* 트와이스는 랏파가 눈 앞에서 쓰러지는 걸 보았지만 다음 순간 랏파가 자신을 지나쳐 뒤쪽 벽에 처박히고 있었다힌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랏파를 거기까지 밀어낸 "무언가"는 눈으로 볼 수도 없었다. 트와이스는 그것이 허공에 남긴 궤적을 쫓고 있었다. 멍하니 있던 경찰관 하나가 트와이스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했다.
처박힌 랏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날인"은 트와이스도 볼 수 있었다. 지금 나이트아이의 손에는 그런게 몇 개나 들려있었다. 그의 찢어진 옷긴 사이로 빈틈없는 단련의 편린이 드러났다. 허세도 거짓도 없다. 트와이스의 저항의지는 금방 꺾였고 그 꺾인 탓인지 카피 랏파가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는 패인을 카피의 원본에게 돌렸다
* 나이트아이에겐 관심없는 문제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날인이 트와이스를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날인은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마스크 좌측을 크게 찢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나이트아이는 다음 날인을 꺼내고 있었다. 저 괴물은 저런걸 얼마나 가지고 다니는 걸까? 도망치자, 트와이스는 미련없이 등을 보였다. 그가 허겁지겁 뛰자 이리나카가 그와 나이트아이 사이를 벽으로 막았다.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었지만 트와이스가 원망을 늘어놨다. 찢어진 마스크. 트와이스는 이것도 이리나카가 미적거려서 당한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열하고 있었다. 위험신호였다. 그의 자아가 주체할 수 없이 갈라지려고 했다. 만일 토가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트와이스는 그대로 끝장이었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상냥하게 그의 찢어진 마스크를 감싸주었다. 감싸면 하나. 토가의 손길이 닿자 트와이스가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다.
* 이리나카를 규탄하기는 토가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자신도 이리나카 덕에 무사히 빠져나와 놓고는 말이다. 그녀는 모처럼 협력해주고 있는데 야쿠자 측이 너무 불성실하다고 투덜거렸다. 트와이스는 토가를 구원의 여신처럼 바라보며 칭송하고 사귀자고 치근덕거렸다. 토가가 그를 강아지처럼 쓰다듬으며 슬픈 심정을 헤아려주었다. 트와이스는 [[오버홀]]을 빌런 연합에 소개한 탓에 [[마그네]]를 죽게 했다고 누구보다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핫사이카이에 협조해주고 있는데, 정작 협조대상은 그걸 전혀 몰라주고 있지 않은가?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트와이스였다. 그가 그렇게 되묻자 시라가키는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며 다시 한 번 시에핫사이카이와 협조한다고 선언하고 오버홀이 제공한 계획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가와 트와이스에게 "너희는 오늘부터 야쿠자"라고 통보했다. 트와이스는 이 "재미없는 농담"을 그만두라고 말했지만 시라가키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재미없는 농담은 정도를 넘어서 중요한 임무 중인 [[쿠로기리]]까지 뺏길 뻔 했는데 간신히 막았다는 자찬으로 이어졌다. 시가라키의 설명이 구체적인 임무 브리핑으로 이어지려 하자 트와이스가 그만두라고 언성을 높였다.
* 트와이스는 냉정한 척만 하면 다 리더인 거며 그 "마스크 놈"한테 감화되기라도 했냐고 따졌다. 녀석은, 오버홀은 마그네를 죽였고 [[Mr.컴프레셔]]의 왼팔을 날려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녀석은 바로 트와이스 자신이 데려왔다. 별 생각없이.
트와이스가 스스로 마스크를 벗었다. 그것은 항의인 동시에 호소이기도 했다.
>그건 나와 너희들을 위해서다.
>트와이스, 책임을 지게 해달라고 했지?
그때 시가라키가 뿜어냈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 그런 신뢰감을 만들어냈던 걸까? 시가라키는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걸 헤아렸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트와이스는 시가라키가 그때 무슨 생각을 한건지 모르겠다고 깨끗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시가라키가 그들을 믿는 다는 것. 토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윤종신 . . . . 56회 일치
||<bgcolor=#201e1f> {{{#FFFFFF '''배우자'''}}} ||<(> [* 2015년 현재는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해서 좀 유명해졌지만, 예전에 [[윔블던]] 주니어 부분 결승에 진출한 적이 있었던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테니스 선수였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당시의 결승전 상대 선수는 여자 테니스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였던 [[마르티나 힝기스]]였다. 이후 1995년 US오픈에서는 힝기스와 복식조로 나서기도 했다. 2005년에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결혼했다. 2015년 현재 테니스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종신보다 키가 크다.] ||
'''가요계와 예능계 전반에서 동시에 활약하고 있는 올라운드 멀티 엔터테이너, 가수, 싱어송라이터'''
2006년, 9세 연하의 前 [[테니스]] 선수인 와 결혼했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한 경력이 있다. 당시 상대는 훗날 1990년대 중후반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스위스]]의 [[마르티나 힝기스]]. 전미라는 200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이듬해 윤종신과 결혼했다. 현재는 [[MBC SPORTS+|엠스플]]의 테니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고 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부부 자녀 동반으로 출연했으나, 최하위에 그쳤다.] 힐을 안 신어도 가 더 크다[* 윤종신은 (프로필상) 170cm, 가 175cm이다. 각자 프로필 상 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차이날 수도.]...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이름은 의 이름 끝 글자를 돌림자로 썼다고 한다. 를 거의 빼다 박은 수준으로 닮았다.
* 마지막으로, 윤종신은 2010년대 초 자신이 속했던 1인기획사 신스타운을 확장하여 미스틱89라는 기획사를 세워 자신의 옛 동료인 조정치, 김연우, 하림 등은 물론 투개월, 에디킴, 박재정, 박지윤, 퓨어킴 등 특색 있는 뮤지션들을 모아 앨범을 프로듀싱하기 시작했다. 미스틱89는 김영철, 아나운서 박지윤 등의 방송인도 매니징함은 물론 가족액터스와 인수합병하며 명실상부한 종합 연예기획사로 거듭났고, 회사명도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로 바뀌었다. 무려 SM의 자회사로 인수. 현재 윤종신은 회사 경영에서는 물러나, 대표 프로듀서 직을 맡고 있다. 소속사의 음악적 활동에 대해서는 전권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윤종신은 [[싱어송라이터]]로 높은 평가를 받는데, [[015B]] 객원 보컬 출신으로 솔로앨범을 내면서 작사/작곡까지 참여하면서 스스로의 노래를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 발전했다. [[유영석]]은 싱어송라이터를 두 부류로 분류하는데 [[김연우(가수)|보컬에서]] [[성시경|작편곡을]] [[윤하|시작하면서]] [[박효신|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부류, [[윤상(가수)|전문 작곡가가 보컬에 참여하면서]] [[유희열|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부류이다. 윤종신은 바로 전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윤종신이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전문적으로 편곡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곡이 전문 작곡가와의 공동 작곡이고 편곡을 맡긴 경우가 많다. 디렉터스컷 방송을 보면 음표도 잘 못 그린다. 이 때문에 편곡 및 채보를 위한 서포터가 필요한데, 이들이 윤종신의 음악노예들이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감정을 억누르다 후반부의 폭발하는 전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대표적인 곡이 "너에게 간다". 이런 노래들을 '매달' 국수 뽑듯 뽑아내고 있는 괴물.
[[박정현]]은 한국에 와서 윤종신이 작사한 '오랜만에'를 사전을 찾아가며 의미를 해석했고, 의미를 알게 된 후엔 가사가 너무 좋아서 '한국에도 작사를 시의 수준으로 해내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감탄했다고. 심지어 [[신사동호랭이]]같은 댄스 작곡가들에게도 작사가로는 존경받고 있는 롤 모델이라고 한다. [* 출처 추가 바람]
2009년 [[무한도전]]의 '강변대로 듀엣 가요제'에 '영계백숙'을 작사/작곡하기 했다. 그 기세로 또 하나의 푸드송 "막걸리나"를 내놓았다(국순당이 부탁해서 만든 막걸리 로고송) 2013년에는 망고 쉐이크라는 노래도 냈다. [* 다만 팥빙수와는 다르게 영계백숙이나 막걸리나, 망고 쉐이크는 레시피를 다루진 않았다.] 2014년에는 '눈송이 빙수', 2015년에는 '쿠바 샌드위치'로 영계백숙에 이은 두번째 핫 푸드 송도 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 [[박경림]]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쳤던 곡 '착각의 늪'이 수록된 앨범 '박고테 프로젝트'에 '안녕 핫바'라는 푸드송을 수록하기도 했다. 당시엔 본격적인 예능인이 되기 전 시절이라 방송에서도 진지하게 작사작곡을 하는 모습만 비춰졌다.
윤종신과 음악노예: [[유희열]], [[조정치]], [[성시경]], [[박정현]], [[하림(가수)|하림]], [[투개월]]([[김예림]], [[도대윤]]) 순.[* 이 순서는 그림 순서이고, 실질적으로 '음악노예'라는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은 유희열, 하림, 조정치 정도까지로 봐야 한다. 가수 활동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나 윤종신과 함께 일한 지 몇 년 정도 밖에 안 된 다른 사람들은 사실 노예 수준 노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에 비해 유-하-조 세사람은 그와 함께 적지 않은 기간 일하면서 가수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작곡과 편곡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림의 경우는 윤종신 관련 음반 편곡의 대다수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희열은 독립이라도 했지 하림은 윤종신에게 여전히 속해 있다.][* 이 중 [[김예림]]은 미스틱을 떠났다. 이제는 저 자리에 [[박재정]]이 들어와야 맞다 카더라...]
윤종신이 혼자 작사, 작곡, 편곡을 한 노래는 상당히 드물다.[* [[박정현]] 2집의 ‘전야제’가 윤종신이 혼자 편곡한 노래 중 하나]스스로도 자신이 화성학 지식이 있는 전문적인 작/편곡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멜로디는 자신이 만들고 그것을 곡으로 만드는 것은 조정치, 정지찬, 유희열, 정석원 등 전문가와 공동작업을 해 왔다.[* [[이승환]]과 비슷한 작업 방식이다. 이승환 역시 음악과를 전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그는 외대 출신이다) 황성제 등과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군대에서 알게 된 작/편곡가 이근호와 매우 자주 함께 작업한다. [[http://www.yongi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57|인터뷰 참조.]] 거리에서, 넌 감동이었어, 시간, 지친 하루, 오르막길 등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걸쳐 이근호의 손을 거친 명곡이 상당히 많다. 알고보면 하림, 조정치 등에 버금가는 전속 어시스턴트. 이근호는 클래식 작곡에 능하여, 윤종신이 흥얼거리는 멜로디에 코드와 반주를 입히고 편곡을 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근호씨는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10/2014031002695.html|2014년 창작동요대회 대상]]을 수상하였다. 동요뿐만 아니라 성가 등도 작곡하는 듯.
이 보컬은 윤종신의 가사와 맞물리면 오히려 더 큰 감정 동요를 일으킨다. 이별하고 미쳐 죽을 것 같은데 그걸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백하게 부르니 앞에서는 담담하게 얘기해도 속은 썩어들어가는 이별한 남자의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너의 결혼식'에서 절규하듯 부르던 시절의 보컬 스타일과 비교하면 감정을 조금 누르고 절제시킴으로써 더 애절하게 만드는 스타일.
데뷔 당시 윤종신은 옥구슬같은 미성을 자랑했으나 솔로 1집(1991년)~3집(1993년) 사이에 맑은 음색이 사라지고, 4집(1995년) 전후로 [* 정확히 말하면 The Natural Live 앨범 (1994)에서부터] 목소리가 급격히 탁해지더니 [[1999년]]~[[2000년]] [[유희열|토이]] <[[A Night In Seoul]]>, 8집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를 마지막으로 '''목소리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당장 1999년에 나온 <[[후반]]> 때 목소리와 2001년 9집 <[[그늘(음반)|그늘]]>을 연달아 들어보면, 그 2년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다. [* 제대 이후 방황하던 7집의 발성에 비해 오히려 2000년 8집을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창법으로 안정화됐다고 봐야 할 듯.] 때문에 당시 같이 미성으로 이름을 날렸던 [[신승훈]]도 그의 목소리가 너무 변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승환]]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이 아는 가수 중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목소리가 변한 가수라고.
윤종신 본인에 따르면 잦은 [[음주]]와 [[흡연]]으로 인한 목소리 변화라고 한다. 가수들 사이에서는 말술로 유명하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던 시절 밤 늦게 술 마신 얘기를 자주하는 편. 또한 헤비 스모커로 유명했다가 한 번 쓰러진 이후로는 술과 담배는 줄인듯 하다. 사실 이제는 거의 끊었다. 테니스를 통해서 몸은 오히려 좋아졌다고. [* 하지만 주량은 아직도 5병 정도다...] 금연쏭이라는 제목의 싱글도 냈었다.
다만 깔끔한 가성은 이제 더이상 나지 않는 듯. 데뷔 초에는 무려 3옥타브 라까지 올라가던[* 1992년 015B 라이브 앨범, 친구와 연인 후반부 애드립] 청명한 가성을 더는 들을 수 없다. 좋니 라이브영상들에서 '''3옥타브 레#(D#5)''' 가성을 거칠게 낸다. 원래 가성이란 게 성대에 상처가 많이 나 있을수록 바람빠진 소리가 나기 때문에... 대신 그때보다는 중저음이 훨씬 탄탄해졌다
미성이 아예 사라진 것 같지만, 어릴때 목소리가 아직 어느 정도 남아있긴 하다. 스페이스 공감에서 라이브로 부른 2017 월간 윤종신 6월호 <끝 무렵>을 들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진성을 내다가 가성으로 넘어가는 곳에서 꽤 맑은 음색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cgP43beYqE| 라이브 보러가기]]. 음색 변화는 관리 문제와 노화도 있겠지만 본인이 의도한 것도 있는듯하다.
2013 월간 윤종신 Repair 프로젝트 9월호에서 부른 '''굿바이'''[* 원래는 윤종신 4집 공존 테이프 B면의 첫 곡-음반 상으로 카운트하면 6번 트랙이다.-으로, 장혜진과 듀엣했으며 가요계 숨은 듀엣 명곡으로 꼽힌다. 박주연과 정석원, 그야말로 윤종신의 사람들-각자 오래전 그날의 작사가와 윤종신이 가수로 데뷔하는데 도움을 준 작곡가.-이 모여서 명곡을 만들어 낸 셈이다.]에서 부드러운 창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후 [[015B]]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015B]] 2집 '두 번째 에피소드'의 수록곡 '친구와 연인', 'H에게", 3집 '제3의 물결'의 수록곡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박선주]]와의 듀엣곡), '1월부터 6월까지' 등 간간히 [[피처링]]으로 [[015B]]를 돕고 있다.], 솔로 앨범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2집 '[[Sorrow]]'(TITLE : 너의 결혼식)[* 원래는 작곡가 박강영에게 편곡을 맡기려고 아는 사람한테 번호를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실수로 작사가 박주연의 번호를 알려 줬다고 한다. 차마 잘못 걸었다고 할 순 없어서 작사를 부탁드렸는데, 그 잘못 걸린 전화로 인해 윤종신의 초기 양대 명곡으로 꼽히는 너의 결혼식과 [[오래전 그날]]이 탄생하게 되었다.] 때가 윤종신의 전성기로, 개그맨 [[박휘순]]이 윤종신의 팬이었다고 한다. 판매량 38만 장.
3집 '[[The Natural]]'(TITLE: [[오래전 그날]], 판매량 70만 장), 4집 '[[共存|공존]]'(TITLE: 부디, 내사랑 못난이, 판매량 91만 장), 5집 '[[愚(음반)|우]]'(TITLE : [[환생(윤종신)|환생]], 판매량 97만 장) 등등 윤종신 전기 음악의 대단원이라 할만큼 노래 각각의 완성도로 보나 앨범의 완성도와 짜임새로 보나 걸작이었다.
[[1996년]] 발매된 [[015B]] 6집의 "[[21세기 모노리스]]"를 '신경필'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비슷한 케이스로 [[토이]] 3집, 5집에서 [[이승환]]이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팬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당시 대영AV에 소속되어 있던 [[015B]]가 LG미디어로 옮기면서, 대영에 남아 있었던 윤종신이 대놓고 참여하기 어려워서 그랬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LG미디어는 [[1997년 외환 위기]] 때 사업을 정리했다. 덕분에 [[015B]] 6집은 음악 성향이 상당히 실험적으로 변한 것과 맞물려 재발매도 안 되어서 다른 앨범에 비해 현재 구하기 엄청나게 어렵다.(다만 근래에는 2006년 발매된 7집이 더 구하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 앨범은 1만장 한정 판매) 아닌 게 아니라 1980~1990년대에 괜찮은 음악을 내던 음반사와 기획사들이 [[1997년 외환 위기]]로 대부분 몰락한 것이 [[MP3]]의 범람과 함께 [[대한민국]] 음악 시장이 1990년대 말에 급변한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예당음향, 동아기획, 대영AV, [[로엔엔터테인먼트|서울음반]] 등도 이 시기에 치명타를 맞으면서 사그라들었고,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이 기획형 아이돌을 내세운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이다. 이외에 [[서태지]] 5집, 토이 4집을 낸 삼성뮤직도 음반업계에서 결국 철수했다. (다만 토이 4집은 다른 회사에서 재발매 중이다.)] 그 외에도 [[하림(가수)|하림]]의 1집 앨범에서 '탁영'이라는 가명의 작사가로 활동한 적도 있다.
- 정형돈 . . . . 55회 일치
| 소속팀 = [[형돈이와 대준이]]
[[2009년]] [[9월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SBS TV|SBS]] 미스터리 특공대에서 만난 [[작가|방송작가]] [[한유라]]와 결혼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정형돈-한유라, 동료 연예인 축복 속 웨딩마치(종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42470|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이미영 기자|날짜=2009-09-13}}</ref>
* [[MBC 에브리원|MBC Every1]] 《[[히트제조기|형돈이와 대준이의 히트제조기 빅병]]》
* [[MBC]] 《놀러와 45회 (4월 16일) : 게스트》
* [[MBC]] 《놀러와 62회 (8월 19일) : 게스트》
* [[MBC]] 《놀러와 83회 (1월 27일) : 게스트》
* [[MBC]] 《놀러와 133회 (3월 2일) : 게스트》
* [[MBC]] 《놀러와 162, 163회 (9월 21일, 28일) : 게스트》
* [[YTN]] 《YTN 뉴스 (6월 8일) : 게스트 (형돈이와 대준이)》
* [[SBS]] 《도전천곡 (6월 24일) : 게스트 (형돈이와 대준이)》
* [[MBC Music]] 《쇼 챔피언 20회 (6월 26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Mnet]] 《와이드 연예뉴스 656회 (1월 17일) : 전화통화》
* [[SBS]] 《인기가요 710회 (2월 24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Mnet]] 《엠카운트다운 324회 (2월 28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MBC]] 《[[쇼! 음악중심]] 349회 (3월 2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15회 (3월 7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MBC]] 《[[쇼! 음악중심]] : 상암시대 개막특집 - 422회 (9월 6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MBC]] 《가요대제전 (12월 31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2003년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 - 형돈 역
* 2012년 5월 29일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21682 《올림픽대로》] - 형돈이와 대준이
- 하현우 . . . . 55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출생}}}'''||<(>[[1981년]] [[11월 25일]][* 야구선수 [[KIA 타이거즈]]의 [[이범호]]와 생년월일이 같다.] ([age(1981-11-25)]세)[br][[전라북도]] [[장수군]]||
음악 외적으로 미술과 책에 관심이 많다. 가수로 전업하기 전에 미술을 전공했었고, 시 쓰는 걸 좋아해서 시인을 꿈 꾼 적도 있다고. 군 복무 시절 기타 치기와 노래 부르기를 모두 금지당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부대의 모든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읽을 게 없어서 [[동의보감]]을 읽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독서광 인증.
||<(>※ 아래 내용은 하현우가 2015년 4월 28일 조선대학교 강연에서 했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얘기[*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pl0523&no=15049&page=1&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YMCA|강의 내용 전문 보기]], [[http://blog.naver.com/sonkhj1116/220729059480|강의 내용 육성으로 듣기]].]와 몇몇 기사의 내용을[* [[http://www.sangsangmadang.com/webzine/pickupView.asp?seq=3272|2009년도 인터뷰]],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653783701123625010|관련 기사]].] 참고하여 간추린 것이다. ||
1981년 11월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7살쯤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를 와서 안산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대학 1학년 때, 하현우가 대학교 앞의 길을 걸어가는데 슈퍼 앞에서 지저분한 행색으로 [[거북알]]을 빨아먹던 한 남자[* 이 사람이 현재 [[국카스텐]]의 드럼을 맡고 있는 이정길. 첫 만남 당시 너무 너저분한 행색으로 인해 거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하현우는 콘서트나 인터뷰에서 틈만 나면 이정길에게 거지 같다, 더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가 자신에게 다가와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 밴드하는데, 펑크 음악인데, 노래 잘 못 불러도 돼요"라며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머리를 녹색으로 염색하고, 녹색 바지에 녹색 신발에 [[너바나]] 티셔츠를 입고 다닌 하현우의 차림새만 보고 던진 말이었다고. 그러나 막상 오디션에 데리고 가 마이크를 쥐어주고 실력을 확인했을 땐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후문.[* 그럴 만도 한 게 길 가다가 주운 돌멩이가 알고 봤더니 다이아몬드였던 격이니...] 그렇게 대학 스쿨 밴드 오디션을 거쳐 보컬로 들어가면서 드디어 하현우의 정식 음악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국내 로커들이 보통 중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앞서 미술계에 입문한 것과 같이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이다.
밴드 보컬이 된 대학 1학년 시절엔 공연을 미친 듯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밴드 동아리의 경직된 선후배 관계와 술 문화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정말 제대로 된 음악을 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기 위해 드러머였던 이정길과 의논 후 함께 자퇴서를 내고 곧장 서울로 올라와 홍대의 인디씬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휴학을 했어도 됐지만 일부러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 자퇴를 했다고 한다.[* 후에 [[수상한 가수]]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예 여지 없이 잘라낸 거라고 밝혔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였고, 음악 활동 외에도 생계 및 음악 활동에 필요한 장비 등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다고 한다. 건설 현장에서의 일도 하였는데, 하현우는 우스갯소리로 "안산 YMCA 건물은 제가 지은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건설 현장에서 작업 도중에 감전 사고로 기절한 일화는 당시 서울 생활이 상당히 처참했다는 걸 알려준다. 결국 그는 음악을 접고 미술 공부 경험을 살려 의상 관련 일로 진로를 바꾼다.
2006년 제대 후 하현우는 도자기를 배우려 했지만, 한 음악 학원 원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다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는데, 때마침 기타리스트 전규호가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며 하현우에게 연락해와 전규호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강원도 펜션으로 내려가 방 하나에서 7개월여 간 곡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정길 역시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2007년에 팀에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는 실내 포차 '천둥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강원도와 서울을 오갔다고 한다. 강원도에선 곡 작업과 실내 포차를, 서울에선 라이브를 했던 모양.] [[https://www.youtube.com/watch?v=utNXeburWTM|그 시절 영상]]. 여기에서 밴드 [[국카스텐]]과 그들의 1집 앨범이 탄생한다.
* 보컬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인 하드웨어'''. 동년배의 보컬리스트 중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다.[* 록 보컬리스트들 중에서도 이만한 폭발력과 하드웨어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인물들은 외인부대와 아시아나 보컬 당시의 [[임재범]], [[김경호]], [[김종서(가수)|김종서]], [[윤도현]], [[김바다]], [[부활(밴드)|부활]] 보컬 당시의 [[박완규]] 정도로 손꼽힌다.][* 현재로써는 동년배 보컬 중 [[이수(가수)|이수]]나 [[김범수]] 정도. 다만 이수는 주 장르가 팝 발라드인 이상 3옥타브 후반대의 초고음보다는 2옥타브 후반~3옥타브 초반의 중고음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김범수의 경우 아직까지 보여준 음역대가 하현우보다 낮다. 즉, 현재 최고의 하드웨어는 하현우가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김범수는 락 가수가 아닌데다, 가창의 정석과 같은 가수라 직접적인 비교는 무의미하다.] 타고난 성량을 바탕으로 [[흉성(발성)|흉성]], [[두성]], [[샤우팅]]을 이용해 [[파사지오]]를 넘나드는 광활한 음역대가 가장 큰 강점이자 특징이다. 현 대한민국 가요계의 보컬들 가운데 최정상급의 발성을 사용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라이브에서 무대를 온통 휘젓고 뛰어다니고 거기에 격한 기타 연주까지 하면서도 노래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하현우의 발성이 아주 탄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듀엣 무대에서 '''덤덤하게 부르는 중고음이 다른 가수의 고음역을 묻어버릴 정도'''[* 예당 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같은 소속사 식구였던 [[알리(가수)|알리]]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콘서트 때 게스트로 등장해 알리와 같이 '저 바다에 누워'와 '해야'를 듀엣으로 열창했는데, 알리의 고음역 성량을 그냥 담담하게 중음역을 부르는 성량으로 본의 아니게 강제 음소거 시켜버린 적이 있다. [[https://youtu.be/Rmsqv18Oo0Y|#]]]로 폭발적이며, 고음의 경우엔 음역대가 빈틈 없이 꽉 들어차 있다. 특히 3옥타브대의 초고음역을 1분여 가량 동안 연속적으로 파괴하는 특유의 고음 처리가 압권. 궁금한 사람은 국카스텐의 대표곡 [[https://youtu.be/Ew5LZwcHb6I|'거울']]과 [[나는 가수다 2]]에서 부른 [[http://tv.naver.com/v/26652|'모나리자']]를 들어보자. 사실 국카스텐의 곡(커버곡 포함) 대부분에서 3옥타브대를 넘나드는 극악무도한 초고음역을 들려준다.
* 그렇다고 저음은 못하느냐 하면 아니다.[* 2집 타이틀곡인 오이디푸스를 들어봐라.] 복면가왕만 봐도 0옥타브 초반대의 저음을 상당한 실력으로 구사하는 데다가, 현재 기준으로 한국 대중음악 라이브 상으로 가장 낮은 음을 보여준 것이 바로 하현우다. 하현우의 '''현재 음역대는 저음 -1옥타브 파(F1)에서 고음 3옥타브 시(B5).'''[* 저음 '''-1옥타브 파(F1)'''는 복면가왕 기준이 아니라 요즘 콘서트에서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곡을 키를 낮춰서 부르는데 '''일상으로의 초대'''를 키 낮춰 부르면서 낸 음이고 고음 '''4옥타브 도(C6)'''는 [[섹션TV 연예통신]]에서 나와 확실히 음역대 측정을 해서 나온 수치라고 밝혔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출연했을 때의 발언으로는 예전에는 '''4옥타브 도(C6)'''까지 올라갔는데 지금은 안된다고 한다. 저음도 측정한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물론, '극저음을 낼 수 있는 것'과 '저음을 잘 부르는 것'에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당장 국내에서 중저음이 매력적인 가수를 이야기할때 항상 거론되는 김동률, 이적, 박효신 같은 가수들이 단순히 음이 많이 내려간다고 언급된다 보기는 힘들다. 중요한 것은 저음이 얼마나 많이 내려가든 간에 '더 원숙한 표현이 가능하고 깔끔하게 가창 스킬을 구사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음역대가 넓은 것은 충분한 장점이고, 표현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 현재 방송 중에 나온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 2018 인생술집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 콘서트 중에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에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를 보여준 적 있다. 가성으로는 '''3옥타브 라♯(A♯5)''' [[https://www.youtube.com/watch?v=f2JhDE6__6E|#]], '''3옥타브 시(B5)''' [[https://www.youtube.com/watch?v=ffl9JCKSPDs|#]], '''4옥타브 라(A6)''' [[https://www.youtube.com/watch?v=tDby__0o4Sg|푸에고(2012 Live.ver)]] 를 보여준 적이 있다.[* 다만 샤우팅을 하다 삑사리처럼 찢어지는 비명으로 터져나온 것이라 가창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긴 하다..] 또한 [[두성]]으로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 [[2018년]] [[7월 12일]] [[인생술집]] 방송때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까지 발성할 정도로 음역대가 무지막지하다. [[http://www.10years.co.jp/guckkasten/|국카스텐 일본 사이트]]에서는 '''3옥타브 시(B5)'''까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한 곡 안에서 최저음과 최고음이 3옥타브 이상 차이가 나면 저음이나 고음 둘 중 한 쪽은 흔들리는 것이 보통인데, 하현우는 초저음역대와 초고음역대를 짧은 순간 안으로도 자유자재로 오간다. 일반적인 고음, 저음으로 유명한 보컬들의 음역대가 비교적 하이톤의 고음 특화거나, 로우 톤의 비교적 저음 특화로 생성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양쪽이 모두 가능한 하현우의 음역대는 숙고할 만하다. 오죽하면 음역대로 광고를 찍었을까.
* 상술했듯이 [[록 음악|본진]]에서 하현우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 수준의 보컬이다. 그러나 그 역량이 꼭 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복면가왕]]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러가지 장르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일반적인 록 보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샤우팅]] 창법 말고도 성대가 정상적으로 접촉시키는 진성 [* [[흉성(발성)|흉성]], [[중성]], [[두성]]을 모두 포함한다.]의 스탠다드한 창법 역시 사용함으로서 표현의 폭이 굉장히 넓은 편.[* 여성 가수들과 듀엣할 때 이러한 테크닉이 많이 두드러진다. [[나는 가수다 2]]에서 [[이은미]]와의 듀엣이나 [[주현미]]와의 듀엣이 대표적인데 각각 재즈, 트로트라는 판이한 장르의 편곡과 무대였음에도 대단히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 무엇보다도 파사지오 구간에서 이만큼 자유로운 보컬은 찾아보기 힘들다. 파사지오의 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수준으로 [[두성]]과 [[흉성(발성)|흉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 초고음에서도 성대접촉의 질감을 그만큼 유지할 수 있는 보컬은 하현우가 거의 유일하다. 특히 스크래치의 경우 성대가 벌어지면서 호흡이 성대를 긁고 지나가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현우는 이와는 정반대로, 성대의 접촉을 최대압력으로 유지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스크래치'''[* 하현우와 비슷한 목을 긁는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들 중에는 김신의([[몽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등이 있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머라이어 캐리/창법#s-2.6|그로울링(?)]]을 참고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를 사용한다. 이런 방식의 '''스크래치'''를 전 음역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하현우가 거의 유일하며, 대중음악 역사를 통틀어서 봐도 하현우 외의 다른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높은 성대 접촉률으로 전음역에서 진성의 발성이 나오는데, 이런 성대 접촉률은 전문가들이 하현우의 보컬에서 가장 감탄해하고 높이 평가하는 부분 중 하나이며,[* 이게 뭐 별거인가 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의 가수들이 [[두성]] 음역으로 접어들 때 성대 접촉이 줄어들거나 후두가 올라간다.] 이런 성대 접촉률 때문에 초고음역대의 노래들을 그렇게 많이 부름에도 불구하고 성대가 상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에 무거운 사람이나 물건들을 올려놓고 대화를 하는 등 복부 단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 위에 100kg의 사람까지 올려놓고 연습했다고.]. 서양 록/메탈 가수 중에서도 단순히 상연만 살짝 붙는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로 강한 수준의 성대접촉을 통해서 고음을 내는 가수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굳이 따지면 [[로스트 호라이즌]] 보컬이었던 다니엘 헤이먼 같은 스타일 정도?[* 특히 [[메이플스토리]] OST 중 DARKNESS(다크니스)를 능숙히 부른 것을 보아도 이 점이 두드러진다.]
* 맑고 깨끗한 미성[* 나가수에서 선보인 'The Saddest Thing'이나 2집 수록곡 '변신', 'Frame' 등의 노래에서 들어볼 수 있고 복면가왕에서 부른 '[[일상으로의 초대]]'에서 정점을 찍는다.]과 거칠고 둔탁한 탁성[* [[나는 가수다 2]]에서 선보인 '[[넋두리(노래)|넋두리]]'와 [[복면가왕]]에서 선보인 '[[Lazenca, Save Us]]'.]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며, 곡의 분위기에 따라 소름 끼치게, 몽환적이게, 애절하게 등등 다양한 느낌의 소리를 매끄럽게 뽑아내기도 한다. 콘셉트를 끌고 가거나 곡 해석하는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덕분에 온갖 장르의 노래들을 전혀 위화감 없이 잘 소화해낼 수 있다. 그래서 복면가왕에서 얻은 별명이 '''장르 파괴자.''' 보편적인 감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한국 대중들은 발라드와 댄스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보니 록이 사양길을 걷는 장르가 되어버린 지 오래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곡은 나가수 전까지는 많지 않은 편. 음폭이 깡패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곡에서 넓은 음역을 뽐내기보다 분위기에 맞게 적절히 절제해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자 장점.
*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창법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정석적인 창법만의 장점도 존재한다. 우선 한 우물만 파듯 자신의 개성을 극대화 한 가수들에 비해서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 할 수 있다. 이 점은 하현우와 비슷한 발성적 특성을 가진 가수들(ex:김범수, 김연우, 윤도현, 최근의 박효신 등)도 공통적으로 가지는 장점이다. 거기에 더해 성악처럼 개성이 극히 줄어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차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차이을 주면서 개성을 살리기도 한다.
* [[나는 가수다 2]]에서는 '나 혼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는 '[[FANTASTIC BABY]]', '[[하여가(서태지와 아이들)|하여가]]'를,[* 3옥타브대의 초고음역에서 랩을 하면서도 발음이 전혀 뭉개짐 없이 굉장히 또박또박하고 가사 전달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Go! Go! Go!'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어 상당한 수준의 [[Rap|랩]]까지 선보였다.
* 이 외에도 다른 장점은 라이브 기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카스텐]]의 거의 모든 곡들이 3옥타브를 넘나들고, 거친 밴드 사운드로 상당한 성량을 요구함에도, 라이브에서 음이 불안하거나 파워가 모자라는 일이 거의 없다. 하현우가 라이브에서 매우 격한 기타 연주와 액션까지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부분. 감기에 걸리거나 많은 스케줄로 목이 안 좋거나 고열에 시달리는 등 몸이 아플 때조차도 컨디션 난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라이브를 선보이곤 한다. 당장 [[복면가왕]]만 생각해 봐도, 20주동안 라이브 기복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리하자면, '''당대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와 발성, 그리고 이로 인한 다양한 장르 소화력, 거기에 특유의 맑고 거친 느낌이 혼재하는 음색이 더해져 록 음악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장르에서도 뛰어난 가창력을 뽐내는 보컬리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국카스텐 곡들의 가사를 모두 직접 쓰는데 가사가 난해하다는 대중들의 반응이 많다.[* 하현우는 이런 점에 대해 [[랭보]]나 [[보들레르]]의 난해한 시는 직접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왜 노래 가사는 쉽고 직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본]] 음악의 경우 난해한 가사나 시적인 경우가 많은데 한국 음악은 쉽고 간결한 가사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이런 평가를 받는 듯하다.] 자아 탐구를 중심에 두고, 어떤 대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걸 심오한 재해석으로 풀어 쓰거나 본인이 읽은 책, 꾼 꿈, 사상 같은 부류들을 통해 쓰곤 하는데, 이게 또 국카스텐 특유의 취하거나 약 빤 듯한 사운드와 절묘하게 시너지를 이뤄 대체적으로 한 몫 하고 있다. 마치 중세 신비주의나 연금술에 대한 철학 이론 같다는 평.
작곡가이기도 하다. 국카스텐 곡의 작곡은 보통 하현우가 멜로디 라인을 스케치해두면[* 악보와 친하지 않아서 입으로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녹음기로 녹음하는 방식을 쓴다고 했다. 1집 작업 기준.]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멤버들이 각자 파트분을 작곡해서 덧붙이며 완성해간다고 한다. 2집의 경우는 곡의 일관성을 도모하기 위해 다른 악기 파트도 하현우가 맡았다. 본인이 상상하는 사운드를 밴드의 악기와 이펙터로 정확히 구현해내길 원하는데, 그 상상이 평범한 게 아니어서 특히 사운드의 중심 축을 이루는 기타를 맡고 있는 데다가 이펙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규호가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전규호(공대 출신)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이런 요구들에 성질을 내면서도 결국은 어떻게든 다 해낸다고(?).
- 도영(1996) . . . . 53회 일치
||<#FF0133><:>'''{{{#white 별명}}}'''||<(> 도코몽[* 도영+코코몽.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도영이 냉장고 나라 코코몽을 닮았다는 말이 있어서], 토끼왕자, 도깽, 당근총각[* [[토끼]]를 닮아서 지어진 별명. 당근가게 망한 애라는 별명도 있다.], 또잉[* ‘도영’을 [[중국어]]로 발음하면 ‘따오윈’인 것을 모른 채 자신을 ‘또잉’이라고 소개해서 지어진 별명.], 우동[* “우리 동영이”의 줄임말. 비슷한 경우로, [[재현(NCT)|재현]]은 “우리 재현이” 즉 ‘우재’라는 별명이 있다.], 토평고 6대천왕[* 아이비클럽 일일카페에서 본인피셜 학교축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멤버들피셜 멤버들앞에선 1대천왕이라고 한다고..형은 잘생긴 외모덕에 토평고4대천왕 출신.--], 미코[* 미성의 코러스. 뮤비뱅크에서 자신의 키워드로 써서], 도룡[* 도영+공룡. 언뜻 공룡도 닮아서], 왕증이[* 왕 큰데 앙증 맞아서(...) 그런데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아하는 별명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왕증이라고 대답했다.], 팩폭남[* 팬들과 밀당하는 밀당남. ~~요정이라는 별명을 극도로 싫어한다~~], 삼청이[* 청순 청아 청초(...)], 직진남[* 형인 공명과 똑같이 직진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 TV프로그램에서 형의 가상 와이프에게 직진질문을 한 것을 보여주었다.], 도영글래스[* 유리잔같이 소중히 다뤄야하는 존재로 가장 잘 삐지는 멤버이다. 태용의 전화에 그렇게 저장 되어있다.], 도영왕댜님[* 도영 자신이 정한 별명이다.], 도영임굼님[* SM 할로윈때 임금님 코스프레를 했는데 NCT 나잇나잇에서 임금님보단 유니크하게 임굼님이라고 도영이 바꾸었다.] ||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남성 그룹 [[NCT]]와 서브그룹 [[NCT U]]의 멤버이며 [[NCT 127]]에 합류했다.
루키즈쇼에서 태용과 부른 미공개 곡이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곡이 [[https://www.youtube.com/watch?v=5SIOGkxd_B0|Piece of mind]]. 제목이 밝혀지기 전에는 가사에 나오는 단어인 '귓속말'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 이 곡은 J.cole의 sideline story의 트랙을 빌려와 그 위에 멜로디와 랩을 붙인 곡으로 태용이 연습생 시절 힘들고 지칠때마다 힘이 되어주었던 노래였다고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Piece of mind 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루키즈 쇼에서 두 사람이 부른 또다른 곡인 [[https://www.youtube.com/watch?v=HjMaLw-57qw|Switch off(가제:백열등)]] 또한 정식 발매되기를 원하는 팬들이 종종 있다.
2016년 4월 29일 뮤직뱅크에서 [[TWICE]] [[지효]]와 듀엣으로 <All for you>를 불렀다. ~~듀엣 상대와 상당히 어색한지 차렷자세로 노래를 부르지만~~ 그의 깨끗한 음색을 엿볼 수 있다.[[https://youtu.be/N6oIUsqNfNg|160429 All For You - NCT U Doyoung (도영) X TWICE Jihyo (지효)]]
2017년 10월 13일에 SM STATION 2에서 [[구구단]] [[세정(구구단)]]과 부른 <별빛이 피면(Star Blossom)> 음원이 공개되었다. 여자키에 맞춰진 혼성 듀엣곡임에도 불구하고 매끄러운 가성처리와 애드립, 진성으로 부른 코러스까지 거의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모든 음역대를 한 곡에서 완벽하게 보여준다. [[https://youtu.be/lpv-mkmddms|STAION 도영 X 세정 '별빛이 피면 (Star Blossom)'MV]]
NCT 2018 Empathy에 랩퍼라인인 태용, 마크, 루카스와 함께 참여한 [[https://www.youtube.com/watch?v=gUWDiXBNohY|Yestoday]]에서 장점인 음색이 제대로 발휘되었다. 본인이 밝히기를 쏟아내는 랩들 사이에서 보컬의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 나와야 매력적으로 들릴까를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두개의 랩 verse 사이를 이어주는 좋은 이음새가 될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불렀다고 한다. 마지막 후렴의 Sorry that I walked away는 해외팬들이 특히 좋아하는 부분.
본인의 목소리와 노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인터뷰가 꽤 많다. 스스로를 소개할 때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거나,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노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한소절만 들어도 누군지 알아챌 수 있는 보컬이 되고 싶다'고 말한적도 있다.
2018년 6월 9일 도영이 참여한 [[리치맨]]의 OST [[https://www.youtube.com/watch?v=PyWedT7IVkw|Hard for me]]가 공개되었다. 앞서 발표된 [[치즈|Cheeze]]의 Hard for me가 유리구슬같이 맑고 섬세한 감성으로 다가왔다면 도영버전의 Hard for me는 호소력 짙은 보이스와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듣는 이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2018년 10월 8일 SM워크샵 사내 노래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인형]]의 에브리싱 버전 가창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C24WyxQd1A|도영 - 인형]] 이 공개되었다. 진성으로 부른 메인 멜로디와 가성으로 처리한 화음 부분에서 도영의 탄탄한 가창력과 흔들림 없는 음정을 엿볼수 있다. 특히 후렴 뒷부분의 화음 파트를 두 번 부르는데 이 부분을 합쳐서 들으면 음정 다른 곳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숨쉬는 타이밍도 똑같을 정도~~ [[https://twitter.com/doyoung__21/status/1049189159724695552|#]]
* 루키즈에 공개되기 전인 2014년 8월 Mnet EXO '90:2014'에서 공개된 [[https://www.youtube.com/watch?v=OJzA6krTUMo|'빛']] 리메이크 음원에 참여하였다. 당시 음원에 함께 참여했던 재현, 쟈니와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유타는 이 시점에 이미 루키즈로 공개된 상태.
* 2016년 02월 15일 디자인유나이티드 브랜드 모델로 태용, 유타 와 함께 발탁되었다.
|| 2016년 12월 30일 || 너의 목소리 (Sound of Your Heart) || SMTOWN, Steve Barakatt || 너의 목소리 (Sound of Your Heart) || 이동우, 예성, 써니, 루나, 슬기, 웬디, 태일, Steve Barakatt와 공동 ||
|| 2017년 2월 5일 ~ 2018년 2월 4일 || [[SBS]] || [[인기가요]] || 고정 MC[* 갓세븐 진영, 블랙핑크 지수와 공동] ||
|| 2018년 3월 26일 || [[KBS]] ||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 패널 [* 재현, 마크와 함께 출연] ||
|| SBS 파워 FM 라디오 '''NCT의 night night!''' 스페셜 DJ[* 예능으로 자리를 비운 재현을 대신하여 쟈니와 함께했다. 디제이 애칭은 ‘도디' 태용과 하루씩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 2017년 8월 15, 17, 19일 || 오후 11:00~12:00 주파수 107.7MHz ||
* 2월생이지만 빠른 년생을 치지 않고 만 7세에 96년생들과 같은 학년으로 입학했다. 같은 소속사의 레드벨벳 조이와 동갑내기로 지내고 있으며, [[태용]],[[쟈니]],[[유타(NCT)|유타]]에게는 형으로 부르고 있다. NCT는 외국인 멤버들이 다수에 빠른 년생인 멤버도 많아서 그룹 전체가 출생연도대로 호칭을 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시력이 좋지 않아서 방송을 할 때는 렌즈를 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이 쉽게 충혈되는 편인지 활동이 많은 시기에는 눈이 빨개진 채 찍은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보라가 아닌 라디오 녹음 방송에서는 종종 렌즈 대신 안경을 끼기도 한다. 그런데 2018년 여름 쟈니와 함께 라식을 했다. 현재 시력은 1.2. 라식을 하니 다른 세상을 보며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도영: 더 좋은 눈으로 여러분을 이제 보겠습니다.--
* 처음 회사에 들어오고 연습생 시절에 이비인후과에서 성대 테스트를 받은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성대 진단서와 성대 동영상이 담긴 CD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루키즈 시절 백문백답에 따르면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 도영의 형은 남성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인 [[공명(배우)|공명]]이다. 형인 공명과는 사이가 좋은 형제였던 것 같다. 어릴 적 서로 싸운 일도 별로 없고 부모님이 모두 집안에서 막내였던터라 막내인 도영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위기여서 형도 도영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어린 시절 다리가 부러져서[* 아이스크림을 사오다 차가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한다. --다리를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지켰다-- 차에 치이자마자 바로 그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3달 넘게 휠체어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때 형이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이야기했다. 형이 다정하고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앨범이 나오거나 도영이 방송에 나오면 종종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고. 레귤러 활동 당시 첫방 날에 공명이 직접 찾아와서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였다.
* 어릴 적 장래희망은 [[검사(법조인)|검사]]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말하는 걸 좋아하고 또 잘해서 7살, 8살 때 이미 큰아빠와 말싸움을 할수 있을 정도였다고.] 스스로 원한 장래희망이라기보단 어머니께서 원하셨는데 본인은 별로였다고. 스스로 원했던 꿈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 어렸을 때는 장소가 중요하지는 않았고 그냥 어디서든 노래를 부르고 돈을 벌어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목표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를 꿈꿔왔던 만큼 6학년 때 직접 쓴 글에 나중에 유명해질테니 미리 싸인받아놓으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 상디 . . . . 53회 일치
|| 쵸파가 맡는 냄새 ||<:> 담배와 해산물 냄새 ||
||<:>[[아미보]]와의 콜라보||<:>[[폭스 맥클라우드]] ||
[[밀짚모자 일당]]의 [[요리사]] 겸 전투원. ~~그리고 일당 내 변태1~~ ~~[듀발|성형외과 의사].~~ 일명 '''검은 다리 상디'''. 여자들한테~~만~~ 굉장히 매너가 좋고 여자를 굉장히 밝히는 색골이면서 실력 좋은 요리사. 상디가 오기 전까지의 밀짚모자 일당의 식생활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루피는 출항하자마자 식량과 식수를 동내고 버섯을 뜯어먹으며 살았고 조로는 루피보다는 나았지만 결국 계획성 없는 것은 똑같기에 식량이 금방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그래서 바다 괴수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괴수 없으면 아사~~. 우솝은 자그마한 낚시는 곧잘 하곤 했으며 나미는 그럭저럭 요리를 잘 했지만 '''유료''' 였다(…).]전투력이 상위권이기 때문에 [[몽키 D. 루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일당 3대 주력 전투원. 그의 애칭은 검은 다리로 명성이 나 있다.
요리 실력이 매우 뛰어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맛, 영양, 시각 모두 만족시키는 멋진 음식을 만들고, 처음 접하는 생소한 재료도 금방 파악해 뛰어난 요리로 승화시키며, 이 와중에도 쓸데없이 재료를 낭비하거나 그냥 버리는 일이 없다. 칼질 솜씨 또한 수준급. 상디의 요리를 먹고 만족하지 않은 사람은 작중에선 한 명도 없으며, 상디 또한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게 보이겠다'''는 이유로 무리해서 담배를 피우다 결국 골초가 됐는데도 미각이 전혀 둔해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면 손에 담배 냄새가 흥건히 묻어서 요리에도 냄새가 베일 텐데도 그런 묘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위의 프로필에서 쵸파가 상디에게 느껴진느 향기는 담배와 해산물 냄새라고 되어있는데, 수트에는 담배 냄새가 베어있어도 요리전 손의 위생 관리에는 철저한 모양] 또한 담배는 해상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항상 항해생활을 해야되사 시중에서 구입하기 보단 직접 제작하는듯 하다.[* 클리크와의 전투후 루피를 간호하느라 상디의 방이 나왔는데 담배를 직접 제작한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샤키]처럼 담배를 피는 또 다른 캐릭터들의 담배와 비교해봐도 형태가 좀 다르다. 일반 담배와 달리 만드는 담배 특유의 약간 찌그러진 모양이 묘하게 리얼하다.] 더불어 수영의 달인으로서 [[어인]]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의 폐활량까지 갖추고 있으니 필시 원피스의 담배 자체가 현실의 담배와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상디의 과거회상에서 담배를 처음 피우는 상디를 보고 제프가 "관둬. 담배 같을걸 피우면 혀가 돌아버린다."라고 한마디 하는 장면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게...거참. ~~아니면 상디의 미각과 폐활량이 패기를 쓸 줄 알거나~~]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태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오죽하면 [[wiki:"모네(원피스)" 모네]]를 보고도 공격하지 못하는 걸 G-5 해군들이 "이보쇼? 형님, 여자는 못 건드린다고고 했는데 그러다가 적인 여자가 공격하여 목숨이 위험하면 어쩔 거요?" 라고 묻자 단번에 '''그냥 죽을 거야''' 라고 즉답하여 해군들이 기겁했다. 물론 모네와 싸우던 [[롤로노아 조로]]를 막지 않고 자신은 건드리지 않지만 동료가 적인 여자와 싸워 베던지 날리던 그건 막을 생각이 없다는 걸 이야기했지만.
[[롤로노아 조로]]와는 상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하는 게 다반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영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상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상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백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상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노스 블루]][* 노스 블루 출신이라면 알고 있는 [[몽블랑 노랜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출신이지만 어릴 무렵 여객선 오빗 호의 견습 요리사로 이스트 블루에 넘어와 있었던 듯하다. 한가지 의문인 건 어떻게 노스블루에서 이스트 블루로 넘어왔냐는 점. 본인의 말로는 이사왔다는데 자세한 건 아직 나오진 않았다.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상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상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상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상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상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식량을 상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식량이 모두 떨어진 상디가 제프의 식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상태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상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상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상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이후 제프를 따라가 함께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를 열고 요리사가 되어 부주방장까지 되었다. 그러다 [wiki:"몽키 D. 루피" 루피]와 만나고, 클리크 해적단을 상대로 공투해서 승리한다. 그 뒤 루피의 동료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오올 블루를 찾고 싶은 마음에 따라가고 싶긴 한데 제프 때문에 미적거리다가 제프 본인과 여타 동료 요리사들의 배려로[* 상디의 요리를 모욕해서 어그로를 끌어서 빡친 상디가 스스로 나가도록 하는 것. 물론 상디는 처음엔 낚였지만 곧 알아채버렸다. 만화판에서는 수프를 바닥에 뿌려버렸는데 애니에서는 맛 없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변경.] 루피를 따라나서서 [[밀짚모자 일당|밀짚모자 해적단]]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제프와 레스토랑 동료들과 헤어지는 씬이 정말 명장면이다.]
[[프랑스어]]판에서는 Sandy라고 쓴다. 발음도 상디(혹은 상뒤). 게다가 이미지 국가도 프랑스니... 애니 일본판을 봐도 '산지'와 '상디'의 중간 발음으로 들린다.[* 일본어 외래어 표기시 ㄷ음은 ㅈ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예: 라디오->라지오]
[[나미(원피스)|나미]]나 [[니코 로빈]]과는 다르게 지식량이나 정보 수집 능력 면에선 떨어지지만 '''주어진 상황 자체를 바꿔 버리는 전략안'''이 특출해 해적단 내에서 비공식적인 참모 역을 맡고 있다.[http://blog.naver.com/zt777/20175605172 일단 밀짚모자 멤버 중 조커 겸 히든카드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는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러나 해당 링크의 인터뷰 내용은 루머일 가능성이 있다. 상디가 조커 포지션인건 사실이지만 결말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활약이 있을거라고 보장할수는 없다는 것.] 루피와 조로와 함께 해적단의 주 전투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면서도 완력에 의존하는 [몽키 D 루피|이] [롤로노아 조로|둘]과는 달리[* 그런데 조로는 무조건 완력에 의존하는게 아니고 적어도 전투에 관한한 머리만큼은 밀짚모자 일당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더구나 루피 부재시 자신이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전략이나 작전을 지시하는 등 상디와는 다른 방향의 두뇌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히려 루피야말로 순수하게 완력과 본능에 의존하는 스타일에 더 가깝다.] 일행의 식단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전황 자체를 유리하게 바꿔버리는 능력을 보여주는 등, 밀짚모자 해적단에서는 전술전략 양쪽을 모두 갖춘 유일한 멤버이다. 쉽게 말하자면 루피와 조로가 [[람보]]같은 케릭터라면 상디는 [[007]] 같은 스파이 스타일. 예를 들면 [[바로크 워크스]]의 꼬리를 잡거나, [[갓 에넬]]의 비행선을 망가뜨리거나, 정의의 문을 닫아 해류를 만들어 탈출을 쉽게 만들어 낸 장면들은 그의 임기응변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한 최고의 두뇌플레이. 말하자면 지략과 완력을 모두 겸비한 밀짚모자 해적단의 '''조커'''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그의 또 하나의 염원은 [[투명투명 열매]]를 얻어 여탕을 실컷 엿보는 것 이었는데, [[압살롬(원피스)|압살롬]]이 이미 그것을 먹어버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꿈이 깨지자]] 여러 가지 의미로 분노해 압살롬을 끔살낸다. 참고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상상해왔던 덕분에 투명투명 열매와 관련된 모든 전술을 파악하고 있어서 꽤 선전했는데, 위에 서술한 밀짚모자 일당 내 '히든카드'로서 첩보원 포지션에 덧대어 생각해보면 투명해진다는 능력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열매일지도. ~~당사자는 순전히 음흉한 마음에서 원했던 것 뿐이지만(...)~~ --두번째로 먹길 원했던 열매는 [[또록또록 열매]]이다.이유는....알 것이라고 믿겠다.(드레드로자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왠지 적들에게 모습이 알려지지 않는 징크스가 있는데 [[바로크 워크스]]와 싸우게 되었을 때 위스키 파크에서 초상화가 그려지지 않거나 Mr.3일당과 전투에서도 열외되었고, [[Mr.2 봉쿠레]]가 왔다 갈 때 일당중 유일하게 그 자리에 없어 본의 아니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게 되어 [[크로커다일]]을 두 차례나 낚았고, [CP9]와 싸울 때도 혼자 해상 열차에 숨어들어 화려하게 깽판을 쳐주는 등 의도치 않게 중요한 순간마다 히든카드가 되어 대활약. [[에니에스 로비]]에서 깽판쳐서 수배서가 배부 될 때에도 상디만 렌즈 커버를 안 벗겼는지 사진이 새까맣게 나와서 거의 추상화급 몽타주로 현상 수배서 사진이 대체된 상황이라[* 그리고 상디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에서는 그 수배서를 받아보고는 주인인 [[제프(원피스)|제프]](그만 쿡쿡거리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긴 했다)를 제외한'''요리사들 모두가 눈물나도록 배터지게 웃어가며 그 수배서를 손님들에게 광고지 뿌리듯 쫙 돌리기까지 했다.'''] 상디가 계속 '''히든카드'''로서 활동해 나갈 가능성에 힘이 더해져가는 중. 하지만 이렇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이 후 [[엠폴리오 이반코프]]에게 자신이 루피의 동료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무진장 고생했다.[* 이반코프는 이게 어디가 닮았냐고 믿지 않았지만 반대로 [[오즈(원피스)|오즈]]는 이걸 보고 상디를 바라보곤 "판박이네."라고 공격했었다. ~~오즈는 [[바보]]니까~~]
진짜 우연의 일치로 '''[듀발|그 추상화 몽타주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엄하게 상디로 몰려서 해군들에게 쫓기는 바람에 상디에게 원한을 갖고 가면을 쓰고 다니다가 결국 [[샤본디 제도]] 근처에서 마주치는 골 때리는 전개가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그는 분노한 상디의 안면성형킥을 맞고 핸섬해졌다.
662화의 신문기사에 '밀짚모자 일당 부활'이라는 기사와 함께 2년 후 일당의 사진이 모두 새로 실렸는데 또 제대로된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솝마저 저격왕이 아니라 맨얼굴로 실렸는데 혼자서만 뒷모습(...) 점점 더 히든카드로서의 입지가 굳어져 가는 느낌 ~~당사자는 또 "내 핸섬한 얼굴을 전 세계 미녀들에게...!!" 라며 울겠지만~~ ~~발라티에가 이 기사를 좋아합니다.~~
* [[Mr.3]] - 크로커다일의 농간으로 상디와 쵸파를 제외한 밀집모자해적 인원들이 감옥에 갇혔을때 상디가 동료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악어 배속에 갇혀있던 mr.3을 간단하게 제압한후 mr.3의 능력을 이용하여 열쇠를 만들게하여[* 우솝이 제안하다.] 감옥을 연후 다시 날려버린다. 간단한 개그 컷으로 나오지만 꽤나 중요한 활약이다.
* 케로쇼트 & 케로딕 - 극장판 6기 한정. 조로와 한 팀이 되어 ~~맞장을 뜨면서도~~ 이 두 개구리들의 배를 3번이나 아작내고[* 이 두 개구리들의 배 고치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심지어 더 강해진다!] 마지막에 튜브를 던져서 아웃시킨다.
* 그로키 몬스터즈 (햄버그 & 피클스 & 빅빵) - 폭시의 부하들이다. 그로키 링에서 맞붙어서 본인이 볼 보이를 맡는다.[* 물론 조로가 시켰고 처음에는 반발하다 나미가 어울린다고 하니까 바로 수긍.] 그로키 몬스터즈의 '무기 사용 금지' 규칙 위반 작렬에 그로기 상태에 몰리다 조로와 10초(...)간 연합해서 먼저 햄버그를 삼등급 불고기 & 야채모듬 슈트로 날려서 빅빵의 무기에 정면으로 깔리게 하고 이어서 조로를 방해하는 피클스를 심판과 함께 날려버린다.[* 이유는 심판의 편파 판정 때문에 상디가 심판을 패고 옐로 카드를 받았기 때문.] 마지막으로 빅빵만 남자 조로와 함께 공군 파워 슈트를 사용, 마무리를 조로에게 맡겼다.
- 슈가(방탄소년단) . . . . 53회 일치
||<:><#00CED1>{{{#fff '''별명'''}}} ||<(> 설탕, 민슈가[* 본명인 민윤기와 예명인 슈가를 합친 것. 자매품으로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이 있다. ~~feat. 민윤기천재짱짱맨뿡뿡아 울지마라~~], 민피디[* 슈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 슙기력[* 슈가 + 무기력], 민가마니, 슙슙이, 고유슈가, 민빠답, 윤기선배, 양꼬치 듀오[* [[정국(방탄소년단)|정국]]과 함께. 둘이 양꼬치를 자주 먹으러 간다고 한다. 옥수수 국수도.], 사탕[* 중국 팬 한정. [[중국어]]로 "탕탕" 이라고 발음된다. 설탕(슈가) 또는 사탕을 뜻하는 '탕(糖, táng)' 자를 두 번 연이어 쓴 것. 한글로 독음할 경우 '당당(糖糖)'], [[Agust D]][* 솔로 활동명. 2016년 8월 동명의 이름으로 믹스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Agust D]] 항목 참고.],[br]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V앱 스타캐스트 참고.], 민윤지[* V앱 달려라 방탄 11화에서 여장을 했다.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같이 [[https://twitter.com/BTS_twt/status/826697453105606656|셀카]]를 찍고 SNS에 민윤지(하트)라고 올렸다.], 슙디[* 꿀FM에서 슈가슈가슙디... 라고 DJ를 맡았었다.], 송월[* 트리비아 항목 참고.], [[메타몽]], 미늉기, 민다가오지마[* [[LOVE YOURSELF 承 'Her']]의 컨셉포토 사진 때문에 생긴 별명.], 슈왜노잘[* [[LOVE YOURSELF 承 `Her`]] 앨범이 발매된 후 김영대 음악평론가가 올린 트윗에서 유래된 말이다. [[https://twitter.com/toojazzy25/status/909994408468029440|슈가 왜 노래 잘하지?]]], 민덩방아[* [[RM]]이 준 의자를 받자마자 엉덩방아를 찧고 아픔을 호소했는데, 이를 [[RM]]이 민덩방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A.R.M.Y|아미들]]은 슈가 놀리려고 실시간 트렌딩에 올려놨다.--] , 민형[* 민윤기 형을 줄인 말. 데뷔 전부터 민형이라 불렸다고 한다.], 각슈가[* 각설탕(...)], 민설탕, 민달팽이[* 초등학교 때 흔하게 민 씨들은 민달팽이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지은 별명이라 한다. [[아는 형님]]에 나왔을 때 한 별명 맞히기에서 밝혀진 사실인데, 예명인 슈가와 관련된 별명을 내면 빠르게 들킬까 봐 민달팽이를 적어서 낸 것 같다.] ||
[[RM]], [[제이홉]]과 함께 [[방탄소년단]] 래퍼라인에 속해있다.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 상반되는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목소리를 듣고 생각보다 낮다며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Rap|랩]]을 할 때는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간다. 음색이 날카롭고 강해서 랩을 할 때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되는 스타일. 다만 보컬이나 코러스 부분에서는 음색이 타 멤버들 사이에서 튀는 편이다. 때문에 화양연화 Epilogue의 '불타오르네'의 후렴구 "Fire~" 부분에서는 유일하게 슈가의 목소리만 찾아볼 수 없다. [* 3주년 기념 꿀FM에서 발췌.[[https://youtu.be/JcYjKdZUFJs?t=1m49s|#]] 그 사이를 못 참고 슈가 따라하는 [[오늘만 사는 사람|낼없사]]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이 압권.]
직설적인 가사로 인해 심의에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명 '''프로 불통러'''. 특히 [[WINGS]] 앨범에 수록된 슈가의 솔로곡 First Love의 경우 [[방탄소년단]] 멤버의 솔로곡 중 유일하게 심의에 통과하지 못했다. 매 앨범마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하는 곡들이 나오는데 팬들의 반응은 '''윤기가 또?''', '''역시...'''가 다반수이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해 걱정하기보단 이젠 즐기는 수준. 본인도 딱히 심의에 관해 별 상관을 안 하고 자유롭게 가사를 쓰는 것 같다. 필요할 때는 서정적이고 섬세한 가사도 잘 쓰는데, 이 역시도 독특한 어투와 어휘 사용, 특유의 날카로운 래핑 등으로 인해 슈가만의 감성이 느껴진다.
'''13세 때부터 [[미디]] 작업을 시작했다.'''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곡, 편곡을 익혔고, 그 덕분에 녹음 장비와 음향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39&contents_id=122930|링크]] 고등학생 때는 학교 교가를 편곡하여 용돈벌이를 했다고 한다. 일본의 하루하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한 반면에, 학창 시절 음악 과목은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음악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정해져 있어서 그게 싫었다고. 그래서 교과서로는 음악 공부는 하지 않고 방과후에 음악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 실력 또한 본인이 독학으로 공부한 것.
Let Me Know의 경우 가이드도 '''직접''' 했다고 한다. [[제이홉]]의 말에 의하면 듣기 힘들다고 한다. (...) 그래도 프로듀서와 퍼포머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디렉션이 디테일하고, 작업 분위기는 다른 프로듀서들에 비해 편하고 재미있는 편이라고 한다. 다만 디렉션을 모두 직접 보여 주는데, [[진(방탄소년단)|진]]은 슈가의 디렉션을 보고 "그래... 저런 느낌이겠구나. 저건 아니고... 저런 느낌." 이라고 생각한다고. 그 디렉션은 [[https://youtu.be/200b2XBYNQk|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음악을 하던 시절이 녹록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에서 버는 수입으로는 식비와 교통비를 내기에도 벅찼다고 한다. 스튜디오 바로 앞에는 2천 원짜리 짜장면 집이 있었고, 한참을 걸어가면 천 원짜리 국수 집이 있었는데, 반대로 국수를 먹으면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고 짜장면을 먹으면 두 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했기에 매일 고민했다고.
2016년 10월, 정규 2집 "[[WINGS]]" 전반에 걸쳐 크래딧을 올렸으며[* 다만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에 대해선 '너무 더럽지 않나요' 라며 은근 반대를 했었던 모양. --분비물로 이루어진 제목이라니--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피 땀 눈물"이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이에 대해 [[RM]]은 슈가를 "[[방탄소년단]]의 [[펠레의 저주|펠레]]"라고 평가했다(...)] 솔로곡 "First Love" 또한 수록했다. 믹스테이프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향해 달려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었으며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다.[* 해외, 그 중에서도 북미를 비롯한 서구 팬들은 '노래에 가수의 영혼이 얼마나 녹아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편'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20830100|#]] 때문에 다소 어둡고 진지하더라도 자서전적인 내용을 담아낸 슈가와 [[RM]]의 가사가 서구팬들에게 공감을 얻는다.]
본인의 믹스테이프의 마지막 트랙인 "So Far Away"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가수 [[SURAN|수란]]의 디지털 싱글 "오늘 취하면(Feat. [[창모]])"을 작곡 및 프로듀싱하여 2017년 4월 27일 음원이 발매되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인 슬로우 래빗과 공동 작곡, 프로듀싱이다.] [[http://m.sportschosun.com/news.htm?id=201704220100204200014681&ServiceDate=20170421&f_url=#_adtep|기사]] [[방탄소년단]]과 본인이 아닌 타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에는 처음 참여한 곡으로, 슈가와 수란에게는 꽤나 의미가 큰 곡인데, 수란의 경우 언더 가수에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슈가는 발매 이후 각종 음원 사이트 순위 1-2위를 다투고 멜론 [[http://www.melon.com/chart/month/index.htm#params%5Bidx%5D=1¶ms%5BrankMonth%5D=201705¶ms%5BisFirstDate%5D=false¶ms%5BisLastDate%5D=false|5월 월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리스너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과 함께 뛰어난 곡 퀄리티로 큰 호평을 받으며 본인의 프로듀싱 역량을 인정받았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15269|#]] 멜론 [[http://www.melon.com/chart/age/index.htm?chartType=YE&chartGenre=KPOP&chartDate=2017#params%5Bidx%5D=1|2017년 연간 차트 9위]]를 달성하였다.
직설적인 랩 가사와 강렬한 랩 스타일과는 상반되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미남이다. 그렇기에 얼굴만 보고 '얘는 당연히 보컬이겠지' 했다가 후에 래퍼임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피부가 하얀데, [[방탄소년단]]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한국인 평균 피부색과 비교해 봤을 때도 매우 하얗다. 슈가의 실물을 접한 사람들 말로는 '너무 하얘서 혼자서 조명을 3개는 더 켜 놓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얀 피부 덕에 화려한 색상의 헤어가 잘 어울린다. 때문에 그룹 안에서 머리색이 가장 자주 바뀌는 멤버이다. --여담으로 너무 염색해서 탈모 오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워낙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탓에 어떤 색의 헤어든 다 소화해내서 팬들 사이에선 퍼스널 컬러 파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슈가의 퍼스널 컬러를 따지자면 데뷔 초의 주황,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보다는 톤 다운된 자몽, 애쉬, 노란끼 섞인 민트, 자연 흑발 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때 가을 뮤트(소프트 or 라이트 그레이시)로 추정된다. 팬들 사이에서도 최애 머리를 고르라 하면 의견이 갈린다.]
특이하게도 눈매가 세모난데 이 탓에 닮은 꼴로 뷰티 유튜버인 [[라뮤끄]]가 자주 언급된다. 닮은 꼴로 화제가 되어 피 땀 눈물 컴백 당시 라뮤끄가 슈가 메이크업을 한 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cNHFQlEBU|라뮤끄의 슈가 메이크업]] 본인은 오른쪽 눈에만 아웃라인의 쌍꺼풀 선이 있어서, 주로 팬아트에서도 세모 눈에 오른쪽에만 있는 쌍꺼풀 선을 특징으로 잡아낸다. 이와 같은 세모 눈과 찹쌀떡스러운 얼굴의 묘한 조화로 생긴 별명으로는 세모라미, 심통난 찹쌀떡 등이 있다.
웃을 때 입매가 시원하게 찢어지며 생기는 입동굴이 심히 귀엽다. 웃었을 때 생기는 입동굴 탓에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인 [[어피치]](특히 아기어피치)와 닮았다. [[방탄소년단]] 팬이 '우리 애기어피치 ㅠㅠ 끙끙' 하면 십중팔구 주어는 슈가다. 때문에 팬사인회에서 팬들이 아기어피치 상품들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https://twitter.com/helloygya/status/914352147600261120|내가 덕질하는 게]] [[https://twitter.com/caresuga/status/834773638414864385|슈가인지]] [[https://twitter.com/suga930309com/status/914097583051517952|아기어피치인지]]
아기어피치뿐만이 아니라 찹쌀떡스러운 얼굴에 점처럼 박힌 눈, 웃을 때 커다란 입인 캐릭터와 대체적으로 닮았다. 예를 들자면 [[지방이]], [[포켓몬스터]]의 [[우파]], [[누오]], [[메타몽]]. 이는 [[방탄소년단]] 멤버들 피셜로 증명된 것인데 2017년 슈가의 생일에 올라온 사진에 있는 멤버들이 그린 [[https://imgur.com/sMAY6qG|그림]]을 보면 지방이와 우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한참 한국에 [[포켓몬 GO]]가 유행했을 때 같은 멤버인 [[RM]]이 누오에게 온순한 슈가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https://twitter.com/BTS_twt/status/836489701561356288|#]] 또한 한때 팬들 사이에선 메타몽짤과 함께 야 호바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슈가와 싱크로율 100%인 메타몽과 말투가 잇 포인트다. [[https://twitter.com/JIMINLOVE1o13/status/905450603551137792|야]] [[https://twitter.com/URBlossomStar/status/901760359660265473|호바]]
이처럼 넓은 어깨라던가, 각진 하악이나 마디마디가 굵은 손가락처럼 얼굴 생김새와는 상반되는 반전 요소들로 인한 [[갭 모에]]가 팬들을 발리게 하는데 충분하다.
동생들이 잘못을 하면 잔소리와 훈육은 본인의 몫이라고. --[[진(방탄소년단)|맏내]]는... 다들 아시잖아요-- 멤버들 또한 실제 성격도 무뚝뚝하고 쿨한 데다 제법 무심한 편이라고 증언했다. 실제 지금까지의 성장 환경 자체도 남자들 사이에서만 커 왔기에 남자를 잘 다룬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 특히 팬들 앞에서는 밝은 미소와 [[https://twitter.com/lqyoongi/status/874689569815498757|애교]]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인터뷰에서 팬들 앞에만 가면 자꾸 애교를 부리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팬들은 '팬들 앞에만 서면 엄청난 조련 실력을 보여준다'라고 평가. 예를 들어... [[http://www.youtube.com/watch?v=mASFNt7etK8|더듬이를 찾는 꿀벌 슈가]] [[http://www.youtube.com/watch?v=jNs7q-3IvnA|고소당할 위기의 민윤기 씨(...)]] [[http://www.youtube.com/watch?v=BVOFEBh8PVg|밥으로 팬 조련하는 슈가]] [[https://twitter.com/sugaonthebeat39/status/914831884424667137|텍스트 애교 슈가]]
나아가 스케줄이 끝나고 숙소에 도착한 시점부터 기어다닌다고 한다. 스케줄이 없는 날은 아예 침대 위의 산송장. 본인은 '오래 많이 자는 게 아니라 새벽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짧게 많이 자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멤버들은 슈가가 워커홀릭인 건 다 컨셉이라고 디스 하기도 한다. 애초에 외출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작업실, 숙소, 방송국 빼고는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있어서는 최소한 게으르진 않으며, 최선을 다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DVD에서 본인피셜 하루에 한 곡씩은 쓰고 있다고. 물론 쉬는 날도 종종 있다고 한다.] 실제 BTS COMBACK SHOW에서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는 슈가의 모습이 공개되었으며, 작업실 내부에 샴푸를 비롯한 생필품들이 비치되어 있다. 정말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슙기력한 면모와는 달리 의외로 외향적인 모습도 보이는데, 멤버들 중 절대적 친화력을 자랑하는 [[뷔|김스치면인연]] 다음으로 연예인 친분이 많은 축에 속한다. [[슈퍼주니어]]의 [[희철]][[https://www.youtube.com/watch?v=VDLOJUoZuHQ|#]], [[슈퍼주니어 M]]의 [[조미(슈퍼주니어-M)|조미]][[https://www.youtube.com/watch?v=9pp52q-TSAQ|#]], [[GOT7]]의 [[JB]][[http://www.vlive.tv/video/38334?channelCode=ECDF|27분]], [[SURAN|수란]][[https://www.youtube.com/watch?v=4kXopVVKo1A|#]], 같은 [[대구광역시]] 출신 [[김신영]][[https://youtu.be/jr43w98yPOE|#]] [[에픽하이]]의 [[타블로]] [[https://www.youtube.com/watch?v=fLjsOTe8Y6E|#]], [[워너원]]의 [[강다니엘]][[https://youtu.be/K0piUcRvIq8|#]], 등.
[[http://btsblog.ibighit.com|블로그]]에 목소리와 손만 나오는 방탄소년단 앨범 리뷰를 올리고 있다. 다만 발매된 지 3개월 정도 뒤에 올라오는데 본인도 뒷북인 걸 알고 자주 민망해한다. [[http://btsblog.ibighit.com/320|화양연화 pt.1 리뷰]], [[http://bangtan.tistory.com/259|DARK&WILD 리뷰]], [[http://bangtan.tistory.com/227|SKOOL LUV AFFAIR 리뷰]], [[http://bangtan.tistory.com/142|2 COOL 4 SKOOL 리뷰]]. 보통 자기 사진만 찾고 앨범 제작과 트랙들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또한 리뷰 영상을 찍을 때 펼친 앨범을 거침없이 꾹꾹 눌러 접어버리는 특징이 있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움찔거리는 팬들이 많다고...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총 두 편이며, 10번 트랙 "so far away" 뮤직비디오도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이는 [[http://blogfiles6.naver.net/20160816_85/dbsrldudwo_14713584110624YQm2_PNG/2016-8-16_23%3B39%3B36.PNG|오보]]에 의한 해프닝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자가 Agust D 뮤직비디오 설명란에 쓰여진 글 "Agust D’s ‘Agust D’, the first mixtape album, featuring ‘Agust D’, ‘give it to me’ and ‘so far away' is out now."를 뮤직비디오를 공개한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so far away" 뮤직비디오에 관한 긴 기다림과 궁금증은 [[http://mblogthumb1.phinf.naver.net/20161017_276/yang020215_1476716271498ISk0H_JPEG/Screenshot_2016-10-17-23-47-53.jpg?type=w2|이 사진]] 한 장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 믹스테이프에서는 예명으로 SUGA가 아닌 위의 '''Agust D'''를 사용한다.[* Cyper pt.3 Killer에서 슈가 본인이 발음한 것에 기준하여 '어거스트 디' 라고 발음된다. 그러나 사실 영미권에서 이렇게 발음하려면 첫 글자 A 다음에 H를 넣어 묵음 처리를 하거나, 아니면 U를 넣어 (영어로 8월을 뜻하는) 'August' 라고 써야 하기 때문에 믹스테이프 공개 후 해외 유튜버들이 줄줄이 멘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결국 슈가의 발음대로 어거스트 디로 통일되는 듯. 하지만 일부 영미권 팬들은 여전히 '에이-거스트 디' 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것이 '역겨움'을 뜻하는 'Disgust(디스-거스트)'라는 단어를 연상시켜 믹스테이프 분위기에 잘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타이틀도 동명의 Agust D이며 트랙은 총 10곡. 아이돌인 래퍼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며, 데뷔 이전부터 음악을 시작했던 13살 이후의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비롯하여[* 특히 7번 트랙 <마지막>]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선 가사가 와닿는다는 반응이, 해외 팬들 사이에선 랩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뮤직비디오의 컨셉은 방황하는 청춘으로 무너진 집에 갇혀 있던 슈가가 사투 끝에 탈출, 마침내 어거스트 디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해당 곡 또한 어거스트 디의 등장을 알리는 곡으로, 당차고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비트와 래핑 실력이 돋보인다.
해당 가사는 [[방탄소년단]]의 We Are Bulletproof pt.1 슈가의 파트에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Agust D와 We Are Bulletproof pt.1를 들으며 그의 달라진 래핑 스타일을 비교하는 것 또한 묘미이다. [[https://youtu.be/N2W9UfWYMrI|비교해보자]] 또한 상술된 가사가 나오기 전에, 슈가의 데뷔 전 공개곡인 [[https://soundcloud.com/bangtan/mix-final-1|All I Do is Win]]에서 등장했던 '''난 누가 앞에 있건 제끼는 놈'''이라는 가사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 가사로부터 영감을 받아 발전시킨 것이 현재 어거스트 디 가사인 듯하다.
- 유승민(정치인) . . . . 53회 일치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정치인)|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유시민]]이 나온 중학교다. 즉 유승민이 유시민의 중학교 2년 선배. 심지어 대학도 서울대 경제학과로 과까지 같은 직속 선후배다. 얼핏 학연과 지연(대구)으로 얽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무관하고 정치인생이 정반대. 또한 유시민의 유는 柳라 혈연은 확실히 없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근혜]]와는 2005년 1월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을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같은 해 10월까지 10개월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7년에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박근혜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청와대]]와 여러 차례 충돌을 벌이다가, 2015년 7월 원내대표 당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5년 4월에 있었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대표되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였다. 그 연설 이후, [[박근혜]]로부터 이른바 '찍박'으로 낙인찍혀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그때의 불씨가 화약고나 다름없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를 놓고 대폭발하여, 자신이 [[친박|친박계]]와 [[비박#s-4|비박계]] 간 대립의 정점에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범[[여권]] 진영의 [[열쇠]].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여 당내에서 꾸준히 당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당의 진로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2017년초 탈당하고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현재는 대선주자로도 뛰는 등 바른정당의 간판으로 활동 중이며, [[2017년]] [[11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제3대 바른정당 대표'''가 되었다.
탈당 러쉬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바른정당을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통해 [[바른미래당]]으로 탈바꿈시키며 30석을 가진 원내교섭단체로 다시 올라섰다. [[민주평화당|분열 사태]]를 맞은 국민의당과 대표직을 내려놓은 [[안철수]]와 달리 당내 입지의 변화 없이 합당을 마무리했으며, 바른미래당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친유|자신만의 정치 세력]]도 갖춰가고 있었으나 결국 '''[[7대 지선]] 참패로 바른미래당 대표에서 사퇴했다.'''
사실 이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절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혜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태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반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식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2017년 대선 1차 토론회가 열리는 SBS 프리즘타워 앞에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조합원과 마주쳤는데,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입장하는 몇몇 후보와는 달리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며 사뭇 진지하게 대화하는 유승민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래의 동영상에서 마이크를 든 연사 역시 2012년 유승민의 언론사 파업 지지를 언급하며 꼭 부탁드린다고 연설 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j233dwFI5lI|토론회장 앞에서 시위 중인 언론노조와 대화하는 유승민]]
특히나 한나라당의 토론 에이스이자 저격수였던 유승민이 국방위로 자리를 옮기자, 그야말로 국방부와 군 장성들을 압도하는(...) 논리와 날카로운 질의로 화제를 모았다. 예를들어 2009년 1월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제2롯데월드 관련하여 공군참모총장 본인의 주장을 본인의 발언으로 반박하게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 유승민 의원 : 동쪽 활주로를 3도 틀면 국가안보와 국민 생명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 ▲ 유승민의 브랜드 "청와대 얼라[* [[경상도 사투리]]로 '아기', '아이' 등을 뜻함. 참고로 이 '청와대 얼라들' 은 그 악명 높은 [[문고리 3인방]]을 뜻한다.]들" 발언 영상. ||
국방위원장을 지낸 후 국회 운영위원장으로 옮기기 전 잠시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 발언으로 외교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질타하였다. 또한 "'왜 사드를 배치하는데 [[중국]]이 난리냐"'며 사드의 국내도입에대해 강경한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한미 전작권 재협상을 대선공약 파기라고 인정하며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으로 [[친박]] 세력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약 9개월 남짓한 외교통일위원회 활동이였지만 유승민 의원은 NGO 국감모니터단 선정 우수국감의원, 그리고 경실련에서 선정한 외통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 "청와대 얼라들" 2탄 ||
보수진영의 대표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본인이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 <이것이 정치다> 1월 5일자에 유승민 의원을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당시 유승민 의원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하여 미사일 발사 종류와 사거리, 사격고도 및 발사각도, 그리고 미사일 발사기지 위치 등의 자료를 만들어와 전원책 변호사 앞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사드배치 관련 타당성 주장을 하였는데, 전원책 변호사는 "이건 정말 정확한 자료이다", "공부를 많이 하셨다", "유승민 의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등으로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대한민국 공군|공군]]력 건설, 특히 [[KFX]]나 [[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KFX 관련 주요 기술의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방사청과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며 여권 소속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대안으로 KFX F-35 도입으로 전환,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력 강화를 선호하는 이상주의적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산 무기의 여러 결함 때문에 검증된 미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현실주의적 [[밀덕]]들에게는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KFX의 경우, 실패하면 그대로 [[대한민국 공군]] 미래전력을 다 말아먹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차라리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접고 검증된 미국제 전투기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이 [[밀덕]]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많다.]
이러한 국방과 안보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시절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시절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반란 사태 당시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공약으로 군 의문사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또한 천안함, 연평해전 유족들은 물론이고, 각종 군관련 사고 영결식장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고 한다. 모 네티즌은, 해군 링스헬기 추락사고 영결식장에 정치인들이 방문해 유족들과 사진 찍고 5분 내로 가기 바빴는데,''' 한 노신사가 투벅투벅 보좌관도 없이 걸어와 유족들을 1시간 넘게 위로했고, 그게 유승민이었다고 한다.''' --훗날 유승민은 이 질문을 받자 그 영결식장에 간 건 맞는데 본인이 노신사까진 아니지 않냐며 당황했다--
2017년 현재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으로 화제되고 있는 UAE와의 군사협약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도 유승민이었다. [[http://www.nocutnews.co.kr/news/772179|''UAE 파병'' 결정, 문서없이 구두로만 이뤄져]] 구두협약으로 파병이 결정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MOU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 유사시 군사개입을 약속한 것이 아니냐며 당시 2급비밀로 분류된 4건의 문서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김태영 장관은 UAE가 원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하고 파병과 상관없다고 해명했으나, 실제로 MOU와 파병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후 인정했다.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도 절차상의 하자와 국민동의 미흡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찬성입장을 보이고, 사드 조기배치 및 추가 2~3포대 설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 핵무장은 반대하지만, '공포의 균형'을 근거로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미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NATO식 핵공유를 모티브로 삼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NCND(Neither Confirm Nor Denied) 즉 전술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토론에서 밝혔다.
- 은지원 . . . . 53회 일치
||<#000000> '''{{{#FFFFFF 소속사}}}''' ||<(> [[YG엔터테인먼트]][* 전 소속사에서 나와 [[http://m.entertain.naver.com/now/read?oid=109&aid=0003598890|YG와 전속계약]]을 하였다.] ||
||<#000000> '''{{{#FFFFFF 별명}}}''' ||<(> G, '''G1'''[* 실제로 자신의 모든 솔로 앨범표지에 Eun G1이라는 예명을 쓴다. --무한도전에서는 [[김재덕]]에게 [[장수원|장로봇]]이 형은 덕2로 하자...--], =G1, '''은초딩''', '''은각하'''[* 데뷔 초에 멤버들끼리 놀리듯이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과 달리 외모와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여담으로 [[은초딩]]과 [[은각하]]를 쳐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절대자, 은간지,[br]은까리, 은리더[* 방송 자막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은대장, 은리다,[br] 지니어스원, 은둘리, 여의도돌싱[* 신서유기 시즌1에서 이승기가 붙여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여의도 이혼남이 있다.], [[외계인]][*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너무 가진 것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공주편에서 은지원이 공상과학 이야기 중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데 "형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 사람 몸속에 아무 흔적없이 마이크로 칩을 넣는데?"라고 발언 한 것. 이후 은지원이 강호동의 엉덩이를 나무로 때리고 이후 [[박찬호]]가 은지원보고 외계인 아니냐며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팜스테이 편에 등장하는 일심동체 게임에서 김C가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문제에서 은지원을 적은 것. 이후 전국일주에서 UFO 관련해서도 빨리 사진 지우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br]거칠이, 극한직업 젝키리더(...)[* 옛날부터 멤버들과 예능 나오면 마음 졸이며 수습하고 관리하기 바빴다. 최근 나온 방송들을 보면 멤버들이 산만한 편...],[br]젝키 유일 일반인[* 밖에선 미친자, 도른자, 돌아이, 외계인 취급받지만 젝키에선 가장 평범한 일반인 포지션이다. 그 정도로 동생들--특히 이재진--이 남다르다(...).], 섭섭이(...)[* [[1박 2일]]에서 얻게 됐다. 후에 --[[MC몽]]--이 섭섭이 라인에 합류하면서 은지원은 일섭이, --MC몽--은 이섭이로 불리게 됐다.], 미친者(...)[* 신서유기에서 얻게된 별명이다.], 구美[* [[안재현|이 사람]]이 합류하자마자 그에 못지않은 미친者의 면모를 보여서 신美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은지원은 기존의 미친者를 뜻해서 옛날을 뜻하는 한자 舊(옛 구)를 넣은 셈.], 찌오니[* 본인의 이름을 모에화하여 팬들이 부르는 별명, 본인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은먹금[* 본인의 칭찬이 나오면 황급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외면해서 붙은 별명. 방송생활 20여 년간 본인 칭찬을 한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은요물[* 촉이 좋아서 미션의 흐름을 한번에 이해하고 진행해나가 신서유기 제작진들이 붙여준 별명], 은왜은[* 연예인 중에서 유일한 [[은(성씨)|은씨]]와 흔하지만 세련된 '지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팬들이 은지원은 이름도 잘생겼다며 '은지원은 왜 이름도 은지원인가'를 줄여서 만든 별명.] ||
지금이야 예능에서의 모습으로 초딩 소리를 듣지만 젝키 시절에는 과묵한 이미지와 까리한(...) 외모로 '''은각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다.[* [[H.O.T.]]의 리더 [[문희준]]이나, [[신화(아이돌)|신화]]의 리더 [[에릭(신화)|에릭]]과는 달리 그룹에 동갑이 없었다. (이들보다 1살 위인 [[NRG(아이돌)|NRG]]의 리더 [[이성진(NRG)|이성진]]도 같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이 --연습할 때 한정으로--다들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이 까다로웠다고 언급했다. --김재덕에 의하면, 은지원이 너무 독재자여서 이재진이 반항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게 받은 대접이 대접이라 그런지 "은지원이 아니었다면 3년도 가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독재자 발언은 예능에서 장난스레 발언한 것이다-- 은각하 자체가 데뷔 당시 멤버들을 갈구던 상황에서 놀리듯이 붙은 별명이다. 당장 [[토토가2 - 젝스키스]] 편이나 예전 예능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은지원은 동생들에게 갈굼당하기 일쑤다. --마이웨이 까칠이 이재진과 은지원 전용 어그로 고지용, 프로일침러 장수원, 방관하는 강성훈과 김재덕.-- --(극한직업 젝키 리더)-- --젝키 내에서는 은지원이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 말로는 자신은 카리스마 있었던 적은 없었고, 말이 없었던 이유는 MC들이 질문한 내용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고...
젝키 멤버 중 [[강성훈]]과 함께 유학파 출신으로 데뷔 당시 소속사가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배워 온 친구라고 소개했는데 유학 다녀온 곳은 [[하와이]](...).[* 물론 하와이도 엄연히 '''미국의 한 주'''인 만큼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거짓말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인식에서 미국 본토라고 보기에는 좀...] 본인 말로는 하와이 가서 얻어온 건 매튜라는 영어 이름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돌 현역 시절에는 랩 파트를 즉석으로 영어로 개사하여 소화하는 등의 센스를 보여준 적이 있다.
등장 이후 H.O.T.의 라이벌다운 화려한 흥행을 기록하였으나, 2000년 5월에 젝스키스가 해체되면서 모든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그 와중에 은지원은 홀로 꾸준히 준비하여 2000년 10월에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이 후에 이재진과 강성훈도 솔로로 활동했고, 김재덕과 장수원은 [[제이워크]]로 그룹 활동을 하게 된다.] 솔로로 전향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힙합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당시에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이 강해 힙합 리스너들에게 많이 공격받았다. 그 영향인지 당시의 노래 중에도 자학 가사가 많다. 하지만 그 당시 '''[[문희준|넘사벽급의 광역 도발러]]'''가 있었으니 저 분에 비하면야 악플로 입은 피해는 미미한 수준. 게다가 은지원은 [[무브먼트(크루)|무브먼트]] 크루 소속이다 보니 무브먼트 빠들에게 옹호를 받은 편이다.[* 무브먼트 크루가 가지고 있는 한국 힙합계의 입지와 인기를 생각해보면, 무시할 수 없는 옹호를 받았다.] 또 음악성에 있어서도 드렁큰타이거의 마이너 카피 정도라는 평을 받긴 했지만, 심한 비판을 받은 것은 없다. --애초에 은지원은 타이거JK에게 랩을 배웠다.-- 아군 하나 없이 악플에 시달려야 했던 문희준과는 비교도 안 된다(...). 본인도 이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물론 본인도 솔로 데뷔 때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했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인지, 솔로 1집 자켓을 보면 그간의 마음고생을 반영하듯 얼굴살이 확 빠져있다. 힙합을 하는 반면 작사를 직접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힙합플레이야|힙플]]에서 종종 까이는 듯. 은지원은 젝스키스로 활동 당시에도 자작곡은 젝키 멤버 중 제일 먼저 만들었음에도 가사는 직접 쓰지 않고 곡만 썼는데, 이에 대해 솔로 5집 활동 시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언급하기를, "대강 본인이 가사를 쓰고나면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맡겨 가사를 다듬는데, 100% 자신의 손을 거친 작업물이 아니면 크레딧에는 도와준 사람의 이름으로만 올린다"고 하니 실제로 작사 비중은 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가사들도 보이니.
2012~2013년까진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시즌1]], [[쇼미더머니2|2]]에 출연했었다. 그것도 참가자나 프로듀서가 아닌 MC로 지금이야 쇼미MC하면 [[김진표]]가 제일 유명하지만 이 사람이전에는 쇼미MC라는 소리를 들었었고, 아이돌 출신으로서 최초로 쇼미더머니에 출연하였다. 그것도 진행자로.[* 쇼미[[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시즌1]], [[쇼미더머니2|2]]와 [[쇼미더머니3|3]], [[쇼미더머니4|4]], [[쇼미더머니5|5]], [[쇼미더머니6|6]]의 MC맨트가 다른걸 알수 있다.] 쇼미더머니 MC를 하차한 이유는 음악에 순위를 매기는 것에 회의감이 느껴져서라고 한다.
2014년 8월, 타이거JK가 주축이 된 '더 크레이지 코리아 힙합콘서트'에 은지원이 함께 공연하였다. 2011년 미스터 타이푼, 길미와 '클로버'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한 바 있다. 젝스키스의 해체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면서 그럭저럭 성공가도를 걷게 된 멤버.
하지만 초딩 이미지와는 반대로 [[1박 2일]] 복불복 미션에서 거의 [[흑막]] 수준으로 상황을 꿰뚫고 좌지우지 하는 [[천재]] [[기믹]]도 갖추고 있었다. 일명 '''지니어스 원'''.
가끔 예능에서 너무 편하게 방송한다며 욕을 먹는 부분도 있었지만 은지원은 뜨기위해 성대모사를 하거나, 억지 웃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과장하거나, 필요없는 일에 무작정 매달려 열심히 하는 일 보다는 타고난 센스와 리액션을 연습했고 필요한 일에 지능적으로 승부하고, 리얼한 리액션을 보여주며 예능에서도 전략적으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그러다보니 리얼예능에 유독 큰 활약을 보여주는 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5화까지는 연예인연합의 일원으로서 약간 욕을 먹긴 했어도 꽤 좋은 게임 센스와 매너를 보여주며 호평을 받은 편이었다. 그러나 6화에서 거하게 삽질한 이후부터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이전까지는 호불호가 없는 호감연예인으로도 유명했으나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서 사고친 후에는 지금은 호불호가 좀 갈리는 연예인이 되었다. 본인도 더 지니어스 출연이 워낙 트라우마가 컸던지 1박 2일의 정신적 후속작인 [[신서유기]]에서 '''본인의 악플을 다 지우는게 소원'''이라 밝힐 정도였다.~~[[이수근]]은 구글 본사가 움직여도 못지운다~~
2015년 출연한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는 발군의 수영 실력을 보여주었다.[* 무모한 도전 당시 개와 수영에서 유일하게 이겼던 전적이 있다.]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 2에서 젝스키스 멤버들과 조우, 재결합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평소 자주 보여주는 초딩스럽거나 떼쓰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예전의 '은각하'라는 별명에 걸맞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부산 친구에게 스포일러를 터뜨렸다는 이재진의 양심고백에 고개를 내젓거나 연습 중에도 각을 맞추라고 계속 지적하고 갑작스럽게 휴게소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 막내인 장수원부터 다른 멤버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어쩌면 좋냐고 쩔쩔 매는데 바로 공연을 시작하자 해서 상황을 타개하거나 오랜만에 만나 어색해하는 [[고지용]]에게 먼저 다가가서 포옹을 하고 고지용을 대신해서 팬들에게 컴백소감을 말하며 도와주는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철없는 초딩 이미지로만 각인되다 보니 은각하 이미지가 다소 생소했던 시청자들에게 매우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라디오 스타 촬영분도 마쳤는데 멤버들을 배려하고 토크도 넘겨주는 등 계속 동생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 관계자들과 은지원과 방송을 해본 경험이 많은 [[김구라]]조차도 '''예능인 은초딩과 젝스키스의 은지원은 아예 다른 사람'''이라며 당황했다고 한다. 김구라는 심지어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 젝스키스와 관련된 일이면 일단 책임감이 넘치고 진지해지는 것 같다.
의외로 연기 활동도 좀 했다. ~~[[흑역사]]지만~~ [[영화]] [[세븐틴]]과 [[여고생 시집가기]]를 통해 영화 2편 주연을 한 영화 배우이며[* 그러나 여고생 시집가기를 함께 찍은 배우 임은경은 이 영화 이후로 더 이상 스크린에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여고생 시집가기가 입봉작이었던 감독도 그 이후로 모습을 볼 수 없다고, QTV 20세기 미소년을 통해 은지원 본인이 직접 밝혔다.], MBC 추석특집 '옥탑방 구렁이'에서도 [[윤은혜]]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그 외에도 MBC [[뉴하트]]에 레지던트 카메오 역으로, 최근에는 tvN [[응답하라 1997]]을 통해 30대 중반에 고등학생 역할을 또(...)했다. 응답하라 1997의 [[이우정]] 작가는 '은초딩' 캐릭터를 만들어 낸 KBS 예능 '1박 2일'의 작가로 응답하라 1997의 모티브가 은지원과 (1997년에 데뷔한) 젝키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응답하라 1997'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 된 것은 은지원이었다고 한다. ~~극 중에서 깨알같이 본인 디스도 했다~~
연예인이라고 게임 하지 말란 법은 없다만 은지원의 경우는 [[이소라(가수)|이소라]]와 함께 게임 플레이 사실이 유독 많이 알려져 있다. 본인 말로는 아이돌 시절 팬들의 시선 때문에 외출을 할 수가 없어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가 게임을 하게 됐다고 하는데... --홍진경이 게임유통 쿠폰을 꺼내자 바로 잡는 이유가 있었다...-- 나혼자산다에선 이시언과 함께 출연했는데, 이때는 어릴적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고수였던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게임자체는 어릴적부터 좋아했고 자주 했던 듯.
특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주로 플레이 했었는데, 2005년(오리지널 시절) 즈음에 했던 인터뷰에서 와우를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언급을 했고, 이후의 인터뷰에서도 길드원들을 사랑한다고 인증까지 했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2000년대 후반에 잠시 접었지만, [[판다리아의 안개]]가 론칭되면서 복귀했다. 심지어 [[즐거운공격대]] 멤버들, 개그맨 [[조세호|양배추]]와 같이 판다리아 탐험기까지 찍었다(...) [[http://kr.battle.net/wow/ko/blog/2213015/%EC%9D%80%EC%A7%80%EC%9B%90%EA%B3%BC_%EC%A6%90%EA%B1%B0%EC%9A%B4_%EA%B3%B5%EA%B2%A9%EB%8C%80%EC%9D%98_%ED%8C%90%EB%8B%A4%EB%A6%AC%EC%95%84%EC%9D%98_%EC%95%88%EA%B0%9C_%ED%83%90%ED%97%98%EA%B8%B0-2012_09_13|#]]
2014년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가 론칭되자 레이드 컨텐츠등을 열심히 즐겼으며, 플레이중인 캐릭터는 줄진 서버 호드진영의 '''진품'''이라는 이름의 [[오크]] [[주술사]]. 정기 주술사와 고양이었다. 상당한 속도로 만렙을 달성한 후, 오픈 직후 아쉬란 정점 버그가 있을 당시 하루종일 전쟁의 창에서 PVP를 즐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높은 망치 레이드까지 길드원들과 함께 한듯. '검은 도적단'이란 길드에 속해 있으며, 이 길드에 다수의 연예인 동료들이 속해 있다고 한다. 다만 6월 이후 접속이 없고, 새로 시작한 [[신서유기]]에서 와우를 접었다고 말했다. 레벨 100을 달성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후에는 가끔씩 접속해서 업적질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기준으로도 접속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와우는 완전히 접은 것으로 보인다.
1박 2일 복불복으로 실시한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프로토스]]를 선택하여 [[이수근]](프로토스)과 함께 '팀 개그'를 결성하여 [[김종민]]([[테란]]) + [[이승기]]([[저그]])의 '팀 영웅'을 상대로 싸웠는데, 이수근이 김종민~~과 이승기~~를 상대로 견제할동안 꾸준히 기지를 확장하고 티어를 올려서 긁어모은 [[우주모함|캐리어]]떼로 마무리했다. [[김태형(게임 해설가)|오오 은강...]] ~~진실은 승기가 특급 초보인지라 0.1인분 역할만 했던게 결정적 요인이였다는 것이지만. 김종민 왈 : "승기야 히드라는 일자로 가는 게 아니야. 일렬로 가면 다 죽어. 펼쳐줘야 돼."~~[* 사실 방송내에 나온 '10분동안 아무 공격도 받지 않은 지원이'라는 언급을 보아 ~~0.1인분한~~ 승기와 종민의 합동공격을 10분동안 꾸역꾸역 막아낸 수근 쪽이 더 공이 컸다고 봐야할 듯 하다.]
- 윤채경(가수) . . . . 51회 일치
'''[[I.B.I]]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멤버'''[* 실제로 [[I.B.I]]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눈물날 정도로 안 끝나는 불운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해인(1994)|이해인]]은 새로운 소속사를 찾았으나 공황장애 때문에 스스로 나와야 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마지막 걸그룹 도전이라고 했던 [[아이돌학교]]에 도전했으나 끝내 최종 문턱에서 탈락한 후 서바이벌 은퇴를 선언하고 근황이 묘연하다. [[한혜리]]의 경우 [[스타제국]] 자체가 이미 망해 가고 있는 기획사인 데다가 [[올망졸망]] 데뷔가 무산되어 2017년 7월 25일 스타제국과 결별한 후 재기를 노리며 [[믹스나인]]에 출전했지만, [[빅뱅(아이돌)|빅뱅]] [[승리(빅뱅)|승리]]에게 큰 혹평만 받고 [[광탈]]의 수모를 당함과 동시에 실력 문제가 제대로 까발려지면서 [[프로듀스 48]]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사실상 끝났다. [[이수현(1996년 9월)|이수현]]은 소속사가 공중분해되어 예정되었던 걸그룹 데뷔가 무산됐고, 더군다나 [[펜타곤(아이돌)|펜타곤]] [[홍석|양홍석]]과의 열애설 해프닝까지 불거지면서 본인의 이미지도 급추락한 후 역시 근황이 묘연하다. [[김소희(1995)|김소희]]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긴 했으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여성 솔로 가수가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고, 더불어 동 시기에 '''[[레드벨벳|너무]] [[EXID|강한]] [[TWICE|상대]]'''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차라리 [[THE iDOLM@STER.KR|아이돌마스터]] [[리얼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실제로 김소희 외에 [[프로듀스 101]] 출전자들 중 [[김주나]], [[황인선]], [[강시라]]가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나 뚜렷하게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으며, [[NCT]] / [[세븐틴(아이돌)|세븐틴]] / [[마마무]] / [[에이핑크]] / [[레드벨벳]]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오마이걸]]과 엠카 및 쇼챔에서 맞짱뜬 '''[[청하(가수)|청하]]'''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단, 절대적으로 보면 [[I.B.I]] 출신 중에서 가장 성공한 멤버가 채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I.B.I 출신 중 상대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아진 멤버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려서 [[김소희(1995)|김소희]]라는 의견도 많다. 윤채경의 경우 퓨리티 - 카프 등을 이어오면서 얻어온 인지도 및 팬층이 적지 않게 있고 나름 중요성을 인정해 DSP에서도 계약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이나 I.B.I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데뷔했거나, 예능출연 등 방송인으로 나갔을, 즉 지금만은 못해도 나름 연예인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소희의 경우 프듀 출연이 아니였다면 영원히 일반인으로 남았을(즉 대중들이 전혀 몰랐을) 확률이 높다. 잘해 봐야 타인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던가 타인의 뮤비에 단역으로 나오던가.]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돌계의 [[명불허전]] 프로데뷔러'''[* 이게 농담이 아닌 게, 자국도 아닌 [[일본|외국]]에서 첫 데뷔해서 ~~일본어까지 배워 가며~~ 현지 [[https://www.youtube.com/watch?v=FcNIk35AVfc|예능]]에 '''출연'''하는 등 활약했으나 팀은 해체되었고, 같이 [[안소진|한솥밥을 먹던 동료]]가 [[자살|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것을 겪어야 했으며, 자신보다 더 어리고 연습 기간이 짧은 후배 연습생이 먼저 데뷔하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성인이라도 멘탈이 몇 번은 나갔을 상황인데, 채경은 이 모든 것을 '''20세가 되기 전에 겪었다.''' 20세가 된 후에도 [[프로듀스 101|101명이나 참가하는 걸그룹 서바이벌]]에 참가해 [[윤채경/프로듀스 101#s-2.1|실력에 대한 혹평]]과 ~~결국에는 득이 된 몰래카메라와~~ [[프로듀스 101/6회#s-5.3|왕따 논란]]까지 견뎌낸 인물이다. 프로듀스 101에 참가한 많은 연습생들이 증언했다시피 프로듀스 101은 엄청난 멘탈과 실력으로 정신적, 신체적 노고를 이겨내야 하는 방송인데, 이 모든 것을 겪은 후 드디어 데뷔하여 인지도를 얻고 그룹에 안착했으니 진정한 인간 승리자~~또는 아이돌계의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데뷔러~~라 할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rk83tDl7U|매 순간이 힘들었어요]]]
[[퓨리티]] 멤버였다가 2014년에 팀이 해체된 뒤, 서바이벌 프로그램 [[카라 프로젝트]]와 [[프로듀스 101]]에 참가했다. [[프로듀스 101]] 최종회에서 탈락하고 2개월이 꼬박 지난 2016년 6월 1일, [[APRIL]] [[김채원(APRIL)|김채원]]과의 콜라보레이션 싱글인 '[[시계(음반)|시계]]'로 국내 정식 데뷔를 했다.
이후 [[이현주(배우)|현주]]가 2016년 10월 [[APRIL]]에서 연기자 전향을 위해 탈퇴하자, [[레이첼(APRIL)|레이첼]]과 함께 2016년 11월 11일 APRIL에 합류했다. 덕분에 [[전소민(KARD)|전소민]]의 탈퇴 후 1년 만에 [[퓨리티]] 출신이자 1996년생 멤버가 들어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채경은 [[C.I.V.A]], [[I.B.I]], [[APRIL]] 총 3개의 걸그룹에서 활동하게 된다.[* 물론 [[C.I.V.A]]와 [[I.B.I]]는 프로젝트 그룹이며, 정식 그룹은 [[APRIL]]뿐이다. 그리고 채경의 APRIL 합류를 기점으로 C.I.V.A와 I.B.I의 활동은 사실상 멈춰버린 상태. 아직까지 이들 활동에 대해서 [[DSP미디어]]나 본인이 부정적인 의사는 내비치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애매한 상태였으며 관련된 언급 중 Prelude 쇼케이스에서 한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은 이들 활동이 결정된 것은 없다'는 듯. 그러나 2017년이 저물고 2018년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을 봐서는 C.I.V.A와 I.B.I의 활동 재개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보인다.]
각 그룹은 각자의 컨셉트에 따라 멤버를 선정하고 적으면 수 주, 많으면 수 년 간 트레이닝을 시켜 데뷔시킨다. 실력이 뛰어나도 해당그룹의 컨셉트에 맞지 않으면 멤버가 될 수 없다. [[퓨리티]]의 ~~애기애기한~~ 아직 미성숙한 일본풍 성장형 컨셉트와, 이미 정상급 걸그룹인 카라의 멤버가 되기 위한 컨셉트는 정말 극과 극이며, 나름 전연령 가능 ~~청정돌~~ 컨셉트인 [[APRIL]]과 이름부터가 방통위의 제제를 받았고 ~~[[https://youtu.be/h8El2kWazIU|뮤비]]도 그렇지만~~ [[https://youtu.be/tsz-C8coKJg|난리부르스 풀파티]]에 초대받을 정도의 성인취향 [[C.I.V.A]]의 컨셉트. 서로 상이한 이 모든 컨셉트의 걸그룹에 모두 멤버로 발탁될 정도로 어떤 상황에도 적응 가능한, 그것이 타고난 재능이든 뼈를 깎는 노력이든 간에 '''그만한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번 데뷔한 멤버가 다른 그룹에 재데뷔하는것은 무척 어렵다.
2012년 4월 7일 일본에서 정식으로 데뷔했으며 '체키☆러브'와 '슈와슈와 BABY' 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2016년 4월 4일 저녁, DSP에서 4월 5일에 [[허영지]], [[조시윤]]과 함께 네이버 [[V LIVE]]을 진행한다는 [[https://twitter.com/official_DSP/status/716923020594380801|트윗 공지가 올라왔다]]. 윤채경의 얼굴이 밝은 것으로 보아 [[프로듀스 101]]에서 탈락한 이후 마음을 많이 다스린 모양. 일단 아무런 소식이 없던 중에 [[DSP미디어]]가 깜짝 이벤트를 열어주어 윤채경의 팬들은 신나서 [[DSP미디어]]를 찬양하였다. [[http://vlive.tv/video/7091|♥영지가 생생하게 전하는 ★시윤x채경★의 모든 것]] ~~어서와. [[에이젝스|남자들]]이 [[PICK ME]] 춤 추는것은 처음보지?~~[* 에이젝스 멤버들이 [[PICK ME]] 댄스 도중 난입하여 같이했다. ~~[[DSP미디어]]가 갑자기 신경 쓰네?~~] [[V LIVE]] 방송 중 즉흥적으로 하트 150만개 공약 '''홍대에서 [[PICK ME]] 댄스'''가 성사되었다. --영지의 빅픽처, 설계갑, 찬양해 갓영지-- 하트 수는 방송 종료 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4월 7일자로 누적 200만을 돌파했다.
4월 8일, 오후 4시에 200만 하트 돌파 공약을 실천하였다. [[http://vlive.tv/video/7243|시윤.채경의 Pick Me☆ 홍대에서 만나~]] [[PICK ME]] 외에도 [[다시 만난 세계]]와 [[DSP미디어|소속사]] 선배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Kiss> 커버 댄스를 추었으며, [[같은 곳에서]]와 [[퓨리티]]의 <Shuwa Shuwa Baby>를 짧게 불렀다. 또한 4월 22일에도 [[V LIVE]] 생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며, 홍대 방송의 하트 수가 200만을 돌파하면 다음 방송에서 윤채경은 <[[양화대교#s-2]]>, [[조시윤]]은 <[[하루하루#s-1]]>를 연습하여 부르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4월 17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kt wiz]]의 [[2016년 KBO 리그]] 경기에 [[조시윤]]과 함께 시구, 시타자로 참여하였다.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id=186458&redirect=true|채경이 시구, 시윤이 시타를 맡았다.]]
5월 31일 의정부 삼성 드림樂서 행사에 [[김소희(1995)|김소희]], [[황인선]], [[강시라]]와 함께 참여했다.
6월 21일 다음TV팟을 통해 SBS 파워FM 《[[배성재의 TEN]]》 사전 녹음에 [[김소희(1995)|김소희]]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했다.
5월 5일, 《[[음악의 신 2]]》 1회에서 [[김소희(1995)|김소희]]와 함께 출연하여 LTE 소속으로 17년 노예 계약을 체결하고 걸그룹 씨바(CIVA)의 멤버가 되었다.[* 당연히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씨바라는 이름은 이상민이 제작했던 [[디바(여성그룹)|디바]]를 능가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지은 ~~[[개드립]]~~ 이름이다.]
C.I.V.A 첫 번째 행사곡 녹음을 진행하다 김소희와 함께 귀신몰카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러나 펑펑 울었던 김소희와 달리 윤채경은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이현우와 이지혜가 LTE에 방문하여 이상민과 C.I.V.A 멤버들을 만난다. 가수는 예능을 나가면 안된다는 이상민 대표의 말에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백미. 이상민과 진영이 연기 트레이닝을 하면서 드라마 《차칸남자》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태우가 나와 듀엣 부를 여가수를 찾는데 ‘하고 싶은 말’을 지금까지 배운 트레이닝을 응용하여 부른다. 진영이 드라마 촬영을 위해 빠지면서 프로듀서가 필요하자 이상민 대표는 용감한형제의 형이라는 사람을 데려온다. 이상민 대표가 알고 있는 용감한형제의 곡이 있냐고 묻자 ‘보름달’을 부른다. 결국 프로듀서는 이상민이 맡기로 한다.
[[APRIL]]에는 빨리 녹아든 듯하다. 티저 공개 이후 공개된 영상에서 [[APRIL]]의 멤버들이 인사를 하는데 [[http://m.dcinside.com/view.php?id=produce101&no=2865205|하트를 굉장히 완벽한 모양으로 짓는다]]. 나이 때문에 그룹 색깔과 어울릴지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합류 후 매 앨범 컨셉을 그룹에 잘 묻어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나은]]과 함께 보컬라인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포지션에 있고, 경력 덕에 댄스실력도 준수한 편이라 실력 면에서 밸런스가 잘 잡혀있는 멤버라고 볼 수 있다. 비주얼에 있어서는 짙은 쌍꺼풀, 평소에는 오목조목해보이지만 미소가 환하게 드러나는 입술과 고운 옆태 등등 러블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맏언니지만 동생들한테 당해주기도 하고 같이 망가지기도 하고 전혀 꿀리지 않는 비글미를 보여주는 등 여러모로 동생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지내는 타입이다. 물론 회사에 들어온지 가장 오래된 멤버이자 연장자로 동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팀을 앞에서 잘 이끌어주는 맏언니로서 리더쉽 있는 모습도 있으며 소속사와 그룹 구성원 간의 창구 노릇을 하는 사실상 리더 역할도 하고 있다.
2017년 8월 3일 [[켄타(JBJ)|타카다 켄타]]와 함께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 홍보대사인 '무비아띠'에 위촉됐다.
2017년 9월~10월 [[SBS]] <[[정글의 법칙]] in 피지>에 출연하며 여러번 네이버와 다음 실검 1위에 올랐다.
2017년 11월 6일 V앱 <놀자놀자??> 방송을 통해 맏언니와 [[이진솔|막내]]의 캐미를 보여주었다.
2018년 1월 4일 에이프릴 합류 1주년을 맞아 [[http://www.vlive.tv/video/54274|V앱 <파인에플과 채경이와의 1년>을 진행했다.]]
* 2016년 6월 14일 iMBC 해요TV <박소현의 아이돌TV>에 [[조시윤]], [[김소희(1995)|김소희]]와 함께 출연했다.
- 김국진(MC) . . . . 50회 일치
'''[[이주일]], [[심형래]]와 더불어 한국의 코미디언 중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물'''
[[2007년]] [[황금어장#s-2|황금어장]] [[무릎팍도사]]와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후 슬럼프를 탈출했으며, 그 이후 [[남자의 자격]]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출연도 시작하면서 제3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김국진의 최 전성기와 인기 하락이 강렬해서 인지, 그 전의 인기와 위기등은 대중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 데뷔한 KBS 개그콘테스트 시대 멤버들은, 당시 SBS의 코미디언 영입전략 덕분에 기회를 빨리 잡았다. 기존의 KBS식 콩트와 맞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이적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김국진이 [[김용만]],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이른바 '[[감자골]]'이라는 개그팀을 통해 완전히 메워버렸다. KBS의 모든 예능 프로에는 이들이 출연했을 정도로 히트도 쳤고 KBS도 팍팍 밀어줬다. [[1992년]] [[KBS 연예대상|KBS 코미디대상]] 신인상을 탄 것이 그 증거.
평소 신인 주제에 벼락스타가 된 이들을 아니꼽게 보던 코미디계 선배들은 ~~무리한 스케쥴은 니들 사정~~ 프로그램을 갑자기 그만 둔 것은 프로에게 걸맞지 않은 모습이라며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KBS 희극인실의 최고참인 [[임하룡]]이 "얘네들이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성인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방송사 측에 항변한 것일텐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할망정 싹도 안 자란 아이들을 [[영구제명]]시키냐."면서 그들을 옹호해 준 이경규와 함께 '''유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1993년]] [[2월]] 감자골은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였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별인사를 하고 [[미국]]행을 하기로 했는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였다!]]" 라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방송 3사 코미디언들 모두'''가 MBC로 쳐들어와서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태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김국진을 숨겨준 사람이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라고 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1980년대 말 ~ 90년대 초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코미디언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씁쓸해지는 대목. 감자골은 ~~[[이경규]]가 선처를 호소해서 선배들에게 줄빳다만 맞고~~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가는 것이다. ~~니들 밥줄 끊을 염려 없으니 놔줘라~~ 라고 설득해서 겨우 시청자들에게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자골은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들의 KBS 선배 개그맨 [[이봉원]]은 후일 방송에서 감자골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시 나는 SBS로 이적한 상태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파렴치한 변명을 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
[[1995년]], 미국에서 1년만에 귀국해 MBC에 자리잡은[* 귀국 후 처음에는 KBS에서 '오키도키쇼', '토요일 7시가 좋다' 등의 프로그램을 김용만과 진행하다가 1995년 중반 MBC의 '도전 추리특급'과 '[[테마게임]]'을 진행하면서 활동영역을 MBC로 옮기게 된다. [[청춘행진곡]] 폐지와 함께 개그계에서 은퇴한 [[박세민]] [[이원승]], '청춘행진곡'이 폐지되어 SBS로 이적했던 [[김창준]] [[김은태]] [[이웅호]] 등의 대안으로 김국진과 김용만을 영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국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 연예인 역사상 최고의 인기'''였다.
전성기에는 [[테마게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주로 출연하며 "어라~?",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 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유행어를 양산했고, 코미디, MC, CF, 연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다. 그 당시 김국진의 영향력은 숨 쉬는것도 김국진이 쉬면 유행어가 될 정도라고 회자될정도로 컸으며 [[전지현]], [[송혜교]] 등 지금 잘 나가는 스타들도 당시엔 김국진의 CF에 덤으로 나올 정도였다. 이때 당시 김국진의 인기는 단연 원탑이여서 [[이병헌]]과 [[H.O.T.]] 를 기다리게 할 정도였고, 단독 주연의 미니시리즈(MBC '반달곰 내사랑')를 찍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개그감각 같은 건 별로 없다고 평가 받지만, 도시 서민적인 외모와 왜소한 체격, 약간 어눌하면서도 친근한 말투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 히트의 비결로 추측된다. 거기다 그당시 김국진은 좀 어색하긴해도 테마게임을 통해 정극 연기가 되는 개그맨이었기 때문에 드라마등에도 자주 얼굴을 비출수 있었던 것이 플러스요인.
심지어 '''국찌니빵'''이라는 본인의 이름과 본인 캐릭터 [[띠부띠부씰]]을 넣은 빵이 대 히트를 기록해서 도산위기였던 기업을 살려내기도 했다. 당시 월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게 어느 정도 성적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2014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허니버터칩]]도 3개월만에야 매출 50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초대박이 났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을 건 상품이 최초로 나온 사례이자 스타 마케팅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사례로 마케팅 전공수업시간에도 언급될 정도.[* 물론 이전에 [[배삼룡]]의 '삼룡사와'도 있긴 한데, 삼룡사와는 배삼룡 소유의 음료회사에서 출시한 제품이다보니 상황이 좀 다르다. 게다가 삼룡사와는 '파는 곳이 없어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쫄딱 망했다는 점에서, 본인 회사가 아니었으면 출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증이 될 듯.] 사측에서 IMF 당시의 기업 형편이 어려워 많이는 못 드린다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김국진이 개런티 없이 캐릭터 사용을 허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상품은 대박났지만 그가 받은 돈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의 [[대인배]] 인증은 여기서부터-- 당시 국찐이 빵을 먹었던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스티커는 국찐이의 세계여행 등 몇가지 테마를 가지고 만들어졌고 빵 종류는 여러가지였는데 가격은 500원으로 동일했고 은근히 양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한다. ~~[[창렬]]의 반대사례~~ 핑클빵도 국찌니빵 같은 히트사례가 없었다면 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는데 장기적인 커리어가 아닌 단기적인 최정점의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물론 예능계에 있어서 종합적인 인기와 지지도, 커리어까지 본다면 유재석이 훨씬 더 앞선다. 비유하면 '''김국진은 2등과의 점수차가 굉장히 큰 전국 1등을 3~4년 한것과 같고 유재석은 2등과 점수차가 그리 크지는 않은 전국 1등을 15년 가까이 차지한것과 같은 느낌이다.''' 전성기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지만 그 절반 정도의 기간을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공존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개그계에서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가수나 배우들을 통틀어서 인지도와 인기로 그를 넘볼 대상이 없던, 그야말로 연예계 혼자 1등이라 할만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정말 몇 안되는 희귀 사례로 꼽힌다.[* 개그맨, 예능인이 가요계, 연기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 걸쳐 최고의 위상을 지닌 톱스타가 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다.현재 예능계 최고의 MC들인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도 연예계 종합 최고 스타의 위상을 가져본적은 없으며 역대로 꼽으면 80년대의 이주일과 심형래, 전성기 김국진, 현시대 유재석 정도만이 달성한 매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국진은 '''코메디 30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한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대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2위가 대중가요의 황제이자 전설 [[조용필]]'''.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가왕 조용필을 이겼다는 건 그야말로 당시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의 인기마저도 지배했다는 이야기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코미디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 최강의 포스를 보여준 코미디언은 1980년도에 말 그대로 2주일만에 원톱이 되어 80년대 초중반 내내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했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화로도 전국 300만 관중을 돌파할 수 있었던 전성기 [[심형래]] 정도 밖에 없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 [* 실제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한다.]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4년 하반기#s-24|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가수)|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소개했다~~ 실제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일 양국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국민적 코미디언들이었고 화려한 전성기가 끝나고 적지않은 시간동안 몰락해 있었다는 점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시무라 켄은 1970년대 후반~80년대에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인 [[이주일]], [[심형래]]의 위치와 더 가깝고 김국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인에 가까웠다. --여기서 [[이경규]]는???-- --당시 이경규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개그맨 부문 1위와 2위의 득표율 차이를 보라~~ ~~다른 항목의 1위와 그 아래 순위와의 격차가 많이 안나는 상황에서 독보적인 1위를 한것만 보더라도....~~ ~~솔직히 은퇴 후에, 그것도 H.O.T를 내려앉히고 1위를 찍고 있는 서태지가 더 대단한데?~~ ~~근데 배우랑 탤런트 차이가 뭐지...[* 90년 대까지만 하더라도 배우는 충무로에서 주로 활동하는 영화 출연 연기자, 탤런트는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로 구분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영화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며, 현재는 배우와 탤런트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1990년대 가요계 끝판왕 [[서태지]]와 한국 영화계 원조 흥행보증수표 [[한석규]], 당시 트렌디 드라마를 휩쓰며 최진실의 뒤를 이어 TV 드라마계의 아이콘이었던 [[김희선#s-1|김희선]] 등, 다른 연예인들이 각 부문에서 10~20%대 지지율을 보였던 반면, 김국진은 개그맨 부문에서 '''55%'''라는, 말 그대로 [[넘사벽]]의 인기를 구가했다. 게임잡지 V챔프[* [[대원씨아이]]에서 펴내던 [[V점프]]의 한국어판. 말이 한국어판이지 사실상 로컬라이징이다.]에서는 '김국진이 돈 벌려고 마음 제대로 먹고 뛰었다면 지금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대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시절 김국진은 딱히 연기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시트콤 뿐만 아니라 정극 드라마에도 출연했었는데, 이는 김국진을 좋아하는 시청자폭이 너무나 넓었기에 대박드라마가 안 되더라도 최소한 망하지 않을 정도의 시청률은 보장될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정극 드라마 시청률은 망했었지만...
<반달곰 내사랑>에서 김국진이 맡은 배역에는 당초 [[유오성]] [[차승원]]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이들이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하자 김국진이 대신 들어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첫 회(2001년 9월 26일)부터 2001년 10월 11일까지 <신화>와 경쟁했다. <반달곰 내사랑>은 삼각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인지 주인공들의 주변 이야기가 없었던 데 이어 극이 너무 잔잔하게 진행됐다는 혹평을 받았고 결국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참고로 <반달곰 내사랑> 출연진이었던 이세은, [[박정수(배우)|박정수]] 등은 차승원이 출연한 드라마인 KBS 2TV [[보디가드]] 조연이었는데 이 드라마 출연진 중의 한 명인 [[이원종(1966)|이원종]]은 김국진의 대학 1년 후배다.] 결국, 김국진은 <반달곰 내사랑>의 실패 후 2006년 MBC 진짜진짜 좋아해로 연속극 출연을 간신히 할 수 있었다.[* [[이영자]]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정극 드라마 출연을 했다. 그전에는 시트콤이나 특집극 위주로 출연했다.]
결국 그는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대인기피증이 와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피하고 친구도 만나지 않는 은둔생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혼 이후도 아니고, 결혼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시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자살시도로 알려졌고, 실제로 병원에 실려가서 위세척을 했다. 김국진은 아스피린을 좀 많이 먹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본인은 이 경험에 대해 "난 빵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유행어가 될 조짐이 있었으나 너무 처절해서 개그로 인식되지 않은 탓인지 금방 잊혀졌다.
인생 망가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 뭘 하면 그 위치에서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가에 경악하게 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방송 복귀 초기의 모습인데,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도, 어느정도 안정된 현재에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이 기간중에 [[범죄]]를 저질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어, 재기의 기회까지 박탈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도박질하는 유명 연예인보다]] [[자본주의의 돼지|굶주린 무명 연예인이 낫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김국진이 재기 직전 김국진의 지인들이 혼자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를 위해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김국진과 생면부지였던 배우 박정수와 가수 [[은지원]]이 찾아가 셋이 서로 친해지는 내용이였다. 당시 김국진은 전보다 더 수척해 있었고 집에 혼자 있으면 주로 뭐하고 계시냐는 질문에 '소파 구석에 들어가 쭈그려 앉아있는다' 고 안습한 대답을 했다.] 게다가 김국진은 전술했듯 워낙 사람이 좋고 주변인들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연예계 동료나 그당시 무명이었던 희극인이나 예능인들을 많이 도와줬고, 그렇게 쌓인 인복이 후일 복귀할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무릎팍 도사]] 출연을 시작으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를 맡게 되는데, 처음에는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그 시기에도 매우 센 방송이었기에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질 못하면서 오는 무리수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구라의 멱살을 잡거나 대본을 집어던지거나 했던 것도 이 시기 쯤.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회가 갈수록 조금씩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레전드 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자신감을 얻어 라디오 스타 MC로써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체제에서는 조용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라디오 스타가 특정 매니아 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위기탈출 넘버원]][* 2010년 5월 10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고정 MC로 출연.] 등에도 출연했다. 이와 동시에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유일하게 견제하는 역할로 나름의 영역을 보여주며 활약을 선보였고, 공중파 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MC를 하는 등 단순한 재기를 넘어서 제 8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2008 MBC 연예대상에서 김용만과 같이 시상을 하러 나와서 아직 둘의 콤비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 임수정(탤런트) . . . . 50회 일치
역시 오디션을 통해서[* 이 [[영화]]의 감독이 [[DVD]]에서 당시 오디션이 경쟁이 치열했고 로비까지 있었지만 공정하게 심사를 했다고 말한다.] [[2002년]] 《피아노 치는 대통령》 으로 영화에 대통령([[안성기]] 분)의 딸 역으로 첫 데뷔를 하였으나 영화 자체가 평가가 안좋았다. 대통령으로 나온 [[안성기]]의 안정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겨울연가]]》로 당시 잘 나가던 [[최지우]]의 연기 문제와 비현실적인 내용이 문제였다. 임수정의 역할은 반항아인데, 얼굴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얼굴과 코디가 《학교4》의 범생역할 그대로...] 연기력도 부족해서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최지우]]의 연기가 워낙 가관이라 연기 못 한다는 말은 안 들었다는 건 자랑~~ 여담으로 여기서 첫 흡연 장면이 나온다.[* 임수정은 작품의 대부분에서 흡연을 하고, 본인이 죽거나 상대배우가 죽는다. 이건 동물도 예외없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드라마는 '미사폐인'을 만들 정도로 전국구 인기였고 [[소지섭]]과의 애절한 커플 연기는 많은 이들을 울렸다. 다만 [[동안]] 탓인지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던 탓이었는지 드라마를 통해 그녀를 처음 본 어르신들은 그녀를 보고 '''"[[중학생]]이 연기 참 잘하네."'''라고 하기도하고 드라마에 '''술 먹는 장면'''이 나오자 놀라기도 했다! 그 후 연기대상 땐 '''"왜 아역상 후보에 없냐"'''고 놀리기도.(...)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동안인 것도 동안이지만 극중에서 [[소지섭]]에게 '''아저씨'''라고 부르고 목소리도 영락없는 어린애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목소리는 실제 임수정 [[목소리]]와 전혀 다르다.) 그 때문인지 중국과 태국 더빙판의 경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어린이]] 캐릭터 스타일의 목소리로 더빙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이 임수정 '''최초의 성인 역.'''(...)
1화에 잠깐 입었던 중소업체의 원피스와 국내 최초로 유행시킨 어그부츠와 컬이 섞인 파마는 모든 여성들의 워너비가 되었고, 2015년 현재 기준으로도 하루에 1명씩은 임수정 판박이가 명동에 출몰한다.(...)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비(연예인)|정지훈]]과 함께 출연하며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대중들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 활약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아시아 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았다.
곧이어 2007년 개봉한 《[[행복(한국 영화)|행복]]》에서는 다소 나이 차가 있는 [[황정민]]과 커플 연기[* 당시 영화 개봉 전 나온 예고편에서의 베드신과 영화 내용 때문에 [[황정민]]은 없던 안티 카페가 생겨 버렸다.(...)]를 보여주었다. 그 동안의 소녀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나왔다. 2006년에 이어 2007년 역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은 [[허진호]] 감독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이다.
2008년에는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공식행사, CF촬영, 그리고 2009년 개봉예정인 영화 《[[전우치(영화)|전우치]]》 촬영에 매진했다. 전우치 촬영은 2009년 상반기에서야 끝났다. 그 해 12월 개봉하는 《전우치》 의 개봉 전에 태국 푸껫에서 단편영화 《푸껫》을 촬영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발표했다. 그녀의 [[영어]] 대사를 볼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푸껫행 비행기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전우치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남자배우들과 비교해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 비중이 크지 않은 반면에 캐릭터는 여러가지였다. 오히려 [[최동훈]] 감독이 그녀에게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도. 그럼에도 불만 없이 와이어 액션까지 소화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캐스팅 된 작품에서 자신의 비중이 줄어들자 출연을 취소한 배우들이 종종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대조적인 태도다.] 12월 《전우치》 일정 도중 과로로 남은 무대인사를 불참했다.
이후 휴식을 취하며 차기작을 고르다가 2010년 뮤지컬 원작의 《[[김종욱 찾기(영화)|김종욱 찾기]]》에 [[공유(배우)|공유]]와 함께 촬영을 했고 그 해 12월에 개봉이 되었다.
2012년 5월 17일에 개봉한 영화 《[[내 아내의 모든것]]》에 여주인공인 '정인' 역을 연기했다. 어떻게 보면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인 결혼 후 [[권태기]]를 코믹하게 잘 풀어낸 영화. 같이 연기한 [[이선균]], [[류승룡]]과의 호흡이 돋보이며 특히 [[류승룡]]의 코믹 연기가 일품이다. 그리고 여기서 수위가 매우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흡연은 물론 집에서 '''[[티셔츠]]와 [[팬티]]'''만 입고 있다거나, 남편 [[이선균]] 앞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진다든가 --YEAAAAAAAAH!--, [[검열삭제]] 직전까지 간다거나 --[[이선균]] 이 나쁜 놈--...
특이하게도 드라마 출연을 잘 하지 않는다. 사실 드라마에 출연했던 대부분의 영화배우들이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제작 시간이 촉박해서 연기 몰입도에 애를 먹는다."고 말하는데, 그녀도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출연할 때 연기 몰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전제작하는 드라마가 늘어나는 추세를 볼 때, 빠른 시일 내에 드라마 출연을 기대해도 좋을듯. 또한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은채와 같은 캐릭터 제의만 받아서 드라마 출연을 안 한다는 말도 있다.
[[허진호]], [[최동훈]], [[박찬욱]], [[김지운]]이라는 충무로 최고의 감독들과 작품을 해 본 '''유일한''' 여배우고, 독립영화부터 영화제용 영화에 여러가지 장르와 배역에 도전하는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이다. 또한 세간의 평과 다르게 여배우 치고는 다작을 하는 배우로, [[2015년]]에는 2개의 작품 개봉이 예정되어있다.
[[최동훈]] 감독은 "임수정은 감독의 [[로망]]"이라면서 그동안 좋은 감독과 작품을 해와서 만족스럽다고 하였다.[[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16182125111780.htm|#]] [[김지운]], [[박찬욱]], [[허진호]] 등의 감독과 작품을 한 걸 보면 이 말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2007년 야심만만에서 [[슈퍼주니어]]의 멤버 [[기범]]이 두 차례 언급하였다. 7월 17일 방송분에서 언급한 내용은 꿈에서 3일 연속으로 미녀와 데이트를 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고 꿈에서 깨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임수정이었다는 내용. 11월 26일 두번째 언급에는 그 발언 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직접 봤는데 앞에서 말한 내용 때문에 부끄러워서 마주칠수가 없었다는 내용. [[http://www.tvreport.co.kr/ArticleShellView.asp?art_id=200707170004|#]] [[http://www.tvreport.co.kr/ArticleShellView.asp?art_id=200711270004|#]]
영화에 주로 나오고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에는 출연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 끌던 시절을 제외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과 중학생, 초등학생은 잘 모른다. 그 한가지 예로 2008년 3월 사인회 도중 한 초등학생이 "임수정은 필요없고 소시짱 [[태연]]짱"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2007년과 2008년의 공백기간에 지친 남자팬들 중에는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소녀시대]]로 갈아탄 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 때 갈아탄 팬 중에 한 팬이 [[소녀시대 팬레터 사건|부적절한 일]]을 겪었다는 것.(...)
영화 《[[장화, 홍련]]》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북미와 서유럽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다만 이쪽 영화사이트 대부분이 그녀의 출연작을 이 두 개나 아예 하나로 소개한다는 점. 특히 [[IMDB]]의 경우는 《[[다찌마와 리]]》와 《령》에 나왔다는 오류를 범했다.(...)[* 《령》에서는 위에 적힌 고소미 광고가 삽입된 걸로 봐서는 완전히 틀린 건 아닐지도(...)] 지만 동구권엔 어느 정도 알려진듯하다. [[http://www.csfd.cz/herec/15954-im-su-jeong/|체코 영화사이트]] [[http://www.amdb.lv/persona.php?id=p000002|라트비아 동양영화사이트]]
가족관계는 부모와 한명의 남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었는데, 빼어나고(秀) 밝게(晶) 되란 뜻이다.
[[공효진]], [[신민아]]와 친해서 인터넷에 이들과 같이 다닌다는 이야기가 많다. 2008년 10월 13일 놀러와 215회에서 공효진이 그녀에 대해 사실 여성스럽고 집에만 틀어박히는 게으른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외로 어색할 것 같은 모임에도 같이 나간다고 한다.
* [[염정아]] : 장화 홍련에서 사이 나빴던 계모와 의붓딸의 모습과는 달리, 무척 절친한 사이. 심지어는 같은 국수 그릇을 쓰고, 서로의 젓가락도 공유하는 사이다.(...)
* [[윤진서]] : 과거 같은 소속사 선후배 사이로 공효진, 신민아와 더불어 단짝 중 하나.
* [[이유리(배우)|이유리]] : 과거에는 친했던 것으로 보이나, 서로의 다른 스타일의 길을 간 이후로는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유리가 학교4 시절과 그 후 얼마간 임수정에 앞섰던 걸 생각하면 [[넘사벽]]으로 역전이 되고 난 다음에 자격지심이 드는게 당연하다. 묘하게도, 학교4의 에피소드 중 이유리와 임수정이 중학교 시절 단짝이었다가 멀어진 내용이 나온다.
* [[이천희]] : 공유와 절친이었는데 같이 친해졌다.
- 문무왕 . . . . 49회 일치
[[태종 무열왕|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김유신]]의 둘째 누이)의 맏아들로, [[김 (성씨)|김]](金)이고,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 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당나라]]의 군대를 [[나당 전쟁]]에서 격퇴함으로써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다. 왕후는 파진찬 [[선품공|김선품]]의 딸 [[자의왕후]]이다.
{{Cquote|어느 날 김유신의 맏누이인 [[영창부인|보희]](寶姬)가 서형산(西兄山)<ref group="주">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의 [[선도산 (경북)|선도산]](仙桃山)</ref> 꼭대기에 올라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온 나라 안에 흘러 펼쳐지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잠에서 깬 뒤에 동생인 문명왕후에세 꿈 이야기를 했다. 문명왕후는 자신이 언니의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며 비단치마를 주었다. 며칠 뒤에 김유신이 뒷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金春秋)와 축국(蹴鞠)을 하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김유신은 자신의 집으로 김춘추를 데리고 와서는 주연을 베풀며 맏누이인 보희에게 옷고름을 달게 했다. 하지만 보희는 마침 일이 있어서 나오지 못하고 동생인 문명왕후가 대신 나와서 바느질을 하였다. 김춘추는 그녀의 어여쁜 모습에 반하여 곧 청혼을 하여 결혼하였고, 그녀는 곧바로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뒷날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金法敏)이다.|《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
원년([[661년]]) [[6월]] 상중(喪中)이던 문무왕에게 당은 [[고구려]]를 치는 당군과 [[웅진도독부]]에 고립된 당군에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신라]]가 [[백제]] 부흥군(復興軍)을 진압하는데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해왔다. 평양으로 먼저 군량을 보내면 웅진으로 통하는 물자 수송로가 끊어질 것이고, 그 수송로가 끊어지면 [[웅진도독부]]의 당군들은 [[백제]]군에게 궤멸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왕은 8월에 직접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시이곡정(始飴谷停)으로 향했다. 그 길목에 있는 [[대전 계족산성|옹산성]](甕山城)에 주둔하고 있던 백제 부흥군을 9월 25일부터 공격하기 시작해 27일에 함락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1"/> 옹산성을 함락시키고 웅현성(熊峴城)을 쌓아 [[웅진도독부]]로 통하는 군량수송로를 다시 개통시킨 뒤, 상주(上州) 총관(摠管) 품일(品日)과 일모산군(一牟山郡) 태수 대당(大幢)·사시산군(沙尸山郡) 태수 철천(哲川) 등이 이끄는 군사들이 [[우술성]](雨述城)을 쳐서 또 함락시키고, [[10월 29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당의 조문 사절을 맞이했다. 한편 [[평양]]을 포위하고 있던 [[소정방]]이 보낸 함자도(含資道) 총관(摠管) 유덕민(劉德敏)<ref group="주">《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대감(大監) 문천(文泉)이라 표기됨</ref>이 와서 문무왕에게 당군에 대한 군량 지원을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1"/> 왕은 이듬해 1월 [[김유신]]으로 하여금 수레 2천여 대에 쌀 4천 섬과 조(租) 2만 2천여 섬을 싣고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이들 군은 이듬해 2월에 무사히 군량을 전달하고 귀환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2">《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2년(662)</ref>
2년([[662년]]) 봄 정월에 당은 문무왕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 [[신라]]왕으로 책봉했다. 2월에는 [[탐라국]] 임금 도동음률(徒冬音律)이 항복해 와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2"/> 이때 [[신라]]에서는 [[백제]]에 주둔하고 [[고구려]]를 치는 당군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식량을 보내고 옷을 보내고 하느라 창고에 쌓아둔 양식은 고갈되고, 농사 때를 망쳐 백성들이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반대로 [[웅진도독부]]에 있는 당군의 군량 창고에는 쌀이 남아돌다 못해 썩어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에서는 그 뒤로도 수시로 [[신라]]에 군량을 요구하였다. 3월에 내린 대사면령은 이러한 가운데서 오는 민심이반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된다.{{출처|날짜=2018-06-27}} 7월 왕은 왕제(王弟) [[김인문|인문]](仁門)을 사신으로 당에 보내는 한편, [[웅진도독부]]의 당군은 지라성(支羅城)과 윤성(尹城), 대산(大山)과 사정(沙井)의 [[백제]] 목책을 깨뜨리고 [[신라]]군과 합세해 진현성(眞峴城)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신라]]의 군량수송로를 열었다. 8월<ref group="주">《[[동사강목]]》에는 7월로 표기됨</ref>에는 [[김흠순|흠순]] 등 19장군을 시켜 내사지성(內斯只城)의 [[백제]] 부흥군을 깨뜨렸고, 대당(大幢) 총관(摠管) 진주(眞珠)와 남천주(南川州) 총관 진흠(眞欽)이 병을 핑계로 한가로이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를 물어 처형하고 그 일족까지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62"/>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5년([[665년]]) 가을 8월에 왕은 당의 칙사 유인원,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ref group="주">지금의 충남 공주시 연미산(鷰尾山)</ref>에서 모여 다시 맹약을 맺었다.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고 “서로의 경계를 넘어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맹약의 글은 유인궤가 지은 것으로 제물들은 취리산 제단의 북쪽에 묻고, 맹약문은 신라의 종묘에 보관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5">《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5년(665)</ref> 또한 그 회맹한 지점을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삼고 푯말을 세워 백제와 신라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71"/> 이는 전쟁이 끝난 뒤 평양 이남의 땅은 신라에 귀속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긴 당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였다. 같은 달, 왕자 정명(훗날의 [[신문왕]])을 태자로 책봉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5"/> 겨울에는 일선·[[거열주|거열]] 두 주의 백성들을 시켜 군수물자를 [[명주 (9주)|하서주]]로 운반하게 하면서 고구려와의 전쟁을 준비했다.<ref name="삼국사기-665"/>
6년([[666년]]) 4월에는 대신 김천존의 아들인 [[나마 (관직)|나마]] 한림과 김유신의 아들인 나마 [[김삼광|삼광]](三光)을 모두 당에 들어가 숙위하게 하였으며, 고구려를 없애고자 당에 군사를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6">《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6년(666)</ref> 12월에부터 당은 [[이세적|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사열소상백(司列少常伯) 안륙현(安陸縣) 사람인 학처준(郝處俊)을 부장으로 삼아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는데,<ref name="삼국사기-666"/> 이때 고구려는 실권자였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죽음에 이어 그의 아들들 사이에 형제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마침내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남생]]이 아우 [[연남건|남건]]과 [[연남산|남산]]에게 쫓겨 [[국내성]] 등의 성을 거느리고 당에 항복해버리면서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ref name="고구려-666">《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5년(666)</ref> 이 와중에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정토]]가 24명의 부하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항복해오자, 정토와 그의 부하들에게 옷과 양식, 집을 주어 서울 및 주·부에 안주시키고, 온전한 여덟 성에는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한다.<ref name="삼국사기-666"/>
7년([[667년]]) 7월에 3일 동안 큰 잔치를 베풀었고, 당에서는 신라의 장군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장군으로 발탁하고 대아찬 일원(日原)은 당의 운휘장군(雲麾將軍)으로 임명되었는데, 문무왕은 지경과 개원에게 각각 파진찬과 [[대아찬]]의 관등을 주고, 일원을 운휘장군으로 명한다는 고종의 칙명은 왕궁 뜰에서 받도록 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7년(667)</ref> 또한, 같은 달 고종은 유인원과 신라의 [[태종무열왕#가계|김인태]](金仁泰)에게 명하여 비열성(卑列城)<ref group="주">지금의 [[강원도]] [[안변군]]</ref>의 길을 따라, 신라 병사를 징발해 다곡(多谷)·해곡(海谷) 두 길을 따라 평양으로 모이도록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 가을 8월에 문무왕은 [[대각간]] 김유신 등 30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해 9월에는 한성정(漢城停)에 도착해 이적(李勣)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렸다.<ref name="삼국사기-667"/> 이때 신라군은 당군을 배제한 단독 작전수행 대신 정탐을 세 번이나 보내면서 배를 계속 띄워 당군의 동정을 살폈고, 당군이 아직 평양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알고 먼저 고구려의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먼저 고구려로 갈 길을 뚫기로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하지만 칠중성을 치기 전, 겨울 10월 2일에 평양성 북쪽 2백리 지점에 도착한 이적은 신라측 이동혜(尒同兮) 촌주(村主) 대나마 강심(江深)에게 부쳐, 한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에게 “칠중성을 공격할 필요없이 곧바로 평양으로 와서 당군에 군량을 공급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신라군은 칠중성 공격을 포기하고 수곡성(水谷城)으로 향했지만,<ref name="삼국사기-671"/> [[11월 11일]]에 장새(獐塞)에 이르렀을 때 이적은 어느새 돌아가버렸고, 신라군도 그냥 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7"/> 12월에 당은 다시 웅진도독부의 유진장군(留鎭將軍) 유인원을 보내어 고구려 정벌을 돕게 하면서 문무왕에게 대장군의 정절(旌節)을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7"/>
이때 대당대총관으로 임명된 대각간 김유신은 풍병(風病) 때문에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하고 수도 서라벌에 남았고,<ref name="김유신-하">《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 하</ref> 일찍이 백제를 치는데 선두로 나섰던 여러 장수들이 모두 지도부의 요직을 맡아 고구려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임명된 관직으로 추정한 진격루트는 한성주(한산주)와 비열주(비열홀주) 그리고 하서주(하슬라주) 세 곳으로, 수도 서라벌에서 조직된 군사들은 닷새 후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출처|날짜=2018-06-28}} [[6월 22일]]에 유인원이 신라의 귀간(貴干) 미힐(未肹)을 보내어 고구려의 대곡성(大谷城)과 한성(漢城) 등 2군 12성이 항복해왔음을 알렸고, 신라군 장수인 인문·천존·도유 등은 일선주 등 일곱 군과 한성주의 병마를 이끌고 당의 군영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6월 27일]]에는 드디어 문무왕 자신이 서라벌을 출발했고, 이틀 뒤에는 여러 도의 총관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당군 총사령관 이적을 만난 신라의 김인문은 고구려의 평양 북쪽 20리 되는 지점인 영류산(嬰留山) 아래까지 진군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8"/>
[[7월 16일]]에 한성에 도착한 왕은 여러 총관들에게 당군과 회합할 것을 명했다. 한편 비열성주행군총관 김문영 등은 사천(蛇川)의 벌판에서<ref name="삼국사기-668"/> 고구려의 [[태대막리지]] 남건이 거느리고 온 군사와 충돌했는데, 함께 있던 당의 번병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와중에 김문영의 신라군은 앞으로 나서서 고구려군과 맞서 크게 이겼고, 신라군이 이기는 것을 보고 난 다음에야 당병은 겨우 고구려군과 싸웠다고 한다.{{출처|날짜=2018-06-27}} 이 사천에서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대당소감(大幢小監) 본득(本得)은 훗날 문무왕에 의해 일길찬 관등과 조 1천 섬을 은상으로 받았고, 전사한 한산주소감(漢山州小監) 김상경(金相京)도 그와 준하는 상이 내려졌다. 다만 아술(牙述)의 사찬 구율(求律)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물을 건너가서 적과 싸워 크게 이겼음에도, 군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위험한 곳에 들어갔다 하여 포상에서는 제외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평양이 함락된 뒤 이적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福男)·덕남(德男) 그리고 대신 등 20여만 명을 이끌고 돌아갔고,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助州)가 이적을 따라 인태·의복·수세·천광·흥원 등과 함께 당으로 들어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문무왕은 한성을 출발해 평양으로 가던 중, 힐차양(肹次壤)에 이르러 당의 여러 장수가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한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8"/> 신라 측은 긴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에게 약속된 은택을 얻을 것이고 공을 세운 장군들도 포상을 받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당나라에 들어갔지만, 당의 총사령관 이적은 “지금 신라는 아무도 공이 없다”며 싸늘한 태도를 보였고, 이적의 태도가 신라 군영에 전해지면서 신라군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로서는 그들의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당군을 도와 주변의 적들을 쓰러뜨렸는데, 막상 신라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당은 백제와 고구려에 이어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남한주(南漢州)로 돌아온 문무왕은 [[10월 22일]]에 논공행상을 벌여 서라벌에 남아있던 김유신에게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의 직위와 식읍 500호, 궤장을 하사하고 그의 모든 보좌관들에게도 각각 위계 한 등급씩을 올려 주었다.<ref name="김유신-하"/> 또한 인문을 대각간, 다른 이찬과 장군들을 모두 각간으로 삼고 소판 이하에게는 모두 관위 1등급씩 더해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10월 25일]]에 왕은 욕돌역(褥突驛)에 이르러 국원사신(國原仕臣) 용장(龍長) 대아찬에게 사적으로 대접받았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고구려 사람 7천 명을 포로로 거느리고 [[11월 5일]]에 서라벌로 들어온 왕은 다음날 문무 관료들과 함께 선조묘에 전쟁이 끝났음을 고하고, [[11월 18일]]에는 전사자들의 신분에 맞춰 부의(賻儀)를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68"/>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상훈">이호영·이상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백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상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순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백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순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문무왕은 말을 기르는 목장 174곳을 소내(所內)에 22곳, 관청에 10곳을 속하게 하고 김유신을 비롯한 고위 진골 대신들과 여러 관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또한 백제의 여자를 아내로 삼은 한성도독 박도유가 웅진도독부와 내통해 신라의 병기를 훔쳐다 한 주(州)의 땅을 습격하는 난을 일으키려다 계획이 발각되어, 도유는 처형당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백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백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백제의 남은 세력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백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반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순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백제령을 모두 백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백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11년([[671년]])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침공하였다. 당의 지휘를 받던 말갈병이 설구성(舌口城)을 포위했다가 물러가는 것을 후방에서 쳐서 3백 명을 죽이고, 당군이 백제를 구원하러 올 것에 대비해 대아찬 진공(眞功) 등을 시켜 수군으로 옹포(甕浦)를 지키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또한 6월에 장군인 화랑 죽지 등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가림성(加林城)의 벼를 짓밟게 했으며, 당병과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죽이고 백제 장군 두 명과 당의 과의(果毅) 여섯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거두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7월에 당은 행군총관 설인귀를 신라에 파견했는데, 왕은 사신을 맞아 위로하는 대신 강가의 풀이 우거진 낮은 언덕에 군사를 숨기고 강 어귀에는 무기를 감춰둔 채, 수풀 사이를 오가며 틈을 노려 기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인귀는 26일에 당이 신라를 도와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해주었는데 신라가 그 은혜를 잊고, 고구려를 도와 당을 치고 있다며 항의하는 내용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당이 신라를 집어삼킬 수도 있음을 은근히 협박하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 법사 임윤(琳潤)을 시켜 왕에게 보냈다.<ref name="삼국사기-671"/> 문무왕은 설인귀에게 신라가 선왕 때로부터 당에 협조하고 여러 번 신라의 백성이 헐벗고 굶주리는 지경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국고를 내어 번번이 당군을 지원했던 사실과 당이 처음 신라와 했던 약속들을 어기고 신라가 점령하여 지배하던 땅을 무단으로 거둬들인 일을 비난하며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날, 백제 수도였던 사비성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고 아찬 진왕(眞王)을 도독으로 삼았다. [[10월 6일]] 당의 조운선(漕運船) 70여 척을 공격하여 낭장(郞將) 겸이대후(鉗耳大侯)와 병사 100여 명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1"/>
13년([[673년]]) 2월부터 9월까지, 문무왕은 당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서형산성(西兄山城)과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비롯해, 국원성(國原城)<ref group="주">옛 완장성(薍長城)</ref>, 북형산성(北兄山城), 소문성(召文城), 이산성(耳山城), 수약주(首若州)의 주양성(走壤城)<ref group="주">질암성(迭巖城)이라고도 한다.</ref>, 달함군의 주잠성(主岑城), 거열주(居烈州)의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 삽량주(歃良州)의 골쟁현성(骨爭峴城) 등 여러 성을 쌓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3">《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3년(673)</ref> 한편 이 사이에 국가의 원로이자 재상이었던 태대각간 김유신이 죽고, 아찬 대토(大吐)가 모반하여 당에 붙으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났다.<ref name="삼국사기-673"/> 거듭되는 전쟁에서 신라는 말갈·거란의 병사까지 끌어들인 당군과 맞서 아홉 번의 전투를 통해 2천 명을 죽이고, [[임진강|호로하]](瓠瀘河)와 왕봉하(王逢河)에서도 당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3"/> 겨울에 당병은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을 쳐서 함락시키고, 거란·말갈의 병사들은 대양성(大楊城)과 동자성(童子城)을 쳐서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73"/> 한편 신라는 주(州)와 군(郡)에 처음으로 외사정(外司正)을 두고, 백제 멸망 뒤 [[무열왕]]에 의해 폐지되었던 수병제(戍兵制)를 부활시키는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갔다.<ref name="삼국사기-673"/>
15년([[675년]]) 봄 정월에 구리로 각 관청 및 주·군의 인장(印章)을 만들어 지급했다.<ref name="삼국사기-675">《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5년(675)</ref> 2월에 당의 장수 유인궤가 칠중성(七重城)에서 우리 군사를 깨뜨린 뒤 돌아가고, 이근행이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임명되었다. 문무왕은 다시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며 유감을 표명했고, 당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앞서 깎아 없앴던 문무왕의 관작을 회복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75"/> 이때에는 대부분의 백제령이 신라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고구려 남쪽 경계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주와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에 문무왕은 당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아홉 부대의 병사를 내보내 막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5"/> 과연 가을 9월, 당은 설인귀를 대장으로 하는 군사를 신라에 보내 천성(泉城)을 치게 했는데, 이때 당에 숙위하고 있던 풍훈(風訓)<ref group="주">앞서 문무왕에 의해 처형당한 김진주(金眞珠)의 아들이다.</ref>이 향도(鄕導)로서 당을 도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그러나 신라의 장군 문훈(文訓) 등의 선전으로 당병 1,400명을 죽이고 그 병선 40척을 빼앗았으며,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치면서 내버리고 간 전마 1천 필까지 신라의 손에 들어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9월 29일]]에는 이근행이 20만 군사를 이끌고 매초성(買肖城)에 진을 쳤다. 신라군이 이를 공격하자 당군은 말 30,380필과 무수한 병기를 남겨 놓고 도망갔다.<ref name="삼국사기-675"/>{{refn|group=주|다만 이러한 전쟁 와중에도 신라는 당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있었다.<ref name="삼국사기-675"/>}} 나아가 안북하(安北河)를 따라 관(關)과 성을 설치하고 또 철관성(鐵關城)을 쌓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해에 신라와 당이 벌인 크고 작은 싸움이 18번인데, 모두 신라가 이겨서 당병 6,047명을 죽이고 말 200필을 얻었다고 한다.<ref group="주">하지만 아달성(阿達城)이나 적목성(赤木城)에서는 성을 침공한 말갈병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약탈당했으며, 아달성주 소나(素那)나 적목현령 탈기(脫起)가 이때의 싸움에서 전사했다. 석현성(石峴城)이 당병에게 함락되었을 때는 현령 선백(仙伯)과 실모(悉毛) 등이 전사했고, 칠중성은 당과 거란·말갈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간신히 함락은 면했지만 소수(小守) 유동(儒冬)이 전사하는 등, 신라측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듬해에도 당은 다시 도림성(道臨城)을 함락시켰다.</ref>
16년([[676년]]) 7월 당군이 도림성(道臨城)을 공격해 현령(縣令) 거시지(居尸知)를 죽였다.<ref name="삼국사기-676">《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6년(676)</ref> 11월에 사찬 [[시득]](施得)이 수군을 거느리고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 해전|기벌포]](伎伐浦)에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라는 패했지만, 다시 나아가 22회에 걸친 크고 작은 싸움에서 모두 승리하여 당군 4천여 명을 목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6"/> 이후 당은 백제령 안에 있던 웅진도독부를 [[요동]]의 [[건안성]](建安城)으로 옮기고, 평양에 두었던 안동도호부도 [[요동성]](遼東城)을 거쳐 신성(新城)으로 옮기는 등 한반도에서 자국의 병사들을 철수시켰다.<ref name="자치통감-677">《자치통감》 권202 唐紀十八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儀鳳 2년(677)</ref>
{{Cquote|과인은 나라의 운(運)이 어지럽고 전란의 시기를 맞이하여,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능히 영토를 안정시켰고 배반하는 자들을 치고 협조하는 자들을 불러 마침내 멀고 가까운 곳을 평안하게 하였다. 위로는 조상들의 남기신 염려를 위로하였고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았으며,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두루 상을 주었고,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벼슬에 통하게 하였다.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살게 하였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요역을 줄여주니,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들이 풍족하며 민간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게 되었다. 곳간에는 언덕과 산처럼 쌓였고 감옥에는 풀이 무성하게 되니, 혼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았고 관리와 백성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스스로 여러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마침내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고, 정치와 교화에 근심하고 힘쓰느라고 다시 심한 병이 되었다. 운명은 가고 이름만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갑자기 긴 밤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는가? 태자는 일찍이 밝은 덕을 쌓았고 오랫동안 태자의 자리에 있어서, 위로는 여러 재상에서부터 아래로는 뭇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죽은 사람을 보내는 도리를 어기지 말고, 살아 있는 임금을 섬기는 예의를 빠뜨리지 말라.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므로, 태자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또한 산과 골짜기는 변하여 바뀌고 사람의 세대도 바뀌어 옮겨가니, 오(吳)나라 왕의 북산(北山) 무덤에서 어찌 금으로 만든 물오리의 고운 빛깔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위(魏)나라 임금의 서릉(西陵) 망루는 단지 동작(銅雀)이라는 이름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지난날 모든 일을 처리하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면,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판다. 헛되이 재물을 쓰면 서책(書冊)에 꾸짖음만 남길 뿐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넋을 구원하는 것이 못된다. 가만히 생각하면 슬프고 애통함이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이와 같은 것은 즐겨 행할 바가 아니다. 죽고 나서 10일 뒤에 곧 고문(庫門) 바깥의 뜰에서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 장례를 치르는 제도를 힘써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변경의 성·진(城鎭)을 지키는 일과 주현(州縣)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 율령격식(律令格式)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다시 고치도록 하라.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 이 뜻을 알게 할 것이며, 주관하는 자는 시행하도록 하라.|《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21년(681)}}
- 정찬성 . . . . 49회 일치
* '''이시와타리 신타로''' - 1라운드 [[리어 네이키드 초크]] 승
* '''레너드 가르시아''' - 3라운드 엇갈린 판정패'''(편파 판정)'''[* 정찬성이 크게 앞선 것은 아니였지만, 경기를 보면 정찬성이 이겼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참고로, 정찬성이 이 경기에서 가르시아와 화끈한 경기를 보여줘 코리안 좀비의 인기를 높였다.
2007년 6월 SSF로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 2007년 12월 판크라스 한국대회와 2008년 5월 횡성 한우배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전적을 쌓아갔다.[* 다만 현 시점에 와서 SSF에 대한 기록은 어딜 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Q채널에서 방영한 리얼격투 스트리트파이터 라는 격투기 토너먼트 프로그램에 2007년 6월경 출연한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SSF는 그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 당시 토너먼트 규칙은 3인 1팀으로 팀전이었는데, 정찬성 선수는 계속 이기며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결승에서 합기도 선수에게 판정패당한다.][* 참고로 정찬성 선수는 해당 토너먼트에 킥복서 베이스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대회 룰 자체가 연속니킥 금지에 링도 없어서 펀치 러쉬가 이어지질 못하는 등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괴랄한 대회였다.]
2008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DEEP에서 오미가와 미치히로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오미가와는 유도가 출신으로 [[UFC]]와 [[PRIDE]]를 모두 경험했던 베테랑 파이터였으나 정찬성의 공세에 밀려 패배하고 말았다. 훗날 오미가와는 Dream 15회 대회 이후 인터뷰에서 이 경기를 회상하며 '그 때는 정찬성의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붙으면 꼭 이기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정찬성 선수는 블로그에 '오미가와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 다시 붙는다면 그 때는 변명을 대지 못 하게 이기겠다.'며 재대결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이후 오미가와는 센고쿠 토너먼트에서 수많은 페더급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페더급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TOP 10급 파이터로 부상하게 된다.
2009년 3월 [[센고쿠]] 7진 페더급 토너먼트에서 신성 이시와타리 신타로를 맞아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를 거두며 [[메이저]]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라운드 거친 타격전에서 레프트를 적중시키며 신타로를 주저앉혔으나 신타로는 다시 회복했고 클린치 싸움으로 이어진다. 레프리의 '스탑 돈 무브'가 선언되며 링 중앙에서 재개된 공방에서 다시금 라이트를 안면에 적중시켰고 등을 보인 신타로에게 스탠딩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꽂았다.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2010년 10월 WEC 51에서 조지 루프와의 대결했다. 정찬성이 미국 입장에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전 경기가 너무나 재밌어서 단 1경기만을 치르고 이 경기부터 메인 매치에 편입되었다([[김동현]] 선수도 2전째인 UFC 88의 VS 맷 브라운 전부터 방송경기이긴 했다. 그러나 이쪽은 원래 메인 매치중 [[카로 파리시안]]의 경기가 있었으나 파리시안이 부상을 당해 해당 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다크매치였던 김동현의 경기가 메인 매치로 격상된 것). 다소 끌려다는 듯한 느낌을 주던 정찬성은 2라운드 초반 과감한 공세를 펼쳤으나 루프의 원투-하이킥 콤비네이션을 정통으로 허용하며 생애 첫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제발 가드를~~
2011년 3월 UFN 24에서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러버매치로 UFC 무대에 데뷔했다. 1라운드 약간 신중한 타격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그라운드에서 마운트까지 잡았으나 공이 울리며 라운드 종료. 2라운드에서도 다시 한 번 상위를 잡고 엘보우와 파운딩을 날려주며 앞서 나갔고, 가르시아가 이스케잎을 시도하는 순간 백을 잡고는 트위스터를 작렬시키며 멋진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이 트위스터는 매우 고급기술인데 MMA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찬성은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보면서 익혔고 코리안 탑 팀에서 훈련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본 인터넷 카페에 '한 번 연습해서 써먹어봐야겠다.'고 댓글을 달았고 결국 트위스터로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2012년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 이벤터]]로 비슷하게 탑 10위권의 강자인 [[더스틴 포이리에]]와 대결이 확정되었다. 이 경기는 넘버원 컨텐더 결정전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받고 있다. 상대인 포이리에는 상당히 위험한 상대로, 89년생에 동체급 최상위권의 그래플러이며 어린 나이에도 상당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선수라 이 경기야 말로 정찬성의 검증 매치가 될 듯 하다. 호미닉의 경우는 거품이 있다는 평가가 있던 선수인지라.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상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상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영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반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반 상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반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식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포이리에 전 이후 어깨 부상의 수술 여부를 놓고 많이 고민했으나 에릭 코크와의 대결 이후에 자신에게 도전권이 돌아올 예정이라 수술을 받은 이후 내년에 타이틀 도전 계획을 세웠지만. 도전자 에릭 코크가 부상으로 이탈한 자리에 [[벤슨 헨더슨]]에게 지고 페더급으로 내려온 [[프랭키 에드가]]가 [[갑툭튀]]하면서 정찬성보다 먼저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다. 정찬성은 에드가가 내려온다 해도 자신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전문가들의 예상은 상성상 정찬성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상황이라 정찬성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 격투기계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정찬성이 도전 기회를 잃었지만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깨가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제 알도와의 타이틀전을 추진했다면 그나마 없는 승산이 더욱 적어졌을 것이고, 만일 본래 계획대로 프랭키 에드가가 12월 페더급 데뷔전을 치르고 승리하게 되면 정찬성이 에드가와 타이틀 도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었으므로, 알도와 에드가가 먼저 맞붙기 때문에 정찬성이 타이틀전을 앞두고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이 내년 복귀시기에 맞춰 바로 타이틀전 직행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7월 개최예정인 'UFC 162' 에서 [[리카르도 라마스]]와 격돌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이 매치는 페더급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일 확률이 높은 상태...였는데 [[앤소니 페티스]]가 무릎부상으로 결장하게 되면서 '''[[조제 알도]]와 타이틀전이 확정되었다!!'''
2013년 8월 4일 브라질에서 열린 'UFC 163' 에서 조제 알도와 페더급 타이틀전을 치뤘다. 3라운드까지는 알도의 아웃파이팅+TD 전략에 약간 밀리는 양상을 보였지만, 그래도 점점 TD를 잘 방어하며 근거리 타격전에서 극강 챔프를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4라운드에서 펀치를 주고 받던 중 팔끼리 엉킨 것을 빼내는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고 말았고, 이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TKO를 당하고 만다. 탈골 이후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맞춰보고 다시 해보려 했으나 어깨에 이상이 있음이 표정과 행동에서 드러났고, 이를 눈치챈 조제 알도가 킥 2방을 부상 부위에 작렬시켰고, 이후 쓰러지면서 파운딩 세례를 받고 아쉽게 패배하였다. 전체적으로 약간 밀리는 분위기 속에서 3라운드 종료 직전부터 부상 직전 상황까지는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경기를 끌고 갔던 지라 아쉬움이 크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하며(백스테이지에서 어깨뼈를 맞췄다고 한다.) 정찬성 본인은 리매치를 원하고 있기에 향후 행보는 지켜봐야 알 듯. 결국 어깨 부상과 안와 골절 부상 때문에 1년간 결장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2016년]] 10월 19일로 소집해제되었고 복귀전으로 [[BJ 펜]]을 원한다고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09&aid=0000006100|#]] 하지만 2월 5일(한국시간) 미국 휴스턴 도요타 센터에서 열리는 UFN 104의 메인이벤트에서 페더급 랭킹 9위 데니스 버뮤데즈를 상대로 복귀전이 확정됐다. 비록 원하던 BJ 펜은 아니지만, 부상 치료와 군복무 등으로 인한 장기간 공백에도 불구하고 복귀전이 메인이벤트로 잡히면서 미국내 정찬성의 인기는 여전함을 볼 수 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데이나 화이트도 #ufckorea라는 해쉬태그와 함께 코리안 좀비가 돌아왔다며 트윗을 올렸다. 이후 인터뷰에서 정찬성은 3년이상 경기를 뛰지 못했는데 역사상 그 어떤 선수보다 멋지게 복귀했다며 칭찬을 아끼지않았다. 말미에 한국대회를 기대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2017년 5월 13일, 정찬성이 SNS에 본인과 [[최두호]]가 2017년 7월 29일(한국 기준 30일)에 열리는 UFC 214에 출전한다고 밝혔다! 최두호의 상대는 15위 바로 아래 수준의 안드레 필리. 그리고, 정찬성의 상대는 '''페더급 랭킹 3위의 [[리카르도 라마스]]'''이다. 정찬성과 라마스의 경기는 4월부터 각종 해외 종합 격투기 소식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 어느정도 예상되었었다. [[UFC]]에서 공식으로 정찬성의 상대가 라마스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각종 해외 격투기 소식에서 정찬성 vs 라마스가 성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고, 정찬성 본인도 라마스와 잘 싸우고 오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둘의 경기도 확정인 듯 하다. 드디어 5월 말, UFC에서 공식적으로 '''정찬성과 라마스의 경기'''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정찬성이 이번 경기에서 이길 경우 한 경기를 더 치루고 다시 다시 타이들전에 도전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정찬성이 6월 2일 오전, 열심히 연습하던 도중에 [[십자인대]]가 심하게 파열되면서, 라마스전이 취소되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출전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복귀전은 내년 하반기나 2019년이 되서야 가능할 전망이다. 라마스전을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무릎 상태까지 악화된다면 정찬성의 맷집이나 기량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더군다나 버뮤데즈 전 이후 어깨 부상이 재발하였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인 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격투기 팬들은 정찬성이 오래 걸리더라도 완치해서 다시 옥타곤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찬성이 생각보다 수술이 매우 잘 되어서 내년 상반기 복귀를 목표로 열심히 재활을 한다고 밝혔고, 마찬가지로 부상을 당한 최두호와 같이 "건강해져서 꼭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했을 팬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2018년 4월 말, 정찬성은 스완슨을 이긴 랭킹 3위의 '''[[프랭키 에드가]]'''와 붙고 싶다는 의사를 [[인스타그램]]에 표현했다. 정찬성이 복귀를 앞두고 상위 랭커를 콜한 것에 대해 환영한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부상으로 경기를 거의 뛰지도 않았으면서 뻔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 태종무열왕 . . . . 49회 일치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에 대해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어느 날 서악(西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 일이 있고 열흘 뒤인 정월 오기일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끊은 뒤 자신의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며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문희가 대신 나서서 옷을 꿰매 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서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김춘추가 문희와 정식으로 혼인하려 하지 않자 김유신은 "남편도 없는 것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다"며 곧 문희를 자신이 불태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고,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남산(南山)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서 뜰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발견한 여왕이 "저것은 무슨 연기인가?" 하고 묻자 옆에서 "아마도 유신이 제 누이를 불태우려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까닭을 묻는 여왕에게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고 묻는 옆에서, 마침 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여왕은 "너의 짓이구나. 당장 가서 구하라." 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ref group="주">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제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문희의 소생으로 무열왕의 장자인 [[문무왕]] 법민(法敏)이 태어난 것이 626년이라는 『문무대왕비』 기록에서 유추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이전의 일로 보인다. 이 경우 《삼국유사》가 전하는 김춘추의 혼인 에피소드가 있었을 당시 선덕여왕은 아직 즉위하기 전이었음에도 '왕'으로 표기한 《삼국유사》 기록은 모순이 생기게 된다.</ref><ref name="유사-기이1">《삼국유사》 권제1 기이 태종춘추공</ref>
김유신의 주도와 김춘추의 동조로 이루어진 정략적인 측면이 강했던 이 혼인을 통해,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진지왕계와 옛 금관가야계 귀족간에 정치 · 군사적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지왕계(김용춘 · 김춘추)는 김유신계의 군사적 능력을, 금관가야계([[김서현]] · 김유신)는 진지왕계의 정치적 위치를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상호 이익에 입각해 이루어진 정치적 결탁은 신라의 중고(中古) 왕실의 진골 귀족 내에서 하나의 신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성골]](聖骨)계로 대표되는 기존의 구 귀족집단의 견제와 반발을 받았다. 무열왕은 부계가 진지왕의 자손이고 모계가 진평왕의 자손으로 양쪽 모두가 왕족인 성골에 속했지만, 무열왕 이후 부계만이 왕족인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그를 상징적인 진골 최초의 임금으로 평가한다.{{출처|날짜=2018-06-29}}
고구려 뿐만 아니라 《일본서기》에는 [[고토쿠 천황]](孝德天皇) [[다이카]](大化) 3년([[647년]])에 김춘추가 왜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김춘추의 관등은 상신(上臣) [[대아찬]](大阿湌)으로 표기되어 있다.<ref name="일본서기-647">《일본서기》 권25 天萬豐日天皇 孝德天皇 大化 3년(647)</ref> 한편 신라에서는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 김유신에 의해 진압되고, 선덕여왕의 사망으로 진덕여왕이 옹립되었다. 춘추와 유신은 진덕여왕을 보위하여 정권을 완벽하게 장악하였다.<ref name="신라-647">《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1년(647)</ref>
이듬해인 [[648년]] 12월에 김춘추는 드디어 아들 [[김문왕|문왕]](文王)과 함께 직접 [[당나라|당]](唐)에 입조하였고<ref>《자치통감》 권199 唐紀十五太宗文武 貞觀 22년(648)</ref> [[당 태종|태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김춘추는 이곳에서 당의 [[국자감 (중국)|국학]](國學)을 방문하여 [[석전대제|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였으며, 신라의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했다. 당 태종으로부터 특진(特進)의 벼슬을 받고, 당에 체류하던 중에 태종의 호출로 사적으로 불려가 만나게 된 자리에서 김춘추는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조(天朝)를 섬긴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사온데, 백제가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해 왔습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폐하께서 천병(天兵)을 빌려주시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주시지 못한다면, 우리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요,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태종에게 원병 파병을 호소해, 태종의 허락을 받아냈다.<ref>《삼국사기》 [[:s:삼국사기/권05/진덕왕|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 “二年... 遣伊湌金春秋及其子文王朝唐 ... 嘗召燕見 賜以金帛尤厚 問曰 “卿有所懷乎” 春秋跪奏曰 “臣之本國 僻在海隅 伏事天朝 積有歲年 而百濟強猾 屢肆侵凌 況往年大擧深入 攻陷數十城 以塞朝宗之路 若陛下不借天兵 翦 除凶惡 則敝邑人民 盡爲所虜 則梯航述職 無復望矣” 太宗深然之 許以出師 春秋又請改其章服 以從中華制 於是 內出珍服 賜春秋及其從者 詔授春秋爲特進 文王爲左武衛將軍 (2년... 이찬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보내 당나라에 조공하였다. ... 어느날 [춘추를] 불러 사사로이 만나 금과 비단을 매우 후하게 주며 물었다. “경(卿)은 무슨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가?” 춘추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자(天子)의 조정을 섬긴 지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더욱이 지난 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개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희 나라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 군사의 출동을 허락하였다. 춘추는 또 장복(章服)을 고쳐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니, 이에 내전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 춘추와 그를 따라 온 사람에게 주었다. 조칙으로 춘추에게 관작을 주어 특진(特進)으로 삼고, 문왕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았다.”</ref>
귀국하는 김춘추에게 당 태종은 3품 이상의 관인들을 불러 송별연을 열었고, 『온탕비(溫湯碑)』 · 『진사비(晉祠碑)』의 글과 《[[진서]](晉書)》 한 질을 김춘추에게 하사하였으며 [[장안|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 밖까지 나아가 전송하였다. 앞의 서적들은 태종 자신이 직접 짓고 글씨도 쓴 것으로, 특히 《진서》는 당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맨 먼저 필사한 두 질 가운데 하나로서 태자(훗날의 [[당 고종]])와 김춘추에게 각각 내린 것이었다. 김춘추도 당으로부터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의 벼슬을 받은 아들 문왕을 숙위(宿衛)로서 당에 남겨두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춘추는 [[서해]]상에서 고구려 순라병에게 포착되어 나포될 위기에 처했으나, 함께 왔던 [[온군해]](溫君解)가 귀인의 관을 쓰고 배에 남아 고구려군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작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f name="신라-64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ref><ref>[[최치원]],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ref>
당에도 즉위를 알리는 사신을 파견하여, 무열왕 즉위년에 [[당 고종|고종]](高宗)으로부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신라왕의 책봉을 받았으며,<ref name="신라-654"/> 무열왕 2년(655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의 33개 성을 탈취하였음을 전하면서 구원을 요청하였고, 당은 3월, 영주도독(營州都督) [[정명진]](程名振)과 좌우위중랑장(左右衛中郞將)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ref name="신라-655"/> 또한 무열왕 3년([[656년]])에는 {{출처|날짜=2018-06-30|1=신라의 개국 공신인 사로 6촌장을 왕으로 추존하였고,}} 당에서 귀국한 김인문을 [[군주]](軍主)로 삼았으며, 가을 7월에는 김문왕을 다시 당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ref name="신라-656">《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3년(656)</ref> 귀국한 뒤 문왕은 무열왕 5년([[658년]]) 정월에 부왕으로부터 집사부의 [[중시]](中侍)로 임명되고,<ref name="신라-65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5년(658)</ref> 김인문도 무열왕 6년([[659년]]) 여름 4월에 백제를 치기 위한 원병 파병을 요청하는 사신으로서 당에 파견되는 등,<ref name="신라-65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6년(659)</ref> 친족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즉위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김유신에 대해서는 무열왕 7년([[660년]]) 정월에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해<ref name="신라-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왕권을 보다 전제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무열왕이 즉위하기 전의 상대등은 귀족들의 모임인 [[화백 회의]]의 대표자로서 왕권을 견제하는 존재이거나 왕위계승 경쟁자로서의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무열왕 이후 상대등을 왕이 임명함으로써 화백 회의는 혜공왕 이전까지 왕권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출처|날짜=2018-06-30}} 이러한 왕권을 바탕으로 무열왕은 고구려 및 백제와 본격적인 전쟁에 참여하였다.
백제를 무너뜨린 뒤, 당군 사령관 소정방은 9월 3일에 낭장(郎將) 유인원(劉仁願)이 이끄는 1만 군사만을 사비성에 남아서 지키게 하고, 포로로 잡은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의 왕족과 고위 신료, 1만 2천 명의 백제 백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갔다. 신라측 인사로 소정방과 동행한 것은 김인문과 사찬 김유돈(金儒敦), [[대나마]](大奈麻) 중지(中知) 등이었으며, 왕자 김인태(金仁泰)가 [[사찬]](沙湌) 일원(日原) · [[급찬]](級湌) 길나(吉那) 등이 신라군 7천 명을 데리고 유인원을 도와 사비성을 수비했다.<ref name="신라-660"/> 당에서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비롯한 5도독부를 설치하고, 웅진도독으로 왕문도(王文度)를 파견하여 9월 28일에 [[삼년산성]](三年山城)에서 무열왕을 만나 고종의 조서(詔書)를 전달하였는데, 예물을 주는 과정에서 왕문도는 급사(急死)하여 다른 사람이 대신 일을 마쳤다고 한다.<ref name="신라-660"/>
이미 의자왕이 항복한 뒤부터 백제 땅에서는 부흥군들이 일어나 신라 · 당군과 전쟁을 벌였으며, 고구려도 11월 1일에 [[칠중성]](七重城,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을 공격해 와서 군주 필부(匹夫)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백제 부흥군에 대한 공세에 나선 무열왕은 10월 9일에 태자 법민과 함께 여러 군사들을 인솔해 이례성(尒禮城)을 쳐서 18일에 함락시키고 인접한 백제의 20여 성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30일에는 사비성 남쪽 산마루에 있던 백제 부흥군을 공격해 1,500명의 목을 베었다.<ref name="신라-660"/> 11월 5일에는 계탄(雞灘)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을 공격해 7일에 함락시키고 7백 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리고 22일에 서라벌로 귀환해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앞서 황산벌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좌평]](佐平) 충상(忠常) · 상영(常英)에게 [[일길찬]](一吉湌) 관등을 주어 총관(總管)직을 맡기는 등 포로로 잡거나 항복해온 백제의 관료들도 처벌하지 않고 관직을 내리기도 하였다.<ref name="신라-660"/>
무덤 앞 동북쪽에는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비석의 몸돌 부분은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 부분만 남아있었으며, 이수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어 묘의 주인이 무열왕임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는 무열왕이 사망한 [[661년]]에 건립되었고, 비문의 글씨는 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이 썼다.<ref>이은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C%B4%EC%97%B4%EC%99%95%EB%A6%89&ridx=1&tot=165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태종 무열왕의 생애와 몇가지 사실에 대해서 통설과 전혀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다.
* 《삼국사기》를 비롯한 전통적인 사료의 기록 및 해석에서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의 다른 이름이 용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용춘과 용수는 서로 다른 인물이자 진지왕을 아버지로 둔 형제이며, 동생인 용춘이 천명공주와 혼인하여 춘추를 낳았으나 용춘이 먼저 사망하자 다시 용수와 재혼하여 춘추는 용수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나온다.<ref name="multiple">{{서적 인용 | 제목 = 화랑세기 | 저자 = 김대문 |역주 = 이종욱 | 출판사 = 소나무 | 발행년도 = 2005 | 관련쪽 = 225 | id = {{ISBN|89-7139-546-X}} 93910 }}</ref> 다만 『황룡사중수기』에는 용춘이 《화랑세기》의 기록과 달리 후대에도 생존해 있는 상태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화랑세기》 위서론의 중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화랑세기#용수 문제]] 참조).
*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12대 풍월주 보리공(菩利公)의 딸 보룡(寶龍)과의 사이에서 아들 당원전군(幢元殿君)과 딸 여씨(呂氏)를 두었고, 문명왕후와의 사이에서도 선원전군(仙元殿君)이라는 아들이 더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무열왕은 문희와 혼인하기 이전에 이미 [[보종]]과 양명공주의 딸 [[보라궁주]](寶羅宮主) 설씨와 결혼했으며, 처음 문희는 측실로 혼인하였으나 보라궁주의 요절로 문희가 정실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문희의 언니인 보희와의 사이에도 지원(知元)이라는 왕자가 있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들 왕자의 실존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성덕왕]](聖德王)은 태종 무열왕의 명복을 빌고자 [[봉덕사]](奉德寺)를 지었으며,<ref name="유사-성덕왕">《삼국유사》 권제2 기이 성덕왕</ref> [[혜공왕]](惠恭王)은 오묘(五廟)를 정하면서 김씨로서 처음으로 왕이 된 [[미추왕]](味鄒王)과 더불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을 대대로 헐지 않는 신주(世世不毁之宗)로 삼았고,<ref>《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祭祀)</ref> 이것은 [[애장왕]] 2년([[801년]])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만 따로 떼어 모시는 사당을 지어 신주를 옮길 때까지 계속되었다.<ref>《삼국사기》 권제10 신라본기 제10 애장왕 2년(801)</ref> 9세기 중엽 신라의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郞慧和尙白月普光塔碑)』([[890년]]경 건립)에서 무열왕의 8세 손으로 당에 유학하여 불법을 배우고 돌아온 승려 [[낭혜화상]]의 행적과 무열왕의 업적을 교차대비시켜 "이때(태종 무열왕의 입당 후 귀국)부터 우리는 한 번 변하여 [[노나라]]가 되었다(自玆吾土一變至於魯)", "두 적국(敵國)을 평정하고 문명에 접하게 하여 주셨다(平二敵國俾人變外飭)"고 하여 태종 무열왕이 신라 국내의 제도를 당풍으로 개편하여 '문명화'시키고, 당시 신라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적국으로 여겨지던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여 평화를 가져왔다고 찬양하였으며, 또한 [[진성여왕]] 7년([[893년]])에 당의 태사시중에게 보내는 글에서 옛날 고구려와 백제의 강성함과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그 직후 무열왕이 당으로 들어가 수교를 맺고 원병을 청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과 이후 고구려의 유민들에 의해 세워진 [[발해]]와 당, 신라의 충돌 등의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3백여 년 동안 한쪽 지방은 무사하고 넓은 바다가 편안한 것은 곧 우리 무열대왕의 공로"라고까지 평가하였다. [[고려]]나 [[조선]]의 유학자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고 식민지배하에 놓이면서, 기존의 한국 역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태종 무열왕은 외세를 끌어들어 민족사적 강역을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을사늑약]]을 비판하여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기고하기도 했던 [[장지연]]은 김춘추가 당병을 이끌어 동족(백제와 고구려)을 친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국 역사는 천여 년을 외국의 사상에 이끌려 다니며 자국의 위풍을 멸하고 타인의 위세가 늘어나게 되었다고 비판하였고 이것이 한국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 요인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ref>"新羅武烈王及金庾信이 能討滅麗濟고 統合邦土니 其 功烈이 可謂嵬矣나 驅唐兵而狀吾同族이 豈足謂能事哉아 因此而啓千餘年依賴外國之思想야 滅自國之威風고 增他人之勢力니 嗚乎라 此ㅣ 依賴之癮이 所以爲不能團合之第三病根也오." [[1906년]] 11월 25일자 《대한자강회월보》 제5호, 「團體然後民族可保」</ref>
[[신채호]]는 민족주의적 견지에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다 똑같이 '신성한 부여족', 즉 '조선 한민족의 형제'라 부르며, 당과 손을 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친 김춘추(태종 무열왕)의 행동을 “도적을 끌어들여 형제를 죽인” 격으로, “다른 민족을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 백제를 없앤 역사의 죄인”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특히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4천 년간의 민족사는 [[부여족]] 소장성쇠(消長盛衰)의 역사라 하여 [[부여족]]이 주족이라는 인식하에 긍정적으로 평가되던 ‘[[삼국통일]]’의 대업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비판해 [[김유신]](金庾信)·[[김춘추]](金春秋) 및 [[김부식]](金富軾)의 공죄(功罪)를 논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를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보았기 때문이다.<ref>신채호, [[:s:ko:독사신론#제9장 김춘추의 功罪|〈독사신론〉 제9장 김춘추의 功罪]] 《대한매일신보》</ref>
[[남북국 시대]]론을 지지하였으며 《조선상고사감》을 저술하기도 했던 [[안재홍]]도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 것은 [[평양]]이나 [[관북]] 일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북방 영토를 방기한 데다 당의 명령을 빌어 외세의 힘을 이용한 [[신라]]의 행동에서 후세 역사에 등장한 소위 '[[사대주의]]'의 대부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평하였다.<ref>"新羅가 唐을 聯하야 麗濟를 깨뜨리매 渤海가 北方에서 再興하야 비록 南北朝 200년의 歷史를 나타내엇스나 分裂의 形勢는 드듸어 나흘 수가 업섯고 朝鮮의 勢力은 더욱 減殺됨이 잇섯다. 金庚信이 太宗 武烈王을 도아 統三의 業을 이루엇다 하지마는 당시의 記錄은 平壤이 오히려 茂草를 悲嘆하엿고 關北의 地 太半 荒廢하엿슴을 전하엿다. 하물며 唐의 誥命을 빌고 그의 節度에 應하는 등 外力을 이용하는 後世 所謂 事大政策은 이때부터 大部이나 作俑된 觀이 만타." 1926년 7월 1일자 〈[[개벽 (잡지)|개벽]]〉 제71호 「한양조 5백년 총평(漢陽朝五百年總評)」</ref>
[[1993년]] [[성균관대학교]]의 김영하 교수는 [[천리장성]]의 예를 들어 축소된 강역으로 [[만주]]의 요동땅을 밟지못하고 고토를 잃고 살다가 [[조선]]에 와서야 겨우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를 내놓으면서 당의 [[한반도]] 경략에 발맞추어 외세와의 공조로 [[백제]]만을 겨우 정복한 [[신라]]는 "통일을 완수할 힘도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고 '통일신라 시대' 대신에 '신라와 발해' 내지는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구당서]]》 등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이 서로 말과 풍속이 같았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를 '동류'로 파악하는 의식이 있었을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부여]] 계열인 고구려, 백제<ref group="주">토착세력은 [[삼한]] 중 [[마한]] 계열</ref>와 [[삼한]](三韓) 중 [[진한]] 및 [[변한]]([[가야]]) 계열인 신라는 시조 신화나 제사, 정치 체계 및 혼인풍속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었고, 특히 수백년에 걸쳐 계속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특화된 이질성과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적대감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다. 4세기 백제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는 당시 백제와 대립하고 있던 고구려와 연대했지만,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5세기 후반에는 다시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서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나제동맹 역시 552년 한강 유역을 둘러싼 갈등으로 파탄났으며, [[554년]] 백제의 [[성왕]]이 신라의 매복에 걸려 전사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642년]] 김춘추와 연개소문 사이의 교섭은, 신라에게 [[죽령]] 이북의 [[한강]] 유역 전체를 내놓고 현재의 [[영남]] 지역에 국한된 약소국으로 남기를 요구하는 고구려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한강 유역<ref group="주">현재의 [[경기도]], [[강원도 (남)|강원도]] 및 [[충청북도]] [[충주]]권</ref>을 잃으면 패망을 면할 수 없다는 신라 지배자들의 인식이 타협의 여지 없이 상충되어 결렬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에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춘추의 선택은 그가 현대 [[한국인]]이 아닌 고대 [[신라]]인, 그것도 신라의 지배자였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하이큐!!/등장인물 . . . . 49회 일치
== 시라토리자와 학원(白鳥沢 学園) ==
기본적으로 전국 8강에는 들어간다고 언급될 정도의 강호 학교. 전국대회 단골 출장 학교로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다테 공업 고교]]를 영원한 [[콩라인]]으로 밀어냈다. 다만 작중 시점에서 5년 전, [[카라스노 고교]]에게 밀려 딱 한 번 전국대회 진출을 못 했던 모양.
[[카게야마 토비오]]가 이 학교를 일반 입시로 가려고 했으나 떨어져서, [[히나타 쇼요]]에게서는 그냥 '''카게야마가 떨어진 학교'''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시라토리자와 학원은 일반 입시도 어렵다고. * 3학년
* [[우시지마 와카토시]] (WS) 주장
초고교급 에이스. 압도적인 파워와 높이를 가졌다. 통칭 '''우시와카''' ~~히나타에게서는 재팬이라 불렸다~~
일본 고교 선수들 중 베스트 3 안에 들고, 미야기 현에선 혼자서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다. 관동의 선수들도 '우시와카'의 이름은 알고 있을 정도. 카라스노가 봄 배구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상대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는 중등부 시절 부터 악연의 상대였다. 라이트 자리에서 각도 내기에 적합한 왼손잡이 공격수.
기본적으로 진중한 성격이나, 말을 생각하고 하는 편이 아니라서 우시와카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 속을 긁는 때가 있다.[* 봄 배구 선발전 직전 화장실에서 만난 오이카와에게 "너에겐 고교 마지막 대회겠네 건투를 빈다."라고 말한다. 빈정이 상한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전국대회 갈거니까 마지막이 아니다!"라고 받아치자. "? 전국에 갈 수 있는 건 한 팀인데.(우리 팀이 나가는데 너희가 어떻게...?)"라고 말하며 또 다시 속을 긁어댄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왈 "비꼬려고 말하는게 아니라서 더 열받아...."] 쉽게 말해서 엘리트의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언더독의 기분을 이해 못하는 [[눈새]]다. 이런 성향은 우연히 만난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게 오이카와를 평가하며 은연 중에 드러나는데 '''"우수한 모종에는 그에 알맞은 토양이 있으며, 메마른 땅에서는 훌륭한 열매가 자라지 않는다."'''고 말하며 ~~농부?~~콘크리트 출신 두명을 자극했었다.
* 카와니시 타이치 (MB) 12번 188cm
* 토와다 요시키 (WS)
* 타자와 (WS)
== 카쿠가와 학원(角川学園 高校) ==
봄고 대회 카라스노의 2회전 상대. 무려 201cm나 되는 1학년 햐쿠자와의 존재로 인해 떠들썩했던 팀이다. 25-22, 25-19의 스트레이트로 카라스노에게 패했다.
* 누루카와 (MB)
* 햐쿠자와 유다이 (WS)
== 와쿠타니미나미 고교(和久谷南 高校) ==
수비와 연계플레이가 특기이다. 높이는 높지는 않지만 리시브는 끈질기다.
* 카와타비 (WS)
- 오늘의 추천 상품은 달걀 1팩에 99엔짜리와 돼지 삼겹살 100g 98엔!
* 우치자와 세탁소 (우치자와 히데노리)
남자 배구부와 다른 체육관을 사용한다. 제 1체육관을 농구부와 코트를 반으로 나누어 쓰고 있는 중.
- 김윤아(1974) . . . . 48회 일치
'''이소라와 함께 90년대와 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여성 보컬이자, 홍대 인디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수.'''[* 김윤아의 보컬이 워낙 매력적이고 장르 폭이 넓으면서, 카랑카랑한 매력적인 보컬을 가졌기에 많은 후대 여성 보컬을 가진 밴드들이 김윤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응당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록밴드]] '''[[자우림]]'''의 [[보컬리스트]].[* 공연이나 앨범에서 키보드와 기타를 맡는 경우도 있다.] 솔로 [[여자 가수]]. 별명 중 하나로 '우림 언니'가 있다. [[자우림]] 멤버 중에서도 '''독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름이 '자우림'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붙여진 별명이다. [[SNL 코리아]] 시즌4 32회 자우림 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ETtn2ZgUV58&feature=youtu.be&t=2m27s|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 본래는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아동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심리학과에 입학한다.]에 입학한 93년 '풀카운트'라는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밴드활동을 시작하는데, 당시 풀카운트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구태훈과 처음 알게 된다. 이후 여러 밴드들을 거치다가 96년 김진만을 알게되고 97년 이선규와 김진만과 '미운오리'를 결성, 홍대 인근에서 활동한다. 이후 무대 디자인 일을 하고 있던 구태훈이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하면서 최종 4인의 '미운오리'가 결성된다. 97년 4월 홍대클럽 "블루데빌"에서 공연하던 중 영화 관계자에 발탁되어 <꽃을 든 남자> OST 'Hey Hey Hey'로 데뷔했다. 자우림이라는 이름은 이때 지은 것. 별 생각 없이 지은 '미운오리'라는 이름이 막상 CD 자켓에 넣으려니 부끄러워서 하룻밤을 새서 지었다고.
솔로곡은 왠지 모르게 자우림 이상으로 어둡거나 무시무시한 곡인 경우가 많다. 본인이 말하길 자우림 보컬로서의 김윤아는 자신보다 어리고 더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자 성별도 중성에 가깝다고 한다. 반면 솔로 앨범에서의 김윤아는 실제와 가까우며 여성스럽고 어두운 편이다. 창법도 조금 다르다. 자우림에서의 김윤아가 음정이 나가거나 삑사리가 나는 것에 개의치 않고 화끈하게 불러버리는 락커라면 솔로가수 김윤아는 목소리 자체를 섬세하게 컨트롤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기본적으로는 [[두성]]에 [[비음]]을 약간 섞어 사용한다. [[중성]]에서 [[가성]]으로 넘어가는 소위 '꺾기' 창법 역시 자주 사용한다.[* 어렸을 때 [[요들송]]을 배웠던 적이 있다고 하며 그 때문에 이 꺾기를 매우 쉽게 사용한다고 한다.] 벨칸토 식 성악창법과 락 창법도 사용한다. [[비성]]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지지만 비음을 사용하지 않고 진성으로 부르는 곡도 많다. '''곡마다, 아니 곡 안에서도 창법을 계속 바꿀 수 있는[* 곡 중간에 창법을 바꾼다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 프로급 보컬들은 최소한 성대접촉은 조절해 창법을 바꿔가며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해야 노래의 강약조절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들은 김윤아와 달리 일반인들이 직감적으로 느낄 정도로 크게 변화시키지를 않는다. 창법변화를 크게주다가 잘못하면 창법을 변화하는 중간중간에 이질감때문에 곡의 분위기를 깨버리기 때문. 이렇기때문에 김윤아는 서로 이질감이 들 수 있는 창법을 조화시키며 노래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창법을 구사한다고 인정 받는다. 또한 김윤아는 그 창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색깔을 드러내는, 즉 온전한 자기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보컬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창법변화를 주는 것은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라서 호불호가 있고, 그러다보니 표현이 작위적이라고 말하거나 자의식과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쨋건 저런 김윤아식 보컬스타일은 유니크하며 인정받을만 한 것임이 틀림없다.] 드문 보컬리스트.''' 기본적으로는 락 보컬리스트이지만 리듬감을 강조하는 R&B나 [[블루스]] 기반의 노래도 꽤 많다. 예컨대 '나비' 같은 곡들.
다른 가수에게 곡을 써주는 일이 매우 드물다. [[박정현]] 앨범 중에 작사를 2곡 해주었고 [[김경호]]와 동갑내기 친구 임현정의 앨범에서 작사를 1곡씩 해주었다. --유일하게-- 작곡까지 하고 편곡까지 한 경우는 [[장나라]]의 3집 앨범 수록곡인 '키키'이다. 2015년 7월에는 슈퍼주니어의 10주년 앨범에 Rock'n Shine을 작사/작곡/편곡 해주었다.[* 원래 제목은 슈퍼 매직 파워라고 전해진다][[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310|곡을 주게 된 계기]]
[[본인]]을 포함한 자우림 멤버들(김윤아, 이선규, 김진만, 구태훈)이 만든 것이 아닌, 즉 자우림의 자작곡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아서 부른 경우도 정말 드물다. 특히 김윤아 솔로 2, 3집에는 모든 곡의 크레딧에 김윤아 작사/작곡이 붙어있다. 1집의 경우도 민요 '파랑새'와 영화 OST '봄날은 간다'를 빼면 모두 김윤아 작사/작곡. 김윤아 솔로 1집에 들어있는 [[파랑새]]는 작자미상의 민요, [[봄날은 간다]]는 [[마츠토야 유미]]의 곡이다.
영화와 인연이 많은 편이다. 일단 자우림과 솔로 모두 영화 OST로 데뷔했다.
2005년 [[10.26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심수봉]]을 모티브로 한 초대 가수 역을 연기했으며 여기서 [[엔카]]인 [[기타노 야도카라]]를 하도 맛깔나게 불러서 역시 김윤아라는 찬사를 받았다.[[https://www.youtube.com/watch?v=GTHtKv4KgF8|극중 즉석에서 부른 기타노 야도카라]] 더 무서운 점은 김윤아는 따로 녹음을 하지 않고 '''촬영 현장에서 그냥 즉석에서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기타노 야도카라를 불렀다는 것은 영화의 창작. 심수봉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엔카인 [[가나시이 사케]](가수 [[미소라 히바리]])를 불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를 듣고 "어디서 일본 애를 데려왔냐"며 크게 화를 냈다고.] 덕분에 영화 OST에선 수록되지 못했다(...). 5집을 발표하던 시기와 맞물려 후속곡 'Truth'의 뮤직 비디오가 [[그때 그 사람들]] 세트에서 진행되었다. 영화 화면을 편집한 것은 아니고 같은 세트에서 따로 촬영했고 [[백윤식]]이 출연해주었다.
엄한 아버지께 답답할 정도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명절에 굴전을 부치다가 실수로 태워먹어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매를 굵기별로 목공소에 가서 맞추고, 대학 시절에도 통금이 8시였다고.] 지금도 '''예의범절을 매우 중요시하며,'''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어린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한다. 또 파격적인 가사들과는 달리, 규칙적인 바른생활을 한다고 한다. 2011년 라디오에서 '일탈'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일탈을 싫어하고, 내가 한 일탈은 기껏해야 대학생 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삭발]]한 정도"라고….~~응??~~[* 출처는 [[2011년]] [[9월 16일]] [[붐(연예인)|붐]]의 영스트리트.]
2006년 6월 13일 2세 아래의 [[치과의사]] 겸 VJ 김형규와 결혼했다. 2007년 10월 21일 아들 김민재[* 애칭은 프린스 MJ. 김윤아 솔로 3집의 '에뜨왈르'가 바로 아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출산]]하였다. 이 때문에 항간에서 말하길 팬들을 모조리 우울증에 던져놓고 혼자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고... 김형규가 당시 수염을 기르기도 했기에 "털규가 여신을 가로챘다" 고 한탄하기도 했다.
2008년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KMF]]에서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쥬얼리]]와 합동 공연을 했다. 두 팀의 공연 이후 마무리로 등장, 여왕님 버전으로 '매직 카펫 라이드' 를 불러 무대를 먹어치웠다.[[http://www.youtube.com/watch?v=zBiTAub4K3c|MKMF 브아걸, 쥬얼리, 자우림 합동 공연]] [[브라운 아이드 걸스|브아걸]], [[쥬얼리]] 등 단독으로 놓아도 뛰어난 팀들이 순식간에 들러리로 전락하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연출했다. 사실 브아걸이나 쥬얼리는 연습 시간이 짧았던지 가사를 계속 틀리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리고 사실 브아걸과 쥬얼리의 공연은 립싱크였고. ~~립싱크인데 가사를 틀릴 수 있나?~~ 하지만 이 공연에는 문제가 있었으니... 쓸데없이 많은 백댄서들과 김윤아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 3명이 묻히는 등 여러 문제가 많았다.
2009년에도 방송에서 '하하하쏭'으로 [[아이돌]]을 모아놓고 보컬 강습(?)을 한 경력이 있다. [[http://youtu.be/2r55SFgzjNI|링크]] 참고로, 이 영상의 제목은 '''자우림 레전설 (부제: 김윤아의 아이돌 학살사건)'''(...)이다. 남자들이야 키가 안 맞아서 그렇다고 실드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안습]]은 빅뱅의 승리~~ 여자 가수들은 [[지못미]].[* 사실, 자우림의 노래는 원래 다른 가수들이 커버하기가 힘든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윤아가 강습하는 와중에 혼자 살아남은 [[케이윌]]과 김경록...--
2011년에는 비슷한 (약 10년의 세대차이는 있지만) '홍대 마녀'라는 별명을 가진 [[오지은(가수)|오지은]]과 한 음악프로그램에서 듀엣곡을 부른 적이 있다. 김윤아의 'Tango Of 2'[[http://www.youtube.com/watch?v=GRLEsw3amJI|링크]][* 김윤아 1집 수록. 본래는 [[유앤미블루]]의 방준석과의 듀엣곡이다. 1절은 [[한국어]], 2절은 [[스페인어]]로 된 곡인데, 오지은의 전공을 살려 고른 노래인 듯.][* 노래를 부르고 김윤아가 "역시 전공자는 뭐가 다르군요"라는 멘트를 치자 오지은이 "전국에 계실 진짜 전공자 분들께 미안하다"라고 하기도.]와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따로따로 진행된 김윤아와 오지은의 무대는 각각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무대였다. 오지은은 아주 좋아하는 무대라며 트위터에 올렸을 정도. [[https://twitter.com/heaventomorrow/status/756530445878038528|링크]]
남동생 김윤일도 잠시 가수 활동을 했었다. 1998년 O.N.SCHOOL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빅뱅'이라는 노래가 그런대로 알려졌을 뿐 더 이상의 활동은 이어가지 못했지만 2001년 김윤아 1집 수록곡 'Blue Christmas (Korean version)'에서 김윤아와 듀엣을 하기도 하였고 2011년 자우림이 나는 가수다에서 경연을 할 때 '재즈 카페'나 '아브라카다브라'등의 무대에서 피처링을 하였다. 지금도 여러 자우림 무대에서 코러스와 기타를 맡아 도와주고 있는 중. --남동생도 잘생겼다--
만화를 [[오마주]]한 경우도 많은데 자우림 1집의 앨범명인 퍼플하트는 그 당시 매니아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으며 연재되던 [[강경옥(만화가)|강경옥]]의 만화와 제목이 똑같다.[* 덧붙여 김윤아와 강경옥은 사적으로 아는 사이이다. 지금은 사라진 강경옥의 홈페이지에 같이 식사했다는 글도 올라왔고, '설희' 1권에서 설희가 자우림의 '일탈'을 부르는데 이를 작가 본인이 언급한 적도 있다.[[http://blog.naver.com/kko314/10088861281?viewType=pc|#]]] 솔로앨범 2집의 제목 '[[유리가면]]'은 만화를 좋아하는 매니아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일본만화와 제목이 똑같다. [[엠넷]]에서 진행했던 '마담B의 살롱'은 [[권교정]]의 '마담 베리의 살롱'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학생 때 나우누리 만화동호회에서 활동을 했던건 팬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 방송에서 김윤아의 집을 촬영가면 방에 들어가면 언제나 남편 김형규와 그녀의 덕질의 산물이 카메라를 한가득...
사실 남편인 김형규도 [[덕질]]로 만난 사이다. 김윤아는 [[뉴타입(잡지)]] 한국판 창간부터 만화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다가 일신상의 이유로 그만 두게 되면서 그 지면을 김형규가 이어받아 연재하게 되었는데 칼럼의 전임자와 후임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 소장한 만화를 보면서 덕력에 감탄하고 교류하다가 그게 데이트가 되고 결혼까지......[[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0805|#]] 김형규 씨도 만만치 않은 오덕후인데, [[치과대학]] 본고사 때 문제 중 하나를 [[슈퍼닥터 K]]에서 본 내용 때문에 풀 수 있었고, 면접 때 교수가 문제를 어떻게 풀수 있었는지 질문하자 책 제목을 언급했다고 한다. [[http://acomics.co.kr/archives/16578|#]]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남편 김형규가 출연하면서 김윤아의 취향도 함께 공개되었는데 음악, 요리 관련 만화와 작가로는 [[권교정]]을 좋아한다고 한다. 김윤아의 만화책장에 꽂혀있는 만화책 중에는 [[요츠바랑]], [[베르세르크]], [[유시진]]의 '온' 등이 있었다. 방송에서 말하기로는 자기보다 만화책을 많이 가진 사람은 김형규가 처음이었다고. 김윤아가 소장한 만화책은 1,500권 정도라고 한다. 자신은 실용주의라서 볼 책만 사고 보지 않는 책은 집안에 두지 않으며, 거기다가 더럽기까지 하면 더더욱 두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김형규가 박스에 모아둔 상태가 좋지 않은 책들은 조만간 숙청하겠다고...
김윤아는 안정적인 중저음역대와 화려한 보컬 연기, 훌륭한 작사/작곡 실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로 명성을 높였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47회 일치
아버지의 후광으로 떴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하정우라는 예명을 썼다고 한다.[* 배우를 비롯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흔한 일이다. 하정우만 하더라도 부친과 같이 전원일기에 출연하여 형제로 설정되고 동시에 모교 교수인 [[유인촌]]의 아들 유대식도 같은 이유로 남윤호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가정 배경을 숨겼고, [[스티븐 킹]]의 아들 조지프 킹도 조 힐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정우라는 예명은 원래 배우 [[김성수(배우)|김성수]]가 가수인 쿨의 김성수와 동명이인인 것 때문에 쓰려고 준비하다가[* 이 부분은 김성수가 해피투게더에서 직접 얘기한 적도 있고, 하정우가 무릎팍도사와 힐링캠프에서도 직접 얘기한 적 있다.] 예명을 쓰지 않게 되어 얻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아버지 김용건과 함께 여러 예명을 연구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하정우라는 예명을 듣고 괜찮다고 생각하여 바로 결정했다고 한다. 처음에 김용건이 추천해 줬던 예명은 성만 바꾼 '금성훈'. --[[금성무|이 분?]]-- [[2005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조연으로 출연할 당시에도 중견 탤런트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지만, 아주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다. [[2008년]] 《[[추격자]]》로 인지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점이 대중들에게 널리 부각된다.
처음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춘 건 [[2002년]]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이고, 드라마 데뷔는 [[2003년]]의 [[사극]] 《[[무인시대]]》에서 [[이의민]]의 아들이자 3류 악역인 이지광 역이었다. 이 역할이 스타로 거듭난 지금의 하정우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시청자들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충공깽]]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여기서도 닭백숙 먹는 연기가 일품이다. [[무인시대]] 항목 참조. 그리고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과 배우를 연결하면 아주 재미있어진다.] [[영화]]에 처음 출연한 건 [[조인성]]이 주연했던 [[2002년]] 영화 《[[마들렌]]》이다.
이처럼 연기력은 좋은데 이상하게 조명받기 힘든 배역만 도맡다가 [[2005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동시 출연하면서 서서히 인지도를 올리게 된다. 특히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말년병장]] 연기는 아직까지 인터넷에서 [[플짤]]로 돌아다닐 정도다. 하지만 인지도가 올랐어도 그렇게까지 주목받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 해인 [[2008년]] 영화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드라마 《히트》와 영화 《추격자》는 둘 다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하정우는 《히트》에서는 검사 역을, 《추격자》에선 반대로 살인마 역을 맡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실제 사건에 대한 분위기가 흡사하게 조성된 《추격자》와 달리 《히트》는 경찰, 검찰과 범죄자의 심리 싸움 등이 주된 서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그냥 유영철 사건에서의 모티브만 따온 것이고 내용이나 분위기나 인물들 자체가 실제 사건과는 차이가 많이 있어 그렇게 유영철 사건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은 아니다.] 《추격자》는 하정우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엄중호 역할이었던 [[김윤석]]도 살벌한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연기인지 실제인지도 모를 무아지경의 장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지영민이 중호에게 쫓기며 한밤중 골목길 추격전을 벌이다 코너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장면은 원래는 NG였는데 너무 리얼했던 나머지 [[나홍진]] 감독이 그 장면을 버리지 않고 그냥 썼다는 일화는 상당히 유명하다. 이렇게 영화는 성공했지만, 그 덕(?)에 험악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돼 고생 좀 했다고 한다...[* 실제 살인마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사실 브라운관의 악역 역할을 맡는 배우들이 시장에서 험한(?) 꼴 당한다더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세계 어디서나 다반사다.] 주변에서 연쇄살인마 역할을 맡는 것을 말렸으나 전작 《프라하의 연인》에서의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싫어서 이 역할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이어 개봉한 영화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에서 주연을 맡아 찌질한 [[호스트]]를 연기한 것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추격자》의 촬영기간이 길어지면서 3주 정도 《비스티 보이즈》와 촬영기간이 겹쳤다고 한다). 그 후 개봉한 영화 《[[멋진 하루]]》에서는 넉살 좋고 낙천적인 백수 조병운 역을 맡아 발랄함과 능글맞은 특유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2015년 한 인터뷰에서 하정우의 영화 《멋진 하루》를 가장 좋아한다며 이윤기 감독과 하정우가 만든 조병운이라는 캐릭터는 한국 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남성 캐릭터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최민식]]의 항렬상 조카뻘 되는 [[조직폭력배]] 두목 역으로 나와 유들유들하면서도 가족마저 내칠 수 있는 비정한 역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흥행에 성공하였다. 영화 막판 클라이맥스신을 보면 정말 사람 잡을 듯한 눈빛을 하고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 개봉작 《러브픽션》에서도 [[공효진]]과 함께 주인공을 맡아 --찌질한 먹물-- B급 글쟁이 역으로 호연, 이제는 로맨스 코미디로도 연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2014년]] 다시 한 번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백정 돌무치로 변신해 머리까지 밀고 열연하였지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2015년]] 1월 하정우의 두 번째 연출작인 《[[허삼관]]》이 개봉했지만 여러가지 평가 속에서 흥행하지 못하였고, 7월 영화 《[[암살(2015)|암살]]》에서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 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으며 데뷔 후 첫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되었다.
2017년 12월 20일에 개봉한 《[[신과함께(영화)]]》에서는 저승사자 강림 역을 맡았다. 주호민 만화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함께(영화)]]》는 그의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되었다. 2017년 12월 27일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1987(영화)|1987]]》에서 검사 역할도 맡았다. 황해 이후 오랜만에 [[김윤석]]과 호흡을 맞추고, [[유해진]], [[강동원]], [[김태리]]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영화 《[[신과함께(영화)|신과함께]]》와 개봉 시기가 비슷하여, 그의 영화 두 편이 동시에 영화관에 걸리게 되었다. --하정우 대 하정우-- 이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1987(영화)|1987]] 촬영이 끝난 뒤에는 [[더 테러 라이브]]의 감독 김병우와 함께하는 두 번째 작품 PMC 촬영에 들어갔다. 이번 영화에서는 [[이선균]]과 함께 출연해 연기한다. 하정우의 대사 중 80%가 영어 대사라고 하여 기대감을 모으는 중이다. 2018년 여름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영화)|베를린]]》 후속도 시나리오 작업 중이며, 한 인터뷰에서 아직 밝히지 않은 한 작품이 더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현재 [[신과함께-죄와 벌]]과 [[1987(영화)|1987]]이 동시에 흥행하면서 약 2,10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단숨에 누적 관객수 9,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한국 영화]] [[배우]] 누적 관객수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18년]] 8월, [[신과함께-인과 연]]이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나가며 개봉 6일 차인 8월 6일, 만 40세로 역대 최연소 1억 관객 돌파 기록을 세웠다. 주연작만 계산하면 [[송강호]]에 이어 역대 두 번째 1억 관객 돌파 기록이며, 주조연작을 포함하면 역대 다섯 번째 1억 관객 돌파 기록, 전체 동원 관객 수 5위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판타지오]] 소속으로 활동해 왔으나 2016년 10월에 계약 만료 후 2017년 1월에 아티스트 컴퍼니와 새로 계약했으며, 아티스트 컴퍼니의 지분을 일부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10월에 결별 소식이 떴으며, 독자적으로 회사를 차려서 활동한다고 한다.
하정우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역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연기력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의 에이스 병장에서부터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의 양아치 [[호스트바|호스트]], 《[[추격자]]》의 냉혹무비한 [[연쇄살인마]], 《[[국가대표]]》의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 스키점프 선수, 《[[황해]]》의 조선족, 《[[의뢰인]]》의 변호사,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조폭과 《러브픽션》의 찌질한 소설가, 《[[베를린(영화)|베를린]]》의 비밀요원, 《[[더 테러 라이브]]》의 오만하고 가식적인 앵커, 《[[허삼관]]》속 아버지와 《[[암살(2015)|암살]]》의 낭만자객 하와이 피스톨, 《[[터널(영화)|터널]]》의 자동차 딜러까지 전혀 다른 배역을 위화감없이 소화해낸다. 연기력만으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다.
특히 하정우의 배우로서의 진가는 '용서 받지 못한 자' , '멋진 하루', '비스티 보이즈'와 같이 맡은 캐릭터가 능청스럽고 능글맞을 때 빛을 발한다. 하정우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여유로운 화술과 함께 캐릭터 역시 상당히 입체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작가 혹은 연출자의 디렉팅인지, 아니면 하정우만의 개성인지는 모르나, 가끔 출연하는 예능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보이는 평소 하정우의 모습을 보았을 때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너 오늘 밤 피살 될 줄 알아." ~~'그러면 도와줄 수가 없어'가 역대급~~
[[2011년]] 연말,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2011년]] [[5월]]에 열린 제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작년도 수상자로서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와서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되면 국토대장정을 떠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황해(영화)|황해]]> 하정우.'''' 라고 발표하며 어색하게 웃었고 '''진짜로 갔다.'''[* 이 당시 그와 함께 시상자로 참가했던 [[하지원]]은 그 이후로 공약에 대해서 묻지 않는단다. ~~하정우처럼 했다 또 그러면?? 그 땐 하지원도 가야지.~~]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국토대장정 하는 소재로 --반쯤 다큐인 영화-- '577 프로젝트'가 [[2012년]] [[8월 30일]]에 개봉했다. 제목이 지어진 배경은 이 프로젝트를 --작당-- 계획한 장소가 압구정의 '577술집'[* [[영화]]에서도 회의 장소로 나온다. 하정우의 단골집이기도 하다.]이기 때문.--577km 아니었어?--
'''[[카이저 소제|일단 밥은 먹어야겠다며 목발을 던지고 성큼성큼 식당으로 다시 들어왔다.]]''' 처음부터 '''하정우와 짜고''' 둘이서 2중 [[몰카]]를 계획한 것. 사실 한성천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화장실에서 하정우한테 줘터지는 후임병으로 출연했던 '''배우'''였고, 이후 '[[더 테러 라이브]]'에서 [[PD(방송)|PD]] 역으로 '하정우'와 같이 출연했다. 그리고 하정우 주연의 [[터널(영화)|터널]]에서도 [[드론]] 기술자로 잠깐 출연하였다.
하정우 라이트 팬이 신분을 속이고 친구 대신 다녀온 캠프 인증글이 디시인사이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에 올라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각종 사이트로 배달되며 화제가 된 사건. 하정우가 더 테러 라이브, 군도 촬영 전 팬미팅 성격의 캠프를 주최하였다. 하정우와 정경호를 비롯한 후배들 대거 참여(전날 롤러코스터 크랭크업을 했다고) 피의 선착순 댓글을 뚫고 캠프에 당첨된 하정우 팬 80명은 경기도 모처 살얼음이 낀 논두렁 위에서 팀을 나누어 단체 티셔츠를 입은 후 각종 게임을 하였다. 퀴즈 1등 상품은 하정우 그림액자(하정우가 직접 시상). 참가 후기에 따르면 하정우는 동네 형과 싱크로율이 100%라는 이야기가.. 본인이 질식할 만큼 말보로 화이트를 석션했다카더라.. 80명의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털털하게 소맥을 마는데 이 때 머리 크기가 배우치고가 아니라 일반인 치고도 크고 아름다운 사이즈라 카더라. 마지막날 1대1 딥포옹 셀카 촬영 등 지옥의 팬서비스. (하정우에겐 호된 경험이었는지.. 그후 2차 캠프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없는 실정이라고) 이후 하정우 캠프에 대타로 참가한 글쓴이는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마다, 하정우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하정우 앞에서 단체 줄넘기 하던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캠프 이후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썰이 있다.
* 모델 [[구재이]](구은애)와 공개연애 후 결별하였다. 열애 당시에는 구은애라는 이름을 써서 '하정우의 여자 구은애'라는 식의 기사가 많았다.
* [[군대]] 동기인 개그맨 [[강성범]][* 나이로서는 강성범이 무려 4살이나 형.]의 말에 의하면 군 복무 때 하정우가 영상물 제작에 참여했는데, 거기에는 하정우의 본명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군 홍보 영화에 단역으로 자주 나왔다고. 강성범은 하정우와 함께 군 홍보용 비디오 테이프 속지를 끼웠다고 한다.
* 비가 오던 어느 날 영화에서처럼 모자를 쓰고 아파트에 들어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그 때 옆에 서 있던 여자가 하정우를 보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영화 추격자 개봉 후 한동안 사람들이 하정우를 직접 마주하면 ~~연예인 봤다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했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46회 일치
[[겁]]이 많은 편이다. 예리가 레드벨벳에 합류하기 전에 혼자 방을 쓸 때 불을 켜놓고 잤을 정도.[* 그러다 방을 바꿔서 조이와 예리가 한 방을, 언니 셋이 한 방을 쓰기도 한다. 레드벨벳은 활동 시기마다 일부러 방을 새로 배정한다고 한다. 7월 7일 활동 시기에는 웬디, 예리와 함께 썼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놀라는 모습이 포착된다. 또한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계단 같은 걸 내려갈 때 멤버들이 손을 잡아주며--이게 약간..?--[* 최근 리얼리티에서는 손잡이를 잡으면서 혼자 내려오긴 했다.] SM 유리 엘리베이터를 올라갈 때도 밑을 내려다보지 못하고 구석에 있는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롤러코스터]]는 잘 탄다는 것. 순간 무서운 것만 넘기면 스릴을 느껴서 좋다고 한다.
* 2014년 레드벨벳의 슬기, [[NCT]]의 태용, 쟈니와 오보이 화보를 촬영했다.
팀의 연장자이자 리더이다. 팀에서 아이린보다 어린 멤버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은데, [[슬기(레드벨벳)|슬기]]와 [[웬디(레드벨벳)|웬디]]와는 3살, [[조이(레드벨벳)|조이]]와는 5살, [[예리]]와는 8살 차이다.
SM의 다른 늦깎이 멤버들인 [[슈퍼주니어]]의 [[이특]]과 [[김희철]], [[EXO]]의 [[시우민]], [[f(x)]]의 [[빅토리아]]와는 늦깎이인 만큼 모두 팀에서 맏형이나 맏언니를 담당하고 있다.이특, 희철, 시우민과는 동생들보다 키가 작거나 어려보인다는 공통점이 있고 빅토리아와는 팀의 리더이며 멤버들과 나이 차이가 조금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멤버들에게 위계질서를 강요하기보단 동생들과 거의 친구같이 지내며 리더답게 팀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동생들도 허물없이 지내지만 중요한 순간엔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듯. 웬디는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와서 등을 쓰다듬어주는데 그게 남다르다고 한다.
노래할 때 음색은 말할 때와 비슷하며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여성스럽다. 라이브도 안정적으로 소화하기 때문에 신인 시절에 '''비보컬''' 멤버로 보였던 것에 비하면 파트의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곡의 분위기에 맞게 음색의 톤을 조절하려는 게 보이는데 그때 웬디랑 목소리가 종종 겹치는 경우가 있다.
다만 보컬 위주의 '''{{{#a562a2 벨벳}}}''' 컨셉의 곡에서 파트가 상대적으로 적다. 아이린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본인의 파트를 자주 담당하지 못한다기보다는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미니 앨범 1집 수록곡 <Take It Slow>와 정규 1집 [[The Red]]의 수록곡 <Cool World>와 <Don't U Wait No More>에서는 개인파트를 포함한 후렴구 부분도 맡아서 다른 보컬 위주의 수록곡보다 파트가 많은 편.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이전보다 나아진 기량을 보인다.
랩은 전형적인 SM 스타일이며 Ice Cream Cake의 공개 당시 멜론 리뷰창에 랩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Dumb Dumb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곡 제목들[* You need to 'Beat It' / That boy Michael Jackson 'Bad' / 난 너의 'Billie Jean'이 아냐 / Don't you 'Leave Me Alone' / 하지만 애매한 반응 난 원해 'Black Or White' / 포기 못 해 나의 'Man In The Mirror'. Ice Cream Cake와 Dumb Dumb의 랩은 [[XXX(가수)|XXX]]의 [[김심야]]가 작사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RrojDCT9ZIM|#]]을 활용해 인상적인 랩을 보여줬다. 이후로도 레드컨셉의 곡에선 꾸준히 메인래퍼로서 랩 파트를 많이 받고 있다. 대부분의 음악방송에서도 안정적인 랩 실력을 보여주는 편이다. 최근에 컴백한 빨간 맛에서는 빠른 랩으로 다시 한번 메인래퍼의 실력을 검증하였다.
팀에서 [[슬기(레드벨벳)|슬기]]와 함께 춤을 잘 추는 멤버로 꼽힌다.[* 함께 레드벨벳 안무의 메인을 잡고 이끌어 간다. 퍼포먼스는 둘 다, 댄스브레이크 시, 슬기와 아이린이 센터에 많이 선다.] 그러나 각자 소화하는 스타일이 다른데 아이린은 Automatic 등 동작이 부드러운 벨벳 스타일의 노래나 '행복', 'Huff n Puff' 등 가볍고 통통 튀는 안무에서 춤추는 스타일이 유연하고 부드러워서 더 눈에 띄는 편이다. 격한 춤을 출 때는 날카로운 춤선이 돋보인다. 신장이 작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 파워풀하게 추기 때문에 안무가 꽉 찬 느낌을 준다.
미니 2집 The Velvet의 타이틀곡인 7월 7일에서 독무를 맡았다. 라디오 인터뷰나 비하인드를 보면 얼마나 독무가 웬디 파트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열심히 했는지 알 수 있다. 웬디와 호흡을 맞추려 노력했다고.
* 그러나, 7월 7일 안무와 독무 파트에서 논란이 있었다. 우선 안무가 서정적인 발라드곡에 어울리지 않는 격한 춤이었고, 아이린이 독무 파트를 맡은 이후 아이린의 춤이 어색하다는 평이 있어 이후 안무를 더 부드럽게 수정했다.
정규 2집 Perfect Velvet의 타이틀곡 Peek-A-Boo에서 엔딩 때 센터에서 솔로파트와 함께 [* ~~삐까부 삐까부 삐까부 딴따딴따란~~ ]독무가 있다. 이 때 레전드짤이 많이 나왔으며, '엔딩 장인' , '엔딩 여신'으로 불렸다.
비주얼이 우수하기로 유명한 [[레드벨벳]]에서도 메인 비주얼로 꼽힌다. 단순히 얼굴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http://theqoo.net/square/461793167|옆선]]도 예쁘다. 또한 피부가 굉장히 하얀 편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확 띄며,[* [[레드벨벳]]이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에는 머리색뿐만 아니라 피부톤으로 멤버들을 구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분위기 차이가 크다. 게다가 얼굴이 '''[[황금비율]]'''.[[https://www.instiz.net/pt/2455125|#]] '[[Mnet]] '[[문희준의 순결한 15+]]' 방송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뽑은 마스크 비율 깡패로 아이린이 여자 아이돌 2위로 뽑혔다.[* 1위는 소속사 선배 [[윤아(소녀시대)|윤아]]. ~~[[SM엔터테인먼트|SM]]은 꽃밭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04&aid=0000080352|기사]]
[[예리]]의 영입으로 5인조로 개편되었을 때 인터뷰 대형과 거의 모든 무대 엔딩에서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엔딩센터뿐만 아니라 안무가 있는 타이틀곡이나 수록곡 무대에서 센터 비중이 제일 많고 포인트 안무와 댄스브레이크를 [[슬기(레드벨벳)|슬기]]와 분담한다. [* 사실 레드벨벳은 컨셉상 공식적인 센터 담당이 지정되지 않았다.] 아이돌 비주얼 센터로도 늘 상위권에 꼽힌다. 특히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2017년 걸그룹 최강센터 총선거 1위'''에 등극했다. 흥미를 위한 콘텐츠이지만, 그 정도로 최근 여자아이돌계의 새로운 비주얼 멤버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
|| 2014년 10월 ~ 2015년 6월 || [[아이비클럽]] || [[EXO]]와 공동 ||
|| 2016년 9월 ~ ||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 || 배우 이현재와 공동
* 2014년 디지털 싱글 2집 Be Natural 활동을 위해 [[흑발]]을 했다. 그리고 2015년 미니 1집 Ice Cream Cake와 더블 타이틀곡 Automatic 활동에서는 금발로 염색했다. Ice Cream Cake 활동이 중반을 넘어갔을 때, 다른 멤버들과 함께 다시 흑발로 돌아왔다.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몸이 굉장히 유연하다. [[주간 아이돌]]에서 체전굴로 유연성을 측정했는데 1차 시도에서 35cm로 2위였던 [[AOA(아이돌)|AOA]] [[초아(AOA)|박초아]]의 기록(34cm)을 깨고 2차 시도에서는 40cm로 1위였던 [[원더걸스]] [[혜림]](37cm)까지 제쳐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박초아, 혜림과 마찬가지로 [[정형돈]]이 신기록을 위해 억지로 한 손만 당겨서 나온 것이다. 순위와 상관없이 아이린의 정확한 체전굴 기록은 원칙대로 측정한 1차 시도의 35cm 정도이며 이는 현 체대입시 실기에서 만점을 받는 기록이다.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생각하면 굉장한 유연성이다.
* 동명의 [[패션 모델]]인 아이린 때문에 가끔 사람들이 모델 아이린이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 것을 보고 혼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명의 '''가수'''도 있어서 음원 사이트에서 '''아이린'''을 검색하다 혼동하기도 한다.[* 해당 가수가 부른 대표적인 노래로는 [[디셈버]], [[제이세라]], 윤미와 함께 부른 '가슴으로 운다' 가 있다.] 비슷한 경우로, [[Cosmic Fantastic Lovesong|이 아이린]]과 [[아이린(아르피엘)|이 아이린]]이 있다.--[[아이린 애들러]]는?--
- 전태일 . . . . 46회 일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여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피복 공장에 취직하였다. [[1965년]]에는 청계천내 삼일회사 재봉사로 일하다가 강제 해고된 여공을 돕다가 함께 해고되었다. 이후 [[한미사]]의 재단보조로 있다가 재단사가 사장과의 갈등으로 해고되자, 그가 재단사가 되었다. [[1968년]]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어 [[1969년]] [[7월]]부터 [[노동청]]을 방문,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개선과 위생 환경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다.
[[1969년]] [[6월]] [[청계천]] 공장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하고, 다니던 교회와 [[엠마누엘 수도원]] 등에서 잡역부로 일하던 중 다시 [[왕성사]]의 재단사로 [[청계천]]으로 돌아와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동대문구]]청과 [[서울특별시]]의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을 찾아가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 [[박정희]]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으나 전달되지 못했다. [[1970년]] [[10월]]에는 본격적으로 근로조건 시위를 주도하였다. [[11월]]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평화시장]] 입구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 자살하였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재확산되었다.
전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남산동의 가난한 노동자인 전상수와 그의 부인 [[이소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가내수공업도 했으나 거듭 실패했다.<ref name="ganaess">[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419.html 전태일의 시간·공간·생각] 한겨레 21 2010.11.05 제834호</ref> 그러다 재봉사였던 아버지 전상수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954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남대문초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아버지에게 재봉 일을 배웠으나 [[1964년]] 동생 전태삼을 데리고 다시 가출, [[서울]] 청계천으로 올라와 서울 평화시장의 의류제조회사에서 시다(견습공)로 일하였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배운 재봉 기술로 서울 평화시장의 피복점 보조로 취업해 14시간 노동을 하며 당시 차한잔 값이던 50원을 일당으로 받았다. [[1965년]] 구두닦이로 구두통을 메고 [[평화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그해 가을 의류제조 회사인 [[삼일사]]에서 시다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삼일사에 입사했다.
그는 공장 노동자 생활 중에도 고등학교 복학을 꿈꿨고, [[1967년]] [[2월 20일]] 자신의 바지와 하숙방에 있던 곤로를 팔아 연합중고등 통신강의록 <중학 1>권을 1백50원에 산다. 수중에 남은 15원으로 10원짜리 노트를 산 뒤 전화비 5원을 주머니에 남겨두고 3일간 금식하였다. 당시 한 쪽지에 그는 "내일부터 23일까지 금식이다. 설마 3일 금식에야 죽지 않겠지. 정신수양의 금식이야.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오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내년 3월에는 꼭 대학입시를 보자. 앞으로 3백76일 남았구나. 하루에 2시간씩 공부하면 내년에는 대학입시를 볼 수 있겠지."라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그는 재단회사 시다들과 인근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을 듣고 집에 와서 말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나중에는 노동 운동에 본격 투신하게 되었다. 어머니 이소선은 처음에는 그를 말렸지만, [[1969년]] [[6월]] 아버지 전상수가 [[고혈압]]으로 사망하면서 아들이 하는 일을 막지 말라고 하여 이때부터는 말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규합하는 어려움, 주변의 냉소와 비야냥거림, 노동청과 근로감독관, 언론들의 기만극, 생계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 속에 서있었다.<ref>《녹색평론 78호 (2004년 9, 10월호)》 (녹색평론, 2004) 59페이지</ref> 일부 미싱사와 봉제 노동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ref name="ganaess"/>"라고 비판하였다. 이 당시에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 라고 썼다.<ref>조영래, 《전태일평전》 (돌베개, 2001) 183페이지</ref>
==== 노동실태 설문조사와 노동자 집회 ====
{{인용문2|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야수와 같은 북괴는 평화 속에 잠긴 남녁 땅을 피로 물드렸다.<ref>전태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돌베개, 1983) 127쪽</ref>}}
노동운동의 대부로 인식되는 탓에 그를 마치 반정부적이고 반체제적인 인물로 왜곡된 인식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보낸 탄원서에서도 그는 '대통령은 국부이고, 곧 저희들의 아버지'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대통령에게 노동자들의 극히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해주기를 호소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다.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박정희]]에게 보낸 진정서에서 그는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아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어 은미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한번 밟(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ref>전태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돌베개, 1983) 136쪽</ref>…(이하 생략)…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요.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곳(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ref>전태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돌베개, 1983) 138쪽</ref>"라고 했다.
[[1970년]] [[9월]] 전태일은 [[한미사]]의 재단사가 되었다가, 같은 [[9월]] [[왕성사]]의 재단사가 되었다. 재봉사보다 지위가 높은 재단사로 일하며 이전의 바보회를 발전시킨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되었다. 그 뒤 다시 노동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려 126장의 설문지와 90명의 서명을 받아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진정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이 내용이 [[경향신문]]에 실려 주목을 받자, 전태일 등 삼동회 회원들은 본격적으로 임금, 노동 시간, 노동환경의 개선과 [[노동 조합]] 결성 등을 위해 사업주 대표들과 협의를 벌였으나, 일을 무마하려는 [[정부]]의 약속 위반으로 인해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으며, [[자본가]]들도 삼동회는 [[사회주의]] 조직이라고 헐뜯음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그해 [[10월]]부터 그는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시위를 주관하였다.
이에 따라 전태일은 삼동회 회원들을 이끌고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고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경찰의 방해로 플래카드를 빼앗기고 시위가 무산된 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화시장 골목 근처에 있다가 오후 1시 30분경, 시장 골목에서 몸에 [[석유]]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켠 뒤,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왔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시장 앞길을 뛰어다녔다. 이때 전태일의 친구였던 이름 미상의 남자가 그에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조영래]]는 [[1983년]]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며 이 남성의 이름을 김개남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김개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민종덕이라는 설도 있다. 그에 의하면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가명인 전태일의 벗의 이름 '김개남(가명)'은 민종덕의 창작물이라고 본다. 그는 전태일을 자신의 고향, 고부에서 출정한 동학 전봉준에 비견하였고 비슷한 위용을 떨쳤던 김개남을 전태일 친구의 가명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042 전태일·조영래와 함께한 휴가] 오마이뉴스 2007.08.08</ref>'는 것이다.
그러나 전태일의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방치당하고 있었다. [[조영래]]에 의하면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 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ref name="chock283"/>" 한다. 그는 온 몸에 불이 붙은채 평화시장 앞을 달리는 와중에도 끝까지 "[[대한민국 정부|정부]]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 시간이 흐른 뒤 "한 친구가 뛰어와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재킷|잠바]]를 벗어서 불길을 덮었다.<ref name="chock283"/>" 한다.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이 소식을 듣고 병원에 온 어머니 이소선에게 전태일은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ref>〈이소선:아, 우리들의 어머니!〉, 《이야기 여성사 1》 163~4p, 여성신문사, 2000</ref> 쓰러졌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치료를 받은 전태일은 온몸이 굳어서 펴지지가 않았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아들에게 앞치마를 벗어 덮어주고 의사에게 갔다. 1만 5천 원짜리 주사 두 대면 우선 화기는 가시게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러면 근로감독관에게 가서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ref name="chock289">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이때 평화시장 담당 [[서울시청]]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전태일을 따라 병원에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내가 무엇 때문에 보증을 서요?"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어머니 이소선이 다시 의사에게로 가서 매달리자 의사는 고개를 흔들며, "그 약이 지금 여기에는 없으니 성모병원으로 옮기도록 하라"고 했다. 이때까지 전태일은 간단한 응급치료 외엔 서너 시간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ref name="chock289"/> 명동 성모병원으로 전태일을 옮기는 앰블런스가 오자, 이때 근로감독관이 다시 나타나 전태일 등과 함께 타고 병원을 떠났다. 차 안에서 전태일은 근로감독관이 어머니와 하는 소릴 듣고 나서, "사람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감사가 끝났다고 그렇게 배신할 수가 있소? 내가 죽어서라도 기준법이 준수되나 안되나 지켜볼 것이오" 라고 마음 속으로 분개하였다.<ref name="chock289"/>
{{인용문|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ref>금력(金力)을 뜻함.</ref> 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회사의 [[착취]]와 [[해고]]를 당하면서도 단결하여 투쟁할 생각을 못하던 [[노동자]]들이 [[죽음]]으로써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 열사를 보면서 각성한 것이다. [[1970년]] [[11월 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년]] 9월 한국회관(음식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8월 [[신진자동차]] 노조 조합원과 가족 1900여명의 [[파업]]투쟁, [[한진상사]] 파월 노동자 400여명의 [[대한항공]] 빌딩 옥상 방화 농성 등이 주요한 사건들이었다. [[1971년]]의 노동자의 단결투쟁은 1600여건에 이르렀는데, 이는 전년도 165건에 비해 10배가 넘는 규모였다.<ref>지명관,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98~ 101쪽, 다섯수레, 1996년; 한국정치연구회, 《한국정치사》 352~ 353쪽, 백산서당, 1990년; 역사학연구소, 《강좌 한국근현대사》 347쪽, 풀빛, 1995년</ref>
일부 미싱사 등은 냉소적으로 반응하였다. 일부 노동자와 미싱사들 중에는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ref name="ganaess"/> 당시 초등학교만 나와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일부 노동자들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귓등으로 흘렸다.<ref name="ganaess"/>
- 트로피코 4/건물 . . . . 46회 일치
월등한 수용량 덕분에 자주 짓게 되는 건물. 지을 때 마다 높이와 색상이 바뀐다. 양산형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동주택을 몇번씩 클릭하게 될거다.
||돼지 우리와 먼지 구덩이, 그리고 집 사이의 차이가 모호해질 때가 종종 있곤 합니다. 보수 공사를 하지 않으면 그 차이는 더 좁아지기만 할 뿐이죠. 서민 아파트는 저 세 개의 생활상을 모두 수용할 수 있으며 보통 또 그렇기도 합니다.
||은행은 외국인 관광객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각하께선 이곳에서 국가 예산을 횡령하거나 건물들의 건설 비용을 삭감하실 수 있습니다.||
세관은 수출가와 수입가에 영향을 미치며, 운영 계획에 따라 관광객들에게 부가하는 세금도 정할 수 있습니다.||
* 폭풍 탐지기 - $7,500 소모.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토네이도와 허리케인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장비를 기상청에 설치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지도자가 자라났던 곳이라!" 이곳은 가장 총명하며 위대하신 지도자인 각하의 참된 집이랍니다. 관광객들은 독재의 모든 것이 담긴 이곳을 즐겨 찾으며, 시민들은 이곳을 숭배와 성지 순례의 장소로서 이용합니다.||
||이곳은 사실 정치적인 풍자, 희극, 익살스러운 연극, 심지어는 셰익스피어의 정신적 고향입니다! 요즘 대통령 각하께서 공연장에 변장하고 들어와 페눌티모에 관한 농담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콧대있는 카리브 해 리조트라면 방문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밤을 선사하고자 하죠. 나이트 클럽은 정열적인 살사와 음악, 그리고 작은 우산을 꽂은 칵테일로 방문객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평범한 주점보다 훨씬 신나는 분위기를 조성하죠. 하지만 치안에 주의하세요. 이런 곳에선 범죄가 성행하는 법이니까요.||
||낭만적인 밤을 영화와 함께 보내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이곳에선 그레타 가르보, 험프리 보가트, 마릴린 먼로를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영화관은 오락을 제공하며 시민들을 깨우치게 해줍니다. 커플들에겐 손을 마주잡고 영차영차할 장소도 제공하지요.||
* 트로피코 전통 미술: "소녀와 라마"("2명의 소녀와 한 마리의 라마"와는 다른 작품입니다.)와 "파파야를 먹는 남자"와 같이 트로피코의 명화들을 전시합니다. 트로피코의 미술품이 매각되면 부수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빨간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안심되지요. 화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도 딸려온답니다.
소방서는 도시에 발생하는 화제와 맞서 싸우며, 인근 지역의 안전성을 높여줍니다.||
||대중들에게 뻔한 거짓말이나 가짜 정보를 퍼트리는 수단으로서 뉴스만한게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말하죠. '신문에 나와있으니까 사실일 거야'. 어리석은 영혼들 같으니라고!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더불어 해외로부터 노동자들을 고용하는데 쓰일 지출을 절약해줍니다. 대졸자들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를 확보하셔서 트로피코의 밝은 미래들이 청년 실업에 불만을 품는 일이 없도록 하셔야겠습니다.||
* 커피: 커피는 고지대와 습지대에서 잘 자랍니다.
* 담뱃잎: 담뱃잎은 고지대와 건조한 곳에서 잘 자랍니다.
* 설탕: 설탕은 저지대와 습지대에서 잘 자랍니다.
* 모든 광석: 광산은 가까운 곳에 매장된 철, 보크사이트와 금을 채광합니다.
||우거진 숲이 있다면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해와 성난 여행객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싶지 않으시다면 도가 지나쳐선 안 되겠지요. 이 유용한 건물은 제재소를 건설할 생각이시라면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유전자 조작: 과학 연구소 필요. 원숭이와 인간, 돌고래와 뱀의 유전자를 이용하면 농장에서 재배하는 옥수수의 양이 매우 증가하게 됩니다. 옥수수의 생산량이 증가합니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45회 일치
시작지점에서 폴란드와 역사적 라이벌이고, 리보니아 기사단과 역사적 친구관계이다. 이에 따라 폴란드는 거의 무조건 라이벌을 띄우고, 리보니아 기사단은 무조건 동맹을 해온다. 그런데 폴란드가 동군연합을 할경우에 튜튼이랑 리보니아 연합군이 뭔짓을 하든 이것들의 물량을 따라올 수가 없다(...)~~고증 제대로네~~ 그러므로 폴-리투연합을 견제해줄 국가가 필요한데, 추천되는 국가는 헝가리,보헤미아,모스크바,오스트리아정도이다. 그리고 중요한건, 신롬 가입을 위해 오스트리아랑은 무조건 친해져서 신롬가입을 하자. 안그러면 북독일지방 확장이 봉인된다(....)
이후 확장방향이 조금 갈리는데, 신롬가입을 했다면 북독일방향으로 먼저확장해 독일제국을 형성할 준비를 하는게 좋고, 신롬가입이 안됬다면 리보니아와 고틀랜드를 정복해 발트해 무역노드를 장악하는게 좋다. 그외에 확장할 방향이라면 러시아쪽이나, 북유럽지방이 좋다.
시작지점부터 선제후기에 오스트리아와의 외교가 용이하며, 폴란드와도 가~끔씩 폴란드가 브란덴부르크에 라이벌을 거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폴란드가 친밀한 의사를 드러내기에 동맹이 어렵지 않다. 일단 추천되는 스타팅은 포메른 정복미션을 얻어낸 다음 폴란드-오스트리아 동맹을 한후에 튜튼기사단을 폴란드에게 땅을 빌미로 끌여들여 공격하거나, 폴란드가 공격할때 따라나서는 방향으로 가자.
폴란드-튜튼 전쟁에 참여할때 주의해야 할 점은 땅 점령을 폴란드가 아닌 브란덴부르크가 하는 방향으로 가야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하면 폴란드가 프로이센 지방을 전부 먹어버려서 오히려 프로이센 성립도 못하고 프로이센지방을 다먹어버린 폴란드가 러시아와 보헤미아를 패면서 우주승천해버릴 수 있기 때문(...)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와 동맹해서 황제국의 땅내놔 시전을 봉인시킨뒤에, 포메른(포메라니아)를 쳐서 힌터포메른 일대를 빼앗은 뒤 메클렌부르크를 먹고 뤄벡에 공세를 취하자. '마레 노스트럼'DLC이후로 뤄벡이 근처 자유도시와 OPM[* one province major, 프로빈스 하나짜리 국가]국가들과 방어연합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격을 나가기전에 폴란드가 참전하는지는 꼭 확인하도록 하고, 싸우도록 하자. 1대1로는 어지간해선 못이기니(...)
위치가 위치인지라 상당히 힘들다. 오스트리아는 아우구스부르크나 잘츠부르크같은 남독일지방 소국들 문제로 분쟁을 겪을 일이 많으며, 신롬내 2위국이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을 라이벌로 지정하는 경우가 잦다. 팔츠같은 좀 만만한 국가를 패려고 들어도, 옆에 붙어있는 국가들이 거의다 신롬내 자유도시들이며, [* 자유도시 국가는 기본적으로 황제국이 보호를 해주며 방어전때 앵간하면 거의 무조건 딸려온다.] 잘츠부르크랑 아우구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진출 방향과 겹쳐서 무조건 얼마안되 싸운다고 봐도 무방하며(...) 팔츠는 오스트리아나 보헤미아와 동맹하는 경우가 잦다(...) 다행히 주변국들중 안스바흐가 그나마 만만하고 관련 미션도 있으므로, 공격해 자신의 속국(vassal)로 삼는게 좋다. 일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신롬내 강국들에게 다굴맞아 쪼그라들기 쉬우므로, 동맹하기 적당한 강국부터 찾아야 된다. 가장 좋은 동맹은 헝가리, 최근 리투아니아의 개발도가 너프되 폴란드의 힘이 상당히 빠져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으므로 가장 좋은 동맹이다. 폴란드도 괜찮긴 한데, 이 녀석이 뭔 생각인지 브란덴부르크나 실레시아등 자기랑 맞닿아 있는 신롬국가들을 공격해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잦으므로(...)그냥 하지 말자. 어차피 이젠 헝가리나 모스크바한테 털리는 호구다. 그외에 부르고뉴는 분할 상속이벤트로 저지대를 통채로 주기도 하니, 결혼정도는 해주는걸 추천한다.
우선은 그러므로 오스만과 오스트리아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동맹부터 구해두는게 가장 중요한데, 프랑스와 폴란드, 아라곤등이 여기에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 [* 다만 최신패치부터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을 거절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럴경우 헝가리마냥 초반에 사기장수가 없는 폴란드는 박살날 가능성이 높다. 혹시나 이런 경우가 생기면 재시작하자(...)] 구호기사단에 걸어둔 독립보장은 괜히 오스만과의 1대1맞다이를 강요하게 하니 관두면서 본토와 달마티아 지방을 육로로 연결하는데 주력하자. 아, 그리고 상인공화정은 영토가 20개이상이 되면 부패도 (corruptions)가 오르기에 그거 줄인다고 수입이 줄어든다. 1.16이후로 외교력 100을 소모해서 상인공화정도 정부체제를 바꿀 수 있으니, 적당히 확장해뒀다 싶으면 바꿔두자.[* 부패도 감소비용을 없앨수도 있으나, 테크비용이 늘어나기에 최종적으로 국력이 약해진다.]
시작지점에서 아라곤에게 동군연합을 주도당하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다행히 독립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카스티야와 프랑스,또는 오스트리아에게 독립지원을 요청하자. 전투는 카스티야나 프랑스군에게 맡겨두고 우선은 점령점수만 쌓아둬도 충분히 이길수 있을것이다. 독립 전쟁이 끝나면 몰타와 메시나를 먹고[* 시칠리아섬에 나폴리의 코어가 있기에 중요하다.] 샤르데냐를 부활시키자. 한편으론 제노바가 좋다고 샤르데냐를 먹을지도 모르기에 제노바에 경고를 걸거나 샤르데냐에 독립보장을 걸자.[* 아라곤과의 휴전기간이 샤르데나에 합산되어 나오기에 샤르데냐를 치려면 적어도 10년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다만, 독립보장을 풀면 5년의 휴전기간이 나오는건 알아두자.] 그이후엔 아라곤과의 휴전이 끝나면 아라곤에 공세를 가해서 시칠리아섬 전체를 먹어두자.[* 카스티야를 땅을 준다는 보장으로 끌어들여도 좋다.] 이후 샤르데냐를 정복한뒤에 이탈리아 소국들을 정리해두면서 개신교 개종을 해두도록 하자. 가톨릭을 유지하는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럴경우 확장하면 할수록 교황령이 파문을 날려대면서 방해할 가능성이 매매우 크다.
초반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절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상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백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상태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그 다음 공세는 잉글랜드령 프랑스로 정해두자. 메인 할양 이벤트로 프랑스와 싸우게 되든, 그 할양 이벤트에서 잉글랜드가 메인을 넘기든, 잉글랜드는 결국 프랑스와 싸우게 되어있는데, 그틈에 잉글랜드를 쳐서 칼레와 노르망디일대를 먹어두자.(AE가 남으면 알렝송까지 먹어도 상관없다.) 이후 확장방향은 취향따라 다른데, 브르타뉴를 먹고 북프랑스쪽으로 확장하든, 북프랑스를 장악한뒤 신롬쪽 영역을 먹든, 신롬 영역을 치든, 그건 취향차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다만 위치상 어디로 확장하든 신롬 소국들이 빼액대면서 반국가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것에 주의하도록 하자.
우선 전자야 어렵지 않다. 어찌됬든 전자의 경우도 브리튼 섬 통일은 무조건 하게 되있기에 스코틀랜드를 독립보장하는 프랑스와의 전쟁은 불가피한데(...) 그냥 해군으로 틀어막으면 된다. 시작시기든 어떤 시기든 프랑스 해군은 절대로 잉글랜드 해군을 이길 수 없다는걸 프랑스에게 상기시키면서 도버 해협을 틀어막자. 단 한번이라도 프랑스 육군의 상륙을 막으면 스코틀랜드는 간단하게 잉글랜드의 맛집으로 변한다. 아일랜드야 뭐 9개왕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다가 서로서로 사이도 나쁘니 각개격파시키면 되고... 그 이후에야 천천히 식민지 개척을 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식민지 개척에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으므로 빠른속도로 북아메리카부근에 식민지를 건설하자. 굳이 구대륙으로 가면서 프랑스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면 스웨덴 독립전쟁에 끼어들어 북유럽쪽으로 가면 된다.
후자의 경우가 조금 어려운데, 우선은 적절히 프랑스와 사이가 안좋으면서 잉글랜드의 부족한 육군을 보충해줄수 있는 나라가 필요하다. 아라곤, 오스트리아, 카스티야정도가 물망에 오르는데 문제는 얘들이 잉글랜드를 라이벌지정하는 경우가 있다는것(...) 스코틀랜드는 얼마 안가 프랑스와 동맹하면서 귀찮게 할 가능성이 높으니 초반에 공격해서 속국화 시키고, 이베리안 웨딩이 뜨길 기대하며(...)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랑 동맹하기전에 미리 오스트리아와 동맹해서 막는것도 좋다. 프랑스보다 프로빈수 수가 많고, 병력이 더많을경우에 왕위주장 미션이 뜨는데, 이것만 성공시키면 그때부터 두려울게 없다. 오스트리아고 스페인이고 다 날려버리자.
1.19 패치 이후에 '메인 할양'이벤트가 생겼다. 헨리 6세가 앙쥬의 샤를로트와 혼인하는 대신 메인을 프랑스에 할양하는 실제 역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이벤트로, 이를 거절하면 프랑스에 잉글랜드가 '왕위주장'명분으로 공격하게 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건 프랑스가 방어측이기에 프랑스는 동맹들 다끌고 올 수 있지만 잉글랜드는 공격측이기에 못그런다는거(...) 1대1로도 못이기는걸 1대다로 싸우면 절대로 못이기니 얌전히 주거나 아니면 프로방스에 팔아버리거나(...)하자.
플레이어가 잡을경우 프랑스는 강하긴 하지만 혼자서 어떻게 하기엔 매매우 힘든 국가가 된다. '''적당한 동맹이 없으면 백년전쟁도 혼자서 못끝낸다'''. 그러므로 좋은 동맹이 필요한데, 오스트리아(가끔 라이벌 지정을 할때가 있다.)는 부르고뉴 상속이벤트전 훌룡한 동맹이 되어주며, 그외에 사보이등의 이탈리아 소국 하나정도를 추천. 부르고뉴지방을 상속받고 육각형[*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보고 말하는 말.]을 완성한 프랑스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깡패가 된다. 스페인은 포르투갈까지 합쳐도 육각형 프랑스를 못이기며, 오스만은 너무멀고,[* 오히려 동맹으로 쓰는게 더 낫다.] 오스트리아역시 오스만과 동맹해둬서 견제해두면 된다. 다만 1.17패치로 오스트리아와 역사적 라이벌이 된건 조금 주의. 전에는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게 거의 다 ~~녹색 하트~~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기에 오스트리아와 동맹하고 부르고뉴를 패면서 이베리아반도로 마음편히 나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힘들어졌다.
이게임의 또다른 주인공이자 [* 플레이어가 오스만이 아닐경우] '''중간보스''' 시작시부터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게임 최고의 꿀땅인 콘스탄티노플을 먹을 수 있어서 상당히 강력하다. 또다른 특이점으론 콘스탄티노플노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서 사실상 자금력에서도 최강급. 거기다가 콘스탄티노플이 자동적으로 터키 문화권+ 수니파로 개종하는 이벤트, 예니체리 이벤트 [* 타락 이벤트도 가지고 있다. ~~쓸데없이 고증에 충실.~~]등 자기만의 이벤트나 전용 미션도 더럽게 많이 들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좋다고 초반부터 헝가리같은 동유럽쪽으로 확장하려들다간 반국가연합걸려서 망할 수 있으니(...) 우선은 유럽쪽은 발칸반도정도만 먹어두고 맘루크와 카라 코윤루를 패면서 서아시아+ 이집트지방부터 먹는걸 추천. 아니면 정교회로 개종하는 방법도 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먹어두면 발칸지방은 콘스탄티노플빼면 전부 정교회이므로 개종이야 어려운 편은 아니다. 이경우엔 동군연합을 노릴 수 있으며 결혼이 되어서 외교가 훨씬 편하단게 장점. 몇몇사람들은 라구사까지 먹어둬서 가톨릭 개종후 신롬황제를 노리기도 한다. ~~진정한 카이세리 룸!~~
프로빈스 3개[* 속국인 아테네 프로빈스까지 합치면 4개] 짜리 제국(...)국가. 이게임에서 초반 최강국인 오스만의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것과, 그 오스만한테 상대도 안된다는게 가장 문제인 국가다(...) ~~시기상 당연하긴 한데...~~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건 어떻게든 쓸만한 동맹을 얻는것. 우선 오스만을 라이벌 지정하고 헝가리가 오스만을 라이벌지정하길 빌자(...) 폴란드가 리투개발도 너프이후로 약화된 이후 비잔티움이 살기위해선 헝가리와 헝가리의 초반 장군인 ~~갓노슈~~ 야노슈 후냐디에게 모든걸 맡기는 수밖에 없다(...) 다만 헝가리만으론 아무래도 무리가 있으므로 그외에 발칸 소국들이 필요한데, 세르비아나 왈라키아를 끌어들이는걸 추천한다. [* 다만 왈라키아는 가끔 헝가리를 적국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있다. 뭔 깡인지는 불명(...)] 오스만과의 초반싸움에서는 어떻게든 그리스지방 코어를 얻어둬야 한다. 그외에 한개 땅정도는 추가로 얻어낼 수 있을텐데, 아나톨리아지방을 먹어서 이후 아나톨리아 탈환에 써먹든, 불가리아 코어가 있는곳을 먹어서 재정복 명분을 얻어내든, 어느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다. 취향따라 뺏어라. 로마나 니코메디아, 알레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탈환 이벤트라던가 비잔티움 전용 이벤트가 상당히 많으므로 고생한 보람이 상당히 있는 국가. 참고로 로마제국 최대판도를 복원하면 로마제국 형성을 할 수 있는데, 이게 크킹 컨버터로 만드는 로마제국을 그냥 복사+붙여넣기 한거라(...) 정작 비잔티움관련 문화권은 전부 수용불가능 문화권이 되버린다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그냥 비잔티움으로 하자. 애초에 비잔틴이 로마다.~~
폴란드의 문제점은 외교다. 북쪽의 튜튼 기사단은 역사적 라이벌 보정이 있고 남쪽의 오스만도 자주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하며 헝가리 역시 폴란드를 싫어하는 경우가 잦다. 동쪽의 모스크바 역시 폴란드의 숙명의 라이벌. 그러므로 확장방향을 잘잡아야 되는데, 우선은 보헤미아와 헝가리중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하지 않은 국가들중 하나와 동맹하고 빠른 속도로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 이벤트를 띄운뒤 튜튼 기사단을 공격하자. 꾸물대다 튜튼 기사단이 보헤미아와 헝가리중 하나랑 만이라도 동맹하면 이기기 힘들다.[* 전에는 튜튼 기사단이 보헤미아와 헝가리 둘다 동맹해두지 않는 이상은 폴-리투 성립만 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었지만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부턴 그게 매우 힘들다.] 그 이후론 최대한 빠르게 모스크바를 패가며 동진하자. 조금이라도 꾸물대다간 국가이념으로 물량+50퍼로 미친듯한 물량을 보여주는 모스크바를 보게 될것이다(...) 모스크바를 패가며 루스문화권지방을 평정했으면 유럽에서 적수는 없을것이다. 폴란드도 우주에 갈 수 있다는걸 보여주자.
리투아니아와 동군연합상태이고 행정레벨 10이상이면 연방왕국(커먼웰스)를 성립할 수 있다.
초반시작할때를 보면 땅덩어리도 넓어보이는데다가 국가전통도 좋은편이고 오스트리아와 역사적 친구보너스가 있기에 괜찮은 국가로 보이지만... '''함정이다'''.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국가. 우선은 동맹으로 선택할 국가의 범위가 좁다. 폴란드는 헝가리를 자주 라이벌로 지정하며 설사 초반에 동맹으로 나둬도 얼마안가 적대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오스만이야...확장방향도 그렇고 동맹할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그외에 보헤미아도 높은 확률로 헝가리를 라이벌로 지정한다. 그러므로 무슨일이 있어도 오스트리아와 동맹해두자.
우선 시작지점에서 공위상태인데, 헝가리의 왕이 오스만과의 바르나전투에서 패배해서 그렇다.[* 같은 이유로 폴란드와 보헤미아도 공위상태다.] 오스트리아와 시작하자마자 동맹을 해두고 약간만 기다리면[* 앞에 오스트리아와 동맹해두고를 적었지만 꼭 오스트리아와 동맹안해둬도 일어난다. 어차피 역사적 친구보정덕에 냅둬도 동맹을 걸고] 000섭정의회로 갈지, 야노슈 후냐디를 섭정으로 세우는지[* 능력치 455]가 갈릴텐데 능력치도 후자가 더좋고 역사적이기까지 하므로 얌전히 야노슈를 섭정으로 올리자.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도가 깎이겠지만 역사적친구보너스 덕에 이거 가지고 동맹이 풀리거나 동맹을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이후 보헤미아와 튜튼기사단중 헝가리를 라이벌로 삼지않은 국가와 동맹하고 폴란드가 튜튼기사단을 치길 기대하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전엔 폴란드가 거의 프랑스급으로 쎘지만 너프이후론 야노슈가 이끄는 헝가리군정도에 기사단 둘정도면 해볼만해질정도다.[* 다만 한타한번 밀리면 끝장이긴하다(...)] [* 만약 튜튼이 헝가리를 라이벌로 삼았다면, 독립보장을 걸어두자. 방어전 한정으로 따라서 싸울수 있다.] 그리고 이걸 하기전에 가장 중요한건 일단 미리 외교탭으로 가서 폴란드가 들고 있는 지방중 일부를 관심지역으로 지정해두는것. 전쟁기여도가 높으면 관심지역중 일부를 주는(아니면 전부!) 경우가 있으므로 굉장히 유용하다. 이상태로 10년이 지나고 헝가리왕의 후계자가 없으면 [* 만약에 생겨버렸으면 1470년까지 어떻게든 후계자를 없애야 한다. 후계자가 좋을경우엔 그대로 합스부르크가로 유지하면 되지만.] 두가지 선택지가 생기는데, 첫번째는 야노슈의 아들인 마챠시 1세를 왕으로 세우는것이고, 두번째는 랜덤한 합스부르크국가에게 동군연합되는것이다.
물론 두번째 선택지를 고를 사람은 없을것이므로(...) 얌전히 역사적인 선택지인 첫번째를 고르자. 마챠시 1세의 능력치로 455로 상당히 좋은편이므로 잘써먹을 수 있을것이다. [* 다만 오스트리아와의 역사적 친구보정이 사라지는게 조금 단점이긴 한데, 어차피 오스만과 폴리투를 제거하면 헝가리의 칼끝은 오스트리아쪽으로 가기때문에...] 만약 섭정이 끝나자마자 마챠시 1세를 선택했다면, 3년간의 섭정기간이 더추가된다. 알아두자. [* 섭정기간동안은 선전포고가 불가능해지기 때문.] 섭정이 끝나면, 모스크바랑 폴-리투랑 싸우는 때가 있을거다. 타이밍봐서 동맹들을 이끌고 폴란드를 치자. 폴란드를 패면서 동유럽의 패왕이 된 이후부터야 크게 문제없다.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면 간단하게 처리가능하고, 오스만은 16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약해지기에 상대가 가능하다. [* 굳이 초반에 오스만땅을 먹고 싶다면 맘루크와 싸울때를 노리자. 맘루크가 육상에서야 박살나겠지만 해군은 오스만보다 우위이기에 보소포로스 해협이 막히게 되있는데, 이때 오스만 주력이 오기전에 콘스탄티노플과 에디르네를 함락시키면 적절히 오스만의 발칸반도쪽 땅을 뜯어낼수 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45회 일치
각 번들은 막부파와 존왕파 두 파벌로 나뉘어 싸운다. 같은 파벌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파벌이 다르면 우호도가 뭉텅이로 깎여나가는지라 파벌따라 싸우는 일이 더 많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파벌을 바꿀수도 있고 두 파벌 모두를 적대하는 공화국을 세울수도 있다.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서양인들을 환대했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덴노 지지자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무너진 질서는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쇼군은 현 상황을 좀 더 개선하고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필 것이고 알지 못했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덴노 주변의 얼간이들을 무너뜨리고 일본에 대한 명예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쇼군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200년 전통의 도쿠가와 막부를 지지하는 세력.
코가와 전쟁 중, 에도와 동맹 중.
마츠다이라 가문이 다스리는 번. 본거지는 후쿠시마. 마츠다이라 가문은 도쿠가와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과거에 쓰던 "마츠다이라"라는 성씨를 하사 받을 정도로 도쿠가와 막부와 밀접한 관계였다. 우츠노미야 번과 전쟁 중이며 나가오카 번과 동맹 중이다.
다이묘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장군 야마카와 히로시. 게임 시작시 신선조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다이묘 마키노 타다유키, 후계자로 마키노 타다쿠니가 있다. 이 외에 장군 츠기노스케 카와이가 있다. 게임 시작시 게이샤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와카사를 본거지로 둔 번.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되기 전부터 도쿠가와 가문을 섬긴 사카이 가문이 다스리고 있다. 후쿠이 번과 전쟁 중이며 미야즈 번과 동맹 중.
쿠보타와 전쟁 중, 모리오카 번과 동맹 중
* 모리오카 번 - 이와테. 난부 토시히사
* 오다와라 번 - 사가미, 이즈. 다이묘 오쿠보 타다노리
* 오카 번 - 분고. 나카가와 요키토키
* 와카야마 번 - 키이. 키슈 모치츠구
* 요네자와 번 - 우젠. 다이묘 우에스기 나리노리
* 이와카와 번 - 스오. 깃카와 츠네모토.
* 츠와노 번 - 이와미. 카메이 코레카타.
* 쿠와나 번 - 이세. 히라마츠 사다아키.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백성들을 저버리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덴노를 드높이고 오랑캐를 내몰자고 외치며 도쿠가와 막부에 반기를 든 세력. 실제 역사에서는 이들이 승리해 [[일본 제국]]의 성립으로 이어진다.
- 전인범 . . . . 43회 일치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상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상황실에서는 유학시절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2011년 11월 18일 [[:en: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미국 국방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 《[[:en:Spider-Man in film|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시사하는 교훈을 언급하였다. 그는 “《[[:en:Spider-Man (2002 film)|스파이더맨 1]]》은 우리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en:Uncle_Ben#.22With_great_power_comes_great_responsibility.22|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것을 가르쳐 주고 《[[:en:Spider-Man 2|스파이더맨 2]]》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알려준다”며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미국인들은 《스파이더맨 1, 2》를 평생 동안 적어도 세 번 이상 보아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VrILCHQl1M Korean General tells Americans to watch Spiderman 1 & 2], 《USAG-Humphreys》, 2011년 11월 18일</ref> 같은 달 21일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영전했으며, 1년 5개월 뒤인 2013년 4월에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5년 4월 5일부터 12일까지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와 [[:en:United States Army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방문, 미 통합특전사령관 [[:en:Joseph Votel|조셉 보텔]] [[:en:General (United States)|대장]]과 미 육군 특전사령관 찰스 클리브렌드 [[:en:Lieutenant general (United States)|중장]]을 만나 한·미 연합 특수작전에 대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저격용 소총과 미군 주력 소총인 [[:en:M4 carbine|M4]], 권총, 산탄총, 박격포, 방탄복 등을 점검하고 체험하는 등 미군 특전사의 장비와 무기를 현장 견학하고 실제 사격도 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413010008491 미군 주력 소총 M4 쏘는 전인범 특전사령관],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3일</ref> 이와 함께 방미 기간 동안 [[시애틀]]에 있는 6·25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참전용사비에 헌화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ZIB7y0ZvFJs 한미연합 특수작전사령부 시애틀 방문 6·25 참전용사비 헌화식], 《KOAM-TV》, 2015년 4월 10일</ref>
2015년 6월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New Westminster College)의 특별연구원(Distinguished Fellow)으로 선정되었다.<ref>[http://newwestminstercollege.ca/lieutenant-general-in-bum-chun-phd-distinguished-fellow-of-new-westminster-college Lieutenant General In-Bum Chun, BA, MS, MA, PhD, MSM, BSM, LM, NSM], 《New Westminster College》, 2015년 6월 16일</ref>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 총장 로버트 굿윈 3세는 “그는 윤리적 리더십에서 괄목한 성과를 내었고 교육훈련에 평생 동안 헌신해왔다”며 “현 세계의 국가적 안보 위협에 대한 이해는 그가 정부의 국제적, 국가적, 지역 단위 이해관계자들의 민군 상호운용성과 방위협약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갖추게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리더십, 외교와 사이버 보안에 관한 연구의 설계와 전달에 있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위원회와 나는 그가 우리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새로운 특별연구원이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인범 중장은 특별연구원으로서 학문적 수월성의 최고위 기준에 대한 지원에 공헌해왔고,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과 연구원들의 세계적인 조직망 발전에 헌신해왔다고 알려졌다. 이 대학의 특별연구원으로는 필리핀 대통령 [[피델 라모스]], 체코 대통령 [[바츨라프 클라우스]], 캐나다 국방참모총장 대장 [[:en:Ray Henault|레이 헤노]] 등이 있으며, 특별연구원으로 선정된 인물 125명 가운데 한국인은 그가 최초이다.
2016년 5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USSOCOM medal|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USSOCOM Medal)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4&ntt_writ_date=20160615 “전인범 장군, 미 특수전 발전에 혁혁한 공로”], 《국방일보》, 2016년 6월 15일</ref> 미 특수전 발전에 공로가 있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이 훈장은 1994년 제정된 이후 한국군이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미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의 특수전사령부를 지휘하는 3군 통합사령부로, 전 중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국 특전사령관 겸 연합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연합작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훈장 수여 증서를 통해 “연합특전사령관으로서 미 최정예 특수부대와 [[:en:United States Navy SEALs|네이비 실]](SEAL), 특수전 항공자산 등 1000여 명 이상의 미군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뛰어난 전문지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으로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615010007077 [단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최초 미군 통합특전사 훈장], 《아시아투데이》, 2016년 6월 15일</ref> 더불어 전 장군의 추진력과 창의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함께 장기 비전이 대한민국 방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 장군의 남다른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개인의 추진력은 대한민국과 한미연합사에 큰 기여가 됐다고 전했다.
2016년 7월 28일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3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졌고 같은 달 31일 전역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7227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이천 특전사서 전역], 《연합뉴스》, 2016년 7월 2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99207 [카드뉴스] "국회의원이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라"], 《조선일보》, 2016년 8월 5일</ref> 이날 전역식에는 한미연합사령관 [[:en:Vincent K. Brooks|빈센트 브룩스]] 대장, 미 8군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2사단장 테드 마틴 소장 등 [[주한미군]] 수뇌부와 이기백, [[정호용]], [[김동진 (1938년)|김동진]], [[김태영 (1949년)|김태영]] 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 중장의 전역을 축하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heebum-hong/story_b_11295018.html 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허핑턴포스트》, 2016년 8월 2일</ref><ref name="c"/>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의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국선장]]과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각각 받았으며, 특히 보국훈장 국선장은 그가 중위 시절 합참의장으로 모셨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이 걸어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435078 33년 전 목숨 건 구출… 다시 만난 장군과 중위], 《SBS》, 2016년 7월 28일</ref> 전 중장은 전역사에서 선배 장군들과 미군 장성들, 동기, 후배들을 거론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던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보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728010013908 전인범 중장 전역식 "부하 잘 보살피면 부하들이 알아서 윗사람 보살핀다"],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28일</ref> 그는 “군인들이 진급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약속을 지켰다.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은 베레 영원하라”는 특전 정신을 외치며 전역사를 마쳤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o9JyXV5Hyo 전인범 장군 전역사 영상(discharge speech of LTG. INBUM CHUN)], 《YouTube》, 2016년 7월 28일</ref>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상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영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상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인용문2 | 저는 오늘부로 더민주당의 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같이 결정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으나 더민주당의 안보강화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지켜 나가는데 의미있는 역할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 있어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7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문재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ref name="b"/> 왜 문재인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이) 저를 한번 보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만났다. 그 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만나보니까 좋은 분이고, 지적이더라. 공부하는 분이고. 근데 그날 제가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했다. (- 안보관을 지적했나) 음…. 하여튼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다 받아주더라.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득하는 건 둘째고, 일단 잘 들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범 중장의 전역식 때 전역사를 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정호용을 고마운 선배로 언급한 것에 관해서는 “저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잘못된 부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거지, 5·18과 관련해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5·18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호남 분하고 이야기를 하며 ‘저는 언젠가 광주 5·18묘역에 그때 죽은 군인들이 같이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무도 모르잖나.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당시 군의 잘못이지 하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 특전사가 살인마처럼 비춰지는 건 바뀌었으면 한다. 하여튼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감옥에도 가고 그런 것 아닌가. 정호용은 그런 책임이 있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건 그분이 인간적으로 부하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본받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그의 5·18에 대한 견해에 우파 언론인임에도 5·18을 반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는 “여러 번의 국가적 수사와 조사에서 광주 사태 초기엔 상급 지휘부의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으며 현장 상황이 워낙 급하여 자위적 차원의 대응발포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물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전인범의 발언을 옹호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5656 제목으로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末期 증세], 《뉴데일리》, 2017년 2월 10일</ref>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2017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전인범 중장은 이례적으로 [[예비역]] 한국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현직 육군 최고 수뇌부가 참석하는 이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예비역으로는 유일하게 발표했는데, 현직 미군 주요 지휘관들은 물론 전직 미군 수뇌부들로부터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 연합전력 극대화 해법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출신으로 평가받고 있어 이 심포지엄에도 초청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528010015215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미 군사 혈맹, 한국군 주도적 역할 중요”], 《아시아투데이》, 2017년 5월 28일</ref> 그는 발표문에서 “한미간 긴밀한 연합작전과 지휘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⁴I)가 기반되어야 하며 양국간 언어장벽의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리나라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46579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美 'LANAPC'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 및 발전 방안 발표], 《뉴데일리》, 2017년 5월 26일</ref> 또한 심포지엄이 끝나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군 발표자들 대부분은 기조연설과 발표문에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rising adversary)’으로 지칭했다”면서 “미국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질주하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292284 "美, 아태 지상군회의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 지칭"], 《연합뉴스》, 2017년 5월 25일</ref>
1년 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그는 케네소 주립 대학교, 템플 대학교, [[:en: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외교정책연구소]] 등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로펌을 찾아 한반도 갈등이 미국 국민들의 일상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강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025928 한국전쟁 미국에도 도움안돼… 참화 막을 외교적 노력 필요],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2017년 10월 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을 하기 전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그는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는 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갈등이 미국에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 또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025816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상도 심각"],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한 달 후인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오청성 하사가 국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던 것은 북한 신속대응군 추격조가 오 하사를 급히 쫓느라 호흡 조절에 실패해 급소를 가격하는 소위 ‘킬 샷(kill shot)’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34661 <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뛰어온 北추격조 숨 헐떡여 급소 못 맞혀… 천운”], 《문화일보》, 2017년 11월 24일</ref> 전 전 사령관은 “CCTV 영상을 보면 전력 질주하는 오 하사를 쫓느라 AK 소총을 든 두 북한 경비병은 300m 이상, 권총을 든 두 경비병 추격조는 200m 이상 전력 질주했다”며 “추격조는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되지만 오래 뛰다 보니 총을 쏠 때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 하사가 추격조의 사격에 노출된 시간은 10초가 채 안 돼 정확한 조준 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덕에 심장, 대동맥, 정동맥 등 출혈을 많이 일으키는 곳이나 신경계인 머리 척추와 같은 급소를 맞지 않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총탄은 몸에 박히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간이나 비장,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주도록 설계된다”며 “그런데 오 하사와 추격조 간 거리가 살상 효과가 높은 50m보다 짧아 관통한 총알이 많아서 살상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탄이 몸을 관통할 경우 출혈을 빨리 멈추게 하고 패혈증만 막으면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급소만 피하면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보다 관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 평가와 비판 ==
통역이 필요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주한미군 지휘부와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리고 있다.<ref>[http://news.donga.com/People/3/06/20110512/37149041/1 ‘전작권 전환 기여’ 전인범 소장이 받는다], 《동아일보》, 2011년 5월 12일</ref>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그를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0/2013042000200.html 박지만씨 육사 37기 동기들, 청와대·국정원·軍 요직 올라], 《조선일보》, 2013년 4월 20일</ref> 주한미군사령관 [[:en:Curtis Scaparrotti|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그를 일컬어 ‘가장 절친’이라 칭할 정도로 미군들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116010009522 주한미군사령관 "한반도 평화·안정 온힘 쏟겠다"], 《아시아투데이》, 2014년 11월 16일</ref> 미 8군사령관 버나드 샴포 중장 역시 ‘한국 군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절친이며 항상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고문(顧問)이자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라고 강조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208010005247 주한 미8군사령관 "한미 군사동맹 강력하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8일</ref>
2014년 9월 특전사 13공수여단에서 포로체험 훈련 도중 부사관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훈련의 도입을 지시한 사람이 그였던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었다. 2017년 2월 [[국민의당]] [[김영환 (1955년)|김영환]] 최고위원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그에 대해 “이분은 취임 후인 2014년 9월 공수여단에 포로처럼 고문훈련을 시켜 두 명의 군인을 사망시킨 전력이 있다”며 “문재인 전 대표는 왜 ‘특전사 코스프레’를 포기하지 않고 집착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52597 김영환 "文캠프 전인범, 고문훈련으로 군인 두 명 죽었는데…"], 《뉴시스》, 2017년 2월 6일</ref>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가 전역 직후인 2016년 9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포로체험 훈련 중 사망한) 조용준·이유성 하사. 나는 당시 부대 지휘관으로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죽을 때까지 새기고 가야 한다는 벌을 받았다”며 지휘관으로서 도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ref name="a"/> 문재인 지지 선언 직후인 2017년 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당시 사고의 핵심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지와 부주의, 그리고 감독 부실이다. 그리고 당시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보도됐는데, 군 생활 당시 매뉴얼이란 표현을 쓰던가. 에프엠([[FM]], filed manual, 야전교범)이란 표현을 쓴다. 사고 직후 장교가 기자에게 ‘매뉴얼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받고 ‘못 봤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만약 ‘에프엠이 있었나’라고 물어봤으면 그렇게 답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가 책 만들 때 초고가 있잖나. 그때 (엄지와 검지를 4cm 정도 떨어뜨린 손을 내보이며) 이렇게 두꺼운 초고가 있었다.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고 답했다. 이어 “이런 사고가 나선 절대로 안 되지만, 어처구니 없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책임만큼의 처벌만 받도록 이해해줬으면 한다. 2017년 1월에 제가 특전동지회 총재로 취임했는데, 취임식 때 희생된 두 부하의 아버지가 축하해주러 오셨더라. 그러면서 ‘사령관님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일반순직이 아닌 특수직무순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잘 처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더라. 제 마음이 어땠겠나”라고 덧붙였다.<ref name="b"/> 이에 대하여 특전사 관계자는 “그들은 아들들이 비록 희생됐지만 포로체험 훈련의 취지에는 공감했기 때문에 사고 당시 사령관이었던 전인범 전 중장의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식에 참석이 가능했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763911 [단독] “포로체험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특전사 비밀리에 계속 실시], 《경향신문》, 2017년 2월 12일</ref>
- 구승빈 . . . . 42회 일치
|| [[나진 e-mFire]][* 1회 때는 제닉스와 나진을 초청팀으로 불러서 한 단순한 이벤트성 친선경기였다.] || → || '''MVP Ozone''' || → || '''미정''' ||
|| '''삼성 갤럭시와 LGD의 레전드 중 한 명, 가장 날카로운 [[양날의 검]]''' ||
팀내에서 마타의 오더 비중이 높다보니 겨우겨우 제어하고는 있지만, 결국 플레이에 있어서 주도권을 갖는 것은 원딜인 임프이다보니 수비적인 플레이를 원하는 마타와 의견충돌이 많다고. 연습에서 대판 싸우고 서로 찝찝한 기분으로 대회에 나온 적도 있다.~~그런데 이겼다~~
2013년 들어서는 [[LOL 클럽 마스터즈]]와 [[OLYMPUS the Champions Spring 2013]]에서 원딜러 중에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한국 최고 원딜이라고 불리는 [[김종인(프로게이머)|프레이]]에 비벼볼만한 국내 A클래스 원딜이라는 평가가 있을정도로 활약이 뛰어났다. 임프의 극 공격적인 플레이가 마음에 안든다는 마타조차도 실력만은 인정하는 모양.
아마시절 애쉬 장인이었고, [[그레이브즈(리그 오브 레전드)|그레이브즈]]와 [[시비르]]를 잘 쓴다고 한다. 원딜은 다 다룰 수 있으나 [[드레이븐]]은 못 한다고. 대회 주력 챔프는 역시 [[베인(리그 오브 레전드)|베인]], [[트위치(리그 오브 레전드)|트위치]], [[징크스(리그 오브 레전드)|징크스]] 등 하드캐리형 원딜들. 특히 저런 픽들은 라인전 단계에서 매우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임프의 경우 피지컬 빨으로 케틀/애쉬/루시안같은 라인전 강캐들을 역으로 압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특히 베인은 한국에서 가장 독보적인 베인 컨트롤을 자랑~~한다.~~했었으나 베인 선고패치와 시즌4에 접어들면서는 예전같지 않은 모습.
팀에서 독보적인 잠재력과 기량을 갖고 있는 탓인지 MVP Ozone의 밴픽과 전략은 임프를 중심으로 짜이는 경향이 있는 편. 상대적으로 캐리력은 떨어져도 앞에서 벽이 돼 줄 수 있는 튼튼한 탱커들을 갖춘다든가, 상대가 [[미스 포츈(리그 오브 레전드)|미스 포츈]]을 가져갔음에도 상대에게 내주지 않기 위해 나서스를 픽한다든가. 거기다 원딜 픽을 최대한 숨기며 최대한 나중에 가져가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다. 하지만 다데와 댄디가 각성하고 다른 팀원들의 캐리력이 늘어난 이후로는 케이틀린 같은 챔프로 그냥 라인 밀고 타워 깨는 기계같은 플레이도 많이 나오고 있다.
시즌 3 롤드컵 이후로 다데와 댄디가 예전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롤챔스 윈터 2013-2014에서는 각성한 마타와 함께 다시 팀의 확실한 구심점으로 주목받았다. SKT T1 K를 상대하게 된 결승전을 앞두고 거의 모든 이가 "모든 면에서 SKT T1 K가 우세하나, 바텀이 유일한 변수"라고 평가할 정도. 임프 본인도 경기 전 피글렛과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며 보는 이들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임프가 1인분을 간신히 해낼 동안 다른 팀원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한타에서도 말려 팀의 3대0 압도적 패배. 사실 임프도 '그나마' 잘했을 뿐, 라인스왑이 걸린 상황에서 마타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상대 라이너를 압박하려다 크게 손해를 보는 플레이를 두 번이나 보여주었다(1세트에서 임팩트에게 솔킬을 따일 뻔했으며, 3세트에서는 페이커에게 역관광당해 플래시를 낭비했다). 각 세트 중반에는 본인이 밀리는 상황을 ~~청년가장으로서~~ 타개해야한다 생각했는지 무리한 포지셔닝,킬욕심을 내다가 먼저 끊기거나 하는 등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롤 마스터즈 플레이오프 CJ와의 1차전에서 2세트 블레이즈와의 경기 탑과 정글이 상당히 말려버린 상태에서 마타와 함께 봇듀오가 종횡무진 맵을 휘저으며 게임을 뒤집어버렸다. 러보와 앰비션의 부진 탓도 있었지만 임프 마타 듀오의 클래스를 보여준 경기였다는 평.
플레이 스타일을 정의하자면 '''캐리형 원딜류 완전체'''. 데프트가 강점이라 평가받는 부분이 코어템 하나의 격차 정도는 뒤집을 수 있는 끝판왕의 딜링이라면 임프의 강점은 게임을 뒤흔드는 변수 생성능력. 임프가 게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항상 아군도 적도 예측하지 못하는 공격적이고 리스크가 큰 스타일의, 원딜의 정석이라기보단 변칙의 정석을 보는 듯 하다. 마타라는 목줄이 없다면 게임을 끝도없이 던진다고 평가받을 정도. 삼성 화이트의 운영의 핵심이라 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중반의 '''원딜이''' 갖게되며[* 본래 중반 타이밍에는 미드 라이너나 딜러 챔피언을 고른 탑 라이너가 캐리를 맡고 원딜은 후반을 담당하는 것이 EU스타일의 정석이다.], 탑의 끝판왕이라고 평가받는 루퍼와 함께 팀의 전략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건 그 어떤 팀의 어떤 원딜러도 가질 수 없는 최고의 강점인 것이, 아무리 마타의 서포팅을 받는다 하더라도 오더를 넘어서는 전과를 내는 건 데프트 정도의 피지컬과 게임을 보는 눈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데프트는 상대적으로 수비적이고, 오뀨나 애로우는 이런 운영적인 면에서 약세를 보인다. 데프트가 항상 모든 팀이 꿈꾸는 이상적인 원딜의 이미지라면, 임프는 대조적으로 모든 팀원을 자기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타입의 원딜의 이미지. 팀원들이 맞춰줄 경우 가장 기계적이고 정형화된 포지션인 원딜임에도 극한의 변칙플레이를 보여준다.
다만 국내에서는 세체원에 가깝다고 평가하지만 해외에서는 생각보다 평가가 낮은 편인데, 화이트에서 승기를 잡았을 경우 공격적으로 나가다가 죽는 장면이 여러번 잡혀서 잘 던진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로얄 클럽의 우지와 같은 과라는 평가를 갖고 있는데, 우지의 경우 잘 던지기는 하지만 자신이 캐리를 해서 이긴다는 이미지라면, 임프의 경우 화이트의 다른 멤버들이 다 잘하고 있을때 갑자기 트리스타나 앞 점프나 포지셔닝 문제로 죽는다는 이미지로 해외에서는 임프의 결점이 더 눈에 띈다고 말하고 있다. 우지에 비해서 덜 던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화이트의 경우 흔히 말하는 탈수기 운영으로 애초에 임프가 몇 번 포지셔닝 문제로 죽어도 우세한 상황인 경우가 많아서 단순하게 우지와 임프를 비교하기는 힘들다는 말이 많은 편. 사실 애초에 불리한 상황엔 마타가 목줄을 꽉 잡아당겨서 불리할 때 던지지는 않는다.~~???:뒤진다~~ ~~임뿌우:네~~
2014년 트롤쇼 15화에서 마타가 게스트로 나와서 한 얘기에 따르면 '''현재 화이트 운영에서 유일하게 변수를 지니고 있다.''' 라고.
그리고 섬머시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다시한번 EDG를 만나서 3:0으로 완파하고 결승행을 확정지으며, 중국 1등시드로 롤드컵진출을 확정지었다. 대부분의 평가는 임프가 데프트 상대로 원딜 클라스 격차를 보여줬다는 것이 중론.~~임프센세의 데프트 참교육 현장~~결승에서도 임프는 정규시즌 원딜 MVP 포인트를 쓸어담던 QG의 원딜러 TnT를 압도했다. 결과는 3대2의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사실상 중체미라던 Godv의 똥. 임프가 상대원딜과 cs 100개 벌릴때 Godv도 상대 미드한테 cs 100개나 뒤졌으니..~~[* 오히려 정글러인 TBQ의 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qG의 미드인 ~~간신~~도인비는 다데 스타일의 미드라 스위프트가 미쳐 날뛰지 않으면 혼자 라인전 압살하는 경우는 적다.] 이로써 임프는 SKT의 페이커 벵기 와 더불어 2회 롤드컵 우승을 노릴수있는 선수중 한명이 되었다.
비시즌에는 더블리프트와 던지기 배틀을 벌이고 반년만에 돌아온 VG의 바실리에게 솔킬을 따이는 등 팀의 리빌딩과 함께 폼이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데프트의 인터뷰에 의하면 자신과 비교해서 임프의 장점은 라인전 메카닉보다는 변수 생성능력이라고 보는 모양. 삼성 형제팀 시절에는 마타가 시키는 대로 해서 잘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중국에 와서 서로 팀이 달라져서 맞대결을 하면서 그냥 임프가 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데프트 자신도 라인전에서 절대 임프에게 밀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다소 플레이스타일이 한정적인 자신과 달리 임프는 팀원을 활용해서 다양한 플레이를 할 줄 안다고. 김몬테를 위시한 해외 전문가들도 MVP, 구 삼성 시절에는 임프에 대해 마타의 하수인, 가끔 돌출행동을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기며 저평가했으나 시즌 5 시점에서는 LPL에 가장 잘 어울리는 능동적인 원딜러라며 호평하고 있다.~~문제는 그 LPL이 폭망했다~~
그리고 지금 그 폭망한 LPL에서 믿었던 마린의 현지화와 티비큐 2호기, 3호기 같은 정글러, 그리고 IEM때 부터 제정신을 못차리는 중2병 골드 5에 고통받으며 다신 안할꺼같던 MVP White 시절의 소년 가장역을 또 다시 맡고있다.
약한 팀의 전력과 본인의 과도한 공격성향으로 인한 미친 듯한 데스누적은 임프의 후반 한타 실력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게 만든다. 시즌 4에 미스틱은 NLB 전용 왕자님이었고 우지는 중국 미친개였지만, 우지와 미스틱이 한국식 운영을 모방하는 팀에서 공격적인 라인전 능력에 뒷받침되는 엄청난 한타 안정감을 보여주며 시즌 7 롤드컵 4강을 찍는 시점에서 LPL 바닥을 떠도는 임프와 사실상 신세가 역전되어버렸다. 시즌 5만 해도 임프가 연봉과 커리어를 다 가진 상황이었지만, LPL의 수준이 올라가고 몬테에 의하면 LPL에서 VG보다도 더 부패했다는 LGD(...)에 사로잡힌 임프는 자신이 메타와 트렌드의 발전에 맞게 진화했음을 검증받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연봉과 커리어를 교환한 셈이 되어버렸다.~~루키는 2년을 참으니 재키러브가 떡상하는데 임프는......~~
* 키가 작은 편이다. 온게임넷 올림푸스 스프링 롤챔스 결승전 직전에 사진촬영을 하는데 하필이면 키가 큰 [[강형우]]와 같이 사진을 찍었고 깔판까지 보이면서 확인사살. ~~[[임프|키가 작은데다가 악동에 비유되니 적절한 아이디]]~~
* 시즌 3 롤드컵에서 공개된 롤드컵 애니버전 Road to the cup(롤갤 8대 관문)에 등장했는데, 실제와 애니속 작화를 비교해보면 딴사람이다. 머리색도 다르고 심지어 미친고딩은 커녕 판타지 만화 주인공 마냥 진지하다. MVP 마크와 (심지어 이 영상이 올라온 시점은 삼성에 팀이 인수되어 MVP Ozone에서 Samsung Galaxy Ozone이 된 시점이였다) 등 뒤에 달고 있는 베인의 석궁을 확인하고도 임프인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유저들도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PX_IQkeXq9g&feature=youtube_gdata_player|오글거림 주의]]
* 2013~2014 판도라 tv 롤챔스 윈터 16강 팀다크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MVP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인섹 사건에 버금가는 엄청난 방송사고였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1275300.htm|관련기사]] 원딜이 cs 38개 먹고 MVP를 받은 상황.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로 팀 다크가 맹비난을 받는 동안, MVP 인터뷰에서 임프는 어떻게 이 경기에 임했냐는 조은나래의 질문에 "프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로 임프가 철 좀 들었다, 얌전해졌다 라는 반응이 꽤 나왔다.[* 롤드컵 이후로 뭔가 깨달은게 있긴 한 듯. 임프 한명 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 실제로 롤드컵 가서 푸짐하게 똥싸고 오셨던 마타와 다데가 부활했으며 성적도 좋게 나왔다. 그리고 팀 다크와의 2경기에서 같이 던지는게 아니라 일말의 자비도 없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끝냈다. 어쨌거나 정신적으로 성장한 면은 분명히 있는 듯.]
* SKT LTE LOL 마스터즈 2014, 진에어와 삼성의 경기에서 건강상의 문제로 출전하지 못했다. 정소림 캐스터의 말에 따르면 10일동안 입원을 했었고,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이 그래도 하겠다고 해서 당일날 경기장까지 왔으나 결국 응급실을 갔다고 한다.~~그러니까 담배 작작 피라고 했잖아~~ 결국 이 날, 진에어와의 경기에서 세 경기 모두 [[김혁규(프로게이머)|김혁규]]가 원딜로써 플레이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42회 일치
* 그러다 이리나카는 한순간 압박을 풀고 히어로 팀들을 양단시키는데 록록과 [[아이자와 쇼타]], 미도리야가 본대와 분단된다.
* 이리나카는 [[빌런 연합]]의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의 개입을 감지하고 압박을 풀었던 것.
* 록록을 습격해 그 외형을 훔친 토가가 아이자와와 미도리야마저 습격, 아이자와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피를 빼앗긴다.
* 한편 [[서 나이트아이]]는 철포옥 핫사이슈 "랏파"를 복사한 트와이스와 대결하게 되는데.
*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철포옥 핫사이슈 랏파, 텐가이와 힘겨운 격전을 마무리했을 무렵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본대는 살아있는 복도에 갇혀 압살 당할 위기에 처했다. 시에핫사이카이의 본부장 [[이리나카]]는 지금까지는 길을 막거나 일행을 분단시키는 전법으로 진로를 방해했으나 갑자기 노선을 변경, 동화된 벽을 수축시켜서 일행 전체를 한꺼번에 분쇄하려고 들었다.
히어로 연합군은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록록의 개성으로 압벽을 한 쪽으로만 몰고 다가오는 벽을 미도리야 등이 파괴하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형사는 "우둔한 두더쥐"같은 전술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체력의 소모는 엄청나고 진행 속도는 느렸다. 록록은 패트껌 일행이 있었다면 좀 더 효율이 있었을 거라고 불평하지만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아이자와 쇼타]]를 닥달한다. 빨리 무효화를 시켜 보라는 거지만, 아이자와도 놀고 있는게 아니다. 록록의 불평은 더 심해져만 간다.
* 미도리야는 끝없이 밀려드는 벽을 계속해서 때려부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절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를 필요로하는 아이, 에리쨩이 있다.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류큐]]팀, 많은 히어로와 경찰들, 패트껌 일행이 만들어준 길이 끊기게 할 수는 없었다.
체력의 한계가 다가올 수록 미도리야는 기합을 넣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사방을 애워쌌던 벽들이 일시에 멀찍이 물러났다. 아주 잠시였다. 벽들은 곧 다시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일행을 감겨오는 듯한, 분단을 노리는 움직임이였다. 곧 본대와 록록이 떨어진다. 미도리야는 밀려드는 벽에 치일 뻔 했지만 아이자와의 구원으로 가까스로 피했다. 그 바람에 미도리야는 아이자와와 함께 본대와 단절된다.
* 록록이 습격 당했다. 얇은 벽은 록록이 습격 당한 순간의 소음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벽 하나 사이에 있던 미도리야와 아이자와가 그 소리를 들었다. 아이자와가 불러도 그의 대답이 없자 미도리야가 벽을 파괴한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두 명의 록록. 한 쪽은 뻗어있다. 멀쩡한 록록은 "가짜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가짜가 나타나 갑자기 공격했으니 그들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 순간 록록의 시선이 미도리야에게 꽂힌다. 아이자와는 재빨리 쓰러진 "가짜" 쪽에 다가간다. 뭔가 이상하다. "칼자국"이었다. "가짜"는 칼에 찔렸다. 록록이 날붙이를 지녔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록록이 자리를 떠나 미도리야에게 향했다. 미도리야에게 "그쪽은 괜찮냐"면서 접근한다. 미도리야가 별 의심없이 빨리 [[오버홀]]을 쫓아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록록이 기괴하게 웃는 얼굴로 나이프를 내리찍는다. 재빨리 록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아이자와는 나이트아이가 배제했던 가능성을 떠올렸다.
틀렸다. 무효화가 발동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일목요연해졌다. 미도리야는 록록의 얼굴이 녹아내리며 토가 히미코의 얼굴이 튀어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가 반사적으로 이름을 외치자 토가가 좋아 죽으려고 몸부림 친다. 그런 와중에도 나이프를 휘두르는 손만큼은 멈추지 않는다.
>와아아아 또 만나서 기뻐다! 기쁘다 이즈쿠군!
아이자와의 붕대가 토가를 붙잡는다.
* 아이자와는 최악의 상황이란 생각과, 그래도 여기서 한 명을 처리하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붕대를 끌어당겼다.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은 토가가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무효화는 잘 작용하고 있었지만, 토가의 전투력은 개성에서 나오는게 아니었다. 토가는 아이자와가 팽팽하게 당기는 붕대를 잡고 축으로 삼아 공중제비를 돌았다. 몸이 재쳐지면서 아이자와의 머리 위를 지났다. 그때 미도리야를 찌르려던 나이프가 아이자와의 어깨 뒤쪽에 깊이 박힌다. 아이자와가 나이프를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 반격했으나 붕대만 잘려나갔을 뿐. 토가는 아이자와의 후방에 착지하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 몸에 감긴 붕대를 팽개친다.
미도리야가 아이자와를 보호하려고 다가왔으나 아이자와는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 토가가 구석으로 물러나자 이리나카의 벽이 미도리야 일행과 토가 사이를 가로막는다. 협력체제. 압박을 풀었던건 이것 때문이었다. 연합을 끌어들여 일행을 처리하게 하기 위해서. 벽 뒤에서 안전하게 장비를 회수한 토가는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아이자와가 휘두른 칼날이 왼쪽 눈밑을 스쳤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런 자잘한 상처, 고통보다는 미도리야와 재회한게 중요했다. 그녀는 이쪽에 합류해서 잘했다고 만족하고 있었다.
오버홀이 말하는 장기의 재미있는 점. 상대편 말을 빼앗아 쓸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상대편 말을 빼냈다. 빌런 연합의 토가, [[쿠로기리]], 부바이가와라. 그들 중 몇몇을 쓰겠다고 통보한다. 그들이 멋대로 움직이면 자신들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시라가키는 난색을 표했다. 거명된 인물들은 연합에서도 핵심적인 전력. 전부는 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오버홀은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응수한다. 아직까지 서로 원한이 있다. 이쪽은 계획의 전모를 알려줬으니, 연합 쪽에서도 뭔가 내놔야 한다.
* 그리하여 "출향조"로 차출된 것이 토가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트와이스는 나이트아이 앞에 나타났다. "랏파"의 복제로 벽을 뚫으면서.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머리통은 엉망이다.
- 조성모(가수) . . . . 42회 일치
'''대한민국 최후의 음반 황제이자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압도적 인기를 누린 솔로 가수.'''[* 당시 괴물 같던 1세대 아이돌들의 팬덤과 인기를 단독으로 상대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솔로 가수이자 심지어 음반 판매량, 수상 경력 등 커리어로는 그 당시 가요계를 통틀어 압도적이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발라드 가수로서 아이돌을 제치고 대상을 탄 원톱 가수이다. (아래 수상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을 모두 휩쓴 것뿐만 아니라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전신인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도 대상 부문인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도 수상했으니 MAMA에서도 사실상 대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받지 못한 건 [[멜론 뮤직 어워드]] 뿐이다. 근데 멜론 뮤직 어워드는 조성모의 전성기가 지난 2005년에 온라인 형태로 시작해서 2009년이 되어서야 오프라인 시상식이 되었다.--][* 조성모가 최전성기 때 대상을 받은 1999년과 2000년을 기준으로 보면 먼저 1999년 같은 경우 그 전 해인 1998년에는 [[H.O.T.]]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서울가요대상]]도 같은 아이돌 그룹인 [[젝스키스]]와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고, KMTV 가요대전도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 다음해인 1999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은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서울가요대상]]은 [[핑클]]과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였고, [[SBS 가요대전]] 대상은 [[핑클]]이 조성모를 제치고 수상할 정도였다. 이후 2000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SBS 가요대전]],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KBS 가요대상]]은 [[god]]가 조성모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인 2001년에는 [[god]]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골든디스크 시상식]],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는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만큼 1세대 아이돌의 팬덤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원래는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GO003&qid=0DyDI&q=%C8%FC%C7%D5%B4%ED%BD%BA%B1%D7%B7%EC+%BB%E7%C3%B5%BB%E7&srchid=NKS0DyDI|'''사천사''']]라는 혼성(남3, 여1) 힙합댄스그룹의 멤버였으나 공중파 방송 데뷔를 앞두고 해체돼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으며[* 그런데 본인이 밝힌 바로는 (181004 해피투게더) 그 당시는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 트레이너도 존재하지 않아, 댄서였던 다른 멤버에게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춤이 늘지 않자 일 년 반만에 팀에서 방출 되었다고. 팀은 조성모가 나간 이후 공중 분해된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부족한 춤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에는 댄스의 피가 끓고 있다고 꾸준히 힘주어 말한다. 이날, 사천사라는 팀명은 본인이 지었다고 덧붙였으며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사천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김광수(음반기획자)]] 대표[* 그러나 그 시절의 김광수 대표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성모를 만나 제작자로 정점을 찍었다. [[티아라]]가 [[라디오 스타]]에 나와 밝힌 바로는, 자신들 앞에서 '성모가 보고싶다'며 울었다고 한다. 티아라 자신들은 무서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김광수 대표는 자신의 호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에 의해 발탁되어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1998년 9월 4일 첫 앨범 《To Heaven》[* 그런데 본래 조성모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를 예정이었던 노래|다른 가수에게 가려고 했던 곡]]이었다고 한다. 원래 주인공은 현 [[FNC엔터테인먼트]] 사장인 한성호 대표이다.]으로 데뷔 후 줄곧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했는데 [[이병헌]]과 [[김하늘]]이 주연한 뮤직 비디오만 공개[* 조성모의 말에 따르면 방송국에 홍보용으로 미리 돌린 것이 의도치 않게 송출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그것이 예상치 못하게 반응을 끌면서 본의 아니게 얼굴 없는 가수가 된 것이지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한 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1998년 10월 17일 [[이소라(가수)|이소라]]의 프로포즈(99회)로 [[https://www.youtube.com/watch?v=doW-NQXoWgY|방송에 첫 출연하면서 얼굴을 공개했다.]] [* 이 장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도 나온다. 방성재와 도학찬은 조성모의 외모를 가지고 내기를 걸었고 예상 외로 조성모의 얼굴이 매우 멀쩡하자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후 [[이수영(가수)|이수영]]과 함께 유명 발라드 가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둘을 동시대 가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데뷔 초부터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성모와는 달리 이수영은 2집의 실패 이후 3집 그리고 사랑해로 슬슬 뜨다가 2003~2006년을 전성기로 보낸 탓이다. 대신 조성모의 전성기를 2005년 6집 Mr.Flower까지로 보면, 이수영이 7집 Grace와 8집 단발머리까지 히트시키며 그만큼 더 롱런하기는 했다.]
그 뒤 조성모의 활동 시기[* 김광수 사장의 픽업으로 데뷔했지만 아이돌식 프로모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솔로 가수의 필연적 롱런 방식 중 하나인 싱어송라이터 전업에 실패하면서 솔로 가수로서 입지를 유지하는데 실패했다. 그게 아니면 이문세나 이승철 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가수 역량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만나야 되는데 그것도 실패한 케이스이다.] 이후로 음반 시장이 아이돌 위주로 재편되었고 본격적인 CD 시장 붕괴로 인해 MP3 음원 판매가 주를 이루고 가수들의 색깔이 비슷해지면서 '황제', '황태자'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가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음반 판매량에 있어서 조성모는 조용필, 신승훈, 김건모의 뒤를 이을 정도로 엄청난 기록을 갖고 있다.]
▲ 조성모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인 1999년 [[KBS 가요대축제|KBS 가요대상]] 대상 수상 순간이다. 조성모는 그해 KBS와 MBC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서울가요대상과 골든디스크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며 4관왕을 달성했다.
이 중 [[2000년]]에 발매된 2.5집 리메이크 앨범(타이틀곡: 가시나무)은 '''160만 장'''이 팔렸으며 타이틀곡 아시나요가 수록된 정규 3집 앨범은 '''출시 당일 하루 만에 40만 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고 총 '''20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2000년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두 앨범들이 2000년 한 해 앨범 판매량 순위에서 1위와 2위를 석권했다[* 조성모의 두 앨범 외에 2000년 출시 앨범 중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은 god 3집과 서태지 6집 뿐으로 2000년 음반 판매 순위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2000년은 가히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로 [[넘사벽]]급의 '''[[리즈 시절]]'''이었다. 특히 2000년에는 서태지의 전격 컴백을 비롯하여 인기 아이돌 그룹과 톱 가수들이 대거 컴백하여 경쟁이 치열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정규 4집 '잘 가요 내사랑'부터 한계를 보이더니 기존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과의 불화로 인해 소속사를 바꾸어 출시한 5집 '피아노'를 기점으로 점차 내리막길을 타고 정규 6집 이후로 지금까지 히트곡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필래가 2010년 8월 마지막 주 [[엠 카운트다운]]에서 [[http://www.nocutnews.co.kr/news/748873|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는 했으나]] 조성모 본인은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211/sp2012111915515496010.htm|바람필래를 실패작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사실 4집 이후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지 음악방송 1위는 꾸준히 하였다.]
전성기로 평가되는 전반기에 구사된 그의 창법은 미성이 특성이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으나, 전성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과 자신 스스로 창법을 바꾸고 싶단 생각으로 5집 때부터 '''창법이 바뀌게 된다.''' 후반기의 무대 영상이나 음원을 찾아 창법을 비교해 보면 전반기 시절에 보여주었던 1집의 '불멸의 사랑'이나 3집의 '아시나요'와 같은 폭발적인 미성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노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히든 싱어]]에서도 원조 가수 최초로 2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무한도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도 출연 자격을 얻게 되는 노래방 기기 95점을 넘기기 위해 몇 차례나 재도전한 끝에 겨우 출연을 확정짓기도 했다. 윤종신과 더불어 예전 목소리가 그리운 가수. 아마도 창법이 변화된 후부터 팬의 이탈이 많았던 듯 싶다. 남아있는 팬 중에도 과거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X맨을 찾아라]]에서 [[김종국]]이 최대 수혜자였다면, [[출발 드림팀]]에서는 조성모가 최대 수혜자였다.''' 조성모는 출발 드림팀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도전으로 인기를 얻었다. 뜀틀청년이라는 이명이 생길정도로 [[뜀틀]] 분야에서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맹활약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건강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였으나, 정작 병역의무를 공익으로 이행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유는 선천성 어깨탈골. [* [[김종국]]과 같은 날에 훈련소에 입소를 했는데, 김종국이 별다른 행사없이 바로 입소한데 비해, 훈련소 입구 앞에서 팬클럽과 함께 환송회를 열었으며, 특히 공익으로 군 복무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군생활에 공백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 하는 등 지나친 반응을 보인 탓에 비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가수라는 이유로 논산훈련소 천주교 성가대에서 성가복을 입고 찬송가를 부르는걸 목격당하기도 했다. 출발 드림팀은 프로그램 출연자 대부분이 공익으로 빠진 것을 빗대어 '출발 공익팀'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하였다. 참고로 소집해제때 비니를 쓰고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공익으로 복무한 연예인들은 거의 전부가 소집해제 기자회견시 비니를 착용한다. 현역복무자의 짧은 머리와 비교되어 비난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 [[http://youtu.be/ynlG1-OQgxg|To Heaven (1집)]] : [[이병헌]], [[김하늘]], [[허준호]], [[조민수]], ~~꼽사리~~[[정웅인]][* 이병헌의 친구 역으로 연기하였음.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탐문수사하는 형사 허준호한테 ~~X나게~~ 두들겨 맞고 멱살잡히는 장면이나, 이병헌의 도움요청에 이병헌과 김하늘이 악당들에게 기습당하는 곳에 쳐들어가 함께 싸워주는~~(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장면에서만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최종원]][* 간주 중 회상씬에서 잠시 등장. 이병헌과 조민수의 아버지로 이들의 어린 시절에 경찰로 근무중 순찰을 돌다가 동네 양아치들의 집단 폭행으로 살해당한다. 누나와 함께 살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 어린 이병헌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양아치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성장하여 복수하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주요 스토리다.] ~~[[오상훈]]~~[* 명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계에서 조연급으로 얼굴이 익숙한 배우이며, 특히 조성모의 대표 뮤직비디오들에서 악역으로 인상깊게 각인된 배우다. 'To Heaven' 뮤직비디오에서는 김하늘을 승용차에 가둬놓고 석유를 뿌려대고 불붙이는 대머리 조폭 역으로 짧지만 상당히 인상 깊게 등장한다.]
- [[http://youtu.be/C9CMZ35vTYs|아시나요 (3집)]][* 영화 '플래툰'의 촬영지인 [[필리핀]] [[마닐라]] 올로케로 촬영되었으며 2000년 당시 총 제작비로 15억원이 들어간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사상 전무후무한 대작 스케일을 내뿜는다. 스토리 내용은 주인공 조성모가 월남전쟁에 파병되어 베트남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함께 죽는 슬픈 결말로 구성된다. 극중 파병 부대로 마크까지 등장하는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베트콩에게 전멸당하는 전투장면 및 얼차려 등의 병영생활 등이 나오는 장면들과 관련하여 거센 항의를 받고 법정공방까지 가기도 했다. 한편 [[천국의 눈물|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도 만들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http://www.youtube.com/watch?v=oB4oCDXFXhE|수정판]][*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항의로 인해 부대마크를 모자이크 처리 및 전반부 국군이 베트콩에 전멸하는 전투장면을 삭제하고 후반부 전투에서도 주인공 조성모가 베트콩 수장을 죽이는 장면을 추가 삽입하는 등의 수정작업을 거쳤다.]) : [[신민아]][* 1999년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로 데뷔하였고, '아시나요'는 그녀가 출연한 두 번째 뮤직비디오 작품이자 실질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알린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조성모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인 베트남 소녀 역할을 맡았으며, 전투를 떠나는 부대원의 지리정보를 주기위해 겁도 없이 총도 안가지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결국 베트공의 총에 맞아 죽는다.], [[허준호]][* 주인공 조성모가 소속된 월남파병 부대의 [[말년병장]] 쯤으로 추정된다. 방탄모도 안쓰고 지멋대로 두건을 하고 다니는 등 군기가 제대로 빠져있는데, 중간에 민간인 구출 작전 과정에서 베트공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되고, 베트공 대장의 살해 협박에 아군의 부대 위치를 알려주는 병크를 저지르고 결국 살해 당한다.], [[정준호]][* 조성모가 있는 파병부대의 소대장으로 계급은 중위.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 구해낸 현지 월남 주민인 신민아가 현지 지리에 밝은 것을 활용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 전투에서 숲속에 [[네이팜탄]]을 뿌리며 불을 지르다가 베트공의 습격에 폭사당한다.], [[신지수]][* 극중에서 신민아의 여동생으로 연기한다.], ~~[[오상훈]]~~[* To Heaven에 출연했던 악역 전문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국군과 대치하는 베트콩의 대머리 수장 역할로 거의 주연급 악역으로 출연한다.], ~~[[김대진]]~~[* '여름아 부탁해'를 부른 그룹 인디고의 멤버 맞다. 그 이전에는 지오에서 활동했다. 조연급 배우로 활동중이며,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서 조성모의 동료 병사로 출연하는데, 극중에서 전투중에 아역배우였던 신지수를 비롯한 월남 민간인들을 구출하려다 총상을 입고 전사한다.]. ~~[[한나나]]~~[* 가을동화에서 송승헌의 약혼자로 나왔던 그 배우 맞다. 뮤직비디오에서 간호장교로 간간히 등장한다.]
- [[http://youtu.be/6xEsEArWAa0|다짐 (3집)]] : [[강동원(배우)|강동원]][* 홍수현이 바람피며 만나는 새 남자친구 역할로 잠깐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무명이어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강동원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재조명 받게 된 케이스다.], [[홍수현]], ~~[[김대진]]~~[*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다짐' 뮤직비디오에서는 홍수현의 남자친구로 홍수현이 바람피는 것에 충격을 받고 싸우다 홍수현한테 차이는 역할로 나름 열심히 연기했다.]
- [[http://youtu.be/7BttP5wx3Cw|다음 사람에게는 (3집)]][* 조성모의 3집 후속곡 뮤직비디오가 맞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던 2000년 말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이미연을 모델로 내세운 발라드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戀歌)'의 홍보 뮤직비디오의 성격이 더 강했다. 청순가련의 대명사인 이미연의 보증수표 이미지에 조성모 뮤직비디오의 날개를 달은 덕분에 홍보효과는 백점 만점인데다, 컴필레이션 구성 또한 심심하게 옛날 발라드 명곡들만 넣은게 아니라, 조성모의 '아시나요'를 비롯해 2000년 당시 최신 인기 발라드 곡들까지도 과감히 비중있게 수록한 4CD의 알찬 구성 덕분에 최초라는 수식과 더불어 최다 음반 판매라는 수식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와 다르게 '연가'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조성모의 곡이 아닌 원곡인 정재욱의 곡이 담겨 있다.] : [[이미연(배우)|이미연]], [[류시원]], [[김세아]], [[김채연]], ~~[[황인성]]~~
- [[http://www.youtube.com/watch?v=wsvC0aQiaCE|Ace of Sorrow (베스트)]][* 조성모와 GM을 떠나 소속사를 옮기면서 잡음이 많아지던 2002년 가을에, GM이 조성모와 체결한 계약기간 막바지에 당사자와 협의 없이 발매한 조성모 디스코그래피의 [[흑역사]]로 일컽는 베스트 앨범 'Best Of Best: Don't Forget To Remember'에 수록된 신곡이다. 이런 형태의 베스트 앨범은 조성모 뿐만 아니라 소속사를 바꾸는 가수들에게 비일비재했던 전 소속사의 횡포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조성모의 경우 새소속사를 통해 발매할 5집 활동을 방해할 목적과 더불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조성모의 단물을 마지막까지 빨아먹어 보겠다는 속셈으로 발매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 구입하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조성모의 역대 히트곡들이 모두 담기고 라이브 실황 음원까지 담은 4CD 구성으로 가요계를 평정했던 명가수의 베스트 앨범으로서는 괜찮은 것 같다.] : [[권상우]], [[신은경(배우)|신은경]], [[정준호]][* 이로써 정준호는 허준호를 한 표차로 따돌리고 역대 조성모 뮤직비디오들에서 최다 출연한 배우가 된다.]
- [[http://www.youtube.com/watch?v=pNy6pS4uaCI|피아노 (5집)]][* 핑클의 Now, 당신은 모르실거야 뮤직비디오 등을 기획하고, CF 필름 특유의 색감과 화려한 촬영기법으로 유명한 이상용 감독이 기획했다. 뮤직비디오에서 클라이막스는 조성모가 연인인 한지민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피아노 제작공장으로 숨어 들어가 시가 2억원을 호가하는 크리스털 피아노로 연주하며 라이브로 노래의 고음 파트를 부르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피아노'라는 노래 제목답게 경기도 부평 삼익악기 공장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공장에 피아노를 수십대 깔아 놓고, 특별히 삼익악기로부터 2억원을 호가하는 크리스탈 피아노를 협찬받기도 했다.] - [[한지민]][* 뮤직비디오에서 조성모의 히로인으로 등장하는 한지민은 2003년 당시 드라마 '올인'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열연해 얼굴을 알렸고, 각종 CF 및 신승훈의 뮤직비디오 '이별 그 후' 등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데, 조성모와는 99년 '에퓨 화장품' CF에 같이 출연했던 것이 인연이 돼 이번에 뮤직비디오에서 함께 연기하게 됐다.]
- [[http://www.youtube.com/watch?NR=1&v=vChVqrG9xnw|눈물이 나요 & Mr. Flower (6집)]][* 2000년대 들어서 뮤직비디오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장재혁 감독의 작품으로 '아시나요' 이후 별다른 임팩트를 발휘하지 못했던 조성모표 뮤직비디오가 다시금 고개를 들게 한 작품이다. 2005년 2월에 앨범과 함께 발표한 뮤직비디오로서, 2004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최고의 주가를 올린 배우 김정은과 소지섭을 캐스팅한 것만으로도 큰 화제인데다, 뮤직비디오 스토리 전개상 거친 장면이 많은데다 일본 현지 올로케이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많아 7억원의 꽤 많은 제작비보다도, 총 112억원의 두 배우에 대한 보험금이 실질적으로 더 화제이기도 했다. 일본배우 오사와 다카오도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 [[소지섭]], [[김정은(배우)|김정은]], [[오사와 다카오]]
3집 타이틀곡인 아시나요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가 파월 상이용사 출신들과 [[대한민국 육군]] [[제9보병사단]](백마부대) 측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베트남으로 파병된 조성모의 부대가 9사단의 부대표지(부대마크)을 단 장면이 그대로 노출 된 것이었는데, 하필 이 부대가 [[베트콩]]에게 전멸된다는 내용이었기에 백마부대와 해당 부대 출신 참전용사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항의의 주요 원인이었다.[* 부수적으로 극중 허준호가 방탄모를 안쓰고 두건 착용을 하거나, 파병된 신병들을 길들이기 형식으로 얼차려 주는 모습 등에 대해서도 사실이 왜곡되었다며 항의했었다. 심지어 백마부대 측에서 GM기획 측으로 공문까지도 보냈다고 한다. 이 부분을 공식 항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송기]]를 타고 파병되는 장면 역시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당시 국군 파월 병력은 [[대한민국 해군]] [[LST]]나 임차한 민간 수송선 등 해상운송수단으로 파병되었지 수송기를 타고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마부대와 월남전참전전우회는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판매금지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주 이유는 이 비디오가 월남전에서 백마부대가 거둔 혁혁한 전과를 호도했고, 월남참전용사들을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법원은 결국 조성모의 손을 들어줬는데, ~~고증도 틀린~~ 전투복에 부착된 백마부대의 표지를 지워내는 등 명예훼손의 염려가 있는 부분을 배제하려 한 노력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뮤비는 결국 공중파에서 내려야 했고 양수리에서 급히 찍은 뮤비로 대체되었다.
조성모가 탈락하자 MC인 전현무부터 시작해 연예인 패널들, 관중석, 그리고 조성모 본인도 큰 충격에 휩싸였는지 잠시 스튜디오에 적막이 흘렀으며, 이후 전현무와 연예인 패널들이 각종 분석을 하면서 그를 위로하느라 정말 애썼다. 허나 원래 히든 싱어의 슬로건이 '숨은 가수 찾기'이기 때문에 이후 라운드에서 조성모에게 가는 표는 무효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1등을 하였다. 비록 조기 탈락이라는 커다란 업적(?)을 세우긴 하였지만, 덕분에 조성모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다시 집중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왕중왕전 및 TOP3 생방송에 걸쳐 임 군의 조성모 모창이 너무 뛰어났기에 이목이 집중되기도 하는 등 히든 싱어 출연의 결과가 마냥 안습이라고는 볼 수 없을 듯. 그리고 시즌 3종료후의 왕중왕중왕전(시즌1~3 통합전)에는 콘서트 종료 직후 달려와 약간의 농담을 던지며 호탕한 웃음을 보이는 등 아무렇지 않게 참석했기에 쎄한 느낌을 말끔히 지웠다.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무한도전 토토가]]에서 정준하와 박명수가 섭외를 하기 위해 노래방 기기로 테스트를 했는데,[* 자신의 곡을 불러 95점 이상 나와야 출전이 가능하다.] 'To Heaven'을 불러서 '''83점이 나왔다.''' 한 술 더 떠서, 곧바로 '''박명수가 같은 곡을 불렀는데 96점이 나왔다.''' 조성모 본인의 말에 의하면 어떻게 고득점을 받는지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것을 아예 모르는 박명수보다도 점수가 낮았다.(...) 그러나 이후 '가시나무'를 불러 100점을 획득해 출연자격을 얻었다.[* 그 전에 '다짐'도 불렀는데 88점이 나왔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했는데 초반부에 실력자와 음치를 같은 비율로 탈락시켰으나 마지막에 결국 실력자를 탈락시켜 음치와 듀엣했다. 이 때 신인밴드의 보컬을 구할 필요가 있어서 출연했는데.(...)[* 실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연예인 음치 판정단을 너무 믿은 게 문제였다.] 그래도 마지막에 탈락시킨 실력자를 섭외해 보컬을 구하기는 했다.
- 박진성(시인) . . . . 41회 일치
[[2018년]] 자신이 받은 성폭력, 성희롱 혐의를 키운 언론인 [[한국일보]]와 기사를 쓴 황수현 기자와의 재판에서 1심 승리.
* 《[[하와와]]》 (미디어샘, 2018년 출간 예정)--[[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st=day&page=0&number=796929&from=best|진짜 시집 이름이 이렇다]]--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http://www.gqkorea.co.kr/2017/09/29/%EC%A0%95%EC%A0%95%ED%95%A9%EB%8B%88%EB%8B%A4/?_C_=18|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백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남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남의 최후' 라던가 하는 식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박진성 시인이 이후에 공개한 카카오톡 내용을 보면 익명으로 폭로한 최초 폭로자는 박진성 시인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자 "그럼 본명 말해도 돼요?"라고 실명 폭로할 것임을 협박하며, "주실려면 저는 돈이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37|#]] 전형적인 [[꽃뱀]]의 수법으로 보인다.[* 이후 사건 전개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본인이 그 트윗 내용을 스스로 삭제했다. 이는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폭로자가 한 말과 [[탁수정]]이 한 말이 비슷한 내용이라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박진성 시인은 2018년 2월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7662925585432576|최초 폭로자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계정을 폭파했다]]고 했고 7월 22일엔 이 사람이 김○○이라고 밝혔다(이름을 밝히게 된 것은 7월 19일에 자신이 그 최초 폭로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사과를 했는데 이 트위터 계정이 박 시인의 다중계정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 의혹에 대한 자세한 건 '자살 시도와 이와 관련된 그의 이후 행적'을 참조.).]
이 주장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것은 [[한국일보]] 소속의 황수현 기자이며, [[http://www.hankookilbo.com/v/0564032fc2164032b7c5c3af3f668c50|이 기사]]([[https://archive.is/uTwCo|@]])를 보면 [[메갈리아]] 성향의 [[페미니스트]]로 보인다. 위의 보도 이후로는 대표적인 [[기레기]]로 평가되고 있다. 박 시인은 2017년 2월에 한국일보와 황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에 말하길 26일이 1심 6차 변론 기일이었는데, 한국일보 측이 정정보도를 할 것은 확실해졌고 손해배상의 규모 정도만이 남은 기일 동안 정해질 것 같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895731627474944|#]] 그리고 7월 18일에 1심에서 승소, 한국일보와 황수현 측이 정정보도와 함께 5천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06&aid=0000092780|#]]
==== 무혐의와 무고 ====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로 결론이 난 내용을 주장한 2명을 각각 무고 및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두 명 다 그 죄가 인정되었으나 초범에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기소유예, 벌금 30만원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483930&plink=ORI&cooper=|해당 기사 링크]] [[https://imgur.com/pmqT0ao|뒤늦게 거짓임을 고백하는 고발자의 카톡 내용]]
이후 박진성 시인은 2016년에 나온 기사들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는데 한국일보만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의 [[https://blog.naver.com/poetone/221149485970|블로그]]와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378037782216704|트위터]]를 통해 황수현 기자를 허위사실유포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7년 11월에 시인의 아버지가 쓴 글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보도가 난 이후 집 앞에서 피켓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고, 지인들의 연락이 모두 끊겼으며, 출판사는 책을 내주지 않는 등 결론이 나기도 전에 보도만으로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한국일보 같은 신문사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기사를 썼으니 사실 아니겠냐'며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박진성 시인의 출판을 담당했던 출판사는 사건이 나자, 무죄여부 확인 과정없이 일주일 만에 출판 계약 해지에, 출판된 시집은 출고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된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출고 정지 처분을 풀지 않고 있는데, 계약 해지에 대해 물었더니 "아직 시인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받은 적이 없다. 언제든지 연락을 주신다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9082|해당 기사 출처]][* 이 기사에선 출판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박 시인 아버지의 글에선 [[문학과지성사]]라고 나온다.] 2018년 3월 21일에 [[https://blog.naver.com/poetone/221233628914|문제의 출판사와는 결국 계약을 해지]]했으나, 무슨 문제가 있는지 7월에 박 시인이 밝히기를, 문제의 시집은 아직도 출고정지 상태라고 한다.[* 이 사실을 처음 밝힐 때 박 시인이 여러 시집의 계약을 이행하라는 언급도 한 것과 2016년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산문집의 글은 2018년 3월 계약해지를 알린 후에 산문집 '이후의 삶'에 포함되어 출간된 걸 보면, 기존의 시집과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시집과 관련된 계약을 해지하는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1115546|#]]
그러나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많다. [[아몰랑|조리돌림해놓고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양반이고, 아직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804441760350208|#1]][[https://archive.is/LXMJh|@1]][* 첫번째 예시에 나온 사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을과 시옷이라는 닉네임을 쓴 적 있고 김여선 또는 이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점 레스토랑 Cooper Room(카퍼룸)([[https://twitter.com/Copper_Room_|#트위터 계정]][[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37996846|#네이버 플레이스 정보]])에서 일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지망생[[https://twitter.com/satoy_0045/status/928626634474663936|#]][[https://archive.is/Nhple|@]]인데, 이 사건에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6453624502284288|박 시인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2명 중 한 명]]([[https://archive.is/yofTZ|@]])이다. 무고죄로 기소유예를 받은 뒤에 트위터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가 파란이 사그라들자 다시 계정을 복구하였다. 여러 문학 작품들만 인용하는 식으로 한동안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탁수정]]과 박 시인 간의 설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2월에 갑자기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었는데, 김여선의 전과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다 도리어 대중들이 자신의 죄를 역으로 캐묻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것을 직감했는지 다시 트윗들을 삭제했고, 사태가 다시 잠잠해지자 자신을 비판했던 이들을 고소할 것을 선언했다. 3월에 또 박 시인을 공격했지만 예전에 비해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며칠 후부터는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듯했는데, 4월 16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887446482042883|'이후의 삶' 펀딩을 망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서 거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려는 수작이 들켰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http://web.archive.org/web/20171127054338/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 유진목이라는 1인 영상 제작사 목년사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다.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71395|#]]] 심지어 이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776705218068482|송승언]]([[https://archive.is/HxWyl|@]])이라는 사람은 [[http://moonji.com/bookauth/9173/|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2017년 5월 17일 이후로 주로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만 단정짓고 이야기했으며, 무혐의 처분 후에도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https://twitter.com/search?f=tweets&vertical=default&q=blanknoose%20박진성&src=typd|#]][[https://archive.is/286Iy|@]] 이후 박진성 시인의 무고가 확실해지면서 자신에게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한동안 [[https://twitter.com/blanknoose|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였다가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웃긴 것은 2017년 5월 24일부터 자신의 전 연인이자 후배 문학도에게 '문단창녀'라 성희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진성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송승언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거나 박진성 편을 드는 자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는 정신승리로 침묵하고 있으며 박진성 시인을 모욕했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있다(증거 자체는 예전부터 삭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67579611017658372|#1]][[https://archive.is/z5QTN|@1]][[https://twitter.com/blanknoose/status/936928452875186180|#2]][[https://archive.is/IMg8R|@2]][[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99014088801386496|#3]][[https://archive.is/IdmMq|@3]]]
그리고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5282180711837697|ㅁㅊ]]([[https://archive.is/GZrdp|@]])이라는 전형적인 [[트페미]]는 자기 말로는 이미 등단한 실제 시인인데도 익명을 쓰고 있다고 추측되는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947768753299457|글]][[https://archive.is/uk1hs|@]]을 올렸다. 심지어 ㅁㅊ은 저 글 전체에서 간이 부었는지 트페미,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박가분]]과 [[유아인]]과 박진성을 같이 엮어 비꼬고 있다.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5280720691437568|#]][[https://archive.is/nKyFQ|@]][* 그리고 ㅁㅊ은 박진성을 비하하는 과정에서 '''문단_내_성폭력''' 태그를 처음 돌렸다고 자처했으며, 카페 창비에서 자기 편을 들거나 자기와 처지 같은 모임에 모인 사람 몇몇과 같이 뒷담화와 무차별 고소를 모의했다는 간접적인 자폭 시인(是認)을 해버렸다. 이는 박진성처럼 무고죄 처분을 받은 피해자들의 조사에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436470416334849|#]] [[https://archive.is/9IZbK|@]] 여담으로 [[http://www.hankookilbo.com/v/59c63886250945728a1b52d81920104c|이 기사]][[https://archive.is/eNOrA|@]]에 나온 비공식 모금 출판 책 '참고문헌없음'에는 박진성 작가를 허위사실로 조리돌림한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유진목 작가, 탁수정(책은탁)이 공동 저자로 표기되어 있다([[https://tumblbug.com/baumealame4|해당 펀딩 주소]]). 즉, 저 자료도 무고죄 소송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965482632808026112|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 이 때 그녀는 '좋은 소식'이라고 웃었는데 이 반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https://blog.naver.com/poetone/221212096465|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이들은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아전인수]]와 [[내로남불]] 그 자체인 상황.
사실 박진성 시인도 소송을 건 사람 중 한 명이나, 아래의 자살 시도 이후 부질없이 느껴져서 취하했다. 2018년 4월 11일에 박 시인이 [[탁수정]]에게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3923802202488832|메인 트윗에 올린 자신과의 카카오톡 대화를 내리라고 요구]]했을 때, 이때 몇몇 트위터리안들이 대화의 전문을 트위터에 올리는 것을 건의하자, 박진성 시인은 진실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해당 건의를 거절하면서 그 대화록은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월 19일엔 메인 트윗을 내려줄 것을 다시 요청했는데, 이 때는 '오늘까지 기다린다'는 말([[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6803521419755520|#]])까지 한 걸로 보아 당시엔 탁수정과의 소송전 재개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대신, 한국일보와 황 기자와의 정정보도 요구 소송의 1심 판결문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1020315951638564865|해당 대화를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 부분을 7월 20일에 공개했다.
==== 자살 시도와 이와 관련된 그의 이후 행적 ====
그 와중에도 페미니스트들과 박진성 시인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하면 죄가 없어지냐' 같은 소리를 하거나 '박진성이 자살하기 전에 여성 습작생들에게 집적거렸다', '과거에도 자살을 빌미로 여자들을 꼬시고 동정심을 유발했다(본인의 고백 내용)' 같은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2017년 12월 7일 기준으로, 트위터를 이용해 마녀사냥한 주요 오프라인 가해자들은 비판을 받아 재판에 불리해질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계정을 폭파시키기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편을 드는 SNS에서의 옹호자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9276420290576384|#]][[http://archive.is/meecs|@]][* 이 사례는 Holden 🔻Weatherfield라는 닉네임과 psychokinesis23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페미니즘]] 계정이다. 성향은 [[메갈리아]] 옹호자이자 가해자 [[이준행]]에게 [[재기#s-6|재기]]라는 [[남성혐오]] [[고인드립]]을 들은 피해자 [[전우용]]이 [[전우용#s-4.3|고소하다 용서한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https://twitter.com/psychokinesis23/status/772794350883315713|#옹호증거1]][[http://archive.is/gGvKe|@1]][[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772787036306546688|#옹호증거2]][[http://archive.is/QG3O0|@2]]). 특히 박진성의 자살시도가 성공해야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라는 조롱을 일삼은 점을 자신의 취향으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염동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면 저 시인을 자살로 몰고갈 수 있을 텐데''''라는 입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진영논리]]에 휩싸인 나머지 [[사이코패스|자기 진영 일원의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소시오패스|공감을 잃은]]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은 아예 사건에 입을 다물거나 익명의 계정에 숨거나 검색을 막기 위한 부계정과 스팸계정을 아직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https://twitter.com/No_JS_OK|해당 트위터 링크]] 이들은 어쨌든 관계를 맺고, 인정한 사실을 발설하더라도 [[지랄 옆차기 하네|해당 상황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보호 조치라고 설명한다.]]
* 2018년 2월 7일 [[JTBC 뉴스룸]]에서 [[탁수정]]을 인터뷰하며 [[미투 운동]]을 보도한 것([[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37&aid=0000174513|#]])을 보고 격분,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1266038443659264|그동안 거절해 왔던 무고 관련 인터뷰에 자진해서 나서겠다]]고 밝히고는 그녀를 비난했다. 그리고 탁수정이 이에 대해 반박한 것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서 4월까지 설전이 진행되었다.[[http://kingshandle.tistory.com/488|2월 9일 시점에서 정리된 글]][* 이 글은 설전 초반의 상황이 정리된 글로, 그 이후 상황까지 정리된 글은 없다.] 실제로 박 시인은 2월 28일에 '''[[MBN]]과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http://naver.me/FdNCVQm4|#]]
* 3월 21일, 박진성 시인은 [[탁수정#s-2.2|3월 14일의 탁수정의 인터뷰]]와 관련된 인터뷰를 [[리얼뉴스]]와 가졌다.[[http://realnews.co.kr/archives/10275|#]] 인터뷰어는 [[박가분]].[* 여담으로 리얼뉴스는 여타 진보 언론들과는 달리 [[래디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성향이 강하며, 인터뷰를 맡은 박가분 또한 래디컬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 2018년 7월 13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28887|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21개월 동안 '[[남혐]]주의자'들에게 공격당했음을 밝히며, 자신과 같은 피해를 당한 성폭력 무고 및 남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초기라서 개인적으로 하는 정도지만 뜻이 있는 변호사와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아 연대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 7월 19일에 자신이 그 최초 폭로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https://twitter.com/ugeWQfbFleFEVyh|'그 발언은 관심을 끌기 위해 장난삼아 한 거짓이며 죄송하다']]([[http://archive.is/hcuSe|@]])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는데, 탁수정은 최초 폭로자에게서 이 트윗이 자신이 쓴 게 아니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한 뒤 해당 트위터 계정과 박 시인을 옹호하는 어떤 계정에 등록된 전화번호 끝자리가 박 시인의 트위터 계정에 등록된 전화번호 끝자리 04와 같다는 점을 들어 두 계정이 박 시인의 다중계정일 가능성을 제기했다.[[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1020219141146341377|#]] 22일에 이 의혹에 대해 [[트페미]]들이 이야기하는 걸 본 박 시인은 한 트페미에게 최초 폭로자가 04로 끝나는 휴대폰 번호까지 개통해 조작을 하는 걸 거라고 말했는데, 그 트페미는 그가 여러 계정을 운영한다는 내용이 있는 트위터 신고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1020861907266228226|#]] 그러자 박 시인은 여러 계정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제재당한 적 없다고 말했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1020873415547224064|#]]
위의 사건들로 인해 일각에서는 박진성 시인이 [[미투 운동]]을 반대하고 [[무고죄]]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와전되어 있다. 그러나 박진성 시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며, 다른 문인들의 성범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즉 박 시인은 [[탁수정]]이나 [[위근우]]처럼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비판할 뿐, 미투 운동을 지지함은 물론 '''[[고은(시인)|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등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40회 일치
로마노프는 T-80 중대를 지휘해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 구역을 확보한 후, 말라셴코와 협동해 교차로 하나를 확보한다. 하지만 몰트케 다리 확보를 맡은 중대는 미군 공격헬기의 공격으로 괴멸당하기 직전이었다. 오를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대공차량을 지원해 주며 몰트케 다리 확보를 지시한다. 로마노프는 그의 명령대로 몰트게 다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몰트케 다리를 확보한 소련군은 6월 17일 거리로 진군하기 시작한다. 포병대와 육군 항공대 소속 공격헬기의 지원을 받은 소련군은 기습당한 미군을 거침없이 밀어붇힌다. 결국 로마노프는 말라션코와 함께 6월 17일 거리를 확보한다.
전투가 끝난 후, 소련군 전사자의 시신들을 확인하던 오를로프스키와 레베데예프에게 말라셴코가 찾아온다. 오를로프스키는 조카인 말라셴코의 활약을 칭찬하고 말라셴코는 머지않아 전 유럽의 사회주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말라셴코를 부대로 돌려보낸 후, 레베데예프는 말라셴코 같은이가 더 있었더라면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에 오를로프스키는 전쟁이 빨리 끝나길 빈다는 말을 남긴다.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나서 4개월 뒤. 아무런 표시가 없는 컨테이너선이 시애틀 항구에 나타난다. 신고를 받은 순찰차가 시애틀 항구에 도착하자 컨테이너선에서 소련군 Mi-24 공격헬기가 이륙, 순찰차를 공격해 쫓아낸다. 이후 소련군 부대와 장비가 시애틀에 상륙하기 시작한다. 소련군 사령관은 침공부대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방송국 헬기를 내버려두었다가 보여줄만큼 보여줬다고 생각되자 ZSU-23-4 자주대공포로 방송국 헬기를 격추시킨다.
미군 장교인 마크 배넌 대위는 소련군의 침공으로 아비규환이 된 시애틀을 험비를 몰며 질주한다. 무전기를 사용하며 험비를 운전하던 배넌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스쿨버스를 피하려다가 험비를 전복시킨다. 배넌은 험비에서 기어나와 해당 지역의 미군을 지휘하던 파커 중위를 찾아간다. 둘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자기 부대를 찾아가려던 주방위군 병사 마이클 톰슨과 안톤 로드리게스를 즉석에서 편입시킨 배넌은 시애틀은 사실상 함락되었다며 파커에게 후퇴를 명령한다.
서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의 행렬은 이어졌고, 소련군이 미국을 침공하였다는 소식은 라디오 방송국의 방청자 제보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소련군은 공수부대를 시애틀 외곽에 투하하고 있었다. 배넌은 고속도로 다리에 방어선을 설치했다. 방어선이 돌파당한다면 소련군은 피난민들을 따라잡고, 워싱턴 주 전체로 뻗어나갈 것이었다.
파커와 배넌은 소여가 올 때까지 소련군을 막기 시작한다. 파커는 소련군을 막는 동시에 소련군에게 붙잡힌 민간인과 레빈슨 준장의 일가족을 구조했다. 배넌은 파커를 도와 소련군을 막고, 파커가 처리할 수 없는 소련군의 위치를 소여에게 알렸다. 소여는 배넌이 알려준 소련군의 위치에 화력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파커에게 M60 패튼 전차를 지원했다. 소련군은 BTR 장갑차로 강을 건너 방어선을 뚫으려고까지 했지만 미군은 민간인들이 다리 너머 후방으로 이송될 때 까지 다리를 방어하는데 성공한다.
미군 방어선에 도착한 소여는 제임스 웹 대위를 두 사람에게 소개한다. 웹 대위는 파커와 배넌이 유럽 전선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둘에게 인사한다. 소여는 다리의 후방 지역으로 파커의 담당구역을 바꾼 후 로드리게스를 자신의 곁에 있도록한다.
시애틀에 상륙한 소련군 부대에 속해있던 올로프스키는 소련에 있는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에서 그는 미국인들은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감상과 미국인들을 과격하게 다루는 말라셴코에 대한 걱정을 아내에게 전한다.
로마노프 중대는 다리를 지키던 미군들을 무력화시키고 다리를 확보한다. 뒤이어 말라셴코 중대 휘하 A 소대가 다리를 건너오고, 그 뒤 올로프스키 중대의 잔여 병력들 역시 다리를 건너오기 시작한다. 이때 미군 전투기가 날아와 다리를 무너뜨린다. 자신의 부하들이 고립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말라셴코는 당장 교량전차로 다리를 만들 것을 요청하지만 올로프스키는 너무 위험하다며 서쪽의 얕은 부분으로 건너가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말라셴코는 지금은 우회 공격 따위를 할 시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올로프스키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서쪽에서 벌어지는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동쪽의 얕은 부분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로마노프와 말라셴코 둘 다 양쪽의 얕은 부분을 방어하던 미군 부대를 몰아내고 그곳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강을 건너가서 농장을 점거하고 있는 미군 부대를 쓸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투 도중 농장으로 대량의 미군이 몰리는 걸 발견한 올로프스키는 육군 항공대에게 요청해 농장 자체를 기화폭탄으로 날려버린다.
올로프스키의 예상대로, 오리건 주방위군 소속 미군 부대가 다리를 탈환하기 위해 들이닥친다. 로마노프 중대는 요새화된 방어선과 Su-25 편대, 박격포 지원의 도움을 받아 미군의 대부대를 격퇴한다. 미군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전진해 방어선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린다. 오리건 주방위군은 후퇴하고, 강가와 다리는 소련군의 차지가 된다.
시애틀 근교 고속도로 전투 이후, 소여 대대는 남쪽으로 이동해 파인밸리라는 해안 마을에 도착한다. 원래 계획은 그곳에서 윌킨스 대령이 이끄는 오리건 주방위군 대대와 합류하는 것이었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소련군 공수부대가 파인밸리에 강하해 마을을 점거하고 있었다. 소여 대대의 장병들은 2~3일 동안 피곤한 몸을 움직여가며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현재 상황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중앙과 북쪽이 무너지자 파인밸리를 점거하고 있던 소련군들은 남쪽의 TV 방송국으로 후퇴하고는 자신들과 미군 사이에 포격을 가한다. 소여는 파커에게 포격을 피해 숲으로 우회해서 방송국의 소련군들을 처리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고는 소련군 보병과의 전투에서 쩔쩔매는 배넌을 "유럽 전선에 있었을 때는 좀 더 활기차지 않았나"고 하며 디스한다. 그 동안 파커는 방송국의 소련군들을 처리한다. 방송국 전투를 마지막으로 마을을 점거한 소련군 공수부대가 완전히 와해된다.
>험비 뒤에는 또다른 미군 병사가 주저앉아 있었다. 늦게 온 병사는 먼저 온 병사에게 손을 뻗어서 조심스럽게 밀친다. 먼저 온 병사는 죽은 듯이 쓰러진다. 늦게 온 병사는 험비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소련군 전차 한대가 험비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병사는 황급히 모습을 숨긴다. 그때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와 폭음이 들린다. 갑작스러운 폭음에 놀라 머리를 감싸쥐던 병사는 다시 험비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소련군 전차가 산산조각난다. 전차의 포탑이 험비 바로 옆에 나뒹군다.
>병사는 험비의 반대편으로 기어가 해안을 바라본다. 먼지 구름 너머로 거대한 전함의 그림자와 포화가 보인다.
>"여기는 파인밸리의 이글 6. 보게되어서 반갑다, 미주리! F6와 E5에 화력 지원이 필요하다, 이상."
소여 대령과 휘하 중대장들은 눈밭에 나뭇가지와 돌맹이로 지도를 급조한 다음 브리핑을 한다. 웹 대위가 강을 건널 수 있는 지점들을 요새화시키고 유일한 다리를 폭파시키자는 제안을 하자 소여는 윌킨스에게 시간을 벌어줄 수 있겠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배넌 대위는 이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병력이 너무 적다고 주장하나 소여는 소련군이 포트텔러에 도착한다면 우리들 손으로 핵전쟁을 벌여야 한다며 배넌을 신나게 까댄다. 이때 소련군 정찰기가 이들 위를 지나간다. 소여는 배넌을 15km 북동쪽으로 정찰 나가라고 지시한 뒤 급조한 지도를 부수며 작전을 시작한다.
전투 도중 눈보라가 치기 시작해 공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된다. 그럼에도 소여 대대는 소련군 선발대를 막으며 배넌과 C 중대를 기다린다.하지만 배넌은 어느 순간부터 무전을 받지도 않게 된다. 결국 소련군 대규모 전차 부대가 접근하자 소여는 C 중대가 전멸되었다고 판단해 다리를 폭파하고 후퇴하려 한다. 이때 배넌이 C 중대를 이끌고 소련군 전차 부대 바로 뒤에서 나타난다. 파커의 중대와 C 중대는 소련군 전차 부대를 격파한다. 소여는 딱 좋은 순간에 왔다며 배넌을 칭찬하고는 부대를 데리고 후퇴한다.
같은 날, 레베데예프 소령은 사기 관리반에게 넘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말라셴코 대위와 인터뷰를 한다. 미국 침공 후 몇주가 지난 시점에서의 감상을 묻는 레베디예프에게 말라셴코는 영광스러운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스럽지만 딱 한가지가 불만스럽다고 한다. 미국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소련군에게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매복 공격을 가해 인명피해를 낸다는 것. 그는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미국인들이 더 대담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베디예프가 생각해본 해결책은 있냐고 물어보자 그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매복을 당할 때 마다 민간인 10명을 무작위로 처형하는 것. 이에 레베디예프가 그래도 매복이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보자 말라셴코는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대답한다.
- 마니교 . . . . 38회 일치
교리는 살생, 폭력을 금지하고, 육체와 함께 '빛'을 손상시키는 자살도 금지하였다.
마니교 문헌에서는 전도지에서 권력자의 딸이 병에 걸리고 이교도는 고치지 못하는데 마니교 성직자가 의료나 기적으로 치료하며, 그로 인하여 부친이 개종하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이는 마니교의 포교 전략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마니교라고 하면 비밀결사나 밀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는 탄압을 받아 숨어들어가게 된 중국 명교의 특수한 사례로서 오히려 중동의 마니교는 권력자와 지식인과 같은 사회 지도층을 중심으로 포교[* 나쁘게 말하면 권력에 아첨]하는 경향이 강했다.
서기 240년, 24세의 마니는 독자적인 사상에 따라서 유태교 율법을 중시하는 교단에 반발하게 된다. 이 때 마니는 타움[* 천계 동반자, 쌍생아. 지상의 육체에 머물러 있는 마니라는 인격과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또 한명의 자신으로서, 일종의 천계판 도플갱어 같은 것이다.]으로부터 계시를 얻었다고 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려 하지만 당연히 구타(…)를 당하게 되었고, 아버지 파티크가 보호하여 살아났지만 교단에서는 추방당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알게 된 친구 아브자크야, 시메온, 아버지 파티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마니 일행은 아마도 왕족인 친척들의 지원을 얻으려 했던 모양으로, 파르티아의 수도(였던) 크테시폰으로 갔다. 하지만 이 때는 [[페르시아]]가 일어나서 파르티아는 멸망했다(…). 마니의 친척 와라가슈 왕 역시 전사했다. 지원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마니는 포교를 계속하며, 간자크에서는 어느 유력자의 딸을 치료해주고 대신 그 딸들 가운데 가장 신중한 딸을 일행으로 받아들였다. 그 다음에는 갑자기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마니는 인도에서 2년 정도 포교를 했다. 인도에서의 행적은 자세하지 않지만, 파르티아어 단편으로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투란 왕 앞에서 공중부양의 기적을 보여주자 왕과 귀족이 [[붓다]]라고 보고 귀의했다고 하며, 고비데이샤 라는 현자와 철학 문답을 하여 또 다시 붓다라는 선언을 얻었다고 한다. 인도 여행으로 마니는 자신을 붓다의 후계자라고 여기게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과 동방에서는 마르 안모와 가브리야브가 활동했다. 가브리야브는 사푸르 1세의 장남 오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가 국왕으로 있던 아르메니아 왕국으로 포교했다. 가브리야브는 기독교인은 고칠 수 없었던 국왕의 딸을 치유하여 신망을 얻었다고 한다. 또 치유의 기적으로 그루지야 왕도 개종시켰다고 한다.
272년, 마니의 포교를 용인하던 사푸르 1세가 사망, 마니와 인연이 있던 아르메니아 왕 오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가 페르시아 왕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사푸르 1세의 차남, 바흐람 1세가 즉위하였다. 이와 함께 우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 때부터 조로아스터교의 대신관 킬데르가 대두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 국교화 정책이 더욱 강경하게 밀어붙여졌다. 마니는 궁정의사에서 해임되어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종속국 코라살의 시의로 좌천되는데, 몇몇 문헌에서는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를 실패한 것을 질책받았다는 언급이 있어 이 역시 신망을 잃은 원인으로 추측된다.
좌천되었지만 마니는 선교를 멈추지 않고 바트 왕을 개종시킨다. 하지만 이것이 바흐람 1세와 킬데르의 노여움을 불러, 바트 왕은 출두명령을 받게 되고 마니는 미프르 샤에게 도망쳐서 보호를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실각한 상태였다. 마니는 마니교의 세력이 강한 중앙아시아로 도주하려 하지만, 이미 출국이 금지되어 있어 감시당하는 몸이 된다. 마니는 제자 아브자크야와 함께 바흐람 1세를 찾아가서 탄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바흐람 1세는 듣지 않고, 마니에게 무허가로 궁정에 찾아온 죄,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에 실패한 죄, 신흥 종교를 포교한 죄를 물어 쇠사슬로 묶어서 감금한다.
297년 이집트를 방문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마니교도의 숫자가 엄청난 것에 경악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마니교가 [[페르시아]]를 기원으로 하였기 때문에, [[스파이]]라고 여겨서 탄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 제국 내에서 신교의 자유가 인정되자, 마니교 역시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392년에 이를 때까지 약 80년 동안, 마니교와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서 대립을 계속하게 되었다.
>스티키아누스라는 장사꾼이 있었는데, 그는 창녀를 아내로 삼고 있던 타락한 남자였다. 그는 이집트와 장사를 하다가 이집트에서 마술 지식을 얻었다. 그 제자 테레빈토스는 스티키아누스가 얻은 마술 지식을 책으로 정리하였고, 이것이 마니교의 교의서이다. 테레빈토스는 바빌로니아로 떠나서 마술을 보여서 사람들을 현혹하다가 천벌을 받아 죽게 된다. 이 마술서를 하숙집의 여주인이 가져가서, 노예 소년 크루비키오스에게 가르쳐주며 길렀다. 여주인이 죽자 크루비키오스는 마니로 이름을 바꿔서 페르시아 왕을 찾아가게 된다.
>마니는 마술서를 도작하여 60세 까지 제자를 기른다. 페르시아 왕의 아들이 병이 들자 마니는 병을 치료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체포되고, 옥중에서 기독교 서적을 읽으며 자신의 가르침이 기독교와 닮았다고 주장하며 성령을 사칭하여 사악한 교설을 기독교로 치장하였다. 마니는 옥졸을 매수하여 탈옥하고, 로마 제국 국경 지댂지 왔으나 주교 아르케라이와의 공개 토론을 하다가 자비와 자애로 가득찬 기독교의 올바른 가르침에 불명예스러운 패배를 당하고, 페르시아 왕에게 다시 체포되어 불명예스럽게 처형당하게 된다.
이처럼 격렬하게 --인간적으로 좀 너무한-- 인신모독을 가하는 한편, 마니교와 교리 논쟁도 활발하게 벌어졌다. 그런데 마니교의 약점은 논쟁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본래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전한 마니교는 헬레니즘 문화의 [[철학]]과 거리가 멀었다. 그 탓에 당시 로마 제국에서 널리 퍼져 있던 [[그리스 철학]]과 궁합이 나빴던 것이다. [[기독교]]는 이교도와, 그리고 내부에서 교리 논쟁을 반복하면서 그리스 철학의 개념에 따라서 교리를 고도로 논리적인 수준으로 완성해 나간 반면, 마니교는 처음부터 교조가 직접 저술한 성전이 마련되어 있어 교리 논쟁의 필요성이 없었던 것도 교리가 발달하지 못한 원인이었다.
예를 들어, 4세기 마드리드 서부의 아비라 프리시리안이 시작한 프리시리안 주의는 마니교의 마지막 불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금욕주의와 이원론을 내세우던 프리시리안은 마니교와 그노시즘에 오염된 이단으로 여겨져 386년 처형되고, 프리시리안 주의는 6세기까지 근절된다. 이단자가 된 프리시리안의 저작이 보존되지 않은 탓에 가르침은 확실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1886년 바이에른 왕국의 부르트부르크 대학 서고에서 우연히 프리시리안과 제자들의 논고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마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며 우연히 독자적으로 금욕과 이원론을 내세웠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크테시폰의 마니교 본부는 마니 사후 곧바로 분열에 빠진다. 마니가 후계자를 미리 지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싱과 가브리야브가 서로 후계자를 다투게 된다. 5년 간의 대립 끝에 시싱이 후계자가 되어 데인 서랄(최고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286년, 취임 후 시싱은 사프르에게 호출되어 3명의 장로와 함께 처형당하고 만다. 결국 페르시아 제국에서 탄압받은 마니교도는 [[로마 제국]]이나 주변국으로 탈출한다. 로마 제국에서는 마니교도가 급격하게 숫자를 불리게 되고, 일부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아랍계 속국왕 암르 이븐 아디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이 무렵 조로아스터교 대신관 킬데일은 유태교, 불교, 힌두교, 만다교, 기독교, 무토타크교, 잔드교를 이단으로 보고 이들이 제국에서 구축되었다는 비문을 남겼다.
마니교는 불살생, 비폭력을 내걸고 있으며, 작은 생물이라도 죽이는 것은 빛의 요소를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에서 개미와 같은 벌레는 '사악한 생물'로 여겨져서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마니교를 색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권력 측에 선 신관단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 마니교는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남게 된다. 마니교는 경전을 확립하고 있었으며, 질서정련한 교리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는 기도나 배화의례, 구전전승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페르시아의 민족종교로서의 경향이 강한 탓에, 마니교처럼 복잡한 교리와 신화에서 지적인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고 제국의 여러 속민들에게 어필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7세기 중반, [[이슬람교]]가 급격히 대두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한다. [[우마이야 왕조]] 시기에 이슬람교는 타 종교에 비교적 관용적이었기 때문에 마니교 역시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으로 오히려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앙 아시아에서 귀환한 마니교도와 중동 잔존 마니교도 사이에 사소한 대립이 있거나, 데인 서랄이 이라크 총독과 결탁하려 하는 등의 마찰은 있었지만. 오히려 페르시아 문화인들은 왠지 조로아스터교 보다 마니교에 기울면서 마니교의 세력이 회복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화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루 즈베이브 이븐 다두야/이븐 알 무카파우(이슬람교로 개종한 뒤의 이름). 그는 카라라와 디무나 같은 페르시아어 문언을 아라비아 어로 번역했으며, 마니의 저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7~8세기에는 아라비아어로 번역된 마니교 문헌이 많이 나돌게 되었다. 이븐 안 나딤의 피프리스트에는 성전 이외의 마니교 문헌도 나타나고 있어, 이 시기 마니교도는 아라비아어 문헌도 만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니교는 서아시아에서 이슬람 정복 치세임에도 압바스 왕조 초기까지 융성할 수 있었다.
이슬람교 세계에서 마니는 사교의 교조가 아니라 "화가의 선조"로 여겨졌다. 이슬람교 전승에서 마니는 천재 화가로서 사푸르 1세에게 기용되었으나, 신관단과 박해하여 중앙아시아로 떠나게 된다. 마니는 중앙아시아에서 문하생을 모으고 중국의 절에 벽화를 그리다가, 어느날 [[동굴]]에 들어가서 천국에 갔다가 1년 뒤에 돌아와 『아겐크』라는 화집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페르시아에 돌아가 오흐르마즈드 아르다흐시르에게 총애받아 궁전까지 얻었으나, [[바흐람 1세]] 치세에서는 소외 당하고 조로아스터 교 신관과 토론 끝에 산 채로 가죽을 벗겨진다. 제자들은 인도나 중국으로 도망치고, 머물렀던 사람들은 노예가 되었다고 여겨졌다.
마니교는 중앙아시아 소그디니아를 거쳐, 소그드인을 통하여, 중국으로 전해졌다. 이전에 이미 민간 신앙으로 들어와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684년 불다탄[* 佛多誕, 아후다탄을 뜻한다. 마니교 제3위 위계] 미후르 오흐르마즈드(미오물사密烏没斯)가 『이종경(二宗経)』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 공식적인 첫 중국 포교이다. [[당현종]] 시기에 현종은 마니교를 수상하게 여겨 추궁하는데 마니교 측은 교리를 요약하여 『마니광불법의략(摩尼光佛法儀略)』으로 제출하지만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고 포교를 금지당한다.
- 김태우(god) . . . . 37회 일치
라기보다 아이돌답지 않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였다.[* 특히 [[H.O.T.]], [[젝스키스]], [[신화(아이돌)|신화]]의 메인보컬들이었던 [[강타]], [[강성훈]], [[신혜성]]은 미소년들이었는데 반해 god의 메인보컬인 이쪽만 유독 튀는(...)외모를 지녔다. 또다른 유명한 [[NRG]]를 봐도 이쪽은 메인보컬이 리더이자 맏형인 [[이성진]]인데 이 쪽도 나이가 당시 아이돌 멤버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지 충분히 잘 생긴 외모다.] 여러 가지로 1세대 아이돌 중 가장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수 있다. 보통 아이돌은 '비주얼'이 우선시되고 보컬 멤버라고 해도 키가 190이 넘어버리면 주변 멤버랑 밸런스가 안 맞아서 뽑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박진영은 김태우를 메인보컬로 선택했다. 심지어 김태우를 집어넣기 전에 다른 네 멤버와 같이 연습하던 두 명의 연습생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중의 한 명이 배우 [[김선아]]다. 초창기에는 김선아의 배우 이미지를 생각해서인지 god 멤버인 데니 안부터 부인했었으나 박준형이 1박2일에 출연해 사실임을 인증했다.]
처음에는 '인기가수 [[박진영]]'이 심심풀이로 만든 그룹인 줄 알았던 god가[* 사실 그룹 멤버 자체를 구성한 건 싸이더스였고 박진영은 여기에 김태우를 추가하고 프로듀싱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프로듀싱의 비중이 상당했던 지라...]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신화와 맞짱을 뜨는 상황이 되면서, 메인보컬 김태우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샀다. 물론 여성팬들의 인기는 [[손호영]], [[윤계상]], [[데니 안]]이 차지.그러나 god가 신인가수시절에는 박준형과 함께 인지도는 높은편이었다. 손호영 윤계상 데니안은 비슷비슷한 비주얼에 랩만하였지만 누가봐도 아재얼굴인 박준형과 덩치크고 뚱한 체형에 안경까지 쓴 튀는 비주얼로 인해 god내에서는 이 2명이 인지도가 높았다. god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멤버. 외모도 별로인 데다 오버하는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기 지분과는 다르게 김태우가 압도적으로 보컬을 책임졌기 때문에 사실상 중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핑클]]의 [[옥주현]]을 떠올리면 될 듯.
어찌되었건 현역 복무(그것도 '''이기자부대''') + 연예병과 고사(固辭)를 한 덕에 [[까임방지권]]을 제대로 득템한 연예인. 사실 원래는 복무 중 연예병사에 지원하려 한 적이 있었으나 포기했다. 당시 연예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일종의 면접으로 연예병사로 근무하고 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갔는데, 먼저 근무하던 나이 어린 연예인 후배 선임이 군대식으로 서열을 잡는답시고 한 깐깐한 행동들로 인해 열받아서 연예병사를 고사하고 말았다고. 금방 몇몇 동료들이 진상을 털어놓긴 했으나 어찌나 열을 받았는지 훗날 김태우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갔을 때 그 후배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연예계 활동 중에 내 눈에 띄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정작 이 말을 한 본인은 이후 그 행동을 되돌아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그 후배와 또 만났는데 그 후배가 '미안해요. 그때는 부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저희가 총대 멘 겁니다'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며 김태우는 앙금을 풀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꼰대]]질이 문제다--
한편, 이때의 인연 때문인지 [[진짜 사나이(일밤)|진짜 사나이]]가 [[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서 촬영할 당시 예비 군복을 입고 위문공연을 왔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씨스타]]'''에게 장병들의 관심이 완전히 넘어가면서 공연은 대실패(?). 김태우 본인도 "군대에 남자 가수 따위가 누가 온다고 한들 좋아하겠어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 맴버들을 비롯한 후배 수색대원들에게[* 사실상 진사 전용 생활관 멤버들.] [[PX]]에서 한턱 쐈는데 마음껏 사랬더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닥닥 긁어서 무려 19만원(!!!!)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 했다. 이걸 일반적인 편의점의 판매 가격으로 변환하면 대략 30만원 정도 나온 셈이다.[* PX는 [[부가가치세]], 주류세 등의 세금이 안 붙어서 저렴하다. 무엇을 사먹느냐에 다르지만 보통 둘이서 만원만 써도 배가 터지게 먹고도 남는다. 아니, 3봉지에 5000원하는 고향만두를 사면 3명이 먹어도 배부르다. 거기다가 이천원짜리 음료수로 나눠먹으면 7000원으로 3명이 만두와 음료수를 배불리 먹는 [[예수]]에 버금가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런 PX에서 19만원이면...] 자막으로 "PX를 샀냐..."라고 나올 정도다. PX 근무병 왈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이병이던 김형근 군에게 군대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2009년 2월 25일 제대 후 그 해 9월 3일 EP 'T-Virus'를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타이틀곡은 '[[사랑비(김태우)|사랑비]]'. 곡도 세련된 멜로디와 김태우의 목소리와 창법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고, 또 앨범 전체적으로도 [[박진영]]의 느낌이 아닌 김태우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찾은 앨범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190cm이 넘는 키로 곡과 잘 매치되지 않는 ~~군인 냄새 나는~~ 춤을 추는 바람에 '춤만 좀 빼달라'는 부탁을 많이 들었음에도 꿋꿋이 춤을 췄다. ~~god 때도 춤은 못 췄다~~[* 김태우는 춤을 못추지 않고 오히려 잘 추는 편이다. [[문희준]]도 [[20세기 미소년]] 방송분에서 김태우에게 "190 넘는 사람 중에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평가해준 바 있다.]
보컬 자체는 아이돌 출신 수준이 아니며, 소울을 가미한 창법도 수준급이다. 데뷔 초에 비해 심히 허스키해진 보이스는 아마도 god 시절 끊임없이 콘서트 강행군을 한 탓인 듯하다. 그런데 본인도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자랑을 하고 다니는 편이라... 한 번은 자신이 '''[[스티비 원더]]'''와 동급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라디오에서 [[노홍철]]이 '정말 스티비 원더와 동급이라고 생각하세요? ㅎㅎ'라고 집요하게 묻는 바람에 한 수 접고 '그 바로 아래 급'이라고 한 일이 있었다... [[흠좀무]]. 물론 진지하게 [[스티비 원더]]와 자신을 동급으로 평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에 출연한 고쇼에서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재직 중인 연구원인 아내를 "서울대 박사"라고 지칭한 부분을 두고, 몇몇 네티즌들의 학력위조 드립이 있었으나 별다른 문제 없이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미국]]에서 대학 졸업, 이대 대학원 생명공학부에 재학하면서 서울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서울대 박사 학위가 아님에도 '서울대 박사'라고 칭한 것을 문제시한 것. 하지만 [[청춘불패]]의 흑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태우 자체가 상식이 뚜렷한 편이 아니서 생긴 불찰. 일반적인 [[학력위조]]와 달리 학력을 사칭하여 이득을 꾀한 것도 아니다보니, 딱히 큰 논란은 없었다.
2006년 JYP를 나와 폴라리스 엔터에 소속되었으며 2011년부터 소울샵이라는 일인기획사를 설립해서 스스로 매니지먼트를 했다. 이후 소울샵 엔터테인먼트를 처가의 도움으로 확장해서 여러 가수들을 영입했다. 알려진 [[가수]]들은 메건 리, [[길건]], 키스(KIXS) 등.
그러다가 2014년 말부터 소속 가수인 메건 리와 계약 해지를 둘러싼 마찰이 일어났다. 메건 리는 미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모색하면서 소울샵측과 계약 해지를 주장했고, 길건은 메니징 소홀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김태우 처가 쪽 인물들의 경영 간섭. 오히려 이들은 김태우 [[본인]]에 대해서는 불만 없다는 식으로 밝힌 것으로 봐서는 본인의 [[인성]]은 원만한 모양.
이런 논란에 더불어 처가에 대한 루머가 확산되자 메건 리와 길건을 조건 없이 해지한다고 발표하면서 분쟁이 일단락되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01/2015040102516.html|기사]].
프로그램 중에서 [[소녀시대]]의 [[유리(소녀시대)|유리]], [[한선화]]와 러브라인을 만들고, 아이돌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예를 들어 1:7 씨름을 했다) 전국 수 많은 아이돌 팬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대놓고 사심 방송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청춘불패 출연으로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추진력을 얻은 건지]] SBS 2011년 설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스타맞선-유쾌한 스캔들>에서는 [[아이유]]와 러브라인을 만들었다...이와 같은 일 때문에 남자들에게 ''''해방 이래 [[연정훈]] 이후 제일 나쁜 놈''''이라며 지탄의 대상이 된다. 본인도 이 사실을 아는 듯, [[상상플러스]]에서 청춘불패 출연 이후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옛날옛적 god 시절 그 레드썬 교수의 전생 체험에서 밝혀졌던 전생이 '[[관우]]'. 다만 최근에 [[삼국지]]를 읽어서 최면이 잘못 들어갔다는 분위기이긴 했다.]
[[청춘불패 시즌1]] 초반에는 막 전역한 참에 여자 아이돌들과 방송을 하는 것을 상당히 기뻐했으며 [[유리(소녀시대)|유리]]와 러브라인을 엮으려는 시도도 계속 됐으나, 막상 그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던 것은 당시 신인으로서 방송 분량이 아쉬웠던 [[한선화]]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여자 아이돌이다 보니 웬만큼 힘든 일은 전부 김태우의 몫이 되어 제대하고도 여전히 삽질, 망치질, 곡괭이질 등등의 작업이 떠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식이 뚜렷한 편은 아닌데다 이와 관련된 흑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 푸는 실력은 좋은 편이다. 194회 전반전에 참가했을 때는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두번째 도전인 287회 후반전 방송분에선 [[1대 100/최고 단계 문제 #s-4.4|정규 최종 단계(당시 11단계)에서 6명과 대결을 펼쳤다.]](두 대결 모두 각각 8, 12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참고로 2차 도전을 했을 때 '''[[이하늬|여친이 있는]] 윤계상이 god 멤버 중 가장 먼저 결혼할 것'''으로 그가 예측했는데 정작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서 아닐 거라고 예상했던 '''[[박준형(god)|박준형]]이 2015년에 먼저 결혼했다.''' 참고로 박준형 역시 2017년 7월에 인터뷰에서 god 멤버 중 다음 결혼을 할 멤버는 장기간 이하늬와 연애중인 윤계상을 예상했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9차 경연에서 [[슬램덩크(복면가왕)|슬램덩크]]라는 가명으로 나와서 [[쿵푸하는 팬더]], [[달달한 초콜릿]]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으며 결승전 상대인 [[신비한 원더우먼]]에게 7표 차로 밀리면서 준우승했다. 이 때 목소리 때문에 안그래도 티가 나던 상황이었는데 개인기로 했던 이름 모창에서 김건모 모창한답시고 그냥 본인 목소리가 튀어나와 완전히 촬영장을 초토화시켰다.
[[불후의 명곡 2]]에는 반고정으로 나와 총 7번 우승했으며 2018년 5월 19일부터 [[불후의 명곡 2]] 대기실 고정 mc로 활동하고 있다.
[[청춘불패 시즌1]]에서 [[구하라]]가 다리찢기를 하고 있는데 "넌 어려서 골반이 안 벌이지네"라고 말한 게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신영]]이 잠깐 발끈하기도 했고... 이걸 '어려서 경험이 없어서 안 벌어진다'는 식의 [[성희롱]] 발언으로 해석한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가 있었으나 크게 불거지는 일 없이 금새 묻혔다. 이것을 두고 성실한 군복무로 인한 실드가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애초에 [[여성]]은 2차 성징이 끝나면 추가적으로 골반이 성장하지 않으며 골반이 벌어지는 문제와 성경험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이 외 그의 또 다른 개드립인 [[빈유|'목 돌아간 애']] 드립 등을 생각해보면, 그냥 '2차 성징이 안 온 꼬맹이'라는 의미로 쓴 게 맞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더 유연한 것이 '''[[상식]]'''이지만, 이건 그냥 그가 '''무식'''하다고 보면 될 문제다. 주로 성인 여성의 성적 특징과 관련한 드립을 치는 것이니 섹드립이라면 섹드립이지만, 직접적으로 [[섹스]]와 관련한 드립이라기 보다는 [[나르샤(브라운 아이드 걸스)|나르샤]]가 사과 두 개로 글래머 흉내를 낸 것과 같은 수준의 색(色)드립인 것.
여기서 중요한 점은 '김종서의 기분은 어땠을까?'라는 점이다. 김종서가 했던 이야기는 ''''너밖에 인사를 안 했어''''인데, 그 말의 뜻은 '인사를 와 줘서 반갑다'이지 '후배들이 인사 안 했으니 혼내줘'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태우는 김종서의 입장을 고려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과잉충성|선배를 위한답시고 후배들을 집합시켜 군기를 잡고 반강제로 인사시켰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인게, 자칫하면 결과적으로 김종서를 엿먹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37회 일치
전통적인 중세 유럽의 제국 관념에서 '동쪽의 제국'[* 서쪽은 신성로마제국]을 차지하던 비잔티움제국은 11세기부터 이어진 튀르크의 지속적 공세앞에 아나톨리아[* 지금의 소아시아반도] 내륙을 영구상실했고, 그 이후 내륙지방을 지배해온 룸 술탄국의 멸망이후 부상한 오스만의 공세에 아나톨리아 최후의 거점인 니코메디아까지 함락당하며 아나톨리아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는 중세까지 비잔티움을 지탱하던 아나톨리아의 풍부한 생산력[* 지금도 터키는 유수한 농업국이다.]과 그에 따른 인적 자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반대로 오스만은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은 꾸준히 확장하여 트라키아와 발칸의 패권까지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항해서 비잔티움은 외부로부터의 원조를 얻으려고 몇번 시도를 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동서대분열의 종결을 선언한 피렌체 공의회다. 그러나 이는 황제와 일부 정치인들, 학자들만 따랐을 뿐 대부분의 비잔틴 사람들에겐 인기가 없었으며, 오히려 이 때문에 정교회를 믿고 있던 모스크바 대공의 지원만 받기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오스만에 대한 반격도 한편으론 시행되었는데, [[헝가리]] 위주로 시행된 세번의 [[십자군]]이 그것이다. 특히 1444년에 마지막 십자군에서 십자군은 카라만의 족장인 이브라힘 베이가 반란을 일으킨 틈을 타, [[모레아 전제국]][* 현재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친왕 콘스탄티노스[* 후의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연합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체사리니 추기경의 무리한 휴전협정 파기덕에 멋대로 나아갔던 헝가리-폴란드 연합군[* 당시 헝가리와 폴란드는 [[동군연합]]이었다.]은 패배. 왕이었던 울라슬로도 전사하면서 참혹하게 끝난다. 홀로남은 콘스탄티노스는 외로이 튀르크의 공세를 [[헥사밀리온]] 장벽에서 막았으나 결국 헥사밀리온은 무너지고, 친왕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이후 1448년 섭정 야노슈 후냐디 위주로 헝가리가 왈라키아, 보헤미아, 그외 용병대와 함께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의 지도자 스칸데르베그와 협업해 오스만과 싸우려하나, 스칸데르베그는 오지못하고, 후냐디의 군대는 궤멸된다.
한편, 메흐메트가 그를 유럽의 기독교 군주들처럼 애송이로 생각한 카라만의 이브라힘 베이가 게르미얀,아이딘,멘테세의 지도자들과 연합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한 뒤, 그는 예니체리의 봉급 인상문제로 한차례 곤경을 겪는다. 이문제는 봉급을 인상시키는대신 지휘관을 강등하는것으로 끝이 났으나... 이걸로 술탄의 지배력이 어느정도 약화된다. 이틈을 노렸던건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메흐메트에게 사절을 보내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머물고 있던 오르한의 생활비를 더욱 지급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추종자를 다시 풀어놓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을 하기 이른다.
사절의 요구를 들은 메흐메트는 생각해보겠다며 차갑게 대꾸한 이후, 보소포로스 해협의 가장 협소한 지역에 요새를 짓기 시작한다. 이소식을 들은 황제는 경악하면서 사절을 보내 외교적으로 해결을 하려하지만, 술탄은 그들을 쫓아내는것으로 대답을 해줬다. 황제는 그 대응으로 도시내의 튀르크인들을 투옥하는걸로 맞대응했으나, 별 소용없는 행위였고, 결국 모두 풀어주었다. 그렇게 당대에 '보코하즈 케센', 그리고 현재는 '루멜리 히사르'라고 불리는 요새가 완공되었고, 이로인해 이곳을 왕래하는 모든 함선들은 요새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이는 이곳을 통해 무역을 하는 이탈리아 상업국가들에게 큰 위협을 줬는데, 단적인 예로 베네치아인 안토니오 리초가 이끄는 함선이 요새의 검문요구를 무시했다가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살아남은 선원과 선장모두 사형을 당했다. [* 선장은 특별히 말뚝형에 처해졌다.] 더더욱 급해진 황제는 교회통합을 요청하며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건 겨우 200명정도의 병력뿐이었다.[* 별 수 없는게, 당시 교황령의 군사력은 제국보다 별볼일 없었다.(....) 차라리 모레아 전제국이 훨씬 더 국력이 탄탄했을거다.] 하기야 소피야 성당에선 교회통합을 선언하는 미사가 열렸지만, 해당 미사는 황제와 그 일부 측근들, 일부 통합파 사제들과 교황청에서 온 주교들 일부만 왔을뿐이었다.
오히려 국가적인 지원보단 개인적인 지원이 더 줄을 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카스티야의 귀족인 톨레도의 돈 프란시스코[* 자신을 콤네소스 황가의 자손이라 칭하며 황제를 사촌이라 칭하기도 했다. 사실 이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콤네노스가 아닌 팔레올로고스 왕조였고, 오히려 [[트레비존드 제국]]이 콤네노스 왕조의 후손이다. 팔레올로고스 왕조도 콤네노스 왕조와 인척관계이긴 하지만.]와 제노바의 군인 주스티니아니 롱고였는데, 특히 주스티니아니는 공성전전문가로 상당히 이름난 군인이었기에 황제가 직접 방어를 성공해낸다면 림노스 섬의 통치권을 나눠준다고 하기도 했다.
우선 서유럽 국가와 비잔티움 사이에 묵혀뒀던 감정이 4차 십자군때 콘스탄티노플 약탈과 라틴 제국 성립으로 폭발한게 컸다. 이 때문에 정교회를 믿는 제국민들은 서유럽의 가톨릭 교회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고,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내세우는 동서대통합은 종교계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제국에서도 종교적 보수성이 매우 강한 지역[* [[모레아 전제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이라 반발이 더욱 컸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의존도가 국가 이상으로 높았으며, 통제력이 미약한 세속 국가보다는 종교에 대하여 애착을 강하게 가졌다. 특히 말기의 비잔티움 제국은 이미 모든 면에서 오스만 제국의 간섭을 받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며, 오스만 투르크 영토 한 가운데 고립된 '콘스탄티노플'은 모든 면에서 비잔티움 황제보다 오스만 술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세속국가로서 비잔티움은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약화되었고, 제국은 과거와는 달리 '교회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헝가리는 주전파인 섭정 야노슈 후냐디의 영향력이 전술한 코소보에서의 패배로 약해졌고, 왕인 라슬로 5세가 성년이 되어 후냐디의 섭정을 탐탁치 않아 했다는게 문제였다. 거기다가 당시 라슬로 5세는 신성로마제국[* 정확히는 오스트리아]에게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위를 위협받고 있었다.
다른 발칸의 정교회 국가인 왈라키아와 세르비아는, 당시 오스만의 봉신이었으며, 봉신으로써 오스만에게 병력을 징집해 보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헝가리의 개입없이는 절대 오스만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중세의 관념에서 '서방제국'을 맡고 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3세는 나서기만 하면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었겠으나, 그는 교황으로부터 갈굼을 받고나서야 오스만으로부터 (별의미없는) '최후통첩'을 보낼 정도의 위인이었다. 무엇보다, 전술했듯이 그는 당시 헝가리와 보헤미아 왕위를 노리고 있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그들 사이에 있던 [[백년전쟁]]의 참화를 회복하느라 바빠 도저히 도와줄 상태가 되지 못했고, 이베리아의 강자인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은 레콩키스타 운동을 아직도 완료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강성한 정교회국가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은 자신들의 라이벌이었던 노보고로드 공화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과 싸우느라 바빴고, 타타르의 멍에를 벗은지 얼마안되서 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스크바 대공국과 비잔티움 사이에는 아직 몽골계 칸국이 가로막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요안네스 8세때 잠시 진행된 동서교회 통합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동유럽에서 정교회와 가톨릭의 감정적 대립은 매우 심각했다. 예를 들어, 이 무렵 노보고로드는 [[한자동맹]]의 독일계 상인들과 교역을 했으나, 이들이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도시 내에 게토를 설치하고 독일계 상인들을 거의 격리수용(…) 하다시피 할 정도로 일반 시민들과 철저하게 분리했다.]는게 문제였다.
이렇게 되자 제국이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국가는 백년전쟁의 틈을 타 저지대를 차지하며 프랑스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부르고뉴 공국이었으나, 그곳의 지배자였던 '선량공'필리프는 아버지인 '대담공'장이 니코폴리스 십자군에 참여해서 어떤 치욕을 봤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제국의 문제에 섣부르게 나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건 본토와 저지대의 영토를 연결하는것과 라인강 인근의 아헨 등의 영토를 확보하는것이었다.
전투가 주로 이루어질거라 예상됬던 곳은 육지 성벽이었는데, 왜냐하면 금각만쪽으로 진입하는건 4차십자군때 베네치아처럼 제해권을 완벽히 장악하지 않는 이상은 무리였기때문이다.[* 둘레에 급류가 흘러 상륙용 배를 성벽밑에 대는게 쉽지 않았고 모래톱과 암초또한 있었기 때문.] 그중에서도 리쿠스 계곡을 가로질러 뻗어있는 성벽인 메소테이키온쪽이 가장 취약한 곳이었기에, 황제와 주스티니아니 모두 튀르크 군의 공격이 여기에 집중될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외벽과 내벽중 어느쪽에 방어를 집중할것이냐를 놓고 논쟁이 펼쳐졌는데, 황제와 주스티니아니 모두 1422년에 무라트 2세가 도시를 공격했을때 외벽방어에 집중해 막아낸것처럼 이번에도 외벽에 방어하기로 결정하려 했으나, [* 내벽에도 병력을 배치하는게 좋긴 하겠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를 '전략가'라 자칭했던 교황청의 사절 레오나르도 대주교가 내벽을 방어하라고 우겨 잠깐동안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는 1422년 무라트 2세의 공격으로 인해 수리된 외벽이 제대로 수리되지 않았다면서, 이게 모두 수리비를 두명의 그리스인인 자가루스와 수도사 네이피토스가 횡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부당한 주장으로, 자가루스는 마누엘 팔레올로고스가 본명인 황제의 친족으로, 수리된 성벽에 이름까지 적힌, 당시에 굉장히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또다른 횡령범으로 지목된 네오피토스는 통합반대파였다만, 황제와 친한 수도사중 한명으로 공적인 일에 일체관여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던 중이었다. 레오나르도 대주교의 주장은 가톨릭교도들의 전형적인 반통합파와 그리스인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된 편견이었다.
이후 오스만 전군이 모두 모였던 4월 5일에, 황제는 그의 정예 그리스인 군대와 함께 메소테이키온 성벽에 자리잡았고, 그의 오른쪽에 카리시오스 문과 미리안드리온 성벽엔 주스티니아니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튀르크의 공격이 메소테이키온에 집중되자, 그의 병력을 이끌고 거기서 황제를 지원했다.] 그중 미리안드리온은 제노바에서 그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직접 구입해 도달했던 보카아르디 삼형제가 이끌었다. 베네치아 거류민 대표 미노토와 그의 휘하 병사들은 블라케르나에 황궁 구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해자를 비우고 다시 메우는 임무를 맡았고, 역시 베네치아인인 테오도르 카리스토는 칼리가리아 문과 테오도시우스 성벽 사이 성벽 방어를 담당했다. 레오나르도 주교와 제노바에서 온 란가스코 형제는 금각만근처 해자뒤쪽에 자리잡았다. 한편으론 황제의 왼편에는 제노바병사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 옆에는 황제의 친족인 테오필로스 팔레올로고스가 그리스인 군대와 함께 페가에문을 방어하고 있었다. 황금문은 마누엘이라는 제노바인이 담당했으며, 그의 옆 바다쪽에는 황제가 가장 신뢰하던 군인인 데메트리오스 칸타쿠제노스가 자리잡았다.
그외에 후방에는 오르한 왕자가 이끄는 투르크군이 엘레우테리오스 항구에 자리잡았고, 마르마라 해안 동쪽 끝인 히포드롬과 옛 성궁 아래는 카탈루냐 거류민들이 담당했다. 이시도로스 추기경은 200명의 병사와 함께 아크로폴리스[* 아테네에 있는 그곳이 아닌, 다른 아크로폴리스를 말한다. 애초에 콘스탄티노플은 본래 비잔티움이란 이름의 그리스인 거주지였단걸 명심하자]곶에 진을 쳤다. 금각만 연안은 베네치아인들과 제노바인 선원들이 베네치아인 가브리엘 트레비사노휘하에서 방비를 맡았으며, 항구의 선박들은 트레비사노의 동포였던 알비소 디에도가 지휘했다. 그외 성벽은 일부 수도사들이 경비를 서다가 위급해지면 지원을 요청했다.
그외에 도시안에도 예비대를 남겨놨는데, 육지성벽 근처 루카스 노티라스 대공이 지휘하는 부대하나와 니케포로스 팔레올로고스가 지휘하는 중앙 산등성이 위에 자리한 부대가 그것이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37회 일치
자신들이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이들로, 실제 역사에서는 시코쿠 전체로 세력권을 넓혔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굴복해야 했다. 이후 [[큐슈]]와 [[조선]]에 원정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벌어진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세력 다툼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지지했다가 도쿠가와가 승리하며 모든 권력을 잃게된다.
* 성 계열의 건설비와 수리비가 싸짐
현대의 [[카나가와 현]] 부근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쉬움. 본거지 사가미, 이외에도 이즈를 통치하고 있다. 좀 멀리 북쪽에 있는 다케다 가문과 우호적, 동쪽에 있는 오기가야츠 가문과 전쟁 중, 서쪽에 있는 이마가와 가문과 우호적이다. 다케다 가문과는 무역 관계.
현대의 [[히로시마]] 부근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보통. 본거지 아키. 북쪽에 있는 아마코 가문과 전쟁 중. 동쪽에는 깃카와 가문이 있고 서쪽에는 무역 파트너 겸 군사 동맹인 오우치 가문이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큐슈]]까지 뻗어나갔으나 오다 가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오다 가문의 다이묘이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통수맞고 죽어버리는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으로 활동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간의 분쟁에서는 도요토미 가문 지지 세력인 서군을 이끌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 상대로 빠르게 딜을 하고 빠져나갔다. 그 결과 모리 가문은 초소카베 가문처럼 망하지 않고 영지 대다수를 몰수당하는 선에서 끝나게 된다. 모리 가문은 자신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도왔음에도 영지를 몰수당했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 원한은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200여년 뒤에 폭발하게 된다.]]
현대의 나고야 근처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 오와리. 동남쪽에 있는 도쿠가와 가문, 그 동쪽에 있는 이마가와 가문, 오다 가문의 북쪽에 있는 사이토 가문과 죄다 전쟁중이다. 오다 모리타카의 반란군도 있다. 서쪽에 있는 기타바타케 가문과는 무역 관계. 주변 가문에게 존경받지 못해 외교에 패널티가 있다.
오다 가문으로 플레이를 시작하면 세 가문에게 다구리부터 당하고 시작한다. 있는 병력을 싹싹 긁어모아 다구리에서 살아남는게 최우선 목표다. 인공지능이 잡으면 빠르게 도쿠가와 가문을 멸망시킨 다음 자신도 멸망당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전국 통일에 거의 성공할 뻔했으나, 오다 가문의 가신이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다이묘인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하는 [[혼노지의 변]]을 일으키며 좆ㅋ망ㅋ. 이후 오다 가문의 또다른 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츠히데와 다른 경쟁자들을 진압하고 오다 가문을 계승(?)하게 된다.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보통. 본거지는 겁나 넓은 이와테. 서쪽에 있는 모가미 가문과 전쟁 중이며 남쪽에 있는 하타케야마 가문과 무역 관계. 다테 타네무네가 이끄는 반란군이 있다.
현대의 야마나시 현 부근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는 카이. 무라카미, 오기가야츠, 이마가와, 호조, 키소 가문 사이에 끼어 있는 내륙 가문이다. 북쪽에 있는 무라카미 가문과 전쟁 중. 호조 가문과 무역 관계다.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도쿠가와 연합에 의해 멸망당한다.
=== [[도쿠가와]] ===
현대의 아이치 현 부근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는 미카와. 이마가와 가문의 봉신이다. 종주인 이마가와 가문과 무역 관계이며 오다 가문과 전쟁 중.
다이묘는 도쿠가와 히로타다. 후계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게임 시작시 메츠케 한명이 제공된다.
교토 바로 밑 이가를 다스리는 가문. 그냥 닌자로 유명한 가문이지만 와패니즈들 등쳐먹으려고 주요 가문 중 하나로 나왔다. 난이도 보통. 아시카가 막부와 무역 관계이다.
불교의 한 분파인 일향종을 기반으로 한 농민 반란 세력. 에치젠을 본거지를 두며 카가도 다스리고 있다. 난이도 보통. 잇코라는 별개의 불교를 믿기 때문에 종교 차이로 인한 외교 패널티를 기본적으로 퍼먹는다. 그럼에도 아네가코지와 무역 중.
처음 시작하면 양 옆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다행히 동쪽의 오우치 가문하고는 사이에 해협을 두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있는 오토모 뎃포 코바야로 해협을 틀어막고 쇼니 가문부터 상대하자. 브리핑부터 경계하라고 말해주는 시마즈 가문은 처음에는 이토 가문이 막아주지만 이토 가문을 먹어치운 다음에는 카타나 사무라이를 잔뜩 데려와서 싸움을 건다. 이토 가문이 역으로 시마즈 가문을 먹어치우면 어떻게 되냐고? 종교 차이 때문에 금방 사이가 나빠진다.
* 깃카와
혼슈의 빈고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깃카와 오키츠네.
시코쿠의 아와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미요시 조케이. 벳쇼 가문과 동맹을 맺고 하타케야마 가문과 전쟁중이다.
- 김민희(1982) . . . . 36회 일치
패션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를 했고, 상큼한 얼굴과 큰 키에 극도로 마른 몸매를 가진 옷 잘 입는 소녀는 당시 패션잡지 주 고객층인 10대 소녀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김효진(배우)|김효진]], 양민아(현 [[신민아]]) 등의 사이에서도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 셋은 [[한솔엠닷컴]] CF로 스타덤에 오른 데뷔 동기와도 같다.]
||<:><#0f0f3e> '''{{{#white ▲ [[한솔엠닷컴]]의 3부작 CF 모음 (1999)}}}'''[* 세 배우의 데뷔 초 모습을 볼 수 있다. 눈 오는 밤거리와 노래(3편의 원곡은 동명의 [[김장훈]]의 곡이다. 원곡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의 어울림이 백미. ^^([[https://youtu.be/fEGQdBfhusg|1부]] [[https://youtu.be/sUYDqUwDHiQ|2부]])^^ 유행어는 이후 시리즈들부터 등장한다.] ||
특히 [[김효진(배우)|김효진]], [[원빈]]과 함께 출연했던 [[한솔엠닷컴]]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주제의 광고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래 동영상) 이어 [[차태현]], [[신민아]]와 출연한 CF에서는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명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는 당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다.[[https://youtu.be/0GsJpuPUEVo|1편]][[https://youtu.be/Ax8EIOyGF34|2편]][[https://youtu.be/ZVxij2AQel0|3편]][[https://youtu.be/Hh74Xv_kq80|4편]]
그리고, 다수의 잡지와 CF 등을 통해 활동하다 1999년 드라마 <[[학교 2]]>의 반항아 신혜원 역을 맡으면서 배우로도 자리잡게 된다. 여러모로 [[배두나]]와 닮은 경로다. [[1998년]] 길거리 캐스팅 → 1년간 [[모델]]로 성공 → [[학교 시리즈]]에 반항아 포지션으로 성공 → 이후 승승장구 테크를 탔다.[* 한 가지 차이라면 [[배두나]]의 이미지가 개성 있는 외모, 이단아 등이었던 것에 비해 김민희는 CF스타로서 어필이 가능한 비주얼적인 면 역시 가지고 있었다. 포지션에 있어 배두나와 좀 더 유사한 쪽은 [[공효진]], 양미라 등.]
이런 영향으로 온갖 욕을 다 먹는 연예인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김민희는 한국 연예계의 역사에서 몇 가지 이정표가 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당시는 여러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진행되던 과도기였다. 시기([[세기말]]), 세대([[N세대]]), 문화 형태([[아이돌]], [[인터넷]]의 등장) 등이 교체되어 가던 시기에 70년대생들이 주로 활약하던 [[90년대]] 문화가 지나가고 현재와 같은 아이돌 생산/소비 시스템 하에서 등장한 거의 최초의 아이돌 스타라는 점이 그것이다.[* 위에 언급된 많은 모델 및 배우들도 크게는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다시 말하면 세기말과 [[N세대]](1980년대생)를 상징하는 인물[* 또 다른 한명을 더 뽑자면, 그 유명한 TTL 소녀 [[임은경]]이 있다.]이자 현재 개념의 아이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상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영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순수의 시대]]가 방영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상 거의 김민희--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그 뒤로 [[2012년]] 《[[화차(영화)|화차]]》, [[2013년]] 《연애의 온도》, [[2014년]] 《[[우는 남자]]》, [[2015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6년]] 《[[아가씨(영화)|아가씨]]》 등을 통해 좋은 연기[* 데뷔 때와 비교하면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자연스러워지고 섬세한 표현력이 증가하였다.][* 《서프라이즈》와 《[[아가씨(영화)|아가씨]]》의 편집 감독이 같은 사람인데, "그 때의 김민희와 지금의 김민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며 극찬했다.]를 선보이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흥행에 있어서도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새롭게 듣게 되었다.
* 연예계 대표적인 패셔니스타다. 큰 키와 마른 몸매의 대명사 격으로, 어떤 스타일과 메이크업도 소화하는 편이라 여성들의 패션 롤모델로 자주 거론된다. [[장동건]]-[[고소영]] 커플의 결혼식 참석 당시 입었던 패션이 여성스러우면서도 재치를 잃지 않는 센스로 당시 하객패션 가운데 가장 큰 화제가 되었는데, 후에 당시 착용한 [[블라우스]]가 명품이 아니라 2만원대 보세 제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더욱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시 옷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입느냐가 문제다.-- 또 다른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윤여정]]도 김민희에게 "이전에 입었던 옷이 뭐냐? 나도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 흡연자다. 프랑스 칸에서 홍상수와 함께 맛있게 담배를 피는 모습이 포착됐다.[[http://news.joins.com/article/21591816|#]]
과거 김민희는 한 인터뷰에서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1072347|'''“자기들이 부자와 결혼하면 사랑해서 한 거고, 연예인이 그러면 이상한 관계로 말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 평민들도 그런 것처럼, 통장에 든 적금보다 지갑 속의 돈이 더 좋다.”''']]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후 질문자가 “‘평민’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봉건 사회가 아닌데.”라며 제지하자, 김민희는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고,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김민희는 한동안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았으며, 이를 비꼬아서 ‘'''평민'''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16년]] [[6월 21일]], [[http://me2.do/GXMuEUFO|기사]]에서 [[홍상수]] 감독과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통해 호흡을 맞추고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문제는 홍상수 감독은 이미 결혼해 아내와 대학생 딸까지 있다는 것.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례와 같이, 감독과 여배우 사이에 빚어지는 스캔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것이라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너그럽게 보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지만, 애초에 결혼한 기혼남 혹은 기혼녀가 가정을 깨고 다른 누구와 [[간통]]을 저지르는 사건은 여론이 너그럽게 반응해주지 않는다.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긴 했다만 김민희와 홍상수 역시 간통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과거 [[설경구]]-[[송윤아]] 커플의 경우처럼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배우의 팬사이트라 할 수 있는 김민희 갤러리 역시 일시적으로 서포트 활동을 중단했으며 루머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팬질을 접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인 판국이다. 거기다 이 경우에는, (일단 홍상수 부인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김민희가 부인에게 [[아침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녀]]나 할법한 '''"그러게 남편 관리 잘 하지 그랬어요."'''라는 망언까지 했다는 루머까지 나온 판이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33&aid=0000017690|기사]]
하지만 [[2016년]] [[7월 20일]]에 방영된 [[리얼스토리 눈]]에서, 홍상수 감독의 부인은 '''자신은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며 일부 기사는 기자들의 악의적인 보도로 심하게 과장되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6월 21일 단독보도라면서 나온 김민희의 [[막장 드라마]]스러운 발언 외에 기타 여러가지 자극적인 관련 보도는 정작 당사자와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한마디로 [[카더라]] 통신에 불과 한 것. 자세한 것은 [[홍상수]] 항목 참조.
현재 [[홍상수]]와 함께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같이 있어?~~ 두 사람이 [[중혼]]이 합법인 [[유타 주]]에서 비밀 결혼을 올릴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으나 이것은 오보로, 당연히 [[미국]] 내 50개주 모두 중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동거]]라면 모를까 결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Sister Wives>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 [[몰몬교]] 일가의 [[일부다처제]] 허용 신청에 대해, 판사가 "법을 위반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사실상 중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애초에 이 판결은 이후 뒤집혔다. 어차피 재판 자체가 기각되었어야 할 사안이었고, 해당 사건 담당판사 역시 논란이 많은 인물인지라, 판사는 거의 전방위로 비판을 받았다. [[여담]]으로 [[유타 주]] 내의 중혼 금지 관련 규정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라 한다. 애초에 2013년 [[유타 주]] 연방지법의 [[중혼]]관련 판결은 중혼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그간 [[유타 주]]에서 금지되어 있던 부부+[[사실혼]] 관계 여성의 동거를 금지한 유타주 법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홍상수]]와 김민희가 유타 주에 간들 결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애초에 그들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또한 이 판결이 2016년 항소법원에서 무효판결이 나온 것의 근거는 유타주가 애초에 이런 종류의 동거집단이 범죄행위와 연류되지 않을 경우 기소를 하지 않는다는 유타주 검찰청의 정책으로 인해서 사실상 원고들이 피해를 볼 일이 없다는 근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유타의 중혼관련 법이 강해지기는 힘들 것이다. 애초에 이런 법 자체가 [[몰몬교]]에 시달려온 유타주의 독특한 사례이기도 하고.]
[[2016년]] [[7월 17일]], 6월에 출국한 지 약 1개월 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시아나 항공기로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했고, 마중 나온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함께 공항을 떠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 보도 역시 사실인지 아닌지 불확실하다.
일단 아직 사실 관계가 확인된 내용은 없다. 사태를 종합해보자면 [[홍상수]]와 그의 부인은 모종의 이유로 별거하게 되어 2016년 11월 이혼 신청을 넣을 만큼 사이가 소원해졌는데, (김민희와 홍상수 측의 해명에 따르면) 집을 나와 있는 홍상수 감독을 김민희가 보살펴 주다가 친해지게 되었고, 현재 홍상수 감독의 부인이 모종의 이유로 김민희를 그의 간통 상대로 의심하고 있다는 게[* 위에서 언급한 [[리얼스토리 눈]]에서 홍상수 감독의 소재를 묻자 "김민희 씨랑 어디 있겠죠 뭐." 라고 발언했다.] 요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민희와 [[홍상수]] 측의 해명에서 나온,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겨 별거 중인 유부남을 미혼의 젊은 여배우가 챙겨준다는 상황 자체가, 당사자인 배우자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인식으로도 상당히 의심스러워 보이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또 사건 초기에 기레기들의 악의적인 과장된 보도가 쏟아졌는데, 이것에 대해서 결국 홍상수와 김민희가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간통 논란이 기정사실화된 것에 일조했다.
[[청룡영화상]] 이후로 항간에 김민희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절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김민희 측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받았으나 부상으로 딸려오는 수백만 원의 상금을 받는 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하여 유니세프를 통한 기부와 단편영화제 지원 등의 방식으로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http://m.news.nate.com/view/20161215n08068|관련기사]]
사실 여하를 떠나서 두 사람의 태도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 최초 해명 당시 국내로 돌아와서 설명하겠다 했으면서 여태까지 침묵을 지켰으며, 사건 초기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이혼]] 절차를 밟는 중이다. 김민희 역시 국내로 돌아온지 꽤 된 것으로 보이나,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포함한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팬들 앞에 나타나지조차 않았고 소식 통보도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이 여지껏 해명은 고사하고 뒤에서 신작 촬영이나 준비해 온 것으로 드러난 셈인데, 이는 누가 봐도 좋게 봐줄 수 없는 행보이다.
- 김영철(배우) . . . . 36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얼굴, 목소리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거기서도 '''광기 넘치는 악역 보스, 리더'''[*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서울 1945]]의 문정관, [[대왕 세종과 장영실]]의 [[태종(조선)|이방원]], [[공주의 남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등.] 연기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연배이면서 보스나 리더 역할을 주로 맡는 배우는 [[서인석]], [[이덕화]], [[유동근]] 등이 있는데, 서인석은 노태우 역할 등 겉으로 무른 역할을 맡기도 한 적도 있었으나 서인석과도 포지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덕화는 용모의 특성상 대부분 배역이 악역 보스이거나 안티 히어로이며, 서인석이 2000년대 들어 원톱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유동근과 포지션이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유동근이 드라마나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더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남성적이고 강건한 보스 역할에서는 김영철이 단연 최고다.] 주로 맡는 캐릭터들도 남성미가 돋보인다. 특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태조 왕건)|궁예]] 역할을 맡아 타이틀롤인 [[왕건]]을 제치고 광기와 카리스마의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진 연기로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며,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연기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상 수상자가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으나 드라마 스토리상 실제 드라마를 보면 [[궁예]]가 주인공급이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한 해 내내 전국민의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예상외로 비난이나 논란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실 2000년도 연기대상은 사람들 대부분 KBS는 김영철, MBC는 [[전광렬]]이 탈거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대상 줄 거야! 안 줄거야!--]당연히 젊었을때는 나이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할수는 없었고 그 외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해왔다. 중장년이 된 이후에도 카리스마 보스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남자 시리즈 전문 배우~~[* [[위기의 남자]], [[공주의 남자]], [[적도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출연. 그 중 [[위기의 남자]]를 제외한 3편은 각각 2011년 하반기, 2012년 상반기, 2012년 하반기에 KBS에서 방송되었다.]
상단의 학력부분을 보면 알수 있듯이 원래는 연기전공이 아니라 체육전공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학창시절에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노는 아이'''였다고. 권투, 유도(공인 4단),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자나 꾀러 명동에 나갔다가, 선배연기자인 [[이정길]]이 하는 연극을 보고 연기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1973년]] 극단에 입단해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중, [[1977년]] [[동양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데뷔하여 조연으로 주요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언론통폐합]] 이후 KBS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80년대 TV 문학관에서 거의 주인공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선우휘]] 원작의 단독 강화에서는 대사 없는 시체로 나온 적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이병주 원작의 변명에서 독립운동가의 역할과 [[프랑스]] 지식인[* 원작에서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이 프랑스 레지스탕스였던 블로크 교수의 총살 에피소드이다. 김영철은 여기서 1인 2역으로 한국인 독립운동가 탁인수와 프랑스 교수 블로크를 모두 맡았다], [[심훈]] 원작의 [[상록수(소설)|상록수]] 주인공, [[벙어리 삼룡이]]의 주인공 등이다. 체육인 출신이었던 덕에 젊은 시절에는 몸도 좋았던지라 KBS 특집극에서 [[손기정]]을 맡은 적도 있다.[* KBS 1TV에서 82년 1월에 5부작으로 방영했던 '맨발의 영광'이란 미니시리즈이다. 2013년에 작고한 [[강태기]] 씨가 이 드라마에서 손기정의 빛에 가려진 또 한 명의 [[마라톤]] 영웅인 남승룡 선수 역을 했다.] 대하드라마 [[토지(소설)|토지]]에서 김환 역을 하기도 했다.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남편 "강세풍"역할을 맡아 부인 역할을 한 [[이미숙]]과 사실적인 코믹함을 바탕으로 한 부부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 이 드라마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부부들이 주인공으로 [[길용우]]-[[양미경]], [[유동근]]-[[이미영]], 김영철-이미숙이 각각 다른 3가지 부부생활을 보여줬다. 당시 김영철은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기가 센 부인에게 그게 잘 먹히지 않아 부인과 매일 부딪히는 남편 '강세풍'연기를 통해 코믹한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당시 [[이영애]]가 조연(길용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이영애의 첫 TV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하다.]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백미로 꼽히는데,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S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했고 1회 대상을 이 드라마의 [[이미숙]]이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시청자들(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출연한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는 극 중 [[신현준(배우)|신현준]]과 [[이병헌]]의 친형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집안에 입양된 신현준이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하차한다. 이듬해 방영한 '머나먼 나라'에서는 [[김민종]]의 아버지이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절름발이로 등장하는데 방영한지 20년이 다된 지금도 이 드라마의 팬이라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연기일만큼 일품이다.
== 전설의 궁예와 김두한 ==
2000년대에 들어서 맞이한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할은 [[태조 왕건]]의 [[궁예(태조 왕건)|궁예]]와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이 두 역할은 김영철의 대명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연기에서 엄청난 포스를 뿜어냈다.[* 물론 최고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했던 궁예와는 다르게 김두한 역을 맡았을때는 기존의 인기요소였던 격투, 활극에서 정치드라마로 바뀌는 바람에 1부보다 떨어지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였는데 몇년 후 [[고자라니]]가 발굴되어 현재는 이쪽 김두한이 안재모 김두한보다 더 인기가 좋다.]
<태조 왕건>의 궁예는 원래 일찍 하차할 캐릭터였는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120부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태조 왕건은 총 200부작인데 절반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다웠고, 궁예가 죽으면서 1기가 끝나고, 견훤이 죽으면서 2기가 끝났다. [[진 주인공]] 맞다. 결국은 연기대상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개소문(드라마)|6년 뒤]]에 [[수양제|한 번 더]] [[김갑수|재현된다.]][* 다음 해에는 주인공인 왕건 역의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받았다. 한 드라마가 2년 연속 연기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1987년부터 1989년에 방영한 [[토지(소설)|토지]]([[임동진]]-[[반효정]])와 태조 왕건 둘뿐이다.] 김영철은 장기간 한쪽 눈으로 연기한 탓에 시력에 이상이 와서 드라마가 끝나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력을 회복한 상태. 덧붙여서 궁예 역을 할때 실제로 삭발을 하여 연기에 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스님들이 분장과 가발을 한 것과 달리 한눈에 봐도 진짜로 머리를 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려시절, [[종간]]과 같이 있을 때.]. 어느 사극에서나 나오듯, 궁예 역할 역시 고증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논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김영철의 절등한 연기력에 그런 지적들은 힘을 못 쓰고 묻혀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드라마 1기 후반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기를 부리거나 똘기어린 감정표현을 하거나, 주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김영철은 특히나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였기에 시청자들 뇌리에 깊이 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가령 술취한 궁예가 사람을 쳐죽이는 장면에선 취중에 혀가 꼬이는 것에서부터,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진짜 술취한 것처럼 재현하였다.
당시 1999년~2000년대 초반에 [[개그콘서트]]로 큰 인기를 얻은 동명이인 [[김영철(개그맨)|개그맨 "김영철"]]의 활약으로 중견 배우 "김영철"로서의 이름에 대한 인지도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였는데, [[태조 왕건]]으로 대부분 중년배우에게 큰 관심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김영철이 누구냐?"고 물으면 "궁예!"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태조 왕건' 이후 어떤 새로운 사극이 나와서 다른 배우가 궁예 역할을 한다해도 김영철만큼 할 수 없을 거라는 평가를 받고, 모든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궁예 = 김영철"이라는 확고한 공식을 만든 그야말로 사극계의 [[레전설]].
하지만 김영철이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인터넷에서는 [[태조 왕건]], [[야인시대]],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 세 작품으로 개그용 패러디 제조기 배우가 되고 말았다.''' 상당한 내공의 배우였기때문에 연기력은 극찬을 받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김영철 주역의 작품중 가장 유명하면서 임팩트가 컸던 세 인물[* [[궁예(태조 왕건)]], [[김두한(야인시대)]],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로 유명한 강사장.]은 비정상인 성격에 행적도 심할 정도로 황당했기 때문에 현재 합성물 필수요소로 쓰이는 수준. 물론 김영철 입장에서는 연기에 충실한 것이지만 배역 자체가 문제.
다만 배우 본인은 이렇게 강렬했던 궁예와 김두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태조 왕건의 후반부때 휴식을 취하다가 드라마가 종영하자마자 [[위기의 남자]]에 출연한적도 있고... 연기자는 어찌되었든 평생 연기를 해야하니까 이미지가 한쪽으로 고착되는 것은 사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SdOXX3gMU|뉴스 인터뷰 영상 링크]]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궁예 이미지로 굳어지는게 다소 안타깝다는 뉘앙스로 직접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궁예 캐릭터에 애정도 있었는지 태조 왕건 이후 현대사인 [[서울 1945]]를 제외하면 한동안 사극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러다 2008년 [[대왕 세종]]에서 [[태종(조선)|태종 이방원]] 역을 맡았는데 그동안 사극 섭외를 정중히 거절한 이유는 바로 궁예 때문이라고 인터뷰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0086918|#]]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궁예와 김두한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만으로 김영철이라는 배우를 논하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 본인이 그런 배역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서인석]]도 [[견훤(태조 왕건)|견훤]]으로 인해 이후 드라마에 출연할 때마다 견훤 이미지가 겹치는 일이 많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2008년 [[KBS 2TV]]의 [[드라마#s-2|드라마]] '돌아온 뚝배기'에서는 '''뚝배기집 사장'''을 맡았다.[* 김운경 작가가 자신의 대표적인 히트작인 서울 뚝배기를 직접 리메이크 하였으나 시청률 부진으로 조기종영되었다. 돌아온 뚝배기에서 김영철이 맡았었던 역할은 서울 뚝배기 에서는 [[오지명]]이 연기했었다.] 또한 [[대왕 세종]]에서 태종 [[이방원]]을 연기했는데, 여기서는 [[종간]] 역을 맡았던 [[김갑수]]가 [[도승지|지신사]] [[황희]]로 나와 '보스와 최측근'으로서의 인연을 이어갔다.
대왕세종이 기존의 대하사극의 느낌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가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 되버렸고 시청률도 부진해서 덩달아 태종 이방원역까지 아쉽게 묻힌데 비해 공주의 남자는 달랐다. 기대치 않았던 젊은 주연배우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이긴 했으나 주연은 아니었으며 애초에 분량이 적고 조용한 캐릭터였다. 당시 공주의 남자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더군다나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아가씨를 부탁해]] 이후 소속사 계약만료로 약 2년간 공백기가 있었다가 [[괜찮아, 아빠딸]]로 복귀한 후였다. [[박시후]]도 사극 출연은 2008년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가 전부이며 사극의 메인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일지매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연기여서, 공주의 남자 방영전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 게다가 [[송종호]]는 아예 사극 첫 출연이라 당시 극 초반에 발성이 무척 어색했다. 결국 촬영 중에 이순재로부터 사극 발성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너무 불안한 캐스팅이라 느꼈는지, 서브조연 커플인 경혜공주와 정종 역은 [[왕의 여자]],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에 출연해 나이에 비해 사극 경험이 풍부했던 [[홍수현]]과 동 나이대 사극본좌 [[이민우]]가 캐스팅되었다.] 속에서 이순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예상치 못한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얻게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김종서]] 역을 맡은 [[이순재]] 옹과의 연기 대결은 이 드라마 초반부의 백미. [[박시후|드라마 두]] [[문채원|주인공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훌륭하다고도 볼 수는 없었는데[* 실제로 연기대상에서 두 주인공이 남녀 최우수상을 싹쓸이하자 드라마 인기빨로 수상했다는 말이 조금 있었다.] 베테랑 김영철이 중간에서 미칠듯한 연기를 뽐내는 바람에 더 그래보였다(…). 이순재가 극의 1/3 지점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홀로 미친존재감을 선보이며 끝까지 열연했다. 이 작품은 최고시청률 25%까지 기록했는데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수양대군 캐릭터는[* 궁예나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포지션이다. 그냥 '''악역 그자체'''. 아마 김영철이 연기한 배역중 최악이자 최고의 악역이 아닐런지.] 욕을 한사발 얻어먹으며 '''[[천하의 개쌍놈]]'''이라 씹혔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서 나름 반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시청자들의 평가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mNFY4R3IA5A|마지막회영상(스포주의)]] 한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김영철의 열연 덕에 24화동안 쌓아온 욕들 어디로 가고 수양대군을 안쓰러이 여긴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황당했다고.(...)[* 사전제작이었던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 퀄리티가 떨어졌으나 순전히 김영철만의 광기어린 열연으로 극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물론 박시후와 문채원도 제 몫을 다해줬다.] 종영 직후 나온 기사에도 수양대군의 마지막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에 감탄하는 댓글이 많았다.[[http://news.nate.com/view/20111006n35385?mid=n1008|당시기사]]
그래서인지 궁예와 김두한을 실시간으로 겪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김영철' 하면 공주의남자 에서의 수양대군 역할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김영철 기사의 댓글을 보면 궁예와 김두한 얘기가 더 많긴 하지만 공남의 수양대군 역할이 뇌리에 남는다는 의견이 은근히 있다.
한편 궁예와 김두한 이후 연기대상 시상식과 인연이 없었는데.. 2011년도 KBS 드라마들이 전체적으로 부진했던 묘한 대진운(?)에다가 인기와 호평을 동시에 잡은 역할이었기에 많은 네티즌들이 '이번만큼은 김영철이 최우수상 아니면 대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괴물같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연말 시상식에서는 무관에 그쳤다.[* 대상은 [[신하균]]에 돌아갔고 최우수상도 [[박시후]]가 탔다. 신하균의 연기력에는 이견이 없었고 박시후도 뭐 탈만하다는 의견도 있고해서 그냥 넘어갔다.]
김영철이 연기한 극 중 수양대군 캐릭터에 대해서는 [[공주의 남자]] 문서와 [[공주의 남자/등장인물#s-2]] 문서 참조.
2012년 [[KBS 2TV]]의 [[수목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대기업 사장 서정규 역으로 25살 차이나는 여성([[박시연]])과 결혼하려고 하며 [[공주의 남자|전생에도]] [[문채원|딸이었던 딸]]과 대립한다. --그런데 그 [[김서라|딸의 친엄마]]도 [[공주의 남자|전생에]] 아내.--[* 극 중 김서라가 맡은 엄마 역할은 3회에서 회상 장면으로 잠깐 나온 것이다. 원래 나오는 역할이 아닌데 이경희 작가가 대본을 쓰다보니 어머니 역할이 한 컷 나오게 되었고 전작의 재미도 살릴겸 카메오 격으로 김서라를 출연시킨 것이다. 공주의 남자와 착한 남자 모두 KBS 수목드라마이기도 했기에...] 다만 이 작품에서는 서정규 역할이 조기퇴장하면서 큰 활약은 없었다.
2013년 KBS 2TV의 [[사극]] [[칼과 꽃]]에서 [[영류왕]]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자체는 안습한 [[시청률]]로 종영되었지만, [[연개소문]]을 맡은 [[최민수]]와 함께 연기력 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기존의 나약하고 무능한 이미지가 아닌 강인하면서도, 전쟁의 참상을 겪었기에 그 나름의 확고한 정치 철학을 바탕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합리적인 이미지의 카리스마 넘치는 영류왕을 연기해 사극 팬들에게서도 인기가 있었다.
2014년에도 KBS 2TV의 [[월화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2014)|태양은 가득히]]에 출연했는데 위에 나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맡은 역할과 비슷한 대기업 회장 '한태오' 역할을 맡았다. 딸과 대립[* 착한남자의 '서정규'처럼 말 안 듣는 딸을 속으로는 사랑하고 걱정하지만 자신이 시한부 환자라 딸을 그대로 남겨두고 가는 것이 답답해서 초반부터 구박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포지션의 대립. '한태오'는 자기 사업에 대해서는 냉혈하고 지독하지만, 딸만큼은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사랑하며 길렀는데, 너무 사랑한 나머지 후반부가 되어서야 자신의 비리와 딸의 과거 연인을 암살하도록 했던 사실을 딸에게 들킨 뒤에도 바로 막지 못하고 조금씩 공격당하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대립하는 구도.]한다는 점, 부인이 어리다는 점[* [[전미선]]이 재혼한 아내 역할을 했다. 물론 30대인 박시연보다는 덜하지만 전미선과도 20년 가까운 나이차이가 난다. 극중 나이차이는 실제 배우끼리의 나이 차이보다는 적은 듯 묘사된다.], 여주인공인 딸 외에 아들[* 딸의 이복남동생.]이 있다는 점[* '착한 남자'에서의 아들은 늦둥이라 어린이지만,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아들은 성인(후술될 항목에 예능에 같이 출연한 '아들' [[손호준]]이 맡은 역할)이다.], 결국 남자 주인공과 딸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점 등 스토리상 '유사점이 많은 역할'을, '같은 방송국'에서, '같은 배우'가 연기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 보면 다른 점도 많기는 하다. 결국 마지막에 감옥만 갈 뿐 드라마 끝까지 살아있는 채로 끝났다는 점에서, 중간에 죽은 '착한 남자'에서의 역할보다는 행복한 역할인 듯.]
앞서 서술한 배역들과는 다르게 몇 몇 작품에서는 약간 모자란 역할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조민수와 호흡을 맞춘 MBC 특집극 [[미끼와 고삐]][* 조선작의 원작이지만 윤미라가 나온 TV 문학관판과 다르게 완전히 코믹 시트콤화 되었다. 장모님을 조민수인줄 알고 '''까꿍'''하는 장면은 2011년이라면 플짤로 돌만한 개그.]도 그렇고 심지어 영화 [[그놈 목소리]]에서는 어리숙한 서민적인 형사로 등장해 '''나체'''를 선보였다.
- 박석민 . . . . 36회 일치
|| '''등장곡''' || [[카쿠다 노부아키]] - よっしゃあ漢唄[* [[kt 위즈]] [[오정복]]의 응원가와 같은 곡을 사용중이다. [[치바 롯데 마린즈]]의 [[나카무라 쇼고]]도 이 노래를 응원곡으로 쓴다.] ||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상호(1989)|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태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 [[최정]]([[SK 와이번스]]) || → || '''박석민'''([[삼성 라이온즈]]->[[NC 다이노스]][* 2015년 성적은 삼성에서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에 NC로 FA 이적하는 바람에 공식 기록에는 NC로 되어 있다.]) || → || [[최정]]([[SK 와이번스]])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08년 KIA와의 경기에서 한두데의 위엄을 수립. 15회말 유동훈에게서 사구를 얻어 출루한 후 채태인의 안타성 타구에 맞아 그대로 아웃, 팀도 패배.
팀내에서 [[최형우]]와 함께 단 둘만이 전 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79, [[홈런]] 14, [[타점]] 64를 기록하였다. 실질적인 첫 1군 풀타임 출장인 걸 감안하면 좋은 성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18개의 [[실책#s-2|실책]]으로 인해 [[박기혁]]과 함께 실책 공동 1위에 오른 것은 안습.
삼성의 새 외국인선수 [[루넬비스 에르난데스|에르난데스]]와 쌍콜돼 콤비를 결성했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차분해진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이 해도 어김없이 많이 웃겨줬다~~.
2010년 8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4회말 2사 상황에서 [[강봉규]]가 안타를 기록할 때 2루 주자로 나가 있었는데,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려오면서 막판에 [[포수]] [[신경현]]의 태그를 피하다가 신경현과 홈 대치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심판은 결국 박석민을 바로 아웃시켜 버린다.(...)[[http://yoonseokmin.tistory.com/650|관련 포스트]]
2010년 10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스코어 5:5이던 11회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결승 안타를 쳤다. --그리고 상대 투수 [[임태훈(야구선수)|임태훈]]은 [[송지선|멸망]][[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했다.]]--[* 박석민은 내야 땅볼을 친후 살기 위해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고..~~카메라가 손시헌을 비춰서~~]
박석민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9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 4사구(死球) 2타점 1득점, 타율 .333, 장타율 .667, 출루율 .571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6월 22일 자신의 생일에 '''5타수 5안타 6타점 4득점 2홈런(투런 쓰리런)'''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거두며 팀의 5:19 승리를 견인했다. ~~혼자 다해먹는 브콜돼~~ 두 홈런이 1, 2회에 터트려 승기를 확 기울여놓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박석민의 역할이 매우 컸고 덕분에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 인터뷰에서 비가 와서 우천중단이 됐을 때는~~박첨지~~ 긴장했다고 말하기도. [* 이날 타 구장 경기는 '''모두 취소'''되고 대구에서도 두 번 중단되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6타수 5안타 3볼넷 1사구(死球) 2타점 1득점, 타율 .313, 장타율 .438, 출루율 .45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범호]]의 평범한 3루측 땅볼을 잡았는데, 원래 이 상황에선 2루 주자가 진루할 필요가 없으므로 태그아웃 상황이지만 [[포스 아웃]] 상황으로 착각해 3루 베이스만 밟고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본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기록은 3루수 실책. 투수 [[미치 탈보트|탈보트]]와 동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질러 2루 주자가 3루로 가는 선에서 그쳤지만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 2사 1, 3루라는 위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최희섭]]이 플라이아웃 되어 망정이지... 팬들 반응은 '역시 개그맨' vs '[[채태인]]이랑 다를게 뭐냐'로 나뉘는 중. ~~다를게 많지~~
8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구 홈경기를 결장할 예정이었다. 이유는 [[나고야]]에 있는 어느 병원에 주사 맞으러 간다는 이유로(...)...[* 그러고는 19시경에 대구구장에 도착했다.] 그 날 [[홍성흔]]에게 홈런 2개와 5실점을 내준 상태에서 9회말 '''3-5'''까지 따라잡은 이후, [[류중일]] 감독은 2아웃 2루에서 박석민을 '''대타'''로 내서 그냥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끝나고 말았다.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번 타자로 출장했지만, 5차전까지 14타수 1안타(타율 0.071)로 지독한 부진을 겪었다. 더군다나 5차전부터는 6번 타순으로 밀려나는 굴욕까지 겪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박석민의 타격이 부진했던 이유는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하다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타격 밸런스가 깨져 타격감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서 압박 수비로 2루 주자를 3루에서 잡는 활약을 하는 등 수비에서만큼은 정말 제몫을 다했다.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주원|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박기혁|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데릭 지터|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강정호|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황재균|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롯데 자이언츠|이 팀]] 팬들한테는 [[이대호|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양준혁|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구자욱|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풀스윙을 할 때 배트를 놓쳐 배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잦다. 카메라맨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고 상대 투수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위험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http://cfile287.uf.daum.net/image/184C3B194C2DD67D70ABC2|팀킬도 한다.]] 2011년 6월 21일 경기에서 [[오넬리 페레즈|오넬리]]의 투구에 삼진당하면서 놓친 배트가 오넬리에게 날아가는 바람에 오넬리는 당황, 박석민은 헉, [[신경현]]은 알밤 + 예끼~~[[한대화|니미 X발]]~~를 시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다행히 배트가 오넬리 정면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험했던 상황.[[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category=kbo&id=3478&gameId=20110621HHSS0&listType=game&date=20110621&page=1|영상]]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다행히 빗나갔기에 '역시 브콜돼' 소리를 듣는데 그쳤다. '''__하지만 박석민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왼쪽 중지 부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__''' 2010 시즌부터 수비할 때 중지에 테이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격할 때 중지와 약지를 테이프로 감아 하나로 묶어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격할 때 순간적으로 왼손에 힘이 빠지면서 배트를 놓치는 것. 중지를 총 두 번 수술해야 한다는데 2010 시즌 끝나고 한 번 했었고 2011 시즌이 끝나고 두번째 수술을 했다. 그 결과 100% 정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 2013 시즌까지도 휴식일을 잡아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SNS에 올라온 글로 보아 히쓰마부시(장어모듬덮밥) 팬인 것 같다. ~~갈 때마다 먹는다~~
* '''브콜돼''': 2008 시즌 중 난데없이 [[파마]]머리를 하고 등장했는데, 머리 밴드 위로 뭉툭하게 솟아오른 파마머리를 보고 마치 [[브로콜리]]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의 몸매(...)와 함께 브로콜리 + 돼지 = 브콜돼로 불린다.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이며 다른 별명들의 베이스가 된다. ~~[[브로콜리 너마저|브로콜리 돼지 너마저]]~~
원래 장갑을 끼고 타격하였으나 어느날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공을 치는 즉시 각성하여 이후 계속 맨손 타법을 고집하였다. 그 탓에 손에 부상이 와서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하다 결국 맨손 타법을 버리고 장갑을 다시 장착하였다. 그러나 얇은 수술용 장갑을 써보거나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자르는 등, 배트와 살이 맞닿는 부분을 최대화시켜뒀다.
[[양준혁]], [[김동주]], [[김태균]], [[최형우]]만이 가지고 있는 통산 3-4-5(타율-출루율-장타율)를 노리는 타자로 4와 5는 달성했지만 타율이 0.296으로 조금 부족하다. 참고로 [[이대호]]도 박석민과 비슷한 3-4-5 직전의 성적을 가지고 있는데, 타율과 장타율은 되는데 통산출루율이 3할9푼대로 통산 4할을 노리고 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36회 일치
DEO기지에서 외계인 죄수[* 아무리 봐도 괴물 같은 덩치지만 여자]가 포박을 풀고 날뛰다가 카라에게 제압당한다. 추수감사절이라 카라와 알렉스의 엄마가 찾아오는데, 알렉스는 엄마가 온다면서 엄마[* 배우는 1984년작 슈퍼걸의 여주인공이다.]가 카라가 슈퍼걸이 된 걸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있다. 라디오 DJ 레슬리 윌리스는 방송에서 슈퍼걸을 엄청나게 욕해댄다. 윈은 [[추수감사절]]에 함께 지낼 상대도 없다는걸 말하고, 카라는 윈을 추수감사절에 초대한다.
카라는 제임스를 추수감사절에 초대하려 하지만, 제임스는 루시와 함께 오하이오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알렉스는 엄마가 슈퍼걸 때문에 화가 났는데 안 하는 걸 거라고 생각하며 걱정하는데, 카라는 알렉스에게 DEO에이전트라는걸 고백하라고 조언한다.
레슬리는 중태에 빠져서 병원에 입원. 번개의 영향으로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하게 된다. 카라와 그랜트는 레슬리를 병문안 오지만 그녀는 꺠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사라지자 레슬리의 주변에서 스파크가 일어난다.
병원에서 나온 레슬리는 자신의 몸에 전기가 튀고 뭔가 변화했다는 것을 느낀다. 레슬리에게 헌팅남이 접근하다가 감전당하여 쓰러진다. --그저 헌팅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라이브와이어가 된 레슬리는 전기로 몸을 변화하여 가로등 속으로 사라진다.
카라와 알렉스, 엄마는 윈을 초대해서 추수감사절 파티를 한다. 알렉스는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제임스가 카라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물어서 윈은 떨떠름해한다. 알렉스는 자신이 DEO에서 일하고 있다는걸 엄마에게 밝힌다. 엄마는 알렉스에게 화를 내고 두 사람은 돌아서 버린다. 자리가 불편해진 윈은 자리를 떠난다. 카라는 그랜트의 호출을 받아서 돌아온다.
다시 과거. 카라와 알렉스는 비행 소녀들이 되서 외출했던 것 때문에 혼난다. 카라가 능력을 쓰고 무모한 짓을 할 때마다 알렉스는 관리책임을 추궁받아 더 심하게 혼났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댄버스 부부는 DEO의 방문을 받았다. DEO 팀을 이끌고 찾아온 것은 행크 헨쇼.
그랜트는 카라를 불러내서 모든 전자기기가 망가지고 있다고 하며 어떻게 해보라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정전이 일어나며, 멀티스크린에서 레슬리 윌리스의 모습이 나타난다. 레슬리는 자신은 레슬리 2.0--낡은 표현--이 되었다며 [[라이브와이어]]를 자칭하며 나타난다.
카라와 그랜트는 라이브 와이어의 공격에서 도망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경비실에 가라고 하며 피신시킨다. 라이브와이어가 그랜트를 공격하려 하자 카라는 슈퍼걸이 되어 나타난다. 카라는 그랜트를 도망치게 하고 라이브와이어와 대결한다. 라이브와이어는 엘리베이터를 추락시키는데 카라가 날아가서 구출한다.
내셔널 시티는 정전 상태에 빠진다. 행크는 번개가 클립톤인 DNA를 통해서 레슬리가 변화하게 된 것이라고 추정하며, DEO에서 체포하고 있는 자로넛을 이용해서 라이브와이어를 잡자고 한다.
카라는 그랜트에게 가족과 다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카라는 가족에게 가보겠다고 결심한다. 알렉스는 정전이 된 상황이라 엄마가 걱정되어 엄마를 찾아온다. 알렉스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앙금을 풀어내는데, 곧 DEO의 호출이 와서 떠나게 된다.
카라가 슈퍼걸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그랜트는 자신이 라이브와이어를 불러낼 수 있으니 함께 라이브와이어를 붙잡자고 한다.
DEO에서는 라이브와이어를 봉인할 장비를 준비해주며, 그랜트는 도발스러운 방송으로 라이브와이어를 유인하고, 카라는 라이브와이어와 대결을 벌이게 된다.
카라는 대결중에 위기에 몰렸다가 봉인 장비를 사용하려고 하지만 라이브와이어가 눈치채서 실패한다. 라이브와이어는 카라를 죽이려고 격렬한 전격을 퍼붓는데, 그랜트가 나타나서 레슬리를 설득한다. 그 떄를 노려서 카라는 지하에 있던 수도관을 완력으로 뜯어서 라이브와이어에게 뿌리고, 라이브와이어는 물에 닿자 전력이 방전당하여 쓰러지고 만다.
다음날 윈은 카라에게 분위기를 보고 가볍게 키스를 하지만 곧 제임스가 돌아와 분위기가 깨진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려고 생각한다.
카라와 알렉스는 엄마와 화해한다. 그리고 엄마는 아버지 댄버스 박사가 카라가 DEO에 끌려가는걸 막기 위하여, DEO에 소속되어 일하다가 죽었다는걸 알려주고, 거기에 행크 핸쇼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려준다.
라이브와이어는 DEO에 포획되어 감금된다. 카라와 알렉스는 DEO와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내려고 한다.
* 라이브와이어가 슈퍼맨이 아니라 슈퍼걸을 디스했다는걸 제외하면, 기본적인 구도는 슈퍼맨 TAS의 라이브와이어 등장 에피소드와 유사.
* 라이브와이어는 DEO 최초의 지구인 죄수이다.--자랑스럽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36회 일치
* 갑옷(Armour): 공격에서 얼마나 잘 살아남는지 결정하는 능력치. 근접 방어와는 달리 원거리 공격도 적용된다.
오다 가문의 야리 아시가루는 일반 야리 아시가루에 비해 근접전 능력과 사기가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창을 든 낭인. 사무라이보다 머릿수가 적지만 근접 방어와 사기가 높다. 그런데 얜 왜 야리 사무라이처럼 뛸 수 없을까. 낭인 생활을 하면서 너무 못 먹었나.
나기나타를 든 사무라이. 야리 사무라이보다 근접 공격이 높지만 대기병 보너스는 떨어지는 야리 사무라이와 카타나 사무라이의 중간쯤 되는 유닛이다.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중간하다. 갑옷 수치가 높아서 화살을 약간 잘 버틴다.
나기나타를 든 승병들. 나기나타 사무라이보다 근접전 능력과 사기가 높지만 대기병 보너스와 갑옷은 떨어진다. 특히 갑옷은 야리 아시가루와 동급.
나기나타를 든 여성 승병들. 나기나타 승병보다 전투 능력이 뛰어나지만 사기는 약간 떨어져서 사무라이와 동급이다. 여전히 갑옷은 야리 아시가루 수준.
이름의 어원은 겐페이 전쟁 당시 인물인 무사시노 벤케이. 다리를 건너는 사무라이들의 칼을 빼앗다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에게 패한 후 그의 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적의 습격을 받은 요시츠네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선채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초소카베 가문의 유미 아시가루는 다른 가문 유미 아시가루에 비해 정확도와 재장전 기술이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초소카베 가문의 유미 사무라이는 다른 가문 유미 아시가루에 비해 정확도와 재장전 기술이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활을 든 낭인. 사무라이보다 머릿수가 적지만 정확도와 재장전 기술이 높다.
* 명적화살(Whistling Arrows) - 일반 화살 대신 소리를 내는 화살을 적의 머리 위로 쏘아날린다. 해당 화살의 영향범위에 있는 부대는 피아 구분 없이 사기와 전투능력이 감소한다.
* 명적화살(Whistling Arrows) - 일반 화살 대신 소리를 내는 화살을 적의 머리 위로 쏘아날린다. 해당 화살의 영향범위에 있는 부대는 피아 구분 없이 사기와 전투능력이 감소한다.
시마즈 가문의 카타나 사무라이는 다른 카타나 사무라이에 비해 근접 공격이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다테 가문의 노다치 사무라이는 다른 가문의 노다치 사무라이에 비해 근접 공격, 돌격 보너스가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시마즈 가문의 카타나 영웅은 다른 카타나 영웅에 비해 근접전 능력, 갑옷이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테츠보라는 몽둥이로 무장한 적은 양의 사무라이. 돌격 보너스와 근접 방어가 비교적 낮지만 근접 공격력이 비교적 높다.
이름의 유래는 전국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이던 혼다 타다카츠.
화승총을 사용하는 부대. 화승총은 상대 부대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지만 정확도와 재장전 기술이 딸린다. 또한 직사 무기이기 때문에 앞에 시야를 가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사격할 수 없다.
오토모 가문의 철포 아시가루는 다른 가문 철포 아시가루에 비해 정확도와 재장전 기술이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적은 양의 만렙 뎃포 사무라이. 높은 정확도와 재장전 기술을 가졌다.
- 하이큐/267화 . . . . 36회 일치
* [[코즈메 켄마]]를 소모시키려는 사루카와 공고의 작전은 적중, 주도권을 잡는다. [[네코마 고교]]는 이들의 작전을 간파하고 "익숙해 보이겠다" 장담한다.
* 네코마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추격을 늦추지 않고 동점까지 따라붙으나 사루카와 측은 경기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여전히 우위를 점한다.
* 사루카와 주장 "시라미네"는 승부를 낙관하며 짐작하게 플레이에 나서나 어느 순간 코즈메가 블록을 유도하고 있는걸 직감한다.
* 하지만 깨닫는게 늦어 코즈메는 사루카와의 블록을 농락하며 득점을 성공. 사루카와 측은 어쩌면 네코마의 실책까지 함정일 가능성이 제시되며 동요한다.
* [[네코마 고교]]의 2회전 상대 사루카와 공고는 정면승부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네코마의 뇌" [[코즈메 켄마]]를 자멸시킨다는 전술로 나왔고 의도적으로 코즈메를 혹사시키는 플레이를 펼친다. 경기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전술이 효과를 발휘했다. 코즈메의 체력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 네코마 측은 이 작전을 인지했으나 어떠한 동요도 없이 네코마다운 플레이를 펼쳤다.
* 세트업와 발맞춰 뛰어오른 [[하이바 리에프]]는 페이크. 진짜는 레프트에서 이동한 [[후쿠나가 쇼헤이]]였다. 후쿠나가가 스파이크로 득점. 스코어 19 대 18로 한 점 따라붙는다. 그러나 후쿠나가는 세트업 높이가 살짝 낮았다며 귀띔했고 하이바도 "선배가 너덜너덜하다"고 하는 걸 보면 코즈메의 체력 문제를 없는 셈칠 순 없었다.
중계진은 사루카와가 네코마의 센터 라인을 경계한다고 분석했다. 쿠로오와 하이바로 이어지는 센터 라인은 막강했다. 방금 전 사루카와의 공격도 하이바의 움직임을 의식할 측면이 컸고 그래서 좌측의 후쿠나가가 살아날 수 있었다.
* [[다이쇼 스구루]]의 여친 "미카"는 세터를 소모시킨다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게 가능하다면 노헤비 학원도 같은 방법으로 쓸 수 있지 않았냐는 얘기였다. 다이쇼는 그 질문에 두 가지로 답했다. 첫째, 일반적으로 세터는 두 번째로 공을 받는다. 따라서 세터의 체력소모를 노린다면 간접적인 수단을 써야하는데 그건 상당한 끈기와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둘째, 네코마의 카운터 어택을 견딜 수비력이 필요하다. 네코마는 톱 클래스의 수비력과 랠리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제일 핵심적인 요소다. 사루카와는 어쩌면 둘 모두를 겸비했을 지도 모른다.
쿠로오의 2회차 서브. 사루카와 진영 우측을 파고들었다. 2학년 "야마시로"가 리시브. 공은 무난하게 3학년 "시가"에게 연결, 강렬한 스파이크가 네코마 우측을 가른다. 다시 한 점 달아나는 사루카와. 쿠로오는 로테이션으로 [[야쿠 모리스케]]와 교대하면서 잊을만 하면 시가의 공격이 튀어나온다고 투덜댔다.
* 이어지는 경기. 랠리와 랠리가 이어지며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2점의 점수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 스코어는 22 대 20. 사루카와의 작전은 순조롭게 계속됐다. 그건 코즈메가 쏟아내는 땀을 봐도 명백했다. 아직까지는 위태로운대로 잘 따라오고 있었지만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그때 리에프의 득점. 스코어 22 대 21로 한 점 따라잡는다. 서브는 네코마 측. 동점을 노릴 기회였다.
* 코즈메가 [[야마모토 타케토라]]에게 세트업, 야마모토의 스파이크는 사루카와의 블록에 막혔다. 튕겨나온 공은 네코마 진영을 가르며 코트 중앙으로 떨어졌다. 리에프와 코즈메의 가운데. 리에프가 달려나오지만 닿을 것 같지 않다. 코즈메 쪽이 조금 더 가까웠다. 후방으로 달려가는 코즈메. 그리고 거기서 한계가 왔다. 휘청거리는 코즈메. 경기장에 있던 모두가 그가 쓰러지는 모습에 주목했다. 공에서 한 발짝 거리. [[카이 노부유키]]가 가까스로 몸을 날려 리시브해 보지만 공은 높이 뜨지 않았다. 네트에 맞은 공, 기어이 네코마 진영에 떨어진다. 스코어 23 대 21. 중계진도 코즈메의 체력 저하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 사루카와의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은 코즈메가 쓰러지는 모습에 주목했다. 자신의 가르침이, 스승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현역 선수였던 시절 네코마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다이쇼는 이 시점에서 세터를 교체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어차피 이번 세트는 사루카와의 우세. 마지막 세트를 고려하면 체력을 보존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마침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코마 진영에서도 교체선수를 준비했다. 다이쇼는 1학년 세터일거라 예측했다. 교체를 준비하는 선수는 [[테시로 타마히로]]. 1학년 세터.
* "후카타니"의 서브. 사루카와 측은 이 여세를 몰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브가 좌측으로 너무 빠지면서 아웃라인을 벗어났다. 네코마의 득점.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한숨 돌린 네코마.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여전히 흐름은 사루카와 측에 있었고 이번 세트를 확실하게 받아갈 작정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공방. 사루카와어ㅢ "시라미네"가 때린 스파이크가 블록을 뚫는다. 후방에서 야쿠가 정면에서 받는다. 높이 뜨는 공. 시시오 감독은 그 순간에 무슨 불안을 느낀 걸까? 문득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코즈메를 거쳐 쿠로오의 스파이크. 시시오 감독의 불안과 달리 사루카와는 빈틈이 없었다. "와쿠라"의 블록에 원터치로 걸린다. "카나자와"와 "후카타니"가 차례로 살려서 다시 떠오른 공. 좌측에서 "시라미네"가 뛰어오른다. 카이, 쿠로오과 블록을 뛰었지만 우측에 치우친 탓에 중앙이 텅 비었다. 놓치지 않고 그 위치로 밀어넣는 시라미네. 후쿠나가가 눈치 빠르게 달려나왔지만 리시브가 불안정했다. 짧고 흔들거리게 떠오르는 공.
>냉정하게 구멍을 노리는 사루카와 공고!
중계진의 평은 썩 정확한 것 같았다. 그러나 네콰는 악착같이 달려들었고 코즈메도 그랬다. 공은 중앙으로 떠오르고 코즈메의 세트업, 사루카와의 블록은 중앙에서 함께 뛴 쿠로오에게 집중됐다. 그러나 이번엔 쿠로오가 아니었다. 우측의 카이에게 날아가는 패스. 카이가 블록을 따돌리고 득점에 성공한다. 드디어 동점. 마침내 따라잡았다.
* 매치 포인트 직전에서 동점. 주장 시라미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상대가 자신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말로 독려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동의했다. 다만 코트 밖의 시시오 감독은 조금 달랐다. 뭔가가 석연치 않다. 분명 불안요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을 뿐. 이런 상태에서 플레이가 재개됐다. 야마모토의 2회차 서브. 네트에 걸리며 실점. 서브권이 다시 사루카와에 돌아왔다. "와쿠치"의 서브. 느리고 앞쪽에 떨어지는 서브였다. 야쿠가 있는 위치였다.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공이었지만, 실수가 생겼다. 어중간하게 흘리는 리시브. 다이쇼는 이 어이없는 실책이라 쓴소릴 했지만 눈을 의심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시오 감독도, 상황을 낙관하던 시라미네도 같은 걸 보았다. 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마치 친절하게 안내하는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시라미네의 조치는 재빠르긴 했지만 적절하진 않았다. 코즈메는 들켰다걸 알았지만 작전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른쪽이었다. 중앙에 멈췄던 시가는 공이 카이에게 넘어가고 나서야 움직였다. 카이가 짐착하게 스파이크. 뒤늦게 시가가 블록에 참가했지만 그의 팔에 맞고 텅빈 사루카와의 좌측에 내리꽂혔다. 완전히 속았다. 중계진은 넓은 레프트를 버리고 좁혀진 라이트를 공략한 의외성에 놀랐다. 그리고 사루카와의 블록도 그럴 거라고 말했다. 이런 플레이를 감행한 코즈메는 수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번 대회에서 손꼽히는 세터일지 모른다고 호평했다. 정작 당사자는 방금 조금 짧게 올라갔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 24 대 24. 첫 번째 동점은 그럴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사루카와의 계산이 복잡해졌다. 시라미네가 방금 전 리시브부터 모든게 위장일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모든게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블록을 유도하고 있다는건 그럴 듯한 결론이었다. 그러자 또다른, 무서운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35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 2층 대회의실에선 시에핫사이카이와 젊은 두목 [[오버홀]]에 대한 회의가 시작된다.
* 오버홀, 치사키의 능력은 "대상의 분해와 수복". 그리고 그에겐 딸 에리가 있다.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는 그때 본 상처가 불현듯 떠오른다.
* 오버홀은 자신의 딸을 희생해 개성을 파괴하는 탄환을 만드는 걸로 추정되며 미도리야와 밀리오는 그때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 밀리오와 미도리야는 자리를 박차며 "다음에는 반드시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이것이 나이트아이가 이번 작전의 목표로 삼는 바였다.
* 공교롭게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 생각했더니 [[미도리야 이즈쿠]]와 친구들은 모두 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 2층 대회의실. 이곳에 현역에서 뛰고 있는 다양한 히어로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엔 [[아이자와 쇼타]]와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처럼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각각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미도리야와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참석대상이다. 물론 그들의 사무소 책임자들도 참석.
나이트아이는 회의의 시작을 알리며 착석을 요청한다. 미도리야는 히어로 덕후 기질을 발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참석한 히어로들의 면면을 빠르게 살핀다. 랭킹에 올라간 유명인사들도 있지만 지방에서 활동하는 마이너 히어로들도 있다. 오챠코와 츠유는 담임인 아이자와에게 먼저 다가간다. 아이자와는 나이트아이 측에서 협력 요청이 있어서 왔다가 밝히고 자신도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키리시마는 선배 [[아마지키 타마키]]와 함께 [[패트껌]]에게 다가간다. 키리시마에겐 시에핫사이카이도 금시초문. 패트껌은 그 녀석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몰라서 모인 것이며, 사실 그들도 이미 엮여 있다고 하는데.
그는 스크린을 띄워 설명을 계속한다. 스크린에는 [[빌런 연합]]의 일원인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본명 "부바이가 와라진"의 모습이 나타난다. 스크린 속의 그는 [[오버홀]]과 접촉하고 있다. 이들의 접촉 장면을 센티피더가 목격했으며 경계가 심해 추가적인 미행은 불가능했지만 이후 경찰의 협조로 두 조직 간의 다툼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그랜토리노에게 연락이 간 것도 빌런 연합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츠카우치 나오마사]]에게도 연락이 갔다. 원래는 그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또다른 목격 정보를 입수해 그쪽으로 갔다. 그랜토리노는 자신이 나이트아이 사무소를 소개해준 덕에 미도리야가 엮이게 됐다고 여겨서 그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렇지 않다고 사양한다.
옆에 앉은 [[토오가타 밀리오]]는 그가 그랜토리노와 아는 사이냐고 묻는데 미도리야는 직장 체험 때 인연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맞은 편에 앉은 키리시마는 그랜토리노가 카미노 사건 때 [[올마이트]] 옆에 있던 노인이란걸 알고 미도리야가 굉장한 사람과 안면이 있다고 감탄한다.
* 나이트아이도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 사이의 대화를 뜻모를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회의를 속행시킨다. 이후는 여기까지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HN에서 협력을 요청했으며 현재에 이른다. 오챠코와 츠유는 HN가 뭔지 모르는데, [[하도 네지레]]가 설명해준다. 히어로 네트워크의 약자로 프로 히어로들이 사용하는 넷서비스로 상호활동 보고와 정보교류, 협력 요청 등을 처리할 수 있다.
* 레게풍의 프로 히어로는 이 자리에 프로 이외의 인물이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꼬맹이가 있으면 회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자 패트껌이 반발하며 "이들은 '''슈퍼''' 중요 참고인"이라며 키리시마와 타마키를 소개한다. 정작 둘은 영문을 모르는 상태. 특이 타마키는 이 장소 자체가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개성을 망가뜨린다"는 말은 회의장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밀리오는 우선 타마키의 몸 걱정을 하는데, 다행히도 자고 일어나니 완전히 괜찮아졌다. 타마키는 건재를 과시하듯이 개성을 발동하는데 아침 메뉴가 규동이었는지 소발굽을 만들어낸다. 그정도라면 별거 아닌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이자와가 설명한다.
아이자와의 개성은 "개성의 말소". 그래서 개성을 파괴하는 이 약물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인체에 +알파 요소인 "개성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자와의 경우는 개성을 일시정지 시키는 형식이고 개성인자 자체에 데미지를 주진 않는다. 패트껌이 조사한 바로는 이 약물은 개성인자 자체를 "파괴"한다. 물론 타마키의 경우는 자연치유될 정도로 미미한 타격이었지만.
* 그런 약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필요한데, 유감스럽게도 타마키 체내의 것은 개성만을 공격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별로 건질게 없었다. 총을 쏜 빌런 조직도 입을 열지 않고 발사한 총은 산산조각, 탄환도 더 가진게 없었다. 그런데 역시 탄환을 맞은 키리시마는 개성이 "경화"였기 때문에 탄환이 튕겨나가서, 그걸 가까스로 입수할 수 있었다. 키리시마는 어려운 이야기라서 따라가지 못하다가 자기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란다. 여학생들은 키리시마의 공적이라며 칭찬. 하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훈훈하게 가질 못했다. 패트껌은 입수한 온전한 탄환에서 꺼림직한 결과물을 받아냈다.
마치 기분 나쁜 괴담 같은 이야기. 분위기가 단숨에 흉흉해진다. 하지만 미도리야와 밀리오는 다른 것 때문에 창백한 얼굴이 된다. [[류큐]]는 패트검의 말에서 탄환의 정체가 "인간의 개성"이라는 걸 짐작해낸다. 즉 이 약물은 "인간"에게서 추출한 것.
* 이번에는 이 탄환이 왜 시에핫사이카이와 연결되냐는 질문이 나왔다. 여기에 대해서도 패트껌이 설명한다. 분명 아직 증거는 없다. 하지만 키리시마가 잡은 빌런을 시작으로 조사를 한 결과 그 탄환은 시에핫사이카이와 교류가 있는 어떤 조직에서 나왔다. 원래 이런 약물 유통은 몇 단계의 그룹과 조직을 거쳐 추적이 어려운데, 이 과정에서 저런 조직이 끼어 있다는건 최종적인 경로는 시에핫사이카이라는 걸 암시한다.
* 미도리야와 밀리오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다. 둘은 정확히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그들이 놓치고 말았던, 지금와서 보면 치명적이었던 복선. 치사키와 함께 있던 소녀. 그리고 그 상처들.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는 정보들과 그들이 본 것, 모든 것을 합쳐보면 무시무시한 자괴감이 그들을 덮쳤다.
* 나이트아이는 "치사키에겐 딸이 있다"는 정보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자신의 인턴들, 밀리오와 미도리야와 접촉했다는 사실도. 그때 확인한 바로는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프로 히어로들은 이것만 가지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키리시마 같은 학생들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동안 불평 일색이던 레게풍의 히어로가 적나라하게 대답해준다.
* 패트껌이 다혈질스럽게 "당장 처들어가자"고 말하는 동안 레게풍 히어로는 화살을 밀리오와 미도리야에게 돌린다. 그 둘이 접촉했던 당시에 소녀를 보호했다면 끝났을 얘기 아니냐는 것. 나이트아이는 자기 책임이라며 둘을 감싼다. 그러는 동안 두 학생은 무거운 자책감에 시달린다. 비록 미도리야가 소녀를 보호하려 했고, 밀리오는 앞일을 생각해 보다 확실한 보호가 가능한 때를 노렸을 지라도.
- 송병구 . . . . 35회 일치
=== 데뷔와 시련 (2004~2006) ===
=== 전성기와 결승에서의 잇따른 좌절 ===
온게임넷의 엄재경 해설위원과 김태형 해설위원은, 스타 뒷담화 방송에서 과거 [[박정석]]과 [[강민 (프로게이머)|강민]]의 라이벌 관계와 비교하여 [[박정석]]-송병구의 정파 [[프로토스]], [[강민 (프로게이머)|강민]]-[[김택용]]의 사파 [[프로토스]]라는 프로토스 계보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 우승자 징크스와 부진 ===
10-11시즌 1라운드에서 송병구는 승보다 패가 많을 정도로 부진에 빠졌다. 당시 송병구는 조금씩 하락세를 타는 추세였으나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송병구는 회복세를 보였다. 승수를 차츰차츰 쌓아나갔고 팀의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굳혀 나갔다. 2라운드와 비슷한 시기 개인리그에서도 송병구는 상승세를 타는 분위기였다. 3라운드 위너스리그서는 10-11시즌 MBC게임과의 경기에서 첫 역올킬을 달성하였고 본인의 첫 공식전 올킬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는 화승OZ와의 경기에서 팀의 에이스 이제동을 꺾으며 3킬을 달성하며 프로리그 8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4라운드에 접어들면서 다시 패가 많아지게 되었다. 근근히 승리를 쌓는 송병구였지만 마침내 시즌 막판에 접어들면서 연패를 겪었고 택리쌍에 비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0-11시즌에서 40승을 기록하며 본인의 첫 프로리그 40승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11년 1월 16일, MBC game Hero와의 경기에서 [[김재훈 (프로게이머)|김재훈]]이 3킬을 달성했으나 대장으로 나온 송병구가 '[[김재훈]], [[염보성]], [[고석현]], [[박수범]]'을 모두 잡아내는 괴력을 발휘하며 역올킬을 달성했다.
비록 팀은 접전끝에 아쉽게 플레이오프에 그쳤고 결승전 진출이 좌절됐지만 송병구는 2012년에 들어서며 자유의 날개와 병행된 프로리그에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송병구는 자유의 날개와 병행한 첫 프로리그에서는 좋은 출발을 보여줬지만 스타리그에서는 14연속 진출 대기록에 실패를 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오래 끌고가지는 못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프로리그에서 13연패까지 하는 등 송병구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송병구는 2014 GSL 예선전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본선조 배치에는 이신형, 김준호, 주성욱 등 강력한 상대들이 다소 포진되어 있었으나, 김준호를 2:1로 제압한 뒤 승자전에 진출하였고, 승자전에서는 주성욱의 한 수위 실력에 2:0으로 패하여 최종전으로 떨어졌다. 최종전에서 이신형을 이기고 올라온 김준호와 다시 맞붙었으나, 아쉽게 2:1로 패배하여 GSL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리그에서의 부진을 씻어내고, 맹활약을 보여준 송병구에게는 아직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2014년의 시작이었다.
이후 프로리그 1라운드 포스트시즌에서는 [[원이삭]]을 상대로 승리하기도 했으며 2라운드에서 김준호와 이영호를 꺾는 등 2014년 2월 프로리그 3연승을 기록,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2014년 첫 GSL 예선전도 통과하며, 송병구의 2014년은 난관없이 잘 풀려가고 있다. 특히 5월에 들어 ESTV CUP 에서 우승을 하였으며 프로리그 3라운드 SK텔레콤과의 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3라운드 SK텔레콤의 전승을 막았다.
최근 아프리카로 복귀해서 BJ로 활동하고 있으며 ASL 8강까지 올라와 이제동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다.
최종병기 이영호와의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론 11:10으로 앞서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3:16으로 밀린다. 두 선수는 개인리그에서 자주 만났는데, [[다음 스타리그 2007]], [[에버 스타리그 2007]]에서는 모두 송병구가 승리했지만,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서의 이영호의 우승을 시작으로 이영호의 시대를 알리면서 테란전에 정말 강한 송병구마저 본좌 모드로 돌입한 이영호한테는 역부족이었다. 계속 만나도 패배가 훨씬 많았지만, 이긴 적도 몇번 있다.
송병구선수는 정명훈선수와 인연이 깊은 편이다. 송병구가 만년2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우승했을때의 상대는 정명훈이였으며 반대로 정명훈도 2인자의 꼬리표를 떼고 우승했을때의 상대는 송병구였다. 공식전 10승 8패로 조금 앞서있다.
* 2007년 6월 14일 곰TV MSL 시즌2 16강 와일드카드전 7경기 송병구 승
송병구만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던 염보성은 2008년 9월 6일 신한은행 올스타전경기에서 마침내 자신의 천적 송병구를 물리치며 승리소감으로 "엄마 나 병구형 이겼어!" 라고 인터뷰하며 그동안의 한을 조금은 씻어낼 수 있었다.<ref>실제 인터뷰에서 말한게아니라 채팅으로 말했다</ref> 그 경기는 송병구와의 천적관계를 조금은 극복하는 발판이 되면서 이후 계속된 대결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게 됐다. 하지만 상대전적은 공식전에서 14:6, 비공식전 포함 전적으로는 18:7로 여전히 송병구가 크게 이기고 있다. 현재 염보성은 은퇴를 했고 둘의 대결은 볼 수 없게 됐다.
* 2008년 6월 29일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결승전 2경기 송병구 승
* 2008년 6월 29일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결승전 1경기 송병구 승
은퇴한 박지수에게는 크게 앞서 있다. 두선수는 공식전에서는 9차례, 비공식전까지 합쳐서는 11차례 만났는데, 프로리그에서만 1차례를 만났고 나머지 공식전 8번 및 비공식전까지 합쳐서 10번은 개인리그 및 비공식전에서만 만났다. 상대전적에서 공식전만으로는 7:2,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9:2로 앞서 있는데, 박지수가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와서 국내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서, 송병구의 해외대회가 아니고서는 맞설 기회가 없다. 따라서 전적 변화 가능성은 있으나 힘들어 보인다.
* 2007년 6월 14일 곰TV MSL 시즌2 16강 와일드카드전 2경기 송병구 승
함께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이성은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인다. 프로리그에서는 한차례만 만났고, 나머지 8번은 개인리그와 비공식전의 전적인데,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 6:2, 비공식전까지 합쳐서 7:5로 앞서 있다. 여담으로 비공식전에서 맞붙었을 때 경기는 올스타전이었는데, 이성은은 저그로 맞붙었었고, 송병구는 주종인 토스였다. 그 후 스타리그 2012 시즌2 예선 4강에서는 이성은에 1:2로 패했다. 참고로 스타1에서 테란이 주종인 이성은은 스타2에서는 프로토스다. 이성은이 은퇴해서 이 전적은 그대로 이어진다.
- 이승엽 . . . . 35회 일치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상했다가 불발됐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하여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재학 시절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ref>[[스포츠 조선]] - 2010년 5월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6/2010051601132.html "최동원, 선동열, 이승엽, 추신수, 봉중근, 이대호, 류현진… 청룡기가 낳은 한국 야구 대들보"]</ref>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ref>''[[OSEN]]'' - 2007년 12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이승엽-이대호, 모교서 방망이 날세운다"]{{깨진 링크|url=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ref><ref name="homerun">스포츠 춘추 - 2010년 9월 [[박동희 (기자)|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463 "이대호로 본 ‘홈런 타자는 어떻게 탄생하나’"]</ref>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1997년]]에 장타력에 돋보여 홈런 1위(32개), 타점 1위(114개), 최다 안타 1위(170개)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 [[1998년]]에 38개 홈런과 102타점을 기록하여 당시 [[타이론 우즈]]와 시즌 최다 홈런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2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팀의 주축 타자로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 [[2002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벌여 47개를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LG 트윈스|LG]] 투수 [[이상훈 (1971년생 좌완 투수)|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쳐 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곧 [[마해영]]의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이어져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게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안겼다.
* [[2003년]] [[6월 22일]] [[SK 와이번스|SK]] 투수 [[김원형]]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여 일본의 [[오 사다하루]](27세 3개월 11일)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알렉스 로드리게스]](27세 8개월 6일)를 제치고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 고지(26세 10개월 4일)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투수 [[이정민 (1979년)|이정민]]을 상대로 56번째 홈런을 쳐내며 대한민국 프로야구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자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재팬 시리즈에서 처음 맞붙은 [[센트럴 리그]] 소속의 [[한신 타이거스]] 투수들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는데, 1차전에서 만난 [[한신 타이거스]]의 에이스인 [[이가와 게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고, 2차전에서도 에구사 히로타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3차전은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됐지만 4차전에서는 [[스기야마 나오히사]]로부터 선제 홈런을 쳐 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이 재팬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이마에 도시아키]]에게 밀려 제팬 시리즈 MVP 수상에 실패했다.
[[2005년]] 시즌 후 열린 [[2005년 아시아 시리즈|아시아 시리즈]]에서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에 각각 3번과 6번 타자로 출전했다.
[[2005년]] 시즌 후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계약이 종료되며 재계약하는 듯했으나 수비 위치 보장과 극단적인 플래툰 시스템 하의 기용 등 본인의 의사와 [[지바 롯데 마린스]]가 내세운 조건이 맞지 않아 [[2006년]] [[1월 19일]]에 이적했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9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3 "일본 프로 야구의 대리인 제도를 말한다"]</ref>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이듬해 [[2007년]] 1월, 모친상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ref name="sword"/>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와의 첫 대구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반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ref name=world>{{뉴스 인용|제목=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구열|날짜=2007-10-22|확인날짜=2008-06-01}}{{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 }}</ref>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였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11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ref>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79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ref><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0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ref> 그러나 그 해 45대구에 출장해 2할대 타율, 7할 5푼 5리의 OPS를 보였으며,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7대구 동안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이나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16홈런, 2할대 타율로 시즌을 마감한 그는 일본 시리즈가 끝난 이후인 [[11월 14일]]에 [[한일 클럽 챔피언십]] [[KIA 타이거즈]]와의 대구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2루타 두 방을 날리며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승엽 “내 야구 인생에 포기는 없다”|url=http://news.nate.com/view/20091116n04063|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1-16}}</ref>
방출 후 [[2010년]] [[12월 2일]] 1년간 1억 5,000만엔에 옵션이 포함된 연봉을 계약했다. 이 때 투수 [[박찬호]]와 같은 팀이 됐다. 이로써 [[200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퍼시픽 리그]]로 돌아와 등번호도 3번으로 정해졌다. 그는 연봉을 대폭 낮추는 등의 백의종군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로 교체해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을 받아 2할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팀의 꼴찌가 확정된 후반기 들어 맹활약하며 시즌 총 15홈런을 쳐 퍼시픽 리그 홈런 순위 8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모습도 보여줬으나 타율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규정 타석 미달로 인해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2011년]] [[10월 21일]] 기자 회견을 열어 8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영구 귀국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국내 복귀' 이승엽, 日서 기자회견 '굿바이, 오릭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79943.htm|출판사=스포츠서울|날짜=2011-10-21|확인날짜=2012-11-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7070317/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79943.htm#|보존날짜=2013-10-07|깨진링크=예}}</ref> 이후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18871 이승엽, 와이프에게 어쩔 수 없는 경상도 남자인가 보다] - 스포츠조선</ref> [[2011년]] [[12월 5일]] 연봉 8억원, 플러스 옵션 3억원에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2012년]]에는 3할대 타율,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해 여전히 강타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그는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해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홈런 타이기록을 수립했고 6차전에서 결정타였던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첫 번째이자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상대적으로 1루수로 출장한 대구가 적어 처음으로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13 시즌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는 결승전에서 [[KIA 타이거즈]]의 [[나지완]]과의 대결에서 6-2로 이기며, 데뷔 이후 첫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우승을 맛봤다. [[2013년]] [[8월 28일]] [[NC 다이노스|NC]]와의 대구에서 3,000루타를 달성<ref>[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395864 삼성 이승엽, 역대 6번째 3,000루타 달성]</ref>했으며, 이는 가장 적은 대구 수로 달성한 기록<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829.010220731320001 이승엽 최소 대구 3,000루타]</ref>이다.
[[2013년]]에는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2할대 타율, 13홈런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527668 이승엽의 무서운 다짐 "내 이름, 꼭 되찾겠다"] - 노컷뉴스</ref> 이는 9홈런에 그친 [[1996년]] 이후 가장 적은 홈런이었다. 정규 시즌 막판에는 허리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격 부진이 계속돼 7대구에서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에 그쳤다. [[2013년]] [[11월 1일]] 7차전까지 단 1타점도 기록하지 못하다가 7차전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동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당시 감독이었던 [[류중일]]의 믿음에 보답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136917 이승엽, 홈런이 전부가 아니다… 부진 털어낸 동점 적시타 ‘우승 발판’] - 스포츠월드</ref> 하지만 주춤한 성적으로 인해 그 해 골든 글러브(지명타자)를 타격왕을 차지한 [[이병규 (1974년)|이병규]]에게 내 줬다.
[[2014년]]에는 타격 자세 교정을 받았고, 그 결과 전년도의 부진을 털고 역대 최고령 3할 - 30홈런 - 100타점을 달성하며 국민 타자의 부활을 알렸다. [[2014년]] [[6월 17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였고, [[7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7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9월 10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역대 최고령 30홈런을, 한 달 후 [[10월 1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으로 최고령 시즌 100타점을 돌파했다.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하였지만 2차전에서 홈런을 쳐 내며 [[타이론 우즈]]를 제치고 포스트시즌 역대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시즌 기록은 3할대 타율, 32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며 2년만에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는 1루수로써 7번 받은 것을 포함해 총 9번을 수상하며 역대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 신기록을 경신했다.
[[2015년]]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구에서 [[구승민]]을 상대로 장외 홈런이자 시즌 10호 홈런, [[KBO 리그]] 통산 400호 홈런, 한일 통산 559호 홈런을 기록했다.
- 김민기(가수) . . . . 34회 일치
[[전라남도]] [[신안군|신안]] 태생으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6.25 전쟁]] 중 북으로 퇴각하던 [[조선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해 산파였던 어머니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고 한다. 휴전 후 가족들과 [[대구광역시|대구]]로 이주했고, 흑산초등학교와 자은중학교, 도초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이미 중학교 시절에 미술에 뜻을 두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보다 일찍 [[서울대학교]]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던 셋째 누나의 영향을 받아 [[우쿨렐레]]나 [[기타]] 등을 독학으로 익히면서 음악에서도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술과 음악 모두 포기하기 싫었는지, 대학에 입학한 뒤 고교/대학 동창인 [[김영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로 현 이노디자인 대표. 무한도전 디자이너 특집에도 나왔던 그분 맞다. [[MYK]]의 부친이기도 하다.]와 [[도깨비]] 두 마리의 약자인 '도비두'라는 포크 밴드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음악을 시작하면서 미대 수업은 [[아오안]]이 되었고, 1학년 첫 학기부터 낙제를 먹었다(...). 그 때문에 2학기 때 휴학한 뒤 1970년에 초기 대표곡인 [[아침 이슬]]과 가을편지([[고은(시인)|고은]] 작사), 꽃 피우는 아이 등을 작곡했고, [[양희은]]과도 [[YWCA]]의 포크 동아리 '청개구리'에서 만나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시인 [[김지하]]와도 만나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고, 솔로 1집을 발표하면서 싱어송라이터로 두각을 나타냈다.
보안대 조사가 끝난 뒤에는 [[영창]] 살이를 한 뒤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되었는데, 경기고등학교 선배였던 소속 [[연대(군대)|연대]] 수색중대장의 부탁을 받고 중대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1977년 5월에 [[전역]]한 뒤에도 공연이나 음반 발매 등 공적인 활동에 제재를 받게 되자 당시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이었던 조각가 김세중의 도움으로 학사 학위와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졸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다른 민중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제도권 음악계의 도움 없이 비밀리에 작곡과 연주 활동을 진행했는데, 1978년에는 [[개신교]] 계열 시민단체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다. 이 노래극은 당시 대학 노래패들의 노래와 연주로 [[송창식(가수)|송창식]]의 집에서 몰래 녹음되었고, 녹음 직후 [[카세트 테이프]]로 복사되어 보급되었다. 대담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행한 작업이었는데, 당연히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지만 별 처벌 없이 풀려났다.[* 당시 김민기는 분명히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었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 동안 자신들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공개적으로 탄압하다가 국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것 때문인지 김민기만은 활동 금지만 시키고 자멸하도록 방치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세력들이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게 되자 다시 농사를 지으며 대외 활동을 삼갔는데, 1981년 5월에는 [[국풍81]] 개최를 앞두고 정부에서 자신을 회유하려고 하자 농사일이 바쁘다면서 끝까지 참가를 거절했다.[* 이때 [[허문도]]가 김민기를 회유하기 위해 [[백지수표|흰 종이를 한 장 내밀며, "원하는 액수를 쓰라" 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김민기는 거절.] 대신 틈틈이 찾아와 농사를 도와주던 [[전라북도]] 각지의 연극패와 노래패들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시|전주]]에서 근대사 세미나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1983년에는 2년 전 비공식 발표했던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가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작품으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상연되었는데, 극단 연우무대 대표 오종우를 각본가로 기재하고 자신은 익명으로 연출을 맡았다. 이 때까지도 김민기는 주로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같은 해 12월에 전곡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때마침 9년 전 [[소리굿 아구]]를 같이 공연했던 김석만이 김민기를 찾아와 공연 활동을 다시 재개하자고 설득했고, 결국 농부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특별시|서울]]로 돌아와 김석만, 오종우와 함께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서 김민기가 참가한다는 것을 알아채면서 수포로 돌아갔고, 1984년에는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한 대학들에서 활동하던 노래패들의 노래를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음반을 제작했다.[* 이 음반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노래패 '노찾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음반도 공윤위에서 김민기의 노래를 모두 삭제하라고 지시했고, 발매 뒤에도 [[어른의 사정]]으로 발매는 되었지만 판매가 거의 안되는 [[안습]] 신세를 겪었다.
1985년에 뮤지컬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던 이미영과 결혼했고, 1987년에는 [[6월 항쟁]]으로 본격적인 [[민주화]] 열풍이 불자 6년 전 [[충청남도]] [[보령시]]의 [[탄광]]에서 잠시 광부 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을 살려 탄광촌 아이들을 다룬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건재하던 공윤위의 꼬장 때문에 여러 대목의 가사를 고쳐서 출반해야 했다. 공윤위와의 마찰은 같은 해 12월에 노래일기 '엄마, 우리 엄마'와 훗날 록 오페라로 리메이크하게 되는 노래극 '개똥이'의 노래를 모은 음반을 낼 때도 똑같이 벌어졌다.
2001년에는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작곡된 김민기의 대표곡 아홉 곡을 김동성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앨범이 발매되었고, 발매와 동시에 '클래식 김민기'라는 타이틀로 임헌정 지휘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해 화제가 되었다. 2004년에는 [[공장의 불빛]]이 [[정재일]]과 [[이적(가수)|이적]], [[이소은(가수)|이소은]], [[전인권]], 이지영, [[이승열]] 등 후배 음악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1978년의 오리지널 카세트 테이프 복각본과 합쳐 두 장의 [[CD]]로 재발매되었다. 이 음반들은 그와 초기에 듀엣 활동을 했던 이노디자인 대표 김영세가 앨범 디자인을 맡았다.
그러던 그가 정말 오랜만에[* 그의 삶을 다룬 책 <김민기>(김창남 저/한울)에 음악평론가 강헌과의 인터뷰가 실려있지만 일간지와는 최초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한겨레]]와의 [[http://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85444.html|인터뷰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6352.html|두번째]]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나 음악극 외에도 순수한 서정미가 돋보이는 노래들도 많이 작곡해 운동권이 아닌 일반 애호가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회적 소외자에 대한 시각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람에 대한 연민을 그린 곡인 [[아름다운 사람]]외에 친구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듯 털털한 어조로 부르는 '봉우리', 순수한 동경과 열정을 담담하게 표현한 '날개만 있다면'등의 노래도 유명하다.
2018년 9월 13일자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지하철 1호선과 김민기 자신의 근황, 아침 이슬의 탄생 비화와 세월호 참사 때의 비화를 짤막하게 전해주고 갔다. 그가 TV 방송 인터뷰를 승낙하여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휘파람]]을 잘 부른다(...). 1971년 김민기 첫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 '눈길' 의 휘파람 반주도 본인이 직접 불렀고, 22년 뒤 녹음한 [[그사이]]와 천리길의 휘파람 반주도 본인이 직접 불렀다.
김민기와는 절친한 관계. 한대수와 김민기 모두 대한민국 포크 음악을 발전시키는데에 큰 기여를 했으며, 음악이 계몽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실제로 1971년 김민기의 앨범에 한대수의 음악 '바람과 나' 가 실리기도 했고, 한대수도 2013년에 부른 '행복의 나라' 에서 '이제 나이 들어서 (음반을) 녹음할 수 없는 사람들' 로 김민기와 [[전인권]]을 뽑았다. 이를 보면 전인권과의 커넥션도 있었을지도?
김민기의 대학시절, 김민기가 만든 2인조 밴드 '도비두' 의 멤버였던 인물. 김민기와는 절친한 관계라고 한다. 현재는 산업 디자이너로 이노디자인의 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공장의 불빛]]을 만들 때도 송창식의 집에서 비밀리에 녹음했고, 김민기 앨범 1에 수록된 송창식 작곡의 '내나라내겨레', 송창식이 부른 김민기 작곡의 [[이 세상 어딘가에]] 등, 김민기와 굉장히 많은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둘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뉴스, 기사는 없지만 굉장히 친했던 듯. 사실 자칫 발각되면 함께 연행될 수 있었던 공장의 불빛의 녹음을 도와주었다는 것 자체가 어지간히 믿는 사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양희은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송창식은 김민기에 대해 이야기하길 "아마 김민기가 세상에 나왔다면 나는 없었을 거다"라고 말했다고... 반면에 김민기는 송창식을 형님으로 칭하면서 대인이시며 자신에 대한 송창식의 평가에 매우 쑥스러워하는 인터뷰가 있다.(SBS 한수진 아나운서의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링크 추가 바람)
대통령 박정희 맞다. 70년대 당시 김민기는 제법 유명해서, 유신 정권의 눈에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박정희의 긴급조치에 의하여 김민기의 앨범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악연의 시작이었을 뿐, 1975년, 김민기가 카투사로 군대에 입대했을 때, [[중앙정보부]] 요원이 접촉하여 그로 하여금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반강제적'''으로 요청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노래를 만들어주었는데, 이 노래가 바로 '식구생각'.[* 노래를 만들어주긴 했는데, 노동으로 인하여 가족이 흩어진 내용의 노래를 만들어주니, 중정부 요원이 갸우뚱했다고 한다.] 결국 김민기는 영창에 끌려가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의 불온한 행각으로 인해 그는 수없이 취조실에 끌려가 고문당했는데, 사각형 각목으로 '아 내가 이제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날 때까지 맞았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말하길, '이 친구가 나 때문에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렇게나 탄압하던 김민기의 노래가 이후 민주화의 구심력이 된 것은 아이러니. 나중에 김민기는 운동권들에게 '너무 미워하지마라. 그러다 걔(박정희) 닮아간다' 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전인권은 김민기가 프로듀싱한 겨레의 노래 음반에 참여해 '이등병의 노래'를 불렀다. 당시 곡 해석을 둘러싸고 김민기와 의견이 달랐다고 한다. 전인권에게 김민기는 우상이자 컴플렉스고 대한민국에 둘도 없는 천재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8113|관련 기사]].
음악평론가 강헌의 주선으로 조용필과 방배동 근처에서 만나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조용필이 노래방 기기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한다. 당시 만남에 대해 강헌이 과장된 어법으로 흥미진진하게 얘기한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gLSFPYObTs|'김민기와 조용필의 만남' - 강헌]] 조용필이 아무래도 김민기보다 늦은 시기에 활동한데다가 주요 음반이 현대가요이기 때문에 김민기보다 젊을 것 같지만, 알고보면 김민기가 조용필보다 1년 후배이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34회 일치
>인생은 좋았다. 달콤한 여름 날의 해넘이, 깔끔하게 깎인 잔디밭의 싱싱한 냄새,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뉴저지의 강 너머 집.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딸.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었다. 하지만 꿈이라는건 보고 있지 않으면 무너지는 나쁜 습관이 있다.
맥스가 뉴저지 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 왔을때, 집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방에는 V자와 주사기가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집 안에 쳐들어온 것이었다. 맥스는 마침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아 911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전화 건너편의 여자는 도와줄 수 없어 유감이라는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맥스는 권총을 뽑아들고 2층으로 향한다. 2층에서는 미셸의 비명소리와 아기가 우는 소리,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맥스는 아기방에서 튀어나온 남자들을 쏴죽이고는 아기방으로 들어갔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맥스는 미셸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침실로 달려갔지만 모든게 늦은 후였다. 맥스는 미셸의 시체를 껴안고 통곡한다.
펀치넬로 패밀리에 잠입해 수사를 하고 있던 맥스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동료 마약단속국 경찰인 B.B.의 전화였다. B.B.는 잭 루피노에 대해 급한 일이 생겼으니 로스코 거리 역에서 알렉스와 만나라고 했다. 맥스는 지하철을 타고 로스코 거리 역으로 향한다.
맥스는 기폭장치를 찾아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괴한들이 벽에 큰 구멍을 뚫어놓은걸 목격한다. 그 구멍은 은행 금고와 연결되어 있었다. 괴한들은 [[은행강도]]를 벌이고 있던 것이었다. 맥스는 강도들을 처리한 후에 금고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뉴욕 경찰청의 [[짐 브라부라]] 반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브라부라 반장은 전화를 받은 맥스에게 당장 항복하라고 하지만 맥스는 "애들이랑 대화 좀 해봤는데 다신 이런 일 안하겠데", 라는 말만 하고는 끊어버린다.
이후 맥스는 은행 금고를 뒤져 강도들이 쓰던 기폭장치를 찾아낸다. 그 와중에 이들이 에이저 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의 채권을 노리고 은행강도를 벌인 것이라는 것도 알아낸다. 에이저 코퍼레이션은 최근에 성공한 기업으로, 에이저에 대해 논하지 않는 방송과 잡지는 없었을 정도였다.
맥스는 다시 폭탄이 설치된 문으로 돌아가 문을 폭파시킨다. 그 문은 현재 사용되는 구간의 개찰구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맥스는 그곳에 있는 알렉스를 만난다. 둘은 은행 강도가 루피노의 부하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이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던 와중, 괴한 하나가 몰래 다가와서 볼더를 쏴 죽이고는 도망간다. 맥스는 자신을 습격해오는 루피노의 부하들을 해치우며 지하철역에서 탈출한다.
* 기폭장치를 얻은 후 되돌아가다 보면 적들이 공격해오는 구간이 있다. 이때 적 하나가 수류탄을 가지고 있는데, 놈이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죽여 빼앗을 수 있다. 이 수류탄을 시작구간에 있는 큰 구멍에 던진후 목표를 확인하면 "나는 쥐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I had declared a war against rats.]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후 폭탄이 설치된 문이 있는 방으로 가면 베레타와 데저트이글을 든 쥐들이 공격해온다.
피니토 형제를 죽인 맥스는 그들의 책상 위에서 [[비니 고그니티]]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는 루피노의 오른팔로 일하는 찌질이었다. 편지에는 피니토 형제의 호텔에서 발키리의 판매가 이루어 질 것이며, 리코 무에르테가 이를 도와줄 것이니 그를 정말 잘 대해주라고 써져있었다. 호텔에서 발키리 판매가 이루어 진다는 뜻은, 호텔을 지키는 마피아들의 머릿수가 늘어나고, 많은 문이 잠겨 있으며, 발키리에 찌든 마약 중독자들이 호텔을 매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맥스는 덤벼오는 마피아와 마약 중독자들을 해치우며 호텔 이곳 저곳을 뒤진다. 그러던 중 라디오와 TV 뉴스를 통해 자신이 알렉스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맥스는 3층에 있는 무에르테의 방에서 펀치넬로 패밀리의 수장인 안젤로 펀치넬로가 쓴 편지를 찾아낸다. 안젤로가 발키리에 연루되었다는 발견되지 않은 증거였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 페인은 편지를 구겨서 버려버린다.
맥스는 보일러실에서 의자에 묶인채로 죽은 남자와 그 옆에 버려진 피묻은 야구방망이를 발견한다. 그 옆에는 만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가 실린 신문지가 놓여져 있었다.
하지만 그 옆 건물 역시 마피아들이 있는 건물이었다. 마피아들은 두꺼운 강철문을 잠그고 암호를 말하는 사람만 들여보내주고 있었다. 맥스는 강철문을 통과할 방법을 찾기 위해 또다른 건물을 수색한다. 그리고 그 건물에서 마피아 하나를 붙잡아와 암호를 말하게 한다. 마피아는 문이 열리자 동료들과 합세해 맥스를 공격하지만 결국 몰살당한다.
루피노는 화염병과 산탄총으로 맥스를 공격하지만 결국 맥스에게 죽는다. 하지만 맥스는 발키리가 인간을 좀비와 같이 만드는 약이라며 루피노의 시체에 연거푸 총을 쏜다. 이때, 한 여자가 맥스를 제지하며 나타난다. 그녀는 맥스에게 총을 겨누며 범인을 잘못 짚었다고 말했다.
기절한 맥스는 가족들이 몰살당한 날의 악몽을 꾼다. 언제나 그렇듯이. 맥스는 뉴저지에 있던 집에 들어왔다. 딸의 울음과 아내의 애원이 들리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복잡한 미로로 되어있었다. 맥스가 2층으로 올라가 아기 방 문을 열었을 때, 오르골 소리와 울음 소리만 들릴 뿐 아기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뻗어나간 핏줄기가 있을 뿐이었다. 맥스는 핏줄기를 타고 아기한테 갔을때, 아기는 핏투성이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아기는 사라지고, 옆에 놓인 알파벳 블록 장난감이 스스로 움직여 D3AD(죽었음)라는 글자를 만들어낸다. 맥스는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한다. 침실 문을 열고 권총을 쏜다.
남자는 자신을 "방망이" 프랭키 나이아가라라고 소개했다. 그의 이름을 들은 맥스는 잘 울어서 나이아가라냐고 프랭키를 도발해보지만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맥스를 두들겨 팬 프랭키는 잠시 바에 가서 시원한거나 마신후 시작하자며 맥스를 남기고 가버린다. 프랭키가 가자 맥스는 의자를 부숴 포박에서 풀려난다. 그러고는 프랭키가 놓고간 야구방망이를 집어든다. 맥스는 무기를 찾아내 다시 무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 프랭키에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하수구에 버려져 있는 것도 목격한다.
블라디미르 렘과의 거래로 엄청난 무기를 얻은 맥스였지만 안젤로 펀치넬로의 저택으로 가는건 쉽지 않았다. 펀치넬로가 자신에게 비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맥스는 공중전화를 통해 펀치넬로에게 전화를 건다. 펀치넬로는 전화를 받자 마자 죽일거라며 방방 뛰지만 맥스와 협상을 하기로 한다. 둘은 펀치넬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카사 디 안젤로에서 만나기로 한다.
하수구 밖으로 나온 맥스는 블라드의 메르세데스 벤츠와 만나게 된다. 불타는 카사 디 안젤로를 본 블라드가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블라드는 맥스를 펀치넬로 저택까지 태워다준다.
트리오와 그 부하들도, M79 유탄발사기도 맥스를 막을 수 없었다. 맥스는 펀치넬로 저택을 지키는 마피아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모나 색스-리사 펀치넬로 쌍둥이 자매 중 한명이 엉망이 된 채로 침대 위에 죽어있는 광경도 목격한다.
* 펀치넬로의 방 책상에 놓인 편지와 자동응답기를 조사할 수 있다. 편지를 조사하면 맥스가 떠올릴 수 있었던 제일 무서운 것이 뭔지 알 수 있다.(?)
맥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토사물 위에 식은땀을 흘리며 엎어져 있었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들었던 말을 떠올린 맥스는 뉴욕 바깥에 위치한 "콜드 스틸"이라는 공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트럭들이 오가고 있었다. 맥스는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 베레타 한 정만 가지고 콜드스틸 지붕 위 채광창을 통해 잠입한다.
- 이지아(배우) . . . . 34회 일치
스캔들 5개월 후 [[201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나도 꽃]]의 여주인공 순경 차봉선 역을 맡았다. 아래 후술된 스캔들의 여파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빨리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이때까지 드라마에서 이지아와 함께 출연한 배우는 배용준-김명민-김혜수-정우성으로 죄다 연기대상 수상자이고 정우성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남 배우로 이름을 알렸었다. [* 다만 정우성과 출연할 당시엔 드라마의 메인 히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역은 [[윤시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쟁작인 [[뿌리깊은 나무]]의 임팩트가 워낙 독보적이라서 예상보다 그렇게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배우의 연기나 드라마 자체는 그럭저럭 입소문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영광의 재인]]과 [[뿌리깊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시청률 참패를 당하면서 조기 종영되었다.
이 드라마가 끝난 후 소속사였던 키이스트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재계약하지 않았다. 이후 2012년 3월 14일 새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 [[소리바다]]의 자회사.]와 새 계약을 맺었다.
HB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만료 이후 2016년 5월 13일 이병헌의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일단 [[태왕사신기]]라는 대작의 주조연급으로 데뷔했는데, 대다수의 연예인이 단역을 전전하면서 겨우겨우 조연을 잡아 올라가는 것에 비해 단 한 번에 주조연 역을 따냈으면서도 단역 경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지아의 배경에 대한 구설수가 있었으며, 특히 배용준[* 당시 이지아가 소속 되었던 엔터테인먼트사는 키이스트. 배용준 역시 키이스트 소속이면서 동시에 최대주주이다.]의 패키지 출연[* 인기있는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를 묶어서 출연계약을 맺는 것. 제작사 측에서는 흥행력이나 지명도 있는 배우를 기용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연기력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비판적인 의견이 상당수. ~~앞뒤가 안 맞잖아~~ 특히 2009년 김혜수와 함께 출연했던 SBS 드라마 "스타일"에서는 원조 민폐녀 논란과 함께 혹독한 연기력 비판을 받았다. [* 다만 이 드라마 자체가 구닥다리 구성에 평면적 캐릭터로 이루어졌다는 한계 자체를 지목하여 이지아의 연기만을 까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전작인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함께 출연했던 [[김명민]]이 워낙 열연했고, [[장근석]]의 연기력 역시 일정 수준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 대상이 [[넘사벽]]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어색한 제스쳐, 대사 처리 미흡 등으로 많이 까였다. 하지만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는 연기력이 쓸 만한 편, 아무래도 신인이고 경력이 적다 보니 맡는 캐릭터가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가에 따라서 연기 싱크로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양.
'''이지아에게 있어 평생 짊어가야 할 짐이자, 그녀의 활동에 있어 발목을 잡는 굴레[* [[서태지]]와의 결혼 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이거 하나 때문에 국내에서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비호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물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게 이지아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친일파를 덕망 있는 가문이니 할아버지가 부자였기에 이지아도 해외에 유학가고 풍족하게 살았다는 등의 자랑 언플질을 한 것은 쉴드 불가능이라 그야말로 가루가 되듯이 까였다. ~~[[서태지|전 남편]]은 심지어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다!~~ 명문가랍시고 언플한 가문이 수탈의 주범인 친일파임이 밝혀지고 나서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욕을 먹은 것으로 애초에 이지아측과 기획사가 신비주의를 타파하겠답시고 가문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며 명문가라고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몰랐을 일을 자기들이 나서서 시원하게 까발린 셈이다. ~~사진 자작극에 이어 또다시 병크 적립~~ 이지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혼 사건이 모두 종결된 지금은 서태지와의 일보다는 이 친일 논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지아는 사과를 한 상태이긴 하다.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상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생각해 볼 것은 '''대한민국은 헌법상 [[연좌제]]가 없는 국가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상의 친일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적이 없거나 조상이 친일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부당하게 물려받고 국가에 반환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덕망 있는 명문가,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는 옹호 아닌가......?~~
=== '''정우성과의 열애와 서태지와의 이혼''' ===
2011년 4월 21일 [[서태지]]와 비밀 결혼했다가 이혼 후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 <[[스포츠서울]]>을 통해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5025394|보도]]되었다. 대한민국은 연예계 소식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일 KBS 9시 뉴스에 나왔고, 다음 날 조선일보 2면을 가득 채우는 위엄을 달성.
웬만한 스캔들에는 반응 안 하는 매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는데 인터넷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한 스포츠서울은 기사 제목에 당당히 [[특종]]을 박았다.~~15년 전의 복수~~ '믿을 수 없어''서태지와 이지아라니!'말부터 '애도 2명이나 낳았대'라는 미확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후에 아이는 없었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신문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93년 미국 공연에서 이지아의 언니 소개로 인해 두 사람은 처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 후 편지를 주고 받다가 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미국으로 건너 간 서태지는 이지아와 재회하고 97년 결혼. 당시 혼인신고에서는 서태지의 본명인 정현철과, 이지아의 본명이었던 김상은으로 나와 있었다. [[서태지]]와 부부로 산지가 2년 7개월, 이후 별거에 들어갔다. 2000년에 서태지 복귀 후 2006년에 이지아 측에서 홀로 이혼소장을 캘리포니아 법원에 냈다.. 그러므로 2011년에 낸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니라 위자료 청구소송.
2011년에 했던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닌 위자료 및 재산 분할소송으로 이지아는 국내법에 따라 2009년 이혼 성립을 주장, 서태지는 미국법에 따라 2006년 이혼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지아측 발표에 따르면, 이지아가 만 15세 때(1993년) 팬과 스타의 만남으로 서태지와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태지가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미국에서 서태지를 만나 친언니의 증인참석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어쨌든 그녀와 연관성이 짙은 남자만 해도 [[서태지|한국 굴지의 대중 뮤지션]], [[배용준|전설적인 한류 탤런트이자 사업가]], [[정우성|연예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미남 배우]]이다.
비판하는 여론의 주장은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정우성을 속인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하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 자신을 굳이 이혼녀라고 밝힐 이유는 없지만, 전 남편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애를 한 것은 경솔하다는 주장. 덕분에 애꿎은 정우성만 졸지에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끼인 꼴이 되어서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또 다른 것은 서태지에게 건 거액의 소송을 이유로 남자를 등쳐먹으려는 [[악녀]]라고 하는 것이다.
비판론을 뒷받침하는 의견으로는, 서태지는 자신의 글에서 누구를 저울질하고 잘못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지만 이지아는 자신이 피해자인마냥 행동[* 게다가 당시 그녀가 보였던 언행들 중에는 거짓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다소 있다]한 것이, 사랑 앞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디 있느냐며 추억을 짓밟은 사람이라고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돈이 문제가 아니라 '조용히 비밀로 묻어두었던' 추억을 짓밟은 게 가장 나쁜 짓이었다는 게 대부분의 여론.
본질적으로 얻을 것이 많지않은 소송을 굳이 해서 이지아가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서 출발하는 동정론도 있다. 신비주의로 일관하며 따라다니는 뒷말들에 계속 침묵으로 일관해왔는데 -일본 화류계 출신이라든가 텐프로 출신이라든가 하는 루머- 제대로 된 과거를 가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서태지가 직접 나와서 인정해주는 것 이외엔 없었다. 사실 '나 서태지의 전 부인이었어요' 라든가 '비공식 결혼해서 이름까지 바꿨어요' 이런 걸 말한다고 믿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혼까지 한마당에 굳이 말할 이유도 없으니 본인의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소송을 했다는 의견이다.
97년 결혼 이후 "서태지의 비공식 아내"로 숨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동정하는 입장도 있다. 실질적으로 00년에 이미 별거(서태지측 주장)에 들어갈 만큼 결혼생활보다 소송기간이 더 길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여자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서태지의 행동이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며~~[* 하술된 기사 내용에 이 부분은 사실상 거짓] 06년에 이혼 소송을 할 때까지 결혼생활의 끝마무리를 이지아 혼자 해야 했다고 [* 서태지 측에서 04년 이혼에 대한 합의, 06년 이혼 요구를 받았다며 인정한 내용이다.]하니.
[[2011년]] [[6월 9일]], 결국 정우성은 이지아와 결별하였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073509|#]]
사건 당시 정우성이 침묵했던 것은 자신이 말을 꺼낼 경우, 이를 확대 재생산된 기사들이 나와 두 사람의 과거를 정리하는 데 방해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성격상 침묵하기 힘들었다고.
- 장재인 . . . . 34회 일치
슈퍼스타 K2 내내 엄청나게 독특하고 희귀하고 유니크한 개성의 사운드와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의 재능으로 신데렐라로 취급받던 도전자이며 '''페이크 주인공'''.(슈퍼위크가 끝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재인 vs 김지수 or [[존박]]의 결승전을 예상했었고, 장재인이 무난하게 우승한다는 의견도 꽤나 많았었다.) 그만큼 프로그램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실력자.
하지만 2010년 슈스케2가 끝나고 나서 그녀는 데뷔한 후 소속사만 3번 옮기는 등 방황을 겪었다. 한때 친분이 있던 정원영 교수가 이끄는 루바토행이, 그 후엔 [[강승윤]], 김은비와 함께 YG행이 유력해 보였으나, 마지막에는 작곡가 [[김형석]]이 새로 세운 키위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가게 되었다.[[http://news.nate.com/view/20110114n09378?mid=e0102|#]]
2012년 3월에 소속사와의 계약이 종료되어서 혼자 활동하다가 전 매니저와의 인연으로 나뭇잎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였다. 하지만 나뭇잎으로 이적한 이후 근긴장이상증으로 인해 활동에 차질을 빚었고 2013년 여름에 다시 계약이 만료되었다. 이후 학업에 열중하다가, 2013년 12월 3일 슈스케2에서 심사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바가 있는 [[윤종신]]의 [[미스틱89]]에 합류했다.
그룹미션에서는 '''원더걸스의 2 different tears'''를 불렀다. 장재인과 홍남화가 합격했는데, 전체적으로 다들 아쉬운 모습을 보인 상태에서의 합격이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합격한 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합격 후 나와서 서글프게 울었다.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은 백스테이지에서 대놓고 장재인을 디스했다.--김지수 씨를 데려와야했어!--(대충 너무 튀는 장재인을 데려와서 반사손해를 봤다는 주장인데.. 솔직히 김지수가 장재인 대신 왔었어도 저 셋이 탈락하는 건 변함이 없었을 것 같다. --그냥 실력이 합격한 둘보다 딸리는 거..--)
세 번째 사전투표 결과도 1위를 굳건히 지킨 장재인. 숙소미션 중 '작사미션'에서 들어줄래로 자신의 작곡능력을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세 번째 미션은 ''' '[[마이클 잭슨]] 미션' '''. 여기서 그녀는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르면서 깜짝 퍼포먼스로 카주까지 준비했지만 반응은 저번보다 못했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 심사점수도 91(승), 90(엄), 93(윤)의 약간 저조한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후 방영된 몰래카메라 영상에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존박,허각,김은비,강승윤에 반해 김지수와 장재인은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이 찍혔는데, 여기서 '장재인 성형'이라고 치는 바람에(그리고 치아교정) 당시 성형논란으로 뜨겁던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한동안 했다 안 했다로 많은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저번의 저조한 무대와 그에 반해서 포텐셜을 팍 터뜨린 존박에 의해서 전과는 다르게 사전투표는 박빙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최종 결과는 몇천 표의 약소한 차이로 장재인이 4주 연속 1위를 '아슬아슬하게' 지켰다. 용산미션에서는 미군들 앞에서 '''Duffy의 Mercy'''를 불렀다. 그리고 4주차 미션은 ''' '심사위원 미션' '''... 방송 며칠 전부터 장재인이 '''[[엄정화]]의 초대'''를 부른다는 소문과 증거사진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많은 팬들이 안 어울릴까봐 불안해 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지못미'''... 이날 장재인은 맨발 투혼으로 키보드까지 치면서 열창했으나, 91(승), 95(엄), 93(윤) 으로 저조한 점수를 받게된다. 하지만 사전 인터넷 점수와 문자투표에서 [[허각]]에게 밀린 강승윤이 탈락하게 되면서 탑3에 진출하게 된다.
이날은 화제의 출연진들에게 --쇼--시상하는 슈퍼시상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슈퍼시상식의 순서가 이상하게도 존박과 허각의 무대가 끝나고, 장재인의 무대는 뒤로 제끼고 그 사이에 슈퍼시상식과 '''[[힙통령]]'''의 축하공연을 넣어놨다. 즉 중요한 메인 이벤트인 탑3중 한 명인 장재인의 무대의 흐름을 무대순서로 끊어 버린 것. 약 20여분간의 슈퍼시상식이 끝나고, 장재인의 무대가 시작되었으나 이미 그 사이에 투표할 만한 사람들은 다 한 상황이라... 그래도 밋밋하고 임팩트가 별로 없어보이는 레몬트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그러나 문자투표와 사전투표 1위를 놓친 것이 탈락으로 이어졌다.
2010년 10월 27일, 정선희의 러브FM에 강승윤, 김지수와 함께 출연하였다. 시즌2 출신이 라디오에 참여한 건 이날이 처음. 여기서 장재인은 love me tender를 부르면서 호평을 받았다.
2010년 11월 8일, 슈퍼위크 라이벌미션에서 불렀던 '신데렐라'와 엠카에서 강승윤과 부른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이 슈퍼스타K Up to 11 앨범의 수록곡으로 출시됐다.
2010년 11월 10일, 허각, 존박, 강승윤, 김지수와 이수영의 뮤직쇼에 출연했다. 이날 장재인은 여자가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적의 다행이다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2010년 11월 16일, 허각, 존박, 강승윤, 김지수와 별밤 라디오에 출연했다. 여기서 장재인은 신승훈의 나비효과를 불렀다.
2010년 12월 10일 인천에서 두 번째 슈퍼스타K2 탑11 콘서트가 열렸다. 레파토리는 저번 콘서트와 동일.
2011년 3월 22일 밤 8시(홍콩 시간)부터 2시간 반 동안 홍콩 aTV 주최 하에 열릴 예정인 아시아 레인보우 TV 어워드(亞洲彩虹獎電視頒獎禮)에 게스트로 참가할 예정. [[http://www.hkatv.com/v3/11/infoprogram/rainbowtvaward2011/list1.html|맨 하단에 張才人이라 씌여져 있다.]] 식전 행사에서 레드 카펫을 밟고 나왔는데 하필 그 전 순서가 진교은(陳喬恩)[* 명중주정아애니(命中注定我愛你)로 유명한 대만 배우.]이 나온 바람에 고작 10~20초밖에 안 잡혔...아니 이전에 인터뷰도 얼마 안 하고 사인만 하고 갔다. 무대에서는 레몬트리와 풍경을 불렀다. 그런데 진행자가 영어로 소개를 했는데 발음이 "저진 인"(…)으로 들린다. [[이뭐병]]...
* '''향기없는 소녀''' : 학원수강하러 다닐 당시에, 몇번을 와도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 하는 걸 '향기없다'에 비유하여 지은 자작곡.[[http://www.youtube.com/watch?v=waVNBHt65yE|#]]
재인의 자작곡인 그곳과, 풍경의 두곡으로 이루어진 싱글. 현재(2011년) 다음 뮤직에서만 독점으로 공개 중이며, 음원 수익은 전액 어린이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아고라에서 모금 청원도 진행 중이다.(2011년)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104660|#]]
앨범 발매 전 김지수와의 듀엣곡 그대는 철이 없네가 선행공개되었다. 26일 엠카에서 발매 당일 데뷔하고, 바로 그 다음날인 27일 뮤직뱅크에서 바로 공중파 무대데뷔를 했다.--KBS의 장재인 편애--
앨범의 전곡을 작사, 작곡, 프로듀씽, 컨셉까지 다 맡아서 했다고 한다. [[김형석]]은 앨범작업할 때 최대한 장재인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몇몇 팁과 기초 지식을 제외하면 간섭을 거의 회피했다고 한다. 장재인은 자신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겠지만 가사로 어떤 의미를 항상 전달하고 싶다고 했는데, 실제로 5곡이 전부 괴랄함을 자랑한다. 특히 복고풍의 '장난감 병정들'은 장재인이 선보였던 어떤 곡보다 더 다르고 특이했다. 가사가 곡 분위기와 달리 상당히 의미 심장한데...
장재인의 두번째 미니앨범이자 가장 명반으로 취급되는 앨범이다. 전체적으로 여름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빗소리와 장재인의 미칠듯한 고음, 감성을 터치하는 가사, 곡의 짜임새가 인상적인 rainy day는 선공개곡으로 장재인의 최고 명곡이라 할 수 있고 step은 통통 튀는 멜로디 탓에 팬들 사이에선 숨은 명곡으로 평가 받으며 타이틀인 여름밤이 오히려 묻힌 비운의 앨범이다.
- 하이큐/240화 . . . . 34회 일치
* 츠바키하라 고교는 [[히메카와 아오이]]의 천장 서브를 앞세워 주도권을 되찾아 온다.
* 기세가 오른 히메카와는 거침없이 활약하며 기세를 올리지만 [[니시노야 유]]는 천장서브에도 능히 대처해낸다.
* 히메카와는 카라스노의 저력을 보며 이것이 전국이라고 새삼 실감한다.
* [[히메카와 아오이]]의 천장 서브는 단 1점이지만 [[카라스노 고교]]가 주도하던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본인도 긴장을 완전히 떨치고 자신감이 생긴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한때 이름을 날려도 올해는 1회전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게 전국대회, 그래서 그해 누가 이름을 남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대로 히메카와는 정말로 의외의 선수인 셈이다.
* 카라스노 진영에선 동점으로 따라잡히자 TO를 걸어서 견제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천장서브에 대한 대처법을 신속하게 전달하지만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적응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계석에선 우카이 코치를 소개하며 그의 할아버지이며 명장이었던 [[우카이 잇케츠]] 감독에 대해 언급한다. 얼굴만큼은 할아버지와 확실히 닮았다는 듯.
* 히메카와의 2회차 서브. TO로 한 번 흐름이 끊겼지만 히메카와의 감각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본래 천장서브란 천재적인 센터였던 "네코타 카츠토시"란 선수가 창안한 것이다. 리시브 시에 조명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낙하 속도가 빨라 정확한 위치를 잡기 까다로운 서브다.
카라스노에서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가 동시에 공을 보고 마이볼을 외치지만 마주보게 되면서 주저, 공은 둘 사이로 떨어진다. 히메카와의 연속 득점. 점수는 15 대 16으로 츠바키하라가 역전한다.
* 히메카와의 3차 서브. 아즈마네가 오버 핸드로 받아내지만 공이 낮게 흐른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바로 공을 살려서 사와무라에게 연결, 사와무라는 스파이크를 칠 듯 하다가 살짝 밀어넣어서 블록을 재낀다. 하지만 히메카와가 직접 그걸 받아낸다. 원래 히메카와는 수비 능력이 뛰어나 발탁된 선수였다. 공수양면에서 대활약하는 히메카와.
히메카와가 살린 공을 테라도마리가 이어서 스파이크, 득점에 성공한다. 스코어는 15 대 17.
* 두 번째 TO. 카게야마는 리시브를 좀 더 높게 올려줄 것을 주문한다. 리시브에 계속 실패하는 사와무라와 아즈마네는 눈치가 보인다.
츠바키하라 측 벤치는 이대로 2세트를 가져올 작정이다. [[츠키오카 치하루]]는 역전의 공신인 히메카와에게 말없이 수건을 더 건네주며 격려한다.
* 이제 네 번째 서브를 준비하는 히메카와. 그는 아직 "흐름"이란건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자기들 쪽으로 왔다는건 자각하고 있다. 그런데 코트에 들어서자 명백하게 분위기가 다른 한 명이 있다. 카라스노의 [[니시노야 유]]. 히메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섬찟한 기분이 든다.
* 히메카와의 4회차 서브. 서브가 자기 쪽으로 떨어지자 니시노야는 오길 기다렸다는 듯 "왔다!"고 외친다. 만회할 생각으로 가득했던 사와무라는 내심 실망, 그리고 아즈마네는 자기 쪽으로 안 와서 안심한다.
니시노야는 카라스노를 애먹이던 천장서브를 보란 듯이 "리시브 자세"로 받아낸다. 공은 카게야마가 주문한 대로 높이 올라간다. 곧바로 [[히나타 쇼요]]가 달려들며 속공 태세. 그러나 페이크였다. 진짜는 아즈마네. 아즈마네의 스파이크가 블록을 재치고 히메카와의 옆으로 쐐기처럼 박힌다.
* 누구보다 체육관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던 히메카와, 그리고 그 히메카와의 주무기를 능숙하게 받아낸 니시노야. 히메카와는 새삼 "이것이 바로 전국"임을 실감한다.
히메카와는 플레이를 마치고 이와무로와 교대하는데, 이와무로는 투입되며 "3세트를 준비해둬라"며 이번 세트의 승리를 자신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33회 일치
* Strength(전력): 육군, 해군, 공군 모두 존재하는 능력치. 부대를 구성하고 있는 병사, 장비 그외 등등. 전투나 보급 부족, 위험 지역에서의 주둔 등으로 떨어지며 증원에 생산량을 투자해 인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조금씩 회복된다. 해당 수치가 0%가 되면 부대가 몰살당한 것으로 처리되어 삭제된다. 동원령을 발동할 경우 예비군 소집 이벤트와 함께 모든 육군 사단의 조직력이 회복된다. 반면 동원령을 해제할 경우 모든 육군 사단의 조직력이 30%로 하락한다. 어차피 나중에 동원령 소집하면 예비군 소집 이벤트 뜨며 회복되니 인력과 공업력 부어서 회복시키려고 하지는 말자.
>주둔병 사단은 후방에서 주요 목표를 보호하는 병사들입니다. 이들은 중장비와 운송수단이 부족하기에 전략적 재배치 외의 방법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들은 빈약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전투 가능 병력을 전선으로 돌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산악병은 산악 지역 작전에 특화된 보병의 정예 병과입니다. 이들은 산악 지형에서 일반 보병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특수한 장비와 전술을 사용합니다.
>해병은 해변 강습과 다른 해양 작전에 특화된 보병의 정예 병과입니다. 이들은 해양 지형에서 일반 보병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특수한 장비와 전술을 사용합니다.
>기계화보병은 반궤도차량과 같은 전천후 이동수단을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차량화사단처럼 도로에 의존하지 않으며 기갑 부대와 함께 작전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특수한 장비를 사용하기에 가격이 비쌉니다.
1936년 연구인 "초기 전차"와 1934년 교리 연구인 "기갑 사단 편제"를 연구해야 생산할 수 있는 사단. 1939년 연구인 "진보한 경전차"에서 테크가 끝난다. 이후 1939년 연구인 "기본 중형전차"를 연구하면 중형전차로 업그레이드 된다. 하지만 도태되지는 않으므로 계속 생산할 수 있다. 쓸모는 좆도 없을테지만.
>기갑 부대는 전장에 진정한 전투력 투사를 보여줍니다. 이들의 속도와 화력은 전장의 모두, 특히 참호 안에 숨은 보병에게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전차가 점점 무거워지며 이들의 속도도 점점 느려졌습니다. 또한 이들은 전장에서 행동하기 위해 많은 양의 연료를 보급해야합니다. 만약 연료 보급이 중단된다면 기갑 부대는 무력해질겁니다.
1939년 연구인 "기본 중형전차"와 1934년 교리 연구인 "기갑 사단 편제"를 연구해야 생산할 수 있는 사단. 빠르고 강력하지만 비싸며, 석유를 퍼먹고, 지형빨을 비교적 잘 탄다.
>이 화포들은 글라이더에 실려 공수부대와 함께 공수될 수 있습니다.
>공병 여단은 강을 건너는걸 도와주고 부대의 행동을 빠르게 해주며 혼란을 줄여줍니다.
>구축전차는 일반 전차와 비슷합니다. 차이점은 회전 포탑이 없고 장갑의 대부분이 전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당신의 부대가 적 기갑 부대와 같은 하드 타겟을 상대하는 능력을 늘려줍니다.
>경전차는 당신의 부대가 적 기갑 부대와 같은 하드 타겟을 상대하는 능력을 늘려줍니다. 경전차는 빠르고 회피에 능하기에 비교적 굼뜬 중전차가 파괴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기동성을 이용해 중전차 측면과 후방의 장갑이 약한 부분을 타격합니다.
대보병 공격력을 늘려주고 공방 방어력을 늘려준다. 성능은 경전차 여단보다 약간 딸리지만 도하와 상륙작전의 패널티를 줄여주는 특성이 있다.
>이 전차들은 글라이더에 실려 공수부대와 함께 공수될 수 있습니다.
>요격기는 적 폭격기를 파괴하기 위해 설계된 단거리 전투기입니다. 빠른 속도와 좋은 기동성을 가지고 있어 폭격기의 방어기총을 피할 수 있으며 크고 중무장한 폭격기를 무력화할만한 화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적 전투기를 상대로는 약간 비효율적이지만 전투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전투기는 모든 공군의 토대입니다. 이들은 제공권을 확보하고 적 폭격기와 전투기를 상대합니다. 이들은 주어진 어떤 임무도 수행할 수 있는 올라운더지만 어떤것도 뛰어나게 해내지는 못합니다.
능력치가 대지 공격에 편중되어 있다. 근접항공지원기와 달리 평균적인 작전반경을 가지고 있다.
>해군폭격기는 물위에서 사용하며 적 수상함을 어뢰와 철갑폭탄으로 타격하도록 셜계되었습니다. 한정된 공중전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전투기의 요격에 취약합니다.
[[PBY 카탈리나]]와 같은 해군 소속 폭격기로 이루어진 부대. 뇌격기라고도 불린다.
[[B-29 슈퍼포트리스]]와 같은 대형 폭격기로 구성된 부대.
- That 70's show . . . . 33회 일치
밥은 밋지, 도나와 함께 성조기 무늬가 되는 점프 슈트를 입고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해괴한 취향에 도나는 질색을 한다.
결국 선거 연설이 시작, 제럴드 포드는 유세장에 들어오면서 세 번이나 엎어진다(…). 레드는 지명을 받아 나와서 제럴드 포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됐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지정된 질문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말을 더듬게 된다.
아버지가 곤혹해하는 표정을 본 순간 에릭은 [[닉슨]] 가면을 뒤집어 쓰고 벌거벗고 뛰쳐나와서 유세장에서 날려나간다. 에릭이 시위하는걸 보고 배짱을 되찾은 레드는 당당한 태도로 "어떻게 닉슨을 사면할 수 있냐?"고 포드에게 [[돌직구]]를 던진다.
여주인공2.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 미모에 자신감이 넘치고 [[공주병]]이 강하다. 도나와 친구, 켈소와 연인 관계라서 그룹에 끼어들었지만 사실 초반에는 아무도 재키를 좋아하진 않았다(…). 시즌이 갈수록 우정으로 그룹의 일원이 되어간다. 작중 내내 켈소, 하이드, 페즈를 오가다가 8시즌 최종화에서 페즈와 맺어진다.
아버지는 잘나가는 변호사였지만,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잡혀가고 어머니[* 나중에 게스트 등장하는데 배우가 '브룩 쉴즈'다.]는 멕시코로 도주(…)하여, 에릭네 지하실에서 하이드와 같이 얹혀 살거나 도나네 집에서 얹혀살게 되는 고난을 겪기도 한다.
에릭의 베프. 반항하에 시니컬한 성격으로서 아프로와 선글래스가 특징. --왠지 [[도우너]]가 연상된다.-- 가정사가 매우 복잡한데, 어머니만 있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나마 어머니도 도망가서 에릭네 집 지하실에서 집세를 지불하며 얹혀 살게 된다. 실종됐던 아버지 버드가 돌아오면서 잠시 아버지네 집에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또 실종되면서 다시 지하실에 돌아온다. 6시즌에서 버드는 생부가 아니었고 윌리엄 바넷이란 사람이 생부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흑인]]으로 레코드 체인점을 소유한 [[부자]]였다. 흑백혼혈이었던 것, 하이드 본인은 자신의 반항적인 혈통의 기원을 찾았다며 아주 기뻐한다. 또 배다른 여동생 엔지 바넷이 생기게 된다.
중간 시즌 쯤에서 재키와 사귀게 됐으나, 재키가 시카고로 떠나고 켈소와 얽히는 일이 생기면서 깨지고 만다. 하이드는 한동안 라스베가스에서 방황하다가 돌아오는데, 라스베가스의 스트리퍼 사만다가 하이드와 결혼했다면서 쫓아오면서 재키와 완전히 깨진다(…). 게다가 사만다는 나중 시즌에서 다른 남자하고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는 것이 드러나서 또 헤어지게 되고, 8시즌에는 특별히 커플 라인이 없다.
온갖 바보짓 유머로 이 시트콤의 꿀잼 요소를 하드캐리한다. 기본적으로 바보지만 가끔 이상하게 날카로워지는 상황[* 스타워즈에서 [[한 솔로]]와 레아가 맺어지는걸 직감하거나, 퐁 비디오 게임기를 보면서 미래에는 이게 흥하게 될 것 같다고 하는 등.]도 있다.
1시즌에서는 재키와 사귀게 되지만, 도중에 로리와 바람을 피우면서 삼각관계가 되고, 그것이 재키에게 들키면서 깨진다. 그리고 또 재키와 사귀려다가 재키가 하이드와 사귀게 되고, 도서관 사서를 임신시켰다는게 드러났다가, 하이드의 여동생 엔지와 사귀게 되고, 아무튼 맹렬하게 난잡한 관계를 유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단 지구 반대편이고, 영국과 네덜란드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외국인 유학생. 뜨거운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여자에게 열심히 들이대지만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5시즌에서 추방 위기에 놓이지만 로리와 결혼하여 회피에 성공,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걸 위탁부모 가정에 알리지 않고 그냥 살다가 들켜서 쫓겨나고, 에릭네 집에서 몰래 얹혀살다가 들킨다. 이후 켈소와 룸메이트가 된다. 미용실에서 샴푸보이를 하게 되는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게 된다.
8시즌에서는 켈소가 하차하면서 재키와 룸메이트가 되고, 급속도로 재키와 맺어진다.
8시즌에서 에릭이 하차하면서 새로 들어온 인물. 하이드의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 잘 생기고 매너 좋고 센스 좋은 쿨가이이며, 8시즌에서 도나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랜디가 이전에 다른 여자들과 엄청 많이 사귀었다는걸 알고 도나가 질겁하게 되고, 서서히 헤어지면서 8시즌 최종화에서 완저히 헤어지고 떠난다.--에릭과 마주쳐서 수라장이 벌어지는 전개가 되지 않아서 유감.--
에릭과 로리의 어머니. 요리와 가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주부이며,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알콜 중독]] 기미가 약간 있다. 정이 깊은 성격이라 지하실에서 어슬렁거리는 방황하는 청춘들(…)을 언제나 챙겨주고 있다. 에릭에게 과도하게 애정을 쏟아서 [[마마보이]] 스럽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본래 직업은 자동차 공장 노동자였지만, 초반 시즌에서 폐업하는 단계가 되면서 한동안 무직이 되었으며 밥의 가게에서 일했던 적도 있다. 프라이스마트가 들어서자 관리직으로 취업했으나, 로리와 페즈가 결혼을 발표했던 충격으로 [[심장마비]](…)에 걸리면서 그만두게 된다. 이후 에릭의 학자금을 털어서(…) 자동차 머플러 가게를 차렸으나 그다지 잘 되지는 않았고, 대형 머플러 체인이 들어서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 때 체인점에 항의하러 갔다가 거액의 돈을 받고 주차장으로 팔아버리고 대신 노후자금을 득템한다.
에릭의 [[누나]]. 섹시하지만 사생활이 매우 문란한 [[빗치]](…). 에릭과는 반대로 키티와는 사이가 나쁘고, 레드에게는 귀여움 받는 딸이다. 에릭과는 견원지간으로 사이가 나쁘다. 시즌 초반에는 대학생이었지만 중간에 뭔가 문제로(…) 대학에서 짤리게 된다. 재키와 사귀던 켈소를 유혹하여 켈소와 관계를 맺고 삼각관계가 됐다가, 재키와 켈소 사이를 파탄내기도 했다. 5시즌에서는 페즈와 캠핑장에서 관계를 했다가 강제출국 위기에 놓인 페즈를 구해주려고 결혼을 해버렸는데 이 때문에 레드는 심장마비 발작을 일으켰다.
그러나 초기 시즌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발레리와 티나는 등장이 없고, 언급도 전혀 되지 않는다. 주요 등장인물인 도나의 자매이고 한 번은 등장했음에도, '삭제'처리당해버린 비운의 캐릭터들(…).
티나는 도나네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페즈와 만나고, 페즈는 예쁘다는 말을 던지고 티나도 기뻐하지만 곧바로 도나에게 저지. 페즈는 "우리나라에서는…."이라고 말하려고 하지만 하이드가 "여기선 불법이야."하고 일침을 날려서 막아버린다.
- 김보름 . . . . 33회 일치
{{인용 상자|"스케이트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다. 운동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들도 많지만, 그 아쉬움은 좋은 성적이 나오면 다 잊을 수 있었다. 이젠 이런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로 우리와 다 똑같다. 다들 일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지 않나."<ref>{{뉴스 인용|url=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705160900003&sec_id=530101|제목=[창간특집] 김보름 “내 머리속엔 온통 평창올림픽…설렘보다 긴장감 더 크죠”|날짜=2017-05-16|언어=ko|확인날짜=2017-05-16}}</ref>}}
2010년 11월 일본 도마코마에에서 열린 2010-2011 스피드주니어월드컵 1500m와 3000m에서 정화여고의 김보름은 2관왕에 올랐다.<ref name=":1" />
2011년 1월 14일 막을 내린 2011 전국남녀 주니어빙상선수권대회 1500m와 3000m에서 김보름은 각각 2분3초93과 4분21초30의 대회신기록을 찍으며 1위를 차지했고, 최종순위에서도 167.430포인트로 대회기록을 갈아치우며 정상을 밟았다.<ref name=":1" />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실내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서 펼쳐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3000m에서 김보름이 4분10초54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김보름은 3000m 결승전에서 3조로 출발해서 앞서 출발한 1,2조 선수들에 비해 기록차를 크게 벌리며 1위에 섰지만 곧바로 4조 일본의 호조미 마사코에 2.72초 뒤졌다. 3위에 오른 중국의 왕페이는 4분19초77을 기록했다. 함께 경기에 나선 박도영(17, 덕정고)은 컨디션 난조로 아쉽게 5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t.co.kr/mtview.php?no=2011013118485662311&code=column91&vgb=column|제목=[동계AG]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女3000m '깜짝'銀 - 머니투데이 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2월 5일 열린 5000m에서는 한국의 박도영(18, 덕정고)이 3번째 조로 일본의 호즈미 마사코와 함께 레이스를 펼쳐 6초40 뒤진 기록으로 골인했으나, 전체 2위(7분15초63)를 차지했다. 김보름은 7분22초92의 기록으로 4위를 차지해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ref>{{웹 인용|url=http://m.cnbnews.com/m/m_article.html?no=128516|제목=[동계아시안게임] 박도영,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은메달|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11월 18일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2011-2012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2초38로 2위를 차지했다. 19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4위를 차지했다.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 노선영, 김보름이 3분05초79로 4위를 차지했다. 2011년 11월 2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13초61로 20위를 차지했다. 26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58로 20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7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한국체대)이 7분26초85의 기록으로 첫 동메달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033550|제목=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날짜=2011-11-28|뉴스=SBS NEWS|언어=ko|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12월 2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26초10으로 12위를 차지했다. 3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노선영(한국체대)-김보름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3초18의 기록으로 캐나다(3분00초01)와 러시아(3분02초38)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월드컵 시리즈 팀 추월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f name=":17">{{웹 인용|url=http://m.yeongnam.com/jsp/view.jsp?depth1=3&depth2=4&nkey=20111206.010260719320001|제목=한국 빙속 팀추월 사상 첫 메달|성=영남일보|확인날짜=2017-03-06}}</ref> 2012년 2월 12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끝난 월드컵 5차 대회 팀추월 경기에서 이주연(25)과 노선영(23), 김보름(18)이 출전하여 3분05초65의 기록으로 폴란드(3분05초57)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3000m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5초66의 기록으로 16위에 머물렀다.<ref name=":2">{{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EC%B0%A8%EB%8C%80%ED%9A%8C-%ED%8C%80-%EC%B6%94%EC%9B%94-%EB%82%A8%EB%85%80-%E9%8A%80-%E9%8A%85|제목=빙속 월드컵 5차대회, 팀 추월 남녀 銀, 銅|날짜=2012-02-1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24로 10위를 기록했다. 디비전B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과 노선영(한체대)이 각각 1위(2분01초53)와 3위(2분01초82)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000m-13%EC%9C%84-%EA%B9%80%EB%B3%B4%EB%A6%84-%EC%97%AC%EC%9E%90%EB%B6%80-1500m-10%EC%9C%84|제목=이승훈 '빙속월드컵' 5000m 13위... 김보름 여자부 1500m 10위|날짜=2012-02-12|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1}}</ref> 2012년 3월 1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1500m에서 김보름은 1분59초52로 12위를 차지하며 73점 22위로 시즌을 마쳤다. 11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53초69로 7위를 차지하며 110점 7위로 시즌을 마쳤다.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이주연, 노선영이 3분03초29로 은메달을 차지하며 320점 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2012년 3월 3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박도영이 1위, 김보름이 2위를 차지했다.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위, 박도영이 4위, 남예원이 33위를 차지했다. 1000m에서는 김보름이 6위, 김현영이 7위, 박도영이 10위, 임정수가 27위를 차지했다. 종합에서는 김보름이 3위, 박도영이 5위, 임정수가 14위를 차지했다. 4일 열린 팀추월 경기에서 김보름은 박도영(한국체대), 임정수(청학고)와 팀을 이뤄 출전하여 3분07초36의 기록으로 일본(3분13초67)과 러시아(3분14초41)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7">{{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8A%A4%ED%94%BC%EB%93%9C-%EB%B0%95%EB%8F%84%EC%98%81-%EC%A3%BC%EB%8B%88%EC%96%B4-%EC%84%B8%EA%B3%84%EC%84%A0%EC%88%98%EA%B6%8C-2%EA%B4%80%EC%99%95-%EC%B0%A8%EC%A7%80|제목=스피드 박도영, 주니어 세계선수권 2관왕 차지|날짜=2012-03-05|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1}}</ref>
2012년 11월 16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2012-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0초81로 1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41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 부문에서는 김보름이 4위를 차지했다.<ref name=":8" /> 18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3분03초13으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2년 11월 2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매스스타트에 출전한 김보름은 8분40초7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박도영(20-한국체대)은 8분41초26으로 5위, 노선영은 8분41초82로 10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05로 전체 선수 20명 중 5위를 기록하며 한국 여자 장거리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0초74로 5위, 박도영이 2분02초34로 15위를 차지했다. 25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도 김보름은 4분06초13의 기록으로 7위에 오르는 등 장거리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박도영은 4분12초3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30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4분13초51로 16위를 차지했다.<ref name=":9">{{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A%B9%80%EB%B3%B4%EB%A6%84-%EC%8A%A4%ED%94%BC%EB%93%9C%EC%8A%A4%EC%BC%80%EC%9D%B4%ED%8C%85%EC%9B%94%EB%93%9C%EC%BB%B5-%EB%A7%A4%EC%8A%A4%EC%8A%A4%ED%83%80%ED%8A%B8-1%EC%9C%84|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매스스타트 1위|날짜=2012-11-26|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2012년 12월 1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11초19의 기록으로 전체 12명의 선수 중 5위를 기록,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5000m 디비전B에서는 박도영이 7분30초18로 16위, 노선영(23, 한국체대)이 7분35초47로 19위, 임정수가 7분39초23으로 2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38의 기록으로 17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2초47로 9위, 박도영이 2분03초10으로 11위를 차지했다. 팀추월 경기에 출전한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은 3분00초5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ref name=":14">{{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C%9B%94%EB%93%9C%EC%BB%B5-10000m%EC%84%9C-%E9%8A%85|제목=이승훈, 월드컵 10,000m서 銅|날짜=2012-12-0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2월 9일 독일 인첼에서 열린 월드컵 7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13초80만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대회에서 김보름은 월드컵 포인트 100점을 추가, 총점 260점으로 네덜란드의 마리스카 휘스먼(240점)을 제치고 여자 매스스타트 월드컵 랭킹 1위로 올라섰다. 함께 레이스를 펼친 박도영(8분16초82)과 노선영(8분17초64)은 각각 10위, 15위에 그쳤다. 1500m 디비전A에도 김보름은 출전했으나 1분58초43의 기록으로 10위에 머물렀다.<ref name=":10">{{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2306875|제목=김보름, 빙속월드컵 매스스타트서 두 번째 金... 이승훈 부진|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3초04로 13위에 머물렀다. 2013년 3월 1일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열린 월드컵 8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41초22로 1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80으로 18위를 차지했다. 2013년 3월 9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8초51로 8위를 차지하며 185점 10위로 시즌을 마쳤다. 10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58로 16위를 차지하며 133점 1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3위로 골인했지만 앞서 치른 2차와 7차 월드컵에서 1위를 한 바 있어 총점 365점으로, 330점에 그친 마리스카 후이스만(네덜란드)을 제치고 종합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ref name=":12">{{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woorikangsan/20201685972|제목=한국 빙상 유망주 - 김보름 선수,한국, 토렌티노 동계 U대회 종합 3위…빙속 김보름 최다 메달 획득,|뉴스=네이버 블로그 {{!}} 사진과 여행하기|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2년 12월 22, 23일 이틀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7회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과 박도영이 각각 170.241점과 174.147점을 기록하며 1, 2위를 차지했다. 22일 열린 30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4분16초19의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 중간합계 선두에 올랐다. 23일 1500m와 5000m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22일 열린 500m에서 남지은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목 1위에 오르며 대회신기록으로 우승을 확정지어서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중국 창춘에서 펼쳐지는 2013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의 출전자격을 획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8B%A4%EC%8B%9C-%EB%B3%B4%EB%8A%94-%EB%B0%B4%EC%BF%A0%EB%B2%84%EC%8A%A4%ED%83%80-vs-%EB%AF%B8%EB%A6%AC-%EB%B3%B4%EB%8A%94-%EC%86%8C%EC%B9%98%EC%8A%A4%ED%83%80|제목=다시 보는 밴쿠버스타 vs 미리 보는 소치스타!|날짜=2012-12-24|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제94회 전국동계체전에서 김보름은 30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2연속 2관왕을 달성했다.<ref name=":15">{{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40303.010270813440001|제목=동계체전 대구 대표로 출전한 올림피언 김보름|성=영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김보름은 월드컵을 거르며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비했으나 스피드와 체력 등에서의 네덜란드-캐나다등 서양 선수에 대한 역부족,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인한 페이스 조절 실패, 그리고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주종목인 5000m를 포기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좌절을 겪었다.<ref name=":15" />
2013년 12월 13일 이탈리아 트렌티노의 바셀가디피네아이스링크경기장에서 열린 제26회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15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2분1초19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경기에 출전한 양신영, 박도영은 각각 5위, 6위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ire.co.kr/newsRead.php?no=728148|제목=제26회 트렌티노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첫 메달 획득|날짜=2013-12-15|뉴스=보도자료 배포, 온라인 보도자료 등록, 홍보 대행 - 뉴스와이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5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은메달을 땄다. 18일 열린 5000m에서도 김보름이 7분17초82만에 결승선을 통과, 마르티나 사브리코바(체코, 7분05초17)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동반 출전한 박도영(한국체대)은 7분26초58의 기록으로 3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21810402676378|제목=김보름·박도영, 동계U 빙속 여자 5,000m 은·동메달|날짜=2013-12-18|확인날짜=2017-03-13}}</ref>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과 박도영(20-한국체대), 양신영(23-전북도청)의 여자대표팀이 3분06초53으로 결승선을 통과, 일본(3분11초39)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221024004|제목=소치올림픽 금물결 꿈틀|뉴스=서울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2월 9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3000m 부문에서 김보름(21)은 4분12초08의 기록으로로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조로 경기를 치른 김보름은 21초05로 200m 구간을 통과한 후 2분31초34로 1800m 구간을 지났다. 이후 2200m 구간 통과 순간부터 스피드를 올리며 후반 들어 스퍼트를 올렸고, 결국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 기록을 남겼다. 김보름의 순위인 13위는 지난 2006 토리노 올림픽,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노선영(25-강원도청)이 기록한 19위를 넘어 한국 여자 3000m 부문의 가장 높은 순위다. 5조의 노선영은 4분19초02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200m 구간에서 21초32의 기록으로 지난 이후 속도를 올리지 못한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노선영은 전체 26위의 성적을 남기며 경기를 마쳤다. 6조에서 경기를 소화한 양신영(24-전북도청)은 4분23초67을 기록해 이날 대회를 뛴 28명 중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한편 이날 대회는 4분00초34의 이레네 부스트(네덜란드)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가져갔다. 대회 2연패를 노린 2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4분01초95)와 3위 올가 그라프(러시아-4분03초47)에 앞선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41654|제목=(소치올림픽)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13위..금메달 부스트|확인날짜=2017-03-21}}</ref> 16일 열린 1500m에서는 네덜란드의 요리엔 테르모르스가 1분53초51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쓸었다. 은메달은 이레인 뷔스트(1분54초09)에게 돌아갔고 동메달은 하를로터 판바이크(1분54초54)가 주인이 됐다. 심지어 4위도 네덜란드 선수인 마리트 리엔스트라(1분56초40)가 차지했다. 김보름은 1분59초78로 21위에 올랐다. 노선영(25-강원도청)은 2분01초07로 29위, 양신영(24-전북도청)은 2분04초13으로 최하위인 36위에 그쳤다.<ref>{{웹 인용|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3&newsid=01079126605991504&DCD=A20402|제목=[소치올림픽]테르모르스, 전날 쇼트트랙 뛰고 빙속1500m 올림픽新 금|성=포털|이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성2=무단전재|이름2=‘이데일리 스타in’-|날짜=2014-02-17|확인날짜=2017-03-21|성3=금지|이름3=재배포}}</ref> 김보름은 무릎 통증이 있어 5000m를 기권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9/20140219004640.html|제목=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성=세계일보|날짜=2014-02-19|뉴스=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2일 열린 팀추월 파이널D(7-8위 결정전)에서 김보름, 노선영(25, 강원도청), 양신영(24, 전북도청)이 나란히 달린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져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전날 8강전에서 일본에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여자 대표팀은 이날 3분11초54만에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해 3분8초35를 기록한 노르웨이에 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223322278172|제목=김보름·노선영·양신영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위에 그쳐|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2월 28일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5회 전국동계체전에서 김보름은 30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3연속 2관왕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ref name=":15" />
2014년 12월 23, 24일 이틀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9회 전국남녀 종합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은 23일 열린 500m, 3000m에 이어 24일 열린 1500m(2분04초58)와 5000m(7분34초40)까지 4개 종목 모두 1위를 휩쓸어 정상에 올라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5차 대회 결과를 바탕으로 정해지는 국가별 쿼터에 따라 내년 3월 캐나다 올라운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112803|제목=MBC 연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5년 11월 13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5-2016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8초95로 15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2분59초25로 5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83으로 20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6일 열린 매스스타트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8분36초04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위인 이레인 슈카우텐(네덜란드-8분36초09)을 0.05초 차로 제쳤다.<ref>{{웹 인용|url=http://imnews.imbc.com/replay/2015/nwdesk/article/3814817_17821.html|제목='막판 대역전' 김보름, 빙속 매스스타트 짜릿한 금메달|성=장유진|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김보름은 2013년 2월 월드컵 7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우승한 이후 2년 9개월만에 금메달리스트가 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16/2015111602395.html|제목=빙속 매스스타트 우승 김보름 "평창까지 이어간다"|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2015년 11월 2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5초55의 한국최고기록을 세우며 8위를 차지했다. 21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76으로 12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마지막 16바퀴째를 돌다가 넘어져 20명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렀다. 일본의 오시기리 미사키와 접촉이 있은 후, 넘어졌다. 김보름이 마지막 바퀴를 돌 때까지 선두 경쟁을 펼쳤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15바퀴까지의 기록만 인정받아 8분01초85를 기록했다. 우승은 8분27초19로 결승선을 통과한 이레인 슈카우텐(네덜란드)이 차지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한 노선영(26-강원도청)은 8분28초29로 12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123_0010432511&cID=10501&pID=10500|제목=::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김보름은 허리 부위의 핏줄이 터지고 연골을 다쳐 월드컵 3, 4차 대회에 나설 수 없게 됐다.<ref name=":19" />
김보름은 세계선수권대회와 월드컵 매스스타트 종합에서 우승하며 여제의 귀환을 알렸다. 상징적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대 이리네 샤우턴(네덜란드), 2대 이바니 블롱댕(캐나다)에 이어 3대 챔피언으로 김보름이 등극했다. 진정한 강자가 살아남는 시즌 월드컵에서는 1대 마리스카 후이스만(네덜란드), 2대 김보름, 3대 프란체스카 롤로브리기다(이탈리아), 4대 블롱댕, 5대 샤우턴에 이어 6대 챔피언으로 김보름이 등극했다. 2011-2012 시즌 월드컵에 첫 선을 보이며 매스스타트가 세계대회에 등장한 이후 2011-2012 시즌은 월드컵 챔피언 후이스만이 압도했다. 2012-2013 시즌은 월드컵 챔피언 김보름이 압도했다. 2013-2014 시즌은 월드컵 챔피언 롤로브리기다가 압도했다. 2014-2015 시즌은 월드컵 챔피언 블롱댕과 선수권 챔피언 샤우턴이 양분했다. 2015-2016 시즌도 월드컵 챔피언 샤우턴과 선수권 챔피언 블롱댕이 양분했다. 2016-2017 시즌은 김보름이 최초로 월드컵과 선수권 2관왕을 차지하며 압도했다. 김보름은 또한 최초로 월드컵 종합 챔피언 2회에 오르는 위업도 달성했다. 깊은 내상을 입고 은거자중하는 동안 잃어버렸던 영토를 여제가 돌아와 되찾으니 뭇 제후들이 한 발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ref name=":24" />
2016년 11월 11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2초21로 3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2일 열린 팀추월에서 이승훈과 김보름이 힘을 보탠 남녀 팀추월 대표팀이 동메달을 나란히 수확했다. 1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이승훈이 남자부 금메달, 김보름이 여자부 동메달을 목에 걸며 메달 사냥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ref>{{뉴스 인용|url=http://d.kbs.co.kr/news/view.do?ncd=3380743|제목=이승훈·김보름, 매스스타트서 ‘맹활약’|뉴스=KBS 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6년 11월 18일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5초91로 16명 가운데 6위에 올랐다. 자신의 최고 기록(4분04초6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16년 11월 11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 디비전B에서 세운 4분12초21보다 6초30 빨랐다. 우승은 체코의 마르티나 사블리코바가 4분03초56으로 차지했다. 그 뒤는 안토이네트 데 용(네덜란드-4분04초53), 안나 유라코바(러시아-4분05초24)가 이었다. 3000m 디비전B의 박지우(의정부여고)는 4분18초88로 20명 가운데 16위에 자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msn.com/ko-kr/news/sports/%EB%B9%99%EC%83%81-%EA%B9%80%EB%B3%B4%EB%A6%84-%EC%8A%A4%ED%94%BC%EB%93%9C%EC%8A%A4%EC%BC%80%EC%9D%B4%ED%8C%85-2%EC%B0%A8-%EC%9B%94%EB%93%9C%EC%BB%B5-%EF%A6%81-3000m-6%EC%9C%84/ar-AAkrY2E|제목=[빙상]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2차 월드컵 女 3000m 6위|확인날짜=2017-03-27}}</ref> 19일 열린 팀추월 결승에서는 대한민국(노선영, 김보름, 박지우)이 3분05초01로 5위를 차지했다. 20일 김보름은 박지우와 함께 23명이 출전한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8분15초02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골인하면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박지우는 8분22초85로 18위를 기록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9초65로 2위에 올랐고 박지우는 2분01초89로 16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ufo5405/220866296406|제목=김보름 매스스타트 금메달(2016~2017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2차 대회)|뉴스=네이버 블로그 {{!}} 자유 평화 사랑|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6년 12월 2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10초61로 14위를 차지했다. 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박지우, 노선영, 김보름이 3분04초62로 6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5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29초51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2차 대회 우승자인 캐나다의 이바니 블롱댕(8분29초28)과 일본의 다카기 나나(8분29초46)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랭킹 포인트 70점을 획득한 김보름은 총점 240점으로 블롱댕(랭킹포인트 280점)에 이어 월드컵 랭킹 2위를 유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mn.kbs.co.kr/news/view.do?ncd=3388523|제목=이승훈·김보름, 3차 대회 매스스타트 동메달|뉴스=KBS 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6년 12월 9일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벌어진 월드컵 4차 대회 팀추월에서 박지우, 노선영, 김보름은 3분06초42로 7위를 차지했다. 10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71로 19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0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31초73의 기록으로 이린 쇼우텐(네덜란드)을 0.09초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김보름은 일본 나가노에서 열렸던 2차 대회에 이어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두번째 금메달을 차지하며 월드컵 랭킹 점수에서도 340점을 확보, 이바니 블롱댕(캐나다, 308점)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1차 대회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3차 대회에서 금메달, 2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던 블롱댕은 8분33초59로 10위로 밀려나면서 4회 연속 메달 사냥에 실패하고 김보름에게 월드컵 랭킹 선두 자리를 내줬다. 함께 김보름과 매스스타트에 출전한 박지우(의정부여고)는 8분41초67의 기록으로 14위에 올랐다. 박지우는 3차 대회 13위에 이어 4차 대회에서도 줄곧 중위권을 유지하며 월드컵랭킹 52점으로 18위로 올라섰다.<ref>{{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576|제목=김보름 매스스타트 '동-금-동-금 행진', 이젠 당당한 평창 우승 후보|날짜=2016-12-11|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11일 열린 5000m 디비전A에서 7분17초89로 12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7년 3월 12일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45초7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네덜란드의 이린 쇼우턴(8분45초69)에 단 0.06초 뒤지는 2위에 그쳤다. 3위는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카 롤로브리기다(8분45초78)가 차지했다. 매스스타트 랭킹 포인트 120점을 획득한 김보름은 합계 460점으로 364점의 롤로브리기다를 여유 있게 제치고 시즌 1위 자리를 지켜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934262|제목=[빙속] ISU 월드컵 파이널 매스스타트 이승훈金-김보름銀|날짜=2017-03-13|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2017년 1월 1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일반부 매스스타트에 김보름이 출전했지만 선두에 한 바퀴 뒤지면 실격 당하는 규정에 따라 실격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diodeo.com/news/view/2024706|제목=[동계체전] '실격' 김보름|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8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70으로 결승선을 통과, 1위에 올랐다. 17일 열린 3000m에서 대회신기록(4분14초54)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김보름은 이날 1500m에서도 대회기록을 갈아치웠다. 김보름은 이주연이 보유하고 있던 대회기록(2분3초63)을 1.93초 단축했다. 노선영(28-강원도청)도 종전 대회기록보다 빠른 2분02초92의 기록을 냈지만 김보름을 넘지 못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박도영(24-동두천시청)이 2분05초36으로 뒤를 이었다. 김보름은 노선영, 임정수(24)와 함께 강원도청 대표로 여자 일반부 팀추월에 나서 금메달을 일궜다. 김보름은 강원도청이 3분23초97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하는데 앞장섰다.<ref>{{뉴스 인용|url=http://m.kgd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3595|제목=김보름, 전국동계 3관왕 등극|날짜=2017-01-19|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2017년 2월 9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4분03초85를 기록했다. 순위는 6위에 그쳤지만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4분04초62)을 0.77초 앞당겼다. 우승은 3분59초05를 기록한 네덜란드의 이레인 뷔스트(31)가 차지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김보름의 뒷심이 발휘됐다. 첫 200m 구간을 20초45(9위)로 통과한 김보름은 레이스 중후반인 1800m 이후에도 랩타임을 줄곧 32초대로 유지하며 순위를 끌어올렷다. 메달 획득은 하지 못했지만 아시아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70210/82801694/1|제목=매스스타트 간판 김보름, 3000m서 ‘한국신 스퍼트’|날짜=2017-02-10|뉴스=동아닷컴|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가 3분02초95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2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출전해 8분00초97를 기록해 60점을 획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tv.co.kr/MYH20170213003000038/|제목=김보름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금메달 획득|날짜=2017-03-31|뉴스=연합뉴스TV: : 대한민국 뉴스의 시작. 채널 23|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레이스 동안 5위 안팎에서 벗어나지 못해 곡선 코스마다 선두 진입을 노리던 김보름은 마지막 바퀴에서 앞에서 달리던 네덜란드 선수가 일본 선수와 충돌해 넘어진 틈을 타 역전에 성공했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 코너워크가 장점인 김보름의 장점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자칫하면 김보름까지 휩쓸려 넘어질 수 있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인코스 진입을 시도해 선수들을 차례대로 제쳤다. 마지막 직전코스에서 1위를 달리던 일본 다카기 나나까지 따돌리며 태극기를 드높였다. 다키기는 8분00초90의 기록으로 2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3위는 8분01초36을 기록한 미국 헤더 베르그스마가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3070|제목=뉴스포스트|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2017년 2월 20일 오후 일본 오비히로의 오비히로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7초80으로 2위를 기록했다. 김보름의 기록은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카자흐스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호즈미 마사코(일본)가 세웠던 4분7초82보다 0.02초 빨랐다. 하지만 4분05초76을 기록한 다카기 미호(일본)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다카기의 기록은 아시아 기록으로 올라갔다. 3위는 4분10초07를 찍은 일본의 사토 아야노가 차지했다. 이로써 김보름은 2011년 대회에 이어 2연속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게 됐다. 5조의 인코스에 자리한 김보름은 타카바 마키(일본)와 레이스를 펼쳤다. 초반 400m 랩타임을 31초대로 찍으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속도가 떨어졌고 마지막 800m를 남겨두고는 400m 랩타임을 32초 후반대로 찍으면서 아쉽게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한 박도영(24-동두천시청)은 4분17초76로 6위. 박지우는(19-의정부여고)는 4분21초02로 7위를 마크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fnnews.com/news/201702201641040417|제목=[동계AG] 김보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0m 은메달 획득|날짜=2017-02-20|확인날짜=2017-03-31}}</ref> 22일 열린 5000m 경기에서는 김보름이 7분 12초 58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3조에 출전한 김보름은 한 메이(중국)와 레이스를 펼쳤다. 김보름은 레이스 초반 33초 대로 달리다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33초와 34초의 랩타임을 번갈아가며 호흡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3바퀴를 남기고 스퍼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7분12초58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확정 지었다. 이 날 경기에서 김보름을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로 꼽힌 다바카 마키(일본)는 레이스 후반에 접어들면서 크게 처져 결국 메달조차 따지 못했다. 김보름에 이어 은메달은 한 메이, 동메달은 키야마 마이가 차지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했던 박도영(동두천시청)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보름은 20일 열렸던 3000m와 21일에 열렸던 팀추월 경기에서 모두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자신의 세 번째 종목이었던 5000m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다.<ref>{{웹 인용|url=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01052|제목=빙속 김보름, 동계 아시안게임 5000m 금메달|날짜=2017-02-22|확인날짜=2017-03-29}}</ref>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일본 선수들의 작전에 말려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이날 다카기 미호와 사토 아야노가 먼저 치고 나섰고, 뒤에 있던 다카기 나나가 상대 선수들을 견제했다. 김보름은 선두를 따라 잡기위해 기회를 노렸지만 추월하지 못했다. 이후 김보름이 속한 2위그룹과 선두그룹은 12바퀴이후 한 바퀴까지 벌어졌다. 결국 김보름은 8분47초46을 기록 3위에 그쳤고, 다카기 미호는 8분21초81로 금메달, 사토 아야노는 8분21초88로 은메달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pim.com/news/view/20170223000380?category_cd=0116|제목=김보름 “일본 작전에 알면서 당했다”... 매스스타트 1인자, 아쉬운 동메달(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뉴스=뉴스핌|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 최남선 . . . . 33회 일치
|학력= [[와세다 대학교]] 지리역사학과 중퇴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반복하다가 1907년 [[와세다대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당하고 귀국했다. 1907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당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아이들 보이》,《새별》등의 잡지을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 (잡지)|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ref name="changs">[[장준하]],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 『[[사상계]]』 53호, [[사상계사]], 1957.12.</ref>
[[1957년]] [[10월 10일]] [[뇌일혈]]로 별세한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에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다.
육당 최남선은 [[관상감]] 기사로 근무하면서 [[한약방]]을 경영했던 아버지 최헌규(崔獻圭)와 어머니 진주 강씨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대로 명문이었고 아버지 최헌규는 하급 관리였으므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1901년 3살 연상의 부인 연주 현씨(玄氏)와 결혼했다. 스스로 독학으로 한글을 깨쳐 1901년(광무 5)부터 《황성신문》에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
1906년에 다시 일본 유학을 떠나 4월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고등사범학부 지리역사과에 입학하지만, 역시 3개월간 다니다 동맹 휴학으로 제적당하다가 복학하였다. 이어 [[이광수]] 등 유학생과 사귀면서 러시아 문학 작품을 탐독하였다. 1906년 7월 유학생 회보인 《[[대한 흥학회보]] (大韓興學會報)》편찬회를 맡아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대한 흥학회보]] (大韓興學會報)》의 편집 활동을 하면서 그는 회보에다 새로운 형식의 시([[신체시]])와 [[시조]]를 발표하였다.
1907년 모의국회 사건으로 반발하는 한국인 학생들의 총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와세다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만다. 이후 [[이광수]]와 함께 [[소년회]]를 결성한다. 또한 [[유길준]]이 조직한 [[흥사단]]에도 가입하였다.
최남선은 인쇄시설을 추가로 구비하여 1908년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였다. 처음 건물과 비용이 넉넉하지 않아 자택에 [[신문관]]을 설립하고 인쇄와 출판을 겸하였으며 후일 사세를 확장하여 [[경성]]시내로 사무실을 옮겼다. 여기서 그는 《대한역사》, 《대한지지》 《외국지지》 등 중요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새 시대의 주인공을 위하여 1908년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 (잡지)|소년]]》을 발행하였다. 그는 이 잡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하였으며, 1909년에는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청년 학우회'를 결성하였다. 1910년 3월에는 도산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내면서 청년학우회의 노래를 짓는 등 청소년 지도 운동에 앞장섰다.
가출옥 후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창립했다. 같은 해 9월 주간지 '동명'을 창간해 [[1923년]] 6월까지 발행했다. [[1925년]]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활동에 참여했고, 동시에 《[[동아일보]]》에 사설을 쓰는 한편, 1926년 옛 백제 영토 방문기 '심춘순례'를 근대 최초의 창작 시조집 '백팔번뇌'를 출간했다. 이어 〈[[단군론]]〉(1926년), 〈[[불함문화론]]〉(1928년)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불함문화론〉에서 그는 동방 문화의 근원지를 단군 신화의 무대인 백두산이라고 주장하였다.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 제18호에 [[일연]]의 《[[삼국유사]]》 전체를 게재하게 하였다.<ref>《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스토리텔링 삼국유사 1) (현암사, 2009) 24~25쪽. {{ISBN|978-89-323-1536-2}}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에다 일연(一然)의『삼국유사(三國遺事)』 를 실은 것이었다.” </ref> 같은 해 총독부가 집과 연구 비용을 지원한다고 회유하자 그해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을 거쳐 조선사편수회 위원이 되었다. 1932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총독부의 조선사 편수회에 가담한 일로 [[이광수]]와 절교하고, [[한용운]]과 [[홍명희]] 등도 연이어 그와 결별 선언을 했다. [[한용운]]은 그의 나무 위패를 새기고 장례식을 거행하여 그를 조롱하려고 시도했다.
1920년대에 문화 운동 활동한 동시에 같은 해 1928년 10월 [[조선총독부]] 내에 [[식민사관]] 유포를 위해서 만든 어용단체인 ‘[[조선사 편수위원회]]’를 창립했을 때 편수 위원직을 맡았다. 1930년 8월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교수와 조선총독부·조선사편수회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과 [[만주]]를 중심으로 한 '극동문화연구'를 표방하며 조직한 [[청구학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37년 중추원 참의를 맡아 1938년 3월까지 재임하면서 매년 1200원의 수당을 받았다. 1937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조선문화의 당면과제'를 연재해 조선문화의 일본화야말로 당면한 문제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라며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사설을 기고했다. 이어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총독부 어용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각종 친일논설을 게재했다.
이어 [[장준하]]는 '사람을 사赦하는 법이 없고 인재를 자기 눈동자와 같이 아낄 줄 모르고 사물을 널리 생각하지 못하는 옳지 못한 풍조 때문에 우리는 해방된 후에도 선생에게 영광을 돌린 일이 없고 그 노고를 치하한 일도 없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욕된 일이 적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실로 온 민족의 이름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ref name="changs"/>'라며 그를 친일파라고 비판하는 것을 비난 하였다.
1943년 귀국 직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고하는 강연을 하기 위하여 도쿄로 건너가 강연활동을 한 후 그해 중순 귀국하였다. 1943년 11월 다시 [[이광수]]와 함께 학병 독려의 목적으로 출국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다. 휴전 후 《서울시사(市史)》 편찬위원회 고문으로 재직하였고, 신문과 잡지에 한국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기고활동을 계속했다. 1957년 10월 10일 《한국역사대사전》을 편찬하던 도중 병으로 죽었다.
최남선은 그는 평생 고전 정리와 주석에 관계된 것 등 다방면에 걸쳐서 국사와 고전 서적의 간행, 복원, 한글 번역 작업을 하였다. 한국 최초의 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창작하는 등 개화기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였다. 시조 부흥 운동을 지도하여 최초의 시조 시화집 《백팔번뇌》를 출판하기도 하는 등 신문화와 전통 문화의 과도기를 살았던 인물로서 한국의 신문화 운동에 남긴 업적은 매우 크게 평가되고 있다.
* [[일본]] [[와세다 대학교]] 지리역사학과 중퇴
1925년 일본어로 발표된 〈불함문화론〉은 한·일 문화동원론, [[일선동조론]]을 위한 것으로 동이문화권에 [[발칸반도]], [[카스피해]], [[일본]], [[오키나와 섬|유구]]를 끌어들여 단군의 [[민족주의]]를 [[세계주의]]로 변질시키고 역사인식을 혼란시켰다는 지적이 있다.<ref>박광용, 「대단군 민족주의의 전개와 양면성」, 1992년.</ref><ref>{{서적 인용
[[장준하]]는 이어 '그뿐 아니라 선생은 상아탑의 일개 학구로 그치지 않고 실實에 즉하고 의義에 나아가 항상 민족사상의 고취에 힘썼고 3.1혁명에 가담하여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이어서 장시일의 옥고를 치른 후에도 한 길을 더듬어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육당 선생은 이 민족이 가장 암담한 절망의 골짜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항상 우리와 더불어 있었고 우리의 가장 친근한 벗이요 경애하는 스승이었다. 그러 하여 민족의 생명은 싹을 부지하고 겨레는 위안을 받고 희망을 갖추어 광복에 이른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ref name="changs"/>'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 이영화, 「崔南善壇君論의 전개와 그 변화 - 檀君에서 壇君으로, 壇君에서 檀君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동주 최씨]][[분류:철원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하이큐/229화 . . . . 33회 일치
* 봄고 대회까지 D-4일. 새해 첫꿈부터 개꿈으로 시작한 사와무라 다이치는 카라스노 3학년들과 신사참배에 다녀온다.
* 사와무라는 꿈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괜히 찜찜한 기분인데 아즈마네 아사히와 스가와라 코시도 비슷한 상태다.
* 혼자가 아님을 실감하고 찜찜한 기분을 떨치게 된 사와무라. 어느새 D-day가 다가와 있다.
* 설날. 봄고 대회는 1월 5일로 불과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사와무라 다이치. 그런데 어머니가 어딜 가냐고 물어 배구부에 간댔더니 이상한 소릴한다.
* 사와무라는 부리나케 체육관으로 달린다. 가면서 휴대폰으로 스가와라 코시나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연락하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연락처가 사라져 있다. 체육관에 도착해 보니 체육관은 농구부가 쓰고 있는데 어째서 농구를 하고 있냐고 하니까 "여기는 이제 농구부 것"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괴이함을 느낀 사와무라가 다른 배구부 부원들은 어디로 갔냐고 물었더니 "배구부는 너 한 명이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 잠에서 깬 사와무라. 아직 새해 첫날이다. 첫날부터 지독한 개꿈으로 시작하게 된다. 일어나서 몇 번이나 시계를 확인하다가 약속장소로 향한다.
* 카라스노 3학년들은 함께 신사참배를 하기로 했다. 사와무라는 예정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와버리는데 때마침 아즈마네 아사히와 스가와라 코시도 그 시간에 도착한다. 그로부터 20분 후. 시미즈 키요코가 도착하는데 분명 약속시간보다 일직 나온 거지만 다른 사람들이 더 빨리 나와 있어 혹시 자기가 시간을 잘못 알았냐고 묻는다.
* 3학년들은 참배를 마치고 사와무라와 스가는 운수제비를 뽑으러 간다. 아즈마네는 "꽝이 나올거 같아서 망설여진다"며 미적거린다.
* 시미즈는 부적을 사다달라고 부탁 받아서 잠시 일행과 떨어진다. 돌아오던 중 그녀를 노리는 헌팅족이 접근하는데 하필이면 아즈마네와 사와무라가 그녀와 합류해서 헌팅족은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도망친다.
* 아즈마네의 표정이 아주 심각한데 뽑기 결과가 무려 흉. 스가는 아예 대흉이면 "뽑기 어려운 거니 오히려 운이 좋다"고 해줄 수 있는게 그렇게도 못하게 미묘하다고 웃어댄다. 시미즈도 "아침운세 11위 같은 것"이라고 일침을 날린다.[* 일본의 아침운세는 1위부터 12위까지 있다.] 한편 스가와 사와무라는 미길이 나왔는데 아즈마네는 그게 더 미묘하다고 길길이 날뛴다. 웃고 떠드는 사이 긴장도 조금 덜어진것 같다.
* 귀갓길에 다른 3학년들과 떨어진 사와무라는 여전히 꿈 때문에 찜찜한 기분이 든다. 가던 길에 잠시 체육관에 들러보는데 왠지 부원들이 체육관에 와있다. 히나타는 참배갔다 오는 길에 그냥 들렀고 왠지 카게야마는 런닝 중이었는데 어쩌다 들렀다고 한다. 타나카는 누나의 주정을 참다 못해 도주, 니시노야는 "강자를 찾아서"라는 해괴한 이유. 사와무라는 "참치도 아니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냐"고 핀잔하며 쉬는 날엔 푹 쉬고 괜히 돌아다니다 감기나 들지 말라며 쫓아낸다. 그런데 사실 사와무라도 "체육관을 농구부한테 뺏기지 않았나 확인"하러 왔으니 엉뚱하게 돌아다니긴 마찬가지다.
* 다시 집으로 향하는 사와무라. 그런데 우연찮게 토코나미 고교 3학년 이케지리 하야토와 마주친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공원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사와무라는 다른 팀이라 그런지 팀원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긴장감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이케지리는 "시라토리자와를 무찌르고 봄고에 가는거 자체가 대단하다"며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다녀오라고 말하는 듯 했지만
* 이케지리는 무지하게 기대해주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와무라는 오히려 그 말이 맞다며 "꿈 따위에 너무 쫄았다"고 말한다. 그는 팀원들의 존재는 물론 심지어 달느 팀인 이케지리까지 함께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와무라는 "내가 혼자일리 없어"라고 다짐하며 각오를 다진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32회 일치
해병 사단에 관련된 연구. 1916 Infantry Division 연구와 1916 Light Infantry Division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차와 화포를 담당하는 기술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극초기형 전차들을 연구하는 곳. Secret Weapons 탭의 Heavy Tank 연구와 Armor & Artillery의 Great War Heavy Field Artillery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탱켓과 경전차들을 연구하는 곳. Great War Tank 연구와 Improved Great War Heavy Field Artillery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주포 여단을 연구하는 곳. Basic Field Artillery 연구와 Light Tanks 트리의 Early Tank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공자주포 여단에 관한 연구, Improved Anti-Air Brigade 연구와 Light Tanks 트리의 Early Tank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주포 여단과 구축전차 여단의 대보병 공격력과 보급품 소모량을 올려주는 연구. Basic Medium Tank 연구와 Early Rocket Artillery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포탑달린 전함부터 현대식 전함까지의 전함에 대한 연구. 외전격으로 Super Heavy Battleship 연구와 Improved Super Heavy Battleship 연구가 있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레이더 기지와 그 효율, 공중 유닛의 전투 효율, 해군용 레이더 부속과 그 효율에 보너스를 주는 연구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연구 시간을 줄여주고 사격통제장치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연구들. Cryptography 트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육군 유닛에게 효율을 주는 기술들. 공격 임무를 가능하게 해주는 Tribal Warfare 연구부터 시작한다. 이후 19th Century tactics 연구를 거쳐 20th Century Military Concept 연구를 하면 사기를 올려주는 Leading by Task 연구와 조직력을 올려주는 Leading by Orders 연구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된다.
그 다음에는 Great War Doctrine 트리를 타게 되는데, 이 중에도 공격 효율을 올려주는 Schwerpunkt Doctrine↔방어 효율을 올려주는 Defense in Depth의 선택지, 사기와 공격 효율을 올려주는 Forward Control↔사령부의 효율을 올려주는 Central Control의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외에 병력 소모율을 감소시키고 부상병 회복 확률을 올려주는 Hospital System 테크와, 기갑 사단과 경전차 사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Armored Division Formation 연구가 있다. Armored Division Formation의 경우에는 각 제2차 세계대전 교리의 특정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Mobility Focus Doctrine과 Manpower Focus의 경우 1937년 연구지만 나머지 교리의 경우에는 1940년이다.
원자력 전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Semi-Modern Battleship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자력 경순양함과 원자력 중순양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Missile Light Cruiser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자력 항공모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Super-carrier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자력 잠수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트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Modern Submarine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병의 효율을 늘려주는 Mobile Land Mine 연구와 경전차 계열 여단의 효율을 늘려주는 Remotely Controlled Tank 연구로 이루어져 있는 트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Armor & Artillery 탭의 Basic Armored Car 연구와 Industry 탭의 Improved Decimeteric Radar Warning Sites 연구, Improved Computing Machine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중폭탄과 로켓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트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Flying Bomb Development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로켓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Strategic Rocket 연구를 위해서는 Rocket Test and Research Facility 트리의 Flying Rocket Development 연구를 추가적으로 한 후 연구 해금 이벤트를 봐야 하며, 로켓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Ballistic Missile 연구와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연구를 위해서는 또다시 연구 해금 이벤트를 기다려야 한다.
대공포의 연구와 대공포 부속의 업그레이드를 지원하는 연구. 이외에 여러가지 연구를 위해 필요하다.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Armor & Artillery 탭의 Semi-modern Static Anti-Air Artillery 연구와 Industry 탭의 Experimental Rocket Engine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 최준석 . . . . 32회 일치
|| '''체격''' || 187cm, 130kg[* 일각에서는 160kg이 넘는다는 추정도 있다. ~~그러나 그건 말이 안되는게 최준석보다 키가 더 크고(198cm) 덩치가 더 큰 [[CC 사바시아]]도 135kg이기 때문이다~~ CC 사바시아도 체중을 속였을 확률이 더 높다. 당장 203cm, 120kg의 [[델린 베탄시스]]나 201cm, 130kg의 [[애런 저지]]와 CC 사바시아를 비교해 보자.] ||
|| '''응원가''' || '''두산 베어스 시절''' [br] 정광태 - 힘내라 힘[* 날려라 준! 날려라 석! 날려라 최준석~ 홈런! ×4][* 여담으로 이 응원가는 [[이승엽]]의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응원가기도 했고, [[중신 브라더스]]의 팀 응원가로도 쓰인다.] [br] '''롯데 자이언츠 시절'''[br]콜럼버스 1492 OST - Conquest of Paradise[* 스포츠 CF에 나오던 그 [[마성의 BGM#s-9|웅장한 마성의 BGM]] 맞다. 응원 가사는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br] 자우림 - 하하하송[* (빰빰빰빰빠밤빰) 홈! 런! 최준석! (빠빠빠빠빠빠빠빠빠밤빰) 홈! 런! 최준석!. 2015년 7월 2일 사직SK전에서 쓰이는게 확인되었다. 원래 홈런타자 돌림빵 응원가였다가 [[이대호|친구]] 응원가로 굳어졌던 노래다.][* [[한화 이글스]]의 [[하주석]]도 같은 멜로디의 응원가를 쓰고 있다. ] [br] Pitbull - Celebrate[* 자~이언츠 최준석~ 자~이언츠 최준석~ 빰빠바바바빰빰 *2][* 이 응원곡의 응원동작에는 최준석의 홈런 세레머니 동작이 들어간다.] [br]'''NC 다이노스 시절''' [br]구단 자체제작[* 오~ NC의 최준석 NC의 최준석 다이노스(최준석!)(x3)][* 시즌 전에 공개한 응원가는 [[장성호]]와 [[Johnny, I hardly knew ya|원곡도 같고]] 가사마저 [[표절|복붙 수준으로 같았으나]] 이에 대해서 항의가 들어갔는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https://youtu.be/1ouaZDexyA8|비공개 처리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급하게 만든 응원가가 더 호평을 받고 있다(...).] ||
대단히 몸집이 크고 느린 선수.[* 사직구장 펜스 직격타에도 2루에 못갈 정도다.] [[KBO]] 프로필 상 187cm/130kg 라고 나와있지만, 최소 150kg~~[[김정은]]~~은 넘었다는게 중론이다. [[이대호]]와 옆에 있으면 이대호가 날씬해보일 정도. 이대호가 더 키가 크긴 하지만(194cm) 비슷한 키에 이대호가 125kg라는걸 생각하면 190cm 가까운 장신에 비대한 체격을 가진 최준석은 일반 체중계로 잴수있는 체중(150kg)은 훨씬 넘었을 확률이 높다. 야구선수 특성상 기본적인 체중만 해도 100kg에 가까울 테니...[* 삐쩍 마른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조차 키가 192cm이다 보니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간다. 최준석과 비슷한 신장에 같은 [[1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병호]], [[오재일]], [[채태인]]등도 100kg 전후의 거구. 최준석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로 2017년 kt에 입단한 1루수 한기원이 있다. (지금은 살을 뺀 상태) 프로필 상으로는 182cm/130kg이지만 실제로는 141kg라는게 기사에 나온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성적 편차가 큰 것도 있었지만.)]
이 때는 신인이라 2002년부터 2004년까지 12경기에 포수로 출장했다. 그리고 절친 [[이대호]]와 그의 형 이차호와 같이 동래 모처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더블사이즈 [[침대]] 하나에 [[이대호]]와 같이 누워서 잤다(…).~~ 침대가 뭔 죄래? 침대: 아니 이 녀석들이?~~
믿기 힘들겠지만, 입단 당시엔 100m를 12초에 끊는 호타준족형의 포수였다고 한다. 2017년 지금은 50m 12초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다 위에서 언급한 [[이대호]]와 같이 살던 시기에 거의 매일 [[야식]]을 같이 먹으며 살이 쪄서 주루 능력은 많이 줄게 되었다. 2005년엔 그 당시 주전 [[최기문]]의 병풍사건 연루와 부상 등으로 출전 기회가 늘었지만, 포수가 아니라 [[지명타자]]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 해 [[526 대첩]]의 영웅으로, 9회초 11:11 동점 상황에서 [[신윤호]]에게 결승 2점 [[홈런]]을 뽑아낸 적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8홈런 42타점으로 거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2006년 5월 [[트레이드]]를 통해 [[김진수(야구)|김진수]]와 함께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대신 [[최경환(야구)|최경환]], 이승준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
상당히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고정 1루수와 클린업 트리오로 자리잡았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4타수 4안타 1볼넷 2타점 1득점, 타율 .286, 장타율 .357, 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0타수 4안타 3볼넷 3타점 3득점, 타율&장타율 .400, 출루율 .53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012년 4월 8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손승락]]을 상대로 결승 3루타를 기록, 김진욱 감독에게 첫 승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의 신임을 받았는데도 삽을 계속 푸면서 두산팬들의 욕을 들어 먹었고, 결국 2012년에는 기대와는 달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 [[김동주(타자)|김동주]]가 부상으로 골골대면서 중심 타선이 빈약해졌고 [[김현수(1988)|김현수]]가 어떻게든 분투했지만 3할 언저리를 왔다갔다하며 역시 부진했던 탓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는 출장하지 못했으나 10월 1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 스코어 1:0으로 팀이 앞선 1회초 2사 1루 첫 타석에서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선발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사도스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내며 팀의 스코어 7:2 승리에 공헌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좀 시간이 걸리기는 하였지만 결국 '''4년 35억원''' 이라는 금액으로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하였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424101|기사]] 이로서 8년만에 친정 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1루수인 [[박종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굴욕인 것이, 누적 스탯을 보고 따질 것이 아니라 출루율을 비교하면 최준석은 커리어 .351, 13시즌 .376을 기록했다. 박종윤은 커리어 .294, 13시즌 .298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NC의 대졸신인 [[권희동]]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이다. 거포라고는 불릴 수 없지만 [[대타]]로서는 확실한 일발장타력을 갖춘 박종윤이 1루수로는 노답이라고 평가되는 이유가 선구안임을 감안하면 둘의 타격은 레벨이 다르다. 한편 [[1루수]], [[좌익수]], [[지명타자]] 자리에 구멍이 뻥뻥 뚫린 롯데의 상황상 지명타자 자리 고정이 큰 문제는 아니므로 수비능력 또한 무조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최준석의 통산 스탯이 거포라고 하기에 부족한 것은 최준석이 파워툴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늘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건강한 최준석이 [[잠실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거포임을 부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론적으로 최준석 영입이 상당히 비판받는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체중관리와 부상이다. '''분명히 건강하면 팀에 도움이 될 선수이지만 부상 위험이 정말로 큰 선수'''를 '''포스트시즌 반짝 성적'''과 '''FA시장의 과열'''로 인해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어야 할 것이다.
감독만이 아니라 팀으로서도 이 정도로 답이 없을 줄은 몰랐는지 2018년 1월 23일 롯데가 최준석을 '''무상 트레이드'''[* 대표적인 사례로는 FA 계약에 실패 후 보상권리 포기로 SK와 계약한 투수코치 [[최영필]]이 있다. 이 방법으로 은퇴 위기에 있었던 최영필은 2017년 KIA 타이거즈에서 은퇴할 때까지 6년이나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5939|해당기사]]
상대적으로 지명타자 자리에 여유가 있는 KT와 삼성이라면 한번쯤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17시즌 후 이승엽의 은퇴로 최준석이 지명타자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지명타자 자리에는 박한이가 있다. 당장 김한수 감독이 박한이 안쓴다고 2017년에 엄청 욕먹었었는데 그런 박한이를 뒤로한채 최준석을 영입한다면 대구아재들은...][* KT의 경우 지명타자 자리에 [[이진영]]과 1루수, 지타를 병행하는 [[윤석민(타자)|윤석민]]이 있다. 또한 KT는 2017년 [[황재균]]을 '''4년 88억원'''에 영입한 데다 KT는 넥센 다음으로 돈을 적게쓰는 구단인 만큼 삼성보다도 영입할 가능성이 낮다.~~[[남태혁]], 한기원의 체중 관리 문제로도 벅찬데~~] 막상 어느 팀도 트레이드조차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6027|관련기사]]
'''준수한 [[OPS]]히터지만 주루와 수비가 심각하게 막장인 선수.'''
타격에서의 단점은 바깥쪽 변화구에 취약하다는 것. 실제로 타석에서 가장 멀리 서서 타격을 하는 타자 중 한명이기도 하고, 지금은 꽤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바깥쪽 [[슬라이더]]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상당히 좁게 가져가는 타격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술했듯이 볼넷을 많이 얻어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멀뚱하니 서서 삼진을 당하는 모습도 적잖이 나와 중심타자다운 적극적인 타격을 못한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 정도야 [[이병규|초구부터]] [[송광민|냅다]] [[김주찬|배트를]] [[이지영(야구선수)|내미는]] 대신 [[이병규(1983)|신중하게 볼을 골라내며]] [[김태균|타격을 하는]] 유형의 타자인만큼 감수할 수 있는 장점이겠으나...
최준석의 가장 큰 단점은 '''[[똥차(야구)|발이 엄청나게 느리다는 것]].''' 주자로써 평균은 커녕 압도적 꼴찌 수준의 주력을 자랑해서 타격으로 벌어놓은 점수의 반쯤은 베이스 러닝으로 날려먹기 마련이다. 게다가 빠른 타구속도 덕에 넓은 [[잠실 야구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구장에서 '''담장 맞추는 1루타''' 같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마디로 '''주루에서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타자다.''' 2017 시즌 종료 기준 통산 [[병살타]]도 162개로 은퇴선수까지 포함하면 10위, 현역선수 중에서는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통산 1위는 ~~당연히~~ [[홍성흔]]의 230개, 현역 1위는 [[정성훈]]의 211개.] 단순히 주루가 느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 대타 출장시나 경기후반에는 이 느린 발과 수비포지션이 없는 것 때문에 거의 반드시 [[대주자]]나 [[대수비]]를 대동해야 하는데, 보통 대수비를 겸하는 대주자까지 2명, 어쩌다 수틀리면 대주자 대수비 따로 해서 3명까지 한번에 쓰게 된다. 조원우 감독이 최준석의 기용을 꺼리고 결국 FA에서 잡지 않은 데에는 단순히 발이 느려서 점수 덜 먹는다는 것이나 병살 잘 치는 생산성 문제도 있지만 이 로스터 낭비 문제가 더 크다. 알다시피 프로야구 로스터는 매우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최준석 때문에 좌완이나 사이드 원포인트 혹은 패전조급 릴리프를 타팀보다 한명 덜 써야 한다고 하면 확 와 닿을 것이다. 최준석의 타석에서의 생산성이야 전성기 때는 그걸 감안하고도 쓸 만큼 좋았고 노쇠화가 진행된 지금도 꽤 좋은 편이지만 릴리프 한명 덜 쓰는 단점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특급까진 아닌지라.
절친인 이대호와 플레이 스타일까지 정말 똑같다. 물론 클래스는 차이가 나지만. 또한 이대호는 최준석에 비해 유연성과 내구성이 월등해 주전으로 1루 수비를 소화할 수 있는 반면 최준석은 풀타임 1루 수비도 힘들다. 1루 수비가 가능한 것은 의외로 가치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여기에 최소한의 주루 플레이조차 안되니 최준석을 영입한 팀은 최준석 하나 쓰려고 대주자, 대수비까지 3명을 기용해야 한다.
* 그 별명에 맞게 야심한 밤에 항상 야식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롯데 1기 시절에 [[이대호]]와 [[룸메이트]]였고 [[이대호]]가 살찐 이유는 최준석과 같이 야식을 먹은 이유도 있다고 한다. 사실 최준석도 포철공고 때는 100M를 11초에 끊는~~실화?~~ 호타준족 포수였다. 그래서인지 두산에 간 이후 이대호에게 장갑을 빌려줄 정도이며, 실제로 롯데 락커룸에 자주 놀러가서 이대호 배트를 많이 받아온다고 한다. 롯데 출신이다보니 롯데 고참들과도 두루두루 친해서 라커룸에 가는 것도 거리낌없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두산 시절에는 [[이대호]]와는 등번호도 10번으로 똑같았다. 승승장구에 출연해서 말한 바에 따르면, 롯데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될 때 일부러 이대호와 같은 등번호를 택했다고 한다.
- 마기/344화 . . . . 31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가 털어놓은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 일종의 사후세계의 진실.
* 알마트란 시대의 희생자들은 모두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무기력하고 지루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 그런 모습을 보고 [[와히드]]와 [[셋타]]는 그가 보통 인간을 초월한 "운명의 구현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아르바(마기)|아르바]]에게 자신이 사후세계,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겪었던 일을 알려준다. [[연백룡]]과 싸우다 패한 것만이 기억에 있는 그는 갑작스럽게 아무 것도 없고 시간 조차 흐르지 않는 곳으로 날려져 당황하지만 곧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던 삼인조와 말문을 트는데 이들은 [[알마트란]] 시대 솔로몬 대왕의 동료였던 [[와히드]]와 [[셋타]], 그리고 와히드의 자식 [[테스]]였다.
* 알리바바는 유명인을 만난 팬처럼 "난 당신들을 안다"며 들뜬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와히드는 "공처가"에 셋타는 [[이스난]]의 동생이라고 아는 척을 한다. 당사자들은 꽤 불쾌해하지만. 그리고 테스에 이르러서는 그 불행한 최후에 대해 알기에 말을 아끼지만 테스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테스는 곧 알리바바에게 관심을 거두고 아버지와 하던 돌맹이 쌓는 놀이로 돌아간다. 부자는 번갈아가며 돌을 쌓아올리는 놀이를 반복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왜 그런 걸 하냐고 묻자 달리 할게 없어서 그렇다고 답한다. 잘 보면 이들 뿐이 아니다. 대부분 돌을 쌓거나, 아니면 도미노처럼 늘어놓거나 자신의 변함없는 기억을 멍하니 감상한다. 그저 보기만 해도 무기력하고 지루한 모습들. 그래서인지 이들의 몸에는 버섯같은 것이 마구 피어나고 있다.
* 알리바바는 아까 셋타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역시 난 죽은 것이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와히드는 냉담하게 "사실이고 다시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알리바바는 자신이 정말로 죽었다는 충격에 휩쌓인다. 설마 이런 어중간한 시점에. 뒤늦은 주마등이 펼쳐진다. 현세의 사람들. 그가 사랑하고 소중히했던 이들의 모습. 이제 볼 수 없게 된 그리운 모습.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알리바바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 셋타가 와히드랑 달리 "딱 한 명 여기서 나간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와히드도 그런 녀석이 있다는건 알지만, 그건 예외일 뿐이라고 하는데.
* 전례가 있다는 말에 작은 희망이 생겼다. 알리바바가 그게 누구냐고 묻자 와히드와 셋타가 입을 모아 대답한다.
다윗. 그 또한 솔로몬의 지혜에서 들었던 이름이다. 알리바바는 귀를 의심하며 "솔로몬의 아버지이자 알마트란의 사악한 마법사"를 말하는 거냐고 묻는다. 와히드는 그가 맞다면서 그 또한 여기에 있다가 얼마 전에 여기서 나갔다는 충격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알리바바가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니 이번엔 셋타가 좀 더 정확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곳은 정확히 말하면 알마트란에서 죽은 자들이 검은 루프가 되어 집결되는 곳이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다. 셋타와 와히드도 이곳에서 그와 재회했다.
셋타와 와히드는 할 말도 잃고 그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 그들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고 말한다. 흉악할 뿐 그저 쾌락 범죄자, 광신자라고 무시했던 다윗은 보통사람과 전혀 다른 인종이었다. 알리바바가 어떻게 다른 거냐고 묻는다. 와히드는 그를 "더 거대한 사명을 짊어진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 무한한 시간과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야망을 간직하는 것은 보통 정신력으론 불가능하다. 실제로 셋타와 와히드 같은 인물도 여기서는 순식간에 삶을 포기했다. 셋타는 그가 무시무시한 인물이라며 이렇게 평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중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었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와 일체화해서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묻는다. 와히드와 셋타는 그게 말 그대로의 의미, 신드바드에서 "씌인다"는 거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실감을 못하는데 셋타는 "너희 세상은 알마트란처럼 다윗에 의해 멸망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 셋타는 테스와 놀아주면서도 설명을 계속한다. 다윗은 말하자면 사이코패스. 살육도 그에겐 수단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이곳에 있는 그의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면전에서 "너희는 포석"이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에겐 동료도 가족도 의미가 없다. 그러니 현세로 돌아간 다윗이 성궁에 가기 위해 또 한 번 세상을 "포석"으로 삼을 건 말할 것도 없다. 알리바바가 그럴 수는 없다며 막으러 가겠다고 하지만 와히드가 비웃음조로 손사레를 친다. 차원의 벽은 넘을 수 없다면서. 셋타는 어차피 알리바바도 머지않아 과거의 기억과 무한한 시간만 남은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갈 거라 예견한다. 방법이 없다는 말에 알리바바는 크게 낙담한다.
하지만 그가 포기하는 것 같진 않다. 알리바바는 아직도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와히드는 그런 점을 이상하게 여긴다. 자기들은 여기에 오자마자 삶에 대한 집착도 감정도 사라졌는데, 알리바바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알리바바는 버섯도 피지 않았다. 처음 기억을 보고 있을 땐 피어있었지만 테스 일행과 대화를 하는 동안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 박주영 . . . . 31회 일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카디프 대첩|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박주영/국가대표 경력#s-3.2|박시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동료를 이용하는 움직임,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날카로운 감각과 창의성 높은 플레이, 뛰어난 볼 컨트롤, 기존의 한국 공격수들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문전 앞에서의 침착한 볼처리와 정확한 슛으로 한국에서 '축구천재'로 불렸었다.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인 2001년 프로구단 포항스틸러스의 후원으로 브라질에 1년간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2003년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2004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득점왕과 MVP 등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32경기에 출장, 18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보였으며 그 해 프로축구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 득점왕 등을 휩쓸었다. 특히 프로축구 최초의 만장일치 신인상을 이끌었던 점과 당시 사기캐릭으로 불리던 고려대 선배 이천수와 MVP 경쟁을 했다는 점은 K리그 역사상 최고의 루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소년대표로 일찍부터 국가대표로 뛰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임에도 득점을 올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7년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등에서는 활발한 경기를 펼쳐 2008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하여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에서 한국 축구 역사 상 첫 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2018년 FC 서울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는 와중에 경기를 뛰지 않으면서, 팀 성적 부진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부상설 불화설 태업설 등 온갖 [[루머]]가 나돌았다. 하지만 본인이 [[SNS]]를 통해 부상설을 일축했고, [[이을용]] 감독이 '''주전 경쟁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완전히 밀렸'''음을 밝혔다.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백호와 동급이다~~)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초년병땐 한국 공격수의 평균보다 키핑력이 좋았지만, 세계레벨에서는 키핑력을 활용하는 면에서 약점을 보였다. 낮은 레벨에서는 시야와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공을 끌어도 별 상관이 없었지만 높은 레벨일 때는 약점으로 작용했던 것. 등진 상태나 회전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프리미어리그 레벨의 수비수들은 박주영보다 운동능력이 뛰어났기에 박주영의 다음 동작이 따라잡히면서, 결과적으로 공을 질질 끌면서 템포만 잡아먹는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 때에는 뛰어난 순간 속도와 예측력을 기반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 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반대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볼 키핑력과 순간속도,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무릎 부상을 포함한 피지컬 하락과 폼이 죽으면서 이런 스타일의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예측력은 유효한 강점으로 상대 수비의 움직임이나 공의 흐름 같은 것을 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흐르는 볼에도 강점이 있다.
위치선정도 뛰어난 편이다. 특히 유럽 진출 전 선수생활 초기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타다가 침투해서 득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진출 이후 피지컬을 보강하면서 버티고 헤딩을 따내는 스타일로 변모했지만, 어린시절 피지컬이 부족한 시절에는 라인선상에서 왔다갔다하며 침투해서 골을 넣거나 나와서 공을 받고 수비수를 제껴서 넣는 2지선다형 공격수였다.
집중력과 투쟁심 부족도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침착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좋지만 페이스를 확 끌어올려야 할 지점에서도 침착하게 본인의 페이스와 리듬만 유지하다 템포를 못 따라가 잠깐 멍하니 있는다거나, 안일하거나 어이없는 플레이가 한 번씩 나오곤 한다. 투지 부족도 가끔 지적된다. 그래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팀과 경기하는 아시아권 대회에서 맹위를 떨쳐야 함에도 최용수나 황선홍 이동국처럼 상대를 압살하는 플레이는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 약팀과 붙을 경우 본인의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 루즈한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기 때문이다.
확실히 왕자병 기질만을 멘탈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긴 한데, 박주영의 문제는 이 왕자병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투지나 집중력 부족도 동시에 지적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팀 페이스가 어떻게 흘러가건 항상 내 페이스는 유지하지만, 또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강한 상대와의 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또 집중력이 떨어지는, 그렇지만 딱히 대체할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는 없는 대단히 드문 케이스.
* 박나모토 : 아스날에 잠시 소속되었던 일본 축구선수 이나모토와 같다 하여. 이나모토는 아스날이 경제적 목적으로 영입한 후 출전시키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 박힐러, 프리스트 박 : 박주영이 아스날을 떠난 이후 몇몇 선수가 박주영 아스날 재직시에는 건강했으나 그 전후에는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인 것이 발견, 박주영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팬들이 환호하며 찬양하기 위해 붙인 별명. 사실 박주영은 벤치에서 힐과 버프를 주며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역할로 기용한 벵거의 혜안이었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박주영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종교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며 성공한 별명.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스텔스박 : 브라질 월드컵에서 공격수인데 마치 스텔스기와 같이 적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엄지를 들어올릴 때 빼곤 아군의 시야에도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은 덤.
* 스티붕밥(박): 모나코 장기 체류를 통한 병역 연기한 모습이 같은 예체능계에 종사하던 00년대 가요계의 전설적 댄스 가수 [[스티브 유]]와 같다 하여 그의 별명 '스티붕 유'에서 이름을 따와 사용되었다. '밥'은 밥줘영에서 온 것.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축구)|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토템박, 토템풋볼 : 아스날 시절 시작된 별명이다. 신비적, 주술적 요소를 듬뿍 함유하고 있는 별명으로 박힐러, 프리스트 박 등과 그 얼개를 함께 한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추태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주로 퐈이야와 짝지어 불린다.[* 월드컵에서의 [[정성룡]]은 좀 억울한 바가 있지만.] 이들 둘은 필드에 서 있을 때는 무용지물이지만 벤치에 앉고 나서야 마치 옥침대와 같이 이로운 영향력을 은은하게 발휘한다는 취지의 별명이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http://shootkim.khan.kr/493|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공식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여담]]으로 그의 성격자체가 한 몫했고 그 성격의 소유자가 어린 시절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
* 풋볼 매니저에서의 능력치는 [[K리그]] 시절에는 유럽 주요 리그를 제외한 타 리그는 스카우터를 파견하지 않고 리그의 수준에 맞춰 랜덤 포텐[* 첫 등장인 06버전에서 -9포텐, 07에서는 -8포텐]으로 대신하게 되어있는지라 선수의 능력치를 잘 표현을 못했으나 유럽리그인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활약에 맞추어 능력치가 개편되었다. 개편 이후 2010까지 양발은 유지한 채 포워드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그에 맞춰 구단 내의 위상이 핵심 선수로 변경됨에 따라 초기 시작 시기에 영입을 타진하려면 400억 이상의 영입료를 지불해야 한다. 2011버전에 또다시 개편되어 양발 사용이 오른발 사용으로 바뀌면서 그에 비례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스날에 가면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한 탓인지, 2012에서는 골결정력이 11로 내려가는 등 폭풍 하향을 먹었다. 2013에도 골결정력이 또 10으로 내려갔으나 AS 모나코 시절의 능력치가 높게 평가되었는지 신체적 능력, 퍼스트 터치[* 정식 발매판에서는 볼 트래핑] , 정신적 능력은 그리 너프되지 않아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따라서는 다득점을 노릴 수 있다. 2015에서는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과 아스날의 강제 방출 및 무적기간 덕분에 전작의 유럽 하부리그 준주전급 선수에서 유망주급 능력치로 변경되어 엄청난 너프를 먹었다.[[http://oi62.tinypic.com/2q22yid.jpg|##]]. 모나코 시절까지는 중간은 가던 프로 의식도 아스널에서의 먹튀 행각과 셀타비고 임대 시절 보여준 워크에식 때문인지 fm 2018 기준으로 멘탈갑 수준의 '''6'''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발로텔리와 동급'''이다. ~~'''멘탈갑의 전설들 테베스는 2, 아드리아누와 카사노는 3.'''~~
- 스틸오션/사령관 . . . . 31회 일치
attachment:후지와라_마코토.png
* 후지와라 마코토(Fujiwara Makoto)
* 강철의 왈츠(Steel Waltz) - 함포와 어뢰발사관의 회전 속도 8% 증가.
* 복수의 여신(Goddess of Vengeance) - 적에게 피격시 75% 확률로 발동. 30초간 함포와 어뢰의 데미지 15% 상승.
* 개량 장비(Advanced Equipment) - 무전사로 배치시 발동. 레이더와 무전기의 내구력 10% 상승.
* 개량 장비(Advanced Equipment) - 무전사로 배치시 발동. 레이더와 무전기의 내구력 10% 상승.
* 강철의 왈츠(Steel Waltz) - 함포와 어뢰발사관의 회전 속도 8% 증가.
attachment:미카와_군이치.png
* 미카와 군이치(Mikawa Gunyichi)
* 섬간 공격(Cross-island Attack) - 적을 명중시키면 20% 확률로 발동. 20초간 함포와 어뢰의 사정거리 10% 증가. 비행갑판 쿨타임 10% 감소.
* 지상근무 훈련 I(Ground Service Trainig I) - 비행갑판와 수상기 사출기의 준비 속도 1% 증가.
* 이탈리아의 방공망(Italian Air Defense) - 액티브. 2CP 소모. 15초간 대공포와 기관총 데미지 15% 증가. 쿨타임 120초.
* 복수의 여신(Goddess of Vengeance) - 적에게 피격시 75% 확률로 발동. 30초간 함포와 어뢰의 데미지 15% 상승.
* 와후(Wahoo)[* USS 와후. 미해군이 가토급 잠수함으로 더들리 모튼이 함장을 맡은 배였다. 665명을 태운 [[부관연락선]] 콘론마루(곤륜환)를 격침시킨 전과로 유명하다. 콜론마루 격침 이후 일본군 해군에 의해 격침, 모튼 함장을 포함한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다.] - 잠수함에 배치한 상황에서 적에게 공격당할 시 발동. 어뢰 데미지 5% 증가. 고장 확률 10% 감소.
* 함대 항해(Fleet Cruise) - 액티브. 3CP 소모. 자신과 1.5km 내 아군의 주포 정확도와 기관총 명중률을 강화. 속도 1노트 하락. 강화되는 수치는 범위 내 아군 함선 수에 따라 정해짐. 1척에 3%. 이후 5척까지 0.5%씩 증가. 쿨타임 120초.
* 지상근무 훈련 I(Ground Service Trainig I) - 비행갑판와 수상기 사출기의 준비 속도 1% 증가.
* 울프팩(Wolf Pack) - 액티브. 3CP 소모. 30초간 반경 1km 내 아군 잠수함의 속도와 소나 범위를 강화. 강화되는 수치는 범위 내 아군 잠수함 수에 따라 정해짐. 1척에 3%. 이후 5척까지 0.5%씩 증가.
* 대공탄막(Anti-air Barrage) - 포수로 배치시 발동. 대공포와 기관총의 데미지 15% 증가.
* 함대 항해(Fleet Cruise) - 액티브. 3CP 소모. 자신과 1.5km 내 아군의 주포 정확도와 기관총 명중률을 강화. 속도 1노트 하락. 강화되는 수치는 범위 내 아군 함선 수에 따라 정해짐. 1척에 3%. 이후 5척까지 0.5%씩 증가. 쿨타임 120초.
* 라인 훈련(Rhine Exercise) - 전함 함장으로 배치시 발동. 함포의 조준 속도와 수리 속도 10% 증가.
- 이상백 (1904년) . . . . 31회 일치
'''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체육인, 작가, 언론인으로, 호는 상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이다.
사학자로도 활동하였고 각종 사회단체와 문교부 고시출제위원, 중앙공무원교육원 명예교수 등을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 중반의 농구선수였으며 각종 올림픽 대회의 선수단 대표와 대표단장을 역임하였다. 학회 활동으로는 [[진단학회]], [[연경학회]], [[대한민국 학술원]]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15년]]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19년]] [[3·1 만세 운동]]의 여파로 대구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에 참여하려다가 실패하고 잠시 은신하였다. 그 뒤 [[부산항]]에서 배편으로 [[일본]]으로 유학, 일본 와세다제일고등학원(早稻田第一高等學院)을 거쳐, [[1923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에 입학했다.
[[1924년]] 일본의 [[일본 대학농구연맹]]을 결성하고 [[와세다 대학]] 농구팀 대표로 [[일본 대학농구연맹]]에 참여하였으며, 일본 대학농구연맹 농구부 주장으로 [[미국]]에 원정 경기에 출전하여 여러 번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밖에 축구, 야구에도 주전 선수로 실력을 보여주었다. [[1927년]]에 [[와세다 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모교인 [[와세다 대학]] 동양사상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일본]]에서 수학, 연구하는 동안에도 자주 배편으로 귀국, [[경성]]과 [[일본]]을 내왕하며 국내 학계 학자들과 긴밀히 제휴하거나 학문적인 견해를 주고 받앗으며, [[진단학회]]의 결성준비와 창립 발기에 참여하고, [[진단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또한 [[진단학회]]의 기관지 [[진단학보]]에도 칼럼과 논문을 송고하였다. [[1927년]]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 3년간 동양학, 사회학을 수학하고 [[1930년]]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1930년]]에 [[일본농구협회]]를 창설하여 창립회원으로 활동했으며, 그해 일본농구협회 상무이사에 선임되었다. [[1931년]]에 일본체육회 상무이사를, [[1935년]]에 일본체육회 전무이사를 맡았다. 그는 일찍부터 유명한 농구선수로 활약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당시의 체육계 경력이 인정되어 만년에는 체육 이론가와 행정가로서 활동하였다.
그후 제11회 도쿄 올림픽 대회 유치위원과 준비위원으로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등을 방문하여 대회 유치와 준비에 협조를 구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체육계의 공로자로 칭송받았다. [[1939년]]부터 [[1941년]]에는 모교인 [[와세다 대학]] 재외특별연구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동양학을 연구했으며,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였으나 도쿄 올림픽 유치와 추진의 공로로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1944년]]에는 [[여운형]]이 결성한 지하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서자들을 차별대우하는 문제인 '서얼차대(庶孽差待)의 연원에 대한 일문제'를 [[진단학회]] 학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전기와 건국 초기 분야에 대한 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 이조 태조의 사전개혁운동(私田改革運動)과 건국 후의 실적, 위화도회군고(威化島回軍考),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취하여', '[[고려]]말 이조초에 있어서의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운동(田制改革運動)과 그 실적' 등 고려 말, 조선 건국, 조선 전기 분야의 정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였다.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를 발표한 이래 그는 [[정도전]]이 역적으로 몰린 것은 [[정도전]]의 잘못도 있지만 [[정도전]]의 정적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비난, 부정적인 시각만 강조되어 왔음을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로 고대사와 중세사, 상고사를 연구하는 타 학자들과 달리 그는 주로 조선 왕조사의 연구에 집중하여 힘썼으며 [[조선]] 건국과 조선 초기 분야의 연구에 업적을 이룩하여 [[1963년]] [[건국훈장]]과 [[문화훈장 대통령장]](大統領章)을 수여받았다.
그는 대학에서 국사, 근세사 외에도 사회학사, 한국사회론 등을 강의하였으며, 《질서와 진보》, 《중간계급의 성격》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사회학과의 개설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래 국내 최초로 사회학과를 설립하고, 대학 강의와 교양지 및 학술지를 통해 사회학을 보급하였다. 또한 사회학을 연구하는데 기초자료로서 통계조사와 설문을 채택, 통계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어 사회학의 연구와 보급을 위해 외국 사회학을 소개하는 데도 힘써, 미헬스(Michels,R.)의 《정치 사회학》, 루세그 와런의 《사회학개론》 등의 책을 [[한글]]로 손수 번역, 이들 서적의 [[번역서]]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회학은 주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고전 사회학 이론을 국내에 도입하되 고전 사회학 이론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통계학을 연구하면서 사회 조사에도 관심을 기울여 농촌, 도시, 사회 계층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조사 연구와 설문 등을 하였다. [[황해]]안의 여러 섬들에 관한 조사보고서인 《서해도서 (西海島嶼)》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문교부]] 대학교수자격 심사위원회 위원이 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3·1 문화상]] 심의위원 회 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여행을 좋아하여 일찍부터 그는 국내 명승고적지와 세계 5대양 6대주를 수없이 돌아다닌 여행가였으며, 기행문 등을 남기기도 했다.
*《질서와 진보》
* 루세그 와런, 《사회학개론》
* [[일본]] [[와세다 대학교|와세다]] 제1고등학원 [[전문학사]]
* [[일본]] [[와세다 대학교]] 사회철학과 [[학사]]
* [[일본]]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사회과학]] [[석사]]
[[분류:여행 작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IOC 위원]][[분류:이병도]][[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여운형]][[분류:김규식]][[분류:장건상]][[분류:박중양]][[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신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정재(영화배우) . . . . 31회 일치
||<:><#4C4C4C>'''{{{#FFFFFF 본관}}}'''||[[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전주 이씨 [[효령대군]] 20세손, 시조 43세손 宰자 항렬이다. 동일 항렬 유명인으로는 [[이휘재|이영재]], [[이혁재]], [[이학재]] 등이 있으며, [[이경규]]와 [[써니(소녀시대)|이순규]]는 손자, 손녀 뻘이 된다.] ||
||<:><#4C4C4C>'''{{{#FFFFFF 소속}}}'''||아티스트 컴퍼니[* 16년 5월 부로 씨제스와 계약을 끝낸 뒤 정우성과 함께 설립했다.] ||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가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쪽은 [[의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soso--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하지만 본인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2008년에 아레나와 한 인터뷰를 보면 “세상 살면서 그 정도로 안 힘들어본 사람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 힘들었던 것처럼 과거를 끄집어내 말하면서 동정표를 유도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는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스토리는 있고 그 강도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 아니겠나." 이제까지 친형에 대해서 함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아무튼, 고생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평온하고 맑은 소년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대신에 아트스쿨 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도 연기 외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라고 한다.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한다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압구정동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 매니저의 눈에 들어서 모델로 발탁된다. 그리고 모델료가 알바비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바로 알바를 그만두고 모델업계에 몸을 담게 된다.[* 절친 [[정우성]]과 연예계 입문 테크가 같다.] 그리고 그 후 93년에 출연한 롯데 [[크런키]] 초콜릿 광고가 대박을 쳤다. 90년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4MKFjzJ2Q|나만의음악]]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 재희 역으로 발탁된 것도 이 초콜릿 광고 덕분이라고. 사실 같은 해에 롯데 초콜릿 다른 제품인 [[가나초콜릿]] 광고도 찍었지만 크런키 쪽이 더 인상에 강하게 남은편. [[https://www.youtube.com/watch?v=trE8bqdhYfA|가나 초콜릿 광고]]
배우이길 떠나 자신이 영화를 찍어보려고도 해보고 나름 영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상당히 진지하다고 평가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연기력에 대해선 다소 평이 엇갈린다. 몇몇 영화에선 굉장한 열연을 해보이긴 하지만 일상적인 연기를 맡기면 어색한 티가 많이 난다는 편. 그러나 그의 연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는 데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래의 다른 연기자들([[장동건]], [[정우성]])에 비해 다양한 역을 소화하기에 보다 적합한 비주얼이고 그래서 하나의 색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색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데뷔 이후에도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되지 않고 야망을 가진 청춘, 고뇌하는 형사, 야비한 도둑, 성적 판타지가 있는 동사무소 직원, 언더커버 경찰, 속물 주인집 남자, 두 얼굴의 독립군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그 자신도 '캐릭터 수집'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여러가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점이 메리트라면 메리트. 사실 《[[하녀]]》 이전에는 조금 주춤한 것 아니냐는 평이 대세였으나 그 이후로는 오히려 더 다양해진 영화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분출하는 연기보다는 안으로 흡수하는 연기를 더 잘 한다.
영화 [[하녀]]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도둑들]]에선 비열한 뽀빠이 역을 맡아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필모를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 [[신세계(영화)|신세계]]를 통해 다시한번 배우 이정재를 대중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언더커버 이자성 역을 맡아 특유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내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캐릭터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겉으로 막 내뿜고 딱 봐도 --비주얼부터--강한 캐릭터인 정청에 비해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는 이자성이 밋밋할 수도 있으나 내면 연기가 원래 더 어려운 법이다.] 같이 출연한 최민식이 이자성 역할에 [[정우성]]과 이정재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자성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위태로운 분위기가 이정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결국 이정재가 이자성을 연기하게 되었다. 19세 관람 불가인 조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이자성 때문에 지나간 청춘스타로만 여겨졌던 이정재가 다시 젊은 세대들의 오빠로 컴백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사회장 런웨이씬과 반달처럼 휘는 이정재의 눈웃음이 백미.[* [[파일:2wr59IK.gif|width=70%]]] 실제로 저 마지막 눈웃음 때문에 신세계를 중복 관람한 여성팬들이 많았다.
제대 후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연기가 맞는 옷인지도 모르겠고 갑작스레 얻은 인기와 돈 때문에 이 직업이 자신의 길인지도 잘 모르던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당시 소속사 부도로 인해 그 빚을 모두 떠안게 되어 심적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모래시계나 느낌같은 경우 2010년대에도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볼수 있는데 발연기가 무엇인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하다. 다만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저 당시에 드라마에서는 뭔가 대단한 연기를 요구한 일이 별로 없었고 그 당시는 그정도했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진짜로 연기가 즐겁다고 느낀 건 90년대 말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를 찍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여태까지 맡았던 캐릭터들과 많이 다른 쌈마이 역할이었고 영화 자체도 다소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이후 정우성과는 평생을 같이 하는 친구사이가 된다. 이 영화로 1999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 후보로는 [[최민식]], [[한석규]], [[박중훈]], [[최민수]]와 함께 쟁쟁한 배우들. 이 때 나이가 27세였는데,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청룡영화상 한정이고, 전체 영화상을 따지만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홍경인]]이 최연소 수상자이며, 이 기록은 안깨지는 중.]
우습게도 청룡영화상의 저주인양 거의 10년간 암흑기가 지속된다. 물론 이영애랑 작품했던 선물도 잘되고[* 무려 [[김태희]]가 이영애의 아역으로 나온 영화다] 태양은 없다의 홍기역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 브라더스]]는 [[이범수]]와 함께하면서 잘된작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둘다 아주 크게 대박난 작품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동안에도 활동을 활발히 했다. 물론 90년대 중후반에 비해서 줄어들긴 했지만 꽤나 많은 일을 했는데 청룡영화상을 받은 해에 개봉했던 [[이재수의 난]]은 배우들 모두가 고생은 고생대로 했음에도 흥행 참패. 당대의 여배우였던 [[심은하]]의 은퇴작 인터뷰도 망했다. 장진영과 함께한 오버더레인보우, 이미연과 함께한 [[흑수선]], 곽경택 감독이 천만을 노리고 [[장동건]], 이정재를 캐스팅해 만들었던 [[태풍]]은 대대적인 홍보 및 밀어주기까지 했으나 500만에 그쳤다. 문제는 제작비가 어마어마한 작품이라 500만도 적자였다는 것. 이 후 [[에어시티]]로 복귀하면서 드라마에서라도 재기를 꿈꿨으나 [[최지우]]-[[이진욱]]만 연결해주고 끝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의 감독이 각잡고 만든 [[트리플]]에 출연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망했다. 1999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사의 이정재는 흥행부도수표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는 거의 퇴물급의 배우가 되어갔다.
이후 본인 인생에 [[모래시계]]와 더불어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 될 《[[도둑들]]》, 《[[신세계(영화)|신세계]]》로 연기, 인기, 흥행 면에서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퇴물급으로 전락하며 CF나 근근히 찍어가던 한물간 청춘 스타에서 압도적인 분위기와 중후한 매력을 지닌 폭발력있는 중년 연기자로 정착했다.
이후 송강호와 함께한 《[[관상(영화)|관상]]》에서 [[수양대군]] [[http://img.theqoo.net/img/kuzzB.gif|역]]을 맡았는데 러닝타임에 반만 출연하고도 송강호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갔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수양대군을 연기하였는데 이정재 본인 또한 이 역할을 놓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한 것으로 유명하다.
배우 본인은 이 역할을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 등을 시청하면서 극중 '[[이리]]'의 상이라 표현되는 [[수양대군]]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정재에게 [[관상(영화)|관상]] 시나리오가 온 것은 2012년 여름에 부산에서 [[신세계(영화)|신세계]]를 촬영할 때였는데, 그 때 감독이 직접 찾아와 대본을 전했다고. 처음에는 더 센 이미지의 남자 배우가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출연을 망설였지만 [[하녀]]의 고훈 캐릭터에서 배어나온 기품과 카리스마를 원한다는 감독의 설득에 결국 역을 맡게 된다. 결과는 대박. 배우 본인의 아버지까지 네가 무슨 [[수양대군]] 이미지를 갖고 있냐면서 말렸다는데, 결국엔 역사상 최고로 섹시한 [[수양대군]]이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연기력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 2013년 9월 2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데뷔 20주년을 맞아 이정재를 위한 특별전이 열렸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은 여러번 있었지만 4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배우를 대상으로 한 특별전은 이정재가 처음. 주제는 '''"영원한 젊은 남자 이정재"'''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팬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일본에서는 두 번의 팬미팅을 가진 적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팬미팅 류의 행사를 한 적이 없다.] 행사의 공식명은 GV, 즉 관객들과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심도 깊은 자리였으나, 곧 400여명이 함께한 팬미팅으로 변질 되었다. 약 한시간 반 동안 팬들과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노래도 부르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즉석에서 걸어 달라는 팬들의 요구에 걸어도 주는 등 팬미팅을 방불케 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이정재]]가 직접 준비한 클레이 비누를 일일이 팬들에게 선물해 주면서 포옹을 해 준 것''' 준비한 선물보다 사람들 수가 더 많아서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에게 포옹을 해주었으니,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꿈 같은 1시간 반이었다. 관객 절반 이상이 여성들이다 보니 400여명과 포옹이 끝난 후 이정재의 수트 상의 한쪽 부분이 온갖 화장품으로 범벅이 되어 하얗게 색이 변해 있었다. 여담으로 당시 [[신세계(영화)|신세계]]와 [[관상(영화)|관상]] 개봉으로 이정재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라 표 구하는 게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전날부터 밤샌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새벽 5시에 나온 사람들도 10등안에 들지 못했을 정도. 12시에 온 사람들은 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으며 한국영상자료원 측도 이런 진풍경은 처음이라며 매우 놀라워 했다. 항간에 들리는 바로는 옆건물인 CJ E&M 사옥의 (엠카 보러 온) 줄보다 길었다고 하니... 본격 40대 아이돌 탄생.
더불어 공약으로 게릴라 데이트를 찍으면서 [[연예가 중계]] 생방송 스튜디오 방문도 걸었는데 바로 다음날인 8월 8일에 실제로 연예가 중계 생방송 스튜디오에 나와 15분 가량 인터뷰를 한 뒤 돌아갔다.
* 말끔하고 잘생긴 외모로 연기력에 종종 오해를 받는 배우 중 하나다. 범죄자나 사기꾼, 사채업자, 배신자역할의 연기에서 쿨한 외모와 달리 진가를 보이는 배우로 그가 이런 역할만 맡았다 하면 최소 중박은 치거나 상을 탔다. 그가 처음으로 사채업자 연기를 했던 [[태양은 없다]]에서 그는 생애 최초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탄다. 오 브라더스에서도 사채업자를 맡아서 당시 명절 특수를 타긴했지만 중박을 쳤고, 도둑들에선 도둑놈역할로 천만배우까지 되었다.
* [[심은하]]와 연달아 두작품을 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재수의 난, 인터뷰).
* 자타공인 연예계의 대표 패셔니스타. 그가 레드카펫이나 공식행사에서 입은 의상은 바로 인구에 회자되며 무슨 옷을 입고 나타나는지가 대단한 관심거리가 된다.[* 실제로 시상식에 참가하면 그 날의 패셔니스타로 무조건 뽑힌다고 봐도 될 정도로 댄디하면서 멋진 수트핏을 연출한다.] 유수 명품 패션 브랜드의 파티에도 꼭 초대받는 패션 셀렙. 개인적으로는 댄디하고 베이직한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하며 좋아하는 브랜드는 입생로랑, 디올옴므 등이라고... 그렇지만 럭셔리하게 옷장을 몇 개씩 채우고 있을 이미지와는 다르게 쇼핑은 일 년에 두세번 하는 정도로 그친다고. 돈 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며 옷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故우종완과 출연한 [[케이블]]TV의 프로그램 '토크 앤 시티'에 보면 몇십만원짜리 티셔츠를 비싸서 사기 싫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 선역으로 나오면 해당 영화의 흥행이 실패하거나 평이 낮아지는 징크스가 있다. 대표작이라 불릴만한 [[도둑들]], [[신세계(영화)|신세계]], [[암살(영화)|암살]] 등에서 모두 악역으로 나왔으며 흥행도 평도 상당히 좋았으나 선역으로 나온 경우 [[시월애]]같이 흥행에 실패하거나 [[인천상륙작전(영화)|인천상륙작전]]이나 [[신과함께-죄와 벌]]처럼 평이 좋지 않거나 미묘하다. 그나마 전편에 이어 선역으로 나온 [[신과함께-인과 연]]이 나름 준수한 평가와 함께 좋은 흥행 스타트를 끊으면서 징크스를 약간이나마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 토리코/395화 . . . . 31회 일치
* 미도라의 유해는 아카시아와 형제들이 수행하던 곳에 묻힌다.
* 코마츠는 오오타케, 나카우메와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준비하며 그간의 모험을 회상한다.
* 피로연 음식은 토리코의 풀코스. 기존 풀코스에 지금까지 토리코와 코마츠가 함께 포획했던 식재가 곁들여진 완성판이다.
* 토리코는 식장 한 곳에 빈 테이블을 놔뒀는데, 거기에 이치류, 지로, 아카시아, 플로제의 식혼이 찾아와 함께 즐긴다.
* 토라코와 코마츠는 미도라의 묘를 정한다. 작고 이름도 없는 비석 앞에 토리코가 가져온 식재가 놓여있다. 원래는 이치류와 지로가 묻힌 식몰의 곶으로 정했지만 미도라의 식혼의 의향에 따라 삼형제가 수행하던 땅에 묻힌다.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지만 "형제가 같이 묻혀봐야 저세상에서 싸우기 밖에 더 하냐"는 말을 했다. 미도라는 아예 무덤도 필요없다고 했지만 토리코가 매주 풀코스를 가져다 주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이곳을 지명한 것이다. 항상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 둘 만 참석한 장례식이 끝나고. 때마침 인간계에서 호출이 온다. 토리코와 린의 결혼식이 임박했다는 호출이다. 두 사람은 서둘로 코마츠가 일하는 구르메 호텔로 달려간다. 결혼식 준비는 이미 끝나있고 린도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 토리코도 턱시도로 갈아있고 합류. 린은 토리코가 예쁘다고 하는 말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도매상 톰을 비롯한 인연있는 요리사, 미식가들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결혼식과 더불어 오늘 피로연의 음식, 토리코의 "풀코스"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예식은 금방 끝나고 곧바로 피로연의 시작이다. 하객이 무려 5천명. 한 번이라도 토리코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축하해주러 왔다. 구르메 계의 주민들은 물론 스타준을 위시한 미식회의 인물들까지 얼굴을 보인다. 코마츠는 조리장으로서 꼭 성공적인 피로연으로 만들자고 기합을 넣는다. 오오타케, 나카우메도 조력하러 온다. GOD를 요리한 전설의 요리사들이 모두 모이자 주방은 한 순간에 달아오른다.
* 린은 식장 한켠에 빈 테이블이 놓여있는걸 발견한다. 그런데 여느 가정집에서나 쓸법한 낡고 평범한 테이블이다. 린이 뭐냐고 묻자 토리코는 "어떤 식혼들을 초대한 자리"라며 꼭 와주길 기대한다고 말하는데.
* 풀코스의 "전채", BB콘이 등장. 하지만 통상의 BB콘이 아니라 치킨 키슈와 비장의 조미료 "멜크의 별가루"가 토핑돼 있다. 하객들이 대호평하자 초대 멜크와 2대 멜크도 만족스럽게 미소짓는다. 치킨 키슈도 공들인 작품. 다양한 재료로 만든 페이스트리 안에 커스타드 크림을 넣은 음식인데 코마츠가 토리코와 처음 만났을 때, 토리코가 낚시로 잡았던 가재피시와 오미 독수리를 넣었다. 코마츠는 풀코스 안에 자신과 토리코의 인연과 여정을 새겨넣은 것이다.
* 두 번째 요리는 "수프" 센츄리 스프. 아이스헬에서 죽을 고생을 해 손에 넣은 식재다. 당시 토리코와 동행했던 멤버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그때 구르메 쇼윈도의 붕괴를 막지 못하고 끝내 센츄리 스프는 실전되지만 마지막 한 방울을 마신 코마츠가 천부적인 재능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미도라도 감탄했을 정도의 식재로 인간계의 재료지만 구르메계의 주민들도 만족스럽게 먹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요리. 바게트 대신 함께 나간 약선떡도 에코김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유다는 사수가 침공했을 당시 코마츠의 천부적인 재능에 놀랐던 일을 회상한다.
* 세 번째 "생성요리", 오가이(먼 바다의 기억). 킹듀 소스를 곁들이고 복고래, 샤이밍 구라미, 마담피쉬, 어나더까지 함께 제공된다. 모두 토리코와 코마츠가 함께 포획했던 생선들. 특히 코마츠는 복고래를 포획하던 일을 떠올리며 눈물 짓는다. 술을 즐기는 맨섬 회장은 복고래 지느러미 술을 함께 마시며 취한다. 블루 그릴의 주민들과 치코도 와서 코마츠가 요리한 어나더를 먹고 감탄한다.
* 그러는 사이 토리코는 낡은 테이블에 기다리고 있던 식혼들이 도착한걸 눈치챈다. 이치류와 지로. 어느새 도착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네 번째 "고기요리", 엔드 매머드(완상)의 스테이크. 사실상 네오의 고기라고도 할 수 있다. 놀랍게도 네오도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최종보스인 네오의 고기"라고 해설하자 제브라가 옆에 앉은 네오에게 "너보고 최종보스랜다"라고 놀린다. 네오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스테이크엔 라이브베아라가 제공했던 메테오 갈릭이 토핑. 고명으로 고대의 식보 보석고기와 가라라 악어 고기가 올라갔다. 이 또한 토리코와 코마츠가 함께 포획한 고기요리의 총집성 같은 것. 코마츠는 특히 가라라 악어를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다. 스타준은 보석고기를 맛보며 리갈 매머드 안에서 토리코에게 패하고 "나도 언젠간 먹고 싶었다"고 말하던 일을 떠올리고 미소짓는다.
* 다섯 번째이자 모두가 기다리던 "메인 디쉬" GOD. 토리코는 이미 한 번 맛봤던 것이지만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그의 식욕 "적귀"와 이별하게 된 식재이며 그와 함께 먹고 싶었던 식재. 지금은 잘 다듬어져 마치 작은 지구를 잘라놓은 것처럼 보인다. 토리코는 GOD를 맛보며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토리코만이 아니다. 토리코와 GOD를 놓고 경쟁하기로 했던 아이마루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GOD를 칭송하고 앞다퉈 추가 주문한다.
주방의 오오타케는 GOD는 최소한의 조리만 해서 나갈 걸 지시하는데 GOD의 임팩트가 너무 강하면 이후의 풀코스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 코마츠는 바쁜 와중에도 잠시 손을 놓고 감격한다. "모두가 함께 GOD를 먹는 꿈"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 삼형제들의 테이블에는 어느새 새로운 손님이 도착했다. 아카시아와 플로제. 생전의 회한을 잊은 듯 단란한 모습이다. 아카시아는 잠시 블루 니트로 페어와 눈이 마주친다. 페어 또한 아카시아의 식혼을 느끼고 있다.
* 일곱 번째는 "디저트", 단맛의 백화점 무지개 열매다. 이거야 말로 코마츠와 토리코가 처음으로 포획한 "풀코스". 여기에 깜놀사과 레벨 100짜리, 식림사의 보물 샤봉 플루츠, 냄새 폭탄 두두리안 붐. 두두리안 붐의 악취 때문에 작은 소란이 일지만 토리코는 추억의 냄새고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웃어넘긴다. 존게는 두두리안 붐의 냄새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냥 맛있게 잘 먹는다.
* 토리코는 빌리언 버드의 알을 이치류를 향해 건배한다. 빌리언 버드는 바로 이치류가 남겨준 식재였다. 이치류가 만족스럽게 잔을 들어올리는 순간,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그 인물이 나타난다. 미도라의 식혼. 이치류와 토리코가 먼저 알아차리고 코마츠도 그가 나타난걸 알고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 어서와 미도라. 같이 밥먹자. ||
목석같이 딱딱하던 미도라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리넘친다. 미도라도,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젊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수백년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가족은 다시 한 식탁에 모였다. 토리코와 코마츠, 그리고 살아남은 세츠노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다.
- 페이데이 2 . . . . 31회 일치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 Co-Op이 지원된다. 싱글플레이의 경우 혼자 하는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봇을 데리고 할수도 있지만 봇들이 총쏘는 것 밖에 못하는지라 모든 행동은 자신이 해야한다.
원래는 "페이데이 2"와 그에 딸린 X나 많은 DLC들로 이루어졌으나, 2017년에 페이데이 2: 얼티메이트 에디션이라는 하나의 좀 비싼 게임으로 통합되었다. 이게 DLC 전부 사는 것 보다는 싸긴 한데, 솔직히 시벌리 웨폰 팩 같은 매니악한거 사는 사람도 있던가?
* 전리품이나 물품은 가방에 싸서(F) 운반할 수 있다. 가방의 무게에 따라 운반 중 이동 속도와 투척 가능 거리가 달라진다.
수송차량을 습격하는 Transport 하이스트(의 5개 버전)와 기차에서 프로토타입 군용 병기를 훔치는 Transport: Train Heist 하이스트, 돌격소총(Commando 553), 기관단총(Swedish K), 권총(Gruber Kurz)이 들어있는 DLC
기관총 세개(RPK, KSP, Brenner 21)와 칼 네개가 들어있는 DLC
X나 큰 은행을 터는 The Big Bank 하이스트와 돌격소총(Falcon)이 들어있는 DLC.
주무기 산탄총 2개(M1014, Raven)와 보조무기 산탄총(Street Sweeper), 삽, 칼, 진압봉, 토마호크가 들어있는 DLC. 산탄총용 트리플 오 벅샷, 고폭탄, 플레셰트탄, 철갑 슬러그탄도 준다. 이게 가장 핵심.
돌격소총 3개(Clarion, Gecko 7.62, Gewehr 3)와 주무기 유탄발사기(GL40), 칼 두개, 손도끼, 오함마가 들어있는 DLC.
[[핫라인 마이애미]]와의 콜라보 DLC. 러시아 마피아 두목을 족치는 Hotline Miami 하이스트와 기관단총 3개(Cobra, Blaster 9mm, Uzi), 야구빠따, 식칼, 정글도, 소방도끼가 들어있다.
아일랜드인 갱단원 클로버와 스텔스에 최적화된 Burglar 퍽 덱, 돌격소총(Queen’s Wrath), 아일랜드풍 목제 곤봉이 들어있는 DLC.
폭탄을 훔치는 The Bomb 하이스트(의 2개 버전)와 권총(LEO)이 들어있는 DLC.
스웨덴 DJ 알레소와의 콜라보 DLC. 알레소의 공연이 벌어지는 틈을 타 금고를 따는 The Alesso Heist 하이스트와 권총(Matever .357), 마이크, 톤파, 금속탐지기, 마이크 스탠드가 들어있다.
카지노를 터는 Golden Grin Casino 하이스트와 돌격소총(Cavity 9mm), 슬롯머신 손잡이, 스위치블레이드, 칩 수거용 막대기, 전기충격기가 들어있는 DLC.
전직 야쿠자 지로와 체력이 적을 때 보너스가 들어오는 Yakuza 퍽 덱, 기관단총(Micro Uzi), 일본도가 들어있는 DLC.
[[시벌리: 미디벌 워페어]]와의 콜라보 DLC. 장궁, 석궁 두개, 투창, 버클러, 도끼, 모닝스타, 장검이 들어있다.
영화 [[포인트 브레이크]]와의 콜라보 DLC. 산 지하의 PMC 기지를 털어먹는 Beneath the Mountain 하이스트와 수송기로 운송중인 현금을 털어먹는 Birth of Sky
[[염소 시뮬레이터]]와의 콜라보 DLC. 염소를 이용한 마약 운반 중 일어난 사고를 수습하는 Goat Simulator 하이스트, 산탄총(GSPS 12G), 갈퀴, 칼, 가위, 지팡이가 들어있다.
위조지폐범을 털어먹는 Counterfeit 하이스트와 부패한 세무서 직원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Undercover 하이스트, 보조무기 유탄발사기(China Puff 40mm)와 네일건이 들어있는 DLC.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의 Wolf Pack DLC가 있다면 무료로 얻을 수 있다,
호주 출신 갱단원 시드니와 중장갑 방탄복에 특화된 Anarchist 퍽 덱, 돌격소총(Bootleg), 발리송이 들어있는 DLC.
전직 폭주족 러스트와 갱단원들이 적을 죽일 때 마다 체력을 회복하는 Biker 퍽 덱, 산탄총(Breaker 12G), 쇠사슬이 들어있는 DLC.
- 강영식 . . . . 30회 일치
다른 팀 팬들이 그렇듯이 롯팬들 사이에서도 선수 개개인의 버릇이라던가 하는 일종의 징크스(?)들이 여럿 회자되지만 강영식에게는 개중에서도 각별히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바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타자에게 던지는 초구의 로케이션이 어디로 가서 찍히는지를 확인하면 그 날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구가 우타자의 발등을 노리는 매처럼 날아들어 볼이 된다면(...) 불영식, 초구가 인하이든 아웃로든 일단 스트존 안에만 꽂히면 랜디영식 단순하지만 의외로 상당히 정확한 확인법이었는데, 2014년 스캠 인터뷰 기사에서 선수 본인에 의해 '''정말로 그렇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173596|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좌완에 키도 자신과 비슷하고 자기 구속 보다 더 빠른 150km/h대의 공을 던지며 나이도 더 젊은 [[권혁]]과 경쟁이 붙으면서 위기에 빠졌다. 이 당시 김응용의 너무 큰 총애와, 경쟁에 대한 압박감으로 늘 마운드에서 도망칠 생각만 했다고. 그 특유의 새가슴은 여기서 유래했다. 여기에서 나온 별명이 '불펜 [[선동열]]'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5경기 모두 등판하여 2이닝 3피안타 2볼넷 3탈삼진 무실점,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010시즌을 마치고 FA가 될 예정이었으나 구단과 모종의 계약 때문인지 FA 신청을 연기하고 롯데 자이언츠와 무려 '''연봉 3억'''에 1년 재계약을 하였다.[* 이로인해 붙은 별명이 강억삼. 주로 못할때 까는 용도로 사용한다.] FA 영입 금액이라고 여기면 싼 편이기는 했다.
4월 24일 SK와의 경기에서는 볼질에 이은 싹쓸이타를 맞으면서 배팅볼 기계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 와중에 또 아프다고 2군을 갔다오면서 욕을 먹었다. 2군 갔다 온 이후로는 그나마 롯데 불펜 중에서는 그나마 상태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팀내에서 임경완(18홀드) 다음으로 많은 홀드(16홀드)를 기록하였다.
9월 21일 2위 자리를 다투는 SK와의 경기에선 역전 결승타를 허용하여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를 함으로써 가루가 되도록 까였지만, 여전히 믿음직한 불펜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공은 괜찮은데 이쯤되면 지쳤겠다 싶은 날에는 피안타율이 높은 것으로 보아 그냥 체력적인 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이 시즌엔 유독 전반기와 후반기의 성적 차이가 심했다. 전반기엔 6.14의 평균 자책점과 18삼진을 잡는 동안 14볼넷, 4홈런을 허용했으나 후반기엔 '''0.47'''의 평균자책점과 1할 7푼대의 피안타율, 21삼진을 잡는동안 8볼넷, 1홈런만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반기 0.47의 평균자책점은 '''이 해 [[오승환]]과 동급'''!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5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1⅔이닝 2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4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6.2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후반기엔 잘 하더니...???~~
[[이명우]]와 함께 둘 밖에 없는 좌완 불펜이었지만~~[[이승호(1981)|누군가]]가 빠진 건 넘어가자~~ 4월에는 등판할 때마다 주자를 쌓고 위기를 자초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필승 계투조에서 밀려난 느낌이었다. 자책점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장작만 쌓고 교체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남과 동시에 부상으로(왼 어깨 건초염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추가바람) 2군에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동안 짐은 고스란히 [[이명우]]가 떠안아야 했다. 다행히도 8월 중순 2군 경기에 등판해서 멀쩡히 던지는 모습이 포착, 다음 텀에 올라오지 않을까 하던 팬들의 예상대로 돌아와서는 안정적인 피칭을 보였다.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후반기로 갈수록 투구 내용이 좋아졌다(…).
강영식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2이닝 3피안타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4.50, 1승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2년 10월 19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4:1로 앞선 8회초 2사 2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1⅓이닝동안 탈삼진 2개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스코어 1:4 승리를 지켜내고 [[세이브(야구)|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강영식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5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3⅓이닝 1피안타 2볼넷 6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2.70,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하였다.
초반에는 홀드를 좀 따내는 등 망한 롯데의 불펜에서 김성배와 함께 일을 하는 몇 안되는 투수였지만, 점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정대현(1978)|정대현]], [[이명우]], [[김승회]]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필승조에서 밀려났다. [[김시진]] 감독의 [[좌우놀이]] 성향상 좌타에 등판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때마다 말아먹으며 아직도 사용법 못 익혔냐고 팬들은 감독을 깠다. 하지만 우타 상대로 나왔을 때도 크리켓을 했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투수이니만큼 어떻게든 종종 등판하지만 까였다. 위기상황에 등판하면 볼넷 내주고 그 뒤치다꺼리는 김승회가 하는 모습이 패턴으로 자리잡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시즌 종료 후 김시진 감독이 좌우놀이 대신 1이닝제를 적용해보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롯데팬들은 1년을 날려먹고서야 강영식의 활용법을 알았냐며 또다시 감독을 까는 중(...).
허나 4월 19일엔 볼넷과 안타를 헌납, 역전패를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되더니, 4월 22일에는 만루상황에 올라와서 [[박병호]]에게 스트라이크 하나를 못잡고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끝내기 밀어내기를 허용해 성격과 다르게 시즌 초반에 입 좀 털더니 결국 나아진건 없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러나 6월 첫날에 복귀전을 치룬 이후 --1년에 딱 1달만 찾아온다는--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itcherDetail2.aspx?pcode=70615|미친 랜디 영식 모드]]로 돌입, 올라올때마다 시원시원하게 던지는 뚝 떨어지는 공으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삼진과 무실점을 밥먹듯이 기록했다. 특히 6월 25일 한화전에서 7회말 무사 1루에 올라와 정근우와 이용규, 김경언~~140억 듀오+덤~~을 삼진 3개로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28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1:4로 앞선 8회 2사후에 등판하여 9회 2사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세이브를 눈앞에 두었지만 [[에릭 테임즈]]와 [[이호준]]에게 연속안타를 맞아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 [[정대현(1978)|정대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8회 올라오자마자 병살타를 잡아내 이닝을 끝냈기에 그리 까이지는 않다. 다행히 정대현은 대타로 나선 [[조영훈]]을 투수 앞 땅볼로 아웃시켜 세이브를 올렸다.
8월 11일 SK 와이번스 경기에서 최연소 7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비가 오지만 8회초 시점이므로 노게임이 선언될 수 없는 상황. 기록은 모두 인정된다.
- 마기/345화 . . . . 30회 일치
* [[셋타]]와 [[와히드]]는 "누가 바라지 않아도 내 의지로 살겠다"고 말하는 알리바바가 "그 녀석"을 닮았다고 느끼나 실없는 생각으로 여긴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살아돌아가고 싶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고 그와 통성명한 [[와히드]], [[셋타]], [[테스]] 조차도 돌 쌓는 놀이나 하라며 심드렁하게 반응한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포기 않고 보이는대로 현세로 돌아갈 방법을 묻고 다닌다. 테스는 셋타에게 "살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어떤 거냐고 묻는다. 셋타는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원래 그건 테스 또한 가지고 있던 거라고 대답한다.
테스는 알리바바를 빤히 쳐다본다. 그는 지금도 와히드를 닥달하는데 여념이 없다. 알리바바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법사일 테니 도와달라고 조르는데 와히드는 이곳에선 마법을 못 쓴다는 냉정한 말을 한다.
그는 돌쌓기 놀이에 쓰는 돌을 가리킨다. 이 돌들은 "차원의 구멍"이 올렸을 때 거기서 떨어진 것이다. 다윗이 현세로 돌아갈 때 열린 구멍. 거기서 나온 것이니 이건 현세에서 온 물건이다. 셋타는 그때 기억을 더듬으며 구멍 저쪽에서 전쟁이 일어난 듯 보였고 "검은 거인"도 봤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매그노슈탓트 전쟁에서 나타난 "매개체"였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중요한건 그 문제가 아니다. 차원의 구멍에서 나왔다는 이 돌. 이것만은 환상이 아니라 현세에서 온 실제 물질, 루프와 연결된 물체다. 알리바바는 떨리는 손으로 돌맹이를 집어들면서 엄청난 수확이라고 말한다. 이게 현세의 물질이고 마고이가 깃들어 있다면 이걸 써서 마법을 사용하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그동안은 모르고 있었던 사실. 셋타와 와히드가 탄성을 내뱉는다. 오로지 무력하게 시간을 보냈던 그들에겐 그런걸 생각해볼 여력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일깨워주자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사실이란걸 실감한다. 이들만이 아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주위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이들이 하나둘 관심을 나타낸다. 무력하게 돌맹이만 쳐다보고 있던 공간에 활기가 퍼진다.
무기력하게 있던 사람들이 정말로 오랜만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와히드는 알리바바가 정말로 불쌍하다며 눈물까지 흘린다. 이제 사람들은 생기를 되찾았으며 몸 구석구석에 피어있던 버섯같은 물체가 떨어져 나간다.
버섯이 없는 사람들, 삶의 활기를 찾은 사람들이 늘어나자 테스도 이들을 관심있게 지켜본다. 테스는 마법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자기 아버지 와히드에게 "마법이란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묻는다. 육체파인 와히드는 한심하게도 "노력해서 만든다"는 하나마나한 대답이나 해서 셋타의 비아냥을 듣는다. 셋타가 "옛날부터 머리 쓰는건 나나 [[우고(마기)|우고]]한테 떠넘겼다"다고 빈정거리자 발끈해서 "나도 마법 정도는 할 수 있다"며 엄청난 의욕을 보인다.
* 연구할 거리가 생기자 이곳의 무한한 시간이 득이 됐다. 사람들은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가며 수식을 시험해 본다. 그 옆에는 와히드의 코치로 알리바바의 특훈이 시작됐다. 마법식을 짜도 알리바바가 발동을 못하면 허사다. 그래서 알리바바가 마법을 쓸 수 있게 훈련시키는 건데, 애초에 마법사가 아닌 그의 입장에선 돌에대고 명령을 하는 느낌이라 뜨악하기만 하다.
알리바바는 돌을 잔득 쌓아놓고 거기에 마법을 발동시키는 연습을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테스가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테스는 요령을 가르쳐주면서 알리바바가 만나고 싶다고 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그런 사람은 아주 많고 그가 신세를 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테스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묻는데 알리바바가 벌써 돌아가셔서 안 계신다고 하자 슬프겠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테스가 죽던 당시 그의 어머니 [[화란]]이 슬퍼했던 일을 언급한다.
테스는 자신이 왜 그런 마음을 가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또 한 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건 아마 마법수식을 만들며 옥신각신하는 어른들의 변화와 같을 것이다. 알리바바는 그것을 보며 뭔가를 생각한다.
* 알리바바는 셋타와 와히드의 특훈을 마쳤다. 그는 주변의 돌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있게 됐다. 하지만 그건 1단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만든 수식은 차원과 차원을 잇는 대마법이다. 그걸 통과해서 현세로 갈 것이다. 알리바바는 혹시 그걸 통해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냐고 묻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차원을 연결한다 해도 산 육신으로 버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죽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마법인 셈. 지금부터 알리바바는 가짜 몸에 들어가서 연결된 차원을 건너가는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이곳 시간으로 100년, 혹은 200년으로 느껴질만큼 길고 험난한 훈련. 와히드는 그걸 견딜 수 있겠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곳엔 시간이 없으니 그저 알리바바의 체감상 그럴 뿐이다. 출발하는 날이 되자 와히드는 테스, 셋타와 함께 배웅하며 꼭 세상의 멸망을 막으면 좋겠다고 격려한다. 그런데 알리바바는 그것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지금 세상은 죽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지 않고 루프에 따라 격리된다. 알마트란시절 죽은 이들은 이 일 일라와 연결된 차원에, 현세에서 죽은 이들은 하얀 루프로 환원돼 "거대한 흐름"으로, 그리고 알 사멘처럼 타전된 자들은 검은 루프로 돌아간다. 알리바바는 이렇게 죽어서 뿔뿔히 흩어지기 보단 모든 이들을 이을 수 있다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그 말은 곧 이들이 자신의 그리운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재회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셋타는 자신의 형 [[이스난]]을, 와히드와 테스는 화란을 만날 수 있다고 흥분한다. 와히드는 "은혜를 갚을 거면 빨리 말하는게 나았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한다. 그렇지만 알리바바는 이건 자기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살아가는 것, 세상을 구하는 것, 무엇이 됐든 더이상 다른 누군가에게 이유를 갈구하지 않을 거라면서.
알리바바는 수인들이 만든 가짜 몸에 들어가 현세로 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웅한다. 와히드와 셋타는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덕분에 즐거웠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와히드는 혼자서 살아 돌아갈 걸 굳게 있는게 "그 녀석" 같다고 말하는데, 그러다 셋타와 함께 "설마"라며 웃어넘긴다.
- 승리(빅뱅) . . . . 30회 일치
무엇이든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하지만 예능과 방송의 가벼운 이미지에 감춰져 있다. 또한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이 배어있다. 방송에서 타 멤버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나쁘게 하거나 비하하여 웃기게 해도 재미있으면 된다 라는 태도를 취한다. 부상당한 것을 웃으며 언급해도[* 110404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옆에서 웃고 넘기는 등 대인배. 멤버들도 승리가 회식 자리에서도 항상 본인보다 남을 챙긴다고 언급했고[* 주간아이돌 289회] 재미있는 자리가 생기면 형들에게 연락해 같이 즐길려 한다 말했다. 방송에서도 남을 험담하거나 뒷담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빅뱅의 성공에는 어디 한 명 빠짐없이 실력있는 멤버 구성도 한 몫 하였지만, 상대적으로 형들에게 가려진 승리의 배려와 피땀이 일군 값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어린 나이와 부족한 실력 탓에 (물론 빅뱅 내에서의 실력) 형들에게 가려진 것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형들이 돋보이게끔 밀어줬던 것이 지금의 빅뱅을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막내가 사고 치는 경우가 많은 타그룹들과 달리 어른스럽고 사려 깊은 막내 역시 빅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원더걸스]]의 [[유빈]],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같은 광주 출신이라 종종 묶이곤 하는데 특히 유노윤호과는 공통점이 크다. 아직까지도 광주에서 이름 날리고 있는 댄서팀 '일화' 에서 활동했던 것. 데뷔 전 아무래도 노래보다 춤을 곧잘 해내곤 했던지라 YG ent에서는 우린 가수를 뽑는 것이지 댄서를 뽑는 게 아니라며 탈락의 위기를 맞기도 하나, 재도전의 자리에서 [[양현석]] 사장으로부터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빅뱅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는 데 성공한다.
예능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잘하는 편이나, 가끔 의욕이 너무 넘쳐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근래에는 연차가 되면서 --나이가 들면서-- 치고 빠지는 것에 능숙해졌으므로 원만한 진행을 한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잘한다. 특히 일본어는 간사이벤(오사카 사투리)까지 구사할 정도로 유창한 실력이다. 이는 멤버 형들의 특색이 너무나 뛰어나서 본인만의 특기를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이라 한다.
빅뱅 내에서 막내를 맡고 있는 만큼 형들에게서 상당한 귀여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귀여움의 영향인지 막내몰이를 굉장히 많이 당한다. 형들이 막내를 10년째 귀여워하고 ~~놀려먹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수습하지 않고 내보내는 것이 안습.. 가끔은 이것이 몰이인지 다굴인지 햇갈린다. 게다가 원래 승리가 예능에서 자신을 깎아 내리면서 웃기는 스타일인데, 이것이 몰이와 겹치면 이미지 타격이 크다.
승리팬들은 승리몰이를 불편해하지만 다른 멤버들 팬들은 대부분 귀엽게 보고 넘어가는 편이다. 애초에 승리 얘기를 안하면 예능을 할 수 없다고 하니... 물론 "형들에게 사랑받는 각 그룹 최고의 막내돌은?"이라는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할 정도로 멤버들은 승리를 예뻐한다. 하지만 예뻐한다는 말로 조금은 심한 몰이를 한것은 팬들에게 불편해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태양은 듀엣을 한다면 승리와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 외 멤버들도 승리를 꼭 필요한 멤버라고 얘기한다. 지드래곤은 승리가 무한도전에서 자신이 없어도 빅뱅은 빅뱅이라는 말을 하자,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음악 만큼이나 사업에 관심이 많다. 본인 말로는 접었지만 댄스 아카데미(조이 댄스 플러그인뮤직아카데미)도 했었고[* 주간 아이돌에 따르면 선생님과 학생이 눈이 맞아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멤버들의 말에 따르면 와플 라이센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한국 매니지먼트 권리[* 호날두가 내한할 경우 일정 및 관련 매니지먼트에 대한 권리. 일견 거창해 보이는 권리긴 한데, 실은 대단한건 아니고 호날두의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싱가폴 지인이 "한국 담당은 네가 해라."하고 던져준 것. 정작 호날두는 한번도 한국에 온적이 없으며 관계자에 의하면 방한 의향도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469&aid=0000313277|그런데 써먹을 날이 오고야 말았다.--는 방한취소--]]]도 승리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18년에 11년만에 호날두가 방한할 예정이라 존버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호날두가 하도 오지 않아서 라이센스는 폐업하여 이번 방한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밝혔다.[[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83110|그리고 호날두도 방한 취소를 했기 때문에 라이센스가 있었어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승리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AND HERE는 와플을 주로 판매하는 카페로, 와플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 [[벨기에]]까지 다녀왔다고 라디오 스타에서 직접 이야기하였다. 그 외에 [[FT아일랜드]]의 최종훈과 함께 운영하는 밀땅포차와 라운지 바인 몽키 뮤지엄을 비롯해 뷰티 사업에 투자하는 등[* [[http://hei.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1195704H|청담동 장악…빅뱅 승리의 사업은 계속된다]] ] 요식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도입부의 크랙~ 크랙~ 하는 가사가 마약을 의미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 크랙=코카인]로 결국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받았다. 이에 소속사에서는 가사를 박수를 의미하는 클랩(clap)으로 바꾸어 재심사를 요청했다.
리믹스버전이 여러개 있다. 예를들면 빅쇼2010에서 부른 Hitchhiker Remix버전이나 뮤직뱅크버전, MAMA에서 부른 Let's Talk About Love와 합쳐진 버전 등
2013년 8월 2번째 솔로앨범 <Let's Talk About Love>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할 말 있어요'로 활동했다. 수록된 전곡을 작사하고 작곡 및 프로듀싱까지 참여했다. 참고로 이 앨범을 만드는 데 주어진 총 시간은 단 4주라고 과장되어 있지만 승리의 인터뷰에서 5월에 곡작업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3달 이상은 공들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정해진 기간은 매우 짧게 주고 발매는 늦게 해준 케이스-- 그래도 솔로 미니앨범 1집 당시 주어진 '3'주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1집에서는 작곡가 및 프로듀서들이 어느 정도 승리 앨범 제작에 기여한 반면 2집 작업 때에는 [[지드래곤]]의 솔로앨범(COUP D'ETAT) 제작을 위해 대부분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달려든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안습]] 양싸 제발!!-- --그리고 홍보 하나 없었다-- --프로듀서없이 혼자 완성한 앨범--
1번 트랙 'Let's Talk About Love (Feat. G-DRAGON & 태양 from BIGBANG)'에는 [[BIGBANG|동일 그룹]]의 [[지드래곤]]과 [[태양(빅뱅)|태양]]의 피처링이 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곡이지만 이 평가에는 지드래곤과 태양 피쳐링의 비중이 크다. 2번 트랙 '할 말 있어요'는 극적인 훅(hook)의 비트의 변화와 Hustlin' 이라는 반복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Hustlin'은 별 의미는 없고 발음이 좋아서 선택한 단어라고. 각각 3번과 4번, 6번 트랙의 'GG BE'와 '그 딴 거 없어', 'LOVE BOX'는 2013년 승리가 진행했던 스타캐스트 속 팬들의 선택에서 승리 솔로곡 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곡이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G_ZnI50c7U|꼭 이어폰으로 들어야 함]] --귀가 녹을뻔해써요-- 7번 트랙 '할 말 있어요 (Hard Remix ver.)'는 보너스 트랙으로, CD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5년만에 발매하는 승리의 솔로앨범으로, 승리의 정규 1집이다. 승리의 별명인 '''위대한 승츠비'''에서 앨범 제목을 따온것으로 보인다. [* 참고로 [[위대한 개츠비]]의 영어 표기는 'The Great Gatsby'이다.] 빅뱅의 나머지 4명이 군대에 간 사이에 낸 앨범으로, 이 앨범 발매 후 승리는 콘서트와 예능, 디제잉, 사업가 등으로써 활동을 계속한 뒤, 2019년 초에 군입대를 할 예정이다.
* 양현석 성대모사를 매우 잘한다. YG 아티스트들은 전부 양현석 성대모사를 조금씩은 하지만, 그 중 승리가 가장 최고봉이라고. 어느 예능을 나와도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승리의 양현석 성대모사다. 2016년 2월 가온 시상식에서는 프로듀서 상을 수상한 양현석 대신 성대모사를 하며 대리 수상을 하기도 했다. [[https://youtu.be/15MoFYOluW0|영상]] 2분 40초 부터. 마지막의 '''지용아 한마디 해라''' 가 압권.
* 솔로 활동 시절에는 앨범 준비기간을 단 3~4주일 줘놓고 아무 지원을 해주지 않아 승리가 직접 프로듀서와 작곡가들을 찾아다녔다.
* 솔로앨범 작업의 비화를 [[현장토크쇼 TAXI]]에서 밝힌 적이 있다. [[이효리]]와 U-Go-Girl 합동무대를 했는데 끝나고 나서 양현석이 모든 스탭들과 YG 소속 가수들 앞에서 "오늘은 승리 무대가 제일 좋았다"고 칭찬하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솔로 1집 작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YG 콘서트에 양현석의 아내 [[이은주(가수)|이은주]]가 왔을 때 양현석 분장을 하고 성대모사로 "은주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깜짝 이벤트를 했는데, 그 이벤트를 양현석 부부가 마음에 들어해서 솔로 2집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옛)승리 코디는 승리 사이즈, 키 등 모두 모르는 태도로 일관했다. --스토롱베이비 무대를 보자 저게 사이즈를 알면 입힐 옷이냐-- 승리가 한번은 "누나, 저도 지용이형처럼 멋있는 옷 입혀주시면 안돼요?" 라고 했으나 코디님께서 웃으시며 "야 사람이 멋있어야 뭘입어도 멋있는 거야" 라고 하셨고 승리는 그런 코디에게 "자신에게 멋진 조언을 해주셨다" 며 넘어갔다. 또한 평소 얘, 쟤, 걔 등으로 부르거나, 다른 맴버가 입고 남은 옷을 주거나, 다른멤버와 비교하는 모습 등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었다. 그 외에도 판타스틱 베이비는 쎈 컨셉의 노래기 때문에 쎈 이미지가 필요하다며 머리를 밀것을 강요했다. 승리는 머리를 밀고난 뒤 많이 속상해하고 죽을 것 같았다며 울었다고 했으나 이젠 진짜 괜찮다고 한 일이 있었다. [[안습]]
* 크로와상 10/25号: (양사장님께서) "너 솔로앨범 낼테니까 일주일간 준비!" 라고 하셨다. 저도모르게 "네!!? 1주일은 무리에요." 라고 말하니까 "그럼 안할래?" 라고. 필사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웃음) 굉장하죠. 그렇게 저를 키워주세요.
* Q: 빅뱅 멤버 중에서 유독 승리씨와 인연이 깊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 A: 맞아요. 승리씨가 워낙 붙임성이 좋거든요. 처음 YG에 들어왔을 때 사실 모든게 낯설었어요. 근데 승리씨는 제 방에 먼저 찾아와서 "형! 새로 들어오신 분이시구나. 저랑 작업 한 번 하시죠?" 라면서 말을 걸어 주더라구요.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와줘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아요.
- 연정(우주소녀) . . . . 30회 일치
'''메인보컬'''이라는 포지션에 걸맞게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발성이 특징. 타고난 하드웨어가 좋아 성량과 음역대 모두 월등해서[* 동성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Jj7fwJfteiQ|다만세 고음 애드립]] 당시 즉석에서 '''4옥타브 도'''를 뽑아낼 만큼 폭넓은 음역대를 자랑한다. [[https://youtu.be/OoO2vnElsKk|유연정 옥타브 측정]]] 장점인 고음뿐만 아니라, [[https://tv.naver.com/v/851407|SK텔레콤 토닥토닥 라이브]]에서 볼 수 있듯 저음역대의 노래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또한 [[벤(한국 가수)|벤]]의 <꿈처럼>을 부르며 [[발라드]]와 같은 장르도 완벽하게 부를 수 있다는게 이미 입증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Nnb1hghZDQw|#]] [[https://youtu.be/LcPN92043ds|원곡]]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I.O.I]]에서 함께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김세정과는 가히 용호상박이라 할 만큼 좋은 대조를 이루는 스타일인데, 김세정이 중저음 파트와 감정을 이끌어 내는 스킬 활용에서 강점을 보인다면, 연정은 고음 파트에서 강점이 두드러지며 웬만한 아이돌 노래는 다 소화할 수 있을 만한 호환성 좋은 음색도 돋보인다.
10월 17일 《miss me?》를 통해 I.O.I 완전체로 컴백했다. 타이틀곡 너무너무너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주어진 파트가 메인보컬치고 상당히 적다는 것.''' 이는 박진영이 프로듀서를 맡아 생긴 변화이다. JYP는 난이도 있는 박자와 중음역대 위주의 곡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유연정은 깔끔하고 파워풀한 발성과 고음역대의 애드리브로 곡을 이끌어가다보니 '''JYP 스타일과는 상극'''과도 같기 때문이다.[* 또다른 메인보컬인 김세정은 반대로 중저음대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후렴부와 애드리브 파트가 많이 늘었다. 김세정이 녹음할 때 [[박진영]]이 감탄하는 장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I.O.I 활동 최초로 메인 파트를 맡지 못하고 소미와 세정에게 그 역할을 넘기게 되었다.
4월 28일 아는 형님에 출연했는데 당일 중간고사를 치르느라 최유정, 김소혜와 함께 늦게 합류했다.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완전체 활동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개별활동 및 여타 방송 출연 등으로 아쉬움을 달랜 경우. 특히 스타쉽에서 연정에게 많은 지원과 푸쉬를 해주었고, 같은 시기 I.O.I 유닛 활동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면서 팬들이 연정의 개별 활동을 어느 정도는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도 개별활동이 성공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본인의 장기인 가창력을 수록곡 및 방송 활동을 통해 선보임으로서 기존의 호불호가 갈리던 시선들을 좋은 쪽으로 잘 바꿔놓았다. 그 후 우주소녀에 완전히 합류한 이후에도 I.O.I 활동을 바탕으로 높은 인지도와 뛰어난 가창력을 바탕으로 우주소녀에서 가장 주목받는 멤버 중 한 명이다.[* 우주소녀 합류후를 보면 연정을 데뷔조에서 탈락시켰던 스타쉽이 맞나 할정도로 연정에게 매우 푸쉬를 해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우주소녀 합류 후 첫 엘범 타이틀곡인 '비밀이야' 멤버별 파트를 보면 기존 보컬라인인 다영, 설아, 수빈은 물론 기존 메인보컬인 다원의 파트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파트를 맡게 되었으며, 연정의 합류 후 우주소녀의 보컬라인이 더욱더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각종 예능에서도 성소, 다영 다음으로 가장 분량을 많이 챙기는 멤버 중 한명이다.]
우주소녀는 비교적 최근에 데뷔한 데다 중국과의 합작 걸그룹으로 스타쉽만이 아닌 중국 투자자 측에서도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솔로 데뷔를 하지 않는 이상 연정은 데뷔를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연정을 스타쉽이 놓아줄 리 만무하기에, 현실적으로 연정이 걸그룹으로서 데뷔를 하려면 우주소녀에 합류하는게 적당한 방법이긴 하다. 비록 연정의 인기에 빨대를 꽂아 우주소녀를 띄워보려는 스타쉽의 의도가 뻔히 보이긴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중합작인 그룹 특성상 중국 투자자측이 입김을 작용했을 거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주소녀 본체의 인지도나 인기가 연정 개인에게 못 미치는 상황이기에''' 연정 투입으로 우주소녀는 화제성을, 연정은 빠른 데뷔를 할 수 있어 서로 윈윈'''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CLC, DIA, 구구단의 전철을 밟아 우주소녀와 연정 양쪽에게 해가 될 것이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어느쪽이건 컨셉 개편을 어이없어하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당시에 연정의 팬들은 연정의 우주소녀 합류를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 스타쉽은 6화의 인성 논란과 11위로 데뷔했다는 것으로 인한 타 연습생 팬들로부터의 비난, <Crush> 때 엠넷의 무성의한 편집으로 인한 비난 등 '''아직 어린 연정이 쉽게 감당하기엔 버거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악플과 무분별한 비난'''들이 연정을 향했음에도 그동안 아무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다. 결국 연정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11위 안에 들어야 했다. 이어서 불호의 시선들도 모두 스스로의 실력과 노력으로 잠재웠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주소녀의 컨셉 시스템까지 개편해가며[* 컨셉의 문제는 물론, 합작프로젝트라는 이유 때문이거나, 소속사 내에 적체된 언니라인 연습생들 데뷔 해결 등의 문제로 연정(을 포함한 나머지)을 배제한 채 데뷔해놓고, 첫 앨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고 판단해 뒤늦게 내놓은 조치라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정을 꼽사리 끼워 이득을 보려 하는 건 연정이 그동안 소속사에게 조금도 보호받지 못하던 걸 지켜봐와야 했던 팬들의 입장에선 다행이지 싶으면서도 복장이 터질 수밖에 없다. 활동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으면 또다시 애먼 연정에게 수많은 비난이 쏟아질 것이 자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스타쉽에서 관리를 혹독하게 시켰는지 비주얼이 엄청나게 상승했다.[[http://dcimg2.dcinside.com/viewimage.php?id=34b2df3fe0dd36ac7bb1d1&no=29bcc427b38b77a16fb3dab004c86b6f113d37b1bcb96f75556c19c26e5db7632c4092fc08cf1ba17954fbb230ddbbbfd58f21588be8d5b584a26b1400|#]] 팬들은 '''연정이가 각성했다'''라며 환호 중. 스타쉽이 이전까지의 홀대[* 일단 프로듀스 101에서 스타쉽이 밀었던 멤버가 태하였는데, 문제는 스타쉽의 기대와 달리 태하가 8회만에 방출당했다는 것..... 결국 태하는 스타쉽에서 더블킥으로 이적해 모모랜드에 합류했다.]를 멈추고 본격적으로 연정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 하니, 앞길은 창창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9월 23일 배성재의 텐에 리더 엑시와 함께 출연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jsVX0YY8bm8|풀버전]] 배성재와 눈싸움으로 붙어 80초 가량 눈을 떠서 승리했고, 연관검색어 토크에서는 '라미란', '고민 상담' 등에 대해 얘기했으며, 사이다 보컬이라는 별명에 맞게 사이다 광고 컨셉의 연기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eye돌', '[[장성군|장성]] 독사이다', '제갈광명' 등의 별명을 얻었다. 중간에 스타쉽 오디션에서 불렀다는 이선희의 <인연>을 무반주로 짧고 굵게 불렀다.[[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8965744&rtes=y&startDuration=26.57|#]] 잊을 때만 되면 배텐에 김소혜나 프로듀스 1077 게스트에 의해 언급되어, 채팅창이 광명독사로 도배되고는 한다. 연정이 출연료 주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
2016년 10월 5일 한화 이글스 대 kt wiz의 전남에서 애국가를 제창해[[https://www.youtube.com/watch?v=Fb3chqGK97I|#]] 시구를 선보인 성소와 함께 경기의 시작을 장식했다.
2017년 1월 27일부터 1월 28일까지 방영된 3부작 발칙한 동거 빈방있음에 오세득 셰프와 출연하였으나 촬영이 I.O.I 활동과 겹쳐서인지 첫편에서 자기소개와 스케줄로 나가는 장면과 3부째에서 잠자는 모습만 잠깐 비추어졌다.
2016년 12월 25일,2017년 1월 1일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하얀시 눈이군 쌓이면 우리마을]]이라는 가명으로 출연했으며 [[집 나가면 고생 컴백홈]]에 이은 우주소녀 멤버 중 두번째 참가자다. 1라운드에서 [[김군 최군 우리 모두 구세군]]을 이긴 뒤 2라운드 상대인 [[지방방위대 디저트맨]]에게 밀렸다. 참고로 2라운드에서 부른 유미의 '별'은 1년동안 활동하다가 해체를 앞둔 본인 그룹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선곡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경연에서는 그 뒤 복면가수로 나온 [[가왕? 별들에게 물어봐~ 첨성대|또다른 멤버]]와 동명이인인 [[주전자부인 펄펄 끓었네|혼성 그룹 여성 가수]]가 2라운드에서 [[사랑은 관람차를 타고|복면가수 출신 여성 판정단]]의 곡인 '멍'을 불렀으며 이들도 같은 성적을 보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담으로 프로듀스 101 출신이자[* 이 조건으로만 한정하면 최초는 아니다. 권은빈이 속한 CLC가 쇼! 음악중심에 출연했고 2016 추석특집 아이돌 요리왕에 한혜리가 출연했었다. 그 이후 솔로로 데뷔한 김주나와 키미, 김형은, 세이, 지니가 속한 불독이 쇼! 음악중심에 출연했다.] '''I.O.I 멤버들 중 가장 먼저 MBC에 입성'''했고[* '''지상파TV''' 최초며 라디오를 통해서는 본인 포함 8명의 멤버가 꿈꾸는 라디오에 출연했다. 다만, 최초 MBC 지상파 출연은 2016년 12월 10일, 12월 17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며 성소를 지원사격하기 위해 비밀이야와 Bebe를 불렀다.] 한 때 최연소 참가자의 기록이었으며 그 뒤 73차 경연에서 [[한 뚝배기 하실래예 로버트 할리퀸|최연소 기록]]이 깨졌다. 훗날 우주소녀 공식 인스타그램에 의하면 3라운드에서는 아이유의 너랑 나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30107|선곡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http://tv.naver.com/v/2366623|1라운드 듀엣곡 풀잎사랑(With 허경환)]], [[http://tv.naver.com/v/2366635|2라운드 솔로곡 별]][* 최근에 복면가왕 스페셜로 I.O.I가 출연했던 방송분의 '''풀영상이 올라왔다'''.] 참고로 프로듀스 101 시즌 1 출신 중에서는 최고 성적이다.[* 시즌 1 출신으로 나온 8명은 모두 1라운드에서 가면을 벗었으며 시즌 2에 나온 6명 중 2명은 2라운드 진출/2명은 준우승/2명은 우승했다.]
* [[황도 12궁|황도13궁]] 중 [[땅꾼자리|땅꾼자리(뱀주인자리)]]를 맡고 있다. 탄생좌는 [[보나]]와 같은 [[사자자리]]이지만, 그룹의 컨셉과 합류 문제로 인해 땅꾼자리가 되었다. 해당 별자리 컨셉은 [[황도12궁]] 문서와 [[땅꾼자리#s-3|땅꾼자리]] 문서 참고.
* 비글미가 넘치는 I.O.I 내에서도 최고의 비글이라는 멤버들의 증언이 있다. 약간 조증이 있어 차분할 때와 신날 때의 갭이 큰 편인데, 체력적으로는 최유정, 소미에 밀릴지는 몰라도 한번 신나고 흥이 넘치는 순간부터 아무도 말릴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그 활발한 소미조차 업된 유연정이 옆에 앉자 '벌써 기를 다 빨린 느낌이다' 고 할 정도니(...)[* 160518자 뮤비뱅크 스타더스 참고] 그래도 그런 유연정의 에너지에 멤버들이 기운을 얻기도 한다고.
* 같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실음과를 다닌 [[레드벨벳]] [[예리]]와 친구라고 하며, [[모모랜드]] [[주이(모모랜드)|주이]]와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의 소녀]] [[츄(이달의 소녀)|츄]]와는 한림예고 시절에 짝궁이었다고 한다. [[프로듀스 48]]에 출전한 [[나고은]]과도 안면이 있을 듯.
* 다른 I.O.I 출신 멤버들이 현재 소속 그룹에서 거의 [[소녀가장]] 포지션에 있는 데 비해,[* 쉬운 예로 구구단의 김세정, 프리스틴의 주결경/임나영, 위키미키의 최유정/[[김도연(위키미키)|김도연]] 그리고 다이아에서 정채연.] 연정은 남초 사이트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에이스 [[성소]]와 입담 좋은 [[보나]]의 존재로 [[소녀가장]] 포지션까지는 아니다.
* 유연정의 이름을 유정연[* [[TWICE|트와이스]]의 멤버 [[정연(TWICE)|정연]]]으로 착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연과 정의 위치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본관이 같다.
* [[청하(가수)|청하]]의 지명을 받아 2018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했다. [[https://www.instagram.com/p/BjpROE9nlcM/?taken-by=uyj_s|#]] 다음 도전자로는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미나(구구단)|미나]], [[TWICE|트와이스]]의 [[사나(TWICE)|사나]], [[(여자)아이들]]의 [[소연((여자)아이들)|소연]]을 지명했다.
* 유독 [[소녀시대]]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와 인연이 깊다. 데뷔 전 [[프로듀스 101]] 때 이 곡을 부르고 뜬 것부터 시작해서 데뷔 후에 I.O.I 멤버들이랑도 부르고 이 곡으로 2016 KBS 가요대축제 때 [[I.O.I]], [[레드벨벳]], [[TWICE|트와이스]],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합동무대를 했으며, 2018 DMC페스티벌에서는 [[우주소녀]] 멤버들과 같이 불렀다.[* 파트가 없었던 가요대축제 때를 빼고 시간 순으로 보면 점차 실력이 늘어남을 알 수있다.]--부를 때 마다 기분이 묘할거 같다-- 게다가 유연정 본인은 SM에서 [[연습생]]으로 있었고.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29회 일치
* 어쨌거나 [[시가라키 토무라]]의 결단에 따른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시에핫사이카이의 사무실에 신고하러 온다.
* 토가와 트와이스는 처음부터 적당히 할 생각이었고, 이리나카의 처리는 멋대로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에 떠넘기려고 이런 짓을 한 것.
* 도발에 격분한 이리나카가 괴성을 지르자 [[미도리야 이즈쿠]]와 [[아이자와 쇼타]]가 놓치지 않고 그를 요격,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다.
* 토가와 트와이스는 그 틈에 도주, [[서 나이트아이]]는 이용 당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위안삼는다.
* [[시가라키 토무라]]가 진심을 보였다.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가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시가라키의 결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에핫사이카이의 사무실에 갔다. 토가는 시가라키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트와이스는 용서 못한다, 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개성넘치게 입단인사를 마쳤다. 어차피 핫사이카이측에서도 랏파 정도나 이들을 환영하고 환영인사로 싸우려 들었다. 나머지는 모두 시큰둥.
[[오버홀]]은 이들의 신고를 받으며 심심한 유감을 표시했다. [[마그네]]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죽음에 대해서]]. 오버홀도 "그"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고 이젠 지나간 일이니 한 식구가 된 이상 잘 해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이 트와이스의 신경을 긁었다. 우선 마그네의 아이덴티티는 "그녀". 트와이스가 그걸 가차없이 지적하며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포장만 잘했다"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그 오락가락하는 성격대로 곧바로 태도를 바꿔 "그래서 뭘하면 되냐"고 적극 협조적으로 나온다. 어지간히 어처구니 없는 녀석들은 철포옥 핫사이슈들 조차도 그 성격에는 어이가 없다고 평한다.
* 토가와 트와이스, 그리고 이리나카 사이의 짧은 신경전. 먼저 "돼먹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은건 트와이스 쪽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며 절대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강경모드로 들어가는데, 역시 그 성격답게 1초도 지나지 않아 자기 개성을 외판원처럼 자질구레한 것까지 선전해대고 있다. 그의 개성 "카피". 온갖 물건을 두 개로 늘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명확한 "이미지"를 확보하는게 중요하고, 그의 코스튬에는 그걸 위한 아이템이 내장돼 있다. 가령 손목 부위에 내장된 줄자라던가. 인간을 카피한다면 구체적인 신세 사이즈 등이 필요하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쓰레기 같은 불완전한 카피가 생길 뿐.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해도 딱 한 가지는 원본과 다르다. 내구력이다. 뭘 카피하느냐 나름이지만 일정 이상 데미지를 받으면 형태가 무너진다. 한 번에 늘릴 수 있는 숫자는 최대 두 개. 하지만 두 번째 카피부터는 내구력이 몹시 약해진다. 덤으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일신 상의 사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카피하는 건 불가능.
* 트와이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열심히 설명해서 그런지 "이건 진짜 내가 아니다"고 자괴감에 떤다. 기껏 거절했던 토가는 자기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궁시렁 거렸다.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토가도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순순히 개성을 설명하는 토가. 피를 섭취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때 섭취한 피는 곧 에너지. 섭취량이 변신을 유지하는 시간과 비례한다. 대략 컵 한 잔 분량이라면 하루종일 변신하는 것도 가능. 한 번에 여러 사람의 피를 마시면 그만큼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변신에는 옷도 포함되는데, 문제는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부끄럽다는 여고생 틱한 설명까지 붙여서 PR 완료. 트와이스 못지 않은 성실한 자기소개였다.
대답은 당연히 No. 토가와 트와이스 모두 망설임없이 답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대답일지? 적어도 오버홀은 그걸로 만족했다. 그들을 시에핫사이카이의 새 식구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 뿐. 수배범인 그들을 자유롭게 둘 수 없으니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지하의 거주 공간에서 생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둘이 연금이 아니냐고 반발하지만 오버홀은 "신용할 수 있게 되면 좀 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공수표 같은 말로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이리나카가 우쭐거린다. "언제까지 그런 태도면 안 된다는 말"이라며 으스댄다.
* 그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토가와 트와이스는 서핑이라도 즐기는 것처럼 여유롭다. 요동치는 벽을 타면서 토가의 입이 쉬질 않는다. 평소에 그런 역할은 트와이스의 몫이다. 하지만 지금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왜 이리나카를 도발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이리나카를 자기들끼리는 처리할 수 없으니까. 그들 개성으론 벽과 동화된 이리나카를 제압할 파워가 없었다. 그러니 히어로들에게 멋대로 맡겨버리는 것이다. 작전은 적중. [[미도리야 이즈쿠]]와 [[아이자와 쇼타]]가 정확히 부합했다. 그들은 벽이 밀려오기 직전 어떤 기성을 들었다. 미도리야는 그 목소리가 분명 이리나카의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본체가 어디있는진 여전히 알 수 없다. 벽이 움직이고 있고 소리가 너무 울려서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미도리야는 두 번째 들려온 기성을 놓치지 않았다. 위였다. 원 포 올 풀 카울. 벽을 차며 솟구쳐서 목표에 정확히 SMAASH. 그 위력에 벽이 무너지고 이리나카의 본체가 노출됐다. 이제 아이자와의 차례였다. 그의 무효화가 번뜩였다.
* 이리나카는 패배했다. 개성이 해제되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이리나카. 떨어지는 그의 옆에서, 트와이스가 심심한 유감을 표했다. 오버홀이 마그네의 죽음에 사과한 것처럼.
- 로베르 기스카르 . . . . 29회 일치
이후 기욤이 죽고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드로고가 형의 영지를 상속받을때, 기스카르는 아무 영지도 받지 못했고, 이를 그의 바로 위의 형인 옹프루이가 딱하게 여겼는지 그에게 라벨로 성을 준다. 이후 그는 카푸아 공작 판돌포 4세와 연합해 살레르노 공국을 치려하지만, 공작이 약속했던 공작의 딸과의 혼인과 영지 할양을 거부하자 그와의 협조를 거부하고 돌아가버린다. 이후 칼리브리아로 간 기스카르는 거기서 칼리브리아를 정복을 진행중이던 드로고에게 자기몫의 영지를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드로고는 최근에 쌓은 성채인 스크리블라성[* 현재의 스페차노 알바네세]을 그에게 준다.
기스카르를 유명하게 만든건 1053년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교황청에서 저지하려했던 치비타테 전투에서였다. 치비타테 전투에서 기스카르가 이끄는 좌익은 전투 초반 아베르사 백작 리카르도가 이끌던 상대 좌익을 성공적으로 격파했고, 옹프루이가 이끌던 중군이 교황령의 중군을 성공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자 즉각 좌익을 그곳으로 투입시켜, 전투의 승기를 잡는데 크게 공헌했다. 치비타테에서의 이러한 영웅적 활약으로 인해 기스카르는 1057 4월에 옹프루이가 죽자 그의 작위였던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백작위를 상속 받을 수 있었다.
기스카르가 형에게서 작위를 상속받고 제일첫번째로 한것은 정복군주로 악명높은 그치고는 살짝 의외였던건데, 전처인 알베라다와의 혼인이 근친이라는 이유로 이혼하고 살레르노 공작의 여동생인 시켈가이타와 혼인한것이다. 다만 중세 유럽은 귀천상혼하면 짤없이 귀족직위가 박탈당하는 시대다 보니 혼인풀이 좁았고, 이에 어지간한 귀족들은 전부 한두다리건너 연결되는 경우가 흔했다. 즉, 그가 알베라다와 이혼한 이유는 진짜로 근친혼인걸 몰랐다(...)기보단, 시켈가이타의 몫의 영지들[* 중세때는 혼인을 두가문의 혼합으로 보았기에, 사위에게도 딸의 몫이라면서 영지일부를 나눠주는걸 당연시했다.]을 살레르노 공작에게서 뜯어내기 위해서로 보는게 타당하다.
한편, 멜피 공의회 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더더욱 치고 올라, 그해 겨울이 끝나기전 레조를 제외한 칼리브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타란토와 브란덴시에 있던 비잔티움 요새들도 모두 박살냈다. 이후 동생인 로제르와 함께 레조까지 힘락한 기스카르는 콘스탄티노스 10세가 남이탈리아를 되찾기 위해 보낸 군대까지 격파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우세를 확실히 한다. 이후 그는 1061년에 로제르와 함께 메시나를 정복하면서 시칠리아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고, 1071년에는 바리를 함락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 비잔티움 세력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듬해 초에는 팔레르모를 함락하면서 시칠리아섬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1075년에 살레르노 공국을 정복하면서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그의 야심은 남이탈리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원한건 동방제국의 제위를 차지 하는것이었다.
사실, 기스카르와 비잔티움은 이미 그가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기전에 군사동맹의 체결이 논의 된적이 있었다. 1073년에 미하일 7세는 기스카르에게 군사동맹과 함께 로베르의 딸중 가장 아름다운 딸과 황실에서 태어난 황제의 동생[* '제국의 조각상'이라 불릴정도로 아름다운 자였다고 한다.]을 제안한다. 기스카르가 별다른 답을 보이지 않자 미하일은 거기서 더 강화한 제안을 하는데, 미하일의 아들 콘스탄티노스와 기스카르의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면서 그에게 비잔티움의 훈장 44개를 가족 친지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매년 금 200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이후 기스카르는 그해 12월에 콘스탄티노플에 대사로 퐁투아즈 백작 라뒬프를 보냈는데, 표면적으로 그가 온 이유는 니케포로스 3세에게 헬레나에게 만족스러운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기위해서였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수도에 있던 노르만 용병들의 세력을 결집시켜 원정에 끌어들이는것과, 당시 내무대신이자 실세로 떠오르던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예상치못하게 알렉시오스가 니케포로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해 알렉시오스 1세로 즉위해버렸고, 노르만족들을 결집시킬 역할을 했어야될 라뒬프 백작은 오히려 알렉시오스에게 감화되어서 그와 우호관계를 구축하자는 기스카르의 의도와는 정반대인 답을 해버린다(....) 라뒬프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스카르는 라뒬프를 ~~갈군~~호되게 질책한 뒤, 브란디쉬와 오트란토에 이미 모여있던 그의 원정군들을 아드리아해 너머 비잔티움령에 보내려 했다.[* 이미 아드리아해 너머에는 그의 장남 [[보에몽 1세|보에몽]]이 이끄는 선봉대가 상륙해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1081년 5월말에 함대가 출항했다. 함대에는 1300명의 노르만 기사와 사라센, 그리스, 그외 수많은 민족의 병사들의 보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라구사의 지원군까지 합류한 군대는 해안을 따라 천천히 가서 코르푸에 닿았고, 그곳의 수비대는 즉시 투항했다. 코르푸의 함락은 기스카르에게 상당히 중요했는데, 이로써 발칸 침략을 위한 교두보가 확보되고, 이탈리아의 증원군을 그곳을 통해 좀더 빨리 투입시킬 수 있었기에 그가 침략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코르푸를 얻어낸 기스카르가 발칸침략의 첫 교두보로 삼은 곳은 일리리아[* 지금의 알바니아]의 중심지이자 주요항구였던 디라키온[* 현재의 두러스]였다. 이곳을 통해 에그나티아 가도를 타고 동쪽으로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지나면 곧바로 콘스탄티노플로 갈 수 있기에, 이곳을 차지하는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냈어야하는 기스카르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약간의 불운이 있었는데, 북쪽으로 가서 아크로케라우니아 곶을 도는 순간 갑작스러운 폭풍으로 인해 일부함선과 거기타고 있던 병력이 물고기밥이 되버리고, 간신히 그곳연해에 병력을 상륙시키고 나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두고볼 수 없었던 베네치아 도제가 직접 함대를 이끌고 기스카르의 해군을 공격한것이다. 노르만 해군은 대응하려 했지만 해전경험에서 베네치아 해군에 비해 한참 밀린데다가 '그리스의 불'까지 사용하던 베네치아 해군을 이길 수는 없었고 결국 베네치아 해군은 디라키온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윽고 회전이 시작되었고,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바랑기안 근위대로 구성된 비잔티움군의 우익이 시켈가이타가 지휘하는 노르만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바랑기안들은 평소보다 유난히 광폭한 상태였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 복무한 바랑기안중 대다수가 노르만 군주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했을때 잉글랜드편에서 복무한 군인이었기 때문이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복수에만 정신이 팔려 지나치게 앞으로 가 본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버렸고, 시켈가이타가 직접 말을 몰고 도망자들을 쫒아 이들의 사기를 회복하고, 한편으론 보에몽의 좌익이 이들을 구원하러오자 차단되어버린다. 결국 화살세례를 버티지못한 근위대는 인근의 예배당으로 피신했지만, 노르만 병사들이 불을 질러 대다수가 타죽고 말았다.
결국 전투는 노르만측의 승리로 끝났으며, 황제측 지휘관으로 나선 게오르기오스의 아버지인 니케포로스 팔라이올로고스와 미하일 7세의 동생인 콘스탄티오스 두카스도 여기서 전사한다. 황제는 겨우 목숨만 건져서 이마에 상처에 출혈과 통증을 참으며 오크리드의 산악지대로 도망쳤다. 그나마 황제에게 위안이었던건, 디라키온이 이듬해 2월까지 넉달을 필사적으로 버텼다는것이다. 그러나 결국 디라키온은 한 베네치아 주민이 밤중에 성문을 열어 함락된다
디라키온 함락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꺾일줄을 몰랐다. 그의 군세는 순식간에 일리리아 전역을 장악했고, 카스토리아를 지키던 수비대는 기스카르에게 항복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마 비잔티움의 멸망은 약 400년정도 앞당겨질 상황이었지만...''' 그때 ''' 이탈리아에서 사절이 왔다.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캄파니아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사절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서신을 가져왔는데, 주교서임권 문제로 그와 다투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공성중이니 한시바삐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답은 바로 비잔티움 전통의 외교술이던 이이제이였다. 예전부터 비잔티움은 외국의 이민족들이 자국을 위협하면 천혜의 무역입지를 통해 쌓인 돈과 보물로 경쟁이민족을 끌어들여 견제하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외교술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것이다. 우선 그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피신해있던 기스카르의 조카인 아벨라르를 끌어들여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쥐여 이탈리아로 비밀리에 보내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한편으로는 하인리히 4세에게 사절을 보내 아풀리아 공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장차 위험해질거라고 충고하면서 금괴 36만개와 진주가 박힌 황금 가슴장식, 그외 수많은 귀중한 보물들을 선물해 그를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가 돌아가고 남은 군대를 맡게 된 보에몽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형이자 당시 세바스토크라토르라는 관직에 있던 이사키오스가 성 소피아 성당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과거 교회의 금과 은을 녹여 전쟁포로들을 되찾아온 전통을 상기시키면서 교회 재산을 모두 몰수한다고 선언해 겨우 전쟁자금을 구할 수 있었지만, 보에몽은 야니나와 아르타에서 알렉시오스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그리스일대를 장악하고 테살로니카로 진군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는 어찌저찌 라리사에서 전세를 역전시킬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보에몽의 군대에 항복한 노르만 병사들에게 더많은 봉급을 주고 용병으로 재고용해주겠다고 보에몽의 진지에 소문을 퍼뜨리게까지 했다. 결국 연패를 거듭한 보에몽은 그리스에서 쫓겨난다.
한편 기스카르는 즉각 이탈리아로 돌아와 1083년 한여름 안에 아벨라르와 그의 형제인 에르망의 난을 진압하고, 산탄젤로성에서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교황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군대를 모집했고, 이듬해 초여름에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는 기스카르와 직접 싸움을 걸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로마성문으로 들이닥치기 사흘전에 군대의 대부분을 거느리고 롬바르디아로 숨어버린것이다. 한편, 기스카르는 5월 27일 밤에 병력을 거느리고 조용히 도시의 북쪽으로 돌아가,섀벽에 공격을 개시했고, 순식간에 돌격대의 선봉이 플라미니우스 성문을 뜷고 도시로 진입했다. 로마 시민들은 노르만군에게게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마르티우스 광장 전역이 불타는 지역으로 변했다. 이후 노르만 병사들은 로마를 약탈하고, 말그대로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한때 군중들이 기스카르를 포위해 그대로 끔살시킬뻔하기까지 했다(...) ~~아깝게도~~ 그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차남인 로제르 보르사가 병력 1천명을 이끌고 그를 구원해 겨우 목숨을 건진 기스카르는 노르만군들에게 도시를 모조리 불태우라고 명령한뒤, 교황을 데리고 남이탈리아로 돌아가 비잔티움에 대한 후속 원정을 준비한다.[* 참고로 이때 기스카르의 나이는 예순 여덟이었다!! 그것도 서양식이니 한국식이면 칠순(....) 대단한 집념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는 11세기~12세기에 비잔티움을 침략한 야심가들[* 차카 베이, 그의 아들인 [[보에몽|보에몽 1세]]등]중 가장 그의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았던 자였다. 동시대 서방황제와 동방황제들 모두 그와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야전에서 알렉시오스를 패퇴시키기까지 하는등, 군재로써는 당시 최고를 달렸던 자였다.
존 줄리어스 노리치 '비잔티움 연대기 3-쇠퇴와 멸망'
- 백정현 . . . . 29회 일치
별명으로는 '백작가'[* [[작가(야구)|마운드 위에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여행 사진의 퀄리티가 사진작가급이라는 것에서 유래. --[[랜디 존슨]]?-- '이야깃거리' 항목 참조. ],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만 잘하는 것에서 따온 '오키나와 에이스', '오키나와 커쇼', 이름에서 따온 '백정', 그리고 못할 때는 '[[백린탄]]'이라고 불리며 까인다. 팀내 별명은 '말순이'인데, 과거 드라마 [[육남매]]에서 말순이 역할을 맡은 송은혜와 비슷해서 붙은 별명이다. 2017년 지금은 삼성 선발진에서 에이스나 다름 없는 활약을 하며 '백쇼'(백정현+커쇼)라는 별명이 거의 정착된 상태.
입단 첫해인 2007년에는 고교 시절 당한 무릎 때문에 재활하다가 그해 8월 21일 [[권혁]]의 부상으로 인해 좌완계투 자리가 비자 데뷔 첫 1군에 콜업되었다. 1군 데뷔 첫 경기였던 2007년 8월 25일 KIA전에서 [[장성호]]와 [[최희섭]]을 연속 삼진으로 잡기도 했다. 이후 11경기에 등판한 채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2010 시즌 5월에는 [[김현수(1988)|김현수]]와 빈볼 때문에 벤치클리어링 일어날 뻔했다. 2010 시즌에는 [[김효남]], [[임진우]]와 함께 1군 불펜 추격조에 속해 있는데, 불펜이 약한 팀에서는 충분히 필승조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앞의 두 선수와는 달리 '''[[조원수박차]]'''의 재림을 노리는 듯한 플레이를 펼쳐주며 삼팬들에게 집중적으로 까였다.
3월 31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다. 3회까지 1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4회부터 제구가 흔들렸고, 2점을 더 내주고 1사 만루 상황에서 강판되었다. 3과 ⅓이닝 동안 4피안타 5사사구 5탈삼진 5실점을 기록하였다.
이 이후에는 불펜에서 롱 릴리프와 추격조 역할을 맡아 하고 있는데 2014년 불펜에서의 활약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듯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시즌이 지나가면서 롱 릴리프 역할도 김기태에게 넘기고 추격조의 핵심으로 성장 중.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한 시즌을 보낸다면 2016 시즌에는 승리조로 승격할 수 있을 듯.
이후 [[류중일]] 감독의 지시로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와 함께 BB아크행. 하지만 한화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도 부진했다. 퓨처스리그 일정이 끝난 후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9월 29일 1군에 올라왔다. 30일 한화전에서 1이닝 3실점을 했고, 10월 2일 [[알프레도 피가로]]가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오키나와에서의 연습경기에서 잘 던지더니 한국에 돌아와서 치른 시범경기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맞아 나가면서 4경기에 등판해 1홀드 ERA 11.25를 기록했다. 일단은 개막전 엔트리에는 포함됐지만 올해도 그냥 오키나와 에이스로 남지 않을 지 걱정되는 부분.
5월 6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2점 지고 있는 8회 2사에 등판하여 박정권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팀이 2점을 더 내서 역전, 9회 심창민이 퍼펙트로 막아냈고 백정현은 '''1구'''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1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인 김기태의 책임주자를 아무렇지 않게 잔루로 남기는 결정적인 활약을 보이며 '''2승'''을 거둔다.
6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0회말 6:6 동점 상황에서 등판하여 첫 타자 김문호를 잘 처리했지만 후속타자 황재균에게 초구를 얻어맞고 끝내기 홈런을 내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14일 롯데전 3번째 투수로 등판해 무려 '''11경기 연속 출전을 달성했다!''' ~~대전 모 팀 감독님도 이런 짓은 안 하시는데...~~ 박근홍이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는데, 이닝 쪼개기와 좌우놀이를 즐겨 하는 코칭스태프의 성향상 팀 내 유일한 좌완 계투인 백정현이 휴식일 외에는 계속하며 등판하고 있으며 선수는 선수대로 연투에 지쳐서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중간에 올스타 브레이크가 있긴 했지만 7월 19일에 또 올라와서 0.1이닝 투구수 6개를 기록하였다. 이로써 12경기 연속 등판을 달성하였다!! ~~좋은 거냐 나쁜 거냐~~
'''[[윤성환|윤태자]]와 함께 명실상부 2017 라이온즈 원투펀치'''
3월 23일 금요일에 영남대 상대로 선발로 나와 5이닝 0실점으로 잘 던졌다.
6월 1일[* 원래 로테이션 상으로는 아델만이 나오고 백정현은 그 전날 나와야 하지만 백정현이 nc전에 강한것과 더불어 아델만이 홈에서 극강이고 kt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기에 순서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전날 아델만 역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nc전에서 7.2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3승을 챙겼다. 또한 nc 킬러다운 면모를 이어나갔다.
8월 12일 NC전에 등판하여 6이닝 2실점 8삼진을 잡아내며 초반 잠깐 흔들리는듯 햇으나 타선 지원을 받으며 멘탈을 추스린 후 백쇼모드로 돌변, QS와 더불어 시즌 5승을 챙기며 다시 한번 [[엔나쌩]]임을 증명해냈다. 아시안 게임 휴식기를 앞두고는 등판할 일이 없어 8월 14일 1군에서 제외됐다.
원래 150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이었지만, 본인 스타일 변화와 십자인대 파열 여파로 최고 147, 평균 140 초반대로 구속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준수한 구종가치에 힘입어 많은 탈삼진을 기록하는 좌완 투수. 통산 K/9이 9를 넘어간다. (285이닝 288탈삼진)
이에 2013년 이후로 선발 로테이션 자리가 빌 때마다 선발로 기회를 제공했으나, 미흡한 서드 피치와 이로 인한 많은 이닝당 투구수로 인해 선발진에 자리잡지는 못했다.
취미는 그림그리기[* 고교 졸업을 앞두고 [[리자몽]]을 그린 후 사진을 찍은 걸 싸이홈피에 올린 적이 있었다. 칠판에 그린 건데 퀄리티도 제법 뛰어나고 색칠까지 했다.]와 프라모델 조립이라고. 그밖에 좋아하는 것은 [[여행]]. 2015 시즌 팬북에 친구와 간 [[뉴질랜드]] 여행 사진도 올라갔다. 제일 가보고 싶은 여행지에 [[유럽]]을 꼽았다.
[[이사만루2017]]에서는 17 백정현카드가 K.O.M으로도 나와있으며, 7월 베스트로도 있다.
- 유민상(개그맨) . . . . 29회 일치
2005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20기 [[개그맨]]이자 [[유튜버]].[* 주로 게임 영상을 올린다. 특히 그가 즐겨하는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녹화하여 업로드한다.--그런데 게임 녹화할 때 본인 얼굴이 아니라 [[개]]([[시바견]])의 얼굴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은 캠없이 방송했다가 [[돼지]]얼굴이 나온다--] [[1979년]] [[10월 9일]] [[한글날]]에 태어났다. 187.9cm,[* 프로필상 키는 185cm이나, 실제로는 187.9cm이다.비타민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을때 187.9cm가 나왔었다. 본인이 방송에서 자기 키 얘기를 할때 어떤 때는 188이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187이라고 했다가 하면서 약간 왔다갔다 하지만 그 외의 키를 말한 적은 없으므로 187~188 사이인 것은 확실하다. [[라디오 스타]]에서 185~6cm인 김구라와 대놓고 키로 비교했을때 더 컸으며, 개콘에서 대표 장신 개그맨 [[양상국]]과 서있을 때도 보면 약간 더 컸고, 이들보다 약간 더 큰 류근지와 있을때는 비슷해보이지만 몸매상 팔다리가 가는 류근지가 실제보다 더 커보이는 영향이 있어서 그런거지 유민상이 좀 더 크다. 이미 2010년에 달인에서 김병만이 유민상의 정수리 너머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하자, 류담이 "참고로 저 분 187cm입니다"~~[[김병만]] : 뭐? 몸무게가?~~ 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뚱뚱한 개그맨으로 유명한 [[김준현]], [[류담]], [[문세윤]] 같은 개그맨들이 옆에 있어도 작아보이게 만들 만큼~~ 거대하다. 귀여운 의미의 뚱뚱함이라기보다 씨름선수, 그것도 백두급 선수들과 동급 체격이다.] 140kg에 육박하는 거구.
아직 120kg이 안 되던 시절 개그맨 신인들의 등용문이었던 [[폭소클럽]]에서 [[마른인간연구 엑스파일]]이라는 코너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개그콘서트]]로 넘어온 후 <솔로브레이크>라는 코너에서 석호필을 패러디한 '석호피그'로 '''영리한 돼지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1대 100]]에서 우승하면서 캐릭터만이 아님을 보여줬다. <아빠와 아들>, <안생겨요>, <큰 세계> 등의 코너도 히트시키는 등 몇 안 되는 개콘 장수 개그맨으로서 그 능력을 입증했다. 다만, [[비호감]]이라는 약점이 살짝 있었는데, [[맛있는 녀석들]]이 대히트하면서 그것조차도 다 날려버렸다.
게다가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김준현]], [[류담]]과 닮아서(사실 뚱뚱한 것일 뿐), 사람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트위터 메인에는 "저 달인에 안나옵니다."라고 써있고 --근데 특별출연은 꽤 했다 달인 자체가 워낙 롱런 코너라 개콘 멤버들 모두 한두번씩은 엑스트라로라도 다 나와봤는데 유민상은 그 중에서도 좀 더 나온 편--, 한 번은 김준현으로 오해한 팬들의 지속적인 사인 요청에 귀찮아서 김준현이라고 사인해 준 적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래서 살 빼라고 강요하는 건지도 모른다.
[[개그콘서트]] [[사랑이 라지]] 코너에서 [[김민경]]과 연인역할로 호흡을 맞췄으며, [[1대1]] 코너에서 출연자들이 [[김민경]]과의 러브라인을 강제로 엮었는데[* 예를 들면 작중 [[내부자들]]의 [[이병헌]]을 패러디한 이병원으로 출연 중인 [[이세진]]이 유민상이 내준 문제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글자배열을 뒤죽박죽 엉망으로 못 맞히고(정답은 프리마돈나, 이병원이 제시한 오답은 1차 시도때 마, 돈프--뿌--리나? 2차시도때 프--푸--~니돈마나?) "장난 나랑 지금하냐? 풀어야지 궁금증 풀어야지. 진짜 [[김민경]]이랑 사겨?"라는 등] [[맛있는 녀석들]]에서도 김민경과 러브라인까지.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이수지|그녀]]와 [[님과 함께(JTBC)]] 시즌2를 찍으면서 김민경과 러브라인은 날아갔다.
어쨌든 덕분에 공식적으로 러브라인을 이어주려는 어떤 시도도 아예 없어진 상태이며, 맛있는 녀석들에서 일반인 시청자와 썸을 타게 해주려는 기획을 한 두 번 보여주고는 끝이었다. 그리고 그는 [[미연시]]를 하며 흐뭇하게 만족하는 중...
[[폭소클럽]]에서 자신의 먹방 컨셉으로 데뷔한 이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먹방을 선보이고 있다. 먹방의 경지가 어느 정도냐면 예전에 유민상식 [[짬짜면]]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는데 정작 실상은 '''그냥 [[짜장면]] 1그릇과 [[짬뽕]] 1그릇을 동시에 시켜서 먹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두 그릇만 시키면 (2명이서) 금방 먹을줄 알고 그릇을 일찍 찾으러 오기 때문에 [[식신|상당히 속식]]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이 [[개그 콘서트]]에서도 자신의 먹방을 이용한 개그를 많이 선보인다. 대표적으로 폭소클럽에서 선보인 [[마른인간연구 엑스파일]]에서 착안한 [[아빠와 아들]], [[큰 세계]]로 맹활약을 펼쳤고, 그 뒤로도 다른 개그 코너에 출연해서 자신의 먹방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그가 주로 활약하는 코너들이 풍자와 해학을 통해 웃음을 주기보다는 직설적으로 정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이유로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유민상 본인이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러한 코너들에는 유민상이 항상 출연했기 때문.
* [[1대 100/1인 우승자 #s-4.3|264회 개그 콘서트 특집에서는 100인으로 참가해 5단계까지 생존했으며, 이 대결의 최종 결과는 여기 참조.]][* 참고로 이 날 사전 테스트에서는 9대 우승자 [[황현희]]와 같이 공동 1등을 했으며, 황현희는 2단계에서 광탈했다.]
* 2013년 9월 24일 311회 [[1대 100]] 때 [[1대 100/1인 우승자 #S-5.1|2,3단계에서 찬스를 소진하면서 위기를 맞은 뒤 7단계에서 최후의 2인과 접전을 벌였으며 최종 결과는 여기 참고.]][* 3단계에서는 장효인에게 2인의 답 도움을 받고 통과했다.] 이 때 후배 [[장효인]]이 유민상이 짝사랑하는 개그우먼 후배 S양이 '''[[박소영(개그우먼)|박소영]]'''이라고 폭로했지만, 실제로는 [[유장프]]에서 90년생 미녀개그우먼 '''홍예슬'''로 밝혀졌다.[* 2015년 12월 22일 홍예슬이 현장토크쇼 TAXI에서 당시를 회상하길, '영화볼래?'란 문자가 먼저 왔단다. 부담스러웠지만 대선배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어 동기와 함께 나갔더니 실망하는 눈치였다고. '나랑 사귈래 총맞을래'라길래 쏘라고 했단다. '선배님 저는 성시경같은 남자 좋아해요'라고 그랬더니 무려 성발라의 노래를 부르며 대시. 곧 '성시경이 싫어졌어요'라고 철벽을 치는 안타까운 결말.....숨기고 싶은 과거도 활자화되기 때문에 공인은 이래서 힘들다.]
주로 [[김기열]], [[정명훈(코미디언)|정명훈]], [[이원구]] 등과 스쿼드를 하고, 가끔 ~~자나자나~~ [[김준호(개그맨)|김준호]]와도 같이 플레이한다. 그러다가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되는 사건이 몇 번 벌어졌다.
트게더에 이러한 평가방송을 비판하는 피드백이 올라온 적이 있으며 트위치 스트리머와 시청자를 존중해 달라는 글은 유민상의 팬들에게 집단 몰매를 맞은 적이 있다.
8월에는 스트리머 [[풍월량]]의 배틀그라운드 상자깡 방송을 장시간 도방[* 도둑방송 또는 도용방송이라는 뜻으로 아프리카 TV에도 있는 용어. 남의 허가 없이 자기의 라이브 방송에 남의 라이브 방송이나 다시 보기 화면을 띄우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트위치나 BJ의 방송 자체가 고유의 컨텐츠(저작권)이기 때문.]하는 일이 있었다. 트위치에서 허가 없는 도방은 금지[* 대표적인 사례가 하스스톤 카드공개 도방 사건이다. 블리자드의 카드공개 방송을 도방하던 다수의 하스스톤 스트리머들이 단체로 2일 정지 처분을 받았다. 블리자드의 카드공개 방송은 블리자드에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영상 도네이션 중 저작권 보호 요청 영상을 틀면 정지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트위치에서는 단시간 도방이 이미 문제 제기되었던 적이 있다. 영상 도네이션 등으로 '''허가 받지 않은 타 스트리머의 트위치 클립'''이나 '''유튜브 편집본을 송출'''하는 행위는 다시 보기 화면의 일부(도방)일뿐더러 엄연한 저작권 위반 행위이기 때문이다. ~~트수의 암살 시도~~]되어 있다는 시청자의 지적에 "그런말 할거면 팔로우나 누르고 가라"는 식으로 다시 한번 트위치 스트리머와 시청자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트게더에 이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자 이를 비꼬는 듯한 댓글을 달아 다시 논란을 가중시켰다.
현재 유민상의 트게더와 트위치 채널은 폐쇄된 상태며 새로운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fX2Wxlb7OE0|방송]]을 열었다.
그러나 [[트위치 스트리머 성추행 의혹 및 FEVER 퇴출 논란]]이 터지면서 유민상의 발언들이 재조명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특히 후즈와 이유에 대한 말들이 재조명 받는 중이다.
* 2013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남자 우수상을 수상했다.--본인은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준비해 왔다고 한 건 안 자랑--[* 소감을 읽을 때 --다분히 의도적으로-- 상 이름을 언급할 때면 매번 '최우수상'이라고 말한 뒤 바로 '아니, 우수상'이라고 정정하거나 '대상 바로 밑에'라고 했다가 '아니 대상 바로 밑에 밑에'로 정정하는 등 깨알같은 재미를 주었다. 여담으로 그토록 바라던 최우수상은 캐릭터적 라이벌(?)인 [[김준현]]이 수상했는데, 동료들이 김준현에게 꽃다발을 건네러 단상에 나올 때 같이 나와서 '''트로피를 바꾸자고''' 딜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 2014년 1월 23일 아프리카 BJ [[불양]]을 찾아와서 아프리카 방송에 출연했다. [[불양]] 길드에서 활동했다고 했으며, 블러드엘프 사냥꾼 캐릭터를 90레벨까지 키웠다고 말했다. 지금은 전장만 주로 돌고 있다고.
* 2014년 2월 3일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출연해 ''''단 한번도 팬레터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진짜라면 진기록이긴 하다.[* [[아빠와 아들]] 코너에 같이 출연한 김수영이 트위터에서 '아빠와 아들' 명의로 된 어린아이의 팬레터를 인증한 적은 있다.[[https://twitter.com/GAG615/status/248497118560534528|*]]][* 이는 2014년 6월 6일 불양방송에서 불양 집 벽에 걸린 팬아트를 보며 다시 한번 언급했다. 이것을 보아 최근까지도 제대로 된 팬 선물 등을 받은 적이 없는 듯... [[후새드]] ] 2014년 7월 28일에 다시 한 번 출연했으며 남동생([[1981년]]생)과 15년 동안 한 마디도 안 했다고. 남동생은 --형과 달리-- 미남이다.
* 2014년 8월 15일 드레노어 월드 프리미어의 진행을 맡았으며 빵빵 터지는 와우드립으로 모든 와우저들을 만족시켰다.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56005|아즈샤라 얼라이언스는 뭘 먹고 사나요? 거긴 작업장조차 없는 서버잖아요]]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업적 점수 9200점으로 라이트 유저 수준은 확실히 넘는데, 하이잘 서버는 얼라이언스 진영에, 아즈샤라 서버는 호드 진영에 주캐가 있다. 연예계 대표 [[와저씨]]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블리자드]]에서도 홍보 겸 감사 겸 소장판을 [[군단(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군단 확장팩]] 때까지는 보내줬다고. 그런데 2018년 8월 [[격전의 아제로스]] 때는 안 보낸 모양. 게임 유튜버 [[김기열]]에게 '블리자드가 나를 버렸다'고 농반진반 언급한 바 있다. 그렇긴 해도 격아 소장판 한국 버전에 문제가 많은 모양. 스토리 소설도 한국어 번역이 안돼있고 OST도 원래 그 전 확장팩까진 DVD였던 것이 다운로드 키만 제공된다. 아울러 북미판에는 들어있는 110레벨 부스트가 빠져있다. 특전 영상, 마우스 패드, 원화집 어느 것도 없다. 소장판 유저들에게 제공되는 '동맹 종족 영입 퀘스트'도 문제가 생겨 진행이 안되는 상태. 유민상에게 특별히 신경을 안쓴 게 아니라 그냥 소장판 자체에 신경을 안 쓴 모양.
- 이광수(배우) . . . . 29회 일치
||<#ACF3FF> '''{{{#000000 이름}}}''' ||<#ffffff><(> 이광수(李光洙 / Lee Kwang-Soo)[*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지은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와 한자도 같은 동명이인이다.] ||
'''아시아 프린스, [[런닝맨]]의 최대 수혜자[* 런닝맨 고정 7인 중 프로그램 시작 당시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으나, 현재는 런닝맨의 실세가 되었다. 특히 해외 팬들의 인기는 가히 압도적. 그에 걸맞게 중국 최대의 SNS인 [[웨이보]] 팔로워 수만 봐도 약 830만 명인데, 웨이보 한류 스타 순위 TOP 100명 중에 12등이다. 런닝맨 내에서도 팔로워가 두 번째로 많은 송지효와 200만 이상 차이가 난다.][* 런닝맨이 시작하던 2010년 7월 기준, [[유재석]]-[[지석진]]은 이미 십수년간 대중에게 인정받은 톱 개그맨이자 MC였고, [[김종국]]은 가수로서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X맨을 찾아라]]과 [[패밀리가 떴다]] 등 예능에서도 맹활약한 스타였다. [[하하(가수)|하하]] 역시 X맨,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 잔뼈가 굵었고, [[송지효]]는 배우 경력이 꽤 길고 패밀리가 떴다 등의 예능 출연 경험 등이 있었다. 이들에 비해 [[개리(리쌍)|개리]]와 이광수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었다. 개리의 경우 그룹 [[리쌍]]은 많은 히트곡과 힙합계에서 오랫동안 쌓아올린 명성, [[길(리쌍)|길]]의 무한도전 출연 등으로 그룹 자체는 유명했지만 개리 개인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이광수는 시청률 20%를 넘겼던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주요 조연으로 나와 갓 이름을 알렸던 때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화제성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이광수도 적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는 덜 알려진 상태였던 것.]'''
[[남양주시]] 출신으로 190cm의 큰 키와 큰 코를 가진 개성 넘치는 모델이자 배우이다.
초창기 때는 해괴한 바가지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모습이였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절과 런닝맨 초창기에는 외모가 눈에 띄지도 않고 런닝맨 멤버들에게도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름 잘생긴 편이라서, 20대 초반 화보가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런닝맨 중반부 이후로는 수염도 밀고 머리도 다듬다 보니 꽤 훈남화됐다. 다만 망가지기도 많이 망가질 뿐더러, 멤버들이 친구 송중기와 자꾸 비교하다보니 못난이 캐릭터가 지속되는 현상이 나온다. [[2007년]]에 데뷔했지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KT의 'SHOW' CF(공대 아름이 편)였고 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에 캐스팅,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다. 모기춤도 이때 생겼다. 당시 수염 때문인지 [[노안]]으로 보였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 살 많은 [[누나]]인 [[유인나]]보다 '''[[오빠]]'''로 나온다.] 하지만 [[수염]]을 제거했고 수염이 없는 현재는 [[동안]]까진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젊어 보인다. 허나 여전히 노안 캐릭터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룡]]이나 [[에브라]], [[김상중]] 등 런닝맨에 출연할 당시 40대 같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수염을 밀 때였다.]
활발하고 깐족대는 예능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조용하다. 주변 연예인도 예능 이미지만 생각하다가 막상 현장에서 만나면 너무 조용해 깜짝 놀란다고 하니...
또한 초창기만 해도 약체 중 한 명이었는데 런닝맨을 하면서 신체적 능력이 꽤나 좋아졌다. 물론 런닝맨을 하기 전에 보면 몸에 복근이 있어 어느 정도 힘은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약골이라서 그 좋은 신체 조건을 제대로 써먹질 못했다.
런닝맨 초창기에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낯가림이 심해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만 초창기에도 송지효나 김종국을 저격하는 모함광수 캐릭터로 종종 분량을 확보했던 것을 볼때 기본적으로 재능은 충분히 있었다.] 날이 갈수록 예능감이 늘어나 미치다 못해 폭주하게 되었다.[* 런닝맨 초창기 때랑 지금이랑 비교하면 완전히 천지개벽 수준이다. 그 당시에는 낯도 많이 가리고 말을 하다가도 말이 끊기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게스트들도 광수랑 팀이 되면 많이 어색해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오히려 게스트가 광수랑 팀이 되면 게스트 분량도 많이 나오고 서로 편한듯한 모습이 나와서 게스트들도 이광수랑 팀이 되는 걸 선호한다. 런닝맨 초창기 때를 보면 저런 사람이 어떻게 지금 이런 캐릭터가 되었지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 덕분에 물이 오른 예능감으로 현재 런닝맨의 분량을 상당히 뽑아 인기가 더 높아졌고 게스트들도 이광수랑 팀을 되는 것을 은근 선호한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런닝맨의 실질적인 실세라고 불릴 정도로 런닝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멤버는 물론이고 게스트까지 이광수를 놀리면서 주로 분량을 뽑는다. [[제니(블랙핑크)|제니]]도 런닝맨에 나왔을 때 대놓고 이광수를 놀렸다.이광수가 말을 하면 다 그건 별로라고 놀렸다. 한마디로 이광수는 멤버는 물론 게스트들한테까지도 편한 이미지를 장착했다는 말이 된다.
상대를 괴롭히는 쪽이든, 본인이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든 예능인으로써 이런 쪽으로 망가지는 것에 거부감 없이 매우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라 런닝맨을 보면 유재석이 이광수를 매우 아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특히나 2018년 쇠퇴기에 이른 무한도전은 여러모로 원초적인 웃음에 대한 슬럼프가 온 와중에 또 다른 주력 방송인 런닝맨에서는 이런 인재가 있으니 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이 괴롭힌다-- 런닝맨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방송 전체적인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 대부분의 웃음이 다 이광수를 통해서 나오고 멤버들도 대부분 다 이광수를 공격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게스트들까지도...특히나 비슷한 캐릭터인 전소민이 투입된 이후로는 '광돌남매' 관계가 구축되며 서로간 시너지가 창출됐다.
처음에야 강한 마스크와 캐릭터로 어필했지만 사실 기본적인 연기력도 나름대로 좋은 편이라서 배우로서도 괜찮은 커리어를 쌓고 있다. 비록 흥행작은 많지는 않지만 좋은 연기라는 평을 받았고, [[불의 여신 정이]]에서 첫 악역으로 [[임해군]]을 맡았었다.
거기다가 예능 캐릭터가 독이 된 [[송지효]]와 달리 예능 이미지를 드라마의 배역과 통일시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또한 예능 캐릭터를 일부분을 차용한다. 대표적으로 [[괜찮아, 사랑이야]]의 박수광[* 아예 이광수의 [[본명]]에서 따왔다.]이나 [[좋은 친구들]]의 민수.[* 극중에 민수가 [[실수]]한 장면이 있는데 감독이 맘에 들어서 본편에 넣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예능 이미지를 잘 극복하고 잘 성장한 케이스라고 볼 수도 있다. 초창기에는 런닝맨 이미지 때문에 연기할 때 고민이 있었다고 말을 했는데 지금 와서는 런닝맨과 연기 활동 모두 왕성하게 하고 있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이 대다수인 편이다.
의외로 [[무한도전]] 멤버들하고도 친하다.[* 여기서 말하는 무한도전 멤버는 전현직 멤버 모두를 의미한다.] 비록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단, 바보전쟁 특집에서는 본인 명의로 보낸 화환이 있었다.] 런닝맨에 출연하는 [[하하(가수)|하하]]와 [[유재석]]이 무한도전 출연진이다 보니 종종 같이 술자리를 한다. 또한 [[노홍철]] 생일에 축하 메세지를 보내거나 [[정준하]]와 만나서 바보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런닝맨에서 [[길(리쌍)|길]]하고 차 타고 같이 간 적도 있었는데 동작대교에서 버렸다고 폭로했다.
2016년에는 유니셰프 한국위원회와 함께한 2016년 연말캠페인 "위액션"에서 재능기부를 하였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https://youtu.be/zSErcEAvu8E|춘]] 춤으로 당시에는 화제성이 전혀 없었는데 워낙 시간이 짧기도 하고 임팩트도 없어서 당시에는 아무도 몰라봤다. 거기다가 [[놀러와]]에서 [[줄리엔 강]]과 같이 모기춤을 추었으나 MC인 [[유재석]]도 이 춤이 뭔지 잘 모른 눈치였고 반응도 엄청 썰렁했었다.
|| 2012년 || [[KBS]] ||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 [[박재길]][* 사실상 실제 이광수와 싱크로율 백프로이다. 왜 그런지는 항목 참조.] || 조연 ||
|| 해양경찰마르코 || 더빙 || 마르코[* [[송지효]]와 같이 더빙에 참여.] ||
* [[MBC]][[놀러와]] - 게스트 출연 [* 지붕킥에서의 인연으로 줄리엔 강과 절친으로 나왔다. 참고로 [[유재석]]이 당시 광수를 키 큰 [[하하(가수)|하하]]이라든지 혹은 [[노홍철]]과 비슷하다고 평을 내렸다.]
*[[SBS]] [[힐링캠프(SBS)|힐링캠프]] - 개리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
* 데뷔 초기에는 바가지 머리를 하고 다녔다. 가뜩이나 노안(?)인데 머리 스타일까지 독특하니 기름을 부은 셈. 하이킥 촬영 도중 지금의 머리와 비슷하게 바꾸면서 바가지 머리와 작별했다.
* 런닝맨에서의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로는 예의가 바른 편. 어릴 적부터 예절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게 통화예절인데, 방송에서 가끔 유재석이 방송인 걸 숨기고 전화를 거면, 그렇게 친한 사이인데도 정중한 목소리로 "형 안녕하십니까"이란 말을 하고 유재석이 본론을 꺼내기 전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조응천 . . . . 29회 일치
|| '''약력''' ||<(> 대전지방검찰청 검사[br]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br][[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br]부산고등검찰청 검사[br]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br][[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br][[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br][[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br]~~별주부짱 매니저~~[* 공직을 맡은 것이 아니라 취소선을 쳤지만, 이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직기강비서관에서 잘린 뒤에 그는 아내와 같이 해물전문점을 운영했었기 때문이다. 즉, 당선될 당시 그는 자영업자였다. 이는 그의 총선 포스터에도 당당하게 적어 놓은 약력이다.][br][[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며 전직 자영업자. 그리고 '''[[문재인]]의 남자 2호'''[* 남자 1호는 [[김병기(정치인)|김병기]] 의원이라고 한다. 김병기 의원의 경우 자신이 친문 인사임을 스스럼 없이 인정하고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해 ~~물론 말로만~~ "나는 친문 인사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문재인]] 대통령은 당대표 사퇴 후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병기와 조응천 두 사람을 본인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으며, [[박근혜정부]]에서 핍박 받은 두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켜 달라고 직접 트위터에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 다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며, 훗날 요긴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김병기(정치인)|우병기]] [[조응천|좌응천]]~~ ~~최초의 셔터맨 출신 국회의원~~
[[대경권|TK]] 출신 엘리트 검사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요직을 맡아 성장했고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는 등 [[대경권|TK]] 성골 엘리트급의 보수 인재 루트를 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적당히 끊고 청와대에서 나왔다면 지금쯤 구 새누리당에서 요직을 맡아 보수층의 중심에 올랐을테고, 계속 해서 청와대에서 자리를 맡았다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축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인하여 축출돼 '''별주부짱'''이라는 이름의 [[횟집]]을 운영하며 중앙 정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는, 드라마틱한 이력을 갖고 있다.
=== 검찰 재직 ~ 청와대 보좌관 ===
[[김대중 정부]] 때는 검사 신분을 유지하면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가 2005년 검사직을 사임하고 [[김앤장]] [[변호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후기인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법무부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하였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원장|원장]] 특별보좌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변호사]]로 돌아갔다.
2013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전문위원으로 [[박근혜정부]]에서 일하였다. 같은 해부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세계일보]]에 [[청와대]] 내외부 인사에 관한 감찰 자료가 보도되면서 이에 책임을 물어 해임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2014년 4월 15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발생 하루 전이었다.[* 해임된 다음 날, 혼란스러운 본인의 상황 중에 우연히 TV를 보게 되었는데, [[세월호 참사|갑자기 너무나 당황스런 화면]]이 나오고 있어서 몹시 어리둥절 했다고 한다.]
이 문건 내용이 사실임을 의심케하는 대목이 있었음에도 사건 수사를 맡았던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은 이 문건을 작성해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s-4|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하였던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그의 부하 직원이었던 [[박관천]] 경정 등을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대충 마무리해 버렸다.
해임된 후, [[양복]]을 입고 근무하는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억울한 해임과 기소에 홧병이 나서 본인과 부인 모두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가슴이 답답해서 [[자전거]]를 타고 [[남양주시]]까지 자주 다녔다"고, 출마한 후에 고백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가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조응천을 국기문란사범으로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종편에 의한 후속보도까지 이어졌을 땐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생각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인 2017년 1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나와서는 그때 썰을 푸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xWq4Bmffjg|정청래 : 근데 본인은 지금 행복하잖아 / 조응천 : 땡큐.]]라고 큐트하게 받아쳐 주신다. ~~막 특검 왔다갔다 거리고~~ 정청래는 옆에서 "진짜 큰일 날 뻔했어~엉, 안 짤렸음 어떡할 뻔했어~엉", 김어준은 "그렇겠지, 청문회 나가서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거 하고 계셨겠죠."라면서 깐족깐족대는데... 전화위복도 이런 전화위복이 없다.] ~~[[자덕|자전거 덕후]] 입장에서는 주말 소풍 수준인데...~~ 다시는 공직이나 법조인 생활을 하기 싫은 생각에 [[마포구]]에 '''[[http://dmaps.kr/23r6b|별주부짱]]'''이라는 해물 요리 전문점을 개업하였다.
이후 [[이동형]]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전 [[새정치민주연합]] 총무본부장과 함께 출연해서 2탄(?)도 공개했는데 한 술 더 떠 [[http://www.podbbang.com/ch/4362|'''십상스시''' 라고 지으려고도 했다]]고 한다. 이 이름은 [[십상시|십상]][[스시]]라고 하면 해물 음식점인데 [[초밥]]으로 메뉴가 한정될 것 같아서 그만 뒀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이것도 주위에서 뜯어말린 거 같은데...-- 본인이 [[청와대]]에서 당한 것이 하도 억울해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다.
[[문재인]] 당시 대표가 영입한 마지막 외부 인사였다. 입당의 변과 십상스시 에피소드를 풀어놓은 이이제이 출연분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표가 매일 같이 찾아와 간절히 부탁했고 처음에는 그다지 정치에 입문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정치 아니겠냐."'''라는 (문 전 대표의) 말을 듣자 비로소 결심이 섰다고 한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영입되었기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급작스럽게 영입된 상황에서 마땅한 지역 연고도 없었기 때문에 출마 지역을 놓고 시행착오와 논란을 겪었다. [[신계륜]]이 비리로 기소된 [[서울특별시]] [[성북구 을]]이나 비례대표로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결국 공천을 신청하지 않았다.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지를 받아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상대 후보인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는 [[남양주시]]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던 지역 토박이였던 데다가 지역구 관리를 상당히 갈고닦았던 반면, 조응천 후보는 [[남양주시]]와는 어떠한 연고도 없는 정치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최종 개표 결과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를 249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꺾고 신승했다.[* 조응천이 [[수동면]]과 [[화도읍]]에서 심장수에 밀렸지만 젊은 층 인구가 많이사는 [[호평동]]과 [[평내동]]에서 심장수를 앞섰다.] 이는 경기도 내에서는 최소표차로 당선된 것이다. 또한 정권 심판론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신승에는 [[문재인]] 전 대표의 막판 호소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선거 전날 문 전 대표는 본인 [[SNS]]에 유난히 두 사람이 눈에 밟힌다면서 [[국가정보원]] 출신의 [[김병기(정치인)|김병기]] 후보와 함께 조응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선거에서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었다. 아마도 문 전 대표가 여론조사 상황 등을 들으면서 두 사람의 당선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고 한 것 같다. [[국가정보원]] 인사처장을 지냈던 김병기 후보와 [[대한민국 검찰청|검찰]] 및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조응천 후보를 콕 집어 지지를 호소했다는 점에서, 이는 [[문재인]] 전 대표가 [[국가정보원]]과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행동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20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와 [[정보위원회|정보위]](겸)에 내정되었다. 2016년 6월 27일 법사위원회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01997|"장관님, 서초동 4대천왕 들어보셨습니까"]]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법조비리에 관한 질문과 비판으로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인터넷상에서 격의 없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대한민국 검찰청]]과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근무했던 50대 아저씨가 맞나 싶을 정도. [[https://www.facebook.com/chopros|페이스북]]과 [[https://twitter.com/chopros|트위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늘의유머]]에 인증을 했는데 닉네임이 무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freeboard&no=1278460#memoWrapper75166001|뽀오통령]]이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입당 이후 나온 출연 모습에서 [[뽀로로]]를 닮았다는 평이 꽤 올라왔고, 이게 본인에게도 마음에 들어서 정한 닉네임인 듯. 그리고 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실제로 뽀로로 탈인형이 줄곧 등장했다. 그래서 나무위키에 '''뽀응천'''을 쳐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그렇다고 의정활동 안 하시고 노는 것만 제일 좋아하시면 안 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전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반정부 성향이 강해진 인터넷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이러한 조응천의 드립은 다시금 주목받았고, [[주갤]]에서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1&no=4508912|통쾌하고 호감간다는 말들이 나왔다.]] 애초에 더민주에서 이 사람을 영입한 가장 큰 이유가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다는 이유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을 수년 전부터 접했던 사람이라는 이유인데, 공직상 기밀 누설 혐의로 형사소추 당하지 않는 선에서 청와대, 검찰의 대응 플랜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분석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어서[* 특히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에 대한 반감이 글에서 드러난다. 아무래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사건 때문이다.]]] 현재 정국에서 관심도가 매우 높은 의원 중 하나.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운 와중에, 10월 26일 "조응천 의원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던 시절 [[최순실]]이 주[[이탈리아]] [[대사]]에 [[통일교]] [[유럽]] 총책이자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S씨를 밀었지만, 조응천 당시 비서관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대사 취임을 무산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 비서관 시절의 경험에 대해서 발설하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저촉될 수 있다"며 사실여부에 대해 함구하는 중이다. ~~사실 논란거리는 아니긴 한데~~
* [[TV조선]]의 [[강적들]]이란 프로그램에 나와서 밝힌 바에 의하면 조응천은 본래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차관급 공직 아무 곳에나 임명되어 기사가 모는 관용차를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어찌됐건 꿈은 이루었다고 인정하였다.[* 국회의원의 지위는 일반적으로 장관보다는 낮지만 차관보다는 높다.]
* 사복 센스가 의외로 뛰어나다(!) [[박근혜 퇴진 운동]] 촛불 집회에 참석했을 때 목도리와 신발의 오묘한 깔맞춤이 한 네티즌의 인증샷으로 공개되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 하이큐/239화 . . . . 29회 일치
* 츠바키하라 고교의 히든카드로 등장한 핀치 서버 [[히메카와 아오이]]. "언더핸드 서브"를 구사한다.
*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원래 핀치 서버란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고 히메카와에겐 "무엇보다 큰 아군"이 있으니 힘내라 조언한다.
* 2세트 들어 긴장이 누그러진 히메카와는 자신의 특기인 "천장 서브"를 사용해 카라스노의 허를 찌르는데 성공한다.
*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심정으로 핀치 히터를 기용한다. 그것도 실전 경험이 전혀 없고 공식전 첫 데뷔인 1학년 [[히메카와 아오이]].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비슷한 포지션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 히사시]]가 보기엔 지나치게 긴장했다.
사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긴장한 연습 때의 성과를 보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사실 2학년의 같은 포지션인 [[츠키오카 치하루]]가 신경쓰이는 점도 있다. 원래는 츠키오카가 이런 타이밍에서 핀치 서버로 기용됐었는데, 하필 봄고에 와서 난데없이 자신이 끌려나온 것이다. 이런 판이니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할 수밖에. 그래도 "핀치는 기회"라고 자신을 설득하며 플레이에 들어간다.
* 히메카와는 특이하게 "언더핸드 서브"를 구사한다. 초심자들이 많이 쓰는 방식으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게 특징. 카라스노에서는 그저 특이하게 친다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다.
* 그런데 치는 손맛이 이상하더니, 공은 엉뚱하게 같은 팀의 테라도마리의 뒤통수에 작렬한다. 적아군 모두 표정이 얼어붙을 정도로 황당한 실책. 게다가 이 실수로 1세트를 카라스노에게 넘겨주고 만다. 좀 황당하지만 어쨌든 선취는 선취. 카라스노의 응원단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관중석에서는 히메카와의 실수가 입방아에 오르며 "평생 꿈에 나오겠다"는 말이 본인에게 들릴 정도였다.
* 실책을 저지른 히메카와는 사색이 된 표정이다. 하필이면 또 3학년 에이스 테라도마리를 건드렸으니.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주장 에치고가 풀어준다.
테라도마리도 "맞추려면 나 빼고 맞춰라"고 웃어넘긴다. 히메카와가 가장 의식했던 2학년 츠키오카도 3학년 마루야마에게 "종반부터 서브가 어설펐다"고 쓴소리를 퍼부울 뿐, 아무도 히메카와의 실책을 문제삼지 않는다. 히메카와는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조금 어리둥절하다.
* 2세트 개시. 2세트에서도 카라스노의 강세는 이어지지만 츠바키하라도 만만치 않게 따라잡는다. 경기를 시청하던 [[다테 공업 고교]]의 [[후타쿠지 켄지]]와 [[아오네 타카노부]]는 츠바키하라의 분발도 상당하다고 평가한다.
*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의 활약으로 2세트에서도 카라스노는 2점 가량 리드하며 우위를 점한다. 츠바키하라는 흐름을 끊기 위해 다시 한 번 핀치 서버를 이용하는데, 이번에도 히메카와가 지명된다. 히메카와는 다시 츠키오카의 눈치를 살피지만 정작 츠키오카는 대범하게 행동한다.
츠키오카는 "다음 시합"에선 자신이 나갈 거라며 히메카와에게 적은 기회를 살릴 방법이나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말 뜻을 이해한 히메카와는 츠키오카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한 번 선수 교체를 준비한다.
* 오오사도 감독도 재등판하는 히메카와에게 조언을 한다. 원래 핀치 서버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적어도 츠바키하라에겐 핀치 서버가 실패해도 탓할 녀석이 없다. 고작 1점 잃었을 뿐이니 되찾아오면 그만.
경기는 테라도마리의 스파이크로 츠바키하라가 1점 차로 바싹 따라붙는다. 오오사도 감독은 또다시 히메카와의 서브엔 "가장 큰 아군"이 있지 않냐고 격려한다.
히메카와는 조금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코트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오사도 감독 자신은 터무니없는 조언을 했다고 여기고 있다. "멋진 장면을 따내봐라"니, 그런 큰 무대에서, 이런 긴박한 상황에 투입돼서 실패한다면 그걸 용서하지 않을 사람은 팀원이 아니다.
오오사도 감독은 자신의 조언으로 히메카와가 "자기자신"을 다시 신용할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이 없는 것 같다.
* 다시 서브를 준비하는 히메카와. 심호흡을 하며 전보다 침착하게 공을 띄운다. 이번에도 언더핸드 서브. 테라도마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통수를 잘 가린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정확하게 타격한 공이 천장을 향해 깨끗하게 날아간다. 이른바 "천장 서브".
일반적인 서브와 달리 강력한 파워도 반응하기 어려운 스피드도 없다. 그저 높이 올라갔다 떨어질 뿐인 서브. 하지만 이 점이 오오사도 감독의 노림수였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침착하게 공을 받으려고 준비한다. 천장을 뚫을 기세로 올라갔던 공은 천천히 낙하하는데, 사와무라는 공을 받기 직전 뭔가 어색한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걸 고칠 틈도 없이 공이 떨어진다. 간단해 보이는 공인데도 사와무라 답지 않게 흘려버리고 카라스노는 2세트 들어 처음으로 동점을 허용한다.
오오사도 감독은 이게 의외로 먹힌다며 웃는다. 천장 서브는 배구 역사 초기에 등장했지만 현대엔 사장된 기술이다. 딱히 장점이 없기 때문인데, 반대로 이것이 허를 찌르는 수단이 된다. 현대에는 잘 쓰지 않는다는건, 이 서브를 "익숙하게 받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의미. 게다가 이 체육관이라는 낯선 환경까지 합쳐지면 좀처럼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공격이 된다. 따라서 이 1회전에서 히메카와를 기용한건 단순한 도박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 하이큐/243화 . . . . 29회 일치
* [[사와무라 다이치]]는 졸업생 타시로, 쿠로카와에게 격려와 응원을 듣는다.
* [[네코마 고교]]는 코치현의 키요카와 고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2회전에 진출한다.
* 양팀은 다시 코트에 나란히 도열해 악수와 인사를 나눈다. 관객석의 바보커플은 이번엔 후쿠로다니 학원의 경기가 보고 싶다며 E코트로 간다.
* 츠바키하라 고교의 선수들은 응원단 일동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패했지만 선전한 그들에게 응원단이 격려를 보낸다. 객석에 있던 졸업생들도 함께 박수를 친다. 하지만 마지막 봄고 대회를 일찍 마무리하게 된 3학년들은 복잡한 감정의 눈물을 참을 수 없다. 2학년 [[츠키오카 치하루]]와 1학년 [[히메카와 아오이]]는 패배를 가슴에 새기고 다음을 기약한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밥이나 먹자며 선수들을 다독인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선수들을 이끌고 카라스노 응원단 쪽에 인사하려던 참에 졸업생 타시로와 쿠로카와가 와있는걸 눈치챈다. [[아즈마네 아사히]]나 [[스기와라 코시]]는 경기 중반 쯤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와무라는 끝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자신이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 경기 직후 휴식시간. 사와무라는 학생 대표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시미즈 키요코]]는 팀에 합류.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사와무라는 졸업생들과 따로 만난다. [[니시노야 유]]와 [[타나카 류노스케]]는 졸업생들을 알아보고 인사하는데 1학년들은 당연히 그들을 잘 모른다. [[히나타 쇼요]]나 [[야마구지 타다시]]는 "선배의 선배"라며 기웃거리는데 [[츠키시마 케이]]는 무시, [[카게야마 토비오]]는 가볍게 인사만하고 지나간다.
졸업생들도 지금 1학년들에 흥미를 보이는데 특히 카게야마와 히나타의 괴짜콤비를 궁금해한다. 카게야마가 전일본 유스에 불려갈 정도의 우수한 선수라는걸 듣고 그런 천재가 어째서 자기네 학교에 왔는지 의아해한다. 3학년들은 히나타에 대해선 "활발한 꼬맹이"나 "운동능력 요괴"라고 말하다 사와무라가 "가끔씩 정체모를 녀석"이라고 평한다. 스기와라는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지마 와카토시]]도 경계했던 적이 있다고 말하자 타시로가 깜짝 놀란다.
쿠로카와는 "정체모를 녀석"이란 말을 이어서 다른 학교 입장에선 지금 카라스노 고교 자체가 그런 녀석들로 보일 거라고 말한다.
* 카라스노는 도시락을 먹으며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관전한다. 네코마의 상대는 코치현의 키요카와 고교. 3학년 WS 야마자키 료지가 에이스를 맡고 있다. 신장 183cm의 스파이커. 상당히 활약하며 네코마의 블록을 공략하고 있다. 아즈마네와 스기와라가 굉장하다고 평할 정도의 기량이지만, 사실 봄고 대회까지 오면 굉장하지 않은 팀도, 굉장하지 않은 선수도 없다.
* 네코마는 만만히 물러서는 팀이 아니다. 야마자키의 스파이크를 집요하게 방어하며 랠리로 이어간다. 네코마 측에선 결정적인 공격이 나오지 않지만 팀 전원이 끈질기게 수비에 나서고 키요카와 측은 야마자키에게 공격 패턴이 몰리는 상황이 되자 야마자키의 체력도 한계를 보인다. 결국 야마자키의 스파이크는 라인 밖으로 나가며 실점한다. 아즈마네는 그 철저한 수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괴로워한다.
* 키요카와는 이렇다할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결국 결승점을 허용, 후쿠나가의 스파이크로 시합이 종료된다. 세트 스코어 2 대 0. 네코마 고교의 완승이었다. 히나타는 라이벌 고교의 승리를 기쁘게 바라본다.
* 문제는 엉뚱한데서 시작된다. [[아카아시 케이지]]와 팀원들은 공격이 실패한 직후 보쿠토의 표정이 급속도로 썩는걸 발견한다. 풀죽음 모드 발동. 그를 잘 아는 아카아시가 보기에도 너무 빠른 타이밍에 발동한 것이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28회 일치
[[미스코리아]] 출신인 만큼 출중한 미모에 연기력도 좋고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성공해서 배우로서는 손색이 없다[* 미스코리아 입상 후 연예계로 진출한 인물들은 많다. 그러나 연기자로 입문해서 연기력 하나로 대성공을 거둔 인물들은 드물었다는 점을 보면 고현정의 케이스는 그야말로 눈여겨 볼만하다.]. 탑여배우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예능에서도 거침 없는 언행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고느님'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혹평을 받기도한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 사생활이나 성격, 인성 뭐로 까이든 간에 작품에서 연기로는 까는 사람이 없는 배우[* 과거 잡지에서 한 인터뷰만 보더라도 연예인이라면 거기에 맞는 생활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연기 경력이나 파란만장한 개인사 모두 통틀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배우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연기라는 자신의 최고의 재능으로 정상으로 향하던 와중에 재벌 2세와의 혼인으로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연기자로 복귀해 재기에 성공, 성공의 환희와 어둠을 다 겪은 인물의 표본이다.]
대표작으로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와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이 있다.
그러나 모래시계의 종영과 동시에 [[신세계그룹]] 부회장인 [[정용진]]과 결혼함과 동시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여 마지막으로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다... 1995년의 연예계 뉴스의 시작과 끝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고현정의 인기는 진짜 어마어마했다. 더구나 장안의 최고 화제작 [[모래시계]]를 통해 연기력까지 검증받은 상황이라 [[충무로(은어)|충무로]]의 러브콜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지고 있던 차에( 당시 영화계는 여배우 기근이 심각했던 상황이어서 고현정의 등장은 그야말로 가뭄중에 만난 단비격이었다) 느닷없는 결혼발표가 나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말이 나오는 형편이었다. 일부에서는 [[그레이스 켈리]]와 비교하기도 하는 등 엄청난 파장이 일었었다.]
특히나 위자료에 대한 루머가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진 썰은 인사동 '''[[스타벅스]]'''의 소유주가 고현정이라는 것. 왜 하필 많은 지점중에 인사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널리 퍼졌다. 다만 스타벅스 코리아는 신세계와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50:50으로 투자한 합작회사[* 하지만 이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설명일 뿐이고 대부분의 자본 및 실질적인 투자는 신세계에서 거의 몰빵하고 있기 때문에 지분이 저렇더라도 이익배분 자체도 다를 것이고 사실상 합작회사라기보다는 좀 더 두둑한 로열티를 주는 형태에 가깝다.]인지라 고현정 본인에게 지점 하나를 내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님으로 근거없는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밝혀진 위자료가 15억원에 불과한데 고현정과 결혼 이후로 [[정용진]] 부회장의 재산이 급증한 점.[* 신세계의 지분과 관계없이 그 시기의 신세계의 주식은 IMF를 지나고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자녀도 둘이나 있는 점[* 아랫쪽에 나와있지만 두 자녀 모두 부모의 좋은 점만 따왔는지 외모가 매우 훤칠하다. 특히, 아들은 정용진, 딸은 고현정을 닮았다. 특히 딸의 경우 사려깊은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엄마와의 사이도 좋은 것 같다. 한 SNS에서 고현정의 딸과 지인이 나눈 대화록이 공개된일이 있는데 친엄마가 보고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고싶은 것은 아니며 그건 양엄마에게(그분이라고 호칭) 예의가 아니라고 답했다. 더구나 양엄마보다 친엄마가 예쁘시지 않냐는 질문에는 양엄마도 예쁘신 분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할 정도.], 사촌인 이건희 회장의 맏딸 [[이부진]]씨와 [[임우재]]씨의 이혼소송에서 이부진 씨가 대단한 변호인단을 이끌고 2심에서 완승을 거두었음에도 86억이라는 돈을 지급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15억의 위자료는 적어도 너무 적고 특히나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어하는 재벌가에서 고현정이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고작 15억이 위자료의 전부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 고현정이 이혼한 직후, 삼성가의 내부에 대해서 책을 쓰자는 제의도 물밀듯이 들어왔는데 물론 고현정 본인이 싫어서 안했을수도 있지만 했다하면 15억은 애들 장난수준으로 벌었을 것이다.] 원래는 신세계 백화점 하나를 달라고 했는데 스타벅스로 떼웠다는 얘기들도 있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루머가 많은 부분.
고현정 또한 무릎팍도사에서 정용진에 관한 부분에서는 진정성이 있는 태도로 말한 걸 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정용진에 대한 세간의 평판[* 정용진 부회장은 일반인들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는 다르게 싹싹하고 정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SNS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신비주의에서 탈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사실이라면 당사자들은 죽고 못 살 정도로 금슬이 좋았지만 전형적인 시집살이[* 고부갈등+시누이 간의 갈등]가 두 사람의 파경 원인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의 인터뷰들이나 수상소감, 방송에서의 말들을 보면 굉장히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이혼 후로 한 번도 못 봤다고 했으니...그러나 지난 해 디어마이프렌즈 종영 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최근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재벌이든 뭐든 이혼을 했더라도 자녀와 어머니를 못 만나게 하는 건 불법이다. 고현정이 굳이 제 자식을 보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당연히 만나고 살아야 하는 게 정상. 그간 만나지 못했던건 양육권을 가진 쪽에서 만남을 막았다기 보다 자녀들의 해외 유학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낸 탓이 큰듯. 인터넷에서 간간히 아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딸 정해인 씨는 고현정을 많이 닮았다. 고현정의 어린시절이라고 해도 납득할정도다. [* 아들 정해찬 씨는 [[정용진|아버지]]를 닮았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366&aid=0000411603|2018년 최근 모습]] ] 폐쇄 전의 인스타그램 내용 등을 보면 모친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은퇴한 지 딱 10년 후, 일드 '별의 금화'를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봄날"을 통해 실어증에 걸린 인물의 역할을 소화해내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조인성]]과 호연하여, 원래 [[지진희]]와 이어져야 했는데 시청자 반응으로 [[NTR]] 발생. 공교롭게도 모래시계를 찍고 떠난 [[SBS]] 드라마를 통해 복귀하였다.] 2006년에는 충격의 후속작 "여우야 뭐하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쓴 김도우 작가의 후속작으로, 여주인공 고병희는 3류 에로잡지 기자 겸 편집부 겸 영업부 겸... 이 드라마에서 고현정의 동생으로 출연한 김은주는 드라마가 끝난 후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이름을 본뜬 [[고준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현재도 둘은 친하다고.~~립서비스 같지만 넘어가자~~], [[홍상수]] 감독 최초의 15금 영화(...나머지는 물론 19금) "해변의 여인",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 콤비의 [[히트(2007)|히트]]를 찍으면서 두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봄날" 빼고는 다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고현정의 시대는 갔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 단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을 캐스팅한 것이 예산의 대부분일 정도로 저예산일뿐 아니라 원래 대충 찍어도 졸라 좋은데 대중성은 엿바꿔 먹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제외해도 좋다.] 히트로 인연을 맺었던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의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아 카리스마로 신드롬을 터뜨리며 [* 삼성경제연구소 올해의 10대 히트상품에 [[소녀시대]]와 같이 실려버림.~~본진을 털었다!~~] "역시 고현정이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SBS 수목드라마 '[[리턴(드라마)|리턴]]'이 최고 시청률 16.0%까지 찍으며 승승장구 하던 중, 제작진과의 분쟁으로 촬영을 거부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촬영중 담당PD를 폭행하고 욕설을 했다는 폭행설까지 불거졌다.[[https://entertain.v.daum.net/v/20180207205715764?f=m|*]] SBS 측에서는 주연배우 교체를 검토했고, 2월 8일 자정 경에 결국 확정되었다. 고현정 측에서는 "제작진 과의 의견 차이를 더 이상 극복할 수 없어서 하차하게 되었다"고만 밝히고 욕설, 폭행설 등의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특별히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820766|공식입장 전문.]] 그리고 8일 오전 11시쯤 고현정 소속사 측에서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753456| "밀치며 언쟁" 폭행 간접 인정]]이라는 추가적인 입장을 밝혔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고현정 측은 기존 언론 보도에서 멱살잡이와 발길질 같은 행동은 하지 않고 서로 간의 언쟁이 오가던 중 밀쳤다고 입장을 밝혔다.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80208133712383?rcmd=rn|하차와 폭행에 대한 양측의 견해 차이가 있다.]]
SBS와 담당PD, 고현정 측이 더 이상의 사건 확대를 원하지 않았는지, 결국 이 사건 자체는 흐지부지 되었다.
김수현 드라마 주연 출신이어서, 정확하고 약간 빠른 발음을 구사한다. 연기력은 엄마의 바다나 두려움없는 사랑이 인기였던 모래시계 이전에도 주연을 맡을 만하다는 평이었는데,(우는 장면에서 근성의 노메이크업으로 펑펑 울거나) 모래시계 때 레전설 소리를 들었다.~~그리고 총알은퇴. 관광지 [[정동진역]]을 남기고.~~ [* 김종학 감독은 연기력이 아까워 결혼을 말렸다고 이후에 인터뷰한 바 있다.] 김종학 감독은 20대 초반의 고현정을 두고 한 줄의 대사로도 파급력을 갖는 배우라고 이야기했으며 복귀 후의 고현정은 봄날의 실어증 여주인공, 여우야 뭐하니의 음란 잡지 기자, 히트의 강력반 형사 등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를 펼쳤다. 트레이드마크인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디테일한 연기[* '무언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미덕(단순히 매력이 아닌)을 지니고서도 나쁜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미실을 얼굴의 오른쪽과 왼쪽, 입과 눈과 눈썹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며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로 강렬하게 소화해낸 고현정은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이자 일등공신이다.' -이영미(문화 평론가). 시사IN 기사 중] 는 선덕여왕 때 처음 화제가 되었다. 비결에 대해, '사극이라 몸이 안움직이니 얼굴이라도 움직여야 시청자들을 잡겠다 싶어서...'라고 코멘트. 같이 촬영했던 [[이순재]]도 인상적이었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이순재]]는 헐리우드로 지금 당장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김명민]], [[김희애]], 고현정을 꼽았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주인공에 비해 많지 않았던 분량임에도[* 어느 팬의 편집 결과에 의하면 62부작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나온 시간은 1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주요 시상식을 휩쓸고 그해 실시된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38%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51965|#]] 차기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대물은 방영 내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작가, 감독이 바뀌는 등 내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드라마 내용은 산으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의 연기는 호연이었다는 반응과 함께 2년 연속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때 2위와의 격차가 무려 23%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156691|#]] 여왕의 교실은 시청률 면에서는 고현정 필모그래피에서 최하를 기록했지만 무표정에서 종종 보여지는 미세한 표정 연기(일명 나노 연기)는 미실을 능가했다는 반응도 얻어 원작과 다른 마여진을 만들어냈다며 호평을 받았다.
영화 필모그래피가 약해 영화에서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많이 찾기 힘들다. 그러나 두 편의 홍상수 영화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출연한 고현정이 감독의 영화세계 뿐 아니라 영화를 찍는 방법론에까지 영향을 미쳤을거라는 평[* 프로-아나 시대의 카운터 디바 <여우야 뭐하니> (Dramatique 7호) -변영주 감독]과 더불어 영화평론가 [[이동진(평론가)|이동진]]으로부터 고현정은 홍상수스러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넘어서 자기스러움을 연기하는, 대한민국 여배우 중 가장 머리가 좋은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푸른밤 성시경 '필름 속을 걷다'에서] 고현정이 고현정을 연기한 이재용 감독의 영화 여배우들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 있어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판단은 자기 몫.[* 짜고 치는 상황극인 고현정 vs 최지우 씬에 관한 유튜브 댓글에서는 실제 배우가 까이고 있다. 이걸 보면 연기를 잘하긴 잘한 듯...?] 2012년 개봉한 고현정의 첫 상업영화 미쓰GO는 유해진, 성동일, 박신양 등 걸출한 배우들과 함께 했지만 모두 영화가 구리다는 평으로 덮혔다.
* [[윤여정]] '선생님', [[이미숙]] 선배님과는 오래된 친분. 결혼 후 힘들었던 시기 미용실에서 마주친 [[이미숙]]은 "얘, 할말은 하고 살지? 기죽지 말고 살어." 라는 돌직구를 꽂아넣고 사라지셨다고. [[윤여정]] 선생님은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이 이혼 후 고충을 털어놓자 한 마디를 남기셨다. '내때는 예수재림이었다' 고. [* 영화 대사 중: "나 때는 내 [[이혼]]이 거의 주홍글씨였어. 이혼한 여자가 TV에 나오면 국민 정서에 안 좋대나 뭐래나. 그래서 방송 관계자들이 방송도 안 나오는 게 좋겠다고 하던 시대야, 얘." 윤여정의 결혼과 이혼(연예계 최초 공식이혼)은 당시 고현정 이상의 센세이션과 루머를 일으켰다. 몇십년 뒤 요즘도 아침방송 및 종편에서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 즉 내때는 더했다는 뜻.] 영화 [[여배우들]]이나 무릎팍 도사 [[윤여정]] 편, 고쇼 [[윤여정]] [[최화정]] 출연분에서도 윤 선생님의 포스와 굽신거리는 고현정을 확인할 수 있다.
* [[조인성]]은 봄날의 종영 당시 고현정을 '[[고해성사]]를 받아 주는 [[수녀]]님 같은 분'[* 참고로 [[수녀]]는 고해성사를 줄 수 없다. [[미사]]와 [[7성사|성사]] 집전은 [[사제]]서품을 받은 성직자만이 가능하며, [[가톨릭]]에서 성직자(교황>추기경>주교>신부>부제)는 [[남자]]만 될 수 있다. 수녀는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이다. 수도자 중에서도 사제서품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 남성 수도자인 수사만 가능하다(수도사제, 성직수사, 수사신부 등으로 불린다).]이라고 했고, 지금은 각종 매체에 고현정을 스승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연기에 대한 평도 듣고 있다고. 싸이더스를 떠나 고현정의 1인소속사로 들어가는 등, 사제관계는 계속되는 모양이다. 참고로 [[지진희]]의 평은 "한마디로 대장부죠"[* 여담으로 지진희는 봄날 이전에 찍었던 [[대장금]] 종영 후 [[이영애]]에 대해 '60부작을 찍었는데 이렇게 안 친해진 상대 배우는 처음'이라고 고백(…)]
* 대중들에게 자연미인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무릎팍도사]]와 그녀가 직접 진행하는 고쇼에서 눈과 코를 [[성형수술]]했음을 밝혔다. [* 여담이지만, 본 위키니트의 고3때 기억에 따르면 고현정 모교인 동국대 출신 교생 선생님도 같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동국대 축제에 고현정이 왔었는데, 눈을 살짝 찝었다고 털어놨다는 것.--역시 솔직하다--]이 [[무릎팍도사]] 고현정 편은 성형고백 외에도 거침없는 자폭개그를 선보이며 ~~"[[이혼]]으로 뜬거죠" "결혼하자고 했어요"~~ [[송혜교]]의 얼굴크기를 의식하면서 그 와중에 끊임없이 코를 푸는… 장면으로 폭소를 유발하여, 무릎팍도사 중에서도 재미있기로 유명한 에피.
* 선덕여왕 후 [[YB]]의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나와 멀쩡한 드레스 차려입고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열창하며 힘껏 망가지고 갔다. 팬카페에 남긴 글로 보면 평소에도 [[오아시스(밴드)|오아시스]]나 [[U2]]를 듣는다는 것 같고, <2시의 데이트>에 나와서 [[자우림]]의 20세기 소년소녀를 추천하고 갔는데, 무릎팍에서는 [[빅뱅(아이돌)|빅뱅]]의 [[T.O.P|탑]]과 [[샤이니]]를 매의 눈으로 찍어내질 않나, 고쇼 빅뱅편은 화기애애하질 않나… 그러나 '[[보그]]'에 실린 인터뷰에 의하면 클래식(듣던 게 '펠리시테 로트'의 아리아.)을 자주 듣는데 뭐 좋아하세요 질문받으면 가식떤다는 소리 들을까봐 어디가서 말은 못한다고.
* [[여왕의 교실(MBC)|여왕의 교실]] 출연 당시에는 아역배우들에게 꽤 애틋함을 느꼈던 모양. 우연히도 극중 주인공인 아이들이 고현정의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대다. 아이들에게 감독님만 빼고 다같이 놀러와도 좋다고했다고. ~~대신 음식은 시켜 먹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아역들 역시 종영 후 처음보다 훨씬 친근감을 느낀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 2018 || SBS || [[리턴(드라마)|리턴]] || 최자혜 || 15.9%[* 고현정이 출연한 14회까지 중 최고 시청률이고 마지막까지 이것이 최고 시청률이 되었다. 17.4는 중간광고 이후 2부 최고 시청률이고 1부와 합산해서 평균을 내면 15.9가 맞다.] ||
- 신화용 . . . . 28회 일치
K리그 베스트 일레븐 GK에 선정된 2009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반박의 여지가 없는 K리그 최고의 골리 중 한 명이었으나 여러 가지 불운으로 인해 시상식과 국가대표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골키퍼이기도 하다.[* 2015년에 '''특별상'''을 받기는 했지만 공로상에 가까운 여론 무마용 상이다.]
포항제철동초등학교 4학년때 단거리 육상선수에서 축구로 전향하여 포철중-포철공고까지 유스 테크트리를 탔으나 골키퍼였음에도 작은 키와 실력 성장 정체가 문제가 되어 프로입단에 실패하게 된다.[* 졸업 당시 179cm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포항 원 클럽 맨이었던 최상국 감독이 청주대로 신화용을 부르게 되고 신화용은 청주대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청주대 축구부는 프로 입단,대학 입학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선수들의 의욕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때 허리 디스크 부상을 당하면서 축구를 그만둘뻔 하기까지 했다.[* 이때 디스크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게 된다.] 신화용이 2학년이 되자 청주대 감독이 유인권 감독으로 바뀌었고 유인권 감독의 지도하에 성장했다. 이때 포항의 백업 골키퍼였던 조준호가 이적하면서 팀에 키퍼가 부족해지자 포항은 신화용에게 입단 제의를 했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포항이 리그 최소 실점을 달리게 만들었다. [[전북 현대]]와의 2013 FA컵 결승전에서는 레오나르도의 결정적인 슛팅을 '''한 손'''으로 막아내고, 이후 승부차기에서 1,2번 키커의 슛을 연달아 막는 활약 속에 포항의 FA컵 2연패 및 최다 우승에 일조하면서 FA컵 결승전 MVP로 뽑혔다.
2014 시즌에도 맹활약 중인데, 2014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부리람 원정에서는 신화용 답지 않은 실수로 1골을 내줬으나 팀이 승리하여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시즌 초반 [[황지수]]의 부상 결장으로 매 경기 실점을 내주고 있는 포항 수비진의 삽질을 혼자서 다 커버하는 등 이러한 활약 속에 5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는 미친 선방쇼로 4:2의 스코어와 상관없이 이 날 MOM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FC 서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FA 컵]]에서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패배하면서 리그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와중 11월, 울산전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김다솔]], [[김진영]] 등 백업 키퍼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으나 그 누구도 신화용의 자리를 제대로 메꾸지 못 했다. 이에 팀은 리그 4위까지 떨어져 아챔 출전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다시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포항 팬들은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신화용의 거취에 촉각을 기울이게 됐다.
사실 후반기의 포항 경기는 '''어떻게든 득점->신화용 선방쇼''' 구도라서 2015년 FA로 다시 풀리는 신화용이 포항을 떠날까봐 팬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황선홍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미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와 함께 재계약이 완료된 상태라고 한다.[* 신화용 본인도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연봉협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홀가분하게 출발하고싶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FA로 풀린 것을 보면 아직 세부사항을 조율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서브 키퍼인 김다솔이 '''"신화용의 재계약이 확실해지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계약조건으로 [[대전 시티즌]] 이적을 확정하면서 사실상 신화용도 포항과 제계약 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재계약 완료기사가 떴다!!!''' 포항팬들은 신규영입들보다 더 반가워 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인지라 2014 시즌에 신화용이 결장한 경기 승률이 바닥이라는 것이 모든걸 이야기 해주고 있다.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에서는 '''울산과의 경기에서 인생 최악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수비수와의 호흡 미스를 보이며[* 기존의 주전 수비인 [[김원일]]과 [[김광석(축구선수)|김광석]]이 죄다 부상으로 아웃되고 [[김준수(축구선수)|김준수]]와 [[배슬기(축구선수)|배슬기]]가 --왠 가수들이 센터백 서냐 생각할 수 있는데 축구선수다-- 그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첫번째 골은 수비진들과의 호흡 문제, 두번째 골은 [[마스다 치카시|마스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라 넘어갈 수 있다 쳐도, 3,4번째 골은 완벽한 신화용의 실수였다.] 한 골을 내주고, 김신욱의 중거리슛을 잡았다 놓쳐서 자책골과 다름없는 골을 내주며 2:4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김승규와의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했다. 그런데 이 경기가 더욱 뼈아픈 이유가 있었으니 후술 참조.
이후에도 꾸준히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포항의 수문장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으나, 김태수, 황지수의 노쇠화와 김광석의 초반 부상. 김원일의 삽질(...)로 15시즌 포항 수비진 자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지라 신화용으로서도 '''답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경기당 실점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김광석의 복귀 이후 김원일도 어느 정도 정신줄을 잡으면서(...) 수비가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레 클린시트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시즌 클린시트 1위(17경기), 전경기(38경기) 출장, 실점률 2위 0.84에 후반기에는 포항을 사실상 먹여살리는 활약을 했음에도 실점률 0.97인 [[권순태]]가 우승팀 GK라는 이유로 베스트11 GK에 선정되었고, 13시즌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더욱 15시즌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13시즌에는 '''신화용이 우승팀 골키퍼였음에도''' 스탯이 더 좋은 김승규가 베스트11에 뽑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K리그 수상식이 명확한 기준없이 시즌마다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 특히 15시즌은 논란이 컸던 것이, 득점4위인 이동국이 우승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시즌 MVP를 받았고. ~~13시즌 이명주는??~~, 득점1위 김신욱은 이동국을 베스트11에 넣느라 아에 베스트 11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신인들 중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와 활약을 보여준 황의조 대신 우승팀 버프를 받은 이재성에게 영플레이어상이 주어지는 등 전북팬을 제외한 모든 국축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나마 특별상 부문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FC서울의 오스마르와 같이 수상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15시즌이 끝나고 다른 한국 골키퍼들이 연달아 J리그로 떠나자, 해마다 포항 팬들에게 주목 받던 '''신화용의 거취문제가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높아졌다.''' 게다가 전남 드래곤즈와 [[김병지]]의 결별, 성남 FC의 [[박준혁(축구선수)|박준혁]]의 현역 입대,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으로 클래식 팀들의 구애를 받게 된 [[이범영]]까지 골키퍼 연쇄이동이 점쳐지는 가운데 '''언급된 모든 키퍼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신화용이 재정감축위기에 빠진 포항을 떠날까 포항팬들이 걱정했으나...
2016년 12월 우선 협상기간 동안 신화용의 거취에 관심이 쏠렸다. [[http://news.donga.com/View?gid=82057389&date=20161227|기사]] 그리고 해를 넘겨 1월 3일수원과 이적 협상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이미 [[문창진]], [[김원일(축구선수)|김원일]], [[신광훈]] 등 신예 베테랑 가리지 않고 핵심 멤버들을 보낸 마당에 마지막 프렌차이즈 스타마저 떠난다는 소식에 포항팬들은 [[멘붕]] 중. 게다가 팀을 떠나는 이유도 '''16시즌 종료 이후 구단이 직접 나서 신화용을 팔기 위해 여러 구단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포항 프런트와 수뇌부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특히 신화용은 자신의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포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연봉을 스스로 깎고 포항에 남았는데,''' 정작 16시즌 팀 성적과 신화용의 개인 성적이 하락하자 바로 신화용을 시장에 내논사실을 알게 된 신화용은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포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최순호]]가 급하게 구단에 강력요청하여 신화용을 잡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게 되나[*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프런트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팔겠다는 계획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포스코의 낙하산 사장에 휘둘리는 포항 프런트가 얼마나 막장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미 신화용의 마음은 포항을 떠났고 결국 신화용은 새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적료+'''[[노동건]] 임대'''를 하는 형식으로 신화용을 내줬다. 노동건이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은 아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은 20대 골키퍼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원 프런트가 '과연 군필 골키퍼를 임대 후 이적 조건으로 포항에 줬을까?' 를 생각해본다면 즉전감 키퍼를 받고 후보 키퍼를 빌려줘 경험치도 먹이려는 [[호구]]딜일 가능성이 높다.
>'''속일 수 없는 나이와 노쇠화의 시작'''
3월 31일 제주와의 K리그1 4라운드에 선발 출전 해 복귀했으나 복귀 이후에 경기력이 좋지 않다.
4월 3일 ACL 시드니와의 5차전 홈 경기에서 무리하게 튀어 나왔다가 선제 실점을 허용하는 실수를 범했고
이후에도 허둥지둥대며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자 유명한 축구 팟캐스트 [[히든풋볼]] 멤버이자 [[이스타TV]] 멤버인 해설위원 [[이주헌]]씨와 캐스터 [[박종윤]]씨는 전 토트넘 골키퍼 고메즈가 고메디언이라 불린거 처럼 신화용을 신메디언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국 2017 시즌까지 경쟁상대로 보기도 힘들었던 노동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으며 '''단신이라는 단점에도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순발력과 판단력이 나이를 먹으며 결국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즌을 마칠 경우 수원과의 재계약 마저 불투명한 상황.
9월 19일 전북과의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3실점을 해 다소 아쉬운 모습도 보였다. 다만 이 날 수비가 구멍이었다는 점에서는 참작의 여지가 있었는데[* 특히 두 번째 최보경의 골은 수비진이 아예 골 넣으라고 공간을 내준 셈이었다.] 후반 추가 시간 때 아드리아노의 결정적인 PK를 막고 승부차기에서도 김신욱과 이동국의 킥을 방향을 읽어 막아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쳐 팀의 준결승행을 이끌었다. 당연히 경기 MVP는 신화용의 것이었으며, 해설진이나 팬들도 "떨어질 뻔한 수원을 신화용이 멱살 잡고 끌어올렸다"와 같은 찬사를 받았다.
2018년 4월 22일 인천전에서는 상대 윙어 쿠비에게 발길질을 해 비판을 받았고[[http://m.cafe.daum.net/ASMONACOFC/g0oc/481748?q=신화용 쿠비&|보기]] 다음주 4월 29일 [[전북 현대]]전 에서는 [[이동국]]을 패대기치는 장면이 나와 또 다시 논란이 됐었다.[[http://m.cafe.daum.net/ASMONACOFC/g0oc/485652?q=%EC%8B%B6%EC%9D%80%20%EC%8B%A0%ED%99%94%EC%9A%A9&|보기]]
그리고 그의 인생 최악의 경기인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 울산과의 경기를 슈틸리케 감독이 보도진 몰래 [[포항 스틸야드]]에 암행정찰을 왔다. --왜 잘 할 때는 안 오고-- 이 날 모습을 생각한다면 국대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신화용 >>>>>> 정성룡을 외치던 K리그 팬들을 입 다물게 한 반면에, 오히려 K리그까들로부터 '''정성룡이랑 뭐가 다르냐, 정성룡보다 더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롱받고 있는 중. 기량이 제대로 폭발한 이후로 실수가 상당히 줄어든 키퍼인데 역대급 실수를 엄청나게 보여주면서[* 그것도 공중파 전국 생중계였다. [[KBS]]가 올 시즌부터 K리그 클래식을 전격 중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아니, 왜 잘할 때는 중계를 안 해주고-- 참고로 KBS의 K리그 클래식 전격 중계는 [[이영표]]가 해설위원이 되면서 내건 조건으로 KBS는 이를 받아들였다라고만 서술하면 이영표 해설위원 혼자서 다 한 거 같게 느껴지는데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에서 따낸 계약 조건이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이영표의 기여도 차이가 있는 일이다.] 엄청 평가가 떨어졌다. 다만 이 경기를 관람한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에서는 언제든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실수였고, 선수들은 이런 실수가 나오는 데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7475|관련기사 1]],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8&article_id=0002396186|관련기사 2]]
김진현이 2015 시즌 중반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기회가 오나 싶었지만 이번엔 역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권순태]]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뽑히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골키퍼 3명 중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한 명을 제외하면 젊은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한 살 아래 권순태도 나이 때문에 김승규, 김진현에게 밀리는 상황이라 신화용의 대표팀 발탁은 요원해보인다. ~~무슨 지옥같은 스페인 국대 골키퍼 경쟁인줄~~[* 김승규, 김진현, 정성룡에 권순태와 이범영. 올림픽 대표팀에서 기대받고 있는 구성윤과 김동준, 이창근에 청대 출신 골키퍼 조현우(구성윤은 2015년 동아시안컵 때 백업으로나마 성인 대표팀에 뽑혔고 김동준은 예비 명단에 들었던 바 있다. 조현우도 예비명단에는 올랐었다.)까지 포함하면 유래없는 골키퍼 풍년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 2016년 기준으로 전부 한창 나이다. 거기에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인 이호승과 윤보상, 가장 포텐이 기대가 되는 [[김로만]]과 전종혁 등등 K리그 역사상 최대의 인재풀이 가동되어 있다.] 하지만 ACL 우라와전을 비롯하여 슈틸리케 감독이 꾸준히 포항 경기를 찾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손준호]]와 더불어 국대 발탁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있다고는 말 못한다.~~
- 츠라츠라 와라지 . . . . 28회 일치
에도 시대의 제도인 '[[산킨고타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당시 일반적인 '다이묘 행렬'의 상세한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츠라츠라 와라지'란 말은 다이묘 행렬 수행원들이 짚신 신고 걷는 모습을 '짚신(와라지) 행렬(츠라리츠라리)'이라고 묘사한 것.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할 때 영주와 장남이 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차남 '쿠마다 테루타카'가 가문을 이었고, 이에야스는 화친 후 쿠마다를 묶어놓기 위해 히데요시를 움직여 테루타카를 억지로 이혼시키고 도쿠가와 가문의 여식과 결혼시켰다. 이 때의 원한이 대를 이어 내려왔고, 이 때문인지 후임 영주 쿠마다 타카토시(테루타카와 전처의 소생)가 석연찮게 급사하고 그 아들 미츠타카는 2차례에 걸쳐 전봉당해 오카야마 지방에 자리잡게 되었다.
* 쿠마다 하루타카 : 오카야마 번 5대 번주. 대대로 검약을 기풍으로 삼던 쿠마다 가에서 유독 풍류와 호사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도를 넘는 사치는 하지 않는다. 막부의 검약정책을 지나치다고 여겨 우회적으로 비꼬곤 했기 때문에[* 사치를 막기 위해 은 제품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오자 일부러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그 직후 금 제품 또한 금지령이 내려졌으나, 그 이후로도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였다.)] 막부의 실력자인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와 사이가 나쁘다. 여러가지 일화가 따라다니는 인물로 기행을 일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속이 깊고 대범해서, 이 때문에 행렬 중간중간마다 과거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려고 줄을 잇곤 한다. ~~전국시대 시절이었다면 천하통일은 무리라도 관서 제패는 해냈을 것 같은 포스다~~
* 쿠마다 이즈미 : 수행 가로. 하루타카의 가신으로 쿠마다 종가인 '아마키 쿠마다 가'(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가문)의 자손. 기본적으로 학식이 깊고 영민하지만 17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로 불과 4개월 전에 가로가 되어 미숙한 면이 있으며 쿠마다 종가의 긍지와 체면을 매우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가문의 기풍 때문에 매사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꽃꽂이가 취미.
* 큐사쿠 : 에도성 오니와반(밀정)의 일원으로 본명은 '쿠라치 큐타로'. 과거 에도에서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혼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하루타카가 홀로 소방용 복장을 하고 진화를 지휘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막부의 명을 받아 인부로 위장하고 하루타카의 다이묘 행렬에 잠입해 일행을 염탐한다. 말을 잘 다룬다.
* 야마와키 사부로자에몬 : 오오고쇼가시라(大小姓頭. 번주의 시중을 드는 고쇼들의 우두머리)로 하루타카의 최측근 중 한 명. 점잖은 성품으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인망을 사고 있는 인물로 "하루타카의 몸과 같다"고 할 정도로 그의 속내를 잘 알고 있어서 기민하게 대소사를 처리한다.
* 이와타 토메지로 : 오오고쇼가시라. 루스이(留守い. 참근교대 때문에 영주가 비운 거성을 관리하거나, 또는 반대로 에도에 있는 영주의 저택을 관리하는 직책) 출신으로, 온화하고 여려보이지만 배후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며 유능하게 일처리를 해낸다. 다만 야마와키와는 달리 하루타카의 속내까지 읽어내는 정도는 아니다.
* 쿠마다 치카라 : 전 수석 가로로 이즈미에게 가독을 넘기고 은퇴했다. 쿠마다 종가의 긍지나 체면을 강하게 의식해서 이즈미에게도 항상 그것을 주지시키는 완고한 인물[* 쿠마다 종가의 사람들은 역대로 이러한 경향이 강했다고 하는데, 일례로 초대 가로의 경우에는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한 가신에게 원한을 사 강을 건너던 중 살해당했다고 한다. (초대 가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야스와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자손으로 추정되는데, 숙부인 테루타카에게 가독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모난 성격이 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로, 이 때문에 나가토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 쿠라치 마사노스케 : 큐사쿠(쿠라치 큐타로)의 부친으로 '고큐소쿠오니와노모노시하이'(御休息御庭之者支配. 오니와반슈의 우두머리 직책으로 '고큐소쿠오니와노모노'는 오니와반의 정식 명칭). 큐사쿠를 하루타카의 다이묘 행렬을 염탐할 밀정으로 추천했다. 정치적인 판단을 일절 배제하고 오로지 밀정의 본연 임무를 중시하는 인물.
* 오스미노카타 : 하루타카의 측실. 역시 에도 상저택에서 기거하고 있다. 키쿠히메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다.
* 관백 : 후지와라 씨의 혈통을 지닌 다섯 가문 중 하나인 이치죠 가문 출신 공가(公家. 귀족). 형제가 없어서, 종제(從弟)인 이즈미(관백의 모친이 이즈미의 백모)가 수행 가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고 싶어하여 거짓 칭병(稱病)을 하였다. 조정과도 사이가 소원한 사다노부에게 반감을 갖고 있으며, 반대로 하루타카의 인품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 나카야마 : 조정의 의주(議奏. 칙명 출납을 담당하는 직책)로, 당시 코카쿠 덴노(전대 덴노의 양자가 되어 즉위했다)의 부친에게 상황(上皇)의 존호를 내리도록 막부에 강하게 요구하여 이를 반대하는 사다노부와 대립하고 있다.
* 백락 : 호노이케가 하루타카에게 바친 명마로 하루타카가 이름을 지어줬다.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자주 소동을 일으키곤 하지만 기품이 있고 영민하다. 하루타카와 큐사쿠의 보살핌을 받은 뒤부터는 큰 말썽을 부리지 않게 된다.
* 협본진 찬모 : 고오리야마 본진(本陳. 에도 시대의 숙박 시설 중 다이묘와 그 수행원들이 이용하던 숙사의 통칭)의 찬모(반찬을 비롯한 음식을 만드는 여자). 누명을 쓰고 탈번(脫藩. 번을 이탈하여 낭인이 되는 것. 당시 무단으로 탈번하는 것은 중죄였다)한 관리와 정을 통한 사이로,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관리가 숙사를 수배하러 온 선발대에게 들켜 처형당하자 쿠마다 가에 원망을 품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하루타카가 그녀 뱃속의 자식을 자신의 사생아인 것으로 꾸미고 이를 인정하는 듯한 연기를 하여 협본진에서 계속 일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원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하루타카의 배려에는 감사하게 된다.
* 미야노 요시키요 : 코케하타모토(高家旗本. 막부의 행사나 의식을 담당하는 막부 직속 무사계급). 막부의 명으로 이세 신궁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쿠마다 가에서 수배한 본진의 팻말을 보고는 막부와 사이가 나쁜 하루타카를 골탕먹일 속셈으로 억지로 숙사를 빼앗아 묵는다. 그러나 하루타카 일행이 본진 문 앞에서 야영을 하면서 숙박비는 그대로 치러서 숙사 인근이 잔치 분위기가 되는 바람에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체신머리없다, 쪼잔하다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 '토리비토' 코키치 : 오오이 강 인근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는 상인. 과거 비젠 지방에서 표구상을 했으나 7년 전에 새 모양의 글라이더를 타고 성 아래를 날아다니다 붙잡혀 추방을 당했다. 그 이후로도 글라이더를 계속 개량하며 비행 시도를 해서 '텐구'(天狗), '토리비토'(鳥人)이란 별명을 얻었다. 추방 당시 하루타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타카가 잠시 행렬을 멈추고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글라이더로 다시 날았다.
- 히나타 쇼요 . . . . 28회 일치
|| 3학년 || [사와무라 다이치] || [스가와라 코시] || [아즈마네 아사히] ||
키와 몸집이 작아 배구선수로서는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특유의 민첩성과 스피드로 커버해낸다. 성격은 [[외유내강]]으로, 가끔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고 겁먹을 때도 많지만 본능적으로 야성적인 육식계 포스를 발휘할 때가 많다. 특히 이럴 때는 작중의 인물들이 전부 움찔거리면서 땀을 흘리는 모습이 나온다. 작중에서는 '''승리에 굶주린 작은 짐승'''으로 묘사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경기에 대한 집념과 미숙한 세터가 토스미스한 공을 쳐낼 정도의 뛰어난 반사신경에 감탄한다. 하지만 히나타 외엔 누구도 의욕도 실력도 없었던 유키가오카 중은 불과 31분만에 세트포인트 2-0로 키타가와 제1중학교에 참패. 이 때 카게야마는 중학교 3년 동안 무얼 했냐며 히나타를 질책한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설욕을 다짐하며 남은 중학교 시간을 여자 배구부, 동네 아줌마 배구팀과 훈련한다. 그리고 그렇게 설욕을 다짐하며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러나 배구부가 있는 제2 체육관에 있던 건 바로 원수 카게야마였다.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태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절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반사 신경과 순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상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네코마 고교]]와의 연습 시합에서 [[코즈메 켄마]]의 예측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네코마 고교에서 가장 민첩한 [[이누오카 소우]]에 의해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의 속공이 점점 통하지 않게 된 것. 그러나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믿고 계속 공을 올려 보내주나, 히나타가 평소와 달리 토스를 보고 스윙함으로써 공격은 실패한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다이렉트 딜리버리로 올려 주었던 공을 인 다이렉트 딜리버리[* 원래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손바닥 핀 포인트에 맞춰서 바로 토스를 보내줬다. 왜냐하면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 이걸 약간이나마 시간차가 생기도록 토스해서 히나타가 스스로 판단해서 스파이크 할 수 있도록 한 것. 이걸 계기로 히나타는 보통의 속공과 괴짜속공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로 주어 다른 공격 방법을 찾아내었다.
인터하이 이후 도쿄 합숙에서 카게야마의 좀 더 강화된 떨어지는 토스[* 직선으로 날아가다가 히나타의 타점부근에서 떨어져 멈춘것 처럼 보인다]와 우카이 전 감독의 훈련으로 볼 컨트롤이 늘은 히나타가 괴짜 속공과 보통 속공을 합친 신 속공을 만들어 내어 공격방법을 나눌 필요가 사라졌다.
이후 꾸준한 연습으로 신 속공의 성공률도 점점 높아져가고, [후쿠로다니 학원]의 에이스 보쿠토 코타로에게 페인트와 리바운드 플레이를 전수받아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해져, 차차 최강의 미끼가 아닌 차기 에이스(작은거인)의 길을 밟게 될듯 하다. ~~허나 아직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기싸움에서 밀린다.~~ ~~한 번은 아사히가 쫄았고, 한 번은 히나타가 쫄았으니 1대1이다.~~
* 여타 다른 소년만화의 열혈계 주인공들과 다르게 의외로 겁이 많다. 특히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키 큰 사람 앞에만 서면 잔뜩 위축되서 겁을 집어먹고 다른 키 큰 사람 뒤에 숨는다.~~모에~~ 그랬던 놈이 시합에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서 자신이 겁먹었었던 그 큰 놈들을 상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 눈 희번뜩이고 달려드는 것이 포인트. 이 때의 기백과 기세가 굉장해서 상대팀의 강자들조차 살짝 움찔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런 그를 보고 '워밍업 존에서 갈망을 가득 쌓고 올라 온 작은 짐승'이라 표현하며 잔뜩 의식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 작은 키와 어린애 같은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가끔 정말 상대의 기를 눌러버릴 만큼 위압감을 내보일 때가 있다.~~패기?~~ 평소의 생글거리는 얼굴과 대조되는 정색한 표정, [wiki:"죽은 눈" 동공이 열린 눈], 얼굴에 그늘진 음영 등 [[wiki:"얀데레" 똘기]]가 엿보이는 분위기를 자아내어 상대~~와 독자~~로 하여금 오싹한 느낌이 들게 한다. 덕분에 [[wiki:"마나미 산가쿠" 싸이클패스]]에 이은 ~~[[하이패스]]~~하이큐패스 드립까지 나오고 있다(...).
* 경기 시작 전에 화장실을 가면 꼭 화장실 앞에서 중요 인물을 만난다는 [[징크스]]가 있다. 여담으로 이 징크스가 시작된 것은, 중학생 때 대회날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난 것이 시초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복통~~ 사실 히나타 본인도 화장실은 위험인물과 마주치는 장소라는 걸 알고 있다! 결국 봄고 미야기현 대표 결정전 대회 날, 화장실 앞에서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wiki:"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와 [wiki:"이와이즈미 하지메" 이와이즈미], 시라토리자와학원의 우시와카, [[다테 공업 고교]]의 아오네와 한꺼번에 ~~강제~~[[정모]]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트리플플레이~~ ~~올스타전 총출동~~
* 살면서 본 가장 무서운 장면이 '''뒤통수를 맞은 카게야마의 얼굴'''이다. [[아오바죠사이 고교]]와의 연습시합에서, 히나타가 서브 미스로 카게야마의 뒤통수를 때린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카게야마의 표정이 [[충격과 공포]]. ~~이 만화가 왜 호러배구라고 불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인하이 시합 직전 긴장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있었던 가장 무서운 일을 생각할 때, 히나타는 그 날의 카게야마를 떠올리더니 바로 [[해탈]]했다. ~~카게야마가 [[사다코]]를 이겼다~~
*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동생 히나타 나츠와 사이가 굉장히 좋다. 항상 놀아달라고 보채는 모양.[* 소설판 1권에서 볼 수 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27회 일치
각 국가의 장관진을 차지하는 인물들은 각자 하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해당 특성은 여러가지 요소에 보너스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패널티를 주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내각진 중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을 제외한 8명을 자기 입맛대로 갈아치울 수 있지만, 민간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2%, 군사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1% 올라간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같이 역사적으로 네임밸류가 높은 장관의 경우 유니크한 특성이 달려있기도 하다. 또한 몇몇 장관의 경우에는 해당 자리의 특성이 아닌 다른 자리의 특성을 달고 나오기도 한다.
>완고한 개혁가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 체제를 퍼뜨리고 싶어한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정치적, 군사적 간섭을 할 의지가 있다.
>체념한 총통은 무정부주의와 대중 의견이 나라를 무너뜨리는걸 막기 위해 권력을 잡았다. 정치적 언쟁에 질린 이 인물은 자신이 군대를 지휘하던 것처럼 국가를 운영하려 하고있다. 여전히 그는 능숙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다.
>무자비한 권력 투쟁가는 자신의 나라와 국민들을 사유재산처럼 다룬다. 그는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 목적을 이루는데 걸리적거리는 이들은 누구더라도 가만히 두지 않을것이다. 그는 가끔씩 편집증 같은 무언가를 일으켜 아군과 적군 모두를 위험하게 할 때가 있다.
* 긍정적인 효과: 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산악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선전포고에 필요한 적국 호전도 -20%, 독재 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25%, 석유와 보급품 비축량 +5%, 불만율 증가량 -5%
>편향적인 지식인은 교양있고 학구적인 식자로, 이들의 학문적 성과는 다른 나라와 그곳의 국민들을 결정짓는데 편향되어있다. 편향적인 지식인은 싫어하는 나라한테는 오만하고 재치있게 굴지만, 좋아하는 나라 앞에서는 알량거리며 환심을 사려고 한다.
>이념의 십자군은 자신을 헌신적인 지지자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극단주의자일 뿐이다. 만약 그가 파시스트라면 그는 파시스트가 아닌 사람 전부를 나약하고 퇴폐적이라고 여길 것이다. 만약 그가 민주주의자라면 비민주주의자의 요구에 따르느니 전쟁에서 지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만약 그가 공산주의자라면 민주주의자들을 사악한 자본주의자들로, 파시스트들을 사악한 가짜 자본주의자들로 여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해답을 찾았기에, 사상적 문제로 그와 논쟁을 벌이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무정한 짐승은 계급을 차례대로 올라온 간단한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둘로 나뉜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가끔은 야수같으며, 가끔은 소시오패스같은 무정한 짐승은 돌아보지 않고 정책을 짜낸다.
>관리의 천재는 자신의 부하와 현대 기술을 동원해 전쟁 수행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열성적인 노동자다. 이 인물은 젊은 노동자일수도, 과학자일수도, 자유사상을 가진 혁신가일수도 있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있으려고 노력한다.
>이 장관은 균형예산, 금융 긴축, 복지와 해외 원조의 축소를 위해 싸운다.
>부패한 도둑 정치가는 능숙한 관리자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썩어빠졌기에, 군사 기금과 군용 보급품은 보통은 그와 친구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버린다.
>혼합경제는 정부와 민간분야 둘 다 경제를 관리하는 경제 체제로,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둘 다 지지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다수의 혼합경제는 강한 규제력을 지닌 감시가 동반된 시장 경제로 묘사되며, 여기에 정부가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는 점이 추가된다.
* 긍정적인 효과: 석유 생산량 +10%, 석유와 보급품 비축량 +10%
>연민어린 신사는 모두를 기쁘게 하고싶은 쾌활한 사람이다. 국민들도 그를 좋아하지만, 그는 범죄와 테러에 무른 사람이라고 알려져있다.
>효율적인 소시오패스는 뒤돌아보는 일 없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음지에서 일한다. 자신의 개인적 도착증세와 자신의 부하들이 저지르는 과도한 폭력을 군중과 동료 장관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 Healthy and Security Proponent(의료와 안전 지지자)
>의료와 치안 지지자는 정부의 주 목적이 노동자의 안전과 의료 시스템 확충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전문가는 외국 장비와 부대의 현대화를 연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는 어떤 부분을 찔러야 적을 패배시킬 수 있는지 결정짓게 해준다.
>이 참모총장은 인민전쟁론을 믿으며 대규모 편제와 게릴라 전술이 현대전의 정수라고 가르친다.
- 김승대 . . . . 27회 일치
초기에는 슈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골은 많지만 거의 모든 골이 가볍게 밀어넣은 골이고 강력한 슈팅으로 넣은 골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데뷔 시즌 한정으로, 그 이후 시즌에는 슈팅 성공률 66.6%를 전반기 넘어서까지 유지했을 정도로 일취월장해서 [[감아차기]], 툭 밀어넣기 등 다양한 슛을 구사했다. 그리고 위의 부정적인 평가는 좀 억울할 법 하기도 한 것이, 플레이 스타일 상 골키퍼와의 1대1 경합이 주로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경우에는 [[손흥민|손세이셔널]]같은 강슛보다 정확하게 차 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옳은 평가가 아니라는 것. -- [[풋볼매니저|선호 플레이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침투' , '패스하듯 정확한 슛팅을 구사'가 달려있다 하더라]]--
신진호와 황진성의 공백을 훌륭히 메꾸고 7월 2일 서울전에서는 [[고무열]]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포항 유스는 역시 미드필더 화수분'이라는 찬사를 받게 만들었다.
2014년 전반기 [[이명주]]와 더불어 포항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그리고 이명주는 월드컵 휴지기를 지나고 후반기가 시작하면서 중동으로 50억에 팔려갔다.~~ ~~그리고 다음 시즌 본인도 포항의 다른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20억에 중국으로 팔려갔다~~
그러나 별 기대하지 않았던 김승대의 포처 원톱화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간 '''이명주와 원투펀치를 이루면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경기당 1골에 가까운 득점이고 슛팅당 70%라는 높은 확률로 득점을 성공시켰다. 이명주와 호흡이 환상적이고 김승대 자신도 [[필리포 인자기|인자기]]가 떠오를 만큼 수비 라인을 타는 솜씨며 골 결정력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는 김승대가 라인을 정말 잘 타는 것도 있지만 포항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공간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탁월하고 그 와중에 이명주, 손준호, 김태수 등이 패스를 뿌려대니 상대 수비 라인을 학살하며 1:1 찬스를 만들어내는 것.
'''하지만''' 이명주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아시안 게임 승선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월드컵 브레이크 동안 중동의 [[알 아인]]으로 이적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명주의 킬패스를 받으며 라인 브레이킹을 일삼던 김승대는 이명주 대신 중원을 지키게 된 김재성과 호흡이 맞지 않으며 득점력이 폭망했고, 결국 [[황선홍]] 감독은 이런 저런 수를 모두 써보다 결국 이명주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중앙 미드필더 복구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김승대를 중미로 내리고 만다. 이명주가 나간 자리에 카타르에 임대로 보냈던 신진호가 복귀했으면 이명주의 역할을 그대로 맡기면서 김승대의 득점력을 보존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악의 근원~~ 포항 프런트답게 미적지근하게 신진호와 협상하다 결국 신진호는 카타르의 다른 클럽으로 임대 연장보내 버렸다.
결국 공미와 중미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하게 되면서 2014 전반기에 보여주었던 득점력은 하락, 그나마 예전 이명주가 맡던 역할에 서서히 적응해가며 새롭게 김재성, [[강수일]]과 호흡을 맞추며 서서히 전반기의 폼을 회복하는가 했으나. 포지션이 바뀌면서 득점력은 하락. 그리고 [[손준호]]와 함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으나, 한 달간 팀을 떠난 동안 '''포항은 그대로 폭망했다.''' 본인도 더 이상 득점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막판에는 체력 저하까지 보이며 10골 8어시로 시즌을 종료. 2014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이명주]], [[고무열]]에 이어 3연속 포항 선수들이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나름 선전하긴 했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탑 클래스로 평가를 받던 이명주와의 환상의 콤비가 깨진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라자르 베셀리노비치]], [[티아고 알베스 살레스]] 등을 영입하면서 이명주, 강수일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다시 2선으로 뛸 것으로 예견되었다. 원정 개막전인 [[수원 삼성]]과의 경기는 잘 뛰었으나 [[울산 현대]]와의 홈 개막전을 앞두고 발가락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그 다음 경기가 [[FC 서울]], [[전북 현대]]를 연속으로 만나야 하는데 서울과의 경기에서도 출전하지 못 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 3월 국가대표 소집에 되지 못함도 서러운데 울산과의 경기가 수비진의 폭망으로 4:2로 대패를 당했다. 그리고 못뛴 게 분했는지 다음 홈경기인 서울경기서 특유의 라인브레이킹을 살려내며 2골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끈다.
이후 계속 겉돌면서 제로톱의 파괴력이 약해졌고 포처로써도 약점이 드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그와 동시에 포항의 공격진은 단체로 침체에 빠지면서 팀 성적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동아시안컵 출전 이후 자신감을 회복했고 경기력도 완벽하게 살아나서 다시 팀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렇게 6월까지는 옌볜에서 선발에서 제외되는 등, 여러 문제점을 보였고, 서포터즈와 지역 언론은 김승대를 교체하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박태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용병교체는 없다"며, 김승대는 시간을 더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재차 부진에 빠지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정리될 [[외국인 선수]]로 거론되는 등 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2017년 6월 13일 '''포항이 김승대 임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5693|단독 기사]]가 떴다. [[K리그]] 여름 이적시장 최대어인 [[이명주]]가 [[포항 스틸러스|친정]]과 [[FC 서울|마음 급한 황새]]를 사이에 두고 K리그로 복귀한다는 소식으로 시끌벅적한 와중에 김승대까지 포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포항 팬덤은 순간 들끓어 올랐다.
그러나 6월 19일 오전 이명주가 서울을 택했다는 공식발표가 나온데 이어 같은 날 오후 연변 FC가 새 외국인 선수 영입에 실패해 김승대의 임대가 불발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역시 같은 날 포항 유스이자 U-20 대표팀 주전 미드필더였던 이진현의 오스트리아 리그 진출이 임박했다는 기사까지 나와 '''포항 팬들은 19일 하루 동안 뒤통수를 3번 맞았다.''' 기대했던 이명주, 김승대 영입이 모두 물거품되면서 이대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짐을 싸는가 '''했으나...'''
옌볜 푸더가 알바니아 국대 출신인 발데트 라마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황일수]]를 영입하면서 김승대가 [[FA]]로 풀리게 되었고, 임대가 아닌 '''완전 이적'''으로 포항으로 복귀했다! 게다가 [[FC 서울]]로 도망간 [[이명주|자신의 옛 파트너]]와 다르게 제주에서 황일수와 트레이드를 제안하고, 복수의 K리그 구단이 러브콜을 보냈음에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포항행을 결정지은 것이 알려지면서 근래에 숱하게 통수를 맞은(...) 포항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이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19326&redirect=true|#]] --특히 포항 거주 팬들 사이에서 '''쌍사드립'''[*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쌍용사거리'''라고 알려진 동네가 있다. 옛날에 쌍용차 대리점이 있던 자리인데 대리점이 옮기고 나서도 고유명사로 붙어버렸다. 술집과 노래주점이 많아서 포항 사람들이 술먹고 노는 주요 거점이다. 김승대가 포항 토박이다 보니 --친구따라-- 쌍사에 출몰했다는 썰이 많아서 흥한 드립.]이 흥했다--
그나마 징계가 풀리고 나서는 바로 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 시절의 폼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2년 계약이기 때문에 2017 시즌 후 심동운의 입대가 결정되고 양동현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2018 시즌에는 포항 공격진의 한 축을 확실히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복귀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10월 28일 대구전 홈경기에서 룰리냐의 만회골을 돕는 도움을 기록하였고, 11월 18일 광주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아쉬우나 김승대의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확인한 반 년이었고 손준호와의 호흡이 잘 맞음을 과시해 내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손준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면서 김병수의 제자들 중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준호야 가지마~~
개막전에서 대구 FC를 상대로 특유의 라인 깨기를 보여주며 득점에 성공했고, 이후 2라운드 전남전에서는 도움을 기록했다. 손준호가 이적하고 전방에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중미 자원이 부족해지자 지난 시즌과 달리 2선보다 밑으로 조금 내려와서 패스 공급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본인 인터뷰에서도 득점보다는 도움에 치중하며 팀 플레이에 맞출 것이라고 역할 변화를 시사했다.
2014년 전반기 리그에서 이명주와 함께 발군의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일각에서 월드컵 엔트리 승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으나 결국 탈락했다.
2014년 9월 10일 U-23 대표팀과 [[UAE]]와 비공개 연습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2:1 승리에 기여했다.
이처럼 김승대가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면서 이광종호는 김신욱의 고공 플레이와 김승대의 라인 깨기라는 두 가지 옵션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2015년 8월 2일 중국전에서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유럽파를 차출하지 못해 [[기성용]]이 빠진 상태에서 미드필러 라인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우려가 많았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뜻밖에도 원톱 이정협 밑에 김승대 [[이종호(축구선수)|이종호]] [[권창훈]] [[이재성(1992)|이재성]] 등 드리블러가 아닌 공간 침투와 패스에 능한 선수들을 배치하며 4-5-1과 4-3-3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형을 선보였다. 경기 초반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보였으나 차츰 이들의 연계가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중국 미드필더들은 속수무책, 글자 그대로 능욕을 당했다.
이 날 김승대가 기록한 첫 번째 골은 이재성의 스루패스도 훌륭했지만 김승대 특유의 절묘한 라인깨기와 득점 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재성의 스루패스가 중국 수비수의 발끝에 살짝 스치면서 김승대가 예상한 위치보다 발 가까이 붙어와서 퍼스트 터치가 나빴지만 당황하지 않고 후속 동작을 가져간 침착함은 A매치 데뷔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
- 영천시 . . . . 27회 일치
[[경상북도]] 남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10만명을 간신히 넘기는 인구가 거주 중이다. 인구 변동폭이 워낙 작아서 2013년 8월 '''100,999명'''으로 인구가 10만 명대로 하락한 이후 4년 가까이 10만 명선에서 정체되어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서서히 아주 조금씩 인구가 늘고 있다!!'''] 행정구역면적은 920.29㎢ 에 1개 읍(금호읍), 10개 면(청통, 신녕, 화산, 화북, 화남, 자양, 임고, 고경, 북안, 대창), 행정동 5개 동(동부, 중앙, 서부, 완산, 남부), 법정동 30개 동(망정, 야사, 도남, 도동, 조교, 녹전, 오수, 조교, 대전, 매산, 신기, 문내, 문외, 언하, 괴연, 채신, 성내, 화룡, 오미, 과전, 창구, 봉동, 완산[*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완산구]] 완산동과는 전혀 상관없다.], 금노, 본촌, 서산, 쌍계, 범어, 작산, 교촌)이 있다. [[대구광역시]]와 접한 도시인 만큼 대구 생활권에 대체로 속하고, 다만 [[포항시]]와 접하는 고경면은 포항 생활권에 좀 더 가깝다...고 하지만 실상은 둘 다 차타고 넉넉잡아 1시간 정도의 거리라(...) 그냥 독자 생활권이라고 보면 편하다. 굳이 대도시에 볼 일이 있을 때 그쪽으로 간다는 것.
고대에는 [[골벌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여담으로 고구려 사람인 백석이 김춘추와 김유신을 속여 고구려로 데려가고 있을 때 세 산신이 여인으로 나타나 백석의 의도를 알려줘 김춘추와 김유신이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이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영천(당시 이름 골화천)이다.
영천군 시절의 역사는 [[영천군]] 항목 참조. 이후 1981년 7월 1일 영천군 내에 있던 '영천읍'이 '영천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와 영천군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치로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그리고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에 접하고 있다. 또 영천시는 태백산맥 줄기의 보현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둥근 형태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보현산(1,124m), 서쪽에는 팔공산(1,192m), 동쪽에는 운주산(806m), 남쪽에는 사룡산(685m)이 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단은 화북면 하송리 산56으로 동경 128도 55분 08초, 북위 36도 10분 54초. 남단은 대창면 용호리 산13으로 동경 128도 56분 57초, 북위 35도 50분 03초로 남북간 38.64km이며, 동단은 임고면 수성리 산96-1로 동경 129도 08분 42초, 북위 36도 03분 08초. 서단은 신녕면 치산리 산141-5로 동경 128도 41분, 북위 41초 36도 00분 48초로 동서간 40.75km이다.
'''비와 눈이 이상할 정도로 적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이 와서 다른 지역을 휩쓸고 가서 피해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영천은 피해가 미미했으니.....][* 강수량이 적은만큼 맑은 날이 많기 때문에 보현산에 천문대가 있다.] 그래서 저수지가 약 1000여개 정도 된다. 2010년 여름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오랫동안 내려 농사를 망친 지역이 많아 배추값이 2만원을 찍는 등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이 일대만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오히려 예년보다도 작황이 좋아 평소 적자를 보던 농가들마저 대박을 쳤다. 소문에 한철 농사로 1억 이상의 수입을 거둔 농가도 심심치 않다고 한다.
[[경산시]] [[하양읍]] 및 와촌면(시경계)이나 [[대구광역시]]로 들어가려면 [[시내버스]]인 [[영천 버스 55, 555|55/555]]번을 타면 된다. 시내버스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영천시 시내버스]] 항목 참조.
2009년 9월부터 천연가스버스가 운행 중이나, 영천시 관내에 CNG충전소가 없어서 금호읍 인근에 있는 [[경산시]] 와촌면 용천리의 하양CNG충전소를 이용한다. 하지만 용천리CNG충전소는 영천 시내에서 10km 넘게 떨어져 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인구에 대비해서도 절대적인 규모로 봐서도 5일장이 굉장히 크며 아직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덕에 시장으로의 출근길이나 시장을 통과하는 출근길이나, 성남여중•여고를 제외한 시내 주요 중•고등학교의 등교길은 평소보다 지각할 확률이 배로 늘어난다.][* 특히 [[영천IC]] 근처 가와인아파트쪽에서 오는 버스는 원래 등교길이나 출근길이 오래걸려 2,3분씩 늦기 마련인데, 장날은 지각하는날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런사정을 알고 학교선생님들이 넉넉히 10분내외로 봐주신다.]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품의 도매 거래활발하며 이를 통한 한약유통이 옛날부터 유명해 매년 한약축제도 벌인다.[* 한약은 생산량도많지만, 유통량이 조금 더많은데 큰 한약시장이 있기때문이다. 대구약령시장보다 더크며, 전국 유통량의 30%한약재중에 3분에1이 영천 것이라고 보면된다.] 내륙임에도 상어고기인 [[돔배기]]의 전국 물량 중 50%가 영천에서 팔린다. [[대구광역시|대구]]보다 높은 기온과 적게 오는 비로 포도를 많이 키워 '''전국 포도 생산량과 재배량 모두 1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똑같이 포도가 유명한 [[김천시]]는 생산량과 재배량이 2위이다.][* [[금호읍]]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미국으로 수출도 한다.'''] 이 때문인지 21세기 초부터 한약재 대신 포도를 시에서 밀어주며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별빛포도' 라는 자체 브랜드도 존재.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영천 포도는 53로 등록되어있다. 비는 적게 와도 수리시설이 발달한데다 전국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활용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유명하며, 우수 특산물에 '별빛촌'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영화관은 바로 옆동네 [[경산시]]의 읍단위인 [[하양읍]]에도 있는데[* 물론 하양읍은 대학교가 밀집해있어 학생들이 많은 탓이기도 하고 인구 2만 8천명의 대형읍인데다 진량읍과 함께 시내와는 거리가 재법 되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영천'''시'''인데도 '''하나도 없다'''. 물론 1960~70년대에 아카데미극장 과 영천호돌이극장 2곳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90년대 경영난으로 폐업하게되었다.(...) 그러나 2017년 영천공설시장에 영화관이 생겼다. 그래서 영천시민들은 주로 영천의 몇안되는--유일한-- 문화시설중 하나인 영천시민회관에서 상영해주는 철지난 영화를 보거나 극장이 있는 근처 [[대구광역시]]나 [[경산시]]에 있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이런 상황이 꽤나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도대회와 탁구, 검도, [[세팍타크로]], 수영대회 등의 각종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여 침체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대구대학교]] 총장기 전국고교[[검도]]선수권대회는 2011년부터 영천에서 계속 개최하고 있는데 [[대구MBC]]에서도 매년 중계하고 있다.
[[제1117공병단]], [[제50보병사단]] 122[[연대(군대)|연대]]와 [[육군3사관학교]] 등의 군사시설이 있어 대구의 위성도시이자 보조 군사도시의 기능을 한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 라인의 "최후저지선"에 포함되었던 지역으로 곳곳에 추모 동상이 있으며 [[6.25 전쟁]] 추모 행사를 매우 공들여서 하는 편이다.[* 이것은 [[칠곡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칠곡군은 [[다부동 전투]] 때문에 영천보다 더 알려져 있는 편이다.] 영천을 잠시 내주고 나서 [[미군]]에서 [[서사모아]]에 '''신한국'''을 건설하고 후퇴하려고 했는데, 어느 국군 장군이 영천만 찾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던 일화가 있다.
• 창신 : 망정동에 창신아파트를 기점으로 주위에 청솔아파트, 아이존빌스타, [[코아루]] 이 네 아파트들을 묶어서 이르는 말로 망정 하면 주로 망정주공아파트와 우방아파트(주소상으로 야사동이지만 망정주공 바로옆이므로)를 떠올리고 창신하면 위에서 말한 아파트들이있는 일대로 생각한다 이 네아파트중 창신아파트가 가장 오래되기도 하고 아이존빌스타 와 [[코아루]]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 일대에서 가장 큰 대단지 아파트였기 때문에 창신으로 불리고 있다.
•공병대 : 영천 내에선 최근 가장 핫한 지역으로 완산동 영천시내와 영천시장 뒷편에 옛 공병대 부지로 상당히 넓은 면적을 빈 공터로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현재 공병대 앞쪽에 [[미소지움]]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으며 e편한세상같은 브랜드 아파트까지 건설예정이다. 공병대 부지도 영화관과 고은힐즈라는 복합몰이 들어오게 되면서 개발하고 있는데 고은힐즈가 완공되어도 몇년 간은 계속 공병대라고 불릴것 같다.
시장통에 있는 말죽거리터에는 육군 공병대와 함께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미 25사단 산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이곳에서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수용했었지만 전쟁 중후반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대립이 절정에 달하자 문제를 인식한 미군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분리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주로 반공포로와 민간인 포로를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곳은 이승만 대통령이 시찰차 방문한 적이 있었고 훗날 반공포로 환영식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었을 만큼 규모가 큰 수용소였는데 규모가 있는 수용소였던 만큼 탈도 많았는지 1952년 5월 29일에는 포로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었고 그 후에도 포로들의 시위가 간간히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군들이 공산당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모의했다며 경북도의원을 무단 체포, 납치하는 사건도 발생해 지역민들의 빈축을 샀었다고. 그 외에도 격전지였던 영천전투에서 발생한 인민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서 현재의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부지 근처에 임시수용소를 설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밀리터리 소설가--를 가장한 국군 찬양 [[국뽕]] [[양판소]]-- 소설가인 [[김경진(소설가)|김경진]]의 처녀작 [[데프콘(소설)]] 한미 전쟁편에서는 '''대구로 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진짜 '''개박살이라는 말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박살난다.'''--여기 주민들 지못미....-- 심지어 여기를 지키던 인민군 6군단 때문에 미군이 '''[[기화폭탄]]마저 쓴다(!!!).'''[* 당연히 국군도 여기 전역('전투지역'의 줄임말.)에 보복으로 기화탄을 포격으로 날려 버렸다. 보고에 의하면 ''''보복 기화탄 공격'''으로 생긴 '''화상 환자들 때문'''에 '''미군 병원선이 미어터질 지경' '''이라나 뭐라나... 근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기화탄을 무슨 소형 핵 취급한다(실제로도 '[[기화폭탄]]은 소형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라고대놓고 표현할 지경이니...).''' '''기화폭탄 따위는 핵에 비교하면 폭발 규모나 후유증에서 비교가 안될정도로 넘사벽이다!!''' 다만 '''인류가 만든 화약무기 중'''에서 '''그나마 핵에 제일 근접'''해서 그렇지...] 물론 ''''경상북도의 중심지' '''이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부산을 제외한)첫 번째 대도시'라는 이유'''로 '''통일한국군과 미군 쌍방이 정말 박 터지게 싸운 [[대구광역시]]'''가 입은 피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물론 여기에는 ''''대구 비행장의 존재감'도 컸다.''' 아무래도 '''(경상남북도를 다 합쳤을 때) 제 1의 비행장'''이니...(''''대한민국에서의 제1 비행장'이라고 하면...''' 뭐 다 '''[[인천국제공항|알지]]?''')]
* [[정몽주]][*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고향은 영천이라는 설과 포항이라는 설 2가지가 있다. 그런데 영천시는 [[포항시]]와 서로 우리가 정몽주 선생의 고향이라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3&aid=0000056808|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포항에는 정몽주 선생의 호를 딴 '''포은'''중앙도서관과 '''포은'''중학교, 정몽주로가 있다. 이에 질세라 영천시에는 '''포은'''초등학교와 '''포은'''고등학교(원래 금호여고였으나 2014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교명을 변경하였다.)가 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영천이라는 쪽이 좀 더 우세한 편으로, 영천에는 임고서원과 가설 선죽교, 새로 복원한 포은 선생의 생가가 있다.]
- 은혼/654화 . . . . 27회 일치
* 우주의 전쟁이 끝난 뒤. 그 소식은 하타 황태자의 배에도 전해졌다. [[하타 황태자]]는 전쟁은 혼자 다 해먹은 것같이 폼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전투 중엔 화장실에 처박혀서 압사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황태자가 이만한 군세가 단번에 백기를 들 줄은 몰랐고 "전쟁을 결정짓는건 숫자가 아니라 각오"라며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기백에 해방군이 패배를 깨달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전직에 실패해 내세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하세가와 다이조]]는 써놓은 유서가 첨부된 그 대로 어디서 기어나와서 그 개드립에 "나도 매일 각오를 다지며 죽음과 마주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영감 [[네스]]는 거기에 일일히 츳코미하며 어차피 이 전쟁에 조력한 것도 억지러 한거 아니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됐건 하타 황태자의 도움이 있어 이길 수 있던게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쓸데없이 훈훈하게 뭉뚱그려지고 있는 찰나, 해방군 모선에 진입했던 부대와 연락선을 잇는 작업 도중 적의 모함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하타 황태자는 전리품을 쓸어담고 도주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접 추격할 것을 명한다.
* 지구에서는 아네 모네 자매와 이누카미 "코마코"가 [[사다하루]]와 합류해 용맥을 안정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그러나 세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많은 작업을 거치고 나자 체력이 바닥. 그래도 이제 용혈, 터미널을 진정시키는 것으로 사태는 진정될 듯 했다. 자매는 이제 막부군도 터미널로 진격할 거라 예상하고 자신들도 보조를 맞춰 접근해 보기로 결정한다.
* 아네는 줄어든 동생의 두뇌를 탓하다가 한 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미처 정리할 틈도 없이 살기를 느낀다. 위쪽. 아네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사다하루와 모네를 밀어냈다. 하늘로부터 장대비처럼 석장이 내린다. 모네와 사다하루는 무사했지만, 아네는 그렇지 못했다. 석장이 아네의 옆구리를 찢어놨다. 아네는 뒤늦게 실수를 깨닫는다. 용맥을 진정시키는데 정신이 팔려 진정한 적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츠로(은혼)|우츠로]]가 시생인 부대를 이끌고 자매를 처리하러 왔던 것이다. 건물 위로부터 시생인 부대가 쏟아지는 순간, 아네는 모네의 부축으로 일어나며 "뛰어"라고 소리쳤다.
* 노부메의 짐작대로였다. 우츠로의 지시로 터미널을 폭주상태로 몰고간 시생인들이 보고를 올렸다. 이미 터미널을 한계. "문"은 더이상 부하를 견딜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우츠로는 그 보고가 오히려 기뻤다. 자신의 부하들도, 아네모네 자매와 이누카미들도 모두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했다. 그런 자들은 적이든 아군이든 칭찬할만하다고 우츠로가 말했다. 그러니 그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우츠로는 진선조를 앞세운 카부키쵸 연합군이 터미널로 진격할 것도 알고 있었다.
시생인 부대와 싸우던 진선조의 [[곤도 이사오]], [[히지카타 토시로]], [[오키타 소고]]는 터미널에서 발하는 강렬한 빛을 목격했다. 시생인들이 제어하던 "문"이 파열하는 빛이었다. 제어가 풀린 용혈, "용"이 하늘로 치솟았다. 터미널이 가두고 있던 막대한 에너지가 하늘을 가르고 가부키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용이 되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해결사 일행에게, 노부메는 문이 파괴됐고 우츠로 조차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작은 자신도 모르겠다며 대답을 아꼈다. 단지 그가 알 수 있는 건, 누구 손을 빌리지 않아도 어차피 선내의 인원들은 죽을 거라는 것. 지구와 함께. 반대로 하타가 자신들을 죽이면, 지구는 살 거라는 것.
* 모네는 아네를 스쿠터에 태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터미널에서 용이 튀어나온 뒤 시생인의 추적은 사라졌지만 상황은 좋아진게 없었다. 중상을 입은 아네는 그 시끄러운 입이 조용했다. 모네가 정신 차리라고 실컷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겨우 "시끄럽다"고 대꾸하는 정도였다. 아네는 괜찮다며 어서 터미널로 가길 원했지만 모네는 무리라고 대꾸했다. 이미 검력도 다 소진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네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문이 파괴된 이상 그걸 멈출 수 있는건 자신들 뿐. 모네는 자기가 아네 몫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아네는 그것도 안 된다고 고집했다. 그랬다간 모네는 그렇다쳐도 두 이누카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만다. 그게 문제였다. 이누카미는 영성을 띄면서 동시에 육체도 지닌다. 하지만 그 육체는 영성에 의해 유지되는 것. 대량의 검력을 써버린 지금의 이누카미들은 육체를 유지할 힘도 부족했고 그래서 몸이 작아진 것이다. 여기서 더 부담을 주게 된다면, 몸이 작아지는 걸론 끝나지 않는다. 코마코와 사다하루는 확실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츠로가 양이 사천왕도 방치하고 있는 마당에 친히 처치하러 나와서 주역급 주목도를 받았다. 열심히 뛰어댕긴 덕에 에도를 날려먹을 것 같았던 용맥의 폭주는 진정. 하지만 본류에 해당하는 용혈 그 자체의 폭주는 아직도 남아 있다. 아네는 한때 사다하루를 버리고 일족의 사명도 팽개쳤던 관계로 죄책감이 심한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다하루를 반드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사다하루와 코마코가 검력을 너무 소진해 쪼그라든걸 발견했고 덮친격으로 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까지 습격하면서 치명사을 입는다. 일단 모네가 데리고 열심히 도망쳤는데, 결국 용혈은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돌입하고 앞으로 코마코와 사다하루가 계속 검력을 쓰면 아예 존재가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처지에 처한다.
아네 모네 자매와 합류해 용맥의 폭주를 죄다 정리해버려 순식간에 해결사 일행 중 최고의 공을 세웠다. 하지만 너무 검력을 소진한 바람에 같은 이누카미인 코마코와 함께 형편없이 작아졌다. 코끼리 만하던 덩치가 이젠 소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아네는 이누카미들은 영성으로 육체를 유지하는데 검력을 너무 써서 영성이 약해진 탓에 육체마저 사라지고 있는 거라 진단, 더이상 무리를 하면 둘이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아네 모네 자매를 제거하기 위해 등장. 그런 것과 별개로 사명을 다하는 자매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문이 붕괴하도록 한 것도 원래는 우츠로의 복안인 듯. 현장에서 조작하던 부하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의 붕괴와 함께 이들도 깨긋하게 사망. 우츠로는 우주를 향해 솟구치는 아르타나를 "용"이라 부르고, 실제로 우주의 자작 제독도 그 모습을 용에 비유했다.
가츠라, 다츠마, 신스케가 동시에 리타이어 하면서 제일 바쁜 사람. 우주의 전쟁은 끝났지만 해방군 모선은 여전히 폭주 중이며 제어도 불가능해서 지구로 추락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동생 하타 황태자에게 방아쇠를 맡기는 것. 어차피 함내에서는 탈출도 불가능하고 지구와 함께 죽는게 기정사실이라면, 그 전에 모선이라도 파괴해서 지구와 이 우주는 살려보자는 계산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병력은 현시점에선 하타황태자의 함대가 유일. 동생에게 가혹한 선택지를 주는게 거리껴졌는지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
* 하타 황태자 + 하세가와 다이조
전투 내내 화장실에 짱박혀 있던 주제에 끝난 뒤에는 혼자 다 싸운 것처럼 생색내며 베르세르크의 가츠같은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났다. 하세가와는 이 와중에도 자살시도를 멈추지 않다가 역시 다 끝나고 나서야 "나는 항상 죽음을 마주하고 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고 하타와 드립을 주고 받는다. 다들 싸우느라 떠나서 츳코미 역이 없어 네스 영감이 열심히 츳코미를 넣고 다닌다. 어쨌든 하타 황태자가 도와줘서 전쟁에 이긴 건 사실. 하세가와가 "맨날 지구를 멸망시킬 뻔 했던 너네에게 도움 받을 줄은 몰랐다"며 감사를 표한다. 만일 여전히 공무원이었으면 지구 대표로 하타황태자에게 정식으로 감사할 뻔 했으니 차라리 짤린게 다행이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 정칠성 . . . . 27회 일치
유년 시절에 기녀가 되어 “금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였고, 후일 필명이자 아호로 사용하였다. 기생학교에서 수료한 후 한남권번의 기생으로 있다가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성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24년]] [[허정숙]](許貞淑),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 여성들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창립하였고, [[일본]] 유학 중 1925년 도쿄에서 여자유학생단체인 삼월회를 조직했다.
귀국 후 [[1927년]]에는 [[신간회]]와 [[근우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여성 계몽 강연 활동과 칼럼, 논설 발표, 편물과 수자수 강사 등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 선전조직부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 1930년 제2차 경성학생시위사건(일명 근우회사건) 주동 혐의로 투옥당하였다.
19세 때에는 말 타고 나라를 구하는 외국여걸들의 전기를 읽고 자신도 그와같은 유명한 여장부가 되려고 승마를 배우기까지 하였다.<ref name="dispose">[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19971223.00000014.000010&newsType=old < 대구.경북 근.현대인물사 . 38 > 정칠성]</ref> 여자가 집 밖으로 다니는 것을 꺼려하고, 말을 탄다는 것은 금기시되기조차한 사회에서 그녀의 행동은 도발적인 것이었다. 정칠성은 이때의 경험을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유쾌했던 일로 회고하는 글을 잡지 '별건곤(別乾坤)' 에 싣기도 하였다.<ref name="dispose"/>
1923년 [[물산장려운동]]에 한때 참여하였다.<ref name="dispose"/> [[1923년]] [[10월 17일]] 조영수, 이춘수(李春壽) 등과 함께 [[대구]] [[명신여학교]] 강당에서 [[기독교]] 등 종교모임의 부녀단체와 여성단체를 본따 [[대구여자청년회]](大邱女子靑年會)를 창립발기하였다. 바로 [[대구여자청년회]] 통과위원에 선출되었다.
10월 이춘수와 대구여자청년회 창립을 주도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대구여자청년회의 창립은 당시 종교단체외에 여성운동을 조직적으로 하는 단체가 없던 상황에서 여성대중을 대상으로 조직을 결성한 첫 시도였다.<ref name="dispose"/>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의 부녀단체를 탐방, 연구한 정칠성은 전국적인 여성 단체, 여성 청년 단체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후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大邱女子靑年會執行委員)이 되어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청에서 활동하였다.
[[1925년]] [[11월]] [[일본]] 정부에서 가상의 적을 대비하여 각급 중고등학교에 군사훈련 및 각종 군사교육을 실시하자, 정칠성은 군사교육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11월 7일]] [[홋카이도]]의 소준고등학교 강당에서 일본내 시민단체, 여성단체, 사회주의 운동단체 및 조선인 유학생단체, 삼월회, 일월회(남성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군사교육 반대 집회]]에 그는 [[삼월회]]의 대표 자격으로 박경희(朴慶姫)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 2백 명이 급히 투입되어 진압하자, 바로 피신하였다.
[[1926년]] [[1월]] [[삼월회]] 간부 자격으로 《조선일보》에 '신여성이란 무엇?'이라는 칼럼을 발표했다. 여기서 정칠성은 강렬한 자립정신, 강력한 계급의식을 지닌 여자가 모든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진정한 여자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여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남자와 가정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경제력을 얻으려면 여자 역시 취직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1926년]]에는 조선여성친목회에 가입하였다. [[1926년]] [[3월]] 동경예기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927년]] [[4월 26일]]에 [[경성]] 중앙유치원에서 좌우합작의 여성단체인 [[근우회]](槿友會)가 창설될 때 [[유각경]], [[황신덕]], [[김선]], [[허정숙]] 등과 함께 [[근우회]]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운동의 연합체인 신간회의 자매단체로의 결연을 주선하였다. [[4월 28일]] [[근우회]]를 발족되자 [[근우회]] 회원모집부 부원이 되어 [[대구]]로 내려가 홍보, 회원을 모집하고 근우회 경상북도지회 조직을 주관하였다. 정칠성은 근우회가 전국에 지회를 결성할 때 대구지회 결성의 임무를 띠고 파견되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집행위원(당시 21명)을 구성하는 데까지 활약하였다.<ref name="dispose"/>
그는 [[동아일보]]와 매일신문 [[삼천리]]지 등에 칼럼과 논설, [[대구]], [[부산]], [[전주]] 등지의 전국으로 순회강연을 다니며 여자의 자유 연애와 여자의 남자, 가정으로부터의 독립, 자립을 역설하였다. [[1927년]] [[6월 6일]]에는 [[평양여성동우회]] 주최로 [[평양]]부내 평양천도교당에서 열린 평양여우강연회와 여성문제대강연회(女性問題大講演會)의 연사로 참여하였다. 여성문제대강연회의 연사로 연설을 끝마친 뒤 평양경찰이 난입해 강연을 중단시켰다. 이후에도 그는 각지로 돌아다니며 가사노동 등으로부터의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였고, 경찰의 감시망에 오르게 되었다.
[[10월 6일]] [[박원희]]와 함께 [[근우회]] 조사위원 겸 전권위원에 임명되어 [[경성]]에서 [[함흥]]으로 파견되었다. 바로 [[근우회]] 함흥지회를 개설하고, 함경도지역 조사 후 [[10월 6일]] [[함흥]] 오로리의 오로여자상조회(五老女子相助會)에서의 강연을 계획하였으나 함흥경찰에 의해 체포, 강연회 자체가 무산되고 되돌아왔다. 정칠성과 박원희가 경성으로 되돌아간 뒤 [[함흥여자청년회]]와 함흥기독청년회 주최, [[동아일보]], [[조선일보]] 후원 하에 부인문제대강연회가 열리자 연사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방해로 집회가 무산되자 오히려 사회단체의 집회를 방해한다 하여 지식인층의 반발을 불러오게 됐다. [[10월 16일]] 근우회 집행위원으로 대구에 다녀온 뒤 다시 함흥으로 가서 근우회 함경남도 지부 조직에 착수하였다.
[[1927년]] [[11월]] 서대문정 [[조선여자기예원]](女子技藝院) 교수로 초빙되었다. 여자기예원 교수로 있으면서 부녀자들에게 수자수, 편물, 공예 등을 가르쳤고 일과시간 이후에도 자신의 사택을 찾아온 부녀자들에게 개인지도를 하기도 했다. [[12월 2일]] 마포청년회 강당에서 열린 [[신간회]] 경성지회 강연에 [[이관용]](李灌鎔), 이관구 등과 함께 연사로 참여, '신간회와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여자직업사의 수자수 교사와 근우회 각 지회설치 활동을 하면서도 동아일보, 삼천리지 등에 칼럼과 논설을 발표하였다. [[1928년]] [[5월 20일]]에는 황주청년회관에서 [[신간회]] 황해도 황주지회가 주최한 '사회문제대강연회'에 연사로 참여, '여성운동과 신간회'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강연 주제 중 그는 '우리 조선여자들은 남자들의 완롱물이요, 남자의 위안물이며, 남자들의 일개의 생식기계에 지나지 않는 노예였다.'는 내용이 문제시되어 임석경찰관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다.
[[1928년]] [[9월]] 신병 요양차 울산으로 내려가 요양하였다. [[9월 5일]] 요양차 울산 체류 중 경남울산청년회와 동아일보 울산지국 후원하 울산예배당에서 개최된 강연회에서 '여자의 불평과 남자의 각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7년]]에 조직된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에서 활동하던 정칠성은 '적연비판, 콜론타이의 성도덕에 대하여 (삼천리, 1929.9)에서 기자가 '콜론타이의 "연애와 성욕은 별문제"이며, 사회운동을 하느라 연애하기 힘든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성욕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의견을 물었을 때, 정칠성은 "현실을 잘 본 말이외다. 성욕과 연애는 당연히 갈라져야 하겠지요. 그러고 결혼의 자유, 이혼의 자유가 아주 완전하게 없는 곳에서는 그렇게밖에 더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ref name="seoji193">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3페이지</ref>
또한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의 해방과 [[붉은 사랑]]의 여주인공<ref name="seoji193"/> 왓시릿샤(바실리샤)의 해방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칠성은 '노라는 '[[개인주의]]적인 자각'으로서 개성에 눈을 떠 남편의 집을 뛰쳐나갔지만 거리에서 얼어 죽은 '공상적 여성'인 반면, 바실리사는 노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해방되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진 여성이라 대답한다.<ref name="seoji194">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4페이지</ref> 이렇게 당시 사회주의 조선 신여성들에게 콜론타이는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성적, 경제적으로 해방된 진정한 자유를 얻은 여성"의 상징으로 수용되었다.<ref name="seoji194"/> [[콜론타이]]의 이론을 적극 수용, 조선에 소개시킨 여성운동가로는 정칠성 외에도 [[허정숙]], [[정종명]] 등이 있었다.
[[1931년]] [[1월]] 《조선지광》 1931년 정월호에 '연애의 고민상과 그 대책'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그녀는 연애로 인한 고민과 여성의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였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종속적인 관계의 결혼을 하게 되는 여성들과 남자에 대한 애정으로 자신의 길을 포기하는 여성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성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연애도 결혼도 모두 평등한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상적인 사랑을 위해서는 이러한 불합리한 사회적 제도와 환경과 싸워야한다고 하였다. 그녀는 '연애의 고민상과 그 대책'으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여중, 여고를 다니며 강연활동을 하였다.
1931년 5월 신간회 전체대회에서 신간회 해산이 결의되자, 그후 2년동안 사회활동을 일시 중단하고 서울 낙원동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경영하였다. 또한 [[기방]]이 쇠퇴해감에 따라 기녀 출신 인사들의 영화 캐스팅, 연극 캐스팅 등에도 노력하였다. 그는 기생들의 판소리와 대본 암기 능력이 다른 여배우들보다 부족하지 않음을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이후 조선인 기녀들 중에는 [[영화 배우]]나 [[희극 배우]], [[연극 배우]]로 캐스팅되거나 전직하였다.
[[1945년]] [[9월]]에 좌익계 여성단체인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12월]] [[조선부녀총동맹]] 부위원장에 선출되었고, [[12월]]말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결정되자 정칠성은 [[박헌영]] 등과 함께 처음에는 [[신탁통치]]에 반대하였으나, 신탁의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찬탁으로 돌아섰다. 이후 찬탁매국노로 몰리자, 테러를 피해 [[대구]]와 [[경성]]과 각지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다녔다.
테러와 탄압을 피해 피신생활 중에도 그는 [[1946년]] [[3월]] [[허정숙]]과 함께 [[서울]]에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녀절]] 행사를 조직하였다. 그해 [[5월]] [[허정숙]]이 월북한 뒤에도 [[1948년]]까지 매년 [[3월 8일]] [[서울]]에서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녀절]] 행사를 개최했다.
[[1946년]] [[11월]]의 한 젊은 여기자와의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11월 혁명 기념일을 초라하게 맞는 것이 쓸쓸하다고 밝히며 이날을 위해 당시 러시아 여성들이 바친 피와 노력에 존경을 표한다고 밝혔다.
- 카라스노 고교 . . . . 27회 일치
이후 카라스노의 전국 진출을 이끌었던 명장 우카이烏養 감독[* 성을 보면 알겠지만 까마귀(烏)를 기른다(養)는 뜻이다]이 은퇴하면서, 팀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본작의 두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가 입학한 현재에 와서는, 잘해봐야 현내 베스트8, 특별히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팀이 되어버렸다. 타교생들에게서는 '''무너진 강호, 날지 못하는 [[까마귀]]'''라는 촌스러운 [[별명]]으로 불린다.
도쿄에 있는 [[네코마 고교]]와는 유서 있는 [[라이벌]] 관계이다. 두 학교의 [[더비 매치]]는 아예 '''쓰레기장의 결전'''이라고 불린다. 네코마와는 여러차례 연습 시합을 가졌지만 공식 무대에서는 한 번도 붙어보지 못한 [[안습]]한 역사가 있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는, 작은 거인이 있던 시절(=즉 가장 강했던 시절)에도 연습시합에서 네코마 고교를 이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두 학교의 감독들 모두 은퇴하면서 네코마 고교와의 인연도 끊어졌으나, 작중에서 5년 만에 연습경기를 가졌다. 그리고 두 학교는 공식전에서 쓰레기장의 결전을 성사시키기로 결의한 상태.
인터하이 미야기현 예선에서는 현내 베스트4인 [[다테 공업 고교]]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노장의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이어진 [[아오바죠사이 고교]]와의 시합에서는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퇴. 봄고 미야기 대표결정전에서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다시 한번 맞붙은 결과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시합 때 입는 유니폼은 오렌지색과 남색을 배색한 디자인으로 무난하다는 평. 그런데 연습할 때 입는 배구부 트레이닝복이 상하의 모두 칙칙하다 못해 시꺼먼 '''검정색'''이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의 학교 체육복은 팥색.] 여기에 학교의 상징동물인 [[까마귀]]와 [[타나카 류노스케|얼굴만으로]] [[카게야마 토비오|사람을]] [[아즈마네 아사히|쫄게 하는]] 선수들이 더해지면서, 이미지만으로는 매우 살벌한 학교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대회장에서 '날지 못하는 까마귀' 운운했다가는 높은 확률로, 이들이 전원 [[죽은 눈]]을 한 채 호러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팀 스타일은 공격적이고 득점력도 높은 편이지만 에러나 범실이 많다. 한때 [[우카이 케이신]]은 네코마 고교와 비교하면서 카라스노의 팀 스타일에 대해, '들쭉날쭉한 팀을 세터 카게야마가 압도적인 재능으로 잇는 팀'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짜여진 조직력을 자랑하는 라이벌 [[네코마 고교]]나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사실상 상극이어서, 카라스노는 이 두 학교들과 붙으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전반적으로 수비력이 떨어지는 팀이었지만, [[후쿠로다니 학원|후쿠로다니 학원 그룹]]과의 단체 합숙 등으로 팀원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런 느낌은 많이 사라진 분위기. 다만 수비력이 떨어지던 시절에도 희대의 사기캐인 [[니시노야 유|주전 리베로]]와 윙리베로(...)급 활약으로 수비를 [[캐리]]했던 [[사와무라 다이치|주장]]이 있었다.
애초에 중학시절 베스트 리베로 상을 받은 [[니시노야 유]]와 키타가와 제1중 출신의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는 것만으로, 전력상 무시 못 할 팀이다. 실제로 남덕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학교의 리베로와 세터가 너무 [[사기캐]]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 과장이 아닌 게 니시노야는 키 빼고[* 아무리 포지션이 리베로라 하더라도 [[니시노야 유|니시노야]]의 경우에는 '''너무 작다'''. 프로필 신장은 160cm 근방이지만 이 키가 세운 머리(10cm)까지 포함한 거다. 아무리 만화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신장으로 배구를 한다는 건 [[흠좀무]]다. 아직 고2니까 더 클 가능성도 있지만.] [[먼치킨]]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냥 [[스탯]]부터가 깡패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천재]]상으로 카게야마를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탯을 몰빵해놓은데다[* 현재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 능력치 총점에서 카게야마를 앞선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마저도! 때문에 독자들은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와카의 프로필이 어서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중 활약(문제의 토스들)만 따져도 얘만한 먼치킨이 없다.
그렇다고 이 둘 말고 다른 선수들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어째 배구 외적인 일로 더 유명한~~ [[아즈마네 아사히]]와 [[타나카 류노스케]] 등 준수한 공격 자원들이 있으며, 공격과 수비 모두 다재다능한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있다. [[히나타 쇼요]]는 봄고 대회에서, 신장이 2m인 상대학교 선수와 대등하게 매치업하면서 타교 선수들에게 꽤 이름이 알려진 모양이다. 또 부원수가 적은 팀 치고, 주전과 벤치조 간 전력차가 그리 큰 편이 아닌 것도 장점이다. 1학년들 중 유일하게 벤치 멤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도 원포인트 서버로 활약하고 있으며, 존재감 없는 2학년 둘도 속공 없는(즉 카게야마가 없을 때)히나타 보다는 더 뛰어나다는 언급이 나온다.
||<tablealign=center> http://s13.postimg.org/6qgem6i6v/sawamura.jpg&width=205 [[br]] [[사와무라 다이치]] (WS) || http://s13.postimg.org/ydtm76wt3/sugawara.jpg&width=205 [[br]] [[스가와라 코시]] (S) || http://s13.postimg.org/vfw56kvpz/azumane.jpg&width=205 [[br]] [[아즈마네 아사히]] (WS) ||
|| 6 || 봄고 || 1차 예선 2회전[* 카라스노는 인터하이 시드배정교로 2차전에 자동진출했다.] || 오기미나미 고교[* 인터하이에서 1차전부터 시라토리자와를 만나 참패했던 팀.] || 승리 || 2 : 0 || 카지 고등학교 || 8월 11일 || 12권 ||
|| 7 || 봄고 || 1차 예선 3회전 || 카쿠가와 고교 || 승리 || 2 : 0 || 카지 고등학교 || 8월 11일 || 12권 ||
|| 9 || 봄고 || 2차 예선 2회전 || 와쿠타니미나미 고교[* 줄여서 와쿠난.] || 승리 || || 센다이시 체육관 || 10월 26일 || 13권 ~ 14권 ||
|| 11 || 봄고 || 예선 결승 || 시라토리자와 고교 || 승리 || 3 : 2 || 센다이시 체육관 || || ||
- 김성주(축구선수) . . . . 26회 일치
4월 4일 [[대구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팀은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4월 11일 [[선문대학교]]와의 [[대한축구협회 FA컵/2015년|FA컵]] 3라운드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전반 30분 오창현의 드로인을 머리로 받은후 오른발로 접어 상대 수비와 골키퍼를 속인 뒤 왼발슛으로 첫골을 기록했다. 팀은 2:0으로 승리하여 32강전에 진출했다.
4월 15일 [[상주 상무]]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지만 70분에 보비와 교체되며 나갔다. 팀은 3대2로 패배했다.
4월 25일 [[부천 FC 1995]]와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4월 29일 [[울산 현대]]와의 [[대한축구협회 FA컵/2015년|FA컵]] 32강전 원정경기에서 83분 김창욱선수와 교체되며 투입되지만 타라바이가 퇴장을 당하며
5월 2일 [[수원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61분에 이재안 선수와 교체되며 출전해서 76분에 김창욱선수가 보낸 패스를 받아 살짝 드리블 후 왼발로 감아찬
5월 10일 [[경남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93분 타라바이와 교체되며 투입되지만 공 한번 못잡아보고 경기가 종료.. 팀은 3:2 역전승을 거두고 2연승에 성공했다.
5월 13일 [[강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51분 이재안 선수와 교체되며 투입되었다. 후반 종료직전에 보비와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 사이로 패스를 보냈고 이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받은 후 드리블로 수비를 속이고 오른발 슛으로 득점에 성공하지만 팀은 결국 2:4로 패하고 만다.
5월 16일 [[충주 험멜]]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전반 34분 엄청난 개인기에 이은 크로스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헤딩으로 골을 넣으며 도움을 기록하고 48분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개인기에 이은 힐패스를 받아 수비와 키퍼 사이로 패스, 이를 타라바이가 골을 넣으며 2도움을 기록하고 첫 MOM을 달성했고 팀은 4:0 완승을 거두고 리그 홈 첫승을 달성했다.
5월 23일 [[고양 Hi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47분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뺏은 공을 드리블 후 먼거리에서 감아찬 슛이 들어가며 골을 기록하였고 55분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 키퍼가 펀칭으로 처리한 공을 페널티박스 밖에서 또 감아찬 슛이 키퍼에 손에 닿지한고 들어가며 멀티골을 기록하며 2연속 MOM을 달성했고 팀은 4:2로 승리를 거두며 리그 2연승.
5월 30일 [[수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경기종료 직전 김창욱이 뺏어낸 공을 받아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에게 쓰루패스 이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받은후 개인기로 수비를 살짝 제치며 왼발슛, 김한원 선수가 따라갔지만 결국 득점에 성공하며 도움을 기록했고 팀은 2:0으로 승리하며 리그 3연승, 리그 3위를 달성했다.
6월 3일 [[부천 FC 1995]]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하고 팀은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해트트릭]]으로 3:0 승리했다.
6월 20일 [[상주 상무]]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팀은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2골을 넣었음에도 2:3으로 패하며 연승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8승 4무 3패, 리그 2위 유지.
7월 1일 [[대구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후반 종료직전 조나탄에게 실점하며 0:1 패배를 당했다. 이번 패배로 원정 연승기록은 7연승에서 끝나게 되었다. 9승 4무 4패, 리그 3위로 한계단 하락.
7월 4일 [[강원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전반 15분만에 헤난에게 2실점한 후 [[조원희]]가 1골을 따라붙었으나 경기 종료직전 벨루소에게 쐐기골을 실점하며 1:3으로 패하여 창단이후 첫 2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9승 4무 5패, 리그 3위 유지.
7월 8일 [[고양 Hi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후반 타라바이의 PK골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추가골로 2:0으로 승리, 연패를 끊었다. 1득점을 기록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MOM 및 리그 21라운드 MVP 선정. 10승 4무 5패, 리그 3위 유지.
7월 12일 [[경남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전반 초반 선취골을 넣었으나 곧바로 동점골을 실점한 이후 양팀 키퍼들의 동반 선방쇼로 서로 수많은 찬스들을 놓치면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김영광(축구선수)|김영광]]이 MOM 선정. 10승 5무 5패, 리그 3위 유지.
2018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울산 현대]]와 [[제주 유나이티드]]가 김성주 선수와 [[배재우]] 선수를 를 맞트레이드를 하게 되면서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95236|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 마재윤 . . . . 26회 일치
당시 저그는 2해처리 빌드로 테란,프로토스와 경쟁을 했었다. 당시 공격형 저그 [[박성준]] 과 운영형 저그 [[박태민]] 두 부류가 있었다.
Spris MSL 2004에 진출한 때와 비슷한 시기인 2004년 7월 13일, 마재윤은 [[KTF 매직엔스]]와의 [[팀리그]] 승자전 4강 경기에 선봉으로 출전한다. 당시 KTF 매직엔스는 주요 대회 우승, 준우승자 출신인 [[홍진호]], [[강민 (프로게이머)|강민]], [[박정석]], [[변길섭]], [[조용호]] 등이 포진한 최고의 팀이었으며, 이미 2004년 2월 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의 우승 일주일 후인 2007년 3월 3일 마재윤은 5회 연속 진출한 MSL 결승에서 당시는 신예였던 김택용(당시 [[MBC게임 히어로]], 현 [[SK 텔레콤 T1]])과 맞붙게 된다. 마재윤의 2006 시즌 프로토스전 성적은 21승 3패, 승률 87.5%에 달했던 것은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와 시청자들은 마재윤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03030023 [[OSEN]], 2007년 3월 3일]</ref><ref>[http://www.pgr21.com/zboard4/zboard.php?id=humor&no=46911 이러한 평가에 대한 팬들의 반응의 예]</ref>.
그러나 결승전 당일, 김택용은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마재윤을 3:0으로 제압하며 김택용 기준으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control=view&board=news_esports&c_no=2&b_no=16530 파이터포럼, 2007년 3월 2일]</ref> 김택용은 3세트 모두 커세어와 다크 템플러를 주축으로 한 견제 플레이에 주력하였고,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완벽한 운영으로 마재윤을 무너뜨렸다. 이는 훗날 '3.3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충격적인 결과였고, 이후 마재윤은 정상의 자리에서 급격히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재윤의 기량 난조는 2008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양대 리그 조기 탈락에 이어 오프라인 예선까지 추락하는 것은 물론, 프로리그 08시즌에서도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면서 가끔씩 팀플에서만 활약하는데 그쳤다. 결국 2008년 6월, CJ 엔투스는 특단의 조치로 마재윤에게 2군 강등을 통보했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26292&c_no=5&control=view [[파이터포럼]], 2007년 7월 7일]</ref> 이후 3주간 2군 숙소에서 훈련을 소화한 마재윤은 그 성과와 태도가 인정되어 2008년 7월 21일부로 1군에 전격 복귀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26545&c_no=5&control=view [[파이터포럼]], 2007년 7월 21일]</ref>
이후에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 이어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도 예선전에서 떨어졌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는 [[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신예 [[임원기]]를 잡고 복귀했지만, 32강 최종전에서 이윤열에게 또다시 패배하면서 16강 진출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다시 32강에 진출, 사상 유례없는 MSL 11연속 진출을 달성했다<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90893&db=news [[포모스]], 2008년 12월 18일]</ref>(KPGA시절까지 포함하면 이윤열, 조용호등이 있으나 순수 MSL만 따질 경우 마재윤이 최초이다). 2008년 10월 11일에 펼쳐진 블리즈컨 2008에서는 [[박지수]]와 [[허영무]]를 잡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12일에 치러진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만나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블리즈컨 2연속 제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위너스리그가 시작되면서 마재윤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재윤은 스파키즈전 1:1 상태에서 차봉으로 나와 [[문성진]], [[신상문]],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를 연달아 물리치고 3킬을 기록하였고, 이스트로전에서는 1:2 상황에서 중견으로 출전해 [[박상우]], [[신상호]], [[신대근]]을 잡아내며 또다시 3킬을 기록, 마삼킬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0년 3월 프로리그 로스터에서 말소되며 사실상 팀 전력에서 배제되었던 마재윤은 4월 프로게이머 승부조작 의혹이 일면서 선수 생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많은 네티즌은 그가 유난히 전성기 이후인 2007년부터 빠른 추락을 거듭했다는 점, 또한 비슷한 시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작스런 졸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무엇보다 포모스 측에서 승부조작 의혹 기사에 올린 흑색 처리된 사진이 마재윤의 사진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의심하였다. 이에 마재윤은 자신의 승부조작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고, CJ 엔투스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승부조작을 의심하지 말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5월 검찰의 수사 결과 마 모 프로게이머가 원 모 프로게이머와 함께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을 공식 선언했는데, 프로게이머 중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 하나 뿐인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승부조작 혐의가 있음이 확실시되었다. CJ 엔투스는 검찰 발표 하루 전 마재윤을 선수 명단에서 제명했고, 마재윤을 임의 탈퇴 처리했음을 기사를 통해 밝혔다. 마재윤은 승부조작에 연루된 다른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공판이 진행 되었고, 6월 7일 케스파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영구제명을 당하여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ref>[http://esports.dailygame.co.kr/news/view.daily?idx=27900 불법 베팅 가담 프로게이머 11명 영구제명]</ref>
마재윤은 집행유예 기간이던 2011년 6월부터 아프리카 개인방송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모습을 방송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게임단에서는 즉각 방송을 중지하라 했지만, 마재윤은 이에 신경쓰지않고 계속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다. 승부조작으로 인해 영구제명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방송을 진행하여, 많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팬들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2012년 3월에는 시간당 돈을 받고 스타크래프트를 강의하겠다는 게시물을 작성하였다. 또한 자신에게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사용자는 강제로 방송국에서 퇴출시키며, 금칙어까지 만들어 아예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였다. 2013년 2월 자신을 비방한 네티즌들을 다수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범죄자라는 타이틀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한 시청자 수의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로 모든 금칙어와 제한을 해제하고 스스로 조작을 컨셉으로 한 방송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마재윤은 영구제명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12월 5일, 중국에서 개최된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출전했고 2 vs 2 팀리그에서 우승을 해 상금(15만 위안)까지 챙겨 논란이 되었다.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재윤은 중국 대회에 또 출전할 계획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중국 측에서 요청이 온다면 출전할 생각이 있다는 대답을 하였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짓을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어, 여전히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이성은 선수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2007년 7월 곰TV MSL 시즌 2 8강이었다. 이성은은 이날 1세트에서 절대 뒤집을 수 없었던 것 처럼 보이던 경기를 배틀크루져와 메딕의 리스토레이션 기술을 사용하며 역전승을 일구어냈고, 마지막 5세트에서 몰래 3배럭 이후 무난한 운영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승리 이후 이성은은 마재윤의 부스 앞에서 노홍철의 저질댄스를 구사하였다.
프로토스와 테란전은 강하지만 저그전은 취약한 걸로 평가받는 김명운 선수지만, 2009년의 첫 번째 MSL이었던 로스트사가 MSL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후 김명운이 상대전적상에서 압도하고 있는 한마디로 마재윤의 신천적으로 자리잡았다.
[[송병구]]와의 첫만남은 비공식전인 [[CYON MSL 2005]] 3차 챌린지 예선 D조 결승으로 이때 1:2로 패배, [[WCG 2005]] 1차예선 9조 4강에서도 0:2 셧아웃, 이어 공식전에서의 첫만남은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플레이오프 삼성전자전 7세트였는데 여기선 송병구에게 패했다. 하지만,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삼성전자전 5세트에선 승리했다. 이어 이듬해 [[곰TV MSL 시즌2]] 16강 D조 경기에서 다시 만났는데, 마재윤이 2:0으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올스타전 열정팀전 7세트에서 다시 마재윤 승리, [[곰TV MSL 시즌3]] 16강 D조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때는 두 번째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끝내 마재윤이 2:1로 승리하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듬해 여름 비공식전인 2008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1:2 패배, 그해 겨울 역시 비공식전인 [[IEF 2008]] 8강 A조에서는 0:3 셧아웃 패배, 역시 비공식전인 올스타 종족 최강전 프로토스전 6세트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5:2로 우세,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2:8로 더 강세.
[[윤용태]]와의 첫만남은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한빛전 2세트였는데, 여기서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한빛전 5세트에서 또다시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WCG 2007]] 최종 대표선발전 3, 4위전에서 2:0 셧아웃시키며 본선에 진출했고, [[곰TV MSL 시즌3]] 8강 B조 경기에서 3:1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2라운드 한빛전 1세트에선 패배하였다. 다시 비공식전인 [[WCG 2008]] 대표선발전 24강에서 1:2 패배 탈락,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2]] 32강에서 1:2 탈락,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5:2, 비공식전까지 합쳐서 9:6으로 우세.
[[염보성]]과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MBC게임전 1세트와 [[박카스 스타리그 2008]] 16강 A조 6경기에서 패했으며, 2008년 3월에 열린 비공식전인 올스타 스킨스 매치 염보성전에서 2:5 패배. 그 해 6월,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4강에선 2:0으로 승리했으나, 패자조 결승에서는 2:1로 패했다. 이어 다시 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4라운드 MBC게임전 1세트에서 패했다.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0:3 무승,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5:10으로 약세.
이전 팀 동료였던 [[변형태]]와는 8차례나 만났었는데, 모두 팽팽했다. 개인리그와 비공식전에서만 만난 기록들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4강 B조 경기에서 마재윤이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스타리그 2007]] 8강 A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서 2:1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2007년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2:1 승리.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4:4로 무승부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6:5로 앞선다.
[[고인규]]와는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SKT전 4세트에서 패했으며, 2007 3차 듀얼토너먼트 E조 1경기에선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아발론 온라인 MSL 2009]] 32강 G조 경기에서는 1경기와 최종전에서만 모두 패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상대전적 1:3로 열세.
2009년 8월에 은퇴하여 지금은 없는 [[김준영 (프로게이머)|김준영]]에게도 약했다. [[CYON MSL 2005]] 3차 챌린지 C조 2경기와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한빛전 2세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2라운드 한빛전 4세트에서 패했다. 상대전적은 0:3 무승으로 초약세.
[[강민 (프로게이머)|강민]]과의 첫만남인 MBC Movies배 팀리그 KTF전 3경기에서는 강민이 승리, 구룡쟁배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 F조 4경기에서도 강민이 승리했다. 그러나 [[CYON MSL 2005]] 16강 1경기에서는 마재윤이 승리, 비공식전인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대구투어 결승에서는 1:2 패배 준우승, 다시 공식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1]]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마재윤이 3:1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그해 8월 [[WEF 2006]] 4강에서 마재윤이 2:0 승리, 다시 공식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2]] 4강 B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 또 마재윤이 3:1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어 [[곰TV MSL 시즌1]] 8강 B조 2경기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KTF전 2세트에서는 강민에 패했다. 비공식전인 2007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4강 8강에서 2:1 승리, 다음날 최종 결승전에서 2:0 승리, 2년 뒤 7월, [[헤리티지]] 10강 B조 5경기도 마재윤이 승리하였다.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8:5, 비공식전까지 포함하여 18:8로 마재윤이 강세.
2010년 4월 몇몇 팬들로부터 [[2010년 스타크래프트 불법 베팅과 승부 조작 사건|승부 조작]]에 마재윤이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되면서 '마재윤 vs 이신형'전의 배팅 사건 등등이 제기되었지만, e스포츠 팬들의 반응은 마재윤이 맞다고 주장하는 쪽과 확실하진 않으니 검찰 조사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나뉘면서 서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검찰은 마 모 프로게이머가 연루되었다고 발표하였는데, 실제 케스파에 등록된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이 유일한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마재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이 밝혀졌다. CJ 엔투스는 검찰 수사 공식 확인 하루 전 마재윤을 팀 선수 명단에서 제명하였고, 한국 e스포츠 협회는 그를 다른 승부조작을 꾸민 [[진영수]], [[원종서]], [[최가람]],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 [[신희승]], [[김성기 (프로게이머)|김성기]], [[문성진]], [[박찬수]],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 [[정진현]]을 모두 영구제명 조치하였다. 검찰 수사 발표 이후 MBC게임 해설진은 경기 중계 도중 과거 경기를 언급하며 마재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마재윤은 승부 조작 혐의로 인하여 벌어진 재판 당시 재판장이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마재윤은 프로게이머라고 답하여 무직이라고 대답했던 [[원종서]]와 대조를 보였다. 마재윤은 e스포츠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승부조작에 개입하여 고의적으로 경기를 패배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무라하치부 . . . . 26회 일치
무라는 인간의 생활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행사를 공동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실시하는 공동체였다. 하지만 이 무라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처벌이 뒤따랐는데, 그 가운데 특이한 것이 무라하치부이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와카슈(若衆)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젊은이들만이 모인 숙소에서 집단 생활을 하면서 마을 내에서 자경, 방위, 소방, 농지 경작 등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대의 학교이자 청년단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아니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므로 서로 간의 친목에 필요한 음주, 흡연을 가르치기도 하고 요바이(夜這い) 등을 통하여 연애, 결혼 상대를 찾기도 했다.
가마쿠라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는, 총촌에서는 회합으로 소우오테키(惣掟) 등의 독자적인 자치 규약을 만들고, 이 규약은 지배 영주와 무라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맺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치 규약을 위반할 경우에는 무라에서 자체적으로 추방, 재산몰수, 신체형(태형), 심지어 사형 등과 같은 엄격한 형사 처벌을 시행하였다.
일본의 선거는 미리 선거의 이름, 투표 시간, 선거인의 주소, 성별, 성명, 명단번호, 접수 번호 등이 기록된 투표소입장권(投票所入場券)을 배부하고, 이를 투표소에 가지고 가서 직원에게 전달하고 투표용지와 교환하여 투표하며, 이는 원칙적으로 본인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이렇게 회수한 입장권으로 마을의 유력자가 여러 차례 투표를 했다. 선거 관리자는 이를 묵인하였고, 마을 주민들도 이러한 행위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 당시 이 마을에 거주하던 중학생 소녀 이시카와 사츠키(石川皐月, 1935년 5월11일 생)는 1952년 부정선거의 풍조에 의문을 느껴 학내 신문인 우에노 중학교 신문에 이 사실을 고발하는 글을 개제하였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 모든 학생에게 배포된 신문을 회수하여 소각 처리했다. 1952년 5월 6일 열린 참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부정이 실행된 것을 알게 된 이시카와(당시 고교생으로 진학)는 아사히 신문에 이를 투고하여 고발하였다. 아사히 신문사의 기자는 5월 8일 이시카와를 방문하였고, 몇일 뒤에는 사건이 기사화 되었으며 사건 관계자 수십명이 경찰에 출두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시카와는 같은 촌락의 여성에게 불려가서 "경찰에 불려간 사람들이 돌아오면 이 답례를 해주러 간다.", "학생이니까 다른 사람을 죄에 떨어뜨리고 기뻐하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정도는 알 것이다."라는 발언을 듣게 되었다.
이 때부터 이시카와 일가에 대한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모내기 철이 되었지만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고, 인사조차 피하게 되었다. 주민들 일부는 이시카와의 장학금을 막으려고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었다고 하며, 초등학생인 이시카와의 여동생에 대해서 "빨갱이", "스파이"라는 야유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6월 24일 자 아사히 신문을 시작으로 전국의 신문과 잡지가 따돌림 문제를 보도하여 우에노 마을은 전국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시카와는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마을을 사랑하는 길입니까?"라고 신문 지상에서 주장하였고, 이시카와가 다니던 후지노미야 고등학교(富士宮高等学校)의 학생회는 만장일치로 이시카와의 행동에 지지를 선언, 교직원들도 이시카와를 지지하여 7월 상순에는 교직원 조합의 후지노미야 고등학교 분회, 시즈오카 현 교직원 조합에서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이시카와는 상경하여 마을에서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지만, 1952년 가을 무렵에는 무라하치부는 진정되고 이시카와 일가 역시 교류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4년 니가타 현 세키가와 무라(新潟県 関川村) 사건'''
2004년 봄, 여름에 이 마을에서 있는 곤돌매기 잡기대회해 대해서 준비와 정리 때문에 오봉을 느긋하게 보낼 수 없다는 이유로 일부 주민이 불참하였다.
가해자인 남성은 본래 이 지역 출신으로 농림업을 하던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상경하여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살고 있었다. 1994년 귀향하고 부모님을 개호하였으나, 가나가와 현에서는 미장이로 일하면서 귀향한 뒤에도 기술을 살려 집을 건축하고 현지 TV쇼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별한 뒤에 지역 주민들과 문제가 잇따르게 되었다.
도쿄에서 모현에 이주한 T씨(34세) : 이주자는 1주일에 1번 마을 부흥의 선두 주자인 노부부의 집에 모여서 회식을 한다. 나와 아내는 이주 전까지 했던 디자인업을 계속하면서 자급자족용으로만 농업을 하겠다고 말하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농업을 하지 않을 거라면 도쿄에 돌아가."라고 주민들이 둘러싸고 협박하였다.
가을에 정원에서 낙엽으로 모닥불을 태우고 있으면 몰려와서 뭐하는 거냐고 항의를 하고 소방차까지 불러왔다.
30가구의 모둔 주민에게 인사와 선물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다. 거주자는 현역 시절은 기업의 부장급이었던 사람들 뿐으로, 남을 얕잡아보는 시선이 배어 있다. 시골에서 이런 괴롭힘을 받게 되다니.
- 식극의 소마/227화 . . . . 26회 일치
* 심사는 반역자 팀부터 시작해 엄청난 호평 행진을 이어갔다. [[미마사카 스바루]]의 초밥은 샤름, [[메기시마 토스케]]의 라면은 이스트와르 담당.
* 미마사카의 트레이스는 완벽한 수준이었고 마지막 어레인지 초밥은 "훈제 간장"을 쓴 네기토로 군함말이. 서포트와 자기 조리를 완벽하게 양립했다.
* 메기시마의 라면은 "하리사"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고추 조미료와 닭고기와 땅콩으로 맛을 낸 아프리카풍 스프가 조합된 새로운 요리.
* 쿠가는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라는 프랑스 소스를 이용해 발사믹 식초와 훈제 간장으로 탕수육 고기의 맛을 정리해 녹차의 향을 극대화했다.
* 그런데 츠카사는 "지금까지 쿠가와 다르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론 3학년들을 이길 수 없다 자신하고, 실제로 센트럴의 시식이 시작되자 전세를 급변한다.
* 전광판에는 반역자팀의 전패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있었다.
* 드디어 시작된 2nd BOUT 최종 심사. 시작은 반역자 측부터. 이스트와르가 [[메기시마 토스케]]의 라멘을 맡고 샤름이 [[미마사카 스바루]]의 초밥, [[앤(식극의 소마)|앤]]은 [[쿠가 테루노리]]의 탕수육이다. 반역자들의 요리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 샤름은 메기시마의 초밥을 먹기 전부터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인다. 불로 구운 초밥이 그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 메기시마의 라멘은 겉으로는 고추라는 주제를 어떻게 살린 건지 알기 어렵다. 이스트와르는 별첨된 빨간 테이스트가 고추 요소가 아닌지 짐작하며 신중하게 관찰한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짐작이 가능한 둘의 요리와 달리 쿠가의 요리는 문자 그대로 미지수. 앤은 취중에도 그 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중화 냄비로 튀기고 볶은 고기를 다시 훈재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 맛이나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는지는 먹어보지 않으면 전혀 예측이 불가능. 이제 이걸로 플레이팅에 대한 평가는 정리가 됐다.
* 샤름과 이스트와르가 각자 택한 요리의 첫 숟갈을 떴다. 초밥과 라면. 전혀 다른 두 요리를 입에 넣은 그들의 첫 소감은 놀랍게도 일치했다.
맛의 일제사격에 지격 당한 샤름과 이스트와르. 심사위원들이 쓰러지는 걸 보면서 반역자들이 환호를 질렀다. 샤름은 모든 초밥이 맛있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정수리살 스시"를 꼽았다. 짚과 목초로 향을 입힌 참치 정수리살. 본래 참치에서도 가장 희소성 높은 특수 부위다. 깊으로 구운 덕에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없고 순수한 기름의 향기만이 남아서 날뛰고 있다. 이 평을 들은 [[하야마 아키라]]는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그만큼 완벽했다고 평하고 승부의 향방은 어레인지를 가한 마지막 초밥, "군함말이"에 있다고 단언했다. [[나키리 아리스]]도 의견을 같이하며 과연 어떤 맛으로 완성시켰을지 주목했다.
군함말이를 집어든 샤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함말이에 올라간 네기토로는, 사실 머렝이었던 것이다. 맛을 본 샤름은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발견했다. 훈제 간장이었다. 단지 쿠가에게 조력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게 아니었다. 최후의 어레인지를 위한 회심의 카드. 미마사카가 내놓은 어레인지 초밥은 "메추리살 노른자와 훈제 간장을 섞은 나카오치 군함말이"였다. 나카오치란 참치의 양쪽 살을 발라내고 남은 등뼈 부분의 살을 의미한다. 훈제 간장이 첨가된 밥과 김이 나카오치의 기름기와 만나 절묘한 향을 내고 그 위에 올려진 머렝, 메추리알 노른자, 파가 네기토로를 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연출한다. 샤름은 이것을 "궁극의 네키토로 메추라기밥 군함"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호평. [[카와시마 우라라]]가 이를 갈면서 분해했지만 그녀 또한 미마사카의 초밥을 맛 봤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스프도 아프리카의 요소를 잘 살리고 있었다. 그 스프는 "치킨 무암바". 닭고기와 땅콩류, 토마토를 함께 푹 삶은 아프리카 풍 스프다. 라면 맛의 베이스를 잡아주며 자극적인 하리사와 좋은 시너지를 일으킨다. 이스트와르는 요시노 유키가 기겁할 정도로 하리사를 퍼넣었다. 하지만 메기시마의 계산은 완벽했다. 하리사를 넣을 수록 매운 맛과 함께 깊은 맛이 강렬해졌다. 국물에 대량으로 투입된 땅콩 덕이었다. 땅콩 특유의 감칠맛과 부드러움, 떪은 맛이 하리사의 매운 맛과 어우러지면 독특한 깊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기에 수제 땅콩 버터로 조린 찻슈, 국물이 잘 배는 살짝 두껍고 꼬불한 면은 중독될 정도였다. 이스트와르의 표현은 "몸이 작열하게 허덕이는 맛".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이 요리가 순수한 중화요리가 아니라는 점. 여기엔 수준 높은 프랑스 요리의 기술이 접목됐다. 사천요리 전문을 자부하는 쿠가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목. 쿠가는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 소스를 활용했다고 인정했다.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은 발사믹 소스에 육수를 조려 응축한 "글라스 드 비앙드"를 함께 조리는 프랑스의 소스다. 쿠가의 말을 들은 이르트와르는 그 소스라면 가벼운 신맛과 육중한 중량감을 겸비해 탕수육의 포텐셜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거라고 평했다.
* 쿠가의 파격행보는 적과 아군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센트럴 측의 [[코바야시 린도]]는 "그 쿠가가 프렌치"라며 [[츠카사 에이시]]에게 놀라운을 표현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상황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반역자 측에선 [[미토 이쿠미]]가 해볼만하게 됐다고 환호했다. 반역자 측에서도 한결같이 중화요리 전문인줄 알았던 쿠가가 이렇게까지 폭넓은 아이디어와 테크닉을 구사한 것에 감탄했다. 그건 전적으로 츠카사 에이시 때문이었다.
* 심사의원들이 막 센트럴의 요리로 넘어간 시점이었다. 안은 아직도 흑초 탕수육의 여운에 잠기고 싶어하며 츠카사의 네 가지 요리 중 하나를 맛봤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게 뒤집혔다. 안이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리액션과는 확연이 다르다. 쿠가와 소마가 그것을 직감했다. 압도적인 맛의 폭풍이 그녀를 휩쓸고 간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치, 그녀가 빠져나가지 못할 무언가에 휩싸인 듯한 모습. 방금 전 심사와 다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그들이 보았던 어떠한 리액션과다 다른 성질이었다.
* 숟가락을 놓친 안. 술기운 마저 달아나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시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겁에 질린 듯, 심한 자극으로 마비된 듯 보였다. 츠카사 에이시는 그녀의 그런 모습은 알 바가 아니었다. 그의 요리는 각기 다른 네 가지 퓌레를 스프와 함께 먹는 요리. 츠카사는 퓌레와 함께 주변에 담긴 스프도 먹어야 한다고 권했다. 하지만 안은 여전히 몸서리를 치며 심사를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다.
- 표창원 . . . . 26회 일치
이때 표창원 옆에서 바라본 당시 대한민국 경찰 수사라는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치밀한 범인의 완전범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피고 버린 담배부터 해서 증거가 차고 넘쳤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영...(..)] 결국 사건이 미제로 남게되자 패배감을 느꼈고, 당시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울때가 마땅치 않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후 1993년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엑서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찰학을 수학해 1997년까지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다. 범죄학이 아니다! 애초 엑서터 대학에는 경찰 및 범죄관련 석박사 과정이 없고 학사만 있다.[* 2015년 기준 [[http://www.exeter.ac.uk/undergraduate/degrees/sociology/criminologybsc/|학부과정]]은 개설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여전히 사회학만 [[http://www.exeter.ac.uk/postgraduate/research-degrees/sociology/mphil-phd_sociology/|개설되어 있다.]]] 다만 박사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확실히 경찰과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과정에 대한 오해를 하는데, 사실 영국에서는 박사 과정은 특정 주제를 공부한다고 학위를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와 연구방법론에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교수와 학교를 찾아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몇 단계의 심사를 거쳐 학위를 최종 승인받는다. 수년간의 연구(보통 5년 가량) 끝에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면 소속 대학의 기준에 따라 학위를 수여한다.[* 예를 들어 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디자인 관련 책을 많이 보면 학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현재까지 성취된 지식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 기록한 뒤 평가를 통해 학위를 수여받는 것이다.]
박사학위청구논문의[* 'The police and crimewatch UK : a study of the police use of crime reconstruction and witness appeal programmes in Britain'] 주제만 놓고 보면 봤을 때, 표창원의 원래 전공분야는 미디어 매체[* [[http://www.bbc.co.uk/programmes/b006ppmq|Crimewatch UK]]는 우리나라의 [[경찰청 사람들]], [[공개수배 사건25시]]와 비슷한 TV 프로그램이다.]와 경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위청구논문 이후의 연구 성과에 따라서 전공분야가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표창원 박사의 경우 형사사법분야의 전반에 걸쳐서 연구를 하는 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찰에서는 [[경찰대학]] 졸업생 중 유학한 경찰들을 통해서 내부역량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학을 갔다온 경찰대 졸업생들의 논문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대개 집회시위법, 행정법, 형사절차 or 형사법에 관한 논문이 많다. 물론 표창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에는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나 프로파일링(Profiling) 전문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증거는 없고 이에 관한 전문적 연구 또한 미미하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죄심리학(Forensic psychology) 박사학위자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 재직중인 [[박지선(교수)|박지선]] 교수가 있다.]
아무튼 유학길을 마치고 돌아와 1998년 경찰청 제도개선기획단 연구담당관, 경찰대학 교관 등을 지내고 1999년 퇴직했다.
JTBC의 [[크라임씬2]]와 [[크라임씬3]]에서는 탐정역으로 출연했다. 프로파일러 답게 용의자들을 들었다 놨다하며 수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2의 크라임씬 PD 살인사건 1만 범인을 맞췄을뿐 PD 살인사건 2와 3 호텔 살인사건은 헛다리만 짚었다. 전문가답게 깊이 있게 생각했지만 맡은 사건이 그렇게 깊이 있는 내용이 아니여서 그런지 영 시원치 않았다.
이 당시 나온 대중성 있는 저서로는 [[http://www.yes24.com/24/Goods/1506195?Acode=101|한국의 연쇄살인(2005年)]]이 있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무척 흥미진진하다. 초심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독성 좋고 간결하면서 유려한 문체[* 이는 글 쓰기, 잘 팔리는 책이 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려운 법률 용어, 현장 용어나 한자말을 피하고 중학생 정도 학력이면 이해할수 있을만큼 정말 쉼게 썼다.] 로 한국 근 현대사에서 유명한 여러 연쇄살인 사례들을 다루었다. 단 유혈이 낭자한 당시 현장 사진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고 (다행히 컬러 사진은 아니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되어 있어 19세 미만 구입 불가 딱지를 붙여놓은 곳이 많다. 경찰 출신이다 보니 비슷하게 여러 사건 사례를 자세히 다루는 법의학 책과는 다른 시각으로 글을 써서, 보기에도 신선한 것이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유제설 교수와 공저한 [[http://www.yes24.com/24/goods/6103472?scode=032&OzSrank=1|한국의 CSI(2011年)]] 또한 과학 수사에 대한 교양 서적으로 읽기 매우 좋은 책이다. 그의 책은 어디까지나 교양 서적이다 전문 서적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를 추구한 책은 아니다. 내용이 실제 살인 사례이다 보니...
방송 쪽으로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여 유명해졌고, 케이블 채널의 <살인자는 말한다>등의 자기 이름을 걸고 나오는 프로를 진행한 적도 있다. 2012년 경찰대학 정교수 퇴직 이후에는[* 개인 [[블로그]] 및 [[트위터]]를 통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의혹]]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돌연 "경찰대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대학 교수직을 사퇴했다.] [[JTBC]] [[표창원의 시사 돌직구]]라는 프로그램에 MC로 발탁돼 방송인을 겸했으며, 범죄심리분석 전문가로서의 행보는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면서 본 문서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했던것 처럼, "저명성에 걸맞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냐."는 지적들이 나왔지만, 어쨌거나 [[대한민국]]에 프로파일 기법이나 범죄자에 대한 복합적 연구를 처음으로 대중화한 점에서 공로가 있다는 것은 인정 받고 있다.
일부에선 '흉악범죄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가. 사회에게 있는가'에 대한 시각차이로 이전부터 논쟁의 중점에 있던 인물이란 말이 있는데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데, 모든 형법이론들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형법학자들은 전부 저것을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범죄론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는 행위론, 구성요건론에서 위법성론, 책임론까지 모두 구이론인 객관주의와 신이론인 주관주의를 따라 견해가 나뉘며, 현대 형법은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있는 형법 저서 하나 없는 사람이 저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학계의 관점에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단지 그러한 논쟁을 '''일반 대중에게 던져준 사람'''으로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러한 표현이 들어맞을 것이다. 실은 국내에서는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이유를 "그 범죄자 개인의 인성보다 자라온 환경, 못 가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냉혹한 사회 탓이 적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튀는 것이다.
정계 입문 이후 여러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민주당 변호인을 활약했다. 특히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가 [[일본]]이 숨긴 금괴 1,000톤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맹신했던 어느 60대 남성이 문 대표의 [[사상구]] 사무실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을 두고 [[MBN]]의 [[김형오(1972)|김형오]] 앵커가 '문재인 대표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답정너]]식으로 질문을 하자 "그럼 2006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피습을 당한 건 (그 피습범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가요?"라는 반문~~이건 몰랐지?~~으로 앵커를 [[역관광]]시켜--사실 [[마마무|음오아예]]를 부르게 한 거라더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지지층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http://tvcast.naver.com/v/676104|네이버]] [[http://tvpot.daum.net/v/73446472|다음]]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50137|곰TV]])[* 보도 자막이 포함된 인터뷰 전체 영상은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114977|MBN 홈페이지]]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7&aid=0000871698|네이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231111239813|다음]], [[http://news.nate.com/view/20151230n53189|네이트]] 등에 올라와 있다.]
다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수사의 90%이상은 경찰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검사 한 명 당 하루에 11.4건의 사건을 배당받고 있는데, '''잔업해서 12시간 근무를 해도 거의 한시간에 사건 하나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상 수사의 주체는 경찰이고 경찰이 수사한 그 내용을 바탕으로 검사가 영장 집행시에만 지휘하는게 일반적이다. 즉 사실 이미 경찰이 수사 개시해서[* 경찰의 수사개시권은 2011년 때 법안 개정을 통해 이미 법률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증거를 모아서, 용의자를 잡아서, 검사한테 주면 검사가 이를 확인한 뒤 "OK" 외치고 끝나는 상황인데, 이것을 검사가 수사지휘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즉 경찰에게 유리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수사/기소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경찰은 수사에, 검사는 기소와 공소유지에 전념하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수사지휘권이 없어도 검찰의 기소권만으로도 얼마든지 보완수사를 요청하거나 경찰의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도 일선 경찰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장 청구권이 없으면 수사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점에서[* 강제수사의 핵심은 영장이다. [[영장주의]]참조.] 검사의 권한은 해당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막강하다.[* 실제로 표 의원보좌관의 SNS를 보면 해당 개정 내용을 접한 일선 경찰들이 표 의원의 보좌관(보좌관도 경찰출신이다.)에게 연락해서 "영장청구권를 왜 검찰에 남겼냐."라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에 있을 제7회 지방선거 때 같이 치뤄질 개헌 안을 살펴보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폐지에 대해 동의하는 의원들이 있으므로 경찰에게도 영장청구권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개헌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도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할 시 검사는 법리적인 내용만 검토하게 하거나 혹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을 특별검사와 같은 지위를 부여해 이들에게 영장청구권을 허용하게끔 하는 방안, 검사에 의해 영장이 반려되었을 때 법원에 항고를 할 수 있는 항고권 부여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의 경우 발의한 법안과의 균형을 고려해 경찰의 항고권 보유에 찬성하고 있다. 이에 관해 2018년 6월 21일 KBS 라디오에 전화로 출연해 다시 한 번 본인의 주장을 내세웠다. 현재는 경할은 수사는 하지만 종결권이 없다. 이는 한 번 한 수사 결과를 검찰이 받아서 다시 검토하는 두 번 일이 되므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피해자/피의자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종결까지 할수 있게 될 경우에는 이를 해소할수 있으며, 문제가 없으면 바로 기소하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검찰이 재수사나 보완을 지시할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경찰 내에서 종결권이 있다면, 경찰이 껄끄러운 사건을 묻어버리면 어쩌냐" 하는 반론이 있는데, 이에 대해 표 의원은 "검찰에서 묻어버리면 이미 대민 창구인 경찰의 손을 떠난 후라 사람들이 알수 없지만, 경찰에서 그러면 사건 관련된 사람들이 언론과 온라인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되고, 수사 지휘권이 있는 검찰도 알게 되므로 경찰이 사건을 묻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 [[그것이 알고 싶다]] ([[SBS]])[* [[이수정(교수)|이수정]] 교수, [[박지선(교수)|박지선]] 교수, 일부 법의학자와 함께 [[그것이 알고싶다]] 단골이'''었'''다. --국회의원이 되신 이후에는 많이 바빠지셨나보다.-- 국회입성 이후에도 가끔 출연은 하고 있으나 출연빈도는 확 줄었다.]
* [[썰전]] 143화, 197화[* '''[[장제원]]'''과 같이 출연했다.], 224화[* [[김경진(정치인)|김경진]]과 출연하여 검경개혁을 주제로 토론을 펼쳤는데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영장청구권을 주제로 논의했다.], 227화 ([[JTBC]])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종편 패널이나 사회자와 논쟁하는 경우가 많다.([[https://www.youtube.com/watch?v=FGzyjX9o2Ug|TV조선]],[[https://www.youtube.com/watch?v=OxhQGaozrkk|MBN]],[[https://www.youtube.com/watch?v=j4-rdDuIjkM|JTBC]])
*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도 있다. 2013년 1월에 [[경향신문]]에 올린 한 칼럼에서 표창원은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어버렸고 무능하고 무력하다고 지적하면서 국정원이 위기라고 썼는데, 이 내용이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 --4년 뒤의 실상을 보면 팩트폭행이었다-- 이 건은 1년이 지나서 '''무혐의가 명백하기 때문에''' 각하되었다. 애초에 판례 상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헌법에 나와있는 내용인데?!~~[* 해당 판례가 밝히는 정의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기관은 당연히 국민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며, 비판으로 인해 더 나은 발전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욕한다고 [[고소미]]를 먹진 않으니까-- ~~하지만 [[대한민국 제1공화국|옛]][[대한민국 제4공화국|날]][[대한민국 제5공화국|에]]는 [[코렁탕|어떻게]] 했더라?~~]
* [[https://twitter.com/DrPyo/status/705740934244204544|자신이]] [[https://twitter.com/DrPyo/status/705744988726886400|만든]] [[https://twitter.com/DrPyo/status/705749478217641987|선거]] 포스터를 트위터에 올렸는데, 지지자들로부터 이 포스터의 디자인이 [[우와 정말 데단해~~|구리다는]] 평을 받았고 본인도 이를 [[https://twitter.com/DrPyo/status/705752159585832963|인정했다]]. 그 후 보다 못 한 지지자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http://m.media.daum.net/m/media/politics/newsview/20160307000458094|기사]]
* 2016년 3월 26일,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포르노]] 합법화에 대한 찬성의견을 던졌다. [[http://www.ddanzi.com/index.php?mid=ddanziNews&document_srl=84055456|기사]] 덕분에 당시 디씨 등 인터넷 일각에서는 표루노(...)라는 까는건지 찬양하는건지 묘한 느낌의 이명이 생겼다.
>'매스미디아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오랜 관심과 우려는 흥미거리만을 �는 매스미디아의 '선택적 특성'과 이러한 보도가 사회의 범죄문제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그간의 숱한 미디아 프로그램 분석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미디아에 나타난 범죄가 특정한 범죄 - 강력사건 -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문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판적 범죄학자들은 매스미디아가 범죄문제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규정지으며 사회일반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범죄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매체上의 폭력'은 오랫동안 학계와 일반대중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엽기적인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거나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1980년대 이후에는 '미디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84년 BBC 방송국이 경찰의 도움을 얻어 미해결된 강력사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며 목격자나 제보자를 찾는 'Crimewatch UK'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자 기타 민방들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의 原型은 1960년대에 시작된 독일 ZDF 방송국의 "미해결사건 XTZ..."이며 영국 BBC에서 도입한 이후 미국,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세계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대한 대중적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내용,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경찰이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들에 범죄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찰관 및 경찰장비를 제공해 준다.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들은 사건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홍보매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재구성' 프로의 범람에 대해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을 조장하며 독거노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시청률 올리기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방송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그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방송사들은 이에 대해 "범죄퇴치에 협력한다는 공익에 이바지할 뿐"이란 논리로 대응해 왔다.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신고가 주요범죄를 해결했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집행의 대명사인 경찰의 걍력한 지지가 이러한 '공익논리'를 받쳐주는 주요요소이다. 본 논문은 영국전역에 산재한 28개 지방경찰청, 내무성 경찰국, BBC Crimewatch UK 제작팀, 민간기구인 Crimestoppers Trust 등 30여 관련기관을 방문, 60여명에 이르는 관계자와의 심도깊은 면담 및 관련자료 분석결과와 13편의 Crimewatch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종합분석하여 '범죄 재구성'프로그램인 Crimewatch UK를 통해서 본 영국경찰의 매스미디아관련 정책과 실행, BBC방송국의 다큐멘타리 제작 지침과 실태상의 불일치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 하이큐/262화 . . . . 26회 일치
* 본래부터 카라스노 배구부에 강한 애정을 갖고 있던 타나카는 그런 취급도 불만이었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선배 [[사와무라 다이치]]도 불만이었다.
* 그러나 사와무라, [[아즈마네 아사히]], [[스가와라 코시]]는 웃어넘기는 듯 했지만 속으로는 어마어마한 투지를 숨기고 있었고 그걸 타나카도 눈치챈다.
* 오지츠 중학교 출신으로 막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한 [[타나카 류노스케]]는 인상부터가 존재감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1학년인데도 반삭 금발. 제법 험악한 인상에 목소리마저 우렁차서 자기소개 시간엔 옆의 [[엔노시타 치카라]]나 [[나리타 카즈히토]]가 눈에 안 띌 정도였다. 당시 2학년이었던 [[사와무라 다이치]], [[아즈마네 아사히]], [[스가와라 코시]]는 이 신입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아즈마네는 거의 겁 먹었고 스가와라는 언제나처럼 속을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와무라는 간단하게 표현했다.
타나카가 봤을 때, 당시의 카라스노도 썩 나쁘지 않았다. 3학년에 히사 중학교 출신의 "쿠로카와"가 있었고 사이코다이 중학교 출신인 아즈마네는 꽤 인지도가 있었다. 둘 다 대회에서도 얼굴을 보였던 스파이커들. 동년배 중에선 [[니시노야 유]]처럼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도 있었다. 면면만 보면 강호를 칭해도 괜찮은 학교였다.
그런 타나카가 보기에도 카라스노의 경기성적은 좋지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빴다. 인근 학교와 연습시합에서도 번번히 패했다. 3학년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은퇴했다. 남겨진 입장이 된 타나카는 "수수한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말로 심정을 표현했다. 이 시기 카라스노는 전용 체육관은 커녕 체육관을 쓰게나 해주면 감사해야 하는 처지였다. 타나카는 이런 대우에 반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주장을 물려받은 사와무라는 "작년보단 낫다"거나 "밖에서도 할 수 있는게 있다"면서 말을 돌렸다. 타나카에겐 "느슨"하게 보였다.
명치를 찍어누르는 세 문장. 타나카는 곧바로 보복을 결심했다. 사와무라가 일찌감치 눈치챘다. 타나카는 외모 만큼이나 살벌하게 "인적 드문 곳에서 퍽하고" 하는 보복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와무라가 좋은 말로 타일렀다. 상대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실제로 오늘 우리팀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말들이었다. 타나카가 사와무라를 따라가며 따지듯 물었다. 저렇게 얕보이는게 정말 괜찮은 일이냐고, 좀 아닌게 아니냐고.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지만, 타나카가 들은 대답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그렇게 대답하는 사와무라는 딴 사람인 것처럼 굳은 표정이었다.
다시 사와무라의 웃는 얼굴은 돌아왔지만 타나카가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도 거든다. 스가와라가 지는건 일상 다반사니 익숙해지라고, 아즈마네가 공식전에서도 이러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사와무라도 무슨 얘긴지 알았다. 셋이 입을 모아 말했다.
다음날 나타난 타나카는 단숨에 스가와라의 장난감 취급을 당했다. 그때까지 트레이드 마크였던 반삭 금발을 지금의 빡빡머리로 바꿨기 때문이다. 본인은 "기합을 넣는 차원에서 바꿨다"며 나름대로 의지표명을 했건만 스가와라는 자비없이 만지작 거리며 장난감으로 전락시켰다. 씁쓸한 기억이다.
*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타나카의 의지는, 빡빡머리는 변함이 없다.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이한 봄고 대회 2회전. 스코어는 25 대 24. 카라스노가 1세트를 가져갈 찬스. 아즈마네의 서브. [[야치 히토카]]는 숫제 스코어 보드 옆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1점만 더. 사실 지금 카라스노 선수라면 누구나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관중들도 우승후보를 여기까지 밀어붙인 카라스노의 저력에 감탄한다. 과연 시라토리자와 학워을 쓰러뜨릴 만하다, 잘하면 1세트를 가져가겠다... 하지만 "이렇게 우세할 때 못 가져 가면 다음은 힘들다"는 현실을 퍼붓는 말도 있다. 히토카에게 뻔히 들릴 정도. 히토카가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속으로 외쳐본다.
* 득점찬스. 1세트를 끝낼 찬스다. [[히나타 쇼요]]와 벤치의 선수들이 찬스볼을 연호한다. 안전하게 [[니시노야 유]]가 리시브. 이어진 공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그가 세트업을 올릴때, [[스나 린타로]]가 번뜩한다.
* 공이 크게 떠서 다시 이나리자키 진영으로. 아츠무가 다시 세트업. 이번엔 실수하지 않는다. 공은 린타로에게. C속공. 이번에는 카라스노의 블록도 빨랐다. 타나카가 일찌감치 달려온다. 적절한 리드블록. 츠키시마도 코트 밖의 히나타도 직감할 수 있었다. 막는다. 블록 두 장이 여유롭게 뛰어오른다. 결과는 실패. 공에 스치지도 못했다. 타나카와 함께 블록을 뛴 츠키시마 케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코스를 틀어막았다. 공이 블록을 통과한 것처럼 뻗아나가 우측 후방의 [[사와무라 다이치]]를 노렸다. 사실 스나 린타로가 노린 건 정확히 그 위치는 아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렷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공은 블록을 돌파했고 카라스노 진영으로 돌아왔다. 사와무라가 엉겁결에 리시브한 바람에 공이 불안하게 떠올랐다. 아즈마네가 사이드라인 밖에서 걷어올리면서 타나카에게 잇는다.
- 하이큐/268화 . . . . 26회 일치
* [[네코마 고교]]가 [[사루카와 공고]]의 전략을 눈치챈 시점은 1세트 중반. 첫 번째 TO에서 [[코즈메 켄마]]는 자신을 이용한 유인책을 입안한다.
* 작전은 성공하고 사루카와 진영은 혼란에 빠지지만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금방 선수들을 다잡으며 쉽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 1세트 중반. [[네코마 고교]]는 [[사루카와 공고]]의 부자연스러운 플레이를 눈치챘다. 첫 번째 TO는 그 위화감의 정체가 뭔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것. 우선 정체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적은 네코마의 뇌이자 심장인 [[코즈메 켄마]]를 지치게 만들 심산이었다. [[야마모토 타케토라]]가 그렇게 상황을 정리했는데 [[하이바 리에프]]가 이해하지 못했다. [[시바야마 유우키]]가 적당히 설명. 그래도 그의 머리로는 알기 어려운 얘기였다.
표적이 된 코즈메는 "비책이 떠올라 전혀 안 피곤하게 이기고 싶다"는 택도 없는 말을 했다. [[쿠로오 테츠로]]와 야마모토가 "멍청한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상대가 끈기와 인내를 무기로 나온다면 이쪽도 그렇게 나가야 한다는 것. 정공법. 주장의 견해도 같았다.
* 코즈메의 작전은 바보같은 리에프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위험했다. 일부러 리시브를 흔든다. 전례가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을까? 코즈메는 유효한 국면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야쿠는 코즈메의 의향이 그렇다면 따를 테지만, 이미 휘청거리는 상태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물론 코즈메는 매번 엔드라인까지 뛰어가기는 싫었다. 하지만 못 움직일 상태인 것도 아니고, 진짜 부담이 많아가는건 후위라고 했다.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져야 하는 데다 자신이 지정한 위치로 넘기기까지 해야 하니까.
* 이후는 코즈메가 생각한 대로였다. 사루카와의 움직임은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쿠로오와 리에프의 존재 때문에 상대측은 센터선을 경계하고 있으므로 블록은 MB 쪽에 집중될 것이다. 그들은 코즈메를 무너뜨리는게 목적이므로 적당한 신호를 준다면 "흔들린 리시브"라고 철썩 같이 믿을 것이다. 그때가 기회. 블록을 공과 MB 위치로 끌어들은 뒤에 멀리 돌리는 토스. 혹시 사루카와가 눈치를 챈다면 "반대편"을 활용한다. 그렇게 그려져 있던 그림이 2세트 후반, 지금 작렬했다.
사루카와의 블록은 기만한 [[카이 노부유키]]의 스파이크. 2세트 들어 두 번째 동점을 허용한 사루카와가 술렁인다. 방금 전 플레이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암시하는가? "의도적으로 흔들린 리시브"라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부터 블록을 유인하고 있던 건가? 그것이 맞다면 대체 언제부터? 의문이 꼬리를 문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다. 괜한 짐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선 생각해야 할 건 추격을 떨쳐내는 것. 이 세트를 가져가고 역전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깨어진 그릇을 되돌릴 수 없듯 흔들린 확신은 되돌릴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끈질긴 물음표. 적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적에게 조종 당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선수들의 머릿속을 감독 [[시시오 아리타카]]는 정확히 읽고 있었다.
여기서 사루카와의 두 번째 TO. 네코마타 감독이 보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는 주위를 환기시켰다. 사루카와의 전략은 잘 먹혀들고 있다. 코즈메가 진이 빠진 지경이 된건 변함없다. 상대는 전통의 강호 네코마. 어려운 적인게 확실하지만 비등한 상황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 객관적인 사실들을 새삼 강조하며 선수들을 다잡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자, 시시오 감독의 정론이 먹혀들었다. 다시 안정을 되찾아가는 사루카와 진영을 곁눈질하며, 코즈메는 매우 성가셔했다.
관중석의 [[다이쇼 스구루]]도 방금 전의 플레이를 의도적으로 흔들린 리시브라고 해석했다. 사루카와가 세터를 죽이는 전략으로 나온다는걸 눈치채곤, 세터에 더 많은 부하를 가하는 대응책. 진성 S같다고 느끼면서도 분명한 만고의 진리도 떠올랐다.
* 시합재개. 돌아온 사루카와 선수들은 "시합이 길어질 수록 힘든 건 네코마 쪽"이란 대전제를 확실히 되새긴 상태였다. 코즈메가 굳이 이 시점에 "흔들었"던 건 모두가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지는 시점, 그리고 사루카와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성급해지는 시점을 동시에 노린 것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대로 연속 득점하는 걸로 게임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시시오 감독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 스코어 28 대 28. 2세트가 끝날 줄 모르고 길어졌다. 사루카와의 계획은 풀세트 채우는 것까지도 염두한 것이지만 이미 양측의 체력소모가 격심하다. 특히 코즈메가 그랬다. 코즈메는 2세트를 쉬어두지 않은 걸 후회했다. 3세트에서 전력을 다하겠다 했으면 됐을 텐데. 이젠 중력도 짜증난다. 중력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공이 떨어지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에 몰두하고 쿠로오에게 집중하라고 지적을 당했다. 쿠로오는 소꿉친구가 한계에 도달한 걸 눈치챘다. 집중력만큼은 남들보다 빼어난 코즈메가, 집중력이 끊기고 있다면 정말로 한계였다.
야마모토의 일갈. 그때는 참 짜증났던 토라의 일침. 그때 코즈메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돌아봤다. 근성이 뭘까? 그런 의문이 들었었다. 그 단어는 막연히 싫었던 단어였고 세간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말이다. 그저 마음먹기에 따라 뭐든 할 수 있다는, 불분명한 정신론일 따름이다. 그런 견해가 최근에 와서야 바뀌었다. 그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근성을 보인다"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아마 그건 일종의 최종오의가 아닐까? 정신과 체력을 단련한 자가 모든 힘을 모아야 발휘되는 어떤 것.
와쿠라의 스파이크. 쿠로오의 블록에 원터치로 걸렸다. 공은 짧게 네코마의 코트 위로. 야마모토가 한 걸음 앞서 나간다.
* 야마모토의 리시브는 언제나 한 가지 원칙에 출실했다. 반걸음 빨리 공에 도달하는 것. 그 반걸음 만큼 공을 조작할 여유가 늘어난다. 그 차이는 코트 바깥의, 다른 학교 선수들이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은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저런 정성스런 리시브가 가능한지 감탄했다. 코즈메의 주문 대로다. 높게 네트 앞으로 띄워진 공. 정확히 코즈메의 머리 위. 상대는 코즈메의 유도와 양 사이드의 공격에 모두 유의하고 있었다. 들어갈 구멍이 있을까? 그렇다면 정중앙. 심플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쿠로오가 스파이크. 이것이 허를 찔렀다. 네코마의 득점. 스코어 29 대 28. 네코마가 마침내 역전. 매치 포인트에 도달한다.
* 그러나 거기서도 경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제 추격자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그들의 플레이는 변함이 없었다. 사루카와는 31 대 30까지 끈질기게 따라왔다. 코즈메는 짜증이 치밀었다. 야마모토는 첫 번째 TO때 코즈메가 "다들 근성있는 실력자"라고 말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자기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겠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악도 깡도 없고 금방 요령 피울 방법만 궁리하니까.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 쿠로오와 카이의 블록을 뚫고 시가의 스파이크가 꽂혔다. 야마모토의 리시브. 흔들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공은 정확히 네트 앞으로, 코즈메에게 날아갔다. 코즈메가 그 공을 보며 레프트에 있는 [[후쿠나가 쇼헤이]]를 바라봤다. 재주가 많은 데다 블록이 있는 상황에서도 좋은 위치로 때리는 녀석. 언제나 [[히나타 쇼요]]는 이렇게 물었다.
* 코즈메는 그날 시합에서 가장 완벽한 세트업을 했다. A패스가 들어올 때만 보여주던 극소 모션의 세트업.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필살기. 사루카와의 블록은 한 박자 늦었다. 공은 레프트로. 재주가 많은 후쿠나가에게.
* 블록이 있어도 좋은 위치로 때리는 후쿠나가. 블록은 없었다. 공이 떨어지고 난 뒤에 뻗어오는 블록. 그 뒤에서 공이 사루카와의 코트를 때렸다.
- 이철희(1964) . . . . 25회 일치
|| '''학력'''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고려대학교/대학원|고려대학교]] 비교정치 석사[br][[한신대학교]] 국가와시민사회 박사 ||
한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고, 중앙 정계의 언저리를 있으면서 민주당 쪽 정치인들과도 두루 인연을 쌓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라는 작은 정치 컨설턴트 사무소의 소장으로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나 역시 그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높여준 건 [[JTBC]] [[썰전]]이다. 이 시기 보수 진영의 패널을 맡았던 [[강용석]]과 더불어 진보 진영의 패널로서 ~~열심히 MB를 까며~~ [[썰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책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김한길(정치인)|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는데, 언제부터 일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대 중반에는 확실히 의원 보좌관이었다. 2008년 전후로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는데, 정작 이후에도 대학 출강을 한다든지,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한다든지, 민주당 당내 정책연구소에서 부원장을 지낸다든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정치 스펙을 쌓았다. 본인의 말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끝내 공천되지 못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http://m.news1.kr/news/category/?detail&593920|서류심사에서 탈락해서]] 면접도 못 봤다. [[http://mnews.joins.com/article/7703750|공천 과정에 대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의 코멘트]]] 2016년 기준으로 보면 전화위복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진보 성향의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이 운영하는 시사 팟캐스트 방송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진행했다. 그리고 종편인 [[채널A]]의 '아침 신문쇼 돌직구'에도 고정 출연 했었다. 2013년 10월부터 평일 오후 6시 16분부터[* 앞의 15분 동안은 6시 뉴스를 진행한다. 7시에도 뉴스가 진행되어 7시 6분에 시작한다.] 오후 8시까지 [[tbs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4년 2월 "뭐라도 합시다"와 "누가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윤여준, 이상돈 공저)라는 서적도 냈다. 2015년에는 "이철희의 정치썰전: 보수와 진보를 향한 촌철살인 돌직구"와 "7인의 충고 : 이철희가 따져 본 진보 집권 전략"을 출간. 이 가운데 7인의 충고는 [[Daum]]과 [[미디어오늘]]에서 기획하여 이철희가 '논과 쟁'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것들을 모아 낸 것인데, 정작 미디어오늘에서는 중간에 수록을 하다 말았고, 인터뷰 전문은 책이나 [[http://7author.tistory.com/m/post?categoryId=847004|여기에서 볼 수 있다]].
썰전의 고정 출연한 이후 상당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썰전의 최대 수혜자라 할 만 하다. 썰전 덕분에 팬클럽(!)도 생겼다고 한다. [[김구라]]와 [[강용석]], [[이준석(정치인)|이준석]]과 '하드코어 뉴스깨기'를 맡았다. 보수 성향의 강용석, 이준석에 맞서 진보 성향의 의견을 대변한다. 사회비판적, 이상지향적인 말을 많이 하는 편. 이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강용석과 꽤 심각하게 대립할 때가 있다.
사실 썰전을 하면서도 그 이외의 언론 인터뷰, 방송 인터뷰에서 "서로 성향이 달라 오히려 방송을 할 때의 상호 대화패턴의 호흡은 맞지만, 일상생활의 호흡은 맞지 않는다.", "방송을 1년 넘게 같이 했으면 친해질 만도 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와 나는 그렇지 않고, 주기적으로 사적인 만남과 친분을 가지는 사이가 아니다. 여전히 그에게 거리감이 있다.", "살아온 길,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생각이 서로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었다.
전반적으로 온건 합리적인 리버럴 스탠스를 가진 것과는 달리 사관엔 [[이덕일]]류 노론사관을 맹신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저서 <뭐라도 합시다>와 썰전에서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는 노론으로, 이는 [[친일]] 단정 [[박정희|군사]] [[전두환|독재]]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철희 소장은 [[권미혁]] 여성민우회 공동대표와 같이 [[더민주]]에 입당한다고 한다. [[http://media.daum.net/politics/all/newsview?newsid=20160119204538930|관련 기사 참조]] 1월 19일 기사시점으로 다음날인, 1월 20일에 같이 영입을 발표할 예정.
그리고 예고한 대로 2016년 1월 20일 [[권미혁]] 대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입당 인사에서 그동안 방송 덕분에 얻은 유명세를 내려놓는다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워봐야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 정계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와이프마저도 평소 '''당신이 한 말[* 썰전 등의 방송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지지해줬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흑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며 '''핫하게 싸워보고 지더라도 쿨하게 떠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나가던 시민이 잘 한다며 커피 한 잔 사주며 더 잘 하라고 격려하고 싶은, 그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썰전 출연 당시 그는 끝까지 썰전에 남을 것이며, 국회의원 출마는 안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강용석이 몇차례에 걸쳐 "총선쯤 되면 우리 둘다 여기 없을 수도 있는데~"라는 드립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부정했기 때문. 결국 둘다 나가게 되기는 했다.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첫인상이 좋지 않던 상황에서 인재 영입 당시 대부분의 인물들이 '당이 원하면 어디든 가겠다' 라고 하며 개인의 욕심을 보이지 않았던 반면, 이철희 전 소장의 경우에는 [[http://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174997|'지역구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13분 25초부터)라고 발언하며 낙선의 위험을 안아야 하는 지역구보다 상대적으로 당선이 수월한 비례대표를 노리고 있던 것 때문에 이미 정치 세계에 대해서 알 만큼 알고 있고, 또 [[썰전]] 등을 통해 충분한 인지도와 지지를 확보한 사람이니 지역구 선거로 나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20대 총선에서 [[더민주]]의 비례대표 8번 후보로 나서서 당선되었다. 국방위원회 간사와 정치발전 특별위원회를 거쳐 2017 대선 민주당 전략기획 부본부장으로도 활동했으며, 20대 국회 [[국방위원회]]의 전반기 여당 간사로 일했다.
비례 대표 당선 이후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정권교체와 더불어 세대교체, 정치교체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이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안 지사뿐"이라며 "안희정은 품이 넓고 싸가지 있는 진보"라고 말했다. 진영을 넘어선 협치와 대연정을 강조하는 안 지사의 원칙에 동의한다"고 밝히며 안희정 캠프에 합류하였다.
그래서 저는 현 정부와 여당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이렇게 봐요.||
*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가진 편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정확한 발음이나 발성, 톤 조절 등 기초적 발언 능력이 상당히 뛰어날 뿐만 아니라, 토론에서의 치고 빠지는 타이밍(?)[* 평론가 시절 방송 토론에서 --노답-- 상대가 억지 논리로 나올 때도 이철희는 처음엔 참고 있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큰 헛점이 표출될 때)에 치고 나오며, 막판에 상대와 같이 깽판을 치더라도 상대 빈틈을 파고들 타이밍을 안 놓치고 맹공격하곤 했으며, 상대의 억지 논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받아치는 것도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왔고, 역으로 소위 막가는(?) 언쟁을 끝낼 때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칼같이 끊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 봐도 상대가 먼저 깽판을 쳤고, 이철희는 그에 잘 맞섰다는 인상을 주었다. --상대는 콧김만 씩씩, 사회자는 그냥 멘붕--] 설정 능력, 짧은 시간에 상대 논리의 빈틈을 찾아내는 능력, 상대와 상황에 맞춰서 발언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탁월하여, 농담으로 '말 못하는 사람도 토론은 잘 한다'[* 말투가 어눌하거나 목소리 톤이 별로거나 하는 등 대화에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조차도 상대의 뜻을 빠르고 정확히 찾아내어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문장을 구성하고, 그 상황에 맞는 비언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단점들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대화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뜻이다. 즉, 언어라는 요소만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것에는 그 사람만의 [[포스]]나 [[카리스마]]도 포함된다. 한국 근대 민주화의 뿌리였던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 연예인들이 그 말투를 흉내내어 당대에 가장 유행한 개그 패러디 소재가 되었을 정도로, 발음이나 말투가 매력적인 편이 아니었음에도 평생 수많은 진보 인사들을 연설과 대화로 매료시켰던, 한국 정치사 최고의 웅변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대한민국사 최초의 [[필리버스터]]도 김대중이 했다.) 그와 대화했던 정치인들의 경험담들을 보면 짧은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우리 박동지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라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말을 못해도 말을 잘한다는 개념과 일치한다. 물론 이런건 김대중처럼 정치인생의 험난한 경험과 그런 고난들을 수없이 극복한 뒤에만 얻어지는 절대적 카리스마가 많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초선의원 이철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다.--원래 말 잘하는 사람은 그냥 말 잘하면 된다--]는 소리도 있는 스피킹의 달인들이 모인 정치인 집단들 중에서도 정상급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는 그를 '전략가'로서 영입했으나 사실 그 이전까지 이철희 자신을 대중적 인지도 높은 스타로 키운 건 그의 발언 및 토론 능력이다. 침착하게 말하다가도 상대의 공격에는 바로 강하게 맞설 수 있고, 강하게 말하다가도 이내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능력이 굉장하다. 그러나 전략가라는 분야는 말을 잘해서 특정 상황을 잘 넘기거나 옳은 말로 물러나지 않고 맞서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전체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는 설계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데, 연륜과 언변으로 인한 기대치에 비해서 전략 측면에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전략가가, 합리적으로 상대가 잘못했고 자기 진영이 잘못이 없더라도, 정의와 논리로 이기기만 할 뿐이고 상대를 협상의 장으로 흡인력있게 끌어들이는 판을 만드는 설계 능력은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정치에서 항상 떠넘기기식 상황 전개를 유지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실질 이득을 얻을 수 없어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기 쉽다.
* 썰전에 출연할 당시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말을 잘 했으나, 경제적인 의제와 관련해서는 식견 부족으로 그저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얘기만 늘어놓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강용석과 복지를 주장한 이철희의 성향차이라고 보면 된다. 썰전에서 차라리 정치적 부분은 양자가 타협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기도 했으나, 경제적 문제를 보는 인식 차이는 완벽한 평행선이었다. 썰전에서 즐겨 인용한 말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였으니.
* [[맥심(잡지)|맥심]] 2016년 2월호에 (뒤)표지모델로 나왔다. [[http://i63.tinypic.com/2evdy07.png|사진 참조]] 그 후 맥심 2016년 2월호가 완판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이건 이철희 사진이 멋있게 잘 나와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순전히 [[시노자키 아이|(앞)표지모델로 나온 사람]]덕분이었다는 게 정설이다.[[http://i67.tinypic.com/24yp6qg.jpg|사진 참조]] ~~의문의 완판남~~
- 장서희(1972) . . . . 25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막장 드라마]] 여주인공하면 바로 떠오르는 대표적 연기자로, 자신의 양대 대표작인 '''《[[인어 아가씨]]》'''와 '''《[[아내의 유혹]]》'''이 막장 드라마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그 두 드라마가 모두 그녀에게 대상을 안겼다.
바로 2002년 여름에 방영되기로 예정된 《[[인어 아가씨]]》의 '''주인공'''으로 추천되었던 것이다. 《[[온달왕자들]]》에서 [[임성한]] 작가가 장서희가 마음에 들어 차기작 주연을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작품 후반에 타임워프가 나오니 여배우들은 그 때에 맞춰 헤어 스타일을 바꾸라는 [[임성한]] 작가의 요구에 장서희가 유일하게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를 서브도 아닌 주인공으로 쓰는 것을 MBC에서 찬성할 리가 없었고, 결국 MBC와 임성한의 신경전 끝에 '''“장서희 아니면 드라마를 갈아엎겠다”'''고 임성한이 엄포를 하고 나서야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MBC 고위층들은 첫방 전까지 《인어 아가씨》를 냉대했고, 남자 주인공도 캐스팅이 잘 되지 않아 신인을 찾아야 했다.
《인어 아가씨》 종영 직후에도 드라마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더불어 《인어 아가씨》가 중화권에서 인기를 끌면서 [[중국]]에 진출했는데, [[중국 드라마]]인 《경자풍운》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특히 [[청나라]] 황실 복장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줘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잊혀가던 중 [[SBS]]에서 《[[아내의 유혹]]》에 캐스팅되었다. 《인어 아가씨》와 장르가 비슷해서 고민이 많았지만 [* 게다가 같은 [[일일 드라마]]였다.], 고심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드라마가 또 초대박이 났다!'''--오오 구느님 오오-- 《아내의 유혹》은 그야말로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어 아가씨》 이상의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고, 덕분에 장서희는 국내와 중화권 모두에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리고 2009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일일극으로만 대상을 두 번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2014년 6월 3일, [[KBS2]] 일일 드라마 《[[뻐꾸기 둥지]]》로 4년 만에 컴백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6&sid2=224&oid=079&aid=0002584796|#]]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친오빠를 죽음으로 몬 여자의 대리모가 되어 애를 낳아줬다가 다시 빼앗아온다는 내용(...). 다만 여기서 맡은 역할은 복수와는 거리가 멀고 [[혈연 때문에 개고생]]하는 쪽에 가깝다. ~~이걸로 대상 타면 막드 지상파 3사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다~~ ~~[[막장 드라마]]의 여신~~ 그러나 [[유동근|경쟁]][[조재현|자들]]이 워낙 강력한데다가, 작품 자체도 그닥이었던 탓에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시청률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후반에 동시간대 1위, 시청률 자체도 20%를 넘기며 호조를 보이긴 했지만, 드라마가 초반에 워낙 질질 끄는 전개를 보여줬는지라(...) 시청률이 14%까지 떨어지며 다소 위태스로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20%까지 올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장서희의 덕이었다’'''는 평이 많을 정도이니... --혼자 멱살 끌고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에는 《[[언니는 살아있다!]]》에 출연, [[김순옥]] 작가와 약 9년만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중 1화부터 《[[아내의 유혹]]》의 셀프디스가 대놓고 나온다(...). ~~그 대사를 하는게 하필 또 장서희인 게 매우 절묘하다~~] [[아내의 유혹|작가와 협업했던 전작]]에서의 캐릭터와는 달리 다소 코믹하고 유쾌한 캐릭터지만, 그런 역할에서 나오는 사이다성 활약과[* 확실히 장서희가 분한 [[민들레(언니는 살아있다!)|민들레]]가 세 주인공 중 가장 비중이 높고 활약성 또한 대단한지라, 시청자들에게도 사실상 유일한 진주인공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강하리|이분]]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가끔 [[구은재]] 표정이 나올 때는 소름이...-- 드라마 자체도 크게 성공했으며[*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인터넷상에서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이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연기 경력이 길기도 하거니와, 오랜 무명기간 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스페트럼을 넓혀왔기에 연기력이 굉장히 출중하다. '''다양한 표정 변화와 강렬한 분노 연기'''가 최고 강점. 체구가 작지만[* 프로필상 키보다는 조금 작은 160~161cm로 보이는데, 그 나이에 평균이 160cm정도니 그 키가 작은 것은 아니다. 워낙 말라서 더 작아 보이는 것.] 분노할 때 나타나는 크고 부리부리한 눈매가 집요하고 독해보이는 느낌을 자아내는지라, 《[[인어 아가씨]]》 출연 이전에도 주로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훼방을 놓는 등 악역 조연을 연기했다.[* 실제로도 분노하는 연기를 보면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연기한다(...).] 아역 시절부터도 눈에 확 뜨일 만큼 예쁜 얼굴이었고, 지금 봐도 악역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선이 고운 얼굴이라 분노 연기할 때의 모습에 캡이 커서 더 크게 다가온다.
다만, 이 연기력이 주로 [[막장 드라마]]같은 자극적인 연출 내에서 빛을 제대로 발하는지라 약점 아닌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누구든 장서희를 떠올리면 복수의 화신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니...[* 복수극이 아닌데도, 장서희만 나오면 어르신들이 '''“그래서 쟤는 언제 복수한대니?”'''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젊은층도 그렇다~~] 그래서 복수극을 촬영한 다음에는 색다른 작품에 출연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왔으나, 이상하게도 비(非)복수극들은 작가의 삽질이나 안습한 대진운 등이 겹쳐서 인기를 끄는 데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장서희의 연기력이 좋긴 하지만, 작품을 고르는 안목은 연기력에 비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같은 작품을 보다보면 안목이 부족해도 연기력이 저 정도면 무슨 문제랴 싶은 생각이 든다. 너무나 개연성이 부족한데 신애리를 용서하고 다시 애정어린 관계로 돌아간다. 일일드라마라 티가 덜 났나 하는데 2018년에 하루에 4편씩해주는걸 보다보면 정말이지 배우들의 연기력에 치얼쓰하고 작가의 막장력에 기브업하게된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든 작품운을 [[인어 아가씨|양대]] [[아내의 유혹|대표작]]에 몰빵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으나, 최근 《[[언니는 살아있다!]]》가 여러가지 의미로 대박이 나서 작품운이 쇠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SBS]] [[주말 드라마]] 중 전작 《[[우리 갑순이]]》와 더불어, '''근 5년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SBS에겐 가뭄의 단비같은 작품인 셈. --참고로 전작의 [[문영남|작가님]]도 [[막장 드라마]]론 한 끗 날리신 분이다(...)--]~~근데 이것도 막장 드라마~~
여담으로 장서희 본인은 막장 드라마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릎팍도사]]'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인어 아가씨]]》와 《[[아내의 유혹]]》을 [[막장 드라마]]라고 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언급했다.] 다만 《[[뻐꾸기 둥지]]》출연을 전후로, 막장을 부정하기보다는 “막장도 하나의 장르로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하는 등 예전에 비해 다소 완화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자신을 과감히 주연으로 기용한 [[임성한]], 재기를 도와준 [[김순옥]] 작가를 자신의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임성한 또한 장서희를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배우들과 교류가 없기로 유명한데도 본인의 결혼식에 장서희를 초대했다고 한다.[* “호텔에서 밥을 사줄 테니 차려입고 오라”고 임성한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갔더니, 그녀의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순옥과는 1살 차이라서 자매 내지는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 막장 드라마 3대장 중 임성한, 김순옥 작가와 이미 작업했으므로, [[문영남]] 작가와 작업한다면 '''막장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때문에 장서희와 문영남의 만남은 드라마 커뮤니티에서 종종 등장하는 떡밥이다. 만약 그 합작품이 복수극이라면?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영된다면? --진정한 그랜드슬램(...)--.
* 나이에 비해 [[동안]]이기도 하다. 데뷔할 때나 지금이나 본판이 크게 안 바뀌었다.[* 물론 당연히 관리를 받기도 하는데, '[[한밤의 TV연예]]'에서 엄청 부은 얼굴로 나와서 “피오나 공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톡스]]를 맞고 나서 붓기가 가라앉지 않은 데다가 감기까지 겹쳐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기아체험 특집방송에 출연하여 '''“몸무게가 50kg씩이나 나간적이 있다.”'''(…)는 --천인공노할-- 발언을 해 방청객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들었다. 장서희는 자기 키에 50kg 넘으면 엄청난 거라고 변호했지만 야유는 더 거세질 뿐(…). 그러나 《[[인어 아가씨]]》 방영 당시에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하면 장서희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 지금이야 장서희만큼 마른 여배우들이 많아졌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 시대처럼 마른 몸매에 집착하는 풍조가 덜한 편이었다.] '거식증 걸린 것 같은 연예인'에 자기 이름이 포함된 기사가 나와 콤플렉스가 생긴 적이 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 [[이영애]]와 친분이 있는 듯하다.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 스스럼 없이 전화를 걸기도 했고, 덕분에 이영애가 목소리나마 출연이 되었다. 이에 “진짜 이영애 맞냐”고 수도 없이 되묻는 형님들의 모습이 압권이다. ~~사극 여신과 막장 여신의 친목이라 카더라(...)~~
|| 2002 || '''[[인어 아가씨]]''' || '''은아리영'''[* '''실질적인 데뷔 첫 주연작.''' '실질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1990년대 초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송했던 시대극 <비가비>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방영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애초에 단독 주인공도 아니었던 터라... 참고로 공동 주인공을 맡은 이들은 <[[전원일기]]>의 응삼이 역을 맡았던 [[박윤배]]와 <[[태조 왕건]]>의 [[유금필]] 역을 맡았던 [[강인덕]]이다. ] || 47.9% ||
《인어 아가씨》, 《아내의 유혹》, 《언니는 살아있다!》를 통틀어 ‘장서희 [[박찬욱|복수 3부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뻐꾸기 둥지》가 3부작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복수와는 거리가 먼 배역인 데다 재미나 파급력이 비참할 정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3부작으로 엮기는 다소 민망한 위치에 있었다. 나중에 장서희가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와 다시 호흡을 맞춘 《언니는 살아있다!》가 복수극으로 상당한 히트를 치면서, 《뻐꾸기 둥지》는 3부작 자리에서 바로 밀려나 《언니는 살아있다!》가 복수 3부작 자리를 꿰찼다.
- 창원시 . . . . 25회 일치
[[마스코트]] '피우미'. 통합 전 창원시의 캐릭터인 '창이와 원이'도 자전거 보관함 등에 간간히 쓰이고 있다. 심지어 마산, 진해 지역 자전거 보관함에는 현 창원시 로고에 창이와 원이가 쓰이고 있다! 통합 전 로고나 마스코트의 색상을 통해 유추해보자면 파란색이 구 마산, 녹색이 구 창원, 주황색이 구 진해를 뜻한다.
[[경상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인구는 약 106만명. 공업을 기반으로 한 '''계획도시이자 명실상부한 경남의 중심지'''로 [[경상남도청]] 소재지다. 과거 [[부산광역시|부산]]에 있던 경상남도청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되었다.[* 여담으로 도청 이전 당시 진주와 옛 마산이 유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진주는 부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원래 경상남도청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마산은 당시 경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전국적으로도 대도시 축에 ~~잠깐~~ 들었다는 점에서 도청 소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장소로 확정되었는데, 옛 창원시 권역은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1980년 시로 승격된 같은 생활권인지라 사실상 마산으로 이전한 것에 가깝긴 했다. 비슷한 예론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라남도청이 사실상 [[목포시]] 생활권인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하였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시/통합 이전|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되었으며,[*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가 되겠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되었다.[*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함안+마산+창원 이였고 창원이 밀었던 모델이 마산 + 창원+ 진해 였다. 마산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동력을 얻을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의 개발등 개발지역이 남아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 메리트를 찾을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통합을 추진했다.]
물론 통합 창원시청은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을 원상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모순|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2010년 통합한 이후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으나 기존 3개 시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뚜렷한 지역성을 보유하고 있다. 옛 마산시와 진해시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도시권이 형성되어 온 곳인지라 동 지역 급의 좁은 범위(예:북마산, 신마산 등)에도 별칭이 붙어있을 정도이고, 뒤늦게 도시로 출범한 옛 창원시는 창원공단의 조성으로 대규모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구성된 계획도시였기에 3개 시의 지역성이 모두 제각기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마산이나 진해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에게 거주하는 지역을 물어볼 때 '마산 살아요', '진해 살아요'라고 대답이 많이 돌아오지만 '창원 살아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과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반면 뚜렷한 지역성과는 반대로,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창원시내버스협의회|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상남동(창원 성산)|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 현 창원시 의창구]와 회원현[* 현 마산시 회원구]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왜정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한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참고로 현재의 창원시는 마산시와 진해시가 창원시에 흡수된 게 아니라 구 창원시와 다른 엄연히 '''3개 시가 통합되어서 설립된 새로운 시'''다. 구 창원시는 명칭만 이어졌을 뿐 통합되어 사라진건 마찬가지. 그래서 홈페이지의 연혁에도 현재의 창원시와 통합전 마산, 창원, 진해시를 분리해서 설명하며 시장도 통합 창원시 시장을 다시 초대부터 시작했다.
[[경상남도]]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부산)|강서구]]와 [[김해시]],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와 [[창녕군]][* 정확하게는 창녕군 이남지역(=남지읍/영산면)으로 이뤄진 창녕 남부권], 서쪽으로는 [[함안군]], [[진주시]], [[고성군(경상남도)|고성군]], 남쪽으로는 [[거제시]]에 접한다. 시의 중앙에는 마산만이, 남쪽에는 진해만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낙동강]]에 접한 [[의창구]]의 동읍과 대산면 지역이 꽤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논농사가 흥해서 농사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놨는데, 이것이 주남 저수지. 하지만 근래엔 논농사 보다는 지역 특산물로 떠오른 [[단감]]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주남 저수지는 인간의 손을 벗어나 철새의 낙원으로 재탄생했다.
'''"따뜻한 남쪽바다"'''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지역이다. 인근의 [[부산광역시|부산]]과 매우 비슷한 기후특성을 보이지만, 동해/남해상에 접하고 있는 부산에 비해 창원은 마산만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부산보다는 좀 더 내륙분지적 특성이 강하다. ~~바닷바람이 덜한 대신 더 푹푹 찐다~~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단지 물이 얼음이 될 뿐~~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그날 따라 택시요금이 2배나 나왔다 카더라.~~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창원 버스 103|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바다에 바로 접해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와 강풍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 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미터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다'''.[* 이는 연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개씩 통과하는 해는 연 강수량이 2000mm 가까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장마가 짧게 끝나고 태풍이 통과하지 않는 해는 1000mm도 채 안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2016년만 하더라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776mm(9월 20일 기준)로 평년의 66% 수주밖에 되지 않는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에는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거의 100일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일기예보에서만 윗 지방의 홍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고.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단,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가지만 창원도 정말 만만찮게 덥다. 게다가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후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1980년대 창원에 공단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시작될 무렵 이 지역의 중심 상업지역은 마산 창동과 오동동 일대였다. 당시 창원의 개발로 인구는 급증한데 비해 문화시설은 확충이 되지 않아서 창원 노동자들이 낮에는 창원공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마산으로 넘어와서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마산아재]]가 탄생했다~~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그런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던지, 창원시 차원에서 이 지역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그렇다고 장사가 잘 되고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지역에서 장사가 그나마 되는 곳은 어시장과 롯데백화점 마산점(구 대우백화점) 뿐으로, 구 원마산지역의 전통 상권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수준. 30년 전만 해도 추석 전날 부림시장 인파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 못지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없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상업지구는 [[더 시티7]]이다. 2008년 문을 연 이 거대한 복합상업건물은 창원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산지역과도 멀지 않아 마산과 창원 두 지역 모두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평이 있다. 이 곳에 위치한 오피스텔은 창원시는 물론이고 경남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가 현재는 [[창원 메트로시티 2차]]가 추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티7을 창원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라고 하기도 한다. 바로 옆에 통로로 연결된 [[창원컨벤션센터]]와 풀만호텔이 위치한다.
또한 옛 39사단 터 유니시티 상업지구에 대형 상업시설 입점[* 태영건설에서 자체 개발하는 상업시설 어반브릭스와 신세계그룹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07578|복합쇼핑몰]] 진출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계획되어 있어서 일대가 의창구의 새로운 상업지구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며, 창원중앙역 역세권과 마산해양신도시에도 넓은 상업 용지가 있어서 창원시의 상업지구는 더욱 다핵화될 것으로 보인다.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산업체들이 몰려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다음 폭격 지역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전쟁나면 일단 창원을 뜨라고들 말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박살나게 되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본진 군수공장이나 관문을 장악당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 때 [[소련]]이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으로 옮겨, [[독일]]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무리한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이다.
전군 지상 공통장비에 대한 창정비지원을 하는 [[종합정비창]]이 [[동읍]]에 주둔한다. 그와 함께 [[국방과학연구소]]의 기동시험장 역시 창원 동읍에 있다.[[경상남도]]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는 [[제39보병사단]]도 창원에 존재했었으나 2015년 5월부로 [[함안군]] 군북면으로 이전했다. 그래도 [[함안군]]은 창원시 바로 옆이기는 하다.
[[창원대로]]가 10km 넘는 길이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비상시 수도 역할을 하기 위한 활주로 대용이다. 지금은 중앙분리대와 지하차도로 인해 활주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으나 본 목적이 전시상황에서 비상활주로 역할이니만큼 창원은 [[계룡시]] 못지 않은 비상용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 하이큐!! . . . . 25회 일치
[[히나타 쇼요]]는 우연히 봄고 대회의 배구 경기를 보다 코트 위에서 활약하는 '작은 거인'에 이끌려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로부터 3년 뒤 중학교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 경기에서, 히나타는 '코트 위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속한 키타가와 제1 중학교와 맞붙어 참패당한다. 이후 배구 명문교에 진학했을 카게야마에게 리벤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작은 거인'이 다녔던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하지만, 그곳에서 웬일인지 카라스노에 입학한 카게야마와 마주치게 된다.
기존의 배구 만화들이 에이스 스파이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반면, 하이큐!!는 세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배구에서는 흔히 하는 말로, '[[야구]]를 [[투수]] 놀음이라 한다면 [[배구]]는 세터 놀음' 이라 한다. 그만큼 배구에서 세터란 포지션이 중요하며, 이는 작중에서 [[코즈메 켄마]]가 '세터는 가장 능력이 좋은 사람이 하는 포지션' 이란 대사로도 언급된다. 이처럼 현실 배구에서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임에도 그 특성상 화려함은 떨어지는 포지션[* 아예 [[히나타 쇼요]]는 세터에 대해서 '수수하고 어려운 포지션'이라고 말한다.]이라, (시각 매체인) 만화에서 세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작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이큐!!는 이 세터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묘사한다. 그래서인지 작중 등장하는 세터들은 유독 [[사기캐]]와 [[먼치킨]]들이 많은데, 그 정점에 본작의 투탑 주인공 중 하나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다.
본작의 원안이 되는 최초 단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는 세터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사실상 주인공이었으며 비중도 [[히나타 쇼요]] 보다 더 컸다. 후에 연재된 두번째 단편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정식 연재분과 가장 흡사해졌고 둘의 비중도 뒤바뀌었다(...). 그리고 정식 연재에 와서는 지금처럼 되었다.
연재 초반에는 '''호러배구'''란 이명이 있었다. 스포츠물 답지 않은 연출과 그림체가 한몫해서, 섬뜩한(...)장면들이 간간이 나왔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는 평소엔 겁이 많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패기를 내뿜는다는 설정인데, 이 때 짓는 표정이 심히 [[얀데레]]스러워 ~~도저히 소년만화 주인공이 할만한 표정이 아니다~~ 순식간에 장르를 호러로 만들어버린다.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작가의 전작]]이 본격 [[괴담]]만화였다는 걸 알고 납득한 사람도 있다[[카더라]]. 애니메이션도 이 점을 잘 살려서, 애니메이션 11화는 어떤 씬을 작정하고 호러로 연출했는데 [[원작초월]]급이 나와버렸다.
1회전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약체팀들에도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을 단순히 주인공 학교의 1승 제물로 등장시키지 않고, 그들 역시 배구와 함께 고교시절을 보내는 청춘임을 묘사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부분의 팬들이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꼽을 때 꼭 언급되는 40화 '승자와 패자' 편(애니메이션에서는 16화). 인터하이 1차전이 끝난 후 1회전에서 탈락한 23개 팀 모두를 '''한 컷씩 다 그려냈다''' .[* 애니메이션에서는 분량 문제인지 23개교가 전부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 "우리들도 했어 배구" ''' 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카라스노 고교]]의 모델은 이와테현 구노헤 군 가루마이마치의 현립 가루마이 고교이다. 실제로 까마득한 산골로, 하이큐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광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http://blogs.yahoo.co.jp/yosicosmic 블로그(일본어)] 작품의 배경은 미야기현이면서 카라스노 고교의 배경은 이와테현이 된 셈인데, 이는 작가가 미야기 출신이지만 이와테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 [[타카라토미]]에서 트레이딩 카드 게임 [http://www.takaratomy.co.jp/products/haikyu_vobaca/ 바보카]를 발매중. '바보카'는 '발리볼 카드 게임'의 약칭이다. --바보와는 다르다!--
* 2014년 9월 22일부터 소년 점프+에서 れっつ!ハイキュー!?(렛츠! 하이큐!?)가 연재되고 있다. [http://plus.shonenjump.com/rensai_detail.html?item_cd=SHSA_JP01PLUS00000087_57 소년 점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카게야마가 대놓고 왕관을 쓰고 백마를 끌고 다니고 킨다이치는 진짜 머리에 락교를 쓰고 있는 등, 본편 내용을 개그로 바꾼 내용이다. 때문에 [[캐붕]]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정상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사실 그것보다는 본편과 개그 코드가 상당히 달라서 안 맞는 사람들은 정말 안 맞다. --그러나 고양이인간 쿠로오와 켄마가 정말 귀여운 데는 이견이 없을 듯--
* 배구계에서도 작품의 인기와 영향력을 의식하였는지 [https://twitter.com/ALan_twt_/status/507780608991322112/ 실제 일본 봄고 배구대회 포스터]까지 장식하는 쾌거를 누린다.
*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후루다테 작가가 졸업한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졸업 후 찾아왔었다는 포스팅이 어떤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댓글에서 어떤 팬이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을 묻자 '작가님이 직접 공개하지 않으신 사생활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철통방어(...)를 하기도 했다. 종합 1000만 부 이상 팔린 만화책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심지어는 인터뷰조차도 그의 활동은 적어 필명이 본명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품들이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을 작중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으므로 출신지가 그 쪽인 것은 분명하다. 작가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팀메이트 간의 감정 묘사, 이름 및 생일의 의미와 관련성까지도 계산한 ~~설정덕후의~~ 섬세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면 작가가 남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wiki:"니시노야 유" 니시노야]와 [wiki:"타나카 류노스케" 타나카]의 [wiki:"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빠질을 저렇게 완벽하게(...)그려내는 것은 남자밖에 하지 못한다.', '[쿠로코의 농구]도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등을 근거로 남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점치고 있다.
* 애니메이션 2기와 극장판 모두 제작이 결정되었다!! [http://www.j-haikyu.com/project/index.html 공홈 부설 사이트]에 따르면 극장판은 1기 애니메이션의 총집합 편으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2기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의 담당 제작사 및 감독은 1기 때와 같다.
* 어떤 [덕후]가 [오이카와 토오루]의 방을 실제로 재현했다. 베스트 세터 상 상패까지(...) [https://www.facebook.com/haikyuu.fans/posts/591001484368357 위대한 덕후]
2015년 2월 기준 13권까지 강동욱의 번역에 의해 정발되었는데, 그 사이에서 원어판과 비교해 오역이 많이 드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일어가 가능하다면 원서를 사서 보라고 할 만큼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1권 신젠 고교에서의 합숙 줄거리 중 보쿠토와 쿠로오보다 한 살 어린 아카아시가 뜬금없이 반말을 하거나, 오이카와의 그 유명한 '이와짱은 우리 엄마에요?'[* 원어로는 「岩ちゃんは俺のお母ちゃんですか?」.] 대사는 '''네가 내 엄마라도 되냐?'''라는 대사로 바뀌어 오이카와에게 일진카와(...)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대화에서 자주 쓰여진다고 보기 어려운 '~예요' 체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고, 당당하고 맹한 느낌을 주는 '[~슴다체]'가 번역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일단 번역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너무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큰 문제. ('''츠키시마: 짜식 멋있는데.''') 당장 몇 년만 지나도 어색할 유행어 집어넣는것은 덤. (시합중의 멘탈은 '''갑 오브 갑'''이지만.) 번역가가 글자를 못 읽는 경우도. ('''네코마 농구부''' ~~쿠로오의 농구?~~ '''호쿠토. 아카아시 케이시''') 더 많은 오역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람].
- 헌터X헌터/369화 . . . . 25회 일치
* 빌의 추정으로는 스틸 체인을 공유하는 대상은 크라피카와 연결돼 있어 상태가 영향을 받는 것. 크라피카가 눈을 뜨자 곧 왕비도 정신을 차린다.
* 깨어난 왕비와 크라피카는 바로 수색을 재개하는데, 크라피카가 시간 한계 상 제 4왕자 체리드니히의 수색을 우선하자 하자 오이토 왕비가 정색한다.
* 왕비는 그가 개인적인 득실 때문에 그런 결단을 내렸다 보지만, 크라피카는 와블 왕자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항변하며 신뢰해줄 것을 부탁한다.
* 그때 와블 왕자가 언제나처럼 크라피카를 친근해하며 손을 뻗는 모습을 보고 왕비의 생각이 움직여 그의 뜻대로 체리드니히의 거처를 수색하기로 한다.
* 제 9왕자 할켄부르그 측에선 "세쥬르"와 "유히라이"를 보내는데, 그들을 포함해 경호원 전원이 할켄부르그의 손에 생긴 것과 같은 깃털 문양이 있다.
* 제 10왕자 카쵸와 11왕자 후게츠는 왠지 시녀를 보냈다. 후게츠의 시녀들은 보내진 것에 당황하나 카쵸 측 시녀들은 그 방을 떠난 것 자체를 기뻐한다.
* 5왕자 츠베파는 경비대장 마올과 경호원 "롱기"를 보내며 "무슨 수를 써서든, 와블 왕자를 포함하는 한이 있어도 크라피카를 동료로 해라"고 지시.
* 장레이는 자신의 사설병 "텐프토리"를 보내며 "크라피카와 접촉하는 인물 마크해라."라고 지시. 텐프토리는 1왕자, 4왕자, 5왕자를 경계한다.
* 왕비도 같은 상태였다. 크라피카가 정신을 잃고 얼마지 않아 그녀도 쓰러졌다. 지금 그녀는 시마노의 간호를 받으며 침대 위에 있었다. 크라피카가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엔 왕비와, 그 곁을 떠다니는 "스틸 체인"의 아바타 "돌핀"이 보였다. 왕비가 막 눈을 뜨고 있었으나 크라피카는 거기에 신경쓸 정신이 아니었다. 돌핀이 아직도 왕비 곁에 있다는 것, 엠퍼러 타임이 12시간 째를 발동 중이란 말이었다.
왕비는 잠에서 깬 것처럼 일어났다. 그녀가 시마노에게 와블 왕자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 빌이 크라피카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같은 시간에 쓰러지고, 다시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크라피카가 무리해서 쓰러지면 능력을 공유하는 인물도 같이, 그런 패턴이었다. 크라피카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혹시 엠퍼러 타임의 한계 시간이 3시간이란 의미인가? 그 한계를 넘으면 3배인 9시간의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는 걸까? 아니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빼앗은 능력에 따라 시간에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엠퍼러 타임은 여전히 발동 중이고 다음 번에도 3시간 만에 쓰러진다고 장담 할 수 없다. 정신을 잃기 직전 들었던 끔찍한 파열음. 그 폭음 같은 맥동이 신호일지 몰랐다.
왕비의 안에서, 뭔가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빌과 시마노도 크라피카와 같은 걸 생각했다. 크라피카는 왕비에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체리드니히를 우선한건 순수하게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상위 왕자를 우선시 한 건 물론 시간의 제약 때문. 그리고 상위 왕자 중에선 체리드니히가 가장 적격한 대상이다.
왕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라피카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시마노가 침묵을 깼다. 그녀가 왕비에게 무언가를 보여줬다. 잠에서 깨어난 와블 왕자. 왕자가 크라피카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크라피카는 그 인사와 같이 내밀어진 작은 손을 정중히 잡았다. 크라피카가 "왕자님은 어떠신가요?"라 묻자, 왕자가 대답하는 것처럼 옹아리했다. 그것이 크라피카를 구했다.
크라피카는 "넨능력을 아는 것만으로 생존확률이 대폭 상승"이라 말했다. 공감가는 말이다. 특히 그녀처럼 넨능력의 편린을 봤다면 더더욱. 그녀는 와블왕자를 위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부탁을 받은 크라피카는 의외의 대답으로 돌려줬다.
* 11왕자 후게츠와 10왕자 카쵸는 나란히 시녀를 보냈다. 경호원이 아닌 시녀. 두 자매는 어떤 협의를 한 걸까? 어쨌든 두 왕자의 시녀들은 대조적이었다. 후게츠의 시녀 "이랄디아"와 "라디오라스"는 왜 전투원도 아닌 자신들이 여기에 있는지 영문을 몰라하고 있다. 반면 카쵸의 시녀 "로베리"와 "유리"는 이유가 뭐든 그 카쵸 밑에서 몇 시간이나 떠나있을 수 있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다.
* 제 9왕자 할겐부르그는 사설병 둘을 보냈다. "세쥬르"라는 안경잽이 남자와 검은 머리의 "유히라이"라는 남자. 할겐부르그는 계승전에서 빠지기로 했지만 자신을 비롯해 소속병 전원의 손등에 "깃털문양"이 나타나자 예사일로 느끼지 않았다. 분명 "넨수"가 관련되었다, 그렇게 직감했다. 그 정보를 유포한 와블 왕자측과 접촉해 이 깃털문양의 실체를 밝히는게 목표. 그걸 위해서라면 이쪽의 정보를 전부 공개하는 것도 상관없다. 세쥬르는 알아볼 필요도 없이 할겐부르그의 넨수일 거라고 짐작한다. 유히라이도 동감한다. 이 문양은 왕자가 말하는 "각오의 각인" 그 자체다.
제 7왕자 루즈루스도 사레사레와 마찬가지로 두아즐 왕비 소속병 대장 "사토비"를 보냈다. 이마에 주름살이 가득한 중년남. 그는 이 수업을 정찰 임무로 이해하고 있다. 다른 진영 경호원들의 동향을 살피면서 교섭도 할 수 있는 기회. 그렇게만 보면 너무 좋은 조건이지만, 단 한 사람의 경호원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는 크라피카를 위험인물로 간주했다.
* 5왕자 츠베파는 철저하게 실리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사전에 접촉시켰던 사설병 대장 "마올"을 다시 파견하고 "롱기"라는 머리가 긴 남자를 딸려보냈다. 그 역시 츠베파의 사설병. 그들의 목표는 "크라피카의 두뇌". 그를 동료로 확보하는 것이다. 와블 왕자까지 포함해도 좋으니 꼭 동료가 될 수있도록 설득하라는게 진짜 목표였다. 넨 습득은 오히려 구실. 마올은 다른 진영 경호병의 눈을 의식해 은밀하게 처리하려면 편지를 사용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롱기도 같은 생각이다. 부호를 쓰거나 동작으로 신호를 주고 받는 것도 노출된 우려가 컸다.
벤자민이 보낸 "휴리코프"는 몹시 음험해 보이는 남자였다. 일단은 텐후토리처럼 정찰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진짜 "임무"는 따로 있다. 설마 와블 측에서 먼저 초대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좋은 기회다. 적의 넨능력을 파악할 수단은 많다. 외견, 수업방식, 언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계통이나 능력 자체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건 휴리코프만의 기술이었다. 넨능력이 아닌, 경험에 의한 노하우. 어찌보면 이거야 말로 그의 생명선이었으며, 그런만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장의 수였다. 가령 능력자와 비능력자는 안구의 움직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옆에서 안구를 봤을 때 그 주변의 흔들림을 보는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구분법이었다. 지금도 그는 1014호실 거실에 모인 안구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 첫 정찰의 성과는 놀라웠다. 헌터 협회 소속 경호원은 당연히 넨능력이 있겠지만, 그를 제외해도 네 명이나 더 있었다. 못 쓰는 척을 하고 있다. 그들이 그저 잠복이나 하자고 와있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만일 자신과 "같은 임무"를 받아온 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들이 먼저 능력을 발동한다면 자신도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발휘할 거라고 다짐했다. 그는 녀석들이 어떤 면상을 숨기고 있을지도 뻔히 알았다.
>올 거면 와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24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는 반드시 에리를 구하겠다고 다짐하나 현실적인 여건은 좋지 않다.
* [[아이자와 쇼타]] [[서 나이트아이]]에겐 "예지 능력으로 미래를 봐달라"고 요청하나 나이트아이는 한사코 거절, 일반적인 수사력만으로 착수한다.
* 미도리야는 회의 이후에도 침울한 상태인데 아이자와가 직접 찾아와 "막아도 뛰쳐나가긴 마찬가지니 내가 보는 데서 정규활약 해라"고 격려한다.
* 밀리오는 [[아마지키 타마키]]와 [[하도 네지레]]의 격려로 기운을 차리고 수사에 전력한다.
*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는 나이트아이와 [[올마이트]]를 중재할 겸 미도리야를 추천했던 건제, 일이 이렇게 돼서 난처해한다.
천금 같은 기회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날린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 그것이 자극이 되어 둘은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라고 각오를 다지게 된다.
* 의견이 대립하는 사이 [[아이자와 쇼타]]가 발언권을 청한다. 그는 패트껌처럼 당장 움직이자는 의견은 아니지만, 작전에 합리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나이트아이에게 "미래 예지"라는 개성이 있다면 왜 그걸 쓰지 않는가? 자세한 성능은 모르나 그걸로 이후 전개될 상황을 예시한다면 큰 도움이 되는건 분명하다.
아이자와는 그거라도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왜 못하냐고 추궁을 거듭한다. 결국 나이트아이는 좀 더 솔직한 대답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올마이트의 죽음을 봤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것이다.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만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다시 자신의 예지는 그 자체로 쓰기 보단 작전의 성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린 후,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거라고 마무리한다. 이정도면 나름대로 대답이 됐겠지만, 레게풍 히어로는 납득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도 정보이며 그걸 피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나이트아이의 예지는 점이 아니다. 100% 실현되는 예지. 계획으로 회피할 수 있는게 아니다. 레게풍 히어로는 그럼에도 "얼마든지 회피해줄 테니 날 봐봐라"고 허세를 부린다. 나이트아이는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숙인다.
그의 사정을 아는 자, 혹은 모르는 자. 히어로 사이의 의견은 엇갈린다. 더이상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 표정에 나타난 것을 보면 모두가 납득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음은 자명했다. 아이자와나 레게풍 히어로, 패트껌은 시원찮은 결말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그를 대변해줄 사람은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 정도지만,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턴 히어로들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류큐가 "우선은 해보자"는 말로 정리한다. 어쨌든 위기에 처한 소녀가 있다는게 가장 중요하니까. 여전히 분위기는 어색했지만 나이트아이는 회의의 요점을 정리하며 협력을 당부한다.
* 웅영고의 학생들은 잠시 뒤 따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미도리야와 밀리오가 겪였던 일을 다시 한 번 듣는다.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는 미도리야의 분한 심정에 공감한다. 밀리오와 미도리야는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낙담하고 있다. [[아마지키 타마키]]는 이렇게 침울한 밀리오는 처음 본다며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 그때 휴게실로 아이자와가 들어온다. 츠유가 무심코 "선생님"이라 부르자 바깥에선 "이레이저 헤드"라고 부르라며 핀잔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레이저 헤드가 온 건 "교사"로서 볼일 이 있어서였다.
키리시마가 이제와서 그러기냐고 따진다. [[빌런 연합]]이 개입해 있다면 그래야 마땅하다. 이레이저 헤드가 그 점을 지적한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레이저 헤드는 미도리야를 걸고 넘어진다. 그가 아직 자신의 신뢰를 되찾지 못했다면서. 미도리야는 그가 [[바쿠고 카즈키]] 탈환전 직후 "정규 수순을 밟아 정규 활약으로 신뢰를 회복해 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반명 아이자와는 방금 전 회의에서, 밀리오와 함께 "반드시 에리쨩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던 미도리야를 떠올린다.
아이자와는 그렇게 말하며 미도리야의 가슴에 주먹을 댄다. 그 옆에선 타마키와 [[하도 네지레]]가 밀리오의 기욱을 북돋고 있다. 네지레가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다독인다. 밀리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기운을 되찾는다. 이제 미도리야가 기운을 차릴 차례였다.
아이자와는 상황이 꼭 나쁘기만 하진 않다고 말한다.
같은 건물의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는 나이트아이가 그랜토리노와 대화 중. 그랜토리노는 미도리야를 굳이 나이트아이에게 보낸건 그걸 통해 올마이트와 그의 관계를 화해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꼬여서 이런 상황이 되자, 그랜토리노는 "나이를 먹어서 괜한 짓을 하게 됐다"고 자책한다.
- 박철우(배구) . . . . 24회 일치
|| 응원가 || 이전 : [[DJ DOC]] - 나 이런사람이야[* 나 이런사람이야~ 삼성의 철우~ 난 박철우야~ 최!강!삼!성!박!철!우!(x 2)] [br] 현재 :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워워워워~ 워워워~ 워워워~ 워워워~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SK 와이번스]] 소속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 선수와 현 [[SK 와이번스]] 소속 [[이홍구(야구선수)|이홍구]] 선수의 KIA시절 응원가가 동일하다.][* 원래 응원단장들이 응원가를 만들 때 여러 종목을 겸업하는 단장들은 주로 야구선수의 응원가들 중 호평을 받은 응원가들을 편곡해서 만드는 편인데 이 응원가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박철우 응원가가 원조이고 이후에 이홍구, 이재원 순으로 만들어졌다.] [br] [[굿 럭!!]] OST 'Departure'[* 삼성 삼성 삼성 박철우 오오오오오 승리를 위해~*2][* 현 [[KT 위즈]] 소속 외야수 [[이대형]]의 KIA시절 응원가와 같다.] ||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서 2004년 데뷔해 2010년 삼성화재로 FA 이적을 했는데 그 배경에 전 [[부천 KEB하나은행|신세계 쿨캣]]의 [[농구]] 선수 [[신혜인]][* 이 열애설이 더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혜인]]의 아버지가 삼성화재의 감독인 [[신치용]]'''이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농구선수 전미애) 그래서 그가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시절에 많은 이들이 이들의 연인 사이를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배갤에서의 별명이 무려 '''사위'''(...)다. 그리고 박철우가 삼성전에서 유난히 부진한 것을 보며, 장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다고 많이들 깠었다. 박철우가 FA로 이적하면서 사위와 장인이 한 팀으로 뭉쳤다.]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서 유명하다.
국내 날개공격수중에서는 탑클래스인 199cm의 장신에 높은 타점을 이용한 공격이 특기인 거포형 스파이커. 위 짤방에도 나와있고 [[https://www.google.co.kr/search?q=%EB%B0%95%EC%B2%A0%EC%9A%B0&newwindow=1&source=lnms&tbm=isch&sa=X&ei=DtQfVY3jDcHe8AXk8oCQAw&ved=0CAcQ_AUoAQ&biw=1325&bih=614#newwindow=1&tbm=isch&q=%EB%B0%95%EC%B2%A0%EC%9A%B0+%EA%B3%B5%EA%B2%A9|박철우의 경기중 스파이크 장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스파이크때 항시 몸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지고 팔이 최대한 높은쪽으로 가는 극단적으로 위로 뻗는 타법임을 알 수 있다. 거의 투수 [[김광현]]을 보는 듯한 [[오버핸드 스로|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 이런 스파이크 스타일때문에 높은볼 처리능력이 좋다. 다른 선수면 타점을 맞추지 못해서 강제로 스파이크가 밀리면서 홈런볼이 될 토스를 억지로 코트 안으로 내려꽂을 수 있다는 것. 이때문에 토스가 높은 편이었던 현캐시절 송병일과 호흡이 꽤 좋았던 편으로 송병일과 호흡을 맞춘 삼성화재전에서 신들린 강타로 역전승을 일구어낸 적도 있다.
이런 극단적 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때문에 약점도 있는데 토스가 낮거나 너무 빨리와서 타점에서 좌우로 흔들리면 되려 처리하기 어렵게 되는 자세문제와 함께, 극단적 오버 핸드 특성상 좌우로 비틀어서 터치아웃을 노리는 손목 스킬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파이크 코스를 읽히거나 토스가 낮으면 그대로 블로킹에다 벽치기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표적 별명인 벽철우가 이것때문에 붙은 것. 또한 스파이크 서브 올리는 토스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뻘미스나 똥볼서브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2010 시즌 중이었던 2010년 1월 30일에 LIG와의 천안 홈 경기에서 무려 '''50득점'''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는 2014년 현재도 국내선수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이 날 경기가 5세트 도중 방송이 끝났다는 안습함이 ㅠㅠ--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 슈미트|가빈]]이 레프트[* 명목상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순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몰빵에서 라이트가 레프트에게 밀리다니!!-- [[안습]]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단순히 4일 개막전 경기만 보면 오로지 가빈에게만 공격이 가면서 리그 후반에 체력부족에 시달렸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박철우가 있기 때문에 초반 1,2세트에는 박철우와 가빈이 공동으로 공격을 맡고 중요한 순간에는 박철우를 빼고 수비에 능한 레프트를 투입, 가빈을 라이트로 전환시켜 닥치고 가빈 모드로 돌릴지도 모른다. --박철우는 단순히 가빈 체력보조??--
[[국군체육부대|상무]],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IG]]와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상무와의 경기에선 범실도 많고 가빈에 비해 안정감을 실어 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27점이나 올려 줬다. 하지만 LIG경기에선 6득점에 그쳤고 아예 2세트에는 나오지 못했다. 더욱 안습인 것은 작전타임 때 --장인어른-- [[신치용]] 감독에게 이름도 제대로 못불리고 '야 임마!!'라고 불리며 [[유광우]]와 함께 뒤지게 까였다. 여담으로 그 상황에서 [[신치용]] 감독은 세터 유광우에게 "아마추어나 하는 플레이를 하냐?" 라며 깠다.
[[2011년]] [[9월 3일]], [[신치용]] 감독의 딸로 알려진 신혜인[* 前 여자농구 선수였다.]과 결혼하게 됐다. 스포츠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졌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신치용|장인어른]]한테 주구장창 깨지겠지.~~ 그런데 [[신치용]] 감독에게 [[홍길동|장인을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감독님이라 부르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박철우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면 신치용이 삼성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신치용 감독이 박철우에게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그런다고. 사실 이건 [[신치용]] 감독이 잘 한 것이다. 사석에서야 장인-사위지만, 선수단에서 있을 때는 공적인 자리인만큼 되도록이면 서로의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슷한 예로, 최고참급 현역선수가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으면 코치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예. [[김병지]], [[박찬호]])]
게다가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을 많이 내준 탓인지 공격감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정규시즌에도 박철우의 비중은 적어졌고, 설령 공격을 해도 벽치기가 잦아서 '''벽철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2013 KOVO컵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팀 공헌도가 박철우보다 객관적으로 높은 [[여오현]]보다 많은 돈으로 FA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무려 '''3억 3,000만 원'''이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FA가 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연봉으로 제시받았는데, [[여오현]]은 이를 거부하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연봉 2억 9천만 원에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오현]]은 KOVO컵에서 여실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대캐피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3-20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올린 점수에 비해 인상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4차전에서 1세트에 팀 동료 [[이선규]]와의 충돌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던 아가메즈와 언쟁을 벌인 다음 아가메즈의 스파이크를 단독 블로킹으로 깨끗하게 막아낸 장면과, 3세트 23:22로 앞서는 상황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두 번 연속 블로킹해 내 결승점을 딴 장면은 백미.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 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시|수원]] [[권선구|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한편 박철우가 입대한 후에도 삼성화재의 2014-2015 시즌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명진, 황동일 등이 돌아가면서 공격 부분을 메워주고는 있다.[* 다만, 김명진은 시즌 중 부상으로, 그리고 황동일은 변칙적인 더블 세터 시스템이란 옵션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OK저축은행]]에게 속절없이 시리즈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박철우의 능력이 재평가되었다. --이제는 벽철우, 사위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ㅠㅠ--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갈거라고 생각하냐?-- 리그 상위권의 사이드 블락 능력에,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좋은 박철우의 공격력은 그가 사라지자 그 공백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왼손잡이 라이트다. 공격시 직선이나 블로커 사이를 통과하는 경우가 잦다. 국내 선수중 손꼽히는 득점력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그 분이 오신날엔 아무도 못 막는다고 할 정도. 임팩트 있는 [[벽치기]]덕에 벽철우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기록상으로 크게 차이 날 정도는 아니다. 오픈과 퀵오픈, 후위공격에서 모두 준수한 성공률을 보이는 윙스파이커다. 심지어 최근에는 시간차 공격도 보여주고 있다. 왼손잡이 세터와 궁합이 잘맞는다는 말이 있다. 199의 우월한 신장을 바탕으로 사이드 블로킹도 단단히 세워준다. 스파이크 서브도 좋은 편이지만 서브 토스가 불안해 범실이 '''매우''' 많다.
- 신민아 . . . . 24회 일치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각종 패션잡지가 창간되고 '패션잡지 전성시대'였고, 10대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달별로 패션잡지를 사서 학교에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배두나]], [[김민희]], [[김효진]] 등 잡지 모델들의 인기도 상당했으며, cf모델등을 거쳐 연예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잡지 부록 경쟁도 한창 치열하여 다이어리, 화장품, 가방등 다양한 부록이 선보였다.] '키키'(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상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잡지(쎄씨, 신디더퍼키, 유행통신, 피가로 등)에 인기있는 모델로 얼굴을 도배했고, 촉촉한 초코칩, 네스카페, 코오롱 샴푸, 위스퍼, 매직 스테이션 등 tv광고도 수없이 많이 찍을 정도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대중에게는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 이 '당부' 뮤직비디오는 1999년에는 [[엠넷]]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영상음악대상]]에서 당시의 대세였던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쳐버리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다.] 로 "저 처자는 누구냐"는 반응을 끌어내며 얼굴을 널리 알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알려주는 VJ로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되었다.
버거 소녀로 유명한 배우 [[양미라]]와 이름이 비슷해, 신민아로 활등명을 개명했다.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서 [[이병헌]]의 여동생으로 첫 연기를 시작한 이래, 영화 [[화산고]]를 찍는 등 고교시절까지도 유망주로 잘 나갔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도 부정확한 발음과 국어책 읽는 연기로 드라마와 영화 모두 흥행에는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모델 출신 다운 늘씬한 몸매와 감각적인 패션센스, 볼륨있는 몸매와는 상반된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로 꾸준히 광고에 등장하다가 2008~2009년에는 드디어 포텐이 터져 cf퀸으로 떠올랐다. 2015~2017년의 [[AOA]] [[설현]] 정도 입지라고 생각하면 될 듯. 진로의 소주 J광고부터 [[포텐]]이 만개하여 주점 앞에 광고를 위해 세워둔 등신대 입간판이 사라지는 등의 해프닝이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귀여운 외모에 늘씬하고 굴곡있는 몸매로 베이글녀로 유명세를 탔으며 특히 골반과 힙라인, 뒤태가 주목받았다.
한 때 CF쪽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유독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지,--드라마라고 아닌건 아닌데..-- 아니면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낮은건지 출연한 작품 중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말아먹었다'''. 그 덕분에 ''''한국 영화사 최고의 [[핵잠수함]]'''', ''''[[충무로]]의 흥행 [[부도]] [[수표]]''''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의외로 이름난 드라마작가나 유명 [[영화 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CF나 영화에 캐스팅되고 있어서 '[[스폰서]]가 빵빵하다',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라는 의견도 다수 가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공히 '히트작이 없음'에도, 'CF에 있어서는 가히 도배'를 하고 있는건 미스테리다. 흥행 관련해서는 비슷한 내용이 [[봉태규]] 항목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남배우로 봉태규보다 ~~새로 떠오르는 국밥배우~~ ~~흥행전선 먹구름~~[[김강우]]와 더 많이 비교되는 것 같다. 다만 김강우의 경우 2017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살아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처음에는 [[발연기|연기를 못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조정석과 합을 맞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하자 연기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많이 사라졌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멜로 연기에 능숙한 편. MBC 수목 드라마 [[아랑 사또전]]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또한 비교적 최근작인 [오마이 비너스], [내일 그대와]에서는 그나마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은 선보여 주었다. 근데 폭망했다. 부족한 작품성 때문인 듯...--못 해도 망 잘해도 망-- 국내에서는 비록 망했을지라도 해외에서는 [오마이비너스],[내여자친구는구미호]의 팬층이 상당히 두터웠다. 특히 내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중국에서도 1등을 차지했을 정도...
그러나... 연기력이 서서히 나아지고는 있으나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똑같이 잡지모델로 출발하여,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역시 발연기로 까였던 김민희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김민희는(불륜으로 유명세를 치룬 것과는 별개로) 절차부심한 끝에 발연기의 오명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하여 끝내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은데 반해 신민아는 여전히 연기력에서는 인정을 받았다고 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표정연기의 문제이기보다는 발성과 발음의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 2009년, 지금은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유명해진 [[제이미 도넌]]과 함께 [[캘빈 클라인]]화보를 찍은 적 있다. [[http://205.oeker.net/bbs/board.php?bo_table=Hollywood&wr_id=4550826&sca=%EC%82%AC%EC%A7%84&sfl=wr_3&stx=&sop=and&page=3|#]] 촬영 당시, 사고로 조명이 넘어져서 신민아의 머리와 어깨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지만, 툴툴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며 주위를 배려하는 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https://youtu.be/1uapjf3vvOA?t=18m21s|#]]
* 2015년 10월 15일 약 7년째 꾸준히 기부를 해온 사실이 기사로 나왔다. 새터민들을 돕는 단체 및 사랑의 열매를 통한 매달 200만원, 연말에는 5천만원에서 1억정도의 액수를 기부해 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싱글맘들을 위해 분유를 기부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기도 하는 등 그동안 기부한 액수가 약 10억 원 정도라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78574|관련 기사]] 특히 새터민들을 돕는 행사는 몇 년전 공개 행사를 할때 참석하였는데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씨와 함께 하기도 하였다. 불교 단체를 통해 기부한 적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신민아는 개신교 신자. 이따금 절에서 목격담이 있기도 하고, 오래 전 인터뷰에서 자주 가는 장소 중 하나가 봉은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타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는 모양. --드라마 고사장에서 절을 하지는 않는 정도--
||2005||야수와 미녀||주연||장해주 役||이계벽||134만 명||실패||
|| 2017 || [[tvN]] || [[내일 그대와]] || 송마린 || 주연 ||
때려 이후의 첫 작품 [[이 죽일놈의 사랑]]. [[공효진]]과 상두야 학교가자로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키고, [[송혜교]]와 [[풀하우스(드라마)|풀하우스]]등을 통해 최고의 반열에 오를 뻔하였던 [[비(연예인)|비]]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명필을 휘날린 [[이경희]] 작가와 함께한 [[이 죽일놈의 사랑]]은 사상 최대의 폭망은 아니지만 시작도 하기 전 엄청났던 기대치를 단숨에 잠재우며 조용히 와서 조용히 떠나갔다. 사실 [[소지섭]]과 [[임수정]]을 톱스타 반열에 올려 놓은 미사의 위용을 이을 거라 생각했던 시작 전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망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리고 시작 전 엄청난 기대를 받았고 그나마 나름 TV커리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으나 그 초반의 압도적인 기대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이 드라마 압도적인 기대를 모은 것은 작가가 홍자매인 점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바로 바로 상대역이 무려 [[이승기]]. [[소문난 칠공주]]로 연기 데뷔하고 [[한효주|동생으로 유명한 그분]]과 함께 한 찬란한 유산이 기대 이상의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고 [[1박2일]] 시즌1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강심장]]으로 인기를 끌던 그야말로 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TV를 종횡무진하던 그와 함께 하여 정말 이번에는 안망할 줄 알았다. 사실 2010년 위 이승기라면 마이더스의 손으로 하는 족족 앨범 드라마 예능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16회 중 20%를 넘거나 근접한 것은 막판 4회 뿐이고 거의 나머지 기간동안은 10%초반을 찍었다. 결국 평균 시청률은 15%(TNms기준)였다. AGB 기준으로는 12.6%이다. 시청률 20%는 거의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자매]]와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2014년도와는 거리가 한참 있는 2010년도에 작품을 했음에도 이거밖에 못 거둔거면 사실 망했다고 보는게 맞다. 홍자매의 전작인 [[미남이시네요]]도 사실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이는 홍자매 또한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그닥 높지 않은 시청률을 생각했다고 밝혔으나[* 방송사에서도 시청률이 제일 중요하지만 매번 대박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일선에서 뛰는 모PD의 블로그-[[일지매]]PD-에 따르면 심지어 엄청난 대작이 상대방에서 나올 경우 일부러 시간 떼우기로 폭망할 작품을 넣는 경우까지도 있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편성을 안하진 않는다. 쓸만한 작품이 없어서 방송은 계속 해야 되는 거니까.. --그러니 푸쉬받고 세 번이나 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니깐--] [[쾌도 홍길동]]과 더불어 홍자매가 이건 뜰 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인데도 안됐다. --물론 쾌도 홍길동도 20%은 못넘겼지-- 물론 동시 방영하던 타방송사 작품이 [[제빵왕 김탁구]]였긴 했으나 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것저것 변명대면 남는 게 없다. 홍자매 또한 [[미남이시네요]]로 할 거 다 해보고 여기서는 다시 뜰 줄 알았으나 그냥저냥 했던 홍자매는 바로 이후 작품인 [[최고의 사랑]]이 AGB 기준 20%를 넘기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이더스의 손, 이승기는 이후 [[더킹 투하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다. 영화계를 떠나서 드라마만 봐도 이정도면 흥행 블랙홀이다.
이후 다시금 [[건축학 개론]]과 [[시그널(드라마)|시그널]]의 [[이제훈]]과 뭉친 [[내일 그대와]]도 또 망했다. 그냥 망한 정도도 아니고 폭망했다. 내일 그대와 바로 전에 방영되었던 작품이 [[도깨비(드라마)|도깨비]]였음을 생각했다면 안습중에 안습. 나름 2016년들어 tvN 금토 드라마들이 자리를 잡아 평균 4~6%정도의 시청률을 올려주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1~2%의 시청률은 폭망했다고 봐야한다. tvN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에서 방영 내내 중간 광고에서 수차례 미뤄줬는데도 망했으니 푸쉬받지 못했다고 변명도 어려운 상황. 물론 이 작품에서 신민아의 연기가 별로 인것은 아니다. 나름 자신이 가장 잘하는 캐릭터를 골랐고 상대배우, 소재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으나 드라마의 전개나 진행방식이 매우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고르는 안목 또한 배우의 역량이기에 기본적인 선구안이 매우 부족한 느낌. --제발 누가 옆에서 보고 골라줘. 원하는거 하지말고 시키는거 하세요.--
연기를 잘 한다고는 할 수 없는 편이기에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에 맞춰 캐릭터를 선별하는 방향으로 작품들을 선택해서 나아갔어야 했는데 경력 초반에는 오히려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로 하는 이죽사나 마왕을 했고 이후 나름 자신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작품들을 선택했으나 이미 이런 작품들의 시대는 지나간 지가 오래였다. 연기력을 키워 자신의 연기의 폭을 넓혀 다양한 작품을 고르고 골라 선별해야하는데 이제 그걸 받쳐줄 연기력 없이 작품만 꾸준히 찍으니 이러한 참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연기력을 기르든지 아니면 최근의 [[전지현]]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줄 만한 작품들을 잡아가든지 둘 중의 하나의 방향으로 선택해야 좋은 결말에 이를 듯 싶다.[* 사실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연기 스펙트럼이 좁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스러운 연기, 멜로 연기는 상당한 연기 수준을 가지고 있으나 확실히 다른 작품에서는 부족함을 보여준다.]
- 육성재 . . . . 24회 일치
||<#42B4E6> '''이름''' ||<(> 육성재(陸星材) / Yook Sung-Jae[* 본인이 밝힌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12&aid=0000273655|이]][[https://m.imgur.com/LVO8DQl|름]][[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3100623107265729|뜻]]은 '별처럼 빛나는 재료가 되어라'라는 뜻이지만 [[http://m.weibo.cn/2641606884/ybZ4W0LsW?jumpfrom=weibocom#_rnd1439489093499|큐브 공식 웨이보]]와 [[http://news1.kr/articles/?2366836|민증]]에는 陸性材라고 되어있다.--민증이 잘못된 건가...-- --그리고 큐브 웨이보도 믿을 게 못 된다--] ||
||<#42B4E6> '''별명''' ||<(> '''육잘또'''[* '''육'''성재 '''잘'''생긴 '''또'''라이.], 육덕, 육성숙, 성뎨, 뎨뎨, 김홍진[* 비투비 멤버 서은광, 이창섭의 라디오 스케줄 도중 청취자와 전화 연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바로 육성재. 처음 전화를 받고서 본인을 '김홍진'이라고 소개했다. 서은광과 이창섭 둘 중 좋아하는 멤버는 이창섭이라고 밝혔으며 ~~이창섭 덕후 육성재~~ 이창섭은 기뻤던 나머지 급기야 "감사합니다, 형님!"이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화 연결 도중 한 청취자의 지적으로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창섭 : "내가 육성재에게 형님이라 그래써...!" 서은광 : "성재야 나도 좀 좋아해 주라."~~ [[https://youtu.be/N4qMyDvabDE|김홍진 대란(47:57부터)]]] , 육둘기, 뎨깅이, 육태광[* 후아유 - 학교 2015의 "공태광"역을 해서 육태광이라 불린다.], 감성재, --메인 막내--[* 2018년 8월 13일 민혁이가 리더로 뽑인 후에 멤버끼리 막내를 새로 정하자고 해서 돌림판을 성재가 직접 돌렸는데 자기 자신이 나왔다.... --어차피 막내는 육성재--] ||
자기애가 강하다고 스스로 말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상형이 자신을 닮은 사람--과연 있을까--이기도 하고[* 자기와 닮은 아이를 낳고 싶기 때문이라고.] 자존감이 높아보인다.
2015년 복면가왕에서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로 나와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후아유 - 학교 2015]]에 ~~서브남주~~ 공태광 역할로 나와 대중에게 확실하게 육성재와 BTOB를 각인시켰다. 실제로 후아유가 종영하고 연말에 발매된 BTOB의 <집으로 가는 길>과 이듬해 연초에 발매된 <봄날의 기억>이 케이블과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머쥐며 BTOB가 뒤늦게나마 빛을 보았다.
2015 MBC (12월 29일) 연예대상에서 신인상, [[조이(레드벨벳)|조이]]와 베스트 커플상을 받고 특별 무대를 했다. [[https://youtu.be/6EWAW-y5mUs|#]]
2015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3차 경연에 나와서 [[마스카라 번진 야옹이]]와 [[도와줘요 실버맨]]을 이겼으며 [[딸랑딸랑 종달새]]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구라]]는 그가 출연하기 전부터 남자 아이돌 같은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수시로 언급했었다.
2017년 판타스틱듀오 거미, 양희은 편에서 블랙핑크 로제, 뮤지컬 배우 손준호등을 제치고 거미의 듀엣파트너로 선정되었고, 양희은&산들 듀오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최후의 3인이 함께 부른 '날 그만 잊어요'에서는 짙은 감성과 이어지는 듀엣으로 호평을 받았다.
([[카리스마 LP소년]]) || [* 1라운드 결과는 거울공주가 승리해서 LP소년이 패자의 전통에 따라 가면을 벗었는데 4차전이 끝났을 때 기계의 집계 착오로 밝혀져서 두 사람을 급히 불러와 방송사고였음을 알려준 다음 진짜 승자인 육성재에게 다시 가면을 씌우고 음성변조를 했지만 이미 정체를 다 아는 상황에서 육성재 본인이 복면가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면서 기권했다.] ||
||<|2> 2014년 || 빅병 형돈이와 대준이의 히트제조기 || Stress Come On! || ||
||<|5> 2015년 || 빅병 형돈이와 대준이의 히트제조기 || 오징어 된장 || ||
* [[BTOB|비투비]] 멤버들은 다그렇지만 [[Apink|에이핑크]]와도 친하다. 에이핑크의 소속사가 비투비 소속사에서 파생되어서 그런지 연습생 시절부터 친하게지냈고, 동갑내기인 [[김남주(Apink)|김남주]]와 가장 친하다.에이핑크 막내인 [[오하영]]과도 친하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서 노는 모습도 많이 포착되었다.~~
* 고등학교 시절 워너원의 [[옹성우]]와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추가로 [[VICTON]]의 [[허찬]]도 같은 반이었다.[* 옹성우와 허찬은 3년 동안 같은반이었다.]온앤오프의 [[와이엇]]도 같은 학교 실용무용과 출신이다.
* [[2018년]] [[8월 13일]], [[DIA(아이돌)|다이아]] [[주은(DIA)|주은]]과 열애 중이라는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5341439951384145010|기사]]가 났다. 이에 육성재와 주은 소속사 양측은 서로 지인 모임에서 만나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애는 사실 무근이라며 일축했다. --기레기가 또--
집에서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 히트제조기에서 빅병의 리더를 뽑는 자리에서 토끼의 눈 붙이기 시합(...)이 있었는데 제일 꼼꼼하게 꿰매서 칭찬을 받자 뿌듯하게 '저희 엄마가 퀼트하시거든요'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팬이 준 잠옷 모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가자 가방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서 직접 귀를 꿰매다가 매듭 짓기에 실패하자 "엄마 나 까먹었어 ㅠㅠ!!" 하는 모습을 보면 사춘기 시절에도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듯. ~~바느질도 배우고~~ [[https://youtu.be/jvTZOTeemZg|#]]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먹는 것이 꿀리면 인생이 꿀린다', '일순간의 창피함이 영원한 이득이다', '너보다 부족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설령 니가 바보 같이 보일지라도', '오늘 니가 흘린 땀은 먼훗날의 눈물이 나온거다' 등.
[[문희준]]이 해피투게더에 나와서 육성재와 같이 방송하면서 돌아이라는 말을 20번은 넘게 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추석 아육대]]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는 [[레골라스]]를 패러디한 육골라스(…) 분장을 하고 나왔으나, 개그만 일삼다가 [[몬스타엑스]]에게 18점 차로 KO패를 당해 광탈했다. 첫번째 사수로 나온 [[서은광|광피트]]가 부진한 상태에서 3번째 사수로 나오자마자 3점과 5점을 쏘는 치명적인 실수를 연발했고, 마지막 슈팅 후 오버하는 포즈를 취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쏜 [[I.M|아이엠]]이 카메라 엑스텐을 기록한 후 육성재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는 것. [[서은광]]이 마지막 사수로 나왔을 때 [[레골라스]] 가발을 벗어던지고 말았다. 결국 [[서은광]]과 육성재의 어이없는 실수로 [[BTOB|비투비]]는 양궁 예선에서 [[광속 탈락|광탈]]했다.
- 은혼/630화 . . . . 24회 일치
* 우주와 통신이 재개되면서 [[도쿠가와 노부노부]] 일행은 제일 먼저 지구에 연락하지만 그게 [[소요 공주]]에게 닿는다.
* [[사카모토 다츠마]]는 [[가츠라 고타로]]가 [[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의 협조를 얻어 해방군 본대와 대결할 수 있게 됐다고 전한다.
* 다츠마와 가츠라는 "우리가 할 일은 똑같다"며 "무사도란 1초 후에 죽는 것"이란 시구를 인용해 "1초가 6시간이나 연장된 것"으로 여기며 필사의 항쟁을 시작한다.
* 소요공주와 그 오빠 [[도쿠가와 시게시게]]에게 죄의식을 가진 노분노부는 죽기를 각오하고 마지막 작전에 임하며 소요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당부를 남긴다.
* 에도성. [[이마이 노부메]]와 밤을 지새던 [[소요 공주]]는 경호원이 두고 간 무전기에서 누군가의 메시지를 수신한다. 그 목소리는 [[도쿠가와 노부노부]]. 그녀는 무전기로 응답한다.
>저는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여동생 소요입니다.
>도쿠가와 노부노부님... 맞으시죠?
가츠라는 오오고쿠의 우주선에서 바보 황태자... 아니 [[하타 황태자]]와 그들의 큰형님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와 함께 모함 "아메노토리후네"를 공략할 지원 병력을 기다리고 있다. 오오고쿠성 황태자들의 협조로 그들 모성에서 지원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하타 황태자와 네스 영감이야 자기네 배니까 함께 있다고 치지만, 왠지 마다오 [[하세가와 다이조]]까지 그럴 듯한 폼으로 타고 있다.
같은 시각 자작 제독 또한 다츠마 일행에게 정확히 같은 사실을 전달한다. 겐가이 영감은 엔죠의 말이 "협박치곤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허세를 부려본다. 이미 전쟁으로 치른 희생이 크다. 지구엔 해방군의 동지도 있다. 그 전부를 이제와서 다 지워버린다?
[[천도중]]으로부터 사람과 별을 해방한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그들의 대외와 전혀 달랐다. 병사들 조차 그걸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싸우는 대상은 천도중이 아니다. 그런 싸움을 위해서 동료들을 희생한다니? 그것은 천도중이 한 짓과 같은 짓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총구를 겨눈 자든, 그저 당황한 자들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엔죠가 팬던트를 닫는 순간 숨겨져 있던 화기가 불을 뿜는다. 사령실의 각 벽면마다 설치된 비상장치였다. 반란을 도모했던 자들은 방아쇠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쓰러진다. 엔죠는 죽어버린 반역자와 살아남은 방관자들, 그리고 화면 속의 겐가이 영감에게 말한다. 증오와 슬픔을 치유할 길도 없어진 자신들은 전쟁이란 불길로 그걸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증오도 슬픔도 전부 타서 재만 남을 때까지. 그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 다츠마와 [[무츠(은혼)|무츠]], 자작 제독이 선두가 되어서 반란 부대를 이끈다. 다츠마는 아직 소요와 연결된 무전기를 가지고 있다. 그녀도 무전을 통해 자작 제독이 전한 비보를 들었다. 소요가 그게 무슨 의미냐고 거듭 묻자, 싸움을 준비하던 다츠마는 넉살 좋게도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대답한다.
* 오고쿠성의 함대가 지원부대로 도착했다. 하타 황태자의 모함은 가츠라와 엘리자베... 아니 드라고니아가 공동으로 지휘함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타 황태자는 위궤양 걸린 것 같은 꼴이지만 도망치지 않고 함에 탑승 중. 그리도 마다오도 왠지 그대로 가츠라 옆에 타고 있다. 이 놈은 뭔 역할이지?
가츠라의 정치적 위상이야 어쨌든, 우연인지 그도 다츠마와 같은 싯구를 떠올리고 있다. "무사도란 1초 후에 죽고자 하는 것이다"라는 싯구를. 가츠라는 바쁘게 함대를 지휘하면서 다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해야 할 일은 같다. 눈 앞의 일 만을 생각한다.
* 같은 시각 지구에서 싸우는 자들, [[사카타 긴토키]]와 그 일행들은 [[가구라]]의 뒤를 따라 겐가이 영감을 추적하고 있다. 과음의 여파로 [[시무라 신파치]]에게 업혀가던 긴토키는 신파치를 멈추게 하고 스스로의 다리로 일어선다. 동료들이 무사도를 생각하며 다가올 파멸과 싸우는 동안, 그도 같은 것을 떠올린 것일까?
그녀는 노부노부가 살아돌아와 오빠의 묘 앞에서 에도를 지켰다고 보고하지 못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 이경희 (1880년) . . . . 24회 일치
'''이경희'''(李慶熙, [[1880년]] [[6월 11일]] ~ [[1949년]] [[12월 4일]])는 [[대한제국]]의 교육자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구한 말 [[신민회]]의 회원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 [[의열단]]과 [[신간회]]의 주요 멤버의 한 사람이다. 해방 후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와 초대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을 역임했다.
기호중학교 졸업 후 대구 협성학교와 [[안동 협동학교]]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09년]] [[안창호]], [[윤치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조직했고, [[1910년]]에는 [[신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군사학교를 조직하려 했으나, [[105인 사건]]으로 [[만주]]로 망명했다.
그뒤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23년]] [[조선총독부]] 폭파를 목적으로 [[김시현]](金始顯) 등과 함께 총기와 폭탄, [[신채호]]의 격문과 [[조선총독부]] 관료들에게 보낼 투항권고문 사본 등을 국내로 반입, 격문 수백장을 받아 배포하였고,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미수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 후 [[신간회]](新幹會)의 조직에 참여했고, [[신간회]] 경북지부, 대구지부 등을 조직했으며, [[밀양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직후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와 초대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 미 군정 경상북도사령부 민정관 등을 역임했으나 [[미군정]]과의 갈등으로 사퇴했다. 이후 시민단체,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자는 군선(君善) 또는 군미(君美)이고, 호는 지오(池吾), 본관은 [[인천 이씨|인천]](仁川)이다. [[경상북도]] 출신.
실력을 양성하는 길만이 조국의 독립을 앞당긴다는 신념으로 고향으로 내려와 [[대구]] [[협성학교]](協成學校)의 교사가 되었으며 [[안동 협동학교]](協同學校)의 [[교사]]를 겸임하여, [[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안동 협동학교에도 출강하며 교편을 잡고 교육구국에 힘썼다. 이 무렵 그는 [[유교]] [[성리학]]에서 [[대종교]]로 개종하였다.
[[1909년]](융희 3) [[윤치호]],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결성하고, [[청년학우회]] 경성부지회의 회원이 되었다. [[1910년]] [[5월 13일]] 독립운동가 [[구찬회]]가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구찬회와 같은 고향 출신이던 그는 한국통감부와 일본의 눈을 피해 [[구찬회]]의 시신을 [[미역]] 속에 숨겨서 경성에서 대구 무태로 운반하여 [[구찬회]]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전달하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1910년]](융희 4) [[10월]]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청년학우회 한성지회의 일원으로 [[이동녕]](李東寧), [[윤치호]], [[안창호]], [[윤치소]], [[이회영]](李會榮), [[윤기섭]](尹琦燮), [[이승훈]], [[김좌진]](金佐鎭),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고 회원이 되었다. 이후 [[신민회]]의 비밀회의에 참여, 독립군 기지창건을 목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동참했고, [[105인 사건]]을 피해 바로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여 무관학교(훗날의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장사와 노동에 종사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돈을 모았다.
동시에 현지 교민들의 문맹률을 보고 [[중국]] [[심양]](瀋陽)에서 달신학교(達新學校)와 중국어 학교를 세워 학생, 청년들을 가르치고, [[야학]]을 개설하여 성인들을 가르쳤다. 이어 마련한 돈으로 [[만주]] [[무송현]]에 둔전을 마련하여 다시 군자금을 만들고, 청장년을 훈련시켰다. [[1918년]] [[12월]] [[파리강화회의]]로 파견되는 [[김규식]] 박사와 일행의 차비와 여비로 일부 자금을 [[상하이]]로 보냈다.
[[1923년]] [[의열단]] 단원으로 비밀거사를 준비하여 5월의거를 계획, 국내에 잠입하였다. [[1923년]] [[김원봉]] 의 지령아래 [[김지섭]], [[김시현]](金時顯), 유시태(柳時泰), 홍종우(洪鍾佑), 황옥(黃鈺) 등과 모의하여 [[중국]]과 [[만주]]로부터 무역 목적으로 [[안둥현]]에서 [[쌀가마]]에 숨겨서 국내로 반입해온 폭탄 36개, 권총 13정, 폭탄장치용시계 6개와 뇌관 여러정, 수류탄 10발,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서]](革命宣言書)의 인쇄 사본 및 [[조선총독부]] 관공리에 대한 투항권고 격문 사본 2,000매 등을 반입, [[1923년]] [[3월 15일]] 이를 국내에 반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무기와 폭탄이 들어오자 그는 [[김시현]], [[유석현]] 등으로부터 〈혁명선언서〉와 투항권고 격문 수백 장을 받아 [[경성부]] 시내 곳곳에 살포하고, 전국 각 도의 도지사와 경찰부(警察部)에 발송하였다. [[김시현]], [[유석현]](劉錫鉉) 등 [[의열단]] 단원들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은행]], [[매일신보사]] 등을 폭파하할 것을 계획하고 준비에 들어갈 때 이경희는 [[조선총독부]] 폭파를 맡았다. 그러나 [[1923년]] [[5월]] [[조선총독부]] 폭파 일보 직전에 이들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누군가의 신고로 밀정이 따라붙어, 동지 12명과 [[조선총독부]] 종로 경찰서에 체포되어 테러 미수 혐의로 재판받았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1년 넘게 형을 살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1927년]] [[2월]] [[경성]]으로 상경하여 [[허헌]], [[조병옥]], [[김병로]], [[이인]], [[허정숙]] 등과 함께 [[신간회]] 발족에 참여하였고, [[신간회]] 경성중앙본부 총무간사를 맡았으며, 곧 [[신간회]] 경상북도지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중앙본부 총무간사와 경상북도 지회장을 겸하였다. 그 뒤 [[신간회]] 경상북도 대구부지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대구부 지회장을 겸임하시면서 한때 30여 세포와 만여 회원을 포섭, 가입시켜서 단체를 키웠다. 1927년 12월 [[신간회]] 대구지회장 직을 부회장 [[최윤동]]에게 넘겨주고 이후 평회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신간회]] [[밀양]]지회 조직을 지원하러 내려갔다가 불심검문을 받고 [[밀양]]에서 검속되었다. 그뒤 [[신간회]] 밀양지회 산하 조직인 [[밀양청년회]](密陽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는데, 항상 [[밀양경찰서]]와 파견된 총독부 경찰의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받았다.
일제의 패망을 예상하여 일제 패망론을 주장하며, 해방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일본인]] 도지사와 부지사 등이 업무를 내려놓고 사퇴를 선언하자 행정공백을 피하기 위해 [[8월 16일]] 위촉장을 받고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가 되고, 그날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을 겸직하였다.<ref>당시 경상북도청은 대구시내에 있었으므로 그는 경상북도 부지사와 대구부윤 업무를 보느라 양쪽을 오고 갔다.</ref> 그는 대구부윤 上野彦八에게서 행정권과 치안권 일체를 인수하였다. 그밖에 그는 [[대종교]] 본부 경의원의 참의로도 임명되었다. [[9월 2일]] 미군정이 주둔하자 레이몬드 재노스키(Raymond A.Zanowski) 미육군 대령의 천거로 경상북도 미군정 사령부 민정관으로 위촉되었다.
그뒤 [[우익]]에 가담하여 [[1945년]] [[10월]]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독립촉성중앙회]] 회장 [[이승만]], 부회장 [[김구]]의 친필 임명장을 직접 전달받았다. [[1945년]] [[12월]] 독립촉성중앙회 경상북도지회와 독촉 대구부지부 결성에 참여하였다.
- 이유리(배우) . . . . 24회 일치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인 KBS의 학원물 [[학교 시리즈]] 《학교 4》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으나 이 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출중한 외모와 안정된 연기력에 비해 소위 '뜨지 못하는' 연예인으로 많은 사람의 아쉬움을 샀으나 꾸준한 연기활동 끝에 2014년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을 통해 독보적인 악녀 연기를 선보이면서 대박을 쳐 주인공보다 더한 인기를 얻으며 2014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이후 활발한 연기 활동과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으로 커리어를 꽃 피우고 있는 '''대기만성형 배우'''. 다양한 스펙트럼과 본인만의 색깔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독립영화 또는 단막극 등에서 조단역으로 연기경력을 쌓아오다가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자 많은 정상급 배우들을 배출해 낸 [[2001년]] [[학교 시리즈]]의 《[[학교 4]]》에서 미대 입시생 '박서원'으로 정식 데뷔했다. 극 중 이유리는 삐죽삐죽 솟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대변되는 반항적이고 강한 이미지와 출연자 중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펼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녀는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발돋움 하면서 당시 23살의 나이로 청소년 연기상을 수상한다.
학교 4 시즌 후반부였던 [[2002년]] 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 캐스팅되어 허약한 [[순종(대한제국)|순종]]의 첫 번째 아내인 [[순명효황후]] 역할을 맡았다. 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반항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기울어가는 왕조의 가련한 세자빈으로 분해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였다. 여담으로 《명성황후》에 캐스팅됐던 시점이 《학교 4》가 막 끝나던 시점이라 이유리뿐만 아니라 같이 나왔던 몇몇 연기자도 캐스팅이 됐다. 그 중 나름 커플 연기를 펼쳤던 김유민 역의 [[백승우]]가 《명성황후》에서 순종으로 캐스팅 되어 연달아 커플 연기를 했다.
이 후 KBS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왔다. 사실 《학교 4》 출연 배우들은 KBS와 2년 전속계약을 맺어 이유리는 이후로도 계속 출연했는데 그것이 거의 공무원 수준이었다. 또 이 시점에는 《학교 4》 출신이었던 [[공유(배우)|공유]], [[임수정]] 등이 굵직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며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에 비해 자신은 조연에 머무르는 처지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줌마1, 학생1, 학생2가 아닌 내 역할의 이름이 있다는 것, 단역 연기자들에겐 그 마저도 꿈이다. 내게 주어진 것만을 더 항상 감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매 순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 후 2004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KBS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서 '안성미'역으로 분한다. 김수현 작가의 가족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복하고 바람잘날 없는 대가족의 막내딸로 현실의 문제를 대변하는 젊은이로 나왔다. 이때부터 소위 '김수현 사단'이라 불리며 김수현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이 후 청춘스타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한 이미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폭을 넓히기도 했지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후 너무 이른 나이에 중장년층에게 어필하는 이미지가 고착된 것이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이유리는 이에 대해 후일 "《부모님전상서》 부터 같이 해서 그런지 기자 분들이 김수현 사단이라고 저를 부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제게 기회를 많이 주신 분이고 연기를 통해 배워갈 수 있게끔 해 준 연기사관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연기자가 한 작가로 인해 이렇게 많은 기회와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행운아 같다."며 생각을 밝혔다.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로 또 한번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의 대가족 막내딸로 출연한다. 극 중 이유리는 '한자([[김혜자]])와 '일석([[백일섭]])'의 막내딸로 대기업 홍보팀에 다니는 야무지고 심성 착한 막내딸로 부모님 속 한번 크게 썩인적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으나 가난한 대학원생인줄 알았던 '정현([[기태영]])'과 결혼을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정현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제력 차이가 큰 집안간의 결혼과정에서 한 번, 결혼 후 우아한체 하나 속물적이고 이중적인 시어머니 '은아([[장미희]])'때문에 또 한번 속앓이 하는 '나영미'역으로 열연했다.
같은 해부터 활동 영역을 넓혀 뮤지컬 《친정엄마》에서 [[나문희]], [[김수미]]와 같은 선배 배우들의 '딸' 역할을 맡아 2012년까지 공연을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순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영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반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식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영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2015년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tvN 미니시리즈 《[[슈퍼대디 열]]》에서 열혈 엄마 '차미래'역을 맡았다. 오랫만에 트렌디 드라마 출연이었으며 첫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맡았다.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악녀 이미지와 거리를 두는 상큼발랄한 연기를 선보였다.
2017년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시크하고 도도하지만 허당끼도 매우 심한 변호사 '변혜영' 역을 맡아, 연인 '정환([[류수영]])'과 치고 받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등 할말은 하고 자신이 가지려는 것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대가족의 장녀 역할을 유쾌하게 연기하여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매력있고 귀여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결국 예전의 악녀 이미지에서 사이다녀, 대세녀 이미지로 탈바꿈하여 독보적인 캐릭터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여러 광고를 찍는 수확을 거두며 아버지가 이상해의 최대 수혜자로 거듭났다. 열연을 인정받아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한 단계 도약했다.
|| 미상 || FAST || || 독립영화[* 이유리는 모 인터뷰를 통해 출연비를 떼인 일화를 밝히기도 했는데 아마도 'FAST'란 작품을 말하는듯 하다. 배우 [[정우]]와 함께 출연한 영화는 당시 이유리의 앳된 모습과 동시에 담배피는 불량스런 모습을 볼수 있다.] ||
|| [[드라마 페스티벌]] - 기타와 핫팬츠 || 라디오 DJ || ||
|| 2017년 6월 21일~2017년 7월 5일 ||<|2> SBS ||<|2> [[싱글 와이프]] ||<|2> 진행자 || ||
* 데뷔초부터 활발하게 주조연으로 활동했기에 여러 작품에서 만난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있다. 특히 [[이동욱]]이 대표적이다. 우선 학교 시리즈의 선후배 사이이며 《사랑은 이런거야》, 《러빙유》, 《부모님전상서》 총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이유리와 이동욱이 각각 재수생과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나와 커플연기를 펼쳤는데 그로부터 1년 후, 《러빙유》에서 재회했다. 초반에 이동욱이 이유리를 좋아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악녀본색을 내뿜는 이유리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다. 그 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작품이 《부모님전상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게 대가족이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유리는 4남매 중 각각 3호와 4호를 맡았다. 전작들보다 극중 상황이 더 나빠져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현실 남매 연기를 보여주었다.
* 이유리의 형제관계는 4남매 중 막내로 큰 언니, 오빠, 작은 언니 그리고 이유리가 셋째 딸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은 [[이효리]]가 대표적[* 공교롭게도 이효리의 둘째언니 이름은 이유리 본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 가족의 막내딸이라 곱게만 자랐을 것만 같지만 이유리는 어릴 때부터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랬다며 지나가듯 푸념하면서 식구가 많아 어릴 때 [[짜장면]] 같은 걸 시키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식탐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이러한 형제관계였다. 허나 실제로 이유리는 1남 3녀 중 막내이고, 극중 변혜영은 1남 3녀 중 장녀이며, 둘째이다. 이유리 실제 형제의 맏이는 여자고, 극중 맏이는 남자라는 것이 차이점.] 10년 전 방송 '좋은 아침'을 통해 작은 언니의 얼굴이 잠시 비춰졌는데 막내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당시 언니는 성경책을 보고있는 동생 이유리에게 "지금 니가 대본을 봐도 모자랄 판에 성경책을 보냐"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이유리가 '만원의 행복'에 출연당시 부모님이 등장했는데 부모님과는 반반씩 얼굴이 닮은 듯하다. 이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 데뷔 후 개신교에 귀의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인터넷에서 간증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9월 6일]] [[띠동갑]] [[연상]]의 당시 [[전도사]]였던 조계현씨와 결혼했다.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군소 교단 소속 [[목사]]이다. 남편이 없었다면 연예계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남편이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바쁜 촬영 스케줄에도 아침마다 남편에게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주기도 한다고. 목회자의 사모는 삶의 운신에 제약이 많이 생기는 편인데, 남편이 연예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한다.
*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을 연기한 이후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인 [[토미에]]와 닮았다는 얘기가 나오곤 한다.
* 드라마 《[[슈퍼대디 열]]》 과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각각 폭탄주와 소맥을 제조하는 장면의 생활 연기가 주목받았다. 실제로 이유리는 주당이었으나 술을 끊었다고 한다. 이유는 깨작깨작 마시기 싫어서.
- 진격의 거인/96화 . . . . 24회 일치
* 라이너가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애니 레온하트]]와 [[베르톨트 후버]]가 뒤따라와 합류, 애니는 라이너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 마르셀 없이 시작된 침투 작전. 여성형 거인이 무지성 거인들을 유인한 뒤 초대형 거인이 벽을 파괴, 갑옷의 거인은 대기하며 임무를 마친 애니와 베르톨트를 보호.
라이너는 그 장면으로부터, 현실로 부터 달아났다. 영웅이 되겠다던 맹세로부터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뻥 뚫린 벌판을 향해 그저 달리던 그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베르톨트 후버]]도, [[애니 레온하트]]도 없었다. 섬의 악마들도 없고 거인들도 없었다. 라이너는 혼자였다. 마르셀은? 죽었다. 그가 두고 오려고 했던 현실은 한치의 거리도 없이 따라와 있었다. 무서운 고통이었다. 라이너가 머리를 감싸며 엎드렸다. 절규가 터져나오지 않고 목구멍에서 멤돌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같이 잡아먹혔을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여전히 머리 속이 새하얗다. 막연히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오늘 여기서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였다. 거인의 이빨 대신 누군가의 매서운 발차기가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고통보다도 놀람 때문에 눈을 들어보니 달리느라 파김치가 된 애니와 베르톨트가 도착해 있었다. 애니는 아직 라이너를 팰 정도의 기력은 있었지만 베르톨트는 그대로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애니가 인사대신 그렇게 말했다. 물론 할 말이 그거 뿐이진 않았다. 방금 마르셀을 먹은 거인을 붙잡아 둬야 했다. 그랬다면 턱의 거인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라이너와 베르톨트가 도망가자 애니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같은 방향으로 쉴 새 없이 뛰었다. 그들 탓이다. 애니는 그렇게 질책한 뒤에야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 애니는 라이너에게 등을 돌리며 돌아가자고 했다. 라이너는 이해하지 못했다. 애니는 마르셀을 먹은 거인을 찾아서, 턱의 거인을 탈환해 돌아가자고 했다. 지금쯤 인간으로 돌아와 있을 터였다.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겠지. 지휘관인 마르셀을 잃은 이상 작전의 속행은 불가능하고, 턱의 거인이라도 되찾아 가야했다.
정말 애니와 베르톨트는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런 확신에 근거가 있냐고 라이너가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현실은 아팠다. 라이너는 거길 계속 파고들었다. 턱을 회수한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 넓은 섬을 헤매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녀석이 턱을 손에 넣었다면 더 빠르고 잽쌀 것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있을까? 속도에서 턱에 비할 수 있는건 피크의 차력의 거인 뿐. 베르톨트가 설사 힘을 얻었다 해도 바로 거인을 쓸 순 없을 거라 지적했다. 라이너는 다시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그 말을 한 베르톨트 자신은 처음부터 초대형 거인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같은 케이스가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턱의 거인을 회수하지 못한 채 탈진하기라도 하면, 그래서 또다시 무지성 거인에게 누군가 먹힌다면 그 실책은 몇 배로 불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미래는 뻔하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뭔가 "실적"이 필요하다. "시조의 거인"의 획득 말이다.
* 마르셀이 없어도 그들이 할 일은 별로 변한게 없었다. 다른 점은 턱의 거인과 교대로 수행하기로 했던 일을 여성형 거인이 혼자 하는 것이었다. 애니는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여성형 거인의 목에 매달고 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무지성 거인들을 불러모았다. 작전은 이랬다. 애니와 마르셀이 무지성 거인들을 이끌고 목표, 팔라디 섬의 벽 "윌 마리아"로 향한다. 지금은 애니 혼자서. 벽에 도착하면 라이너는 갑옷으로 변해 안전지대를 형성하고 베르톨트가 나선다. 베르톨트가 벽을 파괴하고 무지성 거인들이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게 할 것이다. 그 혼란을 틈 타 주민들 난민으로 위장해 잠입, 벽 안의 왕 플리츠 대왕을 염탐하고 시조의 거인에 대한 단서를 수집한다.
혼자서 거인들을 몰이하고 있는 애니의 체력은 한계였다. 라이너는 그래도 작전을 강행했다. 공언한 대로 마르셀을 대신해 지휘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거인들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는데 아직도 벽은 보이지 않았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지평선 위로 하얀 벽이 보였다. 이제 교대할 시간이다.
* 애니가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한 덕에 예상보다 많은 무지성 거인이 몰려왔다. 라이너는 갑옷의 거인으로 변해 거인화를 푼 애니를 보호했다. 그리고 베르톨트를 벽 앞에 내려주었다. 이제 베르톨트의 차례다. 벽을 부수고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처음 마주한 벽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기가 약한 베르톨트는 금방 "내가 이런걸 파괴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다. 그의 눈 앞에 있는건 윌 마리아의 본체가 아니라 미끼 구역의 장벽, 방어선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그에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행은 두 개의 벽을 전부 돌파할 수 잇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무지성 거인들이 산사태처럼 쏟아져오고 있었다. 여기서 벽을 파괴하지 못하면 작전은 시작도 못한다. 일행은 벽과 무지성 거인 사이에 끼어 죽을 것이다.
* 사정은 몰랐지만 베르톨트는 위기를 넘겼다. 갑옷의 거인이 베르톨트를 낚아채고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대형의 거대한 몸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수챗구멍으로 물이 빠지는 것처럼 무지성 거인들이 흘러들어갔다. 라이너는 벽 위에 베르톨트를 내려놓고 탈진한 애니를 맡겼다. 그리고 벽 너머로 내려갔다. 자신의 차례였다. 벽 밑은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이 지옥을 좀 더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전하자, 갑옷의 거인이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어머니의 바람을 이루어주고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건 거짓된 희망이다. 어머니의 꿈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은 선택 받을 리가 없는 전사에 불과했고 원래는 오늘 죽었어야 했다. 마르셀이 아니었다면.
* 애니는 임시로 마련된 난민 캠프에서 눈을 떴다. 어느 건물의 로비부분인 것 같았다. 오와 열이 맞춰져 있는 침구 위였다. 윌 마리아는 파괴됐다. 거인의 점심부페가 된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도망쳤고 일행은 성공적으로 그 틈에 끼었다. 세 아이는 부모 잃은 불쌍한 고아들이 되어 캠프에 자리를 받았다. 애니의 곁을 베르톨트와 라이너가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깨어나자 라이너가 윌 로제 안이라고 알렸다. 작전의 1단계가 성공했다. 자축은 없었다. 대신 라이너는 두 사람, 아니 세 사람과 함께 새로운 결의를 다졌다.
* 라이너 일행은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구제 조치를 받았다. 난민들은 공동농장으로 보내졌다. 라이너 일행은 어떤 노인과 함께였다. 그 노인은 곧잘 자기 고향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가 살던 마을은 윌 마리아 남동쪽 산의 정말 작은 마을. 지도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산간마을이었기에 벽이 파괴되고 재앙이 내려와도 거기까지 알리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여느 때와 달리 가축들이 날뛰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땅울림이 계쇡되던 아침. 무심코 창문을 열었을 때, 사람을 앞지른 그 녀석들이 모든 상황을 명료하게 알렸다. 거인들. 노인이 기억하는건 거기서 말을 타고 도망쳤다는 것 뿐이었다. 거기에 딱 라이너 또래의 아이들 셋이 남아 있었다는 건 나중에 생각났다. 어쩌면 라이너 일행이 그 일의 죄책감을 자극하는지도 몰랐다.
* 2년의 세월이 바람 같이 흘러가는 동안 알아낸 건 별로 없었다. 섬에 오기 전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라이너와 베르톨트가 개간 작업이 한창일 때 애니가 찾아왔다. 얼마 전까지 숲이었던 땅은 급하게 벌목되고 밑둥만 남은 나무들이 잔뜩 있었다. 그걸 뿌리채 들어내는건 젊고 힘있는 라이너와 베르톨트의 몫이었다. 둘이 작업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막 생겨난 밭에서 일하고 있었고, 애니가 접근해서 "진짜 일"얘기를 시작해도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다.
베르톨트는 현 프리츠 왕가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어쨌든 진짜 왕가와 교류하고 있을 테니 근처에서 기회를 엿보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방법. 애니는 고용인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나 자신이 그 집안의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베르톨트가 정색하며 그런건 안 된다고 외쳤다. 하지만 애니도 처음부터 그런 방법이 통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조사로는 현 프리츠 왕가와 위정자들은 "더럽혀진 피"를 기피했다. 자신들이 유미르의 백성들이 아니기 때문에 권력을 유지하는 만큼, 섣부르게 엘디아인과 피를 섞어 그 권리를 잃는 걸 두려워했다. 벽이 파괴된 이후에는 아예 엘디아인은 고용인으로도 두지 않는 등 경계를 강화했다. 결국 사용인이든 유혹이든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 게다가 애니는 자신에겐 그렇게 유혹할 매력도 없다고 자조했다. 베르톨트가 그렇지 않다고 정색했으나 그 의미까지는 파악하지 못했고.
해결책은 라이너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2년 동안 몰라보게 든든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마르셀 같이. 몸은 다부져졌고 징징거리지도 않았으며 항상 냉정했다. 베르톨트와 애니가 별 건설성 없는 이야기나 주고 받는 동안 어느 새 해답을 찾아냈다.
라이너는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갔다. 윌 마리아를 파괴했지만 진짜 왕은 움직이지 않았다. "타이버 가"에서 나온 정보가 정확하다면 벽의 왕은 "부전의 맹세"에 묶여 있다. 애니가 맞장구치며 "그러니 바로 결판을 내자"고 말했다. 라이너도 무슨 말인지 안다. 윌 로제와 윌 시나까지 전부 파괴하는 것. 그래서 벽의 왕을 끌어내자는 것. 하지만 그 방법은 애초에 틀렸다. 그런 식으로 시조의 거인을 끌어낸다면 전혀 승산이 없다. 그 시조의 거인이 한 번 소리치는 걸로 모든 것이 뒤집힐 것이다. 거인을 조종하는 힘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할 것이고, 그 분노의 반격은 섬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우리에게 간섭하면 벽에 숨은 몇 천만의 거인이 지상을 전부 평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프리츠 왕이 대륙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
키스의 윽박에 라이너가 대답할 때 옆에는 베르톨트와 엘런 예거, [[장 키르슈타인]]이 있었다. 아직가지는 여전히, 한참 뒤까지 미처 몰랐던 세 번째 마주침.
- 페어리 테일/545화 . . . . 24회 일치
* [[그레이 풀버스터]]과 [[쥬비아 록서]]는 커플 지위를 확립,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도 공식 커플화.
* 루시는 새삼 지난 여정들이 떠오르고 감격, 나츠와 해피가 있어서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고백한다.
* 페어리 테일 길드 전원, 루시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바깥이든 수상식장이든 새기 마련. 자기네 길드에서 하던 대로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흥청망청 마시고 있다. 루시는 파티에 부르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지나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런 건 무리"라며 시원스럽게 약속을 어긴다. 사실 떠드는 정도로 그치면 별 일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기행이 문제. [[가질 레드폭스]]는 파티장의 식기를 "고급철"이라며 뜯어먹는데 사실 [[팬서 리리]]의 말에 따르면 이건 철 조차 아니다. 나츠는 정장을 갖춰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혼자 일상복으로 와있고, 그걸 지적하는 [[그레이 풀버스터]]는 또 어느 순간에 탈의를 자행하고 팬티바람이다. 이 문제로 또 시비가 붙자 [[엘자 스칼렛]]이 두들겨 패서 얌전히 만들고 [[쥬비아 록서]]는 취해서 그레이 대신 벗겠다고 탈의쇼에 돌입. 루시를 위한 파티가 개판으로 치닫는다.
* 루시는 전쟁 이후 틈틈히 글을 계속 썼다. 그렇게 해서 적은 "이리스의 모험"은 썩 많이 팔린 건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 신인상까지 수상하며 꿈 중에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안나 하트필리아]]도 소식을 듣고 축하하러 와주었다. 그녀는 아직 현대에 남아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중. 지금도 종종 루시는 만나러 가곤 하며 오늘도 선조이자 선배 작가로서 조언을 해주었다.
* 웬디는 여전히 [[샤를(페어리 테일)|샤를]]과 함께 지내며 종종 라미아 스케일을 방문하고 있다. 본인은 딱히 하고 싶어하진 않지만 아이돌 노릇도 계속 하는 중이다. 올해도 [[셰리아 브렌디]]와 감사제에서 공연했다. 그보다 반가운 소식은 셰리아가 조금씩 마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웬디는 그런 소식을 빠짐없이 루시에게 말하곤 했다.
* 다른 길드들은 대체로 전쟁 전과 다를 게 없다. 세이버투스는 매년 하는 푸드 파이터 대회를 또 개최했고 또 [[미네르바 올랜드]]가 석권했다. 최종 경쟁자였던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를 압도적으로 앞지르는 스코어. 블루 페가수스는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IOY 자리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 중. 변동이 심한건 머메이드 힐. 주간 소서러의 전속 모델팀으로 발탁되면서 [[카구라 미카즈치]]가 관심도 없던 모델 일을 시작했다. 어쨌든 다들 잘 지내고 있다.
그레이는 자기가 원조 노출광인 주제에 쥬비아가 벗어대자 질색하며 바깥으로 끌고 나간다. "무슨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사실 모든 길드원이 그레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문득 그레이의 시선이 쥬비아의 허리 쯤에 남은 흉터에 닿는다. 그 전쟁의 흉터가. 서로 자신을 찌러서 생겼던 상처. 그레이가 웬디에게 부탁해서 완전히 없앨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레이도 자기가 찌른 자국이 그대로다. 쥬비아가 그걸 말하자 어쩐지 당황하며 "남자와 여자의 몸은 다르다"고 허둥댄다.
* 그레이와 쥬비아는 저런 식으로 결론이 난 셈이지만 그 말고도 신경쓰이는 관계는 더 있다.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도 한 때는 그런 관계였지만 지금은 공인된 관계가 돼서 논외. 의외로 [[렉서스 드레아]]도 혐의가 짙다. [[미라젠 스트라우스]]와는 전부터 그런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 요즘은 또 잠잠한 모양. 그래도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여동생 [[리사나 스트라우스]]와도 제법 친한 관계. [[카나 알베로나]]도 의외로 같이 마시는 사이로 소문을 뿌린 적이 있다. 이렇듯 염문설은 잔뜩 뿌리고 다녔으나 정작 어디까지 진실이고 루머인지 알 수 없는, 렉서스의 여자관계.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스테리의 영역인 데다가 신경쓰이는 방향이 다르다.
루시가 신경쓰이는 관계는 엘자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다. 그녀가 아는 것만 봐도 참 많이 엇갈렸던 인연이다. 그 엇갈림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맞물리게 되었다. 전쟁 후 피오레 왕국의 국왕 [[토마 E. 피오레]]가 [[히스이 E. 피오레]] 공주에게 왕위를 넘겼다. 선대왕이 된 토마는 은거, 여왕이 된 피오레는 알바레스 제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제라르와 그의 길드 크림 소르시엘에 한 가지 선물을 했다. 그들의 죄상을 사면하는 은사를 내린 것이다. 이 조치는 매우 뜻밖의 일로, 은사를 받은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가 말도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엔젤(페어리테일)|소라노 아그리아]]는 자신들은 어둠의 길드 출신이라 자격지심을 느낀다.
* 제라르는 "산다"는 말을 되새긴다. 전쟁 때부터, 유독 그 말을 자주 들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제라르와 크림 소르시엘이지만, 여전히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듯 하다.
* 파티가 무르익었다. 나츠와 루시는 지나가는 인파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여기 있을 수 없는 사람의 모습. 초대 마스터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모습. 해피와 샤를, 마카로프와 엘자도 눈치를 챘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그녀가 손수건을 떨어뜨리자 옆에 있던 남자가 주워주는데, 그 남자의 얼굴은... 역시 여기에 있을 수 없는 사람, [[제레프 드래그닐]]이었다.
* 그러던 루시가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뜬다. 마치 시간이 잘려나간 것처럼, 아니면 그 모든게 꿈이었던 것처럼. 일어난 루시가 서둘러 주위를 둘러본다. 틀림없이 자기 방인데... 나츠가 인사를 건네고 있다. 또 그녀의 방을 맘대로 점거 중. 이젠 놀라지 않을 때도 됐건만 루시는 여전히 적응을 못하고 있다. 어제 트로피를 받은 것도 분명히 현실. 해피가 닦는답시고 건드려서 온통 스크레치를 내놨다. 여기까지 보면 평소와 같은 폭거로 보이지만, 사실 루시가 어제 파티 중에 너무 마시고 쓰러져서 나츠와 해피가 데려다 준거였다. 돌아가지 못한 것도 루시의 책임. 주사가 엄청났다. 계속 나츠나 해피한테 달라붙는 데다 엎어달라질 않나 옷을 갈아입혀달라질 않나 끝끝내 둘을 잘 때 안는 인형마냥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해피가 이같은 일들을 들려주자 기억이 플래시백 하면서 "이제 시집가긴 틀렸다"고 자괴감에 빠진다. 하지만 지금가지 여정 중에 이정도 일이 비일비재했던 걸 보면 새삼스러운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였다. 나츠가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부터. 하루지온의 만남에서부터, 럴러바이, 가루나섬 사건, 낙원의 탑, 배틀 오브 페어리 테일의 혈투, 대 오라시온 세이스전, 이세계인 에도라스, 천랑섬, 대마투연무를 거쳐 타르타로스와 싸우고 마침내 알바레스 제국과 전쟁 통에 자신의 정체와 형 제레프 드래그닐과의 악연을 끊어내기 까지. 그리고 마룡 [[아크놀로기아]]를 쓰러뜨리고 마침내 돌아온 그.
너무나 긴 시간들이 한꺼번에 흘러넘치면서 눈물이 되었다. 루시는 이것저것 떠올라서 그렇다고 말하며 어리둥절해하는 나츠와 해피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말한 루시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난처해하는 나츠와 해피. 그러다 나츠가 루시의 팔을 붙잡았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뭔가 납득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같은 루시. 좌우간 해피와 나츠의 추진력에 이끌려 일을 하러 가게 된다. 둘은 이미 루시의 몫까지 철저하게 준비를 마쳐서 루시의 야한 속옷까지 잘 챙겨둔 참이었다.
- 하이큐/266화 . . . . 24회 일치
* [[코즈메 켄마]]가 아직 1학년이던 시절. 훈련 중에 곧잘 요령을 피우는 코즈메와 언제나 전심전력으로 임하는 [[야마모토 타케토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 봄고 2회전. 사루카와 공고는 여전히 코즈메를 소모시키는 플레이를 펼쳤고 2세트에 들어서는 처음으로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 네코마의 감독 [[네코마타 야스후미]]는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와 사루카와 공고를 칭찬하나, 꼭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라 자신하는데.
* 그의 장담처럼 네코마의 선수들은 [[쿠로오 테츠로]]를 중심으로 사루카와의 소모전에 대응책을 찾아낸다.
* 고교 1학년을 맞이한 [[코즈메 켄마]]는 빡빡한 훈련 일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교를 출발해 인근 하천을 끼고 도는 런닝 코스는 고역이었다. 강압적인 3학년들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코즈메는 그런 와중에도 좋은 구석을 찾아내곤 했다. 달리는건 싫지만 뛸 때의 풍경과 뛰면서 펼치는 공상의 나래는 조금은 좋았다. 저 강물 위로 드래곤이 거닐고 있다면, 맞은 편 건물에 자라난 담쟁이 덩쿨을 타고 오를 수 있다면. 그걸 타고 올라간 지붕 위엔 보물상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게 즐거웠다. 마음껏 상상만 펼칠 수 있다면 고된 런닝도 조금은 즐겁다. 문제는 그런 평안을 뒤흔드는 존재가 있다는 것 뿐.
코즈메 또한 스포츠맨으로서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니, 당시 네코마의 1학년들은 하나같이 별종이었던 셈이다. 그런 별종들끼리 잘 어울려서 해나가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특히 코즈메와 야마모토의 관계가 문제였다. 함께 훈련을 거듭하는 동안 둘은 극과 극의 성격 때문에 도무지 어울리질 못했다. 지나치게 스포츠맨적인 야마모토와 지나치게 스포츠맨답지 않은 코즈메, 둘은 훈련 중에도 공공연하게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태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상은 명백했다.
그런 노력이 실적으로 나오느냐 하면, 또다른 문제였다. 코즈메가 일찌감치 에이스 세터로 낙점된 데 비하면 야마모토는 낙제점이었다. 1학년들이 첫 실전에 나선 네코마 대 마루구치 연습시합. 코즈메는 안정적이고 치기 쉬운 세트를 올린다고 호평을 받으며 팀 승리에 조력했다. 반면 야마모토는 네트아웃을 남발한 데다 플레이 중 우측의 쿠로오와 부딪히기까지 하는 등 최악이었다. 쿠로오는 "첫 시합이란 그런 것"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야마모토의 조바심까지 지워주진 못했다.
* 그날 저녁. 체육관 정리 중. 코즈메는 쿠로오, 야마모토와 비품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쿠로오가 교사의 호출로 불려가면서 둘만 남게 된다. 코즈메가 문득 쿠로오의 조언을 떠올렸다. "조금은 협력할 생각도 해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언에 따라보기로 했다. 용구실을 나서던 코즈메가 야마모토에게 말을 걸었다. 어깨에서 힘을 조금 빼면 좋지 않겠냐고. 그게 상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일 거라곤 생각지 못한 채.
하지만 코즈메의 주장은 야마모토의 근성론 이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슬슬 싸움은 몸싸움으로 번지려는 조짐이었다. 야쿠 조차 너무 나갔다 싶어서 말리려고 했는데, 뜻밖의 인물이 둘의 싸움을 종결지었다. 후쿠나가였다. 진작부터 둘의 다툼을 지켜보던 그가 물 한 바가지와 애드립만으로 둘을 제압했다.
* 상대를 달리보기 시작한건 야마모토 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마모토가 투자한 근성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국대회 예선이 시작될 쯤에는 스파이커로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세터인 코즈메와 함께 "네코마의 1학년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코즈메는 단순한 세터가 아니라 팀의 사령탑, 네코마의 뇌로써 소질을 보였다. 둘의 개인적인 감정은 딱히 해소된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피차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여길 정도로 실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봄고 2일차. 코즈메는 결국 야마모토를 "토라"라고 불렀다. 사루카와의 스파이크가 쿠로오를 맞고 좌측으로 빠졌다. 코즈메의 신호에 맞춰 야마모토가 커버했다. 공은 다시 코즈메에게. 코즈메는 다시 야마모토에게 세트업. 그러나 사루카와의 블록이 빨랐다. 사루카와의 득점. 하지만 네코마 벤치에서 지적한 건 코즈메 쪽이었다. 방금 또 "귀찮음"이 발동한 걸 들킨 것이다. 오버로 올릴 수 있는 공을 언더로 올렸기 때문이다. 올리는 입장에선 오버 쪽이 조금 더 공이 드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버로 높은 지점에서 올리는 쪽이 언더에 비해 안정적이고 정확한 컨트롤이 가능했다.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인 만큼 그의 전술을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는 타입이었고 그런만큼 일반적으론 가장 포텐셜이 높은 선수를 쓰기 마련인 세터 자리에 "그렇지 않은" 선수를 기용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코즈메처럼. 네코마타 감독이 보는 세터의 절대조건은 두뇌와 센스. 그건 팀의 수비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면승부에서 그걸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지만, 조금씩 깎아내리는건 가능했다. 강고한 수비라도 조금씩 스트레스를 주고 흔드는 걸로 세터의 연약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론을 입증하듯 2세트 중반에 이르러 사루카와는 최초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반대진영의 제자와 그가 길러낸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 제자들이 자신의 방침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쿠로오의 서브. 받아낸 사루카와가 좌측에서 속공으로 나선다. 사루카와의 전략은 네코마의 벤치도 코트 위의 선수들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을 들여서 켄마를 부순다. 정말이지 네코마에게는 가장 타당한 대응책이다.
쿠로오의 리시브. 그와 동시에 코즈메와 야마모토가 뛰어든다. 가장 타당한 대응책이라면, 거기에 대한 대응책도 가장 타당한 것으로 가지고 있었다.
- 한교원 . . . . 24회 일치
--[[한국교원대학교]]와는 관계가 없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축구명문 축에 드는 [[조선대학교]]의 스카웃망에 잡히기는 했으나, 조선대에서도 우선순위로 선발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선대 축구부 쿼터가 꽉 차는 바람에 조선대 입학이 무산되었고 [[조선이공대학]]으로 입학하게 된다. 조선대와 조선이공대는 같은 재단 소속. 이를테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입단했는데 팀에 자리가 없어서 바로 위성구단인 엑셀시오르로 임대 간 [[김남일]]과 비슷한 케이스. 갓 창단한 조선이공대 축구부에서 한교원은 [[메시]]놀이를 시작한다. 2010년 [[U리그]]에서 한교원이 찍은 스탯은 20경기 출전 18골 (...)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이름을 날리게 되고 그 결과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지명된다. 조선이공대가 배출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K리거이다.
데뷔시즌인 11시즌에는 주로 최전방에서 뛰었지만 12시즌부터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 이후 본인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이라고 언급했던 [[근성]] 넘치는 플레이와 빠른 스피드, 의외성 넘치는 플레이로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시즌에는 다소 투박하지만 수비수를 제껴내는 드리블과 중앙 침투로 인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인천의 돌풍에 [[이석현(축구선수)|이석현]], [[김남일]]과 함께 가장 많이 공헌한 선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좌측은 [[남준재]]와 [[이천수]]가 돌아가면서 출전했고, 최전방의 [[디오고 아코스타]]는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때때로 아쉬움을 남겨 [[설기현]]과 로테이션 체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한교원만큼은 붙박이 우측 윙어로 공격진을 이끌었다. 이 활약 덕분에 영플레이어 상을 받을 만한 후보로도 점쳐졌지만, 최종 수상자는 [[고무열]].
2013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4년 1월 5일, K리그 최고의 윙덕후로 불리는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군대에 입대한 서상민의 뒤를 이어 7번을 달면서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인천 팬들은 전년도 [[정인환]]+[[정혁]]+[[이규로]] 세트 이적에 이어서 이번에는 [[김남일]]과 한교원을 동시에 전북에 넘겨 허탈한 감정을 갖기도 했다. 1년 후에는 [[문상윤]]마저 전북으로 넘어갔지만, 그 뒤에는 전북으로 이적하는 인천 선수가 많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김인성]], [[박세직(축구선수)|박세직]] 등이 반대로 인천으로 넘어갔다.
3월 8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그림같은 시저스 킥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 및 전북 소속으로의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그냥 시저스 킥도 아니고, 등 뒤에서 넘어오는 공을 등진 자세임에도 다리에 정확히 맞춰 넣은 초고난이도의 골. 다만 이러한 활약을 보인 것과 다르게 시즌 전반기에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팬들 사이에서는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선수였다. 그러나 월드컵 휴식기를 보낸 이후 폭발적인 적응력을 보여주면서 팀 전술에 녹아들었고, 활약도도 급상승하였다.
특유의 근성 넘치는 돌파와, 돌파 이후 이어지는 위협적인 크로스가 전북의 팀 색깔과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보고있다. 또한 공격수로서 공격포인트도 착실히 올리며 닥공축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중. 20라운드 성남과의 대결에서는 1골 1어시로 팀의 3-0 승리를 이끌어 부상으로 결장한 이동국의 빈 자리를 훌륭히 메꿨다. 11월 9일자, 리그 10골 3어시 기록 중. 본래 이동국의 백업 선수인 [[카이오]]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마지막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이승기(축구선수)|이승기]]의 어시스트를 받고 선제골을 집어넣으며 11골 3어시로 2014 시즌을 마쳤다. 이동국 다음으로 팀에서 가장 많이 골을 기록하며 매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을 인정받아 '''2014 K리그 베스트11 오른쪽 미드필더 부문을 수상'''하였다.
15시즌엔 [[이승기(축구선수)|이승기]]와 정혁이 군복무로 전력에서 이탈하기 때문에 소포모어 징크스만 잘 견뎌낸다면 전북 현대의 에이스로서 완전히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부담이 크겠지만... '''그리고 이러한 부담이 시즌 시작 후 한교원 본인에게는 부정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팀메이트인 발리슛의 제왕 [[이동국]]이 특훈이라도 시켜주는지 윙어인데도 불구하고 발리슛을 꽤 능숙하게 한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다이빙 헤딩슛을 보이는 등 공중볼 타이밍을 잘 잡는 편인듯 하다. 하지만 두번째 시즌에 들어서는 [[레오나르도]]보다 못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에게조차 스탯 사기꾼으로 판정받고 있는 와중에... 후술할 [[박대한]] 폭행 사건까지 터져서 징계를 받고 오래도록 징계로 그라운드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전북에서 '''[[이근호]]'''를 영입하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지고 말았고, 결국 시즌 내내 리그에서 1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 군 복무와 그 이후 ====
2014년 9월 초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의 A매치를 앞둔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등번호는 전북에서와 동일한 7번을 배정받았지만, [[박지성|대한민국 국대 7번]]의 의미를 생각하면 부담이 될 법도 하다. 그래도 같은 포지션의 팀 선배인 이동국과 함께 선발이 되었으니 적응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듯. 인터뷰에서도 '동국이 형만 따라다니겠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5일 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이청용]]과 교체 투입되며 A매치에 데뷔하였다.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부상당한 [[구자철]]대신 선발되어 파라과이와의 후반전에 투입되었다. 만회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린 파라과이 수비진을 손흥민과 함께 수차례 침투하며 좋은 기회들을 만들고 날카로운 슛을 때렸지만, 아쉽게 골을 넣지는 못했다.
2015 아시안 컵 이전에는 [[이청용]], [[손흥민]], [[이근호]]의 백업 정도 위상이었으나 오만 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했고 이청용이 실금 진단을 받고 대회에서 빠지면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조금 억울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창수가 반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상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선발되어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까지 출장했다.
2015년 5월 23일 친정팀인 인천전에서 수비수 [[박대한]]을 '''폭행'''하는 [[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kl/126480/127059|반칙을 저질렀다.]]--한교원투펀치-- 한번도 아니고 두번 연속으로. 첫 번째 주먹이 빗맞자 쫓아가서 주먹을 다시 날렸다. 그것도 '''중계 화면으로 방송'''되는 도중에... 게다가 겨우 전반 5분만에 있던 일이었으며 바로 퇴장을 당했다. 그의 커리어 역사상 첫 퇴장이라 한다. 이게 얼마나 어이 없는 반칙이었냐면, 스로인 상황에서 모든 선수들의 시선이 공에 집중되어있던 사이, 갑자기 한교원이 퇴장당하자 전북 선수들이 달려와 이유를 물었는데 주심이 상황을 설명해주자 아무런 항의 없이 그냥 다시 돌아갔다. 이후 카메라가 홈 팬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서포터즈들이 단체로 넋이 나간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전북구단은 베이징 궈안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명단에서 그를 제외시켰고 자체적으로 벌금 2,0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의 징계를 내렸다. 프로축구연맹은 28일 열린 상벌위에서 6경기 출정정지와 제재금 600만을 부과했다. 다이렉트 퇴장으로 인한 2경기 출장정지까지 합쳐 총 8경기 출장정지에 구단 자체징계까지 합쳐 벌금이 2,6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이다. 팬들은 한방에 1,300만원하는 주먹질이라며 혀를 찼다. 연봉의 거의 절반이 날아갔다.
세계일보에서는 야구계의 민병헌 사건과 함께 들먹이며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5/28/20150528005252.html?OutUrl=naver|솜방망이 처분]]이라고 비난했다. 수아레즈의 4개월 출장 정지에 비하면 징계가 약하다고 볼 수 있으나 수아레즈는 같은 반칙을 2번이나 해서 그런거고 경기 중 이단옆차기 날린 이청용에게 아무 징계도 안 주던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나아지긴 했다. 전북 팬들은 옛날 [[서정진]]이 그랬듯이 대표팀 다녀와서 발전할 생각은 안하고 겉멋만 들어왔다고 걱정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교원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겉멋보다는 선수 본인의 압박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성향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교원은 저돌적인 플레이 스타일과는 별개로 실제 성격은 착하지만 굉장히 여리고, 은근히 여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도 초기에 비판을 받을 때는 적응까지 좀 시간이 걸렸었고, 2015 시즌같은 경우 국가대표 승선으로 인해 과거와는 확실히 위상과 주목도가 달라졌는데 본인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다소 아쉬운 활약이 이어지자 큰 부담감을 느낀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친정팀을 만났고, 그래서 무언가를 더 해보려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인천 팬들도 한교원을 바로 비난하는 케이스도 있기는 했지만, 다수는 '어쩌다가 한교원이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간 한교원이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나도 상극인 행위를 했기 때문.[* 지금도 한교원을 한퀴아오라면서 욕으로 도배를 하는 것을 보면, 정작 사건 당사자인 인천팬은 아연실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에서 오랜 시간 뛰면서 보여준 태도와는 상반된 행동이었기 때문. 실제로 인천팬들은 한교원 선수를 성실하고 착실한 선수로 인식해왔고, 평소 행동도 거칠지 않았고, 경기장에서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 선수 프로필에 따르면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축구부한테 뺏겨서'''라고 한다, 하지만 전북현대 홈페이지에 있는 선수소개 내용들 중 좀 웃긴건 재미를 위해 창작된 것들이라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18년 전북의 전지훈련지 오키나와에서 히든풋볼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실인 것으로 확정. 다만 뺏긴 건 여자친구가 아닌 짝사랑하던 상대였다.
- 성훈(배우) . . . . 23회 일치
|| '''팬 페이지''' || [[http://m.cafe.naver.com/sunghoon83.cafe|[[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width=24]]]][* 팬 카페의 이름이 포세이돈이다. ~~예체능에서의 모습을 보면 레알 신이다. 정말 이름 잘 지은 듯.~~ 성훈이 데뷔 전 수영선수였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성훈의 일본 팬클럽의 이름은 머메이드 재팬이라고 한다.] ||
참고로 예체능에서의 돌고래로 빙의한 듯한 활약 덕분에, 수영 레슨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연예인은 부업으로~~ 참고로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본인은 운동을 싫어하는 듯. 수영선수 & 강사 경력 덕분인지, 예체능이나 각종 인터뷰에서 말을 상당히 조리 있게 잘하는 편이다. 예체능에서도 수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때나, 멤버들의 훈련을 도와줄 때의 모습을 보면, 긴 설명도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술술 하는 등 말재주가 좋은 듯.
[[2017년]] [[7월 7일]] 방영분 [[나 혼자 산다]] 무지개 라이브에 출연했다. 자취 생활은 말 그대로...[[건어물녀|건어물남]]. 하는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그리고 오덕 기질이 보이는데, 인터뷰 영상을 보면 [[토니토니 쵸파]] 일러스트와 퍼즐, 케로로봇 프라모델, [[진격의 거인]] 일러스트, [[로이 머스탱]] 피규어 등이 내비쳤다. 나 혼자 산다 인터뷰에서 본인은 관심도 없었는데 팬미팅때 원피스라는 애니가 좋다라고 한적이 있는데 그후 팬들이 퍼즐, 장난감을 보내줬다고 말했다. 즉 본인이 산게 아니라 팬의 선물인 것. ~~방송 보신 분들은 앞으로 [[콘푸로스트|호랑이 기운 씨리얼]]을 보내줄듯~~ 이후로도 해당 방송에 수 차례 출연하였으며 그 때마다 그의 굉장한 먹성이 화제가 된다. 선수 출신답게 압도적인 기세로 엄청난 양을 단 시간 내 먹어치우기 때문. 다른 고정 멤버들에 비하여 출연 빈도가 높지 않음에도 화제성이 높은 것은 모두 이 때문. 덕분에 함께 출연한 양치승 트레이너까지 세간의 관심을 사고있다.
* 6인실 : 김민수 역. 안전보건공단에서 제작한 드라마로, 6인실 병실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안전의식 고취와 산재사고의 위험성을 그려냈다. 연기력 논란 등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라 배우 본인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고 이때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로 김민수를 꼽을 정도로 이 드라마에 애정이 많은 듯 하다.
* [[아이가 다섯]] : 김상민 역. 극 중에서 프로 골퍼로 나오는데 데뷔 이래 재벌 역만 하다가 예체능 출연 이후 죄다 운동선수 역할만 맡고 있다. ~~정작 전직이었던 수영선수 역은 아직까진 없다.~~ 이 드라마에서 신기생뎐 때 여주인 [[임수향]]과 다시 같은 드라마를 찍게 되었지만 그녀와 엮이는 건 별로 없고,(일단 아주 안엮이는건 아니지만, 스토리상 이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커플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연태 역을 맡고 있는 [[신혜선]]과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 드라마의 메인 커플인 [[안재욱]]-[[소유진]]보다도 반응이 좋다. 신혜선과 어색하지만 풋풋하고 달달한 로맨스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인생 배역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오로지 연태만 바라보는 직진남 상민과 눈치가 없어 얼떨결에 단호박녀가 된 연태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임수향과는 시숙-제수의 관계가 되었다(...)
||<|2> 2018 || 《[[돌아와요 부산항애|돌아와요 부산항애]]》 || 김태성 || 2018. 01. 17. 개봉 ||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반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반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절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반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반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태,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남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남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6> 2016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455회 2016년 06월 30일 방송 우리 무슨 사이예요? 편. 주말드라마 [[아이가 다섯]]이 종영되기전 신혜선과 같이 출연 했는데 극 중 너무 몰입이 되어있어서 그런지(...) 열애설이 돌기도 했다.~~극 중 몰입을 위해 촬영 초반에는 태민(극 중 동생, 안우연)과는 친하게, 연태(신혜선)와는 쌩(?)했다고 한다~~. [[검사외전]]속 [[강동원]]과 [[아이가 다섯]]속 성훈중 누가 더 키스를 잘하냐고 신혜선에게 물었는데 성훈이라고 답했다.] ||<|5> 게스트 ||
|| [[tvN]] || 《[[내 귀에 캔디]]》[* 시즌 1. 9회 10회. 2016년 10월 20일, 27일 방송. 태평양급 어깨를 자랑하며 수영을 하는 남성미를 한껏 뽐내다가도 캔디와의 통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 같은 모습들은 성훈의 재발견이었다는 반응. 특히 그는 캔디 ‘분홍’을 위해 연을 날려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세심한 사랑꾼의 면모도 보였다. 캔디 '분홍'([[허영지]])이 과거 일반인 첫사랑이 '분홍'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고 하자 성훈은 바로 분노하기도 했다(...) ~~역쉬 사랑꾼, 금사빠(헉)~~] ||
|| [[tvN]] & [[O'live]] || 《요상한 식당》[* 2회 2017년 03월 20일 방송. 성훈은 중식대가 [[여경래]] 셰프와 한 팀을 이뤄 쏭수구이위와 부용게살 요리에 도전했다.~~서장훈이 "도시적인 이미지에 너무 잘 생겼는데 의외로 허당미가 있다"고~~] ||
|| [[SBS]] || 《[[정글의 법칙]]》[* 와일드 뉴질랜드편. 2017년 05월 19일~2017년 06월 09일방송. 섭씨 11도 정도 차가운 물 속을 병만 족장을 업고 건너고 집을 짓기 위해 톱질을 하는 등 촬영 내내 상남자다운 면모를 보였다는 후문. ] ||
|| [[MBC]] || 《[[나 혼자 산다]]》 || 무지개 라이브[* 212회 2017년07월07일방송. 신한류스타의 이중생활, 똥밍아웃, 시리얼먹방, [[건어물녀|건어물남]], 백수삼촌 등극, 인어왕자, [[올드보이(2003)|올드보이]]->만찢남, 조각몸매 등.. 성훈의 재발견.~~다이어트 위해 수영장에서 50m를 잠영으로(엄청난 폐활량)~~시청률 두자리수 ~~2부 수도권기준10.1%~~달성... 214회 여름 나래 학교1편~~정모~~ 2017년07월21일방송. 남성미~~어깨 깡패, 비율 깡패~~ 풀장착하고 웨이크 보드를 탔다.~~멋짐 풀풀~~ 다른 출연자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이시언]]웨이크 보드 타기 성공..~~을 했고 장비 셋팅도 도와줬다.~~웨이크 보드 강사를 해도 될듯.~~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3%...215회 여름 나래 학교2편 2017년07월28일방송. 1시간씩 전복을 꼼꼼히 씻는가 하면 산낙지를 ~~성난~~팔근육으로 다져 낙지 탕탕이를 만들었다. 식사후 [[박나래]]팀과 [[한혜진(모델)|한혜진]]팀으로 나누어 퀴즈를 푸는데 성훈이 '나 학교 안 다녔어'라고해 미취학 성훈이 됐다.~~헉~~ 벌칙으로 폐교 화장실에서 인증샷을 찍는데 그와중에 얼짱각도 맞춰 꽃미모 셀카를 찍고 나와 등뒤에서 느껴진 인기척때문에 주저앉아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5얼 등극. 헉~~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0.2%... 217회 2017년08월11일방송. 실내서핑장을 찾은 성훈은 두번째 시도만에 중심잡는데 성공..이후 만화방에가서 짜장라면, 김치볶음밥, 라면, 스*마요볶음밥, 핫도그, 미숫가루를 먹다가 관장님께 들켜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9% 전국기준11.0%] ||
|| 2018 || [[MBC]] || 《[[나 혼자 산다]]》 || 무지개 라이브[* 229회 2018년01월19일방송. 성훈은 [[강민혁(가수)|강민혁]], 호랑이 관장님, 트리에너와 함께 고기 15팩을 4시간동안 쉬지 않고 흡입했다. 성훈은 2년만에 얻은 열흘간의 휴식으로 외모를 방치해 임꺽정 외모로 나타나 시선을 강탈했다.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13% 전국기준12.3%] ||
||영화 '돌아와요 부산항애' 촬영지 투어||
* 맡는 역할마다 어째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캐릭터가 많다. 거기다 입양아 역도 좀 있는 편이다. 가족의 탄생, 오 마이 비너스 둘 다 미국으로 입양된 역할(...) 아이가 다섯은 부모님이 있기는 한데 떨어져 사는 설정이라 절반 가량이 지났음에도 부모님의 아직 얼굴조차 안나오다가 드디어 40회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근데 이번에는 엄마가 [[박해미|이 분]]... 게다가 엄마는 상민과 태민을 차별하며 태민을 편애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이번에도.....?-- [[애타는 로맨스]]에서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혼 가정의 재벌 2세. ~~이 쯤 되면 그냥 팔자인 듯~~
* 배우 자체가 진지한 분위기의 정극이나 사극보다는 밝고 가벼운 로코나 일상물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평이 많다. 특이하게도 이는 역대 임성한이 발탁한 남자배우들과는 확연한 차이점.[* [[김성민(1973)|김성민]], [[이태곤]], [[오창석(배우)|오창석]], [[서하준(배우)|서하준]], [[강은탁]] 등 성훈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배우들이 정극을 위주로 활동하는 중. 이는 신기생뎐에서 상대역이었던 임수향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마찬가지로 임 작가가 발탁한 여배우들도 임수향을 제외하고 [[이다해]], [[윤정희]], [[전소민]], [[박하나]] 등등이 주로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활동한다.~~2017년 4월부터 [[전소민]]이 [[런닝맨]]에 고정이 되면서 임 작가가 발탁한 배우들중 다른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훈과 임수향이 예외적인 케이스. 거기다 위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임성한이 발탁한 남자배우들이 이후 좀처럼 막장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성훈만 예외적으로 정극, 사극, 느와르, 로코, 소설 원작 작품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 수영선수로 활동할 때 워낙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만큼 운동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래도 배우인만큼 체중관리를 해야하기에 안할 수는 없어서 예전부터 다녔던 헬스장 관장님에게 1:1로 개인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그리고 [[나 혼자 산다]]에서 [[콘푸로스트|호랑이 기운]]때문에 이 관장님을 바보로 만들었다~~ 이 관장님은 그야말로 성훈의 저승사자. 특히 만화방에서 군것질하며 만화를 보던 성훈의 뒤에서 튀어나와 먹은걸로 왕창 혼내고 결국 헬스장으로 연행해가는 장면이 압권. 가장 최근 출연인 248회에선 관장님에게 수영을 가르치면서 그간 당해온걸 돌려줬다. 힘 빼라고 물 볼기를 때리고 강제 견인하고....
- 은혼/620화 . . . . 23회 일치
* 다키니는 지휘관을 잃자 혼란에 빠져 [[츠쿠요]]의 백화와 힘을 합친 가부키쵸 주민들의 반격에 격퇴된다.
* 원래 츠쿠요는 요시와라를 지켜야 한다는 중임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가 [[히노와]], [[세이타]]의 설득으로 참전을 결정한다.
* [[야규 큐베]]와 츠쿠요는 버리고 살았던 "여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적진을 누진다.
* 설상가상으로 신라의 부대가 옥상에 있던 [[시무라 타에]]와 스마일 아가씨들을 제압, 인질로 삼는다.
*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츠쿠요]]가 백화와 함께 착지한다.
>모처럼 요시와라 변두리에서 여기까지 놀러왔더니.
>요시와라에서는 너무 빠른 남자도 너무 느린 남자도 미움 받는다고.
* 다키니의 병사들은 오우가이가 쓰러진걸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들은 오우가이가 이런 자들에게 쓰러졌다는걸 믿지 못한다. 긴토키는 이제와서 이들을 "여자나 아이들"이라 부를 생각은 없지 않냐고 빈정거린다.
* 요시와라에게 전쟁의 여파는 밀어닥치고 있었다. 야왕 [[호우센]] 이래 최초로 요시와라는 천장을 닫고 전장을 피해 숨어든 피난민들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히노와]]는 여기도 언제까지 버틸지 장담하지 못한다. 츠쿠요는 천장만이 아니라 요시와라의 해(히노와)와 달(츠쿠요)가 지키고 있다며 끝까지 요시와라를 지키겠다는 의사를 보이지만 히노와는 그녀가 가부키쵸의 항전에 합류하고 싶어하는걸 눈치채고 있다.
츠쿠요는 백화 부대의 대장이란 책무를 져버릴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히노와는 그녀가 이미 할 만큼 했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도 좋다고 설득한다. [[세이타]] 또한 갑옷을 걸치고 백화 부대원들과 함께 나타나 자신들이 요시와라를 꼭 지킬 테니 츠쿠요는 바람대로 하라고 거든다. 둘의 설득으로 마음이 움직인 츠쿠요는 자신을 따르는 백화 부대원들을 이끌로 가부키쵸로 향한다. 히노와는 세이타에게 "이렇게까지 거창한 핑계를 대주지 않으면 반한 남자를 만나러 가지도 못한다"고 농담한다.
하지만 큐베는 "누군가 옆에 있고 싶다, 그런 이유로 우린 여기에 모인 것"이라고 문제될게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싸우는 남자와 여자 모두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있으며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세계를 구하는 거대한 힘이 된다. 그들은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걸로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강대한 적과 맞서는 여자들과 그리고 츠쿠요를 보고 큐베는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 것도 나쁘지 않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도 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도.
* 츠쿠요는 이 싸움이 끝나면 "사신유녀"와 "야규가 차기당주"가 사이좋게 "브띠끄"에 가지 않겠냐고 하는데 큐베는 "그런것 보다 핫케이크를 먹으러 가고 싶다"고 대대답한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우가이의 철괴가 큐베를 덮친다.
* 소타츠의 뒤에서 [[오토세]]여사가 나타난다. 게다가 옆에는 이 모든 사태를 만든 장본인 [[히라가 겐가이]] 본인이 따라와 있는데.
- 청도군 . . . . 23회 일치
[[마스코트]] 카우&'''붕가'''(COW&BUNGA). --[[붕가붕가]]-- ~~[[코와붕가|카우와붕가]]~~ 농경문화의 대표적인 소를 통해 협동과 상부상조 하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보다는 [[소]]싸움의 고장인 청도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카우는 암소를 뜻하지만 붕가는 왜 하필 붕가인지 알게 해주는 설명은 일체 없으며 왜 이렇게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군청 직원 중에 [[닌자 거북이]]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붕가붕가|이상한 거 생각하지 말자]].~~
남북과 동서의 교통 인프라가 크게 차이나는 기이한 곳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분지 지형이긴 하지만 동서쪽으로 지형이 남북 지형보다 험한 편이다. 남북으로는 [[경부선]], [[대구부산고속도로]], [[25번 국도]]가 [[밀양시]]ㆍ[[경산시]]로 향하지만 동서로는 [[20번 국도]]가 [[경주시]]ㆍ[[창녕군]](그것도 2차로로 좁은 데다 선형도 좋지 않다)으로 향하며 [[30번 지방도]]가 이서면에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팔조령 터널을 넘어간다.], 902번 지방도가 각북면에서 [[가창면]] 정대리[* 그것도 구배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헐티재를 넘어가야 한다.]로 향한다. [[창녕군]]으로 가려면 그나마 낫지만, [[달성군]]([[현풍면]] 방면)으로 가려면 [[창녕군]] 성산면을 거쳐 [[유가면]]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각면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비티재를 넘어 고암면 방리에서 1034번 지방도를 타고 성산면을 거쳐 등지교차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 이래저래 골 때린다. 더 난감한 것은 청도에서 [[달성군]]([[현풍시외버스터미널]])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전무하다. 청도군 또한 산이 만만찮게 많은 고장이니 결과적으로 이런 식이긴 하지만 수요에서부터 벌써 넘사벽이다. 게다가 청도군은 동서로 긴 지형이고 산서(풍각, 각북, 각남)과 산동(매전, 운문, 금천)으로 나뉘는데 중심지인 청도읍과 화양읍이 산서와 한 분지에 속하고 산동과는 산이 가로막은 형세라 같은 행정구역이면서도 산동으로의 교통연결은 사실상 2차선 [[20번 국도]] 뿐이다. 그마저도 선형이 좋지 않아 돌아서 가는 편. 언제부턴가 4차선+선형개선 공사중이다.
[[청도버스]]에서 운영 중인 농어촌버스인 [[청도 버스 0|0번]]이 풍각정류장에서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 신천4동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동대구터미널]]까지 1일 12회 운행하지만, 실제로는 시외버스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청도에서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구]], 경산, 밀양, 울산, 경주, 포항 등 7개 도시밖에 없다. [[경상남도]] [[창녕군]]과도 인접해 있지만,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창녕군]] 방면 시외버스가 없어 풍각에서 환승해야 한다. 7개 도시를 가는 것도 경주 경유 포항행과 울산행은 1일 3회 운행이다. 앞서 나와 있듯이 애초 산동 쪽으로 도로 연결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가 봤자 경주 시내까진 한참 걸리기도 하고... 청도군, 특히 청도읍과 산서 지역은 행정구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통, 물류, 관광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윗동네 대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눈물난다.
[[가지산]], [[운문사]], 운문호, 청도석빙고, 청도읍성, 와인터널 등의 관광지가 있다.
경산시와 밀양시에 가려져 '청도'라고 하면 일단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상당수 있으나, '''[[소싸움]]'''하면 대부분 청도 소싸움대회를 떠올릴 정도로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고장이다. 한창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인 1999년에 개최되어 매년 3월 말쯤에 이서면 서원천 옆에 가설 경기장을 지어놓고 개최되어 지금은 문화관광부가 10대 지역문화관광축제로 선정할 정도의 네임드로 성장했다.
2009년에는 화양읍 삼신리에 [[청도 소싸움 경기장]](그것도 돔형!)을 지어놓고 거기서 경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싸움]] 특유의 전통적인 풍취가 사라져서 까는 사람도 있지만 길(25번 국도) 건너가 용암온천이니.(...) --같이 즐기라고 대놓고 밀어줬다-- 한국우사회와 청도지역공사간 마찰로 휴무를 하기도 했으나 2014년 12월에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3602&yy=2014#axzz3Lwc9vpcz|다시 개장하였다]].
매년 일정기간 청도 소싸움 축제를 하고 그외엔 주말에만 보통 경기를 여는데 입장료는 공짜고 대신 소싸움에 배팅을 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용암웰빙스파'와 '[[프로방스#s-2.3|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가 있어 온천과 빛축제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꽤 많다. 때문인지 주변에 [[펜션]]들과 음식점들도 몰려있다.
특산물인 감으로 와인을 만드는 청도 와인터널도 가볼만하다. [[http://www.gamwine.com/company/main.php|홈피]]. 경부선 철도로 쓰던 터널을 개조한 와인 터널로 안에는 감 와인이 숙성되어 가고 있는데, 판매도 하고 시음도 가능하다. 이 감와인은 덜익은 쓴 감을 사용해 주조한 것으로, 특유의 독특한 풍미로 유명하다. 첫맛은 쓴데 입에 조금만 머금고 있으면 단맛이 돈다. 이곳에서 감으로 만든 와인과 초콜릿 등을 맛볼 수 있으며, 살 수도 있다. 과거 SBS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청도 소싸움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와인터널과 용암온천, 프로방스, 소싸움을 한꺼번에 즐기러 오는 경우도 많다. --이거 노리고 소싸움 경기장까지 옮긴걸테지만--
그 외에 [[복숭아]]도 유명했으나, 복숭아 농장이 점차 줄어들어서 지금은 현지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아졌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청도 반시와 청도 한재 [[미나리]]가 등록되어 있다.
--[[경상도]]답게-- [[경상도 사투리]]. 단, 지리상으로는 [[경상북도]]에 속해 있으나 경북의 최남단에 위치한데다 [[경상남도]]와 접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경북 방언에 비교해 볼 때 억양과 강세가 그것보다 좀 더 뒤에 있는 편이다. 경남 방언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경북 방언을 구사한다. 쉽게 비유해서 [[안동시]]에 사는 사람이 이 곳 청도군에 놀러왔을 때 꼭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카더라]] 식. 그렇다고 해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사람들이 듣고 경남권 억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억양만 들어도 경상도 사람들은 경북/경남권인 거 [[악센트]]를 들어보면 딱 알 수가 있다. 2의 E승, 2의 2승, E의 E승, E의 2승의 위엄.(...) 엄밀히는 [[대구광역시]]와 더 가까운 형태의 방언이지만, 저런 [[이유]]로 딱히 다른 경북 지역만큼 경남 방언과의 차이를 느껴 어색해하지는 않는 면이 있다. 물론 방언 특징상 사람마다 편차는 큰 편.
[[13대 총선|13대]] 이후 [[국회의원]] 당선자는 다음과 같다. 인구가 적은 지역 특성상 이웃 경산시와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았으나, [[20대 총선]]부터는 경산시와 분리되어 영천시와 공동선거구를 구성하였다.
* ~~[[칭다오|青岛 / Qingdao]]~~ [[한국어]] 발음이 두 곳 모두 '청도'로 동일하고, [[중국어]]로도 성조에서 차이가 있지만(岛 3성, 道 4성) 역시 '칭다오'로 동일하다. 이 때문에 칭다오와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개그가 있다. 그런데 칭다오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는 윗동네 [[대구광역시]]다.
- 최동수 (야구인) . . . . 23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3년]] [[3월 31일]] <br /> [[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 [[SK 와이번스]] (2010년 ~ 2011년)
===[[SK 와이번스]] 시절===
[[2010년]] 시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그는 그 해 [[7월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내야수]]가 필요하였던 [[SK 와이번스]]와 [[투수]]가 필요하였던 [[LG 트윈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는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LG 트윈스]]는 [[SK 와이번스]]로부터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 [[김선규 (야구 선수)|김선규]], [[포수]] [[윤요섭]]을 받았다. 그 때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3연전 중이어서, 트레이드 된 선수들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7월 28일]] 당일, 트레이드 당사자인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그는 같이 이적한 [[안치용]]과 함께 선발 출장하였고 [[권용관]]은 도중에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선수 중 [[윤요섭]]이 대타로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경기에서 그는 3점 홈런을 쳐 내는 등 4타점을 쓸어담아 맹활약하였다. 그 날 [[SK 와이번스]]는 연장전에서 [[권용관]]이 [[정성훈 (1980년)|정성훈]]의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여 패했다. 특히 그에겐 프로에서 눈을 뜨게 해 준 [[김성근 (야구인)|김성근]]과의 재회여서 더 의미가 컸으며, 2차 드래프트가 있기 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감독직에서 경질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해 시즌 후 32번을 쓰고 있었던 [[외야수]] [[박윤]]이 보류 선수에서 빠져 [[신고선수]]로 전환되자, 자신의 번호였던 '32'번을 되찾았다. [[2011년]]에는 [[박경완]]의 재활이 장기화되어서 10년 만에 그의 본업인 [[포수]]로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이후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후 [[2011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친정 팀 [[LG 트윈스]]로 1년여 만에 복귀했다. 1차 드래프트인 신인 지명회의와 2차 드래프트를 통틀어 최연장자로 지명된 선수였다. [[2013년]] 개막전 명단에 올라 시즌 개막전을 통해 2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무안타에 그친 후, [[SK 와이번스]]와의 2연전이 끝나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에는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사실상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3년]] [[10월 5일]] [[두산 베어스]]전이 끝난 후 공식 은퇴식을 가졌으며, 이 경기에서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정규 시즌 2위를 확정해,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의미있는 경기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30892 '은퇴' 최동수,'정든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 OSEN</ref>
[[2009년]] [[5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그는 프로 데뷔 15년 만에 [[투수]]로 첫 등판하였다. 이와 더불어 팀 동료이자 [[포수]]인 [[김정민 (1970년)|김정민]]은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은 역할 분담이 철저하고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KBO 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는 데뷔한 후 [[포수]]에서 [[내야수]]로 전향했고, 이 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연장 12회 초에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대량 실점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창민]]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몸에 맞는 볼|빈볼]]성 투구를 던지고 퇴장당했다. 남아 있는 [[투수]]가 선발로 등판해야 할 [[심수창]] 외에는 없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궁여지책으로 [[지명타자]]로 나선 그를 [[투수]]로 내보냈다.<ref>[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news&mode=view&no=60005 무박 2일 잠실 혈투 진기록 양산] 《시민일보》 2009년 5월 15일 9:25, 2009년 5월 16일 23:55 확인</ref><br>마운드에 오른 그는 상대 타자 [[박경완]]을 공 2개(1구 128 km, 2구 131km로 스피드 건에 찍힘)로 플라이 아웃 처리했는데, 당시 [[박경완]]은 경기 후 "차마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휘둘러서 아웃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와중에 외야에서 그의 등판을 지켜본 [[이진영]]은 "본래는 내가 등판하려 했다. 내가 아무래도 동수 형보다는 구속이 빠르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1992073 (어젯밤 이야기) 박경완 "'투수 최동수' 공 솔직히 칠 수 없더라"] 《스포츠조선》 2009년 5월 14일 10:18,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그의 공에 대해 "[[오승환]]인 줄 알았다. 돌직구를 던지더라" 라며 감탄하기도 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140203 (베이스볼 브레이크) SK-LG 대혈투…'무박 2일' 뒷담화] 《동아일보》2009년 5월 14일 8:01,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style="text-align:center"|[[LG 트윈스|LG]] / [[SK 와이번스|SK]]
|style="text-align:center"|[[SK 와이번스|SK]]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봉천초등학교 동문]][[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하이큐/246화 . . . . 23회 일치
* 봄고 1일차. 살아남는데 성공한 [[카라스노 고교]]는 역시 1회전을 돌파한 [[네코마 고교]]와 조우, 악담 섞인 격려를 나누고 헤어진다.
* 그날 밤 타나카는 카노카와 다시 만나는데 달달한 분위기가 될 뻔 하지만 [[시미즈 카요코]]를 생각하려 거절하려고 하는데
* 힘겹게 봄고 1일차를 버텨낸 [[카라스노 고교]]. 돌아가는 길에 영원한 라이벌 [[네코마 고교]]와 조우한다. 네코마 측에서 "기껏 왔는데 금방 돌아가지 않아서 잘 됐다"고 도발 섞인 축하를 하자 [[스기와라 코시]]는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고 받아친다. 이렇게 악담에 섞인 격려를 주고 받은 양팀 선수들.
* [[쿠로오 테츠로]]와 [[사와무라 다이치]]가 "내일도 열심히 살아남아 봐라"는 말을 주고 받으며 양팀이 헤어진다. 하지만 농담처럼 이런 말을 주고 받았을 뿐, 돌아선 주장들은 웃음기가 사라진다. "내일도 살아남는다"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 민박집에 도착해 보니 옆의 호화호텔로 여자 대회의 우승후보인 "여왕" 니야마 고교가 귀가 중이다. 여자부와 남자부의 차이는 있어도 저쪽은 우승 후보. 번쩍거리는 호텔로 들어가는 데서 격차를 느끼고 만다. 그러고 보니 카라스노도 여자부 쪽은 인터하이에서 우승한 시드교. 문자 그대로 "여왕" 같은 그녀들이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뜬금없이 "저 호텔 밥은 고급 뷔페"였다는 말을 꺼낸다. 조용하던 1학년들이 한순간에 술렁인다. 하지만 곧 처지를 직시한다. [[히나타 쇼요]]와 [[니시노야 유]]는 지금 민박집의 바삭바삭한 연어나 달걀말이, 밥 무한 리필도 좋다며 질보단 양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 그렇게 민박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소녀가 [[타나카 류노스케]]를 불러세운다. [[하이큐/231화|오전에]] 만났던 타나카의 지인 [[아마나이 카노카]]였다. 팀에서 잠깐 빠져나와서 타나카를 보러온 것이다. 오전에도 좀 어색해했던 타나카는 얼어서 딱딱하게 대답한다. 그녀는 카라스노의 승리를 축하하고 "열심히 해"라는 격려를 남긴채 돌아간다. 그런데 얼굴이 새빨개진게 분위기가 요상하다.
[[엔노시타 치카라]]가 이것을 놓치지 않는다. [[키노시타 히사시]]와 [[나리타 카즈히토]]는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엔노시타가 망쳤다고 원망한다. 하지만 엔노시타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썸 수준이 아니라 반응으로 보면 이미 타나카를 좋아하는게 틀림없다는 폭로를 저지른다.
* 재회를 마친 카노카는 기다리고 있던 동료와 호텔로 들어간다. 동료는 방금 전 소년이 카노카가 말하던 "류"라는걸 알고 "어디가 그렇게 좋냐"고 캐묻는다. 이미 카노카의 연애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모양이다.
카노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를 한다. 그때도 유독 큰 키 때문에 악동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었는데, 그때 도와주던 것이 타나카였다. 타나카도 악동이긴 마찬가지였는데 무슨 생각인지 "넌 키 크고 멋있으니까 허리를 똑바로 펴라"며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거기가 바로 초등학교 배구부였다. 카노카는 그때를 계기로 배구를 시작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 숙소로 돌아온 카라스노 고교.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어딘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바쁘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전국대회 첫승리를
* 밤이 찾아왔다. 사와무라는 배란다에서 난간에 기대고 있다. 왠지 [[아즈마네 아사히]]도 따라나와 나란히 난간에 기댄다. 말없이 바깥을 바라보던 사와무라는 문득 지금이라면 말해도 된다고 하는데, 그건 아즈마네가 인터하이 때 "드디어 마지막 대회구나"라고 말하던걸 막은걸 가지고 하는 소리였다. 아즈마네는 할까? 하다가 "이렇게 할 얘기가 아니구만"하면서 그만둔다. 그러더니 사와무라가 여유가 없어진걸 보고 "니가 여유가 없을 땐 오히려 내가 여유로워지는 불가사의"라며 놀린다.
히나타와 니시노야는 일찌감치 골아 떨어졌다. 특히 히나타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잠들어서 야마구치가 당황한다. 스가와라는 언제나 혈기왕성한 니시노야까지 뻗은걸 보고 "배터리가 나갔다"며 신기해하는데 엔노시타는 무리도 아니라며 다들 평소보다 훨씬 체력소모가 심하니 부상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 역시 혈기왕성한 쪽이지만, 타나카는 왠지 잠들지 못하고 바깥을 서성거리고 있다. 사실 타나카는 사와무라와 아즈마네가 배란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괜히 싱숭생숭해진 채 바깥을 기웃거리던 타나카. 그런데 그때 카노카가 또 다시 방문한다.
* 왠 청년이 나타나는데 카노카와 잘 아는 사이인지 "안에서 기다리라니까"하고 말을 걸고 있다. 타나카는 자연스럽게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미녀로 자란 카노카, 도시의 밤. 연상의 시티보이.
* 여러 선수들이 각자의 사정과 각오로 보낸 그날 밤. 사와무라처럼 서성거리는 선수도 있고 보쿠토처럼 속편히 자는 녀석도 있는가 하면 타나카처럼 이불킥을 거듭한 뜻에 해탈에 이른 이도 있다. 아무튼 다양한 형태로 지나간 하룻밤.
- 현진건 . . . . 23회 일치
=== 유년기와 수학 ===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백기만]](白基萬) ·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문학'이었다(다만 본격적인 동인지는 아니고 작문지 정도의 수준이었다고<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成城中學校)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3월에 다시 귀국하였는데<ref>일본 학자 시라카와 유타카에 의해 세이조 중학교 3학년 성적대장 일람표에서 현진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가 1917년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실제 이 학교에 재적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얼마간 대구에 머물다가 집안 몰래 형 정건이 있던 [[중화민국|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 가서 [[후장 대학]](扈江大學)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한다. 조선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여파가 상하이에까지 커져 상하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 다시 귀국하여, 당시 육군 공병 영관을 지낸 당숙 현보운(玄普運)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서울로 상경, 지금의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살았는데, 현보운은 1919년 음력 9월 10일에 사망하고 그가 호주가 되었다. 12월에 첫딸 경숙(慶淑)이 태어났으나 이듬해에 죽고 만다.
[[1920년]], 현진건은 양아버지 현보운의 동생 [[현철 (1891년)|희운]](僖運)의 소개로 11월, 문예지 『[[개벽 (잡지)|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를 개재하면서 처음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보다 앞서 현진건은 『개벽』에 번역소설 「행복」(아르치바세프 원작)과 「석죽화」(쿠르트 뮌체르 원작)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자전적 성격도 동시에 가진 것으로 알려진 「희생화」는, 그러나 당시 문예평론가 [[황석우]](黃錫禹)로부터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하등 예술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무명 산문"<ref>황석우, 「희생화와 신시를 읽고」, 『개벽』 6호, 1920. 12.</ref> 이라는 혹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1921년]] 1월에 현진건은 다시 『개벽』에 단편소설 「빈처」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문단의 호평을 받아<ref>이때의 문인들의 평가는 성해(星海)의 「憑虛君의 『貧妻』와 牧星君의 『그날밤』을 읽은 印像」(1921년 05월 01일자 『개벽』제11호), 박종화의 「文壇의 一年을 追憶하야 現狀과 作品을 槪評하노라」(1923년 1월 1일자 『개벽』제31호)에 나타나 있다.</ref> 11월에는 다시 『개벽』에 단편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하였고, [[1922년]] [[1월]]부터 [[4월]]까지 『개벽』에 중편소설 「타락자」를 발표하였다. 작품 [[술 권하는 사회]]에서 그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상을 풍자하였다.
[[1925년]] 1월, 현진건은 『개벽』에 단편 「불」을 발표하였다. 이때 그는 「시대일보」의 사회부장이 되었으나 「시대일보」가 폐간되면서 동아일보사로 전직하여야 했다. 3월 1일자 『개벽』 제57호에는 이때의 현진건의 근황에 대해 "근래에 빙허(憑虛) 군은 신문사 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더 많은 독서와 연구에 노력하겠다 한다. 늘 군은 조선의 평론계가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을 매우 분개해서 앞으로는 논문도 쓰실 작정이라고. 고마운 일이며 즐거운 일이며 마음히 든든해지는 일이다."라고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다.<ref>「文壇雜談」 1925년 3월 1일자 『개벽』제57호.</ref> 그리고 박문서관에서 그의 중편 「지새는 안개」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2월에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를 『조선문단』에 발표하고<ref>현진건이 『조선문단』에 작품을 싣기 시작한 것은 『개벽』이 점점 '계급주의 문학'을 외치는 [[카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부터였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4월과 5월에는 수필 「목도리의 복면」과 「설 때의 유쾌와 낳을 때의 고통」을 각각 기고하였다. 7월에는 「조선문단과 나」라는 기고에서 작가는 삼삼오오 짝을 짓고 당을 나누어 서로 갈라서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일인일당(一人一黨)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며, 계급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카프의 주장에 맞서 내용적 가치와 계급적 가치란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문단』에서 만든 조선문단합평회의 정기회원으로서, 10월에는 『조선문단』 신추문예(新秋文藝)에 응모한 작품들의 심사를 맡아 처음으로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29년]] 7월 8일부터 12일까지 [[신라]](新羅)의 고도였던 [[경주]](慶州)를 답사하고, 그 기행문 「고도순례 경주」를 7월 18일부터 8월 1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이 고도기행은 당초 경주뿐 아니라 [[공주]](公州)와 [[부여]](扶餘), [[평양]](平壤)까지도 계획에 넣고 있었던 것 같지만 경주 이후로 고도기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문예공론』 7월호에 단편 「신문지와 철창」을 기고하였으며, 12월에는 『신소설』에 「정조와 약가(藥價)」를 발표하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한 조선인 선수 [[손기정]](孫基禎)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에 실은 사건으로([[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해야 했으며,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5번지로 이사하여<ref>당시 부암동은 서울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5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그곳에서 땅을 빌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한편, [[1938년]] 7월 20일부터 다시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역사소설 「무영탑(無影塔)」을 연재한다.(~ 1939년 2월 7일) [[1939년]] [[7월]]에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 역사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 연재를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문예지 「문장」과 가진 인터뷰에서<ref>「침묵의 거장 현진건 씨의 문학종횡담」, 『문장』 1939년 11월. p.116~120.</ref> 현진건은 당시의 소설들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던 때에 비해) 문장이라든가 소설 만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할 만큼 진보.... 그러나 구상의 도약이 드뭅니다"라며 "동경(東京) 문단의 말기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또한 현재가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문학의 빈곤시대가 아닌가 싶다며 "문은 실상 기(氣)이며 기가 없으면 아무리 진주같다 해도 곧 사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같은 잡지에 또 한 번 「역사소설의 제(諸)문제」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인용문|사실을 위한 소설이 아니오 소설을 위한 사실인 이상 그 창작가는 제2의 경우를 더욱 중시하여야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주제를 작정한 다음에 그 소재를 취하는데 현재와 과거를 가릴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작품상에는 현재라고 더 현실적이오 과거라고 비현실적이란 관념은 도무지 성립이 되지 않는 줄 압니다. 더구나 제2의 경우에는 그 과거가 현재에 가지지 못한, 구하지 못한 진실성을 띄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사실에서 취재한 것보담 더 맥이 뛰고 피가 흐르는 현실감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등 도피적이라는 둥 하는 비난의 화살은 저절로 그 과녁을 잃을 것입니다.<ref>「역사소설문제」, 『문장』 1939년 12월. p.126~129.</ref>}}
숙부 '''[[현영운|영운]](映運)'''은 아내 [[배정자|분남]](粉男)이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된 것을 계기로 크게 출세하여, 장관급인 대한 제국 군령부 참장, 주일특명전권공사, 원수부 검사총장, 참모부 제1국장, 농상공부 협판 등의 고위직을 거친 구한말의 전형적인 친일관료였다. 이러한 그의 벼락출세가 영운의 형제들의 관직 진출에 음으로 양으로 크게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친 '''경운'''은 지위가 정3품 통정대부까지 올랐고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보사장을 거쳐 [[1895년]] 대구부 전보사의 주사로 취임하기도 했다.<ref>당시 전보사는 농상공부대신의 관리를 받으며 전보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였으며, 1등사와 2등사로 구분되었다. 한성(서울)과 인천, 원산, 부산, 의주, 경성, 함흥, 회령이 1등사에 속했고 대구는 2등사였다. 통신원 국장이란 직책은 수준은 미비할 망정 국가의 전신, 전화, 전기는 물론 우편과 운송 분야와 관련한 시설과 제도를 관리하는 자리였기에 아무나 역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33~3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숙부 '''철운'''은 안동관찰부 주사 겸 용궁군수를 지냈다. 숙부 '''양운'''은 관립영어학교 출신으로 궁내부 예식원주사에 태복시 기사 등을 지내고 [[원산]]과 [[동래]]에서 영어교사로 일했으며 [[대한체육회]] 창설 멤버로 알려져 있다. 숙부 '''붕운'''은 태복시 주사를 지냈다.
* [[이무영 (소설가)|이무영]] - [[1955년]] 8월 30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된 이무영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1932년]] 처음 중편소설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을 때 별다른 반응이 없이 문단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와중에 "오직 빙허(현진건) 선생이 꾸준히 읽어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먼동이 틀 때」를 연재할 수 있도록 서항석과 더불어 힘을 써준 것도 현진건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다만 이무영이 친일로 돌아선 것을 현진건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후 이무영과 현진건이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우승규의 술회에 따르면, [[1936년]]의 물난리(병자년 수해)에 수재의연금을 모으러 동지들과 창의문 밖에서 가진 모임에서, 술이 취하여 "일본인한테 기대지 말고 우리끼리 자족자구(自足自求)하자고."하고 기염을 토하다가 공교롭게도 옆에 있던 일본 경찰로부터 주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게 일본인을 '일본인'이라 부르지 말고 '내지인內地人'이라 부를 것을 강요했고 그러지 않는 자는 소위 '불령선인'으로 몰았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내지인'이라고 쓰고 그 위에 '일본'이라는 두 글자를 적었던 것이다)<ref>「나절로 만필」(48) '大水災와 日帝監視' 『동아일보』 [[1974년]] 11월 8일 제5면 기사.</ref>
* 부부생활과 관련해서는, 지인 대부분이 "아내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실 그 시절에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하며 따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었으며, [[김동인]]처럼 아예 자기 아내를 버리고 평양에서 서울로 거처까지 옮겨서 기생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기만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내를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을 뿐이요, 다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었다"고 했으며, 방인근은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기생이 옆에 와서 지근덕거리면 미남에다가 신문기자라면 기생들이 홀딱 반해서 덤벼드는 시절이니 그러면 빙허는 좋아하는 체 대꾸를 하면서도 쌀쌀하게 범접치 못할 기상으로 난잡하게 굴지 않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현진건의 아내 이순득도, 남편이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황라 두루마기와 비단 마고자가 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들어와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f>문인들의 이러한 '딴집 살림'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교육을 받은 소위 '구여성'과의 조혼을 괴로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데서 온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8~5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생가는 주소만 남아있을 뿐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인왕산]] 밑의 부암동 자택은 종로구에서 공용주차장을 짓기 위해 2003년에 헐어버려서 지금은 터와 '현진건 집터'라는 표석만이 남아 있다. 당시 그 생가의 철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행정당국은 '민간인 소유자와 부지 매입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는데<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1/h2007110618342324420.htm#none 편집국에서-사라지는 문학의 고향, 한국일보 2007년 11월 6일자 기사]</ref> 2012년 10월 4일에 [[안평대군]]의 사저와 함께 법원경매에 부쳐졌다. 유언에 따라<ref name="cho"/> 화장되고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서장리에 매장됐었으나 그 후 남서울 개발관계로 묘소가 사라져 유해는 한강에 뿌려졌다.
- 김진환(iKON) . . . . 22회 일치
||<:><#FF0000> '''{{{#FFFFFF 좌우명}}}'''||<(> 모든 것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 데뷔 극초기의 좌우명이다.[[비아이]], [[구준회]]와 함께 출연한 [[인생술집]]에서도 언급했다.] ||
[[구준회]]와 함께 iKON의 '''메인보컬'''을 맡고 있다.
EVERYTHING, BEST FRIEND와 같이 수록곡의 도입부를 상당히 많이 맡는다. 하이라이트도 많이 맡으며 애드립이 있는 노래에서는 거의 모든 애드립을 담당한다. 노래에 따라 강약 조절을 잘하면서 부른다. 간질간질하면서 때로는 힘있는 특유의 목소리가 특징이며, 저음역대부터 고음역대까지 소화 가능하다. iKON의 전곡을 프로듀싱하는 [[B.I]]는 팀 내에서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보컬이라고 평했다.
꾸준히 R&B를 지향하는 것 같다. 존경하는 가수는 어셔[* 181010 [[주간아이돌]] 셀프보고서에서 본인 별명에 '어셔빠'라고 적었다.]와 니요.
[[NEW KIDS : CONTINUE]]의 타이틀곡 '죽겠다'에서 센터를 맡았다. 허벅지를 쓰는 안무가 정말 섹시하다. 활동 때 멤버들은 이 춤을 '김진환춤'이라 부르며 인터뷰와 라디오 등에서 진환에게 이 춤을 추도록 많이 시켰다. 정작 본인은 이 이름에 대해 부끄러워 하는 듯 하다.
맏형답지 않은 키와 귀여운 외모로 멤버들에게 몰이를 많이 당한다. WIN때 [[https://www.youtube.com/watch?v=mDM_kjfaOP0|몰카에 당하는 모습이나]] [[https://www.youtube.com/watch?v=5cOB3pxHwxo|몰이를 많이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생 멤버들이 형 호칭을 빼고 '지나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몰이당할 때 화내는 게 너무 귀엽다~~ 특히 ~~내일없는 막내온탑~~ 정찬우가 진환이들아 라고 한 적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HaCdsjQ3yts|지나니들아]]
* '온 세상을 거인국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돌'로 모 커뮤니티에 올라갈 정도로 앙증맞은 사이즈를 자랑하지만 오피셜 프로필이 없는 상황. 팬들은 김진환 13cm 설을 밀고 있으며, 일본 팬미팅에서 진환을 그린 바비와 찬우 등이 13cm, 요정 등의 단어를 언급했다. 유래는 한 팬이 김진환의 키가 궁금해서 모니터에 나타난 키를 재본 결과 정확히 13cm가 나와서..~~무려 13cm에 육박, 요정치곤 큰 편~~최근 발매된 펩시의 보틀에 프린트된 김진환의 전신이 변함없는 13cm로 측정되기도.
* 바비, 비아이와 함께 원년 3인방으로 불리며 진지한(진환, 지원, 한빈) 으로 불린다. 2011년 1월 3일 비아이와 함께 입사했다. 비아이는 진환을 처음 본 순간 "우리는 같은 팀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일주일 뒤 입사한 바비와는 서로 진심으로 싫어하며 싸웠다고 한다.
* 치명적인 한 방(?)을 많이 날린다. 뿌랄친구,상냥하게 말해 이건 부탁이야 ,한 명 빠진다고 한 명만 남지 않아 다 모가지야, 부숴버릴거야, 아츄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니 얼굴을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아니지이 너만 못생긴 거지[*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에 나간 바비가 아이콘이 못생긴 이미지가 될까봐 걱정하자] 등...
* 2014년 가을까지 관람차를 타 본 적이 없었다. 믹스앤매치 오사카 자유시간 편에서 [[구준회]]와 함께 탔던 것이 난생 처음이라고. ~~탄 후에 감상평은 " 경치는 좋으나 남자 둘이서는 타긴 좀.. "~~
* 고기와 까르보나라를 좋아하며 건포도를 싫어한다.
* 2016년 8월에 발매된 아이콘 썸머타임에서는 아이콘의 최장신 정찬우와 한 팀이 되어 장단조(장신+단신) 라는 콤비명을 얻었다.
* 비아이, 바비와 함께 출연한 LG 스타일러스 광고에서는 실연에 가슴 아파하는 ~~능숙한 연기~~를 보여주어 팬들에게 흐뭇함을 안기기도.
* 랩을 즐긴다. 랩퍼인 바비와 비아이와 1년 반동안 셋이서 연습생을 하는동안 어떻게 놀았는지 대충 알 수 있다. 바비와 비아이는 '지나니형 랩 잘하잖아', '랩을 제일 잘한다'라는 식으로 부추겨 기어이 ~~타령같은~~랩을 하게 한다. 과거에는 실제로 랩 가사를 본인이 쓰는 등 랩을 진지하게 시도해보았다고 하는데 그 당시 썼다는 가사, '너는 진주 너는 다이아몬드'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 장남지난, 차남지난이라는 말장난(발음이 동음)과 '곤니치와와'라는 인사에 빠져 있다. 일본어로 지난(ジナン)의 뜻이 차남(次男)이나 정작 본인은 팀의 맏형이라는 점이 재미있는 포인트다. 일본 팬들은 진환을 표기할 때 次男이라고 쓰기도.
* 의외로 아이콘에서 주량이 가장 세다. 참고로 소주보다는 와인을 더 좋아한다고. 술버릇은 같은 팀 멤버인 구준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 김형준(배우,가수) . . . . 22회 일치
>'''SS501와SS301의 막내 김형준 입니다.[* 301 유닛 활동을 하면서 아직도 막내, 영원한 막내라고도 한다.]'''
'''노래와 춤 연기 예능 비주얼을 모두 갖춘 매력적인 SS501의 귀여운 막내'''
* 가수 윤수일과 일본배우 카시와바라 타카시 대만의 배우겸 가수 오존을 닮았으며 영국배우 [[데이비드 테넌트]] 닮은꼴 1위에 선정됐다.[[http://v.entertain.media.daum.net/v/20080226120910214?f=m|#]]
* 2016년 'AH-HA' 활동때는 머리색을 '''{{{#pink 분홍색}}}'''으로 염색했는데 하얀피부와 머리색이 잘 어울린다는 평이었다.
* 매사에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잘 친하게 지내며 SS501 멤버들과도 같이 손잡고 화장실가고 --뽀뽀하고-- 할 정도로 친하다. 특히 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둘이 있으면 늘 티격태격격 하는 사이지만 한편으로 서로 챙겨주기도 해서 절친이다.
그룹에서 막내 포지션을 맡고있다. 데뷔 초 곱상한 얼굴과 막내라는 이유로 --비주얼 멤버는 노래를 못한다는 인식에 따라-- 노래를 못할 꺼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많은 파트와 안정적인 라이브 덕분에 그런 말은 빠르게 사라졌다. 19살에 막내로 데뷔했지만 중학생 때 부터 장장 5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기 때문에 멤버들 중 최고참이며 노래, 춤, 랩 등 많은 포지션을 담당할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래서 그런지 [[SS501(아이돌)|SS501]]에서 가장 많은 포지션을 담당한다. 화음, 코러스, --센터--, 랩, --기염-- 등. 노래를 잘 들어보면 본인 파트 외에도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목소리가 낮고 힘이 있어서 멤버들의 목소리가 묻히는 걸 수도 있다...-- --박정민 빼고 다들 하이톤--
* 3월 10일 박정민과 함께 놀러와에 출연했다.
* 2월 13일부터 2009년 8월 17일까지 [[소녀시대]] 멤버 [[써니(소녀시대)|써니]]와 함께 MTV THE M 진행을 맡았다.
* 1월 27일 게임 전문 공중파 방송인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 됐다. 제목이 곧내용으로서 김형준이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때 김형준이 들어가는 팀은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MBC GAME HERO]]. 처음에는 다소 무개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갤러]]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식없는 모습이 어필 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고 결국 3월 4일에 감독 추천으로 공인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뮤탈 짤짤이의 창시자인 [[서경종]]과 매우 친해졌고 서경종은 이를 계기로 해설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하게 되었다.[* 훗날 서경종은 트윗 인터뷰[[http://esports.dailygame.co.kr/news/read.php?id=57529|#]]에서 김형준과의 친분은 100% 설정이었으며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방송 이후엔 연락도 안 했다고 밝혔다.][* 서경종의 트윗문답때문에 김형준의 빠순이들은 서경종한테 악플을 날리고 [[스갤러]]들은 [[빠가 까를 만든다]]면서 [[병림픽]]을 했다. ~~트리플S도 [[카시오페아(동방신기)|카시오페아]]나 [[엘프]]와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함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라..~~] 그리고 유독 [[러커]]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임할때 말버릇이 암요 까시까시맨~이라든지 자기를 가시저그라고 불러달라는 모습도 나왔다. 스갤에서는 주로 까시맨이라고 불린다. 결국 3월 31일을 마지막 방송으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스타 팬들에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다.
* 8월 13일 [[김기수]]와 기분좋은날에 출연했다.
* 6월 11일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해 [[K.WILL|케이윌]]과 함께 [[김원준]], [[박소현(배우)|박소현]] 신혼집에 초대되어 방문을 하였고 식사도 하고 집수리도 도와줬다.
* 6월 20일부터 12월 9일까지 와이드 연예뉴스 MC를 진행했다.
* 1월 10일 [[구준엽]], [[김대희]], [[강태오]], [[B.A.P]] [[대현]]과 함께 [[비디오스타]]에 출연했다. 글로버 프린스 특집답게 스페인어로 인사후 해외에서 인기와 다녀온 해외[* 볼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아부다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도 밝혔다. 자신이 찍은 드라마가 일본쪽으로 드라마 판권이 잘 팔려서 2013년 당시 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에 출연했던 [[박서준]], [[백진희]]랑 [[사랑은 노래를 타고]]에서 [[씨스타]]의 [[다솜(배우)|다솜]]이가 한류스타를 이끈건 자신 덕분이라고 자랑을 했다.
|| 2012년 || MBC || [[금 나와라, 뚝딱!]] || 정몽규 || 지상파 첫 드라마 ||
* 2016년 뮤지컬 인더하이츠 베니 역으로 캐스팅 되었다. 8월 23일부터 9월 3일까지 도쿄 분카무라 오챠드홀에서 공연을 했고 요코하마 KAAT1 카나가와 극장에서 10월 22, 23일날 공연을 하고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공연을 했다.
* 2012년 솔로 미니 2집 'sorry i'm sorry' 드라마판 뮤직비디오에 [[강지환]], [[이기우(배우)|이기우]]와 함께 출연했다.
* 2013년 애견잡지 애니멀 매거진 3월호에 자신이 기르고 있는 반려견 쪼꼬, 사랑이와 함께 화보를 공개했다.
* 2017년 3월 11일, 12일 반디앤루니스 신세계 강남점 이벤트 존, 영풍문고 종각종로본점 지하 2층 이벤트존에서 세번째 미니앨범 AM to PM 5-11-3 발매기념 팬사인회를 개최했다. 이번 팬사인회는 4월 6일 군입대 전 마지막 팬사인회으로서 국내팬은 물론 수많은 해외 팬들도 찾아와 글로버한 인기를 실감케 했다. 팬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악수를 나누는 등 팬 서비스를 선사해 팬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 2011년에는 'oH! aH!'라는 곡으로, 2012년에는 'Sorry I'm Sorry'라는 곡으로 솔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형준의 뮤직하이에서는 2012년 7월 9일~15일의 모든 첫 곡이 그의 타이틀 곡인 sorry I'm sorry..~~ 이후 [[써니힐]]의 [[코타]]와 '우리둘이' 라는 곡으로 듀엣을 하기도 하고, 2015년 디지털 싱글 'Cross the line'을 발매하는 등 꾸준히 솔로로 활동했다.
*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의무경찰 특기병에 합격해 2017년 4월 6일 충남 논산의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604342|#]] 군 입대와 동시에 세번째 미니앨범 리패키지 [[AM to PM 7-5-11-3]]를 발매했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22회 일치
게임 [[어쌔신 크리드 III]]에 나오는 대번포트 농지와 관련된 아이템에 관한 페이지.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채소+산토끼 고기+가금육.
나무꾼인 고프리와 테리가 제공하는 물건들.
고프리와 테리 레벨2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1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4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2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4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1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1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3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4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3 부터 제공.
고프리와 테리 레벨2 부터 제공.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밀.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호밀+나무통+보리.
뉴욕 동부에 정박한 선박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노루 골수+채소+깨끗한 물.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산토끼 고기+채소.
뉴욕 동부에 정박한 선박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돼지고기+밀가루+산토끼 고기.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암염.
- 우현(배우) . . . . 22회 일치
[[1964년]]생으로 대표 [[노안]]배우다.[* 이 노안 얼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아내를 딸로, 아들을 손자로 본다"고 자주 언급한다.]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로는 [[안내상]][* 과 동기인 데다가 30년지기 절친한 친구이다. 그야말로 평생가는 친구. 다만 유난히 둘 사이가 튀었는지, 안내상의 아버지는 둘이 [[동성애]]를 한 줄 알고 헤어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현의 말로는 함께 젊을 적부터 학생운동도 하고 어울리고 했으나, 안내상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에 튀기에 좀 '그랬다고'(?) 한다.]과 [[이대연]]이 있고, 다른 동갑 연예인은 [[한석규]]와 [[이선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노안 문제는 한국을 벗어나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이 분이 '''[[키아누 리브스]]'''와 동갑이라는 점이다!! ~~뭐?~~ 키아누 리브스가 미치도록 동안인 것도 맞다. 저 둘을 누가 동갑내기 친구라 믿겠는가?] 닮은 꼴로 [[골룸]], [[요다]][* 실제로 <유자식 상팔자>에서 우현의 얼굴에 요다 CG를 붙인 적이 있다.], 통아저씨 [[이양승]], 전 국회의원 [[조순형]]이 거론된다.
[[마스터 - 국수의 신]]에서 고대천의 라이벌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맡았던 배역이 삭제된 것인지 중도하차하였다. 대신 다른 드라마에 캐스팅이 되었는데, 그게 바로 [[미녀 공심이]].[* 그것도 여주인공의 아버지 역이며, 미녀인 아내와 큰 딸이 있다. 진정한 승리자.]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으로 드라마가 대박을 쳤다.
여담이지만 각본가 중 김석윤 PD, 이남규 작가와 인연이 깊다. 사실 데뷔작인 [[올드미스 다이어리]]도 이 두 사람의 작품이니..
친구인 [[안내상]]과만 몇 번 출연하다가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 가족과 함께 출연한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능에 진출했다. 본래 예능 울렁증이 있다 보니 우현보다는 가족들의 활약이 대단했었고 빵빵 터졌지만, 어느 정도 예능을 하다보니 본인도 평타를 치기 시작했다. 또한 극초반에 드라마 촬영 일정 때문에 아내와 외아들만 출연하다가, 잠깐 하차했다가 다시 매주 고정출연 중이다. 그 후 장모님이 타계 후 잠깐 쉰 적이 있지만, 그 후에도 프로가 종영할 때까지 꾸준히 참여하였다.
2014년 3월부터 [[SBS]] [[자기야 백년손님]]에 장모인 소설가 곽의진 씨와 같이 출연을 하였다. 부부 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장모인 곽의진 씨가 타계 이후 하차하게 되었다. 대신 2주간 추모 방송을 하였다.
* [[또 오해영]](2016, tvN) - 우현 역 (박순택의 선배 역)(특별출연)[* 카메오라고 하지만 15~18화 모두 다 나와서 다소 애매해졌다.]
* 헤드 (2011) - 박씨 역[* 여담이지만 감독 조운은 우현의 처남이다. 또한 아내와 동반출연인데 드디어 부부로 나왔다.]
* [[자기야 백년손님]](SBS, 2014) - 고정출연. 장모인 곽의진 씨와 출연했으나 곽의진 씨의 타계 이후 하차. 그리고 2년 후에 아내 [[조련(배우)|조련]]과 함께 재출연하였다.
아버지가 [[의사]]면서 병원 원장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자랐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용돈도 현금 300만 원을 가지고 있지만 다 쓰지를 못 했다. 어릴 때부터 쭉 소고기나 장어 등 당시엔 쉽게 먹기 힘든 음식들을 자주 먹었고, 막상 감자탕이나 순대, 삼겹살 같은 음식은 대학에 들어와서 친구나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특히 삼겹살을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있다니"라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식습관 때문인지 [[편식]]이 굉장히 심하다. [[잘 먹는 소녀들]]에 의하면 [[닭발]], [[족발]], [[곱창]]을 못 먹는다고 한다. 후에 [[잘 먹겠습니다]]에서 자신이 먹지 못한 곱창 먹기를 시도하였고, 성공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편식]] 습관은 아들 준서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유자식 상팔자>에서 보면 해산물이나 가지 등을 못 먹는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 먹기는 했다.]
본래 가족과 방송 출연은커녕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그나마 아내는 인터뷰나 [[라디오스타]] 등에서 자주 언급했었고 부부가 영화 동반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유자식 상팔자]] 계기로 온 가족이 방송에 출연했다. 하지만 출연 후에도 아내는 방송에서 자주 모습을 비추는 것에 비해 아들은 고정 프로그램인 <유자식 상팔자>와 [[무한도전]]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잠깐 출연한 것 이외의 다른 프로그램에는 전혀 출연하지 않는다.
아내는 배우 [[조련(배우)|조련]]으로, 남편과 다르게 상당한 미인이다.[* 아들 준서도 ~~다행히도~~ 엄마를 닮아 상당히 훈남이다.] 또한 배우로서는 아내가 훨씬 선배다. 첫 만남은 연극 제작자와[* 사실은 당시 우현도 배우가 아닐 뿐 연극 제작자로 참여했었다.] 배우의 관계로 만났고, 우현이 연극 연기를 시작한 뒤 본격 대쉬,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는데 친구 [[안내상]]이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오히려 안내상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련이가 너무 예쁘니까 안 될 것 같았다. 네가 어디다가 들이대느냐. 들이댈 곳에 들이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실제로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우현이 장기간 아내에게 호감을 표시하였으나 아내가 알면서 적잖이 모른 척하거나 거부했고, 그걸 그전부터 조련과도 친분이 꽤 있던 안내상도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안내상과 조련 두 사람이 같이 부부 역할로 연극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당시 조련이 상당히 미인이라서, 주변 남자 배우들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안내상은 우현이 상처만 크게 받고 끝날까 걱정되어, 어떻게든 일찍 포기하게 하려고 공격적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한다.
장모님은 유명 소설가인 故 곽의진 씨로, 백년손님에 함께 출연했다.[* 곽의진 씨는 103세의 아버지와 함께 [[인간극장]]-세월이 가면편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었다. 또한 우현 가족도 아주 잠깐 출연했었다.] 또한 장모님이 실제로 워낙 [[동안]]이고 우현이 워낙 노안인 데다가 나이차도 얼마나지 않아, 장모-사위 관계가 아닌 부부 관계로 종종 오해를 받았았었다.[* 사실 처가 자체가 동안인 인물들이 많으며, 아내와 아들도 나이에 비해 어리게 보이는 편] 실제로도 <백년손님 자기야>에 출연 당시에도 오해하는 장면이 잠깐 나왔다.
* 엄청난 마성의 매력 소유자다. 본인 말로는 "처음 볼 때는 엄청 싫어하다가, 몇 번 보고 나면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도 이런 매력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배우 [[조민희]]나 박남정 딸 [[박시은(2001)|박시은]]도 잠시 동안에 빠졌었다. 그래서 못친소에 나온 것이 싫었다고.[* 못친소에서 밝히길 아들 준서도 처음엔 엄청 싫어했지만 5살 즈음에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우현의 아들은 못친소 특집에 우현이 나간다고 하자, "아빠가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고 우현이 왜냐고 반발하자, "아빠가 잘생긴 걸로 1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못생긴거)로라도 꼭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과 본인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사실 단순히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의 마성이라기보다, 실제로 인성이 훌륭하고 부드러우며 심지도 곧은데다가 포용력과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쉽게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즉 [[진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청춘을 던진 것만 봐도 정신이 올바른 것이 보인다. 본인도 삶의 목표가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온다고 하면 기분 좋아지고 환영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단지 본인의 외모와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 표독스럽거나 독특한 성격의 느낌을 준 적이 많아, 사적으로 보면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친소에서도 결국 그 대인친화적인 인성으로 우승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노홍철]]이 1등을 했던 못친소 1과 다르게 우현이 나온 못친소 2는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남자' 컨셉으로 출연자들이 정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을 뽑았던 사실상의 인기투표였다.]
* 또한 현재 사는 아파트 말고도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에서도 주택이 있으며, 실제로 가족들과 3여 년간 살았었다. <유자식 상팔자>에서 김천에서 살게 된 이유가 밝혀졌는데, 주유소들이 학교 생활을 힘들어해서 장모님의 추천으로 아들의 정신 건강을 치료할 겸 진도에 내려와 집을 지었다고. 가족들은 김천에서 지냈고, 본인은 일 때문에 [[대구]]과 진도를 오가면서 살았었다.[* 때문에 몇 년간 주말부부로 지내야만 했고, 주변에서는 "이혼한 거 아니냐"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그 진도 집은 [[동물농장]] 견스테이와 유자식 상팔자 특집 코너[* 대표적으로 아빠, 삼시세끼를 부탁해! 코너. [[홍서범]] 과 함께 코너를 진행했다]를 진행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셀프카메라에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송일국]]의 차남 민국이와 상당히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민국이가 후에 우현이 되는 게 아니냐"며 드립이 성행하는 중. 또한 아들의 아기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상당히 아빠와 [[붕어빵]]이었다.[* 사실 <유자식 상팔자>에서도 공개된 내용인데, 당시 우준서는 사진을 공개한 내내 상당히 좌절했고, 본인은 조기관리에 들어가겠다고 당돌하게 발언하였다. 이때 밝혀진 것인데, 아기일 적의 엄마와도 닮았다고 한다.]
- 은혼/623화 . . . . 22회 일치
* [[소타츠]]는 [[도로미즈 지로쵸]], [[도로미즈 피라코]] 부녀와 해결사 일행에게 병력을 집중시킨다.
* [[사카타 긴토키]]와 지로쵸를 중심으로 분전하는 일행.
* 지로쵸는 타츠고로와 처음 만났을 땐 싸움을 붙지만 패배 후 좋은 친구가 되어 가부키쵸를 지켜왔다.
* 지로쵸의 바람대고 타츠고로와 오토세 여사는 부부가 되고 이들의 인연은 여러 굴곡을 거치면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 지로쵸와 긴토키는 신라 부대의 기동성을 묶기 위해 좁은 건물 안으로 유인한다.
* [[소타츠]]의 지시에 따라 신라 부대가 도로미즈 부녀와 해결사 일행을 일제히 덮친다. 그러나 [[도로미즈 지로쵸]]와 등을 맞댄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을 쉽게 꺾을 순 없었다. 신라 부대를 허수아비처럼 분쇄하는 일행.
그리고 [[테라다 타츠고로]]와 만났을 그때도. 이미 가부키쵸를 지키는 젊은 야쿠자로 이름을 날리던 지로쵸는 오토세를 보러 들렀다 그와 마주친다.
* 첫 대결은 지로쵸의 패배. 접전이었지만 타츠고로는 지로쵸의 부하들까지 때려눕히고도 일어서 있었다. 그날 씁쓸하게 포장마차에 앉은 지로쵸 옆에 타츠고로가 찾아와 술을 권한다. 오토세는 그렇게 주먹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내들을 지켜본다.
* 시간이 흘러 둘은 막역한 사이이자 가부키쵸를 지키는 양대 수호자로 자리매김했다. 야쿠자와 경찰이지만 둘은 마을을 위해 언제나 협력했고 타츠고로는 곧 가부키쵸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로 성장했다.
타츠고로는 가부키쵸에서 여자 혼자 가게를 꾸리긴 어려울 거라면서 이제 지로쵸가 오토세와 함께 하는게 어떠냐고 넌지시 말을 꺼내는데.
* 지로쵸의 바람대로 오토세는 타츠고로와 이어지고, 그렇게 셋의 연결은 더 강해진다. 부딪히고 싸울 때마다 강해진 인연은 부상 당해도, 쓰러져도, 끊어지지 않았다. 길을 잃고, 좌절하고, 그래도 손을 놓지 않았다.
오토세 여사는 그와 타츠고로의, 그리고 그와 해결사들의 싸움은 쭉 이어져온 인연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 지로쵸와 해결사는 건물 안으로 장소를 옮긴다. 신라 부대는 이들을 뒤따르다 좁은 입구에 막혀 각개격파 당한다. 좁은 건물 안이라면 신라의 집단 전술이 효율을 잃는다. 정공법이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물량과 병사 개개인의 역량이 높은 탓에 단지 그것만으로는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다. 결국 [[도로미즈 피라코]]가 밀리면서 입구가 뚫린다. [[시무라 신파치]]가 조력해서 피라코를 데리고 피신, 지로쵸와 긴토키가 천장의 파이프를 떨어뜨려 추적을 지연시키며 퇴로를 연다. 둘은 [[가구라]], 신파치, 피라코를 선행시키고 배후를 지킨다.
* 소타츠는 지로쵸와 긴토키가 지키는 좁은 복도로 몸소 돌입한다. 그들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그렇게 자신할 만큼 자기 부족의 집단전술을 신뢰한다. 그들이 기동성을 묶자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건 오히려 패인이 되는 것이다.
소타츠의 신호와 함께 전후에서 일제히 신라부대가 덮친다.
가구라 일행을 지나 들이치던 신라 부대는 긴토키와 지로쵸가 아니라 복도를 주파하던 신라 부대를 찌른다. 이들은 애초부터 신라부대가 아니었고, 이는 소타츠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이들은 변장한 [[쿠로고마 카츠오]]와 흙탕쥐파였다. 카츠오가 변장을 벗으며 외친다.
- 은혼/632화 . . . . 22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는 [[카와카미 반사이]], [[키지마 마타코]]를 별동 병력으로 편성, 모선에 각기 돌입시켜 혼란을 야기한다.
* 신스케와 반사이는 협력해서 마타코를 도주시켰지만 자신들은 구속, 처형을 앞둔다. 이런 와중에도 신스케는 태평하게 반사이에게 가담해줄 것을 권유한다.
* 도주했던 마타코가 돌아와 작전의 배후인 헨페이타에게 접근, 신스케를 해방시키려 하나 알고 보니 그 또한 신스케의 권유를 받고 고민하던 차였다.
* 마타코는 무엇이든 썩어빠진 것을 쳐부수는 것이 신스케와 귀병대라고 말하고, 그 말대로 신스케는 해방군 본진을 유린하며 쾌진격한다.
* 묵묵히 듣고 있던 신스케가 대답도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버려졌다고 생가한 마타코가 "당신도 막부와 천인에게 모든 걸 잃었다고 들었다"며 매달린다.
* 한 번 신스케가 내쳤던 소녀, 마타코는 근시일 안에 신스케와 다시 만난다. 이번엔 죽음이 예정된 "사형수"로서. 때는 양이지사를 탄압하던 시절. 막부는 폐도령을 내리고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던 때였다. 마타코도 검문에 걸렸는데 아버지의 유품을 내놓을 수 없어 저항하다 양이지사로 낙인 찍혀 잡혀왔다. 마타코의 이런 사정은 백성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관군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양이지사로 몰아 잡아들이고 있고, 백성들이 저항할 방도는 없다.
신스케는 수근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죄인 신세가 된 마타코와 재회했다. 신스케가 말없이 보고 있는데 또다른 행인이 그에게 말을 붙인다.
>'''살인귀 [[카와카미 반사이]]'''
* 신스케가 진입한 정확한 위치는 해방군 모선의 제 17구획이었다. 그와 대치하는 부대는 501 부대. 열세에 처했는지 다른 병력들에 원군 요청이 쇄도한다. 그러나 그들이 501부대를 원호하러 갈 기회는 없었다. 곧이어 제 7, 제 22 구획에도 돌격정이 진입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귀병대, 카와카미 반사이와 키지마 마타코의 병력들.
* 마타코를 구한 반사이와 신스케는 사이좋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아무래도 상황은 그들이 생각한 거 보다 복잡했나 보다. 마타코는 신스케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 그가 마타코와 접촉했던 걸 목격한 정부의 개, 다케치 헨페이타에 의해 꾸며진 함정이었다. 반사이는 벽을 사이에 두고 신스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신스케가 부추기긴 반사이가 부추긴게 아니었냐고 대꾸하자 그는 단지 살아있는 전설이 어떤 남자인지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본 남자는 이랬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발휘되는 로리콘 기질. 아무튼 그는 다카스기에게 인정받기 위해 이런 짓을 하냐고 묻는다. 마타코는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이 나라엔 그 사람이 필요하다 로리콘"라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로리콘은 생각을 달리한다.
그는 마타코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같은 시각 감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양이지사들이 스스로 옥문을 나와 신스케와 반사이를 해방시켰다. 어리둥절한 반사이에게, 양이지사들이 말한다.
* 신스케는 선두에 서서 달리고 가츠라와 다츠마가 보조를 맞춘다. 우주선의 원호사격을 받으며 달리는 세 사람. 17구획와 501사단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마타코의 회신은 신스케에게도 들리고 있었다.
>그게 바로 다카스기 신스케와 귀병대임다
어린이날 기념 페이지는 [[사카타 긴토키]]의 개드립으로 시작. [[가구라]]가 놀고 있으려니 어린이날이 있으니 어른의 날도 있어야 한다고 드립친다. [[시무라 신파치]]가 "근로의 날이 있다"고 대꾸하자 "세상엔 근로를 안 하는 성인도 있다"고 응수. 그래서 2월 10일로 어른의 날을 정하고 5월 인형 비슷한 [[하세가와 다이조]]를 장식한다던가 하는 날로 정하자고 한다. 신파치는 그건 어른의 날이 아니라 "니트의 날"이고 인형이 아니라 산송장일 뿐이라 꼬집는다.
긴토키는 지지 않고 연어연에 대응하는 하세가와연 따위를 걸자고 하는데 신파치는 "그건 지옥의 번지 점프"라고 환상적인 표현력을 발휘한다. 아무튼 긴토키는 이런 날이 있음 좋겠다고 하는데 마침 지나가던 마다오 본인은 "내일 휴일이라 상관없다"고 소감을 말한다. 신파치는 제대로된 어른이 없다고 통탄.
- 이재용(배우) . . . . 22회 일치
'''우리들 마음 속 영원한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묵직한 부산 사투리로, 동수([[장동건]])를 앞에 두고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미친 존재감]]을 알렸다.[* 실제로 이재용은 유년시절을 마산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산 사투리가 능숙한 건 일도 아니다.] [[이재용|동명의 재벌 후계자]]가 있는 관계로 이재용이라는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친구의 차상곤, [[야인시대]]의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제5공화국의 [[이학봉]] 등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조선놈들은 선량한 미와를 자꾸 나쁜 쪽으로 몰아가고 있어. 이 착한 미와에게 자꾸 고문을 해달라고 한단 말이야. 이봐 김형사, 기막히게 한 번 다뤄봐라. [[이근안|고문도 기술이란 말이다.]]"
2014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야경꾼 일지]]와 [[고양이는 있다]]에서 모두 [[서이숙]]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실제로 대머리기 때문에 주로 [[가발]]을 쓰고 연기를 한다. 하지만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는 가발 없이 내추럴한 모습(...)으로 연기하기도 했다.[* 드라마상 사법고시를 보다가 미역국을 연거푸 먹어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구마적 이원종 식당에 주방장으로 일하는 설정. 탈모를 이용한 웃긴 에피소드도 한 토막 있다. 극중에서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손님이 불평하자 이원종이 침착하게 주방에 있는 이재용을 불러 모자를 벗으라고 한다. 그러자 훵하니 벗겨진 이재용의 머리를 보고 손님의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이재용은 이재용대로 자기 콤플렉스를 대놓고 끄집어낸 이원종에게 앙심을 품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피아노(드라마)|피아노]]의 [[독사]], [[야인시대]]의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주몽(드라마)|주몽]]의 부득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의 [[이학봉]], [[해신]]의 [[조장길]], [[뿌리깊은 나무(드라마)|뿌리 깊은 나무]]의 [[조말생]] 등이 있다. [[동명이인]] 감독 이재용의 망한 영화 [[다세포 소녀]]에서는 모든 교사 역으로 출연했다. [[무려]] '''1인 9역!'''
* '''굉장한 [[노안]]이다.''' [[놀러와]]에서 배우 [[이계인]] 씨는 [[본인]]보다 나이가 적다는 사실을 알고 놀랬다. [[제5공화국(드라마)|드라마 제5공화국]] 후반부에서 안기부 실세 콤비로 함께 호흡을 맞춘 [[장세동]] 역의 배우 '''[[홍학표]]보다 2살 동생'''이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공깽]]. 물론 이건 [[홍학표]]가 상당한 [[동안]]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학봉]](1938년생)이 장세동(1936년생)보다도 2살 동생이다.] 사실 그거보다 더 [[충공깽]]인 게 있는데,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이재용의) 부인 역으로 나온 서승현은 사실 이재용보다 '''20살 누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딱 3개월 차이이긴 하지만, '''[[최수종]]보다도 한 살 어리다'''[* [[최수종]]은 1962년 12월 생이고 이재용은 1963년 3월 생이다.]. 그래도 본 위키에 항목이 있는 [[동명이인]]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다.
* 2016년 7월 10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추억의 엿장수]]"로 참가했으며 [[니 이모를 찾아서]]와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부른 뒤 다섯 손가락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이 날 그는 판정단을 완벽하게 속였으며 그날 판정단은 힙합 가수가 아니냐는 말이 꽤 많았고 판정단은 [[Mithra 眞]]이냐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그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당시에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려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음악]]을 하는 동생들과 가까이 하다 보니 힐링이 됐다며 복면가왕에 나온 이유를 언급했다. 그 뒤 3달 후에 [[김준선]]과 같이 앨범을 발매했다. [[http://star.mt.co.kr/stview.php?no=2016101714512385715&outlink=1&ref=http%3A%2F%2Fsearch.naver.com|#]]]
* [[삼국지11]]에서 [[사마의]]의 일러스트와 정말 닮은 걸로 삼국지 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주몽(드라마)|주몽]]에서 부득불로 나왔을 때 모습하고. 특히 사마의의 노년 일러스트는 거의 부득불을 보고 그렸다고 해도 믿을 [[초상화]] 수준.
* 어딘가 모르게 덴마크의 배우 [[메즈 미켈슨]]과 닮은거 같다. (일본 배우로는 [[타치 히로시]]와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 2018년 9월 30일 [[tvN]] [[코미디 빅리그]] 외전 격인 콩트 버라이어티 '단내투어-죄와 벌'에 특별출연했다. 영화 [[신과함께(영화)|신과 함께]] 시리즈의 저승대왕을 패러디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큰 웃음을 주었다. 이름도 '갤럭시대왕'이다... ~~뭔가 [[삼성 갤럭시|이게]] 떠오르는 건 기분탓인가..~~
|| 2002~03년 || SBS || '''[[야인시대]]''' ||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와사부로]]''' || ||
- 진격의 거인/98화 . . . . 22회 일치
* [[빌리 타이버]]의 방문으로부터 한 달 뒤. 타이버가의 연설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라이너 브라운]]을 포함한 마레의 전사들은 마레군 수뇌부에 팔라디섬의 정보와 공략법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라이너의 의견을 자세히 검토도 하지 않고 "엘디아인에게 괜히 물어봤다"며 쓸모없는 취급을 한다. [[포르코 갤리어드]]는 이에 불만을 품고 "팔라디섬 계획은 참 순조롭다"고 빈정거린다. 라이너는 의견이 묵살된 것 보다는 대장인 [[테오 마가트]]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쪽을 의식한다.
* 수용구 안에서는 "축제"가 준비 중. 실제로는 타이버가가 팔라디섬 침공을 선언하는 "선전포고" 연설이 메인이벤트다. 가비는 타이버가의 연설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도는 마레인 이상으로 엘디아인을 증오하는 세계의 사람들이 협조해줄리 없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마가트와 [[빌리 타이버]]도 준비 중인 무대를 살펴보고 있다. 빌리가 한 달 전 본부를 방문했을 때 둘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빌리는 마가트에게 군의 전권을 넘기기로 한 상태다. 마가트는 이 나라가 "빌리 타이버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는 자신을 "나라는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고 자신은 그저 조타수일 뿐"이라 여기는 데다, 그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다. 마가트는 "집안"이 무너질 위기지만 쓸만한 자들도 있고, 그들이 "집안에 생쥐가 들어왔다"는 정보를 전했다고 귀띔하는데.
* 파르코는 자신을 "크루거"라 밝힌 남자와 매일 만나고 있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길 일을 말하며 "크루거의 덕"이라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크루거는 몇 번이나 편지 배달을 부탁한 자신이 감사할 일이라고 사양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야구공과 글러브를 받았는데, 자신도 그걸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의사가 다가오는 걸 보고 파르코는 자리를 뜨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군의 진료의로 일하는 "예거"씨였다. 크루거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본다. 노인이 같이 앉아도 되겠냐 묻자 크루거가 허락하고 둘은 통성명을 한다. 크루거는 "크루거"라는 이름을 그대로 댄다. 노인은 크루거가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나, 파르코가 자주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대화 상대를 찾아온 거란 말과는 달리, 파르코의 상세한 내력에 대해서 읊기 시작한다. 파르코의 숙부가 엘디아 복권파 조직의 간부였다 숙청 당한 것, 연좌를 당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던 것. 콜트가 마레의 전사가 된 걸로 겨우 그라이스가에도 안정이 왔다는 설명 뒤에 아마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 문제 때문에 자신을 만나기 껄끄러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진의는 이랬다.
노인은 파르코와 크루거 사이의 거래도 알고 있었고 사실 크루거가 정상이라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살 짓은 그만두고 어서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권하는데. 크루거는 떠보듯이 "혹시 가족일로 후회할 짓을 했냐"고 묻자, 그는 상처를 찔린 표정이 된다. 그가 바로 [[그리샤 예거]]의 아버지이자 지크의 할아버지. [[엘런 예거]]에게도 할아버지가 된다. 그는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리샤가 여동생을 데리고 벽을 나서게 놔둔 일이나 아들에게 의사를 강요했던 일 등. 그 모든게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던 그는 마침내 오열하듯이 비명을 지른다. 그때 병원에서 진짜 의사가 달려나오는데, 사실 그도 이 병원의 환자였던 것이다. 크루거는 병실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가족에게서 받은 야구공을 허공 위로 던져 본다.
* 축제의 전야제 격으로 전세계에서 모인 요인들이 본부에 모여 파티가 열렸다. 전사 후보생들은 급사로 차출되는데 주변에선 "더럽혀진 피가 급사를 하고 있다"고 투덜거린다. 우도는 그 험담에 신경쓰다 실수를 범하는데,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의 옷에 흘리고 만다. 그런데 그 여성은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도가 실수한게 알려지면 그가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옷을 버렸다고 조용히 얼버무린다. 그녀는 심지어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도 문제삼지 않았는데. 가비는 그녀가 동양의 "히즐"국에서 온 사람인걸 알아본다.
>위대한 극작가와 역사의 목격자에게!
* 가비가 다음 날 일어나보니 수용구가 완전히 변한걸 보고 크게 놀란다. 수용구 바깥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생전 처음보는 벼라별 가게를 열었다. 파르코와 친구들은 진작에 일어나서 즐기고 있었고 곧 가비랑 합류해서 축제를 잔뜩 즐긴다. 라이너도 뒤따라와서 가비 일행에게 군것질거릴 사주며 함께 즐기는데, 가비는 너무 과식해서 걷지도 못할 정도가 된다. 그래도 가비는 "요즘은 처음 있는 일만 일어난다"며 뭔가가 바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는데. 라이너는 주저하다가 그럴 거라고 대답하고 만다.
축제가 시작되고 나서는 가비 일행을 인솔하고 다니며 이것저것 사먹이다가 가비가 "뭔가가 바뀔 것 같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 선뜻 대답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거기에 수긍한다. 그리고 빌리 타이버의 연설이 시작될 무렵, 파르코의 요청으로 잠시 자리를 뜨는데, 이끌려간 곳에서 4년 만에 적이자 동지였던 엘런 예거와 재회하고 말을 잊는다.
파르코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파르코가 "널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려 한다"고 사실상 고백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걸로 나를 위한다는 거냐"고 반응하며 전혀 의미를 읽지 못한다. 이후 우도, 조피아와 수용구 안에서 준비 중인 무대 건설 현장을 보는데, 가비는 타이버가의 선전포고 선언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도나 조피아가 회의적인 의견을 어필하자 "그럴 수록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인다. 전야제에선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우도가 히즐국 부인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식겁한다. 가비가 그 부인을 보고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다음날 축제에선 완전 별천지를 본 것처럼 즐거워한다. 요즘엔 "처음 있는 일" 뿐이라며, 앞으론 뭔가가 변할 것 같다는 말을 라이너에게 하고 동감을 받는다.
파르코가 가비를 처음으로 이기자 조피아와 함께 기뻐해준다. 수용구에서 축제 준비와 무대 건설이 한창인 걸 보게 되는데, 가비가 희망적인 발언을 하자 일이 쉽게 풀릴리가 없다고 회의적으로 반응한다. 이때 원래는 국외의 엘디아인 수용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외국의 반엘디아인 감정은 더 심한데다 수용구에서의 처우도 열악하다고 한다. 그렇게 악감정이 심한 세계인들이 빌리 타이버의 연설 한 번으로 협조해줄리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축제 전야에 파티가 시작되자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큰 실수를 한다. 주변에서 "엘디아인이 급사다"고 험담을 하자 거기에 신경쓰자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에게 흘리는데, 그 부인이 뜻밖에 너그럽게 처리해준다. 부인은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을 문제삼지 않는데가 그가 이 일로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감싸주기까지 한다. 조금 후에 가비가 "그녀는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다음날엔 가비 등과 함께 즐겁게 축제를 즐긴다.
축제 준비 현장에 나타나서 무대 건설 상황 등을 체크. 이때 마가트가 나타나 무대는 순조롭냐고 묻자 순조롭고 "나에게 연출가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너스레를 떤다. 마가트와 협력관계를 구축했으며 그가 군의 개혁 방안을 보고하자 만족하며 원수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마가트가 "이 나라는 당신의 것"이라 말하는데에는 난색을 표한다. 의외로 그는 나라는 누구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은 단지 조타수인데 그것도 우연히 그 역할을 계승하게 된 남자라며 부담감을 피로한다. 은연중에 "선대 중 누구도 이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고 말하는데 타이버가에는 아직도 비밀이 많은 듯.
축제 전야제에 나타났을 땐 전세계 요인들과 격의없이 안부를 주고 받는 친분을 과시한다. 마레국의 대사도 매우 냉담한 반응을 받는데, 그가 연사로 나서자 열화와 같은 성원이 쏟아진다. 그는 세계인이 가진 엘디아인의 근절을 바라는 마음을 이해한다면서 내일 수용구 연설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는 말로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축배를 들면서 "위대한 극작가와 역사의 목격자에게"라고 축사하는데 의미심장한 문장.
역시나 그 정체는 엘런 예거. 파르코에겐 여전히 가족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명목으로 여러번 심부름을 시켰다. 개인적인 조언도 해준 모양인데 파르코는 그 덕분에 가비를 이겼다고 굉장히 고마워한다. 그런데 파르코와 만나는 자리에 야구공과 글러브를 가지고 나왔는데, 일단 가족에게서 받은 거라고 설명했다. 파르코가 돌아간 뒤에는 병원을 방문한 예거 박사와 만나는데, 첫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모습을 보인다. 예거박사가 파르코에게 심부름 시키는 거나 사실 그가 멀쩡하다는 걸 간파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라 권하자 "혹시 가족에게 후회할 짓을 했냐"고 떠본다. 예상대로 예거 박사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늘어놓으며 오열하게 되고, 착잡한 표정이 된다.
축제가 시작됐을 땐 파르코를 시켜서 라이너를 불러오게 하는데. 4년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은 라이너와 달리, 덤덤하게 인사를 건네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잘 됐다"고 말해준다.
그리샤 예거의 부친이자 지크 예거의 할아버지인 그 예거 박사. 병원을 방문했다가 크루거에게 동석하기를 청한다. 사실 그가 파르코에게 수상한 심부름을 시키는 것과 실제론 병이 없는걸 눈치채고 경고하러 왔던 것. 그라이스가의 속사정이나 콜트가 짐승거인을 계승하게 된 이후 예거가 사람을 불편하게 대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다. 자신이 대화하는 크루거가 실제론 손자라는걸 눈치채진 못한 듯 하다. 처음에는 자신을 군의이며 가끔 이 병원을 방문한다고 밝혔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크루거에게 "슬슬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경고하는데, 크루거가 "당신은 가족에게 후회할 만한 일을 했는가"라고 반문하자 상태가 안 좋아진다. 그리샤가 여동생과 벽을 넘어간 날, 딸이 죽은 날로부터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토로하고 그리샤 가족의 운명도 다 자신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기어이 비명을 지르며 정신이 무너지는데, 직후에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병실로 데려가는걸 보면 오래 전부터 입원 상태였던 듯 하다.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인걸 아는 크루거는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21회 일치
게임의 최종적 목표는 HOI2와 같다. 플레이어는 승리 점수가 있는 지역을 최대한 확보해 자신이 속한 동맹이 제일 많은 승리 점수를 얻게 해야한다. 제한시간[* 기본적으로 1964년]이 되면 게임이 끝나고, 그 순간 제일 많은 승리 점수를 확보한 동맹이 승리한다.
유닛과 기술 등이 대규모로 수정되었다. 이 때문에 대전차포나 로켓포, 자주로켓포 같은 유닛은 사라졌지만, 중포와 같은 새로운 유닛이 생겨나기도 했다. 기술의 경우에는 테크트리의 연도가 19세기 말~1960년대까지 확장되었다.
다키스트 아워 풀 기준. 다키스트 아워 라이트 시나리오 구성은 하츠 오브 아이언 II: 아마겟돈의 시나리오와 같다.
1933년 3월 4일 시작하는 시나리오. 3월 4일에 독일에서 선거가 치뤄진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 때 히틀러가 당선되어 권력을 잡는다. 기본적으로 1936년에서 시작하는 HOI2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선지 이 시나리오 전용 이벤트/디시전이 꽤 많다. 이 시나리오로 할 경우 인공지능 독일이 실제 역사보다 더욱 강해지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1904년 2월 7일 시작해 1905년 9월 2월까지 진행된다. 플레이 가능 국가는 러시아와 일본.
공업력을 보급품에 할당해 생산하는 자원. 모든 종류의 유닛들이 소모한다. 보급품을 충분히 받지 못한 유닛들은 차츰 사기와 조직력이 떨어지다 보급 부족으로 전멸한다.
공업력(IC) 수치를 1 올려주는 건물. 무에서 공업력을 만들어 내는건 아니고 하루에 2 에너지와 1 금속 0.5 희귀금속을 처먹는다. 못 먹으면 공업력을 제공 안하니 주의.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게임 시작에는 이걸 짓는다. 33% 이상의 기반시설이 지어져 있는 프로빈스에만 지을 수 있다.
간섭주의↔고립주의. 간섭주의에 가까울수록 외교활동과 첩보활동에 소모되는 자금이 감소하고, 여러 외교적 활동이 가능해진다. 또한 첩보 효율도 증가하며, 상대 국가에 선전포고를 하기 위한 명분(상대국가의 호전도)의 필요성도 감소한다. 또한 선전포고로 생기는 불만도 증가율도 감소한다. 하지만 평화시 상대 국가와의 우호도 회복률이 낮아진다.
우호도는 말 그대로 해당 국가와 플레이어 국가의 친밀도를 나타낸다.
자국의 외교에서 할 수 있는 행동. 자신의 점령지에 자신과 정치 슬라이더가 똑같은 괴뢰국을 세운다. 괴뢰국은 자체적으로 군대를 생산하고 주인에게 자원을 바치며, 다른 국가와 무역이나 협상을 맺을 수 없다. 호전도가 낮아진다.
대상 국가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대상 국가의 동맹국도 전쟁에 자동적으로 참가한다.
전쟁을 벌이는 국가와 할 수 있는 행동. 해당 국가만 평화협상에 참가하는 Separate Peace와 해당 국가의 동맹 모두가 평화협상에 참가하는 For the Alliance가 있다. 전황이 좋다면 무장 해제, 군사적 통행권, 괴뢰국화, 영토 요구와 같은 굴욕적인 조건을 상대가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지지만 전황이 나쁘다면 이와 같은 조건을 내걸어야 상대가 받아들인다. 물론 그 정도까지 가면 전에 세이브한 데이터를 불러오자. 평화협상이 체결되면 평화협상으로 변동이 생긴 국토 외의 모든 국토는 전쟁 전 상태로 돌아온다. 또한 평화협상 이후 일정 기간은 선전포고가 불가능하다.
대상 국가를 합병한다. 대상 국가와 전쟁 중이며, 대상 국가의 수도 및 모든 승리 점수를 빼앗아야 한다.
돈을 부어서 호감을 사려 해본다. 성공적이지 못해도 대상 국가와의 호감도가 살짝 오르며,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 해당 국가의 정치 슬라이더 한칸을 자국과 흡사하게 바꿀 수 있다.
해당 국가에서 쿠데타를 선동한다. 해당 국가의 정치 슬라이더를 플레이어와 똑같이 만든다. 만약 해당 국가가 전쟁 중일 경우 즉시 휴전에 들어간다.
1936년 시작하면 아비니시아와 전쟁 중. 이후 디시전으로 알바니아까지 처묵한 다음 제2차 세계대전을 기다리면 된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발리고 강화조약을 맺으면 인도차이나 연방의 소유권을 넘겨 받을 수 있는 디시전이 발동한다. 이러면 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이 해금되는데, 미국은 중일전쟁과 그에 딸린 각종 이벤트 때문에 일본을 싫어할게 뻔하므로 이 디시전을 발동한다.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면 미국의 애완견[* 민주화, 중국 지역을 중화민국에게 반환, 모든 괴뢰국 해방, 한반도가 대한민국으로 독립, 영미와 군사 통행권&불가침 조약 체결, 불만도 +20%, 미국의 괴뢰국화.]으로 전락한다. 인공지능이 잡을 경우 100% 미국과 네덜란드령 동인도에게 엠바고 처먹기를 선택하고, 이후 "진주만 공습" 디시전을 갈긴다.
지금은 에티오피아라 불리는 국가. 1936년 기준으로 이탈리아와 전쟁중이다. 1936년 내에 점령 및 합병당하는 경우가 잦다.
- Victoria II . . . . 21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회사 [[Paradox Interactive]]에서 제작한 실시간 [[대전략]] 게임.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혁명]]의 시기인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1836년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멕시코는 독립을 선언한 텍사스를 상대로 전쟁 중이며,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독립 국가였던 트리폴리를 다시 복속시키기 위해 전쟁 중이다. 아직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분할"이라고 불릴 유럽 국가들의 침략을 받지 않았으며 동아시아 역시 아편 전쟁으로 시작될 서양과의 불쾌한 접촉을 아직 겪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현재의 오리건 주, 워싱턴 주가 될 자리와 사할린, 아프리카 대다수 지역, 태평양의 많은 섬들은 아직 제대로 된 국가가 자리잡지 못한 상태이다.
1861년 7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이탈리아는 통일을 완수하여 열강의 자리에 올라갔으며, 한때 열강이었던 스페인은 이탈리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탈락해버렸다. 아편 전쟁으로 홍콩을 강탈당한 중화제국은 천왕이 이끄는 태평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에게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강탈하고 현재의 국경선을 거의 완성했지만 독립을 선언한 아메리카 연합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튀니스와 트리폴리를 자국 영토로 합병하고 이집트에게서 중동 지방을 빼앗았다. 프랑스 역시 알제리를 완전히 먹어치웠고. 한편 일본은 미국의 영향권 내에서 근대화를 끝마쳐가는 중이다. 중앙아메리카 합중국은 분열되어 여러개의 나라가 되었으며, 페루는 에콰도르가 지배하고 있는 파스타사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서구화되지 않은 국가들. 그랜드 캠페인이 시작되는 1836년 시점에는 보어인들이 다스리는 오라녜와 트랜스발을 제외한 모든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이 비문명국이다. 비문명국은 기술을 연구할 수도 없고, 자력으로 공장을 지을수도 없다. 또한 아무리 부강하더라도 문명국보다 낮은 순위로 처리된다.
식민지를 개척하고 유지하는데는 식민력(Colonial Power)이 필요하다. 식민력은 코어가 박힌 영토에 있는 해군기지와 해군 유닛에게서 얻을 수 있다.
모든 POP는 특정 상품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하면 해당 POP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투쟁을 벌이게 된다. 또한 상품들은 건설과 군대 훈련에도 필요하다. 건물을 건설하려면 시멘트와 여러가지 재료가 있어야한다. 군대를 훈련시키려면 소화기와 같은 재료들이 있어야한다. 요구하는 상품들이 없다면 건설과 훈련은 시작되지 않는다.
상품을 가져오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국 POP가 생산한 물품을 쓰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타국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자동적으로 전자의 방법이 시행되지만, 자국 상품으로 부족하다면 후자의 방법으로 넘어간다. 사전세계적으로 부족한 상품의 경우에는 이미 다른 나라들이 다 사버리므로 구하기 힘들다. 영향권에 소속되어 있는 국가들은 영향국 리더와의 거래를 최우선으로 한다.
또한 문명국들은 디시전을 통해 연구 담당 관리들을 변경할 수 있다. 이 디시전에는 약간의 위신 감소와 10여년간의 디버프가 동반된다. 선택할 수 있는 담당 관리들은 다음과 같다.
관계도(Relations)는 해당 국가 정부와 얼마나 사이가 좋은가를 의미한다. 관계도가 높을수록 요청을 들어줄 확률이 쥐꼬리만큼 늘어난다. 만약 관계도가 음수라면 모든 요청에 "ㅗㅇㅅㅇ"라는 반응이 날아온다.
외교 행동을 하는데에는 외교 점수(Diplomatic Point)가 필요하다. 외교 점수는 기본적으로 0.3씩 들어오며, 특정 기술을 개발해서 수입을 늘릴 수 있다. 주요 열강은 외교 포인트를 두배로 더 받는다. 가능한 외교 행동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 동맹 해체(Dissolve Alliance) : 1외교 점수를 소모해서 해당 국가와의 동맹을 파기한다.
* 동맹군 요청(Call Ally) : 해당 동맹국에게 현재 자국이 참가하고 있는 전쟁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만약 해당 국가가 이를 거부할경우 동맹은 파기된다.
* 관계도 증가(Increase Relations) : 2외교 점수를 소모해서 해당 국가와의 관계도를 살짝 올린다.
* 관계도 감소(Decrease Relations) : 1외교 점수를 소모해서 해당 국가와의 관계도를 살짝 내린다.
* 전쟁 합리화(Justify War) : 전쟁을 벌일 명분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1외교 점수를 소모해서 해당 국가와 전쟁을 벌일 명분을 주작해낸다. 전쟁 명분을 만드는 동안 다른 나라들에게 걸릴수도 있는데, 이 경우 취소되지는 않지만 악명이 증가한다. [[https://www.chapelcomic.com/52/|그런데 진짜 잘 들킨다.]]
열강의 영향권 내에 들어온 국가는 해당 국가의 요청을 들어줄 확률이 증가하며, 해당 국가의 시장이 열강의 시장과 이어지기에 희소 자원의 확보와 상품의 판매가 쉬워진다. 또한, 영향권 내의 국가가 침략을 받게 될 경우 영향권의 열강이 그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가할 수 있다.
* 대사관 폐쇄(Ban Embassy) - 친숙함(Friendly)부터 사용 가능. 영향력 65를 소모해 지정한 열강이 해당 국가에 쌓은 영향력을 전부 날려버린다. 지정된 열강은 1년간 해당 국가와의 영향력을 쌓을 수 없다.
=== 군사와 전투 ===
[[Victoria II/군사와 전투]] 페이지 참조.
- 고산케 . . . . 21회 일치
[[도쿠가와 막부]]의 세 분가인 오와리(尾張)·키이(紀伊)·미토(水戸)의 세 가문을 뜻한다. 도쿠가와 친족을 영주로 임명한 친번(親藩)의 핵심이며, 도쿠가와 막부를 보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고산케의 조상은 모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이며, [[쇼군]]의 지위를 계승한 본가와는 별도로 세개의 번에 따로따로 봉해져서 각자 [[다이묘]](대영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고산케는 도쿠가와 본가의 혈통이 단절되면 본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혈통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제로 8대에서 14대 까지는 키슈 도쿠가와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고산케는 다른 다이묘에게는 없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쿠가와 막부와 같은 아오이고몬(葵の家紋)을 사용할 수 있으며, [[에도성]]에 들어갈 때 패도를 하는 것을 인정받았다.
*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尾張) : 다른 이름은 비슈가(尾州家). 시조는 제9남 도쿠가와 요시나오(徳川義直). 오와리번을 영지로 [[나고야]]을 거성으로 삼았다.
* 키이 도쿠가와 가문(紀伊) : 다른 이름은 키슈가(紀州家). 시조는 제10남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頼宣). [[와카야마]]번을 영지로 삼고 와카야마성을 거성으로 했다.
* 미토 도쿠가와 가문(水戸) : 미토가. 시조는 제11남 도쿠가와 요리후사(徳川頼房). 히타치 국 미토를 거점으로 삼았다.
* 일본문화에서 특정 분야에서 강력한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대표적인 3명을 손꼽아서 말할 때 고산케라는 표현을 쓴다.
- 김성민 (1994년) . . . . 2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1라운드([[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2017년)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신분 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이후 [[KBO (야구)|KBO]]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공식적인 항의 서신을 보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이러한 규정 위반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월 15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사무국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벌금 징계를 부과하였고 그와의 계약을 30일 간 잠정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31426 美볼티모어 부사장 “김성민 계약 파문 공식 사과”],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2&aid=0002272362 MLB 사무국, 김성민 영입 볼티모어에 벌금 징계], 《해럴드POP》, 2012년 2월 16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계약은 미루어졌고 결국 [[6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의 계약 불발을 보도하면서 [[7월 7일]]에 공식적인 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그는 국제 미아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196271 볼티모어, 김성민 계약 위해 MLB 승인 기다려], 《스포츠조선》, 2012년 3월 2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64872 '스카우트 파동' 김성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재계약 실패], 《OSEN》, 2012년 6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999 댄 듀켓, “김성민과 계약하고 싶지 않다”], 《OSEN》, 2012년 7월 8일.</ref> 결국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는 2013년 초에 일본의 [[후쿠오카 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14&aid=0000227125 고교야구 유망주 김성민 일본 대학 입학 왜?], 《MBC》, 2013년 1월 11일.</ref>
==[[SK 와이번스]] 시절==
2016년에 대학교 4학년 때 [[KBO (야구)|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8월 2일]]에 실시한 트라이 아웃에 참여하였다. 트라이 아웃에서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었고 1억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2017년]] [[4월 2일]] [[kt 위즈]]와의 개막시리즈 마지막 경기에 구원 투수로 첫 등판을 하였고 [[4월 1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프로 데뷔 첫 홀드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4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1.1이닝 4실점으로 부진한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5월 18일]]에 당시 [[넥센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김택형]]과의 1:1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다. 이에 관해 [[고형욱]] 단장은 이전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고 밝히면서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컨디션과 실전 감각이 대학 시절만큼 회복된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01214 <nowiki>[배지헌의 브러시백]</nowiki> 넥센은 왜 김택형 대신 김성민을 택했나], 《엠스플뉴스》, 2017년 5월 18일.</ref> [[2017년]] [[5월 2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7년]] [[7월 2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고, 6회에도 올라왔으나 경기가 강우 콜드로 끝나면서 완투승으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1.kr/articles/?3036995 '김성민 데뷔 첫 승' 넥센, kt에 6회 강우콜드 승리] 《뉴스1》, 2017년 7월 2일.</ref>
[[김민성 (1988년)|김민성]]의 별명이 '김우끼'인데 그의 이름은 김민성의 이름 두 번째 글자와 세 번째 글자를 바꾼 것과 같아 '김끼우'라고 불린다.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SK 와이번스 선수]]
- 김준현(코미디언) . . . . 21회 일치
KBS 22기지만, 방송 출연은 그 전부터 이미 하고 있었다. KBS 신인 개그맨 발굴 프로그램인 [[개그사냥]]에서 허영심 가득한 Mr 귀족을 선보인 후 2006년 11월 [[폭소클럽2]]에 고정출연하게 된다. 이때 Mr 귀족 코너로 폭소클럽2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알렸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김준현이 와인잔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여기까지는 정말 화려한 귀족의 모습이지만 '''"응, 맞아! ○○○야!"'''라며 깨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로 들면 자기가 모은 재산을 왜 네가 마음대로 하느냐면서 동생과 재산 싸움을 벌이는 듯했지만 실상은 중국집 쿠폰으로 인한 형제 싸움. 이때 김준현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마다 '''"아, 미안, CHEERS!"'''[* 김준현이나 폭소클럽 제작진이나 글로 쓸 때는 '''치어스'''라고 썼지만, 김준현이 발음할 때는 '''췰스'''에 가까웠다.]라고 했는데, 나름대로 김준현의 첫 유행어였다. [[김구라]] 아들 [[그리(래퍼)|김동현]]과 함께 폭소클럽2가 발굴한 대형 신인.
tvN의 [[예능 프로그램]]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당뇨병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사실 정확히는 방송이라 그런지 당뇨병이라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의사]] 및 당뇨병 환자들이 그 방송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덕분에 몇몇 사람들은 김준현 정도의 수치가 나와도 정상인줄 알고 있는 케이스도 있었다. 당뇨를 한참 넘어선 김준현의 수치에 비해 자기가 낮으니 당뇨임에도 혹은 당뇨전단계임에도 자기 수치가 지극히 정상인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참고로 방송에 공개된 수치는 당화혈색소 8.2에 공복혈당 196이었는데.. 당화혈색소 6.5, 공복혈당 126이 당뇨 기준임을 생각해보면 아득히 높다.] 직계가족에 당뇨병 가족력이 있고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태어났다고 하는데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냥 가족력과 식습관 때문일뿐. 거기에 초고도 비만[* 다만 BMI 상으로만 초고도 비만이지 [[야구선수]]나 무제한급 [[역도]] 선수, 백두급 [[씨름]]선수 등처럼 체지방도 많으면서 근육량이 상당히 많은 [[케이스]]이기 때문에 같은 체중의 일반 비만인보다 관리가 좀 쉬울수는 있으나 이미 당뇨가 나이대 대비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음으로 크게 의미 있는 사실은 아니다.]까지 있으니..... 김준현 본인도 그러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듯 검사결과 내용을 듣는 내내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개그 콘서트]]에서는 [[조선왕조부록]]에서 원빈 박씨([[박지선]])의 [[궁녀]](...) 역으로 처음 이름을 알렸고, [[DJ변]]에서는 전설적인 [[영화]] 예고편 성우인 故 [[돈 라폰테인]]의 특유의 목소리를 패러디한 것이 대박을 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콩쥐팥쥐|콩쥐 앤 팥쥐]]!-- --[[두치와 뿌꾸|두치 앤 뿌꾸]]!--
코너에서 2인자급 캐릭터나 보조역을 담당한 경우는 많지만, 메인 원탑을 한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럼에도 코너 안에서 어느 위치에 있어도 가장 [[미친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재 고갈로 사실상 종영 위기에 처했던 [[생활의 발견(개그 콘서트)|생활의 발견]] 코너에 [[신보라]], [[송준근]]을 받쳐주는 역으로 투입되자마자 코너의 [[인기]]를 다시 되살리는 일등공신이 된 것이 좋은 예. 그리고 [[네가지]]에서 마침내 실질적 원탑이 되었다.[* 물론, 각 출연자가 각자 나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구성이라 딱히 누군가가 주역이라고 볼 수 있는 코너는 아니지만, 김준현의 순서가 맨 마지막에 자리 했고 비중도 많은 편이라 사실상 네가지의 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초반에는 [[김원효]]에 밀리던 듯 했으나 사실상 투탑 체제를 굳혔으며, 라디오 [[CF]] 개수는 "고뤠?" 쪽이 "안돼!~"보다 앞서고 있었다.~~[* 물론 점차 [[인지도]]를 높인 건 사실이지만, 사실 투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김준현이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도 상관없지만, [[김원효]]가 빠지면 비상대책위원회 코너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김원효와 김준현의 비중이 7:3 정도로 차이가 난다... [[라디오]] [[CF]] 개수가 많다고 해서 인기가 더 많다고 볼 수도 없다. "고뤠?"는 한마디로 간단하게 끝나지만 "안돼!~"는 [[유행어]]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현란한 대사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짧은 CF엔 "고뤠?"보다 약간 부적합할 뿐.]
[[편하게 있어]]에선 송병철이 [[대리]]로 있는 [[회사]]의 과장으로 주로 연기했으며, 여기서도 [[송병철]]과 만담 형식으로 이끌어가는데, 비상대책위원회 떄와 달리 송병철을 앞에서는 위해주고 뒤에서 욕하는데[* "누가 내가 먹고 싶대? 병철이가 먹고싶대잖아 병철이갘!" --어째 [[현실]]과 역할이 바뀐 것만 같다.--], 아버지 역할의 [[이종훈(코미디언)|이종훈]]이 나오면 빙칠이와 함께 욕을 봤다.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 예상외로 악기를 잘 다룬다. 2008년 [[윤형빈]]과 함께 대한민국라이브페스티벌이라는 락페스티벌에서 오버액션이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 공연했다. 2012년 [[5월]] 초 [[고현정]]의 고쇼에 나와서 나름 [[엄친아]]임이 밝혀지고, 직접 스틱을 쥐고 폭풍[[드럼]]을 선사하자마자 호감도 급상승 효과를 누렸다. SNL코리아의 코너에서도 수준급의 드럼 실력을 선보인 적이 있다.
* 김준현의 대사톤은 코너마다 비슷하나 특유의 숨 넘어가는(...) 두꺼운 [[목소리]]와 이따금씩 대사를 버벅이면서도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 더 높은 리얼리티와 웃음기를 유발하고, 말투[* 데뷔 초기의 캐릭터에 따른 개별적인 말투가 아닌 최근 들어 자주 사용하는 말투.]도 목소리와 시너지를 일으켜 코미디언인 김준현에게는 엄청난 강점을 준다. 이 목소리 덕에 김준현만 보면 그냥 빵 터진다는 사람도 좀 있다. 예를 들면 고뤠~?!
* 개콘 생활의 발견에서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었던 [[수지(miss A)|수지]]와 키스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두고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이에 대해서는 수지가 [[트위터]]로 입술이 닿지 않았다고 해명함으로서 일단락 되었다. --[[구사일생]]?! 만약 진짜 수지와 입술이 닿았다면?-- --개이득--
* 수지의 [[무개념]] 팬들로 미니홈피 테러와 악플에 시달렸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거 없다|그런 거에 관심 없고]] 오로지 수지를 위로 & 김준현을 깎아내리기 급급했다.
* [[2014년]] [[KBS 연예대상]]에선 [[대상]] 후보에 오른 김준호를 지지하고자 무대 위로 올라와 대상 후보 연설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진심 어린 연설을 준비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 2014년 12월을 끝으로 끝난 [[큰 세계]]를 마지막으로 개콘을 떠난 김준현은[* 다만 그 코너(큰 세계)를 끝으로 바로 떠나지는 않았었다. 한달 뒤(2015년 1월)에 [[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에서 유민상을 돕기 위해 잠시 나왔다. --하지만 유민상의 (김준현과) 닮았다는 말 때문에 (김준현이) 개[[빡]]쳐서 빡친 표정으로 나가 버리면서 끝에 안 좋게 끝난 게 좀 그렇긴 했지만...-- --게다가 [[사족]]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유장프는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소득도 남기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2015년]]이 가히 [[본인]]의 전성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수의 프로그램들에 출연하고 있다. [[SNL 코리아]], [[맛있는 녀석들]] 외에도 2015년 8월, 9월에만 비법, 3대천왕, 내 나이가 어때서 등 세 프로그램의 [[MC]]로 나설 정도. 반면 그가 떠난 개콘은 여러 논란들과 함께 [[시청률]] 두 자리가 무너지며 최악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돌아와요 김준현씨!--
* 2015년 먹방, 쿡방이 대세가 되며 프로 먹방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정 방송인 [[백종원의 3대 천왕]]과 [[맛있는 녀석들]] 2개 외에도 각종 쿡방, 먹방 프로그램 게스트 섭외 1순위이며 식품 관련 CF도 꾸준히 들어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수(채소)|고수]], 삭힌 [[홍어]] 등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도 다 잘 먹는 편이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을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지에 대해 연구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남다르기 때문.[* 실제로 [[중학교]] 시절부터 집에 오면 [[라면]]을 끓이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는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다만 라면 끓이는 정도를 제외하면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 게시판을 보면 방송을 보고 다이어트를 포기했다던지, 장 수술후 입맛이 없어서 고생이었는데 방송을 보다가 침이 나와서 깨끗이 나았다던지 하는 반응이 많은데 그걸 보면 그렇게 뿌듯하다고 한다.
* [[장염]]에 걸리면 [[막걸리]]를 먹는다고 한다. 먹고 난 다음날 [[똥|황금색 변]]을 보며 깨끗하게 낫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와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장난으로 하는 말은 아닌 듯. [[https://www.youtube.com/watch?v=x6fJQ_DaMbw|#]] [[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6698626|# 1분 15초부터]]...] --하지만, [[일반인]]들은 절대로 따라하지 말자!--
* 면종류의 [[요리]]들을 끊어먹는 걸 대단히 싫어한다. 라면, [[국수]], [[냉면]] 등 소면이나 중면급 면을 쓰는 면요리라면 어지간한 길이라도 그냥 한번에 들이키는 수준.[* [[백종원의 3대 천왕]] 21회 '갈라쇼' 편 당시에 제주도의 한 짬뽕집에서 거의 키 길이만 한 짬뽕면을 원샷(...)해서 점주와 손님들이 감탄하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면발이 굵어서 대충 씹고 넘기는게 불가능한 경우(손칼국수나 수타 우동중에 아주 드물게 있다) 엔 드물지만 살짝씩 끊어먹는 경우도 있긴 있다.[* [[백종원의 3대 천왕]] '짜장면 2편'때 군산의 고추 짜장을 먹다가 면을 가위로 끊었었다. 이유는 너무 매웠기 때문. 평소처럼 들이키다 짜장에서 나오는 매운맛으로 인하여 사레가 들렸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UlpKfX_M0o|맛있는 녀석들에서 나온 김준현의 면먹는 장면 모음]]
* [[복면가왕]] 80차 경연에서 [[오빠 몸이 완전 돌덩이야 모아이]]로 나와 2라운드에 오르면서 선전했으며 제작진의 배려로 3라운드 준비곡인 장미여관의 '봉숙이'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21회 일치
* 시끌벅적하게 시작한 기숙사 생활. 학생들은 [[아이자와 쇼타]]에게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인턴제도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 교장 [[네즈]]가 내려간 후 이어서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하운드 독]]이 단상에 오른다. 하운드 독은 여러가지로 격렬해서 개짖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설교를 마치고 내려간다. 도저히 전달이 안 되기 때문에 블러드 킹이 흥분한 그를 진정시키고 번역해서 학생들에게 전파한다. 그 내용은 어제 싸움한 학생이 있었다는 걸로 [[미도리야 이즈쿠]]와 [[바쿠고 카츠키]]에 대한 것. [[야오요로즈 모모]]는 둘이 문제아로 찍힌거 아닌가 우려한다. [[미네타 미노루]]는 하운드 독은 흥분하면 사람말도 못하게 되는 거냐고 두려움에 떤다.
*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자와 쇼타]]는 본격적으로 반별 조회시간을 통해 본격적인 신학기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아시도 미나]]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잡담을 한다. 대담하게도 [[아스이 츠유]]를 돌아보며 "그 얘기"가 없다고 소근거린다. 아이자와가 그걸 놓칠리 없다.
* 정식으로 질문을 받자 아이자와도 입을 연다. 원래 얘기해줄 생각이었다는데. 히어로 인턴은 한마디로 말해 "정식 히어로 활동". 프로 히어로와 협력하는 직업 체험을 본격화시킨 버전이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럼 웅영제 때 고생한건 의미가 없는거 아니냐고 아우성친다. 너무 격한 반응이라 [[사토 리키도]]가 진정시킨다. [[이이다 텐야]]도 그런 제도가 있으면 웅영제 때 스카웃을 받기 위해 아득바득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자와의 설명으론 바로 그 웅영제에게 쌓은 인맥에 기반한게 인턴제도다. 게다가 이건 수업도 직업 체험도 아니라 "진짜 히어로 활동"이기 때문에 미리 지명을 받지 않은 학생은 인턴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 본래 사무실 별로 인턴을 모집하는 제도였지만 웅영고 학생들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다소 편법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아이자와의 설명을 들은 우라라카는 흥분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앉는다.
이런 설명을 하다 보니 수업이 시작돼 버렸다. 다음은 [[프레젠트 마이크]]의 영어 시간. 아이자와와 180도 차이나는 하이텐션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저녁이 돼서 학생들이 돌아오자 근신 상태의 미도리야와 바쿠고를 놀려대기 시작한다. 미도리야는 쓰레기 처리를 자청하는데 [[키리시마 에지로]]가 마이크의 수업이 따라가기 힘들다고 투덜대거나 [[지로 쿄카]]와 [[오지로 마시라오]]와 인턴 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걸 보고 뒤쳐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느낌을 캐치한 이이다는 "근신 군"이라 디스하며 나름대로 화낸다. 역시 규칙을 어긴 미도리야와 바쿠고에게 불만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이다는 아이자와의 지시로 수업 내용을 전달하는건 금지됐다며 "뒤쳐진 느낌을 진하게 맛봐라"고 디스한다.
* 미도리야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와서까지 그 생각에 푹 빠져 있다. 중요한 학기 초에 수업을 빠져서 완전히 뒤처져 버리는게 아닌가 걱정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쓰레기장 근처에 다다르자 벽에서 묘한 것이 튀어나와 있는데... 왠지 사람 얼굴이다.
벽에 나타난 얼굴은 태연하게 분리 수거에 대해 조언한다. 웅영에 들어와서 별별 희안한 건 다 본 미도리야지만 그저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얼굴은 곧바로 사라져 버리는데.
* 그런 일과 초조함을 품은 채로, 바쿠고보다 한 발 먼저 교실에 복귀한다. 미도리야는 3일의 격차를 따라잡겠다고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마침 아이자와는 미도리야도 돌아왔으니 인턴 제도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하겠다고 한다.
* 오늘은 인턴 제도가 직업 체험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현재 참가하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아이자와는 바쁜 사람들을 일부러 초청했다며 새겨들으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불려온 선배들은 현 웅영고 내에서 "톱3"로 군림하고 있는 유망주들. 이른바 "빅3"다. 아이자와가 부르자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세 명의 선배들.
- 문근영 . . . . 21회 일치
[[리즈 시절]]에는 외모가 '''[[동안]]'''의 표준에 가까웠기에 아역 연기자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특히 [[송충이 눈썹]]의 임팩트가 강하다. 왠지 모를 중성적인 느낌도 강렬해서 다른 연기자인 [[정태우]]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다른 의견으로는 [[고현정]]의 어릴 때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2005년]]작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는 순수한 연변 처녀의 역을 맡아서 춤 솜씨, 연변사투리 실력와 함께 120%의 존재감을 선보였다. ~~대신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로 당시 극강의 댄서로서 군림하던 [[박건형]]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 문근영의 아우라에 묻히고 말았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한 '반딧불이...' 운운하는 대사의 경우 다른 여배우가 이런 대사를 했으면 관객들의 손발이 오그라들었을텐데, 문근영이 그런 대사를 하니까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나왔다. 진부한 스토리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문근영이 연기한 여주인공 캐릭터의 애잔함이 영화를 완전히 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흥행성적은 220만 관객으로 중박 정도였지만, 영화가 중독성이 있어서 문근영 팬과 상당수 남성 관객들에게는 거의 컬트 수준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30대 유부남은 이 영화 한번 보고 너무 좋아서 아내 눈총 받아가며 무려 1달 동안 매일 저녁 이 영화 비디오를 보고 잠이 들었다 한다.]
하지만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로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주인공을 연기하여 이미지 체인지.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의 언니의 시각에서 보는 색다른 시도의 드라마이다. 송은조를 연기했다. ~~나중에 구은조로 개명한다~~ 제대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은조가 엄마를 따라 대성도가로 이사하면서, 새 아버지와 새 여동생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대성도가 알바생 기훈([[천정명]])과 그리는 로맨스가 팽팽하고 애절하다. 명대사 또는 명장면으로 기훈의 '은조야!' 은조의 '은조야ㅠ은조야ㅠ'오열씬, 은조의 '아..아버..아..아빠.. 아빠ㅜ 아빠ㅠㅠㅠㅠ'오열씬 등이 있다. 어째 같은 아역 출신 연기자인 [[강혜정]]과는 대조적으로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같은 해 연극 클로저에서도 위험한 분위기의 [[팜므파탈]]로 등장했는데, 여기서 '''[[담배]]피우는 연기 모습이 엄청나게 익숙해보여''' 문근영이 진짜 흡연 이력이 있느냐를 놓고 격론을 낳기도 했다. 다만 흡연 여부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다. 설령 사실이라 한들 성인의 흡연이 뭐가 문제랴마는...[* 사실 여배우들의 흡연은 꽤 많은 편이다. 故 [[최진실]]도 소문으로 흡연자라는 설이 꽤 돌았는데 결국 [[조성민]]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임신]] 중 흡연이 확인되어 진실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실 이미 [[2008년]]에도 담배를 피우는 컨셉 화보를 찍어 의혹이 커졌었는데, 비흡연자 중에서도 흡연 묘사 자체를 모방효과로 인해 달갑잖게 취급하는 혐연자들이 있는 것과 대조되는 것을 보면, 문근영이 비록 흡연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흡연행위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거나 반감을 갖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물론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아직 가시지 않은 팬들 입장에서는 흡연 연출 자체만으로도 [[충공깽]].
[[2012년]]에 SBS주말극 [[청담동 앨리스]]로 다시 메인 스트림에 복귀하였다. 이 작품은 부자와 사귀어 신분 상승이라는 통속적인 트렌디 드라마.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주말극으로 복귀한 것은 놀라운 시도. 보통은 평일 미니시리즈나 여하튼 평일 드라마로 나와야 맞다. 역할이 패션 [[디자이너]]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컸다.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 [[신데렐라 언니]]에서 톰보이... 우리 근영이 예쁜 옷좀 입혀주세요~~ 그러나 예비 패션 디자이너라기엔 너무나 안목 없는(...)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까였다. 드라마 쓸 줄 모르는 신인 작가들의 발질로 명장면, 명대사 하나 없는 드라마로 남고 말았다. ~~그래도 박시후가 맡은 차승조의 '한마디만 더하면 죽여버릴거야'[* 참고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한세경에게 내뱉는 대사다...], 한세경의 '내 죄에요' 등이 있다.~~
[[2013년]]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로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했다. 또 [[남장여자]] 역이라 [[바람의 화원]]을 다시 보는걸로 착각할 정도. 그래도 남장은 초반에 잠깐(...) 나오고 다시 여자로 돌아간다. 본인이 후에 인터뷰에서 "남장여자 씬은 순전히 드라마 재미를 위해 추가로 들어간 씬이고, 원래는 계획에 없던 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얼굴은 다시 갸름해졌다~~ ~~초반에 갸름했다가 뒤로 갈수록 체력이 딸리고 부상을 입어 제대로 부었다(...)~~ [[청담동 앨리스]] 때도 그랬지만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면서 작품 때문에 제대로 까였다. 팬사이트에서도 옹호해주는 팬이 없을 정도... 전작 [[무사 백동수]]를 은하계 너머로 보내버린 전적이 있는 작가가 화근이었다. 거의 만화 영화 대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치하고 간단한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했다. 그나마 [[전광렬]]의 연기가 혹평을 피하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줬으나 다른 누구도 작가의 발대본 앞에 살아남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존재감 없이 종영하고, 종방연 당일, 그동안 종방연은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성실의 아이콘 문근영이 [[불의 여신 정이]] 종방연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는 팬들의 제보와, 마지막회를 앞두고 어이없게 죽음 테크를 탄 [[김범]] 또한 종방연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제보가 잇따르자 두 배우의 팬들은 각자 자기 배우가 얼마나 작품에 서운했으면 꼬박 가던 종방연도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 꽁해 있는 것이냐고 작가와 제작진을 향해 성토했으나...
참고로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 개봉 와중에 특례입학하는 바람에 '''수능 따윈 필요없어'''라는 비아냥조의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다. 이 특례입학 과정에서 수능으로 당당히 입학하겠다는 약속을 번복한 것에 대해 호감 이미지가 상당량 깎인 듯.
문근영의 입학 당시 사회적으로 시끄러웠던 분위기와 달리 학내에서는 그렇게까지 시끄러운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문근영 애니콜 10년 모델설' 같은 게 나돌았던 걸 보면 어디선가 말이 나오기는 했던 모양.
[[2008년]]까지는 학업에 전념했으나, 이후 연기 활동으로 인해 휴학하고 09년에 복학,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최종적으로는 2012년에 현대소설론을 마지막으로 수료했다.[* 모든 대학들이 그렇듯, 수업만 전부 다 듣는다고 해서 [[졸업]]이 되는 것이 아니다.(가장 일반적인 것으로는 졸업 [[논문]] 미통과.) 수업을 다 들어도 졸업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졸업이 되지 않고 수료만 된 것으로 처리된다. [[성균관대학교]]는 학점 이수 외에도 영어 공인 점수, [[자격증]] 등의 3품을 따야 졸업 요건이 충족된다. 문근영은 학점도 이수하고 졸업 논문도 제출했으나 3품을 따지 못해 졸업은 하지 못했고, 국어국문학 학부를 수료만 한 상태이다. 그래도 3품 제출 기한이 무기한이기 때문에 문근영의 경우 대학에서 요구하는 영어 점수와 자격증을 취득하는 순간 바로 당해 학기에 졸업 처리가 된다.] 수료상태를 끝내고 2015학년도 전기학위수여식(2016년 2월)에 학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극우 군사평론가 [[지만원]]이 문근영의 선행을 빨치산인 그녀의 외조부와 연관지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쓰면서 논란이 일었다.[[http://www.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4917|#1]] [[http://www.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4926|#2]] [[http://www.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4918|#3]] 여기에 대해 문근영의 선행까지 색깔론으로 보는 것이냐는 비판이 있었고, 지만원은 문근영을 이용하려는 미디어를 비판한 것이라 반박한다. 서울지법은 지만원의 패소로 판결했으나 서울고법에서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밝히라는 반론보도로 판결을 내리게 된다.
||본지는 지만원 씨가 배우 문근영의 기부와 관련하여 인터넷에 올린 게시물에 대하여 2008.11.16-18.에 걸쳐 2회의 인터넷신문기사와 1회의 신문사설을 통해. “지만원 씨가 문근영의 선행에 대하여 이념적인 색깔을 들어 비방하고, 올바른 기부문화 형성에 방해를 하였다”는 취지로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지만원 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은 문근영 씨의 선행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 선행을 이용하여 빨치산을 미화하려는 일부 언론을 비판한 내용”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끝.||
||본 방송은 2008년11월17일 8시 뉴스에 배우 문근영의 기부와 관련하여, 우익논객 지만원 씨가 문근영 씨의 기부에 색깔론을 들고 나오면서 손녀인 문 씨의 선행은 빨치산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지만원 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은 ‘문근영 씨의 선행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선행을 이용하여 빨치산을 미화하려는 일부 언론을 비판한 내용’ 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끝.||
어린신부가 개봉해서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갑자기 늘었고 어미는 '~근영'으로 맺는다. 나중에 근영체는 [[나영체]] 등의 바리에이션도 탄생했다. [[나영체]]가 등장하고 의문문에 쓰기 곤란한 근영체와 평서문에 쓰기 곤란한 [[나영체]]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다.
* 2016년 로미오와 줄리엣 - 줄리엣 역
* 바람의 식객이다. 전국 맛집고수들만 안다는 지역 명물 맛집을 가면 종종 그녀의 사인을 발견할 수 있다. 고향인 광주와 학교인 성대 근처 맛집은 물론 제주도, 강릉, 인천 등 도처에서 그녀의 사인이 목격된다. ~~ 맛이 별로인 집은 사인과 함께 ^^ 이모티콘만, 맛있는 집엔 사인 밑에 '대박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등의 친절한 코멘트도 함께 남겨준다카더라~~
* 예능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빨이 없다고(...) 최신 예능코드와 본인의 웃음코드가 많이 다른 이유도 있다. 다만 패널이 던지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받아내는 능력은 있다. 드물게 예능에 출연하면 꼭 댄스타임을 시킨다.[* 2010년 해피투게더, 김정은의 초콜릿, 2012년 런닝맨 등.] 몇년 간 매 댄스타임마다 댄스가 안 바뀌고 그대로라는 것도 특이. ~~문근영표 웨이브~~ 팬미팅 때 어느 팬이 왜 예능출연마다 춤이 안 바뀌냐고 묻자 대답하기를, 항상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미 그 춤을 추고 있다고 한다.
* 2015년 1박 2일 여자사람친구 특집에서 김주혁의 지인으로 출연했다. 실제로 둘이 같은 소속사이다. 원조 국민여동생이란 이미지와는 달리 털털한 모습과 승부욕으로 분량 확보.
* 어릴 때부터 귀요미에 몰빵한 외모가 역변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지겹도록 달고 살았다. 나아가 성인배우로서도 전망이 좋지 않을거라는 걱정도 많았던지라 조금만 살이 찐 사진만 올라와도 쟤는 배우 생활 끝났다라는 식의 평이 많았다. 그러나 이를 불식시키고 성인 배우로도 성공했으니 생명력이 있는 배우이다.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21회 일치
범인 미즈우치 타카시는 신장 183센티미터, 체중 89킬로그램의 훤칠한 체격에 샤프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었다. 미즈우치는 학생 시절부터 [[검도]]를 단련하여 [[검도]] 5단의 유단자였으며, 고교 졸업 후 2006년 4월에 경찰에 채용되었다. 근무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미즈우치 타카시는 외모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농락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관임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은 매우 불성실한 남자로서, 2014년 8월 아내와 입적하기 전후의 기간에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 이외에 센다이에서 3명, 오사카에서 3명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는 야마가타 현 출신으로, 친가는 니시카와쵸(西川町内)에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부]]로 활동하여,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요네자와 시(米沢市)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배구부]]로 활동하여 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고교 졸업 이후 미야기 현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론을 배웠으며, 2014년 4월 부터 오사카 시내의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평소 업무 시작 30분 전에 출근하고 무단 결근도 한 번 없었던 성실한 사원으로서, 동료와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의료 사무원이었다.
2013년 4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피해 부흥 사업의 일환으로, 오사카 부경에 근무하던 미즈우치 타카시는 [[미야기 현]]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4월 23일, [[센다이]] 시내에서 도시 부흥을 위하여 열린 [[마치콘]]에서 미즈우치 타카시는 참가한 대학생 시라타 히카루와 만나게 된다. 당시 친구의 발언에 따르면 미즈우치 타카시는 시라타 히카루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오고, 신체 접촉도 거침없이 해와서 처음에는 싫어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몇주 뒤 시라타 히카루는 미즈우치와 교제를 시작했는데, 친구에게 처음에는 싫었지만 몇일 놀아보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렇게 고민하면서도 시라타 히카루는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녀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경험이 있어, "한 사람이라도 많은 환자와 그 가족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녀는 오사카 시 히가시스미요시 구(大阪市東住吉区)에 있는 암 치료 병원에 사회복지사로 취직하게 되어, 2014년 봄에 오사카로 이주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즈우치 역시 미야기에서 파견을 마치고 오사카로 돌아와, 아베노 경찰서(阿倍野署)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여전히 시라타 히카루에게 차갑게 대하여, 오사카에서 주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6월에 미즈우치는 갑자기 시라타의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공판에서 진술에 따르면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해서 막차를 놓쳤다. 돌아가는 것이 귀찮아져서, 시라타 씨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이후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미즈우치는 시라타와 단 3번 만나게 된다. 그리고 2014년 8월에 '''미즈우치 타카시는 한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오사카 경찰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성대한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2014년 10월, 시라타 히카루는 미즈우치 피고와 헤어지려고 했다. 사실 미즈우치는 이 때 이미 아내가 있어,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시라타 히카루와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그럼에도 미즈우치는 "나를 좋아하잖아. 헤어질 수 없잖아."라고 말하여 시라타는 눈물로 헤어지는걸 포기했다고 한다. 시라타 히카루의 친구가 한 이 증언에 미즈우치는 "기억이 없다."고 부정하였다.
이후 미즈우치는 오사카에 있는 단골 술집에 시라타를 데려가서, 후배 경찰관 A와 만나게 하여 셋이서 식사를 가졌다. A는 미즈우치가 기혼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즈우치의 의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시라타는 후배 경찰관 A를 소개받은 것을 기뻐했다고 한다. '애인'으로 승인된 것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2014년 크리스마스에도 시라타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1월 12일, 시라타 히카루는 A의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미즈우치와 아내의 결혼식 사진'''을 발견하였다.
A는 시라타 히카루의 기입을 발견하고 미즈우치에게 전했지만, 미즈우치와 A의 [[LINE]] 대화는 긴장감이 없었다.
그리고 이 날 저녁, 미즈우치 타카시는 피해자와 교우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서 부경 본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게 된다.
아파트의 방범용 CCTV를 조사한 결과, 오전 7시 45분 쯤 얼굴을 숨기듯이 검은 두건과 마스크를 한 남자가 아파트를 방문하여 엘리베이터에 탑승, 오전 8시 45분 쯤 비상계단으로 아파트로 내려와서 아파트 입구를 지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겉옷은 밝은 갈색 점퍼로 바뀌었지만, 1시간 전의 남자와 비슷하여 동일 인물로 추정되었다.
몸집이 크고 젊은 남자라는 점에서 미즈우치 타카시와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미즈우치 타카시가 범행 시간대에 어딘가에 외출을 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결국 단순 용의자에서 중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게 된 미즈우치 타카시는 25일 진술을 뒤집어 "내가 했습니다. 벨트로 목을 졸라죽였습니다."라고 밝혔다.
- 박경림(MC) . . . . 21회 일치
그 이후 90년대 말부터 MBC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기 시작해, 드세면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사각턱'과 '특이한 목소리'[* 목소리가 꽤 걸걸하고 허스키하다. 본인 말에 의하면 학창 시절에 [[운동회]]를 했을 때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목이 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라고 한다.] 기믹을 앞세워 새로운 예능캐릭터의 트렌드를 이끌면서 상승세를 타다가 결국 2000년대 초반에 정점을 찍어 수많은 광고와 방송3사 인기프로그램들에 출연하다 못해 영화나 드라마에까지 출연하는 등 연예계 블루칩이 되었고, 결국 2001년 연예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 후에도 200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예능계의 인기스타로 활약했다.
그녀의 등장과 스타로 가던 과정은 사실상 한국 예능계를 넘어 연예계 전체의 흐름을 바꾼 파격적인 일이었고, 그녀는 그야말로 21세기 연예오락 프로그램계의 혁명같은 존재였다. 당시까지 개그우먼이 아니면서 미모가 뛰어나지 않은 여자연예인이 연예오락 방송계의 스타로 부상한 경우는 사실상 없었는데, 박경림을 통해 그런 트렌드가 생성되었으며, 사실 극형식이 아닌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에서 별명을 통한 캐릭터를 만든다는 개념도 박경림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MBC에서 가장 잘나가던 주말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서 당시 가수 뿐만 아니라 예능으로서도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스티브 유]]와 진행자 [[유재석]] 등이 박경림에게 '복태'라는 남자아이 기믹을 만들어[* 유재석이 '내가 알던 우리동네 남자아이 복태 닮았다'로 시작한 뒤, 스티브 유가 매회 자꾸 '복태야'라고 부르면서 다른 출연자들도 그렇게 부르는 등 유행이 되었다.] 그걸로 웃음을 주던 것이 시초다.
박경림 이후 박경림처럼 예쁘지 않지만 매력있는 컨셉의 여자연예인들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전성기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녀같은 스타일로 광고계까지 접수하는 여성 대스타가 전혀 나오지 않은만큼,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 연예사에서 절대적인 역사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시대 이후로는 국민여동생 붐으로 [[문근영]], [[김연아]], [[손연재]], [[아이유]] 등 미모가 되는 10대후반 ~ 20대초반 여자스타들만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배우, 가수, 스포츠 등 자기분야에서의 인기를 업고 올라간 것이지, 박경림처럼 순수히 예능 MC와 출연자로써만 인기를 얻어 광고계 블루칩이 된 것이 아니다.]
[[1대 100]] 197회와 375회에 1인으로 나왔으며 [[1대 100/1대 1 문제 #S-3.9|그녀가 푼 문제는 여기 참고.]][* 여기서 나온 최후의 1인은 2018년에 우리말 겨루기에 나와서 50대 달인이 되었다.]
그 뒤 [[1대 100]] 498회에서 절친인 [[이수영(가수)|이수영]][* 참고로 [[이수영(가수)|이수영]]은 25회 전반전, 412회 전반전에서 1인으로 나와 모두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412회 전반전 2단계에선 실수로 답을 잘못 누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과 같이 3차 도전을 했다. 이 날 이들은 7단계를 통과하면 100인들에게 커피를 쏜다는 약속을 했으며 8단계 1:23까지 생존하면서 약속을 지켰다.
* 상술된대로 인맥을 늘리고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해서인지, 고교시절부터 활발한 외부활동으로 데뷔전에 이미 [[장동건]]을 자기 학교 행사에 초대하여 오게했던 적[* 다만 이 때는 아직 장동건이 지금과 같은 최정상급 인기연예인은 아니었다. 원래는 당시 최고였던 신성우를 섭외하려 했지만 실패해 같은 소속사의 신인이던 장동건을 섭외했다고 한다.]이 있었으며, [[이휘재]]와도 고등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 박수홍이랑 너무 친해서 저 둘 사귀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스캔들도 났었지만 자신이 진행하는 2005년에 KBS <좋은사람 소개시켜줘> 맞선 프로그램에 출연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도 그럴듯이 현재 KBS예능 CP인 당시 한경천PD도 출연자와 결혼을 했다.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반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백인 남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절, 순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전성기 시절의 위업을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대 여성이 연예대상 최연소 수상'''으로 설명 할 수 있다. 20대 연예대상은 최초이자 최후이고, 여자 연예대상은 이효리의 공동대상을 빼면 단독수상으론 박경림이 유일. 다만 과거 연예대상이아닌 방송대상 코미디 부분이나 코미디대상에선 여성으로는 김미화와 이경실, 20대로는 이경실, 서경석, 박준형이 수상을 한 적은 있었다. 다만 최연소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경림의 수상 당시 나이는 만22세. 지금 잘 나가는 여자MC들 전부를 합쳐도 박경림 인기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로[* 시상식 수상자로 나와 꺅꺅 소리지르는 소녀팬들을 몰고다닐 정도였으니..그것도 여자 예능인이..더 웃긴 건 그 소녀팬들한테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센스까지..] 2000년대 초반 당시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녀 이후 당시 그녀의 예능계 포스에 조금이라도 비교할만큼 잘 나가 봤던 연예인은 그나마 [[이효리]] 한명뿐이다.[* 배우와 예능 MC를 병행하며 박경림보다 더 오래 예능계 몸담은 [[김원희]]도 있지만, 그녀는 미모의 여배우치고 코믹연기가 능해 이미지가 재미있고, 남자MC와 호흡맞추며 하는 진행을 잘하여 롱런한게 훌륭한 것이지 박경림처럼 3년 정도 장기간 예능계 여성 원탑이었던 적은 없었고, 잘 나갈때의 이효리조차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 [[유재석]]이라는 대스타 MC의 받쳐주기 후광으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예능만으로는 2000~2002년 박경림이라는 여성 예능인의 파괴적 인기점유율에 미치지 못한다. 전성기 박경림은 박수홍 같은 남자MC들과 출연하더라도 그녀가 웃음과 진행을 이끌어가는 메인이었지 남자MC의 보조만으로 끝났던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당시 잘나가던 남자 MC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또한 다른 여자연예인들은 다른 분야 활동에서의 인기가 예능에도 미쳤던 영향이 있지만 박경림은 자신이 혼자 진행하는 인기프로그램까지 있었을만큼, 예능만으로 절대적 블루칩이 되었던 인물이다.]
* 2002년에는 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활동했다. 다만 진지하게 한다기보단 예능 프로그램에서 프로젝트성으로 '''"박남매(박경림, [[박수홍]])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박고테'''로 앨범 발매. 요즘 [[무한도전]]에서 하는 각종 앨범 제작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기예능에서 노래와 앨범 만드는 전과정을 노출시켜줬기 때문에, 꽤 큰 인기를 얻었으며 MBC 음악캠프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랐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공주병 컨셉으로 해서 만들어진 "착각의 늪"이라는 곡이 타이틀곡으로 특유의 안무와 박수홍의 손발이 오그라지는 랩(...)이 특히 유명했다. 당시에는 싱글의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11곡으로 풀앨범을 제작했다. 당시 박경림의 장점인 인맥이 도움이 되어 타이틀곡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주영훈]]이 만들었고 [[김장훈]], [[윤종신]], [[이수영(가수)|이수영]], [[이기찬]], [[유리상자]], [[유희열]], [[김동규#s-1]] 등이 참여했다. ~~라인업 ㅎㄷㄷ~~ 박남매의 '''고속도로 테이프''' 프로젝트지만 인기가 생각보다 많아 CD로도 발매되었다.[* 앨범은 20만장 가까이 팔렸다.] 나중에 유학 이후 국내 복귀 다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망했다'는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목표 판매량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백만장이었으니까...] 당시 대단한 인기로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 결혼 후 예능에서의 활동은 잘 안 보이는 상태. 애엄마가 돼서 그런 듯하다. 케이블에 간혹 드문드문 보이는 경우도 있다. 과거 코미디 얘기만 얘기하던 시절의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코갤]]에선 8대 [[신]] 다음으로 여신 라인의 수장을 차지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방송에서의 인맥 자랑 + 같은 이야기 여러 번 울궈먹기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 전성기 시절에는 자기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에 서슴이 없었고 과감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으나 복귀 이후에는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여자MC와 차별점을 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사각진 얼굴로 예쁘다고 하긴 힘든 얼굴인데[* 그래도 데뷔초와 비교해보면 많이 예뻐지긴 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이 점을 직접 언급했으나 MC들의 반응은 별로(...).] 의외로 [[패리스 힐튼]]을 디스할 때 서양 박경림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의외로 곰곰히 따져보면 닮았다. 단 실제 얼굴은 정말 사각졌다. 사진빨이나 카메라빨을 못 받는다고.
유학시절 찍은 사진 중에 [[마이크 무시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지금도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 [[카더라]]. 유학 당시에 [[서재응]], [[김병현]]과의 인맥을 쌓았다. 하지만 두 선수가 그녀와의 만남 이후 부진을 겪자 당시 야구 이야기만 하던 시절의 [[야갤]]에서는 이를 '박경림의 저주'(...)라고 부른다.
* 2014년 3월 14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진행된 민방위 훈련으로 인해 [[두시의 데이트]]가 14시 20분에 시작하자 오프닝에서 "민방위 훈련 때문에 늦어진 20분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느냐"라는 발언을 해 뭇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오프닝 멘트 후 청취자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청취자와 20분 늦게 만나는 마음이 아쉬워서 어떻게 재미있게 표현할까 하다가 많은 분을 속상하게 한 것 같다. 오프닝에서 표현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나 지금도 희생하고 있으신 분들을 불편하게 하고 화나게 해 드린 것 같아 생방송 중 사과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 진심을 다해 사과의 말씀 드리겠다” 며 의도와는 다르게 표현된 경솔했던 발언에 대해 즉시 방송에서 사과했다.[* 아버지 역시 상이군경임을 밝혀 불손한 의도의 발언이 아니었단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 위원회는 해당프로그램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2695&yy=2014#axzz3Ba6cD9TR|기사]] 게다가 하필이면 "남성만 병역 합헌"문제로 넷상에서 군대관련 문제가 좀 예민할 때라...--안 될지도--
- 식극의 소마/217화 . . . . 21회 일치
* 연대식극 1라운드도 한 대결만 남은 상황. 2승을 확정지은 [[유키히라 소마]]와 반역자들은 득의양양한데 [[카와시마 우라라]]가 찬물을 끼얹는다.
* 카와시마는 새로운 십걸의 5석을 차지한 강자 [[카부라기 사치코]]를 소개한다. 2학년으로 배틀로얄에서 3학년들을 전부 꺾고 올라온 강자.
* 키 163cm, 쓰리 사이즈 B79 W56 H84, 좋아하는 것은 애플티와 테니스 관전, 싫어하는 것은 담배냄새와 거미다.
* 이렇게 으리으리한 소개와 함께 등장한 사치코는 '''이미 [[메기시마 토스케]]에게 패배해서 요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 그런데 대기실 밖에선 [[쿠가 테루노리]]가 십걸의 1석 [[츠카사 에이시]]와 접촉 중. 다음 라운드에서 "승부를 보자"고 제의하는데.
* [[유키히라 소마]]와 [[잇시키 사토시]]의 연승으로 1라운드는 어느새 반역자 팀의 2승. 이미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알몸 변태의 삶을 살던 잇시키가 멀쩡한 얼굴로 승리를 거두자 불신으로 가득했던 후배들도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부사키 슌]]은 남이 만든 식재를 멋대로 썼다 지면 어쩔 생각이었냐고 심드렁하게 묻지만 잇시키가 "너희 식재료를 쓰는 이상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쑥스러워한다.
* 어쨌든 1라운드는 반역자팀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이대로 1승을 더 추가할 가능성도 타진한다. 소마도 거기에 호응해 그렇게만 된다면 꽤 큰 차이를 내는 거라고 하는데, 이 좋은 분위기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MC인 [[카와시마 우라라]]다. MC 주제에 마이크까지 내던져 놓고 호쾌한 뻐큐부터 들이민다. 그녀는 반역자팀의 전승 가능성을 "그렇겐 안 된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연대식극은 각 대결 대결에서 한두판 앞서 가도 최종승리하고는 상관없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센트럴에 넘어간 관중들이야 이 드립에 크게 호응하지만 반역자팀의 분위기를 죽이진 못했다. 쿠가가 태연하게 "그러다 얼굴에 주름 생긴다"고 극딜을 넣자 이성을 놓고 Fuck을 연발, 역으로 도발 당한다.
카와시마가 전승이 불가능하다고 한 이유는 신 십걸[[카부라기 쇼코]]의 존재 덕이었다. 그녀 또한 2학년이나 신 십걸을 정하는 배틀로얄에서 3학년 선배들을 연거푸 쓰러뜨리며 5석의 자리를 차지한 강자. 이렇게 카부라기에 대한 절찬을 쭉 들은 쿠가는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에 감사를 표한 뒤 말한다.
그와 동시에 관중석이 술렁거린다. 카와시마가 불안하게 뒤를 돌아보는데.
* 순살. 카와시마가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카부라기의 순살. [[메기시마 토스케]]가 방금 전 잇시키의 압승이 무색할 정도로 순살시켜 버렸다. 요리장면은 커녕 대사 조차 없는 안습한 패배.
>좋아하는 것 : 애플티와 테니스 관전
>싫어하는 것 : 담배냄새와 거미
1라운드에서 가장 대승을 거둔 셈이 됐지만, 메기시마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돌아와 소마에게 "약속은 지킨다. 불만 없지?"라는 뜻모를 말을 건넨다.
* 반역자들로선 꿈도 꾸지 않았던 반전. 1st BOUT 반역자팀의 전승 선언이 울려퍼진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키리 아자미]]는 순식간에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보람이 없다"는 허세를 작렬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역자와 센트럴 측. 사이토가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현재 남은 인원은 반역자 8에 십걸 5.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3라운드에서 십걸의 전멸이다. 괜한 호들갑이나 떨던 린도지만 "그건 곤란하다"며 조금은 진지하게 듣는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네네에게 "너무 책임감 느끼지 마라"며 위로인지 부담을 주는 건지 알 수도 없게 격려한다.
* 허세력을 뽐낸 아자미 총수가 객석에서 일어나 1라운드의 종료와 1시간의 휴식을 선언한다. 그 동안 양 진영은 대합실에서 다음 시합에 나올 인원을 협의해야 한다. 잠시 뒤 대합실로 자리를 옮긴 반역자들. [[나키리 에리나]]가 아버지의 말이 맞다며 "전승했다고 기뻐할게 아니라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못박는다.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가 십걸 측이 어떤 인물로 승부할지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히사코의 분석으로는 1라운드 결과로 적도 초조해할 테니 갑자기 1석 츠카사나 2석 린도가 나오는 것도 상정할 법하다. 그 말에 얼굴이 파래지는 유키와 료코.
그런데 이 자리에 소마가 보이지 않자 잇시키가 의아해한다. [[타쿠미 알디니]]의 말로는 삐져서 화장실에 갔다. 이번에도 "내가 또 나갈래"라고 떼를 쓰다 알타쿠미와 에리나한테 이중으로 갈굼 당하자 뾰로퉁해져서 도망친 것이다. 마침 메구미가 쿠가도 없는걸 발견하지만 잇시키는 짚이는게 있어서인지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원빈(배우) . . . . 21회 일치
'''대한민국 대표 미남 배우[*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2010년 영화 [[아저씨]]로 이후 작품활동 없는 휴식기간동안 40여편 이상의 광고를 찍었으나 정작 배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지나치게 긴 휴식기간으로 전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CF만 매진하고 있어서 안 좋은 의미로 'CF 스타, 광고 모델, CG 배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화 아저씨에 함께 출연했던 [[김새론]]은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이미 원빈의 작품 수와 엇비슷해졌을 정도이다. 꼬마 아역배우였던 김새론이 훌쩍 커서 차세대 여배우로 주목받는 언론기사를 보면 얼마나 원빈의 휴식 기간이 긴지 느낄 수 있다.]'''
사슴같은 눈망울에 [[여성]]들의 [[마더(영화)|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가냘픈 분위기]],[* 데뷔초에는 확실히 이런 분위기였으나 후에는 남성적인 모습을 보인 작품들도 있다.]그리고 미묘하게 반항적인 태도 등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스타일로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 변화에 따라 '마초' 와 '꽃미남'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레벨에 이르러서 은근히 영화마다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능력까지 발휘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 되고 싶었는지 가출을 하다가 걸려 집으로 끌려가기도 했는데 원빈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는 부모가 말하길 '''"연예인 되기가 쉬운 줄 아냐? [[강릉시]]내만 나가도 너보다 잘생긴 사람 널렸다.''' '''연예인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니 얼굴에 연예인은 무슨... 헛된 꿈 꾸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혀."'''라고 했다 카더라.[* 인터뷰에서는 지금도 원빈의 부모님은 여전히 산골에서 생활하며 아직도 원빈을 철부지 막내아들로 생각할 뿐, 유명한 인기 스타라는 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고 한다.] --미남... 아니 CG의 도시 갓릉--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히 오디션에 도전해 케이블의 제일방송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된다.[* 지금은 [[MBC 드라마넷]]이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어렸을 적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던 것 같은데 영화 [[아저씨(영화)|아저씨]]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최민수]] 주연의 [[테러리스트(영화)|테러리스트]]를 보고 액션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액션에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다.[* 실제로 [[태권도]] 유단자라고 한다. 90년대에 예능 프로에서 [[안재모]]와 태권도 대련을 하는 방송도 있었다.] [[http://todayhumor.com/?star_225458|#]]
[[1997년]]의 [[KBS]]의 TV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비중 있는 조연[* 자주 개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다니며 여주인공 [[김희선]]의 이웃에 살면서 그녀를 짝사랑하며, 몽상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약간 4차원스러운 청년역할이었다. 그래서 스토커라는 단어도 안 쓰이던 시절인데도 자기 주위를 자주 맴도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가족과 지인에게 상담도 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는 여주인공 쪽에서 먼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살짝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몽상적인 대답만 한다. 직업도 대략 시인 비스무레한 사람인 듯이 말하는데 드라마 내용 자체에 자세한 부분이 나오지 않아 그냥 시를 좋아하는 청년인지 진짜 시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여주인공은 그가 폭력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좋아하는 남자(주인공)가 있다고 설득한 뒤 안심하며 좋게 마무리된다. 사실상 나쁘게 보면 스토커 같은 역할이라 원빈의 외모나 현재 이미지와 그렇게 많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워낙 심하게 잘생긴 외모라 역할 자체의 부정적 측면이 안 보일만큼 미화되어 보이기도 했고 아직도 그가 프로포즈에서 멋진 역할로 나왔다고 기억하는 팬이 있을 정도. 당시 남자주인공이자 김희선의 상대역이었던 배우는 [[류시원]].]으로 출연하여 주목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레디, 고!'라는 드라마에서도 주연으로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1999년]] [[광끼]], [[2000년]] [[꼭지]], 단막극 '그가 간이역에 내렸다'를 찍은 뒤 드디어 [[가을동화]]를 통해 슈퍼스타가 된다. 2002년에는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 등에 출연했다. 프렌즈에는 [[일본]] 여배우 [[후카다 쿄코]]가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후 드라마 대신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품 횟수는 적으나 출연한 작품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 7월에 나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은 [[경기도]]의 소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연쇄살인자]]와 [[연쇄살인자]]를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창녀|몸을 파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 형식의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하며 [[연쇄살인자]] 역할에 원빈을, [[형사]] 역할에 [[설경구]]를, [[창녀]] 역할에는 [[장쯔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내용은 전반적으로 [[구원]]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 본인이 이 프로젝트를 엎었다고 한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43337|이창동이 배우들에게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인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31022092808979|파인하우스 필름의 관계자가 뉴스엔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 '제작 무산이라고 볼 수 없으며 제작이 열려 있는 작품' 이라고 해명]]했다고 하니까 좀 기다려봐야 할 듯. 2014년 1월 말부터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탈고된다는 루머가 여러 웹사이트에 떠돌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없다. 2014년 5월에 원빈 본인은 한 인터뷰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12249|당장은 아니지만 차기작은 분명히 있다]]라고 밝혔다. 그 차기작이라는 것이 이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하는 영화인지는 불확실.
2015년 10월 [[신과함께(영화)|신과함께]]를 고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공백기가 길어지자 팬들 뿐만 아니라 여론들도 점점 회의적인 의견이 많아지는 중. 댓글에서도 보이지만 원빈이 고사한 신과 함께 출연을 확정지은 [[하정우]]와 친한 사이인 [[강동원(배우)|강동원]]이 꾸준히 작품을 촬영하며 필모그래피를 쌓는 것과 비교되고 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785953|#]] (..하지만 후자의 배우는 수많은 졸작 때문에 원빈과 반대의 이유로 비판받는다. )
최근에는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인 영화 《[[군함도(영화)|군함도]]》도 고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91352|관련 기사]]. 기사에 나온 바에 따르면 《[[신과 함께]]》나 《[[군함도(영화)|군함도]]》와 같이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보다도 작가주의적 성향의 영화를 찾고 있는 듯.
이러다 보니, 상술한 박근형을 넘는 대선배들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순재]]가 과거에 한 발언인 "광고만 찍는 배우, 연기나 먼저 해라."의 주된 대상으로 오르고 있다. 그나마 커버를 치자면, 요즘 활동을 안 하는 이나영처럼 조용히 칩거를 하고 있기에 뭐라 하기는 그렇고 애초에 우선 순위를 CF에 두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그닥 없다. 오히려, 이창동을 끝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나름 의리도 있어 보인다. 허나, [[강동원]]의 연기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을 보여주는 다작행보와도 상당히 비교가 아니 될 수도 없고, 실제로 소위 재기를 노려야 할 연기자라는 위치도 아닌 것을 보면 까여도 딱히 할 말은 없는 셈이다.
물론 비판 자체가 거세지는 않고, 안 좋게 보는 이가 존재는 하기에 복귀작을 이창동의 영화로 선택해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과시한다거나, 혹은 본인 스스로 쿨하게 왜 그동안 영화를 안 찍었는지를 말해줄 필요정도는 있지 않나 싶다는 의견이 많다. 하다못해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절 가수 분야의 신비주의의 끝판왕으로 평가받았던 [[서태지]]도 이은성과 재혼 이후 현재는 신비주의를 많이 줄인 상태이고 몇 년마다 음반은 내고 방송에는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7사단에서 근무하는 모든 장병들이 무릎이 나가거나 하지는 않는다.--하지만 높은 확률로 부상당하기 쉬운 곳 중 하나고 웬만한 사람도 크고 작은 부상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곳이다.-- 문제는 '''원빈이 입대 전부터 무릎이 좋질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사병이 아닌 '''최전방 근무를 자원'''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론 본의 아니게 객기부리다가 [[의도는 좋았다|양쪽 다 피해를 보게 된]] 모양새가 되었으나, 사실 당시 원빈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객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원빈은 [[강원도]] [[정선군]] 출신인데 항목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저 동네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메산골 중 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유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으니 당연히 산에 매우 익숙할 것이며, 건강에도 나름 자신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본인 스스로 최전방 지형 정도는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중간에 뭔가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원빈이 연대장과 면담 때[* 국방부에서 이미지 향상을 위해 연예인들은 상부에서부터 신경을 꽤 써줬다고. 후에 [[문보살]]도 그렇고...] GOP만큼은 빼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이것이 묵살되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고 결국 위의 사단이 벌어진 것. 사회의 억압만 없었더라면 더 나은 길을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연예인 잡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게 웃기지만.
하지만 원빈이 다친 후에 육군에선 가능한 한 배려해줬다. 민간병원에서 수술 이후 [* 군 복무중 중대한 부상이나 수술을 해야 될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부상당한 군장병은 사비로 민간병원에 치료할 것인지, 국비지원으로 국군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통상 국비지원 민간병원 위탁치료는 지방소재 국군병원 군의관의 진단에 의해 결정된다. 원빈은 국군수도병원 후송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비로 민간병원에서 수술받은 것으로 보이나, 실제 민간병원 수술이 이례적으로 국비지원 하에 이루어졌는지, 사비 부담인지는 당시 기사에서 정확히 다룬 것이 없어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요양은 군병원이 아니라 병가를 얻어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다만 재활치료는 춘천병원에서 받았다. 의병제대 판정도 여기서 받았고.] 군복무 중 중대한 부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하였더라도 요양이 필요한 군장병은 수술이 끝나고 나면 군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자택에서 장기간 요양하거나 장기 병가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례적이다.--쉽게 말해 수술을 위해 병가 10일 정도 혹은 가지고 있는 휴가를 합쳐도 20일을 넘기기 힘들고 그 안에 수술을 마치고 복귀해야 한다.-- 게다가 걸을 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 단순히 다리를 절고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의 후유증이면 의병제대를 받지 못하고, 요양은 커녕 자대에서 군복무기간을 마저 채우고 만기전역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2010년 이후나 되어서야 후자(걸을 수 있으나 후유증과 통증)와 같은 유형을 [[복무 부적격자]]로 판명하여, 아예 군병원에서 환자에게 한 달짜리 휴가증을 줘서 집에 보내고 전역일까지 계속해서 휴가증을 연장 발급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제대시키는 편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공식적인 의병제대와의 차이점은 전역일까지는 군인 신분이라 만약 휴가 기간에 사고를 치면 헌병대에 끌려간다는 것과, 전역 전에는 여권 발급이 제한된다는 점, 그리고 '''예비군이 면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원빈의 경우는 그러한 경우에 비해서는 이례적으로 혜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신인 시절엔 90년대 청춘 스타들이 그렇듯 예능, 드라마 가릴 것 없이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2000년대로 넘어와선 주로 영화 쪽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출연 영화 편수가 적기는 하지만 출연한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2010년엔 영화 [[아저씨(영화)|아저씨]]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했으며 그와 덩달아 모든 여성 관객의 남친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중간에 '''상의를 탈의하고''' 삭발하는 장면에서는 매 상영 때마다 객석이 술렁거리거나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여성 관객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원빈 보러 갑니다'''라는 농담이 '''진리로 들린다'''.
* 본인은 인터뷰에서 '대단한 게임 마니아는 아니다' 라고 언급했으나, 실제론 '''대단한 게임 매니아가 맞다'''는 이야기가 자주 떠돈다. 특히 그가 [[프로 에볼루션 사커|위닝일레븐]] 최고수라는 것은 팬미팅 등을 통해서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연예계 게임 고수를 자처하는 남창희가 [[강동원(배우)|강동원]]을 상대로 위닝을 다섯 판 했는데 전패했다고 한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207037|#]] 그런데 그 강동원이 하는 말이 '자신도 빈이 형에게는 한 판도 못 이긴다' 는 것. [[변우민]] 역시 원빈을 상대로 완패했을 뿐더러 개발자와의 게임 대결에서도 원빈이 승리했다고 한다. [[http://star.mt.co.kr/stview.php?no=2011092102240452778&type=3|#]] 또한 강동원과 함께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등도 즐긴다고... 주종은 [[프로토스]]. [[http://m.news.nate.com/view/20100721n08128|#]] ~~진짜 끼리끼리 만나는구나... 후~~ [* 다만 그둘의 친분이 과장이 되었다고 했다 친한건 맞았으나 현재는 연락을 잘 안한다고 한다.]~~아재게임 디아블로3도~~
* 이와 더불어 [[건덕후]]라는 말이 있다. --진짜 [[건덕후]]--
* [[아저씨(영화)|아저씨]]의 대성공 이후 [[미국]] 진출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가 맡았던 역할이 원래에는 원빈을 염두에 둔 역할이었다고 한다. 왜 성사가 안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2년에는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가 맡았던 역할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거절하였고[* 다만 이 경우에는 원빈이 이재규 PD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깨지고 언론에 원빈의 [[더킹 투하츠]] 출연설이 나돌면서 하차하게 된 것이다.] 2013년에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거부하면서 차기작 선정은 2018년까지 미정이다.
- 은혼/627화 . . . . 21회 일치
[[은혼]] 627훈. '''평화와 파멸은 표리일체'''
* 마왕의 봉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헤도로는 선한 인격의 "헤도로"와 사악하고 파괴를 꿰하는 "헤도라"의 인격이 공존하는 위험한 상태가 된다.
* 곤도와 오타에의 감격의 재회... 는 무슨 [[판데모니엄]]이었다. 판데모니엄을 사이에 둔 곤도와 신파치의 사투.
* [[히지카타 토시로]], [[오키타 소고]]도 귀환.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도 무사히 돌아온다.
* [[헤도로]], 요괴 군단 등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적들이 속속 등장하자 해방군은 대오도 없이 도주하기 시작한다. 힘겹게 싸웠던 가부키쵸 주민들은 거짓말처럼 무너지는 해방군을 바라보며 비로소 자신들의 승리를 실감한다. 해는 지평선에 걸려있고, 승리를 자축하는 주민들의 환호성이 에도에 울려퍼진다. [[가구라]]와 [[시무라 신파치]]는 대장이자 선봉장이었던 [[사카타 긴토키]]를 찾아 승리의 기쁨을 나누려 하는데...
파라파헤븐에서 벗어난 헤도로 본래의 사악한 인격은 자신이라는 진정한 공포와 마주하게 된 인류에게 유감을 표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지구와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지, 그 무서운 계획에 대해서 살짝 알려주려고 한다. 긴토키는 떨리는 손으로 스카치 테이프로 어떻게든 꽃을 다시 붙여놓는다.
다시 선한 헤도로의 목소리도 들린다. 사악한 헤도로를 "헤도라"라고 지칭하며 자신이 반드시 그의 음모를 막겠다고 한다. 또다시 악한 헤도로, 헤도라의 목소리가 이미 헤도로의 반신은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고 곧 이 신체와 우주도 어둠에 물들여주겠다는 흉흉한 선언을 한다.
사이코드라마 같은 일인극을 홀로 감상해야 하는 긴토키. 가구라와 신파치는 그가 왜 헤도로에 달라붙어 있는지 끝가지 알 수 없다. 가구라는 즐거워보이니 냅두자고 하면서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진다.
* 가구라와 긴토키는 짧은 평화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응시한다. 가구라는 역시 평화가 제일 좋다고 말하고 신파치는 그렇다고 말하는데...
* 보름달이 떠올랐다. 가부키쵸는 네온사인이 아닌 모닥불로 밝혀진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오토세]] 여사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아 담배를 태운다. 그가 이런 밤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지 오토세 여사도 "그래도 밤을 맞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거냐고 대답한다. 지로쵸는 그렇다며 이 다음으로 아침 햇살로 빛나는 마을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거라고 말한다. 오토세여사는 내일을 맞이하는게 큰일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토록 애를 썼는데 내일을 맞이하기엔 부족한 거냐고 묻는다.
* 늦은 시각까지 가부키쵸를 둘러보는 신파치와 가구라는 역시 이겼다고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직감한다. 해방군은 물리쳤지만 가부키쵸 측의 피해가 예상보다 컸다. 신파치는 이만한 사람들이 이만큼 함께 싸워준 걸 기적이라 말하며 비단 가부키쵸 주민들만이 아니라 에도에 남아있던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컷마다 [[게도마루]]가 [[판데모니엄]]을 배급하고 나눠먹으며 알짱거린다.
* 누나 [[시무라 타에]]는 태클과 인외연애에 여념없는 신파치를 염려해서 쉬라고 권한다. 그녀는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사실 게도마루는 신파치를 심란하게 하는 것 말고도 부상자들의 치료와 휴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물론 아까도 부상자들을 도우며 태클 말고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신파치보단 훨씬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게도마루와 음양사들은 늦게 온 만큼 조금 더 컷에 나와서 분량을 뽑고 싶다는 의향에 따라 가부키쵸 주민군에 늘러앉았다.
게도마루와 식신들은 판데모니엄으로 차린 다채로운 급식과 배식자들의 호러블한 비쥬얼로 배식을 익사이팅하게 해주며,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순찰대를 빙자해 서로 식신이 더 흉악하고 무섭다고 싸우며 소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은 기도로 싸움하게 좋은 날씨를 만들며 싸움을 조장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개판에 뒤따라 [[히지카타 토시로]]와 [[오키타 소고]]도 도착한다. 히지카타는 세상이 망하는 줄 알았는데 평소란 똑같다고 투덜댄다. 하지만 오키타는 오히려 곤도는 저런걸 원했던 거라며 디스인지 뭔지 모르게 덧붙인다.
* 타에는 세상이 망할 판이 돼서야 돌아온 순경들도 여전하다고 대꾸한다. 히지카타는 순경은 지구가 망하는걸 구할 의무는 없지만 이것저것 바빴다고 변명한다. 거기에 맞장구치며 허공에서 내려앉는 두 사람.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도 무사히 귀환했다.
- 이경영(1960) . . . . 21회 일치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영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상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상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영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이 배우 저 배우 돌려쓰기 현상이 심하여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관객들이 외면할 정도로 충무로 배우 연령폭이 얇았다. 이경영 본인도 "그나마 [[안성기]]나 [[박중훈]]은 충무로나 언론에서 보호해주는 패턴이 강했다면 나는 그저 잡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며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안성기나 박중훈이 어느 정도 자기 이미지와 고유의 연기색을 바탕으로 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코믹연기나 진지한 연기를 구축했다면, 이경영은 (최소한 영화작품 기준으로는) 자기만의 연기톤을 고집하려 들지 않고 당시 기준에서 극도로 19금적인 코믹연기도 하고 완벽하게 정석적으로 진지한 연기도 소화하는 등 팔색조처럼 넓은 연기폭을 시도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인 사례가 많아서 흥행은 거의 망하곤 했다 [[안습]]-- 1994년에 [[문성근]]과 같이 출연했던 '세상 밖으로'라는 영화는 주인공들이 탈옥수라는 설정답게 쌍욕이 들어간 대사가 영화 내내 나오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 영화였다. (그전까지는 불량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라 할 지라도 욕설의 정도가 심한 대사들이 주연들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일부 중요한 폭력적인 장면 한둘에서 나오는 정도) 그런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연기변신에 대해 그렇게 힘든 요구를 항상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력 부분에서 점수를 깎이지 않고 합격점을 항상 받아왔다는 데서 이경영의 그 뛰어난 연기력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90년대 후반 이경영이 잘나갔다는 증거로, 당시 잘 나가던 아나운서 [[유정현(방송인)|유정현]][* 후에 프리랜서 생활 후 국회의원도 했었다.]과 모델출신 유명방송인 [[이소라(모델)|이소라]]가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하던 당시 레전드로 남았던 유명한 방송사고 2개가 있다. 바로 '야이 X박 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 당시 절친이던 이경영과 [[김민종]]이 [[강도]] 역할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을 때 유정현이 자꾸 김민종에게 영화 속 거친 연기를 한번 해 달라고 하자 김민종이 실제 쌍욕이 들어간 강도 역할 대사를 질러버려 화제가 되었던 방송사고.]와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후속작인 로맨스.'[* 당시 이경영과 이영애가 출연하던 SBS 드라마 《로맨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가 유정현이 드라마 소개하는 멘트를 '연기리에 방영'으로 하는 바람에 이소라가 웃음이 터져 멈추지 못했던 방송사고였다.] '''모두 이경영이 주연을 한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출연'''했을 때 벌어졌던 사건이다.
두 번째 사건 때는 소개하는 말을 했던 유정현은 당황했고, 이소라는 웃느라 아예 정신을 못 차렸으며, 이영애는 조금 웃기만 하며 가만히 있었는데, 이경영도 당황은 했으나 더 이상 멘트가 안 나오면 더 큰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여 미소와 함께 차분하게 "아 예,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로맨스》에 출연하고 있는 이경영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유머로 받아쳐 넘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소라의 웃음터진 게 이미 너무 심해서, 이경영의 자연스러운 --아재-- 유머에 계속 터져 버려 한동안 방송사고가 지속되었다. 이 두 개가 1997 ~ 98년, 1년 사이에 터진 일인데, 홍보를 해야 하는 이경영 본인의 입장에서는 단기간 연속으로 발생된 방송사고로 출연작에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면 위험하기에 당혹스럽고 누가 봐도 화가 날 만한 상황[* 드라마, 영화 외의 방송출연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 정도 상황까지 온다면 어떤 주연급 배우도 심하게 빡칠 만한 상황이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혼자 의연하게 대처했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져서 "역시 젠틀맨 이경영"이라는 식으로 평판이 더 좋아졌었다.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영창]]은 이경영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영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영 신상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2002년에 [[원조교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미성년자 L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으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게 되었다.
||1심 재판결과 이경영이 미성년자인 L모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인정되었는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정확하게 표현하면,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무죄, 두 번째와 세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형량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이었다. 아래는 당시 판결을 보도한 기사다.||
이경영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 이후 2005년부터 간간이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2011년 이후에는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언론과의 인터뷰가 자주 있었는데,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면, 유죄판결 받은 부분은 숨기고, "무죄판결 받았다"고만 답하였다. 그리고 언론들은 이경영의 말을 검증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그중 두 건의 인터뷰를 예로 들면 아래와 같다.
>기자: 어느 순간부터 미디어와 방송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어요
* '''형사재판''':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임을 몰랐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 번째와 세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의 형이 선고됨.
법원은 이경영이 L양(당시 18세)과 가진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는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설령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도, 성매매한 사실만으로 첫 번째 성관계 역시 유죄(일반 성매매죄) 아닌가?'라며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적 관객수 1억 명 돌파 배우 3호'''[* 1호와 2호는 각각 [[오달수]]와 [[송강호]]. [[유해진]]이 이경영의 뒤를 이어 누적 관객수 1억 배우 4호가 되었다.]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2011년]] 이후 영화 등장이 늘었다. 여자문제로 출연금지당했으나 영화로 재기한 선배 [[송영창]]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셈. 《[[부러진 화살]]》에서 악역으로 판사역을 맡았고, 2012년엔 같은 감독의 《[[남영동1985]]》에서 [[이근안]]을 모티브로 한 고문경찰 이두한을 연기했다. 같은 시즌에 함께 개봉한 《[[26년(영화)|26년]]》, 《[[베를린(영화)|베를린]]》에도 모두 출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일본 영화인 《외사경찰》(外事警察 その男に騙されるな)에서 까메오이면서 악역인 북한군 장교로 등장한다. 주로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사망~~[* 악역, 최종보스 역도 많이 맡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죽는다. 당당 [[사망전대]].] 혹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맡아 이경영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013년에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그 이후에도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도 화이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으로 출연하면서 악역이 아닌 무고하고 불쌍한 피해자도 연기했다. 이렇듯 자신만이 가진 유니크함으로 여러 영화에 캐스팅되며 (비록 공중파는 못 나오지만)완벽히 재기한 상태.
이렇게 다작을 하게 된 원인은 물론 자숙기간 활동을 못한 본인의 활동 욕구에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는 출연금지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 케이블 빼면 영화밖에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송영창]]이 있다. 다만 이분은 영화 대신 주로 연극과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거의 충무로 이경영급으로 다작 중이다. 이유도 비슷하다. 특히 뮤지컬쪽에선 어느 정도 입체감이 있는 중년 역할을 맡을 배우가 그리 많지 않고, 진중한 역부터 코믹 역까지 폭이 넓기 때문.], 현재 영화판에서 이경영 정도의 나잇대에 어느 정도 연기가 되면서 조연을 맡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다.
너무 가볍지 않고 개그 캐릭터가 아닌 격조가 있는 [[중간보스]]급의 위치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주연급이라면 몰라도 조연급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판국이다. 그런데 이경영은 이미 90년대부터 격조 있는 주연으로 다작을 하면서도 연기력이 좋다는 평가를 꾸준히 유지했던, 그야말로 탁월한 실력이 있는 배우라서 그런 상황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연급은 아니어도 조연급으로는 여기저기서 캐스팅되고 있다. 또한, 이경영이 선역부터 악역을 비롯한 개그 캐릭터까지 다양하게 맡을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도 이유이다. 특히 2010년 이후 한국 영화에서는 정계나 재벌의 부정부패를 다룬 느와르, 스릴러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영화에서 반드시 나오는 '부패한 높으신 분들' 연기로는 이경영이 연기력이나 이미지 면에서 매우 적합하다.
||2005||종려나무 숲[* 애초 KBS과 고화질 방송영화 프로젝트 중 하나였으나 KBS 측이 2005년 2월 심의규정을 내세워 이경영의 영화출연 불가 방침을 정하여 이경영은 컴백이 무산될 뻔 했지만 영화사 측이 KBS와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영화를 제작하여 해당 영화로 스크린 복귀를 했다]||원양어선 최 선장|| 22,895 ||
||2017||[[신과함께-죄와 벌]]||오관대왕|| 특별출연 ||
- 이홍렬(코미디언) . . . . 21회 일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단신|작은 키]]와 개성적이고 익살맞은 외모, 특유의 입담으로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콩트로는 1980년대에는 [[김병조]]와 콤비를 이룬, 청춘만만세의 카운셀링 개그코너 '어찌 하오리까'가 있으며, 일밤대행진 마당놀이에선 주로 사회자를 봤다.
그리고 1990년대는 [[임하룡]]과 함께 했던 '[[귀곡산장]]'을 빼놓을 수 없다. 테마송이 인상적이다. '망태망태망망태 망구망구망망구 우리는 산장지기 괴상한 노인. 망태~ 꺼지지 않는 불꽃, 망구~ 밤에♩ 피는 장미~♪ 누구든지 환영해요 귀곡 산장. 간이 커도 와우! 겁 많아도 와우! 기절 안 하곤 못 배기는~ 귀~곡~산~장~. 뭐 필요한 거 없수!? 없음 말고. 뭐 필요한 거 없냐니까!? 없음 말랑께롱 께롱!께롱!께롱!께롱!' 후술할 음반에도 수록되었다. 길이는 좀 짧지만. 당시 괴담물 단행본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공포특급'이 불러온 공포 마케팅 열풍을 타고, 공포 컨셉 게스트 코미디 쇼를 만들었는데 이게 대히트를 친 것. 귀곡산장은 나중에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홍렬쇼]]라는 [[토크쇼]]로 나름대로 토크쇼 MC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서세원쇼]]가 토크박스 하나에 의지한 것과 달리 다양한 코너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해 전성기에는 자타공인 최고 인기 토크쇼였지만 이홍렬 본인의 사정으로 100회를 채우고 그만뒀다가 2000년대 초에 다시 부활, 또 200회까지 채우고 막을 내렸다.[* 부활했을 당시에도 인기는 좋았다.] 프로그램 코너들 중에서는 특히 '참참참'이 유명세를 탔는데, 당시 유명 스타가 나와서 [[밤참]]을 만들면서 토크를 하는 방식이었다. 주재료는 [[라면]], [[만두]], [[참치]] 통조림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 맞아 맞아 참참참이라는 제목으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989|책]]까지 발매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이 책을 발견하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인근 도서관을 뒤져보자. 이때 게스트와 같이 했던 놀이 '참참참'을 전국에 유행시켰다. [[롯데월드]]에는 이 코너에서 만들었던 메뉴를 상품화해서 파는 참참참 레스토랑도 있었다. 특히 참참참은 당시 일본 버라이어티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숱하게 시도되었던 [[쿡방]]들이 우리나라 사정에 안 맞아 몽땅 망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장수했던 코너였다는 점도 특색이다.
2000년 말부터 2002년 초까지는 SBS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했다.[* 사실 시트콤에 출연하게 된 배경이 재밌는데, 당시 진행하던 자신의 토크쇼가 MBC의 [[세 친구]]에 시청률이 추월당한 후, 종영을 하게 되었다. 이에 오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시트콤에 도전한 게 해당 작품이라고 한다.] 진지한 배역을 주로 맡다가 코믹한 배역에서 맹활약했던 [[노주현]]과 [[신구(배우)|신구]]와는 반대로, 기본 베이스는 코믹하지만 중년의 로맨스와 관련되어 진지한 연기를 할 때도 많았던 노홍렬이란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2014년 4월 중순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의 길]]로 복귀하여 MBC 19기 개그맨 김용재와 콤비로 [[모큐멘터리]] 형식의 코너를 하고 있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아이디어를 짜고 어린이 분장으로 PD 앞에서 코너 검사를 받는 등 분투하는 중. 김용재는 이상민 주연의 음악의 신에 등장한 개념없는 매니저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2014년 7월 6일에는 환갑 기념 출판기념회가 방송되었다. [[전유성]], [[최불암]], [[이경실]], [[전영록]], [[황기순]] 등 많은 스타들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 1985년 <에바스화장품> (가수 나미[* 5인조 보이그룹 Q.O.Q로 활동했던 솔로가수 [[정철(동명이인)|최정철]]의 어머니.]와 함께 출연)
* 1986년 <삼양식품 짜짜로니> (이경규와 함께 출연)
* 1995년 <크라운제과 딸기콘> (이제니와 함께 출연)
* 1995년 <보령메디앙스 보드레> (이성미와 함께 목소리 출연)
* 1995년 <삼양식품 큰냄비>(송경철, 이인혜와 함께 출연)
* 2000년 <[[LG생활건강]] 자연퐁싹> (1편에선 중식당/2편에선 김희애와 함께출연)
이 [[사진]]과 관련된 비화가 있는데, 당시 [[무명]] 개그맨이었던 이경규가 자신도 개그맨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방송사 선배와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데,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고 가장 친한 [[선배]]였던 이홍렬이 이 소식을 듣고 같이 사진을 찍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은 후 이경규는 감히 선배인 이홍렬과 사진을 찍는데 옆에서 쪼개고 건방진 표정을 짓는다는 이유로 모 선배 개그맨에게 '''코피까지 흘릴 정도'''로 얼굴을 주먹으로 얻어맞았으며, 다른 선배 개그맨들에게도 어떻게 감히 후배가 선배랑 사진을 찍냐고 갈굼받았다고 한다...[* 개그계의 대표적인 [[똥군기]]의 예.] 이홍렬은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던 천사표 선배 중 하나였다. 나중에 가면 이경규도 이홍렬에게 "때려 봐. 때려 봐."라고 ~~쓸데없이~~약올렸다가 한 대 맞기도 했고, 이홍렬과 맞 담배를 피질 않나, 담뱃불 없다고 이홍렬이 피던 담배를 뺏어서(!) 자기 담배에 붙이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홍렬은 나중에 [[최양락]]한테 지나가는 식으로 뒷담화를 했는데 최양락은 말 끝나기 무섭게 자기도 똑같이 이경규를 따라했다. 그러자 참고 참던 이홍렬이 폭발해 "이 [[새끼]]가 더 나쁜 놈이네!"하면서 [[구두]]로 최양락을 때렸다고 한다.[* 최양락의 깐족거림은 개그계에서 상당히 유명했다. 주병진 족발사건이 대표적인 예.](...) 한마디로 매를 벌어서 맞은 것.
* --[[여명808]]의 등장을 예견했다.(중국배우 여명이 나와서 건강차를 만드는 내용...) [[https://youtu.be/yVWmRa_8ZRM|예언]].--
* [[1대 100]] 345회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가했으며, 이 날 그는 우승 상금 5000만원을 타게 된다면 아프리카에 [[우물]]을 기부할 거라고 이야기했으며, 100인 중 하나로 출연한 대[[후배]] [[장효인]]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 대결 2번째 문제에서 91명 중 57명이나 떨어지는 등 평소와는 달리 문제가 극악을 달리던 난이도 속에서도 7단계에서 최후의 1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결과는 [[1대 100/1대 1 문제#s-5.2|여기]] 참조. 참고로 후반전에서는 이보다 난도가 높아서 5문제를 풀고 우승자가 나왔다.
- 진창현(음악인) . . . . 21회 일치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깎아 고무동력기를 만드는 등 손재주를 발휘했고, 이후 고향에서 약장수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현악기의 매력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소학교]] 4학년 때 [[중일전쟁]]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와 교사로 부임한 아이카와 키쿠에(相川喜久衛)가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기초적인 바이올린 연주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재학 중에 [[제로센]] 설계자였던 이토카와 히데오가 대학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소리에 대해 음향학적으로 고찰하는 강연회에 참석한 뒤, 현악기 제작자로 장래 희망을 바꾸었다.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아 찾아간 일본 현악기 장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제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나가노]]의 기소후쿠시마 쵸에 있던 스즈키 바이올린 공장에서도 입사를 거절당해 근처 공사장에서 채석과 벌목 같은 거친 노동을 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 와중에 현악기 제작에 필요한 양질의 목재를 감별하는 법을 익혔고, 목재를 바이올린 공장에 팔고 공장의 제작 과정을 어깨너머로 봐가면서 바이올린 제작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이후 공사장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막일과 바이올린 제작을 병행했고, 아내의 제안으로 [[도쿄]]에 가서 악기 매입을 시도했다. 이 때 도호학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바이올리니스트 시노자키 히로츠구(篠崎弘嗣)[* 스즈키 신이치와 함께 일본 현악 교육의 거물로 손꼽히는 인물로, 자신의 성을 딴 바이올린 교본도 만든 바 있다. 한국에서도 현악기 초심자들이 흔히 접하는 것이 스즈키 아니면 시노자키 교본.]가 어린이 교육용 악기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후 도호학원을 위해 정기적으로 바이올린 제작과 납품, 수리를 시작했다.
1961년 가을에는 학원과 비교적 가까운 도쿄의 마치다 시로 이사했고, 약 1년 뒤 초후 시의 센가와로 다시 이사해 바이올린 공방을 만들어 악기 제작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후 교육용에서 성인용으로 악기 제작 영역을 넓혔고, 바이올린 외에 [[비올라]]와 [[첼로]]의 제작도 시작했다. 악기 제작으로 어느 정도 생계 유지가 가능해지자 1970년에는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동생의 명성을 시샘했는지 이복형이 [[북한]]의 [[공작원]]이라고 허위 신고를 하면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고문(범죄)|고문]]을 받다가 [[일본 경찰]]의 신원 보증이 있은 다음에야 풀려나 도망치듯 일본으로 돌아오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계속 초후의 센가와 공방에서 현악기 제작을 계속 했고, 2000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의 제작 참고 악기로 선정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 바이올린 '광주호'를 시작으로 이듬해 바이올린 '대구호', 비올라 '한라호', 첼로 '백두호'까지 네 점의 악기를 무상 기증하면서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후지 테레비]]에서 구술 회고록을 바탕으로 각색한 [[드라마]]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海峡を渡るバイオリン)'이 방영되었고, 여기서 진창현 역을 [[쿠사나기 츠요시]]가 맡아 화제가 되었다.[* 나머지 배역들의 캐스팅도 꽤 주목할 만한데, 진창현의 아내인 나미코 역을 [[칸노 미호]]가, 진창현의 어릴 적 [[멘토]]였던 아이카와 선생 역을 [[오다기리 죠]]가 맡았다.그리고 아버지는 [[정동환]]이 맡았다.] 이외에도 2003~06년에는 야마모토 오사무가 일대기를 '천상의 현(天上の弦)'이라는 제목의 [[만화]]로 만들어 [[쇼가쿠칸]]에서 연재하기도 했다.
*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아마티]], [[과르네리]] 등 전설의 명기가 가진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이 악기들을 소유한 수많은 명연주가들이 내일 공연을 했을 때 대기실을 들락거리면서 악기의 본을 뜨거나 직접 켜보거나 하기도 했다. 이 일화는 훗날 일본 언론에 연재되었고, 한국에 출간된 구술 자서전 후반에도 나온다.
* 인력거꾼으로 일할 때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주로 주일[[미군]]을 고객으로 맞이했고, 덕분에 수입이 꽤 좋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톰(Tom)이라는 이름의 [[루이지애나]] 출신 [[흑인]] 병사와 친해졌는데, 톰의 소속 부대가 [[한국전쟁]]에 투입되기 위해 일본을 떠나기 전에 같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미국에서 차별받던 흑인과 일본에서 차별받던 조선인의 심정을 나누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 혼자서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막노동과 바이올린 제작으로 소일하다가 [[1961년]]에 일본인 여성 나미코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 진창호와 차남 진창룡은 각각 현악기 제작자와 현악기용 현 제작자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자서전에 의하면 바이올린 제작을 위한 연장들을 찾기 위해 골동품 가게를 전전하다가 가게를 보고 있던 나미코를 처음 만났다고 하며, 가난한 조선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처음에는 결혼 승낙을 받기 어려웠지만 예전에 근무했던 건설 회사 사장이 장인에게 사위의 인품을 칭찬해 주면서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미코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할 때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 식으로 이남이(李南伊)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일본인임에도 조선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아이카와는 교편을 잡으면서 병역을 피할 수 있었지만, 불과 2년 뒤 현역병으로 소집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편지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창현은 이후 일본에서 현악기 제작자로 성공한 뒤 아이카와의 친족들을 수소문해 만나기도 했고, 죽기 직전까지 [[사이타마]]의 혼조 시에 있는 아이카와의 묘지를 정기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후지테레비의 드라마에서도 꽤 비중있는 인물로 나온다.
* 바이올린 도색에 필요한 염료를 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오징어]] 먹물이나 [[지렁이]]까지 쓰는 등 온갖 실험을 했다. 심지어 집에서 [[알코올]]로 염료를 추출하고 [[니스]]에 혼합하는 작업을 하다가 니스가 폭발하면서 [[화상(질병)|화상]]을 입기도 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전학공투회의|전공투]]와 [[적군파]]를 비롯한 극좌 세력의 무장 투쟁이 강성하던 시기여서 [[의사]]가 그 쪽 사람이 사제 폭발물을 제조하다가 사고를 친 것으로 여기고는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1970년]]의 한국 방문에서 당한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는지, 자서전에도 그 경위를 상세하게 적어놓고 있다. 일본으로 떠난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가난했던 삶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충 조사를 마무리지은 뒤 회식비를 자신에게 모두 떠넘겼다거나 1976년에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다시 귀국했을 때 자신이 만든 악기가 위조품으로 간주되어 반입 불가를 당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어서 당시 한국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한국이 [[민주화]]되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념적 재단 같은 편파적인 잣대가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 국민훈장을 수상하면서 공식적으로도 명예회복을 이루었다. 말년에는 한국 언론들과 자주 인터뷰나 대담 등을 가지기도 했고, 생전에 마지막으로 언론과 접촉한 것도 타계 열흘 전인 5월 3일에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이 병상을 찾았을 때였다.
- 최지우(영화배우) . . . . 21회 일치
=== 데뷔와 스타 탄생, 드라마의 여왕 ===
1994년 MBC 공채 탤런트 23기[*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유태웅]], [[이현경]],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1995년 말 영화 <귀천도>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으나 부족한 연기실력탓에 도중하차한다. 1996년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열린 한국의 [[이자벨 아자니]]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여 비로소 얼굴을 알리게 된다.[* 이자벨 아자니와 샤론스톤이 주연을 맡은 영화 <디아볼릭> 국내 상영기념 이벤트였다.]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7년으로, 한창 인기 있던 드라마 <[[첫사랑(KBS)|첫사랑]]>과 영화 <[[올가미(영화)|올가미]]>에 출연하게 된다. 그 외에도 CF와 뮤직비디오 등으로 점차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국어책을 읽는 듯한 [[발연기]] 때문에, 데뷔작인 [[박봉곤 가출사건]](1996년)에 출연했을 때에는 아예 '벙어리 정육점 여주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최지우는 2002년 '''<[[겨울 연가]]>'''에 출연하였고 배용준과 함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당시 겨울연가의 당시 시청률은 20프로 초중반으로 2002년 기준으론 그냥저냥한 중박쯤의 작품이었다. SBS의 [[여인천하]]가 워낙 대세였고 MBC의 [[상도]]도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실제 겨울연가의 감독인 윤석호 또한 20~30대 여성들을 공략하는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지우의 숏커트 머리는 하나의 유행이 될 정도로 <겨울연가>는 적당한 성공을 거두었었는데... 이 <겨울연가>는 일본에 수출되며 최지우는 그 유명한 '''욘사마'''와 더불어 '지우히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기 몰이를 하였다.[* [[이나가키 고로]]가 [[혼코와 클럽]] 진행 당시 최지우를 처음 실물로 본 경험을 얘기하며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도. 서브남주인 박용하의 인기 또한 폭발적이었으니 말다했다]
2003년 출연한 <[[천국의 계단(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도 여주인공 한정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때부터 혀 짧은 발음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계모와 의붓 여동생[* 이 역을 바로 [[김태희]]가 맡았다. 김태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남자 주인공들([[권상우]], [[신현준(배우)|신현준]] 役)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히로인]]의 역할을 맡았고, 마지막에는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 참고로 상대역인 권상우도 [[혀]]짧은 발음이 문제였는지라, '''권땅우&퇴디우'''로 불리기도 했다.(...)
2008년 절치부심 [[유지태]]와 함께 <스타의 연인>에 출연하였으나, 이 드라마는 에어시티보다 더 실패하였고 시청률은 바닥을 쳤다. 최지우가 이 드라마를 찍다가 나오지 않는 시청률 때문에 촬영 도중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루머가 돌 정도였으니(...)
[[황금의 제국]] 후속작인 [[수상한 가정부]]에서 여주인공 [[박복녀]]로 출연하기로 확정되어 초반 분량은 촬영을 마친 상태. 이성재와 짝을 맞추어 극을 이끌어 나간다. 다만 연기력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작인 [[가정부 미타]]의 팬들은 최지우가 여주인 것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 하는 중.
그래도 작품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고, 기존의 맡았던 캐릭터와 많이 다른 캐릭터를 제법 잘 소화했다고 나름 호평을 받았다.[* 다만 발음이 아직은 아쉽다는 듯. 그래도 극중 맡은 캐릭터의 특성상 대사량이 많았고 빠르게 ~~랩~~말하는 장면이 많았음을 감안해서 본다면야...] ~~그런데 시청률은...~~
[[올가미(영화)|올가미]]가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1996년에 개봉하여 똥폼만 잡고 끝난 '귀천도'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기로 하였으나, 건강문제로 인하여 도중 하차한다. ] 흥행은 못했지만 나름 호연과 더불어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문제는 1997년 <올가미> 출연 이후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였으나, '''흥행작이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출연했지만, 일단 이 영화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비중이 워낙 큰 데다 [[장동건]]이 조연으로 출연했기 때문에 아무도 최지우가 나온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2002년 [[안성기]]와 함께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 출연하였으나 흥행 면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4년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 출연, 파격적인 노출신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지만 영화 흥행은 또다시 실패. 2006년 <연리지>에 출연하였지만 영화 자체도 기억되지 못한다. 2009년 <[[여배우들]]>에서 본인의 역으로 출연하였지만, 뭐 이런 영화가 그렇듯 흥행은 그다지...(...) 이쯤 되면 영화는 '부도수표'라는 말이 어울릴 듯.
일단 최지우 하면 '[[배용준]]'이 떠오르는데, 이는 <[[겨울 연가]]>의 임팩트가 워낙에 컸기 때문. 위의 사진은 겨울연가에서의 최지우와 배용준의 모습이다. 또한 최지우와 배용준은 1997년 드라마 <[[첫사랑(KBS)|첫사랑]]>에도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서진]]과 함께 [[삼시세끼]]와 [[꽃보다 할배]]를..~~
[[1박 2일]] 여배우 특집에 출연하였는데, 드라마에서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재미를 선사하였으며 나 PD도 이에 대해 코멘트했다. 이 특집을 계기로 [[김하늘]]과 언니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2012년 마지막 [[런닝맨]] 게스트~~스파이~~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런닝맨들은 트루개리쇼 때와 마찬가지로 다 알고 있었다.]
2014년 삼시세끼에서 게스트로 출연 각종 요리지식으로 이서진의 호감(??)과 삼시세끼 월동 김장게스트로 출연한다. --김장할려고 원조 한류스타를 부르는 나PD의 위엄-- 그리고 김장만 도와주고 가려는데 후속 게스트가 연기자의 대선배 [[이순재]]에게 잡혀 하루를 더 묵는 듯하다 --역시 나PD 함정을 파놨던 거야--
여담으로 EXO의 세훈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최지우가 MAMA 시상자로 나왔을 때, 수상자였던 EXO가 대기하는 동안 시상대에 있는 최지우를 보고 올라가는 광대뼈를 주체하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짓는 직캠까지 있다(...). 일설로는 그가 연예인 데뷔 후 처음으로 실물로 본 것이였다고. ~~최애 영접~~ 이후 EXO 90:2014에서 보아와 최지우 중 누가 더 좋냐는 질문에, 이제껏 잘 익힌 처세술을 한껏 발휘하던 그가 최지우 이름이 나오자마자 얼어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격 회사 상사와 10년차 짝사랑 상대의 대결~~ 결국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보아가 좋다고 말했지만, 보아 왈 "엎드려 절 받는 느낌이다?" ~~근데 질문이 너무 가혹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온갖 종류의 [[술]]에다 해장음료용 [[코코넛]]워터, 그리고 주당의 끝판왕이라는 [[하몽]]에 [[멜론]], 차갑게 한 [[샴페인]] 조합까지 나와서 결국 지우히메에서 알콜히메로 캐릭터가 변경되었다(...)
* 2004년 MBC 《[[놀러와]]》
- 하이큐/244화 . . . . 21회 일치
* [[히나타 쇼요]]와 [[야마구치 타다시]]는 막간을 이용해 굿즈를 사러 나왔다가 [[후쿠로다니 학원]]의 경기도 보러 온다.
* 자기만 냅두고 동료들이 선전하자 보쿠토는 또 풀죽는데 그때 [[아카아시 케이지]]가 말주변과 응원하러 온 히나타와 야마구치를 가지고 기를 살려놓는다.
* 경기를 보고 돌아가던 히나타는 매점 앞에서 [[카게야마 토비오]]가 "작은 거인"이라 생각했던 [[호시우미 코라이]]와 마주치는데.
* 점심을 먹은 [[카라스노 고교]]는 짧은 자유시간을 가진다. [[사와무라 다이치]]의 허락을 받은 [[히나타 쇼요]]는 부리나케 굿즈를 사러 매점으로 달려간다. [[야마구치 타다시]]도 따라온다. 같은 시각 [[카게야마 토비오]]는 개인정비, [[츠키시마 케이]]는 쪽잠을 취한다.
* [[후쿠로다니 학원]] 대 에이와 고교. 후쿠로다니는 1회전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있다. 스코어는 10 대 7. 첫번째 TO를 사용한다. 에이스 [[보쿠토 코타로]]가 컨디션 난조. 관중석에서 보쿠토의 저조한 경기력을 비웃을 정도다. [[코미 하루키]]가 텐션 좀 올리라고 격려하는데, 보쿠토의 풀죽음 원인은 완전히 엉뚱한 것이었다.
감독은 왜 쓸데없는 걸로 난리냐고 있는데로 갈구지만 그걸로는 보쿠토의 멘탈을 되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이골이 난 동료들은 신경끄고 경기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코노하 아키노리]]는 흔한 일이라며 빈축. [[오나가 와타루]]는 "메인 아레나가 부럽다"는 감상을 솔직히 말할 필요 있었나 의문시한다.
어쨌든 [[와시오 타츠키]]는 보쿠토에 대한 문제를 접어두자며 이렇게 정리한다.
* 그 말처럼 여기서부터 후쿠로다니의 반격이 시작된다. 보쿠토는 여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지만 다른 동료들이 분발하면서 한 점씩 따라잡기 시작, 어느새 스코어는 15 대 14로 한 점차까지 따라온다. 중계석에선 에이스가 저조한데도 착실하게 점수를 버는 후쿠로다니를 칭찬한다. 반대로 에이와 고교는 에이스가 봉인됐는데도 선전하자 혼란스러운 양상.
* 고르게 활약하는 동료들. 그 와중에 미적거리는 보쿠토는 그걸로 보고 다시 네거티브해지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이걸 캐치한 아카아시는 그의 안전부절이 피크에 오를 때가 기회라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15 대 15로 동점. 에이와 고교가 첫 번째 TO를 부르자 아카아시가 움직인다.
매점에 갔던 히나타와 야마구치가 후쿠로다니의 경기를 보러 온 것이다. 히나타는 막 구입한 티셔츠를 흔들며 보쿠토를 응원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게 보쿠토에겐 큰 감동을 주는 듯 하다. 아카아시는 아직도 보쿠토의 생태에 관해선 이해가 안 가지만, 이렇게 별거 아니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에겐 중요한 의미라고 이해한다.
* 에이와의 TO 종료. 경기가 재개된다. 에이와의 서브를 코미가 리시브. 아카아시가 보쿠토에게 올린다. 블록이 세 명이나 따라 붙지만 보쿠토는 절묘하게 라인에 걸치는 스파이크로 블록을 농락, 역전을 성공시킨다.
아까 아카아시가 궤변을 늘어놓긴 했지만, 완전히 거짓말만은 아니었다. 서브 아레나는 경기장이 작은 만큼 그 안의 환호성이 더 가깝고 크게 들리는 효과가 있었다. 아카아시의 언변이 효과를 거둬 보쿠토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하이텐션 모드로 돌아왔다. 후쿠로다니 응원석 측에서는 열광. 사정을 잘 모르는 히나타와 야마구치오 그의 파인 플레이에 환호한다. 반면 에이와 측은 파랗게 질린다.
* 경기는 부활한 보쿠토의 활약으로 여세를 몰아 세트 스코어 2 대 0으로 후쿠로다니의 완승. 카라스노 경기를 보다 넘어온 바보 커플도 후쿠로다니의 활약을 지켜본다. 경기 종료후 아카아시는 [[사루쿠이 야마토]]와 "카라스노의 1학년들이 와서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카아시는 설사 그들이 없었더라도 다른 계기를 만들어서 분위기를 띄웠을 거라 장담한다. [[코노하 아키노리]]는 가끔은 보쿠토를 아주 무시해버리는게 속편할 거라고 말하는데, 아카아시는 어차피 자신이 끌어내는 보쿠토의 힘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무엇보다 절호조인 그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사루쿠이는 그걸 본인에게 말해주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코노하는 그러면 괜히 까불게 된다고 말린다.
* 경기를 보고 돌아가는 히나타와 야마구치. 후쿠로다니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매점 앞을 지나갈 때, 누군가 히나타와 같은 티셔츠를 S사이즈로 주문하고 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히나타. 그는 전일본 유스에서 카게야마와 한솥밥을 먹었던 [[호시우미 코라이]]였다. 카게야마가 "작은 거인"이라 생각했던 그 선수.
- 강동우 . . . . 20회 일치
|| '''생년월일''' ||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상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상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를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097584|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이 부상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 어쨌거나 이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이미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삼성 팬들에게 [[강기웅]], [[박충식]]과 함께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가슴에 남는 선수다.[* 다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까였던 적도 있다.] 강동우와 관련된 신문기사의 리플을 보면 '''[[한화 이글스|한화]] 팬들보다 삼성 팬들의 응원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는 간간히 '은퇴식만큼은 삼성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미 [[마해영]]의 사례도 있고.
2008 시즌 종료 후 [[신종길]]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009 시즌 붙박이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기용되면서 놀랍게도 맹활약을 펼쳤고, 1998년 이후 12년 만에 3할 타율과 준수한 출루율을 기록하였다. 또한 팀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보이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한화가 간만에 건진 수준급 1번 타자. 농담으로 [[FA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2009 시즌 종료 후 [[FA 제도|FA]]를 선언했고, [[한화 이글스]]와 1년 총액 3억 원(계약금 1억 5천+연봉 1억 5천)의 조건으로 재계약에 합의했다. 팬들은 반짝 활약이 아니기를 바랐으나...
한편 2009 시즌 말인 9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고영민]]을 축하해 주는 장면이 사진에 찍히면서 빈축을 샀다. 게다가 끝내기 안타 직전에는 2루심의 오심이 터진 탓에 다른 한화 선수들은 분을 억누르고 있던 상태였다.
스프링캠프에서 몸이 안 좋아 훈련을 제대로 못 했고 시즌 시작 시점에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간염으로 인해 하와이에서 1주일만에 귀국하여 대전시는 모 병원에서 잠시 입원 생활을 했다. 결국 체력부족으로 1할대를 넘나드는 극악의 타격과 심각하게 좁은 수비범위를 보여주며 [[FA로이드]] 부작용 의혹을 받다가 결국 2군에 내려갔다. 그러나 5월 초에 2군에서 복귀해서 타율을 2할 7푼대로 끌어올리는 등 준수한 성적을 냈다. 6월 27일 개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했고, 후반기에는 1군과 2군을 왕복하였다.
5월 24일, [[SK 와이번스]]와의 3연전 첫 경기에서 [[이승호(1981)|이승호]]의 높은 직구를 그대로 때려 2:2 피말리는 접전 끝에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팬과 칰갤러들은 [[야왕]]의 작전지시를 충실히 수행한 강동우에게 '''[[공작]]'''의 칭호를 내려야 한다며 강동우 공작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불암콩콩코믹스]] '''<추두: 도망두산을 쫓다>''' 편에서는 '''야또나리'''가 되었다!!
7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 두 번째 경기 3-6으로 뒤지고 있는 6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손영민]]의 공을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역전만루홈런]]을 쳤다! 시즌 9호. 캐스터가 타이거즈 팬인 건 알지만 좀 심하게 친기아 성향으로 중계하는 와중에 패배로 기울던 분위기를 다시 되찾아온 모처럼 시원한 한 방이었다. ~~도루하기 귀찮아서 그냥 넘겨버리는 1번 타자의 위엄~~
7월 30일 [[SK 와이번스]]의 큰 [[이승호(1976)|이승호]]를 상대로 쓰리런을 때리며 기어코 개인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11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테이블세터고 뭐고 그냥 넘겨서 점수내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요즘 더워서 누상에 서 있으면 힘들다고...~~
9월까지 타율 .265~.270대를 오가면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홈런은 13개로 팀내 '''홈런 2위'''였다. ~~강동우, 파워에서 가르시아와 동급이었다 파문.txt~~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의 재기를 도운 [[김응용]] 감독을 만나 의지를 불태웠으나, 결국 그 해가 [[한화 이글스]]에서 마지막 해가 되었다. 시범경기 11경기에 출장해 16타수 5안타 타율 .313 2타점 2볼넷 출루율 .389를 기록해 다시금 KBO 최고령 1번 타자의 재림을 노리고 있었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발가락 부상(골절)을 당해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012 시즌 종료 직후 가을 마무리훈련부터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빠짐없이 훈련을 소화했기에 더욱 아쉬운 부상이었다. 다행히 1번 타자의 공백은 [[이대수]]가 나름대로 메워주고 있지만 팀이 개막 직후부터 연패 수렁에 빠져있고 마땅한 좌타자 요원도 없는 상황이라 그의 공백이 더욱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두산 베어스/2018년|2018년 시즌]]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새로온 [[고토 코지]] 코치와 함께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듯 하다.
O형 수염 자국이 선명한, 살짝 [[마초]]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중년]]이다. 2014년 4월 19일까지 미혼(!!)이었다. 2011 시즌 중반부터 굉장한 활약을 펼치던 때의 스포츠신문 인터뷰 중 '체력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내 주는 [[인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팬들은 '저런 건 친구가 아니라 와이프가 챙겨줘야 되는데...'라며 심히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우햄 장가 보내기'는 새 시즌 한화팬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류택현]]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미혼의 프로야구 현역 선수였다. 위의 사례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제는 노총각 코치(...). ~~삼성에서 뛰던 소싯적에 선배였던 [[양준혁]]을 그렇게 잘 따랐다더니 엉뚱하게 노총각 운명까지 따르는 걸까~~
2017년 [[두산 베어스]] 주루코치시절, [[양의지]]와 --[[덤 앤 더머]]-- 장면을 연출(?)했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20회 일치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다. ([[강민 (프로게이머)|강민]](당시 [[KTF 매직엔스]]), [[박지호]](당시 [[MBC게임 히어로|POS]]), [[박성준 (1986년)|박성준]](당시 [[MBC게임 히어로|POS]]), [[송병구]](당시 [[삼성전자 칸]]), [[오영종]](당시 [[화승 OZ|Plus]]와 공동 기록 보유)
김준영의 스타리그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EVER 스타리그 2005에선 [[박용욱]](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과 [[전상욱]](당시 [[SK 텔레콤 T1]], 현 [[위메이드 폭스]])을 꺾고 2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3자 재경기에서 전패하며 16강 탈락했다. 다음 대회인 [[So1 스타리그 2005|So1 스타리그]]에서는 당대 최강의 테란 [[최연성]](당시 [[SK 텔레콤 T1]], 현 SK 텔레콤 T1 코치)을 이겼지만 [[홍진호]](당시 [[KTF 매직엔스]],은퇴)와 [[오영종]](당시 [[화승 OZ|Plus]], 현 [[화승 오즈]])에게 패배하며 역시 16강 탈락했다.
홍진호와 펼친 최고의 저그 대 저그 경기로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었다. 이후 3시즌에 걸쳐 사용된 반섬맵 '815' 시리즈의 데뷔 경기였던 홍진호와 김준영의 대결은 장장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종래의 뮤탈리스크 저글링 위주의 단조로운 저그전 양상을 탈피한 다양한 유닛들의 각축으로 이루어졌다. 디바우러, 디파일러, 퀸, 심지어는 히드라리스크와 스탑 럴커까지 동원되는 혈투가 벌어졌고, 김준영은 초반 유리한 전개를 만들었으나 홍진호의 뒷심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 경기는 역대 최장시간 저그 대 저그 경기이자, 역대 최고의 저그 대 저그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으며, 비록 김준영은 이 경기에서 지긴 했으나, 이 경기로 인해 아직 신예급이었던 김준영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두 시즌의 공백기 이후 김준영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로 개인리그에 복귀한다. 김준영은 [[차재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CJ 엔투스]] 코치), [[박태민]](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 [[변형태]](당시 [[CJ 엔투스]], 현 [[공군 ACE]])와 24강 F조에 편성되어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서 1년여만에 만난 오영종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그 다음 대회였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도 김준영은 재경기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힘겹게 16강에 진출했지만, [[이성은]](당시 [[삼성전자 칸]], 현 [[공군 ACE]])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훌륭한 기량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16강을 넘지 못하는 김준영에게 게임팬들은 '16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2006년 9월 15일 변형태와 알카노이드에서 치른 일전은 많은 게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온갖 화제를 낳았다. 이 경기에서 김준영은 테란으로 트리플 커맨드를 확보한 변형태를 상대로 전 맵에 걸쳐 멀티를 가져가면서 막대한 자원 수급량을 확보했고(총 8개의 멀티 보유), 처음 택한 공격이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저글링 드랍이었을 정도로 엄청난 배포를 보였다. 이후 공중유닛에 매우 강한 발키리, 골리앗 조합으로 진군하는 테란 병력을 소위 새떼라 불리는 뮤탈리스크 대부대로 무난히 격파하고, 전맵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트라리스크로 상대의 본진을 싹쓸이하면서 최고의 관광 경기를 연출했다. 이 경기가 펼쳐진 16분 동안 김준영은 40000이 넘는 미네랄을 채취했을 정도로 엄청난 물량을 뽐내며 당시 최고조에 다다랐던 테란전 실력을 입증하였으며,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도 대인배스러운 캐릭터를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경기였다. 또한 훗날의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의 호적수, 이후에는 팀동료로 계속 이어진 변형태와의 인연이 시작된 경기이기도 했다.
다시 16강 체제로 회귀한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준영은 [[한동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은퇴), [[신희승]](당시 [[eSTRO]], 영구제명), [[송병구]]([[삼성전자 칸]])와 함께 D조에 편성되었다. 줄곧 16강에 머물렀던 김준영은 3승을 거두며 드디어 조 1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많은 이들의 예상을 무너뜨렸다. 김준영의 8강 이후 토너먼트 대진은 최고의 테란들과 연거푸 부딪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김준영은 8강에서 당시 [[마재윤]](당시 [[CJ 엔투스]], 영구제명)의 몇 안 되는 대항마이자 저그전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던 [[진영수]](당시 [[STX SouL]], 영구제명)를 2:1로 물리쳤고, 4강에서는 데뷔 직후 바로 4강에 진출하면서 최고의 실력과 기세를 뽐내던 [[이영호 (1992년)|이영호]](당시 [[KTF 매직엔스]], 현 [[KT 롤스터]])를 상대로 3:2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선 변형태와 맞붙어, 2:0 상황에서 세 경기를 연이어 따내며 스타리그 도전 다섯 번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진영수와 이영호와 펼쳤던 경기들도 한 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명승부였지만, 결승전에선 2:0으로 밀리고 있다가 3, 4, 5경기를 연이어 승리하면서 전용준 캐스터의 표현대로 "천재도 못하고, 본좌도 못하고, 누구도 못하고, 황제도 못했던" 리버스 스윕을 역상성 종족으로 달성하며 최고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특히 파이썬에서 펼쳐진 5경기는 종료 직전까지 승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던 명경기로, 김준영은 변형태의 바이오닉 병력에 중원을 빼앗기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연이은 멀티 견제를 극적으로 막아내며 신들린 스콜지의 활용으로 사이언스 베슬을 지속적으로 줄여 주며 항전했고, 종국에는 가까스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해 내는 데에 성공하며 생애 최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경기 종료 후 김준영은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려 승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변형태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스타리그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김준영과 변형태의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은 그 스코어로나 경기 내용으로나 그 안에 얽힌 드라마로나 역대 최고의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 김준영의 별명 '대인배'는 2005년 11월 12일 김준영이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승자전 대 [[김근백]](당시 [[삼성전자 칸]], 은퇴) 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해처리 버그(해처리로 변태하다가 취소한 상태의 저그 드론이 소실될 경우 게임 자체가 멈춰 버리는 현상)가 발생하자 재경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인배(大人輩)'라는 용어는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던 [[김성모]]의 만화 중 등장한 '소인배'와 반대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 본래 표준어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소인배', '무뢰배', '폭력배' 등의 단어에서 보이듯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김준영을 '대인'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 김준영의 플레이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선수는 '디파일러의 아버지' [[조형근]](은퇴)이라고 한다. 과거 [[한빛 스타즈]]에서 김준영과 한솥밥을 먹었던 조형근은 레어 단계에 집중하던 저그 진영에 '하이브 운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선수였다. 김준영 역시 디파일러와 울트라리스크 등의 하이브 테크 유닛을 사용하는 데에 능숙했다.
* 데뷔 리그인 EVER 2005 스타리그부터 So1, 신한은행 시즌 2와 3 스타리그까지 16강에만 머물러 ‘16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적이 있었으나, 다음 스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에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김준영의 플레이는 운영형, 즉 뮤탈리스크와 저글링,럴커로 최대한 테란의 시간을 끌고 그 동안에 3가스 체제를 구비한 뒤
하이브테크를 올려 디파일러와 스커지를 활용해 테란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고(고도의 집중력과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그 동안 축적한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20회 일치
안드로메다 성운의 혹성 아스투리아스(惑星アストゥリアス)에 위치하는 코스모라리아 왕가(コスモラリア王家)의 황태자 이타카(イタカ)는 왕으로 즉위하여 아스토라르타 3세(アストラルタ3世)를 칭한다. 그리고 아오도야 왕가(アヨドーヤ王家)의 리리아(リリア) 공주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런데 몇일 뒤, 유성이 아스투리아스에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박쥐가 왕궁에 들어와 사람들이 바뀌어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기계들의 침략이었다. 이타카 역시 잔인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며, 왕궁은 기계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모하고, 기계 거미가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서 심신을 지배하게 된다. 리리아 왕비는 임신하여 출산을 하지만,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쌍둥이]]가 태어나게 된다. 리리아 왕비는 1명을 검투사 바르가(バルガ)에게 맡기고, 바르가는 그 아기를 창녀에게 맡기게 된다.
리리아와 자무사는 기계들에게 쫓겨서 탈출한다. 그들을 돕던 아요도야의 왕자 밀란은 기계에 살해당하고, 탈출한 아요도야 역시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며 밀란과 흡사한 기계가 난민을 공격하게 된다. 자무사는 신비한 초능력으로 로브(ロブ)의 동무을 받아서 [[사막]]으로 탈출한다. 자무사와 리리아는 로브의 도움을 받으며 10년간 피난 생활을 보내게 된다.
과거 기계에 파괴된 행성 뮤라토(ミュラト)의 자손을 이끄는 노사(老師) 쿠푸가 지무사의 앞에 나타난다. 노사 쿠푸는 뮤라토의 피가 아요도야 왕가에 흐르고 있으며, 가장 진한 피를 지무사가 가지고 있다고 알려준다. 지무사는 남자로서 자라 도적으로 활동하는 쌍둥이 여동생 아푸루(アフル)와 만나게 되며, 기계와 인간의 전쟁에 휘말려 들게 된다.
주인공. 붉은 머리. 신비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동생 아푸루와 공명하고 있어 아푸루가 고통을 겪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붉은 모래 폭풍의 날에 태어난 아이가 태양왕이 되어 사람들의 구세주가 된다'는 전설의 인물로서, 저항군들에게 태양왕으로 불린다.
지무사의 쌍둥이 여동생. 녹색 머리. 지무사와 마찬가지로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쌍둥이는 불길하게 여겨져서 버려지고, 창녀 코리노(コリノ)가 데려다가 기르게 된다. 남자로서 길러졌으며 도중까지는 도적으로서 지무사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지무사와의 혈연과 사랑을 깨닫게 되고….
지무사와 아푸루의 어머니. 아요도야의 공주이며, 코스모라리아의 왕비. 기계의 지배에 들어간 왕궁을 떠나 지무사를 데리고 도피하여 저항군에 들어가지만, 끝없는 전쟁에 지친 끝에 이타카 왕과 오빠 밀란을 내세운 기계 측의 유혹에 넘어가 떠나버리고 만다.
노사 쿠푸는 과거 아스투리아스로 사람들이 이민해 올 때 사용했던 소행성 키시로코파(キシロコーパ)를 근거지로 하여 마더 머신에 대항하는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그 상징으로서 지무사를 이용하려고 한다. 기계에 대한 증오심이 강하여 지무사에 따르는 아크와 베스 역시 혐오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태양계에 존재했던 제5혹성 그로브에서 제작된 W형 안드로이드. 마더머신이 제작한 기계화군단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다. 주인을 잃고 아스투리아스에서 방황하다가, 지무사를 주인으로 모시게 된다. 노사 쿠푸가 나머지 인류와 마더 머신과 함께 멸망을 택하자, 자신들이 탓던 우주선에 지무사와 아푸루를 데리고 아스투리아스를 탈출하여 2천년의 시간을 거쳐서 고향 태양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지무사와 아푸루는 우주선 내에서 사망, 캡슐에서 눈을 뜨지 못한다. 아크와 베스도 기능을 정지하여 바다 깊이 가라앉아 썩어간다. 하지만 지무사와 아푸루의 몸을 통하여 지구에서 생명은 다시 태어나게 된다.
작사 : 山川啓介(야마카와 케이스케)
전반에는 전형적인 기계와의 전쟁, 초능력 구세주 전설로 흘러가다가, 후반에는 남매 간의 금단의 사랑에 집중하는 스토리가 되서 약간 안드로메다로 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 정신을 분리하여 가상 세계에서 행복을 누리게 하는 기계의 묘사는 후에 나온 [[매트릭스]]와 흡사하다.
- 은혼/645화 . . . . 20회 일치
* [[엔쇼]] 황자는 히노카구츠치의 에너지를 머금은 아메노토리후네를 지구에 낙하, 히노카구츠치 발사와 같은 결말을 만들어내려 한다.
* 엔쇼가 모선을 낙하도록 셋팅한 뒤 탈출하려 하나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가 저지하려 나선다.
* 엔쇼는 두 사람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과시하나 라이트 세이버 자체를 노리고 사격한 다츠마의 기지와 가츠라의 결정타로 패배한다.
* [[바토우]]와 함께 죽은 줄 알았던 [[사루가쿠]] 또한 살아서 신스케와 합류, 엔쇼의 퇴로를 막으러 왔다.
* 초연의 황자 [[엔쇼]]는 다 끝장난 것 같았던 해방군의 전세를 회복시킨다. 뿐만 아니라 양이지사들의 두 축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에 역공을 가해 [[무츠(은혼)|무츠]]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라는 두 동료를 희생시킨다. 병력은 대부분 소실, 히노카구츠치 발사 저지,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는 침몰 중, 자신은 양이지사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그의 안에서 타들어가는 불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양이지사들이 치른 희생이야 말로 무의미하다고 평가절하했다.
* 그의 말은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자작 제독과 [[도쿠가와 노부노부]]에게도 들렸다. 자작은 호적수이자 동지였던 엔쇼의 타락을 더는 참지 못한다. 그는 엔쇼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일갈한다. 그의 고집대로 싸움을 계속하고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나면 대체 무엇이 남느냐고. 엔쇼는 땅에 떨어져 있던 팬던트, 아내의 유품을 집어들며 대답했다.
* 폭발을 남기고 떠나가는 그의 등 뒤를 가츠라와 다츠마가 노린다.
* 하지만 엔쇼는 예상이나 한 것처럼 양손의 라이트 세이버를 교차해 후방을 찌른다. 빛의 칼끝이 가츠라와 다츠마의 복부와 어깨를 찌른다. 칼날은 그대로 둘을 밀쳐낸다. 적당히 거리가 벌어지자 엔쇼가 돌아서며 역공을 가한다. 둘은 피하는데 급급하다. 엔쇼의 불이 다츠마와 가츠라의 불을 끌 수 없다면 그 반대로 마찬가지.
* 여전히 엔쇼는 양이지사들의, 지금 여기서 싸우는 영웅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니까. 그는 양이지사들에게 자신이 밉냐고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그들의 동료와 사랑히는 이들을 앗아가지 않았는가. 그 뻔한 질문엔 대답도 필요 없었다.
* 개방된 공간이었던 통제실과 달리 좁은 통로에서는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가 더욱 유리했다. 신축자재에 광탄으로 전환까지 가능했기에 다츠마와 가츠라에겐 피할 공간이 부족했다. 다츠마가 공격을 피해 몸을 날리며 총을 갈겼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으로 변환해서 대응사격한다. 치명상은 주지 못했지만 왼쪽 허벅지에 부상을 입힌다. 가츠라는 엔쇼가 다츠마를 공격하는 동안 도약해 있었다. 엔쇼는 머리로 떨어지는 가츠라의 내려치기를 오른손 라이트 세이버로 막았지만 무기를 놓친다. 엔쇼가 주춤했다. 가츠라에겐 더할나위 없는 기회였다. 엔쇼의 우측에 착지한 가츠라는 재빨리 우상단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무너진 자세로 무방비해진 엔쇼의 목으로 곧바로 칼날이 닿았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엔쇼의 왼손에는 여전히 라이트 세이버가 들려있었다. 엔쇼는 그 라이트 세이버로 가츠라의 칼날을 쏘아맞춘다. 방해가 되는 자기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빛의 경로가 꺽어지게 해서 겨우 가츠라의 칼날을 저지한다. 부러지는 가츠라의 칼. 엔쇼는 그대로 가츠라의 왼쪽 어깨를 찔러 반대편으로 밀어낸다.
다츠마는 부상, 가츠라는 무기가 없다. 엔쇼는 라이트세이버를 오른손에 바꿔들고 광탄의 형태로 전환했다. 그는 무기를 높이 치켜들었다. 쓰러져 있는 가츠라와 다츠마는 더이상 저항의지가 없는 듯 했다. 하긴 그럴 수단도 없었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라이트 세이버의 출력이 떨어지더니 이윽고 고장을 일으킨다. 엔쇼는 그제서야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츠마가 쏜 총알. 그건 라이트 세이버를 노리던 거였고 정확하게 명중했다. 거기에 생각이 닿은 순간, 가츠라가 마침내 마무리를 지었다. 떨어뜨렸던 라이트 세이버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 빛의 끝은 엔쇼의 복부를 지르고 있었다.
* 마타코를 지탱했던 철근은 끝모를 바닥을 향해 떨어졌지만 마타코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떠있는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이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마타코는 실감이 나지 않는 듯 한참 지나서야 "원조"가 와준 모양이라며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정말로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 승부가 났다. 엔쇼는 가츠라의 공격으로 복도 반대편까지 나가떨어졌다. 게이트를 화려하게 박살내며 떨어진 곳은 탈출용 소형정이 대비 중인 도크였다. 엔쇼를 지나쳐갔던 병력들은 엔쇼가 패하고 가츠라, 다츠마가 추격해오자 경악한다. 병력들은 둘이 다가오는 복도를 향해 총구를 모았다. 그들이 오게 두어서는 안 된다. 탈출을 저지 당하면 자신들도 이 배와 함께 침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탈출하려는 배 위에서, 예상치 못했던 병단이 나타난다. 마타코가 막 구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를 향해 돌격했던 헨페이타의 소형정. 소형정이 목표를 들이받은 순간, 헨페이타의 예상은 빗나갔다. 원인은 모선의 외벽이 생각보다 날림이었거나, 소형정이 너무 튼튼했기 때문이다. 장치를 박살낸 소형정은 계속 돌진해서 외벽을 뚫고 내부까지 진입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헨페이타와 부하들은 자신들도 뻘쭘해하며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가운데 자신들만큼 뻘쭘하게 살아남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삼흉성의 생존자 [[사루가쿠]]. [[바토우]]와 함께 폭발에 휩쓸려 죽은 줄 알았던 그들은 무사히 몸을 피해있었다.
사루가쿠는 일찌감치 해방군의 탈출 루트를 점거했다. 그와 부하들이 해방군의 머리 위를 겨누고 있었다.
- 은혼/646화 . . . . 20회 일치
* 신스케의 재등장으로 전세는 단번에 역전. 도주하려던 [[엔쇼]]와 해방군 잔당은 사방에서 밀려드는 병력에 고립된다.
* [[가츠라 고타로]]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부상을 무릎쓰고 엔쇼와 대결을 이어가고 중상을 입으나 엔쇼를 전투불능 상태까지 몰고간다.
* 죽음을 불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로 돌격했던 [[다케치 헨페이타]]. 그러나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살아남고 말았다. 내친 김에 아메노토리후네의 내부에 내려선 다케치와 부하들 앞에 바라지도 않았던 배웅자가 있었다. 전 하루사메 삼흉성 [[사루가쿠]]. 부하들과 함께 건재한 모습이었다. 넉살좋게 다케치 일행의 특공이 실패했으니 수훈은 자신들 몫이라고 말하며 나타났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바토우]]의 목숨을 앗아간 그 폭발. 사루가쿠는 가까스로 폭발을 피했다. 살아남은 그는 그대로 숨어있기 보단 작전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 나섰고 다케치 측의 통신을 엿들었다.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 파괴. 다케치의 예상과 달리 그건 폭발 한두 번으로 어쩔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루가쿠 부대가 내부에서 그 장비를 한 발 먼저 파괴했고 그래서 다케치 일행의 특공은 불발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루가쿠는 바보였다. 거대한 원수를 상대로 어떻게 해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동료의 원수를 갚아줄 수 있을지 궁리할 수가 없었다. 동료의 빚을 갚는건 해적들만의 자존심은 아닐 것이다. 귀병대도 비싼 희생을 치르지 않았던가. [[카와카미 반사이]]라는 희생. 그래서 다케치가 죽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사루가쿠는 자신과 부하들을 써 승리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다케치에게 부탁했다.
>모두와 함께 갑시다.
다케치와 사루가쿠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성과를 올렸다. 사루가쿠가 파괴된 중추 시스템의 하부에서 잔해에 걸린 그 남자를 발견할 무렵, 다케치도 막 추락하려던 [[키지마 마타코]]를 구출했다. 다케치가 그녀를 옮기는 동안 사루가쿠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영웅을 데리고.
* [[다카스기 신스케]]는 탈출을 목전에 두고 있던 해방군 잔당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마타코와 다케치가 향하고 있는 그늘이었다. 사루가쿠의 구조를 받은 그는 곧바로 [[엔쇼]] 황자가 그 휘하 병력을 요격하기 위해 매복을 감행했다. 엔쇼 황자가 [[가츠라 고타로]]와 [[사카모토 다츠마]]에 패해 쓰러지고 다카스기 일행은 최고의 타이밍에 해방군의 배후를 잡았다. 다카스기가 선두였다.
사루가쿠는 자신이 선두에 세운 남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거기에 서있는 것만으로 동료들의 기색이 바뀌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적들의 기색까지도. 이 피투성이 사내가 휘두르는 칼끝에 따라서 전장이 바뀌고 있었다. 아군 부대다 적들 위로 쏟아져내렸다. 통로를 통해 도크에 도착한 가츠라와 다츠마의 병력들도 일제히 진격했다. 사루가쿠 자신도 그 뜻모를 열기에 휩쓸려 적들을 찍어내렸다.
* 가츠라와 다츠마와 격전으로 부상을 입은 엔쇼 황자는 부하들을 쓰러뜨리며 다가오는 다카스기의 일격을 힘겹게 받아냈다. 이미 망가져 언제 끊길지 모르는 라이트 세이버의 빛이 신스케의 칼날을 가까스로 쳐냈다. 그러나 라이트 세이버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출력이 저하됐다. 그런 엔쇼를 원호하기 위해 다카스기의 후방에서 부하들이 총구를 겨눴다.
* 녀석들은 정작 자기 등 뒤는 챙기지 못했다. 다츠마와 가츠라가 다카스기의 후방을 청소했다. 마침내 나란히 선 세 사람. 피투성이의 세 남자. 엔쇼와 격전을 치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말할 것도 없었고 다카스기의 상태도 심각했다. 그는 멀쩡히 서있는 것 같았지만 발아래로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는 막 회복됐다. 일시적인 출력 저하가 반복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걸 점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다. 그가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의 형태로 바꾸자 부하들이 후방에 늘어서 원호사격 진형을 취했다. 엔쇼가 광탄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일렬로 늘어선 해방군이 일제 사격을 취한다.
* 가츠라는 엔쇼와 싸우면서 탈취한 라이트 세이버를 아직 가지고 있었고 유용하게 사용했다. 칼을 수직으로 돌려서 적의 탄환을 막아낸 가츠라는 그것을 던져서 적 선두의 엔쇼를 견제했다. 엔쇼가 뛰어올라서 피해자 다츠마가 견제사격을 가했고 그 틈에 가츠라는 떨어진 라이트 세이버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다카스기와 함께 적의 1열을 분쇄한다.
* 엔쇼가 발견했을 땐 이미 유폭을 일으키려는 참이었다. 엔쇼와 가츠라 사이에서 터진 폭탄. 가츠라가 후폭풍에 떠밀려 뒤쪽 벽까지 나가떨어진다. 그래나 그는 사지가 멀쩡하다는 점에서 양호한 편이었다. 엔쇼는 그렇지 못했다. 라이트 세이버를 쥐고 있던 왼쪽 팔이 상완부까지 휘말려 사라졌다. 분노와 고통으로 이를 가는 엔쇼. 그리고 승리를 눈 앞에 둔 가츠라와 다츠마.
- 정재학 (1856년) . . . . 20회 일치
그는 일제 치하에서 갖은 방해와 공작을 딛고 1913년 [[대구은행]](1928년 이후 경상합동은행)을 설립하여 1940년 타계할 때까지 최대주주로서 [[은행장]] 자리를 지켰다.<ref name="ReferenceB"/><ref>경향신문 1981년 6월 15일 9면 일제하 금융인</ref>
[[정재학]]은 [[낙동강]] 뱃길을 이용한 [[어염무역]]에 진출한다. 1886년 여름 콜레라가 전국을 휩쓸었는데 이 괴질에 소금물이 좋다는 소문이 확 퍼졌다. 소금은 불티나게 팔렸고 값도 폭등했다. 정재학은 이를 바탕으로 대구 3대 부호로 급부상하며 1892년 대구 중심가인 남일동에 99칸 기와집을 세웠다. 1921년 간행 된 '대구일반'에는 그의 재산규모에 대해 "100만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미 8000~3000석 규모의 연 수입을 거두고 있다. 하녀하남은 각각 30~40명에서 50~60명에 이른다."고 기술하고 있다.<ref name="ReferenceB"/><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1</ref>
[[정재학]]은 1905년 [[군수]]자리에 오른다. 고급관료와 친분을 맺어 순흥군수에 이어 개령군수를 맡게 됐다. 전임 군수와 달리 세금도 낮춰주고 밥 굶는 이들이 없게했다. 장사꾼들에게는 밑천도 대줬다. 그는 군수 직책에 있으면서 은행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1906 년 8월 [[대구상공은행]]이 설립 될 당시 이병학, 이종면 등의 부호들과 힘을 합쳐 대주주로 등극하면서 감사역도 맡았다.<ref name="ReferenceA"/><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0일 7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 -12</ref>
정재학은 26살 연하인 사카모토 순지(板本俊資 1884~?) 란 일본인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사카모토는 20살이던 1904년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와 상점 점원으로 일하다 대구에서 잡화상을 차렸다. 사업이 번창해 대구역 앞에서 창고사업도 병행했다 . 이 때 [[경상농공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정재학과 안면을 트게 됐다. 정재학은 일본 젊은이로부터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는 [[자본주의]]경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다. 나아가 사카모토는 후일 [[대구은행]]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된다.
=== 항일투사와 사돈 ===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1921년 결혼, 여아를 뒀지만 1930년 아내가 사망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대구 남산동 거주 김분조와 재혼했다. 그런데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정인택 수기 겨자씨한알 =2</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 조선총독부와의 갈등 ==
[[정재학]]은 [[조선총독부]]와 타협하기도 했지만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섰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은행]]이 [[경남은행]]과 통합하라고 강요했을 때 그는 전심전력을 다해 저항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1~372</ref>
그는 일본인들의 경영권찬탈 시도가 이어지자 경찰 출신의 일본인 지배인을 선임하는 등 경영권 방어전략으로 맞섰다. 또한 총독부와 일제강점기 중앙 은행이었던 조선은행이 자신을 행장 자리에서 줄기차게 몰아내려 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다. 주주총회에서 한국인 주주들이 정재학 행장에게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15일 9면 경제인록 = 금융계 일제하의 금융인</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7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7편</ref> 31년간 민간은행장 자리를 유지한 사례는 전 세계 어디 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 치하에 설립된 수많은 [[민족계은행]]이 있었지만 일제의 강제합병 과정에서 사라져갔지만 정재학 행장은 생의 마감 직전까지 저항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창조사, 1970) P.674 "조흥은행 되기까지"</ref>
이 같은 일본인 임원의 침투전략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한국인은행은 일본인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어미새(국가)가 둥지를 틀고 품어줘야 새끼(자본주의)가 알을 깨고 나와 먹을 공급(은행)받아 성장할 수 있지만 남의 둥지를 독점한 뻐꾸기(총독부 산하 특수은행과 일본인은행)는 둥지의 원주인(조선인은행)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죽인다. 식민지자본주의 조선인은행의 모습이었다."고 강조했다.<ref>정태헌, <<한성은행의 경영권 대주주 구성추이와 일본인은행화과정>> 한국사연구 P148~149 2010년</ref>
[[조흥은행]]은 1997년 발간한 [[조흥은행100년사]]를 통해, 조흥은행의 출범에 대해 민족계은행의 대동합병이라고 규정했다. 조흥은행은 1943년 10월1일 최초의 민족은행인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이 합병하여 출범했다. 한성은행은 1938년 1월 29일 해동은행을 흡수했고, 그리고 1941년 경상합동은행을 합병했다. 조흥은행 출범에 앞서 일본 총독부는 다단계 인수합병을 거쳐 민족자본을 와해시키거나 통폐합시켰다. 한성은행 계열 5개은행(한성은행, 해동은행,구포은행, 주일은행,대구은행)과 동일은행 계열 4개은행(한일은행,호서은행,동래은행,호남은행)은 조흥은행으로 최종 통합된 것이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133</ref> <br>이 가운데 경상합동은행은 한성은행과 합병되기 직전인 1941년 6월말 현재 한국인 주주 비중이 더 컸다. 일본인 주주 비중은 33%였고 일본인보유 지분은 총 4만5000주 가운데 45.4%인 2만409주에 그쳤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173</ref> <br>조흥은행 출범 당시 한성은행 10만5000주와 동일은행 8만주를 합쳐 조흥은행 주식 수는 18만5000주였다. 한성은행 총주식10만5000주에는 대구은행을 설립한 정재학이 이끌어온 경상합동은행 4만5000주도 포함됐다. 경상합동은행은 1941년 9월30일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된 바 있다. 조흥은행 총주식 18만5000주는 경상합동은행 4만5000주, 한성은행 6만주, 동일은행 8만주 등의 융합으로 구성됐다. 정재학 가문은 경상합동은행 주식 가운데 1만여 주를 보유한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바 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국내 언론계에서는 해방 이후 역사에만 주목, 현재 최장수 은행장을 [[하영구]] 씨티은행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 행장은 2001년 행장에 오른 뒤 2013년 상반기 2015년까지 연임이 확정됐다. 그러나 한국 금융사학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은행 은행장까지 포함시킬 경우 순서가 달라진다. 현재 신한은행으로 합병된 조흥은행은 민족자본은행 100년사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보이면서 1997년 발행된 '조흥은행 100년사'에서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은행의 계보를 상세하게 다뤘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재계에서도 신세계 두산 LG 등이 100년 역사를 내세우는 것도 일제강점기 활동을 포함시키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견제 속에서도 기업을 설립하고 막대한 부를 창출한 역사가 현재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학계의 대부로 꼽히는 고승제 박사는 정재학에 대하여 국내 은행업의 개척자로 규정하는 한편 이색인간이라 평가했다. 그는 '이색인간'에 대해 "어떠한 직업이던 불문하고 개인으로서 노력하고 고생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싶다"며 "양반출신의 부호와 버금가는 재력을 쌓은 정재학은 하층인 소인층 출신으로서 스스로 재산을 모으고 스스로 면학을 거듭하면서 끈질긴 신분의 제약이란 장벽을 뚫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72</ref>
[[1897년]] [[탁지부]] 참서관을 지내고 [[1905년]]과 [[1908년]]에는 경북 [[순흥군]]과 [[개령군]] 군수에 임명되는 등 [[대한제국]]에서 관리를 맡기도 했으나, 이후 [[대구광역시|대구]]와 [[경상북도]]를 대표하는 대자본가로서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진다.
[[1911년]]에 [[경상농공은행]] 감사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지역 금융계와 산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12년]] 선남은행 취체역, [[1913년]] 대구지주조합 설립위원과 대구전업주식회사 감사역 겸 취체역, [[1915년]] [[조선식산은행]] 상담역, [[1919년]] 계림농림주식회사 상담역, [[1921년]] [[대구은행]] 은행장과 대흥전기 감사, [[1929년]] 경상합동은행 이사 및 은행장과 조선미곡 대표이사, [[1929년]] 수성수리조합 조합장 등 경력이 화려하다.
- 차선우 . . . . 20회 일치
||<:> '''소속사'''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2018년 6월 30일을 기점으로 [[W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종료되고, 7월 17일을 기점으로 새 소속사와 계약을 했다.] ||
||<:> '''별명''' ||<(> 다람쥐~~공주~~[* 이와 비슷한 별명으로 바람쥐, 차람쥐 등이 있다.], '''야수왕'''[* 떠오르는 별명. 근데 본인이 이 별명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것같다.], 바우[* [[tvN]] [[할매네 로봇]]에서 얻은 별명. ~~바우야, 똥 싸냐!~~] ||
다만 고려해야 할 점은 바로가 신인 축에 속했었던 11~13년에는 스스로 전곡 가사를 쓰는 아이돌 래퍼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아이돌이라면 무조건 배척하고 보는 힙합 커뮤니티에서도 진영의 자작곡과 더불어 바로의 자작랩도 꽤 호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돌 래퍼가 가사를 쓰는 2018년에는 자작랩으로서의 희소성은 옅어지고 랩 실력도 눈에 띄게 발전하지 않아 래퍼로서의 강점을 많이 잃어버린 편이다. 하지만 연차가 쌓인만큼 아이돌 노래의 래퍼로서 랩의 완성도와 안정감은 보장받는 수준이 되었다. 최근 아이돌 음악에는 랩이 너무 튀어 곡 전체의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의 랩은 진영의 작곡과 산들의 가창력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b1a4의 음악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수준이란 평도 있다.
||<#FFF57C><width=40px> 단독 ||<#FDDB79><width=100px> 단독 (일본 작사가와 [br] 공동작사(번역) ) ||<#D6FF7F><width=40px> 공동 ||<#FDC1B9><width=40px> 불참 ||<width=70px> (Inst.) 제외 ||
[[B1A4]]가 자주 출연했던 <식신로드>에서 한동안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그 때 외모는 리즈 중의 리즈를 달성했다.[* [[B1A4]]의 깨알플레이어 촬영 시기와 겹친다. 깨플 촬영시기 또한 바로의 최대 [[리즈 시절]]. ~~아기참새 머리 빼고~~]
[[정글의 법칙]] with 프렌즈 특집에 고정 출연해 [[팔라우]]로 떠났다. 주제가 친구와 함께 떠나는 [[야! 신난다~|신나는]] 정글 탐험이기에 [[손호준]]과 파트너를 이루었다. 때때로 안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촬영 내내 끈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기도. ~~[[BL|여자들의 반응]]에 [[게이|남자들은 기겁]]을 했다~~
2015년, [[우리동네 예체능]] 족구단 특집에 고정 합류했다. 토크와 리액션으로 존재감 어필하려고 오버하는 게 간혹 보이는 편이지만, 그런 걸로는 한계가 있는 예체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예체능 내에선 딱히 비중이 있진 않은 캐릭터.
96회 육군과의 족구 대결 편에선 입족구 멤버로 확인 사살 당했다(...) ~~[[왼손은 거들 뿐|바로는 그저 팬들과 시청률 셔틀일뿐]]~~ ~~그것보다 군식을 맛있게 먹어서 독특했다는 평이 많았다~~ 안면이 있는 [[샘 오취리]]와 [[정형돈]], [[강호동]][* B1A4는 신인때부터 지금까지 나온 예능 중 가장 많이 나온 예능은 [[놀라운 대회 스타킹|스타킹]].]도 출연했고, 친구 불러온 특집에는 [[육중완]]과 [[샘 해밍턴]]도 잠깐 출연해서 은근 아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 ~~사실 팬들도 이젠 해탈해서 그냥 하차하길 바란다 [[카더라]]~~ 우리동네 예체능 팀의 응원군 중 십중팔구가 바로의 팬이었다.
||<:> 드라마 ||<:> [[MBC]] ||<:> [[앵그리맘]] ||<:> 홍상태 역 ||<:> [* [[2015년]]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의 차기작, '[[앵그리맘]]'에 캐스팅 확정되었다. 배역 이름은 '홍상태'. 명성재단 사학재벌 홍회장의 아들로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학교 내에서 일진짱도 움직이는 교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한다. ~~인소세요?~~ 한마디로 흔히 말하는 [[흑막]] 또는 [[최종보스]]. ~~근데 생김새가 위엄이 없다~~ [[김희선]], [[김유정(배우)|김유정]], [[지현우]], [[박수아|리지]] 등과 호흡을 맞춘다고 한다. ~~돈많고 재수없고 위엄있는 캐릭터~~ 그 중에서도 문제아와 입바른 소리하는 아이로 [[김유정(배우)|김유정]]과 많이 부딪힌다고 하지만 작중에서 계속 부딪히는 건 [[김희선]]이다. ] ||
출연 영역이나 배역이 매우 독특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케이블 드라마와 지상파 드라마는 물론 단편영화, 웹무비, 웹드라마, 장애 인식 개선 드라마 등에서 연기했으며 여지껏 맡은 배역으로는 순수한 '''의대생''', '''지적장애인'''[* 그것도 두 차례나 맡았다.], '''싸이코패스''', '''시각장애인'''[* 정확히는 시각장애인인 척 하고 살아가는 남자] 등 다양하다.[* 축구 마니아, 연예인, 일진짱, 조금 어눌한 친구 같은건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하게 되었다... ]
* 얼굴이 다람쥐상이다. 그래서 별명히 ~~다람쥐공주~~바람쥐. 데뷔 초 ' 깨알플레이어 '에서는 다람쥐왕자로 탈바꿈을 원하였지만 실패하였다고. 이후 그만 할 수 있는 다람쥐공주 전용 춤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에서도 추었다고 한다.배우 배누리와도 닮았고, ~~좀 심하게~~ 프로게이머 [[이제동]]도 닮았다. 굉장히 깔끔한 성격이라고 한다. [[두시탈출 컬투쇼|컬투쇼]]에 출연해서 탁자에 덮혀져 있는 천이 너무 더러워서 좀 빨아달라고 한적도 있다. 그것도 SOLO DAY 활동 중과 [[정글의 법칙]] 출연 중 두번이나.[* 바로만 유난히 깔끔 떠는것이라고 의심할수가 있는게 [[공찬]]은 잘 덮고만 있었다.]
* 데뷔 1년차 될 때쯤에 [[B1A4|비포]]가 예능감 없다는 소리에도 그나마 [[산들]]과 티격태격대며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광산같은 엽사를 남기던 멤버가 바로 얘. 그런데 2014년부터 급격히 성격이 바뀐것같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탓인지. 성숙해졌달까, 옛날 리얼리티에서 ~~다람쥐공주 춤을 추는~~ 까부는 행동은 요즘 자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주먹을 부르는 애교와 외계어와 조증을 가지게 됐다~~ 그래도 별명이 나대미, 차나댐인 만큼 요즘도 주목 받을땐 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도 원래 바로는 학생 차선우 시절에는 조용하고 직설적인 사람이였다고 했으니. ~~멤버들이 말한 A형의 B형화 B형의 A형화가 괜히 한 말은 아닌 것같다(...)~~
* [[짜장면]]을 굉장히 좋아한다. 영스에서 짜장면을 너무 좋아해서 얼굴이 까매졌다는 농담을 할 정도. 된장찌개도 좋아하는것 같다. [[B1A4]]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갈릴 때 바로는 된장찌개 쪽. 여담이지만 두부도 좋아한다. 라면을 끓일 땐 면을 가장 먼저 넣어 끓인다.
* 가끔 바로의 행동을 보다보면 동갑내기 [[산들]]과 경쟁의식을 가지는게 보인다. 물론 산들쪽도. 어쩌다가 92년생끼리 맞붙다보면 최선을 다해서 이기려고 든다. 전적을 따져 보자면 매치업에서 2012년 후반 공백기때, 심심타파에서 둘이 팔씨름을 하다가 바로가 산들에게 진적이 있고, [[헬로 베이비]]에서 바로가 [[산들]]을 씨름으로 이긴적 있다. 론리 활동때 [[주간 아이돌]]에서 허벅지 씨름 결승에서 또 둘이 붙다가 바로가 산들로부터 이긴적이 있다. 산들은 상체 쪽 힘이 좋고,[* 물론 비포 내에서는 [[진영(B1A4)|진영]] 상체 힘이 제일 좋다.] 바로는 하체 쪽 힘이 좋은듯.~~또 둘이 걸어본다 활동할때 참참참을 했다가 바로가 산들 마음을 다 읽어 열번넘게 이겨서 완승을 한적도 있다~~ 또한 거짓말이야 활동 중에 컬투쇼에 나와서 산들과 바로가 외모 경쟁을 했다.(산들이 졌지만 인정못했다카더라.가 아니라 영상을 찾아보면 있다.)
* 2016년 10월 29일 날에 방영한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73회에서 [[이혜정]]방에 도우미로 출연하였다. 1시간 7분쯤 [[이혜정]]방에서 [[김장]]을 할때에 도우미로 등장한 [[홍윤화]]와 함께 김장을 도와주는 중에 같이 도와주고 있던 [[권도우]]PD와 이야기를 하다가 권도우PD가 주량을 물어보아 주량이 3~4병인 것을 밝혔다. ~~도우는 6병이라고~~
- 트로피코 4/칙령 . . . . 20회 일치
>모든 인민에게 무상 주거와 무상 공산주의를 제공하자!
퇴직자와 학생에게 평균 임금의 2/3을 지원한다. 모든 진영의 존경심을 상승시킨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국제 구호 단체를 받아들인다. 구호 단체는 원조 캠프를 치고 5년간 무상 의료와 무상 식량을 나누어준다. 외국인 따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므로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미국에게서 더 나은 설계도를 받아 발전소와 공항의 건설 비용을 50% 절감시킨다.
>동맹국 트로피코와 합의하지 않고는 소련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주트로피코 미군기지를 유치하고 매년 $2,000의 임대료를 받아먹는다. 그러면서 소련의 침략도 막는다. 소련과의 관계와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동맹국 트로피코와 합의하지 않고는 미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주트로피코 소련군기지를 유치하고 매년 $2,000의 임대료를 받아먹는다. 그러면서 미국의 침략도 막는다. 미국과의 관계와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 경제와 관광 ==
3년간 관광평가와 오락이 상승한다.
3년간 관광평가와 오락 시설이 품질이 향상된다. 난리피우는 참가자와 술취한 경찰로 인해 범죄율이 상승한다.
방학을 트로피코에서 보내고자 하는 학생들을 겨냥한 여행 패키지를 기획한다. 3년간 관광 평가와 휴양객의 수가 증가한다.
미국의 유명 자연 다큐 채널을 불러 트로피코를 주제로 다큐를 찍도록 한다. 3년간 모든 시민, 특히 환경주의자와 지식인의 존경심이 상승하며 관광 평가와 생태 관광객의 수도 증가한다.
알콜 음료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한다. 생산력이 증가하며 종교인의 존경심이 상승한다. 주점, 나이트 클럽, 럼주 증류소를 폐쇄한다. 주류의 불법 유통으로 범죄율이 크게 상승한다.
정치에 밝은 성직자 앞에서 피고를 심문한다. 시위, 폭동, 쿠데타가 줄어들지만 반역자의 활동이 증가한다. 자유도와 관광 평가가 하락하며, 시민이 교회를 방문하는 빈도가 두배가 된다.
1980년에 쿠바 정부가 미국으로 가는 망명자 행렬에 범죄자와 병자들을 끼워넣은 것에 대한 패러디로 보인다.
말 그대로 군대를 현대화시킨다. 병사와 장교의 전투 능력이 크게 향상되며, 군사기지에서 제공되는 주거와 의료의 질도 좋아진다.
- 하이큐/242화 . . . . 20회 일치
* [[스가와라 코시]]는 "결국 왔다"는 감상과 함께 첫 봄고 대회 코트로 들어간다.
* 스가와라, [[사와무라 다이치]], [[아즈마네 아사히]]로 연결되는 파인 플레이로 마침내 2세트를 가져가는 카라스노 고교.
* 관객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졸업생들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며 그간 3학년들의 인내와 노력에 감격한다.
* [[카라스노 고교]]의 매치 포인트. 이 시점에서 [[츠키시마 케이]]와 교대하는 [[스가와라 코시]]. 그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통과점"이라고 했던 표현을 곰곰히 곱씹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왔구나"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긴장했는지 어떤지 모를 정도지만, 머리는 시원하고 뭘해야 할지 정확히 알겠다고 생각한다.
* 스가와라가 들어와서 카라스노의 3학년 전원이 모였다. 벼랑 끝에 있는 [[츠바키하라 고교]]고 3학년을 중심으로 화이팅한다.
스가와라의 서브. 마루야마가 리시브하지만 조금 흔들렸다. 에치고가 이어서 테라도마리에게. 그리고 여기까지가 스가와라가 미리 예측한 상황. 테라도마리에 대한 분석도 끝났다. 힘과 높이를 모두 갖췄고 몸 방향과 정확히 맞는 코스로 치는 확률이 높다.
스가와라의 분석에 따라 테라도마리의 공격 포인트를 예측, 그 자리에 있던 [[아즈마네 아사히]]가 받아낸다. 하지만 파워 때문인지 리시브가 좀 흔들린다.
* 스가와라는 침착하게 대응을 지시하며 자신이 높이 이어 카게야마에게 전달한다. 카게야마는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세트 업, 블록을 피해서 핀포인트로 꽂아넣지만 츠바키하라의 카이카게가 파인 플레이로 리시브한다. 타나카는 허접한 스파이크였다고 내심 투덜댄다.
* [[공]]은 다시 츠바키하라 진영으로. 이번엔 이와무로가 떠오른다. 블록이 미처 대응하지 못한 스파이크.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한다. 공은 카게야마에게 넘어가 [[히나타 쇼요]]에게 세트 업. 그러나 이번 속공은 에치고가 리시브한다. 공은 마루야마에게 넘어가는데.
>하지만, 스가와라가 있어요!
그것을 예측하고 먼저 움직이고 있던 스가와라. 스가와라는 마루야마에게 공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경계하고 있었다. 마루야마는 블록아웃이 특기지만 페인트도 얼마든지 치는 타입.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뛰오른다. 또다시 속공일까? 츠바키하라에겐 네트 앞에서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쇼요가 뛰어오르는 걸 보고 블록 세 명이 동시에 따라온다. 하지만 그것은 페이크. 진짜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즈마네였다. 아즈마네가 솟아오르고 츠바키하라는 패배를 직감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쐐기같은 스파이크.
* 시합은 끝났다. 2세트 25 대 23. 세트 스코어 2 대 0으로 카라스노의 완승. 카라스노는 환호와 함께 벤치로 귀환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있는 졸업생들은 묵묵히 오늘을 준비하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동한다.
- 하이큐/247화 . . . . 20회 일치
* 이나리자키 고교는 인터하이 준우승에 빛나는 강호로 팀을 긴장시키지만 [[히나타 쇼오]]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승리를 한 치도 의심치 않는다.
쓰레기장 결전은 카라스노와 네코마가 3회전까지 올라가야 성립한다. 그러기엔 2회전 상대가 워낙에 난관이다. 선수들을 불러모은 우카이 코치가 "이제와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내일의 상대 "이나리자키 고교"를 정식으로 소개한다. 인터하이 준우승에 빛나는 이 대회 시드교이자 우승 후보다. 말이 필요없는 강호.
우카이 코치는 우선 팀의 주력 두 명을 소개한다. 우측에서 두 번째, 미야 아츠무 좌측에 있는 인물이 4번 [[마지로 알랭]]. 팀의 득점왕이다. 높이와 파워를 겸비한 스파이커로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와 마찬가지로 "전국 세 손가락"에 가까운 우수한 선수. 사실 컨디션이 좋을 때라면 그 이상가는 기량을 보여준다. 리시버들에게 우시와카 때랑 마찬가지로 "막는 것"과 "줍는 것"을 구분하지 말고 토탈 디펜스로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 이나리자키의 주포는 이 둘이지만 진짜 성가신건 따로 있다. 바로 [[미야 아츠무]]. [[카게야마 토비오]]와는 전일본 유스에서 만나서 "착한 아이같은 세트"라고 꼬집었던 그 선수다. 모든 타입의 스파이커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천재 세터. 그의 이야기가 나오자 [[스가와라 코시]]가 "고교 No.1 세터"라고 언급하는데 카게야마가 그 말을 듣고 발끈한다.
* 우카이 코치가 경계하는 점은 그 뿐만이 아니다. 정답은 서브. 카게야마도 정확히 알고 있다. 자료 화면으로 아츠무의 서브 장면도 확인하는데 [[아즈마네 아사히]]와 [[사와무라 다이치]]는 강력한 서브라고 감탄하지만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같은 세터로서 카게야마가 주목하는건 거기가 아니다. 아츠무는 스파이크 서브와 점프 플로터 서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바로 그 점이 골치 아픈 부분이다.
* 이 아츠무의 서브 탓에 우카치 코치는 로테이션 컨셉도 바꿀 계획을 짰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자 [[야치 히토카]]는 막 승리의 기쁨을 맛봤던 그들이 어느 새 무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대진표를 확인한 야치는 이 많은 상대 중 두 번째로 강한 상대와 싸우는 거라며 긴장한다.
평소처럼 승부욕에 불타는 히나타. 하지만 요점이 다르다. "1위랑 2위 전부"랑 싸운다는건, 결국 2위 이나리자키를 이기겠다는 말이다. 너무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당해한다. 딱 한 사람만 아무렇지 않게 맞장구치는데 그것이 카게야마. 한술 더 떠서 1위 "이타치야마 고교"랑 싸우려면 반대블록이니 결승까지 그쪽이 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히나타는 설령 이타치야마가 못 와도 "이타치야마한테 이긴 팀이 결국 1위"라는 논리로 아무튼 1위랑 싸우는건 변함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1학년 콤비의 근거없는 자신감에 질린 스가와라가 "너네 근자감에는 익숙해지질 않는다"며 한숨을 쉰다.
워밍업을 시작한 뒤에도 양팀 간의 신경전이 장난이 아니다. 이나리자키의 코치 [[오오미 타로]]는 [[타케다 잇테츠]] 고문에게 스파이크 연습을 하고 싶다며 압박을 가한다. 타케다 고문은 관록만으로 쫄아서 우물쭈물하는데 우카이 코치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서브로 부탁한다"며 받아친다.
뭣보다 지금 본 자료화면에는 결점이 있다. 이 시합 당시에는 세터와 짝을 이루는 주전 라이트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불참, 후보가 땜빵을 한 영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주전 라이트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스가와라는 월간 배구에서 "미야 아츠무를 무너뜨려도 쌍둥이 오사무가 보완한다"는 문구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들은 고교 배구계 최강 트윈즈 "미야 형제". 미야 아츠무와 라이트 [[미야 오사무]]다. 아츠무는 자신만만하게 "도쿄 놈들이 거들먹거리는 건 이제 끝"이라며 벼르고 있다. 눈 앞의 카라스노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
실제 눈으로 이들 형제를 본 스가와라는 "미야 아츠무 스펙 과다 문제"라고 투덜거린다. 그걸 들은 아즈마네는 "쌍둥이가 스펙에 들어가냐"며 실없는 소리로 답한다.
- 하이큐/248화 . . . . 20회 일치
* 이나리자키 고교는 언론도 밀착마크할 정도로 주목도가 높은 팀. 잘해야 다크호스 수준인 [[카라스노 고교]]와는 "격차"가 심했다.
*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아마나이 카노카]]가 찾아와 전날의 오해를 풀고 돌아간다. 타나카는 그녀에게 뒤처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 [[미야 아츠무]]는 굳이 카라스노 진영에 찾아와 "약한 놈들하고 시합하고 싶지 않다"고 도발하다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일침을 당한다.
* 카라스노 선수들은 흥분이 앞서 긴장을 잊어버렸고 [[사와무라 다이치]]는 적과 아군의 엄청난 "격차"에 오히려 불타오른다.
* 그리고 다이치의 힘찬 구호와 함께 2회전 경기 시작.
* 1회전부터 감초처럼 등장하던 바보커플이 2회전 관람 일정을 짜고 있다. 남자 쪽은 배구 지식이 상당한지 남녀 강호팀에 대해서 자세히 안다. 그들은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형제를 보려고 대진표를 확인하는데 상대팀이 [[카라스노 고교]]인걸 발견한다. 그들은 꽤 인상깊은 팀이었는데 탈락확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나리자키는 그만큼 강호로 작년 봄고와 인터하이에선 각각 3위를, 이번 인터하이에선 또다른 강호 "키류"를 누르고 2위를 기록했다. 결승에서도 패하긴 했으나 그 왕자 "이타치야마"에게 한 세트를 뺏어왔을 정도로 상승세. 지금 가장 주목 받는 팀이다. 여자 쪽은 개인적으로 미야형제팬인지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자 남자 쪽이 인상을 구긴다.
*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양팀이 그걸 쓰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워밍업 생각만 하며 안절부절하는 카라스노와 달리, 이나리자키 측은 주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상당히 여유롭다. 주장 3학년 [[키타 신스케]]. 포지션은 Ws이고 키는 175cm로 배구선수 치고 크진 않다. 인터뷰하는 상대도 마치노 아나운서라는 유명한 언론인.
[[야마구치 타다시]]와 [[히나타 쇼요]]는 유명인이 카메라 앞에 서자 괜히 싱숭생숭한 모양이다. 야마구치가 자기들한테도 인터뷰하려 오면 어쩌냐고 김칫국을 마시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츠키시마 케이]]가 "강호 밀착 취재"라며 카라스노한테는 오지도 않는다고 핀잔한다. 히나타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브이"하러 가자고 꼬득이는데 츠키시마의 차가운 구박만 받고 만다.
* 마침 타나카와 마주친다. 동료는 눈치껏 잽싸게 자리를 피해준다. 타나카 쪽에서 먼저 "어제는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면서 사과하는데 카노카는 그건 오빠였다며 자기야말로 미안하다고 말해 오해를 푼다. 그렇게 해서 뭐가 꼬였던 건지는 자명해졌지만, 그럼 착각한게 착각이었던게 되기 때문에 다시 타나카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때 카노카가 말한다.
* 워밍업 시간이 주어졌다. 히나타는 [[카게야마 토비오]]와 페어를 이뤄 몸을 푸는데 정신은 딴데 가있다. 아직도 [[호시우미 코라이]]의 용수철 같은 점프가 눈에 아른거린다. 그러다 카게야마가 보내는 공을 안면으로 받고 만다. 카게야마가 갈구지만 히나타는 그저 "얼른 점프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 후배들이 러브코미디 모드인 동안 3학년들은 후배들이 어찌 저리 태평한지 감탄 아닌 감탄을 한다. [[아즈마네 아사히]]는 손바닥에 사람 인자를 거듭 써갈기며 긴장을 풀려고 몸부림 친다.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긴장하지 않는걸 보고 "흥분이 앞서서 긴장하는걸 잊어버렸나 보다"라고 추정한다. 아즈마네는 그걸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 스가와라는 관중석에서 미야 아츠무의 극성팬을 본 일을 이야기한다. 부채에 커다랗게 아츠무의 이름을 써서 가지고 다니는게 마치 아이돌 팬덤같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실제로 그들은 아이돌 같다며 1위팀 이타치야마하곤 다른 의미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실력과 화려함을 겸비한 "최강의 도전자"라는 캐릭터. TV에서도 이걸 살려서 자주 취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금 이 회장에 와있는 누구도 우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사와무라 다이치]]가 그렇게 음침한 소릴 하자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는 그가 실성한 줄 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그런 엄청난 "격차"가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다이치는 전에 없이 투지를 끌어올렸다. 마치 어젯밤의 심각함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즈마네가 그 점을 꼬집자 사와무라는 "집중했던 것"이라고 얼버무린다.
* 관중석은 아직 1시합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기분 나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음악단은 물론이고 치어리더의 안무와 시라토리자와 학교를 연상시키는 전교 응원. 엄청난 규모의 "대악단" 응원단이다. 카라스노의 보통 규모 응원단은 소리가 파묻힐 지경이다. 사실 이나리자키는 배구 말고 취주악부로도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그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그게 낭비가 아닌지 야마구치처럼 기가 약한 선수들은 응원전 만으로 벌써 위가 쑤시다며 위축된다. 히나타같은 단세포는 "커다란 나팔이 멋지다"며 정작 응원에는 무신경하다.
* 안 그래도 시끄러웠던 관중석이 이제는 코트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묻힐 정도로 커다란 환성으로 바뀐다. 사와무라가 치지지 않고 "가자"고 외치려고 하지만 계속 소리가 묻힌다. 투지에 분노까지 끌어올리고 나서야 "가자"는 구호가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봄고 배구 2회전 B코트 제 2시합. 카라스노 고교 대 이나리자키 고교 개전.
- 하이큐/265화 . . . . 20회 일치
* [[카라스노 고교]]가 [[이나리자키 고교]]를 상대로 1세트 승리를 거두기 30분 즘. B코트에선 네코마 고교가 사루카와 공고를 상대로 승부 중이었다.
* 경기 자체는 네코마 측이 이겨나가고 있었으나 사루카와 공고는 묘하게 코즈메 쪽에 성가신 플레이를 강요하며 적극적인 승부는 피한다.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오리타카]]는 [[네코마타 야스후미]]의 제자 출신으로 1세트를 버리더라도 장기전으로 유도하는 작전을 구사한다.
* 봄고 1일 차의 밤은 살아남은 모든 팀에게 주어졌다. 당연히 [[네코마 고교]]에게도 싱숭생숭한 밤이 왔다. 3학년 [[쿠로오 테츠로]], [[카이 노부유키]], [[야쿠 모리스케]]는 숙소 로비의 쇼파를 차지하고 시시덕 거렸다. 그들에게도 첫 전국대회였다. 인터하이와는 또다르게 들뜨는 밤이었다. 야쿠가 좀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칸센을 타고 싶다면서. 카이는 은퇴하고 나면 올해 인터하이 때 응원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야큐가 나갈 수는 있겠냐고 반쯤 빈정대자 쿠로오가 후배들을 좀 믿으라고 면박했다. 마침 그 후배가 근처에 있었다. 카이가 자판기에 들른 [[코즈메 켄마]]를 발견했다. 음료를 뽑으려는데 다른 학교 학생 둘이 그 앞에서 잡담 중이었다. 숫기가 없는 코즈메는 비켜달라고도 못하고 뒤에서 머뭇대고 있었다. 그러자 학생들 쪽에서 먼저 그를 발견, "자시키와라시"인 줄 알고 자리를 양보해준다.
* 후배의 곤란을 즐겁게 지켜본 3학년들. 야쿠는 저 튀기 싫어하는 코즈메를 기어고 전국대회까지 데려왔다고 말했다. 인솔한 장본인인 쿠로오는 "어느 모로 봐도 스포츠맨으론 안 보인다"고 웃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묵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코즈메는 중학생 때까지고 특훈을 한 번 했다하면 몸살을 일으키는 약골이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쿠로오는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자기가 그를 배구로 끌어들인 범인이었으니까.
*야쿠는 그 말을 곱씹어 봤다. 돌이켜 보니 코즈메는 확실히 체력은 없지만 실제 연습에선 어지간하면 다 따라왔다. 가끔 땡땡이를 치는 정도로. 마침 쿠로오가 전에 했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빨리 일어나기 사건. 코즈메는 게임 때문에 맨날 늦게 잤는데, 쿠로오가 런닝하려고 일찍 일어나 보면 그때도 코즈메 방에 불이 들어와 있는 일이 많았다. 그때가 대략 오전 5시 경. 처음엔 철야로 게임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철야가 아니라 "일찍 일어난" 거였다. 무려 오전 2시 기상. 철야를 하면 부모님이 게임을 죄다 버려버리니까, 반대로 아주 일찍 일어나서 게임하는건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봄고 2일차. 카라스노 고교가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아 1세트 승리를 거머쥐기 30분 전.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가 괴짜 속공을 꽂으며 B코트의 관중석 분위기에 불을 질렀다. 여친 미카와 동행한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본래 C코트에서 진행 중인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보던 중이었다. B코트 쪽에서 환호성이 오르자 미카가 먼저 그쪽 분위기가 달아올랐다고 말하자 다이쇼도 그쪽을 신경쓰기 시작했지만 당초 관전 포인트는 네코마였다.
* 봄고 남자 2회전 C코트 경기. 도쿄 출신 네코마 고교 대 이시카와 출신 사루카와 공업 고교. 스코어는 15 대 13으로 네코마의 무난한 리드. 하지만 사루카와의 공격이 제법 매섭다. 4번의 스파이크. 코즈메와 쿠로오가 블록을 뛰었다. 하지만 4번은 꽤 절묘한 솜씨로 블록을 피해 우중간을 파고 든다.
* [[애마모토 타케토라]]와 야쿠의 중간. 둘이 동시에 리시브를 뻗는다. 받은 건 야쿠 쪽. 떠오른 공을 코즈메에게, 코즈메가 쿠로오에게 연결해 스파이크. 그러나 사루카와 9번이 리시브한다. 다시 사루카와의 공격. 이번에도 그쪽 4번이다. 또 스파이크로 나올까? 아니었다. 코즈메와 쿠로오의 블록을 살짝 넘기도록 밀어넣는 페이크. 그 바로 뒤에 있던 카이가 재빨리 눈치채서 커버한다. 탄탄한 수비. 중계진이 "수비의 네코마"를 연호하며 칭찬했다. 카이가 살린 공을 받으려고 코즈메가 다시 후방으로 향한다. 코즈메가 왕복하는 패턴이 계속된다. 이번엔 후쿠나가 쇼헤이에게 보내서 좌측을 공략해 보는데. 하지만 실패. 사루카와도 네코마 못지 않게 끈질긴 수비를 펼친다.
* 중계진은 수비전으로 전개되는 경기 양상을 양팀 감독에게서 찾았다. 사루카와의 [[시시오 오리타카]]는 젊은 감독이었다. 그는 네코마의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이었다. 사제간이라 닮은 플레이를 펼치는 걸까? 중계진의 분석이 맞는 지는 몰라도 경기 양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루카와 공업 쪽. 처음부터 계속 일부러 한 번에 승부하지 않는 것 같아.
미카에겐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녀가 보기엔 사루카와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을 퍼붓는 중이었다. 하지만 선수 출신인 다이쇼가 보기엔 달랐다. 공격이 약하단 이야기가 아니다. 네코마 고교니까 이정도 점수 차로 막고 있지만 보통 상대였다면 훨씬 점수를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플레이 양상은 득점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네코마 측의 리듬을 무너뜨리는데 주안하는 인상이었다. 물론 그걸로는 결정타를 줄 수 없다. 아마도 진짜로 노리는 건 이것이었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19회 일치
||<#732788> {{{#FFFFFF '''신체'''}}} ||<(> 167cm[* 여자로서는 키가 제법 큰 편이지만 나인뮤지스에선 ~~류세라를 이어받아~~ 역대 최단신을 맡게 되었다(...). 금조와 키가 똑같거나 비슷한 타 그룹의 멤버들로는 [[설현]]이나 [[손나은]],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였던 [[유니스(DIA)|유니스]] 등이 대표적으로 팀 내에서 장신인 멤버들이다. ~~이것이 모델돌의 한계.~~], 48kg, [[AB형]] ||
||<#732788> {{{#FFFFFF '''팬페이지'''}}} ||<(> [[http://leekeumjo.net/|금조와 사랑에 빠지다]] [[http://popcornfactory.tistory.com/|팝콘공장]] [[http://mingleminglee.tistory.com/|밍글밍글]] [[http://keumjo.kr/|금을 캐는 광부]] [[http://rugby-ball.tistory.com/category/PIC_VOD|럭비볼]] ||
그동안 [[나인뮤지스]]의 막내를 담당했던 [[혜미]]와 [[박민하(1991)|민하]] 대신에 새롭게 막내를 맡게 된 멤버이다. 같은 날 새 멤버로 들어온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는 각자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소금' 라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9MUSES S/S EDITION]] 쇼케이스와 중간중간 비춰지는 비하인드 및 인터뷰 영상에서 데뷔 초와는 다르게 자연스럽고 활달한 모습을 보아 [[나인뮤지스]]에 잘 적응했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쇼케이스에 어머니가 오셨다. [[나인뮤지스]]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과 쇼케이스를 하고 어머니를 본 것에 감정이 복받쳤는지 잠시 눈시울을 붉힌것 같은 모습도 보였다.--금조 : 엄마 안녕~ [[이유애린]] : 어머니 금조가 이런애에요~--
[[소진(나인뮤지스)|소진]], 여자매니저와 같이 숙소생활을 하다가 [[나인뮤지스A]] 활동을 하면서 이사를 갔다.
사실 알고보면 나름 험난한 연습생 생활을 보낸 멤버이다. 20세에 [[계명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담당 교수의 추천으로 상경하여 가수준비생 생활을 시작했으며[* 나뮤캐스트 6회 신입생 환영회편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 전 소속사인 아이맥스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중 [[소진(나인뮤지스)|소진]]을 비롯한 다른 연습생들과 잘 맞아서 이번에 데뷔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한번 엎어진 후 회사에서 나와 [[스타제국]]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 어느 날 [[이유애린]]과 [[성아]]가 지하 연습실에 찾아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희 힘들지"라는 한마디에 고맙다며 울음을 터트렸고 이를 보던 [[이유애린]]과 [[성아]] 또한 같이 펑펑 울었다고, 이에 용기를 얻고 계속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마침내 4년 간의 연습생 생활 끝에 [[나인뮤지스]]의 새로운 멤버로서 정식 데뷔를 하게 되었다.
[[DRAMA]]에서 [[경리(나인뮤지스)|경리]]와 함께 후렴 구를 비롯한 가장 많은 파트를 부른다. 분명 메인보컬인데 랩도 한다.--첨뿌터 니까 좋았쒔는데 하필 내 가장 친한 친꾸까!-- 신인인데도 라이브에서 별로 흔들림이 없다.
무슨 일인지 컴백할때마다 타이틀곡 파트가 줄어들고 있다...--안습-- [[DRAMA]] 활동 당시에는 [[경리(나인뮤지스)|경리]]와 함께 파트 독식이었지만 [[9MUSES S/S EDITION|다쳐]] 활동 때는 --파트고자-- [[박민하(1991)|민하]]에게 1절 파트를 주고 2절 맨 끝자락에서야 본인파트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뒷 부분 후렴구 세 파트[* 근데 가끔 마지막 후렴구 일부가 잘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금조의 파트가 있다. 즉 파트 길이로만 따지면 [[9MUSES S/S EDITION|다쳐]]에서도 멤버 중 가장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였는데 잠은 안 오고 배는 고프고에서는...
그러나 유닛인 [[나인뮤지스A]]에서 드디어 '''메인보컬'''을 맡았다! 같은 유닛 멤버인 [[소진(나인뮤지스)|소진]]은 랩, [[경리(나인뮤지스)|경리]]는 센터, [[혜미]]는 리더--이자 최장신--을 맡았기 때문에 드디어 금조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래 [[나인뮤지스]]에서 메인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혜미]]와 [[경리(나인뮤지스)|경리]]의 파트 분량과 나름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메인보컬이라 보컬분량이 많기보다는 '고음셔틀담당'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러브시티'에서는 다시 파트가 줄었다(...) 아무래도 하이라이트 대부분을 경리와 혜미가 나눠가져서 그런듯.
[[2015년]] [[5월 26일]] 발표 된 [[카라(아이돌)|카라]]의 [[IN LOVE|미니 7집]] 타이틀곡 '[[CUPID]]' 에서 코러스를 맡은 듯 하다. 앨범 크레딧에 본명인 '이금조'가 명시되어 있고, 이 곡의 작곡가가 같은 [[스타제국]] 소속이었던 [[V.O.S]]의 멤버 [[최현준]]이 속한 작곡팀 [[e.one]]인 점 등 여러모로 봐도 확실한 듯. 또 [[은정(티아라)|엘시]]의 '눈물비' 와 [[구하라]]의 [[ALOHARA|미니 1집]] 중 '하라구' 와 '어때?',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의 '[[SNOWFLAKE|사랑별 (Luv Star)]]', [[에이프릴(아이돌)|에이프릴]]의 '[[Spring|미니 2집]] 중 '팅커벨'과 'JELLY'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이후 여자친구 [[LOL(여자친구)|정규 1집]]에 수록되어 있는 e.one 작곡의 노래들인 '나의 일기장' 과 '바람에 날려' 도 마찬가지로 참여했으며, [[우주소녀]]의 미니 2집 타이틀곡인 '비밀이야'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여기서는 금조라 표기하고 있다. 현역 아이돌이 다른 아이돌 노래에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라 볼 수 있겠다. '[[CUPID]]'와 '눈물비'는 연습생 시절 참여한 곡들이라 특별히 더 애착이 간다고.
* [[JTBC]] 예능 《[[싱포유]]》 - Shiny Single[* [[혜미(나인뮤지스)|혜미]]와 함께 참여했다.] ([[2017년|2017]])
2017년 4월 11일 ~ 6월 27일, 참가자로 출연했다. 데뷔 후 첫 개인 고정 출연. 정확한 대사구사력과 감정변화의 표현력이 풍부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초반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5월 16일자 방영분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마지막 회에서도 평소와 같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아쉽게도 2위를 기록하여 1위를 놓치는 바람에 1등 혜택이었던 웹드라마 출연도 놓치게 되었다.
2016년 9월 27일부터 2016년 11월 11일까지 뮤지컬 '노서아 가비'의 여주인공 '따냐' 역을 같은 팀 [[혜미(나인뮤지스)|혜미]], [[멜로디데이]]의 [[여은]], 뮤지컬배우 이지유와 함께 맡게 되었다. SNS에서는 '햄따냐', '금따냐', '은따냐', '쥬따냐' 등 으로 분류하고 있다.[* 공연 장소는 서초 흰물결아트센터.]
* 영입 전에 탈퇴한 전 멤버 [[류세라|세라]](위 사진의 좌측)와 외모가 비슷해 팬들의 혼동을 빚기도 했다. 심지어 음색이 상당히 특이한 편임에도 독특한 음색 마저 [[류세라|세라]]와 비슷해 드라마 이전 곡을 부를 때에 가끔 [[류세라|세라]]의 파트를 커버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PRIMA DONNA|GUN]]에서는 세라의 강림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 덕분에 지금도 [[류세라|세라]]의 탈퇴를 아쉬워하는 [[마인(나인뮤지스)|마인]]들은 금조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 김태희 . . . . 19회 일치
'''김태희'''(金泰希<ref>{{뉴스 인용|저자1=장주영|제목=[인터뷰①] ‘그랑프리’ 김태희, “서른은 나를 당당해지게 했다”|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315791|날짜=2010-09-03|확인날짜=2018-07-05|뉴스=매일경제}}</ref>, [[1980년]] [[3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2000년 "화이트"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2001년 영화 《[[선물 (영화)|선물]]》에 [[이영애]]의 아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입문하였고, 2002년 독립 영화 《[[신도시인]]》에 출연했다. 이후 시트콤 《[[해변으로가요]]》(2004), 《[[스크린 (드라마)|스크린]]》, 《[[천국의나무]]》(2006)와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3년에는 《[[천국의 계단]]》에서 악역 한유리 역할로 얼굴을 알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로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드라마 《[[작은아씨들]]》과 《[[목련꽃아래서]]》에 출연했다. 하지만 이후 영화 《[[중천 (영화)|중천]]》(2006), 《[[싸움 (영화)|싸움]]》(2007)에 출연했으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2009년에는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최승희 역할을 연기해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드라마 《[[마이프린세스]]》(2011), 《[[나와 스타의 99일]]》(2012),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에서 주연으로 출연했고, 2015년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로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198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북 구미 으로 이사 하였다. 김태희 본인의 가족으로는 부모와 언니 김희원, 남편 [[이완 (1984년)|이완]]이 있다. 연예인 [[비 (가수)|비]]와 동료.<ref name="씨네21">{{웹 인용 |제목=천천히 밝게 빛나는 별, <중천>의 김태희|url=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3569|출판사=[[씨네 21]]|저자=이혜정|날짜=2006-12-22|확인날짜=2014-02-25}}</ref> 6학년에는 언니를 대신해 교복 모델로 활동했다.<ref name="씨네21"/> 졸업하고,<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중학내내 전과목 100점…공주대접도 당연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3771618|출판사=뉴시스|저자=김지은|날짜=2011-03-30|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재학 시절 학원 홍보 전단지 모델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경북 구미 에서 김태희 모르면 간첩? 학창시절 인기-성적표 공개!|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91530327|출판사=[[한국경제]]|저자=김명신|날짜=2009-09-15|확인날짜=2014-02-25}}</ref>
이 드라마를 통해 자리를 확고히 한 김태희는, 2006년 제작비 130억,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 《[[중천 (영화)|중천]]》에서 [[정우성]]과 함께 공연하며 소화 역할로 첫 장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ref name="김태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ref>최지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30&aid=0000001410 '국내' '이 상을 <하얀거탑> 폐인 분들께 바칩니다'] 매거진t 2007년 10월 4일</ref> [[대종상영화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3&aid=0000063392 ‘가족의 탄생’최우수작품·시나리오상…대종상 이변] 국민일보 2007년 6월 9일</ref> 그녀는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ref>{{웹 인용|url=http://www.blueaward.co.kr/bbs/board.php?bo_table=awards_news&sca=28|제목=제28회 청룡영화상|출판사=청룡영화상|확인날짜=2014-02-27}}</ref> 하지만 연기력에서 “대사 소화가 부족하고 표정연기가 풍부하지 못했다”, “평면적 연기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ref name="김태은"/> 《[[중천]]》은 관객수 150만 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도 실패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중천' 참패, CJ 주가 폭락|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0319790|출판사=뉴시스|저자=김용호|날짜=2007-02-19|확인날짜=2014-03-05}}</ref> 2007년에는 영화 《[[싸움 (영화)|싸움]]》의 윤진아 역할을 연기했다.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공연하며 연기력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보다 확실히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으나,<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기력과의 싸움에서 '웃다'|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g_serial=299002|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정명화|날짜=2007-12-05|확인날짜=2014-03-05}}</ref> 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ref>{{뉴스 인용 |제목=톱스타 마케팅, 더 이상 안 통한다!|url=http://osen.mt.co.kr/article/G1010070161|출판사=OSEN|저자=이명주|날짜=2010-10-07|확인날짜=2014-03-05}}</ref>
김태희는 2009년 4년 만에 첩보액션 드라마 《[[아이리스 (드라마)|아이리스]]》의 여주인공 최승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아이리스`, 가장 진지하게 준비한 작품"|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273866|출판사=MK 뉴스|저자=진향희|날짜=2009-05-12|확인날짜=2014-03-05}}</ref>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39.9%, 평균 시청률 30%대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아이리스’ 실체 추적하는 감성적 액션 주목하세요…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627557&cp=nv|출판사=국민일보|저자=진정희|날짜=2012-11-14|확인날짜=2014-03-05}}</ref> 연기력에 있어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일부에서는 첩보원 역할에 걸맞지 않다는 평도 있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멍때리는' 김태희? 연기논란 재점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102914300874627&type=1&outlink=1 |출판사=머니투데이 |날짜=2009-10-29 |확인날짜=2010-01-02}}</ref>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처음으로 연기력으로 우수연기상을 받았는데,<ref>[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김태희, '아이리스'로 연기력 논란 극복하고 상도 받고 눈물 '펑펑']{{깨진 링크|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 리뷰스타 2010년 1월 1일</ref> 이에 대해 “우수연기상은 인기로 받은 인기상이 아닌 연기자로 인정받은 최초의 상이었다. 연기로 인정 못 받고 있다고 그간 생각했다. 항상 마음의 무거운 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저자1=김지연|제목=김태희 "연기력 논란, 항상 마음의 무거운 짐"|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91500362265489&type=1&outlink=1|날짜=2010-09-15|확인날짜=2015-12-14|뉴스=머니투데이}}</ref> 2010년 1월 김태희는 소속사를 [[나무엑터스]]에서 자신의 형부가 설립한 루아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1인 기획사 대열 합류… 전 소속사와 협업관계 유지 |url=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05720 |출판사=[[일간스포츠]] |날짜=2010-01-11 |확인날짜=2010-01-11}}</ref> 9월 16일에는 영화 《[[그랑프리 (영화)|그랑프리]]》에서 서주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추석영화열전⑥]'그랑프리' 김태희, 연기논란 잠재우고 흥행퀸 '찜'|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91608154987413|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조범자 |날짜=2010-09-16|확인날짜=2015-07-17}}</ref> 김태희의 연기력은 이전보다 나아졌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으나, 16만 명의 관객수를 끝으로 상업적 실패를 거뒀다.<ref>{{뉴스 인용|제목=[울림과스밈] ‘그랑프리 실패’ 김태희에게는 ‘약'|url=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42216.html|출판사=한겨레|저자=김진철|날짜=2010-10-05|확인날짜=2015-07-17}}</ref> 11월 22일에는 몇몇 내용을 편집해 만든 《[[아이리스: 더 무비]]》가 개봉했다.<ref>{{웹 인용|제목=씨네21 - 아이리스 더 무비|url=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출판사=[[씨네21]]|날짜=2010|확인날짜=2012-02-2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4525/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보존날짜=2016-03-04|깨진링크=예}}</ref> 12월 13일에는 《[[아이리스]]》의 스핀오프작 《[[아테나: 전쟁의 여신]]》 1회에 회상신으로 특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짧아서 아쉬워"..이병헌·김태희 `아테나` 깜짝 등장|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138166593198520&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 |날짜=2010-12-14|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2011년 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했다.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수아|제목='마이 프린세스', 종영…여심 흔든 달콤한 '황실로맨스'|url=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11/02/25/65491.html|출판사=프런티어타임스|날짜=2011-02-25 |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송승헌]]과 함께 공연해 대학생 이설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미지의 변화와 이전보다 향상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김민호|제목=김태희 푼수연기 호평 "이제야 딱 맞는 캐릭터!"|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출판사=투데이코리아|날짜=2011-01-06|확인날짜=2011-01-06}}{{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 }}</ref> 4월 1일에는 《[[MBC 다큐스페셜]]》에서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MBC 스페셜 방영 목록#2011년|태희의 재발견]]이 방영되었고, 방송에서 김태희의 일상, 연기력 논란, 학창 시절 등에 대해서 다뤘다.<ref name="미디어스">{{뉴스 인용|저자=곽상아|제목=MBC스페셜 '태희의 재발견'…"황당·실망"|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0|출판사=미디어스|날짜=2011-04-03|확인날짜=2014-04-07}}</ref> 시청률은 지난 편에 비해 2배 가량 상승한 9.3%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저자=문완식|제목=궁금했던 김태희..'태희의 재발견' 시청률 9.3%|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4020912530683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1-04-02 |확인날짜=2014-04-07}}</ref> 하지만 일부에서는 “뭘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태희 홍보프로”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ref name="미디어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MBC스페셜]]이 김태희도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라고 말했다.<ref name="미디어스"/> 《[[마이 프린세스]]》가 종영되고 나서 김태희는 [[일본]] 기획사 [[스위트 파워]]와 계약을 맺고 [[일본]] 진출을 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진출…"일본서 적극적으로 활동 펼칠 것"|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출판사=SSTV|저자=신영은|날짜=2011-03-03|확인날짜=2014-04-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408214713/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보존날짜=2014-04-08|깨진링크=예}}</ref> 이후 [[일본]]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에 여주인공 한유나 역할로 출연해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드라마 주연…니시지마 히데토시와 호흡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9575|출판사=아시투데이|저자=정희영|날짜=2011-08-25 |확인날짜=2011-09-10}}</ref> 첫 [[일본]]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끝냈고, 많은 CF 촬영도 진행 할 예정이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日 드라마 성공 데뷔 후 해외 CF 러브콜 쇄도|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출판사=일간스포츠|저자=김인구|날짜=2012-02-21|확인날짜=2012-02-2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 }}</ref> 그러나 2005년 이완과 함께 스위스에서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빌미로 각종 CF 방영 계획이 취소되었고, 드라마 촬영 중단까지 요구되었다.<ref name="광주일보">{{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日 CF행사 취소..독도발언 때문|url=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9898239461109010|출판사=[[광주일보]]|날짜=2012-02-22 |확인날짜=2012-02-25}}</ref>
2013년 10월 31일 '맛있는 김치 김태희와 함께 배워요! LG 디오스 김치톡톡 클래스' 행사에서 김태희.
2004년 김태희는 헤럴드경제 기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6&aid=0000148878 'I Love Companies'`기업사랑 캠페인` 본궤도 올랐다] ''헤럴드경제'' 입력일자 2004-09-21</ref> 2005년에는 남편 [[이완 (1984년)|이완]]과 함께 수호천사로 위촉돼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스위스]]에서 친선문화대사로 선정 돼 "독도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리메이크 앨범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ref name="광주일보"/><ref>[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SWISS FRIENDS 2005] {{웨이백|url=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date=20110813103724 }}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ref><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0217085145988&p=yonhap 김태희, 스위스친선문화대사 선정] 연합뉴스 입력일자 2005.02.17</ref> 이후 2007년 유방암의 위험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홍보대사로 활동을 했고, 7월 22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ref>[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419123412761&p=SpoChosun 김태희, 유방암 조심하세요 핑크리본 홍보대사] 스포츠조선 입력일자 2007.04.19</ref> 또한 12월에는 [[BC카드]]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밥차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밥차 배식 봉사활동 펼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0027316|저자=탁진현|출판사=[[네이버]]|날짜=2007-12-05|확인날짜=2011-09-15}}</ref> 김태희는 2005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도 난치병 어린이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계속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난치병 어린이들과 따뜻한 만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6672|저자=김가희|출판사=[[네이버]]|날짜=2006-05-16|확인날짜=2011-09-15}}</ref>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난치병 아동들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앨범에 참여했는데, "Make-A-Wish"를 녹음했다.<ref>조성훈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배우 김태희,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음원 참여] {{웨이백|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date=20120316165433 }}, 《[[가온 차트]]》, 2011-09-15 작성. 2011-09-15 확인.</ref>
김태희는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남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난 적은 거의 없고,<ref>{{뉴스 인용 |제목=장동건·김태희, 스타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이유?|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19696|출판사=[[SBS 뉴스]]|날짜=2008-05-22|확인날짜=2013-09-12}}</ref> 지금까지 연애 경험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애경험 고백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104030858401119|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이은지|날짜=2011-04-03|확인날짜=2013-09-12}}</ref> 2003년 인터뷰에서 [[천주교]] 신자여서 보수적이라며 [[혼전 성관계]]와 [[낙태]]는 절대 안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가 생각하는 ‘낙태’와 ‘혼전순결’은…|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3371|출판사= 뉴데일리|날짜=2012-12-28|확인날짜=2013-09-12}}</ref>
2012년 12월 31일 [[디스패치 (대한민국)|디스패치]]는 [[이병헌]]과 [[이민정]]의 열애설을 터뜨림과 동시에 "디스패치가 새해 첫 커플의 사랑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2013년 1월 1일 [[이완(1984년)ㅣ이완]]와 김태희가 데이트하는 현장 사진을 올리면서 [[열애설]]을 제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이완 열애설 보도한 ′디스패치′ 덩달아 주목|url=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101000202|출판사=뉴스핌|날짜=2013-01-01|확인날짜=2013-09-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03201303/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101000202#|보존날짜=2013-12-03|깨진링크=예}}</ref> 같은 날 오후 소속사 [[루아엔터테인먼트]]는 아직 만난지 1개월 밖에 안되었고, 알아가는 단계라며 교제설을 인정했다.<ref>{{웹 인용 |제목=김태희, "이완와 만난지 한달…알아가는 단계" 열애 공식 인정
김태희는 이완와 2017년 1월 19일 [[대구광역시|대구]] [[달서구]] 이곡2동 의 한 [[성당]]에서 [[혼인성사]]로 비공개 대구에이더블유호텔 결혼식을 올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단독] 이완♥김태희, 오늘(19일) 결혼식 후 피로연…하객 대접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4087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예나|날짜 = 2017-01-19|확인날짜 =2017-09-09}}</ref><ref>{{뉴스 인용 |제목 =“이젠 부부” 이완·김태희, ‘007 작전’ 방불케 한 결혼식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2920777|출판사 =노컷뉴스 |저자 =김현식|날짜 = 2017-01-19|확인날짜 =2017-09-09}}</ref><ref>{{뉴스 인용 |제목 =[종합]이완-김태희 결혼…장수 톱스타 커플, 이젠 부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875953|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박세연|날짜 = 2017-01-19|확인날짜 =2017-09-09}}</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19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42. '''방패와 방패와 창과 방패'''
* [[이리나카]]는 무효화를 가진 [[아이자와 쇼타]]를 가장 먼저 제거하려 하나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몸을 날려 구출한다.
* 그러나 패트껌과 키리시마가 아이자와 대신 함정에 빠지는데, 거기엔 철포옥 핫사이슈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 둘에겐 철포옥을 공략할 공격수단이 전무, 왜소한 남자의 말대로 "창과 방패 대 방패와 방패"의 이상한 대결이 되고 말았다.
* [[서 나이트아이]], [[패트껌]]을 필두로 히어로와 경찰 연합군은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고 있다. 추격대에 있는 [[키리시마 에지로]]는 학교 선배이자 사무소 선배이기도 한 타마키의 안전을 걱정하고 [[미도리야 이즈쿠]]도 동감한다.
마침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의혹을 표시한다. 이 지하시설과 융합된 자, [[이리나카]]가 왜 잠자코 있을까?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벽이 꿈틀거리지 않는 걸 보면 융합된 상태도 아니다. 아이자와는 이 점을 들어서 "지하 전체와 융합하거나 컨트롤이 가능한건 아니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렇다면 지금은 위에 남은 타마키나 경찰의 동향을 보러갔을 지도 모른다. 녀석은 지하에 "들어가서" 조작하는 타입이고 완전히 동화하는게 아닐 것이다. 벽면 내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자기 눈과 귀로 "보거나 듣거나"해야 한다는 얘기. 따라서 이쪽을 방해하러 온다면 아주 가까운 곳에 본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 벽에 귀나 눈이 있는게 보일 것이다.
아이자와의 가설이 들어맞았다. 이리나카는 타마키에게 제압된 철포옥의 상태를 보러갔던 참이다. 물론 그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셋이서 고작 한 사람 막는게 끝이라니. 이리나카는 뭔가 있다고 생각하다가 "그녀석이다"고 결론을 내린다.
* 1층에선 [[버블걸]]과 [[센티피더]]가 경찰과 협조해 시에핫사이카이 조직원을 거의 체포했다. 버블걸은 설마 전원이 방해하러 올 줄은 몰랐다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한다. 이래서는 잡히러 온 것 밖에 안 되니까. 조직원들은 "제정신이라 잡히러 왔다"고 반박한다. 얌전히 있으면 오버홀에게 반드시 죽었을 거라며. 그들은 오버홀, 아니 치사키가 권력을 잡으면서 모든게 변했다고 털어놨다. 원래 지금의 두목은 야쿠자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시에핫사이카이도 빌런집단과 선을 긋고 어디까지나 "협객"으로서 양지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그런 두목의 뜻을 따랐다. 반기를 든 것은 두목의 아들이었던 치사키. 그가 오버홀이란 이름을 걸고 조직을 장악했다. 그러고 나서는 빌런 같은 이름을 대고 행동을 했으며 빌런과 힘을 합쳤다. 개성 관련 금지 약품을 유통한 것도 치사키. 반항은 할 수 없었다. 조직원들은 현두목이 와병생활을 하게 된 것도 분명 오버홀의 짓이라고 수군댔다. 버블걸은 그렇게 치사키를 싫어하면서도 그가 잡힐 거라고, 실패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 거냐고 반문한다. 조직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아이자와를 덮친다. 이리나카다. 아이자와도 어느 정도 예측했지만 난데없는 기습에 손을 쓰지 못했다. 분명 이리나카는 아이자와의 무효화를 두려워해 제일 먼저 처리하려 든 것이다. 이리나카는 그 셋이 당했을 정도라면 한 명씩 떨어뜨려 확실하게 제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변형된 벽면이 그를 떠밀어서 컴컴한 구멍으로 밀어붙인다. 꼼짝없이 함정에 빠진 아이자와.
* 그렇게 뜻대로 두진 않는다. 패트껌이 몸을 던졌다. 타마키가 만들어준 시간을 쓸모없게 할 순 없고 아이자와가 이리나카의 개성을 확실하게 지워주길 바라고 한 행동이다. 아이자와가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패트껌이 대신 구멍으로 빠진다. 제법 긴 터널을 굴러 어두운 방으로 빠져나온 패트껌. 그런데 언제 따라붙었는지 키리시마가 패트껌 밑에 깔렸다. 사실 키리시마도 아이자와를 구하려고 왔던 건데 타이밍이 안 좋아 패트껌하고 겹쳐버린 것이다. 패트껌이 어쩔 수 없다면서 우선은 긴장하라고 말한다. 분명 뭔가가 있을 텐데... 경고가 떨어지자마자 어둠을 뚫고 뭔가가 나타난다.
배리어를 펼쳤던 남자는 자신들을 "창과 방패"에 비유하고 반대로 패트껌과 키리시마는 "방패와 방패"에 빗댄다. 랏슈는 그래서는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곤란한다고 빈정댄다. 배리어를 친 남자가 반쯤 동의했다.
- 박경석(1933) . . . . 19회 일치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영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남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절반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반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식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반창고 임관식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그후 박경석 소위는 여러 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으며, 한 번은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사실 박경석 소위가 포로로 잡힌 북한군 내에서는 박경석 소위를 비롯한 많은 한국군 장교포로들을 해방군관이라는 이름으로 전향시키려 했지만, 그게 안 되었고, 포로 생활도 도망가든 말든 자유로웠다고 한다. 박경석 장군은 포로 시절을 회고하며, 포로로 잡힌 북한군 사단의 사단장이 적이었지만, 그의 리더쉽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부대에 식량이 떨어지면 사단장도 부하들과 함께 굶는 등의 리더쉽에 영향을 받아 뒷날 한국군내 정치군인이 판을 칠때도 그들의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참군인으로써 군인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는데 계기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위관, 영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영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영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태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965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과 월남의 파병 요청 형식으로 [[조문환]]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주월 한군군]] 군사원조단 비전투부대 [[비둘기부대]]가 파병되었고, 뒤이어 미국의 대 한국 군사원조 약조인 [[브라운 각서]] 체결과 야당의 반대 등 진통 끝에 전투병력의 파병이 이루어졌다. [* 야당과 여당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월남 파병에 있어 한국군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특히나 집권 여당 공화당의 초대 당 의장을 지낸 [[정구영]]변호사는 "이 장관 엄밀히 따지면 호지명의 월맹은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우리가 그들과 총칼을 맞대야 하는거요. 내가 보기엔 그간 프랑스는 자신의 식민지 정책의 일로 싸웠고,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 위세를 떨치려 월남에서 군사적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도와주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소. 물론 이 장관 말대로 우리는 가난하오. 월남전 파병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러나 더러운 전쟁에다가 피를 뿌리며 돈을 벌기보다는 궁핍하지만 깨끗하게 사는것이 옳다는 생각이오."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576|[[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발췌. [[http://gyuraeman.blog.me/110018127454|(대한 군사 원조의 약속인 브라운 각서)]]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포함한 경제적 원조와 월남이라는 특수 시장 개척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다는 파병의 조건으로 협상하였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월남에서 귀국 후, 1970년 8월 육군 제 [[1사단]] [[12연대]]의 연대장으로 부임하여 1사단 내 [[DMZ]]와 [[GOP]]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는데 당시 휴전선 부근을 담당하던 미국 [[2보병사단]] 예하 [[4보병여단]]의 근무 지역을 인수 받았다. 이는 그동안 휴전선 지역을 관할하고 수비하던 미군의 임무를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계기와 선례가 되었다. [[http://cafe.daum.net/pks6464/MnHf/109|DMG내 미군 관할 지역을 인수받은 육군 1사단 12연대와 연대장 박경석 대령이 말하는 비화]]
- 박화요비 . . . . 19회 일치
본명은 박미영[* [[마망|마골피]]와 본명이 같다.]이었다가 박레아로 개명했다. 예명 역시 (박효신 1집 등에 피처링하던 시절에는) 박노미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은 '이름을 지은 날(화요일)과 R&B의 B'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와 '화요일에 내리는 비'의 줄임말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비란 말이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 1982년 2월 11일은 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었다. ~~목요비~~] 2000년 8월 19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본인 얘기로는 화요일에 이름을 지은 것에서 '화요'를 따왔고, R&B를 부르기 때문에 '비'를 따왔다고 한다. ~~힙합이었으면 화요합~~ (출처: [[https://youtu.be/vvcat903c44]], 박효신과 함께 나온다.)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2017년 11월 중순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을 바꾸어 활동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도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이 바뀌어있다.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한 테크닉 중심적인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상태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리즈 시절로 보는 2~3집 활동 당시에도 1집 때와 창법과 음색이 바뀌었다고 성토하는 팬들도 많았다.]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중심적이고 감성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의 그것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거의 모든 앨범을 명반으로 추천하고 있고, 간간히 내는 싱글이나 OST들 역시도 팬들의 호감이 굉장히 높은 편.
데뷔 앨범 때부터 작사와 작곡에 일부 참여했다. 앨범의 숫자가 더해갈수록 참여도도 높아지고, 아예 앨범을 자체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2010년 7집을 기점으로 출연한 방송에서는 '싱어송라이터 화요비'로 MC의 소개 멘트가 바뀔 정도.
초기 창법은 머라이어 캐리와 매우 흡사했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인 1집 앨범 제목도 머라이어 캐리 5집 후속곡 제목인 <My All>을 그대로 가져왔다. 머라이어 캐리와 창법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여, 그만큼 파워풀한 실력파 가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타이틀곡 Lie 뿐만 아니라 전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도 될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1집을 내고 타이틀 곡 <Lie>의 인기에 힘입어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인기와 실력에 힘입어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업적을 남겼었다.
2007년, 몇년 전부터 앓아오던 성대낭종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회복 이후 2008년 초 6집 활동을 시작하고,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로 큰 인기를 얻었다. 특유의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상블은 코믹 그 자체. 자세한 사항은 후술할 문서 참조.
새 미니 앨범 <820211>의 선공개곡인 <마주보기>와 함께 다큐 에세이를 [[http://youtu.be/Z6feXNYFKsA|공개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화요비와 함께 출연한 [[김성주(방송인)|김성주]]가 나레이션을 맡았다.
이후 출연한 SBS [[X맨을 찾아라]]를 기점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얻으며 화요비란 가수, 아니 '연예인'이자 방송인을 대중에게 알리는 확고한 기회가 된다.
이전의 예능 출연에 비해 더더욱 대중적인 알림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2008년 한가위 특집부터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지고지순(?)한 여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특유의 말투와 캐릭터성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로, 무뚝뚝한 남자인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상블은 팬들 입장에서보면 거의 환상 그 자체였다. 환희의 다소 마초적인 모습까지 화요비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상승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이래저래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던 셈. 이후 [[언터쳐블(가수)|언터쳐블]]의 [[슬리피]]와 연애 사실이 알려지며 '가상결혼'에 대한 진실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또 최근 '그 사람' 라이브 불안 때문에 화요비의 실력을 성대 수술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전부터 화요비는 컨디션에 영향을 많이 받는 가수였고 박자 타는 것이 독특해 정박을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날 수 있다.
* 2011년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 'why does it hurt so bad'을 대학 축제와 합동콘서트에서 완벽히 소화. '''~~방송에선 안 부르고!~~'''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재 화요비는 '데뷔 초반의 부드러운 음색은 예전만 못하지만, 카랑카랑한 고음은 데뷔 때와 비슷하게 낼 수 있으며 흑인음악적 소울, 음색의 유니크함, 완숙도나 성량은 지금이 발전된 완성형 보컬' 이라는 것이 팬들의 중론. 하지만 예전의 음색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
* [[언터쳐블(가수)|언터쳐블]]의 랩퍼 슬리피와 공개연애를 했었다. 차후 공개 연애는 안할 거라고.
- 식극의 소마/228화 . . . . 19회 일치
* [[메기시마 토스케]]와 [[코바야시 린도]]는 박빙이었으나 결국 린도의 승리. 반역자들은 십걸 상위 멤버의 실력을 새삼 실감한다.
* 하지만 소마는 "팀으로 승리"를 따내기 위해서 그 제안을 거절하고 내일 참가를 결정,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의 참전도 결정된다.
반역자들은 껄끄러워하면서도 맞는 말이라고 수긍했다. 어쨌거나 1석 [[츠카사 에이시]]와 2석 [[코바야시 린도]]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얼마나 승리하든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에리나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말을 이었고, 소마에겐 꽤 인상적인 말이었다.
* 그러나 2rd Bout에서 가장 주목할 음식은 [[안(식극의 소마)|안]]이 심사한 [[츠카사 에이시]]의 "네 가지 녹차를 사용한 그라데이션 퓌레 스프"였다. 각기 사용한 녹차와 가장 상성이 좋은 채솟, 버섯, 콩을 사용한 퓌레를 한 접시에 담은 요리다. 각각의 퓌레는 옥로와 아티쵸크, 찐 전차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현미차와 병아리콩, 전차와 포르치니의 네 가지 조합.
병아리콩은 물에 삶아서 준비하고 아티쵸크와 아스파라거스는 손질해서 슬라이스로 썬 뒤 버터로 소테한다. 살짝 익으면 각각 조합된 차와 함께 푸드 프로세서로 퓌레 제작. 마지막엔 버터와 후추소금으로 간을 해서 크넬 모양으로 장식. 거기에 함께 나온 카푸치노 스프를 곁들여 먹으면 맛의 그라데이션이 놀랍도록 깊어진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졌던 퓌레의 맛이 한데 모여 부드럽게 연결되는 풍미.
* 그야말로 압도적. 반역자들은 센트럴의 힘을, 십걸 상위 멤버의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rd Bout 이후 침체돼 있던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카와시마가 그만한 전력을 보내놓고 전멸 당했다며 꼴좋다고 조롱했으나 에리아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츠카사의 한 마디는 승전보로 뜨거워진 센트럴 측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쿠가와 승부가 예상보다 힘겨웠고 그만큼 "소모"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3rd Bout를 쉴 것이다. 린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린도는 한심한 소리나 한다고 갈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키노쿠니 네네]]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구급반이 들것을 가져오고 있었다. 츠카사의 말이 맞았다. 린도도 메기시마의 라면은 정말 굉장했고 기진맥진해졌다고 인정했다. 츠카사는 아무 내색이 없는 사이토에겐 역시 터프하다고 감탄했지만 그도 허세는 부리지 않았다. 메기시마와 일전은 마치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 같았으며 자신도 예상이상으로 소모를 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제 센트럴 측에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을 시점이었다. 소마는 이제 에리나가 말했던 상황이라고 깨달았다.
* 에리나의 예측대로 츠카사, 린도, 사이토의 소모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이토와 츠카사가 논의한 바로는 오늘은 확실히 무리고 내일 대전도 하루를 쭉 쉬어야 할지 몰랐다. 린도는 그보다도 더 걸릴지도 몰랐다. 전 십걸 3석인 메기시마가 상대였으니 셋 중 가장 소모가 심했을 것이다. 린도 본인은 키노쿠니의 간호를 받고 있는 주제에 여전히 "이정도는 금방 회복한다"고 떠들고 있었지만 지금도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 츠카사는 소마에게 다가와 센트럴의 결정을 전달했다. 내일 십걸 상위 멤버의 출전은 없다. 그러면서 자신과 싸우고 싶다면 소마도 내일 안 나오는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소마는 그의 기대를 져버렸다.
소마의 말에 타쿠미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동의했다. 반역자팀의 3rd Bout 출전자는 이 셋으로 확정. 1학년 삼총사가 나간다. 잘 부탁한다고 외치는 소마. 이걸로 양측 모두 5명의 선수를 남긴 채, 연대식극 제 1일차가 종료됐다. 그런데 소마는 또다른 제안을 했다.
- 안기효 . . . . 19회 일치
2003년 데뷔한 올드 프로게이머로 판짜기 능력과 전략성이 탁월해 2005년경에는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와 함께 '신 4대 프로토스'의 물망에 오르내릴 정도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단점도 뚜렷했는데 매크로/마이크로 콘트롤과 멀티태스킹 능력, APM 등 게이머로서의 기본기가 전반적으로 모두 부족했다. 그와 함께 투나 - 팬택의 주축 멤버였던 [[심소명]]과도 비슷한 특성. 어쨌든 이것이 그의 성장을 가로막게 되어 결론적으로는 그를 제외한 프로토스 신예 3인이 신 3대 토스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그의 전략마저 뒤떨어지기 시작한 2008년 이후로는 프로리그 16연패 등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경험했다.
특징적인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멋진 승리도 많았지만 [[OME]]급 패배도 많이 보여 준 선수다. 다전제에서 [[이영호]]와 [[이제동]]을 잠재우는 위엄을 선보이다가도, [[윤종민]]에게는 패러사이트 걸린 셔틀로 계속 견제를 다니고[* 더 웃긴 점은, '''이 견제에 윤종민이 당했다'''는 거다.(...)] [[변길섭]]에게는 마린에 캐리어를 헌납했으며, 피터 네이트와의 팀리그 경기에서는 리버 한 기에게 프로브를 55기나 폭사당하는 등 아이러니컬한 모습이 특징.
쇼맨쉽이 매우 뛰어난 선수로, 남자다운? 외모와 과격한 승리 세리머니로 인상이 깊다. 날아차기, 엄지손가락으로 목긋기, 유리창 두들기기 등의 역동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많은 환호를 받은 선수였다.
2016년 10월 철구와의 스폰빵에서 보여준 승리 세리머니는[* 그 유명한 학사경고 영상이다. 자세한 사항은 유튜브의 "철구 학사경고" 참조] 안기효 방송의 애청자이던 트위치 스트리머 [[스틸로]]의 영향으로 옆 동네 트위치에서 대유행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조를 따라잡지는 못했단 평을 받았다.--그 와중에 [[김도|한 명]]은 채신기술로 쓴다-- 배경음악은 [[Silver Scrapes]]다.
위의 선글라스 리액션이 유행하면서 원조 선글라스 리액션(철구와의 스폰빵 당시) 직후에 나왔던 [[https://youtu.be/0MU_8hNyxoU?t=24m47s|별풍선 리액션]]도 같이 인기를 끌었다. "아~ 잠시만요 이 타이밍에 ㅍㄹㅍ님께서 별풍선 500개 선물 뭡니까 뭐예요 빤스 벗고 소리 엽씨 [[ㄹ어|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라"라는 리액션이다. 뒤에 ㄹㄹㄹㄹㄹㄹ가 포인트이며 이쪽에 합성을 많이 한다. 음성 합성(리믹스) 예: [[https://clips.twitch.tv/ElegantHappyCiderLitFam|#1]] [[https://clips.twitch.tv/DullCrunchyWitchCmonBruh|#2]]
그 외 대표적인 별명은 하부리그의 총사령관, 혹은 지옥의 하데스. 메이저 본선에서는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나, 하부리그인 챌린지 리그나 듀얼 토너먼트 등에서는 못이기는 상대가 없기에 붙여진 별명. [[온게임넷]] 예선인 챌린지리그와 듀얼토너먼트에서 대 테란전 전적은 총합 25승 6패이며 상대들의 이름만 보더라도, 각 팀 주전급 이상의 테란들이다. 아래는 챌린지 및 듀얼에서 맞붙은 [[테란]] 목록.
또한 [[이영호]]를 이기고 올라간 스타챌린지 1위 결정전에서는 [[이제동]] 마저 이기고 [[스타리그]] 본선 4번 시드를 쟁취했다.[* 시드를 따낸 후 안기효는 목 긋기 세레모니를 시전한다.] 안기효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끝날때까지, '''[[스타크래프트]] 공식전에서 [[이제동]]을 다전제(5판 3선승제)에서 이긴 유일무이한 [[프로토스]]로 남았다.'''[* 당시 [[이제동]]은 [[역대 스타리그 일람#s-23|해당 스타리그]]에서 [[로얄로더]]를 달성했던 시절이였다. [[토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촉망받던 신예란 점을 생각해보면 안기효의 당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첫 우승이 [[EVER 스타리그 2007|토스 잡고 한 우승]]이긴 했지만 사실 이때는 이제동이 잘했다기 보단 송병구가 [[옛날토스|너무 못했다]](...) 토스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밀고가다 지는 경우가 많았고 송병구와의 결승전에서도 송병구가 우승할 것이란 예상이 훨씬 많았는데, 이걸 이제동이 우승하면서 토스전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스타리그]]에서는 3패로 [[광탈]]하는 아쉬운 모습을 선사한다.
온게임넷의 하부리그인 챌린지와 듀얼토너먼트에서만 총 전적 39승 24패를 기록하여 다승 1위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바둑계에서 안기효와 비슷한 케이스인 바둑기사는 [[서능욱]]이 있다. 이쪽은 각종 기전이나 이벤트전에서 준우승기록이 너무 많은지라 안기효보다는 [[홍진호]]에 더 가깝지만... 서능욱 역시 국내 바둑대회 예선전에서 당시 최강자였던 [[이창호]]를 꺾는 등 이벤트전이나 속기전, 예선전같은 2부리그에서는 안기효만큼 엄청나게 두각을 보인 기사다.
08~09년 성적은 많이 아쉽다. 같은 팀 [[이윤열]]이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에서 '''비현역''' [[강민]]과 [[박용욱]]을 상대로 접전을 펼치자 [[스갤]]러들은 하나같이 '''안기효 대신 [[강민]], [[박용욱]] 데려와라!'''를 외칠 정도...
중반부 소수질럿, 드라군, 리버 올인이라는 전성기 시절 자주 보여줬다고 [[강민]]과 [[박용욱]]이 얘기해주는 깜짝 전략으로 [[김성대]]를 훅가게 할 줄 알았으나... OME급 컨트롤로 커세어와 리버를 헌납. 자신이 훅 갔다. ~~'''리버 : "아 ㅅㅂ 김씨 아니고 찹씨잖아 그런데 왜?!"'''~~
이후에는 왠지 [[김택용]]같은 에이스들과의 경기만 치르고 있다. 이건 거의 논개수준이며 이긴 적은 없다. [[공군 ACE]]에서 빌드셔틀 + 플레잉코치로 뛰고 있는 듯. 승자 인터뷰를 보면 연습을 많이 도와준다고 한다.
2014년 9월쯤부터 아프리카 방송을 시작했다. 토스계의 지영훈의 포지션이 되었다. 초창기 실력은 처참한 수준이였으며 [[하늘(1994)|하늘]]의 저그에게도 지는 모습을 보인다. [[전태규]]와 [[김봉준]]의 라이벌 포지션이며 회사도 그만두고 방송에 전념하고있다.
2014년 10월에는 아프리카 스타판에 불을 지폈다. [[박지호]]와의 스폰 매치중 박지호의 방플을 의심하며 그를 세차게 디스했다. ~~현재는 화해~~ 그런 어그로로 시청자를 끌어모은 뒤 주로 WWE 레슬러를 흉내내는 리액션과 심심하면 블랙리스트를 거는 컨텐츠로 별풍을 팔고있다. 방송중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는데 꽤 잘하는 편이다. 임창정스러운 감성에 연규성과 비슷한 창법, 목소리를 구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SbUITb5-M|슬픈 혼잣말]] [[https://www.youtube.com/watch?v=o049dPIyACM|또 다시 사랑]] 등등 임창정의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WFRzK0KUku0|내가 저지른 사랑]]. 노래를 부를 땐 방금 실연을 당한듯한 리얼한 표정을 보여주며 임창정 특유의 창법을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한다. 철구같은 억지 뇌성이 아니라[* 말이 좋아 뇌성이지 완전 목을 긁어내는 발성이라 성대가 남아나질 않는다. 철구는 성대 수술을 받기도 했는데 뇌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프로 가수들도 샤우팅을 자제하는 이유가 구사하기도 어렵지만 목을 긁어내지 않으면서 발성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고음과 정확한 샤우팅을 구사했다. 다만 콧소리가 상당히 들어간걸로 보아 발성을 따로 배우진 않은듯 하다.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는 면성이라는 새로운 창법을 창조해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현재 배틀그라운드도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1부 2부로 나누어 방송하고 있으며 석궁만으로 2등을 하고 불과 4일차 만에 1등을 하는 기염!을 토하며 싸움을 회피하는 메이웨더 아웃복싱같은 게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무분별한 전투 배그보다 실제로 저 상황에 떨어져 있을때 나올법한 두려움과 신중함(실제로 온갖 화기로 중무장한 생면부지의 아흔몇명의 사람들과 외딴섬에 떨어져 한사람만 생존 가능하다고 할때 생존하기 위해 가질 당연한 소심함)으로 숨을 죽이는 멘트와 함께 시청자들의 큰 호응과 공감을 얻는 듯 보인다.
- 울진군 . . . . 19회 일치
[[경상북도]] 북동부에 있는 [[군(행정구역)|군]]이다. 인구 5만여 명. [[대게]]와 [[온천]](백암, 덕구), 불영계곡, 불영사 성류굴, [[원자력 발전소]]([[한울 원자력 발전소|한울]]) 등으로 유명하다.
1979년 울진면이 울진읍으로, 1980년 평해면이 평해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울진읍 죽변출장소와 평해읍 후포출장소가 각각 죽변면, 후포면으로 승격되었다. 2015년 서면이 금강송면으로, 원남면이 매화면으로 개칭었다.
외딴 [[섬]]이나 [[반도]] 지형이 아니면서도 [[철도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과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 구]](정확히는 금강송면 서부지역에 200m가량 영동선철도가 지나긴 한다. 하지만, 정차역은 없다.) 에 모두 이름을 올린 얼마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과거에는 [[승부역]]이 울진군에 속해 있었다. [[양원역(영동선)|양원역]]이 군 경계에서 가깝기는 하나, 교통 오지의 역이므로 그 마을에서만 이용하는 실정, 그나마 울진군 이용객이 있는 역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있는 [[분천역]]이기는 하다. [[분천역]] 서쪽으로는 [[영동선]]보다 [[36번 국도]]가 좀더 나은 관계로 울진군의 철도 이용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예전에는 [[고속도로]]가 없고 군을 관통하는 [[7번 국도]]의 확장공사가 더뎌 교통이 상당히 나빴다. 특히 [[삼척시]]와 울진군 사이의 [[7번 국도]] 구간은 과거 [[영동고속도로]] 확장 이전의 [[대관령]] 고개 수준의 구불구불함을 자랑하여 인근 [[영덕군]], [[삼척시]]까지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었다.
2010년 12월 말 [[7번 국도]]의 확장 공사가 끝나면서 [[삼척시]]와 영덕읍까지 4차선 직선도로가 완공되었다. 삼척부터 포항까지 4차선 국도이다. 이로 인해 동해안에 대한 접근성이 상당히 좋아졌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울진종합버스터미널|울진]]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소요시간도 4시간이면 도착한다. 요건 [[7번 국도]]를 경유하는 [[강원여객]] 차량에만 해당된다. [[경북코치서비스]]와 [[경기고속]] 차량은 경유지도 더 많은데다 불영계곡으로 지나가서 속까지 울렁거린다. 버스 타다 토하기 싫으면 [[강원여객]]이 오는 시간으로 타도록 하자. 소요시간도 좀더 빠르고 울진군 주민들도 [[강원여객]]/[[강원흥업]]을 훨씬 선호한다.
현재 [[삼척시]]와 [[포항시]]를 연결하는 [[철도]] [[동해선]]이 공사 중에 있다. 2020년 예정대로 완공되면 지금보다 교통편은 훨씬 나아질 듯 하다. [[분천역]]과 [[울진역]]을 잇는 [[울진-분천선]]도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이며 개통시 봉화-춘양-분천-울진-평해-영덕으로 직결 운행하기 위해 울진역은 읍내보다 조금 남쪽에 건설한다.
[[포항시]], [[묵호]]([[동해시]])와 함께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울진의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워낙에 교통이 불편한데다 그나마 근처에 대도시(울산,부산,광주)가 있는 다른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근처에 도시다운 도시도 없다. 인구 15만 이상 도시를 기준으로 삼으면 강릉이 북쪽으로 110km, 안동이 남서쪽으로 117km, 포항이 남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다. 대신 근처에 큰 도시가 없다는 건 만약 방사능이 유출될 시에 위험지역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니 국가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좋은 거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근무 지원자가 적어서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10년 이상 한울원전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전제로 하는 특별채용도 실시하고 있다.
2013년 5월 한국수력원자력의 비리와 관련하여 울진군와 영광군에서 발전소 명칭 변경을 요청함을 받아들여 울진 원자력 발전소는 한울 원자력 발전소로, 영광 원자력 발전소는 한빛 원자력 발전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실제로 원자력발전소와 사택을 제외하면 두 시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그냥 평범한 동해안의 [[어촌]]. 울진까지 나가봐야 별 다를 게 없으니 교통을 떠나 무지 심심할 수 밖에 없다.
가끔 일부 주민들이 원자력 발전소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이건 [[환경단체]]와 연계된 일부이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별 신경 안 쓰고 발전소의 혜택을 꽤나 많이 보고 있다. 발전소 하나가 '''울진군 세수의 70%'''를 담당하고 있고 부구리의 [[초등학교]]에는 놀랍게도 인조[[잔디]][[운동장]]이 깔려있다. ~~부럽다~~ 울진읍의 중학교에도 인조잔디운동장이 깔려있다.
특산물로는 [[대게]]와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 등록된 울진 [[송이]]가 있으며 [[2005년]]과[[2009년]]엔 친환경 농업 [[엑스포]]가 개최 되었다. 이웃한 [[영덕군]]과는 대게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그것도 원조 분쟁이었는데 한국산 대게의 원조 분쟁을 놓고 [[영덕군]]과 대립중이며 대게 생산에 있어서도 [[영덕군]]과 경쟁중이다.
울진북부와 울진남부는 전혀다른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진은 경상북도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보였는데, 지역적 성향 탓도 있지만 [[김중권]]이라는 지역 유명 정치인 때문이다. 1981년부터 3선을 달리고 이후 20년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6번이나 연이어 낙선했으나 매우 높은 득표를 보였다.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공천탈락 - "무당파국민연합" - [[김대중]]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 [[새천년민주당]] 대표 - 무소속의 길을 밟았으며,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먼저 "영남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 깃발을 달고도 불과 19표(0.03%)차로 낙선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중요한 건 낙선했다는 거지만. 당시 [[김광원]] 후보도 같은 울진 출신이었을 뿐더러, [[삼척시]] 산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해 낙선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분열에 따라 당을 탈당, [[서울특별시]] [[마포구]]을 출마를 포기하고 열린우리당 후보가 정해진 이 지역구로 다시 무소속 출마했다. 탄핵열풍에도 열린우리당 후보(박영무, 24.02%)와 표를 나눠먹으며 26.9%로 낙선. 이때 탄핵열풍을 타러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으면 당선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러진 않았고,민주당 후보가 없던 18대 총선에서도 38.9%를 얻으며 낙선.
* ~~[[자기야 - 백년손님#s3.1.1|이춘자 여사]]와 [[후타삼]]~~[* 간혹 [[남재현]]이 울진 후포리 출신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후포리는 남재현의 처가일 뿐 남재현은 서울 출신이다.]
- 원우(가수) . . . . 19회 일치
||<#f5f5f5> '''별명''' ||워누, 저너누[* 본명 "전원우"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 데뷔 전 17'S 다이어리에서 [[우지(세븐틴)|우지]]가 "저너누!"라고 표기한 적 있다.], 늘보[* 하단 [[원우#s-2.2|성격]]문단 참조. 성씨와 붙여 전늘보라고 부른다.], 여우[* 닮았다.], 전소녀, 전발라드[*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소속 래퍼라는 본인의 포지션과는 다르게 평소 추천하고,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 곡들은 모두 [[발라드]]라 붙은 별명. 줄여서 "전발라"라고도 한다.], 전원우 복덩어리[* 하단 [[원우#s-2.3|말장난]] 문단 참조.], 서가대 환청남[* 데뷔 초 [[서울가요대상]]에서 [[장재인]]의 <환청>무대에 랩 피쳐링으로 올라간 적이 있는데,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저 잘생긴 사람을 호칭하고 싶은데 이름을 몰라 대신 붙여진 별명.], 불이나남[* 데뷔곡 '아낀다' 중 원우의 파트 "나 지금 너 땜에 불이 나"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계기는 바로 앞의 환청남과 같다.], 권원우[* 평소 티격태격하는 사이인 [[호시(세븐틴)|호시]]와 서로의 흉내를 자주 낸다.] ||
중학생 시절, 막연히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취미 삼아 친구와 실용음악학원을 다녔었다. 그런데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가 그곳에서 우연히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고, 단순히 경험 삼아 참가했다가 덜컥 합격해 [[2011년]]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공개 오디션을 보고 입사한 세 멤버 중 한 명으로 약 3년 8개월간의 오랜 연습생 기간을 보냈다. 각종 선배 그룹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거나 백댄서로 무대에 올라 데뷔 전부터 조금씩 얼굴을 비쳐왔다. 자세한 내용은 [[세븐틴TV]] 항목의 [[세븐틴TV#s-3.1.3|원우]] 문단 참조.
182cm라는 장신에 팔, 다리가 상당히 길고 일자 쇄골이 도드라진 어깨가 넓은 체형이다. 원체 입이 짧은 탓에 극도로 마른 몸매까지 타고났는데, ~~[[도겸(세븐틴)|도겸]] : 앙상하다 앙상해...!~~ 본인이 직접 말하길 가족들이 모두 키가 크기 때문에 자신도 잠을 잘 잤으면 키가 더 컸을 것이라며, 지하 연습실~~메로나 감옥~~에서 오랜 기간 밤새 연습하느라 키가 여기서 멈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남동생은 모델 지망생이다.]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내에서 가장 장신인 멤버는 아니지만 이 체형 때문에 팬들에게 모델적인 비주얼로 주목받고 있던 멤버 중 한 명이었는데, 그러던 [[2016년]] [[2월 6일]] 남성 매거진 <[[GQ]] KOREA>와 단독 화보를 성사하며 이 피지컬이 빛을 발하게 된다.
{{{#aaa {{{-3 콘서트 스튜디오 리허설 중}}}}}}}}}입이 워낙 짧고 극도로 마른 체질로 체력이 다소 좋지 않은 편인데, 때문에 무기력한 모습도 많이 보여 [[아육대]]에서 무기력 아이돌로 꼽히는 일도 있었다. 팬들에게는 평소 느릿하고 여유로운 행동거지가 나무늘보와 비슷하다 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N-NaPdmiVJg|"전늘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본인도 이를 알고 있어 "[[세븐틴(아이돌)|세븐틴]]에서 느림의 미학을 맡고 있습니다."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눕정한"으로 유명한 [[정한]] 만큼 [[https://youtu.be/34q-b5njQgw|누워있거나]] 어디 기대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중. 이 체질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 잔병치레가 잦은 탓에 살을 찌우기 위해 억지로 밥을 4~5 공기 먹었던 적도 있었다. 회사 스탭들과 멤버들 사이에선 [[원우]]가 지쳐있을 때 특유의 섹시미가 부각된다며 "컨디션 난조일 때 나오는 섹시미"를 매력 포인트로 밀고 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말장난하는 것을 좋아해 데뷔 전부터 현재까지 각종 N행시와 [[언어유희]] 개그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멤버. 특히 동갑내기 [[호시(세븐틴)|호시]]와는 서로의 개그에 관대한 사이라 곧잘 웃음을 기부해주며 빵빵 터지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데뷔 초 [[세븐틴(아이돌)|세븐틴]] 공식 홈페이지 [[원우]]의 프로필엔 "주의사항: [[호시(세븐틴)|호시]]만 좋아하는 개그를 함"이라고 적혀 있었을 정도이다. 하도 시도 때도 없이 말장난을 많이 하는 터라 [[원우]]가 방송 활동을 잠시 쉬었을 [[2016년]] 5월 당시, [[에스쿱스]]와 [[우지(세븐틴)|우지]]가 [[원우]]의 개그가 그립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원우]]의 말장난 중 팬들에게 대표작 취급을 받으며 아직까지도 꾸준히 언급되는 것이 있는데, 때는 [[2016년]] 초 어느 날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 : 13소년 표류기]] 방송 중에 일어났다. [[에스쿱스]]가 "전복"으로 2행시를 시도하며 "전"에 전원우!를 외치자 뒤에 있던 [[원우]]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와 [[https://youtu.be/cMUVRqNqYQ0|"복덩어리이이잌!!!!!!!"]]를 외치며 2행시를 가로 채 "'''전'''원우 '''복'''덩어리"로 완성한 것. 이 2행시는 섬 생활을 모두 끝내고 난 후 인터뷰에서 [[호시(세븐틴)|호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으며, ~~[[승관]] : 저는 솔직히 별로.. / [[호시(세븐틴)|호시]] : 야 완전 핵이었어 그거..~~ 팬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겨 곧바로 [[원우]]의 별명이 되었다. 이외에도 같은 방송 내용 중 여서도에서 첫날밤을 지낸 뒤 [[에스쿱스]]가 "[[세븐틴(아이돌)|세븐틴]] 기상!!"을 외치며 멤버들을 깨우자 [[https://youtu.be/GWN7r-1tKv4|"우리 지금 기상이야? 기상청 들어가 봐. 기상 예보를 보면서 기상청에서 기상하게"]]라고 중얼거린 장면도 유명하다.
[[트위터]] 멘션 파티 방송에서 팬클럽 이름인 "캐럿"으로 [[https://youtu.be/9VFFr0z8nzE?t=2m29s|"'''캐'''럿 '''럿'''키 인 마이 라이프"]]라고 2행시를 완성하거나, [[2017년]] 12월에 방송된 세븐틴 눕방에서 다들 수학여행 어디로 다녀왔냐는 MC [[정한]]의 질문에 "2차 함수요!"라고 대답하는 등 꾸준히 재치있는 말장난을 시도하며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내 N행시 장인 [[조슈아(세븐틴)|조슈아]]와 함께 "원조" 라인을 결성해 각종 [[언어유희]]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롤모델은 루페 피아스코와 [[에픽하이]]의 [[타블로]]. 이들의 가사는 자신을 흔들어 놓는 것 같다고 한다.
* 어렸을 때 [[합기도]]와 [[육상]]을 했다. 연습생 시절 체력 훈련할 때도 항상 1등을 가져가는 [[우지(세븐틴)|우지]] 다음으로 제일 오래 버티는 편이었다고.
* 데뷔 전부터 멤버들을 깨무는 버릇이 종종 목격되었다. [[에스쿱스]]와 함께 하트를 만들다가 그의 손을 깨물거나, [[조슈아(세븐틴)|조슈아]]의 귀를 깨물기도 했으며,(진짜로 깨물진 않았다.) [[호시(세븐틴)|호시]]나 [[민규]]의 어깨, 손 등을 깨물기도 했는데 이게 무의식 중에 나오는 행동인지 어느 팬사인회에서 이와 관련해 질문을 받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본인은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듯. 현재는 이 습관이 많이 줄어들어 찾아보기 힘들다.
* 해산물을 못 먹는다. --[[호시(세븐틴)|호시]]: 걔는 해물을 못 먹어요. 그래서 새우깡도 안 먹는 애예요.-- 알레르기는 아닌데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심하게 느껴져 꺼려하는듯. [[세븐틴TV]]에서 이와 관련해 [[호시(세븐틴)|호시]]가 에피소드를 밝힌 적 있는데, 함께 식사를 하려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숯불구이집을 보고 "[[원우]]야, 저기 숯불구이집 있다."라고 제안했더니 [[원우]]가 [[https://youtu.be/oKyl9VbIPYY?t=7m32s|"저기 앞에 글씨 안 보이냐? 생태 동태 숯불구이 집이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생선초밥을 먹어야 하는 게임에서는 [[에스쿱스]]가 대신 [[원우]] 몫까지 먹어주기도 했으며 [[2016년]] [[12월 29일]] [[양남자쇼]]에선 연어회를 먹어야 했을 때는 연어를 빼고 밥만 먹기도 했다.멤버들과 타꼬야끼를 먹었을때도 문어를 빼고 먹었다고한다.
* 연습생 시절 야채 과자를 밥 대신 먹었을 정도로 좋아했으나 지금은 끊었다고 한다. --[[승관]]은 박수까지 쳤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담긴 [[호시(세븐틴)|호시]]의 일기가 아직 [[https://www.facebook.com/notes/seventeen/17s-diary-%EC%88%9C%EC%98%81-20130715-%EC%95%BC%EC%B1%84%EA%B3%BC%EC%9E%90-%EB%8C%80%EC%8B%A0-%EC%83%88%EC%9A%B0%EA%B3%BC%EC%9E%90%EB%8A%94-%EC%96%B4%EB%95%8C/198383483657793/|세븐틴 공식 페이스북]]에 남아있다.
* 서울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가끔씩 [[https://youtu.be/UAPWgwcCnbg|사투리 억양이 묻어 나온다.]] 부산 출신에 비슷한 시기에 서울로 올라와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지만 사투리를 다 까먹어 이제 사투리를 잘 안 쓴다고 주장하는 [[우지(세븐틴)|이분]]과 대조된다. 종종 멤버들이 [[원우]]의 억양을 따라 할 때도 있다.
* 성인이 되고 난 후 [[호시(세븐틴)|호시]]와 함께 [[킹스맨]]을 봤다고 한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데뷔 리얼리티 <세븐틴 프로젝트>에서 [[정한]], [[호시(세븐틴)|호시]], [[원우]]가 킹스맨 컨셉으로 미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 [[2016년]] [[6월 3일]] [[원우]]가 급성 위염에 걸려 다음 날 있을 [[드림콘서트]]와 팬미팅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약 2주후 진행된 [[호시(세븐틴)|호시]] 생일 [[V LIVE]]에서 [[원우]]의 몸이 나아졌다고 언급했으나, 이윽고 소속사 측에서 [[원우]]의 몸 상태를 고려해 7월에 있을 리패키지 앨범에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에는 참여하되 방송 활동은 안 할 것이라는 공지가 나왔다. 아티스트가 몸이 좋지 않을 때 바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행동은 칭찬할 만하지만 이 외에 팬들에게 주어진 정보가 너무 없어 걱정만 늘어갔던 터라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일처리가 미흡했다고 할 수 있다.
- 은혼/628화 . . . . 19회 일치
* 헤바는 [[헤도로]]를 개조하여 "헤도라"와 "헤도로"의 힘을 파일럿이 조절할 수 있게 한 병기. 일격필살의 츳코미가 특기다.
* 가부키쵸가 다음 싸움을 위한 휴식에 들어갈 때, [[히지카타 토시로]]는 우주와 교신하기 위해 [[히라가 겐가이]]를 찾아나선다.
* [[진선조]]의 국장 [[곤도 이사오]]가 대답한다.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에 의해 우주와 지상의 통신이 두절되고 지휘계통까지 무너진 해방군이 금방 재건되기는 어렵다. [[히지카타 토시로]]도 놈들은 패주하다 막부의 추격대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에 거의 와해된 상태라고 덧붙인다. [[오키타 소고]]는 오히려 지금은 공세로 전환할 찬스라며 저정도 대군이 지휘계통도 없이 흩어진 지금이라면 병량을 노려서 궤멸시킨다면 그걸로 전쟁은 끝이라고 자신한다.
* 그러나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가 이끄는 오니와반슈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애초 그들의 목적은 정전 협정이 채결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구태여 치고나가서 적들을 몰살시킬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적들은 어찌됐든 대군이며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미지수다. 젠조는 거기에 확인되지 않은 용병 부대가 하나 더 있는 것도 신경 쓰인다며 신중론을 펼친다.
* 음양사 집단인 게츠노슈와 시리노슈는 입장이 또 다르다.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기회가 올 때 잡지 않으면 다음은 없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것이 마지막 "승부처"라면 놓치면 끝장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들 안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게츠노 크리스텔]]은 꼭 싸워야 한다는 말이냐며 주저하는 태도를 취한다. 세이메이는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일어난 희생이 물거품이 된다는 의미라고 첨언하지만, 결국 진지하게 공세를 취하는걸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신파치와 가구라는 유례없이 차가운 눈길로 비행장년기를 맞은 사장을 쳐다봤다. 그러나 긴토키는 싱크로율이 순조롭다는 헛소리를 하며 헤바를 출동시키고 싶어서 안달이다. 신파치가 본적도 없는 파벌이 생겼다고 빈정거리고 가구라는 헤바가 뭐냐고 노골적으로 묻는다. 그러나 긴토키는 헤바를 출동시킬지, 대기시킬지, 혹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해결사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주절주절 묻는다. 신파치가 너도 해결사라고 츳코미하는데 헤바 파일럿은 귀가 먹는 직종인지 전혀 듣지 않는다.
다른 파벌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진선조는 이럭저럭 아직 이르다는 쪽으로 모이고 오니와반슈와 백화 쪽은 "가고 싶다면 냅둬라" 정도로, 사천왕도 "에바는 젊은 사람이 알아서"라는 쪽으로 결론. 그외에는 "에바가 아니라 헤바 아니었나" 라던가 "헤바가 아니라 노바 아니었나"하는 둥 여러가지 난색을 표명하다가 결국 하나로 압축된다.
신파치가 그저 말도 안 되는 몬스터 아니냐고 신랄하게 까자 긴토키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헤도로와 헤도라의 힘을 나누는데 성공했다고 밝힌다. 헤바의 머리에 있는 한 쌍의 꽃이 그것이다. 이 꽃 형태의 레버로 헤바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데 이미 능숙하게 츳코미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신파치에게 시험 삼아 보케질을 해보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츳코미역이라며 캐릭터성을 따지고 있다.
긴토키는 이렇게 천사와 악마를 상황에 맞게 꺼내는 것으로 인류를 지킨다, 인류보완계획의 전말이 이것이라고 폭로한다.
냉정하게 곤도를 지나쳐가는 긴토키와 헤바. 곤도는 좌절감 속에 무릎을 꿇는다. 그로서는 달려나가는 헤바를 막을 수 없었다.
* 바퀴벌레 때문에 당한 일격이 결정타가 되어 긴토키는 자리보존하고 눕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시무라 타에]]는 "악마가 아니라 신이었다"며 원래 안 쉬려고 할게 뻔한 긴토키를 이렇게라도 쉬게해주니 신이 휴가를 준거나 다름 없다고 포지티브하게 해석한다. 헤도로는 긴토키에게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타에는 "사람을 조종하려 한 이 인간 잘못"이라며 다독이지만 여린 심성의 헤도로는 쉽게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긴토키도 바퀴벌레만큼이나 소중한 지구의 친구"라고 말하며 사과하지만 바퀴벌레와 비교된 당사자는 툴툴거린다. 타에가 헤도라의 인격을 살짝 열어서 긴토키가 정신차리게 만든다.
>잘도 따라와줬어. 이런 볼품없는 사장을.
히지카타는 어차피 세상이 멸망하면 쉬는건 얼마든지 할 테니 사바세계를 즐겨두라고 대꾸한다. 하지만 세상은 겐가이포의 영향으로 전등불 조차 없는 깜깜한 어둠. 오키타는 이런데서 할 수 있는건 자는 거나 그거 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대정전이 일어난 도시는 이듬해 출생률이 오른다는 도시전설도 주절거린다. 우연의 일치인지 막 잠자리에 든 긴토키는 사루토비가 이불 속에 숨어들어와 내쫓는 중이다.
* 히지카타는 정전이란 말에 "내가 찾는게 그거"라고 말한다. 오키타는 "그거할 상대"라고 알아듣지만. 그가 말한건 정전을 넘어 에도의 모든 기계를 멈춘 남자 [[히라가 겐가이]]였다. 겐가이포 덕에 그나마 해방군을 막아낸 거지만, 이대로는 그들도 우주와 단절된 상태로 아무 연락도 취할 수 없다. 우주로 나간 [[가츠라 고타로]] 일행과 교신하려면 무슨 수를 써야할 텐데, 그러자면 겐가이의 협조가 필연적이다.
안대와 헤드폰 때문에 옆에서 일어난 일을 꿈에도 몰랐던 긴토키. 누군가 안대를 벗겨내서 눈을 떠보니, 앞에는 주정뱅이란 이름의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다. 신에게 살려달라고 빌어보지만...
- 이승현(농구선수) . . . . 19회 일치
초등학교 5학년 무렵 95Kg이나 나간 몸무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유도를 시작했는데, 유도를 하면서 오히려 살이 더 찌는 바람에(...) 농구로 전업을 해서 농구 선수가 되었다.[* 이때 유도를 계속 하고싶었지만 농구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고, 만약 결승에서 이기면 유도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이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농구를 하면서 살을 30Kg을 뺐고, 키가 크면서 중학 무대와 고교 무대 모두에서 최고급 [[파워 포워드|4번]]-[[센터(농구)|5번]]을 맡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최고의 센터로 불린 이승현을 두고 대학팀 간 경쟁이 붙었고, 거의 연세대로 진로가 확정이 되는 듯 싶던 이승현은 고려대학교 이민형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결국 고려대로 진학하게 되었고, 1학년 부터 주전 자리[* 이전에 1학년부터 [[파워 포워드]]였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의 입학 이전인 1,2학년 시절에는 [[센터(농구)|센터]]를 맡았었고, 이종현 입학 이후 파워 포워드로 전향하게 된다. 2011~2012년 고려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는 [[정희재]]였다. 이승현은 센터 시절에도 입학과 동시에 [[장재석]], 김종규를 제치고 리바운드상을 수상하는 등 적어도 대학농구 내에서는 수위급 [[센터(농구)|5번]]의 면모를 보였다.]를 차지하면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승현이 프로에 와서는 대학시절의 파괴력 넘치던 인사이드 플레이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시 슈터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외곽 플레이의 비중을 늘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승현은 현재 오리온스에서 공격시 외곽과 인사이드의 조합을 1:1정도로 가져가며 [[파워 포워드|4번]]보다는 3.5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들이 기대했던 파괴력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팀에서 궂은일을 하고 외곽에서 필요할때 3점슛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플레이에 대한 팬들의 변명으로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 외에는 포지션의 엄격한 구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추일승]] 감독에 의해 그렇게 플레이하도록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상대 빅맨들이 이전까지 붙었던 빅맨들의 상위호환이어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 더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매치업 상대가 하승진인 것을 이용하여 3점을 던지고 있고, 붙으면 돌파까지도 하는 동시에 수비에서는 그동안 갈고 닦았던 대인 방어와 박스아웃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 덕분에 정규시즌에선 잘 나오지 않았던 파울트러블을 많이 기록하기도 했다. 4차전에서는 9점 5리바운드에 그쳤지만 하승진을 9점(필드골 3/9) 9리바운드로 막았고, 5차전에서는 오리온이 패하긴 했지만, 감기몸살에도 불구하고 23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필드골 7/10, 3점슛 5/8)을 기록하면서 하승진(8점 7리바운드 필드골 4/6)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진정한 졌잘싸~~ 6차전에서는 4쿼터 막판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어버리는 연속 5득점 포함 14득점 7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그 결과 그 동안의 개고생[* 4쿼터 중반 허일영의 3점 세레머니 때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한 보답으로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였다!!''' 평균 기록은 [[조 잭슨(농구선수)|조 잭슨]]이, 임팩트 면에서는 [[김동욱(농구선수)|김동욱]]이 좀 더 앞서는 느낌이 있어 수상에 약간의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도 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최고조의 컨디션을 보이던 하승진을 잠궈버린 수비공헌도와 기록,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수상에 부족함은 없다.
한편 올해 신인들인 최준용, 강상재와 함께 기존에 대결구도를 형성했던 김종규, 김준일 등 젊은 선수들에게서 항상 두목을 넘어보겠다고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럴때마다 왜 본인이 KBL의 두목인지를 증명하면서 매번 참교육을 시전해주고 있다.(김종규는 부상여파로 컨디션 기복이 심해 논외) ~~어째 신인 선수들의 실력 판독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원표|YOU ARE BIG 3]]~~
헌데 오세근이 11-12시즌에 가장 근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15-16시즌부터 시작된 기자들의 과도한 언플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안티팬들이 대거 양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암투병 소식을 접한 이후 오리온의 경기가 있을때마다 매번 아버지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에 팬들의 시각도 영 좋지는 못하다. 이런 와중에 동료 포워드들의 활약으로 이승현이 없이도 승수를 착실하게 쌓는 장면이 연출되자 안티팬들은 '''스탯도 오세근보다 낮으면서 고평가를 하는데 [[종범(인터넷 속어)|이승현한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도 있냐?]]''' 라면서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1월12일 인천전자랜드와 홈경기에서 1쿼터 5:54초 빅터와 다리를 부딪혀 발목이 뒤틀리는 '''전치 4주의 부상을 입고 말았다!''' 시즌아웃까진 아니지만 공수의 핵심인 이승현이 4주간 결장하기에 상당한 전력 누수가 예상된다. 부상기간 중에 올스타 브레이크로 1주간 경기가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
이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용병 수비가 가능하다는 점. 용병을 상대로 압도하진 못하더라도 버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팀의 수비옵션이 더 늘어난다. 더불어 수비의 마무리라는 리바운드도 2년차때 상당히 업그레이드 되었다. 또한 상당히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인사이드에서 자리를 잡다가도 상대 앞선에 가드가 막히는 것 같으면 하이로 와서 스크린을 서주는 등 높은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볼 없는 움직임도 상당히 좋은 편. 2m가 안되는 신장에 비교적 평범한 윙스팬, 낮은 점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리바운드를 비롯한 볼 경합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낙구지점 파악 능력이 굉장히 좋으며, 볼 없는 움직임도 우수하며 BQ까지 높기 때문에 탭아웃이나 박스아웃에 의한 타 선수들의 리바운드 가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안티들은 빅맨인데 리바 스탯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면서 깐다~~
두 번째 장점으로는 몸이 상당히 튼튼하다는 것. 힘 좋은 장신 외국인선수들을 몸으로 버텨가면서 수비하는데도,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출장시간을 전 경기 뛰어준다는 것은 팀 입장에서는 업고 다녀도 모자랄 수밖에 없다.[* 특히 오리온의 농구 특성상 포워드들을 활용한 스페이싱 농구를 지향하기 때문에 포스트가 약해지는 건 필연적이다. 그렇기에 이승현의 활용가치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대학교 4학년부터 2014-15 시즌, 2015 아시아선수권, 2015-16 시즌까지 휴식없이 경기를 소화했기 때문에, 아시안 게임까지 다녀왔던 양동근, 김선형과 근접한 수준의 혹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매경기 30분 이상의 경기를 큰 부상 없이 소화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금강불괴인 점도 장점으로 부각된다.[* 가드에 비해 빅맨이 더 과부하가 심하기 때문에 더욱 대단한 일이다.][* 심지어 2015-16 시즌 중에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선 발목이 돌아가는, 다른 선수같으면 1달이상을 쉬어야되는 부상을 당해놓고도 1주일 정도 쉬고 다른 국가대표들이 복귀하던 날에 같이 복귀했다!]
세 번째 장점은 발전속도이다. 14년 아겜 국대에서 낙마하게 된 원인이 신체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공격툴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외곽슛을 연마하기 시작해 신인 시즌에 3점 성공률 2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현재 시점인 2017년말에는 동포지션 대비 상급의 슛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슛 뿐만 아니라 포스트업 기술이나 대인수비나 박스아웃 등 공수 전반적으로 꾸준하게 발전을 보이고 있어 [[전준범]]과 함께 국대에서도 핵심 멤버로 등극하게 되었다. 상무 복무자의 경우 훈련하는 공인구가 달라 국대 경기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오히려 시즌때보다 정교한 필드골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는것도 고무적이다.
또한 버티는 힘은 좋으나, 스피드가 느리고 점프력이 부족해 세로 수비에 약하고 [[찰스 로드]] 같은 운동능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와 김종규 같은 스피드 있는 인사이더를 막는데 약점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소속했던 초(대구 칠곡초), 중(서울 용산중), 고(서울 용산고), 대(고려대), 프로(고양 오리온)팀 모두를 우승시켰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KBL총재배 초등부 농구대잔치 우승을 시작으로 중학교에선 춘계연맹전, 협회장기, 전국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오랜시간 무관에 그치던 용산고를 우승시켰다.[* 이승현은 꽤 어린 나이부터 용산고 OB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용산고 출신인 양동근이 "넌 여기 와도 돼. 우승시켰으니까" 라고 이승현에게 이야기 해줬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재학 중 단 한번도 지지않았으며, 김종규/두경민/김민구가 버티던 경희대를 꺾고 MBC배와 대학농구리그를 모두 제패해버렸다. 특히 4학년에 재학중이던 2014년 가을 MBC배 대학농구 결승전에선 종료 1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동점 3점슛을 작렬시키고, 종료 1초를 남기고 역전 2점슛을 성공시키는 원맨쇼까지 보여줬다.
* 디시 [[농구 갤러리]] 한정 '이용수'라고 불린다. 바로 '''용'''병 '''수'''비를 줄인 말인데, 이승현의 용병 수비에 대한 몇몇 팬들의 과도한 쉴드로 생겨난 별명이다.[* 다만 페인트 존에서 웨이트 싸움으로 용병 수비가 어느정도 가능한 국내 빅맨이 얼마나 되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5-16 시즌 6강 플레이오프 동부와의 경기에서는 '''수'''비의 '''왕'''이라는 기사[[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64&aid=0000004705|#]]가 나오면서 '이수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2017 아시아컵 이란전에서도 하다디를 틀어막으며 고군분투하자 '''외'''인'''수'''비 전담이라 해서 '''이외수(...)'''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 KBL에서는 덩크를 하는 모습이 안 나와서 [[함지훈]]처럼 덩크를 못 한다는 소리가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시절에 연습 영상을 보면 덩크는 할 수 있는 듯하다. 2015 플레이오프에서 파울콜 상황에서 파워풀한 원핸드 슬램을 시도하기도 했고, 경기전 몸풀기때 이따금씩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것만 봐도.. 만약 경기 중에 혹시라도 덩크했을 때 실패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팀을 우선시하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닌이상 덩크를 경기 중에 하지는 않을 듯하다. 본인 말로는 덩크를 할 수 없을 나이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했다.
* 유도선수 경력도 있고 힘세기로는 정평이 나있지만 그것에 비해선 온화한 성격.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의 [[천기범]]이 대학농구시절 이승현에게만 3년 내내 집중적으로 거친 플레이를 하고 대놓고 시비를 트기도 했다. 천기범은 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한성깔 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 이준(배우) . . . . 19회 일치
2014년 10월 13일, 소속사 제이튠캠프와 계약이 종료되어 팀을 탈퇴 후 연기자 활동에 집중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소속사 측에서는 확실히 결정된 부분은 없다며 우선 부인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16일 두 멤버의 탈퇴가 공식으로 보도된다.
빠른 88년생이지만 출생년도에 맞게 1988년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팀내 87년생 멤버인 [[승호]]와 [[지오(엠블랙)|지오]]를 형으로 부른다.[* 출생년도만 봤을때 정상적으로 학교를 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준이 초등학교를 입학했던 당시에는 3월 1일을 기점으로 만6세가 되는 친구들을 함께 입학시킨 것이다. 만일 이준이 정상적으로 학교를 입학했다면 만6세가 되는 1994년에 승호와 지오와 함께 초등학교를 입학했어야 맞다. 즉, 고등학교는 2003년 입학, 2006년 졸업했어야 정상이다. 따라서,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1995년이었다.] 엠블랙 데뷔전에도 가발피팅, 홈쇼핑, 숙취해소음료 광고등 다양한 부분의 깨알같은 경력을 자랑한다.
배우가 되기위해 오디션을 계속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 [[우린 안될꺼야 아마|난 아마 안될거야]] 상태로 제이튠에 오디션을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고 한다.[* 정식 데뷔는 2008년에 방송된 MBC시트콤 [[그 분이 오신다]]를 통해 단역으로 데뷔하였다.]2009년 [[닌자 어쌔신]]에서 비의 아역으로 출연하였고 최연소 헐리우드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극 중 대사인 "You shouldn't do that." 을 예능에서 종종 써먹기도 한다. 닌자어쌔씬을 계기로 비와 친해져 방송에서 비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알게 될 수 있어서 시청자들도 호감적인 반응이었지만 방송 분량이 잘리겠다 싶을 때 비의 이야기를 절묘히 꺼낸 것 같다는 이유로 몇몇 시청자들의 비난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2010년 8월 29일 런닝맨에 첫 출연했다. 당시 경복궁에서 촬영한 방송분에서는 그냥저냥한 무난한 활약상을 보였으나, 2012년 5월 20일 박지성 특집에서는 그룹 엠블랙 멤버들과 함께 송지효를 제거하는 킬러로 파견되었다. 높은 자리에서 정탐하고 저격을 시도하는 등 그럭저럭 멋진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나, 런닝맨 멤버들이 반격을 해올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방심하다가 등짝을 내주며 허무하게 탈락. 이 때 내지른 '''"오와아아아아악!"''' 이란 비명소리는 건물 옥상에서 내질렀으나 지상에서도 똑똑히 들릴 정도로 컸다(…).
그리고 런닝맨 연출진들의 마음에 들었는지 같은해 7월 22일자 [[런닝맨]]에서는 그룹 멤버들을 빼고 단독 출연했다! 여기서도 이동 중에 혹시 스파이가 아니냐는 아이돌팀 멤버들의 의심에 '''"내가 그럴 급이 아냐!"'''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어머니 나이를 왜 공개하냐는 정용화의 핀잔에 '''"우리엄마 나이 내가 공개하는데 왜?"'''하면서 웃음 포인트를 만들었다. 중간 미션인 뜀틀 배구대에서는 쓸데없이 높게 뛰는 퍼포먼스를 남발하다가 자신에게 날아온 배구공을 제대로 토스하지 못해 팀을 패배하게 만들었다(마침 그게 런닝맨팀의 매치포인트 경기였다). 최후의 추격전에서는 [[개리(리쌍)/런닝맨|개리]]를 피해 달아나다 [[김종국/런닝맨|호랑이]]를 맞닥뜨려서 또 다시 '''"오와아아아아악!"'''이라는 비명을 남기고 횡사.[* 뒤에서 추격해오던 하하까지 기겁했다.] [[단말마]]가 무엇인지 시범을 보이면서 본의 아니게 예능감을 보여주기도.
2012년 1월 24일 MBC 설 특집 프로그램 [[두근두근 흔들려]]에 출연해 [[애프터스쿨]] [[박수아|리지]]와 커플이 되어 고난이도의 [[에어로빅]] 체조 공연을 펼쳤다. 처음부터 리지를 파트너로 지목했고, 극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 둘이 모여 꽁기꽁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로 상대방이 자기에게 실망할까봐 걱정하는 소심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2012년 하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태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상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순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태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순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상황.
여기서 끝나면 모르겠는데 1월 23일 경, 팬카페에 '''내가 로봇도 아니고 거짓연기는 더 이상 못 한다. 참을만큼 참았다'''라는 식으로 글을 올렸다가 삭제. 이에 대해서 [[우리 결혼했어요|거짓 연기]]라는 게 우결인지 관심이 쏠리는 찰나, 빠르게 소속사에서 해명을 했다. 쓴 글은 이준 본인이 썼으며, 소속사와 차후 활동에 대해서 의견조율이 잘 안되어서 쓴 것 이라고... 결국 우결에서 [[http://news.nate.com/view/20130130n26719|하차]]하여 2월 2일까지만 출연.
2016년 무한 도전- 웨딩 싱어즈에 광희 친구로 윤두준, 정용화와 함께 출연했다.
2015년 1월 7일 프레인TPC와 전속계약을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6&sid2=221&oid=241&aid=0002314915|체결했다]].
[[고영욱]]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 불거진 후, 이준이 2011년 3월에 방송된 [[강심장]]에서 고영욱에게 여자친구를 두 번 뺏겼다는 발언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2315925|해당 기사]] 방송 당시에는 선배인 고영욱에게 버릇 없이 군다며 야단을 맞는 등 굉장히 억울한 대접을 받았다.[* 그 당시 예능이라고 옹호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예의 없다며 곱지 않은 시선이 더 많았다. [[http://loganel.tistory.com/entry/%EA%B0%95%EC%8B%AC%EC%9E%A5-%EC%9D%B4%EC%A4%80-%EB%8C%80%EC%84%A0%EB%B0%B0-%EA%B3%A0%EC%98%81%EC%9A%B1-%EB%82%A8%EB%B4%89%EA%BE%BC-%EB%A7%8C%EB%93%A0-%EC%B5%9C%EC%95%85%EC%9D%98-%EB%94%94%EC%8A%A4|그 당시 올라온 글 참고.]] ~~글쓴이 이불킥 각~~ 유투브에서도 리플을 보면 과거와 현재의 반응 차이를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AjN0XJdESlg#!|유투브]]]
2018년 2월 12일, 난데없이 군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그린캠프]]로 보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2892694|#]] 하지만 이 기사가 나온 후 소속사는 자살 시도는 물론 [[그린캠프]]로 간 것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으며, 신병위로휴가 당시 연인이었던 정소민씨와의 오붓한 데이트 등의 모습이 나오며 팬들을 안심시킨 한편, 오보를 접한 가족들은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2018년 3월 23일 부로 공황장애를 이유로 현부심을 받아서 현역에서 [[사회복무요원]](보충역)으로 전환하여 잔여 기간 동안 복무한다는 보도기사가 나왔다.
|| 노미오와 줄리엣 || 노미오 || 한국어 더빙 ||
- 창작:IDF . . . . 19회 일치
IDF 회원국은 자국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IDF에 군사 파병을 요청할 수 있다. 파병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사태는 외국의 침략, 국내의 내전, 대규모 폭동, 대규모 재난 등이다. 회원국의 요청에 따라서 IDF 이사국의 승인 결의와 함께 파병이 이루어진다.
* 사무국 : IDF에서 자체적으로 고용된 사무 직원으로 구성된다. IDF의 운용 업무와 행정 실무를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조직에서 '국방부'에 해당한다. 관료주의적 경향이 강하며, 사령부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특수훈련을 받은 정예군인으로 구성된다. 파견 주둔지에서 적대 세력에 대하여 침투, 암살, 파괴 공작 등을 담당한다. 대원들 가운데는 각국의 특수부대 출신이 많으며, 각국의 특수부대와 협력하여 다양한 특수작전훈련을 받으면서 특수작전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창설 이후 다양한 실전 투입 경험이 있어 각국의 일류 특수부대와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러 작전에 투입되어 IDF의 명성을 높였다.
파견 주둔지에서 민사작전을 담당한다. 공병대와 의무대로 구성되며, 피해 복구와 재건 작업, 민간인 구호 등을 진행한다. 배급소와 진료소를 설치하고 운영하여 민간인들에 대한 식량, 의료 서비스 공급 등의 업무를 한다. 파견 지역의 치안 확보와 재건에 기여하고 반군의 성장을 막는다. 각종 국제 구호 조직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재해지에 나타나는 볼란티어(자원봉사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임무도 맡는다.
IDF 항공대는 IDF 군 부대의 수송 임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수송기와 수송헬기를 주로 운용한다. 이는 가맹된 각 국에서 IDF가 굳이 공격성이 높은 항공전력을 보유해야 할 필요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 대신 수송기나 수송헬기가 다소 과도한 수준으로 보이는 '방어용' 무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IDF 사령부 측은 이러한 상황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투기 구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IDF 사무국 측은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군축으로 몇몇 선진국에서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위태롭게 돌아가면서, IDF에 전투기 구매가 타진되는 경우도 있다.
IDF 해양대는 세계 여러 해역의 치안 악화와 그에 따른 해적 대처 임무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비교적 뒤늦게 창설되었다. '해군'에 해당하지만 그 특성상 해군보다는 해안경비대에 가까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보유 함정은 원양 항해 능력과 헬리콥터 운용 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IDF는 독자적으로 훈장을 비롯한 보훈 체계를 갖추고 있다. 훈장은 사령부에서 추천하여, 사무국에서 조사와 심의를 거쳐, 이사회에서 결의하여 수여된다. 훈장 수여 절처가 복잡하고 심의가 까다로운 편이라서 잘 수여되지 않는다. 훈장 수여자에게는 등급에 따라서 소정의 연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IDF군의 장비와 훈련은 해외파견, 치안유지, 대 게릴라 전, 특수작전에 특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DF군의 훈련도와 장비 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이며, 선진국 군대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DF 군의 전력은 상당히 미묘한 수준으로 '억제'되어 있다. 분명히 IDF는 훈련이 잘 된 군대이고 실전 경험이 풍부하지만, 정보자산이나 공군, 해군이 빈약하고 강대국 군대와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강대국의 협력이 없는 '독자적인 활동'은 제한되어 있다.
파병을 요청하는 국가 측에서는, 비록 IDF 역시 강대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친다고는 하나 국제기구라는 틀을 가지고 있으므로 직접적으로 외국 정부와 외국 군대의 개입을 직접 요청하는 것보다 해당국 정부에서 정치적 부담을 적게 느끼게 된다. 강대국처럼 점령을 바탕으로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IDF는 국제기구라는 특성상, 자국 군대와는 달리 쿠데타를 벌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어 신뢰받는 전력으로 여겨진다. '국제기구'라는 특성상 IDF가 특정 국가를 점령하고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IDF는 여러 나라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 IDF의 가맹으로 메겨지는 분담금은 실제로 각 국이 자국의 주도로 '쓸만한 군대'를 IDF와 같은 규모로 키우는 비용과 기간을 고려하면 IDF 가맹은 싸고 간편하게 적절한 군사력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IDF는 비교적 저렴한 군사비로 비상시에 "훈련도가 높은 군대"에게 확실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각 국 정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경제적인 '군사 보험'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 츠키시마 케이 . . . . 19회 일치
|| 3학년 || [사와무라 다이치] || [스가와라 코시] || [아즈마네 아사히] ||
독설가에 냉소적이며 남을 비꼬는 데에 꽤나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다. 또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경기에는 매우 냉정하게 임하고 블로킹 실력도 좋지만 리시브가 약하다.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wiki:"히나타 쇼요" 히나타]]의 입부 경기 때 상대팀이었다. 저 둘이 입부 경기를 위해 한창 연습하고 있을 때 나타나, 히나타를 '초등학생', 카게야마를 '제왕'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이후 [wiki:"야마구치 타다시" 야마구치]와의 대화에서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쓸데없이 열 내는 녀석들'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종종 카게야마를 '제왕' 혹은 '엘리트'로, 본인을 포함한 평범한 배구부 부원들을 '서민'으로 칭하곤 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연습이나 시합 중 카게야마와 자주 부딪치지만 그때마다 [[wiki:"사와무라 다이치" 사와무라]]가 --웃으면서-- 말린다.
인터하이 3차 예선, 아오바죠사이와의 시합에서 [wiki:"스가와라 코시" 스가] 및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가는 카게야마와 교체되면서 카게야마에게 '츠키시마는 '''정면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직접적으로 생각을 물어보아야 한다'는 뉘앙스의 조언을 했다. 이 조언을 들은 카게야마가 경기 중 츠키시마 본인에게 방금 토스는 어땠냐고 정면으로 물어오자 처음에는 '닥치고 이 공을 때려, 서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짜증난다고 답했다. 이후 카게야마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생각을 하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다, 내게도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으니 균일한 토스를 달라'고 --웬일로 짜증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듣고 고분고분하게 츠키시마가 본인의 생각대로 공을 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한 토스를 올려준다. 이 토스를 활용하여 츠키시마는 수준급의 페이크를 여러 번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스파이크로 결국 점수를 따낸다. ~~장하다 츳키~~
인터하이 예선 탈락 후, 코치로부터 히나타와 MB로서 시라토리자와의 우시와카도 막을 수 있는 블로커가 되어 달라고 부탁 받았다. 그러나 씩씩하게 대답한 히나타와는 달리 속으로 '우시와카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 한다. 부활동이 끝나고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츠키시마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에? 싫어(...).' 히나타가 재차 부탁하자, '[wiki:"히나타 쇼요" 작은 쪽]에게만 부탁하게 했다니 비겁하네, 그 쪽의 [wiki:"카게야마 토비오" 큰 쪽].'이라며 카게야마에게도 부탁을 요구했다. 결국 카게야마에게는 엎드려 절 받기로 부탁을 받아 냈다. --공부르으을!! 가르쳐주세요 이 자식아아아!!!-- 이후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성격부터 안 맞다보니 여러모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주전으로 활동하던 아키테루는 카라스노고등학교 배구부에 입부하면서 주전에서 떨어졌다. 당시의 카라스노는 우카이 전감독과 [[히나타 쇼요]]가 동경하는 '작은 거인'이 활동하던 시기로(아키테루와 작은 거인은 아키테루쪽이 한 학년 위), 카라스노가 현내 톱의 강호였던 시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츠키시마는 카라스노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도, 벤치도 아닌 응원석에 있는 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의 실력을 '에이스'라고 믿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 그 이후부터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마인드가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고, '목숨 걸 필요도 없는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는 사람'에게 회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순간의 목격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
- 풍운 . . . . 19회 일치
두 주인공, 보경운과 섭풍, 그리고 웅패와의 대립이 주된 줄거리. 였다가 중간에 중원 정복을 노리는 동영 무사들이 끼어들면서 동영과의 대결이 중심이 된다. 절무신, 천황 등을 쓰러뜨리고 동영세력은 궤멸된다. 그러나 섭풍은 마도(魔刀)를 익혔다가 그만 마인(魔人)이 되어버려서 마도에 빠진 섭풍 때문에 천하가 멸망할 위기가 오고, 이를 막기 위해서 보경운이 나서게 된다. 치열한 싸움 끝에 보경운은 섭풍의 마인 상태를 풀어주는데 성공하지만, 절벽에 떨어져서 실종되면서 마무리 된다.
보경운과 섭풍, 그리고 웅패와의 대립을 중심으로 천하회의 내분을 주로 그린다. 무쌍성의 잔당이 처음에는 적수로, 나중에는 보경운과 섭풍의 한팀으로 등장. 천지12살이 웅패의 아군으로 등장했다가, 웅패가 패배하자 배신을 때린다.
제석천에게 낚여서(…) 천문에 들어가지만, 천문의 문도로서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과 회공과의 우정에 갈등을 느낀다. 결국 회공을 돕기로 하고 천문을 배신한다. 최후의 순간에는 제석천의 공격에 받아 얼음에 갇힌 회공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부딪쳐서 얼음을 부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장렬하게 사망. 그러나 그의 피가 얼음의 틈새로 뚫고 들어가 회공의 몸에 닿는 순간, 무이의 죽음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 회공은 연철수의 공력이 극한을 넘어서 얼음을 뚫고 나와 제석천에게 타격을 입힐 정도의 활약을 하게 된다.
'풍운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그로 인해서 잃을 것이다'라는 예언자 니보살의 예언 때문에 자신이 천하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심복 제자 보경운과 섭풍에게 편집적인 경계심을 품고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사용한 '마가무량'의 위력에 패배. 이후 천하회의 내분으로 도리어 이전의 부하와 협력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스스로 무공을 폐하고 평범한 촌 늙은이가 되어서 딸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는 것만 생각하지만, 유일한 희망이었던 딸이 보경운의 검에 실수로 살해. 절망에 빠져서 보경운의 절세호검에 스스로 몸을 찔러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어린아이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얼굴은 늙어서 애늙은이다(…). 특기 무공은 환술을 보여주는 동심진경. 과거 중원 최강의 살수집단이었던 조직 '천지'의 보스. 그와 비슷한 괴인들인 '천지12살'을 이끌고 있다.
보경운이 무쌍검을 훔치려고 천하제일루에 잠입했을 때 갑자기 천지12살과 함께 등장. 이들은 사실 웅패와 협력하는 관계였다. 천하제일루에 숨어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이들의 악행을 보다못한 검성에 의해서 천지가 박살나버렸고 간부였던 천지12살과 도주했는데 도중에 웅패를 만나서 그와 협력하는 대신에 검성으로부터 숨겨주기로 했기 때문.
배검산장-절세호검편에 등장. 간사한 외모를 가진 검법가. 자신의 무공에 맞는 검을 찾는데 집착하고 있으며, 좋은 명검을 받는 대신에 마누라를 검마에게 넘겨줄 정도(…)로 검에 극도로 집착한다. 그 만큼 검을 보는 안목은 대단히 높다. 하는 짓을 보면 개그 캐릭터 같지만 상당한 강캐였는데, 배검산장 편이 끝나고 동영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삭제당해서 검마와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자신이 검술에 몰두하느라 버렸던 여인을 죽여버리거나(…), 무명과 억지대결을 하고 그만 다 내려놓으라는 무명의 말도 받아들이지 않는 등. 고집센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웅패와의 결전에 나서지만, 결전장에 들어오기 전에 계단에서 이미 수명이 다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육체가 죽었음에도 오직 의지만으로 자신의 무공 인생을 모두 담은 '성령검법 검입삼'을 구현. 웅패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지만, 보경운이 방해로 실패하고 눈도 못 감고 죽고 만다. 이후 사체는 --아직 깨끗한 몸이었던-- 검신이 회수하여 조촐한 '검성지묘'에 묻힌다.
무쌍성의 성주. 웅패와 회동하면서 협력하나 싶더니 몇컷 뒤에 목만 남기고 죽어있다(…). 살해한 것은 바로 섭풍으로서, 웅패의 짐작으로는 섭풍보다 몇배는 더 강한 독고일방이 섭풍의 저력을 당해내지 못한 것에 웅패는 놀라워했다. 독고일방이 살해당하자 무쌍성은 망해버렸으나, 독고명 등이 무쌍성의 재기를 노리고 활동하게 된다. 또 웅패는 이 때문에 검성의 도전을 받게 된다. 무쌍성과 대립하면서 검성이 있음을 강조하는 웅패의 모습을 보면, 원래 무쌍성 자체가 검성빽(…)이 컷던 것 같다.
본래 독고일방을 살해한 섭풍을 원수로 보고 있어서, 섭풍을 공격한 것을 계기로 대립한다. 하지만 섭풍이 천하회에서 물러나자 일단 웅패에 대항하는 협력자 관계가 되고, 나중에는 섭풍에게 복수를 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웅패와 천하회가 멸망한 뒤, 동영편에서는 특별히 끼어들지 않고 무쌍성을 재건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영편 막바지에 천황의 첫째 아들의 사다리에 걸려서 어처구니 없이 사망. 무쌍성을 재건하려는 야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여동생 독고몽은 딱히 무쌍성 재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독고명을 도와주는 승려. 수염이 덮수룩하게 나있으며 달마 대사 같은 인상. 무공으로는 그 유명한 [[여래신장]]을 쓴다. 무공의 고수로서 장문인 급 몇명과도 한꺼번에 대적할 수 있으며, 초반부 보경운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강자.
초반에 독고명의 항룡신퇴 vs 섭풍의 풍신퇴처럼, 이쪽은 석무존의 여래신장 vs 보경운의 배운장 같은 구도로 라이벌을 형성한다. 아마도 기존에 이름이 알려진 유명 무공들을 차용하여, 풍신퇴와 배운장이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천상권은?--
초반부 만악의 근원(…). 천기를 읽을 수 있는 뛰어난 예언자로서, 웅패에게 풍운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그로 인해서 잃을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웅패는 이 때문에 당초 자신의 심복으로서 아끼던 보경운과 섭풍을 제거하는데 편집적으로 집착하게 되고, 그 때문에 도리어 풍운에게 패배하여 천하를 잃고 만다. 니보살 자신도 천기를 많이 누설한 탓에 하늘에서 내린 독에 중독이 되고, 가족을 모두 잃었으며, 최후에는 예언을 누설할 것을 염려한 웅패에게 손녀와 함께 살해당하고 만다.
'''천상권''' : 진상이 사용하는 무공. 권법. 서리 상(霜)자를 사용하며, 그 명칭처럼 [[얼음]] 속성을 지니고 있다. 배운장, 풍신퇴와 대응하는 웅패의 삼대 절학이었으나 정작 그 위상은….
진상의 사후에 웅패가 약간 쓰는걸 제외하면 묻혀 있었으나, 사실 진상이 자신의 무공이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고향 마을에 천상권보를 보내 두었다. 그걸 부여국 성왕이 습득하여 사용한다. 여기서 본래 배운장,풍신퇴와 함께 동방창룡의 동료가 만든 무공으로서, 사실 배운장,풍신퇴 이후에 천상권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천상권이 가장 우위에 있다는 설정이 밝혀졌으나. 진상도 성왕도 쩌리스럽게 끝나버렸기 때문에 천상권의 이미지는 회복할 수 없었다.
'''성령검법 검입삼''' : 웅패와의 대결에 나서던 검성이 노령으로 기력이 다하여 미처 대련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순간에 완성한 성령검법의 궁극형태. 검성이 죽음을 맞는 순간의 의지로서 구현된 검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양기와 생명의 표상인 무명의 '천검'에 대응하는 죽음의 검법. 무림의 신화, 검성을 능가하는 실력을 지닌 영웅 무명 조차도 검입삼은 천하무적의 무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을 정도. 그 설명에 걸맞게 위압감은 엄청나다.
* 가족학살주의 : 아동학살주의(…)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가족학살주의(…)도 있어서, 주인공의 아내, 아들, 딸 등의 가족 캐릭터는 거의 다 죽고 본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슬픔으로 영웅인 주연 인물들의 비통한 인생을 상징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가족이 정말 하나같이 정기적으로 등장하기만 하면 포로가 되거나 죽어 나빠지니(…) 좀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 김갑수(배우) . . . . 18회 일치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여기에 또 한번의 대박을 친 것이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의 [[수양제]]. 간지가 흐를 때는 너무 간지가 흐르고 패륜적일 때는 그야말로 수양제의 패륜적인 성격을 완벽하게 잘 보여줘서 주인공 연개소문을 [[페이크 주인공]]으로 전락시켰을 정도.--덤으로 희노애락을 다 볼 수 있었다-- 이후 [[대왕 세종]]에서 [[황희]]로 출연, [[태종(조선)|태종]]으로 출연한 [[김영철(배우)|김영철]]과 함께 '[[궁예|보스]]와 [[종간|최측근]]' 콤비로 인연을 이어갔으며, [[추노(드라마)|추노]]에서 [[인조]]로 단 몇 장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 파트너에서도 거물급 국회의원 권희수역으로 이중인격적 연기를 잘 선보였다.
의외로 2004년에 [[영웅시대]]라는 드라마에서 고 정몽헌 회장으로도 분하여 투신자살하기까지의 고뇌와 아버지 [[정주영]] 회장([[최불암]] 분)이 내린 대북방사업을 완수시키기 위해 분투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직후 정몽헌 회장 1주기 추모식이었는데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을 간지나게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참석해줄 것을 청하기도 해서 실제로 추모식에 다녀오기도 했다.
1999년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당시로선 파격적인 KBS 드라마 '슬픈 유혹'에서 주진모와 연인 사이로 나오기도 했다.[* 키스신도 있었다!] 극중 자고있는 주진모의 등(그것도 헐벗은 상황)을 보고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 장면이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다 한다.~~[[감비노]]도 궁금해 하더라고 [[등짝을 보자]]~~ 무릎팍 도사와의 대화중, '쌍화점에서 주진모와 조인성이 동성간의 사랑을 연기했는데 봤느냐?'라는 질문에 '''[[오유가또|진모가 또]]?'''라는 발언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2003년]]에 [[장화, 홍련]]에서 [[염정아]]의 남편이자 [[임수정]], [[문근영]]의 아버지 역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7년후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문근영의 아버지로 출연. 이와 비슷하게 [[2006년]]에 드라마 [[연애시대]]에 [[손예진]]의 아버지로 출연했는데 2012년 제작중인 영화 [[공범(영화)|공범]]에서도 손예진의 아버지로 나온다. 근데 둘 다 사이가 별로. 특히 공범에서는 손예진이 아버지를 납치범이라고 의심하는 설정.
이상하게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사망전대|극중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단명]] [[전문]] [[배우]]라는 평을 얻고 있다. 특히 [[2010년]] 들어 출연작에서 맡은 배역들이 연이어 사망해서[* 아이리스, 거상 김만덕, 제중원, 신데렐라 언니, '''즐거운 나의 집'''.] [[사망전대]]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의견이 있다.[* 연륜이 많아 비교적 비싼 준주연을 일찍 극에서 하차시킬 수록 제작비는 세이브된다는 원리도...] 이게 본인에게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해서 달갑지 않은지 아예 [[무릎팍도사]]에 한 번 나와서 '이 신세를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겠느냐'고 고민 상담을 했을 정도.[* 물론 프로그램 특성상 진지한 질문일 리는 없다.] 떠오르는 [[사망 플래그]]시다.
[[SK텔레콤]]의 Hoppin[* 이후 SKT와 [[SK 플래닛]]이 분사할 때 SK 플래닛으로 넘어갔다.]이 출범할 때 영상 광고에서 아예 이 컨셉을 써먹었다. --읔잌엌!--
이번엔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드라마)|즐거운 나의 집]]에 출연, 출연 1분 20초[* 그것도 1회 방송의 2분 54초부터], 극 시작 3분만에 죽음을 맞이하여 6번째 사망 및 최단기간 사망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ㅎㄷㄷ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김갑수씨 본인은 "죽음이란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화면 상에서는 금방 사라져 버리지만 중요한 역할이어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극 중 [[회상]]신을 통해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나왔던 장면을 다시 트는 회상 씬에 나와도 출연료는 지급된다. 심지어 [[영정]] 사진으로 나와도 준다. 물론 직접 나오는 것에 비하면 일정 비율로 깎고 주지만. ~~안 찍고도 돈은 받으니 배우 입장에선 좋다고 해야 하나?~~]
* [[바이크]] 매니아라고 한다. 바이크를 타면서 찍은 사진 밑에 '라이딩 중 애마와 잠깐 한컷 ㅎㅎㅎㅎ'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사실 소문난 바이크 매니아이다.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10411000163|이 기사]]를봐도 알겠지만 직접 중고 바이크 거래에 나설 정도이며 바이크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은 듯하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10245|힛갤 간 구매자의 글]]]
* 그 밖에도 미니홈피에 올린 사진들을 보면 브라운관 내의 중후한 분위기와는 달리 소탈한 일상을 담은 것이 대부분이다. 트위터도 운영한다고 한다.
* [[군기반장]]이기도 한데, 어느 정도냐면 김갑수처럼 군기반장인데 그 악명이 자자한 [[이경실]]([[이경규]]와 [[홍기훈]]조차도 꼼짝 못한다.)이 알아서 눈치를 볼 정도다.
||<|3> MBC || [[개와 늑대의 시간]] || 정학수 || 조연 || 사망 ||
||<|2> 1999년 || KBS2 || 슬픈 유혹 || 서문기 || 주연 || [* [[주진모(1974)|주진모]](!!!)와 동성애 키스로 유명한 작품이다.] ||
|| 1992년 || KBS1 || [[삼국기]] || 성충 || 조연 || 사망[* 공교롭게도 이 때 자신을 죽게 한 [[의자왕]] 역할의 [[길용우]]씨와는 같은 소속사([[Fe 엔터테인먼트]])에 선후배 지간으로 있다.] ||
- 김상중(배우) . . . . 18회 일치
|| '''본관''' ||<(> [[광산 김씨]][* 광산 김씨 40세손 '中'자 항렬이다. 후배 배우인 [[김수로(배우)|김수로]](본명은 김상중)와 [[김아중]]과 같은 항렬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배우 김수로의 본명은 김상중과 본관, 항렬까지 같다. 다만 한자까지 같지는 않고 김수로의 본명 김상중은 서로 상(相)이 아닌 위 상(上)을 사용한다.] ||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배우로 악역을 맡았을 경우 특유의 카리스마가 특징적으로 잘 나타나 추적자에서 손현주와 대립하는 강동윤 역 등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으로 잘 소화해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찌질하고''' 코믹한 연기도 잘 소화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투사부일체]]에서 오상중역으로 대표적인 찌질+코믹연기를 보여줬고[* 지금도 인터넷에 하하와 호흡했던 연기장면이 잘 알려졌는데 정말 찌질하게(...) 나온다.[[티비플|--미안해요 보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에서의 홍준표 역으로, 두 여자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찌질한 모습을 보여 많은 욕을 먹었다. 김희애와 동급에서 연기하는 본인의 커리어 정점을 장식한 작품인데, 여기서 희대의 표정연기는 유명한 대사인 "감자 좀 쪄줄래?"와 함께 짤방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인 [[엄마가 뿔났다]] 에서도 짧은 특별출연에 불과했으나 홍준표를 생각나게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 아줌마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에서는 능력있는 차도남이지만 가족에게는 다정한 삼촌역을 맡아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다.
잘 안어울릴것 같지만 의외로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홍상수의 작업방식이나 영화 등에 회의적인 입장이라 깔 겸 캐스팅에 응했다고한다. 하지만 함께해보니 배우들이 왜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의외로 잘 어울렸다.'''[* 사실 이런 반응은 홍상수 영화 캐스팅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고현정이라든지 김승우 이기우 등등 의외로 좀 있다. 이중 고현정과 이기우는 몇 편을 더 주조연으로 홍상수와 작품을 함께했다.] 아무래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다져진 배우의 힘일 듯. 보통 나오는 기존의 남자상에 비해 좀 더 점잖고 젠틀하게 나왔긴 했는데 홍상수 영화 분위기 상... 영화 북촌방향 후반부 리얼했던 취한 연기[* 참고로 이런 장면을 찍을 때 홍상수는 배우들에게 진짜 술을 먹인다. 술에만 한정이 아니라 자다깬 장면이있을 시 진짜로 배우들을 좀 재우기도 하고 심지어 배우가 몸이 좀 안좋다 하자 한의원 신을 넣어 치료와 촬영을 동시에 하는 감독(...)]나 우리선희에서 제자와 만나는 교수의 모습은 브라운관에서만 김상중을 봐온 일부 팬들에게 신선할 수도 있다.
그리고 김상중의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테지만 그는 [[정신지체]] 연기도 잘 어울리기도 했다. 1997년 [[신현준(배우)|신현준]], [[심혜진]]과 출연한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에서 여인숙을 소유한 정신지체 형 '기태'역할을 소화하여 그 해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아쉽게도 [[넘버 3]]에 출연한 [[송강호]]가 수상하긴 했지만 만약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수상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 [[최민수]]가 인정한 착한 남자. [[무릎팍도사]]에 김상중의 [[친구]]이기도 한 [[조재현]]이 출연했을 때 [[최민수]]와 만났던 이야기를 했는데 김상중이 착하다는 언급이 나왔다(?). 최민수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최민수가 "재현아, 상중이 아냐? 저번에 상중이 만났는데 상중이가 착하더라"라고 해서 조재현이 "네 형, 상중이 착해요."라고 했는데 최민수가 계속 '상중이 착해'라는 언급을 반복해서 짜증났다고 한다. '이 형 왜 자꾸 내앞에서 상중이 얘기만 하시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2015년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드라마)|징비록]]에 주인공 [[류성룡]] 역으로 캐스팅되었는데 기사가 나오자마자 덧글에는 '그런데 말입니다'를 비롯한 그것이 알고싶다 관련 드립들이 달리고 있다. 그런 드립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방영 초기에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톤과 겹쳐서 [[디시인사이드]] 징비록 갤러리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바 있다. 멘트의 고조가 사극의 전형을 구현하면서 자신의 장기인 조곤조곤하면서 정확한 대사전달을 능히 하고 있어 연기력 자체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고 볼 것이다.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두운 세트에서 깔끔하게 슈트를 차려 입은 중년이 생각나는데 조선시대 공복을 입고 있으니 그리고 마침내 징비록 40화에서 '그런데 말입니다'가 대사로 나와버렸다! 덧붙여서, 선조의 찌질함에 열받은 네티즌들은 김상중의 훌륭했던 악역 연기에 힘입어 [[https://www.youtube.com/watch?v=qR_0MJVAnGY|선조를 대놓고]] [[https://www.youtube.com/watch?v=Q4jfZU9um2M|비난해대는 영상을]] [[https://www.youtube.com/watch?v=D9HYf8cTLk8|만들고 있다.]]
* 2015년 힐링캠프에서 [[EXID]]의 [[하니(EXID)|하니]]와 [[위아래(노래)|위아래]] 댄스를 추었고 [[애교]]까지 선보였다. 중후한 목소리 버전과 애교 버전의 두 개를 선보였는데 여태까지 볼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쁜 녀석들에서 김상중의 모습은 약간 삐딱한 자세를 갖고 있는데 당시 촬영중 목 디스크가 왔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중지할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일단 드라마 종영까지 마친 뒤에 수술을 했다. 통증 때문에 어쩔수 없이 취한 삐딱한 자세인데 그 특유의 삐딱한 자세가 오히려 극중 배역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 [[SNL 코리아]]에 추석특집의 호스트로 출연했다. 바로 위에 기재된 힐링캠프에서도 여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줬고 이번에도 그 모습은 건재했다. 오프닝에서 등장할 때 노래를 부르고 더 소름끼치는 노래를 준비했다는 말에 유세윤이 오구탁으로 등장해서 흉내를 냈지만 김상중에게 리얼 오구탁 연기를 듣고 긴장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쁜 녀석들에서는 신동엽과 동성연기를 했으며, 디지털 쇼트 '시간암살자'에서는 미래에서 온 김상중([[정성호]])때문에 [[SK-ll|S'''J'''-ll]] CF에서는 "놓치지 않을거에요"가 아닌 "놓치지 않을겁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을거라 생각했겠지만 정성호가 CF에서 쓸데없이 무게를 잡아서 하던 CF도 다 끊겨서 굶어죽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도전한 [[주간 아이돌|월간 아이돌]]에서는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의 막내인 상'''쭝'''으로 나와선 아이돌 분장까지 하고 같이 춤을 추기도 하는 등 망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글로벌 위캔드에서는 심층취재의 특파원으로 출연해서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등 다국어를 보이는 등 여러 장면을 연출했다.
* 예능이나 광고에 출연은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종종 예능에 출연해서 활약을 하곤 한다. 생각보다 예능감도 괜찮은 편이라서 워낙 날카로운 차도남 이미지가 강한 그가 예능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갭모에|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최근 EXID의 위아래를 BGM으로한 야쿠르트 CF를 찍었다. 그의 댄스 실력도 같이 확인할수 있다.[* 이 광고속 위아래 BGM이 워낙 귀에 확 꽂히다보니 제품보단 위아래와 김상중의 춤 밖엔 기억에 안남는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롯데리아]]의 [[모짜렐라 인 더 버거]] 광고를 찍었다. 컨셉은 역시 그것이 알고싶다.
* 혼사와 관련된 [[흑역사]]가 있다.[* 이전에 한번 [[결혼]]을 해서 아들을 두었었는데 [[2000년]]에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_donga/200002/wd2000020120.html|이혼을 했었다]]. 이쪽도 이혼이라는 흑역사가 있다.] 2003년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49827|결혼 발표]]를 했었으나 [[신부]]가 [[파라다이스 그룹]] 재벌 2세 행세를 한 사기결혼으로 드러나 [[결혼식]]을 보름 앞두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04595|파혼했다]]. 진행을 맡고 있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종종 사기 결혼에 대해 다루곤 하는데[* [[2013년]] [[8월 10일]] 방영된 「내 아내는 누구인가」편과 [[2014년]] [[7월 5일]]에 방영된 「사라진 '신데렐라' 예비신부 실종 미스터리」도 이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과연 어떤 심정일지.
* 마리아와 여인숙(1997) - 기태
* 아버지와 마리와 나(2008) - 아버지 태수
- 김재박 . . . . 18회 일치
감독 임기를 끝내고, 바로 다음 시즌인 2010 시즌부터 [[KBO]]의 경기감독관 자리에 앉았는데 팬들에게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천취소]] 결정에 있어서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본인이 꼴리면~~ 비가 안 와도 때려버리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해대고 있기 때문에 반발이 심하다. 오죽하면 [[고척 스카이돔]]에서 경기 열어도 관중 오기 불편하단 핑계를 대고 우천취소 때려버릴 양반이라는 말이 나올까.
이런 팬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경기운영위원장이 되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17&aid=0002721631|소식]]이 들려오면서 팬들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거기에 개막 3일째인 4월 3일, 한화-LG와의 경기를 비가 그쳐가고 있는데 경기장 불량으로 취소를 해버려서 일요일 낮경기를 날려버린데다가 정작 경기시작시간인 2시에는 비가 그쳐버리면서 [[http://m.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2913861|욕을 더 먹고있다]]. 결국 KBO에서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10&aid=0000318562|기사]]가 떴다.
* 삼성이 한창 FA영입에 열을 올리던 시절 '''삼성처럼 돈으로 우승을 사면 누가 우승 못하나'''는 발언으로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전과가 있다. 그리고 2016년 FA와 용병의 영입으로 과감히 돈을 투자하고도 성적이 안나오는 한화 이글스를 동시에 비판하는 명언으로 남았다. ~~사실 이 발언은 [[선동열]]을 겨냥한 것에 가깝다. 2013년에 와선 재평가받고 있는 김재박의 드립이다.~~ ~~우승 못하고 [[556]]만든 [[김성근|이 사람]]은 뭐여~~ ~~자아비판에 가장 가깝다. FA 영입만 없다 뿐이지 강탈급 현금 트레이드들로 모았던 막강한 초기전력을 생각하면...~~
* 또한 여러가지 대기록을 망쳐먹기로 유명하다. ~~[[강귀태|기록 브레이커]]?~~ 과거 현대시절부터 시작된 행태로, 자세한 것은 맨 아래에 있는 항목 참조. 요근래 최대의 경력이라고 하면 2009 시즌 [[롯데 자이언츠|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택]]의 타율 1위 수성을 위해 경쟁자였던 [[홍성흔]]을 4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는 업적을 남기셨다. 박용택이 출전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뻔히 보이는 연속 고의사구는... 이 때문에 타팀팬뿐 아니라 '''언론사들에게도 까이는 중'''. 오죽했으면 80년대로 돌아갔다고 할까. 그 예시로 [[김영덕]]을 들었을 정도.
* 자신이 공들여 키운 [[박진만]]이 [[FA 제도|FA]]때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그때부터 삼성을 대놓고 싫어했다. LG에 와서도 '라이벌은 삼성'이라고 말을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말도 아니다. 김재박의 재임기간 중 삼성도 [[선동렬]]감독이 이른바 멍게강점기라 불리는 삼성 역사상 두 번째 암흑기를 열어 4,4,5[* 이 5위 때문에 삼성의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물거품이 되었다. 만일 이 때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2016년 삼성은 2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수근|야만없]](...)]라는 처참한 성적을 찍는 바람에 양 팀이 나란히 시궁창에 처박혔기 때문(...) 따라서 따지고보면 라이벌은 라이벌인데 '''삽질 라이벌'''(...)
* 2008년 시즌 종료후 LG구단 자체 행사로 펼쳐진 역대 올스타 경기에서 현역 선수가 무색해질 만큼의 유격수 수비와 송구를 보여주어, '''차기 시즌 LG 주전 유격수는 김재박'''이라는 LG팬들의 자조섞인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그 내용이 걸작인데, 정리하자면 '''난 잘했는데 [[프런트]]가 못했고, 선수들이 잘 안따라줬고, 구단이 안밀어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나. 모든 책임은 내가 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438&issue_item_id=8531&office_id=295&article_id=0000000306|이런 인터뷰]]. LG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팬들은 김재박이 앞으로 프로구단 감독을 맡기는 힘들다고 단언할 정도로 치를 떨었다. 이 와중에 묻힌 사실 중 하나는 [[이광은]] 전 감독 때부터 이어지던 LG 감독 임기 중 하차를 끝낸 인물이라는 것.
* [[불암콩콩코믹스]]의 숨겨진 주연(?).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드립 때문인듯. 심지어 '시범만화' 에피소드에서는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321n04463?mid=s1004&isq=3969|'''저사람 이만화 제일 많이 나와!!''']]라는 핀잔도 들었다.
* 2012년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가 감독을 잇달아 경질하면서 현장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러 언론들의 보도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전구장]]과 한화 2군경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것이 목격되면서 사실상 김재박으로 결정된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 한화 프런트는 김재박을 감독 단수 후보로 상부에 보고했지만, 수감중이던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서 그룹 경영 총괄하던 장남이 무조건 최고를 데려오라면서 김재박 대신 [[김응용]]을 찍어서 지시했다는 카더라가 인터넷에 퍼졌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김응룡]]을, [[넥센 히어로즈]]는 [[염경엽]]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지었다.
* 2014년 [[김시진]] 감독이 사퇴하자 [[박정태]]와 함께 롯데 감독 후보로 떠오르는 중이다. 다만, 일각에선 현대와 LG 시절부터 '초기 투자'를 많이 요구하던 김재박의 스타일을 들어 박정태 단독후보로 내세우면 욕먹을까봐 낸 구색맞추기 용 후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단은 [[이종운]]이 감독으로 선임되어 1년을 더 기다리게 됐다. 그래도 [[양상문]] 역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다시 [[LG 트윈스]]를 이끌었고, 김재박이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프런트가 시의 적절한 지원을 하는 구단의 감독이 될 경우 호성적을 기록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2006년 경 [[네이버 뉴스]]의 댓글이 개편된 이후 ''''위대한 김재박 감독님의 화려한 업적들''''이라는 비아냥성 제목으로 뉴스 댓글란에 [[꾸준글|꾸준히 게시되면서]] 퍼지기 시작한 글이 옛 [[리그베다 위키]] 시절 본 항목에 게시되었고, 이후 위키러들의 편집을 거쳐 아래와 같이 정리된 상태이다. ~~과장성 자료가 다수 첨가되어있으니 적당히 필터링 바람~~
* 1998년 5월 14일 해태전, [[이대진]]이 10타자 연속 [[삼진(야구)|삼진]]을 기록하고 있을 때 11번째인 4번타자 [[김경기]]에게 [[번트]]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기록지에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된 것으로 나오고[* 번트였다면 유격수 땅볼아웃이 될 리가 없다.], 야구의 추억이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은식]]은 이대진을 주제로 한 칼럼에 번트를 댔다는 내용을 썼지만 후에 이대진과의 인터뷰에서 "갖다 맞추려는 스윙을 했지 번트는 아니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경기 영상의 부재와 '''김재박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사건.''' 이미 10타자 연속 삼진을 당했는데 11타자 연속 삼진 막는다고 얻을 것도 없다. 그런 것은 상대방을 도와주는 꼴이다. 매경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신기록을 체크하며 경기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 2000년 5월 19일 한화전, [[박경완]]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5번째 타석에서 교체'''(…). 당시 팀메이트 [[조웅천]]에 의하면 사실은 [[빈볼]]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상대였던 [[한화 이글스]]가 이 한 경기에서만 '''10홈런'''을 쳐맞는 추태를 보이며 처참하게 격침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빈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15년 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데, 2015년 5월 26일 마산 대 두산전에서 [[에릭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 그것도 투런 홈런만 한번 더 치면 되는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는데, 한 타석만 남겨둔 상황에서 7회 대수비 [[조평호]]로 교체된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차피 이긴 게임이었으니 이참에 후보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했다고 밝혔으며, [[에릭 테임즈]]에게 2번을 물어봤는데 테임즈가 쿨하게 승낙해서 교체했다고.]
* 이외에도 2000년 시즌은 특히 기록 밀어주기로 인해 시끄러웠다. [[임선동]], [[김수경]], [[정민태]]의 등판을 조정해가며 결국은 3명 공동 다승왕을 만들어냈으며, 다승왕 나눠먹기라고 크게 비판받았다. [[박종호]] 타격왕 밀어주려고 한 거야 위에 써져 있고, [[박재홍(야구)|박재홍]]의 타점왕 수성을 위해 10월에 들어서면서 득점 찬스 때마다 대타로 내보내 경쟁자였던 [[타이론 우즈]]와 [[훌리오 프랑코]]를 각각 4, 5점 차로 따돌리며 타점왕 수성에 성공시키는 등의 추태를 보여주었다.
* 2008년 5월 29일, [[이재우]]가 [[야맹증]] 때문에 항상 쓰고 나오는 [[고글]]을 지적하였다.[* 고글 착용은 규정상으로 위반이나, 어쩔 수 없거나 별 이상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례다.] 이 일로 흔들렸는지 그 해 [[방어율]] 1점대를 기록하고 있던 필승계투 이재우는 안타를 맞고 강판되었고, LG는 이와 같은 "감독님의 활약" 덕에 [[잠실시리즈|잠실 라이벌]]인 두산전 5연패를 그날 끊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18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의 현관에서 철포옥 핫사이키 "카츠카메 리키야"를 저지하던 드래곤 히어로 [[류큐]]와 웅영고 인턴들은 그를 어렵지 않게 제압한다. 리키야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은 접촉한 상대에게 "활력"을 흡수해 거대화하는 능력. 그를 제압한 류큐팀은 서둘러 선행한 히어로 연합군을 따라가기 위해 저택으로 돌입하려 했다.
* 류큐가 드래곤폼으로 리키야를 붙들고 우라라카가 상공으로 띄운다. 그걸 아스이가 혀로 잡아끌고 십자로까지 이동. 네지레가 그 위에서 전력을 다한 충격파를 날려 류큐째로 리키야를 바닥에 처박아 버린다. 류큐와 거대화한 리키야의 무게 때문에 지반이 무너지면서 단숨에 미도리야와 [[오버홀]]이 격전 중인 장소로 떨어진다.
* 목적지에 도달한 츠유와 우라라카는 오버홀과 싸우던 미도리야를 보고 방금 전엔 가짜 미도리아였다는걸 눈치챈다. 그 정체는 미도리야의 피로 변신한 [[토가 히미코]].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탈출 목적으로 [[Mr.컴프레스]]의 카피를 생성했다. 컴프레스의 능력으로 굴을 파서 지상으로 나가려 한 것.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고, 당초엔 핫사이카이 조직의 "핵"인 "에리"와 접촉하는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내내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오버홀과 히어로들이 교전 중인 지금 접촉을 노리는 것이었다. 트와이스는 본체인 자신들은 위험부담을 지기 싫으니 카피인 컴프레스더러 임무를 수행하러 오라고 떠민다. 컴프레스는 투덜대면서도 지시에 따라 하강. 류큐팀은 컴프레스를 보고 [[빌런연합]]이 현장에 나타난 걸 알아차리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뭐가 뭔지 파악이 늦다.
* 에리의 되감는 개성은 오버홀과 [[네모토 신]]의 융합을 "되감아" 분리시킨다. 에리는 지금껏 자신도 모르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오버홀에게 실험실의 쥐같은 대우를 받아왔다. 딱 한 번 스스로 탈출을 도모했지만 실패.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저주받은 것이 숙명이라 여기고 살았다. [[토오가타 밀리오]]와 나이트아이, 그리고 미도리야가 그걸 바꿨다. 오버홀이 죽어도 에리를 놓아주지 않듯 이들도 죽어도 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그녀는 전에 없던 마음을 각성했다.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 에리는 손에 잡은 망토를 미도리야를 향해 뻗었다. 원래 닿지 않았을 미도리야의 도약은 그 망토를 잡음으로써 목표에 정확히 닿았다.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상"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상태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상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반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의 행동을 보였지만 미도리야, 밀리오, 나이트아이가 죽어도 에리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이면서 의식이 바뀐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죽고 다치기를 원치 않는데서 나아가 자신이 남을 돕고자 생각을 바꾼 것. 본래 개성은 대상을 "되감는 능력"으로 오버홀의 수복 능력의 상위호환이다. 어린 탓에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스스로 의지로 쓰지도 못하고 불현듯 발동해 아버지를 태어나기 전 상태로 "되감아"버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모친인 두목의 딸에게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버림 받았지만 두목에게 거둬졌다. 두목은 오른팔격인 오버홀에게 보호와 개성 규명을 맡겼는데 오버홀이 조직을 장악하고 연구를 악용해 지금에 이른 것. 한 번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떨어지는 루밀리온의 망토를 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각성, 그와 함께 뿔에서 능력이 발현해 네모토 신과 융합한 오버홀의 상태를 이전으로 돌린다. 그리고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붙잡고 올라오도록 돕는다.
원래 두목에게서 에리의 보호와 개성규명을 부탁 받았는데 배신하고 그 능력을 악용해 지금의 사업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무자비한 학대와 인권유린은 덤. 자신을 믿고 에리를 부탁한 두목을 배신하기도 했다. 조직을 두목의 뜻과 다르게 이끌기도 했으니 두 번 통수를 친 셈. 미도리야에게서 선수쳐서 에리를 다시 빼앗지만 에리가 루밀리온의 망토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눈뜨면서 개성이 발동, 네모토 신을 흡수했던 상태를 되감아 다시 분리시켜 버린다.
트와이스가 탈출용으로 Mr.컴프레스의 카피를 만들어놨었다. 아마 컴프레스의 능력으로 소형화시켜서 가지고 다녔던 듯. 원래 목적은 "핵"인 에리와 접촉하는 것. 아마 에리의 카피를 만드는게 목적이었을 걸로 보인다. 탈출 이후에는 토가가 획득한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류큐팀을 유인, 역전하게 돕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다시 에리와 접촉할 기회를 만든다. 트와이스는 이때 자신들로는 오버홀이나 히어로들과 정면승부를 못하니 카피인 컴프레스를 앞세워서 목적을 달성하라고 종용한다.
- 보루토/1화 . . . . 18회 일치
* 쑥대밭이 된 나뭇잎 마을.--미래에도 부서지는 마을-- 파괴된 역대 호카게의 흉상 조각 위에서 우즈마키 보루토가 "카와키"라는 닌자와 싸우고 있다.
* 카와키는 왼손에 특이한 문신이 있는 닌자.
* 카와키는 "너도 7대와 같은 곳으로 보내주마"라고 하는데...
* 카와키는 닌자 시대의 끝을 선언한다
* 카와키와 같은 형태의 문신이 오른손에 나타난다.
* 보루토는 코노하마루 밑에서 사라, 미즈키와 한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 보루토는 반발하며 "그런 것 보다 히마와리의 생일을 잊어먹으면 안 된다"고 말을 돌린다.
* 그걸 알아본 보루토는 "구닥다리 같은 아버지 시대와 다르다"면서 뛰쳐나간다.
* 보루토는 이노진, 시카다이와 어울려 게임이나 하고 있는데, 미즈키, 사라다가 와서 같이 중닌 시험에 나갈 것을 권유한다.
* 보루토는 "너희 부모님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데 대체 누구냐"고 묻고, 미즈키가 대답을 꺼리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히마와리, 히나타와 만나 보루토가 먼저 귀가한다.
* 귀가해 보니 나루토는 먼저 집에와 기다리고 있었다.
* 즐겁게 히마와리의 생일잔치를 준비하는 나루토일가.
* 환영분신을 보내서 연기하고 있었던 것. 보루토는 히마와리의 생일을 망쳤다며 분노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8회 일치
알렉스는 카라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윈에게 DEO 메인프레임을 해킹해서 아버지에 대한걸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윈은 위험한 일이라 거절하려 하지만, 결국 승락하게 된다.
루시의 아버지 레인 장군이 DEO에 찾아와서, 슈퍼걸에게 미군에서 개발한 신형 병기와 싸울 것을 요청한다. 루시는 슈퍼걸에게 강제집행서를 내밀기도 한다. 모로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로봇을 공개하는데, 그것은 레드 토네이도였다.
그랜트 사장은 어머니가 자신과의 저녁 약속을 빼먹고, 작가들과의 담화에 나서서 실망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또 카라에게 쏟아진다.--[[내리갈굼]]-- 카라와 윈, 제임스와 루시는 노는 밤을 보내게 된다. 슈퍼걸 이야기가 나오자 루시는 자신이 직접 봤는데 별로 였다고 말하고, 카라는 거기에도 스트레스가 더해진다.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와 대결을 벌인다.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를 제압하는데 성공하지만,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인지 과도하게 타격을 입힌다. 레드 토네이도는 긴급 생존 모드가 발동하여 통제에서 벗어나고 만다. 레인 장군는 슈퍼걸이 과도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랜트는 카라가 바로 오지 않자 고함을 지르는데, 카라는 왜 그렇게 못되게 구냐고 분노를 퍼붓는다. 그랜트는 갑자기 어디로 가자고 카라를 끌고 간다. 알렉스는 레드 토네이도의 팔을 맥스웰 로드에게 가져와서, 찾는데 협력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맥스웰은 알렉스의 요청을 거절한다. 제임스는 루시, 레인 장군과 식사를 가진다. 레인 장군은 지미를 파파라치라고 비하하며 딸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대라고 깍아내린다.
그랜트는 카라를 바에 데리고 온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분노를 조절하고 풀어내는걸 알아내고, 정말로 화나는게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조언을 해준다. 제임스와 루시, 레인 장군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오는데 레드 토네이도가 나타난다. 루시는 레드 토네이도의 공격에 날려가고, 레인 장군은 중지를 명령하지만 레드 토네이도는 듣지 않고 공격을 하다가 제임스의 호출을 받고 날아온 슈퍼걸과 대결하게 된다.
카라와 제임스는 창고에서 각각 샌드백과 폐차를 달아놓고 두드리면서 화풀이를 한다. 계속 말을 내뱉다가 카라는 자신에게 잠재된 분노가 있었다는걸 깨닫는다. 카라는 자신에게 가장 큰 분노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라는 알렉스의 호출을 받고 DEO로 간다.
알렉스와 DEO에서는 크립톤 기술로 만든 레인 장군의 홀로그램을 미끼로 써서 레드 토네이도를 유인한다. 알렉스가 모로 박사의 위치를 찾는 동안,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와 대결한다.
알렉스가 모로 박사의 위치를 발견하였으나, 모로 박사는 뇌파를 이용해서 레드 토네이도와 연동하여 정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두었다. 알렉스는 --과학자 주제에 쑬데없이 강한-- 모로 박사와 격투전 끝에 사살한다.
루시는 군법무관을 사임하고 제임스와 함께 하는걸 택하고, 아버지와 같이 가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윈은 카라와 알렉스에게 자신이 조사한 것을 알려준다. 행크와 댄버스 박사는 남미로 어떤 외계인을 잡으러 갔었고, 거기서 행크와 댄버스 박사는 실종되었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18회 일치
* 종극에 다다른 [[미마사카 스바루]]와 [[사이토 소메이]]의 참치 대결. 미마사카는 놀라운 발전을 선보이며 사이토의 "홍옥알 스시"를 완벽하게 트레이스한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여전히 편파적인 진행 중. 미마사카가 흉내 따위로 사이토의 솜씨를 따라갈 리 없다고 장담하나 막상 시식을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 [[사이토 소메이]]가 완성한 "참치 십관 홍옥알 스시". 한 입 사이즈인 작은 크기에 참치의 각 부위를 이용한 열 조각의 초밥이다. 이스트와르는 교토 오이란들이 화장이 상하지 않게 먹을 수 있게 만든 작은 초밥에서 발전한 것 같다고 평한다. 그 말대로 오이란의 치장용품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작고 아름다운 초밥.
* 그때 [[카와시마 우라라]]가 마이크를 씹어먹을 기세로 폭발한다. 그녀는 반역자들이 갇힌 감옥까지 오더니 "건방진 소리만 한다"며 철창을 두드려 댄다. 한 마디로 "감히 사이토 선배를 이길 생각도 하지 마라"는 것. 그녀는 초밥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숙련이 필요한 일인지 역설한 뒤 그저 흉내쟁이일 뿐인 미마사카가 제대로 맛을 냈을리 없다고 폄하했다.
카와시마가 그 기백에 밀려 주춤하나 내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 초밥을 간장에 찍어 입에 넣는 카와시마. 그리고, 거센 맛의 폭풍이 몰아친다. 편견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식견이 한꺼풀 벗겨진다. 첫 번째 초밥은 감칠맛 넘치는 중뱃살. 표면에 간장을 가공한 "니키리" 양념을 발라 살의 맛을 끌어냈다. 다음은 붉은 살. 다시마 절임해서 미묘한 맛들이 입안에서 얽힌다. 세 번째는 희소부위인 카마토로. 폭력적일 정도로 넘치는 기름 맛을 산뜻한 밥알이 감싼다. 단 세 점을 먹었을 뿐이지만 미마사카의 초밥은 참치의 각 부위의 특징과 맛을 십분 활용한 절품.
카와시마는 이 초밥 밥이야 말로 이 절묘한 맛의 바탕이라고 지목한다. 미마사카의 초밥 간에는 식초 특유의 모난 맛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맛에 평범한 밥이 아님을 직감하는데. 미마사카는 친절하게 그 비결을 스스로 밝혔다. "붉은 식초". 일반적인 초밥용 식초는 쌀, 밀, 콩 등을 혼합 발효해 만들지만 붉은 식초는 장기 숙성한 "지개미"를 이용한다. 본래 에도 시대의 초밥에는 이 붉은 식초가 필수품이었지만, 제조에 5, 6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고급품이 된 것. 그러나 희소한 만큼 그 맛은 지금 확인한 대로다. 물론 그건 사이토의 비결이기도 했다.
* 미마사카를 형편없이 깎아내린 카와시마는 곧 그 말을 번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욕지거리가 치밀지만 일단 맛 본 음식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센트럴일 지언정 토오츠키 학원의 학생이니까.
반역자들은 기다리던 희소식에 반색이 된다. 하지만 카와시마 자신은 죽을 맛이다. 여전히 미마사카를 "스토커 자식" 취급하고 있지만 이제는 명백히 수준이 달라졌음을 인정했다. 뱀 같은 주도면밀함 속에 루비처럼 빛나는 정렬.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때까지 카와시마는 "리액션만은 피한다"는 신조가 있었으나 피해갈 수 없었다. 이스트와르의 코멘트 때문인지 오이란의 모습. 미마사카의 뱀같은 솜씨에 꽁꽁 묶인 오이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카와시마가 시집을 못 가는 건 그 기질 때문이지 미마사카 때문이 아니다.
* 아직 심사가 시작된 것 조차 아니건만 반역자 팀은 벌써 축제 분위기.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성공적인건 사실이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그것은 미마사카가 어레인지한 마지막 한 조각의 초밥에 달렸다. [[나키리 에리나]]와 소마는 친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말없이 승부를 주시한다. 소마는 항상하던 대로 까불거릴 만도 하건만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데.
* 카와시마가 여러 가지 신조가 깨진 바람에 분노의 포효를 하는 동안 샤름이 그녀를 달래며 미뤄진 심사를 속행하려 한다. 그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또 발생했다. [[코바야시 린도]]가 자신도 요리를 막 완성했다며 식기 전에 맛봐달라고 들이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대결 상대 [[메기시마 토스케]]는 물론 [[쿠가 테루노리]]와 [[츠카사 에이시]]의 요리까지 모두 완성되었다. 2라운드 참가자 전원의 요리가 완성. 갑자기 심사위원들이 바쁘게 됐다.
* 반명 "녹차"를 주제로 대결한 쿠가와 츠카사는 각기 컨셉이 뚜렷했다. 쿠가는 흑초를 사용한 탕수육 풍의 요리. 하지만 장식이나 플레이팅은 고급 이탈리아 음식을 연상시키는 세련미가 있었다. 과연 쿠가는 자신의 주전공인 사천요리로 살리기 어려운 차의 맛을 어떤 식으로 요리했을까?
* 츠카사의 음식은 4종류의 샤베트처럼 보이는 차가운 요리. 뜨거운 중화요리인 쿠가의 요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요리도 은은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는데. 그 이색적인 모습부터가 반역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 아직도 술이 덜 깬 [[안(식극의 소마)|안]]은 다들 한 꺼번에 달려들었으니 시식도 한 꺼번에 여섯 종류를 다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황당한 소리 같았지만 이스트와르는 안이라면 그렇게 해도 충분히 심사가 가능하며, WGO 심사관인 자신들도 마찬가지라고 자신한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2nd BOUT의 최종 심사. 과연 승부는 어떻게 갈릴 것인가?
- 신성우(가수) . . . . 18회 일치
데뷔는 1992년 1집 앨범 내일을 향해.[* 원래 [[부활(밴드)|부활]]의 리더 [[김태원(음악인)|김태원]]에게 발탁되어 김태원이 당시 결성했던 밴드 GAME의 보컬이 될 뻔했으나 김태원에게 이유 없이 쫓겨났고, 그 후 밴드 작은하늘의 기타리스트였던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 의기투합해서 솔로로 데뷔하게 되었다.]
미소년 → 미남 → 미중년 테그의 올바른 예시이다. 조각같은 외모, 키,기럭지, 허스키한 목소리[* 신성우 본인 말에 의하면, 원래는 미성의 고운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나 로커의 보이스를 만들기 위해 [[담배]]를 많이 피워 [[골초]]가 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일부러 쉰 목소리를 내면서 만든 목소리라고 한다.], 초콜릿 복근의 탄탄한 몸매.[* 라커 활동시엔 그런 몸매는 아니었고, 나중에 단련한 것이다.] 실로 곱게 늙는다는 말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중년|꽃중년]].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다만 하나 부족한 게 하나 있다면 유명세. 요즘 그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는 '[[크크섬의 비밀]]'에서 나온 신과장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상 [[진 주인공]]인데다가 연기도 괜찮았고 김선경과 로맨스 호흡도 상당히 잘 맞았다. [[김광규(배우)|김광규]]와 함께 최고의 인기 캐릭터.]
AR을 틀든 ,MR을 틀든,무대에 오를 때는 언제나 자신의 밴드인 '내일뉴스' 를 뒤에 배경으로라도 두었다.[* 한참 가요프로그램에선 '신성우와 내일뉴스'로 소개된 적도 있다.] [* 실제로 1집은 기타리스트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의 공동작업이며 밴드 형태의 음반이다. 형인 이근형의 프로듀스하에 동생인 이근상과 실제 밴드 로 데뷔 하려고 했으나, 제작중에 신성우의 솔로 앨범으로 변경 됐다는 얘기가 있다. 동생 이근상은 내일뉴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1집 앨범 뒷면에는 신성우, 그리고 드러머와 함께 사진도 실려있다. 1집부터 5집까지 이 형제는 편곡자로서, 기타리스트로서, 몇곡에서는 공동작곡가로 꾸준히 크레딧을 올리고 있다.] 다행히 LA메탈 풍의 <내일을 향해>의 인기가 워낙 오래 갔기에, 앨범의 활동도 오래 할 수 있었고, 1집 활동 막바지에는 발라드 <꿈 이라는건>도 소폭 히트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락 뮤지션의 이미지 때문에 신성우는 아이돌이 겉멋만 들어서 락커를 흉내내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성우 본인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굉장히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모양..
이후 2집은 자기의 원류인 헤비메탈/하드록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복장도 헤비메탈 시대의 끝물인 LA메탈 시대 보컬리스트의 상징인 가죽점퍼/가죽바지/롱부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타이틀곡 <노을에 기댄 이유>는 마이너의 헤비한 록 발라드인데 그리 대중적인 곡은 아니었지만, 후반부의 샤우팅에서 신성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1집에 비해 영 신통치 않았고, 급하게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밝고 부드러운 미드템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건>으로 주력노래를 바꾸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한다. 2집에는 특이한 곡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을 연상시키는 첫 곡 <요람에서 무덤까지>, [[데이빗 커버데일]] 의 솔로 시절을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브래스 사운드가 가미된 셔플리듬의 록넘버 <민아의 일기>등 앨범 발매년 1993년을 무색케 하는 세련된 넘버들로 가득하다.
신성우 3집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과 발표 시기가 거의 같았는데, --같은 3집이라서 그런지-- 서태지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 록으로 발매되었다. 실제로 몇몇 방송에서 서로를 '같은 실험적인 장르로 돌아온 동반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터너티브 록에 맞추어 춤을 춘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신성우는 제대로 록밴드의 형태를 갖추고 방송과 무대를 누빈다.
당시 활동에서 특이한 점은 타이틀곡으로 두 곡을 밀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카세트 테이프 기준 A면 첫번째 곡인 <기쁨이 될것을>,다른 하나는 B면 첫 번째 곡인 <'''서시'''>. 업템포에 경쾌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면서도 실험적인 성격이 있어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익히 알려진 서정성으로 금새 많은 인기를 끌었고, 결국 그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 (역대 가요 중에 좋은 가사를 뽑는 순위에선 늘 상위에 랭크된다.) 그런데 묘하게 유명세를 잘 못타는 성격이 반영 되었는지 노래를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고 아는 사람들도 제목이나 가수는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참고로 <서시>도 신성우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는데 [[감자탕]]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기타리스트 이근상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친 멜로디를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3집 또한 <서시>하나를 빼면 대중적인 앨범으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본인의 말마따나 정통 얼터너티브록 앨범이다.[* 록음악 팬이 아닌 TV에서 서시 나 내일을 향해 등의 팝 성향의 히트곡으로 그를 처음 접한 팬들이 앨범 구매후, 한 두곡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중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실험적인 넘버들에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그를 흉내내기 록커로 착각했던 록매니아들은 그의 앨범을 접하고 나서는 그의 외모에 가려진 음악성을 안타까워 했다.] <초연>은 퍼즈톤이 두드러지는 질펀한 마이너 록이며, <천사여 울지 마세요>는 그런지가 구현할 수 있는 따뜻함과 온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건달의 허세>는 얼핏 코믹하지만 당시에도 존재했던 취업난을 풍자하여 작은 인기를 끌어서 2000년대로 넘어와 (신성우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플래시 영상물로도 만들어졌다.
이후 신성우는 [[015B]]의 [[장호일]], [[N.EX.T]]의 멤버였던 이동규와 함께 프로젝트 밴드 '[[지니#s-10|지니]]'를 결성해서 '뭐야 이건'과 '바른생활'이라는 곡을 히트시켰다.
2014년, [[예능 프로그램]] [[룸메이트(방송)|룸메이트]]에 나와 신엄마로 불린다.
크크섬의 비밀에 같이 나온 배우 [[김광규(배우)|김광규]]와는 이웃사촌으로 무척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채시라]]와의 연애와 파혼 과정도 시끄러웠다. 미남미녀 커플로 화제를 모았으며, 두 사람이 한참 연애중이던 시절에는 커플 수영복 잡지 화보까지 찍을만큼 떠들썩하게 연애했다. 그러나 [[1997년]] 파혼하면서 당시 언론들이 일주일이 넘게 어지간히 저 얘기만 떠들어댄 탓에, 사람들이 지긋지긋해 제일 듣기싫어한 뉴스였을 정도로. 공개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무난하게 결혼하나 싶더니 결혼 후 분가, 연예활동 및 재산 관리를 둘러싼 집안 갈등으로 인해 파혼을 선언했다.
신성우의 노래들은 음역대가 넓은 노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2집의 "<구식 사랑(열번째 남자)>", 4집의 "<자유하는 삶을 위해>" 라는 곡과 5집의 "<내 맘대로>" 가 있다. <자유하는 삶을 위해>와 <내 맘대로> 두곡은 실제로 들어보고 피아노로 쳐보면 3옥타브 미 수준으로 음역대이며 또한 <구식 사랑>은 2옥타브 시를 자랑한다. 무겁고 탁한 바리톤의 목소리인 신성우의 보컬로 과연 저 음역대까지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상당히 시원한 고음을 자랑하는 곡들이다.
* 1997년 [[채시라]]와의 파혼 이후 오랫동안 스캔들 없이 솔로로 지냈는데, 2016년 16세 연하의 플로리스트 직업을 가진 여성과 결혼했다. 2018년에는 [[득남]]했다. 아들과의 나이차가 50살에 달한다.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18회 일치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된 것을 보고 분개한 딸의 부모가 원한해결사에게 5천만엔으로 '살해'를 의뢰한다. 매스컴의 취재에 쫓기던 아지야마에게, '원한해결사'와 '킬러'를 언급하며 조심하라는 전화가 걸려오고, 이웃집에 이사왔다는 미노리카와라는 뚱뚱한 남자가 인사를 온다.
죽은 눈을 하고 있는 미노리카와는 자신은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부채 5억엔을 떠앉고 있어 이달 안으로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와 집을 잃고 식구들이 자살해야 할 판이라며, 자신도 '누군가를 죽여서 보험금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기겁한 아지야마는 문을 닫아걸고 미노리카와에게 킬러냐며 화를 낸다. 미노리카와는 '사고는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아지야마는 식은땀을 흘린다.
미노리카와는 원한해결사에게 잘 처리했다는 칭찬을 듣고 보수를 받는다. 그날 목욕을 하던 아지야마는 갑자기 엄청나게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바람에 기겁한다. 수리공은 외부에서 주파수 리모컨을 사용해서 조작하는 장난을 친 것 같다고 말하고, 미노리카와가 리모콘을 들고 나와서 음침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위협을 가한다. 다음에 차를 타고 나간 아지야마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서 사고를 당하게 되며, 브레이크 오일이 새고 있었다는 이유로 정비불량으로 감점을 당한다. 미노리카와는 몽키스패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아지야마 앞에 나타나서 수상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어제는 목욕탕, 오늘은 자동차라면서, 마치 죽은 3명의 아내들 같다고 아지야마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에는 '투신자살'을 언급. 미노리카와의 위협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 아지야마는 다가오는 미노리카와를 복도 쪽으로 밀치는데, 미노리카와는 그 순간 복도에서 뛰어내리면서 자신은 '죽어주는 역할'이라는 말을 남기고 떨어져 사망한다.
아지야마가 누군가를 밀어죽이는 장면이 언론사에 찍히게 되고, 경찰은 미노리카와에게 걸려 있던 3억엔 어치의 '보험증서'까지 찾아내서 아지야마를 추궁한다. 보험증서는 원한해결사가 미노리카와에게 전달했던 것이었다. 경찰에서 취조를 받던 아지야마는 결국 당황하여 이전에 저질렀던 보험금 살인까지 꼬리를 밟히고 만다.
의뢰인 가족은 원한해결사에게 사실을 듣고 미노리카와란 사람이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원한해결사는 미노리카와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원한해결사에게 설득을 받고, 보험을 들어서 가족에게 전하는 대신 '죽어주는 역'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의뢰인 부부는 '악마'라고 경악한다.
* 원한해결사 이외에 원한해결사무소의 '직원'이 나온 것은 미노리카와가 처음.
- 유동근(배우) . . . . 18회 일치
그리고 2002년에 그에게 다시 연기대상의 영광을 준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 [[흥선 대원군]] 역할을 맡았을 때 최고의 장면은 대신들에게 [[경복궁]] 증축의 필요를 역설했던 장면. 매우 조용조용 낮은 톤으로 영국 공사의 자금성 입성기를 들려주다가, [[조두순(문신)|조두순]]이 끼어들자 순간 "걸어서 가겠네, 걸어서 가겠네!"[* 당시 대본엔 '(큰 소리로)'라는 지문과 "걸어서 가겠네..."가 전부였다.]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 다시 조용한 톤으로 돌아가는데 면전이었으면 오줌이라도 찔끔 지릴 것 같다. [[정도전(드라마)|정도전]] 37회에서도 [[정몽주]]와 논쟁 중 '''"야 정몽주!!!"'''라고 내지르는 장면도 압권으로 [[네이버]] 추천검색에 올라올 정도였다. 유동근이란 배우의 힘을 알 수 있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이성계 계통, 간성, 유동근의 특징이 잘 어우러진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동근은 1989년에 [[전인화]]와 결혼했는데 결혼 당시에는 "천하의 전인화가 왜 유동근이랑 결혼을?"이라는 반응이 더 많았지만 이후 유동근의 연기 커리어가 매우 화려해지면서 이런 소리는 쑥 들어갔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역이 주력이지만, 재미있는 사람도 잘 연기한다.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개그 캐릭터 연기를 보고 있으면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이성계(정도전)]] 역할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드라마에서는 엄숙하거나 카리스마있는 역할을 자주 하는 편인데, 반대로 영화에서는 주로 [[코미디]] 영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성공한 코믹 영화로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가문의 영광(영화)|첫번째 작품이 있다.]]
[[놀러와]]에 나와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쌈박하다'라는 발언을 즐겨하며 약한 남자 기믹을 잘 소화해냈다. [[유재석]]이 방송이 끝나갈쯤에 "제가 아는 왕은 한 명 사라졌지만 옆집 동근이 형을 알게 되었네요"라고 발언. [[공처가|실제 생활에서도 아내에게 쥐어 잡혀 산다고 한다.]] 아내가 한번 째려 보면 바로 알아서 긴다고... 다들 알겠지만 아내가 [[신득예|해더신]]이다. 한번은 밤 늦게 술에 취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전인화에게 음식 준비를 포함한 손님 접대를 시키며 허세를 부렸고 그 다음날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도망가듯이 집 밖으로 나갔다고 하며 같은 실수를 할까봐 한달동안 술은 입에도 못 댔다고 한다.
반대로 아내 전인화는 유동근이 장난으로 자신을 놀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정 내에서도 질서와 권위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주변인들을 집에 데리고 와 손님 접대를 시키는 건 '남자는 그런 허세 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며 잘 받아주는 편이라고. 평소 가사 분담은 거의 안 하는데 어느 날은 장난삼아 '라면 좀 끓여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끓여주었고 맛도 훌륭했으나 생색이 쩔어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아내인 [[김을동]]가 출연 중이던 드라마 '왕과 나'의 CP(책임 프로듀서)와 조연출을 폭행한 적이 있었다. 본인이 주장하는 폭행 이유는 "대본이 [[쪽대본]] 형식으로 너무 늦게 나와 촬영이 길어지면서 아내 몸상태가 안 좋은 상태라서 배려해줄 것을 부탁하는 와중에 제작진이 들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여서..."였다고. 막장스러울 정도의 [[쪽대본]] 때문에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고 한다.
정황을 따져보면 '왕과 나' 촬영 당시 쪽대본 & 이런 저런 사유 때문에 그 날따라 몸도 아픈 상태이던 아내 전인화가 너무 힘들어서 눈물까지 흘리는 바람에 유동근씨가 화가 나서 따지러 간 거 같은데...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아내가 걱정되어서 항의하는 와중에도 CP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고. [[http://star.mt.co.kr/stview.php?no=2007122719592056123&type=3|당시 인터뷰]]. 자기 자신도 연기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항의한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완력을 사용한건 아무래도 잘못이 맞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이 터진 후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故 [[김재형]] PD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극 제작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그리고 이걸 보고 온라인 상에선 '''용의 주먹'''이라며 조롱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 바람에 [[SBS]] 드라마는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가, [[SBS]]의 [[아테나:전쟁의 여신]]에 NTS국장 권용관 역으로 출연이 확정되면서 4년만에 SBS 드라마로 컴백하게 되었다.(여기서 유동근 외모가 스플린터 셀 컨빅션 샘 병장과 닮았다.)
[[어린이 드라마]]와도 인연을 맺은 일이 있다. [[우리 아빠 홈런]]은 유동근이 1990년대 들어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겸비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고, 1999년에는 KBS 2TV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의 주연을 맡아 활약했다.[* 이미 대상까지 탄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시간대의 어린이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이교육 PD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용의 눈물》 조연출자였다가 이 드라마가 연출 입봉작이었고, 선생님 역 캐스팅에 난항을 겪자 유동근이 의리로 출연한 것. 《용의 눈물》의 또 다른 중심축이었던 배우 [[김무생]] 또한 이 드라마에서 마을 이장역으로 출연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정도전이 종방한 후 정말 짧은 휴식기를 가지고 바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하였었다. 바로 전작에서 박력 넘치는 무골 이성계를 연기했던 것과 정 반대로 여기서는 나이들어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자식 걱정에 마음을 쏟는 순박한 아버지 [[차순봉]] 역할로 나와서 정도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보면 엄청난 괴리감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유동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과 그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야말로 1년 내내 KBS 드라마의 주역으로 미칠듯한 활약을 했고 그 열연의 결과로 2014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 3번째 대상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이번 대상을 수상한 당시 나이 만 58세로 [[김혜자]]의 뒤를 잇는 최고령 연기대상 수상자로 남자 배우 중에선 두번째로 최고령 수상자.[* 2014년 수상 당시에는 남자배우 중 최고령 수상자였으나, 2017년에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열연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의 대상 수상으로 그 기록이 깨졌다.(수상 당시 만 64세.)]
배우 [[엄태웅]]이 조카사위이다.[* 유동근이 [[엄태웅]]의 아내 윤혜진 씨의 외삼촌이다. 즉 (유동근의 누나 유예원과 결혼하였다는) 원로배우 [[윤일봉]]이 매형.] 엄태웅의 누나인 [[엄정화]]와는 유동근, 김을동 부부와 사돈지간이다. 현재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엄태웅의 딸 엄지온에게는 유동근, 김을동 부부가 사실상 [[할아버지]], [[할머니]] 뻘이 된다.
- 은혼/626화 . . . . 18회 일치
* 문제는 [[사카타 긴토키]]와 가부키쵸 주민들까지 헤도로가 무서워 [[소년 선데이]]로 이적한다며 도주한다.
* 그때 반대편에서 사탄과 누라리횬의 마계대전을 정리하고 온 [[게도마루]]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등 음양사들이 지원하러 온다.
* 음양사들이 수많은 식신들을 소환. 게도마루는 기껏 도와주러 왔는데 도망치는 거냐고 위협하며 긴토키와 가부키쵸 주민들을 전장에 몰아넣는다.
*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도 현장에 도착. 환혹의 술로 대군이 증원된 것처럼 꾸며낸다.
* 하지만 악귀가 날뛰는 와중에 도망치던 긴토키가 우연히 헤도로와 부딪히면서, 그 머리에 피어있던 파라파헤븐 꽃을 꺾고 마왕재림을 실현시켜버리는데.
* 대군 한 가운데 나타난 기이한 [[다키니]]족 사나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보다는 짓밟힌 꽃 한 송이를 신경쓰는 그는 [[오우가이]]가 기억하는 "신의 뿔"이 틀림없었다. 그의 머리 위에 피어있는 꽃은 혹성 코하쿠의 기생종 식물 "파라파헤븐". 숙주의 뇌에 뿌리를 내리며 머릿속을 꽃밭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무서운 식물이다. 신의 뿔은 오우가이와 함께 "뿔의 단"이란 용병단을 이끌며 무수히 많은 행성을 침략했으나 이 기생종에 당하면서 딴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 그 한심한 도주를 후려쳐 막은 것이 [[게도마루]].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이 식신 게도마루, 음양사 집단 게츠노슈와 함께 전장에 도착한 것이다. 게도마루는 긴토키를 두들겨패서 진정시키고 설사 마왕이든 악귀나찰이든 나타나도 에도엔 게츠노와 음양사가 있다는 믿음직스런 말을 한다.
음양사들이 지옥의 식신들을 불러내 긴토키와 가부키쵸 주민들을 압박한다. 등을 보이고 달아나던 가부키쵸 병력들은 다시금 식신에 떠밀려 해방군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음양사들이 불러낸 식신들은 헤도로와 마찬가지로 해방군에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다. 하지만 긴토키와 가부키쵸 주민들에게도 공포를 주긴 마찬가지라 이들은 해방군들을 앞질러서 도망가는 지경에 이른다.
* 그렇게 달아나다 보니 헤도로가 꿀밤을 먹이고 있는 그 장소로 돌아와 버렸다. 긴토키는 어째서 이꼴이냐며 괴물과 괴물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겠다고 절규한다. 게도마루는 됐으니까 팍팍 앞으로 가라며 긴토키를 걷어찬다. 긴토키는 떠밀리다가 누군가와 부딪히는데, 부딪힌 인물과 위치가 영 좋지 않다.
* 게츠노 아나운서의 오빠 [[게츠노 세이메이]]와 전남편 [[시리노 도만]]도 건물 옥상에서 준비를 마쳤다. 둘은 서로 사기꾼이라고 디스하면서도 이 사기꾼들의 힘이라도 보탤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리고 함께 거대한 규모의 환혹의 술을 실행하는데.
* 숫적 우위는 변함없는 해방군 쪽에는 아직도 싸우고자 하는 자들이 남아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전선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곧 지구측에서 엄청난 수의 원군이 도착하는 걸 보고 마지막 저항의사를 꺾고 만다. 이것들은 모두 환혹의 술이 보여주는 환상이지만 그걸 알리 없는 해방군은 최후의 보루였던 숫적 열세까지 뒤집혔다고 보고 완전히 와해, 병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 해방군의 전면 철수. 가부키쵸의 승리였다. [[가구라]]와 신파치는 믿기지 않는 승리를 두 눈으로 확인한다.
- 이연희(배우) . . . . 18회 일치
||<bgcolor=#b88568> {{{#FFFFFF '''팬 페이지'''}}} ||<(> [[http://cafe.daum.net/lyh4ever|[[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width=24]]]][* 이름은 연희와의 샹그릴라.] ||
청순한 이미지를 가진 빼어난 미모와 모델같은 큰 키에다 뛰어난 [[각선미]]를 가졌으며 날씬한 몸매로도 유명하다. 신장(키)도 같은 배우로서 한 때 [[SM엔터테인먼트]]의 상징적인 비주얼로 같이 유명했던 [[고아라]]보다 더 크다.
가끔씩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춤 실력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지만, 아쉽게도 SM이 원하는 과격하고 파워풀한 춤을 따라갈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에 발목을 잡혔다는 것이 정설이다. 왜냐하면, 소녀시대는 걸그룹치고는 최고난도의 댄스와 정확한 군무를 요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PEXXd2qI9Q|사실 이래서 못 들어간 것이라고 하더라]]--
(2008년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나온 명대사다. 어색한 말투와 [[문어체]]같은 대사가 개그 포인트.)
(2011년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에서 이연희가 부른 --그 유명한 귀염터지는 발걸음과 말투와-- 콧노래.[* [[존박]]이 [[방송의 적]]에서 했던 [[https://www.youtube.com/watch?v=eMTTt3Hxblw|니나니뇨]]의 원본(...)이다. 사실, 여기서는 [[최강창민]]도 발연기에 한몫했는데 이연희의 발연기 때문에 그냥 묻혀버렸다. 그래서 반응이 "누가누가 더 발연기 하냐?"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만큼은 연기를 비롯해서 대사 전달이 그럭저럭 자연스럽다. 그래서 최강창민이 더 연기를 못했다는 의견도 많다.''' ])
그러다 2013년 드라마 [[미스코리아(드라마)|미스코리아]]와 2015년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서 눈부시게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여 호평받으며 기대감을 갖게 했으나 2015년 드라마 [[화정]]에서의 발연기로 다시 평이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2년 만의 복귀작 [[다시 만난 세계(드라마)|다시 만난 세계]]와 [[더 패키지]]에서는 연기력이 많이 발전하고 괜찮은 반응을 보여줘서 이제는 고질적인 발연기 배우라는 오명을 점점 씻어내는 중이다.
물론 인신공격이나 모독성 발언들은 문제가 되고도 남겠지만, 연기력에 대해 지적(비판)하고 충고하는 글들마저 모두 악플로 치부하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는 늬앙스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을 해서 까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너는 내 운명(드라마)|발연기로 경쟁하던]](...) [[박재정]]이 [[https://www.google.co.kr/amp/news.kbs.co.kr/amp/view.do%3Fncd%3D2919210|"하하, 발연기라니요? 그런 말은 오히려 발한테 너무 미안하죠."]]라며 자신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모습과 대비되며 더 까였다. 더구나 박재정은 그 당시 OCN [[신의 퀴즈]]에 출연해 해당 회차에서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해서 그와 비교해서 발전할 기미가 안 보인다고 또 까였다.
원래 편성 받은 뒤 방송이 나가면서 계속 촬영하려고 한 드라마이나 공중파에서 죄다 외면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100% 사전제작 된 작품이다. 케이블에서나 틀어줘도 다행이 될 뻔 했는데 SM 프렌들리 방송국 [[SBS]]에서 편성이 잡혔다. 마지막 방송인 2011년 03월 15일 AGB닐슨 기준 8.4%.2011년 초에 한자릿수면 결코 좋은 시청률이 아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골든타임인 10시가 아닌 9시에 방영된 드라마이며, 무려 KBS의 9시 뉴스가 경쟁작이 만큼 10시타임 드라마와 시청률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 8.4%의 시청률은 그 시간대에 방영한 드라마로선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맞다.
2013년 4월 MBC 드라마 [[구가의 서]]에 특별출연해 주인공 최강치([[이승기]] 분) 생모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는데, 1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인 건 아니지만,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감정 기복은 컸어도 대사톤 자체가 낮은 편이라 드러나지 않은 것이었고, 2화에서 목소리 볼륨이 올라가자 어눌한 대사 처리를 드러내며 다시 원상복귀해버렸다는 평이 나왔다. 하지만 좋은 반응들도 꽤 많이 나오고 있어서 뭐라고 확실하게 얘기하기 힘들다. 물론 좋은 연기력은 아니었지만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열심히 연기하려는 것이 짠해 보였다는 사람들도 있다. 연기력을 떠나서 상대역인 [[최진혁]]과의 케미와 연출 덕에 드라마는 3회부터 꾸준히 월화극 시청률 1위를 달렸다.
2015년 설 연휴에 개봉한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서도 연기력은 지적받지 않았고 300만 이상의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명민과 오달수의 연기를 보기 위해 조선명탐정을 보러 갔기 때문에 이연희 덕분에 영화가 흥행한 것은 아니다. 다만 2013년 작인 [[결혼전야]]에 경우 주연 롤을 맡은 배우들이 단체로 나오는 옴니버스식 영화였던 것에 비해 조선명탐정 같은 경우 김명민, 오달수와 함께 메인 주역이였으므로 300만 이상의 흥행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2017년 7월 SBS 수목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드라마)|다시 만난 세계]]의 정정원 역으로 복귀했다.[* 사실 다시 만난 세계보다 이전에 사전제작 드라마인 [[더 패키지]]의 촬영을 마치긴 했지만 편성이 계속 밀리면서 다시 만난 세계쪽이 먼저 방영되었다.] 눈물 연기는 아직 연습이 필요해 보이지만, 가장 비판을 받았던 대사 처리와 표정 연기 등이 예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7년 10월 JTBC 금토드라마 [[더 패키지]]에서 여주인공 윤소소 역으로 [[정용화]]와 짝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만난 세계(드라마)|다시 만난 세계]]보다 발전했고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프랑스어 연기도 자연스러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덴의 동쪽에서 이상한 영어 발음이 마치 어색한 프랑스어 같다고 욕을 먹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정말로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윤아 급의 외모와 노래 실력을 더 갈고 닦는다면 태연 급의 능력을 갖춘 인재로 전후후무한 [[대한민국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영원히 남았을지도 모르고, 명반도 여러 장을 남겼을지도 모를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 화장품 브랜드 [[SK-ll]]의 모델이 되어 찍은 CF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paranzui/50140489926|#]] 실제로 이연희는 이 CF에서 발음이 상당히 안 좋다. 특히 맑고 '투명'한 피부가 '투영'으로 들린다며 발음을 까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http://www.purepitera.co.kr/PiteraStory.aspx|그러나 놀랍게도 공식 사이트에서 '투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TV CF만 본 사람들은 '투영'을 '투명'의 발음 오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애매한 단어는 상술된 외부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SK-ll]] 공식 사이트에도 명기되어 있으며, 이미 2010년 부터[[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LeisureLife/Article.asp?aid=20100625002223&subctg1=20&subctg2=00|신문사에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와 [[http://postfiles10.naver.net/data33/2008/6/21/233/image-3_abzero.jpg?type=w3|지면 인쇄 자료]]에도 '투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맑고 투영한'은 한국어 문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형태인데, 이것은 회사 측에서 본사인 일본식의 한자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연희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단어가 그런 것이다.
* 일각에서는 큰 키와 외모를 살려서 [[모델]]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까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앞서 서술한대로 괜찮은 노래 실력을 더 늘리고 춤을 제대로 잘 소화하도록 연습해서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분명히 자타가 공인하는 에이스이자 센터 자리를 맡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 [[LG 트윈스]] 투수 [[임정우]]와 거의 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특히 얼굴 전체적 생김새를 빼다 박았다.그래서 임정우 별명도 임연희이며,잠실 이연희로 불릴때가 많다.
- 지석진 . . . . 18회 일치
||<#FFA500> {{{#FFFFFF ''' 가족 ''' }}} ||<#ffffff><(> 부: 지창균[* 2018년 6월 21일 사망,], 모, 형[* 런닝맨 364회에서 형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생, 배우자: 류수정[* 러블리즈 류수정과 동명이인이다.], 아들: 지현우[*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다. 2002년 생.] ||
생각보다 경력이 다양하다. 원래 85년부터 연극배우/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었고, 메인스트림 연예인 데뷔는 1992년에 [[가수]]로 하였다. 장르는 [[발라드]]이고 앨범 제목은 '''우울한 오후엔 미소를'''. 애초에 다른 개그맨들처럼 개그 소스로 만들기 위해 음반을 낸 것이 아니라 당시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정말, 진지하게 가수로 활동하려고 낸 음반이었기에 생각보다 노래가 괜찮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자신을 두고 기획사 3곳이 경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제는 활동 후속 곡의 제목이 하필이면 '''[[난 알아요]]'''였다는 것. 심지어 1집 데뷔 시기와 데뷔 프로그램도 서태지와 같았다.[* 유튜브 등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프로인 MBC의 "특종TV연예"를 검색해 보면 음반 소개로 잠깐 나온다.] 결국, 그의 가수 활동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일으킨 폭풍으로 철저하게 묻혔고 훗날 그의 개그 소재로 쓰이게 되었다. 나중에는 지석진 본인도 '''"여기서 서태지랑 대결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으로 농담삼아 여러 번 써먹는다.
가수 활동이 좌절되자 지석진은 같은 [[해군홍보단]] 입대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김용만]]의 권유로 1993년 KBS 개그맨 공채에 도전하여 10기로 합격, 개그맨이 되었다. KBS 공채 시험을 볼 때 [[박수홍]], [[김용만]] 등이 그의 대본 작성 및 연기 연습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유재석]]보다 나이도 많고 같은 KBS 공채 개그맨이라는 출신 때문에 지석진이 [[유재석]]의 KBS 동기나 선배로 생각하지만 [[유재석]]은 공채 7기로 지석진의 선배이다. 다만 지석진은 이미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공채 전부터 유재석과 알던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 희극인의 실세인 [[심형래]]는 이런 지석진을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어느 날은 심형래가 [[유재석]]과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을 불러서 지석진을 혼내라고 했는데 유재석과 김수용은 자신들보다 연장자인 지석진을 구타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 큰 소리를 내며 갈구는 연기를 했고 그것을 본 심형래가 무척 화를 내며 세 명 모두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하게 구타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드러나는 [[심형래]]의 노답성~~ .[* 이 때문인지 심형래가 후일 [[런닝맨]]에 출연했을 때 지석진은 심형래의 되도 않는 억지에 멤버들 중 가장 불쾌해 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MC 공채 출신답게 재치넘치는 입담이 전매특허로 [[송은이]]와 더불어 유재석의 방송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주로 [[사이다]], 여유만만, 진실게임[* 본래 유재석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지석진이 이어받아 진행했다.] 등 토크쇼 프로그램의 MC를 많이 맡았으며, 설날이나 추석 등의 특집 프로그램 MC 경력도 많다. 이 중 많이 알려진 프로그램은 '[[보야르 원정대]]', '[[스타골든벨]]'[* 스타골든벨에서는 메인보다는 현장에서 분위기를 조절하는 분위기 메이커역을 주로 맡았다. 소속사가 PD에게 로비를 한 것이 드러나서 잠시 구설에 올랐고 그 시기가 개편과도 맞물려서 잠시 프로그램을 하차한 적이 있지만 메인 MC가 여러 차례 교체됐음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 시즌2에 해당하는 '스타골든벨 1학년 1반'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실은 숨겨진 실세~~], '[[여걸 파이브]]', '[[여걸 식스]]'[* 여걸식스의 후속작 하이파이브에서도 MC를 맡았으나 프로그램 자체가 사실상 여걸식스의 끝물빼기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던지라 오래 가지 못하고 증발했다.], '[[런닝맨]]'.
2015년 9월 1일 [[FNC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 2016년 4월 4일 계약 해지 기사가 났는데 FNC엔터테인먼트 측에선 지석진이 오랫동안 혼자서 활동한 영향으로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개별 활동을 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5~6월 FNC에 어떤일이 생겼는지를 보면 FNC를 떠난건 신의 한 수.
2000년에 스타일리스트 출신 류수정씨와 결혼하였다. 원래 [[정선희]]의 스타일리스트로 오빠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던 유재석이 소개해줬다고 한다. 첫만남 당시 소개팅을 주선한 유재석이 집에 데려다 주는 순간까지 동석해서 어이가 없었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지석진을 첫만남에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한 류수정씨가 유재석에게 계속 있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석진 역시 류수정씨가 자신을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유재석에게 중개를 부탁한 끝에 연애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모양. 결혼식 사회까지 유재석이 봤으니 결혼의 시작과 끝을 유재석이 다 챙겨준 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때문인지 유재석은 지석진이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류수정씨 개인과도 꽤 친한 모양. 방송에서 지석진과 대화 중에 "형수 저번에~" "형수 요새~"하는 식의 말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인지 지석진은 후에 "그 때 왜 그랬냐"는 식으로 유재석을 맹폭하는 컨셉을 세우기도 했다.
결혼 3년 후 아들을 낳았다[* 여담으로 이 아들 돌잔치 때 애를 두고 집에 왔다는 모양. 집에 도착해서야 가족들 모두 애 어디있냐고 난리났다는 듯하다]. 현재는 고등학생이며 이름은 지현우.--[[류수정|아내와 이름이 같은 걸그룹 멤버]]가 있고 아들과 이름이 같은 밴드출신 배우도 있다. 어쩌다 보니 연예인 집안-- 아무튼 지석진은 한때 부인과 아들을 수 년간 외국으로 유학보낸 연예계 대표 기러기 아빠 중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슬프고 외롭기만 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막상 해보고 나니 방학 때 부인과 자식이 귀국할 때보다 돌려보내고 혼자일 때가 편해서 좋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절대 티를 내지 않고 힘든 척하는 스킬까지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밥을 못 해먹다보니 매일 배달음식만 먹는것이 좀 고역이였다는 듯 하다. 현재는 가족들이 귀국했는데, 그 이유가 지석진이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아들이 너무 보고싶어서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어 "그만 돌아와라. 보고싶다." 라고 말해서라고. 아내가 그 한마디에 다음날 다 정리하고 귀국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예능에서 가끔씩 결혼생활을 소재로 써먹곤 했는데, 런닝맨에서 본의 아니게 결혼생활의 실체(?)가 드러난 뒤에는[* 런닝맨 멤버스 위크 송지효편 [[거짓말 탐지기]]미션에서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겠다'는 답에 진실 판정이 떴다. 이후 멤버스 위크 왕코편에서는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날짜가 줄줄이 나오고, 아예 본인의 특집때 아내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며 제작진에게 요청하기도.] '사실은 사랑꾼' 기믹도 쓰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주변에 대고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식의 드립을 자주 치는 모양인지, 멤버스 위크 이후에 합류한 전소민도 증거자료까지 있다면서 사랑꾼 기믹을 위협했다. 한번은 '''녹화 쉬는 시간'''에 '''싱글 중년'''들이 출연하는 [[불타는 청춘]]에 나가고 싶다는 발언을 해서 스타일리스트까지 충격을 받았다고(...)[* 어쩔 수 없이 해당 비밀을 자기 입으로 밝힐 처지에 처했을 때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 간신히 입을 떼는 모습이 압권이다.].
[[유재석]]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등까지 포함해서 조동아리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주둥아리'라는 발음과 유사성을 노린 것에, '저녁에 만나서 아침까지 떠들어서' 라고. 그렇게 오래 모이는 것치고는 다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모임이다.([[유재석]]은 애초에 술을 마시지 못하고, [[김용만]]도 주량이 얼마 안 된다. [[김용만]] 왈, "나도 이젠 맥주 500 정도는 마실 수 있어요.") 어디까지나 수다를 위한 모임으로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 밀크쉐이크 한 잔으로 5시간은 기본이라는 듯. [[김원희]]가 예전 놀러와에서 밝히기를 호기심에 한번 참석했다가 남자들 넷이 밤새도록 술도 안 마시고 떠드는 모습에 진저리가 났다는 모양.
주변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 중 하나로, 김용만과 함께 '''팔랑귀'''로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유재석이 '임팔라'란 별명을 붙인 것도 여기저기 온갖 소리에 나서서 반응하는 모습이 초원에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임팔라와 꼭 닮았다는 이유. 유명한 사건으로, 김용만과 해외여행 가서[* 황당한 것은 날짜 맞추다 보니 이게 '''허니문 코스'''였다고 한다(...).] 잠시 휴식하던 사이, 가이드가 사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도 현지 장사꾼들한테 속아서 ~~호구 왔는가~~ 가짜 악어 지갑 수십 개를 그 자리에서 샀다고 한다. 사실 압축 종이로 만들어진 지갑이라 물에 젖더니 순식간에 찢어졌다고... 유재석한테도 선물로 줬는데 모르고 썼던 유재석은 뒷주머니에 넣어 뒀더니 땀 때문에 퉁퉁 불어서 돈이랑 엉겨붙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모양. 이 방면에서 워낙 유명하다보니 세일즈맨들 사이에선 "김용만이나 지석진한테 물건 못 팔면 이 바닥 떠나라"는 말까지 돌았다고...이 때문에 주식이나 사업도 여러번 날려먹은 뒤로는 사업은 안하고 주식도 안전한 주식만 한다고 한다.
[[KBS]] [[일일 드라마]] [[고양이는 있다]] OST를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6&sid2=224&oid=108&aid=0002349300|불렀다]].[* 첫 앨범때와 마찬가지로 [[서태지]]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18회 일치
* [[라이너 브라운]]과 [[가비 브라운]]은 이른 아침부터 본부로 향했다. 그들은 시장을 가로질러 출근을 했는데 지나가던 엘디아인 시민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반기고 우러러보며 인사를 건넨다. 출입구를 통제하는 마레인 병사들 조차도 그들에게만은 친근하게 대하며 안부를 물을 정도. 그런데 평소와 같은 라이너와 달리 가비는 어쩐지 침울하고 풀이 죽은 모습이다. 마레인 병사도 그걸 눈치챘다. 그는 "이번에는 활약했다며?"하고 말을 붙이나 가비가 반응이 없자 조금 집요하게 말을 건다. 가비는 그게 들리지도 않는지 "평소대로 본부에서 훈련한다"고 적당히 대답하고 통제소를 통과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병사들은 가비의 우울한 기색이 마음에 걸려서 왜 저러는 건가 고민할 정도다.
그런 결심 탓일까, 파르코가 막 정문 앞을 지나며 라이너와 헤어진 가비에게 "갑옷 거인을 계승하는 건 나"라고 선언한다. 가비는 매우 터프한 박치기로 그 말을 받으며 "해볼 테면 해봐라"고 대꾸한다. 물론 결의에 찬 소년은 나가떨어지는 일 없이, 머리를 맞댄 채 그러겠다고 말한다.
* [[지크 예거]]가 이른 아침부터 마레의 전사들과 차기 짐승거인 [[콜트 그라이스]]를 소집했다. 라이너와 콜트는 진작 도착해 있었고 포르코와 피크가 마지막이었다. 피크는 기껏 걸어온 보람도 없이 긴 소파를 독차지하고 네 발로 웅크린다. 지크는 커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포르코가 전사장의 방에 전원 집합, 게다가 마레인 군인이 없는게 별난 일이라고 말하자 그가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피크와 라이너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지크는 가끔씩은 쉬는 것도 좋다며 커피를 돌린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는 결코 쉴려고 그런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지크가 본론을 말한다. 그는 거두절미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수년 간 계속된 "자원쟁탈전 시대". 마레는 거인의 힘으로 승리하고 역시 그 힘으로 주변국의 반발을 억눌러왔다. 그리고 그 첨병역을 하는 거인,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은 역대 최악으로 과거 엘디아제국 시절에 견줄만 하다. 지크는 분명 엘디아 민족이 분명한 반성의 뜻을 표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속죄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엘디아인의 멸절을 바라고 있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과학병기가 거인병기를 앞지르는 것은 시대적 필연. 거인은, 엘디아인은 멀지 않은 장래에 전술적 가치를 잃는다. 거인에 의존하는 마레가 국력을 상실하는 건 뻔한 일이고 마레가 약해지면 엘디아인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사라진다. 엘디아인을 존속시킬 필요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세계에 던져지는 것이다.
"망치의 거인"의 타이바 가문. 그 이름은 일행에게 민감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들은 100년 전 거인대전의 영웅 가문이다. 최초로 프리츠 왕가에 반역했으며 마레에 협력했다. 일찌감치 "명예마레인" 타이틀을 거머쥐고 정치나 전쟁, 모든 사회적인 이슈에서 불간섭을 표방하며 안락한 삶을 누렸다. 그런 그들이 "마레와 엘디아의 미래를 걱정해" 일어나 주었다, 지크는 그렇게 "스토리"를 설명했다.
그러나 한 사람, 포르코의 탐탁치 않았다. 그가 보기에 타이바 가문은 뭐랄까... 우선 그들은 망치 거인을 가졌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적이 없고 엘디아인이 수용구에서 생활할 때 자기들은 넓은 토지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무위도식했다. 그러던 것들이 이제와서는 입바른 소리를 해주는 대가로 영웅행세라?
라이너는 본부 건물을 나와서 전사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전 상황은 대규모 작전의 전초작업이었다. 사상검증.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방식. 그리고 눈 앞에서, 전사후보생을 놓고 다투는 가비와 파르코. 뭔가를 지키기 위해 죽일 듯이 다투는 모습.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방식.
포르코는 아직까지도 왜 자신이 탈락했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브리핑 이후 그는 라이너를 몰아붙이며 왜 자신이 떨어지고 라이너가 선택됐냐고 따졌다. 애초에 라이너가 마음대로 한 것도 아니지만, 라이너는 자신을 무시했던 포르코가 이렇게 시비를 걸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는 조소와 함께 "사실 꼴찌는 너였다. 그뿐 아니냐"고 빈정거리며 그를 "포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격분한 포르코가 달려들려는걸 형 마르셀이 말린다. 아무리 그래도 "군의 결정에 거스르는 거냐"는 말에는 어쩔 수 없었다. 형의 설득에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는 포르코. 그런데 마르셀이 묘한 말을 남긴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기 전 군의 시설에서 일했다. 거기서 아버지와 만났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순간, 처음보는 얼굴임에도 직감했다. 자신과 닮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남자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라이너는 더욱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달랐다.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그래도 그는 처음 만난 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완장을 보였다. 마레의 전사, 명예마레인의 완장을. 그와 어머니가 성취한 신분이다. 이제 신고만 하면 수용구 바깥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사는 것도 가능하다. 아버지가 바라기만 한다면...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하마터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은 걸까? 라이너는 표정은 감춘 채 "응"이라고 힘차게 동의했다. 사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한 동의였다. 어머니와, 동포들의 환대를 받으며 항구를 떠나던 날, 그는 자신을 설득했다.
네 명의 전사들은 짐말까지 합쳐 다섯 마리의 말을 타고 섬을 가로질렀다. 밤이 깊어지고 구름까지 짙어 더는 나아갈 수 없게 되자 캠프를 준비했다. 숲에 말을 숨기고 모닥 불을 피우고, 일행은 거기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밤길이라 생각대로 전진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그래도 밤이라서 거인과 마주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시시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베르톨트가 무거운 주제를 꺼냈다. 정말 벽을 부숴도 벽의 왕이 시조 거인의 힘을 쓰지 않겠느냐는 것. 라이너는 마레 측 연구자들이 그럴 거라 했다며 이제와서 그런 걱정을 왜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마르셀은 그 말에 동의하며 "이젠 돌이킬 수 없다"고 중얼거렸다. 그들은 내일 벽을 부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의 목소리는 어딘지 힘이 없고 체념이 엿보였다. 라이너의 빠른 눈치는 그런 점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섬의 악마들을 죽이는게 두렵느냐고 일장연설을 늘어놨다. 그리고 그 악마들이 역사상으로 한 짓과 지금도 세계를 위협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세계를 대표해 악마를 심판할 "선택받은 전사"라고 역설했다.
그들은 걷고 있었다. 그들은 캠핑을 나온게 아니다. 벽을 부수러 갈 거다. 아침이 오고 있었고 안전한 밤이 물러가고 있었다. 떠오르는 먼동과 함께, 거인이 오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가 [[유미르(진격의 거인)|유미르]]와 처음 만난 날이다. 라이너는 한 가지 생각에 매몰되어 있어서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 콩고(소설) . . . . 18회 일치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유럽 합작 기업의 탐사대가 추격 중이라 바짝 긴장한 연구소는 급히 과학자 카렌 로스를 팀장으로 삼아 소규모 탐사대를 재차 투입한다. [* 이렇게 급하게 탐사대를 다시 꾸린 건 경쟁 기업의 추격도 있었지만 해당 지역이 정부군과 식인종 키가니족이 내전 중이라 어렵게 따낸 탐사 허가를 또다시 따낼 틈이 없어 일단 탐사대의 전멸은 비밀로 한채 새로운 탐사대를 투입하는 걸 들키기 전에 얼른 투입시키기 위해 서둘렀다.] 영상에 집힌 고릴라의 이미지 때문에 영장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카렌은 수화를 할 줄 아는 [[고릴라]] 에이미와 그녀를 돌보는 동물학자 피터 엘리어트, 아프리카의 백인 용병 찰스 먼로 등이 이끄는 탐험대가 자이르 정글 깊숙한 곳으로 잃어버린 전설의 다이아몬드 광산도시 진즈(Zinj)를 찾는 모험이 중심 소재이다. 마치 전형적인 모험 소설 같지만, 탐험의 주체가 현대적인 광산 기업이거나, 위성으로 연락,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거나 NASA에서 개발된 탐험 장비를 사용하는 등 상당히 현대적인 가제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어찌됐든 앞서게 된 일행은 잃어버린 도시 진즈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즈의 원주민들이 경비를 위해서 남겨놓은 회색 고릴라 집단이 살고 있었고, 곧이어 회색고릴라 무리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된다. 첫교전에선 전기철조망과 자동사격기관포로 막아내지만 탄약이 절반이상 소모된데다 고릴라들의 전기철조망에 한번 당하자 나무 막대로 철조망을 젖혀놓고 들어와 대원 하나 살해할 정도로 높은 지능과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이후로 영장류가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사용해[* 에이미도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급류를 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야하자 피터에게 똥 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도 파고 보유량이 넉넉한 최루탄으로 밀어내는 등 선전을 펼치고 고릴라 무리를 선제 공격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방법도 찾지만 고릴라 수가 너무 많이 총으로 무장했어도 십여명 수준으로는 대책이 없었고 퇴로도 다 매복한 상태라 오도 가도 못하며 탐험대는 희생을 내며 궁지에 몰린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탄약도 떨어지고 비까지 내려 최루탄도 무력화되고 도랑은 고릴라가 나무를 걸쳐 통과해버리면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는데 에이미의 도움으로 엘리엇은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여 그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그러나, 카렌 로스가 지질 조사를 위하여 화약을 설치하고 폭파시키도록 지시한 탓에 화산 폭발이 일어나 버린다. 탐험대는 필사적으로 진즈에서 도망치지만 진즈와 회색 고릴라들은 용암에 묻혀 사라져 버린다. 생존자들은 겨우 목숨만 건진 채로 일단 충분한 물자가 있고 거처로도 쓸 수 있는 합작사업의 추락한 수송기로 가지만 하필 식인종 무리와 마주쳐 전투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고릴라와 싸울 때와 달리 수송기 동체라는 방호벽에 화물칸에 쌓인 무기 덕으로 식인종을 닥치는대로 쓸어버리고(...) 주술사까지 죽여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다음 공격이 있기 전 준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물자를 뒤지던 일행은 합작기업이 준비했던 [[열기구]]를 타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영장류 연구가. 동물학자. 에이미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에이미가 그린 꿈 속의 도시와, 아랍인들의 그림으로 그려진 진즈가 기묘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에이미를 고향에 데려가보는 것을 목적으로 탐험에 나서게 된다. 진즈에서 회색 고릴라들과 만나게 되자 본래 목적을 잃고 회색 고릴라를 고릴라 엘리어트네스라고 이름 붙이고 신종임을 입증하는데 열중하기도 한다.
암컷 [[고릴라]]. [[수화]]를 사용할 줄 아는 고릴라로서 지능이 높으며, 성격은 대체로 상냥하고 온순하지만 가끔 토라져서 화내기도 하는 [[츤데레]]. 인간으로 치면 사춘기 정도이다. 과거에 진즈 주변에서 살았으며, 진즈에 접근했다가 회색 고릴라에게 모친이 살해당하고 고아가 되었다가 잡혀서 팔려가게 되었다. 피터가 회색 고릴라 무리 앞에 떨어졌을 때 직접 나서서 우호적인 행동을 보여서 피터를 구해내고, 회색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탐험대의 캐리어로 대활약한다. 피터와 먼로 쌍방에서 관심을 받는 이 소설의 메인 히로인(!) 격인 고릴라, 모험이 끝난 뒤에는 야생 고릴라 무리들 사이에 들어가서 아이도 낳고 살게 된다.
탐험대 대장. 여성 박사. 전자공학 전문가. 그러나 주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중에서는 '''거의 악질 트롤러'''(…). 비중도 활약도(…).--에이미와 지나치게 비교된다.--
아프리카 출신 백인 [[용병]]. 일명 캡틴 먼로. 탐험의 무력을 책임진다. 의외로 에이미와 사이가 좋은데 고릴라 취급 안하고 평범한 10대 여자애들처럼 대하기 때문. 인정도 많아서 피그미 마을에 낙오된 백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정이 촉박한 와중에도 도와주려 나섰다. 이때 카렌이 시간 없다며 반대하는데 극중 먼로가 유일하게 화낼 때가 이때였다. 이후 그 백인이 먼저 투입됐던 탐사대원이라는 걸 알고 카렌도 군말 없어디긴 하지만.
먼로의 오른팔격인 현지인 청년. 꽤 유머러스하고 성격에 붙임성도 좋다. 다른 대원들은 마구 죽어나가는 와중에 본인은 끝까지 살아남는데 성공. 다만 이런 식의 탐사는 해본 적이 없는지 피터와 카렌을 보고 학자로 위장한 밀수업자로 생각했다. 본인은 먼로가 무기밀매 아니면 이렇게 나설 일이 없다고 믿는 듯.
정글에 묻혀 있는 고대도시 진즈의 잔해에 거주하는 회색 [[고릴라]]. 평범한 고릴라가 아닌 신종으로서, 현재는 사라진 진즈의 주민들에게 경비병으로 훈련되어 있다. 언듯 보기에는 평범한 고릴라지만, 털 색이 회색이며 평범한 고릴라와는 해부학적 특징이 다르고,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지적인 생물이다. 다만 얌전한 초식동물인 고릴라와는 달리 흉폭성도 높아서 위험한 생물이다.
정체는 상당히 충격적인데, 작중에서 고대에 살았던 진즈 주민들과 기존 고릴라와의 '성관계'로 태어난 '인간과 고릴라의 [[혼종]]'으로 추측된다. 원주민 여성과 고릴라가 성관계를 하는 부조물 등에서 추측되는 결과.
엘리어트는 이들을 자신의 이름을 딴 신종으로 발표하려고 조사를 했으나, 작품 말미에 화산이 폭발하면서 고대도시 진즈가 용암에 묻히면서 모두 전멸하고 말았고 이들을 조사한 엘리어트의 연구 결과도 진즈와 함께 파묻혔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18회 일치
* 제레프는 자신도 [[아크놀로기아]]는 이길 수 없고, 인류가 멸망하면 그와 메이비스는 영원히 아크놀로기아의 장난감이 된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 하지만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개입으로 대결은 미뤄진다. 그녀는 나츠에게 시간을 달라고 청하며 제레프와 얘기해 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제레프는 대결을 방해하는 메이비스가 탐탁지 않은지 머리끄덩이를 잡는다. 메이비스는 포기하지 않고 그를 돕게해달라고 애원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아크놀로기아는 어떻게 할까? 죽지 않고 영원히 부활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을까? 그것이 제레프가 가진 공포의 근원이었다. 메이비스와 나란히, 아크놀로기아의 영원히 사는 장난감이 되는 운명.
* 블루 페가수스와 아크놀로기아의 추격전은 끝에 다다랐다. 크리스티나 호가 한계에 봉착했다. 아크놀로기아를 떼어내어도 뒷날개가 파손됐고 속도도 유지할 수 없다. [[이브 티름]], [[렌 아카츠키]]가 안간힘을 쓰지만 아크놀로기아는 차츰 따라잡고 있다. [[제니 리아라이트]]가 예비 마도 부스터를 점화한다. 일시적으로 거리를 벌리지만 아크놀로기아에겐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 나츠는 메이비스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제레프의 눈빛 한 방에 나가 떨어진다. 짧은 틈이 생긴 동안 제레프는 메이비스에게 네오 이클립스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것은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마법". 400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살아가며 불로불사가 되지 않은 채로 죽겠다는 것이다. 그 인생은 메이비스와 만날 일이 없으니 유감이라고 하지만...
>너와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좀 더 행복해졌을 거다.
* 메이비스 입장에선 황당하기만 한 원망이다. 제레프는 그래도 다시 시작한 인생에선 꼭 나츠와 함께, 아크놀로기아가 지금처럼 강해지기 전에 끝을 내겠다며 "인류의 미래는 내가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지금 세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세계에서 말이다.
나츠와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가질 레드폭스]]와 [[레비 맥거딘]],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 [[렉서스 드레아]]와 [[미라젠 스트라우스]], 그리고 엘자와 제라르.
부녀애라서 인지 [[길다트 클라이브]]와 [[카나 알베로나]]도 등장. 그리고 우정이란 의미인지 [[웬디 마벨]], [[샤를(페어리 테일)|샤를]], [[셰리아 브렌디]]와 쓰리샷이다.
메이비스와 제레프도 일단 나오긴 하는데... 이번 에피소드 내용에 비춰보면 "애증"이란 키워드일 듯.
다음 주 잡지 휴간이라 [[페어리 테일/533화|533화]]와 동시 연재.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18회 일치
남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현직업학교[* 현재는 아현산업정보학교로 [[개명]]했다. 특히 [[실용음악과]]가 매우 [[인지도]]가 높고 학생들의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비스트(아이돌)|비스트]]의 [[이기광]], [[양요섭]], [[K팝 스타]]의 백지웅, [[K팝 스타 시즌3]]의 [[남영주]], 허니핑거식스의 황예린 등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매우 많다.]라는 위탁고등학교 실용음악과를 다녔다.[* 직업학교라서 본교인 광문고등학교는 일주일에 한번 가는 식으로 가끔씩 방문하고, 나머지 일수에 아현직업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듣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거다. 사실 여느 [[인문계고등학교|인문계고]]의 직업반들도 이런 식으로 운영이 된다.] [[휘성]], [[박효신]], [[UV]]의 [[뮤지]][* 그런데 서로 같은 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잘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등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휘성은 당시 A4라는 그룹으로 이미 가수 활동을 하는 중이었고, 박효신은 워낙에 학교에서 유명하던 터라 어린 마음에 '나보다 잘하나'하는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엔 과와 반이 달라서 그리 친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데뷔 후에 방송에서 자주 만나며 친해졌다고. 휘성의 말에 따르면 당시 환희는 대형 기획사([[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잘생긴데다 노래와 춤이 기가 막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학교에서는 보여주질 않아 더 전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현재의 터프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에 비해서는 말이 없고 조용한 ~~자발적 아싸~~ 모범생 타입이었다고.
휘성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꽤나 친한지 매번 앨범의 땡스투에 서로의 이름을 적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일명 '저마다의 길' 이전 마지막 방송인 절친노트에 휘성이 중재자로 나오기로 했다. 2009년과 2010년엔 환희와 휘성의 활동 시기가 겹쳐 예능이나 행사에 동반 게스트로 자주 나갔다. 2018년에 환희와 휘성은 엠넷 음악예능 더콜에서 그들의 20년 가까이 되는 우정을 지켜 볼수있던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박효신]]과는 환희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년 동안 사적으로 만난 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한다. 그래도 박효신 말로는 환희는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편한 사이라고.
1집 녹음 당시 회사와 주변의 권유에 따라 일부러 목소리를 얇게 내었다. 실제로는 데뷔 전부터 굵고 낮은 목소리에 가까웠다. 목소리를 얇게 내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유영진(작곡가)|유영진]], [[강타]], [[신혜성]]같은 SM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더니 돌아온 건 "'''강타 + 환희 = 환타'''"냐는 비아냥 뿐.(...) 그 때부터 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앨범마다 목소리가 진화한다. 실제로 플라이투더스카이 1집을 듣고 "'''환희 목소리가 좋아서 계속 찾아 들었는데, 멤버가 바뀐거냐'''?(...)"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3집부터는 얇게 내던 목소리를 버리고[* 3집의 경우 창법 변화 과도기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일부 노래는 아직 얇은 목소리가 확연히 남아있는 걸 느낄 수가 있다. 그 예로, sea of love에서 들리는 굵은 목소리에 반해 rain에서 환희의 목소리는 조금 얇은 편이다.] 4집 즈음부터 [[소몰이창법]]을 구사했다. 훗날 회상하길 Missing You 당시엔 [[소]]를 한 2만마리 정도 몰았다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8&aid=0000354994|#]] 기본적으로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 흉성을 가미하여 매우 깊이있는 중저음을 가진 보컬이 되었다. 음역폭이 매우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유의 기교와 애드립은 수준급. 이 때문인지 [[김구라]]의 [[가요광장]]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바이브레이션]] 부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KBS라디오 쿨FM 4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였다. 그 외 수상자들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14154|기사]]에서 확인]
6집 발매 전에는 성대결절이 찾아와서 앨범 발매를 연기했다.[* 그 때 '남자답게'란 곡이 뒤늦게 들어와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성대결절에서 회복된 후 '남자답게'를 녹음하여 타이틀곡으로 발표. 결과적으로 대박났다.] 7집부터는 전에 비해 창법이 좀 더 편하고 가벼워졌다. 그러나 후에 첫 미니앨범 활동중에 성대결절도 아닌 성대마비 때문에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지금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며 당시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7집부터 변화하기 시작한 환희의 창법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흉성을 진득하게 다루던 6집에 비해서 아주 조금은 얇아지고 비음이 가미되었으며 고음역폭이 넓어졌다.[* 8집의 술을 들어보면 환희의 고음역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특이한 버릇이 생겼는데, 6집까지는 없던 습관으로서 음을 끌다 끝처리를 독특하게 맺는다. 이 끝음 처리라는 것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인데, 들어보면 제법 호불호가 갈릴 법한 습관이다. 2015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미워해야 한다면'라는 더블 타이틀 곡중 하나를 불렀는데 바리톤의 음역대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3옥타브 도#의 진성 고음 파트는 '''레전드 수준'''. 창법이 안정적으로 바뀐 2014년도부터 최근 라이브를 들어보면 굉장히 안정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SG워너비]]가 처음 데뷔했을 때 환희와 [[김진호(SG워너비)|김진호]]가 동일인물로 오해받은 적이 잠깐 있다. 휘성은 Timeless를 듣자마자 환희에게 전화해서 너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 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다그쳤다는 일화가 있다. ~~[[소몰이창법|소모는 방법]]이 비슷했나보다, [[히든 싱어]]~~ 지금이야 김진호도 환희도 창법이 다른 방향으로 많이 진화했기 때문에 착각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신인 시절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출연하여 최후의 5인까지 살아남았으며 ~~유승준~~-이범수-박경림-김성수 다음으로 오래 생존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도 꽤 적응이 됐는지 임창정, 김조한이 게스트로 와 R&B 브라더스를 결성, 영원히 계속되는 애드립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가장 막내라(중간에 2001년을 맞아 스물한 살이 됐다) 다른 출연자들이 게임을 살살 해주는 등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준 것이 생존에 가장 크게 기인한 듯 하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초반 광탈.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을 진행했다.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은 비자문제로 중도하차하여 환희 단독 DJ라고 봐야되지만 이름은 일단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이다. [[김연우(가수)|김연우]], [[린(가수)|린]], [[김범수]], [[김현성]], [[서영은(가수)|서영은]] 등등 실력파 가수들이 게스트로 나와 같이 노래부르던 삼색떡볶이라는 코너가 유명했다. 노래만 편집해서 [[MP3]] 파일로 인기리에 떠돌아다녔을 정도.
[[화요비]]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촬영했었다. [[화요비]]에게 지어준 별명은 다름아닌 개똥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쁜 남자 기믹이었으나 ~~네티즌들이 무서웠는지~~ 점점 온순해졌다. 당시 "싸가지 없다"라거나 "차갑다"라는 식의 여론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는지 이후에 방송에서 예능이라 그런 점이 과장됐을 뿐, 실제로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쁜 남자는 아니라며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게다가 후반에 나쁜남자 기믹을 좀 죽였더니 이번엔 전보다 재미없다며 난리~~ 결국 금방 하차했다. 가장 빨리 하차한 커플 중 하나. 현재도 [[화요비]]와는 음악적 동료이자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 중이다. 화요비의 [[화요비/음반 목록|앨범]] 인터뷰 당시, 앨범 공개전에 미리 노래도 들려줘서 환희의 조언도 받고, 다시 우결을 해도 환희와 다시 하고 싶다는 등을 언급했었다.
2017년 6월 14일에 가수 [[거미(가수)|거미]]와 [[JTBC]] [[한끼줍쇼]] 35화에, 2018년 1월 24일엔 가수 [[휘성]]과 [[MBC every1]] [[주간 아이돌]] 339화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웃어라 동해야]]의 도진이로 알려진 배우 [[이장우(배우)|이장우]]와 사촌관계이다. 같이 놀던 사촌형이 가수로 집안을 일으키는 것에 감명받고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사실은 환희 형 갖다 주라며 기념일마다 주변 사람들이 과자나 초콜릿을 한가득 주는게 부러웠다고~~ 이장우와 [[은정(티아라)|은정]]의 우결 집들이에 초대된 환희는 커플속옷을 선물함으로써 역시 한핏줄임을 인증하였다. 이장우가 환희의 첫 솔로 정규앨범 타이틀곡 뮤비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17회 일치
각자의 연구진은 최대 여섯가지의 전공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기술 또한 다섯-여섯개의 전공(겹칠 수 있음)을 요구하는데, 해당 전공이 연구진이 가지고 있는 전공이라면 연구 속도가 빨라진다. 전공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 Aircraft Test(항공기 시험): 아이콘은 전투기와 프로펠러.
* Avionics(항공전자공학): 아이콘은 프로펠러와 막대(?)
* Munitions(군수품): 아이콘은 총알 네개와 상자 세개.
* Naval Artillery(함포): 아이콘은 견인포와 닻.
* Airborne Training(공수 훈련): 아이콘은 프로펠러와 병사.
* Combined Arms Focus(합동군 중심): 아이콘은 병사와 전차.
대부분의 연구진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일부 연구진은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일정 년도가 되면 그대로 사라진다. 이는 실제 역사상에서 해당 연구진이 사망/해체/파산된 것을 구현한 것이다. 반대로 새로 생겨나는 연구진도 있다. 그런데 이거 좀 어거지로 되어있어서 1950년대 일본 제국은 겨우겨우 살아서 제국주의짓 해도 일본군 관련 연구진들은 싹 쓸려나가고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가 그 자리를 메꾼다.
* Hindenburg-Ludendorff(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
* Dwight Eisenhower(드와이트 아이젠하워)
* Kawasaki Jukogyo(가와사키 중공업)
* Kawasaki Hikoki(가와사키 비행기)
잉글랜드 출신 컴퓨터 공학자이자 수학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튜링 기계와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다. 하지만 전후 당시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여성호르몬을 투여받았고 그 결과 1954년 자살하였다.
* Robert Watson-Watt(로버트 왓슨 와트)
미국의 커티스-라이트와 합작해서 세운 비행기 제조회사.
퀴리 부부의 딸인 이렌 퀴리와 마리 퀴리의 조수인 프레데리크 졸리오가 결혼해서 만든 부부. 1935년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들이다. 이 가문 뭐냐.
* Emile Dewoitine(에밀 드와틴)
- MC메타 . . . . 17회 일치
||<:> '''소속그룹'''||<(> [[가리온]], 메타와 렉스[* DJ렉스와 결성한 그룹. 작업물로 무까끼하이가 있다.] ||
2013년 6월 MC 메타는 [[SHOW ME THE MONEY 2]]에 메타크루의 수장으로 출연했다. 인터뷰에서 시즌 1에 불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즌 1에 나왔던 래퍼들이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것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일단 ~~이현도와 비교되면서~~ 출연자를 대하는 태도나 심사평에 대한 반응은 좋다.
한국 힙합 문화의 발달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한 일례로 2013년부터 누구나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하자는 취지의 '모두의 마이크' 행사를 나찰, [[김봉현]] 평론가와 진행하고 있다. 메타의 말을 빌리면, 마스터플랜처럼 '물리적인 공간에서 서로 랩을 하고 서로 호흡하는 그런 지점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시와 랩에 중간 지점인 [[포에트리 슬램]] 행사인 '포에틱 저스티스'를 김봉현씨와 개최하고 있다.
2016년 11월 17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박근혜정권을 비판하는 벙개곡을 냈다.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7340&m=view&s=news|MC 메타 - 퇴진의 영순위와 도둑놈패]][* 영순위와 '불한당가' mc 메타 파트의 비트를 썼다.]
* 술자리에서 친한 사람들을 엄청 때린다고 한다. 빡센 사투리와 함께 --[[정상수|마 시x로마 이게 힙합이나 아나?]]--. 근데 [[키비]]는 안 때린다 한다.
* '''청와대에 입성했다.''' 8월 20일에 실시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음악 관련 불공정 사항들을 고쳐달라고 말하였다. ’문재인 시계’는 못 받았다고 한다. [[http://m.ulsanfocus.com/news/articleView.html?idxno=84820|#]]
실력은 공식 데뷔로는 14년차 블렉스시절까지 합하면 거의 20년 동안 랩을 하고 있지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수준급 스토리텔링과 시적인 가사, 특유의 한국어 라임 구성, [[붐뱁]] 비트, 재지(Jazzy)한 비트, [[트랩]] 비트 등에서도 랩을 할 수 있는 넓은 비트 스펙트럼. 플로우는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고, 엇박을 잘 타는 것도 아니지만 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포스가 그 모든 걸 덮는다. 2018년 현재 48세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이다. 가리온 2집의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에서 아직 본인의 랩 실력이 꺾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대부분의 1세대 래퍼들이 현재 랩을 안 하거나 퇴물 취급 받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실제 마스터플랜 멤버 중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랩 작업물을 내는 건 메타와 나찰 정도 밖에 없다.--더럽게 안내지만--]
그리고 굉장히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무까끼하이[* 대구 사투리, 대구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희귀한 사투리라 한다. 뜻은 뭔가 고지식하고 뭔가 무식해 보이는 어떤 사람 혹은 상황이라 한다.]처럼 [[경상도 사투리]]로 랩을 한다든지 심지어는 다큐멘터리 <사투리의 눈물>에서는 21분간 랩으로 사투리 나레이션을 시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재즈와 힙합을 합친 개념인 재즈합이라는 프로젝트 밴드 활동도 하고, 프로듀서 [[돕플라밍고]]의 'Hellevator'에서도 새 스타일을 시도 하였고, 2016년 최근에 발표된 Heritage 싱글에서는 끝말잇기 랩을 시도하기도 했다.
바이러스[* [[마이노스]]와 메카, GMC로 이루어줬던 대구 출신 3인조 그룹이다. 이들이 낸 EP 앨범 <Pardon Me?>는 한국형 스토릴텔링의 완성이라고 평가받는다.] - Pardon Me?/ Take Me There (feat. MC Meta & DJ Skip)
[[투게더 브라더스]] - RADIO STATION/ Together Brothers (feat. 가리온 & [[노이즈맙]][* [[마이노스]]와 [[라임어택]]이 이룬 팀])
2011. 1집 DJ And MC - 메타와 렉스
2012. 1집 Wanna Play A Circus? - 재즈합(JAZZHOP) [* MC 메타와 베이시스트 [[이철훈]]의 합작앨범]
- 고성국 . . . . 17회 일치
[[고려대학교]] 정외과 강사 시절인 1986년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270032921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617&publishType=00020</ref> 당시 공안당국은 다산기획 대표이던 고씨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좌익]] 서적 100여 권을 들여와 번역한 뒤, 이를 [[백산서당]] 대표 이범(현 [[흥사단]] 일본특별위원장)에 넘겨 대학가와 시중에 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4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4&officeId=00020&pageNo=1&printNo=19855&publishType=00020</ref> [[1988년]] [[2월 27일]]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된 사면복권에서 특별사면복권 대상자가 되어 풀려났다.
이후에는 [[나라정책연구회]] 정책실장 등을 지냈으며, [[1994년]]에는 서울경찰청의 민간인 사찰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01100289101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4-10-11&officeId=00028&pageNo=1&printNo=2034&publishType=00010</ref> 같은 해 5월에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던 진보적 월간지 《사회평론 길》에서 《[[월간조선]]》과 논쟁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5260028911401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5-26&officeId=00028&pageNo=14&printNo=1907&publishType=00010</ref> 1995년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일간지의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 "분단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까지 미화하려는 시도의 시작"이라 비판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1800289101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02-18&officeId=00028&pageNo=1&printNo=2153&publishType=00010</ref>
1998년 10월 서울지검 공안1부는 고성국이 [[총풍 사건]]의 관련자인 오정은 전 청와대 행정관, 윤만석 전 [[이명박]] 의원 보좌관, 조청래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과 제[[15대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당선을 위한 '비선 참모 조직'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ref>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5</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0270020911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10-27&officeId=00020&pageNo=12&printNo=24023&publishType=00010</ref>
2007년 5월 3일 [[프레시안]]에 기고를 시작하면서 정치평론을 재개했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70502082715&Section=01</ref> 같은 해 말에는 《10대와 통하는 정치학》을 펴냈고, 2008년 [[1월 8일]]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쇄신 초선의원모임에 참가해 발제문을 발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928328</ref> 같은 해 [[5월 12일]]부터는 [[기독교방송|CBS]] 《시사자키》 앵커로 두번째 발탁돼, 이듬해 2월 26일까지 진행했다.<ref>http://www.cbs.co.kr/radio/pgm/board.asp?pn=read&skey=tcon&sval=%B0%ED%BC%BA%B1%B9&anum=1458&vnum=397&bgrp=4&page=8&bcd=007C055E&pgm=1383&mcd=BOARD2</ref>
2011년 들어 고성국은 친[[박근혜]] 정치평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디어오늘은 고성국의 친박 성향과 그의 동생이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기획사를 운영했다는 점을 연결지었다. 고성국은 자신의 동생이 설립한 정치기획사에 대해 "동생과 다른 사람이 합쳐 만든 회사로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ref name="mediatoday.co.kr"/>
자신에 대한 정치 편향 의혹에 대해 고성국은 2012년 10월 23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평론을 구체적으로 하다보니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면 박근혜에게 편향됐다는 오해와 억측을 피할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지만 두루뭉술한 평론은 내 철학과 맞지 않다"라고 해명했다.<ref>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3&art_id=201210161146121</ref>
* 《한국정치의 구조와 진로》(공저), 실천문학사, 1990<ref>http://books.google.com/books/about/%ED%95%9C%EA%B5%AD%EC%A0%95%EC%B9%98%EC%9D%98%EA%B5%AC%EC%A1%B0%EC%99%80%EC%A7%84%EB%A1%9C.html?id=NRQhHAAACAAJ</ref>
* 《10대와 통하는 정치학》, 철수와영희, 2007 {{ISBN|9788995833858}}
* 《불량사회와 그 적들》(공저), 알렙, 2011 {{ISBN|9788996517122}}
* 《10대와 만나는 정치와 민주주의》, 철수와영희, 2011 {{ISBN|9788993463132}}
* 《덤벼라 인생》(공저), 철수와영희, 2012 {{ISBN|9788993463224}}
*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철수와 영희, 2015
- 날조트랩 -NTR- . . . . 17회 일치
소꿉친구 관계에 있는 여고생 오카자키 유마(岡崎由真)와 미즈시나 호타루(水科蛍)가, 서로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계가 깊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어릴 때 괴롭힘 당하던 호타루를 감싸주며 괴롭히던 애들을 격퇴하곤 했다. 운동을 잘 한다. 다케다와 사귀면서도 호타루에게 휘둘리고 있다. 순수한 편으로 보이지만 호타루에게 독점욕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중1때 [[농구부]]에 들어갔다. 이 때 호타루가 남자 선배의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되자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타케다와는 농구 연습을 함께 하며 친해졌다.
흑발에 청초한 외모의 미소녀. 과거에는 얌전하고 심약한 성격이었지만, 현재는 유마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돌발적인 행동을 자주 하며 비교적 만악의 근원(…). 유마와는 이웃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부자가정이며, 아버지가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고 있다.
1화에서 타케다와의 데이트를 앞둔 유마에게 '장난'을 하고, 데이트를 마치고 온 뒤에는 '키스'를 하면서 둘 만의 '비밀'을 만들게 된다. 유마에게 자주 장난을 걸지만 유마는 일선을 넘지 못하고, 호타루는 질투심에 유마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3학년 때는 돈을 벌어서 집을 나가겠다며 네코미미 메이드카페에서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오카자키 유마의 남자친구. 유마와 사귀면서 진도를 나가려고 하지만, 호타루와 유마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잘 풀리지 않는다. 1학년 때는 호타루와 같은 반이었다.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호타루를 걱정하기도 한다.
유마와의 관계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유마가 후지와라와 호타루 때문에 데이트 시간에 늦게 되자 잠시 거리를 두자면서 멀어지게 된다. 유마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불안감을 느낀다. 타케다와 헤어지고 나서 자신이 나쁜 짓을 했다고 후회하는 유마를 본 호타루가 화해를 주선해서 일단 친구 사이로 돌아간다.
'''후지와라(藤原)'''(성우:[[오노 다이스케]])
미즈시나 호타루의 남자친구. 얼굴도 미남, 머리도 좋다. 타케다와는 사이가 좋다. 유마에 대한 호타루의 감정을 눈치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마가 호타루와 이상한 짓을 하게 되면서 타케다를 은근히 배신하게 되자 유마에게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호타루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유마와 호타루에게 3P를 하자는 말을 던지거나, 유마와 호타루가 속옷만 입고 있는 사진을 찍어서 협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등. 위험한 모습을 보인다.
- 마더콘 . . . . 17회 일치
처음 나타난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1965년대에 이미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1973년에 현대 용어 기초 지식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어머니 애착증"이라고 밖에 언급되저 잇지 않다. 1970년의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 사자에상의 작가)의 4컷 만화에서는 효도를 하는 것이 마더콘으로 여겨진다는 풍자 소재가 있다.
『계속 당신을 좋아했다(ずっとあなたが好きだった)』라는 드라마는 29세 여성 니시다 미와(西田美和, 연기자는 카쿠 치카코賀来千香子)가 도쿄 대학교 출신 엘리트 은행원 카츠라다 후유히코와 맞선 결혼을 하지만, 같은 시기에 옛 남자친구인 오오이와(大岩)와 재회하여 흔들린다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원래는 그다지 마더콘 설정이 아니었으며, 1화에서는 그리 기분 나쁘지 않고 지적이고 상냥한 좋은 사람으로 감기에 걸린 미와를 배려하여 샐러드와 죽을 만들어주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1화에서 길에 넘어져서 손가락을 다친 후유히코를 보고 (시)어머니 역인 에츠코(悦子, 배역 노기와 요우코野際陽子)가 '다친 손가락을 순간적으로 입에 물고 빨아주는 애드립'을 실행. 그것이 반응이 좋아서 계속 마더콘 전개가 증폭되었다고 하는 뒷 이야기가 있다.(...)
결국 시어머니의 구박과 후유히코의 마더콘 기행을 참을 수 없게 된 미와는 결국 이혼하고, 오오이와와 재혼한다. 하지만 미와는 후유히코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 결말에서는 후유히코의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 후유히코는 어머니를 찌르고 감옥에 갔다가 나와서 다시 맞선 결혼을 한다.
여기서는 미와와 오오이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카나코(加奈子)와 후유히코가 재혼 후에 낳은 소년 마리오(麻里夫)이 성장하여 사랑을 한다는 데서 시작된다. 참고로 사노 시로우는 마리오 역도 맡았으며 이 작품에서는 진성 스토커다.(...)
- 맥스 페인 . . . . 17회 일치
[[윈도우 비스타]] 이후 버전은 맥스의 대사, BGM, 중간중간 삽입된 그래픽 노블에서의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적의 고함소리와 총소리 뿐. 거슬린다면 사운드 패치를 적용하자.
* 왼쪽 아래의 사람 모양으로 생긴 것은 맥스의 [[체력]]이다. 체력이 붉게 차버리면 맥스는 죽는다. 화염과 접촉하면 체력 상관 없이 불춤을 추며 죽으니 주의. 돌아다니다가 주울 수 있는 [[진통제]][* Tab이나 백스페이스로 사용함.]로 체력을 천천히, 약간씩 회복할 수 있다. 진통제의 소지 유무와 수는 체력 옆에 표시된다. 총 8개 까지의 진통제를 소지 가능.
착탄한 곳에 화염을 만들어낸다. 해당 화염 효과와 접촉한 적은 불춤을 추며 죽는다. 적들이 화염 효과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유용하다. 접촉시 즉사는 맥스도 해당되니 주의.
Max Payne. 뉴욕시경 형사. 아내와 갓난아기 딸이 마약 "발키리"의 중독자들에게 살해당한 후 마약단속국에 들어간다. 가족의 몰살에 연루된 마약 "발키리"의 제조원을 찾아 갱단에 잠입해 잠복 수사를 벌지만 동료 형사인 알렉스 볼더와 접촉하던 중 의문의 총격으로 볼더가 사망. 경찰에 의해 범인으로 몰린다. 설상가상으로, 잠입하고 있던 갱단에게도 형사라는걸 들켜 모두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이 와중에서도 볼더를 죽이고 발키리를 유통한 범인을 찾아 족치기 이해 이곳 저곳을 누빈다.
마약단속국 요원. 마약단속국 내에서 맥스와 아는 유이한 사람 중 하나. 다른 하나는 당연히 알렉스 볼더다. 로스코 지하철 역에서 맥스와 알렉스를 만나게 했다. 맥스가 펀치넬로를 죽인 후 다시 연락을 걸어와 만나게 된다. 이때 그는 양복을 맞춰입고 금시계와 금으로 된 커프스 단추를 끼고 있었다. 경찰 월급으로 살 수 없을 물건을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본 맥스는 B.B.가 뇌물을 받고 볼더를 죽였다는걸 깨닫고 그를 추궁한다. 정체를 들킨 B.B.는 주차장으로 도망치지만 맥스에게 붙잡혀 죽는다. 무장은 잭해머와 수류탄.
Finito Brothers. 조이 피니토(Joey Finito)와 비르질리오 피니토(Virgilio Finito). 누가 조이이고 누가 비르질리오인지는 모른다. 루피노 휘하의 부하들로 매춘이 벌어지는 낡은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경찰의 잠입수사 요원이라는걸 들킨 맥스를 죽이려고 했으나 맥스에게 역으로 죽는다.
Angelo Punchnello. 펀치넬로 패밀리의 수장. 경찰은 그가 발키리와 관련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맥스는 그 증거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때 맥스는 도망자가 되어버린지 오래. 모나 색스의 말에 따르면 아내인 리사를 가학적으로 폭행한다고 한다. 모나에게서 그가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정보를 얻은 맥스의 표적이 된다. 맥스를 함정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결국 자택에 쳐들어온 맥스에게 붙잡힌다. 맥스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니콜 혼의 존재를 말하려 하지만 난입한 니콜 혼의 부하들에게 죽는다.
Kyra Silver. TV 뉴스 아나운서. 가끔씩 TV 뉴스에 나와 경찰이 쫓는 살인자 맥스 페인의 행적과 뉴욕 최악의 눈보라에 대해 보도한다. 별 존재감은 없다.
Valkyr. V라고도 쓴다. 뉴욕에 퍼지고 있는 약물로 누가 만들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 약물을 복용한 자들에 의해 맥스의 아내와 딸이 죽은게 맥스가 마약단속국에 들어간 원인이 되었다.
Casa di Angelo. 안젤로 펀치넬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블라디미르와의 거래로 무기를 확보한 맥스가 펀치넬로와 만나기로 한 곳이었지만, 펀치넬로는 카사 디 안젤로 전체에 휘발유를 끼얹은 후 맥스가 오자 불을 질러버린다.
- 보쿠걸/102화 . . . . 17회 일치
미즈키가 이마이선배와 초콜렛을 만드는 사이 후지와라는 타케루와 마주친다.
* 이마이 선배는 오해한채로 미즈키와 초콜렛을 만들고 있다.
* 후지와라는 초콜렛을 사러 마트에 갔는데, 왠 초콜렛 괴인이 말을 건다.
* 타케루는 짬을 내서 후지와라와 얘기하는데, 후지와라가 넌지시 "어떤 초콜렛이 좋으냐"고 물어보는데 "달지 않은게 좋다고 대답한다.
* 하지만 "미즈키한테 주는게 어떻냐"는 말을 덧붙여서 후지와라를 상심시킨다.
* 잠시 후 후지와라는 "이대로 미즈키가 여자애로 남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돌직구를 날린다.
* 타케루는 말을 돌리려 하지만, 후지와라는 "전에 나에게 미즈키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는데, 그게 왜 궁금했는지 알고 싶다"고 연거푸 직구를 날린다.
* 타케루는 또 얼버무리려고 하지만 후지와라는 "결국 여자애인 미즈키가 귀엽다는 말이지?"라며 쐐기를 박는다.
* 타케루는 약간 자기혐오하지만 후지와라는 "미즈키는 내가 봐도 귀엽고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격려한다.
* 후지와라는 타케루의 솔직한 심정을 알게 됐다며 고맙다고 말하는데, 타케루는 뭐가 고맙다는 건지 되묻는다.
* 그리고 후지와라는...
- 후지와라. 타케루의 진심에 대하여.
* 후지와라는 결국 마음을 정리한 것 같다.
- 손담비 . . . . 17회 일치
소속사에 들어가서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의 시트콤 《[[논스톱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준표도 담비도 출발은 단역 아이돌 스타 무명 시절 살펴보니 |url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나지연 |날짜 = 2009-05-03 |확인날짜 = 2009-09-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1011100530/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보존날짜 = 2009-10-11 |깨진링크 = 예 }}</ref> 이처럼 원래 손담비는 가수보다 배우가 꿈이었으며 기획사에 들어간 계기도 사실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ref name="news">{{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인터뷰③)|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유현진, 정유진|날짜=2009-04-17}}</ref> 2004년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크럼핑을 배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내 이름은 손담비, '몸치'였던 나의 이야기 들어볼래?"|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DCD=A606&newsid=02086086583165328&OutLnkChk=Yl |출판사 =이데일리|저자 =박미애|날짜 = 2007-06-25|확인날짜 = 2009-09-02}}</ref> 크럼핑을 배울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국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과 크럼핑 댄스의 창시자 릴C 등 유명인사들에게 배웠다.<ref>{{뉴스 인용|제목=미쓰에이 연습생 시절 보다 더 파워풀한 '손담비 연습생 시절' 영상|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출판사=ENS|저자=뉴스팀|날짜=2010-12-31|확인날짜=2010-12-31}}{{깨진 링크|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 }}</ref> 당시 릴C는 손담비에게 "너는 예쁘니까 그냥 연기나 해라"라고 할만큼 재능이 부족했지만, 오랜 연습끝에 춤을 잘 출 수 있게 되었다.<ref name="10아시아"/> 같은 해 2005년에는 CJ 뮤직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을 결성해 초창기 멤버로 발탁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 |제목 =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 |url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 =머니투데이|저자 =김원겸|날짜 = 2007-05-06 |확인날짜 = 2014-05-15}}</ref> 2007년 5월에는 [[가희]]와 함께 에스블러쉬 멤버로서 〈It's My Life〉를 발매했고, 미국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2위까지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5-06|확인날짜=}}</ref> 하지만 팀 내부 사정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이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데뷔를 준비했는데, 데뷔 전 바람의 〈사랑하다〉, [[메이비 (가수)|메이비]]의 〈다소〉와 같은 뮤직비디오와 [[삼성전자]], [[SK 텔레콤]]과 같은 대기업 광고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담비가 온다1]MSN 재팬이 주목한 거물 신인|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300&g_serial=260493|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7-05-04|확인날짜=2014-05-15}}</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데뷔전부터 잇달아 대기업 모델 '톱스타 예약'|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507444112344&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5-05|확인날짜=2014-05-15}}</ref> 또한 비보이 대회 'R16 코리아 스파클링 서울'에 출전했다.<ref name="seg1"/> 그리고 2007년 6월 14일, 손담비는 데뷔 싱글 〈[[Cry Eye]]〉를 발매했다. 〈Cry Eye〉는 손담비의 뛰어난 춤실력을 보여주는데는 충분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Cry Eye〉의 안무 중 [[크럼핑]]이라는 장르를 안무로 삼아 이 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렸다.<ref name="seg1">{{뉴스 인용| url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제목 = '여자비' 손담비, 댄스로 뜨고 가창력까지 장착| 날짜 = 2007-07-08| 저자 = 한준호 기자| 확인날짜 = 2007-08-07| 뉴스 = 세계일보|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416/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보존날짜 = 2007-09-30| 깨진링크 = 예}}</ref> 또한 크럼핑은 고난이도 댄스로 꼽혀 아시아에서도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한 뒤, 미국으로 떠나 L.A 밀레니엄 스쿨에서 발레, 재즈, 크럼핑 댄스 등을 배우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등 연습에 매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 여름 컴백 환영. 내 인생 최대의 도전”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51917202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현우, 정유진|날짜=2008-05-20}}</ref>
=== 2008~09: 미쳤어와 Type-B ===
5달 후인 2008년 9월 17일 두 번째 미니 앨범 ''[[Mini Album Vol.2]]''의 타이틀곡 〈미쳤어〉의 티저 영상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티저 영상은 공개후 각종 동영상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받으며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미쳤어' 티저 영상에 팬들의 반응 뜨겁네~ |url=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11539|출판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연예|저자=스포츠연예팀|날짜=2008-09-19|확인날짜=}}</ref> 이어 18일에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타이틀곡인 〈미쳤어〉 열풍이 한국에 불었는데, 특히 처음 후렴구부분의 의자춤이 인기를 끌었다. 각종 연예인들은 의자춤 패러디를 했는데, 재일 먼저 배우 [[허이재]]가 패러디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 허이재, 손담비 ‘미쳤어’ 의자춤 깜짝공개 눈길 확~|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0191843251001 |출판사= 뉴스엔 연예|저자=이현우|날짜=2008-10-20|확인날짜=}}</ref> 계속해서 김효진, 신봉선, 양정아, 현영, 노홍철 등이 예능에서 따라했으며, 《[[내 사랑 금지옥엽]]》의 유인영, 《[[수상한 삼형제]]》의 오지은 등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를 했다. 또한 일반인들도 UCC를 통해 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올렸다. 너도나도 다 따라한탓에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쳤어〉 금지령까지 내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 방송가, 손담비 '미쳤어' 이제 그만!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80986|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박재덕 기자|날짜=2008년 12월 22일}}</ref> 2008년 11월 17일에는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의 싱글 〈[[Family (Special Edition)|패밀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이티마우스, 이번에는 손담비‥'패밀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372273|출판사=네이버|저자=유상우|날짜=2008-11-11|확인날짜=2012-05-20}}</ref> 가수 활동 이외에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우리결혼했어요]]》에 [[마르코 (배우)|마르코]]와 함께 가상 부부로 나와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베스트커플상 수상했다.<ref name="2008MBC"/> 또한 각종 CF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는데, 1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몸값, 1년만에 3배 이상 높아져 '미쳤어' |url=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0966034|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날짜=2008-11-12|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반 ''[[Type-B]]''의 발매로 컴백을 준비했다. 음반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영상, 팬들 반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백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백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영상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상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백,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순|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반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순위가 0순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순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에서 수상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상 손담비, 뉴스타상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백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백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백…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영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반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백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백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상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상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절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영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절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절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손담비는 싱글 "[[Cry Eye]]"로 데뷔했을 당시 안무중 [[크럼핑]]이라는 고난도 댄스를 이용해 아시아의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 받았고, 이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seg1"/> 마돈나의 안무를 담당했던 미스 프리시는 손담비의 춤을 보고 "흑인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느낌과 동작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도 손색없는 실력이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돈나 안무가 손담비 춤 '극찬'|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810204|출판사=노컷뉴스|저자=이지현|날짜=2008-04-24|확인날짜=2012-05-12}}</ref> 그러나, 손담비는 데뷔 때부터 가창력에 대한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특히 2010년 "queen"의 MR 제거 영상으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ref name="아츠"/> 《[[티브이데일리]]》의 유진모는 "손담비의 가창력은 형편 없다. 온통 이펙터로 치장한 보컬은 도대체 사람이 부르는지 기계로 만든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토요일밤에〉에는 가창력 때문에 키를 내려 노래의 맛이 더 떨어졌다. 아이비의 폭발력마저도 없다"고 말했고, 이어 "아이비와 손담비의 음악성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라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손담비 아이비 서인영 '섹시 여가수' 성적표|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유진모|날짜=2010-06-28|확인날짜=2012-05-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52125/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또한 데뷔 초부터 [[문지은]], [[선하]], 제이제이와 함께 "포스트 이효리"라는 호칭을 얻으며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선하·제이제이..'제2의 효리' 경쟁 뜨겁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80129090514652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8-01-29|확인날짜=2010-11-05}}</ref> 하지만 2008년 말 〈미쳤어〉로 히트를 치며 앞에 세 여가수중 유일하게 인기를 얻은 가수가 되었다. 특히 〈미쳤어〉의 안무인 의자 춤은 손담비를 스타로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줬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탄생' 손담비의 전략은 바로 이것!|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10523482489834&nvr=y|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환횽희 연애패트롤|날짜=2009-01-21|확인날짜=2010-11-05}}</ref> 연이어 2008년 정규 1집 타이틀곡 〈토요일 밤에〉 역시 크게 히트하며 국내 최고의 여자 가수로 자리매김했다.<ref name="Mini 2"/> 이때부터 본격적인 포스트 이효리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효리]] 역시 "손담비, 서인영, 아이비 까지는 기사에서 자신과 붙여 놔도 괜찮다"며 인터뷰중 손담비의 존재감을 인정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대항마` 손담비-서인영은 언제컴백?|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0&no=190546|출판사=스타투데이|저자=이현우 기자|날짜=2010-04-14|확인날짜=2010-11-07}}</ref> 하지만 손담비는 이효리와 라이벌 구도에 대해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이효리의 내공을 따라갈 수 없다"라며 말하기도 했다.<ref name=Bi2>{{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와 라이벌? 내공 따라갈 수 없어”|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출판사=리뷰스타|저자=홍샘 기자|날짜=2010-09-05|확인날짜=2010-10-12}}{{깨진 링크|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 }}</ref>
손담비는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면서 많은 상을 받았다. [[서울가요대상]]에서는 2009년,<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미쳤어’ 열풍 과시|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2121717531002|출판사=뉴스엔|저자=지형준|날짜=2009-02-12|확인날짜=2014-05-15}}</ref> 2010년,<ref>{{뉴스 인용|제목=아이돌, 그들을 위한 잔치! 서울가요대상 이변은 없었다(종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03202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날짜=2010-02-03|확인날짜=2014-05-15}}</ref> 2011년에 이은 3년 연속으로 본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3년 연속 본상 수상… “내겐 너무 특별한 상”|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98214|출판사=뉴스엔|저자=양나래|날짜=2011-01-20|확인날짜=2014-05-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30014/http://sstv.hankyung.com/?c=news&m=v&nid=98214#|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2009년에는 제24회 [[골든디스크상]]에서 디지털음원부문 본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골든디스크 본상’ 손담비 “이렇게 큰 무대에서 큰 상을 받다니…”|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091210205154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 bnt뉴스|저자=박영주|날짜=2009-12-10|확인날짜=2014-05-15}}</ref> 2009 [[SBS 연기대상]]에서는 《[[드림 (드라마)|드림]]》으로 뉴스타상을 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김범-이민정 등 12명,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url=http://osen.mt.co.kr/article/G0912310257|출판사=OSEN|저자=봉준영|날짜=2009-12-31|확인날짜=2014-05-15}}</ref> 2012년에는 《빛과 그림자》로 [[MBC 연기대상]] 특별기획 우수상,<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MBC 연기대상 ‘우수상’ 수상, “숟가락 얹은 것 뿐”|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6379|출판사=뉴데일리|저자=신성아|날짜=2012-12-31|확인날짜=2014-05-15}}</ref>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신인상 수상...인증샷 공개|url=http://osen.mt.co.kr/article/G1109511163|출판사=OSEN|저자=정유진|날짜=2012-12-06|확인날짜=2014-05-15}}</ref> 배우, 가수 이외에도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2008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특별상 베스트 브랜드상을 받았다.<ref name="2008MBC">{{웹 인용|url=http://www.imbc.com/broad/tv/ent/event/2008entertain/awards/|제목=2008 MBC 방송연예대상 수상자 목록|출판사=[[MBC]]|웹사이트=[[MBC 방송연예대상]]|확인날짜=2011-02-16}}</ref>
2009년 데뷔한 [[NS윤지]]는 비슷한 장르와 외모때문에 제2의 손담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NS윤지는 직접 "더 많이 노력해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나 연기력 등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고,<ref>{{뉴스 인용|제목=NS윤지 "제2의 손담비? 다양한 모습 보여드릴게요"(인터뷰)|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9579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10-06-02|확인날짜=2011-08-13}}</ref> 프로듀싱을 맡은 [[용감한 형제]]는 "프로듀서로서 제2의 손담비, 차세대 섹시디바로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가수이다"라고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용감한형제, ‘제2의 손담비’로 NS윤지 찜!|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심재걸|날짜=2010-10-20|확인날짜=2011-08-1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08194946/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보존날짜=2014-08-08|깨진링크=예}}</ref> 같은 플레디스 소속이었던 [[헬로비너스]]는 "저희 롤 모델은 손담비 선배님이에요. 일본 등 해외 활동도 하고 계시고,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와 퍼포먼스가 정말 멋지세요. 선배님들의 장점만을 모아 저희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라며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헬로비너스 “머리가 불에 타도 족발이 먼저!”…신개념 ‘털털 아이돌’ 등장|url=http://news.donga.com/3/all/20120615/47030992/2|출판사=[[동아닷컴]]|저자=박영욱, 오세훈|날짜=2012-06-15|확인날짜=2012-06-15}}</ref>
- 애로우 . . . . 17회 일치
올리버 퀸이 어떤 사정이 있어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가 많은 성장을 이루고, 돌아와 악당들과 싸운다는 내용.
초기에는 영웅이라기보다는 복수자에 가까운 인물상을 보이지만, 점차 자신만의 정의감을 찾아가게 된다. 로럴, 사라, 팰리시티 등 연애전선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전처럼 난봉꾼은 아니지만 약간 썸만 타다보면 뿅뿅씬이 나와주는(…) 매력남.
퀸 코퍼레이션에 근무하는 미인 여성으로 유능한 천재 해커. 올리버를 도와주다가 점차 애로우 팀에 끼어들게 된다. 올리버와 연애 전선을 쌓아가다가, 3시즌에서 연인이 된다. 팀에서는 주로 정보 탐색과 통신지휘 역할을 맡으며 가끔 현장에 뛰어들기도 한다.
올리버의 여동생. 올리버와 아버지가 실종된 뒤, 미성년이면서도 음주와 마약에 빠져서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으며 올리버가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사고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나이트 클럽 경영을 시작하고, 점차 철들고 강인한 여자로 성장한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사실 올리버와는 씨다른 남매로서 그 아버지는 무려 말콤 멀린(…). 3시즌에서 말콤에게 단련을 받게 되며, 올리버의 정체를 알게 되고, 팀에 들어오게 된다.
티아 퀸의 남자친구. 이러니 저러니 해서 올리버와 팀을 이루게 된다. 과묵한 편이며, 젊고 혈기왕성한 성격이다. 티아의 잠자리 반응을 보면 정력도 출중한듯(…). 올리버와 같은 디자인에 붉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악당들에게 플래시와 혼동당하는(…) 장면도 있었다. 3시즌에서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당하게 된 올리버를 대신해서 자신이 애로우라고 하면서 자수, 구치소에 갇혔다가 디글이 동료 인맥을 이용해서 죽음을 가장하여 빼낸다. 이로서 '애로우'는 사망한 것이 되고, 다음 시즌부터 올리버는 그린 애로우로서 활동하게 된다.
랜스 형사의 딸. 올리버의 여자친구. …인데 올리버가 여동생 사라와 바람피우고 또 물에 빠져 실종당하는 파란만장한 과거를 겪었다. 본래 올리버에게 푹 빠져 있었지만, 올리버의 배신과 사라의 죽음 때문에 올리버에 대한 감정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로스쿨을 나오고 [[검사]]로서 활동하지만, 심각한 스트레스로 알콜 중독에 시달리는 등 문제를 겪기도 한다.
로럴의 여동생. 올리버와 함께 요트 타고 여행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참고로 올리버는 실종되기 직전까지 로럴과 사귀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죽은게 아니었고, 왠 악당들에게 잡혀서 리안 유에서 굴려먹히다가 또 빠져 죽은 걸로 나왔다가, 또 사실은 그때 죽은게 아니었고 리그 오브 어쌔신에서 구출해서 어쌔신이 되어서 돌아오는 등. 파란만장하게 죽었다 되살아나는 라이프를 보내고 있다. 리그 오브 어쌔신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레즈비언이 됐다.
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팔머 테크의 사장. 뛰어난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천재 미남 사업가. 가볍고 밝으며 허당스러운 성격이다. 3시즌에서 팰리시티를 사이에 두고 올리버와 삼각관계를 연출하지만, 이미 올리버는 팰리시티에게 마음이 있어서 성공하지 못한다. 라스 알 굴의 음모 때문에 애로우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여 적대시 하며, 자신이 개발한 아톰 아머를 입고 애로우와 대결하지만 팰리시티의 설득으로 올리버가 누명을 썻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합류하여 아톰으로서 올리버를 돕게 된다. 팰리시티와 잠시 연인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팰리시티는 올리버와 맺어지게 되면서 차인다.
2시즌 최종보스. 과거 리안유에서 올리버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호주군 특수부대 대원, 그러나 리안유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올리버를 증오하게 되었으며, 구일본군이 개발한 슈퍼솔저 제조약물(…) '미라쿠루'를 맞아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 미라쿠루를 남용하여 대량의 용병들을 만들어 스타 시티를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 윤흔 . . . . 17회 일치
'''윤흔'''(尹昕, [[1564년]] - [[1638년]] [[12월 1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무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해평. [[윤두수]]의 둘째 아들, [[윤훤]]의 형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초명은 양(暘)이고, 자는 시회(時晦), 호는 도재(陶齋) 또는 청강(晴江), 계음(溪陰)이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 당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하였으며, [[병자호란|병자]], [[정묘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협상을 반대하며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후금]]과의 협상을 강력 반대하였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에는 [[1632년]] [[인목대비]]와 [[1635년]] [[인열왕후]]의 [[국상]] 장례를 주관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도 임금을 호종하였으며, [[1636년]](인조 14년) [[정묘호란]] 때에도 [[남한산성]]으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 [[김상헌]]과 함께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사후 [[병자]], [[정묘호란]] 때의 [[호종]] 공로로 [[증직|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윤웅렬]](尹雄烈), [[윤영렬]](尹英烈) 형제는 그의 7대손, [[윤치호]]는 그의 8대손이다. [[이이]]·[[성혼]]·[[정철]]의 문인이다.
도재 윤흔은 [[1564년]] [[조선 선조|선조]] 때 [[의정부]][[영의정]]을 지낸 오음 [[윤두수]](尹斗壽)와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 황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증직|증]] [[의정부]][[좌찬성]] 윤희림의 증손으로, [[조선 인조|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윤방]](尹昉)의 동생이다.
일찍부터 재주가 있어 7세에 책을 읽을 줄 알고 신동이라 불렸으며, 어려서부터 [[율곡 이이]](李珥)와 [[우계 성혼]](成渾), [[송강 정철]](鄭澈)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시문을 배웠다. [[이이]], [[성혼]]으로부터는 [[김종직]]-[[김굉필]], [[정여창 (1450년)|정여창]]-[[조광조]]-[[백인걸]]-[[이이]], [[성혼]]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사사받았다.
첫 부인은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장남인 [[월산대군]]의 손자 [[양원도정]](陽原都正) 이혜(李譓)의 딸과 결혼하였다가 일찍 상처하고, 뒤에 스승 [[이이]], [[성혼]]과 동문수학한 [[신응시]]의 딸 영산신씨(靈山申氏)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재취 부인 영산신씨 역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처 전주이씨에게서 1남 1녀를 두니 아들 윤취지(尹就之)와 유시경(柳時慶)에게 출가한 딸이 있다. 또한 첩실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니, 서자 윤태지(尹泰之)는 관상감 직장(觀象監直長)을 지냈고, 서녀는 무과(武科)에 급제한 유지만(柳之蔓)과 결혼하였다.
=== 과거 급제와 임진왜란 ===
[[경력]]으로 재직 중 [[1595년]](선조 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선발되었고, 얼마 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이때까지도 이름은 윤양이었는데 뒤에 흔으로 개명한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MN_6JOb_1595_004467 윤양]</ref> 향시에는 장원했지만 중앙의 과거에 낙방하였는데, 이때 비로소 굴욕을 펴게 되었다 한다. 그는 과거 급제 후에도 자신의 스승의 한사람인 우계 [[성혼]]과 송강 [[정철]]의 문하에 출입하며 가르침을 청하였으며, [[임진왜란]] 중에는 [[조선 선조|선조]] 임금을 따라 [[의주]]로 피난갈 때 수행하였다. 그 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공으로 [[성균관]][[전적]](典籍)으로 특진하였다.
이후 [[서인]]의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605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 [[여주목|여주]][[목사]](驪州牧使)로 부임하였고, [[여주]][[목사]]로 재직 중 [[여주]]의 향토지인 [[황려지]]를 썼다. [[1608년]](선조 41년) 겨울 [[명나라]]에 [[동지사]]가 파견될 때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귀국 직후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임명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년) 행[[장례원]] [[판결사]](行掌隷院判決事)로 전임되었다가 다시 [[승정원]][[우부승지]]와 [[좌부승지]]를 역임한 뒤, [[승정원]][[우승지]]가 되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자되었다.
[[1624년]](인조 2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李适) 등이 거병하여 도성으로 쳐들어와, [[이괄의 난]]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즉시 [[공주시|공주]]까지 달려가 [[조선 인조|인조]]를 호종하였으며, 그 뒤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그 뒤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을 거쳐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강화로 호종하였으며, [[청나라]]와의 강화, 회담을 강력히 배척하는 소를 올렸다. 그의 결사항전 주장은 묵살되었찌만 주화에 절대 반대한 점으로 [[사림]]의 지지를 받았다.
[[1636년]](인조 13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병자호란]] 당시 그는 [[김상헌]] 등과 함께 [[청나라]]와의 강화를 강력히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637년]](인조 15) [[정축하성]] 후 관직을 사퇴하고 칩거했으나 거듭된 출사 요청으로 [[한성]]에 되돌아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특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해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다시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계음만필 溪陰漫筆》, 《도재수필》, 《도재집》, 편저서에 《십묘한람도동편(十畝閒覽道東編)》 등이 있으며, [[여주시|여주]]의 향토지인 《황려지 (黃驪志)》를 편찬하였다. 그밖에 [[창랑정]](滄浪亭) 등 약간의 [[시조]] 몇 수가 전한다. [[1638년]](인조 16년) 초겨울에 가벼운 병을 앓다가 [[감기]]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그해 겨울 [[12월 17일]] [[감기]]와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죽자 [[조선 인조|인조]]는 애도를 표하여 정사를 파하고 바로 좌의정에 증직하였다.
그는 과거 시험에 급제한 뒤에도 스승인 [[성혼]]의 문하와 [[정철]]의 문하에 들며 가르침을 구하였다. 스승의 한 사람인 [[정철]]은 급제 이후에도 찾아 배움을 청하는 그에게 특별히 '윤시회흔견방'(尹時晦昕見訪, 시회(時晦) 윤흔(尹昕)이 찾아와서)이라는 시를 지어 헌정하기도 했다.
[[분류:윤치호]][[분류:윤치영]][[분류:윤보선]][[분류:임진왜란 관련자]][[분류:병자호란 관련자]][[분류:정묘호란 관련자]][[분류:해평 윤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감기와 폐병-->
- 은혼/603화 . . . . 17회 일치
* 지상의 해방군 주둔지는 우츠로에게 전멸. 추적해온 사카타 긴토키와 대면한다.
* 원상 황자는 도쿠가와 사다사다 일행과 대면. 사카모토 다츠마의 패기를 높이 사나 해방군 본대를 진격시키며 상황에 기름을 끼얹는다.
* 해방군 vs 카부키쵸 vs 우츠로와 나락
*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은 우츠로와 나락의 불사신 부대 한 가운데 떨어지고 마는데.
* 조정은 우츠로와 나락의 공작 활동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은 이마이 노부메의 안내로 우츠로를 추적한다.
* 신파치는 도쿠가와 노부노부의 교섭도 의미가 없는 거냐고 묻는데, 노부메는 이런 상황을 사전에 인지한거 같다.
* 그는 분명 이 사태 와중에 가장 위험하고 무너뜨리기 어려운 곳에 있을 거라는 것.
* 이들의 정체는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여동생 소요공주와 가신 롯텐 마이조.
* 그리고 친구를 위해 사는 것도, 친구와 함께 죽는 것도 모두 의리. 그러므로 자신과 젠조에겐 소요를 막을 권리는 없다.
* 모두 잃어버린 친구와 함께 발버둥치고자 하는 것이므로.
* 소요는 도쿠가와 노부노부 조차 싸우고 있다며, 자신들은 그 노부노부에게 만큼은 질 수 없다고 말한다.
* 가츠라 고타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노부노부와 사오토메 다츠마는 포박되어 있다.
* 그러나 그의 우려와는 달리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한다.
* 성사된다면 가츠라가 우츠로와 싸우는 최초의 장면이 된다.
- 은혼/629화 . . . . 17회 일치
* [[히라가 겐가이]]가 [[야토]] 용병부대 손에 떨어지고 [[히지카타 토시로]]와 진선조 부대가 이 사실을 가부키쵸에 전파한다.
* [[이마이 노부메]]는 부상으로 전선에서 빠졌으나 [[사다하루]]와 [[소요 공주]] 곁을 지키고 있다.
* 그런데 소요의 경호원이 두고간 무전기가 갑작스레 복구되면서 어딘가와 연결되는데, 상대는 해방군 본진에 억류된 [[도쿠가와 노부노부]] 일행이었다.
* 한편 포획된 겐가이는 복구된 통신으로 해방군 총지휘관 원상황자와 통신으로 대담을 가진다.
* [[히라가 겐가이]]를 포획한 [[야토]] 용병부대. 이들의 수장은 해방군 함대를 전멸시킬 장본인이 겐가이이며 그걸 복구할 수 있는 것도 겐가이 뿐이라고 판단한다. 겐가이 영감은 동료들이 쓰러질 때 보고만 있더 녀석들의 이제와서 뭘 원하냐고 빈정댄다. 야토의 수장은 [[카무이(은혼)|카무이]]등과 달리 냉철하고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오우가이]]를 비롯한 지상군들은 본진과 연계할 수 없는 시점에서 적을 얕봐 독단으로 움직인 우를 범했다. 이들은 "썩은 수족"이며 사전에 잘라내 마땅하다.
* [[히자카타 토시로]]와 [[진선조]]는 겐가이 영감의 실종, 잠정적으론 적에게 납치 당한 걸로 보인다는 소식을 각지에 전한다. 히지카타는 이제 가부키쵸 병력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타 긴토키]]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방문을 연다.
* 통제불능의 보케질은 소요 공주의 포용력으로 적당히 수습됐다. 공주와 노부메는 함께 이불을 덮고 푹신한 사다하루의 몸통에 등을 기댄다. 공주는 이 푹신한 털 위에서라면 잠들 수 있겠다고 좋아한다. 한동안 말이 없던 두 사람. 공주 쪽에서 예전 생각이 난다며 입을 연다. 그러고 보니 일국경선편에서 소요 공주가 "쓸쓸해서 잠을 못 자겠다"는 핑계로 긴토키 일행과 함께 잤던 적이 있다. 그때 노부메도 있었다.
공주의 씁쓸한 되새김. 노부메는 공주를, 그들 남매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것은 자신들 히토츠바시파라고 털어놓는다.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실각과 암살, 그 배후엔 견회조가 연루돼 있다. 노부메는 자신들이 한 짓이 없었더라면 시게시게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은 그녀 앞에 있을 자격도 없는 자라고 말한다.
무전을 보낸 사람은 해방군 본진에 억류된 [[도쿠가와 노부노부]] 일행이었다. 노부노부가 직접 통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응답한 사람이 그 시게시게의 동생, 소요 공주라니. 노부노부는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게다가 소요는 그 상대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다.
버럭한 원상은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노발대발한다. 여전히 지구에 접근할 수 없고 잔존한 지상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빨리 다음 대책을 마련하라고 성화를 부린다. 시간이 갈 수록 그 안의 "빌어먹을 지구인"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커져가는 듯 하다.
* 통신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은 가부키쵸에도 전해졌다. 히지카타는 [[오키타 소고]]와 진선조 병력을 이끌고 한 시라도 빨리 겐가이를 탈환하기 위해 추적에 나선다. 그는 적의 수중에 들어간 겐가이가 통신을 복구하지 않았나 우려한다. 그렇다면 통신이 문제가 아니다. 곧 다른 기계화 병력이 부활하는 것도 시간 문제. 어떻게든 그 전에 겐가이를 탈환해야만 한다.
[[핫토리 젠조]]는 이 상황을 너무 마셔서 사마귀가 터진 걸로 수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게다가 왠지 동료들이 반드시 와줄거라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치질용 좌약을 내미는 시점에서 믿었던 동료들은 남아있지 않다.
일행은 너무 퍼마셔서 하반신이 못쓰게 된 책임자들을 전부 버린 채 다시 추적에 나선다. 히지카타가 다 너네들이 퍼마신 탓이라고 돌리는데 긴토키는 추리가 틀렸으니 곱창을 꺼내라고 응수한다. 히지카타는 그런 논리라면 오키타도 할아버지를 데려와야 하지 않느냐고 방어한다. 오키타는 어차피 자기 할아버지는 옛날에 죽었으니 히지카타도 죽어야 한다며 패드립을 감수하고 히지카타를 공격한다. 이젠 추리도 뭣도 아니게 된 초딩 말싸움. 보다 못한 신파치가 그딴 소리나 할 때가 아니라고 중재한다.
* 사냥에 성공한 야토족은 사냥감을 자기들 두목에게 내보이고 있다. 원상 황자는 야토 용병부대의 수장을 "손노사"라는 칭호로 부른다. 손노사가 통신으로 겐가이의 포획을 알리자 다키니와 신라, 3대 용병부족을 전부 모았는데 결국 살아남은게 야토 뿐이라며 씁쓸해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 남자. 겐가이 영감이다.
* 우주공간에 고요히 떠있던 해방군의 우주요새가 형태를 바꾼다. 그와함께 원상은 악의에 찬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 성전을 별 하나가 막아서겠다면, 별 하나가 우리와 싸우겠다면
- 이소선 . . . . 17회 일치
이소선은 192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광역시]] 에서 빈농인 이성조와 김분이 사이의 1남 2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30년에 올렸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5 이소선의 어린 시절, 그녀는 빈농의 둘째 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 2014.06.12</ref> 아버지는 "딸 아이를 보니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이름을 소선(小仙)이라고 지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717423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 - 이 아이 이름은 작은 선녀], 경향신문, 2009년 1월 7일</ref> 이소선이 서너살 때 아버지 이성조는 항일 농촌 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아버지가 산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회고하였지만<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 />, 관련 기록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817524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 - 네 살 때 멈춘 ‘아버지 기억’], 경향신문, 2009년 1월 8일</ref> 아버지가 죽은 뒤 소작할 땅마저 떼이자 가족들은 감천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을 대리고 나오며 집에 불을 질렀다. 이소선은 평생 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1182947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 - 금지된 말이 된 ‘아버지], 경향신문, 2009년 1월 11일</ref> 이소선의 가족은 산 속 상엿집에 머무는 등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와룡산]] 기슭의 홀어미 집에 더부살이를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753535&code=2100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 - 와룡산 아래 더부살이],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어머니 김분이는 이미 열넷이었던 장녀는 친정으로 보내고 아홉살 아들과 이소선을 데리고 이웃 마을인 [[박서면]]으로 후처 살이 재가를 하였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어머니는 해어진 이후로 큰 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소선의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재가했다는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리하였다고 한다. 이소선의 언니는 1남 3녀를 낳고 살다 1964년에 사망하였고, 이소선은 언니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언니가 있었다는 것은 전태일의 동상 재막식 이후에 조카들이 찾아와 알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917591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1) - 목걸이로 부활한 ‘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29일</ref>
새아버지는 어머니 보다 20살이 많았다. 이소선은 어머니의 재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번도 새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5181532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6) - 오빠 살리려 개가한 어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일제 말기에 오빠는 징용으로 끌려갔고 이소선은 공출을 위한 관솔가지 꺾기 등을 하며 어렵게 지냈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허락하지 않아 다닐 수 없었다. 한글은 어머니가 재가한 집안에 시집 온 분에게 배웠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6888 밤새 구구단 외워, 고무신을 상으로 받은 이소선],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9), 2014.06.12</ref> 이소선은 집안 몰래 일본이 세운 간이 학교(오늘날의 [[대구서재초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틈에 섞여 들어가 구구단을 배웠지만 곧 들켜 매를 맞고 그만두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517580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4) - 대물림 된 ‘못배운 한’], 2009년 2월 5일</ref> 헤어진 오빠와는 해방이 되어서도 다시 만나지 못했고 36년 만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217440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9) - 일본으로 떠난 오빠], 2009년 1월 22일</ref>
이소선은 1947년 전상수와 결혼하였다. 전상수의 아버지는 대구시 남산동에서 포목상을 하였다. 전상수는 의류 제조 공장에 다니다 [[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에 가담하였다. [[미군정]]과 경찰의 잔혹한 탄압으로 사건이 마무리 된 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재봉틀을 마련하여 직접 옷을 만들어 팔았다. 이소선은 중매로 결혼하였고 결혼 전에야 신랑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4180521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5) - 결혼하기 싫어 사흘 굶어], 경향신문, 2009년 2월 25일</ref> 이소선은 남편에게 그리 정이 가지 않았다. 1948년 음력 8월 24일 첫 아들 [[전태일]]을 낳았다. 전태일을 갖을 때 잉어가 구슬을 가슴에 안겨주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93 "시집가기 싫어"... 아버지 산소로 도망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4), 2014.06.12</ref>
이소선이 서울에 올라와 일을 알아보는 사이 대구에선 아버지의 매질에 견딜 수 없던 전태일이 동생 순덕이를 데리고 상경하였다. 전태일은 순덕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시청 미아보호소에 맡겼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917524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1) - 태일이 막내동생과 생이별], 경향신문, 2009년 4월 9일 </ref> 그 사이 이소선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예전 서울 살 때 알았던 남산 판자촌의 지인에게 얹혀 살았다. 전태일이 그 집을 물어 물어 찾아와 이소선이 일하는 식당 앞에 나타났다. 모자는 다시 만나게 되어 끌어 안고 울었다. 식당에서 고되게 일하던 이소선은 어느날 심하게 하혈을 하였고 그 길로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경향4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317503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2)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13일 </ref>
하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식당에서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쓰였다.<ref name="오마이뉴스2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699 애들 부끄럽지 않게... 미군 지프차를 돌려보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7), 2014.06.12</ref> 이소선은 병원을 나온 뒤 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워 삶아 팔았다.<ref name="경향42" /> 이소선과 함께 살게 된 전태일은 남대문시장을 돌며 구두닦이며 신문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지들 틈에서 동생 전태삼을 발견하였다. 전태삼은 어머니와 형을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온 뒤 거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후 전태일은 남대문에서 돈을 벌고 태삼은 달동네의 물지게를 지어 생계를 도왔다. 전태일은 아동보호소에 맡긴 순덕이를 찾아오기 위해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었고 [[평화시장]]의 미싱 보조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27" /> 가족은 지인 집 마루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9181908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4) - 봉제공장‘시다’로 첫 출근],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26일</ref>
이소선은 지인의 집에 남편이 다녀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길로 집을 나와버렸다. [[서울중앙시장]]에서 배추 잎을 주워 살며 거지들 틈에서 지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886 중앙시장에서 배추 잎 줍기... 하루 백원벌이 인생],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8), 2014.7.8</ref> 이소선은 중앙시장에서 신임을 얻어 노점을 열 수 있게 되었고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월급을 받게 되니 다시 집을 장만하고 함께 살 희망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전태일은 수제비집에서 우연히 동생 순옥이를 만났다. 전순옥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 올 때 따라 왔다.<ref name="오마이뉴스30">[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0 태일이네 가족, 다시 한곳에 모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0), 2014.7.15</ref>
당국은 이재민에게 천막 하나를 주고 [[도봉동]] 개울가로 내몰았다. 이소선의 가족은 [[쌍문동]] 공동묘지 근처 208번지로 이사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2175815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5) - 판자촌에 다시 모인 가족], 경향신문, 2009년 4월 22일</ref> 이소선이 살던 쌍문동 집은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간혹 단속반이 와서 헐고 갔기 때문에 시멘트 블럭만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들었다가 헐리면 다시 세웠다. 전태일은 단속반이 집을 헐며 블럭을 부수면 다시 사야하기 때문에 단속반이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미리 집을 헐어 두었다고 한다.<ref name="경향46">[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317454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6) - 쌍문동 208번지], 경향신문, 2009년 4월 23일</ref> 이 무렵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되었으며 동생 순옥이 만한 어린 소녀들이 퀴퀴한 다락방에서 쉴 새 없이 일하다 폐병을 앓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전태일은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자세히 말하곤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6185902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7) - 춥고 배고픈 어린 시다들], 경향신문, 2009년 4월 27일</ref>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아들 [[전태일]]이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엔 쉬게 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0 전태일 분신 순간 오갔던 긴박한 대화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 2014년 6월 12일</ref> 이소선은 구역 예배를 돌고 있다 동네 주민이 건내준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고 이 사실을 알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23 아들이 죽었는데... 버스 타고 간 이 여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 2014년 6월 12일</ref> 전태일은 메디컬 병원에서 성모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미 가망이 없었다. 전태일은 달려온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한 일을 다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태일은 이소선에게 거듭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 간청하였고 큰 소리로 대답하게 하였다. 이소선은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고 크게 대답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752042&code=210100&s_code=af077#csidxf48d2d357d2bfa4844d69c179a524c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9) - 문학 보수화, 예술적 성취 다양한 분석], 경향신문, 2009년 5월 21일</ref> 그날 오후 10시 전태일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이소선은 80세의 고령에도 계속하여 부르는 곳이면 마다 않고 참석하였다. 그러나 부른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을 하지는 않았다. 2006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태일노동상의 시상을 마치고 내려가다 다시 마이크를 붙잡고 "입으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 뭐 하냐. 가장 밑바닥에서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비정규직을 나 몰라라 해서 어찌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냐 …… 손잡고 싸우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정규직도 비정규직 신세가 될 것"이라고 소리쳤고<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5965.html 노동자 어머니 이소선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할것 같냐”], 한겨레, 2008년 12월 5일</ref> 늘 노동자의 하나된 단결을 강조했다. 2009년 전태일 39주기 추모식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리자 이제 되었다며 무척 기뻐하였다.<ref name="연합_전순옥">[http://klsi.org/content/%EC%9D%B4%EC%86%8C%EC%84%A0-%EC%96%B4%EB%A8%B8%EB%8B%88%EC%99%80-%EB%85%B8%EB%8F%99%EC%9A%B4%EB%8F%99 이소선 어머니와 노동운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ref>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소선은 늘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위기를 고용문제를 극복하자고 주장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9/03/0200000000AKR20110903057900004.HTML "이소선 여사는 따뜻한 마음의 노동운동가"], 연합뉴스, 2011년 9월 3일</ref>
국회의원이 된 딸 [[전순옥]]은 어머니를 10대에서 70대까지 누가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하던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하면서 스스로도 민주화 운동 시절 경찰서에서 취조 받으며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늘 어머니라고 대답했다고 회고하였다.<ref name="연합_전순옥" /> 《가톨릭 신문》은 이소선의 삶을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삶에 비견하였으며<ref>[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어머니, 이소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년
* 1947년 여름 전상수씨(1924년 12월 7일생)와 혼인.
* 1981년 1월 30일 청계노조 간부와 조합원들, 해산명령에 항의하여 아프리에서 농성.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17회 일치
* 일단은 미오를 말린 카즈라와 [[히노 카가리]], [[파티 크루]]였지만 미오가 정말 생각없이 돌격할 걸 우려해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따라온 것이었다.
* 그러나 그 장소에 있는건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의 디코이 로봇, 역시나 [[블랙팬텀]]의 함정이었다.
* 미오는 엉겁결에 쓴 텔레포트로 형무소 외곽으로 이동하고 당황하는데, 그녀도 역시 오염된 [[바렛 실버]]와 [[팀 토이]]와 조우한다.
* 바로 그때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 [[파티 크루]] 일행이 뒤쫓아와 문자 그대로 미오를 밟아버린다. 지성이라곤 없는 그녀의 계획을 대차게 까면서. 미오가 어떻게 알고 따라왔냐고 하자 카즈라는 "설치류 둘이 사라져서 할 법한 일을 추리해봤다"고 당당히 밝힌다. 방금 전까지 설치류의 명예를 걸고 영장류를 뜯어말리던 모모타로는 억울해하며 "설치류에게 사과해라"고 항변한다.
* 카가리와 파티는 에스퍼 형무소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하며 미오의 억지를 논파해 버린다. 그녀의 초능력이 통한건 "외벽에는 ECM이 영향을 주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 내부에는 철저하게 내향성 ECM으로 봉쇄돼있고 텔로포트로 뚫으려고 사도하다간 벽에 걸린 채로 저지 당한다. 게다가 미오가 넘어가려 한 것은 그냥 외벽이고 내부에 따로 격벽이 존재한다. 그 안이 본체이며 보다 강력한 ECM이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미오는 츤츤거리며 고맙다고 하려고 하지만 애초에 미오의 성격을 잘 아는 동료들이라 그런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카가리가 곧바로 해킹 장비로 형무소 내의 감시 시스템을 15분 정도 무력화시킨다. ECM은 손댈 수 없었지만 이걸로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가 감금된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 파티는 바깥에서 경계하기로 하고 미오, 모모타로, 카가리, 카즈라가 진입한다. 미오와 모모타로는 카가리, 카즈라와 간격을 둔 채로 미나모토와 사카키가 갇힌 감옥으로 접근했다. 미나모토의 모습이 보이자 그녀는 미나모토의 무사를 확인하고 카오루에게 전할 말은 없냐고 묻는다. 그녀의 등장에 놀란 미나모토는 혼자 온 거냐고 묻는데 모모타로가 고개를 내밀고 자신들과 카가리, 카즈라, 파티가 같이 왔다고 말해버린다. 그게 실수였다. 이들은 진짜가 아니라 디코이. 블랙 팬텀의 함정이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카가리와 카즈라는 모모타로의 텔레파시를 수신하고 작전대로 폭발물을 작동시키고 탈출하려고 한다. 바깥의 파티는 폭발로 안에서 이변이 생겼음을 확인한다. 그런데 카즈라는 모모타로가 무전이 아니라 텔라파시를 보낸 점을 주목한다. 그러고 보니 ECM이 작동하지 않는다. 에스퍼 형무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이제보니 주위에 수형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디코이 만이 아니라, 이 형무소 자체가 함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깨닫는게 조금 늦었다. 카가리와 카즈라에게 강력한 염동파가 작렬한다.
* 일행이 진입하기 전부터 블랙 팬텀의 병력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카가리와 카즈라가 쓰러지자 숨어있던 에스퍼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벨의 와일드 캣, [[우메가에 나오미]]였다. 그녀도 정신오염 당해 블랙 팬텀의 수하가 되었다.
* 한편 엉겁결에 텔레포트를 하게 된 미오와 모모타로는 형무소 어딘가로 떨어진다. ECM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왜 초능력이 써지는지 당황해한다. 그때 그들 앞에도 블랙 팬텀의 자객이 등장한다. 팀 토이, [[바렛 실버]]와 [[팀 토이]]. 역시 정신오염 당했다. 블랙팬텀의 명령을 받고 "마음껏 싸우러" 왔다.
*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잠들어 있던 칠드런 일행. [[아카시 카오루]]는 이상한 예감을 받고 깨어난다. 그 바람에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도 눈을 뜬다. 카오루는 잘 모르겠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뭔가를 감지한 듯 하다.
- 최문식 . . . . 17회 일치
동대부고를 졸업한뒤 대학진학 대신 [[1989년]] [[포항 아톰즈|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 고졸신인 최문식은 [[포항 스틸야드]] 개장 경기에서 첫골을 기록하였고, [[1989년]] [[성남 FC|일화]]와의 경기서 경기 종료 10초전 극적인 오버헤드킥 동점골을 기록한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군대를 갔다온 2년을 제외하고 [[1998년]]까지 포항에서 뛰었음은 물론이고 기술력 있는 축구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위주의 축구와 정확한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포항의 공격진을 책임졌으며,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 FIFA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4년 아시안 게임|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월드컵 출전 직후 합류한 첫경시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포항의 [[아디다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 전술을 구사함으서 팀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끓어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476883/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ref> [[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서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남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겨우 최문식의 데뷔 이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거두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K리그에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1:0 승을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만에 홈 첫승을 거두었으며,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서 패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과의 홈 폐막전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에 분노한 대전팬들이 경기 종료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2015시즌이 끝난 뒤에도 최문식 감독은 유임되었고 최문식은 2016시즌을 앞두고 선수단을 무려 20명 이상을 바꾸는 등의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 작업에 나섰으며, 2016 시즌도 2015시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축구 철학을 토대로 한 FC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통한 팀 컬러를 맞추는데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3월 26일]] [[대구 FC]]와의 리그 개막전서 2:0 패한것을 시작으로 [[4월 9일]] [[안산 무궁화 FC]]전까지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무득점 패배에 그쳤으며, [[4월 23일]] [[부천 FC 1995]]와의 경기마저 1:3 역전패하며 리그 4연패를 기록했고, 최문식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를 통해 4연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음을 밝히며 사퇴를 암시하였다.<ref> [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php?gisa_uniq=2016041716184350§ion_code=10&cp=se&gomb=1/V/ '4연패' 최문식 감독, ''연패에 대해 책임지겠다''] </ref>이후 대전 구단이 후임 감독을 물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지자, 윤정섭 대표이사는 후임 감독 물색설을 일축하며 <ref>[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604180400// 윤정섭 대전시티즌 대표, 감독 교체설 일축] </ref> 최문식 감독을 재신임 할 것을 밝혔다.<ref>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382595/ 대전, 감독교체 없다…윤정섭 사장 "최문식 감독 믿는다"] </ref>
[[3월 26일]] [[대구 FC]]와의 2016시즌 리그 개막전서 2-:0 패한것을 시작으로 [[4월 9일]] 안산 무궁화전까지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무득점 패배에 그쳤으며, [[4월 23일]] 부천과의 원정 경기에서 김동찬이 2016 시즌 리그 첫골을 기록했으나 1:3 역전패하며 리그 4연패를 기록했고, 최문식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를 통해 4연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음을 밝히며 사퇴를 암시하였다.<ref> 김진엽 (2016.4.17) [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php?gisa_uniq=2016041716184350§ion_code=10&cp=se&gomb=1/V/ '4연패' 최문식 감독, ''연패에 대해 책임지겠다''] 스포탈코리아 </ref>
[[4월 24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경기서 대전 서포터즈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등의 항의를 표했지만 대전이 승리를 거두며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으며, 이후 연패에 대한 후유증을 털어내고, 연승으로 팀 분위기를 반전시켰으며, [[9월 19일]] [[부천 FC 1995]]와의 홈경기서 무승부를 거두면서 한시즌동안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 구단의 한시즌 최다 홈무패 기록을 갱신하였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62578/ 대전, ‘선두 눈 앞’ 부천에 0-0 무… 홈 12경기 무패] </ref>
하지만 대전은 홈경기에 비해서 원정 경기에서는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2016시즌동안 원정에서 거둔 승리는 단 4경기였고, 그중 3경기는 최하위였던 [[충주 험멜]]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경기였다. 이러한 한계로 끝내 승강플레이오 진출의 마지노선인 5위권 진입이 좌절되었고, [[10월 29일]] 성적부진과 승강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구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사임하였고,<ref>박찬준 (2016.10.29)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 최문식 감독, 자진사퇴 "성적부진 책임지겠다"]{{깨진 링크|url=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2F }} 스포츠조선</ref> 2017시즌을 앞두고 [[옌볜 푸더]]의 수석 코치로 취임하였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521335/ 최문식 전 대전 감독, 중국 옌볜 ‘박태하 사단’ 합류]</ref>
1990년대 이후 [[김병수 (축구인)|김병수]], [[윤정환]], [[고종수]]와 같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으며, 기술력 있는 축구에 능하다는 의미의 '''테크니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으며, 포항팬들 사이에서는 골결정력이 정확하는 의미로 '''믿을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최문식은 언론사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선수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을 하는 식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며 많은 팬들로부터의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많은 팬들이 그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주된 원인이였다. 이를 알고 2016시즌 들어서는 "모든 것이 감독 탓이다.", "4연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라고 말하며 인터뷰에서의 책임 회피를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돌아선 팬심과 여론을 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 하이큐/238화 . . . . 17회 일치
* 점수가 세트 포인트에 이르자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핀치서버 [[히메카와 아오이]]를 투입하는데.
* [[히나타 쇼요]]의 3회차 서브. 츠바키하라에서 받아서 공격. 하지만 [[츠키시마 케이]]가 블록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지금 한창 물이 올랐다고 표현하는데 츠키시마는 히나타에 대한 대항심이 좋은 플레이로 이어지고 있다. 츠키시마가 막은 공을 [[타나카 류노스케]]가 살려 찬스볼로 만든다. 그리고 후방으로부터 마이너스 템포로 뛰어드는 히나타. 공중을 나는 것처럼 뛰어오르는 히나타를 보며 [[스기와라 코시]]가 "후방 마이너스!"라고 외친다.
* 관중석에서도 히나타의 속공이 인기만점. "10번은 공중에서 멈춘 것 같다"고 말해진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TO 때 스기와라가 말한 "후방 마이너스"가 뭐냐고 묻는다. 그건 스가와라가 붙인 괴짜속공의 새로운 이름. 스기와라는 괜찮은 이름 아니냐며 으시댄다. 카게야마는 별로 신경 안 쓰지만 히나타는 엄청나게 감동. [[니시노야 유]]는 뒤에 "썬더"더 붙이자고 제안하지만 그럼 니시노야의 필살기 같아진다며 거절 당한다.
* 카라스노가 2점 앞서가면 츠바키하라가 한 점 따라붙는 식으로 점수차는 1, 2점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카라스노의 꾸준한 리드. 츠바키하라에서 9번 아테마가 나가고 5번 [[미카와 다이]]가 들어온다. 그때 우카이 코치가 살짝 "조금 앞으로 나와라"는 조언을 한다. 그것이 적중해서 미카와의 서브는 앞쪽으로 떨어진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정확히 그 위치에 있다가 받는다. 하지만 살짝 흐르는데 니시노야가 잽싸게 커버,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연결한다.
공은 정확히 노리던 자리로 향하지만 아깝게도 아웃이 된다. 다시 츠키시마와 교대해 벤치로 가면서 "4번 쪽으로 보내긴 했고 나치곤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그의 표정엔 명백하게 분한 기색이 나타났고 우카이 코치가 노리는 것도 이런 효과였다. "욕심을 내게" 만드는 것.
* 이 타이밍에 츠바키하라의 선수 교체. 8번 이와무로가 나가고 핀치 서버로 [[이와무로 아오이]]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 히메카와는 이번이 공식전 데뷔라고 하는데. [[야치 히토카]]도 데이터엔 없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카이 코치는 왠지 그를 주시하는데.
* 아무튼 이토록 중요한 타이밍에 데뷔하게 된 이와무로. 같은 포지션이라 자연히 키노시타와 [[야마구치 타다시]]의 이목도 쏠린다. 그런데 둘은 이와무로의 얼굴을 보자 마자 한결 같은 반응을 하는데.
츠바키하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기용된 이와무로는 긴장해서 당장이라도 토할 거 같은 얼굴로 코트에 들어선다.
- 하이큐/272화 . . . . 17회 일치
* [[오지로 아란]]의 세 번의 스파이크 끝에 1점을 우격다짐으로 뜯어간다. 역시 스파이커인 [[히나타 쇼요]]에겐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전날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보투코 코타로]]와 함께 전국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스파이커"라고 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타케다 잇테츠]] 고민은 타임을 건의하지만 우카이 코치는 조금 더 기다린다. 어차피 방금 적 "주포"의 공격의 위험성은 선수들도 깨달았을 거고, 고작 30초라도 저 주포에 쉴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 [[사나타 사에코]]는 응원도 멈추고 [[이나리자키 고교]]의 4번, 오지로를 "시라토리자와 고교"의 "우시카와" 같다고 비유한다. 그 말을 들은 [[시마다 마코토]]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답했다. 비슷하긴 해도 우시와카랑 다르게 서브 리시브에 참가하고 서브로 공략할 여지도 있다. 실제로 오지로를 상대로 제법 서브 에이스를 따기도 했다. 이는 오지로로서도 꽤 스트레스였을 테고, 저렇게 훨훨 나는 것 같아도 계속 어려운 공이 올라온 데다 블로킹도 성가시게 따라붙으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가 누적됐으리라 추측한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 긴지마의 2회차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의 리시브로 공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카게야마는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세트업. 타나카는 좌측에서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 [[스나 린타로]]의 블로킹을 따돌리며 우측으로 꽂아넣는다. 네트에 바짝 붙은 스파이크. 한동안의 침채를 씻어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중계진도 1세트 이후부터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호평. [[츠키시마 케이]]의 서브 순서에서 선수교체. 츠키시마가 빠지고 [[스가와라 코시]]가 투입된다.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 유]]가 빠지고 히나타가 진입. 스가와라는 실컷 두들겨 맞은 니시노야에게 "원수를 갚아준다"고 농담했지만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라는 신경질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스가와라가 빠르게 투입된 이상 [[키노시타 히사시]]가 나갈 차롄 없겠다며 내심 아쉬워했으나 정작 키노시타는 머릿속으로 25 번째 서브 에이스를 따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멈추지 않는다. 투입 여부와 상관없이 준비는 완료.
* 코트에 들어온 스가와라는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당연히 이나리자키의 싸늘한 시선이 꽂혀온다. 하지만 이것도 전날 우카이 코치가 지시한 내용이다. 오지로에게 계속 압박을 주라는 것. 블로킹이나 서브를 활용해야 한다. 서브 에이스를 내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래도 이상적인 건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 스가와라는 최대한 실행해볼 생각이다.
* 비록 자신이 코트에 있는건 10초, 혹은 20초 남짓이겠지만 단 5초라도 이나리자키를 열받게 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각오로 스가와라의 1회차 서브. 역시 아슬아슬한 코스로 오지로를 노렸다. 네트에 가깝게 떨어지는 공. 오지로가 달려와서 받는다.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리시브하는 오지로. 리시브는 성공했지만 일어서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공은 [[미야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미야 오사무]]에게 세트업. 우측의 스파이크를 히나타가 블록. 손에 받고 뒤로 튕겨나온 공을 스가와라가 잡아낸다. 공은 산 채로 카라스노 진영으로. [[아즈마네 아사히]]가 이어서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돌린다. 카게야마는 우측 네트 앞에서 공을 받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오지로 쪽으로 밀어넣는다. 오지로는 이것도 받아내긴 했지만 역시 성가셔하는 느낌. 공은 이나리자키 좌측에서 높이 뜬다. 오지로가 신경질적으로 "레프트"라고 외치자 아츠무가 허겁지겁 달려오는데, 세트업이 조금 낮다. 그대로 오지로 뛰어올라 스파이크, 하지만 낮은 만큼 블록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손에 맞은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서 아웃. 오지로나 아츠무에겐 가슴이 철렁한 플레이였다. 스코어는 20 대 9. 스가와라와 츠키시마가 다시 교대한다.
* [[오오미 타로]]는 오지로에게 "천천히 가자"고 지시한다. 이나리자키의 서브. [[스나 린타로]]와 교대해 1학년 서버 리세키가 투입된다. 이나리자키에선 그리 유명한 선수는 아니다. 중학교 시절엔 만년 벤치 신세에 딱 한 번 핀치 서버로 기용됐다가 서브 미스로 경기를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 고등학교에선 강호 이나리자키에 들어온 건 좋으나 여전히 기회는 적었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산도 있다. 미스하면 본전도 없다, 이런 부담을 안고 "일단 들어가는 서브"라는 안전빵을 택한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 됐다. 우선 자군 벤치에서부터가 시들한 반응. 무난하게 아사히에게 떨어지는 것을 안전하게 리시브, 히나타의 스파이크로 이어지는데 하필이면 그게 리세키가 있는 위치로 떨어지면서 리시브까지 실패하고 만다. 간만에 손맛을 본 히나타가 기뻐날뛰려는데, 이나리자키 관중석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뻘쭘해진다.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자군 서버의 실수를 "볼보이는 안 불렀다"고 극언해가며 까대는 소리였다. 대부분 관중들은 딱히 실수한 것도 없는 자기편 선수를 디스하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단숨에 알아챘다. 이른바 "이나리자키 도깨비 응원단". 소심한 플레이를 인정사정없이 욕하는 묘한 기질이 있다. 사실 프로도 아닌 고교 선수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장외플레이. 적이라도 같은 서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마저 기를 죽일 정도로 무자비한 야유였다. 그리고 이 야유는 의외의 인물도 자극하는데, 바로 카게야마였다.
* 리세키는 선배들에게까지 "그러니까 승부해야 했다"라는 말을 듣고 주장 [[키타 신스케]]에겐 "우리팀에 들어가기만 하는 서브는 필요없다"며 잔뜩 쓴소리를 들은 채 돌아간다. 스코어는 20 대 11. 이번엔 카라스노의 서브. 카게야마의 차례다. 헌데 카게야마가 뭔가 달랐다. 서브 위치에 선 카게야마는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서브를 넣는다. 이나리자키의 손에 닿지도 않고 코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서브.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 코스와 스피드를 모두 갖춘 완벽한 서브였다.
- 한규복 (1881년) . . . . 17회 일치
[[1899년]](광무 2년) 관비장학생으로 [[일본]] 유학, [[동경전문학교]]와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서 수학하다가 [[1903년]] 귀국, 대한제국 관료로 임용되어 [[탁지부]] [[주사]], [[군부]]와 [[탁지부]]의 [[번역관]] 등을 거쳐 탁지부 [[서기관]], [[주임관]]을 역임했다. [[1910년]](융희 4년) [[10월 1일]] [[한일 합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고등관]]에 임용되어 [[토지조사국]] 감사담당관, [[1913년]] [[진주군|진주]][[군수]], 이후 [[동래군|동래]][[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 [[충청남도청]] [[참여관]], [[1924년]] [[경상북도청]] [[참여관]], [[1926년]] [[충청북도]][[도지사]], [[황해도]][[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1933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참의에 임명되고 이듬해 재선된 뒤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1875년|1881년]](고종 17년) [[7월 7일]] [[한성부]] 평동(平洞) 19번지에서 주사 한만홍(韓晩洪)과 평산 백씨(平山白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 한규호는 구한 말 군인으로 활동, [[보병]][[참위]]와 [[보병]][[부장]]을 지냈고 통정대부에 이르렀으며, 퇴역 후 [[1908년]](융희 2년) [[기호흥학회]]의 창립에 참여, 회보인 기호흥학회월보의 후원자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기업인으로도 활동하여 1908년 6월 4일 [[한성]]의 연강목선운륜(沿江木船運輸) 주식회사의 중역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집안은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종조부인 [[개국공신]] [[한상경]]<ref>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의 동생으로, 한명회를 양육하였다.</ref>의 후손으로, 유암 [[한계윤]](柳岩 韓繼胤)의 20대손이다. [[한계윤]]은 [[한명회]]와 6촌 형제간이며, 외할아버지는 [[성달생]]으로 [[성승]]과 [[성삼문]]은 각각 외삼촌과 외사촌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계는 몰락하여 하급 무관을 역임하다가 5대조부터는 증직 벼슬만이 전한다. 한규복의 할아버지 한수익(韓守益)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사후 [[호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증조부 한도흥(韓道興)은 [[호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고조부 한윤기(韓潤琦)는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외할아버지 백우혁(白佑赫)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그는 어려서 한성에서 신학문인 [[일본어]]와 [[중국어|한어]](漢語), [[영어]]를 공부하다가 [[1893년]] [[3월]] [[을미의숙]](乙未義塾) [[일본어]]학과에 입학, [[1897년]] [[3월]] 을미의숙 일어학과를 마치고 [[관립영어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6일]] 정3품으로 [[중추원 (대한제국)|중추원]] 2등 의관에 선출되었으나 중추원은 곧 해체되었다. [[1899년]](광무 2년) [[3월]]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899년]](광무 2년) 초, 그해의 정부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4월]] [[일본]] [[도쿄]]로 유학, 그해 [[9월]] [[도쿄]] 신전중학교(神田中學校)에 편입학하였다. [[1900년]] [[3월]] [[신전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동경 전문학교를 거쳐 [[1901년]] [[9월 11일]]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03년]](광무 6년) [[7월 15일]] 3학년 재학 중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과를 수료하고 [[7월]] 정부의 명으로 귀국하여, [[대한제국]]의 관리로 근무를 시작했다.
[[1902년]]에는 [[와세다 대학]]에 다니면서 [[일본]]의 [[유도]]도장인 [[강도관]](講道館)에 다녔다. 공승화전개(일본 工勝花雷介)의 《비록일본유도(秘錄日本柔道)》의 기사와 일본강도관에 조회한 바에 의하면 [[1902년]] 한규복 등이 [[강도관]]에 입문하여 [[유도]]를 배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f>김정행, 《무도론》 (대한미디어, 1997) 129페이지</ref> 그는 [[1902년]] [[8월]]부터 [[유도]]를 배웠다고 한다.<ref>이학래, 《한국유도발달사》 (보경문화사, 1989) 37페이지</ref> 일본의 유도 전승에 자극받은 그는 귀국 후 [[조선]]의 [[유도]] 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상소를 올려 [[택견]] 관련 인물과 유파를 찾아 지원해줄 것을 정부에 상주하기도 했다.
[[1939년]] [[2월 2일]]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각 정(동)지역 연맹 애국반 창설에 참여하였으나 [[윤치호]] 등의 불참으로 [[김명준]], [[이승우]], 조병상 등 참여자들 일부와 함께 조직 착수에 나섰다.
[[1939년]] [[6월 4일]] [[중추원]] 참의로 재선되었다. [[8월 5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주최로 전국 순회강연을 할 때, 순회강사가 되어 국민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백억 저축 생활 쇄신'이라는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다. [[9월 26일]]에는 각지의 노무자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사회조사위원회]] 위원에 피임되었다.<ref>"勞務者와 細窮民을 來月中에 綜合調査", 동아일보 1939년 09월 26일자 2면, 사회면</ref> 그해 [[9월 30일]] [[경성]]에서 자본금 백만원을 투자하여 [[조선공영회사]](朝鮮工營會社)를 창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5일]]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임시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사퇴했다. [[12월 22일]] [[세제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39년]]부터 그는 [[경성부]], [[충주군]], [[함양군]], [[수원군]], [[용인군]], [[양주군]] 등을 다니며 저축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 반민특위 자수와 심문 ====
==== 반민특위 조사와 석방 ====
[[분류:1881년 태어남]][[분류:1967년 죽음]][[분류:조선의 화가]][[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대한제국의 통역관]][[분류:조선의 번역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정치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철학자]][[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사상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청주 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
- 한확 . . . . 17회 일치
'''한확'''(韓確, [[1400년]]<ref>1403년생 설도 있다.</ref> ~ [[1456년]] [[음력 9월 11일]])은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외척, 외교관이며 [[명나라]]의 문신이다.<ref>{{브리태니커|b24h3077a|한확}}</ref>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며 시호는 양절(襄節)이다. [[조선 덕종|덕종]]의 비이자 [[월산대군]]· [[조선 성종|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와 [[조선 세종|세종]] 서자 [[계양군 (왕족)|계양군]]의 부인인 [[정선군부인]]의 친정아버지이다.
고려(高麗 때 시중(侍中)을 지낸 한강(韓康)의 후손으로 [[조선 세조|세조]]의 측근이었던 [[한명회]]와는 9촌숙질간이다. 한확은 한악(韓渥)의 넷째 아들 한방신의 증손이었고, [[한명회]]는 한악의 둘째 아들 한공의의 4대손이었다.<ref>광윤-강-악-방신-녕-영정-확, 광윤-강-사기-악-공의-수-상질-기-명회</ref>
[[음서 제도|음보]]로 출사하여 부사정(副司正)이 되었다. [[1417년]](태종 17년) 가을 넷째누이 [[여비 한씨]]가 영락제의 후궁으로 낙점되자 [[명나라]]에 파견되는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노구산]](盧龜山), 녹사(錄事) 김덕장(金德章) 등과 같이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선발되어 [[명나라]]에 들어가는 황씨(黃氏)와 누나를 호송하여 [[연경]]에 갔다가 그해 말 귀국하였다. 그뒤 누나가 여비로 책봉되자, [[명나라]]의 초청을 받고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에 가서 [[명나라]]의 [[봉의대부]]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에 제수되었다.
[[1425년]] 전감무(前監務) 김성정(金成鼎)의 첩의 딸 고미(古未)와 간통하였다가 [[사헌부]]집의(執義) 정연(鄭淵)·헌납 윤맹겸(尹孟謙) 등으로부터 탄핵을 당하였으나 [[조선 세종|세종대왕]]은 주저하다가 윤허하지 않았다.<ref name="se29">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9월 28일(갑자) 2번째기사 "장군 절제사 한확이 간통했다고 갈아 임명하게 하다"</ref>
[[1427년]]에는 그를 공격했던 좌군 도사(左軍都事) 최징(崔澄)이 역으로 무고죄로 처벌을 받았다.<ref>세종실록 38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12월 5일(무오) 2번째기사 "한확과 홍인을 무고한 죄로 좌군 도사 최징을 의금부에 가두라 명하다"</ref> [[142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는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진 내관 백언(白彦)이 그의 어머니에게 주는 단초(段綃)와 성(成)·차(車)·정(鄭)·노(盧)·안(安)·오(吳)·최(崔)씨 등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여인들이 쓴 편지를 고국의 가족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는 [[중국어]]와 [[한자]]에 능통했는데, 이후 명나라 사신이 입국할 때마다 선위사(宣慰使)로 파견되어 접대하였다.
[[1438년]](세종 21년) 중추원사가 되었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겼는데 [[수문장]]에게 압력을 가하여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탄핵을 받고 파면당했다.<ref>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0월 19일(경오) 1번째기사 "성문 출입에 문제가 있던 한확·연경·이연기·남계영을 벌주다"</ref> 그해 복직하여 정헌대부 중추원사를 거쳐, 1439년 판한성부사, 경기도관찰사, 판병조사,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해 경기도감사로 나갔다가 복귀, 1440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병조 판서, 판병조사를 거쳐 함길도도관찰사로 나갔다. 이때 그는 관직을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함길도]]로 부임해갔다. [[1442년]](세종 25년) 동지중추원사와 판한성부사를 지냈다.
[[1453년]](단종 원년)에 [[계유정난]]이 성공하면서 [[정난공신]]으로 책록된 뒤 [[우의정|우의정부사]]로 발탁되어 서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이어 [[계유정난]] 당시 [[명나라]]에서 외교적인 문제를 제기할 때 [[명나라]] 사신을 설득하여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정치적 입지를 탄탄히 하였다. [[계유정난]]의 성공 이후 수양대군을 도와 그해 11월 좌찬성이 되었다가 다시 수충위사협찬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의정부 우의정 서원 부원군(西城府院君)에 봉작되었다.
[[1454년]] 왕비 책봉의 공로로 상을 받았다. [[1455년]](단종 3년) 초 형조 판서 이변(李邊)·도승지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벽제역]](碧蹄驛)에 가서 [[명나라]]의 사신을 영접하였다.
한확은 세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이었다. 그는 그의 누나가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황실의 벼슬을 받고 외교채널이 된다.<ref name="ky">[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702 <nowiki>[</nowiki>王을 만나다·16<nowiki>]</nowiki>서오릉-경릉 ( 추존 덕종·소혜왕후) : 남존여비 '女訓'과 상반된 '여성상위능'] 경인일보 2010.01.14</ref> 그리고 누이동생 또한 명나라 선종(宣宗)의 후궁으로 간택돼 더욱 외교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사실 한확의 두 누이이자 인수대비의 고모들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가슴 아픈 사연을 지녔다. 한확은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 1등에도 올랐는데 세조의 왕위 찬탈을 승인하지 않던 명나라에 들어가 단종이 왕위를 물려준 양위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한확은 골치 아픈 외교 문제를 해결하였다.<ref name="ky"/>
동생 한전(韓磌)·한질(韓)이 모두 일찍 죽었는데, 한확이 그 고아를 무육(撫育)하기를 자기 자식과 다름이 없었다. 작품으로는 [[고려]]말기의 문신 [[차원부]]를 애도하는 치제문이 있다. 그가 죽자 [[조선 세조|세조]]는 9월 22일까지 정사와 조회를 중단하였다. 이때 강무까지 중단하려 하였으나 [[승정원]]의 반대로 강무는 계속하였다.
한확의 저술은 전하는 것이 없다. 다만 "[[차원부]] 치제문"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으나 실제와 다르고, 《차원부설원기》의 이본인 《차운암설원록》에 실려 있는 응제시 1편이 있으나 그의 저술이 아님이 논증되었다.<ref>[http://cafe.daum.net/moonwharyu/Gh3E/111 양성지와 한확의 차원부관련 글에 대한 고찰]</ref>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였으며, 누나와 누이동생이 명나라 성조와 선종의 총애를 받음을 계기로 현달하여 [[명나라]] 후궁의 일족이라는 후광을 얻었으나 거만하지 않았다. 딸 [[소혜왕후]]에게는 일찍이 한학과 사서 삼경을 가르치고 부녀로서 지켜야 할 범절을 가르쳤으며, 세자빈이 된 뒤에도 검소하고 자신을 낮출 것을 권고하였다.
넓은 도량과 온간(溫簡)한 성품으로 상하의 신망이 있었으며, 명나라 황실과의 유대와 공정하고 결단성 있는 정사로 외교와 내치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아우 참의공 전이 일찍 죽자 아버지 없는 어린 조카들을 데려다가 내 자식과 같이 양육하였다.
- 김수용(코미디언) . . . . 16회 일치
제1회 [[한국방송공사|KBS]] 대학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7기 취급.[* 감자골 이적 사태로 공식적인 기수명단에서 제외된 상태지만 선배들의 [[괘씸죄]] 때문이라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실이라 최근엔 사실상 그런 건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같은 방송사 후배들에게 선배 대접도 잘 받고 있고...][* 김수용은 감자골 사태가 일단락되고 난 후 1994년부터 각종 [[한국방송공사|KBS]] 코미디프로에서 활동했으므로 사실 기수명단에서 제외랄 것도 없다. 1996년 코미디 일번지에서 신세대 동작그만이라는 코너에 주연급으로 나오기도 했고, 특히 1998년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유재석과 함께 귀농일기라는 코너에 공연하기도 했다. 게다가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11기로 들어온 [[김숙]]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방송공사|KBS]]에 복귀한 이후로는 코미디언실에서 엄연히 선배로 대접 받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다.(개그계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등과 비슷한 세대의 [[개그맨]]이며 갈갈이 패밀리([[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 [[정종철|옥동자]], [[김시덕]])나 옹달샘([[유상무]], [[유세윤]], [[장동민]])처럼 김수용을 포함한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까지 넷이서 "감자골"[* 팀명은 4명 다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감자에서 따왔다고...그러나 2008년 12월 20일 방송 된 명랑히어로에서 김국진을 제외한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은 강원도와 상관 없는 강원태생이라고 말했다. ]이라는 팀으로 활동했었다. [[한국방송공사|KBS]]에서는 비교적 콩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흔히 소재는 좋은데 잘 살리지 못하는 류) [*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으나, 비중이 거의 없다든지 단역으로만 나오던 급은 아니었다. 1996년 토요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마법의 디스켓이라는 코너에 단독으로 주연을 맡을 정도로 나름 비중이 있었다. 확인큐 베일을 벗겨라나, 비디오 챔피언 같은 예능 프로그랭의 서브MC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동시기 신동엽, 김용만은 진행, 박수홍이나 김국진은 예능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며, MBC와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기에 묻혔을 뿐이다. 1995-1997년 사이 SBS에서는 코미디 전망대와 웃으며 삽시다, MBC에서는 오늘은 좋은 날과 테마게임이 있었지만 [[한국방송공사|KBS]]는 한바탕 웃음으로 폐지 후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없이 폐지와 신설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중에 MBC로 이적하면서 예능 MC로 갈아타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각종 예능에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세대의 예능 MC들이 으레 그렇듯 배려형 MC 스타일이였다. 특유의 진한 [[다크서클]]도 트레이드 마크. 그래서 별명이 팬더다.
2018년 9월 3일 [[두시의 데이트]]에 전화연결로 출연 하루 전날 출연제의가 와도 출연 해 줄수 있는 질문에 하루는 사치라며 3시간 전에도 가능하다고 했었다. 여담으로 1시간 전 방송섭외로 급하게 출연한 적이 있다. 그것도 집이 여의도일때 방송국이 여의도였기에 가능했었다고.
활발히 활동하던 중 2000년도 초 모 개그맨 선배와 얽힌 사기사건에 연루되면서 방송 활동을 접었었다. 그 개그맨 선배가 "좋은 부동산 매물이 나왔는데 내가 대출을 받기 어려우니 명의를 빌려 다오"라고 하며 김수용의 명의를 빌려가면서 나중에 3천만 원 정도를 떼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개그맨 선배는 김수용의 명의로 12억짜리 빌라를 매입한 다음 캐피털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 돈이 무려 '''8억'''.
이후 그 선배가 돈을 갚지않아 김수용 본인에게 압류가 들어오자[* 김수용은 당시 '내가 빌린 것도 아닌데 왜 갚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캐피털사는 처음에 K선배에게 먼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는데 저 인간이 돈 없다고 배째로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대출 명의자인 김수용에게 추심을 했던 상황이다.] 상황이 이상해짐을 느낀[* 그전에 [[캐나다]]에 있던 개그우먼 선배 [[이성미]]가 "너 요즘 K하고 논다며, 걔 [[도박]]한다고 소문 안 좋으니까 같이 어울리지 마"라고 경고를 했었다고 한다.] 김수용이 알아보니 선배가 캐피털사에서 대출한 것을 발견했는데 처음에는 비싼 빌라니까 그거 처분해서 빚 갚으면 되지 했는데, 사실은 그 빌라가 12억짜리가 아니라 6억밖에 안 됐던 빌라였다. 즉, 그 선배가 부동산 감정사와 짜고 빌라 가치를 뻥튀기하여 '''사기 대출을 받았던 것.'''
그런데, 캐피털 쪽도 아주 막장이었는데 8억이나 되는 돈을 본인 확인과 부동산 가치를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담보대출을 해준 것이다. 알고 봤더니 이쪽도 캐피털사 지점장이 선배와 한패라서 대놓고 사기 대출을 눈감아줬다고 한다. 결국 캐피털사와는 그쪽 과실도 있고하여 추심은 안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후 경매를 통해 빌라를 매입한 다음 정산해보니 대출이자 + 부동산 관련 세금까지 해서 총 3억 7천의 빚이 남았다고 한다.
이후 선배에게 당한 배신감+빚에 대한 압박감으로 방송을 접고 우울증에 걸려 무기력하게 지냈다고 언급되었다. 이 기간 중에 온라인게임 [[리니지(게임)|리니지]]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아이디는 '겸댕이'. 연예인임에도 [[혈맹]] 모임에 대놓고 나가고 PvP관련해서 [[현피]]까지 할 정도였다고[[https://www.youtube.com/watch?v=FCaSUZ9wNwI|김수용 현피드립]]. 리니지를 접은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시가 몇 백만 원짜리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지인이 잠깐만 껴보겠다고 해서 김수용이 별 생각없이 아이템을 넘겨주었는데 그 사람이 아이템을 받자마자 '''[[닌자#s-11|그대로 로그아웃을 해서 잠수 타버렸다.]]'''[* 흔히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집 한 채값인 [[진명황의 집행검]]은 아니다. 집행검은 2010년 이후인 비교적 최근에 나온 무기로 김수용이 리니지를 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배성재의 텐]]에 출연했을 때 "+9 무기라서 빛이 나는 검이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빛이 나는 무기는 애초에 축복받은 무기이지 강화 수치와는 무관하다.]
2010년 들어서 완전히 방송에 복귀하였다. 본인이 게스트로 나와서 인생역정에 대해 얘기할 때는 빵빵터지지만 재탕과 기복이 심한 편은 아쉬운 부분. 리니지의 영향으로 동년배 코미디언에 비해 인터넷 문화를 잘 아는 것이 특징. 거의 단발성 게스트 출연이 많다.
2016년에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출연했는데, 과거 [[미남]] [[개그맨]]으로까지 불렸었는데[* [[파일:감자골_리즈시절.png]][br]미남으로 유명하던 시기의 외모는 지금으로서는 연상도 되지 않는 수준.] 근 몇 년새 살이 부쩍 불어서 [[유재석]]에게 자기관리 부족이라고 [[디스]]당하기도 했다. 실제 위에 프로필 사진으로 쓰인 2012년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와 비교해서도 현재는 꽤나 살이 찐 상태. 몸무게가 세 자리 가까이 육박한다고.
그해 2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는데, [[김경민(개그맨)|김경민]]의 삽질로 인해 방송이 묻힐 위기에 놓였다. 그나마 [[본인]]은 시청자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본방 방영 분량에선 그 채팅의 캐리로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 [[복면가왕]] 88차 경연[* [[내 노래는 플러스 알파 알파카]]로 나와 [[곰살 맞은 북극곰]]과 같이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불렀으며 정체를 밝힐 때 부른 곡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 이의 꿈'이었다. 참고로 삼파전을 제외하면 역대 세번째 최다 표 차이다.(92:7)]
- 블리치/698화 . . . . 16회 일치
* 이치고는 오리히메와 결혼해서 가업(의사)을 이었다. 여동생들과 함께 생활 중. 카린은 거유로 성장햇지만 유즈는 그대로다.
* 차드는 복서가 돼서 헤비급 세계 챔피언 자리에 도전 중. 이치고와 친구들이 TV로 그 경기를 보고 있다.
* 렌지와 루키아도 결혼. 아이도 생겼는데 이치고네 집에 놀러오다 잠깐 잃어 버린다.
* 루키아와 렌지의 딸 아바라이 이치카(阿散井苺化(いちか)). 렌지의 머리모양에 루키아의 눈매를 닮은 소녀다.
* 현장에 도착해 보니 쿠로츠치 마유리가 한 발 먼저 와있었다.
* 손님은 쿠치키 루키아와 아바라이 렌지. 결혼했다.
* 집에는 이치고의 친구들이 총집합. 아리사와 타츠키와 아사노 케이고, 코지마 미츠이로도 있다.--간만에 등장했는데 마지막화--
* 쿠로사키 카린과 유즈는 훌륭히 성장. 콜라와 팝콘을 가져오고 있다.
* 이노우에 오리히메는 이치고와 결혼. 드디어 이치고에게 이름으로 불린다.
* 유즈의 방은 원래 이치고가 쓰던 방. 유즈는 카즈이라면 아무리 들어와도 괜찮다고 말하는데, 아무래도 브라콤 기질을 버리지 못한 듯.
* 그 구멍은 1화에서 루키아와 호로가 튀어나왔던 것과 같은 구멍.
* 이 야망이 천년 전 호정13대와 대립하게 된 원인인 듯하다.
* 그리고 카즈이와 마주치는데.
* 아바라이 이치카. 루키아와 렌지의 딸이며 사신 수습이다.
* 이치카와 카즈이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 식극의 소마/224화 . . . . 16회 일치
* 훈제 간장에 발사믹 식초, 흑초, 설탕, 분쇄 한 찻잎을 넣어 소재와 소스에 두루 차향을 씌워 다층적인 향을 내는 것이 목적.
* 상대의 움직임을 보다 정교, 신속하게 트레이스하는 새로운 기술. 마치 상대를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그 조리와 사로를 완벽하게 복사한다.
* 이렇게 해서 [[츠카사 에이시]]는 실질 쿠가와 미마사카라는 두 명의 적과 싸우는 셈. 쿠가는 이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츠카사를 떨구겠다 선언한다.
* 츠카사는 그가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승리할 각오를 세운 걸 보고 "지금까지의 쿠가와 다르다"고 인정한다.
*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는 쿠가의 조리법이 중화요리의 "홍샤오"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홍샤오는 재료를 튀긴 후 간장 베이스의 양념으로 걸죽하게 졸여내는 방법. 쿠가가 돼지고기를 튀길 때만 해도 전형적인 홍샤오의 조리법이었으나 조리는 공정을 훈연하는 공정으로 바꾼 점은 대단히 신선하다. [[마루이 젠지]]는 쿠가가 녹차엔 손도 안 댄다고 우려에 우려를 했으나 훈연으로 찻잎의 향기를 스트레이트하게 식재로 옮기는 방식을 보고 탄성을 내지른다. 이는 십걸 1석 [[츠카사 에이시]]와도 차별화된 접근법이다. [[유키히라 소마]] 또한 철냄비를 저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에 감탄한다. 그런데 정작 미마사카가 건낸 액체는 아직 쓰지 않는 것 같은데?
* 쿠가는 그것도 착착 준비하고 있었다. 그 검은 액체는 "필살 소스"를 만들기 위한 핵심 재료였다. 그 정체는 "훈제 간장". 발사믹 식초를 푹 졸여 맛과 향을 응축하고 흑초, 설탕, 분쇄한 녹차를 넣고 훈제 간장을 넣어 마무리. 훈제 얘기가 나오니 [[이부사키 슌]]도 말이 많아진다. 이부사키가 보니 미마사카가 줄곧 준비하고 있던건 바로 이 훈제 간장. 조리대에 철냄비와 훈제용 도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간장은 본래 부드러운 향을 내는 칩으로 훈연하면 부드러운 풍미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뒷맛에 남는 여운도 한층 강화. 여기서부터는 향기의 스페셜리스트 [[하야마 아키라]]의 차례다. 그는 고기 뿐만 아니라 소스에도 훈제 향을 더해 먹었을 때 향기의 중층감을 극대화하는 것을 노린 조리법이라고 설명한다.
* 이스트와르는 쿠가가 돼지고기에 전념한건 미마사카의 조력 덕이라고 보고 멋진 팀워크라고 평하지만, 샤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결국 미마사카는 그 시간 동안 자기 조리는 하지 못한 채 쿠가를 돕는게 매진한 셈. 자기 승부는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건가? [[안(식극의 소마)|안]]도 동의한다. 아직도 [[사카키 료코]]의 술 때문에 헤롱헤롱하지만 해설력만은 건재. 그녀는 미마사카의 상대가 십걸의 4석, 당대 최강의 스시 장인 [[사이토 소메이]]란 점을 강조한다.
마침내 사이토의 솜씨가 펼쳐진다. 거대한 참치를 한 번의 기합으로 잘라나가는 사이토. 힘과 기술을 겸비한 솜씨다. 그런데 관중들이 사이토의 솜씨에 눈을 빼앗긴 사이, 어느 새 미마사카 또한 참치 손질을 하고 있다. 그 진도는 사이토와 정확하게 같다. 사이토가 미심쩍인 구석을 감지하지만 그보다는 일단 조리가 먼저다. 이번엔 작은 칼로 바꿔들고 다시 한 번 기합을 넣는데, 그때 미마사카의 눈이 번뜩인다.
* 사이토의 조리대 맞은 편에 거울이 놓였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조리를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복사한다. 사이토의 손이 멈추자 비로소 미마사카도 멈춘다. 그는 놀라운 속도와 힘으로 재료를 다듬어가는 사이토를 완벽하게 카피하고 있었다.
미마사카의 회심의 수.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는 카메라의 스트로보(플래쉬)가 번쩍이듯 순간적으로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똑같은 장면을 재현한다. 복사 속도와 품질은 지금 본 대로. 이스트와르는 방금 설명으로 왜 미마사카가 쿠가의 서포트에 전력했는지 깨달았다. 이 방식을 사용한다면 조리를 구상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게 가능하다. 그건 사이토가 대신 해준 셈이니까. 그 남는 시간을 쿠가의 서포트에 전부 투자한 것이다.
* 침울하기 이를 데 없던 반역자 팀의 분위기가 바뀐다. 미마사카의 새로운 필살기는 기존의 트레이스를 아득히 넘어선 기술이다.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타쿠미 알디니]] 조차 "믿음직하다"고 말할 정도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저 감탄. 소마는 이 상황을 츠카사가 쿠가와 미마사카라는 두 명의 요리사와 싸우는 거라고 요약한다.
* 센트럴편인 관중들은 쿠가가 비겁하게 나왔다고 욕한다. 그는 츠카사와 일 대 일로 붙고 싶던게 아니냐는 것.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쿠가는 마이웨이. 오히려 자신은 어른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자존심은 세우지 않는다고 응수한다. 자신의 바람이 어떻든, 지금은 반역자 팀을 대표해 싸우고 있는 입장. 그의 뒤에는 후배들이,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 식극의 소마/230화 . . . . 16회 일치
* 시노미야는 본디 센트럴에 협조할 생각도, 대립할 생각도 없었으나 도지마의 요청을 듣고 "앞으로 누군가를 이끈다면" 소마와 메구미 뿐이라 생각해 오게 된 것.
* 소마와 타쿠미도 그녀의 각오를 이어받아 대결에 나선다. 1카드 대결 주제는 "버터". 2카드 대결 주제는 "소고기"로 결정.
* [[타쿠미 알디니]]가 그가 어떻게 홋카이도에 있냐고 물었다. [[도지마 긴]]의 섭외였다. 도지마는 지금까지는 팀워크 강화 훈련을 했으니 이제 개별훈련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연대식극은 팀원 간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역량이 필요한 시점도 분명 온다. 지금부터 죠이치로, 도지마, 시노미야가 각각 1학년 삼총사를 맡아 맨투맨 학습에 들어갈 것이다. 소마는 물론 죠이치로, 타쿠미는 도지마. 마지막은 당연히 [[타도코로 메구미]]와 시노미야다. 메구미가 다소 어리둥절한 채로 대화에 따라가지 못하자 시노미야가 직접 선언한다.
타쿠미도 풀스포르 훈장 수여자인 그가 도움을 준다는 자체에 경악했다. 소마는 물론 대환영. 자기 가게도 있는데 그들을 위해 헌신해준다고 감동에 겨워한다. 시노미야는 "잠깐의 변덕"이라고 말하지만 소마가 제대로 들을 리 없다. 이렇게 잘 풀려가는 것 같은데, 도지마는 뭔가 걸리는 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마가 "잘 됐다"고 축하하면서 보니, 메구미는 사색이 된 채 오돌오돌 떨고 있다. 합숙 시절 시노미야에게 당했던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플래시백하고 있던 것이다. 이래서는 특훈은 커녕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무리 같은데. 과연 이 난관을 메구미와 시노미야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요리를 시작한 모모의 기백은 십걸다웠고 메구미는 단숨에 위축될 뻔했다. 실제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메구미는 다시 시노미야 셰프에게 가르침 받았던 그때를 떠올렸다. 고양이와 쥐, 뱀과 개구리, 사자와 토끼 같은 조합의 특훈조. 둘은 개인 주방에 들어섰지만 그저 서로 쳐다보는 채로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옆 방에선 소마와 죠이치로, 타쿠미와 도지마도 개별 훈련을 시작해야 했지만 메구미조가 어떻게 하는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지어 [[나키리 에리나]] 조차도. 전원이 유리창 너머로 메구미 조의 주방만 기웃거리고 있자 도지마가 각자 훈련을 시작하라고 한소리 했지만 죠이치로가 "넌 메구미가 걱정도 안 되냐"고 일갈하자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모든 건 긴장 때문, 정확히 말하면 시노미야의 존재 자체 때문이다. 아예 주방까지 들어와서 구경하던 소마가 "시노미야 사부가 온 게 문제였다"고 가차없는 돌직구를 날리다 시노미야한테 욕을 먹는다. 같이 구경하러 온 타쿠미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같은 생각. 은근슬쩍 끼어있던 에리나는 슬슬 돌아가서 각자 특훈을 시작하자며, 메구미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상황을 수습한다.
* 몇 시간 뒤. 결국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시노미야는 반쯤 좌절했고 메구미는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느라 특훈은 진전이 없었다. 덤으로 타쿠미와 소마는 휴식시간마다 메구미조를 기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진전은 요원했다.
메구미와 소마. 그가 결심한건 그 때문이었다.
이제와서 근성론. 지켜보던 타쿠미와 소마 모두 글러먹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구닥다리 일갈이 메구미의 내부에서 예상치 못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초등학생 메구미는 한때 순정만화에 푹 빠진 소녀였다. 특히 좋아했던 건 어떤 스포츠 근성 탁구만화. 거기 나오는 "코치"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녀가 중학생 때까지 탁구계에 몸담았던 것도 이 만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시노미야의 근성론이, 그 만화 속의 가르침을 일깨운 것이다.
타쿠미와 소마도 그녀에게 질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은 "각오"를 다지며 각자의 대결주제를 뽑았다. 제 1카드 대결은 "버터". 제 2카드는 "소고기". 이제 대결만이 남아 있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16회 일치
인기 절정이었던 [[2000년]]에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자서전에서 가족사항을 공개해서 새롭게 주목받았으며, 특별히 [[정치]] 성향을 드러내진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며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사회를 맡는 등 예전과 다름없이 활동했다. 덕분에 정치적으로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 없이 화려한 [[스타#s-2|스타]] 생활을 지속했다.
이시기에 디즈니 에니메이션인 [[쿠스코? 쿠스코!]]의 주인공 더빙을 맡았었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았었다. 이외에도 [[니켈로디언]]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수수께끼 블루]]의 KBS판에서 '와 아저씨'[* 원판에서는 '스티브'(Steve)로 나온다.]라는 이름으로 진행을 맡았다.
그러다가 그 화려한 전성기 시절, [[2002년]] [[16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으나 이회창 후보와 함깨 고배를 마셨고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던 코미디 대상에서도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에게 대상을 넘겨줘야 했다.[* 그 자신의 주장으로는 12월 17일 이미 수상이 통보되었으나 정작 발표 때는 결과가 뒤집혔다고 한다. 이 당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매니저와 담당자간의 오해로 밝혀져 심현섭이 사과했다.][* 그 전에도 모 프로그램에서 말실수를 심하게 하여 공영방송에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후 [[김준호(개그맨)|김준호]][* 심현섭과 SBS 공채 동기였으나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김대희]],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황승환의 경우는 10월 말경에 사고로 팔을 다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2002년 11월 초경의 그의 출연 장면을 보면 깁스를 한 채로 출연하고 있다. 황승환은 약 1년 후에 개콘에 복귀하지만 특유의 '여장연기'를 계속 하는 바람에 '식상하다'는 반응을 얻고는 곧 하차했으며, 이후에는 엔터기술의 최대 주주 겸 황마담웨딩컨설팅 [[CEO]]로 [[연예인]] 주식부자 겸 CEO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11&aid=0000175748|회사자금 횡령으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이때 황승환의 [[본명]](오승훈)과 그가 사실은 [[바지사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병진]], 이태식, 김미진, [[김숙]], [[강성범]] [* 심현섭, 김준호와 SBS 공채 동기였지만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등의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을 개콘에서 이탈하게 한 것을 주동한 계기로 해서, 정치적인 면과 연예적인 면 양쪽에서 [[어그로]]를 끌어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 [[김기욱]]의 얘기에 의하면, 시사개그는 꿈도 못 꾼다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규제가 많았다고 하며, 이러니 웃찾사에서는 개콘 출신 개그맨들은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웃찾사를 통해서 스타가 된 [[김기욱]]조차도 이런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면 말 다 한 거다. [[여담]]으로 [[9시 언저리뉴스|언저리뉴스]]를 넘겨주고 나와서는 웃찾사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심지어 그게 계기가 되어 [[다중이]] [[캐릭터]]를 박성호에게 빼앗기기까지 한 [[김준호(개그맨)|김준호]]는 이 이야기만 하면 속이 터져한다.
여담으로 성대모사와 입담으로 잘 나가던 시절에 제과업체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개콘 초창기 시절 정체불명의 외국어를 구사해 인기를 끌던 것이 주목받아서 그 기믹을 이용해 광고를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맡은 역할이 [[아돌프 히틀러]]. 딱딱한 독일어로 연설하던 히틀러가 과자를 먹고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이 때문에 항의를 받고 광고가 내려간 흑역사가 있다.
이와 같은 행보는 그가 드라마제작사 [[스타맥스]]의 기획이사로 재직하면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 '[[가문의 영광#s-2|가문의 영광]]', '압록강은 흐른다', '순결한 당신' 등의 홍보와 마케팅 업무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까메오]] 출연자로 종종 작품에 얼굴을 비춘 적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인 '택시(TvN)',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당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연예인 야구동호회 조마조마 야구단의 감독이기도 하며 연예뉴스에서 이와 관련된 소식으로 그의 얼굴을 종종 접할 수 있다.
2015년 2월 21일 [[SNL 코리아]] 시즌 6 2화 [[심형래]] 편의 '나는 개그맨이다' 편에 나와서 과거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사바나의 아침의 추장 개그를 보여주며 투병드립을 시전했다.
전남 광주 출신이다. [[아버지]]가 호남전기 사장, 전남매일신문 사장, 광주일보 회장이자 [[대한민국 국회의원|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던 [[심상우]]로,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심상우가 떠나기 전 아들에게 당시 돈으로는 상당한 2천 원을 용돈으로 줬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버렸고, 심현섭은 지금도 그걸 간직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돈가치로 따지면 9만 원~10만 원 정도이다.] [* 훗날 테러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듣었는데,[[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0271525151001|평소 밝고 활달했었던 아버지가 테러 당일에는 표정이 어두웠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그것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목에 실린 참석자들의 마지막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래서 한때 잘 나가던 부잣집 도련님(할아버지부터가 호남전기공업[* 1945년 창립 이래 심씨 가문이 소유했으나, 1970년 큰아버지 심상하 회장 사후 부인 진봉자의 전횡으로 회사가 어려워져 1976년에 남봉 김남중(1917~1987) 전남일보 회장 등 호남 연고 기업가 6명에게 팔렸으나, 경영권 분쟁 발생 후 1978년에 김남중이 단독으로 인수해 1982년부터 '로케트전기'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에너자이저 등 해외 건전지들에 밀려 1998년부터 '로케트' 브랜드를 질레트에 팔고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2015년에 회사가 정리되었다. 반면 같은 '로케트' 브랜드를 쓰는 자동차 배터리 부문은 1978년에 세방기업 매각 후 '세방전지'로 분리되어 현재 잔존중이다.] 창업주 심만택이었다.)이었다가 아버지 타계 이후로 상경하여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1976년에 숙모 진봉자 여사의 전횡과 사촌 심홍근 사장의 운영미숙 등으로 호남전기를 팔았으며, 1980년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전남매일을 잃게 된다.]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s-1|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까지도 보수파 계열에서 정치적 지지 의사를 꾸준히 표명했는데, 이러한 행보는 사실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나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심현섭 본인의) [[아버지]]가 [[북한]]이 벌인 [[테러]]로 순직하게 된 특수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참여정부 시절의 탄압 주장도 사실 그의 정치적 지지 행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공작원이 2008년 [[미얀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공작원도 아버지와 함께 남북 분단 시대의 희생자"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상태에 놓이고 후에 정치적 논란도 겪게 되는 심현섭 본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보수 네티즌들은 심현섭의 몰락이 [[참여정부]] 시절의 정치압력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 시대의 [[김미화]]·[[김제동]]·[[윤도현]]·[[김C]] 등의 방송 하차가 정치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을 역공하는 근거로 삼았다. 정권이 확실히 바뀌어버린 후에도 여전히 방송에 얼굴을 잘 비치지 않으며 가끔 나와도 추억속 개그맨 이상의 모습은 보이지 못하는걸 보면 그냥 본인이 개그쪽을 더이상 중시하지 않는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 오현근 . . . . 16회 일치
|프로 입단 연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SK 와이번스]])
|드래프트 순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4차 7라운드 ([[두산 베어스]])<br>[[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3차 6라운드 전체 45순위([[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2008년 ~ 2009년)
==[[SK 와이번스]] 시절==
2008년 SK 와이번스의 2차 6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10년 시즌 자신을 처음 지명했던 [[두산 베어스]]와 신고선수 계약을 맺었다.
6월 9일 [[KT 위즈]]와의 서울에서 대수비로 출장, 롯데 유니폼을 입고 첫 선을 보였다.
6월 10일 KT와의 서울에서 선발로 출장, 롯데에서의 첫 안타와 프로통산 첫 타점을 기록했다.
6월 1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서울를 앞두고 [[오태곤|오승택]]이 등록되면서 1군에서 말소되었다.
8월 21일 [[KIA 타이거즈]]와의 서울에서 선발 2번타자 중견수로 출장하여 2루타 2개를 기록하였다.
5월 12일 1군에 처음 합류하여, 당일 서울 8회말에 대타로 나와 아웃되었다. 5월 13일 서울엔, 8회초 9:8로 앞선 15아웃 만루에서 손용석의 대타로 나와서 [[김대우 (1988년)|김대우]]를 상대로 도망가는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였고, 자기 자신도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과 [[정훈 (야구 선수)|정훈]]의 연속안타로 홈을 밟으며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8회말 수비에서 [[김대륙]]과 교체되었다.
19일 서울에서는 급성 장염에 걸린 [[짐 아두치|아두치]]를 대신하여 대수비로 나와 안타 하나를 기록했으나, 9회초 팀이 극적으로 동점을 만든 2아웃 만루 상황에서 대타 [[손용석]]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2군에만 머물렀고, 결국 9월 4일자로 전날 [[경찰 야구단|경찰청]]에서 전역한 [[전준우]], [[김사훈]], [[신본기]]의 등록을 위해 투수 [[이지모]]와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388830]</ref>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서울언북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해주 오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원피스/872화 . . . . 16회 일치
*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해적단이 어인섬을 구한 직후, [[넵튠(원피스)|넵튠왕]]은 그들에게 준 재보가 빅맘 해적단에 들어가게 됐다는 얘길 듣고 경악한다.
*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해적단이 아직 어인섬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 [[넵튠(원피스)|넵튠왕]]은 어인섬을 구해준 답례도 성의 갖은 재보를 하사했다. 그런데 우대신이 오더니 그 재화 중 옥갑만은 회수해야 한다고 간청한다. 넵튠은 이미 준 것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냐고 거절한다. 그러나 대신이 좀 더 소상히 사정을 밝히자 생각이 달라진다.
* 그렇게해서 현재. 다과회와 암금왕 루 펠드와 스튜시 등이 얽혀서 복잡한 경로로 개봉된 옥갑은 재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성 밑으로 떨어진 옥갑이 깨지면서 기폭장치가 작동, 홀 케이크 성 절반을 날리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홀 케이크 아일랜드 바깥에서 관측될 정도의 대폭발. 성 안은 난데없는 폭발음과 성 일부의 소실, 이어지는 기울음으로 아비규환이다. [[타마고 남작]]이 상황을 종합해 보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능성이 떠올라 버렸다.
* 토트랜드 수도이자 성 밑에 형성된 마을 "스위트 시티"의 주민들도 폭음을 듣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들은 기우는 성을 바로 볼 수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한 발 먼저 피난하기 시작했다. 피난하는 와중에도 대체 무엇이 이런 사태를 촉발했는가 의견이 분분했는데 적의 공격은 아무래도 아닐 거 같다. 토트랜드 최심부의 이 섬만을 타격할 수 있는 적이 어딨겠는가? 누군가가 막연하지만 성 옥상에서 진행 중인 다과회와 관계된게 아닌지 추측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둘이다. 그 둘,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스튜시와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건즈는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스튜시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로 옥갑이 이 사태를 일으킨 거 같다고 말하자 모건즈가 달리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성의 붕괴는 다과회장의 구도를 많이 바꿨다. [[샬롯 카타쿠리]]에 제압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빈스모크 이치디]]가 해방됐다. 역시 포위됐던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 루피도 탈출 성공. 레이쥬는 급변한 상황의 원인을 궁금해하지만 상디는 그딴건 됐으니 우선 도망치자고 다그친다. 가장 경황이 없는 건 빅맘.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처형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그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온통 쓰러지고 뒤엎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 사이 사로잡혔던 [[빈스모크 니디]], [[빈스모크 욘디]]가 무사히 빠져나와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무사히 구출했다. 의식을 잃은 채지만 목숨까지 잃진 않았다. 물론 최종적으론 이 무너지는 성에서 벗어나야 그렇겠지만.
* 벳지의 의견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이 성은 성 밑 마을보다도 거대하다. 이제와서 뛰어봐야 달아날 수 있을리가 없다. 어떤 주민들은 이렇게 절망하며 주저앉아 통곡했다. 성 위에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빅맘 해적단 멤버들이 우왕좌왕하며 무엇이든 붙들고 있었다. 카타쿠리는 이런 와중에도 형제들을 진정시키고 다니며 살 길을 모색한다. 모건즈는 이런 와중에도 특종을 잡았다고 기뻐 날뛴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다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는 새인 주제에 날지 못했다. 하지만 스튜시는 육식을 마스터한 몸이므로 당연히 "체"로 여유롭게 날아오른다. 벳지와 시저는 혼란을 틈타 탈출에 전력하고 이치디는 이들이 충분히 거리를 벌린걸 확인한다.
* 슈트로이젠의 쿡쿡 열매 능력이 무너지는 성을 통채로 케이크로 바꾼다. 거기에 슈트로이젠은 멋진 칼 솜씨로 케이크의 맨 윗 단, 다과회가 열리는 회장만을 베어서 안전하게 안착시킨다. 성 안에서도, 성 바깥에서도 모든게 끝났다고 절규하는 사람들 위로, 먼지와 잔해 대신 케이크와 생크림의 산사태가 쏟아진다. 홀케이크 아일랜드를 뒤덮을 기세로 쏟아지는 산사태. 폭풍같은 소란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누구나 뭉그러진 케이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 천운 덕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해적동맹군은 홀케이크 아일랜드 북서쪽에 이르러 잠시 휴식했다. 밀집모자 일당의 써니호와, 파이어탱크 해적단 아지트 사이의 중간 쯤 되는 지점이었다. 벳지는 체내의 밀집모자 일당을 바깥으로 쏟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 선언한다. 나미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벳지는 "좋은 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니 관둬라"며 말을 가로막았다. 시저는 고생한 건 자기라고 나대는데 나미가 독설을 퍼부어 조용히 시킨다.
폼이야 어떻든 절박한건 사실이다. 비트와 [[샬롯 시폰]]이 밀집모자 일행과 제대로 작별인사하고 싶었다고 징징거린다. 벳지는 괜히 친해지지 말라며 지금부터가 "탈출 본편"이라고 윽박질렀다.
- 윤상현(배우) . . . . 16회 일치
||<bgcolor=#DCE4E9> '''데뷔''' ||<(> [[2005년]] [[이승철]] MV '열을 세어 보아요'[* TV 데뷔는 2005년 [[SBS]]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
한국의 남성 배우. 본래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으며[* 최종학력 고졸이다, 과거 허위사실 기재로 학력논란이 있었다(...)] 분식집, 옷장사 등의 다른 일을 하며[* 그 때까지만 해도 판촉활동으로 최고가 되고 싶단 바램을 피력한 바 있었다.] 살던 중 [[기무라 타쿠야]]를 닮은 외모로 연예기획사에 픽업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수가 될 예정이었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으며, 실제로 4인조 남성그룹의 멤버가 되기도 했으나 프로필 사진을 찍은 후 드라마 작가와 감독들에게 캐스팅이 들어왔고 배우로 전향하게 되었다.
한국나이로 33살 무렵인 2005년 TV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PD 역으로 처음부터 주연으로 데뷔했다. 연기에 연자도 몰랐던 윤상현의 눈빛이 마음에 든 강신효 감독은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 캐스팅 후 강신효 감독에게 3개월간 연기지도를 받았으나 연기가 심각하게 늘지 않았고, 최후의 조치로 [[박근형]]에게 연기수업을 보냈는데 너는 드라마 하지 말라고 엄청 혼났다고 한다. 자신도 연기자에 대한 꿈이 없었고, 본인의 실력을 잘알기에 강신효 감독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며 못하겠다고 했으나 감독님의 만류로 결국 드라마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기초짜인 윤상현의 --[[발연기]]--때문에 [[프랑스]] 로케이션 촬영분이 방영을 못할 정도로 너무 심각해서 재촬영을 위해 국내에 프랑스를 재현하기 위한 성(城)세트를 짓느라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었다고 한다.]이후 불꽃놀이, 독신천하에서 고만고만한 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2007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겨울새(2007년 드라마)|겨울새]]에서 주경우 역을 맡아 주목받게 되었다. 원래 이 드라마는 [[이태곤]], [[박선영(1976)|박선영]]이 주연이었으며 윤상현은 오히려 주연들보다 더 돋보이는 싸이코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찌질이 연기를 선보인 끝에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제목을 쪼다새, 찌질새 등으로 바꿔 부르게 할 정도였다.[* 원래 이 역할은 어두운 캐릭터였는데 윤상현이 감독과의 회의 끝에 어수룩한 마마보이 역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또 그전까지 가수와 자영업을 꿈꾸며 연기에 별로 관심없이 연기하던 그에게 진심으로 연기에 빠져들게 만든 작품이였다고 한다. 결국 이때의 호연으로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수목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 등에서 중요한 역을 맡게 되었다.
MBC 신작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에 [[최지우]]와 함께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당시 동시에 방송되던 [[공주의 남자]]와 [[보스를 지켜라]]에 밀려서 10%대 시청률로 종영했다.
2015년 2월 8일 [[메이비(가수)|메이비]]와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385652|결혼했고]], 12월 4일에 [[http://news.donga.com/3/all/20151205/75201893/1|득녀했다]].
|| 2005년 || [[SBS]] ||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 유진하 || 드라마 데뷔작 ||
|| SBS || [[피노키오(드라마)|피노키오]] || 차관우[*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같은 배역. 《피노키오》가 '너목들' 제작진(조수원 PD, [[박혜련]] 작가)의 차기작이었기 때문에 이 인연으로 특별출연 하였다.] || 특별출연 ||
|| 2015년 || SBS || [[너를 사랑한 시간]] || 본인 || 특별출연[*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연출자인 조수원 PD와의 인연으로 출연.] ||
|| [[내 뒤에 테리우스]] || 윤지섭 || 특별출연[* 《쇼핑왕루이》를 집필한 오지영 작가와의 인연으로 출연하며, 함께 출연했던 [[임세미]]의 오빠로 등장한다. --대체 특별출연이 몇 개야... 의리있다.--] ||
|| [[놀러와]] ||<|2> 게스트[* 월요일 밤 11시대에 동시에 방영하는 두 프로그램에 윤상현이 같은 날(6월 1일) 출연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방영일을 사전 협의와 다르게 바꿔버린 것은 《야심만만》 쪽이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시청자들은 불만을 토로했고, 욕은 윤상현이 다 먹게 된 억울한 상황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15851|여기]]를 참고할 것.] ||
|| KBS2 || [[김승우의 승승장구]] || 몰래온 손님[* 첫회에 게스트로 출연한 ~~진짜 내조의 여왕이신~~ [[김남주]]와의 인연으로 깜짝 등장하였다.] ||
|| SBS || [[힐링캠프(SBS)|힐링캠프]] || 게스트[* 연예계 독거남 특집. 하지만 여기서 윤상현은 메이비와의 결혼을 발표했고, 함께 출연했--다가 뒷목 잡았--던 [[주상욱]], [[김광규(배우)|김광규]] 중에 현재 한 분만 아직까지(...)] ||
* 비와 당신의 이야기 (우리카드 CF 삽입곡) (2009)
- 윤태진(아나운서) . . . . 16회 일치
前 KBS N SPORTS의 [[아나운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주 중의 알럽베를 책임졌었다. [[최희]], [[정인영(방송인)|정인영]] 등과 함께 KBS N SPORTS의 여성 아나운서 3대장이라고 불렸다. 단아한 이미지의 [[최희]]와 모델급 몸매를 가진 [[정인영(방송인)|정인영]]에 비해 윤태진은 --정반대로-- 아담하고 귀여운 이미지 담당.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는 입사 동기이다.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껏 같이 붙어다닌다고 한다. 나이는 [[정인영(방송인)|정인영]]이 2살 더 많다. 의지할 수 있는 언니 같은 스타일이란다. 그런 [[정인영(방송인)|정인영]]을 보고 윤태진은 '대나무 숲' 이라고 한다.
[[2010년]] [[남원춘향제#s-2.3|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서 선이 된 뒤 진([[효영]])과 함께 [[아침마당]]에 출연했었는데 [[이금희(방송인)|이금희]]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고. '아나운서는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단다. 계약직이긴 해도 단 5개월만에 공채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당시 부모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서 무용을 포기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있던 차에 이금희에게 권유를 받으며 방송이라는 새로운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붙으니까 좋아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계속 무용을 할 걸하는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안 경제 상황의 변화가 없었다면 계속 무용을 하고 성공해서 나중에 교수까지 되는 걸 목표로 노력했을 거라고.]
2016년부터 [[SBS 파워FM]](107.7mhz) [[배성재의 TEN]]에서 화요일 코너 아재판독기 코너를, 2018년 8월부로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 코너를 진행 중이다. 기존 팟수들은 채팅창에 "두사람 다 잘 어울리니 결혼해도 딱이다!! 결혼해라"라고 성화였는데....친해지긴 했었던 거 같은게 2016년 11월 방송에서 나미춘이 배디에게 반말하다가 살짝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를 팟수들은 놓치지 않고 마구 놀렸었는데 언제부턴가 썸은 사라지고 이젠 비지니스만....2018년 3월 잡지 <bnt>와 찍은 화보 촬영에서는 인터뷰에 배성재 얘기가 나오자 '따뜻하고 좋은 분이다. 좋은 여자 만나셨으면 좋겠다'라고 거리를 뒀다. 아무튼 나미춘, 흥미춘으로 [[배성재의 TEN]]의 아재여신 인정.
2017년 12월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스토킹 피해를 호소해 놀라게 했다. '아파트 앞이다, 안자는 거 안다, 뺨한대 맞을까 나와라' 등등 혐오스러운 말들이 담겨있었다. 윤태진은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그만두라며 그동안은 팬의 관심이겠거니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했지만 그만하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포스팅에 댓글은 닫았지만 여러모로 놀란 팬들이 걱정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이후로는 스토킹에 관해 언급이 나온 적은 없다.
입사 초기에 [[농구]]와 [[배구]] 현장 쪽에서 인터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야구 시즌이 아닌 겨울에 주로 하는 실내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 등에서 현장 인터뷰를 자주 했다. 축구팬들은 야구로 '외도'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싶었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워낙 야구의 비중이 높은 채널이기도 하다. [[축구]] 쪽에서는 [[유로 2012]]에서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 함께 유로 여신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본인은 그저 '''유로 여자'''이고, 유로 폐인이라고(...). 서로 공부하고 같이 시험까지 보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 [[정인영(방송인)|정인영]] 아나운서와 함께 자몽콜? 레몬비!!! 음료 광고도 찍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i5sp6Bz3SE|영상]]
* 2015년 10월 31일자로 [[정인영(방송인)|정인영]] 아나운서와 함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퇴사했다. [[https://instagram.com/p/95SRuFFFty/|인스타그램]]에 밝힘.
*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에 화요일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지만 배성재 아나운서와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틈이 조금만 나면 시청자들의 각종 드립이 올라올 정도.[* 다른 여자 게스트인 [[소혜]]도 가끔 배성재에게 드립을 날린다. 윤태진과 자기 중에 고르라는 둥, 고백은 하는 게 맞다고 하는 둥, 짝사랑 중이지 않냐는 둥.][* 윤태진 본인은 2018년 3월에 bnt와의 인터뷰에서 배성재와의 러브라인에 대한 질문에, 좋은 여자 만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게다가 케미와는 별개로 윤태진 본인이 가진 끼가 여기서 막힘없이(...) 발산되는 경우가 매우 자주 나오는 편이라 사실상 베텐의 마스코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 KBS joy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 재연 배우로 6회, 11회 2번 참여했다. 6회에서는 권태기인 남자친구를 잡기 위해 다이어트와 성형을 감행하고 남자친구를 사로잡는데 성공했으나 자신이 권태기에 빠진 미녀의 모습으로 나왔으며, 11회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차였다가 남자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매달리자 다시 만날까 고민하는 학교 선생님 역할로 나왔다.
* 지난해 2017년 12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팬이 스토커 DM을 통해 아파트 앞에 있으니 나와달라라는 심한 내용을 올렸다. 이후 윤태진은 인스타 DM의 메세지를 캡쳐.. 자제해 달라고 호소를 했다. 소속사도 이에 대해 강경의사를 밝혔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611192|#]]
*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 의 [[라디오볼]] (매주 월요일 오후 12시) 3년만에 야구 프로에서 2018시즌 MC를 하게되었다. 배성재의 텐에서 아재판독기 코너와 라디오볼 어느 쪽이 더 소중하냐를 배성재가 묻자 대답이 늦어 놀림을 받았다.
* 스포츠 출신 아나운서라 그런지 그래도 전 직장이었던 KBS N Sports팀 아나운서와 제작팀장, MBC Sports+, SBS Sports 대부분 아나운서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 은혼/596화 . . . . 16회 일치
* 하세가와 다이조는 마다오답게 자판기 밑에서 동전이나 긁어 모으며 구차하게 살고 있다.
* 하세가와 다이조. 최종장에 와서 마다오 졸업?
* 컴컴한 어둠 속을 더듬으며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하세가와 다이조.
*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자 정말 끼었다고 판단, 빼주겠다며 하세가와를 잡아당긴다.
*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천도중은 오리무중 상태. 막부도 와해되어 무정부 상태가 다름없다.
* 츠쿠요와 사루토비 아야메는 지붕 위에서 천인들의 군단을 염탐하고 있다.
* 그런 와중에도 마다오는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만 하며 자판기 밑을 긁고 있다.
* "사무라이의 나라를 되찾아 보자. 우리(사무라이)와 함께."
* 그의 이름은 입국 관리소 국장 하세가와 다이조.
- 하세가와 다이조. 자판기 밑에서 동전을 긁어 모으며. 치졸해 보였던 행동은 모두 대의를 위해서였다.
'''사무라이의 나라를 되찾아 보자. 우리(사무라이)와 함께.''' ||
- 하세가와 다이조. 그동안 긁어 모든 모든 것을 해결사에게 보내며.
|| 입국관리소 국장 하세가와 다이조. ||
- 하세가와 다이조. 횡포를 부리는 천인들을 가로막으며.
* 하세가와가 패기넘치는걸 보니 정말 완결이 다 되긴 했나 보다.
- 은혼/599화 . . . . 16회 일치
* 그 결과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자신을 쇼군으로, 양이지사를 가신으로 내세워 연합군과 교섭하는 방안을 제출한다.
* 이 개판을 벌인 당사자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마치 제정신인양 상황을 정돈한다.
* 지구인 스스로의 손으로 우츠로와 천도중을 물리칠 정도가 되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는 없다.
* 그 사이 가구라는 그의 고로케에 타바스코와 마요네즈 세례를 끼얹는데
* 그리고 현재. 그의 의양대로 가츠라와 다츠마는 노부노부를 장군으로, 자신들을 가신으로 내세워 혁명군 수뇌부와 접선 중이다.
* 게다가 해방군은 복리후생도 탁월해서 기지 안에 숙박시설과 츠타야[*일본의 비디오 대여점 프렌차이즈]까지 있엇다. 내친 김에 인디펜던스 데이와 스타워즈까지 빌린다.
* 해방군 말단의 약탈행위와 이에 봉기한 가부키쵸 주민들.
* 츠쿠요와 히노와는 개방됐던 요시와라를 다시 걸어잠그고 노약자를 모아서 보호하고 있다.
* 하지만 요시와라의 안 좋은 이미제 때문에 수용된 주민들과 트러블이 끊이지 않는다.
* 간만에 개그와 시리어스가 적절하게 분배된 에피소드
* 노부노부의 모델은 도쿠가와 요시노부. 실제 역사상으로도 도쿠가와 정권을 끝내고 메이지 정부로 권력을 이양한 인물이다. 대세를 잘 읽은 인물이라는 평과 정권을 말아먹은 인물이라는 평이 혼재된 편.
* 가구라가 노부노부 식판에 뿌린 타바스코와 마요네즈도 진선조 복귀의 복선이라는 설이 있다.--사실 지금 아니면 나올 타이밍이 없어--
- 은혼/615화 . . . . 16회 일치
* [[오우가이]]의 지상군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에 돌입. [[진선조]]와 [[오니와반슈]]가 적진으로 돌격하고 [[가부키쵸]]는 농성전에 들어간다.
* 이 같은 와중에 주인공인 [[사카타 긴토키]]는 알을 잃어버리는 참사 끝에 해방군과 함께 누워버리는 추태를 보인다.
그대로 진격하는 오우가이군을 [[오니와반슈]]가 요격한다.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가 선봉에서 이끌고 있다. 오우가이는 발목잡기가 아니라 정말로 저지하러 온 거냐고, 기책도 아닌 우책이라고 비웃는다.
* 가부키쵸의 건물 위에서 [[오토세]]여사와 [[캐서린(은혼)|캐서린]]이 전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 작전의 주요 목적은 적이 가부키쵸에 도달하기 전 최대한 힘을 깎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대군이라 그정도만 가지고는 완전히 저지하는건 기대할 수 없다. 결국은 요격을 뿌리치고 가부키쵸를 격파할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주민들은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적이 오니와반슈의 공격을 막아내서 서서히 진격, 가부키쵸의 목전까지 도착했다. 남쪽 제 3문에서 신호가 오자 가부키쵸 측은 투석기를 동원해 요격을 개시, 가부키쵸 공방전이 개막한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첫 공격의 희생자는...
* 신파치가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타에는 투석을 멈추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해방군이 지척까지 몰려와있다. 이대론 해결사 일행이 가부키쵸와 해방군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가 되어버릴 위기. 다급히 피하는 통에 긴토키의 알이 어디론가 굴러가 버린다.
>어서와 '''알이 없는 입구에'''
결국 이곳도 다른 세상으로 가는 입구에 지나지 않았다. 아들이 인질로 잡힌 긴토키는 전쟁통인 것도 적들이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것도 잊고 문 앞에서 애걸복걸한다. 긴토키가 아들과 함게 지옥의 입구로 가려는 찰나, 문틈으로 누군가의 손이 뻗어나와 적 병사의 아들래미를 부여잡는다.
[[사이고 토쿠모리]]의 자비없는 징수. 순식간에 아들을 잃어버린 병사들. 긴토키와 같은 신세가 되어 사이좋게 누워버린다.
* 이번엔 가구라가 입구를 발견했다고 큰소리로 외친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긴토키와 신파치가 가기도 전에 해방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두 사람이 뒤따라 가봤더니 그곳엔
[[혼죠 쿄시로]]와 타카마가하라의 호스트들에게 둘러쌓여 있다. 호스트 클럽 모드가 된 가구라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에 해방군도 주춤거린다. 가구라는 "위험한 물건"을 가져가는 대가로 오로나민C를 한 병씩 돌리는데.
그런 논쟁 끝에 건물 안에선 "꿀꿀"과 "찰싹"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또다시 적이 목전까지 다가온 상황. 긴토키와 신파치의 다급한 도움 요청을 '''또 마드모아젤 사이고가 접수한다.'''
* 예상치 못했던 분전. 전황이 고착되려는 양상을 보이자 오우가이가 움직인다. 그를 상대하던 오니와반슈의 닌자들이 초주검이 되어 있다. 그는 날아오는 투석도 벌레잡듯이 쳐내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쏟아지는 공격 사이로 무인지경인듯 걸어온 그는 굳게 잠긴 가부키쵸의 문 앞에 선다.
- 은혼/644화 . . . . 16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는 [[귀병대]] 동지 [[다케치 헨페이타]]와 [[카와카미 반사이]]의 희생으로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시스템을 파괴한다.
*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통제실을 제압하고 남은 적 병력에 최후통첩을 날리며 항복을 종용한다.
* [[무츠(은혼)|무츠]]가 몸을 날려 다츠마를 구하고 치명상을 입는다. 가츠라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는 엔쇼와 격돌하나 엔쇼는 뜻밖에 강자.
* 동지이자 친우를 잃은 다츠마와 가츠라의 분노가 폭발한다.
*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에 돌입한 [[귀병데]]가 전멸하고 동지였던 [[다케치 헨페이타]]와 [[카와카미 반사이]] 마저 희생시킨 [[다카스기 신스케]]는 그들의 유지를 받드는 일념으로 [[키지마 마타코]]와 결사의 돌격을 감행, 히노카구츠치의 시스템룸에 진입한다. 신스케가 시스템 유닛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고 있을때, 방어병력들은 발악하는 심정으로 다리를 파괴하고 신스케도 추락한다. 그러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 적 병사의 바주카를 무너지는 잔해에 쏘고 그 후폭풍으로 중추 시스템에 접근한 신스케. 병사들은 중추 시스템이 파괴되면 해방군만이 아니라 이 배 자체와 귀병대, 양이지사 일행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소리친다.
* 보고는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의 귀에도 들렸다. 신스케의 성공을 뜻하는 낭보. 그러나 동시에 비보이기도 했다. 다츠마는 아무리 악운이 강한 그들이라도 무사히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런 각오가 없인 베지 못할 상대였기에, 신스케는 자진해서 그 역할을 맡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해방군의 사령부를 겸했던 통제실은 이제 양이지사 일행의 수중에 떨어졌다. 히노카구츠치는 파괴, 해방군을 조종하던 맹주 [[엔쇼]] 황자는 사망. 그들이 졌다. 이제 모선마저 온전하지 못하게 됐으니 해방군의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항복인가 죽음인가. 다츠마는 최후의 선택을 종용하면서 무엇을 택하든 이해한다고 말했다. 설사 그들이 무익하게 죽어나가기를 택해도, 동지들의 뒤를 따르기를 택해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신들도 똑같은 기분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다츠마에게선 승리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체를 쌓고 올라온 것은 신스케 만이 아니었다. 말이 없는 가츠라나 [[도쿠가와 노부노부]]도 다를바 없었다.
>알겠냐? 우리도 너희와 별반 차이없어. 다들... 똑같은 기분이라고.
* 엔쇼의 공격이 끝남과 동시에 가츠라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가 뛰어들었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두 자루로 나눠서 대응했다. 2 대 1의 상황도 그를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츠라, 드라고니아의 파상공세를 가볍게 막고 역으로 두 사람을 수세로 몰아붙였다. 그는 양이지사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 엔쇼는 가츠라와 드라고니아의 사이에서 양쪽을 상대하다가 칼날을 타고 가츠라의 머리 위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가츠라를 공격해 두 사람을 벽으로 몰아세우고 칼날을 탄환으로 전환, 두 사람에게 쏟아부웠다. 탄환이 일으킨 먼지가 걷히고 나자 드라고니아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그는 기꺼이 방패가 되었다. 여섯발이나 되는 흉탄을 견뎌내고 가츠라의 안전이 확보된 뒤에 서서히 무너졌다.
그에겐 히노카구츠치를 발사할 수 있느냐 마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불이 꺼지지만 않았다면. 그 에너지가 모선에 깃들어 있는 한은 아니었다. 방아쇠가 고장났다면 모선 째로 에너지를 지구에 때려박는다 해도 아무 차이도 없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부하들이 경악하거나 말거나, 양이지사가 저항하거나 말거나.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가츠라와 다츠마. 피차 같은 불이 질러진 사내들.
- 이석훈 . . . . 16회 일치
||<#0D3EA3> {{{#ffffff '''출생'''}}} ||<(><rowbgcolor=#ffffff> [[1984년]] [[2월 21일]][* 빠른 84년생이라 83년생하고도 친구다. 대표적으로 친분있는 83년생 연예인들은 [[V.O.S]]의 [[김경록]], [[슈퍼주니어]]의 [[이특(슈퍼주니어)|이특]].][* 그와 동시에 [[김용준(가수)|김용준]]과도 친구다. 아마 그룹 내에서 리더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듯. 민경훈하고도 친구다.] ([age(1984-02-21)]세), [[경상북도]] [[포항시]][* 다만 5세 무렵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로 이사갔다.] ||
초기에 그의 목소리가 SG워너비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쉰 떡밥~~시간이 약이라고 이젠 팬이든 안티든 일반 음악 애호가들이든 별반 말하지 않는 편이다. 훈훈한 외모와 중저음 목소리도 한 몫한 듯.
위와 같이 빼어난 외모와 --교회오빠, 안경버프남--중저음의 목소리와 올바른 발성[* [[김연우(가수)|김연우]]의 제자. 김연우 본인은 가르친 가수가 상당히 많지만 방송마다 언급하는 제자는 몇 안된다. 이석훈은 매번 언급하는편. 그만큼 애착이 많은듯. 이석훈이 R&B 틱한 창법으로 노래를 하자 혼쭐을 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언급하는 멤버들을 보면 인기보단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는걸 알 수 있다.]으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노래하는 고수.[* 중저음의 목소리지만 발성법이 훌륭해 고음도 무리없이 내지른다. ] SG워너비에서도 들어오자마자 김진호와 동급에 심지어 일부 곡에서는 김진호 이상으로 파트를 얻을 정도. 거의 원맨 느낌이라, 아니나다를까 솔로 앨범도 상당히 많이내서 활동하는 중이다.
여성에게 어필이 가능한 목소리와 외모인지라 노래도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의 곡들이 많은 편이다.[* 이석훈 솔로 미니앨범 [[인사]]의 선공개곡이었던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가 대표적.~~10가지 이유를 다 들으면 노래가 끝나지만 높은 항마력이 요구된다~~ 물론 이 곡의 경우, 발표하자마자 싸이월드 뮤직 1위, TJ나 금영 등의 노래방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흔한 발라드를 부르는데, 이석훈이 부르기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시력이 굉장히 좋지 않아 평소에도 안경을 착용하지만 도수가 너무 높아 눈이 작아 보인다는 이유로 방송활동에는 렌즈+알 없는 안경을 쓴다.(진짜 자기 안경을 착용한 이석훈은 '원나잇 푸드트립'에서 볼 수 있다.)
2014년 10월 21일 전역했다. 이석훈 측 관계자는 “남자라면 당연한 의무인 군생활인데 연예인이란 이유로 전역하는 날 특별히 축하 받는 걸 이석훈이 원치 않는다”며 “여느 병사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전역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따로 전역행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44937|링크]]
2015년 1월, 방송에서 만난 발레리나 최선아 양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밝혔다.~~이젠 교회 오빠 아닌 교회 아저씨~~ 멤버들이 신곡을 녹음하는 도중에 최선아 양이 찾아와서 먹을 걸 가져왔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내조를 하는 듯.~~그리고 용준이는 울었다~~
2017년 6월, 4년만의 솔로앨범을 발표하면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하여 [[http://naver.me/GTTgvwKx|'나야 나' 댄스무대를 선보였는데(.....)]] 심지어 잘한다! ~~헥헥 윙크와 입술 깨물기는 덤~~ ~~[[장문복|석훈이 하고싶은거 다해 대신 한번만 더 입술 깨물면 탈덕이야]]~~
남자 보컬리스트 특집에 2번 참여했으며, 1승 했다. 이 때 타 남자가수들 평이 '첫 무대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거임?' 이후 2011년 11월 말부터 불후의 명곡 2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최백호]] 편에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는데...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적이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을 때와 편곡의 방향이 아주 묘하게 비슷하다. 착각이거나 혹은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의 차이 때문일 수도...][* 참고로 이 「낭만에 대하여」 무대는 이석훈 불후의 명곡 무대 탑 중 하나다.] 여러 번 참여했으나 번번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의 특징상 풍부한 중저음보단 높고, 개성있고, 자극적인 무대를 선호하기 때문인듯 하다.
복면가왕에 [[십오야 밝은 둥근 달]]이라는 닉네임으로 참여해서 준우승했으며 묘하게도 [[노래덕후 능력자|그 후에 참여한 멤버]]와 마찬가지로 예선 1차전에서 첫경연했으며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장기 집권]] [[우리 동네 음악대장|가왕]]의 첫 경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2016년]] [[9월 9일]] || 6번 || 나와 같다면 (원곡자: ~~[[김장훈]]~~박상태[*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은 98년도에 불려진 리메이크판이다. 1995년에 가수 박상태가 이미 앨범에 넣었는데 히트하지 못했고 이후 김장훈이 불러 히트한 것.]) || 1승, 432점[br]'''우승''' ||
듀엣가요제에 계속해서 다시 보고 싶은 듀엣으로 선정되어 오랫동안 출연했다. 우승은 1번 밖에 못했지만 매 회마다 파트너와의 교감으로 연일 화제가 되었다.
- 이순재(1935년 10월) . . . . 16회 일치
[[전라북도]] [[전주시]][* 그 유명한 [[김종서]]의 [[6진 개척]]에 나오는 6곳 중 하나.] 출생,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 전쟁]]을 모두 경험했다. 출생지는 전주이지만, 4살 때([[1938년]])에 조부모님이 계신([[전라북도|전북]])로 왔고, 해방 후 부모님도 전북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어릴 때 힘들게 살아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 장사를 했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고 나서 [[등록금]]을 안 내도 아무 말 없었다고 한다. 전주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0년]], [[6.25 전쟁|6월 25일]] 동생[* 이명재(1994년 사망). 남동생의 아내 이름은 중견 탤런트 [[정혜선(배우)|정혜선]]과 동명이인이다.] [[수영복]]을 사러갔다가 군인들의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즉,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673|#]]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 이 시절의 철학계는 [[독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독일어가 필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전공책들을 '''[[독일어]] 원서'''로 읽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독일어]] 실력이 동년배에 비해 썩 나은 편임을 [[꽃보다 할배]] 스위스편에서 독일어로 쓴 지명을 부드럽게 읽음으로써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 팬들과 일본어로 문제 없이 소통 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명문대 출신들은 비록 회화는 어렵더라도 왠만한 일본어 원서는 그냥 읽을만큼 일본어가 능통하다. 애당초 대학교 교재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거나 국내에서 쓸만한 교재들이 쓰이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도 [[박정희]] 군부독재시절이라 마땅히 읽을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자본론을 일본어로 읽었다.]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연극부 부원 중에는 --요즘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채현국 이사장을 건너 [[고건]] 전 국무총리와도 아는 사이. 사실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 박사가 이순재를 가르쳤던 주임교수였다. 한 번은 4학년 때 연극 합숙 연습 때문에 수업을 두 차례 빠져야 해서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라며 흔쾌히 봐주었다고.]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전국 노래자랑]]의 [[송해]](1927년 생)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연예인'''이자[*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유일하게 형님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원로 배우.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했으며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상도(드라마)|상도]], [[야인시대]], [[거침없이 하이킥]], [[이산(드라마)|이산]],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했다. 빈틈없는 자기관리와 신념, 그리고 대체로 선역을 맡아서 이미지가 좋다. 연극부 출신이면서, 집음 장비가 나빴던 옛날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고령인데도 발성과 발음이 아직까지도 뛰어나다. 복합모음인 ㅙ와 단모음인 ㅚ 발음을 구분할 만큼.[* 보통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시켜봐도 10에 9는 제대로 발음 못한다. 아나운서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ㅙ, ㅚ 는 커녕 장모음 단모음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작품 복은 좋은데, 상복은 없는 배우라 말할 정도로 히트작은 많지만 굵직한 상과는 인연이 없다.[* [[동양방송|TBC]] 시절 이 후에는 큰 상을 받은적이없다.] 하이킥의 야동순재 역으로 [[무한도전]] 팀과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공동 수상한 게 가장 큰 상일 정도.[* 아무래도 연예대상 시상식인 만큼 같이 수상한 [[무한도전]]팀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순재 또한 겸연쩍다는 내용의 수상소감을 했다.] [[연기대상]]을 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김혜자]]와 [[강부자]]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순재가 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TBC]] 드라마 남우주연상도 2회 이상 받았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한 배우이며, 당시에도 실력을 인정 받았다.[* 오히려 위에서 거론된 대기만성형의 대표주자는 [[백윤식]]이다. 그도 한창 젊은 시절인 70-80년대에는 비중없는 조단역에만 머물렀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드라마 [[서울의 달]]로 주목을 받고 2000년대 들어서 영화판에서 굵직하게 활약하여 노년에 들어 입지를 굳힌 케이스다.] 한 마디로 [[이순재]]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으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은 덕택에 자기보다 인기 있던 스타가 모두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MBC에서 최민수의 노인폭행 누명을 다룬 특집 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작진은 연예인들을 둘러싼 각종 악성루머들을 조명하며 한번도 구설수에 없는 이순재를 찾아가 비결을 물었다. 이순재가 말한 비결은 무조건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것이었다.]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남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움상회 때문에 보람상조에서 나온 멘트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라이나생명]] 광고 멘트이다. 이 멘트가 이순재를 대표하는 멘트가 되어서인지, [[광동제약]]의 헛개나무 숙취해소 음료 광고에서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험처럼 마시자'''라는 어레인지된 멘트를 쓰기도 했다. ]는 [[개그 콘서트]]의 [[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 이 조치 때문에 보험 광고를 촬영하는 연예인인 [[손범수]], [[문천식]], [[정은아]], [[김상중]] 등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2009년에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업(애니메이션)|업(Up)]]'''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칼 프레드릭슨)'''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반적인 [[비성우 더빙]]' 수준이 아니라 '역대 애니메이션 [[비성우 더빙]] 사상 최고의 목소리 연기', '원작 초월' 소리를 들을 정도의 평가를 받을 만큼 절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강수진(KBS 성우)|강수진]] 성우가 맥심 인터뷰에서 '대가는 어디를 가나 통하더라'며 칭찬을 했다.[[http://news.maxmovie.com/74030|#]]] --이것이 바로 이순재의 업(業, Karma, 카르마, 운명)이니라.-- 한 평론가는 "[[초콜렛]]"이 아닌 "쪼꼬렛"이라는 할아버지 캐릭터에 맞는 발음을 구사한 것을 극찬하기도 했다.[* 사실 이순재는 옛날의 후시녹음 체제 때부터 활동해온 배우라 발음과 발성이 좋은 편이고,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었던 옛날 젊은 시절에는 성우로 일하면서 더빙을 해서 얻는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환경이 개선되면서 오래도록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그냥 이순재의 자기 관리와 연기력이 뛰어난 거다. 본인은 카메라 연기와는 방식이 달라서 쉽지 않았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comment_srl=2358142&listStyle=gallery&mid=movietalk&page=997&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764826|#인터뷰]] 적당히 유명세 마케팅으로 투입된 배우, 아이돌, 개그맨들과는 내공이 다르다. 애초에 가벼운 마인드로 연기하시는 사람이 아니다.]이순재가 맡은 배역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에드워드 애스너.]도 연극활동은 1940년대[* 대학생이던 [[1947년]]도부터 활동했다.], 영화산업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베테랑 명배우다.
최근에는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http://mnews.joins.com/article/22423348#home|일침]]을 날렸다. 한 방송에서 '미투운동을 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제자나 부하를 내 마음대로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사실화됐다"며 "관객들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꿈을 접은 후배들을 향해서는 "자기 탓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연기) 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연기 재개를 권유했다. 반면 가해자들을 향해서는 "이 분야를 다 떠나야 한다. 다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다들 깊이 반성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금 한 약속을 잘 지키고 '나 죽었소'하고 평생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했다.[* 그래도 본인 역시 구시대를 살아와서 나이가 있다보니 걱정되었는지 한 방송에서 하이킥에 같이 출연한 후배 배우 [[박해미]]와 같이 식사하면서 하이킥 찍을 때 자신도 그런 적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참고로 박해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인 적이 있다.) 근데 오히려 박해미는 "당시 별명이 '''야동 순재'''였음에도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꽃보다 할배]]에선 유럽을 누비는 와중에 남다른 시사상식을 뽐냈고 [[라디오 스타]]에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진행자와 게스트들 할것 없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여담이지만 이순재의 출생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 동양극장(2001, KBS)/와께지마
* [[불멸의 이순신]](2005, KBS)/[[이황]][* 천원짜리에 있는 그 퇴계 이황 맞다. 복장과 분장이 퇴계의 초상화와 영락없는 판박이.]
* 성녀와 마녀(1969)
- 진격의 거인/94화 . . . . 16회 일치
* 전사들은 엘디아인 거주구에서 가족들과 제회. [[지크 예거]]는 [[그리샤 예거]]의 부모님, 자신의 조부모와 재회. 아버지와 달리 조부모에겐 정답다.
* 가비는 라이너와 친척지간이며 그의 어머니 [[카리나 브라운]]과도 교류가 있다.
* 저녁엔 브라운 일가와 가비의 가족들이 식사를 하며 전쟁 중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라이너가 "가비의 거인 계승은 결정적"이라 말해 모두 기뻐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제 그 얘기는?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문제다. 파르코는 가비와 라이너를 앞질러 걸어가며 계속 생각했다. 어쩌면, 라이너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파르코는 라이너를 의식해서 힐끗힐끗 돌아봤던 건데, 가비는 그걸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이걸 "반역의 예조"라며 부대에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파르코가 "이게 누구 때문인데!"고 항변한다. 가비가 알아듣지 못하자 라이너와 지나가던 병사들이 "가비 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사자만 의미를 몰라서 반발하느라 파르코에게서 관심이 떨어진다.
* 마레의 전사들은 도시를 가로질러 엘디아인 거주구로 이동했다. 가는 길목마다 마레인들의 탐탁지 않은 시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고향인 거주구. 가족들은 벌써 출입통제소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가비와 파르코의 동기 조피아, 우도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포르코와 피크도 오랜만에 가족과 재회했다. 그리고 전사들의 리더 지크는 [[그리샤 예거]]의 부모, 자신의 조부모에게 돌아왔다. 아버지를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조부모에겐 다정하게 얼싸안는다. 조부가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칭찬하자 지크는 "아직이야"라고 대답한다.
라이너도 그리운 어머니와 재회했다. 그녀의 이름은 [[카리나 브라운]]. 친척들도 함께다. 가비의 가족들도 브라운 일가와 친척지간이다. 가비가 그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카리나는 오늘 밤은 파티를 열거라고 말한다.
* 가비는 카리나에게 "전사대가 섬의 악마들로부터 엘디아인을 지킬 거야"라고 안심시킨다. 팔라디섬에 대한 의견은 엘디아인 전반에서 공통적이다. 그들은 마레에서 가르친 대로 섬의 악마들이 언제든 대륙으로 돌아와 모든 걸 멸망시킬 거라고 믿고 있다. 이 식탁에 모인 사람들도 그랬다. 엘디아인이 멸시 당하는 것도 바로 그들 때문이라 생각했다. 화제가 이렇게 돌아가자 자연히 그 섬에서 5년이나 생활했던 라이너에게 화살이 쏠린다. 은연 중에 그 섬에 대해서 묻는데, 가비가 그런 걸 물으면 안 된다며 가족들을 말렸다. 애초에 팔라디섬에 대한 정보는 기밀인데다, 그 지옥 같은 섬에서 잠복했던 경험을 누가 말하고 싶겠냐는 것이다. 가비의 아버지가 조카의 입장을 생각 못했다며 사과하지만, 사실 라이너가 난처한 것은 가비의 발언 쪽이었다.
* 엘디아인을 버린 섬의 악마들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 어머니의 말은 라이너의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켰다. 방으로 돌아와 누운 라이너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건 민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카리나는 여느 가정의 어머니들이 그렇듯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역사를 들려주었다. 거인이라는 괴물과 그걸 이용한 악행, 그걸 자행한 자들의 피가 자신들에게 흐르고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엘디아인들은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폐가 되니까.
그는 라이너가 반발한 틈도 주지 않고 쉴 틈 없이 공세를 이어갔다. 라이너는 도저히 장점이 없다. 체력은 마르셀에게, 두뇌는 피크에게, 사격과 격투술은 각각 베르톨트와 애니에게. 그가 뒤처지지 않는 분야는 없다. 그가 평가받은 부분은 오로지 하나, 필기 시험 때 적어낸 "마레에 대한 충성심" 뿐이다. 포르코는 그거 하나는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그 충성심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장에게 아첨하기나 "섬의 악마들은 반드시 내가 죽인다"는 허풍에 지나지 않더라도.
이 시기의 라이너는 억울하게 맞아도 되갚아줄 정도의 힘도 없었다. 그가 분한 듯 눈물을 삭히지만 누구 하나 그를 편들어주지 않는다. 그나마 마르셀이 동생을 말려주는 정도. 지크도 그를 외면한 채 "우는걸 멈추면 바로 와라"라고 말할 뿐이다. 그것도 늦으면 자기가 마가트에게 싫은 소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베르톨트가 모를 얘기였고 라이너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베르톨트는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그를 위로해줬다. 포르코가 악담을 쏳아놓긴 했지만, 계승권을 주는 건 마레군이다. 라이너는 포르코 말대로 동기 중 자신이 제일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베르톨트는 "충섬심도 중요한 요소"라며 격려했다. 그리고 마침 자리에 남아있던 애니에게도 동의를 구했는데, 그녀는 묘한 짓을 하느라 지금까지 대화를 전혀 듣지 못했다. 벌레같은 것을 자근자근 밟아 죽이고 있었는데 형체가 남지 않을 때까지 발을 비비고 있었다.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방금 전까지 하던 대화도 잊고 뜨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킹덤/513화 . . . . 16회 일치
* 위나라의 [[봉명]], 한나라의 [[왕안왕]], 초나라의 [[와린]]도 해방 소식을 듣고 각기 생각이 복잡해진다.
* 와린도 진의 전략을 간파하고 봉명이 진나라를 칠 것도 예상, 거기에 맞춰 초나라가 북상하면 초나라가 중화를 손에 넣는다고 생각한다.
* [[하료초]]와 [[몽념]]은 [[왕전(킹덤)|왕전]]의 작전을 자살행위라고 여긴다.
* 초의 재상 [[와린]]은 [[이원]]과 함께 그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바뮤와 옥죽이란 남자 하인에게 팔을 주무르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착한 소식을 허투루 들은게 아닌지 "진이 진심으로 조를 치려 한다"며 진지하게 의견을 밝힌다.
* 이원은 전쟁에 조예가 없는 탓에 단순히 "조가 함락 당하는가?" 라고 묻는데 와린이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럼 진이 실패한다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와린은 그렇다고 답한다. 바뮤는 눈치없이 끼어들어서 "진이 한단을 치지 못한다는 것이냐"고 묻는데 와린은 그의 머리통을 내려치면서 "한단이 아니다!"고 호통친다.
와린은 진의 진짜 노림수가 한단 밑의 업이라는걸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이원은 "그렇다면 진은 업을 치지 못하는가?"라고 질문을 고친다. 와린이 보기엔 치지 못한다. 와린은 바뮤를 단상 밑으로 내던지고 설명을 이어간다. 그녀는 조 왕도권의 지리와 방어체제를 잘 알고 있다. 적이 쉽게 들어와도 산맥과 대하로 둘러싸인 입구, 열미만 수복하면 적은 그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질식해 죽는다.
* 장소는 다르지만 봉명의 의견도 와린과 일치한다. 그는 주광에게 그러한 견해를 전하며 개맹군을 의자성으로 불러들이게 지시한다. 조에서 진군이 소멸하는 것에 맞춰 대치 중인 [[등(킹덤)|등]]군을 격파하고 진나라를 칠 것이다.
* 다시 초나라. 이원은 와린의 설명을 듣고 곧 "그렇다면 우리가 진을 쳐야할 때"가 아니냐고 묻는다. 와린은 그도 전쟁에 안목이 생겨간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녀는 위군이 제일 먼저 움직일 것이고 진은 초군과 대치 중인 [[몽무]]군을 쪼개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단숨에 북상해 함양까지 진격한다. 초는 이미 진나라에 장군수를 둔 셈이고 결국 천하는 초의 것이 될 것이다.
- 토리코/396화 . . . . 16회 일치
* 미지의 식재들을 쌓아놓고 청귀, 백귀와 둘러앉은 토리코.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토리코와 린의 결혼 후 수년. 오오타케는 희망대로 고아원을 재건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나카우메는 나카움 학원을 개설,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 코마츠는 여전히 토리코와 모험을 다니고 있는데 이번엔 "우주"로 떠나야 한다는데?
* 토리코는 1화에서 처럼 낚시를 하며 코마츠에게 두 식욕의 악마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 우주에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식재와 그 조리도구들이 널려있다.
* 현역 팔왕들은 네오와의 싸움에서 생존했지만 은퇴, 테리는 새로운 팔왕을 뽑는 쟁탈전에 참가하러 갔다.
* 아직 풀코스를 완성 못한 코코와 재브라는 우주에서 풀코스를 구하기로 하고 먼저 떠났다.
* 토리코와 코마츠는 우주의 식재를 향해 출발한다.
* 모든 것이 끝난 후. 토리코는 식재를 쌓아놓고 청귀, 백귀와 둘러앉아 있다. 그는 두 식욕의 악마가 하는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있는데.
* 토리코와 린의 결혼으로부터 수년이 지났다. 오오타케는 꿈에 그리던 "과자의 성"을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GOD를 먹을 수 있는 고아원"으로 부활. 오랜 꿈을 이룬다. 코마츠는 이곳에 방문해 오오타케에게 축하를 건넨다. 모든 것은 IGO와 재생가들이 노력해준 덕에 GOD의 양식과 품종개량이 가능해진 덕이었다. 아동보호 목적으로도 인기가 높지만 다른 목적으로 입원을 희망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GOD를 먹을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인 듯. 코마츠는 이 고아원 출신자들이 사회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 코마츠는 아직도 토리코와 여행을 다니고 있는 모양인데 오오타케가 그것에 대해 묻자 깜빡했던 약속시간을 떠올린다. 토리코와 새로운 모험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코마츠는 서둘러 약속장소로 달려가는데 오오타케가 대체 어디로 가냐고 묻자 코마츠는 "우주"라고 대답한다.
* 이런 소식을 들은 토리코는 자기 내면에 남은 두 악마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들이 여러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선 "가장 끝의 땅"이라는, 미식의 원류와도 같은 곳을 알려준다. 미식의 신이라 부를 민족이 살던 곳으로 이곳에서 식욕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구루메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킨데 139억년 전의 "구르메 빅뱅"이다.
그리고 사천왕 중 코코와 제브라는 이미 우주로 떠났다. 아직 못 채운 풀코스 하나씩을 우주의 식재로 채우기 위해서. 토리코는 어영부영 있다만 제브라에게 선수를 빼앗길 거라고 출발을 서두른다.
* 마침내 출발하는 토리코와 코마츠. 미니멈 셸이 우주로 향한다.
- 프로 스포츠 . . . . 16회 일치
==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 ==
프로 스포츠 선수는 전통적으로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주 소득을 얻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반면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선수란 [[취미]]로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에 아마추어 스포츠는 상당히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무렵에 아마추어를 프로 스포츠와 구분한 이유는 프로선수는 돈 받고 전념하니까 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같은 틀에서 경쟁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프로 선수를 낮게 보았고[* 일종의 '사회적 차별'로서, '유산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에서 '노동자 계급'과 같이 여겨진 프로 선수를 배제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올림픽에 '아마추어' 규정이 들어가게 되었다.
[[냉전]] 시기에는 [[국가]]의 개입으로 아마추어리즘이 퇴색하게 되었는데, 공산권을 중심으로 사실상 국가에서 아마추어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하면서 생계까지 책임져주면서 국위선양을 위하여 아마추어 스포츠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스포츠 선수 군단'을 육성함으로서 '프로나 다름없는 아마추어'가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 이러한 전략으로 [[동독]] 등은 많은 메달을 따냈고 [[국위선양]]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이 같은 흐름은 크게 퇴색하였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남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현대에는 [[스포츠 마케팅]]의 발전으로,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에도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이 경계가 상당히 애매해졌다. 준프로라는 개념도 잘 살펴보면 프로선수와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 가령 [[K리그]]에 뛰는 선수들은 명백히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구단으로부터 급여를 받음은 물론이고 성적에 따라 연맹에서 추가적인 상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용품 회사로부터 스폰받는 돈도 있다. 하지만 세미프로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만 봐도 이런 면에서 K리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통적인 분류는 상당히 무의미해 진 상황이다.
또한 아마추어 리그인 K3도 K리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적어도 인기 종목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경계는 사실상 전통적인 방식으론 더 이상 경계를 가르기가 어려워 졌다고 볼 수 있다.
권투의 경우도 권투경기를 주관하는 주요 단체에 소속되지 않았다 뿐이지, 올림픽 권투경기를 보기 위해서 올림픽 관람료를 내야함은 물론이고 올림픽 성적에 따라 각 국가의 올림픽 관계 단체로부터 상금이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개중에는 스폰서가 붙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이전과는 달리 단순히 '돈을 번다'는 것 만으로는 프로 스포츠와 아마추어 스포츠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각 종목과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가 규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종목에 따라서 상황이 상당히 다르지만,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대회와 그렇지 않은 대회는 어느 정도 방향성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프로 스포츠 종사자들은 상업적 이득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대회를 유치하려 한다. 그리고 이 대회에 참가 가능한 인원들을 "거르는 작업"이 필연적이다. 이렇게 거르는 행위를 통과한 인원들만 모아 대회를 열 준비를 하며, 이 대회에 참가하는 팀에 소속될 자격이 있는 "최상급 선수"의 자격을 갖춘 자들을 프로라 보는게 바람직이다. 축구를 제외한 대한민국 4대구기종목은 드래프트(=최상급 선수라는 판단을 협회와 구단이 동시에 판단)를 통해 이루어지고, 바둑같은 경우는 단위제(=최상급 선수라는 판단을 전적으로 협회를 통해 판단)를 통해, 축구의 경우는 구단이 영입과 이적이라는 행위를 통해(=최상급 선수라는 판단을 법과 협회의 규정 안에서 구단이 자체적으로 판단) 프로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이런 사례를 생각해보면 종목을 불문하고 "명백히 최고의 경기를 제공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상업적인 이득을 추구"하며, "최고의 수준을 경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증명된 선수와 팀"이 보여주는 스포츠가 프로스포츠로 규정할 수 있다.
프로 종목은 흥행 때문에 규칙을 변경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경기의 아마 종목과 차별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로 복싱과 아마 복싱은 프로 단체와 아마 단체에서 스포츠의 '규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으나 동시에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기가 되어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보호구로 헤드기어를 장착하는 아마 복싱은 프로복싱처럼 흥행에 도움을 주는 '화끈한 [[KO]]'를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때문에 포인트와 기술 위주의 운영을 강요받게 된다. [[농구]]의 경우 [[NBA]]는 [[쿼터제]]나 [[덩크슛]] 같은 흥행 요소를 도입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 하이큐/233화 . . . . 16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다른 무엇보다 코트와 천장이 달라진 것이 플레이에 영향을 줄 거라 예측한다.
* 츠바키하라 학원은 작년 [[시라토리자와]] 학원과 붙어서 1회전에서 참패한 적이 있다.
[[스가와라 코시]]는 긴장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손이 자꾸 식는다며 불평한다. 하지만 [[카게야마 토비오]]는 자신은 긴장이 안 되며 "여기는 통과점에 불과할 뿐"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 스가와라는 얄밉다고 걷어찬다.
공식 워밍업 시간 동안 [[히나타 쇼요]]는 코트에 서지 못하고 볼보이로 활동하며 몸을 덥힌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시미즈 키요코]]가 도착, 간신히 신발을 장착한다. 사전의 우려와는 달리 히나타의 해프닝 덕에 긴장감은 조금 떨친 듯하다. 히나타와 [[타나카 류노스케]]는 힘찬 함성을 지르며 시합이 시작되기만을 고대한다.
* [[츠바키하라 학원]] 측은 2년 연속 출전에 2년차 출전을 맞이했다. 작년 이들은 첫 출전 당시 [[시라토리자와]]와 격돌한 듯 한데, 그때가 첫 전국이었던 마루야마는 "정신차려보니 돌아가는 버스"였다며 같은 악몽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츠바키하라 측에선 이들이 시라토리자와를 꺾고 올라왔다고 긴장하고 있는데 주장인 [[에치고 사키에]]는 "시라토리자와랑 붙는게 나았겠냐"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렇다고 하는 선수는 없다. 에치고는 경기 내용상 저들이 시라토리자와를 압도한 것도 아니며 세상엔 "우연"이란 것도 존재한다고 분위기를 바꾼다. 마루야마는 좀 팔랑귀인지 그런 설명을 듣고 나자 "우시와카랑 안 붙게 돼서 럭키"라고 태세전환한다. 사실 주장인 에치고는 "이긴건 이긴 것"이니 만큼 카라스노의 실력을 얕보지 않는다. 단지 "작년의 반복"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격려한 것이다.
* 드디어 시합개시. 첫 공격은 카라스노 측의 서브. 카게야마가 서브를 넣지만 아웃이 된다. 서브권은 츠바키하라에게. 이와무로가 서버다. 타나카가 받아내지만 어설펐다. 우카이 코치는 취약지점을 당연하다는 듯 노리는 서브라고 평한다. 타나카가 흘린 공을 어떻게든 커버, [[사와무라 다이치]]의 스파이크로 이어진다. 츠바키하라는 리시브에 성공, 에이스인 4번 테라도마리로 이어간다.
그때 이와무로의 두 번째 서브. 타나카가 받아서 카게야마에게 연결한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세트를 올리는데 평소와 달리 타점을 한참 빗나간다. 공은 라인을 벗어나며 그대로 츠바키하라의 3연속 득점. 스코어가 0대 3으로 벌어진다. 오오사도 감독은 이대로 "삼켜라"고 되뇌인다.
- 허화평 . . . . 16회 일치
육군사관학교 동기 [[김진영(군인)|김진영]], [[허삼수]]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특히 허삼수와는 단짝이었다.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대령]])이었다. 말하자면 개국 공신 중의 공신인 셈이다. 1980년 9월 [[준장]] 진급 및 동시 예편하였다.
1980년 9월 [[전두환]]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직함은 없었다. 말하자면 [[전두환]]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없던 직제를 일부러 만들어서 허화평을 임명한 셈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청와대 핵심 기획자 역할을 했고 차관급 관료임에도 유일하게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근무했다. 명칭만 비서실 보좌관이었지 실질적으로 부총리급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안사 시절부터 비서실장이었으니~~ [[허삼수]], [[허문도]] 등과 쓰리 허로 불리며 실세로 활동했다.
대통령비서실 비서실보좌관실은 구 [[청와대]] 본관에 속해 있어서 전두환 대통령과의 관계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방증하였다. 그러나 허화평의 권력이 너무 강하다는 지적에 1981년 12월 대통령비서실 산하 정무제1[[수석비서관]]으로 좌천되었다.[* 이후로 청와대 비서실장은 1982년 1월부터 [[이범석(1925)|이범석]]이 새로 도맡기도 하였다.]
좌천된 상태에서도 저 정도의 위상이라면 실세로서 잘나가던 시절에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견제 기회로 인식하고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항명으로 비춰져 1982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허삼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와 [[미국]]에 체류하며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군사정권의 인사답게 민주화운동에 시종일관 부정적인 논조여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월간조선》은 2012년 3월호와 4월호에 걸쳐 허화평 전 대통령 정무수석과 심층 인터뷰를 했는데, 허 전 수석은 "[[5.18]]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당시 정보당국의 감청에서 풀 수 없는 암호지령이 급증했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왜 최태민을 잡아넣거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의 반문에, 허화평은 [[박정희]] 대통령과 [[10월 유신]]의 결과물인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산하는 일이었다는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51768&iid=1140067&oid=449&aid=0000114843&ptype=052|#]]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대로 수사해서 청산하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와 비리의 온상이 [[새마음봉사단]]이라고 보았으며, 그 결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서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 달라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묻어버린 것.
5공시절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매체에 노출되는 빈도가 매우 적은 데 반해 허화평은 방송 등 언론 노출 빈도가 높은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쾌도난마(채널A)|쾌도난마]]에 출연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윤선]]이 11개월 동안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자 "정무수석쯤 되면 대통령이 안 만나 주더라도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 된다."고 일갈했고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본인들이 앞장서서 이 정국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우기만 하면 안 된다."며 비판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문고리 3인방|권력의 문고리만 잡으면]] 출세할 수 있는 나라라며 ~~문고리 잡아본 사람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5공 정치인답지 않게 나름의 정치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1996년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구속기소되었을 때 이 면모가 잘 드러나는데, 법정에서 다른 피고인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와중에도 허화평만은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96년 총선에서 무려 '''옥중 당선'''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물론 당선 여부와는 별개로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에도 보수성향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종편채널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데 말빨이 기가 막혀서 진보성향 PD들이 애를 먹는다는 후문도 존재한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16회 일치
||<:> [[최민식]][br]([[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1 → }}} ||<:> '''황정민[br]([[신세계(영화)|신세계]])'''||<:> {{{+1 → }}} ||<:> [[송강호]][br]([[변호인(영화)|변호인]]) ||
광주예대 연극과에 재학 중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로 데뷔하였는데, 조연도 아니고 단역으로 잠깐 나온다. (1편에서 술집 종업원 역할)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 [[왼손잡이]]다. 식사, 운동 등 모두 왼손으로 한다. [[손석희]]와의 뉴스 인터뷰에서 왼손잡이이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하는 연기가 어색하다고 한다. 하지만 글은 오른손으로 쓴다. [* 오른손으로 밥먹는 연기를 하다가 어색하다고 느껴져서 죄송하다고 말한 후에 왼손으로 밥먹는 연기를 했다고 한다.]
* 얼굴이 빨개서 팬들은 홍시같이 빨갛다는 의미로 '''황시'''라고 부른다. 팬들에게만 사용되다가 최근 여러 매체에서 황시라는 말을 쓰고 있다. 같은 이유로 홍익인간(얼굴이 빨갛게 익은 인간)이라는 별명도 팬들 사이에서나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전술한 욕 잘하는 이미지와 합쳐 빨간 욕출(빨간 욕 잘하는 연출가)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학전 5형제' 시절엔 빨간놈으로 불렸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204494|#]]--
*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 촬영 당시에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이 천만을 넘겨서 축하파티로 《히말라야》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회식을 쐈다고 한다.[* 현장토크쇼 TAXI 인터뷰와 해피투게더에서 언급이 되었다.] 영월에 있는 제일 비싼 고기집에서 파티를 했다는데 무려 1200만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고 한다.[* 여담으로, 회식 초대할 때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믿은-- [[김원해]] 는 가족들 모두 데리고 참석했지만 정작 가족들까지 참석한 건 자기뿐이었다고...]
* 평소 아들 바보와 애처가로 유명하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은 후에 영화 시나리오에 아동 학대나, 베드신 등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도 거절한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내 [[문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진짜가 나타났다!!-- 포스터와 얼굴 크기가 같은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은근 소두?--
[[지진희]], [[조승우]]와도 꽤 친한 지 셋이서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이때 찍은 사진들은 지진희가 조승우 팬카페에 밤 새가며 올렸다고 한다. 실제로 완전히 [[엠티]] 분위기가 날 정도로 털털하다.
||<:>2001||<:>[[와이키키 브라더스]]||강수||주연|| 9만명[* [[http://www.starseoultv.com/news/articleView.html?idxno=381690|#]]] || ||
||<:>2005년||<:>[[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57회 ||
||<:>2009년||<:>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271회 ||
||<:>2011년||<:>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341회 ||
||2008||<:> 요진건설 와이시티|| ||<:>[[https://youtu.be/aqpCx9STxx4|#]] ||
||2016||<:> 영진약품 구론산바몬드 에스||<:>[[오달수]]와 공동출연||<:>[[https://youtu.be/Iq3wGcDdCgc|#]] [[https://youtu.be/N8MqrKSnarE|#]] ||
|| 제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남우조연상 || [[와이키키 브라더스]] ||
- 흥친왕 . . . . 16회 일치
[[1863년]] 음서로 사용이 되었으며 이듬해 과거에 급제하여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집권기간 중 도승지, 참의, 직제학 등을 지내고,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이 퇴출당하고 고종의 친정 이후에도 이조와 형조,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한때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동생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대안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관직은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 궁내부 대신, 육군 부장에 이르렀다.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풍산 홍씨 홍병주(洪秉周)의 딸과 결혼하여 [[이준용]], [[이문용]] 형제와 2녀를 얻었으나 일찍 죽고 뒤에 38년 연하인 참봉 이인구(李麟九)의 딸과 재혼하였다. 그밖에 1명의 첩에게서 서녀 1명을 보았다. 남달리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뜻을 거슬리지 않았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그런 그보다 영특하고 야심만만한 손자 [[영선군]] [[이준용]]을 더욱 총애한다. 그는 여러번 [[과거 시험]]을 준비하였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낙방하였다.
[[1881년]] [[4월]] [[시강원]] 우빈객(侍講院右賓客)이 되고 이후 [[금위대장]]과, 지훈련원사를 거쳐 같은 해 [[8월]]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10월]] [[이재선]]의 옥사가 있자 상소를 올려 [[이재선]]의 적형임을 들어 스스로 죄를 청하였고, 곧 사직했다. 그 뒤 [[이재선의 옥사]] 관련자들에게 역적의 율로 다스려야 된다는 [[사헌부]]와 [[사간원]] 및 [[성균관]] 유생들의 비난을 받을 때 그는 역모 가담자의 가까운 친족이었음에도 특별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 [[1882년]] [[3월]] [[보국숭록대부]]로 승진, 행 예조판서가 되고, 호조판서를 겸하였다. 이어 훈련대장, [[선혜청]] 당상, 판삼군부사를 역임했다.
[[1882년]] 7월에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납치되어 [[청나라]]에 호송, [[톈진]]의 보정부(保定府)에 억류되어 감금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다. 그는 대원군의 [[텐진]] 납치기간 중 아버지와 서신 연락을 주고받았다.
{{인용문|다시 뵈옵도 못하고 세상이 올이지 않이하리신이 지필을 다해야 한심하오니다. 태평히지니시옵기 니니 발아옵니다. - 보정부 안치죄 이상서<br />(다시 뵙도 못하고 이승에서 내 목숨이 오래지 못하겠으니 종이와 붓을 마주 대하기 한심하옵니다. 내내 태평히 지내시기를 바라옵니다. - 보정부 안치죄 이상서<br /><br />1884년 음력 10월 12일 보정부에서 몰래 쓴 편지<ref name="문사1"/>}}
[[1885년]] 민씨 정권이 친러, 친일 등의 성향을 보이며 [[청나라]]를 견제하려 하자,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청나라 정부와 [[위안스카이]] 등의 정치적 계산으로 4년여 만에 귀국하게 되었다.<ref name="daum1">[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25h3642b daum 사전]</ref> 대원군은 [[1887년]]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와 결탁하여 [[조선 고종|고종]]을 폐위시키고 큰 아들 이재면을 옹립하여 재집권하려다가 실패하였다.<ref name="daum1"/>
==== 갑신정변의 실패와 은거 ====
[[1884년]] [[김옥균]], [[홍영식]], [[서재필]] 등에 의해 [[갑신정변]]이 발생하자, [[개화파]]와도 인간 관계를 형성했던 그는 정변 내각의 [[의정부]][[좌찬성]](左贊成) 겸 좌우참찬이 되었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3일만에 진압되었고, 그도 좌찬성 겸 좌우참찬에서 해임되었다. 판종정경의 직위를 받았으나 [[갑신정변]] 당시 고위직에 임명되었다는 이유로 민씨 일파의 공격을 받았으며, 정변 관련자들과 내통하였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국왕의 친형이라는 이유로 불문율에 붙여진다. 그 후 흥친왕은 7년간 [[운현궁]]에서 칩거하였다.
[[1887년]] [[12월]] 첫 부인 풍산홍씨와 사별하였다. 상처한 그는 57세에 20세인 여주이씨 이인구의 딸과 결혼하였다. 여주이씨는 그의 아들 [[이준용]]보다 13살 연하였고, 며느리인 [[광산 김씨]]보다도 5년 연하였다. 결국 [[운현궁]]의 살림은 며느리 광산 김씨의 몫이 되었다.<ref>며느리 광산 김씨 역시 아들 이준용의 재취였다.</ref>
[[1892년]] [[봄]], [[운현궁]]에서 화약이 터지고 여러 건물에 장치된 화약이 발각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황현]]은 [[명성황후]]를 배후로 지목하였다. 황현은 운현궁의 폭탄 테러 사건을 [[명성황후]]가 대원군 일가를 폭살하기 위해 벌인 짓이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p316">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2007.4, 경인문화사) 315~316쪽.</ref> 이때 [[흥선대원군]]의 사랑채와 이재면, [[이준용]] 부자의 거처에도 폭약이 장치되어 있었으나 다행히 점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각되었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의 오빠인 [[민승호]]에게 폭약을 보내 일가를 폭사시켰던 전례에 대한 정치적 보복극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ref name="p316"/>
그러나 당시 이미 정1품 [[상보국숭록대부]]의 지위에 있던 아들 [[이준용]]은 그의 작위와는 상관없이 [[남작]]의 지위를 받았다. 한일 합방 직후 막대한 양의 합방 공채금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에 별도로 협력하거나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
이재면의 거처는 운현궁의 영로당이었다. 그가 거처하던 [[운현궁]]의 영로당은 [[1917년]] 그의 아들 [[영선군]] [[이준용]]이 오랜 병치레 끝에 사망하자, 이준용의 계실 광산 김씨가 그의 주치의에게 사례로 주었다 한다. 이 주치의는 김장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김영무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아버지이다. 두 번째 부인 여주이씨는 29세에 남편을 잃고 종친회의 도움으로 혼자 살아가다 [[1978년]] [[1월 8일]]에 운현궁에서 사망했다.
[[2007년]] [[1월 18일]] 이재면의 증손 이모씨가 자신의 증ㆍ조부의 행위를 친일행위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ref name="연합뉴스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523704</ref>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구한말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의 행적을 친일행위로 규정해 발표하자, 2006년 11월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ref name="dd1"/><ref name="파이1">http://www.fnnews.com/view?ra=Sent1201m_View&corp=fnnews&arcid=00000921782211&cDateYear=2009&cDateMonth=10&cDateDay=05</ref><ref name="mk1">http://news.mk.co.kr/v3/view.php?year=2009&no=517181</ref>
1월 18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소장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증조부와 조부의 행위를 일제 강점기하에서의 친일반민족 행위로 결정한 근거법률인 반민족특별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이 결정은 효력이 없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f name="연합뉴스1"/>
[[2009년]] [[10월 5일]] 재판부는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을 통한 후손의 인격권 침해는 법률조항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따른 결정과 사료의 공개라는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매개로 발생하는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이같이 결정했다.<ref name="nata1"/><ref name="gadam1"/> "사자(死者)인 조사대상자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이 있으면 사자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인격상을 형성하고 명예를 지켜온 후손의 인격권도 제한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일반 행정소송의 방법으로 구제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을 부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f name="dd1"/>
- AFC 회원 랭킹 . . . . 15회 일치
[[아시아축구연맹]]에 소속된 협회에서 일정기간동안 거둔 업적을 평가하여 산정한 순위자료다. AFC에서는 AFC MA Ranking이라 표기하고 있으며, 한국 언론에선 보통 AFC 랭킹으로 표기하고 있다. AFC 회원 순위는 AFC에서 주관하는 각종 클럽대항전 참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말하는 회원이란 특정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축구협회를 가리키며, AFC에서는 특정한 상황이 아닌 한 1국가 1회원이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다소 정치적인 문제와 역사 때문에 중국 본토와 마카오, 홍콩에 있는 축구협회는 중국이라는 하나로 보지 않고 별개로 인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회원순위를 산정할 때는 해당 회원이 운영하는 클럽과 리그에서 거둔 "클럽 점수"와 국가대표팀이 거둔 "국가대표팀 점수"(=National Team points, 이하 국대 점수)를 구해 이 둘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한다. 클럽 점수와 국대 점수를 합산하면 최대 100점을 부여받을 수 있다. 2016년 기준, 클럽과 국대간의 가중치는 7:3으로 클럽 점수는 70점 만점에 국대 점수는 30점 만점으로 책정되어 있다.
1.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대회는 AFC 챔피언스 리그와 AFC 컵으로 한정한다.
점수계산이 대체적으로 위와 같이 이루어진다.
= UEFA 계수와의 비교 =
[[UEFA 계수]]와는 달리 국가대표팀의 성과를 클럽의 성과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AFC의 기본적인 시각이 드러나 있다. 클럽이나 국대나 어차피 종국에는 협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이므로 이 둘을 분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 말하자면 "협회국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측정하여 하나의 지표로 통합"하겠다는 점에서 UEFA 계수와는 차별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점수와 순위를 통해 아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축구협회의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서아시아 계열과 동아시아 계열간의 우위를 명백히 나타낼 수는 없다.
이는 AFC 챔피언스 리그와 AFC 컵의 대회진행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점 때문으로 해당 대회들은 이 순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결승전을 제외하면 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맞붙을 일은 전혀 없다. 동아시아든 서아시아든 획득하는 클럽점수의 상당부분은 같은 지역끼리의 대결을 통해 얻으므로 아시아 지역 전체를 총평하는 설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
사우디는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지난 4년동안(2012~2015) ACL 준우승을 두번 차지한 적이 있으니 그럭저럭 인정할 수 있겠고, 이란은 국가대표가 준수하게 활약하고 있어 국대점수를 최대로 받았으니 이 부분도 충분히 납득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주와 중국이 아랍에미레이트보다 낮게 나오는 점수는 그 누구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2013시즌, 2015시즌 ACL을 우승한 중국과 2014시즌 ACL을 우승한 호주의 2015년 클럽 점수가 각각 46.793에 41.273이다. 반면에 동 기간동안 준우승 1번밖에 없는 아랍 에미레이트는 54.503이다(...).
또한 여기에서 나오는 점수를 통해 ACL 티켓을 부여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건 좋으나,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ACL 티켓 부여는 서아시아와 동아시아가 따로 돌아가는 상황을 막을 수 없으며, AFC 컵에 참가하는, 일명 축구 개발도상국은 만약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이 좋아 포인트를 상당히 축적해도 ACL 참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 권희동 . . . . 15회 일치
7월 30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시즌 8호 홈런을 쳐냈다. 앞서 홈런을 친 [[이호준]]에 이은 백투백 홈런. 이어서 8월 1일에도 [[김광현]]을 상대로 홈런을 쳐내면서 팀의 스윕에 기여했다. SK와의 시리즈에서 12타수 2안타를 기록했는데 그 2개가 다 홈런.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5일 [[SK 와이번스]]전에서 투런 홈런을 포함한 4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으로 역시 슼나쌩 답게 맹활약을 보이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5월 20일 [[SK 와이번스]]와의 2차전에서 좌익수로 선발출전해 ~~누가 슼나쌩아니랄까~~ 2루타 1개 포함 4타수 3안타로 맹활약했다.~~하지만 경기는 선발 [[이재학]]이 무너지면서 패했다.~~ ~~안습~~
8월 8일, LG 트윈스와의 2차전에서 신재웅을 상대로 시즌 4호 홈런을 때려냈다. 그런데 스코어는 9:3으로 한참 뒤쳐져 있었고 엔씨 팬들도 쫄깃했던 다른 구장 경기들을 보러 간 상태라 언급이 잘 없었다(...)
이번시즌에는 한화, 정확히는 대전구장 원정에서 유별나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전구장 타율은 4할대 후반에 달하며, 홈구장이라 훨씬 많은 경기를 치르는 마산구장보다도 더 많은 타점을 기록했다. 덕분에 [[한화 이글스 갤러리]] 등지에선 올시즌 가장 짜증나는 선수로 자주 거론된다. 한화와의 경기가 아닌 다른경기에서 삽이라도 푸면 더더욱(...).
9월 2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선발 좌익수로 나와 5타수 3안타 1홈런 5타점의 미친 활약을 펼쳤다. 3회 2사 1,3루 상황에서는 좌전 안타를 쳐내며 복귀 첫 타점을 기록했고, 6회 2사 1,2루 상황에서는 7-6의 스코어를 뒤집는 쓰리런 홈런을 쳐냈다. 두 경기만에 복귀 첫 홈런. 그리고 7회 2사 2루 상황에서는 쐐기를 박는 중전 적시타를 쳐내며 대망의 5타점 경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최훈]] 카툰에 실렸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223&aid=0000000982|[최훈 카툰] 제대하면 아저씨]]
10월 22일 플레이오프 2차전 7번타자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의 성적으로 경기중 [[김준완]]과 교체됐다. 22일 기준 타율은 1할4푼3리. 타격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2경기 연속 선발 기용한 [[김경문]] 감독의 예상과 달리 최악의 부진을 계속해서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당일 기아와의 경기 반짝 활약 이후로 계속 기용되어 모든 NC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근데 이건 팀 타선이 다 부진했던 상황이라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수비는 코너 외야수로서는 좋은 편. [[경남대학교|경남대]] 시절 외야 수비 능력은 낮다고 평가받았었지만 프로에 와서는 집중력이 있고 실책이 적어 오히려 수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호수비가 아주 인상적이다. 코너 외야수뿐만 아니라 [[중견수]]로도 상당히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정말 급할 때는 [[포수]]도 가능하다. 주력/송구 능력은 보통.
* 아무래도 [[희동이|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대학생 시절에도 별명 없이 이름으로 불리는 등 좀 사연이 많은 듯. 롯데의 [[쉐인 유먼|둘리라고 불리는 외국인투수]]와 엮은 기사도 있었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둘리의 [[희동이]]가 [[http://sports.news.nate.com/view/20130416n04262?mid=s1004&isq=3969|방망이 들고 나오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왠지 이름 지을때 부모님이 둘리 만화를 잼있게 보셔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최훈]] [[http://naver.me/FXgrLd9H|버전(혀 내민 공용이(NC 다이노스) = 둘리)도 있다.]]
* 타격 폼이 리틀쿠바을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본인도 롤모델이라고 하며 등번호의 63번도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시절 박재홍의 등번호였던 62번에서 1을 더한 것으로 박재홍을 뛰어 넘겠다는 걸 상징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qHoh2DBRIA|영상 50초, 한쪽이 안들리는게 정상]]
* 경남대 야구부의 김용위 감독은 권희동이 대학 시절에 선수와 목회자의 길에서 방황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저 야구를 하기 싫은 마음에 둘러댄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http://www.ncdinos.com/ncboard/storyview?seq=2346&board_id=story|자랐다고 한다.]]
* 데뷔 시즌과 두번째 시즌엔 [[SK 와이번스]]에게 상당히 강했지만, 풀타임을 처음 뛴 2017년에는 SK에게 0.189의 타율로 부진했던 대신 [[롯데 자이언츠]]에게 0.393의 타율과 0.714의 장타율을 올렸다. ~~돌아가면서 패기?~~
* 대신 2014년부터 [[한화 이글스]] 상대로 강했는데 2014년에는 0.413의 타율과 0.739의 장타율을 기록했을 정도. 역시 풀타임으로 처음 뛴 2017년에는 타율이 떨어졌지만 5홈런 19타점으로 본인의 팀 상대 최다 홈런&타점을 한화 상대로 올렸다. 특히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청주 야구장]]에서는 5할대의 타율로 당시 NC가 한화와의 시리즈 스윕을 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15회 일치
* 오버홀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의 소개로 빌런연합의 [[시가라키 토무라]]와 접촉하고 있는데.
* [[토도로키 쇼토]]는 "No.1에 가장 가까운 남자" [[토오가타 밀리오]]의 위력에 경악한다. 그런데 경쟁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 순수하게 놀라워하는 모습이라 옆에 있던 [[아이자와 쇼타]]가 이상하게 여긴다. 아이자와가 "너도 No.1에 관심있는거 아니었냐"고 묻는데 토도로키는 "전 아직 임시면허가 없습니다"라고 태평한 대답을 한다. 아이자와는 토도로키가 둥글어졌다고 생각한다.
[[아마지키 타마키]]는 벽에 붙어 있는 주제에 잘도 그 말을 듣고 "그게 너희의 한계"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은 프로 복서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여기긴 해도 뭐가 어떻게 대단한 건지는 모른다. 밀리오가 지금껏 쌓아온 연구와 노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강하다, 무적이다"라고만 여긴다면 대결은 커녕 한 방 먹이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런 모습을 타마키와 밀리오다 주시한다.
* 미도리야 다음으로 [[이이다 텐야]]가 당하고 나머지 인원들도 차례차례 다운 당한다. [[하도 네지레]]는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타마키에게 "토리가타는 당해졌다"고 말을 건다. 타마키는 그는 원래 강했고 오히려 "힘조절"하는 걸 배우는게 좋겠다고 대꾸한다. 마지막으로 키리시마와 [[오지로 마시라오]]까지 쓰러지면서 대련은 종료. 밀리오의 일방적인 승리다.
* 잠시 뒤 밀리오는 난데없는 노출에 대해 여학생들에게 사과하며 대련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배를 맞았다"고 투덜댄다. 밀리오는 자신의 "개성"이 어땠냐고 질문한다. [[세로 한타]]와 [[아시도 미나]]는 다짜고짜 "너무 강하다, 치사하다"같은 말을 해댄다. 아시도는 혹시 토도로키 같은 하이브리드 타입 개성이냐고 묻는다. 맨날 질문한 하던 네지레는 질문을 받자 자기가 대답하겠다고 나서는데 타마키가 제지해서 밀리오가 대답한다.
* 이들의 생각대로 처음엔 밀리오도 개성을 활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금방 남들보다 뒤쳐졌으며 옷 조차 제대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위"를 노리려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성의 약점을 끊임없는 연구와 "예측"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가능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보다 대련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직업체험에서는 말하자면 "손님"으로서 견학하는 것 뿐이지만, 인턴에 참가하면 한 사람의 "사이드킥"으로서 "프로"로 취급된다. 그건 엄청난 공포와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지만, 반대로 학교에선 절대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 그 정보대로 오버홀은 빌런연합의 리더 [[시가라키 토무라]]와 대면하고 있다. 그를 소개한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얘기해 보니 의외로 좋은 녀석"이라며 오버홀을 추천한다. 사실 시라가키를 만나게 해달라고 자청했다고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15회 일치
* 오버홀은 [[올마이트]]가 은퇴하고 뒷세계의 제왕인 올 포 원 조차 사라진 지금 사회는 양지와 음지가 동시에 혼란에 빠졌고 계승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한편 올마이트는 자신의 두 제자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를 불러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오버홀]]을 모처의 폐공장으로 안내한다. 이곳은 [[빌런연합]]의 거점 중 하나로 동료가 될만한 인물을 픽업해 "면접"을 보는 일종의 면접장소다. 오버홀은 답지 않게 "불결한 장소"라며 건강에 나빠보인다고 투덜댄다. 트와이스가 오버홀과 함께 나타나자 빌런연합과 리더 [[시가라키 토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가라키는 "의사를 확인하고 데려와라"고 트와이스에게 한 마디 한다.
>내 산하로 들어와라.
*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그네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오버홀을 공격한다. 그는 자신들은 누구 밑에 들어가려고 모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빌런연합이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자신의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그 또한 마그네와 마찬가지로 오카마였다.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그네와 달리, 그녀는 세상의 눈을 의식하며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상식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녀는 마그네는 거기서 뛰쳐나갈 용기가 있엇지만 자신에겐 없었다고 부러워한다.
* Mr. 컴프레스가 달려나간다. 시가라키가 제지하려 하지만 들리지 않는 듯 하다. 컴프레스는 오버홀을 "위험한 녀석"이라며 자신의 개성으로 "압축"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작은 파편 같은게 날아와 컴프레스의 어깨에 박힌다. 그러자 컴프레스의 개성이 무력화된다.
* 부하가 나타나 시가라키와 오버홀 사이에 끼어든다. 시가라키의 개성을 대신 맞은 부하는 그대로 썩어서 부스러져 버린다. 나머지 부하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일부러 미행은 붙지 않도록 트와이스가 신경쓰면서 데려왔지만, 아마 누군가의 "개성"으로 감쪽같이 근처에 숨어있었다. 그 중 후드티를 쓴 쪽이 컴프레스의 개성을 무력화시켰던 쪽인 듯 하다. 오버홀이 늦다고 불평하자 "한 발이 빗나갔다"고 인정한다.
오버홀은 이렇게 된 이상 냉정한 대화를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마침 각 진영에서 시체가 한 구씩 나왔으니 그걸로 퉁치면 어떻겠냐며 물러갈 채비를 한다. 빌런연합 측에선 당연히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없고 특히 트와이스는 자신이 데려온 인물 때문에 이런 참사가 생겼으므로 "책임을 지게 해달라"며 교전을 강력하게 원하지만 시가라키가 허락하지 않는다.
* 한편 "양지", 웅영고에서는 올마이트가 자신의 제자들을 불렀다.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였다. 그는 둘을 불러놓고 이것저것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15회 일치
* [[오버홀]]과 히어로들의 난전이 이어지고 있는 사이,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는 [[쿠로노 하리]]에게 포획됐다. 시에핫사이카이는 에리를 연구하는 동안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지우는 아이자와의 개성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쿠로노는 혼란한 틈에 아이자와를 자신의 개성으로 포획, VIP룸으로 격리시켰다.
* 쿠로노의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를 시계바늘처럼 늘여서 공격하는 능력인데 여기에 당한 대상은 움직임이 둔화된다. 공격하는 순간 자기 자신은 정지된 상태여야 한다는 패널티가 존재. 여기에 당한 아이자와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달팽이 같은 움직임 밖에는 취할 수 없다. 그를 포획한 쿠로노는 그 몸을 제압한 채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리는 사실 "두목"의 딸이며 오버홀은 목적을 위해 뭐든 쓸 수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 에리는 이미 길고 긴 "실험"기간 동안 체력이 떨어지면 부숴지고 수복되길 반복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 에리의 마음엔 일말의 희망도 품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몇 명이나 죽고 다치는 상황 속에서 완전히 절망했다. 결국 에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와 오버홀 앞에 나타난다.
오버홀은 에리를 더욱 압박해 결국 돌아가겠다고 말하게 만든다. 에리가 자신이 돌아갈 테니 모두를 원래대로 만들어달라고 매달리자 오버홀은 다시 미도리야를 압박한다. 에리는 자기 때문에 남이 상처받기 보단 자신이 아픈 쪽이 편하다는걸 알고 있고 루밀리온이 분투했을 때 품은 작은 희망이 미도리야와 나이트아이의 등장으로 무너졌다며, 정말 잔혹한 짓을 하는건 히어로들이라고 매도했다. 그리고 에리는 미도리야의 도움을 바라고 있지 않다고 선언한다.
* 의식이 남아있던 나이트아이는 정말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가 본 예지에는 자신과 미도리야가 죽고 오버홀이 도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가 "원 포 올은 밀리오에게 줘야했다"고 말한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를 멈추진 못했다. 미도리야는 설령 "쓸데없는 참견"일 지라도 누구도 죽게하지 않고 에리를 구하겠다고 선언하며 다시 일어섰다. 바로 그때, 현관에서 철포옥 핫사이슈와 싸우던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류큐]] 팀이 적과 함께 천장을 부수며 도착한다.
에리의 회상을 통해서 단순히 에리가 한계에 달할 때도 분해오 수복을 거듭해왔음이 밝혀졌다. 원 포 올 20%의 미도리야를 상대로 여전히 우위를 점하나 생각보다 타격을 받고 밀리오처럼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상대와 싸우는데 질력이 나서 에리를 협박하는 걸로 전략을 바꾼다. 오랜 시간의 세뇌와 학대로 간단하게 성공. 에리가 "돌아갈 테니 모두를 되돌려달라"고 애원하게 만든다. 자신만만하게 미도리야에게 "에리는 너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선언하나 미도리야는 굴하지 않았고 그때마침 류큐 팀이 현장에 착한다.
쿠로노의 말로는 오버홀의 딸이 아니라 "두목"의 딸. 토오가타 밀리오를 따라 도피하고 있었으나 오버홀이 "너 때문에 또 누군가가 죽는다"고 협박하자 발길을 돌린다. 이때 회상으로 체력이 다할 때마다 오버홀이 분해와 수복을 거듭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에리는 자신이 돌아갈 테니 모두를 원래대로 복구해달라고 애원한다.
* 아이자와 쇼타
패널티가 있다. 아이자와의 무효화를 경계한 건지 엎드리게 해놓고 그 위에 올라타서 시선을 피하고 있다. 아이자와를 VIP룸에 포획해둔건 좋은데 입이 가벼운 건지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다. 아이자와의 개성이 전부터 연구대상이었다거나 쓸모가 있어서 살려뒀다거나 하는 둥 쓸데없이 나불거린다.
현관에서 거구의 핫사이슈와 대치중이었다가 천장을 무너뜨리며 세 명 모두 현장에 도착. 그냥 떨어진건 아니고 원래 일행과 합류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 바키도/124화 . . . . 15회 일치
* 모토베는 오늘 아침 목욕재개를 하며 결의를 다졌고 유술의 달인 시부카와 코기의 방문을 받는다.
* 시부카와는 "얼마나 훈련하고 있냐"고 묻는데, 모토베는 "하루에 몇 번 무에서 멀어진다"고 답한다.
* 모토베가 대결장소로 들어서자 도쿠가와가 "오늘은 피클의 날"이라며 만류한다.
* 한마 유지로와 대결 장소에 끼어들었던 것을 떠올린다.
* 그리고 이 또한 도쿠가와의 인선이라고 생각했는지 "뭘 좀 안다"고 감탄한다.
* 그때 그를 찾아온 시부카와 고키.
* "말린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겠지"라며 입을 여는 시부카와.
* 문득 시부카와는 "하루에 훈련을 얼마나 하나"라고 묻는다.
* 시부카와는 날마다 빼먹는건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는데, 모토베는 "하루에 몇 번"이라고 답한다. 그렇게 훈련을 열심히 하냐고 시부카와가 놀란다.
* 결국 언제나 무를 생각하고 있다는 대답. 시부카와는 그것을 "사내와 여인, 연애같은 관계"라 평한다.
* 그리고 현재. 도쿠가와는 난색을 표한다.
* 그때 관중석에서 시부카와가 누구보다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 모토베 이조. 시부카와 고키의 "하루에 얼마나 훈련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 박신혜 . . . . 15회 일치
2003년 [[이승환]]의 '꽃' 뮤직 비디오를 통해 데뷔하였고, 같은 해 방영 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을 연기했다. 드라마 《[[천국의 나무]]》, 《[[미남이시네요]]》, 《[[이웃집 꽃미남]]》, 《[[상속자들]]》,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와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7번방의 선물]]》, 《[[상의원]]》 , 《[[침묵]]》, 《[[형]]》 등에 출연하였다.
[[중앙대학교]] 수시 2학년 1학기 모집에서 미디어공연영상대학 연극영화학부 연극(연기) 전공에 응시하여 합격해 2008년 입학했다.<ref>{{뉴스 인용|제목=고아라·박신혜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수시합격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0198659|출판사=노컷뉴스 |저자=이지현|날짜= 2007-10-31|확인날짜=2016-02-15}}</ref> 2016년 2월 15일, 8년만에 예술대학 학위를 수여 받고 졸업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8년만에 대학 졸업, 졸업장 들고 '함박 웃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3630219|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문지영|날짜 =2016-02-15|확인날짜=2016-02-15}}</ref><ref>{{웹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6021514330231788&type=1&outlink=1|title=박신혜·유리·수영, 중앙대 연극과 졸업..캠퍼스와 작별(종합)|publisher=StarNews|accessdate=2016-02-15}}</ref><ref>{{웹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6021514524686335&type=1&outlink=1|title=박신혜, 8년 만에 중앙대 졸업..캠퍼스 밝히는 미소|publisher=StarNews|accessdate=2016-02-15}}</ref>
박신혜는 이후 단막극 《[[드라마시티]] - 첫차를 기다리며》(2004),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2004), 《새 아빠는 스물 아홉》(2005)와 《한뼘 드라마》(2004), 《베스트극장 - 어느 멋진 날》(2005), 《드라마시티 - 키다리 아저씨》(2005)와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2004-05),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연기력을 다져나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퓨전 사극 드라마 《[[비천무]]》에 캐스팅 되어 중국 로케 촬영하였다. 그리고 2006년 2월, 첫 방영한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서 여주인공 하나 역에 캐스팅 되었고, ‘천국의 계단’에서 그녀를 발탁했던 이장수 감독은 여주인공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박신혜를 또다시 발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드라마 '천국의 나무' 여주인공 박신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19715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정열 |날짜 = 2006-01-16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4월, 영화 《[[도마뱀 (영화)|도마뱀]]》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하였다. 이듬해, 2007년 황인뢰 감독은 드라마 《[[비천무]]》의 제작 현장에서 눈여겨본 박신혜에게 드라마 《[[궁S]]》의 귀족 소녀 신세령 역으로 캐스팅했으나 이 드라마는 전작과 달리 진부한 내용과 설정으로 흥행에는 크게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잘 자라줘서 고마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02569|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지은 |날짜 = 2009-10-28 |확인날짜 =2015-04-18 }}</ref> 같은 해 5월 개봉 된 호러 영화 《[[전설의 고향 (2007년 영화)|전설의 고향]]》과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에 출연했다. 7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깍두기 (MBC)|깍두기]]》에서는 절에서 자란 여주인공 장사야 역을 맡아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등 파격 변신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문희' 후속 드라마 '깍두기' 주인공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0081490|출판사 =OSEN |저자 =김지연 |날짜 = 2007-07-19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예능 프로그램 《[[환상의 짝꿍]]》의 진행을 맡아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 2009-2015: ''미남이시네요''와 ''상속자들'', 한류 스타로 발돋음 ===
박신혜는 2009년,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로 이후 1년 반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극중 속세와 차단된 수녀원을 나와 쌍둥이 오빠 고미남을 대신해 비밀과 가십, 계산과 계약으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살아 나가는 고미녀 역을 연기하며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맞이했고, 일본 및 중화권에서도 인지도를 높히며 한류 퀸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51058 |title=‘미남이시네요’가 ‘아이리스’에 기죽지 않는 이유 |출판사=일간스포츠 |저자= 정지원|날짜=2009-10-30 |확인날짜=2016-12-29}}</ref><ref>{{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jang-geun-seok-you-re-beautiful-beats-winter-sonata-33223.html |title=Jang Geun-seok "You're Beautiful" beats "Winter Sonata" @ HanCinema :: The Korean Movie and Drama Database |publisher=Hancinema.net |date=2011-09-14 |accessdate=2016-12-29}}</ref> 나중에 박신혜는 인터뷰에서 “성인이 돼 처음 한 작품으로, 아역이 아닌 ‘박신혜’라는 한 여배우의 시작을 알리게 해준 작품”이라고 ‘미남이시네요’에 대해 말했다.<ref name="mbn" /> 이듬 해, 2010년 박신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연애 조작 요원 오민영 역을 맡아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과 공연하며 영화는 26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대만 드라마 《선풍관가 旋風管家》에서 샤오즈 역을 맡아 출연하였고, 2011년 방영되었다.
박신혜는 2011년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는 상큼한 여대생 이규원 역을 연기해, [[정용화]]와 다시 공연했다. 예술대학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내겠다는 취지로 시작 됐지만 연이은 시청률 부진으로 15회로 조기 종영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시청률 부진 속 <넌 내게 반했어>, 15회로 종영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8457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미나 |날짜 = 201-08-09 |확인날짜 =2013-09-01 }}</ref><ref>https://www.soompi.com/2010/09/01/george-hu-is-park-shin-hyes-combat-butler/</ref> 이듬 해, 2012년에는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에서 본인이 귀신이란 걸 자주 망각하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생기 넘치는 귀신 연화 역을 연기해 호평을 받아 [[KBS 연기대상]] 단막극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13년 초 개봉 되어 역대 여덟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에 성인 예승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english.yonhapnews.co.kr/culturesports/2013/03/15/27/0701000000AEN20130315007900315F.HTML|work=[[연합뉴스]]|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30315000902|work=The Korea Herald|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last=Ji|first=Yong-jin|title=MIRACLE IN CELL NO. 7 Passes MASQUERADE to Become 3rd Most Successful Korean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2324|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013-03-20|date=19 March 2013}}</ref> 같은 해 1월 첫방영 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에서 사람 만나길 두려워 하는 히키코모리 고독미 역을 연기했고, 제 나이와 성격에 어울리는 밝고 씩씩한 여대생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f name="mbn" /><ref>{{웹 인용|url=http://www.soompi.com/2012/10/31/park-shin-hye-and-yoon-shi-yoon-to-star-in-new-drama-flower-boy-next-door/|title=Park Shin Hye and Yoon Shi Yoon to Star in New Drama "Flower Boy Next Door"|date=June 26, 2012|accessdate=February 7, 2012|publisher=soompi}}</ref> 박신혜는 코오롱스포츠 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된 '웨이 투 네이처 필름 프로젝트 단편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가위바위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356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선필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박신혜는 또한 2011년부터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결연아동 아반네를 결연후원 해오고 있으며 팬들과 해외 빈곤국에 센터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팬과 함께 봉사활동 나선 별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196660|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김원겸 |날짜 = 2014-04-08 |확인날짜 =2014-04-09}}</ref> 국내외 팬들과 전 세계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호 센터로 서부 아프리카 가나 ‘신혜센터(Shin Hye Center)’가 2013년 11월 완공되어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기아대책 홍보대사 박신혜, ‘러브백’ 특별행사 참여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5291628173210|출판사 =뉴스엔 |저자 =김찬미 |날짜 = 2014-05-29 |확인날짜 =2014-05-30}}</ref> 2014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189349|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이슈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42515493577725|출판사 =스포츠투데이 |저자 =김은애 |날짜 = 2014-04-25 |확인날짜 =2014-04-26 }}</ref> 또한 자신의 SNS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변경, 노란리본 캠페인에도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기부 이어 노란리본 캠페인 동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242446|출판사 =스포츠경향 |저자 =온라인뉴스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 }}</ref> 2015년, 박신혜는 ‘2015 Dream of Angel’ 타이틀로 아시아투어에 나섰고, 상해 팬미팅 수익을 [[NGO]] 단체 ’기아대책’의 별빛천사마을 만들기와 중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 ‘타소원’에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상해 팬미팅 수익금 전액 기부.."한류스타 이례적 행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217288|출판사 =이데일리 |저자 =강민정 |날짜 = 2015-03-30 |확인날짜 =2013-09-01 }}</ref> 4월, 박신혜는 큰 피해를 입은 [[네팔]] 국민들을 위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를 통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네팔 지진 희생자 위해 3천만원 후원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54697|출판사 =OSEN |저자 =정유진 |날짜 = 2015-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7월, 박신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혜센터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의 건립을 진행했다. 이에 박신혜와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센터건립에 앞서 필리핀 쌈빨록 지역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었고, 지난 3월 박신혜는 필리핀의 결연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아동결연센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센터 건립에 앞서 건축기념식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9585|제목=박신혜가 또… 필리핀에 아동복지시설 ‘신혜센터’ 건립|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홍세영|날짜 = 2016-07-22|확인날짜=2016-12-09}}</ref>
- 서영춘(코미디언) . . . . 15회 일치
[[1961년]] [[MBC]]의 개국과 더불어 방송가에 입문하였다. '[[웃으면 복이와요]]' 등 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이를 계기로 60년대에 스타덤에 오르며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구봉서]]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60년대를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던 그의 극장식 패키지쇼. 이른바 서영춘쇼 또한 큰 히트를 치게 된다. 당시 별명은 살살이.
다만 전성기 시절에 관한 부분은 더욱이 자세히 봐야 하는것이 서영춘이 구봉서, 배삼룡보다 데뷔 시기나 주목받은 시기가 확실히 눈에 띄게 늦은 편이다. TV 방송 이전 악극단, 영화 시절 그리고 웃으면 복이와요 초창기 시절만 보더라도 메인은 서영춘이 아닌 구봉서, 배삼룡이었다. 실제로 웃으면 복이와요 초기 오프닝을 보면 배삼룡, 구봉서의 이름이 맨 처음에 등장하고 이 두 명을 중심으로 오프닝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https://youtu.be/CxMGWjLKOYA|1969년 당시 웃으면 복이와요 오프닝 링크]]
서영춘은 특히 무대 위 애드립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희극인이었다. 변화무쌍한 얼굴 표정과 판타스틱한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TV가 대중화되면서 실질적으로 1세대가 된 당시 악극단 출신 코미디언들 대부분이 그랬듯, 연기 패턴은 왜정 시대부터 내려온 악극, [[만담]]에서 출발한 것이 많고 내용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번안한 것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서영춘이 공중파에서 선보였던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어쩌고 하는 긴 이름 가진 아이 이야기도 일본 설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사실 70년대까지는 우리 나라 문화 예술에서 6.25 동란 이후 일찌기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의 그림자가 짙던 시절이라, [[웃으면 복이와요]]나 [[고전 유모어극장]] 같은 공중파 프로그램까지 일본 방송의 내용을 대놓고 똑같이 베껴 쓰던 때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세운 극장에서 공연을 하던 배우들이 TV시대가 되면서 TV에 등장한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영춘을 비롯한 당시 코미디언들이 독창성 면에서 부족한 개그를 하였더라도 폄하할 수만은 없다. 일단 악극도 연주와 노래 개그가 들어가는 뮤지컬 비슷한 형식이지만 분명히 순발력과 암기력이 필요한 연극이었기 때문에 연기력은 필수였고, 노래와 춤도 대충 해서는 안 되었던 분야였다.
서영춘은 바보 연기에 특화된 [[배삼룡]], 노래와 신체 조건을 이용한 개그가 장기였던 [[이기동(코미디언)|이기동]], 미남 역을 자주 담당했고 선역과 정극 연기도 능했던 [[구봉서]]와 달리 강한 개성으로 어필하였다. 특히 얼굴 표정 연기에 능하였고 연기도 두루 잘 하는 편이었으며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예외로 미국 물(미군 8군 무대)을 먹은 [[곽규석]]이 미국식 스탠딩 개그와 성대모사, [[남보원]] [[백남봉]]은 성대모사를 장기로 한 쪽이다.
60년대 극장쇼 무대에서 콤비로 활약했던 [[백금녀]][* 악극단 출신의 코미디언. 드센 뚱녀 컨셉으로 1960-197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음반도 취입했다. [[이국주]]와 흡사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노래도 매우 잘 해 지금의 이국주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다. 1995년 작고.]와 함께 한 음반. 이런 음반엔 주로 재미있는 가사의 노래가 들어갔는데, 노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꽁트, 개그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서영춘의 대표작 "시골영감 서울 가는 기차..."노래가 이런 판에 들어간 종류.
게다가 사적으로 [[구봉서]]와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는데, 한때 주당으로 유명한 구봉서가 싫다는 서영춘을 억지로 술자리에 매번 데려갔다고 한다. 훗날 구봉서는 [[개신교]]에 귀의해 술을 끊었고, 뒤늦게서야 서영춘의 음주습관을 말리려 했으나 너무 늦은 뒤였다. 이 때문에 구봉서는 이를 두고두고 애통해하며 그때 서영춘을 억지로 술자리에 데리고 다녔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 [[웃으면 복이와요]]
- 세이와 겐지 . . . . 15회 일치
일본의 씨족. 세이와 겐지는 제56대 [[세이와 덴노]](清和天皇,제56대,생몰 850~881,재위 858~876)를 조상으로 하는 겐지 일족이다. 세이와 덴노의 여섯번째 아들이 사다즈미 친왕(貞純親王)이고, 이 사다스미 친왕의 아들로서, 미나모토(源) 씨 성을 하사받아 신적강하(황족의 신분에서 성씨를 받아 신하의 신분이 되는 것, 일본 황족은 성씨가 없다.) 한 것이 미나모토노 츠네모토(源経基)이며. 세이와 겐지의 시조이다.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반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이런 놈이 조상이다.-- 그러나 다행히 곧 마사카도가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허위 밀고가 현실이 되어 풀려나게 된다.
== 막부 정권와의 연관성 ==
미츠나가의 삼남, 라이코우의 동생은 미나모토노 요리노부(源頼信)이다. 이 사람은 카와치 국(河内国, 현재의 오사카 동부)을 본거지로 삼았다 하여 카와치 겐지(河内源氏)로 불리게 된다. 요리노부의 적통이 미나모토노 요시요시(源頼義), 그 장남은 전설적인 무사로 하치만 타로(八幡太郎)라는 별명을 가진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이다.
미나모토노 요시이에의 자손에서 이후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와의 연결이 나타난다.
=== 카와치 겐지와 가마쿠라 막부 ===
=== 아시카가 씨와 무로마치 막부 ===
=== 닛타 씨/도쿠가와 씨와 에도 막부 ===
요시쿠니의 장남 요시시게(義重)/닛타 요시시게(新田 義重)는 닛타 씨의 시조이다.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닛타 씨의 분가의 후예를 자칭하였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2화 . . . . 15회 일치
슈퍼걸은 DEO와 함께 조사에 임한다. 카라는 범죄자의 흔적을 보고 헬그램마이트라는 것을 알아낸다.
알렉스는 카라에게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약한 크립토나이트 광선을 방출하는 방으로 카라를 데려와서 때려눕힌다. 알렉스는 외계인 적들은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전투실력을 갈고 닦았다며, 카라 역시 단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카라는 몇번이나 알렉스에게 제압당한다. 카라는 화가 나서 DEO와 일하고 싶지 않다고 투덜거리며 떠난다.
다음날 카라는 그랜트가 자신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은 것을 보게 된다. 울컥거린 카라는 그랜트에게 슈퍼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은근슬쩍 물어보는데, 그랜트는 슈퍼걸은 급하게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보다 좀 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 말이 마음에 와닿게 된 카라는 윈과 제임스를 불러서 도움을 요청한다.
카라는 제임스와 윈과 협력하여, 작은 임무부터 착실하게 해가면서 다시 슈퍼걸의 명성을 회복한다.
알렉스는 제임스와 윈이 카라와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카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화해하게 된다.
카라는 제임스와 대화를 나누고,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때, 행크는 카라에게 알렉스가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자신을 빼고 작전을 벌인 것에 분개한 카라는 알렉스를 찾아서 나선다.
알렉스는 아스트라와 대화를 한다. 카라는 그 목소리를 듣고 알렉스를 찾아갔다가 아스트라와 마주치게 된다. 카라는 아스트라가 살아있다는 것에 놀라워한다. 아스트라는 알루라가 자신을 팬텀존으로 추방했었다는 것을 알려주며, 인간과의 동맹을 버리고 자신과 협력하라고 강요하지만 카라는 거부하고 대결을 선택한다.
카라가 아스트라와 대결하는 동안, 헬그램마이트가 알렉스를 습격한다. 알렉스는 헬그램마이트의 힘을 역이용하여 처치한다.
카라는 아스트라와의 대결에서 접전을 벌이다가, 알렉스가 훈련 시설에서 했던 가르침을 상기하여 아스트라를 날려버린다. 아스트라는 곧 일어나서 프리징 브레스로 카라와 알렉스를 날려버린다.
DEO기지에서 카라와 알렉스는 대화를 나눈다. 알렉스는 카라를 위해서 준비했다며 카라를 DEO에 설치된 방으로 데려간다. 알루라의 모습을 한 홀로그램으로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이 설치된 방이었다.
카라는 캣 그랜트의 차를 들어올려 옥상에 올려놓은 다음 그녀와 인터뷰에 나선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15회 일치
* [[잇시키 사토시]]는 처음부터 흑막이고 [[사이바 죠이치로]]와 한 패라 당연히 합류, [[쿠가 테루노리]]도 그의 연줄로 참전이 결정.
* [[유키히라 소마]]를 비롯한 반역자 후배들은 드디어 그의 실력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한다. 사실 1라운드에서도 기회는 있었지만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격전에 주목하는 사이 볼 것도 없이 끝나있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는 어떤 라면을 보게될지를 놓고 고조된다.
* 그렇게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결정된 메기시마의 2라운드 작품은... '''아프리칸 라면'''. 소마,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자신들이 들은게 맞는지 의심하며 서로 확인해 보지만 틀림없이 "아프리칸 라면"이라 말했다. 그게 대체 뭔가? 아프리카에 라면이 있긴 한가? 하긴 적인 린도는 악어가 주재료다. 이래서야 악어와 코끼리가 자웅을 겨루는 동물의 왕국스런 장면 밖에 연상되지 않는다.
* 후배들의 빈궁한 상상력은 심사의원들이 책임진다. 이스트와르와 샤름은 고추와 아프리카라는 키워드를 조합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라면을 창작할 생각"이라고 추측한다. 메구미가 어떤 요리가 될지 알거 같냐고 묻는데, 그들을 대신해 책임자인 [[안(식극의 소마)|안]]이 나서는데... 형편없이 비틀거린다. 주정을 부린다고 하는게 맞겠다. 헤롱거리면서 쓸데없이 "알려주길 바라냐"며 성가시게 군다. 샤름이 아까 마신 [[사카키 료코]]의 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심사의원 주제에 술에 터무니없이 약하다. 다행히 안은 특수체질이라 취할 수록 미각과 신경이 예민해져 심사에는 영향이 없다고... 고 이스트와르가 주장한다. 영 말같지 않은 소리라 소마가 쉽게 믿지 않는다
* 하지만 이스트와르의 말을 증명하듯 안은 청산유수로 해설을 늘어놓는다. 메기시마는 지금 마늘을 잘게 다지는 작업 중이다. 이미 완숙 토마토, 양파, 빨간 피망도 다져놓았다. 그녀는 메기시마가 이 재료들을 조합해 깊은 신맛과 감칠맛을 연출하려는 거라고 설명한다. 그 설명이 맞았다. 메기시마는 잘 우려낸 닭고기 육수에 열거한 재료를 손질된 닭다리와 함께 투하한다. 이대로 더욱 끓이면 맛들이 녹아들어서 스프가 완성된다.
* 소마가 아직 멤버를 모집하고 있던 시점. 제일 먼저 연락이 닿은건 [[잇시키 사토시]]였다. 소마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무리라는 건 알지만 어떻게 안 되겠냐고 사정하려는데, 잇시키는 벌써 홋카이도에 와있다며 대답할 필요도 없는 문제로 취급한다.
>사실 [[사이바 죠이치로|죠이치로]]씨와 [[도지마 긴|도지마]] 셰프하곤 나도 한패였거든.
애초에 그 셋이 작당해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던 것이다. 그는 [[나키리 아자미]] 총수를 낚는 작전이 잘 됐다며 웃는다. 다음으로 연락한 멤버는 쿠가. 이쪽도 잇시키가 손을 써뒀다. 진작부터 잇시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던 그는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이 [[미마사카 스바루]]였다. 이쪽은 잇시키와는 연관이 없었지만 소마에게 개인적인 빚이 있다고 승락한다. 전화를 받은 시점부터 바로 십걸 타도를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개시.
* 이렇게 모든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얻은 소마와 메구미는 바로 다음 "대어"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게 메기시마였다. 헌데 행운의 쾌진격은 거기서 끝이었다.
단칼에 거절하는 메기시마. 소마와 메구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썰렁해진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15회 일치
* 레분 섬 결전 2일차. 대회장 출발에 앞서 반역자들이 대기하는 동안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나타나 [[유키히라 소마]]와 정담을 주고 받는다.
* 2rd Bout의 여파로 [[츠카사 에이시]]와 [[코바야시 린도]]는 피로가 극심해 방에서 회복 중, [[사이토 소메이]]는 연전이 됐으니 목욕재계로 가뿐해졌다.
*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이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아라토 히사코]]의 지도를 받으며 때아닌 서예 삼매경이었다. 백지에 쓰는 건 사람 인. 이제와서 때아닌 복수전공 지망인가? 하지만 손바닥에 사람 인 자 써서 삼키는 짓을 매번 하던 차였으니 거기서 스케일만 좀 커졌을 뿐 문제는 없었다. 반대로 [[유키히라 소마]]는 풀어야할 긴장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분명했다. 태평하게 설원화 호텔의 아침식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으며 트럼프를 펼치고 있었다. 상대는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소마를 뺀 둘은 제법 본격적인 심리전을 펼치며 역시 복수전공을 고려 중인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반역자의 대장 [[나키리 에리나]]는 이 놀이에 끼지 못한 채 우두커니 구경 중이었다. 이 모든게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 문제는 없었다. 이쿠미는 새삼 어제의 대전카드 추첨 결과를 떠올렸다.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놀라봐야 소용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메구미는 사람 인을 쓰며 연대식극 2일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 소마는 언제나 그렇듯 붙임성을 발휘했다. 적이면서도 선뜻 모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다른 두 명의 십걸은 어디에 있냐는 것. 모모의 말로는 그 둘은 전의가 너무 충만해서 못 기다린다면서 벌써 대회장에 가있다고 한다. [[츠카사 에이시]]와 [[코바야시 린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방에서 쉬는 상태라 한다. 어제의 격전은 정말로 상상 이상의 소모를 안겼다. 특히 린도는 왠지 불쌍하게 침대 옆 구석에 처박혀서 이불을 틀어말고 있다. 소마는 여기서 [[사이토 소메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오늘도 싸워야 했다. 힘들겠냐고 말을 건네가 의외로 모모는 "소먕"은 괜찮다고 말했다. 어제 오늘 냉수마찰로 목욕재계를 했더니 아주 거뜬해졌다고 한다. 한겨울의 홋카이도에서. 요시노와 사카키가 기겁했다.
* 소마가 적과 정담을 나누고 있자 다른 반역자들의 관심도 쏠렸다. 어느 정도 십걸과 친분이 있는 히사코가 모모가 평소와 달리 말이 많다고 한 마디 했다. [[잇시키 사토시]]도 거들었는데 원래 모모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제법 수다스럽다고 한다. 타쿠미도 이때만큼은 정신집중 상태를 풀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이토가 냉수마찰로 목욕재계했다는 말을 듣고 "고풍스럽다"면서도 역시 그러면 컨디션이 안 좋아지지 않겠냐고 쥐가 고양이 생각을 해줬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모모가 타쿠미를 "타쿠먕"이라 부르며 "소먕"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소먕은 분명 사이토를 부르는 말. 타쿠먕은 타쿠미를 부른 것인 듯 했다.
* 3rd Bout의 준비가 끝났다. 대전자 전원과 모든 관계자가 입석. 반역자들도 우리에 들어갔다. 센트럴 측의 참전자는 사이토와 모모, 3학년 콤비와 2학년이자 현 7석 [[에이잔 에츠야]]였다. 사이토는 모모가 증언한 대로 팔팔하게 회복했다. 그가 입장하며 에이잔에게 적이 하급생이라도 강적이니 의기건양하게 임하라 충고하자 에이잔은 충분히 의기건양하다며 살의와 짜증때문에 그렇다고 눈을 번뜩였다. 이제 자리에 앉은 심사의원들이 최종 마이크 테스트 중. 결전이 코 앞이다.
* 결전 2일차에도 여전히 맛이간 [[카와시마 우라라]] 등장. 묘한 하이텐션 상태 그대로 오늘의 참전자들을 소개했다.
3rd Bout의 제 1카드 대결은 유키히라 소마 대 사이토 소메이. 역시 편파성 농후한 카와시마의 코멘트가 이어졌다. 소마를 "토오츠키에 도저히 안 어울리는 정식집 출신"이라고 깎아내리면서 그런 주제에도 계속 이기고 있다며 잡아먹을 듯이 소개했다. 그리고 "헤이세이 최후의 무사도" 사이토에게 제발 무찔러 주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제 3카드. 모든 과자의 스페셜 프로페셔널 아카네가쿠보 모모. 이에 맞서는 반역자의 출전자는 역시 타도코로 메구미. 카와시마는 메구미를 "명백히 버리는 카드"라며 평가절하했다. 관중의 여론도 비슷. 메구미 또한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인재건만 매우 평가가 박하다. 그녀에겐 아직도 "만년 낙제생"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사실 지금까지 거명된 라인업 중에선 가장 약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야유가 퍼부어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메구미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레분 섬 결전이 시작되기 전 [[사이바 죠이치로]]와 [[도지마 긴]]이라는 양대 일류 셰프에게 특훈을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훈련이 한 가지 더 있었다.
- 원피스/857화 . . . . 15회 일치
* [[몽키 D. 루피]]와 [[상디]]가 있는 곳엔 떨어진 [[거울]] 조각이 있어서 미러월드의 [[쵸파]]일행과 연락이 닿는다.
* [[몽키 D. 루피]]와 [[상디]]는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상디는 [[징베]]가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가 처형될 위기에서 구해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지만, 한편으론 나미를 볼 면목이 없다며 시무룩해한다. 루피는 나미가 상디를 제일 걱정했다고 격려하고 상디는 무서운 일을 겪게 했다고 새삼 사과한다. 그러는 동안 비가 그친다.
* 미러 월드에서는 [[쵸파]] 일행이 상디와 루피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아냈다. 나미는 킹 바움에 올라타 이동할 때 평원 근처에서 거울을 깨뜨렸던 일을 생각해냈다. 즉 루피 일행이 그 거울 조각 근처에 있다면 연락이 가능할 거라는 것. 일행은 거울 조각과 연결된 미러월드 안의 거울 조각을 찾아낸다. 쵸파가 조심스럽게 루피와 상디를 부르자 나미의 예상대로 둘이 쵸파의 목소리를 듣는다.
* 루피는 상디와 합류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한다. 쵸파 쪽에서는 흩어진 일행이 모두 모였고 [[포네그리프]] 탁본을 뜨는데도 성공했다고 응답한다. 루피가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자 쵸파, [[캐럿(원피스)|캐럿]], [[브룩]]은 엄청 쑥쓰러워하며 오버한다. 그때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끼어들어 상디와 이야기는 끝난 거냐고 묻는다. 루피가 "상디는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답하자 일행은 크게 놀란다.
>이제부터 빅맘의 다도회와 결혼식을 쳐부수고
>그러면... 상디는 돌아와!
* 상디는 루피가 대뜸 그렇게 말하자 당황한다. 자신의 사정만으로 일행에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들린다. 브룩, 캐럿, 쵸파는 루피와 상디가 싸웠다는 얘기를 듣고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는거 아닌가 걱정했다며 대성통곡을 하며 기뻐한다. 나미 조차도 상디가 돌아오는 걸 기뻐하는데 상디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이렇게 말한다.
나미는 독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일단은 잊겠다"며 한 발 물러나며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죽어가는 것 같았던 상디가 "그건 프로포즈냐"며 거의 원상태로돌아온다. 루피는 마침 자신도 [[빈스모크 레이쥬]]에게 해독을 받은 일을 언급하고 일행은 빈스모크 일가를 꼭 구하기로 결정한다.
* 징베는 그러면서 갑자기 루피와 같은 [[초신성(원피스)|초신성]]의 한 명이자 현 사황 해적단 산하의 [[카포네 벳지|카포네 갱 벳지]]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웨스트블루 출신으로 그곳은 다섯 마피아 조직이 뒷세계를 주무르고 있다. 그 서족의 다섯 마피아 중 한 명이 벳지. "갱"이란 이름은 어릴적 별명인 "철포환"에서 유례한 것으로 살아있는 생물의 머리를 자르고 몸이 발버둥치는걸 보고 즐기는 잔인한 성격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벳지와 손을 잡지 않겠나?
루피는 질색하는 것 같았지만 곧 생각을 정리해 "그도 그렇다"며 징베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징베는 그럴 줄 알았다며 껄껄 웃는데, 사실 사전에 나머지 일행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고 일행은 4대2로 이 동맹에 반대했다. 상디 조차도 제정신이냐고 반발, 징베와 나미, 루피를 제외한 일행은 이 해적동맹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부하들은 정말로 밀집모자 측이 동맹에 응할지 반신반의하지만 벳지는 징베를 신용해서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밀집모자측과 마찬가지로 빅맘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 또다른 적을 만들기도 꺼려진다. 다만 정말로 이 동맹이 성사될지 어떨지는 지금부터 루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고, 만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없애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 원피스/858화 . . . . 15회 일치
* [[카포네 갱 벳지]]의 아지트에 도착한 [[몽키 D. 루피]]와 [[상디]]. 벳지의 부하 "괴총" 비트가 마중나온다.
* [[나미(원피스)|나미]]와 [[캐럿(원피스)|캐럿]]도 목욕을 하고 있다. [[샬롯 로라]]의 쌍둥이 자매 [[샬롯 시폰]]은 나미에게 로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 본래 빅맘은 거인족 전체와 대립하고 있었으나 엘바프의 왕자 "로키"가 로라에게 청혼한 걸 계기로 관계가 개선된다.
* 빅맘은 로라와 닮은 시폰을 가만두지 않았고 모질게 학대했다. 벳지의 계획에 동참한 것도 언젠간 빅맘에게 죽을 거라 느껴서.
* 루피와 [[브룩]]은 목욕 후 우유를 마시는 걸로 다쳤던 뼈와 이가 완치되는 해괴한 체질. 목욕을 마친 밀집모자 일당은 벳지와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간다.
* 미러월드의 징베는 [[쵸파]] 일행과 함께 먼저 벳지의 아지트에 가있겠다고 말했다. 뒤따라 도착한 [[몽키 D. 루피]]와 [[상디]]. 그들이 파이어 탱크 아지트의 정문에 도착했을 땐 다과회 개최까지 4시간 15분이 남은 시점이었다. 루피는 벳지가 어떤 녀석이냐고 묻는데 상디는 "마피아 보스 같은 녀석"이라고 짧지만 정확하게 대답한다.
* 누군가 정문에 나타나자 루피는 그가 벳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건 부하인 "괴총" 비트였다. 그는 상디와도 구면. 제르마의 팬인 만큼 상디를 "빈스모크 상디"라고 부르며 반가워한다. 비트는 다른 일행도 이미 도착해 있다며 일행을 안내한다. 비트 뒤에서 쵸파도 나타나는데 목욕을 해서 뽀송뽀송해졌다. 태평하게 루피한테도 목욕을 하라고 해서 루피가 "시간도 없는데 뭔 짓이냐"고 한 마디 한다. 하지만 비트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파더(벳지)는 결벽증이 있는 건지 "지저분한 인간"과는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 [[나미(원피스)|나미]]와 [[캐럿(원피스)|캐럿]]도 목욕을 하고 있다. 그녀들 옆에는 [[샬롯 시폰]]이 아기를 돌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는 나미에게 쌍둥이 언니 [[샬롯 로라]]의 소식을 들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나미는 [[스릴러 바크]]에서는 물론 유혹의 숲에서도 로라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며 그녀에게 감사한다. 시폰은 여동생에게도 너희는 큰 은인이라며 감사한다. 캐럿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바다가 얼마나 재미있고 모험이 넘치는 곳인지 새삼 느낀다.
문제는 로라의 의향. 로라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고 자유를 찾아 바다로 떠났다. 이후 로라와 똑닮은 시폰이 대신 약혼자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로라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 오히려 사이는 이전보다 악화됐다. 빅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진짜 거인족을 가족에 넣는건 포기, 인간을 거인화시키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로라는 "배신자"로 간주되어 분노가 날로 증폭, 지금 토트랜드에선 그녀가 범죄자로 취급되고 있다.
빅맘의 분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폰까지 학대하기에 이른다. 만날 때마다 로라가 생각난다는 이유로 그녀를 때려서 벳지와 결혼하기 전까진 상처가 끊이지 않는 나날이었다. 시폰은 정말로 빅맘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지금은 그녀를 그저 괴물이라 여긴다. 물론 로라는 설마 빅맘이 이렇게까지 하리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미는 로라가 비브르 카드를 준 일이나 빅맘의 반응 등이 모두 이해가 된다.
'''그리고 진짜로 깨진 이와 뼈가 회복된다'''
* 이러는 동안 다과회까지 앞으로 3시간 30분. [[샬롯 브륄레]]와 니트로는 시폰이 벳지의 계획에 가담하는 걸 알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어떻게 빅맘 암살 계획 따위에 찬동할 수 있냐며 생각을 바꾸라고 한다. 그러나 시폰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로라의 몸도 위험해. 내 가족은 벳지와 펫츠! 그 뿐이면 돼.
- 원한해결사무소/1화 . . . . 15회 일치
의뢰인 '후쿠자와'의 아내가 누군가에게 피살. 1개월 정도 된 신혼생활, 뱃속의 아이도 함께 살해당하여 후쿠자와는 원한을 품게 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알콜중독에 빠진다.
그러나 경찰은 2개월 뒤에도 공무원의 '비밀보장의무'를 운운하며 수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으며 오히려 범인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후쿠자와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분노한 후쿠자와는 밤길에서 한 여성('원한해결사')과 부딪치고 지나가는데, 그녀는 후쿠자와의 윗주머니에 검은 쪽지를 끼워넣는다.
후쿠자와는 노래방에서 원한해결사와 만나 800만엔으로 살인범을 살해해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2주 뒤, 원한해결사는 경찰의 내부 자료에서 얻었다면서 후쿠자와의 담당형사가 '범인'이었다고 그에게 가르쳐준다.
후쿠자와는 분노하여 당장 죽이라고 원한을 드러내지만, 원한해결사는 증거를 남겨서는 안된다고 화를 내고 제지, 도리어 섣부른 행동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후쿠자와를 위협한다.
결국 분노를 품은 후쿠자와는 직접 [[부엌칼]]을 들고 나타나 역에서 형사를 찔러죽인다. 원한해결사는 그 광경을 입술을 깨물고 지켜본다.
경찰에 잡힌 후쿠자와는 웃으면서 형사가 아내를 죽인 범인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경찰은 이미 당신 아내의 옛 애인을 용의자로 확보했으며 DNA 감정이 끝나는 대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예정이었다고 알려준다. 충격을 받는 후쿠자와.
모든 것은 원한해결사가 후쿠자와를 '킬러'로 쓰기 위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컷은 감옥에 갇히는 후쿠자와의 모습으로 끝난다.
- 은혼/631화 . . . . 15회 일치
*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해방군 본대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여전히 열세.
* [[하타 황태자]]는 고국의 함대로 해방군을 위협하는 방송 중 [[네스(은혼)|네스]], [[하세가와 다이조]]와 진흙탕 싸움을 벌여 개전의 방아쇠를 당긴다.
* 해방군의 지상군은 최후의 발악으로 가부키쵸를 습격, [[사카타 긴토키]]와 [[진선조]]도 교전에 들어간다.
* 통신의 부활로 성사된 [[히라가 겐가이]]와 [[엔죠 황자]]의 기묘한 대담. 이들의 만남은 주선한 셈이 된 야토족 용병부대의 통솔자 "노사"란 인물은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해가 뜰 때까지 나노머신 바이러스를 처리하지 못하면 지구를 통채로 지운다. 이것은 겐가이 영감한테만이 아닌, 지상병력 전체에 대한 협박이기도 했다. 그는 곧 최대한 무전을 돌려 지상군 잔존세력에게 엔죠 황자의 의사를 전달한다.
* 거기에 또 낚이는게 [[하세가와 다이조]]. 역시나 마다오 답다. 하타 황태자의 말만 믿고 당당하게 거수하는데 딱 걸렸다. 하지만 그는 급식비를 훔친게 아니었다. 하타 황태자의 간식인 고급 푸딩을 훔쳐먹었을 뿐. 그는 그 원인을 개밥이나 주는 열악한 처우로 돌린다. 결국 푸딩에서 비롯된 결투로 치닫는데, 알고 보니 네스도 항상 하타 황태자의 푸딩을 훔치고 있었다. 그도 먹잇감을 가로챈 원한을 하세가와에게 풀기 시작하고, 셋은 뒤엉켜서 추접한 전쟁을 시작한다.
* [[가츠라 고타로]]는 전투가 시작되자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와 함께 양이지사들을 통솔해 교전을 개시한다. 그는 부하들에게 각오는 됐냐고 묻는데 그들은 가츠라를 따르기로 정한 이후 한 번도 각오하지 않은 적이 없다. 우주에 왔어도 그들이 할 일은 결국 하나. 외적을 쫓고 나라를 구하는, 양이지사다. 가츠라는 칼을 뽑아들며 양이지사의 이름으로 해방군에게 천벌을 내리겠다고 선언한다.
* 잠잠하던 지상군도 격렬한 발악을 시작했다. 겐가이 영감을 추적하던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앞에 잔당들이 덮친다. 같은 시각 각지의 [[진선조]] 병력들도 지상군의 재침공을 받는다.
* [[히지카타 토시로]]와 [[오키타 소고]]는 부활한 부전으로 6시간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비보를 접한다.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의 무전이었다. [[소요 공주]]와 [[이마이 노부메]]가 무전으로 접한 소식을 그에게 전달한 것이다.
* 가츠라는 스텔스 함으로 해방군 모함에 접근 중이었으나 곧 그가 탄 배도 적의 함포 사격에 노출된다. 적의 모함은 스텔스를 간파하는 기능이 있는게 틀림없다. 가츠라는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며 강행돌파를 지시한다.
모선에 있는 다츠마 일행도 썩 좋지 않은 상황에 몰렸다. 자작의 안내로 진군하고 있었으나 적이 한 발 빨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엔 미리 적들이 배치돼 있었고 퇴로까지 차단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시스템을 장악한 엔죠 황자 보다 빠를 순 없다.
* 공교롭게도 두 대의 스텔스 함은 해방군 모함의 외벽을 뚫고 심부까지 돌입한다. 그 장소는 바로 다츠마 일행이 고립된 위치. 스텔스 함이 진입하면서 무너진 잔해가 다츠마 일행을 압박하던 병력 위로 떨어져, 전멸시킨다. 구사일생하게 된 가츠라와 다츠마가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다. 뜻밖의 구세주도 배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들이 아주 잘 아는 인물이다.
카츠라와 신스케가 양이전쟁 때의 옷을 입었다 따흑
- 이성희(배구감독) . . . . 15회 일치
의림공고와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를 거쳤다.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 시절에는 절친인 [[서남원]], 한 해 후배인 [[박삼용]], [[어창선]]과 함께 활약하면서 실업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는데 일조했다.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 졸업 후에는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에 입단하여 활약하였으며, 고려증권의 황혼기를 장식했다. 현역 시절엔 세터였고 생김새와 포지션만 보면 착각하기 쉽지만...
고려증권의 명 세터로 이름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느 명선수 출신 감독들이 다 그랬듯이-- 감독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평가를 남겼다. 그래도 GS칼텍스 시절에는 2007-08 시즌에 [[우승]]도 하는 등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내기도 했었지만, 인삼공사에서는 [[빼도 박도 못한다|빼도 박도 못할]]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인삼공사의 고질병인 [[몰빵배구]]와 얇은 국내 선수층을 개선시키지 못하면서 부임한 시즌 대대로 최하위만 밥먹듯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4년 동안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아 '''철밥통''', '''[[돌아이|돌성희]]''' 등의 온갖 모욕적인 [[별명]]들로 인삼공사 팬들에게 상당히 까이고 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시절은 비록 선수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흑역사]]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1-2-3'''을 찍으면서 선방했다.
2014-2015 시즌은... '''말 그대로 2012-13 시즌의 재림'''. 뚜렷한 전력보강도 전무했고[* 다른 팀들이 FA 영입, 보상선수 이적 등으로 정신없이 오프 시즌을 보낸 반면 KGC는 조용한 것도 모자라 은퇴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김세영이 [[한유미]]와 같이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로 이적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겨우 1명([[문명화]])만 지명하는데에 그쳤다. [[안양 KGC인삼공사|농구단]]과 마찬가지로 KGC 고위층의 투자 의지가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떠돌 정도. --농구단은 [[양희종|누구]]한테 [[화폐|돈]]이라도 썼지...--], [[백목화]]와 [[이연주(배구)|이연주]]의 기량 하락, 조이스만 바라보는 팀 공격진,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센터 [[이보람]]의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겹치며 --늘어나는 [[흰머리]]처럼--[* 실제로 인삼공사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흰 머리였으나, 2016년 1월 9일, 검게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패만 줄창 쌓이면서 8승 22패를 기록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점에서 2점 모자라 최하위에 그쳤다.
트라이아웃 시행 이후 V리그 데뷔전을 치른 [[헤일리 스펠만]]에게 점유율 59%[* 마지막 5세트에서는 80% 이상까지 치솟았다.], 득점 51점, 공격시도 118타라는 악몽같은 [[몰빵배구]]를 지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으로 풀세트 끝에 패배했다. 이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끝난 이후에도 배구 팬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해설진들이 탄식을 내뱉을 정도로 경기 내내 헤일리에게 모든 공이 올라갔고, 마지막 5세트의 마지막 공격까지도 헤일리의 범실로 종료되었다. 몰빵배구와 외국인 선수 점유율을 줄이기 위한 [[KOVO]]의 궁리 끝에 나온 트라이아웃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몰빵하는 감독은 몰빵을 못 버린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는 인삼공사 팬들은 [[뒷목잡기|뒷목잡고]] 쓰러질 지경.
급기야는 2월 1일, 혹사당한 헤일리가 어깨 부상을 호소하며 6일까지의 3경기에서 출전 명단에서 제외시켰는데, 헤일리가 결장했던 2월 1일 국내 선수들로 똘똘 뭉치자 [[수원 현대건설]]전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1승을 챙겼다. 헤일리가 부상으로 보름동안 휴식을 가진 사이 현대건설에서 이적한 [[김진희(배구선수)|김진희]]와 문명화의 활약이 돋보였고, --그의 양딸-- 이연주와 [[백목화]]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나머지 두 경기는 모두 패했다는 게 함정.-- ~~헤일리 팔 돌려놔 [[개새끼]]야!~~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인삼공사와 계약이 만료됐는데, 4년 동안 최하위만 3차례(6위 - 3위 - 6위 - 6위)나 세우는 무능함을 보여주며 프로 팀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말도 안되는 개[[막장]]스런 성적을 낸 탓에 재계약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저런 한심한 성적까지 낸 주제에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용병을 갈구는 고질병까지 감안한다면, 거의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인삼공사를 거쳤던 역대 감독들이 모두 금지어에 등극되어 있긴 하나, '''이 KGC란 팀 자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비박산내어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그래 외국인 선수에게까지도 폭언을 일삼는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감독은 이성희밖에 없다'''.
결국 [[2016년]] [[4월 5일]] 자로 계약이 만료된 후, [[서남원]]에게 인삼공사의 감독직을 넘겼다. 팬들은 이성희에 대해 두 번 다시 감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인삼공사가 재계약하지 않고 이성희를 내친 것에 대해 통쾌해하는 중. --헤일리! 이제 다시 와! 너 툭하면 맨날 갈구던 감독이 드디어 나갔어!!-- --그런데 서남원은 이성희와 [[서울시립대학교]] 동기이자 [[절친]]이라는 게 [[함정]].--
인삼공사와의 재계약 [[실패]]로 물러난 후에는 [[원곡고등학교]] 배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저렇게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이성희에게도 유일한 [[장점]]이 있긴 한데, 그것은 바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비디오 판독]]을 의외로 잘 활용한다는 것.[* 실제로 2016년 2월 1일,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챌린지]]로 두 차례나 오심을 이끌어냈다.][* 이와 180도 대조되는 사람으로는 [[박미희]]가 있다.] 이 말인 즉슨, [[심판]]의 오심을 잘 캐치해 낸다는 것이다. 오심을 이끌어서 오심의 달인으로 등극했다. 이는 어찌 보면 인삼공사의 수석코치로 영입되기 전에 실제 2010년 KOVO컵 대회부터 2010-2011 V리그 대회까지 재직한 경기감독관 경력에도 한 몫 하는 듯.
- 이수민(야구선수) . . . . 15회 일치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상원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에는 '타 시도 전학생 출신은 1년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상 [* 동일학교급의 등록팀 수가 적은 시도로 이적하는 경우는 6개월이다. 그래서 전국체전을 제외한 정규 대회가 거의 마무리되는 9월을 전후해 선수들의 전학이 보통 이루어진다. 단 선수 수가 18명 미만인 팀으로 전학하거나, 창단 1년 이내의 신생 팀으로 전학하거나, 팀의 해체로 인해 부득이 전학한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바로 출전이 가능하다.]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량은 계속 성장하여 2012년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합류, 미국전과 캐나다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팀 내 유일한 2승 투수로 활약하였으며, 2013년 4월 7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대구고와의 경기에서 '''9이닝동안 무려 2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었으며, 10회에도 마운드에 등장, '''총 10이닝동안 2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 고교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종전 기록은 진흥고 [[정영일(야구선수)|정영일]]이 2006년 4월 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13⅔이닝동안 기록한 23+2개]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2014년 BB아크에 선발돼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고, BB아크에 선발된 다른 선수들과 달리 4월 중순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다. 주로 선발로 등판하다가 6월 15일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장원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6월 17일 [[SK 와이번스]]전에서 9회에 등판해 1군에 데뷔했다. 1이닝 동안 피안타 3개를 맞으면서 실점을 했지만 정타는 1개 뿐이었고, 볼질도 안 하면서 1군 첫 경기치고는 잘 던졌다.
6월 1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10회에 등판해 1점차의 상황에서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볼질]]도 안 하고[* 볼넷을 1개 내줬는데, 좌투킬러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을 고의사구로 걸렀다.] 선배인 [[김헌곤]]이 파울타구를 끝까지 쫓아다가 놓치자 괜찮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등, 신인답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0⅔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1볼넷을 기록한 후 [[김건한]]으로 교체됐고, 팀이 승리하면서 첫 홀드를 챙겼다.
4월 16일 삼성전에서 원래 선발로 등판이 예정된 [[노성호]]가 등판 전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이미 4월 14일 계투로 2이닝을 던진 이수민이 하루만 휴식하고 선발로 나온데다 16일 등판 후로 1달을 쉬면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혹사 논란이 나왔다. 6월 중순 이후 1달을 쉬었고, 7월 중순 복귀 후 등판이 없다가 9월 1일 등판하는 등 사실상 안식년을 보냈다. 9월 1일 롯데 2군과의 경기에서 사실상 전역 전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해 6이닝 96구 2실점 1자책 5피안타 3볼넷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2월 16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연습경기에서 6회말 2아웃 상황에서 [[임대한]]을 구원해 마운드에 올랐다. 1.1이닝 1볼넷 3삼진이라는 무시무시한 삼진능력을 보여줬다. 상무에서의 혹사나 구속 하락등의 불안감을 떨쳐내는 투구. 최고구속은 140km.
2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3이닝 3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날 최고구속은 136km가 나왔지만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하며 호투하였다. 히로시마의 1군 멤버가 대거 포함된 상황의 호투라 고무적이다.
3월 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연습경기에 선발등판했다. 2이닝 5피안타 1볼넷 4삼진. [[이택근]]의 빚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기는 했지만 두 이닝 모두 조금씩 주자를 쌓는 모습을 보여줬다. 볼질이 없고 위기때마다 삼진을 잡는것은 긍정적이지만, 아무리 2군 멤버의 수비가 안좋다해도 너무 많은 피안타를 허용했다.
그동안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았었던 문제인 고교야구 혹사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했던 선수다. 2013년 동안 프로야구의 하향 평준화와 순수 신인 육성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면서 이수민의 179개 투구수는 모든 야구팬들의 분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고교를 졸업한 투수들 80%가 어깨, 팔꿈치 부상을 안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나오면서 이에 2014년부터 고교 야구에도 투구수 제한이 도입되었다.[* 한 경기에서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대 투구 수를 130개로 제한했다. 원래 130개를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휴식일을 주도록 했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129개쯤 되면 바로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휴식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상태.]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 이지은(2000) . . . . 15회 일치
||<:><#fcb4bd>'''{{{#white 별명}}}'''||<#ffffff>여장부[* 고등래퍼 출연 당시, 남자출연진들에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모로 당차게 리딩하는 모습을 보여 프로듀서들이 감탄하곤했다.], 안소희 닮은꼴[* 고등래퍼 선공개 영상에서 안소희 닮은 꼴로 소개가 되었으며, 좌우로 긴눈과 전체적인 얼굴형태가 닮았다는 평가], 코지은[* 코가 꽤 오똑하고 이쁜편이라 힙갤에서 불리는 편], 찐[* 학교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이라 한다], 햄[* 햄토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나온 별명], 자영업자[* 믹스나인 방송내에서 콩알만한 분량으로 알아서 여자 직캠조회수 3,4위를 먹은 김시현, 이지은을 통칭하는 별명. ]||
충청북도 충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수댄스 스튜디오에서 랩와 춤을 연습하며 꿈을 키워온 듯하다. 수댄스 대표의 상당한 애제자인 듯하며, 대표 인스타에는 이지은에 대한 애정어린 포스트가 상당하다. 현재 남아 있는 상당수의 자료들이 수댄스에 있을 때 작성된 것이다. [[예지(피에스타)]]의 곡인 미친개 커버([[https://www.youtube.com/watch?v=o95OUDg2sOw|유튜브]])를 올리기도 했다.
고등래퍼 지역예선에 강동지역으로 참여하였다. 예선영상은 클립으로 선공개되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한림예고 송한희와 여성래퍼 대결구도로 연출되었고, 각자의 외모나 실력, 그리고 닮은 꼴[* 송한희는 수지 닮은꼴에 비타 500 광고도 따라했고, 이지은은 안소희 닮은 꼴로 나온다.]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후 방재민, 박어진과 최종지역대표 선발전을 가지게 된다. 이때 조니와 함께 강동지역 최약체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경연준비부터 회의를 선도하며 빠른 진행을 추구했다...
이미 탈락자이지만, 장용준 사건으로 인해 강동지역에 TO가 나게되고 조민욱, 조니와 함께 선발 후보군으로 잡히게 된다. 결국 조민욱이 나가기로 했다.
EBS 책대로한다 4화에서 김소희와 함께 출연한다.
믹스나인 5회의 최고의 수혜자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그에 걸맞는 분량을 몰빵받았다. 5화는 순위발표식과 포지션 배틀의 준비와 경연의 절반을 보여준 에피였다. 포지션 배틀은 댄스, 보컬, 랩 곡 하나를 선택해, 남녀간 배틀을 붙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랩퍼인 이지은은 랩을 선택했고, 노래는 [[치타(가수)|치타]]의 My number.
가장 빨리 벌스를 완성하여 보컬파트에서 밀려난 김현정(베리굿 [[다예]])을 도와주고 퍼포먼스에서도 주도적인 역할로 비춰진다. 연습 중 평가에서도 멘토인 [[기리보이]]에게 칭찬을 받았다. 이지은의 활약이 믹스나인 제작진들에게도 의외였던 듯하다. 기획사 투어 솔로퍼포먼스를 중간에 끼어넣어 보여준다.
방송 상에서 공개된 허니조는 그나마 편집이 살려준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초반 주목을 받았던 인형을 컨셉으로 한, 안무는 익스프레션 마리오네트의 어설픈 카피였고[* 그걸 의식해서인지, 본방에서는 편집으로 날려버린다. 물론 현재 춤이라는 영역에서 익스프레션에게 완벽하게 자유로운 팀은 없겠지만.] 그 컨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 채, 컨셉이 붕떠버리게 된다. 그에 더해 확실한 보컬이 없는 관계로, 후반부 벌스에서는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 게다가 의상컨셉이 최악인 상황 도중 수란의 "지은이 랩하는데 의상이... 허.." 라고 탄식하는 장면이 뜬다. 이 와중에 이지은은 나름 노래에 맞게 랩[* 방청러들의 말에 따르면, 심사위원들에게 노래에 맞는 랩을 했다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근데 방송에는 통편집]을 하게 되었다. 최악의 평을 들은 공연에서 [[유키카]]의 엔딩과 함께 유이하게 살릴만한 퍼포먼스였던 것.
이번 화는 여자연습생 포메이션 배틀 조 순위와 남자 연습생 포메이션 배틀 경연으로 구성된 화였다.
음원미션 준비와 3차 순발식이 방송이 되었다. 같은 조에서 살아남은 게 이지은 혼자였다. 최종 순위는 여자 24위.
이 밤이 지나면이 상당히 랩파트가 핵심인 관계로 남아있었던 유일한 랩재원인 신류진이 전부 하게 됐는데 로우톤인 보이스와 안 어울렸다는 평. 이지은이 간 Dangerous girl의 경우 랩파트가 있지만 핵심파트가 아니었고... 이미 랩재원인 정사라와 루이가 있었으며, 방출되어 가게된 멤버 3명 모두 랩파트였다... 쥐꼬리 만한 랩 파트를 5명이 나눠하게 된다.
자신이 이지은의 질투로 친구 관계를 맺기 힘들었고 이지은의 전 남친과 친구, 그리고 이지은이 자신의 집에 술을 들고와 진창 취하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성폭행을 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서비스 운영자로서 익명에 각종 음해와 명예훼손이 가득한 글을 보고서, 이를 조치하는 행위는 당연한 것이며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며, 이는 법적조치 대상이다.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15회 일치
* 그와 드롤은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단련시키는게 목적이라고 밝힌다.
* 그들이 십계와 결탁한건 "어떤 계기" 때문. 그들은 그게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었지만 얼마 전 멜리오다스와 주먹을 맞대며 흔들린다.
* 그로키시니아는 디안느와 할리퀸을 단련시켜 그들이 그때 그 선택이 옳았는지 어땠는지 증명해주길 바란다.
* 할리퀸과 디안느가 모두 그 시련을 받겠다고 승락하자 드롤이 어떤 술법을 써서 성전시대의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몸 속으로 넣어버린다.
* 갑자기 달라진 시대, 달라진 육체에 허둥대던 두 사람 앞에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가 나타나는데.
* 그들은 그 마음은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은 마신족이 아니며 한때 거인의 왕, 요정의 왕으로서 십계와 마신왕 토벌을 꿈꾸던 자들이라 말한다. 그걸 위해 싸웠지만 싸움 도중 각자가 어떤 계기를 통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됐으며 지금까지도 그게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멜리오다스와 싸우기 전까진.
*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날아가면서 평소와는 비교도할 수도 없는 속도가 나서 깜짝 놀란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그곳엔 매우 소녀틱한 말투와 행동으로 방방 뛰는 거인왕 드롤이 있었다. 할리퀸이 그... 가 아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진정시키는데 정말 디안느인지는 자신이 없는 말투다. 하지만 목소리나 머리카락을 비비 꼬는 행동은 분명 디안느다. 디안느도 모습은 그로키시니아지만 목소리는 할리퀸이었기 때문에 곧 상황을 파악한다. 드롤이 사용한 술법으로 그들의 몸이 각각 그로키시니아와 드롤로 바뀐 것이다.
* 멜리오다스였다. 경악하는 두 사람과 달리 멜리오다스는 친구라도 만나러 온 것처럼 가벼운 모습. 인사까지 한다. 멜리오다스가 부활한걸 모르는 두 사람은 한 달 전에 죽지 않았냐고 하는데 멜리오다스는 농담 취급한다. 게다가 디안느를 "드롤씨"라며 매우 친밀하게 부른다. 이들은 분명 한 달 전 사투를 벌인 사이가 아닌가? 디안느와 할리퀸은 어안이 벙벙하다.
* 아직도 모를 일 투성인데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멜리오다스는 드디어 넷이 모였다고 "작전개시"하자고 한다. 그것도 분명 뜻모를 얘기지만 두 사람의 눈은 새로 나타난 사람한테서 떨어질 줄 모른다. 나타난 사람은 엘리자베스. 디안느가 어째서 네가 여기있냐고 묻는데 "넷이서 합류하자는 약속"이냐며 무슨 소리하냐는 식으로 답한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그녀의 등장도 그렇지만 또 하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화에 정신이 팔려있다. 엘리자베스의 등에 무언가 달려 있는 것이다. 요정족의 날개와도 다른 "그것"이. 멜리오다스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고 하는데.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목적은 여전히 불명. 그들이 인간을 배신한 계기를 알아야 설명이 될 것 같다. 그들이 사용한 술법은 자라스트로가 사용한 것과 비슷하지만 그저 멜리오다스의 기억을 봤을 뿐인 반면 이쪽은 과거 시간대의 당사자의 몸에 정신을 집어넣는, 매우 고차원 술법. 주문으로 보아 이것도 드루이드의 마법으로 사료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15회 일치
* 일본 정부도 에스퍼관리 및 규제 법안을 상정했고, BABEL의 [[키리츠보 타이조]]국장과 [[카시와키 오보로]] 대위는 다시 세뇌되어 찬동.
* 체포된 [[미나모토 코이치]]와 [[사카키 슈지]]가 에스퍼 형무소에 수감된다는 보도가 나온다. 누가 봐도 일행을 꾀어내기 위한 함정.
* [[J.D.그리섬]]을 비롯한 코메리카 소속 에스퍼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크게 우려하지만 손쓸 방도가 없다. [[찰스 해밀턴]]과 [[아담 해밀턴]]의 아버지 해밀턴 상원 의원은 친 에스퍼 정치가로 낙인찍혀 지지를 잃었다. 특히 코메리카 내의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반 에스퍼 정서에 찬동하고 있다. [[켄 마크가이어]]와 [[메어리 포드]]의 "리버티 벨"도 현장에서 제외돼서 서류 작업만 떠맡는 중.
* 작전 실패 후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호에서 은둔하고 있는 칠드런 일행. Tv에선 에스터 규제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일본도 국제적인 반 에스퍼 흐름을 이어받아 에스퍼에 대한 관리 및 규제 강화 법안이 통과됐다. 바벨의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는 다시 세뇌됐는지 넉살 좋으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아카시 카오루]], [[노가미 아오이]], [[산노미야 시호]]는 이런 법안이 통과되는 것 보다도 키리츠보와 카시와기가 다시 세뇌된 것을 씁쓸하게 바라본다.
* 판도라의 [[츠쿠시 미오]],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도 함께 시청 중. 미오는 이 모든 상황이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의도대로가 아니냐고 분개한다. 카오루와 시호는 [[미나모토 코이치]]와 [[효부 쿄스케]]가 애먹은 상대인 마당에 자신들이 반격하려 해봐야 상황만 악화될 거라며 그녀를 진정시킨다.
* 카가리는 어쨌든 일본에서도 에스퍼에 대한 차별과 이지메가 시작되었다며 뭔가 손을 써야 한다고 건의한다. 효부는 친구가 걱정되는 거냐고 묻는데, 아닌게 아니라 [[하나이 치사토]]와 [[토오노 마사루]]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텔레파시스트인 하나이는 말할 것도 없고, 토오노는 그런 그녀를 지키겠다고 무모한 짓을 할 수도 있다. 꽤 진지한 걱정이지만 파티는 둘이 모에로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흥분해서 카즈라의 태클을 당한다.
효부는 현재 길리엄이 득의양양해서 아무런 불만도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때문에 다음 효부와 충돌할 때까지 [[츠보미 후지코]]나 [[마기 시로]]를 온존해놓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쪽이 헛점을 드러낸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끝장을 내려 할 것이다. 효부는 이미 자기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하려다, 미나모토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을 바꾼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 그때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가 Tv를 가리킨다.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가 연행되는 모습이 비춘다. 둘은 "전 바벨 직원"으로 테러 미수 용의자라고 소개된다. 이들은 ECM으로 방어 중인 에스퍼 형무소에 수용된다고 나오는데, 마치 구해주러 오라는 함정과도 같은 뉴스다. 미오가 흥분해서 빨리 구하러 가자고 하지만 카오루와 효부가 함정이라고 진정시킨다. 그러던 중 미오는 카오루야 말로 흥분을 참고 있는 걸 발견한다.
* 효부는 지금부터 작전 회의에 참가하자며 칠드런 일행을 데리고 도서실로 향한다. 그곳에선 [[쿠모이 유리]]의 정보를 기반으로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우츠미 세이시로]]가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작전이 정해지면 곧 판도라의 젊은 에스퍼들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그런데 정작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들이 글러먹었다. 효부와 츠보미는 피차 사념체만 남은 주제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 바보라고 매도하더니 한쪽은 누나한테 대든다, 한쪽은 누나의 잔해인 주제에 말이 많다고 초딩같은 디스를 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신경전은 분신체서 선배인 우츠미에게 제지당한다.
* 칠드런 일행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미오와 모모타로는 엄청난 사고를 치려고 하는 중이다. 둘은 독단으로 카타스트로피 호를 이탈, 미나모토 일행이 갇혀 있는 형무소로 향하고 있다. 모모타로는 분명 야단 맞을 거라고 걱정하지만 미오는 "둘이 무사한지 확인만 한다"는 논리로 강행한다. 미나모토는 여왕의 소중한 사람인 동시에 자신도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에.
- 진격의 거인/86화 . . . . 15회 일치
* 엘디아인은 수용 구역에서 갇혀사는데, 그리샤와 여동생이 이 규칙을 어겼다가 군인에게 여동생이 끌려가 참혹하게 살해당하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는다.
* 열렬한 엘디아 복권파가 된 그리샤는 뜻을 같이하는 여성 조직원 다이나 프리츠와 결혼해 아들 "지크"를 얻는다.
* 그리샤의 어린시절. 여동생 페이와 함께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완장"을 챙겨주며 절대로 "벽"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 사람들도 훨씬 많이 다니고 있는데 그리샤와 동생을 보고 "더러운 피"라고 부르거나 일부러 부딪히는 등, 멸시하는 기색이다.
* 제방을 넘자 강 저편으로 비행선 착륙장이 있다. 착륙한 비행선을 보고 그리샤와 여동생은 얼굴이 환해진다.
* 그리샤가 만났던 군인들이 집까지 와서 상황을 설명한다.
* 유미르 프리츠는 "대지의 악마"라는 존재와 계약해서 최초로 거인의 힘을 얻었다. 지금 엘디아인은 그녀의 후손이며 "유미르의 민족"이라 불린다.
* 그리샤는 올빼미에게 받은 고대의 역사서로 마레가 가르치는 역사와 전혀 다른 역사를 알아냈다고 주장한다.
* 프리츠 왕가는 파라디섬으로 탈출했지만 일부 왕족은 본가와 갈라져 대륙에 남았다.
엘디아 인에게 무늬가 들어간 완장을 채우거나, 벽에서 격리된 구역에 살게 하는 정책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게토와 흡사하다.
베르톨트가 언급한 "악마의 자식"이나 악마의 민족이란 표현의 정체가 밝혀졌다. 이는 마레 측의 표현으로 오랜 세월 거인의 힘을 앞세워 학살을 자행한 엘다이 인들을 지칭하는 것.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마레의 전사는 엘디아인을 대상으로 모집했으니 베르톨트와 라이너도 "악마의 자식"의 피가 흐르는 셈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리샤 예거가 멋대로 추정한 역사. 올빼미라는 정부 측 인물이 빼돌린 자료를 기반으로 구성한 것인데, 정작 그리샤 본인도 고대어는 전혀 할 줄 몰랐고 몇 가지 삽화와 자신들의 망상을 기반으로 꾸며낸 것이다. 일단 다이나 프리츠가 가져온 자료와 대조해 볼대 대체로 맞았던 걸로 보이는데, 사실 다이나 프리츠의 정체에 대해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며 자료와 다이나 모두 올빼미가 보냈다는 점에서 사전에 조작된 정보를 주었을 가능성도 높다.
다이나 프리츠에 대해서도 수상한 점은 있는데 그녀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자신의 발언 밖에 없으며 "왕이 전쟁을 외면하고 사라졌다"거나 "거인대전은 마레와 무관하게 시작된 전쟁"이라는 등의 정보는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15회 일치
* "턱의 거인" [[갤리어드]]는 라이너와 동기이며 과거 팔라디 섬 침투 과정에서 [[유미르(진격의 거인)|유미르]]에게 잡아 먹힌 "마르셀"의 동생.
* [[파르코 그라이스]]와 라이너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 문득 파르코는 가비가 갑옷 거인을 계승받아 결국 죽게 될 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 마가트는 지크와 같은 의견이라며 동의한다. 그리고 섬을 공격하기 위해선 적어도 전함의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지크는 그것 말고도, 적들이 가진 거인 이외의 전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한다. 그 "이상한 기계, 입체기동장치와 뇌창 같은 대거인전용 장비의 존재이다. 지크는 4년 전 자신의 폐인은 그 무기를 너무 얕봤기 때문이라 토로한다.
갤리어드의 형은 9년 전 라이너와 함께 팔라디섬에 침투했던 "마르셀"이다. 본래 턱의 거인의 계승자였다. 라이너가 침투 도중 일반 거인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내고 대신 잡아먹혔는데, 그때 우연히 턱의 힘을 계승한 것이 [[유미르(진격의 거인)|유미르]]. 그리고 지금 갤리어드가 그 힘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라이너는 그 말에 대해서만큼은 인상을 찡그린다. 갤리어드는 형의 기억은 찾지 못했지만 "유미르라 불렸던 여자", 라이너와 함께 돌아온 유미르에 대해서는 알게 됐다. 그는 그녀의 기억을 이어받고 "거창한 이름이 붙은 불쌍한 여자"였다고 동정한다. 게다가 그가 턱의 힘을 돌려받게 된 것도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적어도 갤리어드는 그녀에겐 원한이 없었다. 라이너도 그 점에 동의한다. 갤리어드는 "넌 그 섬에서 뭘했냐? 남의 도움만 받았다"고 책망한다. 라이너는 조용히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대답한다.
* 가비와 [[파르코 그라이스]], 조피아, 우도는 부둣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수평선에는 침몰한 전함이 버려져 있다. 우도는 바다를 향해 돌맹이를 던지다 "거인이 전쟁에 도움이 안 되게 되면 전사대와 엘디아인은 어떻게 될까?"하고 묻는다. 그 이슈는 소년들 사이에서도 꽤 퍼져있다. 조피아는 무거운 주제 대신이 옆집 아저씨한테 들은 말을 전한다. "바닷물이 짠 건 내가 바다에 쉬를 해서다.". 말같지도 않은 말인데 파르코는 "브라운 씨라면 괜찮다. 머리가 날아가도 살아있는 사람"이라 대답하는 걸 보니, 다름 아닌 라이너의 말인가 보다. 그러면서 파르코는 "이번엔 머리가 엉망이 됐지만 이제 괜찮다"고 덧붙인다. 아마 전후의 라이너는 꽤 상태가 나빴나 보다.
일행은 인근에서 포로들이 배로 옮겨지는 장면을 본다. 하나같이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몰골이다. 모두 "무구의 거인"을 상대하고 살아남은 포로들로 본국에 돌아가서는 거인병기의 공포와 비인도성을 설파하고 다닐 것이다. 그건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을 더 악화시킬 것이며 전세계에서 유미르의 백성들을 죽여버리자고 떠들 것이다. 우도는 분한 듯이 물건을 걷어찬다. 그때 누군가가 우도의 행동을 나무라며 그런데 화풀이하지 말라고 한다. 라이너였다. 침울해졌던 소년 소녀들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지며 그에게 뛰어간다. 라이너는 그들의 무사를 확인하며 한 사람씩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가비가 특히 라이너를 좋아하는데, 파르코는 대조적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고 쓰다듬도 받지 않았다.
완전히 취한 콜트는 가비와 전사 후보생들을 동지들 앞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가비를 옆에 끼고 "엘디아의 여신"이라 과장한다. 작전 막바지에 가비가 수류탄만 가지고 적 진지로 돌격, 장갑열차를 파괴한 공적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떠들어 댄다. 가비는 콜트가 술냄새를 풍기면서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얼굴을 들이미는데 질색한다. 콜트는 다시 동지들을 향해 외친다.
술주정이나 다름없는 연설이었지만 청중의 마음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이미 한 전씩들 꺾은 듯하고, 어린 동포가 헌신한 이야기는 더할나위 없이 감동적이었다. 엘디아인 전사대는 모두 흥분해서 함성을 내지르고 가비의 이름을 연호한다. 이런 소란은 마가트 대장과 마레 장교들이 있는 일반객실에도 들렸다. 지크와 피크, 갤리어드도 여기에 있다. 부관은 소리를 듣고 그만두게 해야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마가트는 "오늘밤만 눈감아 주자"고 넘어간다. 이 조치는 마레의 전사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일행이 저기에 동참하는건 아니다. 적어도 라이너와 파르코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라이너는 저 광란을 보면서 "엄청 떠받들어준다"고 중얼거린다. 옆의 파르코는 형에게 술을 먹인데다 가비도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성격이라 그렇다고 대꾸한다. 라이너는 그런거야 어쨌든 "다음 갑옷의 계승자"는 가비가 될 거 같다는 말을 꺼낸다. 라이너가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파르코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시무룩하게 동의하며 "당신의 남은 임기가 2년이니까"라고 대답한다.
파르코가 아차할 틈도 없이 라이너는 추궁이 이어진다. 거의 협박조다. 이 발언은 곧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 들었다면 밀고할 감이라는 것. 이렇게 되면 콜트가 짐승의 거인을 계승하기는 커녕 그의 그라이스 일가가 모두 반역자로 몰려서 "거인병기행"이다. 다음 작전에서 비행선에서 투하되는건 다름아닌 파르코와 콜트, 부모님이 될 것이다. 겁에 질린 파르코는 뒤늦게 발언을 정정하겠다고 한다. 라이너는 다시 아홉 거인을 계승하는 명예를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명예 마레인으로서 명예와 긍지를 받고
* 프리츠 왕가와 레이스 왕가의 관계의 수수께끼는, 그냥 '프리츠 왕가 = 레이스 왕가' 였다(…). 이름이 바뀌게 된 데는 무슨 원인 - 이를테면 방계계승이라든가 - 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동일한 가문인듯.
- 최태원 (야구인) . . . . 15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0년 ~ 2003년)
* [[SK 와이번스]] 주루코치 (2005년 ~ 2007년)
'''최태원'''(崔泰元<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869 |날짜=2009-03-10 }}</ref>, [[1970년]] [[8월 19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kt 위즈]]의 작전/벤치코치이다. 그의 아들은 휘문고등학교 야구부의 내야수인 최준서이다.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을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6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에 들어갔고, 그는 이 때부터 붙박이 [[2루수]]로 활약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1995년]] [[4월 16일]] [[해태 타이거즈|해태]]와의 시즌 2차전에 대타로 출장한 이후, [[2002년]]까지 기록적인 1014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쌓아 갔고, 이것이 팀의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과 맞물리면서 [[1997년]] [[12월 11일]]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는 연속 출장 기록을 쌓아 가면서 '철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SK 와이번스]] 시절===
우여곡절 끝에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은 해체 후 [[SK그룹]]에 인계되어 [[SK 와이번스]]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단했고 [[인천광역시|인천]]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2000년]] [[SK 와이번스]]의 초대 주장을 맡았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10160242 “반갑다 인천…이겨라 광주!”최태원 코치의 특별한 가을] - 동아일보</ref> 그러나 이미 30대 초반에 접어든 그는 빈볼의 후유증으로 인해 [[2001년]]에는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고, 프로야구판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탓에 [[SK 와이번스|SK]] 프런트의 안 좋은 시선을 받았다.
이로 인해 [[200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에서 트레이드된 [[2루수]] [[정경배]]에 밀려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끈질기게 이어오던 연속 경기 출장 기록도 당시 [[SK 와이번스]] 초대 감독이었던 [[강병철 (야구인)|강병철]]에 의해 [[2002년]] [[9월 10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을 결장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 후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시절의 은사인 [[조범현]]의 감독 부임 이후 재기를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주전 자리를 탈환하지 못하고 33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3년]] [[10월 5일]] [[삼성 라이온즈]]과의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SK 와이번스]] 주루코치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팀의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후 [[조범현]]이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새로 선임되자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804658& KIA, 최태원·장재중 코치 영입] - 연합뉴스</ref>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후 [[2009년]]에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2011년]] [[KIA 타이거즈]]가 준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 1승 3패로 패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면서 [[조범현]]이 경질되었고, [[조범현]] 사단의 해체와 동시에 [[선동열]]이 새로 감독에 부임하자 옛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선배였던 [[김기태 (1969년)|김기태]]가 감독으로 선임되어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rowspan="4" style="text-align:center;"|[[SK 와이번스|SK]]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미성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
- 페어리 테일/507화 . . . . 15회 일치
* 나츠와 그레이는 폭주를 멈추고 마침 루시 하트필리아와 쥬비아 록서도 현장에 나타나 싸움은 완전히 종결된다.
* 한편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오라시온 세이스를 이끌고 스프리건12 최강 오거스트와 대치하고 있다.
* 오거스트는 그 어떤 마법으로 공격 당해도 상대와 같지만 더 강력한 마법으로 되받아치며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는데.
* 엘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츠와 그레이는 넋을 놓는다. 엘자가 눈물을 보인다는건 과거에도 두 사람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 나츠와 그레이는 지금까지 지내온 일, 길드에서 형제나 다름없이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때도 싸웠던 적은 있지만 그 이상으로 함께 놀고 협력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쌓여있다.
* 그때 그레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쥬비아 록서가 웬디 마벨과 샤를의 부축을 받으며 그레이를 찾아온 것이다. 쥬비아는 자신은 무사하다고 알리는데 샤를이 "무사하다고 할 만한 상처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작은 상처는 아니다. 어쨌든 생명엔 지장이 없이 돌아온 쥬비아. 그레이는 놀란 탓인지 안심한 탓인지 그대로 무릎이 풀리며 정신을 잃는다. 쥬비아는 급하게 달려와 스러지는 그레이를 붙드는데 역시 몸상태가 나빠서 그런지 함께 기절해 버린다.
* 한편 엘자 측에서는 나츠와 그레이를 폴류시카에게 데려가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엘자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감지하는데 곧 커다란 폭발이 덮쳐온다. 폭발의 연기가 가시고 나타난 것은, 스프리건 12 최강의 여성 마도사 아이린. 엘자에게 "다시 만나게 됐다"고 말하며 등장. 구면인 것처럼 군다.
* 루시는 아는 사람이냐고 묻지만 엘자는 모른다고 답한다. 웬디는 분명 엘자와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엘자가 누구냐고 묻자 아이린은 이렇게 답한다.
나츠와 그레이, END 대 멸악마법의 대결은 일단락. 하지만 재대결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번엔 END의 각성이 멈췄기 때문에 엘자가 막을 수 있었지만 제레프전에서 END로 완전 각성한다면 그레이가 나츠를 막기 위해 재대결하게 될지도 모른다.
엘자가 두 사람을 타이르면서 끌어안는 장면 때문에 가슴만질래 드립을 떠올리는 사람도 꽤 있다. 사실 기존에는 쥬비아와 루시가 나타나서 두 사람이 무사한걸 보고 싸움을 멈춘다는 설이 대부분이었는데, 결국 두 사람이 나타나긴 했지만 싸움을 말린건 어디까지나 엘자.--다시 고개드는 엘자 진히로인설-- 엘자가 나온게 의외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나츠와 그레이가 길드 안에서 가장 가깝고 깊은 관계가 있는 상대는 바로 엘자다. 어렸을 때부터 형제처럼 자란데다 엘자는 언제나 누나역할을 해왔기 때문. 특히 둘은 길드=가족이라는 관념이 가장 강한 멤버들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싸울 때 말린다면 엘자가 나서는 것도 당연하다.
오거스트 VS 제라르가 스포로 전파됐을 땐 제라르가 오거스트와 맞먹는거 아니냐, 제라르가 오거스트를 단독으로 이겨버리는거 아니냐는 예측도 나왔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제라르 단독으론 당연히 상대가 안 되고 오라시온 세이스와 협공을 해도 여전히 열세.
엘자와 아이린의 관계 떡밥이 드디어 풀리기 시작했다. 모녀지간, 자매지간 등 여러가지 설이 있었지만 이번 주에 나온 "나는 너, 너는 나" 발언으로 평행세계의 엘자나 미래세계의 엘자가 아니냐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 페어리 테일/510화 . . . . 15회 일치
* 나츠와 제레프의 부모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곧 드래곤이 마을을 습격해 모든 것을 멸망시킨다.
* 나츠는 어린 시절에 가질, 웬디, 스팅, 로그와 만난 적이 있는데, 이들 멸룡마법사들은 부모 용을 따라서 회합 자리에 동석해씩 때문이다.
* 카구라 미카즈치가 당하고 유키노 아그리아가 당해있는 것을 발견, 라케이드와 교전한다.
* 아이린으로부터 달아난 루시 하트필리아 일행은 정신을 잃은 나츠 드래그닐, 그레이 풀버스터, 쥬비아 록서를 데리고 디마리아가 포박돼 있는 지하실로 돌아온다. 그레이와 쥬비아는 외상은 심하지만 그레이는 브랜디쉬가 상처를 작게 만들고 쥬비아는 웬디 마벨의 치료 덕에 생명에 지장은 없다. 문제는 나츠. 그의 안에 있는 END의 힘은 폴류시카도 브랜디쉬가 어찌할 수 없다. 해피는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나츠의 눈 앞에는 고대의 어떤 마을이 나타난다. 그곳이 나츠와 제레프 형제가 살던 마을로 그들의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모로 보나 단란하고 평범한 가족들.
* 그러나 어떤 드래곤이 마을을 습격하면서 평화를 깨진다. 나츠와 부모님은 그때 죽었고 홀로 살아남은 제레프는 방황 끝에 나츠를 END로서 되살리게 된다. 제레프는 이 부분은 전에 얘기한 거라며 적당히 넘어간다.
그가 나츠를 이그닐에게 맡긴 이후의 기억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혼룡 의식의 영향으로 매우 훼손된 기억. 사실 이그닐과 함께 있던 시절부터 나츠와 다른 멸룡마도사들은 인연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가질 레드폭스는 항상 티격태격하던 사이. 웬디는 둘을 말리러 오곤 했는데 항상 울고 있었다. 제레프는 잠시 "그 애"도 곧 웬디랑 만나게 될 거라며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하는데.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도 이때부터 만났다. 둘은 나츠와 가질을 형처럼 따랐다고 한다.
*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유키노 아그리아와 카구라 미카즈치를 완전히 제압했다. 그의 쾌락 마법에 당한 유키노는 특히 상태가 좋지 않은데 완전히 탈진해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다. 렉터와 프로시도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데, 렉터는 스팅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외친다.
* 나츠는 라케이드에게서 나츠와 같은 냄새가 난다며 기분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제레프와 나츠의 부모님이 공개되었는데, 제레프는 어머니를 닮았고 나츠는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나츠와 비슷한 무투파로 추정.
- 페어리 테일/544화 . . . . 15회 일치
* 하루지온 상공에 시간의 틈새가 열리며 잡혀갔던 멸룡마도사들이 무사히 귀환, 루시는 다시금 나츠와 재회하고 길드로 돌아간다.
* 현세를 파괴하고 있는 마룡의 육신. 그 육신을 봉하기 위한 작전이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리온 바스티아]]가 합작하고 [[쥬비아 록서]]가 조종하는 얼음의 배에 [[엘자 스칼렛]]과 [[미라젠 스트라우스]]가 아크놀로기아를 유인, 기습을 걸어 태우는데 성공시킨다. 때를 노려 [[루시 하트필리아]]가 하루지온에 모인 모든 마도사의 힘을 합친 페어리 스피어로 마룡을 잡는다.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걸까?
할 때 루시와 동료들의 팔목에 익숙한 문양이 나타난다. [[메르디(페어리 테일)|메르디]]의 링크마법이었다. 정말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한 그녀는 미리 예견이나 한 것처럼 마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묘안을 가지고 왔다. 길드의 힘을 합쳐서 안 된다면, 전 대륙의 힘을 합치는건 어떨까?
* 짧은 시간 만에 그녀는 전 대륙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링크마법은 전대륙, 전국민에게 빠짐없이 부여됐다. 페어리 테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링크 마법을 통해 힘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세계 전체의 힘. 거기에는 이 자리에 도착하지 못한 동료들도 있었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와 [[안나 하트필리아]],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블루 페가수스]], [[바커스]]와 [[콰트로 케르베로스]], [[머메이드 힐]], [[코로나 플레어]]와 태양의 마을 주민들, [[피오레 왕국]] 일동까지.
아크놀로기아의 패배와 소멸, 그리고 나츠 일행의 승리가 하루지온을 들끓게 했다.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생존자들의 환호소리로 항구가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진정한 전쟁의 종결이었다. 그때였다. 하루지온의 상공에 균열이 일었다. 아크놀로기아가 돌아올 때와 같은 균열이었다. 안나와 이치야가 시간의 틈새에서 배제된 것처럼, 마룡의 힘이 사라지자 멸룡마도사들도 시간의 틈새에서 밀려나온 것이었다.
* 멸룡마도사들이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스팅과 로그는 세이버투스의 동료들과 재회했다. 렉서느는 뇌신중, 코브라는 오라시온 세이스의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가질은 [[레비 맥거딘]]과 [[팬서 릴리]]와 얼싸안았고 웬디는 샤를과 셰리아가 반겨주었다.
그리고 나츠와 루시와 해피. 루시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하루지온에서, 그들은 다시 만났다. 비록 모양세 없이 떨어지는 나츠가 루시의 머리를 들이받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츠는 루시 위에 올라탄 채 귀환을 신고했다.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로.
루시와 해피는 기꺼이 반겼다.
>어서와.
- 하이큐/221화 . . . . 15회 일치
* 시작되는 다테공고와 리벤지 매치.
* 한층 강해진 다테공고는 새터인 카게야마에겐 시라토리자와보다 까다로울지 모른다는 평을 듣는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체육관을 쓰라고 허락하긴 했지만 과연 "조금만"으로 끝날지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 스가와라 코시는 합숙에서 자극 받은걸 감안해도, 자기라면 지금쯤 쉬고 있을 거라며 얼마나 배구를 좋아하는 거냐고 말한다.
* 사와무라의 우려대로 "조금만" 없이 계속 연습을 거듭하고 있는 괴짜콤비.
* 사와무라에게 혼나고 점프를 못 뛴다.
* 그리고 츠키시마 케이의 플레이를 보고 "합숙에서 코가네가와가 세터했을 땐 타점이 높았다"고 한 마디 한다.
* 시간이 흘러 다테 공고와 연습시함 당일.
* 코가네가와 칸지는 합숙에서 친해진 영향인지 츠키시마와 히나타를 유독 반가워한다.
*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발언 때문에 코가네가와를 엄청 의식한다.
* 하지만 코가네가와, 아오네 타카노부, 후타쿠지 켄지의 삼중 리드 블록이 다가온다.
* 우카이 코치는 시라토리자와전 때 츠키시마의 활약을 예로 들며 좋은 블록은 스파이커는 물론 세터도 압박한다고 말한다.
* 따라서 지금의 다케공고는 세터 카게야마에게 있어선 시라토리자와 이상으로 까다로운 상대라는 것.
* 코가네가와는 츠키시마를 츳키라고 부른다. 츠키시마도 무시는 하지만 딱히 정정하지 않는 모습.
- 하이큐/253화 . . . . 15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페이크는 관전하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시미즈 키요코]]와 "상대의 강함을 너무 과신했을지도 모른다"는 대화를 나눈다.
* 연속으로 서브 에이스를 달성한 아츠무는 악취미가 발동해 [[미야 오사무]]와 함께 어떤 모의를 하는데.
* 그것은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의 "괴짜속공"을 완벽하게 흉내낸 "기습". 깨끗하게 성공시켜 괴짜콤비를 도발한다.
* 멋진 페이크로 [[이나리자키 고교]]의 블록을 따돌리며 경기의 균형을 맞춘 [[카게야마 토비오]]. 득점에 솔직하게 환호하는 [[사와무라 다이치]]와 달리 사령탑 카게야마는 생각이 복잡하다. 사실 그가 노린 페이크 상대는 맞은 편의 오미미. [[히나타 쇼요]]가 튀어나가면 당연히 따라붙을 줄 알았는데, 잘도 간파하고 히나테에 붙지 않았다. 오미미도 방금 전 카게야마가 "의도적으로 낚으려 했다"며 눈을 흘긴다.
보루토였다. 그저 보고있는 줄 알았는데 마침 아카아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네요"라고 맞장구치낟.
* 다음 플레이는 이나리자키의 득점. 추격에도 흔들리는 기색은 없다. 스코어 9 대 7. 이나리자키의 2점 리드 상황에서는 서브는 다시 [[미야 아츠무]]. 그가 서브 위치에 서는 것만으로도 카라스노 응원단의 시마다와 타키노우에는 "이도류"라며 이를 간다. 사요코는 "그건 공을 두 개 쓰기라도 하냐"고 문외한다운 이야기를 하자 시마다가 설명에 들어간다.
이도류란 스파이크 서브와 점프 플로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보통 선수마다 주력 서브는 정해져 있다. [[아즈마네 아사히]]나 히나타는 스파이크 서브, [[야마구지 타다시]]는 점프 플로터, 이런 식이다. 아츠무는 어느 쪽이든 때릴 수 있어서 서브가 날아오기 전에는 구분할 수 없고, 그래서 리시브할 위치를 선점하기 어렵다. 거리로는 단 한 걸음이지만, 실제 플레이에선 그 작은 차이가 실점으로 이어진다.
* 아츠무가 엔드라인을 지나 서브 위치로 향한다. 그 사이 카라스노 고교의 리시버 사와무라, [[니시노야 유]], [[타나카 류노스케]]는 그의 "걸음걸이"에 집중한다. 이게 그들이 세운 나름의 대책. 지난 밤에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찾아낸 공략 포인트다.
* 우카이 코치의 분석은 헛되지 않았다. 아츠무의 걸음은 정확히 네 걸음. 점프 플로터다. 카라스노의 리시버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대비한다. 그런데 이 대응법은 공격측인 이나리자키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였다. 특히 [[미야 오사무]]는 설사 아츠무의 버릇을 간파했다고 해도 별 건 아니라고 여긴다.
아츠무의 서브. 방향은 정가운데, 니시노야. 정확히 위치를 포착했다. 하지만 니시노야가 밀렸다. 카라스노의 서버인 야마구지와 [[키노시타 히사시]] 니시노야 조차 받지 못하는, 눈 앞을 순식간에 스쳐가는 아츠무의 서브에 경악한다.
주장 사와무라는 팀의 분위기를 다잡는다.
성급할 것 없다는 사와무라의 말 덕에 카라스노의 전의는 꺽이지 않았다.
뻔뻔한 얼굴로 환호하는 아츠무와, 정말로 이짓거릴 하냐고 투덜거리는 오사무. 그리고 완벽하게 도발 당한 카라스노의 괴짜콤비. 그야말로 "기습"에 당했다.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14회 일치
여름축제를 준비하는 카와모토 자매와 난적을 만난 키리야마
* 때아닌 비로 카와모토가는 분주하다.
* 아카리와 히나타는 집안일을 해두고 여름 축제에 대비해 의논한다.
* 노점 메뉴와 공간활용, 설거지 처리 등을 고심한다.
* 히나타의 친구 츠구미가 들어와주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부족하다.
* 한편 나메리카와와 대국 중인 키리야마.
* 나메리카와는 그의 자기를 "올곧은 장기"라고 표현하면서 끌려가 버릴 것 같다고 독백한다.
* 키리야마는 속을 알 수 없는 나메리카와의 장기에 동요하고 있다.
* 나메리카와는 언제나 그렇듯 대국 중 불쑥 자리를 비운다.
* 그런데 화장실에 간다던 나메리카와는 장지문 사이로 키리야마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걸 눈치챈 키리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서 주의를 당한다.--결국 어린애네--
* 키리야마는 냉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또 소리도 없이 불쑥 나타난 나메리카와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두 번째 비명을 지르고 만다.
* 키리야마는 잘 대처하는 것 같았지만 역시 나메리카와의 심리전술에 휘말리고 있다.
- 3월의 라이온/125화 . . . . 14회 일치
* 조용한 듯 하지만 격전을 치르는 키리야마와 나메리카와
* 나메리카와는 무효판을 노리고 함정을 파지만 키리야마는 걸려들지 않는다.
* 나메리카와의 예리한 함정을 모두 피하고 결국 승리를 따내는 키리야마.
* 스미스, 요코미조, 타나카 3인은 대국을 마치고 한잔 하러 가는데, 마침 나메리카와와 마주처 호러블한 택시에 타게 된다.
* 나메리카와는 방심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키리야마의 오판.
* 나메리카와는 키리야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지다며 "계속해서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나메리카와는 그가 천일수를 피해서 실망하지만 이 강렬한 반격을 보고 "얌전하게 생겨서 엄청난 새디스트"라며 더 즐거워한다.
* 중요한 국면에서 나메리카와가 수를 아끼다 실수를 저지른다.
* 최후의 속임수가 실패하고 승기가 넘어간 걸로 본 나메리카와는 패배를 시인한다.
* 그런데 바깥으로 나가 보니 어쩐지 나메리카와가 기다리고 있다?
* 평범하게 대국을 했을 뿐인데 나메리카와 덕에 마치 죠죠와 같은 기묘함이 넘쳤던 에피소드.
- 김기창 (법학자) . . . . 14회 일치
한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행정 심판 위원을 역임한 바가 있고,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하여 《서해안기름유출사고와 삼성중공업의 배상책임》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였다. 2008년 10월에는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에 대한 형사 소송 사건에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취지의 증언을 하였고, 2009년 6월에는 [[2009년 대한민국의 시국 선언|법률가 시국 선언]]에 참여하였다.
* SOFA 제4조와 환경손해 -원상회복의무와 손해배상의무에 관하여-, 民事法學 26號, 韓國民事法學會, 2004.09
* 배아와 복제배아에 대한 한국법의 입장 -생명과학연구의 법적 허용 한계-, 人權과 正義 340號, 2004.12
*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점, 고대 법대 100년의 학문적 성과와 미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100주년 기념논문집 발간위원회, 2005.12
* 법적담론 전개 양식의 차이 -성문법 국가와 판례법 국가의 비교-, 세계화지향의 사법: 그 배경과 한국과 프랑스의 적응, 세창출판사, 2006
*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와 삼성중공업의 배상책임, 比較私法 15卷 3號, 韓國比較私法學會, 2008.09
* Long Seisin and Novel Disseisin: Acquisitive Prescription in Medieval Common Law? (장기점유와 부동산신침탈(新侵奪): 중세 컴먼로상의 취득시효?), 고대로마와 중세의 법과 평화,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주최 국제학술대회, 2005.10.07
* ''Legal education and legal profession changes and challenges'' (법학교육과 법률가 : 변화와 도전), 세계화 시대의 법과 한국법의 발전, 고려대학교 개교 백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2005.11.19
* ''Les diff?rents techniques de l'?laboration de la loi: le code et les "cases"'' (법적담론 전개 양식의 차이: 성문법 국가와 판례법 국가의 비교), 세계화지향의 사법: 그 배경과 한국과 프랑스의 적응,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100주년 프랑스민법전 2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2005.12.03
*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킹: 소수자의 견해를 알리는 수단으로서", 한국법사회학회 연구모임회: 정보민주화와 인권, 2007.10.20
* 서해안 기름유출사고와 삼성중공업의 배상책임에 관하여, 한국비교사법학회 제56회 정기(춘계)학술대회, 2008.5.23
- 김영환(1955) . . . . 14회 일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장경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에는 [[민주당(2005년)|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려고 하였으나, [[박주선]] 의원이 전략공천되면서 경선을 요구하며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7년에는 [[이인제]] 민주당 대선후보의 충청선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1월 [[민주당(2005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화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열린우리당 계열과의 반목이 심했던 터라, 합당에 반발하여, 한나라당 입당도 진지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이후 [[민주당(2008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선거 이전에는 [[새누리당]] 후보인 [[홍장표(정치인)|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패배할거라는 여론조사와, 김철민 후보와 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는 김철민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와 3당구도로 가면 홍장표 의원이 오차범위의 한참 밖에서 안전한 당선이 가능하다는 결과치가 나왔기 때문에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후보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3파전이 되었다.
결국 '''4.8%'''라는 선거비용 보전도 못 받는 초라한 득표율로 [[이재명]] 지사와 [[남경필]] 전 지사에 이은 3위로 패배하였다. 공약보다는 이재명을 어떻게든 까내리는 네거티브 위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남경필의 지지율이 조금 더 올라가면서 [[죽 쒀서 개 준 꼴]]이나 다름없어진 셈.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남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상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남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영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반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반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반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반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남불|이재명이 반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영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남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태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영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토론회 마무리 발언으로 [[JTBC]]와 [[손석희]]사장을 자신에게 갑질을 한다고 [[http://www.edaily.co.kr/election/view.asp?newsId=01161126619214168|비판하며]], JTBC 본사 앞에서 농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JTBC가 6월 2일과 3일 개최할 경기지사와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내실 있는 검증을 이유로 지지율 5%이상 후보에게만 토론회 참가를 제안했는데, 김영환 본인의 지지율은 2.5%에 불과해 자신에게 참가 요청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른미래당에선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신청했고, JTBC측은 이를 받아들여 지지율이 낮은 후보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지만 이번엔 다른 후보의 캠프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자 토론회 자체가 무산되었다. 하지만 김영환 본인은 1년전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의 미디어본부장을 맡았을 당시 유력후보간 양자토론을 주장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본인의 지지율이 낮은 것을 JTBC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http://v.media.daum.net/v/20180531211335605?f=m|JTBC '경기지사·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무산..배경은]]
그리고 6월 7일 오후, 뜻밖의 [[공지영|원군(?)]]이 [[https://namu.wiki/w/%EA%B3%B5%EC%A7%80%EC%98%81#s-3.3.4|등장한다.]] 그러나 아직까진 어느쪽이 옳다고 판단하긴 이른 단계. 애초부터 공지영은 과거 논란들로 신뢰성을 잃어버린지 오래 되었고[*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보수 일각에서는 현재 이재명에 대한 반발로 인해 과거부터 줄곧 공지영에 대해 그렇게 비난해대면서 정작 이재명 의혹에서는 공지영의 말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보수내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공지영의 발언을 섣불리 신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추가적인 증거들이 나와야만"''' 공지영의 말이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공지영 본인이 무슨 새로운 증거들을 거론한 것도 아니다.[* 관련자의 말을 자신이 들었다는 것이다.]
- 김원주(가수) . . . . 14회 일치
지아와 같이 부른 '울고불고'에선 랩을 했다. ~~그런데 본인은 자신이 랩을 하지 않았다고 부정했다 [[카더라]]..~~
2008년 EP 'First kiss"로 데뷔를 했다. 그러나 녹음 당시에는 J1, 신용재, 영재만 녹음에 참여했다. 아마 가장 나중에 합류한듯 하다. [[윤민수]]가 김원주의 노래를 듣고 뽑았다고 한다. ~~사실 얼굴을 보고 뽑았다고 한다.~~ --포맨 비주얼 담당이 없어서 뽑았다 [[카더라]]-- 앞서 말했듯 [[지아]]와 함께 부른 '울고, 불고'에서 [[Rap|랩]]을 한 적이 있었다.
2013년에 [[퍼펙트싱어 VS]]에 나와서 [[성시경]]의 차마를 불른 결과 좋은 점수를 받으면서 MVP가 되었으며 금은 받지 못했다.
[[2011년]] 하반기 포맨 신용재와 MIII의 노래인 '그남자 그여자'의 MV에 출연해 [[달샤벳]]의 [[지율]]과 함께 꽤 괜찮은 연기를 펼쳤다.데뷔 전 댄서 출신이어서 그런지 춤을 잘춘다.[* 지금도 단독 콘서트에서 솔로무대를 할때 가끔 춤을 보여주는데, 당시 댄서로 활동하던 댄스팀 이름은 레볼루션이었다고 한다.]
신용재와 가창력 면에서 의외로 상반되는게 많다. 김원주는 중저음역대는 안정적이지만 고음역대가 안정적이지 않고, 신용재는 김원주보다는 고음역대가 안정적이며 신용재는 구슬픈 음색이지만 김원주는 구슬프지않고 담백한 음색이다. 둘다 노래할땐 기교를 많이 넣는데 신용재는 애드리브를 많이 넣고 김원주는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넣어서 부른다.
* 김원주는 이 뮤지컬에서 주인공인 '온조'역할을 뮤지컬배우인 유상화와 함께 맡았는데 다른 주인공인 '수'도 걸그룹 퀸비즈의 멤버 이루미와 뮤지컬배우 박혜미가 나왔다. 온조와 수 역할을 맡는 두 사람이 동시에 나오지는 않는데 역할은 번갈아서 했다.방청객들의 후기에 따르면 원주온조의 연기는 감정이 잘 전달되었지만 오글거렸다고 한다. 팬들이 선물을 보냈는데 [[https://twitter.com/musical_onjo/status/521269461290983424?s=09|인증샷]]을 남겼다.
* 첫사랑과 사귈 때 100일 이벤트를 나름 준비했으나 [[실연]]을 당한 뒤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을 들으며 울었다고 한다.[* 첫사랑은 고2(2004년)때 있었다고 말했는데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은 김원주가 22살 때인 2008년도에 나왔다. 아마도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인것으로 추측된다.]
* 데뷔전 아이돌 비공개 [[오디션]]을 많이 봤다고 한다. 그때마다 계속 떨어졌고 마지막으로 본곳이 지금의 더바이브이며 그 오디션에 붙어서 데뷔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전부 떨어져서 군입대를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와이후 소속사 오디션에 붙어서 포맨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를 했다.]
* 프로필 상으로 키가 178cm인데 프로필 키가 176cm인 신용재보다 더 작아보인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도 몇몇 사진에는 신용재가 김원주보다 크다. 하지만 와이후 패밀리콘서트에 다녀온 다른 사람 말로는 민연재[* 프로필 184cm이다.]와 김원주가 제일 크다고 한다.
* 전역 이후 복면가왕 66차 경연에서 [[누르면 나옵니다 노래자판기]]라는 가명으로 참여해서 준결승에 올랐다.([[내맘을 들었다 놨다 인형뽑기]]에게 승리, [[널 깨물어주고 싶어 초록악어]]에게 패배[* 참고로 이 대결에서는 [[뜨거운 심장 양철로봇|가왕을]] [[신비주의 아기천사|배출]]한 그룹의 팀원이 대결했다.]) 그는 전역 이후 솔로 무대는 처음이고 떠나간 팬들이 이 무대를 보고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참고로 이 경연에서 그와 같이 듀엣으로 [[잘자요 꿈의 요정 드림캐처|음반 활동을 했던 가수]]도 참여했으며 가왕 도전자가 되었다.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14회 일치
개요에서 설명한 대로,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는 독일국방군이 전쟁범죄와 같은 범죄행위와 무관함을 주장한다. 심지어 이러한 전쟁범죄를 막으려고 노력했다고 까지 주장한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독일 정부와 독일군의 관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았다. 독일군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나 에리히 루덴도르프 같은 이들이 주장한, 그리고 전간기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믿어지게 된 [[내부중상설]]에 따라서 '''자신들은 아무 것도 잘못 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자들의 반란으로 독일이 멸망했다'''고 굳게 주장했다. 그리고 황제를 몰아낸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독일 사회민주당]]을 배척했다.
실상은 이미 독일은 11월 혁명으로 거의 국가 체계가 붕괴할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빌헬름 2세]]는 방금 전까지 전쟁하던 [[네덜란드]]로 망명해서 내빼버리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 무렵 독일 내의 정당들 가운데 많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군부에 의하여 패전과 혁명이 겹쳐 거의 다 망하게 생긴 나라에 등떠밀리듯이 올려가서 수습하게 된 거나 다름 없는 상황(…)[* 물론 독일 사회민주당 역시 애국주의에 따라서 1차 대전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책임이 없는건 아니다.]이었다. 사실상 '''군부가 싸놓은 똥을 치우는 상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군부는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이 국가적 위기를 사민당과 좌파 세력이 만든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려 한 것이다.
사민당이 주도한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는 군부의 지지를 크게 받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군주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던 독일군은 새롭게 들어선 공화국 정부에 제대로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주요 장성들은 빌헬름 2세의 퇴위와 군주제 폐지를 일시적, 잠정적인 상황으로 여겼으며, 장기적으로는 군주제의 복귀를 바라고 있었다. 독일 장교단은 기본적으로 군국주의를 추종하여 민주주의와 공화제 정치를 멸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결국 공화정 내에서 연합국 측의 압력으로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지자 이를 굴욕으로 받아들이고, 조약의 군비제한을 벗어나 과거의 독일제국군이 복귀되기를 바랬다.
국방군은 결국 나치와 동조하게 되었으며, 나치는 베르사유 조약 파기, 군비 확장, 국방군으로의 체제 개편으로 국방군을 회유하였다. 마침내 1934년 8월 2일, 당시 독일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가 87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대통령 권한을 받게 되며, 독일국방군(의 모든 장교들)은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 대하여 '''충성 맹세'''를 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국가'와 '헌법'에 대하여, 히틀러가 수상이 되자 '민족'과 '조국'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했으나, 독일국방군으로 개편되기 직전에 있었던 이 충성 맹세는 '독일 민족의 지도자', '국방군 최고사령관'인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맹세한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독일국방군은 (선입견과는 달리) '독일 국가의 군대'라기보다는 (이론적으로는)'히틀러 개인의 군대'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 시대가 기독교적 윤리가 아직 강하던 사회였고,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독일군에서는 '충성 맹세'가 지닌 사회적 가치는 매우 컷다.]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가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냉전]]이다. [[미국]]과 [[영국]]은 [[소련]], 그리고 소련의 위성국 [[동독]]에 맞서서 [[서독]]을 재건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군을 전쟁범죄로 단죄하면 독일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또한 실용적 관점에서도 독일군이 해체하는 것은 공산 세력과 맞서는데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었다. 독일국방군 출신의 장성들 역시 자신들이 전쟁범죄자로 받게 될 비난을 두려워하여, 모든 죄과를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 [[나치 친위대]]에게 몰아놓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1945년 [[카를 되니츠]]는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온 힘을 다해 영웅적으로 명예롭게 싸웠다.”는 내용으로 마지막 국방군 보고서를 제출했다. 1945년 11월 미군 장성 윌리엄 도너번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독일 국방군 장성들이 [[각서]]를 제출하게 하였는데, 이는 “육군이 나치당 및 나치친위대와 대립했고, 히틀러의 중요한 결정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전쟁 범죄에 대한 명령에 반대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는 국방군 최고사령부나 참모부는 [[범죄 조직]]으로 선고되지 않았고, 나치당과 친위대 등 나치당 휘하의 직계 조직만이 '''범죄 조직'''으로서 단죄되었다.
연합군의 허가와 지원을 얻을 수 있게 된 전직 국방군 장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사를 자신들의 시점에서 저술할 수 있게 되었다. 1946년 6월에, 프리츠 할더 육군 참모장이 책임자가 되어 328명의 독일 장교들이 제2차 대전 시기의 군사 서술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저술하였으며, [[독소전쟁]]에 대한 주요 자료 제공을 독점할 수 있었다.
독일군 장성들은 마음껏 자신들의 지휘관으로서 전문적 식견, 군사 기술을 칭송하고, 독일군 장병의 용기와 인내심을 강조했다. 모든 전쟁 범죄의 책임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돌렸고, 독일 국방군은 "'''어쩔 수 없이''' 나치스에 남용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범죄를 반대하고 억제했다'''."는 자기 변호를 '역사 기록'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일반 독일 국민들 역시 전후의 화해와 수습을 위하여, 이 같은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14회 일치
* 이레지어 헤드, 아이자와 쇼타의 그녀 등장? 아이자와의 지인 Ms.조크 등장. 아이자와는 일방적으로 프로포즈 당하고 거절하길 반복하고 있다.
* 유명세만큼 전력이 노출돼 있는 웅영고는 시합 개시와 동시에 타학교의 집중 공격을 당하나 미도리야의 지휘 아래 돌파해나간다.
* 그때 누군가 아이자와 쇼타에게 아는 척을 한다.
*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하는 미인. 그런데 아이자와의 표정은 썩는다. 미도리야는 그녀를 아는 듯 한데?
* 그런데 이 여자,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는 기인. 아이자와가 광속으로 거절하는데 그게 또 웃기다고 폭소를 터뜨린다.
* 미도리야가 긴급하게 설명충을 자처한다. 그녀는 스마일 히어로 "Ms.조크". 개성은 "폭소". 근처의 사람들을 강제로 웃게 만들어서 사고와 행동을 둔하게 만드는 묘한 능력이다.
* Ms.조크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거듭 결혼을 권하는데 그때마다 아이자와는 칼 같이 거절한다. 그리고 폭소를 터뜨리는 무한 순환.
* 과거엔 사무소가 가까워서 자주 만나다가 인연이 생긴 듯한데, 그녀가 설명하면서 "기정사실"인 관계처럼 말하려고 할 때마다 아이자와가 커트한다.--죽이 척척 맞네--
* 이런 반응에 A반 학생들도 기분이 업돼있는데, Ms.조크는 이런 걸 보고 미심쩍어 하며 "말하지 않았냐"고 아이자와에게 묻는데.
* 교사들은 관중석에서 보고 있는데 아이자와는 이러니 저러니해도 Ms.조커 옆에 있다.
* 시합 개시와 함께 모든 학교가 웅영고를 집중 공격한다.
* 그러나 아이자와는 "결국 달라지는건 없다"며 "그저 극복해 나갈 뿐"이라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14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는 [[토오가타 밀리오]]와 [[미도리야 이즈쿠]]가 [[오버홀]]과 접촉한 사실을 듣고 낭패로 여긴다.
* 서둘로 시내로 복귀한 나이트아이는 [[토오가타 밀리오]], [[미도리야 이즈쿠]]와 합류한다. 밀리오는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며 사과하는데 나이트는 아이는 오히려 자신이 "먼저 보지 못한게" 문제였다며 자신의 실태였다고 말한다. 그가 적어도 모든걸 예지할 수 있는건 아닌가 보다. 어쨌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의심을 샀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차갑게 잘라말한다. 그는 서두르면 망치고 어설프게 쫓가단 더욱 도망치게 만들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미도리야는 구하고 싶을 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지 않다. 오버홀에 대해서는 나이트아이도 다른 사무소와 팀을 구성하기 위해 구상 중이고 상대의 의도와 정보를 분석해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속사포같이 설교하고 둘을 사무실로 돌려보내는 나이트아이. 버블걸만 데리고 다시금 첩보활동에 복귀한다. 쏟아지는 비와 함께 큰 응어리만 남기고 미도리야의 첫 인턴활동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 다음주 아침. A반은 주말을 보충강습으로 보내고 상처투성이로 복귀한 [[바쿠고 카츠키]]와 [[토도로키 쇼토]]로 말이 많다. 임시면허 보충강습이 엄청 스파르타라 이꼴이 되었다는데. 그리고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가 공결이다. 인턴활동과 관련된 모양. 그리고 [[키리시마 에지로]]도 결석이다. 그도 인턴과 관련된 걸까?
* [[미네타 미노루]]는 미도리야에게 인턴활동이 어땠냐고 물으며 야한 여성 히어로는 없었냐는 흑심 가득한 질문을 던진다. [[아시도 미나]]가 은근슬쩍 끼어든다. 바쿠고는 자기가 뒤떨어진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는걸 병적으로 기피한다. 반은 언제나처럼 부산스럽지만 미도리야는 붕 뜬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수업 중에도 초조함이 더해져 집중이 되지 않고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연발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자와 쇼타]]에게 쓴소릴 듣기도 한다.
우선 올마이트는 나이트아이와 관계에 대해서 설명한다. 본래 올마이트는 사이트킥을 두지 않는 주의였다. 나이트아이는 광적인 올마이트의 팬이었고 그 열의에 꺾여서 그를 사이드킥으로 삼았다. 그렇게 지낸게 5년. 신체능력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팀의 브레인으로서 귀중한 조력자였다. 여기까지는 미도리야도 아는 사실이다.
나이트아이는 아직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올마이트가 억지로 사람들을 구하러 나서자 그렇게 말했다. [[리커버리 걸]]의 병원. 올 포 원과 격전 직후였다. 그 자리엔 [[네즈]]와 리커버리 걸,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도 있었다.
언제나 미소와 함께 사람들을 구했던 올마이트. 그러나 지금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이다. 나이트아이는 만약 올마이트가 계속 히어로로 활동한다면 더이상 서포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이것이 그들의 진상이었다.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콤비는 해산. 이즈 네즈의 소개로 토오가타 밀리오와 만날 예정이었지만, 그 전에 미도리야와 만나고 말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14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의 허락으로 [[미도리야 이즈쿠]],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의 "에리쨩 구출 작전" 참가가 결정된다.
* 미도리야는 [[서 나이트아이]]와 [[올마이트]] 간의 일에 대해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에리를 구출하는 임무로 그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 [[토오가타 밀리오]]는 [[하도 네지레]]와 [[아마지키 타마키]]의 격려로 사기를 충전하고 의욕적으로 작전에 임한다.
* [[아이자와 쇼타]]가 교사이자 선배 히어로로서 미도리야의 각오를 확인한 그날, 다른 학생들도 거기서 참가가 결정되었다. 아이자와는 그들의 참가를 일단 허가하지만 "어차피 너희에겐 별로 활약할 여지가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알려준다. 물론 빅3, [[토오가타 밀리오]]와 [[하도 네지레]], [[아마지키 타마키]]는 다를 것이다. 이들은 이미 프로와 동등 이상의 평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1학년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러면서 미도리야는 어쨌든 나머지 셋은 자기들 의지로 여기 있는게 아니냐며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키리시마도 "우리 힘이 조금이라도 그 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고 물러서지 않는다. 이렇게 세 사람이 분명히 입장을 밝히자 아이자와 쇼타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단지 "의사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라 밝히는데, 그러면서 이번 작전에서 학생들이 담당할 영역을 정확하게 밝힌다.
* 그렇게 해서 "에리쨩을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1학년들은 분발했다. 그렇지만 미도리야 만은 순수하게 그 임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나이트아이와 [[올마이트]] 간의 문제에 대해서, 나이트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도 용기도 없었다. 달리 누군가에게 상담할 수도 없었다. 작전에 함구령이 내려졌으니 올마이트와 상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문제를 키리시마나 우라라카와 공유할 수도 없다.
* 지난 회의에서 불평만 늘어놓다 끝난 레게풍 히어로는 일단 임무는 충실히 이행했다. 미도리야가 학교에 있는 동안 어느 도심지. 그는 시에핫사이카이와 연루된 시설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거점이 될만한 포인트"를 염두하며 원탑 형태의 어떤 건물을 조사했다.
같은 메시지가 아이자와에게도, 빅 3에게도 전해졌다. 밀리오는 아직까지도 에리쨩과 관련해서 울쩍한 기분이었지만 네지레와 타마키가 적극적으로 위로해서 조금씩 기운을 차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14회 일치
* [[오버홀]] 치사키의 오른팔 [[이리나카]]의 계략으로 동료들과 단절된 [[키리시마 에지로]]와 [[패트껌]].
* 철포옥 핫사이슈 "랏파"와 "텐가이"가 이들을 습격한다. 랏파가 공격적인 러쉬, 텐가이가 강한 배리어를 치는 "창과 방패"의 조합.
* 반명 키리시마와 패트껌은 모두 방어적인 능력으로 조합된 "방패와 방패"라서 상성면에서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는다.
*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는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 연합군. 그러나 [[이리나카]]가 판 함정에 빠져 [[아이자와 쇼타]]가 고립될 뻔한 걸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지키고 대신 희생한다. 함정에 빠진 이들 앞에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랏파"와 "텐가이". 랏파는 저돌적인 격투가로 개성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큰 덩치와 파워, 강력한 펀치연타가 특기다. 텐가이는 차분해 보이는 남자인데 굉장한 강력한 배리어를 치는 개성.
패트껌이 랏파의 러쉬를 버티고 반격을 가하자 배리어로 막는다. 랏파는 자기 성미에 맞지 않는다며 배리어를 치워달라고 하지만 텐가이가 오버홀의 명령은 그런게 아니라고 거절한다. 이쪽은 "창과 방패"의 조합, 저쪽은 "방패와 방패"의 조합이라 상성상 유리하니 이 콤비네이션으로 처리하자고 말한다.
* 배리어가 걷히자 다시 속사포같은 러쉬가 쏟아진다. 패트껌은 크게 밀려나면서도 상활을 냉철하게 파악한다. 우선 랏파와 정면승부는 무리. 공격도 보고 피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사정거리 안이라면 무조건 맞는다고 보는게 좋겠다. 위력도 자신의 지방으로 상쇄가 불가능할 지경. 소모전으로 흘러간다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 방금 전 랏파와 텐가이가 다툰 듯 보이는게 돌파구가 될까? 어려워 보인다. 지금은 물러났지만 위험해지면 다시 배리어를 칠게 뻔하다. 그 강도는 아까 때려본 바로는 철벽. 불행하게도 현재 패트껌의 파워로는 뚫을 수 없다. 결국 텐가이를 어쩌지 못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 패트껌이 이런 계산으로 견디고 또 견디는 와중에, 텐가이가 그의 모습에서 뭔가를 포착했다. 육감같은 것인가? 아무튼 랏파에게 소리쳐서 "뭔가 꾸미고 있으니 빨리 처리해라"고 주문한다. 좋지 않았다. 이미 패트껌은 한계였다. 충격은 잘 모으고 있지만, 예상보다 방패가 사라지는 속도가 빨랐고 충격을 내뿜을 자세를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텐가이의 외침에 호응하듯 랏파의 러쉬가 기세를 더올린다. 그리고 그때. 키리시마가 나타났다.
* 텐가이가 "공포에 물들었다"고 했던 것은 참 보는 눈 없는 말이었다. 키리시마는 마침내 답을 내놨다. 그는 이제 러쉬에 밀려 날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씩 내딛었다. 랏파가 크게 당황했다. 아까와는 다르다. 해답은 결국 경화. 경화가 깨지는 순간 다시 경화시켰다. 그런 방법으로 키리시마는 한 발씩 다가오고 있다.
* 이 격돌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걸까? 결국 텐가이가 약속을 깨고 배리어를 친다. 키리시마의 혼신의 공격은 막에 가로막혀 튕겨나간다. 그와 동시에 키리시마의 저력도 끝났다. 텐가이가 왜 무의미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빈정거렸다. 그러나 키리시마를 잘못 본 것처럼, 이번에도 보는 눈 없는 말이었다. 키리시마가 뒤로 넘어가자, 그 뒤에서는 기회를 잡은 "창"이 번뜩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14회 일치
* 랏파는 본래 지하격투장 출신으로 조직이나 [[오버홀]]의 목적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싸우고 싶은 상대와 마음껏 싸우는게 목적.
* 그는 키리시마를 "꼬맹이"라고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투혼을 높이 사 "그 남자"로 정정하며 특히 그와 다시 싸우고 싶으니 어서 그를 치료하라고 제안한다.
* 오버홀은 이 두 가지와 자신, 그리고 두목만 있으면 시에핫사이카이는 얼마든 되살릴 수 있다며 지금 아지트를 미련없이 버리는데.
* 그런 오버홀의 뒤를 [[빌런 연합]]의 [[트와이스]]와 [[토가 히미코]]가 뒤따르고 있다.
* [[패트껌]]의 선언대로 창과 방패의 대결은 방패와 방패,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의 승리로 끝났다. 키리시마가 지키고 패트껌이 완성한 최강의 창이 텐가이의 배리어도 랏파의 포텐셜도 뚫고 반대편 벽에 커다란 크리에이터를 만들었다. 적들의 완패. 키리시마가 의식을 찾은건 그때였다. 그러나 아직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곁에 있는 패트껌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지경에서도 키리시마는 "패트... 지키겠어"라고 중얼거린다. 패트껌은 감격하며 새삼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싫다는 이야기, 그 점이 타마키와 패트껌의 관심을 끌었다. 키리시마는 크림슨 라이오트 처럼 제대로 지킬 수 있는 히어로를 목표로, 그런 인물로 변하고 싶어서 억지로 타마키에게 소개를 부탁했다. "누군가의 위기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한심한 녀석"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패트껌은 그렇게 말했던 당시의 키리시마와 자신을 지키다 쓰러진 키리시마를 겹쳐보았다. 그게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 텐가이도 입을 놀릴 정도의 기력은 돌아왔다. 그 기력이라도 배리어라도 치면 좋았겠지만, 그는 설교를 선택했다. 랏파에게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설교. [[오버홀]]이 그와 짝지은 것도 그런 안배였다. 그저 폭력을 휘두를 뿐인 짐승을 텐가이가 제어하라는 것. 텐가이는 그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그가 아직 지하격투장에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오버홀이 "조직에 들어와라"고 권했다. 그는 지하격투장의 룰에 따랐다. 싸움, 승리와 패배.
* 히어로들이 들이닥친 직후. 오버홀은 이때 이미 지하통로에 들어와 있었다. 자신의 심복과 에리쨩과 함께였다. 그는 위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들으며 "그 녀석들", 잔류한 조직원들이 발목이나 제대로 잡을지 의문스러워했다. 부하는 이제 시에핫사이카이는 끝이라고 말했다. 벌써 몇 번이나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젊은 두목은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과 "두목"이 있으면 핫사이카이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그걸 모른다. 그들은 대부분 두목파. 누구보다 두목의 의지를 존중하는 자신을 잘 따르지 않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빌런 연합]].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 그들이 오버홀을 뒤따르고 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3화 . . . . 14회 일치
* 이리나카는 경찰의 입에서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의 이름이 나오자 격분, 상태가 급속이 나빠진다.
* 한편 탈출 루트를 찾던 토가와 트와이스는 "오버홀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며 뭔가 음모를 꾸미는 듯 한데.
* [[미도리야 이즈쿠]]가 도착했을 땐 [[토오가카 밀리오]]가 절체절명인 상황. 미도리야가 [[오버홀]]을 날려보내고 나이트아이가 밀리오와 에리를 확보한다.
* [[아이자와 쇼타]]는 오버홀을 무력화시키며 미도리야와 함께 그를 정리하려 했으나, 그때까지 빈사상태인줄 알았던 크로노가 공격하는 바람에 무산된다.
* 개성은 대상의 시간 조작, 긴 바늘에 찔린 대상의 시간이 느려진다. 미도리야와 아이자와를 동시에 노렸으나 아이자와가 미도리야를 감싸 아이자와만 당했다.
* 아이자와의 무력화가 유지되지 못하게 되자 오버홀은 지면을 재구성하는 공격으로 일행을 견제하면서 시간을 번다.
* 오버홀은 [[네모토 신]]을 희생시켜 그의 육체를 파괴, 자신의 육체와 뒤섞는 "융합" 형태가 되어 히어로 일행을 공격한다.
- 둠 패트롤 . . . . 14회 일치
둠 패트롤의 특이한 점은, [[초능력]]을 지녔으나 전원이 '''사회에서는 [[괴물]]로 취급'''받고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뉴52 이전의 DC 유니버스에선 초인에 대한 취급이 마블과 달랐다.] 정말 따지고 보면 [[저스티스 리그]]와는 많이 다른 스타일.
외모는 손상을 입지 않았지만 리타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위험한 괴물로 여겨졌다. 영화배우로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되어 은둔 상태가 되었으나 치프에게 둠 패트롤로 스카우트 된다. 나중에 멘토와 결혼하고, [[비스트 보이]]를 입양한다.
[[마블 코믹스]]의 [[X-MEN]], [[판타스틱 포]]와 관련하여 논쟁이 있다.
[[NEW 52]] 이후 <[[포에버 이블]]> 타이인 이슈에서 멤버들이 [[크라임 신디케이트]] 멤버인 쟈니 퀵과 아토미카에 의해 의해 몰살당하다시피 패했다. 이후 치프로 보이는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군'이라 말한다. 결국 포에버 이블 이후 등장 암시가 나오더니 [[저스티스 리그]] #31화 막바지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치프는 새로운 [[할 조던(지구-3)|파워 링]]인 제시카 크루즈 역시 팀에 넣을 생각인듯 싶었으나 숙주(제시카 크루즈)를 죽여서라도 [[볼툼]]의 반지를 얻으려는 것 같으며 민간인이 다치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네거티브 맨, 로봇맨, 엘라스티 걸, 엘레멘트 우먼이 불난 빌딩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치프는 "파워 링을 제압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며 민간인을 놔두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간신히 파워 링을 얻을 기회가 생기지만 [[렉스 루터]]가 치프를 붙잡는다. 치프와 루터의 대화로 볼때 둘은 잘 아는 사이인듯.[* 이때 루터가 치프에게 "네 척추에 구멍을 내기 전에 파워 링을 넘겨라." 라고 협박하는 것으로 봐선 곧 휠체어에 탈 운명인듯 싶다.]
멤버 구성이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여러모로 반대되는 인물들로 되어있다. 당장 리그 멤버였다가 합류하게된 엘리먼트 우먼도 마찬가지. 저스티스 리그가 사람들에게 호감받을법한 자들이라면 둠 패트롤은 기피대상이 될것같은 자들.
자신은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메타휴먼을 위한다고 루터에게 강변한다. 다른 멤버들은 치프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일부러 다른 멤버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른 멤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재라고 반복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정말일지는 의문스럽게 하는 인물. 일단 치프에 대한 묘사는 치프 스스로의 말과 루터의 말이 엇갈리고, 리붓 이후의 치프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스티스 리그와 대면한 에피소드에서 보인 행동이나 내뱉는 말들을 보면 최소한 지금의 그는 확실히 영 아닌 인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둠 패트롤 멤버 중에서 가장 괴물같은, 혹은 진짜 괴물인 인간.
루터와는 무슨 인연인지 이전에 자기 전 아내와 어떤 참전용사에게 막장 실험을 했고 그게 루터에게 걸린적이 있다. 또한 코스빌에 신종 바이러스를 풀었다가 루터에게 걸리자 치료약을 풀었다.
투명해지는 능력이 있어보이는 여자. 둠 패트롤중 가장 먼저 저스티스리그 #27에서 사망. 쟈니 퀵이 이미 사망한 시체를 스코티와 카르마 앞에 던져놓아 이들을 분개시켰다.
방어적인 텔레파시 신경 교란 능력자. 이 능력은 상대가 열심히 근접 공격을 날려도 자연적으로 회피 할 수 있다. 스코티와 달리 치프인 콜드가 소름끼친다고 생각 중. 모히칸 머리 양아치 스타일 복장. 쟈니 퀵에게 폭탄으로 사망.
스코티와 카르마와 함께 합류하려 했으나 이 둘이 죽자 치프의 눈을 피해 잠적.
셀시우스와 동일.
- 로힝야 . . . . 14회 일치
* 타이 : 지원은 하지만 수용은 하지 못한다는 입장. 애초에 타이도 미얀마와 같은 불교 국가이다.
심지어 비슷하게 방글라데시-미얀마에 분포하는 소수민족인 라카잉 족도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로힝야를 싫어한다. 라카잉 족은 불교도이다. 미얀마에서 분리독립을 노리는 라카잉 족 계열 아라칸 무장단체가 버마족 중심의 정부와 협력해서라도 로힝야를 때려잡겠다고 생각할 정도.[[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37086.html 참조]]
이러한 사건이 보도되어 타이 정부는 로힝야 뿐만 아니라 미얀마, 라오스 등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신매매와 이들을 이용한 불법조업 어선의 강제노동 문제로, 국제적 압력을 받게 되었다. 미국은 타이에 인신매매 최하등급을 적용하고, 유럽연합은 불법 조업이 6개월 안에 개선되지 않으면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타이 경찰이 움직여서 인신매매 조직을 단속했는데, 2015년 5월 1일, 타이 경찰은 말레이시아 국경에 가까운 타이 남부 송클라 지역의 밀림에서 인신매매 캠프에 억류되어 있다 숨진 로힝야의 시신 26구를 발견, 그리고 며칠 뒤 해골 몇 개를 더 발견했다. 타이 경찰의 추적에 따르면 인신매매 조직은 타이 남부 지역의 유력자들과 유착되어 있으며, 타이 언론에서는 군 장성이 연류되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5월 24일에 말레이시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타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 북부에서도 로힝야 감금 캠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이 충돌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 탓에 촉발되어 200명 이상이 숨졌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로힝야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하여 이 사건을 비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를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버마무슬림협회와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이 폭동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동원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미얀마 정부가 밝힌 공식 사망자는 43명, 모스크 37곳과 건물 1300여채가 불탔고, 1만 3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버마무슬림협회는 사망자가 70~100여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천명의 난민이 방글라데시로 탈출하였으며, 방글라데시 경찰은 난민이 2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3일 미얀마 대사를 불러서 정식으로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역시 우려를 표시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시민들은 이에 분노하여 항의 시위를 벌일 정도로 감정이 악화되었다.
미얀마 정부는 민간인 학살과 인종청소를 부인하였으며, 저 타이 미얀마 대통령실 대변인은 유엔의 주장을 부정하고, 확실한 증거에 기반하여 발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얀마 군부와 정부는 민가 방화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려는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는데, 미얀마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980∼1990년대 방글라데시 인근 접경지대에서 활동했던 무슬림 무장단체 '로힝야 연대기구'(RSO)와 연계한 신생단체 '아카 물 무자헤딘'이 배후이며 파키스탄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은 하비드 투하르(일명 아르푸 하마드 줄루니)가 리더이고, 그를 돕는 12명의 극단주의자가 로힝야 주민을 선동하고 훈련시켜 폭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족 남성 자포르 알람이 자신, 부인과 함께 난민선에 탓던 아들 모함메드 소하옛이 보트가 침몰하면서 사망했다며, 지인이 찍어준 아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CNN 에서는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전 세계에 시리아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3세 소년 아일란 쿠르디와 비슷하다며, '제2의 쿠르디'라는 표제를 달았다.
*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지만, 아직 군부 세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 로힝야 탄압은 반 수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군부와 그에 유사한 성향을 가진 극렬 버마 민족주의자, 종교인이 함께 움직이고 있어 수치가 억제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2016년 12월 29일, 데스몬드 투투 주교와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 노벨상 수상자 22명은 유엔 안보리에 공개서한을 보내서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와 반인륜 범죄를 중단시킬 것을 요청하고, 아웅산 수치 정부가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4회 일치
>'''필름 느와르 러브스토리'''
전편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으로 삶이 망가진 [[뉴욕]] 형사 맥스 페인이 살인 용의자인 지인 [[모나 색스]]와 함께 음모를 밝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편을 하지 않은, 혹은 못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편의 간략한 스토리를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그런데 사실상 전편 스포일러.
어느 한 쪽으로 움직이며 [[불릿 타임]]을 쓰면 슛닷지가 되던 전작과는 달리 슛닷지와 불릿 타임이 분리되었다. 기본설정 상 슛닷지는 쉬프트, 불릿타임은 마우스 오른쪽 클릭.
* 왼쪽 아래의 사람 모양으로 생긴 것은 캐릭터의 체력이다. 체력이 붉게 차버리면 캐릭터는 죽는다. 화염과 접촉하면 체력 상관 없이 불춤을 추며 죽으니 주의.돌아다니다가 주울 수 있는 진통제[* 최대 8개 까지 소지 가능]로 체력을 천천히, 약간씩 회복할 수 있다. 진통제의 소지 유무와 수는 체력 옆에 표시된다. 총 8개 까지의 진통제를 소지 가능.
9mm와 데저트이글은 탄약이 호환되지 않는다.
과거 맥스 페인은 "V"라는 마약에 중독된 자들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고,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그는 진범을 찾아 헤매며 여러가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비니 고그니티, 모나 색스, 블라디미르 렘, 알프레드 우든. 맥스는 진범을 찾아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끝난것은 없었다. 맥스의 가족이 이미 죽어버렸지만, 맥스는 아직 살아있었다.
본래는 맥스의 동료 형사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게이트 상원의원을 죽인 혐의가 있는 모나를 뒤쫓고 있었다. 결국 코코런을 만나러 그가 살던 아파트에 갔던 모나와 맥스를 붙잡는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전화를 통해 정보를 흘린다던가, 목격자의 진술을 취사선택 한다던가 하는 수상쩍은 모습을 보인다. 결국 두번째로 모나를 붙잡으려고 할 때 모나가 이에 불응하며 서로 총을 뽑아들고, 맥스가 윈터슨을 쏴죽여버린다.
비밀조직. 음모론에 나올만한 그런 애들이다. 전작에서는 맥스가 진범을 찾는것을 도와주었다. 현재는 유력자였던 알프레드 우든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이너서클 내 내분이 발생했다.
Mike the Cowboy. 러시아 갱단의 일원. 맥스가 마피아들에게 습격당한 블라드의 식당을 찾아갔을 때 처음 만났다. 첫 등장부터 AK-47 한 자루로 네명의 펀치넬로 마피아를 처치하며 나타난다. 이후 맥스와 함께 마피아를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죽을수도 있다.
살아있다면 청소부들을 부리는게 블라드라는 걸 알아낸 맥스가 그의 식당을 습격했을 때 재등장한다. 방송으로 러시아 갱단원들에게 맥스를 처리하라 지시하는 역할. 러시아 갱단원들이 역으로 발리자 자신이 블라드의 방에서 방송을 하고 있으니 와서 끝장을 보자고 한다. 결국 블라드의 방에서 맥스에 의해 죽는다.
Address Unknown. 90년대 방영했다는 설정의 극중극. 존이라는 남자가 느와르욕(Noir York)라는 도시에서 연쇄살인범 존 미라(John Mirra)를 쫓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라를 쫓던 존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지만 의사와 환자들을 드릴로 죽이고 도망친다. 그제서야 존은 자신이 존 미라였다는걸 깨닫는다는 그런 내용. 이걸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도 있었던 것 같지만 원작 드라마가 방영 중단 먹으며 망한 듯. 솔직히 테마파크 겁나 기분 나빠서 방영 중단 안 되었어도 망했을 것 같다.
Lords and Ladies. 귀족 남자 발렌타인과 천한 신분을 가진 여자의 러브스토리. 당연히 발렌타인의 집안에서는 이를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발렌타인의 형인 잭이 여자를 모욕하자 발렌타인은 잭에게 결투를 벌여 죽여버린다. 그러자 발렌타인의 어머니가 여자에게 독이 든 와인을 먹여 죽이려 하지만 그 와인은 발렌타인이 대신 먹고 죽어버린다. 이때, 그들의 저택에 불이 나고 발렌타인은 여자를 도망치게 한 다음 마지막 힘을 다해 어머니를 붙잡고 타죽는다. 여자는 도망쳐 발렌타인과의 관계로 생긴 아이에게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기른다.
- 서신애 . . . . 14회 일치
주로 [[드라마]]로 활동.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지게 된 작품은 드라마 《[[고맙습니다]]》와 《[[지붕뚫고 하이킥]]》, 《[[여왕의 교실(MBC)|여왕의 교실]]》.
나이를 다른 아역 배우들보다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지만, [[여왕의 교실]]에 같이 출연한 '''[[김새론]]보다 2세 위의 언니다.'''[* 드라마 상에서는 동갑이지만 촬영장에서는 아역 배우 중 이영유(7월 10일생)와 더불어 최연장자라고 한다.] [[2017년]] 2월[* 녹화 시점]에 출연한 [[인생술집]]에 같이 나온 동갑내기 [[성소]]를 보면 덩치부터 시작해서 느낌이 확 달라진다. 단지 [[동안]]이라서 나이가 많이 어린 역할을 주로 하다 보니, 다른 아역들보다 더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싶다.
와우중학교 졸업 후 [[김소현(1999)|김소현]]처럼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홈 스쿨링을 한 후 검정고시를 통과했다고 한다. 그리고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 수시 합격을 했다.
[[1대 100]] 476회 후반전 방영분에서 1인으로 참여했으며 5,000만원을 타게 되면 등록금 지불하는 데 쓰고 싶고 차를 사서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녀는 뛰어난 실력, 적절한 시기에 사용한 찬스, 그리고 모르면 3번을 찍겠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푼 결과 8단계에서 최후의 3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여기서 1, 3번을 고민하다가 3번이 너무 많이 나와서(선지분배 2:0:5) 정답 3번 대신 1번을 고르는 바람에 적립금 616만원과 우승 상금 5000만원 모두 [[안드로메다]]로......(최후의 3인 결과를 먼저 공개)
여담으로 이날 방송분에서는 방송에 나온 12문제 중 단 2문제를 빼고 정답이 3번이었다. --녹화날이 달랐지만-- 같이 방영된 곽정은 역시 정답이 3번이었던 4단계에서 2인의 답을 사용하고도 3문제 모두 3번이 계속 나와서 그 문제에서는 2번을 골라 결국 떨어졌다.
[[문화방송|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6년 5월 29일 방영분에서 [[복면자객]]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으며 1라운드 상대인 [[외줄타기 인생 왕의 남자]]와 같이 어쿠스틱 콜라보의 '그대와 나 설레임'을 불렀다. 그 뒤 [[여전사 캣츠걸|가왕 출신]]의 뮤지컬 곡인 <살다보면>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그녀는 이 출연으로 복면가왕에서 가장 짧은 가명의 참가자 6인 중 1인(4글자), 당시로는 최연소 참가자의 기록(17세 222일)을 보유했으며 그 뒤 전체 최연소는 73차 경연에 나온 [[한 뚝배기 하실래예 로버트 할리퀸]]이다.[* 81차 경연 기준으로 최고령 참가자는 [[얼굴되지 노래되지 꽃돼지]]며, 여성 최고령 참가자는 [[문어...지지 않아요... 점쟁이 문어]]다.]
|| [[2015년]] || [[미쓰 와이프]] || 김하늘 || ||
* [[Apink|에이핑크]]와 인연이 있다. [[박초롱]]의 경우 2013년쯤에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봉사를 같이 다녀왔고, [[김남주(Apink)|김남주]][* 첨언하자면 [[김남주(Apink)|김남주]] 역시 아역배우 출신이다. 연예계에 있어서도 서신애의 3년 선배며, 2001년 [[LG전자]] CF로 데뷔했다.]의 경우는 [[성균관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재미있는 게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상대 역할로 나왔던 [[진지희]]는 [[걸스데이]]와 인연이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은 드림티가 탈예당했지만) 한때 같은 웰메이드예당 소속이었고, [[혜리]]의 경우 [[진지희]]와 함께 선암여고 탐정단에 출연했다.]
*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파격적인 노출 드레스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되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636390|관련 기사]]^^
다만 [[남초]]와 [[여초]] 커뮤니티 모두 공통되게 [[무리수]]였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드레스 자체도 전혀 안 어울렸고 몸매나 비주얼 자체도 글래머러스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애기가 어른 옷을 입고 나온 것같다는 반응이 많다. 2018년 2월 28일에 방송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밝히기를, 본인은 이게 예뻐 보여서 선택했다고...
* 맥주/소주보다 양주를 조금 더 즐긴다고 한다. 주량은 [[데킬라]] 3잔 정도라고. 그런데 [[데킬라]]의 특성상 저 정도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라고 한다.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주당]] 확정.
- 슈퍼걸(드라마)/1시즌 8화 . . . . 14회 일치
아스트라는 크립토나이트 나이프로 카라를 위협한다. 아스트라 일당은 크립토나인트 방사능 방어 장치를 만들어서 크립토나이트 나이프에도 문제가 없었다. 아스트라는 카라에게 힘을 합치라고 권유하지만 카라는 거부하고 달아난다. DEO에서 카라는 당장 아스트라와 싸우려고 하지만, 행크와 알렉스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며 카라를 말린다. 알렉스는 행크는 아버지의 죽음과는 무관하다고 카라에게 말한다.
캣 그랜트는 이메일이 해킹당해서 많은 사생활이 폭로된다. 카라와 윈, 제임스는 그 대응에 분주한다. 아스트라의 부하이자 남편인 라오는 카라에 대하여 아스트라에게 경고를 날린다.
카라는 DEO에서 알렉스와 훈련을 거듭한다. 알렉스는 아스트라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며, 주저없이 아스트라를 죽이라고 카라의 정신상태를 채찍질한다.
카라는 아스트라와의 과거를 떠올리며 고뇌한다. 자식이 없었던 아스트라는 카라를 매우 아꼈었다.
그랜트는 이메일 해킹 사건 때문에 이사회에서 위협을 받는다. 카라는 슈퍼 청각으로 이사들이 그랜트를 몰아내려고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게 된다. 카라와 윈, 제임스는 루시와 법률 상담을 한다.
그러던 때 아스트라가 도시에 나타나서 카라를 불러내고, 카라는 아스트라와 대결을 벌인다. 카라는 격전 끝에 아스트라를 제압하는데 성공하지만,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다. 카라는 제압한 아스트라를 DEO로 끌고오고 아스트라는 감금당한다.
감옥에 갇힌 아스트라는 카라를 만나고 싶어하여 카라가 면담을 하게된다. 아스트라는 카라에게 클립톤의 메시지 기계를 보여준다. 아스트라는 알루라와 논쟁을 했던 것을 알려주는데, 그녀는 자신이 클립톤을 종말에서 구하려고 했고 알루라가 카라를 아스트라를 체포하는데 이용했다고 한다. 카라가 아스트라가 신뢰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카라의 메시지로 아스트라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알렉스는 카라와 아스트라의 전투를 보고, 아스트라가 일부러 패배했다고 직감한다. 알렉스와 행크가 아스트라를 심문하지만 아스트라는 멈추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하고, 그 때 클립톤 인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매우 감사한다. 그리고 카라와 여태까지 있었던 슈퍼걸과의 기묘한 우연을 회상하며, 카라가 슈퍼걸이란 정체를 스스로 알아내서 확인한다.
알렉스는 카라에게 로드 테크놀러지가 공격을 받는다는 전화를 해온다. 맥스웰 로드는 클립톤인에게 대응하는 장비[* 이전에 나왔던 악당의 장비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를 가지고 공격을 하여 한 명을 쓰러뜨리지만, 빠른 스피드에 대응하지 못하고 논에게 붙잡힌다. 그 때, DEO 부대가 출동하여 클립톤인 및 그들과 협력하는 외계인들과 교전하지만 많은 희생을 겪게 된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14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는 달군 중화 프라이펜에 오리고기와 대파를 볶아 향을 낸 뒤 냅다 소바를 투하한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화제를 돌려 연대식극의 심사의원을 소개한다. 그들은 WGO란 집단에서 나온 집행관들이다.
* 흑발여성은 일등 집행관이자 삼인 중 리더 "안", 백인 남성은 이등 집행관 "샤름", 흑인 남성은 이등 집행관 "이스트와르".
* WGO는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단체인지 미식과 자기네 평가서를 "교전"라 지칭하고 [[나키리 아자미]]와 비슷한 광신적인 행태를 보인다.
* 안은 교전에 정식집 유키히라가 없다는 이유로 비꼬는 듯한 말을 마구 하는데, 관중들이 거기에 편승해 엄청난 야유와 비난을 퍼붓는다.
* 소마는 문자 그대로 면을 굽듯이 볶는다.[[요시노 유키]]와 [[이부사키 슌]]은 그야말로 경악. 일식에 조예가 없는 [[나키리 아리스]]는 원래 야키소바는 철판에 볶는 요리니 잘못된게 아니지 않냐고 의문을 표한다. [[나키리 에리나]]가 설명하길, 원래 야키소바는 소바의 이름만 딴 완전히 다른 요리. 사용하는 면은 평범한 중화면이나 밀가루면이다. [[사카키 료코]]는 야마구치현의 명물 "카와라소바"를 예로 들며 삶아서 굽는 소바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차소바"라고 해서 가루부터 특이한 별개의 요리다. [[타쿠미 알디니]]는 만약 전통있는 에도소바 가게에 일하러 가서 저런 짓을 하면 즉시 쫓겨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소마의 조리는 상식에서 벗어났다.
* [[카와시마 우라라]]도 어쨌든 토오츠키의 학생인 탓인지 소마의 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 일축한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서 연대식극의 심사를 맡은 3인의 심사의원을 소개한다. 그동안 심사의원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도 어떤 사람들이 나올지 주목한다. 그런데 나오라는 심사의원은 안 나오고, 왠 여성이 전화번호부만한 책 뭉치를 낑낑대고 옮긴다. 그녀는 소마의 조리대 옆에 책뭉치를 내려놓고 한숨 돌린다. 소마는 황당해하는데, 그때 관중석에서 여성이 내려놓은 책을 보고 동요를 일으킨다. 반역자가 갇힌 감옥에서도 잡학다식한 이부사키는 그 책이 뭔지 알아보고 거품을 문다. 하지만 소마는 그런 분위기에 영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상황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우측의 여성이 일등 집행관 "안". 일행의 리더다. 가운데의 백인 남성이 이등 집행관 "샤름". 좌측의 흑인 남성은 이등 집행관 "이스트와르"다.
과연 그녀의 발언력은 대단했다. 시장떼기같이 시끄럽던 장내가 단숨에 고요해진다. 소마도 그런건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안은 자신이 소마를 바보취급, 혹은 격려한 것은 단지 별이 없기 때문에 한 말일 뿐이지 심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다. 샤름도 거기에 동의하고 이스트와르는 "신과 교전에 맹세하고 정당한 심사를 할 것"이라 장담한다.
* 잠시 후 소마와 네네의 요리가 모두 완성된다. 카와시마는 우선 네네의 요리부터 소개한다. 그녀의 요리는 벚꽃새우 카키아게를 곁들인 9할 소바. 소바의 매끈한 색채에 관중들이 할 말을 잃는다.
- 식극의 소마/216화 . . . . 14회 일치
* 그리고 쥬리오에게 덮밥을 맛볼 것을 권하며 "맛있다고 생각한다면 쿄쿠세이 기숙사와 후배들을 모욕한 것을 사과해라"고 정식으로 요청한다.
또 한 쪽에선 [[이부사키 슌]]이 훈연장을 만든다고 공사를 진행 중. [[아오키 다이고]]와 [[사토 쇼지]]도 휘쓸렸다. 어쩌다 보니 공사에 참가했지만 뜻밖에 중노동이라 앓는 소릴하는데, 정작 이부사키는 통나무에 전기톱까지 들고도 콧노래를 부를 정도로 쌩쌩하다.
* 그런 과거를 뒤로하고 멀쩡한 인물인 양 대중 앞에 나타난 잇시키. 그는 심사의원 앞에 자신의 요리를 내놓는다. 그의 장어요리 "히츠마부시 쿄쿠세이 기숙사풍미". 히츠마부시는 일본식 장어덮밥으로 반찬과 함께 먹거나 육수나 차를 부워 오챠즈케 스타일로 즐길 수도 있다. 전형적인 일식이지만 그가 내놓은 한 그릇은 일식이라 부르기엔 대단히 이질적이다. 우선 플레이팅부터 양식 접시를 이용했고 쌀밥이 아니라 "치즈 리조또" 위에 장어구이를 올려놨다. 관중과 [[카와시마 우라라]]가 "어떻게 봐도 평범한 히츠마부시가 아니다!"고 경악한다. 게다가 쿄쿠세이풍이란건 또 뭔가? 별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코바야시 린도]]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출처야 어찌됐든, [[시라츠 쥬리오]]가 보기엔 처음부터 잘못된 재료선택이다. 후배들이 각자 만들던 재료를 가져와봐야 그렇게 되는대로 집어넣어서 하나의 맛이 될리가 없다. 이런 큰 승부처에서 이런 행보라니, 쥬리오는 그가 자신을 모욕한다고 느낀다.
* 안을 시작으로 [[샤름]]과 [[이스트와르]]까지 입이 닳도록 격찬한다. 놀랍게도 말도 안 되는 조합이라 여겼던 치즈 리조또가 장어의 맛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낸다. 이스트와르는 거기에 또다른 숨은 재료를 밝혀낸다. 그것은 마늘. 일식에서 마늘이라니, 이 또한 치즈 못지 않게 파격적인 선택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완성도 높은 일품요리지만, 아직 한 가지가 더 있다. 히츠마부시에 부워먹을 "장어 키모스이"다. 히츠마부시를 오챠즈케 스타일로 즐길 때 넣을 육수다. 장어간을 손질해 올리브유에 넣어 마늘칩과 함께 볶는다. 여기에 료코와 이부사키가 만든 일본주를 넣고 끓여 알코올이 날아갈 때쯤 카츠오부시를 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수는 유키와 이쿠미의 치즈로 만든 치즈 리조또와 잘 어울리게 된다.
* 쥬리오는 일식에서 치즈와 마늘을 쓰는 잇시키의 방식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는 "상식에 벗어나는 것도 정도가 있다"고 일갈하는데 잇시키는 "이런건 나에겐 시작에 불과"하다며 코웃음친다. 가령 일식에 프랑스식 소스를 더하는 거야 말로 그의 특기다.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재료든 조리법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푸아그라나 트뤼프에 저온 진공조리를 하거나 숙성한 생선에 감귤류 과일을 곁들여 신선한 향을 내는 거나, 그에겐 어느 것이든 필요하면 쓸 수 있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그는 일식을 한다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 잇시키가 내민 그릇을 받아든 쥬리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맛을 본다. 한 입 먹자마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장어, 육수에서 풍기는 산뜻한 감칠맛, 치즈와 산초와 마늘칩이 조화된 풍미와 식감.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 지고의 맛을 연출한다. 잇시키는 그가 황홀경에 빠져 있는 동안 마저 설명을 마친다. 료코가 만든 시험품 정종은 향이 아주 강한건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장어향이 지지 않는 육수를 낼 수 있었다. 단맛도 적어서 올리브유와 매치도 좋았는데 보통의 정종으론 노릴 수 없는 효과다.
- 신혜진 . . . . 14회 일치
||<#FF95CD> {{{#000000 '''신체'''}}} ||<(> 160cm[* 오마이걸 활동 시절, 유일하게 키가 알려지지 않았었던 멤버인데, 당시 다른 일곱 멤버들의 키를 물어봤던 팬이 진이한테만 까먹고 안 물어봤다고 한다(...) [[아린(오마이걸)|아린]]보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ohmygirl&no=1722|약간 작지만]] 최단신인 [[효정]]보다 키가 클 것으로 추정되는데 159cm인 [[승희(오마이걸)|승희]]보다는 크고 160cm인 [[유아(오마이걸)|유아]]와 비슷하니 약 160cm쯤 될 것이다.], [[A형]] ||
[[2010년]] [[12월]]에 [[W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멤버들 중 제일 긴 4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데뷔]]했다.[* [[2010년]] [[12월]]이면 [[선배]]인 [[B1A4]]가 [[데뷔]]하기 전부터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연습생]]이었을 당시 [[고향]]인 [[포항]]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평일에는 [[버스]]를 타고 다시 [[포항]]에 내려가 [[학교]]를 다녔다.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작 [[본인]]을 힘들게 했던 건 혹독한 [[다이어트]]였다고.[* [[연습생]] 당시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었을 때마다 자신을 힐링시켜 주었던 [[노래]]는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물론 진이 역시 활동을 거듭하며 [[데뷔]]곡 '[[OH MY GIRL#s-2.2|CUPID]]'보다 괄목할 정도의 파트를 분배받고 있으며 [[보컬]] 역량 또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실제로 [[데뷔]]곡 '[[OH MY GIRL#s-2.2|CUPID]]'의 [[비중]]과 [[2016년]] '[[내 얘길 들어봐]]'의 [[비중]]을 비교해보자. 확연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리드보컬]]인 [[유아(오마이걸)|유아]]와 [[비중]]이 비슷해졌고 중간중간 높은 음들도 무리없이 잘 소화해냈다!!! ~~사실 후렴구 뒷소절을 모두 부르게 된 [[지호]] 때문에 [[유아(오마이걸)|유아]]와 진이의 [[비중]]이 비슷해진 거다~~
[[2016년]] [[8월 25일]],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식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식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식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식증]]의 기본 증상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식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식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식단 조절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상태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반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식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상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후 [[친척]]과 함께 [[일본]]에 [[여행]]간 [[사진]]이 [[SNS]]에 올라와 회복된 모습을 보였으나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 측에서는 아직까지 회복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991553|2017년 4월 컴백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마이걸]]의 완전체 컴백을 바라던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면서도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바라는 중. 그래도 자필 [[편지]]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403000123|뉴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07803|링크]]
앗! 참~ 그리고 저는 얼마전에 회사에 들러서 근처 핫하다는 망리단길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사진]]도 찍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께 이렇게 깜짝 [[메세지]]와 [[사진]]을 전해봅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받는 [[사랑]]만큼 여러분들도 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요! 느껴지나요?
그동안 저희를 도와주시고 지켜봐주신 많은분들이 계시지만 먼저 늘 함께해준 우리멤버들에게 가장 고맙고 무엇보다! 그누구보다! [[미라클]]!!! 가장먼저 떠오르는건 우리[[미라클]]여러분이지용
위의 [[편지]] 이후로는 전혀 소식이 없어 우려가 커지던 와중, 결국 [[2017년]] [[10월 30일]] 결국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와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팀 활동에서 빠지게 되었다. 8명이 다 같이 컴백하길 [[기도]]해오던 찰나에 들려온 소식이라 여러모로 많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더구나 진이는 전 [[APRIL]] 멤버인 [[전소민(KARD)|전소민]], [[이현주(배우)|이현주]]처럼 그룹 활동만 관두고 계속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를 나왔다.][* 공교롭게도 진이의 [[탈퇴]] 이후 [[오마이걸]]이 낸 첫 [[앨범]]인 [[비밀정원]]에서 [[오마이걸]]이 [[데뷔]] 후 첫 [[음악 방송]] [[1위]]를 달성하자, 많은 [[미라클|팬들]]은 '진이도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은진|이와 같은]] [[DIA|일이]] 7개월 뒤에 [[Summer Ade|일어났다]].]
지금 [[미라클]] 여러분도 저와 같이 많이 속상하실 걸 알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오마이걸]] 멤버로 활동하면서 [[미라클]]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평생 그 때 그 자리에서 잊지 못한 소중한 [[추억]],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미라클]] 여러분께도 [[오마이걸]]의 둘째, [[CCTV]], [[러블리]] [[보컬]] [[진이]]는 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도전에도 여러분의 [[응원]]을 떠올리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 <[[OH MY GIRL#s-2.2|CUPID]]> 활동을 [[시작]]하면서 [[앞머리]][* 사실은 헤어커프, 즉 [[가발]]이다.]를 내렸는데 이에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대개 [[앞머리]]가 답답해 보여 [[눈썹]] 내놓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앞머리]]를 내려서 더 예뻐졌다는 [[사람]]들, 즉 깐진파와 덮진파로 나뉜다. 가끔 묶진파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덕후]] [[눈]]에는 뭔들~~ 모 [[팬]]이 [[팬사인회]]에서 진이에게 직접 [[앞머리]] 다시 없앨 [[생각]] 없냐니까 아직은 없다고 한다.
* [[WINDY DAY]] 활동을 하며 [[앞머리]]를 까고 세미 [[단발]]로 [[헤어 스타일]] 변화를 시도했는데 이것이 진이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어우러져 최고의 효과를 발휘했다.
- 영주시 . . . . 14회 일치
1980년 영주군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어, 남은 영주군 지역이 영풍군(榮豊郡, '영'주와 '풍'기에서 한 글자씩 따서 새로 지었다)[* [[영풍그룹]]과는 관계 없다.]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북부로 [[소백산]]을 끼고 있어서 북쪽은 지형이 험한 편이지만 중부와 남부는 평탄한 침식 구릉지대로 높은 산은 많이 없는 편. 다른 경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밭만큼이나 과수원이 많다. 특히 시골길엔 [[사과]] 농장이 정말 많다. 기후의 온난화로 [[대구광역시]] 등 경북 남부 지역에서 사과 주산지가 경북 북부로 올라온 덕에 이 지역 사과가 유명해지고 있다. ~~이제 이마저도 머지않아 [[강원도]]•[[경기도]]•[[황해도]] 쪽으로도 올라갈 듯.~~. 이미 영주에서 심은 묘목들이 철원이나 영월로 판매되고 있다.
기후는 분지가 다 그렇듯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강수량을 보인다. 또 내륙 지역이니만큼 일교차와 연교차가 굉장히 크고, 겨울 기온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필적한다.
철도 초강세 지역이었다. 중앙선을 중심으로 경북선과 영동선이 만나다 보니 철도만으로도 지금의 도시 규모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철도와 도로가 엎치락덮치락하고 있는 상태인데, 중앙선 복선화가 완료되면 다시 철도가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2018년 6월 26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영주시청이 2019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소수서원)~단산면 병산리(선비세상 관광단지) 2.8㎞ 구간에 총 사업비 100억원(국비 50억, 경북도비 5억, 영주시비 45억원)을 투입해 모노레일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노레일 설치와 함께 탑승장 3곳과 정거장 5곳, 회랑(1548㎡)을 설치하고 모노레일 차량 14량(8인승)을 투입한다고 한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65078|꿈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rain&no=868480|이루어진다]].
* [[헌혈의 집]]이 없다. 하려면 [[안동]]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헌혈의 집은 대부분 특별시, 광역시와 지역 중심 도시에나 있지 영주시보다 인구가 많은 곳조차도 헌혈의 집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므로 특이한 사항은 아니다. 비정기적으로 헌혈 버스가 학교로 오지만 1년에 1번꼴.(...)
사실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예전처럼 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는다. 특히 청소년층의 경우 억양에서는 어느 정도 어른 세대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지만 그 정도가 매우 약하며 어휘는 대부분 표준어와 별 차이가 없다.
[[경상북도]] 지역답게 보수정당 강세 지역이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영주시 단독 선거구였으나,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인구 부족으로 인해 [[문경시]]-[[예천군]] 선거구와 통합되었다. 그런데 문경, 예천 선거구와 통합된 건 잘못되었고, [[생활권]]이 같은 [[봉화군]]과 선거구를 통합하는 것이 타당했다는 의견이 있다.
* [[선비]] 명칭 사용 때문에 --양반-- [[안동시]]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안동시와 영주시 간의 [[지역감정]]이 꽤 있는 편이다.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474|이런]][[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59|저런]]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61|내용]][[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21|의]] 시사만평이 지역언론에 실리는 것을 보면[* 이 시사만평의 작가는 영주 모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2015년 기준 같은 재단의 모 여고 교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제는 선비 명칭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안동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듯. ~~[[우리의 주적은 간부|우리의 주적은 안동]]~~
* 삼정승고택([[정도전]] 생가 복원 건물)과 구 도립도서관 사이 강둑에 [[박정희]] 기념식수가 있다. 대통령 취임 전에 와서 심은 거라 "장군" 기념식수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과거 1961년 영주에 집중[[호우]]로 인한 대[[홍수]]가 나서 피해복구를 위해 군인들이 동원되었을 때 함께 참가했기 때문. 현재의 제민루가 있는 언덕과 시립도서관이 있는 산 사이(그리고 구성공원까지)는 원래 연결되어 있었으며, 서천 물길을 돌리는 직강공사를 하면서 절개 및 발파되었다. 그 때의 흔적으로 강바닥에 다른 곳에는 없는 바위가 드러나 있다. 현재의 나무는 처음 심었던 나무가 말라죽자 1979년에 다시 심은 것이다. 관련글: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931|#1]][[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226.010140730260001|#2]][[http://blog.daum.net/shgh1225/8762740|#3]]
* [[우병우]] :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엄밀히 말하자면 출생지가 [[경상북도]] [[봉화군]]이므로 '''영주 출신은 아니고''', 초(?)중(영주중학교)고(영주고등학교) 유년기 학창 시절을 영주시에서 지냈다.
- 원피스/866화 . . . . 14회 일치
* 엘바프 마을의 어른인 "폭포수염 [[요를]]"와 "산수염 [[야를루]]"는 본래 링링과 양의 집 아이들을 관대하게 지원해주었으나, 링링의 난동에 분노한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한줄기 빛이 내려와 그녀를 비춘다. "하늘이 화해를 원한다"는 그녀의 말을 입증하는 것처럼. 그녀의 말은 처형을 기다리고 있던 거인들을 감동시키고 끝내 해군까지 설득, 이들은 무사히 풀려나게 된다. 카르멜은 그 사건을 경계로 "마더"(성모)란 칭호를 얻고 엘바프 섬에 자리를 잡는다. 그녀는 "양의 집"이란 고아원을 설립, 신분이나 종족에 구애받지 않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그녀의 행보는 "거인과 인간의 교우의 징검다리"라 일커러졌다.
링링은 양의 집이 마음에 들었다. 우선 양의 집은 거인족 마을에 있었는데 그녀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자기보다 큰 사람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눈 높이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마을이나 건물들도, 그녀는 자기 몸집에 맞는 사이즈를 처음 접해봤다. 그래서 오히려 양의 집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카르멜은 울고 있는 링링을 발견한다. 링링은 "이상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울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녀는 늑대와 곰이 숲에서 싸우고 있길래 화해시키려고 한 우리에 넣어주었다. 그런데 곰은 늑대를 먹어버렸고 링링은 곰이 나쁜 짓을 해서 한 대 때려주려고 살짝 손을 댔는데... 그래고 즉사해 버린 것이다. 바보같은 일이긴 했지만 카르멜은 링링이 둘을 친구로 만들어주려다 난 사고라고 생각하고 그 착한 심성을 칭찬한다. 링링은 이전까지는 이렇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곧 카르멜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게 된다.
* 그렇게 해서 10개월이 지났다. 도리와 브로기가 결투를 시작한지는 40년. 당시에도 거병해적단 출신자들이 마을에 남아 있었는데, 이들은 기어이 결투가 40년을 채웠다고 혀를 찼고 앞으로 10년 만 더 기다려 봐서 계속 이 모양이면 마중을 나가봐야겠다고 하고 있었다.
이제 링링은 양의 집 아이로 녹아들어 있었고 거인족 소녀 게르즈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링링에게 거인족 아저씨가 "너네 준비는 잘 돼가냐"고 묻는데, 거인족 마을에서 지내는 "동지제"라는 축제 얘기였다. 아이들의 태어남과 성장을 태양에 감사하는 축제인데 축제 당일까지 12일 간 금식을 하는게 특징이었다. 그 해에는 거인족의 왕자 "로키"가 태어났고, 마을에서도 로드와 골드버그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동지제는 이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한 셈. 내일부터 시작하는데 누구보다 식탐이 강한 링링이 질색을 하지만 게르즈는 "끝나면 즐거운 축제"라며 달랜다.
링링에겐 거인족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하이루딘]]. 훗날 [[드레스로자]]에서 [[몽키 D. 루피]]와 만나는 그 거인족이다. 그도 링링, 게르즈와 친구사이였는데 이 시기에는 도리와 브로기가 돌아와 거병해적단이 부활할 때를 기다리며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링링과 게르즈는 동지제 이야기를 하며 그의 훈련을 구경했다.
* 마침 거인족 마을의 어른인 "폭포수염" [[요를]]와 "산수염" [[야를]]가 행차한다. 둘은 거병해적단의 전 선장이었으며 거인족의 영웅이자 "전세계 최고령 전사"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 요를가 344세, 야를가 345세. 이들은 하이루딘의 수련을 보고 만족해한다. 그들은 카르멜이 "약탈보다는 교역이 좋다"고 한 말을 언급하는데 그 말은 좋지만 그래도 엘바프족이 전사라는 정체성을 잃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 이들이 외출한 것은 양의 집 아이들을 마을로 부르기 위해서였다. 이것도 동지제를 위한 행사 중 하나였다. 두 노병은 링링에게 "셈라를 먹으러 와라"고 하는데, 행사가 처음인 링링은 셈라가 뭔지 모른다. 게르즈가 설명해주는데, 동지제까지 12일이나 금식하기 위해서 미리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어둬야 하는데, 그것이 셈라.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로 과자라면 환장하는 링링이 눈을 빛낸다.
그날 마을에서 먹은 셈라는 링링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맛이 좋았다. 링링이 맛에 취해 흡입하기 시작하자 거인족 어른들이 와서 뜯어말릴 지경이었다. 단식 대비용이므로 양을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링링이 먹어대는 속도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 은혼/585화 . . . . 14회 일치
격돌하는 긴토키와 카무이
* 호우센의 묘에 성묘하려 갔을 때 긴토키와 나눈 대화를 회상한다.
* 가구라는 아직도 카무이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설사 긴토키가 카무이와 싸우게 돼도 그럴 것이다.
* "혹시 지구인이라면 나와 다른 답을..."하고 말을 흐린다.
* 카무이는 설사 "그런 것(바보오빠)이 자기 안에 남아있다해도 지구의 바보오빠(긴토키)와 함께 오늘 죽을 것"이라 말한다.
* 그래서는 아무 것도 못 지킨다며, 가구라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은 "너와 나 두명의 바보 오빠"라고 한다.
* 우미보즈는 "저남자(긴토키)는 뭐냐"고 중얼거리고, 그걸 들은 신파치는 "카무이와 같다"고 답한다.
* 눈 앞의 적도 최강의 칭호도 바라보지 않고, 누구와 싸웠을 때에도 긴토키만 혼자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다.
* 바로 가구라와 친구들.
|| 나도 너와 같아. 텅 비었었다.
* 카무이가 호우센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와서 너무 밸런스 붕괴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원래 소라치는 "인물간의 강함과 우열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편.
* 한편으로는 요시와라에서 썩으면서 약해진 호우센을 두고하는 말일 수도 있다. 전성기의 호우센은 우미보즈와 며칠을 싸워도 승패가 안 갈린 수준이니.
* 어쩌면 신파치, 가구라와 합류하기 전인 1화의 긴토키도 그 시절의 상처를 다 치유하지 못했던 상태일 수도 있다.
- 은혼/600화 . . . . 14회 일치
* 사무라이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는 비장한 일침 뒤에 화장실을 빌리려는 노부노부. 그러나 가츠라와 다츠마가 허락하지 않는다.
* 해방군의 거물 주작 제독이 나서고 각 국의 정세와 목적, 대의가 오가는 와중에 노부노부는 똥을 참는데 여념이 없다.
* 그러나 피도 눈물도 인권존중도 없는 가츠라와 다츠마는 교섭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를 화장실에 보낼 마음이 없다.
* 가츠라와 다츠마는 거물이 나온다고 경계하는데 노부노부의 엉덩이도 거물이 나오려 한다.
* 그는 도쿠가와 막부를 천도중의 괴뢰 정부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수장이 여기까지 온 걸 보면 프라이드 정도는 있는거 같다고 평가한다.
* 주작 제독은 그가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여겨 높이 평가한다.
* 어쨋든 노부노부는 할 일은 다 했다며 화장실로 향하지만 아직도 가츠라와 다츠마는 허락하지 않는다.
* 게다가 노부노부는 "이제와서 멈출 수 없다"는 말까지 해서 완전히 미사일이나 폭탄 따위가 숨겨져 있다고 믿어버리게 된다. 파란이 일어나는 중에 그 진상은
* 그러나 의심할 겨를도 없이 노부노부가 쭈그려 앉아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빨리 여기서 도망가라는 절규와 함께.
* 가츠라와 다츠마는 일일히 "똥이잖수"라고 독백하지만 결코 진실을 입에 담지 않는다.
* 그는 이제와서 노부노부에게 "할복이란 무엇인가"를 묻지만 그가 알리가 없다.
* 그때 나타난 가츠라와 다츠마. 그들은 노부노부보다 먼저 화장실을 요구하며 그를 해방시켜 준다.
* 이상의 소식을 전하는 가츠라와 다츠마. 자신들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무전으로 그걸 듣고 있는 신파치.
- 은혼/612화 . . . . 14회 일치
* 진선조와 오니와번슈는 지상군 저지를 기도한다. 해결사 일행은 별동대로 활동 중.
오니와번슈는 이런 점을 이용하고자 움직인다. 적은 대군이지만 지금처럼 통신이 끊긴 상황에선 빠른 연락이 불가능해 이변이 다발하면 군 전체가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 핫토리 젠조는 다방면에서 계속 혼란을 야기하면 자중지란에 빠질 거라 예측한다. 다만 물량차가 압도적인건 변하지 않으므로 결코 적진 깊숙히 들어가선 안 된다고 지시한다.
살아서 와라 해결사. ||
진선조와 오니와번슈가 작전을 진행하는 동안 해결사 일행 사카타 긴토키,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별동대로서 움직이고 있다.
* 해방군 지상군의 행군 중에 고층빌딩이 폭발해 무너진다. 길 위로 잔해가 떨어지자 많은 병사들이 깔리면서 병력이 양단된다. 진선조와 오니와번슈는 일제히 기습을 건다.
* 한편 우주. 해방군 본진의 도쿠가와 노부노부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다시 감옥으로 옮겨진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무츠는 지구의 동향과 현상황에 대해 묻는다. 다츠마는 기적적으로 잘 버티고 있지만 병력차가 너무 커서 한계가 있다며, 그들이 버티는 동안 자신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반대편 감옥에서 "무슨 수라도 있냐"고 말을 거는 이가 있는데.
다츠마는 무전기를 붙들고 성질을 부리는데 가츠라는 지극히 침착한 태도로 "우리들은 별동대. 너희와 전혀 다른 이유로 잡혔다"고 설명한다.
* 실은 다츠마 일행과 헤어진 직후 어떤 사고가 생겼던 것. 생각보다 긴 시간 다츠마와 연락이 두절되자 가츠라는 언제든 역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 그때 부하들이 스크린에 나타난 적전함을 보고 놀라는데, 가츠라는 본함은 스텔스 함이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촌구석 사무라이. 스텔스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부하들은 정말 안 보이는 거냐고 미심쩍어하는데 가츠라가 투명해지는 그런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설명하던 즈라 조차 방향이 이상해져서, 전함은 투명해져도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며, 우주공간에 둥둥 떠있는 걸로 보이는게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 유일하게 정상인인 엘리자베스가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해주는데, 이번엔 가츠라가 "우리도 투명해진다 해도 우리가 섭취한 내용물은 완전 노출되는게 아닌가"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한다.
* 손의 정체는 가츠라 고타로. 황태자를 인질로 잡는다. 그는 종을 지키기 위한 노아의 방주 따윈 쪼잔한 일로 치부한다. 그러면서 황태자와 그를 구하러 온 병력들에게 "별 전체를 지키는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보지 않겠나"라고 제안한다.
그러고 보면 하타 황태자와 가츠라가 만난 적은 처음 인듯.
- 은혼/643화 . . . . 14회 일치
[[은혼]] 643훈. '''피와 눈물'''
* [[카와카미 반사이]]와 [[다케치 헨페이타]]의 희생을 딛고 [[다카스기 신스케]]와 [[키지마 마타코]]는 마침내 중추 제어실에 침투한다.
* [[귀병대]]가 적의 이목을 분산시키는 동안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착실히 적들을 제압, 엔죠 황자가 있는 통제실까지 진격해왔다.
* 죽어간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과 검을 바쳐, 신스케가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시스템을 파괴한다.
* 거기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역시 신스케를 쫓는 남자가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는 생사를 넘은 책략으로 추격대의 발을 묶었다. 적들은 불사신 같은 저력에 경이를 표했다. 그러나 반사이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감췄던 최후의 수가 드러나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반사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치있는 남자를 쫓고 있다고 믿었다.
* 여기에 또 한 명, 신스케를 쫓는 남자가 있었다. [[다케치 헨페이타]]는 부하들과 함께 파도를 방불케하는 적의 탄막을 넘었다. 모든 것은 히노카구츠치를 멈추기 위해. 그러기 위한 15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은 그들에게 남은 수단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헨페이타도 부하들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들도 오래 전부터 한 사람을 쫓고 있었다. 이제와서 뒤쳐질 수는 없었다.
* 제어 시스템을 호위하던 병력들은 난데없는 폭발이 일어나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제 3게이트였다. 방금 전 단 한 명의 적을 막으려고 부대 하나가 간 방향이다. 거기서 일어난 폭발로 부대는 전멸, 게이트마저 파괴됐다. 남은 부대들은 신속하게 화제를 진압하고 방어를 강화했다. 동시에 제어 시스템에 방어인력을 충원했다. 총알 하나라도 잘못 맞았다간 이 배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증원병력이 막 도착했을 때였다. 신스케와 마타코가 제 3 게이트와 제어 시스템으로 양단된 병력 위로 뛰어내렸다.
* 돌격. 철퇴와 같은 돌격. 양이지사들이 물 밀듯이 밀어닥친다. 선두는 [[가츠라 고타로]]다. 이어 주작 제독,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의 탈을 쓴 구룡공자 드래고니아, [[무츠(은혼)|무츠]]가 뒤따른다. 설마 통제실을 습격 당할 줄은 몰랐던 해방군은 속수무책으로 이들의 진격을 허용한다.
* 이들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해방군에겐 충격이었다. 해방군들 사이에서 그러한 경악와 탄식의 말이 터져나온다. 가츠라는 그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받아친다.
시스템은 중앙에 있었고 거기까지 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신스케가 그 길로 달리는 동안, 외곽에서 그걸 노리고 포격을 가했다. 신스케는 몰라도 발 밑을 무너뜨리면 어쩌지 못할 테니까. 그는 무너지는 잔해들과 적들의 시체 속와 함께 떨어졌다. 과연 신스케도 하늘을 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게 곧 그를 멈추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신스케는 적이 가지고 있던 화기로 손을 뻗었다. 바주카였다. 그는 근처에 떨어지고 있는 잔해에 사격했고 반동을 받아서 중추 시스템으로 접근했다.
>이 피와 살이, 이 검이 다할 곳은 너희들의 시체 위
- 장세용 . . . . 14회 일치
그러나 구미공단으로 인해 청년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세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남유진|그 전 시장]]의 여러 구설수와, [[구미시]]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경제 문제, 즉 [[삼성]], [[LG]]공장의 이탈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치명타를 맞는 동안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곤 하던 [[박정희]] 기념 사업을 강행한데 대한 불만이 폭증하였고, 무엇보다 [[바른미래당]] 후보(7.5% 득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뛰쳐나온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9.5% 득표)들이 '''총합 17%'''나 득표하면서 --[[홍준표|모 대표]]의 [[트롤링]]으로-- '''보수 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는 역대급 행운과 함께[* 단,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무조건 보수 성향 지지자가 던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나 부동층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너무 노답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장세용 시장의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사실상 무효표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진짜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시절부터 응원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찍어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구미 시민들이 바꿔야 된다는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면서 결국 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 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실제로 장세용 시장이 당선된 직후 [[남유진]] 문서는 구미시민의 분노로 점철되어 가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 남유진이 어떻게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때 [[자유한국당]] 이양호 후보와 초접전 박빙 대결을 펼치며 "구미시장" 검색어가 [[네이버]], [[다음]] 두 곳에서 실시간 검색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했고, 근접하긴 했으나 단 한 번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은 채 40.8%의 득표율로 38.7%의 득표율을 기록한 이양호 후보를 끝내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후보 출마 확정 후 구미시민들의 네트워크인 '구미텐인텐'에 출마 이유와 구상하고 있는 정책 등을 올린 바 있으며 [[http://cafe.daum.net/kumi10in10/IKJI/10328|*]] 구미시장에 당선된 직후, [[박정희]] 기념관을 비롯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는 했지만, 기념 사업 예산을 칼질할 의지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80614001410|*]]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 은퇴자를 위한 전통한옥지구와 요양 병원 설립(선산)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반,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7월 6일,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와의 면담에서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는 한발 물러섰고,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에는 구미시민 동의하에 이전하는 것으로 의견을 밝혔다.
구미 5공단 분양 저조에서는 분양가를 내리고, 업종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분양에 제동 건 쪽인 산업자원부와 홍의락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대구취수원은 달성에 있지만, 지역구인 대구 북구 을은 낙동강 물을 이용한다.]이 들어줄지는...
- 진격의 거인/85화 . . . . 14회 일치
* 희미한 기억을 뒤로 하고 불분명한 형태와 "아파"라고 낮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조사병단은 벽 위에 모인 9명이 생존자 전원이며 시간시나구의 벽은 막았지만 라이너와 짐승거인은 도주, 베르톨트는 포획했다.
* 리바이는 아르민의 두 소꿉친구와 104기 동료들, 그리고 한지와 리바이, 그리고 아르민 자신도 포함해 누구도 후회하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 리바이가 모처럼 격려해주는 와중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목소리. 사샤다.
* 한지는 한결 풀어진 태도로 "나도 엘빈의 후임으로서 너와 같은 입장"이라며 아르민을 격려한다.
* 다리스 작클레와 도트 픽시스 또한 거기에 수긍한다.
* 그와 함께 윌 마리아 탈환 소식도 전파되고 인류는 모처럼 환호성을 내지른다.
* 그러나 시민들의 환호와는 별개로, 귀환한 조사병단 생존자들의 모습은 어두워버리는데.
* 리바이와 한지의 격려를 받긴 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지 회복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 레이스 왕가가 마지막까지 진실된 역사와 벽 바깥에 대해서 함구하려 했던 걸로 볼때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 베르톨트는 벽 안 인류를 "악마의 자식들"이라 불렀고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짐승거인 또한 차이는 없는 듯. 따라서 바깥 인류와 벽 안 인류는 적대관계로 추정할 수 있다.
* 레이스 왕가와 그를 추종하는 인류는 과거 "악마"라고 불릴 법한 어떤 죄를 저지르고 벽 안까지 도망쳐야 했던 것.
* 사진은 예거 부부와 어린 시절 엘런으로 보인다.
- 진격의 거인/97화 . . . . 14회 일치
* 파르코는 가비를 재치고 갑옷을 계승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침울해져 있는데, 우연히 일전에 도와주었던 장발의 상이병사와 재회한다.
* 한편 [[지크 예거]]는 누군가와 은밀하게 통화를 하고 있는데, 그 내용과 상대는 불명이다.
* 파르코는 상이병사와 친구가 되어 그를 "크루거"라고 부르게 된다. 크루거는 파르코에게 수용구 바깥에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달라고 하는데.
* 애니 레온하트는 어떤 남자를 추적 중이었다. 타깃은 검은 코트의 남자. [[케니 아커만]]이었다. 병단에 들어간 뒤에도 그녀의 본래 업무는 바뀌지 않았다. 평범한 소녀로 꾸민 채 숙소를 벗어난 그녀는 케니의 뒤를 미행했다. 그는 애니가 조사한 왕정의 하수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뭔가가 달랐다. 직감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뒤를 캐면 진짜 "벽의 왕"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녀는 그 가능성에 걸고 남자를 뒤쫓고 있었다. 어느덧 남자의 행로는 평범한 소녀가 어울리지 않는 곳으로 접어들었다. 뒷골목. 하지만 애니는 멈추지 않았다. 남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가 모퉁이를 돌았다. 애니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남자가 뒤에서 나타났다. 어깨를 붙잡을 때까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 식당에선 또다른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너의 옆 테이블에서 [[엘런 예거]]와 [[아르민 알레르토]], [[미카사 아커만]]이 식사 중이었다. 엘런은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라이너가 유독 살기등등하다고 말을 걸자 맞은 편에 앉은 [[장 키르슈타인]]이 어제 훈련 탓이라고 참견했다. 입체기동장치 실습. 자기 와이어에 얽혀 죽을 뻔한 엘런. 장이 꼴사납다고 빈정거리자 엘런은 "거인한테서 도망치는 훈련을 하는게 더 꼴사납다"며 말상자식이라고 받아쳤다. 장은 다시 엘런은 용감하게 돌격하자 와이어가 엉켜 죽을 거고 거인이 그걸 보고 미친 듯이 웃을 거라고 빈정거렸다. 슬슬 때가 됐다. 어김없이 멱살잡이가 이어진다. 그걸 막는 것도 라이너의 일과. 병단에 들어온 뒤 항상 하는 일이다. 달라진건 없다. 저쪽,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애니가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것 외에는. 애니는 [[미나 캐롤라이나]]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식사에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식당의 전원이 소동을 구경하고 있는데 애니는 촛점 없는 시선을 정면에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베르톨트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월 로제 파괴는 해산식 다음 날로 정해놓고 있었다. 엘런을 일으켜 세워주고 있을 땐 몰랐지만, 엘런은 정말 계속 나아가는 녀석이었다. 진격의 거인. 그날 마르코가 먹히고 전사로 돌아가길 결심하고. 애니와 함게 포획된 거인을 제거한 날. 그때 몇가지를 주의했더라면 지금처럼 틀어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벽 위에서 엘런에게 모든 걸 발설하고 그를 납치했을 때. 파트너 베르톨트에게 뒤를 맡기고 최후의 작전을 결행했을 때도 그랬다. 그때는 뭔가 돌이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그때, 엘런을 일으켜세워주던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엘런은 라이너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라이너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에게, 라이너는 이런 말도 해주었다.
* 가비를 구하고자 했던 파르코의 결심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비는 여전히 선두였고 이대로 가면 갑옷을 계승할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파르코가 중얼거렸다. 그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큰 길 곁에 병원이 보였다. 상이군인을 수용한 병원이었다. 어디든 한 군데씩, 혹은 온 몸이 망가진 엘디아인 병사들이 서성거리는 곳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가비는 뜻밖에 부름을 받았다. 우측 후방의 벤치였다. 거기서 왼발이 없는 병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레벨리오로 귀환하던 날, 그때 그가 도와줬던 장발의 귀환병이었다. 병사는 목발을 기대뒀던 옆자리를 비워주며 앉기를 권했다.
>여기에 심적 외상의 치료로 와있다만
병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가 이 시설에 와서 생각한 것들. 며칠 동안 그는 "왜 이렇게 됐을까"하고 고심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 몸도 정신도 피폐해지고 자유를 빼앗기고 종국엔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이런 끝이 예정된 줄 알았다면 누구도 전쟁에 나서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누구든 "무언가"에 등을 밀려 전장에, 지옥에 떨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그 "무언가"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다.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하나같이 같은 지옥에 발을 들인다. 예외가 있다면 단 하나. 스스로 등을 민 녀석들이다.
방이 대화가 불가능한 환경이었고 빌리와 마가트는 발코니로 나갔다. 빌리가 문득 묘한 말을 꺼냈다. 어쩌면 그게 자신의 일가를 소개한, 이 본부를 방문한 목적일지도 모르겠다.
- 추미애 . . . . 14회 일치
1985년,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었던[[http://news.tf.co.kr/read/ptoday/1418527.htm|#]] 서성환 변호사[* 서성환은 추미애보다 3살 많지만, 대학을 늦게 입학한 까닭에 같은 과 같은 학번의 동기였다. 두 사람은 연애를 하며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 하기도 했다고 한다.]와 7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457396|#]]
한 번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 중에 추미애 당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다. 추미애가 “영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 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 추미애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추미애는 그렇게 ‘껄끄러운 여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08&aid=0000021230|#]]
훗날 추미애는 이 일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172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2159849|#]]
* 남편인 서성환 씨는 아내와는 달리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법무법인을 설립해서 본업인 변호사 업무를 행하며 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내인 추미애에 대한 기본적인 외조나 선거 캠프 등에서 실무 작업으로 참여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외 행사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 [[KBS]] 2TV '슈퍼맘 다이어리'라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시청자의 반응은 "평소에 정치인으로서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여장부[* 이 때문에 정치인 스타일 중에서는 탱커형으로 종종 분류된다.]의 면모와 달리, 해당 프로그램 속의 주부 추미애는 대한민국의 여느 아줌마들과 같은 모습"이라는 평. [[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261|#]] 그리고 2017년 7월에는 KBS 2TV의 오락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출연하여 진행자인 [[이경규]]와 대화를 나눴다.
* 2000년 7월 5일, 동료 의원들 및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X같은 [[조선일보]]', '[[이회창]]이 이놈' 등의 발언을 했고, [[동아일보]] 기자와 싸움이 번져 '사주같은 놈', '누구의 지시를 받아 기사를 썼느냐'는 등의 불호령을 내렸다. [[정동영]] 등 동료 의원들이 말리면서 데리고 나오자 '정의가 바로 서야 하는데 왜 이러느냐' 하고 마당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다음 날, 조선일보에는 추미애의 'X같은 조선일보' 발언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곤욕을 치렀는데, 오프 더 레코드로 사석에서 나온 말을 기사화한 것은 업계 상도의에 어긋나는데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보복성 보도였다는 평가가 주론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47095|그날 추미애 의원에게 일어난 일들]]
* [[잔 다르크|추다르크]], 탄핵녀[[http://m.nocutnews.co.kr/news/871295|#]][*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로 트위터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본인이 직접 언급], 추장군, 오야붕[* 정작 이 별명은 [[문희상|이분]]한테 밀려 잘 안 불린다(...).], 느와르메이커, 추임스 미애보이[* [[제임스 매커보이]] 닮은꼴], 돼지엄마, 추애미, 애미추, [[제이미 라니스터|킹슬레이어]], 추날두[* 추미애라는 글자를 키보드 영자로 치면 'cnaldo', 즉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약자처럼 된다. 브라질 축구황제 호날두가 현역이던 시절, 어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등에 C.Ronaldo 를 쓰기도 하였었는데, 이때 사람들이 씨날두, 크날두로 부르곤 했었다. 나중에는 등에 Ronaldo 만 표기한다.], 프로탄핵러, 선거의 여왕[* 그녀가 당대표로 재임한 기간중에 있었던 [[제19대 대통령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등의 별명이 있다.
* 2017년 8월, [[이혜훈]][* 당시 [[바른정당]]의 당 대표였다.], [[이정미(정치인)|이정미]]와 함께 여성 당 대표 특집으로 여성중앙(2017년 9월호) 화보를 찍은 적이 있다.[[http://woman.joins.com/magazine/Narticle.asp?magazine=204&articleId=5F928CE02FD444|#]]
* 2018년 3월,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당시 한창이던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미투 운동]]에 대해 "대한민국 남성들 중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을 거다."고 말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3132439|#]] 이에 대해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된 남성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도, 대한민국의 남성들을 싸잡아 엮어버린 부적절한 발언이란 비판을 받았다.
* 2018년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추미애 대표의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이 초선 의원이던 시절로 맞춰져 변경되었다.[[https://web.archive.org/save/https://blog.naver.com/choovision|#]] 심지어 블로그 포스트의 내용도 당시 시절로 깔맞춤되었다.[[https://web.archive.org/save/https://blog.naver.com/choovision/221242043007|#]][[https://web.archive.org/save/https://blog.naver.com/choovision/221242045204|#]] 만우절에 쓴 블로그 글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추미애 의원이 배우 [[채시라]] 씨를 닮았다고 말씀하셨다며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는 자뻑글도 있는데, ~~마땅히 대중의 공분을 사야할~~ 이 글은 다른 이유로 화제를 모았다. 그 이유가 알고 싶다면 [[https://www.dispatch.co.kr/1227442|이쪽으로]]. 이후 추미애 블로그에 이 만우절 드립 제작의 [[https://blog.naver.com/choovision/221245881984|후기가 올라왔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14회 일치
맵 곳곳에 숨겨져있는 빛나는 말 발굽. 획득하면 많은 양의 경험치와 함께 서부시대에 대한 정보를 해금시켜준다.
* 드와이트
작중에서는 링컨 카운티 전쟁[* 서부개척시대 미국에서 있었던 분쟁. 잡화점 주인과 농장주가 가축의 소유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다.]에서 사일러스와 같은 편으로 싸웠다.
실존인물. 보안관. 링컨 카운티 전쟁에 빌리 더 키드와 다른 편으로 참전했다. 빌리 더 키드를 죽인 사람으로 유명하다.
가장 악명높은 살인자 중 하나. 평생동안 41명을 죽였으며, 당시 와일드 빌 히콕 다음으로 빠르고 정확한 총잡이로 여겨졌다. 자면서 코를 시끄럽게 골았다고 사람 한명을 쏴죽였다는 전설이 있다.
* 와일드 번치
실존인물. 풀네임은 로버트 리로이 파커. 가명의 캐시디는 스승격 인물인 마이크 캐시디에게서, 부치는 와이오밍 주 락스프링스에서 도살자(Butcher)일을 했던 것에서 따왔다. 와일드 번치의 리더격 인물 중 하나였으며, 침착하고 합리적인 성격을 지녔기에 와일드 번치가 오랜시간 존속될 수 있게 하였다.
실존인물. 풀네임은 해리 알론조 롱가버그. 15살 때 와이오밍 주 선댄스에서 말 도둑질을 하다 잡혔기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실존인물. 풀네임은 키드 커리. 와일드 번치 내에서 제일 거칠다고 알려진 멤버였다. 자비없고 냉혹한 행동으로 유명했다.
실존 인물. 본명은 알렉산더 프랭클린 제임스. 제시 제임스의 형으로 [[남북전쟁]] 당시 제시 제임스와 함께 싸웠다.
실존 인물. 제임스 형제와 함께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도 여왕"이라고 불렸던 벨 스타의 첫 남편이기도 했다.
다루기 쉽고 숨기기도 쉽도록 총열을 자른 소총. 이 때문에 사거리와 정확도가 떨어졌다. 버려버려.
- 토리코/387화 . . . . 14회 일치
* 스타준은 충격을 이겨내며 토리코에게 그 둘이 형제이며 아카시아와 플로제의 자식이라 한다.
* 스타쥰이 리타이어 할 때, 무수한 식혼들이 나와서 토리코에게 G.O.D.을 억지로 먹여준다.
* 미도라와 아카시아는 놀라고 토리코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 적귀가 나와서 토리코와 함께 과거를 회상한다.
* 그들은 500년 전 태어난 아카시아와 플로제의 자식이었다.
* 그때 아카시아가 돌아와서 그 얘기를 듣는다.
* 식혼들은 어느 새 센터까지 가져와 토리코의 입에 밀어넣는다.
* 그리고 감사해야 하는건 오히려 자신이라며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식사는 정말로 행복했다고 말한다.
* "이제 내가 너의 몸의 일부가 되어 너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 아직 토리코 안에 있는 청귀와 제 3의 악마.
* 제 3의 악마는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없으나 GOD와 접촉했을 때 빼앗은 아카시아의 오른손을 흔들고 놀고 있다.
* 스타준의 사망. 예상대로 스타준과 토리코는 형제였으나 플로제와 아카시아의 자식이었다.
* 센터는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내면에 있는 상태에서는 먹을 수 없는 식재로 보이는데, 문제는 토리코 내면엔 청귀와 제 3의 악마가 아직 있다는 것.
- 하이큐/210화 . . . . 14회 일치
* 이후 우카이는 볼일이 있어서 몇 군데 돌아다녀야 하는데, 시라토리자와에도 잠깐 들러야 한다.
* 히나타는 내일 돌아왔을 때 혼내기로 하고, 오늘 훈련은 타키노우에도 와서 거든다고 한다.
* 시라토리자와 학원에서는 와시죠 감독이 "평소엔 적이지만 여기서는 아니다."라며 선수들에게 서로 훔칠 수 있는 것은 훔치며 서로 키우도록 하라는 훈시를 내린다.
* 초청된 선수들은 대인패스 훈련부터 시작하고 히나타는 시라토리자와의 볼보이들하고 통성명한다.
* 시라토리자와 볼보이들은 소집된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우리하곤 스타트 지점이 다르다"고 부러워한다.
* 훈련이 스파이크로 넘어가는데, 히나타는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향하다 와시죠 감독의 제지를 받는다.
* 그런데 와시죠 감독은 다른 볼보이보다도 히나타를 더 엄하게 꾸짖는다.
* 코치들은 와시죠 감독이 히나타를 남겨놓은걸 가지고 화제로 삼는다.
* 이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는데, 훈련에 앞서 전일본 남자대표팀 감독 "히바리다 후키"는 "일본, 높이와 파워에 무너지다는 말은 옛날 얘기"라고 잘라 말한다.
* 감독 사무실에선 또 히나타를 가지고 말이 나오는데 와시죠 감독은 "무대뽀인 젊은이를 싫어하는건 아니다"라며 의외의 말을 한다.
* 그날밤 시라토리자와 기숙사에선 우시와카가 내일부터 합숙에 참가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 와시죠 감독은 볼보이라고 못박으면서도 히나타에게만 엄하게 대하는 등 의식하고 있다.
- 하이큐/241화 . . . . 14회 일치
* [[히메카와 아오이]]의 연속 득점은 끊겼지만 츠바키하라 고교의 저력은 끝나지 않았다.
* 카라스노도 3학년 [[아즈마네 아사히]]와 [[사와무라 다이치]]가 주축이 되어 반격.
* 카라스노가 1점 리드한 상황에서 [[스가와라 코시]]가 [[츠키시마 케이]]와 교체한다.
* [[히메카와 아오이]]의 서브 득점이 끊긴 이후 [[카라스노 고교]]는 무서운 기세로 추격한다. [[타나카 류노스케]]가 서브로 득점. 점수를 17 대 17 동점으로 만든다. 츠바키하라 고교는 여기서 2세트 첫 번째 TO. 타나카는 첫 봄고 서브를 깔끔하게 넣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보인다.
* 타나카의 2회차 서브. 이번엔 카이카제가 받아서 마이코에게 연결한다. 마이코는 스파이크를 때리려 했으나 [[아즈마네 아사히]]와 [[히나타 쇼요]]의 블록으로 주저, [[공]]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2연속 득점. 점수는 18 대 17로 역전.
* 아테마는 에치고와 함께 블록하려 하는데 순간 라이트 측에서 뛰어오르는 히나타를 보고 망설인다. 하지만 그게 함정. 진짜는 레프트에서 뛰어오르던 아즈마네였다. 깨끗하게 꽂히는 아즈마네의 스파이크. 히나타를 너무 의식한 결과였다. 이 시점에서 츠바키하라는 두 번째 TO. [[오오사토 타츠미]] 감독은 다음 로테이션에 10번(히나타)가 내려가고 상대측 블록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으니 눈 딱 감고 강하게 치라고 지시한다.
츠바키하라의 서브. 테라도마리가 서브한다. 테라도마리에는 서브도 깨끗하게 꽂아넣으며 서브 에이스를 딴다. 20 대 20으로 따라잡은 츠바키하라. 하지만 다음 서브에서는 니시노야가 리시브, [[사와무라 다이치]]가 공격에 성공하며 다시 스코어는 21 대 20으로 한 점 차 리드.
* 경기는 계속되어 다시 21 대 21 동점. 츠바키하라 측의 선수 교체로 아테마가 내려가고 미카와가 들어온다. 교체된 미카와가 서브에 성공하며 이 시점의 스코어는 21 대 22로 츠바키하라 1점 리드. 그러나 벌어지기 무섭게 [[츠키시마 케이]]가 되갚아주며 다시 동점. 스코어가 정신없이 올라간다.
사와무라가 공을 살린다. 일단 주먹으로 되는대로 공을 튕겨넣는데 이게 제대로 먹힌다. 네트 반대편에 떨어지는 공.
꼭 이 세트를 가져오고 말겠다는 3학년의 의지. 스코어는 24 대 23로 카라스노의 매치포인트에 도달한다. 니시노야가 나이스 뒷처리라고 코멘트하는데 사와무라는 사실 "슬슬 안 맞을 타이밍"이라고 계산하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 로테이션이 다시 돌아 니시노야가 내려가고 히나타가 들어온다. 그리고 카라스노는 이 시점에서 츠키시마를 빼고 [[스가와라 코시]]를 투입한다.
- 하이큐/245화 . . . . 14회 일치
* [[호시우미 코라이]]와 첫대면한 [[히나타 쇼요]]. 초면인데 왠지 신경전을 벌인다.
* [[카라스노 고교]]의 선수들은 히나타와 비슷하지만 상위호환격인 그의 플레이를 보며 히나타가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 "작은 거인" [[호시우미 코라이]]와 마주친 [[히나타 쇼요]]. 물론 서로 초면에 알지도 못하는 사이지만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동행 중이던 [[야마구치 타다시]]는 혹시 둘이 아는 사이냐고 묻는데 히나타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상대방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 그리고 카모메다이 학원의 시합 시작. 카라스노 고교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주의깊게 경기를 지켜본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우카이 감독의 지인에게 붙들려서 아직도 이런저런 잔소리 듣는 중. 관중들 대부분은 눈에 띄게 키가 작은 호시우미에게 이목이 모인다. 히나타와 카게야마 역시 그의 활약에 집중한다. 카게야마는 전 일본 유스 직후 히나타에게 "정말 잘 뛰는 점프"에 대해서, 호시우미의 요령을 히나타에게 전달했던 적이 있다. 히나타가 그 점프의 주인공이 호시우미라는걸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점프가 범상치 않다는건 눈치 챈 것 같다.
* 호시우미는 그저 점프가 대단한 스파이커가 아니다. 수비면에서도 리시브와 블록, 위치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활약하는 좋은 선수다.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는 그는 중계진도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 빛나는 활약을 한다. 그 플레이에 관중들까지 단숨에 팬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서브 차례에서 깔끔한 점프 서브로 서브 에이스까지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전천후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 [[사와무라 다이치]], [[아즈마네 아사히]]와 관전 중이던 [[스가와라 코시]]는 문득 이런 염려가 생긴다.
3학년들은 코트 바로 옆에서 히나타가 열심히 경기를, 호시우미의 플레이를 관찰하는게 보인다. 스가와라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하지만, 사와무라와 아즈마네는 거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호시우미는 바로 옆에서 히나타가 상황을 보고 있던걸 눈치챈다. 둘은 매점에서 그랬던 것처럼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떨떠름한 표정의 호시우미와 달리 히나타는 꾸벅 인사를 하고 후다닥 도망쳐 버린다. 그 모습을 찡그린 표정으로 호시우미가 바라본다.
팀으로 돌아온 히나타. 우카이 코치가 돌아와서 막 짐을 꾸리는 중이다. 야마구치가 왔느냐고 말을 거는데 그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다. 히나타가 호시우미를 의식하게 된 걸 눈치챈 3학년들은 그의 반응을 주의깊게 살핀다.
엄청나게 만족한 얼굴의 히나타. 뭔가 뿌듯해 보이기까지 하다. 야마구치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카게야마는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히나타의 멘탈을 걱정했던 스가와라는 괜한 걱정이었다며 한숨을 쉰다.
- 홍국영 . . . . 14회 일치
서울 풍산 홍씨들의 비조격인 홍이상의 8대손, 선조의 적녀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6대손으로서, 역시 영안위 후손인 [[혜경궁 홍씨]]와 11촌의 동문이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그의 아버지 [[홍낙춘]]에 대해 "광증이 있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개 홍낙춘이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인물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조부 홍창한은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이고 백부인 [[홍낙순]]은 대과에 급제했고 숙부인 홍낙빈도 진사였으나, 홍낙춘은 원빈이 후궁이 되기 전에는 관직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772년]] 9월 정시(庭試:별시의 일종) 문과에 병과 11위<ref>15명 중에 15위였다. 출처 조선문과방목 영조48년 정시</ref> 로 급제하였다. 대과에 급제하고도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이듬해 2월부터 가주서(假注書)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 해 [[4월]] [[정민시]]와 함께 한림소시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영조]]를 보좌하는 사관으로 봉직하기 시작했다. [[한중록]]에서는 그가 사관으로 봉직할 당시 [[영조]]가 홍국영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쓰고 있다. 이듬해인 [[1774년]] 3월에는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다. 세간에 홍국영이 과거 급제와 동시에 설서에 임명되었다는 설이 많이 퍼져있는데<ref>박광용《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 1998)와 이덕일《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고즈윈, 2008)에서는 홍국영이 과거 급제한 달에 바로 세손의 시강원에 임명되었다고 적고 있다. </ref>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 정조|정조]]와는 동궁시강원 설서가 되면서부터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이 당시 궁료들이 서연에서 아뢴 말들을 모아 《현각법어》(賢閣法語) <ref>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규6836</ref> 라는 책을 펴냈는데, 실제로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홍국영의 언행이라고 한다. 《명의록》 등은 이 시기 홍국영이 "세손의 오른날개(右翼)"라고 불렸다고 적고 있다.
[[1776년]] [[3월]] 정조는 즉위하자 마자, 정적이었던 홍인한, 정후겸 일당을 숙청했다. 이어 당론서인 《명의록》을 펴내 이 조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홍보했다. 흔히 홍인한-정후겸이 정조의 즉위를 막았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으나 이는 와전된 내용이고, 이 책에서 밝힌 공식적인 죄명은 첫째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은 것과 둘째 세손의 오른날개, 즉 홍국영을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책에서 정조는 홍국영을 '의리의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가 자신의 즉위과정을 도운 1등공신(소위 동덕회원同德會員)이자 최측신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군문의 장임으로는 정조 즉위년 11월 수어사에 임명되었던 것을 시작으로 잠시 총융사를 거쳐 [[1777년]] 5월에는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대개 금위대장과 훈련대장을 돌아가며 맡았다.(그러나 훈척만이 맡을 수 있는 호위대장에 임명된 적은 없다.) [[1777년]](정조1년) 7월, 전술한 [[홍상간]], [[홍계능]]의 궁궐자객침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사건 연루자에 호위청의 무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이유로 호위청을 축소하였는데 <ref> 이 때문에 호위청은 3청에서 1청으로, 인원은 1000명에서 350명 가량으로 축소되었다. </ref>, 대신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하고 홍국영을 그 대장에 임명 하였다. 정조는 숙위대장에게 특별히 대장패와 전령패를 차게 하며, 안으로 위장, 부장, 금군과 도감의 군병, 각문의 수문장ㆍ국별장과 밖으로 궁궐 담장 바깥에 삼군영의 입직하는 순라까지 매일 숙위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런 보직들은 대개 겸직이었으며 그의 대표적인 보직은 도승지와 훈련대장/숙위대장, 약원부제조였다.<ref>홍국영은 (원빈 사후 2개월 가량을 제외한) 집권 기간 대부분 동안 약원부제조직을 맡았다. 이는 임금의 최측근인 그가 임금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하루동안 임금과의 공식적인 면대를 2회 이상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도 해석된다.</ref> 그외 각종 제거 역시 다수 겸직하였으며 잡류 제거직으로 인한 격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록도 종종 보인다.
정조 초기의 가장 주요한 사업이라면 규장각 설치가 꼽히는데, 정조의 최측신이었던 홍국영 역시 규장각과 관련이 깊다. 그는 제일 처음으로 규장각 직제학(直提學)에 임명된 관료였으며, 유명한 규장각 서얼 사검서관의 서용 역시 홍국영의 천거와 설득으로 이뤄졌다. 다만 홍국영 축출 후 규장각 내각일기에서 그에 관한 기록을 삭제하여 새로 작성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 홍국영이 규장각에서 실제 이행했던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 은퇴와 방출 ===
[[1779년]] [[음력 9월 26일]] 홍국영은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조정의 실직(實職)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담은 은퇴 상소를 올렸으며, [[정조]]는 당일 이를 수락한다. 이때 정조는 불과 32세의 홍국영에게 [[봉조하]] 직함을 내려주는데, 일찍이 백발의 봉조하는 있어도 흑발의 봉조하는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고 하여 그는 “흑두봉조하”라고 불리게 된다. 《한중록》과 《정종대왕행장》 등 사후적인 기록에서는 공통적으로 홍국영이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난 것 자체가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정설로 통하나, 이와 같이 사퇴시킨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 홍명희 . . . . 14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그리고 1919년 괴산에서 [[3.1 운동]]에 참가.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수립을 보고 왔으며[* 이 당시 이광수와 친해졌다. 이때 벽초는 이광수에게 톨스토이의 책을 권했다고 한다.] 1927년 [[신간회]] 창설에 참가하여 부회장직을 맡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우리에게는 소설 <[[임꺽정]]>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단 한편의 소설 《임꺽정》(林巨正)이 1928년부터 13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을 비롯해 1930년대 그가 쓴 거의 모든 글은 조선일보와 자매지 '조광'에 발표됐다. 여담으로 일제치하에서 수감된 문인들중 유일하게 옥중집필이 허용된 작가가 홍명희 였다. 홍명희가 수감된이후 임꺽정이 연재중단되자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총독부 관리들조차 임꺽정에 맛들려서 제정신을 못차렸던 상황. 옥중에서 임꺽정 집필이 완료되면 총독부 관리들이 먼저 읽고 조선일보에 넘겼다고 한다.
그밖에도 [[신간회]] 운동을 주도했고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대일보 사장,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위당 [[정인보]]와는 사돈 지간으로, 홍명희의 며느리가 정인보의 딸인 정경완 씨이다. 정경완 씨는 해방 뒤 홍명희의 뒤를 따라 북한에 남았고, 평양에 거주하고 있다.
이후 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 내각 부수상 등으로 주요정치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전쟁에 반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북한 부총리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부분 월북 인사들이 숙청당한 것에 비해 홍명희는 성공한 삶을 누렸다고 볼 수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와도 개인적으로 친하였다. 실제로 김일성은 벽초를 극진히 존경하고 예우했다. 홍명희의 계모는 홍명희를 따라가지 않고 괴산의 집을 지키다가 6.25 전쟁 중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는데 북한군이 후퇴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그 시신의 수습을 명령했을 정도였다.
남한에서는 [[김일성]]과 친했던 점,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잘 대우받은 점 때문에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1990년대 중순부터에서야 서서히 알려졌는데, 그의 이름을 재발굴하려던 국내 학자들도 홍명희와 더불어 [[이태준(소설가)|이태준]]이라든지 여러 월북 작가와 더불어 꽤 여러가지 골치아픈 문제를 겪은 바 있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절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한용운이 홍명희보다 9살이나 많음에도 저렇게 서로 격의없는 것이 좀 의아할 수도 있을텐데, 지금은 1, 2년 차이로도 형동생이 나뉘지만 당시에는 위아래로 10년 정도는 그냥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 年長以倍(연장이배) 則父事之(즉부사지) - 나이가 배나 더 많은 사람에게는 아버지 섬기듯 하고, 十年以長(십년이장) 則兄事之(즉형사지) - 십년이 더 많으면 형님 섬기듯 하며, 五年以長(오년이장) 則肩隨之(즉견수지) - 오년이 더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되 조금 뒤서서 따라간다. 群居五人(군거오인) 則長者必異席(즉장자필이석) - 다섯 사람이 한데 모여 있을 때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자리를 따로 하는 것이다. - 예기]그런데 홍명희의 장남 홍기문은 아버지와 열다섯 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자기 친구가 알고보니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행사 때 아버지 친구이자 자기 친구인 사람이 오면 대하기가 꽤 곤란했다고.
[[괴산군]]에서 그의 생가와 업적을 조명하려 하자 주민들이 월북한 '빨갱이'가 뭐가 위인이냐고 격렬히 반발하기도 했다.
참고로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시인 김소월이 사위이다.당시 홍명희와 김소월의 아버지는 친구였고 둘이 의견이 맞아 홍명희가 딸을 김소월네로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 황효진(기업인) . . . . 14회 일치
[[아프리카TV]]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방송했던 게임 BJ이며 [[BJ]] 소닉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설립한 신발 브랜드 [[스베누]]의 대표이기도 했다. 1988년 5월 31일생이며, 강원도 [[삼척시]] 출신이다. 아이디는 sonic_be. 현재는 glow`hyojin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 소닉이란 닉네임의 유래는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소닉 더 헤지혹]].[*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어릴 때 [[메가드라이브|슈퍼겜보이]]로 [[소닉 더 헤지혹 3|소닉 3]][[소닉 & 너클즈| & 너클즈]]를 플레이한 것이 추억에 남아 닉네임을 소닉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닉 스타리그]]의 로고와 본인의 오너캐에도 소닉이 자주 출연한다.]
2008년 9월 16일에 군 입대해서 [[제8기계화보병사단]] 직할전차대대(현 81전차대대)에서 K1전차 승무원으로 군 복무를 하다가 2010년 7월 29일에 전역했다. 이등병 때 [[고무신#s-4|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그래서 관심병사가 되었지만 주위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BJ 활동 이력 덕분에 대대장배 스타리그 진행을 했다. 중대별로 대표 1명씩을 뽑아서 대회에 출전하였고, 군용 PC에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설치할 수 없었기에 소대장들의 개인 PC를 이용하여 대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일명 전승리그(전차대대 명칭 이 전승대대)로 매년 열릴 것이라 기대하였으나 1회성으로 끝났다. 본부중대가 1등을 하였으며, 황효진과의 번외 경기에서 황효진이 1등에게 패배하였다.
그런데 [[2011년]] 6월에는 [[마재윤|마모씨]]를 초청해 게임을 하게 만들고 "'''실제로 만나봐야 한다. 그런 일이 생긴 이유가 따로 있다.'''" 따위의 말을 하며[*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다. '''이유 없이 죄를 저지른 사람은 없으니까.''' ~~그 이유가 돈이라는 게 문제지~~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지만, 그 행동 때문에 누가 피해를 입었다면 어떤 이유가 있었든 그 행동은 정당화되지 못한다는걸 알아두자.] '''[[마재윤|마모씨]]의 조작 행동을 옹호해서''' 까였다. 아프리카의 특성상, 방송국 메인에 스폰서 링크를 달고 돈을 받는데 랭킹이 떨어져 스폰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무리수를 두었다는 게 지배적이다. 그런데 원래는 마재윤을 이용해 자신의 방송을 홍보하려는 계획이었는데, 마재윤이 스스로 아프리카 방송을 열어버리고 [[철구(BJ)|철구]]와 손을 잡았다. --뒤통수 돋네-- --이때부터 기질이 있었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후에 같이 [[소닉 스타리그]]를 중계하던 [[김태형(1973)|김태형]]~~[[유흥업소|이 사람도 결국 흑역사가 되었지만]]~~이 이 사실을 묻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스타팬들 중에서도 특히 [[스갤]]에서는 황효진을 매우 싫어하는데, [[2008년]] 자기 카페를 만들어 놓고 [[스동갤]]에 자신의 동영상을 올리고 클릭하면 자신의 카페로 가는 링크를 걸어놓아 [[스동갤]]을 자기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로 이용하는 짓을 해 욕을 먹었다. 물론 [[스동갤]]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까였고, [[스갤]]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디시 서버가 불안정[* DB error를 두부에러라 불렀다고 한다.]한데 무슨 짓이냐고 맹비난, 소닉이 사과하며 동영상 업로드를 그만두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술한 대로 --[[마재윤]]--을 아프리카로 불러들인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기에 극렬 안티가 된 사람도 있다.
[[2012년]] 신발팜이라는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인터넷 방송은 약간 소홀히 하는 모습이 보였다. 과거부터 변하지 않는 개드립과 수준이 떨어진 게임 실력으로 인해서 방송이 점점 재미없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던파걸 출신인 [[민주희]]와 사귀는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 [[싸이월드]] 등에 들어가 보면 다정다감하게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고, 소닉이 인터넷 방송을 할 때 민주희가 매니저를 보고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하지만 2015년 6월 개인방송에서 밝히길 1년 전쯤에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소닉과 헤어진 선택은 옳았다~~]
=== 사기 혐의와 드러난 밑천 ===
그런데 스베누와 관련하여 여러 [[스베누#s-4|비판]]을 받아오다 결국 [[2015년]] 12월 사기혐의 피소를 당한 상황. 가맹점주, 하청 제조 업체, 에이전시로부터 집단으로 고소를 당했다. 가맹점주들은 합정동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까지 열었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3201218|#]] 또한 스베누로부터 대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해 위기에 처한 제조업체 공장주들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상경해서 삭발식을 벌이는 등 강경하게 항의에 나섰다.[[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770|#]]
심지어 이렇게 대금 지불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작 황효진 자신은 법인 명의로 [[페라리 458 이탈리아|페라리 458 스페치알레]], [[벤틀리 컨티넨탈]],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메르세데스-벤츠 CLS]] 등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외제차들을 마구 뽑았으며 심지어 피소 직전까지도 [[여자친구]]에게 2,000만 원 정도의 [[피아트 500]]을 선물하고[* 2,000만 원 정도의 소형차라 고가의 차량이라고는 볼수 없지만 [[결혼]]이나 [[약혼]]한 사이도 아닌 [[여자친구]]에게 주는 선물로는 상당히 과하다고 볼 수 있다.] 4억 원을 훌쩍 넘기는 [[롤스로이스 레이스]] 등 다른 고급차들을 뽑고 있었다.[* 황효진이 사용한 방법은 법인리스로 [[스베누]] 명의로 자동차를 리스 구입한 것이다. 차는 황효진이 타지만 소유주와 대금 지불은 [[스베누]] 회사 몫이다(아닌 경우도 있으니 자세한건 추가바람). 일반적인 경영자라면 회사가 큰 이익을 보지 않는 이상 리스차량을 마구 지르지 않는다. 회사가 리스금액을 낸다는 것은 곧 회사 순이익이 그만큼 줄어듦을 말하기 때문.][* 중소규모 사업자가 법인리스로 비싼 차를 사는 경우는 대체로 버는 금액에 비해 쓰는 돈이 적을 경우 세금이 왕창 나오기 때문에 그 세금 낼 돈으로 리스값을 비용 처리 하는 경우이다. 그래봤자 보통은 EQ900, 더 쓴다면 S클래스 한 대 뽑는 정도지, 어지간히 장사가 잘 된다 해도 저 차량 모두 비용처리를 해야 할 만큼 버는 게 많았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황효진이 [[코무로 테츠야|이 인간]]을 몹시 따라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똑같이 사기꾼으로 전락한 것도 함정~~[* 하필 이 둘은 자신이 얻은 돈을 툭하면 흥청망청 써버리기 일쑤고 평소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매우 나빴다는 점도 똑같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이 개정되어 비영업용소형승용자동차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고 법인차량과 개인사업자의 차량에 대해 감가상각비와 그 자동차의 유지에 관련된 모든 비용에대해 제재가 가해지게 되었다. 요약하면 법인명의 차량으로 이런 고가의 차량을 구입해서 대표이사가 개인목적으로 타고다니면 업무 미사용으로 보아 법인세법상 감가상각비,자동차세,수선유지비는 물론이고 리스료나 렌트비용 등 일체의 비용을 부인하여 법인세를 물리며 그 법인의 대표이사에게는 자동차를 운용하면서 얻은 이익상당액을 소득으로 보아 소득세까지 왕창 물려버린다[* 예를들어 2억짜리 고가의 차량인경우 감가상각을 5년 정액법으로 강제상각시켜 4천만원의 감가상각비용을 계산하고 그에대한 유지비용까지 전부 가산해서 상여처분을 때려버린다. 만약 위에서 계산된 금액이 감가상각비 4천만원을 포함해서 5천만원이고 업무에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거나 전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5천만원을 대표이사의 근로소득으로 보아 소득세를 물린다. 대표이사는 이미 법인에서 근로소득을 얻고 있으므로 저렇게 상여처분이 된 금액이 더해져 높은 한계세율이 적용되면 만만치 않은 소득세를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직장에 취업해서 연말정산영수증을 떼어 본 사람들은 그 영수증에 인정상여라는 칸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저런 상여처분을 때려맞은 금액이 찍히는곳이다. 보통의 일반 근로자들이 인정상여처분을 받을 일은 없으니 당연히 0원으로 찍혀있다. 한편 위 5천만원이 법인세법상 손금부인되어 5천만원에 대해 법인세를 법인이 별도로 부담하는건 덤.]. 또한 이러한 자동차를 팔아서 손실이 난다고 해도 연간 800만원 한도로 손실을 인정하여 처분할 때 까지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세법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황효진~~
[[http://sports.news.naver.com/esports/news/read.nhn?oid=236&aid=0000143511|2016년 6월 나온 기사]]에 따르면 황효진은 더 이상 회사 일에 관여하지 않으며 [[롤챔스]] 게임단이 [[스베누 코리아]]로 바뀐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철구(BJ)|철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가 부산 신발공장에서 일하는데 스베누의 신발 발주대금 미지불로 인해 부산 거의 대부분의 신발 공장들이 줄도산 났다고 한다. 당연히 공장주들은 파산하였고 공장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더 웃기는 건 이상호, 랜딩 등의 BJ들도 이미 신발팜 때부터 비제이들 스폰비도 못 줄 정도로 소닉의 사업은 망할 위기였다고 증언했다. 이후 소닉이 위기를 맞은 신발팜을 기사회생하겠답시고 만든 기업인 스베누는 맨유에 돈을 퍼주며 --마지막 발악-- 계약을 하거나 [[아이유]]같은 비싼 연예인들로 광고를 하는 등 노이즈 마케팅만 줄창 했지만 정작 신발은 원가 절감을 위해 저급한 원단으로 신발을 제조하게 했고 이 와중에도 황효진 본인은 여친에게 고액의 선물을 퍼주고 자신은 비싼 집 외제차 등으로 허세력을 과시하며 살았다는 것.
더욱 충격적이게도 공장주들에게는 각서 따위를 쓰거나 스베누에 투자하겠다는 이름 모를 누군가를 대려와 공장주들을 안심시키는 등의 사기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고 황효진 본인은 다른 업자에게 횡령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횡령으로 긴급체포된 건 본인이었다. 이 인간이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방송이나 신문기사 등 매체에서 억울하다고 뻔뻔하게 호소하던 걸 생각해보면 [[소시오패스]]가 의심되는 수준.
군 복무 중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흡연을 시작한 이후로 더욱 안 좋아졌다고 하는데, 사례들로는 대표적으로 비가 오는 날 고등학생인 동생 BJ에게 우산도 없이 웰치스를 사오라고 한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ib&no=344076|웰치스 사건]]과, 군 생활 중 같은 소속 BJ들에게 부탁하여 개인적인 물건을 사서 보내라는 심부름, 당시 [[구로디지털단지역]] 부근의 노는대학 스튜디오 방문을 위해 지방에서 온 BJ들을 본인 집에서 하룻밤 숙박시켜주며 청소와 많은 잡일을 시키는 등 평소에도 방송 세팅과 방송매니저 보기, 그리고 본인이 할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잡일들을 동생 BJ들에게 떠넘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소닉은 방송에서 [[웰치스]]를 자기 머리에 쏟으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사회생활은 녹록치가 않다는 둥 궁색한 소리를 했다. 현재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결과적으론 좋지 않게 끝난 거 같다.
- 후지와라 섭관가 . . . . 14회 일치
[[일본]]의 귀족 가문. 후지와라 씨(藤原氏)가 천황가의 [[외척]]이자 [[섭정]]으로서 지위를 세습하여, 이들을 후지와라 섭관가라고 부른다. [[일본 귀족]]의 정점에 서있는 가문이며, 섭가(摂家) 혹은 섭관가(摂関家)라고도 한다. 5개의 가문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에 오섭가(五摂家)라고 불린다.
제56대 [[세이와 덴노]](清和 天皇) 시기에 [[후지와라 요시후사]]가 섭관이 되면서 섭관가로서 후지와라 씨의 역사가 시작된다.
본래 이 무렵까지 황족이 아닌 신하, 후지와라 씨가 섭정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후지와라 씨는 천황가와의 혼인으로 인척관계가 강해졌고, 응천문의 변(応天門の変)이라는 사건을 처리한 것을 계기로, 반씨(伴氏), 기씨(紀氏) 등의 라이벌 씨족을 배척하여 섭정이 될 수 있었다. 이 때부터는 오히려 후지와라 가문이 섭정을 차지하는 것이 관례화 되었다.
897년 즉위한 제60대 [[다이고 덴노]](醍醐天皇) 부터는 무려 170년 연속으로 후지와라 씨를 [[외척]]으로 둔 덴노가 즉위하게 된다.
레이제이 덴노의 5명의 동생들 가운데 가장 평판이 높았던 것은 2남 타메히라 친왕(為平親王)이다. 하지만 타메히라 친왕의 어머니는 후지와라 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지와라 씨의 영향으로 3남 모리히라 친왕(守平親王)이 황태자로 선택된다. 모리히라 친왕은 제64대 엔유 덴노(円融天皇)로 즉위한다.
이 황태자 분쟁을 계기로 하여 후지와라 씨는 아예 후지와라 씨의 딸 이외의 입궁 자체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14회 일치
2016년 2월 27일 밤,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니시구에 있는 [[예비교]]에 다니는 19세 여성 키타카와 히카루(北川ひかる)가 같은 예비학교에 다니는 19세 소년에게 살해당한 사건.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구마모토 현 아사쿠사 시(熊本県天草市) 출신이다. 현지에서는 수재로 평판이 좋아, [[진학교]]로 알려진 현립 구마모토 고등학교(県立熊本高)에서 공부를 했으며,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검도]]를 배워서 검도 2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도부 단체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5년 봄에는 [[도쿄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여, 후쿠오카 시내에서 동생과 같이 살고 [[예비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범인 소년은 키타카와 히카루와는 같은 구마모토 현 출신으로 다른 학교를 나왔다. 평소 친구에게는 "키타카와 씨를 좋아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고 한다. "(키타카와 씨에게) 바보취급 당했다."고 경찰에 설명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오빠도 "교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부정하였다.
피해자와 범인은 특별히 관련성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피해자가 스토커 상담 등을 했던 적은 없고, 같은 예비교의 동급생 이상으로는 볼 수 없는 관계였던 것으로 같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학생의 발언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잘 모르지만 예비교에서는 평범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고, 데이트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평소 폭력적이거나 흉폭한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얼굴, 목, 머리 등 20곳 이상을 찔렸으며, 병원으로 옮겨지고 사망이 확인됐다. 현장에는 흉기로 보이는 대형 나이프 2개와 작은 [[도끼]]가 떨어져 있었다.
15분 뒤, 현장 부근의 경찰서에 19세 소년이 출두하여 「내가 했습니다. (키타카와 씨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요」라고 말했다. 소년은 손에 중상을 입고 입원했다.
범인 소년은 사립 남자 기숙사에 입주하여, 방향이 키타카와의 집과는 정 반대였기 때문에 미리 [[흉기]]를 준비하여 계획적으로 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안타깝게도, 3월 9일에 피해자가 제1지망으로 하고 있던 [[오사카 대학]] 법학부의 합격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살해당한 피해자는 법학부에 합격한 것이 밝혀졌다. 또 오사카 외 도쿄와 간사이의 3개 사립대학에도 합격하였다.
피해자의 아버지 키타카와 요우지(洋二)는 2월 29일, 후쿠오카 현경을 통하여 "가족에게 보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매우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코멘트를 했다. 딸에 대하여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노력을 많이 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하고 참을성 많은 딸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솔선하여 공부나 스포츠에 남다른 노력가였습니다. 고집도 부리지 않고 부모와 형제를 소중하게 하는 상냥한 딸이었습니다."라고 자필로 코멘트 하였다.
- Victoria II/정당 . . . . 13회 일치
상징색은 짙은 파랑색. 개혁을 항상 반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보수파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상징색은 노랑색. 정치적 개혁은 항상 지지하지만 POP의 투쟁성이 높을 경우에만 사회적 개혁을 지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무정부 자유주의자와 연대한다. 게임 내에서는 [[흥선 대원군]] 정권이 이 성향으로 등장한다.
상징색은 짙은 노랑색. 초반부부터 등장한다. 개혁을 항상 반대하며 폐지하려 하는 이들. 허구한날 정권을 잡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자유주의자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상징색은 빨강색. 중반부부터 등장한다. 사회적 개혁을 항상 지지하지만 정치적 개혁은 POP의 투쟁성이 높지 않은 이상 반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공산주의자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상징색은 짙은 빨강색. 사회주의자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등장한다. 사회적 개혁을 항상 지지하지만 정치적 개혁은 반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사회주의자와 연대한다.
플레이어와 자본가 POP의 공장, 철로의 관리 가능 여부와 세금 한도, 공장 효율 등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못 알아먹겠으니 관리 가능 여부만 쓸거임 ^오^.
종교와 국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종교는 개인 취향으로만 취급된다.
국가와 국교는 하나다. 소수 종교는 차별받는다.
군대가 나라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 국방예산을 최대치까지 배정할 수 있으며, 부대의 보충 속도와 조직력 회복 속도가 50% 증가한다. 전쟁 명문을 조작하는 속도가 30% 증가한다. 또한 동원령을 내렸을 시 일반적으로 모집 가능한 양의 4배의 병력을 징집하게 된다. 다만 군대가 퍼먹는 보급품이 10% 증가한다.
정부가 군대를 강하게 지원하길 바란다. 국방예산을 최대치까지 배정할 수 있으며, 부대의 보충 속도와 조직력 회복 속도가 25% 증가한다. 전쟁 명문을 조작하는 속도가 20% 증가한다. 또한 동원령을 내렸을 시 일반적으로 모집 가능한 양의 3배의 병력을 징집하게 된다.
군대를 돈 먹는 하마로 여기며 다른 곳에 예산을 쓰고싶어한다. 국방예산을 기본치의 175%까지 배정할 수 있으며, 부대의 보충 속도와 조직력 회복 속도가 25% 감소한다. 전쟁 명문을 조작하는 속도가 20% 감소한다. 또한 동원령을 내렸을 시 일반적으로 모집 가능한 양의 2배의 병력을 징집하게 된다. 군대가 소모하는 보급품이 25% 감소한다.
모든 전쟁을 범죄라고 생각하며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까지 부정적으로 본다. 국방예산을 기본치의 150%까지 배정할 수 있으며, 부대의 보충 속도와 조직력 회복 속도가 50% 감소한다. 전쟁 명문을 조작하는 속도가 40% 감소한다. 군대가 소모하는 보급품이 50% 감소한다.
- 김윤환 . . . . 13회 일치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지역 언론사인 [[영남일보]]와 [[대구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 일본특파원 및 편집국장 대리를 거쳤다. 이 시절에 오랫동안 주일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금권 정치, 계파-계보 정치, 막후 정치를 보고 배운다. 중간에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창환(정치인)|김창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는 등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978년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고등학교 동창인 노태우의 권유로[* 사석에선 [[전두환]], [[노태우]]와 서로 반말하면서 술 마시는 사이라고 한다.] [[민주정의당]] 창당 멤버로 들어갔다. 민주정의당 전국구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아래 [[청와대]]와 집권당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면서 정치권을 주무르는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한다.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퇴임한 뒤 민주정의당으로 복귀했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군위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개원한 뒤 민주정의당 원내총무에 임명되었고, 평화민주당 원내총무 [[김원기(1937)|김원기]], [[통일민주당]] 원내총무 [[최형우(정치인)|최형우]], [[신민주공화당]] 원내총무 [[김용채]]와 함께 4당 체제를 이끌어가는 원내 사령탑으로 화려한 활약을 펼쳤다. [[3당 합당]] 이후에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무제1장관을 맡으며 정계의 중심에서 활약했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지역구에서 4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 이후 김윤환은 정치권에 몰아친 사정의 태풍을 피해 해외에서 체류하다시피 했다. TK민정계의 동료였던 [[박준규(1925)|박준규]]와 [[박철언]] 등이 대거 정계에서 축출당하는 상황에서 김윤환은 대통령을 만들어낸 2인자임에도 오히려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1995년 2월 [[김종필]]이 민자당을 떠나고 6월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하자 김영삼은 김윤환을 통해 당과 범여권을 안정시킬 필요를 느낀다. 이에 김윤환은 다시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복귀했고 얼마 뒤에는 민자당 대표위원에 취임하여 명실상부하게 여당의 2인자가 되었다.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뒤에도 김윤환은 대표위원으로 유임되었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신한국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139명 중 그의 계보로 꼽힌 당선자는 무려 26명으로 전체의 5분의 1에 육박했다.
이렇게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김윤환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내 자신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이회창]]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면서 다시 '킹 메이커'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당내 민정계와 영남세력을 대거 규합해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김윤환은 3회 연속으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정작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이때부터 김윤환의 정치적 생명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이 밀었던 이회창 총재에게조차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토사구팽|팽]]당해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 당시 이회창의 참모가 [[윤여준]]이었는데, 그간 총선의 화두는 공천이었음을 상기시키며, 김윤환을 위시한 민정계, 구시대 인물들을 쳐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회창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윤여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윤여준의 전략대로 중진급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 수십여명을 날리고 정치 신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운 개혁 공천은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순(1928)|조순]],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3김 정치 + 이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허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상당히 그럴싸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체성이 불문명한 정당으론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양당 구도에 밀려 지역구에선 [[춘천시]]의 [[한승수]] 前 경제부총리, 전국구에선 후보 1번이던 [[강숙자]] 등 총 2명 당선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본인 역시 자기 지역구인 구미시에서 한나라당 [[김성조]] 후보를 상대로 10% 차의 패배를 당했다.(41.7%:32.1%)
16대 총선 낙선 후 김윤환은 민국당의 대표를 맡아 당을 추스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몸에는 2년 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암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회창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아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 당시 김윤환을 만났던 [[최병렬]]의 말에 따르면 함께 [[스테이크]]를 시켜놓고는 썰어놓지도 않은 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회창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고 한다. 암이 자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약세와 [[자유민주연합]]의 패망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살려 3당 연합(혹은 DJP 재연합)에 낄 수 있었지만, 2001년 10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로 DJP 연합이 완전히 붕괴되자 유일한 지역구 의원 [[한승수]]도 탈당해버렸다.[* 한승수는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유지하다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7월 장관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후보의 외교담당 특별자문이 되었다.] '''이 시기 "호남이 밀어 주는 영남 대통령론"으로 [[이회창]]을 패망시키는 정치공학적 구도를 구상했고 [[듣보잡|이 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낮아 가능성이 없다]]이라고 여겨졌던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과 김윤환이 협력하는 일은 없었고[* YS에게 팽당한 5공, 유신 세력을 포용한 김대중과는 달리, 노무현은 3당 합당 당시부터 보여주었던 자신의 원칙대로 옛 군부 정권 시절 인사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주변 사람들을 세웠다. 5공 시절부터 킹메이커로 이름을 날린, 그것도 TK의 좌장이나 다름없던 김윤환이 노무현과 연합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던 셈.] 김윤환 본인은 대선 직후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114|#]]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영남후보를 세워서 영남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순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 없이 세상을 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13회 일치
* 트와이스는 극도로 불안정한 정신을 가진 인물. 빌런인 트와이스로서 삶을 사는 걸로 겨우 중심을 잡고 있다.
* 추레해 보이는 아저씨의 독백으로 시작. 이마에 깊은 흉터가 있는 아저씨다. 그는 창가에서 아메리칸 스피릿을 피워물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이것이 늘하는 일과일 뿐이라 여기는 한편 "특별한 일"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의 거주지는 카나가와현 카미노구. 그 싸움 이후 올마이트가 은퇴한지 반달이 지난 시점이다.
* 미디어에서는 연일 히어로 사회의 위기를 떠든다. 드물게 미야기 캐스터처럼 진지한 의견을 내놓는 언론인도 있다. 아저씨도 그만은 인정하는데, 한편으론 또 인정 못한다. 언론에서 말하는건 결국 "올마이트란 존재가 너무 큰 존재"였다는 것. 그의 존재로 인해 가려져 있던 것들이 은퇴와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엔데버가 그렇다. 지금은 명실상부 No.1 히어로지만 적어도 일반시민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민들은 엔데버로 딱히 안 되는건 아니지만 올마이트와 비교된다고 말하한다. 아저씨가 보기엔 너무 거친 인물이며 범인이 초인인척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를 초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는 불가항력으로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올랐다. 그건 그의 불행이다.
* 그와 통화하는 아저씨의 상태가 이상하다. 기란의 말에 동의하는가 싶더니 곧 부정하고 바쁘다고 하다가 갑자기 한가하다고 대답한다. 기란은 아랑곳 없이 "다비"의 행적을 묻는다. 곧 "시가라키 토무라"가 모이고 싶어한다며 조만간 호출이 있을 거라 알려준다. 아저씨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서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기란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는다. 아저씨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나"라고 힘겹게 중얼거린다.
기란이 찾던 다비는 어느 뒷골목을 누비고 있다. 고만고만한 빌런들이 그에게 시비를 거는데, 이런건 필요없다는 한 마디와 함께 모두 쓸어버린다.
* 아저씨는 이제 몸도 가누지 못하게 된다. "감싸야 된다. 분열된다."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그는 서둘러 마스크를 쓰는데 그 모습은 빌런연합의 트와이스다. "감싸면 하나야", 마스크를 쓴 트와이스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 새로운 소음이 들린다. 또다른 사건이다. 트와이스는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본래는 그도 평범한 빌런의 하나였다. 그의 개성은 "두 배". 하나를 둘로 늘리는 능력이다. 처음엔 자기 자신에게 사용했다. 자신을 둘로 늘리고 늘어난 쪽이 다시 자기를 늘리는 식으로 자신을 잔뜩 만들어서 부려먹었다. "본체"는 그들의 왕으로 편하게 지냈지만, 어느날 평화가 깨졌다. 분신이 그가 왕인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이다.
트와이스는 미친 놈들이 직접 있을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상대를 발견한 그는 이제 어떻게 할지 다음 작업을 구상한다. 이미 히어로 측도 빌런 측도 곤죽처럼 변모하기 시작했다. 중요한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자신이 어떻게 되고 싶나, 어떻게 하고 싶나. 그것이야 말로 중요하다.
쓸데없이 하드보일드하게 재등장한 트와이스. 개성은 하나를 두 배로 늘리는 능력으로 심플하지만 매우 활용도가 높다. 하지만 살아있는걸 늘리는건 리스크가 있는 모양인지 본편에서 언급처럼 분신이 진짜를 적대시하는 미친 상황이 발생한다.
마그너와 스피너의 일상 모습도 나왔는데 의외로 평범. 그런데 그다지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13회 일치
* 올마이트는 개인적 사정으로 나이트아이와 불편한 관계였고 그래서 직접 그를 소개해줄 수가 없었다.
*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는 근래에 화제가 되었던 "히어로 인턴 제도"에 1학년들이 참여하는 방안에 대한 회의 결과를 알려준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우선 교장 [[네즈]]부터가 "하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 애초에 완전 기숙사제로 전환한 이유 자체가 "히어로 학생들을 육성기간 동안 보호"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을 인턴제도에 투입하는건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턴제도에 관심을 보였던 학생들은 모두 실망하고 혼자 근신 받느라 뒤쳐져 있던 [[바쿠고 카츠키]]는 "꼴좋다"고 웃어재낀다. 그러나 아이자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호만 해서는 강한 히어로를 키울 수 없다"는 반대의견이 나왔고 결과적으론 이런 방침이 되었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그의 사이드킥 출신 [[서 나이트아이]]의 소개를 부탁받는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가 갑자기 왜 그 이름을 꺼내나 의아해하지만 인턴 제도와 [[그랜토리노]]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 전해듣고 납득한다. 미도리야는 다시 한 번 서 나이트아이의 인턴자리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올마이트는 의외로 단호히 거절한다.
마지막으로 "사정이 있어서 어색하다". 올마이트 개인적으로 그와 트러블이 있는 모양이다. [[프레젠트 마이크]]는 사적 감정이냐고 통렬한 태클을 건다.
그는 [[토오가타 밀리오]]를 호출했다. 그를 부른건 그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생활 중이기 때문. 미도리야는 처음에는 이 셋이 함께 앉아 있는데 어색함을 느꼈지만 밀리오와 대화하면서 금방 친해진다. 올마이트는 밀리오에게 "미도리야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묻는다. 밀리오는 잠시 생각하지만 대답보다는 "나를 불러온 건 미도리야를 서에게 소개해주라는 얘기"였다고 깨닫는다. 하지만 그도 나이트아이가 올마이트의 사이드킥 출신인건 알고 있었고, 굳이 자신을 끼워서 소개해주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밀리오는 나이트아이는 언제나 올마이트의 활약을 동영상으로 지켜보며 기뻐하고 있다며, 직접 말하는게 좋겠다고 권한다.
올마이트는 즐겁게 대화하는 미도리야와 밀리오를 보며, 사실 미도리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가 후계자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주말. 미도리야는 아침부터 바쁘게 출발한다. 이날이 서 나이트아이와 만나기로 한 날이기 때문. 다른 학생들은 한가하게 쉬고 있다. 하지만 바쿠고와 [[토도로키 쇼토]]는 임시면허 추가시험을 치러가야 하기 때문에 역시 일찍 기숙사를 나선다. 토도로키는 묘하게 설교꾼이 되어서 두 번째 기회를 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둥 잔소리를 해댄다. 바쿠고는 시끄럽다고 버럭하며 티격태격하는 중.
>지금부터 서와 만나서 이야기를 끝내기 전까지
건물로 들어서는 두 사람. 밀리오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건 여기까지고, 결국 결정권을 가진 것은 서. 미도리야 스스로의 힘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도리야는 어째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느냐고 묻는다. 밀리오는 딱히 잘해주는건 아니라면서도 그가 "엉망진창인 목표를 실현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 답한다.
그리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나이트아이는 매우 거창한 형틀에 버블걸을 묶어 놓고 자비없는 간지럼 태우기 형벌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13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는 [[미도리야 이즈쿠]]의 움직임을 주시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며 작전에 동참한다.
* 기존에 협조하고 있던 히어로들은 대부분 참석했다. [[패트껌]] 사무소도 물론 참석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얼른 가자며 의욕을 보이는데 선배인 [[아마지키 타마키]]는 언제나 그렇듯 시들시들하다.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야)|류큐]]의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옆에 있었는데 이들은 잘 모르는 환경이라서 긴장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경찰과의 협력 같은 상황은 별로 알려주지 않았다. 류큐도 이런걸 배우지 못해서 신인 시절엔 고생했다고 회고한다.
[[미도리야 이즈쿠]]는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아카데이마)|그랜토리노]]가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 담당 형사와 함께 있던 나이트아이는 그가 못 오게 되었다고 전한다. 경찰의 말로는 [[츠카우치 나오마사]]가 가져온 정보 쪽으로 움직인 모양이다. [[빌런 연합]]에 큰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데. 그랜토리노는 이 작전에 참여하지 못해 분해한 듯 하지만 형사는 어쨋든 작전에 지장은 없다고 여길 뿐이다. 이때 [[아이자와 쇼타]]는 오늘은 미도리야를 찾아와 자신도 나이트아이 사무소와 동행한다며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확인한다. 물론 미도리야는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뭐죠 대체? 아침부터 단체로 몰려와서...
* 아이자와와 미도리야가 날아간 경찰을 구한다. 조직원은 그대로 경찰들이 포중한 가운데로 돌격, 괴력으로 경찰의 힘만으로는 대처할 수가 없었다.
* 여기서 류큐가 나선다. 그녀는 개성을 발동해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이, 직접 핫사이카이의 부하를 제압한다. 그녀가 여기는 자신이 대처할 테니 다른 히어로들은 안으로 돌입하라고 하고 네지레와 오챠코, 츠유가 그녀를 서포트한다. 미도리야와 키리시마는 오챠코와 츠유를 응원하며 내부로 돌입한다.
내부에서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부에도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직원들이 일행을 방해했다. 가면을 쓰지는 않았지만 수색영장을 들이대는 경찰을 향해 개성을 사용한 공격을 가한다. 히어로들은 순식간에 이들을 제압하며 진격을 제촉한다. 나이트아이와 패트껌이 선두에서 이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13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와 [[토오가타 밀리오]]의 인연은 타마키가 초등학생이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반친구였다.
* [[아마지키 타마키]]의 네거티브한 성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타마키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됐는데 첫날부터 자기소개에 실패한다. 이름을 말하긴 커녕 우물거리다 "히..."라고 중얼거리고 끝났다. 모처럼 시업식에 맞춰 간 전학이었지만, "스타트부터 실패했다"는 자기혐오 때문에 다른 애들이 친구를 만들어 갈때 끼어들지 못했다. 그렇게 또 우울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려 할때, 구원이 내려왔다. 타마키는 거기서 [[토오가타 밀리오]]와 만났다. 풀죽은 타마키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친구. 그는 "히"라는 말이 혹시 "히어로"를 말하는 거였냐며 어떤 히어로를 좋아하느냐 묻는다.
* [[오버홀]]이 감금한 "에리쨩"을 구출하고 시에핫사이카이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아지트를 급습한 히어로&경찰 연합. 그러나 프로 히어로로 구성된 선두 그룹이 [[이리나카]]의 함정에 빠지며 후위와 분단된다. 이리나카는 우선 경찰 위주로 구성된 후위를 먼저 처리하려고 생각하는데.
* 타마키의 사무소 후배 [[키리시마 에지로]]가 "혼자 맡겠다"는 말에 반발한다. 이럴 때일 수록 공동대응해야 한다는데. 이때 핫사이슈 중 검은 마스크를 쓴 단발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날붙이를 든 녀석이다. 형사가 그 녀석은 "세츠노"이며 "화기를 쓸 수 없는 상대"라고 하는데. 무슨 개성인진 모르지만 성가신 모양이다. 세츠노가 바로 손을 올려 개성을 쓰려고 하니 [[아이자와 쇼타]]가 선수를 친다. 세츠노가 개성을 쓰지 못하자 옆의 대머리가 "개성을 지우는 개성"임을 간파한다. 그는 그걸 "에리의 열화 개성"이라 말하는데.
* 대머리가 총을 꺼낸다. 총기에 면역인 [[패트껌]]이 맨 앞으로 나와 일행을 지키면서 "총도 칼도 안 통하니 얌전히 잡혀라"고 위협한다. 핫사이슈들은 "그런건 목숨이 아까운 놈들한테나 통하는 말"이라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타마키는 공언한 대로 자기 혼자서 이 셋을 상대하겠다 재차 선언한다. 단발머리는 세츠노. 개성은 "절도". 대머리는 호죠. 개성은 "결정". 빵봉투는 타베. 개성은 "식". 이상 세 명이다. 타마키는 패트껌 사무소에서 타코야키를 충분히 먹어서 문어다리의 숙련도도 최고조에 달했고 지난 번 사건의 경험으로 원거리 공격에도 민감해진 상태다. 그는 이런 조무래기들 상대로 프로히어로가 몇 명이나 묶여 있는 거야 말로 적들이 바라는 일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후배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가 주저하나 이런 상황일 수록 프로들의 개성을 아껴두는게 좋다고 상사인 패트껌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 타마키의 각오가 인정받았다. 패트껌이 선두에 서서 출구로 향한다. 세츠노가 다시 개성을 쓰려고 하자 이번에도 아이자와가 선수를 친다. 다른 세 명도 아이자와의 시야에 들어갔다. 아이자와는 타베의 목을 꺾으면서 타마키에게 셋 전부를 봐뒀으니 무력화돼있는 동안 움직임을 막으라고 조언한다.
* 키리시마와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타마키를 혼자 두는 패트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 그러나 패트껌은 실력으로 치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중 타마키가 제일이라고 단언한다. 단지 마음이 약하고 네거티브가 심한 것이 흠이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런 상태로도 웅영고의 빅3 중 일각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칼이다. 검은 마스크 아래에 날붙이를 숨겨뒀다. 그것으로 타마키의 문어다리를 그어버렸다. 타마키가 움찔하는 사이 마침 아이자와의 무효화도 효력이 다해가고 있었다. 호죠가 자신의 개성 "결정"을 발동시킨다. 키리시마와 비슷하게 피부를 "결정"화시켜 단단하게 만드는 개성으로 보인다.
밀리오는 타마키와 정반대였다. 당시 밀리오는 벽을 통과하는 것도 무리였고 손은 겨우 빼내도 얼굴이 걸려버리는 등 엉망이었다. 그런 추태를 보일 땐 그저 놀림감으로 전락했지만 밀리오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놀려대는 친구들에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고 항변하면서 "그래도 다음번에는 성공한다!"고 꺾이지 않았다.
- 니엘(가수) . . . . 13회 일치
||<#ad84db> {{{#white '''가족'''}}} ||[[부모님]], 3남 중 차남[* 집안이 개신교인지라 형의 이름은 안다윗이다. 허나 남동생은 개신교와는 상관없이 안보성이라고.] ||
5인조 남성그룹 [[틴탑]]의 멤버로 메인보컬을 맡고 있다. 특색있는 목소리와 힘 있는 보컬이 특징이다. 팀 내 기럭지 담당이다
어린 시절 잠시 아역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데뷔 후 KBS 단막극 태권, 도를 아십니까와 [[투윅스]]에 카메오 출연했으며 최근에는 막내 창조가 주연한 [[MBC every1]] [[스웨덴세탁소]]에도 카메오 출연했다.
틴탑에서 유일하게 예능에 많이 나온다. [[세바퀴]]에서 천지와 함께 '''아기둥지새'''란 춤을 췄었지만..
2016년 12월 25일에 'TELEVISION'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본인의 [[https://soundcloud.com/music-niel/television|사운드 클라우드]]와 [[https://www.youtube.com/watch?v=baSC_y0FqAI|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틴탑]]의 메인보컬로 데뷔곡인 '박수'에서는 거의 혼자 노래를 다 부르다시피 했다.[* 니엘:천지:나머지 멤버의 파트비율이 약 70:20:10 정도로 차이가 났다 개인파트가 있었던 멤버는 니엘, 천치 ,캡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파트가 줄어 '향수 뿌리지마' 활동 때는 천지와 파트를 나눈 수준이었으나, 미치겠어부터 후렴구 담당이 되더니 To You에서는 [[창조(틴탑)|창조]]에게 파트를 많이 빼앗겼다. 데뷔 때에 비해서 파트가 많이 줄었다고 해도 곡의 비중은 상당하다.
데뷔 초 노래들인 박수나 Supa luv에서 보여줬듯이, 굳이 오토튠을 쓰지 않더라도 사이버틱한 연출이 가능한 특이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또 파워풀한 발성으로 인해 무대에서 폭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때문에 팬들은 간혹 파워보이스(천지)와 감성보컬(니엘)이 바뀐 것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특이하고 통통 튀는 음색과 다소 부정확하고 어눌한 발음이 잔잔하게 불러야 하는 발라드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 블랙아이드필승과 작업하면서부터 점점 발라드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곡에 녹아들고 있다.
심지어 [[http://stoo.asiae.co.kr/news/stview.htm?idxno=2012062811204393949|먹고 자면 입술이 붓는다고 한다]]. 2014년 SBS 정글의 법칙에 출연해 내추럴한 모습을 선보여 '못생겼다'는 악플 집중 포화를 받기도 했다.[* 니엘이 출연한 뒤 몇 달 후 [[2AM]]의 [[이창민]]이 출연해 '니엘아, 여기 오니까 못생겨질 수 밖에 없구나. 니 마음을 알겠다'라고 언급하는 바람에, 다음 날 창민과 니엘의 사진이 나란히 기사에 나와 또 한 번 악플 집중 포화를 받았다.] 세바퀴에서 [[T-800]] [[http://tvcast.naver.com/v/581148/|엔도스켈레톤 얼굴모사를 개인기로 선보였다.]]
~~어눌한 한국어 발음과~~ 이국적인 외모와, 본명이 안다니엘인 점 때문에 [[혼혈]], [[외국인]] 혹은 [[유학|외국에서 살다 온]] 줄 아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저 집안이 [[개신교]] 집안일 뿐이라고 한다.
작사작곡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첫 자작곡은 본인의 솔로 앨범인 《oNIELy》에, 두 번째 자작곡은 리패키지로 발매된 《oNIELy Spring Love》에 실렸다. 첫 자작곡은 [[https://youtu.be/ifjjHckZL0w|아포가토]]로, 서정적인 분위기와 니엘의 부드러운 음색이 잘 어우러진 곡이다. 두 번째 자작곡은 [[https://youtu.be/OIJGCa5I3R4|Memory]]. 솔로 앨범에서 자작곡을 두 곡이나 선보인 후에 완전체 앨범에서도 또 자작곡을 수록했다.
2016년 1월에 발매한 RED POINT앨범에서도 [[https://youtu.be/j6B3ytjaySA|Liar]]를 싣는 등 활발한 작곡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떠나가는 여자를 잡지 못하고 아파하는 남자의 모습을 감성적 가사와 뒤에 깔리는 기타선율로 잘 표현해 냈다는 호평을 듣고있다.
2016년 5월 일반인 여자친구와 열애설 스캔들이 났으나 자필 사과문을 공개하며 지인일 뿐이라고 부인하였다.
- 동군연합 . . . . 13회 일치
* 부부동군연합 : 각자 통치권을 가진 남군주와 여군주가 혼인함으로서, 부부가 동군연합을 이루는 경우이다.
* 모자동군연합 : 어머니와 아들이 통치권을 나눠 가지는 동군연합이다.
본래 포르투갈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에서 건너온 가문인 카페가문의 분가인 보르고냐가문의 분가인~~뭐저리 복잡해~~ 아비스가문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포르투갈의 왕인 세바스치앙이 북아프리카로 원정을 나가다가 모로코 술탄국에게 대패하고 본인도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사해버리면서 문제가 생긴다. 왕위 자체는 그의 종조부인 엔리케 추기경이 환속하면서 상속받았지만, 그의 나이는 이미 66세인데다가 자식도 없어서 후사를 남길 가능성이 적었다. 결국 그가 2년 뒤인 1580년에 죽으면서 문제가 터졌다. 당시 왕위 주장자는 총 세명이었는데, 브라간자 공작 주앙 1세와 결혼한 카타리나 공주와, 주앙 3세의 손자인 안토니오 대주교와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있었는데,[* 3명 모두 조부가 포르투갈 왕 마누일 1세였다.(펠리페는 외손자)] 결국 펠리페 2세와 협업한 알바 대공 페르난도가 리스본을 점령하면서 펠리페가 다른 주장자들을 물리치고 포르투갈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영국과 협업한 포르투갈 토착 귀족들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승리해 해체된다. [* 단, 세우타는 스페인이 가졌다.]
부르고뉴의 '용담공'샤를이 로레인 원정을 떠났다가 스위스-로레인 연합에게 낭시전투에서 개박살나면서 죽어버리고 그의 외동딸인 '부귀공'마리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자 막시밀리안과 결혼하면서 결성된 연합. 이로 인해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최종적으로 당시 부르고뉴 공국이 점유하고 있던 땅 중 왈로니아 지방 일부와 부르고뉴 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저지대와 룩셈부르크 공국지방이 합스부르크에 넘어가면서 분쟁이 끝이 난다.
''' 근세 유럽국가들의 동군연합중 최강의 동군연합 ''' 스페인의 왕위계승자였던 카를로스1세가 오스트리아 대공에 오르면서 생겨난 동군연합. 당시 스페인은 신대륙의 금광+저지대의 미친 생산력에서 나오는 자금과 스페인+보헤미아+오스트리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나오던 국력을 통해 당시 유럽 최강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는 통치면적으로 보자면 '합스부르크 제국'의 최전성기였다. 다만, 당시 스페인의 왕이던 카를로스가 독일 쪽에 영 관심이 없어서(...) 연합은 1대만에 해체.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나뉘어진다.[* 다만, 플랑드르 지방은 스페인에게 갔다. 그리고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로 독립하게 된다.]
본래 튜튼기사단이란 신정국가가 지배하던 프로이센 지방은 [* 정확히는 폴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의 이교도때문에 통치를 못할 수준이 되자 튜튼기사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이후 튜튼기사단의 단장 알브레이트가 프로이센 공국을 선언하고 세속화되어 호엔촐레른 왕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계가 단절되자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였던 브란덴부르크와 동군연합이 된 것이다. 이게 왜 추가될 사례인지 모를 사람이 있을텐데, 쉽게 말해 '''독일제국의 전신이다.''' 이로써 단순 발트지방 소국에 불과했던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 지방을 삼키며 본격적으로 열강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왕국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부동군연합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실상 전부다 해먹고 여제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 프란츠 1세의 제위는 요제프 1세에게 넘어가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된다.
남프랑스 전역을 거의 장악하던 아퀴텐의 여공인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왕의 헨리2세와 혼인하면서 결성된 동군연합. 이로 인해 당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령에서는 명목상 프랑스 왕의 봉신이면서 정작 프랑스 왕보다 더 쎈 기묘한 위치를 차지했다(...). 사실 이 플랜태저넷 왕조 - 일명 '앙주 제국'의 정체성은 단지 '잉글랜드 영토'라는 식으로 국한하기는 좀 복잡했다.
- 디도(성우) . . . . 13회 일치
디도라는 예명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티투스|디도]]에서 따왔다. 생일이 그 [[티투스|디도]]와 같다고. 현재는 성을 빼고 그냥 '''디도'''로 활동하고 있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대원 재더빙판에서 [[치바 마모루|턱시도 가면]] 역을 맡게 되었다. 사실상 첫 주역 데뷔작이지만 '''평가가 좋지 않았다.''' 본인도 그 점을 알고 더 정진하겠다는 ~~[[대인배]]~~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하지만 [[하트 캐치 프리큐어!]]에서 [[최종보스]]인 [[듄(하트 캐치 프리큐어!)|듄]]을 연기할 때 캐릭터성을 잘 살리지 못한 반면 쿠루미 류노스케([[쿠루미 에리카]] 아빠), [[묘도인 사츠키]]([[묘도인 이츠키]] 오빠)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감안하면 과묵한 캐릭터와는 다소 상성이 안 맞는 듯.[* 반대로 [[파워레인저 캡틴포스]]의 [[제라싯트]]나 [[가면라이더 W]]의 [[마쿠라 슌]] 같은 [[개그 캐릭터]]에는 강점이 있다는 평. 목소리 특색은 부드러운 미남톤인데, 디도 본인이 워낙 밝고 개성있는 역에서 강점을 보이니 진지한 캐릭터보다는 밝은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듯 하다.] 하지만 3기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S]]에서는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여전히 원판 성우인 [[후루야 토오루]]에 비하면 아쉽다, [[김일(성우)|김일]]이 더 낫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등 비판적인 의견이 있는 걸 보면 아직은 진지한 배역보다 밝고 가벼운 배역을 더 잘 소화하는 듯. 그리고 의외로 발성이 좋아 [[잔크로우|열혈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 걸 보면 과거의 [[최재호(성우)|최재호]]와는 반대로 소리지르는 연기엔 강하나 진지하고 과묵한 배역엔 약한 것 같다.]
대원판 세일러문이 종영된 후에는 더 이상 애니메이션에서 새롭게 주연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이 대원방송에서 더빙되었다면 턱시도 가면 역할로 계속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투니버스에서 자막으로 방영하는 바람에 그나마 맡고 있던 주연 캐릭터에서도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주인공 송진우를 맡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원판 세일러문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맡은 다른 성우들([[치비우사|꼬마 세라]] 역의 [[이유리(성우)|이유리]] 제외) 및 [[김일(성우)|김일]]의 또다른 대표배역인 [[원피스(만화)/애니메이션|원피스]]의 [[상디]] 역할을 이어받은 [[박성태(성우)|박성태]]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커리어도 초라하다 보니 디도의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통 특정 배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 심하게 혹평을 듣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많이 나아지면 해당 성우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 [[이용신]]의 [[코야마 미츠키|루나]]나 [[서유리]]의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엔비]]처럼 해당 성우를 대표하는 배역으로 자리잡아 그 성우가 스타 성우로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디도는 세일러 문 시리즈에서의 레온 연기가 후반에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성우와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세일러 문은 디도의 출세작이 되지 못했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아진 레온 연기조차 KBS판의 김일과 같은 큰 호평은 끝내 못 받았던 점이 한 몫한 셈. 결국 하트 캐치 프리큐어와 대원판 세일러문이 크게 작용 한 듯하다.
2014년 8월 22일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하였다. 정재헌이 처음 시작했던 릴레이 라인과는 별개의 릴레이 라인을 시작했으며, 다음 타자로는 [[이동훈(성우)|이동훈]]과 [[백경훈]], 그리고 자신와 이름이 비슷한(...) 영국 팝 가수 [[다이도]]를 지목했는데 백경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불참의 뜻을 밝혔다.
* [[디지몬 크로스워즈]] - [[바리스타몬]], [[와이즈몬]]
* [[도라에몽]] 극장판 [[노비타와 날개의 용자들|진구와 날개의 용사들]] - 크로우
* [[가면라이더 디케이드]] - [[아시카와 쇼이치]]([[가면라이더 아기토(가면라이더 디케이드)|아기토]]), [[우메모리 겐타]](신켄 골드)
* [[디즈니 채널|디즈니 주니어]] - [[제이크와 네버랜드 해적들]], [[팅커벨]],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 [[만능 수리공 매니]]
* [[황제와 여기사]]([[ACO]]) - 도나우
- 마기/343화 . . . . 13회 일치
* 제 4 던전 광기와 명암의 시련 "후풀푸푸"에 도착한 [[알리바바 사르쟈]]와 [[아르바(마기)|아르바]]
* 알리바바는 [[연백룡]]과 싸우고 잠시 죽었을 때 "사후세계"에 해당하는 곳에 갔었으며 거기서 일 일라는 물론 셋타와 와히드, 테스까지 만났다고 밝힌다.
>너와 알리바바군, 둘이서 온 힘을 다 해 막아봐!
* 한편 각각 던전 공략에 성공한 [[연백룡]]과 [[쥬다르]]는 합류해서 [[알리바바 사르쟈]]와 [[아르바(마기)|아르바]]가 향한 제 4던전 쪽을 바라보고 있다.
>'''광기와 명암뢰의 시련'''
>셋타씨랑 와히드씨.
알리바바도 자신이 왜 거기까지 갈 수 있었는지 자세한 원리는 모른다. 단지 베리알의 마법 덕분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셋타가 나름대로 추정한 가설도 들려주는데 아르바와 그녀의 일당이 매그노슈타트에 차원 구멍을 낸 탓에 차원의 구분이 흐릿해진 영향일 수도 있다. 거기까지 듣자 아르바도 더이상 흘려듣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그곳을 일종의 "사후세계"라고 부르는데 자신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현세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 자신이 아닌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 있는게 아니었다. 그동안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알리바바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주위에 흩어져 자신의 삶을 곱씹으며 좌절감과 후회를 느끼고 있었다.
* 알리바바에게 말을 건 고마는 옆에서 시끄럽다고 투덜댄 남자들의 일행이었다. 셋은 나란히 앉아서 제각이 알리바바에게 말을 걸었다. 눈을 가린 남자는 그가 누구냐고 묻고 안경을 쓴 남자는 "넌 이미 죽었다"고 단정해준다. 알리바바는 곧 이들이 알라딘이 보여줬던 알마트란의 기억에서 등장하던 인물이란 것을 깨닫는다. 이들이 셋타와 와히드, 그리고 테스였다.
와히드는 알리바바에게 "너도 이제 일 일라의 일부"라고 말하며 다시는 바깥에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 박승임 . . . . 13회 일치
7세 무렵에 조부와 부친에게서 사략(史略)을 배웠고, 9세 때에는 [[복희]]의 팔괘(八卦)를 배운 뒤 홀로 후미진 곳에 들어앉아 직접 64괘와 효사(爻辭)를 그리며 음양의 변화를 스스로 독학하였다. 12세 무렵에는 『[[대학 (책)|대학]]』과 『[[논어]]』를 읽기 시작하여 독파하였으며, 14세에 향시(鄕試)에 응시하려 하였지만 아버지의 만류로 그만두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기송과 독서에 능했던 그는 15세에는 서전(書傳)을 독파하였고, 16세부터는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저술들을 스스로 연구하며 독파하며 도학(道學)의 정수를 깨우쳐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재의 벽에는 「동명(東銘)」과 「서명(西銘)」을 붙여놓고서 항시 사람이 있을 때나 없을 때 스스로 마음들 다스렸다. 그 뒤 의문나는 것이 많아지자 박승임은 1537년(중종 32) 21세에 이황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황의 제자가 된 박승임은 특히 주역(周易)과 예기(禮記), 그리고 주자서(朱子書) 등 경전의 학습과 이해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강의가 끝난 뒤에도 의심 가는 곳이 있으면 빠짐없이 기록하여 퇴계를 찾아가 해석, 가르침을 받으며 학문을 숙성시켰다. 또한 스승 이황 외에도 [[이현보|농암 이현보]]와 [[이언적|회재 이언적]], [[권벌|충재 권벌]] 등 인근의 이름난 [[성리학]] 학자들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고 시세(時勢)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1540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에 이조 좌랑, 사간원 정언, 현풍 현감, 진주 목사, [[관찰사|황해도 관찰사]] 등을 엮임하였다. 명종의 외숙이며 권신인 [[윤원형]]의 전횡이 심할 때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 후학 양성에 전념하여 퇴계의 학풍을 후대에 계승하였으며, 여러번 불렀는데도 고사하였다. 그 뒤 [[을사사화]] 직후인 1547년(명종 2) 고향으로 돌아와 이황을 모시고, 의례(儀禮)와 주자대전(朱子大全)을 강독하며 다시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때 이황으로부터 학문적 능력을 크게 인정받았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 [[이량]] 등이 제거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간 박승임은 이후 병조 참지와 승정원 동부승지를 거쳐 진주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고을의 부로(父老)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향약을 실시하며 백성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1568년(선조 1) 병으로 사직,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으나 1568년 특명으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는 사절단의 동지부사(冬至副使)에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박승임은 1570년(선조 3) 승정원 좌승지에 오른 뒤 을사사화의 거짓 공훈을 없앨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며 명종 연간의 권신들과 척신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간하였다. 이후 권신, 척신들의 비난 여론에 직면했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병조 참의와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거쳐 1571년(선조 4)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홍문관 부제학과 도승지를 지냈다.
이후 박승임은 춘천 부사와 병조 참의·공조 참의 등의 요직을 거쳐 1583년(선조 16) 사간원 대사간에 올랐다.
대사간 재직 중 [[서인]]의 영수이던 [[이이]]와 [[박순 (조선)|박순]]의 당론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창원 부사(昌原府使)로 좌천당하였다.
만년에 장남 박어와 셋째 아들 박조를 잃었다. 1585년(선조 18)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한 뒤 1586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70세였다. 사후 경상도 영주의 [[구강서원]], 영주 향현사(鄕賢祠) 등에 배향되었다.
그는 퇴계의 성리설(性理說)을 이어받아 심학(心學)의 측면을 강조하였고, 이와 기에 관해서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견해를 계승하였다.
- 붐(연예인) . . . . 13회 일치
과거 스스로 밀던 유행어로 "붐이에요!" 와 "나인틴나이티나인!"[* 1999를 영어식으로 읽는 것. 영어권에선 편의상 연도를 그대로 읽기보다는 두 자리씩 끊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연도를 그대로 읽는 건 2010년(투 싸우즌 텐) 같이 간결하게 읽을 수 있는 경우에만 부른다.] 그리고 "뉴~ 규"[* 참고로 "뉴~ 규" 는 [[SBS 파워FM]]에서 방송 중인 붐의 영스트리트에서 '놀게 냅둬' 와 같이 쓰인다.] 가 있었다. 방송에서 경솔한 발언을 하고 논란이 되자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한 말이 "제가 좀 경솔했습니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이민호(1987)|동명이인인 배우]]와 --하필이면-- 본명이 같은 탓에 붐이 구설수에 올랐을 경우(예를 들어 스친소 [[이윤열]] 출연 당시.) [[디시인사이드]]의 붐 갤러리와 이민호 갤러리(배우)가 동시에 털린다. --[[지못미]](...).--
아래에 언급된 일들이 생긴 뒤엔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역 후 첫 출연 당시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니, 전역하기 전부터 ~~이제 와서 보면 쓸데없이~~ 그의 전역일 카운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예능 입지를 확실히 정착시킨 상태에서 자리를 비워서 입대 후 그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군에서 예능 아이템을 400개 이상 생각해 왔다.'로 개념 있는 군인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군대 다녀오더니 남성스러워졌고 멋져진 거 같다는 반응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안양예고 출신으로 가수 [[비(연예인)|비]]와 고교 동창이며, [[SE7EN|세븐]]은 그의 2년 후배다.[* 특히 비는 어머니가 임종하시고 장례를 치를 때 붐이 곁에 있어 주었다고 밝혔다.] 당시 이미 연예인으로 데뷔한 상태였던 붐은 그들을 우습게 봤었다고...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일본인]] 패널 준코와 사귄 적이 있다는 고백을 했다가 당사자인 준코가 미니홈피에 "당신이랑 사귄 적이 없는데요..." 라고 딱 잘라 말해서 완전 새가 되기도 했다.[* 일부에선 준코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단 둘이서 어디 놀러가고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붐은 그 정도면 사귄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는 설을 주장하고 있다.] 덕분에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선 연신 '준코! 준코!' 를 외치며 놀려대는 [[김구라]]와 [[신정환]]에게 [[관광]]타고 착잡한 표정으로 ''''제가 경솔했습니다'''' 라는 말을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준코 사건은 이때 개그 소재로 쓰이며 오히려 이미지 세탁에 도움을 준 편.
[[덤]]으로, 2012년 9월 군인들이면 누구나 먹는 [[건빵]] 시리얼을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 [[야간매점]]에 나와 본인 이름을 딴 붐플레이크라고 소개해 많은 질타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얻었으나 예능에서 자신의 자리는 계속 유지했다. '''하지만'''...
연예 오락채널 E채널의 용감한 작가들의 녹화를 했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6&sid2=224&oid=108&aid=0002349214|기사]]. 그리고 2014년 10월 30일 결국 방송에 나와 자필 사과문을 공개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2&aid=0002538776|기사]]. 같은 방송의 11월 6일 방영분에선 이승훈 PD와 [[김준호(개그맨)|김준호]]를 찾아가 회초리를 맞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57&aid=0000497251|기사]][* 당연히 반응은 '''좋을 리가 없다'''.].
2016년 7월 10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흑백논리 체스맨]]이라는 가명으로 나와서 듀엣 파트너인 [[장기알과 얼굴들]]과 패닉의 '달팽이'를 부른 뒤 다이나믹 듀오의 "죽일 놈"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몇 번 추리 시간에 그가 언급되었으며 김구라가 저렇게 노래 못 한다고 디스했는데 의외의 노래 실력을 보여주자 김구라만 뻘쭘해졌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연예인 판정단 대부분이 아이돌이나 젊은 뮤지컬 배우로 추측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멘붕했다. 이와는 별개로 그가 나온 것에 대해 [[네티즌]]들은 왜 나왔냐고 분노했으며 거기에다 PD들까지 같이 까였다.
- 블랙 클로버/108화 . . . . 13회 일치
* [[샬롯 로즈레이]]와 야미와 같은 이유로, 그냥 우연히 마주친 [[노엘 실버]]은 아무 이유도 없이 합숙 참가 결정.
* [[마법제]] 율리우스의 격려와 당부를 받고 돌아가던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 껄끄러운 장면과 마주친다. 홍련의 사자단의 새로운 단장이 군기를 잡고 있는 현장이다. 새로 단장에 취임한 여성은 단원 전원을 무릎 꿇려놓고 있다. 맨 앞에 있던 [[레오폴트 버밀리온]]은 대표격으로 깔끔한 안면 스트레이트를 쳐맞고 쓰러졌다.
* 새 단장은 정말로 최고의 단장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은 최고의 기사단이라면 실력으로 입증하라고 강변한다. 그리고 "그 멍청이"는 단원들과 나라를 내버려두고는 죽지 않을 테니 돌아올 때까지 긍지 높은 홍련의 사자단의 힘을 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 자신이 아우 대신 그들을 이끌겠다고 한다. 여기까지 말한 새단장이 "대답이 없다"고 하자 레오폴트와 단원들은 수련회 끌려온 중딩들 마냥 목청껏 대답을 내지른다.
* 성격상 심드렁한 유노와 달리 아스타는 감동적인 장면이라도 인상 깊게 보고 있다. 과연 새 단장은 이들을 어떻게 맹훈련시킬까? 그런데 그 난리를 쳐놓고 새 단장의 입에서 나온 첫 훈련은 "온천합숙"이었다. 단워들이 영문을 몰라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그럼 네놈도 와라.
홍련의 사자단 단장의 불꽃 같은 투기가 아스타의 머리통을 움켜쥔다. 아스타가 "나는 다른 단이다"고 항변해도 통하지 않는다. 레오폴트가 그를 발견하는데 눈치가 없는 건지 "역시 내 라이벌"이라며 따라와줘서 기쁘다고 쓸데없는 소릴 한다.
아무래도 레오폴트는 눈치가 없는게 아니라 그냥 체념한 것 같다. 붙잡힌 둘에게 새로운 단장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을 소개한다. 본래 정치나 전쟁에 관심이 없어 야인으로 살고 있었으나 진짜로 싸우고자 하면 푸에고레온보다도 강하다는 숨은 강자가 그녀였다. 그녀는 마법제가 소개할 때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는지 아스타와 유노를 "신인 1위, 2위"라 부르며 그 힘이 어느 정도일지 잘 봐주겠다고 입맛을 다신다.
야미는 들어오자마자 "검은 폭우보다 밑에 있는 단장들"이라고 어그로를 시전한다. 올해는 검은 폭우가 2위를 했으니 사실상 금색의 여명의 [[윌리엄 벤전스]] 외에는 전원이 대상. 은익의 참수리의 [[노젤 실버]], 자줏빛 범고래의 새 단장, 취록의 당랑의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는 유독 아니꼬와한다. 잭이 "만년 꼴찌 주제에"라고 받아쳐보지만 "그 꼴찌한테 졌다"는 반격엔 할 말이 없다.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은 그보단 지각한 것을 지적해 보지만 딱히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 결국 다른 단장들은 씁쓸하게 돌아가고 야미만 남들을 실컷 놀려먹었다. 야미는 혼자서 급상승 기념주를 마셔야겠다고 히죽거리는데 바라지 않던 불청객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다. 막 아스타와 유노를 포획한 레오나가 야미한테까지 온 것이다. 야미는 그녀와도 구면이어서 "누님레온"이라 부르는데, 레오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야미는 붙잡힌 아스타를 보고 낄낄거리는데 곧 같은 신세가 된다. 레오나가 "공적 발표에 지각은 커녕 아예 결석을 했으니 기합을 넣어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도 온천합숙에 강제합류시킨다. 야미는 "이제 나는 단장이다. 부끄러우니 그만둬라"고 저항해보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하는 말로 보면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도 숙취를 떨쳐내지 못한 샬롯은 야미가 곤란해하자 "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 또한 같은 명분으로 강제합류 당한다. 뒤이어 아스타에게 [[키아토]]와 [[카호노]]의 송별을 전하러 온 [[노엘 실버]]까지 잡혔다. 노엘의 경우는 정말 아무 이유 없는 납치.
- 식극의 소마/189화 . . . . 13회 일치
* 최종심사 국면에서 베르타와 실라는 각각 의견이 갈려 소마와 하야마가 한 표씩 득표.
* 하야마 아키라의 압승으로 끝나려던 식극은 "소스를 찍은 맛"을 아직 보지 않아서 승패는 가려지지 않는다. 나키리 소우에는 이 점을 지적했지만 베르타와 실라는 아무 생각없이 --처묵--먹기만 해서 정말로 승부가 끝나버릴 지도 몰랐던 상황. 아무튼 유키히라 소마의 투지는 아직도 꺾이지 않았다.
* 프라이드 베어 자체는 야생고기와 케이준 스파이시가 조화된 자극적인 맛과 매운 맛의 조화. 그레이비 소스는 거기에 부드러움과 달달함을 추가시킨다. 자극과 부드러움, 매콤함과 달달함의 환상적인 대비로 굉장히 입체적인 맛이 연출된다. 소우에는 이것이 하야마의 재능과 연구성과가 있기에 낼 수 있는 것이라 격찬하며 그 맛을 철벽같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성벽에 비유한다.
* 이어서 소마의 멘치까스를 재시식한다. 소마 또한 곰고기 육수를 쓴 소스를 제출했는데 자세한건 아직도 불명. 베르타와 실라는 거기서 청주에 절인 오미자, 액센트로 추가된 마늘향을 간파하지만 어떤 "순한향"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쿠가 테루노리는 그것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데.
* 베르타와 실라가 다시 소스를 찍은 멘치까스를 시식하는 순간, 소스를 더했을 뿐인데 맛의 표정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소마의 소스 또한 요리의 맛을 끌어 올리는데 단순히 완성도를 더한다기 보단 전혀 다른,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듯한 향상이다. 매우 복잡미묘하면서도 곰고기의 달콤한 풍미를 배가시키는 신기한 소스다. 베르타와 실라는 소스를 다루는 것만큼은 소마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식을 마치는데
* 도지마는 이제야 음식에 대해서도 해설을 하는데 곰고기와 꿀의 궁합은 워낙에 유명하다. 최고급 곰고기 요리인 "곰발바닥 요리"의 맛의 비결도 곰이 발로 꿀을 발라먹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도지마는 이러한 발상을 "완화와 강조"라는 말로 정의한다.
* 이 완화와 강조는 하야마가 선발 시합에서 승리했을 때 심사의원에서 했던 말이다. "완화와 강조, 상반된 조리를 이 한 그릇 위에 동시에 보여드린 것입니다." 소마는 그때의 앙갚음을 완벽하게 이뤄냈다. 쿠가는 그런 승부에 끈질긴 면을 "싫지 않다"며 웃는다.
* 이제 최종심사. 튀김과 소스의 맛을 다 본 총점을 내는 시간이다. 베르타와 실라는 고민 끝에 마지막에 의견이 갈려서 각각 소마와 하야마에게 1표씩 낸다.
- 식극의 소마/200화 . . . . 13회 일치
* 연대식극은 동료와 힘을 합쳐 조리하는 것도 가능하며 팀워크를 잘 활용한다면 십걸을 상대로 대등 이상으로 싸우는 것도 가능하다.
* 도지마와 죠이치로가 티격태격해서 결국 [[나키리 센자에몬]]이 중재. 겨우 특훈이 시작된다.
* 에리나는 여전히 [[나키리 아자미]]를 두려워해 위축돼 있었으나 특훈이 시작되고 죠이치로와 한 팀이 되자 흥분.
* 학생들은 처음엔 당황하지만 타쿠미는 곧바로 적응해 도지마의 보조를 하고 타도코로 역시 소마와 노점을 했던 경험을 살려 적절히 서포트한다.
* 도지마팀은 말없이도 훌륭하게 팀플레이를 보이며 선전하는데 죠이치로팀은 시작부터 소마와 죠이치로가 멱살을 잡으며 팀워크를 말아먹는다.
* [[나키리 에리나]]의 방에 모이기 직전의 상황. [[도지마 긴]]과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는 막 요리 승부를 마친 [[사이바 죠이치로]], [[유키히라 소마]] 부자와 마주친다. 결과는 소마의 패배. 소마의 491 연패가 된다.
* 센자에몬의 진행으로 팀부터 정해진다. 죠이치로, 소마, 에리나의 사이바 팀. 도지마, 타쿠미, 타도코로의 도지마 팀. 각각 죠이치로와 도지마가 리더다. 시합 장소는 소마 부자가 대결한 열차 내의 조리실. 차장이 대결장소도 빌려줄 겸 대결을 관전한다. 시작이 치졸한 자존심 싸움이라 그런지 대결이 시작하기 전에 리더들의 신경전이 첨예하다.
타도코로는 상대편에 소마와 에리나가 다 있어서 이쪽이 너무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에리나는 방금 전까지 우울해있던 주제에 죠이치로와 한 팀이 됐다고 소녀모드로 변신했다.
학생들이 황당해할 틈도 없이 대결은 시작된다. 말도 안 되는 규칙같지만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리를 시작한다. 사전에 역할을 조율할 틈도 없었는데 본래 조리실의 주인인 열차의 셰프와 스텝들은 도저히 될만한 시합이 아니라고 여긴다. 차장도 이 방면에 경험이 있는지 "급조된 팀으로는 어려운 과제"라고 잘라말한다.
* 타도코로가 거의 패닉에 빠진 사이 타쿠미는 침착하게 도지마의 조리를 관찰한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도지마에게 필요한 재료를 정확히 찾아 대령하면서 대화없이도 팀워크를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타도코로도 깨닫는다. 이것도 결국 평소하던 조리와 다를게 없다. 셰프의 움직임을 잘 보고 조리과정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나가면서 움직인다. 그녀는 소마와 노점을 하던 때를 떠올리며 자신이 앞으로 조리를 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확히 맞는 역할을 찾아낸다.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3회 일치
* "한 소바가 훨씬 향기가 강하다" 심사의원 이스트와르가 이렇게 단언하자 좌중이 술렁인다. 어느 쪽이라고 지칭하진 않았으나 기량이 위인 건 [[키노쿠니 네네]].
* [[나키리 아리스]]가이 점을 명쾌하게 설명하는데, 그건 이 대회장의 "온도"와 관련이 있다.
* 심사의원 이스트와르가 그렇게 외쳤다. [[유키히라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대결. 양측 소바의 심사까지 끝난 상황에서 그는 한쪽 요리가 현저히 향이 뛰어나다고 발언한다. 반역자들이 술렁거린다. [[아라토 히사코]]와 [[이사미 알디니]]는 어느 쪽을 지칭한 건지 몰라 혼란스럽다. [[사카키 료코]]는 "소바를 더 잘 다루는 쪽은 네네 선배"라며 [[키노쿠니 네네]]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사실 그녀의 9할소바가 이끌어낸 리액션이 워낙 뛰어났다. 아직도 정신없이 먹던 심사의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 승부의 당사자인 네네와 [[유키히라 소마]]는 말 없이 심사의원들의 선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표정에 좀 더 여유가 있어 보이는 쪽은 소마였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 마침내 침묵을 깨고 심사의원 [[안(식극의 소마)|안]]이 입을 연다. 그녀가 지명한 건 네네. 그녀에게 "일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운을 띄우는데, 정작 무슨 말인지 기억이 안 나는지 산더미 같은 책 뭉치를 한참 뒤적거린다. 분명 "우리 단체의 경전"이라더니 알고보니 그냥 사전도 끼어있었다. 아무튼 사전에서 "말보단 증거"란 속담을 찾아낸 안. 그녀는 아직 추가분 소바가 남아있을 테니 요리를 직접 먹어보라 권한다. 네네는 이제와서 소마의 소바따윌 먹을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나, 안이 말한건 소마의 소바가 아니었다.
>"평소와 다르다", 그렇죠? 미스 키노쿠니.
센트럴을 찬양하기 바빴던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의 얼굴에 아연함과 당혹함이 얼룩진다. 네네는 그제서야 소마의 소바를 맛보고 확실히 자신의 것 보다 풍미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트와르도 그의 설명에 공감하며 온도는 물론 습도 등, 이 회장의 환경 자체가 소바 요리에 부적합한 장소였다고 인정한다. 안은 네네가 만든 구할 소바와 벚꽃 새우 튀김은 옅고 섬세한 향이 얽히는 맛을 즐기는 것이라 이 작은 차이가 치명적이었지만, 소마는 소바향 자체도 강한 데다 철냄비에 굽는 공정으로 기름과 불맛이 내는 향기까지 더 해 풍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조리했다.
지금까지 소마를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네네와 센트럴 추종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가 행한 조리는 기행도, 요행이나 바라고 한 짓도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 세 명의 심사의원, 안과 [[샤름]]과 이스트와르가 입을 모아서 1라운드 세 번째 카드의 승패를 선언한다.
- 식극의 소마/215화 . . . . 13회 일치
*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유키히라 소마]]와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 [[미마사카 스바루]] 조차 하이파이브로 축하하는데 [[나키리 에리나]]만 츤츤거린다.
* [[키노쿠니 네네]]는 홀로 패배를 곱씹다가 [[코바야시 린도]]가 맨 먼저 달려와 위로한다. 다른 십걸들은 뜻밖의 패배가 달갑지 않은 듯하다.
* [[잇시키 사토시]]는 네네와 소마의 엇갈린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내 싸움을 끝내도록 할까"라고 다짐한다.
* [[시라츠 쥬리오]]는 네네의 패배를 자신이 설욕하겠다고 선언하나 잇시키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금 소마와 네네에게 시선을 던진다.
* 팀멤버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 [[쿠가 테루노리]]와도 하이파이브.
* 아무튼 쓴맛을 보게 된 네네. [[잇시키 사토시]]는 그런 그녀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소마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본다.
반면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는 대놓고 분통을 터뜨리며 [[시라츠 쥬리오]]에게 복수를 기원해본다.
* 잇시키를 상대할 요리에 전념하던 쥬리오는 자신이 네네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며 기세를 올린다. 그런데 승부의 상대인 잇시키는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조리 중에도 다시금 소마와 네네에게 시선을 던진다. 소마와 네네 모두 그 눈짓을 눈치챘다. 린도는 그가 바라보는 의미를 파악한 것 같다. 그는 이 시합에서 상대인 쥬리오만이 아니라 소마나 네네, 그리고 센트럴을 포함한 전언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 한다고 추측한다.
>식재료와 진득히 대화하지 않으면 완벽한 요리가 되지 않아.
* 심사의원 [[이스트와르]]와 [[샤름]]은 많은 이탈리아 요리사 중에서도 이렇게 장어라는 "고기"의 맛을 끌어낸 요리사는 없었다 평한다. 그의 별명처럼 여러개의 선율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론도"와 같다. 그리하여 이 맛은 마치 "압도적인 고기(가슴)에 푹 빠지는 기분". 마치 빈약한 안의 몸매도 글래머인 듯이 보이게 만든다. 안은 성희롱이라고 반발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두 사람이 자신의 몸매를 "초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13회 일치
* [[메기시마 토스케]]를 포섭하는데 실패했으나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권유하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선다.
* [[잇시키 사토시]]의 정보로는 그는 홋카이도 지방에 와 있는데 진급시험과는 다른 목적으로 방문해 있는 듯.
* 메구미와 소마가 그가 있다는 라면집에 도착해 보니 인근 요리인들은 그들이 토오츠키 학원의 교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크게 꺼리고 적대한다.
* 메기시마는 소마와 메구미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고 힘을 빌려달라는 부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애초에 식극도 싫고 십걸이란 자리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 [[나키리 에리나]]는 방금 전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한 말을 쌩뚱맞게 여긴다. 연대식극 참가자를 순조롭게 모집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멤버 [[메기시마 토시케]]에게 거절 당하고 말았다. 그를 꼭 동료오 넣고 싶었던 소마가 전화로 거절 당하는건 납득할 수 없다며 그를 방문해서 다시금 동료권유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메구미도 같은 생각. [[잇시키 사토시]]가 전해준 정보로는 메기시마도 홋카이도에 와있다. 진급시험 때문은 아닌 듯 하지만 무슨 사정이 있다고 한다. 마침 거리도 가깝다.
* 아사히카와 시내. 이곳에 메기시마가 머물고 있는 라면가게가 있다. 소마와 메구미가 도착했을 땐 사람들이 몰려 식당 입구까지 미어터졌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 손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친 그 사람들도 두 사람을 발견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토오츠키 학원 교복. 이게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같다. 곧 두 남자가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밀며 "적이 보낸 놈들"이 아니냐고 위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해요를 연발하는 메구미. 소마가 그녀 앞으로 나서서 대처한다. 그들이 말하는 "적"이란 누구인가?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소마는 일개 고교생이 관록넘치는 야쿠자와 같은 풍격을 갖는게 가능한 일일지 고민하지만, 그걸 눈 앞에서 확인하고 있다. 한 젊은 요리사가 선대 점주인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 메기시마에게 도움 받은 일을 회고하며 새삼 감격했다. 충분히 미담이지만 메기시마는 그 일화도 젊은 요리사의 공으로 돌렸다.
감격으로 넘치는 장인들. 메구미와 소마는 그의 초고교급 인망을 실감하는 한편 덮밥연의 얼굴만 겉늙은 누구와는 참 다르다고 여기고 있었다. 헌데 장인들 사이에서 메구미와 소마를 발견한 메기시마의 표정이 굳는다.
소마는 왜 센트럴을 싫어하는가? 그 이유는 명확하다. 소마는 모든 요리를 사랑한다. 그게 덮밥이든, 꼬치든, 카레든 전골이든. 각양각색의 요리사가 만드는 각양각색의 요리가 좋다. 경쟁하고 싶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추구한다. 아자미와 센트럴이 추구하는건 정반대다. 용납할 수 없다. 그가 싸우고 지켜내야 하는건 단지 동료가 아니라 더 큰 무대다.
- 식극의 소마/225화 . . . . 13회 일치
*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를 무기로 [[사이토 소메이]]를 완벽하게 카피하는 [[미마사카 스바루]]. 서포트와 조리를 양립하며 "최고의 전력"이란 찬사를 받는다.
* 미마사카는 십걸 전원을 트레이스하고 있는데, 그로서도 힘든 일이나 [[유키히라 소마]]와 [[타쿠미 알디니]]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리를 하고 있었다.
* 종래의 한계를 뛰어넘은 [[미마사카 스바루]]의 새로운 필살기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강적 중의 강적인 십걸 4석 [[사이토 소메이]]의 기술을 완벽하게 따라하며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선전을 펼쳤다. 환호하는 반역자 동료들.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도 감탄을 마지 않는다. 아무리 동료와 연계가 허용된 연대식극이라지만, 동료를 서포트하는 행동은 리스크가 크다. 십걸들 조차 자기 조리에 매진할 뿐 동료와 협조하진 않는 것도 그 탓. 이런 상황에서 서포트와 자기 조리를 양립할 수 있는 미마사카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이스트와르는 미마사카야 말로 반역자 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최고의 전력이라 단언한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자 미마사카를 "스토커"라 성토하고 "1대1이면 절대 십걸이 질리가 없다"고 현실도피를 해댄다. 1라운드에서 [[키노쿠니 네네]]가 소마에게 졌던걸 잊었나 보다.
* 둘의 조리는 완벽하게 똑같았다. 붉은 살을 간장, 미림, 레드와인을 섞은 양념에 재우고 볼살 부분은 한쪽 면만 버터향을 입혀가며 굽는다. 사이토는 부위마다 다른 방식으로 조리하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걸 따라갔다. 이번엔 사이토가 짚을 준비한다. 처음엔 장식에 쓰려는 줄 알았으나, 그 정체는 볏짚구이. 참치살을 짚불에 올려 호쾌하게 구웠다.
*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솜씨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었지만 역시 힘이 들었다.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의 고행에 가까운 노력은 연대식극에 멤버로 지목된 이후부터 시작됐다. 월영 열차 식당칸. 미마사카는 거기서 연대식극에 대비한 "십걸 전원 트레이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던 그도 무릎에 힘이 빠질 만큼 고된 훈련이었다. 연대식극에서 누구와 상대할지 모르는 만큼 십걸 전원 트레이스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요리사에 대해 동시에 트레이스를 진행하는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 연습단계에서 이정도라면 실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무엇이 미마사카를 이렇게 열성적으로 만들었을까? 타쿠미와 소마였다. 그들과 대결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 미마사카는 그걸 "은혜"라고 생각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질 수는 없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미마사카는 더더욱 트레이스에 매진했다.
* 훈련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열차를 통제하는 진행요원이 소등시간을 한참 지났는데도 조리실에 불이 들어와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안에 있는 사람을 서둘러 객실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문을 여는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십걸 전원 분의 코스프레를 시도하고 있는 미마사카가. 린도나 츠카사, [[에이잔 에츠야]]와 키노쿠니, [[아카네가쿠보 모모]] 조차 재현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기가죽은 진행요원은 차마 아무 말도 못한 채 동상같이 굳었다.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13회 일치
일본의 신.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한다.
--대물(大物)신-- 미와--경부--산의 신이다. 왜일까 호색한 일화가 많다.--대물이라?--
우에츠미미노미코토(陶津耳命)의 딸 이쿠타마요리히메(活玉依姫,活玉依毘売)에게, 밤이 되면 훌륭한 남성이 찾아와서 이쿠타마요리히메는 임신을 한다.
다음날 아침 보니 삼실은 문열쇠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실타레는 3바퀴만 남아 있었다. 더듬어가서 찾아보니 미와산(三輪山)의 오오모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의 사당이었다. 이로서 뱃 속의 아이가 산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 삼실이 세 바퀴 남아 있어 이 땅을 미와(三輪)라고 이름붙였다. 딸의 자손인 오오타타네코(意富多多泥古), 오오모노누시노카미를 모시는, 오오미와신사(大神神社)의 제주가 되었다.
코토반크 - 미와산전설(三輪山伝説)
나라 기기만요(なら記紀・万葉) - 미와산 전설
이 황녀는 오오모노노누시와 결혼하였는데, 오오모노노누시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황녀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오오모노노누시는 작은 뱀의 모습이 되어 화장품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걸 보고 황녀는 크게 놀랐다.
이에 오오모노노누시는 매우 분노하여, 남자의 모습이 되어 모로야마(御諸山=미와산)으로 올라가버린다. 황녀는 몹시 후회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하필이면 그 곳에 젖가락이 있어서 거기에 음부를 찔려서 죽어버렸다.
『고사기(古事記)』중권 「황후선정(皇后選定)」에서 미와산(美和山=미와산)의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는, 세야다타라히메(勢夜陀多良比売)를 보고 첫눈에 반하였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것이 카무야마토이와레히코(神倭伊波礼毘古命, 진무덴노神武天皇)의 황후, 히메타타라이스키요리히메(比売多多良伊須気余理比売(ひめたたらいすきよりひめ)라고 기록하고 있다.
- 워저드 . . . . 13회 일치
대전액션이나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겨우 4명. 플레이어끼리의 방식은 다른 대전액션게임과 다를 게 없으나 CPU전은 거대한 보스 캐릭터와 1 vs 1 싸움을 한다. 싸움에서 이기면 경험치를 습득해 레벨업을 해서 점점 강해진다.
나문 일족의 장이자 오나와반의 두령. 주군의 명에 따라 지팡그에 나타난 4척의 흑선을 파괴하러 나가지만, 주군의 명에 의심을 품고 독자적으로 사태를 조사하러 떠난다. 성우는 [[키시노 유키마사]].
특이 사항이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루안을 클리어 했을 경우 플레이어중 루안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이며[* 레오와 타오의 경우는 서로 대화하면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타바사의 경우는 타바사가 찾는 지식은 위험하다고 말하며 타바사도 거기에 대답을 한다. 하지만 무쿠로의 경우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하늘로 올라갈 뿐이다. 무쿠로가 대화하는 상대는 주군의 또다른 부하.] 두번째로 특수 피니쉬 연출 3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다.[* 세로 쪼개기는 레오, 타바사도 있지만 가로 쪼개기와 심장 뽑기는 무쿠로 전용 피니쉬이다. 반대로 타오는 특수 피니쉬가 존재하지 않는다.]
13세의 어린나이로 고라국의 정예 전투집단 풍우에 입대한 천재소녀. 그러나 격투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와보니 발돌의 군대에게 마을이 개발살난것을 보고, 발돌을 저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보쿠소녀]] 속성. 성우는 [[우라와 메구미]]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공룡처럼 생긴 [[드래곤]]. 불을 뿜는 것이 주공격. [[포켓 파이터]]에서는 류가 엔딩에서 대결하게 된다. 결국 류는 하우저에게 개발린다. [[타츠노코 VS 캡콤]]에서는 카라스의 엔딩에 나오지만 류와는 반대로 카라스에게 죽는다.(…) 캡콤 파이팅 잼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로 나오기도 했다. 보스를 상정하고 만든 캐릭터를 별다른 수정 없이 넣은 탓에 덩치가 타 캐릭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탓에 피격 판정도 거대해서 보통은 약캐릭터 취급이다.
거구의 오니처럼 생긴 요괴. 성우는 고오리 다이스케. 무쿠로와 원한이 있는 요괴. 방망이를 무기로 사용한다. 다른 게임으로의 참전은 없지만 [[M.U.G.E.N.]]용으로 만들어져있어서 무겐을 통해 플레이할 수가 있다.
오징어 모습을 한 요괴. 성우는 호소이 오사무. 회오리를 날리거나, 자신의 자식을 생산하여 상대에게 날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뜻밖에도 캡콤 파이팅 잼에선 타오와 타바사를 제치고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했다. 하우저와는 달리 제법 할만한 편.
워저드의 [[중간보스]]. 성우는 키시노 유키마사. 발돌의 부하. 하야 갑옷과 [[에아]]와 유사한 3단 원통검[* 원통검에 대포가 내장되어 있어서 탄환도 나간다.]으로 무장한 모습으로 발돌의 성 앞에서 플레이어를 가로막는다. 처음에는 망토를 입고 있지만, HP가 줄어들면 망토를 벗어던지면서 제실력을 발휘한다. 원래는 인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레오와도 안면이 있다. 그 정체는 레오가 왕이던 시절의 직속 기사단장. 그러나 발돌에게 패하고 그에 의해 세뇌당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이때문에 레오가 절단 피니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해 진 것.
- 원피스/870화 . . . . 13회 일치
* [[샬롯 쉬폰]]이 빅맘 [[샬롯 링링]]을 진정시키려 시도하나 [[샬롯 로라]]와 닮은 얼굴로 실패, 더욱 날뛰게 만든다.
* [[브룩]]도 나미를 거들어서 지금은 탈출이 최선이고 "와노쿠니"로 간 [[조로(원피스)|조로]] 일행과 합류가 먼저라고 설득한다.
* [[빈스모크 레이쥬]]가 빅맘의 공격을 받고 휘청대자 결국 참다 못한 상디와 루피가 뛰쳐나와 빅맘을 막는다.
* 빅맘 [[샬롯 링링]]이 눈을 뜨고 무서운 보복이 이어진다. "빅파더"로 변한 [[카포네 갱 벳지]]가 그 공격을 막아내다 사경을 헤맨다. 빅맘의 딸이자 벳지의 아내인 [[샬롯 쉬폰]]이 성의 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그녀는 자기와 손주의 얼굴을 봐서 남편을 용서해달라 애원한다. 너무 섣부른 짓이었다. 평소에도 [[샬롯 로라]]를 연상시킨다고 학대를 일삼던 빅맘이다. 쉬폰의 얼굴을 보다 더욱 화를 터뜨린다. 얼굴을 보였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녀도 암살 공범이란 이유로 공격이 거세진다.
* 샬롯가의 형제들은 느긋하게 성이 붕괴하기만을 기다린다. 성이 무너지면 벳지가 죽고 안에 피신한 해적동맹도 바깥으로 떨어진다. 그들도 이걸 알고 있었다. [[샬롯 카타쿠리]]와 [[샬롯 스무디]]는 다과회와 결혼식을 엉만으로 만든 대가로 톡톡히 본보기로 삼아주겠다 벼른다.
* 빅파더 내부의 방. 벳지의 분신체가 고통에 겨워 몸부린친다. 빅파더의 위용에 환호하던 [[몽키 D. 루피]]도 상황의 위급성을 인식한다. 본래 빅파더는 보통 대포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 방어력을 지녔지만 빅맘은 차원이 너무 달랐다. 루피는 더는 못 보겠다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빅맘을 날려버리겠다고 성화다. 그걸 [[쵸파]]와 [[나미(원피스)|나미]]가 찍어누르다시피 막는다. 나미는 그가 화풀이로 싸우려 드는 것에 불과하다며 밀집모자 일당의 목표는 모두 달성됐다고 쏘아붙였다. 그들은 [[상디]]를 탈환하고 [[포네그리프]]의 사본을 확보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 나미의 논리정연한 설교는 더 이어졌다. 응전할 틈이 있다면 모두가 탈출할 방도를 생각해야 하며 애초에 싸울 걸 전제로 했으면 [[조로(원피스)|조로]] 일행까지 전부 데리고 왔을 것이다. 포네그리프 확보의 일등공신인 [[브룩]]도 나미를 편든다. 그는 나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어디까지나 소수 인원이었기에 침투가 가능했고 지금은 전원 무사히 와노쿠니로 가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이제 작전에 반대하는건 시저 뿐이다. 하지만 벳지는 그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지긋이 눌러주는 것만으로 시저의 반발을 억눌렀다. 그리고 작전 실행. 빅파더가 사라지고 벳지와 시저, 그리고 빈스모크 일가가 바깥으로 나왔다. 시저의 말이 맞았다. 기다리다 지쳐가던 샬롯가의 형제들이 일제사격으로 반겨준다. 빅맘의 즐거운 웃음 속에 쏟아지는 총알 세례. 시저가 눈물콧물을 쏟으며 움츠러들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빈스모크 형제들이 단 한 발의 총알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 벳지의 품을 해집고 두 명이 튀어나온다. 상디와 루피. 상디가 "디아블잠브 스트라이크"로, 루피가 "고무고무 엘리펀트건"으로 제우스를 상쇄한다. 이럴 줄은 몰랐던 레이쥬. 루피와 상디는 서로 왜 뛰쳐나왔냐 탓한다. 루피가 "나오지 말라더니 너는 나왔냐"고 까자 "나는 나와도 되니까 한 소리"라 응수한다. 그리고 이 둘을 제일 까고 싶은 브룩, 나미, 쵸파는 "저 바보들이 나가버렸다"고 비명을 지른다.
- 원피스/873화 . . . . 13회 일치
* 하지만 추격대가 지척까지 와있고, 게다가 빅맘이 광란 상태로 머리 위를 덮쳐오게 되는데.
* 빅맘해적단의 기사회생. 옥갑의 폭발로 촉발된 홀 케이크 성 붕괴로 까딱하면 성과 스위트 시티가 함께 괴멸할 뻔 했으나 총요리장 [[슈트로이젠]]의 능력으로 성 자체를 케이크로 변화시키셔 가까스로 인명피해를 면했다. 그러나 성은 파괴되었고 어마어마한 케이크 더미에 깔린 사람들을 구출하느라 어수선하다. 빅맘 해적단의 간부들은 자기들이 아는 정보를 공유하며 다과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밀집모자 해적단과 파이어 탱크 해적단이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전모를 밝혔다. 다과회, 결혼식이 엉망이 됐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카포네 갱 벳지]]는 [[몽키 D. 루피]]와 손잡고 빅맘을 배신, 오히려 [[샬롯 링링]] 암살을 도모했다.
* 스무디는 이럴 때 어찌하는지 기억에 새겨질 정도로 숙지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빅맘이 찾는 음식을 대령하는게 최선. 문제는 웨딩 케이크를 담당했던 슈트로이젠의 상태였다. 쿡쿡 열매의 능력으로 성을 케이크로 만들고 사람들을 구한 것까진 좋았지만, 하필이면 착지할 때 와장창 실패. 전신에 붕대를 감고 드러누웠다. 의사가 적어도 며칠은 있어야 회복이 된다고 진단. 답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 페로스페로도 큰 걸 바라고 친 공갈은 아니다. 그저 잠시 잠깐 상황을 완화하려는 수작. 잘 돼서 친히 루피를 잡으러 간다면 좋고, 아니라도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와 주는 정도면 충분한 그런 소리였다. 일단 빅맘이 그 말을 듣긴 듣는거 같은데,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까? 카타쿠리와 간부들, 스위트 시티의 시민들이 이목을 집중한다. 스무디는 그렇게 형편좋게 유도가 될지, 그런게 가능한 일인가 의심한다. 이윽고 빅맘이 고개를 돌린다.
>내가 도와줄까?
[[샬롯 푸딩]]이었다. 샬롯가의 천덕꾸러기. 그녀는 이번 웨딩 케이크가 "초콜릿 시폰 케이크"였고 초콜렛에 관해서는 총요리장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시폰 케이크"라면 [[샬롯 시폰]]이 최고의 장인. 그녀와 언니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오빠들이 정말 가능하겠냐고 입을 모으면서, 그 시폰은 벳지의 부인이고 지금은 배신자라고 말한다. 과연 그녀의 협조가 가능할까? 푸딩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그동안 숨겨왔던 세 번째 눈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자신의 제 3의 눈을 아름답다고 칭찬했던 푸딩. 누구나 괴물이라 기피했던 그 눈을 칭찬한 대가가 이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모욕한 상디와 그 일행을 처리해 준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이런 뜻모를 말도 덧붙이는데.
* [[나미(원피스)|나미]]는 밀집모자 해적단의 퇴각을 진두지휘 중이었다. 사실 징베 등에 타고 있으니 "진두"라고 할 순 없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주도였다. 루피는 나미가 지시를 내리는게 불만이었다. 다들 뛰고 있는데 나미만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징베에 올라탔을 뿐인데 뭘 그리 당당하냐"고 쏘아붙였다. 옆에서 뛰던 상디는 평소상태로 돌아와 "나미씨는 귀여우니 그래도 된다"고 우겼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캐럿(원피스)|캐럿]], [[쵸파]], 징베는 묵묵히 뛰는 중.
나미는 일행을 루피가 상디를 기다렸던 그 벌판으로 인도했다. 거길 가로질러 유혹의 숲을 돌파하는게 최단 경로. 루피는 그 숲에 또 들어가도 될지 걱정한다. 그런데 전방을 보니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에 탈것으로 애용했던 킹 바움이었다. 그런데 "레이디 트리"라는 여자 나무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의 간호를 받으며 상처를 치료하던 차였다. 루피와 나미는 킹 바움을 금방 알아봤다. 물론 킹 바움도 그들 얼굴을 알아봤지만,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반가워하는 관계였다.
잠시 뒤, 킹 바움은 또다시 나미에게 지배 당하는 신세가 됐다. 일행을 태우고 그대로 유혹의 숲으로 직진. 그 바람에 레이디 트리와는 눈물을 삼키며 헤어졌다. [[샬롯 로라]]가 준 비브르 카드를 뺏긴 줄만 알았는데, 나미는 그걸 반으로 쪼개서 하나는 잘 보관하고 있었다. 유혹의 숲의 주인인 킹 바움만 데리고 있으면 그 숲도 무사통과, 나미의 절약정신이 빛을 봤다.
* 하지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빅맘 해적단의 추격대가 어느 새 다가와 있었다. 서로 육안으로 확인이 되는 거리. 나미가 "따라잡히면 그 재봉선을 다 뽑아 버리겠다"고 협박해 킹 바움을 더 달리게 한다. 페드로가 듣기에도 너무한 처사지만 비상사태니.
- 유인촌 . . . . 13회 일치
[[1951년]] [[3월 20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그 이전까지 자신이 태어난 곳은 서울이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고향이 바뀐 이유는 가카 내각에서 호남 인사 홀대 소리가 나와서.... 유인촌의 부모가 [[한국전쟁]] 때 전주로 피란을 가 유인촌을 낳았다고 한다...]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까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의 교수 역임[*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예술대학에 교수연구실이 있었다. TV에서의 인자하고 덕이 풍부한 [[이미지]]와는 달리 강의 때는 여러모로 과격(?)했다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고 2012년 2월 20일부터 잠깐 예술의 전당 이사장을 맡았고, 2014년 배우로 복귀했다. 자신을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발탁했던 [[이명박]] 前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이명박이 퇴임한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이명박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역사스페셜]]의 진행자로도 친숙하며 여러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하였다.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형섭,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으로도 출연한 적이 있다. 특히 드라마 중 이명박을 모델로 한 인물의 역할을 두 번 맡은 적이 있다.
사실 TV 필모 초기에는 의외로 '''깡패'''나 '''잉여''' 역도 꽤 했다. 80년대 모 드라마에서는 사회 잉여였다가 '''[[삼청교육대]]에 간 후 착하게 되는''' 역할도 했고 전상국의 원작인 아베의 가족에서는 한국에서 동네 날건달들과 미성년자 성추행 등을 일삼다가 우연찮게 미국으로 이민가서 날라리로 살다가 입대하여 주한미군으로 귀국하여 모친의 과거와 이복형의 존재를 찾는 역할도 했다.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의 역할 혹은 대부분 그렇게 하다가 말아먹고 망하는 비운의 지식인 연기를 전문으로 한다. 연극에서 <[[햄릿]]>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군[* 이 연기는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아주 잘 나온다. 유인촌의 연기변신을 보려면 필히 봐야 할 작품. 이 연산군 배역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다.] <역사는 흐른다>에서 이규직, <[[조선왕조 5백년]]>[* 사실 조선왕조 5백년에서는 배우들을 계속 돌려막기를 했다. [[최수종]]만 해도 철종과 사도세자를 했고 故김무생의 경우 이성계와 이순신을 했으며 신충식이 담당한 사람만 원균과 미우라 고로등을 포함해 총 6명이다.]에서 조광조(풍란), 인조임금(남한산성) 연기가 대표작.
2014년 초, 홀스또메르를 통해 연극계로 복귀했으며 변함없는 연기내공을 선보였다. 특히 2015년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라간 셰익스피어의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메인 무대에 복귀했는데, 이때 아들인 연극배우 남윤호[* 이름은 당연히 [[예명]]이고, [[본명]]은 유대식이다. 유인촌의 아들이란 [[금수저]] 대우 받고 싶지 않다고 [[유학]]갔다 들어오면서 아예 성까지 바꾼 후 데뷔해서 수년째 극단 여행자 소속으로 활동중인 연극배우인데, 워낙 숨기다 보니 남윤호가 유인촌 아들인 걸 연극계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연출자가 남윤호를 한참 설득하고 나서야 이 연극에 부자가 같이 출연하게 되었고 그 결과 부자관계가 연극계에 뒤늦게 알려졌다. 심지어 같은 극단에서도 대부분이 그때 다들 처음 알았다고 한다.]와 페리클래스 역을 나눠 출연하여[* 아들은 젊은 페리클레스, 아버지는 해설자+나이든 후의 페리클레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실제 성은 '[[류(성씨)|류]]'씨(버들 류)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류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유현진이 아닌 류현진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류(성씨)|류]]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뒤에서 말리고 있는 사람은 [[신재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2010년]]에 유인촌의 뒤를 이어 장관이 될 뻔 했으나[* [[청와대]]에서 지명.]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등이 밝혀져서 후보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SLS조선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가 선고되었고, [[2013년]], [[대법원]] 판결에서 [[징역]] 3년 6월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차관들이 말리고 회의장을 나가면서 또 '''"XX, 성질이 뻗쳐가지고 정말... [[씨발|X발]]!"'''이라고 욕설을 했다.[* 일부 방송사에서는 삐~ 처리를 하거나 아예 [[소리]]를 안 내보냈다. 다만, 그냥 그대로 내보낸 방송사도 있었다.] 당연히 유인촌 장관은 [[구설수]]에 오르면서 푸짐하게 욕을 먹었고, 더불어서 유인촌을 데려온 [[MB]]도 싸잡혀서 [[세트]]로 욕을 무진장 먹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유머와 합성물의 소재가 되면서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
[[2017년]] [[가을]],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블랙리스트]]의 작성이나 실행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와서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37&aid=0000164108|기사]]. 일단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965355|기사]].
- 은혼/588화 . . . . 13회 일치
결의로 맞서는 가구라와 신파치.
* 더이상 아무도 죽게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함께 카무이에 맞서는 신파치.
* 가구라와 신파치는 몇 번이나 날려보내지면서도 끈질기게 카무이에게 매달린다.
* 빈사의 아부토는 요시와라에서 폭주한 가구라를 신파치가 뜯어말리며 하던 얘기를 회상한다.
* 그리고 몇 번이라도 다시 일어서는 신파치와 가구라.
* 신파치와 가구라는 폭주한 카무이를 상대로 놀랄만큼 접전을 벌인다.
* 가구라는 싸우면서 어머니 코우카와 이야기한 것을 회상한다.
* 가구라는 "언젠가 엄마의 병이 나으면 파파와 카무이와 함께 가자"고 하는데, 코우카는 "내 병이 낫는 것과 그 덜떨어진 놈들(우미보즈와 카무이)가 돌아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빠를까"라며 웃는다.
* 긴토키는 신파치, 가구라와 합세하여 카무이를 제압한다.
* 가구라는 완벽한 "바보"(긴토키)와 "얼간이"(신파치), 해결사를 찾았다고 독백한다.
* 가구라와 카무이의 크로스 카운터.
- 은혼/611화 . . . . 13회 일치
* 원상 황자는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돌아가자 크게 당황하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빈정거리며 감옥으로 돌아간다.
* 우주의 해방군 본대는 지구측과 통신조차 두절되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대기 중이선 함대까지 이상이 오고 최종적으론 더이상 병력을 충원하는건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상 황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원상에게 사카모토 다츠마는 "장군님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줄 생각이었겠지만 습기가 차버렸군"이라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서있기도 지친다며 그냥 감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원상은 돌아가려는 그들을 불러세우지만 도쿠가와 사다사다는 "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 해방군의 기계화 병력은 전멸. 가부키쵸의 주민들은 히라가 겐카이 영감의 성과에 환성을 지르지만 사정을 짐작하고 있는 시무라 타에, 캐서린은 겐카이 일행을 걱정한다. 오토세 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분명 겐카이 영감이 타마와 사카타 킨토키를 희생시켰을 거라고 직감한다.
* 해방군이 무력화되며 활로가 뚫린다.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선봉으로 치고 나가며 해방군을 무찌른다. 진선조와 오니와반슈도 기세를 올리며 거침없이 돌격한다. 겐카이포 덕에 기계가 내장된 총기까지 전부 무력화되었으며 재정비가 되지 않은 해방군을 상대로 쾌진격이 가능했다. 진선조 대원들은 겐카이 영감이 정말로 세상의 절반을 구했다고 칭송한다. 하지만 사루토비 아야메는 타마가 희생했다는걸 알기 때문에 좋아하지만은 못하고 핫토리 젠조는 모처럼 죽을 각오를 했는데 묘한 기대를 갖게한다고 툴툴댄다.
* 오우가이는 병사들을 모아서 병기는 못 쓰게 됐지만 적도 마찬가지며 병력 자체는 자신들이 압도적이라고 교시한다. 그리고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파괴하고 본대와 통신을 복구하는걸 목표로 하여 진격을 명령한다. 따라서 이들은 가부키쵸를 향해 진격하게 되는 셈. 해결사 일행은 이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구라와 신파치는 가부키쵸의 동료들을 걱정하는데 긴토키와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정도는 가부키쵸에서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본진과 단절된 이상 해방군의 행동은 정해져 있던 셈이고 가부키쵸에서는 그걸 감안해서 미끼역을 자처한 것이다. 핫토리는 전쟁에서 중요한 점은 적의 행동을 먼저 아는 것이라 강조하고 곤도 이사오는 에도 전체를 상대로 무차별 파괴를 하던 해방군이 뚜렷한 목표로 일정한 작전을 수행하게 됐으니 오히려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때라고 말한다.
* 한편 가부키쵸의 주민들은 오토세 여사의 지휘를 받아 마을을 요세화시키고 있다. 가부키쵸는 "지구방위도시"라는 이름으로 해방군을 맞이해 버틸 준비를 마친다. 타에 조차도 완전 무장을 하고 임전태세로 나선 상태. 이들이 표적이 되어 있는 동안 외부의 저항 세력이 적의 배후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외부의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캐서린은 외부와 연락할 수도 없는 마당에 과연 와줄 사람이 있을지 우려하지만 타에는 분명 올거라 장담한다.
한대 타마에게 반했던 야마자키 사가루는 타마의 안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데다 은근슬쩍 통상폼으로 돌아와 있어 역시 야마자키는 안 된다는걸 느끼게 해준다.
- 은혼/633화 . . . . 13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드래곤 퀘스트 3]]에서 현자로 전직하는 것 보다 어렵다고 투덜댄다.
* 그는 자신이 적의 파괴병기를 파괴할 테니 가츠라와 다츠마는 적장 [[엔죠 황자]]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한다.
* 그러면서 [[도쿠가와 노부노부]]에겐 "이들은 당신과 나라를 배신하지 않으니 나라도 이들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 신스케가 시간을 끄는 동안 가츠라와 다츠마 일행은 엔죠 황자에게 진격을 시작, 노부노부는 이들을 따라가며 진정 나라를 싸워준 이들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 다츠마는 그들이 우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환영한다. 적어도 그만은 신스케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가츠라는 겁먹고 우주 구석탱이에서 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기한테 베이고 싶어서 돌아왔냐고 험악한 말을 한다. 신스케가 돌격을 멈추지 않으며 "해방군 말고 네놈들이랑 먼저 한 판 해도 상관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어차피 온 우주와 거하게 한 판 해야 할 참이니까. 가츠라는 그 뒤를 따르며 나라를 뺏은 다음엔 우주를 뺏을 심산이냐며 그놈의 허풍은 우주에 나와서도 못 고쳤다고 비꼰다. 다츠마가 따라와 "이참에 그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 보자"고 끼어든다. 해방군한테 몰살 당하는 것 보단 낫지 않은가?
* 투덜거리던 가츠라는 "각오는 해야겠다"하고 중얼거린다. 이기기 위해선 한 번 원수 졌던 동료, 신스케와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단 말인가? 신스케는 자신의 각오를 밝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 벽이 뚫리면서 새로운 해방군 병력이 쏟아진다. [[자작 제독]]이 적의 숫자가 압도적이라며 발이 묶이면 금방 끝장날 거라고 외친다. 신스케는 원수이자 동료인 다츠마와 가츠라를 먼저 보내려 한다.
그는 덤으로 "이쪽 대장"도 맡긴다. [[도쿠가와 노부노부]]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노부노부의 목이 붙어 있는걸 보고 안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말도 안 되는 때에 대장 자리를 떠맡겨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와 노부노부는 배신하고 배신 당했던 사이. 하지만 이번에 그를 맡는 사람들은 다르다. 신스케는 그들을 "나라"에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다.
* 신스케와 귀병대가 발을 묶는 동안 가츠라, 다츠마가 선두에 서서 진로를 뚫는다.
>장군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 은혼/638화 . . . . 13회 일치
* [[오토세]]여사와 [[시무라 타에]]가 건물 위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고 놀랄 틈도 없이 또다른 폭발이 그녀들이 있는 건물을 덮친다.
* 한편 [[소요 공주]]와 [[이마이 노부메]]의 호위 중이던 [[사다하루]]는 용혈의 이변과 긴토키 신변에 일어난 일을 동시에 감지한다.
*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은 에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각지에서 흩어져 싸우던 가부키쵸 연합군이 퇴각한다. [[츠쿠요]], [[사루토비 아야메]]가 백화와 오니와반슈를 수습하고 [[도로미즈 지로쵸]], [[도로미즈 피라코]] 부녀와 [[사이고 다카모리]]도 병력과 함께 퇴각하나 어디로 가야할까? 폭발은 빠른 속도로 뒤따라온다. 가부키쵸의 고지대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오토세]] 여사. 그녀와 함께 전황을 지켜보던 가부키쵸 주민들 사이에서 [[시무라 타에]]가 조심스럽게 걸어나온다. 그녀의 눈은 믿기지 않는 광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토세 여사와 타에, 가부키쵸 주민들의 눈 앞으로 마치 에도가 불을 토해 내는 듯한 장면이 펼쳐졌다. 무수히 많은 폭발, 거기서 나온 빛의 기둥이 에도를 벌집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뒤 쪽. 바로 뒤에 있는 건물이 그 폭발에 삼켜져 먼지로 돌아간다. 이제 에도에 안전지대는 없다. 아니, 지구 그 어디에도.
* 긴토키는 발 밑을 울리는 심상치 않은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우츠로에게 외친다. 우츠로는 다소 친절할 정도로 자세하게 대답했다. 우선 다행한 점은 [[히라가 겐가이]]의 나노머신이 터미널 지하 깊숙한 곳까진 미처 닿지 않았다는 것. 거기서 우츠로가 계획한 최후의 계획이 무사히 시작했다. 그는 손에 넣은 "열쇠"를 이용해 터미널 지하의 "문"을 열엇다. 문이란 "용혈"을 봉하고 있는 터미널의 중추 장치다. 아르타나의 흐름이 "용맥"이며 그 원천이 "용혈". 그걸 제어하기 위해 설치된 "문"을 잘만 다룬다면 단숨해 폭주시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만한 대폭발을 일으킬 수도, 지금처럼 혈관 각지를 부수어 폭주를 확산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우츠로는 가부키쵸 연합군 따윈 언제든 처리할 수 있었다. 긴토키와 그들은 단지 우츠로의 손 위에서 춤을 췄을 뿐이다.
>이렇게 된 거 지구와 전 우주 손잡고
해결사들이 질겁한 표정으로 우츠로를 바라보듯, 해방군도 마찬가지. 지구가 히노카구츠치의 포격을 아르타나의 힘으로 영격하려 한다 생각한다. 맞는 추리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이 부딪혀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 자신들도 몰랐다. 점점 어두워지는 엔죠 황자의 표정. 이제와서 초조해진 걸까? 하지만 우츠로는 그들이 발을 빼진 못할 거라고 예견한다. 이미 해방군은 자기들 자신의 과오로 다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미 그들이 짊어질 만한 크기의 업보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죗값과 증오를 적 한 명에게 맡기고 그걸 지워버려야 할 일이다. 적어도 엔죠 황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리고 또 한 마리의 해결사가 이 위기를, 지구와 동료들의 위기를 감지한다. [[사다하루]]는 [[소요 공주]]와 [[이마이 노부메]]를 경호하고 있었다.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는 어떤 육감이었는지 에도의 모처로 소요 공주를 피신시켜 두었다. 지금 위치에서도 에도에서 일어나는 천재지변이 똑똑히 보였다. 소요 공주가 사색이 되어 마츠다이라에게 저 빛은 무엇이고 에도 사람들은 어찌되는 건지 물었다. 담배를 문 마츠다이라는 대답을 피하며 그녀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한다. 그것을 노부메가 무의미한 짓이라 말한다. 이 지구 위에 안전한 곳이 있을리가 있나? 그녀는 솔직히 말하라며 그들의 별이 1초 뒤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금은 멀리서 당장의 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 여기서 저곳의 일행이 무사하기까지 바란다면 과욕이다. 말을 잊는 소요 공주.
* 가구라가 말했다. 사다하루는 해결사를 따라가려 했지만 그녀가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소요 공주와 노부메의 호위를 맡겼다. 그녀는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 은혼/641화 . . . . 13회 일치
* 해방군 모선 내부의 [[다카스기 신스케]], [[카와카미 반사이]], [[키지마 마타코]]는 내부에서 중추시설을 요격하려 하나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 반사이는 부상을 입은 몸에도 불구하고 분전하며 신스케와 마타코를와 함께 돌격한다.
* 몰려드는 적들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반사이와 헨페이타. 그들은 영웅을 위해 죽기 보단 친구와 살기 위해 싸운다고 다짐한다.
지금껏 신스케의 부축을 받았던 [[카와카미 반사이]]가 여기서부터는 자기 발로 걷겠다고 일어선다. 이제부터는 하나라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그들의 승리조건이다. 그가 신스케에게 할 말은 이것 뿐이다.
* 거침없이 나아가는 신스케와 마타코. 그리고 조금 뒤에서 그들의 뒤를 받치고 있는 반사이. 부상의 영향은 느낄 수 없었다. 반사이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건 한 가지 확신이다. 넘어설 수 있다, 빠져나갈 수 있다, 제 아무리 많은 적들이 있더라도 그대, 신스케와 함께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반사이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런 환상을 품게되는 자신에 놀라워했다.
* 신스케는 영웅이다. 영웅이란 죄많은 생물이다. 함께하던 동료의 시체와 쓰러뜨린 적의 시체를 쌓아올려 밟고 가는 잔인한 생물이다. 그럼에도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자들. 그렇기에 그 등에 이끌린 사람들이 영웅을 쫓아 앞으로 나아간다.
신스케는 영웅이기 때문에 동료와 적의 시체를 밟고 가는 유형은 아니었다. 그는 그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얼마나 슬픈지 보통보다 뼈져리게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간건 시대가 그에게 강요한 내용이었다. 반사이가 본 신스케란 인간은, 그저 한 사람의 연약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반사이의 모습이 무너진 잔해 뒤로 사라졌다. 이제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반사이가 무전으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수비가 엄중하다면 차라리 적을 이쪽으로 집중시킬 테니 신스케와 마타코가 선행하라고 말한다. 물론 신스케가 납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사이는 자신도 곧 뒤따라가겠다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비록 복부의 총상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지만.
* 불사신처럼 보였던 반사이. 그러나 해방군의 사격은 한 발 한 발 그의 사지를 관통했다. 에너지 중추로 접근하는 헨페이타의 우주선도 비슷한 신세였다. 반사이가 짐작했듯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옛날에 신스케를 위해 죽기로 했던 그 결심이, 이제와서 후회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생을 부여잡고자 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이 전쟁의 끝이 보고 싶다. 이 전쟁이 끝나서 영웅이 아니게 된 한 명의 친구, 신스케의 옆에서 살고 싶다 바라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영웅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살기 위하여.
- 이민우(배우) . . . . 13회 일치
유아기 시절인 [[1980년]]부터 CF모델로 활동하다 6살 때 정식으로 드라마 데뷔를 하게 되는데 데뷔작이 MBC의 [[조선왕조 오백년]]([[1981년]])이다. 배우 경력이 벌써 '''30년이 넘는''' 본좌 중에 본좌. [[홍경인]]([[1988년]] 데뷔), [[김정현(1976)|김정현]]([[1994년]] 데뷔) 등 경력이 나름 길다는 동년배 배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유명한 왕 전문 배우(...) '''[[최수종]]'''(1962년생, [[1987년]] 데뷔) 등 1960년대 초반 출생인 연기자들마저 이민우에게는 경력 때문에 어려워한다는 것이 [[라디오 스타]]에서 드러났다. [[http://m.news.nate.com/view/20130425n00128|#]] 이 정도 경력은 5살 때 데뷔했다는 [[안성기]]나 6살 때 데뷔했다는 [[하춘화]]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경력이다.
데뷔하자마자 뛰어난 연기력으로 청소년 배역을 독차지했다. 당시 KBS 연기대상 남자아역상은 장장 7~8년 동안 이민우와 다른 배우들의 경합이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아역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만 18세가 되던 해 --그러니까 그 연산군으로--에도 아역상을 받았다!
조선왕조 500년 이후 단막극을 거쳐서 일일 연속극 은빛 여울에 출연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것은 1986년 어린이 드라마 꾸러기의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부터이다. 당대를 풍미했던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의 후속작이었던 꾸러기는 그 주제가와 함께 대히트했다.
[* 당시 우리들의 천국 출연진들. 왼쪽부터 맏형 진수([[홍학표]] 분), 아버지([[박인환(배우)|박인환]] 분), 어머니([[선우용녀]] 분), 쌍둥이 형제인 미수(최상진 분)와 선수(이민우 분)]
1999년 윤석호 PD가 연출한 '초대'에서 이영애, 추상미, 김민, 김상경, 이창훈과 함께 나와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주목받으며 성인 연기자로 순조롭게 안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http://m.isplu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474652&cloc=|관련기사]]
2000년대 접어들며 트렌드가 된 기럭지와 비율에 방점을 두는 그런 세련된 외모가 아니어선지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현대극에서 카이스트의 이민재 역 같은 주연 오퍼는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민우는 은근히 머리가 큰 편이다.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옷빨이 더 잘 받는 이유도 사실은 그 때문(…))
이제 갓 40대에 접어들었으니 아직 젊은 나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기 때문에 연기력은 본좌 그 자체로 그냥 연기를 잘 하는 수준을 넘어, 시청자가 볼 때 이민우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배역과 혼연일체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래의 배우 중에서는 연기력이 가장 최상위권에 있다. 최신작인 [[공주의 남자]]에서의 연기가 그 훌륭한 예이다. 자기관리도 굉장히 엄격하여 대본 암기와 연기 구상은 물론, 쉬는 날도 체력관리와 연기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서 대본 암기에는 도가 틀 정도다. 연기를 할 때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대사까지 다 외우도록 배워왔다고.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이라[* 한때 대한검도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여 키에 비해[* 실제 키도 175이상은 된다고 한다.] 체격은 좋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두|머리가 그보다 더 크다고..]] 잘 나가던 20대 시절에 정장 의류브랜드 광고모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 촬영 전에 이민우 측에서 105사이즈를 요구하여 브랜드 측에서 105사이즈 옷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촬영날 그 의류회사 간부 겸 디자이너가 촬영전에 스튜디오로 이민우를 직접 찾아와서 모델을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역시 디자이너답게 약간 여성스러운 말투로 한 인사였으나 이민우는 아버지뻘 되는 어른의 예의있는 태도에 감격을 받아 잘 촬영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인사한 뒤에 갑자기 이민우와 준비된 옷을 번갈아 보더니 "어? 근데 민우씨 옷이 왜 105사이즈로 돼 있어요?"라고 했고 이민우가 "저는 원래 양복 105사이즈를 입습니다."라고 하자 "에이~ 아니죠. 이거 안 맞아요. 저희 회사 옷 작지 않아요. 모양이 안 나와요. 이렇게 찍으면 안 돼요." 라고 우기더니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어떻게 사이즈도 미리 제대로 안 맞췄냐고 크게 화를 내며 당장 95사이즈를 가져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간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당황한 이민우는 어벙벙한 상태로 95사이즈 양복을 입었고 너무 작아서 단추도 제대로 안 잠겨 옷이 상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흐엌-- 그제서야 이상하다고 느끼다가 뭔가 깨달은 간부는 "어~ 정말 미안해요. 민우씨. 근데 머리가 왜 이렇게 커?"라고 하며 원래대로 105사이즈를 입혔다고 한다. 그의 머리가 커서 어깨가 좁아보여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95사이즈로 오해했던 것.
[[이덕화]]와 [[고두심]]을 연기 스승으로 삼는다고. 그 두 분 앞에서는 "열심히 한다"라고 말을 못한다고 한다.
* 1998년 《로미오와 줄리엣》
- 일곱개의 대죄/201화 . . . . 13회 일치
*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 바토라|엘리자베스]]는 [[킹(일곱 개의 대죄)|킹]]과 [[디안느]]를 마신족이 학살을 자행하는 현장으로 데려간다.
* 킹은 정황으로 보아 이곳은 3000년 전,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이 [[십계]]가 되기 전의 [[브리타니아]]라고 추측한다.
* 마신족은 인간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중. 킹은 적의 엄청난 숫자와 힘 앞에 위축된다.
* 하지만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홈을 가진 디안느와 킹은 십계 조차 압도한다.
* [[드롤]]과 [[그로키시니아]]의 몸에 들어간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킹]].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 보다도 "[[여신족]]"인 [[엘리자베스 바토라|엘리자베스]]의 등장에 더욱 놀라워한다.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는 두 사람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 곁으로 다가가더니 "저번에 한 이야기"를 꺼낸다. 엘리자베스는 약간 안달하는 것 같은데 멜리오다스는 지금은 일이 최우선이라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리고 디안느와 킹에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곧장 어디론가 출발해 버린다.
* 디안느가 허둥지둥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킹이 이곳은 3000년 전의 [[브리타니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들이 있던 시대엔 여신족이 실체를 가지는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은 마신족과 전쟁으로 힘을 잃어 실체를 보일 수 없다. 풍경도 그들이 아는 브리타니아와 전혀 다른데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동자가 십계인 지금의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빛이다.
* 디안느는 그 모습에 환호하고 킹은 자신들은 짐덩어리일 뿐이라고 자학한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나타난다. 검은 날개와 함께 나타난 마신족. 킹과 디안느는 그 기척만으로 격이 다른 상대임을 감지한다.
디안느와 킹을 습격한 마신족은 십계 "배신"의 카르마디오스. 하지만 역대 십계 중 가장 안습하다. 초대 요정왕과 거인왕이라지만 상처 하나 못 주고 한 방에 리타이어. 계금을 써먹을 기회도 없었다. 물론 카르마디오스가 3천년 후의 십계에 비해 약하진 않겠지만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에 비견될 수준은 아닌 걸로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13회 일치
* 디안느는 "진짜 소중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고서와 "3천년 전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고서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자고 말한다.
* 할 수 없이 전 단원이 고서를 찾아 나서는데, 고서는 변장을 하며 피해다니다 자기도 모르게 [[나자 리오네스]]와 생활했던 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 리오네스 왕국의 고성을 울린 굉음은 인근 주민들에게도 들렸다. 굉음을 낸 당사자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그로키시니아]]의 시련을 마친 이들이 일행과 합류하려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던 것이다.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의 예지를 듣기 위해 고성에 모였던 멤버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으나 그것도 잠시. 곧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재회의 인사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국왕의 등장은 디안느와 할리퀸의 비명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그의 사과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데다, 할리퀸의 날개에 더 관심을 뺏겼다. 반과 같이 다가와서 그의 날개를 보고 "이제 너도 어른이 됐구나"라는 둥 애송이 취급을 해대는데다 반도 "작다. 어린애 사이즈"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결국 분개하는 할리퀸. 하지만 디안느가 "두 사람도 나름대로 기뻐하는 것이니 화내지 말라"고 타이르자 고분고분해진다. 멜리오다스와 반이 그걸 지켜보다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하는데, 할리퀸은 "연인 같아졌다"고 지례짐작해서 으스대지만 곧 "너 말고 디안느가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무안해진다. 디안느는 그게 맞다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려준다.
지금의 고서는 자신이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 조차 잊어버린 상태. 그래서 디안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멀린은 디안느가 무심코 말한 "3천 년 전"이란 단어에 움찔했다. 반은 "꿈이라도 꾼 거겠지"라고 별거 아니라 여기지만 멀린은 진지하게 가능성을 점쳐 본다. 그녀도 여신족의 시간회귀술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디안느가 정말 3천 년 전으로 갔었을 거라 추정한다.
* 이번에도 밀리면 정말로 기회가 없다, 절실함에 사무친 바트라가 "내가 말하겠다!"며 나타난다. 사실 멜리오다스는 이미 그가 와있는걸 눈치챘던 모양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고서는 기억해냈다. 소중한 약속과 [[나자 리오네스]]. 단편적인 기억들이 스쳐갔다. 그러나 고서의 다음 행동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대로 고성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도망쳐 버렸다. 바트라가 기다리라고 말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 일행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반은 오줌이나 똥이 아닐까 하는 한심한 추리나 하고 있었다. 디안느는 바트라가 보여준 물건이 그를 도망치게 했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건 고서 자신의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일곱 개의 대죄/고서 외전|그가 바트라의 누나 나자에게 주었던 물건]]. 원래 고서의 가슴 속에 있어서 마법의 마음을 주었던 물건이다. 에스카노르는 "마법의 마음"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상을 떠올린다. 멀린은 그보다는 실용적인 착상이 떠올랐는지 바트라에게 그 물건을 잠시 보여달라 한다.
* 멜리오다스와 반은 같은 방향을 수색했다. 반은 가던 중 과일장수의 사과를 하나 슬쩍하며 단장에게 "고서가 인형이란걸 알았냐"고 묻는다. 물론 멜리오다스는 알고 있었고 진짜 십계 고서와도 아는 사이였다. 십계 고서는 마신왕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 실력으로 "무욕"의 계금을 받고 십계로 발탁됐다. 무욕의 계금은 욕심을 품는 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빼앗는다. 이걸 부여해준 마신왕도 예외는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서는 자신의 분신인 인형 고서를 만들었다. 그 용모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쏙 빼닮게 만들었지만... 정욕을 품는 일이 없어야 했기에 남자로 만든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을 알고 있는 반은 "참혹한 얘기"라며 씁쓸하게 중얼거리고 멜리오다스 또한 동감한다. 어쨌든 그들의 수색은 계속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다. 지금의 고서는 인형이라서 기척으로 찾기도 어렵고 부르고 다닌다고 대답할 리도 없었다.
* 정처없이 걷던 고서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자, 그 앞은 "마음의 거처"라 할 만한 곳이었다. 자신이 처음 세상으로 나왔던, 나자와 만났던 고성. 왜 자신이 여기로 돌아왔을까? 또다시 단편적인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느 소녀. 나자의 기억. 그는 이런 "노이즈"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장소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13회 일치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게 걸린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과 접촉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놀랍게도 그 마력을 통해 저주를 건 당사자와 연결된다.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는 듯 한데. 그는 엘리자베스를 자신을 형 [[멜리오다스]]를 괴롭히는 "저주받은 여신"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로서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 뿐. 젤드리스는 "저주는 진짜였다"고 중얼거리며 그녀가 얽혀있는 진실을 폭로한다. 성전 시대로부터 3천년 간, 엘리자베스가 몇 번이나 전생을 되풀이하며 멜리오다스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 믿기지 않는 이야기이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닐거 같다고 예감한다. 그녀는 긴장하면서 성전시대에 멜리오다스와 함께 있던 또다른 엘리자베스에 대해 묻는데, 젤드리스는 그것도 당연히 "너 자신"이라 대답한다. 그리고 뜻밖의 기쁜 얼굴을 하는 엘리자베스. 젤드리스는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날을 세웠다. 엘리자베스는 꿈같은 일이 실현됐다며, 아주 오래 전부터 멜리오다스와 함께였다는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한다.
* 엘리자베스에겐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왜 자신이 멜리오다스를 괴롭게 한다는 건지? 그는 언제나 엘리자베스를 생각하고 그녀를 위해준다. 엘리자베스도 그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한다. 그 마음이 간절할 수록 그녀는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젤드리스는 질렸다는 듯이 그렇냐고 대꾸한다.
* 돼지의 모자 정이 갑작스럽게 빛을 발한다. 옥상에서 자던 [[디안느]]가 그 바람에 깨어난다. 산에서 내려오던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돼지의 모자정이 발하는 심상치 않은 빛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건 엘리자베스가 발하는 마력의 빛이었다.
* [[에스카노르]]와 [[핸드릭슨(일곱 개의 대죄)|핸드릭슨]]의 놀라운 시선을 받으며 엘리자베스의 정화의식이 끝난다. 그녀가 젤드리스와 접촉한 일이 이것과 관련이 있을까? 저주에서 풀려난 멀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건강해진 모습에 에스카노르가 감격. 그때 멜리오다스 일행도 들어온다. 깨어난 멀린은 자신은 젤드리스의 마력에 사로잡혀 잠드는 저주에 걸렸었다고 말한다. 이런 추태를 보인 것에 사과하고 저주를 풀어준 엘리자베스에게 감사한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젤드리스의 마력을 풀어냈다는 말을 듣고 놀란다. 멀린은 간호해준 에스카노르에게도 감사를 전하는데, 그는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못 됐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사실 그는 멀린이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 팬드래곤]]을 "그는 내 희망 자체"라고 했던 일을 마음에 걸려하고 있다.
*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상태를 걱정하지만 그녀 쪽에서 멜리오다스를 피한다. 그녀가 잠시 바람을 쐬고 싶다며 방을 나서자 할리퀸은 대체 멜리오다스가 무슨 짓을 했길래 저러느냐고 은근히 타박하는데, 산에서와 달리 이번엔 멜리오다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멀린이 건강을 회복하면서 일곱 개의 대죄의 발길을 막는 요소는 사라졌다. 일행은 드디어 진짜 목적을 위해 리오네스 왕국을 떠났다. [[마가렛 리오네스]]와 핸드릭슨, [[드레퓌스]]가 일행을 배웅한다.
* 이제 대죄는 온전한 성기사로서 임전태세를 갖췄다. 오랜만에 갑옷차림으로 모인 그들. 멜리오다스가 단장으로써 대원들을 소집해 작전 개요를 설명한다. 그들의 목적은 전날 설명한 대로 십계에 점령 당한 카멜롯의 해방과 인질 구출. 하지만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멀린에게 부가설명을 부탁한다. 멀린은 카멜롯에 특수한 보호수단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한다. 직경 백 마일에 달하는 차원의 뒤틀림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텔레포트도 앱솔루트 캔슬도 불가능해 접근이 몹시 어렵다. 반은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냐고 묻는데 당연한 말이다. 멀린은 리오네스 왕국으로부터 남동으로 250마일 지점에 차원의 뒤틀림을 유발하는 발현지점이라 특정했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할리퀸은 막연히 이스탈보다 남쪽이라는 것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 간만에 친구 곁을 떠난 헬브람은 그 여동생 엘레인의 집에 와있다. 엘레인은 오빠의 친구가 방문하자 별 일이라며 오빠를 부탁하지 않았냐 질책한다. 헬브람은 가끔씩은 괜찮지 않나며 그 말을 흘렸다. 그리고 엘레인에게 일곱 개의 대죄를 떠나보내도 괜찮냐고 화제를 바꿨다. 엘레인은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헬브람의 모습을 볼 수 있는게 그 증거다. 지금 엘레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 달리 말하면 그 어느 것도 아닌 존재다.
- 임백천 . . . . 13회 일치
[[1992년]] 모 프로그램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무대 당시 MC를 맡았다.--앨범에 [[영어]]로 되어 있어서 뭐라 설명도 못했던(...)--
멘트가 인상적이다. 당시 [[양현석]]과 [[이주노]]의 나이를 가늠해서 아이들이라는 단어가 어색했는지 계속해서 "서태지씨와 친구들"(...)이라고 했다.
이게 인연이 되었는지 1993년도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 TV 연예]]에서의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쇼 코너를 보내주었고, MBC의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백 무대에서도 멘트를 맡았고, 몇몇 서태지 관련 이벤트 등에서 나와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특집 방송이나 공연의 MC를 맡기도 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들도 임백천에 대해 각별히 생각한다고 한다. 서태지의 40대 이후의 외모가 놀랍게도 임백천과 매우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예전에 비해 좀 뜸하지만, 아직까지도 MC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DJ로도 활동 중이며, [[KBS 2FM]]의 오후 2시 프로그램인 "뮤직쇼"[* 김연주와 결혼하면서 그만뒀다가 2001년 4월부터 2003년 봄 개편 전까지 DJ를 맡았다.]등을 진행했다. 현재는 [[KBS 제2라디오]]에서 낮 12시 10분에 시작하는 "임백천의 라디오 7080"의 DJ를 맡았다. 하지만 2016년 9월 5일부터 라디오 7080이 수도권 방송으로 전환되어 지역에서는 들을 수 없다.--[[KBS 2FM]] 지방에 허가 안 할래?--[* 왜냐하면 [[한국방송공사|KBS]] 본사가 지역국 음악FM 방송을 [[KBS 1FM]]으로 취급하고 있어서 광고방송이 안 되기 때문이다. [[KBS 2FM]]이 2002년부터 광고방송 중인데, 2001년 10월 개편 때 광고방송을 위한 사전 작업 때문인지 2FM은 굿모닝팝스를 빼고 지방에서 모두 릴레이가 중단됐다. 게다가 굿모닝팝스도 광고가 나가는지라 지방에서 [[DMB]]와 라디오로 잡아 보면 약간 차이가 났으며, 2017년 3월 6일부터 굿모닝팝스가 [[KBS 제2라디오]] 수중계로 변경되면서 KBS의 지역국 음악 FM 방송은 사실상 1FM으로 완전히 전환됐다. 이후 2008년에 지상파 [[DMB]] 채널인 U-KBS 뮤직을 통해 [[키스 더 라디오]]를 제외한 나머지 2FM 프로그램들을 송출 중이며, 2016년에 라디오쇼(일부 지역국만)와 [[가요광장]]을 광고방송이 가능한 지역 [[KBS 제2라디오]]를 통해 릴레이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KBS 본사도 지속적으로 2FM 지역 릴레이를 추진하고 있지만, 주파수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주파수 없다면서 종교방송 허가는 왜 막 하냐고! 특히 [[극동방송]] 왜 허가했냐고!--] 2018년 가을 개편으로 [[KBS 제2라디오]]에서 아침 11시에 방송하는 "골든팝스"를 진행 중.
지금에 와서는 나이도 있고 해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1980~1990년대에는 MC계의 원탑이었다. 지금 시대에서 그 인기나 인지도를 비교할 만한 대상을 꼽자면 [[유재석]] 정도다.
* [[싱글 와이프]] 시즌 2 (2018)
- 전소민(배우) . . . . 13회 일치
||<#FFB1BC> '''{{{#white 별명}}}''' ||<#ffffff><(> [[개구리]], [[앵무새]][* 쉴 새 없이 수다를 떤다고 해서 부모님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쏘미닝, 전소똥[* 초등학생 시절 별명이라고 한다. 원래 젖소똥이었는데 순화해서 전소똥이라고 한다.] '''돌소민[* 돌아이+전소민이라는 뜻으로, 주로 [[런닝맨]]에서 많이 쓰이는 별명이다.]''', [[불나방]][* [[런닝맨]]에서 물불 안 가리고 게임에 무작정 달려들거나, 더티 플레이를 즐기는 [[유재석]], [[이광수(배우)]], [[전소민]], [[양세찬]] 등을 일컫는 별명], 전어리[* [[런닝맨]] 372회 방영분에서 최약체 [[전소민]]과 [[지석진]]이 한 팀이 되자 [[유재석]]이 붙여준 별명. 전어리와 지석바리.], 쉽사빠, 여자[[이광수(배우)|광수]], 토크지옥[* [[유재석]], [[하하(가수)]]도 감당 못하는 엄청난 수다쟁이], 자석인간[* 숟가락, 국자, 동전 등이 이마에 자석처럼 탁 붙어서 생긴 별명. 심지어 동전을 붙이고, New Face까지 췄다.], 연애검찰, 돌블리, 전소바리, 두릅소녀, 콸라여신, 명랑소녀, 뻥개구리 ||
2014년 그랜드민트페스티벌 GMF2014의 레이디로 선정 돼[[https://www.youtube.com/watch?v=fScOyyXAKzM|#]]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의 무대에 올라 밴드 [[소란(밴드)|소란]]의 보컬 고영배와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DAJdfCJY8kg|#]] [[https://www.youtube.com/watch?v=dl0H57_EG_M|#]]
데뷔 약 10년만에 임성한 극본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의 (오디션을 통해) 여주로 캐스팅되었다. 이 때까지 원 없이 연기해 보고 싶은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소원대로 일일드라마의 비중 높은 여주 역을 맡아 고난의 행군과 같은 촬영 분량과 기간을 감내해야 했다. 깡마른 체격임에도 툭하면 날밤을 꼬박새우는 등 한여름 무더위와 살을 에는 추운 겨울까지 밤잠없는 촬영 강행군, 이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시간, 종종 끼니마저 컵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좋은 연기를 해내었다. 이 드라마 초반의 풋풋한 모습이 드라마 종반으로 갈수록 제법 성숙한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3년 [[MBC 연기대상]]에서 [[백진희]]와 함께 여자신인상을 받았다[* 참고로 [[황마마]]역의 [[오창석(배우)|오창석]]도 남자신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수상소감에 [[임성한]] 작가에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주로 막장요소가 많은 일일드라마와 아침드라마에 출연을 많이하여 --막장전문여배우--[* 대표작인 오로라공주와 내일은 승리가 있다.] 해피투게더에 나와서 배우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일드 여신(일일극 전문배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58348|출처]]] 특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출연한 막장드라마를 패러디하여 막장여신, 막장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337070|출처]]]
'''애드리브와 순발력의 귀재'''
2015년 MBC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엉성한 문워크와 '자석인간'[* 이마에 동전과 숟가락을 붙인다. 그런데 웬만한 사람은 다 되는 개인기.]이라는 황당한 개인기를 선보이며 내숭 없는 털털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캐릭터 또한 특이한데 굳이 비슷한 연예인을 들자면 노홍철의 돌아이스런 면모와 이광수의 트롤링, 박나래식의 섹드립에 무맥락 드립과 애드립을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이다. 의외로 눈썰미가 좋아서 영화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상황극에 능하다. 인생술집에서는 김희철에게 [[박나래]]를 능가하는 강캐로 평가받았고 [[장도연]]이 인증했다.
* 간혹 [[정소민]]과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오로라 공주 초기에는 이름이 [[전노민]]으로 오타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듀스 101]]이 방송된 후 [[소미|전소미]]와도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기자가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 동명이인으로 혼성그룹 [[KARD]]멤버 [[전소민(KARD)|전소민]]도 있다.
* 많이 감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추억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릴 때 작성했던 일기류나 친구와 교환했던 편지, 부모님께 드린 편지는 기본이고, 대학 입시 시기에 만든 은행잎 책갈피[* 우연히 코트 모자에 들어온 은행잎이라고 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우연히 딱 잡으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때문이라고]나 남친과 헤어진 후 눈물을 닦은 커피숍 휴지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2015년 초 [[윤현민]]과 공개연애를 하다 2016년에 헤어졌는데, 이 때의 경험때문인지 [[https://mnews.joins.com/article/22469099|공개연애는 하지 않을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덤으로 진지하게 연애를 한 경험은 세번이라고 한다. 2017년에 런닝맨 고정으로 첫 합류한 방송에서 직접 밝힌 적 있으며, 2018년 위험한 파트너 특집 때도 “20대 때 세명이랑 결혼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개중 두명은 눈물의 커피숍 휴지인 J와 윤현민인가....~~그리고 세번 다 차였다고 한다. 그 중 한번은 상대가 바람피는 걸 눈치채고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라며 차인건 두번이라고 주장했는데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글쎄...]][* 우습게도 바로 직전에 거의 동일한 경험담을 털어놓은 광수에게 그건 차인거라며 돌직구를 날려놓고 자긴 다르다고 주장하다 뜬금없이 그 전남친에게 “너, 나한테 연락하지마!”라며 영상편지를 시전하기도]
- 정용화 . . . . 13회 일치
=== 2009년 ~ 2011년: 씨엔블루 데뷔와 배우 활동 ===
* [[2010년]] [[1월 14일]] 락밴드 씨엔블루(CNBLUE)의 리더로 팀 안에서 보컬과 기타와 랩을 맡아, [[bluetory]]<ref name="album1">[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315286592871176&DCD=A10102 씨엔블루, '씨엔블루토리'서 1집 전곡 첫 라이브 연주]{{깨진 링크|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3DEA31%26newsid%3D01315286592871176%26DCD%3DA10102 }}《이데일리스타in》, 2010년 2월 16일 작성.</ref> 음반 발매와 함께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수건남 효과에 힘입어 첫 방송후 각종 차트를 올킬하였으며,<ref name="all">[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17/6857237.htm “블루돌풍” CNBLUE, 첫 방송후 각종 차트 ‘올킬’]《재경일보》2010.01.17 작성.</ref> 한국 가요계에서 신인이 데뷔 후 14일만에 1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ref name="chleks">[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29/7708991.htm 씨엔블루, 최단기간 1위 기록 세우며 정상 등극! ]《재경일보》2010.01.29 작성.</ref> 이는 지상파 데뷔 최단 기간 1위 기록이었지만 위너 이후에 기록이 깨졌다.* [[2010년]] [[5월 19일]], 씨엔블루는 두 번째 미니 앨범 《[[Bluelove]]》를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 [[2009년]] [[12월 6일]]부터 [[2010년]] [[3월]]까지 [[문화방송|MBC]] 《[[우리들의 일밤|일요일 일요일 밤에]] - [[헌터스]] : [[헌터스|에코하우스]]》를 시작으로 예능활동을 시작하였다. [[2010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문화방송|MBC]]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 2》에 고정출연하였고, [[2010년]] [[7월]]부터 [[2011년]] [[3월]]까지는 [[SBS]] 《[[인기가요]]》 [[사회자|MC]]를 맡았다.<ref name="ingi">[http://seoulntn.com/cindex.php?c=news&m=view&idx=41989 정용화-조권, '인기가요' 새 MC 발탁..'관심집중'], 《서울신문NTN》, 2010년 7월 18일 작성.</ref> 또한, [[2009년]], [[2010년]] 2년 연속 《[[SBS 가요대전]]》 MC로 활동하였다.<ref name="gayo1" /><ref name="gayo2" /> 이러한 고정 출연 외에도 [[황금어장]], [[런닝맨]] -게스트로 최다출연기록을 세웠다, [[강심장]], [[명받았습니다]], [[승승장구]], [[놀러와]], [[해피투게더 (텔레비전 프로그램)|해피투게더]], [[청춘불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 [[2011년]] [[3월 21일]], 첫 정규 음반 발매 및 게릴라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컴백 씨엔블루 오늘(21일) 앨범발매→쇼케이스→게릴라콘서트 3단콤보|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321112618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1년]] [[3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과 함께 게릴라 콘서트…팬들 “역시 실력파 밴드는 달라”|url = 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출판사 = 마이스타뉴스|날짜 = [[2011년]] [[3월 21일]]}}{{깨진 링크|url=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 }}</ref> 선주문 10만장이 넘은 이 앨범은 발매 직 후 실시간차트와 일간차트 등에서 1위를 하였고, 컴백 일주일 후 [[3월 31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시작으로 하여 공중파인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 1주 만에 '엠카' 1위··"초심 잃지 않겠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3115421314776|출판사 = 아시아경제 |날짜 = [[2011년]] [[3월 3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직감' 잇따른 1위, 'FIRST STEP'의 놀라운 '직감'|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402140007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날짜 = [[2011년]] [[4월 2일]]}}</ref> 데뷔 후 처음으로 [[Mnet]] 《[[엠카운트다운]]》과 [[KBS]]《[[뮤직뱅크]]》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 [[2011년]] [[9월 1일]]에 일본에서 인디즈 마지막 앨범인 《[[392(Thank you too(much))]]》를 발매하여 오리콘 데일리 앨범 3위와 인디즈 위클리 1위를 차지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日 앨범 ‘392’, 오리콘 데일리 앨범 차트 3위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93705691|출판사 = 맥스뉴스 |날짜 = [[2011년]] [[9월 2일]]}}</ref> 또한, [[2011년]][[9월 10일]]에 일본에서 열린 일본 마쿠하리 멧세(MAKUHARI MESSE)에서 열리는 [[린킨파크]](Linkin Park) 단독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CNBLUE), 린킨파크(Linkin Park)와 '오프닝 무대' 가져|url= http://www.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출판사= 톱스타뉴스|날짜= [[2011년]] [[9월 9일]]|확인날짜= 2012년 8월 19일|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0120220518/http://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보존날짜= 2013년 1월 20일|깨진링크= 예}}</ref>[[9월 17일]]~[[9월 18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 "BLUE STORM"을 이틀에 걸쳐 진행하고,<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아시아투어 콘서트…9월 제주에서 출발한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10801001713&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 |날짜 = [[2011년]] [[8월 1일]]}}</ref> [[9월 25일]]에는 인디즈그룹으로는 유례없이 1만 5천석의 Yokohama Arena에서 인디즈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단독 콘서트, 요코하마의 밤을 불태운 ‘열정의 무대’|url=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24&nid=119144|출판사 = SSTV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이것이 밴드다…'씨엔블루' 日콘서트,1만 5천 팬 열광 |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27290|출판사 = 노컷뉴스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
* [[2012년]] [[1월 31일]] 일본 MTV '언플러그드' 출연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어쿠스틱한 연주와 청중과의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무대 등 라이브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韓 가수 최초로 日 MTV '언플러그드' 출연|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300&g_serial=634129&rrf=nv|출판사 = 조이뉴스24|날짜 = [[2012년]] [[2월 1일]]}}</ref> 또한, 수용인원 150명에 응모인원만 1만 5천여명이 응모하여 100배의 응모 수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MTV ‘언플러그드’ 출연…티켓 응모 ‘정원의 100배’ 기염|url=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20201170502960&ts=95729|출판사= 경제투데이|날짜= [[2012년]] [[2월 1일]]|확인날짜= 2012년 8월 19일|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4520/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20201170502960&ts=95729|보존날짜= 2016년 3월 4일|깨진링크= 예}}</ref>
* [[2012년]] [[3월 26일]]에 기자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컴백 쇼케이스를 왜 아침에?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69721|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3월 23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음반 낼때 마다 부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3261244591132&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음원은 발표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헤이 유' 음원공개 직후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32608080291572&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앨범은 3일만에 4만장이상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3일 만에 4만장 돌파…'3월 전쟁' 최후의 승자 |url=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2년]] [[3월 29일]] }}{{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새 미니앨범 판매량 1위, 최단 시간 4만장 돌파|url=http://interview365.mk.co.kr/news/19427|출판사 = 인터뷰365|날짜 = [[2012년]] [[3월 30일]]}}</ref> 또한, 한터 주간 순위에서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EAR FUN’, 한터 주간차트 1위! '승승장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3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61211/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보존날짜= 2014-09-08 |깨진링크= 예 }}</ref> 컴백 무대를 가진 일주일 후 [[4월 5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무세운 상승세로 컴백 1주만에 '엠카 1위'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출판사= 엑스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4월 5일]]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ref> 《[[EAR FUN]]》의 타이틀 곡인 '''Hey you'''가 가온차트 4월 1주차에 1위를 등극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가온차트 4월1주차 1위 등극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78505|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4월 8일]]}}</ref> 그리고 [[2012년]] [[4월 10일]]에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EAR FUN Special Limited Editio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미국화보+DVD 수록된 'EAR FUN' 특별한정판 발매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6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925085809/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보존날짜= 2015-09-25 |깨진링크= 예 }}</ref>
* 같은 소속사 가수 [[주니엘]]의 데뷔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고 듀엣곡과 뮤직비디오 출연소식이 연이어 들리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으며, 직접 출연한 선공개곡 ‘바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의 티저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팔에 키운 완두콩, 주니엘 뮤비서 공개 |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275926599530232|출판사 = 이데일리|날짜 = [[2012년]] [[5월 18일]]}}</ref> [[2012년]] [[5월 22일]]에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와 주니엘의 듀엣곡 ‘바보’ 22일 선공개 |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120521022078&subctg1=&subctg2=|출판사 = 세계일보|날짜 = [[2012년]] [[5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주니엘-정용화 듀엣곡 '바보', 실시간 차트 2위로 기분좋은 출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5월 22일]]}}</ref>
* [[2012년]] [[11월 2일]]에 KBS에서 진행된 《MUSIC BANK IN CHILE》에서 본인의 솔로로 무대에 올라 기타 연주와 함께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불러 스페셜 무대를 꾸몄는데, 이 곡 편곡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전 출연자가 무대에서 부른 ‘아리랑’의 편곡도 맡아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편곡자로 실어 눈길을 끌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소식에 네티즌 호평 "진정한 싱어송라이터"|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239010§ion=sc4|출판사 = 브레이크뉴스|날짜 = [[2012년]] [[11월 18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전 출연진 열창 순서에 자막 ‘편곡:정용화’ |url=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년]] [[10월 23일]] }}{{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ref>
</ref> 또한, 한국방송사 음악프로그램의 특성상 밴드의 라이브는 불가능한 것으로 되었지만, 컴백무대를 시작으로 2주간 씨엔블루는 음향설비와 무대장치 설치 비용을 부담하여 밴드 올라이브를 선보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지상파 컴백 무대 ‘올 라이브’ 구현 ‘기대 만발’ |url=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30114092106167&ts=130407 |출판사= 경제투데이 |날짜= [[2013년]] [[1월 14일]] |확인날짜= 2013-04-25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91548/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30114092106167&ts=130407 |보존날짜= 2016-03-04 |깨진링크= 예 }}</ref>
* 앨범발매로 바쁜 와중에 [[2013년]] [[1월 15일]] 말레이시아에서 진행된 제27회 골든디스크시상식의 MC를 맡아 진행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니콜, 이홍기-다솜 ‘골든디스크 시상식’ MC 확정|url=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92989&cloc=|출판사= 일간스포츠|날짜= [[2013년]] [[1월 11일]]}}{{깨진 링크|url=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92989&cloc= }}</ref><ref>{{뉴스 인용|제목= 말레이시아 팬들, ‘골든 MC’ 정용화-니콜 “환상의 커플” 극찬
- 정인선(탤런트) . . . . 13회 일치
아역 출신 배우로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와 같은 반 친구로 등장했다. 의찬이, 정배 다음으로 비중있는 아역배우였다.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에서 한세은 역으로 출연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 [[2010년]] || 카페 느와르 || 임신한 소녀 || ||
|| [[JTBC]] || [[으라차차 와이키키]] || [[으라차차 와이키키/등장인물#s-1.4|한윤아]] || ||
*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오빠 때문이다. 어린 시절 오빠가 신문에 나온 연기학원 광고를 가져와서 부모님께 다니고 싶다며 떼를 쓴 적이 있는데 당시엔 오빠한테 지는 걸 싫어했고, 오빠가 하는 모든 걸 다 하고 싶었던 그녀는 오빠가 학원 등록할 때 가서 나도 다녀야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서 한 달만 다녀보라며 학원을 등록해주셨고, 그렇게 시작한 연기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빠는 현재 연극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
*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출연 중 [[매직키드 마수리]]에 같이 출연했던 [[한보배]]가 특별출연하여 16년만에 재회했다.
* [[이은주(배우)|이은주]]와 인연이 있다. 드라마 [[카이스트(드라마)|카이스트]] 49화에 함께 출연하였고, 극중 이은주(구지원)의 어린시절 모습을 똑 닮은 은하를 연기하였다.
* [[백종원의 골목식당]] 인천 신포국제시장 청년몰 에피소드에서 [[김민교]]와 연예인 식당 지원군으로 나왔다. 요리 자체는 맛있지만 상업성과 회전률, 김치 국물이 줄줄 흐르는 단점 때문에 김민교가 선보인 '팟 파카오 무 쌉'[* 정확히는 '팟 파카오 무 쌉 __랏 카우__'로, 다진 돼지고기와 [[바질]]을 주재료로 하는 태국식 [[제육덮밥]].]에 밀려 접대와 보조를 맡았으나 능숙한 모습을 보이며 김민교와 좋은 호흡을 맞춰 호평을 받았다. [[백종원]]이 찾아와 김민교와 태국 요리 내공이 느껴지는 대화를 나누자 살짝 굳어지면서 경탄하는 귀여운 모습도 보인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13회 일치
* 렉터와 프로시는 동료를 생각해 공복감에 저항한다. 스팅은 그걸 계기로 식욕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해치지 못하게 기절시킨다.
* 미네르바의 테리터리로 로그 체니가 유키노 아그리아와 자리를 바꾸며 나타난다.
* 라케이드 드래그닐과 조우한 스팅 유클리프는 어째서 그가 나츠 드래그닐과 같은 냄새를 풍기는지 의아해한다. 렉터와 유키노 아그리아가 그도 "드래그닐"이고 나츠와 혈연관계라고 알려주는데 스팅 입장에선 너무 뜬금없는 소리라 이해를 하지 못한다.
스팅은 그걸 사실이라 쳐도 본래 사람의 냄새는 형제든 부자든 다 다르다 말한다. 실제로 나츠와 제레프 드래그닐도 서로 냄새가 다른데, 유독 라케이드는 나츠와 같은 냄새라며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자 라케이드는 "나츠도 어떤 의미론 제레프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며 빛의 참격을 날린다. 하지만 "하얀 것"이 먹이인 스팅에겐 간식거리가 날아오는 거나 다름 없다.
* 스팅은 "홀리레이"와 "홀리노바"를 연달아 쏜다. 지금까지 전혀 타격을 입지 않던 라케이드도 성속성 공격은 통한다. 그는 스팅을 "성가신 녀석"이라 부르며 새로운 마법을 구사한다.
* "악식의 혼". 하늘에서 부적들이 내려와 스팅을 감싼다. 이 마법은 공복감을 유발한다. 스팅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니 배고픔에 지쳐 힘이 나지 않는다. 라케이드는 등에 매고 있던 십자가를 날려 공격한다. 배를 찔리는 스팅.
* 스팅은 너무 배가 고파서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그를 응원하는 동료들이 음식으로 보일 지경이다. 급기야 렉터를 닭다리인 줄 알고 물어 뜯는 지경에 이른다. 카구라 미카즈치는 눈을 뜨라고 호소하는데, 유키노가 갑자기 그녀를 깨문다. 유키노의 눈도 스팅처럼 공복에 허덕이고 있따. 곧이어 카구라도 전염된 것처럼 배고픔을 느끼며 유키노와 카구라는 서로를 물어 뜯는다. 스팅에게 물린 렉터도 공복을 느끼고 스팅을 깨물고 있다.
* 라케이드는 서로 먹으면서 멸하라고 말하는데 단 한 명, 프로시 만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로그 체니와 함께 먹을 때까지 참겠다고 말한다.
스팅이 라케이드의 냄새가 나츠와 같다는걸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은 그가 제레프서의 악마라는 증거일 수 있다. 정황으로 볼때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친아들일리는 없는데다 이번 스팅의 냄새 떡밥이 더해져서 라케이드는 제레프 서의 악마로 확정되는 분위기.
스팅이 백영룡의 힘을 얻어서 압도할 수도 있지만, 일단 나츠가 라케이드와 만나긴 해야 할 거 같으므로 라케이드의 승리를 점치는 쪽이 많다.
유키노와 소라노 자매는 모처럼 재회했는데 별 활약도 없이 흩어졌다.
- 페어리 테일/540화 . . . . 13회 일치
* [[안나 하트필리아]]와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시간의 틈새를 통해 생환
* 7명의 멸룡마도사가 전부 집결하고 아크놀로기아와 최후의 결전에 임한다
* [[나츠 드래그닐]]이 불려온 이질적인 공간.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흉흉한 기운의 남자. 나츠가 [[아크놀로기아]]와 대면했다. 나츠는 곧 그 남자가 풍기는 기운으로 그의 실체가 마룡 아크놀로기아라는 걸 간파한다.
* 현실세계에서 웬디를 빼앗아간 아크놀로기아의 거체는 방향을 돌려 매그놀리아로 향한다. [[엘자 스칼렛]]가 분통을 터뜨리나 손쓸 수단이 없다. 그때 다시 하늘이 갈라지면서 시간의 틈새로 사라졌던 [[안나 하트필리아]]와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떨어진다. [[제니 리아라이트]]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이 그들에게 헤엄쳐간다. 이치야는 자신도 왜 여기로 돌아왔는지 어리둥절해하지만 기뻐하는 블루 페가수스 멤버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안나는 자신들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웬디를 찾는데 엘자가 다가와 아크놀로기아에게 빨려가듯 사라졌다고 알려준다. 이는 안나가 예상한 바였다. 자신들이 돌아온건 기뻐할 일이 아니다. 설마 아크놀로기아가 시간의 틈새를 먹어치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아크놀로기아는 강대한 힘을 얻은 대가로 제어능력을 잃어버렸다. 현재 마룡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육체는 이 세상에서 폭주, 정신은 시간의 틈새에서 "조화"를 유지하려고 한다. 자신과 이치야는 그 "조화"에 부적합해 현세로 쫓겨난 거고.
* 한편 시간의 틈새에서는 수정에 뒤덮이기 시작한 나츠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크놀로기아는 그 꼴이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며 "조화와 멸룡" 중얼거린다. 그는 그게 참 재밌다고 말하는데. 나츠는 움직여보려 하지만 벌써 오른팔이 수정이 파묻혔다. [[제레프 드래그닐]]과 격전으로 부상 당한 오른팔이었다.
메스트와 합류한 엘자가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앞으로 이동한다. 이들은 나츠가 끝내 END의 저주를 떨치지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엘자는 설명은 나중에 하겠다며 좌우간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나츠는 살아있다면서.
* 루시 일행까지 데리고 페어리 테일 본대와 합류한 엘자. 되살아난 [[마카로프 드레아]]와도 재회했지만 감격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츠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수정에 먹힌 오른팔로 불꽃을 써보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발악을 보며 아크놀로기아가 "그 흑마도사와 싸우고 팔 한 짝이면 대단한 거다"고 빈정거렸다.
시간의 틈새. 나츠의 몸부림도 거의 끝나간다. 그도 친구들처럼 기둥에 갇힐 것이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절규. 그때 거짓말처럼 오른팔의 불꽃이 부활한다. 천공마법이었다. 웬디가 수정을 깨고 나츠의 몸을 회복시킨 것이다. 나츠는 그녀가 어떻게 수정을 깨드린 건지 묻는다. 웬디는 잘 모르지만 샤를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고 대답한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가질도, 렉서스도. 스팅과 로그와 코브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사랑하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새로운 힘을 주었다. 멸룡마도사 전원 부활.
- 하이큐/225화 . . . . 13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와 팀원들 간의 감정충돌은 일단락된다.
* 사와무라 다이치를 비롯한 3학년들은 "넌 언제나 그래왔다"며 격려한다.
* 히나타 쇼요는 합숙에서 코가네가와 칸지와 맞췄을 땐 저정도로 때렸다고 발언한다.
* 원래 츠키시마는 스마트한 플레이를 지향하지만 코가네가와는 살짝 빗나가게 올리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맞춰주게 된 건데 그게 높은 타점이 되었다.
* 스가와라 코시는 "성장했다"고 감탄하는데 히나타는 츠키시마를 두고 한 말인 줄 알았지만 사실 히나타를 두고 말한 것.
* 사와무라는 "타나카의 체력도 남았으니 이 상황에서 가능한걸 이것저것 실험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 현재 고참들은 곧잘 "굉장한 1학년이 들어와준 덕분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건 카게야마에게도 적용된다는 것.
* 아즈마네가 사과하자 타나카와 카게야마가 입을 모아서 "선배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화내듯 말한다.
* 서로 다투듯 사과하는 웃기는 상황. 사와무라가 스무스하게 풀어주고 각자의 과실을 정확하게 따지고 넘어간다.
* 공격이 성공한 후쿠타치는 아오네 타카노부와 갑빠를 부딪히다 그 튼튼함 때문에 데미지를 입는다.
* 카라스노는 히나타를 미끼로 사와무라가 스파이크를 때린다.
* 그러나 이를 눈치챈 아오네가 블록 위치를 급하게 변경, 사와무라의 스파이크를 차단한다.
- 하이큐/230화 . . . . 13회 일치
* 1회전 하루전. 선수들은 각자 평상심을 취하는 방법을 찾아 집중하고 두 매니저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는 함께 목욕을 한다.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는 숙소에 짐을 풀고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협조로 얻은 체육관에서 현지 조정에 들어간다고 공지한다. 그러면서 특히 시끄러운 삼인조에게 "숙소에서 소란피우지 마라"고 경고한다. 조용히 대답하는 히나타, 타나카, 니시노야.
* 그들을 태운 버스는 으리으리한 호텔 앞을 지나친다. 이때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곧 도착"한다고 말한다. 타나카는 이런 호텔이 묵는 거냐고 환호하는데, 진짜 숙소는 그 옆에 있는 허름한 보통 여관이었다. 어쨋거나 도쿄는 도쿄. 타나카는 "유령이 나올 거 같다"고 흥분하고 탐험하자고 제안한다. 히나타, 니시노야가 따라나서려는 찰나, 사와무라의 매서운 눈초리가 소리없는 경고를 날린다.. 또 조용히 대답하는 삼인조.
* 우카이 코치는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해 타키노우에 유스케에게 맥주를 쐈다며 비장의 무기를 공개한다. 여관으로 돌아온 카라스노. 우카이 코치가 선수들을 집합시키는데 사와무라는 1회전 상대의 영상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니었다. 이름하며 NAE GAE JUZZ NUEN DONG-YEONG-SANG. 타키노우에 전자상가의 혼신의 역작이다.
* 휴식 시간에 사와무라는 작전회의를 위해 자리를 비운다. 그 사이는 엔노시타에게 인솔을 맡기는데 부주장인 스가와라 코시가 왜 자기한테 맡기지 않느냐고 항의한다. 스가와라는 분위기 타고 같이 놀기 때문에 인솔로 부적합.
* 나머지 멤버들은 숙소에서 동영상을 보거나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런닝에 동행하지 않고 동영상을 본다. 스가와라는 공부를 하는데 키노시타 히사시가 대단하다고 말을 건다. 스가와라는 이건 평정심을 위한 거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즈마네는 아직도 우카이 코치의 동영상을 붙들고 있는데 멋진 영상에 홀려서 긴장은 잊어버린 모습이다.
그때까진 얌전히 있던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때부터 매니저들의 입욕시간이다. 타나카는 그런 판국에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냐며 절규한다. 자칫하면 이 망상이 NAE GAE JUZZ NUEN DONG-YEONG-SANG까지 덮어씌워버릴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듣고 있던 나리타 카즈히토는 "네 머리통엔 뭐가 들어있든 상관없다"고 뼈아픈 말을 날린다.
* 여성 멤버 끼리 목욕 중인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 히토카는 둘만 있으면 긴장돼서 아무 이야기나 꺼내보는데 시미즈가 항상 검정 스타킹을 신는것에 대해 묻는다. 사실 그건 다리에 남은 흉터를 가리기 위한 것. 육상을 했던 시미즈는 주종목이 허들이었는데 심하게 넘어지면서 다리에 흉터가 남아버린다.
* 3학년인 시미즈에겐 마지막 기회다. 히토카도 그 말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밤을 맞이한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런닝 삼매경. 츠키시마의 생각과 달리 쉽게 돌아오지 못할 듯하다. 아즈마네를 중심으로 동영상에 푹 빠진 파. 니시노야는 속편하게 자고 있다. 여관의 밤이 깊어간다.
* 마침내 오고야 만 1월 5일. 도쿄 체육관에 당도한다. 전국 배구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 통칭 봄고대회. 배구의 갑자원이라 불린다. 히나타는 작은 거인이 싸웠던 무대라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다른 학교 선수들이 지나가다 히나타와 부딪히는데 사과도 없이 가버린다. 상당히 키가 큰 그룹. 츠키시마는 2m가 넘을 거라고 예상한다.
- 하이큐/256화 . . . . 13회 일치
우선 방금 전 플레이를 되짚어 보자. 아츠무의 서브가 네트에 걸린 데서부터 시작. 이때 [[사와무라 다이치]]가 네트 근처에서 리시브하느라 공이 네트를 넘겨서 [[이나리자키 고교]] 진영으로 넘어온다. 이나리자키도 네트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공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공격에 들어갈 타이밍이 흔들린다.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 츠키시마는 상대편이 좌익에서 공을 받았으므로 레프트의 공격루트는 사전에 배제했다. 따라서 "우익에서 괴짜 속공이 온다"는 예상이 가능했다. 다이쇼는 그걸 알더라도 그 속공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로봇같다는 평을 남긴다.
* 우승후보인 강호를 상대로 선전을 펼쳐가는 카라스노. 관중석에서는 이 다크호스를 대단히 우효적으로 평가한다. 1학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리베로인 [[니시노야 유]], "사무라이"란 별명을 얻은 아즈마네 또한 "강하다"는 평이다. 주장 사와무라도 리시브가 뛰어난 걸로 고평가. 그런데 5번, 빡빡머리 [[타나카 류노스케]]가 어정쩡하다. 관중석에서는 "그냥 활발"하다는 걸로 평하며 놀림거리로 삼는다. 그 말을 듣고 있는 관계자 [[아마나이 카노카]]가 싸늘한 눈으로 키득거리는 관중을 쳐다본다. 당사자들은 원한을 샀다는 것도 모른다.
* "활발"한 타나카의 플레이. 좌측에서 스파이크를 때리지만 오사무와 [[스나 린타로]]의 벽에 막힌다. 블록에 맞고 튀어오르는 공. 그대로 타나카의 안면으로 향한다. 꼼짝없이 한 점을 내주게 생겼는데, 타나카가 필사적으로 목을 틀어서 공을 피하고 그 공은 아웃라인을 넘는다. 구사일생. 카라스노의 득점으로 인정되면서 타나카가 쾌재를 부른다. 어쨌든 득점은 득점. 비록 관중석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지만 말이다.
* 이어지는 이나리자키의 서브. 긴지로가 서브한다. 이번엔 사와무라가 리시브. 하지만 이것도 만만한 서브가 아니다. "하나같이 강렬한 서브를 친다"고 내심 놀라는 사와무라. 공은 카게야마에게. [[보쿠토 코타로]]가 이번엔 츠키시마가 뛸 거라고 보는데 정확한 예측이다. 그리고 아츠무도 눈치챘다. 하지만 스파이커를 바꾸지 않는 카게야마. 단, 이번엔 "조금 더 높이" 올린다.
>여기까지 와라.
츠키시마가 짜증내기 딱 좋은 높이까지 올라가는 공. 그래도 기어이 거기에 닿는다. 블록하러 온 스나가 "시라토리자와 때 보다 완전 높다"가 실감한다. 블록을 위에서 뚫어버리는 스파이크. 카라스노의 깔끔한 득점.
* 츠키시마가 공수를 가리지 않고 날뛴다. 벤치의 야마구치와 히나타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활약. 중계진의 말처럼 그야말로 "빛을 발한다". 그런데 이런 파인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그걸 성공시킨 세터와 스파이커는 그 흔한 하이 파이브 조차 하지 않았다. [[스가와라 코시]]도 그걸 지적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언제라도 후려칠 것 같은 썩은 눈빛 교환. 이 눈빛에 관해서는 엔노시타가 해설한다. 츠키시마는 "잘 되고 있는건 인정하지만 거슬린다"는 눈빛, 카게야마는 "니가 노려보니까 나도 노려보겠다"는 눈빛.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걸 읽어내는 엔노시타가 더 신기한 모양이다.
* 그 말대로 히나타가 기회를 잡은게 맞았다. 히나타가 전열에 나오자 아츠무가 "카라스노 블록 허름하다~ 쉽게쉽게 단숨에 따자~"는 즉흥곡을 불러 도발한다. 히나타가 도끼눈을 뜨는데 사와무라는 도발에 넘어가지 말라고만 하지 틀린 말이라고 부정해주지 않는다. 물론 카게야마는 "맞는 말이긴 하다"고 확인사살. 심지어 응원단의 시마다 조차 "블록보단 득점꾼"이라며 애초에 블록을 포기한 말만 늘어놓는다. 도대체 아군이 없다.
하지만 이런 일에 기죽을 히나타가 아니다. 오히려 카게야마와, 자신의 블록을 형편없다 한 야마구치에게 "두고 보라"고 장담한다. 그의 자신감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 하이큐/263화 . . . . 13회 일치
* 회심의 공격마저 무위로 돌아가며 최악의 난조를 보이는 [[타나카 류노스케]].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북돋아주지만 자괴감을 떨치기 힘들다.
* 동료들은 언제나 타나카의 성격상 금방 털어낼 거라 생각하지만, 타나카에게 세트업이 와야할 상황에서 조차 차례를 양보하게 되자 견디기 어려워한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아쉬운 기색 없이 좋은 코스였다고 타나카의 등을 두드려 준다. 타나카도 힘차게 대답하며 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굴었으나, 역시 뼈아프다. 통한의 실책. 한편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는 타나카의 스파이크가 나름대로 깔끔하게 스트레이트를 잡으려 했던 거라고 평가한다. [[츠키시마 케이]]는 타나카의 실수 보단 아까 [[스나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여전히 신경 쓰였다. 확실히 막는 코스였다. 못해도 건드린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스파이크는 통과하는 것처럼 지나갔다. 무슨 마술을 부린 건가?
>자, 와라아아아!
그런 멘탈의 힘일까, 팀원들의 믿음대로 아직 타나카는 무너지지 않았다. 적어도 겉모습만은 여느 때와 같이, 활력에 차서 기합을 외쳤다.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그를 견제하고 있던 린타로는 슬슬 말이 없어지거나 팀원들과 서먹해질 타이밍인데, 전혀 그런 모습이 없어 조금 기가 질렸다.
풀리는 날인가 보다. 후위의 니시노야, 사와무라가 미처 닿지 않는다. 그걸 걷어내는건 전위의 [[카게야마 토비오]]. 몸을 뒤로 젖히며 극적으로 받아낸다. 바보 커플은 열세인 시점에 잘도 이런 서브를 쳤다고 말한다. 플레이마다 심장을 졸이는 [[야치 히토카]]가 한숨을 쉰다. 하지만 안도하기엔 멀었다. 세터가 퍼스트 터치를 했으니 다음 수는 뻔하다. 공이 츠키시마에게. 츠키시마가 어디로 보낼까? 답은 뻔하다. 남은 전위는 타나카 뿐.
타나카의 시점. 방금 전 실수는 떨쳐냈을까? 언젠가 그는 히나타와 니시노야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꼴사나운 건 승부에 졌을 때보다 승부에 "겁먹는" 것. 그 말대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힘차게 외친다.
* 그러나 츠키시마는 냉철하게 판단했다. 그가 택한건 아즈마네. 백 어택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았다.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도, 다이쇼와 미카, 그리고 적측인 린타로도. 벤치에서 타나카의 건재를 자신하던 2학년들도. [[우카이 케이신]] 코치,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었다.
히나타는 그걸 다테 공고의 블록 같았다고 말하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그게 잠시지만 타나카의 저조한 텐션을 끊어줬다. 서브 위치로 가다 그 대화를 들은 츠키시마는 "바보" 주제에 웬일로 "제대로 된 말"을 한다며 칭찬인지 비꼬기인지 모를 생각을 했다. 우카이 코치도 그걸 긍정적으로 본 것 같다. 그리고 츠키시마의 서브. 리시브는 [[오지로 아란]]. 자세는 좋지 않았다. 불안정하게 중앙으로 향하는 공. [[미야 아츠무]]가 세트업하며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어차피 블록은 한 장이라 생각하며 뛰어오르는데, 한 장이 아니다. 정면을 막은건 히나타. 거기까지는 히나타도 오사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트에서 타나카가 받쳐주러 올 줄은 몰랐다. 그 압박에 급하게 루트를 바꾸는 오사무. 오른쪽. 그 위치에는 사와무라가 대기하고 있었다. 정확한 리시브. 니시노야는 히나타와 타나카의 블록의 진가를 알아본다.
* 타나카가 확실하게 기운을 차렸다. 숨기는 것과는 다르다. 츠키시마는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히나타가 "천연 띄우기 왕"이든 타나카가 "천연 띄워지기 왕"이든 어느 쪽이든 "무섭다"고 드라이하게 평한다. 그리고 왠지 타오르는 건 다시 벤치. [[스가와라 코시]]와 니시노야가 합세해 "죽을 각오로 넣어라!"고 폭주한다. 근처에 있던 진행요원들이 얌전해 보였던 카라스노 2번의 돌변에 혀를 내두른다.
- 현아 . . . . 13회 일치
=== 2007–10: 원더걸스와 포미닛 ===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영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식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반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남연희|제목=김현아 '골반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백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백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남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남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상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남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2013년 10월 28일에는 트러블 메이커로 돌아와 두 번째 미니 앨범 《[[Chemistry (EP)|Chemistry]]》를 발매했다.
[[현아]]는 [[원더걸스]] 시절부터 [[래퍼]]를 맡았었고, 이후 [[포미닛]]에서도 래퍼를 맡고 있다. 첫 솔로 활동 "[[Change (현아)|Change]]"에서도 보컬 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쳤다. 대개 그룹 출신의 개별 활동을 하는 맴버는 보컬 출신이였지만, [[현아]]는 랩, 댄서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ref name="이즘">{{웹 인용|제목=Neo Music communication IZM |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031&bigcateidx=8&subcateidx=10&mrbs=1&history=1|웹사이트=[[이즘]]|날짜=2010-10|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래퍼로서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있다. [[이즘]]의 이종민은 "Bittersweet"와 포미닛의 ''For musik''에서 보여준 힘 있는 랩은 다른 걸 그룹에선 살펴볼 수 없는 색깔이 있었다"고 평했다.<ref name="이즘"/> 《[[뉴스토마토]]》의 정해욱은 "하이톤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력파 랩퍼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오늘 뭐해〉에선 [[전지윤]]이 이 틈을 채워준다"고 기사를 썼다.<ref>{{웹 인용|제목='컴백' 포미닛에게 필요한 건 '반전' |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52575|웹사이트=뉴스토마토|저자=정해욱|날짜=2014-03-17|확인날짜=2014-04-24}}</ref>
또한 [[현아]]는 주로 다리 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핫팬츠와 미니 스커트, 그리고 스타킹을 자주 입는데, 의상이 선정적이라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 속바지 다 보이는 미니스커트 '논란'에 "더욱 노력하겠다"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8937|출판사=굿데이스포츠|저자=신섬미|날짜=2009-09-27|확인날짜=2011-04-15}}</ref>
| 《[[앨리스와 그녀의 팀]]》
- 현주엽 . . . . 13회 일치
[[1975년]] [[7월 27일]]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의류제조업을 하는 아버지 현진구(玄晉具)와 前 국가대표 농구 선수인 어머니 홍성화(洪性華) 사이에서 슬하 3남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그의 위로는 세 살 위의 두 쌍둥이 형이 있다. 그의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延州)이고 [[종교]]는 [[불교]]이며 신장은 195cm이고, 체중은 120kg이다.
휘문고 시절부터 초고교급으로 분류되던 현주엽은 고려대와 연세대 양교 관계자들의 치열한 경쟁속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오다 고3때인 1993년 3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 진학을 발표한다.<ref>한겨레 1993년 4월1일 “휘문 현주엽 고려대 간다”</ref> 이후 현주엽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93년 3월 대학연맹전에서 고려대가 8강 진출에 실패하는 것을 목격하고 고려대 진학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미 대학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고대에 줄곧 승리를 거두던 연대에 들어가기보다는 연대와의 대결에서 열세에 있던 고대에 들어가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보이고 싶어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주엽이 대학진학후 첫 출전한 대회인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대는 연대를 맞아 28점차로 대패하게 된다. 이 경기후 고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라와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다시 최종결승전에서 고대는 연대에 시종일관 리드를 당했으나 시합종료 1분을 남기고 고대 양희승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동점상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하였고 연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고대의 우승을 이끌었다.<ref>경향신문 1994년 4월3일 “안암골 호랑이 "大(대)역전쇼””</ref> 대학무대 첫 대회에서 세간의 기대만큼의 활약을 벌이지 못한 현주엽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면에서 선배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ref>스포츠서울 1994년 4월 2일 [http://kids.olivercho.com/SportsLeisure/148 “현주엽,고려 우승의 "일등공신",인터뷰”]</ref> 그러나 이 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의 팀내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고, 고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무대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트레이드 소식을 최인선 감독이 아닌 신문기자에게서 처음 듣게 된 현주엽은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최인선 감독에게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애초에 현주엽의 트레이드는 현주엽과 최인선의 불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 매체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ref>스포츠투데이 1999년 12월 27일 [http://blog.naver.com/einer6623/50015480828 “현주엽 트레이드 진짜 이유 .. 현주엽 항명과 최감독의 단죄”]</ref> 이에 따르면 1999년 12월 14일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전패 당하고 난후 최인선은 패배의 책임이 현주엽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자존심이 강한 현주엽은 이에 항명하여 부상을 핑계로 다음 경기인 16일 LG전을 보이콧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경기인 19일 신세기전에서 다시 현주엽은 워밍업까지 마치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였으나 이번엔 최인선의 보복이 이어졌다. 현주엽을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였던 23일 동양전은 현주엽에게 SK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된다.
또한 이 매체에 따르면, SK는 골드뱅크와 접촉하기전 삼성과 먼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이원재 단장은 현주엽을 내보내더라도 좋은 팀에 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 현주엽은 SK의 지명을 받기전 삼성으로의 입단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 역시 현주엽의 영입을 간절히 원해 드래프트 1차 지명권을 딸 목적으로 전년도 시즌 막판 경기에서 고의 패배를 했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7일 “삼성 ‘부끄러운 져주기”</ref> 그러나 실상 SK는 우승 가능권에 있던 삼성의 전력증가를 원하지 않아 삼성에 대한 현주엽 트레이드 타진은 시늉내기로만 끝났다. 결국 현주엽은 SK의 우승에 장애가 되지않는 약체 골드뱅크로 트레이드된다.
현주엽은 상무 복무중 출전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에 극적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ref>연합뉴스 2002년 10월14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255351 “아시안게임-<농구> 한국, 20년만의 금메달(종합)”]</ref> 당시 중국은 NBA 지명 1순위에 빛나는 야오밍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국은 시종일관 중국에 리드를 당해 종료 3분 17초를 남기고 71-84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이때 김진 대표팀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른후 현주엽과 김승현을 교체 투입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현주엽의 미들슛과 골밑돌파, 그리고 김승현의 가로채기와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며 한국팀은 무더기 득점을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4쿼터 종료 4.7초를 남기고 현주엽이 드리블에 이은 대담한 골밑돌파로 레이업슛을 성공,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서도 김승현과 현주엽의 활약은 이어졌고 102-100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20년만에 남자농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2002년 12월 현주엽은 또 다시 무릎을 다쳐 수술대에 올라 치료와 재활에 1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현주엽의 상무 입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골드뱅크는 팀명을 코리아텐더로 변경하였고,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던 코리아텐더는 현주엽의 복귀가 몇달 지나지 않은 2003년 11월, 농구단을 KTF에 매각하였다. KTF에서는 상무 시절 인연을 맺은 [[추일승]]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두번의 무릎수술을 거치며 현주엽의 플레이 스타일은 포스트업보다 어시스트 위주의 외곽플레이로 바뀌어 갔고, 그의 전매특허인 몸을 날려 레이업슛을 쏜 후 바닥으로 쓰러지는 플레이 또한 횟수가 줄어갔다. 이 무렵부터 포인트 포워드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였다.
이후에는 잠시 농구와 거리를 두면서 살고 있다가 농구 해설가로 데뷔하며 마이크를 잡았고, 2017년에 계약이 만료된 김진의 후임으로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현주엽은 화려하였던 개인성적에 비하여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0년대 그와 함께 대학농구 전성기를 보냈던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프로에 와서 대부분 한번 이상의 우승을 경험해 본 것에 비해 현주엽은 9년의 프로생활 동안 단 한번도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보지 못하였다. 99-00시즌 SK가 정규리그 1위를 달리며 팀을 우승시키는가 했지만 시즌 도중 트레이드되며 SK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고, 그 이후로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은 06-07시즌 LG에서 활약하고 있을때로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으며 우승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지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LG의 외국인 선수 파스코의 심판 폭행사건이 얽히면서 KTF에게 패하고 만다. 그나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유일한 우승 경력이다.
- 홍학표(배우) . . . . 13회 일치
1987년 MBC 드라마 '푸른교실'에서 주요인물 배역으로 첫 모습을 보인 홍학표는, 이듬해인 1988년 MBC 베스트극장 '[[샴푸의 요정]]'에서 신예 탤런트 [[채시라]]와 호흡을 맞추는 남자 주인공[* 극중 CF모델 채시라를 흠모한 나머지 그녀가 나오는 CF를 제작하는 광고회사에 취직하는 어리숙하고 선한 이미지의 남자 주인공이다. 그의 대학동기인 탤런트 [[이효정(남배우)|이효정]]은 홍학표와 정반대의 이미지로 채시라를 [[스토킹]]하는 괴한으로 나와 후반부에 홍학표와 격투씬도 벌인다. [[지못미]]]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깨알같은 [[이홍렬]]과 [[윤석화]] ㅋㅋ-- 이후 신인배우임에도 베스트극장 차기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까지도 주인공 역할을 거푸 따내는 행운을 얻었고, 그때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를 펼쳐 '과연 그 사람은 누굴까' 하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부풀려 놓았다.
재미있는 점은 홍학표가 처음에는 주인공인 진수가 아니라 오성대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점인데, 진수로 내정된 배우 [[안정훈]]이 첫회분이 방송되기 직전 교통사고를 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출자인 이진석 PD의 설명에 따르면 첫 방송을 특집 프로그램으로 메웠지만 교통사고로 다리골절 부상을 입은 [[안정훈]]은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때 홍학표가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진석 PD는 동의했지만, 그 당시 홍학표는 아직 검증되지않은 신인 탤런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작진의 윗선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어려움은 있었으나 결국 홍학표는 주인공 진수로 캐스팅 되었고,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들의 천국'은 인기몰이를 시작하며 홍학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청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결국 오성대 역에는 정명환이 캐스팅되는데, 그 역시 실제 나이보다 훨씬 아래인 배역을 맡았다.]실제 이 당시 홍학표가 누린 인기는 엄청나서 '''TV의 원작인 소설 '우리들의 천국'의 표지모델로 낙점'''받기까지 했다.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2005년에 화제의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연기자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치드라마에 출연하며 '''군사정부의 실세인 [[장세동]]을 열연'''하였다. 실제 [[장세동]] 배역은 카리스마와 충절로 대변되는 캐릭터라 캐스팅 과정에서 연기자들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고 하는데, 홍학표는 실제 장세동 배역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극중에서 실제인물과 외모면에서 싱크로율이 높아 최종 낙점'''되었다고 한다.[* 외모뿐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비슷하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TlpSgQ_nrVM|이쯤되면 도플갱어급인듯]]] 캐스팅되고나서 실존인물인 [[장세동]] 측근으로부터 만남의 요청을 받아 배우로서 자료수집이 될 것 같아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장세동과의 술자리 대화 내용이야 뭐 자기 좀 잘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심지어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던 2005년 8월 골프를 치러 갔다가 골프장에서 홍학표가 앞 팀에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전두환이 비서를 통해 만나자고 제안한 것이다. 전두환은 홍학표에게 “(5공 인사들이) 욕을 좀 덜 먹게 연기해달라”고 특별주문을 했다고 한다.~~그건 작가 마음이지 배우가 뭔 힘이 있나...~~ 그리고 드라마 잘 보고 있다며, 극중에서처럼 실제 [[장세동]]이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른 적은 한번도 없다는 세세한 지적까지 했다고 한다. 이순자도 자신이 드라마에서 장영자와 잘 아는 사이처럼 나오는데 실제로 본인은 장영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연예계 선배의 감성어린 호소에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압구정동에 있던 집을 날리고 2년간 미국에서 원단장사를 했다고 한다. 2년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으나, 다행히 수지가 맞았고 환율이 폭등했을 때라서[* 이 당시 1달러당 '''2천원대'''까지도 찍었고 점차 안정되면서 1천원대 중반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들어 지금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교적 빠르게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선배와 연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한다며, 이자는 안받을테니 원금이라도 받고싶다고...[[지못미]]
이후 방산업체와 건설업체 등을 경영했던 그는 2006년에 족발, 보쌈, 순대 등 토속적인 먹을거리들을 주메뉴로 하는 음식체인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좀 벌었고, 2008년에 씨푸드 레스토랑을 [[부산]] [[해운대]]에 열어 성공하고 서울에 입성하여 나름 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린다.
[[코미디언]] [[이경규]]와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2년 선후배 사이[* 이경규가 79학번, 홍학표는 81학번]로 동국대 재학시절부터 형동생하면서 절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당시 연극 연습이 끝나면 [[이경규]]는 대한극장 옆 모 예식장으로 후배들을 데려가 적당한 상대(?)를 물색한 뒤 능숙한 말솜씨로 신부측 부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덕분에 [[홍학표]]를 비롯한 경규의 후배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피로연에서 갈비탕을 실컷 얻어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97ffNN6SI|초창기 몰래카메라에 출연한 홍학표의 모습.]]
홍학표의 친구 중에 미술학원 원장이 있었는데, 그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홍익대 미대 1학년인 '''9살 연하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홍학표는 아내의 모습에 첫 눈에 반했으나 당시에 최고의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내 때문에 8개월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이 차이도 많은데다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마음에 안들었던 장인, 장모의 반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너무 나이차가 많다 보니 심지어는 장모가 "애 데리고 그러지마"라는 충고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중간에 헤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중간에 홍학표의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졌고 아내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다시 마음이 돌아섰다고 한다. 결국 대학 1학년때 처음 만나 졸업하고나서까지 5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한 믿음과 성실한 모습을 통해 결국 장인, 장모로부터 결혼승낙을 받아내고, 1994년 아내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다고 한다.
2009년 [[송대관]]의 아내와 함께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서 2011년에 관련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동안 배우로서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 결국 '''도박방조죄 혐의[* 실제 도박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도박현장을 목격하고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다.]로 [[약식기소]]'''되고 200만원 벌금형을 받았는데, 문제는 실제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전혀 관련도 없는 [[송대관]]의 아내와 염문설이 있는 식으로 기사가 나온데다, 법원판결에서 유죄를 받은 혐의인 '도박방조죄' 혐의 부분도 자신의 외식사업의 해외진출을 위한 투자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곳이 하필 [[마카오]]의 [[카지노]]였는데 이게 원정도박혐의로 부풀려져 그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많은 듯. 오죽했으면 벌금 200만원의 배 이상인 변호사를 수임하면서 정식재판을 청구했을까?
- 고유민 . . . . 12회 일치
2차전 흥국생명전에서 정미선이 부상당하고 다음날 도로공사전 준결승 경기에서 김연견이 부상당하자 예상하지도 못한 리베로를 보게 되었다. 이 경기는 난리도 아니였는데 리베로가 없자 2세트는 없이 치루고 3세트는 코치가 딱 5분간 리베로 강습을 한 다음에 내보냈다. '''사람들은 리시브도 안 좋은애가 얼마나 버티겠냐'''며 수비붕괴로 인한 현대건설의 패배를 예상했으나 목적타 집중을 --한유미와 김주하가 같이 온몸으로 받으면서-- 어찌어찌 버텨냈고 4세트에는 리시브 정확을 6번[* 이날 총 8번의 리시브 정확판정을 받았는데 4세트에 6개를 받았다.] 얻어내기 시작하더니 5세트에서는 장기인 디그 능력을 십분 살리며 팀을 결승으로 이끈 주역중 하나가 되었다. 5세트의 퍼포먼스는 웬만한 백업 리베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GS 칼텍스 와의 결승전에는 선발출장을 하여 --물론 후위에 [[한유미]]와 같이 있으면 안믿던 예수님 찾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긴 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잘버텼고 3세트 듀스상태에서 마지막 끝내기 오픈을 성공시키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13득점 공격점유율 35.17%, 경기 최다블로킹 (3개),디그 14번 시도 중 10번 성공, 리시브 성공률 37%를 기록하며 정미선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내 팀의 8년만에 컵대회 우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작년 기업은행에게 학살당한 결승전엔 최다득점자가 8점인가 그랬지...--
시즌 대회 전 [[http://sports.donga.com/3/all/20150708/72365102/3| 프리뷰 기사]]에서 현대건설은 '부상병동'이라고 일컬어지며 제 실력 발휘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다.[* 레프트 포지션만 따져도 작년 주전 레프트 [[김주하]]는 2015년 4월 발목 수술후 재활 중, 재작년 주전 레프트 정미선은 작년 컵대회 때 당한 복합십자인대 부상으로 작년 시즌을 통으로 쉰 후에 재활 중, 베테랑 한유미는 컵대회 직전까지 출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유민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라이트 포지션인 [[황연주]]도 고질적인 무릎은 물론이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세터 [[이다영]]도 허리 부상의 여파에서 막 벗어난 상태였다.] 도로공사와의 경기 직전 라인업[* 센터: 양효진-김세영 라이트: 황연주 세터: 염혜선 레프트: 고유민-정미선 리베로: 김연견.]이 발표되자 배구갤러리, 경기중계댓글 할 거 없이 '''"도대체 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작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애 둘을 스타팅으로 넣냐"'''며 비웃음과 조롱이 넘쳐났고 현대건설 팬들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도공]]의 새 감독 [[이호(배구선수)|이호]]의 첫 승리 상대가 될 생각에 답답해했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상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영)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상태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상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컵대회 초반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상태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2차전 인삼공사 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이날도 현대건설은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컵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연주-양효진-고유민의 삼각편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것보다도 [[이다영]]이 잠시나마 경기감각을 되찾고, [[한유미]]의 정밀서브, [[염혜선]]의 닭장거부서브가 인상적인 경기였지만-- 13득점(팀내 2위, 12공격득점), 공격점유율 17.52%(팀내 3위), 공격성공률 '''50%(팀내 1위)''' 백어택(후위공격) 1[* 프로데뷔 첫 백어택], 1블로킹, 6디그, 리시브 성공률 28.57%--1차전 보다 3배 더 잘받았는데 그냥 그날그날 로또다--를 기록하면서 컵대회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현대건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주로 황연주와 양효진이 상대 블록커를 몰고 다니면 어디선가 나타나 그 빈틈으로 공격을 성공시켜 상대팀의 블록 포지션을 찢어놓거나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스크린성 플레이로 혼란을 주는 역할이 주효했다.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고질적인 문제를 이겨내지 못해서 시즌 후반엔 내내 닭장에 있었고, 2016년 3월 13일 흥국생명과의 플레이 오프 2차전에서 [[한유미]]와 [[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이 수비라인이 동시에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에 양철호 감독이 2세트부터 선발 출장을 시키는 강수를 뒀고 4세트엔 여지없이 붕괴되어 한유미와 교체되었지만, 그런대로 근근히 3세트까지 버텨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특]][[대전 KGC인삼공사|정]]팀들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정시영의 공격을 블로킹하여 포스트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챔피언 결정전에 교체멤버로 분류되었으나 2차전에 교체출장으로 생애 첫 챔피언 결정전에 무리없이 출장했고, 3차전 마지막 세트에 출장하면서 팀의 우승에 한몫 거들었다.
1월 4일 4라운드 첫 경기였던 계양체육관 흥국생명 전에서 범실을 너무 많이 해서[* 팀 범실 19개 중에 무려 '''12개'''가 모두 고유민의 범실이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양철호 감독은 한유미가 빠진 자리에 고유민을 꽤나 오랫동안 기용했다. 심지어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는 3세트 22:22에서 지고있다가 팀의 추격조라 할 수 있는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와 [[이다영]]을 다시 고유민과 [[염혜선]]으로 교체하며 결국 자멸했다.
스페셜 브이 프로그램에서 밑도 끝도 없는 드립으로 선배들을 쇼크에 빠지게 했는데, '''"내가 [[수지(miss A)|수지]] 닮았다."'''고 하는 이상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해서 보니 당시 1년차 고유민 이었다. 이는 [[황연주]]와 [[양효진]][* 양효진의 경우 심지어 본인이 [[전지현]] 닮았다고 말한 걸 들었을 정도다.]이 직접 들었고 아니겠지 하고 넘겼으나 동기 정현주가 당시 주장이던 황연주에게 일러바치면서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또 방송에서 과감히 선배들의 외모를 상중하로 등급 먹이고,[* 그래서 가장 유명한 별명인 '라마'를 만든 조예진에게는 자신보다 얼굴 수준이 떨어진다고 굴욕을 안겼다.] '교정 3년만 하면 된다.' 말도 안되는 아이유 흉내, 수지 흉내까지 내면서 방송 지분을 많이 차지 했다. 그 덕분에 당해 현대건설 숙소탐방편은 레전드 편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다.[* 방송 컨셉이 섞여 있는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그냥 조용조용한 20대 여자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낯을 꽤 가린다.]
- 김병옥(배우) . . . . 12회 일치
홀어머니가 시장에서 청과 가게를 하시면서 하루하루 온가족이 연명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연극 배우 생활을 이어가면서 15년 동안 짜장면, 짬뽕만 먹었다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장례비가 없어 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 장례 물품을 대고 친구들도 돈을 갹출해 도와줬다고. 44세 때 출연한 올드보이 전까지 정말 빈곤했단다. 성공한 후에도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에 보증도 많이 서줘 돈을 많이 못 모았단다.
||<|3> 2009년 || 카페 느와르 || 철물점 주인 || ||
|| 아버지와 마리와 나 || 명호 부 || ||
|| [[아기와 나]] || 준수 부 || ||
|| [[다찌마와 리|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 왕서방 || ||
||<|3> 2005년 || 야수와 미녀 || 해주부 || 특별출연 ||
||<|2> MBC || [[금 나와라, 뚝딱!]] || 황종팔 || ||
[[맥심(잡지)|맥심]] 2015년 9월호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는데, 악역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느와르]] 컨셉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실제 범죄를 연상[* 일반적인 느와르 느낌보다는 그냥 강력범죄 설정에 가까운 화보들이었다. 남자끼리 총격전을 하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 조폭 설정으로 스타일링한 김병옥이 납치한 여성을 트렁크에 실어서 차로 옮겨 땅에 묻는 설정의 사진이었다. 실제로 잡지사 여직원이 피해자(?) 역할까지 했다. --[[취향|여긴 왜 자꾸 자기네 여직원들을 시켜]]--]시켜서 혐오감과 공포감을 일으킨다고 논란이 되었다. 다만 이것이 배우 본인의 잘못은 아닌지라, 어쩌다 논란에 끼여 버린 피해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크라임씬3/사기꾼 살인사건]]편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조선족 출신 김동포 역할로 게임에 참여했다. 해당 편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역대 가장 시청자들에게 최악의 편으로 꼽힐 만큼 범인 검거에 필요한 증거가 전혀 나오지 못했고, 플레이어와 시청자 그 어느 누구도 범인을 못 맞혔는데, 초장부터 오버액션하는 연기를 펼쳤던 양형사를 한눈에 범인으로 의심하며, 결국 혼자만 유일하게 범인을 맞히며 해당 편의 영웅으로 뽑혔고, 영화에서 악역을 맡았던 그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줘서 예능감도 제대로 살려주면서 --자신을 닮은 사람을 죽일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즐,거,웠,어,요.-- 시청자들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 김상조 . . . . 12회 일치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최순실 국정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최순실 특검]]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조금씩 그 이름을 인식시켰다.]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아주 오랫동안 재벌개혁 시민운동을 계속한 인물로 한국 재벌과 관련해서 학문적인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고 언론 기고 또한 활발했으며 독자적인 저술은 한 권밖에[* 제목은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을 읽어보면 통계적 근거와 [[경제학]]적 통찰을 근거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담백하게 논하는 대중 서적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인사라고 하면 거리를 둘 법한 주장도 많이 보인다.] 없는 듯하지만 [[알라딘]]에서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1%e8%bb%f3%c1%b6&x=0&y=0&|김상조]]를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경제, 재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저술에 저자로 참여해왔다. 공정위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이전 소장으로 적을 두고 있던 경제개혁연대에서 수많은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6월 4일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전성인 교수가 언론과 야당의 의혹공세를 반박하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197|김상조를 위한 변명]]이라는 지지글을 발표했다. 이후 전 교수의 주도로 선, 후배, 동료 경제학자 및 사회 각계 각층의 498명이 김상조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7664.html|#]] [[주진형]]의 말에 의하면 하루 남짓한 기간 동안 500명 가까이 함께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전 교수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물론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를 놓고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보다못해 지지 선언까지 내는 것 자체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6월 12일 결국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었지만, 청와대에서 임명을 진행하여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이 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피링에서 길어진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며, 각종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이미 국민의 청문회를 통과했다는 발언을 하며, 공정거래의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원래부터 찬성 입장이었던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모두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7/06/20170613327266.html|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투쟁해나가겠다"며 맹렬하게 비난하였으며, 바른정당은 "오만한 문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 비판하였다. 국민의당은 당초 김상조 후보자의 임명 자체에는 반대가 없었던 터라, "국회 청문회 보고서 통과없이 임명되는 것에는 유감스럽지만, 이는 여당의 고집과 야당의 아집이 빗어낸 것이다"며 공동책임론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9334195&date=20170613&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9|대체적으로 야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3741|문 대통령의 연설 중 조는 모습]]이나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8&aid=0003847763&date=20170612&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24|원내대표 회담에 불참]]하는 등 애초에 협치를 바라지 않는 듯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애초에 협치를 바란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많다.
취임 이후에 각종 대기업의 부정한 내부거래 감사와 프랜차이즈 갑질 조사와 징벌적 손해보상 도입 등 정력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국민적 여론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특히, 그가 오랜 기간 강력하게 비판해온 재벌의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개선에 적극 힘 쓰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 취임 1년 사이 대기업집단(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순환출자 고리가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119&aid=0002254122&sid1=001|*]]
가족과 함께 2차례 위장전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주민등록초본을 보면 김 후보자 가족은 1994년 3월부터 경기 구리시 교문동의 동현아파트(현 구리두산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3년 뒤인 1997년 1월 김 후보자를 제외한 부인 조모 씨와 아들은 길 건너편인 교문동 한가람아파트로 서류상 분가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2개월 앞둔 때였기에 이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것.
이에 대해 회계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질의를 가장해~~ 해당 아파트를 김상조 교수가 3년 보유, 2년 거주했고 1세대 1주택으로 양도소득세 비과세 대상이라 세금탈루와는 상관없는 문제이며, 김상조 교수가 다운계약서의 작성으로 이익을 본 것이 없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청문회에서 발언하였다.
김상조 후보자의 아들이 하나금융투자와 BNP파리바은행의 인턴 채용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기사에 등장한 금융권 종사자는 김 후보자의 아들이 같은 인턴직에 지원한 사람들보다 대학교 시절 학점이 낮음에도 합격했다는 점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하였고 익명의 금융관계자는 “금융감독당국 고위직 자제들이 방학을 이용해 유수의 금융사에 단기 인턴으로 경력을 쌓는 것은 금융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http://mlbpark.donga.com/mp/view.php?u=http%3A%2F%2Fnews.kmib.co.kr%2Farticle%2Fview.asp%3Farcid%3D0923757051%26code%3D11151100%26cp%3Dnv|관련기사]] 관련 의혹에 대하여 김 후보자 측은 "자녀 인턴십에는 관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의혹제기에는 좀 문제가 있다. 기사와는 달리 실제 외국계 기업이나 금융권에서 1개월 수준의 체험형 단기 인턴 과정에서 학점은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않으며, 게다가 일반적으로 같은 학교 기준에서 이과 전공 학점은 문과 전공 학점보다 크게는 +1.0~+1.5 정도를 더 높게 쳐주는 경우도 있다. 만약 하단의 경우처럼 조건 자체에 학점 몇 이상이 제시되어 있었다면 논란의 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논란이라고 할 만한 건덕지가 그리 없는 분야라는 의견 또한 있다.
국제노동기구에서 근무하는 이상헌 박사가 이와 관련해 용어상의 혼선이라는 글을 남겼다 [[https://www.facebook.com/sangheon.lee.549/posts/1697202560293089?pnref=story|링크]]
- 김진우(WINNER) . . . . 12회 일치
||<:>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 별명}}}''' ||<(> 소슴이,[* 소와 사슴의 합성어. 소처럼 큰 눈에 사슴처럼 초롱초롱한 눈이 매력이어서.] 낫닝겐, 임자도 왕자님, 맏내[* 막내같은 맏형의 줄임말이다.]
리드보컬을 맡고 있으며 팀 내 최연장자.--와 동시에 귀요미를 맡고 있음--
* 최연장자이며 리드보컬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본인피셜 귀요미를 맡고 있다고 한다.실제로도 여러 방송에서 자신이 귀요미를 맡고 있다고 --떳떳이-- 소개했다. ~~[[승리(빅뱅)|그런 거 하지마!! 나처럼 돼!!]]~~ --사실 [[산다라박]]이 인정한 와쥐의 귀요미라인--
* '''맏내'''와 '''수박상'''이라는 별명의 원조다. 지금은 너나없이 맏내와 수박상이라는 별명을 쓰지만 김진우가 데뷔전부터 위너 내에서 맏형인데 막내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맏내''' 별명이 탄생하게 만들고 --정말 미친-- 미모의 YG연습생인 것이 타팬들마저도 감탄하게 해서 '''수박상''' 별명의 장본인이라고 볼 수 있다.
* 김진우란 이름은 본명이다. 같은 사무실 선배인 [[지누션]]의 지누와 본명이 같다.
* [[고양이]]를 키운다. 회색+흰색 스핑크스와 베이지색 스핑크스. 둘 다 수컷이라고 한다. 고양이들의 이름은 베이지색이 베이, 그레이색이 레이다. 참고로 레이는 [[강승윤]]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팬들은 베이지의 베이, 그레이의 레이를 따서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닌가 궁예했지만, 레이는 그레이에서 따온 것이고, 베이의 이름은 [[스페인어]]로 왕을 뜻하는 단어라고 팬싸인회에서 말했다. 궁예는 반만 맞은 셈. ~~[[스페인어]]로 Rey가 왕이라는 뜻인데.. 바뀐 거 아닌가~~
* 결국 오빠생각에서 모지리 형제로 송민호와 팀을 이뤄 입덕영상을 찍게 되었다. 입덕영상을 찍는데 웃음을 참지 못해 NG를 내는데 한몫했다.
* 미소년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수염이 매우 빠르게 자라 하루만 지나면 수염이 덮수룩해져 이것이 컴플렉스라고 한다. 꽃보다 청춘 위너편을 보면 턱에 수염이 조금 자란 진우를 볼 수 있다.
* 어린 시절 심심해서 바다 앞에서 낚시를 하던중 추워서 성냥불로 불을 피웠는데 그 불이 그물에 옮겨 붙어 임자도을 태워버릴뻔한 에피소드를 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다행히도 포크레인으로 바닷물을 퍼와 불을 꺼 큰 화재는 면했다고.
* [[피키캐스트]] '아빠가 잠든 후에'에서 맏형으로써 [[송민호]]와 [[이승훈(WINNER)|이승훈]] 중 둘 중 누구를 더 챙겨주고 싶냐는 질문에 "꼭 한 명만 골라야 돼요?"라고 말하며 속삭이듯이 "둘 다"라고 대답하며 선택하지 못한 멤버가 섭섭하지 않도록 하는 자상한 맏형의 모습을 보여줬다.
|| 10월 27일~ || [[MBC]] || [[전지적 참견 시점]] || [[송민호]]와 동반게스트 출연 ||
- 김취경전 . . . . 12회 일치
[[조선시대]]의 군담소설, [[계모]]형 가정소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군담소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매우 드물게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가 등장하고 단군이 나타나는 등 민족문화적 요소가 있다.--그리고 이때부터 고구려는 선역, 백제는 악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모]] 안씨(安氏)는 남매를 사랑하다가 자신의 아이 설애(雪愛)를 낳고 나자 시기하고 모함을 한다. 결국 취경은 집에서 쫓겨나고, 선애는 안씨에게 반대하는 이복동생 설애[* 보통 계모 소설에서 계모 자식은 계모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취경전에서는 계모에게 반대하는 역할로 나온다.]와 함께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방황하던 취경은 어느 수수께끼의 백발노인의 인도를 받아, [[흉가]]에 갔는데 그곳에서 괴물을 물리치고 미인 목소저를 구해준다. 목소저는 백제국 태부상서의 딸이었다. 취경은 목소저에게 의지하여 병서와 무술을 공부하게 된다. 한편 집을 나온 선애와 설애는 [[남장]]을 하고 다니다가 함흥부의 소년 양화춘과 의형제를 맺고, 함께 오빠 취경을 찾아다니다 취경과 재회한다.
취경은 선애 일행과 만나서 목소저에게 돌아가다가 도적 소굴에 빠진다. 양화춘이 도적 두목 천철웅(千鐵雄)을 굴복시킨다. 천철웅은 알고보니 [[연개소문|개소문(蓋蘇文)]]의 아우였으며, 이들은 후일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목소저에게 돌아온 취경 일행은 목소저와 결혼하고, 선애는 양화춘과 결혼한다.
그런데 이 때, 백제국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고구려왕은 백제군에 패배하고 위기에 바진다. 취경과 양공자는 함께 병법과 무술을 고웁하다가, 양공자가 천문을 보고 왕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고, 취경이 전장에 나가서 왕을 구하기로 한다. 취경은 장인의 영혼[* 백제국 태부상서인데 어지간히 백제왕이 싫었나보다(…).]으로부터 삼척보검을 얻고, 도적 천철웅에게 군량미를 지원받으며, 단군에게 갑주와 용마를 받는다.
취경은 --[[템빨]]로-- 적군을 격파하고 고구려왕을 구출한다. 고구려왕은 기뻐하며 김취경을 도원수로 임명하여 백제군과 싸우게 하고, 취경의 지휘 하에 고구려군은 백제군을 격퇴한다. 마침내 취경의 활약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 끝에 고구려군이 승리하고, 고구려왕은 취경을 영의정으로 삼는다.
한편, 윤도익과 안씨는 복직한 서윤택에게 다시 체포되었다가 전쟁중이라 석방된다. 둘은 도주하려다가 윤도익이 안씨를 겁탈하려다 도적에게 살해당하고, 안씨는 친정이 있는 박천으로 도망간다. 취경은 승상이 되어 숙천으로 가서 아버지 김형국을 만나고, 박천의 안씨를 용서해주고 숙천으로 모셔와서 함께 살게 된다.
서울로 돌아와 국왕 앞에서 벼슬을 버린 김취경은 부모와 목부인, 두 여동생, 양공자와 함께 두류산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12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는 사걸고교의 여학생 "케미"와 뜻하지 않은 썸씽으로 동료들의 지탄을 받는다.
* 사걸고교의 털복숭이 학생이 와서 바쿠고 카즈키에게 시시쿠라의 일을 사과하며 "웅영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하는데.
* 결국 야오요로즈 모모와 하가쿠레 토오루가 자세히 설명해준다.
* 미도리야 이즈쿠와 이이다 텐야는 현장이 카미노구를 모방했다는걸 알게 된다.[* 바쿠고 탈환전이 벌어진 지역]
* 세로 한타는 18등급 "엄청난 일"을 퍼뜨리고 다니는데 카미나리와 미네타가 미끼를 문다.
* 그 엄청난 일이란 사걸 고교의 여학생 "케미"와 미도리야의 썸씽.
* 눈이 뒤집혀서 미도리야를 추궁하는 카미나리와 미네타.
* 그때 사걸 고교의 리더로 보이는 털복숭이 학생이 바쿠고와 키리시마 에지로가 있는 자리로 일행을 데리고 온다.
* 토도로키는 "아버지와 같은 눈"이란 말에 생각에 잠긴다.
* 역할도 착착 나눠서 구조활동에 들어가는데, 관객석의 아이자와 쇼타는 역시 이런 부분에선 훈련이 부족한 웅영고 학생들이 떨어진다고 본다.
* 요구조자는 무섭고 아프고 불안한 상태에 처해있다. 그런데 히어로가 와서 제일 먼저하는 말이 "큰일났다!"면 안 된다는 것.
* 우라라카는 자신의 마음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미도리야와 같이 노력하고자 현장으로 달려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2회 일치
* 미도리야와 올마이트는 미래를, 운명을 바꾸고자 다짐한다.
*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는 빅3 [[하도 네지레]]와 함께 No.9 드래군 히어로 [[류큐]] 밑에서 인턴 활동 중.
* 류큐는 나이트아이의 요청으로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사 및 포획에 착수하는데 거기에 우라라카와 아스이도 참가시키기로 한다.
그게 올마이트와 미도리야가 했던 약속. 미도리야는 그 약속을 지킬 때까지 살아있어 달라고 말한다.
>이제와서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는 힘을 잃었고 히어로로서의 삶은 끝났다. 그러니 이제와서 그를 볼 면목이 없다는게 올마이트의 생각이다. 지금은 점점 강해질 미도리야에게 족쇄나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다. 어쩌면 이미 그들의 관계는 형태가 달라진 후일지도 모르겠다고 그가 말한다.
* 미도리야가 올마이트에게 진실을 확인할 무렵 "시에핫사이카이"와 [[오버홀]]이 얽힌 사건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에스퍼 거리에서는 빌런단체들 간의 항쟁으로 거대화 빌런 둘이 싸우고 있다.
* 네지레가 타깃을 쓰러뜨리자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가 합동기술 "메테오 파프로츠키즈"로 결판을 낸다. 우라라카가 띄운 건물 파편을 아스이가 혀로 쳐서 쏘아보내는 기술. 빌런들은 완전히 제압되고 사건이 종결된다.
* 우라라카와 아스이는 네지레의 소개로 No.9 히어로 "드라군 히어로" [[류큐]] 밑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류큐는 우라라카와 아스이의 실력을 호평하며 네지레의 추천을 받길 잘했다고 말한다. 원래 두 사람은 직장 체험했던 사무소에서 인턴을 신청할 예정이었으나 1학년은 실적이 풍부한 사무소가 아니면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서 최종적으론 이쪽으로 낙찰됐다. 이런 사실도 네지레가 한도 끝도 없이 떠벌거린다.
* 류큐는 두 사람이 추가돼 전력도 보강됐으니 나이트아이가 요청한 "그 안건"에 응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시에핫사이카이와 오버홀에 대한 수사에 다른 사무소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그 중에는 현재 [[키리시마 에지로]]가 인턴 활동을 시작한 사무소도 있다. 나이트아이는 여러 사무소의 인원을 팀업해 오버홀 일당을 일거에 처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수사는 [[빌런연합]]과 연결될지도 몰라 더욱 중요한 일이라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12회 일치
* 키리시마의 활약은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역시 큰 활약을 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와 함께 반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 며칠 뒤, [[미도리야 이즈쿠]]는 우연히 우라라카, 츠유, 키리시마와 같은 방향으로 귀가하게 되는데 모두 사무소에서 지정한 위치다.
* 그 자리에 도착해 보니 사무소 선배들은 물론 [[아이자와 쇼타]],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 같은 프로 히어로들도 있다.
키리시마는 자신이 고전한 상대를 간단하게 포획하는 걸 보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쳤던 시민이 키리시마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 노인은 키리시마가 일부러 빌런의 칼날을 자신에게 집중 시킨 것도 눈여겨 보고 있었다. 패트껌 또한 "나와는 다른 화려한 데뷔"라며 높게 평가한다. 시민은 키리시마가 대단한 히어로가 될 거라고 칭찬하고 키리시마는 보람을 느낀다.
* 잠시 뒤. 패트껌과 키리시마는 큰 길로 돌아와 [[아마지키 타마키]]와 합류한다. 패트껌은 경찰과 협력해 약물사범들만 집던 경험도 있어서 금방 종류를 구분한다. 개성을 파워업시키는 약물. 일본에선 금지된 종류로 효과가 짧은 걸 보면 아시아산이다. 미제는 좀 더 길어서 1, 2시간은 간다고. 곧 경찰 측에서 타마키를 저격한 총에 대한 분석 결과도 가져온다. 총은 빌런이 칼날로 조각내 버렸고 총알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총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 경찰은 좀 더 조사해 보겠다고 한다.
키리시마는 타마키에게 괜찮냐고 묻는데, 타마키는 개성을 발동할 수 없어서 히어로로서 괴롭다고 네거티브 상태다. 코스튬에 달린 후드를 푹 뒤집어 써서 아예 얼굴을 가려버렸다. 타마키는 자신을 감싸준 키리시마가 [[토오가타 밀리오]]와 같은 "태양 같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키리시마는 "선배도 날 사무소에 소개시켜줬으니 태양같은 인물"이라고 답례하는데 그런 점이 타마키를 더 곤란하게 한다.
* 이튿날 키리시마가 등교했을 땐 화제의 인물이 되어있었다. [[카미나리 덴키]]가 키리시마의 활약이 매스컴을 탔다고 호들갑을 떤다. [[바쿠고 카츠키]]는 자격지심을 느껴서인지 이를 간다. [[아시도 미나]]도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의 활약을 기사로 읽었다. 이들은 반친구들의 부러움이 대상이 된다. [[이이다 텐야]]는 그래도 학업엔 충실해야 한다며 졸지 않고 수업을 들으라고 반장같이 설교한다.
* 며칠 뒤. 미도리야는 귀갓길에 키리시마와 오챠코, 츠유와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모두 인턴활동을 하러 가는 길이다. 한동안 호출이 없었는데 오늘 네 명이 동시에 호출이 왔다. 그런데 가다보니 칸사이 지방 사무소인 키리시마도 계속 그들과 같은 방향이다. 이번엔 집합장소가 다르게 지정되었다는데. 이 우연한 것 같은 동행은 전철을 타고 전철에서 내리고 심지어 모퉁이를 도는 동안까지 계속된다. 심지어 가던 방향인 빅쓰리 밀리오, [[하도 네지레]], 타마키까지 합류한다.
* 그 중에는 [[아이자와 쇼타]]나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 같이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나이트아이 사무소의 [[버블걸]]도 보인다. 미도리야와 친구들은 어리둥절한 채 주위를 둘러보는데 네지레는 그들 사이에서 [[류큐]]를 발견하고 달려가서 질문을 세례를 퍼붓는다. 류큐는 곧 알게 될 거라면서 나이트아이에게 "그 안건"에 대해 슬슬 시작하자고 말하는데.
- 막부 . . . . 12회 일치
일본의 막부는 원래 동쪽으로 영토를 확대[* 본래 일본 조정은 지금의 긴키 지방에서 큐슈 일대만을 지배하고 있었고, 지금의 간토 지방이나 도호쿠 지방은 이민족이 살고 있었다.]하면서 해당 지역 선주민과 싸워 이를 정복하는 군대의 지휘관을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으로 삼아 그에게 막부를 열고 해당 지역의 독자적인 군사와 사법권을 부여하던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이 당시는 중국의 사례와 같이 일시적인 군정권에 불과하여 특수한 정권 체계는 아니었다.
일본에서 막부 체계가 나타난 이유는 일단 조정이 군사적으로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헤이안 시대 초기에 일단 도호쿠 지방까지 정벌이 완료되자, 일본 조정은 막대한 군비가 드는 국군(國軍) 제도를 폐지해버리고, 군사를 수도의 경비대와 [[한반도]]와 가까운 큐슈 다자이후의 경비병 수준으로 축소하였다. [[섬나라]]인 일본은 일단 혼슈 평정이 완료되자 당장 외적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고, 군사력의 필요성이 낮았기 때문에 이 같이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국가의 재정을 아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군대는 [[경찰]]의 역할도 겸비하는 것이었으므로 '군사력 해체'는 곧 '경찰력 해체'와도 같은 것이었다. 국군이 해체되자 일본의 국내 치안은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는데, 각지에서 크고 작은 [[도적]]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헤이안 말기에 각지에서 보이는 [[슈텐동자]] 같은 오니 전설은 이러한 도적의 등장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각지의 [[호족]]들은 새로 개척된 농지의 상속권, 소유권이나 농업 용수의 사용 같은 것을 놓고 사적인 다툼을 벌였는데, 이러한 분쟁 역시 치안 악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일본 국내에서 '거의' 유일[* 사무라이와 다른 경우로는 사원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한 [[승병]] 같은 사례가 있다.]하게 무력을 보유하게 된 사무라이들이 점차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결국 이 사무라이들 가운데 유력해진 겐지(原氏) 일족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케|헤이지(平氏) 일족]]과의 항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덴노에게 정이대장군 칭호를 받고 가마쿠라에 막부를 열면서 조정을 제치고 일본 전역에 할거하고 있던 무사들을 통솔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이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막부라는 체계는 일본 특유의 독특한 '정권'이 되었는데, 명목상으로는 천황의 조정이 일본의 주권자였으나 막부는 '정이대장군'으로서 사무라이들을 통솔하면서 사법권과 지방의 치안 유지, 재산권 분쟁에 대한 해결 등 실질적인 통치권을 발휘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조정과 막부가 분리되어 있으나, 당시 일본의 지방 호족들은 대부분 사무라이 신분이었으며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었으니 전국의 인구 가운데서는 '극소수'에 불과한 천황가와 귀족을 제외하면 일본 전체가 막부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은 당초에는 동일본 지방이 중심이었으나 [[고토바 덴노]]가 토벌을 시도하였다가 대실패(…)하여 서일본 지방까지 완전히 막부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일본 전국이 막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가마쿠라 막부는 겐지 일족이 단절되고 불과 3대만에 외척인 호죠 씨에게 실권을 빼앗긴다. 이후에 [[겐무 신정]] 시기에 [[고다이고 덴노]]에게 호죠 씨 정권 가마쿠라 막부는 무너지고 말았으나, 이러한 사례가 선례가 되어 훗날 호죠 씨 정권이 무너진 뒤 조정까지 제압하고 새로운 덴노를 옹립한 [[아시카가 다카우지]]도 자신을 가마쿠라 막부를 세웠던 겐지(源氏) 일족임을 자처하며 교토 인근에 막부를 세우고 군사와 정치를 장악하였으니 이것이 '무로마치 막부'이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와 마찬가지로 무로마치 막부도 전국의 무사들을 통솔한다고는 해도 그 장악력은 비교적 느슨하였다.
결국 [[오닌의 난]]과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 개막 후에는 권위가 실추되어 다른 실력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가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폐쇄된다. 노부나가는 이후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잡아가다가 [[혼노지의 변]]으로 변사하여 어떤 형태의 정권을 만들려고 했는지 제설만 분분하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후에 일본 전역을 제압하여 천하통일을 이뤘으나,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막부를 열 수는 없었고, 이 때문에 그 대신 '후지와라' 등 귀족 성을 받아 귀족이 되는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도요토미' 씨를 창씨하며, 조정의 최고 관위인 '[[관백]]'과 '태정대신'을 수여받는 등 조정의 권위를 빌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히데요시 사후에 권력투쟁 끝에 일본의 실력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의 도쿄 지역인 에도에 막부를 세운다. 이 [[에도 막부]]는 이전과는 달리 간토 지역을 독립적으로 장악하고, [[산킨고타이]] 제도를 비롯한 대책을 사용한 덕에 이전의 막부들에 비해 통제력이 매우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 때조차도 각 번의 다이묘들은 해당 지역의 군사와 사법, 행정을 독립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등 여전히 지역분권이 강했다.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12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지도층인 [[과학자]]들. 이름이 확인된 사람들은 모우(モウ), 케이(ケイ), 에이(エイ), 준(ジュン). 이중 모우는 위원회에서도 중심 인물이다. 안경을 착용한 순으로 검은 안경을 착용한 자가 에이. 정책 등에서 중요 사항을 결정하며 레프카와는 그다지 맞지 않는 인물들이며 라나에 대한 것은 중립적이다. 일단 레프카는 주요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인물들이라 놔두고는 있으나 결국 레프카의 횡포를 저지하지는 못하는 무력한 자들이다. 최후에는 라오 박사와 인사를 끝내고, 지각 변동 탓에 무너지는 인더스트리아에 남는다.
성우는 와카모토 노리오.
지하 거주자들의 리더격인 사나이. 라오 박사와도 안면이 있다. 23세. 레프카에게 반대하는 입장이며 그래서 이마에 낙인이 있다. 코난 일행에게 협력. 최후에는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한다.
코난의 할아버지와 똑같은 외모의 노인. 아들처럼 레프카에게 반대하고 있다.
샐비지선의 노동자. 파치처럼 나이 있어보이는 할아버지다. 테리트와 달리 승급에는 무관심하나 그와 달리 품성은 정상이라서 테리트에게 한소리 하기도 하고, 코난과 라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줬다.
건달 패거리들의 우두머리. 17세,. 가족은 여동생인 테라가 있다. 거창하게 구나 대단치는 않은 녀석이며 코난 일행과 충돌한다. 인더스트리아측이 나타나자 덤볐다가 깨지고는 그들에게 붙어서 하이하버를 위협하는 것에 협력했다. 이후 호가호위스럽게 있다가 해일이 왔을 때, 코난에게 패하고는 등장이 없다. 후에 바라쿠다호가 출항할 때에 재등장. 이때는 갱생했는지 가르와 함께 축포를 올렸다.
오로의 여동생. 9세. 처음에는 오로처럼 코난 일행과 충돌했으나 지무시와 만나면서 그에게 점차 호의를 품었다. 이후 오로와 달리 적이 되지 않으며 최후에는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했다.
코난을 키워온 노인. 이름이 안나와서 본명은 불명이다. 과거 지구에서 탈출하려다 실패한 일행의 일원이며 코난의 부모와는 동료였다. 라나가 떠내려오고, 그런 라나를 쫓아 몬스리 일행이 나타난 것이 계기가 되어 치명상을 입어 사망했다. 나이는 64세.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12회 일치
바실레이오스는 본래 아르메니아 혈통이었는데, 여느 아르메니아인이 그렇듯이 그의 가족도 트라키아 지방으로 이주해서 거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던걸로 보인다. 그러던 와중, 불가리아의 칸 크롬이 트라키아를 침략하면서 그의 가족들과 그를 납치했고, '마케도니아'라는 곳으로 끌려가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아마 포로로 잡혀간 이들중 대부분이 마케도니아 출신이라 그런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의 왕조를 '마케도니아'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아무튼간에 그는 미카엘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얼마안가서 시종장 디미아누스가 해임되고 난뒤 그의 후임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황제의 절친한 친구로 지내게 되는데, 여기서 그와 미카엘사이에 살짝 사이에 금이 가는 조치가 내려진다. 바실레이오스는 그의 전처인 마리아와 강제로 이혼하고 미카엘의 정부였던 에우도키아와 재혼하게 된것이다. 이는 유도키아를 다시 황궁안에 들여놓기 위해 미카엘이 취한걸로 보이며, 이걸로 인해 상당한 논란을 낳게 되나, 이는 후술하도록 한다. 이후로 황제는 에우도키아의 보상으로 자신의 누나 테클라를 바실레이오스의 정부로 주기 까지 한다.
=== 황제의 후계자와 황제를 살해하다 ===
이후 바실레이오스가 미카엘과 절친해지면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자, 당시 실권자였으며 사실상 후계자로 점찍혔던 황제의 외삼촌 바르다스와 바실레이오스와의 관계는 나날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바르다스는 바실레이오스를 그저 변방 촌뜨기로 보고 무시했었으나, 점차 그가 미카엘과 친해지자 자신의 위치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실레이오스도 바르다스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밀려나리란것도 예상하고 있었고, 이에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러나 황제는 제국의 서방 속주를 탈환하기 위해 해당 행위를 한거지 회개할 생각은 딱히 없었기에, 교황의 사절이 보낸 요구[* 공의회의 교황의 사절 주도]를 무시하고, 포티우스를 파문시키는데 그치게 한다. 그런데, 공의회가 끝나기 직전인 870년 2월에, 불가리아 왕인 보리스 1세가 사절을 보낸다. 당시 그는 포티우스 분열때 자신을 무시한 포티우스에 대항해 가톨릭을 불가리아에 퍼뜨리고 있었는데, 이게 그리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총대주교구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총대주교를 누구 휘하에 두느냐가 문제였다. 교황휘하인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휘하인가? 그리고 바실레이오스는 불가리아에 자기 세력을 키울 기회를 놓칠 위인이 아니었고, 즉각 당시 회의장에 있었던 안티오크와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 대표를 불러 불가리아 총대주교구는 누구 휘하에 두어야 되는지를 물었다. 이들의 답은 뻔했고, 교황청에서 온 사절들이 항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되어서 불가리아는 정교회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현재까지 정교회국가로 남아있다. [* 어찌보면, 이때의 공의회가 한나라의 종교를 결정한셈.]
같은해 2월, 제국은 프랑크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 그는 2년전에 사라센이 장악하고 있던 남이탈리아의 바리를 공격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바실레이오스는 그에게 해군함대를 보내 지원해주겠다고 하면서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와 딸 헤르밍가르데의 결혼도 제의한다. 루트비히는 우호적인 답신을 보냈고, 869년에 니케타스 제독을 지휘관으로 한 제국의 함대가 바리를 향해 출항한다. 그러나 니케타스는 프랑크군이 군기가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 경멸을 감추지 못했고, 루트비히에게 '프랑크 왕'이라고 한단계 낮춰부르기까지 했다. 결국 두사람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니케타스는 함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사절을 보낸것이다. 자칫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루트비히가 베네벤토를 공격하다가 그곳 공작의 포로가 되어 베네벤토를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고 복음서에 맹세를 한 굴욕을 당해 어느정도 조용해졌다.
그는 비록 달마티아를 제외한 크로아티아 지방과 판노니아(헝가리), 모라비아에서 교황의 우위를 인정해야 했으나,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달마티아에서 정교회를 퍼뜨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늘어난 교세는 더많은 신학적 문제와 논쟁을 야기했고, 이에 그는 포티우스를 다시 불러들여 이그나티우스를 보좌하도록 한다. 이후 이그나티우스가 노환으로 죽자 다시 포티우스를 복직시켰으며, 그가 법전의 초안을 짜는것을 후원한다.
이후 그는 건축사업에 착수하는데, 우선은 성 소피아 성당과 성 바울 성당을 보강했고, 이후 '네아 바실리카'라 불리는 그의 걸작품인 성당을 축조한다. 이 성당은 바실레이오스의 성 소피아 성당이라 할 수 있는데, 금을 입힌 돔은 도시밖에서도 보였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돔내부에는 예수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으며, 그외에 천사, 대천사, 순교자, 사도 등등이 묘사된 모자이크가 실내 곳곳을 장식했다. 성상 칸막에는 금은과 보석들이 장식도 있었고, 주제단은 '금보다 더 귀한 금속으로'장식되 있었다고 하며, 은을 입힌 닫집 기둥[* 중간을 오목하게 파서 장식한 기둥]이 성당주위를 둘렀다. 그외에도 그는 금고와 목욕탕, 트리클리니움[* 침상이 구비된 식당]을 많이 지었으며 칼케대문과 도시의 수많은 궁전들을 보수하고 일일이 장식했다. 말그대로 그의 치세에 도시는 전성기를 열었다.
- 보루토/5화 . . . . 12회 일치
[[보루토]] No.5 '''모모츠키와 킨츠키'''
* 이들이 사스케와 싸웠던 오오츠츠키 모모츠키와 킨츠키.
* 사스케가 뒤따라와 두루마리에서 경고하던 존재가 이들이며 이들은 차크라의 열매, 곧 미수를 사냥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 모모츠키는 단약의 힘으로 시험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나루토는 사스케와 협력해서 쿠라마의 힘을 끌어내 대응한다.
* 카타스케는 이와중에 방송 카메라를 대동하고 등장.
* 사라다는 미즈키와 함께 시민들을 구출하다 머리 위로 잔해가 떨어진다.
* 미즈키는 꼼짝없이 사라다가 당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스케가 달려와서 구출했다.
* 나루토와 보루토는 사스케와 사라다와 합류, 태세를 재정비한다.
* 사스케는 이 자들이 오오츠츠키 모모츠키(작은 쪽)와 오오츠츠키 킨츠키(큰 쪽)라고 알려준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12회 일치
* [[마법제]] 율리우스와 클로버 왕국 국왕이 입회한 로열 나이츠 선발시험이 시작된다.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미모사 버밀리온]]과 "잭스 류그너"와 한 팀이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괴한에게 당해 빈사 상태.
* 그런데 시작으로부터 수 십 분 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변이 발생한다. 전장에서 돌아오던 길인 자줏빛 범고래단의 부단장 "잭스 류그너"가 수상한 인물과 마주친 것이다. 수도의 뒷골목에서 괴한과 시비가 붙는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으나 괴한이 물고 늘어지자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해 상대하기로 한다. 점잖은 성품의 잭스와 달리 그의 종자는 호들갑스러운 인물로 그의 직함과 범고래단을 부흥시킨 업적을 떠들고 "여빙의 성자"라는 별칭까지 과시한다. 그렇지만 상대는 겁을 먹는 인상이 아니다.
괴한은 종자가 늘어놓은 말들을 일축해 버리고 "시종 주제에 떠들지 마라. 네 주인은 너 없으면 자기 소개도 못하냐?"고 비아냥댄다. 그리고 잭스가 적용한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해서도 "높으신 분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멋대로 처분해도 된다는 거냐"고 왜곡한다. 그러면서 "네가 자랑하는 마법으로 정의의 벌을 내려봐라"고 조롱한다. "권력을 장식으로 두른 폭력집단의 부단장 나으리"라는 빈정거림과 함께. 잠자코 있는 듯 했던 잭스는 마침내 조용히 분노를 일으켜 자신의 얼음마법으로 공격을 가한다. 골목을 가득 매우는 송곳니와 같은 얼음 공격. 그 공격이 다가오는 데도 괴한은 이를 드러내며 웃기만 하는데.
* 같은 금색의 여명단의 선배 [[클라우스 류넷]]도 자리에 있었다. 그는 미모사가 쓸데없이 다른 참가자와 트러블을 만든다고 지적하는데 괜한 지적질을 했다가 "괜히 진지하고 걱정많고 안경이다"는 반격을 당한다. 그 역시 최근 실력이 급상승한데다 무슨 이유인지 근육단련까지 해서 인지도를 쌓았다.
조금 있으려나 홍련의 사자단의 [[레오폴트 버밀리온]]도 도착. 유노와 아스타에게 자신이야 말로 시험에 합격할 거라고 선언해서 유치하게 서로 자기가 합격한다고 말싸움을 벌인다.
* 이 대결에는 신예들만 참가한게 아니라 고참 단원들도 제법 참여했는데 검은 폭우에서는 [[핀랄 룰러케이트]]와 [[락 볼티어]], [[매그너 스윙]]이 참가했다. 근데 핀랄이 마음가짐을 정돈한다며 헤어스타일을 바꿨는데 너무 인물이 달라져서 매그너와 락이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다. 그래도 아스타는 그를 알아봐주긴 하는데 "그런데 인상이 얄팍하다"고 스타일에 독설을 날린다.
한 판 30분 짜리 대결. 팀경기로 진행되며 제한 시간 안의 상대팀의 크리스탈을 파괴하는 쪽의 승리다. 국왕 머리 위에 있는게 그 크리스탈. 각 에리어에 할당된 자군의 크리스탈을 지키며 적의 크리스탈을 많이 파괴해야 한다. 국왕이 여기까지 설명하다 말주변 부족으로 버벅대자 율리우스가 가로채서 시험에서 보는 것은 협조성과 전략성이며, 이는 앞으로 대 백야의 마안 전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 때문에 팀도 다른 기사단의 멤버와 짜게 되는데.
* 이어서 마법제가 팀 배정도 발표한다. 공언한 대로 여러 기사단 인원을 섞어서 배치했고 안면도 없는 사이끼리도 배정했다. 아스타는 "잭스 류그너"와 미모사와 한 팀. 아스타는 잭스에 대해 모른다. 미모사는 아스타와 같은 팀이 된게 기쁘긴 한데 배로 긴장돼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9화 . . . . 12회 일치
알렉스는 행크가 없어진 상황이라 DEO의 임시 리더로서 움직인다. 카라는 감옥에 갇혀있던 아스트라와 대화를 나누지만 성과가 없다. 넌은 DEO에 통신을 보내서 아스트라와 행크를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이 때 군인들과 난입한 레인 장군이 대통령으로부터 DEO의 권한을 받아서 지휘를 하기 시작한다.
레인 장군은 아스트라와 대화를 한다. 레인 장군은 아스트라에게 크립토나이트 자백제를 주사하여 기지의 위치를 알아내려 하다. 카라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막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제임스는 맥스웰 로드에 대해서 정찰해보고, 맥스가 클립톤인에 대항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걸 직감한다. 제임스와 윈은 맥스웰 로드의 정보를 캐내려고 하며, 맥스웰 로드의 연구시설에 잠입한다. 그러나 제임스는 붙잡히고 만다. 맥스웰 로드는 제임스를 잡아놓고 카메라를 부수고 위협을 가한 다음 풀어준다.
카라와 알렉스는 아스트라에게 자백제를 주사하여 얻은 정보로 군부대를 따라서 행크를 찾는 작전에 참가하지만, 넌이 파둔 함정이었으며 폭탄이 터져서 다수의 희생자가 나온다. 카라는 알렉스와 몇몇 군인들만 구하는데 성공한다.
카라는 그랜트에게 자신이 슈퍼걸임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랜트가 자신에게 여러가지 가르침을 주었다는걸 밝히면서 직장을 포기할 순 없다고 고백한다. 카라는 결국 그만두겠다고 밝히고 나온다. 카라는 제임스가 다친 것을 보고 윈과 제임스가 맥스웰 로드에게 접근했다가 다친걸 알게 되어 격노한다. 분노하며 나가려는 카라를 윈이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하면 아스트라와 다를 바가 없다고 설득한다. 카라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좌절감을 드러낸다. 제임스의 위로를 받는다.
카라와 알렉스, DEO요원들은 아스트라를 데리고 나가서 행크와 교환하려 한다. 레인 장군은 저지하려 하지만, 이전 작전에서 카라에게 도움을 받았던 장교가 카라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명령에 불복하고 카라 일행을 보내준다.
카라 일행은 아스트라와 행크를 교환한다. 하지만 넌은 클립톤 인들을 불러와, 카라 일행을 포위하여 공격하려 한다. 하지만 아스트라는 명예를 지켜 이번에는 공격을 중지하고 물러나라고 명령하고 카라 일행은 무사히 풀려난다. 행크가 복귀함에 따라서 레인 장군은 물러날 수 밖에 없게 된다. 행크와 알렉스는 카라에게 행크의 정체를 밝힌다.
- 식극의 소마/187화 . . . . 12회 일치
* 도지마 긴은 그의 "도박"이 성공했을지 기대하고 베르타와 실라는 악취가 나지 않을까 망설이며 쉽게 시식하지 못한다.
* 그러나 시식 결과 오미자와 곰고기의 뼈에 가까운 고기를 대담하게 조합해 멋진 멘치까스를 완성했다.
* 베르타와 실라는 소마가 나키리 아리스를 꺾은 인물임을 알고 다시 보게 된다.
* 베르타와 실라는 그 표면만 보고도 딱 알맞게 튀겨졌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 그 점 때문에 베르타와 실라는 잘 튀겨졌다고 하면서도 선뜻 먹기를 주저한다.
* 그를 따라 베르타와 실라도 시식.
* 극찬하는 베르타와 실라. 오미자의 맛이 균형감을 줘서 곰고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소우에는 소마가 곰의 "뼈와 가까운 고기"를 거침없이 사용했다며 상상을 초월하게 위험한 승부를 한 거라 평한다.
* 베르타는 그와 대화하다 소마가 작년 선발시합에서 나키리 아리스를 이긴 그 사람이라는걸 알게 된다.
* 그들은 소우에의 부하인 만큼 아리스와 쿠로키바 료와 친하게 지냈고 실력도 잘 알고 있었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12회 일치
* 죠이치로와 도지마. 그리고 [[나키리 아자미]] 3인은 쿄쿠세이 기숙사의 황금기를 가져올 재원들로 평가받았다.
* 학생들은 죠이치로가 항상 하던 악취미라고 생각하고 넘겼지만 도지마와 아자미는 이변을 감지하고 있었다.
* 우리세대 최강의 요리사는 [[사이바 죠이치로]]였다, [[도지마 긴]]의 폭탄발언에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분명 그들이 아는 당시의 십걸 1석은 도지마였고 죠이치로는 2석. 도지마는 십걸 서열은 요리실력도 보지만 학업과 공헌도 등을 두루두루 평가해 결정된다며 요리실력이야 죠이치로가 최강이었지만 정작 하는 행동거지가 막장이고 지금의 [[유키히라 소마]]를 좀 더 사악하게 업그레이드한 듯한 기행가였다. 소마의 기행을 익히 아는 두 사람은 "역시 부자는 닮는다"고 쓴웃음을 짓는데 도지마는 그 말을 듣고 "닮았다... 이건가..."라며 중얼거린다.
사실 그날은 죠이치로의 십걸평의회 가입 최종심사와 임명식이 있는 날. 그렇게 자리 비우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 모양이냐고 멱살을 잡는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태연한 태도로 "네가 내 몫까지 듣고 나중에 알려줘"라고 대충대충 넘어간다.
* 도지마는 그 시절의 죠이치로를 비유하길 "태풍이 날뛰는 황야의 개척자"였다. 항상 도전하고 있는 도지마와 아자미지만, 죠이치로의 요리를 볼때마다 항상 경이와 감탄으로 충만하다. 죠이치로는 그런 두 사람을 언제까지나, 어디로나 끌고 갈 거라는 얼굴이다. 도지마는 그때까지 "은"(긴)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만년 2인자라는 표식 같아 탐탁지 않아했지만, 죠이치로와 함께라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까지 생각한다.
>설령 두 번째라도 상관없으니 계속해서 이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싶다.
그것은 아자미도 똑같았다. 그런 미식의 탐구와 모험이야 말로 그들의 일상이고 즐거움이었다.
그들을 보는 죠이치로의 눈은 싸늘하다. 그러나 금방 웃는 얼굴로 돌아와 맡겨만 달라며 능숙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차가운 얼굴로 홀로 조리대에 선다. 항상 친구들과 함께 하던 그 황야로 향하면서.
* 우렁찬 구토소리 때문인지 도지마와 아자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끼고 조리실로 달려온다. 그 사이 학생들은 죠이치로가 내놓은 황당무계한 요리를 놓고 당혹한 표정이다. 마치 도마뱀 말린 것을 태워서 플레이팅한 듯한 비쥬얼. 하지만 당황하던 학생들 사이에 웃음이 번져간다.
하지만 기숙사장 후미오 여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 소동을 지켜본다. 뒤늦게 도착한 도지마와 아자미 또한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대이변이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12회 일치
* 그 각오를 본 소마와 에리나는 새삼 불타오르며 진지하게 승부에 임한다.
* 스타지엘을 시작하기 얼마 전 [[타쿠미 알디니]]의 기억. 그는 동생 [[이사미 알디니]]와 함께 가을 선발 대회장을 나서는 [[유키히라 소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사미는 타쿠미에게 유키히라에게 말걸지 않아도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타쿠미는 그때부터 어떤 각오를 나타내기 위해 더욱더 요리에 정진하려 한다.
* 하지만 상대편인 팀 [[사이바 죠이치로|사이바]]는 개판 오분 전. 실격 당할 뻔해서 센자에몬에게 설교듣는다. 죠이치로와 [[유키히라 소마]]가 싸우다 "대화하지 않는다"는 룰을 어긴데다 죠이치로는 그걸 "조리도구를 손에놓고 있었으니 조리 중이 아니었다"는 궤변으로 때우려 한다. 물론 [[나키리 센자에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 겨우겨우 다시 대결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소마와 죠이치로는 제대로 팀워크를 발휘하지 않는다. [[나키리 에리나]]는 소마를 따로 불러서 작은 목소리로 자기들이 죠이치로를 보필해보자고 제안하지만 소마는 "에리나도 룰을 어겼다"고 폭소를 터뜨린다. 에리나가 발끈하는라 큰 소릴 낸다. 숨길 것도 없이 센자에몬은 뻔히 보고 있었지만 도저히 전행이 안 돼서 그런지, 아니면 손녀라서 눈감아 주는지 좌우간 못 본척해준다.
에리나는 죠이치로가 팀 도지마처럼 왕도적 노선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하는데, 그때 도지마 측에서도 색다른 시도를 시작한다. 본래 레시피에서는 쓰지 않던 앤초비와 바질을 참가한 것. 같은 팀의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도 이상하게 여긴다. 게다가 담는 그릇도 보통 가정에서 쓰는 그라탕 접시가 아닌 평범한 접시. 에리나는 그걸 통해 가정식으로서 아쉬 파르망티에가 아니라 레스토랑의 정찬으로서 아쉬 파르망티에를 만드는 거라고 유추한다.
두 팀 모두 이런 애드립이 잔뜩 가미된 조리를 하는걸 보고 에리나는 죠이치로와 도지마가 자신들을 시험하려 하고 있다는걸 간파한다.
* 도지마가 갑자기 애드립을 첨가한 레시피로 전환하자 타쿠미도 거기에 응수한다. 그는 화이트와인 비네거와 올리브 오일을 준비한다. 도지마가 앤초비와 바질을 선택한건 소스를 만들기 때문. 넓은 접시에 담기는 이상 소스를 추가하는게 상식이다. 에리나의 짐작대로 타쿠미도 그걸 간파하고 있었고 곧 도지마는 바질과 앤초비를 메인으로 한 "앙쇼야드 소스"를 만들 준비를 한다. 여기에 대항해 타쿠미는 이탈리안 요리에서 자주 쓰는 "소프리토"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본래 양파나 마늘처럼 향이 강한 채소를 다져서 튀기듯 오래 볶아 페스토로 만드는 것이다. 카레 등을 만들 때 양파를 오래 볶아 카라멜라이즈 시키는 것과 유사한 조리법. 여기에 이탈리안의 소프리토는 파프리카나 피망을 더해 도지마의 앙쇼야드 소스와 잘 어울리는 요리다. 소프리토도 원래 아쉬 파르망티에에선 사용하지 않는 조리법인데, 타쿠미는 도지마가 양쇼야드 소스를 준비하는 걸 간파, 거기에 어울리는 조리를 즉석에서 떠올린 것이다.
* 센자에몬은 타쿠미가 성장했다며 "지금까지 없던 추잡함에 가까운 집념이 느껴진다"고 평한다. 타쿠미는 일찍히 토모나리가 봤던 "활활 타오르는 각오"가 깃든 눈으로 소마를 응시한다. 그는 눈빛으로 뭘 허둥대냐며 동료들을 구해야 하는데 이런데서 무릎꿇을 거냐고 도발한다. 더군다나 홍백전이든 무엇이 됐든 여기는 주방이고 "너와 나의 승부처"라고 일갈한다.
- 식극의 소마/210화 . . . . 12회 일치
* 네네는 이때 처음 잇시키와 만나는데, 처음엔 잘해주려고 했지만 잇시키가 뭘 배우든 그녀를 금방 따라잡자 강한 경쟁심을 느끼고 적대한다.
* 세뇌된 채인 [[카와시마 우라라]]. 반역자팀에 대해서는 저주에 가까운 악담만 늘어놓던 그녀가 [[잇시카 사토시]]가 솜씨발휘를 하자 대번에 달라진다. 잇시키는 장어를 고정함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배가르기를 마친다. 카와시마는 그것을 "일섬"이란 한 마디로 표현하면서 괜히 십걸의 7석이었던게 아니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세뇌모드로 돌아가 "결국 센트럴의 적은 되지 못할 것이다"라며 패배할 때의 표정이 기대된다고 말을 바꾼다.
* 잇시키의 솜씨에 놀란건 카와시마만이 아니다. 적 십걸들 조차도 그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으며 에이잔 같은 경우는 저 실력만 잘 활용하면 돈을 무한대로 벌 수 있는데 왜 센트럴에 반역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탄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다. [[코바야시 린도]]는 [[시라츠 쥬리오]]에게 지지말고 실력을 보여주라고 응원하는데, 정작 시라츠는 잇시키의 본실력에 감동해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다. 이 위험분자는 잇시키의 기술이 아름답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자기 조리까지 잊어버린다. 어쨌든 린도는 쥬리오가 기죽지 않고 의욕이 생긴거 같다고 잘됐다고 생각한다.
* 쿄쿠세이 기숙사 멤버들도 경악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아라토 히사코]] 같은 경우 그저 알몸 에이프런의 변태라고 생각했던 그가 놀라운 솜씨를 선 보이자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잇시키가 배가르기를 저런 정밀도와 속도로 처리하는데 경악한다. 배가르기는 장어의 배를 따고 내장을 제거하는, 보통 생선 손질과 기본적으로 같은 작업이다. 그러나 장어는 갈비뼈가 없어서 정확히 배를 따기 어렵고 싱싱한 장어일 수록 힘이 좋아서 도마 위에서 요동치기 마련. 보통 생선처럼 손쉽게 손질하는게 불가능한 생선이다.
잇시키는 죽은 생선을 손질하듯이 너무 간단히 배가르기를 해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도 히사토의 해설을 듣고 보니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이 난다고 감탄한다. 그러는 한편 평소의 알몸 에이프런 차림에선 상상도 못했다고 수군거리는데, 그 말을 들은 [[나키리 아리스]]가 비서코, 니쿠미라는 별명을 부르며 "알몸 에이프런"이 뭐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둘 다 별명을 부른 점에만 투덜대고 정작 "알몸 에이프런"에 대해선 노코맨트를 고수한다.
* 아버지의 당부도 있어서 네네는 처음부터 잇시키와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려고 한다. 처음 키노쿠니가에 왔을 때, 잇시키는 어딘지 멍해보이고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네네는 실뜨기나 공기놀이를 가르쳐주며 함께 놀았다. 그런데 잇시키는 류테키나 비파같은 악기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네네는 당연히 다루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뜻밖에도 잇시키는 무엇을 가르쳐주든 금방 따라해서 능숙해졌다. 곧 악기 뿐이 아니게됐다. 잇시키는 네네와 함께 다양한 교양을 습득하게 되는데 무엇을 하든 네네가 고생해서 익힌 솜씨를 손쉽게 따라잡았다. 네네는 곧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그를 경쟁자로 적대시한다.
* 네네는 그런 과거지사를 숨기지 않고 공개한다. 후배들은 둘이 소꿉친구 사이냐고 놀라길 먼저한다. 하지만 인정하는 잇시키와 달리 네네 쪽은 "우리집에서 식객을 하며 수행한 것 뿐이지 소꿉친구가 아니다"라며 여전히 적개심을 드러낸다. 잇시키는 뭘 그렇게 맨날 자길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핀잔하는데, 네네는 그 이유는 알고 있지 않냐고 응수한다.
그러는 동안 네네는 다음 조리 단계로 넘어간다. 그녀가 준비하는 재료는 벚꽃 새우와 튀김옷. 그렇다면 벚꽃 새우 카키아게를 올린 카키아게 소바(튀김소바)가 유력하다. 네네는 튀김 준비를 해놓고 반죽 썰기에 들어간다. 역시 이 또한 정밀기계를 방불케하는 뛰어난 솜씨다. 에리나는 단련된 장인은 면을 0.1mm로 썰 수 있는데 네네는 당연히 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한다.
한편 [[유키히라 소마]]도 별다른 주문은 받지 못하지만 자르기 단계까지 진행했다. 제면기지만 그래도 썩 괜찮은 면이 나온건 분명하다. 이쿠미와 히사코는 그가 과연 어떤 소바를 완성할지, 그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궁금해한다. 찬 면과 더운 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소바는 면이 나오자마자 삶기에 들어간다.
소마는 삶기 까지 마친 소바 면을 망설임없이 펜에 던진다. 이 상식 밖의 전개에 관객들 까지도 "기다려 설마"라고 말리다시피한다. 하지만 소마는 분명히 소바를 굽고 있다. 유키와 이쿠미는 온면인지 냉면인지 했더니 아예 구워버린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네네도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이해불능 상태에 빠진다. 기껏 28소바로 안정적인 길을 선택해 놓고서 그걸 굽는다? 소바면은 저런 식으로 구우면 메밀의 향기가 날아가 버린다. "야키소바"라고 하긴 했지만 절대로 해선 안 될 형태인 것이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12회 일치
* 동료들의 기대와 우려, 그리고 의문을 품은 소마의 요리, 불에 구운 소바가 심사의원 앞에 놓인다.
* 그리고 시식. 사회자 [[카와시마 우라라]]는 "보나마나 풍미고 뭐고 사라졌을 것"이라 예측한다. 그런데 심사의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하나같이 진한 메밀의 풍미에 감탄한 얼굴. [[이스트와르]]는 소바의 풍미가 잘 살아있다고 발언한다. 네네는 뜻밖의 결론이 나오자 경악한다. 이어서 [[샤름]]이 "구운 부분이 바삭바삭해서 소바의 식감을 배가한다"고 발언하고 이스트와르는 "오리고기의 기름이 소바의 감칠맛을 강화시킨다"고 짚어낸다. [[안]]은 소바 자체의 풍미가 잘 전해진다고 총평. 소마는 좋았어, 라고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가 기대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소바가루는 메밀을 갈 때 어느 부위를 쓰냐에 따라 1번부터 3번까지 번호로 구분한다. 밀가루가 밀의 종류나 가는 방식에 따라 소맥분이나 강력분 등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1번 가루는 메밀을 갈 때 가장 처음 나오는 가루다. 배젖 중심 부분에 해당하며 이것으로 만든 소바는 목넘김이 좋고 기품있는 풍미를 낸다. 2번은 메밀을 좀 더 갈아서 배젖의 주변 부분인 배아부까지 쓴 것. 향기와 식감의 밸런스가 좋다는 평가다. 3번은 2번까지 갈아내고 남은 외피 부분을 갈아 쓰는 것인데, 목넘김은 거칠지만 굉장히 풍미가 강렬한 가루가 나온다.
컵 야키소바라면 안도 들어본 적이 있다. 소마는 그게 맞다고 답하며 심사의원들에 작은 종지를 나눠준다. 이스트와르가 보니 양념 같은데 소마는 이게 양념보다는 "고명"이라고 설명한다. 시즈닝 스파이스에 간 깨를 첨가한 것으로 취향에 따라 넣어먹는 것이다. 이것도 컵 야키소바, 컵라면류에서 따온 발상이다.
이번에 만든 소바도 기본적인 원리는 컵 야키소바와 같다. 우선은 그 자체로 풍미가 강한 면이다. 소스는 진한 간장 10, 미림 4, 굵은 설탕 3을 섞고 진한 가스오부시를 넣어 희석한 특제 츠유. 마지막으로 자신이 조합한 조미료. 이것들을 "컵"="철냄비"에 넣어서 구우면서 섞는다. 모두 컵 야키소바의 요소이다. 물론 뜨거운 철냄비가 컵 야키소바의 컵에 해당하는 것은 소마만의 취미지만.
* 이스트와르는 일본의 컵 야키소바 또한 급속도로 진화를 계속해왔고 그것 역시 하나의 역사와 전통이라고 발언한다. 안은 거기에 더해서 "에도 소바에 들인 시간과 노고는 네네를 이길 사람이 없지만 소마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고 평한다. 소마는 컵 야키소바라는 것으로 새로운 발상을 더해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걸 만들어냈다. 이는 "소바라는 요리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까지 극찬한다.
예상외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소마. 방금 감탄했던 린도와 달리 십걸의 1석 [[츠카사 에이지]]는 속모를 표정으로 그를 주시한다. 옆 조리대의 잇시키는 이런 상황을 예견했듯 아주 당연한 듯이 여기고 있다.
* 이렇게 해서 심사는 종료. 승자를 결정하기로 한다. 소마와 네네. 승자는 누구일까?
* 발표에 앞서 이스트와르가 "심사의원 만장일치"로 승패가 갈렸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그는 승자 발표를 앞두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이 요리"에서 이렇게나 강한 소바의 풍미가 나오는 것인지를.
- 식극의 소마/219화 . . . . 12회 일치
* [[쿠가 테루노리]]가 그토록 [[츠카사 에이시]]와 대결을 원했던 이유는 과거에 당했던 "대패배" 때문이었다.
* 쿠가와 츠카사의 대결 주제는 "녹차". 찻잎을 이용한 요리다. 찻잎을 주제로 한 요리는 낯선 주제로 특히 쿠가와 츠카사의 전공 분야와는 아주 무관하다.
* 쿠가는 츠카사가 "남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인간"이라 비난하는데 모든 것은 1학년 당시 츠카사와 했던 식극에서 시작한다.
* 당시 "대패배" 후 충격에 빠졌던 쿠가는 [[잇시키 사토시]]가 "1학년 중에선 유일하게 츠카사와 대결"했다고 위로하자 기운을 차린다.
* 옆 조리대에선 [[코바야시 린도]]와 [[메기시마 토스케]]의 대결. 린도의 재료는 놀랍게도 악어. 메기시마는 조용히 투지를 불사른다.
* 연대식극 대회장. 예상대로 센트럴측은 가지고 있는 최강의 카드를 꺼냈다. [[츠카사 에이시]], [[코바야시 린도]], [[사이토 소메이]]. 십걸 1석, 2석, 4석으로 이어지는 클린업. 반역자측도 쿠가, [[메기시마 토스케]], [[미마사카 스바루]]로 결코 만만치 않은 강자를 준비했지만 이목이 쏠리는 걸 어쩌진 못했다. 이 대결의 주역인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잠자코 승부의 동향을 지켜본다.
* 대결 상대가 정해졌으니 이제 주제를 정해야 할 때. 사이토가 뽑기 차례를 반역자측에 양보하자 린도가 정색한다. 왠지 이게 꼭 하고 싶다고. 하도 적극적이라 별 수 없이 메기시마의 양해를 구해 이쪽만 린도가 뽑기로 합의한다. 그동안 사이토는 메기시마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까지 같은 십걸이던 자신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것. 메기시마는 요리사로서 내세우는 마음가짐이 다 다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대꾸한다. 사이토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언제나 자기 길을 걷던 메기시마가 "저 하급생" 편을 드는 건 의외였다고 말한다. 메기시마도 동감이다.
* 쿠가 대 츠카사, 메기시마 대 린도, 미마사카 대 사이토. 어느 것 하나 반역자 측에 유리한 대결은 없다. 감옥에 갇힌 후배들은 특히 츠카사와 싸우는 쿠가의 승산이 낮은 걸로 본다. 하지만 소마는 의외로 쿠가가 "집념의 미라클 펀치"를 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최종적으로 엔트리를 만든 [[나키리 에리나]]는 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가장 생소한 재료. [[요시노 유키]]와 [[사카키 료코]]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유키는 "맛있는 차로 대결"인 거냐고 의문을 표하는데 료코는 "찻잎의 맛이나 향을 살리는 요리"를 하라는 걸거라 추측한다. 메구미는 하다못해 이 대결이 [[잇시키 사토시]]나 [[키노쿠니 네네]]가 낀 대결에서 나왔다면 일식 요리사인 만큼 어떤 요리를 할지 이미지가 나왔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토 이쿠미]]도 같은 의견이다. 사천 요리 전공인 쿠가, 프랑스 요리 전공인 츠카사와 너무 동떨어진 주제다. 그 증거로 츠카사는 주제가 정해지자 한참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자신의 장르를 못 살리는 주제라면 남은건 2시간 뿐인 제한시간 동안 고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게 관건이다.
- 신지애 . . . . 12회 일치
위와 같이 KLPGA를 말 그대로 평정한 그녀를 사람들은 '''지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부상을 털고 일어난 2012년 1박 2일에 걸친 9차 연장 끝에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재기를 알리더니,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에서 -9를 기록하면서 2위와 9타 차, 혼자 언더파 기록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면서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본인의 무언가를 느꼈는지[* 아시아 -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 선수들을 견제하기 위해,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장비 때문에 LPGA에서 전체적인 전장을 늘였던 점도 부담이 있었다는 설이 있고, 어린 나이에 이룰 것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심적으로 고생이 심한 투어생활을 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와 관련된 인터뷰도 있으니 읽어보고 판단해 보도록 하자. [[http://golf.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122142001]]] 2015년 현재는 주로 JLPGA에서 뛴다. 거기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이보미]], [[안선주]] 등과 JLPGA의 최강자 중 한명으로 활약 중이다. 그러나 JLPGA 집중을 선언하자, [[미래에셋증권]]은 스폰서 계약 만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했다.
2016년 6월 JLPGA 니치레이 레이디스에서 우승하여 해당 대회 3연패와 더불어 한국 여자 프로골프 선수 최다승수인 45승을 달성하였다.
장타자는 아니지만 매우 정교한 샷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 작은 키 때문에, 하체를 사용한 풀 샷을 날리지만 장타를 날리기는 힘들다. 대신에 송곳같은 드라이버 샷으로 정확도를 높인다. 페어웨이 안착률이 100%을 기록하는 대회가 나올 정도. [[미셸 위]] 등의 지르는 타입의 프로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 18년 현재 KLPGA 통산 21승, JLPGA 통산 18승, LPGA 통산 11승, LET 3승, 아시아여자골프투어 1승 등 전 세계 투어 통산 54승 기록 중(단, 2008년, 2010년에 우승한 LPGA 미즈노 클래식은 JLPGA와 공동주관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52승'''이다.)
* 개인사는 평탄하지 못한 편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한빛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원자력발전소 진입로에 신지애의 출생지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던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나, 청소년기에 어머니가 뺑소니 차에 치여 숨지는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그리고 그 때 받은 어머니의 보험금을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가족이 아닌 그녀만을 위해 썼고, 그녀는 아버지의 뒷바라지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결국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신지애의 아버지는 후에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15층짜리 아파트를 1층부터 15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훈련을 시켰는데, 이 때 훈련을 너무 혹독하게 시켜서 키가 크지 않은 것이 가슴 아프다" 라고 밝힐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동생들을 끔찍히 아끼고 잘 챙긴다. 신지애의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지애도 자신이 번 돈을 가족들을 위해 쓰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라고 밝힐 정도. 신지애의 동생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였는데, 그 때 신지애는 서울대 앞에 카페를 차려서 동생과 함께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 [[박세리]]의 1998년 활약을 보고 골프에 뛰어들게 된 이른바 '박세리 키즈' 중 한 명이다. 이러한 '박세리 키즈' 선수로는 신지애와 동년배 선수들인 [[최나연(골프선수)|최나연]], [[박인비]][* 박인비는 박세리가 우승하는 명장면을 찍은 광고를 보고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등이 있다.
* 예능에도 몇 번 출연했으며 <무릎팍 도사>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진솔하게 털어놓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오늘을 즐겨라>에도 출연하여 [[정준호]], [[신현준(배우)|신현준]], [[정형돈]] 등과 같이 골프를 치기도. 또한 MBC 스페셜 다큐멘터리에서도 출연했다. [[1대 100]] 229회 후반전 방송에서는 1인으로 나와 8단계에서 최후의 3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여기서 5000만원과 적립금 835만원 모두 안드로메다로......[* 만약 우승했다면 역대 최연소 1인 우승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당시 25세, 최연소 기록은 28세)]
* KLPGA에서 활약 중인 [[전인지]]와도 친분이 있다. [[함평골프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이지만 한일 여자골프대항전에서 만난 뒤로 더욱 친해졌는데, 주로 [[전인지]]의 고충이나 인생에 대한 조언 등을 해주는 등 대화를 많이 하며 서로의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 2017년 1월 22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하장]]라는 이름으로 참가해서 [[새해 새댁 꼬꼬댁]]와 같이 박혜경의 '안녕'을 불렀으며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을 부르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제작진이 무려 7개월 동안 공들여 섭외했다고 하며 2년 동안 국내에서 경기를 갖지 않고 일본에서 뛰고 있다가 새해를 맞이해 나왔다고 한다. 그 동안 쌍커풀 수술도 하고 살도 빠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고 언급했다. 조장혁은 복면가왕에 출연한 스포츠 스타 중에 전조를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실력에 감탄했으며 유영석은 실력이 어떻든 어디서 신지애의 노래를 듣겠냐며 지금 상황이 신기하다고 밝히는 등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 뒤 개인기로 골프공과 골프채로 축구공 트래핑과 유사한 개인기를 보여주고 물러갔다.
아버지는 2018년에 광주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신지애와 함께 공동 대표로써 갤러리를 오픈했으며 광주 동구 동영동에 위치해 있다.
- 원피스/840화 . . . . 12회 일치
* 빈스모크 저지는 한때 베가펑크와 함께 연구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
* 상디는 제르마의 현실을 알고 구역질이 난다고 하는데 그때 이치디와 니디가 나타난다.
* 상디는 코제트의 일로 니디에게 덤벼드는데 니디와 이치디는 인질(제프)을 운운해서 그를 제압한다.
* 상디와 형제들은 혈통인자로 조작되어 태어난 초인들.--어쩐지 눈썹이 이상하더라.-- 그러나 상디만은 뭔가 잘못돼서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 레이쥬는 다른 형제와는 달리 상디를 불쌍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같이 괴롭힘 당할 까봐 동참하는 시늉만 한다.
* 그가 담배를 피워무는데 그때 이치디와 니디가 나타난다.
* 상디의 과거. 저지가 어린 상디와 그 형제들을 불러놓고 "너희는 나의 최고 걸작"이라 말하고 있다.
* 상디와 형제들은 이때부터 살인적인 훈련을 시작한다.
* 상디는 니디와 검도 시합도 하는데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웃음거리가 된다.
* 저지는 쥐와 음식을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다시는 요리하지 마라"라고 금지한다.
* 제르마의 과학기술 때문에 베가펑크와 연관성이 점쳐지고 있었는데 사실로 드러났다.
* 밀집모자 일당도 베가펑크와 연관된 인물이 있는데 프랑키. 그러나 정작 프랑키는 다른 루트로 갔다.
- 원피스/845화 . . . . 12회 일치
* 몽키 D. 루피는 선언한대로 상디와 싸웠던 들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 빈스모크 일가와 샬롯가의 다과회는 순조롭게 진행. 샬롯 푸딩은 상디를 따로 불러내 사정을 전달한다.
* 상디는 자신의 가족사와 채워진 폭발수갑과 제프, 동료들이 인질로 잡힌 일을 푸딩에게 밝힌다.
* 푸딩은 상디를 안타까워하며 "나와의 결혼은 지옥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말해버린다.
* 때마침 일기가 흐려지며 나미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몰려드는 암운을 보고 킹 바움이 빅맘이 분노했다고 두려워한다. 파운드가 말했듯 정말로 빅맘을 기후를 조종하고 있었다. 스위트 시티에서는 시민들이 하늘에서 날뛰는 프로페테우스와 제우스를 목격한다. 그걸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빅맘의 분노를 직감한다.
* 홀케이크 성. 빅맘 샬롯 링링은 빈스모크 일가와 만나기 위해 가는 중이다. 그런데 작은 소녀 "아나나"가 요리장이 식칼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징징댄다. 봉제인형을 찢어야 한다나. 빅맘은 옆에서 풍선을 타고 놀던 뚱뚱한 도르체, 도르제 형제에게 빌려주라고 하지만 도르체는 그러면 아나나가 자기들 풍선을 터뜨려 버릴 거라며 싫어하고 아나나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위협한다. 다른 아이들도 빅맘 주위로 몰려와 도르체와 도르제가 "나쁜 말"을 쓴다고 일러바친다. 빅맘은 껄껄 웃으며 "누구에게나 죽이고 싶은 상대는 백이나 이백 정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한다. 빅맘은 내일로 다가온 샬롯 푸딩의 결혼식과 사위가족과 만날 일로 들떠 있다.
* 마침내 한 테이블에 모인 제르마 왕가와 샬롯 링링. 빅맘은 푸딩의 결혼식을 기대한 것과는 달리 "정략결혼이니 나와 빈스모크 저지만 만족하면 된다"는 식으로 떠들어댄다. 오히려 저지 쪽에서 "그래도 애들이 행복하면 나쁠 건 없다"고 자식을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화기애애한 이들과 달리 푸딩과 상디는 표정이 무겁다. 특히 상디는 심란한 와중에 음식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난리를 쳐서 더욱 짜증이 난다. 그러던 중 푸딩은 살짝 쪽지를 전해 나중에 단둘이 이야기하자고 전하는데.
|| 나와의 결혼은 지옥으로 만들지 않을게 ||
- 원피스/865화 . . . . 12회 일치
* 벳지가 카타쿠리에게 난사를 가하며 저지에 총력을 다하나 무효화, [[징베]]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조력하나 역부족.
* 이틈을 타서 상디는 [[쵸파]]와 함께 빈스모크 일가를 구하고 [[나미(원피스)|나미]]와 [[캐롯(원피스)|캐롯]]은 레이드 슈트를 탈환해 전달한다.
* 한편 정신을 잃은 빅맘은 어린 시절, "마더"와 함께 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모든 것의 시작은 63년 전, 신세계의 엘바브섬.
* [[브룩]]의 조언에 빅맘에게 다시 깨진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루피는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회수했다. 하지만 그가 달리기 시작한 순간 삼장성 중 하나인 [[샬롯 카타쿠리]]가 그를 저지하려고 다가오고 있었다. [[카포네 갱 벳지]]가 [[징베]],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함께 그 앞을 가로막자 카타쿠리는 그 역시 배신했음을 직감하며 달려간다.
* [[샬롯 다이후쿠]]와 대치 중이던 [[상디]]는 가족의 목숨이 풍전등화가 되자 그 자리를 이탈했다. 당장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빈스모크 일가의 테이블로 달려오지만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은 그 조차도 "허둥지둥 뭐하는 짓이냐"고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빈스모크 레이쥬]]도 그의 모습을 보았다. 상디는 정신없이 달려오자 다이후쿠의 마인에게 붙잡혀 넘어졌다. 레이쥬 또한 그의 구조를 바라지도, 살고자 바라지도 않았지만 느끼는 감정은 형제들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가족들도 놔두고 도망치지 않는 상디에게 "너의 상냥함을 얕봤다"고 독백한다. 그녀는 평생을 빈스모크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다.
* 벳지가 카타쿠리를 저지하기 위해 총을 난사했다. 자연계인 카타쿠리에게 별 타격은 주지 못했지만 그의 배신은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카타쿠리는 이에 분노하지만 그보다 루피가 먼저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다리를 떡으로 변화시켜 루피에게 뻗는다. 루피가 엉겁결에 받아치려 하는데 그래선 붙잡힌다. 페드로가 접촉하지 말라며 몸을 날린다. 이어서 징베가 "오천 기와 정권"으로 달라붙는 떡을 흐트러뜨린다. 그 순간 카타쿠리가 징베를 지나쳐 루피를 직접 노린다. 카타쿠리의 떡뭉치가 루피를 덮쳐 붙들지만, 루피는 마지막 순간 팔을 늘려서 빅맘의 시야로 파고든다.
페드로와 징베는 귀마개로 무사히 괴성을 넘겼다. 벳지는 자신의 두 부하를 불러내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아직도 비명을 지르는 빅맘. 그녀는 과거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쓰러졌으며 무릎이 까져서 피를 흘린다. 징베는 그 점이 흡족했다.
* 레이쥬는 갑자기 나타난 괴상한 사슴, [[쵸파]]가 귀마개를 채워주자 놀란다. 그녀 뿐만 아니라 빈스모크 일가 모두에게 귀마개가 끼워진다. 상디는 디아블 잠브로 가족들을 구속하던 사탕을 깨뜨린다. 저지와 형제들은 뜻밖의 구조를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당황하는 동안 나미와 [[캐럿(원피스)|캐럿]]이 탈환해온 레이드 슈트를 전달한다. 나미는 이제는 알아서 싸우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귀마개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빅맘에겐 좀처럼 없었을 생명의 위기. 이 와중에도 그녀의 정신은 온통 깨어진 마더 카르멜의 사진에 가있다. 그녀는 두 동강 난 "마더"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비명을 지르며 아직은 마더와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 원피스/875화 . . . . 12회 일치
* 쵸파와 브룩은 써니호에 도달하는건 성공했으나 매복하던 [[샬롯 페로스페로]]와 [[샬롯 카타쿠리]]와 마주쳐 진퇴양난.
* 페르스페로는 쵸파와 브룩에게 그대로 달아나면 눈감아 주겠다고 제안하나 둘은 써니호를 탈환하기 위해 페로스페로 병력과 일전을 각오한다.
* [[브룩]]은 [[몽키 D. 루피]] 일행과 다른 루트로 써니 호에 접근 중이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함께 타고온 잠수정. 이번엔 [[쵸파]]가 페드로와 자리를 바꿨다. 이쪽도 루피 일행 못지 않게 힘겨운 여정이었다. 스위트 시티를 덮친 산사태, 아니 케이크 사태가 잠수정을 정박한 "쥬스 강"까지 파묻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크림 더미에서 잠수정을 파내고 보니 브룩과 쵸파도, 잠수정 내부도 끈적거리는 생크림 투성이. 심지어 키를 미끄럽게 만들어서 브룩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면 쵸파는 달콤한 생크림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대만족.
* 써니호가 정박한 남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상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순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상까지 남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상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백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 그때 캐럿이 익숙한 다리를 발견했다. 거대한 악어와 마주쳤던 그 다리. 하지만 그땐 망가졌던게 멀쩡한 모습이니, 자기들이 아는 거기가 맞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나미는 이 숲은 모든 걸 속일 수 있으니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고 불평했다. [[샬롯 로라]]의 비브르 카드는 이제 무용지물이었다. 빅맘이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징베는 나미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먹이"주는 걸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제우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미는 크리마텍트로 작은 뇌운, "웨더 에그"를 꾸준히 생성했다. 제우스는 아직도 일행을 쫓아오며 그녀가 뿌려주는 구름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설사 부릴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빅맘 곁으로 돌아가게 둬선 안 된다, 그게 징베의 판단이었다.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빅맘은 미쳐있는 중에도 제우스가 없는게 불편해 죽겠는지 제우스에게 돌아오라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하지만 나미의 구름 맛에 홀린 제우스는 눈치만 보지 결코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보다못한 "프로메테우스"가 쫓아와서 왜 마마의 명령을 거역하냐고 제우스를 다그쳤다. 그럴 수록 나미는 더욱 맛있는, "쥬시한 먹구름"으로 제우스의 환심을 샀다. 결과는 대성공. 역시 제우스는 빅맘의 부하가 맞았고 식탐에 눈이 머는 것도 똑같았다.
포만감을 만끽하던 제우스는 뜻하지 않게, 낚시줄에 걸린 것처럼 땅 위로 끌려내려왔다. 그의 체내에 가득한 웨더 에그가 끌려갔기 때문이다. 그가 곤두박질친 위치는 추격대의 머리 위. 원래 있어야할 빅맘의 곁이었다. 빅맘 해적단이 떨어지는 제우스를 봤을 때는 벌써 늦었고, 유혹의 숲 전체를 감전시킬 것 같은 강렬한 번개가 직격했다. 땅을 가르고 하늘을 찢을 것 같은 번개가 추격대와 빅맘을 집어삼켰다.
* 유혹의 숲을 쪼개버린 무서운 벼락. 써니호가 있는 남서쪽 해안에 후폭풍이 몰려올 정도였다. 써니호를 점거한 [[샬롯 페로스페로]]와 [[샬롯 카타쿠리]]에게도 당연히 보였다. 페로스페로는 빅맘이 제우스를 써서 루피 일행을 끝장낸 거라고 단정했다. 곧 빅맘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추측도 함께였다. 그러나 정작 미래를 보는 사나이 카타쿠리 쪽은 말이 없었다.
그 자리에는 빅맘 해적단만 있는게 아니었다. 잠수정으로 일행을 앞질러온 브룩과 쵸파도 그 광경을 보았다. 잠수정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써니호 앞에서 부상했다가 매복한 페로스페로 일당과 딱 마주쳤던 참이었다. 그런 순간에 유혹의 숲에서 일어난 이변. 둘은 숲에 있을 일행을 걱정했다. 빅맘이 한 짓이기 아니긴 했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범위의 벼락이라 과연 일행이 무사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페로스페로는 아예 그들이 들으란 듯이 "일행이 죽은 모야이다"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둘에게 이제 어쩔 테냐고 물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배를 탈취하게 되더라도, 그 배에 태울 일행은 이제 없다. 페로스페로는 큰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지금 그 잠수정으로 달아난다면 둘은 봐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휘하의 체스병사들은 활로 브룩과 쵸파를 겨누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원피스/876화 . . . . 12회 일치
* "제우스 브리즈 템포"가 유혹의 숲 한복판을 꿰뚫었다. 추격에 열을 올리던 빅맘 해적단이 한 순간에 증발. [[밀집모자 일당]]은 간발 차이로 폭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무사했다. [[몽키 D. 루피]]와 그 일행은 도망치던 것도 잊고 폭뢰가 만든 거대한 구멍을 바라봤다. 누구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술을 시전한 [[나미(원피스)|나미]] 조차 통상적으로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라고 경악에 경악을 거듭했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추격대가 전멸했을 거라는 추측을 내놨다. 그렇다면 관건은 빅맘 [[샬롯 링링]]. 그녀의 생사였다. 분명 그녀는 폭심지 한 가운데 있었다. 직격.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저 시커먼 구멍에 삼켜진 건 분명하다. 과연 그녀는 그 충격을 견뎌낸 걸까?
오로지 전진. 토사든 대지든 무엇이든 빅맘의 먹부림을 막을 순 없다. 그녀는 단지 걸었다. 밀집모자 일당을 향해. 가로막히는 모든 걸 씹어삼켰다. 우적거리는 소리와 빅맘의 목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나미가 어느 지점부터 지면이 갈라지고 무언가 솟아 오르는 걸 보았다. 빅맘이 기어이 땅 위로 올라왔다. 이제 다시 발이 바빠질 시간이다.
다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한 일행 위로 또 불쾌한 손님이 나타났다. 마법의 양탄자 "라비앙"을 탄 [[샬롯 푸딩]]이었다. 옆에 [[샬롯 시폰]]도 있었지만 루피의 눈에 들어온 건 푸딩이었다. 그들을 속이고 [[상디]]를 죽일 뻔한 여자. 진작부터 그녀를 의심했던 페드로는 "역시 그때 묶어놨어야 했다"고 으르렁거렸다. 루피가 이제와서 싸우러 온 거냐고 날을 세우자 푸딩이 그런 용건이 아니라며 이야기부터 들어보라 말했다. 하지만 푸딩은 그 용건을 꺼낼 수가 없었다. [[상디]]가 하트를 날려대며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달리는 동안 자길 죽이려 한 여자라는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푸딩의 상태도 비슷비슷했다. 상디와 눈이 마주치자 세 개의 눈이 하트를 띄우며 혼절할 지경이었다. 그때 빅맘이 완전히 땅 위로 올아오지 않고 시폰이 옆에서 채근하지 않았더라면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챙긴 푸딩이 위급한 사실을 알렸다. 아주 사악한 얼굴로.
>마마는 바다 끝까지라도 쫓아와서 너희들을 바다 속으로 가라앉힐 테니까!!
* 역시 푸딩은 배신자일까? 시폰이 그게 아니지 않냐고 호통을 치자 이번엔 또 다시 착한 얼굴로 돌아와서 "나도 참 무슨 소리야"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시폰은 할 수 없이 직접 상황을 설명했다. 빅맘은 밀집모자 일당이 웨딩 케이크를 훔쳐갔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일행을 좇을 것이다. 결국 써니호까지 가더라도 이 도주극이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루피 일행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잠깐 잠잠했던 푸딩이 다시 사악한 얼굴을 내밀고 상디에게 자기 쪽으로 오라고 유혹했다. 동료들이 마마에게 죽는 지옥을 맛보라면서. 시폰이 또 호통쳤다. 그러면 또 착한 얼굴로 돌아와 몸둘바를 모르는 푸딩. 재미없는 만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 대체 푸딩의 진짜 속내는 뭘까?
>OK! 그럼 케이크 만드는 걸 도와줘!
* 옆에서 자꾸 돌변하는 푸딩만 없었으면 더 간단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사악한 쪽이 말썽이다. 결과는 시폰이 말한대로 될지 모르지만, 자신은 그녀와 다르다는 얘기였다. 밀집모자 일행을 위한게 아니었다.
* 동요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상디가 시폰에게 작업장소를 물었다. 시폰은 쇼콜라 타운을 골랐다. 거기에 모든 재료가 있었다. 완성된 케이크는 배로 옮길 생각이었다. 루피 일행은 빅맘을 바다까지 유인해야 한다. 그녀가 바다 한 가운데서 고립될 수 있도록. 바다에는 빅맘 해적단의 해상병력도 대기하고 있어서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그들이라면 버티리라고 시폰은 믿었다. 이걸로 작전 브리핑은 끝. 작전 개시다. 상디도 라비앙으로 옮겨가려. 같이 쇼콜라 타운으로 가야하니까. 그런데 푸딩이 거기서 당황해버렸다. 손사레까지 쳐가며 거절하는 푸딩. 그때 후방에서 빅맘이 "위국"을 쓰기 위해 나폴레옹을 치켜들고 있었다. 일행은 그 공격을 피하면서 둘로 갈라졌다. 쇼콜라 타운으로 향하는 상디, 시폰, 푸딩 일행과 써니호로 향하는 나머지 일행. 상디와 루피는 바다 위에서 다시 만날 걸 기획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푸딩은 다시 일행 곁으로 가서 그 방향은 벽 방향이라고 알려줬다. 일행은 똑바로 달린다고 생각했지만 유혹의 숲이 수작을 부렸던 것이다. 푸딩은 해안 방향을 향해 날며 유혹의 숲 호미즈들을 향해 열매의 능력을 발휘했다. "메모리즈 필 플래쉬 백". 푸딩이 쓸고 지나간 나무들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눈 앞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마치 딴 일을 하던 사람들 처럼 스스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각자 시장을 보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 푸딩은 호미즈에 깃든 "혼의 기억"을 되살렸다. 주마등처럼 기억이 되살아난 동안에는 빅맘의 지배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녀는 지금이라면 숲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고 정말로 숲이 좌우로 갈라지며 해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상디가 고맙다고 말하자 푸딩은 이제야 그가 탄 걸 깨달았는지 허둥지둥대며 츤츤거렸다.
* 짧은 러브 코미디가 펼쳐지는 양탄자가 해안가에 이르러 상승했다. 그들은 써니호를 스쳐지나갔는데 상디는 거기서 [[브룩]]과 [[쵸파]]가 적과 싸우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샬롯 카타쿠리]]와 [[샬롯 페로스페로]]의 모습도.
- 원피스/877화 . . . . 12회 일치
* 루피를 가로막은 카타쿠리. 루피와 카타쿠리의 격전이 시작된다. 그동안 [[징베]], [[나미(원피스)|나미]]는 출항준비를 서두른다.
* 페드로는 페로스페로가 사라져 사탕사탕 열매의 효과가 사라지면 일행이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커다란 폭발이 페로스페로와 페드로를 삼킨다.
* [[샬롯 카타쿠리]]가 유혹의 숲에서 묘한 움직임을 주목한 건 그때였다. 숲이 심상치 않은 굉음을 내고 있었다. 곧 호미즈들이 뿌리째 뽑혀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곧장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타쿠리가 그 움직임을 형에게 알렸다. 빅맘 [[샬롯 링링]]이 틀림없다. 페로스페로는 그렇게 여겼다. 이제 마마가 왔으니 장난질도 끝마칠 때다. 빅맘을 [[샬롯 푸딩]]이 웨딩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카카오 섬으로 유인해야 하니까. 행여라도 빅맘이 이 배에 웨딩 케이크가 없다는걸 알아차리면 그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숲을 유심히 관찰하던 카타쿠리는 "그럴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곧 페로스페로도 그걸 깨달았다. 숲을 무너뜨리듯이 가르고 나타난 것은 빅맘만이 아니었다. 빅맘에게 죽었다고 생각했던 밀집모자 일당, [[몽키 D. 루피]]와 그 일당들이었다. 여전히 빅맘의 추격을 피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선상을 점거한 페로스페로와 카타쿠리를 보고 "귀찮은 녀석들이 앞질렀다"고 불평했다. 이제 선상에 남은 빅맘 해적단은 카타쿠리와 페로스페로 단 둘. 페로스페로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일행에게 잘도 도망쳤다고, "감동 받은" 데 대한 선물을 날렸다. "캔디 메이든". 캔디로 된 아이언 메이든. [[캐롯(원피스)|캐롯]]은 그게 사탕 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벽일리 없었다. 캔디 메이든의 날카로운 이빨이 일행을 덮쳤다. [[징베]] 조차 여기선 우회하자고 했지만 루피는 강행돌파를 고집했다. 루피의 전력을 다한 "고무고무 레드호크"가 불길을 일으키며 캔디 메이든을 꿰뚫었다. 관통력에 불까지 붙은 레드호크는 페로스페로에겐 천적 같은 기술이었다. 당황하는 페로스페로.
* 루피가 그대로 밀고나가자 카타쿠리가 막아섰다. 써니호를 코앞에 두고 레드호크와 카타쿠리의 모치모치 열매 능력의 격돌. 호각세였다. 떡같은 신체를 늘여서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캐럿이 "루피와 같다"고 생각한다.
* 징베가 나미를 옆구리에 끼고 선상으로 뛰어 올랐다. 페드로와 캐럿은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페드로는 캐럿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루피 일행이야 말로 자신들이 기다려온 자들이라 말했다. 밍크족과 "코즈키 가"가 수 백 년간 기다려온 "세계를 여명으로 이끌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페드로는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캐럿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카타쿠리가 루피를 상대하는 동안, 페로스페로는 구태여 배에 오르는 일행을 요격하지 않았다. 대신 전보벌레를 들었다. 반대편에선 [[샬롯 몬도르]]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군함으로 해안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루피 일행이 아직도 살아남았다는걸 안 몬도르는 지체없이 지시를 이행했다. 곧 그의 명령만 기다리던 빅맘의 해상병력들이 움직일 것이다. 밀집모자 일당은 이 배와 함께 해안에서 수장될 것이고.
* 카타쿠리와 격전을 펼치는 루피. 루피가 맞고 쓰러지면서 바닥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배의 상태가 이상했다. 사탕이 배를 잠식하고 있었다. 페로스페로의 "캔디 웨이브". 나미가 확인했을 땐 이미 코팅이 상당히 진행돼서 쿠 드 버스트를 쓸 수도 없을 정도였다. 페로스페로는 어느새 배에서 내려 해안가에 있었다. 그는 발이 묶인 채 빅맘이 코 앞까지 닥쳐온 써니호의 상황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캐럿이 해안가의 그를 발견하고 아우성쳤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퇴양난. 빅맘에게 뭉개지는게 먼저인가 군함의 포격에 삼켜지는게 먼저인가? 그리고 일행에겐 페로스페로가 몰랐던 제 3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 캐럿은 갑판 위에서 페로스페로와 그의 발 아래 놓인 페드로를 보았다. 담뱃불이 폭탄으로 옮겨가는 걸 보았고 페드로가 자신을 배로 보내기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루피와 징베, 나미는 한 발 늦게 그 장면을 보았다. 폭음과 불꽃. 그 위력에 써니호를 묶었던 사탕이 깨졌다. 페로스페로를 삼키고 빅맘에게까지 미치는 강렬한 불꽃. 그 안에 페드로가 있었다.
- 은혼/597화 . . . . 12회 일치
* 하세가와의 뒤를 이어 해결사 사무소로 모여드는 가부키쵸의 염원
* 천인들의 행패는 계속되고 하세가와는 패기롭게 맞서지만 한 컷만에 마다오로 돌아간다.
* 시무라 타에는 해결사 사무실에 방문해 하세가와 다이조가 놓고 간 의뢰서를 발견한다.
* 타에는 역병신이라도 집세가 될 지라도 해결사만 돌아와 준다면 괜찮아질 거라며 여러 주민들의 의뢰서를 꺼낸다.
* 천인 용병들을 막아선 하세가와는 자신은 입국관리소 소장이라 밝히며 더이상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하세가와는 설사 나라가 망해도 사무라이는 살아있고 그녀석들(해결사)은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이 나라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절망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 그는 관리소장으로서 천인들의 보스와 할 말이 있다며 안내하길 요구한다.
* 그리고 꼬마와 에도시민들에게 절망 속일 지라도 "눈만 계속 뜨고 있으면" 희망은 그 근처에 굴러다니고 있을 거라는 말을 하는데
* 천인들은 하세가와를 실컷 두들겨패더니 감옥에 처넣으러 끌고 간다.
* 하세가와는 거듭 보스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천인들은 어째서 그래야 하냐며 상식적으로 대답한다. 하세가와는 다시 자기가 입국관리소 소장이라 말하는데 평범하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없다고 하니 그냥 끌고 간다.
* 타에와 타마에게 손을 대는 천인들.
- 은혼/622화 . . . . 12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이 지로쵸와 합류. 긴토키는 합류하자마자 피라코한테 치인다.
* 소타츠는 긴토키와 지로쵸가 카다 일파를 무너뜨린 장본인인걸 깨닫고 적의를 불사른다.
* 지로쵸는 내심 긴토키를 [[테라다 타츠고로]]와 겹쳐보며 이토록 즐거운 싸움판은 오랜만이라 여긴다.
* [[시무라 타에]] 구출에 실패하고 함께 건물 밑으로 떨어지던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들. 하지만 건물 사이에 쳐져 있던 그물망에 걸려 위험을 면한다. 긴토키가 영문을 모르는 채로 주위를 살피니 건물 안에서 야쿠자들과 어떤 소녀가 그물이 걸린 줄을 당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녀는 "집 보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이제 괜찮다고 하는데.
소녀는 [[도로미즈 피라코]]였다. 옥상에선 [[도로미즈 지로쵸]]가 [[소타츠]]의 신라 부대와 대치중.
도로미즈 부녀 가부키쵸와 복귀.
* 지로쵸의 검 앞에 신라의 병력이 순식간에 쓸려나가고 소타츠가 단독으로 지로쵸와 맞선다.
옥상에서 뛰어내린 지로쵸와 소타츠는 공중에서도 칼을 겨룬다. 둘은 떨어지면서 그물을 꿰뚫고 바닥에 착지한다. 소타츠는 지로쵸의 전력이 예상을 웃도는지 당황한다. 지로쵸는 여유롭게 "사무라이에게 한 번 본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 피라코는 공중에서 나타나 긴토키를 깔아뭉게며 착지한다. [[시무라 신파치]], [[가구라]]도 피라코와 재회. 지로쵸는 피라코가 사정해서 돌아오게 됐다고 하는데 피라코는 오히려 지로쵸가 서둘렀다고 말한다. 부녀는 잠시 서로 누가 더 안달나서 빨리 움직였는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다 피라코가 "아버지가 더 서둘렀다"고 울먹거린다. 그런데 그 지로쵸가 "내가 더 빨랐다"고 말을 바꾸며 사탕으로 달래려 든다.
* 지로쵸는 긴토키를 먼저 죽은 친구 [[테라다 타츠고로]]와 겹쳐본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의지와 영혼은 마을로 이어지고 긴토키에게 이어지고 있다. 비록 오토세는 할망구가 되고 자신은 영감이 됐지만, 이 마을은 여전히 타츠고로가 사랑한 모습 그대로이다.
- 은혼/639화 . . . . 12회 일치
* [[우츠로(은혼)|우츠로]]의 음모와 진짜 목적은 [[다케치 헨페이타]]를 통해 해방군 모선에서 교전 중인 [[귀병대]]에게 전해진다.
*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가 모선에 돌입. 데이터로 남은 [[한카이]] 또한 해킹에 동원되는데, 사실 이전에 시도했던 해킹도 한카이의 카피였다.
* 폭발에 휘말려 산화하는 바토우와 사루가쿠. 귀병대 또한 교전을 멈추고 전력 도주하나 그 과정에서 [[키지마 마타코]]가 낙오하고 만다.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플하고도 거대한 음모. 모든 걸 파멸시키려는 [[우츠로(은혼)|우츠로]]의 계획은 우주에서 싸우는 [[귀병대]]에도 전달된다. [[다케치 헨페이타]]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자 [[키지마 마타코]]가 귀를 의심한다. 그녀는 병력을 이끌고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해진 아르타나의 폭주. 마타코는 에도의 가부키쵸 연합군이 어떻게 됐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거기까지는 헨페이타도 알 수 없는 일. 그저 많은 별들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사태가 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배후가 우츠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가 우츠로의 진짜 목적은 뭐냐고 물었다. 헨페이타가 알아낸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지상의 해방군 잔당을 일소하고 본대가 히노카구츠치로 보복하는 걸 유도하는 것. 거기에 지구의 전 아르타나를 모은 아르타나 캐논을 작렬, 막대한 힘을 충돌시켜 지구를 부수고 전우주에서 모인 해방군과, 잘하면 이 은하까지 부수는 걸 노리고 있다.
* 마타코와 반사이의 병력이 합류. 하지만 모퉁이 바로 뒤에 적의 대병력이 진치고 있다. 적의 화력과 무장 상태가 좋아 진격이 막힌 상태. 뚫자면 골치 아프게 생겼다. 마타코는 이 고생을 해가며 히노카구츠치를 막아도 거기서 끝나는게 아닌 거냐고 반문했다. 반사이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르타나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결국 지구는 끝. 하지만 이미 폭주 상태에 들어간 지구를 돌이킬 수 있을까? 적어도 한 사람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귀병대 대장 [[다카스기 신스케]]가 적들의 머리 위에서 천장을 뚫고 습격한다. 전방의 반사이, 마타코의 병력에 집중하던 해방군 부대는 위에서부터 공격에 급속히 와해된다. 신스케는 어떤 방어진이든 돌파할 구멍이 있는 것처럼 지구가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애초에 지구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신스케의 기습으로 적의 화력이 분산되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마타코와 반사이의 병력이 진격한다. 진형이 무너진 해방군은 앞뒤에서 몰려드는 귀병대 병력에 끼어서 압살 당한다. 신스케는 지상의 동료들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방해를 해왔던 녀석들이 쉽게 죽게 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희망, 해방군의 유해와 함께 지상에 차서 떨궈줘야 겠군요.
* 13번째 시도가 시작됐다. 바토우는 목표를 파괴할 때까지 카피나 몇 명 분이나 필요할지 묻는다. 헨페이타는 솔직하게 몇 명이 있든 부족할 거라 대답한다. 적의 시큐리티는 몇 겹이나 되고 하나하나가 매우 버겁다. 전부 돌파해 시스템을 장악하는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작업을 거쳐서 히노카구츠치를 제어하는 중추부에 대한 데이터를 얻어낸건 천금같은 성과다. 이것만 있다면 설령 벽이 얼마나 있다 한들 신스케와 그의 동료들, [[가츠라 고타로]]와 [[사카모토 다츠마]]라면 넘어서 줄 것이다.
폭음과 연기가 뒤따랐다. 바토우와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던 사루가쿠는 폭발음과 함께 바토우의 무전이 끊기자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도 한 발 늦기는 마찬가지였다. 바토우가 그랬던 것처럼 눈부신 빛이 뒤따른다. 그의 무전도 소실. 헨페이타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설마, 한 가지 해석이 떠올랐다.
- 은혼/648화 . . . . 12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와 [[엔쇼]]의 승부가 끝나고 엔쇼는 빈사, 신스케 또한 쓰러지면서 전쟁도 끝날 것 같았지만 총성은 그치지 않는다.
* 이때 [[도쿠가와 노부노부]]가 나서 싸움을 멈추고 증오의 연쇄를 끊자 강변하나 엔쇼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그건 불가능하다며 반박한다.
* 흩날리는 피보라. [[엔쇼]]의 팔이 떨어졌다. [[다카스기 신스케]]의 일섬이었다. 엔쇼는 쓰러지고 신스케는 아직 서 있었다. 총알이 난무하는 전장 한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그 장면에 못박혔다.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기던 손들이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처럼. [[가츠라 고타로]]도, [[사카모토 다츠마]]도. [[사루가쿠]]와 신스케의 동료 [[다케치 헨페이타]]와 [[키지마 마타코]]도.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스케가 제일 먼저 움직였다. 입에서 피를 뿜었다.
* 신스케가 쓰러지면서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였다. 마타코의 오열과 함께 전장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돌아왔다. 군홧발소리가 두 남자의 주위를 애워쌌다. 양측의 병사들이 적의 대장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다시 시간은 얼어붙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대치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다. 그만두자고 할 때까지는. [[도쿠가와 노부노부]]가 그 말을 꺼냈다.
* 권유처럼 들리는 노부노부의 말에 수긍하는 이는 없었지만 부정하는 이도 없었다. 대의를 짊어지고 사람들을 이끌어온 남자들, 다츠마와 가츠라가 그랬고 신스케가 그랬다. 신스케는 지금껏 밟아온 시체를 생각했다. [[카와카미 반사이]]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 시체들이 발 밑에 있는데 참으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직 손에 칼이 들려있었다. 그때 엔쇼가 한 말은 신스케의 심정을 대변했을지도 모른다.
머지 않아 형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어떤 나라와 동맹을 체결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직 형수였던 시절엔 남편을 초연하게 배웅하는 법을 몰랐다. 형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쟁을 하러 가는게 아니며 영웅 초연의 황자가 지켜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엔쇼는 형의 곁에 있었다. 아무 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한 형의 함선이 기습을 당하고 동생에게 구원을 요청할 때조차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형을 내버려둔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슬픔을 가장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형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형수를 위로한 일이었다.
싸움은 끝났다. 신스케의 안에서는 그랬다. 그는 엔쇼와 자신을 "우리"로 묶었다. "우리들"에게는 죽는 것도 안식일지 모른다. 자신도 엔쇼와 같다고 말한 신스케는 자신은 셀 수도 없는 죄로 얼룩져 있고 그렇기에 오히려 꼴사납게라도 살아가는 거라고 말했다.
가츠라는 노부노부를 쇼군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도쿠가와 시게시게]]라면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도와주지 않겠는가?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 이상 부하들을 죽일 순 없거든.
- 의성군 . . . . 12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군. 2018년 6월 기준 인구는 약 5만 3천여명이다. 북쪽에 안동시, 동쪽에 청송군과 영천시, 남쪽에 군위군, 서쪽에 구미시와 상주시가 위치해있다. 의성군의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며, 낙동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인 위천이 의성 군내를 관통하며, 경작지가 넓고 평야지대가 비교적 많다. 때문에 농업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1970년대 중반에만 하더라도 인구가 20만을 넘을 정도로 제법 큰 군이었으나 이후 농촌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리즈 시절]]보다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군 중심지인 의성읍이 비교적 군 동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중부의 봉양면(도리원)과 서부의 안계면이 각각의 소중심지 역할을 한다. 각각 안동/군위와 상주로 가는 시외버스도 따로 운행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군위군]], [[청송군]]과 한 선거구로 의성-군위-청송 선거구를 이루고 있었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인근의 상주시와 합쳐져 서울시 면적의 6.4배에 이르는 거대 선거구가 형성되었다.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도]], [[5번 국도]]가 군의 남북을 관통한다. 영천, 군위를 거쳐 예천, 영주로 연결되는 [[28번 국도]]와 [[59번 국도]]도 있다. [[25번 국도]]는 단밀면을 잠깐 지나친다. [[의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안계면에서 별도로 [[동서울터미널]]행 시외버스가 있다. 다만 원주 방면에서 의성으로 갈 때는 [[의성IC]]가 아닌 [[남안동IC]]를 이용한다. [[의성IC]]가 의성군 남쪽의 봉양면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탑리 5층석탑([[국보]] 제77호), 관덕동 3층석탑([[보물]] 제180호) 빙산사지 5층석탑([[보물]] 제327호) 등의 문화재와 금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천연기념물]] 제373호) 등이 있다. 이 중 탑리 5층석탑, 빙산사지 5층석탑 등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3권에 소개되어 있다.
스포츠와는 거리가 있는 조그마한 도시지만 국내 [[동계 올림픽]]의 인기 종목으로 급부상한 '''[[컬링]]'''의 메카가 바로 의성이다. 최근엔 '''컬링 수도'''라는 호칭이 자리 잡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547165|#]]
국내 최초의 [[컬링]] 전용 빙상장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읍 충효로 104에 위치해 있으며, 의성군 내의 중, 고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엔 [[컬링]]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는 의성군 출신의 체육인이자 국내 컬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의 노력이 컸다. 전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김 회장은 컬링이라면 동양 선수와 서양 선수의 체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라 생각해서 의성군에 컬링훈련원을 개설했고 실제로 그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아서 한국은 단기간[* 1994년에 컬링 연맹 설립, 곧바로 세계 연맹에 가입했으며 2001년 아-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정도면 단기간이 아니라 초단기간 급성장이라고 봐야할 지경(..)] 내에 세계 랭킹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선수들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컬링은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었고, 결정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외면 받았다. 이 시기를 거쳐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아직 우리 컬링은 멀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낸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던 2013년 당시에도 컬링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식사도 못할만큼 인지도나 후원이 열악했다.]
국내 컬링계는 현재 [[경기도]]와 [[경상북도]]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기도(의정부)는 엘리트 체육, 경북(의성)은 생활 체육 기반이라는 점도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의 실업팀은 남녀에 믹스더블까지 있는 반면, 경기도의 실업팀은 여자팀만 있지만.]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 선수들도 마땅히 연습할 시설이 없어 '''의성에서 훈련한 뒤에 의성에서 경기를 치를 정도'''였다. 2018년 [[의정부컬링훈련장]]이 완공됐고 그에 앞서 [[진천선수촌]] 컬링장도 완공됐지만[* 다만 진천은 국가대표팀의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이미 의성의 [[경북컬링훈련원]]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등 비교적 컬링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대표팀이 찾아와 훈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컬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의성에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2423&cid=51938&categoryId=54649|의성 마늘배 전국 컬링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컬링 보급에 힘쓰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녀, 믹스더블 대표팀 모두 [[경북체육회 컬링팀]] 선수들이 선발됐고, 특히 여자팀의 선수들 중 중 네 명[* [[김은정(컬링)|김은정]], [[김영미]], [[김선영(컬링)|김선영]], [[김경애]]]이 의성 출신의 선수들이며, 모두 같은 학교 출신[* 의성여중-의성여고]에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만화 같은 이야기와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은정(컬링)]] 항목 참조.] 이 뿐만 아니라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이었던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의 [[이슬비(컬링)|이슬비]] 선수도 의성여고 출신이다. 이로써 2회 연속 올림픽 컬링 대표선수들을 길러낸 도시가 되었다.
* [[김재원(정치인)|김재원]] : 정치인, 전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의원
- 이갑성 . . . . 12회 일치
'''이갑성'''(李甲成, <small>일본식 이름: 이와모토 마사이치(岩本正一) </small>, [[1889년]] [[10월 23일]] ~ [[1981년]] [[3월 25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3·1 운동]]이 일어날 때는 병원 제약부 담당으로 재직 중 [[민족대표 33인]]에 [[기독교]]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원로격인 33인과 학생들과의 매개 역할을 맡아 학생 시위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0일]] 밤 [[서울]] [[남대문로]]5가의 함태영 집에서 [[함태영]], [[현순]](玄楯), [[안세환]], 오상근(吳尙根) 등과 만나, 3월 1일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2월 22일]] 학생들이 따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이를 중지하고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여 성사시켰다. [[2월 27일]] [[박희도 (1889년)|박희도]], [[함태영]](咸臺永), [[김창준]](金昌俊), [[신석구]](申錫九), [[오화영]](吳華英), 이인한(李寅煥), 최성모(崔聖模), 이필주(李弼柱), 박동완(朴東完) 등과 함께 이필주의 집에 모여, [[함태영]]이 [[최남선]](崔南善)이 기초한 여러 가지 문서의 초안을 [[천도교]]계 인사 [[최린]](崔隣)으로부터 받아와, 그 취지에 찬성하여 [[기독교]]측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3월 1일]] 경성부 인사동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때 그는 시위전단 살포와 학생들 독려를 위해 시내에서 활동하였다.
}}</ref> 이갑성은 민족대표 33인 중 [[최린]], [[정춘수]]와 함께 [[창씨개명]]을 한 세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이갑성의 논란은 [[민족문제연구소]]나 한겨레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다. 2005년 3.1절 특집 SBS 뉴스추적 "누가 변절자인가" 편에서는 이갑성의 친일의혹을 면밀히 검증한 결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민문연에서 제시한 것들도 근거가 희박한 것들이 많고, 이갑성이 광복 이후 우익계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좌익단체로부터 집단적인 음해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ref>{{뉴스 인용
당시 조선에는 여러 정당, 사회단체가 생겼다. 이갑성은 [[1971년]] [[12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이 되니까 왜 그리 많은 정당이 생기는지 한심한 상태였다. 그때가 언젠지 모르나하지 중장을 만나 등록된 정당이 몇개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74개라고 대답합디다"라는 것이다. [[한민당]]의 창립 발기인이었던 그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정부가 선후에라야 정당이 있는 법이지 독립도 정부도 아직 안섰는데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1945년]] [[10월]] 우후죽순 생겨난 정당, 단체들을 하나로 모을 목적으로 정당통일기성회를 조직했고, 수십개의 단체들 중 뜻이 맞거나 성격이 비슷한 단체들은 통합되었다.
[[1951년]] [[5월 16일]] [[이시영]] [[부통령]]의 사퇴로, [[부산 피난지]]에서 열린 [[제2대 국회]]에서 실시한 제2대 부통령선거에서 여당격인 [[대한국민당 (1948년)|대한국민당]] 소속 [[부통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 재적 국회의원 210명 중 재석의원 151명에 의해 선출된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1949년)|민주국민당]] 소속 [[김성수 (1891년)|김성수]]와 경합했는데, 1차 투표와 2차 투표에서 당선표수 미달, 3차 투표에서 73표를 얻어 낙선, 78표를 얻은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3·1 운동 당시 [[김창준 (1890년)|김창준]], [[박희도 (1889년)|박희도]]와 함께 30대 초반으로 가장 연소한 편이었으며, 93세까지 장수함으로써 33인 중 가장 늦게까지 생존했다. 광복 이후 [[독립유공자]] 대표로 매년 3·1절 행사와 광복절 행사에 초청되었다. [[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낸 정치외교학자 [[이용희 (1917년)|이용희]]가 이갑성의 아들이다.
[[3·1 운동]] 당시 [[한국]]의 독립운동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해달라는 [[석호필]](스코필드)의 부탁을 받고 [[경성부|경성]] 시내에서 학생들의 만세 장면을 카메라 사진으로 여러장 촬영해서 주기도 했다. 학생들의 만세 장면과 [[조선총독부]] 헌병들의 사격장면 등을 담은 이 사진들은 [[스코필드]]와 [[조선총독부]] 치하 [[조선]]에 와 있던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서방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다.
- 이시영(배우) . . . . 12회 일치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에서 오민지 (산죠 사쿠라코)역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사실 그전에 [[송일국]] 주연의 [[바람의 나라(드라마)|바람의 나라]]에서 왕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는 시녀 역으로 등장한다.[* 그 왕자가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자, 한동안 실의에 빠지다가 무휼의 죽마고우이자 최측근인 마리와 연인이 되었지만, 마리마저 부여에 붙잡혀 화형으로 최후를 맞이하자, 결국 물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쌍한 인물.] 그전의 배역은 [[추가 바람]]
결혼 예물(…)을 고르기 위해 간 [[건담베이스]]에서 이시영 본인이 프라를 주문할 때의 다소 어색함 때문에 컨셉이 아니냔 의혹도 있었다. (보통 "[[아무로]]와 [[샤아]]와 [[라라아 슨|라라아]]가 타던..." 이라고 직원에게 물어보진 않는다. 특히 '자주가는 가게' 라면...) 덧붙여 첫 화에서 자랑스레 말하던 [[레고]]의 번호도 틀렸다고 한다. 게다가 [[건덕후]] 성향이 알려지기 전에 나온 잡지 [[맥심(잡지)]] 코리아 2009년 2월호의 인터뷰에선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본 만화"로 피구왕 [[통키]]만을 언급했으며, 인터뷰 전체에서 [[건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네이버에 공식적으로 링크되어 있는 이시영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주소를 보면 [[시난주]]가 언급되어 있다. 이건 [[건담]]도 프라모델을 통해 상당히 좋아하게 됐다는 증거일 수도.](뭐, 어린시절이란 조건이 붙었기 때문일지도.) 사실 이시영 본인의 건덕 포스보다는 자막이나 BGM의 포스가 더 강하다.(...)
그러나 2010년 맨즈헬스 인터뷰에 따르면 프라모델 수집은 상당히 오래된 취미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프라모델 모두 본인 소장품인 듯 하며[* 30여 개 이상 모았단다.], 배우 데뷔 초에 일거리가 없어 취미 삼아 시작했다고 한다. 홍석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베어브릭이 장식된 걸 보고는 반가웠다고. 일반적인 [[서브컬쳐]]의 매니아들처럼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프라모델을 접한 게 아니라, 프라모델을 먼저 접한 케이스. 때문에 우결의 경우 이시영의 취미를 오타쿠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제작진측의 캐릭터 만들기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하는 거지 서브컬쳐를 즐기는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인데 프라모델을 다루는게 오타쿠가 아니냐고 하면 사실 미묘한 부분이다. 일반 밀리터리물이나 자동차 프라모델러에서 건프라로 넘어온 사람들이 특히 자신은 '''건프라는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는 거나 남이 만든 완성품을 모으는 게 아니고 만드는 과정도 즐기는 쪽이다. 일본에서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좋아하면 훌륭한 오타쿠이기 때문이다. 단지, '서브컬쳐 -> 피규어' 순으로 빠져든 매니아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피규어 모으기가 취미"라고 하면 이쪽인 경우도 적지만 있다.[* YG의 [[양현석]]이나 MBK의 [[김광수(음반기획자)|김광수]], 드림팩토리의 [[이승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아톰인형 매니아로 알려진 [[조민기]]도 아톰의 스토리 자체를 파고들기 보다는 '아톰 인형(피규어)'에 꽂혀사는 경우이다. 베어브릭 같은 류의 캐쥬얼한 피규어쪽으로 빠지자면 그 수는 더 많다. [[이승연]]도 남편의 취미를 따라 베어브릭을 모으고 빅뱅의 [[탑]] 역시 베어브릭 수집매니아. [[원피스(만화)]]같은 경우에도 피규어 퀄리티가 좋은 편이라 만화책은 제대로 안 읽고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건담과 일반 인형 매니아를 동일시 하면 곤란하다. 여자아이들의 인형 취미와 건프라가 똑같겠는가? 어찌 부정해도 건프라를 좋아하는 이상 일단 오타쿠라 봐야 할 점은 사실이겠다. [*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3/read/31977670|여기서도 그렇지만]] 건프라를 좋아하면 충분히 오타쿠로 여겨진다.]
> "이 상을 내가 받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일 주일도 안 되게 군대 다녀와서]] 상을 받는다는 게 죄송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계시는 국군 장병 분들께 드리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다. 제일 예쁜 나이에 청춘을 바쳐서 나라 지킨다는 게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의무라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는지, 많은 희생을 하고 계시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가 안전하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군 생활 하시는 동안 건강하시고, 다치지 말고 건강히 제대하셨으면 좋겠다."
2017년 9월 30일 사업가 조승연씨와 결혼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7/09/29/story_n_18135978.html|관련기사]]
2011년 3월 16일 전북 완주에서 열린 제7회 전국 여자신인 아마추어 복싱대회 -48kg급 준결승에서 양주 백석고의 신소영 선수를 상대로 승리했다.[[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962867|관련기사]] 생활체육을 넘어서서 아마복싱까지 점령중. 이러다 프로 전향할 기세. 그리고, 결국 해당 대회에서 '''우승'''했다.[[http://sports.media.daum.net/general/news/moresports/breaking/view.html?cateid=1076&newsid=20110317111622287|관련기사]] ~~정말로 배우에서 복싱 선수로 전업할 기세.~~ 경기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상대가 가드가 약하다 싶으면 왼쪽 스트레이트, 가드를 단단히 하고 있으면 오른쪽 훅을 사용했다. 판정은 17:0 ~~시작의 일보?~~아닌게 아니라, 이시영의 소속 체육관 관장인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 씨는 잘 키워서 런던 올림픽에 낼 생각이라고 한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317n11999|관련기사]] 여기에, 이시영의 소속사인 GnG프로덕션 관계자는 배우에 집중했음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http://sports.media.daum.net/general/news/moresports/breaking/view.html?cateid=1076&newsid=20110317150916632&p=newsen|관련기사]] ~~복싱계와 연예계가 이시영을 두고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 다만, 실제 저 경기에 출전했던 아마추어 복싱 선수의 말에 의하면 이시영에게 너무 좋게 판정한, 즉 편파적 전북가 진행됐다고 하는 말도 있기 때문에 복싱 실력에 대해서는 의혹이 있다.
2012년 7월 7일 제42회 서울시장배 아마추어복싱대회 겸 제93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여자부 48kg 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해당 체급에 출전 선수는 3명뿐이었다는 점에서, 빈약한 여자 복싱의 상황을 엿볼수 있다. 어쨌든, 두명의 선수를 각각 준결승에서 20-0, 결승에서 21-7 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이름 그대로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우승시 전국체전에 나갈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어야 하는데, 출전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국체전에 여자부 48kg 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회의 51kg 급 우승자와 평가전을 추진하여 전국체전 출전권을 노릴 예정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618|관련기사]] 전국체전에는 출전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한국체대 소속의 국가대표 선수와 대전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53399|관련기사]]
2013년 10월 21일 51kg 로 체급을 올려서 처음 참가하는 제94회 전국체전 복싱 여자 일반부 플라이급(51㎏) 8강전에서 김하율[* 4월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맞붙은 김다솜 선수와 같은 사람이며, 김다솜 선수가 개명한 것이다.] (충주시청)에 1대2로 판정패 했다. 3라운드에서 다운을 내주며, 승패가 거의 결판났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409392|관련기사]] 3라운드에 어깨 탈골을 당했으나 스스로 다시 끼고 경기를 진행했다고.
갑자기 배우와 병행해 복싱 선수의 길을 걷자 당연히 논란이 있었지만 대다수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단히 호의적인 편. 사실 연예인이 이런 투잡(?)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레이서로 활약하고 있는 [[류시원]], [[이세창]] 뿐만 아니라 연예인 중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으면 OO홍보대사를 맡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연예인들 중 상당수가 간판만 그럴싸하게 달고 실제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이시영은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꾸준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물론 종목과 난이도,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솔비의 피겨스케이팅과 비교할 때 이시영의 성장은 매우 뚜렷하게 결과로 증명된 것이다.]
언론에 공개된 초기 유포자의 정보는 아래와 같다. [[http://tv.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73451|관련기사]]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12회 일치
* 프라우드린은 크게 당황하며 제발 마력을 풀고 떨어지라고 애원하고 그리아몰도 아버지와 모두를 죽이지 말라고 운다.
* 함께 있던 아라나크와 제노라는 십계를 죽였다는 말과 함께.
* 성기사들은 멜리오다스의 태도가 악당같다고 야유하고 핸드릭슨은 큐브 바깥에 있는 드레퓌스와 그리아몰을 걱정한다.
* 드레퓌스와 그리아몰은 평정을 잃고 달려들지만 드레퓌스는 방벽에, 베로니카는 퍼펙트 큐브에 가로막혀 방법이 없다.
프라우드린의 죽음. 이로써 리오네스를 침공했던 십계는 전원 재기불능이나 생사불명에 처했다. 특히 프라우드린은 완전히 소멸된 것 같고 멀린에게 포획된 그레이로드도 해방될 일은 없을 듯. 현재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건 그로키시니아와 드롤 정도다. 당초 십계 측의 총전력이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론 십계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한 수준. 아군측 주전력이라 할 수 있는 십계나 성기사 측에선 대단히 경미한 희생만 치렀을 뿐이다. 특히 실질적으로 십계는 멜리오다스와 에스카노르 두 사람에게 철저하게 당한 셈인데 십계 중 누구도 1대1로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멜리오다스가 한 번 죽은 것 조차 2대1로 멜리오다스에게 지다가 십계 전원이 모여서 다구리를 놓은 것이니...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본래는 메릴오다스를 존경하던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족과 전쟁 중에 그가 배신하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복수귀가 되었다. 드래퓌스와 오래 동화해서 그런지 그에게 나름 애착을 가진 거 같고 특히 아들인 그리아몰은 정말로 부성애를 느끼고 있던 걸로 보인다. 프라우드린이 말했던 "달콤한 꿈"이란 애정, 사랑을 뜻하는데 "달콤한 꿈에 빠진건 나였나 보다"고 하는걸 보면 뒤늦게 자각한 것 같다.
설명은 되지 않았지만 그 또한 데리엘처럼 여신족 자체에 원한을 가진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데 멜리오다스와 함께 여신족도 기필코 복수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데리엘이 여신족이 포로학살, 특히 민간인 여성과 아이들을 학살했다고 했으니 그의 가족 또한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
멜리오다스는 그저 잔인해진 것만이 아니라 상대를 농락하다 죽이는, 매우 악역스러운 면모를 보이는데 그와 가장 오래 알고 지냈을 멀린 조차도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다.
고우서와 비슷한 모습의 십계도 재등장. [[일곱개의 대죄/176화]]에서 십계 시절 멜리오다스를 묘사하며 등장했었다. 프라우드린은 사실 정식 십계가 아니라 "무욕의 십계"의 대리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 자가 진짜 무욕의 십계일 가능성이 높다. 고우서와 거의 비슷한 외향에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듯한 태도 또한 유사하다.--이제 곧 진(眞) 십계 가 나올 듯 하다.--
멜리오다스가 배반하며 죽인 십계는 아라나크와 제노. 드롤과 그로키시니아가 대체한 걸로 추정된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12회 일치
* "돼지의 모자"정이 리뉴얼되고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방 배정 때문에 티격태격한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와 [[디안느]]는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을 방문하는데 그 자리에서 디안느가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와 닮은 사람을 봤다고 밝힌다.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돼지의 모자"정의 리뉴얼 오픈을 앞두고 한껏 흥분했다. 자신있게 낙성신을 선언했으나 정작 보러온 것은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 둘 뿐. 모처럼 일곱 개의 대죄도 다 모이지 않았냐 따지니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일정이 있어 오지 못했다 한다. 차가움을 느끼는 호크. 게다가 개막 역할도 자신이 하려고 했는데 멜리오다스와 반이 얼렁뚱땅 가로챈다.
이 집을 방문한 여성은 [[디안느]]와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였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엘레인을 깜짝 방문하려고 했던 건데 여지없이 간파 당했다.
할리퀸은 과거의 은원이 정리됐으니 서로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주절거렸다. 하지만 막상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술집에 와본 건데, 고서는 그 말을 자르며 "술 기운을 빌리는 거냐"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이에 낀 에스카노르가 그가 감정을 되찾아서 더 날카로워진거 아니냐고 안절부절 못한다. 할리퀸이 다시 아저씨 모습으로 변해 "툭 까놓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여기에 고서는 어차피 1시간 후 그가 이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 확률은 5% 밖에 되지 않는다고 조소한다. 곧바로 할리퀸이 노멀폼으로 돌아와 하는 말은, 도저히 고서의 대답과 이어지지 않았다.
고서는 할리퀸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디안느의 기억을 멋대로 조작했으니까. 에스카노르는 그를 위로하며 괜찮을거라 말한다. 할리퀸은 상냥한 사람이니까, 라면서. 고서는 복잡한 미소와 함께 "나는 좋은 인형이 되고 싶어"라고 대답한다.
* 원래 상태로 돌아온 에스카노르는 고서와 협력해 뻗어버린 킹을 데리고 돌아간다. 고서는 재미있는 사건이라 여겼는지 "좋은게 하나 늘었다"고 중얼거린다. 킹은 인사불성. 에스카노르는 할리퀸이 이걸 기억하지 말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옮긴다.
올론디가 그를 알아봤지만 너무 늦은 타이밍이다. 멀린이 위험을 직감한다. 젤드리스는 문답무용으로 폭염의 마법을 올론디에게 퍼붓는다. 꼼짝없이 죽었다 생각한 올론디였으나, 잠시 뒤 그는 멀쩡하게 살아있다. 젤드리스는 대체 누구를 공격한 것인가? 그가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12회 일치
* 혈청을 확보한 더 칠드런과 판도라 연합은 [[쿠모이 유리]]와 [[효부 쿄스케]]의 위장최면을 앞세워 바벨 본청 입성을 노린다.
*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하이레벨의 에스퍼인 더 더블 페이스 [[노와키 호타루]]와 [[토키와 나츠코]]를 속여야 한다.
* 당연한 반응이지만, 장관은 당혹해하면서도 에스퍼에 의한 범죄나 부정은 엄연한 사실이고 대다수인 노멀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고 응수한다. 하지만 [[츠보미 후지코]]는 범죄발생률과 능력은 별개 문제라고 정론을 펼치며 "에스퍼는 국민도 아니라는 거냐"고 꼬집는다. 물론 장관으로서는 그렇게까진 말할 수 없는 입장이므로 표면적으론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카시와기 오보로]]가 조용히 자료를 제출한다. 정권의 비위를 조사한 자료로 보이는데 반양 격리법안이 상정된다면 이걸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날의 제의는 무효화.
리더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옆에선 [[후지우라 요우]]가 왠일로 어른스럽게 "리더 따윈 누구든 상관없고 싸움은 리듬을 타고 타닷하고 접근해 파밧하고 이기면 된다"고 말한다. 진지한 말투와는 달리 내용은 대충. [[사카키 슈지]]는 거기에 태클을 걸며 어차피 용병으로 쓸 거면 [[마기 시로]]가 제일 쓸만할 것 같으니 데려 오라고 한다. 요우는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말한다.
* 이런 답도 없는 싸움 끝에 미나모토가 져주는 걸로 일단락. 어쨌든 후지코를 가장 잘 아는건 효부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자 효부는 [[쿠모이 유리]]와 함께 최면염파를 가동하며 작전을 시작한다. [[산노미야 시호]]가 곧바로 바벨의 경비 시스템을 해킹. 악성 코드를 심어 보안시스템을 무력화 한다. 복구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분이며 그 사이 잠입을 마쳐야 한다.
* 입구의 경비병력은 효부와 유리의 최면으로 간단히 통과, 보안키도 미리 준비한 위조ID카드로 무사히 지나간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난관이다. 바벨 보안시스템의 최종 방어라인 더 더블 페이스. 하이 레벨 에스퍼인 [[노와키 호타루]]와 [[토키와 나츠코]]에겐 최면도 통하지 않는다. 일행이 나타나자 마자 더블 페이스는 초감각으로 투사가 안 되는걸 감지하고 경계한다.
* 사카키가 이들을 보고 동요하지만 효부는 방법이 있다며 진정시킨다. [[아카시 카오루]]가 먼저 선글라스를 벗으며 주위를 끈다. 시호와 [[노가미 아오이]]도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쓸 것 없다며 얼버무리는데 더블 페이스는 이 분야의 프로. 셋에게 신경을 빼앗기기 않고 곧바로 나머지 인원의 투시를 하려 한다. 유리가 더 강한 최면을 걸어보려고 하지만 단숨에 눈치채버린다. 모두 당황하는데 효부는 "마음의 가드를 깨면 된다"고 조언하는데.
- 존 딜린저 . . . . 12회 일치
1923년, 딜린저는 미 해군에 입대한다. 그는 전함 USS 유타에서 복무하게 되었지만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유타가 보스턴에 정박했을 당시 탈영해버린다. 무어스빌로 돌아온 딜린저는 1924년 베릴 호비어스(Beryl Hovius)라는 3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한다.
결혼까지 했음에도 딜린저는 에드 싱글턴(Ed Singleton)이라는 남자와 함께 무어스빌의 식료품에서 강도짓을 벌인다. 그리고 빠르게 체포ㅋ. 싱글턴은 법정에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해 징역 2년을 받았지만 딜린저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죄를 고백했다가 징역 2~14년+징역 10~20년[* 미국은 범죄를 여러개 저지르면 형량이 따로 붙는다.]이라는 선고를 받고 큰집에 처박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해리 피어폰트(Harry Pierpont)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이후 딜린저 갱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인디아나 주의 경찰서 세 곳에서 강도질을 벌여 권총, 소총, 자동화기, 탄약, 방탄조끼를 빼앗았다. 12월 14일에는 딜린저 갱 단원인 존 해밀턴(John Hamilton)이 시카고에서 형사 한 명을 살해하였다. 1934년 1월에는 인디애나 주 이스트시카고의 퍼스트 내셔널 뱅크(First National Bank)를 터는등 인디아나 주, 일리노이 주, 위스콘신 주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한달도 지나지 않아 애리조나 주 투싼에서 묵었던 호텔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피어몬트, 클라크, 마클리와 함께 경찰에게 붙잡힌다.
딜린저는 인디애나 주 크라운포인트의 감옥에 갇힌다. 이스트시카고에서 벌인 은행강도 도중 경찰관을 살해한 죄를 재판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딜린저는 나무를 깎아 총 모형을 만든 다음 그걸로 간수들을 위협해 감방에 가둔 다음 자동화기을 가지고 탈출한다. 그 후에는 보안관의 차를 훔쳐타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까지 도망친다. 이로 인해 훔친 차량을 다른 주로 밀수했다는 혐의가 추가로 붙게 되며 FBI가 딜린저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함께 붙잡힌 동료 세명은 딜린저의 탈옥을 도와주며 보안관을 살해한 일로 재판을 받게된다. 재판 결과 피어몬트와 마클리는 사형을, 클라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사형을 선고받은 둘은 탈옥을 시도했으나 마클리는 탈옥 시도 중 사살되고 피어폰트는 부상을 입은채로 붙잡혀 한 달 후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친다.
1934년 3월 30일, 세인트폴의 링컨코트 아파트 관리인이 자신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헬만 부부를 수상하다고 신고했다. 헬만 부부가 수상하게 행동하며. 관리인을 집 안으로 들이기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헬만 부부의 정체는 딜린저와 프래쳇이었다. 다음날 FBI는 경찰과 함께 그들의 은신처 문을 두들긴다. 문을 연 프래쳇은 이들을 본 즉시 문을 닫아버렸고, 즉시 증원 경력이 추가로 투입되어 링컨코트 아파트를 포위한다. 하지만 밴 미터가 나타나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사이 딜린저와 프래쳇은 뒷문으로 탈출한다. 이들은 그린의 은신처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린 역시 4월 3일 역시 FBI의 습격을 받고 총을 뽑다가 사살된다.
딜린저와 프래쳇은 다시 무어스빌로 도망간다. 딜린저는 그곳에서 링컨코트 아파트 탈출 당시 입었던 부상을 치료하는데 시간을 보냈지만 프래쳇은 친구를 만나러 시카고에 갔다가 FBI에게 체포당한다. 그녀는 범인 은닉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는다. 완치된 딜린저는 밴 미터와 함께 인디애나 주 바르샤바의 경찰서를 털어 총과 방탄조끼를 습득한다.
같은 달, 리틀 보헤미아라는 산장에서 FBI에 신고 전화를 건다. 수상한 사람들이 호텔에 묵고 있다는 내용의 신고였다. 이들은 휴가를 즐기러 온 딜린저 갱단원들이었다. FBI와 경찰은 리틀 보헤미아 산장을 습격했지만 인명 피해만 내고 딜린저 갱을 놓치게 된다.
7월 22일 오후. 딜린저, 해밀턴, 그리고 쿰파나슈는 영화를 보러 길을 나선다. 쿰파나스가 어떤 극장에 갈지 아직도 몰랐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FBI와 경찰은 두 극장 모두 경찰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FBI 요원들은 세 명이 바이오그래프 극장으로 들어가는걸 목격하지만 사람들이 몰린 극장에서 딜린저가 저항할 위험을 피해 대기했다.
- 창작:티겔 왕국 . . . . 12회 일치
과거, 현재 티겔의 강역은 거의 다 숲이었으며, 거기에 스스로를 '사냥꾼'이라 부르는[* 현재도 존재하며 티겔의 영토의 25%를 차지하는 미개척지에 알박으면서 살고 있다. 보통 티겔에서 용병으로 일하고 있다.] 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들 분파중 가장 세가 컸던 무리의 족장의 장남이었던 '달구'란 자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 그과정에서 자기를 막으려던 자기 무리들을 싹다 죽이고 떠났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전부 죽이지는 못했다.]북쪽으로 올라가서[* 가는 와중에 지금의 메말사막 일대에 존재했던 늑대족 마을들을 전부다 약탈해버리고 거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메말사막의 생성원인중 하나. 그것때문에 메말사막에 사는 늑대족 마적들은 호랑이족을 증오한다.] 중북부에 적당한 위치에 티겔이라는 도시를 세우고 거기서 자기가 왕노릇을 한게 시초.[* 이때부터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중북부를 통합하기전까지 유지됬던 때를 상티겔왕국이라 한다.]그렇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되지 못했는데 10여년뒤, 그의 막내여동생인 '달순'이 그를 죽이고 자기가 직접 왕위에 올랐기 떄문. [* 이게 또 대단한게, 잠깐 행차를 나간사이 달순이 달구의 경호원 10여명을 혼자서 죽인뒤(....)살해했다. ~~리얼 소드마스터~~] 달순의 통치하에 상티겔왕국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데, 그전까진 그냥 일개도시국가수준이던 상티겔왕국을 전제군주국가로 바꿔버렸다는 평을 받을정도이다. 그의 치세하에 상당한 량의 농지를 얻어내 이후 티겔이 본격적으로 중북부의 패자가 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달순여왕은 한편으론 음유시인들의 이야기로도 자주나오는데, 그녀의 모험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만 십몇편은 될정도.
상티겔 왕국은 달순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순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순때 상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순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상속법을 장자상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상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삼촌인 달준의 사망이후 실권자가 된 달건의 맏아들인 달제는 황폐화된 국토의 재개발에 힘쓰면서 한편으론 남쪽에 여전히 자릴 잡고 있던 사냥꾼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달구의 악행때문에 그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접촉을 성공하고 그들에게서부터 남부쪽에 개척자들을 보낼때 어느정도의 개간을 허용한다는 허락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위와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용 사냥꾼들까지 보내오겠단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상이었으나, 남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상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상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상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남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절반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상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상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그리고 다르트 왕조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진 티겔 왕국을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후신인 레이먼 제국이 가만히 내버려둘리 없었고, 결국 첫번째 왕이었던 크테이가 전선지휘중 눈먼화살에 맞아 죽고만다. 크테이가 죽고난뒤, 티겔의 왕은 계형의 아들인 계로가 맡게 되지만, 왕국은 섭정 계형을 중심으로 한 남부파와 북쪽에서 내려온 상티겔 귀족들출신으로 이뤄진 북부파로 나눠지게 된다.
이문제는 당장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레이먼 제국이 무력으로는 호랑이족을 복속시킬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조카 루이를 끌어들여 '태겡 대공국'을 만들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레두아는 북부파의 군소영주를 구워삶아 자신이 티겔을 공격할때 이들이 자신에게 협력한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물론 보상으로 옛영토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결국 츄프 왕국이 언제나처럼 남쪽의 대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에 고생해 티겔을 도와주기힘들때 공격해왔다. 레이먼으로부터 상당한 량의 군자금과 용병대를 지원받은 태겡의 공세는 날카로웠고, 군소영주들의 협력까지 이루어져 순식간에 탈환한 영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기에 이른다. 그나마 섭정인 계형이 직접나서서 태겡과의 일전에서 태겡 병력의 반을 한번에 분쇄시켰기에 공세를 막아내고 탈환지 영토의 반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태겡(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레이먼 제국) 대공국과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은 군소영주들의 반란역시 계속되었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태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상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남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태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며, 태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반란에 따랐으며, 태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한편으론 남쪽으로의 개척도 활발히 진행했는데, 이문제로 인해 사냥꾼들과 갈등이 상당히 있었다. 전왕조의 일족이었던 '달'씨족은 문제없이 복속했지만, 그외에 '고'씨족과 '문'씨족은 쉽사리 복속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과 충돌직전상태까지 온다. 결국 이들과 협정을 하게되고,[* 국력상으론 티겔이 절대우위였으나 전선의 길이와 이들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소모될 물자가 문제였다.] 고씨일가와 문씨일가는 그들의 영역에서 사냥을 자유롭게 벌이는걸 허락하는 대신, 다이잔 강 북부를(동부대륙 중남부의 최하단.) 개간하는걸 허락받는것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다이잔 강 남부가 주거점이었고, '달'일족이 약화되면서 겸사겸사 챙긴 구역이라 크게 손해보는건 없다는 생각하에 수락했다. '''그리고 남쪽에선 흉폭한 거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가 된 거인족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여러개의 씨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냥꾼들을 쉽게 제압했고, 졸지에 고향을 잃게 된 그 일대 사냥꾼들은 당시 대륙 서남부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남부의 최대던 문씨나 고씨족은 박살났으므로] 신씨일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으로, 어느 야만족들이 사냥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부리고 마을을 불태운다는 소식은 모든 사냥꾼 씨족들을 자극시켰고, 이로인해 모든 사냥꾼들을 규합해 이들에게 대항하는 사냥꾼들의 '대군주' 작위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어 이어진 대군주를 정하는 회의에서 참석한 모든 씨족들이 문씨와 고씨가 몰락한 상태에서 제일의 씨족이 된 신씨일족의 가문 수장 신유를 대군주로 추대하게 된다.
- 토리코/391화 . . . . 12회 일치
* 이치류는 발견한 것은 레드 니트로와 블루 니트로가 뒤엉킨 시체더미.
* 그 사이에서 이치류는 플로제와 만나는데..
* 토리코는 아카시아에게 플라잉 제트 포크와 펀치를 날리나 이마저 아카시아에게 먹힌다.
* 아카시아는 스카이디어의 백채널과 데로우스의 이차원 레이저, 기네스의 기네스 서치와 페어, 사천왕들과 남은 팔왕들의 분노의 집중공격에 당한다.
* 지상에선 토리코와 아카시아의 결전이 막을 올렸다.
* 블루 니트로 페어의 신호와 함께 부활한 팔왕들과 사천왕의 총공격이 일제히 명중한다.
* 원왕 밤비나와 경왕 문이 차례로 잡아먹히고 스카이디어는 기공파에 맞아 머리가 날아간다.
* 거기에 호응하듯 코마츠는 죽어가면서도 토리코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보인다.
갑자기 토리코와 블루 니트로 페어를 제외한 일행 전원이 리타이어. 텟페이는 멀쩡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 도움도 될 거 같지 않다. 네오 레이드 때 갑자기 모습을 감춘 용왕 데로우스와 낭왕 기네스가 갑자기 등장했지만 별다른 설명도 없이 필살기 한 번씩 써주고 리타이어. 머리를 먹혀서 부활의 여지도 없다.
토리코는 제대로 싸우고 있지만 여전히 청귀와 제 3의 악마가 각성할 기미가 없다.
일설엔 돈슬라임도 먹혔으니 영혼세계에서 이치류와 합류, 이치류+돈슬라임의 파워로 현실세계로 복귀한다는 추측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12회 일치
행복도와 상업에서 발생되는 수입을 늘려주는 건물들. 닌자와 게이샤를 고용할 수도 있게 해준다.
동시에 고용 가능한 닌자의 수는 가지고 있는 잠행 계열 건물의 수와 같다. 하지만 최대 5명이라는 상한선이 존재한다.
>기수와 기마: 누가 더 용감한가?
동시에 고용 가능한 메츠케의 수는 가지고 있는 시장 계열 건물의 수와 같다. 하지만 최대 5명이라는 상한선이 존재한다.
동시에 고용 가능한 승려의 수는 가지고 있는 불교 계열 건물의 수와 같다. 하지만 최대 5명이라는 상한선이 존재한다.
>서양 의학에 대한 경험은 서양 무기의 도래와 같이 온다.
지방 이곳 저곳에 지어지는 건물들. 적 부대가 와서 못쓰게 만들 수도 있다. 못쓰게 된 건물은 수리해야 사용할 수 있다.
>질서와 혼돈은 한끝 차이이다.
==== 역로와 역참(Post Roads and Stations) ====
==== 특급도로와 망루(Imperial Roads and Towers) ====
>예술의 고수와 살인의 고수는 분야만 다른 사람들이다.
- 페어리 테일/500화 . . . . 12회 일치
* 브랜디쉬는 나츠와 루시 일행을 외딴 곳에 놓아주며 "눈 감아주겠다"고 한다.
* 전세는 이미 확정적이고 브랜디쉬는 제국을 배신할 맘이 없다. 그러나 나츠와 루시까지 죽는걸 보고 싶지 않아 그들을 구해주는 것.
* 나츠와 루시 일행을 내려놓는 브랜디쉬.
* 루시는 그녀와 싸우기 싫다고 설득하려 한다.
* 병사의 수는 물론 스프리건12와 오거스트, 아이린의 존재. 게다가 황제는 페어리 하트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 그레이는 찰나의 시간 동안 빙절신의와 똑같은 성질의 글러브를 조형.
* 나츠와 브랜디쉬는 여전히 평행선.
* 그러자 잉벨이 "당신의 부모와 스승도 마찬가지."라며 모든 것은 "인과"에 의한 것이라 말한다.
* 브랜디쉬가 열심히 스프리건12의 강함을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잉벨이 그레이에게 리타이어. 왠지 민망한 설명이 돼버렸다.
* 오거스트와 아이린은 열외로 치더라고, 이쪽도 염룡왕 모드 나츠와 길다트가 있는 상황.
* 그레이가 END의 정체를 드디어 알았다. 아직 정확하게 들은건 아니지만 다음화에는 듣게 될 듯. 과연 나츠와 관계가 어떻게 될지.
- 페어리 테일/502화 . . . . 12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502화. '''메이비스와 제이라'''
* 가질은 드디어 아군과 합류. 레비와 눈물겨운 상봉을 한다.
* 루시와 나츠는 디마리아에게 결박 당해있다.
* 그는 이제와서 3분 정도만 메이비스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 그리고 레비와도 감동의 상봉... 인데 일단 얻어맞고 시작한다.
* 그런데 제이라가 현장까지 따라와 있다.
* 메스트와 피신한 메이비스는 잠시 태세를 정비 중이다.
* 팬서 릴리는 승리한 뒤 즐길거리가 늘었다며 초대에게 제라와 모험한 이야기를 듣자고 한다.
* 디마리아가 한 짓으로 그녀가 포로로 잡혔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묶어놨다.
* 한편 브랜디쉬가 쓰러져 있는 곳에 폴류시카와 에버그린이 나타나다.
* 폴류시카는 브랜디쉬를 찾고 있었는데 그녀와 나츠에게 긴급한 용건이 있는 모양.
- 페어리 테일/508화 . . . . 12회 일치
* 블러드맨, 윌을 상대하던 미네르바 올랜드와 로그 체니도 목격한다.
* 유키노 아그리아와 소라노 아그리아(엔젤) 자매도 페어리 로의 빛을 봤는데, 바로 근처에서 또다시 강렬한 빛이 발생하는걸 발견한다.
* 오시리스 세이스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를 처리한 오거스트, 엘자 스칼렛과 대치하던 아이린도 이 마법을 감지하고 곤란해한다.
* 상처투성이가 된 로그 체니와 미네르바 올랜드. 블러드맨과 윌이 쓰러져 있다. 미네르바는 해치웠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들이 쓰러뜨린 건지 술자(나인하르트)가 쓰러져서 사라지는 건지는 불분명. 상태로 봐선 후자에 가까운 듯 하다.
* 유키노 아그리아, 소라노 아그리아(엔젤) 자매도 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페어리 로로 인해서 적들이 분쇄됐다. 프로시와 렉터도 갑자기 적들이 쓰러졌다고 좋아한다. 유키노도 로그처럼 페어리 로에 대해선 모르지만 일단 적들이 사라졌다고 한숨 돌린다. 소라노는 아직도 언니라 불릴 때마다 "언니가 아니다"라고 무의미한 부정을 하는 상태.--만담이냐-- 이들은 언덕 아래 쓰러진 적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절벽 위에서 "화려한 마법을 사용했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 어떤 남자가 태양을 등지고 앉아 있다. 그는 "답례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고개를 못 들겠다"고 투덜거리고 있는데, 바로 라케이드 드래그닐. 유키노는 그가 스프리건 12의 일원임을 알아보지만 어딘지 다른 12와 다른 신성함이 느껴진다. 그는 전장에 있는 적 전원을 상대로 어떤 마법을 발동하는데, "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라고 뜻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 같은 시각 미네르바와 로그도 영향을 받는데 미네르바가 먼저 심하게 영향을 받고 로그는 멀쩡해 보였지만 곧 영향을 받고 쓰러진다.
* 오시리스 세이스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를 상대하던 오거스트도 라케이드가 발동한 마법을 감지한다. 하지만 동요가 없어서 영향을 받은 건지 어떤건지는 불명. 오시리스 세이스와 제라르는 쓰러져 있는데 오거스트에게 이미 당한 뒤같다.
* 라케이드가 밝히는 자신의 마법은 바로 "쾌락". 쾌락을 깨우친 자는 그의 마법을 거역할 수 없다. 쾌락을 계속 부여해서 결국 승천시켜 죽이는 어찌보면 행복한 마법. 영향을 받지 않았던 유키노는 성령마법을 발동하며 라케이드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가 한 발 빨랐다. 라케이드의 손짓에 따라 촉수 같은 것이 나타나 유키노를 휘감는데, 강제로 쾌락을 주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향을 받지 않던 유키노도 쾌락에 빠져 상태가 안 좋아진다. 함께 묶인 프록시, 렉터도 마찬가지. 라케이드는 지와 무지는 "백과 흑"이라며 "쾌락과 고통"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제레프는 아이린이 유니버스 원을 발동했을 때도 당황했을 뿐인데 라케이드의 마법에 진짜로 괴로워하는 걸로 나와서 END보다 이쪽이 훨씬 효과적인거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그 길다트 조차 저항을 못하고 당한 마법은 이게 처음. 오거스트는 당한거 같긴 한데 동요하는 것 같진 않아 진 대마법사설이 나오고 있다. 아이린은 역시나 걸리는데 꽤 괴로워하는 걸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엘자나 웬디가 안 걸리는걸 보고 "꼬맹이들"이라고 하는걸로 봐서는 역시 이 마법은...
유키노 자매와 동행하고 있던 엘프먼이 보이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12회 일치
* 나츠가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제레프를 타도하겠다고 중얼거리자 [[해피]]는 제레프가 죽으면 나츠도 죽는다고 털어놓고 만다.
* 그 사실을 알게 된 루시와 [[그레이 풀버스터]].
* 그때 로그가 그림자로 들어가라고 조언한다. 그림자 안에선 모든 감각이 곤두서며 일시적으로 잠기운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그림자의 힘을 얻은 스팅에겐 무리한 주문이었다. 로그는 중력을 느끼고 대지와 일체가 되는 요령이라고 설명해주지만 잘되지 않는다. 그때 갑자기 강력한 중력이 스팅을 덮친다.
>이게 나와 로그와 카구라 씨의 합체기다!
로그는 나츠는 잊어버렸지만 그건 "안나"라는 "인간"이었다며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로그의 말을 들어보면 원래 나츠와도 안면이 있던 인물로 보이는데.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그녀가 바로 [[루시 하트필리아]]를 닮았다는 것.
* 그때 제레프가 나타난다. 그도 안나의 모습을 보며 "너의 동료와 닮았지?"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제레프 또한 안나와 인연이 있던 걸로 보인다. 그는 안나가 남을 잘 돌보던 다정한 여성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러면서 이제 나츠의 죽음이 가까웠고, "마지막 대답"도 코 앞에 있다 말한다.
"안나"라는 여성이 등장했는데 생김새가 루시와 닮아있는걸 보면 그녀의 조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루시의 어머니도 용들이 사라진 떡밥과 관련인물이므로 여러모로 루시가 얽힐 떡밥이 많다.
그레이가 나츠와 제레프의 관계에 대해서 알았다. 해피 외에는 나츠의 정체와 제레프와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인물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주목된다.
- 페어리 테일/541화 . . . . 12회 일치
* 시간의 틈새로 불려온 멸룡마도사들이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와 싸우는 동안 현세에선 날뛰는 마룡의 육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한다.
* [[웬디 마벨]]이 "데우스 에퀘스"로 일행의 모든 능력을 향상시킨다.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는 그 효능에 감탄하며 [[가질 레드폭스]]와 돌진한다. 가질이 "철룡검"으로 선재공격을 가하나 목표의 옷깃 하나 베지 못한다.
* 이어서 스팅과 로그가 뛰어드나 아크놀로기아의 손짓 한 번으로 낙엽처럼 휘날린다. [[렉서스 드레아]]와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의 2파도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다. 코브라는 마음의 소리를 읽는 능력을 시도해보니 실패. [[나츠 드래그닐]]의 시선이 렉서스와 코브라에게 향하자 아크놀로기아는 그럼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폭발성의 마법이 나츠에게 작렬, 방어한다.
* 그러나 차분하게 의논할 틈도 없이 아크놀로기아의 침공이 시작됐다. 매그놀리아의 가장자리가 아크놀로기아의 폭격으로 사라진다. 그가 다가오는 길마다 파괴와 소멸이 자행된다.
루시의 작전에선 그 잠깐이 필요하다. 그녀가 진짜로 노리는건 어떤 마법을 명중시키는 것이다. 아크놀로기아에게 통할지도 모르는 마법. 그녀는 곧 레비와 [[프리드 저스틴]]을 데리고 길드의 도서관으로 향한다. 남은 사람들은 할지온으로 이동할 팀과 아크놀로기아를 할지온으로 유인할 팀으로 나눈다. 그런데 할지온에 모일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페어리 테일 멤버여야 한다. 그래야만 아크놀로기아가 유일하게 부수지 못했던 그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다. 천랑섬에서 페어리 테일 일행을 구했던 "페어리 스피어"를 말이다.
* 종전을 맞이한 할지온 항구는 생존자들이 부상을 치유하며 휴식하고 있었다.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는 누군가 워프로 접근하자 고개를 돌린다. [[메스트 그라이더]]의 도움을 받은 쥬비아와 그레이였다. 그레이는 한 번에 더 많이 옮길 순 없냐고 독촉하는데 메스트가 말도 안 되는 요구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쥬비아는 메스트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레이와 단 둘이 워프하는게 딱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리온이 다가오며 싸움은 끝난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레이가 아크놀로기아의 침공을 알리자 경악한다. 쥬비아는 루시가 지시한 대로 큰 배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한다. 엘자와 미라젠 등을 비롯한 페어리 테일 멤버들은 할지온을 향해 서두른다. 메스트가 워프로 오가는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다.
* [[미네르바 올랜드]]와 세이버투스,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은 아크놀로기아를 할지온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매그놀리아에 남아있다. 문제는 정말 저 무시무시한 존재를 유인해가는게 가능하냐는 건데. [[유키노 아그리아]]는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12회 일치
>블라드가 자신을 밀고한 놈의 결혼식을 망치려한다. 도와주자.
* 2층 와인 가게의 와인
오버킬 난이도의 Mallcrasher 하이스트에서 시작한지 50초 내에 180만 달러를 확보. 도전과제 완수시 "Alfred" 가면과 "Dawn" 재질, "Dinosaur Skull" 무늬, AK 계열 총기용 부품인 "Scope Mount"와 "PBS Suppressor"가 해금됨
블라드가 머키워터 창고 안에 숨겨진 정체 불명의 물품을 가져와 달라고 의뢰했다.
금고가 긴급 개방되면 금고 안의 케이스를 열고 핵탄두를 꺼내자. 베인은 블라드가 가져오라고 한 물건이 핵탄두였다는 것을 알고 기겁한다. 이제 핵탄두를 확보해야 하는데,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매우 먼 데다가 핵탄두는 겁나게 무거워서 걸어서 옮기는건 미친 짓에 가깝다. 전리품 세개를 한번에 수송할 수 있는 지게차나 전리품 네개를 한번에 수송할 수 있고 빠르기까지 한 롱펠로(머슬카)를 이용하자. 가는 길은 SWAT 저격수와 난간과 컨테이너 위에 올라간 경찰들, SWAT 터렛이 기다리고 있으니 주의하자. 할당량 만큼의 핵탄두를 옮긴 후 탈출하면 클리어.
>캘리포니아 남부 대부분을 파괴한 지진이 발생한 직후, 고속도로에 버려진 두대의 운송 트럭이 수송품을 도난당했다. 해당 트럭들은 코왈스키 & 허치라는 시애틀-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구간 운송 회사의 소유였다. 해당 회사는 러시아인 사업가와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지만, 수사를 진행하기 전에 회사 사무실이 전소되었으며 모든 기록은 파괴되었다.
>내 매형 있지, 그 쓸모없는 쓰레기놈 말이야. 그놈이 눈을 운반해주기로 했어. 알잖아. 콜롬비아산 눈, 크리스마스에 쓸 것. 그런데 뒤에 경찰이 따라붙어서 좆되었지. 놈은 미드타운 쇼핑몰로 도망쳤지만 경찰이 놈을 잡은 것 같아. 좆같은 미국 짭새들, 이 나라에는 크리스마스 정신이라고는 쥐뿔도 없어! 난 친절한 사람이야. 크리스마스는 용서의 날이지. 하지만 이건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다고! 친구들, 날 도와줘야겠어.
* 비싼 와인 - 와인 가게: 와인 가게의 상자를 열다 보면 나온다.
이중 세개를 완수하면 블라드가 크리스마스 트리가 마음에 든다면서 이걸로 탈출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옥상에 올라가서 조명탄을 터뜨린 후 기다리면 바일이 C4를 공수해 온다. C4로 트리 윗쪽 천장의 채광창을 폭파시킨 후, 헬리콥터에 트리를 연결한 후 그곳을 통해 산타와 함께 탈출하면 클리어.
- 폐비 윤씨 . . . . 12회 일치
|제목= 제253회 큐레이터와의 대화 〈폐비 윤씨의 태실·태항아리·태지〉
}}</ref>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ref>조선왕조실록에는 둘 모두 쓰였으나, 윤기무라는 이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므로 {{출처|날짜=2009-03-14|윤기견의 오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작가 [[신봉승]]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 《[[한명회 (드라마)|한명회]]》의 제94회에서, 윤기무는 윤기견의 아우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음이 [[함안 윤씨]]의 세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f> 와 고령 신씨(申氏)의 딸로 [[조선]]의 제9대 임금 [[조선 성종|성종]]의 계비이자 둘째부인으로 투기와 남편인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위되었다.
남편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된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를 추숭시켰다. 그러나 [[중종 반정]]이 일어난 후 왕후(王后)의 호는 삭탈되었다.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를 지낸 [[윤기견]]과 고령 신씨의 딸로 태어났으며, 3명의 이복 오빠와 1명의 친오빠가 있었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a_A1445_2_0019315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ref>.
할아버지 [[윤응]](尹應)은 통훈대부(通訓大夫) 교하현감(交河縣監)이었고, 증조 할아버지 [[윤득룡]](尹得龍)은 [[조선]]조정에 처음 벼슬하여 자헌대부 (資憲大夫) 와 호조판서 (戶曹典書) 를 역임했다.
폐비(廢妃)된 이후 조정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원자의 생모이자 조강지처가 되는 윤씨를 다시 왕비(王妃)로 복위시켜야 된다는 상소와 시위가 끈임없이 반복되었으며, 많은 조정대신들이 파직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그녀가 폐비(廢妃)가 된 이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는 반성하는 점, 세자의 생모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그녀를 살려 두고자 하였으나, [[귀인 엄씨|숙의 엄씨]]와 [[귀인 정씨 (성종)|귀인 정씨]] 등의 사주로 인해 [[궁녀]]들이 성종의 모후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성종에게 허위 보고를 하였다.
그의 평가는 투기심과 질투심이 많은 여자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유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부녀자의 덕을 중시한 시어머니 [[인수대비]]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분방하고 사랑을 중시하였다고도 한다.<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091 네이버캐스트 인수대비]</ref>
{{조선의 왕후와 대한제국의 황후}}
- 하리수 . . . . 12회 일치
첫 데뷔 앨범은 [[2001년]] 《Temptation》이며, 같은 해에 영화 《[[노랑머리 2]]》에 주인공인 J 역을 맡기도 했다. [[2002년]]과 [[2004년]] 각각 2집과 3집 앨범인 《Liar》와 《Foxy Lady》를 발표했으며, [[2006년]] 4집 《Harisu》를 내놓았다. 하리수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에서 성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도 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법원]]에서 [[성별 정정]] 요구가 받아들여진 [[성전환자]]이다.
[[낙생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12월]] 연예인 비자로 [[일본]] [[히메지]]로 갔다.<ref name="heimagge"/> 그에 의하면 "수술도 하고 돈도 벌 심산이었다.<ref name="heimagge"/>" 한다. 히메지는 지진으로 유명한 고베와 약 1시간 거리로 [[1995년]] [[2월]] 그는 고베 지진을 직접 목격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는 [[일본]] [[히메지]]에서 한국무용을 하며 생활하였다. 이어 [[1995년]] 말부터 [[1998년]] 말까지 [[도쿄]]로 무대를 옮겼다.<ref name="heimagge"/>
20대가 된후 부산에서 [[김석권]] 교수 집도로 성전환을 했다.<ref name="Adam to Eve" /><ref name="Ha Ri-Soo, Who Became a Woman: Story Behind">Lee Seung-Heon, [http://english.donga.com/srv/service.php3?bicode=130000&biid=2001060406018 "Ha Ri-Soo, Who Became a Woman: Story Behind"], ''dongA.com'', June 3, 2001.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ref name="Court makes it official - he's now a woman">"Court makes it official - he's now a woman", ''The Straits Times'', December 22, 2002. A copy of this article can be read at [http://groups.yahoo.com/group/TNUKdigest/message/5478 TNUKdigest].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22/2012042200202.html (월간조선) 세계최초 성(性)전환 수술 300건 달성한 김석권 교수]</ref> 20세 때 그는 [[신체검사]]에서 5급 판정을 받고 사실상 [[병역면제]]되었다. 후일 한 방송에서 하리수의 어머니는 “군 신체검사 당시 정신 이상 5급 판결 군대 면제를 받고 돌아와서는 (성전환) 수술을 한다고 했다”며 “그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지만 (수술 후 돌아왔을 때) 마음은 안 그렇지만 담담히 수고했다고 말해줬다”고 한다.<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ctg=15&Total_ID=2346153 하리수 어머니 눈물 펑펑 “군 면제 받고와 (성전환)수술한다고 했다”] {{웨이백|url=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ctg=15&Total_ID=2346153 |date=20131212194720 }} 중앙일보 2006.07.06</ref> 그는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일본]]에서 [[트랜스젠더]]로 활동하였다.<ref>[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5&artid=10464 싱글 앨범 발표한 하리수·미키정 부부 결혼 후 첫 인터뷰] 레이디경향</ref>
[[2011년]] [[4월]] 《파주 Fantastic Show》<ref name="fanfan1">[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4011540171001 최한빛 ‘이것이 슈퍼모델 각선미’(하리수 판타스틱쇼)] 뉴스엔 2011.04.01</ref> 를 기획하였다. 판타스틱쇼(Fantastic Show)는 하리수와 [[2009년]] 슈퍼모델출신의 [[최한빛]] 그리고 전국에서 끼와 재능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최고의 트렌스젠더들이 모여 다년간 하루 10시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낸 공연이었다.<ref name="fanfan1"/> 당시 하리수는 “태국의 대표적인 알카자쇼와 같은 공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 지원 속에 문화 관광 상품을 넘어서 세계적인 쇼로 자리잡았다. 트렌스젠더들이 꿈의 무대를 이루어낸 것처럼 한국의 후배 동료들에게도 공연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세상에 당당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ref name="fanfan1"/> [[2012년]] [[12월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열린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 VIP데이 포토타임 행사에 참여했다.<ref>[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1212000972 하리수 달라진 얼굴…또 성형 의혹?] {{웨이백|url=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1212000972# |date=20160305005647 }} 뉴스핌 2012.12.12</ref> [[2013년]] [[10월]]에는 제8회 [[서울국제문화축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2017년 5월 미키 정과 이혼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121607001 하리수와 미키정 이혼-미키정 단독인터뷰]</ref>
== 이슈와 논란 ==
하리수는 “예전에 놀이동산에서 방송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한 분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서 좋은 추억거리라 생각해 바쁘게 이동하는 와중에 시간을 내 사진을 찍었는데, 이후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보니 제목에 ‘리수 아저씨랑’이라고 적혀있고 내용에는 화장이 너무 진하고 성형이 심해 마녀같았다고 적혀있어 충격을 받았다”며 “이후 연락처를 알아내 직접 전화를 해서 '아무리 어려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상처 주는 발언을 하는 건 안좋다고 생각한다'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하리수는 또 그에게 "성형도 코랑 보톡스 맞은 것 밖에 없다고 알려줬다(웃음)”고 밝혔다.<ref name="akples"/>
* [https://web.archive.org/web/20131212014423/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417902.htm?ArticleV=old 하리수, 중국 남성 성전환 수술 도와] 스포츠서울 2007.04.10
* [https://web.archive.org/web/20131213032024/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2Fnews%2Flife%2F200907%2F20090707%2F97g14011.htm <nowiki>[</nowiki>거꾸로 사는 사람들<nowiki>]</nowiki> '트랜스젠더' 하리수와 이시연] 스포츠조선 2009.07.06
- 하이큐/228화 . . . . 12회 일치
* 다테 공고와 연습 시합 종료.
* 다테 공고와 시합은 선수들 개개인이 변화하려는 동기를 부여했고 히나타 쇼요 또한 새로운 기술을 갈고 닦으며 다음 학기를 준비한다.
* 다테공고와 카라스노고교의 연습시합 종료. 승패와 무관하게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합이었다. 다테의 코가네가와 칸지는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테이핑에 대해서 묻는다. 보통 선수들은 손가락에 무리가 가는데다 손톱이 부러지는 사고도 있어서 테이핑을 하는데 카게야마는 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하지만 카게야마는 특별한 건 하지 않고 철저한 단련과 손관리로 극복하고 있다. 테이핑을 감으면 공을 직접 느끼는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관점이 전혀 다르다는걸 깨닫고 코가네가와도 오늘부터 손가락 관리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는데 지나가던 후쿠타니 켄지는 "작심삼일"이란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고 지나간다.
* 카게야마도 어색한대로 말을 붙이보려 하는데 이름을 "카네코가와"라고 잘못 불러서 지나가던 츠키시마 케이에게 디스 당한다. 아무튼 카게야마는 코가네가와의 점프 최고도달점을 묻는데 무려 340cm. 카게야마의 337cm보다 더 높다. 게다가 이건 작년 수치라 지금은 더 높이도 올라간다고 하는데. 센터의 이상적인 세트 업은 "높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최단거리로 올리는 세트. 당연히 높은 점프는 센터의 덕목이다. 카게야마 또한 개선할 점을 깨닫고 생각에 잠긴다.
* 귀가 중 다테 공고 3학년 3인방과 마주치는 카라스노 3학년 3인방. 긴장된 분위기가 감돈다. 특히 아즈마네 아사히는 엄청 굳은 표정. 저쪽도 카마사키 야스시가 만만치 않은 표정이다. 모니와 카나메는 봄고 대회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말을 한다. 카라스노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점잖게 "감사합니다"하고 화답하고 돌아서는데 막상 갈라진 뒤에는 각자 일행끼리 실없는 대화나 주고 받는다.
* 히나타 쇼요와 아오네 타카노부는 말없는 경례로 서로를 전송한다.
양팀 3학년들이 돌아선 뒤 잡담 내용이 웃기다. 사사야 타케히토는 의외로 핑크취향. "카라스노는 유니폼이 검은 색이라 인상이 나쁘지 핑크가 좋겠다"는 발언을 한다. 카마사키는 아마 아사히를 의식했는지 수염을 길러보려고 고민한다. 카라스노 3학년들은 다테 공고에 쓴맛을 본 트라우마가 아직도 있는지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라며 호들갑 떤다. 일단 모니와는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나 본데 그래도 그 2학년 군단을 통솔한걸 보면 모르는 일이라고 흑막 취급을 당하고 있다.
- 하이큐/231화 . . . . 12회 일치
* 개막식을 앞두고 선수들이 대기실에 모여든다. 카라스노 고교의 사와무라 다이치와 네코마 고교의 쿠로오 테츠로는 서로 긴장했냐고 디스하며 압박감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쿠로오가 "너네 10번(히나타 쇼요) 미아같은 상태인데 괜찮냐"고 하는데 정말로 상태가 좋지 않다. 완전 길잃은 고양이 모드. 위축돼서 서성거리다 다른 선수에게 부딪혀서 비틀거린다.
그런데 소꿉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영향인지 타나카는 달라진 아마나이의 모습 때문에 얼어버린다. 카라스노 3학년들은(특히 스가와라 코시) 이 꼴을 보고 "여자한테 말을 쉽게 거는걸 보고 이상하다 했다." "여자임을 인식해 버렸다."같은 말을 하며 수근댄다.
* 이타치야마 학원의 코모리 토모도 얼굴을 비춘다. 합숙에서 만난 사이인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아는 척을 하는데. 스가와라 코시는 그가 월간 배구에서 "고교 N0.1 리베로"로 호평된 걸 본 적이 있다. 니시노야가 특히 촉각을 곤두세운다.
카게야마는 사쿠사 키요오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데 그 자리에 와있긴 했다. 사람이 많은걸 싫어해서 구석탱이에 숨어있었다.
* 왁자지껄하게 있던 사이 드디어 봄철 고교 배구 전국 고교 선수권이 개막한다. 개회식이 시작하자 각 현을 대표하는 학교들이 차례로 정렬한다. 카라스노의 학년들은 처음 와는 오렌지색 코트에 감격한다.
카라스노는 일전에 빌린 체육관에서 워밍업에 들어가고 그 사이 1, 2시합은 타키노우에 유스케와 시마다 마코토에게 맡기는데 정작 타키노우에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 체육관에서 몸을 푸는 동안 어제와 같은 긴장과 압박감은 보이지 않는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1, 2시합이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며 슬슬 도쿄 체육관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 이번엔 지하철이 복구돼서 역으로 향하는데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히나타와 타나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자리 비운 인원의 짐을 맡는데 나리타 카즈히토가 나눠 맡아준다.
* 무사히 체육관에 도착한 카라스노. 사와무라는 평상심을 중얼거리고 있고 스가와라는 그걸 지적하며 놀린다. 시미즈는 아즈마네 아사히가 출입증을 놓고 간걸 챙겨준다. 우카이 코치는 다들 딱딱해 보이지만 상정한 범위라며 오히려 자신이 긴장을 떨치려고 애쓴다. 그런데 히나타가 시합 직전 짐을 뒤적거리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한다. 모양은 같지만 자기 가방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러다 소름 돋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 하이큐/261화 . . . . 12회 일치
* 타나카는 자신이 돋보일 기회를 포기하면서 미끼를 자청, [[니시노야 유]]와 힘을 합쳐 [[미야 아츠무]]의 서브 에이스를 저지한다.
* [[츠키시마 케이]]의 뒤에서 [[사와무라 다이치]]가 백 어택으로 마무리하며 25대 24로 세트 포인트에 도달한다.
* 코사쿠의 서브가 [[사와무라 다이치]]의 리시브를 튕겨내고 높이 치솟는다. 그대로 [[이나리자키 고교]] 진영의 외야로 날아가는 공. 그러나 아직 공은 살아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상대편 코트를 가로지르면서까지 쫓아가 받아낸다. 아슬아슬하게 [[카라스노 고교]] 진영으로 돌아오는 공. 여기서 [[아즈마네 아사히]]가 과감히 날아오른다. 강렬한 스파이크가 이나리자키의 블록에 맞고 아웃되면서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3 대 24. 카라스노의 1점 리드를 지켜내고 세트포인트에 도달한다. 꼼짝없이 재역전이라 생각했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한숨 돌린다. [[니시노야 유]]는 "에이스 같았다"고 격찬, [[츠키시마 케이]]는 "아즈마네 선배는 에이스가 맞다"며 새삼스러울게 뭐냐는 반응. [[타나카 류노스케]]는 동료 선수들이 "물이 올랐다"고 감탄하며 자신도 분발한다.
* 코사쿠가 벤치로 돌아오면서 원래는 5번 타나카를 노리고 있었는데 1번 사와무라 쪽으로 잘못 갔다고 한탄한다. 이나리자키가 분위기를 정돈한다. 비록 첫 세트 포인트를 내줬어도 한 번만 버티면 서브 순서는 다시 [[미야 아츠무]]에게 돌아간다. 해설자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카라스노로서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여기서 1점을 따서 끝내고 싶을 거라고 분석한다. 그 말이 사실이다.
* 이어지는 공방전. 아즈마네의 공격을 아카기가 리시브, 산지마의 스파이크로 잇는다. 츠키시마, 카게야마가 블록. 카게야마의 팔에 맞고 뒤로 밀린 공을 사와무라가 커버한다. [[히나타 쇼요]]가 빠져있고 쓸만한 공격 자원들이 빠진 상황. 그래도 [[스가와라 코시]]는 기회는 있다고 희망을 놓지 않는다. 카게야마에게 이어진 공, 츠키시마가 뛰어오르나 진짜는 타나카다. 이 시간차가 먹힐까?
아츠무가 공을 띄우는 걸 보며 "와라!"라고 외쳐본다.
* 전위에는 카게야마. 이나리자키 측은 투 어택도 대비했다. 카게야마의 세트업에 맞춰서 모이는 이나리자키 블록. 카게야마도 공격자원 전원이 네트 앞으로 뛰어오르며 블록을 모아놓는다. 츠키시마, 타나카, 아즈마네가 각각 중앙, 좌측, 우측에서 뛴다. 그러나 이들 중에 진짜는 츠키시마 뒤에서 튀어나온 사와무라. 실전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와무라의 백어택이다. 그것도 자신이 별로 자신없어 하는 공격.
* 사와무라는 지금 만큼은 백어택이 익숙하지 않은 걸 잊어버리고 때렸다. 블록의 반응이 늦다. 완전히 속였다. 스파이크가 이나리자키 코트를 깊숙히 관통한다. 완벽한 코스. 카라스노가 아츠무의 서브를 단칼에 끊으며 1점을 추가한다. 아츠무도 여기에는 "제법"이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스코어는 24 대 25. 다시 세트포인트. 후쿠로다니의 콤비가 "사와무라가 백어택 치는건 처음 봤다"며 눈이 휘둥그래하다.
* 응원단은 사와무라의 이름을 연호하며 달아오른다. 배구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방금 전 1점에 타나카가 기여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쩌면 그 자신도 별다른 자각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인 스나 린타로만큼은 타나카를 성가시게 쳐다봤다.
- 헌경왕후 . . . . 12회 일치
조선 선조때의 문신 [[홍이상]]의 7대손이다. 모계로는 [[조선 선조|선조]]의 외6대손으로, 선조의 부마 영안위 [[홍주원]]과, 선조와 인목대비 소생 [[정명공주]]가 5대조부와 5대조모가 된다. 그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 [[홍현보]]는 태몽을 꾸고, 그가 태어나자 아들 내외에게 특별한 아이라고 예상하였다. [[1735년]](영조 11년) 한성부 반송반에서 [[홍봉한]](洪鳳漢)과 한산부부인 이씨의 둘째 딸로 태어나, [[1743년]](영조 19년)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할아버지 홍현보는 예조판서까지 역임했지만 [[한중록]]에 의하면 아버지 [[홍봉한]]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했고, 그의 가계는 빈한하여 언니를 시집보낼 때와 그가 출가할 때 혼수품이 넉넉하지 않았다 한다. 그가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릴 때,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친척들이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바로 영조의 특명으로 아버지 [[홍봉한]]은 그에게 《소학(小學)》, 《내훈(內訓)》, 《어제훈서(御製訓書)》를 가르쳤다 한다. 영조 20년인 [[1744년]](영조 20년) 10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낳은 아들로는 [[의소세손]]과 [[조선 정조|정조]]가 있다. 영조는 첫 손자인 의소세손 이정이 태어나자 기대가 남달랐으나 의소세손은 곧 요절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둘째 아들 세손 이산이 태어났다.
홍봉한은 [[1770년]](영조 46년)경 반대파 김귀주, 정후겸의 공격으로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고 봉조하의 직함으로 교외에 거주했으며 이후에도 이복동생이던 홍인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형을 배신했다고 정조가 말한적이 있다. 사도세자 생전부터 있었던 정순왕후 외척가문과의 정쟁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에도 김귀주 정파의 홍봉한 탄핵이 여러번 있었으며 정조 즉위초에도, 정조 사후에도 이들이 홍봉한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다. 사도세자의 추숭에 대해 당시 세손이던 정조와 사석에서 홍봉한이 나눈 이야기를 김귀주가 영조에게 고자질해서 홍봉한을 역적으로 몰기도 했었다.
능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隆陵)으로 남편인 장조와 함께 묻혀 있으며 인근에는 아들 정조와 며느리인 [[효의왕후]]의 능인 [[융건릉|건릉]](健陵)도 위치하여 있다.
홍이상의 둘째 아들 홍영(1584년생)과 넷째 홍탁(1597년생)은 13년 나이차였고, 홍영의 증손자 홍중기(홍만용의 아들)와 홍탁의 손자 홍만기가 동갑이었고, 홍탁의 손자 홍만기는 40세가 다된 늦은 나이에 아들 홍중후를 봤다. 홍중후는 1687년생으로 8촌인 홍중해(홍국영의 고조부), 홍중기(혜경궁 홍씨의 증조부)와는 29세와 38세의 나이차이가 난다. 따라서 같은 항렬임에도 나이차가 많이 나게 되었다.
{{조선의 왕후와 대한제국의 황후}}
- 홍순언 (1530년) . . . . 12회 일치
'''홍순언'''(洪純彦, [[1530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군|남양]](南陽)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구원군 파병에 공을 세웠으며, [[종계변무]]에 세운 공로로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었다. 기방에 팔려온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의 남편이자 당시 [[예부]][[시랑]] [[석성 (명나라)|석성]]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 류씨 소녀와의 인연 ===
석성은 [[예부]][[시랑]]으로 있다가 뒤에 [[병부]][[시랑]]을 거쳐 [[예부]][[상서]]로 승진했다. 류씨 소녀는 하루하루 황금 비단을 손수 짰는데, 병부시랑 석성의 후처가 된 뒤에도 류씨부인은 밤마다 직접 비단을 계속해서 짰다. 비단에는 보(報)와 은(恩)이 쓰여 있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석성]]이 류씨 부인에게 사연을 묻자 류씨부인은 아버지 류모의 빚과 장례비 마련이 어려워 기방에 갔던 일과 홍순언을 만난 일을 고백하였다. 석성은 동이족 중에도 의인이 있다며 그 기상을 칭찬하였다.
변무사절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 예부상서 [[석성 (명나라)|석성]]이 [[요동]]의 국경까지 영접 나와 홍역관이 왔느냐고 물었다. 그가 자신임을 밝히자 석성은 장인어른 큰절을 받으라며 그를 친히 모셔갔다. 이상하게 여기던 중 장안의 관사에 도착하자 귀부인이 나와 그에게 큰절을 올렸는데 이는 그가 명종 때 구해준, 이제는 석성의 계비가 된 류씨 소녀였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대와 같은 의인이 있었다며 후히 대접하였고, 황정욱과 그가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기록된 내용이 잘못이고,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임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대소관리들은 당대에 수정하지 않고 이제 와서 계속 번거롭게 구느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당시 예부상서였던 석성의 적극 건의로 개정되었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사절단은 귀국하였는데, 류씨 부인은 손수 짠, 보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비단 1백 필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일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라며 비단을 거절하고 귀국했다.
[[조선]] 멸망 후 [[1928년]] 위당 [[정인보]]는 그의 방계후손 [[홍정구]]의 부탁을 받고 당릉군유사징(唐陵君遺事徵)을 찬하였다. [[정인보]]는 당릉군유사징의 '唐陵君遺事徵引文'에서 홍순언 동생 [[홍덕린]]의 후손인 [[홍정구]](洪正求)가 자신([[정인보]])을 찾아와 선조 당릉군의 행적이 너무 미약하니 선조의 행적을 기술한 유사(遺事) 편찬을 부탁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홍정구]]는 여러 번 [[정인보]]를 찾아와 거듭 부탁하였고, [[정인보]]는 시대가 바뀌어 가족도 몰라보는 시대에 [[홍정구]]의 조상을 추모하는 의리에 감동하여 결국 이를 수락했는데, [[정인보]]는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동평위공견사문록, 열하일기의 옥갑야화편 외에도 직접 여러가지 사적을 조사하여 [[1928년]] 당릉군유사징 제1권《당릉군유사 (唐陵君遺事)》를 집필하였다.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에는 이후 [[명나라]]가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게 될 때 [[임진왜란]] 당시 5만의 병력을 파견하게 했던 [[석성]]이 투옥된 것을 기록한다. [[이익]]은 '[[1640년]]대 [[석성]]이 투옥된 후 [[이항복]]이 [[명나라]]의 [[베이징]]에 갔을 때 [[석성]]의 문하생인 양씨가 와서 "귀국에서 말 한마디라도 올려 스승을 구해주기를 청한다"고 간청하였지만 [[이항복]] 등 조선의 사절단들은 이를 웃으면서 방관하였고, 한 사람도 사신을 보내 [[석성]]의 억울한 옥사를 변명해주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석성]]의 문인은 [[조선]]에 와서도 스승 석성을 구해줄 것을 청했으나 [[조선]] 조정은 입으로만 소중화, 재조지은을 외칠 뿐 양씨의 청을 거절하였다. 성호 [[이익]]은 이를 언급하며 당시 관료들의 배은망덕함을 질타하였다.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11회 일치
가령 A팀과 B팀이 승점이 같아 리그 1위를 결정하고자 할때 다음 표와 같은 결과가 있다고 하자.
시즌 종료시에 위와 같다면 2015시즌 이전의 기준이라면 1위는 B팀이 된다. 승점이 같지만 골득실이 더 높기 때문에 B팀이 우위를 점한다고 보는 것. 하지만 2016시즌의 변경에 따르면 A팀이 1위가 된다. 그렇게 실점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골을 많이 넣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발표에 따르면 "공격축구"가 관중을 끌어모은다는 판단 하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22&aid=0000168424|"타 리그와 비교해도 골 수가 적으니 관중이 잘 안 모이고 흥행이 되지 않는다"]며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웃긴 이야기는 여기에서 예시로 든 분데스리가와 J리그를 보면 골 수와 관중 사이에는 의미있는 데이터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주장대로, 공격축구를 통해 골이 많이 터질수록 흥행이 이루어진다면 골이 많이 나온 시즌은 관중이 많아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의 10-11시즌부터 14-15시즌까지 과거 5시즌동안의 평균 골 수와 골당 관중 수의 변화추이를 확인하면 위의 링크한 기사와는 달리 연맹의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걸 알 수 있다. 13-14시즌을 제외하면 '''골 수가 줄어들었는데 전년보다 관중이 늘어나고, 골이 늘었는데 관중이 직전년도보다 줄어드는''' 상황이며, 이 13시즌조차도 증감폭에 의미를 두기 어렵다. 14-15시즌은 골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평균관중은 수십명 수준의 변화폭만 보여 여기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상황.[* 그마저도 그래프를 그려보면 반대방향을 그린다.] J리그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2012시즌부터 2015시즌까지는 골이 얼마가 되었든지간에 평균관중은 17000명에서 500여명 정도의 변화밖에 없고, 오히려 2011시즌에는 경기당 2.8골이 넘었지만 평균관중은 15000명 수준이었던 것이 2012시즌에 2.8골 미만으로 줄어들었음에도 17000명까지 평균관중이 증가한 것은 연맹의 주장이 뭘 어떻게 봐도 틀렸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K리그도 분데스리가와 마찬가지로 2012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오히려 '''골 수는 줄었는데 관중이 늘고, 골 수가 늘었는데 관중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연맹은 그 어떤 명확한 해답을 내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근거라고 내 놓은 분데스리가와 J리그 모두 연맹의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를 제시할 수 없다. 한마디로 2016년 한국프로축구연맹 활동중에 최대의 뻘짓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
K리그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전두환 시절의 3S정책과 맞닿아 있던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으나, 박정희 시절부터 내려온 스포츠 지원정책의 기치는 '''"(저 북괴놈들에게 절대 꿇리지 않는) 국제적인 스포츠 업적을 거두어 세계만방에 걸친 명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국제 스포츠계에서 업적을 쌓는다는 명분이 대한축구협회 시절에 세운 기치이며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설립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프로축구협회 정관: 제1조 목적, 이 법인은 한국프로축구의 수준향상과 저변확대는 물론 국제교류 등 축구를 통해 국민의 건 전한 여가 선용을 도모하고, 스포츠 활성화와 지역사회를 비롯한 '''국가 발전 및 국제친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컵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상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3월의 라이온/126화 . . . . 11회 일치
* 산가츠 마을 봉오도리 개시. 카와모토가는 노점을 준비하는데 츠구미를 비롯해 학교 지인들이 와서 도와준다.
* 니카이도 하루노부와 시마다 카이도 초청을 받아 노점을 들른다.
* 예고에 없던 소나기 때문에 모두 쫄딱 젖는데 시마다, 하야시다 타카시는 카와모토 아카리를 놓고 묘한 기류?
* 카와모토가는 예정대로 노점을 준비한다.
* 키리야마는 무거운 짐 담당. 츠구미는 설거지와 판매 보조.
* 하야시다 타카시와 노구치 에이사쿠도 도우미로 호출
* 하야시다는 명백하게 카와모토 아카리를 노리고 있다.
* 카와모토 모모는 언니들이 가게일이 바빠서 축제를 둘러보지 못하게 됐다.
* 오랜만에 니카이도와 만난 모모는 엄청 좋아한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 . . . . 11회 일치
* '''전차 실험'''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전차 활용'''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수발식 소총 무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전장식 소총 무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후장식 소총 무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기관총 무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볼트액션 소총 무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2.5.1|라이트 형제와 랭글리의 비행기]]''' 발명 발견시 '''{{{#green +2%}}}'''
* '''가스 공격 능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5%}}}'''
* '''군사 항공'''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2.5.1|라이트 형제와 랭글리의 비행기]]''' 발명을 발견하지 않았을 시 '''{{{#red -5%}}}'''
- 구자욱 . . . . 1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5년]] [[3월 28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SK 와이번스|SK]]전
[[2014년]]에는 1루수로 주로 나오면서 우익수와 지명타자로도 나왔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요청이 온 것은 아니고, 본인이 3루를 부담스러워 하기에 코칭스태프에서 편하게 타격할 수 있는 코너나 지타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고 3루수 연습도 했다. 포지션은 주로 1루수, 3루수, 좌익수이다. 0.357의 타율로 남부리그 타율 1위를 했다.
U-21 야구 월드컵에 참가해서 4할이 넘는 타율과 6번의 도루를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도루왕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이 대회서는 2루수와 중견수로도 나왔는데([[상무 야구단]]에서는 1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로만 나오고 중견수를 본 적은 없었다), [[2014년]] 시즌에 투수, 포수, 유격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 김대륙 . . . . 11회 일치
퓨처스리그에서 32경기에 나와 타율 0.321 4홈런 30타점의 좋은 모습을 보여 6월 5일 엔트리 대거 변경때 [[박준서]], [[김대우(1984)|김대우]]와 함께 1군에 등록되면서 정식선수로 전환되었다. 등번호도 113번에서 42번으로 바뀌었다.
6월 12일 [[SK 와이번스|SK]]를 상대로 데뷔 첫 선발 출장을 했지만 결과는 2타수 무안타.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방송사에서도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U_0DjYducY|#깔끔한 반도의 수비, 김대륙]]
7월 14일 청주구장에서 있었던 한화와의 경기에서 1아웃에서 나온 [[짐 아두치]]의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에 2아웃처럼 전력 질주하는 예술적인 뇌주루를 보여주면서 한화의 역전승에 큰 도움이 되었다.~~ 대륙의 기상. 대륙횡단.~~ 후에 집중해야 한다고 허구연이 한소리 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수비하다가 이용규를 내야안타로 내보냈고 이게 결국은 끝내기가 되었다. 한화의 끝내기 승리가 결정된 이후 카메라가 김대륙을 클로즈업 했을 정도. 한마디로 나쁜 의미로 경기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9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3:4로 앞선 9회말 1아웃에서 [[박한이]]의 땅볼 타구를 멋진 수비로 잡아내 아웃시켜 팀의 승리에 공헌하였다.
5월 15일 올해 첫 안타를 신고했다! 큼지막한 타구였는데 본인도 얼떨떨했는지 우익수 키를 넘기는 1루타행(…) 이어 폭투가 나와 첫 도루까지 성공.
5월 19일 경기에도 9번 유격수로 선발출장하여, 첫 타석 3루타를 기록했으나, 나머지 두 타석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3루타를 이틀 연속 치다니 또 다른 거포유격수인건가… 는 무슨.-- 이후 엔트리 말소해서 2군에 지내고 있다가 7월 10일 연이은 난조로 말소된 [[조쉬 린드블럼]]와 교대되어 1군에 다시 올라왔다
7월 27일 두산에서 김성배와 1:1 트레이드로 온 [[김동한]]을 올리기 위해서 대신 1군에서 말소되었다.
8월 20일 SK전에서 대수비로 나와 1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10회초 1사 1,2루 상황에서 타자가 때린 공이 직선타처럼 날아오자 재치있게 원바운드 처리해서 병살을 잡았다. 그러나 심판들의 환상적인 오심 때문에 인필드 플라이로 처리되고 말았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김준태(야구선수)|김준태]]와 함께 지원했지만 최종 합격한 김준태와 달리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11회 일치
* [[올마이트]]의 중재로 [[바쿠고 카츠키]]와 [[미도리야 이즈쿠]]의 대결은 일단락된다.
* [[아이자와 쇼타]]는 크게 꾸짖지만 올마이트에게 사정을 전해듣고 비교적 가벼운 근신으로 처리한다.
* 그리고 잠시 뒤. 담인 [[아이자와 쇼타]]의 호된 훈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자와는 둘을 꽁꽁 포박해서 압박한다. 사실 둘의 싸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호출받았을 때 나타난건 올마이트였기 때문. 이번에도 올마이트는 아이자와를 진정시키며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쿠고의 심리 상태를 언급하며 자신이 교사들이 멘탈 케어를 맡아줘야 했던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그 말을 듣고 아이자와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러나 기숙사 생활이고 담임인 이상 이들을 그냥 둘 수도 없는 일. 아이자와는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확인한 다음 바쿠고에겐 4일간, 미도리야는 3일간 근신과 기숙사 공동구역 청소 및 반성문 제출을 구형한다. 그 밖에 상처가 심해지면 [[리커버리 걸]]에게 가라는 둥 잔소리를 해대는 걸로 이날의 싸움은 완전히 종결 되었다.
* 다음날 아침부터 이들이 싸움 소식은 구설수에 오른다. [[아시도 미나]]와 [[하가쿠레 토오루]]가 가장 먼저 달려든다. 미도리야와 바쿠고는 아침부터 공동구역을 청소하고 있어서 소문은 더 빠르게 전달됐다. 둘은 한 바탕 놀림감이 된다.
둘은 어색한 분위기로 청소를 하는데 미도리야가 먼저 말문을 연다. 자신의 슛 스타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는데, 평소의 바쿠고와는 달리 "예비 동작이 크고 아슬아슬하게 반응할 정도는 되기 때문에 난타전엔 불리하다"는 도움이 되는 조언이 돌아온다. 게다가 "펀치랑 맞춰서 한 건 짜증났다"고 나름 긍정적인 체크도 해준다.
* 이렇게 떠들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길막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려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신소 히토시]]. 미도리야와 대결했던 일반과 학생이다. 그런데 그를 본 [[세로 한타]]는 어딘지 "터프해진 느낌이다"라고 평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11회 일치
* [[키리시마 에지로]]와 미도리야가 적극적으로 대련에 나서고 특히 미도리야는 "웅영고 톱과 차이를 알고 싶다"며 의욕적으로 덤빈다.
* [[아이자와 쇼타]]는 그가 명실상부한 "넘버1에 가까운 남자"이라며 조심하라고 하는데, 단 몇 초만에 A반 인원 대부분이 K.O당한다.
*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가 빅3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며 "아마지키"를 호명한다. 검은 머리에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한 학생. 그는 이름이 불리자 마자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학생들을 쏘아본다. [[이이다 텐야]]는 노려본 것만으로 이런 박력이 나온다며 놀란다. 학생들 모두 그 눈빛만으로 위축된다.
>어쩌면 좋지... 말이 안 나와.
* 이대로는 강연이고 뭐고 진행이 안 된다. 아이자와가 짜증을 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미도리야와 만났던 선배가 "안심해주세요"라고 나선다. 그런데 그는 앞뒤없이 "전도!"라고 외치며 학생들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취한다. 너무 뜬금없어서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있자 "다난"이라고 해야지 않냐며 웃어넘긴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 뿐이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선배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돈하며 "너희 모두 나랑 싸워보자"고 선언한다. 즉흥적인 제안이지만 "우리들의 경험을 몸으로 경험하는게 합리적이다"는 논리. 아이자와도 마음대로 하라며 허락한다.
>'''재기하지 못하는 애가 나와선 안 돼'''
하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아시도의 움직이는 뿔을 신기해하며 만지작거리면서도 "좌절해서 히어로를 포기하고 문제를 일으킨 애가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었는데 상당히 자극을 받은 것 같다. 같이 이야기를 들은 [[토코야미 후미카게]]도 그렇다. 토코야미가 "우린 프로 히어로와 싸움도 겪어 봤다"고 말하자 키리시마가 "빌런과도 싸워봤다"고 맞장구치며 자기들이 "그런 걱정이나 받을 정도로 조무레기로 보이냐"고 직설적으로 따진다. 거기에 대한 밀리오 선배의 답은 이렇다.
>응. 언제 어디서 와도 상관없어.
아이자와는 허수아비처럼 쓰려지는 학생들에게 외친다.
- 리그컵(K리그) . . . . 11회 일치
프로축구선구권대회가 흥행참패를 겪고나서 1992년에 와서야 리그컵이 열리게 된다. 당시 후원사가 아디다스를 한국에 판매하고 있던 제우교역이었기 때문에 통칭 아디다스컵으로 불린다.[* 잉글랜드의 칼링컵과 마찬가지로 스폰서가 원하는 타이틀을 달아주는 형식이다.] 이 시기에도 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단조로운 리그의 홈 & 어웨이의 연속보다는 리그 외에 별도로 경기 수를 채울 이벤트를 기획하였고, 제우교역을 스폰서로 구해 첫 리그컵으로 볼 수 있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다.
다만, 여기에는 제법 잡음이 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엉뚱하게도 [[아디다스]]가 해외상표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해외업체의 이름을 단 대회를 한국에서 치뤄야 하느냐?"라는 [[신토불이]]적 마인드가 표출화 된 것.[*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6040020921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6-04&officeId=00020&pageNo=17&printNo=21844&publishType=00020|당시 기사]를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기사만 보면 재정자립을 위해 해외업체와의 협력도 꼭 필요하다는 협회의 주장이 일견 타당해 보일 수는 있으나 완산 푸마의 7구단 합류 과정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46721|외국 스폰서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참가를 못하게 된 사례를 보면 한국축구계가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굴러가는지 수긍된다.]
두번째 대회에 좀 나아졌냐면 또 그것도 아니라서... 리그가 끝난 10월에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상으론 제법 널널했을텐데도 각 팀은 1주일에 2번씩 경기를 치루는 하드코어한 일정을 보낸다. 이쯤되면 운영방식에 대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을 지경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K리그의 상금과 위상이 리그컵을 명백히 넘고나서부턴 각 구단이 2군리그와 비슷하게 취급하게 된다.
게다가 첫 아디다스컵 이후에도 흥행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회 운영방식을 바꾸는데, 하나같이 팀이나 팬이나 지치게 만드는 요인밖에 안 되어 결국은 흥행은 흥행대로 날려 종국에는 "리그컵은 종이컵"이라는 조롱을 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공격축구를 하겠다고 무승부시에 승부차기를 한다거나 서든데스제도를 도입하는 등, 골 수를 늘려보겠다고 별별 짓거리를 다 했지만, 1회차 대회부터 수비축구를 한 일화가 우승을 함으로써 지나친 실험정신은 변화를 꾀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말았다.[* 첫 대회때 우승한 일화는 3승 4무 2패에 골득11 골실10로 공격축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오히려 일화보다 더욱 공격적인 축구를 했던 LG가 4승 1무 3패 골득15, 골실11로 2위가 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촌극 끝에 결국에는 승점체계가 국제경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승3무1 방식으로 감으로써 당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흥행이라는 미명하에 한 행동이 모두가 뻘짓이 된 것.
KFA가 구단들과의 의견조율이 실패하여 리그컵과 관련한 협조를 구하지 못했던 것도 리그컵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구단들은 10만 달러를 전액 상금화를 생각하였는데, KFA는 이걸 일부만 상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KFA에서 아마추어를 지원할 자금으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어서 1회 아디다스컵은 "상금은 있는데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당초에 이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 이유가 구단들과 제우교역측과의 논의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50363|스폰금액은 전액 상금으로 쓸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KFA가 이를 계약서를 찍을때 "협회에 일임함"으로 이야기를 바꿔버려서 협회와 구단사이에 골이 생기게 만들어버렸다. 해당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아디다스컵의 창설을 주도한 건 협회가 아니라 구단이며, 이는 구단의 수익을 위한 상금배분을 협회가 개입함으로써 제대로 수틀린 것. 제우교역측은 명백히 "프로구단을 위해 사용하길 바람"인데 KFA는 프로리그를 위한 돈을 멋대로 아마추어 사업에 쓰겠다고 나섰으니 구단들이 이 대회를 심정적으로나마 보이콧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아디다스컵이 처음 열렸던 시점만 하더라도 K리그와 사실상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과거 한국프로축구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리그컵이 처음 열렸을 당시에는 정규리그보다는 아디다스컵 관련기사를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10만달러 규모의 상금은 당시 국가대표 대회로 간주할 수 있었던 대통령배 대회를 빼면 축구계 최고액이었으니 당연히 화제를 몰고 올 수 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상황. 물론 이건 총 상금규모고 실제로 우승팀은 3000만원, 준우승팀은 1500만원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백히 K리그와 차별할 수 있는 위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K리그도 상금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K리그가 스폰을 받기 시작한 94시즌에는 1년동안 정규리그를 마치고 우승팀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 이때는 우승상금만 보면 아디다스컵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규리그와 리그컵간에는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하고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직후인 95년도에는 최대 획득가능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981096|우승상금이 1억 5천만원으로 책정]되며 리그컵과 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1억5천만원을 셋으로 나눠 전기리그 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 종합우승팀(통합챔피언 우승)에게 주었다. 한 팀이 전기리그 우승과 후기리그 우승을 둘 다 차지하면 1억5천을 그 팀 혼자서 갖고,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다른 팀이라면 5천만원은 준우승자에게 주는 상금이 되는 셈.] 전기나 후기 중 하나만 우승해도 리그컵보다 더 큰 업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그컵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 몬스터 페어런트 . . . . 11회 일치
몬스터(괴물)과 부모(페어런트)의 합성어. 학교에 자기중심적이고, 비상식적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부모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교사에게 직접 클레임을 하지만, 교장, 교육청, 지자체 등 권한이 강한 부서에 클레임을 하여, 간접적으로 교사와 학교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생략해서 몬페아(モンペア ), 몬페(モンペ) 로 부른다.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 등의 용어와 유사하지만 "몬스터"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공격성이 강한 단어이다.
* 특정 원아를 자신들의 아이와 놀게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 교육문제 때문에 학교와 협상을 할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공표하겠다고 하는 등 협박을 가한다.
이러한 단어가 학부모와 학교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존재한다. 학부모와 학교가 협력하는 것이 올바른 공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학부모와 학교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김으로서 협력 관계가 무너져 올바른 교육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몬스터 페어런트라는 단어의 등장이 보호자의 과도한 주장을 옹호하고 학교와 교원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언론의 풍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정당한 클레임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몬스터 페어런트로 싸잡혀서 비난을 받게 되는 풍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2010년 9월 사이타마 현의 시립 초등학교 여교사가 담당하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의 부모가 상식을 벗어난 항의를 해와서 불면증이 되었다고 500만엔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피고인 어머니로부터 항의를 받고 상호연락책에 "최저의 선생","비상식","악마"등의 발언을 쓰고, 교육위원회와 교육부에 비판하고 책임을 요구했다. 다른 날에는 교사가 급식지도중에 피고 아동의 등을 가볍게 만진 것 만으로 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피해를 신고하였다. 교사와 학교 측은 대화를 가지고자 했지만 부모는 참석을 거부했고, 교사는 이 때문에 불면증에 몰렸기 때문에 제소를 단행하였다.
- 못난 나를 사랑해주세요 . . . . 11회 일치
무직 30대 여성 미치코를 묘사하는 러브코미디. [[저금]]을 깍아가며 연하의 그이에게 헌신하던 나날을 보내던 미치코가, 싫어했던 예전 상사와 마을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쿠로사와 아유무'''(DEAN FUJIOKA)
'''쿠로사와 하지메'''
쿠로자와 아유무의 형. 청년 실업가.
'''쿠로사와 하루코'''
쿠로자와 아유무가 마음을 품고 있던 상대, 쿠로자와 하지메와 결혼하였다.
찻집 히마와리를 열었던 아유무의 [[할머니]].
쿠로자와의 예전 애인. 기가 센 30대 여자.
찻집의 종업원. 쿠로사와가 불량배 시절에 만났으며, 그에게 심복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11회 일치
* 팔자에도 없는 살벌한 온천합숙에 참여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일행. [[샬롯 로즈레이]]를 따라서 [[솔 마론]]까지 따라와 있다.
* 유르팀 화산은 강렬한 열기와 유황가스로 그저 서있기도 어려운 지역이나 단장인 [[야미 스케히로]]와 [[샬롯 로즈레이]]는 단장답게 수월하게 돌파한다.
*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마론은 어렵지 않게 이 기술을 따라하고 [[노엘 실버]]도 서툰대로 따라해서 메레오레오나의 인정을 받는다.
사람 조지는게 즐거워만 보이는 그녀와 달리 끌려온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일행과 홍련의 사자단은 사색이 된다.
* 원래 사자단 외에 끌려온 사람은 아스타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 [[노엘 실버]], [[샬롯 로즈레이]], [[야미 스케히로]] 등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운 없는 사람들 뿐이지만, 왠지 [[솔 마론]]도 얼굴을 비춘다. 샬롯이 간다길래 그냥 따라왔는데 도착해 보니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최종적으로 샬롯과 온천을 할 수 있으면 다 좋다고 나름대로 의욕을 불태운다.
* [[레오폴트 버밀리온]]은 특유의 포지티브한 마인드 덕에 금방 마음을 다잡고 아스타에게 "정상까지 누가 먼저 가나 승부"라고 선언한다. 아스타도 일단은 의욕을 내본다. 레오폴트는 아스타와 함께 유노에게도 선전포고를 하는데 아스타에게 "나의 라이벌"이란 소개를 받고 "그렇다면 나의 라이벌이기도 하다!"는 이상한 비약으로 전개, 유노한테도 정상까지 승부하자고 제안하지만 "멋대로 하라"는 매우 심심한 반응이 돌아오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 아스타와 레오폴트가 1등으로 등산로에 뛰어든다. 그런데 발을 내딛고 나서야 이 지역의 가혹함이 실감됐다. 일행은 "마법으로 어떻게든 된다"고 믿었지만 천만에 말씀. 대기에 열기를 머금은 마나가 날뛰고 있었다. 땀샘이 폭발할 지경이고 숨을 쉴 때마다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아 호흡도 어렵다. 사방에선 마그마가 펑펑 터져나오는, 문자 그대로 지옥도. 이런 곳을 돌파해 정상까지 가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곳으로 달려드는 대책없는 인간들도 있었다. 검은 폭우단 단장 야미와 푸른 들장미단 단장 샬롯이었다.
* 하지만 레오폴트는 이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비결을 파악했다. 단장들은 마력을 상시 몸에 두르고 있었다. 강마지대라 마나가 안정되지 않는 곳임에도 일사분란하게 마력을 방출하고 있다. 사실 마법기사들에겐 기본기와 같은 마법이다. 이른바 "마나 스킨". 어떤 타입이든 간에 조금씩은 마나를 방출, 몸에 둘러서 여러가지로 응용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시적으로 쓰는 것이며 이런 험난한 환경에서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원들은 레오폴트의 분석에 감탄하면서도 그렇게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레오폴트는 "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조금씩 감각을 익혀가면서 마나를 순응시킨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레오폴트가 먼저 마나스킨을 방출하며 의욕을 표출한다. 그의를 따라서 단원들도 의욕을 보이며 각자 마나스킨을 펼친다.
* 통찰력에선 조금 늦었지만 유노도 레오폴트의 방법을 따른다. 곧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바람의 마나로 마나스킨을 전개, 심지어 시원하고 쾌적하게 등반할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순식간에 일행을 앞질러 가며 아스타에게 "내가 온천에서 뻗기 전에 올라와라"고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레오폴트도 아스타에게 먼저간다며 유노의 뒤를 쫓고 마론도 "샬롯과 온천에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마나스킨을 유지하며 아득바득 발을 옮긴다.
- 비지란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Illegals - . . . . 11회 일치
히어로가 직업이 된 세상에서 면허가 없으면서 자경단원 활동을 하는 넉클 더스터와 그를 따르는 하이마와리 코우이치, 프리 아이돌 팝 스텝이 주역이다. 넉클 더스터가 [[올마이트]], 하이마와리가 [[미도리야 이즈쿠]]의 포지션을 떠올리게 하는데 둘의 관계는 본편쪽 인물들이 스승과 제자인 것과 달리 히어로와 사이드킥 느낌이다.
거구의 남성. 이름에 어울리게 두 손에 넉클을 끼고 있다. 통상적인 히어로와 달리 면허 없이 활동하는 무면허 히어로이나 실력은 확실해서 [[아이자와 쇼타]]와 싸울 정도다. 한편 아이자와와 싸우면서 '''무개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개성을 폭주시키는 약물을 쫓고 있다.
* 하이마와리 코우이치(灰廻航一, はいまわり こういち)
심약하나 타인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 나이는 19세. 본편의 주역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달리 개성 보유자다. 개성인 활주(滑走)는 손발을 땅에 붙이고 슬라이드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며 자전거보다 빠른 속도라고 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1회 일치
제임스는 루시와 식사를 하며 애정 공세를 받지만, 제임스는 카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떨떠름하게 느낀다. 제임스는 루시와의 관계를 힘겨워한다. 카라는 빌딩에서 터지는 폭탄 테러를 감지하고 날아가서 무너지는 빌딩을 떠받치고 화재를 끄는데, 수수께끼의 무인기가 카라를 관찰하고 있었다.
알렉스는 폭탄의 잔해를 보고, 로드 테크닉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그리고 행크와 함께 FBI로서 로드를 추적하기로 한다. 알렉스는 카라에게 제임스와의 관계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는데, 그 때 캣 그랜트의 전화가 걸려와서 엄청 서둘러서 카터를 데리러 간다. 카터는 굉장히 수줍은 아이였다.
행크와 알렉스는 맥스웰 로드를 추궁하지만 맥스웰은 관계를 부인한다. 카터는 슈퍼걸 뉴스를 보자 엄청나게 흥분하여 슈퍼걸의 팬심을 드러낸다. 카라는 제임스와 대화를 하는데 루시 레인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매우 떨떠름한 상황에 놓인다.
공항이냐 열차냐 하는 상황에서 카라는 윈의 말을 믿고 열차로 향한다. 카라는 열차에 나타나서 카터와 맥스웰에게 승객들을 대피시키라고 부탁한다.
제임스는 공항에서 루시와 재회하여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행크는 알렉스를 내보내고 혼자서 폭탄을 상대한다. 카라는 에단을 쫓아가는데 에단은 폭탄을 몸에 두르고 고도계가 장착되어 있어 열차를 벗어나면 폭발한다고 외친다.
알렉스와 카라는 이 사건의 수상함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카라는 카터를 방치해두고 있었다는걸 깨닫는다. 카터는 슈퍼걸을 만난 경험을 그랜트에게 열렬하게 말하는데, 그랜트는 카라가 방치했다는걸 알고 다시는 안 맡길 것이라고 단언한다.
제임스는 루시와 다시 맺어졌고 카라는 상심한다. 카라는 맥스웰 로드의 인터뷰를 보고 수상함을 느끼고, 윈에게 조사를 해보라고 한 다음 맥스웰 로드가 에단의 딸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다는걸 알려준다. 카라는 맥스웰 로드를 찾아가서 추궁하고 맥스웰 로드는 자신이 카라를 감시하고 있었다는걸 밝힌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11회 일치
카라는 힘의 근원이 되는 지구의 노란 태양 에너지 방사능을 레드 토네이도와의 싸움에서 크게 소진하여, 힘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다. 알렉스는 행크를 불신하고 조사해보려고 한다. 힘을 잃어버린 카라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도 걸려버린다. 그랜트는 세균이 퍼진다고 호들갑을 떨며 카라를 휴직시킨다. 행크는 사이킥을 사용하는 외계인 젬을 심문하는데, 젬은 행크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네가 사랑하는 자들을 죽이겠다는 말도 한다. 행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젠 없다는 말을 내뱉는다.
카라와 제임스는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난다. 제임스는 차에 치일 뻔한 카라를 구해주지만 카라는 땅에 부딪쳐서 팔이 부러지고 만다. 아픔을 느낀 카라는 굉장히 괴로워한다. DEO 기지는 젬이 탈출하여 봉쇄된다. 행크는 정신파 차단기를 가지고 젬을 막으려 하지만, 알렉스는 행크의 조치에 의구심을 느낀다.
행크와 두 요원이 추적을 하는데, 행크가 모습을 감추고 두 요원이 젬이 사방에 있다면서 서로 총질을 하다가 사망한다.
카라와 제임스는 맥스웰을 찾아가는데, 맥스는 슈퍼맨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면서 레드 토네이도와의 전투로 소모가 된 상태일 거라고 정확하게 추정한다. 그리고 능력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알렉스는 젬을 상대하러 나가려 하는데, 행크가 돌아와서 알렉스는 상황실에 있으라고 하고 젬을 상대하러 혼자서 다시 떠난다.
알렉스는 행크와 마주친다. 젬은 DEO에 갇힌 죄수들을 풀어서 지상으로 나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총을 겨누면서 무기를 버리라고 한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추궁하고, 수갑을 채운 다음 젬과 싸우러 간다.
카라는 제임스가 찍은 폭도들을 설득하여 진압하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제임스는 영웅이 되는데 능력만은 필요없다고 한다. 윈은 DEO의 슈퍼맨에 대한 파일을 가져와서, 능력이 되돌아올 거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카라와 제임스와의 연애 문제에 대해서 말다툼을 벌이는데…. 그 때 가스 폭발이 일어나고 윗층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카라는 갑자기 나타난 아스트라와 클립토니안들에게 붙잡힌다.
- 스틸오션/영국 . . . . 11회 일치
>A/B-클래스 구축함의 설계는 영국 구축함사(史)의 이정표다. 소해임무에 중점을 둔 A-클래스와 대잠임무에 중점을 둔 B-클래스의 가장 큰 개선점은 파슨즈 기어드 증기 터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A/B-클래스 구축함은 활동적이었다. 1940년, 여섯척의 A/B-클래스가 노르웨이 전역에 참전해 훌룡한 성과를 거뒀다. 코드링턴(Codrington)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에 참가해 네덜란드 왕가를 구출했다. 아카스타(Acasta)와 아던트(Ardent)는 항공모함 글로리어스(Glorious)를 호위하던 중 독일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를 격침시켰지만 독일군 어뢰에 피해를 입었다. 대서양 전역에서 불독(Bulldog)은 독일 잠수함 U-110을 나포해 처음으로 에니그마 암호 작성기를 확보하였다. A/B급에 의해 U-110외에도 7척의 주축군 잠수함이 최후를 맞았다.
>Q-클래스는 전시비상계획 구축함의 한 함급이다. Q-클래스와 R-클래스는 보다 큰 선체와 사각형 함미를 채용하였다. 이 함급의 대공포에는 4연장 2파운드 대공포 "폼폼포"와 오렐리콘 대공포가 포함되어 있었다. Q-클래스와 R-클래스의 순항거리는 약 6,000해리였다.
>HMS Argus는 일반적인 항공모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최초의 왕립해군 소속 항공모함이었다. 원래는 콘테로소(Conte Rosso)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1918년 9월, 콘테로소는 갑판 전체에 비행갑판을 두르고 Argus로 명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반기에 Argus는 독일 함대의 공습을 받았다. 전간기에는 느린 속도로 인해 훈련 임무에만 머물러 있어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HMS Argus는 몰타와 지브롤터에 보급품을 보내는 하푼 작전(Operation Harpoon) 동안 H 기동부대의 항공 지원을 맡았다. 1942년, Argus는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에서 항공 지원을 맡았다. 이 함선은 주로 훈련용으로 사용되다가 1946년 퇴역했다.
>HMS 유니콘은 정비실이 설치된 항공기 수리함 겸 경항공모함이었다. 1943년 3월에 건조된 후, 대잠임무와 훈련임무에 주력해왔다. 1943년 12월, HMS 유니콘과 다른 호위항모 4척으로 구성된 V기동함대는 아발란체 작전(Operation Avalanche)에 투입되었다. 1944년, 태평양으로 보내져 MONAB(Mobile Naval Air Bases)의 창설을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잠시 예비역으로 있다 싱가포르에 배치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기 수송과 영연방 항모 보급 임무를 맡았다. 1953년에는 북한 해안에서 포격 당하기도 했다. 1959년 6월 퇴역하여 해체되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이후, 영국은 두척의 대형 경순양함 HMS 뱅가드(HMS Vanguard)와 HMS 커레이져스(HMS Courageous)를 항공모함으로 개장시켰다. 이는 1920년대 있었던 HMS 퓨리어스(HMS Furious)의 개장에 기반을 두고있었다. 우현에 연돌을 추가한 두 선박은 당시에는 최신 항공모함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한 후, HMS 커레이져스는 아일랜드 해안 초계 중 독일 U-보트 U-29에게 공격받았다. 어뢰 두개가 좌현에 명중했고, 커레이져스는 침몰했다. 글로리어스(Glorious)는 그라프슈페(Graf Spee) 수색을 위해 지중해에 파견되었다. 1940년 4월에는 노르웨이 해전을 도왔다. 1940년 6월 8일, 나르비크에서 귀환하던 중 독일 순양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에게 격침되었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1회 일치
반정부적인 성항을 가진 작가와 그 아내. 집에 쳐들어온 알렉스 일당에게 남편이 구타당해 쓰러지고 아내는 윤간당한다. 이로인해 아내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남편은 보호자가 필요한 몸이 되었다.
알렉스 드라지는 구제불능의 불량배다. 그는 동료인 딤, 조지, 피트와 함께 주정뱅이를 린치하고, 난폭운전을 하며 우왕자왕하는 차를 보며 즐거워하고, 늙은 작가 부부를 속이고 집에 들어와 폭행과 윤간을 저지른다.
어느날, 알렉스는 자신의 동료들이 자신의 뒷통수를 치려고 한다는걸 깨닫고 그들을 후려팬다. 그 직후 동료들을 데리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여인의 집에 침입한다. 처음에는 작가 부부처럼 속이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여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알렉스 혼자 집에 침입한다. 알렉스는 여인과의 몸싸움 끝에 여인을 죽이고 만다. 그는 집 앞에서 대기하던 동료들과 도망치려고 했지만, 동료들이 우유가 담긴 유리병으로 알렉스의 얼굴을 후려치고 도망가버려 경찰에 체포,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교도소에 들어간 알렉스는 목사와 친해지게 된다. 알렉스는 목사에게 간청해 죄수들 간의 소문으로 "지원하면 교도소에서 나갈 수 있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되는" 비밀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루드비코 요법을 마친 알렉스는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하지만 알렉스의 방은 다른 누군가가 차지한 상태였고, 알렉스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부모님이 팔아치운 상태였다. 알렉스는 집에서 나와 떠돌다가 한 주정뱅이를 만난다. 알렉스와 동료들이 린치했던 주정뱅이였다. 알렉스는 주정뱅이와 그 동료들에게 구타당하고 소지품을 빼앗겼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관들은 과거 그의 부하이던 딤과 조지였다. 결국 알렉스는 그들에게 물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 일은 크나큰 파장을 불러온다. 정부는 혼수상태에 빠진 알렉스의 루드비코 요법을 치료한다. 그러고는 깨어난 알렉스에게 정부의 편을 들 것을 권하며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오디오를 선물한다. 기자들이 병실로 몰려들어와 정부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 알렉스의 사진을 찍는 와중, 알렉스는 섹스를 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독백한다.
- 식극의 소마/186화 . . . . 11회 일치
* 도지마 긴은 하야마 아키라와 소마의 대결을 "자칫하면 자폭할게 뻔한 줄다리기"라 비유한다.
* 하야마는 본요리가 끝나기 전에 베르타와 쉴라에게 소스맛을 살짝 보여주는데 승천할 것 같은 리액션이 나온다.
* 같은 시각 타도코로 메구미와 알디니 타쿠미는 코바야시 린도를 상대로 시험에 들어간다.
* 베르타와 실라는 쿠가 테루노리와 티격태격하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금방 친해져서 노닥거리는데, 막상 대결이 시작되자 대결의 긴장감에 끌려가 조용히 관전 중.
* 도지마는 하야마 아키라와 소마의 대결이 "자칙하면 자폭할게 뻔한 줄다리기"라 평하는데 맛과 향의 줄다기리에 있어선 하야마 아키라가 한수 위라고 평한다.
* 베르타와 실라는 하야마가 쓰는 향신료에서 "노송나무 향기"를 포착하는데 쿠가는 그걸 "주니에브르"라고 말한다.
* 하야마가 만든 그레이비 소스는 통사오가는 다른 복잡하고 입체적인 향을 자랑하는데 베르타와 실라는 여기에 매료된다.
* 무엇보다 곰고기의 중후한 야성미와 노간주열매의 향이 혀를 자극하는데, 그 맛을 "야생동물 고기의 거친 맛이 누구나 반할 만큼 매혹적인 향으로 조교됐다"고 평한다.
* 에리나는 잠시 야간열차에서 소마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린다.
* 하야마의 요리에 사로잡혀 있던 베르타와 실라가 눈을 빛내며 흥미를 보이고 현장에 있던 모든 관계자가 주시한다.
- 식극의 소마/199화 . . . . 11회 일치
*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도지마의 이야기를 듣고 분기탱천해서 아자미 정권 타도를 외친다.
* 늦은 시각 죠이치로와 도지마는 갑작스러운 공지를 하는데, 그들의 특훈 메뉴다.
* 아자미의 대두와 토오츠키의 위기는 도지마 긴이 사전에 감지한 바였다. 그는 죠이치로에게 이런 사실을 상담했으며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죠이치로임에 의견이 일치했다. 두 사람은 그런 야망이 이루어지도록 둘 수 없다고 보고 만약 아자미가 내세운 명분의 발단인 죠이치로가 자신을 걸고 식극을 청하면 반드시 넘어올 거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이러한 합의에 대해서 각각 털어놓고 있다. 죠이치로는 아들 [[유키히라 소마]]에게 상관도 없는 그들 세대의 승부를 이용하게 된 점을 사과한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문득 소마를 쳐다보니, 코방울까지 달고 신나게 졸고 있다. 물론 아들에게 "적당히 흘려들어라"곤 했지만 너무 흘려들어 버렸다. 그래도 핵심은 전달됐다. 소마는 자기 아버지가 아자미에게 지독한 짓을 한게 원인이지 않나 우려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소마는 그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 죠이치로는 도지마도 다른 애들에게 이런 사연을 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였다. 도지마는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에게 죠이치로가 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 죠이치로와 똑같이 그들 세대를 얽혀들게 한 사과를 한다.
하지만 타쿠미 쪽에서 단호한 태도로 사과를 거절한다. 오히려 이들의 작전이 없었다면 이번 식극이 성립하지도 않았을 테니 도움을 받은 거라며 말이다. 타쿠미는 타도코로와 함께 아자미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타도코로도 여느 때와 다르게 적극적인 태도로 동참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참을 인자를 손바닥에 새기는게 영 불안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은 계속된다.
* 그때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나머지 일행이 우르르 몰려온다. 죠이치로는 훈련에 대한 공지사항이 있다며 가볍게 말하는데 도지마는 "그렇게 가볍게 할 말이 아니다"라며 버럭한다. 학생 때랑 달라진게 없는 모습이다. 에리나는 이들이 왜 티격태격하는지, 자신이 혼자 있는 사이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사실 같이 있던 타쿠미와 타도코로도 애들처럼 구는 어른들 모습에 기가 질려하고 있다. 소마만 낄낄거리며 즐기고 있다.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11회 일치
피해자는 이시카와 현(石川県) 카나자와 시(金沢市)에 거주하는 회사원 데무라 유우키(出村裕樹,23)와 사무원 리사(里沙,23) 부부. 사건 현장은 이시카와 현 카호쿠 시(かほく市 오오사키(大崎)에 있는 오오사키 해안(大崎海岸).
구멍은 사방 2.4미터, 깊이 2.5미터 정도 되는 크기였다. 구멍 아래에는 떨어질 때의 충격을 대비하여 매트리스를 깔아두었다. 리사와 친구들은 이 구멍 위에 파란 비닐 시트를 덮고 모래를 뿌려서 위장했다.
데무라 부부는 머리부터 추락. 그런데 공교롭게도 시트에 뿌려둔 모래 만이 아니라 구멍 주위도 무너져서 대량의 모래에 묻혀버렸다. 부부가 떨어질 때 비명을 듣고 유우키가 함정에 빠지는걸 기다리고 있었던 리사의 친구들이 달려왔으나, 역시 해안이 어두워서 발견에 시간이 걸렸고 발견했을 때 이 부부는 구멍 바닥에서 모래에 묻혀 발만 모래 밖으로 나와있는 상태였다. 부부는 모래에 묻혀 질식사 하고 말았다.
2011년 12월 중과실 치사 및 해안법 위반 혐의로 아내와 친구 6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카나자와 지검은 12년 1월 아내를 피의자 사망으로 불기소, 친구 6명은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불행한 사망자 데무라 유우키의 부모는, 아내 리사의 부모와 구멍을 파는걸 도왔던 친구들 총 8인에게 약 9100만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여 민사소송을 했다. 2014년 카나자와 지방재판소가 청구의 일부를 인정하여 8명에게 4133만엔의 지불을 명령했다.
판결에서는 발안자였던 아내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인정하고, 아내의 부모가 1030만엔을 지불하며, 나머지 3100만엔은 부모와 친구 6인이 연대하여 지불하게 했다. 다만 친구들도 구두 변론에서 부부가 장난을 치다가 함께 떨어졌다는 증언을 하여, 남편도 구멍의 존재를 인식하고 스스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남편의 과실도 40%로 인정했다.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11회 일치
블라즈코윅즈의 동료. 스코틀랜드 고지대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어렵게 살아와서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16세 때 부터 글래스고 조선소에서 일했으나 30년대 일어난 경제 공황으로 정리해고 당했다고. 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 기술자로써의 훈련을 받았다.
* 프롭스트 와이엇 3세
블라즈코윅즈를 보살피던 정신병원의 수간호사. 블라즈코윅즈와 함께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폴란드 출신으로, 의사와 지식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고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전쟁 때문에 고고학을 배우는걸 그만두고 가업인 정신병원 운영을 돕게 되었다.
크라이슬라우 서클의 단원. 독일인. 어깨에 하켄크로이츠 문신이 있어 블라즈코윅즈와 만나는 즉시 공격당했다. 한때는 골수 나치로, 독일 육군 장교였지만 아들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바람에 가족이 비밀 경찰에게 몰살당했다.
크라이슬라우 서클의 단원. 잉글랜드 출신으로 런던 남동부에서 빵집을 운영했었다. 빵집이 폭격당한 다음주 영국군에게 징집되었다. 영국이 항복한 후 런던에 돌아와보니 아내는 죽어있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 어린시절을 가난과 아동학대속에서 지났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켈러의 아버지는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그러자 켈러는 지역 친위대 사무소에 들어가 아버지가 레지스탕스와 연관되었다고 제보, 자신의 가족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고 데스헤드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켈러는 데스헤드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다.
1946년 돌격소총의 강화형. 장탄수와 연사력이 향상되었다. 중거리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데 적합하다. 총열 밑에 로켓발사기를 부착할 수 있다.
중장갑을 입고 자동산탄총으로 무장한 정예병. 폭동 진압 간수와 달리 파쇄탄을 사용한다. 등 뒤에 달린 육각기둥형 탱크를 공격해 터뜨릴 수 있다. 가끔씩 자동산탄총을 두정 들고 나오는 놈들도 있다.
나치 독일의 거대 로봇. 런던의 평화를 유지하는 임무를 맡고있다. 레이저포와 미사일 발사기로 무장했으며 다리 밑으로 접근하는 적은 화염방사기와 기관총으로 상대한다. 런던 지역에서 활동하던 영국계 레지스탕스가 이 로봇에 의해 괴멸당했다.
- 원피스/838화 . . . . 11회 일치
* 쵸파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캐럿에서 자신을 "오빠"라 부르라 요구한다. 캐럿은 쵸파와 오빠를 합성한 "쵸빠"란 단어를 만든다.
* 페드로와 브룩은 마을에 돌아다니는 "비스킷병사" 안에 숨어들어 빅맘의 섬으로 잠입하려 한다.
* 그리고 제르마 왕국의 두 왕자 이치디와 니디가 도착한다.
* 크래커는 다시 일어나 루피와 맞부딪힌다.
* 가짜와 전혀 다른 인상이며 커다란 검을 휘두른다.
* 나무들은 "루피와 크래커가 싸우는 걸 보고 와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둘의 위압 때문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다고 징징댄다.
* 브릴뤠의 "미러월드" 안에서는 쵸파와 캐럿이 대화 중.
* 캐럿은 쵸파와 오빠를 합친 "쵸빠"라는 요상한 호칭을 만들어낸다.
* 도시에 잠입해 있던 페드로와 브룩은 마을을 순찰하던 비스킷병 안에 숨어드는데 성공한다.
* 제르마 왕국의 두 왕좌, 빈스모크 이치디(스파킹 레드)와 빈스모크 니디(전격 블루) 등장.
- 원피스/847화 . . . . 11회 일치
[[원피스]] 847화. '''루피와 빅맘'''
* [[쵸파]]와 [[캐럿]]은 [[샬롯 브륄레]]에게 사로잡힌다. 캐럿을 잡아먹힐 위기. 하지만 이건 탈출 작전이다.
* 뭍잡힌 [[몽키 D. 루피]]와 [[나미]]는 몬도르의 책에 갖혀 있다. 빅맘은 전보 벌래로 대화하며 조롱하고 다과회를 방해하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엄포놓는다.
* 한편 [[상디]]는 그저 일행이 무사하기만을 빌고 [[페드로]]와 [[브룩]]은 [[타마고 남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 미러월드 안에 있는 샬롯 브륄레의 집. 캐럿과 쵸파는 결국 잡혔다. 브륄레는 캐럿을 토끼 수프로 만들려고 한다. 언제 들어온 건지 학기사 랜돌프와 유혹의 숲에 있던 악어도 동석. 악어는 본래 자신은 인간은 먹지 않지만 밍크족은 어찌어찌 될 거 같다며 식사를 고대하고 있다. 쵸파가 진자 토끼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항변하자 악어가 망설이는데, 브륄레는 쵸파더러 빅맘의 "컬랙션"에 들어갈 거라며 입다물고 있으라고 조롱한다.
인간까지 컬렉션으로 책 속에 보관하는 모습에 그 비정한 빈스모크의 형제들 조차도 인상을 찡그린다. 빈스모크 저지는 자신이 이곳에 와서 다양한 종족과 생물을 봤지만 딱 하나 "거인족"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 그러자 한순간이지만 빅맘이 발끈해서 인상을 구긴다. 하지만 곧 안색을 바꾸며 "어쩌다 보지 못했을 것"이라 얼버무린다.
* 때마침 빅맘의 아들이 밀집모자 일당 두 명을 연행해왔다고 보고한다. 빅맘은 오늘은 바쁘다며 빈스모크 일가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뜬다. 그런데 보고하러 온 아들이 안절부절못하는 태도가 이상해서 왜그러냐고 묻는데, 알고 보니 아들은 제르마66, 그 중에서도 이치디와 레이쥬의 광적인 팬이었다. 팬심으로 흥분하고 있었던 것. 빅맘은 한심하다고 핀잔하며 "필요한건 겉모습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 [[몽키 D. 루피]]와 [[나미]]는 몬도르의 책 속에 갇혀 있다. 이곳은 "죄수 도서실". 몬도르의 능력을 이용한 감옥이다. 컬랙션용과 달리 책의 페이지는 감옥처럼 되어 있고 그 안에 루피와 나미가 잡혀있다. 그들을 잡아온 빅맘의 군단이 페이지를 넘겨 샬롯가 장남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루피와 나미를 보여준다. 나미는 비교적 기운이 넘쳐서 물엿비에 젖어서 끈적거리니 샤워실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페로스페로는 나미가 마음에 들었는지 추파를 던진다.
* 나미는 기가막혀 하며 자신을 도와주었던 로라의 우정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내볼 틈도 없이 빅맘이 속사포처럼 분노를 쏟아낸다.
- 원피스/850화 . . . . 11회 일치
*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은 [[몽키 D. 루피]] 일행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나 미러 월드의 거울이 워낙 많이 난항 중. [[샬롯 브륄레]]는 아직도 기절.
* 그와 [[나미(원피스)||나미]]에게 푸딩이 귓속말로 한 말은 이렇다.
* 스위트 시티에선 거울 속에서 유령이 나타나는 괴현상이 발생해 시민들을 놀래킨다. 유령의 정체는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 [[몽키 D. 루피]] 일행을 찾아 미러월드의 거울들을 둘러보고 있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과거 페드로가 이 섬에 방문했을 땐 단짝 "제포"와 함께였다. 제포는 곰 수인. [[페콤즈]]는 페드로와 제포를 형님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후 둘은 빅맘의 보물전을 공략하는 작전을 펼치다 발각, 빅맘 [[샬롯 링링]]의 처벌을 받게 된다.
* 타마고 남작의 "레그 베네딕트"가 페드로의 안면에 작렬한다. 타마고 남작은 친구와 50년치 삶을 빼앗은 악몽의 섬으로 돌아온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페드로는 루피 일행은 고향 "조우"의 은인이며 그들이 이 세계에 "여명"을 가져올 자들이라 말한다.
그녀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데, 그 상대는 상디의 누나 [[빈스모크 레이쥬]]였다. 레이쥬는 분명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상태였는데.
연기를 끝낸 그녀는 세 번째 눈을 번뜩이며, 루피와 나미를 조롱해댄다. 루피는 그녀가 처음부터 그들을 속일 생각이었음을 깨닫고 대체 상디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 이런 짓을 하느냐고 소리친다.
* 레이쥬는 쇼파에 묶여 있는 채로 폭언을 듣고 있다. 잠자코 있는 듯 하지만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뭔가 흘러내리는 듯 한데? 눈치채지 못한 푸딩은 빅맘이 제르마의 "클론병단"과 "과학력"을 노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빈스모크 일가와 손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그들은 반항적이라 도저히 말을 듣게 할 수 없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제르마는 그 영토를 포함해 "모든 것"이 빅맘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푸딩은 이들을 "정략결혼이란 달디단 과자에 꼬여든 파리"라고 빈정거린다.
이번화에서 페드로와 타마고 남작의 정확한 현상금이 공개됐다. 페드로는 3억 8700베리. 타마고남작은 4억 2900만 베리. 타마고 남작은 정확한 직함도 공개. "빅맘 해적단 '''나이트''' 전투원".
- 원피스/868화 . . . . 11회 일치
* 마침내 KX런처의 탄두가 빅맘에게 발사되나 빅맘의 분노가 내뿜는 패기와 풍압이 너무 강해 탄두가 도달하기도 전에 공중에서 폭발해 버린다.
* 작전이 실패하고 [[시저 크라운]]이 탈출용 거울을 준비하나 역시 빅맘의 패기와 풍압 때문에 깨지고 퇴로가 차단된다.
* 빅맘은 몰랐지만 그 사건엔 목격자가 있었고 그것도 둘 씩이나 됐다. 그들은 빅맘도 인식하지 못한 부분까지 모든 걸 목격했다. 우선 한 사람은 엘바프의 전사. 그는 양의 집과 카르멜이 신경 쓰여서 보러오던 길에 그 사건을 목격했다. 그 터무니없는 광경이라니. 그는 차마 양의 집에 와보지도 못하고 그 길로 섬을 떠났다. 엘바프로 돌아간 그는 사건의 전모를 전파했고 [[원피스/867화|이전의 사건]]에 더해서 빅맘은 거인족들에겐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존재로 낙인 찍혔다.
* 또 한 사람은 그 섬에서 살던 요리사였다. 은퇴한 해적이었던 [[슈트로이젠]]. [[샬롯 푸딩]]의 [[원피스/858화|웨딩케이크]]를 만든 그 요리장이다. 그도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재미있는 사건"으로 여기며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쿡쿡 열매"의 능력자. 이 세상 만물을 모두 식재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난 능력자였다. 그는 나무토막을 생햄으로 만들어 먹으며 이 재미있는 사건을 일으킨 "괴물"에 대해 생각했다. 본 적도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굶어 죽겠지. 슈트로이젠은 그 힘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망친 엘바프 전사와는 달리 링링에게 다가갔다. "꿈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 그에게 링링은 경계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슈트로이젠은 "너의 마더가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겠다"는 말로 구슬렸고 이 만남이 훗날 빅맘 해적단의 토대가 되었다.
* 빅맘이 추억하는 카르멜의 기억. 그저 연극이고 위선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는 좋은 보호자였다. 카르멜은 항상 "종족끼리 차별이 없고 다들 같은 눈높이에서 살 수 있는 나라"에 대해 말했고, 양의 집을 세운 그 섬에 그런 "꿈의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비록 어렸던 빅맘은 그 뜻을 "다들 나처럼 덩치가 커진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엘바프의 섬 시절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닌 착각이었다. 좌우간 카르멜은 이런 나라를 이야기하고, 이런 나라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 찰 거라고 가르쳤다. 그건 곧 링링의 꿈으로 이어졌다.
>달콤한 과자를 가져와! 그러면 약속해줄게!
>"평화"와! "꿈의 나라"를!
날카로운 바늘이 번뜩이는 탄두가 그녀에게 향할 때, 빅맘의 울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녀가 뿜어내던 패기와 풍압도 최고조에 달했다. 그 어마어마한 압력이 탄두가 미처 목표에 명중하기도 전에 폭발시켜 버렸다. 아연실색하는 벳지와 부하들.
상황이 바뀌었다. 빅맘의 무방비, 절규가 한계를 넘었지만 전화위복.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가 이 교착 상태를 끝내고자 수를 쓴다. 그는 자신의 모치모치 능력을 이용해서 떡으로 만든 임시 귀마개를 만든다. 이걸 형제들 쪽으로 굴려보낸다. 벳지와 밀집모자 일당이 경악 속에서 굳어버린 동안 형제들 전원이 떡 귀마개를 나눠가진다. 연합군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벳지. 그는 작전 실패를 선언하고 바로 내뺀다.
* 본 에피소드는 이전 에피소드에서 나온 설을 확정시켜줬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정면에서 알려주지는 않았으나 이전 화에서 나온 정보와 본 화수에서 나온 정보를 합쳐보면... 한편 그냥 이렇다고 알려주지 않은 것은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우회한 듯 하다.
- 원피스/871화 . . . . 11회 일치
* 아버지가 당하자 니디와 욘디는 시저의 호위를 팽개치고 아버지에게 달려가는데, 이때 [[샬롯 카타쿠리]]가 시저를 잡으러 온다.
* 빅맘 [[샬롯 링링]] 암살작전 대실패. 해적동맹이 퇴각하기 시작한다. 빈스모크 일가가 호위하는 동안 일행 전원이 [[카포네 갱 벳지]]의 체내에 탑승, [[시저 클라운]]이 하늘로 날아 도망치는 퇴각작전. 그러나 적들의 추격기세가 무섭고 [[몽키 D. 루피]]와 [[상디]]가 [[빈스모크 레이쥬]]의 위기를 보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등 넘어야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문제는 그 옥갑이다. 루 펠드는 저격으로 확실히 죽은 것 같지만 위치가 좋지 않았다. 그 비대한 몸이 쓰러지면서 옥갑을 떠밀었다. 모건즈와 스튜시가 눈치챘을 땐, 옥갑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 빅맘과 전면전은 계획에 없던 일. 그러나 레이쥬가 당할 것 같자 상디와 루피가 앞뒤 없이 뛰쳐나갔다. 그걸로 레이쥬를 구했으니 다시 퇴각 대열에 합류해야 할 일. 그러나 깔끔하게 돌아선 상디와 달리 루피는 돌아가려 하질 않아 억지로 끌고 가고 있다. 빅맘의 도발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인섬 때와 죄수도서관 때의 일을 운운하며 "너를 날려주마! 마지막에 이기는 건 우리다!"고 떠든 주제에 도망치는 거냐며 "겁쟁이"라고 조롱했다. 상디가 저런 뻔한 도발에 응하지 말라고 타이름 반, 꾸짖음 반으로 설득했지만 루피는 성미를 누르지 못하고 상디의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 "한 방만!"이라 약속하고 빅맘에게 달려든다.
루피가 기어4로 주먹을 날리자 빅맘도 팔에 무장색 패기를 둘러 맞부딪힌다. 패기와 패기의 격돌. 그 여파로 주위를 번잡스럽게 하던 샬롯가의 조무라기들이 쓸려간다. 루피는 약속대로 딱 한 방만 주먹을 날린 뒤 상디에게 회수된다. 어차피 저 한 방에 기어4의 힘을 다 써버려 늘어진 상태다. 레이쥬가 이들의 호위로 따라붙는다.
오른손으로 저지를 낚아챈 빅맘이 왼팔로 "제우스"를 집어들고 내리친다. "뇌정". 마치 벼락을 두른 망치처럼 내리꽂힌다. 저지가 쓰러지면서 투구가 산산조각 난다. 레이쥬나 욘디, 니디가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다. 욘디와 니디는 시저를 호위하던 것도 내팽개치고 저지의 곁으로 달려온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이치디는 아직 시저를 버리지 않았다. 그가 스파킹 피거로 카라쿠리를 꿰뚫고 시저를 보낸다. 벳지의 내부는 다시 한 번 환호와 응원으로 떠들썩하다.
* 이치디가 카타쿠리에게 생포. 루피 일행은 [[샬롯 스무디]]와 [[샬롯 다이후쿠]]에게 제압됐다. 저지는 정신을 잃었고 욘디와 니디는 빅맘의 손아귀에 인형처럼 붙들려 있다. 전부 당했다. 벳지 조차도 "여기까진가"라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징베]] 등은 이렇게 된 바엔 자신들도 싸우러 나서겠다고 하지만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빅맘은 이미 승리를 확정하고 일행을 처분하려 한다.
- 원피스/879화 . . . . 11회 일치
* [[샬롯 시폰]]과 [[샬롯 로라]]의 아버지 "파운드"는 바다에 나와 있다. 우연히 상공을 날아가는 시폰을 발견하고 소리치지만 그대로 엇갈린다.
* 미러월드에선 퇴로를 막은 [[몽키 D. 루피]]가 빅맘 해적단과 [[샬롯 카타쿠리]]와 대치 중.
* 카타쿠리와 루피가 1 대 1로 정면승부를 벌이나, 카타쿠리는 루피의 필살기를 그대로 흉내내거나 더 강력한 기술을 사용해서 농락한다.
미러월드에서 [[샬롯 카타쿠리]]와 일기토 중.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카타쿠리가 모치모치 열매 능력이 고무고무 열매의 상위호환이라 주장하며 루피가 쓰는 기술을 배껴서 더 강력하게 어레인지해서 사용하는데 전혀 대응을 못하는 중. 카타쿠리는 미래예지 가능한 견문색 패기까지 갖췄기에 전혀 사각이 없고 유효타 한 번 맞추질 못한다. "레드 호크 개틀링"이나 "호크 스탬프" 같은 기술이 전혀 통하지 않다 "엘리펀트 건"으로 공격하는데 이마저도 카타쿠리가 훨씬 크고 아름다운 스케일의 엘리펀트 건으로 부딪혀온다. 힘과 스피드, 기술에서 조차 완전히 밀리면서 그대로 처맞고 천장에 처박힌다.
써니호의 키잡이로 흔들림없이 일하는 중. [[밀집모자 일당]]이 해안을 빠져나오고도 페드로의 희생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자 강하게 질타해 정신을 차리게 한다. [[브룩]]에게 가장 페드로와 친했으면서 매정하다고 항의받기도 했지만 정말로 페드로를 희생시킨게 아무렇지 않아서 그런건 아니었다. 페드로가 일행을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희생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가 만들어준 기회를 헛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페드로와 개인적인 추억도 많았던 만큼 쉽게 충격을 떨쳐내지 못한다. 일행이 작업에 복귀한 뒤에도 쉽게 울음을 그치진 못했지만 망루로 올라가 경계를 서면서 할 일을 다 한다. 그런데 경계에 들어가자 마자 빅맘이 함대를 끌고 '''바다를 걸어서''' 오는 것을 목격하고 경악한다. 그게 [[샬롯 페로스페로]]의 짓인걸 알고는 분한 듯이 이를 간다.
츤데레 증상이 갈수록 심해져서 상디랑 같이 앉아있지도 못하게 됐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상디와 앉아 있으면 "부부 사이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상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사악한 얼굴과 뿅간 얼굴을 오가며 바쁜 츤데레 활동에 여념이 없다. 양탄자 밑에 몸을 말고 숨어있는 중. 이동 중에 시폰이 밝히기론 로라가 사라진 뒤 초콜릿 대신 자리가 비었고 푸딩이 후임이 돼야 했지만 푸딩의 의사로 무산되었음이 밝혀진다. 푸딩은 로라야 말로 진짜 초콜릿 대신 자격이 있고 언젠가는 돌아올 거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
무슨 일인지 바다로 나와있다. 배로 이동 중. 그런데 상공으로 시폰을 태운 양탄자가 날아가는 걸 보고 딸을 알아본다. 파운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딸의 이름을 불러보는데, 시폰 일행은 바쁜 탓에 모르고 지나쳐간다.
모치모치 열매가 고무고무 열매에 상하드립이 가능한지 여부는 논란 중. 일단 자연계라고 나왔기 때문에 방어적인 면에선 고무고무를 월등히 능가하는게 맞다. 하지만 고무처럼 탄력을 이용한 공격이나 기어 4 바운스 맨 같은 기술을 따라할 수 있는지는 의문. 애초에 모치모치 열매는 떡처럼 늘어지고 달라붙는 능력을 컨셉으로 한 듯 한데 이제와서 고무능력과 동류라고 주장하는게 무리수라는 주장도 있다.
카타쿠리가 루피를 너무 압도하면서 다시 밸런스 붕괴 논란도 생겼다. 현재의 루피는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와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최소 칠무해급으로 평가되는데 그 루피가 빅맘의 삼장성에게 확연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황이 거느린 간부급이 칠무해 이상의 실력자인 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흰수염 해적단의 [[죠즈]]나 [[마르코(원피스)|마르코]], [[에이스(원피스)|에이스]] 등도 칠무해와 비슷한 등급이긴 했지만 그 이상이라고 평가되지는 않았다. 빅맘 자체의 강함도 흰수염을 능가하는 걸로 묘사되기 때문에 사황과 칠무해, 해군간의 밸런스는 물론 사황 안에서의 밸런스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 윤휘 . . . . 11회 일치
'''윤휘'''(尹暉, [[1571년]] - [[1644년]])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조선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 [[조선 인조]]를 도와 적진인 [[청나라]] 진영을 왕래, 교섭하며 설득과 화의를 추진하였고,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과거 급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쳐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에 관련, 삭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18년 동지겸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이 [[명나라]]에 구원군을 보낼 때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을 지지했다가 [[인조반정]] 직후 파면되었다. [[1626년]] 복관되고, 성주목사, 청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어가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고, 주화론에 참여하여 [[조선]]측 대표로 [[청나라]]군과의 사이를 오가며 타협을 주관,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윤휘는 [[1577년]](선조 11년) [[의정부]][[영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 황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용]]으로 [[증직|증]] [[좌찬성]]에 추증된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증직|증]] [[의정부]][[영의정]] [[윤변]](尹忭)이다. [[윤근수]]는 그의 숙부였고, [[윤방]], [[윤흔]]은 그의 형이며, [[윤훤]]은 그의 동생이었다. 일찍이 우계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해 [[동부승지]]를 거쳐 [[정유재란]] 종전 후에도 [[조선]]에 주둔하던 [[명나라]][[군대]]의 철군 문제를 교섭, 타결시켰다. 이어 [[의인왕후]]의 장지 문제 선정에 참여하고 [[명나라]]의 전몰 장병 위문을 주관하였으며, [[우부승지]]가 되었다. 이후 아버지 [[윤두수]]가 [[이홍로]]의 탄핵으로 [[홍원군]]으로 유배되자, 이홍로의 친지들과 친하게 지냈던 그는 이후 이홍로와 관련된 사람들과 절교하였다.
[[1613년]](광해군 5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직 중 지역 유림들의 [[조목]]의 [[월천서원]] 배향 건의를 받아들여 시행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형 [[윤흔]]의 첩 서씨의 남동생 서양갑과 관련, 연좌되어 벼슬에서 쫓겨났고, [[서양갑]]에게 군관 직위와 월급을 준 일이 문제되어 양사의 공격을 당하다가 뒤에 다시 기용되었고, [[인목대비]] 폐모론 때는 불참하였다.
한편 [[광해군]]이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외교를 펼칠 때, [[강홍립]], 임연(任兗) 등과 함께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적극 지지하였다.
[[1618년]](광해군 11년) [[5월]]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 겸 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여 체차되었으나 다시 성절사로 임명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이 기간 중 [[누르하치]]와 [[여진족]]의 움직임을 수시로 장계를 올려 조선 조정에 보고하였고, 염초(焰硝)를 구해서 [[조선]]조정으로 보냈다. 그 뒤 [[공조]][[참판]]·[[예조]][[참판]]을 역임했다.
반정 초반 같은 [[서인]] 당원임에도 버림받았으나 반정 공신인 훈신들의 특별 사면 건의로 [[1625년]] 사면되었다. 그러나 계속 서인 간관들은 그를 처벌하거나 [[문외출송]]시킬 것을 상소하였다. 사면된 후 [[1626년]] [[용양위]][[부호군]]이 되고, 그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그가 [[광해군]] 조정에 참여한 일로 탄핵 상소와 비난이 계속되었다.
이후 [[조선]] 조정의 특명전권대사로 [[청나라]]군과 [[남한산성]]을 오가면서 화의 교섭을 노력, [[청나라]]군사들을 설득시키고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후 [[도승지]]에 임명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고, 사신으로 [[청나라]]와 [[명나라]]를 여러 번 다녀왔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의 [[조선]]의 정벌 여론을 무마시키기도 했다. [[1638년]]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를 거쳐 [[조선 인조|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책봉[[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가서 책봉 고명을 받아왔다. 그러나 귀국 도중 [[담배]](南草)를 [[가마]]속에 숨겨갖고 왔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사신직에서 파직당했다.
- 은혼/604화 . . . . 11회 일치
[[은혼]] 604훈. '''끈질기다와 집요하다는 종이 한 장 차이'''
* 그러나 해방군 포격이 쏟아지면서 우츠로를 놓치고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와도 단절. 노부메는 그를 살리려다 포격에 휩쓸리고 만다.
* "끝에 와서야 우리는 온갖 속박에서 풀려나지요."
* 노부메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도 불사신 군단에 둘러쌓인다.
* 그녀는 우츠로와 해방군 양쪽을 상대할 재간은 없고 우츠로와 불사신 군단은 그들만의 힘으론 쓰러뜨릴 수도 닿을 수도 없다고 말한다.
* 긴토키가 발악하듯 히츠기와 불사신 군단을 날려버리고 다가오지만 그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는다.
* 노부메에게 뒤를 맡기고 퇴각하던 가구라와 신파치도, 자아가 사라진 불사신 군단 조차도 행동을 멈추고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 폭격으로 불사신 군단까지 와해되자 노부메는 이틈을 타서 긴토키를 구한다.
*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노부메와 긴토키는 해방군의 폭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달아난다.
* 노부메는 생사불명. 가구라, 신파치도 긴토키와 단절된다. 포격에 휘말렸는지 여부는 불명.
- 은혼/609화 . . . . 11회 일치
그 답은 너와 네가 만나게 해준 동료들이 가르쳐 주었어. 내 기계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있던 거야. ||
* 영감의 공방이 폭발하는가 싶더니 그로부터 거대한 기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거대한 대포와 같은데.
*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사람들을 구해내는 기계다.'''
* 그 모습은 천인 도래 당시 천수각을 떨어뜨려 전쟁을 종결지었던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와 똑같았다.
* 이 기계를 작동하기 위해선 킨토키와 타마의 힘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킨토키를 불러들인 듯.
* 킨토키와 타마는 포대에 붙은 제어구에 들어가 '''킨&타마'''로서 '''저 봉에서 무언가를 발사'''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라치의 빅픽쳐. 겐가이 영감 에피소드도,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 설정도, 킨토키와 타마의 네이밍 조차도 이 한 화를 위한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일단 포대가 되는 봉이 있고 양 옆의 구슬은 제어구인데 여기에 킨토키와 타마가 들어감으로 해서 정말로 '''킨타마'''가 완성된다.
임무를 완수한 뒤 킨토키와 타마는 리타이어하는 듯 한데, 완전히 부서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번 초중대발표로 실사화, 애니메이션4기 등을 발표했는데 이번 주도 중대발표가 있었다. 일본의 의류업체 earth와 콜라보 소식.
무려 긴코와 가구라의 이미지화 의상. 각각 8990엔.--너무 비싸잖아.--
- 은혼/613화 . . . . 11회 일치
네스는 이런 풍습을 무시하는 거냐고 압박하자 단은 바루카스도 "발기"하면 나름 훌륭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런 와중에도 왕은 "발기"라는 표현에만 신경스며 그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 경고한다. 네스는 하타 쪽이야 말로 "봘기"하면 더욱 대단하다고 반박한다. 역시 왕은 "봘기도 안 돼"라고 제지할 뿐 다른 부분엔 개입하지 않는다.
* 신하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사이 왕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진다. 숨도 가빠지는데 아무래도 눈 앞에서 신하들이 이런 키배질이나 하고 있으면 암이 발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오우고쿠왕은 각혈하고 쓰러진다. 신하들은 정신없는 병림픽 탓에 뒤늦게 깨닫고 왕의 주위로 모여든다. 왕의 상태를 보아 가망이 없다 여긴 것인지 이와중에도 칭코가 큰 쪽과 작은 쪽, 어느 쪽이 왕위를 이어야겠냐고 묻고 자빠졌다. 죽어가던 오우고쿠 왕은 마지막 기력을 짜내 말한다.
* 그의 발언을 듣고 하타 황태자와 그 부하들은 물론 무전으로 상황을 전해듣던 자작 제독과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까지 경악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오우고쿠 행성과 지구의 동맹. 하지만 사카모토 조차 이런 상황에서 가능할리 없다고 여긴다. 그 멍청한 하타 황태자도 고작 지구인들을 위해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란 소리냐고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가츠라는 단지 동맹이 되라는 거지 싸우란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노리는건 해방군이 "설마 지구에도 동맹이 있었다니"하고 동요하는 것. 일시적으로 해방군의 이목을 끌고 나면 그대로 달아나든 말든 상관없다. 일시적으로 생긴 틈으로 해방군 본부를 단숨에 점령, 전쟁을 멈춘다는게 카츠라의 구상이다.
* 네스가 서있던 창살 쪽에서 누군가의 손이 뻗어나온다. 네스는 황태자가 당한 것처럼 목을 조여진다. 마다오 하세가와 다이조의 부활. 생각지도 못한 역습이다.
칭코가 작아 설움 당했던 신하 단은 이 방주에도 탑승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파벌을 이끌고 나타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것에 사격을 가한다. 정말로 황태자까지 죽이려 들어서 가츠라와 마다오가 황태자완 네스를 놓아준다. 총격은 당연히 가츠라 측에도 향하는데 엘리자베스가 몸을 날려 가츠라는 무사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벽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한다. 하세가와는 가까스로 총알을 피한다.
무전으로만 상황을 듣던 사카모토는 총성을 듣고 다급히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지금 가츠라 측은 대답할 겨를이 없다. 함께 듣던 자작 제독은 심상치 않은 눈빛을 빛낸다. 완전히 꼬인 것 같았던 상황이 한 번 더 꼬인다. 단은 바루카스 황태자가 추방 당했을 때부터 반역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타 황태자가 인질로 잡힌 건 그야말로 호기. 단은 바보같이 칭코만 큰 녀석들을 구축하고 "작은 칭코국"을 세우겠다고 선언한다. 하타나 네스 같은 무리에게 나라를 맡기면 당연히 망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지구와 동맹을 해버리면 나라는 커녕 행성이 망할 기세. 그는 시간에 맞춰 반역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만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라며 쓸데없이 큰 칭코와 함께 사라지라 말한다.
>칭코가 큰 저와 재능이 넘치는 형님. 힘을 합치면 드라고니아입니다.
하세가와 타이조는 사실 등장부터 하타 황태자랑 엮여서 피곤한 상황이었고 결국 하타 황태자의 민폐를 철권제재한 대가로 관직에서 짤려 마다오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로는 딱히 둘이 엮인 적은 없지만 일단 원한관계는 아직도 살아있는 듯. 결과적으론 하세가와가 또 하타 황태자에게 한 방 먹인 셈이 됐다.
- 은혼/616화 . . . . 11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와 [[사이고 토쿠모리]]는 양이전쟁 경험자답게 최전선에서 활약 중.
적들은 수만이 아니라 다키니라는 무서운 전력을 앞세우고 있는 상태. 가부키쵸에서 적의 1파와 맞딱드린 진선조의 특동대는 다키니의 위력 앞에 여지없이 쓸려나간다. [[오토세]] 여사 또한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떤 벽이든 그들 앞에선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며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 건물 옥상에서 투석기를 담당하던 캬바쿠라 "스마이루"의 아가씨들은 다키니의 투석에 밀려서 피신한다. 이들의 리더인 [[시무라 타에]]는 [[료우(은혼)|료우]]와 [[하나코(은혼)|하나코]]와 합류한다. 하나코와 료우 쪽도 투석기가 박살나면서 급히 피신했는데, 아직도 저항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타에는 이들을 피신시키도록 한다. 료우와 하나코는 "힘을 합쳐 마을을 지키기로 했다"고 반발하지만 타에는 다키니의 힘을 체감하고 냉엄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타에는 자신이 척후를 맡고 동료들을 먼저 피신시키려 하는데 료우는 타에와 함께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남자 주민이 그녀의 팔을 이끌며 데려가려고 실갱이가 벌어지는데, 그때 쿵소리와 함께 료우의 팔을 잡았던 손만 덩그라니 남는다. 무자비한 다키니의 공격. 그들이 벌써 옥상까지 추격해온 것이다.
[[사카타 긴토키]]가 구원한다. 긴토키가 다키니의 오른팔을 후려쳐 부러뜨리면서 선혈이 낭자하다. 균형이 무너진 사이 긴토키와 사이고의 집중공격으로 다키니 병사를 쓰러뜨린다.
힘겹게 하나씩 처치하고 있지만 다키니의 병사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보통 천인 병사는 무쌍하듯 처부수던 양이전쟁의 경험자들도 이들을 상대하는건 목숨을 걸어야할 판이다. 긴토키와 사이고는 이런 놈들이 마을로 몇 명이나 들어갔을지 셀 수도 없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무서진 문을 사수하며 더이상 마을로 진입되는 병력이 없도록 저지할 생각이다.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 [[턱순이]]등도 최선을 다하지만 적들의 수가 줄지 않는다.
* 사이고의 의지와 달리 스마이루 일행은 생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타에가 척후를 맡아 뒤를 방비하며 피신 중. 그러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정면에서 덮쳤다. 앞서 가던 남자 주민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면서 진로가 막힌다. 설상가상 뒤에서 추격하던 다키니들도 목전까지 도달.
- 은혼/625화 . . . . 11회 일치
* 간신히 정신을 차린 오우가이는 얕봤던 지구인들에게 밀려 퇴각하는 다키니와 [[신라(은혼)|신라]] 부대를 보며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 오우가이는 다시 전장에 서서 와해되는 해방군을 추스리고 반격을 가하려 하는데
* 가부키쵸의 골목에서 눈을 뜬 오우가이는 새삼 그때의 공포와 절망감, 굴욕감이 되살아난다. 뿔이 부러진 것도, 이런 씁쓸한 감상에 잠기는 것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뿔이 또 부러진 것인가? 그리고 왜 그들 부족은 그때와 같이...
대로로 돌아오자 참담한 풍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전장을 고향으로 삼고 있던 다키니의 용병부대가 얕보던 한낱 지구인들에게 쫓겨 대열도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야규 빈보쿠사이]]와 [[토죠 아유무]]가 선봉에 서고 있다.
* 또다른 3대 용병부족의 일각 [[신라(은혼)|신라]] 부대 또한 급히 퇴각하고 있다. 건물 위로 뛰어다니던 부대가 호각을 불자 산발적인 퇴각이 시작된다. 지휘관 [[소타츠]]는 [[사카타 긴토키]]의 일격으로 패배, 의식을 잃었다. 집단전술을 자랑하는 신라도 지휘관이 부재하면 오합지졸일 뿐이다. 백화와 [[코제니가타 헤이지]] 등과 싸우던 신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을 개시한다.
* [[사카타 긴토키]]를 중심으로 반격을 펼쳐온 가부키쵸 주민들은 전황이 차츰 바뀌어감을 체감한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적들이 지휘계통을 잃고 사기가 꺾여 도주하기 시작했다고 논평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상황은 좋지 않다. 당장 전투에서는 이기고 포위를 풀었지만, 지구가 우주 전체에 의해 포위된 상황은 변함이 없다. 이 가부키쵸 하나만 놓고 봐도 마을 내부로 진입한 적들이 후퇴하는 것일 뿐, 이들이 다시 마을 밖의 본대와 합류한다면 원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여전히 마을은 포위되어 있고 코끼리한테 바늘을 찔러넣은 정도의 반격을 한 것 밖에 안 된다.
마을 입구에서 분전을 이어가던 [[사이고 토쿠모리]]와 오카마 부대들. 사이고는 인왕처럼 버티고 있지만 시야가 흐려지고 있다. 그에비해 몰려드는 적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 그때 입구를 휘저어 놓으며 나타나는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 이들이 마을에 진입했던 전위 부대를 뒤흔들며 쫓아내는 모습에 사이고와 대치하던 해방군 본대도 동요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들은 각기 3대 용병 부족으로 유명한 다키니와 신라 부대. 이들이 정신없이 후퇴하는 모습은 해방군에 파문을 일으킨다. 긴토키의 말처럼 "공포는 전염"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서문에서 빈보쿠사이가, 남문에서 지로쵸가 날뛰며 적들을 밀어내기 시작하자 동요는 더욱 커진다.
- 은혼/634화 . . . . 11회 일치
* 우주에서 싸우는 [[다카스기 신스케]]와 귀병대는 전황은 나쁘지만 어떻게든 히노카구츠치를 파괴할 수단을 찾기 위해 병기의 분석에 들어간다.
* 이럭저럭 숙취가 풀린 [[사카타 긴토키]]는 [[시무라 신파치]]와 함께 몰려드는 지상군 잔당을 처리하지만 좀처럼 수가 줄지 않는다.
* 긴토키는 가구라의 무모한 단독행동을 막으려하는데 하늘에서 눈부신 섬광이 내려와 긴장한다. 하지만 이는 히노카구츠치의 포격이 아닌, 어떤 우주선이었다.
* 겐가이가 겐가이포 무력화 실린더라도 알려준 것은 사실은 폭발물. 아주 민감한 물건이라 금방 폭발을 일으키고 겐가이와 야토족들이 폭염에 휩쌓인다.
* 위기의 순간, 가구라를 구해낸 것은 오빠 [[카무이(은혼)|카무이]]와 7사단이었다.
* 지상의 사정이 이렇게 되는 동안 우주에서 싸우는 [[다카스기 신스케]]와 귀병대는 해방군을 상대하며 히노카구츠치를 멈출 방법도 찾아내야 했다. 신스케는 병력을 이끄는 한편 [[다케치 헨페이타]]에게 후방의 상황을 확인한다.
* 역시 해방군을 상대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놈"들이 나설 차례는 없을 거라고 호언한다. [[키지마 마타코]]는 어차피 자신들이 나선 이후 세상을 지키든 부수든 둘 중 하나라며 히노카구츠치의 해석은 어떻게 되었냐 묻는다. 사실 이들은 대책없이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뒤쪽으로는 기술자를 잠입시켜 해방군 모함의 데이터를 해킹하고 있다. 이 자료는 그대로 헨페이타의 전함으로 송신, 적 병기의 헛점을 찾을 단서가 됐다. 헨페이타는 "별을 파괴할 수 있는 병기"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구식 병기라며 데이터를 분석하면 파고들 틈이 있다고 장담한다.
* 겐가이 영감을 찾으러 나섰던 [[사카타 긴토키]]와 [[진선조]] 일행은 뜻하지 않은 적들과 만나 발목이 잡힌다. 해방군의 지상군 잔당이 엔죠 황자의 파괴선언 이후 기어나와 발악하고 있다. 긴토키는 일단 싸우고는 있으나 좀처럼 적의 수가 줄지 않아 히스테리를 일으킨다. 아무리 베도 똑같은 얼굴을 가진 놈들이 얼굴을 들이민다며 "킨타로 아메"사탕에 비유한다.[* 반죽을 길게 늘여 같은 얼굴이 계속 나오도록 자르는 일본의 사탕]
* 가구라가 가버리자 이제는 겐가이 영감이 아니라 가구라부터 찾아와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히지카타 토시로]]가 하늘에서 수상한 빛을 발견했다. 그 빛은 일행이 있는 쪽으로 곧게 뻗어오고 있었다. 혹시 이것이 히노카구츠치의 포격인가? 해결사와 진선조도, 그리고 본진의 공격이 무서웠던 해방군도 "히노카구츠치의 공격이 시작됐다"며 패닉에 빠진다.
- 은혼/640화 . . . . 11회 일치
* 폭발하는 해방군 모선. 탈출 중 [[키지마 마타코]]가 폭발에 휘말려 쓰러진다. [[다카스기 신스케]]는 대의와 동지애 사이에서 잠시 갈등한다.
* 그런 신스케를 대신해 [[카와카미 반사이]]가 몸을 던져 마타코를 구하나 잔해에 깔리고 만다.
* 해방군의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해방군 모선으로 돌격했던 귀병대. 그러나 해방군 사령관 [[엔죠]] 황자는 모선의 일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을 서둘렀고 그 결과 불필요한 구역을 아군까지 희생시키며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귀병대가 침투했던 구역이 하나둘 파괴되면서 최전선에서 지휘 중이던 [[다카스기 신스케]]와 [[카와카미 반사이]], [[키지마 마타코]]도 위험에 처한다. 하나둘 산화하는 부하들. 그러나 그저 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신스케는 과거에 했던 맹세를 떠올린다. [[은혼/632화|반사이와 함께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반사이를 포섭한다. 어차피 나라의 심판으로 사라질 목숨이라면 자기를 위해 죽지 않겠냐고. 반사이가 "그럼 당신은 뭘 위해 죽을 거냐"고 묻자 그는 뻔뻔한 태도로 대답했다.
* 해방군 모선이 붕괴하고 있다. 히노카구츠치 발사와 컨트롤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면 전부 폐기 당했다. 외벽부터 우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다케치 헨페이타]]와 그의 부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한카이]]는 방금 전의 조치로 완충까지 고작 15분이 남았다 계산한다. 그게 이 세계에 남은 수명. 헨페이타는 한카이에게 방법을 강구해달라 요청하지만 그로써도 역부족. 유일한 가능성은 외부와 연계해 에너지 회로를 파괴하는 것. 그러나 이것도 시간끌기에 지나지 않아 15분 정도 뒤에는 끝이다.
* 신스케는 이때 무전을 보낸다. 이미 자신들은 낙오됐고 본대와 합류도 바랄 수 없으니 이대로 히노카구츠치 제어 중추로 돌입하겠다는 전달이다. 그걸 위해서 현재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헨페이타는 대답 대신에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전한다. [[사루가쿠]]와 [[바토우]]가 당했고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부대와도 통신이 두절됐다. 아군 함대는 적 함대의 총공세를 막아내느라 여력이 없으며 원군도 더는 바랄 수 없다. 신스케가 돌입을 강행한다면 현재 가진 병력만으로 해야 한다. 헨페이타는 그럴 병력이 남아 있느냐고, 현재 병력이 얼마냐고 묻는다. 신스케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 은혼/642화 . . . . 11회 일치
* [[카와카미 반사이]]는 홀로 대군을 막아내면서 [[다카스기 신스케]]의 후방을 든든하게 지킨다.
* 반사이와 헨페이타 모두 신스케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 분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점차 한계를 드러낸다.
* 남은 시간은 불과 1분. 신스케의 미래를 보고 싶었던 헨페이타와 반사이, 둘은 그가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으며 자폭을 감행한다.
* 지금 헨페이타 일행의 몸을 실은 소형정은 해방군 함대의 집중 공격에 노출되어 언제든 침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메노토리후네 내부에서 분전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랬다. 설사 해방군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그는 언제든 쓰러져 죽을 지 모르는 몸이었다. 이제 오른팔 밖에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잘도 움직이고 있다. 이들에게 불굴의 자세는 [[다카스기 신스케]] 때문이다. 그가 아직 아무 것도 포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를 믿듯 그도 동료들의 임무완수와 생환을 믿으며 중추 시스템을 향해 달렸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겁니다. 친구와 함께.
* 이제 반사이는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이제 적들은 어떻게 나올까 중화기는 아직 이쪽을 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반사이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건,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다. 반사이가 엎드린 그대로 인사를 건냈다.
>그대가... 데리러 와줬으니 되돌려 보낼 수도 없구려.
>신스케. 귀병대는 너와 함께 살아있다.
* 적의 화력공세 속으로 무모한 돌진을 감행하는 헨페이타 일행. 먼저 간 동료들과 함께 나아가는 반사이.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준 기회를 낭비하지 않는 신스케와 [[키지마 마타코]]. 히노카구츠치 완충까지 2분 여.
- 이기택 . . . . 11회 일치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자, 김대중을 도와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전국 유세를 하고 다녔다. 김대중이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자리에서는 김대중 뒤에 서서 눈물을 흘렸으며, 그 후 김대중의 뒤를 이어 민주당 대표가 되었다. --드디어 야권의 제[[1인자]]로 부상한 셈--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정치적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김대중과 동교동계 의원들이 떠나면서 민주당의 거대한 당사와 당재정을 그에게 물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어쨌든 그 후에도 시민운동가들이 창당한 개혁신당을 흡수하여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을 창당한 뒤 [[조순(1928)|조순]], [[노무현]], [[이부영]], [[이철]], [[김원기(1937)|김원기]], [[제정구]], [[김정길(1945)|김정길]], [[홍성우(1938)|홍성우]], [[서경석(목사)|서경석]], [[강창성]] 등 쟁쟁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긴 하였으나, 문제는 이들이 이기택 말을 듣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모든 정치권이나 재야민주화운동, 시민운동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평범한 국회의원급은 뛰어넘는 지명도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당시 통합민주당은 스타군단으로 불렸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게 마련.]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 고문으로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가 이끌던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만[[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2|#]], 기존의 30석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으로 의석이 반토막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였고, 같은 야권의 경쟁상대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양천구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몇 개의 의석을 건지긴 했으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김대중의 국민회의도 이때 상당히 부진했으나, 무엇보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50석으로 크게 약진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정계은퇴를 권유하였으나, 놀랍게도 통합민주당을 [[신한국당]]과 합당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김영삼의 밑에 있다가, 김대중과 손을 잡았는데, 그 뒤에는 이회창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때 조순, 이철과 제정구는 이기택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갔다. 그러나 노무현, 김정길, 김원기는 이기택과 절연하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로 합류하였다.] 이기택으로서는 DJ, YS, JP 3김을 중심으로한 정치에 염증이 느끼고 있었고, [[1996년]] 김대중의 정계 복귀 뒤에 김대중과 갈등이 크게 겪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통합민주당이 와해당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3김 정치 청산을 내세운 이회창과 손을 잡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을 창당했으나, 결국 1997년 12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여당해보나 했더니 또 야당됐네~~
이후 신상우와 함께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였다.
외모는 정치인이 아닌 대학교수를 연상케 하지만, [[조기축구]]와 새벽달리기로 체력을 연마한 강골이었으며, 키도 크고 듬직한 성품이어서 주변의 평판이 좋았다. 무엇보다 '4.19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상징성은 그가 가진 최고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직위가 너무 빨리 올라간 탓인지 바닥 민심을 훑는 감각이나 정치적 타이밍을 포착하는 동물적 감각 등이 너무 일찍 사그러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야당 대표 시절에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 공천을 하면서 명분이나 당선가능성보다는 계보나 인맥 위주의 공천을 하여 생각보다 작은 그릇을 보여주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1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의 산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쳐, [[2009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 지명 받은 뒤 [[영남대학교]]에 진학하였고, [[2012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2012년]] [[4월 8일]] [[성남 FC|성남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시즌 초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후로도 [[6월 27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전과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에서 1도움씩을 기록했고 팀의 [[FA컵 2012]] 우승에도 일조했지만 7월 1일 이후로 공격 포인트가 없어 "출장 수로만 신인왕 후보"이라는 비아냥을 받다가 10월 28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했고 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 MVP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 11월 1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전 1골, 11월 25일 [[경남 FC|경남]]전 1골 1도움, 11월 29일 [[FC 서울|서울]]전 2도움, 12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 1골을 터뜨리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5골 6도움 11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이명주는 [[12월 3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광주 FC]]의 [[이한샘]], [[전남 드래곤즈]]의 [[박선용]]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K리그 영플레이어상|신인 선수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대상) ‘신인왕’ 이명주 “포항의 축구스타일, 나랑 잘 맞았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45236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2-12-03}} }}</ref>
[[2014년]] [[6월 9일]], 포항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주의 [[알아인 FC|알아인]] 이적을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총 95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총액 95억원' 이명주 알아인 이적, K리그 이적사 다시 썼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406100100083460005726&servicedate=20140609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4-06-9}} }}</ref> 7월 '알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9월 30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 (리야드)|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반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CL) ‘이명주 선제골’ 불구 알아인 결승 좌절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1108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4-10-1}} }}</ref> 한편 정규리그에서는 12월에 열린 10, 11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13라운드 [[샤르자 스포츠 클럽|샤르자]]와의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15년 AFC 아시안컵|아시안컵]] 이후 복귀한 14라운드 [[알샤바브 (두바이)|알샤바브]]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알아인 FC|알아인]]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2014-15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알아인 FC와 계약만료후 군 문제로 국내 복귀를 추진중이었다. 많은 팀들에서 오퍼가 왔으나 최종적으로 친정팀인 포항스틸러스와 황선홍 감독의 FC 서울이 경쟁 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52&aid=0000000664 [서호정의 킥오프] FC서울은 어떻게 이명주를 잡았나?]</ref> 2017년 6월 19일 [[FC 서울]]로의 이적이 공식 발표 되었으며 계약기간은 6개월이다.
[[홍명보]] 감독 하의 대표팀에서도 초반 꾸준히 승선했으나 [[2014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탈락하였다. [[2014년]] [[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0-1로 뒤지고 있던 전반 33분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감아차기를 시도하여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어 후반 17분 상대 진영에서 수비의 공을 가로채 곧바로 크로스를 올려 이동국의 쐐기골에 기여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이명주, 우리가 바라던 공격형 MF 모습 보였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1020 |출판사=베스트일레븐 |date={{날짜한글화|2014-09-05}} }}</ref>
- 이선희 . . . . 11회 일치
[[1964년]]<ref>[https://www.leesunhee.com/sunny/contents/contents.do?cmnx=16 데이터 관련 리스트]</ref> [[대구광역시]] 에서 [[울산광역시]] 출생의 [[불교]] [[승려]]였던 아버지와 [[부산광역시]] 출생의 [[불교]] 신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대전광역시]] 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광주광역시]] 와 [[인천광역시]]에서 각기각기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녀는 [[1969년]] 이후 [[서울특별시]]에서 줄곧 자랐다.
=== 데뷔와 전성기 ===
1985년 첫 음반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고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 등의 곡도 히트하여 KBS 가요 톱텐에 자신의 노래 7곡을 진입시키는 등 큰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로 1985년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하였다.
1991년 [[서울시의회]] 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제3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음악적으로는 1990년대로 접어 들면서 고비가 왔다. 7집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 떠나신 후에> 등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이전만큼은 아니었고 상업적으로도 제일 저조한 성적을 얻었다. 1992년 변화된 가요계 상황에 대응하여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8집 《조각배》를 발표하였다. 타이틀곡 <조각배>와 <초원>, <작은 연가>, <성주풀이>, <한네의 이별> 등을 이선희만의 느낌으로 소화한 실험적인 앨범으로서 색다른 변화에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5월 31일에서 2000년 10월 31일까지 [[새천년민주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를 잠시 지낸 그녀는 [[새천년민주당]] 탈당을 한 이듬해 2001년 3월, [[유영석]], [[박진영]], [[김종서 (1965년)|김종서]] 등 젊은 세대들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도운 12집 《[[My Life + Best]]》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MBC 10대가수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다. <이별소곡>은 조용한 느낌을, <이 노래를 빌려서>는 슬픈 감정을, <살아가다 보면>은 삶에 격려와 희망을 주며 인기를 끌었다. 2002년에는 [[영화]] 《[[가문의 영광 (영화)|가문의 영광]]》에 1988년에 발매했었던 <나항상 그대를>이 삽입되어 후세대 사람들에게도 각인되었다.
2005년 이선희가 모두 작사,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대표곡 <인연>은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장미>와 <왜?> 등은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계속적인 음반 발매와 콘서트를 통한 활동으로 2010년 [[SBS]]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OST <여우비>와 <내가 사랑할 사람>, 《[[대물 (드라마)|대물]]》의 OST <떠나지마>를 부르기도 하였다.
2016년에는 [[SBS]] "판타스틱 듀오"의 첫방송에 출연하여 5주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최고의 아이돌 가수들과 경쟁하는 모습에 "역시 이선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016년 9월부터 2017년 3월까지 "The Great Concert LEESUNHEE" 전국 13개도시 23회 공연을 전회 매진으로 진행하였고 2017년 5월 미국 LA와 9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해외투어 공연을 열었다.
* [[1984년]] [[삼양식품]] 포장마차 (남성 그룹 [[송골매 (밴드)|송골매]]와 함께 출연)
- 이카르부스 . . . . 11회 일치
[[헝가리]]의 버스 회사인 이카루스와는 다른 회사니 헷갈리지 말 것. 솔직히 인지도는 헝가리 이카루스 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1923년 11월 20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도시 [[노비사드]]에서 코뇨비치 형제[* 디미트리예 코뇨비치(Dimitrije Konjović)와 두산 코뇨비치(Dusan Konjović).]와 밀리보이 코바체비치(Milivoj Kovacevic), 조코 라둘로비치(Djoko Radulovic), 요시프 미클(Josif Mikl)에 의해 항공기 및 자동차 회사로 설립된다. 이때는 이카루스(Ikarus)라는 이름이었다. 최초의 세르비아계 항공기 회사였다고. 설립된지 다음해에 최초의 항공기인 "브란덴부르크"를 만들어낸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공군에 의해 군용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어 [[제문]]에 군용기 공장을 세우고 본사도 거기로 옮긴다던가, 군대와의 계약으로 항공기 엔진을 세운다던가 하며 성장한다. 이 와중에 스포츠 협회를 만들고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보트 제조 회사도 되어보기도 했다.
1935년에는 최초의 국산 설계 군용기인 [[이카루스 IK-1]]을 제작했으며, 1930년대에는 [[영국]]제 군용기인 [[호커 퓨리]]와 [[브리스톨 블렌헤임]]을 생산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되며 정부에 의해 가압류 당한다. 이와 함께 코노비치 형제를 비롯한 경영진도 "나치 독일에 대한 경제적 협조" 혐의로 몰수형을 받게된다. 이 와중에도 이카루스는 [[이카루스 아에로 2B]]의 설계를 끝내지만 결국 국가에 의해 완전히 몰수, 1948년 공기업이 된다. 공기업이 된 이카루스는 폭격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214|이카루스 214]]나 단발전투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S-49|이카루스 S-49]],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제트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451|이카루스 451M]] 등을 설계한다. 이카루스 451의 개량형인 이카루스 W-451MM은 1957년 세계 최고 속도를 달성하기도 했다.
1954년에는 [[오스트리아]] 회사 [[자우러]][* 총기 회사 SIG 자우어와의 관련은 없다.]의 [[버스]]를 라이센스 생산한다. 이는 현재 이카르부스의 밥줄이 될 버스 제작의 시초가 되었다. 이카루스는 1961년 군사분야의 산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자동차 회사가 된다.
1992년 공산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며 이카루스는 합자회사가 된다. 이후 1993년 이카루스는 현재의 이카르부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이카루스는 [[메르세데스]]와 [[MAN]], [[투쉬노 자동차]]와 협력관계를 맺게 된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11회 일치
* 엘레인과 [[디안느]]는 엘리자베스가 오랜 세월 동안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맺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응원한다.
*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무언가 다른 계획을 가진 듯하며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친구 [[헬브람]]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 여긴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전날 [[반(일곱 개의 대죄)|반]]에게 부탁 받은대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태를 돌본다. 시름시름 앓던 엘레인이 엘리자베스의 힘을 쐬이자 조금 기운을 되찾는다. 여행은 계속되고, 정신을 차린 엘레인과 [[디안느]], 엘리자베스 셋이서 티타임을 가진다. 이날은 엘리자베스가 사실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엘레인은 참 기묘한 이야기라 말하며 디안느는 3천년 전 성전시대에서 목격했던 엘리자베스가 지금 눈 앞의 당사자였을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떤다. 정작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상태. 디안느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 아니냐고 떠본다.
그건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디안느는 혹시 그가 바람을 피거나 엄청난 성희롱을 한 짓 따위를 은닉하기 위한게 아닌가 의혹을 품는다. 그리고 엘레인에게 멜리오다스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냐고 묻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 되더라도 대답한다. 그러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가벼운 두통과 함께 젤드리스가 했던 말, "전부 떠올리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다"던 저주스러운 말이 떠오른다. 그녀의 고통을 몰랐던 디안느는 엘리자베스의 손을 붙잡고 "꼭 기억을 되찾자"고 응원한다. 설령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행복한 기억도 함께 떠오를 거라면서. 그녀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의 경우는 분명 그랬다. 엘리자베스는 방금 전의 고통은 지워버리고 미소와 함께 그러자고 대답한다.
*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일행과 떨어져 친구 [[헬브람]]과 떠들고 있다. 돼지의 모자정 옆구리의 손잡이 조형 부분이었다. 작전 회의 도중에 헬브람이 없었던 걸로 그때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데, 그의 친구는 묘하게 말을 돌려버린다. "먼저 축하할게 있다"는 핑계로. 그는 드디어 할리퀸이 디안느와 애인관계가 된 걸 반쯤은 축하하고 반쯤은 놀린다. 그리고 날개에 대해서도 일단 축하하나 "빈말로도 멋지다고 할 수 없는 날개"라고 덧붙여서 속을 긁어놓는다. 할리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역정을 내자 헬브람이 답했다.
할리퀸은 그렇게 대답하는 친구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다.
*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식당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호크]]가 달려와 엘리자베스에게 큰 일이 났다고 알린다. 전원이 식당으로 달려간다. 엘리자베스와 디안느는 티타임을 마치고 식당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그때 엘리자베스가 발작을 일으켰다. 아니, 착란이라 말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녀는 "할자드"란 인물이 웨어울프에게 물렸다면서 빨리 멜리오다스에게 알려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영문을 모르는 디안느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지만 엘리자베스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나자 그녀는 "할자드가 중상이라고 기사단에서 연락이 왔다"며 뜻모를 소릴 해댄다. 그 말을 들은 멜리오다스가 가슴이 철렁한다.
* 호크가 다가갔을 때, 그녀의 눈이 변해있었다. 마치 드루이드의 힘에 눈 떴을 때와 같다. 이번엔 양쪽 눈 모두에 선명하게 여신족의 문양이 떠올랐다. 엘리자베스는 곧 정신을 잃는다. 그녀가 자기 눈에 나타난 변화를 자각하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 디안느가 그 말에 환호한다. 할리퀸이 어리둥절해하자 그녀는 기뻐하며 엘리자베스와 나눴던 이야기를 해준다. 3천년 전부터 시작된 인연, 윤회, 기억의 상실 등. 신나게 떠들어대자 멀린이 "입조심해라"고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디안느는 움찔하지만 진짜 너무한건 멜리오다스라며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무시했던 태도를 질책한다. 그때까지 말이 없이 엘리자베스의 손을 붙잡고 있던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입을 연다.
- 장헌식 . . . . 11회 일치
1895년 일본 관비 유학생에 선발되어 1903년까지 일본에 유학하며 [[게이오 의숙]]의 보통과와 고등과 과정, 도쿄 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서 수학했으며, 일본 사법성과 요코하마항 지방재판소의 사무견습, 대장성의 사무견습으로 재직했다. 귀국 후 궁내부 주사로 임용되어 학부에서 근무하다가 한성부윤을 역임했다. [[1910년]] [[10월]]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총독부 고등관에 임용되어 평안남도 참여관, [[1917년]]에 [[충청북도]] 장관(도지사)으로 승진한 뒤 충청북도 도장관, 조선총독부 사무관, 총독부 관방실 계원, 1924년 전라남도 지사 등을 역임했다.
[[1869년]] [[음력 9월 21일]] [[용인군]] [[현내면]](縣內面)에서 성급(成汲)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한문(漢文)을 수학하다가 18세 되던 해 경성으로 올라와 한성부 중서(中署) 수진방 전동(壽進坊 磚洞) 13통 11호로 주소를 옮겼다. 1935년 무렵 [[평안남도]] [[평양부]]로 이사했다가 다시 [[경성부]] 가회동(嘉會洞) 4번지로 주소를 옮기고, 정착하였다.
1896년 7월 25일 게이오의숙 보통과를 졸업하고, [[게이오 의숙]] 고등과에 들어갔다. 당시 게이오의숙은 조선인 유학생이 급증함에 따라 조선인 특별 고등과를 설치하였다. 1897년 4월 25일 게이오의숙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1897년]] [[5월]]부터 [[12월]]까지 그는 [[일본 사법성]] 행정사무급재판소 병설 검사국 견습사무원이 되었다. 그는 [[게의오의숙]]을 졸업하고 사법 부문의 근대 문물을 배우기 위해 일본 사법성의 재판소 검사부에서 견습 사무원으로 일했고, [[1898년]] [[1월]]부터 [[10월]]까지는 일본 [[교토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항 지방재판소(神奈川縣 橫濱港地方裁判所) 검사국의 견습사무원으로 재직했다.
[[1921년]] [[2월 12일]] [[조선총독부]] 사무관(朝鮮總督府 事務官)이 되고, 3월 10일 종4위(從四位)로 승급하였다. [[1921년]] [[3월 18일]] 조선총독부 총독관방실(總督官房室) 행정관이 되었다. 1921년 3월 20일 칙임사무관(勅任事務官) 민정시찰관에 임명되어 4월 7일부터 6월 19일 [[평안남도]], [[평안북도]] 일대를 민정시찰하였고, [[10월 16일]]부터 [[12월 27일]]까지는 민정시찰관으로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민정시찰을 다녀왔다. 이때 그는 관용 차량이 주어졌지만 거부하고 열차와 대중교통으로 시찰을 다녔다. [[1922년]] [[2월 15일]]에는 [[전라남도]]를 [[3월 5일]]부터는 [[전라북도]]를, [[7월]]에는 [[강원도]]를 시찰다닌 뒤 [[7월 22일]] 귀환하였다. [[9월 4일]]에는 [[황해도]] 수해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1924년]] [[12월 1일]]에는 [[전라남도]] 지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퇴근 후에는 보통의 농군들과 같이 식수(植樹)와 분재 가꾸기 자신의 토지에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였다.
장헌식은 도 참여관, 도지사를 지낸 관료 가운데서도 [[1921년]] 총독부의 총독관방 근무 사무관(민정시찰 사무관)을 맡는 등 총독부와 특히 유착된 행보를 보였다. [[3·1 운동]] 후 신설된 이 직책은 독립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주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서적 인용
[[1946년]] [[1월 3일]] 이왕직 재산 관련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이때까지도 출국하지 못한 [[일본]]인 이왕직 회계과장 사이토 치로(齋藤治郎)와 함께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ref name="jigga">"전 李王職 장관인 張憲植 수감명령", 자유신문 1946년 01월 03일자, 2면 10단</ref> 그는 반성의 기미가 없었고, 과거 일본 정치하에서 있었지만 그래도 고관대작으로 있었는데 어찌하겠느냐고 대응하였다. 검찰관들은 분노했고 방청석을 분노하게 했다.<ref name="jigga"/> [[1월 16일]] [[보석금]]을 내고 보석출감하였다.<ref>"張憲植 보석출감", 자유신문 1946년 01월 16일자, 2면 5단</ref>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며 부인인 [[임정재]]도 친일 여성 단체인 [[애국금차회]]에서 활동했다.
- 정승환(가수) . . . . 11회 일치
또한 본격적으로 본인만의 감성에 들어가면 원래의 음색에 비음이 약간 섞이는데 이부분이 듣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애절하게 들려 음색자체가 애절한 분위기와 잘 맞는다는 평가를 듣고있다 . 이런 이유로 정통 발라드와 OST에 최적화된 목소리로 평가받는다.
2014년 9월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6'에 출연했다. ‘마음을 울리는 보이스’라는 평가를 받으며 슈퍼위크까지 진출, 박필규, 김정훈과 함께 '초코칩'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김형중의 '그녀가 웃잖아'를 불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팀원 세 명의 색깔이 너무 비슷하고 선곡이 평범했다"는 이유를 들었고 그는 전체적으로 맞지 않는 음역대와 화음 등을 선보여 심사위원들의 혹평을 받으면서 떨어졌다. [[http://m.news.nate.com/view/20141209n03458|#1]][[http://m.news.nate.com/view/20150111n21446|#2]]
1월 11일 방송된 팀미션 서바이벌 매치로 '마시멜로' 박혜수, 남소현과 대결을 펼쳤다. 팀명은 '올드보이'로, 앤의 '아프고 아픈 이름' 을 선곡하였다. 이 라운드에서 그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결국 음이탈까지 내고 만다. 혹평을 받은 와중, 정승환은 합격했지만, 같은 팀이자 최고 연장자 김동우는 팀 미션에서 탈락하게 됐다. 이에 정승환은 미안한 마음에 폭풍눈물을 흘려 눈길을 끌었다.
캐스팅오디션에서 박윤하와 '감성돔' 을 구성해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를 불렀다. 깊은 감정과 연기로 또 한 번의 큰 호평을 받으며 여성 보컬과의 목소리 케미도 확실하게 입증했다. 이날 그는 YG의 캐스팅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부른 곡은 또다시 음원차트를 1위를 2주일넘게 쓸게된다.
이후 [[이진아(가수)|이진아]]와 함께 [[안테나 뮤직]]을 선택했다. 정승환은 제작진의 질문에 “정말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행복하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이틀 후 안테나 뮤직과 계약을 맺었다.
12월에 [[안테나 뮤직]] 홈페이지와 네이버TV 그리고 네이버 뮤직에서 [[이진아(가수)|이진아]], [[샘 김]], [[권진아]] 와 함께 부른 크리스마스 캐롤이 공개되었다. [[https://tv.naver.com/antenna|안테나 뮤직 네이버TV 채널]]
안테나 엔젤스가 피처링한 샘 킴의 Your Song을 엔젤스와 함께 불렀다.
201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복면가왕]] 91회에 '지방방위대 디저트맨'이라는 닉네임으로 첫 [[MBC]] 출연을 했다. 이후 1라운드를 이긴 다음 2017년 1월 1일 새해의 첫 복면가왕 92회에 나와서 2라운드에 '이별택시'를 불러서 [[하얀시 눈이군 쌓이면 우리마을]]을 꺾고 올라갔으며 3라운드에 '가질수 없는 너'를 부른 뒤 [[신비주의 아기천사]]에게 밀리면서 준우승했다. 정체를 밝힌 뒤에 [[안테나 뮤직|자신의 소속사]] [[유희열|사장]]에게 이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고 신분을 가리고 도전해 음악을 즐기면서 노래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날 판정단인 [[김현철(가수)|김현철]]은 20대 초반의 나이라서 실력에 비해 원곡 해석에 소홀해지기 쉽지만 절제미가 돋보여 가수로서의 최대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극찬을 했다.
* '이 바보야'의 경우 무려 8시간을 녹음했다. 작곡가의 바람대로 슬픔이 폭발하는 느낌을 보여주는 멋진 클라이막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본인이 너무 높다는 걱정을 했다. [* 참고로 '이 바보야'와 함께 더블 타이틀곡인 '그 겨울'은 더 높다.][* 첨언하면, 이 바보야의 최고음은 A4#(2옥타브 라#)이며, 그 겨울의 경우는 B4(2옥타브 시)이다.] 안테나 엔젤스가 모두 그렇듯 AR을 전혀 배제하고 라이브를 소화하고 있다. [* 결국 20161206 더쇼 방송분부터 클라이막스 도입부에 한정하여 급조한 AR을 깔아주긴 한다.] -- 유희열 밑에선 고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진격의 거인/89화 . . . . 11회 일치
* [[엘런 예거]]는 [[그리샤 예거]]의 기억을 중얼거리다 그 모습을 [[한지 조에]]와 [[리바이 아커만]]에게 발각당한다.
* 리바이와 한지는 엘런이 중2병이 걸렸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고 정말 문제시하는건 [[미카사 아커만]]. 왠지 수척해져있다.
* 유미르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면서도 후회는 없고 크리스타와 결혼하지 못한게 유일한 아쉬움이라며 편지를 끝낸다.
* 아무튼 억울해진 엘런이 대체 뭐하러 왔냐고 소리치자 리바이는 감옥 문을 열어준다. 사실 그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리바이와 한지가 [[다리스 작클레]]와 협상해서 "갑옷 거인과 초대형 거인을 쓰러뜨린 영웅들을 처벌하는건 말도 안 된다"는 명분으로 이런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거역한 지휘관은 결과적으론 갑옷과 짐승거인을 놓친 실책을 범한 점도 고려되었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했고 당국의 모진 심문을 당했으며 결국 "낙원", 팔라디 섬으로 끌려와 거인이 되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60여년. 이후 마레 당국의 "시조 거인 탈환 작전"이 시작되고 라이너 일행이 건너오면서 그녀에게도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
유미르는 다시 한 번 후회는 없었다고 강조하면서도, 꼭 하나 크리스타와 결혼하지 못한건 아쉽다고 쓰며 글을 마무리했다.
* 한지가 그리샤의 수기에서 얻은 정보대로 "엘디아 인", 그리고 "유미르의 백성"에 대해서 발표하는 동안 엘런은 또다시 그리샤의 기억으로 불려간다. 기억 속의 [[엘런 크루거]]는 마레 당국이 계획대로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는다면 더이상 수용소도 유지하지 않을 거라고 밝힌다. 그는 그로스가 말했던건 전부 사실이라며 엘디아가 무지성의 거인을 병기로 이용했던 사실을 밝힌다. 이들은 시조의 거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단순히 살육을 반복할 뿐인 짐승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자체로 두려움도 멈춤도 모르는 자동살상병기인 것이다. 과거 엘디아에서는 이것을 양산해 값싼 전력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엘디아인들을 팔라디섬에 가두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지금에 와선 마레 측에서도 이 방생한 거인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섬에 접근하는건 제한되고 있다.
한지는 그가 중2병이 와서 저 모양이라고 대충 얼버무리는데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면서 공식적으로 중2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엘런에겐 그런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 엘런은 아버지의 기억이 정리되면서 어머니 [[카를라 예거]]와 [[한네스]]를 잡아먹은 거인이 아버지의 전체 [[다이나 프리츠]]라는, 혹은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왕가의 피를 이은 사람"을 거인으로 만들어 자신과 신체를 접촉하면 시조의 거인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즉 지금 크리스타, "히스토리아를 이용해서 시조의 거인의 힘을 다룰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카사와 아르민
- 츠츠모타세 . . . . 11회 일치
「미인국(美人局)」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쓰여진 『무림구사(武林旧事)』라는 책에 수록된 나오는 범죄 행위의 일종이다. 무림구사에서는 "[[창녀]]가 남자와 짜고 [[소년]]이나 [[청년]]을 유혹하고, 나중에 남자가 그 창녀를 자신의 [[아내]]나 [[첩]]이라고 속여서 돈을 뜯어낸다."는 의미였다.
[[에도 시대]](江戸時代)에는 츠츠모타세(美人局)가 현대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당시 서민 오락이었던 [[라쿠고]](落語)의 한 대목인 「코마쵸우(駒長, こまちょう)」에서 츠츠모타세를 다루고 있다. 이 단어는 에도 시대에는 농담거리로 많이 쓰였다.
에도 시대의 라쿠고 코마쵸우의 내용은 이러하다. 가난하고 빚이 많은 쵸하치(長八)라는 남자는 빚쟁이 타케하치(丈八)를 상대로 츠츠모타세를 걸려고 한다. 과거 쵸하치의 아내 오코마(お駒)는 타케하치와 사귀었으나, 쵸하치가 빼앗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쵸하치는 타케하치가 아직 자신의 아내에게 미련이 있다고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쵸하치는 오코마를 시켜, 타케하치에게 연애편지를 쓰게 한다. 편지를 본 타케하치가 집에 오자, 쵸하치는 오코마와 부부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타케하치를 몇 대 때린 다음 이런 여자는 너에게 준다고 큰 소리를 치고 집을 떠난다. 그 다음에 오코마가 타케하치를 유혹하게 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들어와서 [[부엌칼]]을 들이대고 현장을 잡은 다음, 빚을 무효로 하고 오히려 타케하치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반은 예정되로 되었으나, 쵸하치가 집을 뛰쳐나와서 안심하고 술을 마시고 잠들어 있는 동안, 타케하치는 자신과 함께 살면 [[기모노]]도 사주고 이것도 사주고 저것도 사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 말을 듣고 가난한 데다가 자신을 사기에 끌어들이는 쵸하치에게 질려버린 오코마는 저런 남편과 살면 평생 고생을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겨, 타케하치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별 편지를 쓰고 떠나버린다.
다음날 아침, 쵸하치는 [[부엌칼]]을 들고 집에 뛰어들지만 이미 때는 늦어 오코마는 타케하치와 함께 가재도구를 챙겨서 떠나버렸다. 쵸하치는 텅 빈 집에서 오코마가 자신을 비웃고 욕하는 이별 편지를 남긴 것을 발견하고, 분노하여 부엌칼을 휘두르며 뛰쳐나왔으나, [[까마귀]]가 머리 위에서 「아호오(바보) 아호오(바보)」하고 울어대며 끝난다.
데이트 사이트와 츠츠모타세가 결합하기도 하는데, 데이트 사이트에서 젊은 여성이 제안을 해오고 그걸 받아들이면, 웹사이트 운영자를 자칭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여 그 사람은 18세 미만이었다고 연락하고, 경찰서에서 [[IP]]와 로그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며 당신이 체포될 가능성이 있다고 협박을 가한다. 그리고 비용을 부담해주면 IP와 로그를 [[위조]]해서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하여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 아이치 미카와 법무사무소 : http://www.aichi-mikawa.com/tutumotase.html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11회 일치
본디 원작은 마크 슐츠[* [[피너츠]]의 작가와 성씨가 같지만 혈연관계는 아니다. 나중에는 슈퍼맨&배트맨 vs 에일리언&프레데터 같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의 제노조익 테일즈(Xenozoic Tales). [[만화]]가 히트한 후 당시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자인 미국의 10대 소년, 소녀들에게 맞게 원작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을 삭제하면서 내용을 변형시키고[* 그러한 부분들을 삭제하니 내용 자체가 안 이어져서 그냥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스토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목을 바꿔서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바로 캐딜락&디노사우르스이다. 이후 애니메이션을 베이스로 [[마블 코믹스]]에서 이걸 다시 만화화했으며, 또 이 만화를 [[캡콤]]이 [[벨트스크롤 액션게임]]화한 것 또한 캐딜락&디노사우르스이다. 본 항목에서는 게임 위주로 서술한다.
한때 [[오락실]]을 풍미했던 [[캡콤]]의 [[아케이드]] 게임으로, 제목의 캐딜락은 원작에서 주인공 잭이 몰고 다니는 캐딜락 자동차(1952 Cadillac Series 62)를 뜻하며, 디노사우르스는 말 그대로 공룡. 즉 현대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와 중생대 생명체인 공룡을 붙여서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후속작인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두번째 대격변(Cadillacs and Dinosaurs: The Second Cataclysm)"이 세가CD와 PC판으로 나왔는데, 그래픽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반복되는 플레이와 지나친 급커브 등으로 문제가 많았다.
캐딜락을 타고 돌진하며 적들을 깔아 뭉개는 재미가 쏠쏠하다. ~~[wiki:"무스카" 우하하!! 사람이 쓰레기와도 같아!!!]~~ 더구나 이 판에서는 총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총 좋아하는 유저는 실컷 총질도 할 수 있다. 잘하면 주먹은 딱 한 번만 쓰고 스테이지 클리어가 가능하다. 단 스코어링을 노릴시 차를 타면 그대로 [[망했어요]] 신세가 되니까 스코어링시에는 차는 거뜰떠 봐서도 안 된다. 정확히 말해서 가끔 나오는 안테나 달린 라디오 아이템을 먹으면 안된다. 먹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자동차 호출...
[[와리가리]]는 힘들지만 [[무기]]를 이용한 다양한 플레이는 [[파이널 파이트]]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총기]] 위주인데다 다 쓴 총기도 적에게 던지거나 둔기로 쓸 수 있다.(...)
참고로 [[투니버스]] 개국 초기에 '캐딜락을 탄 전사'라는 작명으로 애니판을 방영해주기도 했다.여주인공 한나역의 [[서혜정]]씨 목소리를 기억할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주인공 잭 역에 [[최원형]],잭,한나와 대립하는 공룡 밀렵꾼 우두머리 역에 [[장광]]이 맡는 등 나름 초호화 성우진이었다.]
불타는 마을에서 모건이 공룡으로 변해버린 걸 본 주인공 일행은 그 바로 윗동네인 광산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페센덴 박사가 개발한 3단변신 괴물을 보고, 이에 따라 단순한 껄렁이 조직인줄 알았던 블랙 마켓은 알고보니 천재 과학자 시몬 페센덴이 거느린 거대 조직임이 드러났고 페센덴의 진짜 목적인 '모든 이들에게 공룡 바이러스를 주입하여 공룡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이 시작된 해상 도시로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치며 지하의 기지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박사가 없었고 거기에는 슬라이스를 개조한 슬라이사우르스 2마리(혹은 3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주인공 일행은 더욱 깊숙이 내려가서 동굴 끝에 있는 페센덴 박사의 숨겨진 연구실에서 공룡으로 변한 페센덴 박사와 대결해 이기게 되었으나 박사는 자기 몸에 공룡 머리 두 개가 붙은 무려 삼두룡으로 진화하며, "세계는 내 것이다!"라며 공격해온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의 다구리(…)를 못 이기고 패배한다. 이 때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있다고 외치며 저항하지만 결국 쓰러지고 연구실과 자폭하여 온 몸이 터진다. ~~수류탄과 바주카 맞아서 흩어진 애들은?~~.
이후 연구실이 무너지자 주인공 일행은 수류탄으로 비상구를 부수고 도망간다. 통로를 따라 뛰어가던 도중 한나가 갑자기 쓰러지고, 잭이 그녀를 구하느라 뒤에 남자 무스타파와 메스만 탈출하게 된다. 그 둘은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연구실은 이미 폭파된 뒤였고, 그들은 쓸쓸히 스테이지3의 데스 밸리를 걸어가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리고...
잭은 이제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 말하고~~[[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가 "이제 집으로 가자!(Let's go Home!)"라고 말하면서 속력을 높이자 무스타파와 메스가 ~~태워달라고~~ 함께 뛰면서 캡콤 로고가 나오며 게임이 끝난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11회 일치
사일러스는 자신이 볼 일이 있어서 왔다고 말하지만, 흥분한 젊은이는 사일러스에게 맥주를 한 잔 사주며 현상금 사냥꾼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일러스 그리브스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싸구려 소설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일러스는 젊은 남자 "드와이트", 그곳에 있는 유일한 여자 "몰리", 냉소적인 남자 "잭", 할아버지 "스티브", 주점 점장 "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사일러스는 빌리 더 키드와 만났을 때부터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사일러스 그리브스 역시 링컨 카운티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빌리와 같은 편에 참전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사일러스가 복수하려는 녀석이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일러스는 빌리가 숨어사는 스팅키스프링스 근처 버려진 농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편에 속해있었던 보안관, 팻 가렛의 추격대가 빌리의 은신처를 습격한 것이었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를 들은 사일러스는 서둘러 빌리의 은신처로 달려간다. 팻 가렛의 수많은 부하들이 빌리가 있는 농가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포위망을 정면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사일러스는 농가 뒷쪽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적들을 기습한다. 실력이 형편 없었던 적들은 기습을 당하자 마자 순식간에 무너진다. 사일러스는 빌리 일당의 엄호를 받으며 농가 뒷문으로 들어간다. 그는 계단에서 소총을 쏘던 [[https://en.wikipedia.org/wiki/Dave_Rudabaugh|더티 데이브]]를 지나 빌리와 [[https://en.wikipedia.org/wiki/Charlie_Bowdre|찰리 보우드레]]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사일러스를 본 빌리는 그를 "아미고"라고 부르며 소총을 건네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잭이 사일러스(현재)에게 빌리 더 키드랑 친구였던 거냐고 물어보자, 사일러스는 "응…그런 셈이지…."라고 대답한다. 어쨌든 사일러스는 소총을 받아 인해전술을 시전하는 가렛의 부하들을 쏴죽인다. 하지만 반대편을 담당하던 보우드레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가렛의 부하들이 개틀링을 가지고 와 농가에 쏴갈기는 상황까지 되자 빌리는 도망쳐야 하니 마구간에 가서 말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사일러스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니 명령에 따라야하는데ㅅㅂ"같은 생각을 했지만 일단 빌리의 말을 듣기로 했다. 사일러스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데이브를 지나, 농가 뒷문을 박차고 나와 마구간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가렛의 부하들을 해치운다. 결국 마구간에 도착한 사일러스, 하지만 그곳에서 가렛을 만나게 된다.
>드와이트: 그놈한테 맞서 싸웠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 양철 별이나 달고 뒷통수나 치는 녀석.
갑자기 이야기에 끼어 든 드와이트. 드와이트는 자신이 소설에서 읽은 이야기를 말한다. 사일러스는 가렛을 상대로 결투를 벌여 정정당당하게 그를 죽인다.
마구간 앞에 있던 순간부터 다시 시작. 사일러스가 마구간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가렛이 튀어나와 소총으로 후려친다. 사일러스는 가렛의 "빌리가 아니잖아?"라는 말을 들으면서 기절한다.
드와이트는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냐고 어이없어하지만, 사일러스(현재)는 이건 단지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 토리코/383화 . . . . 11회 일치
[[토리코]] 383화. '''토리코와 스타준'''
* 미도라의 등장. 왕식만찬을 소멸시키며 아카시아와 대면한다.
* 최종결전이 시작된 이후 전지구적 충격이 휘몰아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인간계의 피해는 경미.
* 세츠노는 지로의 기척이 사라진걸 알고 있고 치치의 기력도 다해간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건 토리코와 또다른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 그는 다시 일어서며 "어떤 남자에게 감사를 전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덕분에 찾아헤매던 "재료와 맛"에 도달했다고 한다.
* 그리고 그 남자는 언제나 남과 나눌 줄 아는 자인데 바로 스타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그와 "나눠가진" 자라고 말한다.
* 이 기술은 지구와 아직 죽지 않은 팔왕들을 모두 먹어치울 기술.
* 드디어 대면한 아카시아와 미도라.
* 블루 니트로 페어과 독자적으로 아카시아와 협력관계를 맺은건 사실이었다. 이전에도 묘하게 단독으로 아카시아와 만나는 장면이 많아서 의심되던 부분인데 확인되었다.
* 세츠노가 토리코와 함께 기대를 거는 자도 스타준으로 보이는데 이걸 감안하면 세츠노나 지로는 이들의 출생에 대해서 알고 있던거 같다.
- 토리코/384화 . . . . 11회 일치
[[토리코]] 384화. '''죠아와 플로제'''
* 참다 못한 미도라와 아카시아의 대결. 죠아가 중간에 난입하자 미도라는 "내 풀코스를 알려주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 마침내 대면한 플로제와 미도라와 아카시아.
* 그에게 플로제는 거슬리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다른 여자의 키스 마크를 달고 돌아와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최고의 요리를 내놓던 썩 괜찮은 여자'''였다고 말한다.
* 예상을 들어엎고 토리코와 스타준의 아버지는 아카시아일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아졌다.
* 갑자기 아카시아의 아이의 존재가 나타나고 죠아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토리코와 스타준이 가능성이 높아진다.
* 미도라가 뿌려준 요수로 플로제가 죠아로 부활하고 뱃속에 있던 쌍둥이가 토리코와 스타준으로 성장했다면 딱 들어맞는다.
* 이렇게 되면 스타준과 토리코도 엄청나게 고령이 되는데, 실제로 스타준은 "나는 보기와는 달리 젊지 않다"고 한 적이 있다. 복선이었던 셈.
* 미도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풀코스를 거의 완식한 상태라 그런지 진화한 아카시아와 거의 대등한 상태. 엠페러 링이 증거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11회 일치
* [[그레이 록버스터]]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루시는 [[나츠 드래그닐]]의 승리를 믿으며 END의 서를 여는데.
* 한편 나츠와 [[제레프 드래그닐]]의 승부는 막바지. 제레프는 "네오 이클립스"란 것으로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 한다.
문에서 나온 여성은 루시와 레이라의 먼 선조 [[안나 하트필리아]]. 그녀는 레이라에게 지금의 연도를 확인한다. 지금이 400년 뒤라는 걸 알고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자신과 함께 와야 했던 다섯 명의 멸룡마도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안나가 당황하며 자신과 함께 다섯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냐고 묻는데, 레이라 대신 토마가 대답한다. 아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열자마자 다섯 개의 빛이 천장을 뚫고 밖으로 날아갔다고. 토마가 천장에 남은 흔적을 보여주자 안나는 할 말을 잊는다.
* 잠시 뒤. 왕궁의 발코니에서 하트필리아가의 여자들은 서로의 소개와 정보를 교환한다. 하트필리아가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안나는 그렇다해도 마력이 충분한 시대였기 때문에 문이 열린 거라며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너무 고생시켰다고 위로한다. 안나는 바깥으로 펼쳐진 피오레 왕국을 내려다보며 400년 뒤에도 인류와 문명이 남아있는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해졌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오자마자 멸룡마도사들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곧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고친 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로 한다.
그건 이클립스를 사용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뛰어넘은 여파로 시간이 뒤틀렸는데, 시간 자체에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수정력"이 존재하는 듯 하다. 그것이 작동하면서 시간의 틈새와 그 안에 있는 무의 마력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 시간의 틈새 속은 완전한 "무" 자체이며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아크놀로기아]]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제랄은 그녀의 계획이 "아크놀로기아를 유인해 시간의 틈새에 가둔다"는 것임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런 힘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안나는 자신이 그걸 숨겨놨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웬디는 정말로 그 공간이 시간의 틈새냐는 질문을 한다. 안나는 1년 전 [[대마투연무]] 때 이클립스가 다시 열리고 그 "구멍"이 반응했었다고 대답한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다시 복도로 나와서 일행에게 작전개요를 전달한다. 크리스티나호는 시간의 틈새를 우회한 뒤 그 앞에서 아크놀로기아를 기다린다. 아크놀로기아는 시간의 틈새가 있는 줄 모르므로 그대로 직진, 자기도 모르개 틈새에 접촉한다. 그러면 소멸. 바보같이 간단한 작전이다. 엘자는 정말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웬디와 제랄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하지만 안나는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 같은 시각 매그놀리아의 루시와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들은 아직 공원에서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작전을 기다리고 있다. END의 서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던 루시는 겨우 진정이 됐지만 아직도 불안해하는 듯 하다. 그녀는 그레이가 "END의 서를 파괴하겠다"고 한 말을 떠올리고 이젠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냐고 확인하듯이 묻는다. 그레이는 그땐 [[나츠 드래그닐]]의 책인줄은 몰랐을 뿐이라며 당연히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11회 일치
* 루시는 [[나츠 드래그닐]], [[해피(페어리 테일)|해피]]와 처음 만났던 하루지온으로 향하며 "다시 한 번 여기서 나츠를 만나겠다"고 다짐한다.
* 한편 지상에선 그레이와 리온의 합작으로 배가 준비되고 페어리 스피어 발동을 위한 포진도 완성된다.
* 둘이서 동료들에게 날아가는 루시와 해피. 루시는 문득 하루지온에 대해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면 이곳이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 그리고 루시가 처음으로 만난 장소다. 그녀의 모험이 시작된 곳이며, 모든 인연이 시작된 땅이다.
루시가 도착해 보니 동료들은 벌써 방진을 이루고 손을 잡은 채 기다리고 있다. 루시는 그들에게 날아가며 나츠와 그와 만났던 그 날을 회상한다.
>다시 한 번, 여기서 나츠와 만나겠어.
마룡이 온몸으로 마력을 방출하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나츠와 시간의 틈새의 지형을 집어삼킨다.
* 그레이와 리온이 힘을 합친 범선 조형은 대성공했다. 알바레스 제국이 끌고온 함선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얼음의 배가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리온은 이것이 자기의 최대 걸작이라 자신했다. 그레이가 엘자와 미라젠에게 준비가 끝났다 신호한다.
* 힘을 합쳐 마룡을 묶어놨던 엘자와 미라젠은 페어리 스피어의 준비 상태를 확인한다. 루시를 중심으로 짜여진 거대한 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손과 손을 맞잡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루시가 준비 완료 신호를 보내고 드디어 작전 시작이다.
* 미라젠과 엘자가 마룡을 유인한다. 작전을 까맣게 모르는 마룡이 낮게 비행하며 따라온다. 레비와 프리드의 술식 작업도 막바지. 쥬비아가 바다의 해류를 조종해 배를 적당한 위치까지 몬다.
- 하이큐/217화 . . . . 11회 일치
*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햐쿠자와 유다이에게 히나타가 조언으로 자신의 장점을 찾도록 해준다.
* 히나타는 쿠니미 아키라의 플레이에 주목하는데 우시와카처럼 군더더기가 없는 깨끗한 플레이가 특징.
* 햐쿠자와 유다이는 멤버 중 유일하게 2미터의 신장을 가지고 있지만 테크닉이 낮아 전반적인 플레이는 중학생 수준.
* 반대로 햐쿠자와는 스스로가 느끼기에고 조잡하고 빈틈이 많은 플레이. 자존감이 완전히 붕괴된다.
* 그러면서 햐쿠자와는 큰 신장이라는 무기가 있는데 자신은 카게야마가 없으면 기량을 펼칠 수 없다고 말한다.
* 햐쿠자와는 자신은 키가 클 뿐이라고 말하는데 히나타는 그거야 말로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최고의 재능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 햐쿠자와는 그렇게 자신을 격려해서 무슨 이점이 있냐고 묻는데
* 쿠니미팀을 상대하는 햐쿠자와팀
* 햐쿠자와는 큰 키를 살려 레이스를 끊는다.
* 혼전 중 공을 높이 띄우는 햐쿠자와
*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은 햐쿠자와.
- 하이큐/218화 . . . . 11회 일치
* 오늘 매치는 고시키&츠키시마 vs 쿠니미&햐쿠자와
* 코트 밖에서는 고시키&츠키시마 조가 햐쿠자와를 집중 공격하면 돌파구가 있지 않겠냐고 예측한다.
* 그러나 히나타는 "햐쿠자와가 하나라도 올리면 그대로 햐쿠자와의 공격이 되는데 이게 위협적"이라 평가한다.
* 그 말대로 츠키시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커트하는 햐쿠자와.
* 고시키는 히나타의 조언 이후 햐쿠자와에게 여유가 생겼다고 평한다.
* 햐쿠자와의 공격.
* 츠키시마는 햐쿠자와가 쉬운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보고 블록 없이 물러나서 받을까 고민하는데, 그래도 햐쿠자와는 "내려 찍을 것"이라 예측하고 정확히 블록한다.
* 다음 일정으론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사이토 코치가 담당인데, 그가 굴을 먹다 식중독에 걸려서 일정이 변경된다.
* 시라토리자와 3학년 & OB팀과 연습시합.
- 하이큐/250화 . . . . 11회 일치
* 절호의 속공 찬스를 어이없이 놓친 [[히나타 쇼요]]. 중계석에서는 [[카라스노 고교]]의 경기 초반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그런데 히나타가 답지 않게 죽을 만큼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물론 상대편 [[미야 아츠무]] 조차 "너무 풀죽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코트 바깥의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실수했다고 저렇게까지 좌절한 적이 있던가? 의문을 표시한다.
* [[이나리자키 고교]]의 서브. 서버는 [[스나 린타로]]. 아츠무와 달리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시끄럽게 응원한다. 스나는 시끄러워도 영향을 안 받는 타입. 1회차 서브는 우측 구석, [[사와무라 다이치]] 쪽으로 뚝 떨어지는 서브. 받기 힘든 코스지만 사와무라가 어떻게든 리시브한다. 하지만 공이 흔들리고 히나타가 살려서 그대로 타나카의 스파이크. 그러나 [[미야 오사무]]의 블록에 걸린다. 그대로 찬스볼. 응원단이 "찬스볼"을 합창하듯 입을 맞춰 외친다. 스나가 받으러 오는데 여기서 아츠무가 묘기를 부린다.
아츠무는 퍼스트 터치와 동시에 그대로 새트업, 약속이라 한 것 처럼 [[오지로 아란]]이 총알같은 스파이크로 점수를 벌어간다. 카게야마가 블록을 뛰어 보지만 무리. 그외 카라스노의 다른 선수들은 반응하지도 못했다. 오지로는 성공해 놓고도 아츠무에게 "놀라게 한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응원단은 선수들 이상으로 기세가 오른다. 중계석은 이나리자키에 칭찬 일색.
* 경기를 보러왔던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 보쿠토 쪽은 "아란 제법이다" 정도의 짧고 단순한 반응. 아카아시는 사뭇 냉정하게 분석을 내린다. 방금 퍼포먼스는 쇼맨쉽만은 아니다. 시작부터 이런 공격을 성공시켜서 "우린 첫경기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여유롭다"는 걸 과시하는 것이다. 지금은 바깥에 있는 입장이라 이렇게 냉정하게 분석하는 거지만, 코트에서 마주치면 싫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다른 강호들도 이 시합을 보러왔는데, 그 중엔 카모메다이 학원의 호시우미도 있다. 그도 아카아시와 비슷한 판단을 내렸는지 "열 받는다"고 코멘트.
* 스나의 2회차 서브. 스나는 의도적으로 주심이 호각을 부는 타이밍을 잰다. 그리고 호각이 떨어지는 순간에 맞춰 곧바로 서브. 카라스노 측에 서브를 예측할 여유도 주지 않을 속셈이다. 이번에도 사와무라를 노리고 오는 서브. 또다시 리시브가 흔들린다. 공은 네트 쪽으로. 살리는건 카게야마. 중계석은 카라스노 측이 "휘말린다"고 표현한다. 그 말대로 카라스노는 페이스를 잃은 상황.
* 되돌아온 공은 [[니시노야 유]]에게. 안정적으로 리시브한다. 공은 다시 카게야마의 세트업으로. 그런데 곧바로 뛰어 오를 줄 알았던 히나타가 "앗"하고 움찔한다. 정면에 있던 이나리자키의 오미미가 거기에 주의를 뺏긴다. 그리고 순간. 히나타는 폭발적인 가속으로 코트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도약. 아츠무가 그랬던 것처럼 한순간 체육관의 모든 이목이 히나타에게 쏠린다. 카라스노를 얕봤던 미야 형제는 똑같은 타이밍에 "우와"하고 탄성을 뱉는다.
* 아츠무가 보여준 묘시를 그대로 갚아준 셈. 그런데 호시우미는 딱 한 번 봤을 뿐인데도 히나타의 점프를 보고 불편함을 어필한다. 히나타가 그의 점프를 표절한 걸 눈치챘기 때문일까? 그 밖의 강호교들도 방금 전 플레이에 후한 평가를 내린다. 보쿠토는 당연히 호들갑을 떠는데, 아카아시는 아츠무의 플레이 때와는 상반되게 단순명쾌하게 정의한다.
연재 5주년 기념 센터 컬러는 모처럼 등장한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차지. 원래 히나타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텐도 사토리]]가 히나타에게 사기를 쳐서 엉뚱한 곳으로 보내고 카메라를 스틸했다... 라는 설정. 텐션이 오른 텐도가 "이번 에피소드는 전편 실사화"라는 개드립을 쳐대서 후배들이 말리는 내용이다.--이딴 걸로 귀중한 컬러를 날려먹는 거냐--
- 하이큐/251화 . . . . 11회 일치
*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가 우연히 탄생시킨 이동공격이 이나리자키로 기울던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 스코어는 4 대 3. 이나리자키의 1점 리드. 그러나 경기 초반부터 이나리자키로 기울던 분위기가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이동공격으로 뒤집힌다. 그동안 이나리자키의 플레이에 관심이 집중됐던 관객들은 새삼 카라스노 고교와 1학년 콤비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경기 시작전 카라스노 고교를 형편없이 얕봤던 [[미야 아츠무]]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멋지다고 감탄한다. 놀라운 순발력과 민첩성, 그러면서도 점프 높이는 전혀 줄지 않는 탄력 등. "직접 보니 더 멋지다"고 감탄하고 있으려니 동생 [[미야 오사무]]가 옆에서 "너는 시합만 하면 정신연령이 5살 이하"라고 빈축한다.
* 관중석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카게야마와 마찬가지로 아츠무의 "첫 디딤"을 높이 평가한다. 그 세련된 디딤이야 말로 딜레이없는 속공 연결의 밑바탕이다. 매우 빠르고 정확하겐 첫 스텝 덕분에 이후의 모든 동작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 [[아마나이 카노카]]는 동료와 함께 카라스노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동료는 타나카의 활약가 활약하자 제법이라고 분위기를 돋우는데, 카노카는 생각보다 냉철하게 경기를 분석하고 있었고 타나카의 움직임도 진지하게 평가한다. 과거 그저 힘껏 치던 데서 많이 발전한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카게야마의 서브 때 그랬듯, 이번에도 이나리자키의 응원석은 떠들썩하게 박자를 맞춘다. 큰 북과 각종 타악기를 이용한 빠른 템포의 연주. 그런데 이 연주 때문인지 카라스노를 응원하는 관중들도 템포에 맞춰서 박수와 구호를 연호한다. 이것은 육상 경기 같은데서 선수가 객석의 응원을 유도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문제는 그건 선수가 자기 컨디션을 위해 유도하는 거지만, 이번 적측이 카라스노의 템포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하는 행동.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관객의 호의를 끌어내는 척하며 실제론 방해행동을 하고 있다.
관중석에 와있는 노헤비 학원 배구부의 전주장 [[다이쇼 스구루]]는 나이브한 태도로 "이나리자키가 가차없다"고 평한다.
* 하지만 카라스노 응원단도 이대로 주저앉진 않았다. 증원군이 도착했다. 타나카의 누님 [[타나카 사에코]] 등장. 새로운 응원도구와 지원병력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가 카게야마, 히나타, [[야치 히토카]], [[니시노야 유]]의 초등학생 시절 사진을 감상하는 것. 단연 눈에 띄는건 니시노야. 초2 때 사진인데 키나 차림새가 거의 변한게 없는 느낌이다. 사와무라는 "니시노야는 초2때 완전체"라는 놀라운 표현력을 과시한다. 아즈마네는 "저렇게 나뭇가지 들고 있는게 잘 어울리는 애가 있나?"라고 감탄한다.
- 하이큐/252화 . . . . 11회 일치
* 오명을 회복하기 위해 [[카게야마 토비오]]의 세트업을 받는... 줄 알았는데 페이크. [[사와무라 다이치]]의 스파이크로 연결된다.
* 이런 변화는 벤치에 모인 카라스노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그 소리만 듣고도 누나가 왔음을 짐작하고 움찔한다. 선수들의 이목이 응원단으로 모였다. [[히나타 쇼요]]가 맨 처음 [[타나카 사에코]] 누님을 발견했다. 이 태고팀은 사에코가 결성한 팀으로 원래는 축제날 공연하려고 준비한 것이다. 그녀가 태고를 두드리는 모습에 반했는지 시마다와 타키노우에는 자기들 보다 연하인 사에코를 누님이라 부르고 있다.[* 둘은 25세. 사에코는 21세.]
다른 팀의 응원단들도 카라스노의 태고팀에 시선을 뺏긴다. 바보커플도 그랬는데 여자쪽은 취주악이 좀 더 좋다고 하지만 남자 쪽은 "그래도 전통"이라며 카라스노 쪽에 점수를 더 준다. 히나타와 [[니시노야 유]]는 태고팀을 보며 "멋짐사(死)"라는 괴이한 사인으로 죽을 것 같다고 심장을 움켜쥔다. 사전에 사에코와 태고팀이 올 걸 알았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와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다행히 늦지 않았다"며 한시름 놓는다.
그녀가 카라스노 응원단에 태고팀을 합류시킨 것은 시라토리자와 전 때 경험 때문이었다. 전교생을 동원한 압도적인 응원 덕에 이쪽이 기가 죽은 기억이 매우 분했다.
* 공은 아츠무에게 연결. 이번에도 논스톱 세트업이다. 더블 퀵. 두 명의 선수가 뛰어나온다. 블록인 츠키시마, 타나카, [[사와무라 다이치]]는 공이 어디로 갈지 끝까지 주시한다. 결국 공은 우측으로. 츠키시마와 사와무라가 블록하러 간다. 이 더블 퀵을 읽어낸 선수는 한 명 더 있었다. 후방의 히나타가 스파이크 낙하 지점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자리를 선점한다.
그의 차례다 아니다. 공은 우측의 사와무라에게. 히나타에게 정신이 팔렸던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깨끗하게 속으면서 사와무라에게 1점을 헌납한다. 점수는 7 대 6. 카라스노가 추격세를 이어가지만 히나타 본인은 흑역사가 하나 늘었다.
- 황두진 . . . . 11회 일치
평양 출신의 아버지와 원산 출신의 어머니 사이 서울에서 태어났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kr/books?id=_EHEAwAAQBAJ&printsec=frontcover&dq=%EB%8B%B9%EC%8B%A0%EC%9D%98+%EC%84%9C%EC%9A%B8%EC%9D%80+%EC%96%B4%EB%94%94%EC%9E%85%EB%8B%88%EA%B9%8C&hl=ko&sa=X&ved=0ahUKEwjwoLqgxa_bAhWDVLwKHeIxBacQuwUIKDAA#v=onepage&q=%EB%8B%B9%EC%8B%A0%EC%9D%98%20%EC%84%9C%EC%9A%B8%EC%9D%80%20%EC%96%B4%EB%94%94%EC%9E%85%EB%8B%88%EA%B9%8C&f=false |인용=그의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고무공장을 하는 사업가였으며 해방 전에 사업을 서울로 옮겨 성북동 청암장(현재의 길상사)에 살면서 일종의 사설도서관을 운영했고, 해방과 전쟁으로 이북의 사업기반을 잃고 난 후에는 당시 창경원의 장서각 사서로 일했다.|제목=황두진,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p20|성=|이름=|날짜=|출판사=해냄|확인날짜=}}</ref>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수련하였다. 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ref>{{웹 인용|url=https://gwangjinlib.seoul.kr/gjinfo/recommendBookDetail.do?bookIdx=2149&recommendTypeCd=general|제목=가장 도시적인 삶|저자=황두진|날짜=|웹사이트=광진정보도서관|출판사=반비}}</ref>
건축가로서 개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 거리와 소통하는 건물, 사회에 필요한 건축 등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무지개떡 건축은 그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이다. 그가 현대 도시건축의 중요한 유형으로 보고 발전시켜오고 있는 개념이다. 개별 작품과 기고문을 통해 생각을 전개시킨 후 2016년 저서인 '무지개떡 건축'을 통해 정리해서 발표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085412|제목=진정한 의미의 주상복합이 가장 도시적인 건축|저자=이은주 기자|날짜=2017-11-06|뉴스=중앙일보|출판사=}}</ref>
전층이 단일용도로 되어있는 건축물을 시루떡에 비유한다면 층별로 서로 다른 기능을 갖는 건축물은 무지개떡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5층 내외로 상층부에 주거가 들어가는 유형을 황두진건축에서는 특별히 무지개떡건축이라 부른다. 기본적으로 길과 면한 저층부에는 외부계단과 상가가, 중간층에는 사무실이, 상층부의 주거에는 옥상마당 등이 들어간다. 무지개떡건축은 도시의 밀도를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거리의 활력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조망 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탁월한 도시건축의 유형이다. 사회적으로는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서 도시재생에도 유리하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rca/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홈페이지|제목=무지개떡 건축 rainbow cake architecture|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251347501&code=960205 |뉴스=경향신문|제목=무지개떡 건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저자=백승찬 기자|날짜=2015-12-25|출판사=|확인날짜=}}</ref>
발코니, 테라스, 옥상마당, 중정 등 건물의 비워져 있는 부분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이다. 채광과 환기,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특히 한반도의 기후조건에 적합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공성 건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옥이다. 황두진건축은 그간의 한옥 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다공성을 확보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 다공성의 개념은 배치와 공간에서 시작하여 입면과 단면, 그리고 세부적인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porosit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다공성 porosity|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4/2015091400130.html?Dep0=twitter&d=2015091400130 |뉴스=조선일보|제목='구멍 숭숭' 벽돌 건물 차가운 유리도시 녹이다|저자=김미리 기자|날짜=2015-09-14|출판사=|확인날짜=}}</ref>
한 건물 안에 다양한 기하학이 공존하는 것이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이다. 이런 건축물은 사람에게 즐거운 놀라움과 지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기하학이 구조 및 재료와 결합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칸’(間)으로 대변되는 직교좌표계와 3차원 곡선으로 구성된 지붕이 공존하는 한옥이 그 대표적인 예다. 중첩된 기하학은 황두진건축의 독창적인 개념의 하나로, 근대건축의 무미건조한 상자의 미학에서 벗어나 삶의 공간 속에서 풍성함과 쾌적함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
2014
미국 4개 대학 순회강연: 네브라스카대학(UNL), 아이오와대학(ISU), 켄트주립대학(KSU), 로드아일랜드디자인대학(RISD)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10회 일치
* 점심을 준비하는 카와모토 자매.
* 츠케멘을 폭풍처럼 흡입하는 카와모토 자매.
* 한편 키리야마는 속을 헤아릴 수 없는 나메리카와의 행마에 당황하다 결국 "물러선다면 가겠다"며 거침없이 둔다.
* 나메리카와는 키리야마의 응수에 감탄하며 "최선의 수를 자연스럽게 골라낸다"고 생각한다.
* 옆에서 대국 중인 미스미도 그 반상을 주시하며 "나메리카와가 푹 빠질만 하다"고 평하는데, 그렇다고 나메리카와가 봐줬으면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런데 바로 그때 나메리카와가 그의 반상도 흥미를 보인다.
* 나메리카와는 미스미가 둔 "고키겐중비차"를 좋다고 평하며 "부디 그 수에 어울리게 기분 좋게" 두라고 권한다.
* 그리고 카와모토 자매는 결국 6인분의 국수를 둘이서 과식하고 드러누워 버린다.
* 분명 장기두는 만화일 텐데 주인공이 어렵게 일전을 치르는건 뒷전이고 카와모토 자매가 배터지게 국수 먹는 내용이 반을 넘는다.--뭐하는 만화인가--
- Crusader Kings 2 . . . . 10회 일치
샤를마뉴와 그의 동생 카를로만이 주요 인물인데, 이게임에서 샤를마뉴는 미친듯한 사기능력치와 함께 12기사들이 속속들이 합류하는 이벤트, 카를로만의 아들이 망명하는 곳[* 보통 롬바르디아, 가끔 아스투리아(...)]에 클레임이 생기는 이벤트, 작센을 정복하는 이벤트까지 겹쳐 사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힘을 보여준다. 반면 그의 동생인 카를로만은 어머니가 찾아와 독약을 건네주는 이벤트등 온갖 디버프가 쏟아지는 안습인물. 그래도 가~끔 샤를마뉴가 전쟁에 선봉으로 나섰다가 전사하거나(...) 수행불능이 되버리거나 해서 카를로만이 실권을 잡는경우가 있기는 하다.
비잔티움쪽은 안습하기 짝이 없는데, 우선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5세가 성상파괴주의자이어서[* 게임 시스템상 성상파괴주의는 정교회의 이단으로 취급된다] 종교권위가 개판이라 반란이 넘쳐나고, 불가리아와 아바스가 영토를 노리고 침공해오는 경우도 잦아 살아남기 힘들다. ~~몇안되는 비잔티움의 양심 시나리오~~
그외 이 시나리오의 아바스는 페르시아일대와 이집트, 그외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를 장악한 최대판도이다.
주요인물들은 류리크, 독일인 루트비히, 대머리왕 샤를, 그리고 [[바실레이오스 1세]]와 흰셔츠의 할프단.
1. 선택한 인물의 대표 작위와 이름
2. 선택한 인물의 나이와 [[위키피디아]] 링크. 여성의 경우 45세 이상은 임신을 할 수 없으니 후계자가 필요하다면 주의하자. 위키피디아 링크의 경우 해당 인물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면 작동하지 않는다.
6. 인물의 문화, 야망, 관심사, 능력치. 야망과 관심사는 Way of the Life DLC를 구매해야 나오는 기능이다. 예시의 무르하는 아일랜드인이며 전체적으로 암담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괄호 안의 능력치는 국가 능력치로, 이것이 실질적인 능력치이다. 국가 능력치는 군주 능력치+군주의 배우자 능력치+해당 능력치와 관련된 주요 직책의 능력치이다. 각 능력치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 강구열 . . . . 10회 일치
정작 이슈를 불러일으킨 이후엔 1년 가까이 부진한 모습으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최근 [[BATOO 스타리그 08-09]] 오프라인 예선에서 [[변형태]](CJ 엔투스)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36강 본선에 진출했으나 조기탈락했다. 여담으로, 그무렵에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을 벼르고 있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나, 정작 그렇게는 못 됐다. 그 후,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크게 내지 못한 채로 [[2009년]] [[9월 10일]] 소위 '날일' 에 날카롭게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는 역시 전직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프로게이머인 [[안기효]]와 함께 [[나우콤]]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두 선수의 첫 인연은 곰TV [[MSL]] 시즌2 조지명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조지명식에선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영구제명)와 [[박성훈 (프로게이머)|박성훈]]([[삼성전자 칸]])의 신경전이 한창이었는데, 이는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일어난 '버그 사건' 때문이었다. 시종일관 박성훈은 "벌레(버그)테란과 맞붙고 싶다" 등의 공격적인 멘트로 김창희를 자극하였다.
그러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말았다. 김창희가 전대회 4강에 올랐던 [[진영수]](당시 [[STX 소울]] 현 영구제명)에게 "만만하다"며 도발하자, 진영수가 "나와 승부하려면 강구열부터 꺾고 오라"며 응수한 것. 결국 별다른 친분도, 사연도 없던 강구열과 김창희는 진영수에 의해 같은 C조에 편성되었고, 김창희는 강구열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종 진영수만 자극하기에 바빴다. 가만히 지켜보던 강구열이 "나는 버그 쓴 테란에게는 지지 않는다"며 김창희를 공격했고, 이에 김창희가 "버그가 아니라 스킬인데 자꾸 버그버그 하니까 좀 그렇다"라며, 한편으로는 "강구열 선수 물론 별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하면서 순식간에 두 선수 사이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또한 이 장면은 각 커뮤니티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이같은 설전의 영향으로 두 선수의 맞대결엔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고, 경기는 강구열의 완승으로 끝났다. C조 2경기에서 강구열이 승리한 이후, 최종진출전에서도 강구열이 김창희를 꺾으며 16강에 진출한 것이다. 결국 김창희는 진영수와의 대결은 고사하고 탈락의 쓴맛만 봤고, 그의 안티팬들은 강구열에게 '세스코 테란(벌레를 박멸했다는 뜻)'이란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곰TV MSL 시즌2 C조 예선에서 김창희만 두 번 꺾고 16강에 오른 강구열은 '퍼펙트 테란' [[서지훈]](CJ 엔투스)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당초에 김창희와의 대결로 화제를 낳긴 했으나, 기량면에선 약체에 속한다고 평가받던 강구열이었기에 그 파장은 엄청났다. 8강전 상대는 당시 대 테란전 최고 승률을 자랑하던 송병구([[삼성전자 칸]]). 팬들은 송병구의 절대 우세를 예측하면서도, 16강에서 일으킨 강구열의 파란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한때 강라인의 열기가 식는 듯했지만, 2008년 12월, 강구열이 바투 스타리그 36강에 진출하면서 강라인의 열기가 다시 뜨거워 질 조짐이 일고 있다. 36강 진출을 확정지은 직후 강구열의 인터뷰 때문, 강구열은 인터뷰에서 "09-10 시즌을 진짜 벼르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강라인의 팬들은 09-10 시즌에서 9와 10을 강구열의 이름에서 강자를 뺀 구와 열로 풀이, 즉 구-열시즌으로 해석하면서 다시금 뜨거워 지고 있는 것이다.
* [[신희승]]([[이스트로]]) : 2010년 6월 영구제명. 신희승의 강라인 가입은 험난(?)했다. [[EVER 스타리그 2007]] 4강 2007에서 [[이제동]]([[르까프 오즈]])에게 0-3으로 완패, 3,4위전에서 김택용과의 졸전 끝에 2-3으로 패배했지만 시드가 없었다. 당시에는 스타 챌린지를 통과한 선수가 D조의 시드권을 잡았기 때문에 신희승은 시드를 잡지 못했다. (스타챌린지가 없어지면서 시드권은 박카스 이후 공동 3위에게 넘어감) [[곰TV MSL 시즌4]] 8강에서 마침내 시드를 딴 이후 [[허영무]](삼성전자 칸)에게 0-3으로 완패하는 '삼고초려' 끝에 강라인의 일원이 되었다. 항간엔 "신희승의 네임밸류는 기존의 강라인과 다르다"는 반론이 일어 논쟁에 휩싸였으나, 신희승 본인이 "나는 강라인이다"고 인정하면서 '공인' 강라인이 되었다. 팬들은 전략가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 '와룡희승'이란 애칭을 붙였다. 이 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선 [[안기효]], [[김민제 (프로게이머)|김민제]]에게, 아레나 MSL에서 고인규, [[박찬수]]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최종전에서 이제동에게 발목을 잡혔다.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와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는 각각 16강에 진출하였다.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1승 2패로 탈락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또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2패로 탈락했다.
- 고소영 . . . . 10회 일치
[[김태희]]와 함께 CF 아니면 내세울 것이 없는 배우로 인식되고 있었으나, 결혼 이후에 이미지가 바뀌어서 [[김남주]], [[이영애]] 등 다른 여배우들이 독점하고 있던 주부 대상 광고 모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다시금 왕성한 활동 중이다.
그런데 [[하정우]]와 영화 출연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기대보다는 걱정된다는 반응이 많았었다. 워낙 말아먹은 작품도 많거니와, 발연기를 시전한 작품이 한두 작품이 아닌지라..'''다행히 엎어졌다.'''
* 2015년 9월부터 [[J TRUST]]의 모델이 되어 TV 광고에 출연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떴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277&aid=0003578730|#]]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배우가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논란이 일었으며 이런 논란에 대해 '''그저 이미지 광고에 출연하는 것 뿐'''이란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해명하는 바람에 팬들의 비판이 더욱 들끓었다. 연예계 관계자 중 한명도 고소영 본인뿐만 아니라 남편인 장동건 또한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는 반응과 함께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는 평이 나왔다. 더구나 [[상호저축은행|저축은행]] 항목에도 나와있는 광고 규제책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광고로 출연한 탓에 그 또한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중이다. 고소영은 사건이 생긴 지 '''2일 뒤에 사과하였고 광고 계약도 취소'''하였다. 여러모로 한국에서의 대부업체의 이미지를 알 수 있는 대목.
* 90년대 연기력이 안 좋은 걸로 유명했지만, 스타로서의 쇼맨십이나 예능감 같은 기질도 그다지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 같으면 방송 태도로 논란이 일었을 만한 순간이 꽤 있었다. 첫 드라마 데뷔작인 [[내일은 사랑]]에서도 주인공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으며 비중이 큰 주연으로 출연했었으나, 뻣뻣한 연기로 질타를 받은 것과 제작진과의 불화로 드라마팀 회식에 혼자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드라마 초반에 하차하기도 했다. (이 대타로 [[박소현(배우)|박소현]]이 투입됨.) 이 때문에 고소영이 다시 KBS 드라마에 나오는 것은 5년 뒤(1998년) '맨발의 청춘'에 가서야 가능했다. 'PD들이 제일 싫어하는 배우'같은걸로 앙케이트에 뽑혀서 예능에서 본인이 그걸 해명하기도 했을 정도.
* 유명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와도 절친이라고 한다.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60419151820960|정윤기, 고소영, 정우성, 이정재가 함께한 화보]] 기사에 따르면 이 넷은 20년지기 친구.
* 배우 [[이혜영(1971)|이혜영]]과 매우 친하다. 결혼식 때 부케를 받은 사람도 이혜영으로, 당시 이혼했던 이혜영은 부케 부탁을 받고 왜 하필 나냐고 당황하면서도 너무 고마웠다는 듯. 2018년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이혜영이 고소영에게 전화를 걸어 평소 목소리와 말투가 나왔는데, 약간 하이톤에 발랄한 말투[* 이혜영 왈 약간 오리같은 [[현영]]타입라고 한다]라서 출연진 모두 깜짝 놀랐다. 방송이란 걸 알게되자 급변하는 목소리톤이 인상적.
* 순창고등학교 출신 인물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순창여고 출신 유명인 중엔 배우 [[이인혜]]도 있지만 인지도나 명성에서 고소영이 훨씬 더 앞선다.] 순창여고와 순창고등학교[* 재단이 같아 두 학교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지어졌다.]의 공동식당 배식구 옆 벽면 에는 '''고소영'''과 과천외고 출신 유명인 중 하나인 랩퍼 [[길(리쌍)|길]]의 사진이 붙어있다. 사족으로, 두 사람의 사진과 함께 인쇄되어 있는 글귀는 '후배님들~ 여기서도 배식해요~'이다. 먼 선배인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이용한 [[시선강탈]]을 통해 다른 배식구로도 학생들이 분산되게 하려는 의도일 듯. 만약 식당 벽면의 이 부착물이 변경되거나 떼어지게 된다면 내용 [[추가 바람]].
* 톱스타 미남미녀배우끼리의 결혼과 도도한 미녀 페이스가 [[비비안 리]]와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등장인물 스칼렛 오하라의 스타일을 그대로 연출한 컨셉의 화보도 찍은 적 있다.
* SBS 아나운서 [[배성재]]의 형이기도 한 배우 [[배성우]]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반 짝꿍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 김중혁 . . . . 10회 일치
음악, 영화, 스포츠, 그림을 아우르는 다양한 관심사 만큼이나 작가의 경력 또한 화려한데,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인디밴드 쇼케이스를 진행했고, [[이동진(평론가)|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흑임자~~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칼럼도 쓰고, 웹툰 작가로도 활동했다니[* 그림 솜씨가 출중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개성있는 편이다. <펭귄 뉴스>, <뭐라도 되겠지>, <미스터 모노레일>의 표지도 직접 그렸다.] 그야말로 문학계의 [[팔방미인]](...)
[[씨네21]]과 연이 깊다. 2009~2010년 절친 [[김연수]]와 함께 '나의 친구 그의 영화'를 연재했다. 이어 2011~2012년에는 '최신가요인가요'를 연재했고, 2014~2015년에는 '김중혁의 바디 무비'를 연재했다. 세 칼럼은 <대책없이 해피엔딩>과 <모든 게 노래>,<바디무빙>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되었다. [[한겨레]]와도 연이 닿아 목요일 ESC 지면에서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을 연재했고, <메이드 인 공장>이라는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2016년 6월부터 [[무비썸]]이 개편을 하면서 [[송경원]] 영화 평론가와 함께 진행한다.
* 대책없이 해피엔딩 (2010) [* ~~불알 친구~~김연수와의 공저. 씨네21 <나의 친구 그의 영화> 모음.]
강동 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에 근무중인 경위. 친구인 동진과는 [[베스트 프렌드|제일 친한 친구]]라고 한다. 동진과는 대학에 들어와 친해진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문자를 보낸 친구와 한 달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심한 성격인듯.(본인은 매일 연락을 주고 받아야 친구는 아니다는 말을 했다.) [[아싸|사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것이 매우 서툴다]]. 하지만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는 동진에게 처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그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이내 마음을 열게된다.
복선은 처음부터 많이 깔려 있었다. 지금은 아싸지만 학기초에는 과묵한 게 컨셉인 줄 알아 인기가 많았다는 과 여동기의 발언, 술김에 박미정 이야기를 하는 동진에게 도대체 뭘 알고 말하는 소리냐는 발언[* 그리고 또 이 말을 들은날에 평소와 다르게 술을 진탕 취할정도로 마시고 살기 힘들다고 술주정까지 한다.], 동진의 행선을 추적하면서 알아낸 법칙을 허은실에게 설명할 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발언, 박미정을 따르는 고양이가 김중혁한테도 친근감을 느끼고 몸을 비빈다든가, 박미정에게 저 또한 주위 사람이 많이 다쳤습니다 라는 식의 말이 전부 자신도 동류의 사람임을 뜻하는 말이였다.
여담이지만 친구인 동진에 비해 꽤 [[노안]]이다(…).[* 작가도 이점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후기에 설정이 노안 맞다고 우기겠다고 한다(...). 참고로 작중 나이는 32-33세 정도.] 현재 외모와 사람들을 피하기 전 외모를 비교해 보면 눈물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10회 일치
* 진짜 우라라카 오챠코와 세로 한타와 합류한 미도리야. 사걸 고교의 여학생은 방해받았다며 도주한다.
* 미도리야와 바쿠고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난관을 타개한다.
* 여학생은 미도리야와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방해자들이 끼어들었다고 유감이라고 말한다.
* 이 시위는 엘리트로서 책무와 긍지를 길러온 자신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수준 차를 보이기 위한 것.
* 관람석의 아이자와 쇼타는 Ms. 죠크의 농담에 시달리고 있다.
* 아이자와는 미도리야와 바쿠고를 거론하며 그 둘이 A반에선 큰 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 아이자와는 걱정이 아니라 "기대"를 하고 있다며, 그 두 사람은 반의 최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한다.
* 각자 팀을 이끌고 난관을 돌파하는 미도리야와 바쿠고.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10회 일치
* [[쿠로노 하리]]는 싸움이 길어지는데다 방 바깥의 인기척이 수상하자 미심쩍어 하지만 설마 그 [[오버홀]]이 패할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가 조직을 위해서 어릴 적부터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 그가 패한다면, 그런 상황을 상정한다면 적어도 완성품과 혈청만큼은 확보해야 한다. 그러자면 [[아이자와 쇼타]]를 묶어둘 여유는 없다. 그는 즉시 아이자와를 처분해버리려고 한다. [[아마지키 타마키]]가 도착한건 그때였다. 경찰과 합류해 [[토오가타 밀리오]]를 구조한 타마키는 때맞춰 나타나 쿠로노의 공격을 제지한다. 이것으로 마지막 멤버인 쿠로노까지 제압된다.
* 바깥에선 쿠로노가 우려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에리의 힘으로 무한한 원 포 올 100%를 발동한 [[미도리야 이즈쿠]]가 융합해서 거대해진 오버홀을 매쳐버린다. 오버홀은 이번만큼은 정말로 기력이 다한 듯이 뻗어버린다. 이렇게 미도리야와 에리의 승리로 싸움이 끝난 것 같았지만, 에리의 능력은 계속 폭주한다. 점점 강해지는 그 능력은 미도리야마저 "되돌려" 버릴 판이었다.
* 오버홀은 의식이 거의 날아간 상태에서도 조직의 부흥과 위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야쿠자가, 두목이 바보나 빌런취급 당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 상황을 끊고 싶다는 일념이 평생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도 그의 팔은 미도리야에게, 에리에게 뻗쳤다. 그러나 에리의 능력은 한도를 넘어서 폭주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닿은 것만으로 오버홀의 융합이 "되돌려"져서 무방비하게 내쳐진다. 그때 류큐 등과 함께 히어로 연합군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우라라카 오챠코]]가 재빠르게 오버홀을 제압. 하지만 에리의 폭주와 거기에 휘말린 미도리야에겐 손을 쓸 수 없었다. 이대로는 미도리야가 되감겨 사라질지도 모른다.
* [[아스이 츠유]]는 만신창이의 아이자와를 부축하고 있었다. 아이자와가 때마침 정신을 찾는다. 아이자와는 곧바로 무효화 개성으로 에리의 폭주를 제압, 긴장의 끈이 끊어진 탓인지 미도리야와 함께 에리도 쓰러지고 만다. 이로써 시에핫사이카이 급습 작전은 완전히 종료. 피해자의 확인과 뒷수습으로 이행한다. 우선 본래 목표였던 에리의 구출은 무사히 완료.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무실에 있던 [[키리시마 에지로]], [[패트껌]]도 구조된다. 랏파도 이때 같이 있다가 어이없이 제압. 오버홀이 감추고 있던 두목도 발견된다. 미도리야는 먼저 정신을 수습해 에리를 구급반에게 넘기는데 마침 들것에 실려가던 [[서 나이트아이]]와 마주친다. 그는 호흡기를 단 와중에도 미도리야를 불러세우고 그가 자신이 예지한 것과 다른 미래를 만드는데 성공했음을 인정한다.
- 남명렬 . . . . 10회 일치
* [[2009년]] [[문화방송|MBC]] 주말연속극 《[[탐나는도다 (드라마)|탐나는도다]]》 - 가와무라 게이스케 역
* 아버지와 아들 (2015년)
* The Game-죄와 벌 (2012년)
* 한스와 그레텔 (2009년)
* 바다와 양산 (2004년)
* 첼로와 케찹 (2001년)
* 문성근 나와라 (1998년)
* 이디푸스와의 여행 (1995년)
* 사자와의 경주 (1980년)
* 《손준호와 함께하는 실내악 시리즈》 (2015년)
- 니세코이/229화 . . . . 10회 일치
* 슈와 루리는 동거커플. 슈는 교사, 루리는 번역가.
* 오노데라를 파티쉐가 되었다. 이치죠와 치토게의 웨딩케잌을 만드는 중. 하루는 화과자집을 물려받는다.
* 이치죠와 치토게는 약속의 장소에서 재회한다.
* 어떤 초대장을 받고는 와인을 잔뜩 준비시키는데.
* 슈와 루리 커플에게도 초대장이 간다.
* 슈와 루리는 동거 커플로 지내고 있다. 슈는 교사, 루리는 번역일을 한다.
* 그곳에 치토게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치토게가 너무 바빠서 몇 달 만에 만난 것.
* 새로운 열쇠와 자물쇠를 준비한 두 사람.
* 기존에 있던 열쇠와 펜던트는 오노데라와 함께 약속의 장소에 묻었다.
- 마기/341화 . . . . 10회 일치
* [[세렌디네 파르테비아]]와 협공하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 신드바드는 [[알라딘(마기)|알라딘]]이 알리바바와 함께 있는건 좋지 않다고 말하며 "마기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말한다.
* 두 명의 마장이 나타난 던전 제파르. [[세렌디네 파르테비아]]와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동시에 마장 제파르를 사용해서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 앞에 나타난다. 두 사람은 처음엔 당황하지만 곧 전투태세를 갖춘다.
신드바드와 셀렌디네는 곧바로 공격자세를 취한다.
* 혼자서 두 마장을 상대해야 하는 알라딘. 제파르는 소리마법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사용해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기도 한다. 알라딘은 신드바드의 마법은 힘마법 "조르프"로 받아내지만 세렌디네 쪽에 당한다. 신드바드와 세렌디네의 마법이 공명하며 울려퍼진다.
알라딘의 말은 이어진다. 그는 "내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고 인정하며 처음엔 루프의 인도에 따라 주어지는 대로만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그는 변했다. 사고방식은 변한다. "다른 누군가"와 만날 때마다. 신드바드는 "그럼 결국 누군가에게 끌려가야만 한다고 말하는 거냐"고 반박한다.
알라딘은 세상을 모른 채 우고와 성궁에서 지내던 시절을 떠올린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기계 같은 대답만 하는 우고를 상대로 살았다. 그 삶은 얼마 가지 못해 한계에 부딪혔고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지금 알라딘은 그게 왜 그토록 괴로웠는지 분명히 안다.
>다른 누군가와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야.
>아직 본 적 없는 누군가와 만나는 것이 우리를 진화시켜서...
>너와 함께라면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 송원근(배우) . . . . 10회 일치
|| '''출생''' ||<(> [[1982년]] [[11월 26일]] ([age(1982-11-26)]세) [[강원도]] [[동해시]] [* 포털사이트 상에는 12월 17일이라 되어 있으나 이는 주민등록번호상 생일이고 실제 생일은 11월 26일이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swg_1126이며 이때 드라마를 같이 촬영한 배우들이 생일파티를 해주는 영상도 올라와 있다.] ||
그러다 2009년 2월 26일 느닷없이 '사고치고 싶어'라는 댄스곡으로 컴백했다. 곡 자체가 9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직설적인 가사'''와 독특한 안무--이리 휙, 저리휙, 굽신굽신--, 예명 때문에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에서 '''이불신'''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참고로 뮤직비디오에는 [[애프터스쿨]]의 [[가희(가수)|가희]]와 [[이주연|주연]]이 출연했다.
이후 소속사를 제리 엔터테인먼트에서 [[로엔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면서 '런'이라는 예명으로 개명하고 2009년 10월 16일 '강력한 그녀'라는 곡으로 컴백했다. ~~이름 바꾸면 모를줄 알았지?~~ 이 시기에 당시 무명이던 '''[[아이유]]'''(!)가 피처링한 곡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반응은 역시나 시원치 않았다는 듯. 배우 [[강소라]]와 [[멜론]]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2년에는 아이유의 노래 '좋은 날'의 일본어 버전인 'Good Day'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결국 연예계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하다가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OST에 참여할 당시 음악감독이었던 가수 하울의 소개로 [[뮤지컬]] ‘궁’ 캐스팅 오디션을 봤고, 주인공 이신 역으로 발탁됐다. 이후에 [[렌트]], [[김종욱 찾기]], [[쓰릴 미]], [[블랙메리포핀스]], [[아가씨와 건달들]]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 괜찮은 필모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평은 대체로 크게 나쁘지는 않은 듯.
오로라 공주의 인기 덕에 빛을 보게 된 후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도 출연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임성한 작가의 후속작 [[압구정 백야]]에도 [[장무엄]]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나타샤와 노다지의 재회--
* 2013년 [[아가씨와 건달들]] - 스카이 역
* 2014년-2015년 2차 [[쓰릴미]] - 그 역 [* 2월 17일부터 2월 25일까지 신성민 배우와 5회 특별 공연을 했다.]
* 2018년 [[용의자 X의 헌신]] - 유카와 역
- 송창현 . . . . 10회 일치
대학에서의 통산성적은 31경기 나와 5승 13패 148이닝 투구 141피안타(4피홈런) 74'''[[볼넷]]''' 29'''[[몸에 맞는 볼]]''' 94K 20'''[[폭투]] ''' 3'''[[보크]]''' [[평균자책점]] '''3.34'''~~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를 기록한다. 이 시기에 제주도에서 야인생활을 보내고 있던 [[김응용]] 감독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어쨌든 [[장성호]]와 1:1로 트레이드 할만큼 [[김응용|코끼리 감독]]의 기대를 받고 전지훈련 명단에 들어갔으나, 이후 드러나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자체 청백전을 제외하고 2월 21일 기준 연습경기에 나와 2이닝 동안 12실점, 볼넷 5개, 사구 1개, 폭투 1개, 삼진 1개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한화팬들로서는 미치기 딱 좋을 수준이었다. 이후 2군에서도 방어율 7점대의 성적을 찍으면서 한화 팬들이 [[김응용|코감독]]을 씹을 때나 쓰는 안주거리화가 되나 했는데 1군 콜업 이후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2014 시즌 이후 마무리 훈련에 참가했지만 부상으로 도중에 낙마했다. 이후 11월 19일 요코하마의 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좌측 어깨 전관절 와순 부분 파열로 접합 수술을 받았다. 26일에 퇴원해서 귀국한 이후 서산에서 재활훈련에 들어간다고 한다. 단계적으로 내년 2월쯤에 캐치볼을, 5월달쯤에 실전 피칭에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장운호와 함께 작년 김기현처럼 군 팀에 들어가는 것으로 탈출할 듯 하다. 상무 1차 합격자 명단에 들어갔다. 홈 경기에서 평균자책 1.17로 매우 준수한 피칭을 보였다.--홈깡패--
그리고 11월 24일 팀 동료 [[장운호]]와 상무에 최종합격했다.[[http://m.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521958|#]]
다만 문제는 제구력인데, 위에 나온대로 폭투와 사구가 너무 많다. 2013년 시범경기에서도 공을 그냥 패대기(...)친다라고 할 정도로 불안정한 제구를 보인다. 그래서 낮은 피안타율을 보임에도 볼질로 주자를 쌓다가 한두 방에 무너지는 패턴을 보이는게 가장 큰 문제. 그런데 [[정민철]] 코치의 지도로 인해 2013 시즌 중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고 있다. 아직 완벽하기엔 멀었지만 2013년 9월, 시즌 초와 비교해 보면 거의 [[괄목상대]]급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4년엔 다시 제자리로... 애초에 13년 기록이 플루크라니까~~
데뷔 초에는 속구와 슬라이더 두 개의 구종만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즌 후반에 체인지업과 커브를 장착한 것으로 보아 구질 습득도 빠른 편인듯 하다.[* 체인지업은 [[송진우(야구)|송진우]], 커브는 [[정민철]] 혹은 [[이대진]] 코치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한화 이글스의 팟캐스트 방송 이글스캔들에서 본인이 밝힌 바로는 체인지업은 송진우 코치가 그립만 가르쳐준 것을 실전에서 사용했더니 통했다고 한다.]
* 여담이지만 [[선동열|김응용 감독의 수제자이자, 0점대 방어율 투수]]와 상당히 닮았다. 트레이드 당시에도 뭐가뭔지 모르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송창현을 선택한 진짜 이유'''라는 우스개 소리로 돌아다니는 짤. ~~얼굴은 선동렬인데 제구는 [[김정수(1962)|김정수]]...는 무리인가~~
- 슈퍼걸(드라마)/1시즌 10화 . . . . 10회 일치
행크(마샨 맨헌터)는 카라와 함께 비행을 하며, 카라에게 비행술을 가르쳐준다. 행크와 카라, 알렉스는 맥스웰 로드를 조사하려 한다. 캣 그랜트는 루시 레인을 법무 자문위원으로 고용하려 하며, 제임스는 매우 기뻐하지만 루시와 제임스의 관계는 틀어진다.
토이맨이 탈옥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그 때문에 토이맨의 아들인 윈에게 수사관들이 찾아온다. 윈은 아버지에 대해서 매우 격하게 화를 낸다. 카라가 물어보자, 윈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디자인을 훔친 상사에게 복수를 하려다가 비서와 5명을 살해했다는 과거를 말해준다. 윈은 토이맨을 체포하는 작전에 협력하기로 한다.
토이맨과 약속장소로 잡은 오락실에서 토이맨을 만난 윈은 자수를 권유한다. 하지만 토이맨은 윈에게 협력해달라고 요청한다. FBI요원들이 들이닥쳐서 토이맨을 쏘지만 그것은 가짜였고, 가스가 뿜어져 나와서 모두 죽이려 한다. 카라가 난입하여 가스를 빨아들여 제거한다.
알렉스는 행크와 함께 맥스웰 로드를 조사하려 한다. 알렉스는 맥스와 데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끈다. 행크는 맥스웰 로드의 실험실에서 레드 토네이도의 일부와, 코드 피닉스라고 불리는 소녀를 찾게 된다. 그리고 경비원과 마주쳐서 그의 기억을 완전히 제거해버린다.
제임스와 루시는 화해하고 키스를 나눈다. 윈은 일상으로 돌아오고, 카라에게 오랫동안 사랑해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카라는 윈의 고백에 당혹감을 느낀다.
카라와 알렉스는 저녁에 단란하게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맥스웰은 알렉스의 가방에 비밀 카메라를 붙여두었고, 슈퍼걸의 정체를 알게 된다.
- 스틸오션/일본 . . . . 10회 일치
>네척의 순잠1형(巡潛一形, Type J1)과 한척의 순잠1형개(巡潛一形改, Type J1 Mod.)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이 발발할 때 순잠1형의 무장은 95식 어뢰로 강화되었다. 이들은 전쟁 초기 알류산, 인도양, 하와이 등에서 활동했다.
>해대3형(海大三形, Kaidai IIIa) 잠수함은 1922년 당시 워싱턴 해군 조약 하에서 진행되던 8-8 함대 계획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번호는 S26였다. 해대2형(海大二形, Kaidai II)에 기반을 둔 이 함급은 더 깊은 잠수한계와 추가적인 그물 절단기를 가지고 있었다. 해대3형은 제18전대와 제19전대 소속으로 자바해 전역에 배치되어 일곱척의 상선을 격침시켰다. 모든 해대3형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무츠키급 구축함은 일본이 워싱턴 해군조약에서 탈퇴하며 건조된 전선 구축함이었다. 이들의 수뢰전 무장은 전까지의 구축함과 달랐다. 제4함대사건 당시, 세척의 무츠키급 구축함이 큰 피해를 입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무츠키급 구축함은 호위와 화력지원을 주로 맡았다. 몇몇 함선은 "도쿄급행"이라고 불리는 고속 선박으로 개장되었다.
>왕립해군의 아레투사(Arethusa)급의 영향을 받은 텐류급 경순양함은 당시 제일 빠른 순양함이었다. 구축함을 상대하기 위해 140mm 함포와 어뢰발사관으로 무장했다. 텐류급 순양함 두척 모두 중일전쟁에 참가했다. 텐류는 1941년의 사보섬 해전에도 참가했다. 전쟁 후반기에는 훈련 및 수송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국 순양함의 영향을 받은 쿠마급 순양함은 일본제국해군이 처음으로 운용한 5,500톤급 경순양함이었다. 텐류급에 기반하여 무장과 속도를 향상시켰으며 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 태평양전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했으며, 키타카미와 오오이는 추가적인 어뢰발사관을 장비하고 고속 수송선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A-30으로도 알려진 카와치급 전함은 일본의 첫 반(半)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함포는 305mm 구경이지만 예산 문제로 전(前)드레드노트급처럼 두 종류의 다른 주포를 장비하는걸로 변경되었다. 카와치는 1918년 발생한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고, 세츠는 워싱턴 해군 조약에 의해 비무장 표적함으로 개장되었다. 세츠는 1945년 당시 미군 항공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이세급, 후소급과 다를 바 없는 주포탑 네개짜리 전함이었지만, A-110은 나가토급 전함의 토대였다. 뱃머리는 8-8 함대 계획의 "숟가락형" 뱃머리와 같은 형태였다. 배수량은 32,500 롱톤이었고, 60,000 마력으로 25 노트의 속도를 냈다. 유틀란트 해전 이후 A-102로 변경되었다.
정찰기 뿐만 아니라 전투기와 뇌격기도 장비 가능하다.
- 식극의 소마/185화 . . . . 10회 일치
[[식극의 소마]] 185화. '''호적수와 재승부'''
* 심사의원은 나키리 아리스의 아버지 나키리 소우에와 그가 스카웃한 베르타&실라라는 소녀들
* 타도코로 메구미와 알디니 타쿠미는 소마측의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데, 린도가 나타나 자신이 두 사람의 시험 상대라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 소마는 그쪽도 십걸이 나왔는지 확인하는데 예상대로 사실이었다. 아리스와 쿠로키바 료도 곧 대결장소로 가야한다는데.
* 쌍둥이 소녀들이 하야마와 소마의 외모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하다 "잘 생긴 쪽"인 하야마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 그리고 함께 심사의원을 맡은 베르타와 실라. 이들도 나키리 인터네셔널의 연구 스탭으로 일하고 있다.
* 하지만 정신연령은 낮은지 쿠가 테루노리와 티격태격하며 추태를 보인다.
* 쿠가는 이들이 나키리 아자미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들어 이의를 제기한다.
* 한편 다른 장소에선 타도코로 메구미와 알디니 타쿠미가 소마의 시험을 걱정하고 있다.
* 소마의 식극이 진행되는 동안 타도코로와 타쿠미의 시험도 시작된다.
- 식극의 소마/208화 . . . . 10회 일치
* 연대식극의 세부룰은 각 팀에서 3명 씩 선발돼 각각 상대와 대결.
* 키노쿠니는 어려서부터 보통 아이와 달리 자신의 재능을 개화시키고 과시하는데 익숙했던 아이로 그 중에서도 소바의 재능은 따를 자가 없었다.
* 본격적인 대결에 들어간 연대식극. 펑키하게 세뇌된 [[카와시마 우라라]]지만 진행 자체는 성실하게 하고 있다. 연대식극의 룰은 다음과 같다.
각 진영에서 임의로 선발된 세 명의 요리사가 동시에 대결을 진행. 각 대결에서 승리한 요리사가 흰 별을 얻고 생존한다. 생존한 요리사는 새로운 대결에 나갈 수도 있고 아군의 대결에도 서포트해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결을 반복해 상대방을 전멸시키는 쪽이 최종 승리. 카와시마는 이러한 룰은 제대로 전달했지만 소소하게 반역자 진영이 지라고 저주를 꽂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감옥에 갖힌 반역자들은 어느 틈에 카와시마가 세뇌된 건지 의아해하지만 원래부터 권력에 약한 속성이 있어서 그럴 거라는 가열한 추측이 대세다.
* 키노쿠니가 힘을 더해 반죽을 치대기 시작하자 낱알처럼 흩어져 있던 반죽들이 커다란 덩어리로 모이기 시작한다.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반죽에 순식간에 점성이 더해지는 것과, 가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힘으로 반죽을 해나가는 것에 놀란다. [[나키리 에리나]]는 완벽한 자세를 이룬 그녀의 하체가 비결이라고 간파한다. 다리와 허리의 힘을 충분히 실어서 반죽하기 때문에 힘이 낭비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자미는 여기에 아주 섬세한 반죽 실력 덕분에 쓸데없는 물을 더할 필요도 없어서 필요최저한의 윤기를 머금은 "진짜 소바"가 되는 거라고 설명한다.
* 소마에겐 엄청난 야유가 퍼부어진다. 사실 동료들까지 그의 주제 선택과 메뉴 선정에 쓴소리를 하는 판이니, 여기에 그의 아군은 없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소마는 특훈 기간 동안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와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그렇게 말하는 소마의 손에는... 제면기가 들려있다. 소마는 얼빠진 표정으로 제면기의 성능에 감탄하며 열심히 면을 뽑고 있다. 보는 이들이 황당하는 것도 잠시. 곧 조롱거리 삼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동료들은 그가 승부를 포기한거 아니냐는 예측까지 나오는데, 이 상황에서 딱 세 사람만 그가 정확히 판단했다고 본다. 아자미와 키노쿠니, 그리고 에리나였다.
키노쿠니는 그의 반죽 비율도 눈여겨 본다. 키노쿠니는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1 대 9로 섞은 "9할 소바"를 만들었다. 하지만 소마는 밀가루가 2, 메밀가루가 8인 "28소바". 세간에는 메밀 비중이 높은 걸 좋다고 여겨 100% 메밀가루 소바도 팔지만, 냉정하게 맛으로 보면 밀가루를 충분히 섞는게 훨씬 맛있다. 물론 100%에 가까울 수록 메밀향은 좋아지지만, 원래 메밀은 특성상 반죽이 퍼석해서 면을 뽑아도 밀가루 면처럼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다. 밀가루를 섞으면 향은 좀 덜해도 면으로서 쫄깃하고 맛있는 국수가 되는 것. 실제 메밀 장인들도 "맛의 밸런스는 28소바가 최고"라는 말이 정설이다. 키노쿠니는 소마가 그저 대항심만으로 10할 소바에 도전하지 않고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며 그 점에 대해서는 감탄한다.
- 신동주(야구) . . . . 10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전 야구 선수. 등번호는 37번(삼성) - 25번(해태) - 37번(KIA) - 40번(삼성, 2004) - 24번(삼성, 2005, 트레이드 전) - 52번(KIA, 2005) - 37번(KIA, 2006). [[마해영]]이 삼성으로 오기 전 [[이승엽]]-[[양준혁]]과 클린업을 구축하여 상대의 투수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장본인. 그래서 [[임창용]]도 신동주가 해태로 이적하고 나서야 원래 등번호인 37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던 선수 치고는 항목이 엄청 짧다.~~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5번타자. ~~더불어 롯데 왕자의 난 덕에 기업인 동명이인에게 밀린 [[안습]]의 사나이~~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태(1969)|김기태]](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상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태(1969)|김기태]]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러나 [[김기태(1969)|김기태]]와 [[마해영]] 등 거포영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상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초 [[강영식]]과의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해태-KIA에서도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후 KIA로 이적한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친정팀인 삼성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오고 이듬해인 2006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영식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4년부터 정식 코치가 되어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결정됐는데, 실제로는 1군 선수단과 동행 중이다. 2015년부터 1군 타격코치로 [[김한수]]와 같이 타격코치를 맡게 됐다.
2017년, [[김한수]] 타격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단독으로 1군 타격코치를 맡았으나,[* 2011년 류중일 감독 부임 이후 삼성에는 줄곧 1군에 2명의 타격코치를 뒀다.] 삼성 라이온즈가 '''02 롯데''', '''13 한화''' 수준의 막장 경기력을 4월 내내 보여 주자 수비코치 [[이윤효]]와 묶여서 3군으로 강등되었다. 대신 [[김종훈(1972)|김종훈]]이 1군 타격코치로 올라왔으며, [[박진만]]도 수비코치로 왔다. 그리고 [[강기웅]]이 3군에서 2군으로 이동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10회 일치
시퀀스4 부터 시퀀스12 까지의 주인공. 데스몬드 마일즈의 조상. 헤이덤 켄웨이와 카니에티오의 아들. 영국인들에 의해 어머니인 카니에티오를 잃었다. 유노가 보여준 계시대로 아킬레스에게 가 훈련을 받고 암살단원이 된다.
[[런던]]의 [[상인]]. 템플기사단원으로 헤이덤의 상관이다. 헤이덤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켄웨이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헤이덤이 어렸을 때 그의 교육을 담당했다. 유물을 입수한 헤이덤을 아메리카로 보낸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대륙군 지휘관이자 초대 미국 대통령. 주인공의 조력을 받아 영국에 대항하는 입장이지만, DLC '워싱턴 왕의 폭정'에서는 에덴의 조각의 힘으로 원래 역사와는 달리 '왕'으로 등극해 폭정을 저지른다. 해당 DLC의 최종 보스.
보스턴의 변호사.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인물 중 하나다. 아킬레스와는 아는 사이인 듯. 코너에게 여론을 조작해 악명을 숨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서스비니어드에 위치한 여관의 주인. 대가족의 장녀로 태어났다.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도중 로버트 폴크너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관계까지 갔으나 폴크너가 암살단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면서 시망.
암살단 선박인 아퀼라의 선장. 아퀼라가 버려지자 술에 찌들어서 살고 있었다. 이후 아킬레스와 코너가 아퀼라를 수리하자 다시 선장으로 활동한다. 비들과는 전부터 알던 사이지만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닌 듯.
의사. 헤이덤의 네번째 조력자, 템플기사단원. 헤이덤과 찰스 리가 도움을 얻기위해 찾아갔을 때는 사일러스 대처에게 납치당한 상황이었다. 대처의 보호 따위는 필요 없다고 저항하다가 대처와 절단마의 대화[* 절단마 "의사일을 하지 못하게 손을 잘라버릴까요. 떠들지 못하게 혀를 잘라버릴까요. 아니면 우릴 엿먹이지 못하게 좆을 잘라버릴까요." - 대처 "고르기 어려운데. 그냥 다 해."]에 즉각 비굴해지는게 일품. 그렇게 어디 한구석이 잘리기 직전에 헤이덤과 찰스 리에게 구출된다.
* 테리와 고프리(Terry and Godfrey)
사냥꾼. 대본포트 농지의 밀렵꾼을 쫓아내는걸 코너가 도와준 이후 대번포트 농지에 정착한다.
광부. 퀘벡 출신이라 프랑스어를 섞어 말한다. 프랑스어 억양 때문에 군인들과 싸움이 붙은걸 코너가 도와주며 알게된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10회 일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상론, '''SF 창작 설정'''.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이 갖춘 과학적 지식과 따라서 상상한 것을 뜻하므로,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체제와의 '명확한 대비'를 위하여 이 문서에서는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을 떄떄로 사용하고 있다. 소설로서 써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SF적으로 창작된 이상론이라고 봐도 좋다.
사회주의자들이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를 '불완전한 공산주의'라고 까면서 제시하는 사회. 일부 사람들은 '완전한 공산주의'라고도 한다. 현실 공산주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문서로 설명한다.--공산주의 문서가 없잖...--
* '''지속 가능성''' : 이론적인 생산성은 가능하게 된다고 해도, 막대한 생산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무한정한 [[에너지]]를 [[지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생산성'만'을 우선시하다가 환경파괴와 자원고갈로 문명 자체가 붕괴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주로 진출한다고 해도 결국 인류가 에너지 고갈이나 에너지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 일종의 '특이점'이 와서 인류의 노동력이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될 경우, '불필요한 인류'가 단지 '숙청'당하게 될 것인지, '완벽한 공산주의'에 도달하여 이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다. 존재가치를 잃은 인간이 존엄성까지 박탈당하는 디스토피아적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완벽한 공산주의를 이룩하는 조건이 곧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지게 될 수도 있다.
[[소련]]을 시작으로 하여 냉전 시기에 역사상 나타났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붕괴와 함께 대부분 정권교체로 공산주의가 폐기되는 운명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소련을 추종하던 각국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세력은 이러한 '현실'에 대응해야 하는 문제점을 실감하게 되었고, "공산주의 망했잖아. 그거"에 대항하기 위한 "완벽한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 공산주의 오와콘설 ===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1)만이 아니라 공산주의(2)까지 "망했잖아"라고 표현하려면 대신에 이런 말을 써야 한다. '''"공산주의는 오와콘"'''. 공산주의(2)는 어디까지나 창작물이므로 '[[오와콘]]'은 될 수 있다. 공산주의(2)가 오와콘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논쟁이 가능하다.
* 자신의 설정을 현실이라고 주장하며 조직을 만들고, 사회에 충격을 준 인물로서, 카를 마르크스와 비슷한 인물로는 '[[사이언톨로지]]'를 만든 SF작가 '론 허버드'가 있다.
- 원피스/836화 . . . . 10회 일치
* 브륄레는 쵸파와 캐럿이 들어있는 거울을 보여주지만 깨뜨려 버린다. 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사.
* 나미는 그의 입에서 "로라"라는 이름이 나오자 스릴러 바크에서 만났던 로라와 그녀가 준 비브르 카드를 떠올린다.
* 크래커는 랜돌프에게 "내 앞에서 기습 따위를 하다니"라며 야단을 치고 랜돌프와 그가 타는 학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티격태격한다.
* 이들이 사람처럼 말하는걸 보고 깜짝 놀라는 루피와 나미
* 그리고 인질로 잡은 캐럿과 쵸파가 비치는 거울을 꺼낸다. 둘도 거울을 통해 루피와 나미를 발견하고 브륄레는 "거울 능력자"라며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 루피와 나미는 깜짝 놀라지만 다행히 안에 있는 사람에겐 위해가 없는 듯하다.
* 나미와 파운드를 추격하려던 "호미즈" 나무들이 비브르 카드에서 발산되는 "빅맘의 소울"에 겁을 먹고 멈춘다.
* 그 사이 크래커와 싸우던 루피가 나가떨어진다.
* 여덞개의 팔로 칼 일곱 자루와 방패를 들고 싸우는 크래커.
* 크래커도 열매 능력자로 보이는데 상당히 독특한 능력. 니코 로빈의 꽃꽃열매와 비슷하지만 원격으로 팔을 피워내지는 못하는 것 같고 자기 팔을 두드려서 늘린다. 다른 신체부위도 가능한지는 불명.
- 원피스/841화 . . . . 10회 일치
* 어머니는 상디가 실패한 요리를 가져와도 언제나 기쁘게 먹어주었으며 웃어주었다.
* 그 심한 말에 상디는 물론 레이쥬까지 눈물을 흘리고 레이쥬는 직접 상디가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게 된다.
* 현실로 돌아와 레이쥬는 얻어맞아 엉망이 된 상디에게 다가와 "그깟 오너 무시해 버리지 왜 이런 곳으로 돌아왔냐"고 쓴소릴한다.
* 그래도 상디의 성의를 생각해서 맛을 보는데 마치 악마와 같은 맛이 난다.
* 저지는 형제들에겐 상디가 죽은 걸로 해놨지만 기어이 찾아와 괴롭힌다.
* 레이쥬도 뒤따라 와있는데 어째서인지 끼어들지 않고 지켜 보고만 있다.
* 같은 시각 제르마는 이스트 블루의 "코지아"라는 나라와 교전에 들어간다.
* 상디의 어머니는 레이쥬와 닮은 미인. 그러나 눈썹은 평범하게 생겼다.
* 이후 상디는 쿡크 해적단과 만나고 제프와 무인도로 표류하게 된다. 이후는 원피스 본편대로.
- 원피스/854화 . . . . 10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는 추적자들을 피하던 중 [[쵸파]]일행과 재회해 미러월드로 피한다.
* 징베는 [[샬롯 브륄레]]에게 "룰렛"을 거부했다고 욕먹는데 원래 징베는 정당한 대가라면 지불했겠지만 그 자체가 악의와 죽음의 냄새밖에 없어 거부했다.
* 성안의 탈주자들 문제를 의논하는 간부들. [[샬롯 오페라]]는 [[몽키 D. 루피]]와 나미를 고문하다 실수로 태워죽였다고 거짓 보고한다.
* 홀 케이크 성은 침입자와 탈주자들로 어수선하다. [[징베]]는 [[나미(원피스)|나미]]를 태우고 경비들을 피해 이동하는 중이다. 이미 성내에는 징베의 모반에 대한 소식이 퍼지고 있다.
* 쵸파 일행과 합류한 나미와 징베는 함께 미러월드로 진입한다. [[샬롯 브륄레]]는 징베가 이들과 함께 있는걸 보고 배신했다고 직감한다. 그녀는 징베가 빅맘 [[샬롯 링링]]이 제안한 "룰렛"에 겁먹고 내빼지 않았냐고 성토한다. 징베는 빅맘이 어인섬을 지켜준 만큼 인의를 다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룰렛에는 "죽음과 악의"의 냄새 밖에 나지 않아 거부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잘한 선택이라며 과거 그 룰렛을 돌렸던 자신의 파트너가 목숨을 일은 사실을 전해준다. 브륄레는 그게 자랑스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누구든 빅맘을 떠나가려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신나게 떠들다 얻어맞는다.
빅맘은 푸딩에게 밀집모자 일당의 처리를 잘했다며 칭찬한다. 푸딩이 잡힌 루피와 나미와 만났고 "꼴좋다"고 소감을 밝히자 브룩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따라잡지 못해서 당황한다. 빅맘은 제르마에도 손을 써놨다며 술집 여자들을 보내 헤롱헤롱하게 만들어놨다고 말한다. 하지만 푸딩은 [[빈스모크 레이쥬]]가 자신을 미행했던 일을 언급하며 "감이 좋은 여자였지만 해결했다"고 말한다. 빅맘은 혹시 죽인건 아니냐고 우려한다. 푸딩은 걱정하지 말라며 죽이지 않고 기억도 잘 없애놨다고 안심시킨다.
회의실에서는 침입자들에 대해서 최종적인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페콤즈]]의 인도로 밀집모자 일당이 토트랜드에 도착한 시점부터 브룩이 잡히고 페드로가 [[타마고 남작]] 앞에서 자폭하기까지. 브룩이 빅맘에게 잡힌거 말고는 사실과 다른 정보가 유포돼 있다. 쵸파와 캐럿은 브륄레가 잡은 걸로 되어 있는데, 이후에 역으로 당해서 잡혀 있는건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타마고 남작은 의외로 무사히 회의에 참석 중. "백작"으로 파워업해서 완전히 닭의 모습이 되었다. 페드로가 "자폭"했다고 확인해주지만, 사실 그가 도망친 것은 그도 알지 못했다.
총 여섯 명의 침입자 중 둘이 남는다. 루피와 나미. 그런데 이들은 분명 죄수도서실에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이들도 탈출했다는 소식이 도착해 있다. [[샬롯 몬도르]]는 경비를 서고 있었던 [[샬롯 오페라]]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크게 반발하며 "사실 무근인 헛소문"이라 일축한다. 지하엔 아무도 오지 않았으며 빅맘의 명령대로 [[샬롯 로라]]의 위치를 캐내기 위해 고문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태워죽여버렸다는 얘기다. 오페라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빅맘에게 모든 수명을 뺏길 거라고 두려워해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몬도르는 미심쩍어하지만 형인 오페라를 대놓고 의심할 수는 없어 넘어간다.
침입자들은 이렇게 정리됐다 치고 상디와 빈스모크 일가도 문제가 없다는걸 확인하자 몬도르는 모든 방해꾼이 사라졌고 결혼식 준비만 무사히 마치면 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역시 오페라를 신용할 수가 없어서 따로 병력을 차출해 일대를 감시하게 한다.
- 원피스/863화 . . . . 10회 일치
* 분노한 빅맘이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징베에게 덤벼드는 등 혼란의 와중에 변장한 [[브룩]]이 사진을 파괴하는데 성공한다.
* 빅맘의 자식들은 죽은 줄 알았던 루피가 최악의 형태로 재등장하자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샬롯 스무디]]는 죄수 도서관에서 죽은게 아니었냐고 경악하고 [[샬롯 몬도르]]도 역시 [[샬롯 오페라]]가 거짓말을 했던 거라고 이를 간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빅맘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루피의 등장도 열 뻗힐 일이지만 웨딩 케이크가 무너진 것은 최악의 사태다. 거의 마더 카르멜의 사진에 이변이 생겼을 때처럼 평정을 잃는다. [[슈트로이젠]]은 빅맘이 정신을 잃을까 우려해서 진정시키려 하지만 부하 요리사들은 오히려 그가 피해야 할 때라고 간청한다. 아니나 다를까, 빅맘은 성미를 참지 못하고 근처 요리사들에게 "당장 새 웨딩 케이크를 가져와라"고 억지를 쓴다. 그런게 될리가 없다. 그러자 그녀는 "라이프 오어 웨딩 케이크?"라는 질문을 내뱉는다. 그러자 하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모간즈가 특종이라며 환호한다.
* 미러 월드의 밀집모자 일당은 작전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신이 났다. [[징베]]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거울 입구에서 브륄레가 루피 모습으로 변신시킨 동물들을 바깥으로 내던진다. 뒤에선 [[나미(원피스)|나미]], [[쵸파]], [[캐럿(원피스)|캐럿]], [[시저 크라운]]가 거들고 있다. 브륄레는 빅맘이 두려워 징징대고 있지만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른다. 동물들을 모두 내보내자 페드로와 징베도 다과회장으로 뛰어내린다.
* 요리사들을 상대로 분풀이를 한 빅맘은 곧 사건의 주모자 루피를 찾아 눈을 번뜩인다. 하지만 그와 전보 벌레로 통화한 적은 있어도 얼굴을 보진 못했다. 죄수 도서관에서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그가 말했다.
* 루피는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도 용케 진짜 목적인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든 액자를 발견하고 노린다. 작전이 잘 굴러가자 벳지는 부하 괴총 비트와 고티에게 KX런처의 준비를 지시한다. 이미 둘은 준비를 마치고 언제든 뛰어나갈 태세다. 나미, 쵸파, 캐럿은 아직 케이크 내부에 남아서 루피가 목표를 달성하면 3초 안에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빅맘은 루피의 진짜 목적을 모르고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로 그를 공격할 생각만한다. 루피는 여유롭게 액자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때 측면으로 정체불명의 뭉터기가 날아온다. 그건 [[샬롯 카타쿠리]]의 "다리"였다. 루피의 고무고무 기술처럼 다리를 늘려서 공격했는데 거기에 맞은 루피는 튕겨 나가지도 않고 그대로 달라붙어 있다. 루피는 몸을 빼내려고 하지만 달라붙어서 전혀 떨어지질 않는다. 그 사이 카타쿠리는 자신이 붙잡은게 진짜 루피고 나머지는 브륄레의 능력으로 변신시킨 동물들이라며 무시하라고 지시한다.
* 빅맘은 그의 등장과 행동에 잠깐 놀라지만 곧 코웃음을 친다. 그녀는 징베에게 이건 반역행위로 간주해도 좋겠냐고 묻자 징베는 "제발 그렇게 봐줬으면 한다"고 한술 더 뜬다. 그리고 자신은 빅맘 산하를 나와 밀집모자 일당에 들어가고 싶다고 선언한다. 기자정신에 불타는 모간즈가 이것을 놓치지 않는다.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루피가 투구를[* 일본의 어린이날은 남자 어린이에게 투구를 씌워주는 풍습이 있다.] 쓰고서 "밀집모자 루피가 아니라 투구 루피라고 바꿀까?"라는 드립을 친다. 나미와 [[니코 로빈]]은 부르기 싫고 벌레같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데, 투구벌레를 좋아하는 루피랑 쵸파, [[우솝]]은 "그건 멋있으니 그만두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 원피스/864화 . . . . 10회 일치
* 샬롯가의 3남 [[샬롯 다이후쿠]]가 푸딩을 쓸데없다고 까면서 난입. 그는 따끈따끈 열매를 먹은 램프 인간. 밸트를 문지르자 "램프의 요정"이 나와 상디와 대치.
빅맘은 누군가가 "저걸 봐!"라고 경악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사진에 생긴 이변을 깨닫는다. [[카포네 갱 벳지]]의 예상대로 그녀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간다. [[몽키 D.루피]]와 징베, 벳지는 작전이 성공했다고 확신하며 앞으로 3초 후 터질 괴성만을 기다린다.
빅맘은 패닉을 일으키지 일보직전. 벳지와 부하들은 빅맘이 괴성을 지르며 무너지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빅맘 해적단은 "그날"의 재림이라며 그녀가 패닉을 일으키기 전에 상황을 정리해야한다고 서두른다. [[샬롯 카타쿠리]]는 "아뿔싸!"라고 내뱉으며 완전히 낭패한 얼굴이다. [[빈스모크 저지]]는 이들이 [[상디]]를 탈환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터무니없는 방해하고 분노한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하객들은 막연히 "밀집모자 일당이 신랑을 탈환하러 왔다"고 여기긴 하나 워낙 이상하게 돌아가는지라 혼란스러워 한다. 상디는 다이후쿠와 맞서 싸우지만 램프의 거인이 날린 "마인참"에 맞고 나가 떨어진다.
* 당초 벳지는 사진이 깨지고 괴성이 터지기까지 3초가 걸릴 거라 내다봤다. 그러나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징베는 최대한 버티고 있지만 중과부적으로 밀리고 있다. 그때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어떤 사내와 싸우려는 걸 발견하고 "그녀석의 공격을 직접 받아내지 말아라!"고 소리쳐 경고한다. 하지만 경고가 늦어서 페드로는 상대의 공격을 검으로 받아낸다. 그러자 검이 뜨겁게 달아올라 칼을 놓친다.
방금 페드로를 공격한 자는 샬롯가의 4남 "노릇노릇 대신" [[샬롯 오븐]]. "열열 열매"를 먹은 "고열 인간"이다. 자기 몸에 닿는 것을 가열하는 능력. 접근전을 벌이는 페드로와 상성이 좋지 않다. 페드로는 기억에 없는 인물이지만, 저쪽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페드로가 [[페콤즈]]의 형이며 과거 빅맘에게 눈과 수명을 잃었던 남자라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런 페드로가 얼마 남지 않은 수명으로 여기에 왔다는건, 각오를 했다는 얘길 거라며 그를 불태워 죽여주겠다 엄포를 놓는다.
>할짝, 죽어서 우리의 피와 살이 되어주게 "제르마 666"
* 벳지가 말한 "좋지 않은 상황"이란게 바로 이것이었다. 빅맘은 쇼크가 너무 겹치고 겹친 나머지 대혼란상황. 패닉을 일으킬 정신 조차 없는 것이다. 브룩은 빅맘의 상태가 저러니 "깨어진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고 제안한다. 벳지는 이제와서 효과가 있을지 미심쩍어하다가,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접근하는걸 발견하더니 대번에 태도를 바꿔서 "작전은 성공할 거다"고 확신한다. 지금 카타쿠리는 새파랗게 질린 낯짝이다. 벳지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을 경우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벳지는 징베와 페드로에게 전력으로 루피를 원호할 것, 그리고 루피는 다시 한 번 빅맘에게 깨진 사진을 보여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큰 소리도 회장에 있는 모든 "연합군"에게 귀마개 "인지지블 심포니아"를 장비하라고 소리친다. 이 행동으로 빅맘 해적단의 이목이 그에게 쏠린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동안 루피는 사진을 챙겨서 빅맘에게 향하고 케이스 속의 나미 일행은 귀마개를 낀다.
- 유지인(1956) . . . . 10회 일치
[[정윤희]], [[장미희]]와 더불어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명.
[[1956년]]생. [[경기도]] [[가평군]]에서 출생한 유지인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데뷔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이었다. 1973년 TBC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지만 정식 데뷔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시절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하게된다. 인기 작가였던 강신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유지인이라는 예명도 유치원 보모였던 주인공 ‘지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남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그 당시 닮고 싶은 여성상 1위이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연예인 소득 1위를 고수했다. 또 그 당시 여배우들 중에서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고([[정윤희]]나 [[장미희]]만 해도 스캔들이 큰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마 장미희의 경우 그야말로 카더라만 무성하지만 정윤희는 문제의 그 남성과 결혼까지 했고 나중엔 자식까지 두었다.) 사생활이 깨끗한 배우였다. --근데 결국엔(...)--[* 유지인의 인생에서 스캔들이라 할 만한 건 이 모 배우와의 스캔들인데 2008년에 터진 스캔들이니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생긴 스캔들이고, 인정한 것도 증거도 그 후로 엮인 것도 별로 없으니 루머일 확률이 높다.] 또한 지성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답게 [[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TBC 전속 탤런트인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루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6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은퇴, 16년만인 [[2002년]] 이혼과 동시에 전격 복귀하여 지금도 활동 중이다.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순위나 수입 순위에서 절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태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태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태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유지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릴때부터 워낙 털털한 성격이라 정윤희와 장미희가 트로이카로 한참 치열할때 본인은 발만 담그고 거기서 좀 물러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 윤정희(1944) . . . . 10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성 배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부인이며, 1976년에 결혼했다. [[본명]]은 손미자.[* 배우 [[금보라]]와 본명이 같다.] 1944년 7월 30일에 출생하였고, 서울에서 태어나 강원에서 성장 [[홍천군]]과 우석대(고려대학교로 통합)를 졸업하였다.
1967년, 영화 "[[청춘극장(1967)]]"의 오유경 역할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지금 이 영화는 원본이 소실되었으나 중국어 더빙이 남아 있다.] 이후 [[남정임]]·[[문희]]와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 대한민국 여자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얻었다. 청춘극장은 1967년 팔도극장 다음의 관객을 동원했다. [[1968년]]에는 [[내시]], [[천하장사 임꺽정]], [[일본인]] 등으로, 1969년에는 [[독짓는 늙은이]], [[팔도 사나이]]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는 일부분일 뿐 흥행한 영화는 이보다 많다.
사실 그녀는 단순하게 인기가 많은 데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배역폭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사에 굵직한 기여를 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cr333&logNo=120061757343&isFromSearchAddView=true|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당시 여배우의 맡는 통상적인 역할은 어머니상이나 요부상에 그쳤는데, 윤정희의 경우에는 이 두 역은 물론이고, 백치미까지 능숙하게 연기했다고. 단순히 트로이카들과 비교해도 이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하이틴 스타와 같은 통통 튀는 발랄한 역을 연기한 [[남정임]], 우수에 빠진 눈매로 비련의 여인을 연기했던 [[문희]]에 비해 폭넓은 역을 맡았다. 또 그녀의 이미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적인 세련미이다.
그러나 [[문희]]가 [[미워도 다시한번]]의 흥행 이후 1969년에는 [[벽속의 여자]], [[꼬마신랑]] 등을 대거 흥행시키며 1970년대부터 윤정희를 능가하여 조금 위축된 감을 보여줬지만 1971년 문희, 남정임이 은퇴한 반면 윤정희는 결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1976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에는 윤정희를 탐낸 [[박정희]] 대통령의 바람기 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말도 있다. 어찌됐든 부부금슬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1977년에는 야행이 그 해 흥행영화 5위권 안에 들어가며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영화 말고 드라마가 크게 성장했는데 윤정희는 드라마에서도 활약을 한 적이 있다.
[[http://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1219865&qb=67aB7ZWcIOycpOygle2drCDrsJXsoJXtnaw=&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백건우와 결혼 과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정희를 총애하자 이에 [[육영수]]가 백건우와 서둘러 결혼시켜 프랑스로 쫓아냈다' 류의 소문이 떠돌았다. 위의 지식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도 윤정희와 관련된 뜬소문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또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영화배우가 있느냐'면서 영화와 TV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들을 비판하였는데 정작 그 자신도 1972년 [[TBC]]드라마 [[사모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냥 가만히 계시지~~
- 은혼/578화 . . . . 10회 일치
* [[무츠(은혼)]]와 우미보즈는 아는 사이다. 어린시절 무츠는 우미보즈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 우츠로와 싸우는 우미보즈. 우츠로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생물이란 아무리 진화해도 피식자와 포식자를 정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며 "생태계의 정점에 선 우리가 이렇게 되는건 정해져 있던 것"이라고 말한다.
* 우츠로와 싸우는 와중에도 비슷하게 서버린다
* 오로치와 마찬가지로 우츠로를 아무리 공격해도 마치 "서 있는 땅바닥을 두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 우미보즈. 과거 오로치와 싸울 때, 현재 우츠로와 싸울 때 죽음의 예감 때문에 갑자기 서버린 방울을 진정시키며.
-우미보즈. 우츠로와 싸우며.
* 무츠와 우미보즈가 사실 아는 사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은혼/592화 . . . . 10회 일치
* 우미보즈(바다돌이)는 코우카와 만난다.
* 격전이 끝난 자리에는 아직 가구라와 카무이가 뻗어있는 채로 있다.
* 바토우도 말하길 "애초에 해적은 체제와 싸우는 자들이고 그쪽(우츠로측)엔 자신들이 원하는 싸움이 없었다"고 말한다.
* 카무이는 "아들로서 보다 오빠로서 보다 해적으로서 더 오래 살았다"며 이제와서 그걸 되돌릴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 카무이는 7사단의 생존자와 하루사메의 잔당들을 이끌고 사라진다.
* 결전 후, 쾌원대 배 위에서 다시 만난 긴토키, 신파치와 가구라.
* 가츠라와 다츠마도 건재하게 이들의 만담을 즐기고 있다.
* 다츠마는 "장사 얘기는 끝났으니 이쪽 얘기도 얼른 끝내자"는데, 귀병대의 다케치가 와있다.
- 가구라.자신이 내려는 유급휴가계를 사직서로 착각하고 오글거리는 얘길 줄줄이 늘어놓던 긴토키와 신파치에게.
* 쇼우가쿠와 바토우는 의외로 생존. 한카이는 역시 리타이어한 듯.
- 은혼/607화 . . . . 10회 일치
* 핫토리 젠조가 오니와 번주로서 사루토비 아야메 등을 통솔해 참전한다.
* 벗어던진 콤비, 곤도와 야마자키는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고자 적진으로 돌격한다.
* 그 와중에 벗어던져진 티셔츠들이 서로 꼬이고 전신주에 걸리고 통곡하는 등 개판으로 치닫는다.
* 티셔츠가 성가셔서 벗어던진 콤비가 진격을 못하자 오키타와 히지카타가 귀신 같이 부활해 티셔츠 쪽을 베고 찔러버린다.
* 내일의 골을 향해 달려나가는 진선조와 해결사 일행.
* 이 와중에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금연을 방해하며 괴롭히고 가구라는 여기에 "세상이 멸망할 판인데 혼자 오래 살겠다고 금연하냐"고 디스를 날린다.
* 상공에선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의 구막부군 함대와 해방군 함대가 대치 중.
* 오니와번에 복귀한 핫토리 젠조. 두목으로서 이들을 이끌고 있다.
* 그가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친구로서 그 여동생을 지켜려 했듯, 소요 공주도 시게시게의 여동생으로서 싸우려는 거라면 막을 수 없는것이다.
* 오니와 번주, 최종결전에 참전.
- 은혼/618화 . . . . 10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좁은 통로로 들어온 다키니의 군세를 기동성을 앞세워 하나둘 쓰러뜨린다.
* [[미나모토 스이]]가 격분해서 뛰쳐나간다. 미나모토는 흥분한 와중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데 제아무리 괴력을 지녔더라도 야규류의 쾌검을 받아칠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이었다. 오우가이는 정교한 움직임은 없지만 속도 또한 힘 못지 않았다. 사각을 파고 들던 공격도 오우가이의 주먹 한 방에 막힐 뿐더러 미나모토의 팔이 부러지고 만다.
* 사천왕의 필두 [[토죠 아유무]]가 과감하게 돌격, 오우가이의 머리를 꿰뚫는 듯 했으나 그는 진검을 이쑤시개 씹듯이 씹어 먹으며 흉흉하게 웃는다. 오우가이는 토죠를 붙잡아 키타오오지, 미나모토와 함께 패대기 친다. 오우가이는 구태여 추격하지 않지만 다키니의 병사들이 둘러싼다. 토죠는 상처는 없지만 검을 잃었고 미나모토는 치명상. 키타오오지도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채로 적들에게 노출된다.
* 이제 오우가이를 막을 수 있는건 [[사카타 긴토키]]와 [[야규 큐베] 뿐. 하지만 둘이 힘을 합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오우가이는 "암놈 냄새가 난다"며 큐베가 여자라는걸 눈치채고 자신들을 우롱하냐고 화를 낸다. 그 힘에 떠밀려 나가는 긴토키와 큐베.
>이제와서 여자들의 목을 잘라낼 각오도 없이 내 앞에 서있는건 아니겠지.
* 오우가이는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도 있는걸 보고 전장은 여자나 애들의 놀이터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전쟁은 남자들이 목숨과 명예를 건 신성한 의식인데 이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큐베는 싸움을 모르는건 네놈들이라며 그 말을 칼같이 반박한다.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남자든 여자든 어린애든 구분없이 잿더미에 집어던졌다. 이제와서 갓난애나 여자들의 목을 벨 각오도 없이 전장에 서있냐면서 이들은 이미 걸만한 명예도 없고 그 목숨도 얕보던 여자한테 빼앗길 거라고 선언한다.
>와라. 네놈의 상대는 여자와 애송이들로 충분하다!
큐베는 오우가이와 그 병사들을 유인하기 시작한다.
- 은혼/619화 . . . . 10회 일치
* 때를 맞춰 [[시무라 타에]]의 지휘로 스마일 아가씨들이 통나무를 투하, 이와 함께 해결사+큐베의 공격으로 오우가이는 처음으로 주춤한다.
* 그러나 오우가이는 괴물같은 맺집으로 공격을 뿌리치고 긴토키에게 반격하는데, 이때 어디선가 무수한 수리검이 날아와 오우가이를 맞춘다.
* 요시와라의 [[츠쿠요]]가 백화를 이끌고 등장. 힘을 합쳐 오우가이를 몰아붙인다.
* 난간 바깥으로 날아간 줄 알았던 가구라와 신파치가 힘을 합쳐 오우가이의 뒤통수를 후린다. 그것 자체로는 큰 타격이 되지 않지만 그가 쓰러지는 바람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계단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오우가이.
*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시무라 타에]]의 지휘로 스마일 아가씨들이 통나무 함정을 몽땅 투하한다. 오우가이는 지면으로 떨어지면서 위로는 통나무 세례를 당한다. 그가 잔해와 통나무 더미에 깔리자 지금껏 걱정없이 지켜보던 부하들이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오우가이는 격분하며 다시 일어서지만 평정을 완전히 잃는다.
>내려 와라! 전부 다 가루로 만들어주마!
큐베의 말과 함께 가구라와 신파치가 과감히 뛰어내리며 각자 왼팔과 오른다리를 친다. 왼다리가 통나무더미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는 순식간에 사지가 봉쇄된다. 짐승처럼 포효하는 오우가이.
>하지만 요시와라의 여자장난은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 츠쿠요와 백화는 상공에서 장마비처럼 수리검을 퍼붓는다. 이들의 공격은 오우가이 휘하 병력들의 발을 묶고 막 일어서려던 오우가이를 고립시킨다. 츠쿠요가 직접 오우가이를 노리고 낙하하며 수리검을 난무하는데 오우가이는 또 한 번 괴력을 발휘해 봉쇄 당한 사지를 풀고 수리검을 막아낸다. 수리검에 벌집 같은 모습이 되지만 치명상은 하나도 없다. 머리에 날아온 수리검도 또 뿔에 걸린다.
* 그렇게 받아치는 긴토키. 여자와 아이들이 개고생하는 사이, 편히 누워있다 일어나던 참이다. 얼굴에 묻은 피는 오우가이의 것이었다. 그는 얼굴을 닦아내며 뻔뻔스런 표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뿔에 걸려있던 수리검을 가볍게 후려친다.
- 의상 (신라) . . . . 10회 일치
'''의상'''(義湘, [[625년]] ~ [[702년]])은 고대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왕족 출신, [[승려|고승]]이다.<ref name="글로벌-의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통일신라와 발해/고대문화의 융성#의상|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통일신라와 발해 > 고대문화의 융성 > 의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귀족사회와 무인정권/귀족문화#의상|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귀족사회와 무인정권 > 귀족문화 > 의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또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법통을 받아 중국 화엄종의 제3 세조가 되었다.
20세에 출가하여 [[650년]]([[진덕여왕]] 4년)에 사형(師兄)인 [[원효]](元曉)와 함께 [[당나라]]에 가던 도중에 난을 당해 이루지 못하고, [[당항성]]의 어느 동굴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이때 해골에 괸 물을 마신 [[원효]]는 도의 길이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그와 헤어진다.
그 후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의 혼란을 피하여 [[661년]]([[문무왕]] 1년)에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려 타고 건너가 [[중난산 산|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지엄]](至嚴: [[중국의 불교|중국]] [[화엄종]]의 시조)의 문하에 [[법장 (당나라)|현수]](賢首: 법장)와 같이 [[화엄]]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ref name="글로벌-의상"/> [[법장 (당나라)|현수]]는 [[지엄]]의 뒤를 이어 중국 [[화엄종]]의 제3조가 되고, 의상은 귀국 후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된다.
[[당나라]]에 체류 중 그의 설법에 참석하던 여성 중 그를 사모하는 선묘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의상이 신라로 귀국하던 날, 선묘의 집에 찾아갔지만, 선묘가 집을 비워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의상의 귀국 소식을 접한 이 선묘는 자신이 죽어 그를 지켜주겠다며 황해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후에 의상이 [[영주 봉황산]]에 산사를 지을 때, 지역 주민들이 와서 집단으로 들고 일어서자 어느 날 사람 수백 명의 머리를 덮고도 남을 크기의 바위가 공중에 떠다니면서 주민들을 따라다녔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해산하였고, 의상은 사찰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692년]]([[효소왕]] 1)에 [[법장 (당나라)|현수]]는 [[승전]](勝詮)이 귀국할 때 그의 저술 《[[화엄경탐현기]]》와 그 비판을 구하는 서신을 의상에게 보냈는데, 그 친필 서신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의상"/> 의상은 문하에게 이것을 나누어 강술하면서 전교(傳敎)에 전심하다 죽었다.<ref name="글로벌-의상"/> 사망 당시 향년 78세였다.
의상은 많은 [[사찰]]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 [[영주시|영주]]의 [[부석사 (영주시)|부석사]]가 유명하다. 토에 정통한 승려로서 [[신라]]와 [[고려]]에서는 국사로 추존되었으며<ref>일부 고려의 왕족과 귀족 중에는 고려는 도선의 풍수지리설 덕택에 건국, 후삼국을 재통일했다는 사고관이 있었다.</ref>, 민간 신앙에서도 무속의 신 중 한 사람으로 [[경상북도]]의 일부 무당들로부터 숭배되었다.
- 이금서 . . . . 10회 일치
일설에는 아버지로 알려진 이금현과 형제 관계라고 전한다. 이금현(李金現), 이금서(李金書) 부자의 이름상의 '금(金)'자가 같이 쓰인 점에서 비롯된 오해인 것 같다. 그러나, 신라와 고려의 옛 풍습에 아들의 이름에 아버지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권행(權幸, 안동권씨 시조)의 아들 인행(仁幸), 공직(龔直, ?~939, 연산공씨 시조)의 아들 직달(直達)이 그 예이다.
[[경주 이씨]] 대종보에 따르면 이금서의 아들은 1남 이윤홍(李潤弘), 2남 이윤원(李潤遠), 3남<ref>[[평창 이씨]] 본원 선계록에 의하면 "금서공은 신라 [[경순왕]] 김부의 셋째 딸 '신란궁부인'을 맞아 부마가 되어 두 아들을 두셨다. 장자는 휘 윤홍이니 [[경주 이씨]]의 선조가 되시고, 둘째 아들은 휘 윤장이니 [[평창 이씨]]의 시조이시다."라고 하여 이윤장을 2남으로 기록하고 있다.</ref> 이윤장(李潤張)이며, 이윤원은 [[가평 이씨]](加平李氏)로 이윤장은 [[평창 이씨]](平昌李氏)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평창 이씨]]는 [[경주 이씨]] 분적종이 아니라고 밝혀져 분적종에서 제외되었고, [[가평 이씨]](加平李氏)는 중국에서 유래되어 본래부터 분적종이 아니다. [[평창 이씨]] 내부적으로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를 근거로 이광(李匡)을 이윤장(李潤張)의 8세 손으로 보아 이윤장(李潤張)을 시조로 보는 분파와 이광(李匡)을 시조로 보는 분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가 위작으로 밝혀져 이광(李匡)을 시조로 확정하고 이윤장과의 관련성에 선을 그었다.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명(墓誌銘)에 의하면 "신라왕 김부(金溥 : 敬順王)가 국토를 바치고 고려 조정에 들어와 태조(太祖)의 딸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樂浪公主)에게 장가들어 딸<ref>신란궁부인 김씨이다.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는 출가 후 신란궁부인으로 불렸는데, 그 딸인 김씨가 다시 신란궁부인에 봉작되었다.</ref>을 낳았으니 금서의 아내가 되어 윤홍을 낳았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 이윤홍이 '신라말' 병정(兵正)을 했다는 기록을 들어 연대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ref>이에 대해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에 '고려 초 관제에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할 때 병정(兵正)을 두었고 품계는 재상(宰相)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ref> 그러나 이금서가 중원태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으로 고려에서 처음 벼슬을 시작했고, 그 아들 이윤홍의 병정(兵正) 벼슬과 관련하여 고려 초 관제에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하면서 병정(兵正)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윤홍의 병정(兵正) 벼슬은 고려 초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경순왕]] 3녀 김씨와 연대상 모순 ===
경주이씨 세보에 의하면, 이금서는 [[고려]]조정에 처음 출사하였다 한다. 또한 [[고려 태조|태조]] 때 [[고려]]의 삼한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런데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고려 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 일명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와 혼인한 것을 고려할 때, 여기서 태어난 [[경순왕]] 3녀 김씨가 이금서와 혼인할 연령이 되려면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이후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여기서 태어난 이금서의 아들들이 활약할 연령이 되려면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금서의 아들들이 [[경순왕]]의 [[고려]] 귀부 이전에 활약했다는 기록들은 이러한 사실과 30여 년 이상의 연대상 오차가 생기게 된다.
1남 이윤홍이 신라말 병정(兵正)을 지냈다는 기록은 [[경순왕]] 3녀 김씨의 연대와 맞지 않을 뿐더러 [[이색]]이 [[이제현]]의 묘지명에서 이금서와 [[경순왕]] 3녀 김씨 사이에 이윤홍을 낳았다는 기록과도 모순이 발생한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이금서(李金書)의 증손자 [[이주좌]](李周佐)를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주좌의 증조부 이금서(李金書)는 중원태수 호부랑중을 역임하고 고려 태조의 외손녀이며 신라 경순왕의 딸인 신란궁부인 김씨와 혼인하였고, 조부 이윤홍은 병정(兵正)을 역임하였는데, 비록 부친 이승훈(李承訓)이 칠품 관직인 정조시랑(正朝侍郞)에 그쳤다고 한미한 가문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10회 일치
2014년 1월 31일에 [[SBS]] 설특집 프로그램, '스타VS국민도전자, 페이스오프'에 치어리더 연합팀[* [[삼성 라이온즈]]의 이수진,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SK 와이번스]]의 오지연, [[LG 트윈스]]의 [[강윤이]].]으로 출연하여 걸그룹 [[걸스데이]]와 댄스 대결을 펼쳤다. [[걸스데이]]는 '[[엄정화]]의 초대', 치어리더 연합팀은 상대편 '[[걸스데이]]의 기대해'와 '[[미쓰에이]]의 허쉬(HUSH)' 춤을 췄다.
[[한국프로야구/2014년 포스트시즌]]을 맞아 [[XTM]]의 [[베이스볼 워너B]]에서 제작한 치어리더 배틀 영상에 출연했다.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30M67wdL7Fw|여기]].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했는데, 각 팀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댄스 배틀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이수진은 넥센 치어리더 임경미와 대결을 했다. 여기서 자신의 키만큼 발차기를 하고 다리 찢기를 하는, 놀라운 유연성을 선보였다.
2014 포스트시즌부터 적용된 [[KBO]] SAFE 캠페인 홍보 영상에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대표로 출연하였다.[* [[KIA 타이거즈]]의 최미진, [[SK 와이번스]]의 [[배수현]], [[한화 이글스]]의 [[금보아]],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LG 트윈스]]의 [[강윤이]], [[넥센 히어로즈]]의 임경미,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두산 베어스]]의 김다정 치어리더들과 함께 출연함.]
2015년 9월 1일부터, 매주 화요일 삼성 토모로우와 맨즈헬스의 콜라보레이션 기사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 9월 8일자 기사 (이수진, 레벨 온 와이어리스로 영화 같은 데이트를 꿈꾸다) [[http://samsungtomorrow.com/uJMkb|기사 링크]]
* 10월 7일자 기사 (치어리더 이수진, 그와 함께한 시간들)[[http://samsungtomorrow.com/8OoLn|기사 링크]]
- 이현우(배우) . . . . 10회 일치
[Include(틀:콘텐츠와이 소속 아티스트)]
||<#6495ED><:> {{{#ffffff '''소속'''}}}||<(> [[키이스트|콘텐츠와이]] ||
선덕여왕의 어린 [[김유신(선덕여왕)|김유신]] 역 등장을 기점으로 [[유승호]]를 잇는 국민 남동생의 자리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어린 김유신을 맡으면서 귀여움과 훈훈함을 동시에 안겨주어 2~30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나이에 비해 똑부러진 연기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성인 역인 [[엄태웅]]으로 교체되면서 유신랑의 인기는 급강하하고 만다. 물론 엄태웅의 어색한 사극 연기도 한 몫 했다. 그를 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누나팬들이 적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 하차한 후에는 [[막장 드라마]] [[밥줘]]에서 차화진의 아들 토미 역을 맡기도 했다. 2010년 1월에 시작한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드라마)|공부의 신]]에서 [[홍찬두]] 역을 맡아 유승호와 함께 국민 남동생 투톱이 나란히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계백(드라마)|계백]]에서 주인공 계백의 아역으로 등장했다. [[브레인(드라마)|브레인]]에서 소년가장 박동화 역으로 나왔다.
2012년 3월 방영된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다시 한 번 [[엄태웅]]의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나 캐릭터와의 싱크, 발성의 한계 및 대사조절에서 아역 연기를 벗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드덕들 사이에 연기에 대한 논란을 안겨주었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때와는 달리 이제 얼른 아역 분량이 끝나고 [[엄태웅]]이 나오기를 바라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 사실 적도의 남자에서의 김선우는 그동안 이현우가 해왔던 역할과는 좀 많이 다른 성격이긴 했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같은 아역으로 나왔던 [[임시완]]의 연기가 예상외로 훌륭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8월 방영되는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드라마)|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차은결[* 일본 원작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남 파라다이스]]에서 [[이쿠타 토마]] 역.]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이로서 일본 드라마 원작 드라마에서 두번째 출연을 달성. 2012년 12월 16일부터 2014년 2월 9일까지 [[아이유]], [[황광희]]와 함께 [[SBS 인기가요]]의 진행자를 맡았다.
2013년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후지이 미나]]와 함께 PiFan 가이/레이디(홍보대사)로 선정되었다.
* [[디시인사이드]]에 갤러리가 생성되었으나, 생성 초반엔 [[이현우(가수)|동명이인 모 개막장 가수]]와 같은 이름이란 탓으로 종종 털렸다(...). [[지못미]].
* 2013년 8월 9일 [[아이유]]와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가 찍힌 [[파파라치]] 사진 기사가 뜨면서 열애설이 불거졌다. 그러나 같은 날 그냥 절친한 사이로 영화를 같이 보았다는 해명 기사가 나왔다. 참고로 이현우가 아이유보다 2개월 먼저 태어났다.
|| 2010년 3월 16일 || KBS2 || [[김승우의 승승장구]] || 몰래 온 손님[* [[김수로(배우)|김수로]] 편에 [[공부의 신(드라마)|공부의 신]] 출연자인 [[지연(티아라)|지연]], 이찬호와 함께 출연했다.] || ||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10회 일치
* 그가 살아난 것도 그 자책 때문이며 아들 길선더와 만나길 주저한다.
* 자라트라스와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주술"의 힘으로 멜리오다스의 기억의 세계로 들어간다.
* 젊은 시절 자라트라스와 국왕 바트라가 있고 아기인 엘리자베스를 안고 있는 멜리오다스와 만난다.
* 엘리자베스는 "아들"(길선더)하고 만났냐고 묻는데, 호들갑을 떨면서 "이제와서 무슨 낯짝으로 만나냐"라고 장황하게 떠들어 댄다.
* 과거 멜리오다스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놓곤 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다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다.
* 엘리자베스와 호크는 무슨 말을 했는지 묻는데 정작 자라트라스는 다 까먹어 버렸다.
* 멜리오다스가 리즈와 함께 하던 시절로 사방에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등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 마침 그 자리에는 젊은 시절의 국왕 바트라와 자라트라스가 참상을 지켜보고 있다.
* 엘리자베스는 왜 하필 이때로 온 거냐고 묻는데, 자라트라스는 이때가 "나와 멜리오다스, 그리고 당신이 처음 접점을 가진 때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10회 일치
* 할리퀸은 그를 무시하고 은총의 빛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디안느는 무슨 생각인지 고서와 좀 더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 디안느는 고서가 죽은 이후 "인형" 고서 쪽은 어떻게 되냐고 묻는데, 고서는 인형 고서의 자아와 마음을 부여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게 한다.
* [[그로키시니아]]와 [[드롤]], 그 안에 있는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는 자신들 눈 앞의 "인형" [[고서]]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는 마신왕에게 무욕의 계금을 받고 500년 동안 자유를 뺏겼다. 그 사이 자신이 만든 인형 고서를 통해 겨우 바깥과 접촉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그는 이 세상에 이별을 고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꼭 그들, 할리퀸과 디안느를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는 [[메라스큐라]]를 조종해 시공의 틈을 연다. 그리고 진짜 고서, 무욕의 고서가 틈을 통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본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고서는 "나도 고서. 하지만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인형 쪽과 싱크로된 상태라 동시에 같은 포즈로 같은 말을 해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고서는 헷갈린다면서 "싱크로 오프"란 주문으로 인형 고서와 동조를 단절한다. 그러다 조용히 의식을 잃는다. 무욕의 고서는 인형 쪽도 감옥 안에 있는 자신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준 "동지"라고 말하며 그 또한 고서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 하지만 그런 설명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할리퀸은 고서의 설명을 끊고 방금 전 인형 쪽의 입으로 "문이 완성될 때까지 접근시킬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을 추궁한다. 대체 은총의 빛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할리퀸이 강하게 추궁한다. 고서는 숨길 생각은 없다며 "인간들의 반란"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로우를 비롯한 인간 전사들은 처음부터 스티그마에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스티그마 내부에 침투할 목적이 있어서 고서와 협력했다. 이들은 목숨을 건 연극으로 [[멜리오다스]]와 할리퀸 일행의 신뢰를 사서 스티그마에 침투했다. 고서는 그들이 목적을 위해 마신족을 이용한 거라고 말해서 메라스큐라처럼 조종 당한게 아님을 암시한다.
할리퀸은 고서의 설명을 개소리라고 일축한다. 결국 그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 모든 걸 이용한 셈이다. 마신족 포로와 스티그마의 병사들. 그리고 인간 전사들 자신들까지도. 할리퀸이 강하게 비난하자 고서가 내놓은 대답은 뜻밖의 것이다.
* 할리퀸이 디안느에게 서둘러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디안느는 거절하며 할리퀸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자신은 고서와 좀 더 대화해 봐야겠다면서. 그녀가 보기에 고서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고서, 인형 쪽도 포함해서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기도 하다. 디안느가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자 할리퀸도 더는 권하지 않는다. 그는 디안느에게 방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은총의 빛으로 향한다.
* 하지만 고서에겐 또다른 난처한 부분이 있었다. 디안느와 하리퀸의 말에 따르면 3000년 뒤, 인형 고서는 어떤 사고로 마음을 잃어 버린다. 무욕의 고서가 생각하기엔 있을 법한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친구"들이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디안느는 고서가 자신들을 "친구"로 표현하자 의아해한다. 그들은 지금 처음 만나지 않았는가?
>너는 언제나 늦게 와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10회 일치
* [[에스카노르]]는 멜리오다스와 자신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퍼펙트 큐브로 격리시키고 단독으로 단장을 상대한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간단히 독을 정화해 반을 구하고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압도적인 힘으로 메라스큐라를 박살낸다.
* 메라스큐라는 약체로 여긴 둘이 [[드롤]]과 [[그로키시니아]]와 같은 힘을 내자 당황하나 멜리오다스가 말한 "운명의 동료"라는 말을 떠올리고 납득한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난건 코란도의 중심부였으나, 그 힘이 내뿜는 여파는 외곽에 있는 일행에게까지 날아왔다. 멀린은 일찌감치 퍼팩트 큐브로 엘리자베스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를 보호했다. 엘리자베스가 멜리오다스의 상태를 보고 폭주했다고 생각하나 멀린의 말에 따르면 통상적인 폭주와는 전혀 다르다. 그를 감싼 검은 기운이 주체할 수 없이 용솟음쳐서 걸치고 있던 갑옷 조차 하나씩 터져나간다. 엘레인과 상공에 있던 [[반(일곱 개의 대죄)|반]]이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적인 메라스큐라 조차도 일곱 개의 대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그녀는 저 상태의 멜리오다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멜리오다스에게 접근한 에스카노르가 멀린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녀가 큰 규모의 퍼펙트 큐브를 그들 주위에 생성한다. 암담의 고치에서 나와 퍼펙트 큐브에 갇힌 멜리오다스. 그리고 그 앞의 에스카노르. 멀린은 멜리오다스가 일단 암담의 고치를 부수려고 내면의 마신왕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결과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만, 위험한 도박의 대가가 크다. 자신이 마신왕의 저주로 감정을 상실한 상태였던 걸 간과한 것이다. 멀린은 새삼 그를 "바보 녀석"이라며 탓한다.
* 에스카노르와 멜리오다스가 격리되자 메라스큐라는 금방 반색했다. 일행 중에 가장 무서웠던 둘이 제외됐으니 나머지는 "먹이"에 불과하다고 교만을 떨었다. 반은 그 꼴을 봐주기 힘들었다. 엘레인을 뿌리치고 뛰어내린 반이 장기를 발휘했다. "폭스 헌트". 목표는 메라스큐라의 심장.
* 엘레인이 서둘러 다가오려 했지만 반이 막았다. 그가 당한 이 독, 보통 독이 아니다. 데들리 포이즌은 메라스큐라의 소화액이다. 무시무시한 강산인데다 피어오르는 증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반의 불사신 육체도 이 독 앞에서는 무력했다. 독액이 그의 몸을 녹였고 증기가 남아서 재생하는 것 보다 빠르게 그의 몸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엘레인은 그가 한 줌의 핏덩이와 해골로 변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때 그녀를 대신해 엘리자베스가 나섰다. 그녀는 독기가 자욱한 반의 곁으로 주저없이 다가갔다. 메라스큐라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독기가 그녀에겐 통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반을 향해 손을 뻗고 여신족의 힘을 발휘했다. 그건 마법이나 주술이라기 보단, 마치 명령. 언령이라고 부를 만했다.
* 저쪽의 승부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이쪽의 상황은 그보다 심각했다. 퍼펙트 큐브에 갇힌 두 남자의 신경전이 불꽃 튀었다. 마신왕의 힘을 끌어낸 멜리오다스를 눈 앞에 두고도 에스카노르는 "재미있는 변화"라고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의 단장과 명백히 다른 모습. 그것만은 에스카노르도 인정했다. 그렇게 말하며 그 말이 이해가 되느냐고 묻자, 평소와 다른 단장이 위협적으로 대꾸했다.
마치 마신왕 그 자체와 같은 모습. 그러나 에스카노르는 여유롭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10회 일치
* 고서는 나자와 친해져 리오네스 성의 '''메이드'''로 잠입해서 생활하게 된다.
* 나자는 죽기 전 작별인사처럼 고서와 사랑을 잠들 듯이 세상을 뜬다.
바트라는 진작부터 이 지하 공간에 대해 누나와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늘은 누나가 약속을 깨고 혼자 지하공간을 탐색하러 간 날이다. 나자는 거기에 대해선 간단히 사과한 뒤 "네 꿈 대로 지하에 거대한 공동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기한 남자애"와 만났다고 하는데 바트라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떠올랐어. 나는 그와 함께였어.
* 그로부터 얼마 뒤. 고서는 나자의 메이드로 정착했다. 나자와 고서는 함께 지하 공동에서 탐험하기도 하고, 함께 책도 읽고, 춤과 놀이를 즐기며 함께 보냈다. 바트라가 새로온 시녀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성 안 사람들은 새로온 공주의 메이드라고만 생각했다. 막내인 [[던젤 리오네스]]도 그랬다. 그는 새로운 메이드가 온 뒤로 누나가 밝아진 것 같다고 형에게 말한다.
>나자 공주. 달빛이 반짝이는 오늘 밤, 나와 여행을 떠나자.
* 어느날 고서는 바트라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고서는 감사받을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고 답하지만 바트라는 그의 존재로 인해 누나가 밝아졌다고 말한다. 고서는 말이 나온 김에 그의 "예지"능력에 대해 묻는다. 고서도 바트라가 그와 나자의 만남을 예견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바트라는 때때로 예지몽을 꾸는데 그게 무서울 정도로 잘 맞아 떨어진다고 말한다.
* 나자는 낮부터 기력이 없어서 방에 누워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고서는 걱정말고 푹 쉬라면서 다음에는 페네스의 호반까지 가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나자는 화제를 돌려 고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그때 고서는 갓 태어난 산양 같았다고 한다. 지금은 누구도 그를 "인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서는 자신은 인간이 아니며 몸도 마음도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몇 백년이든 몇 천년이든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하는데.
>너와 보내는 것...
- 전형필 . . . . 10회 일치
| 학력 = [[와세다 대학]] 법학부
'''전형필'''(全鎣弼, [[1906년]] [[7월 29일]] ~ [[1962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다. 자는 천뢰(天賚), 호(號)는 간송(澗松), 지산(芝山), 취설재(翠雪齋)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훈민정음]] 원본 등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찾아와 1938년 조선 최초의 근대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웠다. 해방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중에 한국의 문화재들을 지켜내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사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유족들과 지인들에 의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으로 개편되었고, 간송미술관에서는 [[1971년]] 봄부터 '겸재전'(謙齋展)주제를 시작으로 2014년 가을까지 일년에 2차례씩 무료 일반공개를 하였다. 현재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간송컬렉션을 선보이고자 동대문디자인프라자&파크에서 간송문화전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2012년 12월 14일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전형필의 가옥]]을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하여 지정 관리하고 있고, 2014년 10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1906년]] [[서울특별시|서울]]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에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32년]] [[서울특별시|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고서, 고서화를 취급하던 서점)을 인수하고, 우리민족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문화재]]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과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한 일화와 존 개츠비의 소장품인 [[고려청자]]의 수집에 대한 일화가 유명하다. [[1942년]] [[경상북도]] [[안동시|안동]]에서 소재되어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은 원래 광산 김씨 종가의 긍구당 서고에 보관되어 오던 광산김씨 문중의 가보였다고 한다. [[세종]]이 광산김씨 문중에 여진정벌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 내린 서책이라는 것이다.
당시 천원이면 좋은 기와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학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한글 창제]] 원리가 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해 밝혀졌다. 후에 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7년]] 10월에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기도 하였다. 거간 노릇은 한 김태준과 이용준은 사회주의자로, 판매한 돈을 사회주의 운동에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광복 후 김태준은 일련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되었고, 이용준은 월북하였다고 한다.
* 1906년 7월 2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가 112번지에서 중추원의관 전영기와 밀양 박씨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 본관은 정선
* 1930년 일본와세다대학 법과 졸업 / 귀국 후 춘곡 고희동 선생의 소개로 위창 오세창 선생과 교유, 문화재 수집시장
[[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선 전씨]][[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효제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화가]]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10회 일치
* 후지코의 방에서 나타난건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 일행은 이들을 제압하고 백신을 주입한다.
* 이제 후지코와 대결만 남았는데 [[효부 쿄스케]]는 승부를 서두르며 자신이 신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은 절대 나서지 말라고 당부한다.
* 일행이 잠시 정체된 그때 갑자기 후지코의 방이 열린다. 하지만 거기서 나타난건 관리관이 아니었다. 세뇌된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 미나모토의 예상대로 관리관은 이 상황을 예측한 건지 두 사람은 일행을 환영하며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데.
* 악의 보스 같은 위엄이지만 칠드런의 선제 공격으로 위엄은 한 컷도 가지 못한다. 칠드런은 "국장의 우리들에 대한 애정은 겨우 그 정도냐"고 까면서 문답무용으로 국장을 패는데 [[사카키 슈지]]와 미나모토는 "아무리 그래도 국장도 사람인데 블랙 팬텀의 세뇌를 이길리 없다"고 진정시키려 한다.
* 하지만 카시와기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느닷없는 전기충격으로 국장을 제압. 카오루가 재빨리 카시와기의 움직임을 멈춘다. 카시와기 본인은 세뇌를 이기지 못했지만 이 상황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유리가 최면으로 카시와기를 진정시키는 사이에 효부가 두 사람이 최면 외에도 레어 메탈에 의해 오염당했다고 판단하고 사카키가 혈청을 주사한다.
* 일행은 두 사람을 방 안으로 옮기고 [[산노미야 시호]]가 혈청이 정상적으로 레어 메탈을 정화시키는걸 확인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여기에 방치할 수는 없다. 후지코가 오면 다시 감염될 것이기 때문. 하지만 텔레포트도 봉인된 상태라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건 무리다. 효부는 여기서 이대로 후지코와 대결하자고 재촉한다.
* 미나모토는 수긍하지 못하지만 효부는 자신이 리더라며 다그치는 태도로 나온다. 그는 자신이 신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후지코와 처음 싸우는건 자신이라고 결정한다. 카오루는 여전히 불안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다 잘 될 거라고 자신을 타이른다.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10회 일치
* [[야도리기 아키라]]는 [[히노 카가리]]의 신체를 빼앗아 파이로키네시스와 [[파티 크루]]의 입자화 능력을 동시에 봉한다.
* 그러나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아카시 카오루]]는 [[츠쿠시 미오]] 일행의 구출이 최선이라 판단, 카오루는 자신이 "파괴의 여왕"이란 자각을 가진다.
* [[히노 카가리]]의 몸을 빼앗은 [[야도기리 아키라]]의 발화로 [[파티 크루]]의 입자화 능력이 분진 폭발을 일으켰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칸코레]]스러운 중파 씬을 연출. [[타마키 카즈라]]와 [[츠쿠시 미오]]는 큰 데미지는 없는 듯 하다.
* 문제는 블랙 팬텀 측도 분진폭발에 휘말렸다는 것. [[우메가에 나오미]]는 중파지만 [[팀 토이]]와 [[바렛 실버]]는 대파 상태. 나오미는 이런 상태로도 "벌써 승부가 났다"며 자신하지만 그리 좋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 파티는 데미지고 별게 아니라며 재구성으로 간단히 회복한다. 하지만 그와중에 여성진은 적인 나오미까지 회복시키면서 남자들은 방치, [[부녀자]] 정신을 어필한다.
* 더 하운드와 엇갈리듯 도착한 칠드런팀. 뒤이어 [[쿠모이 유리]]와 [[마츠카제 코우이치]]도 도착한다. 마츠카제는 레이더로 근처에 블랙 팬텀의 전투 헬기가 접근하고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시호는 곧바로 근처의 정보를 읽어서 더 하운드 팀이 방금 전 도주한 것, 그리고 와일드 캣과 섀도우 오브 더 칠드런 팀이 정신 오염 상태로 교전 중이라는 것까지 파악한다.
* 아오이는 단숨에 부스트해서 전부 되찾자고 제안한다. 유리도 거기에 동의하지만 마츠카제는 다섯 명이나 되는 특무 에스퍼 상대로 현실성 없는 작전이라며 만류한다. 게다가 헬기 부대까지 고려하면 부스트는 비장의 수로 남겨놓는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호가 주축이 돼서 "그걸 어떻게든 하는게 지휘관"이라며 아오이와 유리까지 가세해서 "되는 작전을 짜내라"고 스킨십 공격으로 농락한다. 마츠카제는 갈 수록 M에 개화하는지 "좀 더 부탁받고 싶어진다!"며 곤란해한다.
카오루가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자 시호와 아오이도 한 발 물러선다. 둘은 각각 "카오루가 파괴의 여왕이라면 "금단의 여제"(언터쳐블 엠프레스), "신속의 여신"(라이트스피드 가디스)인가"라고 중얼거린다. 이 말을 들은 유리가 흥분해서 "그런 나는 뭐야"라고 끼어드는데, 마츠카제가 "넌 그냥 "팬텀 도터"잖아"라고 대충 정해준다. 하지만 유리는 세트가 좋다며 "현혹의 여교황"(다즐링 하이프리스너스)같은 급조한 명칭을 제안한다. 여기서 마츠카제가 대항심을 느껴 "지옥의 타천사"같은 되도 안 되는 명칭을 들이밀어서 사이좋게 둘 다 츳코미 당한다.
- 조원진 . . . . 10회 일치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 당시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상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반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영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영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송영선은 비례대표로 옮겨가 당선되었고, 이후 남양주시 갑으로 옮겨서 현직 당협위원장인 심장수의 지역구를 빼앗아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송영선은 이후 비리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유승민]] 前 원내대표과의 대립 과정에서 [[최경환(1955)|최경환]] 前 경제 부총리와 함께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하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친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1955)|최경환]], [[윤상현(정치인)|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정치인)|홍문종]], [[유기준(1959)|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http://h21.hani.co.kr/arti/politics/42751.html|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4월 24일 열린 [[19대 대선]] 비초청 후보 토론회에서는 [[김선동(1967)|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에게 [[종북몰이]]와 [[색깔론]]을 들이대다가 '철 지난 메뚜기'란 조롱을 들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70423&ref=A|기사 1]] [[http://v.media.daum.net/v/20170425013917707|기사 2]] 오해를 막기 위해 기술하자면, 김선동 후보도 [[최루탄|잘한]] [[코스트코|건 없다.]][* 애당초 김선동은 [[서갑원]], [[이정현(정치인)|이정현]]과 함께 '''[[순천시]] 국회의원의 수치 3총사'''에 나란히 꼽히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민중당 자체도 舊 통합진보당 NL계가 뿌리인지라 종북몰이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여서(...).] 나머지 후보들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 비초청후보 토론의 최대 승자는 '''[[이재오]] 후보'''라는 게 중론.
선거 1주 전가량 [[바른정당]]에서 보수 단일화를 요구하며 15명의 국회의원[* 김성태, 김학용, 김영우, 여상규, 장제원, 이진복, 이은재, 이종구, 박성중, 홍문표, 홍일표, 권성동, 이군현, 황영철, 김재경을 의미한다. 대대수가 친김무성계에 속한다.]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려 하자 '[[자유한국당]]도 탄핵 주역에 배신자이다'라 비난하며 [[홍준표]]와의 단일화 협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다 [[홍준표]] 후보 측의 [[여론조작|댓글부대]] 운용 의혹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http://m.shinmoongo.net/a.html?uid=102498|기사]]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낙선이 확정되었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 이탈하여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남, 호남, 충남,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순위는 6위]
'''[[김진태(정치인)|김진태]]와 함께 [[박근혜]] 호위무사를 자처한 국회의원. 국민보다 박근혜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다른 의견으로는 박근혜에게 인간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친박이라는 것 외에 딱히 정치적 자산이 없고 본인에게 특출난 능력, 우러러 볼 업적도 없기 때문에 박근혜를 놓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조원진은 태극기 집회 연설이나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극단적인 언행을 전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현재 그가 박근혜 석방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뭔지 떠올려 보면 딱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준표 대표는 2018년 1월 19일 대구 북구 을 당협위원장으로 갔기 때문에 홍 대표와의 경쟁은 일단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사표심리와 조원진의 [[조원진/논란|지역구 망신 행적들]] 때문에 낙선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진태(정치인)|김진태]]와 [[김태흠]]이 친박의 돌격대장이라면 조원진은 [[광신도]]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실 광신도인 척을 하면서 박근혜를 동정하는 국민들의 표를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해나가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른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81608|#]] 탄핵까지는 아니지만, 4월 30일 퇴진을 주장했고, 최순실 특검법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게다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넷 중 4위라는 처참한(...) 경선 결과로 인해 다음 지선에서 대구시장 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직접 신당을 만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참고로 정당 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이 무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보다 적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10회 일치
* [[옐런 예거]]는 그리샤의 기억을 통해 그 사실을 전달하고 [[아르민 알레르토]]는 그리샤의 수기와 대조하며 기록한다.
* [[그리샤 예거]]의 수기는 이와 같이 적으며 "바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바다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들을 향해, 그는 "지표의 7할을 점한 광대한 소금물"이라고 무기질적으로 적고 있다. 그의 기억 속에선 거인으로 변한 올빼미, 크루거가 마지막 남은 마레의 병사를 살해하고 바다에 던지고 있다. 그리샤는 마레당국이 끌고 온 모든 것들, 그리고 마레인 자신들이 모조리 바다에 삼켜지는 것을 경이에 차서 바라본다. 짙은 색을 내기 시작한 석양이 거인의 등 뒤에 걸려있었다.
크루거는 의사는 첩보원에 적합한 직업이라 설명한다. 적당한 교양과 사회적 지위을 갖추고 "거인화학"에 적용 가능한 지식도 있다. 그리고 크루거가 보기에 그리샤는 꽤 잘한 편이다. 그가 복권파를 이끌고 [[다이나 프리츠]]와 아이를 만든 것, 그리고 그 아이 [[지크 예거]]를 마레의 전사로 키우려 한 것, 그 모든 계획에서 올빼미의 존재까지 고려한 것은 모두 타당성이 있는 계획이었다. 다만 그 결과는 그라이스의 한탄대로였지만.
크루거의 아버지는 대륙에 잔류한 왕가의 잔당이었다. 그들은 혁명군을 구성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마레 당국에 의해 암살되었다. 아버지가 혁명군에 속했던 크루거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한 군데서 불살라질 때, 어린 그는 찬장 속에 숨어 문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무서워하면서. 집이 거의 다 탔을 때 아버지의 동료가 구하러 왔고, 크루거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레에 대한 복수와 엘디아의 복권을 맹세했다. 그런 그가 실제로 하게 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동포의 손가락을 자르고 가죽을 벗기며 이곳에서 떨어뜨려 거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걸 철저히 수행한 결과 오늘날까지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 그리샤는 그가 맡기려는 마지막 임무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것은 시조 거인의 탈환. 그리샤의 원래 목표와 같은 것이다. 단, 그가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행동에 수반되는 "고통"을 모르고 있었다. 동료를 잃는 것도, 아내와 자식을 잃고 손가락마저 잃는 것도. 알았더라면 이런 대가를 지불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단언한다.
* 생각에 잠겨있던 크루거는 그리샤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뜻밖에도 "똑똑한 남자"였다고 평한다. 어린 그리샤의 눈엔 비굴과 굴종의 표상으로 비췄던 아버지가, 크루거에겐 어떻게든 남은 가족을 지키려고 필사적이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가 어떻게든 잘못된 길을 고르지 않게 하려고 했던 아들은, 거기서 아무 것도 못 배웠을 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을 지옥길의 길동무로 삼고 말았지만.
거인화 능력자의 "수명"이 밝혀졌다. 엘런의 나이와 계승시기로 볼 때 그리샤가 아들에게 능력을 계승시킬 수밖에 없었던건 이 수명과 관련된 문제같다.
유미르와 거인화 능력의 정체에 대해서는 "유기생물의 기원"이란 떡밥이 새롭게 등장했다.
단순히 거인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알려졌던 "좌표"가 실제론 거대한 네트워크와 유사한 핵심적인 떡밥으로 부상했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10회 일치
* 엘디아인 병사이자 "전사 후보생"인 가비와 파르코는 스라바 요새 공략에 동원된다.
* 그때 "턱의 거인" 갤리어드가 거인화해서 도착, 가비와 프랑크를 구하고 적의 참호로 돌진한다.
가비는 누가 선택될지 기대된다는 얼굴이지만, 매우 자신감에 차있다. 모든 것이 기억난 파르코. 그는 가비의 표정을 보고 "너 말고는 비교대상이 없다는 말투"라며 장난을 건다. 그러자 가비는 시시할 정도로 깨끗하게 "그야 달리 없잖아"라고 인정한다. 우도와 조피아도 현재 성적상으론 그렇다고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비는 그들의 말에 반박한다.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면서.
파르코와 친구들은 숙연한 자세로 그 말을 듣는다. 그러다 가비가 뭔가를 만들고 있는걸 발견하고 파르코가 묻는다. 그녀가 만든 건 수류탄 7개를 한데 묶은 다발이다.
갤리어드와 피크, 두 "거인"의 힘이라면 적을 섬멸할 수 있다고 콜트는 주장한다. 하지만 마가트는 한 마디로 각하한다. 카드를 잘못 쓰면 그대로 패배한다는 이유였다.
* 그때 관측병이 "놈"이 나타났다고 알린다. 그것은 "장갑열차"다. 거기에 달려있는 열차포는 "대거인포"라 불리는 연합의 신병기다. 장갑열차에 총 4문이 장착돼있다. 100mm짜리 철갑포로 보통 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홉 거인"이라 해도 한 방이면 처리할 수 있는 괴물. 마가트가 우려한 것이 저것이었다. 콜트는 턱과 차력은 재빠른 거인이므로 목덜미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마가트는 도박의 여지를 두고 싶지 않다. 만약 당하면 어쩔거냐는 반문에, 콜트는 거인의 힘과 전사를 잃고 거인의 힘을 되찾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가트 대장은 거기에 9년 전 있었던 "시조탈환 계획"의 처참한 실패를 덧붙인다. "여성형 거인" [[애니 레온하트]]와 "초대형 거인" [[베르톨트 후버]]를 잃은 실패 말이다. 이 전력의 상실이 지금의 전쟁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다. 마레의 군사력이 저하됐다고 본 주변국들과 분쟁으로 전쟁이 시작,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팔라디섬 공략은 한없이 뒤로 밀렸다.
참호에 정적이 감돈다. 마가트 대장은 "너흰 훈련시키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아냐"며 각하한다. 그래도 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처럼 유능하고 예쁜 전사는 두 번 다시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이 성공하면 800명의 전사대를 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마가트는 콜트에게 한 것처럼 "실패하면?"이라고 반문해본다. 가비는 콜트와 달리 거기에 대한 답도 가지고 있었다.
걱정과 공포로 일그러지는 파르코와 친구들. 파르코는 그녀를 말리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허락이 떨어지자 차라리 환희에 차오른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그녀는 쓰러진척하며 오른발의 수류탄 다발을 끌른다. 그리고 열차가 최적의 위치에 다가오길 기다린다. 적당한 시기가 되자 선로 위, 열차포의 코 앞에 힘껏 던진다. 정확한 위치에 떨어진 수류탄은 적들이 대응할 틈도 없이 폭발한다. 열차는 폭발의 여파로 탈선하며 그 앞에 있는 기관총 진지로 굴러떨어진다. 열차포 파괴와 진지파괴를 동시에 이룬 쾌거. 최적의 결과다. 마가트는 곧바로 갤리어드를 부르라고 명령한다.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10회 일치
* 마레는 갑옷 거인 [[라이너 베르너]], 짐승 거인 [[지크 예거]]와 함께 지능없는 보통 거인도 전선에 투입하고 있다.
* 마레 지상군은 턱의 거인 "갤리어드"와 차력의 거인의 힘으로 적의 참호를 돌파하는데 성공한다.
공수부대를 실은 마레의 비행선이 스라바 요새 상공에 도착한다. 주력은 물론 마레의 전사 [[라이너 베르너]]와 [[지크 예거]]다. 하지만 마레의 전사는 그들만이 아니다. 비행선의 공간 대부분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특이한 적재물이 차지하고 있다. 하나같이 약에 취한 것 처럼 눈에 초점이 없고 입가가 침으로 번들거린다. 이들도 "마레의 전사"다. 자아를 잃었음이 틀림없는 엘디아인들이 정육점의 고기처럼 천장에 매달려서 도하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지휘관 마가트와 콜트는 전선의 동향을 주시한다. 마가트는 콜트의 의견을 묻는데, 그는 적 전선을 충분히 타격했으니 전사대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의 퇴로를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시선은 곧 하늘로 향한다. 이제 상공의 비행선이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보인다. 마레의 최주력이자 최고전력. 작전의 성패는 그들 몫이다.
* 비행선 안이 텅 비자 지크와 라이너가 준비한다. 라이너는 손에 나이프를 쥔 채 낙하하는 동료들을 바라본다. 동포들이 비행선과 적당한 거리를 이루자 지크가 목청을 가다듬고 고함을 지른다.
그 목소리에 공명하듯 낙하산에 매달린 엘디아인들이 발광한다. 대낮에 보는 불꽃놀이같다. 지상의 엘디아인들, 콜트와 후보생들은 견디기 어렵다는 눈길로 그들의 변신을 바라본다.
가비와 파르코를 비롯한 엘디아인 누구도,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저 탐식적으로 변한 자신의 동포들을 눈에 새긴다.
* 폭격이 비켜나간 온전한 요새 벽에서 최후의 저항이 이어진다. 지휘관이 말했던 대거인전용 야전포다. 위력이 상당해서 벽 위를 공격할 수 없는 작은 거인들은 속절없이 박살난다. 라이너는 낙하하면서 이 야전포의 숫자와 위치를 파악한다. 약 29대. 상당한 숫자가 기동 중이다. 거인병력의 6할은 낙하와 동시에 전멸했으니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하지만 라이너에게 치명적인 정도는 아니다. 그보단 벽이란 것 자체가 싫다. 그는 "또 벽이냐"도 중얼거린다. 그건 싫은 기억을 자극한다. 4년 전의 기억을.
* 갑옷의 거인이 낙하. 가비는 그것을 보고 "라이너, 조심해"라고 작게 속삭인다. 옆에 있던 파르코가 그걸 의식한다. 거기까지 들리진 않았겠지만 라이너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 그는 낙하와 동시에 요새 벽 위의 야전포를 차례 차례 쓸어버린다. 문자 그대로 벽 위의 먼지를 쓸어내는 것처럼. 적들은 대거인전용 철갑탄으로 응수한다. 이 철갑탄은 라이너의 갑옷을 꿇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라이너는 첫 응사를 막아내지만 오래 노출돼봐야 좋을게 없다. 다음 탄을 장전하는 사이 라이너가 철갑탄을 쏜 쪽으로 우선 달려든다. 하지만 충분히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사격 준비가 끝난다.
- 창작:치킨교 . . . . 10회 일치
본래 [[미국]]에서 [[노예]]로 착취 당하던 흑인 노동자들에게 평화와 영양을 전하시던 것이, 흑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지자 샌더슨의 입을 통해 증거되시어 [[KFC]]란 교단을 일으켜 한국에 전해지게 되었다.
모두 근본이 되는 닭의 튀긴 형상을 숭배하고 먹는 것을 종교활동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신앙구조를 갖고 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각종 양념을 통한 이념화가 진행되면서 치킨의 "특정형태"를 주로 신앙생활의 근본으로 삼는 종파로 분열되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똑같이 "치킨"을 숭배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고 있으나, 어떤 형태의 치느님이 신앙적으로 우월한지 끝없이 논쟁을 일삼으며 오늘도 주문하기 전에 서로를 비방하며 "이걸 주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싸운다. 이는 마치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가 똑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싸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의 종교전쟁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킨교의 근본이 되는 교리를 정립하였기 때문에 그 어떤 치킨종교전쟁이 발생해도 이 파벌만큼은 거의 모든 비난에서 자유로울 뿐더러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의 전쟁도 다른 분파와는 달리 "부위"에 따른 우월성을 논하는 정도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다른 분파에 비해 온건한 성향을 띄는 편이다.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 흔히 "제1차 외식전쟁"에서 죽을 쑤자 나타난 종파였다. 제1차 외식전쟁은 미국의 위대한 선지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한반도에 선교를 하러 오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애매한 하이브리드인 롯데리아가 참전하면서 시장통을 지배하던 후라이드 치킨교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 결과로 치킨교는 제법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피해로 인해 후라이드 교는 일종의 종교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부에서도 별도의 총대주교(소스) 세력에 불과하면 양념파가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
어쨌든 이들은 소스라 불리는, 찍먹에 불과했던 것을 넘어 아예 스스로를 치킨교를 대표할 수 있는 총대주교라 선포하며 하나의 종파로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초기의 이들은 치킨의 가장 우월한 형태는 양념을 두른 치느님이라 강하게 주장하는 한편, 이 강한 호전성을 바탕으로 이교도와의 외식전쟁에서 어느 정도 치킨교도들을 끌어모으는 데 아주 주요한 역할을 했다.
후라이드 치킨교와 양념 치킨교의 분쟁이 정리된 이후에도 신도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후라이드 치킨교와 양념 치킨교 중 어느 쪽이 대세를 타는지에 대한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이는 중화요리교의 짜장교와 짬뽕교의 분쟁을 방불케하는 희대의 예송논쟁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이로써 신도들은 무마니의 이름을 더해 "반반무마니"의 주언을 외우게 되어 후라이드 치킨교와 양념 치킨교의 온전한 공존을 이끌어낸 것이다.
후라이드든 양념이든 상관없이 뼈만 없으면 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매우 급진적이었지만 후라이드교와 양념교 양측의 교도들이 일부 여기에 합세하게 되었고, 그 수가 적지 않자 후라이드 교황과 양념 총대주교는 회합을 갖고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단으로 규정된 사유는,
- 청송군 . . . . 10회 일치
유명한 관광지로 [[주왕산]]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외지 사람들은 "[[청송]]"이라는 동네 이름이 나오면 맨 먼저 '''[[청송교도소]]'''와 '''청송감호소'''부터 떠올린다. 이 지역에는 [[교도소]]가 무려 네 군데나 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에 [[흉악범]]과 [[정치범]]을 [[감금]]하기 위해 이런 외진 곳에 [[교도소]]와 [[감호소]]를 왕창 지어논 것. 사실 교도소가 있는 곳은 청송읍이 아닌 [[영양군]]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진보면이다. 청송이란 고장의 이미지를 깎는다고 [[대한민국 법무부]]에 지속적으로 진정이 제기되었는데 결국 이름이 경북북부교도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교도소가 들어서면 [[교정직 공무원]]들 및 면회객들도 오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청송군민들은 '''교도소를 추가 유치하겠다'''고 나설 정도.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5817&plink=ORI&cooper=NAVER|#]] 근데 이것을 역으로 보면 교도소 이외에는 지역경제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낙후가 심각하다는 거다.
고려 시대 청부현이었다. 그러다가 1419년(세종 1) [[소헌왕후]] 심씨의 고향이라 하여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하였다. 후에 진보와 분리되고 [[세조(조선)|세조]] 때 송생현(松生縣)과 합하여 청송군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안덕현(安德縣)을 병합하여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로 승격하고 9개 [[면(행정구역)|면]] 57개 [[리(행정구역)|리]]로 구분하였다. 한편 북쪽에는 진보현이 있었다.
교통은 [[당진영덕고속도로]], [[31번 국도]], [[34번 국도]], [[35번 국도]]가 군을 관통하지만, [[철도]][[철도가 지나지 않는 도시/대한민국|는 없다.]] 고속도로 나들목은 [[청송IC]]와 [[동청송·영양IC]]가 있다. 2011년 12월 27일 35번 국도 청송과 영천 사이의 고개인 노귀재를 관통하는 터널이 준공되어 영천 방면으로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청송읍에서 이웃한 [[안동시]], [[영덕군]], [[포항시]], [[의성군]]으로 이동하려면 모두 고갯길[* 심지어 [[914번 지방도]]와 [[35번 국도]]를 통해 안동으로 가려면 2번이다.]을 넘어야 한다. 유일하게 고갯길을 안 넘어도 되는 곳은 북쪽의 [[영양읍]] 방면 밖에 없다.
군청 소재지인 청송읍보다 진보면의 교통사정이 훨씬 좋다. 진보면을 관통하는 [[34번 국도]]가 청송 관내 국도 중 포장이 가장 빠른 [[1975년]]에 이루어진 곳이다. [[동서울터미널|서울]], [[부산종합버스터미널|부산]],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북부정류장|구]], [[안동터미널|안동]], [[영천시외버스터미널|영천]], [[영덕군|영덕]], [[포항시외버스터미널|포항]] 방면으로 시외버스가 운영되지만, 영천을 제외하면 어느방면이든 진보 쪽의 횟수가 훨씬 많다. 이는 인접한 [[영덕군]], [[영양군]]과 [[안동시]], [[서울특별시]] 등지를 잇는 시외버스들이 모두 진보를 경유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송읍과 안동, 서울을 잇는 시외버스도 진보를 경유한다. 안동으로 가는 시외버스편이 그나마 배차가 많은 편이다. 동서울 및 부산에서 청송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주왕산까지도 가니 참고. 다만 진보면에서도 안동이나 영덕으로 갈땐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U자 코스이니 자가용은 운전에 조심할 것. 가랫재(안동 방향)와 황장재(영덕 방향) 두 고갯길 모두 터널 계획이 있다. 터널이 개통 되면 기존의 시간에서 10분 정도는 가볍게 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농어촌버스]]는 [[청송버스]]에서 운행한다. 하지만 진보-청송이나 청송-주왕산 같은 몇몇노선을 제외하고는 전부 [[오지(지리)|오지]][[노선]]... 특히나 현서면, 안덕면, ~~현동면~~[* 2017년 개편으로 현동에서는 청송읍으로 가는 농어촌버스가 생겼다. 1일 2회 운행(..)]의 삼남지역에서는 농어촌버스로 청송읍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여기서 청송읍에 가려면 청송-대구 [[아성고속|시외]][[천마고속|버스]]를 타야한다. 그런데 현서면에는 [[의성여객|의성군 농어촌버스]]와 [[안동 버스 28|안동시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의성군과 안동시로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삼남지역 사람들은 청송읍보다는 영천, 의성, 안동, 포항 멀리는 [[대구광역시]]로 많이 나간다.
[[농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사과]]와 [[고추]]가 있다. 실제로 [[청양고추]]가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의 '[[청]]', [[영양군]]의 '[[양]]'을 따서 이름지었다는 [[가설]]이 있다. [[청양고추]] 문서 참고. 그 외에도 [[담배(식물)|담배]]와 [[파프리카]], [[야콘]]등이 있다.
||1||청송초등학교[* 1912년 설립된 역사 깊은 학교이며, 특이하게도 졸업생의 졸업회차와 출생년도가 일치한다. 가령 90년생은 90회 졸업생. 단, 빠른년생은 제외 ]|| 청송읍 중앙로 229-10||
- 최다빈 . . . . 10회 일치
'''최다빈'''([[2000년]] [[1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다섯 번의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 은메달 세 개와 동메달 두 개를 차지했다. 2015-2016 주니어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모두 동메달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시니어 데뷔 무대인 2016 4대륙 선수권에선 8위, 2017년 대회에선 5위, 2018년 대회에선 4위를 차지하며 꾸준히 순위를 높혔다. 본격적으로 시니어에 데뷔한 2016-2017 시즌엔 초반 부진을 딛고 2017 [[동계 아시안게임]](일본, 삿포로)에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우승했고, 이어 열린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선 10위(Top10)에 오르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티켓 2장을 확보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김연아]] 이후 역대 최고 성적인 7위에 올랐다.
2013-2014 시즌에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데뷔하여 각각의 대회에서 4위(벨라루스)와 5위(멕시코)를 차지했다. 2014년 출전한 주니어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개인 기록을 경신하며 종합 6위에 랭크되었다.
2014-2015 시즌에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하여 각각의 대회에서 4위(프랑스)와 5위(일본)을 차지했다. 이후 2015년 목동에서 열린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박소연]]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시즌의 마지막 대회인 2015 주니어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또 한 번 Top10에 랭크되는 성과를 보였다. (종합 9위)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상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순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8월 1일, 소속사를 통해 쇼트프로그램은 영화 [[에비타]]의 OST <Don't cry for me Argentina>로, 프리스케이팅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으로 선곡했음을 밝혔다. 9월 중순 온드레이 네펠라 트로피에 출전할 예정이고, 전후 사정에 따라 다른 한 개의 챌린저 대회도 나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올 시즌 그랑프리 두 개 대회에 초청 받았다. 첫 대회는 2차 <스케이트 캐나다>이며, 두 번째 대회는 4차 <NHK 트로피>이다. 두 대회는 시니어 첫 데뷔 시즌에 나간 적이 있었으며 각각 7위와 9위를 한 경험이 있다.
*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폴로네이즈 22번 <br>{{small| by [[프레드릭 쇼팽]] }}
- 최영미 (시인) . . . . 10회 일치
'''최영미'''([[1961년]] [[9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섬세하면서 대담한 언어,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직시하는 신선한 [[리얼리즘]]으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에 따르면 "최영미는 첫 시집이 너무 성공한 탓에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행한 시인이다”. 1992년 등단 이후 시와 소설, 에세이를 넘나들며 5권의 시집을 펴내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을 출간하고 미술과 축구에 대한 산문을 많이 썼지만, 한국에서 그녀는 여전히 시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2학년이던 198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 시위에 가담하여 [[서울관악경찰서|관악경찰서]]에서 구류 10일을 살고 1년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졸업 후에 반독재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합법 조직 '제헌의회그룹'의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레닌]]의 저작물을 공동번역했다. 십 여명이 번역과 교열작업에 매달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해방 이후 최초로 현대 한국어로 옮긴 《자본 1》이 1987년 이론과실천사에서 김영민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역자로 내세워 출판되었고, 출판사 대표는 사회주의 원전을 출판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80년대 말 [[소련|소비에트 정권]]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최영미는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변화를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투명한 언어, 일상의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정확한 비유, 대담한 발상과 세련된 유머, 자본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한국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1994년]] 5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서로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이 있다. 1970년대 서울 변두리의 가족사를 다룬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2005년)를 출간했고, 1988년 이후 26년 간 틈틈이 써온 원고를 다듬고 보완하여 1980년대 청춘의 방황과 좌절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 《청동정원》(2014년)을 펴냈다.
최영미는 인간의 조건을 풍자적인 언어로 파헤친 시집 《돼지들에게》로 2006년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수문학상 심사위원 유종호교수는 “최영미 시집은 한국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이유를 구현한다”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돼지들에게》의 추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자칫 관념적 교훈적으로 될 수도 있는 알레고리적 방법이 시에 활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점도 주목을 끈다”라고 썼으며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진정성과 언어의 조탁이 돋보인다”라며 심사평을 전했다.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최영미는 삶과 여행, 그리고 예술에 관한 산문집 『《시대의 우울: 최영미의 유럽일기》,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를 출간했으며, ''Francis Bacon in Conversation with Michel Archimbaud''를 한국어로 번역해 《화가의 잔인한 손: 프란시스 베이컨과의 대화》(1998,도서출판 강)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인하대학교]]와 [[강원대학교]]에서 시 창작을 가르쳤으며, 지학사 고등검정교과서 문학(2014년)에 최영미의 시 〈선운사에서〉가, 창비사 고등인정지도서 문학(2012년)에 〈지하철에서 2〉가, 학연사 고등검정지도서 작문에 (2012년) 산문집 《시대의 우울》, 〈쾰른〉편이 수록되었다.
* 장편소설《흉터와 무늬》(랜덤하우스중앙, 2005)
* 사가와 아키 "글로벌 시대의 세련된 지성" --2009년, 최영미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의 해설
- 최채흥 . . . . 10회 일치
2017년 8월 20일 신베이 신창 야구장에서 열린 체코와의 타이페이 하계유니버시아드 A조 예선에서 7.1이닝 3실점의 퀄리티스타트와 탈삼진 9개를 기록했다. [[http://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69&aid=0000000033|해당기사]]
퓨쳐스 호투에 힘입어 5월 19일 토요일 넥센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뤘다. 이날 선발로 등판했고 3⅔이닝 8피안타 2실점(1자책) 81구를 기록했다. 수비 도움도 받지 못했고, 겉으로 보이는 기록은 신인 치고는 기대 이상이였으나 최대 구속이 140으로 대학 시절보다 떨어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날 선발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주전급 대부분이 빠져있었다.[* [[이정후]], [[서건창]], [[김하성]], [[박병호]] 대신에 들어와있는 상황.] 2:2 동점 상황에서 강판되어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고 팀은 3:6으로 패배했다. 21일 1군에서 제외됐다.
이후 부상 때문에 2군에서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1달 가량을 결장했고 이후로도 띄엄띄엄 등판하면서 사실상 그대로 시즌 아웃되는가 싶었는데, [[윤성환]]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9월 25일 한화전 선발로 내정됐다. 그리고 '''7이닝''' 5피안타 1피홈런[* vs이성열] 2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데뷔 첫 [[퀄리티 스타트]]와 함께 시즌 2승을 기록하였다.
9월 30일 대구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선발 [[윤성환]]이 5회에 수비도움을 받지 못하며 급격히 무너지면서, 추격조로 등판했다. 5회 2사 만루 상황에서 첫 타자인 [[최항]]에게 좌중간에 싹슬이 3타점 적시 2루타를 허용하며 분식회계를 해버렸으나, 이 후는 침착하게 잘 막아내면서 2⅓이닝 동안 2탈삼진을 기록하는 준수한 투구를 해주었다. --상수야. 이게 다 너 때문에 벌어진 나비효과란다.--
10월 3일 대구에서 열린 기아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양창섭]]이 피안타가 늘어나면서 3이닝만에 강판되고, 4회부터 중간계투로 올라왔다. 이미 3회말이 끝난 시점에 5:3으로 경기가 역전된 상황에서 올라왔기에 잘만 던진다면 승리를 추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흥하는 2이닝 3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였다. 팀은 작년의 [[삼성 라이온즈/2017년/6월/29일|629 대첩]]을 완벽하게 복수하는 '''20:5'''라는 스코어로 경기를 이기면서 시즌 3승을 기록했다.
10월 6일 수원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아델만]]이 선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4회 1사 이후 강판당하면서, 추격조로 또 등판했다. 기록은 1⅔이닝 동안 3탈삼진의 퍼펙트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5회에는 [[유한준]]과 [[박경수]]를 상대로 삼진을 뽑아내면서 투구폼 교정 후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연이어 보여주고 있다.
9월 25일에 7이닝을 소화하며 순식간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18⅓이닝으로 늘어나자 구단측에서 노린것인지, 막판 순위싸움에서 요긴하게 기용하려고 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불펜으로만 등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28이닝으로 30이닝을 넘기지 않아 '''2019시즌 신인왕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는 강백호같이 눈에 띄는 특급 신인들이 많지 않아 올해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신인왕이 유력하다.]
4월 20일 [[한화 이글스|한화]] 경기에서 타선이 1회 초에 4점을 득점했으나 3회 말 급격히 흔들려 무려 8점을 내주면서 패전투수가 됐다. 다음날, [[김민수(1991)|김민수]]와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투수 전향 후 가장 도움이 된 선배 선수 이야기가 나오면 와 [[이용찬]]을 꼽는데, 2015년 27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때 같이 대표팀에 뽑혔었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10회 일치
1980년 년대 중엽,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은 리비아-차드 전쟁(통칭 토요타 전쟁)에 리비아 군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차드]] 군은 [[프랑스]]의 후원과 [[토요타]] 픽업트럭을 이용한 기동전술로 리비아 군을 참패시켰다. 1987년에 하프타르 장군은 병사들과 함께 차드 군에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카다피는 하프타르와 관련성을 부인하여 그를 [[투사구팽]]해버린다.--딱히 토끼를 잡지는 않았지만.--
포로 신세가 된 하프타르에게 접근한 것은 당시 카다피와 적대하던 [[미국]]이었다. 1990년 [[미국]]의 [[CIA]]는 난민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단에서 하프타르와 300명의 포로 병사들을 미국으로 입국시켰다. 하프타르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여 20년 동안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미국 정보부의 협력하여 카다피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2년 7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61.58%, 1,764,840명 투표)를 통하여 주로 [[터키]]와 [[카타르]]의 후원을 받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일반 국민회의(the General National Congress)가 성립하여 리비아를 통치하게 되었다.
2014년 2월, 하프타르는 TV를 통하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회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라고 선언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로 공격하여 의회 권한 정지를 선언했으며, 국민군은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 샤리아' 등 이슬람계 세력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사실상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리비아 국민군에는 세속주의 반군 세력이 모두 결집하게 된다. 2014년 6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를 거쳐 동부지역에서는 대표자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가 2014년 8월 4일 창립되어 일반 국민회의를 대체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국민군(the Libyan National Army)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하프타르는 [[이집트]]와 [[UAE]]의 후원을 받으며 국민군을 이끌고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맞서서 2014년 5월 부터 벵가지와 동부지역의 이슬람주의 민병대를 척결했다.
하프타르는 내전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보였는데, 2016년 2월에 리비아 국군은 이슬람주의 민병대를 대부분 벵가지에서 축출했으며, 2016년 4월 중순에는 이슬람주의 민병대는 벵가지 동족 250km나 떨어진 데르나 까지 축출되었다. 하프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국군은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리비아 돈, 미스라탄 부대, 벵가지의 혁명 세력 슈라위원회, 시르테 지역을 장악한 [[이슬람 국가]]와 대결하고 있다.
=== 리비아 국민합의 정부와의 충돌 ===
2015년 12월에, UN의 증재로 동부와 서부의 일부 세력이 합의하여 국민합의 정부가 창설되었다. 하지만 동부지역은 반대파가 많이 합의가 승인되지 못하고 있다. 하프타르의 지지자들은 국민합의 정부에 대하여 하프타르의 지위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리비아 국군의 지휘권을 넘기지 않고 있다. 국민합의 정부는 동부지역 군 사령관 가운데 한 명인 마흐디 이브라힘 알 바르가티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고 하프타르를 소외시키는 중.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10회 일치
마사카도는 삼남 요시마사의 아들로서, 소년 시절에는 교토에서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 [[후지와라 요시후사]]의 손자)를 가신으로 모셨다. 그러다가 요시마사가 사망하자 시모우사로 귀환하였는데, 귀향한 마사카도는 쿠니카와 요시카네가 요시마사가 남긴 장원을 마음대로 분배해서 나눠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니카의 동생 타이라노 요시마사(平良正)는 마사카도를 토벌하려 했으나 마사카도에게 격파당하여 패배, 타카모치의 차남 타이라노 요시카네가 마사카도를 공격했으나 역시 마사카도에게 패배한다. 요시카네 토벌은 조정에서 허가를 얻었으며, 934년에 요시카네는 결국 병사하고 만다.
이 무렵 [[세이와 겐지]]의 시조 미나모토노 츠네모토가 무사시국에 부임한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반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
이 무렵 히타치 국의 호족 후지와라노 하루마키(藤原玄明)에게 히타치 국 쿠니시로부터 추포령이 내려와, 후지와라노 하루마키는 마사카도에게 도망쳐서 보호를 받게 된다. 히타치 국의 쿠니시는 하루마키를 넘기라는 요구를 해오고, 마사카도는 이에 1,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히타치 국을 습격한다. 히타치 국에서는 3,000명의 군대로 대응했으나 마사카도에게 격파되어 국부(国府)가 점령당하고 만다. 마사카도는 그대로 시모츠케(下野), 우에노(上野)까지 점령한다. 이때부터 마사카도의 난이 본격적으로 폭발하게 된다.
조정에서는 시모츠케국(下野国)의 압령사(押領使)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郷)에게 마사카도 토벌을 명령하는 한편, 후지와라노 타다후미(藤原忠文)를 정동대장군으로 임명하여 마사카도의 난을 진압하도록 파병한다.
- 토리코/375화 . . . . 10회 일치
* 스타준은 그 말을 "우리(토리코와 스타준)라고 하는게 맞으려나"라고 정정하고 죠아는 그런게 중요한 거냐고 묻는다.
* 스타준은 단지 알고 싶다며 "이것은 카르마(운명). 너와 아카시아를 내가 막는다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 블루 니트로 페어와 싸우고 있는 적귀는 고전하고 있다.
* "빨리 GOD와 센터를 먹어야 본 실력을 낼 수 있다"고 말하는데
* 아톰은 토리코에게 악마가 한 마리 더 있는 것과 "우리와 같은 푸른 악마"라는 것에 놀란다.
* 스타준은 "우리가 누구의 아들인지 아느냐"고 말하고 "운명"에 대해서 말할 땐 "나의 운명"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자신이 아카시아와 죠아를 막고 토리코가 GOD를 포획할 수 있도록 희생하는 운명을 암시하는 거라는 설이 있다.
* 적귀는 GOD와 센터를 먹어야 본 실력이 나온다고 하는데, 실제로 적귀는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먹을 때마다 강해져왔다.
* 청귀는 블루 니트로와 마찬가지로 블루 유니버스에서 왔을 거란 설이 대세였는데 사실로 확인됐다.
* 청귀는 지금까지 적귀와는 달리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탐내거나 먹고 강해지는 묘사가 없었는데, 어쩌면 청귀는 이미 블루 유니버스에서 그 우주의 풀코스를 먹고 강해진 상태일지 모른다. 실제로 블루 니트로를 상대로 훨씬 선전하고 있다.
* 제 3의 악마는 지금까지 "흑귀"로 추정되고 있었는데, 토리코의 머리 색이 검은 색이 되면서 거의 확정된 걸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와 별개로 원래 토리코 본인이 가진 머리색이라는 의견도 있다.
- 토리코/393화 . . . . 10회 일치
* 그는 이치류와 플로제의 협조를 받아 장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그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 하지만 그가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한 것에 블루 니트로 페어는 수긍하지 못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시절. 아카시아와 동행하던 페어는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동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아카시아 안에 있는 네오의 존재와 블루 니트로가 세운 봉인 계획을 설명하던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카시아가 자세히 묻자 페어는 실언이었다며 그런거 보다 봉인 계획에 협조를 부탁한다고 당부한다. 하지만 아카시아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표정이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아카시아는 페어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이고 네오의 봉인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페어에게 이것저것 지식을 얻던 아카시아는 문득 "식욕의 악마에게 잠식 당하지 않는 법"에 대해 묻는다. 아카시아는 그것이 네오에게 먹힌 식혼들을 구하는 열쇠가 될지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만약 그 식혼들이 네오 안에서 살아 있는 거라면 반드시 꺼내줄 방법도 있을 거라고 역설하는데 페어는 쓸데없는 소리라 일축하며 혹시 네오 때문에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냐고 묻는다. 페어는 과거 네오의 소행은 악행도 뭣도 아닌 그저 식사이며 지금와서 아카시아가 책임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아카시아는 그저 자신 안의 식욕에 대한 수수깨끼를 해결하고 싶은 거라고 항변하지만 페어는 귀담아 듣지 않고 풀코스의 출연이 가까웠으니 플로제의 설득이나 신경쓰라고 말한다.
* 그들의 계획이 조금 "수정"된 후. 수정된 계획은 페어와 아카시아 둘만이 알고 있다. 아카시아는 이 수정된 계획을 플로제에게 들려주며 그녀의 의견을 구한다. 플로제는 자신은 단지 그의 콤비일 뿐이지 그가 원하는 음식을 조리할 뿐이라고 말하며 암묵적으로 그를 따른다.
* 그때 누군가가 망설이는 텟페이의 손을 붙잡는다. 바로 노킹 마스터 지로의 식혼이다. 홀연히 나타난 지로는 지구를 노킹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주는데. 텟페이와 아이마루는 깜짝 놀라는데 지로는 태연하게 영혼세계에서 이치류가 보냈다고 말한다. 지로는 죽었던 할아버지와 재회한 것에 감동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지로는 "지구 노킹 정도야 별 것도 아니다"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자신의 칭호 "노킹 마스터"를 텟페이가 계승하라고 말한다.
* 블루 유니버스와 레드 유니버스를 오가며 어마어마한 음식을 먹어온 네오. 그 양은 아카시아 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의 "콤비"는 이미 새로운 식재의 조리를 마쳤다.
페어의 선역화와 함께 어느 정도 가능성이 생겼던 아카시아의 선역화가 기어이 완성. 사실 아카시아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위악하고 있을 거라는 설은 꾸준히 있었지만 지로를 죽이던 시점에서 완전히 폐기되다시피했다. 아카시아의 계획은 네오 안에 갇힌 식혼들을 구하고 블루 니트로들이 잃어버린 동포와 식재들을 복구한다는 것. 우주적인 입장에서 보면 네오에게서 동맥경화 일으키듯 막혀버린 맛의 순환이 재개되는 것이니 블루 니트로들이 세운 봉인 계획에 비해 훨씬 이로운 것이다.
- 페어리 테일/492화 . . . . 10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492화. '''언니와 여동생'''
* 전장에 있던 하이네와 줄리엣(아이린의 두 부하)는 미라젠에게 싸움을 걸고 미라젠은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상대한다.
* 한편 엘프먼은 유키노와 동행하고 있는데 그녀의 언니 소라노와 만난다.
* 하이네와 줄리엣은 사실 두 자루의 검이었다. 아이린의 하이인첸터 능력으로 인간 모습을 하고 있던 것.
* 한편 엘프먼은 페어리 테일 동료와 떨어져 유키노와 동행 중. 렉터와 프로시도 있다.
* 하이네와 줄리엣은 미라젠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 타르타로스와 싸울 당시 접촉했던 악마들의 소울을 전부 흡수했던 것.
- 페어리 테일/521화 . . . . 10회 일치
* 브랜디쉬와 디마리아는 아군에 합류하진 않지만 그대로 제국에서도 발을 뺀다.
* 오거스트가 대성당 위에서 광범위한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자 상공에서 [[길다트 클라이브]]가 날아와 대치한다.
* 흩어져서 싸우던 스프리건12들이 하나둘 쓰러진다. [[미라젠 스트라우스]]와 싸우던 [[제이콥 레시오]]도 결국 패배. 미라젠의 보디 블로를 맡고 쓰러진다. 미라젠은 이기긴 했지만 매우 힘겨운 싸움이었는지 승리와 함께 테이크오버가 풀린다. 아마 강함만으로는 제이콥 쪽이 우세했던 듯 하지만, 특유의 야한거에 약한 기질 때문에 미라젠과 싸우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고 한다. 패인은 그것인듯.
* [[루시 하트필리아]]의 집에서 나선 [[나츠 드래그닐]]과 루시. 그리고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흩어진 동료들을 찾고 있다. 폴류시카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 [[샤를(페어리 테일)|샤를]]. 그리고...
* [[브랜디쉬]]와 [[디마리아]]였다. 둘도 별다른 이상없이 무사했지만, 디마리아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아. 브랜디쉬가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는데 아주 유아 퇴행을 했는지 여전히 오들오들 떠는 것이 엄청 위축된 상태. 그 상태로 나츠를 만나자 경기를 일으킨다. 나츠는 그녀를 공격했던 기억 자체는 있기 때문에 사과를 하는데 듣지 않고 브랜디쉬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 브랜디쉬를 떠나보낸 뒤 폴류시카와 에버그린, 샤를이 합류한다. 에버그린은 [[쥬비아 록서]]를 엎고 있는데 [[그레이 풀버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샤를은 그레이가 사라졌다고 알린다. 폴류시카는 지금 그레이가 그대로 돌아다니면 자살행위라고 걱정한다. 에버그린은 이미 유니버스 원이 해제되기 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츠는 그 말을 듣고 뭔가 생각나는게 있는 것 같은데.
* 오거스트는 이제 스프리건도 자신 밖에 남지 않앗다고 중얼거리며 적과 함께 매그놀리아 일대를 섬멸할 마법을 준비한다. 그가 마법을 시전하자 대기와 대지가 함께 진동한다.
오거스트가 준비하는 마법의 전조로 보아 그는 매그놀리아를 적과 아군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은 일단 퇴각하기로 하지만 과연 도망칠 수 있을지? 그때 허공에서 그림자가 날아온다. 그것은 또다른 최강의 마법사, 페어리 테일 최강자 [[길다트 클라이브]]였다. 길다트와 오거스트가 맞부딪히는 충격으로 대성당이 산산조각난다. 길다트는 오거스트와 대치하며 일행에겐 "나한테 맡겨라"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22화 . . . . 10회 일치
* [[오거스트]]와 [[길다트 클라이브]]의 대결. 길다트는 오거스트의 배후를 잡아 산산조각내버린다.
* 단독으로 [[제레프 드래그닐]]을 찾아나선 [[그레이 풀버스터]]. 페어리 테일 길드에서 마침내 그와 마주선다.
그 뿐만 아니라 [[루시 하트필리아]]도 루시 자신이 아는 것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녀의 조상이고 나츠의 심상세계에서도 나타났던 "안나"라는 여인은 제레프의 친구였다. 안나가 갓난아기였던 나츠를 키우는데 일조했듯 후손인 루시도 지금의 나츠를 성장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언제나 함께하는 친구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엘자 스칼렛]], [[가질 레드폭스]], [[웬디 마벨]] 등등. 제레프는 나츠와 관련된 주요 인물은 전부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 그레이는 그런데 비하면, 자신들은 정말로 제레프에 대해 아는게 없다며 그의 진짜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 제레프는 그런 걸 알 필요가 있냐면서도 "목적은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마력"이라고 순순히 대답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이미 불사에 저만한 군대와 권력까지 가진 그가 그런게 왜 필요하냐고 재차 묻고, 이번에도 제레프는 순순히 대답한다.
* 폐허가 된 대성당. [[길다트 클라이브]]는 스프리건 12 최강이자 최후인 [[오거스트]]와 맞선다.
* 오거스트는 이미지와 달리 백병전으로 도전하는 길다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순간에 배후를 잡은 길다트가 결정타를 날려 오거스트를 산산조각낸다. 그렇게 승부는 싱겁게 끝나는 것 같았는데.
* 승리를 확신했던 길다트. 그러나 오거스트는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산산조각난 채로 여유로운 말을 내뱉는 오거스트. 한때 아크놀로기아와도 싸웠던 길다트지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때 폭발마법이 담긴 카드가 날아와 오거스트가 피한다.
나츠가 도착했을 때 친구가 죽어있다면, 분명 그는 자신의 진정한 힘을 끌어낼 것이다. 그게 제레프가 진짜 힘을 내는 나츠와 싸울 최후의 찬스. 그레이는 그걸 위한 파츠인 것이다.
>나의 목숨과 존재와 기억을 전부 마력으로!
- 페어리 테일/535화 . . . . 10회 일치
* 나츠와 재대결하는 백마도사 [[제레프 드래그닐]]. 그는 "내가 너희를 구해준다"는 논리를 대지만 나츠는 "이 세계를 부정할 뿐"이라 지적한다.
* 모든 것을 걸고 혼신의 일격을 주고받는 나츠와 제레프.
* END의 서를 복구해 [[나츠 드래그닐]]을 구해낸 [[루시 하트필리아]]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그녀가 책을 수정한 펜으로부터 정체불명의 얼룩이 퍼져나와 마치 몸이 침식당하는 것 같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갑자기 악화된 그녀의 상태에 당황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윽고 루시는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수구린다. 그레이가 부축하려 손을 뻗는데 루시의 몸이 엄청나게 뜨겁다. 루시가 겨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나츠의 불꽃. END로서 가지고 있는 불꽃의 힘이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 그레이와 해피는 거기까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역시나 어쩔 방법이 없다. 루시는 그래도 이게 "단서"라면서 이 마력을 따라가면 나츠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해피는 그렇게 하면 나츠 안의 악마를 바꿔 쓰는 것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그래서는 루시가 어찌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루시가 그래도 자신은 할 거라고 고집을 부리자 그레이는 말 없이 얼음마법으로 불덩이 같은 루시의 몸을 식힌다.
* 루시와 친구들의 희생으로 다시 일어선 나츠. 그의 앞에는 백마도사로 각성해 네오 이클립스를 눈 앞에 둔 [[제레프 드래그닐]]이 있다. 제레프가 나츠의 배에 뚫은 구멍이 사라져 있다. 그걸 본 제레프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게 뭔지 되짚어 본다. END의 서, 그것은 어디있을까?
나츠가 어디까지 아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친구들의 희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 나츠는 마침내, 자신이 그레이와 싸울 때 [[엘자 스칼렛]]이 해준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던 말.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도 그를 희생시킬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엘자의 말도 듣지 않는 그를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함교에서 크리스티나호가 추락한다는 연락이 온다. 크리스티나호는 수면 위로 곤두박질쳤고 탑승자들은 엉망으로 나뒹군다.
* 다시금 제레프와 싸우는 나츠. 제레프는 "얼마나 내 방해를 해야 직성이 풀리냐"며 짜증을 낸다. 여기에 대한 나츠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모두와 웃으며 보내는 날을 되찾을 때까지다!
- 페이데이 갱 . . . . 10회 일치
Payday Gang. 게임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와 [[페이데이 2]]에 등장하는 범죄 조직. 페이데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멤버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광대 가면을 쓰기 때문에 광대(Clown)라고도 불린다.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에서는 기껏해야 [[은행강도]], 금괴 운반차량 탈취 정도나 하는 4인조 범죄집단이었지만 페이데이 2에서는 [[FBI]] 건물을 습격하거나 러시아의 비밀 연구소를 레이드 뛰는 뭔가 대단한 조직이 되어버렸다.
[[잉글랜드]]인. 본명은 제임스 혹스워스().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와 [[페이데이 2]] 사이의 기간에 체포당해 [[교도소]]에 들어가 있었다. 페이데이 2에서 재심을 위해 호송되던 중 페이데이 갱에 의해 구출된다.
영화 [[존 윅]]과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전직 [[살인청부업자|히트맨]]. 체인스와는 군대에서 알고 지낸 사이다.
게임 [[핫라인 마이애미]]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수탉 가면을 착용한다.
영화 [[포인트 브레이크]]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전직 대통령(Ex-President) 범죄조직의 창설자로 범죄계의 전설 중 하나.
영화 [[하드코어 헨리]]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영화 [[스카페이스]]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토니 몬타나다.
멕시코 출신의 조직원. 페이데이 갱에 들어가기 전에는 몬테레이의 마약 카르텔 소속 암살자 겸 행동대장이었다. 이후 큰 한탕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페이데이 갱의 무기 공급책인 게이지의 주선으로 페이데이 갱에 입단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링컨 연구소]]와 [[MI5]]에서 일한 적이 있다. 페이데이 갱에게 몇번 엿을 먹은 [[PMC]] 머키워터에 고용되어 크라임넷에 침투했다. 하지만 크라임넷에 붙는게 더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머키워터를 배신하고 크라임넷에 붙었다.
영화 [[존 윅: 리로드]]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기관. 음지에서 일하는 자들의 비밀 천국.
- 하이큐/223화 . . . . 10회 일치
* 빡치려는 타나카를 막는 사와무라 다이치.
* 코가네가와 켄지는 적이지만 항상 이렇게 일정한 토스가 올라오는걸 보며 "얼마나 연습을 하는 거야"라고 감동한다.
* 후쿠타치 켄지가 리드를 살려가자고 팀원들을 격려하자 모니와 카나메는 주장다워 졌다고 기뻐한다.
* 사사야 타케히토는 모니와를 위로하고 카마사키 야스시는 후쿠타키가 잘한다며 기를 세워준다.
* 둘을 떼어놓는 사와무라와 타나카.
* 스가와라 코시가 "오늘 아즈마네는 잘 안 된다"고 폭소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
* 사와무라는 또 폭발하려는 타나카를 말린다. 그런 사와무라도 오늘 카게야마는 너무 날카롭다고 느낀다.
* 상황을 관망하는 우카이 코치와 히나타 쇼요.
- 하이큐/227화 . . . . 10회 일치
* 스가와라 코시는 츠키시마의 체력 저하를 알아챈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평소보다 높은 세트를 올리며 리드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 야마구치와는 대조적으로 일부러 코치 눈을 피하고 있다가 딱 걸렸다.
* 다테의 서브. 사와무라가 받아서 괴짜콤비의 마이너스 템포 초속공으로 이어진다.
* 그러나 이번엔 다테 공고의 블록이 빨랐다. 코가네가와 칸지와 아오네 타카노부의 리드 블록에 가로막히는 공격.
* 코가네가와는 완전히 마이너스 템포라고 생각하고 먼저 뛰어오른다.
* 하지만 페이크였다. 진짜는 아즈마네. 코가네가와는 뒤늦게 다시 뛰어오르지만 닿지 않는다.
* 카게야마는 공격 성공 이후 히나타가 의도적으로 코가네가와를 교란한게 아닌가 생각한다.
* 카게야마는 다시 아즈마네에게 공을 올리고 이번엔 다테의 코가네가와, 아오네, 후쿠타치 3인이 리드 블록으로 다가온다.
- 하이큐/232화 . . . . 10회 일치
* 무사히 경기에 투입된 카라스노 고교. 시합상대는 카나가와의 츠바키하라 학원이다.
* 도쿄 체육관. 카라스노는 생각지도 못한 악재에 직면했다. 역에서 잠시 내려놨던 [[히나타 쇼요]]의 짐이 누군가와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유명 브랜드의 체크무늬 가방인데 흔한 디자인이라 누군가 착각해서 가져간 모양이다. 원래 이건 히나타 동생 가방이지만 크고 튼튼해서 적당하다 싶어서 고른게 화근이었다.
키요코의 당부를 이해한 히토카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키요코는 시합개시 전까지 돌아오겠다고 하고 출발한다. [[타나카 류노스케]]와 [[니시노야 유]]는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같은 말을 해서 3학년들에게 불길하다고 까인다.
* 달리면서 처음 매니저 일을 시작할 때를 회상하는 키요코. 시작은 [[사와무라 다이치]]의 권유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줄곧 해온 육상을 그만두었다. 연습을 거듭해 쌓아온 것은 상상보다 훨씬 허무하게 끝난다. 그 상실감과 허무함을 잊기 위해 시작한 일. 그녀는 육상을 잊기 위해 배구부 매니저일에 몰두한다.
* 신발을 되찾은 히나타. 야마구치와 함께 키요코에게 연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5m는 뛸 수 있겠다며 방방 뛰어다닌다. 사와무라가 선수들을 정렬시키는데 그때 사와무라의 목소리까지 덮어버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들린다. C코트 제 3시합. 카라스노 고교의 첫 상대 카나가와현의 "츠바키하라" 학원 등장.
귀중한 키요코의 주연 에피소드. 선수들과 유대관계와 다음 세대인 히토카에게 역할을 승계하는 내용이다. 봄고 대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키요코와 3학년들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므로, 히토카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전달하려고 하는 듯 하다.
- 하이큐/249화 . . . . 10회 일치
이나리자키 고교 정도는 아니지만 [[카라스노 고교]]도 관중의 시선을 모으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괴짜 콤비는 카라스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주목할 정도로 별나 보인다. 특히 히나타의 점프력은 이나리자키도 체크하는 요소. 이나리자키의 [[오지로 알랭]]은 특히 눈여겨 본다. [[스나 린타로]]도 표현은 하지 않지만 눈을 돌리지 않는다. 사실 히나타의 점프는 어제를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시우미 코라이]]의 점프를 연상하며 자세를 바꿔보고 있다. 히나타는 방금 전 점프는 괜찮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흘러가는 느낌"이 난다고 아쉬워한다. 다시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하지만 팀이 서브 연습으로 바꾸면서 기회를 놓친다.
카라스노의 코치 [[우카이 케이신]]은 선수들이 벤치로 돌아오자 자신의 뺨을 때리며 파이팅한다. 2회전은 1회전과는 또다른 긴장이다. 카라스노 응원단도 자기들도 모르게 긴장을 한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선수들을 향해 격려와 당부를 전한다.
>그 누구도 카라스노가 시라토리자와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첫 공격은 이나리자키의 선공. 아츠무의 서브다. 고교 NO.1 세터의 서브는 서버가 위치를 찾아가는 것 조차도 특별하게 보였다. 카라스노는 [[니시노야 유]]를 중심으로 [[사와무라 다이치]], [[타나카 류노스케]]를 리시버로 기용,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 서브는 성공. 니시노야와 타나카 사이를 깔끔하게 가르며 정확히 라인 앞에 떨어진다. 그러자 응원단은 방금 전 정적이 없었던 일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우카이 코치는 선수들에게 "칼날 날라오는거 아니니 굳어있지 마라"고 격려한다.
*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한건지 잘 모르는 쌍둥이 자매도 신이나서 아츠무의 이름을 연호한다. 아이돌팬스러운 커다란 부채에 "오사무"라고 써져있는 걸 보면 그의 개인적인 팬들인 것 같다. 그녀들은 아츠무가 2회차 서브에 앞서 자신들 쪽을 바라보자 좋아라하는데 아츠무의 소감은 기대와 딴판이다.
다소 뒤숭숭한 채로 들어가는 2회차 서브. 이 작은 소동이 영향을 준 탓일까? 서브는 여전히 카라스노의 반응보다 한 박자 빨랐지만 라인을 벗어난다. 서브 실패. [[스가와라 코시]], [[야마구치 타다시]] 등은 안도의 한숨. 아츠무가 낙담하며 "이런"이라고 고함친다. 오사무가 "허접하다"고 디스하자 아츠무가 신경질을 낸다.
* 스코어 1 대 1. 카라스노의 공격. [[아즈마네 아사히]]의 서브. 스가와라가 신중하게 가자고 조언하려 하는데 이번에도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성가시다. "우-!"하는 큰 소리로 아즈마네의 정신을 흐트려놓는다. 타케다 고문은 이쪽의 첫 서브부터 이런 견제가 들어오자 의아해한다. 케이신 코치는 차라리 감탄하는 쪽. 자군 서브 때는 철저하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적군에겐 소란과 동요를 야기한다. 정말로 잘 훈련된 응원단이다.
* 경기가 초반부터 신경전이 거세자 중계석도 바빠졌다. 해설자는 이 경기는 고교 No.1 세터 아츠무와, 역시 전일본 유스 출신의 유망주 카게야마의 "동서 세터 대결"로 정의한다. 그러는 사이 양 진영을 오가던 공이 이나리자키에서 카라스노 쪽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랠리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힘차게 뛰어오르는 히나타. 한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점프다. 히나타 자신도 "좀 괜찮은 느낌!"이 오고 카게야마와 중계석 모두 놀랄 정도로 눈에 띄는 점프.
- 하이큐/254화 . . . . 10회 일치
* [[미야 아츠무]]&[[미야 오사무]] 형제가 선보인 "괴짜 속공". 중계진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속공"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카라스노 벤치의 [[시미즈 키요코]]와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분명히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괴짜 속공이다. [[카라스노 고교]]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인데 그걸 즉석에서 따라할 줄이야?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별다른 코멘트는 없지만 표정이 좋지만은 않다.
* 관중석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방금 전 카게야마가 놀라운 페이크 플레이를 선보였을 때처럼 아츠무의 플레이를 섬뜩하게 여긴다. 상대의 특기를 굳이 따라해서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것, 그걸 해내고자 하는 센스와 하고자하는 결단력이 질투심이 들 정도다. 반면 [[보쿠토 코타로]]는 "아아" 정도로 대꾸하고 말 뿐이라서 정말로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무관심한건지 모를 일이다.
* 아츠무의 3회차 서브. 점프 플로터였다. 이번엔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공은 [[니시노야 유]]에게, 니시노야가 띄워서 [[아즈마네 아사히]]가 막바로 스파이크. 득점에 성공하면서 스코어는 11 대 8. 3점차. 간신히 아츠무의 연속 서브 에이스를 끊었다.
조언에 따라 주먹을 쥐었다펴는 아즈마네. 그리고 곧바로 1회차 서브에 들어간다. 서브는 아카기와 마지로 사이로 뚝 떨어진다. 마지로가 리시브해보지만 엉성했다. 손에 맞고 코트 밖으로 나가는 공. 아즈마네의 첫 서브 에이스, 동시에 카라스노의 오늘 첫 서브 에이스였다. 스코어는 11 대 9. 다시 2점차.
* 스코어가 다시 따라붙으면서 타케다 고문도 한숨 돌린다. 그때 우카이 코치가 "너무 걱정할 거 없다"고 한 마디 한다. 방금 전 미야 형제의 속공은 괴짜 속공과 아주 비슷했지만 현시점에서는 단순한 마이너스 템포. 히나타와 카게야마 콤비는 그걸 아무 때나 때려댈 수 있다는게 장점으로 미야 형제가 이것과 같은 것을 구사한다고 보는 것은 아주 경솔한 판단이다.
그런데, 우카이 코치의 말을 비웃듯 미야 형제의 두 번째 마이너스 템포가 꽂힌다. 이번에도 우측에서 [[츠키시마 케이]], [[타나카 류노스케]]의 블록을 완벽하게 따돌리며 작렬. 아즈마네와 니시노야가 리시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중계석도 확실히 "카라스노의 1학년 콤비에 못지 않은 속도"라고 격찬.
* 츠키시마의 서브로 경기 재개. 아카기가 리시브한다.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는 이나리자키의 공격진. 오사무가 네트 앞으로 다가오자 히나타가 섣불리 블로킹을 뛰지만 페이크, 아츠무의 세트업은 스나 쪽으로 향한다. 그러나 스나의 스파이크는 사와무라가 받아내고 흔들린다. 불안하게 떠오르는 공. 카게야마가 따라간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몰랐지만, 여기서부터는 아츠무가 시뮬레이션한 그대로의 상황이 펼쳐진다.
그는 시라토리자와전과 봄고 1회전의 데이터를 근거로 그렇게 분석했다. 그건 카게야마 자신이 대단한 정신력과 높은 기술적 숙련도를 가졌기에 가능한 플레이. 여기서에 아츠무는 두 개의 계산을 끼워넣는다. 하나는 "흐트러졌을 땐 사이드에서 에이스"라는 정석을 벗어난 것, 다른 하나는 "방금 전 우리의 속공을 카게야마가 봤다는 것"이었다.
* 과시하듯 카게야마와 히나타 앞에서 웃어보이는 아츠무. 이미 도발을 당할 대로 당한 두 사람의 투지가 폭발 직전에 달한다.
- 하이큐/258화 . . . . 10회 일치
* 마침내 떠오른 "1 대 1에서 가장 꺼림직한 블록",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마츠카와 잇세이]]의 블록이었다는 해답을 얻는다.
* 마츠카와의 블록을 모방한 히나타의 블록이 처음으로 오사무의 공격을 직선으로 유도, [[니시노야 유]]가 받아내면서 싱크로 어택으로 다시금 동점을 이룬다.
* 두 번째 TO 이후론 공격도 풀리지 않는다. 이나리자키의 서브를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그대로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세트업. 가로막힌다. 카라스노 진영으로 흘러오는 공을 히나타가 캐치. 다시 살려서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하지만 좌측에서 산지마에게 리시브 당한다.
* 다시 이나리자키의 공격 기회. 아츠무는 세트를 올리려다 한 가지가 눈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공은 오미미에게. [[카게야마 토비오]]가 원터치로 블록한다. 라인 밖으로 빠지는 공을 사와무라가 살리지만 네트에서 너무 가까웠다. 타나카의 스파이크도 오미미, [[마지로 알렝]]에게 차단되나 싶었는데, 마지로의 팔이 네트에 걸렸다. 터치넷으로 카라스노의 득점 인정. 무안해하며 사과하는 마지로. 일단은 한숨 돌린 카라스노.
* 플레이가 시작됐건만 고민이 멈추지 않는다. "혼자니까 무섭지 않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블록이 한 장만 있어도 무서운 놈은 무섭다. 예를 들면 저 [[다테 공업 고교]]. 이쪽은 전원이 무서웠다. [[아오네 타카노부]], [[후타쿠지 켄지]], [[코가네가와 칸지]]. 너무 철통 같아서 한 명이 붙는 경우는 고사하고 보통은 두 명씩 따라왔다.
오사무는 뻗어오는 히나타를 발견하고 나서야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이젠 니시노야 말고도 알아봤다. 우카이 코치와 츠키시마. 그리고 TV너머의 [[킨다이치 유타로]].
* 기회가 왔다. 히나타는 곧바로 코트 중앙까지 와서 반전한다. 공은 카게야마에게. 이나리자키 블록은 당황한다. 속공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지만 10번, 히나타가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섞인다. 싱크로 어택. 타나카, 히나타, 사와무라가 같은 타이밍에 날아오른다. 이들 중 진짜는 사와무라. 우측을 찌르는 스파이크. 산지마의 리시브를 뚫고 나간다. 카라스노 고교의 브레이크 선언. 20 대 20, 다시 동점으로 올라선다.
* 니시노야는 방금 전의 "꺼림직한 블록"을 일부러 한 거냐고 물었다. 히나타는 그렇다며 "엄청 꺼림직한 블록"이었다고 말한다. 이 블록의 주인공은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3학년 [[마츠카와 잇세이]]. 그 또한 어지간히 히나타를 괴롭혔던 블로커다. 마침 전철에 타고 있었는데 히나타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재채기를 한다.
- 함인섭 . . . . 10회 일치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촉탁직원이 되었다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 [[황주군|황주]][[춘광원예학교]]와 [[자동농업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의 [[교장]]이 되었다가 이후 주로 [[강원도]]에서 교편을 잡았다. [[강원대학교]]의 전신인 [[춘천농업대학]]의 설립에 주로 참여하였다. [[1952년]]에는 농림부 장관으로 잠시 재직하면서 8.25 직후와 건국 직후의 토지보상 문제와 토지 관련 분쟁을 모두 해결하였다.
[[미군정]] 당시 대학 부지와 대학 설립 인가를 얻어서 [[1948년]] [[2월 1일]] 춘천농업대학을 개교하고 학장서리가 되었다가 [[1949년]] [[8월 30일]] 춘천농업대학의 학장이 되었다. 이후 춘천농대의 2대, 4~5대 학장이 되었고, 5대 학장 재직 중 춘천농업대학에서 강원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아명(兒名)은 '''함재인'''(咸在仁)이다. 본관은 [[강릉 함씨|강릉]](江陵).
함인섭이 태어날 당시 할아버지 [[함태영]]은 [[대한제국]]의 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함태영이 본처 밀양손씨와의 사이에서 장남 함병석을 1889년에 얻었고, 함병석은 다시 1년 연하인 강성흠(姜星欽)의 딸 진주강씨와 결혼하여 그를 얻었다. 친할아버지인 [[함태영]]과는 나이 차이가 34살 밖에 나지 않았기에 비슷한 시대인 [[제1공화국]]에 사회활동을 하였다.
천안 출신인 그는 경성으로 올라와 [[1923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중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중동고보 재학 중인 1924년 3월 26일 유기환(柳基桓)의 딸 유순희(柳順嬉)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6남매를 두고 [[1949년]] 사별하였다. [[1927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0년]] [[3월]] [[동경농업대학]] 예과를 수료하고 동경농대 본과 농학부에 입학, [[1933년]] [[3월 24일]] [[동경농업대학]] 농학부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 후반 [[황해도]] [[황주군]] [[춘광원예학교]](黃州春光園藝學校, 6년제, 소학교 과정) 교사와 [[경기도]] [[자동농업학교]](自東農業學校) 교사로 교단에 섰다.
[[1964년]] 할아버지 [[함태영]]이 사망했을 때 [[국민장]]이 거행되었는데, 그는 일찍 죽은 아버지와 삼촌들, 그밖에 나이 어린 이복 삼촌들을 대신해서 그가 상주 노릇을 하였다.
- 현석문 . . . . 10회 일치
그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신부]]가 [[순교]]하고 사흘 뒤에 순교하였다. 현석문은 [[앵베르]] [[주교]]를 [[조선]]에 데려오고 [[샤스탕]] 신부를 도와 여러 곳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함께 한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현석문은 [[1797년]]에 [[한양]]에서 [[중인]] [[신분]]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5살 되던 [[1801년]]에 [[신유박해]]로 [[순교]]하였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1839년]]에 [[기해박해]]로 옥사하였다. 그의 누나 [[현경련]] 또한 기해박해로 순교하였다.
현석문은 순교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독실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조선 헌종|헌종]] 2년([[1836년]])에 [[의주]]로 가서 [[앵베르]] 주교를 [[조선]]으로 맞아들였다. [[1837년]]에 [[샤스탕]] [[사제|신부]]가 입국하자, 현석문은 그의 [[복사 (기독교)|복사]]가 되어 신부와 함께 [[선교]] 여행에 동참하는 한편, 교인들의 신앙지도에 힘썼다.
[[앵베르]] [[주교]]와 [[선교사]]들이 체포될 때, 현석문은 [[한양]]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주교는 [[순교]] 전에 [[조선]]의 [[교회]]를 맡겼다. 이 사실은 주교와 교우들이 그를 얼마나 크게 존경했는지를 보여준다. 현석문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이재영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는 새로 입교한 교우들을 격려했고 여러 [[선교]]지들을 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을 모아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뒷바라지 하였다.
그는 아내와 누이가 순교한 후에 《[[조선]] [[천주교]] [[순교자]] 열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기해박해]]가 끝나자, 그것의 편찬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상하이]]까지 피해다니기도 하면서 살아남은 [[최희원]]과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의 [[복사 (기독교)|복사]] [[최형 베드로]], [[이승훈 베드로]]의 손자 [[이재의 토마스]] 등의 협조를 받아 [[순교]] 자료를 모아서 확인 및 보충 정리하여 3년 만에 단편의 《[[기해일기]]》를 완성하였고 교우들에게 배포하였다.
며칠 후에 그의 새 집에서 포졸들이 손쉽게 그를 체포하였는데, 이삿짐을 나르던 인부들이 고발하였기 때문이었다. [[7월 11일]] 포졸들이 그 집을 급습할 때, [[김임이 테레사]]와 [[이간난 아가타]], [[정철염 카타리나]] 그리고 [[우술임 수산나]] 등 몇 명의 여성 신도도 있었으므로, 그들도 모두 함께 [[체포]]되었다. [[감옥]]에서 현석문은 교우 수감자들을 격려하였다.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홍경인 . . . . 10회 일치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하였다. [[1992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엄석대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으며[* 촬영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는데 성인 배우도 소화하기 힘든 복잡한 역할인 엄석대를 겨우 중학생이었던 그가 아주 살벌하고 소름끼치게 표현해내어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는 천재 배우가 나왔다며 발칵 뒤집혔다. 참고로 선생님 역할로 [[신구]]와 [[최민식]]이 나온다.],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전태일]], KBS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의 정신지체아 수철 역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연기력의 화신에 가까운 배우라는 평가를 받은 전무후무한 아역배우였다. [* 그야말로 연기 스펙트럼이 엄청났다. 독재자(엄석대 역)부터 노동운동가([[전태일]]), 그리고 정신지체아까지. 근데 이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다 '''10대 때, 즉 중·고,대학생 신분으로 전부 쌓았다(...)''']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영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 더불어 영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1996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바로 슬럼프를 겪게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역할을 맡아서[*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던것.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남자셋 여자셋에서도 노래를 하는 씬이 몇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묻혔다...게다가 90년대 후반에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범람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심지어 음향장비가 좋지 못해서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발라드 가수들까지 종종 방송에서 립싱크를 시키는 시절이고, 라이브를 하는 가수를 신기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즉, 젊은 가수들의 절대다수에게 가창력보다는 외모와 춤실력이 강조되던 시절. 오죽하면 가수는 커녕 일반인치고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 [[최창민]]같은 가수들이 '''솔로가수'''로 나왔을까... 이 상황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려면 가창력이 신승훈이나 김건모같이 본좌급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성이 윤종신처럼 탁월해야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노래잘하고 외모는 떨어지던 홍경인이 발붙힐 자리는 없었다.]
동갑으로 이름이 참 비슷한 [[홍경민]]과 절친이라서, 6살 연상(CF 모델이기도 하다)의 미인 아내와 결혼할 때 [[홍경민]]이 축가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vEXNxbdkG2E|#]]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배우)|이민우]]와 [[김정현(1976)|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엄석대|그들]][[전사의 후예|은 날 짓밟았어 하나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
2016년 12월 11,18일에 방송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참가해 모처럼 시청자들을 찾았다. [[동네방네 스피커]]라는 이름으로 나서서 [[내 안에 첫눈 있다 스노우볼]]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으며 [[조율하고 가실게요! 바이올린맨]]에게 밀렸다. 참고로 그를 가수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데꿀멍...... 뭐 정식 앨범을 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연기를 하다가 매너리즘이 와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연기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고 밝혔으며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팔로우 숫자 뒤에 K가 안 붙는다며 이번을 계기로 K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
- 홍병주 . . . . 10회 일치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는 [[한양]]의 한 명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홍낙민]]이 [[순교]]하자,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의 [[여사울]]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이어온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자로서 살았다.
홍병주와 [[홍영주]]는 모두 [[교리]] [[교사]]로 임명되었고, 예비 신자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열의와 충실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예비신자를 가르치며 병자들을 돌보는 것과 자선사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므로,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그들의 재능과 열정에 감복하였고, 그들에게 여러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홍병주 [[홍영주]] 형제는 9월에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형리들은 그 형제에게 동료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할 것과 배교할 것을 강요했지만, 형제는 결코 그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형조 [[판서]]가 그들의 친척이었다. 그는 그들을 직접 [[고문]]하지 않았고, 그의 부하들을 시켜 형제가 배교하도록 극심히 고문케 하였다. [[도둑|절도범]]과 [[살인자|살인범]] 등의 다른 수감자들도 형리들을 따라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를 구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절대 꺾이지 않았다.
홍병주와 [[홍영주]]는 [[당고개역|당고개]]에 있는 사형장으로 압송되어 [[참수]]되었다. 홍병주는 [[1840년]] [[1월 31일]]에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고, 홍영주는 다음날인 [[2월 1일]]에 두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다. 그렇게 홍병주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43세였고, 홍영주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40세였다.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형제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백과사전 인용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3월의 라이온/122화 . . . . 9회 일치
키리야마 레이와 나메리카와 이자야의 대국 개시.
* 미스미 타츠유키와 요코미조 오쿠야스는 날씨가 더우니 대국이 일찍 끝나면 맥주나 마시러 가자는 둥 실없는 토크를 한다.
* 그런데 공원에서 까마귀들에게 콩을 주며 시간을 때우던 나메리카와와 마주치는데, 맑디 맑던 날씨가 한 순간에 흐려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 스미스와 요코미조는 "저 사람 키리야마를 엄청 좋아할 것"이라며 수다를 떨면 대국이 길어질 거라고 예상한다.
* 키리야마는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해왔지만 나메리카와는 실전에선 쓰지 않던 수까지 꺼내며 예상을 깨부순다.
- 미스미 타츠유키. 나메리카와의 압박에도 뜻밖에 너무 태연한 키리야마에게
* 나메리카와는 사신을 넘어선 무언가로 변태한 듯 하다.
- K리그 클래식 . . . . 9회 일치
K리그는 [[수퍼리그]] 시절부터 승강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승강을 실행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팀이 창설되지 않았던 관계로 이 부분이 상당히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던 것이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약간의 축구붐이 조성되면서 K리그에 참가하는 팀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실업팀의 프로화를 통한 K리그 참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던 상황.
단적으로 K2리그를 출범하고 리그 우승팀을 프로화시켜 승격을 시키는 방안을 시작으로 실업축구단들의 참가를 유도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프로팀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장기적으로는 K리그의 프로팀 숫자를 늘리고, 늘어난 팀 수를 바탕으로 상위와 하위리그를 나눠 승강제를 운영할 계획이었다. K2리그라는 명칭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본래 K리그의 승강제 구성을 위해 탄생한 2부리그 격 세미프로리그였다. 하지만 2번이나 우승팀들이 승격을 거부함으로써 승강제는 아예 물 건너가게 되었고, K2리그는 내셔널 리그로 이름을 바꿔 완전히 별개의 리그가 되어버린다.
이 와중에 아시아 축구를 총괄하는 AFC는 [[모하메드 빈 함맘]](이하 함맘) 회장이 집권하던 시기부터 아시아 클럽 대항전을 손보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함맘이 회장에 당선된 시기는 2002년, ACL이 개편되어 시행된 건 2003시즌부터다.] 그리고 개편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참가팀 수를 [[UEFA 챔피언스 리그]]와 마찬가지로 32개 팀까지 확대하는 한편, [[AFC컵]]의 정립까지 상당 부분을 손보게 된다.
2016년 기준, K리그 클래식의 리그 수준은 아시아 '''최고'''다.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통틀어 1위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ACL 무대에서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허나 AFC의 최근 트렌드가 축구 개발도상국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4장을 배정받던 과거완 달리 현재는 3.5장으로 줄었다. 현재 AFC의 정책이 점점 UEFA의 정책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봐서는 기존 강호들은 3.0장으로 줄어드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의 평가에서 K리그는 세계적으로 30위 내에는 꾸준히 들어가는 리그다. [[http://iffhs.de/the-strongest-league-in-the-world-2015/|2015년 발표만 봐도]] [[그리스]], [[네덜란드]]와 비슷한 점수를 받는 상황. 그리고 [[스코틀랜드]]보다 순위가 더 높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봐도 결코 무시할 리그는 아니다.
2013시즌은 2012시즌의 결과로 상주와 광주가 강등된 상태에서 14개 팀으로 운영하였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12개팀을 이룰 예정이었기 때문에 최하위 2개팀, 13위와 14위팀은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 12위는 [[K리그 챌린지]] 우승팀과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뤘다.
정규 라운드에서 획득한 점수는 그대로 이양되고 "자신의 팀이 속한 스플릿의 경쟁자와 한번씩 대결"을 통해 상위 스플릿에선 우승과 차기 ACL 티켓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되며, 하위 스플릿에서는 강등팀(꼴찌)과 승강 플레이오프로 갈 팀(꼴찌에서 [[홍진호|2등]])을 정하게 된다.[* 처음 도입되었던 2012시즌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걸 이해하지 못해 욕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게 되면 정규시즌의 기록이 다 사라지고 스플릿 라운드에서 얻은 기록만을 비교하여 우승팀을 가린다고 착각했던 것. 덕택에 [[샤다라빠]]가 신명나게 까댔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3화 . . . . 9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43화. '''우마루와 원고제출 2'''
키리에와 함게 편집부를 찾아간 우마루.
* 모토바 키리에와 도마 우마루는 편집장을 만난다
*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시지와 교육성'''도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키리에의 그림책에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 편집장은 "앞으로 또 그려서 가져와라"면서 아쿠타가와란 이름을 밝히고 명함을 건넨다.
* 출판사를 나선 후 키리에는 ''' "혼자서는 포기했을 테지만 우마루양이 따라와줘서 말해준게 기쁘고 감동적이다. 우마루양을 만나서 다행이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 항상 민폐만 끼치던 우마루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었다.--많이 컸구나--
*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이름이 나왔으니 named 캐릭터가 될지도?
- 긴나라 . . . . 9회 일치
고대 베다 문헌, [[마하바라타]],[[라마야나]] 등에는 킴푸루사(Kiṃpuruṣa)라는 유사성이 많은 존재와 등장하는데, 긴나라와 킴푸루사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킴푸루사 역시 ‘(어떤) 사람인가’라는 뜻으로서, [[자타카]]에서 운문 자타카가 산문 자타카로 옮겨지면서 킴푸루사가 긴나라로 바뀌는 경우가 있어 후대에 혼동이 일어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제석천(帝釋天)이나 비사문천의 악사로서 묘사되며, 건달바(乾達婆)와 함께 가무를 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역할을 맡는다.
=== 수다나와 마노하라 ===
[[자타카]]에서 나오는 인간과 긴나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 하스티나푸라 왕국의 왕자 수다나(Sudhana)와 카일라사 산봉우리에 사는 긴나라의 공주 마노하라(Manoharā)의 이야기이다. 긴나라왕의 일곱 딸 가운데 가장 어리고 아름다운 마노하라가 언니들과 함께 숲 속 호수에 목욕을 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 왔을 때, 하스티나푸라의 이웃나라에서는 희생제사를 지내려고 사냥꾼을 시켜서 히말라야의 동물들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긴나라와 긴나리를 잡지 못하자, 마술을 쓸 수 있는 한 사냥꾼이 히말라야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던 마노하라를 포획한다.
돌아온 수다나는 어머니에게 마노하라가 새로 변신하여 달아났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수다나 왕자는 사랑하는 부인을 찾아서 온 천지를 헤메고 기나긴 모험 끝에 긴나라의 나라에 찾아간다. 마노하라와 다시 맺어진 수다나 왕자는 다시 왕국으로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는 후에 [[선녀와 나무꾼]]의 원형이 된 것으로 보인다.
- 김동욱(배우) . . . . 9회 일치
2017년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서현 역을 맡아 큰 호평을 받았다. 이어 12월에 개봉한 [[신과함께-죄와 벌]]에서 원작의 [[유성연]]을 재구성한 김자홍의 동생 김수홍을 연기해 화제를 일으켰고 "진주인공이다" 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호평을 보여줬다.[* 특히 현몽신에서는 웬만한 관객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또한 영화 개봉 후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가졌다. 후속작인 [[신과함께-인과 연]]에는 주연으로 출연한다. 정작 본인은 [[이정재]]와 같은 특별출연으로 출연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아 놀랬다고 한다. 또한 영화가 1300만 관객을 돌파하자 여동생이 가장 기뻐했다고 한다.[[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art_id=201801030858003&sec_id=540401|기사]]
2018년에는 아직 차기작은 없으나 트레이드 러브[* 하지만 출연진 중 한명이 미투 논란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와 [[신과함께-인과 연]]이 개봉하였고 [[탐정 리턴즈]]에 우정출연한다고 한다.
2015년 8월에 [[복면가왕]]에서 [[광대승천 어릿광대]]라는 가명으로 나와서 [[정태우]], [[장나라]]가 부른 'Be happy'를 [[금은방 나비부인]]과 불렀으며 2라운드 준비곡으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을 열창했다.[* 여담으로 군대에서 위문 공연 당시에도 이 노래를 불렀었다.] [[김형석]]에게 [[김광석]]이랑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나온 계기가 본인은 예능에 안 나간다는 것과 본인이 예능 출연을 안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 2017년 || '''[[신과함께-죄와 벌]]''' ||<|2> [[김수홍]] || 첫 천만영화 ||
||<|2> 2018년 || 제23회 춘사영화제 || 남우조연상 ||<|2> 신과함께-죄와 벌 ||
* 데뷔 초창기와 비교하면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진 배우다. 초창기만 해도 귀엽다는 인상이 강했다.
* 노래를 잘해 OST로 몇번을 냈고 뮤지컬 배우로도 진출했다.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좋은 실력을 보여주었으며 신과함께에서도 기타를 치며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개사해서 [[도경수]]와 같이 부른 장면이 나온다. 또한 목소리 발성이 [[김광석]]과 도플갱어 급으로 유사하다고 한다.
* [[신과함께-죄와 벌]] 언론 시사회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LZGwijzUpJo|환생한다면 되고 싶은 인물이 있냐는 질문]]에 [[하정우]]·[[정우성]]·[[주지훈]]·[[이정재]]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해 웃음을 주었다. 이유는 '''키크고''' 잘생긴 배우로 태어나고 싶다고 ~~여기서 차태현의 말이 진정한 웃음포인트. "너나 나는 별 의미가 없어..."~~
- 김시진 . . . . 9회 일치
1980년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사건으로 인해 [[1988년 한국 프로 야구|1988년]] [[11월 23일]]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과 함께 [[최동원]], [[김성현 (1963년)|김성현]], [[오명록]]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두 팀은 [[장효조]]와 [[김용철 (야구인)|김용철]] 등의 트레이드를 성사했다. 이후 4년 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13승 24패를 추가하는 데 그쳤고, [[1992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정규 리그 통산 124승을 올렸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승리없이 7패로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기 전까지 투수 코치로 계속 활동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아마추어 실업 야구 팀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에서 잠깐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나, 이내 곧 [[1998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임명되어 프로에 복귀했고, 그 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그는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오주원]], [[황두성]], [[박준수]],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에 뛰어났으며 [[투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투수 코치를 맡은 기간 동안 그는 '명 조련사'로 불렸는데, [[1998년]]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 등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수상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투수 코치로서 선수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생활에도 이어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최초 1차 지명으로 선발한 좌완 투수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 역시 [[2009년 한국 프로 야구|2009 시즌]]에 옥석으로 평가받았다.<ref>[[스포츠 서울]]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013951 "히어로즈가 끝까지 지킨 강윤구는 누구?"]</ref> 시즌 전 트레이드로 홍역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걸출한 신인 우완 투수 [[고원준]]을 배출하였으며, 트레이드로 영입한 [[금민철]]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가 투수 코치로 있는 동안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08년]]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에서는 [[이광환]]을 경질하고 그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구단과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8억원에 계약을 맺으면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8년 [[10월 10일]] 감독 취임식을 가졌다.<ref>《한겨레》, 2008, 10, 11.</ref> [[2009년]]에 6위를 기록하였지만, 시즌 후반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치열한 4위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시즌 초반에는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특히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와 [[강정호]], [[황재균]] 등의 젊은 선수들은 [[이택근]],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의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파동|트레이드 파동]] 때 "트레이드 불가"로 못박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2009년]] [[8월 6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감독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부임 첫 해에 감독 커리어 최고 순위인 5위와 동시에 최고승률 .532를 달성했으나 가을 야구에는 실패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승률 포스트시즌 탈락이다.[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180100150040009307]
2013 시즌 계투진의 많은 블론세이브와 투수 교체에 관한 비판이 있었고, 또한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였던 [[김승회]] 혹사 논란이 있었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296602]
2014 시즌 들어 수비진의 안정화로 리그 최소 실책 부문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나 [[강민호]]와 [[전준우]]를 필두로 하는 타선의 부침과 [[송승준]]의 부진이 겹쳐 6월까지 5할대 승률을 기록했다. 한편, 9구단 체제로 인한 휴식일에 팀 내부 사정으로 인해 [[권두조]]가 수석코치에서 중도 사임하였다. 이후 프런트와의 마찰로 인해 [[2014년]]을 끝으로 사퇴하였다.
- 김희애 . . . . 9회 일치
1966년 4월 23일 생.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사와서 자랐으며, 혜화여고 1학년 때 의류CF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일 년 뒤인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로 데뷔했다. 10대 시절 하이틴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85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알수없는 일들"로 브라운관에 데뷔했고, 이후로는 TV 쪽에 주력했다. 1986년에 KBS 일일드라마 "여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고 스무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10대부터 60대를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며 하이틴급 청순가련형은 아니지만 대학 동창 [[전인화]]와 신세대 스타로 급부상한다.
이후 "산 너머 저쪽", 비운의 연기자 [[변영훈]]과 함께한 "분노의 왕국", [[최수종]]과 남매로 나온 "[[아들과 딸]]"의 후남이 역, 최진실과 투톱을 맡아 신들린 연기를 보인 "폭풍의 계절", 다시 한 번 황인뢰 PD와 함께 한 "연애의 기초" 같은 드라마로 최고의 연기력이라 인정받는 한편 [[최진실]], [[채시라]]와 함께 1990년대 TV 트로이카를 형성하는 여배우들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광고, [[드라마]]를 통해 김희애는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왔다. 그 중 유명한 게 '''놓치지 않을 거에요.'''와 '''이건 특급 칭찬이야.'''가 있다.~~특급 칭찬 [[김영철(개그맨)|김영철]] 유행어 아닌가요?~~ --그렇게 따지면 놓치지 않을 거에요도...--[* 다만 김희애는 처음 김영철이 자신의 성대모사를 하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철도 그걸 알았던지라 김희애 성대모사 만큼은 가능한 한 자재하려는 모습을 많이보였다. 물론 지금은 나아진 것 같지만서도.]
의외로 연기 이외에도 [[MC]], [[DJ]], [[가수]] 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86-1987년에는 [[KBS 2FM]]에서 "김희애의 FM인기가요"를 진행했었는데, 이 때 [[KBS]]의 [[MC]], [[DJ]]들이 부른 앨범을 만들 때 참여해서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노래를 불렀다.[[https://www.youtube.com/watch?v=qIADkWc2si0|링크]] [[전영록]]이 작사, 작곡하고 코러스한 노래로 당시 [[가요톱텐]]에서 1위도 하고 후에 [[리메이크]]도 여러번 된 1980년대의 [[히트곡]] 중 하나다. [[이덕화]]와 1990-1991년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진행했고, [[연예가 중계]] MC를 맡은 적도 있다. 1990년대에 [[대학가요제]], 연말 가요무대 등 굵직한 행사들의 진행을 맡아 왔다. 특히 [[1994년]]부터 현재까지 MBC 특별기획 생방송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의 진행을 무료로 해 오고 있는데, 2017년 기준으로 무려 24시즌 연속으로 마이크를 잡아 오며 연례 특집방송 중 국내 최장수 진행자로 기록되었다.
2016년 3월 17일에 [[YG엔터테인먼트]]에서 김희애와의 전속 계약을 발표했다. 그 전까지는 [[소속사]]도 없이 [[매니저]]와 일해왔다고 한다.
배우 [[한효주]]와 [[2인 1역]].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9회 일치
* 웅영 입학 시험 당시 요아라시 이나사와 토도로키 쇼토는 묘한 악연.
* 요아라시는 토도로키가 엔데버와 마찬가지로 안하무인하고 차가운 성격이라 생각해 거슬려했다.
* 이것으로 잠시 시간을 버는데,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도 죽을 힘을 짜내 즉석 연계 공격에 성공, 갱 오르카를 저지한다.
* 요아라시는 토도로키 쇼토와 함께 실기 시험을 치르게 된다.
*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방해된다"고만 말하는 토도로키는 엔데버와 똑같은 모습이다.
* 그러는 사이 갱 오르카는 무자비한 공격으로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를 리타이어 시킨다.
* 갱 오르카는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를 완전히 끝장내고 구호소 쪽에 가세하려 가려 하는데.
* 우연인지 요아라시와 토도로키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토도로키와 요아라시의 다툼은 별거 아닌 감정싸움으로 보이는데, 어차피 당시 이들은 중학교를 막 졸업한 소년들이었고 지금도 고작 고1 정도. 어른스럽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9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는 사걸고교와 헤어지기 전 케미라는 여학생과 "기척을 지우는 훈련"에 대해서 묻지만 사걸측에선 아는 바가 없다.
* A반 사이에서 토도로키의 탈락 소식도 전파된다. 하필이면 A반 투톱이 전부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카미나리 덴키는 바쿠고에게 폭언 때문이라며 깐죽거려서 화를 돋군다. 미네타는 둘다 "자기 본위의 플레이가 발목을 잡았다"는, 밥맛없지만 정확한 팩트폭력을 시전하다 이이다 텐야에게 치워진다. 야오요로즈 모모와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마음을 신경써 주지만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한다.
* 그때 주최측으로부터 새로운 방송이 전파된다. 합격자 명단과 별개로 채첨 프린트가 배부되는데 자세한 감점이유와 전체적인 평가가 기재된 것이다. 세로 한타가 의외로 84점. 감점이 적었다. 야오요로즈는 94점으로 매우 우수. 오지로 마시라오는 61점이었다. 이이다도 80점으로 준수하지만 "개성을 잘 응용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지적이 적혀 있다. 미도리야는 71점을 받았는데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머뭇거리는 점을 지적 받았다.
* 이렇게해서 임시면허 시험은 종료. 미도리야는 꿈에 그리던 자격증을 발부받는다. 미도리야는 감동으로 울먹인다. 이것이 자신의 성장의 증표같다면서 얼른 올마이트와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흐믓하게 바라본다.
* 시험도 끝나고 다른 학교 인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Ms.조크는 아이자와 쇼타에게 나중에 합동 연습이라도 하자고 제안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다. 요아라시는 토도로키에게 다음 강습에서 또 만나자고 하지만 너무 솔직하게 "여전히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고 직구를 던지고 간다.
* 미도리야는 사걸고교의 리더에게 질문할 것이 있다며 수첩을 꺼내든다. 그리고 다짜고짜 "기척을 지우는 훈련"이란걸 묻는데 케미를 상대하면서 들은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걸의 리더는 그런 훈련같은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애초에 그런게 뭔지도 모른다는 반응. 미도리야는 케미가 그런 말을 했다며 그녀를 찾는데 왠지 몸이 안 좋다며 한 발 먼저 귀가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사걸의 리더도 한 3일 전부터 그녀의 행동이 묘하게 평소와 달랐다고 찜찜하게 여기는데
* 한편 케미는 사걸의 리더가 한 말과는 달리 뒷골목을 돌아다니고 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얼굴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 통화상대는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
예상대로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는 탈락. 바쿠고도 점수를 따는 듯 하더니 결국 실패했다. 그래도 재시험이 있으니 재시험에서 당락이 확실히될 듯하다.
사걸고교 케미의 정체는 토가 히미코. 진짜 케미의 행방은 미지수다. 하지만 토가의 성미로 봤을 땐 성하게 있지는 못할 것으로 추정. 일단 토가의 행동은 단독행동으로 빌런연합의 계획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개성이 변신이고 단지 피를 얻으면 변신할 수 있다는 패널티가 매우 적은 능력. 처음엔 스테인을 추종하는 태도나 우라라카, 아스이 츠유와 교전했을 때의 정황 때문에 스테인과 비슷한 계통이 아닌가 추정되었으나 완전히 빗나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8화 . . . . 9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와 [[바쿠고 카츠키]]의 싸움은 담임인 [[아이자와 쇼타]]에게 통지된다. 설교하러 가는 아이자와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 싸우며 유년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미도리야와 바쿠고. 이 싸움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미도리야는 최대한 피하려 한다.
* 그라운드 베타의 소란은 곧 감시자들의 눈에 들어간다. 소식은 곧장 담임인 [[아이자와 쇼타]]에게 전달된다. 아이자와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같은 통보에 "진짜냐"고 투덜댄다.
* 통보가 온 이상 나가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자와가 바깥으로 나가는데 누군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아이자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적개심에 불타는 바쿠고와 달리 미도리야는 이 싸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바쿠고의 "내 동경은 잘못된 거냐"는 말. 미도리야는 그게 잘못됐을리 없다며 누구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바쿠고는 폭발로 되돌려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9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의 음모에 이용되는 소녀 "에리쨩"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경찰 연합군. 조직원들이 몰려나와 방해하지만 현지 히어로들의 적극적인 마크로 어떻게든 건물 내부까지 진입한다. 조직원 전체가 나서서 시간 끌기를 하는 이러한 행태가 혐의를 더욱 짙게 만든다. [[패트껌]]은 "수상한 정도가 아니다"고 날을 세운다.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진행되는 상황이 영 불안하다며 투덜거린다. [[아마지키 타마키]]는 정보가 샜음을 짐작하고 적들이 한덩이가 된 것처럼 군다고 소감을 밝힌다. [[아이자와 쇼타]]는 이들이 떳떳하지 못한 만큼 결속을 중요시하는 거라고 혹평하고 간부나 [[오버홀]] 치사키가 보이지 않는 걸 들어 수뇌부는 이미 지하에서 은폐 중이거나 도주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우직함 심성의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딴건 충의도 뭣도 아니다"고 버럭하며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는건 사나이답지 않다고 말한다.
* 버블걸은 피부에서 거품을 생성하는데 아이자와가 조직원의 개성을 무효화하는 동안 거품으로 시야를 가리고 체술로 간단히 제압한다. 둘은 조직원들을 무력화시킨 뒤 따라가겠다며 일행을 선행시킨다.
벽 너머는 평범한 복도였고 별다른 장애물도 없었다. 구조도 나이트아이가 확인했던 그대로. 단지 아주 두꺼운 벽일 뿐이다. 밀리오가 이렇게 알리자 벽은 치사키가 자신의 개성으로 "분해했다가 만들어낸" 물건으로 결론지어진다. 이런 걸 급히 만들었다는건 분명 들키면 곤란한 물건을 숨겨놨다는 얘기. 분개한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 콤비가 벽을 박살낸다.
* 일행이 추적을 속행하려 하자 비밀통로 전체가 파도치듯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조직원들을 구속하던 버블걸과 센티피더도 괴이하게 변모하는 통로를 보고 당황한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일행. 변하는 형태로 보아 치사키의 개성은 아니다. 형사는 아마도 본부장 [[이리나카]]의 개성일 걸로 추측한다. 항상 오버홀 옆에 따라다니는 작은 부하가 그다. 그의 개성은 "의태". 특정한 물건에 들어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지금은 건물의 콘크리트에 들어가 지하통로를 살아있는 미궁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정보에 따르면 그에겐 이정도 규모를 조종할 힘은 없다. 기껏해야 냉장고 하나 정도가 한계. 패트껌은 부스트 약물을 쓴 거라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고 추측한다. 허를 찌르는 함정이지만 분명 몸에 무리가 갈 텐데. 패트껌은 아이자와에게 무효화를 요청하나 본체를 정확하게 잡는게 아니라면 그에게도 무리다.
밀리오는 이런 함정이 있다는건, 저쪽도 시간 싸움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의중을 읽은 나이트아이와 미도리야가 말리지만 그는 혼자서라도 먼저 가보겠다며 일렁거리는 복도를 "통과"해 나간다. 확실히 그의 통과는 이리나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리나카로서도 밀리오 혼자 가봐야 아무 소용 없을 거란 계산이 있었다.
* 일행이 떨어진 높이는 약 1층 높이. 낙사를 노릴 만한 높이는 아니다. 아이자와는 급변한 지형을 주시하며 본체를 찾아봤지만 허사. 일행이 떨어진 곳은 넓은 방이었다. 다친 사람은 없지만 목표와 떨어져 버려서 이미 적의 의중대로 굴러가는 상황. 그때 방 한 켠에서 적이 등장한다. 오버홀이 "더러운 짓"을 시키려고 준비한 장기말들, 철포옥 핫사이슈 중 3인이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9회 일치
* 올마이트와 이레이저 헤드는 기숙사제 전환에 대해 설명하고 학부모 동의를 얻기 위해 가정방문을 한다.
* 지로 쿄카의 집에 방문한 올마이트와 아이자와 쇼타(이레이저 헤드).
* 아이자와는 고개를 숙여가며 설득에 나서는데 그때 쿄카가 나타난다.
* 사실 프린트가 전달된 시점에서 결론은 나와 있었는데, 아버지는 올마이트의 싸움을 보고 "이런 록한 선생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니 우리 딸은 브라이언 더 선이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 이동 중 아이자와는 "좀 더 비난 받을 줄 알았다"면서 올마이트에게 "한 잔 쏘겠다"며 그의 공으로 돌린다.
* 하지만 아이자와가 사건 직후 회견하면서 "바쿠고는 누구보다 톱 히어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걸 틈이라고 생각한다면 빌런은 멍청한 것."이라고 말한 것에 크게 감명 받았다.
* 이번엔 올마이트가 아이자와에게 "한 잔 쏠까?"하고 공을 돌린다.
* 올마이트는 미안해하면서도 그것만큼은 밝힐 수 없기에 "학생이다. 너와 마찬가지로 전도 유망한 히어로의 알."이라고 답한다.
- 대한민국 FA컵 . . . . 9회 일치
대한민국 FA컵의 전신은 1921년에 개최한 '전조선축구대회'와 해방 이후 1946년에 열린 '전국축구선수권대회'로 본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K리그가 시작된 1983년을 기점으로 관심이 시들해지고 또 출전 자격이 KFA가 자격을 심사한 뒤에 초청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FA컵과는 거리가 동떨어져 있었다.
FA컵은 KFA에 등록된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자격을 갖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이 명백하기에 토너먼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라운드를 차별 배정받는다.
추첨을 통해 배정받을 수 있는 번호는 1번, 2번, 3번, ★번이며, 이 번호를 통해 7라운드와 8라운드의 대진을 동시에 결정지을 수 있다.
= AFC 챔피언스 리그와의 관계 =
FA컵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자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모든 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FA컵은 상금규모와 대회 진행에 따른 보상이 너무나도 초라했던 관계로 초창기에는 리그컵 내지는 그보다 못한 대회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대회라는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AFC에서 차기 ACL티켓을 부여하고부터는 K리그 클래식 다음가는 권위있는 대회로 탈바꿈했다.
단, 이 규정은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된 완전한 프로팀'''이라지만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즉, 아직까지 K리그 이외 팀이 우승한 적은 없지만 만에 하나 실업팀과 같은 세미프로나 대학팀 같은 아마추어가 우승하게 되면 우승팀일지라도 ACL 참가는 불가능하다. 또한 프로화를 했다고는 하나 팀이 사업자등록 및 법인화까지는 AFC의 규정에 적합해도 '''"팀의 선수 전부가 본질적으로 군인 내지는 경찰"'''인 상주 상무와 안산 경찰청은 세미프로팀과 마찬가지로 ACL진출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는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되었지만 선수들의 신분문제로 완전한 프로팀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
과거 포항이 더블을 달성했을 때는 3.5장이 아니라 4장을 부여하였기에 '''어차피 똑같은 1장'''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FA컵 우승팀이 들어가야 할 F조의 자리를 당시 리그 4위였던 서울에게 바로 넘겨줬기 때문에 서울이 F조 자리로 갔었다. 그리고 0.5장이란 개념이 없던 미비했던 동아시아 조추첨의 경우는 각 국가별로 조별단계에서 겹치지 않도록 국가별 조추첨을 통해 조편성이 이루어졌기에 한때는 리그 2위였던 성남이 E조에 들어가고 우승팀인 전북이 F조 들어가는 등의 상황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동아시아 조편성에 0.5장이라는 특수성이 과거에 비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조편성이 난감해질 우려가 생겼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복잡한 구조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K리그 뿐만이 아니라 똑같이 3.5장을 부여받는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도 비슷한 논리로 조편성을 위한 티켓부여가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이 경우에는 클래식 우승팀 자격이 더 격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F조에 편성될 자격을 양도하게 되며, 양도받는 팀은 FA컵 준우승팀이 아니라 클래식 2위팀이 된다. 따라서 2위팀이 FA컵을 우승할 때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 드래곤볼 . . . . 9회 일치
프리더 군단에서 사용. 환자를 특수 액체에 담궈서 부상을 회복시키는 기능이 있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들어간다. 스타워즈의 박타 탱크와 비슷하다.
작중에서 혹성 프리더나, 프리더의 우주선에 설치되어 있으며, 구형과 신형이 있다. 혹성 프리더에서는 지구에서 돌아온 베지터가 회복할 때 사용, 자봉에게 당한 베지터를 회복시킬 때나, 기뉴와의 전투로 부상을 입은 오공을 치료할 떄 사용되었다. 구형이라도 상당한 중상을 입은 오공을 40분~50분 내에 치료할 수 있는 성능을 지니고 있다.
* 87화 : 오공이 가메하메파를 쓰고 나서 '오랜만이다'라는 메타 발언을 한다. 작중 시간으로는 기뉴 특전대와 싸우고 나서도 하루도 안 지났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오공의 활약 자체가 상당히 오랜만.
* 88화 : 오공과 프리더의 대결 와중에, 치치가 나메크별에 가서 오반에게 숙제를 주겠다느니 피콜로가 갔다는 말을 듣고 또 오반이 불량해지겠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역시 애니판은 상당히 치치의 이미지 악화에 일조한 듯 하다.(...)
나메크 별에서 전투력 이상 반응이 나타나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프리더가 드디어 죽었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 발언을 하자마자 광선 총에 무수히 맞아서 시체도 안 남기고 소멸한다. 숙청을 한 것은 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망토 장비).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이 캐릭터가 "우리가 우주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건 프리더 님 덕분, 언젠가는 우리 종족을 부흥시켜 주신다고 약속했다. 프리더 님이야 말로 전 우주의 구세주다!"라면서 열렬한 프리더 빠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초사이어인 오공의 전투력을 계측한 순간 계측기가 폭발하여 기지채로 전멸.
손오반이 뜬금없이 뛰쳐나가서 프리더와 싸우는 에피소드가 추가. 오공이 죽은 줄 안 오반이 프리더는 어차피 사이어인을 전멸시키러 지구로 올 테니까 오공의 아들 답게 싸우겠다고 나선다.
* 부활한 베지터가 날아와서 프리더에게 한 방 먹이려 하지만 역시 아슬아슬하게 순간이동 당한다.
내퍼, 라데츠와 함께 행성을 하나 정복하고 돌아오지만 프리더에게는 무시당하고, 내퍼가 항의하지만 자봉이 자신들이라면 하루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내퍼는 분개하여 프리더에게 덤벼들려 하지만 베지터가 그만두라고 저지한다.
- 라미란 . . . . 9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연극과 출신으로, 30세라는 늦은 나이에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오수희 역으로 데뷔하였다. 첫 영화 출연 작품에서부터 교도소에서 강렬한 장면을 연기해 인상을 남겼다. 특색 있는 얼굴로 주로 조연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작품에 출연하였다. 연기력은 인정받았으나 인지도는 크지 않았다. 2013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2에 출연하게 되면서 시간또라이 라과장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2014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며 현재까지도 레전드 출연자로 남고 있고, 그 계기로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편에 출연하게 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과 영화 [[미쓰 와이프]] 감독의 신작인 '내안의 그놈', 영화 [[덕혜옹주]]의 제작사의 영화 '상류사회'에 출연할 예정이다.
2017국내 빅5 투자 배급사가 선정한 충무로 티켓파워 순위에서 [[오달수]]와 함께 최고점, 최다 득표율을 받으며 만장일치로 남녀 조연부문 공동1위를 차지했다.
|| [[미쓰 와이프]] || 미선 || 988,451 ||
||<|2> [[2018년]] || [[내 안의 그놈]] || 미선[* [[미쓰 와이프]]에서 맡았던 극 중 인물이름과 동일하다.] || ||
||<|3> 2016년 || SBS || [[돌아와요 아저씨]] || 마야 ||
2014년 8월 7일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 [[에릭남]]에게 돌발적으로 실제로 입을 맞추는 성추행을 저질러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연인 사이에 휴지로 얼굴을 가리고 깜짝 키스를 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패널들이 서로 이를 시연하였는데, 다른 출연자와 달리 라미란은 '로맨틱한 키스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며 휴지를 찢고 직접 입술을 접촉해 버렸다. 성적인 의식이 얼마나 낮은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이는 범죄이다.
* 개념있는 언행을 보여 좋은 이미지의 연예인이기도 한데, 진짜사나이에 나와선 남녀를 포함한 역대급 엘리트의 모습[* 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입대를 권유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다(...) ~~물론 나이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당시 교육을 맡은 교관은 훈련을 마친 라미란이 다른 교육생들은 해냈다는 것이 그저 감동적이었다 말할 때 '''전시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지체해선 안 되겠다'''란 소감을 말해 벌써 군인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 칭찬하기도... ~~체력 제외~~ 사격을 포함한 모든 훈련부터 군 생활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을 보여 찬사를 받았고 본인의 남편이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뛴다 해서 전혀 창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말해 신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연정(우주소녀)|유연정]]과 외모가 닮아 모녀관계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I.O.I]]의 연습실에 찾아갔던 당시. 여담으로 [[연정(우주소녀)|연정]]이 나중에 합류한 [[우주소녀]]는 [[신동엽(코미디언)|몇몇]] [[이민호(1987)|연예인]]들과 [[성소|닮은꼴]]인 [[다영|멤버]][[연정(우주소녀)|들]]이 좀 있는 그룹이다. 그리고 라미란은 2017 KBS 연기대상 단막극 부문에 [[I.O.I]] 출신의 [[김소혜(1999)|김소혜]]와 함께 노미네이트된 적이 있다.]
- 마기/331화 . . . . 9회 일치
*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와 싸워야 하는지, 그는 왜 막을 여유를 준 건지 의문스러워하고 알라딘은 정말 옳은 일인지 고민하다.
* 모르지아나는 새삼 지난 일을 회상하며 감사와 사랑을 고백한다. 알리바바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루프로 돌아가자고 하지 말아줘"라고 설득한다.
*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되었음을 실감한 알리바바. 신드바드와 싸움을 결단한다.
알리바바는 알라딘에게 이대로 성궁에 가서 신드바드와 싸울 거냐고 묻는다. 그런 한편 어째서 신드바드가 자신을 막을 수 있도록 시간 여유를 준 건지 의문을 표한다. 그런데 말 없이 걷던 알라딘이 "정말 그게 옳은 일일까?"라고 묻는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길 원하는건 알라딘과 알라비바, 단 두명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모두가 원하는걸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싸움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알라딘은 그 점을 묻는다.
알리바바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알라딘은 자신도 생각해볼 테니 황으로 돌아가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와 이야기 해두라고 한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 모르지아나는 알리바바와 알라딘이 자신을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켜 줬을 때는 뭘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바바와 알라딘과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됐다. 뭘 용납할 수 있는지, 무엇에 기쁘고 즐거운지. 행복한지. 그녀는 알리바바와 함께해서 자신이 완성되어 갔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마침내 깨닫는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바람을 위해서라도,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는 신드바드와 싸울 것을 결의한다.
- 마기/335화 . . . . 9회 일치
*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의 예상과 달리 누구보다 결연하게 그와 싸우기를 맹세한다.
* 일행이 도착한 제 1던전은 "분노와 영걸의 시련" '''바알'''. 전쟁터가 배경인 살벌한 던전이다.
알라딘은 이곳이 성궁이라고 보증하면서도 자신이 [[우고(마기)|우고]]와 함께 있던 시절은 이렇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분명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침입하던 시점에선 알라딘의 기억대로 서고와 같은 모습이었다. 원래 성궁은 주인이 마음먹은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그 말은 곧 지금 성궁의 모습은 신드바드가 창조한 것.
그건 정신체 형태로 나타난 신드바드 본인이었다. 그는 일부러 일행이 도전할 시간을 보장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네 사람은 신드바드가 루프를 뒤집어 씌우는데서 벗어난 자들. 그렇다면 이들이 신드바드와 싸우는 것도 "운명"이라는 것이다.
신드바드는 그 미련이란 것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고 알리바바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예상 밖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언제나 무슨 이유든 달아 신드바드와 대적하는걸 피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알리바바는 지금까지와 다르다. 신드바드의 말을 듣고는 아몬의 검을 들어 신드바드를 가리키며 "반드시 쓰러뜨리겠다"고 맹세한다. 신드바드는 만족스럽게 "기다리고 있겠다"고 화답한 뒤 진들과 함께 모습을 감춘다.
그것은 [[아르바(마기)|아르바]]. 우고에게 사로잡혔을 때는 작은 꼬마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성인의 모습을 회복한 채다. 뒤늦게 그녀를 알아챈 일행. 특히 백룡과 쥬다르가 경계하지만 그녀는 싸울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 신드바드가 그녀에게 7개의 던전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행에게 경계하지 말라고한다. 그러더니 여행 가이드처럼 앞장서 걸으며 일행을 이끈다. 쥬다르는 끝까지 의심을 풀지 않고 이 여자는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알라비바와 알라딘은 별다른 경계심 없이 따라나선다. 심지어 알라딘은 그녀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까지 하는데.
>'''분노와 영걸의 시련'''
- 마기/340화 . . . . 9회 일치
* 그곳은 결혼식장 같은 배경에 17세의 신드바드와 원래 제파르의 소유자였던 [[세렌디네]]가 기다리고 있다.
* 신드바드와 세렌디네는 "자신과 타인 중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나"는 질문과 함께 전신마장을 사용한다.
* 백룡은 거기에 의문을 표한다. 설사 실패를 최소화하더라도 어째서 힘을 신드바드 개인에게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가? 왜 자신 외의 존재와 힘을 나눌 수 없는가? 백룡의 그러한 질문에, 신드바드는 자신이 실패할거 같냐는 반문으로 답한다. 자신이 실패할거 같아 불안한게 이유라면 적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 2 던전을 나와 제 3 던전으로 향하는 알라딘 일행. 알라딘은 [[알리바바 사르쟈]]에게 그렇게 말한다. 신드바드는 신의 힘을 손에 넣었지만 알라딘 일행 네 명의 루프를 덮어씌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발견했을 때 신드바드는 당혹하기 보단 기뻐했다. "도전자"를 찾은 듯한 얼굴로. 알리바바도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며 맞장구친다. 확실히 알리바바에게 루프를 덮어씌우지 못한걸 알았을 때 그는 "넌 참 신비하다"고 알리바바를 높이 평가했다.
아르바의 말을 듣고 알리바바와 알라딘은 새로운 가능성을 추론한다.
* 앞장서 던전에 들어온 알리바바는 이번에도 기이한 던전 속의 풍경을 목격한다. 이곳은 결혼식장 같은 분위기의 던전. 재단 앞에 한 쌍의 남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17세의 신드바드와 그의 반려였던 [[세렌디네 파르테비아]]다.
신드바드는 세렌디네와 손을 맞잡고 던전 제파르의 이력을 설명한다. 이곳은 그가 17세 때 공략한 던전이며 그는 마침내 자신의 나라를 손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파르테비아로부터 어떤 섬을 사들였고 거기가 1차 신드리아 왕국이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세렌디네는 거래 상대인 파르테비아의 1황녀.
* 그 자체로 충격적인 이야기였고 신드바드의 입에서 카심의 이름이 나오자 알리바바가 격렬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것이 잠시, 곧 신드바드와 세렌디에는 동시에 전신마장을 사용하며 던전 제파르에 주어진 질문을 외친다.
* 대답을 요구하는 신드바드와 세렌디네는 동시에 제파르의 전신마장을 사용한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마장이 둘이라는 것, 모두 제파르의 전신마장을 하고 있는 것에 경악한다.
- 마기/348화 . . . . 9회 일치
* 알리바바의 "새로운 계획"이란 신드바드와 알라딘의 안을 합친 것으로 상하좌우로 둘러싸인 차원의 벽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 알리바바는 자신이 저세상에서 돌아올 때 사용한 "대마법"이라면 아주 작은 힘으로 모두를 죽일 필요 없이 위계와 루프의 구분을 모두 없앨 수 있다 장담한다.
* [[알리바바 사르쟈]]가 본 그동안의 싸움,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은 모두 세상을 개혁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알라딘은 흰 루프와 검은 루프의 구분을 없애는 것으로, 신드바드는 보다 상위의 신들을 모두 무찌르는 것으로 그걸 달성하려 했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둘 모두와 다른, 그리고 누가 희생할 필요도 없는 전혀 "새로운 작전"이 있다고 말한다.
* [[아르바(마기)|아르바]]의 무시하는 태도는 여전했지만 어쩐지 그의 말에 점차 귀를 기울인다. 알리바바는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있는가? 분명 자기 한 사람 뿐이다. 아르바가 끼어들어서 자신도 해당하지 않냐고 하는데, 그녀는 정신체로 잔류하는 것이니 알리바바와 경우가 다르다.
자기 개인의 힘만이라면 신드바드는 커녕 아르바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대단한 일을 달성하는 것, 이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르바는 그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하면 결국 네 힘이 아니다"고 하는데, 그의 말은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고 보통을 능가하는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드바드와 아르바 조차 알리바바에게 휘말린 인간이다. FANFAN상회 때도 그렇다. 신드바드는 그때 왜 알리바바를 도왔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끌어냈고 "운명" 조차 초월하는 성공을 거뒀다. 신드바드 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운명을 초월하는 알리바바. 그렇기에 그는 "나도 대단한 인간"이라 자부한다.
* 신드바드와 알라딘이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그 개혁안은 어떤 것일까? 알리바바는 둘의 차이부터 지목한다. 우선 신드바드는 세상을 수직 구조로 보고 "세로로 연결하는 작전"이다. 계속 천장을 뚫고 올라가 거기서 운명을 쥐고 있는 신을 쳐부순다, 더이상 쳐부술 신이 없을 때까지 그걸 반복한다. 결과적으론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가 사라지지만 모든 생명이 루프로 환원된다. 알라딘이 맞장구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데, 알리바바는 일단 제지하고 자신의 설명을 이어간다.
이번엔 알라딘의 세계다. 그의 착안은 "가로의 세계"다. 현세계에서 흰 루프와 검은 루프가 구분되어 있는 것을 타파하려 한다. 따라서 "가로를 연결하는 작전"에 해당한다. 이것도 분명 긍정적인 변화긴 하지만, 신드바드가 지적하듯 "운명을 쥔 존재"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답지 않게 잘난척하는 발언.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가로와 세로의 벽을 전부 박살내자"고 제안한다. 그건 알라딘도 금방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9회 일치
특성상 영화와 드라마에 단편 영상까지 많든, 적든, 크든, 작든 연결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영화에서 사건이 터지면 다른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이것이 언급되거나 한다. 미국 만화 스타일이 떠오르게 하며 이것이 영상화된 것이다. 일단 이러한 [[배경 세계 공유]] 스타일이 MCU가 최초는 아니나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인지도와 신용도를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마블 코믹스의 영화들이기에 마블의 캐릭터와 세력, 설정이 등장하며, 내용 중에는 코믹스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으나 그렇다 해서 코믹스를 100% 반영하지는 않고, 그렇기에 호불호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코믹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에 전혀 상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코믹스에 나온 것을 기본 소재로 두면서 MCU에서 독자적인 전개를 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 각 영화와 드라마들은 슈퍼히어로 장르라는 것을 전제로 각각 개성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은 재수 없는 부자가 영웅이 되어가는 이야기.
* [[앤트맨 앤 와스프]]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해도 판권의 문제 탓에 모든 캐릭터의 등장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엑스멘 시리즈의 경우가 그런 경우. 판타스틱 포도 마블의 전통 캐릭터들임에도 영화 판권 문제 탓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퀵실버와 스칼렛 위치의 경우에는 설정을 각색했고, 스파이더맨의 경우 영화 판건이 소니에 있으나 협상 덕에 등장이 가능해졌다.
* 소니 픽처스의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는 MCU와 아무 관련 없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MCU판 스파이더맨이 등장했으나 이 스파이더맨과 소니의 기존 스파이더맨 영화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MCU 이전에 나온 마블 관련 영화나 드라마도 MCU와 관련없다.
- 모나 색스 . . . . 9회 일치
맥스가 잭 루피노를 죽인 이후 등장, 이미 죽은 루피노에게 총을 난사하던 맥스를 제지한다. 그러고는 [[알렉스 볼더]]를 죽이고 맥스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은 루피노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후 맥스와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상태가 되지만 범인이 안젤로 펀치넬로 라는 말을 하고는 그나마 긴장 상태를 푼다. 자신도 펀치넬로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는 펀치넬로가 그의 아내이자 모나의 쌍둥이 자매인 리사 펀치넬로를 학대하고 있었기 때문.
이후 맥스와는 에이저 플라자에 쳐들어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회한다. 이때 모나는 니콜 혼에게 맥스를 죽이기 위해 니콜 혼에게 고용된 상태였지만 맥스에게 호감을 느껴 그를 죽이지 않고 동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습격해온 혼의 경호원들에 의해 사망한다. 맥스는 엘레베이터 안에 쓰러진 그녀의 시체를 보며 "솔직히 그녀는 차디찬 킬러가 아니라 좋은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차디찬 시체였다,"[* She was a nice girl, not a stone-cold killer, and now she was stone-cold dead.]라고 독백한다.
맥스가 [[블라디미르 렘]] 소유의 창고에서 [[스쿼키 청소회사]]와 총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등장. 경찰차 사이렌을 듣고 도망가려던 청소회사 직원들을 데저트이글로 죽여버렸다. 맥스에게는 이런식으로 만나는건 그만해야 한다는 말만 하고 사라진다.
살인 사건 용의자인 상태에서 형사인 맥스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와 자신과 맥스에게 청부업자가 붙었다는걸 알린다. 이후 스쿼키 청소회사가 아파트를 습격하자 도망친다.
이후 맥스와 함께 이너서클 멤버인 코크런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간다. 하지만 아파트는 이미 청소부들의 습격을 받은 후였고, 둘은 아파트를 탈출하다 윈터슨 형사와 경찰들에게 붙잡힌다.
체포되어 유치장에 들어가지만, 청소부들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한 때를 틈타 탈출한다. 이후 맥스와 함께 행동하지만 공사장에서 윈터슨과 또다시 마주치게 된다. 모나와 윈터슨이 서로 총을 쏘려 하자, 맥스는 동료 형사인 윈터슨을 쏘고 모나가 도망치게 한다.
- 박용우(배우) . . . . 9회 일치
[[중앙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1994년]] [[문화방송|MBC]] 공채 탤런트 24기로 데뷔했다. 1995년 MBC 인기 드라마 [[아파트]]에서 [[최진실]]을 쫓아다니던 호민 역, 영화 [[올가미(영화)|올가미]]에서 고부갈등에 끼인 남편 역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핸섬한 외모로 데뷔 당시 포스트 [[차인표]]로 주목받고 영화 쉬리의 [[낙하산]] 역으로 출연해[* 이때 이 배역으로 박용우와 캐스팅경쟁을 벌이던 배우는 [[이범수]], [[강성진]], [[공형진]]이었고, 최종적으로 [[공형진]]과 경합 끝에 이 배역을 따냈다고 한다.(공교롭게도 모두 [[중앙대학교|중앙대]] 선후배 사이였다.)] 관심을 모으기도 했으나, 이후 [[조재현]], [[김명민]] 등과 함께 작업했던 영화 [[스턴트맨]]이 제작 중단되는 등 잠시 힘든 시기를 거쳤다.
그러다가 [[2003년]] [[한국방송공사|KBS]]의 [[KBS 대하드라마|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경대승]] 역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더욱이 이 캐스팅은 초기 미스캐스팅이라는 여론[* 심지어 그 친하다는 정우성까지 '''형이 장군이라곸ㅋㅋㅋㅋㅋ'''이라며 --비--웃었다 한다.]을 불식시킬 만큼 호연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명성을 가져다 준 역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사극에서의 호연으로 [[무명]] 시절을 벗게 된 [[케이스]]로는 [[김명민]]이 맡았던 [[이순신]] 역,[* 박용우와 김명민은 2002년 '스턴트맨' 이란 영화의 투톱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촬영까지 진행했었다. 그러나 김명민의 부상과, 치료 후에도 흥행 전망에 비관적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포기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 후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침체기를 겪은 두 배우가 나란히 대하사극 주인공들로 인상 깊은 연기로 재기했다.] [[김남길]]이 맡았던 [[비담]] 역 등이 있겠다.
2년 후인 [[2005년]]에는 영화 [[혈의 누(영화)|혈의 누]]에 [[악역]]으로 출연, 주인공 [[차승원]]마저 능가하는 악마적 연기를 선보여 대대적으로 재조명된다. 그 다음 해인 [[2006년]] [[최강희(배우)|최강희]]와 함께 주연한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혈의 누와는 대비되는 소심하고 코믹한 남자 주인공으로도 어필했다.
*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설이 있다. 여친이었던 조안이 박용우의 배바지와 엄청 큰 메이커 버클벨트(...)를 하고 나온 모습에 반했었다는 발언(자기 딴에는 멋부린다고 부린거였다. [[유재석]]이 그 이야기를 듣고 동조했다.)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월드컵]]이 지나도 한참 지난 어느 해, 고깃집에서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봤다는 [[안선영]]의 목격담 때문에. 그런데 [[정장]]을 입은 모습은 제대로 [[간지폭풍]]이다.
상술했듯이 11살 연하인 연기자 [[조안]]과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여배우가 친구이자 연극배우인 [[오만석]]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귀다가[* 아직 박용우와 조안이 연인 사이였을 때 박용우가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여자친구와 드라마에 출연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으로 절친한 친구였던 [[오만석]]을 뽑은 적이 있다...] 또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기사가 났다. 누가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 이후 둘은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채널A]]의 <[[쇼킹#s-2|김수미의 쇼킹]]> 프로그램에서도 "예전에 [[신현준(배우)|신현준]]과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냐."고 언급했고 박용우는 이에 대해 언급을 꺼린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2번 연속으로….
- 배경 세계 공유 . . . . 9회 일치
미국 만화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향 탓에 서양권의 주류라 생각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서 동양권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이 있다. 만화가 [[미나기 토쿠이치]]의 만화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이 그런 경우.
SF영화 스타워즈와 관련 애니메이션, 만화 등이 있다.
해리 포터 실사영화 시리즈와 신비한 동물사전 실사영화 시리즈가 소속되어 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하이브리드 스타일이 될 것이라 한다.
장난감 회사인 하스브로와 관련이 있으며 준비 단계라 한다. <지 아이 조(G.I. Joe) 시리즈> 외에도 <M.A.S.K.>, <Micronauts>, <Rom>, <Visionaries: Knights of the Magical Light>가 등장한다는 정보가 있다. 또한 <트랜스포머(Transformers) 시리즈>가 리붓트되면서 이 프랜차이즈에 소속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이러한 것이 확정이라는 보장은 없다.
계획이 언급된 상황. 몬스터버스와의 크로스오버도 언급되었으나 이 부분은 루머의 가능성도 있다.
<[[성방무협 아웃로스타]](星方武侠アウトロースター)>는 <[[성방천사 엔젤링크스]](星方天使エンジェルリンクス)>와 배경 세계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Toward Star Worlds>라고 한다. 이 세계는 아웃로스타의 원작자인 이토 타케히코(伊東岳彦)의 출세작 <[[우주 영웅 이야기]](宇宙英雄物語)>와도 연관성이 있다.
'산드로비치 야마코'(サンドロビッチ ヤバ子)의 만화들인 <구도의 권(求道の拳)>, '다로메온'(だろめおん) 작화인 <켄간 아슈라(ケンガンアシュラ)>와 속편인 <켄간 오메가(ケンガンオメガ)>, 'MAAM' 작화인 <덤벨 몇 킬로까지 들 수 있어?(ダンベル何キロ持てる?)>는 배경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특정 타이틀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다른 타이틀에 등장하기도 한다.
- 백승주(정치인) . . . . 9회 일치
[[1961년]] [[3월 20일]]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에서 태어났다. 구미 오로초, 대구 성광중,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3월]]에 국방차관으로 선임되었다. 보통 국방차관은 예비역 [[중장]]이나 드물게 재정 전문가가 보임되는데 비해서 순수하게 안보 연구(북한군사 전문)를 해온 [[민간인]]이 선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역대 최연소 차관이며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거의 독점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몇 안 되는 민간인[* 여기서 민간인은 비장성 출신.] 출신이다. 참고로 병역은 [[중위]]로 마쳤다.[* 아무래도 보직이 보직이다 보니 예비역 병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이 파격적이다.]
[[카운터파트]]가 누구인지로 국방 차관의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 [[미국]]에 방문했을 때는 국방부장관[* United States Deputy Secretary of Defense. 국방부 장관이 아니라 국방 부장관이다.]인 [[로버트 워크]]와 군수차관[* 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Acquisition, Technology and Logistics. 언론에서는 획득차관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인 [[프랭크 켄달]]을 만났다. 일본 [[방위성]]과 만날 때는 [[카운터파트]]로 사무차관[* [[의원내각제]]라 국회의원이 임명되는 방위대신, 방위부대신, 대신정무관과 달리 방위성 [[내부승진]].] [[니시 마사노리]]를 만난다.
[[최순실 청문회]]의 새로운 X맨으로 등극 중이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우병우 증인 등 변호하는 듯한 답변 유도와 태블릿PC에 집중하고 야당 의원에게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 백미는 왜 최순실의 PC를 조사했냐는 것. 그리고 [[노승일]]이 멋대로 문서를 복사해 갔다고 범죄행위로 몰았다. --노승일은 쿨하게 처벌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승일에게 무슨 의도로 문서를 복사했냐는 등 어떻게든 물타기를 시도했다가 의도와 정 반대로 답변이 나와서 모두 실패했다. 박근혜와 친족관계임이 밝혀지면서 '친박 이완용을 넘어서는 친족 백승주가 왔다' 는 평이 나왔다.
1.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0804&yy=2016|불법이지만 단 1달러도 줄 수 없다!]] 국방부 차관 재직당시인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나라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이 MS 소프트웨어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사용료 지급을 요구했다. 윈도 서버 접근 권한인 '사용자 서버 접속 허가'(CAL·Client Access License) 구매 숫자를 훨씬 초과해 윈도 서버에 접속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MS사는 피해 액수가 무려 연 2011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으나, 백승주는 '''라이센스 등록 안하고 접속하는 곳 만큼 등록해놓고 접속 안 하는 곳도 많다! 라이센스 관리를 미숙하게해서 그렇지 플러스 마이너스 따져보면 우린 정당하게(?) 돈 내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 1달러도 못 준다! => 우리가 자체 조사해보니 불법 사용자도 없더라![* 말이 자체 조사지, 군부대와 군시설에 공문 보내서 혹시 불법으로 쓰는 곳 있으면 자백해라 정도 였을 것이다.] => 못 믿겠으면 니네가 니네 비용으로 전수조사해서 증명해라! => 대신 군사기밀을 건드려서는 안되고 당연히 우리는 조사에 협조도 못해준다!!!'''라는 식의 --어거지--주장을 강력하게 펼쳤다.
당연히 MS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항의 했으나, 국방부는 배째란 듯이 아예 MS불매 운동에 시동을 걸었고 MS는 --울며 겨자먹기로--국방부와 MOU를 체결하며 이에 대해선 그냥 묻지 않는 것으로 끝을 내버렸다.
- 백일섭 . . . . 9회 일치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청와대로 초청받은 연예인 1호로 알려지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백일섭이 극 중에서 취중에 독특하게 부르는 옛 노래〈홍도야 우지마라〉가 다시 인기를 끈 일이 유명하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6011010100691636&type=1 박원숙 정혜선 백일섭, 맛깔스런 연기에 "역시!"]《머니투데이 스타》</ref> 가수 [[조영남]]과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 [[2002년]] [[MBC]] 주말연속극 《[[여우와 솜사탕]]》 ... 봉진석 역
* [[1970년]] 《[[민비와 마검]]》
* [[1972년]] 《[[갑돌이와 갑순이]]》 ... 갑돌이 역
* [[1973년]] 《[[또순이와 갑순이]]》
* [[1979년]] 《[[병태와 영자]]》
* [[1983년]] 《[[참새와 허수아비]]》 ... 유진 역
* [[2006년]] 《[[누가 그녀와 잤을까?]]》 ... 신부 역
* [[1994년]] [[동방종합식품]] 와송엽엑기스
- 보루토/7화 . . . . 9회 일치
* 우치하 사스케와 우즈마키 보루토, 오카게 일행이 현장에 도착, 나루토를 구조한다.
* 오오츠츠키 모모츠키는 다루이와 가아라를 상대하나 킨츠키가 당하고 일행에게 포위 당한다.
* 황무지에 거대한 목둔의 꽃이 피어 올라있다. 오오츠츠키 모모츠키와 킨츠키는 여기에 우즈마키 나루토를 묶어놓고 구미 쿠라마를 뽑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거대한 차크라여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결국 모모츠키는 작업을 멈추고 잠깐 쉬는데 나루토는 "우리들 '닌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니깐"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때 목둔의 밑둥이 잘리고 라이카게 다루이와 미즈카게 쵸쥬로가 기습한다. 모모츠키는 이들이 나타나자 "검은 망토"(우치하 사스케)의 짓이라고 직감한다.
우즈마키 보루토는 아버지를 포박하고 있는 목둔의 줄기를 끊어버리고 사스케가 추락하는 나루토를 붙잡아 안전하게 착지한다. 뒤따라온 카게들은 각자 모모츠키와 킨츠키를 상대로 대치. 다루이와 카제카게 가아라가 모모츠키를, 쵸쥬로와 츠치카게 쿠로츠치가 킨츠키를 마크. 네 명의 카게는 자신만만하게 "우리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 생각하지 마라"고 도발하고 모모츠키는 "까고 있다"는 원색적인 욕설로 대꾸한다.
* 구조된 나루토는 사스케와 보루토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가눈다. 나루토는 보루토가 자신의 소년시절 걸치던 재킷을 입고 있는걸 발견한다. 사스케는 그걸 "닌자가 됐다는 것"이라고 심플하게 표현한 뒤 킨츠키를 상대하러 간다. 나루토는 "자신의 그림자분신을 보는 것 같다"고 묘한 기분을 표현한다. 보루토는 "전보단 조금 멋지게 보이지?"라고 말하고 나루토는 "그래, 전보다는."이라고 대답한다.
* 사스케는 킨츠키와 검투를 벌인다. 기술적으론 사스케의 우위지만 킨츠키가 힘은 더 강하다. 킨츠키의 펀치를 허용하는데 막기는 했지만 벽까지 떠밀려 처박힌다. 킨츠키를 승기를 잡으려고 달려든다. 그때 후방에서 거대한 참격이 날아오는걸 감지하고 피한다. 쵸쥬로가 히라메카레이로 공격한 것이다. 킨츠키는 피하긴 했지만 화가 났는지 "잡졸 주제에 나선걸 후회하게 해준다"며 공격대상을 쵸쥬로로 바꾼다.
- 보에몽 1세 . . . . 9회 일치
이후 1084년에 아버지가 다시 비잔티움을 침략할때 따라가서 아버지와 함께 디라키움 등 그리스 서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지만, 진지내에 역병이 들어 이듬해에 케팔로니아섬에서 아버지인 로베르가 죽게된다.
그러던 중,교황 우르비노 2세가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에게서 지원 요청을 받고 십자군을 선포하자, 그는 즉시 아말피 시를 내버려두고 조카인 탕크레드와 함께 500명의 기사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한다. 당시 비잔티움은 [[군중십자군]]때 십자군이 부린 행패와 1차 십자군에 참여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군대와의 갈등으로 인해 십자군과 상당한 갈등에 빠져 있었는데, 이상황에서 보에몽이 오자, 알렉시오스는 과거 그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았다가 축출당했었던 제국의 서부영토(디라키움, 에피루스등)의 상속권을 요구하지 않을까 고민하게된다.
물론 그가 아버지가 못다한걸 이루겠다는 야심을 버린것으로 보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 행동은 원정을 요청했던 알렉시오스에게 인정을 받아 십자군의 '종교적' 지도자였던 아데마르 주교와 배치되는 '세속적' 지도자가 되려는 생각에서 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알렉시오스에게 제국의 아나톨리아군 총사령관직을 요청하기도 했다.]
안티오크 공작으로서 보에몽은 명목상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독자성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대립 관계였다. 주변 이슬람 세력을 정복하여 영토를 늘려나갔는데, 이렇게 이슬람 세력과 대립하다가 결국 이슬람 셀주크계 다니슈메드 왕조(Dânişmendliler)에 포로로 잡히고, 당시 그와 대립하던 알렉시오스 1세에게 이송될뻔했기도 했으나, 군사적 협약을 미끼로 풀려나 다시 공작위를 되찾는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 왕에게로 가 그에게 군사적 지원을 얻어낸 뒤, 남이탈리아 영주들에게 황제가 십자군을 배신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해 그곳의 영주들이 자신을 돕게 공작을 한뒤, 남부 이탈리아에서 디라키움에 상륙해, 그곳을 통해 콘스탄티노플로 가려고 시도한다.[* 이는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가 비잔티움 침공을 시도할때 거친 경로와 흡사, 아니 똑같다. ~~그리고 둘다 털렸다.~~]
그러자 알렉시오스 1세는 그에 대응해 남이탈리아에 자신은 십자군을 배반한적이 없다면서 보에몽의 공작을 최대한 무마한 후, 베네치아 공화국을 끌어들여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자유무역을 미끼로 보에몽의 보급선들을 공격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만큼 교활하고 위험한' 보에몽의 군대와 직접맞붙는걸 피하면서 최대한 농성을 하는 전략으로 나섰고, 보급이 차단되면서 진격이 지지부진해지자 보에몽군의 사기는 날로 떨어져간다.
결국 보에몽은 알렉시오스에게 패배했고, 그에게 안티오크의 비잔티움 속국화와 안티오크의 확장을 사실상 저지하는 조약을 맺게 됀뒤, 1111년 실의속에 죽는다
- 블랙 클로버/113화 . . . . 9회 일치
* 아스타와 [[미모사 버밀리온]]은 어떻게든 자군의 크리스탈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나 잭스는 자신의 마법도 밝히지 않을 뿐더러 드러누워서 잠이나 잔다.
* 자신이 자줏빛 범고래단의 부단장 "잭스 류그너"라 주장하는 사내. 하지만 진짜 잭스는 그에게 당해 어느 골목에 버려져 있다. 사내는 뻔뻔하게 잭스를 사칭한데다 뒤늦게 대회장에 도착해 [[마법제]] 율리우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모욕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는 늦은 것에 대해서도 "곤란해하는 할머니가 있어서 마법기사단답게 도와줬다"는 뻔한 거짓말로 둘러대는데 마법제는 그런 태도나 거짓말에도 특별히 개의치 않는다. 물론 그게 측근 마르크스가 넘어가준다는 건 아니었다. 그는 잭스라는 사내를 무례하다 꾸짖으며 머리를 향해 마법을 날린다. 근거리에서 날린 마법이나 잭스는 훌쩍 뛰어넘어 피해 대회장으로 내려선다.
이어서 발표된 팀 별로 인원이 나눠진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가 P팀으로 묶였다. 헌데 피차 첫인상이 좋지 않은 입장이다. 유노는 노엘을 "아스타를 따라다니는 촐랑대는 여자"로 생각하고, 노엘은 유노를 "아스타의 소꿉친구라는 점잔떠는 인간" 정도로 치부한다. 이외에 "엔 린가드"라는 인물이 한 팀.
C팀은 [[매그너 스윙]]과 솔 마론이 배정. 네르슈 버밀리온이란 인물도 함께다. 성으로 보아선 홍련의 사자단 소속인 듯 한데. 그런데 네르슈가 얼굴을 비출 기회도 없이 매그너와 마론 간의 신경전부터 시작된다. 마론이 매그너를 "쬐끄만 양키"라 디스하자 매그너는 "네 쪽이 너무 큰거나 시커먼스"라고 응수. 이쪽은 경기 시작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사생결단 낼 판.
K팀은 [[클라우스 류넷]]이 그 악명 높은 [[락 볼티어]]와 한 팀이 되어 겁을 먹는다. 그런데 막상 만나본 락은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잘 부탁한다"고 붙임성 좋게 악수를 청해와 깊은 괴리를 느낀다. 이들과 "브리 엔젤"이란 인물도 한 팀.
O팀은 [[알렉드라 산드라]], [[솔리드 실버]], "데미트리 브린트"의 조합. 일단 솔리드와 알렉드라가 서로 경멸하는 관계로 분위기가 매우 험악하다.
노엘은 1회전부터 껄끄러운 오빠 솔리드 노엘의 팀과 붙게 됐다. 긴장하는 노엘과 대조적으로 솔리드는 "직접 끝장내주겠다"고 즐거워한다. 핀랄도 대진운이 묘해서 1회전만 넘기면 자신의 아우이자 차기당주, [[랜길스 룰러케이트]]와 맞붙게 된다.
* 수정마법사가 수집한 적의 위치정보는 곧바로 아군 멤버들에게 전달됐다. 화염마법사와 돌마법사는 힘을 합쳐서 멋진 저격무기를 만들었다. 돌 마법 "스톤 롱보우"로 만든 석궁에 화염 마법 "버스트 쟈벨린"으로 만든 화살을 쏘아 날렸다. 이들은 로열 나이츠 시험보다도 마법제를 우롱한 잭스에 대한 보복이 우선이었다. 급조됐다고 볼 수 없는 완성도 높은 역할분담과 효과적인 공격. 미모사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공격은 정확하게 B팀의 크리스탈을 맞춘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9회 일치
* 젤은 실제로 죽은 파나와 증오의 파나가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튕겨낸 샐러맨더의 마법탄이 [[라드로스]]에게 클린 히트. 너덜너덜해진 라드로스느 숲으로 추락한다. [[판젤 크루거]]는 그의 마력이 사라지는걸 느낀다. 아스타는 어리둥절해하며 무슨 일이냐고 소리친다. 젤은 설명보다도 아스타가 전보다 강해졌다고 칭찬을 한다. 아스타는 잠시 우쭐하지만 곧 화제로 돌아와 옆에 있는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는 적인데 왜 같이 있냐고 따진다.
마르스는 젤이 다이아몬드 왕국을 떠난 후 "마도학자 모리스"란 인물 밑에서 가혹한 나날을 보냈다. 그 와중에 힘이 되어 준 것이 친구였던 파나. 하지만 모리스의 훈련 과정에서 마르스와 파나는 서로를 죽이도록 강요받고 그 결과 마르스는 파나를 죽이고 만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마르스는 오랜 세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왔는데.
*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운 일을 기점으로 따뜻한 마음을 되찾았던 마르스는 파나에 대한 속죄로 전투 중 생기는 무고한 희생자들을 몰래 구하며 지내고 있었다. 지금 다이아몬드 왕국은 마도학자 모리스가 뒤에서 --비선실세--실세로 행세하며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 그가 다이아몬드 왕국을 배신한 것도 그런 이유로, 이미 파나가 사랑했던 다이아몬드 왕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랬던 마르스는 눈 앞에 파나와 닮은 소녀 "증오의 파나"가 나타나자 이성을 상실한다. 친구인 파나가 어쨌든 살아있다고 생각해 버린 마르스는 앞뒤 보지도 않고 일단 파나에게 달려가려다 아스타에게 제지 당한다. 사정을 모르는 아스타는 마르스가 황당한 짓을 한다고 여기다 둘이 아는 사이인 듯 하자 또 놀란다. 그러나 정작 파나는 마르스는 모른다며 공격을 가한다.
* 젤은 분명 파나라는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르스, 라드로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키우던 아이였다. 그가 망명하고 학생들이 모리스 밑에 들어간 이후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 자세한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증오의 파나를 뜯어 보면 그때의 파나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변신마법이라고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할 이유도 딱히 없을 터.
* [[노엘 실버]]는 자신의 물마법으로 파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핀랄의 공간 마법도, 바네스의 실 마법도 파나의 근처에는 접근할 수가 없고, 노엘의 물 마법으로 직접 공격을 가하면 반발 때문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노엘은 역시 아스타의 반마법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 산킨고타이 . . . . 9회 일치
[[에도 시대]]에 시행된 제도. 다이묘들이 에도에 처자를 두고 본래 부임 영지와 에도를 왕복하도록 한 제도이다. 지방의 다이묘들로 하여금 가족들은 에도에 머물게 하는 한편 다이묘 본인도 1년은 에도에, 1년은 본래 번에 있도록 정하고, 반복해서 오가도록 한 제도이다. 각 다이묘들은 에도에 출장소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서 도쿠가와 막부가 열리고 에도 시대가 시작되자, 다이묘들은 에도에 처자를 두고 영지와 에도를 오가면서 생활하는 관행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무질서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에 폐해가 많아,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반포한 간에이령(寛永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의 제2조에 지정되어 공식적인 제도가 되었다. 법령으로 정해진 까닭은 이전까지는 참근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아 오히려 다이묘들이 불편[* 일일이 참근할 것인지, 영지에 돌아갈 것인지를 막부에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하였기 때문에 1년 간격으로 하도록 명확하게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법령이 정해짐으로서 다이묘들이 막부에 '인사'를 오는 것이 명확하게 결정되어, 막부와 다이묘의 상하관계가 완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육로 이동이 대부분이지만 규슈와 시코쿠 지역의 다이묘들은 배로 이동하기도 했는데, 해로의 경우 당시의 낙후된 선박 및 항해기술의 한계로 인해 육로와는 달리 일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도 장거리 항해는 꺼리고 되도록 육로 위주로 이동했다.
이러한 인질 정책 때문에 오히려 다이묘의 가족(본처와 적자)들은 지방 영지에 내려가지는 것이 금기시 됐다. 그래서 다이묘들은 지방에 [[첩]]과 [[서자]]를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막부 말기에는 이 금제가 해제되었는데, 그 때문에 인질 걱정없이 반란을 일으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본래 영지가 지방에 있는 다이묘가 '상경'하는 현대의 관점에 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오히려 본래 수도 출신이었던 다이묘가 지방으로 '하향'하는 이미지에 가깝게 된다. 다이묘들은 대부분 에도에서 태어나서, 유년기를 에도에서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적자가 대를 이을 수 없는 경우가 되서 지방에 있던 서자가 대를 이어받게 된 경우라면 '상경'하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일본 시대극에서도 '다이묘 행렬'은 단편적으로만 묘사되지만, 일본 만화 '[[츠라츠라 와라지]]' 등의 일부 작품에선 제법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9회 일치
캣 그랜트와 인터뷰를 하게 된 카라는 가쉽적인 질문에 짜증을 내며 떠나버린다. 그런데 우연히 슈퍼맨과 [[사촌]]이라는 것을 말해버리고 캣 그랜트는 크게 이걸 보도한다. 알렉스는 카라에게 슈퍼걸의 정체를 비밀로 하라고 권유하지만, 그랜트는 슈퍼걸에 대해서 모든걸 까발리려고 작정하고 있다.
반 인간, 반 기계로 된 --짝퉁 아이언맨 같은-- 적이 나타나, 슈퍼맨에게 상실의 고통을 알려주고 싶다고 소리치며 카라에게 도전을 한다. 카라와 대결하던 적은 아머가 손상되자 도주한다.
윈은 같은 빌딩의 한 방[* 심장마비로 죽은 보험설계사가 쓰던 곳]에다가 사무실을 차리고,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하여 슈퍼걸 서포트를 위한 사무실을 만든걸 카라와 제임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방사능을 추적해서 리액트론을 잡을 방법을 알려준다.
맥스웰 로드는 자기 소유의 연구소에서 시속 500km까지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자기부상열차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리액트론이 연구소에 난입해와서 핵분열 기술자를 찾는다. 리액트론은 기술자를 한 명 납치가려고 하는데, 맥스웰 로드는 자신이 나서서 잡혀간다.
카라는 알렉스와 제임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깨어난다. 몇 시간이나 기절을 했으며 슈퍼맨은 화산폭발로 남태평양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구출된 맥스웰 로드는 슈퍼걸은 언급하지 않고 슈퍼맨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말한다.
카라는 제임스에게 어떻게 슈퍼맨이 자신을 이렇게 빨리 도와줬냐고 추궁보는데, 제임스는 슈퍼맨이 자신에게 준 연락용 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연락을 했다는걸 밝히는데, 카라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면서 화를 내고 이렇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겠냐며 상심한다. 알렉스는 카라를 위로해준다.
파티에 지각한 카라는 그랜트에게 추궁당해서 궁지에 몰리지만 윈의 서포트로 도움을 받는다. 맥스웰 로드는 그랜트와 춤을 추며 슈퍼걸에 대한 흥미를 드러낸다.
카라는 행크와 알렉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행크는 앞으로 인간과 싸울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아마 알렉스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슈퍼걸을 돕게 될 것 같다고 중얼거린다.
상심해있던 카라에게 클락이 메시지를 보내오며, 리액트론을 물리친 것을 칭찬해준다. 다시 기운을 되찾은 카라는 알렉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사이렌을 듣고 날아간다.
- 식극의 소마/191화 . . . . 9회 일치
* 센트럴의 지원이 끊기는건 확정이 됐지만, 소마와 도지마의 도움으로 하야마와 시오미도 쿄쿠세이 기숙사 입성이 성사된다.
* 미토 이쿠미, 십걸 모모와 대결에서 패배
* 이사미 알디니, 십걸 츠카사와 대결에서 패배
* 아라토 히사코, 십걸 사이토와 대결에서 패배.
* 하야마는 멘치까스를 먹자 소마가 겪었던 시행착오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흘러들어온다. 도지마 긴의 지적처럼 그가 홀로 틀어박혀 있는 사이 소마는 승부할 상대, 하야마에게 눈을 떼지 않고 요리의 완성도를 높여왔던 것이다. 그저 자신을 지우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하야마와 달리 말이다.
* 이제 판정의 시간이다. 나키리 소우에는 자신의 판정을 준비한다. 하야마는 이미 멘치까스를 먹고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것 보다는 잊고 있던 즐거움, 친구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는 신이 내린 계시와도 같이 소마가 깨닫게 해줬다고 감사를 표한다.
*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소마와는 달리 허탈하게 앉아 있는 하야마에게 시오미가 "또 집이 없어졌다"고 농담한다. 그러자 소마가 둘 다 쿄쿠세이 기숙사로 오는게 어떻냐고 제안한다. 도지마도 센트럴이 견제할지 모르지만 쿄쿠세이 안에서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힘을 준다. 하야마는 한 번 배신했던 처지라고 말하지만 소마는 그런건 센트럴과 연을 끊고 학생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96화 . . . . 9회 일치
* 그의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도지마와 달리 아자미는 "훌륭하다"며 묘한 감동을 받는데.
* 죠이치로는 또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했는데 별거 아닌 일처럼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러더니 들어오자마자 도지마와 아자미에게 요리승부를 하지 않겠냐고 권한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텐션도 낮아 보여서 도지마와 아자미는 혹시 슬럼프가 온거 아닌가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식극을 해봤더니 공연한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죠이치로는 콩쿠르를 격파하고 나서도 여전히 쌩쌩해서 도지마와 아자미를 연거푸 패배시킨다. 도지마는 그 놀라운 체력과 무엇보다 뛰어난 발상력으로 만들어낸 요리에 경탄하며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고 다짐한다. 죠이치로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 기숙사가 최고"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아자미도 다음에는 지지 않겠다며 눈물을 훔치는데 죠이치로는 실컷 놀려먹으며 즐거워한다. 이렇듯 표면상으론 크게 이상할 것도, 변한 것도 없는 듯 했다.
* 죠이치로가 대표로 선발된 소식은 토오츠키 학원 전체에 퍼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출전을 축하하며 응원한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선출제로 뽑혔으니 선출의원들에게 꼬리쳐서 얻은 자리가 아니냐고 시비를 건다. 특히 그 중심에는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이 있는데 집안의 위신 때문에라도 십걸에 꼭 들어야 했지만 죠이치로 때문에 밀려난 전력이 있다. 그는 앞장서서 죠이치로를 깎아내리며 "출전권을 걸고 식극이라도 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고 빈정거린다.
* 그렇게 해서 실현된 50 대 1의 연대식극. 그 자체로 엽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죠이치로는 연승가도를 달리며 상대 진영을 압살한다. 오히려 "10명 씩 덤벼봐라"고 호기를 부리는데 상대가 어떤 수로 나오든 죠이치로는 그 이상가는 발상력과 기술이 가미된 요리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불만자들의 리더였던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도 그의 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를 비롯한 불만자들 진영에선 "어차피 천재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있다.
마침내 모두 쓰러지고 사와츠바시만 남은 상황. 죠이치로가 상대해줄테니 올라오라고 하지만 그는 겁을 먹고 나서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고 죠이치로는 아주 불쾌한 기억을 떠올린다.
* 흥분한 죠이치로는 사와츠바시의 멱살을 끌어당겨서 위협한다. 그는 끝없이 "앞"을 개척하는 괴로움을 알기나 하면서 천재타령이냐고 비난한다. 그런 되먹지 못한 각오로 "진심으로 정진"같은 그럴듯한 말을 떠들지 말고 요리 만들 생각이 없다면 때려치우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 신랄한 모습에 학생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라며 두려워한다. 독설만이 아니라 그가 승리한 자리엔 망연자실한 패배자들이 널려있다. 누가 봐도 이것은 정상적인 승리도 아니고 평소의 죠이치로와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 식극의 소마/202화 . . . . 9회 일치
* [[타쿠미 알디니]]의 선전으로 결의를 새롭게 다지는 [[나키리 에리나]]와 [[유키히라 소마]].
* 소마는 에리나보다 먼저 죠이치로의 의도를 눈치채고 조리를 시작. 감자를 잘게 잘라 치즈와 치리멘자코[* 멸치, 정어리 따위의 치어를 쪄서 말린 것]에 함께 굽는다.
* [[타쿠미 알디니]]가 보여준 투지는 어영부영 승부에 임하던 [[유키히라 소마]]와 개인적인 불안 때문에 집중하지 못했던 [[나키리 에리나]]를 각성시킨다. 둘은 진지하게 승부게 임하기로 하는데, 특히 에리나는 우선 리더인 [[사이바 죠이치로]]의 의향을 정확히 파악하는데서 시작하려 한다.
그녀는 쿄쿠세이 기숙사에서 접했던, 소마와 동료들이 보여준 "엉망진창인 발상끼리 부딪히는 걸로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 나타난다"는 교훈을 되새긴다. 지금 소마와 죠이치로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서로를 배려하거나 보충해주는걸 넘어서 각자의 발상을 일단 부딪혀보는 것으로 새로운 답을 만들려는 행동들인 것이다. 그것이 도지마와 다른, 사이바가 에리나와 죠이치로에게 부과한 "시험"인 것이다.
* 그때까지 요리란 완전히 계산되고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것이라 여겼던 에리나는 평소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갑자기 스테이크를 굽는, 옆에서 보면 정신나간 짓에 합류하는 결단을 내린다. 아쉬 파르망티에는 고기가 쓰이긴 하지만 다지거나 잘게 썬 것을 쓰지 스테이크를 통채로 쓰진 않는다.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의미를 모르겠다고 혀를 차지만 소마와 죠이치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이러는 사이 센트럴 측에서는 아자미가 연대식극의 세부 룰에 대해서 조율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한다. 그는 그들의 열차와 다른 열차들이 교차하는 어떤 지점에서 세부룰을 확정하고 딸 에리나에게서 자신이 바라던 대답을 듣겠다고 기대하고 있다.
- 식극의 소마/218화 . . . . 9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는 방금 전 상황과 이상할 정도로 츠카사와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이번 2회전에선 빠지겠다고 선언, 쿠가에게 차례를 양보한다.
* 매치업은 진작부터 사이토를 노리고 트레이스를 해온 미마사카가 사이토와 대결. 메기시마는 린도와 붙는다.
* 그리고 자신의 바람대로 츠카사와 싸우게 된 쿠가. 하나같이 무모한 매치업이라고 말하는 중 소마만은 쿠가의 승리를 기원한다.
* 2라운드 대전자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 반역자의 대기실이 떠들썩하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건 [[나키리 아리스]]. 그녀는 [[사토시 잇시키]], [[메기시마 토스케]], [[쿠가 테루노리]]로 현재 낼 수 있는 최강 전력을 구성해 "최대 전력을 단번에 투입해 적을 빠르게 제압한다"는 이론을 주창한다. 그녀는 이 이론을 강조하기 위해 별 상관없는 수식까지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는 열성을 보였다. 여기에 대항해 [[마루이 젠지]]는 강한 카드를 순식간에 소모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고했다. 상황을 보면서 전력을 온존하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 그 옆의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별 의견이 없다.
멋대로 무언가를 양보한 소마가 "에리나가 벌써 3명을 정했을지 모른다"며 서둘러 돌아가자고 한다. 쿠가가 분위기에 휩쓸려 그를 따라가지만 곧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츤데레스럽게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 답지도 않은 연극까지 한다고 툴툴대는데 소마는 모른척하며 그런거 보단 자기는 [[식극의 소마/162화|전에 츠카사 에이지와 싸운 적]]이 있으니 이번엔 쿠가 선배의 차례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이게 쿠가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신과의 대전은 한사코 피하는 츠카사가 왜 소마하고는 승부했단 말인가?
* 연대식극 2회전의 무대가 시작됐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반역자 측에서 나타난 출전자들은 이 셋. 쿠가, 메기시마, [[미마사카 스바루]]다. 셋 모두 더할나위 없이 자신감에 차 보이지만 관중들의 평가는 미묘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는건 역시 전 3석 메기시마. 그를 누구와 싸우게 하느냐가 2라운드 승패를 가늠할 것이다. 미마사카는 그저 "기분 나쁘다" 외에는 논외. 그리고 쿠가는 전 십걸 출신인데도 "3학년을 꺼내면 무난하게 이길 상대"라고 상당히 평가 절하 당한다. 어느 정도는 쿠가 자신도 그런 평가를 알지 모른다. 센트럴 측 출전자가 발표되려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재점검하고 소마의 승리를 떠올린다. 소마도 이겼는데 여기서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쿠가 테루노리의 이름이 운다면서. 그는 호기를 부려서 센트럴 측을 향해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 린도가 대결 상대를 정하자고 한다. 먼저 응하는 것은 미마사카. 처음부터 사이토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트레이스하고 있는 상태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나는 사이토 소메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입버릇을 따라하는데. 사이토는 그런 부분을 재미있다고 평하며 승부에 응한다. 메기시마는 린도 쪽으로 도전. 남은 것은 자연히 쿠가와 츠카사. 쿠가가 바라마지 않던 매치가 성립했다. 관중들은 8석 대 1석이라며 무모한 대결이라고 혹평하지만 어쨌든 소마는 쿠가의 선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공이 울리는 2라운드.
- 식극의 소마/220화 . . . . 9회 일치
* 1라운드가 센트럴의 전폐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나자 센트럴의 개가 된 [[카와시마 우라라]]가 안절부절 못한다. 오로지 센트럴의 승리만을 바라며 2라운드 대결 카드를 소개한다. 1카드는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 주제는 녹차다. 2카드는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 주제는 고추. 3카드는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 주제는 참치.
쿠가는 린도가 고추를 뽑았다는 말을 듣고 그거야말로 자기 특기였다며 통탄한다. 하긴 그의 전공은 사천요리. 아쉽지만 메기시마의 선전을 기원한다. [[하야마 아키라]]는 쿠가와 츠카사의 대결도 신경쓰이지만 2카드 대결에도 눈을 떼지 못한다. [[쿠로키바 료]]도 공감한다. 전 3석과 현 2석의 대결. 어떻게 보면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치열한 경합이다.
* 외부의 주목도가 어떻든 메기시마는 느긋하다. 그는 주제를 적은 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고추로 뭘 만들지 고민해 본다. 반면 린도는 거침이 없다. 벌써 주재료를 정하고 메기시마에게는 "고민할 틈이 있냐"고 도발한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악어]]. 일본에선 매우 희귀한 재료다. 린도가 살아있는 악어를 고르자 지켜보던 이들이 술렁거린다. 물론 구하지 못할 재료는 아니지만 식극이란 무대에서 이런 특수한 소재를 고른다는건 대단히 자신이 있다는 얘기. 감옥에 갇힌 반역자들이 수군대자 카와시마가 괜히 기세등등하다. 그녀는 린도가 토오츠키 학원 역사에서도 드문 "희소식재료 마스터"라고 소개한다. 희소식재료란 말에 [[유키히라 소마]]가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하던 와중에 린도가 악어를 놓친다. 새끼 악어지만 상당히 빠른 몸놀림으로 카와시마에게 돌격,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 어찌됐든 악어는 린도에게 다시 포획.
* [[츠카사 에이시]]는 새삼스럽게 감탄하지도 않는다. 그는 린도의 실력을 익히 알았고 진짜 대단한건 칼솜씨 보단 식재료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십걸의 2석을 차지하게 만든 힘. 그녀는 십걸에 들자마자 그 권력을 십분 활용, 전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다. 중국 고산지대부터 사막지대, 북극권, 아마존의 오지까지. 1학년 때 이미 일본 국내의 희소 식재에 대해서 정통해 있었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재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그 여정 중에는 린도와 현지 스태프의 협력으로 새롭게 발견된 종도 있었다. 그녀는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 모든 것을 식재료로 만들었고 손수 맛을 보았다.
셋재, 온갖 식재를 손질하고 와일드하게 먹어치우는 "바바리안"
굳이 츠카사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실체는 지금 대회장의 전원이 목격하고 있다. 소마는 츠카사 앞을 저런 대단한 요리사가 가로막고 있을 줄 몰랐다고 감탄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녀와 함께 또다른 괴식 연구가 사다츠카를 포섭해 "암흑 별종 삼두회"라는 정체불명의 결사를 조직할 야욕을 품는다.
* 상대인 린도가 놀라운 호조를 보이며 좌중의 이목을 쓸어간다. 반면 메기시마는 묵묵하다고 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다. 관중석은 메기시마가 린도에게 쫄은거 아니냐고 야유를 퍼붓는다. 그때 카와시마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 실업팀 . . . . 9회 일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군부대나 공공기관 단위로 실업팀이 조직되었으며, 이 같은 실업팀들이 높은 명성을 누렸다. 일본에서는 쇼와 초기에 실업단이라는 명칭으로 실업팀을 창설하였으며, 일본 만이 아니라 한국, 대만에도 이러한 문화가 퍼져서 실업팀 중심의 스포츠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서는 [[프로 스포츠]]화가 진행되기 전 까지 기업 실업팀 실업리그가 '최상위 리그'로서 명성을 누렸다. 야구와 축구는 1980년대 프로가 출범하기 전 까지, 농구와 배구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프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실업리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종목에서 프로 리그 출범 이후로 많은 실업팀 선수가 프로선수로 전환했다. 축구의 경우는 [[중공업]],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팀이 많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 나간 중심은 금융팀이 금융단 축구를 박정희의 비호 아래 육성하면서 본격적인 세미프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야구는 한 때 실업리그가 존폐 상태에 놓일 정도로 쇠퇴했으나 2010년대에는 [[프로야구]] 붐을 타고 아마추어 야구단이 새롭게 설립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농구, 배구는 실업팀이 고사 위기에 놓인 상태이다.
자전거 경기, 모터 스포츠 같은 경우는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목적에서 실업팀 활동이 이루어진다. 실업팀을 위한 레이스 차량 개발이 일반 제품 개발에 연결이 되며, 대회의 성과는 회사의 홍보와 상당히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프로 스포츠가 없는 곳에서는 지자체가 실업팀을 운영하여 경기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여가활동을 제공하거나, 지자체의 명예와 시민의 고양을 위해 전국체전에서의 활약을 노리고 실업팀을 운영하거나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국체전의 활약은 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축구는 아예 "프로화"를 FIFA와 대륙급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권장함은 물론이고 [[AFC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인화가 완료되었으며 프로선수로 구성된 "완전한 프로팀"만이 참가가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등, 사실상 프로와 아마추어의 간극을 넓게 만들고 있다.
=== 스폰싱 활성화와 클럽화 ===
- 씽(마블 코믹스) . . . . 9회 일치
온몸이 바위와 같이 단단해졌기에 상당한 내구력이 있고 힘도 그에 걸맞게 세다. 마블 히어로즈의 파워 기믹 캐릭터들 중에선 [[헐크]] 같이 초강력 푸시를 받는 [[캐사기]]급은 못 되더라도, 메이저들 중에선 상급에 속하는 방어력 및 괴력에 지력도 어느 정도 겸비한 캐릭터.
* 판타스틱 포 멤버들 중 가장 고생을 하면서도, 팀의 궂은 [[마당쇠]] 역할까지도 맡아주는 등 좋은 이미지 덕에, 국내의 [[제시카 알바]] 하악하악(…)인 형편과 달리 [[미국]]에선 팬들도 상당히 많은 편. [[판타스틱 포]] 멤버들 중 단독 주연극인 [[스핀오프]]들도 가장 많이 제작되고, 그 인기 덕에 아예 애니메이션으로 《프레드와 바니, 싱을 만나다》에서 주역 코너도 별도로 만들어질 정도이며, 특히 여기선 자기 의지로 [[인간]]으로도, 싱으로도 변할 수 있는 등 다 좋은데, 문제는 여기선 더 씽이 [[인간]]일 때는 빈약 고딩으로 나오는 게 안습.(…)
* [[피어 잇 셀프]]에선 [[워디]]의 일원이 되어 같은 힘캐인 [[헐크]]와 나란히 조종당하는 신세가 됐다.[* 다른 워디 멤버들과 다른 점이라면, 씽은 양 어깨에 입이 달린 촉수가 생겼는데, 입이 계속 나불대며 씽에게 악당 짓을 하도록 부추긴다.] 물론 발 구르기로 시가지의 건물 여러 채와 차를 박살낼 정도로 강해진 모습도 보였다. 결국 토르와 맞붙게 되지만, [[묠니르]]에 등짝을 뚫리고 죽기 직전이 된다. 그러나 운 좋게도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 덕에 겨우 목숨도 건지고, 프랭클린의 [[현실 조작]]능력으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 판타스틱 4 이슈 중에서는, 리드의 아버지 너새니얼 리처즈가 리드를 데리고 먼 미래로 데려가면서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나온 바로는 씽은 위의 언급된 능력 이외에도, [[노화]]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져서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있고, 판타스틱 4의 다른 멤버가 죽은 이후에도 판타스틱 4로 프랭클린과 같이 싸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느린 노화속도[* 대략 1,000년당 보통사람이 19살 먹는 속도이다.]가 결국에는 씽을 오랜 고독 속에 버려지게 했고, 4천년 후에는 그저 노망든 노인 취급 받다가 프랭클린이 보는 앞에서 노환으로 사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후 리드가 현실로 돌아와서 씽을 쳐다보자, 리드가 [[리모컨]] 뺏는 줄 알고 경계하는 모습이랑 대비가(...)
* 별명인 싱(Thing)은 말그대로 사람이 아닌 '물건' 같다 해서 붙은 것인데 여기에는 공포와 혐오를 주는 물체를 가리키는 의미도 있다. 보통 구분을 위해 [[더]](The)를 붙이며 동명의 영화가 국내개봉했을 때 '[[괴물]]'로 번역되었다.
* [[헐크]]와는 [[라이벌]] 기믹인지 여러 차례 대결했으며, 애니메이션에서도 헐크가 등장하면 이 구도가 재현된다. 다만 대체로 헐크가 더 [[강캐]]라서 결국 발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의 묘사를 보면, 헐크는 괴물 취급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환영받는다. 2006년에 나온 애니판에선 똑같은 괴물이니 잘 지내보자는 싱의 말에, 배너 박사가 "당신은 영웅이지만 [[헐크]]는 괴물일 뿐이오."라고 답했다.] 헐크 말고도 다른 괴력 캐릭터에 비하면 힘에 있어서는 뒤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만나면 시험 삼아 처발리고 보는 신세가...(…)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9회 일치
작중에서 아멜리아의 행동 양식은 세일룬의 왕녀로서 냉정한 정치력과 판단력, 그리고 무녀로서 신탁을 얻어서 행동하거나 하는 신비한 모습이 줄기가 된다. 또 원작의 아멜리아는 리나와 동갑으로, 거기에 걸맞게 리나와 대등한 수준으로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약간 망가진 상태가 거의 디폴트(…)가 되고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리나보다 어린 나이로 설정되면서, 정신적으로도 어리고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묘사가 많아졌다. 제르가디스와 마찬가지로 [[개그 캐릭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본래 어느 정도 개그를 하던 캐릭터니까 그렇게까지 위화감은 없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비교적 출연이 적은데, 1부의 중반에서 후반 정도 까지 [[제르가디스]]와 함께 리나, 가우리와 행동을 함께 했다. 회복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바스퍼링크, [[라틸트]] 같은 정령 마법에도 능숙하여 뛰어난 대마족 전투원으로서 활약. 피브리조의 음모가 구체화된 시점에서는 리나와 헤어져서 제르가디스와 독자적으로 [[사일라그]]를 탐색하기도 한다.
제르가디스와 함께 레귤러 캐릭터로 승격. 리나, 가우리, 제르가디스, 아멜리아로서 메인 4인조 파티를 이뤄서 슬레이어즈의 대표적인 메인 캐릭터로 활동한다.
- 오세창 . . . . 9회 일치
'''오세창'''(吳世昌, [[1864년]] [[8월 6일]] ~ [[1953년]] [[4월 16일]])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문신, 정치인이자 계몽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의 언론인, 독립운동가, 서화가,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화가이다. [[조선]] 말기에는 개화파 정치인이었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서화와 고미술품 감정 등의 활동도 하였다. [[한국]]의 역대 왕조의 서화가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1928년)의 저자이다. [[1918년]] 설립된 [[조선]]인 미술가, 서예가, 조각가 단체인 [[서화협회]] 창립 발기인이기도 하다.
{{인용문2|청년시대의 제우(諸友)<br><br>먼저 청년시대의 나의 동무들을 말하면... 그때 동경에 망명하였든 인물들은 [[박영효]], [[조희연]](군부대신 다니든 분), [[장박]](대신 지난이), [[유길준]](수상 지낸 이), [[권영진]](나의 중씨로 [[경무사]]), 유세남(내무차관 다니든 이), [[김옥균]], 그러고 우리 동렬로는 [[조희문]], [[이범래]], [[우범선]], [[이두황]], 유혁로, 신응희, 정난교, [[윤효정]], 오세창 또 우리보담 조금 늦어 들어온 소장파에 이신(李申), [[유동렬]], [[권석하]], [[이동휘]] 등 제인물이 있었다. 이 가운데는 1,2차 대면에 끈친 이도 있었지만은 대개는 여러 번 만났고 일도 도모하여 본 분들로 비교적 사람됨을 알 수 있었다.<ref>서정민, 《이동휘와 기독교》 (연세대학교출판부, 2007) 161페이지</ref>}}
[[1910년]](융희 4년) [[10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남작]] 작위와 은사금이 내려졌지만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안중식]]의 동양화 〈탑원도소회지도〉([[1912년]])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오세창의 정원 누각에 천도교 문명파 인사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1917년]] 다시 《만세보》와 《대한민보사》를 창설하여 사장 겸 주필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2년여 동안 투옥되었다.
[[1918년]] [[11월]]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손병희]], [[최린]](崔隣), [[권동진]](權東鎭)등과 함께 조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우선 동지를 포섭하기로 한다. 또한 일부 [[천도교]] 연락원들이 [[기독교]] 지도자 일부와 합의하자, 범거족적인 만세 시위 개최에 동의한다.
[[1919년]] [[2월 10일]] [[최린]], [[최남선]] 등이 협의하고,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초안하여 제출하자 그는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내용을 검토하고 그 내용에 동의한다. [[2월 25일]] 오세창은 [[손병희]], 권동진과 함께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조선 고종|고종]] 국장에 참배할 목적으로 상경한 [[천도교]]도 박준승(朴準承), 홍기조(洪基兆), 홍병기(洪秉箕), 김완규(金完圭) 등에게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알리고 이들을 설득하여 찬동을 얻었다. 이때 오세창은 그는 [[천도교]] 월보과장 옥파 [[이종일]](李鍾一)을 설득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1919년]] [[2월 27일]] 오세창은 [[천도교]] 지도자들을 설득, 그들과 함께 [[경성부]] 재동(齋洞)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최종 확인하고 찬동, 민족대표자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이어 그는 [[최남선]]의 독립선언서 용지 보급과 인쇄 등을 지원하였다.
그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하던 [[황해도]] [[옹진군]] [[마산면]] 출신의 유학자 [[오세창 (1901년)|오세창]](吳世昌, [[1901년]]생)도 존재하였다.
- 오중기 . . . . 9회 일치
|| '''약력''' ||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특별보좌관[br]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br]영남대학교 총동문회 이사[br][[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br][[청와대]] 선임행정관 ||
대한민국의 정치인.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경상북도에서만 10여년째 고군분투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다 2018년 2월 경북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생으로 [age(1967-07-23)]세의 젊은 나이가 강점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두 번의 대선 동안 경북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신뢰를 쌓아 2017년에는 대구경북 당직자 중에서 유일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학창시절에는 [[대동중학교(경북)|대동중학교]]와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6년 내내 반장을 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4.19혁명론'이라는 책을 보고 선생님께 '4.19는 의거인가요? 혁명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가 핀잔을 들었는데, '''정의'''라는 단어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상경하여 [[한국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일했다.
당내 선거와는 달리 본선에서는 계속해서 고배를 마셨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를 위해 불출마한 것을 제외하고,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낙선을 겪었다.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100% 환급받은 적이 아직 없는데, 특히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15%에 겨우 0.07%포인트가 모자랐다.[* 선거 비용 100% 환급 기준은 15% 이상의 득표율이다.] --안습--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새누리당]]출신 무소속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에 표가 몰려 12.71% 득표에 그쳤다. 이후 2013년엔 [[제18대 대선]] 패배 이후 혼란스러웠던 [[민주통합당]]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 경북도당위원장 선거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인 [[김현권]] 의원을 누르고 도당위원장 4선에 성공했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중 균형발전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사실 지역 도당위원장 정도를 선임행정관으로 임명하는건 격이 너무 약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균형발전비서관이 일찌감치 사직해 공석인 상황에서 2018년 2월 1일 선포된 국가균형발전 비전 수립을 이끌었다. 직후 사직하여 2018년 2월 5일, 경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재도전하기로 [[https://youtu.be/7R_kl03ESn8|선언]]했다.
* 2017년: [[문재인정부]]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 원피스/820화 . . . . 9회 일치
[[원피스]] 820화. '''개와 고양이에게 역사가 있으니'''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는 사실 해적왕의 선원이었음이 밝혀진다.
*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도 사실 해적왕의 배에 탔었다.'''
* 사무라이들은 와노쿠니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법 때문에 승선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와노쿠니에 왔을 때 본 적이 있다.
* 오뎅, 이누아라시, 네코마무시 셋이 로저의 부하였으며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는 라프텔에는 가지 못했다.''' 그러나 어인섬이나 하늘섬에는 갔었다.
* 킨에몬은 카이도 타도를 위해 계속 동료를 모은다 한다.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는 '''흰 수염 해적단 1번대장 마르코'''를 추천한다
* 1년 전 흰수염 사후 잔존 세력과 검은 수염 간에 대전투가 있었고 거기서 '''패한 흰수염 해적단은 와해'''된다. 이후 검은 수염이 사황 지위를 얻는다.
* 니코 로빈, 롤로노아 조로, 우솝, 프랑키는 사무라이 3인과 함께 와노쿠니로 간다
- 원피스/849화 . . . . 9회 일치
* 진짜 캐럿은 지붕에 숨어있다 튀어나와 솥을 뒤집는다.
[[빈스모크 니디]]가 빅맘 측에서도 인질을 원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빈스모크 이치디]]는 헛소리 말라며 "상디를 죽인다고 해봐야 우리가 눈하나 깜짝하겠냐"고 말하고 욘디가 웃음을 터뜨린다. 니디는 아무튼 상디와 생활이 기대된다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식탁에서 음식을 기다리던 귀족 악어는 아웅성치는 소리를 듣지만 둔해 빠져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몬스터 모드로 변한 쵸파는 귀족 악어를 붙잡아서 우왕좌왕하는 조무라기들 위로 매쳐버린다. 유일하게 디젤만 무사히 도망치지만, 자기 발이 빠르다고 자부한 것관 달리 캐럿에게 너무나 쉽게 따라잡힌다. 결국 디젤까지 간단하게 정리. 섬 전체와 연결된 미러월드가 쵸파 일행에게 함락된다. 쵸파는 이 미러월드를 이용해 흩어진 동료들을 찾자고 한다.
* 상디는 자기 방에서 꽃다발을 다듬고 있다. 그때 빅맘의 부하가 와서 밀집모자 일당의 행방에 대해 소식을 전한다.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는 체포,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브룩]]은 난동 중. 상디는 꽃다발을 매만지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소식을 듣다가, 결국 이젠 됐다며 귀를 닫아버린다. 그 대신 부탁한 식재료는 사왔냐고 하는데.
네타와 함께 오다 에이치로의 인터뷰 내용도 공개. 다과회편은 이미 중반부에 돌입. 팬들의 예상보다 빨리 끝날 거라고 한다. 앞으로 전개속도도 대폭 빨라진다고.
내년부터 "와노쿠니편"이 시작된다. 오다는 20년 전부터 와노쿠니편을 그리고 싶어서 구상을 거듭해왔다.
- 원피스/874화 . . . . 9회 일치
* 제우스는 나미에게 다가와 "블랙 볼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데 나미는 매일 블랙 볼을 줄테니 "나의 시종이 되어달라"고 요청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 킹밤은 살아서 레이디 트리와 재회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가로막는 부하들까지 내치며 달리는데, 태양 "프로메테우스"가 이를 배신으로 간주하고 보복한다.
* 한편 [[카포네 갱 벳지]]의 파이어탱크 해적단도 추격대에 쫓기고 있는데 이때 [[샬롯 푸딩]]이 날아와 [[샬롯 시폰]]과 만나길 청한다.
* 웨딩 케이크와 빅맘의 폭주 이야기를 들은 시폰은 미안하지만 자신은 [[샬롯 로라]]처럼 섬을 떠날 거라며 협조 요청을 거절한다.
* 그러나 푸딩은 눈물과 함께 자신은 빅맘을 위해서 행동하는게 아니라 [[상디]]와 그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 연극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다과회와 결혼식이 엉망이 되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고대해 마지 않았던 웨딩 케이크까지 엉망이 되어 먹을 수 없다. 숨가쁘게 이어진 기막힌 사건들 때문에 빅맘 [[샬롯 링링]]의 식탐이 폭주한다. 한때를 모면하기 위해 [[샬롯 페로스페로]]는 웨딩 케이크는 밀집모자 일당이 가져갔다는 거짓말을 하고, 빅맘은 그 말에 따라 직접 밀집모자 일당을 뒤쫓는다. 뇌운 "제우스"에 탄 빅맘은 놀라운 속도로 돌아와 "킹밤"을 타고 도주하던 밀집모자 일당을 따라잡았다. 역시 밀집모자 일당을 추격하던 빅맘 해적단의 병력들은 빅맘이 하늘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앞질러가자 이상하게 여기나 곧 그녀의 먹부림이 도진 것임을 알아차린다.
* 푸딩의 요구는 반만 이루어졌다. 시폰은 벳지의 몸 밖으로 나서지 않았고 푸딩은 작은 창을 통해 그녀와 대화했다. 푸딩이 빅맘의 폭주와 웨딩 케이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시폰은 바로 알아들었다. 자신의 시폰 케이크가 필요할 것이다. 전이라면 기꺼이 응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시폰이 거절했다. 그녀는 [[샬롯 로라]]처럼 이 땅을 떠날 것이다. 빅맘도, 이 나라도 더는 알 바 아니다. 벳지도 그 말에 맞장구치며 "썩 꺼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푸딩은 물러나지 않았다. 시폰이 오해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했다. 빅맘을 위해서도, 토트랜드를 위해서도 아니다.
- 월드 인 컨플릭트/전술지원 . . . . 9회 일치
공격기가 날아와 일자로 30mm 기관포와 로켓을 난사한다. 전차와 차량을 잡는데 권장된다. TA 중 싸고 빠르고 강한 편이기에 자주 쓰게된다.
항공기가 날아와 유도탄 하나를 투하한다. 지정한 곳에 정확히 박히고 시설물을 한큐에 박살내기에 적 보병이 점거한 건물을 무너뜨리거나 다리를 끊는데 사용된다.
전투기가 날아와 지정한 지역의 적 헬리콥터를 격추시킨다.
공격기가 날아와 집속탄을 투하한다. 전차, 보병, 차량에 좋다. 진입 방향을 잘못 설정하면 건물이나 언덕에 꼴아박으니 주의.
폭격기가 날아와 일자로 대규모 폭격을 가한다. 여러모로 강하고 시원하지만 비싸다.
미국과 NATO 전용. 대형 수송기가 날아와 7.7t 짜리 폭탄을 투하한다. 보병, 숲, 경장갑 차량에 효과적이다.
소련 전용. Su-25가 날아와 기화폭탄을 투하한다. 보병, 숲, 경장갑 차량에 효과적이다.
- 은혼/621화 . . . . 9회 일치
* 그러자 [[쿠로고마 카츠오]]와 [[혼죠 쿄시로]]를 비롯한 주민들이 서로 자기가 제작자라고 나선다.
* 추락한 타에와 아가씨들은 어떤 아가씨가 부하들을 이끌고 구조.
* 신라 부대의 [[소타츠]]는 옥상을 점거하고 [[시무라 타에]]를 비롯한 스마일 아가씨들을 인질로 잡는다. 소타츠는 다키니 대장 [[오우가이]]의 지휘는 전략적 목적을 도외시한 전쟁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쓴소릴 한다.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사이클론 겐가이포'''를 저지하고 나노머신 병기를 무력화해 본대와 통신을 회복하는데 있었다.
* 그 말이 당연하다고 받아치며 나타나는 [[혼죠 쿄시로]]와 "타카마가하라"의 호스트들. 이쪽 쓰지도 않던 안경을 끼고 인텔리인 척한다. 쿄시로는 자신이 저 대포를 만들었다며 자신을 데려가라고 한다. 그러면 나노 바이러스는 멈추겠지만 당신네 별의 여자들이 자기한테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이러스의 포로가 될 거라고 경고한다. 카츠오는 자신도 바이러스를 왕창 가지고 있다고 경쟁하듯 외치는데 쿄시로는 "당신이 가진건 그냥 성병"이라고 단정한다. 카츠오는 "누가 완선이냐"고 반발하며 자신의 병명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 이런 개판의 와중에 마조돼지로 전락했던 [[코제니가타 헤이지]]까지 멀쩡한 척 안경을 쓰고 나타나 "남자들은 모두 가랑이에 바이러스 포를 가지고 있는 박사들"이라고 개드립을 친다. 그는 자신을 데려가 이종교배 실험을 시켜달라는, 취지가 장난 아니게 빗나간 요구를 해댄다. 하지만 왠지 쿄시로가 "당신들이 가면 지구인의 이미지만 나빠지니 내가 가서 천 명을 꼬셔오겠다"는 드립을 치면서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진다.
>어이이이이 조수 나와라아!
긴 여정 끝에 결국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혼세한 와중에도 가부키쵸 주민들은 뜻을 하나로 모은다.
* 그대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던 타에와 해결사 일행, 스마일의 아가씨들도 모두 무사하다. 그들은 건물 사이에 쳐진 그물에 걸려서 무사할 수 있었다. 양 건물 안에서 그물을 잡아 당기고 있는 남자들. 그 사이에서 [[도로미즈 피라코|익숙한 목소리의 소녀]]가 나타난다.
* 옥상이 무너지면서 건물 안으로 떨어진 소타츠와 신라 병사들. 그들 앞에 삿갓을 쓴 협객의 모습이 나타난다. 누구냐고 묻자 그는 삿갓을 벗어던진다. 그는 본래 에도의 가부키쵸 사람으로 속죄를 위해 여행하고 있었으나 고향이 그립고 친구의 약속이 마음에 걸려 돌아왔다.
- 은혼/624화 . . . . 9회 일치
* [[쿠로고마 카츠오]]와 흙탕쥐파는 사전에 신라부대를 격파하고 변장,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도로미즈 지로쵸]]는 신라 부대를 베어나가며 [[소타츠]]와 격돌.
* 그러나 [[사카타 긴토키]]와 협력해 순식간에 상황을 반전, 신라 부대를 뿌리치고 역으로 베어버린다. 그와동시에 긴토키는 소타츠를 처리.
* 후방에서 나타난 신라 부대가 골목으로 진입해 오는 신라 부대를 찌른다. 내분이 아니라 후방의 신라 부대는 변장한 흙탕쥐파와 부두목 [[쿠로고마 카츠오]]였다. 이들은 사전에 대기하고 있던 신라 부대를 격파하고 변장,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예상에 없던 반격에 신라 부대는 싱겁게 쓰러지기 시작한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선봉을 날리며 다가오는 적들을 쓸어버린다. 그런데 연거푸 베어나가는 와중, 신라의 지휘관 [[소타츠]]는 동포의 시체를 방패막으로 삼으며 지로쵸를 노린다.
* 지로쵸가 한 순간 쓰러지자 그 위를 흙더미 쌓듯 달려들어 누른다. 소타츠는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전술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지로쵸와 그 위를 누르고 있는 아군까지 한꺼번에 꿰뚫는다. 신라의 집단 전술이란 바로 이것. 집단의 승리를 위해서 개개인이 거리낌없이 희생하고, 희생시킬 수 있는 풍조다. 소타츠는 완전히 승리를 자신한다.
지로쵸는 가구라와 신파치를 가리킨다. 가부키쵸는 얌전하고 평화롭기 보단 소란 속에서 활발하게 살아가는 뻔뻔한 바보들의 마을이다. 그러니 별이 망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달리고 싸울 수 있는건 그 바보들과 이 소란스러운 마을 밖에 없는 것이다.
* 다음 전장을 향해 달려가며, 지로쵸는 [[테라다 타츠고로]]의 유언을 떠올린다. 오토세와 마을을 부탁하는 타츠고로를, 지로쵸는 꿎꿎이 데리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부상이 심했고 둘의 무게를 지탱할 수는 없었다. 타츠고로는 부축되면서도 그 느린 발걸음에 농담을 던진다.
- 은혼/635화 . . . . 9회 일치
* 돌아온 [[카무이(은혼)|카무이]]와 7사단. 전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는 하루사메 잔당을 규합해 우주에서 해방군과 대치 중
* 노사는 본래의 힘을 드러내며 거대해진 몸집으로 7사단에게 덤벼든다. 그 앞을 막는 카무이. 그리고 [[가구라]]가 그와 싸운다.
같은 시각 우주에서는 [[엔죠]] 황자가 [[귀병대]]의 함대와 교전 중. 함대의 수와 질은 단연 해방군이 우위였다. 그런데 우현에서 뜻밖의 공격이 직격한다. 당황하는 엔죠.
* 카무이의 말처럼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러 온 하루사메 함대. 전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가 카무이의 동지로서 하루사메 잔당을 규합, 귀병대를 지원하러 온 것이다. 이들의 도착 소식에 [[다카스기 신스케]]는 "꽤 늦었다"며 쓴소릴 날리지만 바토우는 늦은 만큼 매꿔주겠다고 대꾸한다. 작전방침 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늦었다는데. 그들의 대장이 총대장인 주제에 곧 날아가버릴 지구로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어지간히 단세포인 사루가쿠도 두 손 들었다며 "대장이 당하기 전에 해방군을 처리한다"고 최종적으로 결정. 무엇보다 카무이는 그 지구에 해방군 전체보다 위험한 놈이 있다고 강변했다 한다. 신스케가 그 말을 듣고 "해방군은 그냥 시작에 불과하다"고 카무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사루가쿠는 자기도 내려가 볼걸 그랬다고 투덜거린다.
* 카무이는 우주는 그들에게 맡겨뒀고 뭣보다 해방군을 부숴봐야 변하는건 없다고 단언한다. 카무이는 "진정한 적"을 쳐부숴야 한다며 [[우츠로(은혼)|우츠로]]를 지목한다. 그 우츠로를 쳐부수기 위해, 카무이는 가구라에게 이제 일어서라고 말한다. 그 [[우미보즈(은혼)|대머리]]의 자식이 이런데서 당한 채로 끝나선 안 된다면서. 그리고 자신은 다시 일어나 우미보즈에게 "최강"의 칭호를 뺏어간 우츠로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약함"을 들추고 이기고 도망친 "여동생"에게 이겨보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일어나는 거야 말로 "최강"이라는 걸 알려준 것은 바로 가구라. 그러니 이젠 가구라가 일어날 차례이다.
* 남매 간의 대화에 끼어드는 노사. 노사는 야토와 야토가 싸우게 된 이상 어떻게 될지는 잘 알 거라고 말을 시작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겐가이가 쓸모없어진 이상 타계책은 하나. 새벽이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노사는 이제 야토가 적으로 나타났으니 시간이 좀 부족할 거 같다고 말한다. 아부토는 "우리가 없다면 손쉬웠다는 얘기냐"고 받아치는데, 노사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그렇지 않냐"며 7사단은 별도 멸망시키는 최강 부대라더니, 그것도 전대 [[야왕 호우센]] 시절 얘기에 지나지 않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자기한테는 "나보다 젊은 세대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고 호우센 조차 "애송이"라고 부른다. 그는 호우센의 강함을 인정하긴 하지만, 자기가 태어났을 땐 그정도의 강자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고 말한다. 야토는 모성 황안에 있을 때는 분명 최강이었으나, 그 별을 떠나면서 점차 피는 옅어졌고 힘은 약해졌다. 그래서 노사의 입장에서 보면 현세대의 야토는 "부정한 피가 섞인" 세대에 불과하며 야토로 취급할 수도 없는 결격품이다.
7사단을 그야말로 유린하던 노사. 그러나 그의 주먹은 카무이의 주먹에 막힌다. 카무이는 힘에서 호각지세로 노사와 맞붙는다.
- 이민호(1987) . . . . 9회 일치
반짝스타가 아니고 아역부터 올라온 연기자다. [[박보영]]과 함께한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 [[문채원]]과 호흡한 SBS '달려라 고등어',[* 여담이지만, [[박보영]], [[문채원]]과는 여러 편 같이 한 바 있다. 박보영과는 '비밀의 교정', '달려라 고등어', 영화 '울학교 이티'에서 같이 나왔으며, 문채원은 여기서 '비밀의 교정'을 뺀 나머지 두 작품에 같이 나왔다.] [[박민영]]과 함께하는 [[아이 엠 샘(드라마)]] 등등으로 드라마 주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사랑찬가]]'나 '[[논스톱]]', '[[반올림(드라마)|반올림]]' 같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단막극 '나도 잘 모르지만'에서 주연을 맡거나 영화는 '울학교 이티'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도 출연했다.[* 중견기업으로 위장한 조폭 두목인 [[정재영]]이 키우던 건달 ~~유스~~ 유망주 중 하나였는데 건달짓에 회의를 느낀 이민호를 오른팔 [[김남길]]을 시켜 살해하고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담으로 꽃보다남자 에서 이민호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김현중(SS501)|김현중]]은 이민호를 '''아 그 영화에서 나오자마자 칼맞고 죽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던 중 KBS의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의 한국판]]에서 주인공 구준표역할에 발탁. 특유의 소라빵 머리와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며 시청률 대박을 치게되어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약 떠오르는 청춘스타 대열에 합류한다. 이때의 인기는 상당해서 대부분의 예능, 코미디 프로에서 특유의 소라빵머리를 하고 나오는 캐릭터들이 한명씩은 꼭 있었다. 아시아 3국의 꽃보다남자 캐스팅중에서 일본인들이 꼽은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 드라마로 이민호는 5년간의 무명 세월을 마감하고 톱스타가 된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 후 [[송지나]] 작가의 [[신의(드라마)|신의]]에 출연하여 깊은 눈빛과 절도 있는 액션 연기로 신의있는 젊은 [[최영]]의 모습을 표현해 2012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10대 스타상 등을 수상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민호가 맡은 [[최영]] 캐릭터만 남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점점 캐릭터와 밀착되는 모습을 보였고 [[송지나]] 작가도 이민호는 [[최영]] 그 자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http://view.heraldcorp.com/view.php?ud=20121021000320|기사]].]
2016년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허준재, 김담령 1인2역을 연기하였고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를 넘나들며 섬세하며 차별화된 연기로 역시 이민호라는 찬사를 받았고 대만, 중국 등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고 한국 영화 및 드라마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이트인 HanCinema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 1위에 선정됐다.
[[우주소녀]]의 [[성소]]가 [[아는 형님]]에서 [[김수로(배우)|김수로]]에게 이민호와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성소]]는 이민호의 팬이며, [[인생술집]]에 출연했을 때 이상형도 이민호라고 밝힐 정도여서 이민호 닮은꼴에 대해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일우]]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일우는 거침없이하이킥에 캐스팅되고 이민호는 다른데로 캐스팅된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83784|#]] 둘이 바다로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일우]]는 재활 치료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하이킥에 출연했지만 이민호는 혼수 상태까지 가서 7개월 간 입원했을 정도로 크게 다친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의 계기로 하이킥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사고로 둘 다 [[병역판정검사|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둘 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에서 사격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전증이 있다. 이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를 찍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남1970]] 촬영 당시 한쪽 다리만으로 발차기 액션 씬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 2017년 || MBC || DMZ 더 와일드 || ||
|| '''4''' || 너와 나 그리고 우리 (You & I) || 이스란 || 황찬희 || 황찬희[br]홍소진 ||
- 이재학 . . . . 9회 일치
[[스프링캠프]] 때 [[김경문]] 감독이 눈도장을 찍어 기대되는 신인으로 주목받았지만, 경험 부족과 긴장으로 인해 제구가 흔들리며 사사구를 많이 남발했다. 그래도 2010년 6월 15일 잠실 [[LG 트윈스|LG]]전에서 4번째 투수로 나와 2⅓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데뷔전 이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7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구원으로 등판하여 [[야마이코 나바로]]와 [[박석민]]에게 각각 홈런을 맞았다.
11월 7일 승부조작 수사 발표에서 이재학의 승부조작건은 무혐의로 발표가 났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바로 2011년 [[두산 베어스]] 시절에 불법스포츠 베팅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민체육진흥법에 규정된 도박 처별 규정이 신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반 형법상 단순도박죄 혐의가 적용되었고, 이 법에 대한 공소시효 5년이 지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일단 불법 스포츠도박은 KBO 조항상 제명까지 가능한 상황. 정확히는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진야곱]]에게 160만원을 건네 대리 베팅을 한 것. 진야곱은 이미 베팅 사실을 시인한 상황이나 이재학은 단순히 돈을 빌려준 것 일뿐 도박에 쓰일 줄은 몰랐다며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이후 2017년 1월 [[창원 LG 세이커스]]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창원실내체육관]]을 찾은 근황[* MBC SPORTS+와의 인터뷰에서는 개인 훈련으로 2017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나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는 것을 봐서는 2017년 시즌에는 정상적으로 시즌을 소화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상적으로 경기에 나서더라도 결백이 완벽히 증명되기 전까지는 이 때의 이미지는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듯.
두산 시절에는 정통 사이드암 투수로 140km/h 초중반대의 빠른 공과 준수한 서클 [[체인지업]]으로 주목받았다.[* 보통의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투구폼으로 구속과 분당 공 회전수를 줄여 타자의 타이밍을 망가뜨리는 방식이나 이재학은 되려 회전수가 높은 변형 서클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좋은 컨트롤과 준수한 탈삼진 능력으로 즉시전력감으로 주목받았으나, 프로에 입단해서는 현격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23이닝 5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서클 체인지업을 이용한 삼진 능력은 당시에도 인정받았으나 지나친 코너웍을 의식하다가 사사구를 내주며 자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만 개선하면 롱릴리프 및 중간 계투로 일익을 담당하리라 기대되는 준수한 유망주였다. NC에 와서는 두산 시절에도 준수했던 서클 체인지업이 더 강력해졌으며, 이를 필두로 탈삼진 능력이 뛰어난 편. 통산 K/9가 8.2에 달하고, 2016년에는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규정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팀 내에서 삼진을 가장 많이 잡았다.
2012년 때에는 슬라이더와 투심, 커터 등도 어느 정도 던졌으나, 2013년에는 엄지 쪽에 물집이 잡혀 이 구종을 많이 구사하지 못해 직구와 체인지업 두 종류의 구종 밖에 구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련을 체인지업의 다변화로 극복했다고 한다. [[박병호]]의 말로는 체인지업과 직구의 회전이 완전히 똑같아서 까다롭다고 한다. 같은 직구인 줄 알고 타이밍을 쟀는데 체인지업이 온다고.
*[[컴투스 프로야구 for 매니저]] 윈터미팅(2016년 1월 23일)때 MC 허준이 이재학 선수와 전화연결을 하면서 당시 이재학 선수가 '사진이 너무 이상하니 사진 교체해주면 컴프매를 시작하겠다' 라고 말한뒤 1월 28일 업데이트로 사진이 변경됨.[[https://www.facebook.com/aceprojectgames/photos/a.240190616032638.75210.212834288768271/1076875119030846/?type=3|에이스 프로젝트 페이스북]]
- 이재황(배우) . . . . 9회 일치
제대 후인 2005년엔 군 제대작이자 극중 故[[정다빈(1980)|정다빈]][* 생전 정다빈님과 친했기에 2007년에 그녀가 떠난 후 엄청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일마다 그녀의 납골당을 찾았다. 기사까지 났다.] 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태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영]]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 이때 故 [[김성민(1973)|김성민]]과 연인을 맺게 되고 그 친분으로 <남자의 자격>에 절친으로도 출연했었다] 로 그 해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상이라니.--
|| 2006년 || [[SBS]] || 돌아와요 순애씨 || 장현우 || ||
|| [[2006년]] || 돌아와요 순애씨 OST || goodbye || ||
* 고1까지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집에선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을 접한 후 가요에 눈을 떠 2년동안 가수 준비를 했다가 불발, 우여곡절 끝에 연기자로 데뷔했다고 한다.
*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 때 생애 처음으로 귀를 뚫었다. 샤프한 이미지를 위해 1주일만에 7kg 감량.
* 막장의 대모 [[김순옥]] 작가와는 카메오까지 합쳐서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 《웃어요 엄마》 세 작품을 함께했다.
* 2009년 《공주가 돌아왔다》 극중에서 [[오연수]]와 함께 드라마 《[[로망스(드라마)|로망스]]》의 명장면을 패러디했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손발이 오그라들었어--
* [[노주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오남매》,《그 여름의 태풍》],[[박정수(배우)|박정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다이아몬드의 눈물》,《내 손을 잡아》],[[양금석]][* 《오남매》,《다이아몬드의 눈물》,《이브의 사랑》],[[금보라]][* 《아내의 유혹》,《내 손을 잡아》,《이브의 사랑》] 배우들과는 각각 세 작품씩 호흡을 맞췄고, [[채림]][* 《카이스트》, 《지금은 연애중》],[[김민정(1982)|김민정]][* 《카이스트 시즌2》,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홍수현]][* 《카이스트 시즌2》,《천사의 유혹》], [[권오중]][*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녹번동 삼형제》],[[최윤영(1975)|최윤영]][*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지금은 연애중》],[[정찬]][* 《그 여름의 태풍》,《웃어요 엄마》],[[윤해영]][* 《다이아몬드의 눈물》,《너라서 좋아》],이선진[*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순애씨》],[[김형범(배우)|김형범]][*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순애씨》], [[정애리(배우)|정애리]][* 《아내의 유혹》,《역류》], [[오영실]][* 《아내의 유혹》,《공주가 돌아왔다》], [[김용건]][* 《아내의 유혹》,《웃어요 엄마》], [[진태현]][* 《천사의 유혹》,《내 손을 잡아》], [[배그린]][* 《웃어요 엄마》,《내 손을 잡아》],[[안석환]][* 《너라서 좋아》,《내 손을 잡아》], 임도윤[* 《이브의 사랑》,《역류》]등 배우들과는 각각 두 작품씩 호흡을 맞췄다.
- 이채영(fromis_9) . . . . 9회 일치
[[아이돌학교]]에서 보컬 기초실력 평가와 댄스 기초실력 평가에서 모두 4위를 차지하고 종합성적 '''3위'''를 기록한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 학기말고사 [[OOH-AHH하게]] 무대에서도 [[나띠]]와 함께 댄스 브레이크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팀내 1위를 차지하는 등 본인의 실력을 증명해냈다.
팀내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가지고 있는 멤버로 많이 거론된다. 브이앱이나 [[fromis_의 방]], 약속회 토크쇼 등에서도 소소한 부분에서 재미를 유발하는 등 프로미스의 예능 에이스라고 불릴 정도. [[아이돌학교]]에서도 방송 내내 예능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줬다. 주로 멤버들이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 거기에 대해 성대모사를 하거나 과장을 보태어 상황을 설명하는 등 멤버 각자의 개성을 이끌어내는 재능이 있다. 이때문에 거의 모든 멤버와 케미가 잘 맞는 편.
* 그룹 내에서 제일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아이돌학교 내에서 팔씨름을 걸었을 때도 3판 다 이겼고, [[송하영|하영]]이 육성회원 과제로 닭싸움을 걸었는데, 하필 '''마지막 상대가 이채영'''이라서 패한 기록이 있다. 또한 [[fromis_의 방]] 3화에서는 사과를 '''맨 손으로 쪼갰다.'''] 근데 이런 이미지와 반대로 겁이 가장 많다.[* [[fromis_의 방]] 3화에서 공중 로프 코스에서 자신이 고소공포증이 있는걸 처음 깨닫고 코스 하나 겨우 넘어왔지만 결국 다음 코스에서 못 하겠다면서 ~~눈물 싹 빼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려와서도 그 여운이 남아있는 걸 보면 고소공포증이 심한 듯.] 여기서 나온 별명이 겁'''챙'''이.
* [[이서연]], [[이나경 (가수)]]과 본인으로 구성된 빵빵즈와 [[송하영]], [[박지원(fromis_9)|박지원]]과 본인으로 구성된 삐융즈 중 빵빵즈를 골랐다. 삐융즈는 피곤하면 못 하지만 빵빵즈는 언제나 빵빵즈라고. --송하영 : 너 이제부터 내 침대에서 자지 마.--
* 5회차 약속회에서 채영이 [[아이돌학교]] 전에 인터넷에 돌던 [[송하영|하영]]의 춤 영상을 즐겨봤다고 한다. 근데 정작 [[아이돌학교]]에 가니까 하영과 너무 똑같은 언니가 들어와서 놀랬다고 한다. 하영이 그 영상의 주인공임을 알고나서는 이 덕분에 정말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 커뮤니티에 올라간 글 모두 작성자의 입장만 담겨 있다. 그리고 증거라고 제시된 것들 또한 누군가를 4년씩이나 지나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에는 불충분하지 않은가? 예를 들면, 담임 교사 카톡이라고 올라와 있는데 그 카톡을 올린 사람이 실제 담임 교사가 맞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할 증빙 자료라도 최소한 첨부해야 하지 않나?
*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보더라도 본인이 장문의 사과 편지까지 썼고 경찰의 개입 없이 학교 안에서 마무리 된 사안인데 4년이나 지나서 다시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만한 사안인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싸웠다가 사과 혹은 화해한 사실 하나만 있다면 연예계 진출은 영구 금지 당해야 하는 것인가? 학교 측의 조치에 부족함이 있었다면 그 당시에 학교나 관할 경찰서를 통해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했던 것 아닌가?
- 이철우(1955) . . . . 9회 일치
1955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 곡송국민학교, 대구 [[영남중학교(대구)|영남중학교]], [[김천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이후 상주 화령중학교, 의성 신평중학교와 단밀중학교 수학 [[교사]]를 역임하였다가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 공채에 합격하여 정보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2005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이의근]] 도지사와 [[김관용]] 도지사 밑에서 경상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당선됐다. [[친이]]와 [[친박]]계의 대립이 심했던 제18대 국회에서 계파모임에 가담하지 않아 중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편이었다. 국가정보원 출신으로 초선에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한나라당 재해대책위원장과 국민공감위원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표율인 83.5%로 당선됐다. 국회직으로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테러방지법]]을 대표발의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경상북도당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회지방살리기포럼]]을 창립해 지방살리기 전도사로 나섰다.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국회의원의 모임인 동서화합포럼 창립을 주도하고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생가를 함께 방문해 동서화합 및 국민대통합 행보로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18년 9월 4일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하락하는 경북 경제의 해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제시하였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추어 포항, 울릉, 울진, 영덕을 중심으로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풍력, 수소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 확장에 나서고 농어업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스마트팜 혁신 밸리와 스마트 양식장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http://www.etnews.com/20180903000231|[인터뷰]이철우 경북도지사...'동해안에너지클러스터와 4차 산업혁명 일자리 창출']]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9회 일치
* 할리퀸은 디안느와 마트로나 가족들을 요정왕의 숲에서 보호해주고 있었는데 그로키시니아나 드롤의 움직임이 너무 없어 이상하게 생각한다.
* 디안느와 마트로나를 중심으로 요정왕 숲의 모든 이가 춤을 추며 즐기는데 게라이드는 그로키시니아가 방문한 듯한 묘한 느낌을 받는다.
* 할리퀸과 디안느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납치됐는데, 그들 눈 앞엔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이 나타난다.
* 마트로나의 가족들은 요정왕의 숲에 잘 적응하고 있다. 아이들은 오슬로와 어울려 노는데 바깥 일 같은건 모르는 것 같다.
* 마트로나와 디안느를 중심으로 숲의 모든 이가 춤을 춘다. 게라이드는 그 시선을 경계해서인지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차츰 분위기에 동화되어 어느새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끼어드는데.
* "눈을 떠", 어디론가 옮겨진 디안느와 할리퀸은 그 목소리에 의식을 되찾는다. 숲에서 춤을 추다가 기억이 끊겼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때 할리퀸의 투구에 깃든 헬브람이 "최악의 전개"라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할리퀸은 곧 엄청난 이변을 깨닫는데 바로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등장이었다. 두 사람을 납치한 것이 바로 이들. 할리퀸은 둘 모두 도망치는건 불가능하다 여기고 자신이 막는 동안 디안느를 도피시치려 한다. 그러나 디안느는 함께 싸우자며 "마지막이 할리퀸과 함께여서 다행"이라 말한다.
* 둘은 함께 십계를 향해 돌진한다. 한편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은 무슨 꿍꿍이인지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드롤과 그로키시니아가 마신족에 가담한 이유도 밝혀질 듯 한데 의외로 그로키시니아는 게라이드와 아는 사이였던 듯 하다. 또 게라이드가 들은 말에 따르면 그로키시니아가 마신족에 가담한 것이나 현재 요정왕인 할리퀸과 적대하는 데에도 게라이드의 존재가 개입된 듯 하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9회 일치
* 연회가 계속되던 중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디안느]]가 성전시대에 "자기와 닮은 엘리자베스"가 있었다는 말을 마음에 걸려한다.
* 일곱 개의 대죄가 당면했던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종결되고 일행이 다시 뭉쳤다. 무너졌던 돼지의 모자정도 리뉴얼을 완료하고 일곱 개의 대죄 재집결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렸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와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도 참석. [[에스카노르]]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떨고 마시기에 바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시낭송이 끝나고 에스카노르가 울적해하지만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만은 좋은 시였다고 호응한다. 하지만 어차피 잔반 처먹느라 제대로 듣진 못해서 "바람에 춤추는 백성의 외침"이란 싯구를 "바람에 춤추는 잔반"이라고 들었다.
겉보기에는 평소와 같다. 엘리자베스가 그녀를 반기며 술을 따라준다. 이때 방금 전엔 밉쌀맞은 소릴내뱉었던 멜리오다스가 그녀의 안색을 살핀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게 아닐까?
* 그런 사정가지는 파악하지 못한 에스카노르가 멜리오다스에게 다시금 건배하자고 제의한다. 엘레인을 끼고 있다시피한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이제 일곱이 다 모여서 1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말한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그 말을 듣고 조금 다르다고 대답하는데, 이제는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진짜 동료"가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기뻐하는 고서. 살짝 취기가 오른 [[디안느]]는 거기에 엘리자베스랑 엘레인도 있다며 둘을 와락 움켜쥔다. 이런 분위기를 정돈하며 멜리오다스가 술잔을 높이 든다.
* 아버지가 미소년을 여장시키는 성벽이 있었다, 이 불편한 진실이 공개되자 호크는 우선 엘리자베스가 받을 충격을 걱정한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버지의 치부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 디안느가 성전시대의 이야기를 꺼낸 시점부터 그녀는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디안느가 지난 번 한 이야기, 성전 시대에 엘리자베스와 꼭 닮은 또다른 엘리자베스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고보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케인이 말했었다. 과거 멜리오다스에게 "리즈"라는 애인이 있었고 그녀의 본명 또한 "엘리자베스"였다는 이야기였다.
* 그런데 멜리오다스의 성희롱 버릇이 멍하니 고민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술기운 탓인지 평소보다 한층 격렬한 성희롱. 할리퀸이 진지하게 감상하다 디안느에게 응징 당한다. 그래도 멜리오다스는 나름대로 엘리자베스의 고민을 풀어주려는 의도였는지, 고민이 있다면 말해보라며 넌지시 말을 꺼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나중에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자 별 수 없이 그러겠다며 떨어진다. 엘리자베스는 술을 더 가져오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뜬다. 의도와 다른 결말이 나와서 멜리오다스가 멋쩍게 머리를 긁는데, 호크가 옆에서 "드디어 엘리자베스를 화나게 했다"고 뼈아픈 일침을 가한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주위를 환기킨다. 그들이 당면한 목적은 젤드리스의 계금으로 포로가 된 백성들과 성기사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최종적으론 카멜롯의 해방. 젤드리스와 승부를 보는건 그 다음이다. 멀린이 그의 말대로이며 만전을 기한 뒤에야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 말한 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자러 간다. 엘레인은 그녀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만 그걸 바로 짚어내진 못했다. 멀린이 식당을 나서기 전, 에스카노르가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를 건네는데도 멀린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 엘레인의 걱정이 적중했다. 멀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방에 들어왔지만, 방문을 열자마자 무너지듯이 비틀거린다. 그땐 누군가 그녀를 부축하는데, 멜리오다스다. 멜리오다스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찾다가 젤드리스에게 당했다는 걸. 멀린이 "무슨 이야기냐"고 모른척 하지만 멜리오다스와 그녀는 일행 중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이. 멜리오다스는 그런 탓에 뻔히 알 수 있다고 대꾸한다. 그는 멀린을 침대에 눕히며 한 가지 더 뻔히 아는 걸 말한다. 그건 멀린의 진짜 목적에 대한 것이다. 같은 대죄이자 멀린의 목적은 왕국을 구하는 것도, 카멜롯을 해방하는 것도, 심지어 젤드리스를 쓰러뜨리는 것도 아니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9회 일치
* 왕녀 [[마가렛 리오네스]]는 납치 당한 [[길선더]]와 마녀 [[비비안]]의 수색이 지지부진하자 성을 박차고 나가 직접 연인을 되찾으려 한다.
* 멀린이 걸린 저주와 접촉한 엘리자베스는 저주의 마력을 통해 젤드리스와 만나는데, 그는 엘리자베스가 구면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진실을 알고 있었는데.
* 엘리자베스가 조심스럽게 오늘의 진짜 용건을 꺼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라트라스]]가 드루이드의 주술로 보여준 16년 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때가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첫 만남. 그런데 무슨 우연인지 그의 연인이었던 [[리즈(일곱 개의 대죄)|리즈]]가 죽은 것도 16년 전이다. 그녀는 [[케인(일곱 개의 대죄)|케인]]이 알려준 사실이라며 리즈의 본명이 엘리자베스인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멜리오다스는 그저 아이러니인 것처럼 웃어넘긴다.
멜리오다스에게 동요의 빛이 떠오른 것도 잠시. 그는 모든게 우연일 뿐이라고 얼버무린다. 엘리자베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까지는. [[디안느]]와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성전시대로 돌아가 자신과 똑닮은, 여신족 소녀 엘리자베스를 봤다고 말하기 전까진. 이것도 그저 우연일 뿐이냐고 묻는 엘리자베스. 이제 멜리오다스는 눈에 띄게 당황한다. 그는 너무 피곤해서 헛된 생각을 하는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말에 자신이 없다. 엘리자베스는 더욱 거세게 몰아붙인다. 같은 증언을 해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기 때문이다. 십계의 [[데리엘]]. 그녀가 엘리자베스와 마주쳤을 때 이렇게 말했었다.
* 대지의 모자정 옥상에선 낮잠에서 깬 디안느가 기지개를 켰다. 느긋한 옥상과 달리 식당 안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방은 심각한 분위기. 지난 밤 연회 이후로 멀린이 무섭게 앓았다. [[핸드릭슨]]이 용태를 보러와 있다. [[에스카노르]]가 그저 안절부절. 핸드릭슨의 주위에서 알짱대면서 상태를 묻는다. 핸드릭슨은 이것이 무서운 저주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체 멀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에스카노르가 아는 거라곤 어젯밤부터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 걱정돼서 아침에 와보니 이렇게 악화되었다. 열도 엄청나고 의식을 차릴 기력 조차 없다. 핸드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드루이드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할 거라고 말한다. 갑자기 드루이드를 어디서 모셔올 건가? 에스카노르가 절망한다.
* 멀린의 저주에 접촉한 엘리자베스가 눈을 뜨자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드루이드의 문장이 그녀의 눈동자에 나타났다. 이것은 저주를 건 자의 마력. 엘리자베스는 "칠흑의 바다와 같은 마력"이라 느낀다. 그저 접촉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빨려들어갈 것 같다. 멀린이 아니었다면 벌써 늦었을 것이다.
- 전국 BASARA(애니메이션) . . . . 9회 일치
오슈의 독안룡. 아무리봐도 폭주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다테군의 수장. 어부지리를 노리고 다케다군과 우에스기군의 전투에 난입하려다가 이를 막으려는 유키무라와 일기토를 벌인다. 이후 유키무라와 라이벌 관계가 된다.
카이의 작은 호랑이. 열혈 바보. 다케다군의 무장으로 다케다 신겐과 서로를 외치며 죽빵을 날리는 사이다. 나름대로의 애정표현이라고. 어부지리를 노리고 다케다군과 우에스기군의 전투에 난입하려는 다테와 일기토를 벌인다. 이후 다테와 라이벌 관계가 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휘하의 무장. 출격한다.
다테군의 병사들을 인질로 잡고 다테의 육조도와 다케다의 갑옷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 이마가와 요시모토
오쟈거리는 놈. 유키무라와 다테 양쪽의 목표가 되어 도망치다 오다에게 사망.
- 전민희 . . . . 9회 일치
휘경여고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ref>{{웹 인용|웹사이트=http://fairytale.pe.kr/profile/profile.html}}</ref> 특유의 미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세월의 돌]] 후속작인 [[태양의 탑]]을 연재하던 중, 표지를 만든 일러스터가 표절했음이 밝혀져 그 때문에 계약이 파기되어 한동안 [[태양의 탑]]은 집필을 중단하게 된다. 그 후 제우미디어 출판사와 계약한 후 소프트맥스와 함께 기획한 [[룬의 아이들]] 시리즈를 새로이 집필했고, 2015년 현재 1부 윈터러와 2부 데모닉까지 완간된 상태. 데모닉 집필 중간인 2004년부터 첫 작품 [[세월의 돌]]을 개정해서 출간하기도 했다.
드라마틱 MMORPG [[테일즈위버]] 홈페이지에 한 때 게재되었던 동영상 인터뷰에서는, “3부가 예정되어 있으며, 3부는 윈터러와 데모닉에 출연했던 인물들과 수년 뒤 겪게될 공화정과 왕정의 대립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할 것으로 구상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전나무와 매]]》2011년 출간 [제우미디어, 출간중]
또한 '점술'과 '별자리'와 '타로'의 부분이 각각 세월의 돌, 룬의 아이들-데모닉, 태양의 탑에 순서대로 나타난다. 세월의 돌에서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던 점술에 대한 막연한 부분이 태양의 탑과 데모닉을 거치며 점점 구체화된다. 이것이 소설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양의 탑의 각 장의 제목은 타로 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 중 몇 장의 카드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각 카드의 의미와 소설 내용의 연관성을 보인다.(메이저 아르카나는 원래 운의 내용이 '강한' 사람의 점을 칠 때에 나타나게 되는 카드다.)
- 2013년 [[로도스도 전기]]로 유명한 [[미즈노 료]]와 대담을 가진 적이 있다.<ref>{{웹 인용|제목=水野 良×ジョン・ミンヒ対談――日韓を代表するファンタジー作家同士が語り合う,日本と韓国のファンタジー小説事情|url=http://www.4gamer.net/games/098/G009811/20130711110/|날짜=2013-07-13}}</ref>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9회 일치
* 미나모토는 관측소를 [[사카키 슈지]]에게 맡기고 [[타니자키 이치로]]와 도시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사카키 슈지는 미나모토와 타니자키 이치로가 외부에서 탈출 계획을 실행하는 사이 관측소에 남아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그가 우회 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동안 미나모토와 타니자키가 인근 도시에 잠입해 두 번째 작전으로 넘어가는 계획인데.
* 문제는 타니자키와 미나모토가 산 속에서 미아가 되어 버린다. 도시는 커녕 아직 산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다. 타니자키는 GPS를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수원을 끼고 하산하는 방식을 썼는데 이게 잘못돼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그들이 따라가던 강은 폭도로 이어져 길이 끊겨버린 것이다.
* 바보같은 동행 덕에 고생 중인 미나모토. 그런데 뜻밖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된 건지 더 하운드의 야도리키 아키라와 이누카미 하츠네가 미나모토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미나모토는 헛것을 보는게 아닌가 의심하는데 아키라는 분명 현실이고 자기들만 온게 아니라고 한다.
* 와일드 캣 우메가에 나오미도 도착. 미나모토를 방해한 타니자키를 응징하자 그 익숙한 통증 탓인지 제정신을 차린다.
* 아카시 카오루가 말하길 미나모토와 헤어진 이후 칠드런은 그의 지시대로 노력해 봤지만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었다. 그런데 어떤 협력자를 얻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금은 그의 작전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미나모토 일행과 접촉한 것도 그 계획의 일환. 그런데 이 협력자는 효부 쿄스케가 아니며 효부는 만나지 못한지 꽤 됐다고 한다.
산노미야 시호는 어떤 조사를 위해 타니자키를 두고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려오라고 말하며 현장에 있는 더 하운드와 나오미도 따라달라고 말한다. 협력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카키는 블랙 팬텀에게 "백도어"로 이용당해 왔고 그쪽에선 다시 사카키를 지배하려 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 그 말을 들은 미나모토는 사카키를 혼자 두고 온 걸 후회한다. 본래는 ESP 감지기에 사카키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관측소에 두고 온 건데 이런 식으로 악수가 됐다. 나오미는 자신이 먼저 관측소에 가보겠다고 하는데 미나모토는 혼자 움직이는건 위험할 거라 판단해서 전원이 돌아가기로 한다. 미나모토는 이 작전에 대해선 모든 것이 자신의 판단미스라고 후회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9회 일치
* 무사히 BABEL의 의료연구실에 잠입한 [[사카키 슈지]]와 [[쿠모이 유리]], [[우메가에 나오미]]
*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카키는 얼른 혈청을 제조해 러브코미디와 색드립이 넘치는 절가칠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 [[우메가에 나오미]]는 화물 속에 [[사카키 슈지]]와 [[쿠모이 유리]]를 숨겨 BABEL의 의료연구실에 반입한다. 유리의 위장 최면은 감시카메라까지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
* 나오미는 자신의 검진용 ID와 비밀 코드를 사용해 연구시설로 접근시켜준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미지수. 사카키는 곧바로 혈청을 제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사카키는 완전히 잠식된게 아니므로 혼자만 두지 않으면 작업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고 혈청만 잘 만들어지면 [[츠보미 후지코]] 관리관을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사카키는 오명을 반납하겠다며 사명감에 불탄다.
* [[마츠카제 코우이치]]를 비롯한 칠드런들은 이게 최선이란 점을 거듭 강조하며 대기해줄 것을 부탁했다. 보안을 위해 통신을 비롯한 외부와의 접촉은 최소화. 필요한 것은 칠드런이 직접 옮기는 걸로 해뒀다. [[아카시 카오루]]는 자기들에게 맡기는게 걱정되냐고 묻는데.
* 자기도 모르게 "너희가 컸다는건 알지만..."이라고 답하는 미나모토. 묘하게 사실감 있는 회상이라고 생각했더니 카오루 본인이 어느새 방에 들어와 있었다.
* 카오루는 마츠카제가 준비한 타블렛PC와 미나모토의 옷가지 등도 가지고 왔는데 미나모토는 자취방에 고향에서 짐을 보낸 느낌이라고 말해서 카오루가 당황한다. "어머니나 가족"이 온 느낌이라고 정정하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변한다.
* 카오루는 "애인이라기엔 좀. 이런 이불도 가구도 없는 방에"라고 말했다가 "이불"에서 에로한 상상을 하며 폭주한다. 이런 사태를 예견한 아오이와 시호가 경고를 해놨지만 카오루는 오히려 그런 말 때문에 의식된다며 몸부림 친다.
* 본거지에서 친구가 뭘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카키는 얼른 사태를 수습해 시리어스 일변도로 굳어진 절가칠의 분위기를 에로와 러브 코미디가 넘치는 본래 모습으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미 이쪽은 절찬 러브 코미디 모드. 카오루는 미나모토를 따라 밖에 나온 뒤까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허둥지둥 대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9회 일치
* [[블랙 팬텀]]의 정신 오염으로 적이 되어 돌아온 [[우메가에 나오미 ]]와 [[바렛 실버]], [[팀 토이]].
* 바렛과 팀은 [[아카시 카오루]]와 더 칠드런 일행을 지키고 싶다는 "집착"이 틈이 되어 정신오염 당하고 말았다.
* [[미나모토 코이치]]가 에스퍼 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소식은 함정이었다. 그 대신 일행의 앞을 막아선 자들은 동료였던 [[팀 토이]], [[바렛 실버]]와 [[우메가에 나오미]]였다.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오염에 당했다.
* [[히노 카가리]]와 [[타마키 카즈라]]는 와일드 캣 나오미를 상대하고 있다. 카가리가 싸울 이유가 없다며 나오미를 말려보려 하지만 허사. 카즈라는 그들에겐 백신도 있고 적이 파고들만한 "마음의 틈" 같은건 없는게 아니었냐고 묻는다. 나오미는 의외로 순순히 모든걸 대답하는데 우선 백신이란건 체내에 주입된 입자를 무력화할 뿐이다. 하지만 레어메탈 입자는 매개체일 뿐. "네트워크"에 "통합"시키는 거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 나오미는 아재타도를 위해 카가리와 카즈라도 블랙 팬텀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스턴 서브젝션에 뭔가가 간섭한다. [[파티 크루]]의 입자 조작이었다. 일행이 너무 늦어지자 와본 건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파티는 나오미의 공격을 막고 빨리 이탈하다고 재촉한다. 하지만 미오와 모모타로는 아직도 다른 위치에 있다. 파티는 모모타로의 텔레파시로 파악해 보니 상대는 자신의 동류들이었다.
* 파티가 이때 기습을 가한다. TUEE필드도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는건 막지 못하니 파티의 입자 조작이 충분히 먹혔다. 결국 파티의 활약으로 세 사람은 벽에 처박히는 신세. 완전히 제압됐다고 생각한 카가리는 이왕이니 이들도 데리고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그 직후 카가리의 낌새가 이상하다. 뭔가 눈치챈 팀이 "해버려 아키라!"라고 외치는데 그와 동시에 일행이 있던 곳에서 갑작스런 폭발이 일어난다.
- 정난정 . . . . 9회 일치
본관은 [[초계 정씨|초계]](草溪)로 아버지는 도총부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이고, 정난정은 그와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였다. [[한성부]] 출신.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차실(次室) 남씨(南氏)의 2남 3녀 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모친은 본래는 상민이 아니었으나 난신에 연좌된 부녀로서 노비가 되었고, [[정윤겸]]의 집에 분배되었다. 그는 정윤겸과 노비가 된 반가 여성 사이에서 서녀(庶女)의 신분으로 태어났다.<ref>그러나 그 모친의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ref> 그리고 정난정은 어릴 때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정난정은 윤원형과의 슬하에 4남 2녀를 남겼는데, 정난정이 정실부인이 됨에 따라 그 자녀들도 적자가 되었다. 양반가에서는 그녀의 권세에 힘입으려고 사돈이 되자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많은 재산을 모으며 부귀를 누렸고 문정왕후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職帖)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또한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승려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禪敎)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度牒制度)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
* 《[[여인천하 (드라마)|여인천하]]》 ([[SBS]], [[2001년]]~[[2002년]], 배우: [[수혜 (배우)|장수혜]], [[강수연]])<ref>해당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단, 해당 드라마에서는 정난정을 왕실의 인물인 파릉군의 서녀로 나타내고 있으나 파릉군이라는 인물은 해당 드라마만의 가공의 인물로, 실제와는 다르게 그려졌다. 그 외에도 사실과 다른 여러 가지 내용이 등장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065244 인기 상승 <여인천하> 어디까지 사실인가?] 《동아일보》, 2001년 5월 21일 작성, 2012년 10월 31일 읽음</ref>
그는 자신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측근인 점을 이용,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서자 서녀도 능력이 되는 인물을 등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남편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ref name="yunnaev"/> 이는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ref name="yunnaev"/>
* 뒤에 나타난 전설에는 그와 정난정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 정난정이 체포되어 노비가 된 뒤에 죽었다는 전설이 나타났다. 이는 사실은 아니나 정난정 및 윤원형에 대한 사림의 원한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 정난정의 동복 둘째 오빠는 담(淡)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정난정이 반드시 화근이 될것이라 예상하고, 일체 그녀와 왕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찾아올까봐 집 입구의 담을 꼬불꼬불하게 쌓아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정난정은 늘 가마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가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문에 정난정은 그의 집에 가볼 수가 없었고, 덕분에 [[윤원형]]과 정난정이 몰락한 뒤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
* 정난정의 4촌인 [[정준]]이 명종7년 6월 18일 사헌주 집의에 임명되었다. 실록에 의하면 정준은 음험하고 경박한 성품으로 윤원형의 위엄을 빌어 대관이 되어 마음내키는 대로 인물들을 공격하였고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욕을 당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정승화(육군) . . . . 9회 일치
[[5.16 쿠데타]] 때는 방첩대장(현재의 명칭은 [[국군기무사령부|국군기무사령관]])을 역임했다.회고록에 따르면 이후의 원수지간이 되는 노태우와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노태우는 방첩대 정보과에 있었는데, 방첩대의 특성상 정치 분야에 관여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너무 그 쪽(정치)에 열중하지 마라. 군인이라면 야전에서 일하는게 더욱 군인답지 않겠나'라고 가볍게 충고한 적이 있었다고. 이 때 육군사관학교 제11기생들의 쿠데타 음모를 감지하였으나 육군사관학교 5기 동기생인 [[김재춘]]과 함께 이 사건을 덮기로 하였다. 김재춘은 5.16쿠데타에 가담해서 한때 중앙정보부장까지 올랐으나 김종필을 중심으로한 육사 8기생 그룹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면서 군부정권 핵심부에서 밀려났다.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때 신군부측에 납치당하고 만다. [[10.26 사건]] 문서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대령]]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대통령이 연회가 있으면서도 정승화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궁정동으로 불러냈다.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정 차장과 저녁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의 치밀한 계략인지, 순간적인 기지인지, 본능적인 직감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 피살 현장에서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김재규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다만 뭔가 수상쩍다는 건 느꼈는지 차 안에서 김재규가 "목이 마를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라." 하면서 준 사탕을 바로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사탕 대신 껌을 준다.]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통령이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고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시도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사실은 정승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훗날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현장에서 막지 못한 죄인이니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인데 뻔뻔하게도(?) 자리를 보전하길래 의로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이에 대해 정승화는 청문회 등에서 평소 차지철의 행보와, 당시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이 차지철이라고 오판해서 수경사 병력을 장악해 차지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고 자기 변호하였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후 기소되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 않고 온갖 고문을 동반한 수사를 받고, 군사재판의 판결에 의해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자그마치 17계급이나 강등당하는 굴욕적인 처분을 받으며 [[불명예 전역]](강제 예편)해야 했다. 한평생 뼛속까지 군인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처분이자 수치였으며, 그간 받은 장교 급여분도 이병으로 동일 기간을 복무할 시 받을 [[화폐|돈]]을 제외하고 전부 몰수당하고 군인[[연금]] 수혜 권리도 박탈되어 경제적인 위기도 겪었다. 수감기간 중 [[한미연합사|한미연합]][[사령관]] [[존 위컴]] [[장군]]이 [[생일]][[케이크]]와 축하카드를 보내 준 것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 10.26 당시 자신을 몰라보는 육군본부의 초병에게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그 초병이 대답하기를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요?"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대통령 저격이라는 비상사태가 일어났으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정승화 대장은 군복이 아닌 사복, 즉 [[정장]] 차림이었고,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 육본의 초병도 "한밤중에 갑자기 민간차량을 타고 나타난 사복 차림의 장년 남성"이 설마 육군참모총장이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다른 장교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알아보고 무사통과시켰다고.
* 가족으로은 아내인 신유경 씨와 3남 1녀가 있다. 자녀 중 셋째인 정이열 씨는 아버지처럼 육군사관학교(육사 38기)를 나와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대령으로 예편 및 전역했다.
- 정종원 . . . . 9회 일치
정종원은 잠시 부친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관직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1922년부터 1941년까지 19년간 경상도 일대와 평안남도에서 경찰 요직을 거쳤다. 이어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평안남도에서 성천군수, 순천군수를 역임하고 해방을 맞이했다.
정종원은 구한말 경기여고와 서울 사범대 출신의 교사였던 부인 신양정(신양숙)과 슬하에 2남 4녀를 뒀다. 두 사람 다 재혼이고 전 배우자들과의 사이에 자식들이 있다. 신양정은 정종원 사후 [[법시사]] 이사장과 법시 발행인을 역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3</ref> 장남 [[정운철]]은 하와이 최연소 부영사와 일본 고베 총영사를 역임했다. 정운철은 두산그룹 [[박용성]]과 동서 지간이다. 정운철과 박용성의 장인은 삼성물산 대표를 역임한 [[김선필]]이다.
막내 정운익은 하와이 오하나 퍼시픽 은행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팀을 처음으로 직접 구성했다. 그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집행위원을 겸직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5일 26면</ref> 정종원 행장 내외가 생전에 장충동 본가에서 키우며 마지막으로 안아 본 손녀가 정운익의 3녀인 뉴욕퀸이다.
정종원은 이병철마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정계 관계에 인맥이 두터웠다. 게다가 지역 갑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이병철과 달리 정종원은 일제 강점기 내내 최고층 재벌2세로 성장한 초상류층이었다. 정종원행장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발기인(총 79명)으로 참여, 언론계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ref>동아일보 1970년 4월1일 13면 전민족세력의 집결 동아일보 발기인</ref>
이병철은 정재학의 3남이자 조흥은행장인 정종원과 다각도로 교류하고 있었고 언론을 통해 정씨 가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ref>동아일보 1957년 6월20일 1면 이병철씨 조은주 양도 거부</ref><ref>동아일보 1957년 7월21일 3면 은행주 불하 경위와 금후 문제점</ref> 이병철은 1956~1957년 진행된 은행 [[귀속주]] 불하과정에서 민 씨가문과 정씨가문 간 지분경쟁에서 정씨측에 힘을 실어줬다.
이병철은 당시 대구에서 서울 장충동1가 110번지 <ref>매일경제 1974년 9월 11일 7면 고액재산세 부과대상자</ref> 로 거처를 옮겼다. 정종원 자택 인근이었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22일 9면 경제인록 22 재벌전횡 부른 귀속주 공매</ref><ref>매일경제 1987년 11월 20일 11면 이병철 그의 생애와 경영반세기</ref> 이웃이 된 이후 정종원과 이병철의 부인들은 친분이 두터워졌고 그로 인해 자손들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정종원의 막내사위인 [[장유상]] KDI정책대학원 교수 (전 보스턴대 교수)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삼성의 미국 진출에 기여했다.<ref>매일경제 2011년 1월 16일</ref>
'법시' 창간 이후 1968년 11월 '법륜'이 선을 보였고, 1974년 '불광'이 창간된데 이어 1979년에는 '여성불교'가 탄생했다. 불교 잡지는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불교계의 미디어는 신문 쪽으로 이동한다. 다양한 불교신문들이 등장하면서 불교잡지들이 설 땅이 좁아지며 1990년대 초반 대부분 정간됐다.<ref>불교전문지 월간 '해인', 1992년 12월 130호 '불교잡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ref><ref>[월간 선원 지령 200호] 1980~90년대와 2000년대 불교잡지 비교</ref>
- 진격의 거인/87화 . . . . 9회 일치
* 지크 예거는 자신을 희생시키려는 양친을 배신하고 조부모와 자신의 안위를 택했다.
* 그리샤 예거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과거 여동생을 죽이는데 일조했던 "클루거"와 "글로스"의 지휘 아래 "낙원" 파라디 섬으로 옮겨진다.
* 그리샤 예거는 그 아들 지크 예거 또한 어린날의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 왕가의 피도 엘디아 복권파의 이상도 아들에겐 남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지크는 자신을 위험에 노출 시킨 양친을 버리고 자신과 조부모의 안녕을 선택했다. 그리샤와 다이나 프리츠가 치안당국에 잡혀가는 동안 지크는 냉정한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클루거는 출항할 시간이라며 고문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그리샤와 동료들을 "낙원"으로 데리고 간다.
* 엘디아 복권파는 눈이 가려진 채 배로 옮겨진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땐 낙원, 파라디 섬 해안가의 거대한 벽 위였다. 약 30미터에 달하는 벽이 항구와 섬을 분단하고 있다. 복권파들은 이 벽 위에 꿇어 안아있다. 클루거는 그리샤의 안대를 벗겨주면서 이곳이 "엘디아인 반역자의 귀양지"인 파라디섬, 그 경계선 위라고 알려준다. 이제부터 반역자들은 종신형에 처해지는데 지성도 없고 수명도 없는 거인이 된 채로 이 섬을 헤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떠돌며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으로 살아야 하지만 정작 거인은 죽을 일이 거의 없다. 결국 영원히 지옥에서 해방될 수 없다.
* 그의 동료, 처음으로 그리샤와 접촉했던 복권파인 그라이스가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끌려온다. 그리샤가 무심코 그를 부르자 그라이스는 곧 그리샤를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는 왜 지크가 자신들을 밀고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그리샤가 아무 말도 못하는게 더 화를 돋궜는지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파냐고, 그리샤의 교육이 잘못됐던게 아니냐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리샤는 깐죽거리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는 놈이 아니었다며, 다이나와 복권파를 이런 놈에게 맡긴게 실수였다고 한탄한다. 그리샤가 얼 빠진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의 절망을 부채질할 뿐인지 힘없이 "왜 이런 녀석에게..."라고 중얼거리며 엘디아는 끝이라고 내뱉는다.
그는 클루거와는 달리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어서 작업을 시작하자고 외치고 다닌다.
글로스는 거인화 약물을 주사하며 계속 말한다. 본래 생물은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걸 실감하고 사는게 정상인데 평화로운 세상이 당연하다 느끼는 녀석들은 이상한 거다. 그러나 자신은 다르다. 인간은 언젠간 죽고 자신은 그 날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 항상 잔혹한 세계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 "취미생활"로. 그가 여동생을 개에게 던져준던 "교육"으로 그걸 본 아들들이 어엿하게 자랐다고 자평한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9회 일치
'''마션'''에서 와트니는 화성에 감자밭을 만들었다. 그가 특히 감자를 사랑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밖에도 그는 화성에서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베이스 캠프를 개조하기도 하면서 지냈는데 그 또한 그가 조경이나 쉐어하우스에 취미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화성을 탈출하기 위해 화성의 거주지를 손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우연히 시사회표가 들어왔고 우연히 '''같이 가고 싶은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시간 가량 펼쳐지는 전문용어 난무와 벌건 황무지 밖에 볼 게 없는 미장센 때문에 드물게 숙면을 취해버렸고 그 애하고 썸씽도 그날로 끝나버렸다. 이후 리들리 스콧과 맷 데이먼은 꼴도 보기 싫었고 암암리에 영화 사이트에 별점 테러를 가하는 걸로 복수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내가 와트니를 '''멘토'''로 삼아야 될 줄이야.
그때 푹 자지 않았더라면 와트니가 하던 일들을 좀 더 자세히 봐둘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도 안다. 별점 테러를 하려다 보면 영화 내용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고 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토리보드 정도는 읽어봐야 하니까. 그때는, 예를 들어서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는 이야기를 "무슨 화성에서 농사나 짓고 있어? 전원일기냐?"같은 멘트를(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단 상스러웠다) 쓰기 위해 읽어야 했다. 그러니까 대충 마션의 스토리와 와트니의 업적은 숙지하고 있다.
당장 생각나는건 '''이 집을 보수'''하는 일이다. 이제와서 이 집을 펜트하우스처럼 만들진 못하겠지만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고 다소는 자급자족도 가능하며 녀석들에 대해서는 잊은 것처럼 살 수 있는 공간으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좀비 월드에서 기획된 렛 美 하우스.
가장 먼저 떠오른건 '''빗물탱크'''였다. 와트니처럼 나도 물은 충분히 있지만 사정이 좀 다르다. 아직은 수도가 끊기지 않았지만 공급이 얼마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도 외에 식수를 찾아야 하고 제일 먼저 생각난게 빗물이다. 그건 옥상의 물탱크를 쓰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정수 문제나 물탱크의 물을 수도로 연결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일단 그건 미뤄두자.
이제 내 계획에 구체성을 부여할 때다. 물탱크와 담벼락과 뒷마당의 농장화. 이것도 다 뭔가 자원이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불행한 얘기지만 지금 손에 잡히는 물건들론 도저히 해낼 것 같지 않다. 그러니 우선은 자원 획득이다. 쓸만한 자재가 필요하다. 연장도. 일단 가지고 싶은건 튼튼한 끈과 막대기다. 묶을 것과 달아놓을 것이 있으면 초보인 나도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 최성원(가수) . . . . 9회 일치
대학 재학 중이던 1979년 고려대 동문인 이영재, 이승희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이영재, 이승희, 최성원'에 참여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우리동네전시회'라는 프로젝트 앨범에도 솔로 가수로 참여하였다. 고대 동문이자 친구였던 조덕환[* [[들국화(앨범)|들국화 1집]]에 최성원과 함께 참여하였다. 1집에서 '[[세계로 가는 기차]]', '[[축복합니다]]',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등이 그의 곡이다.]과 이영재는 1978년 [[대학가요제]]에 '고인돌(코리아스톤스)'이라는 밴드명으로 참가했지만, 최성원은 거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 생각으로 대학가요제는 그저 학예회일 뿐이며, '음악하는 장'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1983년 들국화에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였다. 이후 잠시 빠졌다가 다시 합류하여 1985년 [[들국화(앨범)|들국화 1집]] 앨범작업에 참여하였는데,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리스트 1위를 차지한 전설적인 명반이 되었다. 최성원은 여기서 1집에서 가장 유명하며 아직도 명곡으로 회자되는 '[[그것만이 내 세상]]', '[[더 이상 내게]]', 1집에서 전인권과 최성원이 유일하게 듀엣으로 부른 노래인 '[[사랑일 뿐이야]]', 자신이 메인보컬이 되어 부른 노래이고 그것만이 내 세상과 함께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곡 '[[매일 그대와]]' 등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였다.
이후 1986년 [[너랑 나랑|들국화 2집]]을 발매하였으나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그래도 최성원이 만든 노래인 '[[제발]]'은 히트했으며 '[[내가 찾는 아이]]'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등은 2집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1집의 카리스마에 비하면 2집은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최구희와 손진태의 영입으로 들국화가 완전한 록밴드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많은 팬들과는 달리 오히려 더욱 말랑말랑해진, 포크와 팝 정도의 사운드 후하게 쳐줘도 포크록에 그치는 사운드가 나와 실망한 팬들이 꽤 많았다.] 결국 밴드내 불화[* 전인권과 최성원이 하루도 싸우지 않을 날이 없었다고 한다.] 등으로 들국화는 1987년 해체하고 만다.
1990년 '어린 왕자'[* 1985년 우리노래전시회에서 강인원이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솔직할 수 있도록' 등이 수록된 2집을 발매하였다. 사실 이 음반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명곡들이 상당히 많다. 도입부의 나레이션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어린왕자'와 낙관적인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솔직할 수 있도록'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들국화 초기 시절의 추억을 담은 '생각이 나는지', ccm풍이 물씬 풍기는 '행복의 열쇠'와 최성원 특유의 음색과 곡의 멜로디가 잘 어울려져 있으며 손진태의 기타솔로가 인상적인 '네 눈 앞에만' 등 수록된 모든 곡들이 명곡이다
* 들국화 시절 전인권과 정말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최성원과 전인권은 [[비틀즈]]로 따지면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라고 할 만큼 애증의 관계. 음악 성향부터 사생활까지 극단적으로 다르며, 각자 음악적 역량도 뛰어나고 주관도 너무 뚜렷한 둘은 들국화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고 한다. 재미 있는 것은 이들을 중재해 주던 것이 드러머 주찬권이었는데, 이것도 [[비틀즈]] 시절의 [[링고 스타]]와 판박이. 이후 전인권이 약물중독 등의 방황을 벗어난 후에는 서로 인정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들국화 재결성은 힘들 듯~~
* 1990년대 맥주회사 CF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했다.
- 킹덤/498화 . . . . 9회 일치
* 환의와 양단화가 차례로 거명되고 총대장은 왕전 대장군에게 돌아간다.
* 병력을 증강한 이후 처음으로 전쟁 준비에 나서는 비신대. 갓 입대한 활형제와 간두 등 신병들은 수도 함양으로 소집되면서 수도 함양의 전경과, 몰려드는 무수한 군세와 긴장감으로 정신이 없다. 초수 등 고참들이 이들이 들뜨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 작전은 매우 기밀로 취급돼서 병사들도 이 자리에 올 때까지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 다만 여기에 모여든 지휘관들의 면면을 보고 얼마나 위험한 전투가 될지 짐작할 따름이다.
* 창평군은 조나라와 총력전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며 절대 겁먹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라고 연설한다. 곧이어 군을 통솔할 장군을 발표하는데, 우선 단상에 오른 것은 환의 장군이다. 환의하곤 좋은 추억이 없는 비신대로서는 드러내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데 환의 측의 부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시대가 열린다고 외친다. 이미 정해진 바니 비신대도 떨떠름한 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 그들 중에 반가운 얼굴을 발견한 신은 바지오, 타지흐와 손을 맞잡으며 인사한다. 바지오는 신의 성장을 기뻐해주고 타지흐는 놀랍게도 중원의 말을 배워 더듬거리며 몇 마디 정도는 하게 된다. 비신대의 신참들은 신이 산민족과 인연이 있다는걸 알리가 없기에 그저 놀라며 칭송한다.
여기에 대해 창평군이 직접 설명한다. 환의와 양단화는 각각 부대의 대장이니 총대장이 아니다. 이번 전투는 총 3군이 참가하는 거대한 전투. 진짜 총대장은 지금 소개하는 이 사람.
* 이제 상황 파악이 된 병사들은 이번 전투의 규모와 가혹함을 가늠하며 긴장한다. 신은 이번 조 공략전은 왕전, 환의, 양단화 군이 총집결한 "연합군전"임을 밝힌다.
정치적 차원으로 생각하면 잡음이 많을 법한 에피소드. 우선 종전 전투에서 공을 세운 환의가 총대장이 되지 못했고, 비록 최 공방전의 댓가로 대장군과 동급의 지위를 얻었다곤 하나 출신과 편제가 애매모호하고 환의 군 이상으로 이질적인 군세를 이끄는 양단화가 환의와 동격으로 합류했다. 이들을 최종적으로 조율할 총대장 왕전도 공공연하게 흑심이 있는 걸로 비춰지는 인물. 이런데다 이신이나 왕분, 몽념같은 개성적인 하급 지휘관들이 독립부대 노릇까지 하게 됐으니, 지휘관 편재 상으론 콩가루 군단이 완성된 거나 다름없다.
조나라와의 대결이란 부분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환의의 패배, 또는 사망 플래그를 점치는 독자들도 많다.
- 토리코/388화 . . . . 9회 일치
* 미도라와 아카시아는 경악을 감추지 못한다.
* 경왕 문도 회복하는 듯 하지만 다소 늦다. 사왕 마더 스네이크와 오왕 앰페러 크로우는 회복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 아카시아와 재대결하기 직전.
* 부활한 사천왕 코코, 써니, 제브라와 텟페이도 거기에 동감하며 가장 나중에 먹기를 자청한다.
* 심지어 죽어가는 와중에도 배는 고픈데 식욕이 멈추지 않고 그렇게 시키기 때문.
* 그때 토리코가 말을 끊으며 "나와 스타준은 플로제와 사랑에서 태어났나 단지 식욕이었나"라고 묻는다.
* 오왕과 사왕은 틀린 걸로 나오는데 아마 그 자리는 키스와 퀸이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 적귀는 토리코에게 먹히면서 완전히 흡수된 듯이 묘사되고 토리코 본인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카시아와는 정반대.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9회 일치
일본도를 든 전통주의자 150명. 19라는 근접 공격 수치와 야리 키헤이와 동급의 돌격 보너스를 가지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백호대 병사 20명이 불타는 와카마츠 성을 보고 성이 함락되었다고 판단, 할복하여 19명이 사망한 "백호대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존왕파 정예병 150명. 막부파 근위 보병대와 비교해서 능력치 차이는 없다.
막부파 정예병 150명. 존왕파 근위 보병대와 비교해서 능력치 차이는 없다.
영국 해병대원 150명. 근위 보병대와 비교해서 모든 능력이 조금씩 높다.
긴 사정거리와 민첩함으로 승부하는 소규모 사격전 부대. 체급의 차이로 전열보병을 대신하기는 좀 그렇다.
* 격려(Inspire Unit): 부대 하나를 선택해 격려한다. 짧은 기간 동안 사기와 명중률과 근접전 능력이 향상된다.
* 격려(Inspire Unit): 부대 하나를 선택해 격려한다. 짧은 기간 동안 사기와 명중률과 근접전 능력이 향상된다.
- 페어리 테일/490화 . . . . 9회 일치
* 메이비스는 제이라와 헤어지기 싫다고 매달려 운다.
* 그레이와 쥬비아, 엘자 또한 어딘지 모를 곳으로 이동돼있다.
* 쥬비아는 주변을 둘러보고 와서 웬디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 그레이와 쥬비아는 교대로 엘자를 돌보며 주변을 탐색한다.
* 웬디와 샤를은 사막지대 같은 곳으로 날려졌는데 역시 그레이 일행을 찾고 있다.
* 카나와 마카로프를 비롯한 길드에 있던 인원은 전부 이름 모를 해안가로 이동해있다.
* 브랜디쉬는 오거스트와 함께 있는데 그녀가 낸 상처를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치료 중.
* 본편이 뜨기 전 유포된 정보에는 제목이 "어머니와 딸"이어서 아이린과 엘자가 모녀관계라는 설이 확정되는 듯 했지만 가짜 스포였던 걸로 밝혀지면서 다시 유보되었다.
* 아이린이 피오레 왕국 한복판에 나타났는데, 마침 나츠 일행도 왕성 근처에 있어 나츠 일행 vs 아이린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생겼다. 이렇게 되면 나츠는 스프리건12의 양대 최강자와 모두 겨뤄본 셈이 된다.
- 페어리 테일/503화 . . . . 9회 일치
* 폴류시카와 브랜디쉬 일행이 와서 루시를 구출, 나츠의 진단이 틀렸음을 알려준다.
* 나츠는 방을 뛰쳐나가 제레프를 찾으며 폭주한다. 그리고 END의 진실을 알게 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마주치고 마는데.
* 자신이 포로가 됐을 때와 같은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 다시 특유의 "딱"소리와 함께 자리를 옮기는 디마리아. 루시의 코앞으로 다가온다.
* 그때 해피가 루시와 나츠를 찾아 달려온다.
* 뒤이어 폴류시카와 에버그린, 브랜디쉬가 따라온다.
* 브랜디쉬와 디마리아가 눈이 마주치는데 피차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 END 말살을 맹세한 그레이와 END로 각성해가는 나츠의 대면.
- 페어리 테일/524화 . . . . 9회 일치
* 제레프와 페어리 테일 일행은 아크놀로기아의 마력을 느끼고 경계하는데 제레프는 시간이 없으니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죽어달라고 말한다.
* 아크놀로기아의 등장으로 [[오거스트]]와 [[길다트 클라이브]], [[카나 알베로나]]의 싸움과 잠시 멈춘다.
* 아크놀로기아는 그녀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는 곧장 엘자와 웬디를 지나쳐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시신으로 간다. 그는 아이린의 시신을 우두커니 들여다보더니 그녀가 인류에게 처음으로 멸룡마법사의 힘을 주었던 자라인류에게 처음 멸룡의 힘을 준게 너였냐고 말한다.
아크놀로기아는 아이린의 시신을 짓밟아 훼손한다. 그 행동과 기분 나쁜 웃음은 엘자와 웬디를 공포로 밀어넣는다.
* 페어리 테일 길드에서는 [[나츠 드래그닐]]과 [[제레프 드래그닐]]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레이 풀버스터]]는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둘의 주먹이 부딪힌다. 잠시 힘이 균형을 이루는 것 같지만 나츠가 제레프를 밀어내고 첫 공격을 때려박는다. 제레프는 가볍게 몸을 빼내서 반격하고 나츠는 이전 염룡왕의 힘을 썼을 때와는 달리 맥없이 날려보내진다.
* 아크놀로기아의 등장은 [[길다트 클라이브]], [[카나 알베로나]]와 교전하던 [[오거스트]]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이 다 됐다고 중얼거린다. 길다트와 카나 또한 익숙하고 기분 나쁜 마력을 알아차린다. 오거스트는 그 녀석이 오기 전에 폐하(제레프)가 페어리 하트를 흡수했다면 다른 결말이 됐을 거라고 말한다. 길다트는 오거스트가 싸움을 포기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니냐고 의아해한다. 오거스트는 아크놀로기아는 "인간의 미래를 검게 물들이는 어둠의 날개"라고 표현한다. 길다트는 그런 맥락이라면 댁들도 같은게 아니냐고 쏘아붙이는데 오거스트는 믿기 어려운 대답을 한다.
>동료와 웃으며 보낼 수 있는... 그것 뿐인 시간이
- 페어리 테일/526화 . . . . 9회 일치
* [[길다트 클라이브]]는 [[카나 알베로나]]를 지키기 위해 부상을 무릎쓰고 [[오거스트]]와 동귀어진할 기세로 돌격한다.
* 오거스트는 마법의 순간 복사와 무력화. 하지만 홀더계 마법은 "도구" 없이는 카피할 수 없어 카나의 카드를 피해야 했던 것이다.
*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 집착했돈 오거스트. 사실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은 제레프였다.
* 오거스트가 바로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태어난 친자. 제레프는 그가 친자인줄 모르는 채로 만나 "오거스트"란 이름을 붙여주고 거두게 된다.
* 오거스트는 아직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 집착하고 있지만 싸우는데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따위"라고 중얼거리며 카나를 지팡이로 찌른다. 길다트가 몸을 던져서 그 앞을 막지만 이전 아크놀로기아가 뜯어먹은 왼팔의 의수 부분을 관통 당한다. 카나는 무리하지 말라고 염려하는데 오히려 길다트는 딸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겠다며 투지를 끌어올린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만 생각하고 살았지만 애가 생기니 그게 전부 아이를 위한게 되더라며 신기하다고 말한다. 카나는 전투 중인 것도 잊었는지 지금도 실컷 싸돌아다니지 않냐고 핀잔을 주는데, 그것도 카나가 아버지를 껄끄럽게 여기는 것 같아서 한 행동이다. 만약 카나가 같이 있어주길 원한다면 언제까지라도 곁에 있겠다고 하는데 역시 카나는 그런건 싫다고 질색한다.
라케이드는 제레프의 자식 같은게 아니었다. 그저 [[나츠 드래그닐]]을 END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실험체일 뿐이다. 단지 그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기에 "드래그닐"이란 성을 부여한 것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인 주제에 자신과 나츠의 싸움을 방해하다니, 그는 라케이드를 "덜 떨어진 놈"이라 부르며 걷어찬다. 너무 심한 처우에 보고 있던 나츠 조차 그만두라고 끼어든다. 오로지 나츠와 대결에 정신이 팔린 제레프는 라케이드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돌아서버린다.
* 과거 [[마스터 하데스|프레히트 게이볼그]]가 [[메이비스 버밀리온]]에게서 적출한 "생명"은 골치 아픈 존재였다. 아이는 건강한 신생아였지만 프레히트는 곧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생긴 아이임을 알게 된다. 메이비스에게 아이가 생긴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아이는 빛도 어둠도 아닌 강대한 마력의 소유자였다. 살려뒀다면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예상한 프레히트. 그러나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는지 외딴 곳에 아이를 버리는 걸로 문제를 묻어버린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마력을 가진 아이는 살아남았다. 그는 프레히트를 원망하진 않았다. 자신의 부모에 대한 것도 마력을 통해 기억을 되살려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연고가 없는 어린아이였기에 삶은 힘들었다. 식사는 민가에서 도둑질을 해서 해결했고 무엇을 하든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아버지, 제레프였다. 숲을 방황하던 아이는 우연히 제레프와 마주치고 그가 누군지 깨닫는다.
바로 그가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9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를 이길 수 없었던 당대의 드래곤들은 제레프와 안나의 협조로 멸룡마도사들을 미래로 보내는 계획을 세운다.
* 이들을 미래로 보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사고가 발생해 안나와 다섯 멸룡마도사들은 흩어지고 5년이나 걸려서 그들의 소재가 확인된다.
엘자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휘청거리면서 잠시 러브코미디를 연출하는데 [[웬디 마벨]]이 사이에 끼어서 괴롭다. 그렇지 않아도 멀미로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여성이 웬디에게 다가온다. 그녀는 웬디를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보듬으며 "이 배는 멸룡마도사도 탈 수 있게 만들어진 배"이니 진정하고 심호흡을 하라고 말한다. 엘자는 어째서 그녀가 웬디를 아는지 의문스럽다. 웬디가 그녀의 말대로 심호흡을 하자 거짓말처럼 멀미가 멎는다. 정신을 차린 웬디가 여성의 얼굴을 마주본다. 그리고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아!"하고 탄성을 낸다.
* 하늘 위로 추격전이 펼쳐지면서 크리스티나호의 선체는 심하게 요동친다. 이치야가 제니 대신 키를 잡고 수평유지를 위해 애쓰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직 복도에 있는 엘자 일행. 엘자와 제랄은 계속 넘어지고 포개지면서 러브 코미디 모드. 웬디는 비틀거리면서도 방금 전 만난 여성을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여성은 이제 기억이 났느냐고 묻는다.
안나는 웬디를 안은 채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 그리고 아크놀로기아를 물리칠 방법에 대해서 입을 연다. 그녀는 400년 전의 멸룡마도사들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었다. 나츠, [[가질 레드폭스]],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그리고 웬디가 그녀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쳤으며 [[제레프 드래그닐]]이 알려준 대로 나츠의 머플러를 떠주기도 했다.
>멸룡마도사와 함께 이클립스를 통해 이 시대에 왔어.
* 마그놀리아의 공원. 전쟁은 끝났지만 파괴의 흔적이 역력하다. 루시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레이 록버스터]]는 [[메이비스 버밀리온]]이 지시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다가 루시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눈물을 참지 못하다 그레이와 해피가 당황한다. 메이비스가 건넨 END의 서는 루시의 손에 들려있다. 루시를 그걸 들여다 보다가 "나츠의 목숨이 이런 책 한 권이라니"라는 생각이 들어 울음이 터졌다. 그레이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해피도 루시를 따라 울먹거렸다.
* 크리스티나호는 아크놀로기아를 꽁무니에 달고 전속으로 날아간다. 항해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방금 전처럼 심한 흔들림은 사라졌다. 안나와 엘자 일행은 조금 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안나는 400년 전쟁 당시엔 아크놀로기아를 제압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당대의 드래곤들은 미래에 희망을 걸기로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키운 멸룡마도사 체내에 들어가 400년 후의 미래로 건너온다. 여기까지는 웬디가 그란디네에게 들어서 아는 내용. 그란디네는 이 시대가 가장 마력이 충만한 시대이기 때문에 선택됐다고 말했다.
- 페어리 테일/537화 . . . . 9회 일치
* 제레프는 패배를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죽음에 이르지는 않고, 메이비스와 대화를 나눈다.
* 그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경험이었고 그 끝에서는 "맨발의 소녀"와 "칠흑의 소년"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고 말한다.
메이비스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페어리 테일 길드의 초대 마스터로서 동료들을 괴롭히고 상처입힌 것을 용서할 수 없고 당장 이 세상에서 말소해버리고 싶다고 냉정히 말한다. 제레프가 뜻모를 미소와 함께 "너에게 죽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메이비스 또한 뜻모를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옆에 앉더니 "이제 편히 잠들어도 된다"고 말하는데.
잠자코 있던 제레프가 오히려 그녀에게 "마음 쓸 것 없다"고 위로한다. 자신은 어차피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이 없으며 메이비스의 감정은 사랑보다는 "정"이라는걸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메이비스는 그 말을 부정한다. 그것은 정이 아니라 "모순"이었다. 제레프와 만났기에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와 만났기에 이 마을을 구했다. 그리고 그가 있었기에 페어리 테일이 탄생했다. 메이비스가 제레프에게 가지는 감정은 숭배에 가까웠다.
그는 메이비스의 손을 붙잡고 그녀와 더 이야기하고 싶었고, 나츠와도 화해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메이비스가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말하자 그는 정색하며 그녀는 살아야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진심이기 때문에 메이비스는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조용히 눈물 흘리는 두 사람.
그들이 빛으로 화하는 순간은 부드러게 미소짓고 있었다. 제레프는 빛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메이비스는 여기가 페어리 테일 안이니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제레프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게 되었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그의 유언이 들렸다.
* 스프리건12와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집결 중이던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 문득 그들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렉서스 드레아]]가 안아들고 있는, [[마카로프 드레아]]에게 였다.
- 하이큐/209화 . . . . 9회 일치
* 그러나 주장 사와무라와 타케다 고문은 웃을 일로 들리지 않는다.
* 시라토리자와 배구부 감독 "와시죠 탄지"
* 와시죠 감독은 히나타에게 "카게야마란 세타가 없는 너한텐 가치를 못 느끼겠다"고 폭언을 한다.
* 와시죠 감독과의 미묘한 신경전.
* 한편 카게야마는 동료들의 우려와는 달리 어떻게든 훈련장소로 도착한다.
* 카게야마와 히나타는 각자 자신의 합숙장소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 와시죠 감독. 냉정하지만 지금의 히나타에겐 가장 적절한 평가.
- 하이큐/234화 . . . . 9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초정밀 토스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심한 영향을 받는다. 카게야마는 [[사와무라 다이치]]에게 컨트롤을 맞출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청한다. 다시 속공을 시도하지만 여전히 토스가 길다. 또다시 흘러나가는 공. 그러나 [[타나카 류노스케]]가 끼어들어 어거지로 상대방 코트로 밀어넣는다. 스코어는 3대1. 모두 카게야마가 준비가 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각오다.
중계석에선 카게야마가 이렇게 실수를 연발하는건 처음이라고 코멘트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최종 워밍업에서 [[히나타 쇼요]]와 맞춰보지 못한게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고 아쉬워한다.
* 경기는 계속된다. 카게야마는 이번에도 히나타와 속공을 시도하지만 공은 히나타의 손끝을 지나친다. 하지만 히나타는 헤딩으로 공을 넘기는 기예를 시전, 공격은 성공하나 츠바키하라 측과 관객석 양쪽의 비웃음을 산다.
야마구치의 서브. 첫시도는 조금 틀어졌다. 4번 테라도마리를 향해야 할 공이 조금 꺾여 카이카게 쪽으로 간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틀어진 궤도가 전화위복이 됐다. 테라도마리와 카이카게가 둘 다 어느 쪽인지 망설인 탓에 리시브가 흔들린다.
공은 에치고에게 연결되지만 아즈마네와 사와무라, [[츠키시마 케이]]의 블록에 막혀 저지. 첫 블록과 동시에 득점한다. 츠바키하라의 오오사도 감독은 리시브가 늦다고 칼같이 지적,
* 카라스노가 따라붙으면서 점수차는 더 벌어지지는 않지만 좁혀지지도 않는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그 점을 우려한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에게 세트를 올려 공격에 성공, 이제 그럭저럭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때 히나타가 코트 인. 들어오자마자 치고 싶어 안달난 눈빛을 보낸다. 사와무라는 그들을 보며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겐 "실수하는게 무섭다는 감각 자체가 없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츠키시마의 서브. 테라도마리가 받아서 마루야마가 스파이크. 사와무라가 리시브한다. 카게야마가 좋은 리스브라고 생각하며 세트 포지션으로 들어가는 순간.
- 휴먼 토치 . . . . 9회 일치
[[판타스틱 포]]의 일원. 누나 [[인비저블 우먼|수 스톰]]과 [[미스터 판타스틱|리드 리처즈]], [[씽(마블 코믹스)|벤 그림]]과 함께 우주여행을 갔다가 우주 방사능에 노출되어 온몸이 불타오르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이전에 [[짐 해먼드|그와 비슷한 능력을 지녔던 슈퍼히어로]]의 이름을 따 스스로를 '휴먼 토치'라고 이름 붙였고, 수, 리드, 벤과 함께 슈퍼히어로 팀 '[[판타스틱 포]]'로 활동하게 된다.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파괴적이어서 온도를 거의 초신성([[슈퍼노바]])수준까지 올릴 수 있고, 자신은 화염에 아무 피해도 받지 않는다. 불타는 인간 형태로 변하여 비행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한 화염인간을 조종할수도 있어서 매애애애애우 초창기에 정체 숨기고 다닐 적엔 불을 조작해서 연기 피운뒤 휴먼토치로 변해서 나간다거나 연기속으로 돌아와 화염 인간을 보내놓고 내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물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약하기도...(...) 실제로 한창 날뛰다가 물 한번 맞고 뻗기도 했다.
[[스파이더맨]]과는 초창기부터 티격태격하며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스파이더맨 그만둘까 고민하던 피터가 쟈니 스톰의 영웅에 대한 연설을 듣고 다시 기운 차려서 스파이더맨이 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자니 스톰도 스파이더맨하곤 스스로가 "친근한 [[라이벌]]" 관계였다고 말하기도... 그래도 가끔씩이 둘이 싸우면 아주 난장판으로 싸우기도 했다. 쟈니가 파티장에서 여자들에게 인기를 끈 것을 보고 질투한 스파이더맨이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둘이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둘이 협력해서 샌드맨과 싸우기도 하는 등 티격태격하는 라이벌 관계라고 보면 된다. 한번은 쟈니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관계가 서먹해지고 여친이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이 아닌 평상시의 모습)에게 관심이 있자 질투심에 피터를 찾아와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샌드맨등의 적을 힘을 합쳐 쓰러뜨렸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수 있는 친구가 되고 나중에 쟈니가 자신이 죽을 경우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란다고 말할 정도의 관계가 된다.
[[댄 슬롯]]이 스토리를 담당한 "스파이더맨 - 휴먼 토치" 미니 시리즈에선 10대 시절부터 피터가 학교 선생이 되고 불가피하게 휴먼 토치에게 정체를 드러낼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있는데 서로 심술부리며 싸우면서도 도와주고[* 일례로 닥터 둠이 휴먼 토치를 얼음속에 가둬두고 없애버리려 하자 스파이더맨은 닥터둠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숙적인 휴먼 토치를 없애게 해달라고 조아린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닥터 둠은 스파이더맨에게 휴먼 토치를 끝내라고 얼음 전체를 주지만 스파이더맨은 휴먼 토치를 들고 도망간다(...)] 마지막에 피터가 다니는 학교에서 휴먼 토치와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물리친뒤에 가면을 벗고 대면하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을 얘기한다[* 피터는 쟈니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판타스틱 포와 온갖 모험을 하고 언론의 음해를 당하지 않는 유명인의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쟈니는 피터에게 자상한 숙모가 있고(쟈니는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친한 미인 여자친구들이 많으며 미스터 판타스틱 못지 않게 머리도 좋고 사진도 잘 찍는 것을 부러워했다. 이러면서 피터처럼 운이 좋은 걸 파커 럭이라고 불렀다는데, 원래 파커 럭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피터의 삶을 얘기하는 단어이다(...)]. 슈피리어 이후 피터가 돌아온 것을 안 쟈니는 옥토퍼스가 몸을 차지한 기간동안 피터가 놓친 영화, 드라마, 음악등을 USB에 담아주기도 하며 자기가 죽었다 돌아온 시절을 얘기하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한다.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이나 울버린등이 어디까지나 가까운 "동료"라면 휴먼 토치는 몇 안되는 '''친구'''이다.
570호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잦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져 팬들의 불안을 야기했으며 결국 587호에서 백스터 빌딩 안에 [[네거티브 존]]이 어나이얼레이션으로부터 강제로 열려지자 [[인간]]으로 돌아온 [[씽(마블 코믹스)|씽]]과 백스터 빌딩에 거주하는 학생들과 식객 그리고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네거티브 존에 남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 만화 특성상 결국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 3월의 라이온/127화 . . . . 8회 일치
* 방에서 혼자 있던 하야시다 타카시는 밖에서 들려오는 폭죽 소리를 듣고 카와모토 아카리를 떠올린다.
* 불꽃이 터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축제 때 카와모토 아카리를 부축했던 일을 떠올린다.
* 아카리와 불꽃놀이를 함께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하야시다.
* 그와는 그저 동년배라는 접점 밖엔 없었지만 그를 동경하고 겹쳐보면서 일방적인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 아카리와 만난건 처음이었지만 시마다의 그렇게 부드러워진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 가게 앞까지 와놓고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카와모토 미사키가 "바가지는 씌우지 않겠다"고 했던 것도 쉽게 믿지 못한다.
* 시마다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 Crusader Kings 2/DLC . . . . 8회 일치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수피교 신비주의자, 샤리아, 아내'''들''' 간의 갈등과 같은 이슬람교도 전용 이벤트도 추가된다.
아즈텍 문화와 아즈텍 신앙이 추가되었으며, 아즈텍과 유럽의 충돌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이벤트가 추가된다.
룬스톤, 블로트, 광전사와 같은 토속 신앙 전용 디시전과 이벤트가 추가되었다.
이슬람교의 경우 순한맛 무타질리파와 진한맛 아샤리파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인도 문화권으로 플레이 할 수 있게 해주는 DLC. 이 DLC의 발매와 동시에 크루세이더 킹즈 2의 지도 크기가 확대되었다. 이제 타클라마칸 사막 언저리까지 보인다.
또한 관심사에 따른 이벤트들이나 불륜 상대와 손잡고 잠시 사랑의 도피를 하는 이벤트 등이 추가되었다.
또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시스템도 바뀌게 된다. 전에는 후견인과의 이벤트로 성격 특성이 붙었다면 콘클레이브 DLC에서는 교육자와의 이벤트로 아이들 전용 성격 특성이 붙고 이 특성들은 성인이 되는 순간 성격 특성으로 변이되는 시스템이 된다. 또한 아이의 유년기 교육 중점과 청소년기에 무엇을 교육시킬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다.
궁정의사를 고용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시 궁정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성공적인 치료를 받았을 경우에는 능력치와 체력 수치에 버프를 받아 생존 확률이 증가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역으로 페널티가 붙는다. 이놈들은 "실험적인 치료"로 몸 한구석을 잘라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실험적인 치료는 사실상 로또라는게 문제지만. 신비주의자 의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거나 자신을 제물로 바쳐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또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혀주는 건물인 병원을 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역병에 죽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을 위해 성문에 못질하고 가신들과 함께 [[히키코모리|히키짓]]하는 디시전도 생겼다.
- Q.E.D. 증명종료 . . . . 8회 일치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에 무관심한 15세에 [[MIT]]를 졸업한 [[천재]]소년 [[토마 소]]가 일본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해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천재들이란...] 체력과 의욕이 넘치는 [[미즈하라 가나]]와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사람이 팍팍 죽어나가지도 않고[*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엔 페이지가 부족해서 그랬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살인 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도 만들게 되었다고. 35권처럼 살인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뭔가 성적인 소재가 사용되지도 않으며, 사건이 끝난 뒤에 깔끔하게 해결되는 편. 그러나 문헌 오염, 증명에 실패한 위상 수학자, 지쳐버린 작화감독, 환자와 의사로 비유하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라는 등 씁쓸함과 여운을 남기는 해결도 상당히 많다. 해결추리 만화에 흔히 나오는 '불가능 트릭'도 그리 많지 않으며(가끔 나오기는 한다) 다음 권으로 사건의 답 등을 넘기는 경우도 없다.
일본에서는 각각 20권 돌파 기념, 드라마화 기념으로 일종의 특별편+가이드 북 격인 Q.E.D. 트릭노트, 트릭파일이 출시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거 없다|그런 거 없었다]].(당연한가...) 일본에서는 Q.E.D.와 C.M.B. 단행본이 같은 날 출시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발행되고 있었으나, 40권부터 C.M.B 18권과 같이 나오다가 42권 부터는 또 미묘한 텀을 두고 발매되고 있다.
인물설정 때문인지 오일러의 공식이라든지 초끈이론이라든지 일반인으로서는 머리아픈 수학, 과학적 이론이 많이 나오는데 작가는 건축과 출신으로 과학은 취미로서 좋아한다고 한다.[* 현학적이라 장점이자 단점. 팬들은 좋아하지만 골치아프다고 포기하는 독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만화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기타 추리물처럼 오류가 있다. 이를테면 4권에서 클란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를 공격한다는 장면에서 '''MIT'''출신자인 토마와 로키가 원자력 발전소, 미사일 사일로 등을 걱정하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내용. 기술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어지간한 중요 시설은 '''물리적'''으로 일반 네트워크와는 분리되어 있다.[* 즉 아예 물리적인 서버 자체가 따로 구축되어 있다. 은행권의 경우 인터넷 뱅킹 등으로 외부 전산망과 연결되어 있고 그 틈을 노릴 수 있지만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는 네트워크'''는 공개 전산망에 이어지는 회선 자체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폐쇄 네트워크를 공격하기 위한 [[스턱스넷]]과 같은 공격기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약정한 공격행위를 하는 것뿐으로 외부에서 원격 조종하는 개념은 아니다.] 즉 직접 가서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일개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반인의 통념이라면 모르겠는데 '''MIT''' 현역이 저런 소리를 하니..
그래도 고정팬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추리만화다. 다만 작가가 소재가 겹치는 [[C.M.B. 박물관 사건목록]]을 연재하면서 Q.E.D.를 다소 소홀히 하는 듯한 경향이 보이며 또 팬들의 애탄 바람과는 상관없이 [[토마 소|토마]]와 [[미즈하라 가나|가나]]의 ~~연애질~~연애노선이 진전될 가망이 안보인다는 점(...)[* 주인공들이 아직도 서로를 토마군-미즈하라씨 로 부르고 있다...]
== C.M.B와의 콜라보 ==
* [[NHK]]에서 드라마로 제작, 2009년 01월부터 방영되어서 10화로 완결. 여주인공 가나역에는 모닝구무스메의 멤버([[다카하시 아이]])가 캐스팅되어 화제...였다고는 하지만...아~[[망했어요]][* CMB 14권에 따르면 작가의 부인이 이 드라마 덕분에 다카하시의 팬이 되었다고는 하는데 과연...] 다행히 실사판의 흥행여부와는 관계없이 만화는 계속 사랑받고 있다.
- Victoria II/상품 . . . . 8회 일치
특정 프로빈스의 RGO[* Resource gathering operation. 지역 특산물 정도로 이해하면 편하다.]에서 생성되며, 다른 상품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상품들. 농부와 노동자 POP가 생산한다. 자국에서 나지 않는 원자재의 대부분은 수입하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식민지|원자재가 나는 곳을 영토로 만들던가.]]
목화와 염료를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농부에 의해 생산된다. 생산지는 인도와 중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유리와 전기 장치를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유리와 과일을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유리와 곡식을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열대수와 가구를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유리와 전기 장치를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 거미(가수) . . . . 8회 일치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으며 [[양현석]]이 이끄는 [[YG엔터테인먼트]] Ent.와의 계약이 만료되었지만 YG Ent.와의 끈끈한 인연으로 4년 재계약을 맺었다. 방송에 진출하기 전에 [[나우누리]] 흑인 음악 창작 동호회인 [[SNP]]에서 알게 된 가수 [[휘성]]을 트레이닝시켰다고 한다.
2013년 YG와 계약이 종료되었고, 결국 10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체결하며 오랜 세월 함께하던 YG를 떠났다.
2014년 2월 7일에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주현미]]편에 출연하여 다섯번째 순서로 나와서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열창하여 우승을 거머쥐었다. 점수는 무려 '''445점'''으로 바로 앞 순서로 나온 [[김종서(가수)|김종서]]가 '''442점'''으로 종전 [[정동하]]가 세웠던 최고기록 439점을 깨자마자 다시 기록을 경신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5년 12월 12일에 방송된 JTBC [[히든싱어]] 4에 원조 가수로 나왔다. 1, 2라운드에서는 모창 능력자에게 밀려 1위를 하지 못하였고, 3라운드에서 1위, 4라운드에서 2위와의 11표 차이로 우승했다.
* 대표적인 닮은꼴로는 배우 '''[[안문숙]]'''이 있다. 또한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때의 머리를 보면 머리 염색이 꽤 특이하게 되어있는데, 갈색 곱슬머리와 분홍색으로 염색된 머리가 섞여 있었다. 그 외에도 [[나인뮤지스]]의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도 닮았다는 평이 많다.
||여름 특집||별이 진다네(여행 스케치)[*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 같이 불렀다.]||420||1승 1패||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7화 . . . . 8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7화. '''우마루와 보물상자'''
* 우마루(코마루)는 키리에와 서로 보물상자를 보여주며 논다.
* 키리에의 보물상자에서 어린시절 사진이 잔뜩 나오는데 오빠(봄바)와 찍은 사진이 가장 많다.
* 하지만 타이헤이와 우마루의 말로 봄바가 오빠로서 고생했던 것을 깨닫게 되고 조금은 관계를 회복한다.
* 내용물은 꼬마시절 가족사진. 주로 오빠(모토베 봄바)와 찍은 것들이다.
* 우마루는 봄바와 사이가 좋다고 말하는데 키리에는 예전 일이고 이때 이후로는 사진이 없다며 씁쓸해한다.
* 그 말을 들은 우마루는 사진 속 키리에가 봄바와 딱 달라붙어있는걸 말한다.
* 그때 봄바는 딱히 잘못한건 없었지만 "동생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고 꾸지람을 듣고 "나도 친구와 놀고 싶다"고 툴툴거리는걸 엿듣는다.
- 기간트 . . . . 8회 일치
레프카의 최종병기.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한 강력한 비행체다. 플라잉 머신이나 몬스리의 팔코 [[비행정]], 하이하바에서 코난 일행이 사용한 비행체와는 차원이 다른 거체를 지닌 비행요새나 다름없는 존재로 곳곳에 무기가 설치되어 있다.
작중 등장한 다른 비행체는 물론 어떠한 무기와 견주어도 대단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작중 시대에서는 정상적인 교전에서 대등하다고 볼 존재가 없으며, 그야말로 전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한 존재다. 그렇기에 레프카는 기간트를 부활시켜 세상을 지배하는데 쓰려 했다. 그러나 이런 기간트조차도 코난과 그의 친구들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최후에는 코난이 탑승하게 된 탈출용 부분 외에는 바다에 추락한 후 대폭발한다. 이 과정에서 레프카와 심복들은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걸 봐도 이들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다. 불타던 기간트가 바다로 추락할 당시 엄청난 파도와 그 압력을 봐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거니와 그 거리에서 떨어진 충격을 봐도. 게다가 마지막에 바다로 추락하며 기간트가 터진 위력은 거의 핵폭발급이었다.
[[2008년]]에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초자력 병기로 과거의 문명을 개발살 낸 주역중 하나로 아래와 같은 엄청난 능력을 보유한다.
* 방어력 및 장갑도 충실하다. 동체와 날개는 기본적으로 [[기관포]]이하는 아예 튕겨내버리며, 자신의 총탑으로 집중사격해도 표면만 좀 긁히고 마는 수준의 단단함을 자랑한다. 물론 대포를 장비한 선회포탑의 사격으로는 손상을 입지만 비행에는 지장이 없는 국부적인 손상만 입으며, 레이저 포탑으로는 큰 손상을 입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발 맞는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여기에 자동소화설비도 갖추어져 있으며, 엔진이나 수직꼬리날개등의 경우에는 손상을 너무 입어서 복구가 불가능하거나 연쇄폭발 위험성이 있으면 임의로 비행중에 분리가 가능하다. 그리고 기체 각부의 수리나 유지를 위해 승무원을 빨리 보낼 목적으로 동력이 있는 열차가 움직이는 통로가 동체와 날개의 각 부분에 매설되어 있다.
- 김경준(축구선수) . . . . 8회 일치
영남대학교 시절 처음에는 조금 자만했던 듯 하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팀은 [[영남대]]였다. 포항의 패스 축구를 영남대에 이식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은 김경준에게 포인트를 집어주며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족했던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팀메이트 전상오와 함께 훈련하며, 대학 1년을 보내었다. 이당시 [[영남대]]는 2015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권역 우승을 차지했다.
4월 15일 토요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클래식]] 6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64&gid=&cpage=1&spage=1|원정 경기에 후반 교체 출전]]했다. 오광진과 교체되어 들어갔는데, 김경준의 투입으로 공격라인을 끌어올렸다. 참고로 이 경기가 김경준의 리그 처녀 출전이다. 팀은 1:2로 패배했다.
4월 22일 토요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클래식]] 7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68&gid=&cpage=1&spage=1|원정 경기에 교체 출전]]했다. 팀은 2:4로 패배했다.
5월 6일 토요일 [[전북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81&gid=&cpage=1&spage=1|홈 경기에 교체 출장]]했다. 전반 15분에 에반드로의 부상으로 최전방 공격수로 교체되어 들어갔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활발히 움직이며 슛을 날리고, 돌파를 시도했지만, 골은 기록하지 못하고 0:3으로 패배했다.
[[K리그2]]18라운드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 선발출장해 후반 13분 안양의 2:1 승의 역전골을 넣어 안양에게 2연승을 안겨다 줬다.
22라운드 [[안산 그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전반 35분 동점골을 넣으며 안양의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었다.
[[박한빈(축구선수)|박한빈]]와 같이 신갈고등학교를 나왔으며, 현재 [[대구 FC]]에서 같이 뛰고 있다.
축구 선수와 대학생, 두 가지를 하면서 대학생 생활을 거의 못해봐서 엠티나 과팅에 대한 환상이 있는 듯 하다. [[http://www.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26|엠티 가고 과팅을 해보고 싶다]]라는 인터뷰를 했었다. 결국 프로로 도전하면서 못해본 듯 하다.
- 김다솜(배우) . . . . 8회 일치
그러나 현재 보컬 실력이 데뷔 초에 비해 상당히 늘었다. 라이브시 안정감은 덤. 파트도 늘었다! ~~아니 근데 명색이 6년차 [[아이돌]]인데 안 느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꾸준히 안 느는 보컬도 있는데 [[나름]] 늘어가는 건 기특한 일.~~ 거기에 수록곡을 보면 [[윤보라]]와 같이 랩도 한다.
2011년 8월 정규 1집 활동부터 단발머리로 헤어 스타일을 바꾸었다. 긴 머리보다 잘 어울린다는 게 중론. 피부가 멤버 중에서 제일 하얀데, 일명 형광등 피부. [[본인]]도 피부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팀 내에서 피부가 제일 어두운 [[효정]]을 하얗게 보정하다가 다솜이 안 보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2013년 다른 멤버들과 같이 우유 광고를 찍었는데 노래와 안무가 포함된 이 광고에는 "우유 마시면 뽀얗게 돼요"라는 가사가 있다. 다솜이 없었다면 광고 모델로 선정되지 않았을 듯.
외국의 [[양덕후]]들은 다솜을 제일 좋아하는 듯하다. 정규 1집 타이틀곡 <So Cool> MV에서도 "머리 단발인 애가 제일 이쁘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디씨인들도 다솜을 제일 좋아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효정]]과 [[나르샤]]에 밀려 [[소유(가수)|소유]]와 함께 계속 비주류를 맴돌았지만 <Loving U> 때부터는 [[효정]]과 [[나르샤]]의 뒤를 잇는 인기 멤버가 되었다. <Loving U> 활동의 최고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막내보다 늦게 뜬 [[소유(가수)|소유]] 지못미.(...)~~ ~~다만 당시 파트가 딱 한 소절이었다.~~
한편, 자신의 [[다이어트]] 식단을 공개했는데 야채와 닭가슴살 샐러드로 식단이 구성되어 있었지만 은근히 식단이 푸짐하다는 댓글이 많았다는 게 [[함정]]. 그런데 며칠 뒤에는 '[[유밴드]] 폭풍 흡입'이라는 제목으로 멤버들이 게걸스럽게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를 먹어치우는(!) 사진도 공개되었다.
[[씨스타]]가 막 데뷔했을 당시 '[[일진]] 아이돌'이라는 설이 가장 많았던 멤버다.[* 데뷔 초에는 [[소유(가수)|소유]]와 [[효정]] 역시 일진 논란이 있었다. 그 중 제일 심했던 게 다솜이라 그렇지(...)... ~~반면 [[나르샤]]는 일진루머가 없어서 빵셔틀이라고 놀림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 역시 [[강지영]]에게 파주퀸 루머를 만들어 뿌렸던 [[http://theqoo.net/index.php?mid=square&filter_mode=normal&document_srl=150168230|모 커뮤니티발 조작임이 밝혀졌다]], 심지어 유포자들은 '''[[중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끼리 뭉쳐다니던 걸 일진처럼 조작해서 유포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진설이 돌던 때 증거랍시고 나오던 것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다솜은 진짜로 '''초등학생 때 소화기 들고 사람을 폭행한''' 불량학생이 된다. 상식적으로 10살 안팎의 여자 초등학생이 그 정도 완력을 지니고 있을 리가...] 그런데 2012년에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다솜이 [[류화영]]과 친하다는 사실이 부각되자 다솜의 [[이미지]]가 좋아졌다.
2013년 4월에 발표된 [[K.WILL|케이윌]]의 곡 <Love Blossom>의 뮤직비디오에 [[인피니트]]의 [[엘(인피니트)|엘]]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해당 곡은 발표와 동시에 음원차트 1위를 석권하였다.
2015년 7월 [[KBS 2TV]] 새 [[월화 드라마]]인 '[[별난 며느리]]'의 여자 주인공인 '인영' 역으로 캐스팅 되었다. 처음에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었던 탓인지 제작진 측에서 보도자료를 내 사실무근임을 밝혔으나, 결국 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 ~~몽고간장 김만식 회장의 운전기사와 결혼한 [[딸]]이라고 한다.~~
[[유밴드]] 합류 후 [[소유(가수)|소유]]와 함께 재계약해지하고난후에 [[유밴드|유밴드]]에 이적했다.
- 김대진 (야구인) . . . . 8회 일치
|소속 구단 = 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2003년 ~ 2005년)
* [[SK 와이번스]] 루키 책임코치 (2012년)
* [[SK 와이번스]] 루키 책임코치 겸 타격코치 (2013년)
* [[SK 와이번스]] 루키 책임코치 (2014년 ~ 현재)
*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06년 ~ 2009년)
'''김대진'''(金大鎭, [[1955년]] [[12월 22일]] ~ )는 전 [[KBO 리그]] [[삼미 슈퍼스타즈]], [[OB 베어스]]의 외야수이자, 현재 [[SK 와이번스]]의 3군 루키 책임코치이다.
{{SK 와이번스 명단}}
- 김륵 . . . . 8회 일치
'''김륵'''(金玏, [[1540년]] ~ [[1616년]])은 조선 [[조선 선조|선조]]·[[조선 광해군|광해군]] 때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예안 김씨|예안]],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시호는 민절(敏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안집사와 체찰부사로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으며, 진주에서 [[이순신]]을 만난 뒤 그가 백의 종군할 때 구명 운동을 벌였다. 광해군 때는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추숭을 반대하기도 했다.
김사명은 창원황씨와의 사이에서 김욱(金勖), 김륵 두 아들을 두었는데, 형인 김사문(金士文)이 아들이 없자 둘째 아들인 김륵을 형의 양자로 입양보냈다. 백부이자 양아버지인 김사문은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냈다.
7세가 되던 해부터 양아버지 김사문으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양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에는 공부의 시기를 놓칠 것을 염려한 어머니의 배려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집안에 작은 서재를 꾸미고 학업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16세에 안동의 인동 장씨(仁同 張氏)와 혼인하였다.
==== 사마시와 과거 급제 ====
그러나 사마시 합격 이후 생부 김사명과 스승인 퇴계 이황이 연이어 사망, 그는 고향 영주시에 머무르며 퇴계 이황의 위패를 영주시 이산서원(伊山書院)에 배향하는 일을 추진하였으며 이후 영천(영주시) 지역 사림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그는 흑석사(黑石寺)와 [[소수서원]] 등에서 수학하다 [[1576년]](선조 9)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오리 [[이원익]], 학봉등이 그의 동방이었다.
과거에 급제하고 바로 승문원 부정자가 되고 이어 승정원 가주서와 [[예문관]][[검열]]을 지낸 뒤 성균관 전적·[[예조]][[좌랑]]·[[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했다.
1594년(선조 27)에는 사헌부 대사헌·이조 참판·홍문관 부제학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1595년(선조 28) 부체찰사(副體察使)에 올라 수원·전주·남원·거창·진주·대구·창녕 등지를 순시하며 군졸들을 위무하고 전황을 살폈다. 이때 [[한산도]]와 [[거제도]]에 파견되어 [[이순신]]을 비롯한 수군의 활약상을 조사, 조정에 보고하고 이들의 전공을 위무하였다. 이후 진주에 가서 이순신을 만나 찾아가 대책과 전략을 상의하고 숨져간 병사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1602년]](선조 35) 경상도 변방으로부터 왜의 재침 기미가 있다는 보고가 들려오자, 조정에서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로 보내 청병하였다. 그러나 [[만력제]]는 '재역불가의 5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 그는 반오조를 들어 설득하니 [[만력제]]가 이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벼루]]와 [[비단]] 등을 하사하며, 지금 출병은 어렵지만 왜에 대한 경계의 칙지를 내릴 것을 약속받고 되돌아왔다.
- 김정태(영화배우) . . . . 8회 일치
외모부터가 범상치 않은 인상으로 실제 조폭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의 남다른 포스를 가진 탓에, 초창기 배역의 거의 80% 정도는 조직폭력배이거나 그거와 연관된 직업군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특히 조폭 연기를 했던 [[친구(영화)|친구]], [[해바라기]], [[똥개]]등의 작품에서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조폭전문배우, 조폭 연기의 스페셜리스트 소리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폭과 어찌보면 상극의 관계에 있는 경찰 역할도 다수 맡았다. 이때는 험악하고 거친 조폭일때와 달리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소인배 형사 캐릭터를 아주 그럴싸하게 소화해 낸다. 그러한 연기의 정점에 있는 작품들이 바로 [[체포왕]]과 [[히트(2007)|히트]]. 볼멘소리로 궁시렁거리는 모습이 과거의 그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
1박 2일 명품 조연 특집[* [[성동일]],[[성지루]],[[안길강]],[[고창석]]과 출연. 나영석 PD보고 땅 좋아하게 생긴얼굴이라며 "공장부지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말로 웃겼다.]에 나와 큰 호평을 받았으며 상당한 예능감과 거침 없는 언변을 보여 주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연기배역의 폭이 상당히 넓어진 터라 과거의 이미지를 많이 벗은 듯하다. [[tvN]] [[재밌는 TV 롤러 코스터]]에서 '홍대 정태'라는 코너를 맡아 코믹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영향인지 오히려 지금은 약간 코믹한 인상으로 여겨지는 듯.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에서의 고기태와 같은 [[개그 캐릭터]]도 자주 연기하고 있다.
아내와는 19년간의 연애 끝에 [[2009년]]에 결혼했으며, 2011년에 아들 지후를 얻게 되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장현성]]의 지인으로 방송에 등장 시 아들 지후군의 관심에 힘입어 2014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명 야꿍이로 알려진 지후군과 함께 아빠는 슈퍼맨 티셔츠를 입고 새누리당 [[나동연]] 양산시장 유세를 하여 논란이 되었다. 당초에는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하였지만 후보 홍보물에 이미 방문 계획이 나와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과 함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하차하게 되었다. 다만 거짓말 논란 이전에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특정 성향 네티즌들의 비난 및 하차요구로 뭇매를 맞고 있었다. 즉, 단순히 거짓말 -> 비난 -> 하차 수순이 아니라 선행된 부당한 비난에 대한 자구적 해명이었다는 걸 참작할 여지가 있다.
|| 2015 || MBC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 17차 경연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가명으로 나와 듀엣 파트너인 [[히트제조기 프레시맨]]과 1표 차 접전을 벌였다. 참고로 이 때는 3파전이어서 총 101명의 평가단이 참여했으며 김승우에게 나가보라는 추천을 받고 나왔다고 한다.] ||
|| 2013 || || 일산 와이시티 ||
- 김지수(배우) . . . . 8회 일치
데뷔는 본인도 감추고 싶은 비밀인 [[흑역사]] 《여형사8080》[* [[SBS]] 초기에 방영된 3인의 여형사가 한국의 강력범죄를 해결한다는 본격 여성 버디 드라마...인데 범죄 예방과 사회경각심 고취의 목적은 고사하고 여배우들의 액션(...) 눈요기만 했다는 평으로 신문에서 비난 기사가 나자 그 다음 주로 종영했던 작품이다. 참고로 《적색지대》와 함께 [[김갑수]]에게도 흑역사로 간주되는 작품.]으로 1992년에 데뷔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은 [[SBS]]의 《머나먼 쏭바강》[* 란당팜에게 밀렸지만 [[박중훈]]의 상대 여주인공으로서도 꽤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실력파라는 걸 증명한 최초의 작품.]이었다. 연예인으로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자 1998년 당시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MBC의 《[[보고 또 보고]]》에 출연하고 나서이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자매 중 미운오리 취급을 받던 동생이지만 큰아들과 결혼하여, 작은아들과 결혼한 친언니와[* 즉 손위관계가 역전된 겹사돈.] 관계가 역전되는 여인 은주를 연기했다. 《[[보고 또 보고]]》 이후 《온달왕자들》, 《태양은 가득히》, 《나쁜 친구들》등 시청률 30%가 넘는 히트작에 출연하였고 《신화》, 《햇빛 사냥》등의 미니시리즈에 다수 출연하였으나, 작품이 히트한 것과 별개로 배우 개인으로는 주목받지 못했다.[* 후술할 [[음주운전]]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른 영향이 크다.]
이후 2008년 드라마《[[태양의 여자]]》에 출연하여, 어렸을 때 입양되었으나 동생이 태어난 이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구박만 받다가 동생을 버리고 마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기 아나운서 '[[신도영]]'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주목을 받았다. '[[신도영]]' 역이 선악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어려운 역이었지만 심경변화 등을 잘 살린 데다가, 이 드라마의 [[한재석|다른]] [[이하나|주]][[정겨운|연]] 배우들이 그렇게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돋보였다. --물론 [[정애리(배우)|정애리]] 님은 예외로 칩니다--[* 정애리는 이 드라마에서 입양한 딸인 신도영을 구박하면서 친딸을 끊임없이 찾는 최정혜 교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솔직히 《태양의 여자》는 [[정애리(배우)|정애리]]와 김지수의 투탑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하나]]는 극 후반에 들어서야 자리를 잡았다.]
《[[보고 또 보고]]》와 《[[태양의 여자]]》로 흥행력을 인정받은 데다가, 《여자, 정혜》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며 괜찮은 여배우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야심차게 출연했던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에서는... 해당 항목 참조.
* 故 [[김주혁(배우)|김주혁]]과 6년간 사귀었으며, 2005년 故 [[김주혁(배우)|김주혁]]의 아버지인 故 [[김무생]]의 죽음 때에도 빈소를 지킬 정도로 연예계 공식 커플이었다. 그러나 2009년 10월 7일에 3개월 전 결별했다고 보도되었다. 헤어진 후에 故 김주혁이 미안해했다는 듯하다. 무릎팍 도사에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 있는 결혼 적령기를 보내고 그냥 헤어졌다는 것이 미안하다” 라고 심정을 밝혔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90916221&code=960801|#]] 2017년 10월 김주혁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빈소에 찾아와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지수 본인은 [[주당]]인 반면 故 김주혁은 술을 못마셨다고...
* 가녀린 외모와 달리 좋아하는 스포츠는 [[스노보드]]. [[제트스키]], [[수상스키]]까지 즐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탔기 때문에 연예인 중에서는 보드를 잘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족으로, 배우 [[김혜리(배우)|김혜리]]는 김지수가 그랬던 것처럼 가녀린 외모와 달리 스포츠광이면서 두 번 이상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전과[* 김지수는 [[KBS 1TV]] [[태조 왕건]]에서 김혜리가 맡았던 강비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가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백혈병]]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선행을 베풀었으며, 이 과정에서 어린이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지 2013년, 소아암 환자 진료비를 위한 자선행사에도 기부했다.[[http://www.humanmp.co.kr/news/news_index.php?vDown=news_read&vKey=14910&vBid=02&vTable=BBS|#]] 이로 인해 이미지는 어느 정도 개선된 듯(...)
* 2015년부터 인스타그램에 스스로 그린 그림(주로 유화)을 올리고 있다. 꽤 준수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특이하게 비구상 작품도 있다. 그 외 친구와 찍은 일상이나 여행 사진도 가끔씩 올라온다. 팔로워들의 글에도 답글이나 좋아요를 일일히 눌러주는 편.
- 김처선 . . . . 8회 일치
김처선이 내뱉은 이 말에 참고 참던 분노가 폭발한 연산군은 직접 김처선에게 활을 쏘아 쓰러뜨린 다음 [[다리]]와 [[혀]]를 잘라 참혹하게 살해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칼에 맞아 숨을 거두는 순간 까지도 직언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SBS]] [[사극]]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선 연산군의 광기어린 행보를 다룬 1화 광풍에 등장한다. 월산 대군의 처 박씨와 강제로 동침한 연산군을 보고 연산군을 악행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하늘이 두렵지 않냐며 직언 하다 가슴에 화살을 맞는다. 칼을 빼든 연산군이 남자 구실 못하는 놈이 입만 살았다며 분노하자 소인 남자 구실 못하는거 생각말고 임금 구실이나 잘하라고 맞받아치고 칼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SBS [[사극]]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 각색이 심하게 되어 실제 김처선의 일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려진다. 당장 활동 연대부터 실제 역사와는 크게 달라 성종 즉위 이후부터 내관을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론 손녀 뻘인 [[폐비 윤씨]]와 비슷한 나이로 설정되어, 그녀를 평생 동안 사모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폐비 윤씨의 자식인 연산군을 어려서부터 돌봐준 인물로 중종 반정으로 귀양가 있던 연산군이 어린 시절 김처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후회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로, [[배우]]는 [[오만석]].
[[네이버 웹소설]] [[전하와 나]]의 주인공 이의윤의 충신의 모티브다. 본명은 서현우로, 할머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별궁을 털려다 체포되었으나 황태자였던 의윤의 도움으로 석방. 이일로 의윤이 황제의 눈밖에 나서 죽음을 당할뻔하자 그에게 평생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의미로 충신의 대명사 김처선으로 개명한다. 그리고 의윤의 동생 선혜 공주와 이어져 처남 - 매부가 되었고, 의윤이 황제가 된 후에는 [[부마]] 겸 의윤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경서 사서 대강 읽어 감히 살펴보거니와
고금에 마마와 같은 짓 하는 임금 아니 계셨나이다
- 김충공 . . . . 8회 일치
그의 부인은 [[귀보부인]]인데 [[삼국사기]]에는 부인 귀보부인의 성이 박씨라고 하였지만, 삼국유사에는 그가 [[원성왕]]의 아들 김인겸의 딸이라 한다. 삼국유사의 설을 채택한다면 그는 이복 누이와 결혼한 것이 된다.
[[808년]](애장왕 9) [[당나라]]로부터 문극(門戟)을 하사받았다. 그뒤 [[각간]]을 거쳐 [[817년]](헌덕왕 9년) 이찬(伊湌)에서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였다. [[822년]] 헌덕왕이 동생 수종을 세자로 임명할 땍 [[상대등]](上大等)으로서 세자를 도와 정권을 장악했고, 당시 집사시랑(執事侍郞)인 녹진(祿眞)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823년]](헌덕왕 15년) 토벌대에 참여하여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가담했다.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집사부]][[시중]]을 지냈다. [[822년]]부터 [[835년]]까지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831년]] [[흥덕왕]]의 왕자 김능유(金能儒)가 흥덕왕의 명을 받들어 9명의 승려와 함께 [[당나라]]에 진봉사로 갔다가, 이 해 7월 돌아오던 도중 바다에 빠져 익사하였다. 흥덕왕은 후사가 없었고 그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835년]] 여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출생년대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사망 원인도 역시 미상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가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약 4년간 집사부시중을 역임했고, 822년부터 835년까지 약 13년간 상대등을 역임했다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헌덕왕조의 다른 기사에는 그가 헌덕왕 13년에 죽었다고 되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그의 부인의 성씨가 다르게 기록된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그의 부인을 귀보부인이라 지목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원성왕의 손녀이자 인겸의 딸이라 하고, 삼국사기는 귀보부인의 성을 박씨로 지목한다.
또한 가계도 불분명한데, 정사인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그가 혜충태자 인겸의 넷째 아들이라 하지만 경주김씨 족보에는 그가 [[소성왕]]의 아들이라는 이설이 같이 실려있다.
일설에는 [[흥덕왕]]의 비 정목왕후가 그의 딸과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헌덕왕]]비 귀승부인이 그의 딸 정목왕후와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고, 그의 숙부 [[김예영]]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8회 일치
* 뒤이어 토도로키 쇼토와 요아라시 이나사가 도착하지만 서로 개성이 궁합이 나쁘고 개인적 갈등 때문에 역효과만 낸다.
*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는 전혀 협력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고가 날 뻔하는데, 미도리야 이즈쿠가 나타나 일침을 날린다.
* 위원회는 올마이트와 같은 카리스마적인 존재가 다시 나타나 후계를 이어줄 것을 바라기 보단 다수의 히어로가 협력하는 "집단 히어로" 시스템으로 올마이트의 공백을 채우려 한다.
* 그의 난입과 인정사정 없는 빌런활동을 보고 아이자와 쇼타와 Ms.죠크 모두 경악한다.
* 하지만 그는 토도로키를 보자마자 엔데버의 자식이며 그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한다.
* 그는 엔데버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토도로키는 자신이 엔데버와 같다는 말에 혼란을 느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8회 일치
>마치 열와 그랜토리노.
* [[토오가타 밀리오]]와 [[버블걸]]이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나이트아이는 밀리오에게 미도리야의 채용결정을 통보한다. 시험에 실패했기 때문에 완전히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도리야는 난데없는 전개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 다음날 미도리야는 인턴으로서 첫 일을 받는다. 임무는 패트롤과 "감시". 팀은 나이트아이와 버블걸, 밀리오와 미도리야로 나뉜다. 현재 나이트아이는 "시에핫사이카이"라는 과거의 야쿠자, 현재의 "지정 빌런 단체"를 비밀조사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차기 보스 "치사키", 통칭 [[오버홀]]은 요주의 인물. 나이트아이는 밀리오와 미도리야에게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가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전달한다.
* 그렇게 임무가 시작된다. 미도리야는 밀리오와 함께 페트롤에 나선다. 그런데 어느 골목에서, 맨발의 소녀가 도움을 바라며 뛰어오고 있다. 골목을 빠져나오던 소녀는 하필 페트롤 중인 미도리야와 부딪히는데.
* 이마에 뿔이 있는 소녀. 소녀는 미도리야와 부딪히고 넘어진다. 미도리야는 아무 생각없이 쓰러진 소녀를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소녀는 이상할 정도로 울상을 짓고 있다. 난처해진 미도리야 앞으로, 소녀의 뒤로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히어로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소녀에게 말한다.
- 마기/317화 . . . . 8회 일치
* 다윗의 목소리가 사라졌지면 "조용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업무와 일상으로 바쁘게 보내는 신드바드.
* 알리바바와 알라딘도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다.
* 알리바바와 알라딘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와 그의 의견을 묻는다.
* 신드리아 상회와 FANFAN상회 간 회담을 위한 방문. 하지만 과거의 앙금이 남아있는 연홍옥은 하황문에게 회담을 맡긴 채 빠져나가려 한다.
* 이어서 스파르토스에게도 미스토라스 대신 팔신장의 임무를 완수해주었다고 칭찬하고 그와 마스루드, 자파르 덕에 신드리아가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 "그대야 말로 이 나라와 세계를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던 인간이야."
* 전우들이 신드바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자피르와 마스루드 만이 조금 다르다. 자피르는 걱정에 잠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마수르드는 아예 시선이 생략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은 심복들 중에서도 신드바드의 변화에 대해서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고 우려하고 있던 이들. 앞으로 전개에 대한 복선일까?
- 마기/329화 . . . . 8회 일치
* 성궁의 루프를 고쳐 쓴 신드바드와 그것이 잘못됐다 말하는 알라딘. 둘 사이에 폭언까지 오가며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은 동석한 알리바바 사르쟈에게 의견을 묻는다. 알리바바는 당황한 탓인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입을 연다.
알리바바 덕에 고성이 오가던 분위기는 정돈된다. 알리바바는 다소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가 암흑대륙에서 돌아와 신드바드와 벌인 상업대결이 즐거웠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게 왜 즐거웠는지 생각해 봤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대답에 도달했고, 그래서 전에 마스루르에게 "신씨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라고 들었을 때 이해가 안 됐던 것도 지금은 깨달았다고 한다.
* 그 말을 들은 신드바드는 생각에 잠겼다가 "너와 내가 동등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반문하다. 알리바바는 그렇기에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거고 승부에 있어 부딪히고 고민하고 기뻐하며,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즐겁고 설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성궁에서 본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엔 여러 개의 세상과 제각각의 신이 있다. 우고는 그 순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손에 넣으며 그걸 사용하면 알라딘을 이 세계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간단하다. 그런 그가 일 일라의 힘을 빼앗고 배제하는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의 손"으로 일 일라와 알 사멘을 없애고자 했다. 그건 바로 그 자신이 "욕망"이 없기 때문. 그런 존재는 단지 주어진 역할에 묶여 있을 뿐, 단지 남이 부여한 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 "신드바드"는 다르다.
신드바드 노답화의 절정. 새로운 루프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몰살하겠다는, 완전히 신놀음이 취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의 행보를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의 최종보스였던 푸치 신부와 유사하도 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우고를 미쳤다고 하지만 그 자신도 광기에 휘말리고 있는 듯 하며 우고와 마찬가지로 그를 중심으로 사물이 일그러지는 묘사가 있다. 현실 상으로는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분명 성궁에서 루프를 다시 쓰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한 번 죽어서 루프에 환원되기도 했다. 모두 정신적 소모가 심한 작업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우고 조차 정신줄을 놓게 만든 강대한 힘이 주어졌으니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알리바바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알라딘과 신드바드를 화해시키려고 나름대로 설득했으나 신드바드가 너무 글러먹어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알리바바가 신에게 "신이 돼버린 거냐"고 하는 장면에선 알리바바가 부모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도 어정쩡한 관계 밖에 가져보지 못한 그에게 신드바드는 친구이자 아버지인 존재이며 그 점은 상단을 꾸릴 당시 "신드바드씨는 나의 아버지 같은 입장"이라 한 데서도 드러난다. 결국 이번 에피소드에서 알리바바가 한 말은 설득하기 위해서 짜낸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의 속내를 드러낸 걸로 보이는데, 이미 정신이 나간 신드바드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마기/330화 . . . . 8회 일치
* [[샤를르칸]]과 [[야무라이하]]마저 신드바드의 이상에 경도되어 [[알리바바 사르쟈]]와 [[알라딘(마기)|알라딘]]을 설득하려 든다.
* 미치광이들 사이에 유일한 정상인처럼 된 알리바바와 알라딘. 그리고 방송으로 그들을 보고 있는 [[모르지아나]].
* 세상을 재창조하기 위해 루프를 완전히 재창조하겠다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그러나 그 말은 결국 지금 세상을 완전히 멸망시킨다는 이야기다. [[알리바바 사르쟈]]와 [[알라딘(마기)|알라딘]]은 그런 폭거에 도저히 동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신드바드는 자기 혼자의 의견이 아니라며 전 [[팔인장]]을 소환한다. 그들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듯 방문이 열리자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샤를르칸이 나서서 의견을 말한다. 그들은 두 사람보다 먼저 이 계획을 들었다. 알리바바는 전부 죽어버리는 이런 계획에 반대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제자의 기대와 달리 샤를르칸은 "모두 찬성"이라고 답한다. 알리바바는 하늘이 무너진 것같은 표정으로 진심이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샤를르칸은 오히려 알리바바에게 "코 앞의 일에 연연하지 마라"고 설교한다. 그 자신은 물론 가족들과 엘리오트 합국의 국민들마저 전부 죽는 것도, 샤를르칸에겐 "눈 앞의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 야무라이하는 현재와 미래를 다 지키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알라딘은 진심이냐고 묻는데 야무라이하는 자신은 진심이며 그들의 루프가 신들의 노예취급 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런건 과거 매그노슈타트가 비마도사들의 마고이를 착취한 것과 다를바 없다고 말한다. 알라딘이 그래서 어쩌자는 얘기냐고 하자...
* 신드바드의 미치광이 행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저세계로 중계되고 있었다고 밝힌다. 스크린에는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신드바드와 벌인 논쟁이 고스란히 비추고 있다. 황제국의 [[연홍옥]]이나 뢰엠의 [[티토스 알렉키우스]] 등 각국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과 유배된 마기인 [[유난]]까지 모두가 이것을 지켜보고 있다.
* 기분 나쁘도록 한결같은 환호 속에서 알리바바와 알라딘만 고립돼있다. 정신병자 사이에 유일한 정상인처럼 돼버린 알리바바와 알라딘. 알리바바는 이 [[성궁]]의 힘에 치를 떨며 정말 신드바드에 영향을 받지 않은건 자기들 뿐이냐고 한탄한다.
- 마기/339화 . . . . 8회 일치
[[마기]] 339번째 밤. '''허위와 신망의 신념'''
* [[연백룡]]은 [[알라딘(마기)|알라딘]] 일행을 먼저 보내고 홀로 15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대결한다.
* 신드바드는 백룡에게 그가 지키지 못했던 황제국의 모습을 보여주며 허위와 신망의 신념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
* [[연백룡]]은 자신의 공언대로 혼자 15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맞선다. [[알라딘(마기)|알라딘]] 일행은 다음 던전으로 출발. 신드바드의 바레포르는 마치 [[구미호]]와 같은 형상으로 여러 꼬리가 백룡을 공격한다.
>허위와 신망의 신념!
풍경 속의 [[연홍옥]]은 백룡에게 받은 힘으로 신드바드에 견줄 정도로 거대하게 자라난다. 백룡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홍옥은 백성들을 독려해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 나라와 긍지를 지키게 한다. 신드바드는 백룡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백룡은 신드바드의 맹점도 꼬집는다. 바로 "주변 사람을 믿지 않는 점".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던전에서 조차 오로지 자신만이 강대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런 신드바드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백룡 자신도 누님 [[연백영]]은 그저 연약하고 지켜주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다르게 생각한다. 적어도 백영에게 만큼은 모든 것을 밝히고 힘과 위험과 책임을 나눠가질 "동료"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이 지금 백룡의 답이다.
- 모리오리 족 . . . . 8회 일치
채텀 제도는 작고 외딴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뉴질랜드와도 거리가 멀어 외부와의 교류가 어려웠다. 모리오리 족은 [[전쟁]]을 포기하고 공존을 선택했으며, 인구 조절을 위하여 남자 신생아를 [[거세]]하는 방법을 썻다. 이로서 인구 과잉을 줄이고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었다.
채텀 제도는 폴리네시아 전통 농업에 부적합하였기 떄문에 집약적인 농업과 전쟁 문화를 가지게 된 마오리 족과는 달리, 모리오리 족은 수렵과 채집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채텀 제도의 환경상 집약 농업이 어렵고 인구 조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높아 전쟁이 자주 벌어졌던 마오리 족 사회와는 달리 모리오리 족은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공통된 조상에서 갈라졌지만 약 500년 동안 모리오리 족과 마오리 족은 전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마오리 족이 모리오리 족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바다 표범을 사냥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선박이 우연히 채텀 제도에 들렸다가, 뉴질랜드에 들리면서 채텀 제도와 모리오리 족의 상황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물고기와 조개가 풍부하고, 호수에는 뱀장어가 가득하고, 땅에는 카라카 열매가 많이 난다. (...) 사람은 매우 많지만 '''싸울 줄도 모르고 무기도 없다.'''
1835년 12월, 수백년간 평화롭게 살던 모리오리 족은 갑자기 뉴질랜드에서 나타난 [[마오리 족]]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11월 19일, [[총기]]와 [[곤봉]], [[도끼]]로 무장한 500명의 마오리 족이 채텀 제도에 나타났으며, 12월 5일에는 400명이 추가로 나타났다. 채텀 제도를 공격한 약 900명의 마오리 족은 수적으로는 당시 모리오리 족(2000명으로 추정)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으나,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모리오리 족은 단합된 정치 조직이 없었으며, [[무기]]를 비롯한 전쟁 기술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오리 족은 장기간의 전쟁으로 조직화된 전쟁 문화, 정밀하게 만들어진 원주민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서양인들과의 교류로 [[총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모리오리 족은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대로, 모리오리 족은 대표자 회의를 열어서 마오리 족 침략자에게 싸우는 대신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고 물자를 나눠주고자 제안하려 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미처 전달하기도 전에 마오리 족이 공격해왔다.
- 바키도/115화 . . . . 8회 일치
* 도쿠가와는 무사시와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데 파리가 꼬인다. 무사시는 젓가락으로 날개만 잡아서 뜯어내는 신기를 펼친다.
* 도쿠가와는 무사시와 정원에서 점심을 먹는다.
* 도쿠가와는 이거야 말로 "무사시는 식사 때 꼬이는 파리를 젓가락으로 잡았다"는 일화의 기원이라고 생각한다.
* 도쿠가와에게 거듭 정말이냐고 묻더니 도쿠가와가 그렇다고 하자 폭소를 터뜨린다.
* 도쿠가와는 "적어도 피클에게는 진수성찬으로 보일 거다"라고 답하는데, 그 말을 듣고 "맛있는 건가"라며 생각에 잠긴다.
- 바키도/138화 . . . . 8회 일치
* [[도쿠가와 미츠나리]]는 집으로 몰려온 경찰들을 막아서며 무사시의 체포를 막으려 한다.
* 경찰들이 쏜살같이 꽁무니를 뺀 뒤, 무사시는 도쿠가와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에어참격" 방송이 나간지 얼마 뒤. 경시청엔 당시의 아나운서가 참고인으로 불려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그는 "베어졌다고 느꼈다"고 증언했고 실제로 그 뒤에 실신해서 병원에서 눈을 뜬다. 그는 "베인 뒤의 뒷일"은 어떻게 됐냐 질문에 조금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 [[도쿠가와 미츠나리]]의 저택 앞을 경찰차가 애워싼다. 우츠미 경시총감이 직접 앞장서서 무사시를 체포하러 간 것이다. 총감은 생중계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도쿠가와는 자기는 현장에서 모든걸 봤다며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다고 잘라말한다.
* 총감도 무리라고 여기긴 하는지 용의자가 아니라 "중요참고인"이란 핑계를 대는데, 어쨌든 도쿠가와는 수긍하지 못한다. 그리고 문제는 "본인"이라고 하는데. 그 본인이 동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는 말이다.
* 그야말로 바람같이 사라진 경찰들. 무사시는 그들이 떠나간 문지방을 넘으며 도쿠가와에게 말한다.
>시작한다 도쿠가와.
- 바키도/139화 . . . . 8회 일치
* [[도쿠가와 미츠나리]]는 "문"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얼마든지 감싸줄 수 있지만 그 밖은 어쩔 수 없다고 경고한다.
* [[미야모토 무사시(그래플러 바키)|무사시]]는 도쿠가와에게 포옹하며 고맙다고 말한 뒤 기어이 바깥으로 나간다.
* 저택을 나서려 드는 [[미야모토 무사시(그래플러 바키)|무사시]]. [[도쿠가와 미츠나리]]가 그를 붙든다. 그는 이 문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지만 문 밖은 "힘"의 바깥이며 자신의 권력이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 무사시는 그런 도쿠가와를 "자상하다"고 표현한다. 도쿠가와는 무사시는 문 밖에선 살 수 없다고 거듭 저택 안으로 돌아가길 부탁한다. 그 설득 때문인지 무사시는 발걸음을 돌리고 도쿠가와도 한숨 돌린다. 하지만 저택을 간다고 생각했던 무사시는 도쿠가와 앞에서 발길을 멈추더니 그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 결국 무사시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도쿠가와의 애타는 부름에도 그는 황황히 대문을 넘는다. 저택 바깥엔 경찰사 수십대가 애워싸고 그의 등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박승욱 . . . . 8회 일치
|소속 구단 = SK 와이번스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3라운드]]([[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2012년 ~ 현재)
'''박승욱'''(朴承昱<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2년]] [[12월 4일]] ~ )은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다.
==[[SK 와이번스]] 시절==
|2012 ||rowspan="4" align="center" |[[SK 와이번스|SK]]||0.000 ||1 ||2 ||0 ||0 ||0 ||0 ||0 ||0 ||0 ||0 ||0 ||0 ||0 ||1 ||0 ||0
{{SK 와이번스 명단}}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박옥수 . . . . 8회 일치
기쁜소식강남교회[*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때 보이는 그 [[교회]]이다. 참고로, 이 교회 건물은 불법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내에 건축제한이 있는데, 그걸 상큼하게 씹어먹은 것. 서초구청에서 강제 집행을 하려고 했었으나, 교인들이 죄다 나와서 막았다고...] 담임[[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외 기성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도 없고, 한국에 구원파 [[신앙]]을 들여왔다고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딕 욕에게 안수를 받았다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 선교사가 공식 선교사거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닌 등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세한 것은 [[구원파]] 참조. 게다가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목사안수 논란 문단을 볼 것.] 물론 어디까지나 [[신흥종교]]인 만큼 해당 교단 내에서 쓰는 직급으로 볼 수는 있다.
여담으로 기쁜소식선교회 산하 집단인 국제청소년연합의 약자와 마크가 [[IYF]]인데 Y자 모양이 유명 선교단체인 [[IVF]]와 헷갈리기 딱 좋게 되어있다.
>제가 박옥수에게 ‘목사’안수를 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웹사이트에도 게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목사’라는 직위는 제가 반대의 권면을 했음에도 그 자신이 붙인 것입니다.''' 그의 직위에 대한 신임장은 없으며 그러니까 '''그 자신이 자신에게 안수를 준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교회와 교회의 체계는 그와는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목사에 대한 관점은 그와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 질문에 대한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그 주제는 나중에 언제 더 얘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딕 욕은 2010년 9월 30일 사당 청소년 문화의 집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교회에는 성직제도가 없어야 된다고 그들(故[[유병언]], [[이요한]], [[박옥수]])에게도 가르쳤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6월 2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진○○(박씨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측 변호사는 박씨가 딕욕 선교사에게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박씨는 4월 20일 수백억 원의 주식을 사기로 판매했다는 혐의로 전주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현재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다.) 진○○ 측 변호사는 미국의 딕욕 선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딕욕 선교사가 박씨에게 목사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답해왔다며 박씨는 가짜 목사라고 밝혔다. [[http://hdjongkyo.co.kr/news/view.html?section=22&category=1007&no=14622|기사 전문]].
결국 암치료를 받지 않고 또별만 먹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문제가 되었다. [[http://christian.nocutnews.co.kr/show.asp?idx=1850923|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4777|또 다른 기사.]] 또한 [[한국방송공사|KBS]] 추적 60분 2012년 3월 21일자 방영분에서도 또별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추적 60분 보도 이후 KBS와 신동아에서 반론 보도를 냈다. [[http://m.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1450|기사 전문]] [[https://youtu.be/hNhIUwPlWKk|반론 보도 영상]] 결국 박옥수는 식품위생법 위반으로만 벌금을 받았다고 한다.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52944|기사]]
- 박희광 . . . . 8회 일치
일제 강점기 시절 만주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통의부)와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되어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던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만철연선 친일파 제거등에 참가하였으며, 이후 김광추(金光秋), 김병현과 함께 3인조 암살단을 조직, 활동하였다.
박희광은 만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통의부, 참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일본 영사관 습격, 친일파 정갑주와 가족 암살, 독립운동가 체포를 위해 활동한 스파이 배정자(裵貞子, 일본식 이름: 다야마 사다코) , 이용구, 최정규 암살임무 등 항일 독립운동단체와 임시정부에 무기와 군자금을 조달 했었다.
1924년 보민회 이용구와 대표적인 친일파인 일진회 최정규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22년 가을 쯤 300엔이라는 돈의 가치를 추정한다면, 당시 찬거리로 5전(錢)을 내면 푸줏간에서 150g 정도의 작은 쇠고기 덩이를 주었다니까 600g 1근에 20전 정도. 지금의 쇠고기 값 횡성한우 1등급 국거리 600g기준 26,800원으로 잡으면 1전에 1,340원, 그 당시 환율로 100전은 1엔이니 300엔은 40,200,000원정도 추정된다. 당시, 권총 한자루를 구하는데 10개월이 걸렸던 임시정부와 독립운동단체의 자금난을 고려한다면 군자금으로는 거금이라 할수 있겠다. (姜東鎭, ‘日帝의 韓國侵略政策史 – 1920년대를 중심으로’, 한길사, 1980, 394~395쪽)
뤼순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로써는 최장기 복역중 일본천황 즉위와 황태자 출생 등 두 차례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 보쿠걸/105화 . . . . 8회 일치
혼란에 빠진 미즈키는 후지와라에게 위로받는다.
* 후지와라는 미즈키의 변화를 눈치챈다.
* 미즈키는 후지와라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정할 수가 없다"며 혼란스러워한다.
* 사과하는 미즈키에게 후지와라는 그럴 필요 없다며 "남자든 여자든 미즈키를 좋아한다"고 다독인다.
* 미즈키는 후지와라의 그런 상냥함을 동경했다고 독백한다.
* 후지와라는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정한 길을 가라고 조언한다.
* 미즈키는 후지와라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고백한다.
- 북두삼형제 . . . . 8회 일치
[[류우켄]]의 제자이자 양자로서, 주인공 [[켄시로]]와 그 형제들. [[북두신권]]을 쓰며 북두신권의 전승자 후보로 올랐던 [[토키(북두의 권)|토키]]와 [[라오우]]를 뜻하는 말이다. 분명히 또 다른 형제로서 '''[[쟈기]]가 있는데 무시당한다.'''
원작 만화에서 사용되던 표현으로서, [[사우저]] 전에서 '''쟈기의 존재가 잊혀지고'''(…) 켄시로, 토키, 라오우를 묶어서 '북두삼형제'라고 칭하게 된 것이 유래이다. [[수라의 나라]] 편에서 켄시로가 북두종가의 혈통, 토키와 라오우가 북두분가의 혈통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세 사람은 사형제일 뿐만 아니라 혈연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나, 이미 존재 자체가 망각되어 있던 '''쟈기는 무시당했다'''.
여담으로 사실 원작에서는 켄시로, 토키, 라오우가 셋이서 모여서 등장하는 장면은 라오우와의 첫 대결에서 사우저 편, 토키의 최후편에 걸쳐서 비교적 길게 있고 명장면도 많지만, 쟈기는 [[아미바]] 전 이전에 나왔다가 퇴장하기 때문에 실제로 원작에서 3명이 모인 적은 있어도 쟈기까지 합쳐서 4명이 모인 적은 없다. 회상씬에서도 쟈기와 켄시로, 쟈기와 토키, 라오우가 만나는 장면은 있지만 4명이 모두 모인 적은 없다. 쟈기도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구TV판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회상씬, 신 극장판 애니메이션 유리아 전, 외전 코믹스인 쟈기 외전이나 류우켄 외전에 있다.
켄시로에게는 [[효우]]라는 친형이, 라오우와 토키에게는 [[여동생]] [[사야카]]와 형 [[카이오우]]가 있지만 이들은 류우켄의 제자가 아니므로 북두삼형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 블라디미르 렘 . . . . 8회 일치
[[뉴욕]]에서 활동하는 [[러시아]]계 범죄조직의 보스로 펀치넬로 패밀리와 적대 관계이다.
맥스는 그를 "명예와 도덕을 지닌 구식 악당 중 하나"[* one off those old-time bad guys, with honor and morals]라고 평했다.
맥스와 처음 만난 순간은 맥스가 프랭키 나이아가라를 죽이고 난 후였다. 블라드는 맥스의 차 앞을 자신의 벤츠로 가로막은 후 "[[대부|거부할 수 없는 제안]]"[* an offer you can't refuse]을 한다. 자신의 무기를 운송하다가 펀치넬로 쪽에 붙은 화물선 선장 보리스 다임을 죽이고 화물선을 탈환하면 운송하던 무기를 필요한 대로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제안이었다.
잭 루피노 소유였던 나이트클럽 "라그나 록"을 사들여 고급 레스토랑 "보드카"로 개조 중. 자신은 보드카가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이 되고, 자신은 부유한 유명인이 될거라며 자신한다. 여전히 범죄조직의 관련자기에 형사인 페인과는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수는 없는 관계. 블라드 曰 "내전의 양편에 선 형제와도 같군,"[* Like brothers caught on the opposite side in a civil war.]
맥스가 경찰서에서 탈출한 [[모나 색스]]를 찾아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올 때 등장. 맥스를 모나가 숨어있는 폐 놀이공원까지 태워준다. 차 뒷좌석에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이 있었는데 그는 그걸 비니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트로이의 목마라고. 맥스를 태워주는 동안 잘못을 하는 선택지 밖에 없다면 그건 정말 잘못한게 아니라 운명에 가까우니 해야할걸 하면 된다고 조언해준다. 이에 페인의 대답은 "그렇게 쉬운 일이 절대 아냐."[* It's never that easy.]
맥스와 비니가 폭탄을 해체하기 위해 폐 놀이공원에 찾아갔을 때, 그곳에는 블라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블라드는 우든이 맥스의 가족이 몰살당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과 모나가 우든을 위해 일한다는걸 말해 준 후 자신의 애인인 윈터슨을 죽은 맥스에게 권총을 쏜다. 그러고는 우든을 죽이기 위해 그의 저택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맥스는 살아남아 모나와 함께 쫓아온다. 블라드는 모나가 본색을 드러내고 둘이 서로를 죽일걸 기대했지만 일이 예상되로 되지 않자 모나를 쏴죽인다. 그러고는 자신을 목졸라 죽이려고 하는 우든을 쏴죽인후,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맥스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폭탄 스위치를 눌러 지하로 떨어진다. 블라드는 맥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도망친다.
- 블랙 클로버/102화 . . . . 8회 일치
* 아스타는 축제에 해저신전의 [[키아토]]와 [[카호노]]를 부르는데 [[마녀왕]]에게 받은 비술로 이들의 몸을 고쳐준다.
*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카호노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아스타와 [[노엘 실버]], 자기 오빠랑 합쳐서 더블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러고 있자니 이번엔 [[고슈 아들레이]]와 [[고든 아그리파]]가 귀가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들도 치료법을 찾아 왕립 도서관으로 향했었는데. 아스타는 이들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하려 하는데.
마법책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아 [[혼모노]]로 각성해버린 두 사람. 심각한 수준의 마법 [[오타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도 결국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역시 건재해진 아스타를 보고 제정신을 차린다. 둘은 자기들이 고쳐준댔는데 왜 멋대로 나았냐며 저주를 걸려고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봐야 중증의 [[시스콘]]과 [[자폐증]]환자라 별 의미가 없다.
* 대충 개판이 정돈되자 야미는 핀랄이 소개하려고 했던 "시간 때우기 적당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축제다. 신참인 아스타와 [[노엘 실버]]는 모르는 일이다. 마법기사단은 공적에 따라 별을 받고 경쟁한다. 1년에 한 번씩 이 별의 숫자를 발표하고 1위 기사단을 정하는 축제를 벌인다. 그게 "성과제". 클로버 왕국에서 가장 큰 축제기간이며 모든 클로버 국민들이 즐긴다. 뜻밖에도 야미도 이 축제를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입으로는 "의욕은 없다"고 하지만 차려입은 것부터가 의욕 만빵이다. 고슈처럼 답없는 시스콘은 틀어박혀있겠다고 하지만 핀랄처럼 헌팅 매니아는 한껏 설레고 있다.
* 왕도는 벌써 축제 분위기로 술렁이고 있다. 처음 참가한 아스타와 노엘은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래지는데 야미, [[바네사 에노테이커]], 챠미처럼 철없는 20대들이 더 신나서 날뛰고 있다.
* 그리고 아스타가 초대한 두 사람이 핀랄을 통해 도착한다. 해저신전의 [[카호노]]와 [[키아토]]였다. 건강해 보이지만 카호노는 여전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키아토는 다리를 고치지 못했다. 키아토는 카호노 대신 인사를 건내는데 말은 아스타한테 하지만 노엘에게 정신이 팔려있다. 카호노는 목소리를 못 내는 만큼 행동으로 부산을 떨며 성가시게 군다. 카호노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을 발견하고 다소 침울해지는데 키아토는 여동생이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싶어한다는걸 눈치챈다.
* 사실 아스타가 굳이 이들을 부른 것은 선물이 있어서였다. 그는 키아토에게 잘린 다리를 잘 가져오라고 했는데 키아토는 그 말대로 물마법으로 보존해 잘 간수하고 있었다. 아스타는 [[마녀왕]]의 마법 "멸주의 피고치"를 병에 담아 왔다. 마법을 풀어놓자 순식간에 키아토와 카호노의 상처를 치료해 버린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8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마법제]]가 몸소 "올해 최고의 루키"들이라고 소개한다.
* 대중이 그들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환호하자 아스타와 유노는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며 세삼 꿈을 이뤄간다는 실감을 가진다.
* 마법기사단의 실적을 발표하는 현장. 올해 1위 금색의 여명단과 2위 검은 폭우단을 대표하는 신인으로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단상에 올라와 있다. 큰 무대지만 둘은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서로 자신이야 말로 마법제가 될 자라고 티격태격한다. 유노의 경우는 그러는 동안에도 성장폭자체는 검은 폭우 쪽이 높다고 의식하고 있다.
* 마법제는 이쯤에서 소동을 정리한다. 아직도 둘의 실력을 의심하는 자가 있으면 앞으로 나와보라고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마법제는 둘이 하층민이지만 노력의 힘으로 이 자리에 왔으니 이들에게 갈채를 보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분고하를 넘어서 하나로 단결해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한다.
* 아스타와 유노의 활약을 모두가 기뻐하는건 아니었다. 특히 실버가의 형제 [[네뷸라 실버]]와 [[솔리드 실버]]는 [[노엘 실버]]가 있는 검은 폭우한테 졌다는 걸 참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조금 떨어진 탑에서 이 발표를 듣다가 분통을 터뜨린다.
청중 사이의 노엘은 [[키아토]]와 [[카호노]]의 축하를 받고 있다. 자기 형제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 턱이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 블랙 클로버/117화 . . . . 8회 일치
* 레오폴드와 하몬 모두 단세포라 서로 주공을 맡겠다고 아웅다웅하는데, 핀랄은 자신의 공간마법을 무기 삼아 지휘를 자청한다.
* 시합을 끝낸 란길스는 굳이 핀랄을 찾아와 설치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핀랄이 지지 않고 "너를 이기겠다"고 선언, 신경전을 벌인다.
레오폴드는 홍련의 사자와 소속 2등 중급 마법기사. 하몬은 금색의 여명 소속 2등 중급 마법기사다. 하몬은 유리마법을 구사하며 이름처럼 하몽 이베리코 돼지를 닮은 통통한 녀석이다. 성격은 쌈빡한 걸 선호하는 레오폴드하곤 정반대로, 키르슈를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믿는 별종 중 하나다. 나서기 좋아하는 점만큼은 둘이 똑같아서 하몬이 "나의 유리마법을 주축으로 키르슈씨 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싸울 것을 주장하고 레오는 자기 불꽃 마법을 주력으로 아무튼 다 박살내면서 호쾌하게 가자고 티격태격한다.
* 그렇게 해서 시작된 시합. 핀랄은 자신이 장담한 것 이상의 대활약을 펼친다. 레오와 하몬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뿐만 아니라 적의 약점을 꿰고 있어 두 사람을 적당한 상대와 대전시켰고 지형도 정확히 파악해 예측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해줬다. 적은 물론이거니와 평소 검은 폭우를 얕보고 있던 하몬 조차도 대단한 공간 마도사이며 왜 지금껏 무명이었는지 몰라한다.
* 이제 시합은 4시합으로 넘어간다. H팀과 G팀의 대결. G팀에는 아스타하곤 악연으로 얽힌 청동 마법의 [[셋케 브론자차]]가 있었다. 취록의 당랑 소속 5등 하급 마법기사. 대부분 튀고 싶어서 안달난 기사들 가운데, 셋케만은 여기에 와서 대후회, 못 올 곳에 왔다는 기분이다. 시합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들이 난무하자 자신감을 상실해 버린 것. 그가 참가한 것도 단장인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가 권한 걸 넙죽 받은 탓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물빛의 환록 소속 [[프라길 토르멘타]]란 여기사와 한팀이었던 것이다. 3등 중급 마법기사. 조용해 보이는 여성으로 검은 폭우의 하급 기사들이 저토록 활약했으니, 같은 하급인 셋케도 사실은 강한 축이이지 않냐며 지레 짐작을 해왔다. 여자라면 물불 안 가리는 셋케가 언제 쫄았냐는 듯 허세를 떤다. 그런 것치곤 내놓는 전술이 허무맹랑하다. 자신의 마법인 "셋케 슈팅스타"로 폭주를 감행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전술. 그런데 여기서 세 번재 인물, 금색의 여명 1등 상급 마법기사 [[란길스 포드]]가 괜찮은 전략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8회 일치
* 클로버 국왕은 눈 앞에서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파악할 역량 조차 없는지 "짐 앞에서 무슨 짓들이냐"고 아우성칠 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마법제는 할 테면 해보라는 듯 "당장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랜길스 보드]]의 요청을 허가한다. 하지만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이 붙으려 하자 시간 구속마법 "크로노 스테이시스"로 정지시킨다. 실전같이 싸워주면 좋긴 한데 어쨌든 이건 "시합"이라는 것. 하지만 둘의 열이 식기 전에 준비를 마치겠다고 말한다.
* 열이 오를 데로 오른 아스타와 랜길스였지만 그대로 맞부딪히지는 않았다. 둘은 동료들이 소환된 깨닫고 바로 각자 동료들에게 접근해 상황을 전달한다. 아스타는 먼저 잭스와 미모사에게 이런 일을 벌여 미안하지만 랜길스를 이기고 싶으니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둘은 지켜보고 있던 참이었으나 곧바로 승락. 미모사는 랜길스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일단 임전태세에 돌입한다. 잭스는 명색이 마법기사들이 사적인 감정으로 다투냐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단연코 랜길스가 글러먹었으니 협력해준다"고 역시 임전태세를 취한다.
* 바깥에서 관전하던 이들은 누구도 랜길스의 행동을 수긍하지 못했다. [[네르슈 버밀리온]]도 "보드가는 대체 어찌된 건가"며 개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는 아예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벙벙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만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다. 시합이 있기 얼마 전. 백야의 마안의 뒷공작을 감지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마법제는 "무의식의 배신"이라는 추론을 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배신자"는, 사실 자신이 백야의 마안에 협조한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마법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역시 마법이 아니겠는가 의견을 냈지만 마법제는 마법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헤맸다. 어쨌든 그는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그걸 확인하려 했다. 전장에서 강한 마력을 상대로 싸우다 보면 무의식 중에 꼬리를 드러낼 거라면서. 마르크스는 마법제의 감은 잘 맞는 편이라며 "무의식의 배신자"에 대해선 납득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확인하는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마법제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지금와서 보니 어쩌면 랜길스가 그 무의식의 배신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랜길스는 시작부터 B팀의 크리스탈을 노렸다. 아스타가 참격으로 베어냈다. B팀은 당장은 1회전의 전술 그대로 아스타와 미모사가 크리스탈을 지키며 적의 크리스탈로 돌진, 잭스가 원호하는 포메이션을 취한다. 랜길스는 아스타의 반마법 검을 경계해서 저쪽이 G팀의 크리스탈에 도달하기 전에 크리스탈과 B팀 인원을 한꺼번에 짓뭉개기로 결정한다. 그는 핀랄에게 썼던 구체 공간마법을 무수히 형성, B팀에 날리며 자신도 돌격한다.
랜길스와 격돌. 마법제에 의해 잠시 정지돼 있었지만 풀리자 마자 동료를 파악하고 힘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1회전에서 선보인 대로 미모사가 크리스탈을 지키고 자신이 전열을 맡으며 돌진, 잭스가 후방 원호를 맡는 형태로 나온다. 랜길스의 공격을 잘 쳐냈지만 랜길스가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중과부적에 몰린다. 랜길스가 "핀랄이야 말로 진짜 마법기사가 랜길스는 아무리 강해봐야 진짜 마법기사가 아니다"는 발언을 정정하라고 강요하지만 조금도 타협없이 "이긴 자가 무엇이든 옳은 거라면 핀랄에게 인정받은 내가 이기겠다"고 선언한다.
랜길스의 행태에 매우 분노한 듯 보이지만 당장 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요청은 선선히 수락한다. 마르크스는 마법제가 랜길스를 "무의식의 배신자"로 의심하고 진상을 확인하려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그냥 랜길스가 개인적으로 띠껍고 아스타가 충분히 랜길스를 참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합을 시킨 걸로도 보인다.
처음 아스타의 협조 요청을 받았을 땐 "마법기사 주제에 사적인 감정으로 싸운다"고 깠지만 자기가 봐도 랜길스가 너무 막장이어서 시원하게 협조하기로 한다. 1회전처럼 아스타와 미모사가 돌격하고 자신은 후방 원호를 맡았는데 랜길스의 공세를 상대로 아스타, 미모사 페어가 고전하는 동안 딱히 행동이 없다.
- 블랙 클로버/77화 . . . . 8회 일치
* 아스타와 챠미 퍼밋슨이 피난활동을 돕는 동안 유노는 팔휘장 라가스와 단독으로 대치.
* 특히 아스타와 챠미 퍼밋슨은 세계수를 보며 드립을 치자 야미 스케히로에게 두들겨 맞는다.
* 아스타와 챠미, 핀랄 룰러케이트는 주민들의 피난을 돕고 있다.
* 아스타 인근에 착지한 유노. 오랜만에 아스타와 재회한다.
* 던젼 편에서 로터스와 마르스가 아스타 일행을 애먹인걸 생각해 보면 다이아몬드의 단장급인 팔휘장이 너무 싱겁게 리타이어 당했다.
* 브로코스는 벤전스와 실력 차이도 있는데다 하필이면 세계수 마법 사용자. 적토 마법인 브로코스에겐 압도적인 상성이다.
* 로터스 퇴각 후 벤전스와 야미가 독대하는데, 벤전스의 배신자 떡밥이 풀릴 듯.
- 블랙 클로버/79화 . . . . 8회 일치
* 그들은 이미 마르스와 같은 마도전사들을 새로운 휘장으로 만들었다.
* 그러나 거기서도 흉터와 본처의 학대로 핍박은 그칠 줄을 몰랐다.
* 그런던 중 마법제 율리우스와 만났다.
* 맨얼굴의 이목구비 조차 리히트와 닮았는데 흉터에선 마법으로 인한 조작의 낌세가 없다.
* 유노와 아스타는 헤어지면서도 디스를 주고 받는다. 챠미 퍼밋슨도 실프와 티격태격하느라 수선스럽다.
* 하지만 유노와 챠미는 아무 생각없이 간식이나 먹고 있다.
* 그 중엔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웠던 마르스도 있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8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89. '''배반자와 속죄'''
* [[마리엘라]]와 [[도미넌트 코드]]는 각기 마녀들을 이끌고 반격에 나선다.
* 다이아몬드 왕국의 대군을 가로막은 [[판젤 크루거]]. 젤은 칼을 빼든 채 과거의 제자였던 [[마르스(블랙 클로버)]]와 [[라드로스]]에게 물러날 생각은 없냐고 묻는다. 마르스는 말이 없지만 라드로스는 신나서 주절거린다. 오히려 그 말은 자신들이 할 말이며 그들은 마녀의 숲을 침략해야 할 필요도 있다.
* 젤이 무모하게 달려든 것 같지만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작전이다. 아군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는 쉽게 반격하기 어려운 법. 마르스와 라드로스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젤의 예상대로 둘은 상황을 관망하고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혼자서 이 대병력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자신의 반려자와 제자에게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 부응하듯 다이아몬드 측이 전열을 재정비하려 할 때, 아래 쪽 숲에서 일제히 마법의 사격이 가해진다.
마리엘라는 적의 지휘관에게 사실 자신은 다이아몬드 왕국의 암살부대에 있었으며, 지금 이들은 너무 약해 빠졌다고 밝힌다. 마리엘라는 한때 자신의 삶을 위해 남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와서 무엇을 하든 그 죄는 씻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이아몬드의 횡포를 막는 것, 그게 자신의 속죄라고 생각한다. 다이아몬드의 지휘관은 그녀를 배반자라 욕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 [[도미넌트 코드]](도미나)는 숲의 마녀와 함께 마리엘라의 활약을 지켜보며 "역시 우리 마리엘라는 대단하다"고 득의양양해있다.
* 마르스와 라드로스는 아직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전세가 상당히 기울었는데도 둘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라드로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쾌활한 말투로 밑에 덫이 있으니 함부로 날아가면 안 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 보이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혼자서 돌격한다.
- 블랙 클로버/94화 . . . . 8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의 노력으로 무사히 구조된 [[증오의 파나]].
* [[판젤 크루거]]는 파나와 마르스가 무사해서 기뻐하나 한숨 돌리려는 사이 [[라드로스]]의 마력이 무시무시하게 부활하는걸 파악한다.
* 마르스와 파나를 노리는 라드로스를 아스타가 저지한다.
* [[증오의 파나]]의 자폭도 막고 "파나"의 인격도 되살리는데 성공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 마르스는 아스타에게 "너의 덕"이라며 악수를 청한다. 아스타는 던전에선 그토록 무감정하고 차가웠던 인물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아스타도 그의 힘이었다며 소꿉친구를 구한걸 축하한다.
* 파나는 증오의 파나로서 싸운 기억은 없는지 아스타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르스와 악수하는 걸 보고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마르스는 어색하게 친구까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붙임성 좋은 아스타는 "한 번 싸우긴 했지만 친구"라며 마르스의 어깨를 두드려댄다. 그 뒤 파나에 대해서 자세히 물으려고 하는데 달려온 검은 폭우의 동료들이 "왜 맨날 무리하냐"며 아스타를 두들겨팬다.
* 마르스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다며 자책한다. 파나는 그의 탓도 아니고 이젠 이렇게 만났지 않냐고 말하고 마르스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커플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화제를 좋아하는 [[바네사 에노테이커]]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격하게 반응하는데, 특히 저런 소꿉친구도 드라마틱한 썸씽도 없는 핀랄은 피눈물을 흘린다. [[노엘 실버]]도 괜히 "나는 전혀 부럽지 않다"며 아스타를 두들겨팬다.
* 바네사는 백야의 마안이 마녀의 숲을 침공한 이유를 묻는다. 파나는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마석을 찾아와라"는 지령이 심어진 걸 떠올린다. 숲에 마석이 있다는걸 알게 된 노엘은 서둘러 마녀의 숲의 여왕에게 가보자고 한다. 젤은 그 전에 부상당한 마녀들을 돕는게 먼저고, 또 "그 아이"를 확인해 둬야 한다는데.
* 마르스는 파나를 감싸다 부상을 당한다. 라드로스는 그걸 비웃으며 "그러니까 나한테 죽는 거다"라며 마르스와 파나를 공격한다. 하지만 부상을 입은 마르스는 여기에 대응하지 못한다.
- 스틸오션 . . . . 8회 일치
[[월드 오브 탱크]]에 함선 스킨 씌운 것. 월드 오브 탱크와는 달리 여러가지 무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단단한 갑빠와 강력한 화력으로 딜을 하는 함종. 크고 느리니까 항공모함과 잠수함, 구축함의 어뢰는 조심하자.
어뢰와 잠수 둘만 믿고 적진 깊숙히 잠입해 항모와 전함을 까부수는 함종. 가지고 있는 산소를 소모해 잠수를 할 수 있다. 잠수는 두가지로 나뉘는데, 어뢰를 쏠 수 있지만 어뢰와 폭뢰에 당할 수 있는 일반 잠항 모드와 아무 공격도 할 수 없고 산소가 기하급수적으로 소모되지만 폭뢰 외에는 당하지 않는 깊은 잠항 모드가 있다. 잠항에는 시간이 걸리니 주의할 것.
구축함과 경순양함의 보조 무장. [[네이비필드]]와 달리 사용자가 폭발 범위 내에 있어도 데미지를 받지는 않는다. 깊이 잠항한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8.62.4 패치로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추가되었다.
- 식극의 소마/194화 . . . . 8회 일치
* 같은 시각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도 [[도지마 긴]]에게 그들 세대에 있던 일을 묻는다.
[[사이바 죠이치로]]는 "거래재료"는 있다며 [[나키리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다.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런 룰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편 [[유키히라 소마]]는 대체 아버지가 말한 "거래재료"란게 무엇인지 신경쓴다.
* 열차로 돌아온 소마 일행. 죠이치로는 식당 칸의 바에서 혼자 한 잔하고 있다. 그때 소마가 찾아와 진짜 유키히라를 걸 건지 묻는다. 소마는 지금껏 몇 년이나 가게를 비워놓고 이젠 또 그 가게를 식극에 건다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죠이치로는 설마 이길 자신이 없는 거냐고 몰아세우고 소마는 그렇건 아니라고 대꾸한다.
* [[도지마 긴]]은 타쿠미와 타도코로에게 연대식극 소식을 듣는다. 사실 도지마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센자에몬과 죠이치로가 만나도록 주선한 것도 그이며 그 둘이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 것도 그의 복안이었다. 죠이치로가 나서면 아자미도 승부에 응할 거라고 본 그의 계획. 십걸의 과반을 따내서 정권을 뒤엎는 것도 그가 구상한 대로다. 사실 그들의 진급시험 자체도 계획 안에 있던 것.
* 타쿠미와 타도코로는 대체 그들의 학생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한다. 이미 그들을 말려들게 한 탓인지 도지마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사진은 3학년일 때의 자신과 죠이치로, 그리고 1학년이던 아자미가 찍혀 있다. 도지마는 이 사진을 보이며 "우리 세대의 주역은 죠이치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대의 십걸 1석은 도지마. 타쿠미는 그 점을 들어 도지마야 말로 그 세대의 정점이 아니었냐고 묻는다. 그런데 도지마가 놀라운 사실을 공개한다.
>내가 죠이치로와 치른 식극의 전적은 121전 101패.
* 소마와 죠이치로 사이에서도 그 시절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죠이치로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나날이라 말하면서도, 결국 고3 시기에 스스로 중퇴하고 학교를 나오게 된다. 소마는 그 이유를 묻는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 그 무렵엔 이미 우리들이 보고 있던 요리의 세계와...
- 식극의 소마/206화 . . . . 8회 일치
* 아리스는 소마 측이 대결에 필요로하는 재료와 특훈 메뉴도 제공했다. 쿠로키바는 4명 만으로 대결하는 거냐고 묻는데 소마는 어떻게든 8명을 채우겠다고 한다.
* 특설회장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관객들이 가득차 있는데 모두 진급시험을 통과한 일반 학생들이다. 히사코는 이들 전부가 센트럴의 승리를 바라는 자들이라 말한다. 그때 슬슬 무대가 막이 오른다. 사회를 맡은 토오츠키 학원의 아이돌 [[카와시마 우라라]]가 무대에 올라오는데... 심하게 맛이 가있다. 센트럴 측의 세뇌를 당한 것 같은데 뭘 어떻게 당했는지 아이돌 컨셉은 때려치우고 심하게 펑크해져 있다. 그리고 대놓고 "아자미 정권의 승리를 바란다"는 멘트를 하는 둥 매우 편파적이다.
* 카와시마의 소개와 함께 센트럴 측 선수인 십걸들이 등장한다. 지금가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두 명의 신입 십걸도 등장. [[코바야시 린도]]는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임전태세.
십걸이 등장하자 대회장이 폭발할 것 같은 열광으로 뒤덮인다. 뒤이어 [[나키리 아자미]]가 등장하며 열기를 더한다. [[미토 이쿠미]]와 [[이사미 알디니]]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마측이 싸우는 거냐며 우려한다.
* 다시 특설회장. 카와시마는 반역자를 구토물에 비유하며 그들의 등장을 알린다. 마침내 등장하는 소마측 요리사들. 소마와 에리나,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 [[미마사카 스바루]], [[잇시키 사토시]], [[쿠가 테루노리]], [[메기시마 토스케]]. 이상의 8인이다. 현재 비센트럴 생존자 중에선 최고로 신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인데다 잇시키, 쿠가, 메기시마는 전십걸 출신. 격으로는 상대측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 양측 선수가 모두 입장하자 에리나는 아자미에게 걸어간다. 양측 인원이 8 대 8로 동수. 양 팀 리더의 합의에 따라 첫회 대전인원을 정한다. 에리나가 3 vs 3을 제안하자 아자미가 이견없이 동의한다. 1스테이지는 양팀에서 세 명의 선수가 나와 각각 대결. 메기시마는 잇시키에게 "우리끼리 전원을 쓰러뜨릴 각오로 임하자"며 앞으로 나선다. 잇시키도 그를 따라 무대에 오른다. 전십걸 두 명은 비공개 신입 십걸 두 명과 대결,
- 식극의 소마/207화 . . . . 8회 일치
* 네네가 기량을 유감없이 뽐내는 와중에 소마는 고심 끝에 "컵 야키소바"로 승부한다는 황당무계한 소릴한다.
* 반역자 군단의 최후의 카드는 놀랍게도 [[잇시키 사토시]]. 십걸의 자리를 잃었다곤 하나 여전히 고학년으로서 이런 자리에 나올 필요가 없는 그였다. 하지만 후배들을 돕기 위해 매우 정상적인 차림으로 레분토까지 날아왔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은 잇시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한다. [[사카키 료코]]는 이 승부에서 지면 잇시키까지 퇴학처리 되는거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잇시키는 귀여운 후배들을 위해 그런건 싸우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일동을 감동시킨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탈락한 반역자들에게 전용석을 안내하는데, 어느모로 보나 우리다. 카와시마는 어차피 보러 올 수도 없는 입장인데 [[나키리 아자미]]의 자비로 올 수 있엇던 거지 불평하지 말라며 반역자들을 처넣는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메뉴 선정. 마치 조작이라도 가해진 것처럼 최악의 카드가 뽑혔다. 정적에 휩쌓이는 대회장. 반역자 측은 물론 센트럴을 응원하는 관객들과 네네 조차 얼어붙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환호성. 카와시마와 관객들은 벌써 네네의 승리가 정해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한편인 잇시키와 메기시마는 태연하게 카드를 뽑을 뿐. 잇시키는 "변함없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뜻모를 소릴하고 메기시마는 흥미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헤프닝처럼 시작돼버린 연대식극.
* 소마는 우리에 갇힌 친구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운이 없냐"고 원망을 듣는다. 하지만 소마가 신경 쓰는건 네네 쪽. "내가 일식만 하는 요리인이라고 생각하지 마라"같은 소리를 해놓고 이런 결과가 나와버린 탓에 상당히 민망해하고 있다. 그래도 일단 재료준비는 착실하게 하고 있다.
- 식극의 소마/209화 . . . . 8회 일치
*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똑같이 1회전 멤버인 [[잇시키 사토시]]가 아예 이쪽 조리대에 와서 관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마가 자기 요리는 어쨌냐고 묻자 어차피 숯불을 달구고 있는 중이라 한가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태평하다. 그는 소마의 요리를 흥미롭고 기특하게 바라본다. 그는 아군을 고무시키는 것도 팀워크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자기 혼자 고무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십걸인 [[메기시마 토스케]]는 반대로 아주 성실하고 묵묵히 조리를 하고 있다가, 이쪽을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따지고 보면 상대측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태도. 당연히 잇시키의 대결 상대가 반발한다. 그는 더이상 한눈팔지 말라며 타당한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이쪽도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은지 요리에 대한 예술론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말에 따르면 요리란 식탁 위에 놓여진 것만이 아니라 요리 중 요리사의 행동, 즉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예술인 것이다. 이같은 예술론은 잇시키와 자신이라면 서로 마주해 하나의 예술을 만들 수가 있다며 꽤 오글거리는 소리로 이어진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쥬리오가 이탈리아 요리의 달인이라고 소개한다. 쥬리오는 시작부터 의욕적으로 조리에 들어간다. 큼직하게 자른 장어에 소금을 쳐서 기름 두른 팬에 넣고 양파와 마늘,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볶는다. 이때 와인을 뱅뱅 돌리면서 춤추는 듯한 모습으로 넣는게 포인트. 꼴은 우스꽝스럽지만 실력은 대단하다. [[나카리 에리나]]도 그의 내력과 실력에 대해선 자세히 안다. 에리나는 시라츠 일가는 대대로 이탈리아 영사관의 전속 요리사를 했던 유서깊은 가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실력은 일본과 이탈리아 양국에서 소문이 자자하고 특히 선대는 공적을 인정받아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쥬리오는 그 설렁설렁한 태도에 폭발한다. "너는 언제나 그렇다"며 그의 의욕없음을 질타한다. 그는 적이면서도 잇시키의 재능을 "존경"한다고까지 표현하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활약할 날만을 기다려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나키리 아자미]] 총수에게 따르지 않고 그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보일 뿐이라고 매도한다. 물론 잇시키의 태도가 이정도 매도로 흔들릴 수는 없다. 옆에서 소마가 황당해할 정도로 동요가 없는 잇시키.
소마도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예전에 그와 식극을 한 잇시키는 진짜 실력의 절반도 채 발휘하지 않았었다는 걸.
- 식극의 소마/234화 . . . . 8회 일치
* [[에이잔 에츠야]]는 대형 창고에서 [[타쿠미 알디니]]를 "패배로 몰고갈 식재료"를 찾아 돌아온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조리로 돌아온 에이잔. 출전자 여섯 명의 요리가 속속 완성단계로 접어드는 가운데 에이잔은 한눈에 봐도 훌륭한 로스트 비프를 완성한다. 큼직한 크기에 잘려진 단면은 선명한 핑크색. 고기의 달인인 [[미토 이쿠미]]가 보기에도 결점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로스트비프다. 이어서 다진 쇠고기에 "호스레디쉬"라는 서양 와사비를 잘게 썰어넣고 생크림, 요구르트, 안초비를 더해 크림소스를 만들었다. [[카와시마 우라라]]는 그가 도구를 자신의 손발처럼 다루고 있다며 혀를 내두른다.
* 반역자진영은 분하지만 에이잔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이잔은 이미 한 번 쿄쿠세이 기숙사를 없애려 했던 원한이 있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에이잔의 상대 타쿠미에게 저 "인텔리 야쿠자"를 무찔러 달라고 혼신의 응원을 보냈다. 그것은 에이잔에게도 들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녀석들 기숙사에 몹쓸 짓을 하긴 했다"며 선선히 인정한다. 원래 자기는 여기저기 원한을 산 적이 많고, 생각해 보면 타쿠미한테도 그렇다며 말을 걸었다. [[미마사카 스바루]]와 타쿠미의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 건으로 타쿠미가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 말하는 한편 [[잇시키 사토시]]를 보증인으로 내세워서 "그건 미마사카가 신청한 식극이었고 나의 개인적인 의사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쿠미가 에이잔에게 원한이 있는 걸 전제로 한 소리였는데, 정작 타쿠미는 "그런 말로는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며 무시한다.
* 타쿠미는 모두의 예상대로 시구레니를 얹은 피자를 만든다. 펼친 반죽 표면에 가볍게 소스를 바르고 시구레니와 흰파, 모짜렐라 치즈를 뿌린다. [[이사미 알디니]]가 보기에도 완벽한 작업. 이제 오븐에서 240도로 12분 간 구우면 끝이다. 그리고 순조롭게 오븐에 투입. 이제 시간 문제다. 이렇게 상대가 완벽한 마무리에 돌입했으나 에이잔은 시종 여유롭다. 그는 문득 타쿠미에게 "네 피자는 아주 섬세한 요리 아니냐"고 물었다. 특히 오븐에서 꺼낸 뒤엔 맛을 조정하는게 어렵지 않냐고. 타쿠미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에이잔이 대뜸 말했다.
* 반역자팀에선 당연히 성토했다. 그런데 심사의원 안은 이번만큼은 반역자의 편을 들지 않았다. 승부의 조건은 "내놓는 요리"와 자신들의 "혀". 한정된 시간 안에 적의 요리를 간파해 맞춤 전략을 펼친 거라면 아무 문제도 없다. 심사의원의 재개까지 받은 이상 거칠 건 없다. 에이잔은 여기서 아티초크를 더욱 추가한다. 이제 조리의 마무리. 에이잔은 타쿠미가 근시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때"도 "지금"도. 적에 대한 분노로 시야가 좁아진 것이다. 그가 "메짜루나"를 미마사카에게 뺏긴 일도 만일 미마사카의 상대가 소마였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조롱했다.
시작부터 에이잔이 "미마사카에게 진 그 식극은 내 책임이 없다"는 둥 도발을 늘어놓는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사이토는 명백하게 분노한 티가 난다고 한다. 순조롭게 조리를 마치고 최종공정에 들어갔을 때 에이잔이 아티초크를 이용한 함정을 공개하는데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이후에 에이잔이 "미마사카와 첫 승부 때 소마가 상대였으면 너와는 달리 극복했을 것"이라 모욕을 퍼붓지만 역시 무반응. 돌부처가 다 됐다.
한동안 반역자팀에게 유리한 듯한 상황을 조성해줬는데 에이잔이 대놓고 함정을 팠다고 선언하는데도 문제될 게 없다고 판정한다. 판정기준은 완성된 요리와 자신들의 미각 뿐이므로, 그 조건 안에서 어떤 전술을 펼치든 상관없다는 것. 요시노 유키가 반발했을 때 이렇게 말하는데 표정이 얼음마녀같다.
- 안재욱(배우,가수) . . . . 8회 일치
[[대한민국]]의 [[멀티 엔터테이너]]. [[배우]]와 [[가수]]를 겸해 큰 인기를 얻었으며, [[한류]]의 시초라 여겨지는 연예인이다.
가수로서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그는 2003년 [[SBS]] 드라마 선녀와 사기꾼으로 다시 탤런트로 복귀했으며 4집 타이틀곡인 <친구>라는 앨범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이 사건에 대해 [[빛과 그림자]]의 시대 배경이 윗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결과 시상 직전에 대상 수상자가 바뀌었다는 설이 퍼졌다. [[진실은 저 너머에]]...[* 연기대상 당일까지 와달라고 신신당부하며 왔으나 수상자가 바뀌었고, 스케줄이 있었으나 급하게 온 안재욱은 물을 먹었다는 설이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김재철|MBC 사장]]이 논란의 그 분이시라 소문이 더 커졌다.]
2014년 안재욱의 소속사인 제이블엔터테인먼트가 떼아뜨로와 합병하여 현재는 EA&C에 소속되어있다.
2015년 6월 1일 뮤지컬 배우 최현주와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14530|결혼했다]]. [[프로불참러|그런데 세바퀴에서 김흥국이 이것 때문에 조세호를 갈궜다]]. 정작 조세호와 안재욱은 아예 모르는 관계다. 그리고 2016년 2월 16일, 득녀했다.
2017년 8월 1일 뮤지컬 아리랑 홍보를 위해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고선웅 연출가와 함께 출연하여 인터뷰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323929|영상]]
|| 2003년 || SBS || 선녀와 사기꾼 || 정재경 || ||
- 예천군 . . . . 8회 일치
||<rowbgcolor=#F0F8FF> '''예천읍내 전경'''[* 모르는 사람은 안 보일테지만... 예천초등학교, 예천경찰서, 예천군청 구 청사 등의 시설들이 보인다. 왼편에 있는 산이 '흑응산'이고, 오른편의 냇물이 '한천'이다.] || '''예천군청 조감도''' (충효로 111)[* [[경상북도청]]의 디자인을 따와서 비슷한 컨셉으로 [[공모전]]을 한 결과이다.] ||
예천(醴泉)의 이름을 풀어보면 '''단술 례'''와 '''샘 천'''이다. [[정유재란]] 때 참전한 [[명나라]]의 장수 [[양호]]가 지나가다가 마신 샘물이 너무 달고 맛나 중국 예천(醴泉)과 같아 이름이 붙여졌다는 지명유래설화가 있는데 이설로는 '크고 넓은 땅'을 의미하는 고대 한국어인 '단슬얼'로 불렸던 이곳의 지명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착된 지명이라고도 한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2&dirId=121117&docId=147391514&qb=7JiI7LKcIOyngOuqhSDsnKDrnpg=&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SGmGBlpySEZssb4QN7wsssssstl-014086&sid=A4deAbPXJdB8Y7c9w/egHw%3D%3D|관련 링크]] 간혹 醴'川(내 천)'이나 '禮(예도 례)'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주의하자.
지형에서는 대다수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도시들과 같이 [[소백산맥]]이 있어서 산악지형을 띄고 있지만, 이 곳은 상대적으로 평지가 많다. 인구로 보자면, 70년대 중반에는 한 때 인구가 16만 명이 넘는 [[리즈시절]]도 있었지만 성장동력 부재와 [[농업]]종사 인구 감소로 인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 크게 감소했고 이후 90년대 중반부터는 6만 명에서 4만 5천여 명으로 더디지만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상북도|경북도청]] 이전으로 안동, 예천 접경지역에 [[경상북도청신도시]]이 조성되어 큰 성장동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드디어 13년만에 인구 50,000명을 넘기게 되었다.
예천은 북쪽은 백두대간(소백산맥), 남쪽은 낙동강 본류에 접하며, 군 가운데로 내성천이 굽이굽이 흐른다. 풍양면은 예천군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이남에 위치해있는 면이다. 큰 강인 낙동강이나 내성천 주변에는 정작 제대로된 평야가 없고[* 풍양의 낙동강 연안에는 평야가 좀 있고, 예천읍 고평에는 내성천 옆에 큰 들이 위치한다.], 내성천의 지류인 한천의 하류(예천읍 일원)에 비교적 너른 평야가 있다. 대략, 북쪽일원 (효자, 은풍)이 산악지형, 중앙(예천읍, 유천, 개포, 용궁, 호명)이 평지 혹은 구릉성 지형, 동부(감천, 보문)와 남부(지보)는 산지가 많은 지형이다. 용문은 중앙(예천읍)에서 북쪽(효자, 은풍)이나 서북쪽(문경 동로면)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데, 중앙은 평지이고, 외곽이 산지인 전형적 분지 지형을 이룬다. 풍양은 예천군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이남에 위치한 면으로서, 북쪽과 남쪽은 산지이고, 중간이 평야이다.
시외버스는 [[예천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해 이용 가능하다. 기타 [[농어촌버스]]는 [[예천여객]]에서 운영하고 있다. [[2012년]] [[7월 1일]]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군 단위 최초로 [[티머니]] [[교통카드]]를 도입하였으며, [[중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라인에 있는 모든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시군과 공용한다. [[2013년]] [[3월 1일]]부터는 군계 내 [[구간요금]], [[2014년]] [[7월 1일]]부터는 군계외 구간요금을 폐지하고, 무료환승제도가 도입으며, [[2016년]] [[3월 1일]]부터는 [[안동시 시내버스]]와도 무료환승이 가능하다.
15대 국회 이후부터 선거구가 항상 문경과 같이 가고 있다[* 생활권이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예천읍 서부 지역은 문경 점촌 생활권이며, 중앙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예천에서 서울을 갈땐 문경을 지나가야 했기에 지금도 상호간에 교류가 많은 지역이다.]. 2016년 20대 국회에서는 문경-예천 선거구가 영주 선거구와 통합되었다.
예천군 호명면과 안동시 풍천면에 도청신도시가 조성되었다. 도청 및 유관기관은 안동시 지역에 위치하지만 아파트 단지는 예천군 지역에 훨씬 더 많이 조성, 2018년 드디어 인구가 5만 명을 넘어섰다. 계획인구가 모두 들어와 예천시로 승격될 수 있었으나, 저출산으로 가구당 인구수도 줄어들었고, 안동시내에서 통근하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예측되어 승격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이현준 군수 주도로 1981년 건립된 현 군청 청사 대신 신예천군청을 건립하고 이전하였다. 신부지는 예천읍 대심리 353번지, 구 엽연초생산조합 부지이다.[[http://www.ycg.kr/open.content/ko/administrative/news/headline/?id=986407f875b54364aa54a89bda326e86|#]] 2015년 말 착공, 2018년 2월 5일 준공되었다. 2015년 5월 설계 공모작을 선정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29/0200000000AKR20150529063100053.HTML|당선작 조감도]] 하지만 현 군청 청사가 위치한 노상리와 인근 노하리, 서본리, 동본리, 백전리 주민들은 '''군청 이전 후 해당 지역 경제 위축'''을, 그외 지역 주민들은 '''부채 증가, 도청 이전과 연계한 각종 사업의 선행 추진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http://www.kbsm.net/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306&idx=118103|#]] 한편, 현 군청 청사가 위치한 예천읍내는 배산인 흑응산과 임수인 한천 간 폭이 좁은터라 더이상 확장가능한 공간이 없어서 예전부터 쭉 이전의 필요성이 강하게 피력됐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이전하게 되면 으레 [[도심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구 군청 청사 인근 지역 경제가 위축되지 않게끔 정책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 오승훈 (축구선수) . . . . 8회 일치
2015년 3월 7일 2015 시즌 대전의 첫 경기였던 [[부산 아이파크]]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자신의 K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나, 1골을 실점하며 1:0 패하였으며 이어진 [[광주 FC]]와의 홈 개막전에도 선발출전하였으나 2골을 내주며 패배하였다. 이후에도 3월 21일 [[제주 유나이티드]]전 5:0 패, 4월 4일 [[성남 FC]]전 4:1패로 두 경기 동안 총 9골을 실점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이어진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서는 [[박주원 (축구 선수)|박주원]]에 선발 자리를 내주었다.
이후 박주원에게 잠시 주전을 내주었으나, 시즌 중 후반 [[전북 현대 모터스]], [[전남 드래곤즈]]와의 두 경기서 박주원이 7골을 실점하는 부진하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새로 부임한 [[최문식]] 감독의 신임을 받아 9월 13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 출전하며 다시 주전으로 거듭났고,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무실점으로 선전하며 대전에 2015 시즌 홈 첫승을 이끌었다. [[부산 아이파크]]와의 곧이은 홈경기서도 선전하며 대전의 2:1 승리이자 시즌 첫 연승을 이끌었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였고, 2015 시즌을 끝으로 대전 구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군 복무를 위해 [[상주 상무]]에 입단하였다. 그 후, 2017 시즌 중 전역하여 남은 기간동안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가 2018년 1월 8일 [[울산 현대]]에 입단하였다.
[[2009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고,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을 시작으로 [[체코]]와의 5,6위전까지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였다.
- 원피스/832화 . . . . 8회 일치
* 상디는 제르마가 자신의 가족임을 부정하고 아버지인 국왕 "빈스모크 저지"와 대립한다.
* 기사와 맞서는 캐럿.
* 그런게 그들은 우누가 있던 그 자리로 돌아와 있다.
* 다시 다리로 돌아가 뛰어넘는 일행, 그런데 이번에도 다시 우누가 있는 자리로 돌아와 버린다.
* 상디는 이제와서 무슨 말이냐며 결혼도 거부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 그러자 저지가 "밖으로 나와라. 남자는 주먹으로 말하는 법."이라 말하는데.
* 묘사되진 않았지만 욘디와 레이쥬가 밀집모자 일행과 헤어진 후 상디와 만나 된통 얻어터진 듯.
- 원피스/848화 . . . . 8회 일치
* 브룩은 보물전 안에 남은 체스병들을 연주와 노래로 순식간에 제압한다.
* 푸딩은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가 갇혀 있는 죄수도서실을 찾아 사과한다.
* 푸딩은 상디에게 프로포즈 받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 알려주며 루피와 나미의 귓가에 "어떤 결심"을 속삭인다.
* 그 말을 들은 루피와 나미가 경악. 푸딩은 눈물과 함께 작별인사를 고한다.
* 푸딩은 자신의 방에서 유모와 함께 있다. 유모는 루피 일행이 잡힌 소식을 전하면서 그들이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푸딩이 정했던 드레스는 빅맘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가 따로 고른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고 알린다.
* 한편 죄수도서실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푸딩이다. 푸딩은 루피의 감옥을 지키고 있던 형제들에게 루피와 이야기할 수 없겠냐고 청한다. 의외로 형제들은 순순히 루피의 감옥을 열어준다. "책갈피"를 감옥 사이에 끼우자 엿가락처럼 옆으로 휘어져 버린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푸딩. 루피는 푸딩을 반가워하며 해안에 갔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미는 다른 녀석들이 들으면 푸딩이 곤란해지니 그만하라고 진정시킨다.
푸딩은 상디가 프로포즈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결혼하겠다는건 진심이었다, 루피와 나미는 충격을 받는다. 같은 시각 상디는 푸딩에게 주기 위해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자신을 설득시키는 연기를 계속하며.
"옥갑"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말이 있는데 고대병기와 연관됐거나 D의 일족과 관련있다는 설이 많다. 하지만 옛날부터 일본에서 "용궁에서 받아온 옥갑"은 우라시마 타로 이야기에 나오는 "나이를 먹게 하는 옥갑"으로 통했다. 그것과 관련된 아이템일지도?
- 원피스/851화 . . . . 8회 일치
*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은 [[샬롯 브륄레]]를 간지럼 태우며 성으로 연결된 거울을 대라고 심문한다.
* 그는 바로 [[징베]]. 징베는 곧바로 루피와 나미를 해방시킨다.
* 그때 푸딩이 갑자기 총을 쏘는데 총알이 상디가 서있는 벽 옆을 뚫고 나간다. 퍼커션 락 36구경 권총 "워커"와 통칭 "캔디 재킷"이라 불리는 탄환이다. 그 위력은 장갑을 두른 방패병을 등까지 관통하며 "철의 몸"을 가진 빈스모크 일가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푸딩은 바로 이 총으로 [[빈스모크 레이쥬]]를 저격했던 것이다. 푸딩은 내일도 이 총으로 상디를 쏠 건데 무슨 표정을 지을 건지 기대된다며 악취미적인 발언을 한다.
* 그녀의 말을 들은 부하 "젤리" 니트로와 "양탄자" 라비앙도 맞장구를 친다. 이들은 상디는 푸딩이 자신에게 반했다고 철석 같이 믿을테니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볼만할 거라고 시시덕거린다.
* 미러 월드에선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아직도 탈출방법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다. 그들은 포박한 [[샐롯 브륄레]]를 간지럼태우며 성으로 연결된 거울의 소재를 캐묻는다. 견디다 못한 브륄레가 결국엔 실토하는데, 사실 그런 거울이 어디에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워낙에 거울이 많으니 일일히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울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하는데. 거울들은 모두 자신이 비추고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 그때 누군가가 죄수도서실을 방문한다. 그는 오페라와도 구면. 오페라는 지금 그가 성안에 들어올 수 없는 입장이라며 손사레를 치는데 징베는 여기저기서 난투가 벌어지는 이 시국에 그런 소리 말라며 성큼성큼 들어선다. 그리고 그는 오페라에게 대뜸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데.
>기와 5천장 정권!!!
어인공수의 기술이 작렬. 오페라는 단말마와 함께 쓰러진다.
- 원피스/852화 . . . . 8회 일치
* [[징베]]는 몬도르의 책을 불태우고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를 해방한다.
* 죄수도서실은 때아닌 화재 발생. "몬도르의 책"은 태워야지만 해제가 되기 때문에 [[징베]]가 불을 지른 것이다. 안에 있던 죄수들이 불 붙은 채로 책에서 튀어나온다. 징베는 미리 물을 준비하고 있다가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가 나오길 기다려 불을 꺼준다.
간신히 화상을 면하고 풀려난 루피와 나미. 나미는 "전에도 이런 적이 있던 것 같다"고 투덜거리고 루피는 팔을 안 끊고 끝났다고 껄껄 웃는다. 징베는 자신들이 처음 만난 것도 [[임펠다운|감옥]]이었다며 잠시 회상한다. 그리고 책에서 나온 죄수들의 수를 보라며 이만큼 빅맘 [[샬롯 링링]]에겐 우수한 부하가 많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미는 징베가 이 섬에 있는 까닭을 묻는데,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태양 해적단이 빅맘 산하에 들어갔으며 지금 자신의 행동은 "모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성 내에는 죄수도서실의 파란이 전파되며 병력들이 몰려온다. 루피는 전투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데다 공복까지 겹쳐 시들시들한데 [[샬롯 푸딩]]이 상디를 속이고 있는 걸 전해줘야 한다며 억지로 일어나 죄수도서실을 박차고 나선다. 징베와 나미는 성내엔 강자가 쫙 깔렸다고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예전에 좀 도와줬다고 은혜나 갚으려 들고.
* 레이쥬는 문득 어떤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의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와 어머니 [[빈스모크 소라]]가 크게 싸웠던 기억.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아직 상디와 형제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출산을 앞두고 아이들을 무감정한 전쟁기계로 만들려는 저지의 계획에 반발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분노였지만 복수와 제르마의 재건에 눈이 먼 저지에겐 들리지 않는 얘기였다. 결국 강화시술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실행됐다. 하지만 어머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신 것이다.
- 원피스/853화 . . . . 8회 일치
* 페드로는 변신이 끝나기 전에 다이너마이트로 자폭하는데 사실 미러 월드에서 나타난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을 보고 위장한 것이다.
빅맘은 이제 자신도 로저와 같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며, 다음에 라프텔에 가는건 자신이라고 장담한다. 그 방법이란 바로 [[샬롯 푸딩]]. 그녀의 능력이다. 때마침 푸딩이 빅맘을 만나러 온다. 브룩은 그녀를 알아보지만 아직 내막을 모르고 있어서 그녀를 위해 모르는 척 한다. 푸딩도 브룩을 알아보지만 어차피 잡혔으면 그걸로 됐다고 여겨서 역시 아는 척하지 않는다.
푸딩의 세 번째 눈은 "삼안족"이란 특수한 종족의 능력이다. 그녀는 빅맘은 푸딩이 삼안족의 진정한 힘에 각성하면 로저와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푸딩은 자신은 혼혈이라서 그런 힘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고 회의적이다.
* 페드로는 자폭한게 아니었다.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거울을 통해 그를 구해낸 것이다. 사실 자폭하려고 했던건 진심이었지만 그 직전에 쵸파 일행이 미러월드를 통해 그를 발견했고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그를 빼돌릴 수 있었다. 쵸파와 캐럿이 "무리 좀 하지 마라"고 타박하자 페드로는 "거울에서 나타나다니, 놀란 건 이쪽"이라 받아친다. 한 번 빅맘의 영역을 침범했던 그도 [[샬롯 브륄레]]의 능력에 대해선 몰랐던 모양이다.
캐럿은 손수 그린 초상화를 들고 다니며 거울들에게 "이렇게 생긴 사람 못 봤냐"고 묻는데 잘 그리긴 했지만 너무 미화된 화풍. 페드로는 그 점을 지적하며 도움이 안 된다고 투덜댄다. 그런데 페드로의 생각과 달리 거울들은 그 주인공들을 알아본다. 몇몇 거울이 [[나미(원피스)|나미]]는 본 적이 있다며 그녀가 [[징베]]와 같이 도주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갑자기 징베의 이름이 나오자 일행은 놀란다.
>이제와서 되돌릴 순 없단 말이다, 루피.
상디는 그 모든 것들을 이제와서 돌이킬 순 없다며 루피를 떠올린다.
- 원피스/855화 . . . . 8회 일치
* 작전은 실패한 것 같았지만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가 간발의 차이로 브룩을 빼오는데 성공.
* 빅맘 해적단의 전투원(비숍 클래스) "처리꾼 [[보빈]]". 현상금이 1억 550만에 달하는 나름 거물이다. 그는 [[상디]]에게 공격 당한 충격에서 금새 벗어난다. 부하들이 달려와서 방금 전 소란은 뭐였냐고 묻는데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몸을 좌우로 흔든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음파같은 것이 발산, 부하들은 서서히 잠들어 쓰러져 버린다. 그는 "마무리는 내가 한다"며 직접 상디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그걸 본 [[샬롯 브륄레]]는 빅맘은 본래 진귀한 생물을 좋아한다며 브룩을 한 침대에 재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빅맘을 깨우려고 마구 소리를 친다. 일행은 브륄레는 물론 니트로까지 입을 꽁꽁 묶어서 치워놓는다.
* 쵸파 일행은 브룩을 가짜와 바꿔치기 하기로 한다. 처형장에서 유골을, 주방에서 미역을 훔쳐서 그럴듯한 가짜 브룩을 만들고 빅맘이 자는 동안 바꿔치기 한다는 계획. 하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 브룩이 떨어지자 이번엔 [[나미(원피스)|나미]]가 시도한다. 나미는 브룩을 깨워서 데려가려 하는데 막 깨어난 브룩은 나미가 짊어진 가짜 브룩을 보고 놀라 귀신이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깬 빅맘. 아직도 파리인 줄 알지만 정말로 짜증이 한계에 달해서 프로메테우스를 집어서 휘두른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징베는 거울 밖으로 몸을 날려 빅맘의 "헤븐리 파이어"에서 나미와 브룩을 구한다. 겉옷에 불이 붙지만 몸을 굴리면서 거울 속으로 도주, 가짜 브룩도 무사히 현장에 놔두고 왔다. 작전은 결국 성공.
* 일행과 재회한 브룩은 깜짝 놀랐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나미는 놀란건 이쪽이라며 면박을 준다. 페드로는 브룩이 살아있어 다행이라며, 애초에 그런 상황에서 무리한 작전을 구상한 자신의 탓이라며 브룩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브룩은 그건 자신들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며 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또 포네그리프를 빼앗으려면 어차피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기 두게골을 열어보인다. 그런 기능이 있는줄 몰랐던 징베와 캐럿은 경악.
브룩은 아무렇지 않게 "사본"을 꺼내놓는다. 쵸파와 나미, 캐럿의 눈이 휘둥그래하게 튀어나온다. 브룩은 아무것도 아닌 양 페드로가 무사해서 다행이란 이야기나 늘어놓는다. 나미가 이게 정말 포네그리프냐고 묻자 그제서야 "맞다"며 마침 딱 세 장을 다 배끼고 났더니 빅맘이 나타나 위험했다고 투덜거린다. 페드로는 장성도 끼어있는 호위대를 따돌리고 성공한 거냐고 놀란다.
* 평원을 살피고 있던 상디는 어디에선가 커다랗게 "꼬르르르륵" 소리가 나는걸 듣는다. 그 소리를 따라간 상디는 마침내 자신의 친구를 발견한다. 루피는 약속대로 그 평원에서, 너무 굶어서 미라처럼 홀쭉해진 채 상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디는 그 모습을 보고 물엿비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웃는다.
- 원피스/861화 . . . . 8회 일치
* 비트는 게스트들도 그렇지만 빅맘의 부하들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라 놀란다. 우측 상단은 장남 "캔디 대신" [[샬롯 페로스페로]], 좌측 상단은 장녀 "후르츠 대신" [[샬롯 콩포트]], 우측 하단은 차남 "장성" [[샬롯 카타쿠리]], 하단 가운데 14녀 "장성" [[샬롯 스무디]], 좌측 하단 3남 [[샬롯 다이후쿠]]와 4남 [[샬롯 오븐]]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결집했다. 비트는 자기도 모르게 "동료일 때는 든든했지만 적이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고 말하는데, 그 "적"이란 표현을 대문이 놓치지 않고 듣는다.
벳지는 다시 한 번 시저의 역할을 상기시켜 준 뒤 시저의 심장을 움켜쥐며 "헛된 생각 품지 마라"고 경고한다. 시저는 이제와서 그런 짓은 안 한다고 하지만, 방심할 수 없는 위인이다.
* 예식까지 30분이 남았지만 벳지가 확인해 보니 "미끼"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됐다. 시저처럼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은 벳지의 몸 속에 숨어 있다. 벳지가 들여다 보니 [[징베]]를 제외하곤 곯아 떨어진 상태. 벳지가 준비는 어쨌냐고 호통을 친다. 징베는 상륙 후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니 냅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10분 전까지는 준비를 마치겠다고 장담한다. 벳지는 별로 믿음직하지 않은지 "걸림돌이 되면 바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징베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라고 이른다.
밖으로 나온 벳지는 투덜거리면서 시저에게도 자기 몸으로 들어와 있으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루피 일행이 못미더워서 그런지 자기도 직접 회장 안으로 돌입하겠다고 하는데.
* [[상디]]와 푸딩은 9층 신랑신부 대기실에서 준비를 마쳤다. 상디는 아직까지는 "좋은 신랑"을 연기해야 한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결혼하지 않을 셈으로 이 섬에 왔는데 이렇게 둘만 있게 돼서 꿈만 같다고 말한다. 진상이 밝혀진 줄 모르는 푸딩은 "좋은 신부" 연기에 한층 박차를 가한다. 그녀는 귀여운 척하며 그 꿈은 "좋은 꿈? 나쁜 꿈?"이냐고 애교를 떤다. 그런데 그게 먹힌다. 답이 없는 변태신사인 상디는 뻔히 알면서도 홀라당 넘어가서 심장이 멈출 뻔 한다.
* 이윽고 빵빠레가 울리며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된다. 사회자의 선언에 따라 프로메테우스가 신랑신부를 태운 거대한 찻잔을 이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사회자는 이걸로 제르마와 빅맘 해적단이라는 악의 양가가 이어져 "세계에 악의 꽃이 미친듯이 피어나게 하리라"고 선언한다.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갈채와 환호가 어지럽게 폭발한다. 저지는 자신의 야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바라보며 웃고, 빅맘은 남몰래 그런 저지를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본다.
* 이렇게 음모와 악의가 촘촘하게 깔린 결혼식장이지만, 거기로 내려오는 신랑신부의 얼굴은 그저 행복해 보인다. 특히 상디는 너무나 사심없이 행복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벳지는 그가 대단한 "연기파"라고 감탄하고 만다.
- 유해진(배우) . . . . 8회 일치
전술한 작품들 중 《극비수사》가 286만이고, 《그놈이다》와 《이장과 군수》가 고작 100만을 넘겼을 뿐, 나머지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못 올렸고(특히 《죽이고 싶은》은 10만대), 결국 2010년작 《[[부당거래]]》에선 다시 조연으로 출연했다(...). 거기다 2012년 남자 주인공으로 열연한 《미쓰고》도 61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본인의 장기이자 대표이미지를 살린 코미디 영화 '[[럭키(영화)|럭키]]'에서 약 700만 명을 동원하고, 이후 [[공조]]가 약 800만, [[택시운전사]][* 영화 정보에는 조연으로 나와있지만, 비중이 높은 주연급 조연]가 '''1000만'''을 돌파하면서 주연배우로서의 입지도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까불까불하고 깨방정을 떨 것 같은 외견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매우 조용하고, 생각이 깊다. [[독서]]와 사색을 즐기고 음악 감상이 취미다. 연기에서 [[애드립]]으로 보이는 부분도, 촬영 전부터 주도면밀하게 내미는 계산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2016년 10월 영화배우 브랜드 평판에서 [[공유(배우)|공유]]와 [[정우성]]을 누르고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667223|1위]]를 하였다.
* [[신라면]][* [[송강호]]와 같이 찍었다. [[https://youtu.be/m78Pf6-wRUo|#]][[https://youtu.be/wqlv2sqgDb8|#NG모음]]]
참고로 실제 성은 '[[류(성씨)|류]]'씨(버들 류)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류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유현진이 아닌 류현진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류(성씨)|류]]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이게 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윗 동네]] 때문이다.~~]
[[2010년]] 벽두부터 [[김혜수]]와의 교제 때문에 연예계 최고의 사건 주인공으로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2120158|등극했다]]. --오오 [[인생의 승리자]] 오오--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2808|광고로 확인 사살]].[* [[대우증권]] CF에 김혜수를 닮은 꼴로 알려졌던 배우 [[이엘]]과 함께 출연했다.] [[공형진]] 왈 [[김혜수]]가 유해진에게 먼저 반했다고 한다. 유해진이 그렇게 다식해 대화가 안 끊길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그렇게 그러나 [[2011년]] [[4월 4일]], 3년만에 결별 소식이 보도되었다. --초콜릿 복근도 다 필요 없어!-- 함께 [[건강검진]]만 받아도 [[결혼]]설이 나도는 수준이었으나 연기에 매진하면서 자연히 멀어졌다고 한다.
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김두수 역으로 출연했을 때 신들린 악역 연기를 보여주면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그가 서울예대 재학시절 단골로 찾았던 백반집에서 주인 할머니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 할머니가 하신 말이 압권인데, "불쌍한 서희 좀 그만 괴롭혀!". 유해진이 정승혜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로는 그 말을 하신 다음 하시는 소리가 더 압권이었다. "이거 많이 먹고 그만 좀 못되게 굴어!"
- 윤보라 . . . . 8회 일치
||<#B26724> {{{#ffffff '''출생'''}}} ||<(> [[1989년]] [[12월 30일]][* 2017년 후크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이후 변경되었다. [[씨스타]] 활동 당시에는 공식 프로필 생년월일이 [[1990년]] 1월 30일이었기에 변경됐을 당시 팬들에게 혼란을 주었지만, 소속사 측에서는 주민등록상 생일하고 실제 생일이 달라 수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age(1989-12-30)]세), [[경기도]] [[성남시]][* 한때 전남 진도로 알려졌으나 정확히는 엄마의 고향이다.] ||
[[씨스타]] 해체와 함께 [[스타쉽엔터테인먼트|스타쉽]]과 결별한 후, 2017년 6월 13일에 [[이선희]] 및 [[이승기]]의 소속사인 후크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 보라의 차가 [[티파니(소녀시대)|티파니]]의 [[아우디 A5|A5]]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사진이 찍혔는데, 보라의 차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레인지로버 이보크]]다.
2010년 11월 19일 [[청춘불패/시즌 1|청춘불패 시즌 1]]에 '달리기 셔틀'로 출연. '구사인볼트' [[구하라]]와의 맞대결을 할 듯한 모습으로 팬들을 기대하게 했으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2년|2012 설날 아육대]]에 참가했으나 50m 달리기에서는 [[달샤벳]]의 [[조가은]]에게, 허들 경기에서는 [[Apink|에이핑크]]의 [[윤보미]]에게 금메달을 내주면서 전(前) 챔피언의 체면을 구겼다. 그나마 경보와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이건 단체경기라...
||<|3> [[2018년]] || [[JTBC]] || [[아는형님]] || 출연 || [* [[권나라]], [[연우(모모랜드)|연우]], [[주이(모모랜드)|주이]]와 동반 출연.] ||
|| [[SBS]] || [[런닝맨]] || 출연 || [* [[제니(BLACKPINK)|제니]], [[지수(BLACKPINK)|지수]], [[윤보라]], [[한은정]], [[표예진]], [[황치열]]와 동반 출연.] ||
- 은혼/581화 . . . . 8회 일치
[[카무이]]는 [[우미보즈]]와 [[코우카]]의 진실을 알게 되고 [[야왕 호우센]]에게 도전하며 비뚫어진다.
* 카무이는 절벽 밑에서 가구라와 대치하고 있다
* 한편 우미보즈와 [[우츠로]]가 대치하고 있는 곳에서는 우츠로가 코우카에 대해 듣고 "나와 같은 존재가 또 있을 줄은 몰랐다"고 놀라워한다.
* 우미보즈는 그런 별에서 홀로 살고 있던 그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지만, "사실 지켜지고 있던건 자신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코우카는 일부러 아무 말도 없이 따라와준 것이며 홀로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기 보단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택한 것이라고.
* 우미보즈는 카무이에게 탓하려면 자신을 탓하라고 하지만, 설사 그때 모든걸 알고 있었어도 코우카와 자신은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한다. "죽더라도 아이들(너희들)을 만나기 위해"
* 이 모습을 외출했다 돌아오던 가구라와 우미보즈가 목격한다. 우미보즈는 모든걸 알고 있었던 듯 "왜 하필 내가 있는 날을 골랐느냐"고 묻는데, 카무이는 "일부러 그랬다"면서 "어머니를 구하려면 가족을 버릴 수밖에 없고 당신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며 눈을 번뜩인다
- 은혼/637화 . . . . 8회 일치
* 강적을 물리쳤지만 바보남매는 아직도 남매싸움 모드. 그때 [[사카타 긴토키]]와 [[진선조]] 일행이 도착한다.
* 원래 재대결 플래그가 있었던 긴토키와 [[오키타 소고]]가 카무이에게 "그렇게 플래그만 세우고 돌아다니면 히로인들에게 꼬치가 된다"고 디스한다.
* 그리고 드디어 전장에 나타난 [[우츠로(은혼)|우츠로]]와 텐쇼인 나락. 불사신 군단을 앞세워 일행을 공격한다.
* 특수한 기공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노사. 그에겐 "진짜 야토의 피"를 보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와 [[쿄우카]]의 자식 [[가구라]]와 [[카무이(은혼)|카무이]]가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쓰러진 채로 자신의 혈통을 가지고도 저 둘만큼은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남매의 눈에는 자신 따위는 들지도 못했으며 눈 앞의 적이 아닌, 더 먼 곳의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 그런데 플래그를 한두 군데 뿌린게 아니다 보니 이것도 경쟁률이 높다. [[진선조]]도 도착. [[오키타 소고]] 또한 플래그를 꽂았다. 자기도 한 마디 들은 기억이 있어 이것만은 긴토키에게 양보할 수 없다고 나서는데. 인기가 폭발하는 카무이. 긴토키가 플래그를 너무 뿌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며 이래서야 보스 한 명하고 해피앤드를 맞을 수 없다 디스한다. 오키타도 거들면서 "너같은 마나카 한테 어울리는건 동서남북 히로인들한테 꼬치가 되는 아수라장 앤딩 뿐"이라며 킨타마100% 드립을 친다. [[히지카타 토시로]]는 설마 지 목소리도 마나카인 주제에 마나카 꼬치 드립을 칠 줄은 몰랐다고 코멘트.[* 오키타와 딸기100%의 주인공 마나타는 모두 성우가 스즈무라 켄이치]
카무이가 토야코를 뽑아서 던진다. 긴토키가 적을 밟고 뛰어올라 캐치, 때를 같이해 카무이도 달려든다. 공중에서 맞딱뜨리는 마나카와 토죠 아야. 바람둥이가 변명한다.
- 은혼/647화 . . . . 8회 일치
* 그의 몸은 [[사루가쿠]]가 발견했을 당시 시체나 다름 없었으나 [[키지마 마타코]], [[카와카미 반사이]], [[다케치 헨페이타]]를 생각하며 무리를 했던 것.
* 그때 그를 구한 것은 동료들. 영웅이라는 "꿈 너머"의 보통 사람 신스케를 쫓아왔던 마타코와 헨페이타였다.
* 해방군 최후의 격전.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를 상대로 분전했던 [[엔쇼]] 황자도 여기까지다. 치열한 접전 끝에 왼팔을 잃은 엔쇼 앞에 [[다카스기 신스케]]가 우뚝 선다. 엔쇼의 비통한 호령과는 상관없이 신스케의 칼이 곧게 올라간다. 이제 해방군도 전쟁도 앞으로 한 칼이다.
신스케는 몸상태를 걱정하는 헨페이타에게 너스레로 대답했다. 그에게 걱정을 끼치는 걸 보면 자신도 참 망가졌다면서. 그는 다른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키지마 마타코]]의 구조와 보호를 부탁했다. 그녀는 자신이나 헨페이타 같은 악당이 아니라 악운만으론 살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귀병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 죽으면 [[카와카미 반사이]]가 반드시 화를 낼 테니까. 그 외의 지시는 없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할 뿐이었다.
* 엔쇼의 칼이 곧게 올라갔다. 앞으로 한 칼. 신스케는 일어나지 못했다. 가츠라와 다츠마도 일어나지 못했다. 사루가쿠는 아직도 그쪽으로 갈 수 없었다. 건너갈 수 없는 곳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꿈이 깨어졌다.
한 발의 총성이었다. 엔쇼의 미간으로 정확히 향하는 총알. 그가 고개를 꺾자 머리채를 끊으며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작은 틈. 신스케의 목숨을 살린 틈. 엔쇼의 시야에 젖혀지는 신스케의 상체와 자신의 꿈을 깨뜨린 한 발이 날아온 곳, 그걸 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타코가 헨페이타와 함께 도착해 있었다.
- 의천도룡기(영화) . . . . 8회 일치
각색이 상당히 많이 되서 원작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또 의천도룡기 원작을 모르면 줄거리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초반부 스토리는 [[그림]]과 [[나레이션]]으로 때운다. 영상 장면은 장취산과 은소소 부부가 무당산에 도착하고, 육대문파가 무당산에 결집하여 도룡도와 사손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요 무공은 구양신공, 건곤대나이. 그리고 태극권. 원작에서 마냥 착하기만 한 장무기와는 달리 다소 뻔뻔스럽고 악랄한 느낌이 있다. 사실상 '''성격이 거의 정 반대'''라고 봐도 좋다.
어린 시절의 스토리는 그림으로 설명되고 넘어간다. 현명이로에게 당하여 내상을 입게 되고,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이 된다. 주지약, 송청서의 계략에 넘어가서 분노하여 돌을 들고 달려들다가 두드려 맞고, 소소와 함께 무당산의 계곡으로 추락. 계곡 밑에서 화공두타를 만나게 된다. 화공두타는 장무기에게 구양신공을 전수해주지만, 구양신공을 습득한 장무기에게 당해서 오히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만다. 장무기는 구양신공을 전수해준 은혜가 있으니 화공두타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하고 떠난다.
괴팍한 성격으로 장무기에게 구양신공을 전수해서 장삼봉에게 복수하려 했으나, 장삼봉을 할아버지처럼 따르는 장무기는 당연히 그런 부탁은 들어주지 않고 들어주려는 척 구양신공만 전수받은 다음 바위를 박살내서 화공두타를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버리고 소소와 함께 튄다. --악랄하게도-- 구양신공을 익히게 해줬으니 그 은혜로 죽이지는 않겠다고 하고(…).
무당산을 공격했을 때 장무기와 대결, 일단 형식상으로는 이 영화의 최종보스 격. 조민은 장무기에게 3가지 조건으로서 구양신공과 건곤대나이를 쓰지 못하게 하여, 장무기는 장삼봉에게 즉석에서 태극권을 전수받으면서 싸우게 된다. 싸우면서 장삼봉의 시범을 보면서 즉석에서 태극권을 마스터하는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다. (장삼봉) "네 이름이 뭐냐?" (장무기) "모르겠습니다!" (장삼봉) "됐다" 이러는 대사가 나온다.
원작에서도 찌질캐였지만, 영화에서는 더욱 형편없는 찌질캐로 전락. 주지약과 공모하여 장무기를 속여넘기겨 놀리고, 제자들을 시켜서 구타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장무기가 절벽에 떨어졌는데도 사고로 죽었다고 둘러댄다. 조민, 현명이로와 협력하여 장삼봉을 암습했다가 실패하고, 현명이로가 장무기에게 패해서 조민이 물러간 뒤에는 무당산에 남겨진다. 장무기가 죽이려고 하자 필사적으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빈다. 장무기는 송원교 사숙이 대를 이어야 한다며 무공만 폐하고 목숨은 살려주는데, 송청서는 "고맙다 무기야 고맙다"하면서 비굴하게 웃으면서 거듭해서 절을 해대는 비참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전락한다. 원작과는 달리 죽지 않지만 그 대신에 찌질도가 미친듯이 늘어났다.
* 주지약과 송청서에게 누명을 쓴 장무기는 무공도 못하지만 곧바로 짱돌(…)을 들고 뚝배기를 깨부수려 한다. 물론 송청서와 무당파 제자들에게 곧바로 진압당하지만 장무기의 성격이 원작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증거.
* 원작에서는 장무기가 멸절사태와의 대결에서 공격을 무방비로 맞아주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장무기가 멸절사태를 욕하면서 뺨을 미친듯이 때린다.
- 이경실 . . . . 8회 일치
과거 MBC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도루묵 여사' 코너로 대인기를 끄는 등 전성기를 보내면서 '''1994 MBC 방송대상 코미디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코미디계에서 일컫기를 '''여성의 몸으로 정상을 차지해본 3명'''중 하나. 1대가 [[김미화]], 2대가 이경실, 3대가 [[이영자]]다. 이 시기의 영광 덕에 [[응답하라 1994]]에 성동일의 첫사랑이자 당대 최고의 톱스타로 특별출연을 하기도 한다.
참고로, [[신인]] 시절 [[홍기훈]]이 꽤나 유명한 [[터프가이#s-1|터프가이]]로 [[대전광역시|대전]]에서 알아주는 [[주먹]]에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아현|전 여친]]도 팼나?-- 게다가 [[나이]]도 많고 성깔도 더러워서 웬만한 선배들조차도 쉽게 터치를 못 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그런 홍기훈조차도 한방에 [[군기]]를 잡아버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 이경실이다. 또 하나는 군기반장은 아니지만 [[이재포]]. 이재포도 [[유도(스포츠)|유도]] 전공자답게 주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경실 역시 개그계에서는 알아주는 군기반장이다. 방송에서 김구라의 [[턱]]을 최초로 잡은 [[연예인]]이기도 하니...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의 말을 끊고 진행을 몰아붙이는 김구라가 짜증이 났던지 가까이 와보라고 한 다음 턱을 잡고 흔들었다. 이후부터 김구라를 능욕할 때 김구라의 턱을 잡고 흔들거나 소원을 비는 김구라의 턱하르방 컨셉이 여기서 생겨났다.
그렇지만 이런 이경실도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군기반장계의 히든보스이자 원로배우인 [[이순재]]와 중견배우들인 [[김갑수]], [[김병기]] 등이다.
전 남편과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전 남편 손모씨에게 [[2003년]]도에 야구 방망이로 복부를 마구 난타당해 이경실은 입원했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 때 [[결혼]]을 앞두고 있던 [[후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이 병문안을 갔는데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너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이 하고 싶니?"라고 했다. 다행히 김지선은 --애를 쑴풍쑴풍 낳으며-- 잘 살고 있지만... 前 남편과 함께 방송과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잉꼬부부로 알려지기도 했었던 터라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이경실을 브라운관에서 못 본 적도 있었다. 이 당시에 모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경실에게 의사를 사칭한 다음 몰래 접근하여 인터뷰를 시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취재윤리를 무시한 행동에 문제의 신문사의 주주였던 모 조간신문에서 이를 비판하는 만평을 보냈을정도. 다만, 지금은 재기에 성공했고, 사업가--단란주점 사장--인 최모씨와 재혼하여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으나... 후술할 내용 중 [[JTBC]] '[[유자식 상팔자]]' 등에 자녀들과 활발히 출연하고 있으며, 남편이 주말마다 점심을 해준다는 등(!) 과거의 시끄러운 사건과는 별개로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었다...
검찰이 남편 최 모씨에게 '''신상정보공개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와 동시에 도주의 우려로 인해 법정구속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경실 남편과 검찰측 모두 지난 5일 1심 선고에 불복해서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또한 국선 변호사까지 선임하였다고 전해진다.
위의 편견과는 별개로 2010년 MBC 연예대상에서 최종보스 부사장님(...) 의 스포일러와 그에 이은 막장 진행 때문에 최악의 시상식 MC가 되었다. [[후새드]].
* [[웃으면 복이와요]]
- 이보림 . . . . 8회 일치
||<#6348FD><:>'''{{{#fff 매력포인트}}}'''||동서양이 공존하는 외모와 눈! 그리고 큰 키가 매력포인트 입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5~6회|6회]] 참가자들과의 첫 만남에서는 대부분 현역 아이돌들인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배우/[[모델]] 출신인지라 아는 사람이 없어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잠깐 사이에 [[의진(소나무)|의진]]과 친해졌는지 의진이 [[멜로디데이]]와 [[DIA(아이돌)|다이아]] 연합에 들어갈 때 같이 데리고 들어가서 빨강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포지션 배틀]] 중 댄스 부문에 가장 먼저 [[http://tv.naver.com/v/2366699|참가]]해서 43부트를 받았는데, 뒤에 나온 [[박지원(1997)|박지원]]이 48부트를 받아 밀려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RESTART 미션]]에서는 빨강팀에서 'Gee'를 공연했는데, 막내 [[한비(립버블)|한비]]에게 안무를 배우면서 연습에 매진했다. 초보자인지라 안무 중간 점검에서는 김화영에게 주시당했는데, 팀원들의 커버를 잘 받아서 '팀복은 타고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도 많이 늘었다'는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래서 네가 틀리면 안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본 경연 도입부분에서 혼자 틀리는 실수를 범해 무대가 끝난 다음에는 이에 대한 자책감에 눈물을 보였고 이에 [[우희(달샤벳)|우희]]와 팀원들이 첫 실수 이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무대를 마친 것을 칭찬해 주며 격려했다. 현장 투표에서는 113표로 7위를 기록했다. 첫 미션에서 보여 준 [[의진(소나무)|의진]]과의 케미와 성장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방송 종료 후 공개된 중간 개인 순위에서는 무려 19계단이나 상승해 25위에 올랐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7~18회|셀프 프로듀싱 미션]]에서는 검정팀으로 참가해 또 다시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다. 중간 평가에서 갑자기 코피가 터진 의진을 리더인 [[세리(달샤벳)|세리]]와, 의진과 친한 보림이 화장실로 데려다 주었다. 그 외의 방송 분량은 별로 없었지만 본 경연에서 맡은 역할을 잘 해냈고 현장 투표에서 팀 내에서 딱 중간인 5위를 기록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7~28회|파이널]]의 [[킬링파트]]를 위한 안무 오디션 시작 전에는 항상 지적만 해왔던 김화영이 이보림에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솔직한 말로 너무 잘해 줬다'고 이야기했다. 안무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김화영이 '이제 [[의진(소나무)|의진]]이 없어도 돼?'라고 물었고 이보림은 '서서히 독립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의진도 '좋아, 얼른 가!'라고 이야기했다. 제작진이 예고 없이 보여준 가족들의 영상에서는 따로 이보림의 가족 영상은 방송에 안 나왔지만, 합숙소를 찾아와 준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은 나왔다. 마지막을 앞두고 참가자들에게 남기는 말에서는 '같이 하는 협동심을 너무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본 경연에서는 'You&I'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는데 맡은 파트가 적어서 무대에서 모습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남녀 합동곡인 'PRESENT'에서는 엔딩 파트를 맡았다. 최종 유닛 발표식에서는 17위를 기록하면서 데뷔조 합류에는 실패했지만, [[연습생]] 경력도 없고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비 가수 출신 참가자가 그 많은 전현직 걸그룹 멤버 및 연습생 및 솔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온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 이요원 . . . . 8회 일치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반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순정 (드라마)|순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16년 [[JTBC]] 드라마 《[[욱씨남정기]]》에 출연하여 물오른 연기로 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극찬을 받았다. 2016년 11월 [[MBC]] 《[[불야성 (드라마)|불야성]]》에서 이요원이 연기하는 서이경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거대한 야망을 품은 황금의 여왕이자, 탐욕은 죄가 없다고 믿는 냉정과 열정의 화신이다. 여리한 외모와는 달리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얼음여왕. 말 한마디에 거액이 오가는 협상 테이블에서도 평온한 말투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철의 여인이다. 디즈니 배급 영화 《그래,가족》는 2017년 2월 15일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핏줄이고 뭐고 모른 척 살아오던 삼남매에게 예상치 못한 막내동생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치열한 가족의 탄생기를 그린 코미디 가족영화에서 잘난 체해도 결국 흙수저인 둘째 오수경 기자 역할을 연기했다.
2017년 [[tvN]]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가진 것은 돈 밖에 없는 재벌가의 딸이자 배신감을 안긴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복자클럽’의 결성을 주도하는 김정혜 역을 맡아 제옷입은 듯 실감나는 연기와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인생작,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호평속에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8회 일치
범인은 [[부엌칼]]을 가지고 2학년 남쪽반(2年南組)에 들어가서, 여자아이 5명을 말 없이 찔러죽이고, 테라스를 통하여 서쪽반(西組)에서 어린이들을 습격, 다음에는 복도로 동쪽반(東組)에 들어가서 4명을 습격했다. 동쪽반에서 밖으로 나와서 태클을 걸어온 교사(1학년 남쪽반 담임)의 가슴을 찔러서 중상을 입혔다. 교사는 "도망쳐라!"고 소리쳤으며,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뜰 쪽으로 달아났다. 남자는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아가다가 발길을 돌려서 1학년 남쪽반 칠판 옆에 있는 4명의 아이들을 찔렀다. 그리고 겨우 부교장, 그리고 밖에서 엇갈렸던 2학년 남쪽반 담임이 달려와서 붙잡혔다.
단 5분~10분 정도 사이의 짧은 시간에, 타쿠마 마모루는 8명의 아이들을 살해하고, 13명의 아이와 2명의 교사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피해자는 처음 들어간 2학년 남쪽반에서 5명, 그 옆의 2학년 서쪽반에서 2명 사망 6명 부상, 2학년 동쪽반에서 4명 부상, 붙잡힌 1학년 남쪽반에서는 1명 사망 3명 부상이다.
"(피해자 여자아이의 의부에 대해서) 어이, 〇〇! 너, 아이와 피가 이어지 있지 않잖아! 어이 임마, 〇〇, 뭐라고 말해봐!"
2003년 12월에 타쿠마는 와카야마 출신의 여성과 5번째 결혼을 했다. 여성은 사형 폐지를 호소하는 국제사면위원회 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지원자 가운데 1명으로 변호사를 통하여 타쿠마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결혼은 타쿠마에게 접견, 서신 권리를 얻으며, 타쿠마에게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설득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여성은 가족에게 맹렬한 반대를 받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의 성을 바꾸고 타쿠마도 이 성을 쓰게 되었다.
2004년 9월 14일 아침, 오사카 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향년 40세. 타쿠마는 피해 아동 유족의 감정 등을 고려하여, 사형 확정 1년도 되지 않아 이례적인 속도로 집행되었으며, 집행 전에는 쥬스와 담배를 하였고, 날뛰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 날 오전 9시 40분 구치소 직원이 오늘 아침 깨끗하게 갔습니다 라고 사형 집행을 보고하고, 여성은 처음에는 의미를 모르다가 "왜 이렇게 빨랐나요"하고 큰 소리로 울었다고 한다.
사건 직후에 오사카 교육대학, 오사카 대학, 부립 마음의 건강 종합센터, 오사카 피해자 상담실 등 전문가로 구성된 '멘탈 지원 팀'이 발족하였다. 교장은 기자 회견에서 대학부속 초등학교의 합동 장례식을 할 의향임을 밝혔다. 2002년 정신지원팀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아동 680명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가진 아동이 2학년을 중심으로 10명에서 20명 정도였으며, 학부모와 교직원 가운데도 고통 받는 사람이 있었다. 무서워서 교실에 들어갈 수 없고, 원인 불명의 두통을 일으키는 아동이 1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케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전국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내에 수상한 사람이 침입하여 난동을 벌이는 것을 가장한 훈련을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이케다 초등학교에서는 추모비가 세워지고 「기도와 맹세의 모임(祈りと誓いの集い)」이 발족하여, 매년 6월 8일 유족을 중심으로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정부는 학교의 안전관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총 4억엔을 배상했다.
- 이하영(강사) . . . . 8회 일치
2011년까지는 모의고사 해설 강의와 고1, 고2 위주의 강의를 하다가 2012년부터 수능 강의를 시작했다.
2017년에는 문과수학파트인 미적분1, 확률과통계, 수학2 3과목 개념강의와 기출강의인 기출의미래 확률과통계를 담당하셨고 문과파트 3과목의 수특 강의뿐만 아니라 수능특강 summary 강의도 모두 진행하셨고 수능완성 나형과 최종점검 강의, 그리고 수학나형 3월과 10월 학력평가와 6월, 9월 모의평가와 수능해설강의까지 담당하셨다. 이로써 2017년에는 수학나형 전체적인 커리를 담당하셨다.
영어영역 [[이아영]] 강사와 공통점이 많다. 두분 다 미인 강사로 유명한데다 이름부터가...[* 실제로 이름을 크게 말하지 않으면 둘이 헷갈린다고 과거 강의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화여대 출신에, 해당 영역의 중하위권 학생에 포커스를 두고 친절하게 풀어가는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라는 과거 강의에서의 언급도 있다.~~그런데 이'아'영 선생님 항목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이'하'영 선생님 항목은 2016년에야...~~
가끔 강의 이벤트나 수강생 정모[* 2013년 1월에 했던 ebsi 탐방 정모 이후에는 개인사정으로 하지 않는다.] 상품으로 스마일[* 스무살 마음껏 날아오르기 위해 1년만 꾹 참자의 약자]마크와 본인 사진과 이름이 들어간 달력, 파일 등을 주기도 한다.
ebsi의 사회탐구 영역 담당의 모 피디[* 진리 피디라고 불린다.]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실제로 지리과의 [[강봉균(강사)|강봉균]] 선생님 라이브 클래스에 둘이 같이 나온 적이 있다!!! 단 2013년 라클이라 지금은 아쉽게도 지워져 볼 수 없다. 강봉균 강사와 상당히 친하다.
- 일곱개의 대죄/182화 . . . . 8회 일치
* 바트라와 자라트라스에게 발견된 멜리오다스는 자신과 엘리자베스에 대한 내력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 자라트라스와 친해진 멜리오다스는 술을 마시다 자신의 진짜 연령과 죽지 않는 저주에 대해서 발설한다.
* 그녀는 어린 자신이 멜리오다스와 함께 있는 거나 멸망한 다나폴에 있는 것에 당황한다.
* 성기사들도 그녀는 초면인데 멜리오다스만이 그녀와 잘 아는 듯하다.
* 멀린은 예언 없이는 "다섯"을 모으는게 불가능했다고 하는데, 물론 두명은 "멜리오다스와 멀린"
* 멜리오다스와 자라트라스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자라트라스는 한 잔만에 곤드레 만드레 취했는데 멜리오다스는 몇 통이나 비우고도 멀쩡하다.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와 마주치는데 마치 그녀가 보이는 것처럼 말을 건다.
* 현재의 엘리자베스는 "언젠가 돌아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라고 독백한다.
- 일곱개의 대죄/213화 . . . . 8회 일치
* 로우일행은 소꿉친구가 스티그마에게 살해 당해 복수한 것이나, 스티그마도 동료도 모두 죽자 로우는 자신들도 스티그마와 똑같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 스티그마를 배반하고 싸움을 시작한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와 인간 전사들. 단 네 명 뿐이지만 스티그마가 전멸 위기에 처해있다. 로우는 피투성이가 된 채 천사족 전사와 싸운다. 전사가 로우를 강하게 몰아붙이며 자세를 무너뜨린다. [[게라이드]]는 울고 있지만 싸움을 멈추라고 외친다. 그러나 천사족 전사를 그녀를 겁쟁이라 매도하면서 "울틈이 있으면 싸워라"고 일갈한다. 그 잠깐의 틈이 승부를 갈랐다. 로우는 자세가 무너진 채로 칼을 던져서 전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 게라이드는 로우에게 살인을 멈추라고 호소하지만 그는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말할 뿐이다. 로우가 칼을 줍는 다시 어디선가 나무 마법이 날아와 다리를 찌른다. 어린 요정족의 전사였다. 이미 겁을 먹은 상태지만 로우는 가차없이 칼을 들어올린다. 게라이드는 이 어린 전사라도 보호하려고 로우의 앞을 막아선다.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라고 말하지만 뒤에 올 말을 잇지 못한다. 로우는 자신을 죽일 거라면 해보라며 다가오는걸 멈추지 않는다.
* 게라이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로우가 오빠 [[그로키시니아]]와 대화할 때 로우 안에 억압된 분노와 슬픔을 발견했도 또다른 얼굴도 발견했다. 그건 게라이드 자신과 아주 닮은 인간 소녀였다. 그건 로우의 소꿉친구다. 로우는 소녀를 아주 좋아했고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그 소녀가 스티그마에게 죽기 전까진.
게라이드는 로우의 마음을 읽어서, 그때 로우와 세 친구들만 사냥을 나간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 로우는 울다가 눈물 조차 나오지 않게 될 무렵 복수를 결심했다. 그는 피와 살이 뿌려진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엄청난 수의 시체가 되어 널려있고, 그 사이엔 그의 친구 셋의 모습도 보인다. 하나같이 시체가 돼서 누가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로우는 결국 복수를 달성했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8회 일치
* 고서와 함께 마을로 돌아온 일곱 개의 대죄가 마을을 점거했던 마신들을 일소해버린다.
* 고서와 재회하고 그가 정말 전설적인 성기사인 일곱 개의 대죄였음을 확인한 페리오는 감격하고 떠나는 고서를 마지막까지 배웅한다.
* 고서는 이 마을에서 기억하는 "아만드"의 모습으로 작은 친구들과 재회했다. 페리오의 친구인 메라, 에릭, 토마스, 카츠. 고된 시간 속에서도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서에서 다가와 그의 귀환을 축하했다. 고서의 품에 안겨있던 페리오는 친구들이 그를 여전히 아만드라 부르자 진짜 이름은 고서라고 밝힌다. 그가 그렇게 불러서일까? 아만드 시절에 했던 머리 모습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페리오는 전에 고서가 했던 말을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 방금 전 고서의 명령을 받았던 하급 마신은 반쯘 죽은 채로 도망치고 있었다. 명령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녀석이다. 마신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중얼거리며 꼴사납게 기어다녔다. 그러다 덩치 큰 남자와 부딪히는데 그는 마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마신이 다가온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로부터 3천년, 107명의 엘리자베스와 만나고 지냈으며
* 그렇게해서 고서의 볼 일이 끝났다. 이제 진짜 목적지로 향할 시간이다. 페리오와 친구들은 고서가 떠나갈 때까지 한참이나 따라와 마중했다. 그들은 멀어지는 돼지의 모자정을 향해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었다. 고서는 옥상에서 그들의 배웅인사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떠나기 전 어린 친구와 나눈 문답을 곱씹었다. 코서가 "친구에게 남이 간단히 해결해 줄 수 없는, 목숨이 걸린 고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페리오는 그 질문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적당한 대답을 해주었다.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8회 일치
* 차원의 뒤틀림을 해결하기 위해 성채도시 코란도에 들린 일곱 개의 대죄 일행. 거기서 뜻밖에도 [[젤드리스]]와 맞딱뜨린다.
* 멜리오다스는 마신족의 힘을 끌어냈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고 분노가 담긴 공격은 코란도의 입구 부근의 지형이 바뀔 만한 위력이었다. 어마어마한 파편이 발생해 사방으로 떨어지는데, 일부는 유성처럼 카멜롯 방향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서둘러 처리해야겠다고 하지만 멀린은 문제 없다고 한다. 파편은 일정한 지점에서 사라져 버린다. 수면에 떨어진 돌이 파문을 남긴 것처럼, 허공에 크고 작은 원이 생겨난다. 이것이 차원의 뒤틀림이다. 멀린은 이것이 카멜롯에 접근하는 모든 것을 막는 성가신 "벽"이라 말한다. 그리고 멜리오다스의 돌발행동이 결과적으론 차원의 뒤틀림의 위치와 강도를 확인한 셈이 됐다고 덧붙인다.
* 물론 책략은 멜리오다스를 도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검은 촉수와 같은 것이 발 밑에서 뻗어나왔다. 그 촉수는 곧 멜리오다스를 가두고 검은 구를 이룬다.
* 메라스큐라와 악연이 깊은 [[반(일곱 개의 대죄)|반]]이었다. 그는 그 검은 구체가 멜리오다스를 감싸는 걸 보고 메라스큐라의 속셈을 눈치챘다. 다른 일행보다 한 발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하지만 한 발 늦었다. 멜리오다스를 삼킨 구체가 코란도의 지면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반은 간발의 차이로 구체를 놓친다.
* [[디안느]]가 어쩌면 좋겠냐고 묻자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마력감지로 적이 멀리까지 가지 못했고 코란도 중심부에서 마력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때 [[헬브람]]이 할리퀸에게 주위를 보라고 귀띔한다. 근처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시체, 다 썩어서 백골만 남은 시체가 가득했다. [[에스카노르]]와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놀라 자빠진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일어난 대학살의 희생장일지 모른다. 고서가 조용히 수를 헤아려 보니 족히 천에 이르렀다.
곧이서 호크와 에스카노르가 졸도할지도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 해골들이 스스로 일어나 원한어린 말을 내뱉기 시작한 것이다. 디안느는 이것들이 자신의 골렘과 비슷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고서가 보기엔 이것들은 "적의"라는 자아가 있었다. 멀린이 이것은 죽은 이의 원한을 악용한 술법, "원반혼의 법"임을 간파한다.
>멜리오다스와 "일곱 개의 대죄"의 전투야!
* 전투를 대죄 전체와 멜리오다스의 싸움으로 뒤바꾼 메라스큐라의 계략. 카멜롯 탈환의 전초전에 불과했던 작전이 생각지도 못한 난관으로 드러났다.
- 임은정(법조인) . . . . 8회 일치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 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 몸으로 민주주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 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는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5년 이후부터는 의정부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2월 3일 검사로서의 직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받아 심층적격심사[* 2004년 법무부는 7년마다 한 번씩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검사'를 골라내겠다며 적격심사제도를 도입했다. 적격심사 대상은 검찰 내 특정 기수 전체이며, 법무부는 이 가운데 심층심사를 할 사람을 걸러내 특정사무감사를 진행한 다음 적격심사위원회를 연다. 여기서 최종 탈락한 인물은 강제로 퇴직당한다. [[검찰청법]] 제39조 참조.]를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검찰 상부가 '[[보복|찍어내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격분하였다. 무죄 구형 후 법무부의 한 간부가 ‘임은정이 적격심사 얼마 남았냐’고 묻더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적격심사를 계기로 자르려는구나’ 싶었다고. 자신이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오기 전 실제로 ‘(검찰 상부에서) 자르기로 했으니 마음의 준비 해야 할 것 같다’는 동료의 귀띔을 들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그때는 돌아버리겠더라. 누가 볼까 싶어 집까지는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는데, 현관문을 닫고 주저앉아 ‘너무 힘듭니다, 견디겠습니다만, 너무 힘듭니다’하고 신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친한 동료들까지 나와 연락하길 주저한다고 느껴질 때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2016년 6월 27일에는 최근 자살한 후배 검사가 "부장검사 폭언에 힘들어했다"고 밝힌 검사 부친의 기사를 링크하며, 자신이 당한 폭언 사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검사와 스폰서, 그런 식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간부를 만나고는 성매매 피의자로 보여 결재를 못받겠으니 부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스폰서달고 질펀하게 놀던 간부가 저를 '부장에게 꼬리치다가 뒤통수를 치는 꽃뱀 같은 여검사'라고 욕하고 다녀 제가 10여년 전에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그러면서 검사적격기간을 단축하는 검찰청법개정안에 대해 인사부터 좀 제대로 하고 적격심사를 강화하는게 순서일 거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2017년 8월 17일, 2년만에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로 승진하게 되었다.[* 동기들은 이미 부장검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0799|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상부에서 통제 안 되는 검사로 찍힌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70811.99099004905|기사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0799|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상당히 의외인 인터뷰인데 검찰 내에서 언론과 대응하는 공식 직책은 차장검사로 차장검사를 제외하고는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언론과의 접촉이 금기시 되는 게 검찰 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윤리강령상 이런 인터뷰는 기관장 승인 사항이다. 또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특정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의 ‘사건’에 대한 인터뷰가 아닌, 검찰 전체에 대한 비판을 SNS에 쏟아냈던 임은정 검사의 평소 견해를 중심으로 이뤄진 인터뷰였기 때문에 훨씬 더 이례적이다. 임은정 검사도 인터뷰에서 “대검찰청에서 (인터뷰) 허락을 해주다니 얼떨떨하다. 정말 세상이 좋아졌나 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천지개벽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도가니 사건, 백지구형 사건 등 여러 뒷이야기들과 검찰과 검찰 개혁에 대한 임은정 검사의 얘기와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시라면 역시랄까, 이 인터뷰를 가지고 상부에서 뭐라고 했다고.[[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273053|#]]
[[더 킹(영화)|더 킹]]의 안희연 검사의 실제 모델로 알려졌다. 여러모로 영화와 비슷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
- 정웅인 . . . . 8회 일치
[[2013년]]에는 정웅인이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며 연기 전환점이 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외에도 《기황후》와 영화 《전설의 주먹》를 통해 그동안 갇혀있던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섬뜩한 악역으로 열연을 펼쳐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ref>{{뉴스 인용
유웅인은 [[2005년 3월]] 대학 동기 결혼식에 참석해 현재의 아내이자 12살 연하의 당시 대학생이던 이지인씨와 첫 만남을 가졌고,<ref>{{뉴스 인용
|제목= '힐링캠프' 유웅인, 12살 연하 아내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url=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80572497 |출판사=한국경제|날짜= 2014-08-05 }}</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웅인, 3일 결혼식 올려..."띠동갑 신부와 행복하게 살게요" |url= http://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entertainment/200606/20060605/66e14002.htm |출판사=스포츠조선|날짜= 2006-06-04 }}</ref><ref>{{뉴스 인용
|align="center"| 《그와 그녀의 목요일》
* 2012년 1월 2일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 서울예대 89학번 전설의 친구들 스페셜
* 2009년 1월 12일 [[MBC]] 《신년특집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 의리남녀 스페셜
* 2006년 1월 20일 [[MBC]] 《신년특집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 조진호 (축구인) . . . . 8회 일치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컵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식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상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태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2000년]] 대한화제컵 포항과의 A조 2차전서 멀티골, 연장전 골든골을 기록하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으며,5월 5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전남 드래곤즈]]와의 대회 결승전서 연장 전반 4분 [[전경준]]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골을 기록하며 부천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선수 시절 활약하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201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말미 김인완 감독의 병세가 악화되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된 후,<ref>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57027/ 대전시티즌, 조진호 감독대행 선임] </ref> [[10월 9일]] [[경남 FC]]와의 홈경기서 처음 나섰으나 0:1로 패했다. 그러나 [[11월 20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원정경기 1:0승을 시작으로 [[11월 17일]] 성남전 1:0승리까지 총 리그 4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며 강등으로부터 구해내려 분투하였으나, [[11월 27일]] [[경남 FC]]와의 원정경기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최종적으로는 강등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30일]] 전남과의 리그 패막전 2:0 승리 등으로 시즌 막판 리그 6경기 연속 무패등의 부임 후의 좋은 성적에 힘입어 감독 대행 신분으로 2014 시즌에도 팀을 계속 이끌게 되었다.<ref>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090100072310004325&servicedate=20131208/ 대전 시티즌, 다음시즌은 조진호 체제] </ref>
[[K리그 챌린지]]에서 시작한 2014 시즌 개막전에선 [[수원 FC]]에 대패하였으나 [[3월 30일]] [[고양 Hi FC]]전 4:1 대승을 시작으로 [[4월 27일]] [[부천 FC 1995]]전 까지 총 리그 5연승을 거두었으며, 5월 8일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월 21일]] [[대구 FC]]전까지 총 14경기 연속 무패와 더불어 한시즌동안 11경기 연속 홈 무패를 기록하며 구단의 한시즌 홈 최다 연속무패 신기록을 세움<ref> 이 기록은 2016년 [[최문식]] 감독이 한시즌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깨졌다.</ref>과 동시에 리그의 절대강자로 치고 올라가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5월 8일]] 마침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5월 11일]] [[안산 경찰청 축구단]]과의 정식감독으로서의 데뷔전에서 2:0승을 이끌었으며,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ref> [http://osen.mt.co.kr/article/G1109868314/ 대전 돌풍 이끈 조진호, 연맹 선정 5월의 감독] </ref> 이후 시즌 종료까지 꾸준히 리그 1위 자리를 수성하며 대전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K리그 챌린지 최우수감독에 선정되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한시즌에 2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이 되었으며, 대전팬들 사이에서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28091/‘갓진호’, 축구특별시 부활 이끈 지휘자] </ref>
[[10월 10일]] 당일 [[스위스]] 베른 주 빌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시작 전 선수들이 묵념의 시간을 가졌으며, 10월 14일부터 15일까지 모든 K리그 경기에서도 추모 묵념을 진행했으며, [[10월 14일]] [[수원 FC]]와 [[부산 아이파크]]의 경기에서는 부산 측 원정 서포터석에 조진호 감독의 사진을 걸었며, 이 날 [[이정협 (축구 선수)|이정협]]은 패널티킥으로 골을 성공시킨 뒤 조진호 감독의 사진 앞에 달려가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10월 15일]] [[대전 시티즌]]과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서 대전 홈팬들이 조진호 감독이 대전을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시켰던 2014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경기 시작 후 14분 동안 응원을 하지 않으며 조진호 감독을 추모했다.
조진호는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무릎을 꿇고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등의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격하게 기쁨을 표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에는 친정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평소와는 다르게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자제하면서 친정팀인 대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도 하였다.
- 존 헨리 . . . . 8회 일치
19세기 당시 살았던 흑인으로, 직업은 철도 노동자이다.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했던 [[노동자]]의 긍지와, 기계문명에 밀려나는 노동자의 비애를 동시에 반영하는 인물이다.
민담에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에 특별히 고정된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기계와 대결을 벌이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배경은 공사 현장에서 가장 뛰어난 노동자 존 헨리가 있었는데, 건설 현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게 되자 존 헨리가 동료들을 위하여 기계와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유명한 버전은 망치를 들고 증기 해머와 말뚝 박기 대결을 벌여 승리했지만 그 직후 과로사했다는 버전. 국내에서는 증기 드릴과 터널 뚫기 대결을 벌여 승리, 그 직후 사망했다는 버전이 잘 알려져있다.
미애니 "마이 리틀 포니 프랜드쉽 이즈 매직"에서 애플잭 일가와 플림플럼 형제의 사과주스 만들기 대결 에피소드에서도 존 헨리의 이야기가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반기계운동을 반영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단편소설로는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이 있고, SF에서는 듄의 버틀레티안 지하드. 현대에는 비슷한 이야기로 이세돌과 알파고 등이 있다.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이라는 연구가 있다. 이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 중년 이후에 그 간 무리한 탓에 건강이 손상되어 고통을 받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서, 80년대, 셔먼 제임스라는 청년 연구가가 소작농 출신 존 헨리 마틴이라는 사람의 사례를 기초로 하여 “존 헨리 척도”를 제안했다. 이는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는 등의 문항에 얼마나 동의하느냐 하는 것으로 측정된다.([[http://newspeppermint.com/2017/01/31/john-henryism/ 참조]])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는 흑인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던 현상인데, 기계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이야기 속의 존 헨리처럼 존 헨리이즘은 현실과 싸우다가 스스로 피폐해진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 채동욱 . . . . 8회 일치
14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1988년]] 검사로 임용되었고 검사장을 거쳐 [[2013년]] 4월 제39대 [[대한민국의 검찰총장|검찰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특수통'으로, 검찰 조직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전면에 나서서 역할을 함에 후배 검사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ref>김요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262465 채동욱 총장 퇴임…"유전자 검사 후 강력 조치"]. SBS. 2013년 9월 30일.</ref>
[[2013년 4월]]부터 [[2013년 9월|9월]] 초 39대 검찰총장 재임기간 중 제1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 [[노태우]]의 미납추징금을 완납받고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으로부터는 완납 계획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2013년]] [[9월 6일]] 혼외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조선일보]]가 제기하자 법무부 장관 [[황교안]]이 감찰을 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9월 30일]]에 사표를 수리하였다.
* 9월 13일 : 사퇴 발표<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32240385&code=940301 채동욱 검찰총장의 5개월… 국정원 사건 법무부와 마찰, 선거법 적용 ‘미운털’] 《경향신문》 2013년 9월 13일</ref>
[[조선일보]]가 혼외자식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법무부에서 감찰을 발표하자 감찰 발표 당일, 취임으로부터는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수 의견이 있다.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40600055&code=940301 채동욱 "지난주부터 청와대에서 메시지 받았다…의혹 사실 아니라 해도 나가라는데 어떡하겠나"]《경향신문》</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3/2013091300178.html?related_all 蔡총장, 오늘 本紙 상대 정정보도 소송 제기]《조선일보》</ref>[[청와대]]는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며 검찰과의 갈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채동욱은 유전자검사를 하지 않으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정정보도 청구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아이가 미국에 체류중이고 혼외자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인 임모 씨가 잠적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이 채동욱의 아들이라 볼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2016년 법원은 혼외자 의혹은 결국 의혹을 구실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모종의 음모라 짐작되며, 국정원 상부 내지 그 배후세력의 지시에 따라 (개인 정보 조회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tvh&oid=437&aid=0000104506&sid1=291 "채동욱 뒷조사…법원, 판결문에 '배후·음모' 18번 언급"]</ref>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가 사춘기여서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친자로 확인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기로 아이 어머니와 합의한 상태라고 해명하였다.<ref>[http://www.etnews.com/20170705000358 채동욱 “혼외자 논란, 가슴아프고 다시 한 번 죄송하다”]</ref> <ref>인용:“2013년 9월 보도 이후 친자 여부에 대해 진행이 됐고 그쪽과 이야기해서 아이가 사춘기니 성인이 된 뒤에 DNA검사를 해서 확정을 짓고, 사실로 알려지면 당연한 책임을 지기로 합의를 했다”</ref>
- 최덕희 . . . . 8회 일치
* [[러브히나]] ([[애니원]]) - '''[[나루세가와 나루|나루]]'''
* [[그 남자! 그 여자!|비밀일기]] ([[KBS]]) - '''윤선'''(<small>미야자와 유키노</small>)
* [[세계명작동화]] ([[EBS]]) - '구두장이 한스와 요정 친구들'편 요정 쉘비, '[[헤라클레스]]'편 아리아나 공주, '수링의 전설'편 '''수링'''
* [[체포하겠어!]] ([[투니버스]]) - '''민호영'''(<small>코바야카와 미유키</small>)
* [[토드와 코퍼]] (MOVIE) - 빅시
* [[토드와 쿠퍼]] - 빅시
* [[극장판 포켓몬스터: 물의 도시의 수호신 라티아스와 라티오스]] ([[올레 TV]]) - '''잔느''' 2015.04.30
* [[와즈다]]([[KBS]]) - 압둘라([[압둘라만 알 고하니]]) 2015.02.19
- 최성국 (축구선수) . . . . 8회 일치
| 클럽 =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 호랑이]] <br /> → [[가시와 레이솔]] (임대) <br />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 <br /> → [[광주 상무 불사조]] (군 복무) <br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동곡초등학교]], [[역곡중학교]], [[정명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를 중퇴하였다. 개인기가 좋아 환상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 2~3명을 쉽게 따돌리는 점이 [[디에고 마라도나]]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계약금 3억원에 울산 입단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32639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3-2-2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5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 임대되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가시와로 5개월간 임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92266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5-2-24}} }}</ref> 만족스러운 활약을 하지 못한 채 5개월 뒤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으로 복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K리그로 복귀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786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6-25}} }}</ref>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한 뒤 그 해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6년]] [[K리그 컵 2006|K-리그 컵]] 득점왕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성남 '컵대회 준우승', 최성국 '득점왕 우뚝'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16823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6-7-29}} }}</ref> [[2007년]] [[1월 17일]]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성남에 현금 트레이드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117152714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7-1-1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년]] [[8월 2일]]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축구 사상 첫 올스타 맞대결인 'JOMO CUP 2008'의 MVP를 차치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올스타, J리그 올스타에 3-1 대승...최성국 MVP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34725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8-8-2}} }}</ref>
[[2003년]] [[3월 29일]]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2007년 AFC 아시안컵]] 등에 참가하였다.
[[2005년 1월]] 피자나라 치킨공주 TV CF를 찍어 축구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피자나라 치킨공주'로 CF모델 데뷔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37455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1-24}} }}</ref> [[2005년]] 12월 곽선혜와 결혼하여 [[2006년]] 12월 첫 아들이 태어났다.<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아빠 됐다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61211121926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6-12-11}} }}</ref>
2014년 현재 최성국은 어느 한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7월 축구선수 최성국·김동현 협박했던 30대 남성이 6년만에 기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mk.co.kr/newsRead.php?no=537548&year=2016|제목=축구선수 최성국·김동현 협박했던 30대 남성 6년만에 기소|확인날짜=2016-08-08}}</ref> 그와 동시에 2016년 7월 징계가 끝나는것과 관련하여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연맹은 아직 영구제명에 대해 경감의사가 없는것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75935|제목=복귀 타진 최성국…축구계 "현실성 없는 일"|확인날짜=2016-08-08}}</ref>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FK 라보트니치키의 축구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8회 일치
2010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에서 특수2부장을 맡았으며, 2015년 2월에는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인 [[우병우]] 민정수석과의 친분관계가 주목을 받았다. 물론 우병우보다 사법시험은 2년 더 늦게 합격했지만, 사석에서 말을 놓을 만큼 우병우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2월에는 우병우의 추천(?)으로 [[국가정보원]] 제2차장[* 국내 정보 및 공안 부문을 담당하는 국정원 내 핵심 요직이다.]에 발탁되었다. 이때 청와대가 이 자리에 우병우의 측근인 최윤수를 발탁했을 때부터 사정당국 내부에서는 국정원을 통해 본격적인 총선과 대선 관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게다가 최윤수가 2015년 말 검사장급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정원 2차장으로 전격 발탁된 점도 ‘정치적 인사’라는 뒷말을 낳았다.[* 참고로 최윤수는 전임 김수민 2차장보다 무려 9기수 아래였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24444379242d545ae3e855a102f4499|#]] ] 어쨌든 그 후 2017년 6월까지 국정원 제2차장 업무를 수행했다.
그 후 검찰은 홍만표 변호사의 통화추적 등을 통해 홍 변호사가 최윤수 차장을 두 차례 찾아갔고, 최윤수와 무려 20여 차례나 통화한 사실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결국 최윤수 국정원 제2차장을 소환하지 않고 서면으로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당시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 당시에도 최윤수와 우병우 간의 관계가 입길에 올랐다. 우병우는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이듬해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기용될 때까지 1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고, 이 기간에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사실상 ‘2인 1조’로 움직이면서 정식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정운호 대표 등의 ‘몰래 변론’을 맡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홍만표와 우병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수사기획관과 1과장으로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우병우가 변호사 활동을 할 때 사무실을 연 곳이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로, 홍만표의 사무실(1010호)과 같은 건물 아래 위층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홍만표와 최윤수 차장 간의 연결 고리가 우병우 아니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de4c88fecae9760b9b6c86f97f5e042|#]]]
- 최재우 . . . . 8회 일치
7세 때 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으며, 2004년에 모굴 스키에 입문하였다. [[서울유현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에 캐나다 블랙콤에서 열린 스피릿 시리즈 하프파이프 경기와 슬로프스타일 경기에서 1위를 했고, 같은 해에 실버스타 스키장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모굴 1위, 듀얼 모굴 2위를 기록했다. [[2007년]]에 캐나다 사이프러스에서 열린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청소년 모굴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으며, 2009년 1월 31일에 대한민국 대표로 발탁되어 [[일본]]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6위를 기록하였다. 2월에도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 참가하여 모굴 부문 20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2009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부문에서 26위, 듀얼 모굴 부문에서 22위를 기록하였다. 그 해 8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위치한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컵에 참가하여 21일에 진행된 모굴 경기에서는 35위, 다음 날에 열린 경기에서는 13위에 올랐다.
이듬 해인 2010년 1월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생애 첫 [[FIS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월드컵]]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38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12월에 캐나다 퀘벡 주의 발생콤 리조트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서 캐나다의 [[마르크앙투안 가뇽]]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모굴 부문과 듀얼 모굴 부문에 출전했다. 모굴 부문에서는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레이헤르트]]와 일본의 [[우에노 오사무]],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바르마쇼프]]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듀얼 모굴 종목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바르마쇼프와 일본의 우에노, [[쓰키타 유고]]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후 2012년에 [[캘거리]], [[나에바]] 등지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손드리오 현|손드리오]]의 마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2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미국의 [[브래들리 윌슨 (스키 선수)|브래들리 윌슨]], 스웨덴의 [[루드비그 피엘스트룀]]의 뒤를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의 듀얼 모굴 종목은 11위를 기록했다. 그 해 8월 16일에는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듬 해인 2013년에는 [[노르웨이]] [[보스 (노르웨이)|보스]]에서 열린 [[2013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50.00점을 획득하여 캐나다의 [[미카엘 킹즈버리]], [[알렉상드르 빌로도]], 미국의 [[패트릭 데닌]], 오스트레일리아의 [[맷 그레이엄 (스키 선수)|맷 그레이엄]]의 뒤를 이어 5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으며, 듀얼 모굴 종목에서는 14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3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모굴 부문 29위, 듀얼 모굴 부문 5위를 기록했다.
2018년 3월 12일 [[일본]] [[아키타현]] [[센보쿠시]]의 [[다자와호]]에서 열린 FIS 월드컵 참가 도중 동료 선수 [[김지헌 (스키 선수)|김지헌]]과 함께 음주를 하고 동료 여자 선수들에게 음주 강요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추행 및 폭행을 한 것이 발각되어 [[대한스키협회]]로부터 영구제명 되었다.<ref>{{뉴스 인용 | 제목=모굴 스키 국가대표 최재우·김지헌, 동료 여선수들 성추행 ‘영구제명’ |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57671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윤승민 | 쪽= | 날짜=12018-03-14 | 확인날짜=2018-09-17}}</ref>
- 카네다 쇼타로 . . . . 8회 일치
철인 28호 FX에서는 왕년의 영웅인 중년 탐정.[* 철인 28호 FX의 배경 세계는 초대 철인 28호 이후의 시대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미인 천재 과학자인 사카키 요코와 결혼했으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카네다 마사토를 얻었다. 이 마사토가 시리즈 3기인 FX의 주인공. 그런 이유로 주역의 자리는 내줘야 했지만 소년 시절부터의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지 활약도 많다. 중반부터는 인터폴의 장관이 되며, 그에 따라 카네다 탐정 사무소 전원이 인터폴 소속이 된다.
꽤 애처가인 듯. 초대 철인 조종기의 보관함 암호가 아내 생일이다. 덕분에 마사토는 손쉽게 철인을 몰고 나갔으며 덕분에 어떤 의미에서는 시리즈의 전통인 철인의 조종기 탈취 요소가 3기의 주역인 마사토와 철인 FX만이 아닌 쇼타로와 초대 철인에서도 지켜졌다.(...)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재세편]]에 등장해선 모범생의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쇼타콘의 어원답게 연상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모습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애쉬포드 학원 이벤트에서 여고생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하악 거린다던가(...).] 나이 대가 비슷한 [[무적로보 트라이더 G7]]의 [[타케오 왓타]]와 [[무적초인 점보트3]]의 [[진 캇페이]]와 친구. 갓마즈의 [[묘진 타케루]]하고도 서로 믿고 지내는 형동생 사이로 나온다. 참고로 왓타 또한 쇼타로처럼 원작에서 악당을 자비심 없이 끔살시켰던 초딩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리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솔레스탈 빙]]이나 [[흑의 기사단]] 같은 전직 테러리스트와 동료로서 같이 싸워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나중엔 그냥 받아들이지만.
[[제3차 슈퍼로봇대전 Z 시옥편]] 원작대로 구라 왕자와의 우정이 묘사되었다. 원작의 철인 자폭도 재현됐지만 타케루가 초능력으로 주워다줘서 이후로도 계속 쓸 수 있다.
복장은 블레이저에 반바지 차림. FX에서는 정장에 트렌치 코트 등 서양 느와르의 탐정풍 복장을 입다 이후 인터폴 장관이 되면서 장관복을 입는다.
- 킹덤/528화 . . . . 8회 일치
* [[순수수]]가 퇴각한 진의가 드러났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요양성. 산을 끼고 있어 그 자체로 요새와 같은 성이었다. [[벽(킹덤)|벽]]이 그 성의 위용에 기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나, [[양단화]]를 비롯한 산민족 군대의 이목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 양단화는 "톳지"와 함께 절벽 위에 나타난 기묘한 군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마치 산민족처럼 가면을 쓰고 다녔으며 짐승같은 기성을 내는 흉흉한 무리였다. 톳지가 그들을 가리켰으나 양단화는 진작부터 그 위험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녀가 느낀 것은 위험한 동질감이었다. 새로 나타난 적들은 자신들과 같은 부류였다.
* 우습지만 그들의 존재가 뜨악한 것은 조군도 마찬가지였다. 일선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었고 장수들 또한 "견융족"이란 이름만 알 뿐, 왜 그들이 이곳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견융족은 500년 전 주나라를 멸망시킨 대기마민족으로 역사서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중화대륙에선 사라진 종족. 그들이 어째서 조나라에, 그것도 왕도권인 요양에 있단 말인가? 술렁거리는 장교들을 향해 순수수가 입을 열었다. 견융족은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라진게 아니었다. 처음엔 그들도 대륙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대부분의 무리는 북쪽으로 유입되었다. 그것이 오늘날에 "흉노"라는 형태로 변해 조나라와 지겹게 싸워왔다. 하지만 모든 견융족이 흉노가 된 것은 아니다. 일부는 태행산맥을 근거지로 잔류했으며 훗날 조나라가 태행산맥을 끼고 생겨나면서 그들과 충돌했다. 조나라는 이들과 다투기보다는 회유하는 정책을 펴 요양성을 내주고 왕도권에 편입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편입시켰다는 건 조나라의 입장일 뿐.
* 양단화는 이들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견융족이 배치된 언덕은 그야말로 깍아지는 절벽. 그러나 견융의 기마는 마치 언덕을 내려오는 것처럼 태연하게 절벽을 타고 쏟아졌다. 순수수는 이들의 진로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절벽 밑에 주둔한 조군에게 길을 트게했다. 절벽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기마대. 말을 탄 늑대와 같은 무리가 진군을 향해 돌진했다. 벽을 위시한 진군의 장수들은 이들의 존재를 그제야 파악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견융왕이 본 것은 무엇일까? 순수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챘지만 그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말을 잘랐다. 여기까지 모든 대화는 순수하게 이민족의 말, 흉노의 말로 주고받고 있었다. 조군 장수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견융왕이 먼저 평지의 말로 그들의 말을 들어는 보겠다며 적대감을 누그러뜨렸다. 이목의 이름을 댄 것이 효과가 있었다. 견융왕은 조나라 도양왕을 "쓰레기"라 칭했지만 이목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게 보았다. 그는 매년 한 번씩 직접 요양을 방문했으며 그때마다 안문 땅에서 가져온 맛있는 양고기를 베풀었다. 그 이목의 대리를 칭하는 순수수를 봐서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 순수수의 목이 떨어질 시간은 조금 더 미뤄졌다. 볼프의 칼이 여전히 목에 닿아있었으나 순수수는 그런 엄포에 개의치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용건은 간단했다. 이 자리에서 조군과 함께 진군과 싸워 적을 격멸하는 것. 견융왕도 자질구레한 것은 거론하지 않았다. 바로 보상이 뭐냐고 물었다. 순수수는 그 대답보다는 현재 진군이 업성을 노리고 왕도권에 진출한 것, 그걸 저지하지 못하면 더 많은 진군이 처들어와 공세를 펼치고 요양도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농담 같은 진담. 그 뿐인가? 결국 순수수의 말은 "살려주는 대가로 싸워라"고 엄포를 넣는 거나 다름 없었다. 진군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심지어 견융왕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이 달린 사람이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조군들 사이에서 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제 그들은 총대장의 시체를 수습할 방법이나 찾아야 했다.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잠시 뒤 그들은 자신들도 살아남고 총대장의 시체를 처리할 방법도 필요가 없어졌다.
뜻밖의 수락. 무엇이 견융왕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크게 만족해했다. 곧 부하들을 시켜 성 안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데려와 "축제"를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단 하나, 진군의 격멸만이 남은 순수수는 견융왕에게 상대를 얕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적의 정체가 서쪽 산민족을 통일한 자라고 알려주려 했는데, 견융왕은 그의 정보가 필요치 않았다.
- 토리코/358화 . . . . 8회 일치
시공을 넘나드는 네오와 블루 니트로의 진실.
지지와 사천왕들이 있는 장소
죠아와 미도라가 대결하고 있는 장소
지로와 블루 니트로가 대치 중인 장소
* 지로와 대치 중인 블루 니트로는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구르메 세포가 형성된 생물은 구르메 에너지를 가지며 육신이 죽더라도 언젠가는 부활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네오에게 먹힐 경우엔 완전히 소멸하며 부활하지 못한다.''' 이것이 네오의 진정한 두려움이라고 한다
2대륙, 기네스와 대치 중인 토리코일행
네오와 돈슬라임이 대결중인 곳
* 지금 우주의 이름은 "레드 유니버스". 따라서 블루 니트로와 네오의 우주는 "블루 유니버스"일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8회 일치
본편이었던 [[토탈워: 쇼군 2]]와는 달리 한 스킬을 여러번 찍을 수 없게 되었다.
* 두려운 존재 - "적의 두려움은 우리에게 있어 엄청난 협력자와 같은 것이다."
* 오스트리아 제빵사 - "크루와상이 프랑스 빵이라고? 하! 이름만 프랑스어일 뿐이야!"
외국인 베테랑에게 강하지만 시노비에게 약하다. 유신지사와 신선조를 상대로 매혹이 불가능한데 설정상 그 둘은 자신의 이념에 너무 충실해서 안 넘어온다고 한다.
번이 존왕파를 지지할 때만 고용할 수 있다. 시노비와 외국 베테랑에게 강하다.
번이 막부파를 지지할 때만 고용할 수 있다. 시노비와 유신지사에게 강하다.
원작의 닌자. 다른 가문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신선조와 유신지사에게 약하지만 게이샤에게 강하다.
명사수 스킬 요구. 군대 교란 시 능력 +1, 이 요원이 배속된 군대에 있는 보병 부대와 기병 부대의 정확도 +10
- 페어리 테일/491화 . . . . 8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491화. '''어머니와 딸'''
* 가질과 제이라가 있는 곳은 천랑섬. 역시 유니버스 원의 영향으로 육지와 연결됐다.
* 가질이 있는 곳은 천랑서. 육지와 연결되어 버렸다.
* 나츠와 루시, 해피는 카르디아 대성당과 왕궁이 딱 붙어 버린 걸 보고 있다.
* 또 메이비스가 위기이고 "모두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니 어서 길드로 가서 "메이비시를 지켜라"고 말한다.
* 제목 때문에 엘자와 아이린의 관계가 밝혀진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는 메이비스(어머니)와 페어리 테일 길드원을 지칭하는 거라는 의견도 있다.
* 다음화 제목은 "언니와 여동생"
- 페어리 테일/536화 . . . . 8회 일치
* 이치야는 마지막 힘으로 [[제라르 페르난데스]]를 구출하고 "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남긴 채 아크놀로기아와 충돌한다.
* 한편 나츠와 제레프의 격돌은 나츠의 승리. 나츠가 뿜어낸 "거센 감정의 불꽃"이 제레프를 태웠다.
* 둘의 힘을 더해서 크리스티나호는 다시 날아올랐다. 웬디와 블루 페가서스의 길드원들이 그들을 불러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치야는 얼마 남지 않은 화기를 총동원해 아크놀로기아의, 제랄을 붙잡은 팔에 쏟아붙는다. 타격은 되지 않았지만 제랄을 쥐고 있던 손이 풀린다. 이치야가 제랄에게 말했다.
* 마침내 밝은 빛이 아크놀로기아와 크리스티나호를 집어삼킨다.
* 바로 그때, 나츠와 제레프의 형제 싸움이 끝나고 있었다. 나츠가 뒷심을 발휘해 밀어붙이자 제레프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제레프는 쓰러지면서 자신을 태우는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성스러운 불꽃... 아니, 나츠의 "거센 감정의 불꽃"이었다. 불꽃은 제레프의 몸을 태우고 백마도사로 각성하며 얻은 모든 힘도 태워버렸다.
* 시간의 틈새를 둘러싼 공방도 종결을 맞이했다. 눈 부신 빛이 지나가고 나자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엘자는 제랄을 구했고 함께 하늘을 올려다봤다. 웬디도, 블루 페가서스의 모든 사람도. 마룡도, 배도, 이치야와 안나도 없어진 하늘. 히비키가 모두 시간의 틈새로 사라졌다고 중얼거린다. 제니가 믿기지 않아서인지 슬퍼서인지 모를 복잡한 눈물과 함께 말했다.
어느 새 엘자와 웬디도 울고 있었다.
* 다시 단 둘이 남게 된 메이비스와 제레프.
- 페어리 테일/538화 . . . . 8회 일치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회생한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또 살아남아 버렸다 한탄한다.
* [[제레프 드래그닐]]의 야망을 둘러싼 알바레스 제국과 피오레 왕국의 전쟁은 끝났다. 제레프가 [[메이비스 버밀리온]]와 함께 사라진 자리에는 그의 팬던트만 남아있다.
아직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END의 서를 계속 수정하고 있었다. 본래 이것은 책 자체에 씌인 악마의 힘이 수정자를 침식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미 루시의 오른팔 전체가 침식 당했고 서서히 우반신 전체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루시는 펜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마침내 책의 수정이 끝났다. 책이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던 문자들이 책으로 돌아온다. 해피와 그레이는 그 모습을 신비롭게, 그리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루시는 펜을 놓으며 말했다.
해피가 와락 달려든다. 루시와 그레이는 "역시 나츠다"고 그의 귀환을 환영한다. 해피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얼싸안아서 나츠가 곤란해한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물리쳤다. 그러나 마룡을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기 위해 두 사람도 함께 휘말리고 말았다. 살아남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과 [[엘자 스칼렛]], [[제라르 페르난데스]], [[웬디 마벨]]. 그들은 바다를 건너 작은 바위섬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마룡과 싸우며 만신창이가 됐던 제랄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엘자의 무릎에 누운 채로 또 살아남았다고 한탄조로 말한다.
>넌 살아야 해. 이치야씨와 안나씨의 몫까지.
그렇게 어느 정도 쉬고, 정리가 끝나고 나면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루시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전부터 아쿠에리어스의 열쇠를 되찾는 여행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레이와 해피도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데 뜬금없이 아쿠에리어스가 물고기인지 반어인인지를 놓고 논쟁으로 이어졌다. 정답은 그냥 "인어".
- 페어리 테일/539화 . . . . 8회 일치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마룡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봉인하고 모든 것이 끝난 것 처럼 보였다.
* 큰 희생에도 불구하고 마룡은 시간의 마력을 손에 넣은 채로 이 세상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봉하고 크리스티나호의 생존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상륙해 상태를 추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의 틈새가 닫힌 있을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한다. [[웬디 마벨]]이 이것을 발견. 웬디가 하늘의 균열이 있다고 말하자 일행이 술렁인다. 저것은 아무리 봐도...
*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시간의 틈새 조차 아크놀로기아를 죽이지 못했다. 아크놀로기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라 말한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와 [[엘자 스칼렛]]은 그가 시간의 틈새 조차 먹어치웠다는 걸 직감한다. 마룡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힘을 손에 넣었다. 그는 넘쳐흐르는 시간의 마력에 전율하며 그 자신 조차도 제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원래부터 제어할 의지도 없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멸망을 고하며 이터널 플레어를 충전한다.
엘자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상황을 살핀다. 근처에 이터널 플래어가 떨어지며 큰 파도가 일어난다. 엘자는 휩쓸리면서도 다른 일행들이 무사한지 살핀다.
매그놀로기아에 흩어져 있던 멸룡마도사들에게도 웬디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렉서스 드레아]]와 [[가질 레드폭스]]가 동료들 앞에서 정체불명의 힘에 끌려간다. 오라시온 세이스의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도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도 마찬가지. 마침 [[나츠 드래그닐]]의 모습이 사라진 것도 이 시점이다.
- 페어리 테일/542화 . . . . 8회 일치
* 시간의 틈새. 이곳으로 불려온 멸룡마도사들은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를 상대로 총공세를 펼친다. 그러나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가 튕겨나가는 걸 시작으로 [[나츠 드래그닐]],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 [[가질 레드폭스]], [[웬디 마벨]]이 변변한 공격도 못해보고 한 방에 쓰러진다. 마지막으로 [[렉서스 드레아]]가 배후를 잡지만 번개를 담은 정권도 무용지물, 마룡이 "나에겐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일갈과 함께 렉서스 마저 때려눕힌다.
*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태운다는 계획을 위해 하루지온으로 급파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 등 항구에서 휴식하던 아군의 도움으로 배를 수배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본래 알바레스 제국이 타고온 군선. 거대한 갤리온 함선이다. 그동안 [[엘자 스칼렛]]과 [[카나 알베로나]]를 비롯한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도 도착. 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 하나가 끝났다. 이제 문제는 이 배에 어떻게 아크놀로기아를 태우냐는 것. 엘자가 그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다. 어떻게든 상공에서 아크놀로기아를 떨어뜨리겠다고 하는데.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마법도 물리공격도 안 통하는 상대에게 그게 가능할지 의심했다. 엘자는 반드시 해보이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그 부분을 재쳐놔도 두 가지 문제는 아직도 요원하다. 미네르바 일행의 유인작전이 성공할지 여부와 페어리 스피어의 발동법을 제때 찾아낼 지 여부. 어느 쪽도 장담하기 어렵다.
* 적어도 한 가지 문제는 막 해결되었다. 아크놀로기아가 매그놀리아를 뒤흔드는 와중에도 루시 일행은 임무를 완수했다. 한 차례 지진으로 지하도서관의 서가가 엉망으로 무너졌다. 다행이 일행은 무사했지만 [[레비 맥거딘]]이 루시가 보이지 않는걸 깨달았다. 그녀는 쏟아진 책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그게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던 페어시 스피어 발동법이 담긴 책이, 루시를 덮친 책더미 속에 있었던 것이다.
* 스팅과 로그도 같은 의견이었다. 마룡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동료들을 볼 낯이 없다, 그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쓰러질 순 없다. 세이버투스 길드원들은 오라시온 세이스의 바톤을 받아서 같은 방식으로 하루지온까지 마룡을 유도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거리는 프록시와 렉터의 도움을 받은 미네르바와 유키노가 하늘을 날아서 단숨에 끌어들인다.
* 미네르바와 유키노가 안전하게 하루지온에 안착한다. 엘자가 그녀들을 반긴다. 둘은 아크놀로기아가 마력을 쫓는 습성이 있다고 알리곤 힘이 다해 쓰러진다. 엘자는 뒤는 자신들에게 맡기라며 둘을 피신시키는데. 그때 아크놀로기아가 또다시 이터널 플레어를 준비한다. 길다트의 경고로 모두가 몸을 납짝하게 업드리지만, 아크놀로기아가 노리는 건 그들이 아니었다. 이터널 플레어가 항만시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항구에 있던 배라는 배는 전부 파괴되어 한 척도 남지 않는다.
- 폴리스 . . . . 8회 일치
라틴어에서는 폴리스의 번역어로 키비타스(civitas)라는 표현을 썻다. 키비타스에는 [[도시]]와 [[국가]]라는 의미가 있으며, [[영어]]의 시티(city)의 어원이 된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폴리스를 도시(cite)로 번역했다. 1765년 독일의 헤르더(Herder)는 폴리스를 슈타트슈타아트(Stadtstaat)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도시국가'라는 의미로서 단순한 정주지로서 '슈타트(stadt, 도시)'와는 구분되었다. 이러한 표현은 [[독일제국]] 내에 국가로서 주권을 인정받는 도시(소위 말하는 [[자유도시]])가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1893년에 파울러(W.W.Fowler)는 [[도시국가]](city-state)라는 말을 단어로서 폴리스를 표현하게 되었다. 이 표현은 프랑스어(cite-Etat), 이탈리아어(citta-stato)로 퍼져나갔으며,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도시국가(polis-kratos)라는 표현이 나타나게 된다. 반면 독일에서는 '도시국가'와 '폴리스'의 차이점에서 주목하여 폴리스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농촌 지역은 코라(Chora)라고 불린다. 영토 내에 예속된 촌락(Kome)이 있는 경우도 있다. 폴리으스는 도시와 농촌이 한 단위로 연결되어, 시민들은 농촌에 경제 기반을 두고 자급자족(Autarkeia)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폴리스는 완전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여 외국과의 상업거래가 필요했으나, 자급자족은 하나의 이상으로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를 각자 주권의 결사체로 보았다. 폴리스마다 체제와 법률을 가지고 있었기 떄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 폴리스는 자유를 누리는 삶을 이상으로 여겨졌다.
폴리스는 기원전 1000년경에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아티카(Attica, [[아테네]] 주변 지방)와 에우보이아(Euboea)에서 나타났으며, 그리스 본토와 에게해 도서 지역, 소아시아의 해안 지역에 폴리스 체계가 퍼져나갔다. 기원전 750년 이후에는 그리스 식민도시(Apoikia)가 각지에 건설되었는데 이들 역시 폴리스형 국가체계를 갖추었다.
고전기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는 정치적 주권을 가지고 자치와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대부분의 폴리스는 자치권을 상실하여 단순한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 하이큐/211화 . . . . 8회 일치
* 합숙에서는 시라토리자와 3학년과 OB군단과 합숙멤버들이 연습시합을 한다.
* 학교로 돌아와서도 타케다 고문과 사와무라 다이치에게 연달아 설교를 당한다.
* 그 얘길 듣던 류노스케는 웃으면서 "이왕 간 김에 필살기라도 배워와라"는 농담을 한다.
* 합숙멤버와 시라토리자와 3학년, OB가 연습시합을 하는데 우시지마도 참가한다.
* 히나타를 쌩뚱맞게 쳐다보는 텐도와 우시지마.
* 그리고 이틀 동안 들었던 쓴소리와 충고를 되세기며 "똑같은 것만 보고 똑같은 생각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 하이큐/215화 . . . . 8회 일치
* 카게야마는 여름합숙 때 만났던 치카야 에키라와 함께 식사한다.
* 그는 왜 시라토리자와가 졌냐면서 와카토시가 몸이 안 좋기라도 했냐고 따진다.
* 카게야마가 덤덤히 "펄펄 날았다"고 답하자, 이번엔 무슨 수로 와카토시를 막았냐고 묻는다.
* 뭔가 충격을 받은 듯 누가 와카토시를 막았냐고 캐묻는 사쿠사.
* 치카야는 그를 히나타와 비교한다.
* 카게야마는 합숙에 빠르게 적응해 코치와 선수들 모두에게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
* 한편 시라토리자와에선 여전히 히나타가 합숙에 참여하고 있다.
- 하이큐/222화 . . . . 8회 일치
* 다시 다테 공고와 시합 장소.
* 그러나 카게야마가 준비를 하는 시점에서 이미 리드 블록이 따라와 있다.
*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에게 올리던 토스를 사와무라 다이치 쪽으로 넘긴다.
* 사와무라의 공격은 네트를 넘지 못한다.
* 우카이 코치는 세터와 블로커의 공방은 공격 순간 외에도 계속된다고 말하다.
* 그말처럼 카게야마와 다테의 블로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돈다.
* 코가네가와 켄지의 스파이크를 받는데 살짝 어설펐다.
* 후타쿠지로 페인트로 블록을 넘기자 니시노야가 쏜살같이 달려와 리시브한다.
- 하이큐/226화 . . . . 8회 일치
* 히나타 쇼요와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뒤섞인다"는 전술에 의견이 일치한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따놓고도 버릇대로 플라잉을 돌려고 한다.
* 타임 오버 때 히나타와 우카이 코치는 "뒤섞인다"는 것에 의견을 일치시켰다.
* 다음 세트에 들어가면서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처음 통했던 무기가 나중에도 통하란 법은 없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 전 세트와 비슷한 찬스볼 상황에서 히나타는 마이너스 템포로 나오지 않고 다른 선수들과 "뒤섞여" 싱크로 공격에 참여한다.
* 사와무라의 공격 성공.
* 앞에 있던 코가네가와 칸지는 눈뜨고 당해 버린다.
* 거기에 한 번 더 연막을 치는데 세터 카게야마.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조합으로 초속공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된다.
- 하이큐/260화 . . . . 8회 일치
* 카라스노의 역전으로 경기의 흐름이 반전됐다. 과연 카라스노는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야마구치에게 달렸다. 야마구치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공은 오지로에게. 하지만 그도 두 번은 실패하지 않는다. 정확힌 리시브. 아츠무가 방금 전 무안준 것을 보상하듯 "나이스 리시브!"라고 힘차게 외친다. 그와 동시에 세트업, 강렬한 스파이크로 카라스노 진영에 돌아온다. 이번엔 야마구치의 리시브. 공인 야마구치를 날려보내다 시피하며 멀리 튕겨나간다.
그의 말이 타나카의, 벤치의 [[스가와라 코시]]의, 그리고 코트 위의 선수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준다. 스가와라가 "기회는 온다! 절대로 놓치지마!"라고 외친다. 코트의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도 대답만 없을 뿐 이심전심이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로테이션으로 오미미가 나가고 2학년 WS인 [[코사쿠 유토]]가 들어온다. 코사쿠의 서브. 네트 위에서 뚝 떨어지는 날카로운 서브다. 공은 사와무라에게. 받아내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사와무라의 팔에 맞고 크게 떠서 이나리자키 응원석 쪽까지 날아가 버리는 공. 사와무라가 낭패한다. 양측 응원석은 이미 득점이 인정된 것처럼 탄식과 환호를 교환한다.
- 허건엽 . . . . 8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2차 4라운드 전체 34순위]] ([[SK 와이번스]]) ||
|| '''소속팀''' || [[SK 와이번스]] (2012~2018)[br][[질롱 코리아]] (2018/19~) ||
드디어, 2014년 7월 10일에 부진했던 [[엄정욱]]을 대신해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1군에 올라와서는 단 5이닝만 던지고 실점은 하지 않은 채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6월 11일, 의 뒤를 이어 2회에 올라와서 아웃 하나 잡고 2회를 끝낸 후 3회에 안타 안타 안타 플라이 볼넷 안타라는 최악의 투구를 보여주면서 0.2이닝 5실점으로 먼지나게 두들겨맞고 강판당했다.
이후 6월 15일 [[이홍구(야구선수)|이홍구]]와 함께 1군에서 말소됐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에 등록되지 못했다.
11월 20일 [[질롱 코리아]]에 [[우동균]], [[최준석]]과 같이 추가 멤버로 합류했다. 현재 질롱 선발진 중 [[김진우(1983)|김진우]]는 컨디션 폭망, [[이재곤]]은 답이 없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고 그나마 [[장진용]]과 선발겸업인 [[길나온]]만 나름 선방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포수 중에는 같은 [[SK 와이번스|SK]] 소속이었던 [[임태준]]이 있기에 아마 선발로 기용될 듯.
시즌 최종 13경기에 등판해 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9.17을 기록했다. 17.2이닝동안 탈삼진 19개를 잡아내는 등 탈삼진 능력은 입증했으나 무너지는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등 기복이 심했다. [* 4실점 경기 4번, 2실점 경기 2번] 다만 세이브 성공률이 100%로 세이브 찬스나 타이트한 상황에서는 귀신같이 호투하며 경기를 날린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질롱에서 가장 접전인 상황에 많이 올라온 투수였다. 참고로 2018시즌 본인의 퓨처스리그 기록과 놀랍도록 비슷한 성적을 냈다. [* 12경기 평균자책점 9.28 10.2이닝 8탈삼진. 퓨처스에서는 6실점 경기가 두 번 있었다.]
|| 2012 ||<|7> [[SK 와이번스|SK]] ||<-13><|2> 1군 기록 없음 ||
- 홍기(영부인) . . . . 8회 일치
[[성균관]] 박사인 [[최규하]]의 할아버지인 최재민씨와 한학자인 홍기여사의 할아버지간 교류가 있었으며, 이를 계기로 할아버지의 중매로 19살 되던 1935년에 연하의 최규하와 결혼하였다. 이후 남편 최규하가 도쿄고등사범학교와 만주 [[대동학원]]에 유학하던 시절에는 함께 동행하지 않고 시가(媤家)인 [[강원도]] [[원주시]]에서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생활했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풍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화로 최규하 권한대행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향후 영부인 활동 구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홍기여사가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보다 못한 청와대 관계자가 화제를 전환시켜 여사께서 청와대 김장을 직접 모두 담갔다고 소개하자, 그제서야 본인도 '김장 30포기를 직접 담갔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기자들도 화제를 돌려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TV나 보지요'라고 답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부인치고 너무 생각 없어 보일 수 있으나, 바로 앞 뒤 영부인이 좋든 나쁘든 워낙 말이 많았던지라, 상대적으로 (공무원 아내다운) 홍기 여사의 소박하고 다소곳하며 서민적인 분위기가 당시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실제 홍기 여사는 청와대 시절 양로원과 보육원 지원에만 앞장섰을 뿐 대외활동을 삼갔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는 조용한 평소 이미지와 달리 남편 최규하에게 짜증을 내는 등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으며 한복 저고리로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사저인 서교동 집은 홍기 여사가 “살 만하면 그만”이라며 못 고치게 해 남루한 편이라고 한다. 실제 홍 여사가 사망할 당시 홍 여사가 10년 이상 사용하던 그릇장, [[외교관]] 시절 사용하던 유리잔들, 생전에 사용하던 돌절구와 오이지 누르는 돌, 연탄보일러, 빨래 물을 긷는 펌프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7회 일치
* 카와모토 아카리가 일하는 가게를 찾은 하야시다 타카시와 시마다 카이.
* 긴자의 가게를 방문한 하야시다 타카시와 시마다 카이.
* 미사키는 회장에게 하야시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그리고 당연히 카와모토 아카리를 보러 온 줄 짐작하고 아카리를 불러준다.
* 아카리는 축제 때와는 달리 화사한 차림.
* 언제나 남을 위해 뛰어다니고 땀에 흠뻑 젖어서 생글 생글 웃던 그녀와 가게에 있는 그녀는 너무 다르다.
* 키리야마 레이까지 와서 보고 있다. "대실망했다"고 토로하는데.
- K리그 . . . . 7회 일치
시작은 5개 팀이었지만 어쨌거나 참가팀 수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1994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조직되고나서부터 KFA가 운영하던 때보다 좀 더 세심하게 "프로"리그를 구성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상당한 잡음이 생기긴 했으나 본격적인 지역연고정착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축구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기 시작한다. 또한 대우 로얄스와 성남 일화,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이 ACL의 전신인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ACC)를 돌아가며 제패하는 등, 아시아 최상위 리그임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 [[할렐루야 축구단]][* 상무와 마찬가지로 연맹의 기준으론 고양 Hi와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 구단이다.]
K리그의 승강제는 2012시즌부터 도입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2012시즌은 2부리그가 창설되지 않았기에 승격은 없고, 강등만 있어 순수한 승강제와는 거리가 약간 있지만 K리그 역사에서는 2012시즌부터 승강제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하여 당연히 기존 K리그 회원들의 반발이 거셌고, 특히 강등할 가능성이 높은 시민구단들이 가장 거셌는데 이에 대해 연맹이 내 놓은 해결책은 사실상의 세미프로인 군경팀을 일단 확정적으로 강등시키며, 군경팀을 제외한 최하위 팀을 추가로 강등하는 1+1 강등안을 발표한다. 때문에 군경팀인 상주 상무는 자동으로 강등되었으며, 추가로 상주를 제외한 팀들 중 최하위를 기록한 광주가 사상 첫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위와 같은 조건은 2014시즌에 정리된 이후, 2016시즌까지 유지되고 있음으로써 클래식과 챌린지의 승강구조가 안착되고 있다.
- 강원 FC . . . . 7회 일치
2008년 11월 10일에 창단한 구단으로 2009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구단의 법인지배구조는 [[시민구단]]이고, 연고지는 도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야구의 사례와 빗대어 광역연고구단으로 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딱히 광역연고와 도시연고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 연고지는 "구단과 협약을 맺은 지자체의 행정지역과 그 범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연고지 협약을 맺은 지역이 강원도 전체를 대표하는 강원도청이기 때문에 강원FC의 전체 이름은 "강원도민프로축구단"으로 정한 바 있다.
원래 강원도는 축구 열기가 정말로 높은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강릉시에 위치한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와의 대결인 [[강릉 축구 정기전]]이 고등학교 축구경기임에도 강릉시의 단오제 행사 중,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890|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K3리그]]에 참가하는 [[춘천시민구단]]의 개막전 3000명 관중 사례만 봐도 강원도의 축구열기는 분명 전국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역적으로 산세가 험해 원정을 가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팀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과거 천안 일화가 천안시의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강릉으로 연고를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타 팀들이 "연고 이전은 상관 없는데, 강원도는 불편해서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는 요청이 들어왔었던 사실은 제법 유명하다. 결국 일화가 강릉이 아닌 성남으로 옮기자 이를 반기는 타 구단들의 입장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
허나 이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도의회와의 협조는 특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에 관해서는 다소 논란이 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강원도축구협회와의 협의는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깜짝 쇼는 시민들에게는 이벤트였을지는 모르나 축구 및 도의회 관계자들에게는 뜬금포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강원도청측은 당초 발표한 대로 일정에 맞춰 절차를 밟아 창단이 이루어지게 된다.
강원의 초기 돌풍을 일으켰던 공격수 [[김영후]]는 [[MBC]]에서 방영했던 [[맨땅에 헤딩]]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내셔널 리그의 공격수에서 K리그의 득점왕 후보에 이르기까지 그 활약이 상당히 인상깊었기에 그 이야기가 모티브를 제공했던 건 유명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드라마의 흥행은 망했다고 전해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1화 . . . . 7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1화. '''우마루와 고전게임'''
골든위크에 할 일이 없는 봄바는 UMR와 실핀과 어울려 논다.
* 하지만 고전 게임의 감각은 요즘 게임과 달라 UMR와 실핀도 애를 먹고 있다.
* UMR와 실핀이 이 게임들에 대해서 아냐고 묻자, 봄바는 지난 번에 15만점 골램 운운하다 창피를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잘하진 못한다"며 겸손을 떤다.
* 고전 게이머들만 아는 노하우와 특유의 기기 다루는 요령을 전수하며 즐겁게 논다.
* 간만에 UMR와 실핀에게 존경의 눈빛을 받은 봄바는 대만족.--고갤러를 바라보는 뉴비의 모습--
* UMR와 실핀은 골든위크 동안 모든 게임기를 섭렵하자고 결심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6화 . . . . 7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6화. '''우마루와 비 피하기'''
* UMR와 고전게임센터를 찾으가기로 하는 실핀
* 중간에서 게임센터도 못 찾고 오도가도 못하게 된 UMR와 실핀은 여러가지 상상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 실핀은 어렸을 적 폭우가 쏟아지던 날 어머니가 늦게 와서 유치원에 혼자 남아있던 적이 있다.
* 실핀은 인터넷에서 고전게임센터를 찾아내고 UMR와 함께 가기러 한다.
* 터미네이터스러운 세계로 종말이 다가와 있고 거기에 나타난 히어로가 두 사람.
* 우마루와 실핀이 신나게 떠들던 세계관은 이블데드나 매드맥스, 터미네이터가 짬뽕된 해괴한 포스트 아포칼립스.--폴아웃이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1화 . . . . 7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71화. '''우마루와 추억의 물건'''
* 실핀은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UMR와 추억의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해서 플스로 놀게 된다.
* 신나하던 실핀은 곧 침울한 표정을 짓는데 사실 그 시절엔 "오빠와 놀았다"기 보단 "오빠가 게임하는걸 보고 있었다" 정도로 오빠와 접점이 적었기 때문.
* 그래도 기억도 살아났고 UMR와 놀 수 있어서 좋았다고 미소짓는다.
* 오빠와 함께 즐겁게 게임을 했던 기억.
* UMR와 함께 그때의 게임을 해보는 실핀.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4화 . . . . 7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74화. '''우마루와 의문'''
* 하지만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너무 "스승님"만 생각하는데다, 애초에 스승님이 무엇의 스승인지도 의문을 갖는다.
* 키리에는 고민을 벗어던지고 우마루와 함께 건어물도에 매진한다.
* 출판사에서 미팅 중인 모토바 키리에. 어느덧 팬네임 "키링링"도 생기고 어엿한 예비 작가다. 언제나처럼 스승님(코마루)와 논 이야기를 즐겁게 한다. 듣고 있던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그 얘기를 중단시키며 진짜 미팅을 시작하자고 한다.
*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키리에가 지나치게 "스승님"에 집착하는게 아닌가 우려한다. 그냥 봐도 너무 좋아한다는걸 알 수 있는데다 다른 소재를 그리라고 해도 여전히 스승님을 그려 오질 않나, 편집자로선 속터지는 일 투성이다. 키리에는 편집장도 스승님의 귀여움을 이해하기 바란다면서 꼭 이 소재로 그림책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편집장은 너무 몰아쳐도 창작의욕을 꺾을 수 있다 판단, 스승님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 이 만화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던 터부를 건드린 편집장. 정작 키리에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미팅 후 도마가에서 우마루(코마루모드)와 노는데, 미팅의 일 때문인지 넋이 나간 상태. 편집장은 그림책 상에서 설명할 필욘 없지만 "작가 본인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정론으로 지적했던 것이다. 키리에도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 경순왕 . . . . 7회 일치
《[[삼국사기]]》에 의하면 65년([[탈해왕]] 9) 3월 왕이 [[금성]] 서쪽 [[시림]]에서 닭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는데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보고하자 왕은 사람을 보내어 금궤를 가져온 후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931년]] 고려 [[고려 태조|왕건]]의 알현이 있었는데, 수십일을 머물면서 왕건은 부하 군병들에게 정숙하여 조금도 범법하지 못하게 하니, 왕경의 사녀(士女)들은 전번 견훤이 왔을 때에는 승냥이와 이리를 만난 것 같았으나, 이번 [[고려 태조|왕건]]이 왔을 때에는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하였다.<ref name="nate01"/> [[고려 태조|왕건]] 일행이 [[경주]]를 방문한 어느 날에는 그는 [[고려 태조|왕건]]의 손을 붙잡고 [[견훤]] 때문에 살 수가 없음을 하소연하며 통곡하기도 했다.
[[935년]] 10월에 경순왕은 민심이 신흥 [[고려]]로 기울어짐에 따라,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 하기로 결심하자, [[마의태자|태자]]와 막내아들 [[김덕지]] 및 이순유(李純由) 등이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였으나, 경순왕은 이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에게 국서를 보내 [[고려 왕건]]에게 항복을 청하였다. 일설에는 어전에서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935년]] 11월 [[고려 태조]]는 태상(太相) 왕철(王鐵) 등을 보내 경순왕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경순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고려에게 가는데 향나무 수레와 구슬로 장식한 말이 30여 리에 이어지니, 길이 막히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장을 친 것과 같았다.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교외에 나와 경순왕을 영접하여 위로하며, 궁궐 동쪽의 제일 좋은 구역(지금의 정승원(正承院))을 내주어 머물도록 하였다.
또 [[고려 태조|태조 왕건]]은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를 경순왕의 아내로 삼게 하였는데, 경순왕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살기 때문에 이름을 고쳐 신란공주(神鸞公主)라 하고, 시호는 효목(孝穆)이라 했다. 아홉째 딸인 '부인 왕씨'(夫人 王氏)도 아내로 삼게 하였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1290 신라 경순왕릉과 회암사지를 다녀와서 - 오마이뉴스] 2011년 09월 24일자
- 고경표(배우) . . . . 7회 일치
본인도 올라프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찍은 사진을 올렸을 정도로 [[겨울왕국]]에 나오는 눈사람 캐릭터 [[올라프(디즈니 캐릭터)|올라프]]와도 닮았다. 연예인으로 비교하자면 약간 [[송창의]], [[최시원]], [[박해일]]을 좀 닮은 정도?
[[YG 엔터테인먼트]]에서 2년간 연기연습생으로 생활을 하다 캐스팅된 영화가 엎어지면서 군 입대를 결심하였지만, 우연히 본 KBS2 정글피쉬 2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하였다. 이후 전 소속사인 필름있수다의 장진 사단이 합류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시즌 1에 크루로 출연하면서 큰 키와 잘생긴 얼굴로 과감하게 망가지는(...;;) 개그연기를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다.
[[블랙넛]]이 여성혐오 논란으로 비판을 받고있을 때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블랙넛의 노래가 좋다는 글과 블랙넛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스트리밍 인증샷을 올려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사람들이 인스타에 고경표와 고경표의 가족에게 [[모욕죄|모욕]]과 [[명예훼손죄|인신 공격성 테러]]를 가하였고, 설전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사실 해당 노래는 여성 혐오에 대한 가사로 논란이 일었던 노래조차 아니였다. 이후 사과글을 게시한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일부 네티즌들의 의도적 판 키우기와 언론인들의 가쉽성 보도 때문에 고경표 일베설이라던가, 여성혐오자라더라 같은 [[냄비근성|루머가 돌게 된 것이다.]]
[[박유천]]과 관련된 논란에서는 2014년 대종상 영화제 신인 남우상을 수상하였던 박유천을 두고, 비공개 계정에서 친구와의 대화했던 것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 후보로는 <화이; 괴물을 삼킨아이>의 [[여진구]], <족구왕>의 [[안재홍]], <신의 한수>의 [[최진혁]], <변호인>의 [[임시완]], <해무>의 박유천이 있었으며, 박유천이 수상하게 된다. 이를 두고, 한국 영화제에 대한 비난과 함께 수상한 박유천에 대한 언행을 한 것은 잘못한 점이 분명히 있으나, 이를 두고 고경표는 '아이돌이 연기하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오명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전 인터뷰에서 아이돌 출신인 임시완에 대해 존경하고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딱히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던간에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보고 배워야 한다는 인터뷰를 한 것으로 보면, 아이돌의 연기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확대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박유천/사건사고|엄청난 사건사고]]로 큰 논란에 휩싸인 [[박유천]]을 옹호중인 [[심영섭]]이 [[http://hgc.bestiz.net/zboard/view.php?id=ghm2b&page=2&sn1=&divpage=44&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8586|믹키유천의 오랜 팬이자 본 신인 남우상의 심사위원중 한명이이었다는것이 밝혀져]] 본 발언이 '''재평가를 받고있다.'''
|| 2011년 || 엄마와 아침식탁 || 아들 || 단편영화 • 주연 ||
- 김정혁 . . . . 7회 일치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이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 주 포지션은 3루수.[*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시절에는 1루수나 좌익수로 더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같이 복무하던 [[모상기]]와 포지션이 겹쳤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와 [[동국대학교|동국대]]를 졸업하고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에서 복무를 마친 후 [[삼성 라이온즈]]에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했다.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4월 11일 1군에서 빠진 [[정인욱]]을 대신해 12일 1군에 등록됐다. 4월 22일 [[정인욱]]이 1군에 올라오자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28일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 [[최선호(야구선수)|최선호]]와 함께 1군에 올라왔다.
그러나 조동찬이 ~~유리몸답게~~ 2일 만에 부상으로 빠지며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롬 발디리스]]와 [[구자욱]]이 차례대로 복귀하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7월 22일 선발로 내정된 [[아놀드 레온]]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9일 전날 얼굴에 공을 맞아 시즌 아웃된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이성규]]가 등록됐다. 10월 3일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10월 8일 최종전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는데 1회와 5회 실책을 범하는 OME를 보여줬다. 1회엔 [[성의준]]의 송구를 놓쳤고 5회엔 송구를 잘못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실책을 범했다.
2군에 간 [[다린 러프]]를 대신해 1루수로 나와, 4월 27일 KIA전에서 5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으로 팀은 패배했지만 입단 후 처음으로 1경기 4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28일 SK전에서는 안타 없이 삼진만 2개를 당했고, 이후 [[조동찬]]이 1루수로 나오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다린 러프]]의 복귀를 앞두고 5월 1일 [[박근홍(야구선수)|박근홍]]과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3주 가량 결장했다가 6월 4일 복귀했다.
* [[강민호]]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때 친구로, 김정혁이 고교 시절 1년 유급하는 바람에 동기는 아니다. 고교 때의 유급으로 1살 어린 [[배영섭]]과 대학 동기가 되었다. 또한 김정혁도 [[배영섭]] 못지 않게 타격폼이 특이하다. 그래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서는 [[사무라이]]라고 불린다.
- 김지훈(배우) . . . . 7회 일치
2015년 8월 10년동안 몸담았던 하이스타ENT와의 계약 종료로 FA로 활동하다가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소속이 되었다.
주로 주말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이상우]]와 더불어 주말드라마계의 황태자로 불린다.
[[JTBC]]의 예능 [[크라임씬 2]]와 [[크라임씬 3]]에서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크라임씬 2에서 게스트로 출연해 범상치 않은 모습 ~~사카린쨩~~을 보여주었고 크라임씬 3에서는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크라임씬3/숙다방 살인사건|간첩]], [[크라임씬3/캠핑장 살인사건|고자]], [[크라임씬3/과학고 연쇄살인사건|탈모]], [[크라임씬3/호텔 살인사건|정신병자]] 등 독특한 캐릭터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출연 작품들을 보면 [[법조인]]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본인은 크라임씬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할 수 있었다면서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 tvN || [[내친구와 식샤를 합시다]] || 멤버 ||
그리고 여담이지만 그가 맡은 배역들을 가만히 보면, [[현종]]으로 맡았던 사극에 같이 출현한 이덕화처럼 후대에 연결되는 상황이다. 아닌게 아니라 강감찬의 후손인 민희빈 강씨와 소헌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가담한 [[이인좌]]와 당장 다음해에 [[조선X파일 기찰비록]]에서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의해 속하게 된 기찰비록에서 후에 능양군이 보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게 된 남주역을 맡았다. 인조반정은 안 나왔지만, 광해군에 대한 반감과 예언 및 함경도 실태를 합친다면 반정 참여라는 생각을 갖기 충분하다.
아스트로의 [[차은우]]와 닮았다.
- 김형일(배우) . . . . 7회 일치
울림이 깊은 중후한 ~~목욕탕~~목소리로 유명하다. 20대 시절에는 [[CBS 성우극회]] 15기 공채 성우로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때 동기가 [[최덕희]]다. 세일러 문, 리나를 비롯한 여주인공 전문 성우인 그 사람이다.], 에로 영화의 후시 녹음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한다. 목소리 탓인지 정극물에서는 주로 무게감 있고 듬직한 역할을 맡았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건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 역할을 맡으면서부터. [[태조 왕건]] 이전에는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에서 [[신마적]] 엄동욱 역할로 얼굴을 알렸고, 청춘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이병헌]]과 친구들이 단골인 카페 사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후 [[문화방송|MBC]] 개그 프로 <오늘은 좋은날>의 꼭지 [[큰 형님]]에 나와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시트콤 [[세 친구]]에서는 옆집에 이사온 신혼 부부로 아내([[노현희]])를 끔찍히 생각하다 못해 의처증 증세가 있는 [[개그 캐릭터]] 연기도 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김재규]] 역을 맡았는데, 목소리와 풍채를 제외하면 실제 인물과 매우 비슷했다.[* 김형일은 키가 180을 넘고, 목소리도 무겁다. 그러나 김재규는 키가 170도 안됐고,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도 김재규는 말이 빨랐다. 김재규와 김형일은 [[김녕 김씨]]로 본관이 같은데, 재미있는 건 김형일이 김재규보다 항렬이 한 항렬 위다.] KBS [[무인시대]]에선 [[최충헌]] ([[김갑수]])을 도와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하지만 욕심 때문에 [[최충헌]]에게 역관광을 당하는 찌질한 동생 [[최충수]] 역을 맡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같은 시대를 다룬 드라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와 [[왕과 비]]에서 두 번 다 [[홍윤성]] 역을 맡았다. 한명회에서는 의리 있고 호쾌한 쾌남 역할이었으나, 왕과비에서는 반대로 의리라고는 쥐뿔도 없이 박쥐처럼 이리저리 권세에 붙는 찌질이로(특히 세조 말 ~ 성종 초 부분에서) 표현되었다.
[[2005년]]에는 MBC에서 방영한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의 김재규 역을 맡았는데, 실제 김재규와 외모,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다. 다만 실제 김재규는 음성이 높고 카랑카랑한 스타일이다.
[[2012년]]에는 간만에 현대극인 [[골든 타임(드라마)|골든 타임]]에서 신경 외과 과장인 김호영을 연기하였었는데... 간만에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를 연기 중이었다. 가끔씩 깐죽대는 대사가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그렇지.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0화 . . . . 7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는 실연을 하며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며 체육관 감마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다.
* 아이자와는 개성의 성장이나 기술의 특성에 맞게 코스튬을 개선하는 방안도 생각해 두라는 말을 덧붙이며 훈련을 시작한다.
* 요양 중이지만 필살기 훈련을 한다는 말을 듣고 와버렸다.
* 아이자와의 평으론 앞으로 더 강해질 유망주.
* 아이자와는 그의 뒷주머니에 교육학 자기개발서가 있는걸 발견한다.
* 그렇게 생각한 미도리야는 아이자와의 추천으로 코스튬 개량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한다.
* 이이다와 우라라카 오챠코도 개발공방으로 향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7회 일치
* 난전의 한복판에 있는 이이다 텐야와 아오야마 유우.
* 아오야마는 방금 전까지 혼자 고립되어 있었는데 이이다가 와서 구해주었다.
* 옆에 있던 이레이저 해드, 아이자와 쇼타는 속으로 남은 통과자 수를 셈하고 있다.
* 오지로 마시라오와 미네타 미노루도 등장.
* 사토 리키도와 아시도 미나도 도착해 적들을 일소한다.
* 이이다와 아오야마까지 무사히 포인트를 획득, 통과자 명단에 오른다.
* 미도리야와 교전했던 여학생도 통과했는데 뭔가 하려다가 털복숭이 선배에게 제지 당한다. 그에게 "케미"라고 불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7회 일치
* 바쁜 하루를 마치고 단잠에 빠져든 웅영고 학생들. 그러나 [[미도리야 이즈쿠]]와 [[바쿠고 카즈키]]만은 기숙사를 빠져나온다.
그들이 향한 곳은 웅영고 입학후 처음으로 미도리야와 싸웠던 그라운드 베타. 여기에 와서야 바쿠고는 입을 연다.
*미도리야는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한다. 바쿠고는 그저 감으로 찍은게 아니라 나름대로 추리를 했다. 올 포 원이 개성을 뺏거나 부여하는 것을 보았고 올마이트는 녀석과 면식이 있다. 개성을 이동시키는게 가능하며, 그 당사자와 올마이트와 연관돼 있고, 미도리야는 올마이트와 유사한 개성을 "받았다"고 한다. 또 올마이트와 만나서 미도리야가 바뀌었고, 그는 힘을 잃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7회 일치
* 그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분명 나이트아이가 추적중일 요주의인물, "핫사이카이"의 "치사키"라는 남자, [[오버홀]]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는 "에리"에 대해서는 자신의 딸이라고 소개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그녀의 부상에 대해서는 "한창 놀 나이라 자주 다친다"며 사람 좋게 웃기까지 하는데. 그와 대조적으로 미도리야는 경악한 표정을 감추질 못한다.
웃음기가 사라진 오버홀은 "자신의 평범을 남의 가정에 강요하지 마라"고 쏘아붙인다. 밀리오는 의도와 다른 미도리야의 행동에 곤란해한다. 이대로 경계심을 늘리면 더욱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나이트아이의 수사에 지장이 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무난하게 넘기는 쪽"이 더 의심받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미 너무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다.
* 팽팽하게 긴장된 상황은 오버홀의 한숨과 함께 종료된다. 그는 자기가 졌다는 듯이 "히어로는 정말 남의 사정에 민감하다"고 물러난다.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보는 눈을 피하고 싶으니 이쪽으로 와달라며 골목으로 들어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밀리오도 그냥 가는건 포기한다. 그는 미도리야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자신이 대처하겠다고 신호한다. 어차피 이제와서 에리를 놓고 갈 수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미도리야는 에리를 안은 채 오버홀을 따라 들어간다.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골목으로 들어오자 오버홀은 앞서 걷는 척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 에리에게 반항기가 왔다며 고민이 많다고 푸념한다. 미도리야는 은연 중에 학대를 의심한다. 밀리오는 "힘들겠다"고 맞장구쳐주며 대화를 이어간다.
* 아지트로 돌아온 오버홀은 "최근 젊은이"들은 한층 더 병들었다고 투덜거리며 쿠로노라는 부하에게 목욕 준비를 부탁한다. 본래 에리의 감시를 맡았던 부하가 따라와서 실책에 대해 사죄하는데 오버홀은 듣지도 않고 부하를 처분해 버린다. 그가 손을 휘두른 것만으로 부하는 커다란 핏자국으로 변한다. 이것의 청소도 쿠로노의 몫이다.
그는 미도리야와 밀리오를 잊지 않을게 분명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7회 일치
* 잡은 뇌무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반응이 없고 애당초 제조공장 자체도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 과거와 같은 "평화의 상징"은 이제 없는 거나 다름 없고 그동안 올마이트 한 사람에게 의지해 온 후폭풍이 오고 있다.
* 입원한 올마이트. 그랜토리노와 츠카우치가 문병 왔다.
* 츠카우치는 올 포 원의 폭로 자체를 의심하는데 사실 그랜토리노와 올마이트 모두 시무라 나나의 가족하고는 교류가 없었다.
* 이후에도 아이와 엮이는 일은 없었으며 그랜토리노와 올마이트에게도 "절대 그 아이와 엮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7회 일치
* 여성진의 열화와 같은 찬사. 사실 본인 개성이 "단걸 먹으면 파워업"이라 훈련을 겸하는 건데 대호평이다.
* 지로 쿄카의 방부터 시작. 매우 록한 방이 나와버렸다.
* 아시도 미나와 우라라카 오챠코는 여자답지만 딱히 개성은 없는 그런 방.
* 모두가 돌아간 뒤 살짝 바깥을 나와보는 츠유.
* 여전히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전처럼 모두와 즐겁게 대화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 다음날. 아이자와 쇼타는 예고한 대로 "임시면허" 취득을 위한 수업을 시작한다.
* 아이자와는 그 합격 대책으로 개인당 최소한 두 개의 "필살기"를 익히도록 하는데.
- 니세코이/216화 . . . . 7회 일치
* 사실 하루와 이치죠의 어머니, 코사키의 어머니와 마리카의 어머니도 모두 고교 동창. 심지어 한 반이었다.
* 한편 라쿠와 오노데라는 돌아갈 때가 됐는데 결국 치토게와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고 허탈해 한다.
* 원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모티브인데, 앤딩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그린 것
* 이 사랑의 다리에도 자물쇠와 열쇠로 사랑을 맹세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걸 그림책에 넣으면서 제목도 폴란드어로 지으려고 했다.
* 하지만 이치죠의 어머니도 자물쇠와 열쇠에 얽힌 약속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7회 일치
일본 'MF문고J'에서 발매중인 [[일본]]의 [[라이트노벨]]. 2015년 3월 기준으로 일본에선 6권까지 나와있으며, 국내에선 'L노벨'에서 5권까지 정발중이다. 작가는 '강철의 흰토끼 기사단'의 작가인 [[마이사카 코우]], 일러스트레이터는 요타. 역자는 김덕진.
인간을 초월한 마력을 가졌으나 인간들의 탄압으로 인해 점점 그 수가 줄어들어 숲 속으로 내몰리며 쇠퇴의 길을 걷던 마녀들. 그녀들의 본거지 한가운데에 이세계의 남자가 떨어져내린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이 호색한(...)은 마녀들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마녀와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데...
* 비타 솔샤르 슬레이마야 : 해리건의 영역과 인접한 슬레이마야 일족의 지도자. 로리한 외모와는 달리 나이는 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를 조종하는 마법을 구사하며, 마녀들에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제시하는 나가에게 흥미를 느끼고 해리건 일족과 연합한다. 본인도 나이를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나가가 맘에 들어서인지 나가가 그녀를 보고 귀엽다느니, 나이가 많은 게 믿겨지지 않는다느니 하니까 기분좋은 반응을 보여준다.
* 마녀 : 이능력을 가진 여자들을 일컫는 말로, 과거엔 인간들과 공존했으나 마녀들을 배척하는 유일신 신앙의 확대와 마녀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질투한 인간들에게 박해를 받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제각각 인간들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인간들에게 숫자로 밀려서 점차 밀려나고 있으며, 또한 아이를 낳게 되면 마력이 약해지는데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부 마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능력을 용이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다들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이 부분 또한 편견에 일조하고 있다.
* 교회 : 유일신을 섬기고 있는 세력으로, 그들의 신앙과 배치되고 이능력을 지닌 마녀들을 배척하고 말살하려 하고 있다. 자기네들끼리도 구교회와 신교회로 갈라져 싸우기도 하는, 지극히 광신적이고 정치적인 종교조직.
마이사카 코우 작품답게(...) 서비스신이 엄청나게 많다. 강철의 흰토끼 기사단 때와 마찬가지로, 삽화를 보면 여캐들이 전체적으로 헐벗은데다 성희롱성 장면이 넘쳐난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소설 내용은 또 진지한 게 함정. 여러모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7회 일치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의 시카고, 갱단이 운영하던 비밀 술집에서 연주자로 일하던 조와 제리는 경찰이 습격한 술집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다. 체포는 면했지만 실업자가 된 이들은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갱단 보스 스패츠가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을 밀고한 다른 갱단을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조와 제리 또한 스패츠 일당에게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조와 제리는 스패츠를 피해 시카고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중 플로리다로 떠나는 여성가극단의 모집 공고를 본다. 이들은 여장을 하고 여성가극단에 들어간다. 둘은 극단에서 일하는 가수인 슈가, 플로리다에서 휴양을 보내던 갑부인 오즈굿 등과 엮이며 이리저리 복잡한 연애를 시작한다.
조와 제리가 들어간 여성 공연단의 싱어. 조와 사랑에 빠지지만 조가 조세핀이라는건 모른다.
재벌. 다프네와 사랑에 빠지지만 다프네가 여장남자라는건 모른다.
갱단 보스. 영화 극초반에 경찰의 습격으로 운영하던 술집 하나를 폐쇄당했다. 이후 밀고자의 갱단을 살해, 그 장면을 목격한 조와 제리가 도망치는 계기가 되었다.
- 랑그릿사 . . . . 7회 일치
정규 타이틀은 5까지 발매하였으며, 이 중 1부터 3까지는 PC버전으로 정식발매되었다. 그러나 3의 흥행이 시원치 않았는지 4와 5는 한국에 발매되지 않았다. 그런데 외전으로 볼 수 있는 랑그릿사 밀레니엄은 또 한글화되어 발매되었다. 발매기준에 대해서는 좀 모호한 편.
어쨌든 시리즈는 2의 엄청난 성공으로 각종 기기로 컨버전되며 여러가지 요소들을 투입시켰는데, 이는 당시 [[드래곤 나이트]]와 같은 야겜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연애성 [[롤플레잉]] 요소가 가미되며 연인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빛의 용사로만 볼 수 있던 원본 엔딩 이외에 어둠엔딩이나 패왕 엔딩 등, 다양한 스토리가 존재하여 여러 차례 클리어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3에서 기존의 2와는 상당한 괴리감을 보여주는 것과 더불어 최초 개발 기기였던 세가새턴의 몰락과 함께 랑그릿사라는 브랜드는 크나큰 위기를 겪게 되고, 4와 5의 흥행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사실상 시리즈의 종언을 고하게 된다.
반대로 파이어 엠블렘 역시 랑그릿사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전의 계보(1996)에서는 먼저 나온 랑그릿사 2[* 정확히는 멀티엔딩 요소와 더불어 분기에 따른 연애까지 갈라지게 만드는 [[슈퍼패미컴]] 이식작 데어 랑그릿사를 가리킨다. 메가드라이브판 랑그릿사 2는 빛의 후예 엔딩 하나만 있는 리아나 일직선이다.]를 연상케 하는 '연애 요소'를 도입한데 더해서, 단순히 엔딩에서 맺어지는 상대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2대에 걸치는 싸움을 묘사하는 등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한글화와 PC판 발매,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 덕분에 훨씬 높은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지만,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인기 측면에서는 하드 자체가 마이너한 하드(메가드라이브, 세가 새턴)을 주로 나왔고 시리즈의 명맥이 아예 끊겨버린 상황이라, 현재는 인지도와 인기가 파이어 엠블렘에 훨씬 뒤쳐진 상황이다.
- 레스터 길리스 . . . . 7회 일치
1908년 12월 6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길리스는 비행 청소년이었다. 그때부터 어리게 생겼다고 동안(Baby Face)이라는 별명이 붙은 길리스는 타이어 절도, 밀주, 무장강도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1931년 시카고에서 은행 강도를 벌였다가 체포된 길리스는 졸리엣(Joliet)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벌였던 또 다른 은행강도의 재판을 받으러 잠시 이송되었는데, 돌아오던 중 탈출해 캘리포니아 주 소살리토(Sausalito)로 도망친다. 그곳으로 도망친 길리스는 존 폴 체이스(John Paul Chase)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지역 갱단원으로 밀주 운반을 돕고 있었다. 길리스는 체이스와 함께 밀주 운반차의 호위를 하게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1934년, 길리스는 아내인 헬렌 길리스(Helen Gillis), 그리고 그의 친구 체이스와 함께 시카고로 가서 딜린저 갱에 들어가 강도짓을 벌인다. 그러다가 4월 말 리틀 보헤미아 산장이라는 곳에서 아내, 다른 갱단원과 함께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산장 주인의 신고를 받은 FBI가 들이닥쳤고, 딜린저 갱은 헬레스를 포함한 여자들을 남겨두고 탈출한다. 이 과정에서 길리스는 W. 카터 바움(W. Carter Baum) 특별 수사관을 살해한다. 이후로도 길리스를 포함한 딜린저 갱은 활동을 계속한다.
7월 22일, 딜린저 갱을 이끌던 [[존 딜린저]]가 FBI에게 사살된다. 레스터 길리스와 체이스, 그리고 가석방된 헬렌 길리스는 시카고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들은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도중 속도 위반으로 체포되기도 했지만 벌금 5달러만 내고 풀려난다.
11월 27일, 길리스 일당은 시카고에서 차를 훔쳐 위스콘신 주로 향하던 도중 FBI 차량에게 발각된다. 곧이어 FBI와 길리스 일당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길리스 일당은 FBI를 피해 도망쳤지만 또다른 FBI 차량을 만나게 된다. 새뮤얼 P. 코울리(Samuel P. Cowley) 감찰관과 허먼 E. 홀리스(Herman E. Hollis) 특별 수사관이었다. 첫번째 차량과의 총격전으로 라디에이터가 파손되어 제대로 도망칠 수 없던 길리스 일당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일리노이 주 배링턴(Barrington)에서 차를 세운다. 그러고는 뒤쫓아 오는 FBI 차량에 자동화기를 난사한다. 배링턴 전투라고 불리는 이 총격전으로 홀리스 특별 수사관은 사망하고, 코울리 감찰관 역시 치명상을 입어 다음날 사망한다. 하지만 길리스 역시 치명상을 입는다. 체이스와 헬렌 길리스는 FBI 요원들이 타고있던 차를 훔쳐 길리스와 무기들을 옮겨 싣은 다음 그 차를 몰고 도망친다.
- 레킹 크루 . . . . 7회 일치
본래 레커 혼자만 슈퍼빌런으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한 때, 힘을 잃고 수감되었던 레커에게 프랭클린 박사가 접근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레커는 쇠 지렛대를 되찾아 프랭클린,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감자인 캠프, 칼루스키와 같이 [[탈옥]]했다.
레킹 크루의 중심 인물. 원래 폭파 작업원이었으나 문제있는 태도 탓에 해고되면서 범죄자 레커가 되었다. 약탈한 곳을 폭파시키고, 현장에 쇠 지렛대를 놔두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레커가 초인이 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바로 로키. 오딘에 의해 힘을 잃었던 로키는 레커의 호텔방에 들어가 퀸 카르닐라(Queen Karnilla)와 접촉해서 그녀의 힘으로 자신의 힘을 회복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레커가 돌아왔고, 힘이 없는 로키를 두들겨 패놨는데 이때 카르닐라가 레커를 로키로 오인하여 마법을 걸어 초인이 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법의 쇠 지렛대도 획득했다. 마법의 힘을 힘을 얻게 된 레커는 마구 날뛰며 토르를 이기기까지 했으나 시프가 가져온 디스트로이어에 의해 패했다. 그 뒤에 다시 토르와 싸우려고 [[탈옥]]했지만 힘을 회복한 토르에게 패배. 결국 다시 [[교도소]] 행. 교도소로 돌아온 레커에게 같이 감옥에 갇혀 있던 엘리엇 프랭클린 박사가 접근했다. 박사는 자신이 만든 감마 폭탄을 되찾아 [[뉴욕]]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거금을 벌길 원했다. 먼저 쇠 지렛대를 확보한 레커는 프랭클린과 마찬가지로 수감자인 헨리 캠프, 브라이언 칼루스키에게 폭풍우가 치는 동안 동시에 쇠 지렛대를 꽉 쥐도록 했고, 번개가 지렛대를 내리쳤는데 그 결과 다른 셋에게도 힘이 생겼다. 그리고 레킹 크루 결성.
한때 [[군인]]이었으나 [[불명예제대]]하고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어 레커의 감방 동료가 되었으며, 다른 수감자인 프랭클린, 칼루스키와 함께 [[탈옥]]했다. 그리고는 레커의 쇠 지렛대에 힘을 얻어 초인이 되었다.
레커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며 늘 그와 붙어 다닌다.
[[천재]] [[과학자]]. 현역 시절 당시에는 [[브루스 배너]]([[헐크]])도 만들지 못한 소형 감마 폭탄을 발명한 [[천재]] [[물리학자]]였다. 감마방사선 분야에서의 뛰어남 덕분에 '검은 브루스 배너'라고도 불릴 정도. 그러나 리치먼드 기업에 의해 모든 발명품과 연구 자료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겼고, 기업에 항의했으나 쫓겨났다. 그 뒤에 폭탄을 훔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시기에 레커와 만나서 캠프, 칼루스키와 함께 탈옥했으며 이후 레커의 마법의 쇠 지렛대에 의해 초인이 되었다.
- 로버트 켈리 . . . . 7회 일치
2017년 초, [[반기문]] 사무총장의 귀국과 대통령 후보 논란에 대하여, "그는 구식 관료이며 그 점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그를 선택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반기문을 변화를 가져올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매우 '대가 약한 사람'(milquetoast)", "올해는 수십만 명의 한국인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한 '격동의 해'(big year)"라는 언급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남겼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2/0200000000AKR20170112199600009.HTML (참조)]]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BBC]]와 자택에서 [[스카이프]]로 인터뷰를 가졌는데, 인터뷰 도중에 아이들 2명이 방 안에 들어오는 [[방송사고]]가 터졌다. 처음에는 한 명이 들어와서 스카이프 캠 앞으로 다가오길래 교수가 손으로 가로막았는데, 뒤에서 보행기를 탄 동생까지 들어왔다. 곧이어서 아내가 급히 들어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http://www.etnews.com/20170311000021 (참조)]][[http://time.com/money/4697929/kids-interrupt-live-skype-interview-bbc-funny/ (타임지)]]
로버트 켈리 교수는 3월 14일 가족과 함께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 응해서 당시 상황을 밝혔다. 인터뷰를 하는 중 실수로 문을 잠궈놓지 않았는데, 딸이 유치원 생일 파티를 해서 무척 신이 나서 들어왔고, 아들까지 방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아내 김정아는 당시 휴대전화로 방송을 촬영하고 있다가 아이들이 방송에 출연한 것을 보고 놀라서 달려가서 제지했다고 한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5/2017031501076.html (참조)]]
로버트 켈리 교수 개인과는 무관한 일이지만. BBC 방송사고와 관련되어 SNS에서 퍼지게 된 사건이다.
2012년에 아내와 함께 한국 투표소를 찾아서 사진을 찍고 트윗을 올린 적이 있으며, 투표가 아주 빠르고 신속하여 미국과는 참 다르다는 감상을 남겼다.[[https://twitter.com/Robert_E_Kelly/status/281231957965279232 (참조)]]
- 마기/328화 . . . . 7회 일치
* 티토스는 그 결정은 뢰엠의 영토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장기적으로 그게 정말로 뢰엠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봤다고 말한다. 이미 신드바드와 국제동맹으로 세상은 하나가 되려 하는데 뢰엠만 역행하는 것은 무의미한 불씨가 되는게 아닌가? 그렇게 고민한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국제동맹 가입. 티토스는 셰헤라자드의 유언인 "일국에 얽매이지 말고 세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를 언급하며 그녀의 유지를 잇는 길이라고 말한다.
알라딘은 자신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무언가와 맞서는 사람들을 봐왔다며 신드바드의 의견에 찬동하지 않는다. 그러자 이번엔 신드바드가 "이제 우릴 알마트란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말을 꺼낸다.
그래도 그건 "알라딘의 의지"가 루프에 다시 씌워질 뿐, 나와 뭐가 다르지? ||
* 신드바드는 이제와서 알라딘이 루프를 바로잡아 봐야 또다른 의지를 덧씌우는 일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멸망한 세계의 마기인 그가 현대에 의견을 강요하는 거야 말로 "오만"이 아니냐고 폭언한다.
알리바바에게도 비슷한데 그의 사고에는 신드바드와 알라딘, 두 사람이 모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둘이 대대적으로 반목하게 된다면 알리바바는 쉽게 입장을 정리할 수가 없다.
타전을 단순한 배제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그가 아르바와 대화하며 "약자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했던 말의 의도도 파악할 수 있다. 결국 그가 구상하는 세계는 자기가 설정한 한도 안에서 애초에 벗어날 수 없는 조작된 세상인 것.
- 마기/337화 . . . . 7회 일치
* 쥬다르는 14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싸우며 그가 던지는 "운명에 굴할 것인지 때려부술 것인가"는 질문을 받는다.
* 1던전 바알에선 쥬다르와 14세 시절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한창 격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은 빈곤과 전쟁으로 엉망이 된 지옥같은 곳이었고 그곳을 구하기 위해서는 던전 바알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합리한 운명에 굴복할 것인가, 힘으로 부술 것인가"라는 질문을 거듭 던진다.
* 쥬다르는 혼자 힘이지만 신드바드와 호각 이상으로 싸운다. 신드바드가 전신마장 바알로 날리는 번개 마법을 같은 번개 마법으로 받아치며 "분노와 영걸의 신념이 아니라 그냥 미쳐 날뛰는 꼬맹이"라 조롱한다. 신드바드는 너도 마찬가지 아니라며 쥬다르에게 어떤 영상을 보여준다.
유년시절의 자신이 나타나 "저년만 없었다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다"며 죽이라고 소리친다. 신드바드는 그녀가 쥬다르의 인생을 망친 원흉이라며 "신드바드와 다른 답을 내봐라"고 외친다.
* 옥염은 그때와 같은 뻔뻔한 얼굴로 쥬다르에게 다가온다. 쥬다르의 내면을 반영한 듯 파괴와 굴복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주위를 멤돈다. 신드바드는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어린 쥬다르는 당장 죽이라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마침내 옥염이 그의 몸에 손을 대자 쥬다르는 자신의 결론을 내보이는데.
- 마기/338화 . . . . 7회 일치
* 신드바드는 쥬다르가 말한 "동료와 역할을 나눈다"는 말에 납득하지만 이상론일 뿐이 아닌지 의문시하며 사라진다.
* 제 2던전 바레포르는 '''허위와 신망의 시련'''. 안에는 [[히나호호]] 등과 함께 발레포르 던전을 공략하던 시절의 신드바드가 나타난다.
신드바드는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라며 쥬다르가 말했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한다. 고민하는건 [[연백룡]], 운명에 굴복하는건 [[알라딘(마기)|알라딘]]이나 [[알리바바 사르쟈]], 그렇게 말했던 쥬다르. 신드바드는 그 말을 곱씹다가 "부조리한 운명에 굴복하는가 파괴하는가 두 가지 선택지 뿐이라면 다양한 '''역할'''을 동료와 나누어 담당한다"는 말이 아니냐고 의미를 확장한다.
* 바깥에선 1던전이 굉음과 함께 땅속으로 잠긴다. 일행을 안내하던 [[아르바(마기)|아르바]]는 그게 쥬다르가 신드바드를 납득시킨 거라고 설명한다. 백룡은 생각났다는 듯 알리바바와 알라딘에게 "신드바드 왕의 유일한 미련"이 뭔지 묻는다.
>'''허위와 신망의 시련'''
* 1던전에서처럼 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번엔 [[하나호호]]를 비롯해 어린 시절의 팔인장들, 신드바드과 초대 신드리아 왕국을 일궜던 당시의 팔인장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한데 모여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허위와 신망의 신념
- 마기/349화 . . . . 7회 일치
* 분리를 주장하는 알라딘, [[아르바(마기)|아르바]]와 연결을 주장하는 알리바바, 우고의 대립. 그 가운데 신드바드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 알리바바가 내놓은 해결책에 누구보다 감탄한 것은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였다. 그가 이곳에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비롯한 네 사람을 부른건 진정으로 신에 어울리는 자가 누구인지 가리기 위함이었다. 거기서 이기는 것이 "운명"에 선택 받은 존재일 거라는 전제로. 그런데 알리바바는 그가 생각도 못했던 제 3의 길을 발굴했다. 신드바드는 그걸 "어중간한 타협책"이라 부르면서도 그의 의향에 휘말리고 있는걸 깨달았다. 이제 성궁의 싸움은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 그런데 하늘에서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우고(마기)|우고]]가 나타난다. 맛이 간 눈이다. 그는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을 적은 마고이로 쓰는건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우고가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더 놀랐다. 우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과 [[솔로몬(마기)|솔로몬]] 대왕이 한 계층의 차원에 간섭하기 위해 일 일라의 모든 마고이를 총동원했던 사례를 들면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단순히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은 자신도 예전에 고안했지만 신 하나 분량의 마고이가 필요한 무지막지한 마법이다. 그러니 차원끼리 연결시키려면 솔로몬이 만든 세상을 루프로 환원시켜 동력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는 이쪽의 일방적인 사정으로 그 경계를 침범하면 저쪽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건 또 생각해 보지 못한 얘기다. 동시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아르바는 "일 일라는 끌어내려 놓고 이제와서 잘도 그런 소릴 한다"고 우고를 때린다.
논쟁은 격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최종적으론 "운명을 쟁취하자"는 입장으로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자는 우고 와 알리바바, 반대로 "운명은 독립해야 한다"며 차원간의 벽을 더 두껍게 만들어 서로 분리되자는 알라딘과 아르바의 입장이 대립했다.
신드바드는 우선은 국경을 올바로 관리하되 미지의 세상에서 미지의 생명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먼저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그걸로 발전적인 관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없는 자원을 교류하며 유익한 거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토론자들은 그 점을 놓치고 있는가? 비로소 우고와 알라딘, 알리바바가 아차하면서 맞는 말이라 맞장구친다. 물론 처음부터 "커뮤니케이션은 된다"고 주장했던 아르바는 왜 이제야 그 말을 듣냐고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7회 일치
현재 스팀과 안드로이드, iOS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모두 같은 서버를 사용하지만 계정이동은 안드로이드와 iOS버전에서 페이스북 계정연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스팀과 모바일버전간의 계정연동은 지원되지 않고있다.
== 퍼즐퀘스트와의 차이점 ==
기존 퍼즐퀘스트와 크게 다른점은 매치4를 하여도 추가 턴을 받지 못한다는점, 스텟등으로 마나(본작에서는 AP)를 추가로 얻지 못한다는점(3칸을 부쉈으면 무조건 3포인트만 받는다. 이는 와일드카드/크리티컬 타일의 갯수는 제외하고 센다), 따로 공격타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 게임내 이벤트는 크게 2가지가 있으며, 보상도 2가지로 나뉜다. 먼저 이벤트는 크게 PvP이벤트와 PvE이벤트로 나뉜다. PvP이벤트는 각자 구성한 팀으로 플레이어간 경쟁을 하는 이벤트이다. 허나 실시간으로 직접대결하는것이 아닌, 방어측은 컴퓨터가 운용하여 다소 공격측이 유리하게 되어있다. PvE 이벤트는 사용자가 보유한 캐릭터 레벨에 비례하여 적의 레벨이 올라가며, 전투를 하면서 짤막한 시나리오를 알게되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다.
* 이벤트 보상은 랭킹보상과 절대점수 보상이 있다. 랭킹보상은 말 그대로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간의 점수 순위로 차등 보상이 이루어지며 이벤트 종료시점의 점수를 토대로 산정한다. 상위권은 3,4성캐릭, 중위권은 2성캐릭, 하위권은 은카드 보상으로 이루어져있다. 절대점수 보상은 랭킹과 무관하게 이벤트에 참가하여 획득한 포인트에 따라 주어지며, 최종점수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점수를 올려 일단 획득하고 나면 차후 패배하여 점수가 차감되더라도 무관하다. 낮은점수에서는 참가상 정도의 은카드와 소량의 ISO지만 보통 300점정도만 획득해도 금카드를 한장 주고, 그 이상부터는 히어로포인트나 3,4성캐릭, 상당량의 ISO를 제공한다.
그외 이벤트로는 데드풀 일일퀘스트와 평일중 개최되는 라이트닝 라운드가 있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7회 일치
다이스 선장이 담당한 배. 원양항해가 가능한 기범선이다. 동력기관으로는 돛과 함께 증기기관을 사용하며, 증기기관의 연료로는 불타는 것은 다 된다고 하는 것을 볼때 혼소가 가능한 보일러라고 보면 된다. 선체 상부에는 2개의 마스트와 2개의 굴뚝이 있으며, 수선(首線)부분이 부풀어 오른 텀블홈형 선체를 갖고 있다.
주로 플라스틱 수집 및 다른 곳과의 교역용으로 사용되었으나, 다이스 선장 측이 인더스트리아와 결별한 후에는 침몰당하기도 하는 등의 고난을 겪는다. 최종적으로는 코난 일행이 홀로 남은 섬으로 이주할 때 이민선으로 사용된다.
작품상에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며, 최종적으로는 기간트와 싸우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기간트 위에 추락한 끝에 간신히 활강비행으로 삼각탑에 귀환한다. 이후 수리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다가 삼각탑과 함께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인더스트리아의 작업용 [[로봇]]. 로봇이지만 조작원 1명이 탑승해서 조작해야 하는 물건이다. 일반적인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며, 3개의 레버와 4개의 스위치로 조작이 가능하다. 형태는 상자 모양의 본체에 양팔과 양다리가 붙은 모양이며, 머리가 있어야 할 지점에는 조작원이 탑승하는 좌석이 오픈형으로 설치된다.
허접한 모양과는 달리 작업용으로도, 전투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양팔의 매니펼레이터(manipulator)는 매우 정밀한 편이라, 삽질은 물론이거니와 기관총 등을 직접 들고 사격이 가능할 지경이다. 그래서 각종 작업장 및 바라쿠다 호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코믹하게 묘사될 때는 로보노이드의 매니펼레이터로 (탑승자의) 머리를 긁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이하버에 한 기의 기체가 숨겨져 있었는데 이 비행정은 선술된 도토리 모양의 기체와 달리 크루저 스타일이며 속도는 750km/h에 앉을 자리에 주방도 준비되어 있다. 다만 전투력은 없으며 방탄도 지원되지 않아서 팔코에게 격추되었다.
라나의 고향으로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전원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참사 이전에는 주민들이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에 종사하지 않았지만 대참사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다만 국가의 형태를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오로와 같이 전원생활에 대해 불만이 있는 반항적인 청년들이 독자적으로 무리를 이룬 경우도 있다. 17화에서 하이하버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나를 잡아가려는 데 혈안이 된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20화에서는 점령군으로 왔었던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이 하이하버의 주민이 되어 일을 하며 정착한다. 라오박사의 반중력 비행정이 하이하버에 있었는 데 인더스트리아에서 파르코 비행정에 의해 격추된다.
- 바키도/116화 . . . . 7회 일치
* 도쿠가와는 지하격투장이 여느때와 같이 성황일 줄 알았지만 관객은 거의 들지 않았다.
* 피클 vs 무사시 진검승부 당일. 도쿠가와는 여느때와 다름없는 열기를 느끼며 격투장으로 들어선다.
* 여기 있는 격투가들은 설사 세간에 살육극이라 지탄받아도 "그 나름대로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와 신념의 소유자들.
* 개시와 함께 달려드는 피클
* 무사시가 사람 접어버리는 것도 재미있게 보던 관객들이 이제와서 윤리를 찾고 있다.
- 박근영 (야구인) . . . . 7회 일치
[[2012년]] [[10월 6일]] [[롯데 자이언츠]] 대 [[SK 와이번스]] 경기에선 [[박정권]]이 2루로 [[도루]]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2루심 박근영은 공이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웃'을 선언하였다. 박근영은 다시 정정하여 '세이프'를 선언했지만, [[박정권]]은 태그 아웃 처리가 되면서 오심 논란이 재개되었다.
[[2013년]] [[9월 12일]]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도 [[손시헌]]의 내야안타 타구를 아웃으로 판정하였다. 3루 깊숙한 타구를 [[최정 (야구 선수)|최정]]이 잡아서 송구하였으나 송구가 빗나가면서 1루수 박정권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졌다. 내야안타가 될 상황이었지만 1루심 박근영은 아웃을 선언하며 또다시 오심을 일으켰다. KBO는 그를 또다시 2군으로 강등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74984&redirect=true</ref>
[[2014년]] [[4월 30일]]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 의 경기에서도 6회초에 KIA 선수가 병살을 시도했지만 1루에서는 육안으로 보기에는 아웃이지만 세이프를 선언해서 7회초가 시작되기전에 관중에 의해서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5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9회초 2사 3루 한화 이글스의 공격 상황에서 타자 [[김회성]]이 친 3루 땅볼을 3루수 [[박석민]]이 잡아 홈으로 송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자 [[강경학]]의 발이 홈을 먼저 태그했음에도 아웃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2015년]] [[5월 31일]]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5회말 2사 1루, 3루의 [[LG 트윈스]] 공격 상황에서 4번 타자 [[잭 한나한]]이 3볼 2스트라이크에서 6구째 헛스윙을 하지 않은 것을 스윙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 박세웅(1996) . . . . 7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 ([[SK 와이번스|SK]]) ||
||<:> '''소속팀''' || [[SK 와이번스]] (2015~2017) [br] [[삼성 라이온즈]] (2018~) ||
|||||||||||| '''[[SK 와이번스]] 등번호 44번''' ||
|||||||||||| '''[[SK 와이번스]] 등번호 67번''' ||
한 해 선배인 [[황영국]]과 동기인 [[주권(야구선수)|주권]]과 함께 2013년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의 돌풍을 주도하면서 맹활약했다. 비록 창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전국 대회 결승에 오른 청주고의 돌풍은 협회장기와 전국체전 준우승으로 끝나며 아쉽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당시 2학년이던 주권과 박세웅이 원투펀치를 이룰 청주고는 2014년 강력한 고교야구의 패권자로 꼽혔다. 그런데 주권은 기대대로 잘 했지만, 정작 박세웅이 썩 빼어낸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면서 청주고의 돌풍은 아쉽게 2013년 한 해의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SK 와이번스]] 시절 ===
어쨌든 자질은 있다고 평가를 받은 선수이기 때문에 4라운드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계약금 7천만원에 입단했다.
- 박영진(코미디언) . . . . 7회 일치
>'''“분명 웃음을 줄 수 있는 소재인데 사람마다 시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비하, 폄훼, 조롱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 -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 中-
주로 신랄한 [[독설]] 개그를 담당하고 있으며, 주요 히트친 대사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와 '그건 니 생각이고~' 등이었고 [[두분토론]]에 나와서 히트친 대사로는 '뭐? XX? X~X? 어디 건방지게...', '소~는 누가 키워 소는~?', '남자의 XX을(를) 매도하지 마!'가 있다.[* 두분토론 이전까지는 그 컨셉으로는 광고에 나오지 못했다. 상대를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었다고...]
'''멀쩡한 사람 바보로 만드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 이 점에서는 [[선배]] [[황현희(개그맨)|황현희]]와 비슷하다.
[[두분토론]]에서 '남하당' 의 대표로 나왔는데 역시나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역할이다. 여기 나와서는 '''구한말 어르신들이나 간간히 하실 말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욕을 엄청 먹었는데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이라고 했던 것이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계속 쓰게 되어 대박 유행어가 되고 이미지도 바뀌게 되었다. 역시 인생 한방.
개그를 할 때의 목소리와 원래 목소리의 갭이 크다(...). 그리고 [[안경]] 벗으면 의외로 [[훈남]]인 편. 다만, 다른 [[꽃미남]] 개그맨들이 많아서인지 그다지 주목은 못 받았다(...).
[[SBS]] [[공채]] 출신 [[개그맨]] [[박은영(개그우먼)|박은영]]과 7년간 교제를 했다 결별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박은영은 2012년, SBS를 떠나 KBS 27기 공채로 들어와 박영진의 [[후배]]가 된다.]
- 변요한 . . . . 7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다수의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 출연하면서 기본기와 연기력을 쌓아온 배우로, 독립영화를 30개 이상 촬영했다고 한다. 잘생긴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다.
영화 카메라가 아닌 다른 카메라(예를 들면 인터뷰 카메라) 앞에만 서면 동공지진이 일어난다. 카메라를 제대로 못 보는 건 당연하고 말실수도 허다할 정도.[[https://www.youtube.com/watch?v=M10h8nNSwQA|섹션 인터뷰]] 그래도 요즘은 다수의 인터뷰와 무대인사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예능 출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작품인 [[단편영화]] 《[[토요근무]]》로 데뷔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활동기간 동안의 작품활동이 대부분 [[독립영화]]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필모그래피에 등록된 영화보다 등록되지 않은 영화들이 더 많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약 30편 정도가 더 있다고. ~~역시 독립영화계의 송중기.~~ 그 예로 영화《[[들개(영화)|들개]]》로 이미 합을 한 번 맞춘 적이 있는 배우 [[박정민(배우)|박정민]]과 함께한 《어쩔 수 없어요》, 《FLAMINGO》 등이 있다. ~~《FLAMINGO》 감독님 내한 기원[* 변요한이 직접 《FLAMINGO》에 애착이 있으나 공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유는 감독님이 미국으로 가셔서 연락이 되지 않기 때문.]~~ 육룡이 나르샤 이후에는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한다.[* 육룡이 나르샤 촬영 시기와 겹쳐 1차, 2차까지 공개된 캐스팅 목록에 올라가 있지 않았다. 마침내, 4월 27일로 첫공 날짜가 정해졌다.] 이 작품은 평소에 외워 부르고 다닐 만큼 좋아하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군 복무를 마친 육군 예비역이다. 연기를 위해 예고를 진학하려고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 입대한 뒤 한예종에 24살의 나이로 늦게 진학했다고 한다. [[http://sports.donga.com/3/all/20150111/69029903/3|관련 기사]] 여담으로 TAXI 미생편에 출연하였을 때, [[강소라]]가 변요한을 해병대 출신으로 소개해 당황한 적이 있다. 알고보니 주변 사람들이 강소라에게 거짓말을 한 것. 이에 대해 강소라는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호감도가 높았다며 울컥했다.
* 넷상에서는 일명 '변요한 패밀리'~~[[AKB48|BYH48]]~~로 불리는 연예계 친목 모임이 핫하다. 주로 독립영화나 대학 동기 등의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같이 노래방에 가거나 생일파티를 하는 등 ~~아주 건전하게~~ 친분있는 인사끼리 어울리는 듯하다. 이 무리들이 변요한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며 알려지기 시작했고, ~~여러 남친짤들과~~ [[류준열]]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확 뜨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류준열]], [[지수(배우)|지수]], [[이동휘(배우)|이동휘]], [[김희찬(배우)|김희찬]], [[수호(EXO)|수호]], 이현욱, 권시현, 이기혁, 차영남, 김동환 ~~일명 연예계의 어벤져스~~ 등 연극, 단편영화, 독립영화에서 보이는 다수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변요한 패밀리'라고 부르는 것은 변요한이 가장 먼저 떠서이기도 하고 사진 등이 가장 많이 올라오기 때문인 듯 하다. 영화 '글로리데이'와 관련한 연예가중계 인터뷰에서 류준열은 BYH48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변요한의 집에서 자주 만나기 때문이라는 심플한 답변을 했다.[* 사실 이 별명은 자신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장난스럽게 부른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름의 기원(...)은 앞서 서술한 이유가 더 신빙성 있다. 물론 여러모로 변요한의 인맥과 관련된 모임이라는 점에서 류준열이 언급한 이유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변요한 패밀리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한 명씩 뜨고 있어 다음 차례는 누구일지 네티즌들이 눈에 불을 키고 있다~~
- 북유럽 신화 . . . . 7회 일치
일반적으로는 가장 체계적으로 남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의 [[에다]], [[사가]] 등의 문헌을 바탕으로 신화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 시대에 게르만 민족에 대한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와 함께 언급이 등장하며, 단편적인 기록이나 유럽의 민속에서 신화의 흔적을 찾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 민족에 널리 퍼져 있었으나,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게르만 전통 종교가 [[악마]] 숭배 등으로 몰려서 박해를 받자 점차 사라지게 된다.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뒤에는 언어, 문화적으로 흔적만 남았다.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근대 [[민족주의]]가 발흥하자, [[독일]], [[스웨덴]] 등의 게르만 계열 민족 국가에서는 민족 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서 북유럽 신화를 다시 연구하게 되었다.
북유럽신화는 크게 창세신화와 라그나로크로 대표되는 종말신화로 나누어진다. 창세신화와 라그나로크를 사이에 두고 신들이 벌였던 여러가지 행적이 일화적으로 신화로 남아 있다. 또 여러 인간 영웅들의 사적들도 신화로서 남아 있다.
* 에인헤야르 : 오딘이 모은 전사. 오딘은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지만, 어느 순간 때가 되었다 싶으면 [[발키리]]를 보내서 강제로 [[전사]]시켜 버리고 영혼을 끌고 오는데 이것이 에인헤야르이다. 발할라라는 [[무간지옥]]에서 매일매일 싸우다 죽고 싸우다 죽는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라그나로크가 오면 순삭당할 운명이지만 자신들은 싸움을 실컷 하고 저녁에 술과 고기와 여자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으며 '[[오늘만 산다|오늘만 사는]]' 가치관의 사람들.
마법도 등장하고 괴물도 많이 나오고, 대개 판타지와 분위기가 밀접해서 그런지 많은 작품에서 인용된다. 판타지 리소스로는 [[그리스 신화]]와 투톱.
- 블랙 클로버/121화 . . . . 7회 일치
* 노엘은 오빠의 뱀 형상의 마법이 초라해보일 정도로 거대한 마법 "해룡의 포효"를 발동, 오빠와 적 크리스탈을 한꺼번에 때려눕히고 승리를 쟁취한다.
* 때는 수년 전. [[알렉드라 산드라]]는 전쟁 중 부상을 입었다. 숨어있던 매복에 당한 그는 어느 동굴에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구조는 바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찰라. 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금색의 여명 단장 [[윌리엄 벤전스]]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나타난 그를 바라보며, 알렉드라는 일종의 경의를 느꼈다. 그 표현도 부족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본 그림을 떠올렸다. 그 안에 묘사된 신의 모습. 신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신은 벤전스였다. 벤전스에게 구원 받고, 그를 추앙하며 지내온 나날. 알렉드라는 벤전스에게 마법 외에도 불가사의한 힘이 있고 그 따스한 힘이 단원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금색의 여명은 바로 그런 형태의, 벤전스에게 선택받은 엘리트 귀족 집단. 마치 신앙 같은 믿음. 그는 벤전스와 자신의 믿음을 위해 싸워왔다. 그 믿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사람의 등장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의 입단. 볼품없는 하층민. 모든 단원을 평등하게 대해준 벤전스가 유일하게 특별취급하는 햇병아리.
* 솔리드 팀의 세 번째 멤버도 따라붙었다. 이 천연파마 머리의 마도사는 솔리드가 곱지 않게 보였다. 본래는 그와 솔리드가 적의 크리스탈을 파괴해야 했다. 그런데 솔리드가 멋대로 이탈하면서 그 작전이 무산됐다. 천연파마가 따라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지적했다. 물론 솔리드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천연파마는 어쩔 수 없다치고 여기서는 자신도 가세해 빨리 노엘을 처치하려고 들었다. 전술적으로 타당한 판단이었다. 자기 자신이 함정에 빠진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여동생은 더이사 사양하지 않았다. 해룡의 포효가 그의 보잘것 없는 물뱀과, 못난 오빠와 적의 크리스탈을 때려눕혔다. 두 번 다시 반항하지 못할 정도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미모사 버밀리온]]이 그녀의 마땅한 승리에 환호했다. P팀의 승리 확정.
- 블랙 클로버/122화 . . . . 7회 일치
* [[알렉드라 산드라]]와 [[솔리드 실버]]는 패배에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에게 "엘리트는 막다른 길에 약하다"는 독설을 듣는다.
* 로얄나이트 선발시험 1회전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알렉드라 산드라]]와 [[솔리드 실버]]는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에게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솔리드 쪽은 문자 그대로 몸과 마음 양쪽이 격파, 진행요원들에게 회수 돼 치료 받는 중이다. 여전히 노엘에게 질리가 없다고 중얼거리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에 비하면 알렉드라는 몸쪽은 무사했지만 정신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는 고작 하층민에게 완패했다. 단지 정령 마법에 선택받은 운좋은 애송이. 그러나 그 운좋은 애송이가 정령 마법도 쓰지 않은 채 알렉드라의 최강마법을 가볍게 분쇄했고 [[윌리엄 벤전스]]의 꿈을 이뤄준다는 그의 바람까지 꼴사나운 것으로 전락시켰다. 패배한 그 자리에서 떠나지 조차 못하는 알렉드라.
* 2회전 1시합. 아스타, [[미모사 버밀리온]], 잭스의 B팀과 [[네르슈 버밀리온]], [[매그너 스윙]], [[솔 마론]]의 C팀의 격돌이다. 1회전에서 단연 돋보였던 네르슈의 기세가 한도 끝도 없이 오르고 있었다. 무대가 바뀌어도 자신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했다. 뒤따르는 매그너와 솔은 이젠 체념한 분위기. 그는 덤으로 오물의 말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스타의 말로. 각오하라는 엄포에 아스타는 자기는 꽤 끈덕질거라고 응수했다. 미모사는 아스타의 역성을 들면서 못난 오래비야 말로 각오해야 할 거라고 대꾸했다. 파탄난 남매 관계에 비하면 아스타와 매그너의 선후배 관계는 훈훈한 축이었다. 매그너가 서로 봐주기 없기를 선언하자 아스타가 기꺼이 그러겠노라 답했다.
* 이번에야 말로 2회전 1시합 개시. 마법제의 선언이 떨어졌다. 국왕은 자신에게 수치를 준 하층민인 유노와 아스타가 모두 2회전에 진출해 심기가 불편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스테이지의 동쪽이 C팀, 서쪽이 B팀이었다. C팀은 시작부터 네르슈가 강수를 두었다. 자신을 혐오하는 여동생이 세속에 물들어 자기 자신을 잃은 것이라 애석해하며 "그녀가 싸울 틈도 없이 해방"시켜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네르슈의 벚꽃 마법 "마앵의 맹화취설"이 스테이지를 뒤덮는다. 이제 이 전장은 그가 장악한 것이나 다름 없다.
반마법 모드였다. 미모사와 잭스가 전혀 상정하지 못했던 아스타의 힘. 그는 전보다 이 상태의 힘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7회 일치
* 어린시절 [[핀랄 룰러케이트]]는 부모님의 냉대와 매도를 당하며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동생 [[랜길스 보드]]는 형이 경쟁상대 조차 못 된다고 여겼다.
* [[핀랄 룰러케이트]]의 유년시절은 부모님의 매도로 가득했다. 어머니에게 핀랄은 자식 조차 아니었다. 그는 동생 [[랜길스 보드]]와 비교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 정도였다. 공부든 운동이든 랜길스가 월등한 것에 만족하며 핀랄은 자기 자식 조차 아니라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자식은 오직 랜길스 뿐. 그런 말을 핀랄의 면전에서 하는 말이었다.
아버지라고 딱히 다르진 않았다. 그는 가문의 위신을 지키려고 안달이 난 사람이었다. 마법 수련이란 명목으로 핀랄을 몰아붙였고 어머니처럼 랜길스와 비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나 "랜길스의 공격적인 공간마법을 보고 배워라"고 말하며 핀랄이 무슨 마법을 쓰든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아버지에게 핀랄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존재였다.
랜길스는 당연히 자기 약혼녀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이미 형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보드가의 차기 당주는 당연히 자신이고 저 여자도 내 약혼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피네스가 싫었다. 재미없어 보이는 여자, 그게 다였다. 피네스와 만남을 운명적이라 여긴건 핀랄 쪽이었다.
* 이제 작전 2단계. [[하몬 카세우스]]가 시합장 전역에 유리마법 "벨 디텍션"을 펼쳤다. 시합장 구석구석에 거울이 깔리고 거기 맺힌 상들이 반사를 거듭해 하몬에게까지 전해졌다. 시합장을 손바닥 보듯 할 수 있는 탐색 마법. G팀의 세 번째 멤버 [[프라길 토르멘타]]가 탑 안에 숨어있는게 보였다. 크리스탈을 지키고 있었다. 핀랄이 공간마법으로 탑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핀랄이 랜길스의 공격을 막는 동안 레오폴드와 하몬이 공격, 이것이 작전이다. 지금까지는 매우 순조롭다. 하지만 레오폴드와 하몬이 탑 안으로 들이닥치는 순간 함정이 발동했다. 프라길 또한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는 성미는 아니었다. 그녀는 방 전체에 눈 마법 "환설의 정원"을 발동시켰다. 일종의 환각마법으로 대상의 감각을 조종해 강제적으로 잠들게 하는 마법이다. 그녀는 이 마법의 사정거리 안에서 자신을 공격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장담했다.
* 하몬은 그 장담대로 일찌감치 쓰러졌다. 하지만 레오폴드는 조금 더 질겼다. 그는 마나스킨을 펼쳐 저항하는데다 그 와중에도 불꽃마법 "나선염"으로 반격을 가했다. 프라길이 크리스탈과 함께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크리스탈에 손상이 갔다. 보통 이상으로 날카로운 감각. 프라길은 오래는 못 버티겠다고 생각했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7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두 번에 걸친 블랙 상태 발동과 부상 덕에 [[미모사 버밀리온]]의 백업을 감안해도 오래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랜길스 보드]]의 맹공이 끝날 줄을 모르고 크리스탈도 점점 파괴되면서 패색이 짙어진다. 항상 아스타를 신뢰하던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우려를 금하지 못한다. 아스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 번째 블랙 모드를 쓰려했다. 원래 하루에 발동할 수 있는 한계는 두 번. 세 번째는 유노와 결승전에서 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마저도 한숨 돌릴 타이밍이 필요해 지금처럼 숨도 쉴 수없는 상황에선 도저히 기회가 없다. 그때 아스타는 다름 아닌 [[잭스 류그너]]에게 도움을 청하며 발동 자세로 들어간다. 아스타의 요청이라면 들은 척도 안 하던 잭스였으나 "저 자식(랜길스)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해준다"며 아스타의 앞을 막아준다. 하지만 그가 도와준다는걸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아스타의 태도를 보며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입맛이 쓰다.
* 조라는 이름을 버리고 횡포를 부리는 마법기사들을 찾아가 응징하고 다녔다. 나라를 지키는 마법기사란 건 말 뿐이었다. 마법기사는 거의 귀족이었고 귀족들은 지켜야할 국민들을 계급이 낮다며 학대하고 착취했다. 그가 이름을 빼앗은 "잭스 류그너"도 겉으론 "여빙의 성자"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끔찍한 인간이었다. 잭스는 "포에"라는 마을에서 하층민 소녀를 유괴한 뒤 가족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할머니가 성도까지 찾아와 돌려달라 애원하는데도 오히려 할머니까지 죽이려 들었다. 조라는 그를 그를 쓰러뜨리고 이름을 빼앗았다. 그가 비리를 일삼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랜길스의 폭거에 분노하는건 딱 한 가지 이유였다. 그들은 아버지가 추구했던 진정한 마법기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12세. 진짜 이름은 "조라 이데아레". 다만 자신은 그 정체성을 버린 듯 하다. 지금 모습은 아버지가 어릴 적 만들어준 히어로 인형 "슈퍼 마도사 조라"에게서 따왔다. "입은 거칠지만 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란 설정이다. 조라가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는걸 걱정한 아버지가 "꼭 이렇게 될 필욘 없지만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봐라"는 격려의 의미에서 만들어줬다. 실패가 많지만 항상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으면서 크게 낙담한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의 동료라고 믿었던 마법기사들이 실은 아버지를 매도하고 아니꼬와하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봉사하던 아버지를 팀킬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자 정신줄을 놔버린다. 이후 슈퍼 마도사 조라의 모습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다녔다. 지금 이름인 잭스 류그너도 실제론 인간말종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박살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 로열 나이츠 시험에 난입한 것도 마법기사들을 박살내려주려는 의도였던 듯. 아버지가 동경하고 있었던 마법기사의 이미지를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으며 마법기사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아버지의 이상에 맞지 않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해서다.
조라에게 이름을 빼앗긴 진짜 잭스 류그너. 자줏빛 범고래의 부단장으로 겉으로는 "여빙의 성자"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면에선 부녀자를 납치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악당이었다. 처음 등장했을 땐 인망과 명성이 자자하다는 설명에 로열 나이츠 시험장에 가던 길에 우연히 잭스랑 마주쳐서 박살난 것처럼 보여서 불쌍한 놈 취급이었지만 진상이 공개되자 인간쓰레기가 됐다. 조에라는 마을에서 어떤 소녀를 납치해놓고 가족들이 돌려달라고 애원해도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왕도까지 찾아와 매달리자 종자가 "기사님이 피곤해하신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돌아가라고 윽박을 지르고 잭스 귀찮아하며 아예 죽이려 들었다. 잭스한테 재기불능으로 박살나서 참 다행.
조라 이데아레의 아버지. 이름은 "자라 이데아레". 사용하는 마법은 조라와 비슷한 함정계통이었던 걸로 보인다. 이걸로 곧잘 아들에게 장난을 걸곤 했는데 기본적으론 상냥하고 명랑한 아버지였던 듯. 마법기사를 나라를 지키는 영웅들이라고 생각해서 자신도 마법기사를 목표로 노력했다. 입단에 여러번 탈락했으나 결국 성공, 마법기사가 되어 전장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전사하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귀족인 동료들이 그를 아니꼽게 여겨 살해한 것이었다. 자라는 남을 돕는걸 중요하게 여겨 전장에서도 민간인을 구조하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이게 귀족들 성미를 자극했던 듯. 애초에 하층민이 마법기사가 된 것 자체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다.
역대 가장 쓰레기같은 마법기사단 인증. 이전에도 단장이 비리를 저지르다 마법제 차원에서 조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부단장인 잭스 류그너가 인덕으로 유명하다는 둥의 얘기가 나와서 이미지 쇄신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에피에서 하층민이 동료가 됐다는 것만으로 팀킬을 자행하질 않나 그 성자라던 잭스는 인간말종이질 않나 최악의 기사단으로 전락했다. 사실 하층민 동료를 차별하는 묘사는 마법기사들 전반에 흔했지만 대놓고 팀킬을 해버리는 예는 이번이 처음. 금색의 여명이나 은익의 참수리 조차 선민의식은 쩔어도 아스타 등이 대활약하자 생각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쪽은 만회의 여지가 없다.
- 블랙 클로버/66화 . . . . 7회 일치
* 고슈는 백야의 마안의 수하와 싸우다 패하고 쫓기고 있다.
* 그때 난데없이 넝쿨이 휘감겨 오며 고슈와 그레이를 묶어 버린다.
* 적의 넝쿨 마법이 풀리면서 고슈와 그레이도 풀려나는데, 챠미는 아직도 진짜 고기가 있는줄 알고 있다가 마법이 풀리면서 대실망한다.
* 챠미와 고슈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레이의 원래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한다.
* 챠미는 나름대로 챙겨주는데 알고보니 그레이는 24살로 연상. 참고로 고슈와 챠미는 동갑이다.
* 그레이와 고슈의 플래그?
* 리히트가 고슈를 알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고슈와 백야의 마안이 관련이 있을 걸로 추정되었으나 이번에 나온 적들은 고슈를 알아보지 못한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7회 일치
아스타와 키리토를 구하는 카호노와 노엘 실버
* 아스타와 키아토를 쓰러뜨린 절망의 베토는 도착한 노엘 실버와 카호노를 바라보며 "조금은 즐겁게 해봐라"며 도발한다.
* 카호노와 키아토는 지상으로 간다는 꿈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낸다.
* 베토는 이들의 마법을 장난수준이라 격하하며 "유대라면 우리에게도 있다. 너희가 부순 피의 유대와 황금의 꿈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뱉는다.
* 마력이 해방된 노엘이라면 치유마법으로 키아토와 카호노를 회복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블랙 클로버/93화 . . . . 7회 일치
* [[증오의 파나]]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의 접근을 맹렬히 거부한다.
* [[판젤 크루거]]와 검은 폭우의 동료들은 두 사람의 악전고투를 믿고 지켜본다.
* 자폭 모드로 들어간 [[증오의 파나]]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의 접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폭 주문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파나를 둘러싼 샐러맨더의 마력은 파염구를 토해내며 두 사람의 접근을 방해한다. 아스타와 마르스를 각자 화염구를 베어내며 돌진한다. [[판젤 크루거]]는 저정도 위력의 공격을 능숙하게 베어내는 것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과연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워한다.
* 마르스는 아스타를 보며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우기 전후로 많은 강자들을 상대했지만 이토록 포기를 모르는 인물은 없었다. 또한 신기한 인물이기도 한데 적인지 아군인지 불분명한 상대 조차 설득하고 도우려 하는 인물은 클로버 왕국에서도 아스타 정도였다. 끝없는 이타심을 가지고 그걸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아스타야 말로 "진정한 기사"에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 타들어가는 것과 회복되는 것을 반복하며 마침내 한 발 앞까지 다가온 마르스와 아스타. 마르스는 파나를 향해 손을 뻗지만 그 순간 자폭 마법이 완성된다.
* 그러나 아직도 끝난게 아니다. 파나의 끝모를 적의처럼 불꽃이 다시 타오른다. 아스타와 마르스를 덮치는 열기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시 자폭마법이 작동할 조짐을 보인다. 그때, 이번엔 마르스가 달려나간다.
- 블랙 클로버/98화 . . . . 7회 일치
* 아스타는 라드로스에게 다가간다. [[노엘 실버]]는 방금 전 보여줬던 강함, 전투방식이 도저히 평소 아스타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여긴다. 현재의 모습도 마치 악마와 같은게, 폭주해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라드로스는 다가오는 아스타에게 각오는 됐다며 죽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네가 상처입혔던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아!
>몸을 치료하고 같이 도와!
*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까마귀 떼가 몰려온다. 까마귀들은 곧 뭉쳐서 형상을 이루며 지상으로 내려온다. [[마녀왕]] 강림. 무슨 꿍꿍이인지 마녀왕이 직접 아스타 일행을 맞이하러 왔다. 이때 [[바네사 에노테이커]]도 정신을 차리지만 여왕이 있는걸 보고 심상치 않은 예감을 받는다.
아스타는 바네사와 달리 적대감이 없어서인지 마녀왕에게 "팔은 치료해준 은혜를 갚았다"며 자랑스래 이야기한다. 마녀왕도 답지 않게 "완벽하진 않지만 훌륭하게 일해주었다"며 치하하는 말을 한다. 분위기가 좋게 풀리는 것 같자 아스타는 굽신 거리며 동료들과 자신을 다시 한 번 치료해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한다.
바네사와 노엘이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구속 당한 뒤로 방법이 없다. 여왕은 아스타를 지배하고 상처를 치료해준다. 노엘은 고등 마법 세 가지를 아무렇지 않게 동시에 사용하는 여왕의 힘에 놀란다.
- 서동민 . . . . 7회 일치
|소속 구단 = SK 와이번스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6라운드]]([[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2014년 ~ 현재)
'''서동민'''(徐東悶, [[1994년]] [[3월 7일]] ~ )은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투수]]이다.
==[[SK 와이번스]] 시절==
{{SK 와이번스 명단}}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달성 서씨]]
- 소냐(가수) . . . . 7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성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주한미군]]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 [[네가 가라 하와이]] || → ||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 → ||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 ||
2라운드에서는 [[마야]]의 [[진달래꽃]]을 선곡해 1라운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 [[아이 러브 커피(복면가왕)|아이 러브 커피]] 역시 가볍게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3라운드에서는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를 선곡해 [[상남자 터프가이]]를 이긴 뒤, [[네가 가라 하와이]]를 꺾고 새 가왕이 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하복에서 춘추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딸랑딸랑 종달새|다른]]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역대]] 가왕들처럼 옷을 갈아입으면 그 회에 가왕 자리를 넘겨주는 징크스에 걸렸다. 이 징크스는 연필 이전에도 있었으며 [[신명난다 에헤라디오|어느 가왕]]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 3조 엔트리인 [[딸랑딸랑 종달새]]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60표 이상 득표를 한 번 씩 했으며, 이들 모두 [[황금락카 두통썼네|4번 엔트리에서 2연승한 여자]] [[네가 가라 하와이|가수]]들을 이긴 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4연승을 한]]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나는 가수다]] 출신에게 완패했다는 점이며 새 가왕 모두 예명을 사용했다.
- 손예진 . . . . 7회 일치
손예진은 다수의 로맨스 장르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였고, 주요 출연작으로는 영화 《[[연애소설 (영화)|연애소설]]》(2002년), 《[[클래식 (영화)|클래식]]》(2003년),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년), 《[[외출 (영화)|외출]]》(2005년),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2008년), 《[[오싹한 연애]]》(2011년),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년), 《[[덕혜옹주 (영화)|덕혜옹주]]》(2016년)와 《[[맛있는 청혼]]》(2001년), 《[[여름향기]]》(2003년), 《[[연애시대]]》(2006년), 《[[개인의 취향]]》(2010년), 《[[상어 (드라마)|상어]]》(2013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년), 《[[협상 (영화)|협상]]》(2018년) 등이 있다.<ref>{{웹 인용|title=10LINE: Actress Son Ye-jin|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51413121442059|work=10Asia|date=May 14, 2010}}</ref>
손예진은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영화 《[[비밀 (2000년 영화)|비밀]]》에서 홍미조 역을 맡아 출연(목소리 출연)한 후, 오디션을 통해 이듬 해 2001년에 방영 된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여주인공 장희애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885703|title=Young, Charming and Innocent ? What More Could You Want?|date=12 March 2001|work=Korea JoongAng Daily}}</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00807 '방송'손예진 MBC 최고 루키 선정], 《한국일보》. 2001년 9월 25일 작성.</ref> 첫 드라마 작품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특유의 청순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이어 《[[선희 진희]]》에 출연하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손예진은 픽션사극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되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2002)는 233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클래식 (영화)|클래식]]》(2003)은 154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회자되며, 손예진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인해 단숨에 청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f>{{웹 인용|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606101410484008937_2|title=Korean stars dubbed ‘Nation’s first love’|website=The Korea Herald|date=10 June 2016}}</ref> 이 작품들을 통해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제4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396132|출판사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저자 =김병규 |날짜 = 2003-06-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3년 TV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여주인공 심혜원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한류 (문화)|한류 문화]]의 주역인 [[윤석호 (연출가)|윤석호]] PD의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잇는 계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손예진은 2006년 노자와 히사시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TV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수영강사 유은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대본 보고 이런 게 사랑이라 생각했죠"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40659|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백나리 |날짜 = 2006-03-09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드라마는 ‘이혼후 다시 시작하는 연애’라는 참신한 소재로 호평을 받았으며, 20대 여배우가 선뜻 마음먹기 힘든 이혼녀를 연기, 더 이상 예쁜 얼굴만 무기가 되는 여배우가 아님을 인정 받았고, 이혼 했지만 묘하게 남아있는 미련, 헤어진 뒤 비로소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럽고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4241121121116|제목=손예진, "'연애시대'통해 현실적사랑 생각하게됐다" |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4-24|확인날짜 =2017-09-09}}</ref> [[SBS 연기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제4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 |url=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7042514301218841&type=1&outlink=1|제목='연애시대' 손예진, 백상 TV부문 최우수여자연기상 |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7-04-25|확인날짜 =2017-09-09}}</ref> 2007년 손예진은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주인공 여우비의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성인 목소리 나올까봐 걱정했죠"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1910455|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홍성록|날짜 = 2006-12-22|확인날짜 =2017-09-09}}</ref>
2008년, 손예진은 TV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드라마)|스포트라이트]]》로 2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8/05/201_24097.html "Spotlight Shows Lives of Reporters"]. ''The Korea Times''. 13 May 2008.</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as a Criminal Kingpin|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741|work=Korean Film Council|date=26 July 2007}}</ref> 같은 해 영화 《[[무방비도시 (2008년 영화)|무방비도시]]》에서 소매치기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리더 백장미 역을 연기했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섹시함 유지, 가장 힘들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0088606|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김경민 |날짜 = 2008-01-04 |확인날짜 =2017-09-16 }}</ref><ref>{{웹 인용|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02223903/http://twitchfilm.com/2006/09/alone-in-love-review.html|title=Alone in Love Review|성=|이름=|date=1 September 2006|work=Twitch Film|출판사=|확인날짜=2018-04-12}}</ref><ref>{{웹 인용|title=Actress Son Ye-jin's Movie Picks|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2317340286147|work=10Asia|date=23 December 2011}}</ref> 박현욱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조건으로 달고 결혼한 후에도 다른 남자를 사랑하길 멈추지 않는 주인아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SON Ye-jin puts a new spin on marriage|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914|work=Korean Film Council|date=11 February 2008}}</ref> 그녀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제2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1210837541003|제목=눈물의 손예진 유일무이 3관왕 석권 기염, 청룡 여우주연상-인기스타상-베스트커플상 |출판사=뉴스엔|날짜=2008-11-21}}</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제목=손예진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출판사=한국일보|날짜=2008-12-11|확인날짜=2014-02-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24030924/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보존날짜=2008-12-24|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411169|제목=김윤석.손예진, 영화학도가 뽑은 최고 배우|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8-12-15}}</ref><ref>{{뉴스 인용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022720042800689&type=1&outlink=1|제목=손예진, '아내가 결혼했다'로 여우주연상 3연패 |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09-02-27}}</ref> 2009년,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백야행 (영화)|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욕망으로 가득찬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 유미호 역을 연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차기작 ‘백야행’서 고수와 멜로호흡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1996689|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남안우 |날짜 = 2008-12-15 |확인날짜 =2017-09-16 }}</ref><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9/11/141_53971.html "Son Ye-jin, Ko Soo to Bring Mystery Romance"]. ''The Korea Times''. 21 October 21 2009.</ref>
2013년, 손예진은 5월부터 7월까지 방영한 TV 드라마 《[[상어 (드라마)|상어]]》로 3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또한 10월 개봉한 스릴러 영화 《[[공범 (영화)|공범]]》에서 정다은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유괴살인사건 공소시효 15일 전,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사랑하는 아빠를 떠올리게 되면서 잔인한 의심을 갖게 되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본 영화에서 공동 주연을 맡게 된 [[김갑수 (배우)|김갑수]]와는 ‘연애시대’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며, 김갑수의 부녀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스투매거진] 공범, 손예진 당신을 스릴러의 여왕으로 임명합니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140577|출판사 =아시아경제 |저자 =장영준 |날짜 = 2013-11-28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작품으로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020088|제목=손예진, '해적'·'공범' 2관왕 후보가 의미하는 것|출판사=OSEN|날짜=2014-11-29}}</ref> 그리고 손예진은 2014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해적단 대단주 여월 억을 연기했다. 영화는 조선의 옥새를 삼켜버린 귀신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산적 장사정이 여자 해적 여월과 함께 바다를 누비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해적' 손예진 "女해적 여월, '으리으리'한 캐릭터"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84846|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4-07-02 |확인날짜 =2017-09-16 }}</ref> 86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으며, 역대 출연작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수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해적' 손예진, 알고보면 변신의 여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42336|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보란 |날짜 = 2014-08-25 |확인날짜 =2017-09-16 }}</ref> 작품의 성공으로 3000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3000만 배우' 손예진이 충무로서 갖는 의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532716|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4-08-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이 작품으로 제51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014441|제목='대종상' 손예진, 연기·흥행 갖춘 유일무이 女우 탄생|출판사=OSEN|날짜=2014-11-22}}</ref> 2015년에는 한중합작 코미디 액션 영화 《[[나쁜놈은 죽는다]]》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나쁜 놈은 죽는다' 손예진, 카리스마+살벌한 분위기 풍기는 액션배우로 변신 |url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70216.99002115403|출판사 =국제신문 |저자 =디지털뉴스부 |날짜 = 2017-02-16 |확인날짜 =2017-09-16 }}</ref>
2017년 5월, 손예진은 스릴러 영화 《[[협상 (영화)|협상]]》에 캐스팅 되었다. 영화는 서울지방 경찰청 위기협상팀의 유능한 협상가가 상사를 납치한 인질범과 대치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위기협상팀 경위 하채윤 역을 연기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스타와치]덕혜옹주→경찰, 제복 입은 손예진에 거는 기대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706231109536710|출판사 =뉴스엔 |저자 =배효주 |날짜 = 2017-06-23 |확인날짜 =2017-09-16 }}</ref>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동명의 영화]]를 기반으로 한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년 영화)|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캐스팅 되었다. 영화는 1년 후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믿기 힘든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내가 기억을 잃은 채 남편과 아들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2018년 개봉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취중토크③] 손예진 "치열했던 20대 보다 30대가 더 좋아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2769 |출판사 =일간스포츠 |저자 =김연지 |날짜 =2017-06-16 |확인날짜 =2017-09-1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70917033455/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2769# |보존날짜 =2017-09-17 |깨진링크 =예 }}</ref>
- 손지현(배우) . . . . 7회 일치
2017년 12월 어머니의 성인 손씨를 따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687740|손지현이라는 예명을 쓰기로 했다.]] 법적으로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지(개명) 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성도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데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본명은 남지현, 활동명을 손지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며 본인도 [[대군 - 사랑을 그리다|대군]] 종영 후 인터뷰에서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805140943490310|모친의 성씨를 갖고 와서 예명으로 쓰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성씨를 바꿔서 예명을 쓰는 케이스는 아니지만, 배우 [[조진웅]]은 아버지의 성함을 활동명으로 쓰고 있다.] 걸그룹 활동과 배우 활동을 병행하던 시절과 달리, 전업 배우의 길을 걷는데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2014258|예전에 관련 기사가 나온 것도 있고 그런지]] 5세 아래의 동명이인인 [[남지현]]의 존재가 활동명을 바꾼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MBC LIFE <그녀와 자동차> (2012)
* 눈웃음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주간 아이돌에서도 도니와 코니가 애교 3종 세트를 시킬 때 이 눈웃음을 선보였다. 물론 도니와 코니는 그 눈웃음을 보자마자 함박웃음. ~~현아 : 원래 생긴 게 이런 건 어떡해야 합니까?~~ ~~그렇지만 결국 애교B종결자는 전지윤이라는 게 함정...~~
* 컴백곡 '미쳐'에서도 후반부 킬링파트를 잡았다. 다른 멤버들은 무대 뒤로 물러서고, 지현 혼자 집중 받는다. 활동 후반부는 멤버들이 모두 나와서 같이 춘다. 하지만 아직도 어색함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무대로 보아 라이브의 문제는 개선됐다는 게 증명됐으나...
* 포미닛이 해체할 때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Hate의 가사의 일부를 올린 사진이 있었는데, 이때 솔로 활동으로 홀로 [[큐브엔터테인먼트|큐브]]와 재계약한 [[현아(가수)|현아]]와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이때 지현 이외에 나머지 3명도 전부 [[현아(가수)|현아]]를 언팔하였다. 그 덕분에 재계약 건으로 사이가 나빠진 게 사실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아니다.]
- 송주훈 . . . . 7회 일치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된 송주훈은 재활을 거쳐 2016년부터 주전 센터백으로 뛰게 되었으며, 시즌이 개막한 후 올림픽 직전까지 모든 경기 (19경기) 풀 타임을 소화하며 1골을 넣는 등 핵심 자원으로 거듭났고, 2016년 [[J2리그]] 선수들 중 공중볼 점유율 1위 선수로 뽑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출국을 앞두고 FC 기후와 가졌던 7월 16일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의 경합 도중 새끼발가락 골절상[* 발가락이 완전히 부러져서 수술이 급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송주훈 본인도 올림픽 직전에 당한 부상이라 충격이 상당했다고.]을 입어 다시 재활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유럽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김영권]]의 대체 선수로 송주훈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이적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8&aid=0002571906|#]] 광저우에서 [[김형일(축구)|김형일]]을 대신 영입함에 따라 광저우 이적은 무산되었고, 결국 2017년 임대가 만료되어 본래 팀인 니가타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819043605956304899|#]][* 그러나 2017년 슈퍼 리그의 외국인 쿼터가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각 구단들은 더욱 고연봉인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벤치워머]]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중국 이적이 무산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 실제로 송주훈 대신 이적한 김형일 역시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방출되었고, 반대로 송주훈은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있으니 정말로 일본에 남은 것이 이득이 된 셈이다.]
니가타에서의, 실질적인 데뷔 시즌. 니가타에서도 송주훈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는지 [[등번호]]로 팀의 핵심 [[센터백]]들이 주로 받는 4번을 받았으며, 시즌 초에는 부상 완치에 집중하느라 출장하지 못하다가 완치된 후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자신이 상위 리그에서도 실력이 통하는 선수임을 보여주었다. 다만 본인의 활약과는 별개로 소속팀인 니가타가 시즌 내내 꼴찌를 차지하다가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31795869929652224|강등이 확정되면서]] [[J1리그]] 경험은 1년만에 끝났고, 이전 소속팀이었던 미토와 대표팀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다음 시즌은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니가타와 재계약을 맺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51257265041887232?s=17|#]] [[아시아 쿼터제]] 폐지로 인해 이적해봤자 [[벤치워머]] 신세일 것이 뻔한 [[중국 슈퍼 리그]]로 가느니 일본에서 주전으로 뛰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한편 성인 대표팀 경험은 없었는데, 前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백]]으로 [[김기희]], [[김영권]], [[김주영(1988)|김주영]], [[장현수]] 등의 [[중국 슈퍼 리그]] 소속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인지 [[J리그]]에서 뛰는 송주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같이 J리그에서 뛰는 센터백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이 몇 차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긴 했으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슈틸리케가 떠난 후에 새로 출범한 [[신태용호]] 체제에서 커리어 최초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http://m.sportsseoul.com/news/read/554778?refer=facebook|#]] 이후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U-23 대표팀에서도 중용했던 송주훈이 올림픽 직전의 부상으로 안타깝게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 겸, 성인 대표팀에서의 기량도 확인해볼 목적으로 이번 대표팀에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KoreaFootballTeam/photos/pcb.10155941753318836/10155941751838836/?type=3&theater|#]] 그리고 10월 1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대패를 당하게 되는데 첫번째 실점이 되는 수비에 기여하는둥 데뷔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수비 실력으로 신태용 감독 눈 밖에 나게 되고 다음번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하게 된다.
* U-23 대표팀에서 함께 활동 중인 [[박용우(축구선수)|박용우]] 선수와는 [[건국대학교]] 동기이다. 다만 서로 부상당했던 시기가 달라 송주훈이 부상에서 복귀하면 박용우가 없고, 박용우가 부상에서 복귀하면 송주훈이 없는 기이한 (...) 로테이션과 더불어, 송주훈은 대학 생활을 일찍 마치고 J리그로 진출했기 때문에 정작 친해진 것은 대표팀에서 다시 만난 이후라고 한다.
- 스위스 방공호 . . . . 7회 일치
[[스위스]]는 예전부터 많은 방공호, 벙커가 존재했지만, 흔히 인터넷에서 스위스 방공호라고 하면 [[스위스]]가 [[핵전쟁]]에 대비하여 건설한 [[방공호]]들을 말한다. 약 30만 개의 방공호와 5100개의 공용 방공호가 건설되어 있다.
핵전쟁에 대비한 시설이므로, 대규모 방공호에는 방사능 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시설, 취사 시설, 대기-식수 정화 장치, 숙박용 침대, 그 밖에 침대와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갖추어져 있다. 좀 특이한 시설로는 비상시에 화장실 대용으로 쓰기 위한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양동이, 그리고 전기와 석유의 공급이 끊겼을 때 교통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전거'''까지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08/2007080800710.html 참조]]
2010년대의 기록에 따르면, 스위스는 매년 1억 5천만 달러를 방공호의 유지와 관리에 지출하고 있다. 전국 방공호의 총 건설비는 1백억 달러로 추정되며, 주택용 방공호의 건설비는 개당 평균 9400달러이다.
벙커에는 5개의 보안실이 갖추어져 있으며, 센터에 입장하려면 보안실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경비원은 페퍼 스프레이와 경비봉을 사용하는데, 총기는 서버에 충격을 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언듯 보면 [[폴아웃]]에 나오는 [[Vault]]와 매우 비슷한 느낌.
스위스와 비슷한 사례로 [[스웨덴]]은 전 인구의 80%, [[핀란드]]는 전 인구의 70%를 대피시킬 수 있는 핵방공호를 가지고 있다.
- 식극의 소마/181화 . . . . 7회 일치
* 소마는 정신없어하며 왜 이제와서 쿠가가 나타난 건지 영문을 몰라한다.
* 아무튼 진짜로 도와주겠다고 하자 고맙게 받겠다고 하는데, 갑자기 쿠가가 조건을 건다.
* 파, 쑥갓, 고추와 함께 끓여 곰고기 냄새를 억제한 요리.
* 냄새를 빼는 용도로 된장을 사용했는데 이제 적중한 것. 쿠가는 향신료는 물론 다른 재료와의 조합도 신경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 그는 하야마가 선발시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성장했다 평하며 지금까지의 소마라면 상대 조차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 지금까지 쭉 반역자팀이 반칙을 당했기 때문인지, 이번엔 소마의 반칙타임. 흡사 오픈북 시험 치는데 작년에 과탑했던 선배가 와서 도와주는 격이다. --이놈의 학교는 정상적으로는 시험 진행이 안 되나--
- 식극의 소마/188화 . . . . 7회 일치
* 하야마 아키라와 유키히라 소마의 식극이 결정된 그날.
* "너와의 재대결이 설마 이런 느낌으로 올 줄이야."
* 대머리 군단은 하야마 또한 냄새와 맛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을 텐데, 여유만만이라는 말을 하고 쿠가 테루노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 실라와 베르타는 먹기도 전에 향기만으로 매혹된다.
* 마침내 시식에 들어가는데 그 맛에 압도당해 실라와 베르타는 분석하는 것도 잠시 잊는다.
* 쿠가는 말은 잘한다며 그와 같은 초후각과 요리감각 없이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아니라고 극찬한다.
* 하야마는 파상공세로 소마를 밀어붙이고 있는 격이지만 그 와중에도 소마 일행과 즐거웠던 한때를 추억한다.
- 식극의 소마/212화 . . . . 7회 일치
* 먼저 심사를 받는건 [[키노쿠니 네네]]. 적과 아군의 모든 이목이 그녀의 한 그릇으로 모인다. 갇혀있는 반역자들 조차 너무 맛있게 보인다고 혀를 내두르는 소바. [[샤름]]은 면의 윤기와 결을 "우아한 여성의 살결"에 비유하며 [[이스트와르]]는 에도소바의 가계 답게 기술을 멋지게 계승했다고 평한다.
* 심사의원들은 감탄을 거듭한 첫 한 입을 마치고 한 입 더 소바를 먹어야 겠다며 고개를 숙이는데... 소바가 사라져버렸다? 고작 한 젓가락 씩 먹은 음식은 누가 치워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샤름과 이스트와르가 "누가 음식을 가져갔냐"고 흥분한다. 하지만 네네는 "벌써 다 드셨는데요?"라며 심사의원들을 진정시키고 소바를 리필해준다.
* 허둥대는 두 사람과 달리 안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차근차근 이 음식의 비밀에 대해서 밝혀낸다. 우선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벚꽃 새우 카키아게. 내용을 다 외우고 있단 말이 허풍이 아닌지, 그 많은 교전 더미에서 망설임없이 한 권을 골라낸다. 그리고 서슴없이 펼친 페이지에는 지금 필요한 정보가 정확히 기록돼 있다. 유명한 식당 "무라마치 스나바"는 보리 새우 카키아게로 명성을 떨친 바가 있다. 키노쿠니는 여기서 강한 맛의 보리새우 대신 섬세한 맛의 벚꽃 새우로 대체해 자신이 만든 섬세한 맛의 9할 소바와 궁합을 맞췄다. 이 조합은 서로의 시너지를 이끌어내서 다 먹을 때까지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 파괴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맛에 취해서 언제 다 먹었는지도 모르게 만들 정도. [[요시노 유키]]는 그 위력이 차라리 무서울 정도라고 경악한다.
네네는 간단한 일인 양 말하지만 [[나키리 아리스]]와 [[하야마 아키라]]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녀의 조리 기법은 섬세하고 연한 맛의 재료를 중첩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하되 특정한 한 가지만 두드러지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맛을 살리는 밸런스를 맞춘다는건 엄청난 실력자라도 애를 먹는 일. 이 음식은 네네 본인이 쌓아올린 연마의 "시간"과 그녀가 계승한 에도 소바의 "전통"이 융합되어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스트와르는 또다시 리필을 청하며 네네의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 눈깜짝할 새에 먹어버리는 감각은 마치 맛을 통해 타임슬립을 경험하는 듯한 감각. 이 소바는 카케소바나 야마카케 소바가 아니라, "시간을 달리는 소바"라는 리액션을 도출한다.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나키리 에리나]]와 [[타도코로 메구미]]의 투샷. 에리나가 심각한 분위기를 잡지만 결국 세탁물 취급 표시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 에리나는 고작 이런 걸로 "어른에 한 발짝 다가간" 기분을 만끽한다. 초딩만도 못해.
- 애니 일본어 . . . . 7회 일치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애니로 일본어를 배우고 그대로 쓰면 일본의 실생활에서 격렬한 위화감을 줄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묘사하는 상황은 대개 극단적인 전투나 비일상적인 상황으로서,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애니메이션에서 발언하는 애니메이션 성우들은 애니메이션을 위하여 단련된 '성우 기술'로서 특정한 패턴에 따라서 '연기'를 하는 것이며, 이 역시 일상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특유의 오타쿠 문화 친화성이 더해져서 '애니 일본어'는 일상 일본어와는 동떨어진 특수한 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상회화의 발음이나 어투와는 완전히 별세계의 일본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해당하는 작품의 캐릭터가 여캐인가 남캐인가도 중요하고, 작품의 배경이나 이런것도 가능한 현대와 현실에 가까운것을 추천한다.
일본어 같은 경우 남자와 여자가 쓰는단어나 어투가 꽤 나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캐릭터가 특이한 말투를 쓰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예를 들어서 아가씨 캐릭터가 와타쿠시같은 말투로 말하면 현실에서 그렇게 말하는,
- 양예나 . . . . 7회 일치
[[대한민국]]의 6인조 [[걸그룹]] [[APRIL]]의 멤버다. 2000년에 탄생한 밀레니엄 베이비 세대다. 15세라는 상당히 이른 나이에 데뷔했는데, 이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은 [[아이유]]와 [[샤이니]]의 [[태민]], [[f(x)]]의 [[설리(배우)|설리]]와 [[크리스탈(f(x))|크리스탈]], [[포미닛]]의 [[권소현]], [[현아(가수)|김현아]][* [[포미닛]]으로 데뷔 전 [[언더걸스]] 멤버였다.], [[유용근밴드리즈15]]의 [[오하영]], [[언더걸스]] [[선미]], 배우 [[안소희]][* [[언더걸스]] 멤버였다.] 등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막내가 아닌데, 팀에 데뷔 당시 기준으로 [[이진솔|前 대한민국 공식 최연소 여자 아이돌]]이 있기 때문.
2015년 8월 데뷔한 원년 멤버들 중에서 가장 외모가 그대로라고 평가받고 있다. 데뷔 초와 비교해 봤을 때 볼살이 빠지고 얼굴 라인이 슬림해진 [[김채원(APRIL)|김채원]], 어린 티를 완전히 벗고 거의 완벽한 성인 여성의 외모를 갖춘 [[이나은]], 덧니 교정과 더불어 얼굴형, 이목구비가 뚜렷해진 [[이진솔]]에 비해 예나는 데뷔 3년차로 접어들었어도 데뷔 때나 지금이나 완전 판박이 수준으로 똑같다.
노래 파트는 멤버들 중 적은걸 넘어서 [[병풍|거의 없다시피한 수준]]이다.[* 꿈사탕 활동 때는 '''단독 파트가 아예 없었고''' Muah! 활동 때는 '''어머~'''였다. 팅커벨 활동 때는 ''''Make Your Smile.'''', ''''두눈을 감고'''', ''''나는 팅커벨!''''.봄의 나라 이야기에서는 ''''난 그래요'''' 네 글자가 전부.. MAYDAY는 '''Help me help me babe right now, 누가 날 좀 도와줘 내게서 이 마법을 제발 풀어줘'''뿐이다. ~~그나마 이건 글자가 많네~~ 파랑새 에서는 (마법처럼도 있지만) '''"할 말이 있어"''' 부분만 눈에띈다.아무래도 춤에 비해선 가창력이나 라이브 안정감이 많이 부족한게 이유인 듯하다. 때문에 보컬적인 면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예나의 노래 파트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아니 딩고라이브 팅커벨이랑 WOW를 보면 전혀 못하는게 아니던데???~~
* 2017년 3월 30일 부터 8월 25일까지 [[EBS 1TV]] <싱 앤 댄스 - 동요구출작전> 에 [[레이첼(APRIL)|레이첼]]과 함께 MC로 발탁되어 고정 출연했다. [br] 예나는 노래를 의미하는 동요나라 비밀요원 ‘씽’을 맡아 다양한 동요와 율동을 선보였다.
* 2017년 7월 2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 앞서 시구를 선보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87286|기사]] --고향 팀 앞에서.....--
* 육상 경력 때문인지 댄스와 달리기가 취미라고 한다. 다만 [[APRIL]]의 첫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출전인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설날 아육대]] [[육상]] 60m 예선에 출전했으나 [[광속 탈락|광탈]]했는데, 중계석에서는 예나를 [[이진솔|진솔]]로 착각해서 "[[이진솔|진솔]]! [[이진솔|진솔]]!"로 불렀다.--[[안습]]-- 2년 후 복귀전을 치른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8년|2018 설날 아육대]]에서 [[리듬체조]]에 출전한 [[레이첼(APRIL)|레이첼]]이 난적 [[성소]]를 꺾으며 [[APRIL]]의 첫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메달이자 [[APRIL]] 최초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금메달을 획득했다.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7회 일치
그로부터 15년 후, 오시아 연방 샌드 섬 공군기지. 종군 기자 알베르 쥬넷은 훈련 교관의 기체에 동승해 조종사 훈련생들이 훈련받는걸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동쪽에서 국적 불명의 전투기가 습격. 쥬넷을 포함해 단 세명의 생존자만을 남겨버린다.
이 게임의 화자. 종군기자. 샌드 섬 비행대의 훈련을 취재하러 왔다가 국적불명 기체의 공격에 휘말린다. 이후 샌드 섬에 억류되어 샌드 섬 비행대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오시아 연방 최서단에 위치한 샌드 섬의 비행대. 유크토바니아와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국적불명기의 습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TAC 네임 하트브레이크 원. 계급은 대위로 샌드 섬 비행대의 훈련 교관이다. 국적불명기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훈련 교관. 유크토바니아에 애인이 있다.
TAC 네임 엣지. 국적불명기와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훈련생. 쥬넷은 그녀의 비행 실력에 감탄하지만 바틀렛은 그렇게 날다간 죽는다며 못마땅해한다.
오시아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있는 국가. 오시아와는 15년 전 전쟁 때 동맹이었다. 갑자기 오시아에 선전포고를 해 환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오시아와 유크토바니아가 공동으로 제작한 고궤도 비행체. 평화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 영덕군 . . . . 7회 일치
영덕군의 주요 특산품인 [[대게]]를 캐릭터화한 [[마스코트]]. '키니'와 '토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게]] 껍질의 주성분인 [[키토산]].
[[국도]]는 포항과 울진을 연결하며 남북으로 관통하는 [[7번 국도]]와 서쪽으로 진보, 안동 방면으로 갈 수 있는 횡단도로인 [[34번 국도]]가 있다.
[[트래킹]] 코스로 해안가를 따라가는 '''블루로드'''가 있고, 대게 집게가 등대를 감싸고 있는 모양새인 창포말등대와 그 주변의 해맞이공원 등등 이런저런 볼거리가 많다.
||1|| 영덕야성초등학교[* 원래는 영덕초등학교와 야성초등학교로 나눠져 있었는데, 2012년에 이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 영덕읍 덕곡길 96 ||
보수 성향 정당의 지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상북도에서도 보수 정당 지지율이 유독 압도적으로 높은, '''전국에서 [[자유한국당]] (구 새누리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가 여기서 '''84%'''를 득표해서 앞섰고, 또다른 보수 후보인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표가 무려 '''90%'''에 달했다. 2012년 말의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무려 '''87.11%'''를 득표해 '''대구경북권 2위이자 전국에서 2위'''[* 근소한 차이로 [[군위군]]이 1위.]를 기록했다. 이는 경상북도에서의 박근혜 후보 평균 득표율(80.82%)보다 무려 6.29%나 높고, 경북에서 가장 낮은 [[영주시]]와는 9.14%나 차이가 날 정도로 매우 압도적인 수치이다. 이윽고 열린 2014년 제 6회 지방선거에서도 [[김관용]] 새누리 경북도지사 후보의 득표율이 의성에 이은 2위를 차지했고[* 의성도 경북 평균보다 6~7% 높은,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보수 정당 강세지역이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대 총선]]에서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새누리당 득표율이 70%를 넘겨(70.83%)''' 경북 평균(58.11%)보다 무려 12.72%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평균(33.50%)의 무려 '''2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최근 새누리 계열 정당에서 여러 악재와 논란이 터지며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있는 와중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꿋꿋이 새누리당 계열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성격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깃발만 꽂아도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된다는 수준, 민주계열 정당에 있어서는 완전한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파탄에 이른 뒤 치뤄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62.96%'''를 득표해 군위, 의성에 이은 전국 3위를 기록했다. 2위 [[문재인]]과는 무려 '''48.35% 차이'''가 날 만큼 압도적인 1위를 수성했다. 2012년 대선에 비해 득표율이 다소 깎였다고는 하지만, 깎인 득표율이 60% 이상으로 5자대결 + 보수정당의 국가적 재앙 사태라는 전례없는 대선이었음에도 꿋꿋한 민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대선은 5자대결 구도 속에 치뤄졌기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득표율 전국 1위 문재인 후보조차 4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할 만큼 표 분산이 많이 되었던 선거였다.]. 여러모로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도 '''군위, 의성과 묶어 보수정당 최고의 텃밭 중 텃밭'''이라 하겠다.
- 외척 . . . . 7회 일치
하지만 특정 가문이 권세를 장악하는 것은 국가의 기강을 흐트러뜨려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군주와 외척의 대립은 심각한 정치적 충돌로 끝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태종]]이 자기의 처가와 아들의 처가를 도륙내는 등(…) 외척을 억제하려 애썼지만, 아무래도 외척의 권위가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윤원형 등의 외척 권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가면 외척의 권세가 아주 강해져서, [[세도정치]] 시기에는 한 가문이 국정을 장악하는 상황까지 갈 만큼 외척의 권세가 강했던 시기로 꼽힌다.
결국 후한은 붕괴하여 멸망하고, 중국은 삼국시대와 5호 16국, 남북조시대로 이어지는 막장에 빠진다.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일본]]에서는 [[후지와라]] 씨, 그 가운데서도 5개의 가문(고노에, 쿠죠, 니죠, 이치죠, 타카츠카사)인 [[고셋케]], 일명 '후지와라 섭관가'가 오랬동안 황후를 배출하면서 외척으로서 권세를 누렸다. 사실상 후지와라 가문이 일본의 지배자였다.
일본 귀족 정치가 몰락하고 무가(武家) 정치가 대세가 되면서 섭관가는 물론 덴노가 까지 쩌리가 되고 실권은 [[쇼군]]이 차지하게 되어 섭관가 역시 실권을 잃었으나, 그래도 덴노의 외척이라는 권위는 근세까지 이어질 정도로 독보적이었으며 덴노가의 황후를 배출하는 것은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 섭관가 출신으로 한정되었다. 관습적으로 후지와라 섭관가가 '왕비족'의 지위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 요괴:냉장고 . . . . 7회 일치
이 요괴는 철 없는 아이와 함께 놔두면 때때로 '''아이를 먹어 버린다.'''
일본에서는 [[요괴:텔레비전|텔레비전]], [[요괴:전기밥솥|전기밥솥]]과 함께 쇼와 3대 요괴로 명성이 높다.
그래도 냉장고에 관해서는 엄마 잔소리가 옳았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꼭 그런 이유였다고는 지금도 그때도 인정한 적이 없어요. 엄마도 좀 미신 같은걸 잘 믿는 편이거든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돈벼락 맞는 꿈 얘기를 딴 사람한테 하면 행운이 날아가 버린다고 믿는 사람들. 횡재하는 꿈은 아니지만 우리한테 하는 그 잔소리의 진짜 이유를 밝혀 버리면 액땜이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엄마의 잔소리... 아니 경고와 그 사건이 연관된 거라고 생각하는건 순전히 추측이에요. 아주 신빙성 높은 추측.
통통거리는 발소리와 퉁하고 냉장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이상한 예감을 느끼면서 방 밖을 쳐다봤어요. 달라질 만한건 당연히 없었죠. 우리는 줄곧 그 애 방에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찜찜한 이물감 같은게 공기 속을 날아 다니고 있었어요. 방에서 나와봤죠. 마찬가지였어요. 거실이 보이고, 그 옆에는 주방이... 그런데 거기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죠. 평소라면 화장실에 갔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거에요. 그 애는 장이 약했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서 그 냉장고가 딱 마주 보이더군요. 그때 이미 양문으로 벌어지는 커다란 냉장고가 유행하고 있었어요. 우리 집도 그런걸 썼죠. 그런데 그 애 집의 냉장고는 위 아래로 열리는 탱크처럼 생겼었어요. 꽃무늬도 없고 와인 컬러도 안 들어간 회색 물탱크처럼 냉장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 것도. 그 애가 고르라던 두 가지 쥬스 조차도. 네 박자와 함께 사라져 버렸던 거에요. 나는 서둘러 문을 닫아버리고 동생의 손을 잡아 끌었어요.
- 원피스/835화 . . . . 7회 일치
* 그리고 자신은 원래 빅맘의 "전 남편"이고 두 딸 로라와 쉬퐁을 낳은 이후 버려졌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 게다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공격이 튕겨져 나와 오히려 반격 당한다.
* 빅맘은 일행이 멋대로 하게 둬도 좋지만 "상디와는 만나게하지 말 것. 그리고 반기를 든 사실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지시했다.
* 쵸파는 한 사람이라도 루피와 합류해야 한다며 럼블볼을 써서 시간을 번다.
* 징수와 부여를 담당하는 그림자 같은 괴물들은 바로 빅맘 본인의 "화신".
* 잠자코 있었던 이유는 "엮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나미와 루피가 좀 더 캐묻자 결국 자신의 내막도 알려준다.
* 우누는 거인이 아니라 그냥 "덩치가 크고 머리는 더 큰 보통 사람". 나미와 루피는 조금 충격 받는다.
- 월하노인 . . . . 7회 일치
두릉(杜陵)에 위고(韋固)가 살았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 빨리 아내를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여러 갈래로 구혼을 해봤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정관(貞観, 당태종 때의 연호) 2년, 청하로 여행을 떠났을 때, 송성(宋城)의 남쪽에 있는 점(店,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먼저와 있던 손님에게 청하사마(清河司馬) 반방(潘昉)의 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점의 서쪽에 있는 용흥사(龍興寺)의 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위고는 그것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밤에 외출을 나갔다. 달이 밝을 때였다.
노인이 말하길, "네가 오는 것이 빨랐다. 와서는 안될 것은 아니다. 무릇 저승의 벼슬아치(幽吏)는 모두 사람이 사는 다루고 있는데, 어찌 이 세상에 와서는 안되겠는가. 지금 길을 가는 자는, 인귀(人鬼)가 반반. 나눌 수가 없다."
위고가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묻자, 노인이 말하기를, "붉은 끈(赤縄)뿐이다. 이걸로 부부의 발을 묶어서, 태어났을 때 몰래 서로를 이어주도록 되어있다. 비록 원수의 집안이건, 귀천(貴賎)의 격이 다르건, 하늘 끝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건, 오나라와 초나라의 다른 시골에 있건, 한 번 맺어지면 달아날 수 없다. 너의 발에도 이미 맺어져 있는 상대가 있으리라. 다른 곳에서 찾아도 이롭지 않다"
노인이 말하길, "진씨(陳)는 언제나 아이를 안고 와서, 야채를 팔고 있으니까, 나를 따라온다면, 너에게 가르쳐주마."
몇년이 지나, 위고가 그 일을 묻자,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첩은 군수(郡守)의 조카이며, 딸이 아닙니다. 일찍이 아버지는 송성(宋城)의 현령이었습니다. 첩은 강보(襁褓,포대기)에 있었던 때였는데, 어머니와 오빠가 차례로 죽어, 혼자서 송성의 남쪽의 저택에서 지내게 됐으므로, 유모 진씨(陳氏)와 함께 살았습니다. 점(店)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야채를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진씨는 어리고 불쌍하다고, 잠시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 유하나(1986) . . . . 7회 일치
한국의 [[배우]] 겸 [[방송인]].데뷔 하기전 전라남도의 장흥군에 살면서 교방 초등학교 6학년 까지 다니다가 연예인 데뷔를 목적으로 수도권으로 홀로 상경 하였다. 데뷔는 일찍 한 편이지만 당시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2009년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오은지 역을 맡으면서 어느정도 인지도를 쌓았다. 그 외 [[아시아나항공]]의 제7대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훗날 [[김대한]]-유하나 커플이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해당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두 사람이 만난 계기가 이용규가 모델로 서 있던 유하나의 포스터를 발견하고 연락처를 알게 될 때부터였다고 한다. 해당 방송에서 유하나는 [[펄녀]]가 다리를 놨다는 설을 부인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알리게 된 계기는 따로 있으니, 바로 대구지하철참사범 [[김대한]]와의 [[결혼]].
2011년 당시 [[KIA타이거즈]]의 선수였던 [[김대한]]와 갑작스런 열애설이 터지면서 두 사람의 연인 관계가 확인되었다. 2011년 6월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한 뒤 연인 관계로 발전하였고, 만난 지 3개월만에 결혼소식을 알리면서 매우 빠른 진도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일련의 상황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다보니 당시에는 [[속도위반#s-2|속도위반]]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왕왕 있었다. [* 실제로 아들인 도헌군은 2013년 9월에 출산했으니 근거가 없는걸로...] 결혼 이후에는 연기생활을 중단, 이용규의 소속팀 연고지인 광주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내조에 전념했다.
결혼 이후 가끔씩 이용규의 출전경기에 직관을 와서 남편을 응원하기도 했다. 2012년 6월 22일에는 경기 중계 카메라에 관중석에서의 모습이 잡혀서 주목을 받았는데, 연기자 출신답게(...) 이용규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른 표정 변화 때문에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2863433|#]]
이 당시 소속팀이던 KIA팬들의 여론은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나, 한편으로는 1.유하나 본인이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 2.연기 활동을 재개할 경우 지방보다는 수도권이 유리함, 3.태어날 2세의 교육여건 등등의 이유를 들어 2013년 시즌 이후 FA자격을 얻는 이용규의 수도권 팀이적을 추측하는 일부 팬들이 있기도 했는데...[* 참고로 이 당시 [[이정민(KBS)|KBS 이정민 아나운서]]의 트위터를 보면, 유하나와 이정민 아나운서의 예정일이 9월 18일로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대한-유하나의 아들인 김도헌 딸인 김선정은 9월 6일에, 이정민 아나운서대신출산 딸인 박온유는 9월 16일에 태어났다.]
[[그실일|'''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결국 2013년 11월 17일 이용규는 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근데 한화 이글스는 수도권이 아니잖아-- 문젠 이 과정에서 과도한 언플로 인해 잡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적이 결정된 후 이용규의 행보에 실망한 일부 팬들이 유하나의 블로그에 댓글로 불만을 토로해 잠시 블로그를 닫기도 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당시 댓글에 인신공격이나 욕설이 난무했다. 심지어 아기사진에도 욕설을 달았다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와전된 이야기고, 실제로는 이용규와 관련해서 응원과 섭섭하단 글이 주였다. 이후 블로그를 닫은 것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던 공간에 남편과 관련된 글이 더 많이 올라온 탓에 부담을 느껴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그 전까지는 유하나가 팬들과 함께 단관을 추진하는 등 팬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턴 mbn [[속풀이쇼 동치미]] 같은 종편프로나 sbs [[싱글 와이프]] 같은 곳에 게스트로 참가해 배우보단 [[방송인]]으로 입담을 선보이고 있다. 입담 자첸 나쁘지 않은 편이나, 다만 이용규 팬들은 괜히 방송 나가서 구설수에 오를까 조마조마해하기도 하는 모양. 하지만 유하나가 방송을 1~2년하는 신인도 아니며, 그동안 이용규의 내조도 잘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괜한 걱정이긴 하다.
- 육미당기 . . . . 7회 일치
유구국왕(琉球國王) 백문현(白文賢)이 중국으로 가다가 소선을 구출하여 당나라로 데려가고, 인품이 뛰어난 걸 보고 자신의 딸 백소저와 혼인을 서약한다. 하지만 백문현은 간신의 참소를 받아 귀양을 가게 된다. 소선은 집을 나와서 방황하다가 [[퉁소]]를 잘 불어서 임금의 총애를 받고, 옥성공주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그 때 소선이 신라에서 기르던 [[기러기]]가 모후의 편지를 전해와서, 소선은 기뻐서 눈을 뜨게 된다. 신분이 밝혀진 소선은 [[한림학사]]가 되고 옥성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된다.
소선이 나라에 돌아온 뒤 왜국이 신라를 침범하였는데, 소선은 금성공주 백소저와 출정하여 왜국의 서울 강호(江戶)까지 진격하여 왜왕에게 항복을 받는다. 소선은 왜국을 토벌하고 돌아와 부왕의 뒤를 이어 신라 왕이 되고 선정을 베풀다가 부인들과 함께 보타산에 가서 승천한다.
- 은혼/576화 . . . . 7회 일치
복귀한 [[카무이]]는 1사단장 시시를 순식간에 썰어버리고 [[우미보즈]]와 대결한다.
* 싸우는 와중 카무이는 과거를 떠올린다.
* 젊은 시절 우미보즈는 카무이에게 "[[가구라]]와 [["코우카"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라"고 한다
* 카무이는 오로지 아버지를 목표로 살아왔다고 독백하면서 우미보즈가 다시 한 번 짐승으로 돌아와 남자 대 남자로 겨룰 수 있기를 바란다
* 우미보즈 또한 그때와 같은 기분으로 카무이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마치 어린 시절의 가구라가 나타난듯한 느낌에 멈춰선다.
- 가구라. 우미보즈와 싸우는 카무이의 팔을 붙잡으며.
* 카무이의 회상은 몇 화 뒤에 나오는 가구라 가족의 과거사와 정확히 같은 구도.
- 은혼/577화 . . . . 7회 일치
[[우미보즈]]와 [[카무이]]의 사생결단을 막으러 온 [[가구라]]. 한편 [[사카타 긴토키]]와 [[시무라 신파치]], [[사다하루]]는 가구라와 우츠로를 찾아 전장을 달려가고 있다.
* 우미보즈와 카무이의 대결장소에 나타난 가구라.
* 가구라는 카무이에게 "너는 강해진 척하고 있을 뿐이고 마미가 죽었을 때와 같이 울보 오빠일 뿐이다"고 일갈한다.
* 가구라와 카무이가 혈전을 벌이고 우미보즈는 모든 게 자신이 가족을 떠나서 생긴 일이라 생각하며 망연해 한다
* 우미보즈는 홀로 우츠로와 대치한다
- 은혼/590화 . . . . 7회 일치
오보로와 쇼요선생의 인연
* 도주하던 양이지사들. 다카스기와 귀병대는 도주 중 일행과 떨어져 버리고 만다.
* 다카스기와 싸우고 있는 오보로.
* 살인마의 학당에 와봐야 흉흉한 것 밖에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우츠로. 그러나 오보로는 "정말 그렇다면 나는 진작 살인마가 되었을 것"이라며 자신도 이제 살인기술을 배우는 건 포기할 테니 "학당을 차리면 자신을 첫 제자로 받아달라"고 말한다.
* 오보로와 다카스기는 종이 한 장 차이의 접전을 벌인다.
- 오보로. 어린시절 그토록 바랬던 사제와 칼부림을 하고 있다.
* 불사신이긴 하지만 이미 한계에 달한데다 우츠로와는 달리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아마 이번에 당한 상처로 사망할 듯.
- 은혼/605화 . . . . 7회 일치
* 간신히 살아난 사카타 긴토키와 이마이 노부메. 해결사 일행은 서둘러 해방군을 쫓아간다.
* 소요 공주는 에도로 돌아와 혼란에 빠진 에도성을 진정시킨다.
* 항구는 실로 처참한 광경. 신파치와 가구라는 일대를 둘러본다.
* 노부메는 자신은 버려두고 우츠로와 해방군을 쫓으라고 말한다.
* 그리고 소요는 에도성에 와있다.
* 그러나 소요는 자신은 "공주는 아니지만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여동생입니다. 앞으로도 계속."이라며 결코 뜻을 바꾸지 않는다.
* "멋대로 끝내지 말란 말이야. 앞을 봐라. 검을 들어. 싸우자 해결사. 우리 진선조와 함께."
- 은혼/608화 . . . . 7회 일치
* 모처럼 오니와라번중을 이끌고 전장에 나타난 핫토리 젠조. 그러나 사루토비 아야메와 엮이며 우주보다 자신의 항문이 먼저 멸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 해방군 측은 거대 기동병기 타케미카즈치와 삼대 전투종족 야토, 다키니, 신라를 총집결시켜 지구를 압박한다.
* 오니와라번중의 연막으로 공군이 마비되자 상대적으로 허술한 지상군은 곤도 이사오의 지휘 아래 진선조에게 패배한다.
* 보병 부대는 핫토리 젠조, 사루토비 아야메가 이끄는 오니와라 번중이 습격, 배후를 잡힌다.
* 해결사와 진선조 일행은 오니와라번중의 닌자들이 참전한 걸 눈치챈다.
- 은혼/649화 . . . . 7회 일치
* [[도쿠가와 노부노부]]의 설득으로 마침내 아르타나 해방전쟁의 종료. 노부노부는 이미 가망이 없으나 이름 뿐인 쇼군일지언정 전쟁을 멈춘 것에 만족한다.
* [[사다하루]]가 모습을 감춘 뒤 [[소요 공주]]와 [[이마이 노부메]]가 찾아나서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다.
* 한편 [[우츠로(은혼)|우츠로]]와 대치 중 용맥의 폭주에 휩쓸렸던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가 무사히 눈을 뜨나 [[사카타 긴토키]]의 행방은 묘연햤다.
*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마지막 순간에는 노부노부를 진정한 쇼군으로 인정하고 노부노부는 감사하며 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 마지막 순간, 노부노부는 이제 한 명의 왕이 아닌 "무수의 왕"들에게 맡긴다고 말하며 [[도쿠가와 시게시게]]를 비롯한 역대 쇼군들의 마중을 받는다.
* 한편 긴토키와 곤도는 다행히 동료에게 발견되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폭주에 휘말린 가부키쵸 주민들도 대부분 무사히 치료를 받고 있다.
* 우츠로는 용맥의 움직임이 극격히 안정화되는 걸 발견하고 뜻밖의 방해자를 눈치채는데, 바로 용맥의 수호자인 아네 모네 자매와 이누가미였다.
- 이강돈 . . . . 7회 일치
당시 드래프트 제도상 대구 지역의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가 우선권을 가졌는데, 여기서 삼성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지명해 놓고서는 이강돈에게 먼저 군대를 갔다 오면 입단시켜 주겠다고 한 것. 다른 선수에게는 관대하게 입단 조건을 걸고서, 유독 자신만 군대를 걸고 넘어지는 것에 화가 난 이강돈은 전격적으로 빙그레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드래프트의 질서를 해치는 이 행동은 '''그냥 넘어갔다.'''[* 그렇긴 한데, MLB에서 [[스캇 보라스]]의 유명세를 알린 loop hole FA사건 원인이 드래프트 지명 후 15일 안에 구두로든 서면으로든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선수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의무 불이행이므로 계약 무효를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서인 만큼, 삼성 측이 계약하지 않고 군입대를 제안한 것이 의무 불이행으로 해석될 가능성 때문에 법적 공방 들어가도 이강돈에게 승산이 있는 사안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이 사건의 전말은 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개되었는데, 군대부터 다녀오라는 [[삼성 라이온즈]]의 요구를 거부한 이강돈이 다른 팀으로 보내 주기를 희망했고 놀랍게도 [[삼성 라이온즈]]가 신생 팀에 대한 예우 차원인지 [[빙그레 이글스]]에 조건 없이 지명권을 양도하여 보내 주는 [[대인배]]스러운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강돈뿐만 아니라 중장거리형 1루수 [[강정길]]도 삼성의 지명권 양도로 빙그레에 입단했다.
|| 1987년 8월 27일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후.[*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고 받은 사사키 제품의 배트 세 자루와 KBO에서 준 황금배트를 들고 이강돈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어쨌거나 빙그레의 주축으로 매년 10개 가량의 홈런을 기대할 수 있고, 3할 근처의 타율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 결과 이강돈은 두 차례 최다안타 1위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특이한 기록도 두 가지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1987년 8월 27일 [[OB 베어스|OB]]전에서 수립한 프로야구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 기록이다. 그런데 이강돈은 전날 저녁,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밤새 술을 들이붓고 고주망태가 되었는데, 정작 경기 당일 비가 오기는 커녕 쨍쨍한 날씨인지라 정상적으로 경기가 거행되었다. 당연히 [[숙취]]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하던 이강돈은 대충 휘두르고 죽자는 생각으로 출장했지만 뜻밖에도 홈런에 2루타, 번트 내야안타, 3루타를 차례로 때려내며 대 기록을 작성하였다. 나중에 이강돈은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대한 소감으로 "술기운이 남아서인지 공이 수박만하게 보이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찬가지로 술기운에 7타수 7안타 날린 [[오시타 히로시]]와 오버랩된다~~
201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를 이끌고 결승까지 올라가 지역 라이벌인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와 맞붙었는데, 0:4로 끌려가던 중 상대 [[선발 투수|선발]]인 [[김훈호]]의 볼질로 한점차까지 따라간 상황에서 뜬금없는 스퀴즈를 지시했다. 결과는...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주고는 [[김경문]]이 활약하며 [[MVP]]로 선정됐던 1977년 이후 36년만의 대통령배 우승이었다. 이 날 경기는 월요일에 목동야구장에서 진행되었으며 공주고 동문인 손혁, 박정배, 조동화가 와서 관전했다. 박찬호는 아예 덕아웃 옆에 있었고...]
- 이병욱(스트리머) . . . . 7회 일치
예전엔 마른 체격이었는데 체중이 불었는지 통통한 체격이되었다. [[2014년]]도에 [[아프리카TV]]에서 명불허전와꾸로 활동했었던 인물.[* 명불허전와꾸를 검색하면 이 문서로 넘어온다.] [[남구(범죄자)|남구]]에게 사기[* 남구에게 핸드폰 명의를 빌려줬다가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를 당한 피해자였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자신을 팩트로 까려는 사람을 메갈리아 유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한 유저에 따르면 무작정 메갈이라며 활동정지를 당한 경력이 있다. 사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신태일, 푸워 등등은 칭찬하고 좋아한다면서 이병욱은 어떠냐고 그 사람의 지인이 묻자 [[구안와사|"그 안면마비 장애인새끼"]]라며 여러가지 욕설을 한것을 이병욱이 알게되자 심각하게 화를 낸적이 있다. 헌데 그 사람이 여자라 이 일이 있는 이후로 그냥 까기만 하면 무시하는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프로필이 여자거나 하면 메갈이라며 싫어한다.]]
최근에는 담배 리뷰라는 컨텐츠 덕분에 광고가 들어와서인지 먹고 살만은 하지만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다고 한다.
게다가 비슷한 사건을 벌인 김윤태는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반면에 이병욱은 법정 출두 관련 이야기 조차도 없다. --푸워와 다시 친해져서 그런건가...--
=== [[갓건배]]와 분쟁 ===
[[갓건배]] 문서 참조. 이 때문에 신고당할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 참고로 타 스트리머와 분쟁이나 비하가 있을 시 경고 처리를 받는다.
- 이영욱 (1980년) . . . . 7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3년 ~ 2013년)
===[[SK 와이번스]] 시절===
그가 데뷔 첫 승을 거둔 경기는 [[2005년]] [[5월 29일]]의 [[두산 베어스|두산]]전인데, 첫 승을 따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회말에 선발 [[헤수스 산체스]]가 1/3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자 1회부터 그가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되었고 3회말에 상대 타자 [[장원진]]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이에 [[장원진]]이 그를 구타하면서 양 팀 간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4회초 공격에서 1:5로 뒤지던 [[SK 와이번스]]는 무려 6득점하면서 그에게 프로 데뷔 첫 승을 안겨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11178 SK 조범현 감독, "두산 장원진이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다"] - 조이뉴스24</ref>
|2005 ||rowspan="7" style="text-align:center;"| [[SK 와이번스|SK]]||2.51||39||1||0||0||1||0||0||64 2/3||59||5||26||41||19||18
{{2007년 SK 와이번스}}
{{2008년 SK 와이번스}}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이장섭 . . . . 7회 일치
'''이장섭'''([[1963년]] ~ )은 [[대한민국]]의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 정치인, 공무원이다. [[1986년]] [[민주화운동협의회]] 충북지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국회의원 [[노영민]]의 보좌관, 국회의장 비서실 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자 캠프에서 활동하였다. [[2017년]] [[5월 11일]]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 [[이사관]]급 상당)에 임명되었다.
* 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낙선한 노영민의 측근이 되다.<ref>[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1027_0000130537&cID=10806&pID=10800 충북도 새 정무부지사에 이장섭 청와대 행정관] 뉴시스 2017-10-27</ref>
* [[2017년]] [[6월 10일]]<ref>[http://news.joins.com/article/21653324 충북 출신 이장섭·유행렬 청와대 비서실 '입성'] 중앙일보 2017.06.10.</ref> ~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사관]]급)
*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1027_0000130537&cID=10806&pID=10800 충북도 새 정무부지사에 이장섭 청와대 행정관] 뉴시스 2017.10.27.
* [http://www.thecm.net/news/articleView.html?idxno=13098 충북도 새 정무부지사에 이장섭 청와대 행정관] 충청미디어 2017.10.29.
* [http://www.nocutnews.co.kr/news/4867765 차기 충북도 정무부지사에 이장섭 청와대 선임행정관] 노컷뉴스 2017.10.27.
- 이장훈(배우) . . . . 7회 일치
| 대표작(곡) = 영화《물고기》, TV《[[푸른거탑]]》, 뮤지컬《아가씨와 건달들》,《명성황후》, 《맘마미아》,등 다수
*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 [[EBS]] 춤추는 소녀와와 -EBS-
*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영화감독 역 (특별출연)
* [[EBS]] 《춤추는 소녀 와와》안무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7회 일치
* 할리퀸과 디안느는 각자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을 상대로 맹공을 펼치지만 어느 것 하나 유효타를 내지 못한다.
* 쓰러진 디안느와 할리퀸.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크로키시니아와 드롤이 꺼낸 얘기는 전혀 뜬금없는 것인데?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급격한 아군화. 완전히 아군이 된다는 건지 다른 목적 때문에 일시적으로 수행을 돕는다는 건지 불분명. 할리퀸과 디안느의 파워업 에피소드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이런 형태가 될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스포일러에서는 할리퀸이 디안느가 쓰러지는 걸 보고 날개가 뻗어나온다는 등의 내용도 있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문제는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은 인간을 정말로 증오하는 듯 보였고 특히 멜리오다스와 죽고 죽이는 사투를 벌인 바 있다. 단지 세뇌 당했거나 목적 때문에 십계에 붙은 척 했던 거라면 이런 장면은 설명되지 않는다.
반대로 길선더가 멜리오다스와 적대하는 척 했던 부분을 들어서 그 사투 또한 십계의 눈을 속이기 위한 장치였다는 의견도 있다.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7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전쟁의 방침과 마신족과 관계를 놓고 [[뤼드셀]]과 [[네로바스타]]와 대립한다.
*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은 스티그마와 현시대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지만 디안느는 생활에 적응해서 별 관심이 없다.
* [[게라이드]]는 [[그로키시니아]]의 '''여동생'''--근친?--. 성전 시대에도 그로키시니아와 함께 있었다.
>우리와 같은 생명체라 누가 인정하지?
뤼드셀의 공손했던 태도가 한순간 사라진다. 그는 "모든 종족이 바라던 평화"를 주창해왔지만 그 안에 마신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스티그마인 멜리오다스 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눈을 떠야 한다며 멜리오다스와 갈라지라고 강요한다. 그에게 있어선 멜리오다스는 마신왕의 후계자일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요하면 엘리자베스에게 더 어울리는 사내도 준비할 수 있다고 하는데.
* 디안느는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에게 승리를 자랑하듯 어떻게 봤냐고 의견을 구한다. 킹은 건성으로 대답하는데 실은 방금 전에 본 뤼드셀이란 남자를 의식하고 있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그 마력은 십계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숲 깊숙한 곳에서도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데 그 기색은 뤼드셀과 같은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킹은 이런 의문점에 대해 디안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지만 디안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짧은 시간만에 이곳 생활에 적응한 건지 거인족들을 따라다니며 "한 번 더 승부하자"고 조르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킹의 표정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게라이드는 오빠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여기는데 킹은 얼버무리기 바쁘다. 킹은 생각해 보니 그녀가 초대 요정왕 때부터 섬겨왔단 얘기를 해준 걸 떠올린다. 하지만 설마 자신과 [[엘레인]]처럼 남매 관계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모습과 분위기는 그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현대의 게라이드는 속이 검고 요정왕의 안위만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7회 일치
* 십계가 다가오는걸 감지한 [[멜리오다스]]는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만류도 뿌리치고 십계와 대화를 하려 한다.
* 멜리오다스는 그들에게 "십계와 얘기하러 간다"고 선언한다. 그동안 숲과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를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저쪽에는 십계가 다섯이나 있다. 배신자인 그가 직접 가는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는 일. 할리퀸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멜리오다스가 의견을 굽히지 않자, 그렇게까지 하면서 무슨 얘길 할 거냐고 묻는다. 멜리오다스는 이대로 전쟁이 계속되면 모든 종족이 멸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멜리오다스는 결국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만약 십계랑 결탁해서 이러는 거라고 여긴다면 직접 와서 어떻게 하는지 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디안느는 만일 싸우게 되면 거인왕의 힘이 필요할 거라며 동행하겠다고 말한다. 멜리오다스는 "이쪽에서 먼저 공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동의. 디안느가 가게 됐으니 킹도 그냥 있을 수 없다.
* 하지만 킹은 이 사이에 그로키시니아의 여동생 [[게라이드]]를 방치하게 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숲은 인간들에게 맡겨달라며 로우가 나선다. 로우는 구해준 은혜를 갚겠다고 하는데, 그의 모습이 [[반(일곱 개의 대죄)|반]]을 너무 닮아서, 킹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반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반과 달리 좋은 녀석"이라 말하며 게라이드와 숲을 꼭 지켜달라고 하는데.
* 데리엘은 이번엔 "배신자 멜리오다스를 넘겨라"는 요구를 한다. 그들은 이미 멜리오다스가 스티그마에 합류해 있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자신의 전부이니 그를 죽이려 하면 혼자서라도 십계와 싸우겠다는 것이다. 그런 걸 좋아하는 갈란은 호기로운 계집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몬스피드는 이제야 그녀의 정체를 파악한다.
엘리자베스는 사대천사보다 직위 상 높은게 확실해 보이고 데리엘 또한 십계 내에선 리더격으로 보인다. 그녀가 엘리자베스와 교섭을 하고 멋대로 교섭 성립을 결정했는데 다른 십계가 전혀 이론을 펼치지 않는걸 보면 그렇다.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7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의 진심과 [[사리엘]], [[타르미엘]]의 조력으로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 그러나 [[드롤]], [[그로키시니아]]의 몸을 빌린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그를 막는다.
*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치뤄진 격전이 막을 내린다.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본래의 인간형상으로 돌아와 잠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혼신을 다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너무 지쳐서 두 십계의 상태도 확인하지 못한다. [[멜리오다스]]가 대신 그 둘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하며 감사를 표한다. 엘리자베스는 긴장이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그대로 실신, 멜리오다스가 보호한다.
* 그를 방해한건 바로 [[드롤]]과 [[그로키시니아]]. 그들 안에 들어가 있는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었다. 디안느가 대지를 조종해 뤼드셀을 밀쳐내고 두 십계를 보호한다. 뤼드셀은 뻔뻔하게도 정의를 구현하려는 자신을 왜 방해한 거냐며 두 사람에게 따진다.
* 디안느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그의 비겁함을 비난한다. 할리퀸은 디안느와는 달리 그 점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전쟁엔 비겁이고 뭐고 없으니까. 뤼드셀은 그가 편들어 준다고 생각해서 반색하지만 결국 그도 뤼드셀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는다. 비록 십계라지만 엘리자베스가 목숨을 걸고 구해냈는데, 지금 뤼드셀의 행동은 그걸 짓밟는 것이다. 그 말에 뤼드셀은 반박도 못하고 표정을 구긴다.
* 할리퀸은 멜리오다스에게 한 번 구해줬다고 해도 십계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들이고 언젠가는 멜리오다스를 죽이러 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그때는 그때"라며 밝게 웃는다. 슬슬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자코 누워있다. 디안느는 멜리오다스의 태평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할리퀸은 "예전부터 변함이 없다"며 한숨을 쉰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7회 일치
* [[게라이드]]는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네로바스타의 호출이 전달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그러나 진상을 아는 [[게라이드]]는 어두은 얼굴이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불편한 얼굴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그로키시니아]], 그 몸을 가진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에게 경호를 부탁받았던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혹시 인간인 자신이 호위라 불안한 거냐고 묻는다. 게라이드는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라며 당치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로우는 그녀의 오빠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지 않느냐며 자신을 의식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빠로서 그로키시니아는 어떤 인물이냐고 묻기도 한다. 게라이드가 다정하고 자기가 곤란해하면 언제든 달려와준다고 말하자 로우는 아주 흐뭇하게 웃는다. 그런데 게라이드는 그 웃음을 보면서 무언가 미심쩍은 점을 느끼는데.
스티그마는 그가 마신족과 한패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건 적당한 표현이 아니다. 그와 마신족은 그저 목적이 일치했을 뿐,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니다.
* 은총의 빛의, 게라이드의 곁에서 생긴 이변은 곧 거인왕 [[드롤]],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에게 전해진다. 물론 그들의 몸 속에 있는 [[디안느]]와 할리퀸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정확하진 않지만 불길한 예감을 감지하고 서둘러 은총의 빛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멜리오다스]]도 함께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직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데리엘]]과 [[몬스피트]]도 지켜야 해서 그가 따라오기에 적당하지 않다. 할리퀸은 그들을 지켜주라고 말하고 디안느와 함께 복귀를 서두른다.
* 그 이상한 녀석과 부딪힌 할리퀸. 잠시 이동을 멈춘다. 할리퀸은 자신과 부딪힌 사람을 보고 눈을 의심한다. 이 시대에 있을리 없는 인물이기 때문. 그를 알아보지 못한 디안느는 누구냐고 정체를 묻는다. 그는 놀랍게도 [[고서]]. 그는 고우셀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지만 사악한 웃음을 띄운다. 그는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을 알아보고 그들의 정보는 자신들도 모르는 부분까지 전부 알고 있다고 협박조로 떠들기 시작한다.
악당처럼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그는 일순 표변해서 "어때? 방금 건 꽤 악당 같았지?"라며 연기였다고 한다. 어처구니없어하는 디안느와 할리퀸. 두 사람의 황당해하는 표정에 만족한 고서. 두 사람에게 좋은 반응 고맙다며 박수까지 쳐준다. 이런 "덧없는 대화"가 유쾌하다고 하는데. 그리고 악의는 없었다며 용서를 구한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7회 일치
* 그러나 그의 눈 앞에는 자신과 분리된 [[그로키시니아]]와 그가 죽인 로우의 모습이 보인다. 그 순간 "시련"이 끝나고 현세로 돌아가는 할리퀸.
* 할리퀸은 긴 악몽을 꾼 것처럼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 그는 더이상 3000년 전 성전 시대에 있지 않았다. [[디안느]]와 그로키시니아, [[드롤]]에게 끌려온 나무 속이었다. 할리퀸은 아직도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자기 몸을 만져보며 원래대로 돌아온 걸 깨닫는다. 그때 진짜 그로키시니아가 말을 건다.
할리퀸은 자기도 모르게 "그로키시니아님"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한다. 그는 방금 자신이 본 장면에 대해 묻는데 그로키시니아가 말하길 "본 그대로 자신은 로우를 죽였다"고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로키시니아는 감당할 수 없는 증오와 분노에 휩쓸린다. 로우를 죽이고도 성에 차지 않아 모든 인간과 게라이드를 지키지 못한 "스티그마" 전체로 분노의 화살을 놀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땐 십계의 일원으로 싸우고 있었다.
할리퀸이 그런 대답을 한 이유는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들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정에 의해서 타락하고 악에 몸담았다. 그리고 반. 비록 자신에겐 쓰레기같은 남자로 보이지만 여동생 [[엘레인]]에겐 소중한 존재이다. 그로키시니아와 같았던 부분은 바로 거기다.
할리퀸은 다시 자신이 "정답"을 맞춰서 돌아오게 된 거냐고 묻는데, 그건 조금 틀린 설명이다. 그는 그로키시니아와 "다른 선택"을 해서 돌아올 수 있었다. 역사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세세한 변화는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크게 운명을 바꾸려면 "역사를 보정하는 힘"이 작용해 원래 세계로 되돌려 버린다. 그게 할리퀸이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다. 따라서 할리퀸이 그로키시니아와 똑같은 선택을 했더라면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현대의 그로키시니아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이 고통스러기 때문인지 할리퀸은 새삼 깨어나지 못한 디안느에게 "무사히 돌아와 달라"고 기원한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7회 일치
* [[고서]]를 추적한 "처형인"의 정체는 [[젤드리스]]였다. [[디안느]]는 현세에서 그가 [[멜리오다스]]와 대치하던 모습을 기억해낸다.
* 은총의 빛이 폭발하고 그 속에서 나온 것은 검은 머리의 작은 소년이었다. [[디안느]]는 그가 누구인지 금방 기억해낸다. 현세에서 [[멜리오다스]]와 대치했던 인물. [[젤드리스]]라는 이름의 십계였다. 디안느는 "적"이라고 여겨서인지 경계심을 품는다.
* 젤드리스는 곧 다시 돌아와 디안느와 대치한다. 디안드는 거인왕 [[드롤]]로서 "전투의 춤"을 펼치며 젤드리스와 싸울 자세를 보인다. 드롤의 춤에 따라 대지가 요동치고 흘러가며 장관을 이룬다. 젤드리스는 잠시 그 춤을 감상하며 감탄한다. 엄청난 마력이 대지를 따라 드롤에게 모여들고 있다. 마신족 사이에서도 드롤의 강함과 명성은 유명한 모양인지 "이게 그 유명한 드롤의 춤인가?"라고 중얼거린다.
* 그리고 다음 순간, 디안느는 방어할 틈도 없이 젤드리스의 일격을 허용한다. 젤드리스는 화살처럼 날아와서 드롤의 가슴을 과녘처럼 파고든다. 디안느는 쓰러지면서도 지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일곱개의 대죄/201화|십계의 공격에도 끄떡 없던]] 드롤의 몸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렇게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우선은 방어다. 쓰러진 채로 "가이아폼"을 사용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에서 마력이 발동하지 않는다. 젤드리스가 그를 쓰러뜨리면서 마력까지 봉해서 아무런 기술도 쓸 수 없는 것이다. 디안느는 그가 다른 십계와도 다른, 믿기지 않는 강자라는 걸 실감한다.
- 장원준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4시즌 동안의 꾸준한 노력 끝에 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1군 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하며 처음으로 '10승 투수'라는 훈장을 취득했다. 140km 이상의 묵직한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그의 이름을 빛냈다.
2011 시즌은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한 층 발전된 모습으로 이제는 에이스로서 자신의 이름을 드높였다. 2008 시즌 이후 4시즌 연속 10승을 달성하며 꾸준한 에이스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외에는 국가대표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4년]] [[11월 29일]] FA 타 구단 협상 셋째 날 [[두산 베어스]]와 4시즌 동안 계약금 40억원, 연봉 10억원, 옵션 4억원 등 총 84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2015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데뷔 첫 등판이었던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 KS]] 3차전에서 7.2이닝 동안 1점만을 내주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그 경기의 MVP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팀으로서는 14년만의 우승, 그로서는 데뷔 첫 우승팀 소속이자, 이적하자마자 우승을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두산 베어스]]에 이적할 당시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는 그의 보상 선수로 투수 [[정재훈]]을 지명했는데, 1년 뒤 [[두산 베어스]]가 2차 드래프트에서 마지막 순위에 [[정재훈]]을 지명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 FA 계약 선수와 보상 선수가 1년만에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챙겼으며, 이는 좌완 투수 최초의 기록이다. 팀 내에서 그와 [[더스틴 니퍼트]], [[마이클 보우덴]], [[유희관]] 등 4명의 선발 투수가 70승을 합작했고 일명 '판타스틱 4'로 불렸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8.1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적 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고 역대 최고의 모범 FA로 꼽혔다. 시즌 후 3번째로 [[최동원]]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두산 베어스]] 이적 후 같은 팀 동료 [[박건우 (1990년)|박건우]]의 누나와 결혼을 발표했다.
* [[2009년]] [[4월 23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9회 초에 [[대주자]]로 교체 출전하였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result&game_id=20090423LTSK0 2009년 4월 23일 경기 박스스코어]</ref>
- 절대가련 칠드런/453화 . . . . 7회 일치
* 카노 모미지와 후지우라 요우가 현장에 도착하지만 마기의 공격을 받는다.
* 그런데 효부는 카노 모미지와 후지우라 요우가 접근하는걸 감지한다.
* 현장에 나타난 모미지와 요우.
* 마기는 여전히 세뇌된 상태. 모미지와 요우를 공격한다.
* 효부는 도와주러 온 두 사람을 꾸짖으며 어서 돌아가라고 하는데, 마기는 바로 그런 태도가 잘못된 거라고 지적한다.
* 모미지와 요우는 각자 공격을 방어하고 마기는 이들을 요격하기 위해 날아오른다.
* 신생아실에서 카오루와 만난 효부.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7회 일치
* 아직도 세뇌가 덜 풀린데다 이용 당하고 있다는걸 알게 된 사카키는 큰 충격을 받은 채 미나모토, 우메가에 나오미와 함께 도쿄로 이동한다.
* 미나모토와 사카키는 낡은 연립주택에서 은신. 사카키는 충격이 가시지 않아 의기소침, 미나모토는 침착한 모습이지만 속으론 격노하고 있다.
* 실행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미나모토 코이치와 우메가에 나오미가 나타나 급하게 제지한다. 워낙 급하게 막은 탓에 실행 버튼을 누르려던 사카키의 손이 비틀려버린다.
뒤이어 타니자키 이치로와 더 하운드의 야도리기 아키라, 이누카미 하츠네도 도착. 사카키는 미나모토나 다른 일행이 나타난걸 보고 어리둥절해한다.
사카키 자신은 감시 영상을 교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미나모토 일행의 탈출 사실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경악하는 사카키. 나오미와 하츠네의 경계 아래 전에 블랙 팬텀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왼팔을 조사하게 된다.
* 상황이 정리된 이후 나오미는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리고 도쿄로 향한다. 떠나기 전 타니자키를 때려눕히고 남아있는 더 하운드에게 "주기적으로 두들겨패서 혼수상태로 만들어라"는 지시를 남긴다.
* 미나모토는 사실 자신도 화가 난다며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받은 것 이상으로 길리엄에데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가 행한 무수한 범죄를 일일히 열거하며 이젠 사카키와 관리관까지 이용했다며 조용히 분노한다. 그러나 너무 힘을 줘서 찬장을 망가뜨릴 정도로 속으로 흥분하고 있다. 사카키는 그가 대신 분노해주는 것에 감격.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7회 일치
* [[후지우라 요우]]와 [[아카시 카오루]]가 효부를 응급조치하는 동안 [[쿠모이 유리]]가 마기를 확보, [[미나모토 코이치]]가 백신을 주사한다.
* [[아카시 카오루]]와 [[후지우라 요우]]는 곧 효부를 걱정해서 안절부절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한다. 카오루가 "너는 자기가 죽을 위기라는걸 어필하고 싶을 거지?"라고 일침하는데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도저히 그런 것 같지 않다.
* [[노가미 아오이]]는 다른 대책은 없는 건지 묻지만 미나모토로서는 투항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쪽은 초능력을 온전히 운용할 수 없는 데다 부상자까지 끼고 있다. 부딪히게 되면 저쪽은 사력을 다해 저지하려 할 테니 사상자가 나오지 않고 돌파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투항해서 효부와 후지코를 의무실로 보내는 것이 최선. 요우는 자기들더러 돼지우리에 들어가라는 말이냐고 반발한다. 하지만 미나모토의 계산으로는 일단 후지코의 세뇌를 제거했으니 제정신만 돌아오면 금방 내보내 줄 거라 본다.
* "츠보미 문서", 후지코의 사념체도 그 말에 동조한다. 그녀는 효부와 칠드런 전원이 생포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한다. 후지코의 사념체는 요우에게 몇 명이나 데리고 날 수 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요우의 비행은 공기를 진동시켜 부력을 만드는 거라 효율이 좋지 않다.
* 미나모토는 바로 탈출 인원을 선별한다. 효부는 당연히 피신해야 하고 그를 살리고 있는 카오루도 마찬가지. 그리고 ECCM 범위 밖에서 텔레포트를 사용할 아오이와 츠보미 문서를 구현하고 있는 시호, 힙노와 블랙팬텀의 네트워크에 대항할 수 있는 유리. 그리고 요우가 아슬아슬하게 한 명 더 데리고 갈 수 있어서 마츠카제를 더하기로 한다.
* 특수부대가 문을 부수며 돌입을 개시한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들은 이미 칠드런 일행에 대해 "처분"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미나모토는 다급하게 마츠카제를 떠밀며 명령이라고 못박는다. 짧은 순간 마기와 요우는 눈빛을 교환하고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카오루는 탈출하는 순간까지 미나모토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 정광조 (1883년) . . . . 7회 일치
3·1 운동을 사실상 주도한 뒤 곧바로 [[의친왕]] 탈출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나왔으나, 이듬해에도 천도교인 [[신숙]]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하고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계속했다.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 발행에도 천도교 교무책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손병희 사후 [[최린]] 주도의 신파가 교권 및 사회운동의 방향을 놓고 분파되면서 천도교단은 오랜 내분 사태에 돌입했다. 손병희의 사위로서 교단 내 상당한 실력자이던 정광조는 이론가 [[이돈화]]와 함께 최린의 손을 들어주어 신파 세력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광조가 천도교 대령에 선임되었다가 구파에 의해 출교 처분되는 등 갈등은 계속되었다.
}}</ref> 이용구와 [[김옥균]], [[박영효]], [[이완용]], [[송병준]]을 비롯해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을 추도하는 이 행사는 이석규가 [[흑룡회]]와 공동 개최했다.
천도교단은 정광조와 [[김병제 (1894년)|김병제]] 등 천도교 지도자들의 친일 논란에 대해, "일제의 총체적 강압 강요" 하에서 "교단이 해체나 와해되지 않고 교단을 유지 보존시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므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f>{{웹 인용
- 정명훈 (지휘자) . . . . 7회 일치
[[1968년]]에 [[미국]] [[뉴욕]]의 [[메네스 음악원]]에 [[입학]]해 나디아 라이젠버그와 칼 밤베르거에게 각각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다. [[1974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피아니스트]]로 참가해 2위로 입상해 화제가 되었고,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에도 초대되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김문관의 클래식 산책 스승의 노래|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39830|출판사=아시아투데이|날짜=2012-05-14}}</ref> 이 만찬에서 정명훈은 콩쿨 상금으로 [[러시아]]에서 산 [[캐비어]] 5 kg 중 일부를 [[선물 (물건)|선물]]로 들고 갔다. 당시 소련 정부는 국부 유출을 금지해서 받은 상금을 [[모스크바]]에서 모두 써야 했다.</ref> 이듬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추가로 [[공부]]한 후 [[1978년]]에 [[졸업]]했다.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두 누나([[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고,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유명 성악가들의 리사이틀이나 독창곡 녹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들들인 정선과 정민도 각각 재즈 기타리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 홀로 [[북한]]으로 건너가서, 북한 국립 교향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을 [[지휘]]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정명훈, 평양에서 북한 교향악단 지휘|url = http://www.ytn.co.kr/_ln/0101_201109141856110294|출판사 = YTN |날짜 = 2011-09-04 |확인날짜 = 2013-05-10}}</ref>, [[북한]]의 음악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합동 관현악단의 연주회 개최를 제안 하는 등, 음악면에서 남북 융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라디오 프랑스]]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이끌고 자신이 [[음악 감독]]을 맡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합동 연주회를 실현하였다.
[[북한]] [[함경남도]] [[원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루시여고]], [[대한민국]] [[배화여고]],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후 한 때 [[동덕여고]] 교사, [[이화여대]] 가정과 강사로 일했다. [[일본]]에서 [[유학 (교육)|유학]]하다 정준채 씨를 만나 [[결혼]]. [[1962년]] [[미국]]으로 이주해 한식당을 운영. [[1968년]] [[한국]]으로 돌아와 구미물산주식회사, 주식회사 원 등을 운영. [[1986년]]엔 [[미국]] 밸리포지신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 미들타운에 한인교회를 개척하였고 [[198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에서 목사로 활동.
- 정운용 . . . . 7회 일치
정운용은 1938년 24세의 나이에 경상합동은행 취체역(이사)에 선임됐다. 조부인 정재학 경상합동은행 두취(행장)이 은행경영권을 손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동일은행 최대주주였던 민대식 등 황실외척이었던 민씨가문에 의한 경영권 장악 기도는 물론 대구상공은행을 운영하던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탈취시도와 맞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ref name="ReferenceA">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정종원]] 제5대 조흥은행장은 그의 삼촌이고 한평생 외교관을 지낸 정운철, 기업가이자 하와이 오하나 퍼시픽 은행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정운익과 사촌이다.
정운용은 1921년 여름 서귀조와 결혼하여 1923년에 장녀 연수(蓮洙)를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1930년 그의 아내는 7세의 여야를 두고 사망했다. 정운용은 다음 해인 1931년 김분조와 결혼했다.<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첫 아내와 사별한 뒤 김분조와 재혼했다.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7면</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도피하다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50653</ref><ref>놀라운 사실은 [[정재학]] [[대구은행]]장이 자신을 협박대상으로 꼽았던 친척 [[정운일]]에 대해 각별히 배려해줬다는 점이다. 정재학 행장은 정운일의 아들인 [[정인택]]( 1911~ 1973 )이 감옥에 있는 부친 때문에 상급학교진학이 어려웠던 사정을 알고 보증인 역할을 해줬다. 정인택은 정 행장의 보증 덕에 대구고보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 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태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인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ref>
- 주영(가수) . . . . 7회 일치
||<:><#797979> {{{#white '''데뷔'''}}} ||<(><#FFFFFF> 2010년 싱글 '그대와 같아' ||
* 2010년 12월 싱글 '그대와 같아'로 데뷔했으며 2년 동안 공백기를 보내다가 2012년 12월 'From Me To You'로 컴백했다.
* 2010. 12. 07 그대와 같아 (싱글)
* 2014. 12. 02 Starship Planet 2014 ([[케이윌]], [[씨스타]], [[정기고]], [[매드클라운]], [[보이프렌드]]와 함께한 싱글)
* 2015. 02. 05 NO. MERCY Part.3 ([[기리보이]], [[매드클라운]], [[몬스타엑스]]와 함께한 싱글)
* 2015. 12. 18 Love Line ([[효린]], [[범키]]와 함께한 싱글)
* 2016. 02. 15 요리 좀 해요 ([[케이윌]], [[정기고]], [[브라더수]]와 함께한 싱글)
- 추경호 . . . . 7회 일치
1996년 재정경제원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 서기관에도 몸을 담았다. 그 뒤 세계은행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 파견나갔다가 2002년 다시 재정경제부로 돌아와 기획관리실에서 8개월 일했다. 이후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장과 금융정책과장 등 금융분야 핵심보직을 섭렵했다.
* "선택과 집중으로 녹색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의 효과성을 제고해야 한다. 녹색금융의 저변이 확대됐음에도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확신 부족에 따라 민간참여가 아직까지 소극적이다. 정부와 민간의 적절한 역할배분이 중요하다.“(2012/09/21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2 글로벌 그린성장 포럼’에서)
* “높은 기술력과 뛰어난 아이디어로 무장한 중견기업은 우리 경제의 든든한 허리이자 희망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견기업의 성장이 필수적인 만큼 정부에서도 중견기업의 성장 걸림돌을 제거하고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커 나갈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들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 (2015/04/20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규제개혁간담회를 열고)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시절 국제경제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와 경제, 금융정책 부문에서 오래 근무한 덕에 실물경제와 금융 양 부문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도가 뛰어나다. 꼼꼼하고 업무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2005년 은행제도과장으로 재직할 때 재정부 직원들이 뽑은 ‘가장 닮고 싶은 상사’에 선정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실물경제와 금융 모두 정통한 경제관료|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7|날짜=2015-04-07|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 카치구미 . . . . 7회 일치
>일본의 고주파폭탄(高周波爆弾) 공격으로, 오키나와에서 적 15만명이 15분 만에 격멸.
>일본군함 30척, [[하와이]]에 입항. 미국 대통령은 일본이 지명.
"[[일본]]이 이겼으니까 일본에 귀국해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유혹하여, 승선권을 고액으로 강매했다. 현금이 없는 경우는 토지와 교환하였다. 하지만 가짜 '귀국승선권'이므로 배를 탈 수도 없었다.
패전 이후, 1946년 1월 일본은 새 화폐로 전환했으나, 브라질 국내에는 아직 구 일본 화폐가 남아 있었다. 일본 구화폐는 사용하지도 못하고, 외환으로 환전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이 이겼다는 소문을 퍼트려서 귀국하려는 일본인들에게 구 일본화폐를 파는 사기였다. 귀국하려는 일본인의 땅, 집, 가축, 그리고 브라질 화폐를 '''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구 일본 화폐로 사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휴지]](…)와 전재산을 바꿔버리고 전 재산을 잃고 자살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1945년 10월 3일, 브라질 일본인 사회에서 명망이 높은 인사였던 미야코시 치바타(宮腰千葉太)가 일본에서 종전을 알리는 문서와 외상이 해외 일본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만국 적십자사 브라질 지부를 통하여 받았다.
6월 3일 스웨덴 공사관 일본인 권익부는 요시다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상파울루 주 집정관이 관저에 카치구미 600명을 모아서 진실을 알리고 설득했다. 심지어 일본에서 직접 정치인이 브라질까지 와서 향후에 대한 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카치구미는 믿지 않았다.'''
아무튼 카치구미의 테러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식파 인사들 만이 아니라 미국 국무부, 일본 정부, [[GHQ]] 등에서 카치구미를 열심히 설득하였고, 일본 국내에서는 브라질에 친구와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호소가 퍼졌으며, 일본의 현재 영상을 브라질에 보내기도 했다.
- 킹덤/503화 . . . . 7회 일치
* 이와중에 도양왕은 이목을 모함하기 위한 밑밥 뿌리기나 신경쓰고 있는데.
* 간신 [[곽개]]는 거기에 한술 더 뜬다. 도양왕이 격무에 지쳐 쉬는 와중에 무슨 같잖은 소릴 하냐며 호주를 타박한다. 그는 진군은 산맥 너머에서 조군과 싸우고 있을텐데 어떻게 한단으로 오냐며 답답한 소릴한다. 공손룡은 이 한심한 꼬라지를 말없이 보고 있다.
호주는 그들이 서부공략을 빌미로 거병해 급히 진로를 틀어 한단으로 처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수는 20만. 이목이 이 같은 사실을 알려왔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말을 하니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곽개와 도양왕도 조금 듣는 척을 한다. 호주는 이목이 한단군을 움직여 요지 "열미"를 막아 진군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계책을 올렸다는 것도 전한다. 그런데 도양왕이 또 뜻모를 고집을 부린다. 그는 정예 한단군이 수도를 떠나면 누가 자기를 지키냐는 논리로 그 계책을 거절한다.
곽개는 오히려 호주와 이목을 탓한다. 그는 호주의 목을 조르며 "이목은 자기가 실수를 저질러 놓고 멀리서 왕에게 이러라 저러라 지시한다"고 매도한다. 도양왕이 지저분해진다며 곽개에게 그만두게 하지만, 호주는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나와서 몸도 가누지 못한다.
이같은 와중에도 이목에게 누명을 씌울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 호주는 기가 차면서도 차마 욕은 할 수 없고 걱정하지 않아도 이목은 군대와 함께 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목은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의 진군을 하고 있다.
- 킹덤/519화 . . . . 7회 일치
* 왕전은 각각 좌우익에 [[몽념]], [[왕분]]을 두고 [[이신(킹덤)|이신]]의 비신대를 자신의 본대와 함께 중앙에 배치시킨다.
* 더군다나 배치상 몽념이 상대할 이들은 지난 흑양구에서의 수모 때문에 분노해 있을 기수와 마정의 군대.
공교롭게도 총지휘관의 지시에 귀를 의심하는건 이목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기수]], [[마정]], [[금모]]가 정말 이 지시가 맞냐고 재차 확인한다. [[카이네]]와 [[부저]]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 그러나 이목은 확신한다.
양 대장군이 숙고를 거쳐서 완성한 포진. 이제와서 부하들이 어떻게 나오든 돌이킬 수 없다. 두 장군은 다시금 지시를 내린다.
그에 비해 진군은 극단적이라고 할 만한 배치. 총 전력 8만 8천을 중앙와 우익에 몰아넣고 좌익에는 고작 5천을 배정했다. 우선 중앙에 5만 8천 병력에 왕전 자신과 [[마광]], 그리고 비신대의 이신과 강외를 배치. 우익은 옥봉대에 병력을 추가해 총 2만 5천. 왕분과 [[아광]]이 있다. 문제는 좌익. 병력 5천으로 사실상 낙화대 단독 배치다.
* 무모함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신이 몽념을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부터 낙화대가 수행해야 할 작전도 문제였다.
몽념은 이신의 우려와는 달리 자신에 차있다. 그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에 말했다.
- 킹덤/525화 . . . . 7회 일치
* 그러나 영강의 죽음을 목격하고 격앙된 왕분은 마남자와 말 섞기를 거부하고 그의 꾸짖음도 "중화통일이 역사적 필연"이란 말로 일축한다.
* 왕분은 진왕의 검을 자처하며 마남자와 일전에 나선다.
악영의 부하들은 지시를 어긴 옥봉대가 못 마땅한 듯 했지만 아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부하 장교에게 군을 이끌게 하고 자신은 백 여기를 이끌고 적장 마남자에게 향했다. 옥봉대와 합류해 적장을 직접 처리할 작정이었다.
* 그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이상한건 [[흑금]]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던 그가 다가와 "별 일이다"고 말을 걸었다. 관상은 자기가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건 아니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아광이 내린 대기명령을 대놓고 위반하지 않았나? 깐깐한 관상이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흑금이 그렇게 말하자 관상이 "고립유군으로서 틀린건 아니다"고 대답했다. 마남자의 돌격은 아광군의 큰 위기였는데, 옥봉대가 끼어들면서 그 고비를 넘겼고 오히려 적장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대로 적장을 쓰러뜨린다면 진군 우익의 싸움은 초반부터 크게 우세해지는 격. 지시야 어떻든 전술적으로 틀린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흑금은 새삼 왕분의 전술안이 보다 날카로워진다 감탄했다. 관상도 그게 틀림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흑금이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말에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떨떠름하게 "맞아"라고 대답하는데.
* 같은 시각 왕분의 핏줄, 총대장 [[왕전(킹덤)|왕전]]도 우익의 싸움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지평선에 이는 흙먼지 속에서 군사들의 배치와 움직임을 꿰뚫어보는 듯 했다. 하지만 전황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은 어딘지 불편해 보인다.
* 새파란 젊은이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마남자의 낯빛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진짜 아수라장 속에선 번드르한 말따윈 의미가 없는 법. 그는 곧 "진짜 아수라장"을 소개한다. 그것은 조나라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이야기. 대 흉노족 최전선인 "안문"의 이야기다. 나라 안팎으로 명성을 떨치던 장수들이 차례로 파견되었다가, 한 달도 채우지 못해 시체가 되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반양도 접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기마민족 흉노와 전쟁으로 대륙 중앙의 난전은 비할 것도 없는 "사지"였다. 반양은 마남자가 그 안문에서 온 장수라고 짐작했다.
주나라의 천하가 펼쳐진지 500여 년. 한때 백에 이르렀던 나라들이 도태와 규합을 거듭해 지금은 고작 일곱이 남았다. "일대국". 분명 대륙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진왕이 품은 꿈은 곧 역사가 바라는 "해답"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조군이 반발했다. 왕분도 그들의 입장은 이해했다. 그러나 이곳은 전장. 그런 말뿐인 대립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토리코/364화 . . . . 7회 일치
돈슬라임은 네오와 동귀어진을 시도한다.
* 돈슬라임은 저세상에서 또 이치류와 식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최후를 맞이하려는데...
* 이치류는 영혼세계에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는데 마치 네오와 닮아있다.''' 그는 "무언가가 태어나려 한다"면서 엄청난 식욕의 에너지를 감지한다.
* 그때 언제 나타났는지 블루 니트로 "페어"가 나타난다. 페어는 돈슬라임의 추측을 확인해주듯 '''"우리(블루 니트로)와도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NEO'라 불린다"'''고 말한다.
* 원래 아카시아는 다른 블루 니트로 앞에서는 자아가 붕괴된 척하고 있었는데, 유독 "페어"와는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다.
* 최초로 아카시아에게 풀코스를 소개한 것도 "페어"였다는 점, 페어가 단독으로 아카시아와 접촉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페어가 다른 블루 니트로와 뭔가 다른 부분이 있는게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 토리코/373화 . . . . 7회 일치
아이마루와 브란치는 균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는데...
* 아이마루와 브란치는 아이마루의 균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 2대륙 네오의 기지에서는 텟페이가 나카우메가 세뇌가 풀린 제우스와 움직이고 있다.
* 제우스는 자신이 우멘을 막겠다고 나서며 텟페이와 나카우메가 GOD가 있는 곳을 갈 시간을 번다.
* 한편 네오와 싸우고 있는 토리코는 무릎을 꿇고 만다.
* 그가 언급한 "머나먼 땅"은 죠아와 아카시아가 가려고 하는 곳으로 어쩌면 풀코스를 먹은 이후에 갈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토리코는 코마츠와 함께 얻은 식재를 풀코스에 넣을 거라고 한 적이 있는데, 네오는 어떻게 봐도 그렇지가 않다.--한 입으로 두 말하는 남자 토리코--
- 토리코/374화 . . . . 7회 일치
* "센터"가 숨겨진 식재였던 것은 블루 니트로가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인데, 센터는 "지구의 구르메 세포"의 핵에 해당하며 구르메 세포 그 자체와 같기 때문.
* 토리코가 공격받는 순간 그 안에서 적귀가 튀어나와 방어한다.
* 그 순간 적귀와 청귀, 두 오니가 토리코로부터 분리되어 블루니트로들과 싸운다.
* 미식회 요리장 클래스와 싸우고 있는 부요리장들은 손쉽게 이들을 처리해 버린다.
* 스타준은 여유롭게 "보스에겐 마지막에 정신을 차렸다고 얘기해주마"고 말하는데, 갑자기 토미로드와 그린패치가 녹아내리듯 무너진다.
* 토리코의 비장의 무기는 적귀와 청귀의 해방. 각성한 흑귀가 언제쯤 나올지는 알 수 없다.
* 오오타케가 발견한 이변은 토마츠와 연관됐을 거란 설이 있다.
- 토리코/386화 . . . . 7회 일치
* 그때 검은 촉수 같은 것이 뻗어나와 죠아를 노킹한다.
* 토리코는 미도라에게 "당신이 와준다면 만 명 분 든든하다"고 인사하는데 그와 함께 안 좋은 소식도 전한다.
* 토리코와 스타준이 미도라를 구하러 가려 하자 "신의 손아귀"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기술을 시전한다.
* 강화된 제트 포크와 제트 나이프는 지구의 지면을 뚫고 깍아내 버릴 정도로 강력. 그러나 현재의 아카시아에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다.
* 네오와 아카시아의 강함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지만 이번 화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 우선 네오를 먹는 시점의 아카시아가 8천이므로 GOD를 먹기 전 시점의 아카시아와 네오는 이보다 포획레벨이 낮았을 것이다.
- 토리코/394화 . . . . 7회 일치
* 지구의 노킹을 마친 아이마루와 텟페이 귀환. 센터가 2대륙을 가득 채울 정도로 철철 흘러나온다.
* 코마츠는 눈물을 글썽이며 토리코 이상으로 감동에 겨워한다. 그때 대지에서 무언가 솟구쳐나오는걸 발견한다. 미지의 식재가 대지로부터 왈칵 쏟아져 나온다. 엄청난 양이 뿜어지는데 그 사이에서 텟페이와 아이마루가 나타난다. 이 식재는 바로 센터의 원액으로 무슨 원인인지 제 2대륙 전체에 걸쳐 샘솟고 있다.
* 미도라는 자신의 힘을 속죄하는데 쓰겠다고 말하고 토리코와 스타준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들에게 "사이좋게 같은 식탁에 앉아라"라고 충고해주는데 토리코는 그가 기뻐 보인다고 말하고 미도라도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다. 미도라는 자신의 에너지를 맛으로 바꿔서 지구 전체를 향해 발사한다. "구르메 스파이스". 한때 인간계를 괴멸시켰던 미티어 스파이스에 반대되는 힘이다.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간 미도라의 에너지는 식재로 전환되고 스파이스가 닿는 곳마자 울창한 숲이 생기고 새로운 식재가 풍족하게 피어난다.
* 네오는 그 후에도 끝없이 식재를 분출한다. 우주의 은하수를 수놓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식재. 페어는 그 중 자신의 동포 블루 니트로들이 섞여 있는걸 발견한다. 결국 아카시아와 페어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 그 분출도 드디어 멈추고 네오는 최초의 나약한 가축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완전히 무력해진 네오 앞에 식재를 든 토리코가 나타난다. 토리코는 이제 속이 시원하냐고 물으며 그에게 함께 먹자고 식재를 내민다. 수십억년 동안 뺏고 빼앗기기만 했던 생활. 네오는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와 식재를 나눠먹게 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청귀와 제 3의 악마는 결국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끝나게 됐으며 특히 제 3의 악마에 대해선 정확한 명칭 조차도 밝혀진게 없다. 팬덤에서는 최초에 "흑귀"라 불렀으나 "백귀"로 명칭이 바뀌었고 구현화됐을 때 몸체가 흰색으로 보여서 대체로 백귀란 명칭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세 번째 악마가 어떻게 네오를 흡수할 수 있었는지, 어디서 온 존재인지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다.
죽은 것 같았던 팔왕도 대부분 소생했는데 낭왕 기네스와 사왕 마더스네이크의 생사는 불분명. 사왕은 경왕 문의 뱃속에 있어서 영향을 못 받은 걸 수도 있다. 기네스는 네오에게 당했을 때 즉사해 버린 건지 등장이 없는데, 어차피 네오가 식재를 토해냈으므로 분명 기네스도 다시 나왔을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7회 일치
>모든 원소 중에서 불은 공포와 죽음을 가져온다.
오토모 가문은 불교와 관련된 세력 기술들이 기독교 관련 세력 기술들로 대체되어 있다.
* 도로(Roads)를 역로와 역참(Post Roads and Stations)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은신술 훈련은 그림자 속에서 다니는 자와 이런 자의 주인에게 이득을 준다.
>적어도 현명한 사람은 원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 역로와 역참(Post Roads and Stations)을 특급도로와 망루(Imperial Roads and Towers)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 판타스틱 포 . . . . 7회 일치
때에 따라 구성원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4명의 후천적 초인- 리드 리처즈([[미스터 판타스틱]]), 수전 스톰([[인비저블 우먼]], 후에 리드와 결혼하여 수전 리처즈가 된다.), 조니 스톰([[휴먼 토치]] II), 벤 그림([[씽(마블 코믹스)|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4명의 인물들의 인간 군상과 가족 드라마를 주제로 한다.
사실 판타스틱 포의 탄생 배경(당시 1961년)이 다소 엉뚱한데, 모든 것은 당시 타임리 코믹스([[마블 코믹스]]의 전신)의 출판인이었던 마틴 굿맨이 경쟁사인 [[DC 코믹스]]의 대표 잭 리보위츠와 골프를 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남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순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판타스틱 포》가 나오기 전부터 여러 작품의 스토리를 다루었지만 리는 이게 마음에 안들어서 만화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고 《판타스틱 포》의 제작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리의 아내가 "그럼 당신이 쓰고 싶은 얘기를 써보세요"라고 얘기했고 리는 아내의 말에 따라 《판타스틱 포》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썼는데 그게 대성공했다. 이때 처음 사용한 방식이 바로 리가 대략적인 개요와 플롯을 작화 담당에게 주면 작화 담당이 여기에 따라 원고를 완성하고 리가 대사를 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작화 담당들의 끼가 폭발할 수 있었으며 리 본인도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동시에 더 편하게 작업할수 있었다.
판타스틱 포는 마블 최초의 히어로 팀이기도 했으며 스탠 리와 작화 담당의 공동협력 방식이 사용된 최초의 시리즈였다. 그리고 마블 코믹스를 조그마한 만화 출판사에서 메이저로 올린 장본인이다. 한마디로 '''판타스틱 포 없이는 오늘날의 마블 코믹스도 없다.'''
2011년 3월 연재분에서 [[휴먼 토치]]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자리를 영구 결번으로 하고 그의 유언에 따라 [[스파이더맨]]을 정규 멤버로 영입했다. 명칭도 '퓨처 파운데이션(Future Foundation, FF)'으로 변경하였고 유니폼 색도 흑백으로 변경하였다.하지만 휴먼 토치의 생존&복귀로 다시 이전의 판타스틱 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퓨처 파운데이션은 판타스틱 포와 별개로 분리되었다. 새로운 구성원은 2대 앤트맨인 스콧 랭, 메두사, 미스 씽, 쉬헐크.
* 와이엇 윙풋
- 페어리 테일/494화 . . . . 7회 일치
* 페어리테일 길드에서는 제레프와 메이비스가 대면 중.
* 메이비스와 함께 길드 바깥으로 나서는 제레프.
* 메이비스를 탈환하려는 페어리 테일 일행은 이 군세를 뚫고 와야 한다는 것.
* 한 번 패했던 아질 라무르와 제이콥 레시오도 건제하다.
* 드디어 깨어난 엘자는 멀리서 변해버린 길드와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 디마리아는 브랜디쉬와 적대할 거란 예상을 깨고 동병상련이라도 느꼈는지 엄청 달라붙는다.
* 하지만 스프리건 최강의 오거스트와 아이린으로 공언된 상태인데, 그들도 아크놀로기아에는 미치지 못한다.
- 페어리 테일/513화 . . . . 7회 일치
* [[미네르바 올랜드]]와 [[유키노 아그리아]]가 조력하러 오나 상황 종료.
* 미네르바는 [[카구라 미카즈치]]와 묵은 원한을 청산한다.
* [[스팅 유클리프]] 대 [[라케이드 드래그닐]]의 싸움은 스팅의 승리로 끝났다. [[미네르바 올랜드]]와 [[유키노 아그리아]]가 조력하러 오지만 이미 끝난 상황. 프로시와 렉터가 [[로그 체니]]와 스팅에게 달려들어 기쁨을 표현한다. 프로시는 다짐한 대로 로그와 함께 밥을 먹자고 하는데 상황을 알리 없는 로그는 어리둥절.
* 미네르바는 대마투연무 이후 처음으로 [[카구라 미카즈치]]와 대면. 과거의 악행에 대해서 사과한다. 카구라는 이제 사람을 원망하는건 그만 뒀고 "앞을 보며 살고 싶다"고 용서한다. 유키노의 언니 [[엔젤(페어리테일)|소라노 아그리아]]는 태평하게 널부러져 있다. 스팅과 로그는 기력이 다해 넉다운. 뒤를 맡긴다.
- 페어리 테일/520화 . . . . 7회 일치
* 다시 [[피오레 왕국]]으로 돌아온 나츠와 [[루시 하트필리아]],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길드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나츠는 마침내 제레프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곧 "선택"을 강요받게 될 거라며 살지 죽을지는 나츠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나치 그 말을 잠시 곱씹는다. 그러나 이그닐도 눈치챘듯 답은 이미 나와있다.
* 갑자기 일어난 나츠. 맨몸으로 나츠의 체온을 유지시키고 있던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가 화들짝 놀란다. 나츠는 자다 깬 사람처럼 멀쩡하다. 루시와 해피가 기뻐서 얼싸안는데 나츠는 어리둥절하게 방 안을 둘러 보다 루시한테 왜 벗고 있냐고 묻는다.
나츠가 일어난 건 안 [[폴류시카]]가 나타나 나츠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던 거라고 칭찬 좀 해주라고 말한다. 나츠는 그말대로 루시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자신은 이제 "개운하다"며 상태가 완전히 나았다고 말한다. 루시는 해피에게 들은 대로 "제레프를 쓰러뜨리면 죽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데, 나츠는 "왠지 괜찮을 거 같다"며 웃는다. 그는 심상세계에서 "인간으로 있기로 한 일"을 말해준다. 루시는 그정도 말로는 납득하지 못하지만 나츠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기억이 없는 동안 엘자와 [[그레이 풀버스터]]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며 둘의 안부를 묻는다. 해피는 엘자는 싸우고 있고 그레이는 옆 방에 있다고 알려준다.
[[오거스트]]와 제레프는 유니버스 원이 풀리는 것을 보고 아이린이 당했음을 직감한다.
* [[피오레 왕국]]은 원래 모습을 되찾고 페어리 테일 길드가 있는 매그놀리아도 원래 대로 돌아온다. 페어리 테일 일행은 모두 매그놀리아에 있었고 나츠와 루시 일행은 루시의 자택으로 이동된다.
- 하수빈 . . . . 7회 일치
•'''하수빈'''의 아티스트로의 성장과 변모로 이끈 '''《The Persistence Of Memory - 추억의 영속》...'''그녀의 감성 판타지, 그 영혼의 음악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간의 삶의 여정, 사랑, 평화 그리고 오랜 그리움의 정서를 영상미학적 음향(Cinematic Sound), 섬세한 문학적 언어와 감성적 음악으로 조각함이 무척 인상적이다.
애틋한 그리움과 깊은 사랑을 표현한 헌정음악으로, 물리적 거리, 시간과 공간, 삶의 방식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 음악적 환경 속에서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한 앨범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내면적 깊은 감성은 매우 회화적이다. 그 감성과 자연 생태에 근접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의 결을 찾고 추구했으며 회화적인 사운드로 채색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위대한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The Persistence of Memory'''와 동명 타이틀을 취한 이번 앨범은 그의 회화, 전위적 예술이 그녀의 음악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원대한 바다... 마치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바다, 별, 태양, 바람, 비, 구름, 중력, 꽃, 숲, 호수, 파도, 피아노... 이 모든 것을 추억이라는 모태로 형상화 했으며, 자연 그 생태와 환경에 근접한 감상들을 아름다운 영상미학적 음향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엔 비가 와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어디엔가... 인위적 기계 문명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변화와 파괴를 강요받지 않은 자연과 함께 안식 할 수 있는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곳의 그 신비로움을 음악언어로 노래하고 표현하며 그녀만의 세계로 나타냈다.
그동안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듯, 또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이 영상 시집은 지나왔던 시간과 그녀의 감성을 이해하기 위한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혼을 담은 듯 영혼을 울리는 그녀만의 깊은 애수 그 추억 속을 거닐어 보며...
A rainy day in Paris (파리엔 비가 와요) 우유 빛 추억
- 하이큐/208화 . . . . 7회 일치
* 야마구치는 "우시와카랑 같다"고 놀라워하고 츠키시마는 "우시와카는 최종적으로 남은 거고 카게야마도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며 냉정한 소릴한다.
* 합숙은 12월 초 5일간인데, 1월의 봄 대회가 있으므로 참가는 강제가 아니다. 하지만 카게야마와 사와무라는 "당연히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츠키시마는 은근슬쩍 사양하려고 하는데 사와무라가 어거지로 밀어넣는다.
* 결국 카게야마와 츠키시마는 모두 합숙에 불려가게 된다.
* 히나타는 귀가길에 츠키시마, 야마구치와 편의점에 들르는데, 이때 야마구치가 "합숙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자 츠키시마가 "몰래 가보지?"라고 농담한다.
- 하이큐/219화 . . . . 7회 일치
* 전일본 유스 종료. 강화합숙에서 큰 성과를 거둔 히나타와 달리 카게야마는 다소의 의문점을 남기고 돌아온다.
* 미야기현 강화 합숙을 맡았던 와시죠 감독은 히나타를 두고 "체격 대신 주어진 것은 높이에 대한 굶주림"이란 뼈있는 말을 남긴다.
*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 이해도가 높아 훈련시간 대비 적응도와 팀워크가 뛰어나다.
* "(세트가 잘 올라와서가 아니라) 내가 잘나서 잘 때렸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 정작 다른 세터와 콤비를 짜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 넷 상에 돌아다니는 번역본은 이렇게 나와있지만, 영어원문("people who can't hit my tosses are nothing but scrubs")을 보면, "내 세트업으로 치지 못하는 녀석들은 죄다 엉터리" 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 뒷풀이로 밥집에 간 와시죠 감독과 코치진.
- 하이큐/224화 . . . . 7회 일치
* 코트 바깥의 팀원들은 전일본 유스에서 자극을 받은 탓이 아니겠냐고 짐작하는데 스가와라 코시도 우카이 코치처럼 "지금까지 그러지 않은게 더 의외"라고 답한다.
* 스가와라는 지금의 카게야마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과 "중학생때 팀메이크에게 몸소 직구를 맞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가 즉석에서 분석해서 "확실히 오늘은 적다"고 직격탄을 날려서 반박도 할 수 없게 만든다.
* 히나타는 큰 공헌을 한 셈인데 자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도 확 와닿는 별명이 있음 좋겠다"같은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다.
* 권두 컬러는 사토리가 나와서 "애니 3기 1화는 와카토시는 실은 30대 후반, 와시죠 감독과 우카이 감독의 게이트볼 승부, 히나타 공중부양 습득의 3부작"이란 개드립을 치고 들어간다.--귀중한 컬러로 뭐하는 짓이야--
- 하이큐/237화 . . . . 7회 일치
* 카라스노 구성원들의 "성장"이 만들어낸 결과. 그 와중에도 히나타는 부족한 부분을 계속 체크하고 진화하고 있다.
* 스파이크를 받아낸 [[히나타 쇼요]]. 하지만 자세가 어설퍼서 공이 애매하게 떠버린다. [[니시노야 유]]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가 제대로 리시브 위치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놀라는 것 같지만, 히나타는 너무 앞으로 갔다며 자책한다. 공은 도로 코트로 떨어지려고 하는데 [[타나카 류노스케]]가 몸을 날리다시피 하며 살린다. 공은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넘어가 침착하게 마무리. 밀어넣기 성공으로 드디어 18:18로 동점을 만든다.
노마크로 득점을 허용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히나타가 있다. 여전히 앞으로 너무 나가서 몸으로 공을 받는 모양이 됐지만 어쨌든 공은 살아 있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급하게 공을 올려서 타나카가 츠바키하라 진영으로 넘긴다. 삐걱거리는 연계였지만 타나카가 까다로운 코스로 공을 보낸 덕에 츠바키하라가 곤란해 한다.
* 타나카가 중학생일 때만 해도 이런 임기응변은 없었다. 중 3때 체험입부 했던 시기에는 너무 힘만으로 쳐대서 아웃되기 일쑤였다. 지금 다이치나 아즈마네, [[스가와라 코시]]는 그를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듯 하다. 관중석에 있는 졸업생들도 그걸 기억하는데 지금은 좋은 코스를 고른다며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한다.
사실 츠키시마가 딱히 토스를를 잘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올리는 토스는 확연이 달라졌는데 스기우라는 "약간의 어색함과 최대한의 정성"이라 표현한다. 합숙에서 [[코가네가와 켄지]]에게 잔뜩 쓴소리를 들은 탓인지 높고 깔끔한 세트가 올라온다. 아즈마네는 "왠지 감동적"이라 여기며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러나 츠바키하라 쪽에선 블록 3장으로 덤비는데.
선수들은 물론 벤치와 관중석에서도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한편 히나타는 수비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자꾸 몸통으로 공을 받아서 관중석에선 "몸으로 받지 말고 손으로 받아라"고 웃음거리가 된다. 본인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부끄러워하는데 사와무라는 전에 "야생의 감"으로 공을 따라가던 것과 달리 상대의 플레이를 보고 공이 올 곳을 예상해서 움직인 점을 좋게 평가한다. 그 뿐만 아니라 카게야마나 츠키시마 조차도 "경쟁심을 발동시킨" 얼굴로 히나타를 주시한다.
- 하이큐/255화 . . . . 7회 일치
* 대부분은 카라스노에 대단한 쇼크가 될 거라고 예측했으나 괴짜 콤비 [[히나타 쇼요]]와 [[카가야마 토비오]]는 물론 [[우카이 케이신]] 코치도 덤덤한 반응.
* [[카라스노 고교]]의 간판이자 필살기라 할 만한 괴짜 속공.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아츠무]]는 즉흥적으로 그 기술을 카피해서 [[미야 오사무]]와 성공시킨다. 거기에 반격하러 온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원조. 이또한 아츠무의 천부적인 센스로 철통같이 리드 블록, 철저하게 봉쇄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스코어는 13 대 10으로 이나리자키의 3점 리드.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벤치에서 나와서 선수들에게,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게 직접 "침착해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우카이 코치도 그렇지만 쓴맛을 본 괴짜 콤비도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태연히 "괜찮다"고 말하는 카게야마. 응원단에서는 우카이 코치가 뜻밖에 침착핸 태도를 보여서 "혹시 속으로는 진땀을 흘리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의아해할 정도다.
* [[야치 히토카]]도 히나타의 상태를 걱정한다. 지금껏 그는 자기보다 큰 상대와 싸웠지만 필살기 괴짜 속공을 앞세워 자신감있게 플레이해왔다. 그런데 그걸 상대가 똑같이 따라하는데다 자신들 쪽은 봉쇄,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까?
* 3점의 차이를 놓고 치열하게 진행되는 경기. 로테이션이 한 바퀴 돌아서 히나타가 코트를 나가고 다시 아츠무의 서브. 그런데 이 서브가 네트에 걸려서 넘어간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다급하게 몸을 날려서 받는데 공은 그대로 다시 네트를 넘긴다. 공은 다시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또다시 괴짜 속공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르다. 카라스노의 블록엔 [[츠키시마 케이]]가 있었다. 그는 공이 아츠무에게 넘어가고, 그가 공에서 손을 떼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 하이큐/264화 . . . . 7회 일치
>이제와선 그냥 개그 소재로 밖에 안 보여.
* 타나카의 1학년 시절엔 한 가지 더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2학년들은 생긴 걸로 보나 풍기는 분위기로 보나 강렬한 타나카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특히 키노시타는 "눈도 마주치면 안 되겠다"고 여길 정도로 겁을 먹었다. 타나카는 입부하자마자 남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그런 행색을 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먹혀들고 있었다. 키요코와 만나기 전까진.
언제나처럼 체육관으로 달려오던 키요코. 교복에 실내화 차림으로, 운동화는 두 손에 들고 있었다. 항상 제일 먼저 체육관에 도착하는게 그녀의 일과였고 그날도 그런 줄로만 알고 멋지게 체육관으로 뛰어들었다. 그때가 타나카와 처음 마주친 순간이었다. 약간 민망해하는 키요코에게, 타나카는 인상적인 첫마디를 던졌다.
그 우렁찬 외침은 동기들, 그리고 막 체육관에 드러서던 [[사와무라 다이치]], [[스가와라 코시]]에게 딱 포착됐다. 그리고 키요코의 대답.
초 이너 크로스. 타나카가 어슷하게 때린 공이 네트와 블록은 한 가운데, 네트를 따라가는 것처럼 사선으로 내리꽂힌다. 아웃 라인 안쪽. 카라스노의 득점. 긴 인내 끝에 승리의 포효를 지르는 타나카.
- 하지호 . . . . 7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8년 ~ 2010년)
'''하지호'''(河智皓, [[1984년]] [[12월 16일]] ~ ) 는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2008년]] [[신고선수]]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였으나 [[2010년]] [[11월 30일]] [[KBO (야구)|KBO]]에 공시된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SK 와이번스]]와 결별하였다.
|2009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SK 와이번스|SK]] ||2 ||2 ||2 ||1 ||0 ||0 ||0 ||0.500 ||0.500 ||0.500 ||1.000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경원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잠원초등학교 동문]]
- 하춘화 . . . . 7회 일치
||<:>[[남진]][br][[김상희]][br]마음이 고와야지[br]참사랑[br](1971)|| → ||<#FFFFA1><:>[[나훈아]][br]'''하춘화'''[br]고향역[br]'''물새 한 마리'''[br]'''(1972)'''|| → ||<:>[[남진]][br]하춘화[br]그대여 변치마오[br]영암 아리랑[br](1973)||
대한민국의 원로급 가수이다. [[1955년]] [[6월 28일]]생. 하춘화가 대단한 이유는 데뷔년도가 6살 때인 [[1961년]] 인지라, [[2015년]] 기준으로 '''나이는 환갑인데 가수 경력은 55년차'''라는 점이다. 참고로 하춘화가 데뷔한 해는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그 해이다. 처음 데뷔했을 때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엘자 렁히니나 [[다코타 패닝]] 저리가라 급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엘자 렁히니와의 차이점은 어른이 되어서 인기가 죽어버린 엘자 렁히니와는 달리 하춘화는 늙어도 인기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남자 가수로서 레전드가 [[조용필]]이라면 여자 가수로서 레전드는 하춘화였던 것이다.
이 와중에도 하춘화는 공연과 학업을 병행함에도 불구하고 학업에도 열중하여 [[1994년]]에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 최고 정책과정을 수료한 후 [[1998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였다. [[2000년]]에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가요의 원류와 변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공연예술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2006년]] [[8월 25일]]에 [[성균관대학교]]에서 현대 대중가요 역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예술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박사학위를 소지한 최초의 대한민국 가수가 되었다.
* 하춘화는 [[2011년]]에는 '''57살의 나이로 데뷔 50주년'''을 맞아 '하춘화와 함께하는 콘서트'를 개최하였으며 이 콘서트에서 벌여 들인 200억 원을 불우 이웃 돕기에 기부하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 학위만 5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가수 중에선 가장 갯수가 많다. 방송통신대학교 시상식에서 시상소감으로 말하길 자매가 넷인데, 다른 자매와 달리 혼자 박사학위 없이 가수로 생활하다보니 학위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한승조 . . . . 7회 일치
* 《인류역사와 세계문명》 (1998)
* 《한국민주주의와 정치발전(증보판)》 (1974)
* 《동북아 정세변화와 한일관계:아산재단연구총서 22》 (1995)
* 유영익, 수정주의와 한국현대사(현대한국학 연구소 학술총서 1) (연세대학교출판부, 1998)
* 한승조, 인류역사와 세계문명 (집문당, 1998)
* 한승조 외, 동북아 정세변화와 한일관계(아산재단연구총서 22) (집문당, 1995)
* 한승조, 한국민주주의와 정치발전(증보판) (법문사, 1974)
- 함중아 . . . . 7회 일치
신장은 171cm이고 체중은 71kg인 그는 [[골프]]와 [[스키]]에 취미가 있다.
* 1978년 03월 함중아와 양키스 《눈 감으면 / 안개속의 두 그림자》
*1980년 04월 함중아와 양키스 골든디럭스 1집 《풍문으로 들었소 / 나에게도 사랑이》
*1980년 08월 함중아와 양키스 골든디럭스 2집 《조용한 이별 / 안개속의 두 그림자》
*1981년 12월 함중아와 양키스 《국제선 대합실 / 콧날이 찡긋》
*1982년 03월 함중아와 무서운아이들 1집 《사랑은 정에 울고 / 아름다운 여인아》
*1991년 05월 함중아와 무서운아이들 2집 《나는 의사 / 여자의 얼굴》
- 헤소린 가스 . . . . 7회 일치
여러가지 재난에 시달리는 진구를 위해서 도라에몽이 헤소린 스탠드를 꺼내서 헤소린 가스를 주입해준다. 진구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되어 혼나거나 넘어져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퉁퉁이와 비실이에게 맞거나, 개에게 물리거나 차에 치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서 효과가 떨어지자 진구는 다시 헤소린 스탠드를 사용한다.
여기서 진구가 헤소린 가스를 남용하는 것을 보고 퉁퉁이와 비실이는 헤소린 스탠드를 강탈해간다. 진구는 가스의 영향 때문에 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진구는 이렇게 좋은 가스는 모두가 나눠야 한다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가스를 주입해주고, 이걸 본 퉁퉁이와 비실이는 가스 스탠드를 가져다가 유료로 제공한다.
진구와 도라에몽은 어른들을 불러와서 사태를 해결하려 한다.[* 퉁퉁이 어머니, 비실이 어머니, 선생님. 보통 어른들이 나서면 대체로 해결 구도로 흘러가는데 전혀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무서움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퉁퉁이와 비실이는 가스 스탠드에 매달려서 의존을 버리지 못한다. 가스가 다 떨어진 뒤 도라에몽이 일부러 역효과(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상태)를 내는 가스를 주입해줘서 겨우 헤소린 가스에서 벗어나게 된다.
실제로 비슷한 것으로 [[소기 가스]]가 있다. 효과는 소기 가스와 각성제를 참조한듯.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7회 일치
* 이와테 현 : 화장실의 3번째 칸에 들어가서 "3칸째의 하나코 씨"라고 부르면, 변기 안에서 하얀 손이 나온다.
* 카나가와 현 : 여자 화장실에 하나코 씨, 남자 화장실에 요스케 씨가 있으며, 부르고 나서 3초 이내에 도망가지 않으면 살해당한다.
1937년, 토오노에서 어느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경찰관이며, 아내와 아들, 두 딸로서 5인 가족이었다. 이 가족은 토오노 초등학교 바로 뒷편에 있는 경찰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경찰관인 아버지는 여자 버릇이 나빠서, 어느날 창녀와 둘이서 온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을 알게 된 아내는 질투한 나머지, 가족동반자살을 하고 말았다. 먼저 아들과 둘째 딸을 교살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이었던 이쿠코(いく子)는 무서워서 관사에서 학교로 도망쳐서 체육관 뒤에 있던 공동 화장실에 숨었다.
그런데 그것을 청소부 아저씨가 목격하였고, 어머니가 찾아와서 무서운 얼굴로 딸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자 아저씨는 이쿠코가 화장실 개인실 안쪽 세번째 칸에 있다고 말해버렸다. 어머니는 무서워하는 이쿠코를 데려갔는데, 다음날 아침 가족은 동반자살한 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 『학교의 무서운 이야기 하나코 씨가 왔다』는 단편 연작 애니메이션이 있다. 하나코 씨가 괴담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이야기지만, 사실 도와주지 않기도 한다.--일해라--
- 황희두 . . . . 7회 일치
2010년 10월 임요환 선수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게임계에서 은퇴하였으며 '제물테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前 프로게이머 출신 황희두와 넛지스토리 대표 [[국도형]]이 만든 비영리 민간단체다. <ref> 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9017 "비영리단체 청년문화포럼, 제1회 '컬쳐쇼' 녹화 성황리에 마쳐" 시민일보 2016.02.02. </ref>
"청년이 청년을 돕는다"와 "청년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사회적 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매 달 한 번씩 전체 회원이 모이는 <컬쳐쇼>를 진행한다. 2016년 1월 청년문화포럼을 설립해 21세기 新 문화운동,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 ADRF와 협력하는‘청년들과 함께하는 해외봉사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 노란 목도리 캠페인, 북트로(지하철 內 독서 장려), 동북4구 청년&청소년 문화행사 등의 다양한 사회 공익적 활동을 하고 있다.
'오로지 대학'만을 추구하는 문화를 없애기 위해 새로운 청년 문화 운동을 꿈꾸며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간의 세대 통합을 추진 중이다. 현재 활동 중인 청년은 약 180명 이며(2017.11 기준), 위원회는 14개(문화예술, ICT, 마케팅, 패션, 디자인, 민주참여, 역사, 뷰티, 교육위원회, 경제, 언론, 취업, 보건, 콘텐츠)가 있다.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ref>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60211001659379|[황희두의 북레터 인터뷰 2편] 대한북레터협회와 효암학원 이사장, 건달할배 채현국</ref>
* "어제의 기성세대와 오늘의 청년이 내일의 청소년들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고 노력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합니다." - 《박근혜 체포 기자회견 中》<ref>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ref>
- 3월의 라이온/120화 . . . . 6회 일치
기룡전이 끝나고 카와모토 자매는 여행을 마무리한다.
* 후지모토 라이도는 시합 후에 주변 사람들을 챙겨주며 모래찜질 명소도 알려준다. 키리야마 레이와 카와모토 자매는 모래찜질을 하러 갔다
* 카와모토 자매는 자신들의 일과 겹쳐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만 '''"어느 쪽을 골랐든 지금 이쪽을 골라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인생을 살자"'''며 생각을 정리한다.
* 거의 에피소드와 무관할 거 같았던 카와모토 자매는 아버지의 일과 겹쳐서 생각해볼 거리를 남겨주었다.
- 3월의 라이온/121화 . . . . 6회 일치
* 옛단골들이 하나둘 찾아와 축하해주고 건강을 기원한다.
* 카와모토 자매와 할아버지는 풋콩을 먹으며 여행지에서 모래찜질한 이야기를 나눈다.
* 공부에 매진하는 키리야마와 달리, 나메리카와는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대국을 기대하고 있다.
* 나메리카와는 수영을 즐기는 것 같지만 정작 잘하진 못하는지 걷는 풀에서 둥둥 떠다니다 한소리 듣는다.
- Crusader Kings 2/특성 . . . . 6회 일치
''매력적인 협상가는 우아한 드레스와 설득력 있는 미사여구로 고위 관리를 감동 시킬 줄 아는 훌륭한 외교관입니다.''
''통풍에 걸렸습니다. 고열과 피로에 시달리고 붓기와 관절통이 이어집니다.''
''이 인물은 "절제"를 미덕이라 믿습니다 - 이는 통치자와 장관 모두에게 가치 있는 특성입니다.''
''"인내"는 일곱가지 미덕의 다섯 번째이며 분노와 상반합니다. 인내를 지닌 인물은 모든 면에서 조금은 더 나은 모습을 보입니다.''
캐릭터의 취미(?)와 비슷한 것들. 캐릭터 당 하나밖에 가질 수 없다.
''모든 일에서 질서와 효율성을 최우선하는 성실한 행정가입니다.''
- K리그 챌린지 . . . . 6회 일치
특히 축구에 대해 한이 많은 부천, 안양을 중심으로 프로화를 진행 및 시민구단이 창설되고, 또 수원 FC나 충주 험멜과 같이 기존 [[내셔널리그]] 팀들이나 [[R리그]]에 참가했던 경찰청 축구구단들이 기준을 충족하면서 2013시즌부터 챌린지에 참가할 6개 팀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 2012시즌 K리그에서 강등된 광주와 상주가 챌린지에 합류하며 2013시즌을 원년으로 K리그 챌린지가 시작된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쉽의 관계처럼 새로 1부리그에 부여하는 이름이 명확하게 다른게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의 명칭이 상당히 헛갈릴 우려가 있었던 점이 지적되었다. 이런 이유로 2부리그도 단순히 K리그의 이름을 물려받는게 아니라 K리그 클래식처럼 충분히 구분가능한 명칭을 짓는 것이 공론화되었고, K리그 챌린지란 이름이 공식화된다.
그러나 이 챌린지란 이름도 기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운영하던 U-18대회인 챌린지리그와 또 같은 이름이 되기 때문에 기존의 챌린지 리그는 [[K리그 주니어]]로 명칭을 변경하는 원인이 된다.
= 내셔널 리그와의 연관성 =
간혹 내셔널리그를 챌린지의 전신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계획과는 달리 고양 국민은행이 승격을 거부한 것을 시작으로 울산미포조선까지 승격을 거부함으로써 승강제가 가동하지도 않았고, 리그의 구성 팀마저 프로화를 마친 구단이 없었기 때문에 챌린지와의 연관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챌린지는 리그가 구성된 이후에 승강이 이루어졌으며 리그의 구성 회원들도 모두 프로구단이기 때문에 그 연결성을 찾기가 어렵다.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2위부터 4위팀들끼리 벌어지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 획득을 위한 경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규정한 바에 따라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정규시즌의 연장선이 아니므로 별개의 대회로 취급했었으나,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PO도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인정함으로써 챌린지 PO의 승자는 챌린지의 최종순위 2위로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챌린지와 플레이오프 사이에서는 기록이 호환되지 않았다가 통산기록으로는 인정하게 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항목 참고.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6회 일치
챌린지 플레이오프는 정규 라운드가 끝난 이후 챌린지 2위~4위팀에게 참가기회가 부여된다. 상세하게 나눠보면 3위와 4위의 대결은 챌린지 준플레이오프라 칭하고, 챌린지 준플레이오프의 승자와 2위팀의 대결은 챌린지 플레이오프라 부른다.
첫 대회가 열렸던 2014시즌에는 이 대회 역시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규정한 공식경기지만 챌린지의 기록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기록했었다. 이는 챌린지 플레이오프가 엄밀히 말하면 챌린지의 정규 라운드의 연장선이 아니라 승강 플레이오프라는 [[승강제]]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 대회로 보기 때문이며, K리그의 소식을 전하는 공식매체인 [[K리그 웹진]]에서도 2014시즌의 데이터는 챌린지와 호환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K리그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보고 이 데이터를 공식으로 집계하기 시작하였으며, K리그 웹진 2015년 12월호에서는 다 통합하여 데이터를 공개하였다.
준플레이오프는 K리그 챌린지 3위팀과 4위팀이 3위팀의 홈에서 경기를 갖는다. 리그 3위와 4위의 차별을 두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둔다.
플레이오드도 준플레이오프와 마찬가지로 리그 2위팀과 준플레이오프 승자끼리 리그 2위팀의 홈에서 경기를 갖는다. 룰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이유로 응원팀이 K리그 챌린지에 있는 팬들은 ㅋㄲㅈㅁ를 외치는 중. 물론 여기와 관련없는 클래식 팬들은 매번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팝콘뜯고 구경하는게 다반사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6회 일치
* Wright & Langley's Aeroplanes(라이트 형제와 랭글리의 비행기)
* Sharp & Robert's Power Loom(샤프와 로버트의 역직기)
* Hussey & McCormicks Reaping machine(핫세와 맥코믹의 자동수확기)
* Whitney & Colt's Standardized Small Arms(휘트니와 콜트의 표준화된 소화기)
* Aerial Bacteria and Antiseptic Principle(공중 박테리아와 소독 원칙)
* Clinical Thermometers and Binaural Stethoscopes(체온계와 양이청진기)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6화 . . . . 6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46화. '''우마루와 탁구'''
[[도마 우마루]]는 UMR상태로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바 타케시"봄바]]를 만나 논다
* 왠지 프라모델 제작용 고글을 쓰고 오는데 우마루와 맞춰준 것.
* 우마루와 실핀이 치고 있는걸 보면서 왠지 누구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마침 우마루가 말을 걸어서 넘어가 버린다.
* 그때도 친구들이 치는걸 보고만 있었는데, 타이헤이가 먼저 다가와서 함게 치자고 권해서 즐겁게 탁구를 칠 수 있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7화 . . . . 6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47화. '''우마루와 꽃구경'''
우마루는 오빠 도마 타이헤이와 꽃구경을 간다.
* 막상 나와보니 인파가 몰려서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없다.
* 에비나와 타이헤이는 서서도 줄곧 얘기하는데 우마루는 "아줌마들처럼 서서 떠든다"고 생각해서 싫어한다.
* 에비나는 어렸을 적 오빠가 밤벚꽃을 보여준 일을 생각하며 타이헤이와 겹쳐본다.
* 에비나와 타이헤이의 커플 플래그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5화 . . . . 6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5화. '''우마루와 산책'''
* 우마루(UMR모드)는 실핀과 레트로한 도쿄 거리를 보다가 직전 현장으로 와버린다.
* 즐겁게 거리를 산책하다가 알렉스와 마주치는데, 실핀은 당황하며 몸을 숨긴다.
* 사실 실핀은 무려 10년 간이나 오빠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 도마 우마루(UMR모드)는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레트로한 도쿄 거리를 산책하는 Tv프로를 보고 있었다.
* 거기에 흥미를 느낀 실핀은 무작정 그 거리에 가보자고 하고 정말로 와버린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6화 . . . . 6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6화. '''우마루와 삼자면담 1'''
*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베 키리에의 어머니는 한껏 꾸미고 나타나 신경전을 벌인다.
* 에비나 나나의 어머니도 아키타에서 올라와 삼파전 양상.
* 도마 우마루는 집에 돌아와 다음 주에 면담이 있다고 전하는데 도마 타이헤이는 왜 더 일찍 말하지 않았냐고 난처해한다.
* 우마루는 "봄바(모토바 타케시"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 카에데 여사와 미키 여사는 서로 안면이 있는지 인사를 나누는데, 서로의 패션을 은근히 디스한다.
- 고인범 . . . . 6회 일치
180cm 훤칠한 키에 흔히 등장할때마다 백발머리 또는 은발머리이다.[* 단 사극은 제외][* 사실 카리스마 이미지와 부합하여 은발과 백발은 트레이드 마크이자 상징이다. 근데 새치염색하면 사람들은 그를 못 알아본다고...]
2016년 7월 31일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충청북도|충북]][[충주시|충주]]대표 저녁종합[[뉴스]] [[KNN 뉴스아이]]에서 '고인범의 억수로 맛있는 시장' 코너(꼭지)를 직접 진행하고 있다. 다음날인 월요일 [[KNN 모닝와이드]]에서도 재방송된다.
* 2016년 SBS 드라마스페셜 [[돌아와요 아저씨]] - 장진구
* KNN [[KNN 뉴스와 생활경제|뉴스와 생활경제]] - 맛...맛있는 시장
* 2012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광주 FC . . . . 6회 일치
1. [[전남 드래곤즈]]와 전라남도청의 양해를 얻어 광주를 공동연고지로 하고, 경기장 사용권을 주는 방안
그러나 광주광역시의 신생구단 창단은 상당히 지지부진하여 2008년 연고협약 종료시점까지 광주로 오려는 팀은 없어 창단이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고, 2009년에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울산 현대미포조선 축구단을 K리그 참가조건으로 유치하려 했으나 이 역시도 울산미포조선은 애초에 K리그에 참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았기에 2번과 4번을 혼용하는 대안 역시 폐기된다.[* 기업구단을 유치하려 했던 이유는 2001년에 광주시가 파악했던 금액과는 달리 K리그 1년 운영비가 120억 수준이라는 것에 기겁(...)한 감이 있다. 2001년 시점에 광주시가 파악했던 K리그 구단의 1년 운영비는 40억 수준이었는데 지금와서 보면 택도 없이 낮은 금액.] 또한 이 상무와의 연고협약 과정에서 광주광역시는 이미 한국프로축구연맹에 K리그 참가를 전제로 이미 회원가입비 + 축구발전금으로 40억원을 납부한 상황이었는데... '''만약 팀 창단을 하지 않으면 이 40억이 공중분해되는 마술이 펼쳐질 상황'''이라 결국 시에서 직접 나서는 5번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상무와 연고협약이 연장된 2년의 유예기간 안에 창단을 안 할시에는 그대로 돈이 날아가는 조건이었다.]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상위스플릿, FA컵 결승 등, 상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상주 상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김대환 (법조인) . . . . 6회 일치
1942년에 [[경상북도]] 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육군 대위를 전역한 이후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와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수석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999년 10월 11일에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된 직후인 11월 20일에 수원지역 주민들의 등기민원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2000년까지 수원시내 택지개발지구에 2개 등기소 를 설립하였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559307]</ref> 2000년 6월에 [[최종영]]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신임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08261]</ref> 2000년 7월21일에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01년 2월 12일에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전보되면서 대법원장에 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 지명되었다.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법무법인 율촌에서 송무 Group<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6&aid=0000189786]</ref> 변호사를 하다가 2004년 3월 2일에 박영철 고려대 교수와 함께 대법원장 추천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에 임명되었다. 2013년 4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관할하는 서울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과 센터장을 맡았다.<ref>[http://news1.kr/articles/?1087614]</ref>
광주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1991년 12월 20일에 성폭행한 남자를 보복 상해한 피고인에 대한 항소를 기각하면서 집행유예와 치료감호를 선고한 원심대로 선고하자 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와 전남여성회 등이 재판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재판장실을 점거 농성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경찰에 강제연행됐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10020921500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1-12-21&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685&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91년 12월 21일</ref>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2년 10월 2일에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홍사덕]] 후보의 사생활을 비방하는 흑색 선전물을 살포하다 1심에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를 선고받은 안기부 대공수사국 소속 한기용(37세) 사무관과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박재규(29세) 김일환(32세) 전우경(27세) 등 4명에게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대공 수사관으로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성실히 일해온 모범 공무원인데다 유죄판결로 공무원 자격 박탈되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원심대로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2년 10월 2일자</ref> 1993년 2월 26일 [[5공화국]] 비리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받은 전 치안본부 정보1과 분실장 서정희(48세 당시 청와대 정부수석 비서관실 파견)에 대해 혐의사실 중에 일부만 유죄를 인정하여 선고유예 판결했으며<ref>동아일보 1993년 2월 26일자</ref>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은폐, 조작하여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전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65세)에게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1심대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2월 2일자</ref> 12월 8일에 불공정행위 조사와 관련해 기업체로부터 3200만원의
- 김미숙(1959) . . . . 6회 일치
어린 시절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알고보니 돈만 주면 합격하는 학원이었다고... 눈물이~~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思考)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배우는 포기했다. 그 당시로써는 큰 키와 마른 체구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세터. 그래서 손 힘이 굉장히 센 편인데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 영화 [[말아톤]]의 DVD 메이킹 필름에서 세차게 --강스파이크로--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아웃된 듯한 [[백성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드라마)|기분 좋은 날]] 9회 초반에 극중 집 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멀쩡한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마지막엔 결혼에 골인하고 [[내 딸, 금사월]] 44회에서 손창민은 김미숙과 여고 동문인 [[신득예]]에게 낭떠러지에서 위협받는다 뺨에 강스파이크~~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이 대회 대상은 [[원미경]].]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다. 상태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Fail.'''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 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
동 시대 활동하던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빼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그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으로 80년 대의 톱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성장한다. 특이한 사항은 또래의 여배우들과 달리 이 시기에 영화 출연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 에로시티즘이 만연하던 ~~3S의 그림자~~ 80년대 영화계가 본인과 맞지 않다고 느껴 TV를 위주로 활동했다고.
그리고 2009년 연기 인생 처음의 악역이라 일컫는 <[[찬란한 유산]]>으로 드라마에서의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족애와 성장드라마를 짬뽕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기며 큰 히트를 기록한다. 여기서 김미숙은 '''"정말 악역을 안 할 것 같은 배우"'''의 얼굴로, 징그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백성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 언제나 선하고 호감가는 역할만 하던 김미숙에게는 처음으로 욕을 먹는 경험(?)을 하게 한 작품이라고.[* 신선한 악역 연기에 찬사를 보내자 김미숙은 인터뷰에서 "다들 내가 이런 역할 못할 줄 알았나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 [[목소리]]가 '''정말''' 좋다! 그로 인해 일찍이 DJ로 활약했다. 라디오 진행 경력만 20년이 넘는다. 대본을 직접 쓰기도 하고, 방송할 때는 DJ 인기 투표 순위에도 항상 순위권. 우아한 목소리와 뛰어난 딕션, 그리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포인트. 연극에도 여러 번 출연했고, 연륜으로 인해 더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목소리는 정말 타고난 듯. 떡잎부터 달랐던 건지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본인도 놀랐다는 썰. ~~자랑인데 반박할 수가 없다...~~ 시 낭송 앨범을 여러 번 내기도 했다. [[감성애니 하루]] 내레이션.
* 연하남들과 연기를 많이 했다. [[장동건]], 故 [[안재환]], --안 그래 보이지만-- [[최재성(배우)|최재성]], [[손창민]] 등 많은 연하남들과의 연기가 많았던 편. 특히 <[[바람불어 좋은 날]]>의 [[이현진(배우)|이현진]]과는 26살 차이로, 이현진의 실제 어머니와 동갑(...)임에도 꽤 괜찮은 케미를 보여줬다. 후에 두 배우는 황금의 제국에서 모자 연기를 해서 다른 의미의 케미를 보여준다. ~~몰입이 안 된다고 거...~~ 그리고 2016년작인 [[우리 집에 사는 남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남자]]에서는 28살 연하인 아들 뻘인 [[김영광]]과 혼인신고 후 사망하는 설정이 나온다. 이쯤 되면 연하 킬러라고 해도 될 듯. 참고로 김미숙의 '''실제 남편도 5살 연하'''.
* [[1991년]] [[금강제화]] 르느와르
- 김민서(배우) . . . . 6회 일치
원래는 1999년 12월 9일에 3인조 힙합 걸그룹 민트로 데뷔해 약 10개월 정도 활동했는데 대표곡으로는 'Passion', 'The End'가 있다. 당시 멤버구성은 오지선(1986년 1월 2일 생), 강혜경(1985년 8월 24일 생)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유튜브에 MBC 음악캠프의 Passion의 공연 영상이(2000년 8월 12일자와 10월 28일자의 두개.) 올라와 있다.
[[장나라]], [[최강희(배우)|최강희]]와 꽤 친한 사이라고 한다. [[최강희(배우)|최강희]]와 함께 [[http://patchkorea.org/|패치코리아]]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성균관 스캔들|성스]]의 종영 이후 [[2010년]] 11월 [[배용준]]의 기획사인 [[키이스트]]와 계약했으나, [[2014년]] 5월에 [[키이스트]]와 계약이 만료된 후 [[FNC엔터테인먼트|FNC]]로 이적했다. 이적한 이유로는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4&aid=0003259596|"같은 크리스천과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알려져 있다.
- 김보정 . . . . 6회 일치
* 2016년 ~ 2016년 [[SBS]] 드라마 스페셜 《[[돌아와요 아저씨]]》 ... 방영은 역
* 2012년 7월 6일 ~ 2013년 3월 3일 《너와 함께라면》 ... 작은딸 역
* 2013년 4월 20일 ~ 2013년 4월 20일 《너와 함께라면 - 여수》 ... 작은딸 역
* 2014년 12월 5일 ~ 2015년 1월 4일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 ... 니나 역
- 김성현 (1989년) . . . . 6회 일치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 활동했고, 대구고 1학년 재학 중이던 2005년, 대구고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맞상대가 프로 야구를 주름 잡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이끌던 [[동산고등학교|인천 동산 고등학교]]. 결승전에서 대구고는 먼저 8점을 내지만, 경험 부족으로 9점을 내주면서 대역전패하게 되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1차 지명이 있던 시기라 오랜만에 나온 유망주에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대구고 1학년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제주 관광 산업 고등학교(현 [[제주고등학교|제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제주관산고의 감독인 [[성낙수]] 감독의 스카웃 및 설득으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후에 고등학교 스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학생 출전 정지 규정에 묶여 1년을 쉬게 된다.<ref>[[빠른 생일]]이지만 다른 1989년생들과 같은 년도에 입단한 이유.</ref> 그리고 이때 [[경상남도]] [[김해시|김해]]에서 같이 제주관산고로 건너와 친하게 된 친구가 바로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김수완 (야구 선수)|김수완]]. 그 뒤 2년 동안 제주관산고에서 공을 던지지만 특별히 대구고 1학년 시절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2011년 7월 31일, LG의 투수 자원 보강을 위해 [[내야수]] [[박병호 (1986년)|박병호]]와 투수 [[심수창]]을 상대로 투수 [[송신영]]과 같이 트레이드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김성현은 [[KIA 타이거즈]] 전에서 선발로 나와 승을 챙겨서 MVP로 인터뷰까지 했다. 그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서자마자 트레이드 사실을 통보받았다.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절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상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영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스포츠동아]]에서 영구 제명된 김성현의 사진을 승부 조작과 전혀 관련이 없는 [[SK 와이번스]] 내야수 [[김성현 (1987년)|김성현]]의 사진으로 잘못 게재하는 바람에 비난을 받았다. 다만 지적을 받고 바로 진짜 김성현의 사진으로 교체한 걸 보면 편집 과정에서의 실수인 듯하다.<ref>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439632</ref>
- 김재엽 . . . . 6회 일치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4년 대구 [[남산초등학교]] 4학년때 유도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대구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국규모대회를 20여차례 석권하였다. 특히 계성고 3학년이던 1982년에는 100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983년 [[계명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였으며, 1982년 6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유도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84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결승전까지 올랐으나 [[일본]]의 호소가와 신지에게 누르기 한판패를 당하면서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1986년에 열린 [[1986년 아시안 게임|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 [[서독]] [[에센]]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는 1984년 올림픽에서 패배를 안겨준 호소가와 신지와 또다시 결승전에서 맞붙어 통쾌한 허벅다리걸기로 한판승을 거두면서 패배를 설욕하였다.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에서는 전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한 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여유있게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경기를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1987년 세계 선수권자 김재엽과 198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호소가와 신지가 결승전에서 맞붙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으나 호소가와가 준결승에서 미국의 무명 선수 케빈 아사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손쉽게 판가름났다.
- 김정난 . . . . 6회 일치
|| 2008년 || [[아기와 나#s-2]] || 준수 담임 || ||
|| 2007년 || MBC || [[개와 늑대의 시간]] || 유경화 || ||
|| 2004년 || MBC ||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 김정난 || ||
|| 2001년 || MBC || [[여우와 솜사탕]] || 봉인화 || ||
* [[1991년]] 12월 11일 첫 회가 나간 뒤 시간대가 자주 변경되어 오다가 [[1995년]] 2월 7일부터 화요일 오후 7시 5분으로 고정된 [[SBS]] [[코미디 전망대]]를 같은 달 28일부터 개그맨 [[김병조]] [[이봉원]], 아나운서 [[김성경]]과 공동 MC를 맡았으나 그 해 봄 개편으로 김성경 아나운서와 함께 두 달 만에 하차했다. 사족으로, 코미디 전망대는 김정난 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 활동해 오던 여자 진행자들이 정통 드라마 출연 경력을 가졌다.[* MBC 공채 MC 출신 [[이매리]], KBS - [[MBC]]에서 활동해 온 개그우먼 [[조혜련]]]
* 개그우먼 [[전영미]]와 절친이다.
- 김지석(배우) . . . . 6회 일치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브래드필드 컬리지)를 다니다가 [[한국외대]]로 진학한 이력이 있으며 원래는 2001년 5인조 댄스그룹 리오로 데뷔했다가 리오가 묻히면서[* 참고로 이 그룹의 소속사가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슈가]]를 배출했고, 소녀시대 [[써니]]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스타월드였다.] 가수의 길은 접고 연기자로 전업해 2004년 MBC 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로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연예계 생활에 회의, 혹은 불안을 느낀 것인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중전공으로 [[독어]]/[[영어]] 교사 자격을 얻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연예인 포기하고 정말 학교 선생님으로 전직할 생각이었던 모양.
[[KBS2]]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와 중국에서 독립의용군 활동을 한 김성일 선생이라고 한다. [[김구]],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과도 연이 있는 분이셨다고...
그리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이동경로에 따라 자식을 낳으셨는데, 세 아들의 이름을 각각의 출생지를 따서 김[[북경]] - 김장충[* 이전 버전에서는 중국 [[장춘]]을 말하는건데 자막이 잘못 나온것 같다고 했는데, 라스에서 장충동에서 태어나서 김장충이라고 말했다.] - 김[[온양]]으로 지으셨다고. 심지어 김보석의 형은 신사동에서 태어나서 김신사[* 현재 이름은 김반석. 문제적 남자에 출연했을 당시 공개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김반석으로 나와있다. '신사'라는 이름은 아주 어렸을때 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촌은 [[런던]]에서 태어나서 김런던.~~런던에 사는 런던 킴~~ 김지석도 형과 같은 신사동에서 출생했는데 [[부활절]]에 태어나서 김부활로 하려다가 ~~빨리 발음하면 뭔가 [[부랄|문제가 될게 틀림없는 이름이다]]~~ 형의 새 이름과 맞춰 김보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집안의 작명은 할아버지의 센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러모로 대담한 집안이다.
상기했듯이 형이 한 명 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김지석이 출연하는 [[문제적 남자]]에 나와서 밝혔고 그 출연료는 전부 기부했다고 한다. 옥스퍼드에 입학하기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도 지원을 했었고 실제 입학시험에서는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합격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걸 이해 못해서 케임브리지에 상당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옥스퍼드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고 왜 거기서 떨어졌는지 깨달핬다고 한다.[* 그냥 수학 테크닉만 좋은 학생의 한계를 느꼈다는듯이 이야기를 했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고교시절,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와 수영한 적이 있다고 한다. 2주마다 [[영국]]에서 열리는 지역 대회에서 항상 옆레인에 윌리엄 왕자가 있던터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되었고, [[허구연의 저녁식사|식사도 했었다]]고 한다.
||<|2> 2004년 ||<|2> MBC ||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 조미령의 남동생 || ||
- 김혜선(배우) . . . . 6회 일치
요즘은 억센 아줌마 캐릭터로 알려진 [[배우]]지만,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과 [[조선왕조오백년]]-한중록,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남자 청소년들에게 김혜수, 하희라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기세를 이어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히로인]]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93년의 대히트 드라마였고 그녀의 연인 역할로 나왔던 주인공이 그 유명한 터프가이 [[최민수]]였다.[* 최민수와는 앞서 1991년 [[무동이네 집]]에서 커플로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왔었다. [[무동이네 집]]에서의 최민수가 이후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을 연상케 하는 허당 이미지였다면 [[걸어서 하늘까지]]의 배역은 전형적인 터프가이 반항아였던 것에 비해, 김혜선은 두 작품 모두 청순가련 형 여주인공이었다.] 더불어 김혜선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었다. '김혜선 과거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 그 시절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시라카와 쇼코(白川翔子)라는 이름으로 갓 데뷔했던 시절에 [[일본]]에서 활동한 바 있다. 그런데 보통 배우활동이 아닌 '[[그라비아]] 돌'로 활동을 했다. 지금의 그라비아 돌의 노출수위에 비해 좀 약하긴 했지만, 어쨌든 20여 년 전 수영복 촬영은 꽤 노출도가 높은 편이었던지라 일본의 이런 --[[성진국]]-- 문화 때문에 맘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2011년 출연한 영화 "완벽한 파트너"에서 그 당시보다 높은 수위의 노출연기를 선보였던걸 생각하면 흠좀무(...)
~~의외로 [[발연기]]가 심한 편이며, 특히 [[악역]]을 맡았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청담동 스캔들]]의 강복희 역할을 맡았을 때는 특유의 어색한 분노 연기와 머리 스타일(...) 때문에 '''[[앵그리버드 시리즈|앵그리혜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발연기]]라기보다 "역할을 탄다"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한마디로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지 못하다는 것. 대체로 선하고 차분한 연기에 특화된 연기자라고 할 수 있다. [[왕꽃 선녀님]]에서의 부용화 역이나 [[소문난 칠공주]]에서의 덕칠 역은 무난하게 잘 소화한 편이다. 밑의 수상내역도 나와 있지만, 연기상도 여러번 수상한 경력이 많은 연기자다. 그러나 괄괄하거나 억척스러운 역할, 또는 악역은 어색한 수준을 넘어서 발연기라는 오명까지 들을 정도이다. [[리즈 시절]]의 외모에 연기 스펙트럼까지 넓었다면 지금보다 더 대성했겠지만.
'''[[김완선]], [[엄정화]]'''와 동갑내기지만, 배역 탓인지 나이들어 보인다. ~~[[지못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6회 일치
* 미도리야와 마찬가지로 혼자 떨어져 버린 우라라카 오챠코.
* 설상가상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노출되어 집중 공격을 받는데, 그때 우라라카와 재회한다.
* 우라라카는 실수를 하고 미도리야가 도와주는데, 어쩐지 미도리야의 패널을 노린다.
* 이 여학생은 "웅영고는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 빨리 떨어질지도 모른다. 모처럼 강호와 겨룰 찬스니까 웅영고가 탈락하기 전에 웅영고생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보기보다 말이 많고 설명충 타입.
* 또다시 얀데레스러운 여자와 엮여버린 미도리야.
* 우라라카는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는데 미도리야는 무슨 대책이 있는가 싶어서 그녀와 합류하려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6회 일치
* 사건을 해결한 미나는 아무 일도 없던 듯 친구들과 어울리러 간다. 키리시마와 그 친구들은 좀 떨어진 위치에서 모든 장면을 목격했다. 친구들은 "저런 사람이 자연스럽게 되는 거다"라며, 그녀가 웅영고를 지망한다는 정보를 수군댄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상당이 높다. 운동신경이나 사교성, 게다가 "강렬한 개성"에 외견까지 눈에 띄는 그녀는 누가봐도 히어로가 될 만한 재목이다. 현재의 히어로 업계는 일종의 연예산업과도 같다. 대중의 인기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 키리시마는 그런 사실들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신경은 쓰고 있었다. 누구나 "히어로에 어울린다"고 인정하는 미나와 달리, 자신 쪽은 그렇지가 못하다. "경화"는 누가봐도 밋밋한 개성이다. 비록 라이오트의 가르침에 따라 몸을 단련하고 부족한 개성을 마음으로 커버한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시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키리시마와 같은 학교 학생들이었다. 단지 길을 묻고 있었지만 수상한 분위기와 몸집 때문에 여학생들이 겁을 먹었다.
* 키리시마는 왜 이런 순간에 히어로가 순찰하고 있지 않은지 원망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도와줄 누군가를 찾았지만 하나같이 경악하는 얼굴들 뿐. 그리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 답은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나와있었다. 친구의 입을 통해서.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6회 일치
*[[오버홀]]의 계획. 그것은 에리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제품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뿌렸던 샘플은 명중후 1, 2일 만에 자연회복되는 결함품이었다. 에리의 몸에서 떨어진 "인자"는 곧 효과를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효과를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을까? 많은 연구와 실험. 투자와 희생을 거쳐서 오버홀은 마침내 꿈을 실현했다. 개성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완성품. 하지만 쿠로노는 생산에 너무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 달을 투자해서 겨우 다섯 발. 최악의 생산성. 오버홀은 지금까지는 아마츄어 수준의 설비였지만 사업이 시작되면 걸맞는 환경을 갖추고 채산성도 맞출 수 있을 거라 장담했다.
그 말이 맞았다. 밀리오는 망설이지 않았다. 총구와 에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제 더는 아이가 슬퍼하게 두지 않을 거니까.
그의 손이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밀리오는 힘껏 미소지었다.
* 총알이 날아오는 동안 많은 것이 떠올랐다. 계기는 물에 빠진 날이었다. 어떤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가 그를 구했다. 그렇게 해서 밀리오의 진로가 결정됐다. 히어로가 되겠다. 아버지는 자기도 같은 꿈을 꿨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밀리오의 개성은 같았고 아버지는 포기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밀리오에게 아주 어려운 길이 될 거라면서 정말로 히어로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오버홀이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하려 했다. 밀리오는 복부를 찌른 꼬챙이에서 몸을 빼냈다. 아직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나이트아이를 생각했고 타마키와 모든 동료들을 생각했다. 그가 단호하게 치사키의 이름을 외쳤다. 오버홀은 다시 그 이름에 과민반응했다.
- 니세코이/218화 . . . . 6회 일치
* 이치죠는 "소중한 사람이 정해지면 모든걸 알려주겠다"던 유이와 약속을 떠올리고 그렇다고 대답한다.
* 유이는 그 말을 듣고 팬던트와 열쇠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는데
* 둘씩 나눠서 치토게를 찾기로 하는데 오노데라와 길을 나섰던 이치죠는 도중에 클로드가 기다리고 있는걸 발견한다.
* 이치죠는 오노데라를 먼저 보내고 혼자 클로드와 대면한다.
* 가짜연인인건 아무래도 좋지만 "다른 여자와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까지 알고 있다.
* 저런 이치죠가 치토게와 어울릴 리 없다고 여겨서 그를 쳐내려는 것.--사실 맞는 말이다--
- 니세코이/220화 . . . . 6회 일치
오노데라와 치토게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 저택의 2층에서 치토게와 놀며 그림책을 받은 것도 기억해내는데, 그곳 벽장에는 그때 그 그림책의 마지막 장이 남아 있었다.
* 치토게는 모두와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유이가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 그 말을 들은 치토게는 그림책의 왕자와 공주가 약속을 하고 다시 만나게 됐듯 자신들도 그럴 수 있다며 모두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한다.
* 그리고 이치죠와도 약속하고 오겠다고 하는데, "언젠가 꼭 재회해서 결혼하자"고 약속하겠다고 폭탄선언한다.
- 니세코이/221화 . . . . 6회 일치
* 치토게가 이치죠와 결혼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자 마리카가 격하게 반발한다.
* 공주의 열쇠를 놓고 치토게와 마리카가 다투는데, 결국 이치죠가 와서 "둘 중에 굳이 고른다면 치토게 쪽이 좋다"고 말해서 치토게의 승리가 된다.
* 그걸 전해주기 위해 오노데라를 찾아가는데, 오노데라와 이치죠가 약속의 장소에서 둘이 만나고 있는걸 발견한다.
* 마리카는 "만약 재회했을 때 오노데라와 결혼한게 아니라면 자신과 결혼하자"고 어거지로 약속하고 유이는 "언젠가 모두 다시 만나 사이좋게 지내자"고 약속한다.
* 둘이 남은 오노데라와 이치죠는 맹세를 나누고 치토게는 그것을 보며 돌아간다.
- 니세코이/223화 . . . . 6회 일치
* 클로드가 격렬하게 반대한건 "츠구미가 아가씨(치토게)와 결혼하길 바래서."
* '''츠구미가 아가씨와 결혼하길 바랬다고 외친다.'''
* 클로드는 츠구미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이치죠를 재치고 아가씨와 결혼하라고 부추긴다.
* 한편 치토게를 찾고 있는 마이코와 루리는 치토게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루리는 치토게와 오노데라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노데라가 중학생 때부터 이치죠를 좋아했던걸 알고 있기에 오노데라 쪽에 섰다.
* 그리고 좋아한다는게 꼭 기간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며 자신은 치토게와 오노데라 두 사람의 사랑이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 니쿠쟈가 . . . . 6회 일치
일본의 해군 제독 도고 헤이이치로(東郷平八郎)가 영국에 유학을 하였을 때, 비프 스튜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부하에게 비프 스튜를 만들라고 했다. 하지만 비프 스튜에 사용할 데미글라스 소스도 와인도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에 간장, 설탕, 미림 등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 니쿠쟈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도고 헤이이치로 발상 일화를 기반으로, 니쿠쟈가의 원조를 놓고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쿄토 부 마이즈루 시(舞鶴市)와 히로시마 현 쿠레 시(呉市)의 대결이다.
니쿠쟈가 자체가 특별히 발명할 필요가 없는 요리라는 주장도 있다. 고기를 간장, 설탕 양념으로 끓이는 스키야키 류의 요리는 이미 메이지 시대에 널리 퍼졌고, 감자 역시 에도 시대에 많이 보급된 작물이었기 때문에 감자와 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자연발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1902년 쓰여지고, 1917년 개정된 『가정일본요리법(家庭日本料理法)』(오오쿠라 서점大倉書店)이라는 책에 「쇠고기 떡국(牛肉の雑煮)」라는 요리가 실려 있는데, 이름은 달라도 요리법이 니쿠쟈가와 다르지 않다.
여담으로 니쿠자가라는 명칭 자체도 굳어진 것은 1965년대 말로서, 그 전 까지는 "감자와 쇠고기 조림(じゃがいもと牛肉の煮物)", "쇠고기와 감자 단조림(牛肉とじゃがいもの甘煮)"등으로 명칭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 대잠비행정 . . . . 6회 일치
'''단점''' : 수상직접이착륙은 사실 비행정에 상당히 큰 부담으로 작용하며, 다양한 기계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 아무리 대잠비행정이 크고 성능이 좋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수상기나 함재기와 비교한 것이지 육상발진 대잠초계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항공모함이 충실하여 대형 대잠초계기를 안정적으로 함재기로 쓸 수 있다면 굳이 대잠비행정을 쓸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특히 대잠헬기가 개발되고 이를 구축함에서도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대잠비행정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직접 착수해서 소나로 탐지하는 것은, 디핑소나와 소노부이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별로 이점이라고 볼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소나 탐지를 위해서 직접 착수하다보니 기체에 기계적으로 부담이 가고, 파도가 치는 해상에 착륙하는 것은 조종사에게도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라 디핑소나만 못하게 됐다(…).
미군에서 운용한 P3Y, PBM, 영국의 쇼트 선더랜드(Short Sunderland), 소련제 Be-6와 Be-12 등이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력이 충실하여 대잠초계기와 대잠헬기에 주력하게 되면서, 1960년대 대잠비행정에서는 손을 뗐다. 미국이 여기에서 손을 뗀 뒤로 서구권에서는 특별히 눈에 뛰는 대잠비행정이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일본은 소련 잠수함의 위협에 대처하려는 목적으로 1960년대 후반에 대잠비행정을 개발하였다. 이렇게 하여 개발된 신메이와 PS-1은 막대한 설계비와 제작비를 들였으나, 기대한 만큼 대잠성능이 나오지 않아 돈낭비(…)였다는 비판을 받았다.--플레이스테이션 1은 잘나갔는데--. 결국 일본은 육상대잠초계기로 방향을 돌렸으며, PS-1은 US-1, US-2 등의 수상기로 개량되어 해상구조 임무 등에 사용되었다.
- 디펜더 2 . . . . 6회 일치
자원은 골드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골드는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전투 후의 보상으로 받는다. 보석은 전투 후의 보상으로만 받으며(스테이지 모드에서는 2개, 대전에서는 1개), 업그레이드와 MP 회복에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보석을 쓸 곳은 많은데 비해 얻기는 어려우니 MP 회복보다는 기술 업그레이드용으로 쓰는 것이 훨씬 낫다.
스테이지 모드(단일)와 대결 모드로 나뉘는데, 특이하게도 대결 모드가 플레이어가 사망할때까지 끝나지 않는 무한 전투다. 상대방은 랜덤으로 매치되며 1:1이다. 오래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데, 상대방이 죽는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진 않으며 자신이 사망할때까지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 있다. 우측 상단의 화면으로 상대방의 현황을 볼 수 있으며 몬스터의 출현패턴은 양쪽 다 동일하다. 승리시 살아남은 시간에 비례하는 골드와 경험치를 받을 수 있으며 패배해도 경험치나 골드는 받을 수 있지만(죽인 몬스터 수당 1씩 받는다.) 보석은 받지 못하므로 주의.
덧붙여 상대와 자신의 스펙(정확히 어떤 조건인지는 [[추가바람]])에 따라 난이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3분 이상 버티기가 상당히 힘들다.
스킬특성상 투석기와 보스1말고는 쓸일이 없고 그마저도 보스1에게는 강력일격으로 타격을 방지하는게 대부분이라 사실상 강력일격과 성벽을 올리는게 이득이다
- 라데츠 . . . . 6회 일치
작중에서 등장할 시점에서는 매우 강했다. 작중 최강자였던 손오공과 피콜로를 2:1로도 쉽게 싸울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내용이 진행되면서 라데츠는 단순히 하급전사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베지터]]와 [[내퍼]], 그리고 우주최강자 [[프리더]]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파워인플레]]가 가속된다.
[[피콜로]]와 손을 잡고 협력하여 라데츠와 싸운다. 고전 끝에 피콜로의 [[마관광살포]]로 승리를 거두지만, 라데츠를 붙잡아서 제압하고 있던 오공은 라데츠와 함께 죽음을 맞는다.
* 주인공의 형인데 안습하다는 점에서 [[북두의 권]]의 [[쟈기]]와 공통점이 있다.
* 오공을 전력으로 쓰기 위해서 : 작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이유. 현재 베지터, 내퍼와 전투중인 별을 완전히 접수하기 위해서 인력을 늘리려고 했다.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6회 일치
Red Orchestra: Heroes of Stalingrad.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한 FPS 게임. [[킬링 플로어]]를 제작했던 게임 제작사 [[트립와이어 인터랙티브]]가 제작 및 유통했다.
Engineer와 Anti-tank Soldier에게 지급되는 무기. 총 2개가 지급된다. 럭키샷을 때리면 적 전차를 한큐에 날릴 수 있지만 보통은 두개를 맞춰야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
3kg짜리 휴대용 폭약.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 총 2개가 지급된다. 헤지호그와 같은 장애물을 파괴할 수 있다. 수류탄보다 폭파 전 딜레이가 길다.
Squad Leader와 Commander의 장비. 던진 곳에 적의 시야를 가리는 연막을 뿌린다.
Squad Leader와 Commander의 장비. Commander가 지원을 요청할 곳의 좌표를 딸 때 사용한다. 이걸 휘둘러서 공격할 수도 있다.
연합군이 공격, 주축군이 방어인 맵. 평야에서 시작해 시가지로 들어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주축군의 방어가 거센 곳은 초반 평야 지대와 마지막 포인트 바로 앞의 강. 연합군에게 지형적으로 불리한 위치인지라 소련 측은 T-34를 사용할 수 있다.
- 마기/350화 . . . . 6회 일치
* 그런데, 분명 신드바드가 마법을 멈췄는데도 해는 넘어가 버리고 밤이 찾아와, 성궁이 암흑으로 물들어버리는데.
* 지금까지 신이라고 여겨온 일 일라, 그 존재와 동맹을 맺는다. [[알리바바 사르쟈]]가 내놓은 "새로운 작전"에서 시작된 논의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더한 아이디어로 맺음된다. [[우고(마기)|우고]]는 지금껏 신적 존재들은 숭배의 대상이거나 타도의 대상, 둘 중 하나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알라딘(마기)|알라딘]]은 어째서 아무도 이런 발상의 전환을 못했던 거냐고 의문시한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가 이런 생각을 해낸 거라며 굉장하다고 칭송한다.
* 그런데 아이디어를 낸 신드바드는 암담한 기분이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하고도 크게 낙담하는데, 지금껏 자신이 진행하던 작업은 그토록 증오했던 "군국주의적 방법론"이었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들은 적이고 타도해야 한다. 그는 세상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게 싫어서 칠해연합을 만들었고 국제동맹으로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어떤가? 입으로는 혁신가를 자처해왔지만 결국 그도 알마트란 때부터 이어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서 벗어난 것은 타인의 의지, 알리바바 덕분이다. 그는 지금껏 운명을 꿰뚫어보고 만인을 이끄는게 "특이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사고가 타의에 의해 변했다면?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끌려가는게 당연해지는게 아닐까?
그런데 우고는 이제와서 세삼 발언을 번복한다.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가 불가능하다고 했던건 규모 때문이었다. 알리바바가 주장한대로 모든 벽을 부수고 세상을 통합하려면 엄청난 마고이가 필요한게 필연. 그러나 작은 구멍을 뚫어서 교류하는 정도라면 적은 마고이만 가지고도 그럭저럭 가능할지도 모른다. 알라딘 일행은 깜짝 놀라며 "그럼 왜 지금껏 하지 않았었냐"고 묻는다. 우고로선 억울한 지적이다. 생각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일 일라 같은 존재와 대화를 시도하는걸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까? 게다가 이런 방법은 지금껏 실험해본 적도 없으니,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의 영역일 따름이다.
우고는 크게 당황한다. 생각끝에 그는 작은 목소리로 "알라딘과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그는 옳고 그른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제 혼자 있긴 싫고 알라딘과 함께 있고 싶다. 스스로도 한심하지만 정말 그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걸 "하찮은 소원"이라며 솔로몬이 사람을 잘못 봤다고 독설을 날린다. 우고에겐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은 말이지만 달리 반박하지도 못하는데, 알리바바와 알라딘은 그를 위로한다. 알리바바가 "소원에 크고 작은게 어디있냐"고 격려하고 알라딘도 그의 의사를 받아들여 함께 힘내자고 다짐한다. 그러자 우고를 감싸고 있던 탁한 기운이 사라지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신드바드는 완전히 허무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던 그가 눈을 반짝이게 됐다며 또다시 감탄한다.
- 마누엘 고도이 . . . . 6회 일치
1793년에 [[프랑스]]와 [[전쟁]]을 했으나, 패배하고 1795년 바젤 협약으로 화평을 맺어 〈평화공(平和公)〉이라고 불리게 된다.--여러분 전쟁하고 지면 평화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유럽대륙의 패권을 잡아가는 프랑스 제국에 접근하였고, 스페인 해외 식민지를 노리는 영국과 대립하게 된다. 1801년에는 프랑스와 동맹하여 영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1805년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패하고 스페인 함대는 전멸하고 만다. 이로서 스페인은 18세기에 걸쳐서 건설한 함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중남미 교역 항로를 영국에게 빼앗겨서 제해권을 상실한다.
1807년에 고도이는 [[포르투갈]] 정복을 노리는 나폴레옹과 [[퐁텐블로 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 나폴레옹이 점령한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브(Algarve) 지역의 영유를 인정받았는데, 고도이는 황태자 페르난도(후의 [[페르난도 7세]])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황태자가 즉위하면 파면될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파면 이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알가르브를 영유하는 대신 스페인에 프랑스 군의 침공을 허용하는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결국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 일어나 [[카를로스 4세]]는 실각하고 황태자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 고도이 역시 재상 자리에서 해임되고 알가르브 영위 역시 인정받지 못해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고도이와 맺은 퐁텐블로 조약이 파기된 것을 명분으로 침공해오게 된다.
* 당시 기준에서 상당히 호색한이었던 모양으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명작 [[나체의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를 주문제작했던 본래 소유주였다.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역시 고도이가 주문제작한 작품이다. 본래 종교적으로 엄격했던 스페인에서 나체의 마하 같은 작품은 너무나 선정적이라서 제작되기 어려웠는데, 권력자인 고도이였기 때문에 그 같은 작품을 주문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세계사의 눈 : 호야와 반도전쟁 : http://www.kobemantoman.jp/sub/173.html
- 몰맨 . . . . 6회 일치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무술]] 실력도 뛰어난데다 [[무기]]가 내장된 특수한 [[지팡이]]를 다룬다. 그리고 다수의 [[몰로이드]](Moloids)와 [[괴물]]들을 부하로 두고 있다. 시력은 지하 세계를 탐험하다 손상되어서 항상 고글을 착용. 다만 귀가 밝다.
[[판타스틱 포]]와 대립해온 빌런.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등장해왔으며 만화책 1화 표지에 나온 괴물인 기간토가 그의 부하 중 하나다. 즉, 판타스틱 포의 대표적인 빌런인 [[닥터 둠]]보다 먼저 등장한 캐릭터.
[[지구공동설]]을 믿고 [[몬스터 아일랜드]]의 [[동굴]]로 내려가 지하 세계를 발견했으며 그곳의 몰로이드와 괴물들을 부하로 만들어 지상을 침공했다. 그러다 판타스틱 포와 충돌해 실패.
Subterranea라는 공통점이 있는 [[아웃캐스츠]](Outcasts)에 합류하기도 했으며 [[레드 고스트]](Red Ghost)와 파트너가 되기도 했으나 관뒀다.
오래 등장한 악당이다보니 마블 관련 미디어믹스 이곳저곳에서도 등장했다. 판타스틱 포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은 물론 헐크와 에이전트 오브 스매쉬에도 등장. [[아이언맨]] 관련과 슈퍼 히어로 스쿼드 쇼에도 등장했다.
- 문희(배우) . . . . 6회 일치
그러다가 1968년 여름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이들에게도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흥행작을 내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당시 서울 시내 한개 영화관에서 37만 관객을 동원하여 이전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윤정희도 남정임도 못했던 기록 갱신에 성공한다. 비련의 여주인공역을 맡았는데, 이러한 비련의 여성 이미지는 문희의 상징이 되었다. 이 때 문희에게 붙은 수식어가 '''눈물의 여왕'''. 미워도 다시 한번의 성공으로 남정임과 윤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 여배우가 되었다.
이후 전성기 시절에는 [[윤정희(1944)|윤정희]]와 치열한 경쟁을 했는데 문희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낼 때쯤, 윤정희는 [[내시]]를 흥행시키며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여줬다. 윤정희는 선역에서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역을 소화했고, 남정임은 발랄한 배역을 맡았다. 그러나 문희는 주로 눈물연기를 중심으로 한 선역을 맡았다. 그러나 윤정희가 연기력을 중심으로 평가받은 것과 달리 문희는 외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런 점 때문에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후 이외의 흥행작으로는 내 몫까지 살아 주, 파도, [[벽속의 여자]], 형, 결혼 교실, 춘향전 등이 있다.
벽 속의 여자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과 다른 자기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역을 맡았다. 한복과 수수한 원피스 차림 중심의 전근대적 여성상과는 다른 롱코트와 부츠를 착용한 서구적인 면을 가진 역을 연기하였다.[* 옷차림이 지금이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세련되었다.]
이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한 결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또한 [[윤정희(1944)|윤정희]], [[남정임]]과 함께 1960년대~70년대 여자 영화 배우 트로이카의 한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다가 1971년 갑자기 [[한국일보]] 부사장 장강재와 [[결혼]]해 영화 출연이 뜸해졌다. 다른 원로 여배우들이 결혼후 각종 구설수에 오르던 것과 달리 화목하고 잡음없는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1993년 남편이 간암으로 사망하면서 사별하였다. 현재는 백상재단 이사장으로 지내고 있다고.
* 1970년 《[[애와 사]]》
* 1970년 《[[처와 처]]》
- 바키도/114화 . . . . 6회 일치
오로치돗포와 도쿠가와가 티라노사우르스의 이빨과 무사시의 칼을 놓고 논쟁하다.
* 도쿠가와는 오로치돗포를 초청해 점심을 함께한다.
* 오로치는 사오싱주와 야채로 만든 만두를 맛있게 먹는다.
* 식사가 끝나갈 무렵 도쿠가와는 전날 바키에게 전해들은 말을 꺼낸다.
* 그러자 도쿠가와는 "무사시의 칼과 티라노의 이빨 중 어느 쪽이 위라고 생각하나"라고 묻는다.
- 바키도/136화 . . . . 6회 일치
* 모토베의 병실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한마 바키]]는 당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모토베와 [[시노기 쿠레하]] 박사는 조용히 시청한다.
>왜 이제와 이름을 묻나?
* 무사시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아나운서는 화들짝 놀라며 "맞는 말이긴 하다"고 당황한다. 하지만 거기서 자중하지 않고 경망스런 말투로 "보통은 400년 전 검호라 하면 의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그 순간이다. 아나운서의 왼팔이 떨어진다. 무사시의 에어참격이다. 바키와 같은 격투가는 물론이고 문외한인 아나운서조차 "베여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는다.
* 무사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그의 허리춤에는 "보이지 않아야할 칼" 한 자루가 매여있다. 바키와 모토베, 시노기 쿠레하는 물론 Tv로 보던 시청자들까지 한결같이 "허리춤에 뭔가 있다"고 생각한다. 투명하지만 분명 "그것"이 있다.
아나운서는 대체 왜 그런 칼이 있는 것인지, 공포와 당혹 속에 물으려 한다. 그러나 그가 말문을 여는 찰나.
* 번뜩이는 에어참격. 아나운서를 일도양단한다. 이 모습은 Tv를 통해 무려 "전세계로 전파된다. 나뒹구는 아나운서를 뒤로하고 무사시는 자신을 데려온 도쿠가와를 불러 돌아가자고 한다.
- 박노식(1971) . . . . 6회 일치
[[박준규(배우)]]의 [[박노식|아버지]]와 혼동하지 말 것. 이분은 1971년 5월 18일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출생한 다른 배우이다.
허나 이게 독이 되어서 식당에만 가도 극중 배역인 백광호도 아니고 백광호가 자꾸만 찾는 "[[향숙이]]다!"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진짜 두들겨 패고 싶었다고.(...) 나중에 시트콤인 미라클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자꾸만 백광호 스타일로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해서 굉장히 상심했다고 한다. 본인의 이름을 모르는 걸 떠나서, [[빵꾸똥꾸|역할명 자체가 향숙이가 아님에도 향숙이라고 불리는 것]]이 한이 된 듯.[* 심지어 박노식을 닮았다고 평가받던 당시 [[SK 와이번스]]의 야구선수 [[김연훈]] 선수(현 [[kt wiz]])의 별명도 백광호가 아니라 [[향숙이]]였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야구팬들에게 향숙이라고 불린다. --솩향숙에서 콱향숙으로-- --근데 김연훈이 상당히 싫어하는 별명이다 [[안습]]--] 비슷한 시기 영화 [[시실리 2km]]에서 비슷한 느낌의 --외모로 승부하는-- 신스틸러 역할로 나왔던 [[우현(배우)|우현]]이 똑같이 주목을 받은 뒤, 오히려 계속 잘 나가게 되고 몇년 뒤에 다양한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까지 성공한 것에 비하면 아쉬운 케이스.
어쨌거나 살인의 추억은 명실상부하게 그의 출세작이었고 소속사에도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소속사에 들어간 것도 완전 독이 되었다. 소속사의 권유로 [[그놈은 멋있었다]]와 '''[[여고생 시집가기]]'''에 출연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가지 더 눈물 나는 것은 이런 영화에 나오겠다고 '''[[올드보이(2003)|올드보이]]'''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출연을 고사한 것이다! 하지만 배우 본인이 후에 인터뷰 한 바에 따르면 당시 소속사의 추천 등으로 [[여고생 시집가기]]에 출연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감독님이 무조건 흡족한 얼굴로 좋은 연기였다며 OK를 외치는 통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ari2332&logNo=140009226878|당황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이후로 영화 [[괴물(영화)|괴물]]의 [[흥신소]] 직원으로 나와 박희봉([[변희봉]] 분)의 삥을 뜯는 역으로 나왔고 [[미녀는 괴로워]]에도 주인공 한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짜장면 배달부로 나오지만 그럴듯한 배역은 잘 맡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미생의 함차장이나 영화 [[명량]]의 [[김억추]][* 김억추장군도 강진군 출신이다.] 장군 등 단역으로 은근히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다 2016년에는 [[삼국지]]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특촬물]]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에 [[노식]][* 이 쪽은 외자로, 성이 노 이름이 식이다.]으로도 레귤러 등장.
* 1995년 무기와 인간 - 니콜라 역 (단역)
- 박상원(배우) . . . . 6회 일치
||<#5F9EA0> '''{{{#ffffff 출생}}}''' ||<(> [[1959년]] [[4월 5일]],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그러나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초등학교는 대구 수창초등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신의(드라마)|신의]] 등 故 [[김종학]] PD의 작품에 많이 출연해 인연이 깊으며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백야 3.98, 태왕사신기 등 [[최민수]]와 많은 작품을 찍었다. 또한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와 여명의 눈동자, 여자의 방 등을 통해 [[고현정]]과도 여러번 호흡을 맞추었다.[* 셋 모두 故 김종학 PD가 아끼던 배우들이라 그의 장례식 때 찾아와 빈소를 지켰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 보루토/3화 . . . . 6회 일치
*중급닌자 시험이 시작되고 사이가 시험관이 되어 재치와 끈기를 보는 시험을 진행한다.
* 모래마을의 카제카게 가아라는 칸쿠로와 함께 중급닌자 시험 참석을 위해 나뭇잎 마을로 향한다.
* 사라다는 자신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골라서 호카게가 되겠다며 O를 고른다.
* 보루토는 떨어지는 순간엔 카타스케의 도구를 쓸까말까 망설이다 포기해버리는데 미즈키와 사라다가 콤비 플레이로 살려준다.
* 시카마루는 새로운 서류와 함께 보루토의 1회전 돌파 소식을 나루토에게 전한다.
* 보루토팀은 세쌍둥이 닌자와 겨루는데, 이들은 본진을 비워두고 3명 모두 보루토에게 몰려왔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6회 일치
북한의 역사왜곡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봐도 특색이 강한데, 너무 왜곡의 강도가 심해서 역사관이 다르다거나 견해차이가 있다는 수준이 아니다. 이미 '''북한 사람들의 역사관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선'''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이러한 주장은 남한과 외국의 일반적인 역사적, 고고학적 견해와는 배치된다.
북한 교과서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1개 해안포병중대가 단 4문의 해안포로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함선을 가지고 달려드는 맥아더 5만대군의 인천상륙기도를 3일간이나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우리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맥아더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
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월미도에서 리대훈 해안포 중대장이 단 4문의 포, 1,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천의 함선의 함선을 이끌고 공격하는 맥아더의 5만 대군을 3일간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위 내용은 1983년에 북한에서 "월미도"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홍보하였으며 북한의 공식적인 역사관으로 보인다.
>- 이에 따라 대 살육작전을 현지에서 조종 지휘할 데 대한 임무를 받은 남조선 강점 미군사령관 윅캄(위컴)은 의로운 항쟁자들을 ‘버릇없는 망나니’, 지어는 ‘들쥐’로 모독하면서 ‘공수특전대’ 5개 여단과 보병사단, 기갑부대, 항공대를 비롯한 7만 여명의 방대한 무력과 장갑차, 중포, 군용직승기와 지어는 항공모함전단까지 광주의 평화적 주민들을 살육하는데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 브와나 비스트 . . . . 6회 일치
[[엄친아]]같은 인물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백만장자 아버지에게 가업을 이으란 말을 들었지만 거절하고 대학 룸메이트였던 루퍼트 켄보야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잠베시 국의 새로운 동물보존구역 책임자 겸 게임 관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개인 비행기에 탔을 때, 비행기가 벼락이 맞는 사고를 당해 킬리만자로 산꼭대기에 추락해 부상을 입었다. 두 사람은 뮤턴트 붉은 원숭이들의 동굴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무기질을 통해 걸러진 빗물을 마신 액스웰은 강하고, 사나워진 것을 느꼈다. 이후 붉은 원숭이들을 공격하여 복종시켰고, 붉은 원숭이들은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고대의 헬멧을 가져와 맥스웰의 머리에 씌웠다. 그를 헬멧의 주인으로 인정한 것.
헬멧을 통해 원숭이들의 생각을 읽은 맥스웰은 그들의 이름이 듀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헬멧이 모든 동물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힘을 아프리카를 위해 사용하기로 합의, 브와나 비스트라는 아프리카의 초인 해결사가 되었다.
후에 인종차별에 대한 평화적 시위 도중 총에 맞아 브와나 비스트에서 은퇴하고, 도미닉 믄다웨(Dominic Mndawe)에게 헬멧을 물려줬다. 이 도미닉이 바로 [[프리덤 비스트]]. 브와나 비스트란 이름이 백인 제국주의 같다며 프리덤 비스트로 바꿨다.
브와나 비스트는 애니메이션인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 시즌1 'This Little Piggy' 에피소드에 등장했다. [[원더우먼]]이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하자, 수색에 나선 리그 멤버 가운데 한 사람.
- 블랙 클로버/101화 . . . . 6회 일치
* [[노엘 실버]]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무사히 풀려나고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도 조종에서 벗어난다.
* 사건이 일단락된 후 마녀왕은 귀걸이로 쓰던 마석을 넘겨주고 고대 종족 "엘프"와 그들이 불러냈던 "마신", 그리고 아스타의 반마법 검에 대해 설명해준다.
* 마르스와 라드로스는 "괴뢰의 혈조"를 결정으로 만든 약을 가지고 다이아몬드로 돌아가 왕을 조종하는 한이 있어도 정상적인 국가로 돌리겠다고 다짐한다.
* 파나는 [[판젤 크루거]] 일행을 따라가나 다이아몬드 왕국이 평화로워지면 마르스와 세계를 보러 가자고 다시금 약속한다.
* 사건 종결 후 마르스와 라드로스는 다시 다이아몬드 왕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마르스는 여왕에게서 조종마법인 "괴뢰의 혈조"의 효과를 내는 약을 받았다. 마르스는 이걸 장생의 약이라고 속여서 왕에게 먹일 생각이다. 왕을 조종해서라도 다이아몬드 왕국을 평범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바꿔보려는 것이다. 라드로스는 여전히 정점을 노리겠다고 말하지만, 이전처럼 남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킬 생각은 사라졌다. 인격개조가 사라져서 그런지 인간성이 되살아난 것 같다. 그는 마르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쪽이 정점을 노리기 더 좋을 거라고 말하는데 내심 다시 젤과 만났을 땐 그에게 인정받을 만한 인물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어서와.
- 블랙 클로버/103화 . . . . 6회 일치
* [[카호노]]는 [[노엘 실버]]를 부추기기 위해 더블데이트를 제안,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친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 난데없이 더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키아토]]는 멋대로 동생 [[카호노]]가 오빠를 위해 벌이는 이벤트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복심은 따로 있었다. 척봐도 관계 진전이 미적지겋나 [[노엘 실버]]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자극하기 위한 이벤트다. 의도대로 노엘은 카호노가 아스타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스타는 더블 데이트가 뭔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네 사람은 축제 현장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생각없는 아스타는 그저 즐거워하고 노엘은 카호노와 아스타가 쿵짝이 맞는 모습을 보며 부들거린다. 키아토는 안습하게도 노엘에게 어필하기 위해 춤을 추지만 아스타에게 정신이 팔린 노엘은 거들떠 보이도 않는다.
마력 조작 게임에서 아스타와 페어로 우승한 카호노는 아스타에게 살짝 "아스타에게 노엘은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 다분히 노골적인 질문이지만 아스타는 눈치없이 "글쎄"라고 대답하며 갸웃거린다.
* 노엘은 아이를 달래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려고 하지만 너무 심하게 울어서 곤란해한다. 아스타는 게임경품으로 탄 공놀이 세트로 간단한 곡예를 펼쳐서 아이의 관심을 돌린다. 카호노와 키아토는 춤과 노래를 더하고 노엘은 여기에 물마법으로 무대효과를 연출해서 그럴 듯한 공연으로 만든다. 덕분에 아이도 울음을 그치고 투덜거리기만 하던 시민들도 공연을 보며 환호한다. 노엘은 드디어 아이에게 물어서 "에마"라는 이름을 확인한다. 카호노는 그 이름을 노래마법에 실어서 축제현장 전체에 울려퍼지게 한다.
* 아스타는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막 뛰어나가려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가시덩쿨이 바르만 남작과 수하들을 휘감아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6회 일치
* 시합이 시작했는데 잠이나 자고 자빠진 자칭 [[잭스 류그너]].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미모사 버밀리온]]이 분통을 터뜨리지만 요지부동.
* 로열 나이츠 선발시합 제 1회전. 전략전술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놨던 [[잭스 류그너]]가 시작과 동시에 드러누웠다. 노숙자마냥 흙바닥에서도 잘만 자는 잭스.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이럴 거면 설교는 왜 했냐고 갈군다. 잭스는 이기고 지는건 그들 관심이지 자신은 아니라 대꾸한다. 그러면서 그 특유의 신경 긁는 말투로 아스타와 [[미모사 버밀리온]]의 멘탈을 농락한다.
* 어디서 어떤 공격이 오는지 파악한 이상 당하고만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날아오는게 마법인 이상 아스타가 베지 못할 리 없었다. 화살이 B팀의 크리스탈을 노리고 날아왔다. 통상은 피하기도 어려운 빠른 속도였지만 아스타가 단번에 베어버렸다. 미모사는 잭스는 그냥 빠진대로 두고 둘 만으로 역공을 취하자 제안한다. 자신이 적의 탐지와 견제, 아스타가 크리스탈을 지키며 전진해 적의 크리스탈을 직접 파괴한다. 미모사가 즉석에서 이런 전술을 고안하자 아스타는 그녀가 벌써 많은 전장을 넘어왔음을 짐작하고 감탄한다.
* 이같은 임기응변은 갤러리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전술적인 조예가 없어서인지 별 생각없이 아스타가 첫시합에서 지지나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노엘 실버]]는 미모사와 아스타의 호흡이 잘 들어맞자 신경쓴다. 이 팀에서 순수하게 B팀의 선전을 응원하는건 [[클라우스 류넷]] 뿐이다.
카타스와 포르티는 락 포트리스를 기점으로 좌우로 갈라진다. 각기 마법으로 크리스탈을 감춘 척했다. 하지만 진짜는 둘 중 하나. 미모사가 마포의 꽃을 마화의 이정표로 바꿔 다시 감지한다. 진짜는 왼쪽, 카타스였다. 아스타가 곧장 요격하러 달려간다. 카타스도 그걸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최강 마법 조준한다. 아스타는 그것째로 크리스탈까지 벨 기세로 돌격.
* 하지만 감탄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카타스의 구령과 함께 삼면에서 세 마법기사의 최강마법이 발사된다. 그 한 가운데 고립돼 버린 미모사와 아스타.
- 블랙 클로버/132화 . . . . 6회 일치
* I팀과 P팀의 사실상 결승전. [[노엘 실버]]와 [[엔 링가드]]는 I팀의 두 명이 공격해 오자 자군의 크리스탈을 수비한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공격을 맡아 돌격. I팀은 [[릴 부아모르티에]]가 크리스탈을 수비하자 유노와 격돌한다.
* 유노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함께 했던 마나스킨 특훈으로 새로운 기술을 습득했다. 정령마법의 막대한 마력을 자신의 몸 안에 가두는 일종의 변신. 아스타의 블랙 모드와 비슷한 성질이다. 유노는 본래 아스타와 결승에서 만났을 때 쓰고 싶었지만 기사단 단장을 상대라면 부족함이 없는 상대라며 이 상태를 해방한다. 마치 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유노.
* "스피릿 다이브"라 이름 붙인 이 상태는 좌중을 압도한다. 마법제 율리우스는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자가 이끌어낸 힘이라며 격찬한다. 그러나 가장 놀랍고 기뻐하는 것은 적인 릴. 감탄을 연발하며 "지금이라면 뭐든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최고의 그림을 그려낸다. 유노의 정령마법 "스피릿스톰"과 릴의 그림마법 "환룡 비브르의 외침"이 격돌. 완전한 호각세를 이룬다. 둘은 이토록 전력을 끌어낼 상대가 존재한다는데 기뻐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유노와 겨루고 싶었던 아스타는 부상으로 누워있는 상태. 둘의 싸움을 바라보며 "왜 유노의 상대가 내가 아닌 거냐"며 비통해한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6회 일치
*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만 찾는데, 그러다 대사제와 야미에게 욕을 먹고 방해마법이 발동한다.
* 대사제의 유희마법 "몬스터 토이"가 발동하는데, 거대한 물고기가 튀어나와 핀랄을 삼킨다.
* 그러다 참치같이 생긴 가면을 쓴 마도사와 마주친다.
* 그건 바로 지상에서 마력컨트롤 특훈을 도와주었던 카호노였다!
- 키아토. 아스타와 꿈을 이루기 위해 승부를 겨룬다.
* 키아토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카호노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 블랙 클로버/65화 . . . . 6회 일치
절망의 베토와 맞서는 아스타
* 대신관은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이 혼신을 다 해 싸웠음에도 상처하나 내지 못했다며 경악한다.
* 아스타와 키아토가 베토에게 덤벼든다.
* 베토는 둘의 실력을 평가절하하면서 쓰래기와 찌끄레기라고 비하한다.
* 발끈한 아스타와 키아토는 다시 한 번 전력을 다 해 덤빈다.
* 노엘 실버와 카호노는 "짐승 귀에는 안 들리는 모양이다"라고 비꼬며 "포기한다고 뭘 지킬 수 있냐고 했다"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78화 . . . . 6회 일치
* 핀랄 룰러케이트는 동생 랜길스와 재회하는데, 랜길스는 신랄한 독설로 핀랄을 매도한다.
* 랜길스를 어쩔 수 없다며 주민을 희생시키려 하는데, 아스타와 검은 폭우단은 용납하지 않는다.
* 야미 스케히로와 윌리엄 벤전스의 진지한 얘기는 아직 진행 중. 야미는 벤전스에게 가면을 벗아달라고 요구한다.
* 실프는 유노와 친한 아스타가 나타나자 질투를 감추지 못한다.
* 아스타와 챠미가 반발하는데, 이번엔 핀랄이 그들 앞으로 나서며 "나는 무시해도 좋지만 검은 폭우 단원을 무시하지 마라"고 일갈한다.
* 야미 스케히로는 윌리엄 벤전스와 "진지한 얘기"를 하는 중.
- 블리치/692화 . . . . 6회 일치
* 그는 우류가 이치고 일행과 함께 있을 땐 전혀 성장하지 못했지만 유하바하 곁에선 성장했다며, 그렇다면 당연히 유하바하와 함께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지적한다.
* 그때 하늘에서 이상한 빛이 내려와 하쉬발트에게 꽂힌다.
* 제라드와 대치하고 있던 토시로, 뱌쿠야도 제라드에게 이상한 빛이 꽂히는걸 목격한다.
* 이제는 너도 슈테른릿터도 필요가 없다며 거기서 현세와 소울소사이어티가 자신에게 짓밟히는걸 보라고 한다.
* 뒤늦게 도착한 렌지와 루키아.
* 그걸 보고 유하바하는 "아직도 발버둥치는 놈들이 있나"고 하며 쫓아오고 싶다면 이 문을 남겨둘테니 따라와보라고 한다.
- 샬롯 링링 . . . . 6회 일치
[[위대한 항로]]를 주름잡는 최강의 [[해적]]인 '''[[사황]]''' 중 한 명이자 [[빅 맘 해적단]]의 선장이다. 통칭 '''빅 맘'''.[* 그녀의 배에 써 있는 글씨에 따르면 Big Ma'am이 아니라 Big Mom이다. 전자는 마담, 후자는 마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나온 바로는 빅 맘 해적단의 선원들은 샬롯을 '''"마마"'''라고 부르고 있다. 원피스 그린에서는 BIG MOM이라고 써 있는데 610화에서 파파구의 설명에서는 배경에 BIG MAM이라고 써 있다. Mam은 마마(Mamma)의 준말이니 의미상의 차이는 없지만. 다른 표기가 작중 또는 공식 설정집에 나왔다면 출처와 함께 [[추가바람]].] 생일은 [[2월 15일]].
다만 이와는 반대로 '''부하를 최소한 한 명은 잡아먹었다.''' 그런데 이 부하들이라는 것이 인간이 아닌 과자로 된 병사들일 수 있다. 만화책에서는 651화에서 자세히 나오지 않았으나, TVA에서는 [wiki:"보빈" 과자로 만들어진 듯한 부하]가 빅 맘에게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빅 맘은 과자 같은 무생물을 사람처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인지도 모른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730화에서 빅맘의 배'''[[선수상]]이 노래를 불러서''' 이 무생물에 생명 부여 설이 강화되었다. 무엇보다도 빅 맘이 정말 [[wiki:"식인" 사람을 잡아먹는]] 사악한 인물이었다면, 그 [[징베]]가 머리를 숙이고 산하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 단, 징베의 경우 [[사황]] 페이지에도 언급되었듯이 속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빅 맘 본인이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자일 필요는 없고 그냥 해적단의 간부 중 하나가 그런 능력자일 수도 있다.] 또한 오다가 제일 존경하는 작가이고 콜라보도 함께한 [[토리야마 아키라]] 의 [[드래곤볼]]에 나온 [[마인부우]]도 인간을 과자로 만들어 먹는 기술이 있어 여기서 따왔을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스릴러 바크]]편에서 등장했던 [로라(원피스)|로라]의 어머니라는 추측이 있다. 입모양이라든가 사이즈를 볼 때 그럴 듯 하긴 하다. 거기다가 로라라고 하는 이름은 영어로 샬롯의 애칭이다. 무언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진짜 로라의 엄마라고 해도 어인섬에서 빅 맘의 성질을 이미 하도 긁어놓아 버린지라... 정말로 로라와 무슨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한바탕 하고 난 다음에야 언급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빅맘 曰 : 로라의 친구? 그렇다면 싸울 이유가 없지! 오늘은 잔치다! 이런 전개는 없다.~~ 로라나 그 부하들이 페콤즈, 타마고 남작, 보빈처럼 마마(ママ)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로라가 빅 맘의 친딸이라는 뜻이 아니라 과거 빅 맘 해적단의 일원이었을 거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근데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닮았다.~~ ~~아빠는 도대체 누구냐 그럼~~
5번째 설정집인 블루 딥에 따르면 [wiki:"샹크스(원피스)" 샹크스]를 비롯한 다른 [[사황]]과는 적대 관계, [해군본부원피스)|해군본부]와는 대립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730화에서 [wiki:"망했어요" '''드레스로자에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루피 해적단 멘붕~~ ~~칠무해에 해군 대장에 사황이라니~~[* 배가 거의 웬만한 해왕류 만한 크기로 아일랜드 고래의 1/2~ 1/3 정도의 엄청난 크기이다. 게다가 배의 선수상이 말을 하고 있다. 위의 생명 부여 능력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 게다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써니 호에 남아있던 사람은 상디(부상 입은 상태), 나미[*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다.위의 로라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쵸파, 브룩, 모모노스케, 그리고 인질인 시저 뿐. 일당의 총 전력 중 절반 이상을 섬에다 두고 와 버린 최악의 상황인 판이다.
여담으로 실루엣이 [완제]와 비슷해 혹시 관련 인물이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1화 . . . . 6회 일치
카라는 캣코 월드와이드 미디어에서 비서로 일하게 된다.
카라는 윈이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경찰 무선을 해킹해서 얻은 정보로 여러 범죄와 사건들을 해결한다. 그러다가 카라는 DEO 에이전트에게 붙잡힌다.
카라는 알렉스가 DEO의 에이전트라는걸 알게 되고 알렉스와 말다툼을 벌인다.
카라를 찾아온 알렉스는 카라에게 카라의 우주선에서 발견한 홀로그램 기기를 가져와서 카라에게 보여주고, 알루라의 격려를 받은 카라는 심기일전. 알렉스와 함께 DEO를 방문한다. 알렉스는 카라가 우리들을 위해서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보증한다.
카라는 발톡스와 대결을 벌이며, 알렉스의 작전에 따라서 히트비전으로 발톡스의 도끼를 파괴한다. 중상을 입은 발톡스는 다음에 더 강한 적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며 자결한다.
-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 . . . . 6회 일치
[[저스티스 리그]]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 그 동안 관련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 [[메탈로]], [[칼리박]], [[라이브와이어]], [[토이맨]], [[웨더 위저드]]로 구성되어 있다.[* 웨더 위저드는 슈퍼맨 TAS의 플래시 관련 에피소드에서 빌런으로 등장했다.]
라이엇이 되고나서 [[슈퍼맨]]과 충돌했는데 이후 악당인 모건 에지에게 붙잡혀 맥시마(Maxima), 미사(Misa), 배라지(Barrage), 어노말리(Anomaly) 등의 인물들이 소속된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편 복제 하나를 모건이 잡아둬서 하나가 되는 것이 저지되고 있었는데 혼란 중에 복제를 스쿼드의 본부로 보내 붙잡힌 복제와 함께 탈출했다.
슈퍼맨 계열 빌런이나 슈퍼맨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할이 파티장에서 로이스 레인에게 자기 조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이후 슈퍼맨은 라이엇이 합체해서 잘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후 체포. 그후에도 메트로폴리스에 몇번 등장.
첫등장은 Action Comics #286 (March 1962). 마블 코믹스의 일렉트로와는 별개의 캐릭터다.
The Hairies의 리더인 Jude와 Lucy Diamond Sky의 딸. 여담으로 창조자는 부모와 더불어 [[잭 커비]].
- 슈퍼히어로 . . . . 6회 일치
슈퍼히어로는 대체로 [[손오공(드래곤볼)|전투 그 자체를 목적을 삼고 있지 않으며]], [[경찰]]이나 [[소방관]]과 같은 역할을 --[[원펀맨|개인적으로 취미로]]-- 하고 있다. 물론 히어로가 다양해지면서 전투광도 있긴 하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장르와는 달리 슈퍼히어로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배경이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설사 주인공인 슈퍼 히어로가 아무리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된 존재라고 하여도 하여도, 그 활동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 특성상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사회는 일반적인 경찰이나 군인이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미치광이 과학자가 거대한 로봇을 만들어 도시를 공격한다던가, 사악한 목적을 가진 비밀결사가 암약한다던가, 파괴적인 외계인이 침공해온다던가, 엄청난 괴력을 가진 슈퍼 빌런이 날뛴다던가. 그러다보니 경찰이나 군대조차 버거워지고, 그러기에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부패해서 빌런은 물론 경찰, 군대와 싸우게 되기도 하며 이럴 경우 슈퍼히어로는 부패한 권력에 맞서서 무고한 약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혁명가이자 자유의 투사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슈퍼히어로는 사회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사회적 주제와 접목되기 쉽다.
일본의 특촬 시리즈인 [[가면 라이더 시리즈]]와 [[슈퍼전대 시리즈]], [[울트라맨 시리즈]], 슈퍼전대의 미국판 리메이크인 [[파워레인저]]도 슈퍼히어로 장르로 분류할수 있다.
*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 [[이미지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는 해당 항목을 참조.
- 식극의 소마/178화 . . . . 6회 일치
* 소마, 타도코로와 어울리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에리나.
* 타쿠미 알디니와 유키히라 소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맛보더니 그 풍부한 맛에 경악.
* 히사코도 관심있는 가게가 있으나 에리나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타도코로가 에리나와 동행하기로 하면서 그녀에게 에리나를 맡긴다.
* 타도코로와 둘만 남은 에리나. 우연히 에리나가 푹 빠졌던 만화가 타도코로의 것이라는걸 알게 된다.
* 그때 소마와 타쿠미가 찾아온다.
* 그래서 타도코로와 에리나까지 합류해서 여러가지를 시켜놓고 조금씩 나눠먹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 식극의 소마/190화 . . . . 6회 일치
*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키는 나키리 소우에가 쥐고 있다.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친 하야마 아키라는 눈에 띄게 초조해한다. 그는 설마 유키히라 소마가 프라이드 베어와 동등한 수준의 요리를 하리라곤 예상도 하지 못했고 아직도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건 자신일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으려고 발버둥친다.
* 다시 식극의 장소. 소우에는 판정에 앞서 자신의 판정기준에 대해서 설명에 들어간다. 일단 요리사로서 실력을 호각이며 이는 베르타와 실라의 표가 갈린 걸로 증명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한 그가 승부를 가르는 요소로 제시한 것은 "요리사의 집념". 그는 소마가 소스에 쓴 꿀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걸 간파한다. 하야마도 승부에 집착해서 놓치고 있었지만 그 꿀은 보통 것과 다른 묘한 향기를 품고 있다. 뭔가 "떨떠름한 맛"의 향인데.
* 소우에는 평범한 꿀도 곰고기와 궁합이 좋았겠지만 자칫 맛이 강한 멘치까스와 합하면 진득한 맛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쓴맛이 가미된 황벽나무 벌꿀을 써서 곰고기의 맛을 보다 강조하고 깊이 있는 맛을 완성한 것이다. 베르타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을지 의문을 갖는다. 황벽나무 꿀은 워낙 희귀한 물건이라 우연히 선택할 일도 없고 분명 의도한 조합임에는 틀림없다.
* 대머리 군단은 그제서야 이 꿀을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지 수군대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엔 황벽나무 꿀을 쓴다는 발상도 없었던 모양. 무작정 산을 뒤지며 소재가 될만한건 뭐든 채집하는 하드코어한 수색을 펼쳤다. 쿠가 테루노리는 처음부터 황벽나무 꿀의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하지만 자칭 "쉽게 알려주면 소마가 성장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내며 그냥 차만 먹고 놀고 있었던 모양. 산에서 고생한건 소마와 대머리 군단이다.
* 그렇게 오전엔 닥치는대로 소재를 끌어모아 오후에 실험작을 만들기를 반복. 이런 과정 속에서 단맛을 내는 소재와 떪은 맛, 혹은 쓴맛을 내는 소재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해봤다. 그 결과 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다시 "쓴맛을 가진 꿀"인 황벽나무 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 정말로 아슬아슬할 정도로 시간을 쓴 결과물이었다.
- 식극의 소마/192화 . . . . 6회 일치
* 설상가상 코바야시 린도가 나타나 위협을 가하자 에리나는 곧바로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의 시험장으로 향한다.
* 낙승으로 테스트를 통과한 나키리 에리나. 센트럴의 수하들의 입에 발린 소리를 물리치며 서둘러 식극 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유키히라 소마의 승리. 에리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자리에 있던 소마, 하야마 아키라, 시오미 준이 에리나를 발견한다. 소마는 머리가 엉망이라며 뛰어왔냐고 묻는다. 에리나는 민망했던지 서둘러 머리를 고치고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척하며 넘어간다.
소마는 하야마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던 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하야마는 대답이 없는데 그때 센트럴의 하수인인 "아이다 션"이란 남자가 자신이 설명하겠다며 등장한다.
* 그는 나키리 아자미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에리나와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특히 에리나가 가출했을 때 수습하고 다닌게 이 사람. 에리나를 보자마자 그때 일을 거론하며 설교를 하는데 시오미는 무슨 볼일이냐며 말을 끊는다.
* 예상을 뛰어넘는 탈락의 연속. 아라토 히사코를 시작으로 누구 하나 십걸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 가장 강한 멤버라 할 수 있었던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조차 패배하고 퇴학처분을 받는다.
* 그런 이들에게 코바야시 린도가 나타난다. 다른 루트 애들이나 걱정하고 있어도 되겠냐며,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의 상대는 자신이라고 무서운 얼굴을 한다. 에리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서둘러 시험장소로 달려가는데, 왠지 두 사람은 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리나가 결과를 묻자 둘은 어이없는 말투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 식극의 소마/203화 . . . . 6회 일치
* 팀 도지마의 아쉬 파르망티에를 시식한 에리나와 [[유키히라 소마]]는 보들보들한 머쉬 포테이토[*폼므 퓨레]를 연상한다. 소마는 마법처럼 섬세하게 만든 화과자 같다고 평.
* 이번엔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팀 사이바의 아쉬 파르망티에를 시식한다. 에리나가 구웠던 스테이크는 주사위 썰기 해서 건더기로 들어가 있고 [[사이바 죠이치로]]가 구웠던 크레이프는 이 스테이크와 소마의 치리멘차코, 그리고 머쉬 포테이토를 감싸고 있다.
* 하지만 타쿠미는 납득할 수 없는 평이라 말한다. 타쿠미는 팀 사이바의 참신함을 높이 평가한다. 아쉬 파르망티에의 세 가지 구조를 대범하게 재해석한 결과물이 이것이다. 팀 사이바는 마치 아티스트들이 상호의 개성을 맞부딪히는 전위예술과도 같다. 매우 이색적인 콜라보레이션인 것이다. 특히 에리나가 구웠던 스테이크를 칭찬하는데 쇠고기의 최고급 부위인 "앙트르코트"를 웰던으로 구운데다 볼트 와인을 아낌없이 쏟아부워 소스 보르돌레즈를 만들어 크레이프에 담았다. 이것으로 중후함과 식감이 겸비된 미트 소스가 된 것이다.
* 에리나는 겸연쩍어 하며 좀 더 치리멘자코의 맛을 살리는 소스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것으로 충분히 멋진 요리였다고 추켜세운다. 셋은 에리나가 그렇게 즐겁게 요리하는건 처음이었다고 수군대는데 에리나는 자기를 놀린다고 발끈한다. 넷은 서로 싸우는 듯한 말투로 서로의 발상을 칭찬하며 티격태격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승부는 무승부지만 자기들이 의도한 바는 달성했다고 흡족해한다. 게다가 왠지 애초에 다퉜던 주제에 대해선 흐지부지 잊어버린다. 센자에몬은 이 승부의 진정한 의도는 각자의 역량과 기술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며 홍백전의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 이튿날 아침. 아자미는 십걸 [[린도 코바야시]]와 츠카사를 데리고 소마 일행과 접촉하러 오는데.
- 식극의 소마/204화 . . . . 6회 일치
* 연대[[식극]]의 룰을 조율하기 위해 [[유키히라 소마]] 일행과 접촉한 [[나키리 아자미]]와 [[센트럴]] 군단.
* [[나키리 아자미]]가 통지한 접선 장소는 폐역사. [[유키히라 소마]]와 일행들은 센트럴 측이 도착하기를 기다리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정작 센트럴 측의 인물들은 하나둘 모습을 나타나는데 리더인 아자미와 십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 최종시험인 6차 시험이 결행되는건 한 달 뒤. 레분 섬 남단에 특설회장을 설치하고 연대식극을 거행한다. 현재 진급시험을 받고 있는 학생들도 최종적으로는 여기에서 식극을 관전하게 된다.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결국 반역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거리로 삼겠다는 악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회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이 십걸 자리를 전부 가져가는 심플한 결론. 그리고 대전에 참가할 인원은 딱히 규정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자미 측에서 먼저 [[사이바 죠이치로]]의 1대50 연대식극을 예로 들며 제안한다. 정말로 쿄쿠세이측에 가세하려는 인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도 좋다는 호기.
>이제 가출은 끝이다 에리나. 돌아와라 아빠에게.
* 에리나의 폭탄 선언. 양측 모두가 술렁거린다. 에리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그들의 동료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경하게 의지를 표명한다. 소마와 센자에몬은 그녀의 결심에 미소짓는다. 하지만 아자미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넋을 놓고 있는데.
- 식극의 소마/205화 . . . . 6회 일치
* 아자미는 에리나의 의견을 일단 존중해주지만 만일 패하면 센트럴로 돌아와 평생 자신을 위해 힘을 써줘야 한다고 조건을 단다.
* [[유키히라 소마]]는 정점에 서는건 자신이라며 에리나와 티격태격한다.
* 그로부터 몇 년 뒤, 도지마는 죠이치로에게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와 아이를 데리고 가게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게 된다.
* 십걸의 10석 자리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한 [[나키리 에리나]]. [[나키리 아자미]]는 태연한 듯이 웃어보이지만 얼굴이 어두워보이는걸 숨길 수가 없다. 아자미는 그녀의 의견은 존중한다고 하지만 패배시에는 다른 조건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에리나가 센트럴로 돌아와 아자미의 야망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것. 결국 다시는 자신에게 반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에리나는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 센트럴 멤버들은 아자미와 함께 떠나간다. [[유키히라 소마]]는 한 달 뒤 레분토 섬의 결전을 기대하며 이들을 떠나보낸다.
* 하지만 소마는 불만이 많은데 정상을 차지하는건 자신이라며 에리나와 티격태격한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를 동원해 뭔가 한 마디 해주라고 하는데 의외로 죠이치로는 평범하게 "에리나가 벽창호 아버지에게 대들 줄은 몰랐다"며 칭찬하는 투로 말한다. 에리나는 그제서야 진짜로 이 부자에게 감화된 걸지도 모르겠다고 마음 속으로 인정한다.
- 식극의 소마/233화 . . . . 6회 일치
* 숙소에 남아있던 [[쿠가 테루노리]]와 [[키노쿠니 네네]]가 로비에서 마주친다. 약간 껄끄러워하다가 쿠가가 입을 열고 네네는 쿠가에게 대회장에 안 가냐고 묻는다. 쿠가는 자기가 할 일은 다 했고 지금은 "뒷일은 젊은 애들끼리"라고 말하는데 네네는 그 말투가 중매쟁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한다. 쿠가가 그러는 네네야 말로 왜 호텔에 있냐고 멘탈이 두부라서 그러냐고 쏘아붙이고 네네는 "[[미마사카 스바루]]랑 같이 덤벼놓고 진 쪽이 더 불쌍"하다며 디스를 주고 받는다. 쿠가는 으르렁거리다 상대가 [[유키히라 소마]]였던걸 후회하라며 그가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1학년이라고 추켜세운다. 네네는 의외로 그 말에 수긍하고 소마의 강함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패배 이후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면서 정말 소마는 보통 1학년인 거냐고 반문하는데, 진지한 네네와 달리 쿠가는 "이 땋은 머리가 뭔 소리야" 정도로 성가셔하고 있다.
* [[나키리 아자미]]가 [[나키리 센자에몬]]을 상대로 "토오츠키 92기는 센자에몬이 선별한 옥의 세대"라고 꼬집고 있는 동안, 식극회장에선 격전이 이어진다.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 그리고 소마는 환상적인 호흡으로 상호의 서포트와 자신의 조리를 완벽하게 양립해간다. 그 모습에는 상대인 십걸 측도 꽤 인상적인 듯, 심사의원 샤름, 이스트와르, 안도 오래 함께 한 숙련된 주방 같고 이정도 연계라면 십걸 측이 패널티를 진 걸 수도 있다고 극찬한다.
숙소에서 쉬고 있다가 카페가 가려고 로비로 나왔더니 쿠가 테루노리랑 마주쳤다. 본래 친분이 있었지만 적이 된 사이고, 전날 사이좋게 패배한 판이라 꽤 어색해한다. 쿠가하고는 서로 멘탈이 약하다고 디스를 퍼붓는데 쿠가가 문득 유키히라의 강함에 대해 입에 올리자 그걸 인정한다. 그런데 그의 강함에는 위화감이 있다며 그가 정말 보통 1학년이냐고 반문하는데, 진지한 태도의 네네와 달리 쿠가는 되게 성가시게 여긴다.
태평하게 목욕하고 마사지 기계 위에서 뒹굴다 네네와 마주쳤다. 서로 대회장에 못 간걸 멘탈이 무너져서 그렇냐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쿠가가 먼저 "소마가 상대였던걸 후회해라"며 소마를 추켜세우는 발언을 한다. 의외로 네네가 거기에 수긍하면서 소마의 강함에 대한 걸로 화제가 넘어가는데, 그녀가 정말로 보통 1학년일 뿐이냐고 묻자 "이 땋은 머리가 뭐래는 거냐" 정도로 가볍게 반응한다.
- 아워맨 . . . . 6회 일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와 관련있다.
[[샌드맨 미스테리 씨어터]]에서도 등장. 여기선 그가 쓰는 약이 플라시보 효과를 내는건 아닐까하고 [[웨슬리 도즈]]가 의심한다. 자경단 일을 하며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 꼬이게 되었고, 웨슬리와 사건을 해결하다가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긴뒤 아직 활약하기엔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판단, 자신의 약을 더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가 바쁘다 보니 반항아로 컸으나 결국은 2대 아워맨이 되었다. 자니 퀵과 초대 리버티 벨의 딸인 리버티 벨II와 결혼했다.
JSA 코믹스에서는 리버티 벨II와 함께 아톰이었던 알 프랫의 아들인 데미지를 합류시킨다.
1시간동안 시간여행을 할수 있으며 미래와 과거를 보는 시간 시각을 지니고 있다.
- 안영준 . . . . 6회 일치
2017년 11월 13일 전자랜드와의 [[한국프로농구 D리그|D리그]] 경기에서는 비록 팀은 패했지만 26득점으로 맹활약을 했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해 활약이 절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원주 DB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신인답지않은 레이업을 하는 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차전 4쿼터 막바지, 버튼의 팔꿈치에 얼굴이 접촉된 후 몸이 뒤로 넘어진 것이 플라핑이라고 지적받으며 성숙하지 못한 플레이라고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슬로우로 봤을 때 버튼의 팔꿈치가 명백하게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접촉의 강도가 약했음 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과했다는 지적이 존재했다. 정규리그 동안 안영준이 이러한 플레이를 한 적은 없었고, 플라핑은 본래 근절되어야하는 플레이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시안게임 본선에서도 숙소는 구리고 선수들은 다 배탈나서 컵밥만 먹는 열악한 환경에서 최고의 폼으로 팀내 에이스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다시피 했으나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중국에게 연장 접전 끝에 분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키는 3번으로서 평범하지만 202cm의 윙스팬은 키에 비해 길고 웨이트와 운동 능력이 좋은 편이다.[* 신인시절 무려 [[김종규(농구)|김종규]]에게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시도했지만 공이 림 안쪽을 맞고 튀어나갔다.]
* [[서울 SK 나이츠]]에서 지명을 한다면 1년 선배인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인 [[문경은]]이 "[[허훈]], [[양홍석(농구선수)|양홍석]], [[유현준(농구선수)|유현준]]은 어차피 앞에서 뽑힐 것이고, 우리 순번에서는 [[안영준]]과 [[김국찬]]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는 [[김국찬]]보다 [[안영준]]이 더 어울린다"고 애기하였다. 왜냐하면 슈가를 뽑아봤자 변기훈과 화이트와 롤이 겹치는데다, SK의 백업 포워드가 [[김우겸]], [[함준후]] 정도라는 걸 감안한다면 포워드인 안영준을 뽑는 것이 선수풀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좋다는 시각. 그리고 이 예상처럼 문경은 감독은 안영준을 뽑았고, 김국찬은 다음 순위로 KCC로 갔다.
- 염재욱 . . . . 6회 일치
* [[2002년]] [[MBC]] 일일연속극 《[[매일 그대와]]》
* [[2003년]] [[MBC]] 일일아침드라마 《[[성녀와 마녀 (드라마)|성녀와 마녀]]》
* [[2004년]] [[SBS]] 주말특별기획드라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드라마)|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cf-버터와풀(과자)-의장대대장역 촬영
- 왕당파 . . . . 6회 일치
[[영국]]의 경우, [[청교도 혁명]](영국 내전)을 시발점으로 하여 의회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의회파와 왕당파는 수차례 복권과 혁명을 거듭하며 경쟁하였으나,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기존의 절대주의 왕당파는 [[스튜어트 왕조]]의 복위를 주장하는 [[자코바이트]]로 분리되었고, 명예혁명으로 성립된 영국 왕실은 의회를 존중하여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절대주의 왕당파는 더 이상 영국 정계에서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 왕실을 지지하느냐, 영국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느냐에 따라서, 왕당파와 독립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독립전쟁이 미국의 승리와 독립으로 끝나자, 미국 지역의 왕당파들은 [[캐나다]]로 도망치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혁명]]을 시발점으로 하여 공화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왕당파는 [[부르봉 왕조]]의 복권을 주장하였으며, 혁명을 일으킨 공화파와 피를 피로 씻는 혈투를 벌였다. [[부르봉 왕조]]는 군주의 지위를 상실했지만, 수백년간 프랑스를 다스린 왕조였기 때문에 부르봉 왕조의 권위는 여전히 상당히 높아서 주로 보수적인 농촌을 중심으로 막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 왝더독/줄거리 . . . . 6회 일치
다음날, 대통령이 병에 걸려 귀국이 지연되었다는 뉴스와 반딧불 소녀단 단원이 대통령의 성희롱을 고발했다는 뉴스가 연이어 방송된다. 브린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알바니아]]와 [[전쟁]]이 난 것 처럼 꾸미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를 위해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인 스탠리 모스(더스틴 호프만)를 찾아간다.
모스는 알바니아에 위치한 [[이슬람]] 테러조직이 [[핵무기]]를 숨기고 있고, [[캐나다]] 국경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각본을 짜낸다. 그리고는 이 일을 돕기 위해 동료 예술가인 패드 킹(데니스 리어리), 조니 딘(윌리 넬슨)을 부른다.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알바니아 소녀가 고양이를 안고 도망치는 영상[* 소녀는 섭외한 배우. 고양이와 배경은 [[컴퓨터 그래픽|CG]].]도 찍어 뉴스에 올리고, 미국에 사는 알바니아인들이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생방송 뉴스를 조작해낸다. 이 와중에 전쟁이 없다는걸 눈치챈 [[CIA]]에게 잡혀가기도 하지만 브린의 현란한 말빨로 풀려난다.
선거 직전, 일행은 "알바니아의 숲 속에서 찾아낸" 슈만 상사의 귀환식을 열기 위해 군대에서 슈만 상사를 인수받는다. 슈만 상사는 [[수녀]]를 [[강간]]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 육군 교도소에 수감된 정신 이상자였다. 귀환식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악천후를 뚫고 비행하던 비행기는 슈만의 난동으로 추락하고, 일행은 멕시코인 [[불법체류자]]가 모는 콤바인을 타고 귀환식장으로 향한다. 이 와중에 슈만은 중간에 들른 상점 주인의 딸을 강간하려다 상점 주인의 [[총기|총]]에 맞아 죽는다.
며칠이 지난 후, 영화 프로듀서 스탠리 모스가 자택에서 일광욕 중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이후 알바니아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뉴스와 함께 영화가 끝난다.
- 요시다 세이지 . . . . 6회 일치
요시다 세이지는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동원부장으로 일했다고 주장했으며, 1977년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1983년 '나의 전쟁범죄'라는 책을 저술하여, 이 책에서 자신이 군부대를 이끌고 [[제주도]]의 마을 등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강제로 징병하여 위안부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1982년 9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증언하였다. 1900년대 아시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다수의 기사를 작성했고, 이는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널리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소위 '요시다 증언'에는 의혹도 뒤따르게 되었다.
아사히 신문은 2014년 4~5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70대 후반에서 90대까지 약 40여명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건어물 제조 공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사라졌다"고 기록한 제주도 북서부의 마을에서는, 생선을 다루는 공장이 1개 박에 없었고 경영자의 아들은 "통조림 밖에 만들지 않았다. 여자 종업원이 사라진 일은 없다."고 증언했으며, 요시다 세이지가 '초가지붕'이라고 썻던 공장의 지붕은 한국에서 당시 수산산업을 연구했던 리츠메이칸대학 역사지리학 전공 가와하라 노리후마 교수에 따르면 함석판과 기와로 되어 있었다.[* 원래 제주도는 바람이 강하고, 벼농사가 되지 않아 초가집이 적었다.]
사실, 요시다 증언의 영향은 한정적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증거는 요시다 증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을 참조하지 않았으며, 이는 1991년 1월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일본 정부의 내부 문서를 아사히 신문이 공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첫 공개 증언을 하면서, 한국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피해자 증언이 잇따르게 되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은 허위로 판명됐지만,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진 않으며 잘못에 대해선 사과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01710290019572 (증언)]]
요시다 세이지의 장남(2016년 당시 66세)는 일본 월간지 '신쵸 45' 9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소녀상을 크레인으로 철거하고 싶다."는 발언까지 했다.
- 우라센케 . . . . 6회 일치
[[센노 리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마찰을 빚어 [[할복]]한 뒤, 리큐의 양자 쇼우안(少庵)은 교토에서 재흥을 허락받아 후신안(不審庵) 같은 리큐와 연고가 있는 다실을 재건했다. 또한 불교에 들어가 있던 아들 소우탄(宗旦)을 [[환속]]시켜서 가문을 이어받게 하고 다도를 보급하는 것을 맡겼다. 소우탄은 도쿠가와 가문 등에 자식들을 다두(茶頭)로서 임관시켜 가문을 부흥시켰으며, 소우탄의 자식 대에 센 가문은 셋으로 갈라진다.
* 삼남 코우신 소우사(江岑宗左) : 정식으로 소우탄의 뒤를 이어 「오모테센케(表千家)」를 일으켰다. 키슈 도쿠가와 가문(紀州徳川家)의 다두(茶頭)로 임관했다.
삼천가가 나누어진 연유는, 소우탄이 은거를 결정하면서 그가 거주하던 후신안(不審庵)을 삼남 소우사가 이어받았으며 소우사의 후손은 오모테센케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소우탄은 후신안의 뒷편에 콘니치안(今日庵)을 지어서 살게 되었는데, 이것을 함께 거주하던 사남 소우시츠가 상속받아 소우시츠의 후손은 우라센케로 불리게 된다. 오모테는 앞, 우라는 뒤라는 뜻으로, 콘니치안이 후신안의 뒷편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쉽게 풀이하면 "앞집 센가", "뒷집 센가". 그리고 차남 소유슈는 나중에 돌아와 이보다 좀 더 남쪽에 있는 무사시노코지라는 거리에 칸큐안(官休庵)을 지어 다도에 전념하게 된다. 그래서 무사시노코지센케로 불리게 되었다.
여러 다도 유파 가운데서도 명성이 높다. 특히 우라센케는 16대 센 겐지츠(千玄室)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親王)의 차녀 마사코 내친왕(容子内親王)과 결혼하여, 황족과 인척 관계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 황족, 일본을 [[국빈]]들이 와서 다도를 배우기도 한다.
- 원 포 올 . . . . 6회 일치
[[올마이트]]는 이 원 포 올의 계승자 중 한명으로 장기까지 적출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부상을 입어 다음 계승자를 찾다가 [[미도리야 이즈쿠]]와 만나고, 그를 다음 계승자로 선택해 넘겨줬다.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순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상태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상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식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올마이트가 숨기다보니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나 이와 별개로도 아직 많은 것이 드러나지 않아서 어떤 의미로는 불가사의가 맞게 되었다. 올마이트가 스승과 만나 인정받고 힘을 계승받은 과정, 미도리야가 체육제 토너먼트에서 보게된 사람들의 모습의 구체적인 의미,[* 올마이트는 자신도 예전에 봤으며 원 포 올에 대한 감이 잡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설명했으나 미도리야가 나간 뒤에 리커버리 걸이 보통 때와 다른 분위기로 올마이트에게 '너도 있었다고'라 하고 올마이트는 잘된 일이라 답하는데 이때 분위기도 뭔가 있어보인다.] 스승이나 그 이전의 계승자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원 포 올의 기원 등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
현재 확인된 계승자는 미도리야 이즈크와 올마이트밖에 없으며 올마이트의 스승이나 이전의 계승자들은 이름을 포함해 공개된 정보가 적다.
[[미도리야 이즈쿠]]와 [[올마이트]], 그리고 역대 계승자들을 제외하고 원 포 올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확인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 원피스/817화 . . . . 6회 일치
* 킨에몬은 등에 있는 "코즈키 일족의 문장"을 보인다. 이것은 라이조와 조우의 두 지도자가 가진 것과 같은 문장이다
* 모모노스케는 사실 킨에몬의 아들이 아니다. 그는 쿠즈키 일족의 후계자 "쿠즈키 오뎅"의 자식 "쿠즈키 모모노스케". 지금까지는 신분을 속이고 있었다. 쿠즈키 일족은 "와노쿠니"의 대 다이묘다.
* 모모노스케는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의 싸움을 말리는 등 어른스럽게 굴지만, 막상 루피가 자기 신분을 대우해주지 않자 삐져서 나미에게 응석부린다.
* 루피 일행은 라이조가 멋진 닌자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 실망한다. 라이조는 일행이 생각하는 닌자상은 실제와는 다르고 인술은 구경감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일행이 시무룩해 하자 할 수 없이 인술 몇 가지를 선보였다. 일행은 금세 환호한다
* 사실 네코마무시와 이누아라시는 사이가 좋았는데 티격태격하는 것 같다.
* 라이조는 기대와 다르게 우스꽝스럽게 생긴 구닥다리 닌자. 인술을 구경거리 취급하는 일행에게 일갈할 정도로 고지식하지만, 막상 시무룩해하니까 리퀘스트에 응해주었다.--나루토가 끝나서 점프에서 사라진 [[닌자]] 분량을 보충하는 걸지도--
- 원피스/828화 . . . . 6회 일치
* 쵸파는 상디와 만났냐고 묻는데,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 푸딩은 상디와 만났을 때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결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난 동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 전투가 한창인 와중에 누군가 자기 나라와 가족을 헤쳤다며 "너희는 제르마지?"라며 총을 쏜다.
* 전보벌레로 본대와 연락하고 있는 제르마1은 상디가 이미 도착했냐고 묻고 "서둘로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옆에 있는 제르마2는 "거짓말"이라고 잘라말한다.
|| 너와 결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난 동료들에게 돌아가고 싶다.''' ||
- 원피스/831화 . . . . 6회 일치
* 페드로와 브룩은 포네그리프를 찾아 한발 먼저 빅맘의 성으로 향한다.
* 페드로와 브룩은 따로 잠수함 "샤크 서브머지"를 타고 잠입, 로드 포네그리프의 사본을 취하려 한다.
* 나미는 상디의 행동거지가 수상하다고 말하지만 일행은 상디와 사방에 널린 케이크에 정신이 팔려서 듣질 않는다.
* 루피는 반가워하며 당장 달려가려고 하는데, 또 한 명의 루피도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
* 루피는 나머지 일행에게 먼저 상디를 쫓아가라고 하는데, 나미는 흩어져선 안 된다고 하지만 쵸파와 캐롯은 루피의 말을 따른다.
* 상디도 가짜로 보이는데 복제된 루피와 관련이 있을듯?
- 원피스/837화 . . . . 6회 일치
* 나미는 그의 팔이 늘어난 것에 놀라는데 그 와중에도 "둘도 없는 명검이라면서 늘어났다" 고 태클을 건다.
* 브릴뤠와 킹 바움은 나미를 비웃으며 "최악의 세대"는 그저 신세계의 전반부에서 좀 추켜세워준 놈들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 나미는 파운드에게 도움을 청하고 파운드가 브릴뤠와 나미를 떨어뜨린다.
* 루피는 분노와 함께 기어4를 시동한다.
* 뜬금없이 초신성들이 불쌍해지는 에피소드. 그나마 출세한 편이 로우와 루피였다.
* 특히 키드는 루피, 로우와 동급으로 묘사되었던 초신성인데, 조우편에선 카이도에게 떡발려서 포로로 잡혀있고 빅맘한테는 형편없이 깨진게 밝혀지는 등 고초가 장난 아니다.
- 원피스/839화 . . . . 6회 일치
* 저지는 발라티에와 제프를 그냥두지 않겠다고 협박해서 상디를 얌전하게 만든다.
* 이치디와 니디의 귀환을 축하하며 아침식사를 하는 제르마 왕가.
* 빈스모크 저지는 이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이들이 활약한 전장도 도플라밍고 패밀리의 붕괴와 연관된 전쟁이었던 듯 하다.
* 욘디는 "차라리 양쪽 다 없애버리는게 돈을 더 벌 수 있는거 아니냐"고하는데, 그건 "해적이나 다를바 없는 짓"이라는걸 보면 나름 프라이드와 원칙은 있는 듯.
* 그 요리는 "아리고"라고 하는 치즈와 감자 요리. 상디는 좋은 요리고 아침부터 만들려면 큰 수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 제프와 발라티에의 추억을 회상하는 상디.
- 원피스/846화 . . . . 6회 일치
* 한편 성에 잠입해 있던 페드로와 브룩이 이 대화를 엿듣는다.
* "서사" 샬롯 몬도르는 별명대로 책을 무기로 쓴다. 책들이 허공을 날아디는데 그걸 밟고 돌아다닌다. 남자는 루피가 삼장성 중 하나인 크래커와 하룻밤 내내 싸웠는데 선전하고 있다고 감탄한다. 실제로 결코 약하지 않다고 평가한 체스병들이 무수히 널부러져 있다. 모두 루피가 쓰러뜨린 것. 하지만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했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자들 덕에 상황은 좋지 않다.
* 홀케이크성 안의 "보물전"에선 타마고 남작이 간부들을 모아놓고 있다. 그는 이 방에 모아놓은 "포네그리프"가 무엇인지 일장설명을 늘어놓는다. 전세계에 있는 30개의 돌비석의 문헌. 그 중에서 "정보"를 가진 것은 고작 9개. 세간에서 말하는 "리오 포네그리프"다. 그것들을 최후의 섬 "라프텔"에 인도했을 때 돌은 세상의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프텔에 가는 정보를 적은 문헌이 4개의 "로드 포네그리프". 얼마 전 징베가 하나를 진상하면서 현재 빅맘 해적단이 소장하고 있는 건 "포네그리프" 2개와 "로드 포네그리프" 하나. 총 세개다.
* 이상의 대화를 누군가 엿듣고 있다. 영혼이 된 브룩. 보물전 옆에 있는 주류저장소에 페드로와 브룩의 본체가 있다. 브룩은 영혼상태로 돌아와 들었던 얘기를 전부 전달한다. 페드로는 하필 이런 시점에 경비가 강화되었다며 밤에도 틈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의 존재가 타마고 남작에게 알려진 시점에서 이미 희망은 사라졌던 것이다. 그는 루피 쪽이 난항을 겪고 있으니 그들만이라도 임무를 완수하고 싶다고 하는데.
생각을 마친 브룩와 페드로. 둘의 마음이 일치한다.
- 월드 인 컨플릭트 . . . . 6회 일치
유닛은 주어진 증원 포인트 내에서 요청, 수송기로 공수받을 수 있다. 요청한 유닛은 전략 지도에서 지정해둔 지역으로 공수된다. 수송기가 와서 유닛을 공수할 때 까지 약간의 시간이 소모되며, 수송기가 돌아가는 시간 동안 유닛을 요청할 수 없다.
파커와 배넌, 웹이 소속된 대대의 지휘관. 계급은 대령. 유럽 전선에서 파커, 배넌과 함께 복무했다. 파커를 우수한 장교로 여기는 반면 배넌을 못마땅해 한다.
파커가 유럽 전선에서 복무했을 때 함께 싸웠던 프랑스군 연락장교. 조국 프랑스를 침공하고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은 소련군을 증오한다.지휘 체계로 인해 소여와 다투게 되자 그 자리에서 미국인들을 까버릴 만큼 터프하다. 기혼자지만 내연녀가 따로 있다.
로마노프와 말라셴코의 대대를 지휘하는 소련군 장교. 계급은 대령.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활약한 전설격 되는 인물. 강경하며 과격한 말라셴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온화한 성격이다.
[[KGB]]가 올로프스키의 대대에 파견한 정치장교. 올로프스키와는 전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정치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지만 대대 정치장교를 맡고 있기에 자신만의 의견을 내는 것을 꺼린다.
- 유병수 . . . . 6회 일치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K리그 2010|2010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7라운드까지 무득점으로 일관하다가 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네 골을 터뜨린 것부터<ref>{{웹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13432 |제목=유병수 4골 '펄펄' 6년 만에 진기록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인일보}}</ref> 시작해, 강원전까지 네 경기에서 아홉 골을 몰아쳤다. 비슷한 시기에 [[김영후]] 또한 득점포를 터뜨려 언론은 이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재조명했다.<ref>{{웹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080011 |제목=유병수-김영후는 전생에 부부?...득점 사이클 '비슷'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OSEN}}</ref><ref>{{웹 인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508870 |제목='찰떡궁합(?)' 김영후-유병수, 올해도 경쟁은 계속된다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아이뉴스24}}</ref> 이후 유병수는 대전전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리그 20골을 기록, K리그 최연소 한국인 득점왕과 최연소 20골을 달성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22골을 기록하며 17골을 기록한 [[호세 오르티고사]]를 5골로 따돌리고 [[K리그 2010|2010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1071805472239&ext=na |제목=유병수, 올시즌 정규리그 득점왕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1-07}}</ref> 2011년 2월 22일 유병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2013년 12월까지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2230096 |제목=유병수, 인천과 2013년까지 계약 연장 |출판사=OSEN |날짜=2011-02-23}}</ref>
[[K리그 2011|2011 시즌]]에는 3월 한 달까지 골이 없었지만 유병수는 4월 달이 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3015114813§ion_code=10&key=&field= |제목=유병수, “잔인한 4월? 내겐 기분 좋은 4월 될 것이다”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1-03-30}}</ref> 얼마후 곧바로 4라운드 [[경남 FC|경남]]전에서 리그 첫 골을 터뜨렸고,<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4030100032850001980&ServiceDate=20110403 |제목='뜨거운 감자' 유병수, K-리그 첫 골에도 감독들 의견은 분분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이건 |날짜=2011-04-03}}</ref> 다음 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연속 골을 터뜨렸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90104 |제목='유병수 극적 동점골' 인천, 포항과 2-2 |출판사=OSEN |날짜=2011-04-09}}</ref> 2011년 5월 발목 골절로 2주 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5090100072070005718&ServiceDate=20110508 |제목=인천 유병수, 발목 피로골절로 2주 아웃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1-05-08}}</ref> 예상과는 다르게 유병수는 2달 동안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1년 6월 25일 [[FC 서울|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병수, FC서울전서 2개월 여만에 1군 복귀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0625200613306&p=SpoChosun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김진회 |날짜=2011년 6월 25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2011년]] [[7월 23일]], [[알힐랄 (리야드)|알힐랄]]이 유병수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알 힐랄, 유병수와 3년 계약 공식 확인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7250100208830017535&servicedate=20110724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박상경 |날짜=2011년 7월 24일}}</ref> 입단 초반 부상으로 고전하였으나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2011-12 시즌 크라운 프린스 컵에서 4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라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AFC 챔피언스리그 2012|2012 ACL]] 16강 경기에서는 무려 4골을 몰아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이후 [[2011년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예비 명단에 소집되었고, 연습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1969448 |제목='유병수 해트트릭' 조광래호, 단국대와 연습경기서 8-0 대승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0-12-19}}</ref><ref>{{뉴스 인용|url=http://www.ibest11.com/Country/news_01_view.asp?iBoard=5&iIDX=32713 |제목=유병수, 아쉬움 떨치고 ‘조광래호 병기’로 거듭나나 |출판사=베스트 일레븐 닷컴 |날짜=2010-12-24}}</ref> 또한,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지동원에게 완벽한 찬스를 제공해주는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2302056282239&ext=na |제목=지동원 골-유병수 AS, 박주영 공백은 없다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2-30}}</ref>
- 윤균상(1987) . . . . 6회 일치
[[전라북도]] [[전주]] 출신. 전주 서신중학교와 영생고등학교 출신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1년 반 동안 모델 일을 했었다.[* 런웨이에 섰던 것은 세 번 정도라 인터뷰 할 때마다 모델 출신이라는 말이 쑥스럽다고 덧붙이곤 한다.] 그리고 '''[[제대]] 후'''[* [[운전병]] 출신이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세한대학교 뮤지컬학과에 재학하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차기작을 포함한 4개의 작품을 연속으로 SBS와 함께 해 '스브스 직원' 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게다가 그 네편중 세편이 월화드라마이다. 스브스의 월화직원--. --그리고 드디어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MBC에도 취직했다.]]--
남다른 동물 사랑을 보이기도 하는데 쿵이, 몽이, 또미(고양이) 라는 반려동물들을 키우고 있다. 과거 양이라는 강아지도 키웠으나 현재는 친가에서 부모님과 남동생이 키우는 중이다.[* 쿵이와 몽이는 삼시세끼 어촌편3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너구리처럼 굵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특징. 어촌편 촬영 당시 쿵이는 꼬리에 자꾸 변이 묻어서(...) 끝부분을 제외하곤 꼬리의 털을 전부 밀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둘은 삼시세끼 바다목장 편의 마스코트로 한번 더 출연하게 되는데 그사이 쿵이는 꼬리털이 풍성해진 대신 장모종이라 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의 털을 밀어 왔다. 헌데 촬영 중 더운 날씨 때문인지 몽이가 개구호흡을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고, 이로 인해 몇몇 네티즌들 사이에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균상이 인스타그램으로 확고한 입장표명을 하면서 사그라 들었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3를 정주행 했으면 알겠지만, 균상이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고, 감독판에서 공개된 윤균상의 집만 봐도 쿵이와 몽이, 또미는 말그대로 호의호식(...)을 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전자동 고양이 화장실도 '''두 대나''' 구비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고양이들에 신경을 쓰는 윤균상에게 몽이의 일은 오히려 실례가 되는 비난이었다.] ~~[[똠양꿍]]~~ 최근 솜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분양 받았다고 한다.
* 출연작들 중 두 작품을 제외하고 전부 SBS 드라마. 이쯤되면 이미 훌륭한 [[공무원]]이다. 또한 데뷔 이래로 한번도 [[KBS]]에 출연한 적이 없다. --[[배우]] [[본인]]도 조금만 더 하면 SBS에서 [[연금]] 나오겠다는 [[드립]]을 쳤다. 이는 [[MBC]]에서 유독 자주 나오는 [[백진희]]와 비슷한 편이다.--
* 2015년에 [[SBS 연기대상]] 특별 공연으로 국악소녀 [[송소희]]와 듀엣으로 육룡이 나르샤 [[OST]]인 무이이야 어레인지 버전을 불렀다.
- 은혼/606화 . . . . 6회 일치
* 드디어 에도로 돌아온 진선조.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도 공중전함을 끌고 와 해방군에 맞선다.
* 히지카타 토시로와 오키타 소고도 새롭게 얻은 힘을 해방한다.
* 마츠다이라와 곤도는 이 나라를 부수는 것도 지키는 것도 자기들 소관이라 일갈하며 혁명군과 교전을 시작한다.
* 마치 뉴타입처럼 전장을 누비는 곤도. 그러나 정신없이 전장을 누리던 와중에
* 신파치는 빈사가 된 곤도를 급하게 구해내고 히지카타 토시로와 오키타 소고 또한 숨겨둔 힘을 개방한다.
* 신파치와 긴토키는 결국 변한건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후퇴했다고 디스를 날린다.
- 은혼/610화 . . . . 6회 일치
* 이것을 사용한다는건 타마와 킨토키를 포함한 에도 전역의 기계가 정지(사망)한다는 이야기지만 히라가 겐카이는 눈물을 머금고 감행한다.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 자체도 기계인 이상 나노머신에 저항하면서 시스템을 유지시켜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할게 타마와 킨토키.
* 타마와 킨토키는 반드시 동료들과 재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시스템을 필사적으로 유지한다.
* 게다가 이 벌들은 최소한 20분은 활동해야 유효할 텐데 그 막대한 에너지는 에도 전역에서 끌어모아도 부족할지 모른다. 발사대인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 자체도 기계이므로, 처리를 잘해봐야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0분 가량. 대포가 먼저 정지되면 그 이후부터는 다른 기계의 힘으로 시스템을 유지해야한다. 물론 그 기계 또한 벌의 공격을 받을 테니 말도 안 되게 하드한 작업. 그렇게 할 수 있는 기계는 에도에는 단 둘 밖에는 없다. 바로 타마와 사카타 킨토키.
*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가부키쵸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해방군 함선이 추락하는걸 발견한다. 긴토키는 무전으로 모든 기계를 다 파괴할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겐카이 영감은 무전을 꺼버린다. 이 포격으로 촉발된 사태를 누구보다 이해하는건 그 자신이다. 그는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유지하기 위해 버티다 하나씩 쓰러지는 기계들을 바라본다. 그는 차라리 원망이라도 해보라고 생각하지만 기계들은 묵묵히 할 일을 다할 뿐이다.
|| 평소엔 제대로 말도 듣지 않던 고물들이 이런 시국에 와선 '''기계다운 기특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망가져 가는 거냐.''' ||
- 은혼/617화 . . . . 6회 일치
* 큐베는 스마일 아가씨들과 타에를 데리고 다키니의 추격에서 도망친다. 타에는 큐베에게 반드시 와줄 거라 믿었다고 말한다. 큐베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한때는 그저 타에를 데리고 지구를 떠날 생각까지 했지만 "너만이 아니라 너의 미소도 다른 모두도 데려갈 수 있는 강한 남자, 상냥한 여자가 되자고" 다짐했고 고백한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이 세계와 함께.
* 그때 하늘을 가득 덮는 화살비가 쏟아진다. 어디선가 사무라이들이 쏟아져 나와서 해방군 병력을 공격한다. 이들은 야규 가문의 가신들을 포함한 의용병들이다. 하수도를 이용해 마을의 안팎에서 나타나 해방군을 막아낸다.
* 마을 중심부로 향하던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은 맞은 편에 나타난 반가운 얼굴과 마주친다. 타에 일행을 성공적으로 구조한 큐베가 사천왕과 토쿠모리와 함께 긴토키와 합류한다. 긴토키는 기다리다 지쳤다고 농담을 던진다.
- 이보희(배우) . . . . 6회 일치
2014년 기준으로는 주로 공주병 아줌마나 푼수데기 조연, 혹은 사극에서 조연으로 많이 등장하는 배우지만, 1990년대부터 텔레비전 드라마에 주력해서다. 전성기인 1980년대엔 [[원미경]], [[이미숙]]과 더불어 80년대 3대 트로이카로 유명했다.[* 영화 한정. 드라마의 경우에는 이보희 대신 [[정애리(배우)|정애리]]가 들어갔다.] 한국의 대표적 섹시스타로 유명해서 유명 에로영화였던 '[[무릎과 무릎 사이]]'라든지, ''''[[어우동]]''''하면 바로 떠오르는 배우였다. 특히 다리가 예쁜 걸로 유명해서, 서양권 여배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다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참고로 '[[무릎과 무릎사이]]'는 단순 에로영화가 아닌 여성이 性을 극복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 수작이다.]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유방이 풍만하다. 그런 데다가 허리는 가냘프고 다리는 날씬하며 아래로 곧게 뻗었다. 물론 피부도 매우 곱다. 아쉬운 것은 힙이 좀 작다는 것 정도...]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영화)|공포의 외인구단]]'을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 하자 항상 그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맏던 이보희가 자동적으로 [[최엄지|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배우)|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 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태종(조선)|태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배우)|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조선)|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순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KBO 리그]]와 얽힌 흑역사가 하나 있다. [[김재박]]이 선수 시절인 1986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시상자인 이보희가 '''김재박을 유격수 수상자 김재전이라고 부른 해프닝이 것.'''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안습-- [[김재박]] 항목 참조. 1959년생인 이보희는 박정희정권의 한글전용정책의 일환으로 학교교육에서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초반까지 신문 등의 활자매체는 한자단어는 한자로 표기하고 조사나 순우리말 정도만 한글로 썼으므로 몰랐다는게 조금 무식하다는 평을 들을 수는 있겠으나 이보희처럼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은게 아닌, 한자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 세대에게 김재박의 이름을 한자로 써주고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1987년 8월에 LA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재미교포 함윤식[*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전념했다고 한다.]과 1988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활동에 복귀하였으나 아들은 다시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함윤식과는 이혼하고 한의사와 건설업체를 겸직하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이혼 사유는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 이상호 (1989년) . . . . 6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11년)
==[[SK 와이번스]] 시절==
[[2011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당한 후 [[SK 와이번스]]에 입단했으나 1년 만에 다시 방출당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00524 SK, 임성헌-김대유 포함 7명 방출] - OSEN</ref>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2013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안타를 친 후 근육통을 호소하자 [[대주자]]로 출장하며 첫 1군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5065708 이상호, '운이 따르네~'] - 뉴시스</ref> 이후에는 주로 대주자로 나왔으며 [[지석훈]]과 [[노진혁]]의 부진으로 종종 선발출전도 했다.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노진혁]]의 땅볼 때 [[서동욱]]의 태그를 절묘하게 피하며 병살을 피하였고<ref>[http://osen.mt.co.kr/article/G1109668015 이상호, '태그를 피하는 방법' ] - OSEN</ref>, 타격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결승타) 2도루로 경기의 MVP가 되었다.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영동대학교 동문]][[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이윤열 . . . . 6회 일치
2000년도 경 iTV 고수를 이겨라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인규를 격파한 것이 데뷔전이었으며 이후 2001년 상반기, Game-i(이후 [[화승 OZ]]의 전신인 IS와 합병)에 입단하면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2년 12월엔 KTF 매직엔스(현 [[KT 롤스터]])로 임대 이적했고, 이듬해 2003년 12월 24일 투나 SG(현 [[위메이드 폭스]])로 복귀한 이후 2010년까지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 KPGA(MSL의 전신) 3회 우승 등 역대 프로게이머 중 [[이영호]]와 함께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중이며, 준우승 경력을 포함, 양대 개인리그 10회 결승 진출, 6회 우승과 4회 준우승으로 역대 최고의 위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윤열의 천적으로 자리잡은 마재윤에게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결승전, WEF 2006 결승전, CJ 슈퍼파이트 S3 결승전 등에서 패배하였고, 2007년 2월 24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3에서 마재윤에게 1:3으로 패배하였다. 이후 치러진 신한은행 마스터즈에서 마재윤에게 3:1 승리를 거두어 앙갚음을 하였고, 08-09 시즌에 열린 클럽데이 MSL, 로스트사가 MSL에서 연속으로 시드를 획득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이후 찾아 온 슬럼프와 미니홈피에 쓴 글이 은퇴를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었지만,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우승을 전후하여 다시 게임에 매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일:Leeyoonyael.png|섬네일|오른쪽|160px|프링글스 MSL 시즌2에 출전하여 경기 중인 이윤열]] 2010년 9월 자신의 팀인 [[위메이드 FOX]]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고 스타크래프트 2로의 전향을 공식 선언한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 '천재테란' 이윤열 스타2 전향 선언|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5795|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쪽=|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7}}</ref> 이후 스타크래프트 2 게임단인 [[oGs]]에 입단하여 10월 13일 [[Sony Ericsson STARCRAFT II OPEN Season 2]]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임요환·이윤열, GSL 오픈 시즌 2 본선 진출!|url=http://www.eto.co.kr/?Code=20101013111109640&ts=174147|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쪽=|날짜=2010-10-13|확인날짜=2010-10-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12053354/http://www.eto.co.kr/?Code=20101013111109640&ts=174147|보존날짜=2016-03-12|깨진링크=예}}</ref>
이윤열은 [[2012년]] [[6월 20일]] 자신의 팀인 컴플렉시티 게이밍 홈페이지에 은퇴 사실을 알렸다. 사유는 현재 병역문제와 개인적인 문제가 결합되어 은퇴하는것으로 밝혀졌으며 [[2012년]] [[7월 3일]] tving 스타리그 2012 레전드매치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 프로게이머 최초 골든 마우스와 금배지 동시 소유자
- 이중환(법조인) . . . . 6회 일치
1959년 [[경상북도|경북]] [[구미시|구미]]에서 출생했으며 [[경북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15기(1986년)) 수료 후, 검사로 임용되어 2011년까지 근무하다 퇴직하고 변호사로 전직하였다. 이중환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하였으며 대리인단의 대변인이자 대표 대리인 역할을 맡았다. 탄핵 심판 초반에는 대리인단의 대변인으로서 언론에 박근혜쪽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뷰와 브리핑을 전담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밉상으로 찍혀서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탄핵 심판 중반부터 대리인단의 일부 [[서석구|변]][[김평우|호]][[조원룡|사]]들이 막말 변론을 해대고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집회]]에 나가 헌재를 마구 비난하는 등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무난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대중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탄핵이 결국 인용되어 대통령이 파면된 후에 나름 이중환 변호사의 고충이 상당히 컸다는 것이 알려졌다. 일단 대리인단은 탄핵심판 내내 의뢰인 박근혜와 거의 만나지 못했으며 의뢰인의 입장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던 탓에 변론의 방향 설정에 어려움이 매우 컸다고 한다. 대리인단이 헌법 재판관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증인 신문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단지 대리인단의 무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중요한 사건을 맡았는데도 수임료를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이 정도 사건의 경우 [[http://www.huffingtonpost.kr/2017/04/03/story_n_15772380.html|수임료가 2억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기사에서 보듯이 대리인단은 사실상 무료 변론을 했다.
탄핵 심판 중반 이후 상황이 박근혜에게 많이 불리해지자 대리인단의 몇몇 변호사들이 변론의 기본을 무시한 채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헌재를 모욕하고 협박하는 등, 대리인단 간에 의견 통일이 전혀 안되고 변호사들끼리 각자 변론을 하는 수준으로 팀웍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대리인단을 추스려야 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이에 대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90067|"벼룩 10마리 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만큼 힘들다."]]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법조인들은 대리인단의 팀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 대리인단이 무료로 변론을 한 탓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제대로 돈을 받고 변론을 했다면 일단 의뢰인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자신의 신념이나 기분을 앞세워서 마구잡이로 변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고 심지어 구속까지 당한 후에도 제대로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고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의 몰락은 결국 제대로 댓가를 제공하지 않고 누군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도와줄거라고 믿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박근혜의 성격에 대해서는 박근혜 저격수 [[전여옥]]이 지적한 바가 있다.]
비록 국민 정서에 반하는 변호를 맡았던 탓에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대리인단의 일부 변호사들처럼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품격을 잃지는 않았고 소통이 전혀 안되고 돈도 안주는 의뢰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나름 동정표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박근혜같은 중범죄자도 자기 입장을 말할 권리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왜 하필 저런 사람을 변호하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어차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누군가가 이 일을 맡았어야 한다는 것은 상기하자.][* 물론 '변호사 전원 퇴진'이라는 카드를 보여주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래도 '법조인'으로써 할수 있는 선에서의 카드였고 결국 이 카드를 쓰지는 않았다. 후에 박근혜 재판의 대리인을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변호인 전원퇴진을 진짜로 강행하여 재판을 지연시켜버리며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것을 보면 여러모로 대조적인 부분.]
|| [[대한민국 정부|정부]] 관계자 ||<#ddd> [[청와대]] || __[[안종범]]__ · [[현기환]] · [[김한수(정치인)|김한수]][br] [[김상률]] · [[조원동]] [br] [[윤전추]] · [[이영선]] · ^^故^^[[김영한(공무원)|김영한]] ||<#ddd> [[대한민국 정부|행정부]] || __[[황교안]]__ · __[[문형표]]__ · [[김종덕]] · __[[조윤선]]__[br]__[[김종]]__ · [[송성각]] · ''[[유진룡]]'' · ''[[여명숙]]'' ||
- 이훈(배우) . . . . 6회 일치
1994년 MBC 특채 탤런트로 들어와 드라마 데뷔작인 [[서울의 달]]에서 차인근 역을 맡으면서 꽤 인기를 얻었지만 아래 서술할 조규찬 폭행 사건 등 여러 가지 폭력시비가 잦아서, 한때는 '''[[김창렬]]보다 앞서서''' 연예계 폭력사건의 대표 인물이 되는 바람에 이제는 배우보다는 돈만 된다면 사채광고도 마다 않는 '''생계형 연예인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헬스로 인해 탄탄하게 다져진 몸 때문에 터프가이, 마초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와 예능에서 하는 발언들을 보았을 때 실상은 '''굉장한 삐돌이 [[소인배]].''' 이 소인배 캐릭터는 2000년대 말 놀러와 게스트 출연 당시에도 이미 나왔지만 그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다 2010년대 들어서 널리 알려졌다.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나왔는데 [[정준하]]와 [[유재석]]이 본인들이 환영회를 책임지고 해주겠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자기들 놀기에 바쁜걸 보고 화가 나서 "늬들은 형도 아니야" 라고 섭섭함을 표하면서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로 [[무한도전]]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고. 또 [[정글의 법칙]]에 캐스팅됐다가 나중에 제작진의 말이 바뀌면서 출연이 무산되자 역시 그 뒤로 정글의 법칙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어째 이해는 가는데?--
원래도 마초적인 성격이 강하다보니 트러블이 잦았는데 대표적인 일이 바로 서경석과의 악연. [[서경석]]이 군 복무를 할 당시 그의 맞고참이었다. 실제로 서경석이 자신의 군 생활을 엮어 집필한 책인 '서경석의 병영일기'의 내용을 보면 이훈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보다 연예계 후배이고 나이도 어린데 너무나 막 대하는 것에 상당한 앙금이 남았던 듯. 책에서는 아니지만 서경석이 전입한 날에 이훈이 재떨이를 던진 사건은 방송계에서 꽤 유명한 일화며 [[http://k.daum.net/qna/view.html?qid=3GaDe|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한 적이 있다.]]
가요 생방송 진행 중, 같이 진행하던 김예분[* 1994년 미스코리아 미. VJ와 MC로 활동했다.]에게 달려드는 괴한을 멋지게 ~~주먹으로 퍽퍽퍽 쳐서~~ 제압한 적이 있다. 이훈이 사람 패고도 욕 안 먹은 유일한 케이스?
- 일곱개의 대죄/185화 . . . . 6회 일치
* 페이네스 호반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릴 정도로 강렬한 열기와 폭발.
* 젤드리스와 드레퓌스는 현장으로 오다가 이 장면을 목격한다.
* 승부가 갈렸다고 생각하는 에스타롯사와 아랑곳 없는 에스카노르.
* 에스카노르가 "죽어라"는 한 마디와 함께 크루얼 선을 작렬시킨다.
* "정오의 에스카노르"가 에스타롯사와 동급인게 아니라 "정오도 안 된 에스카노르"가 이미 에스타롯사와 동급이라는 어마어마한 반전
- 일곱개의 대죄/186화 . . . . 6회 일치
* 몬스피드와 델리엘은 리오네스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
* 에스카노르와 젤드리스의 마력이 단숨에 먼 곳으로 사라졌다고 확인하며 데리엘에게 자신들도 에스카노르를 상대하러 갈지 묻는다.
* 대세는 하우저 쪽. 슬레이더와 효암의 표효는 자신들이 마을로 파견된 성기사들을 유도할 테니 먼저 성으로 퇴각하라 권한다.
* 이때 몬스피드와 데리엘이 나타나 항복을 권고한다.
* 덴젤의 두 눈이, 엘리자베스가 여신의 사도가 됐을 때와 같이 변했다.
* 갑자기 튀어나와 미모치 1위를 달성한 여신님(...)--양덕놈들도 네타에 거유 여신님이라고 적어놨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6회 일치
* 하우저는 드레퓌스와 핸드릭슨이 자격이 없다고 사양한 성기사장 자리를 승계받는다. 하지만 아직 대리 꼬리표가 붙는다.
* 리오네스 왕국의 민가. 아버지가 늦잠자는 아들을 깨우고 있다. 어느 가정이나 비슷할 법한 아침풍경. 부지런한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겨우 아침잠을 쫓으며 세수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칠칠맞고 여자한테 인기도 없다고 디스하는데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 아들은 바로 성기사 하우저. 평민출신 답게 서민적인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우저는 출근하기 전에 앞으로 수도 복구 때문에 늦게 올 거라고 말하는데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런거보다 왕궁에서 사자가 와서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고 전한 일을 말한다. 하우저는 "마신족 놈들 때문에 나라가 반붕괴했는데 그런거라니"하고 반발하는데 아버지는 하우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출근이나 하라고 내보낸다.
* 성에서 목욕을 즐기는 멀린. 에스카노르는 하인처럼 목욕시중을 들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마에 열중하는 중. 멀린도 대만족. 멀린은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왕국이 원상복구된 일에 대해 질문을 들은 모양인데 "원래대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녀가 복원한건 어디까지나 "건물"이라는 것. 사실 애초에 반 정도는 멀린이 부순 셈이니 고쳐주는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물이 돌아왔다고 해서 마신족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까지 낫는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계금에 걸린 성기사들와 백성들이 카멜롯으로 달아났는데 그 말은 카멜롯이 잔존한 십계의 근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 말하는 멀린. 그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일단 일곱개의 대죄임에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멜리오다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아직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지 못했다고 짐작한다. 그때 잠자코 있던 반이 멜리오다스의 목을 조른다. 어젯밤에 축배를 들 때 멜리오다스가 없어 흥이 나지 않았다는 것.--흥이 깨졌으니 단장이 책임져-- 반은 그런 식으로 서먹함을 풀려고 한다. 멜리오다스에게 "어제는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무슨 표정으로 말을 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멜리오다스의 뭔가가 바뀐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멜리오다스는 반이 잘못한게 아니라고 하는데.
하우저 인생역전. 상위 성기사에서 성기사장으로 클래스업. 하지만 대리라는 단서가 붙은 걸 보면 길선더의 복귀와 함께 원상복귀할 듯.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6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는 [[게라이드]]와 재회해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데 할리퀸의 충견 [[오슬로]]가 그를 경계하나 게라이드의 중재로 곧 누그러진다.
* 그로키시니아는 십계를 이탈해 요정왕의 숲을 지키기로 하고 디안느와 할리퀸은 일곱 개의 대죄로 복귀를 결정한다.
* "대죄가 다시금 집결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디안느와 할리퀸이 뚝 떨어지면서 예언이 실현된다.
* 할리퀸은 그녀가 말하는 것을 금방 이해하진 못한다. 하지만 곧 "200년 전"이 가리키는 것이 그녀가 기억을 잃어 버린 유년 시절을 뜻한다는걸 깨닫는다. 그건 디안느가 잃었던 기억을 모두 되찾았다는 의미였다. 십계 [[고서]]가 그녀에게 준 사과와 선물, 그것이 그녀의 기억이었다. 지금껏 고서를 원망하고 있던 할리퀸은 그런 사실에 생각에 잠긴다. 고서에 의해 기억을 잃고, 다시 찾게 된 디안느는 고서를 옹호한다.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또 할리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할리퀸은 기꺼이 그러겠다고 답하고 오히려 지금까진 너무 못되게 굴었던 거 같다고 자책한다.
지금와서 보면 그건 로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나타난 오슬로. 그로키시니아는 그가 분명 로우의 의지를 이어받은 존재일 거라고 추측한다.
*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디안느와 할리퀸. 예언대로 일곱 개의 대죄가 다시금 모였다. 비록 단장 멜리오다스는 디안느 밑에 깔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6회 일치
* 디안느의 호소로 나쟈와 진짜 고서의 기억을 되찾은 인형 고서는 감정이 회복되며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온다.
* 한 발 늦게 도착한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 마지막으로 [[에스카노르]]가 합류. 멀린의 제안으로 오늘을 기념하는 연회를 열기로 한다.
*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나쟈 리오네스]]의 기억이 떠오르려 할 수록 부정하며 또다시 기억을 수정하려 했다. 때마침 나타난 [[디안느]]가 그것을 저지하고 "기억을 지우려 했다는건 뭔가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고서가 "단지 노이즈일 뿐"이라고 대꾸하지만 디안느는 "그거야 말로 네 마음일 수 있지 않냐"고 거듭 지적한다. 고서는 디안느의 방해를 뿌리치기 위해 공격하는데 디안느는 춤을 추며 간단하게 피한다. 고서는 그녀가 춤을 출 수록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 수치가 무려 15100에 달했기 때문. 그녀의 마력이 급격히 올라가는건 인근에서 수색 중이던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도 감지할 수 있었고 곧 고성 쪽으로 향한다.
바트라는 그녀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고서가 바트라의 누나 나쟈와 나눈 시간들과 그녀의 죽음, 그리고 그녀를 살려보려 했던 고서의 시도까지. 그러나 자신의 심장으로 나쟈의 심장을 대체해주려던 계획은 실패했고 고서는 충격과 절망 속에서 심장은 고성의 지하에 버리고 자신의 기억을 지웠던 것이다.
디안느의 호된 목소리는 더 많은 기억을, 추억을 일깨웠다. 그가 거부했던 기억 속에는 상냥했던 나쟈와의 즐거운 생활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기억들, 그리고 더욱 깊은 곳에서 나타나는 또다른 소중한 사람. 바로 그의 아버지.
* 사건이 일단락된 후, 디안느는 그럼 "마법의 심장"은 뭐였던 거냐고 멀린에게 물었다. 그녀는 십계 고서가 자신을 인형이라 한탄하는 아들을 위해 준비한 부적 같은 거였을 거라고 답변한다. 그러는 동안 멜리오다스와 반이 도착한다. 하지만 상황이 끝나서 그들의 차례는 없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서 [[에스카노르]]도 도착. 지쳐서 다죽어가는 판이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6회 일치
*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대항했던 존재는 마신왕과 여신족의 신.
* 그런 식으로 영원히 헤매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운명.
마신족을 다스리는 "마신왕", 그리고 여신족을 이끄는자 "최고신". 성전을 통해 반목과 학살을 주고 받던 두 존재가 한 연인을 처벌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들의 무서운 힘 앞에서는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의 저항도 보잘 것 없었다. 그는 벼락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불려가 싸웠으나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긴다. 죽어가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
>전생할 때마다 나는 너와 반드시 만나고 사랑에 빠지며
눈물과 함께 두 번째로 엘리자베스를 매장한 멜리오다스. 또다시 길을 떠난다. 저주를 풀기 위한 정처없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유언처럼 남긴 말들이 진실임을 입증하듯, 그는 세 번째 엘리자베스와 재회한다.
* 멜리오다스가 통곡하려는 디안느를 달래며 지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환기시킨다. 디안느는 슬플 지언정 그걸 잊진 않았다.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에서 차원의 비틀림을 부숴야 한다. 단원들이 슬픔을 나눠준 것일까? 멜리오다스는 한결 평소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 임채무 . . . . 6회 일치
원래는 해병대 제대 후[* 기수는 228기였다.] 70년대 중반 데뷔하여 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주로 MBC)에서 선 굵은 배역을 자주 맡은 연기파 배우로 중장년층에게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TV 드라마계의 남자배우 투톱이던 [[노주현]][* 60년대 후반까지는 미남 주인공 역할은 노주현 원탑이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갔다 올때쯤 한진희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 임채무까지 등장하며 원톱의 자리는 내려놓게 된다.], [[한진희]]의 미남역할 주인공 독점을 사실상 임채무가 막은 셈일 정도였고, 본인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영역을 늘렸었다.[* 물론 그들보다 선배였던 노주현은 "아무리 한진희, 임채무 걔네가 잘 나갔어도 나한테는 안 됐지"라고 방송에서 너스레를 떤 적도 있으나, 그도 사실 그들의 커리어를 인정해온 편이다.] 맡은 역할 이미지가 젠틀맨 이미지로 겹치면서도 각자 조금은 다른데, 노주현은 잘생기고 부드러워보이는 신사지만 때로 터프하고 호쾌한 이미지, 한진희는 큰키의 훤칠하고 부드러운 멋쟁이 꽃미남 이미지, 임채무는 중후하고 우수에 찬 남성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셋 다 외모도 시대상과 어울리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애정 연기와 잘 어울려, 여성 시청자에게 엄청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미녀스타들이나 인기 배우들과 연기했으나, 그들보다 임채무의 인기가 더 많았다. 꽃미남과는 아니지만 멜로 드라마에서의 중후한 표정 및 목소리 연기, 그로 인한 이미지 때문에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폭넓은 여성시청자의 인기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80년대의 레전드급 임팩트 배우 중 하나'''. 그래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는 드라마쪽은 노-한-임 트로이카 남주시대라 봐도 될 정도.[* 물론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던 노주현, 한진희에 비하면 당대에도 커리어가 살짝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최소한 당대 다른 남자배우들은 압도할만한 인기와 경력을 쌓았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채시라와 멜로 연기를 한 작품도 있다. 당시 가십지에서 키스신을 어떻게 찍었는지 자세히 써낸 기사도 있을정도. 입술에 테이프를 붙이고 찍었다고..최근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듯. ~~그래야 놀이공원 빚을 갚지요~~
해병대 228기로 군 복무를 했으며, 진짜사나이 해병대편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황금어장]] 출연 당시, 본인의 해병대 생활에 대해 스스로 방송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똥군기가 심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선임한테 그렇게 많이 맞았다고 하는데, 하루는 가장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선임이 휴가를 가게 되자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밤 해병대 전통대로 본인이 선임 군복을 빨고 각잡는 다림질을 할때, 일부러 군복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얇아지도록 미리 준비한 돌로 몰래 그 부분을 열심히 갈았다고 한다. 다음날, 선임이 부대에서 나가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고향가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빡''' 소리와 함께 엉덩이 부분이 완전히 터졌고 결국 민간인들 많은 곳에서 --헉 빤쓰 다 보임--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ㅇㅋ 복수 성공!! [[PROFIT]]--, 분노에 가득차 씩씩대며 바지를 갈아입기 위해 부대로 돌아온 선임한테 평소보다 더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어?-- 맞는 중에도 임채무 본인은 복수에 성공한 게 좋았다고..
젊은 세대에게 알려진 대표작(?)은 2006년 초 [[돼지바]] 광고. 싱크로 높은 [[비론 모레노|모레노 심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탈리아전의 그 심판 맞다] 코스프레로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를 계기로 그해 중순부터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원년 멤버로 출연하며 예능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 사실 그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보다 이전인 90년대에도 종종 심야 예능[* 물론 그때는 예능이라고 안 부르고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불렀지만..] 프로그램에 나와서 꽁트연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당시 나름 유명했던 건 KBS 꽁트에서 카바레 사장님 역할로 나와, 당시 쓰던 닉네임 '채무림'[* 임채무를 미국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임을 림이라고 한 것]으로 불리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 같은 코미디언들과 함께 연기했던 것.
- 임현식(배우) . . . . 6회 일치
||<#878787> '''{{{#EEE156 생년월일}}}''' ||<(> [[1945년]] [[12월 31일]][* 하루 차이로 해방둥이가 되었다! --날때부터 예사롭지 않다.--][* [[싸이]]와는 정확하게 32년 차이, 생일이 같은 날이다.] ([age(1945-12-31)]세) ||
[[대한민국]]의 [[배우]]. 대표적인 [[감초]]배우 중 한 분이다. [[1969년]] [[문화방송|MBC]] 1기 탤런트[* 동기가 일용이 [[박은수]]씨, [[조경환]]씨, [[김애경]]씨 등이 있다.][* 최종면접에서 36명 중 한명이었는데 그 당시 MBC사장이 임현식의 얼굴을 보고 “좀 밋밋하지 않아?”라고 하는 말에 떨어질 것 같아 “배우로 제 인생을 완전히 바치고 싶다”는 소신을 강하게 밝혔고 의지가 좋게 보여 합격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첫 출연은 [[포졸]].]로 데뷔한 뒤 [[서민]]적인 외모로 어필하며 여러 [[드라마]]와 [[사극]]에 감초로 출연하여 시청자들에게 [[여유]]와 [[웃음]]을 선사한 분이다. [[허준(드라마)|허준]]이 대표적. ~~의원밥 10년~~
대표적인 [[이병훈(PD)|이병훈]] [[사단#s-3]]의 배우로, 이병훈씨가 연출한 사극에는 타방송의 동반출연을 마다하고 [[카메오]] 출연[* [[상도(드라마)|상도]]에서는 46회와 49회에 석공(다리 건설)으로, [[이산(드라마)|이산]]에서는 지상렬을 가르치는 [[춘화]]고수(!)로 출연했다.]으로라도 반드시 출연한다고 한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푸근한 인상의 외모와는 다르게 의외로 양갓집의 [[음대]]지망생인 [[엄친아]] 출신이었다고 한다.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는데 이게 거리의 악사 연기에서 빛을 발했다고. <한 지붕 세 가족>에서도 연주를 보인 바 있다. 뭐든 잘 하지 못 한다고 슬퍼하는 아들 순돌이를 위해 “아빠도 처음에는 잘 못 했지만 연습을 하다보니 이렇게 연주를 잘 할 수 있잖니?”하며 바이올린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마무리 짓는 장면이 일품.
[[애처가]]였으나 연하의 아내(서동자씨)가 [[2004년]] 대장금 촬영 도중 [[늑막염]]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54세. 주변인들에게 알리지 않아 병세가 위중해지고 나서야 기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싱글이 된 이후로는 MBC 일요 [[아침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부부(각각 순돌이 아버지, 순돌이 어머니)로 같이 호흡을 맞춘 [[박원숙]]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어서 [[JTBC]]에서 재혼 미리보기;; 프로그램인 [[님과 함께]]에서 중년의 로맨스를 연출. ~~은근슬쩍 같은 방에서 자려고 수작을~~ 또한 한편으로는 아내와 사별한 후 [[천주교]]에 귀의했으며, [[세례명]]은 [[바오로]]다.
- 절대가련 칠드런/432화 . . . . 6회 일치
* 효부 쿄스케는 배신용의자를 미나모토 코이치, 사카키 슈지, 마츠카제 코우이치, 키리츠보 타이조, 카시와기 오보로 다섯으로 압축한다
* 카시와기를 제일 먼저 검사하는데, 그녀가 바벨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존재이기 때문.--키리츠보 안습--
* 레어메탈은 신체와 일체화하는 성질이 있고 블랙팬텀이 쓰는 것은 길리엄의 의지를 담고 있다.
* 카시와기, 키리츠보는 무죄
* 효부가 보기에도 카시와기가 바벨의 실세. 키리츠보는 후지코에 치이고 카시와기에게도 치인다.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6회 일치
[[츠보미 후지코]]는 [[미나모토 코이치]]와 [[사카키 슈지]]를 이동시키면서 석연치 않은 낌새를 보인다.
* 칠드런 일행은 미나모토와 사카키의 이동 소식을 [[효부 쿄스케]]에게 전한다.
* 하지만 미나모코와 사카키는 적응 훈련을 핑계로 소환된 뒤 행방이 묘연해졌을 뿐더러, 후지코는 우주행을 마중하겠다는 칠드런의 의양도 묵살한다.
* 애초에 판도라와 바벨은 적대관계고 임시적으로 휴전하고 있을 뿐인데, 적의 수장이 위기에 처했다면 자신들에게 나쁠게 없는 상황이라고 비웃는다.
*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태운 로켓이 우주기지로 발사된다.
* 하지만 로켓을 타고 온건 국장 직속의 A팀 대원들. 효부는 미나모코와 사카키가 연락도 닿지 않을 어딘가로 옮겨졌을 거라고 추론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6회 일치
츠보미는 수상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고 미나모토와 사카키는 어딘지도 모를 오지로 내쫓긴다.
* 바벨에 잠입했던 요우와 모미지는 별다른 위험은 없었지만 보안이 강화되어 역시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 하지만 거기서 츠보미 후지코와 교전해 사로잡혔었다.
* 마기는 무사히 귀환했지만 츠보미와 교전한 기억이 교묘하게 잘려나가 있다.
* 아오이와 시호는 키리츠보 국장에게 미나모토의 행방을 캐묻지만 국장인 국장도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 한편 미나모토와 사카키는 유빙이 둥둥 떠다니는 어딘가로 보내졌다.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6회 일치
미나모토와 사카키는 벽지의 부서로 좌천되고 만다.
* 미나모토와 사카키가 컨테이너 째로 이송된 곳은 우주기지가 아니라 일본의 최북단에 있는 "모호츠쿠 관측소"
* "더 와일드 캣" 우메가에 나오미의 운용주임인 타니자키 이치로 대위였다.
* 타니자키가 이곳에 온 것은 반년 전 일 때문인데, 평상시와 같이 나오미에게 "결혼하자"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 처음엔 미나모토와 사카키가 수리설비를 들여왔더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 일련의 부자연스러운 상황들을 놓고 봤을 때 흑막은 츠보미 관리관이며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좌천시키는 거 자체가 목표임은 명백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6회 일치
* 석연치 않은 기분에 돌아온 모미지와 요우. 우려대로 마기는 블랙 팬텀에 침식 당했고 효부 또한 그를 구하기 위해 침식을 무릅쓰고 있다.
* 모미지, 요우는 돌아가지 않고 효부와 마기를 미행하고 있었다.
* 모미지는 효부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보니 우려한 대로 교전의 흔적이 발견된다.
* 그리고 자신들에게 나라와 가족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는데.
* 효부는 "도와주겠다"라고 했다고 정정해주고 자신은 그들의 부모가 돼줄 수 없다고 말한다.
* 그는 자신의 시간은 반세기도 전에 멈췄고 여기 있는건 "나를 죽인 자들에 대한 증오와 여왕을 기다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6회 일치
* 결국 바벨의 전병력이 현장에 집결하는데 그 자리에 마기 시로와 효부 쿄스케가 나타난다.
* 이후 효부와 마기는 계획을 실행하고 효부는 마기에게 "길을 잃으면 언제든 시로로 돌아와라"라고 답해준다.
* 현장의 상황을 보고 열받은 키리츠보 타이조. 나라에 "레벨7"이 없는걸 한탄하며 울부짖는다. 언제쯤이나 레벨7이 태어나겠냐며 태어나기만 하면 보물처럼 예뻐해주겠다고 사무치는 말투로 외친다. 이때부터 국장의 레벨7 사랑이 시작된 듯.[* 사실 그 당시 레벨7이 존재하긴 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이거나 태아 상태였을 뿐. 아카시 카오루가 생후 2일,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는 아직 모친 뱃속에 있던(각각 5개월과 3개월 째) 태아 상태였다.]
* 그때 효부와 마기를 따라오고 있었던 신형 ECM이 현장에 나타난다. 이를 예상치 못했던 바벨의 요원들은 무력화. 판도라측은 연막탄을 뿌리고 잠시 모습을 숨긴다.
표지는 유년기의 사카키 슈지. 서플리먼트 4컷 내용을 의식한 것 같다. 4컷 상에서 소개된 효부의 검거상황은 "아카시의 탄생을 보러 갔다가 의사로 오인 당해 신나게 과로하고 지친 채로 후지코와 싸우다 도주, 숨어있다가 사카키에게 노출되는데 사카키가 그대로 후지코에게 신고했다"라는 상황.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6회 일치
* [[머슬 오오카마]]가, 로비에트 정부에도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마수가 뻗어와 자신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다고 알린다.
* 뼈아픈 패배를 겪은 칠드런 일행은 PANDRA의 본거지인 여객선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호로 피신한다. 주전력인 [[효부 쿄스케]]와 칠드런 일행은 모두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었지만, [[미나모토 코이치]], [[사카키 슈지]]와 백신을 투여한 [[츠보미 후지코]], [[키리츠보 타이조]],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 등은 적의 손에 떨어졌다.
* 잠시 뒤, 모미지로부터 이상의 상황을 전달받은 [[아카시 카오루]]는 어떻게 초조하지 않을 수 있냐고 방방 날뛴다. 그녀와 칠드런 일행은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의 [[도서관]]에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산노미야 시호]]나 [[노가미 아오이]], [[쿠모이 유리]], [[마츠카제 코우이치]]는 비교적 침착한 모습이다. 하지만 카오루는 고함을 치면서 이렇게 된 이상 힘으로 바벨을 습격하자는 과격한 말을 하다가 시호가 쏜 바람총을 맞고 다운된다. 시호는 그런 결단은 블랙팬텀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라고 정론을 펼친다.
* 그래도 카오루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츠보미 문서와 [[우츠미 세이시로]]의 사념이 그녀를 다독인다. 츠보미 문서는 이럴 때를 대비해 자신이 있는 거라며 카오루를 진정시킨다. 하지만 상황이 막막한건 사실이다. 마츠카제는 미나모토가 "판도라의 전력을 써라"고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정병희 . . . . 6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6년 ~ 2010년)
'''정병희'''(鄭炳喜, [[1983년]] [[5월 25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역삼초등학교와 휘문중학교를 거쳐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휘문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1년]], [[우규민]]과 함께 팀 내 주축 [[투수]]로 활약하면서 제 55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에 기여한다.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85963 한화, 정병희와 입단 계약] 《한국일보》, 2001년 7월 13일</ref> [[2005년]] 시즌 후 [[내야수]] [[김민재 (1973년)|김민재]]의 보상 선수로 이적했다. 이후 입대하여 [[2010년]]에 제대하자마자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었다.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
- 정수성 (야구인) . . . . 6회 일치
|소속 구단 = 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주루코치 (2017년 ~ 현재)
'''정수성'''(鄭守盛, [[1978년]] [[3월 4일]] ~ )은 전 [[KBO 리그]]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의 [[외야수]]([[우익수]])이자 현 [[SK 와이번스]]의 주루코치다. 그의 형은 전 [[야구 선수]] [[정수근]]이다.
2016 시즌을 마치고 [[넥센 히어로즈]]와 재계약에 실패한 후, [[SK 와이번스]]로 자리를 옮겼다.
{{SK 와이번스 명단}}
- 정좌관심 . . . . 6회 일치
송나라 이후 [[유교]]에서 주장하는 수행법이다. 정좌는 조용히 앉아서(정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관심)으로서, 줄여서 정좌(靜坐)라고 하였다. [[주희]]는 특히 이를 강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안정 상태로 두는 거경(居敬)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독서]]와 함께 수행법으로서 중시되었다.
유교의 정좌는 [[불교]]와의 대립, 영향 관계에서 나타난 수행법으로 보인다.--[[좌선]] 퍼가요~-- 실제로 주희는 자신의 저작에서 유교의 '정좌'는 [[불교]]의 [[좌선]]과는 목적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불교와의 관련성을 지적받게 되었다. [[정약용]]은 주희가 강조한 '본성'과 '명덕'이 『능엄경』의 '여래장'과 동일하며, 주희가 주장한 공부 방법 역시 불교의 [[좌선]]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주희가 불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반론도 있지만,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정좌관심은 간화선과 같이 한 순간에 얻어지는 깨달음(돈오돈수)가 아니라 독서와 병행한 '점진적'인 깨달음(돈오점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한국 불교에서 주류가 되는 [[간화선]]보다는 이후 불교계에서 쇠퇴하여 사라지는 [[묵조선]]과 유사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유교]]에서 정좌가 도입된 것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송]] 시기에 주염계는 자신의 저서 『태극도설』에서 ‘주정입인극(主靜立人極)’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그 뒤 명도와 이천이 정좌를 가르쳤고, 정좌 수행은 유교의 주류가 되었다.
- 주현미 . . . . 6회 일치
[[화교]] 3세[* 주현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에 한국으로 이민와서 자랐으므로 사실상 2세인 것이나 다름없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180412 주현미편에서 주현미의 친할아버지는 중국인이고 친할머니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할머니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조선인 1세(그 당시에는 [[조선]]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인 맞음)인 것으로 추정한다. 주현미의 [[할머니|친할머니]]와 [[어머니]]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현미의 형제들은 어린 시절 집안에서부터 이미 한국 문화 방식으로 자랐다고 한다. 따라서 오히려 주현미와 형제들은 처음 화교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그것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출신으로, [[전라북도]] [[남원시|남원]] 에서 4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하여 자란 [[중국인]][* [[중국]] [[산동성]] 모평현에서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지만, 당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정치]] 및 군사적 상황에 의하여 [[대만]] [[국적]]이 되었다.] [[한의사]]였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참고로 주현미의 친할머니 역시 [[한국인]]이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따라서 주현미는 굳이 혈통을 따지자면 중국 [[쿼터]](1/4) [[혼혈]]인 셈이다. 대만 국적이었으나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주현미의 동생들은 아직 [[중화민국]] 국적이라 한다.[* 한국화교는 [[타이완 섬]]과는 거리가 먼 [[산둥 성]] 출신들이며 단지 국적을 부여한 나라가 [[중화민국]]이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좀 꼬인 건 국부천대 때문. 물론 현재 화인들의 대부분이 귀화를 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자는 줄고 있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소화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 좀 비슷한 케이스인 외성인 출신 대만가수 [[등려군]]도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다. 등려군 역시 산둥 출신.~~틀린 정보이다 등려군 자신은 타이완 태생 부친은 하북성 모친이 산둥성 출신이다~~]
남편은 한국 록그룹 비상구(EXIT) 보컬리스트 출신이자 조용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 1987년 '잃어버린 추억'으로 알려져 있다.]. 40일간 미주 공연으로 알게된 두 사람은 주현미가 28살일 때 결혼했다. 당시 주현미는 가수 일이나 인기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남편을 사랑했다고 한다. 임동신은 결혼 후 자기 일은 거의 포기하고 아내의 매니지먼트와 프로듀싱 작업을 도왔다. 그래서 주현미가 가요대상을 수상했을때 '여보'라고 울먹이며 남편을 부르기도 했다. 주현미의 아들은 현재 버클리 음대 재학 중.
[[화교]] 출신이라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주현미가 상을 타면 왜 외국 가수에게 국내 가수상을 주냐고 비아냥대는 기자도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차별받던 흑인 혼혈인 [[인순이]]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중고를 모두 [[화교]] 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어]]도 잘 하며 방송에서 중국어 노래도 곧잘 부른다.
* 의외로, 하현우와 친분이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국카스텐을 추천한 이후, 그들의 매력에 빠졋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같이 공연을 한 적도 있고, 리더인 하현우는 따로 주현미의 집에 놀러간 적도 있다고 한다.
- 지증왕 . . . . 6회 일치
'''지증왕'''(智證王, [[437년]]~[[514년]], <small>재위:</small> [[500년]]~[[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내물왕]]의 증손이며 [[복호 갈문왕]]의 손자이자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이다. 전임 [[소지 마립간]]과는 6촌 형제간이었다. [[법흥왕]]의 아버지로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502년]]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이듬해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군주의 칭호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ref>그러나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는 칭호는 지증왕의 장남 법흥왕의 때까지도 비공식적으로나마 잔존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울진 봉평신라비와 울산천전리각석에 기록되어 있다.</ref>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504년]] 상복법을 제정하였으며, [[505년]]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었다. [[509년]]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고, 512년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였다. 또한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던 [[순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한 군주이기도 하다. 시호는 지증인데, 신라 최초의 [[시호]]이기도 하다.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智度路)이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ref> 그는 6촌 형제간인 [[소지 마립간]]과 사돈이었고 즉위 전 [[갈문왕]]에 봉해진 것이 [[영일냉수리신라비]]를 통해 확인되었다.
[[502년]] [[순장]]을 금하고, 신궁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 음력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親祀神宮 三月 分命州郡主勸農 始用牛耕(3년(502) 봄 2월에 영(令)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 이르러 금한 것이다. 왕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 )}}</ref> [[503년]]에 국호를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야(徐耶)·서라(徐羅)·서벌(徐伐) 등에서 “신라”(新羅)로 통일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四年 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또 살펴 보건대 예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만을 칭하고 높이는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뭇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이에 따랐다. )}}</ref>
즉위 초부터 그는 제도와 체제 개편을 추진하였다. [[504년]] 음력 4월 상복법을 제정하고, 음력 9월에 파리, 미실, 진덕, 골화 등 12성을 쌓는 등 고대 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五年 夏四月 制喪服法頒行 秋九月 徵役夫築波里 彌實 珍德 骨火等十二城(5년(504)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가을 9월에 인부를 징발하여 파리성(波里城), 미실성(彌實城), 진덕성(珍德城), 골화성(骨火城) 등 12성을 쌓았다.)}}</ref>
한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체구가 커서 배우자가 없었던 지증왕에게는 알맞은 배우자가 없었는데 신하를 보내 신라 국내를 수소문하던 중 [[연제부인]](延帝夫人)을 발견하여 배우자로 삼았다는 전설이 전한다.<span style="font-size:10pt;"><sup class="noprint">[<span class="plainlinks">[[위키백과:출처 필요|출처 필요]]</span>]</sup></span>
- 창작:맹수인 . . . . 6회 일치
''' "같은 신에서 나왔다는 맹수인들마저 서로 증오하고 죽이고 싸운다. 하물며, 태생부터가 원수지간인 우리와 저 북쪽의 조인들은 또 어떻겠는가?"- 아발론제국의 '변방왕' 아서, 안덴 원정을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
사자족은 맹수인들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며, 현실의 사자와 비슷하게 수컷들은 수북한 갈기를 자랑하며, 이 갈기가 수북하고 아름다울수록 미인으로 취급된다. 사용하는 언어는 레잉어이며,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북부와 그곳에 연결된 지방인 아프반 반도.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곰족은 등퍼산맥 너머 동부 대륙 동부와, 터크퍼산맥 이북 북부에 주로 서식하는 이들이다. 이들역시 둘로 나뉘는데, 등퍼산맥 너머에 주로 사는 '불곰족'과 대륙 북부에 주로 서식하는 '흰곰족'으로 나뉜다. 이들은 본래 한종족이었으나, '북쪽의 전사' 네프친스키가 그의 삼촌 메첼에게 크누고 공작위를 빼앗기면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도망, 이후 그들의 후예는 추운 북쪽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 창작:좀비탈출/0 . . . . 6회 일치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남성이다. 수수하지만 이럭저럭 흠은 없는 외향에 체형도 그리 둔하진 않다. 전문적인 운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체력관리 차원에서 가벼운 조깅 정도는 꾸준히 했다. 게임, 영화나 만화를 잡식으로 좋아했고 어딜 가나 있을 법한 남자 대학생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Tv는 잘 안 보지만 걸그룹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가 마지막까지 Tv로 보고 있던게 [[트와이스]]와 [[AOA]]였다.
전기와 통신이 살아있을 무렵 두 사람이 있는, 그렇게 추정하는 지역이 '''위험구역'''으로 선포되는 뉴스를 봤다. 정부는 이 일대를 통제할 것이고 더이상의 '''사태 확산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녀석들은 착실하게 진군해서 그날 저녁 때쯤부터 우리 동네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잠그고 커튼도 쳤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주로 체리필터였고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끄지 않았다. 나는 조명도 끈 상태에서 혼자 지냈다. 공복과 수면의 사이클이 몇 차례 지나가고 가끔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나 비명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게 내가 열어줘야 했을 사람들이 아니었기만을 빈다.
이후로 그 소리가 사라진 적은 없다. 우리집의 튼튼한 담벼락이 무색하게 녀석들은 열려진 대문으로 들어와서 산책했다. 방송이 끊어졌지만 우리 동네도 '''위험구역'''에 들어갔다는걸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이 반도 어딘가에 위험구역이 아닌 곳이 남아있을 때 얘기겠지만.
나는 뒤늦은 위기감을 느꼈다. 탈출이란 한 마디가 머릿 속을 멤돌다가 입가로 내려와 중얼중얼 소리를 냈다. '''죽는다'''…… 이대로 있다간…….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내가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다른 가능성은 영영 사라져 버렸을까? 군인들이 탱크를 밀고 와서 녀석들을 전부 쓸어버리거나 천신만고 끝에 살아있는 부모님이 녀석들의 손길을 피해 이곳까지 오지는 않을까? 그때 내가 이 자리에 없다면?
- 창작:좀비탈출/5-1 . . . . 6회 일치
토트넘이 다가오는 순간 그 속도와 무기의 위치와 내가 손을 뻗는 속도의 차이에 대해서 계산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 머리를 괴롭히는 사이 몸은 직관적인 행동을 취했다. 자세를 낮추고 팔을 뻗어 손아귀에 싸늘한 손잡이가 잡히는 동안, 토트넘은 '''정확히 2m 앞'''에 있었다.
헤드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옆구리에 박혔다. 머리가 떨어지고 앙상한 부지깽이가 된 골프채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분명 내 평생 최대로 쥐어짠 힘이었다. 하지만 토트넘은 오른쪽으로 갸우뚱했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옆구리가 찰흙 덩어리처럼 움푹 패이고 분명 척추가 무너진 탓에 상체가 건들거렸지만 쓰러지진 않는다. 기분 나쁜 슬로우모션처럼 놈이 덮쳐오고 기울어진 대가리와 눈이 마주친다. 알맹이는 햇볕에 내놓은 푸딩처럼 느물느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꼴은 마치 눈깔이 녹아버릴 정도로 웃고 있는 것 같아. '''꺼져 토트넘!''' 너넨 올해도 우승 못해!
토트넘은 죽었다. 이미 죽어있었지만 '''거듭 죽은 것이다'''. 거무죽죽한 살갗에 주둥이부터 꿰어들어간 꼬챙이. 분장에 실패한 프랑켄슈타인 같은 꼴이다. 순전히 행운이다. 찌른 부위가 좋지 않았던게 틀림없다. 약간만 각도가 틀어졌어도 녀석은 죽었지만 죽지 않은 채로 호박처럼 굴러들어오는 먹이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무려 30초나 멍청히 누워있는 먹잇감을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와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녀석은 죽은 채로 죽었다.'''
나는 살아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관이 그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모든 격려나 위로를 통틀어서 가장 살에 와닿고 기쁜 한 마디다. 나는 살아있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6회 일치
출발 전 마지막으로 물자를 체크했다. 가방에 티셔츠와 아령으로 만든 철퇴. 산지 1년 쯤 된 티셔츠와 바지, 아디다스에서 구입한 운동화, 연식이 20년이 좀 넘은 한국남자 하나. 그리고 정오의 햇볕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좋아 완벽하군.
나는 한 발을 옮길 때마다 부정적인 전제를 깔며 움직였다.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는 걸로 경계심을 다잡고 언제든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바보같다는 것 안다. 누가 보면 클래식 시트콤 매니아인줄 알겠네. 와트니와 다르게 나는 시트콤에 빠질 기회가 없었다. 전기가 끝장난 이래 내게 주어진 오락거리라곤 초라한 소장도서 몇 권과 잠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이 역시나가 되는 상황은 결국 오고야 말았다. 토트넘네 앞마당으로 넘어가는 때였다. 그르릉 소리와 함께 나는 발을 멈췄다. 한 마리…… 있다.
이곳으로 오기 전 뒷문은 닫아뒀다. 그러면서 철컹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는데, 녀석이 뒷마당으로 와보지 않은건 귀가 멀었거나 생각보다 작은 소리였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리고 어느 쪽인지 확인하기는 제법 까다롭다. 나는 잠시 멈춰서서 녀석과 앞마당을 살폈다.
- 최두선 . . . . 6회 일치
휘문의숙을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 [[1917년]]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18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를 알게 되어 그가 운영하던 [[중앙학원]]의 학감으로 초빙되었다. [[1919년]]에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등이 피체되면서 중앙학교의 학교장직을 맡아보게 되었다.
[[1963년]] [[고려대학교]]로부터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에는 모교인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와세다 대학|일본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 [[학사]] [[졸업]]
* [[1968년]] [[일본]] [[와세다 대학교]] 명예 [[철학]][[박사]]
[[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국무총리]][[분류:대한민국의 영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한문학자]][[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김성수 (1891년)]][[분류:윤보선]][[분류:박정희]][[분류:게이오기주쿠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주 최씨]][[분류:마르부르크 대학교 동문]][[분류:예나 대학교 동문]][[분류: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동문]][[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인촌기념회]]
- 최은희 . . . . 6회 일치
그리고 이 때 [[신상옥]]을 만났고,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계기로 신상옥 감독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김학성은 둘을 [[간통죄]]로 고소했으나, 김학성과 최은희는 [[사실혼]] 관계에 가까웠지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동거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이 나온다. 자서전을 보면 당시 최은희는 김학성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결혼 생활중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어서 [[입양]]을 하였다, 신상옥은 이후 자녀를 보았기 때문에, 최은희가 [[불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5, 60년대 영화계를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나눌 정도로 스타가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후배 [[김지미]]와 경쟁했는데, 흥미롭게도 '춘향전'을 비슷한 시기에 김지미(홍성기 감독)와 최은희(신상옥 감독)가 각자 버전으로 찍고 동시 개봉하면서 라이벌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신상옥 최은희 페어의 승리로 끝났다.) 이 시절 그녀는 정말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전통적 여인상에서 <지옥화>처럼 서구적인 글래머상까지 소화하면서 그녀는 초창기 한국영화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1965년에는 [[대한민국]]의 3번째 여성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며 총 3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이 때에 연출한 영화가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민며느리> 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페미니즘 어젠다와 텍스트를 보여준 시대를 앞서간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민며느리>는 제20회 국제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그 이후 신상옥 감독이 중간에 배우 [[오수미]][* 본명은 윤영희로 [[윤영실 실종 사건|나중에 실종되는]] 윤영실의 언니다. 오수미 본인도 19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와 사귀게 되면서 [[이혼]]하였다. 1967년부터는 신상옥이 이사장으로 있던 학교였던 [[안양예술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일하며 후진양성에 주력했지만 1978년 1월 14일에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납북되었으며 동년 7월 19일에 신상옥 감독 역시 홍콩에서 납북되었다]].
- 최정호 (성우) . . . . 6회 일치
*[[볼츠와 블립]]([[KBS]]) - '''볼츠'''
*[[꾸루꾸루와 친구들]]([[KBS]]) - 핀핀
*[[극상학생회]]([[챔프]]) - 이와자쿠라 류헤이타 / 해설
* 2000.08.27 조앤 롤링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 2001.07.15 공지영 <우리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2005.05.14 와신불(臥身佛) (습득)
- 추봉 (배우) . . . . 6회 일치
* 1969년 《남자와 기생》
* 1970년 《민비와 마검》
* 1970년 《처와 처》
* 1972년 《[[갑돌이와 갑순이]]》
* 1973년 《또순이와 갑순이》
* 1980년 《병태와 영자(속)》
- 카쿠스 . . . . 6회 일치
아이네이아드에서 카쿠스는 인간이 아니며, 아벤티노 언덕있는 동굴에서 살아가는 [[볼카누스]]의 아들로 연기와 불꽃을 토하며 [[인육]]을 먹는 무서운 괴물 인간이다. 인간을 잡아 먹기 때문에 동굴 주변에는 피냄새가 가득하고, 동굴 입구에는 썩어가는 인간의 머리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겁쟁이였기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쫓아오자 동굴로 달아났다. 카쿠스는 쇠사슬을 잘라서 볼카누스가 설치해둔 거대한 바위를 떨어뜨려서 동굴을 막아버렸다.--그럼 자기는 어떻게 나오려고--
헤라클레스는 바위를 치울 수 없고, 다른 입구도 발견할 수 없어서, 언덕으로 올라가서 동굴 지붕이 되는 바위를 통채로 뽑아버렸다. 카쿠스는 연기와 불길을 토하면서 도망갔으나, 헤라클레스는 아무 물건이나 집어던지며 공격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카쿠스를 붙잡아 밧줄로 묶어 눈이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힘껏 졸라 죽였다.
그나이우스 겔리우스에 따르면, 카쿠스는 에트루리아 인 정복자로 나온다. 티베르 강 근처에 거주했으며, 마르시아스 왕이 프리기아 인 메갈레스와 함께 에트루리아의 [[타르콘]](Tarchon) 왕에게 사절로 보냈다. 타르콘 왕은 그를 감옥에 넣었으나, 카쿠스는 도망쳐서 고국으로 돌아왔고 에트루리아를 공격하여 불투르누스와 캄파니아 지역을 지배했다. 카쿠스는 에트루리아 인이 아르카디아 인(에반드로스 등)에게 양도한 지역도 장악하려 했는데 우연히 그곳에 있던 헤라클레스를 만나 죽게 된다. 메갈레스는 사비니 인에게 점성술을 가르쳤다.
기원전 4세기의 청동 거울에서, 에트루리아 인 '카쿠'는 그의 시종으로 추측되는 아르틸레(Artile)와 함께 [[카일리우스]]와 아울루스 비벤나라는 두 용사의 습격을 받는 죄수로 등장한다. 카쿠가 묘사되는 장례식 항아리나 설화석에서 카쿠는 잘 생긴 젊은이로 묘사되며, 현금을 켜고 있으며 아르틸레는 어떤 글이 그려진 장식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점성술 지식인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 콘도 마코토 . . . . 6회 일치
1994년 『환자와 이야기하는 암의 재발, 전이(患者と語るガンの再発・転移)』출판
『어차피 죽는다면 암이 좋다(どうせ死ぬなら「がん」がいい)』(나카무라 진이치(中村仁一)와 대담)출판
『객사에의 각오(野垂れ死にの覚悟)』(소노 아야코(曽野綾子)와의 대담)출판
『고양이 바보 개 바보(ねこバカ いぬバカ)』(요오로타케시(養老孟司)와 대담) 출판
* 그의 주장에 따라서 [[암]]을 방치하여, 말기 암이 된 채로 병원에 와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 의사를 신뢰하지 마라, 의사가 환자를 죽인다 등의 자극적인 주장을 하여,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를 파괴하였다.
- 토리코/362화 . . . . 6회 일치
* 미식회에 들른 브란치는 오오타케에게 "미도라는 이미 이 곳에 없다"는 사실을 듣고 당황한다(미도라는 페어 입수 후에 NEO의 본거지를 공격하러 갔고 죠아와 싸우고 있다.)
* 미식회를 나오는 와중에 구르메 일식이 시작되고, 아주 먼 곳 단 한 곳에만 빛이 비추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 토리코 얼굴의 흉터는 바로 세 번째 구르메 악마의 얼굴에 난 흉터와 같은 것이다.
* 오가이는 고대의 해양생물로 고동과 비슷한 종류다. 토리코 일행의 구르메 세포 악마들 조차 멸종된 줄 알았던 초고대의 생물. 겉보기엔 작지만 실은 내부에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 있다. 고대 바다의 모든 생물을 먹어봤다고 전해지며 악귀, 도깨비와 같은 식욕을 지녔다고 한다.
* 토리코는 공언한 대로 오가이를 자신의 풀코스 생선요리에 넣는다. 이로써 '''토리코는 고기요리와 메인요리를 제외한 풀코스가 모두 채워졌다.'''
* 써니는 어스를 풀코스에 넣어서 완성했고 코코와 제브라는 메인 요리 하나씩만 남겨놓았다.
- 트로피코 4 . . . . 6회 일치
>변혁하는 세계 속에 Tropico도 함께 움직입니다. 각국의 세력이 등락하고, 세계 시장은 새로운 수요와 공급을 원하는 새로운 세력에 의해 지배됩니다. 이제 바로 당신이 위대한 지도자 각하의 역할을 맡아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수많은 반대론자들을 넘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만 할 것입니다. 당신의 선택이 국가의 미래를 형성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해외 비밀 계좌도 잔뜩 불릴 수 있고 말이죠!
>Tropico 4는 새로운 정치 요소를 통해 전작에 비해 게임플레이 요소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외교를 진행할 새로운 초강대국이 등장할 뿐더러, 논란 많은 정책을 쉽게 통과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장관을 임명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십시오! 모두의 의견을 신중히 파악하십시오! 자연이 가져오는 새로운 재해가 나라를 휩쓸고 지나가면 국민들은 사후복구를 위해 국고를 열 것을 소리높여 요청해올 것입니다. 바로 이런 순간, 당신의 정치적 결단력이 샅샅히 시험될 것입니다.
욕구와 만족도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욕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진다. 시민들은 낮아진 욕구를 채우기 위해 특정 건물로 가는데, 해당 건물의 서비스 질이 해당 시민의 만족도를 결정한다.
무력으로 대통령 각하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시민들. 각하를 지지하지 않는 시민 중 일부가 반란군이 된다.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일정 주기마다 튀어나와 건물을 공격한다. 보통은 목장, 광산, 공장 같은 산업 건물을 노리지만 대통령 영묘 같은 체제 선전 건물도 노린다.
* 1967-1970: 광우병의 공포 - 소고기와 훈제 소고기의 시장가격이 50% 하락
* 2007-2010: 세계 에너지 위기 - 원유와 원유 제품의 시장가격이 25% 상승
- 페어리 테일/480화 . . . . 6회 일치
* 나츠와 루시는 브랜디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 메이비스는 나츠와 제이콥의 싸움을 보고 제레프를 쓰러뜨릴 아이디어를 떠올랐다.
* 한편 북부 피오레로 향한 일행은 제국의 대군세와 마주친다.
* 세이버투스와 페가수스 연합군은 이미 전멸해서 포로로 잡혀 있는 상태.
* 제라르와 엘자, 카구라 일행은 어둠마법의 공격을 받는데, 놀랍게도 죽은 줄 알았던 시몬이었다.
* 세이버투스와 페가수스 연합군이 전멸했는데 제국군은 별다른 소모가 없어 보인다. 또 밸런스붕괴 논란이 일고 있다.
- 페어리 테일/498화 . . . . 6회 일치
* 나츠는 자력으로 얼음을 깨고 부활. 루시와 쥬비아도 얼음이 풀린다.
* 잉벨은 그레이와 쥬비아를 지배해 서로 싸우게 하고 쥬비아는 자아가 유지되는 동안 자결해서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한다.
* 나츠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자력으로 얼음을 녹인다. 나츠의 열기 때문인지 루시와 해피, 쥬비아도 해방된다.
* 루시는 형제 역전이라고 선언하는데 바로 그때 하늘에서 커다란 손이 내려와 이들을 낚아챈다.
* 그레이와 쥬비아는 추격하려 하나 잉벨이 두 사람의 목에 족쇄를 채운다.
*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로를 노려보게 되는데.
- 페어리 테일/501화 . . . . 6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501화. '''마리와 랜디'''
* 루시는 나츠의 목숨을 걸고 브랜디쉬와 싸우나 역부족.
* 루시와 해피가 황급히 부축하지만 쓰러지고 만다.
* 스콜피온의 샌드 버스커 개와 함께 쏟아지는 공격. 브랜디쉬에게도 타격을 준다.
* 루시는 다시 일어서며 브랜디쉬가 자신보다 강한건 인정하고 그녀와 싸우고 싶지도 않지만 나츠를 지키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 다음화 제목은 "메이비스와 제라"
- 페어리 테일/509화 . . . . 6회 일치
* 크림 소르시엘을 이끌고 오거스트와 싸웠던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처참한 패배를 맛본다. 제랄 측은 일어설 힘도 없을 정도로 철저히 당했는데 오거스트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제랄만이 겨우 의식이 있는데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하지만 오거스트에게 짓밟힌다.
* 라케이드 드래그닐과 대치하고 있는 카구라 미카즈치. 제레프의 아들이라는 말에 반문한다. 라케이드는 정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제레프의 아들이라고 강조한다. 유키노 아그리아, 렉터와 프로시는 "드래그닐"이란 성을 듣고 나츠 드래그닐을 떠올린다. 라케이드는 내친 김에 그가 제레프의 동생이며 자신의 숙부에 해당한다고 폭로한다. 충격을 받는 유키노와 카구라. 라케이드는 그들에게 나츠와 만나는걸 기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라케이드의 어머니는 메이비스 버밀리온으로 추정 중. 사실 오거스트가 중얼거릴 때 메이비스가 나와서 거의 확정이다. 팬덤에서는 제레프를 진정한 흑마도사라며 까고 있다.--라케이드의 마법이 메이비스한테 통하는게 다 이유가 있었다.--
졸지에 최종보스 후보가 페도필리아가 되게 생겼는데, 잘 생각해 보면 메이비스가 정말로 친모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시열대 상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애가 태어날 법한 타이밍이 없고 어쨌든 본인이 낳은게 맞다면 메이비스 본인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 때문에 에도라스 때처럼 평행세계에서 넘어온 인물이거나 제레프가 마법적으로 두 사람의 유전자를 합쳐 만든 인물이 아닌가 하는 설이 나오고 있다.--그냥 제레프가 사고치고 마법으로 기억을 지운게 아닐까?--
- 페어리 테일/525화 . . . . 6회 일치
* 오거스트는 길다트와 카나의 관계를 보며 부모자식 간의 애정은 당연한 건데 "어째서 폐하의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 건가"라고 중얼거린다.
* 제레프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우는 거지만 솔직히 나츠와 대결하는게 즐겁다며 일그러진 감정을 드러낸다.
* 그때 세 사람에게 텔레파시가 온다. [[메이비스 버밀리온]]이 길드로 향하면서 셋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메이비스는 셋이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며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전한다. 루시와 해피는 싸우고 있는 나츠를 두고 갈 수 없다고 하지만 메이비스는 나츠와 자신을 믿고 이쪽으로 오라고 말한다.
* 제레프는 강한 공격을 맞고도 타격은 없어 보이지만 곧바로 거리를 벌린다. 그는 뜬금없이 "즐겁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지금 자신이 나츠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는 건데, 그래도 나츠와 대결하는게 즐겁다고 말한다. 나츠는 중얼중얼 시끄럽다고 일갈하지만 제레프의 얼굴에 나타난 기괴한 미소를 지울 수는 없다.
* 그리고 지금. 그렇게 살린 생명이 아버지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제레프는 자신의 아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해한다. 라케이드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혹한다. 적인 나츠도 이런 상황에 당황한다. 제레프는 라케이드가 나츠와 자신의 대결을 방해했다 여겨서 그를 죽인 것이다. 그리고 "방해하지 마라"고 말할 뿐이다.
- 하이큐/212화 . . . . 6회 일치
* 다양한 각도와 시점에서 플레이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과 다른 선수들의 강점, 그 중에서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판별한다.
* 사토리와 우시지마는 그걸 "기분 나쁘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 볼보이로서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다양한 각도와 위치에서 코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 현장에 있던 코치와 우시지마, 와시죠 감독은 그의 묘한 웃음을 보고 변화를 감지한다.
* 제목의 시점은 히나타가 플레이를 보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초반부에 나온 우카이 코치와 타케다 고문의 "교육자로서의 관점"이란 의미도 있다.
- 하이큐/216화 . . . . 6회 일치
* 저녁 식사 중인 코치들은 와시죠 감독의 심경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 카라스노에게 패한 이후 와시죠 감독은 육성방침에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듯.
* 앞으로 보다 수준 높은 팀들과 격돌할 것이고, 그럴 수록 스파이커와 블로커 간의 눈치게임은 심해질 것이다.
* 연습에 박차를 가하는 히나타와 츠키시마.
* 니야마 공고와 연습시합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사정이 생겨 캔슬. 새로운 상대가 섭외된다.
* 다테 공고와 리매치 성사.
- 하이큐/257화 . . . . 6회 일치
* 이나리자키의 첫 TO에서 코치가 이런 방침을 전원에게 전달한다. 카라스노의 괴짜 속공은 히나타의 기동력을 전제로 언제 어디서 어떤 각도로든 때려넣는게 장점. 하지만 미야 형제는 오사무의 원래 포지션인 우익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히나타가 아츠무를 전담마크하고 카게야마와 [[타나카 류노스케]]가 좌익과 센터를 리드 블록으로 막는 걸로 대응해본다. 히나타가 오사무를 얼마나 틀어막느냐가 관건인데, 히나타가 제대로 도움닫기만 하면 도달점이 팀내에서 가장 높고 반응도 빠르니 기대해볼만하다.
* 코치의 걱정은 사실화되었다. 키노시타의 두 번째 서브. 공은 다시 아츠무에게. 여봐란 듯 다시 괴짜 속공을 건다. 이번엔 방금 활약이 무색하게 득점을 허용하는 히나타. 아츠무의 득점으로 19 대 18로 다시 이나리자키가 앞서 간다. 그리고 키노시타의 기용도 종료. 키노시타는 벤치로 돌아가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나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남았다. 리시버가 언더로 받게 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두 번째 서브는 조금 더 모서리를 노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과 별개로 그의 투쟁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성과. 그 점은 [[스가와라 코시]]가 본인 보다 먼저 눈치챈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공이 히나타에게 연결되지만 이번 스파이크는 실패. 블록에 막힌다. 다시 공을 가져간 아츠무가 또 괴짜 속공. 이번에는 히나타의 블록이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다행히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한편 사와무라가 받은 공은 라인을 크게 벗어나나 코트로 돌아와 있던 니시노야가 커버한다. 네트 바로 위로 돌아오는 공.
* 20 대 18. 다시 점수 차가 벌어진다. 키노시타가 아무리 분해도 당사자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시 아츠무와 한 핏줄인지, 오사무의 도발력도 만만치 않다.
- 하이큐/259화 . . . . 6회 일치
* 자신의 "경험치" 속에서 "가장 꺼림직한 블록"을 발견한 [[히나타 쇼요]]. [[미야 오사무]]의 공격 루트를 차단하면서 [[미야 아츠무]], 오사무 형제의 괴짜 속공을 저지하는데 일조한다. 공은 [[사와무라 다이치]]에게 전해져 득점으로 연결, 스코어는 20 대 20으로 동점을 이룬다. 주춤했던 추격세는 부활, 고조된다. 히나타는 자기 자신이 뿌듯해 어쩔 줄을 모른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니가 득점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트집잡자 "나는 공격에만 재주가 있는게 아니다"는 말로 되갚아 주려 했지만 카게야마 측에서 무시.
어찌됐든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쿠로스 감독은 임기응변할 때와 우직하게 밀고 갈 때를 구분하라는 말로 TO를 종료한다.
*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로 경기 재개. 서브는 잘 쳤지만 오사무가 막아낸다. 흔들리며 떠오른 공. 좌익의 [[마지로 알랭]]에게 이어진다. 카라스노는 사와무라, [[타나카 류노스케]], 히나타까지 합쳐 총 세 장의 블록으로 대항하나 마지로는 그 셋의 블록 위에서 때리는 스파이크로 간단히 블록을 뚫는다. 이거야말로 할 말이 없어지는 공격. 카라스노 벤치와 관중석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 로테이션이 돌아 다시 [[츠키시마 케이]]가 들어오고 니시노야가 나간다. 히나타의 서브 차례. 지금 히나타는 의욕이 최고일 뿐 아니라 묘한 자신감이 넘친다. 사실 블록이나 리시브에 비해서 서브는 훨씬 별로다. [[스가와라 코시]]는 그저 서브를 치려고 기합이 들어간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딱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1학년 선발 합숙 이후 히나타의 리시브는 뭔가 변했다. 거기에 방금 전 블록과 리시브 성공이 히나타의 기세를 올린 원동력일 것이다.
히나타의 의욕은 아깝지만 아무리 우카이 코치라도 여기서 서브를 맡길 정도로 실험적이진 않았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서버로 기용된다. 히나타는 눈물을 삼키며 교대한다. 스가와라는 "지금이라면 잘 될 듯한 분위기"라며 야마구치를 응원한다.
- 한승택 . . . . 6회 일치
잠전초등학교와 잠신중학교를 거쳐 [[덕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덕수고 2학년 때인 [[2008년]] 아시아 3개국 청소년 야구 대회에 [[대한민국]] 청소년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었다.<ref>[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03962 아시아 고교야구① - 대표팀 배터리, 누가 뽑혔나] 《엑스포츠뉴스》, 2011년 12월 5일</ref> 3학년 때 [[세광고등학교]]의 [[나원탁]]과 함께 고교 리그 최고 [[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05&aid=0000000019 황금사자기에서 주목할 고교야구 스타 Top 15] 《네이버스포츠-배지헌 칼럼》, 2012년 5월 1일</ref>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조지훈 (야구 선수)|조지훈]], 2라운드 [[김강래]]에 이어 [[한화 이글스]]의 3라운드(전체 2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스프링캠프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눈에 들어와 좋은 전력으로 평가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3628 김응용 감독의 이례적 칭찬…“한승택, 물건이네”] - 경향신문</ref>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출장하는 등 유망주로 꼽혔지만 시즌 중 왼쪽 무릎 인대 부분 파열상을 당해 1군과 2군을 오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65331 KIA, 이용규 보상선수로 한승택 지명 이유는?] - OSEN</ref> 시즌 중반 이후에는 [[엄태용]] 등에 밀려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고, 데뷔 첫 시즌 후 일찌감치 군 복무를 결정하여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28015 한화 한승택, '포수 양성학교' 경찰청 지원, 제 2의 최재훈 되나?] - 스포츠서울</ref> 2013 시즌 24경기에 출전해 1안타, 0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2016년]]에 합류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401660 'KIA행' 한승택, "2년 뒤 안방 주전 경쟁하겠다"] - 마이데일리</ref> 비슷한 시기에 [[정근우]]도 [[한화 이글스]]에 이적했고 야구규약 163조 '한 구단이 계약서상 동일한 날짜에 2명 이상의 타 구단 선수와 계약하는 경우 보상 선수를 선택하는 구단의 순서는 직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하고, 계약 선순위 구단의 보상이 종료된 후 후순위 구단이 보상을 개시한다'는 내용에 따라 8위에 그친 [[KIA 타이거즈]]가 6위를 기록한 [[SK 와이번스]]보다 먼저 그를 FA 보상 선수로 지명할 수 있었다. [[SK 와이번스]]에서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으나, [[KIA 타이거즈]]가 먼저 지명하게 되어 결국 [[정근우]]의 보상 선수를 지명하지 못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38&article_id=0002447722 한승택으로 재조명 되는 한화 안방 싸움] - 한국일보</ref>
- 홍준표(야구선수) . . . . 6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SK 와이번스/선수단)]
||||<#ff0000><:> {{{#ffffff SK 와이번스 No.39}}}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 9라운드 87순위]] ([[SK 와이번스]]) ||
||<:> '''소속팀''' || [[SK 와이번스]] (2015 ~ ) ||
[[SK 와이번스]] 소속의 [[내야수]].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9라운드에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2015년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쳤다.
- 화완옹주 . . . . 6회 일치
'''화완옹주'''(和緩翁主, [[1738년]] [[3월 9일]] ([[음력 1월 19일]]) ~ [[1808년]] [[5월]])는 조선의 제 21대 왕 [[영조]]와 [[영빈 이씨]]의 딸이다. 이름은 용완(蓉婉)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친동생이자 조선의 제 22대 왕 [[정조]]의 고모이기도 하다. [[정후겸]]은 그녀의 양자이다.
영조가 특히 총애하던 딸로, [[영조]]와 선희궁 [[영빈 이씨]]의 딸이다.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친여동생이다.
[[1749년]](영조 25) [[7월 6일]] [[소론]]의 거두 [[정휘량]]의 조카이자 이조 판서와 [[의정부]][[우의정]]을 지낸 [[정우량]](鄭羽良)의 아들 [[정치달]]과 혼인하였다. 정우량은 [[우의정]]까지 지냈고,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정치달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으나 일찍 죽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자 시댁 일가의 아들인 [[정후겸]]을 데려다가 양자로 삼았다.
친오빠 사도세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화완옹주는 사도세자의 비행과 실수를 그대로 부왕 영조에게 고해바쳤다. 인원왕후의 상 때 인원왕후전 나인이었던 빙애를 후궁으로 취한 뒤, 영조의 추궁이 있자 사도세자는 빙애를 화완옹주의 처소에 숨겨두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빙애의 존재가 영조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인용문|“병신년 이후 24년 동안 이 대궐에 와서 이 날을 지날 때마다 어느 것을 보든지 부모님을 추모하는 생각이 솟구쳐 올라 어떻게 억누를 수가 없다. 병신년의 처분은 바로 선왕의 뜻을 밝힌 것이었고, 오늘 용서해 석방하려고 하는 것도 선왕의 뜻을 몸받아 하는 것이다. 만약 선조(先朝)의 성심(聖心)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 이때에 이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면 이 일에 대해 조정의 신하들도 반드시 알아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니, 어찌 혹 다른 말이 있겠는가. 서울 집에 둔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진위 여부가 애매 모호한데 죄안(罪案)은 아직도 있기 때문에 오늘 반드시 사유(赦宥)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치달 처(鄭致達妻)의 죄명을 없애고 특별히 완전히 용서하여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펴는 방도로 삼겠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1권, 1799년(정조 23) 3월 4일}}
[[1799년]] [[3월]] 이후 화완옹주는 석방되어 궁에 들어와 살았으며, 순조대에도 화완옹주에 대한 탄핵이 있었으나 순조가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 황광희 . . . . 6회 일치
2017년 2월에 추성훈이 있는 본부 이엔티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
|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 [[한선화]]와 출연
| 박준우와 공동 MC
| 박준우와 공동 MC
| 보스와의 동침
- 황병기 . . . . 6회 일치
황병기는 1936년 [[경성부]]에서 독자로 출생하였다. [[서울재동초등학교|재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65년 4월 22일-5월 2일에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열린 '금세기 음악 예술제(Festival of Music and Art of This Century)에 초청되어 작곡 발표 및 가야금 연주를 했다. 최초의 독집 음반(LP) Music From Korea: The Kayagum』(East-West Center Press) 취입하기도 했으며, 6월-8월 [[워싱턴 대학교]]에서 하계 학기 강사로 한국음악을 강의했다. 샌프랜시스코, 로스앤젤리스, 시애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었고, 샌프랜시스코 하계음악제에서 Lou Harrison 작곡의 「Pacific Rondo」를 연주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야금곡 〈[[미궁]]〉(1975)은 그의 대표작으로, 현대 음악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와 함께 퍼져서 ‘무서운 곡’으로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으며,<ref>{{뉴스 인용|url=http://mn.kbs.co.kr/news/view.do?ncd=310472|제목=가야금곡 미궁의 뜬소문 확산|뉴스=[[KBS]]|저자=나신하|날짜=2002-04-12|확인날짜=2008-04-07}}</ref> 게임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화이트데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 [[1962년]] 5년 연상의 [[소설|소설가]] [[한말숙]]과 결혼했다. 한말숙은 소설가 [[박완서]]와 [[숙명여자고등학교|경성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동창이며 박완서와 한말숙의 숙명여고보 시절 은사는 소설가 [[박노갑]](朴魯甲, [[1905년]] ~ [[1951년]], 아호는 도촌(島村))이다.
* 나효신 저 《황병기와의 대화》(도서출판 풀빛, 2001년)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5회 일치
* 니카이도는 대진표상 [[소야 토지]]와 붙을 가능성이 있어 흥분하며 엄청난 자신을 보인다.
* 올해도 8월이 찾아왔다. 장기회관을 찾은 [[니카이도 하루노부]]와 [[키리야마 레이]]. 니카이도가 게시판에서 반가운 소식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 니카이도는 뭘 모른다는 식으로 대진표를 일일히 짚어주며 설명한다. 그 내용 상으론 니카이도와 [[소야 토지]] 명인이 한 조로 편성, 니카이도가 1승만 거두면 2회전에서 대전한다. 이거야 말로 니카이도가 꿈꾸던 대결. 니카이도는 자기가 키리야마보다 먼저 소야 명인과 공식전을 치르게 됐다고 으스댄다. 키리야마는 공식전은 자기가 먼저 했다고 항변하지만 니카이도가 그건 기념 대국일 뿐이지 공식전도 뭣도 아니라고 반박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또 하나 니카이도가 기대하는 것은 키리야마와 반대 블록에 있다는 것. 즉 둘이 대결한다면 대회 결승이다. 게다가 그가 결승까지 나갔다는건 무려 "소야 명인을 쓰러뜨린 기사"라는 얘기가 되어버린다. 니카이도는 엄청 흥분해서 키리야마에게 절대 지지 말고 결승에게 붙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키리야마는 드라이한 톤으로 "왜 네가 소야 명인을 이겼다는걸 전제로 하냐"고 딴죽을 건다.
>'''[[카와모토 아카리|아카리]]씨의 눈에 "선생님이 어떻게 보였는가"겠죠?'''
- Crusader Kings 2/종교 . . . . 5회 일치
* 영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5명의 총대주교와 각 왕국의 독립 대주교가 존재함
* 영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5명의 총대주교와 각 왕국의 독립 대주교가 존재함
* 영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5회 일치
이게 성남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남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남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실 집계를 시작하고 나서 가져온 파장이 엄청났는데, 2012시즌 348경기가 종료되자 2011시즌 246경기동안 300만명이 넘었다는 관중이 250만명으로 50만명이나 줄었다. 단순계산만으로도 평균관중이 1만 1천~2천여명 정도였던 2011시즌 성과와는 달리 2012시즌은 7천여명으로 경기당 근 4~5천명이나 차이가 나는 것.[*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382&aid=0000079171|스포츠동아, "-33.2%…거품 빠진 관중수 각 팀 마케팅 강화 긍정효과"]]
실 관중 집계가 구단의 [http://news.tf.co.kr/read/soccer/1467594.htm|투자를 저하시켰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 관중 공개와는 사실 별 관계가 없는게, 실 관중 수 집계와는 달리 구단은 명백하게 각 경기마다 들어오는 관중 수입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입장이라서 설득력이 없다. 되려 각 선수들의 연봉공개가 이적시장을 달궜으면 더 설득력이 있을 정도.
- MoniWikiACL . . . . 5회 일치
아래와 같이 그룹에 대한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 {{{deny *}}} + {{{allow edit,info}}} = edit와 info 액션만 가능: '''explicit하게 지정된''' 액션만 허락
* {{{deny info,diff}}} + {{{allow *}}} = 위의 경우와 같다. explicit하게 지정된 액션인 info, diff만 거부
/!\ {{{deny *}}} + {{{allow read}}}는 아파치의 {{{Order allow,deny}}}와 같다. 즉, explicit하게 지정된 allow에 대해 먼저 검사하여 액션이 read일때만 허락하고 나머지 액션은 deny.
* peter와 john: {{{allow read,info,diff}}} + {{{deny *}}} = read,info,diff만 허용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5회 일치
석유 사업가. 파산 직전에 상태에서 뭔가 가치있는 운송 대상[* 당시 개나소나 철도를 지어서 철도의 가치는 별로 없었다. 그로인해 가치있는 운송 대상을 찾던 것.]을 찾던 밴더빌트와 계약하며 성장한다.
은행가.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인 주니어스 모건에게 금융업과 사업을 배웠지만 아버지와 다른 방식[* 주니어스는 검증되지 않은 사업에 투자하는걸 꺼렸지만 모건은 검증되지 않은 사업인 전기에 투자했다.]을 선택한다. 위기에 처한 기업을 잡아먹는 일을 해온다.
발명가. 연구하고 있던 전구와 직류 전기가 J.P. 모건의 관심을 끌어 지원을 받게 된다. 새로운 경쟁자인 테슬라와 교류를 상대로 "전류 전쟁"을 치른다.
[[민주당]] 정치인. 대선에 나와 반(反)기업을 외치며 기업가들에게 위협이 된다. 처음으로 전국 순회를 한 대선 후보라고.
- This is the Police . . . . 5회 일치
보이드의 부관. 보이드와는 30년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마피아가 FPD 안에 심어넣은 내부자로 활동했지만 게임이 시작되기 얼마 전의 시점에 걸려버렸다. 이후 보이드에게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도와주면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쳐 신분 세탁을 하지만 거부하면 가족들과 함께 끔살.
마피아 두목. 청바지와 니트를 입고다니는 나이에 비해 트렌디한 노인 같지만 실은 굉장히 잔인한 사람. 어떤 무기상들이 샌드의 허가 없이 프리버그에서 사업을 벌이자 그 무기상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죄다 죽여버렸다고 한다. 켄드릭이 도망친/끔살당한 이후 보이드를 협박해. 켄드릭이 하던 일을 대신 하게한다.
- UR임대 . . . . 5회 일치
과거에 공단주택(公団住宅)이라고 불렸으며, 도시공단에서 관리했다. 현재는 도시재생기구(都市再生機構)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이 단체의 영문명인 Urban Renaissance Agency 에서 UR을 따와서 UR임대주택이라고 불린다. 일본 전국에 약 75만 가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LH 임대아파트(휴먼시아, 영구임대, 행복주택 등)와 비슷한 위치이나, 일본의 UR주택은 영구임대이면서 방이 넓고 시설 수준이 좋은 단지도 있다는 점에서 LH 영구임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
주택이 부족했던 고도성장기에는 공단주택의 건설의미가 있었지만, 임대주택이 많은 현대에는 미분양도 많아 단순히 '적자산업'에 불과하며, 민간 아파트 경영자가 분양하는 소규모 아파트와 경쟁이 붙어 아파트 경영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또 UR임대로 난개발이 이루어져서 환경을 파괴하는 사례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다. 현대에는 주민들의 노령화 문제와, 유럽마냥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으로 슬럼화 문제를 겪고 있는 단지들이 많다.
- Victoria II/POP . . . . 5회 일치
* Rel(종교): 별 존재감 없다. 가끔 주류 종교가 비주류 종교를 억압하는 이벤트가 뜨면 가지고 있는 종교에 따라 의식도와 투쟁성이 변화한다. 예시의 POP는 대승 종교를 믿는다.
* Life Needs(생명 욕구):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것들. 물컵으로 표현된다.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하려 하는 욕구로, 만약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식도와 투쟁성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POP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반대로 생명 욕구를 충족하고 거주 프로빈스의 생활등급이 30 이상이라면 어떻게든 애를 낳고 기르면서 산다. 그러니까 인구가 증가한다.
* Everyday Needs(일상 욕구): 지장 없이 살기위해 필요한 것들. 맥주잔으로 표현된다.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식도와 투쟁성이 증가하며, 자신의 처지에 불만족해한다.
* Luxury Needs(사치 욕구): 사치 좀 부리기위해 필요한 것들. 와인잔으로 표현된다.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식도가 증가한다.
자신의 돈으로 재료를 사 상품을 제조한다. 아직 공장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원자재 외 상품은 이들이 제조하게 된다. 뭘 어떻게 하는건지는 몰라도 전차와 항공기도 만들 수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 공장과 기능공들에게 밀려나 쇠락한다.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5회 일치
김모씨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6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정도로 불안정한 정신상태였다. 그의 병력은 조현증, 즉 정신분열증이었으며 평소 여성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대체로 수사관과 범죄심리학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기존 묻지마 범죄의 전례와 완전히 일치하며 특정한 편견에 의한 범죄가 아니므로 묻지마 범죄로 봐야한다는 여론이 강세이나 반대로 사회학자, 페미니즘 학자들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여성혐오범죄이며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며 강력 범죄에 취약함을 주지시키는 사건이라는 여론이 강세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극명하여 때아닌 성대결 양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김모씨가 여성에 대한 심각한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범행대상으로 여성을 물색하고 있던 점 등으로 이 사건은 인터넷 상에서 여섬혐오범죄로 크게 주목받게 된다. 특히 이 시각을 강조하고 전파하는데 앞장선 것이 워마드, 메갈리아와 같은 여초성향 사이트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작 피해자와 유가족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특히 피해자의 오빠는 여혐논란에 대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여초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유가족의 목소리 조차 "한국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비하로 일관하였다.
워마드는 메갈리아가 SNS와 홈페이지에서 활동하던 것을 넘어 오프라인 시위와 추모행사를 주도하며 훨씬 행동력 있는 조직으로 부각되었고 이에 대항해 일베 등의 남초 사이트에서도 강남역 추모현장에서 행패를 부리고 추모 포스트잇을 훼손하는 등 민폐에 민폐로 대항하는 행동을 보였다.
- 강동진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소속 구단 = [[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2004)
'''강동진'''(姜東珍)은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야구 선수이다.
{{SK 와이번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사이버대학교 동문]]
- 개돼지 . . . . 5회 일치
[[개]]와 [[돼지]]--의 [[혼종]]--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개]]와 [[돼지]]는 인간에게 [[친숙]]한 [[가축]]이며, 동시에 더럽고 천한 것으로 여겨지는 생물이다.
* 돈견(豚犬)이라는 고사가 있는데, 중국 삼국시대에 [[조조]]가 [[손권]]의 군세를 보고 "자식을 낳는다면 손중모[* 중모는 손권의 자]와 같아야지, 유경승(유표)[* 경승은 유표의 자]의 자식들[* [[유기]]와 [[유종]]을 가리킨다.]은 돼지나 개(豚犬)와 같다."고 감탄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자신의 미흡한 자식을 뜻하는 말로 돈견이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5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45화. '''우마루와 도너츠'''
도마 타이헤이가 히카리와 도너츠를 사온다.
* 도마 타이헤이는 퇴근길에 도너츠 가게 앞에서 히카리와 만난다
* 우마루와 히카리 사이에 타이헤이를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 우마루와 히카리의 신경전은 거의 초딩이나 다름 없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0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제150화. '''우마루와 케이크 뷔페'''[* 원문은 바이킹. 일본에서 바이킹=뷔페.]
우마루와 친구들은 실핀의 지인이 운영하는 케이크 뷔페에 초대받는다.
* 케이크뷔페에 초대 받은 우마루와 친구들.(에비나, 키리에, 실핀)
* 키리에는 우마루가 가져온 딸기 쇼트 케이크를 보고 우마루네 집에서 코마루와 케이크를 먹던 걸 회상한다.
* 그때 코마루와 함께 케이크를 서로 "앙~"해주며 먹었을 때를 떠올리며, 무의식 중에 "맛있어(우맛샤)~!"를 외치고 부끄러워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1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1화. '''우마루와 실내수영장'''
* 우마루와 즐겁게 노는 실핀을 보고 어머니도 만족해한다.
* 대결 자체는 우마루의 승리로 끝났지만 한 번만에 녹초라 된 우마루와 달리 실핀은 팔팔하다.
* 우마루와 실핀은 쉬면서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우마루는 "어머니와 달라도 괜찮다"며 실핀 나름대로 즐겁게 사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3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3화. '''우마루와 카나우'''
* 자칫하면 트림이 나와버리는 상황. 우마루는 그녀가 초인적인 노력으로 참고 있음을 간파한다.
* 카나우의 위기와는 별개로 요리교실은 착착 진행된다.
* 타이헤이가 또 와도 된다고 해서 기뻐한다.
* 우마루는 카나우에게 "공부가 되었다"며 꼭 또 와달라고 당부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4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4화. '''오빠와 여름의 추억'''
* 친구들이 포켓햄으로 놀자고 찾아와도 게임기가 없어서 어울리지 못했다.
* 그것은 바로 어머니. 타이헤이는 굳이 신사까지 나와서 어머니를 마중하고 있던 것이다.
* 오랜만에 부제가 우마루와 000 가 아니라 오빠와 000로 바뀌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8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8화. '''우마루와 교육프로그램'''
* 도마 우마루(코마루)와 모토바 키리에는 한가하게 Tv를 보다가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 분위기가 업된 키리에는 프로그램의 안무를 현란하게 따라하는데 마침 귀가하던 도마 타이헤이, 모토바 타케시(봄바)와 딱 마주친다.
* 별로 할게 없는 우마루(코마루)와 모토바 키리에는 Tv나 보기로 한다.
* 하지만 다른 장르 오타쿠인 우마루와는 온도차가 여실하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75화. '''우마루와 RPG'''
* 함께 게임을 하게 된 우마루와 히카리. 하지만 둘의 플레이 성향은 극과 극.
* 감각과 경험으로 적당 적당히 헤쳐나가는 우마루와 달리 히카리는 메뉴얼부터 정독하는 프로페셔널한 공략자였다.
* 한참 게임을 하고 쉬는 우마루. 히카리는 집에 가서도 혼자 플레이해도 되겠냐고 하자 우마루가 그러라고 답한다. 자기도 짬짬이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론 식음을 미뤄놓고 게임에만 전념한다. 그저 레벨을 잔뜩 올려서 다음 번에 히카리가 왔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들 목적. 하지만 후반이 되자 우마루 조차 고전하는 적들이 나오는데, 그걸 깨면서 히카리를 도와주고 우쭐 댈 생각에 젖는다.
*우마루와 히카리는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며 게임계를 평정한 2인조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게임폐인이 두 명으로 늘어났을 뿐, 보호자인 타이헤이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 고대 그리스 . . . . 5회 일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무렵이다. 찬란한 발전을 이룩했으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거치면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서로 싸워대면서 쇠퇴하게 된다.
폴리스들의 자치는 사라졌지만, '그리스 문명'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 인이 가장 널리 지배권을 펼쳤던 시기이다. 마케도니아에 정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마케도니아도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그리스 인이나 다름없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동으로는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인도까지 그리스 계 폴리스와 왕국이 나타난다.
지중해 세계의 왕국들은 차례차례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인도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파르티아와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거치면서, 박트리아 왕국과 같은 정치적 실체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리스 본토와 단절된 탓에 서서히 현지인들에게 동화되어 소멸하게 된다.
- 공명(배우) . . . . 5회 일치
귀여운 외모와 달리 180cm 이상의 장신이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2016년 7월 18일,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에서 19살 딸에게 무관심한 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최근 이혼을 한 아버지가 스크린 골프에 빠져서 딸의 돈을 빌려 유흥비를 탕진했고 딸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딸 생일이거나 아플 때도 아버지의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느라 딸 문제는 뒷전이었다고 한다.] [[http://tvcast.naver.com/v/990812/list/84583|영상]]을 보면 정말로 무슨일이 난 것 마냥 굉장히 슬프게 운다. 감정이입이 빠른 듯 하다[* 생각보다 본성, 즉 그의 실제 마음은 많이 여린 편이라 그런지 감정이입은 물론, 연민의 마음을 잘 보여줬다 할 수 있겠다. 속 마음이 실제 이미지와 비슷하게 많이 착한 것으로 보인다.].
|| 2013년 || [[KBS2]] || [[출발 드림팀]]2 (같은 그룹 배우 [[이태환]], [[강태오]]와 함께 출연.) || 215회 ||
||<|2> [[토이(밴드)|토이]] || 세 사람 (with [[성시경]]) || [[https://youtu.be/4Pax5vCQbMA|#]][* [[유연석]], [[김유미(1990)|김유미]]와 함께 출연한다. 김유미의 신랑 역할.] ||
|| Reset (with [[이적(가수)|이적]]) || [[https://youtu.be/Ug0M6SFfqQ8|#]][* 내용을 보면 '세 사람' 뮤직비디오의 속편격. 세 사람 뮤직비디오 속에서 결혼한 여자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
- 길용우 . . . . 5회 일치
그래서인지 젊은 세대에게도 얼굴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즉, 이름을 몰라도 얼굴은 잘 알려진 [[케이스]].[* 길용우와 비슷하게 1980년대 스타 출신 중견[[배우]]로는 [[내 딸 서영이]]에서 최민석 역으로 열연한 [[홍요섭]]이 있다. 재미있게도 홍요섭 역시 대우 르망의 광고 모델이었다.]
[[삼국시대]]의 마지막 왕 역을 두 번 연기하였다. 그리하여 [[사극]]에서는 마지막 왕 이미지가 강하다. 1992년 [[KBS 2TV]] [[삼국기]]에서는 [[백제]]의 [[의자왕]]을, 2007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는 [[고구려]]의 [[보장왕]]을 연기하였다. [[해신(드라마)|해신]]에서도 [[신무왕]]을 맡았던지라 삼국시대의 왕을 전부 연기해본 경력이 있다. --[[우리들 가운데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삼국 중에 중 웬 스파이가 존재하는 듯 한 기분탓을 그만 넘겨줄까 했었는데(…)]] 역시 [[통일신라|통신 시절 때의]] [[신무왕|그 어떤 누구를]] 이대로 흐지부지 넘겨가줘선 결코 아니될 듯 싶다; 현재와 미래에 아이들의 역사지식을 위해서라도(…)--
2016년 11월 11일, 아들 길성진 이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외손녀 선아영[*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의 딸이다.] 과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려 많은 재벌가, [[정치인]], [[연예인]]들까지 모인 흔하지 않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흔치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길용우는 [[이상달]]의 장례식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정계, 재계에 친분이 꽤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강부자]]와 같이 말이다.
[[아이언맨]](?)을 연상케 하는 복장과 유려한 [[CG]], 그리고 웃는 얼굴로 증기기관차와의 정면 충돌을 시도하는 아스트랄한 전개가 일품이다.
* [[금 나와라, 뚝딱!]] - [[정병후]] 역
- 김대호(축구선수) . . . . 5회 일치
처음에는 센터백이 주 포지션이었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2010시즌 5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측면으로 위치를 옮긴 2011년 후반기부터 [[황선홍]] 감독의 눈에 띄기 시작, 24라운드 광주 FC와의 경기에서 5:1 승리에 기여하며 생애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이 해 리그 13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다음 시즌, 2012년 4월 3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2012 ACL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6월 17일 FC 서울과의 리그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10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로 2012시즌 김대호는 서울, 수원, 전북, 울산 등 강팀만을 상대로 5골을 기록하며 강팀 킬러로서 주목을 받았다. 시즌 기록은 23경기 5골[* 챔피언스리그 제외]. 2013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풀백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고 골은 없으나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아디]]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K리그 대상 베스트일레븐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시즌이었다.
2016년에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아챔]] 조별 경기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지르며 포항 팬들의 큰 원성을 샀고 이후로도 자주 나오지 못하는 중... 인데 5월 12일 [[안산 무궁화]]로의 입대가 결정되었다. 사실 김대호가 떠난다 해도 그의 자리에는 다른 풀백 자원들이 있기 때문에 공백은 크지 않을 듯.
- 김범룡 . . . . 5회 일치
[[1982년]] 연포가요제에서 [[보컬]] 듀오 빈 수레의 [[보컬]]리스트로 참가하여 자작곡 《인연》으로 우수상을 수상하여 첫 데뷔하였고 그 후 [[1985년]] 개인 음반 1집에 수록된 자작곡 《바람 바람 바람》으로 솔로 [[가수]] 데뷔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85년]] [[KBS 가요대상]] 신인가수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에는 [[MBC]]와 [[KBS]]에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잠시 영화배우와 뮤지컬배우로도 활동하였는데 히로뽕과 대마초를 흡입했다는 이유 때문에 [[1995년]] [[2월 21일]] 서울지검 강력부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ref>{{뉴스 인용
|3 집||[[1987년]]|| 《카페와 여인》, 《현아》, 《안녕이라 하지마》, 《내 사랑 모니카》
|4 집||[[1988년]]|| 《마지막 입맞춤》, 《이제 와서》
* [[전영록]], [[김수철 (가수)|김수철]], [[임지훈 (1959년)|임지훈]], [[최성수 (가수)|최성수]]와 절친한 친구 관계이다.
- 김석훈(탤런트) . . . . 5회 일치
원래 [[금남리토종순대국]](구 가평예전)에 들어가 연극영화를 전공했었다. 본인의 회고에서 금남리토종순대국는 실전 연기와 실기를 충실히 단련해 지속적으로 익히는 점에서 최고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에 머물지 않고 연기내면의 깊이와 표현력을 높이는 한 방식인 이론 탐구도 갈구해 [[금남리토종순대국]]에 입학한다. 입학 후 연기이론에 정통해 진 것 외에도 철학과 심리 등 인문계통 학문을 여럿 접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했다. 거기다 학문소양도 차근차근히 다져, 자신의 연기로도 폭 넓게 반영 하고 배울 수 있어 뜻 깊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배우에게는 인간에 대한 관심 및 인간심리, 각종 군상들을 다각도의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다지는 일이 필수다. 이런 사안을 본인이 이미 그 중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본인은 텔레비전 드라마 활동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어서 정중하게 사양했다. 외부지향적인 조명[* 배우가 외면의 보여주기에 쏠리면 심도있는 연기가 부실해지고 실력이 불충분한데 갑작스런 명성과 인기를 얻게 되면 내실 있는 연기력을 다지는 본연의 길을 잃을까봐 본인이 경계한 것이었다. 그의 높은 혜안을 보여준다. 건축으로 치자면 튼튼한 골조공사를 한 것이다.] 보다 연기의 기본기와 참다운 실력인 역량을 탄탄히 긴장감 있게 다지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 그래서 영상영역활동을 하면서도 연극도 계속 이어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배우의 본질적 특성을 잃지 않고 활동에 중심을 잃지 않았다. 역시 여기서 배우의 진정성이 있다.]
본격적인 영상영역활동 중 하나인 TV출연은 정세호PD와 국립극단에서의 강력한 권고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국립극단에서는 극단의 인지도 향상과 활력을 위해, 방송국에서는 드라마에서의 국면 전환과 참신한 인재발굴을 위한다는 점이 서로 맞아들어간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명의 극단배우에서 데뷔작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한순간에 스타가 되었다.[* 그것도 홍길동이다. 소재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드라마다. 거기에 무명은 둘째치고 TV 경력이 없는 배우가 주연을 맡은 셈이다. 하지만 홍길동은 당시 신인이었던 김석훈이 맡았던 첫 작품임이었지만, 캐릭터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았다. SBS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에 신선한 배우를 캐스팅한 사례가 또 있었으니 바로 [[임꺽정]].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32세 [[정흥채]]는 브라운관 데뷔작을 타이틀롤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당시 최고의 인기배우 [[김희선]] 주연 드라마 [[토마토(드라마)|토마토]]에서 김희선 상대역인 남자 주연배우가 되었으니... 그리고 둘 다 최고의 시청률(50%를 넘겼다!)을 얻으며 전성기를 구가한다.'''단 1년 만에.''' 엄청난 향상이다. 김희선이나 김석훈이나 당시 비주얼 면에서도 최고를 달렸던 시기.[* 지금도 두 배우는 비주얼이 변함없이 최고다.]
연기폭이 넓은 점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연기가 아닌 일(내레이션, DJ)에서도 탐구를 하는 인물인데, 연기인 캐릭터를 탐구해 폭이 넓어진 것은 당연하다. [* 위엄있고 의연한 연기도 소심한 연기도 잘해도 너무 자연스레 잘한다.] 표정연기와 감정표현에서 미묘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폭 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위엄과 지도력이 넘치는 이순신 역과 소심한 현대시민 등 다양한 연기영역의 반경을 넘나들고 넓혀가며 호평을 받고 있다.
- 김성곤 . . . . 5회 일치
1940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1948년에는 고려화재해상보험과 자본금 1억 원의 금성방직을 설립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이 불탄 뒤, 1952년 동양통신을 창간하고 1953년 연합신문을 인수하였다. 1956년 태평방직과 아주방직을 인수하였다. 1959년 [[국민대학교|국민대학]]을 인수[* 보성전문학교 상과 시절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 교정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교정에서 풀을 뽑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육영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국민대에서는 김성곤을 학교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와 함께 양대 건학 공로자로 기념, 추모하고 있다.]하고,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하였다.
박정희의 친위대를 자처하면서 3선개헌에 회의적이던 김종필계와 대다수 공화당 인사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3선 개헌]]을 성사시켰다.[* 3선개헌이 처음 불거졌을때 김종필을 선두로 해서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장기집권한 이승만의 최후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부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회유, 협박해서 결국 모두 찬성으로 돌려놨다. 당내에 막강한 독자계보를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압박하는데 선봉에 선게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4인방][* 한때 60명이 넘던 공화당내 개헌반대파 국회의원은 결국 3명 [[정구영]], [[예춘호]], [[이만섭]]만이 남았고, 결국 정구영-강제 정계은퇴, 예춘호-제명, 이만섭-낙선으로 모두 숙청되었다. 예춘호는 야당으로 넘어가서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만섭은 야인으로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이후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총재로 재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와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박정희를 대리해서 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재벌]]에게 해외차관과 정부발주공사의 10%를 무조건 자신을 통해서 상납하게 하면서 ~~[[뇌물]]의 제도화~~ 정권의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재벌,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그가 [[쌍용그룹]] 회장(재벌총수), 동양통신 사장(언론인)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정치인)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김성곤은 학창시절 박정희의 큰형인 박상희와 절친이었기 떄문에, 어린 시절부터 박정희를 보아왔으며 사석에서는 박정희와 자녀의 결혼 문제를 상의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박정희는 김성곤한테 정치자금을 모으라고 시켰다.
- 김숙자 (1389년) . . . . 5회 일치
[[1414년]](태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고,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본처와의 이혼 경력으로 요직에 임명될 때마다 거듭 [[사헌부]]에서 논계하였다. 사예(司藝), 중훈대부에 이르러 관직을 사직하고 [[1456년]] 처가인 [[밀양]]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냈다. 아들이자 문하생인 [[김종직]]을 통해 [[정몽주]]의 학통을 전수하였다.
김숙자는 12세 때부터 [[길재]](吉再)로부터 『소학』과 경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역학에 밝은 당시 [[조선]] 유학자 별동 윤상(別洞 尹祥)이 황간현감으로 임명되어 내려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걸어가서 배움을 청하자 윤상은 그 열의를 보고 『[[주역]]』의 깊은 뜻을 힘써 가르쳐주었다. 윤상은 다시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생 중 한 사람인 조용(趙庸)이 [[1392년]](태조 1) [[역성혁명]]을 반대하다가 [[예천]]에 유배되어 오자, 조말생(趙末生)·배강(裵杠) 등과 함께 조용을 찾아가 그를 사사하여 문인이 되었다. 김숙자는 [[길재]] 외에도 윤상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정몽주]]의 학통을 이었다. 그밖에 그는 조용, 김말 등과도 교류하였다.
[[1414년]](태종 14) 봄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417년]](태종 17) 봄 중성균시(中成均試)에 일등으로 합격하였으나, 그 해의 회시(會試)에는 낙방하였다.<ref>佔畢齋集彝尊錄 佔畢齋集彝尊錄 (上) 子通訓大夫前善山都護府使宗直撰, 先公紀年第二</ref> [[1419년]](세종 1) [[안동]][[향시]](安東鄕試)에 제2등으로 합격하여 [[한양]]으로 상경,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였다. [[장사랑]] 권지[[성균관]]학유에 임명되거 고향으로 돌아왔다. [[1421년]] 봄 학유에 다시 임명되고 이듬해 [[1월]] [[한양]]으로 올라가 관직을 시작하였고, 사관(史官)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처인 한씨와 이혼하였다.<ref name="ginyon"/> 전처 한씨의 자매의 남편 김주(金宙)는 의술 재주가 있었는데, 김주는 성주목사 이상선(李相善)에게 그가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후 아내를 출처했다고 고하였고, 이는 그대로 [[예문관]]에 보고되었다.<ref name="ginyon"/>
[[1440년]](세종 22) [[선교랑]], 1441년(세종 23) [[1월]] 김해교수관 노호(盧浩)와 보직상환 변경되어 [[김해]]로 내려갔다. 이듬해 2월 남부령(南部令)이 되었다가 특별히 동반직을 받아 승의교위(承義校尉)에 제수되고,중군섭부사직 겸 성균관주부(中軍攝副司直兼成均注簿),남학교수관(南學校授官)이 되었다가 그해 11월 승훈랑(承訓郞)이 되어 고령현감(高靈縣監)으로 나갔다. [[1445년]] [[2월]] 승의랑이 되었다가, 지방의 수령들의 직급을 1계급씩 강하한다는 명에 따라 강임되었다. [[1447년]](세종 29) 10월 다시 승의랑으로 환급되고, 11월에 [[성균관]]주부 겸 남학교수관, [[1448년]] [[7월]] [[교서관]]교리가 되었다가 한달만에 전제경차관(田制敬差官)에 임명되어 [[전라도]] [[남원]], [[옥과]], [[장흥]], [[순천]], [[장흥]] 등을 순시하고 그해 [[10월]]에 봉훈랑으로 승진한 뒤, 12월에 도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ginyon"/> [[1450년]](문종 즉위) [[8월 13일]] 지풍기군사(知豊基郡事)로 발령, 부임하였다.
[[길재]]는 많은 제자를 길러 냈는데, 가장 먼저 입지를 세운 이가 김숙자였다. 이후 그의 제자들이 속속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특히 세조 때부터 김숙자와 [[김종직]] 부자 등 여러 신진 사류가 과거 급제 등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른바 ‘영남사림파 ’의 등장이었다. 이후에 [[이중환]]이 ‘[[택리지]]’를 통해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왔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김숙자 이후에 ‘영남사림파 ’의 발흥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628.010110742170001 영남사림의 기반을 구축한 김숙자(金叔滋)] 영남일보(2013.06.28) 기사 참조</ref>
- 김승목 . . . . 5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과 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부산직할시 [[서구(부산)|서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김영삼과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박찬종]]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였다. 1974년 [[정일형]] 등이 화요회라는 계보를 창설하자 화요회에 속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남구(부산)|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재홍(1932)|김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해운대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흥수(1928)|이흥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이기택]] 후보와 민주정의당 [[유흥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1978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남구(부산)|남구]]) || || || '''당선'''[* 민주공화당 [[김재홍(1932)|김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 || ||
|| 1981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해운대구]]-남구) || [[민주한국당]] || || '''당선'''[* [[민주정의당]] [[이흥수(1928)|이흥수]] 후보와 동반 당선] || ||
- 김태한 . . . . 5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2년 ~ 2003년)
'''김태한''' (金泰漢, [[1969년]] [[10월 22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SK와이번스]]의 선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이다.
|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 | [[SK 와이번스|SK]]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김현정 (1979년) . . . . 5회 일치
2009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를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활동을 마치고 '가톨릭상담봉사자과정'에서 1년 넘게 심리상담 교육을 받은 후 화가가 되었다. 이를 통해 2014년 6월에는 첫 개인전인 <묘사와 연기>가 열렸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965311 화폭으로 옮긴 심리 치유…배우겸 화가 김현정 개인전],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작성.</ref>, 2014년 11월 9일 부터 11월 19일까지 [[백남준]], [[이왈종]]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하나에서 셋으로:한국 예술가 3인전>에 작품전을 열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18578 ‘동양화로 그린 장서희는?’ 화가 김현정, 中진르미술관 초청], 뉴데일리, 2014년 10월 7일 작성.</ref>
|align="center"| [[아버지와 아들 (2001년 드라마)|아버지와 아들]]
* "묘사와 연기"
:대표작 : 《랄라 독립도》, 《잠자리 천국》, 《랄라와 소녀상》, 《바게뜨 십자가》
- 김혜은(탤런트) . . . . 5회 일치
[[기상캐스터]] 출신의 배우. [[전라남도|전남]]에서 태어나 여수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했다. 1997년 [[MBC]]에 지원했다가 2명만 뽑는 [[아나운서]] 시험에서 [[김주하]], [[방현주]]에 이어 3등을 하는 바람에 [[청주문화방송|청주MBC]]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와 기상캐스터와 [[뉴스데스크]] 메인 기상 캐스터로 활약했으며, 2004년 8년 간의 기상캐스터 생활을 정리하고 퇴사했다.
2002년 MBC 청춘시트콤 《논스톱 3》에 출연했으며, 2004년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명세빈]]의 친구로 깜짝 출연했다가 6회분에 출연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접했다. MBC 퇴사를 결심한 후 3년간의 휴식기를 갖고 연기 공부를 시작했고 2007년 MBC 일일극 《아현동 마님》 에서 성악과 출신 맏며느리 역할을 맡아 연기자로 데뷔했다. 2012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 2012년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여사장 ||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5회 일치
* Ms.조크와 아이자와 쇼타는 언뜻 선제공격이 유리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며, 오히려 성급하게 공격하는 쪽이 먹잇감이 되는 룰이라 설명한다.
*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학생들이 가진 공을 빼앗는다.
* 사걸 고교, 요아라시와 동행하던 여학생이다. "멍하니 있으면 안 된다"며 간단히 1아웃을 가져갔다.
* 상당히 정교하게 바람을 조작하는데 학생들이 가진 공만 빼앗아 오거나 마구잡이로 몰아치는 것 같아도 정확히 탈락자를 만드는걸 보면 보시와 달리 섬세할지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5회 일치
* 카미나리는 시험 치는 와중에 이상한 짓이라고 비꼬는데 시시쿠라는 "평범한 자가 날뛰는게 더 이상"하다고 받아친다.
* 시시쿠라가 피하려고 움직이자 그의 위치는 카미나리가 사전에 쐈던 "디스크"와 정확히 일직선.
* 카미나리는 바쿠고가 구태여 범위가 좁은 신기술을 사용한 이유가 "바닥에 있는 키리시마와 자신을 휩쓸리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걸 알고 있었다.
* 그리고 시시쿠라를 때려줍히는 바쿠고와 키리시마.
* 세로와 미도리야가 시선을 끄는 사이, 우라라카가 가볍게 만든 바위에 세로의 테이프를 붙여서 광범위하게 투척.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5회 일치
* 다양한 변수와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2회전 구조시험.
* 이때 세로 한타와 사토 리키도가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
* 이번에도 따로 떨어진 바쿠고 카즈키. 왠지 키리시마 에지로와 카미나리 덴키도 또 따라왔다.
* 주최측은 "구조와 테러리스트 제압을 병행하라"는 어려운 지시를 내리는데.
* 아이자와 쇼타는 프로 히어로라도 이런 상황은 어렵다며 시험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시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3화 . . . . 5회 일치
* 토도로키 쇼토와 요아라시 이나사의 협공은 갱 오르카를 상당 시간 잡아둔다.
* 갱 오르카는 토도로키와 요아라시가 만든 열풍의 벽을 뚫고 나오는데 미도리야가 저지하러 오는 순간 시험이 종료된다.
* 종료 후, 미도리야는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으나 토도로키와 요아라시의 이름은 들어있지 않은데.
* 불꽃 소용돌이에 갇혀버린 갱 오르카. 토도로키 쇼토와 요아라시 이나사의 집념이 담긴 합체공격은 갱 오르카를 효과적으로 붙들어놓는다. 갱 오르카도 방금 전의 감점사항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대처라고 만족해한다. 두 사람이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갱 오르카는 범고래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건조에 약하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공격에는 대처하기 매우 까다로운데. 부하들은 갱 오르카를 구출하기 위해 몰려드나 이것을 예상한 토도로키가 얼음벽을 쳐서 방어한다.
* 아시도 미나와 토코야미 후미카게도 도착. 갱 오르카의 부하들을 처리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5회 일치
* 타마키도 다행히 별다른 상처는 없다. 그가 무사하지 총을 쐈던 빌런도 당황, 기껏 받은 "물건"이 거지같은 것이었다며 짜증을 낸다. 타마키는 아까 했듯이 "문어"를 써서 당황한 적을 포획하려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개성이 발동되지 않는다. 그 사이 키리시마가 추격을 시작하고 빌런은 겁에 질린 채 군중 속을 헤치며 달아난다. 이들의 책임자인 BMI히어로 [[패트껌]]은 키리시마에게 어설프게 추격하다간 당한다고 충고하며 현장은 아마지키에게 맡긴 채 달아난 빌런을 쫓으려 한다. 그러나 타마키가 개성이 발동하지 않는다고 보고하자 "이레이저([[아이자와 쇼타]])라도 있나?"라고 황당해한다.
인계가 끝나자 타마키는 곧 네거티브 상태에 빠진다. 벽에 머리를 기댄 그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며 패트와 키리시마를 걱정한다.
임시면허시험 직전의 특훈 기간 동안 키리시마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할 뾰족할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올마이트에게 들은 조언을 친구 [[바쿠고 카츠키]]와 [[카미나리 덴키]]에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조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도 너희와 맞설만한 방법이 없었다"라는 푸념이 뒤따른다. 옆에는 [[토코야미 후미카게]]와 [[세로 한타]]도 있다. 키리시마가 분석하기로 이들은 모두 중,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단이 있고 기동력도 괜찮다. 단 키리시마만 빼고. 키리시마는 자신에겐 그들이 가진 무기가 전혀 없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카미나리는 친구들에 대한 고평가에서 자식만 쏙 빠지자 핸드폰 공짜 충전 안 해준다고 협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5회 일치
* [[오버홀]] 치사키와 [[미도리야 이즈쿠]]의 대결 여파로 지상의 가옥 네 채가 파손되고 경상자 세 명이 발상. 그 외에는 경미한 피해로 끝났다. [[하도 네지레]]는 미도리야가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싸운 덕이라며 그를 치하한다.
* 병원으로 후송된 히어로들은 중상자가 많지만 대부분 생명에 지장은 없다. 미도리야는 오른팔에 설명하기 어려운 흉터가 남았지만 기능에 이상은 없다. 에리는 고열이 내리지 않은 채로 격리된 상태. [[아이자와 쇼타]]는 "되돌리는" 개성의 특성상 이렇게 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이 개성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발동하며 훈련도 제어도 어려운 특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에리의 개성에는 의존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데, 그건 [[서 나이트아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 마침 [[올마이트]]도 도착해 있는데, 나이트아이의 상태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다. 나이트아이는 상태가 너무 나빠 리버커리걸의 치료도 먹히지 않는다. 나이트아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병상에서 올마이트와 재회, 올마이트가 "네게 끔찍한 짓을 했다"고 사과하자 그저 올마이트가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가 저항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올마이트는 그도 저항하라며,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남에게 폐를 끼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며 그동안 올마이트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오늘 미래를 바꾸는걸 보여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미래를 바라는 힘이 "에너지"의 형태로 모여서 미도리야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추측한다. 원 포 올 100%가 해방된건 그 덕. 그렇게 미래가 바뀌는 걸 봤으니 만족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활기와 유머가 없는 사회엔 "밝은 미래"가 오지 않는단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제자와 스승의 곁에서 나이트아이는 영면에 든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7화 . . . . 5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는 [[다비]]라는 빌런을 손쉽게 제압하지만 이쪽도 모든 힘을 드러낸 건 아닌지 포박을 풀고 퇴각한다
* 아이자와는 적들의 목표가 학생들이라는 걸 알고 각자 도주하다 당할 것을 걱정한다.
* 미도리야는 아이자와의 지시를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의 만달레이에게 전달하고, 그녀가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인 텔레파시로 전 학생에게 전파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2화 . . . . 5회 일치
* [[바쿠고 카츠키]]와 [[토코야미 후미카게]]를 빼앗기기 직전 [[다비]]가 본부를 덮친다
* 다비는 "[[올마이트]]와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고]]를 계속 흔들면 결국 사회 전반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겠냐"며 자신들의 활동이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들을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 코우타를 데리고 본부에 도착한 [[아이자와 쇼타]]는 다비가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으로 만든 분신에 불과함을 간파하고 재빨리 정리하고 추적을 재개한다
* 혼란 중에 쇼지가 Mr.컴프레스의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구슬로 바꾼 바쿠고와 토코야미를 탈환한다.
* 토도로키와 쇼지도 간발의 차로 구슬 하나는 놓치고 만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3화 . . . . 5회 일치
* 프로히어로도 6명 중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한 명이 크게 다치고 한 명]]이 대량의 혈흔을 남기고 실종
* 반친구들이 문병을 오는데, [[지로 쿄카]]와 [[하가쿠레 토오루]], [[야오요로즈 모모]]는 아직도 퇴원하지 못했다.
* [[키리시마 에지로]]와 [[토도로키 쇼토]]는 전날에도 문병을 왔다가 야오요로즈가 올마이트와 경찰에게 "사라진 빌런 중 한 명에게 발신기를 붙였다"는 증언을 하는걸 들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5회 일치
* 이레이저 헤드(아이자와 쇼타)는 입소에 앞서 전달사항을 전한다.
* 아이자와는 이들의 반응으로 사실 모든 학생이 알고 있었다는걸 간파한다.
* 아이자와는 지금이라도 "정규의 루트로 정규의 활약을 해서 신뢰를 되찾아라"는 말을 하고 "기운차게 안으로 들어가자"며 기숙사로 향한다.
* 미네타는 욕탕과 빨래가 공동 구역에 있다는 것에 격하게 반응하다 아이자와에게 제지 당한다.
* 대회가 대충 끝나가는 와중에 남학생 측에서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 남유진 . . . . 5회 일치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제22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총무처, 내무부(이상 현 [[행정자치부]]), [[산림청]] 등에서 근무하다가 [[노태우 정부]] 후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관선 경상북도 [[청송군]]수를 지냈다. 이후 다시 내무부, 행정자치부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김관용]] 구미시장[* 15 ~ 17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밑에서 구미시 부시장을 지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까지는 경제가 호황이었고 D램 시장이나 여러 디스플레이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수출액도 2006~2007년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구미 역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고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덮쳤기 때문에 이는 전국 모든 도시의 일부 대기업들과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박살나는, [[1997년 외환위기|IMF]]와 비견되는 그런 상황이었기에 남유진 한 사람 만의 책임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쨌든 기업들은 피터지는 환경을 겪긴 했어도 나름 선방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또 3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게다가 그 당시 [[박근혜|대통령이 대통령인지라]]. 결국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4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3선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이때 시민단체인 구미참여연대에서 만든 성남시와 비교카드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하는 등 민심 이반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0856|*]]
=== 도지사 출마와 경선 패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그리고 선거 심판]]과 공직 퇴임 ===
이쯤 되면 TK에 얼마나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구미 같이 평균 연령이 낮은 TK 지자체에서도 더민주는 각 선거구별로 후보가 아예 없거나 1명 정도만 내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교하면 후보 수 자체(시의회 후보 더민주 7명 VS 한국당 17명, 2.5배 차이다.)가 딸리기도 하고, 그 자유한국당 쪽 의원도 여러 명이 공천이 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더민주 후보(혹은 무소속)를 제끼면 최소 한명은 당선되는 시스템인데다가 그마저도 선산읍, 도개면, 무을면, 옥성면, 해평면처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외 읍면 지역에서 당선된 인물이 5명이다. 나머지 동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휩쓸었다. 사실, 도의원 결과만 봐도 바로 설명 끝난다. 구미시의 도의원 당선자 6명 중 3명이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3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 중 1선거구, 4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52.22%, 50.33%)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당선된 선거구 중 2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3선거구는 (비록 1:1이 아니고 보수표가 갈렸지만) 단 254표(0.8%p) 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6선거구는 읍면 지역. 그만큼 자유한국당이 TK에서 그 동안 견제 세력 없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무기로 남유진이 자신의 사리사욕+덕질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 얼마나 구미 시민들을 만만하게 봤는지를 알 수가 있다.
- 니세코이/214화 . . . . 5회 일치
오노데라와 이치죠는 드디오 치토게의 행방을 알게 되는데...
* 오노데라와 이치죠는 친구들의 눈을 피해 옥상으로 땡땡이를 친다.
* 이치죠와 오노데라가 서로 좋아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해나갈 용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 왠지 이치죠와 오노데라가 회사에 와있다!
- 동왕부 . . . . 5회 일치
[[서왕모]]와 대응하는 신으로서, 서쪽의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에 대응하여 동쪽의 봉래산에 사는 남신이다. 남자 신선들의 우두머리로서, 서왕모와 부부로 여겨진다. 동방의 수호신이다.
서왕모와는 달리 동왕부는 독자적으로 숭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왕부를 묘사할 때는 미술 작품(동경, 그림 등) 등에서 서왕모와 나란히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미술적 관점에서 서왕모와 대칭되는 존재로 나타난 것이 동왕부의 시초인 것이다. 동왕부는 서왕모의 부속신이라고 할 수 있다.
- 듄 2 . . . . 5회 일치
제목이 하필 "듄 '''2'''"인 이유는 당시 [[듄 시리즈]]를 배경으로 한 어드벤쳐 게임 "듄"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유통사도 버진 게임스로 같았다.
대부분의 미션에서 게임은 우선 건설소(컨스트럭션 야드)에서 시작된다. 건설소에서 윈드트랩을 건설해서 전력 생산 체계[* 원래 원작에서 윈드 트랩은 [[물]]을 모으기 위한 시설이지만 게임에서는 전력이 됐다.]를 갖추고, 다음에는 스파이스 정제소를 만들어서 스파이스를 채집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제소를 건설해두면 하베스터는 우주에서 보급선이 날아와 무료제공 된다.
전투 도중 샌드웜이 나타나 모래 위 유닛을 잡아먹는 일이 있다. 샌드웜이 목격되면 경고 문구와 효과음이 나온다. 샌드웜을 공격해 죽일수도 있지만 피통이 너무 커서 어렵다.
플레이중에 "멘타트" 메뉴를 클릭하면 멘타트와 대화하여 게임의 세계관이나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이긴 하지만, 문제는 멘타트 메뉴바가 쓸데없이 큼지막한 반면에 정작 게임 내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게임 내 로어를 알아볼 용도가 아니면 별로 클릭할 필요가 없다. 근데 하도 버튼이 커서 마우스 클릭을 열심히 하다가 잘못 눌러서 들어가기 쉬운 일종의 트랩 스윗치가 되버린다.(…).
웨스트우드 사에서는 이후에 듄 2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오리지널 시리즈인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로 발전시킨다. 이 때문에 듄 RTS 시리즈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와 게임 체계 면에서 유사점이 많다. 건설소에서 건물 테크트리가 시작하며, 사이드바를 사용하여 건물 생산과 유닛을 조종하는 게임 인터페이스, 그리고 자원 채집도 유사하여 듄에서는 빨간색 지형에서 채집하던 스파이스가 커맨드 앤 컨커에서는 녹색 지형에서 채집하는 [[타이베리움]]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게임 인터페이스 가져다 쓰려고 지구가 타이베리움에 침식당하게 되버렸다(…).]
- 라이징 스톰 . . . . 5회 일치
Rising Storm.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FPS 게임. [[킬링 플로어]]를 제작했던 게임 제작사 [[트립와이어 인터랙티브]]가 제작 및 유통했다.
주축국. [[일본군]]으로 상징은 만세가 써진 [[욱일기]]. 특수 병과로 Assault와 Light Mortar가 있다. 자살시 증원 포인트가 소모되지 않으며, 페널티도 없다는 특이점이 존재. 근접공격키를 누르면서 전력질주하는 것으로 [[반자이 돌격]]이 가능하다.
100식기관단총. 주축군 Assault의 기본 주무기.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반동 감소와 고성능 조준기가 해금된다.
톰슨 M1928A1. 연합군 Squad Leader와 Commander의 기본 주무기.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30발들이 탄창과 커트 컴펜세이터가 해금된다.
일본도. 주축군 Squad Leader와 Commander가 사용할 수 있는 장비. 당연히 근접무기다.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장교용 검이 해금된다.
- 러브라이브! . . . . 5회 일치
* [[야자와 니코]] (CV : 토쿠이 소라)
* 마츠우라 카난 (CV: 스와 나나카)
* 쿠로사와 다이아 (CV: 코미야 아리사)
* 와타나베 요우 (CV: 사이토 슈카)
* 쿠로사와 루비 (CV: 후리하타 아이)
- 렉스 더 원더독 . . . . 5회 일치
미 육군 K-9 사단에서 큰 흰색 독일 [[셰퍼드]]. 매우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개]]로 복무를 끝낸 후에는 필립 데니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후 필립이 살인누명을 쓰자 이를 해결해줬다. 필립의 동생인 대니와 같이 행동한 적도 있으며 이때 다양한 맹수들의 공격에서 생존했다. 이외에도 과학자 존 레이번과 같이 아원자 세계를 모험했다.
[[디텍티브 침프]]와는 친구. 나이가 들어 은퇴했을 때에 디텍티브 침프와 같이 젊음의 샘에 빠졌는데 이로서 젊음을 얻고, 미 육군 중력이 된 대니와 모험을 했다. 확대동물국(Bureau of Amplified Animals),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III, 레이버스(Ravers), 워리어(Warrior) 등과도 대면하고 섀도팩트에 협력하기도 했다.
푸치(Pooch)라는 형제가 있다. 푸치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히어로들인 거너(Gunner)와 사지(Sarge)의 마스코트였다.
- 로라 로라 . . . . 5회 일치
지구의 에이스였기에 당연히 지구인이라 여겨졌지만, 사실은 달에서 진행하고 있던 귀환계획 당시 파견되었던 문레이스였다. 이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고 나서 그녀는 지구와 달 모두에게 백안시 당하는데, 지구인-문레이스 양측에게 배신감을 주기 충분했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행동원칙은 "지구와 달이 싸우지 않는" 미래를 도출하기 위해 지구인을 위해 싸우는 것 뿐이었다. 또한 이미 그녀에게 콩깍지가 겹겹히 씌인 구엔은 배신감은 고사하고 어찌되든 '''"로라와 함께있다"'''는 사실에 만족함은 물론이고 에이스 파일럿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현실적 상황과 맞물려 그녀는 구엔의 지지하에 밀리샤에 남게 된다.
스스로가 화이트돌에 탑승하고 "나는 달에서 왔습니다"고 진실을 밝혔을 때와 디아나 소렐과의 만찬에서 "당신이 오셨슴에도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당시의 언행이 구분된다. 작중에서 조신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딱 두번밖에 없었기에 로라의 진짜 모습은 보쿠녀로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구엔의 정략적 선택은 효과가 발군이라서 지구와 문레이스 일부를 제외하고 일반 병사들에게 수염([화이트돌])의 파일럿 = 로라라는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구엔의 사심도 들어가 있는 것이 구엔은 로랑을 로라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길 바랬던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의 존재로 구엔은 빼도박도 못하는 ~~[[로리콘]]~~[[쇼타콘]]으로 확실시되었다. ~~잠깐. 첫 만남때가 로라가 15살때잖아?~~
- 마기/311화 . . . . 5회 일치
* 아르바는 세 개의 마법을 동시에 쓰면서 모르지아나와 연백룡을 압도한다.
* 유난의 타전의 저주는 멈췄고 알라딘이 직접 나서는데, 유난의 우려와 달리 모르지아나는 "알라딘이라면 이기진 못해도 어떻게든 해줄 것"이라 믿는다.
* "알라 라케이사로 모르지아나와 연백룡의 움직임을 멈추고 "플래시 아죠라", "람즈 알사로스"를 동시에 날린다.
* 알라딘은 인사와 함께 "백영의 몸을 돌려주고 신드바드에게 찝적거리지 마라"고 요청하는데 아르바는 "많이 컸다. 네 얼굴은 솔로몬과 시바를 닮아서 싫다"고 동문서답한다.
* 아르바는 본래 금속기와 진의 마법은 알마트란에서 나온 것이며 알 사멘의 마법을 모으면 신장의 극대마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 마기/324화 . . . . 5회 일치
* 다윗은 일 일라와 동화한 자신의 의지를 알 수 있을리 없다고 말하는데 우고는 그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 신드바드와 다윗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데, 우고는 다윗과 일 일라는 저기에 있다며 웬 수조를 보여준다.
* 얌전히 그의 인형이 되는 아르바. 우고는 자신의 수족들을 조종해 의자와 병사 같은걸 만들어서 그녀를 여왕처럼 앉혀 놓는다.
우고의 말로는 성궁엔 시간이란 개념이 없고 인간의 체감으로는 이루 셀 수도 없는 권태와 고독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알라딘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알라딘과 떨어진 이후로 급속히 망가진 걸로 보이고 자신이 전능한 신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할 정도로 본래 목적을 잃었다. 쓸데없이 설명이 많았던 것도 이런 광기의 표출이었고 이번 화에서 유독 설명이 많은 것도 이런 요소를 두드러지게 한다.
신드바드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지는 미지수. 루프로 완전히 돌아간 걸로 보였는데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상에서 다윗이 한 것처럼 그에게 접근해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여전히 성궁을 탈취할 생각인 듯 한데 "고지에 오르기 위한 포석"이라는 걸로 보아 이미 방법은 연구를 끝낸 듯.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그와 다윗이 성궁에 있기 때문에, 실제론 그들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우고가 한 것처럼 보다 상위의 신으로 위상을 바꾸는 방식으로 우고를 처리하려 할 것으로 예상.
- 멀티플맨 . . . . 5회 일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해서 현재와 자신과 동일한 복제를 생성. 각각의 복제들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본체와 [[텔레파시]]로 연결되어있으나 독립적인 사고를 한다. 복제를 다시 흡수할 수도 있으며 이때 복제의 지식이나 기술, 기억 등도 흡수. 다만 죽은 복제는 흡수할수 없다.--[[환영분신술]]--
텔레파시로 연결되었다 해도 복제의 사고력이 독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체인 매드록스와 별도의 길을 가게된 복제체도 있다. 그러다보니 복제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으며 이런 때에 동일한 능력을 지닌 암살자 클레이(Clay)와 대면하기도 했다.
- 명탐정 코난 . . . . 5회 일치
고교생 [[탐정]] [[쿠도 신이치]]가 우연히 [[검은 조직]]의 약물에 의해 몸이 어려져서 [[에도가와 코난]]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다. 오랜 연재 중인 장기연재 만화이며 1000회 달성. 높은 인기를 얻어서 일본만이 아닌 한국에서도 큰 인지도를 지니고 있으며 애니메이션과 극장판도 방영하고 있다. 다만 만화에 대한 비판도 있다.
* '특별편'이란 것이 존재. 본편 만화와는 대략 평행세계적이며 사건 내용도 짧은 단편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그림체도 본편과 차이점이 있는데 이는 아오야마 본인이 아니라 어이스턴트들이 그려서다. 이 특별편의 에피소드는 조금 각색되어서 애니메이션에서도 활용되었다.
* 아오야마의 다른 만화인 [[MAGIC KAITO]]의 주인공인 괴도 키드가 등장하나 코난 세계와 MAGIC KAITO가 동일 세계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일단 이와 별개로 괴도 키드의 인기는 수준급.
* 본 만화는 추리 만화인데 어째 [[건담 시리즈]]와의 관련성이 나온다. 물론 건담계 등장인물이 나오거나, [[모빌슈트]]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건담을 연상케하는 요소가 나온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라던가.
- 바르나바 복음서 . . . . 5회 일치
[[바르나바]]([[바나바]])가 썻다고 하는 [[복음서]]. 초창기 기독교의 [[위경]] 목록에 바르나바 복음서라는 목록이 발견되며,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 된 사본이 현존하며, [[아람어]]로 된 사본이 2010년대에 [[터키]]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사본과 고대 목록에 언급되는 바르나바 복음서가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용을 알 수 없는 바르나바 복음서를 제외하고, 현존하는 바르나바 복음서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바르나바 복음서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책은 내용적으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고, 대신 [[가롯 유다]]가 십자가에 매달린다. 전반적인 내용은 4대 공관복음서와 유사하나, 이 같은 차이점은 [[기독교]] 전통보다는 오히려 [[이슬람교]]에서 묘사하는 예수와 유사함이 많다. 또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부정하고, 메시아의 이름은 [[무함마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하와 같은 면에서 바르나바 복음서는 중세에 어떤 남유럽 출신의 작가가 창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지옥의 묘사나, 9단계의 하늘 등이 [[단테]]의 [[신곡]]에서 나온 천국이나 지옥의 묘사와 유사하여, 바르나바의 복음서가 단테의 신곡에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 바키도/107화 . . . . 5회 일치
* 도쿠가와는 그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며, 설사 뼈는 다치지 않아도 근육은 베어질 것이고, 결국 과다출혈로 출혈사할 거라고 한다.
* 무사시는 가뿐히 떨쳐내고 "결과를 두려와 말라"고 하는데, 알버트는 그 절대적인 가치관 차이를 실감하고 항의할 의욕도 잃어 버린다.
* 무사시는 진짜 진검을 들 요량인지 도쿠가와에게 "내 검은 남겨져 있냐"고 묻는데
* 도쿠가와는 지금의 쿠마모토현에 있다고 답한다.
* 연재 시기가 쿠마모토 대지진 시기와 겹치는데, 작가가 의도하고 쿠마모토를 언급한 건지는 알 수 없다.
- 바키도/110화 . . . . 5회 일치
도쿠가와를 독대하는 모토베
* 모토베는 도쿠가와에게서 무사시가 진검을 해금하고 피클과 재대결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 도쿠가와는 안 되나?라고 묻는데, 모토베는 역시나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 그러자 도쿠가와는 "모토베 이조 말고는, 이란 거냐"며 비꼰다.
* "그 시대에게 배운 자로서, 그 시대를 좇는 자로서, 그 시대에서 이어지는 자로서, 미야모토 무사시와 대치는 피할 수 없는 책무"라고 답한다.
- 바키도/113화 . . . . 5회 일치
* 피클은 무사시와 만나고 돌아온 이후부터 줄곧 식사를 거부하고 있다.
* 도쿠가와가 진짜 공룡 고기를 제공해도 전혀 손대지 않는다.
* 도쿠가와는 바키를 불러다 상당하는데 바키는 말 없이 피클과 마주 앉는다.
* 나중에 도쿠가와는 둘이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묻는데, 바키는 피클이 말을 할 줄 모르니 얘기 같은걸 한게 아니라고 한다.
* 도쿠가와는 그런게 가능하겠느냐며, 지금 피클은 먹지 않아 약해진 상태라고 강조한다.
- 바키도/141화 . . . . 5회 일치
* 그에 대해선 "그 검호"라고만 언급되지만 그가 경찰의 포위를 뚫고 [[도쿠가와 미츠나리]]의 저택에서 도주한 일은 상당히 상세하게 기사화됐다. 경찰은 여전히 그를 쫓고 있는데.
모토베는 병석에서 "우리는 모두와 이어져 있다"는 말을 했다. 현대인은 모두 누군가와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사시는 어떨까? 바키는 이제가 돼서의 그의 지적이 얼마나 타당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는지 실감한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무사시의 고독".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쥔다.
* 바키를 포함한 현세의 투사들은 무사시가 자아내는 아우라, 그 참된 무사도와 차원이 다른 전력에만 눈길을 줬을 뿐이었다. 그탓에 그가 가진 '''고고한 고독'''에 대해선 주목하지 못했다.
현대를 태어난 인물들도 현대라는 삶의 틀 때문에 고독해 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가족이 있고 친구와 연인이 있다. 그러나 400년 전 전국시대에서 현대로 던져진 무사시에겐 그런 것 조차 없다. 그는 지금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 박술희 . . . . 5회 일치
'''박술희'''(朴述熙 또는 朴述希, ? ~[[945년]] [[10월 24일]]([[음력 9월 16일]]<ref>『[[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고려 혜종|혜종]](惠宗) 2년(945) 9월 16일(기유)</ref>))는 [[신라]](新羅) 말기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 사람이며, [[고려]](高麗) 초기의 [[무신]](武神)이다. [[고려 태조|태조]](太祖)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다. [[면천 박씨]](沔川朴氏)의 시조로 [[고려]]高麗) 전기의 무신(武神)이자, 개국공신으로 [[호 (이름)|시호]]는 엄의(嚴毅)이다. 대승(大丞) 득의(得宜)의 아들이다.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시대의 문신 [[박제상]](朴堤上)과 [[백결 선생]](百結 先生)의 후손이다.
혜성(현재의 [[당진시|당진]])의 호족 출신으로 18세 때 [[궁예]]의 호위병이 되고, 뒤에 ([[고려 태조|태조]])의 휘하로 들어와 그를 섬겨 많은 공을 세워 두터운 신임을 얻어 대광(大匡)이 되었다. [[고려 혜종|혜종]]을 정윤(왕태자)로 책봉할 때, [[장화왕후]]가 [[왕건]]의 의중을 박술희에게 전달하게 하여 [[왕무]]가 정윤이 되었으므로, 박술희가 [[왕무]]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935년]]에는 [[견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보이는 나주 탈환 작전에 [[홍유]]와 더불어 지원하였으나 백성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왕건]]은 그들 대신 [[유금필]]을 파견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태조]]가 사망하기 직전에 [[고려 태조|태조]]로부터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부탁받고,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전수받았으며, 자신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고려 혜종|혜종]]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호족 세력과 왕권, 그리고 [[왕규의 난]] 사이에 얽힌 복잡한 권력 투쟁은 정치가가 아니라 군인이었던 박술희에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왕무|혜종]]의 세력 기반은 미약하였고, 이복동생인 [[고려 정종 (3대)|정종]]와 [[고려 광종|광종]]은 외할아버지의 세력인 충주 호족 세력과 [[왕식렴]]을 중심으로 한 [[서경 (고려)|서경]] 세력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외척인 [[왕규의 난]](王規)도 왕위를 탈취하려고 하고 있었다.
[[고려 태조|태조]]가 아니면 유지되기 힘들었던 [[고려]] 초기의 불안한 정치 상황은 박술희에게는 불운이었다.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박술희는 [[고려 정종 (3대)|정종]]와 그를 지지하는 [[서경 (고려)|서경]] 세력에 의해 [[강화군|강화]] 갑곶으로 귀양을 가게 되어 얼마 후 조정의 밀명을 받은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다.
- 박승호 (야구인) . . . . 5회 일치
* [[SK 와이번스]] 타격 코치 (2000년 ~ 2003년)
[[대건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병역|군복무]]를 위해 [[대한민국 공군|공군]] 소속의 성무 야구단에 입단하여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0 시즌]]에는 [[지명 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0.307의 [[타율]], 75 [[타점]], [[홈런]] 20개, 0.505의 [[장타율]]을 기록하였고,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지명 타자)|골든 글러브 지명 타자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에 있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1990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선 대체로 2할 중후반대의 타율과 4할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아주 뛰어난 선수로 기억될 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그는 비록 1980년대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와 같은 커다란 업적을 남긴 수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한 선수로서 통산 11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방’이 4강권 이끈다"]</ref>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야구인)|박흥식]]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ref>[[매거진 t]] - 2008년 9월 기사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4000&article_id=48717 "t MAP - 이승엽"]</ref>
[[200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0 시즌]]부터 박승호는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겨 4년간 타격코치로서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고, [[2004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4 시즌]]부터는 팀을 옮겨 [[KIA 타이거즈]] [[김성한 (1958년)|김성한]] 감독, [[서정환]]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타격코치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027357 기아 김성한 감독 재계약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481897 <프로야구소식> 박관용 국회의장, KS 1차전 시구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9800 KIA, 서정환 2군감독 1군코치 임명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09720 최하위 기아 코칭스태프 개편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KIA 타이거즈]] 코칭 스태프 개편을 통해 [[서정환]]이 감독으로, 박승호가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190864 <프로야구소식> KIA, 코칭스태프 보직 확정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7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7 시즌]] 전반기에는 팀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6월에 대대적인 코칭 스태프 개편이 있었고, 수석 코치로 있었던 박승호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ref>[[마이 데일리]] - 2007년 6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6181438192229 "KIA, 조범현 전 SK 감독 영입 등 코칭 스태프 개편"]</ref><ref>[[한겨레]] - 2007년 6월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216991.html "기아 1·2군 코치진 맞교체… “분위기 쇄신” 효과 관심"]</ref> 2007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KIA 타이거즈]]는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을 경질하였고, [[2007년]] 시즌 중 배터리 코치로 영입했다가 새로 선임한 [[조범현]] 감독이 코칭 스태프를 새로 구성하면서 그는 구단과 재계약하지 못했다.<ref>[[스포츠 칸]] - 2007년 10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212230173&sec_id=510201 "조범현 감독 KIA 코치진 물갈이"]</ref> 하지만 그가 키워냈던 [[이용규]]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우뚝섰다.
- 박정민(배우) . . . . 5회 일치
[[파수꾼(영화)|파수꾼]], [[전설의 주먹]], [[감기(영화)|감기]], [[사춘기 메들리(드라마)|사춘기 메들리]], [[너희들은 포위됐다]], [[일리있는 사랑]], [[들개]] 등에 출연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단역으로 [[성보라]]와 헤어진 남자친구 박종훈 역으로 출연했다. 10분 남짓 되는 시간의 단역이었지만, 본인이 바람을 피웠으면서 오히려 [[성보라]]에게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고 궤변을 하는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야말로 쌍욕이 나올 정도의 엄청난 연기력과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
2016년 제37회 [[청룡영화상]]에서 [[동주(영화)|동주]]로 신인남우상을 수상하였다. 수상소감으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호평을 받았다.
|| 2016년 || 로미오와 줄리엣 || 로미오 ||
|| 2018년 || [[SBS]] || [[런닝맨]][* 2018년 4월 22일 방영분에서 [[양세찬]]과 [[이광수(배우)|이광수]]의 섭외로 등장. 성남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촬영장까지 직접 오는 비범함을 보여줬지만 그 후 분량은.... 이후 2018년 8월 5일 방영분에서 목소리만 등장. [[이광수(배우)|이광수]]와 [[전소민]]이 [[응답하라 1988|제목이 '8'이 들어간 작품]]을 찍은 연예인을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또 다 편집할거잖아요 또....'''라는 말로 이광수와 전소민을 격침시켰다(...) ~~저 안나갈거에요~~] ||
- 방실이 . . . . 5회 일치
* 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82년]]에 미8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화려한 율동과 특유의 시원스런 가창력을 무기로 무명시절을 극복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동한 시기는 1986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리더였던 방실이는 1집 트로트곡《첫차》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타이틀곡 〈첫차〉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로, 이 노래를 계기로 데뷔 초부터 남성팬들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상급 가수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2년 뒤 발표한 3집 〈청춘열차〉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 그 후 2000년에 [[가수]]로 복귀하였고 2003년 발표한 트로트 《뭐야 뭐야》로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인가요 분야에서 상위권을 석권하였다. 이 [[노래]]는 전 세대에 널리 알려져 노래방 애창곡으로도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빠른 박자와 댄스 리듬의 트로트 〈아! 사루비아〉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방실이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약간의 댄스 비트와 발라드, 블루스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개성있는 창법과 출중한 [[가창력]],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을 섭렵하며 인기를 확보한 실력 있는 가수로 거듭났다. 또한 그녀는 데뷔 때부터 거구한 체중과 단발머리를 주로 선호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로 자신의 이미테이션 가수들(밤실이, 방쉬리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 2007년 6월 7일, 과로와 몸살 증세로 인한 [[뇌경색]]으로 주위를 안타깝게 하였으나, 현재는 건강이 호전되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11월 5일에는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뇌경색으로부터 회복된 모습을 보였다.
- 배성룡 . . . . 5회 일치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반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절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순으로 상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조선경제의 현재와 장래〉(1933)
- 배슬기(배우) . . . . 5회 일치
||<#878787> '''{{{#EEE156 학력}}}''' ||<(> [[상명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황선희]]와 동기다.] ||
2011년 [[박시후]]와 경찰서에서 만든 안보 동영상을 찍었는데, 동영상의 나레이터가 [[촛불시위]]를 [[친북]]행위로 규정지어 논란이 되었다.[[http://news.sportsseoul.com/read/ptoday/933111.htm|#]]
[[2012년]] [[11월 24일]] [[안철수]] 대선 후보 사퇴와 관련된 트위터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11월 23일]]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하고, 24일 [[임호]]가 자신의 트위터에 "안 후보님 사퇴하셨네요."라는 글을 올리자, 그에 대한 답변(멘션) 형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 후보 사퇴를 통한 후보 단일화 과정을 '''종북자 무리들'''의 짓으로 규정했다. 즉, 야권 후보로 출마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지지자들을 [[종북]]으로 폄훼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큰 논란이 일었고, 비판이 계속 되자 해명글을 남겼다.
|| 2013년 || 소설, 영화와 만나다 || || ||
- 배천석 . . . . 5회 일치
[[K리그 클래식 2013|2013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하여 3월 2일 [[FC 서울]]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며, 3월 30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4월 13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18분 교체투입된 뒤 6분 만에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AFC 챔피언스리그 2013]]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데에 이어 3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뒤 결승골을 넣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2014 시즌 첫 경기였던 [[AFC 챔피언스리그 2014]] [[세레소 오사카]]와의 홈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전반기를 넘기지 못하고 양 정강이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게 됨에 따라 사실상 시즌아웃 되었다.
- 백진희 . . . . 5회 일치
| 소속사 = [[제이와이드컴퍼니]]
|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
| [[전우치 (드라마)|전우치]], [[금 나와라, 뚝딱!]]
}}</ref> [[송은이]]는 백진희 [[박솔미]]와 고교(명덕여고) 동문이다.
{{제이와이드컴퍼니}}
- 보루토/6화 . . . . 5회 일치
* 나뭇잎 마을을 방문 중이던 5카게 또한 사스케와 협력, 작전에 동행한다.
* 미즈키와 우치하 사라다는 보루토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다가 나루토가 모두를 지켰다고 알려준다.
* 히마와리는 병상 곁에서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다.
* 사스케는 "꼴사납다"는 말에 맞장구를 치며 모든 걸 잃어버린 지금의 보루토가 과거의 나루토와 같은 처지라고 말한다.
* 보루토는 마지막으로 사라다와 미즈키에게 모두를 부탁하며 게이트를 통과한다.
- 보쿠걸/103화 . . . . 5회 일치
* 이마이 선배와 초콜렛 만들기를 무사히 마친 미즈키.
* 선배와 헤어질 때까지 오해를 풀지 못하고 서로 다른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 그러나 타케루와 이마이 선배를 생각할 수록 마음이 무겁다.
* 발렌타인 당일. 미즈키는 용기를 내서 후지와라에게 방과후 만나기로 약속한다.
* 미즈키는 신발장에서 마지막으로 타케루에게 초콜렛을 넣어두려고 하는데, 때마침 나오던 타케루와 마주친다.
- 보쿠걸/107화 . . . . 5회 일치
* 후지와라는 리듬체조를 그만두고 연극부 고정멤버가 되었다. 문화제 이후로 푹 빠져서 아예 장래희망도 바꾸는데, 왠지 "슈트액터"
* 야마다 나나타로는 다이카와 타마코와 함께 수상한 사진부를 만들어서 매번 교무실 호출 중
* 타케루와 미즈키는 여전히 사귀고 있다. 아직은 비밀로 하는 중. 그래도 평범하게 데이트도 할 정도로 진전.
* 바로 미즈키와 만나진 않지만 "이번엔 어느 녀석을 놀려줄까"라는 걸 보면 지상에서 계속 사는 모양.
- 브로포스/브로 . . . . 5회 일치
사정거리가 짧고 데미지가 약하지만 연사와 피격시 마비 효과로 뻐길 수 있다.
맵 밖에 있는 마틸다가 저격총으로 날아와 적들을 사살한다. 브로페셔널이 바라보고있는 방향, 같은 높이의 적들에게만 먹힌다.
영화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와 [[LA 2013]]의 [[스네이크 플리스킨]]을 패러디한 캐릭터. 점프를 하면 글라이더를 타고 활강한다.
발매 초기에는 단발 소총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캐릭터였고, 해금 시기도 브로인블랙 다음이었다. 하지만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 스팀 트레이딩 카드의 설명에 따르면]로 수정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해금 시기도 브로티 해리에게 물려주고 한-참 뒤로 미뤄졌다. 하지만 수정 이전 스네이크 브로스킨을 해금했던 플레이어들은 브로티 해리와 스네이크 브로스킨 둘 다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블랙 클로버/100화 . . . . 5회 일치
* 바네사는 절망한 마녀왕에게 이 마법은 자신과 인연이 맺어진 가족 편만 들어주며 "나와 당신 사이엔 인연은 없다"고 선언한다.
자신이 그 말을 했었다는걸 알고 있다. 그 순간 아스타는 아까와는 달리 십자가의 밑둥을 잘라서 노엘을 해방시킨다. 마녀왕은 뭔가 잘못됐다는걸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스타는 여전히 조종당하는 상태.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노엘을 다시금 공격한다. 그때 또 한 번 고양이가 달려와 아스타에게 닿는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아스타의 검은 노엘의 가슴을 관통하고, 마녀왕은 이번에야 말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 마법은... 나와 인연이 맺어진 가족의 편만 들어준다는 것을
>나와 당신 사이에 인연 따윈 없었어.
- 블랙 클로버/105화 . . . . 5회 일치
* 유노와 아스타, 마법제가 되기를 약속했던 두 친구가 "두 개의 신성"으로서 주목받는 위치에 오른다.
마법제는 곧 본론인 실적발표를 진행한다. 근처에 있던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군중들은 당연히 금색의 여명이 1위를 할 걸로 예상하는데, 매그너는 어차피 꼴찌는 자기네들일 거라며 관계없다고 자학적인 개그를 한다.
이런 와중에 발표된 올해의 2위는 충격적이게도 검은 폭우. 별의 갯수는 101개. 작년 1위의 득점을 능가한 수치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누구보다 경악하는건 단원들 자신이다. 매그너는 눈이 튀어나와서 선글라스를 깨먹을 정도로 경악. 챠미는 자기 덕이냐고 김칫국을 마신다. 그리고 좀체 놀라는 법이 없는 노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아스타는 "우리가 2위라니 무슨 일이야!"라며 소리를 지른다. 단장 야미는 심드렁하지만 "쩐다"고 자평한다.
* 매그너와 락도 주위에서 검은 폭우인걸 알아보고 대답하라고 찌르는데 매그너는 "나가기에 빌어먹게 딱 맞는 녀석"이 있다며 사양한다. 역시 검은 폭우의 신인인 [[노엘 실버]]는 이번은 양보할 테니 얼른 나가보라고 츤츤거리는데, 정작 그가 어디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5회 일치
* 경기가 시작되자 별 작전없이 그저 돌격하는 매그너와 마론을 조율해 효과적인 전술을 짜주고, 적의 함정을 역으로 이용한 멋진 전략을 선보인다.
* 매그너와 마론 모두 생리적으로 키르슈를 용납할 수 없었다. 없던 알레르기가 생겨날 지경이엇다. 매그너가 목에 핏대가 생길 때까지 기분 나쁘다고 소리쳐 보지만 키르슈에겐 그저 추한 이의 탄식이고 그의 아름다움을 질투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더욱 최악은 이런 소감을 여과없이 입으로 나불댔다는 것. 어지간하면 지지않는 매그너가 대화를 포기할 지경에 이른다. 마론도 생리적으로 거부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이쪽에 대고는 "여성이 그렇게 험한 말 쓰는게 아니다"는 짜증나는 설교까지 곁들여진다. 그러면서 마론도 생긴 바탕은 아름다운 편이라면서 자기를 본 받아 정진하라는 성질 돋구는 소리를 쏟아놓는다.
>다음 시합에서 저와 아스타씨가 피의 축제를 벌여드릴 테니까요.
* 키르슈와 같이 있는거 자체가 고통인 매그너는 일단 무조건 공격하고 돌격하고 본다. 한 시라도 빨리 끝나야 이 고통이 끝날테니까. 하지만 적측의 견제가 거세다. 적동마법 "체인스 자칼"이란 마법으로 매그너의 돌격을 방해한다. 매그너가 성가셔하며 일단 적동으로 만들어진 자칼을 때려잡고 본다. 그때 키르슈가 반짝거리며 다가온다. 매그너에게 조언해주기 위해서였다. 말투는 여전히 니글거리지만, 의외로 상식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선 매그너는 근원거리를 가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데 무작정 돌격하는건 합당치 않다. 적의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자연스럽게 마나를 운용하고 근원거리를 적절히 나눠서 공격할 필요가 있다.
* 솔 마론도 생각없이 뛰쳐나가기는 똑같았다. 그녀가 흙 창조마법 "날뛰는 대지모신"으로 거대한 고렘을 만들어내자 적은 진흙 구속마법 "프레쉬 보그"로 늪을 생성해 발을 묶었다. 귀찮게도 마론에겐 상성상 밀리는 마법이다. 그녀가 애를 먹자 어김없이 키르슈가 달려왔다. 괴악한 포즈와 함께. 그는 하나같이 단세포적인 인간들 뿐이라 매도한 뒤 명령을 내릴 정도의 골렘을 만들 수 있다면 쓸데없이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딱히 양동을 거는 상황도 아니니 차라리 작은 골렘 다섯을 만들어 분산시키면 적을 혼란하게 할 수 있다. 지면에 숨겨 복병으로 삼는 것도 고려할 법하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5회 일치
* 매그너는 아스타가 있어 강해졌다 감사하면서도 결승전에 가는건 그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아닌 자신과 [[락 볼티어]]라며 승부욕을 불사른다.
* [[잭스 류그너]]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네르슈 버밀리온]]을 처리하는 동안 양팀 여성진의 격돌이 있었다. [[미모사 버밀리온]] 대 [[솔 마론]]. 마론이 골렘을 앞세워 그녀를 덮쳐왔으나 미모사는 식물마법 "마포의 꽃"으로 골렘을 분쇄한다. 마론은 그녀가 예상이상으로 강적이란걸 인정했지만 그녀를 오래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마포의 꽃의 레이저를 맞고 날아간 골렘의 오른팔이 공중에서 형태를 바꿨다. 흙마법 "흙덩이 봉인". 하늘에서 거대한 토사가 미모사를 덮쳤다. 거기에 파묻힌 미모사는 당분간 움직임을 봉쇄 당했다.
* 이때 일으킨 굉음이 말썽이었다. [[매그너 스윙]]에게 위치가 발각됐다. 그는 새로운 마법 불꽃 강화마법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려왔다. 아스타와 잭스, B팀의 크리스탈까지 발견. 아스타는 예상 외로 빠른 그의 접근에 놀랐지만 매그너는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버린 상태에서 정지. 그게 매그너의 "필승존"이었다. 매그너는 그 상태에서 특기인 원거리 공격으로 나왔다. 그는 아스타를 노리고 "입단식 때의 리벤지"를 선언했다. 아스타도 선뜻 "덤벼보십쇼 선배!"라며 그때처럼 자세를 잡았다. 그 다음 매그너의 전력투구. 아스타는 입단식 때와 같은 방법으로 받아치려고 했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이라면 더 정확하게 받아칠 수 있다,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불꽃의 마구가 눈 앞에서 사라져 크리스탈을 강타하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매그너는 정말 까다로운 상대. 아스타는 마땅한 공략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접근하려고 하면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아날 테고 크리스탈이 노출된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블랙" 상태가 되는 것 밖에 없는데 그걸 시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스타는 급기야 미모사에게 빨리 돌아와달라고 절규했다. 그때 잭스가 돌파구를 마련했다.
- 블랙 클로버/63화 . . . . 5회 일치
* 베토와 백야의 마안이 모래사장을 습격했다는 제보를 받고 마법기사단이 급파되었다.
* 절망의 베토와 대치 중인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
* 하지만 마음에는 들었는지 "상을 주마"라며 짐승마법 "치타 차지"와 짐승마법 "베어 클로"로 지오를 공격
* 키아토는 승부를 미루기로 하고 아스타와 페어를 짜 이동하기 시작한다.
- 블랙 클로버/70화 . . . . 5회 일치
* 바네사와 핀랄은 마력이 아예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싸우는 아스타를 보고 자신들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는다.
* 노엘 실버는 바네사와 핀랄이 대단한 실력자임을 세삼 깨닫는다.
* 그리고 바네사와 핀랄이 기동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공간마법은 그렇다치고 바네사의 실마법이 특히 성가시다.
* 베토는 따로따로 였으면 쓰레기였을 녀석들이 모여서 자기와 싸울 수 있게 됐다며 "구역질이 난다"고 폭언한다.
* 그러나 바네사와 핀랄은 자신들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아스타를 절대로 배신할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 보조한다.
- 블랙 클로버/76화 . . . . 5회 일치
* 유노와 시민들에게 쏟아지는 천둥의 화살.
* 그리고 다이아몬드의 마법사들이 펼친 방어장벽을 관통, 라가스와 부하들일 한 번에 명중시킨다.
* 유노는 "너야 말로 지킬 수 있으면 너와 네 동료들을 지켜봐라"라고 되받아친다.
* 라가스는 유노의 기량에 경악하고 브로코스와 앞다퉈 유노와 싸우려 든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5회 일치
* 핀랄 룰러케이트와 노엘 실버는 아스타의 팔을 고칠 방법을 찾아 과거에 인연이 있던 판젤 크루거 일행을 찾는다.
* 노엘 실버와 핀랄 룰러케이트는 아스타의 팔을 고치기 위해 어떤 폐가를 찾는다.
* 당시 아스타와 검은 폭우에게 도움을 받아 클로버 왕국에 숨어 살게 되었다.
* 금발 여성은 도미넌트 코드. 도미나란 애칭이 있고 젤의 아내이다. 마도구 장인인 마녀로 바네사 에노테이커와는 지인사이.
* 도미나의 설명대로 여성들만 살아가고 있으며 나무와 나무가 엮여서 기이한 지형을 만들고 있다
- 블랙 클로버/84화 . . . . 5회 일치
* 다이아몬드의 침공군은 마르스와 더불어 "백야의 마안"의 삼마안 "증오의 파나"도 섞여있다.
* 아스타는 그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는데 던전에서 만난 적이 있던 마르스와 "백야의 마안"의 삼마안 "증오의 파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스타는 파나 쪽은 절망의 베토처럼 위험하다고 여기지만 마르스는 살아있었다는 것에 묘하게 안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판젤 크루거(젤)도 다이아 출신이라 그런지 마르스를 알아본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삼마안과 대치했을 때를 떠올리며 치를 떤다. 이런 우려들 속에서도 여왕은 침략군이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니 자신의 힘으로 완벽하게 없애준다고 큰소리친다.
* 정신을 잃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꿈처럼 야미 스케히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자신이 "운명"에 묶인 몸이라고 말하지만 야미는 "그 녀석이 싫다"며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말하는데. 서서히 눈 뜨는 바네사의 시야에 그 야미의 등과 닮은 아스타의 등이 보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스타만이 아니라 노엘 실버, 핀랄, 게다가 젤 일행까지 있는걸 보고 당황한다.
* 하지만 여왕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바네사와 아스타의 반마법의 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바네사는 원래 여왕을 속여먹이고 아스타의 반마법의 검으로 어떻게든 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자신을 희생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마녀의 숲의 여왕을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며, 애초에 바네사가 숲에 억류된 상태에서 아스타와 재접촉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바네사를 숨겨두고 아스타의 저주만 풀어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
- 블랙 클로버/97화 . . . . 5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블랙 클로버의 마도서에 깃든 반마법의 악마와 만난다.
* 아스타는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 던져져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정신세계 같은 것이지만 아스타는 이 위도 아래도 없는 공간에 당황해서 자신이 죽은게 아닌가 의심한다. 아직 시스터와 결혼도 못했고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약속을 지키지도 못했다고 허둥대는데, 그때 거대한 그림자와 같은 악마의 형상이 나타난다. 당황한 아스타는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누구냐고 묻는다.
어느새 아스타의 정신이 돌아와있다. 그의 오른팔을 비롯한 우반신은 단마의 검에서 나온 검은 그림자에 잠식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스타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다시금 일어선다.
- 블리치/685화 . . . . 5회 일치
마침내 유하바하와 격돌하는 이치고.
* 렌지와 루키아가 제라르와 교전 중인 장소에 도착하지만 정체불명의 공격에 당황한다.
* 떨어져 있던 우류도 드디어 그가 유하바하와 대면했음을 느끼는데.
* 렌지와 루키아가 토시로를 못 알아보는 깨알같은 개그씬.
- 블리치/689화 . . . . 5회 일치
호로화의 힘으로 유하바하와 대등히 싸우는 이치고.
* 이치고는 그랑 레이 세로와 융합한 새로운 월아천충을 날린다.
* 접전을 벌이는 유하바하와 이치고.
* 유하바하는 이치고가 발 딛는 곳마다 "함정이 있다"고 놀리듯 알려주는데 정말로 거기에서 함정이 튀어나와 이치고의 발을 찌른다.
* 참백도가 두 자루고 호로화와 만해가 따로 각성했듯 "퀸시로서의 힘"인 두 번째 만해 또한 따로 해방한다는 설이 나왔다.
- 블리치/694화 . . . . 5회 일치
* 나타난 유하바하에게 "나의 소울 소사이어티에 어서와라"고 환영하는 아이젠
* 아이젠과 대결 중인 유하바하. 그런데 이치고와 렌지가 뒷치기를 가하다 실패한다.
* 게이트를 따라 유하바하를 추적하는 이치고와 렌지.
* 렌지는 둘만 있으니 하는 얘기라며, 완전히 엇갈려 버렸던 루키아와 관계를 되돌려준 것은 이치고라고 말한다.
* 그리고 뒷치기에 들어가는 이치고와 렌지--이 만화에서 이게 먹힌 적이 한 번이라도 있냐--
- 블리치/697화 . . . . 5회 일치
* 마다라메 잇카쿠가 부대장으로 승진. 아야세가와 유미치카는 3석으로 올라갔다.
*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데, 왠지 아무도 맞는 길로 가는 건지 모르고 있다? 잇카쿠와 유미치카는 그냥 켄파치를 따라가는 중.
* 켄세이와 슈헤이도 동행하던 중이었는데, 켄세이가 란기쿠의 말을 듣고 "잘 들어둬라 슈헤이"라며 타박한다.
* 로쥬로도 켄세이와 마찬가지로 부활. 야도마루 리사의 모습도 확인. 설명은 없지만 8번대 대장으로 취임한 듯하다.
* 바로 유하바하와 닮은 영압의 반응이 포착된 것이다.
- 서강준 . . . . 5회 일치
서강준(본명 이승환)은 1993년 10월 12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고산로724번길)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누나와는 연년생이다.<ref name="tvreport" /> 그는 학창시절까지 계속 에서 성장하였고, 2학년 때 [[말레이시아]]에서 1년 7개월 동안 유학하다가 1학년때 귀국했다.<ref name="10아시아"/> 이후 재학 시절에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모델 에이전시에 등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쇼에 서보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에 고등학교 3학년 때 2011 F/W 서울 패션 위크에서 런웨이를 끝으로 2~3년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50308310735776&type=1&outlink=1|제목='발견!' 서강준, 국민 연하남의 가능성(인터뷰)|저자=김현록|날짜=2014-05-05|출판사=머니투데이|확인날짜=2014-05-17}}</ref><ref name="네이버">{{뉴스 인용|제목 ='보그'가 선정한 2014년의 프레시맨-2 - INTERVIEW|url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98&contents_id=51180|출판사=[[네이버]] 매거진캐스트|저자=[[보그]]|날짜 = 2014-03-01|확인날짜=2014-05-17}}</ref> 서강준은 또한 그 당시에 바빠도 밤마다 영화는 한 두 편은 꼭 챙겨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막연히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겨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연기학원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머니투데이"/> 당시에는 처음 접하는 연기가 어려웠지만 새로 접하는 연기의 매커니즘이 신기했고,<ref name="네이버"/> 무엇보다 새로 창조해나간다는 직업이라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
서강준은 2013년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웹 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정식 데뷔하였고, 이후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에서 은한결([[김소현]] 분)의 밴드부 선배 최수혁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당초 다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수상한 가정부》 오디션을 권유 받게 되었고 얼떨결에 합격했다고 한다.<ref name="enews24">{{뉴스 인용|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300988|제목=[인터뷰] 서강준, "대형신인이요? 천천히 가고 싶어요"|저자=안소현|날짜=2013-12-09|출판사=enews24|확인날짜=2014-05-17}}</ref> 그러다가 [[MBC]] 단막극 《[[드라마 페스티벌|드라마 페스티벌 - 하늘재 살인사건]]》을 연출한 최준배 감독이 서강준이 출연한《수상한 가정부》를 보고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문소리]]의 상대역인 윤하 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enews24"/> 2014년 초, 서강준은 [[MBC]] 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에서 여주인공 나애라([[이민정]] 분)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연하남 국승현 역을 연기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그는 2014년 5월 4일부터 2015년 4월 14일까지 [[S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 [[룸메이트 (텔레비전 프로그램)|룸메이트]]》에 고정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서강준, ‘룸메이트’ 멤버들과 쫑파티 인증샷…“자주 봐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47007|출판사 =OSEN |저자 =정소영|날짜 = 2015-04-21|확인날짜 =2017-09-07}}</ref> [[삼성그룹]]에서 제작한 웹드라마 《[[최고의 미래]]》에 이어,<ref>{{뉴스 인용|제목=‘최고의 미래’ 서강준 “민아 첫인상, 신기했다…동갑이라 빨리 친해져”|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336999|출판사=매일경제|저자=|날짜=2014-10-27|확인날짜 =2017-09-07}}</ref> [[KBS2]]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했다. 이후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 영화)|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연달아 출연하며 차근 차근 연기 내공을 쌓아갔다.
2015년 서강준은 [[MBC]] 대하 드라마 《[[화정 (드라마)|화정]]》에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어 소신과 명석함을 지닌 꽃도령 홍주원 역을 맡아 6개월여동안 최종회까지 대장정을 소화해내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2016년에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드라마)|치즈 인 더 트랩]]》에서 ‘츤데레’ 매력남 백인호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때는 촉망받던 피아노 천재로 까칠한 겉모습과 달리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백인호 캐릭터를 극대화 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서강준, 물오른 4년차 '치인트'로 폭발|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123528|출판사=한국일보|저자=황지영|날짜=2016-01-20|확인날짜 =2017-09-07}}</ref> 그는 실제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데뷔 이후 드라마와 예능, 해외 팬미팅 등에서도 간간히 연주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치인트’ 서강준, 여심저격 피아노 신 진실 밝혀…“그 정도 실력 안돼”|url=http://m.hankooki.com/m_sp_view.php?WM=sp&FILE_NO=c3AyMDE2MDEyODEwMzQyMzEzNjY3MC5odG0=&ref=m.search.naver.co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수민|날짜=2016-01-28|확인날짜 =2017-09-07}}</ref> 2016년 11월, 서강준은 대한민국 차세대 스타와 그를 둘러싼 연예계 일상을 그린 100% 사전제작으로 제작 된 [[tvN]] 드라마 《[[안투라지 (2016년 드라마)|안투라지]]》에서 연예인들의 연예인, 가장 핫한 배우 차영빈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개연성 부족한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불협화음으로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미드 리메이크' <안투라지>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36516|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윤현|날짜 = 2016-12-26|확인날짜 =2017-09-07}}</ref>
- 서정환 . . . . 5회 일치
'''서정환'''(徐定煥, [[1955년]] [[7월 5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의 [[유격수]]였다. 현재는 [[KBO (야구)|KBO]]의 대구 감독관이다.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2006년]] 정규 시즌을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영광을 되살리는 듯했지만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던 준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탈락했다. [[2007년]] [[KIA 타이거즈]]가 최하위로 전락하자 그 해 시즌 중 영입한 배터리 코치 [[조범현]]에게 감독 자리를 넘기고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191144463&sec_id=510201&pt=nv 감독 대이동? 조범현 배터리 코치 KIA 새 사령탑] - 스포츠칸</ref>
- 손지창 . . . . 5회 일치
| '''그대와 함께'''
[[1998년]]에는 드라마 《[[일요일은 참으세요]]》에서 공연한 배우 [[오연수]]와 결혼하여 현재 슬하에 2남을 두었으며, [[2004년]] 드라마 《[[영웅시대 (2004년 드라마)|영웅시대]]》를 끝으로 배우활동은 접고, 기업 홍보 대행 사업을 하는 등 사업가로 활동을 넓혔다.
[[2004년]] 가수 겸 탤런트 [[이장우 (가수)|이장우]]와 함께 그룹 피닉스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2009년]] 5월 가수 겸 배우 [[김민종]]과 90년대 큰인기를 끌었던 The Blue를 재결성했다.
* KBS 드라마 '느낌' OST "그대와 함께" (1994년)
* '''그대와 함께
- 시티락 . . . . 5회 일치
상체는 [[새]], 하체는 [[소]]를 닮은 [[괴물]]. 과거 [[새비지 랜드]](Savage Land)에서 폴 피플(Fall people)에게 숭배받기도 했다. 이후의 시기에 빙하가 녹아 깨어나고, 조사차 나타난 [[헐크]]와 대면했다.
육중한 거구이며 이에 어울리게 헐크와 싸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속도도 상당하다.
관련 캐릭터는 스테그론(Stegron)이 있다. 스테그론은 새비지 랜드에서 일을 낸 록슨(Roxxon)을 저지하려 했고, 이때 헐크와 함께 스테그론을 도운 것. 한편 스테그론의 의도를 안 [[스파이더맨]]와 새비지 랜드의 관련 캐릭터인 [[카자르]](Ka-Zar)와 [[셰나]](Shanna)도 협력했다.
- 식극의 소마/175화 . . . . 5회 일치
* 에리나는 소마와 단둘이서 라운지의 밤하늘을 감상하는데 전같인 거부감은 사라졌다고 느낀다.
* 그 말을 듣고 풀어져 있던 타도코로, 유키노도 소마와 에리나의 예습이 없었다면 떨어졌을 거라며 긴장의 끈을 조인다.
* 잠시 뒤에는 사카키도 와서 에스테룸의 마사지를 칭찬하며 적극 추천한다.
* 이번엔 타도코로가 현미차를 가져와서 전해준다.
* 또 마지막엔 소마가 찾아와서 연어껍질 튀김 과자를 권한다.
- 식극의 소마/182화 . . . . 5회 일치
* 소마는 쿠가의 도움으로 곰이 사는 산에 와 있다. 쿠가는 추위에 약해서 오그라들었다.
* 아자미와 츠바사는 다 학원을 위한 일이라고 달랜다.
* 패자는 실려나가면서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위험한 향"이라고 말하는데.--역시 약을 탔네. 식약청 불러와--
* 쿠가는 가을 선발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는게 좋다고 충고한다.
* 그 개인의 기량은 십걸에 들 정도로 성장했으니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아자미 총수와 센트럴의 힘까지 더해져 있다는 것이다.
- 식극의 소마/183화 . . . . 5회 일치
* 시식한 쿠가 테루노리와 대머리 군단은 옷이 날아갈 정도의 리액션을 보인다.
* 산행에도 돌아와 다시 주방에 선 소마.
* 정체는 "오미자" 열매. 중국과 한국에서 널리 자생하는 식물로 일본에서도 홋카이도와 혼슈 지방에서 자생한다.
* 시식하는 쿠가와 대머리 군단.
* 소마는 오미자를 청주에 담궈 액기스를 추출, 향신료로서 기능을 부각시켰다. 이것은 저민 고기와 어울리게 만들기 위한 조치.
- 식극의 소마/184화 . . . . 5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와 쿠가 테루노리는 목욕탕에 갔다가 요가포즈를 취하고 있던 도지마 긴과 마주친다.
* 둘은 도지마와 목욕하며 시오미 세미나가 처했던 상황을 듣는다.
* 소마와 쿠가 테루노리는 목욕하러 가는데, 쿠가는 소마가 식극을 걸지 않은게 불만이다.
* 하야마는 물론 따라온 쿠가와 도지마까지 어이없는 표정이다.
* 히로인들의 신체 사이즈와 혈액형이 공개되었다.
- 식극의 소마/232화 . . . . 5회 일치
하지만 아주 황당한 짓도 아닌게 두유로 끓이면서 녹인 뒤 소금 후추로 간을 하면 거의 정식 레시피로 만든 화이트 소스와 비슷한 "유사 화이트 소스"가 된다. 이스트와르도 처음 말만 들었을 땐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마의 설명을 들은 뒤에는 납득. 어차피 화이트 소스는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루에 우유를 첨가해 만드므로, 성분적으로는 네모 떡을 두유로 녹이는 것과 큰 차이는 없어진다. 네모떡의 전분이 녹으면 점성이 있는 소스가 될 테고 다른 조미료도 포함돼 있을 테니 원조 화이트 소스보다 경쾌한 맛이 더해진다. 이후에 1cm 크기로 깎둑썰기한 닭고기에 양파, 새우, 생쌀을 함께 넣고 버터에 볶는다.
사이토와 비슷한 타이밍에 버터를 팬에 녹이기 시작해서 본격적인 승부로 돌입한 듯 보였지만 실제론 설명하지 않고 따로 끓이고 있는 냄비가 있어서 여전히 모든 수를 다 쓴건 아니다. 조림 뚜껑으로 덮어서 뭔가를 삶는 듯 한데, 사이토는 그걸 간파하고 그거야 말로 소마의 승부수임을 직감한다.
별로 설명할게 없었는지 잠자코 있다가 소마와 사이토가 버터를 쓰기 시작하자 양측의 사용을 설명하면서 등장. 양측의 조리를 모두 호평했지만 사이토 측을 좀 더 고져스하다고 표현하는걸 보면 일단은 사이토 쪽에 점수를 준 듯 하다.
- 신동미 . . . . 5회 일치
동료 배우 허규와 [[뮤지컬]]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하여 2014년 12월 결혼했다. 허규는 노래 《''''사랑과 우정 사이''''》로 잘 알려진 음악그룹 피노키오 3집 [[보컬]]로 데뷔했으며, 뮤지컬 배우로 활동중이다.<ref>{{뉴스 인용 |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828889 | 제목=[TV까기]‘불후의 명곡’ 신동미♥허규, 이 부부가 사랑하는 법 | 저자=허초현 | 뉴스=뉴스1 | 날짜=2016-01-10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808144521/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828889 | 보존날짜=2016-08-08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뉴스 인용 | url=http://daily.hankooki.com/lpage/entv/201601/dh20160118212244139020.htm | 제목=신동미의 꽃미남 가수 남편 알고보니 "이 사람이었다고?" 충격 | 저자=이슈팀 | 뉴스=데일리한국 | 출판사=한국일보 | 날짜=2016-01-18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808144558/http://daily.hankooki.com/lpage/entv/201601/dh20160118212244139020.htm | 보존날짜=2016-08-08 | 깨진링크=아니오 }}</ref>
* 2002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얼음마녀 장례식에 와주세요》
* 2016년 [[tvN]] 불금불토스페셜 《[[신데렐라와 네명의 기사]]》 ... 은하원의 엄마 한정순 역
* 2013년 《[[소설, 영화와 만나다]]》 ... 영선 역
* 2019년 《[[보희와 녹양]]》 ... 보희 엄마 역
- 아이네이아스 . . . . 5회 일치
아이네이아스와 같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비정하는 신화는 그리스 계 식민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르고스]]에서 쫓겨난 [[디오메데스]]는 다우니아의 왕 다우누스의 딸과 결혼하여 그 땅을 이어받아 브린디시 등의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하며[* 디오메데스는 똑같이 이탈리아에 표류한 아이네이아스와 대적하던 에트루리아의 투르누스에게 동맹을 요구받지만, 디오메데스는 아이네이아스 개인에게는 원한이 없다는 이유 혹은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려워 거절하였다고 한다.], 크레타의 지배자였던 이드메니우스 역시 크레타에서 쫓겨나 이탈리아 남부로 도망쳤고, 살라미스 섬의 테우크로스는 키프로스로 떠나[* 테우크로스는 살라미스의 영웅 [[아이아스]]의 가족이었지만, 아이아스의 자살을 말리지 않고 복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아스의 아버지 테라몬 왕에게 미움을 받았다.] 살라미스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지고 있었던 필로크테이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에, [[트로이의 목마]]를 만든 에페이오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시온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무렵 이탈리아 그리스 계 도시에서 있었던 유행에 로마 역시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네이아스 이전에는 라틴 족의 상징적인 조상으로서 '[[라티누스]]'가 그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한편, 카르타고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 '디도 공주'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비중있게 실려 있는데, 이는 시기상 '포에니 전쟁'이라는 크나큰 전쟁을 치른 상대인 카르타고와의 관계를 운명론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야규 무네노리 . . . . 5회 일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임관하여, 도쿠가와 쇼군의 호위 무사와 검술 지도역으로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도쿠가와 이에미츠 까지 보좌하였다. 에도 시대 야규 신음류(柳生 新陰流)의 번영의 초석을 놓았다. 검술가, 정치가로서 평가가 높다.
- 영양군 . . . . 5회 일치
[[경상북도]] 동북부에 있는 군. 면적은 815.14㎢ , 서쪽은 [[안동시]], 북쪽은 [[봉화군]], 남쪽은 [[청송군]], 동쪽은 [[영덕|영덕군]], [[울진군]]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2018년 2월 기준 약 1만 7천 명. 영양군보다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는 [[경상북도]] [[울릉군]]뿐이다. 그나마도 울릉군은 자그마한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이 영양군이 (섬을 빼고) [[육지#s-2|육지]] 중엔 사실상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셈이며, 이는 [[팔라우]]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다. 아울러 인구 밀도 21명/㎢로 전국에서 [[강원도]] [[인제군]]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시군이다. 참고로 인제군의 인구밀도는 20명/㎢. 그러나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인제군에서 군 복무를 하는 대다수 군인들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밀도는 오히려 영양군이 인제군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인구수에서 알 수 있듯 전국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하나로 이웃한 [[봉화군]], [[청송군]]과 함께 [[BYC#s-2|BYC]]로 불린다. 다른 지역에서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여 영양으로 가려면 대부분 이웃한 [[안동시]]를 경유해야만 한다. 고속도로, 철도편은 전혀 없으며 국도는 [[31번 국도]], [[88번 국도]]가 있다. 여기서 [[영덕군]]으로 가려면 [[918번 지방도]]를 이용하거나 청송군 진보면으로 빠져나와 [[34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영양군 관내에 있지는 않지만 [[2016년]] [[12월]]에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신설된 [[동청송·영양IC]]와 [[청송IC]] 덕분에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
[[시외버스]]는 모두 진보와 안동을 경유하여 [[동서울종합터미널|동서울]]이나 대구 [[북부정류장]]으로 간다. 이 중 북부정류장행은 일부 수비면에서 출발한다.
참고로 어지간한 [[구(행정구역)|구]]는 물론이거니와 인구가 많은 [[동(행정구역)|동]]의 학교보다 개수가 적다. 대표적으로 [[강서구(서울)|강서구]] [[화곡동]]과 더불어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 [[노원구]] [[상계동]]이 그 예이다.
- 영창대군 . . . . 5회 일치
[[선조]]와 [[김희정 (1992년)]] 사이에서 태어난 [[선조]]의 적장자. '''왕실에 태어난 것이 죄였던 아이'''.
>대군이 죽을 때의 나이가 9세였다. 정항이 강화 부사로 도임한 뒤에 대군에게 양식을 주지 않았고, 주는 밥에는 모래와 흙을 섞어 주어서 목에 넘어갈 수 없도록 하였다. 읍 안의 한 작은 관리로서 영창 대군의 위리(圍籬)를 수직한 자가 있었는데 불쌍히 여겨 몰래 밥을 품고 가서 먹였는데 정항이 그것을 알고는 곤장을 쳐서 내쫓았다. 그러므로 대군이 이때부터 밥을 얻어 먹지 못하여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하였다. 대체로 박동량은 훈척(勳戚)인 재신(宰臣)으로서 선묘(宣廟)가 유교(遺敎)한 뜻을 생각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감히 말해서는 안 될 일까지 끌어들임으로써 마침내 화를 궁금에 전가시켜 공론에 죄를 얻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단지 관작을 삭탈하고 문외에 출송할 것만을 청하였으니, 사정을 따른 자취가 있음을 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의 하교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그 뒤 >>정항 등의 일에 대해서는 며칠 동안 연계(連啓)하니, 그대로 따랐다.
>>지평 조정호(趙廷虎)와 유백증(兪伯曾)이 아뢰기를,
>>“요즈음 대간이 논하는 것을 보면 당을 비호하는 흔적이 뚜렷하니, 내가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해괴하게 여긴다. 정항 등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윤허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에게는 가볍게 처리한다.’는 분부가 어찌 유독 이이첨의 당만을 말한 것이겠는가. 오늘날의 행태로 보건대 조정에 당파가 없는 날은 오지 않을 듯싶다. 다시 이와 같은 기상을 볼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 오석락 . . . . 5회 일치
'''오석락'''(吳錫洛, 1934년 ~ 2014년 3월 25일)은 제20대 [[청주지방법원|청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전 대법원 판사와 동서지간이며, 전 법무장관의 매제다.<ref>[http://news.korean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10962 법률신문 2014년 4월 3일자]</ref>
193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난 오석락은 [[김천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김덕주]] 전 대법원장, [[최재호 (법조인)|최재호]] 대법관, [[이재성 (법조인)|이재성]] 대법관, [[김진우 (법조인)|김진우]] 헌법재판관, [[김태경 (법조인)|김태경]] 경기도지사, 김동환 변호사 등과 함께 30명을 선발한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에 임용되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청주지방법원|청주지방법원장]] 등을 지내다가 대학교로 가지 않고 동서인 [[김기홍 (법조인)|김기홍]]의 권유로 변호사를 개업해 문인구 변호사가 회장으로 있던 1987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1987년) 공보이사와 총무이사 겸 사무총장을 하다가 김선 변호사가 회장으로 재임하던 1995년에 부회장을 하였으며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 <미니스커트와 법정>(1986년, 법률신문)
* 변호사들이 이기주의와 냉소주의를 버리고 변호사의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 <신변호사도>(1987년, 일신사)
- 원피스/825화 . . . . 5회 일치
* 같이 잡혀온 시저 크라운은 "구속"돼 온 거라서 철창 신세. 그래도 일단은 상디와 같은 방에 있다.
* 비트와 고티는 그녀를 "사모님"이라 부르며 절절 맨다.
* 나머지 인원은 나미가 상디의 메모를 토대로 안전하게 조리해서 포식--누가 코마츠 좀 데려와라--
* 배에는 상디와 닮은 듯한 얼굴의 사나이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 어쨌든 로라가 샬롯 패밀리와 접점이 있을 거라는 추측은 맞아떨어졌다.
- 원피스/826화 . . . . 5회 일치
난데없이 제르마66의 배와 마주친 밀집모자일당
* 하지만 그는 "빈스모크 욘디"(윈치 그린). 본인은 "상디와 관계성은 비밀"이라고 말하지만 누가 봐도 동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역시 상디의 핏줄이라 그런지 나미와 캐롯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좋아한다.
* 그와중에도 지난 주에 독을 먹고 골골대던 루피는 이젠 완전히 죽을 판
* 그는 누군가와 통신하면서 "이제 어떡할 거냐 징베"라고 말한다.
- 원피스/827화 . . . . 5회 일치
* 일행이 페콤즈의 제안으로 변장하지만 루피와 쵸파는 폭주해서 마을로 돌입해 버린다.
* 이 마을에서는 무슨 초콜릿이든 마음껏 먹어도 좋지만 "기와초콜릿"이라는 지붕은 먹으면 안 된다. 비바람을 막을 수 없게 되니까.
* 페콤즈가 말하기가 무섭게 루피와 쵸파는 지붕까지 몽땅 먹어치워서 경찰에 잡힌다.
* 어째서 지붕까지 먹어치웠냐는 심문에 "너무 맛있어서"라고 답하는 쵸파와 루피.
* 푸딩은 루피가 경찰에게 "너무 맛있어서 다 먹어버렸다"라고 한 말이 기뻐서 도와준 것.
- 원피스/830화 . . . . 5회 일치
* 홀 케이크 아일랜드에 도착하는 밀집모자 일행. 해안가에 누군가 나와있는데?
* 아무튼 징베는 와다츠미와 함께 빅맘에게 방문하려 한다.
* 바다를 뒤덮은 "개미떼"와 싸웠다. 당분이 높은 이곳 바다는 낮에는 보통 바다지만 밤이 되면 굳어버리는 것. 일행은 불을 질러서 물엿바다를 녹여보려 한다.
* 페드로는 두 왕이 루피에게서 로저의 모습을 보았을 거라며 카이도와 싸움 이후엔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묻는다.
- 원피스/833화 . . . . 5회 일치
* 상디와 빈스모크 저지의 대결.
* 저지와 상디가 대결을 하는 한편 제르마 왕국의 "욘디성"에선 상디에게 작살난 욘디가 치료를 받고 있다.
* 마침 레이쥬와 함께 근처를 지나가던 저지.
* 그런데 달려들던 저지가 "벽"이란 한 마디를 내뱉자 구경하던 병사들이 스스로 달려나와 인간방패가 된다.
* 제르마1, 2와 욘디, 상디는 모두 네 쌍둥이. 상디는 삼남이다.
- 원피스/834화 . . . . 5회 일치
* 로드 포네그리프를 위해 잠입해 있는 페드로와 브룩.
* 잠시 병정들이 찾아와 타마고 남작과 따로 이야기하고 브룩과 페드로가 엿듣는다.
* 한편 홀케이크 아일랜드의 북동쪽 해안에 페콤즈가 잡혀와 있다.
* 시저는 "밀집모자 일행이 연구성과와 연구소를 부숴버렸다"면서 눈물을 짜기 시작한다.
* 이미 "캔디 대신"에게 명령해 기존 연구소와 완전히 똑같은 새로운 연구소를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 원피스/844화 . . . . 5회 일치
* 나미는 상디의 따귀를 때리며 작별인사와 "쓸데없는 짓"에 대한 사과를 남긴다.
* 나미는 어느새 상디에게 다가와 돌아서는 그를 불러세운다. 그리고 상디의 뺨을 때리며 작별인사를 한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남긴다. 욘디는 나미를 매서운 여자라 부르며 눈을 떼지 못하고 빈스모크 저지는 "겨우 쓸데없는 인연을 정리했다"고 빈정거린다.
|| 반드시 돌아와 상디! 네가 없으면
베라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연상되는 에피소드. 그때도 비슷하게 루피가 맞기만 했지만 이유는 전혀 달랐다. 상디가 일부러 일행을 떨어뜨려 놓기 위해 마음에 없는 짓을 한다는걸 알고 묵묵히 맞기만 했던 것. 간만에 심지가 굳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바로 전 에피소드에서 희대의 바보짓을 했지만--
그런데 이가 빠진 채 "모험은 끝나지 않았어"라고 외치는 루피의 얼굴이 묘하게 검은 수염과 닮은 점도 특이할 점. 마침 대사도 이때 티치의 대사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이점이 떡밥이 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
- 원피스/856화 . . . . 5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는 그가 [[몽키 D. 루피]]와 싸웠던 들판에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 미러월드의 [[쵸파]] 일행은 홀케이크 성 어디에도 [[상디]]와 [[몽키 D. 루피]]가 없자 당황한다. [[캐럿(원피스)|캐럿]]이 초상화를 들이대며 묻고 다녀도 성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이 "전에 지나갔다"는 말을 할 뿐,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이 없다. [[나미(원피스)|나미]]는 성이 아니라면 짐작가는 곳이 있다고 말한다. "아침에 둘이 싸운 장소", 홀케이크 성 인근의 들판이다.
* 빈스모크 일가의 남자들은 빅맘이 제공한 술집 여자들과 함께 술판을 벌이고 있다. 여자들은 벌써 술에 취해 쓰러졌고 [[빈스모크 욘디]]가 그걸 빈정거린다. 욘디는 이런 여자들 보다는 "상디의 동료 여자", 나미를 내놓으라며 웃는다. [[빈스모크 이치디]]와 [[빈스모크 니디]]도 맞장구를 치며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며 내일 나미를 넘겨달라고 교섭해 보겠다고 시시덕거린다.
* 방 안의 호미즈들은 물론 방 밖에서 "경비"라는 핑계로 감시하고 있는 체스병들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간부들에게 보고한다. 이들이 완전히 방심한 채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미 [[빈스모크 레이쥬]]가 있는 의무실에도 병력을 배치해놨다. 이런 사정은 꿈에도 모른 채 빈스모크 일가는 잠에 든다. 표면적으로는 아주 평온한 밤. 진실을 알고 있는 레이쥬는 생각에 잠겨 뜬눈으로 잠을 지샌다.
>하나, 저 멀리서 마중 와 준 내 배의 선장을
- 원피스/859화 . . . . 5회 일치
* 그 조건이란 [[시저 클라운]]의 맹독 가스탄 "KX런쳐"와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다.
* 문제는 빅맘이 발작을 일으키기 전까지 생기는 약간의 시간 동안 빅맘 해적단을 막아줄 방패가 필요한게, 그게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이 해줄 일.
중요한 건 이때 쇼크로 쓰러진 빅맘. 그녀는 이때 무릎을 꿇으며 무릎이 까져서 피를 흘렸다. 벳지는 빅맘도 과연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고 놀랐다고 한다. 이 상태의 빅맘이 평소와 같은 강인한 육체를 잃는건 자명하다.
* 9층 빅맘의 침실에선 빅맘이 가벼운 발작을 일으킨다. 병사들이 혼비백산해서 가보니 브룩이 가짜로 바꿔치기 된 걸 눈치 못채고 "해골이 죽어버렸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오늘은 다과회"라고 달래자 웨딩케이크를 떠올리곤 급빵긋한다. 병사들은 온 김에 "모건즈"란 사람이 손님으로 도착했다는 소식과 다른 내빈들의 도착을 알린다.
* 그리고 신부 푸딩의 방. 신부화장을 마치고 드레스까지 착용한 푸딩은 뜻밖에 우울한 모습이다. 니트로와 라뱐이 그녀에게 "메리지 블루"냐며 가볍게 놀린다. 푸딩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고 투정한다. 상디를 죽인 뒤 피가 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만은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원피스/862화 . . . . 5회 일치
* 결혼식 개시가 임박했는데도 [[몽키 D. 루피]]는 일어날 줄은 모른다. 시간에 맞추겠다고 장담했던 [[징베]]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무리 흔들고 때려봐도 루피는 여전히 잠꼬대만 한다. [[나미(원피스)|나미]]는 유혹의 숲 이후로 계속 뛰어다니기만 했으니 무리도 아니라며 이걸 깨우려면 고기라도 가져와야겠다고 한다. [[쵸파]]가 [[카포네 갱 벳지]]의 부하에게 고기를 구해줄 수 없냐고 요청하자 "지금 아침식사를 한가는 거냐"고 질색한다.
* 홀케이트 성의 요리장 "미식기사" [[슈트로이젠]]이 부하 요리사들과 춤을 추며 입장한다. [[원피스/858화|케이크를 만들 때 희한한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슈트로이젠과 부하들이 한소절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은 이 희한한 노래와 함께 초특대 웨딩케이크를 하객들 앞에 내놓는다.
>나와라! 축복의~
빅맘은 최고의 케이크와 최고의 결혼식을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건 최고의 살육쇼에는 비할 수 없다. 그녀는 결혼식을 기다려온 것처럼 잠시 후 일어날 깜짝 살육쇼를 기대하고 있다.
* 빈스모크 일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자리로 안내된다. 하지만 그 자리가 위험하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빈스모크 레이쥬]] 뿐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푸딩이 마음에 드는지 "저런 여자라면 상디대신 내가 결혼을" 하는 소리나 하다나 [[빈스모크 니디]]와 [[빈스모크 이치디]]의 비웃음을 산다. 신부 얼굴이 어떻든 빅맘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하니까.
- 유다인 . . . . 5회 일치
이후 아침드라마와 조연, 광고 쪽을 돌며 주로 활동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배우로서의 주가를 높여준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2011년 여주인공 혜화 역으로 출연한 [[독립영화]] '혜화, 동'이다. 이 영화를 통해 각종 영화제 신인여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2011년 제3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면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KBS 드라마스페셜 연작 시리즈인 '보통의 연애'와 SBS 주말연속극인 '[[맛있는 인생]]'에 잇달아 출연하며, 성공적으로 공중파에 안착하였다. ~~문제는 드라마가 망했다는 거..~~ 그래도 보통의 연애 같은 경우는 방영 당시에는 단막극이란 한계와 동시간대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에 묻혀 시청률 경쟁에서는 뒤쳐졌지만, 방영 후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유명해졌다. 이 작품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유다인이라는 배우를 확실히 알릴 수 있게 되었고, 결국 2012년 [[KBS 연기대상]]에서 연작/단막극부문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게 된다.
|| [[2005년]] || 야수와 미녀 || 미술관 안내원 || ||
|| [[롯데제과]] || [[와#s-2]] || ||
- 유미(가수) . . . . 5회 일치
당시 뮤직비디오에는 [[정우성]], [[전지현]]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수의 CF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노래와 뮤직비디오의 인기에 반해, 가수 유미의 방송 활동은 거의 없었다.[* 앨범 발매 후 뒤늦게 동일 앨범 수록곡인 '차라리'와 함께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엠넷, KM, MTV 등에 몇 차례 출연한 것이 전부다.]
2006년에는 [[김아중]], [[주진모(1974)|주진모]] 주연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는 주연배우 [[김아중]]의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영화에서 김아중이 직접 노래를 소화하는 설정이었기 때문인데 그 가창력이 웬만한 가수들 뺨칠 정도로 엄청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OST에도 참여했는데, 영화와 함께 OST도 대박을 치면서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유미가 부른 곡인 '별' 또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수로서 공백 기간 동안에는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배우 [[김아중]],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에 배우 [[김정은(배우)|김정은]]의 노래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특히 2세 아래의 배우 [[김아중]]과는 영화를 통한 보컬 트레이닝을 인연으로 친분이 두텁다. 불후의 명곡 첫 출연 섭외 전화를 받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고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서 김아중이 직접 언급하였으며, 불후의 명곡 [[김민종]]편 녹화날에는 유미의 초대에 [[김아중]]이 기꺼이 응원하러 와 주기도 하였다.
2016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독을 품은 백설공주]]'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1라운드에서 [[슈퍼 히어로(복면가왕)|슈퍼 히어로]]와 듀엣을 한 결과 2라운드에 진출했으며 [[봄처녀 제 오시네]]에게 7표 차로 밀렸다.
- 유지태 . . . . 5회 일치
2003년 [[단편 영화]]《자전거 소년》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그해 부산아시아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음으로써 영화 감독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2005년《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나도 모르게》, 2009년《초대》의 단편 영화를 발표했고, 네 번째 단편 영화《초대》는 2009년 7월, 제5회 인디판다 국제 단편 영화제와 제8회 제주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유지태, 네 번째 작품 제주영화제 출품|성=|이름=스포츠월드 황인성 기자|날짜=2009-08-19|출판사=세계일보|확인날짜=2010-04-17}}</ref><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7300038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감독 유지태, 인디판다 국제단편영화제 4연속 초대|성=|이름=OSEN 조경이 기자|날짜=2009-07-30|출판사=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확인날짜=2010-04-17}}</ref>
|2016||tvN||[[굿 와이프 (2016년 드라마)|굿 와이프]]||이태준||
| ''[[굿 와이프 (2016년 드라마)|굿 와이프]]''
- 윤다훈 . . . . 5회 일치
* 1999년 [[MBC 베스트극장]] -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
* 1999년 KBS 신 TV문학관 - 아우와의 만남
* 2006년 SBS [[돌아와요 순애씨]] - 윤일석 역
무릎팍 도사에서 본인의 전반생을 회고한 바에 따르면 배우가 너무 되고 싶어 방송국을 기웃거리다가 경비아저씨와 친해져 방송국을 자기 방처럼 들락날락거렸다거나, 엉겁결에 드라마 엑스트라로 캐스팅됐다거나, 그 드라마(반공물)에 인민군으로 폭격당하는 장면에서 각본대로 안하고 오버하다가 감독에게 따귀맞고 잘렸다거나 하는 별의별 에피소드가 많다. 또 한때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정수기 외판원으로 일했는데 본인의 연기와 전략이 잘 먹혀 꽤 수입을 벌었다고. 또한 무릎팍도사의 초기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런 에피소드를 맛깔스럽게 잘 풀어냈는데 당시 윤다훈이 폭행사건을 일으켜 복귀한 참에, 이미지가 엄청 회복이 된 계기가 됐다.
- 윤진영(코미디언) . . . . 5회 일치
개그맨의 꿈을 안고 상경해서 대학로에서 공연하다가 2003년 말 [[김필수]], [[김재우]], [[엄승백]], [[심진화]]와 한 팀으로 SBS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으며 SBS 7기 희극인으로 방송계에 입문한다.[* 이 멤버 중에서 김필수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 사이. 둘이 함께 상경해서 반지하 생활을 하며 얼음 배달, 김밥 만들기, 공사장 노가다 등 온갖 잡일을 하며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다. 이때 이 둘과 같은 반지하에 살았던 사람은 [[김병달]].] 팀의 수상작 '''병아리 유치원'''으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데뷔하는데, 선생님만 없으면 본색을 드러내는 조폭 유치원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너로 인기를 얻게 된다.[* 선생님은 심진화, 두목은 김재우, 나머지 셋은 똘마니 유치원생들이었다.]
주로 김필수와 함께 출연하며 '''어쨌든 로보캅'''이나 '''비밀요원 H.I''' 등을 진행하며 인기를 끄는데, 주된 패턴은 김필수의 병신짓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상적으로 보이는 패턴이었다. 그렇다고 본인도 안 망가지는 건 아니라서 김필수와 싸운다던가 [[등짝을 보자|서로 부둥켜안고 애정행각을 한다던가]] 등 잘 생긴 외모를 여러 번 망가뜨렸다. 다른 SBS 공채 7기 개그맨이 그렇듯 윤진영 역시 [[박승대]]의 '''스마일매니아''' 소속이었지만 박승대의 노예 계약이 발목을 붙잡고 만다. 내용인 즉 박승대가 7기 개그맨들을 무보수로 공연을 시키며 온갖 폭언을 일삼고 방송 출연 기회를 가지고 협박을 했다는 사건. 이때 윤진영은 다른 동기들과 함께 박승대에게 항의를 하며 기자회견을 했고 결국 스마일매니아를 탈퇴해서 다른 동기들과 함께 홍대의 '''개그스테이션''' 기획사에 합류한다.
박승대 사건 이후 예전 같은 활약은 보이지 못하다가 2009년 3월 3일 입대했다.[* 같은 날, 오랜 단짝인 김필수도 입대했다. 하지만 동반 입대는 아니었다. 김필수는 강원도에, 윤진영은 경기도에 입대했기 때문.]8사단 수색 대대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야 무릎 상태가 심각해서 공익으로 복무할 수 있었지만 본인이 현역 복무를 선택했다는 게 알려진다. 연예병사로서 군 복무를 끝마쳤는데, 선임으로는 [[강타]]가 있었다고 한다. 전역하니 웃찾사가 사라져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다가 TVN [[코미디빅리그]]가 신설되자 김필수, [[조우용]], [[박충수]]와 함께 '''따지남'''으로 방송계에 복귀한다. 동기들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 자신의 이름을 알리다가 [[환상거탑]]과 [[푸른거탑]]에 [[윤진영(푸른거탑)|고정 출연]]한 것을 계기로 현재는 배우 활동 중이다.
- 율리우스 네포스 . . . . 5회 일치
네포스의 출신은 일치하지 않는 사료가 많아서 확실하지 않은데, 달마티아 지역의 로마 귀족 출신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의 삼촌은 달마티아 총독 마르케리누스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스트라테고스|서로마 제국의 군사장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부하로서 아에티우스가 발렌티아누스 3세에게 암살된 뒤 반란을 일으켜, 달마티아 지방[* 이탈리아 반대편에 있는 아드리아 해 해안 북부.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일대.]을 영지로 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마르케리누스의 통치는 여러 황제들에게 승인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네포스는 동로마 황제 레오 1세의 조카와 결혼하여, 동로마 제국의 권력 중심부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서로마는 부르군트 족에게 추대된 글리케리우스(Glycerius) 황제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레오 1세와는 대립하고 있었다. 서로마 황제로 추대된 네포스는 글리케리우스를 공격하였으며, 부르군트 족이 전투를 거부했기 때문에 글리케리우스는 별다른 저항도 없이 항복했다. 항복한 글리케리우스는 달마티아에 유배당해 [[주교]]로서 살았다.
네포스는 서로마 제국과 대립하던 여러 게르만 부족들과 화해 조치를 하고, 나름대로 제국 서부에서 기반을 다지려고 애썻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은 동로마의 간섭을 싫어하여 네포스와 대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네포스를 쫓아냈던 오레스테스는 오도아케르의 반란으로 살해당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역시 폐위당하고 만다. 476년, 오도아케르는 로마 원로원을 통하여 제논 황제에게 서로마 제국 제위를 반환하고,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제논은 오도아케르의 요구를 대체로 받아들여, 그를 "이탈리아 장관(Dux)"으로 임명하여 이탈리아 통치권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네포스에게 배려를 하여, 서로마 황제에게도 충성을 바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오도아케르는 네포스와 제논에게 모두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흔히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알려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와, 율리우스 네포스 사이에서는 서로 '마지막 서로마 황제'로서 어느 쪽이 정당성이 강하냐는 논쟁이 있다는 것이다.--쓸데없는 경쟁을--
- 은혼/582화 . . . . 5회 일치
* 카무이는 가구라와 싸우며 과거 우미보즈와 대결과 결국은 지키지 못했던 어머니를 겹쳐본다.
* 우츠로와 우미보즈의 대결을 지켜보던 [[아부토]]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꼼짝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개구리가 꼼짝 못하는건 두려워서가 아니라 반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대결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 카무이가 가구라와 코우카의 목소리를 같다고 했기 때문에, 애니화에서도 코우카의 목소리는 가구라와 마찬가지로 [[쿠기미아 리에]]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
- 은혼/586화 . . . . 5회 일치
승패를 내다볼 수 없는 긴토키와 카무이의 대결.
* 다시금 격돌하는 카무이와 긴토키.
* 가구라가 아부토와 싸웠을 때처럼 전혀 다른 자아(폭주)가 나타난 듯한데
- 사카타 긴토키. 카무이와 싸우며 그 격차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 일반적인 야토에게선 볼 수 없는, 우미보즈와 코우카의 자식이기에 가진 재능인 듯
- 은혼/587화 . . . . 5회 일치
* 신파치와 가구라는 이 모습을 보고 요시와라에서 가구라가 아부토와 싸웠을 적 드러냈던 모습임을 확신한다.
* 아부토는 가구라와 신파치에게 도망치라고 한다.
* 야토의 힘에 몸을 맡길 정도로 가족과 싸우는 것이 아팠냐고 하면서, "이들도 아픈건 마찬가지지만 그걸 견뎌내면서 너와 싸운 것. 가족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 은혼/591화 . . . . 5회 일치
[[은혼]] 591훈. '''피와 혼'''
* 사방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져서 오보로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추격대 위로 내리꽂힌다.
* 목에 칼이 꽂혀있는 오보로와 쓰러진 다카스기.
* 다카스기와 오보로의 대결은 승부가 갈리고, 오보로는 독백한다.
- 오보로. 다카스기와 승부에서 결말을 내며.
- 은혼/593화 . . . . 5회 일치
밝혀지는 우츠로와 쇼요의 진실
* 오보로는 마지막으로 다카스기를 통해 우츠로와 쇼요의 진실을 전한다.
* 그는 죽기 전 다카스기에게 우츠로와 쇼요의 진실을 전하고자 한다.
* 사람들은 갖은 방식으로 그를 죽이려 했고 그는 그때마다 다시 살아났다. 그럴 수록 사람들의 증오와 경계는 심해졌다.
* 스포일러에서 "현재의 우츠로는 요시다 쇼요와 같은 인격"이란 정보가 나갔는데, 엄밀히 말하면 틀린 스포.
- 은혼/594화 . . . . 5회 일치
* 한편 낙양 원정을 마친 우츠로는 지구에서 천도중의 수노부와 만난다.
* 요시다 쇼요는 우츠로와 싸움에서 사라졌지만 그 저항이 쇼요의 제자들을 만들었고 그 혼은 이곳에 있다고 말한다.
* 하루사메와 천도중이 손잡게 된건 다름아닌 우츠로에 의해서였다.
* 천도중은 여러 별의 아르타나를 관리하는데 이누가미의 존재도 아는 그들이 우츠로와 같은 아르타나의 화신격인 존재에 대해서 몰랐던 걸 보면, 이들이 흔하게 존재하지는 않는 걸 알 수 있다.
* 황안의 경우 특이하게 코우카는 그러한 부류의 일족이라고 소개했었는데, 그들 모두가 우츠로와 같은 체질은 아니었을 것이다.
- 은혼/598화 . . . . 5회 일치
* 긴토키는 이 와중에도 "터미널은 부순 주제에 내 가랑이의 터미널은 못 부수냐"고 섹드립을 치며 도발하고 다닌다.
* 위급한 와중에 터미널이 고장난 긴토키.
* 천인이 들쑤시고 다니는 가부키쵸와, 그것을 바라보는 주민들
* 사이고와 카츠오는 타개책이 있는지 묻는다.
* 사신은 바로 가츠라와 다츠마.
- 은혼/601화 . . . . 5회 일치
* 신파치와 가구라는 하루빨리 우츠로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지만 그들의 리더는 은혼 실사화 소식에 정신이 팔려있다.
* 신파치는 자신은 그저 "이상한 사무라이"의 등을 쫓아왔을 뿐인데, 어느새 여기까지 와있었다고 말한다.
* 하지만 가구라는 첨부터 있을 자리가 따로 있던게 아니라며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눌러 앉았던 거라고 말한다.
* 가구라와 신파치는 결전의 때가 오고 있음을 느끼며 해방군이 멈춘 지금 우츠로를 찾아내 결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 와중에도 희망 캐스팅은 잊지 않는다.
- 은혼/614화 . . . . 5회 일치
* 그러면서 두 아우야 말로 서로 도우면 더 좋은 왕이 될 것이며 그처럼 이 지구도 친구로서 도와달라며 지구의 동맹이 되어주길 청한다.
* 네스를 앞세운 부하들은 오우고우 왕가의 오랜 공백기간과 바보황태자(하타황태자)가 망친 국정을 논하며 속히 돌아와 왕위를 이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고사한다.
드라고니아는 자신은 엘리자베스라며 이미 왕위에 오를 자격을 잃은 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왕이 되진 못해도 그들의 왕을 되돌리기 위해 싸워줄 수는 있다고 말한다. 바로 하타 황태자와 바루카스 황태자다. 그들은 각기는 부족하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아니 오우고우 별의 사람들이 받쳐주면 더욱 좋은 왕이 될 거라 말한다.
>그러니까 너희도 나와 함께 싸워주지 않겠나.
엄청난 에피소드가 나와버렸다.
- 이득을 준 배신자를 처단하기 . . . . 5회 일치
* A와 B가 대립을 하고 있다.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 자신과 대립하게 된 [[동생]]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오슈 후지와라 씨]](히라이즈미 정권)[* 일본 동북부를 지배하고 있었다.]에 의탁하여 있을 때, 후지와라 씨에게 요시츠네를 송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후지와라 씨에서 요시츠네를 살해하고 그 목을 보내자, 오히려 자신의 가인(家人)인 요시츠네를 공격하였다는 명분으로 오슈 후지와라 씨를 공격한다.--어쩌라고--
- 이문식(배우) . . . . 5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본디 [[대학로(서울)|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연극 배우였다. 대학 졸업 후 극단 '한양 레퍼토리'를 통해 전문 연극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유해진]]과 같이 대한민국 조연배우의 양대산맥이며 주로 조연 위주로 활약을 하는 배우이다. 영화계 대표적 [[단신]]배우로 찌질하거나 소심한 개그캐릭터에서 악랄한 악당역할도 잘 소화하다보니 그가 조연으로 출연하는 작품들은 전부다 성공하는데[* 다만 유해진처럼 메가히트하거나 화제가 된 작품은 없다. 유해진보다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이유.] 그것 때문에 주연을 시켜보면 어떨까 해서 주연을 시켜봤다. 그게 '''[[플라이, 대디, 플라이#s-3|플라이 대디]]'''와 [[형사 공필두]]라는 영화였는데 결과는 흥행 대실패.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이문식은 조연으로서나 어울리지 주연은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케이스로는 대표적으로 [[김수로]]가 있다. 또한 이문식의 경우 [[SNL 코리아]] 시즌 4 2화에서 이문식이 호스트로 나왔는데 이와 관련한 자학개그가 나왔다.]
외모와 키 때문에 [[김병만]]과 묘하게 닮았다. [*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류담]]과 콤비를 이뤘을때 특히 헷갈려한 사람들이 많다.--[[달인(개그 콘서트)|캐릭터도 비슷하다보니]]--]
* [[KIA 타이거즈]]팬으로 유명하다. 225블럭 기아 응원석에 앉아서 2016 기아vs엘지 와일드카드 2차전에 출연했다.
- 이상무(만화가) . . . . 5회 일치
1946년 김천 출신으로 1963년 고교 재학시절, 대구 [[영남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칸 만화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상경, [[박기준]]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월간 "여학생"의 "[[로미오와 줄리엣|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하였다. 이상무라는 예명도 이때 얻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만화를 주로 연재했고, 1980년대 성인 만화 잡지가 탄생하자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골프만화를 연달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가 유명해 진 계기는 바로 스포츠만화였다. 특히 1970년대 [[고교야구]]붐을 탄 야구만화에서 그는 독보적이었다. 1980년대 [[이현세]]가 나오기 전까지 그는 야구만화의 독보적 일인자였다. 하지만 야구만화만 거의 그리던 허영만이나 이현세랑 달리 [[축구]]도 좋아해서인지 독고탁이 나오는 축구만화도 제법 여럿 그렸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 [[독고탁]]은 그의 이름보다도 더 유명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그야말로 [[허영만]]을 콩라인으로 만든 만화가였다. 허영만 스스로도 자신이 늘 편집장에게 이상무 씨에게 밀려요라는 말을 지겹게 들어서 타도 이상무! 라고 그림을 그렸더니만 나중에는 이현세가 나와서 또 2인자 신세더라며 두 이씨(물론 보시다시피 이상무는 필명)에게 진다고 한탄했다고...
드물게 느와르물을 그린 적도 있다. 검은 휘파람이라는 작품으로 무대가 미국이고 총격이 난무하는 마피아물이다 보니 독고 탁이 안 나오는데, 주인공이 모습도 그렇고 이름이 탁 데커.(...)
* 노미호와 주리혜
- 이상휘 . . . . 5회 일치
[[이명박정부]]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이명박정부]] [[청와대]] 춘추관장 ||
[[2009년]] 3월에 [[이명박정부]]로부터 [[청와대]] 춘추관 관장 및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친이|친이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포항 북 지역구로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박계]]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후 [[2014년]]에는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아 [[동작구 갑]]으로 출마했지만 국정원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병기(정치인)|김병기]]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에는 [[이정현(정치인)|이정현]] 대표에 의해 새누리당 원외대변인으로 임명되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대변인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했다.
- 이성민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서 [[영남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영남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직구 스피드가 147 km/h에 이르고 변화구 제구도 수준급이어서 스카우트 사이에서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 이전 부터 대졸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2012년]] [[8월 20일]]에 열린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윤형배 (1994년)|윤형배]]와 함께 특별 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208/h20120820204711111960.htm "4할 승률 위하여" 발톱 드러낸 NC] - 한국일보</ref> [[2012년]] [[12월 5일]]에 열린 2012 [[야구인의 밤]]에서 우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9144 '야구인의 밤' 영남대 이성민, 우수 선수상 수상 ] - 스타N뉴스</ref> [[대한민국의 대학 야구 대회|대학리그]] 4년 동안 17승 15패, 252 1/3이닝, 222탈삼진, 89볼넷,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였다.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특별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즉시 전력감 [[투수]]로 주목받았으나, 기대와 달리 시즌 초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2013년]] [[4월 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하여 7회에 구원 등판하였으나 [[박종윤 (1982년)|박종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해 구단 첫 패전 [[투수]]가 됐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30402/54154104/1 ‘제 9구단’ NC, 1군 데뷔전에서 롯데에 영봉패] - 스포츠동아</ref> 이후 필승계투로 활동하였으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부진한 투구와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잠시 C팀(2군)에 내려가기도 했으며, 자신감을 되찾은 후 [[7월 14일]] 올스타 휴식기를 맞아 [[이재학 (야구 선수)|이재학]]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된다.
[[2015년]] [[5월 2일]]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5:4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7569615 롯데-KT, 5대 4 대형 트레이드 단행] - 연합뉴스</ref> 이적하자마자 9경기 연속 평균자책점 0.00대 행진을 하며 [[롯데 시네마]]라는 조롱성 별명을 얻은 [[롯데 자이언츠]] 불펜진에 큰 힘이 되었다. 5월 한달간 14경기에서 2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1.80의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6월에도 역시 7경기에서 1승 1패,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08의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불안한 불펜진의 핵심 투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7월과 8월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15경기에서 2승 3패, 1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9.45를 기록하며 부진에 늪에 빠졌다. 하지만 9월에 다시 컨디션을 되찾으며 12경기에서 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03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2015 시즌 61경기에 나서 5승 7패, 7홀드, 4세이브,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 이열희 (1924년) . . . . 5회 일치
그의 증조부 [[이동진]]과 할아버지 소남 [[이일우]]는 구한말~일제시대의 사업가로 [[우현서루]]를 건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모부 윤홍열은 미군정기 때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5.16 군사 정변]]에 참여한 군인 출신 사학자 [[박창암]]의 처 이겸희는 그와 6촌간이었다. 고모 이숙경의 며느리는 [[1945년]] [[8.15 광복]] 후 초대 [[대구광역시장|경북 대구시장]]을 지낸 [[허억]]의 딸이었다.
[[1946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대]] [[치과]]대학 조교가 되었으며, [[1947년]] 대구의학전문학교 치과학교실 조교가 되었다. 그해 [[3월]] 다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육군병원]]의 외과, 치과 의사로 근무하였다. 육군병원에 근무할 당시 구강외과를 설립하고 60년대초 구강외과내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신설하였다.<ref name="imails">[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5733&yy=1999 지방 국립대 7곳 치대 설립 '산파역'] 대구매일신문 1999년 06월 08일자</ref> [[구강외과]]를 전공한 그는 구강성형 분야의 완전한 의술확립을 위해 다시 경북대의대에 입학, 다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다녔다. 경북대 의대 재학 중에는 외과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ref name="imails"/> 그 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석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제25육군병원에서 [[하버드 대학]] 출신인 [[치과]]전문의 [[마틴 D. 해치]](Martin D. Hatch) 박사의 지도 하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수학하였다. 이후 그는 육군 제1병원에 근무하였으며, 제1병원 재직 중 악안면성형 및 구강외과를 창설했다. 당시엔 전쟁 당시 발생한 부상이나 상처 등으로 턱, 안면 등에 변형이 생긴 환자들이 있었다.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마틴 D. 해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그에게 수술할 때 사용했던 소수술기구와 성형외과학서적 5권을 그에게 특별히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53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경북대 의대에 발을 디딘 그는 당시 [[치과의사]] 부족으로 불법 치과의료 행위가 극성을 부리자 치과대 설립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는 인근 국가의 인구 대비 치과의사수를 파악, 직접 [[보건사회부]]와 [[문교부|교육부]] 등을 찾아 치과대 설립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ref name="imails"/> 그뒤 1973년 전국 7개 지방국립대에 치의예과 설립 허가를 얻어내고 79년에는 치과대로의 독립을 이뤄냈다.<ref name="imails"/>
그의 고모부는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과 대구시보사 사장을 지낸 윤홍열로, 바로 [[충청남도]] [[공주]] 규수인 서순애 여사를 상화와 중매한 장본인이다. 윤홍열의 딸 윤덕주는 [[서정귀]] 전 호남정유사장과 결혼,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지냈다.<ref name="daemyonh"/>
- 이영훈 (경제학자) . . . . 5회 일치
'''이영훈'''(李榮薰, [[1951년]] [[9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토지소유와 농업경영'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안병직]] 교수의 수제자로, 뉴라이트 진영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이끌며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의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와 여러 논문에서 이영훈은 무력이 아니라 법과 무역을 통해 전개된 식민지적 수탈을 논하였다.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영훈은 정신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점을 명확히 밝히고, 위안부는 강제 징집된 것은 아니나 배후에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2004년]] [[9월 2일]]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일제 식민 통치를 찬양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와 동일시 하였다.<ref>{{뉴스 인용
[[2008년]] [[11월 25일]] [[서울시]] 교육청의 "현대사 특강"에서 강사로 배정되었으나, "친일", "우편향" 논란이 일어나자 [[조갑제]] 대표와 함께 배제되었다.<ref>{{뉴스 인용
- 이인 . . . . 5회 일치
'''이인'''(李仁, [[1896년]] [[10월 26일]] ~ [[1979년]] [[4월 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법률가, 정치인이다. 자(字)는 자옥(子玉), 호(號)는 애산(愛山). [[일본]] 유학 후, [[192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개업하고 이후 [[일제 강점기]] 당시 [[김병로]], [[허헌]]과 함께 독립운동가 및 애국자, 사회저명인사들을 상대로 무료변호를 하여 등과 함께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을 거절하였고, 해방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에 가담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국회의원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49년]] 7월에 [[반민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어 반민특위를 와해, 해체시켰다.<ref>{{서적 인용
이인은 [[1896년]] [[10월 26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사일동(射一洞)에서 아버지 이종영(李宗榮)과 어머니 연일 정씨 정복희(鄭福姬)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 이관준은 영남의 명망가이자 [[성리학]]자였고, 삼촌 [[이시영 (1882년)|이시영]]은 독립운동가로 순국하였다. 아버지 이종영은 [[대한제국]] 당시 애국 계몽운동단체인 [[자강회]](自彊會)와 [[대한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계몽운동가였다.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하면서도 그는 국선변호인이 아님에도 변호비용을 받지 않아 독립지사와 민중들의 감격을 받기도 했다.
1954년 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57년에는 [[이범석]](李範奭) 등과 함께 범야세력 통합운동을 벌였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재야정치인들과 함께 [[이승만]](李承晩)의 하야와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참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3년 [[민정당]](民政黨) 창당에 참여하고 최고위원이 되었으나 범국민단일야당운동 추진에 실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1965년]] 이인은 [[안재홍]] 사망 소식을 접하고, [[서울특별시|서울]] 정의여고 강당에서 그의 장례식을 집행, 주관하였다. 당시 [[안재홍]]은 자진월북자라는 오해와 편견으로 금기시되었고, 꺼려했다. 그러나 이인은 [[이범석 (1900년)|이범석]] 등과 함께 [[안재홍]]의 시신없는 장례식을 진행하였다. 군사정권은 그의 의도가 불순함을 의심하여 내사하였으나 혐의점을 찾지는 못하였다.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를 결성했으며 [[국토통일원]] 고문에 선임되었다. [[1974년]]에는 [[국토통일원|통일원]] 고문에 재선임되었다.
- 이인영(정치인) . . . . 5회 일치
제17대 국회 민족화해와 번영을 위한 남북평화통일 특별위원회 위원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현행법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이 지급되는 대상 사업의 범위와 기준보조율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으나, 중앙 및 지방정부의 예산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인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 범위와 각 사업별 국고 보조율은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임. 한편, 양로시설을 제외한 노인시설 운영사업은 보조금 지급을 제외하고 있음. 그런데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일부 지원하여 종교시설 유휴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노인복지를 증진할 필요가 있음. 주요내용 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 지급 제외 사업, 각 사업별 기준보조율을 법률로 상향규정함(안 제9조제2항?별표 1?별표 2 신설). 나.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 운영사업을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에 포함함(안 별표 1 제122호 신설)]
- 지역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최근 각 종교단체는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는 종교시설을 활용하여 문화복지의 증대를 도모하는 봉사적 차원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도들과 일반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고 있음. 특히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종교시설은 부족한 문화기반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 그러나, 현행법에 따른 생할문화시설의 범위에는 종교시설이 누락되어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상·재정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종교시설은 유휴공간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음. 이에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종교시설을 포함하고 공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임(안 제2조제5호)]
- 이종원 (1953년) . . . . 5회 일치
[[서울대학교]] 공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복역. 중퇴후 [[1982년]] 도일했다.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졸업. [[도쿄대학교]] 법학정치학연구과 정치학 전공 석사 과정 수료. 법학 박사 학위 취득. 도쿄대 법학부 조교, [[도호쿠 대학]] 법학부 조교수, [[릿쿄대학교]] 법학부 교수, 2012년 4월부터 [[와세다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 교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객원연구원. [[아사히신문]] 아시아네트워크 객원연구원.
* [[와다 하루키]]
* [[와세다 대학]]
* [[와세다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
[[분류:일본의 정치학자]][[분류:일본의 역사가]][[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대학 교수]][[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국제 기독교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교수]][[분류:도호쿠 대학 교수]][[분류:릿쿄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혜숙(영화배우) . . . . 5회 일치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1992년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92년 4월 17일 화진 영화사의 사장이었던 한기은씨와 [[결혼]]하면서 잠정 은퇴하였다가 1994년 KBS 아침드라마 《창밖에 부는 바람》의 여주인공 역할로 복귀하였다.
* [[금 나와라, 뚝딱!]] - [[장덕희]]
* 와니와 준하 - 와니 엄마(특별출연)
- 인종개량 . . . . 5회 일치
[[후쿠자와 유키치]]와 모리 아리노리는 인터넷에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인과 서양인과의 잡혼을 통한 인종개량을 주장한 적이 없다. 영문과 일어 어느쪽에서도 관련 근거를 찾을수 없다. 아마 타카하시 요시오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제자란 점과 모리 아리노리가 극단적인 영어 공용어화를 주장했다는 점 때문에 루머가 퍼진듯하다. 단, 건강한 일본인끼리의 결혼이나 의식주의 개량을 통한 것은 주장했을 수도 있다.
일본인의 의식주의 개선을 통한 환경개량은 괜찮은 호응을 얻었을지 몰라도 타카하시 요시오가 주장하는 서양여자를 수입해와 잡혼을 통해 혼혈로 일본인종을 개량하자는 주장은''' 당시에도 극단적인 개소리로 취급됐고, 단 한번도 일본정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시행된적이 없다.''' 애시당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일본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사실이다.
* 혼혈을 통한 인종개량 같은 극단적인 주장은 사실 근대 일본에서도 그리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이었고, 실제로 정책적으로 옮겨진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가 와전되었는지 한국 인터넷에서는 일본인들이 개화기에 '혼혈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는 펼쳤다는 루머가 퍼져 있다.[[http://bobaedream.co.kr/view?code=strange&No=363548&rtn=%2Fmycommunity%3Fcid%3Db3BocWlvcGhyM29waHFnb3BocW5vcGhxb29waHFxb3Boc2ZvcGhza29waHNmb3Boc2g%3D (참조)]][[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freeboard&no=1073574 (참조)]]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5회 일치
* 절체절명의 상황, 어디선가 얼음마법이 날아와 알로 변한 사람들을 얼려버린다.
* 풀카운터로 강화된 마력이 몬스피드와 데리엘을 덮친다.
* 마가렛왕녀는 길선더와 함께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말하며 굳은 유대를 보인다.
* 스포에서는 몬스피드와 데리엘의 생존에 대한 서술이 있었지만 본편엔 보이지 않는다.
* 그레이로드의 정체와 계금이 공개. 계금은 불살, 그의 앞에서 살생을 금하는 위협적인 계금이다.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5회 일치
* 할리퀸과 디안느는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몸으로 싸워 당대의 십계 배신의 [[카르마디오스]]를 쓰러뜨린다.
* 싸움이 끝나자 인간 생존자가 하나둘 나타난다. 그 중에 "로우"라는 젊은이가 다가와 감사를 표한다. 어딘지 현세의 [[반(일곱 개의 대죄)|반]]을 닮은 젊은이다. 그는 일행을 "스티그마"(빛의 성흔)가 아니냐고 묻는다. 물론 이 시대가 처음인 디안느와 킹은 알지 못하는 이름이다.
스티그마는 여신족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연합군이다. 여신족, 요정족, 거인족이 주축이다. 둘은 몰랐지만 일행은 스티그마 소속이었다. 멜리오다스가 마신족이 침략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왔다며 로우와 인사를 나눈다. 로우는 생존한 인간 전사들을 이끌고 자신들도 합류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멜리오다스는 기꺼이 승락한다.
뤼드셀은 그녀와 달리 거만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인간들에게 "상처입은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정중히 예를 표하고 합류를 환영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멜리오다스는 어딘지 불신하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는데.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5회 일치
디안느와 할리퀸은 고서가 십계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나서야 경계한다. 고서는 자신이 십계인걸 모르냐고 오히려 이상해한다. 할리퀸은 그가 "십계가 아니라 일곱개의 대죄 멤버"라며 항변하지만 디안느가 그런 언쟁보다는 은총의 빛으로 향해야 한다고 가로막는다.
* 메라스큐라도 고서의 조종을 받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모든건 고서의 음모였다. 그녀가 사대천사와 대치하던 중 갑자기 이탈한 것도, 이런 곳에서 마계로 향하는 문을 만들게 된 것도 그랬다. 게다가 이것은 "마계"로 가는 문이 아니다. 이건 "마계의 감옥"으로 향하는 문이다.
* 진짜 고서의 움직임은 할리퀸, 디안느와 대치하고 있는 "가짜" 고서와 연결되어 있었다. 할리퀸 입장에선 고서가 갑자기 아무 것도 없는 데다 대로 혼자 떠드는 걸로 보였다. 그건 은총의 빛 쪽에서 메라스큐라를 상대로 말하는 모습이었다.
- 장수원 . . . . 5회 일치
[[장수원]]은 [[경기도|경기]] [[부천시|부천]]에서 출생하였으며를 진학하였으나 연예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워 자퇴, 검정고시를 치뤘다. 이후 [[경희대학교]]에 진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당시 연예인이 꿈이었던 [[장수원]]은 우연히 [[젝스키스]]의 멤버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과 오디션을 보러왔다가, 소속사 사장과 멤버 모집 당시 멤버를 같이 고르던 [[강성훈]]에게 특별히 할 줄 아는것이 없다는 솔직한 대답과 깔끔한 외모가 소속사와 멤버 [[강성훈]]의 마음에 들어 혼자 발탁되었다고 한다.
2016년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2"에서 [[젝스키스]]가 재결합하였다. 이후 [[YG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체결하여 《[[2016 Re-ALBUM|Re-Album]]》, 《The 20th Anniversary》 등을 발매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제이워크]]로의 활동은 당분간 휴식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젝스키스]]가 해체하고 재결합하기 이전까지, 일반인이 된 [[고지용]]을 포함하여 모든 멤버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며 멤버들간의 우정을 유지하는 데에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장수원]]은 2013년 드라마 《[[사랑과 전쟁]]》 아이돌특집 3탄에 [[제국의 아이들]] [[문준영]], [[걸스데이]] [[유라]]와 함께 출연하였으나 경직된 제스쳐와 표정, 대사처리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누리꾼들이 이를 ‘로봇 연기’라고 부르고 즐기면서, [[장수원]]은 ‘로봇 연기의 창시자’, ‘로봇 연기의 달인’, ‘장로봇’ 등의 별명을 얻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앞뒤가 안 맞잖아” 등의 유행어도 생겨났다.
* 1998년 - 뮤지컬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 장순왕후 . . . . 5회 일치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조선 예종|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이며,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절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야사에서는 장순왕후와 그의 동생 [[공혜왕후]], 형부 [[조선 덕종|덕종]](의경세자), 남편 [[조선 예종|예종]]과 아들 [[인성대군]] 등 [[조선 세조|세조]]의 자손들이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이 [[조선 단종|단종]]을 억울하게 죽인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 언니 : 고령부원군 [[신숙주]](高靈府院君 申叔舟, 1417~1475)의 장남 신주(申澍)와 혼인
***** 언니 : [[윤사로]]와 [[정현옹주]]의 아들 윤반(尹磻)과 혼인
{{조선의 왕후와 대한제국의 황후}}
- 저스디스 . . . . 5회 일치
'''저스디스''' ('''JUSTHIS''', {{본명|허승}}, 1991년 5월 7일 ~ )는 [[대한민국]]의 [[래퍼]]이다. 2010년, '''[[시로스카이]]'''의 EP "The Orbit"에 당시 활동명 '''TiMeWiNe'''으로 피쳐링하여 활동을 시작했다.<ref>[http://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3030666 곡 정보>멜론]. 멜론.</ref> 2011년, 같은 이름으로 [[믹스테이프]] "A Little Bird Told Me"를 무료로 배포하고,<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7890&keyfield=&key=%ED%8B%B0%EB%AF%B8%EC%9C%84%EB%8B%88 'A Little Bird Told Me' 무료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오케이션]]'''의 믹스테이프 "Preseason #2"에 비트와 랩 피쳐링으로 참여했으며,<ref>[http://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2&sort=&num=7305&keyfield=&key=okasian 오케이샨(Okasian), 하이라이트 레코즈 입단 및 믹스테이프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2년, 이름을 저스디스(JUSTHIS)로 바꾸고 믹스테이프 "QUAL N TITY : True Up"을 무료로 배포 후,<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9627&keyfield=&key=%EC%A0%80%EC%8A%A4%EB%94%94%EC%8A%A4 'QUAL N TITY : True Up'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3년, '''[[매드 클라운]]'''과 '''커먼콜드'''라는 팀을 결성하였다.<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0421&keyfield=&key=%EC%BB%A4%EB%A8%BC%EC%BD%9C%EB%93%9C 매드클라운과 저스디스, 커먼콜드 결성]. 힙합플레이야.</ref> 믹스테이프 "_ u c k!"를 준비중에 있다가<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0482&keyfield=&key=%EC%BB%A4%EB%A8%BC%EC%BD%9C%EB%93%9C 커먼콜드(Mad Clown & justhis) '_ u c k!' 수록곡 선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4년 5월 7일, 본인의 텀블러를 통해 믹스테이프 "[[Money Vs. Love: Dream (MVLD)]]"를 공개했다.<ref>[http://justhiseung.tumblr.com/post/85002465677 {{웨이백|url=http://justhiseung.tumblr.com/post/85002465677 |date=20140508113407 }} JUSTHIS - Money Vs. Love: Dream (MVLD) [Mixtape]]. Tumblr.</ref> 그 이후에는 크루 '''불한당'''의 프로젝트 앨범 "A Tribe Called Next"와<ref>[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5768 앨범 정보>멜론]. 멜론.</ref> '''매드 클라운'''의 미니 앨범 "Piece Of Mind" 등에서의 피쳐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ref>[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8221 앨범 정보>멜론]. 멜론.</ref> 현재 프로듀서 [[디프라이]](Deepfry), 자코(Jaqo)와 함께 준비 중인<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6028&keyfield=&key=justhis 저스디스(JUSTHIS) | 그런 말장난들론 여기 시스템 못 바꿔]. 힙합플레이야.</ref> 본인의 첫 번째 앨범 [[2 Many Homes 4 1 Kid]]<ref>[https://twitter.com/JUSTHISeung/status/596326033197924352 저스디스의 트윗]. 트위터.</ref>
2018년 3월 7일 [[팔로알토]]와의 합작 정규 앨범 4 the Youth가 발매되었다.
가장 최근엔 《[[Show Me The Money 6]]》의 인기 래퍼 [[넉살]]과 [[언더그라운드]]의 이미지를 버린 [[딥플로우]]가 소속되어 있는 [[VMC]]와 디스를 벌였다.
- 전경협 . . . . 5회 일치
전경협은 [[한양]]의 한 이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래로, 그녀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안형광]]이라는 이름의 [[궁녀]]의 도움으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서 전경협의 친오빠가 그녀를 결혼시키려 했지만, 궁녀 안형광은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는데, 그녀도 이미 궁녀 명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박희순 루치아]]를 비롯한 [[천주교]]인 궁녀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다. 박희순이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출궁한 후에, 전경협도 꽤병을 부려 궁궐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궁궐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전경협은 박희순과 함께 살며 [[기도]]와 종교서적의 독서 그리고 선행에 전념했다. 그녀 주위 사람들이 그녀에게 감복했고, 그녀는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데 일조했다. 그녀는 극도의 가난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번 없었다. 그녀는 그저 [[체포]]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체포되어 [[감옥]]으로 압송되고, 더 격심한 [[고문]]을 받았는데, 그녀가 [[궁녀]]였었기 때문이었다. 포장은 그녀를 [[심문]]했다. "어째서 너는 궁녀가 이교를 믿느냐?" "저의 종교는 이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느님]]을 [[천사]]와 사람 그리고 만물의 [[창조주]]로 믿기 때문입니다." 포장은 그녀가 [[천주교]]를 부정하도록 만들 수 없었으므로, 그녀를 [[형조]]로 이송했고 거기서 다시 심문이 이어졌다. "궁녀가 이교를 믿는 것은 대역죄이다. 너의 [[천주]]를 부정하고 천주교도들과 천주교 서적들이 숨겨져 있는 데가 어딘지 불어라." "제가 만 번을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그녀는 격심하게 매질을 당해 그녀의 살가죽이 떨어져 나갔고, 그녀의 뼈 여러 곳이 부러졌으며,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려 바닥이 흥건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천주교인이 아닌 사람들 까지도 그녀에게 감복하였다.
전경협은 [[1839년]] [[9월 26일]]에 [[서소문]] 바깥에서 여덟 명의 교우와 함께 그녀가 원한데로 [[참수]]로써 [[순교]]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53세였다.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절대가련 칠드런/445화 . . . . 5회 일치
* 한조와 니아는 불량 에스퍼의 교정을 전담하는 "재단"의 교정시설 팀에 들어가 있으며 "조사관H", "조사관N"이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 이것도 윗선의 지시인데,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조차 레어메탈에 의해 세뇌당한 듯 칠드런 일행에게 매정하게 대한다.
* 칠드런은 카시와기 역시 블랙팬텀의 마수에 당한 거라고 여기고 있으나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 테오도르는 시호와 유리의 주의를 돌린 사이에 BABEL의 중추에 대한 공격을 거의 완료, 국가도 길리엄의 새로운 장난감이 되었다면서 다음 타겟은 효부임을 밝힌다.
* 언리미티드의 주인공 앤디 히노미야와 유우기리도 지금은 "재단" 소속. 조사관A가 앤디를 말하는 것.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5회 일치
* 바벨의 전 에스퍼를 상대로 격전을 치른 효부 쿄스케. 간신히 도망쳐 회복하고 있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와 만난다.
* 효부는 카오루가 태어난 병원까지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소년이 그에게 친절을 배푸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였다. 사카키는 효부에게 마실 물을 주고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이미 힙노에 각성한 상태라 효부의 정체와 상황을 간파한다. 사카키는 자기도 나중에 당신 조직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못 본척 해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진다. 효부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사카키를 마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안심한다.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땐 "마기"로 돌아와도 돼. ||
* 효부는 이번에야 말로 마기를 쏴버리려고 염력을 집중하지만 결국 발사하지 못한다. 마기는 그 괴로워하는 얼굴 조차 비웃으며 이별을 선언한다. 때맞춰 블랙팬텀의 미사일이 폭발하며 물기둥이 치솟는다. 마기는 이것을 틈타 상공의 폭격기와 접촉, 이제부턴 길리엄을 섬길 거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5회 일치
* 반격의 진용을 갖춘 [[미나모토 코이치]]와 더 칠드런 일행.
* 긴 시간만에 재회한 [[미나모토 코이치]]와 더 칠드런 일행. 모두가 반갑게 인사하며 흐뭇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와중 한 사람만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카키 슈지]]는 [[산노미야 시호]]에게 처절하게 밟히고 있다.
* [[마츠카제 코우이치]]는 [[쿠모이 유리]]와 나오미에게 사카키를 바벨의 시설에서 정밀검진하도록 맡긴다. 미나모토는 바벨의 시설에서는 [[츠보미 후지코]]의 눈에 띌 거라고 우려하지만 마츠카제는 이미 바벨을 드나들 수 있는 보안코드를 확보해둔 상태였다. 여기에 유리의 힙노로 위장을 더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 이 날을 기점으로 후지코는 변했다. 그는 효부가 느낀 고통을 이해하긴 했지만 그와 미래를 구하고자 바벨을 창설, 오늘에 이른다. 과거의 후지코는 블랙팬텀이 정신적으로 취약했던 이 시기의 틈새를 파고 들었을 거라고 추축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5회 일치
* [[산노미야 시호]]와 [[노가미 아오이]]는 사카키가 지쳐 쓰러진데다 지저분해졌다면서 작전 결행은 다음 날로 결정.
* 앞서 효부가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접촉해 비밀리에 미나모토 및 칠드런 일행과 연결된 것.
* 효부는 PANDRA 내 문제는 얼버무리며 강한 척하지만 미나모토가 전부 이해하며 그와의 협력에 동의한다.
* BABEL의 의료시설에 잠입한 [[사카키 슈지]]는 드디어 완성단계에 이른 혈청을 자신에게 주입한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산노미야 시호]와 [[노가미 아오이]]. 시호는 눈에 띄는 반응이 없자 실패가 아니냐고 다그친다. 하지만 사카키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하는데.
* 모처럼 성과를 거두자 독설만 날리던 시호도 "바보짓은 탕감"이라며 수고했다고 칭찬한다. 아오이는 바로 [[미나모토 코이치]]와 합류해 작전회의에 들어가자고 하는데, 사카키는 급격히 균형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시호.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5회 일치
* [[산노미야 시호]]는 카본 와이어임을 간파하고 전기충격으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미나모토 코이치]]가 급하게 말린다. 시호가 충격기를 들어올리자마자 섬유들이 일제히 충격기를 향해 날아온다. 간발의 차로 시호는 무사했지만 충격기는 산산조각난다.
* [[아카시 카오루]]와 [[노가미 아오]], [[쿠모이 유리]]는 질색을 하며 몸을 피한다. 시호는 이 와중에도 겁내는 척하며 미나모토에게 달라붙어서 빈축을 산다.
>내가 여기서 느끼는 분노와 절망을 말이야.
* 효부와 카오루가 막아보려 하지만 그들이 염동력을 발동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날 것이다. 미나모토는 차라리 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효부나 카오루가 일제히 덮치는건 마기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고 상황은 난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군 중 누군가는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사카키 슈지]]가 있다지만 츠보미 후지코를 조치하고 있는 중이라 그 이상을 대처할 수는 없다. [[마츠카제 코우이치]] 또한 같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뛰어들어서 칠드런이 다치는 것도 안 될 말이다. 이 상황은 아무리 계산해도 처음부터 길리엄이 짠 함정이 너무나 철저하게 걸려든 것이다.
- 절연금 . . . . 5회 일치
※ 위자료로 번역할 수 없게 되는 사례는, 일단 관습적이고 쌍방의 동의만 있으면 합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자료를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절연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위자료와 절연금을 지불했다.’는 식으로 위자료와 절연금이 별도로 언급되어 있을 경우, 양쪽을 모두 위자료로 번역하기는 곤란해진다.
‘위자료(慰謝料)’와 유사하긴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위자료와 절연금은 다르다.
아이치미카와 법무사무소(あいち三河法務事務所) 홈페이지 참조
- 정링컨 . . . . 5회 일치
'''정링컨'''({{본명|링컨 폴 램버트}} - <small>(Lincoln Paul Lambert)</small>, [[2007년]] [[10월 1일]] ~ )은 [[미국 시민권]]의 아버지와 [[대한민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계와 한국계 [[혼혈|혼혈인]] 아역 [[연기자]]이다.
* [[Mnet]] 《[[와이드 연예뉴스]]》
* [[Mnet]] 《와이드 연예뉴스》
* [[SBS]] 《[[출발 모닝와이드]]》
- 정승우 (골프선수) . . . . 5회 일치
특히 [[2007년]] [[1월 27일]]에 탤런트 왕빛나와 결혼한 정승우는 ‘2006 제 1회 투어스테이지 프로티어 투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ref name="골프">[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5&artid=9198&pt=nv 프로골퍼 정승우씨와 결혼한 ‘빛나’는 1월의 신부 왕빛나] 김성욱 기자, 레이디경향(2007.02.14) 기사참조</ref>
부인 탤런트 왕빛나는 집안이 유독 골프와 인연이 깊어 가족으로 왕빛나의 동생 [[왕윤나]]와 남편 프로골퍼 김대섭가 있다. <ref name="골프"/> 2018년4월19일에 골퍼 정승우와 배우 왕빛나가 11년만에 이혼하였다.
- 정재용(1973) . . . . 5회 일치
DJ 활동 당시 업소 쪽에서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던 DJ 겸 댄서였고, 전세대 댄서로 유명한 [[이주노]], [[박철우(R.ef)|박철우]] 등에게 미묘한 [[컴플렉스]]와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걔네는 춤만 추지만, 우리는 노래도 한다."라는 식으로...
그가 합류하자마자 [[1995년]] [[여름]]에 정규 2집을 발매했으며, 타이틀 곡인 '[[머피의 법칙]]'으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이후 [[1996년]] 3집 및 스페셜 앨범 들을 통해 '[[겨울]] 이야기', '[[미녀와 야수]]', '[[여름]] 이야기' 등의 히트곡들을 배출해내며 인기가도를 달렸다.
다만, 조용하던 편인 그도 한번 폭력사건에 휘말렸는데, [[2010년]] [[1월 27일]],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이혁재]]의 폭행사건의 여파가 아직 가시기도 전에 그가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피소를 당한 것. 이에 대해 정재용 [[본인]]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종업원 간의 다툼을 말리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은 것이라 해명'''을 했으며, 부다 레코드 측에서도 대표가 직접 나서서 공식사과를 했다. 이미 DJ DOC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던 상황이고 수습이 빠른 편이라 이 때 사고를 친 걸 모르는 사람도 있다. ~~다행인가?~~
2018년, 걸그룹 [[아이시어]]의 前 멤버 선아와 12월에 [[결혼]]할 것을 선언 했다. 2016년부터 교제해왔으며, [[속도위반|혼전 임신]]이라고. 참고로 선아는 정재용보다 19년 연하.
* [[놀러와]] (MBC, 2009년)
- 정치공학 . . . . 5회 일치
* 정치공학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정치의 구조와, 법률, 조례 등을 뜻한다. [[http://www.nyu.edu/gsas/dept/politics/undergrad/syllabi/V53.0810_brams_s05.pdf (참조)]]
한국정치계에서 쓰이는 관용구로서 '정치공학'은, 공학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학문은 아니며, 정치분야에서 마치 공학에서 기계나 사물을 다루는 것처럼 특정한 어젠다를 의도적으로 추종하거나, 정당, 계파 간의 연대와 협력 등의 정략으로 자기 정당의 집권을 도모하는 것을 뜻한다. 정치공학에는 국민의 의사나 복리를 무시하고, 정치권의 집권 이득만을 추구한다는 뉘양스가 있으며, 부정적인 의미가 매우 강하다. 또한 계파 간의 연대와 협력 과정에서 어떤 동질적 가치관이나, 이념에 대한 합의 추구가 없이 정권 획득과 권력 추구만을 하여 지조없이 협력하므로 '신념'이 없다는 의미도 있다. 다만 노골적인 협잡, 야합보다는 다소 부드러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http://www.newspim.com/news/view/20161213000292 (참조)]]
이에 대해서는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미국 남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던 주관중(朱冠中) 교수가 1960년대 후반 '정치공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냈는데, 이 책이 청와대에서 모두 회수하고 박정희 정권은 주관중 교수를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임명했다. 그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공학적 수완'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31758521&code=990326#csidxb914cb4e3f87ea0a4d75944b31219dc (참조)]]
정치(Political)와 공학(engineering)이 합쳐진 말이다.
- 진격의 거인/81화 . . . . 5회 일치
* 결국 노인과 어린애도 전쟁터로 몰려서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거라며 혐오감을 피력하다 자기는 아버지와 다르다며 "그냥 최대한 즐기겠다"고 말을 바꾼다.
* 망연해 있는 리바이는 "널 죽이겠다고 그와 약속했다"고 중얼거리며 달려드는 거인들을 향해 입체기동을 실시한다.
* 엘렌은 미사카와 나머지 일행은 갑옷 거인을 견제하게 하고 자신은 엘렌과 함께 초대형 거인을 처리하는 작전을 짠다.
* 이번 화에서 짐승거인이 한 말이 또다른 떡밥을 양산하고 있다.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것도, 늬앙스 상으로는 자기와 자기 아버지를 놓고 한 말 같지만 정확하지 않다.
- 진격의 거인/90화 . . . . 5회 일치
* [[리바이 아커만]]과 [[한지 조에]]는 신문사의 로이, 뷰레와 만나 보도 이후의 소식을 듣는다. 민중은 혼란에 빠져있다.
* 의전이 시작되고 크리스타가 직접 훈장을 목에 걸어주는 의식 중에 엘런은 크리스타와 접촉하면서 아버지 [[그리샤 예거]]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난다.
* 조사병단의 정보는 언론을 통 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제는 일반시민들도 엘디아인의 진실과 벽 바깥에 있는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리바이 아커만]]과 [[한지 조에]] 신문사의 로이 사장과 뷰레 기자와 만나 이후의 여론에 대해서 묻는다. 대중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도 있는가 하면 웃어 넘기는 자도 있고,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정권을 매도하는 자도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혼란의 도가니. 한지는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정보가 납세자에게 맡겨지는게 이전 왕보다 좋은 점이라고 자조한다.
* [[엘런 예거]]와 [[미카사 아커만]]은 프록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엘런이 대체 아르민의 뭘 아냐고 묻자 프록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대답한다. 비록 자기 소꿉친구도 아니고 친한 사이도 아니라 그 개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아르민이 왜 살아남았는지는 안다는 것이다.
* 대화가 단절된 사이 리바이가 다가와서 의전이 시작될 시간이라고 알려온다.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왕 앞으로 나가 의식을 거행한다. 히스토리아는 여왕으로서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훈장을 걸어준다. 처음으로 한지에게 목에 훈장을 걸어주고 한지가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춘다. 다음은 리바이, 엘런의 순서다.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엘런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다.
- 차르 . . . . 5회 일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따온 '카이사르'가 기원이다.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라는 이름은 [[로마 황제]]의 권위를 가부장제의 상징적인 '세습'으로서 전승하는 의미에서 역대 로마 황제에서 대대로 이어져 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어 그 권위를 '상속'하였던 전례에 따라서, 후대 황제들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계승함으로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권력과 권위를 상속하는 선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로마 황제는 그 권력과 권위를 계승하는데 '카이사르'의 이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후기의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는 칭호화 되어, 공동 황제나 차기 황제(사실상 [[황태자]])가 사용하는 제2위 칭호가 되었다. '카이사르' 칭호에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서 이어지는 '로마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가부장제'의 부자상속에 따라서 계승하는 상속자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앞으로 '황제권'을 세습하게 될 차기 황제의 칭호로서 적합한 것이다.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서 로마 황제들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카이사르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카이사르는 제4위 까지 권위가 떨어진 칭호였으나, 비잔티움의 쇠퇴와 멸망 이후 슬라브 사회에서 차르는 황제와 별 다를 바 없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 차수연 . . . . 5회 일치
|| 결혼식 후에[* 일본의 각본가와 한국의 드라마 PD가 의기투합한 '텔레시네마 7'의 일환. 감독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연출자였던 김윤철 PD.] || 김정희 || ||
|| 2010년 || [[카페 느와르]] || 지하철 소녀 || 단역 ||
|| 2007년 || [[문화방송|MBC]] || [[개와 늑대의 시간]] || 샤오밍 || [*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작품과 배역이라 할 수 있다. 극중에서 [[최재성(배우)|최재성]]이 연기한 [[마오(개와 늑대의 시간)|마오]]의 애첩으로 등장하였다.] ||
* 가장 호흡이 좋았던 배우로 [[신성록]]을 꼽았다. 연극 《클로저》와 드라마 《[[라이어 게임(tvN)|라이어 게임]]》을 함께 했다. [[https://blog.naver.com/youyoumagazine/221088883146|#]]
- 창작:좀비도시 . . . . 5회 일치
좀비시티는 다수의 [[좀비]]가 모여 있는 고립된 도시이다. 외곽은 군부대가 방벽을 쌓고 방어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좀비와 소수의 생존자들이 머물고 있다.
좀비도시 발생의 배경은 이하와 같다.
도시에 나타나는 무법자들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외부의 사회와 법률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법률의 압박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어한다. 좀비 이상으로 이 도시를 위험하게 만드는 괴물들이다.
* 유괴감금범 : 이들은 납치와 감금을 하여 완전한 지배를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대개 외부에서 희생자를 물색하고, 좀비도시 내부로 데리고 들어온다. 희생자가 바깥에 나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타인의 삶에 신경쓸 여유가 없는 곳이므로, 이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이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5회 일치
최악의 기분으로 수색을 이어나갔다. 논리적 오류와 헛점 투성이인 추론은 이성적 판단과 상관없이 강렬한 설득력으로 나를 괴롭혔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짜맞춘 이야기다. 지금도 나의 이성은 이 바보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빈정댄다.
"좋아 그대로 문피아에 올리는 거야. 출판도 가능하겠네 작가 양반. 계약은 '''좀비와 지성사'''랑 하면 어때?"
나는 부모님이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보다, 오지 않는 구조대를 기다리다 결국 녀석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을 때보다, 그리고 굶주림 때문에 바깥으로 나와야 했을 때보다도 뼈져리게 내 처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말로 풀어놓지 않아도 나의 직관은 매우 분명하게 그것을 인지했으니까.
이런 정신상태에서도 다이너스티 키를 찾기 위한 수색은 계속되었다. 나는 혹시라도 상반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며 작은 방도 살펴봤고 화장실까지 열어놨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열쇠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 때려치고 돌아가 버릴까? 몸에 엉겨붙은 토트넘의 체액이 너무 역겹다. 돌아가서 샤워와 함께 오늘의 기억도 말끔히 흘려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 물론 식량도 챙기고.
확인하고 싶다. 다이너스티의 키만큼 해답을 찾고 싶다. 하지만 키는 결국 발견되지 않겠지. 토트넘이 그걸 가지고 다니다 흘렸을 가능성을 무시한게 잘못이었다. 만약 내가 추론대로라면 그는 제일 먼저 병원으로 가고 싶었을 거고 자신의 애마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지. 하지만 예상보다 감염은 빨랐고 그가 미처 차에 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차키를 손에 들고 어디로든 돌아다녔을 것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슬픔을 나누고 다녔겠지. 아내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 최길성 . . . . 5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9년)
'''최길성'''(崔吉成<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78년]] [[2월 6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선수이자, 현재 ING 생명 보험설계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시즌 후 방출당하였다. [[2001년]] [[LG 트윈스]]에 이적하였으나 별 다른 행보가 없이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2006년]]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자신의 커리어 하이였던 83경기에 출장하여 0.256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7년]] 팀 동료인 [[최만호]]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박석진]]과 [[손인호 (야구인)|손인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고, [[200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방출되었다. 그 해 [[SK 와이번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였으나,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배재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최동 . . . . 5회 일치
}}</ref>)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의학자이다. 비주류 역사학자로도 활동했다. 호는 해산(海山).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관직을 내놓고 [[일본]]에 망명 중인 [[박영효]]를 만나러 도일했다. 최동은 [[가톨릭]] 계열인 [[도쿄]]의 [[교세이학교]](曉星學校)에서 수학했다. 이때 아버지는 이미 [[미국]]으로 떠나 [[안창호]]와 함께 활동하던 시기라 고학을 하며 공부했다. 중등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가서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약 1년간 수학했다.
최동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교분이 있던 [[개화파]]의 [[박영효]], [[서재필]], 계몽운동 계열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성장해서는 [[최남선]], [[정인보]], [[이광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특히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에 크게 영향 받아 본업인 의학 연구 외에 역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황인종]]의 우수성을 논하고 [[한민족]]의 시원을 먼 곳에서 찾는 최동의 논리는 《[[조선]]문제를 통하여 본 만몽(滿蒙) 문제》(1932)에서와 같이 일제의 [[만주]] 침략이나 [[대동아공영권]]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오랜 집필 작업 끝에 은퇴 후인 [[1966년]]에 《[[조선상고민족사]]》를 탈고했고, 이 업적으로 [[1968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 제목 = 최동의 생애와 학문
- 최승자 . . . . 5회 일치
1994년 아이오와대학 초청으로 4개월간 미국에 체류하였다. 시 창작과 번역을 같이 해왔는데, 2001년 이후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하였다.
한바탕 난장이 훓고 지나간 후의 권태와 상념에 대한 뒤돌아봄,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허무를 담은 시로, 우리나라 현대시인들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인기 작가가 됐다. 작품세계가 끔찍할 정도로 어둡고, 자기 과거에 대한 노출이 적나라하다. 비극적 사랑에 의한 슬픔 혹은 인생의 덧없음에 의한 공허감, 자기연민 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이를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찢어발기며 냉소한다. 그런데 그러한 어둠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게 반전이다.
쏟아지는 비와 푸른 채찍질.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꽃시들이 너울너울 허공을 타고 내려와
- 최윤철 . . . . 5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6라운드]] ([[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2012년 ~ 2015년)
'''최윤철'''(崔潤喆, [[1989년]] [[10월 24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SK 와이번스 신인지명 선수}}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군산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송원대학교 동문]]
- 최효진 (축구선수) . . . . 5회 일치
서울연희초등학교,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거쳤다. 빠른 스피드와 힘을 기반으로 공격력이 뛰어난 수비를 펼친다. 대학때까지는 공격수로 뛰었고, 프로 데뷔후에는 오른쪽 미드필더로서 활약하며 공격이나 공미, 윙백, 풀백 모두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다. 체력이 좋아 마징가에 빗댄 '최징가' 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여, [[K리그 2007|2007 K리그]] 우승과 [[FA컵 2007|2007 FA컵]] 준우승, [[FA컵 2008|2008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2008년 FA컵 우승 당시 대회 MVP를 받았고,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주관 최우수선수 부문을 수상, 2008년, 2009년 [[K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또한 [[AFC 챔피언스리그 2009|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전 경기 출장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특히 16강전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FC|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139&aid=0001950957 |제목=(ACL 리뷰) '최효진 해트트릭' 포항, 뉴캐슬 6-0대파하고 8강행 |날짜=2009-06-24 |출판사=스포탈코리아 }}</ref>
[[2008년]] [[6월 14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2010년]] [[8월 10일]]에 열린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자신의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중앙과 측면을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력 또한 최효진의 강점 중 하나이다. 또한 다수의 수비수와의 좁은 공간에서 경쟁에서도 동료 선수와 연계시켜 뚫어내는 플레이도 즐긴다. [[AFC 챔피언스리그 2009|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뉴캐슬 제츠]]전에서 보여준 해트트릭은 고교 시절을 공격수로 지낸 그의 득점력도 확인시켜 줬다.
- 카자미노 시 . . . . 5회 일치
[[사쿠라 쿄코]]의 본래 주거지로서, 작중에서 [[미타키하라 시]] 부근애 위치한 도시로 언급된다. 드라마 CD인 《farewell story》와 극장판 《반역의 이야기》에서 언급되었다. 《TDS》에서도 등장.
작중에서, 상당히 섬세한 시각 묘사가 나오는 미타키하라와는 달리, 카자미노는 거의 묘사가 없는 도시이다.--드라마CD라서 시각 묘사를 할 수 없다.--
미타키하라와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 극장판의 묘사를 보면 [[버스]] 한 번 타면 훌쩍 왔다갔다 할 정도이므로, 두 도시는 이웃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쿄코가 마미와 쉽게 만났던 이유.
[[드라마 CD]]를 몰랐던 사람은 극장판에서 갑자기 쿄코가 사는 도시의 이름이 당연한 듯이 나와서 조금 당황한 모양.[http://detail.chiebukuro.yahoo.co.jp/qa/question_detail/q10116774515 참조]
- 칼렉시트 . . . . 5회 일치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주]]의 탈퇴와 독립 국가 캘리포니아의 건설을 요구하는 움직임이다. 칼렉시트는 캘리포니아와 exit의 합성어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 특별한 지역이다. GDP는 세계 6위 수준으로, [[대한민국]]이나 [[프랑스]]보다 높다. 미국 50개주 가운데서 가장 많은 인구(3900만명)와 가장 많은 선거인단(55명)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반 트럼프 시위와 동시에 칼렉시트를 내건 시위가 벌어지고, 실제로 연방 탈퇴 선언을 노리는 'Yes California'라는 웹사이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 셜빈 피셔버(Shervin Pishevar) - 우버의 개발자이며, 하이퍼루프 원의 공동창업자. CNBC에서 "캘렉시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애국적인 일이고, 미국을 떠난 캘리포니아를 '뉴 캘리포니아'라고 부르겠다"고 주장했다.--[[뉴 캘리포니아 공화국]]?-- 셜빈 피셔버는 예스 캘리포니아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으며, 스페인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을 모델로 하여 2019년 국민투표를 제안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국가가 된 뒤에 다시 연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발언했다.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5회 일치
* 소코비아 협정식에서 '''와칸다 국왕이 연설도중 암살 당한다.'''
* 범인으로 윈터 솔저가 지목되며 '''블랙 팬서가 새로운 와칸다 국왕으로 즉위.'''
* 캡틴 아메리카는 소코비아 협정에 반대하며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대립각을 세운다.
* 캡틴팀은 구속되는데, '''토니의 의도와는 달리 UN이 수중감옥에 처박아 버린다.'''
* 토니는 뒤늦게 캡틴, 윈터솔저와 합류해 흑막인 "지모"를 추적한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 . . . 5회 일치
외계에서 날아온 자원인 타이베리움을 두고 GDI와 Nod 두 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타이베리움 , 타임머신으로 인해 연합군과 소련군의 전쟁을 벌이는 레드얼럿 사가, 세계적인 테러조직 [[GLA]]에 맞선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다룬 제너럴로 분류된다.
타이베리움 사가의 최종편인 커맨드 앤 컨커 4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잇이 혹평을 받은 후, 제너럴의 후속작인 커맨드 앤 컨커 온라인이 제작되고 있었으나 EA가 개발을 중지시키고 제작팀이던 빅토리 게임즈를 해산시켜버렸다. 그렇게 춫은 관짝에 처박혔다.
* [[커맨드 앤 컨커 4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잇]]
* 같은 RTS 장르지만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와는 상당히 게임의 흐름이 다르다. 자원채취에서는 하베스터 한 대 한 대가 중요하고, 자원수집이 느린 반면 유닛의 생산속도는 무척 빠르다.
* [[밀리터리]] 스타일의 게임이지만, 사실적인 밀리터리 게임과는 거리가 있고 1990년대 다운 SF적인 요소와 다소 쌈마이스러운 황당함이 겸비된 것이 특징. 예를 들어 타이베리움 사가에서는 로봇이 등장한다던가. 다만 대놓고 SF인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 비하면 '''비교적''' 밀리터리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5회 일치
게임 내 사용 가능한 자원으로는 인력, 군수품, 연료가 있다.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자원을 제공하는 지역을 점령하여 얻어야 한다. 모든 지역(본부가 있는 곳 포함)이 인력을 제공하며, 총알 모양이 그려진 지역이 군수품을, 제리콘이 그려진 지역이 연료를 제공한다. 지역을 점령하려면 보병 유닛을 해당 위치의 전략 거점으로 보내 점령 작업을 시켜야 한다. 이렇게 지역을 점령하면 해당 위치에서 자원이 조금씩 들어온다. 이렇게 점령한 지역은 추가적으로 "확보"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가 빼앗는 걸 어렵게 하고 자원 획득량을 늘릴 수 있다. 확보의 방법은 각 진영마다 다르다. 마지막으로, 점령한 지역이 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해당 지역의 보급이 끊긴 걸로 쳐서 그 지역에서는 자원을 얻을 수 없게된다.
보병 유닛들은 근처에서 엄폐할 곳을 찾아서 움직인다. 엄폐는 주황색으로 표기되는 부분엄폐와 초록색으로 표기되는 완전엄폐가 있다. 당연히 엄폐를 안 하는 것보다 부분엄폐라도 하는게 보병 유닛의 생존에 도움이 되고, 부분엄폐 보다는 완전엄폐가 더 생존성이 높다. 그런데 적들이 화염방사기를 가져오거나 수류탄을 던지면 다 쓸모없다.
차량 유닛들은 뒤에서 공격하면 "후방 피격!"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추가 피해를 받는다. 또한 공격을 받으면 여러가지 상태이상이 생길 수 있다.
테일즈 오브 발러에서 지원되는 캠페인. 막시밀리안 보스 대위가 전차장인 티거 전차가 주인공. 보스 대위와 포수인 조셉 슐츠 하사, 그리고 그 외 티거 전차의 승무원들이 빌레르-보카쥬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를 다루고 있다.
테일즈 오브 발러에서 지원되는 캠페인. 제82공수사단 소속 에이블 분대와 베이커 분대가 주인공. 라 피에르 둑길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전투를 다루고 있다.
- 콜 오브 듀티 . . . . 5회 일치
이후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는 달리 필드에 놓인 회복약을 먹어 체력을 보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세이브 방식도 체크포인트제인 후속작과 달리 세이브 로드 방식. 오토세이브도 지원된다.
영국군 장교. 프라이스와 함께 독일군에게 붙잡혔다. 구하러 갔을때는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독일군 초병 하나를 목졸라 죽이고 있다.
에반스와 프라이스를 티르피츠로 침투시킨 보급선 운전자. 미션 도입부에 시체를 바다에 내다버리는 걸 보니 보급선을 강탈한 걸로 보인다.
>스텐 마크 2는 방과 참호를 소탕하기 좋은 9mm 기관단총입니다. 작은 뼈대와 가벼운 중량 덕분에 뛰어난 운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은 파괴 대상으로 등장하지만 휘트르겐 임무에서 독일군 전차를 조지는데 사용된다. 독일군 전차에게 파괴당할 수 있는데, 파괴당하면 근처 벙커에서 판처파우스트를 가져와야 대항해야한다.
- 킹덤/505화 . . . . 5회 일치
* [[몽념]]과 낙봉대는 이 사기가 열미의 최대 무기라고 여기며 이것을 [[비신대]]와 [[양단화]]군만으로 공략한다는 [[왕전(킹덤)|왕전]]의 전략을 의문시한다.
* 한편 공성을 맞은 양단화와 [[이신(킹덤)|이신]], [[하료초]]는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 작전이 시작되자 양단화는 산민족을 격동시켜 열미군을 압도할 정도로 사기와 함성을 끌어올린다.
* 양단화가 피축제를 선언하자 산민족은 노도와 같이 돌격한다.
* 한편 공성을 맞은 지휘관 이신, [[하료초]], 양단화를 만나고 있다. 양단화는 [[바지오]]와 [[타지후]]를 대동. 하료초는 왕전의 의중이 어떻든 진짜 자기들만으로 열미를 따낼 각오를 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이견은 없다. 하지만 하료초가 이틀안에 공성을 마치자고 하자 양단화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이신과 하료초를 놀라게 한다. 이신은 좋은 책략이라도 있는 거냐고 묻는데 그녀의 대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 킹덤/508화 . . . . 5회 일치
* [[간두]]는 우왕좌왕하던 동안 창까지 잃어먹고 적에게 포위된다. 그러나 이때 [[수원]] 보병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나 간두와 신병들을 구한다.
* 바지오는 누구보다 먼저 적진으로 뛰어든다. 그가 솟구칠 때마다 적의 핏줄기와 머리가 함께 솟구친다. 열미군은 방진을 만들어서 바지오를 저지해보려 하지만 그의 날아차기 한 방에 방패벽이 몇 겹이나 깨져나가가고 방패병들이 압사하면서 진형이 무너진다.
다른 오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노평은 두려움에 미쳐버렸다. 풀린 눈으로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던 그는 오를 이탈해서 적에게 마구잡이로 달려간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칼로 적의 숙련병들을 어쩔 수는 없었고, 적의 방패에 부딪혀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허무할 정도로, 도와달라고 외칠 틈도 없이 목이 떨어진다.
* [[수원]] 보병장이 직접 신병들을 구하러 왔다. 그는 신병들에게 "기대에 못 미치는건 아닌가"라며 오를 유지하라고 하지 않았냐고 야단친다. 간두는 노평 탓이라고 변명하다 걷어차인다. 수원은 간두같이 깝죽거리는 것들이 첫 출진 때 죽기 십상이라며 쓴소릴 한다. 간두와 친구는 울상을 짓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 수원이 돌아서며 말한다.
* 하지만 수원은 곧 걱정을 끊는다. 간두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편엔 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이 달려와 [[왕의(킹덤)|왕의]] 장군의 창으로 뇌화를 두동강 내버린다. 그러면서 아직은 그 창이 무겁다고 중얼거린다.
- 킹덤/510화 . . . . 5회 일치
* [[송좌]], [[숭원]], [[미평]] 등 고참병들이 [[이신(킹덤)|이신]]이 나누어준 술을 들고와서 병사들을 위무한다.
* 먼저 와 있던 [[양단화]]는 [[왕전(킹덤)|왕전]]이 열미성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알려준다.
신병들은 상식을 초월하는 대활약에 입이 딱 벌어진다. 송좌도 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함께 싸우면 그 이상으로 대단한 일 투성이다. 송좌와 숭원은 그보다 열 살은 많아 평소엔 신을 꼬마 취급하지만, 그래도 전장에선 그 누구보다 멋진 남자가 신이라며 추켜세운다.
하료초는 첫 출진부터 중임을 떠맡겨 미안하다고 위로하는데 창인은 그 점은 오히려 기뻤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이,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던게 문제였다. 하료초는 그가 아직도 손을 떠는걸 발견한다. 창인은 그저 너무 세게 연사를 한 탓이라고 말하다가 "게다가 처음으로 사람을 쐈다"고 덧붙인다. 하료초는 후자 쪽이 떨림의 진짜 원인일 거라고 추측한다. 그게 사실이었다. 창인은 이런 나약한 자가 부대에 들어와서 죄송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료초는 이번 전투에서 비신대의 제 1공은 창인이라며 격려한다.
하료초는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양단화는 자신도 왕전을 보러왔는데 막상 와보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 킹덤/522화 . . . . 5회 일치
* 기수군은 사기가 크게 떨어져 와해될 지경이나 기수가 숫적 우위와 병사의 질을 들어 버티고 맞설 것을 지시하자 혼란이 진정된다.
* 습격을 당한 보병대는 제대로된 저항도 못한 채 와해되다 시피한다. 일선의 병사들은 정체불명의 군대가 한도 끝도 없이 몰려온다고 착각한다. 전선이 빠르게 무너진다.
>이 숫자의 차이와 리안병의 질로 하여금 반드시 승리하리라!
* 기수는 부관들을 모아놓고 이게 "미끼"에 불과했던 낙화대가 5천 병력의 "유격대"로 바뀌었음을 설명한다. 좌측에 들이닥친 마광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이상, 낙화대 5천은 이제 유격대가 돼서 언제든 아군의 배후에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다. 게다가 그 지휘관인 몽념은 필시 평범한 장교가 아니다. 이 병력의 존재가 너무 크다. 이제와서 요격하려 해도 병력을 빼면 그만큼 본진이 파상공세에 밀릴 공산이 크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미끼로 끝날 거라면 5천은 많았다. 기수는 여기까지는 내다보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도발, 양동을 위한 5천 병력이 끝내 자군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주역"의 위치까지 발돋움했다. 이건 우연도 뭣도 아니다. 철저한 계산에 따른 배치. 왕전히 그린 밑그림이었다. 기수는 새삼 이것이 진군 총대장 왕전이라며 좌절감을 느낀다.
- 타쿠마 마모루 . . . . 5회 일치
1990년 6월에 [[의사]]라고 거짓말을 하여, 18세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으나, 거짓말이 들켜서 3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였던 19세 연상의 여성(오사카 교육대학 출신)과 결혼했다. 1993년에 이타미시 교통국에 노선 버스 운전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동료와 싸움을 벌이거나, 버스에서 운전석 뒤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향수 냄새가 나니까 뒷자리로 가달라"고 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1994년 9월 21일에 아내와 이혼한다.
1999년 3월 2일에 형이 마무루의 거듭되는 불화와 폭력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그 직전에 아내와 이혼하였으며 아이를 혼자 놔두고 자살하였다. 3월 31일에 타쿠마 마무로는 4번째 이혼을 했다. 9월 7일에는 이전에 양자결연을 맺었던 여성의 집에 침입했다가 체포당했다.
2000년 10월 14일에, 택시 운전사로 근무하다가 오사카 시내의 호텔에서 벨보이와 말다툼을 벌여서, 폭행으로 체포된다. 11월에는 이케다 시 건축자재 판매회사에 10톤 트럭 운전사로 채용되었고, 이케다 시의 원룸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신호대기를 할 때 나란히 서있던 차에 타고 있던 여성을 "눈이 마주쳤다"고 트집을 잡으며 침을 뱉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서 2001년 2월에 그만둔다. 2001년 5월 하순에는 스스로 하룻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 토리코/385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브란치는 "믿을 거라 생각하냐"며 거부한다. 정 도와주길 원한다면 증명할 방법을 찾으라고 하는데.
* 그리고 이 우주에서 네오의 데이터를 가질 수 있는 자는 "아카시아와 서로 잡아먹었던" 페어뿐일 거라고 말한다.
* 플로제와 최초의 만남, 그것이 그의 "전채"
* 미도라는 언제 어디서나 이것이 그와 함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 정황으로 보면 리들챕터에 기록된 네오의 정보는 기본적으론 페어가 아카시아와 처음 만났던 시점에서 기록된 것. 존게가 다시 측정을 했으니 갱신된 내용도 있을 것이다.
- 토리코/392화 . . . . 5회 일치
* '''생선요리'''와 '''고기요리'''는 레그 나이프와 레그 포크.
* 마지막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연달아 먹이는 걸로 '''드링크'''와 '''디저트'''를 완성한다.
세 번째 악마의 실체화. 세 번째 악마가 네오의 "검은 세포"의 천적일 거라는 팬덤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네오가 완전히 패배한 걸로 묘사되는데 정작 기대를 모았던 청귀, 세 번째 악마의 실체화와 흡수는 없었고 세 번째 악마가 잠깐 등장해서 네오를 끝장내는 정도로 지나가게 됐다.
- 토탈워: 쇼군 2 . . . . 5회 일치
적 군대와 아군 군대가 조우하면 전투가 벌어진다. 전투 전 양측의 병력 구성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자동 전투를 벌일 것인지, 수동 전투를 벌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후퇴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 후퇴한 직후 적이 추격할 수 있다는 것에 주의. 이렇게되면 꼼짝없이 싸워야한다. 특이한 케이스로 매복이 있는데 보통 숲 속에 숨은 적군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동하다가 만나는 경우 벌어진다. 이 경우 처음부터 후퇴가 불가능하다.
자동 전투는 양측 군대의 전투력을 비교해 양측의 피해와 승패여부를 결정한다. 수동 전투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과 같이 진행된다. 전력차가 압도적이라 이길게 뻔한 전투에서는 자동 전투를, 비슷하거나 약간 밀려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전투에서는 수동 전투를 하는게 좋다. 전력차가 압도적으로 밀린다면 열심히 짱돌을 굴려보자.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별로 좋은 결과는 못 내겠지만.
* 안개: 모든 유닛의 시야가 감소한다. 선박을 포함한 원거리 유닛의 사정거리와 정확도가 감소한다. 먼 거리에 있는 적 유닛은 게임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만약 한 가문의 군대가 다른 가문의 성을 공격하면 포위가 시작된다. 포위당한 가문은 그 성에서 부대를 추가적으로 모집하거나 병력 손실을 보충받을 수 없게 되지만 포위당한 성의 주둔군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포위를 건 가문은 성 안의 식량이 떨어질 때 까지 버틸 것인지, 아니면 직접 공격해 점령할 것인지, 정 안되겠으면 포위를 풀고 후퇴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직접 공격하는 선택지는 자동 전투와 수동 전투 두가지가 있다.
농성을 벌여 점령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오래 걸린다. 그냥 버티면 된다. 일정 시간 이상 버티면 굶주림에 지친 수비군이 항복한다. 하지만 보통 1~2턴 남기고 들판으로 나와 최후의 저항을 벌이는 일이 많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 . . . . 5회 일치
플레이어는 [[보신 전쟁]] 시기 6(+4, DLC 구매시)개 번 중 하나를 이끈다. 이 번들은 두 세력 중 하나에 속해있다. [[도쿠가와 막부]]를 지지하는 막부파와 [[덴노]]를 지지하는 존왕파.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일정 이상의 영토를 확보해 보신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번 또한 일정 영토를 확보해 이름을 떨치는게 게임의 목적이다.
=== [[토탈워: 쇼군 2]]와의 차이 ===
* 본편에서는 한 계절이 한 턴이었지만 사무라이의 몰락에서는 한 개월이 한 턴이다. 적 성을 포위하다가 겨울이 오면 3턴 연속으로 병력 소모를 겪어야 한다. 이외에 각 계절마다 이벤트와 효과가 추가되었다.
* 200여년의 세월 동안 [[총기]]가 발달하며 전투의 양상이 달라졌다. 본편의 전투가 근접 보병들의 힘겨루기와 궁병들의 화살샤워, 기병들의 허점 찌르기로 진행된다면 사무라이의 몰락의 전투는 전열보병들의 힘겨루기를 중심으로 전투가 진행된다. 물론 전열보병에게 근접보병이 붙으면 전열보병이 발린다. 으악.
- 페어리 테일/486화 . . . . 5회 일치
* 첫 번째 손님은 천마와 호랑이(블루 페가수스와 세이버투스 연합군), 두 번째 손님은 요정(페어리 테일), 세 번째는 "성가신 손님"이라고 칭하는데.
* 아이린이 제레프와 다른 꿍꿍이가 있는건 기정사실로 보인다. 아크놀로기아를 이용하려는 것 같은데?
* 아이린이 언급한 천녀 이야기는 본편 스토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 레비와 가질 커플 플래그가 또 투척됐다.
- 페어리 테일/487화 . . . . 5회 일치
* 오거스트와 만나는 나츠, 루시, 브랜디쉬, 매스트.
* 나츠와 루시는 오거스트와 브랜디쉬의 마력을 비교하며 놀라워하는데, 매스트는 아예 격이 다른 거라며, 두 사람의 감각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 블러드맨과 대치 중인 레비와 가질.
* 예고됐던 중대발표는 소울 이터로 유명한 오오쿠보 아츠시의 신작 "염염의 소방대"와 콜라보 이벤트 소식이 함께 실렸다.
- 페어리 테일/499화 . . . . 5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499화. '''그레이와 쥬비아'''
* 잉벨은 그레이와 쥬비아를 지배해 서로 공격하게 한다.
* 브랜디쉬의 뒤를 따라가던 잉벨은 분노에 찬 그레이와 마주친다.
* 아이스 록에 걸려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 쥬비아와 그레이.
* 둘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투를 벌이기 시작. 그레이가 쥬비아를 압도한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5회 일치
* 모든 명예와 인권을 빼앗긴 아이린은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뱃속의 [[엘자 스칼렛]]을 지키며 버틴다.
치열했던 용왕제는 [[아크놀로기아]]의 등장으로 승패도 없이 허무하게 종결, 엄청난 인명피해와 세계적인 트라우마만을 남겼다.
그 뒤 죄수가 된 아이린의 생활은 비참했다. 모진 고문과 학대, 대중들 앞에서 치욕을 당하는 등 이루 말 할 수 없는 세월이었다. 그 와중에도 용화는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이젠 거의 전신이 용의 비늘로 덮인다. 지옥같은 생활을 그녀는 뱃속의 아이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 그녀는 산 속에 틀어박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의 천재와 우연히 만난다. 바로 [[제레프 드래그닐]]. 한 눈에 그녀가 인간이었다는 걸 알아본 제레프는 아이린이 수백 년이나 연구하고도 실패한 드래곤의 인간화를 한순간에 성공한다.
* 패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녀의 실험. 엘자와 [[웬디 마벨]]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아이린은 아주 태연한 태도로 실패했고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28화 . . . . 5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이 망자를 모독하는 행위를 막으려 하자 다짜고짜 공격하는데 지금의 엘자와 [[웬디 마벨]]은 그걸 막을 기력이 없다.
* [[아이린 베르세리온]]과 힘겨운 혈투를 끝낸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 그녀들 앞에 정체불명의 괴한이 나타난다. 그 정체는 [[아크놀로기아]]였지만 두 사람은 그의 인간체 모습을 몰랐다. 아크놀로기아는 두 사람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아이린의 사체를 훼손하며 즐거워한다. 그 기이한 광경에 압도돼서 엘자와 웬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아크놀로기아가 다짜고짜 두 사람에게 공격을 가한다. 엘자와 웬디는 기력이 떨어진 상태라 대처하지 못한다.
* 엘자는 천랑섬에서 마주쳤을 때 이상으로 강해진 마력에 위축된다. 제랄도 오거스트 때 이상으로 위축되어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중얼거린다. 웬디는 두려움에 떨지만 멸룡마도사인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며 드래곤 포스를 해방한다. 웬디와 제랄이 말리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아크놀로기아가 그녀를 타깃으로 잡는다. 그의 무서운 공격이 떨어지려는 찰나였다.
* 블루 페가수스의 "마도폭격정 크리스티나"호가 불시착으로 내려와 아크놀로기아를 치어버린다.
- 페이데이 2/적 . . . . 5회 일치
각 갱단들 마다 생김새와 사용하는 무기가 다르다.
Maximum Force Responder. 매우 어려움에서는 일부만 나오다가 오버킬 난이도에서는 중무장 대응 부대와 비슷한 비율로 나오는 적들. 사막색 방탄복을 입고있다.
원다운 난이도에서는 클로커와 불도저도 ZEAL 버전으로 등장한다.
방탄방패와 권총을 장비한 옐로 SWAT/중무장 대응 부대/ZEAL SWAT.
감전당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무기를 난사하게 된다. 감전은 테이저가 공격을 받고 휘청거려야만 중지된다. 만약 아무도 감전을 중단시키지 못하면, 감전당한 플레이어는 오랜 시간 동안 지져진 후 다운된다.
- 핑커톤 . . . . 5회 일치
1861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서부개척시대]]에는 [[제시 영거 갱]]이나 [[와일드 번치]]같은 갱단을 추적하거나 열차강도를 잡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위해 [[신문]] 기사를 오려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1872년, [[제시 영거 갱]]의 핵심인물이었던 [[제시 제임스]]와 프랭크 제임스를 잡는답시고 그들의 가족이 사는 집에 폭탄을 던져버렸다. 이로 인해 제임스의 9살 먹은 이부동생 아치 사무엘(Archie Samuel)이 사망했으며 제임스의 모친인 제렐다 새뮤얼(Zerelda Samuel)[* 재혼해서 성이 바뀌었다.]은 한쪽 팔을 잃게되었다. 핑커톤측은 집을 불태워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앨런 핑커톤이 "집을 불태워버려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이 있다.
1892년, [[카네기 철강]] 소유 제철소인 홈스티드 제철소의 노조가 [[파업]]하자 진압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10여명의 노동자와 3명의 핑커톤 직원이 사망하였다. 핑커톤은 홈스티드 파업을 진압하는데 실패하였으며, [[주방위군]]이 동원되고나서야 홈스티드 파업을 진압할 수 있었다. 핑커톤은 홈스티드 파업 외에도 여러 파업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였다.
드라마 [[The Pinkertons]]는 핑커톤의 창립자인 앨런 핑커톤과 그의 아들인 윌리엄 핑커톤, 그리고 핑커톤 소속 탐정인 케이트 와르네[* 밑에 있는 여담에 써진 걔.]를 다룬 드라마다.
미국 최초의 여성 탐정인 케이트 와르네(Kate Warne)가 고용된 탐정 회사이기도 하다. 1856년 고용되었다고.
- 하이큐/214화 . . . . 5회 일치
* 지금은 도쿄 원정 중 죠나미 고교와 연습시합.
* 우시지마를 비롯한 시라토리자와 멤버들도 체육관에 도착. 우시지마는 한발 먼저 와서 훈련을 견학하고 있다.
* 사토리는 "요괴 애들은 노력하고 있나"고 묻는데, 히나타를 가리키는 것이다. 카게야마와 히나타는 왠지 요괴한다면서.
* 다른 멤버들은 "이정도는 당연히 들어와야지라고 말하는 듯한 세트업"이란 인상을 받아버린다.
- 하이큐/235화 . . . . 5회 일치
* 츠바키하라고 쉽게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츠키시마의 서브를 잘 받아서 마루야마에게 연결, 바로 점수를 되찾아간다. 마루야마는 1학년 콤비의 속공은 익히 알던 바라며 막아버리자고 동료들을 북돋우지만 정작 동료들은 별로 자신이 없어 보인다. 마루야마는 그대로 서브까지 치는데 어려운 코스였지만 [[사와무라 다이치]]가 가뿐하게 받아낸다.
관중석에서 보고있던 카라스노 출신자들은 사와무라의 실력이 올라갔다며 감격한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페이크 플레이로 자신이 득점을 올린다. 이 플레이로 카라스노 측으로 많이 넘어와 있던 분위기가 한층 기운다.
* 상식을 초월한 카게야마의 파인 플레이에 배구를 잘 모르던 관중들까지 들썩인다. 특히 카게야마가 서툴다고 깔봤던 커플은 서로 카게야마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중계진은 새삼 카게야마가 전일본 유스에 지명될 정도로 유망한 선수라고 추켜세우고 호흡을 맞추는 히나타 또한 "잘 쳤다기 보다도 공중에 있었다"라고 할 정도로 결성한지 1년도 안 된 콤비라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칭찬한다. 이와중에도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방금 플레이에 불만이 있는지 서로 옥신각신하는데.
- 하일권 . . . . 5회 일치
2009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3단합체 김창남>을 연재하기 전에 기획하였던 수영만화를 조금 수정, 각색하여 준비하였다. 중학교 때 1등과 반장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배수구는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수영복을 달라고 하여 변태로 오인받게 된다. 결국 배수구는 아버지가 교감선생님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배수구는 수영복사진을 찍다 담임선생님에게 들키고 만다. 수구부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수영장에서 벌어진 일을 눈 감아주는 대신 여장을 하고 수구부에 들어오라고 배수구에게 제안한다. 결국 배수구는 김소녀라는 가상의 이름을 가진 소녀로 수구부에 들게 되고, 수구부에 들어오면서 자기와 같은 갈등과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면서 그 갈등을 견디어 나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WATERCUB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영화화가 결정되었으나, 불발되었다.연출자가 바뀌었다는 이유. 하지만, 제작사 문와쳐 측에서 제작 중단설을 부인.
주인공 '김기두'가 여자친구와 첫날밤을 맞게된 날, 갑작스레 납치가 되고 자신이 '슈퍼정자'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19금 만화책인 ‘코끼리 애교’ 출판에 참여하였다. 또한 ‘히어로 주식회사’, ‘육식공주 예그리나’와 같은 도서의 스토리를 맡기도 했다. 블로그에서 ‘박사박사와 발명의성’과 ‘0.1g’이란 만화를 잠깐 올리기도 하였다. '도밍고씨의 흥하는 흥신소'라는 by series브랜드 웹툰도 연재했었다.
- 하쿠다 켄 . . . . 5회 일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백남준]]의 큰형이자 당시 [[대한민국]] 최대의 섬유 기업 태창방직(방림방적의 전신)의 회장이었던 백남일의 장남으로 '''백건'''(白健)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1960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일가족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태창방직이 [[대한민국]] 정부에 몰수당하게 되자 부모와 일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 귀화하여 이 때 이름을 일본식으로 하쿠다 켄(白田健)으로 개명하고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숙부인 [[백남준]]의 도움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하여 경제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고 장난감 판매, [[텔레비전]] 프로덕션 등의 사업을 하던 그는 [[1990년대]] 이후 숙부 [[백남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숙부의 작품 활동을 도왔다.
[[2006년]] 백남준이 타계한 후 그는 [[미국]] [[뉴욕]]의 백남준 스튜디오와 백남준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물려받아, 현재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의 이사이자 백남준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작품 관리와 기념사업 등을 책임지고 있다.
[[2006년]] [[백남준]]의 사후 추모행사 및 [[백남준아트센터]] 건립 문제와 관련하여 하쿠다는 [[경기문화재단]] 및 [[대한민국]] 미술계 인사들과 큰 갈등을 겪은 바 있다. [[2008년]] 경기문화재단과 하쿠다의 합의가 극적으로 이루어져 동년 [[4월 30일]] 백남준아트센터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개관하였다.
- 한상대 (검사) . . . . 5회 일치
한 후보자의 부인과 두 자녀는 각각 1998년 5월, 2002년 9월에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용산구 이촌동으로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8181.html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 ‘재산 25억’]《한겨레》2011년 7월 19일 석진환 기자</ref> 위장전입 덕에 큰 딸은 이촌1동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모 외고에 진학한 뒤 아버지와 같은 고려대를 나왔다. 둘째 딸은 그러나 성악을 희망, 일반중학교가 아닌 예술계중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위장전입 두 달 만인 같은 해 11월 주소를 다시 서빙고동으로 옮겼다. 한 내정자는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며 "딸이 친한 친구와 함께, 같은 이웃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주소를 이전했던 것"이라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그는 그러나 "부동산 투기 등 다른 사유는 전혀 없다"며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결과적으로 위장전입을 한 것이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7147 "딸이 친구와 학교 다니고 싶어해", MB지명 총장 '전원 불법']《뷰스앤뉴스》2011년 7월 18일 김동현 기자</ref>
조선일보는 2011년 7월 21일자 6면 <권재진·한상대, 같은 시점에 제주 한동네 오피스텔 샀었다>는 기사를 통해 한상대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경향신문은 2011년 7월 21일자 1면 <한상대 후보 양도세 탈루 의혹>이라는 기사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서울시내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땅을 다운계약으로 헐값에 팔아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20일 제기됐다"고 보도했다.<ref>[http://www.injournal.net/sub_read.html?uid=22642§ion=section3 MB와 끈끈한 한상대 양파 검찰총장?]《인터넷저널》2011년 8월 5일</ref>
한인대는 사찰총장 취임사에서 "오늘 검찰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땅에 3대 전쟁을 선포하고자 한다"며 "하나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이고, 둘째는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이며, 마지막으로는 우리 내부의 적과의 전쟁"이라고 '전쟁'이란 표현을 연거푸 사용했다. 또한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공안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덧붙였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0657 "한상대의 '전쟁 선포'... 박영선이 옳았다"] 《오마이뉴스》 2011년 8월 13일 박주현 기자</ref> 경향신문은 칼럼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했습니다. 반 총장은 종북좌익세력인가요, 아닌가요. 노동, 경제, 반(反)복지 정책 등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면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종북세력입니까"라며 한상대의 발언을 비판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151805021&code=940301 검찰과의 전쟁] 경향신문 2011년 8월</ref>
- 한영이 . . . . 5회 일치
한영이의 딸 [[권진이]]가 친구 [[이경이 아가타]]를 데려와서 함께 살았다. 그 세 명의 여성은 모두 신앙생활과 고행에 열심하며 살았다.
한영이는 한 배교자의 고발로 [[1839년]] [[7월 17일]]에 그녀의 딸 권진이와 딸의 친구 이경이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런데, 한영이만 따로 수감 되었고, 딸 권진이를 포함한 세 명의 여성은 포졸들의 감시 하에 이웃 집에 수감되었다. 배신자 [[김여상]]이 [[권진이]]를 첩으로 들이려 유혹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젊음과 미모를 동정한 포졸들에 의해서 풀려났다. [[조정 (정치)|조정]]에서 그 사건을 알고 김여상에게 협조한 관리 및 포졸들을 처벌했다. 권진이를 포함한 그 세 명의 여성은 나중에 다시 체포되었다.
그녀는 마침내 [[1839년]] [[12월 29일]]에 [[서소문]] 바깥에서 여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56세였다.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한혜숙(배우) . . . . 5회 일치
원래는 MBC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1971년]] KBS 주연급 탤런트 모집에 당선되어 [[하명중]]과 공동주연한 드라마 '꿈나무'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5년에 방영된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TBC에는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로 대표되는 2세대 트로이카가, MBC에는 [[양정화(배우)|양정화]]와 [[김자옥]][* 이후 [[김영란(배우)|김영란]].]이 있었다면 [[KBS]]에는 한혜숙이 있다할 정도로 KBS 대표 탤런트로 활동하였으며, 1979년 KBS 대하 드라마 '[[토지#s-7.1|토지]]'에서 제1대 [[최서희]] 역할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그 후 1986년 ~ 1987년 KBS 대하 드라마 '[[노다지#s-6|노다지]]'에서 최실단과 최성희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드라마]] 속에서 일제시대 엘리트 여대생이었으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비극적 인생을 살게 되는 연기를 하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연기로 [[전설의 고향]]에서 방영했던 [[구미호(전설의 고향)|구미호]]에서의 구미호 역할이 있다. 전설의 고향 제 1호 구미호였는데 당시의 흑백화면과 함께 약간 독한 인상을 보여주는 한혜숙의 표정 연기가 어우려져 [[내 다리 내놔]]와 함께 진짜 [[레전설]]급 트라우마를 남겨주었다. 당시 전설의 고향 애청자들 중에는 전설의 고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한혜숙이 구미호로 변신하는 마지막 장면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당시 초딩이었던 사람들에게는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 수준으로 무서운 인상이 남아 있었다고.
[[김영애]], [[김자옥]] 등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비교해 영화 출연이 드문 것은 물론 흥행작이 없는 것도 아쉽다. 물론 한혜숙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영화]]가 사양길에 들고 '호스티스 영화'들이 생기면서 '벗기기 경쟁'이 과열했을 때이니 직선적이고 도도한 성격인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듯.[* 실제로 호스티스 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 한혜숙도 영화에 출연했는데 호스티스물은 단 1편도 없었고, '[[족보(영화)|족보]]', '[[최후의 증인]]'과 같은 작품성이 진한 작품들에 출연했었다. ~~물론 흥행은...~~ 이후 1987년, 곽지균 감독의 '두 여자의 집'에 출연했을 때 [[19금]]이긴 했지만, 노출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2세대 트로이카나 김자옥, [[김영란(배우)|김영란]] 등 당대 톱탤런트들도 호스티스 영화와 같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했지만, 한혜숙과 같이 '벗기기'에 거부감이 들어 전성기 시절 전혀 영화출연을 하지 않은 스타가 있었는데, [[이경진]]이다. 이쪽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은 물론 아예 영화 자체에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김자옥]]의 경우에는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2세대 트로이카]]와 맞먹을 정도로 수많은 흥행작을 내었고, [[김영애]]는 김자옥만큼은 아니더라도 늦게나마 '[[빙점 81]]' 등의 흥행작을 냈지만 한혜숙은 그렇지가 않다.
젊은 세대들한테는 드라마 [[인어 아가씨]]에서 [[장서희]]와 말싸움을 벌이던 그분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을듯. ~~[[https://youtu.be/8R6dlgU4dqo|야! 너 작가면 다야? 뽀글뽀글 머리는 싫단 말이야!!]]~~ 실제로 인어 아가씨 출연 이후로는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만 출연하였으며 그나마도 [[2009년]] [[보석비빔밥]]을 끝으로 연기활동을 중단하였다.
- 함신익 . . . . 5회 일치
'''함신익'''(咸信益, [[1957년]] - )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신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미국]]으로 유학해 [[라이스 대학교]] 석사 와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1991년 [[폴란드]]의 피텔베르크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밀브룩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와 퍼시픽 대학교 지휘 교수로 부임했다.199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에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린베이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와 예일 교향악단 음악 감독, 폴란드의 실레시아 오페라단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2001년~2006년까지 [[대전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2014년 현재, 혁신적인 재원 지원 정책 및 경영 방침을 근간으로 한 함신익의 심포니 송(Symphony S.O.N.G;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 오케스트라를 창단 후 창단연주회를 2014년 8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하였다.
그는 예일대 지휘과 교수로 1995년 이래 재직중이고, 대전시립교향악단 (2001-2006) 과 KBS 교향악단 (2010- 2012)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미국에서는 Abilene Philharmonic과 Tuscaloosa Symphony의 음악감독 으로 각 10여 년간 재직하였다. 또, Green Bay Symphony와 Milbrook Orchestra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스페인 The Basque 신문은 함신익 지휘의 빌바오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음색, 극적이면서도 정교한 연주" 로 극찬하였다.
- 함화진 . . . . 5회 일치
[[대한제국 고종|고종]] 21년인 1884년에 대대로 왕실의 악사를 지낸 [[양근 함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함화진(咸華鎭)이었다. 함화진의 집안은 세습적인 악사 가문으로 증조부 함윤옥은 [[조선 순조|순조]]와 [[조선 헌종|헌종]] 때 악사였고, 할아버지 함제홍은 헌종 때 [[단소]]와 [[젓대]]의 명수로 불렸다. 큰아버지 함재홍은 젓대, 아버지 [[함재운]]은 [[거문고]]의 대가였다.
한편 [[1912년]]부터 조선정악전습소의 가야금 교사로 재직했고, [[193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이론과 거문고, 가야금, 양금 등 실기를 가르쳤다. [[1930년대]]에는 [[편경]]과 [[편종]]을 제작하고 [[처용무]]를 재현하는 등 국악 전통의 복구와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일제 패망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이왕직아악부가 사라지고 함화진을 중심으로 [[대한국악원]]이 결성되었다. 대한국악원은 아악 전통을 고수하던 구 이왕직아악부와는 달리 창악, 기악, 창극, 무용, 농악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민족음악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 대한국악원이 전국농악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계 내부에서 일종의 사회참여파를 형성하면서, 이 단체를 이끈 함화진은 [[남로당]] 불법화와 [[좌익]] 세력 색출 과정에서 좌익으로 몰려 피검되었다.
- 허일상 . . . . 5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8년 ~ 2009년)
* [[SK 와이번스]] 배터리코치 (2015년)
'''허일상'''(許一相, [[1979년]] [[12월 21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포수]]이자, 전 [[SK 와이번스]]의 배터리 코치이다.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허씨]]
- 현재덕 . . . . 5회 일치
'''현재덕'''(玄在德, [[1912년]] ~ ?)은 [[일제 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아동 문학|아동문학가]], [[삽화|삽화가]], 아동[[미술]]가이며,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延州)]]이다.
[[안회남]]이 친구인 [[김유정 (소설가)|김유정]]에 대해 적은 글에는 김유정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날 때 현덕, 현재덕 형제와 함께 세 사람이 배웅했다는 내용이 나오며, [[임화]]가 [[서정주]]에게 보낸 편지에 현덕, 현재덕의 작가 형제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이웃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 언급<ref>{{뉴스 인용
광복 후 좌익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동맹]]의 아동미술분과와 [[동지사아동원]]에 가담했다. 동지사아동원에서는 필명이 박두루미인 [[박인범 (작가)|박인범]]과 함께 어린이들 대상의 구연 동화 활동을 했다. [[한국 전쟁]] 기간 중 현덕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월북했으며, 서울에는 부인과 딸을 남겨두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아동문학가로 일했다는 사실만 단편적으로 전해졌을 뿐, 활동상에 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제목=6. 미술가와 친일 3 - 조소, 삽화, 만화, 표지화 ②
* 김영순, [http://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hyundek&wr_id=4&page= 아동문학 선구자 현덕 - 생애와 업적] (동심넷 - 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 홍명찬 . . . . 5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6년]] 4차 2라운드 12순위([[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2006년 ~ 2015년)
'''홍명찬'''(洪明燦, [[1987년]] [[1월 19일]] ~ )은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다.
{{SK 와이번스 신인지명 선수}}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응암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한서고등학교 동문]]
- 홍병선 . . . . 5회 일치
홍병선이 귀국한 해에 과거 경성학당 교장이었던 일본조합교회의 와다세(渡賴常吉)가 정식 선교사로 임명되어 조선에 파견되어 왔고, 홍병선은 와다세가 설립한 한양교회의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동시에 [[보성전문학교]], [[피어선기념성경학원]], [[배화여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25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홍병선은 신흥우와 함께 [[1927년]] [[덴마크]]와 [[미국]]의 농촌사업을 시찰하고 돌아온 뒤, 농촌 협동조합 및 구락부를 조직하는 사업에 열중했다. 덴마크식 농촌사업을 위해 [[1931년]] 서울 [[신촌]]에 농촌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고등농민수양소를 세우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홍병선과 농촌진흥운동을 함께 했던 [[윤치호]], 신흥우 등이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전쟁 지원을 빌미로 적극적인 친일파로 돌아서면서, 홍병선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한국 YMCA가 폐쇄되어 일본 YMCA 산하로 흡수 편입될 때 주역이었고, [[1938년]]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개최된 전쟁협력 강연에 [[정춘수]], [[박연서]], [[이동욱 (목회자)|이동욱]] 등 감리교 목사들과 함께 연사로 참가했다. 같은 해 YMCA가 발행하는 《청년》에 〈기독교도와 시국〉이라는 글을 발표해, 기독교도의 신사참배는 황국신민으로서 다른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라며 [[신사참배 강요]]에 호응하는 주장을 편 일도 유명하다.<ref>{{서적 인용
- 홍인한 . . . . 5회 일치
과거 급제 후 청요직을 거쳐 1757년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했으며 전라도관찰사 재직 중 [[기생]]들의 춤과 노래실력을 트집잡아 [[곤장]]을 남발하고 즐겼다고 한다. 이는 중앙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성대중]]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승지, 사간, 대사헌, 호조와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이조, 병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두루 거쳐 1774년 의정부우의정, 1775년 의정부좌의정이 되었다.
선조의 6대손이자,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예조판서 [[홍현보]]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로 이세황의 딸이다.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혜경궁 홍씨]]의 이복 작은 아버지(숙부)이며, 관찰사를 지낸 홍창한은 8촌 형이 된다. 친동생은 [[홍용한]], [[홍준한]] 등이 있다.
음서로 관직에 올라 [[통덕랑]]이 되었다. 통덕랑으로 재직 중 [[1753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조선의 대표적 명문 가문인 [[풍산 홍씨]] 가문의 일원이며, 혜경궁 홍씨의 친정 숙부라는 점도 작용해 [[영조]]의 신임을 받으며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53년 가주서와 [[정언]]을 지내고 1754년 [[교리]]로 있을 때 [[조영순]](趙榮順)을 변호하려다 파직되었다.
그 후 승지, 한성부우윤, 대사헌 등을 지내고, 1762년 호남안집사(湖南安集使)로 순무하고 돌아왔다. 호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자헌대부로 승진, 공조판서와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6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774년]] [[의정부]][[우의정]]으로 특진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774년]] [[우의정]]에, [[1775년]]에 [[좌의정]]에 각각 임명되었으며, 1775년 세손(훗날의 정조)이 대리청정을 맡게 되자 이를 반대해 [[영조]]가 세손의 대리청정을 명할 때 세손은 세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 강변하며, 승지와 사관의 대필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대리청정 뜻이 확고해지자 [[혜경궁 홍씨]]는 사전에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한중록]]에 의하면 대조의 뜻이 그러함을 편지로 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인한은 벽파의 당론에 따라 벽파, 외척당, [[정후겸]] 등과 함께 세손을 반대하였고, 홍인한은 영조의 면전에서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했다. 이후 [[정후겸]], [[심상운]] 등과 함께 [[홍국영]] 등을 모해하는 상소를 올렸다. 또한 부사직 심상운을 시켜 세손의 대리청정 반대 여론을 조장했지만, [[홍국영]]의 부탁을 받은 부사직 서명선이 역탄핵상소를 올려 논박했고 오히려 심상운은 유배되었다.
- 황덕균 . . . . 5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9월 8일]] <br /> [[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친 그는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이적에 실패했고, 2011년 [[서울 해치]]에 입단했다.
[[서울 해치]]의 해산 이후 트라이아웃을 통해 [[NC 다이노스]]에 이적했고, [[2013년]] [[9월 5일]]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다. [[9월 8일]] [[SK 와이번스|SK]]전을 통해 데뷔 11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1피안타 2볼넷으로 2실점(비자책)한 후 [[정진 (야구 선수)|정진]]과 교체되어 마운드를 내려갔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98580 NC 황덕균, 11년 만에 밟은 1군 마운드] - MK 스포츠</ref>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3년]] [[NC 다이노스]]에서 시즌 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현역 연장을 선언하여 방출되었다.<ref>[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063 NC, 황덕균·한윤기·박정훈·김동건 방출] - 경남도민일보</ref>
입단 테스트를 받아 [[2016년]]에 입단하였지만 연습 경기와 시범 경기에서 워낙 안 좋은 피칭을 많이 보여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등록된 당일 경기였던 [[KIA 타이거즈|KIA]]전에 구원 등판했고, 아웃 카운트 3개를 잡는 동안 볼넷을 단 한 개만 내주면서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2016년 9월 15일, [[kt 위즈]]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박주현 (야구 선수)|박주현]]이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강판되자 2번째 투수로 올라와 5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대역전승에 기여하였다. 2016년 9월 1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김정인]]이 조기 강판당하자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600&key=20160920.99002161812 '7전 8기' 넥센 황덕균, 15년 만에 거둔 첫승…4이닝 무실점 '역전'의 호투] -국제신문 </ref>
- 황병일(1960) . . . . 5회 일치
|| '''지도자''' || [[빙그레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 타격코치 (1990~2002) [br]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3)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4~2005) [br]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6) [br]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8~2009) [br]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0~2011) [br]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2) [br]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3) [br]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4) [br] [[kt wiz]] 2군 감독 (2015) [br] [[kt wiz]] 1군 수석·타격코치 (2015~2016) [br]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 (2018~) ||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종 6차전의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나와, 해태 투수 [[문희수]]에게 삼진을 당하며 해태의 3년 연속 우승을 확정지어주는 제물이 되었다. ~~허용타자~~
===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1982)|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1 시즌이 끝나고 조범현 감독이 ~~경질되며~~사퇴하며 황병일도 수석코치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삼성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무려 26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는 것. ~~그리고 2012 시즌 삼성 2군 타자들은 죄다 부진했다.~~[* 2011 시즌 삼성 2군 팀 타격 기록이 도루 제외 전부문 전체 2위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팀 타격 기록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는데, 특히 사사구와 홈런이 급감해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이 하위권으로 크게 하락했다. 참고로 2012 시즌 삼성 2군 타격코치는 황병일을 포함해 [[강기웅]]과 [[김종훈(1972)|김종훈]]까지 3명으로 등록되었었는데, 김종훈은 시즌 중 1군 선수단에 합류했고, [[강기웅]]은 이제 코치로 복귀한지 2년째가 되기에, 연배나 경험이 많은 황병일이 메인 타격코치를 맡았다.]
- 황석두 . . . . 5회 일치
비천주교인들까지도 황석두의 헌신과 충실함 그리고 훌륭한 성품에 감복하였다. [[페레올]] [[주교]]가 [[조선]]에 입국 했을 때, 황석두는 여생을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절제와 [[금욕]]을 위해 페레올 [[주교]]에게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 받고 독신으로 살았다. 주교는 황석두를 [[사제]]로 만들기로 결심했지만, [[교황청]]에서는 [[조선]]에 황석두의 아내가 입회할 [[수녀회]]가 없다는 이유로 주교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황석두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친척들이 그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았다. [[페롱]] [[사제|신부]]는 황석두를 [[한문학]] [[교사]]이자 [[교리]] [[교사]] 및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그는 [[사제]]들의 [[복사 (기독교)|복사직]]도 수행했다. 황석두는 그 의무들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그는 마침내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의 복사가 되었다. 그는 [[주교]]들과 함께 여러 권의 [[서적]]을 [[번역]] 및 저술하였다.
[[1866년]] [[3월]] [[충청도]] [[홍주군|홍주]] 거더리에서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었는 데, 그는 황석두의 지식과 능변을 아까워하여 포졸들에게 황석두만은 체포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황석두는 [[한양]]으로 압송되는 주교를 수 십[[리]] 동안 뒤따라가 [[체포]]되어 [[주교]]와 함께 함께 압송되었다. [[1866년]] [[3월 30일]] 황석두는 [[사형]]을 선고받고 [[보령시|보령]]의 [[갈매못]]([[충청도]]에 있던 [[해군]] 기지)에서 [[다블뤼]] [[주교]]와 [[위앵]] [[사제|신부]], [[오메트르]] [[사제|신부]] 그리고 [[장주기]] 등과 함께 [[참수]]되고 [[군문효수]]되었다. 그렇게 그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54세였다.
- 황재규 . . . . 5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9년]] [[4월 17일]] <br />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SK 와이번스|SK]]전
[[청원고등학교 (서울)|서울청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동기인 [[허유강]] 선수와 함께 팀의 주축 선발 [[투수]]로 활약하였다. 제 4회 세계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 대표팀으로 참가하여,<ref>[http://isplus.joins.com/sports/kbo/200806/12/200806122017013276010700000107020001070201.html 세계 대학야구 선수권 대표팀 명단 발표] 《일간스포츠》, 2008년 6월 12일 작성</ref> [[일본]]전에서 좋은 투구를 보여 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067& 세계 대학야구 결산 - 협회의 외면 속에서도 유망주는 큰다] 《박동희칼럼》, 2008년 7월 29일 작성</ref> 제 1회 KBO 총재기 대학 야구 결승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정태승]]에 이어 팀의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8.1 이닝 3안타 6탈삼진 1실점의 호투로 [[성균관대학교]]의 우승에 기여하였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 올랐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48816 성균관대, 연세대 꺾고 제 1회 KBO 총재기 우승] 《조이뉴스》, 2008년 8월 8일 작성</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075& 대학야구 취재기,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박동희칼럼》, 2008년 8월 9일 작성</ref>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81205 한화 신인 황재규, '젊은 마운드의 중심이 되고 싶다'] 《조이뉴스》, 2008년 12월 23일</ref> [[2009년]] [[4월 17일]]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SK 와이번스|SK]]전에서 프로 첫 출장을 갖는다. [[2009년]] [[5월 8일]] [[잠실야구장|잠실]]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프로 통산 첫 선발 [[투수]]로 나와 3.2이닝 동안 6피안타 4실점을 허용하면서 통산 첫 패전을 기록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5080245 '첫 선발' 황재규, 아쉬움 속 희망을 쏘다] 《Osen》, 2009년 5월 8일 작성</ref><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413573 한화 황재규, 데뷔 첫 선발 '실책 2개에 울다'] 《조이뉴스》, 2009년 5월 8일 작성</ref> 1군 9경기에 그친 [[2010년]] 시즌 종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고, 소집 해제 후 [[2013년]]에 복귀하여 [[2013년]] [[5월 7일]] 마산 NC전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 2015년 4월 개인적인 사유로 임의탈퇴되었고, 사용하던 등번호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이적해 온 [[허도환]]이 달았다.<ref>[http://www.sportsseoul.com/?c=v&m=n&i=196506 한화의 충격적인 트레이드 단행, 도대체 왜?] 《스포츠서울》, 2015년 4월 9일 작성</ref>
2016년 8월 6일 외야수 [[황선일]]이 웨이버 공시 되면서 정식 선수로 등록되고 그와 동시에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ref>
- 효령대군 . . . . 5회 일치
[[조선 세종|세종대왕]]의 형이자 [[조선 세조|세조]]의 백부로 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세종|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조선 문종|문종]], [[조선 단종|단종]], [[조선 세조|세조]], [[조선 예종|예종]], [[조선 성종|성종]] 등 6대에 걸쳐서 장수를 누렸다. [[임사홍]]은 그의 손녀 사위였고, [[이량 (조선)|이량]]은 그의 5대손이며, [[조선 명종|명종]]<ref>그의 종6대손이기도 하다. 세종-세조-예종-성종-중종-명종</ref> 의 부인인 [[인순왕후]]와 [[심의겸]], [[심충겸]]은 그의 외6대손이다.
또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이 편집한 『조야휘언』필사본에는 '세종이 태평관에서 [[중국]] 사신을 맞이하여 잔치를 하는데 효령대군이 술을 권하자 일어나 받았다. 이를 보고 사신이 말하길 "임금이 형을 우대하는 것이 이와 같구나"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서술하였다. 당시 왕실의 형제간 우애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의 아들 중 [[보성군]]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역대 주요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보성군]]의 사위 [[임사홍]]은 [[조선 성종|성종]]과 [[조선 연산군|연산군]] 대의 문신이며, 그의 아들(효령대군에게는 외증손) [[임광재]]는 [[조선 예종|예종]]의 딸 [[현숙공주]]와 혼인하고, 다른 아들 [[임숭재]]는 [[조선 성종|성종]]의 딸 [[휘숙옹주]]와 혼인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다.
서원군 친의 아들 회의도정 이추(懷義都正 李菆) 사위 안온천(安溫泉)은 세종의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안맹담]]의 아들이다. 따라서 서원군 친이 안온천에게 외5촌 당숙이면서 처조부, 회의도정은 안온천에게 장인이면서 6촌 외재종형이 되고, [[정의공주]]가 회의도정에게 5촌 당고모가 되므로, 안온천은 회의도정에게 사위이면서 내재종 동생이 된다.
- FN 에르스탈 . . . . 4회 일치
FN Herstal. 1988년까지는 "에르스탈 국립공장"[* Fabrique Nationale d’Herstal]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벨기에]]의 [[총기]] [[기업]]. [[브라우닝]], [[윈체스터]][* 전부는 아님.]와 함께 "에르스탈 그룹"의 산하 [[회사]]로, 주요 활동 분야는 소화기와 그 탄약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벨기에 정부는 FN을 독일인들에게서 몰수, 벨기에 기업에 팔아넘긴다. 이때 쯤 FN은 총기와 자전거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30년대 대공황이 닥치며 자동차 사업은 군용차만 생산하는걸로 바뀌었다.
- HelpOnEditing . . . . 4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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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4회 일치
|| 55 || 2016.06.04 || 광주 FC vs 전북 현대[* 전북과 맨체스터 시티와의 친선전 때문에 본래 전북 홈에서 열기로 한 경기를 광주월드컵 경기장으로 바꿔서 치루게 되었다.] || 1:1 ||
|| 133 || 2016.07.28 || 전북 현대 vs 광주 FC[* 전북과 맨체스터 시티와의 친선전 때문에 이 133번 경기는 55번 경기와 홈구장을 바꿔 치루게 되었다. 또한 날짜도 30일에서 28일로 변경.] || 0 : 0 ||
1. [[맨체스터 시티]]와 전북 현대가 친선전을 갖게 되어 리그 일정에 변경이 생겼다.
- OK 본 . . . . 4회 일치
'''오케이 본'''(케본)은 [[대한민국]]의 랩퍼다. [[서울]] [[목동 (서울)|목동]]에 거주하며, 친구 [[O.D]]와 함께 힙합 팀 '[[구단지 독서실]]'의 멤버이다. 음악적으론 [[라임]]을 중시한 [[랩]] 스타일이 특이하다. 그리고 이센스와의 디스전이 있었고, 이센스가 랩 정상으로 갈 수 있는데 든든한 발 받침대가 되주었다.현재는 모 대기업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Tattoo Nation]] 1집 - 문신사와 나
* [[이센스#OK Bone과의 디스전|E-Sens와 O.K Bone의 디스 사건]]
- USS 피닉스 (CL-46) . . . . 4회 일치
이렇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피닉스는 미국 본토와 하와이 간의 수송 함대를 호위하는 임무나 호주 해역을 항해하는 병력수송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2월에는 당시 네덜란드 영토였던 [[자바]] 섬에 항공기를 수송하는 선박들[* USS 랭글리(USS Langley)와 MS 씨위치(MS Seawitch).]을 호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도양 초계, [[봄베이]]로 가는 수송선단 호위, 자바 섬에서 패배한 연합군 병력 구조 등의 임무에 참가하였다.
일본이 항복한 후에는 본토로 돌아와 대서양 함대에서 복무하였다. 1946년 2월 28일 예비역이 되었으며, 1946년 7월 퇴역. 아르헨티나에 넘겨지기 전까지 필라델피아에 정박해 있었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 . . . . 4회 일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5.3|국가와 정부]]''' 기술 연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5.3|국가와 정부]]''' 기술 연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5.4|민족주의와 제국주의]]''' 기술 연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s-6.2.1|작업 관리와 계층제]]''' 발명 발견시 '''{{{#green +2%}}}'''
- ∀건담 . . . . 4회 일치
마지막 시대를 다룬 건담 작품으로 기존 건담 시리즈와 동일하게 지구와 우주의 갈등의 중심에서 주인공 [[로랑 세아크]]와 각 인물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주요 스토리이다.
달은 과거의 기술과 역사를 잃어버린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일환으로 지구귀환작전을 펼친다. 그리고 [[정력]] 2343년, 운하인으로 태어난 문레이스 [[로랑 세아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인 [[프란 돌]], [[키스 레제]]와 함께 모빌슈츠 [[플랫]] 2호에 탑승하여 [[잉그렛샤]]에 내려가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갔다. 그렇게 지낸지 2년이 지난 정력 2345년, 로랑은 정착하기로 한 비시니티에서 성인식을 치루던 도중 달의 지구귀환작전이 발동되면서 지구는 전쟁속에 휩싸이게 되고,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때맞춰 깨어난 기계인형 화이트돌에 탑승하게 된다.
- 갸루 . . . . 4회 일치
* 야만바(ヤマンバ) : 200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 어원은 [[야마우바]], 야만바 등으로 불리는 일본의 요괴 마귀할멈(山姥). 머리카락은 탈색한 백발, 흐트러진 헤어스타일, 태닝하여 아주 검게 된 피부(간구로ガングロ 라고 한다) 등이 특징. 태닝한 검은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립스틱이나 아이라인은 하얀색을 사용한다.
* 시로갸루(白ギャル) : 2000년대에 나타난 스타일. 서퍼 패션과 LA패션에 영향을 받아 태닝을 좋아하던 이때까지의 갸루 패션과는 반대로, 하얀 피부와 금발에 가까운 염색 등으로 미백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 양갸루(ヤンギャル) : 양키 + 갸루. 양키 패션에서 갸루 패션으로 변화하는 중간단계(?)거나, 혹은 양키와 갸루를 한데 묶은 단어이다.
* 오갸루(汚ギャル) : 야만바와 함께 유행한 단어. 더러운 갸루라는 뜻이다. 갸루 패션을 하였으면서 [[가출]], [[부등교]] 상태에 있어 [[위생]]을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 사례. [[목욕]]이나 [[세탁]]은 제대로 안 하는 상태에서 [[화장]]만 덕지덕지 하다보니 위생이 처참한 상태에 이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 . . . 4회 일치
바깥에선 문무겸비에 용모와 인성까지 갖춘 [[재녀]]로 추앙 받는 도마 우마루.
그 뒤치닥거리를 하는 오빠 도마 타이헤이와 우마루의 코믹한 일상.
[[요츠바랑]]과 유사한 치유물이다. 우마루와 그 여고생 친구들이 잔뜩 나와서 [[미소녀 동물원]]의 일종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약간이나마 연애요소도 나오고 타이헤이가 제 2의 주인공 격이라서 그의 주변인물들도 중요한 위치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8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그 148. '''우마루와 어둠'''
*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키리에에게 "주인공 캐릭터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 키리에는 귀가 후 우마루(코마루)와 미팅한 내용을 의논한다.
*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예상대로 고정이 됐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9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그 149. '''우마루와 집보기'''
우마루와 히카리는 단둘이 집보기를 하게 된다.
* 다툴 새도 없이 바쁘게 청소와 요리를 병행하다 보니 완전히 녹초가 된다.
* 히카리와 우마루 모두 요리치였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2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2화. '''우마루와 전골'''
* 집에 돌아와 보니 키리에와 우마루(코마루)가 기다리고 있다.
* 타이헤이는 고기보단 야채를 먹으라고 하는데 봄바와 우마루는 무시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9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9화. '''우마루와 칠석'''
* 그런데 손님이 와서 타이헤이가 주의를 돌리자 그때 뛰쳐나와 베란다로 피신한다.
* 에비나와 우마루는 탄자쿠를 걸려고 하는데, 우마루의 소원은...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2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2화. '''우마루와 접대'''
* 왠지 선물이 산벚꽃떡이라 콜라와 궁합은 최악. 타이헤이는 혹평한다.
* 타이헤이와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상사가 된 이후엔 일 얘기만 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카나우.
* 카나우와 우마루 조합은 처음. 일단 상성은 괜찮은 것 같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7화. '''우마루와 삼자면담 2'''
* 도마 우마루와 친구들은 학부모 참석 하에 진로 상담을 받는다.
* 어쨌든 우마루는 오빠가 와준 것에 기뻐한다.
* 좋은 일이란 타이헤이가 상담에 와준 것,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9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9화. '''우마루와 폰게임'''
* 콘고 히카리와 뒹굴대고 있는 도마 우마루(코마루)
* 다양한 매체와 콜라보도 진행 중인데 히카리는 상투 고양이 콜라보 캐릭을 탐낸다.
* 그러나 가챠로 나오기 때문에 과금한 보람도 없이 평범한 냥이만 튀어나와 쓰러질 정도로 실망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70화. '''오빠와 여동생의 이야기'''
* 모토바 타케시(봄바), 타치바나 알렉스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콘고 카나우가 은근슬쩍 끼어든다.
* 출근한 타이헤이는 점심 시간에 봄바와 알렉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며 푸념한다.
* 둘만 덩그런히 남은 카나우와 타이헤이.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3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73화. '''우마루와 마라톤대회'''
*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바 키리에는 초반부터 치고 나가며 경쟁한다.
* 도마 우마루가 그토록 싫어하던 마라톤 대최 개최. 우마루와 친구들은 맨 앞줄에 서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의욕이 넘치는건 타치바나 실핀포드 뿐이고 모토바 키리에는 옆에 우마루가 있는걸 더 신경쓰고 있다.
* 그날 저녁. 둘 모두 도마가에서 저녁을 먹는다. 메뉴는 돈가스. 타이헤이가 어땠냐고 묻는데 "묻지 않는게 좋은 순위"를 기록했다 한다. 하지만 타이헤이는 순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둘은 거의 학년 꼴찌로 골인하지만 끝까지 달렸다. 우마루와 에비나는 그래도 "창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특별편 8화 . . . . 4회 일치
* 히카리는 "언니랑 같은 학교가 아니냐"고 묻는데, 사실 이 시절 카나우는 타이헤이와 거리가 있는 사이였다.
* 결국 타이헤이를 데려오지 못한 카나우는 신작 영화를 빌려와 히카리와 같이 본다.
* 카나우와 타이헤이의 연령대가 대략 확인됐다.
- 고세원 . . . . 4회 일치
KBS 공채탤런트 19기로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입학하여 고세원은 14년 만인 [[2010년]] [[2월 18일]] 가수 [[바다 (1980년)|바다]](최성희)와 함께 33살의 늦깎이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함께 학사학위를 받은 [[바다 (1980년)|바다]](최성희)에게는 12년 만의 학위수여식이었다.
고세원은 [[뮤지컬]]《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뮤지컬]]에서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의사《닥터리》와 멀티맨으로 출연하는 고세원은 그동안 뮤지컬《벽을 뚫는 남자》,《아이러브 유》,《김종욱 찾기》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이다. TV쪽에서는 10년 여 간《[[막돼먹은 영애씨]]》의 김혁규(빡규)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일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역할로 자주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고세원은 [[박찬호]] 군대 조교를 했었다고 박찬호와의 인연을 들려줬다. [[1999년]]부터 [[2000년]] [[8월]]까지 충남 공주 육군 3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했고 그때 [[박찬호]]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후 [[1999년]] [[10월]] 이곳에 입소해 4주간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라면 끓일 뜨거운 물로 라면을 포기하고 [[박찬호]]의 허리 찜질을 해 줬다는 얘기도 들려줬다.<ref>{{뉴스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904|제목=탤런트 고세원 "박찬호 軍조교가 바로 나"|성=|이름=|날짜=2007-10-30|출판사=경인일보|확인날짜=2010-04-20}}</ref>
* [[2008년]] [[엠넷]] 《다섯 남자와 아기천사》
- 권성욱 . . . . 4회 일치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1998년]] [[2월]]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의 지역방송국인 PSB 부산방송(현재 [[KNN]])으로 입사하여 아나운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주로 프로야구 중계를 많이 담당하였다. [[2001년]]부터는 스포츠 전문 케이블방송인 [[KBS N 스포츠]]로 소속을 옮겨 [[2013년]]까지 [[KBO 리그]], [[KBL 리그]] 농구 중계를 담당하였다.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때는 일부 필드경기 및 시상식 장내해설을 맡은 바 있다. [[2014년]]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마이크를 내려놓았는데, 2015년 5월 2일과 10월 21일 2경기 마이크를 잡았으며, 2016년 4월 1일, [[KT 위즈]]와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4회 일치
>오 년 전, Carl Johnson은 갱단 간의 마찰과 마약, 부패로 얼룩진 San Andreas의 Los Santos에서 삶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San Andreas. 그곳은 영화 스타나 백만장자들이 마약 거래상이나 폭력 패거리와 얽히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곳입니다.
Grand Theft Auto: San Andreas. 범죄 샌드박스 게임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의 시리즈 중 하나. [[캘리포니아]]와 [[라스베가스]]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지역 "산 안드레아스"를 배경으로, 갱단원 "칼 존슨"이 무너진 자신의 [[갱단]]을 다시 일으키는 내용을 담고있다.
로스 산토스의 경찰관. 텐페니와 한패이다.
개발 당시에는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는 [[미니게임]]이 존재했다. 출시 버전에는 이 기능을 이용할 수 없게 했으나, 데이터는 [[더미 데이터]]로 남아 있었기에 모더들이 이를 복원한 "핫 커피 모드"라는걸 만들어버렸다. 이 사건은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왔다.
- 김광석 . . . . 4회 일치
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우리 가요에 깃든 '서른'|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78450|출판사=머니투데이 스타뉴스|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9-27|확인날짜=2011-12-10}}</ref>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 (서울)|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10694037|제목=김광석 12주기 추모콘서트 개최 ‥ 노래비 제막식도 함께 진행돼|출판사=한국경제신문|저자=디지털뉴스팀|날짜=2008-01-06|확인날짜=2008-01-06}}</ref>
또한 2010년 11월 그가 태어난 [[서울특별시|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05/2014060501769.html|제목=김광석 출생 50년에 주목받는 김광석 길 따라가보니...|출판사=[[조선일보]]|저자=조성관 편집위원|날짜=2014-06-05}}</ref><ref>{{뉴스 인용|url=http://www.ytn.co.kr/_ln/0115_201405251507299539|제목='김광석'으로 되살아 난 길|출판사=YTN|날짜=2014-05-25}}</ref> 2015년 11월 2일,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김광석의 매각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단독]가수 고(故) 김광석, 학창시절 보낸 창신동 집 팔려 |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출판사=포커스뉴스 |저자=이유정 |날짜=2016-01-25 |확인날짜=2016-05-08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508074315/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보존날짜=2016-05-08 |깨진링크=예 }}</ref>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金光石 숨져|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0700209130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07&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07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쪽=30|날짜=1996-01-07|확인날짜=2013-08-20}}</ref> 향년 31세. 자살로 알려졌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40020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08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쪽=22|날짜=1996-01-14|확인날짜=2011-02-13}}(PC 버전)</ref>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 있는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또한, 부인 서해순의 말의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첫번째. 사후 얼마 안되어 딸과 미국으로 간 점 두번째. 고 김광석씨 가족과 재산 다툼을 한 점, 세번째. 고 김광석씨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이다.<ref>{{뉴스 인용|제목=고 김광석씨 부인 ‘저작인접권 침해’ 7,800여만원 배상 판결
- 김규철(배우) . . . . 4회 일치
참고로 외모가 [[KBO 리그]] [[kt wiz]]의 [[이숭용]] 코치와 약간 흡사하다. --정작 연령은 [[조범현]] 감독과 동년배인게 함정.--
극중 배역은 대체로 두 부류로 갈린다. 선역일 경우 평범한 소시민 샐러리맨이나 순둥이 부모역, 악역일 경우는 더러운 짓을 도맡아 하는 잔머리 모사꾼 등. 공통점이 있다면 대체로 '''찌질하거나 --소심하다는 것--.''' 겉으로 많이 오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별로 튀진 않지만, 연기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으로 자기 배역에 잘 녹아든다. 특히 2005년 미니시리즈 [[부활(드라마)|부활]] 의 최동찬과 06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의 신홍은 훌륭한 악역 연기로 호평받았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중요시하는 지금에 와서 다시보면 과한 표정연기가 어색해보인다.)
* 2011년 JTBC 미니시리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 주 검사 역
* 2015년 OCN 오리지널 드라마 [[실종느와르 M]] - 경찰청 국장 박정도
- 김기수(코미디언) . . . . 4회 일치
* 여초 커뮤니티 등의 반응이 좋지않다. 여성들의 기준에는 김기수의 화장 실력이 초보 수준으로 서툴고 어설프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 여성 뷰티 크리에이터만 아니더라도 맨즈 뷰티를 주제로 하는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와의 비교를 해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김기수한테만 어울리지, 남자 누구에게나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데일리 메이크업이나 피부 관리 위주도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 이런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지 '남성' 개그맨이라는 이유로 이 분야의 유명세를 얻고 있으며 전문가인 척 하고 있어서 비호감으로 전락했다. 또한 자신의 화장 방식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비꼬며 좋지 못한 리액션을 보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 한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화장은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하는 것' 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http://www.smlounge.co.kr/grazia/article/34212|관련기사]]
>김기수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요즘 저를 남자냐, 여자냐로 규정짓는 분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며 "2000년대에 '유니섹스'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냐"고 말했다.
* 이와 관련해, '"화장만 젠더리스 추구…동성애 옳고 그름 규정 어려워"'라는 제목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어려워'''라는 단어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제목만 봐서는 김기수가 [[호모포비아]]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 의도는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 판단할 사안이 아니란 의미일지라도 독자에 따라서는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라고 오독할 수 있는 모호한 문장인 것이다.
- 김남조 . . . . 4회 일치
그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1944년 돌아와 경성여자전문학교(이화전문)에 입학하였다.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마산고등학교와 여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ref>이은영,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9 예술가 위한 공간 ‘예술의 기쁨’ 개관하는 원로시인 김남조], 서울문화투데이</ref>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숙》, 《잔상》으로 등단하였고, [[1953년]] 첫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초기에는 인간성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시풍을, 이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와 윤리 의식을 표현하였다.
* 《나무와 바람》
- 김대휘 . . . . 4회 일치
2008년 2월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법원]], [[의정부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 법관에서 퇴직하여 법무법인 화우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하면서 동국제강 사외이사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였다. 2014년에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규제개혁분과위원회 전문가위원에 지명되었으며 2014년부터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석좌교수를 하였다.
법관 재직 중에 민·형사법 주석서와 ‘형사실무제요’ ‘양형실무’등 각종 법원 실무지침서와 40여편의 논문을 썼다.
* 입법이론의 과제와 방법 등 40여편
- 김도균 . . . . 4회 일치
보기와는 달리 독실한 [[개신교]]([[장로회]]) 신자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산돌선교교회 집사로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고, 자신의 앨범에 다수의 성가곡을 작곡하여 수록했으며, [[https://www.youtube.com/watch?v=e7EQAJUZ3aU|인터넷 기독교 TV방송인 RUTC TV의 '예능']]을 비롯한 다수의 기독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2010년]] [[놀러와]]에 출연했다. 이날 공연 도중 부상을 입었는데 사촌동생이 응급치료를 해주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 사촌동생이 [[전혜진(1970)|전혜진]]이라고 한다. [[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10040611012458515|#]]
15년 11월 21일 방송된 [[채널A]] '잘 살아보세'에서 898,411포인트였던것을 22,260포인트를 사용한 후 876,151포인트에서 다시 모았다가, 2016년 5월 10일 방송된 [[불타는 청춘]]에서 출연자와 스태프들을 위해 자그마치 20만 포인트를 사용한 뒤 다시 모은 것이다. 2+1,1+1 상품을 사서 하나만 받아가고 나만의 냉장고 어플리케이션에 적립해뒀던 것까지 끌어다 썼는데 이것도 20만원 상당이었다고 한다. 적립률을 1%로만 잡아도 편의점에서 약 1억원 이상을 쓴 것이다! 정작 본인은 그 포인트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JTBC]] 예능 프로 [[헌집줄게 새집다오]] 3월 3일 방영분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10년 넘게 살아 온 집을 공개 했는데 가히 충격영상급 주먹만한 먼지+머리카락이 온갖 구석을 굴러다니고 있으며 침대를 포함 먼지와 잡동사니들이 무진장 쌓여있다. 방이 있고 침대가 있는데도 거실에 이불 깔고 잘 정도. ~~그냥 청소를 하면 될 텐데~~ 유통기한이 2년 넘은 햇반들이 그대로 식탁에 올라가 있으며 서랍장은 열어놓은 상태로 그냥 사용하고, 세탁한 빨랫감은 벽 옆에 산을 이루고 있다.
- 김동재 . . . . 4회 일치
* [[SK 와이번스]] 수비코치(2003년 ~ 2007년)
'''김동재'''(金東再, [[1960년]] [[10월 31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였다.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의 코치를 지냈으며,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재직하던 중 [[2010년]] [[6월 21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 경기를 마치고 난 후 자택에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치료 중이다.
- 김동준(제국의아이들)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9인조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이자 리드보컬이자 막내다. 노래와 퍼포먼스 모두 팀 내에서 비중이 가장 크며, 무대는 물론 데뷔 때부터 방송에서 전방위적 활약을 한 제아의 에이스. 지금도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지만 [[황광희]], [[임시완]], [[박형식]] 등에 비하면 활동에 비해 [[인기]]가 부족한 편.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당시 멀쩡한 허우대와 뭐든지 자신만만해했던 모습과 달리 [[허당]]스러운 활약상을 보여줘서 [[파트너]]인 [[송지효]]에게 '그냥 [[패기]]만 넘치고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다'는 의미에서 '''김패기'''라는 별명을 있었다.
2017년 1월을 끝으로 [[스타제국]]과 계약이 만료된 후 [[KBS 1TV]] 드라마 [[빛나라 은수]] 촬영에 집중하느라 소속사가 없었는데, 6월 21일 부로 [[스타제국]] 시절에 함께했던 전 매니저 황정문이 설립한 기획사인 골드문엔터테인먼트[* 그 전에도 보이그룹 비트윈을 "골드문뮤직"을 통해 프로듀싱한 적이 있다.]로 이적했다는 오피셜이 떴다.[* 바로 다음 날에는 [[정희철(제국의아이들)|정희철]]이 [[스타제국]]과 재계약하지 않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그리고 2017년 8월 [[윤민수]]의 기획사인 더바이브와 [[일본]] 게임회사인 아사쿠사 게임즈가 골드문엔터와 합병하여 신설한 메이저9 소속으로 변경됐다. 그래서인지 [[4MEN]]의 곡 스트리밍을 인증했다.
- 김새해 . . . . 4회 일치
* 마리와 강아지 이야기 - 나오
* [[와라! 편의점]]
* [[썸머 워즈]] - 이케자와 키요미
* 내 품에 라바와 친구들 ([[MBC]])
- 김연수(작가) . . . . 4회 일치
본인 스스로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왔다'고 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수상 경력도 화려하며, 내놓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김훈(소설가)|김훈]], [[박민규]]와 더불어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 중 한 명이며 중학교 동창인 [[문태준]], [[김중혁]]과 함께 김천 3인방이라고도 불리며, 21세기의 블루칩이라는 말 또한 들어왔다.
* 우리가 보낸 순간 - 시 / 소설 (2010)[* 김연수 본인이 감명깊게 읽었던 시와 소설들을 소개하고 짧은 단상들을 적어놓은 책이다.]
[[2013년]] 7월 기준, 최근작은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다.[* 다만 해당 책이 출간된 출판사에서 자사의 여러 책들을 사재기하여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이와 관련하여 김연수 작가는 해당 책의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발매된 지 9개월 만에 본 책을 절판시켜 버렸다. 그리고 [[2015년]], 자신의 단편집 <스무살> 재판과 함께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다.]
- 김인철 . . . . 4회 일치
2005 시즌은 대타요원으로 시즌을 시작하였는데 1호포를 대타홈런으로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개막 후 4월 한달동안 6홈런을 때리며 잠깐 홈런 1위를 한 적도 있을 정도. 이 활약으로 톱타자로 선발출장하기도 했는데 이후 페이스가 떨어져서 두 자리수 홈런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땐 철밥통 소리 들을 정도로 썼던 것도 아니고 대타요원으로 시작했다가 자기가 잘해서 주전을 꿰찼던 거라 그리 욕 먹지도 않았는데 이 때 이후로 성적이 하락하여 2006년~2007년에는 신인 외야수들의 앞길을 막는 존재로 인식되어 이도형 등과 함께 한화팬들에게 김인식의 양아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었다. 그 와중에 문학서 끝내기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는데 연장전에 들어가고 SK의 공격때 주자 1루에서 히트앤드런이 걸렸고 1사 1,3루의 위기가 될 상황이었는데 좌익수이던 김인철이 포구후 바로 송구를 하지 않고 머뭇거리던 틈을 타 3루주자인 정근우가 홈을 파고 어이없게 끝내기 패배(즉 1사 1루에서 힛앤런이 걸렸는데 단타로 1루주자가 홈까지 접전상황도 만들지 않고 홈으로 들어와 경기가 끝나버린 상황이다)를 당해버렸었다. 그거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국 2007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었다.
현역 은퇴 후에도 자신의 마지막 현역 팀인 [[한화 이글스]]와의 관계를 유지했고, 한화의 원정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다가 스카우트팀 과장으로 인사이동되었다. 그 후 2017년 선수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장 모 감독과 심 모 감독의 뒤를 이어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역 야구부인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71년생 동갑내기이자 2017년 현재 삼성 감독을 맡고 있는 [[김한수]]와도 얼굴형이 조금 닮은 편이다.
- 김진(배우) . . . . 4회 일치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에서 [[이제니]]와 엮이는 ~~지나가는~~ 단역으로 나오다가 크게 인기를 끌게 되어 일약 주연급으로 발탁되 전성기를 맞았다. 그렇다고 정말 생각없이 투입한 지나가던 단역이었는데 우연히 인기를 얻은 것은 절대 아니고 피디가 처음부터 레귤러 혹은 준레귤러로 생각해두고 투입했었다. 다만, 안녕맨으로 등장해서 반응이 좋으면 고정을 시킬려고 했던 거였다고. 초반에는 큰 반응이 없어서 레귤러까지 생각했던 배역을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PC통신 MBC게시판이 뒤집어 질 정도로 난리가 나는 바람에 무사히 레귤러로 안착했다. 당시엔 이제니와 마주치면 항상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어서 별명은 안녕맨. 레귤러로 합류하고 나선, 워낙 피부가 하얘서 당시 별명은 '[[밀가루]]'.
2015년 2월21일 무한도전 무도큰잔치편에 나와서 "아버지 일을 도우며 어음깡을 하고있다."라고 근황을 밝혔다. [[http://news.joins.com/article/17205857|#]]
* 《[[아가씨와 건달들]]》
- 김형인(코미디언) . . . . 4회 일치
[[2005년]], 윤택 등 개그맨 14인이 [[박승대]]와의 이면계약과 노예계약을 폭로했는데, 여기에는 김형인도 끼어있었다.
웃찾사에 출연하지 않고 있던 2006년 11월 KBS의 신설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음충전소]]에 출연하면서 KBS로 이적.''' '''대안제국''' 코너에서 조선 시대 대신들 중 한 명으로 등장해서 다른 대신인 박성호와 함께 서로 왜 웃찾사 버리고 건너왔냐며 자학개그를 했다. 박성호는 원래 개콘에 출연하다가 소속사 문제로 웃찾사로 이적한 바 있다.
이후 웃찾사로 돌아와 <마지막 수업>, <호찬아>, <장스타와 두 얼간이> 등의 코너에 출연했다.
- 김홍미 . . . . 4회 일치
역사와 제자백가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경연에서 반드시 옛 사례를 인용하여 당시의 일을 정정함으로써 왕의 찬탄을 받았다. 선박 제조 기술이 있어서 [[조선 선조|선조]]는 그에게 [[판옥선]] 설계 제조와 [[거북선]] 설계 제조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1589년]]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누군가 그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지목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파면되었다. 이후 [[상주]]에 내려가 몇년 간 집에서 칩거하였다. 그 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뉠 때에는 그는 [[남인]](南人)이 되었다. [[1589년]] 그에 대한 복권 여론이 나타나자 [[사헌부]]가 이를 지적하며 그가 이진길(李震吉)의 집에서 유숙한 일을 들었고,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복관되어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그해 [[7월]] [[경상좌도]][[도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어머니 창녕조씨의 상을 당해 사직하였다. 그러나 상중으로 내려간 뒤에도 선조는 [[정경세]]를 시켜 그와 그의 형의 안부를 묻고, 그의 학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기도 했다.
[[1599년]](선조 31) 다시 [[청송군|청송]][[부사]](靑松府使)로 부임했다가 [[1601년]](선조 34년) 봄에 병환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상주군|상주]]로 되돌아갔다. [[1602년]](선조 35) [[여주군|여주]][[목사]]가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 [[강릉시|강릉]][[부사]]로 임명되자 와병중인데도 부임하였다. [[1605년]] 강릉부사로 재직 중 큰 비가 내려 백성이 많은 수재(水災) 재난을 당하였다. 당시 그는 병이 들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수재로 죽은 자의 조문과, 수재로 재산을 잃거나 굶주린 자의 진휼(賑恤)과 구제에 힘써 직무에 충실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 김효기 . . . . 4회 일치
충주 중앙중학교 3학년 때 독일 유소년 프로젝트 연습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독일 에이전트에 눈에 띄게되었고, 독일 클럽 유소년팀을 오퍼받았다. 그 당시에 고등학교 진학과 독일 진출 고민을 하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였지만 재차 독일에서 오퍼가 와서 독일로 진출하였다. 독일에서 [[하노버 96]], [[샬케 04]], [[바이어 레버쿠젠]] 등에서 테스트를 받았으며 최종적으로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소년 팀으로 들어갔다. 도르트문트 유소년팀에서 7~8개월 활동하다가 사업상 문제로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조감독의 기대대로 김효기는 미포조선에서 가공할 골결정력을 보여주었는데, 2011년 내셔널리그 정규리그를 후반기만 출장하고, 12경기 중 7경기를 교체투입 되었음에도 6골 2도움을 올리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김효기의의 활약 덕분에 미포조선은 후기리그 1위를 질주할 수 있었으며, 특히 2011년 11월 20일, 고양 KB와의 내셔널리그 결승전에서도 2차전 교체투입으로 결승골을 뽑아내 미포조선의 내셔널리그 우승의 1등공신으로 발돋움하기까지 하였다. 그야말로 6개월간의 임대 생활동안 내셔널리그를 씹어먹고 온셈.
이후 15시즌이 종료되자 FA 자격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지만 좀처럼 출장기회를 잡을 수 없었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친선 경기 교체출장, ACL 조별리그 빈 즈엉전 교체로 딱 14분 출장에 그치며 2군경기만 출장하다가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다시 FC 안양으로 이적하였다.
3월 17일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K리그1 3라운드 경기에서 전반 추가시간에 [[김신]]이 오른쪽에서 패스를 찔러 주자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시즌 첫 골을 기록했으며, 4월 15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1 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팀이 0-2로 지고 있던 후반 16분 중앙 미드필더 [[하성민]]을 대신해 그라운드에 투입되어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하면서 처진 공격수까지 두 역할을 소화하였으며, 특히 후반 28분 쿠니모토가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한 가로지르기를 받아 그림같은 오른발 오버헤드킥으로 골망을 갈랐다.
- 나다카 타츠오 . . . . 4회 일치
쿄토부 쿄토시 후시미구(京都府京都市伏見区)에서 출생했다. 카나자와 공업대학 기계공학부(金沢工業大学機械工学部卒業)를 졸업했다.
아내와는 공통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소개해줘서 만나게 되었다. 아내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여러 번 설득하여 맺어지게 되었다. 아내와 생일이 같으며, 생일에 청혼을 했다. 아내는 결혼 초기에는 요리가 서툴렀지만 점차 향상되었다고 한다.
* 취미는 [[스쿠버 다이빙]]으로서, 세계 각지의 다이빙 포인트를 거의 제패했다. 다이빙 중에 [[상어]]와 맞부딪치거나, 공기가 모두 떨어져서 30m 정도 긴급 부상을 한 적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4회 일치
[[소년 점프]] 주간 연재작. 작가는 [[호리코시 코헤이]]. 일본에선 "히로아카"란 약칭으로 통하며 국내에선 "나히아"로 약칭.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 같은, [[미국]] [[슈퍼히어로]] 장르와 비슷한 배경 세계를 가지고 있다.
[[아이자와 쇼타]]
점프의 신흥 강자. [[원펀맨]], [[블랙 클로버]]와 함께 신 [[원나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 초능력자가 절대다수인 사회와 초능력 없는 보통 사람의 취급이 안좋다는 점에서 마블 코믹스의 [[하우스 오브 M]]을 떠오르게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4회 일치
* 올마이트가 본론을 꺼낸다. 그는 [[시가라키 토무라]]의 행방을 묻는다. 하지만 올 포 원은 "너와는 달리 내 손을 떠났다"고 답한다. 짜증을 느낀 올마이트는 대체 뭘하고 싶은지, 뭘하고 싶었는지 묻는다. 그토록 긴 수명에 타인을 착취하고 기만하면서 대체 뭘 이루려는 거냐고 묻느낟. 올 포 원은 생산성 없는 대화라고 일축한다. 들어봐야 이해하지도 못할 거라며 단지 올마이트는 정의의 히어로를 동경했고 자신은 마왕을 동경했을 뿐,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 올마이트를 타르타로스로 안내한건 [[츠카우치 나오마사]]였다. 돌아가는 길고 그의 차를 이용한다. 츠카우치는 하필 임시면허 시험일자와 날짜가 겹쳤다고 사과한다. 그러면서 어땠냐고 묻는데 올마이트는 유감스럽지만 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예상했는지 "장기전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츠카우치는 또 수속 관계로 정리를 못했다며 "스팅"과 면회는 어쩔 거냐고 묻는데 그때 전화가 울린다.
|| 밖으로 나와.
* 그 말투와 행동이 심상치 않은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4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를 대신해 나타난 [[올마이트]]는 싸움을 말리며 바쿠고의 고민을 눈치채지 못한 점을 사과한다.
* 담임은 [[아이자와 쇼타]]를 대신해 [[올마이트]]가 나타났다. 놀라는 바쿠고에게 그 고민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바쿠고는 그런 올마이트에게 대체 왜 미도리야를 선택한 거냐고 질문한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는 힘이 없었지만 누구보다 히어로였고 바쿠고는 강하고 이미 전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미도리야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 올마이트는 긴 히어로 생활 끝에 정립한 자신의 지론을 밝힌다. 히어로는 바쿠고처럼 승리를 열망하는 마음과 미도리야처럼 남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 모두가 필요하다. 어느 한 쪽이라도 결여된다면 자신의 정의를 관철할 수 없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의 마음을 두려워한 바쿠고의 속내와 바쿠고를 동경했던 미도리야의 속내가 드러난 지금이라면 각자 깨달았을 거라고 말한다.
생각이 정리됐는지 바쿠고는 한숨을 쉬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더 있냐고 묻는다. 올마이트는 솔직하게 교장과 리커버리 걸, 그리고 학생 중에선 바쿠고만이 그걸 안다고 알려준다. 바쿠고는 그가 숨기려한 이상 미도리야와 달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며 이 날의 사건이 정리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4회 일치
오버홀은 보안을 위해서 한 조치이고 이 지하엔 그런 식으로 구성된 루트와 방이 몇개나 있다고 말한다. 오버홀 옆의 작은 복면이 그런 괴팍함 덕분에 아직까지 생존하는 거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시라가키에게 지난번 전화로 한 말, "조건에 따라 가담하겠다"고 한 말은 사실이냐고 묻는데.
* 시라가키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그의 눈으로 보기에 여기있는 놈들은 죄다 쓰레기 야쿠자에 일회용 고기방패다. 이런 족속들은 빌런연합의 여장남자, [[마그네]]와 목숨의 가치가 같을리가 없다. 게다가 이쪽은 팔도 한 짝 빚지고 있다. [[Mr. 컴프레스]]의 팔 말이다.
* A반의 인턴은 한 명이 더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관서 지방의 "에스하"시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히어로네임은 "레드 라이오트". BMI히어로 [[패트껌]]의 사무소였다. 이곳은 빅3의 일각 [[아마자키 타마키]]가 인턴활동을 하고 있다. 히어로네임은 "선 이터". 왜소하고 음침한 모습의 타마키와 달리 패트껌은 엄청난 거구에 비만 체형. [[타코야키]]를 판 째로 들고 다니며 먹는 타입이다. 원래 키리시마는 직업체험 때 신세진 [[포스카인드]]에게 인턴 활동을 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걸 마침 무투파의 신인을 찾고 있던 패트껌이 픽업, 먼 관서에서 인턴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이것도 타마키의 중계가 있던 모양인데, 타마키는 [[토오가타 밀리오]]에게 떠넘기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나 보다. 키리시마가 너무 댓쉬해와서 무서웠다고 약한 소릴 한다. 패트껌은 "그 멘탈만 어떻게 하면 인재"라며 껄껄 웃는데 그 점이 더욱 타마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4회 일치
* 웅영고에 합격한 키리시마는 나약한 과거와 결별의 의미로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데 사정을 아는 [[아시도 미나]]가 "어두운 얼굴을 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영상을 꺼버릴 수도 있었지만 키리시마는 그러지 않았다. 이 인터뷰의 내용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키리시마는 곧 처음 본 것처럼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 속에서 라이오트가 하는 말은 초등학생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땐 어려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던 말들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키리시마는 그저 라이오트가 전력으로 달려드는 모습에 매료됐을 뿐이다. 지금은 다르게 보였다.
* 그리고 입학식 당일. 수험기간 중에도 알게 모르게 키리시마와 마주쳤던 미나는 확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른바 고교 데뷔란 것이다. 미나가 뿔 같은 머리 모양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이건 키리시마 나름의 의지의 표명이었다.
키리시마는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듣고 "그래서 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미나는 "너무 마음에 두지 마라"며 느닷없이 난타한다. 딱히 아픈 건 아니지만 당황하는 키리시마. 미나가 하고 싶은 말은 "어두운 얼굴인 채론 결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키리시마 안에서 그때 일이 극복되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안 그러면 고교데뷔남이라 소문내고 다닐 거라면서. 키리시마는 감사와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미안"이라 대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4회 일치
* 오후에 [[미도리야 이즈쿠]]는 어머니와 통화한다. 미도리야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퇴원은 내일이라고 거짓말한다. 어머니는 그런 미도리야에게 "웅영을 그만두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 목적지는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카미노구. 기차로 이동한다.
* [[키리시마 에지로]]와 [[토도로키 쇼토]]는 일단 다른 급우들과도 작전을 얘기했으나 더 말리려는 사람 뿐이었다. 특히 [[우라라카 오챠코]]는 "바쿠고는 모두에게 도움 받는게 더 굴욕이라 여길 것"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미도리야 조차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한다.
* 바쿠고는 시가라키를 공격하며 그의 연설을 "한 마디로 남 괴롭히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얘기라며 일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4회 일치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을 앞두고 프로 히어로,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고]], 학생들 사이에서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이 감돈다.
* 어떤 기자가 학생들에게 전투 허가를 내린 부분을 물고 늘어진다. [[아이자와 쇼타|아이자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린 조처"라고 답변하는데, "잡혀간 학생(바쿠고)한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묻는 등 집요하게 도발한다.
* 아이자와는 원래 언론을 싫어하는 성미라 유도심문을 해대는 기자들에게 반발할 것 같았지만, 깨끗하게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 인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4회 일치
* 또 한 번 반발력으로 추격하려는데, 이번엔 [[그랜토리노]]가 따라와 막아선다.
* 그랜토리노는 미도리야가 "안 좋은 방향으로 너와 닮았다"고 한 마디하고, 올마이트는 설마 또 이런 짓을 벌일 거라곤 몰랐다고 말한다.
* 올마이트는 "그 따위로 사람을 가지고 놀고 망가뜨리고 빼앗고 비집고 들어와 지배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을 부조리하게 비웃는다! 나는 그걸 용서할 수 없다!"는 일갈과 함께 펀치를 내리 꽂는다.
|| 그 따위로 사람을 가지고 놀고 망가뜨리고 빼앗고 비집고 들어와 지배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을 부조리하게 비웃는다! 나는 그걸 용서할 수 없다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2화 . . . . 4회 일치
* [[토도로키 쇼토|토도로키]]는 [[야오요로즈 모모|야오요로즈]]와 다른 루트로 탈출,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 일행과 연락한다.
* 하지만 히어로와 빌런이 싸우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시민들 대다수는 심드렁하게 보아 넘길 뿐,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그때 잔해 속에 있던 시민이 겨우 기어나와 "지지마"라고 응원한다
* 그 속에서 미도리야와 바쿠고도 이기라고 응원한다.
- 남명학파 . . . . 4회 일치
== 퇴계학파와의 갈등 ==
이들은 전술했듯이 이론만 왈가왈부하면서 정작 그에 따라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혐오했으며, 이때문에 조선 성리학 이론을 집대성하려한 퇴계 이황과 그의 학파와는 앙숙이었다.[* 조식은 이기론에 관한 논쟁을 '입만 나불댈줄 아는 유생놈들이 실천에는 신경쓰지 않고 이론가지고만 키배하는 짓'정도로 여겼을 정도였다.] 이황은 조식을 두고 '오만해 중용이란것을 모르고, 노장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했고, 이에 조식은 '요즘 학자들은 물뿌리고 청소하는 법도 모르면서 천리를 논한다.'라고 그를 간점적으로 비꼬았을 정도였다.
붕당이 형성되면서 이들은 처음에는 퇴계등 기타 영남학파와 함께 [[동인]]을 형성했으며, 이후 정철의 처리문제로 인해 류성룡등 퇴계파와 갈라져 북인을 형성하다. 이후 유영경등 일부 소북인사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결국 대북으로 완전히 갈라진다. 선조 말기 이들은 후계로 [[광해군]]을 지지했고, 광해군의 가장큰 지지세력으로 남았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광해군 즉위뒤 유영경등의 탁소북이 제거되고 난뒤, 그들은 청소북과 함께 광해군 시기 정국을 장악했으며, 광해군 중기때엔 아예 국정의 중심을 대북이 잡기까지 한다. 아예 광해군 말기때는 그가 대북을 견제하기 위해 서인의 세를 키운 행적까지 보일 정도였다. [* 그 보답은 인조반정으로 돌아오지만....]
- 남보라(배우) . . . . 4회 일치
완도사랑채마지막칼국수였던 [[2005년]]에 11남매[* 2005년 당시에는 11남매였다. 방송 당시 셋째와 아홉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송에 거의 비치지 않았다.]의 일상 생활을 담은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천사들의 합창"에 맏딸로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출연 직후에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관계자들의 제의도 거절했으나 부모님의 설득과 계속된 소속사의 러브콜 끝에 연예인이 되기로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060812000512864?f=m|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남보라는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이 진행하는 "천사들의 합창"을 계기로 얼굴을 알려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0곳 이상의 기획사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08191711172510|연예인 제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미니홈피 게시글을 토대로 보면 학교(혹은 교회)에서 성극반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사들의 합창 당시, 웬만한 눈썰미를 가진 시청자는 남보라의 집안이 [[개신교]] 집안임을 알 수 있었을 듯. 원래 초등학교를 장안동에 위치한 불교계 학교를 다니다가 저학년 무렵 전학을 갔었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와[* '(성범죄 피해자를)연기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실제 성범죄 피해 당사자들은 더욱 힘들고 괴로울 것', '청소년들의 범죄는 그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청소년을 교육하는 사람은 어른이다.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는 등 소신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상어(드라마)|드라마 상어]] 등으로 꾸준히 연기 활동을 했다. 비쥬얼이 가장 좋은 편이라 TV 광고에는 꾸준히 캐스팅되고 있다. 특히 여성 잡지, 패션잡지에 특집 화보 기사로 많이 나온 편이다.
보이그룹 [[보이프렌드]]의 [[민우]]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75&aid=0000155333|남보라의 조카라고 한다.]] 고로 남보라는 [[민우]]의 '''고모.''' ~~이모 아닌가??[* [[고모]]는 [[아버지]]의 [[누나]] 혹은 [[여동생]]이므로, ~~'남보라'에게 [[오빠]]와 [[남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남'''보라가 '''노'''민우에게 ~~부계쪽으로~~ '친[[삼촌]]'의 '고모'는 아닐 것이다. 다만 [[민우]] 본인이 ~~5살차이나는~~ '고모'라고 언급했다. 또한, 손위 언니가 없는 [[장녀]]이므로 [[이모]]도 불가능하다.]~~
써니의 여러 아역 멤버들과 사이가 돈독하여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는 모양이다. [[박진주]]와 김민영은 빠지지 않는 듯. 2018년 [[민효린]] 결혼식 때도 [[심은경]] [[천우희]] 외엔 거의 다 모인 듯.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4회 일치
관련신화가 북유럽 신화인데, 이 북유럽 신화에 속한 카드 중에서 프레이&프레아 남매카드는 발키리가 쓸 때 가히 사기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적어도 프레이&프레아만 있어도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정령속성이 부족할 이유가 없으며 토르와 같이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카드도 존재하기 때문.
그리고 한글판 공식메뉴얼에도 당당하게 나와있는 '''"유아체형"'''이며, 빈유다 못해 가슴이 없다. 여기에 콤플렉스가 있는지 나이스 바디를 가진 리젤의 가슴을 가지고 놀려먹는게 일상이다.
1. [[티엘(이노센트 투어)|티엘]] - 니나의 동생. 언니와는 다르게 상당히 선하다. 같은 자매인지부터 의심해야 할 정도. 사이는 나쁘지 않지만 니나를 하계로 보낸 것이 티엘일 정도로 티엘은 니나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으며 냉정하게 바라보고 대한다.
1. [[얼음여왕(이노센트 투어)|얼음여왕]] - 아스가르드에 신들의 황혼을 불러일으켜서 니나와 대립하지만... 니나가 아스가르드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진압당하고 '''호구를 넘어 노예로 전락'''(...). 니나의 엔딩을 보면 리젤 대신에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 니세코이/219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츠구미는 그렇다면 더더욱 치토게와 만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 결국 클로드는 폭발까지 일으키며 츠구미와 싸운다.
* 이 불길은 오노데라와 치토게도 볼 수 있었다.
* 그때 멀리서 마리카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부딪힌다.
- 니세코이/222화 . . . . 4회 일치
* 어린시절 치토게는 오노데라와 이치죠가 맹세를 하는 것을 보고 쓸쓸히 저택으로 돌아온다.
* 한편 클로드와 싸우고 있는 츠구미는 고전하고 있다.
* 클로드는 이치죠와 치토게가 만나서 상처 받으면 어쩔 거냐고 하는데
* 츠구미는 "상처를 입을 거라면 마음껏 상처를 입으면 될 일" 그러나 "반드시 다시 일어나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어줄 거라 믿는다"고 말한다.
- 니세코이/227화 . . . . 4회 일치
* 드디어 만난 이치죠와 치토게
* 마침내 치토게와 재회한 이치죠.
* 그리고 이곳에 와서 자신이 약속의 아이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포기할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 치토게와 함께한 시간을 회상하는 이치죠.
- 다이스(미래소년 코난) . . . . 4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무역국 직원으로 35세. 기범선인 바라쿠다 호의 선장으로 플라스칩을 수집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의 이익과 보신을 위해서라면 말 바꾸기와 배신과 변절도 주저하지 않는 천하의 악당.......같지만, 의외로 사람이 좋고 미워할 수 없는 구석도 있고, 배와 바다에 관해서라면 진지한 성격인지라 그의 부하 선원들은 선장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넌덜머리를 내면서도 결코 그를 못 본 척 하지 않고 함께 한다.
코난과 지무시를 배에 태운 이후로 인생이 크게 변해, 결국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의 동료가 되어, [[지무시]]와 함께 [[레프카]]를 몰락시키는 데 일조한다. 엔딩에서는 [[몬스리]]와 결혼. 처음에는 자유가 끝난다며 도망치려 했으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몬스리를 보고는 진지하게 결혼에 임한다.
- 단기선교 . . . . 4회 일치
대표적으로 현지 문화와의 마찰을 빚는 문제, 현지에서의 안전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 안전 사고를 겪거나, 심지어 테러에 휘말리는 경우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단기선교를 꾀하는 집단이 '선교'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관광객이라면 피할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안전 보장에서 철저하지 못하고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위험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유명한 것으로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단기선교에 나섰던 분당샘물교회 신도와 인솔자들이 [[탈레반]]에 납치당한 사건이 있다. 해당 일행은 대한민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으로 풀려났지만 협상이 이루어지기 전 두명이 탈레반에 의해 처형되었다.
*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 총서 1,위기의 지구화 시대 청(소)년이 사는 법
- 대중흑기 . . . . 4회 일치
[[일본]]에서 쓰였던 [[깃발]]. [[도쿠가와 가문]]의 조상인 [[닛타 가문]]의 깃발이다. 일본의 국기가 될 '''뻔''' 했던 깃발이다.
본래 [[세이와 겐지]]의 상징은 백기(白旗)였다. [[겐페이 전쟁]] 시기에는 겐지의 백기와 헤이케의 적기를 서로 내걸고 싸웠다.([[홍백전]]의 기원이다.)
1854년, 페리 제독의 내항으로 개항을 하게 되면서 일본을 대표할 깃발이 필요해졌다. 본래 [[도쿠가와 막부]]는 이 대중흑기를 일본의 국기에 해당하는 선박표로 지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츠마 번의 강한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대중흑기가 아닌 [[일장기]]가 채택되었다.[[http://www.worldflags.jp/blog/11373/ (참조)]]
- 데미안(드라마) . . . . 4회 일치
과거 스토리는 오멘 1편이 주로 인용되고, 2편 이후와는 거의 별개. 2편 이후 스토리에서는 부겐하겐의 죽음이나 므깃도의 단검의 행방 정도 밖에 인용되지 않는다. 영화 시리즈에서 데미안은 2편에서 이미 [[적 그리스도]]로 각성하고 3편에서는 신과의 대결을 벌이게 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30세에 겨우 각성하게 되므로 거의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이다. 다만 바티칸에서 므깃도의 단검을 빼돌려서 보유하고 있는 것이나, 부겐하겐이 죽었다는 언급이 나온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설정은 공유되는듯.
[[적 그리스도]]라고는 하지만 본래 인격은 정의롭고 좋은 사람(…). 그래서 자신의 숙명을 알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기억이 없었을 때는 [[무신론자]]로서 기독교 교리에는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그야 그렇겠지.--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본인은 별 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고와 죽음이 일어나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제조기(…). 적 그리스도로서의 운명에 따라서 죽어서는 안되는 몸이기 때문인지 주변에서 어지간한 사건이 일어나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종군기자로서 온갖 전쟁터를 돌아다니는데도 상처하나 없는 것은 이 때문인듯.
1시즌 종반에 수녀들에게 잡혀가서 죽을 뻔 하다가 각성. 완전히 조절이 되지는 않지만 초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명칭은 --D&D마법에서 다와서-- 임의로 붙였다.
'''고 평범하게 훈훈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악마숭배자 조직 아미티지 재단의 우두머리'''(…). 데미안 앞에서는 훈훈한 모습만 보이지만 뒤에서 앤 러틀리지와 데미안을 놓고 마찰을 빚거나, 협상을 하거나, 온갖 능구렁이 짓을 벌이고 있다.
- 동북중고등학교 . . . . 4회 일치
중앙문과 좌우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좌측문 또는 중앙문에 따라 1학년 6~10반 교실 복도와 1~5 반 교실 복도가 분리되있어 신입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홍위병]] 혹은 [[빨갱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개량 한복을 연상시키는 와인색 와이셔츠와 감색 조끼의 투톤으로 구성되있다.
- 디텍티브 침프 . . . . 4회 일치
[[렉스 더 원더독]]과 친구로 렉스에 의해 젊음의 샘으로 가게 되었는데 모든 생명체의 언어 구사와 영원한 젊음을 이때 얻게 되었다.
원래 [[아프리카]]에 살던 침팬지로 프레드 쏘프에게 잡혀 훈련되었다. 다만 쏘프와는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쏘프가 죽으면서 혼자 일했는데 법적으로 자립할수 없어서 돈도 못벌었고, 대중들에게 잊혀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알콜중독]]이 된데다 [[담배]]를 피우기까지 했다.
[[스펙터]]와 싸우기 위해 결성된 섀도팩트에 강제로 가입하게 되었으나 뛰어난 탐정기술과 천재 전술가로서의 실력을 보여주서서 블랙 앨리스와 나이트셰이드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한 몇몇 계획을 세웠다.
- 라나(미래소년 코난) . . . . 4회 일치
[[미래소년 코난]]의 히로인. 성우는 [[노부사와 미에코]], 국내 더빙은 KBS는 김정애, MBC는 성유진.
'남겨진 섬'에 떠밀려온 12살 소녀.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그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바닷새인 티키(제비갈매기로 추정)와 교감하는 등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고 태양 에너지의 권위자인 [[브라이아크 라오|라오 박사]]의 손녀여서 박사를 이용하려는 인더스트리아 때문에 여러번 힘은 일을 겪지만 ~~초인~~미래소년 코난의 도움과 본인의 강인함으로 이겨낸다.
검은 생머리에 하얀 피부의 청순하고 연약해 보이는 소녀지만, [[레프카]] 같은 악역들이 총을 들거나 고층 [[빌딩]]의 외다리에 세워 협박해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말대답하고 엄청 굵은 밧줄을 물어뜯어서 끊거나 하는 것으로 볼 때 외모와는 다른 대단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원작에서의 설정이 애니에서도 그대로 남은 경우로 원작 소설에서도 텔레파시 초능력을 가지고 있고 할아버지인 로아 박사(원작 소설에선 라오 박사가 아닌 로아 박사)와 텔레파시 대화가 가능하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4회 일치
* 제피 : 소피의 동생으로 여장남자. 그 존재 때문에 사이파카르는 실은 남색 취향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어지간한 여자보다도 귀여워서 다른 여자들에게 성희롱당하기도 했다. ~~외모와 달리, 크고 아름다운 그것을 지녔다.~~ 누나를 매우 잘 따르는 시스콘.
* 그라쿠스 : 롬니아 제국에게 멸망당한 구 에스파르 왕국의 잔당을 이끌던 인물. 왕국 재건을 명분으로 산적질을 하다 사이파카르 일행과 만나게 되어, 프레이야와 결투를 벌인 뒤 일행에게 설득되어 부하가 된다. 자신과 대등한 무예를 가진 프레이야를 보고 아내로 삼고 싶어한다.
* 롬니에우스 1세 : 롬니아 제국을 당대에 세운 영걸. 군사와 정치에 두루 통달한 먼치킨으로, 사이파카르의 재능을 높이 사면서도 그 때문에 오히려 안정기에 들어선 제국에 화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의 세력을 빼앗고 변경으로 좌천시킨다. 그러나 사이파카르가 임지로 가던 도중에 사고로 서거하고 만다.
* 록시느 : 4황자. 동방 변경주로 가는 길목인 앰브로우 주의 영주로 황태자와 사이가 나빠 숙청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 마기/300화 . . . . 4회 일치
* 티토스 알렉키우스와 마지막으로 대화했을 때, "우리의 큰 힘을 잘못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오르바는 알리바바가 죽었다고 생각했다가 살아돌아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이들은 뢰엠에서 직업 검투사로 공연하고 있던 것이다.
* 알리바바도 격한 감동을 느끼며 상봉을 만끽하려는 찰나... 오르바는 이미 토토와 결혼해서 아들까지 둘이나 낳았다.
* 알리바바는 오르바 일행에게도 황제국 상단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이들은 받아들여 알리바바의 여정에 합류한다.
- 마기/301화 . . . . 4회 일치
* 파르테비아에는 연줄이 없어서 먼저 신드바드를 찾는데, 그의 소개로 황제와 접견한다
* 황제를 만나기 전, 알리바바는 그간의 의심도 잊은 채 신드바드와 한담을 나눈다.
* 파르테비아는 TV와 비슷한 방송매체가 있고 알리바바가 황제를 접견한 소식이 벌서 뉴스로 나오고 있다.
* 기자들이 인터뷰를 신청하는데 거기서 "전송마법진을 도입하면 물자와 인원의 이동에 제한이 사라질 것이며 더욱 풍족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한다.
- 마기/302화 . . . . 4회 일치
* 알리바바와 황제국의 일원들은 파르테비아 황제로부터 "허가할 수 없다"는 성의없는 답변서를 받는다.
* 또 과거 알리바바가 "장사에 있어선 라이벌"이라고 말한대로, "너와 나는 상회의 대표로선 대등한 라이벌"이라고 선언한다.
"너와 나는 상회대표로선 대등한 라이벌 관계야"
* 사실 황제국의 처지는 일본의 처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매우 상식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 마기/305화 . . . . 4회 일치
* 그 결과가 증오와 전쟁으로 너덜너덜한 세상이라며 유일한 왕이란 필수불가결한데 솔로몬은 무책임하게 굴었고, 자신은 도망치지 않겠다며 의지를 피력한다.
* 백룡은 자간의 힘으로 모르지아나와 알라딘을 피신 시키고 홀로 아르바와 맞선다.
* 지금까지는 백룡도 알라딘과 함께 있을 거란 예측이 우세했으나 알라딘 일행을 피신시키고 홀로 아르바와 맞서 싸웠으니 그럴 가능성은 낮다.
- 마기/307화 . . . . 4회 일치
* 연백룡은 귀왜국왕 야마토 타케루히코와 특훈에 매진하고 있다.
* 알라딘 일행이 마더 드래곤과 만난건 그녀가 알리바바와 쥬다르를 지상으로 보내준 직후.
* 그와 지금 그가 만든 세상이 나쁜 것은 아니나 영원히 군림하는 존재가 되려는 그의 사상은 틀렸고 그걸 막기 위해 싸우려는 것.
* 모르지아나는 거대 파나리스와 정면대결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 마기/310화 . . . . 4회 일치
* 알라딘은 그의 상태가 알리바바가 이스난의 저주에 걸렸을 때와 같다며 치료에 들어간다.
* 알라딘은 자신이 유난을 치료하는 동안 모르지아나와 연백룡에게 아르바를 상대해달라고 한다.
* 모르지아나는 "당신이 알마트란 최강이었던건 파나리스와 싸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 유난은 그 서슬에 "화나니까 무섭다"고 중얼거리고 알라딘은 "그치? 모르지아나와 백룡 모두 강하지?"라고 동문서답한다.
- 마기/314화 . . . . 4회 일치
* 회포를 푸는 알리바바와 알라딘 일행.
* 알리바바도 현세로 돌아와서 황제국을 재건할 때까지 일을 이야기한다.
* 그는 달라진 세상에 돌아와서 "모두 평화로워지면 가족을 만든다."는걸 느꼈다고 한다.
* 그녀와 함께라면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자신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변치 않고 옆에 있을 거 같다고 한다.
- 마기/315화 . . . . 4회 일치
*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의 약혼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는 [[알라딘]] 일행
* 여러 나라를 돌며 그들의 소식을 전하고 마지막에는 신드바드와 대면하기로 결정한다.
* 백룡의 퇴위하면서 이상의 이야기와 알라딘과 신드바드 사이의 대립, 알라딘의 힘이 악용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홍옥에게 전했다.
* 그때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가 전세계를 돌며 그들의 결혼보고를 다니고 싶다고 제안한다.
- 마기/320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고집을 꺾지 않은 신드바드. 쟈파르마저 속이고 아르바와 성궁으로 갈 채비를 한다.
* 아르바와 알사멘이 모은 마고이로 의식을 진행할 경우 확률은 100분의 1. 게다가 실패하면 그도 아르바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그러나 한다면 지금 밖에 없으며 국제동맹이 와해되어 가면 모아놓은 금속기 조차도 줄어들 것이므로 확률은 더 내려가게 된다.
* 그리고 눈이 멀었다면 가르쳐주겠다며 신드바드는 단지 "왕의 그릇"이며 나라와 상회의 장이 가장 적절하다.
- 마기/325화 . . . . 4회 일치
* 황제국에선 복귀한 연백룡이 연홍옥과 힘을 합쳐 국정을 다루고 있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는 결혼준비로 바쁘다.
* 그때 쥬다르가 돌아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는데 쥬다르는 알라딘을 찾는다.
* 우고와 아르바가 있는 성궁은 이변이 일어난다. 우고가 해파리처럼 만들어 수조에 봉해버린 다윗과 일 일라가 묘한 힘을 부리더니 루프로 환원됐던 어떤 이를 되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고 조차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데.
* 그 옆에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가 결혼식 준비로 바쁘다. 알리바바는 청첩장 쓰는 일로 정신이 없는데 상회 단골들을 빠짐없이 초대하려고 엄청난 수의 청첩장을 집필 중. 심지어 일일히 수기로 적고 있다. 모르지아나도 마스루드 앞으로 보낼 청첩장을 작성하는데, 청첩장이라기 보단 도전장에 가까운 디자인. 게다가 여전히 글씨가 지저분하다. 알리바바는 콩깍지가 낀 영향인지 "글씨가 예뻐졌다"고 칭찬하고 백룡도 진담인지 빈말인지 달필이라고 칭찬. 홍옥만 위화감을 느낀다.
- 마기/327화 . . . . 4회 일치
* 그 뒤로 3일이 지났다. 그런데 충격적인 뉴스가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놀라게 한다. 갑작스럽게 뢰엠이 국제동맹에 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의 동맹 복귀가 공식화된 것이다. 그토록 신드바드를 꺼림직해하던 두 지도자들이 신드바드와 손을 맞잡는다. 심지어 무는 "일국의 독자성 같은건 작은 일"이라며 지금까지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무와 타케루, 홍옥도 "백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라고 입을 맞춘 듯이 되풀이한다.
알리바바와 알라딘이 신드바드에 대항한다면 그 지배를 받고 있는 모르지아나, 연홍옥과도 당연히 적대하게 된다.--알리바바의 커플생활 종료--
- 마기/347화 . . . . 4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알리바바 사르쟈]]의 대결.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알리바바가 "전혀 다른 미래가 온다"고 한 말을 허풍이라 일축한다.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알리바바 사르쟈]]의 대결이 시작됐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무의미한 싸움이며 알리바바가 했던 말, "솔로몬의 세상이 계속되는 것도, 신드바드가 세상을 루프로 환원한 것고 아닌 '''전혀 다른 미래'''가 온다"고 한 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애초에 그가 이길 리도 없고 말이다.
알리바바는 오히려 신드바드가 "이해 받고자 하는 노력"에서 도망치지 않았냐고 지적한다. 그와 알라딘은 끊임없이 신드바드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그걸 거절한건 신드바드다. 즉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드바드 쪽에서 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분쟁의 본질은 "뭔가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란 점을, 인간의 습성이 그렇다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신드바드가 깨달은 바와 일치하며 알라딘도 놓치고 있던 세상의 진실이다. 그것을 한수 아래라고 여겼던 알리바바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 마기/351화 . . . . 4회 일치
* [[우고(마기)|우고]]와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사라지고 성궁이 밤이 되자 당황한다.
* [[연백룡]]과 [[쥬다르]]도 일행을 쫓아와 합류. 우고는 아무래도 "세상을 루프로 환원시키는 마법"이 작동한 것 같다 하는데.
* 그것은 그물과 같은 균열이었다. 균열을 통해 천사와 같은 형상이 나타난다. 원주민들도 그것이 천사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흉흉한 분위기.
* 우주로부터 한 쌍의 손이 내려와 우고를 붙든다. [[다윗]]이다. 그가 우고에게 잡혔을 때 상황을 그대로 되갚아준 것이다. 붙잡힌 우고가 이 모든게 네 짓이냐고 묻자 다윗은 그저 웃을 뿐이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묻자 다윗이 설명을 시작한다. 이 또한 우고에게 잡혔을 때 당했던 일이다. 그는 우고를 "우랄투고"라 부르며 이것은 그가 가르쳐준 "신의 서열을 뒤바꾸는 마법"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신의 자리를 빼앗은 다윗은 성궁을 장악해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재시동했다. 다윗은 신의 서열을 바꾸는 마법이 멋지긴 하지만 자신이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라 말한다. 그래도 우고가 그걸 구축해냈으니 단지 쓰는 것 뿐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였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4회 일치
1751년 12월 9일 [[파르마]]에서 출생,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왕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사실상 스페인의 국정을 통솔하였으나, 하급귀족 출신의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25살 청년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등 정치적 실책을 여러 차례 저질러, 결국 폭동이 일어나 카를로스 4세와 망명하는 신세가 됐다.
파르마 공작 필리프의 딸로서, 1765년 [[황태자]]였던 [[카를로스 4세]]와 결혼하였다. 아둔하고 무기력하다는 야유를 들은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스페인의 국정을 담당했다.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절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태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 소녀 시절의 초상화는 상당히 미인인 편이지만, 아이를 많이 낳은 탓인지 미모가 쇠퇴하여 중년 이후에는 상당히 심술궃은 아줌마(…) 같은 외모의 초상화가 많다. 1765년 작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초상화[* http://www.ozmall.co.jp/art/list_mitsubishi.aspx]와 1800년 쯤에 그려진 카를로스 4세 가족[* http://www.salvastyle.com/menu_romantic/goya_familia.html]의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
- 마츠자카소 . . . . 4회 일치
[[일본]] [[미에 현]] 중부의 마츠자카 시(松阪市)를 중심으로 하여, 마츠자카소 협의회(松阪牛協議会)에서 관리하여 생산하는 [[소]]의 브랜드. 코베소(神戸牛),오우미소(近江牛)와 함께 일본 3대 화우(和牛,와규)로 이름이 높다.
* 2008년 11월에는 소 일러스트와 마츠자카를 조합한 상표가 2001년 9월에 등록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 2010년 5월 12일 발표에 따르면, 2006년에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는 마츠자카육(松阪肉), 마츠자카소(松阪牛) 등으로 중국에서 상표 출원을 하였으나, 중국 국가상표국에서는 '이미 2001년 9월 마츠자카 문자와 소의 얼굴 일러스트로 상표가 등록되어 있음', '마츠자카소는 일반적인 식재료 명칭', '마츠자카는 외국의 지명'이라는 3가지 이유로 출원을 기각하였다.
- 맥닐의 법칙 . . . . 4회 일치
* 집단 A와 집단 B, 질병 X가 있다.
* 집단 A는 특정한 질병 X에 어느 정도 [[면역]]을 가지고 있다. 집단 A의 면역 체계와 질병 X는 적절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어, 집단 A의 사람들은 질병에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어도 병세가 치명적이지 않다. 혹은 문화적으로 질병 X에 대한 대처법(격리 수용, 증상에 맞는 처방)을 알고 있어, 질병에 대처할 수 있다.
1518년, 스페인 이주민이 퍼트린 [[천연두]]가 에스파뇰라 섬의 아라와크 원주민의 절반을 살해한다. 천연두는 아메리카 본토에도 상륙하여 1530년대부터 팜파스에서 [[오대호]]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초토화시킨다. 16세기 멕시코에서는 천연두로만 1800만명이 사망, 의학사가들은 이 시기에 천연두 사망자를 8천만명에서 1억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무렵 1999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1500년대의 인구는 약 5억명으로 추산되므로, 천연두가 세계 인구의 1/5을 죽인 것이다(…).
1529년에는 [[홍역]]이 쿠바에서 들어왔으며, 천연두에서 생존한 주민의 2/3를 죽인다. 홍역은 온두라스와 멕시코를 거쳐, [[잉카 제국]]까지 전염된다. 볼거리,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인플루엔자, 디프테리아, 성홍열 등의 질병이 뒤따랐다. 최악의 추측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는 90%가 소멸했으며 많은 공동체가 '전멸'하여 파괴된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4회 일치
풀네임은 타미클 로빙 3세. 일본 홋카이도 출신으로 정부군 대위이다. 아버지는 우수한 군인이었으며, 타마 또한 중학교 졸업 즉시 군대에 들어갔다. 20대에 대통령을 구했으며, 군대에서 사귄 친구인 마르코와 함께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메탈슬러그 이후 은퇴해 바이크샵을 차리려고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상부의 요청으로 연기되었다.
메탈슬러그 6부터 등장하는 용병부대 사령관. [[이카리 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 나오던 그 랄프 맞다.
메탈슬러그 6부터 등장하는 용병부대 부사령관. [[이카리 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 나오던 그 클라크 맞다.
주인공들이 소속된 세력. 특수부대로 "펠그린 팔콘즈"와 "스패로우즈"라는 특수부대를 가지고 있다.
- 모레아 전제국 . . . . 4회 일치
전제공(δεσπότης,despótēs,데스포테스,데스포티스)이란 비잔티움 제국의 작위로서, 본래 이 말은 '전제 군주'라는 의미였으며, [[로마 제국]] 시기에 라틴어 '도미누스(주인, 군주)'의 번역어로서 그리스어에서 쓰이게 되었고, 그리스어권에서 [[로마 황제]]의 별칭이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이를 군주와 혈연이 있는 고위 귀족, 황족에게 주는 '작위'로서 사용했으며, 제4차 십자군 이후 망명정권의 하나였던 에페이로스의 군주가 황제를 칭하기 이전에 전단계로서 '데스포테스'를 사용하면서 독립 국가 군주의 칭호로 등장하게 되었다. 에페이로스의 '데스포테스'는 니케아 제국에 패배하였으나 니케아 제국은 에페이로스를 봉신으로 삼고 '데스포테스'의 칭호를 쓰는 것을 인정하여, 데스포테스는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 작위로 여겨지는 관례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전제공','전제후'로 번역된다.[* 다만 이는 확고하게 널리 쓰이는 번역어는 아니다.]
[[오스만 제국]]의 성장으로 트라키아와 발칸 반도 북부가 오스만의 지배 하에 넘어가면서 수도 콘스탄티노플과의 육상교통이 단절되어 '위요지'가 되었다. 하지만 위요지라고는 해도 모레아는 영토, 인구 면에서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콘스탄티노플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제국의 핵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지닌 정치적, 종교적 상징성 탓에 모레아 전제국은 어쩐지 무시당한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제국의 영토가 사실상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아예 무시(…)하고 설명하거나, '모레아도 공격받았다. 모레아도 망했다.'는 식으로 고작 한 줄 남짓 언급되는 등.
[[제4차 십자군]] 시기 이 지역에서는 '아카이아 공국'이 세워졌다. 아카이아 공국은 [[니케아 제국]]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포로로 붙잡힌 기욤 2세는 콘스탄티노플 탈환 이후 영토를 할양하고 풀려났다. 비잔티움 제국은 펠로포네소스 영토에 케파리(군정관)을 두고 이들에게 펠로폰네소스 방면의 전권을 위임했다. 케파리는 연단위 임명이었지만 이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종신 임기가 되었고 팔레올로고스 황족이 부임하게 되었다. 영토가 확장되면서 지역을 다스리는 멜리키 케파리와 전역을 다스리는 카소리키 케파리로 분화된다.
모레아는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떠나고, 후임으로 동생 드미트리오스와 토마스, 두 명의 전제공의 공동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 두 명은 개인적으로 사이가 나빴고, 정치적으로 드미트리오스는 친 오스만, 토마스는 친 라틴, 종교적으로 드미트리오스는 동서교회합동반대, 토마스는 합동찬성파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대립하였다. 일단 오스만의 위협에 대항하여 1453년 메흐메트 2세의 공격을 공동 작전으로 격퇴하기도 했지만.
- 문희옥 . . . . 4회 일치
1969년 7월 27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학업을 위해 상경하였고, [[강원도]] [[태백시]]에서 위치한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인 1986년 당시 학교 장기자랑에서 가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의 반응이 좋자 문희옥은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게 된 이후 둘째 언니의 주선으로 작곡가 안치행 씨를 만나게 된다.[* 안치행 씨는 [[최헌]]의 <오동잎>,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다.] 그 뒤 안 씨의 소속사 안타 프로덕션에서 1년 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87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사투리를 소재로 창작곡을 모은 <8도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메들리 음반은 발표되자 마자 360만 장이 팔리게 된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주최로 학교 강당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것 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하이틴 스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좀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문제는 당시 시대상으로 사투리는 공중파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1987년 그 해에 <빈손>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빈 손 가사도 왠지 그 노래를 부른 10대 여학생과는 맞지 않았다~~ 1988년 문희옥은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였고, 꾸준히 더 많이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슬로우 템포의 <가는 님 가는 정>을 발표하고 1989년 원래 가수 정재은이 1984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를 2집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가수로서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교민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1990년 <강남 멋쟁이>가 히트하여 문희옥이 최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 현철과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잘했군 잘했어는 아는 사람은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하춘화 - 고봉산의 노래다. 그리고 여러 메들리를 발표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문희옥]]의 정통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1995년 회사원 김홍선 씨와 결혼하게 되면서 약 3년 간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1998년 <정 때문에>를 발표하며 다시 가요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이전까지 고수하던 정통 트로트에서 벗어나 세미 트로트를 시도하였고, 그 후 여러 곡을 발표할 때마다 다양한 장르와 정통 트로트를 융합시키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다. 2011년 [[tvN]] 오락프로그램 <오페라스타>에 출연하여 직접 오페라를 부르며 실력파 가수로 다시 한 번 인정받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미래소년 코난 . . . . 4회 일치
서기 2008년 7월, [[핵무기]] 이상의 힘을 지닌 초자력무기가 이용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해 문명은 멸망하고, 대부분의 대륙이 가라앉았다. 세월이 흐른 이후, 코난은 남겨진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코난은 라나라는 소녀와 만나게 된다. 라나는 뛰어난 과학자인 라오 박사의 손녀였으며, 박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라나를 쫓는 자들의 습격이 계기가 되어 코난의 할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라나는 끌려가버린다. 코난은 라나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데….
* <[[미래소년 코난II 타이가 어드벤처]](未来少年コナンII タイガアドベンチャー)>라는 것이 있다. 감독은 미래소년 코난의 연출, 콘티에 참여했던 하야카와 케이지. 1999년에 방영했으며 화수는 24화. 내용은 초자력병기 등의 일부 단어는 공통되나 그외에는 미래소년 코난과 아무런 관계 없다.
* 1983년 1월에 국내에 '미래소년 쿤타-버뮤다 5000년'이라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왔는데 많은 의미에서 미래소년 코난을 참고한 것이 보인다. 심지어 성우 배치까지. 좀 웃기는건 중반부부터 [[거대로봇물]]이 된다. 실제 포스터에서도 거대로봇이 등장.(쿤타가 원시소년이므로 모션 트레이싱 하는 방식이다.) 일단 이 미래소년 쿤타는 과거 한희작 원작의 '신세계 소년 디노'의 애니화인데 이 디노와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신세계 소년 디노의 내용은 주인공 디노는 이로 물어서 쇠사슬을 끊을 정도로 무는 힘이 센 원시소년이며 인공지능 로봇과 손잡고 다수의 인류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디노가 대항한다는 이야기다.
- 바키도/104화 . . . . 4회 일치
알버트 박사의 방해가 사라지고 무사시와 피클은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한다.
* 피클은 지금까지 싸워온 누구와도 다르다고 느끼며 대체 눈 앞의 사내가 "누구"인지 생각한다.
* 무수한 금은보화와 아우성치는 손의 모습이 보인다.
* 유지로와도 맞먹는 걸로 평가됐던 피클이 너무 간단하게 압도 당한다.
- 바키도/120화 . . . . 4회 일치
* 닥터 쿠레하가 도쿠가와에게 승부는 이미 났다며 중단시킬 것을 요청한다.
* 그러나 도쿠가와는 자기들은 그저 선언하는 자일 뿐이며 끝인지 어떤지를 정하는건 당사자 둘의 몫
* 그런 말을 하던 도쿠가와가 이변을 눈치챈다.
* 그러더니 이번엔 "그정도는 피와 살이 되지 못할 테니 이번엔 머리를 노려라"라고 도발한다.
- 바키도/133화 . . . . 4회 일치
* 무사시는 칼을 뽑아 돌아서며 모토베에게 감사와 승리의 확인을 되풀이한다.
* 본래 대전을 부정적으로 봤던 도쿠가와 조차도 "토를 달 수 없는 결과"라고 혀를 내두른다. 대결을 멈추려고 했던 한마 바키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지켜지고 말았다"고 인정한다.
* 오로치돗포부터 시작해서 하나둘 관중들이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들 사이에선 지켜지고 말았다는 안도감과 감사, 그리고 앞질러 가버린 동료에 대한 질투와 씁쓸함 따위가 뒤섞인 감정이 흘러나온다. 그런 감정들이 박수를 타고 모토베에게 쏟아져 내린다.
정작 승자인 모토베의 의견은 다르다. 그렇게되기까지 "몇 번이나 베어졌던가"라고 씁쓸하게 술회한다. 무사시가 한마 유지로와 겨루던 때부터, 그는 몇 번이나 무사시의 무검에 베어졌던 바였다. 무사시는 그런건 그저 "통보"일 뿐이라며 실제 베는 것관 다르다고 단언한다.
- 바키도/137화 . . . . 4회 일치
* 유지로는 힐너리의 선서를 거절하며 멋대로 하면 "범해버린다"고 위협한다. 힐너리는 그의 아내 미스 에미와 친분을 말하며 꼭 선서하고 싶다고 말한다.
>오우거와는 아주 관계가 없지도 않으니.
* 그렇게해서 유지로의 방에 들어간 힐너리. 그런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팬티만 걸친 유지로. 게다가 아침발기인지 힘차게 팬티 바깥으로 고개를 디밀고 있다. 말도 못하게 경악하는 힐너리와 달리 유지로는 태연하게 "선서는 안 받는다"고 통보한다. 그는 이미 거절한 바가 있는데 힐너리가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모양이다. 스트라이덤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당황했던 힐너리는 금방 평정을 되찾는다. 그녀는 의오로 [[한마 바키]]의 어머니이자 유지로의 아내였던 미스 에미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힐너리는 그 친분을 근거로 유지로에게 선서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 박두을 . . . . 4회 일치
박두을은 [[1907년]] [[11월 8일]]에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에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아버지 박기동의 4녀로 태어났다. [[박팽년]]의 후손답게 선비였던 아버지 박씨와 '교동댁'으로 불렸던 어머니 손에서 박두을은 엄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얼굴이 예쁘고 인심이 좋아 평소 '두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15세 되던 무렵 어느 날 절에서 시주를 나온 한 스님으로부터 "처녀는 앞으로 왕비가 아니면 일국의 왕 못지않은 갑부가 될 사람을 만나 그 안방마님이 되겠소."라는 말을 하였다.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스님의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이후 박두을은 [[1926년]] 20세에 [[이병철]]과 결혼하였다.
{{인용문|처음 본 인상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고 반세기여를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내자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왔다. 예의범절에도 밝아 대소사가 두루 화목하다. 지금까지 몸치장 얼굴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박두을은 남편 [[이병철]]이 대학 재학 중인 [[1929년]]에 장녀 [[이인희|인희]]를 낳은 데 이어 3남 5녀를 둔 어머니가 되었다. 호암자전에서 [[이병철]]은 자신의 자녀 수를 4남 6녀라고 적시했다. 이 중 자신과 박두을과의 사이에서 3남 5녀를 두었고,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의령군|의령]]의 부잣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와 자식 놓고 어려움 없이 지내던 박두을에게 시련이 닥쳤다. 남편이 대학을 자퇴하더니 무위도식하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남편의 대학 자퇴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1학년 2학기 말 심한 각기병에 걸린 것이다. 2학년이 되자 휴학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학업을 단념하고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귀향했다.
- 박상면(배우) . . . . 4회 일치
1993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한 그는, 1997년 영화 [[넘버 3]]에서 [[재떨이]] 역을 맡으며 충무로계에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다. 1999년 MBC 드라마 [[왕초]]에서 하마 역을 맡으며 드라마 쪽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2000년에는 [[드라마]] 나쁜 친구들을 비롯해 ~~[[미생(선덕여왕)|미생]]~~[[정웅인]], [[윤다훈]] 등과 같이 MBC 시트콤 [[세 친구]]에서 공동 주연까지 따냈고, 2001년에는 영화 [[조폭 마누라]]에서 주인공 [[신은경(배우)|신은경]]의 남편 역으로 주연급 배역을 맡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각종 [[드라마]] 및 [[영화]]에서 조연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주유소 습격사건|주유소 습격사건 2]]에서 집단탈옥하는 폭력조직의 두목으로 나온 적이 있으며 [[제빵왕 김탁구]]에서는 주인공 김탁구를 여러모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연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타킹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치는 이미지 때문에 코믹한 인상을 받기 쉽지만[* 이 당시 [[별명]]이 '몹쓸 상면'이었다.] 이 사람도 진지한 역할을 맡을 때에는 정말 한 없이 진지해진다. 특히 [[소방관]]의 활약을 주제로 한 영화 리베라 메에서 베테랑 소방관을 맡아 열연했을 때는 그야말로 절정의 카리스마와 간지를 선보였다(물론 마지막 장면에 한정).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리프트 카에 태워 대피시키려는데 자리가 모자라자(그것도 불길이 코 앞에 닥쳐와서 리프트 카에 타지 않으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남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 뒤 조용히 건물에 남아 담배를 물고 닥쳐오는 불길을 노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또한 [[서울1945]]에서 박창주라는 [[악역]] 군인을 맡아 열연해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코믹이 아닌 진지한 연기를 맡아 호평 받았다.
- 박정수(배우) . . . . 4회 일치
* [[굿 와이프(2016년 드라마)|굿 와이프]] - 오정임
* [[배우]] [[정경호(1983)|정경호]]의 [[부친]] 정을영 [[PD(방송)|PD]]와 동거 중이다. 정경호와도 모자지간처럼 지내는지 [[인생술집]]에 출연했을 때 정경호를 '아들'이라고 칭했다. [[라이프 온 마스(OCN)|라이프 온 마스]] 마지막회에 카메오로 출연한 것도 정경호의 부탁이었다고.
- 박준규(1925) . . . . 4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달성군-고령군-[[경산시|경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박주현(1923)|박주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9년까지 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종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민주공화당 당의장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대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일민주당]] [[목요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89년 1월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에 임명되어 1년 동안 재임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13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4대 국회가 개원하자 13대 후반기에 이어 다시 [[국회의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여 공직자 재산 공개를 할 때 재산이 문제가 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이후 1995년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그와 손을 잡고 자민련에 합류하여 당 최고고문이 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철언]]과 함께 자민련 내 대구경북세력을 대표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이는 박준규가 1공화국과 2공화국 시절 [[김대중]]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몸을 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기인한다.~~하지만 김대중은 신파, 박준규는 구파~~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준규는 여당으로, 김대중은 야당으로 진로를 달리 했지만 인간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박준규의 활약은 대구경북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이 상승하는 데(8.7%에서 13.1%로 상승)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에다 김대중과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국회의장 단일후보로 지명되었고, [[경선]]에서 무려 3차 투표까지 간끝에 당시 [[한나라당]]의 반란표가 쏟아져 나오며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준규는 이로써 의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 3선의 고지에 올랐다. 반면 [[한나라당]]은 [[오세응]]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패배하고 [[조순(1928)|조순]] 총재 이하 지도부 전원이 국회의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 박진옥 . . . . 4회 일치
|| 지도자 || 제주중학교[* 2018년부터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어 제주 유나이티드 산하 U-15 팀으로 지정되었다.] 코치 (2018~) ||
2013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자유 계약(FA) 신분으로 팀 동료인 [[윤원일]], 오봉진과 함께 전격적으로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3136080|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다.]] 대전 시티즌 입단 후 주장을 맡아 활약하였으나 팀의 [[K리그 챌린지]] 강등을 막지 못하였다.
현역 은퇴 후 2018년부터 제주중학교 코치로 부임하여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같은 해에 제주중학교가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어 '''제주 유나이티드 산하 U-15 팀으로 지정'''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 배지환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201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참가 한 시간 전에 미국 진출 때문에 지명받지 않았다. 이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300,000달러에 계약하였고, 교육리그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2014년에 불법 계약을 한 것이 드러나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81032 배지환 계약 파기 FA행… 애틀랜타 MLB 징계 확정] - OSEN</ref> 게다가 이면계약을 한것이 드러나 계약이 파기되었다. 이후 [[육성선수]] 신분을 인정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냈으나 [[KBO (야구)|KBO]]측에서는 강경대응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2018년 3월 10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하였다.<ref>[http://hei.hankyung.com/hub01/201803103243I 배지환, 국제미아 위기에서 ML피츠버그와 계약] - 한국경제</ref>
루키 팀에서 전지 훈련을 하였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시범경기에서 병살타를 이끌어내는 수비를 하였으며, 1득점을 기록하였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8&no=194076 배지환, 파이어리츠 첫 공식 경기는 ML 시범경기 ] - MK스포츠</ref>
- 베이식 (가수) . . . . 4회 일치
'''베이식'''(Basick, {{본명|이철주}}, [[1986년]] [[8월 12일]] ~ )은 [[이노베이터]]와 같은 [[더블 트러블]] 멤버이자 힙합 가수이다. 본관은 [[광주 이씨|광주(廣州)]]로 베이식은 2007년 2월부터 리드머 스튜디오를 통해 처음 가사를 쓰고 랩을 시작해 꾸준히 활동하다, [[2007년]] 여름 Z-juc 의 앨범을 통해 데뷔를 했다. [[DJ Soulscape]] 창작과 비트 Rap Competition 에서 2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ref>[http://www.openmic.co.kr/bbs/bbs/viewbody.html?code=bbs_3&category=61&page=1&sort=1&number=210813&keyfield=&key= DJ Soulscape 랩컴피티션 발표]</ref>, 2007년 11월, 크루 [[Jiggy Fellaz]]에 영입되었다. [[이노베이터]]와 함께 [[더블 트러블]]을 결성했다. Jiggy Fellaz의 Vasco가 설립한 Independent Record로 거처를 옮겼지만 Vasco의 이혼으로 레이블이 와해되며 현재 [[RBW]]와 계약을 맺었다.
- 보루토/2화 . . . . 4회 일치
* 생각처럼 잘 되지 않자 보루토는 코노하마루와 티격댄다
* 사쿠라도 사라다도 사스케가 돌아와 기뻐하고 있다.
* 보루토와 만난 사라다는 아빠의 제자가 되어서 어쩔 거냐고 묻는데 보루토는 "아버지의 약점"을 배울 거라고 말한다.
* 그 상대는 카구야의 성에서 사스케와 겨뤘던 오오츠츠키 일족들.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4회 일치
1만 4천 톤의 시럽 파도라고 하면 마치 만화 속 코믹한 장면이 연상되겠지만, 이 때 발생한 당밀 파도는 해일처럼 인근 주택가와 전철 교량 등을 덮쳐 목조 가옥 14채와 전철 교량이 파손되고 21명의 사망자와 150여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달달한 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시가지는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됐고, 당밀이 만들어낸 웅덩이들은 늪처럼 변해 인명 구조에 어려움을 주었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人災)였음이 드러났다. 요약하면, '탱크 부실 시공 + 관리 소홀 + 부실 은폐 시도'. 여기에, 사건 당일에 갑자기 영상으로 상승한 기온으로 인해 부피가 늘어난 당밀 시럽이 가뜩이나 부실한 저장 탱크에 부담을 가중시켜 이와 같은 참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 보쿠걸/100화 . . . . 4회 일치
* 후지와라에게 고백하는 것도 결국 하지 못한다
* 타케루와 이마이 선배가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 역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 미즈키는 발렌타인데이에 후지와라에게 고백하기 위해 초콜렛을 사러 들어갔다가 이마이 선배와 마주친다
- 봉준호 . . . . 4회 일치
1993년 6mm 단편 영화 《백색인》을 연출하여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2번째 단편《지리멸렬》은 큰 화제가 되었다. [[배두나]]가 출연하였던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 (영화)|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으나 이후 [[송강호]]와 김상경이 출연한 《[[살인의 추억]]》을 개봉하였는데 크게 흥행하였고,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6년 7월에 3번째 장편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을 개봉했다. 2008년 그는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감독과 함께 [[도쿄도|도쿄]]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영화 《[[도쿄!]]》에 참여하였다. 3편의 영화 중 "흔들리는 도쿄"에서 [[카가와 테루유키]], [[아오이 유우]]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를 통해 멜로적 감수성 또한 인정 받았다.
| [[와인스타인 컴퍼니]] <br> [[CJ엔터테인먼트]]
- 브라이아크 라오 . . . . 4회 일치
한편 코난과 라나가 샐비지선에서 '파치(パッチ)'라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사실 이 파치가 라오였다. 인더스트리아측의 꿍꿍이를 눈치채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이후 탈출하다 탑승한 비행정이 격추당했고, 그 탓에 생긴 부상에 의해 얼굴이 다른 얼굴이 된 것. 이후 정체를 위장한 체 살고 있다가 라나와 재회한 것이다. 처음에는 코난과 라나에게 차갑게 대한 것은 사정 탓에 어쩔 수 없었던 일. 이후 정체가 들통나면서 플라잉 머신을 타고 도주한다. 그러나 지각 변동 탓에 이대로 있으면 인더스트리아가 바닷속에 가라앉을 판이라 이를 알려주러 인더스트리아에 가서 최고위원회와 대화를 나누나 이때 레프카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잡히게 된다. 이후 오랜 전기고문을 당한 탓에 몸이 망가져버려 라나의 텔레파시가 없으면 보통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라다 덕분에 어느 정도는 세상을 봤지만. 최후에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결하고, 탈출선에 탑승해 최후를 맞이한다.
레프카와 대비되는 훌륭한 어른. 대이변 시절에도 비행정을 이용해 사람들을 돕기 위해 활동했고, 인더스트리아를 그냥 놔뒀으면 하이하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터이나 인더스트리아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갔고, 이후 몸이 망가진 후에도 라나의 도움을 받아가며 사람들을 도왔다.
- 브레이니악 . . . . 4회 일치
[[애니메이션]] [[슈퍼맨 TAS]]와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서도 등장했는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는 클립톤 행성의 멸망을 알리지 않고 그들이 멸망하게 방치했다는 설정이 생겼으며 이후 렉스 루터를 부려서 자기 몸을 만들게 했다. 이후 JLU에서 재등장했는데 이때 브레이니악은 정말 치밀하기 짝이 없는 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 브레이니악은 몸이 만들어지자 렉스를 공격했는데 이때 이 공격은 렉스를 죽이지 못했다. 애초에 그에게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 이때의 공격은 브레이니악의 일부를 렉스에게 옮기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이 일부는 렉스의 안에 잠복하게 된다. 그러면서 렉스라 크립토나이트 오용으로 얻은 암을 치유하고 괴력을 줬는데 렉스가 아마조를 기반으로 한 나노머신 로봇 몸에 의식을 옮기는 때를 기다렸다가 그게 좌절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저스티스 리그의 눈을 피하는 동안 렉스에게 설득되어 이전에 지구를 침공한 외계의 병기를 흡수하고 렉스 루터와 융합되었다. 그러나 플래시의 활약에 의해 패배.
슈퍼맨 레드선에서는 슈퍼맨과 협력하고 렉스 루터와 적대하는데 이후 슈퍼맨의 뒤통수를 쳤다.
게임 [[DC 유니버스 온라인]]에서도 등장. 저스티스 리그와 빌런들의 싸움에서 빌런들이 우세를 점했을 때에 군대를 몰고 나타났다. 덕분에 렉스 루터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과거의 저스티스 리그를 찾아가야 했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4회 일치
* 눈치없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국왕 면전에서 "딱히 대단할 거 없는 아저씨"라 해 처형될 위기에 처한다.
* 성공적인 공적 발표가 끝났다. 절정으로 달한 분위기를 클로버 왕국의 국왕 등장으로 몰아간다. 그러고 보니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왕도에 온지 꽤 됐지만 국왕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마찬가지. [[마법제]] 율리우스의 소개와 함께 마침내 국왕이 민중 앞으로 걸어나온다.
* 잠시 뒤 마법제는 아스타와 유노, 두 사람을 잠시 뒤쪽으로 불러낸다. 아스타는 방금 전에 있었던 꽁트 같은 사건에 대해 힘차게 사과하지만 마법제는 애당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에게 로열 나이츠 건에 대해 조언한다. 이건 지금까지 이상으로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찬스다. 그는 두 사람을 격려하면서 아울러 "그래도 아직 신인"이라고 선을 긋는다. 다음주 선발시합에선 많은 강자들이 나올 터.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라며 자신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다.
뭔가 엄청나지만 하등 쓸데없는 수라장에 직면한 아스타와 유노.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 블랙 클로버/110화 . . . . 4회 일치
* 아스타는 궁리를 거듭하다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상태를 다시금 끌어내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방법이 없다.
* 결국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근소한 차이로 정상에 도착하는데 성공하나, 컨트롤이 안 돼서 마그마에 처박힐 뻔한다.
* "돌아가도 좋다"는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의 포기선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의 활약도 반마법의 검에 의존한 "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여기에 자극 받은 아스타는 거의 포기할 뻔 했던 마음을 다잡고 "절대로 정상에 오르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다음. 큰소릴 친 건 좋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근성만으로 올라갈 수 없는건 자명. 아스타는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반마법 상태말고는 수단이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끌어내지?
그런데, "기". 이것이 돌파구다. 아스타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가는 기의 흐름에 주목했다. 그의 몸에는 본래 자신이 가진 기만 있는게 아니었다. 반마법의 검에서 흘러나와 조금씩 몸 안으로 들어오는 기도 있었다. 아스타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렇게 흘러오는 반마법의 검의 기를 전신으로 순환하도록 해봤다.
- 블랙 클로버/119화 . . . . 4회 일치
* 같은 기수의 클라우스도 그의 성장에 신경이 쓰였다. 락은 원래도 등급만 낮을 뿐 실제론 중급 마도사에 해당하는 실력이었다.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아는 클라우스. 그렇기에 그도 노력을 했다. 아스타와 만나고 나서 새롭게 마음 먹은 그는 정신도 육체도 마법도 철저하게 단련했다.
* 클라우스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요주의 인물, 로브 비테스의 등장이다. 크리스탈 위치를 이동시킨 그가 중앙의 난타전에 끼어들었다. 크리스탈은 가까운 거리지만 적의 세 마도사가 그 앞에 빈틈없이 배치됐다. 클라우스는 이 셋을 돌파하고 단숨에 크리스탈을 파괴하자고 제안했다. 락은 물론 사양하지 않았다. 그때, K팀도 중앙에서 거리를 두고 있던 세 번째 팀원이 달려왔다. 푸리 엔젤이었다. 그녀는 "날개 마법" 구사자. 날개로 마음껏 비행이 가능한 우수한 마법이다. 둘의 선전을 "멋지다"고 칭찬한 그녀는 자군의 크리스탈을 들고 높이 날아오른다. 날개 마법 "엔젤 플래핑". 넓게 펼쳐진 날개에서 깃털의 폭풍우가 뿌려진다. 이 기술은 적에겐 시야를 가리고 진격을 방해하는 공격을, 아군에겐 진로를 열고 목표를 추격을 바람을 뿌려주는 마법이었다. 적들이 휘날리는 깃털에 시야와 발이 묶인 사이, 클라우스가 강철로 된 발판을 생성한다. 락이 이것을 밟고 뛰어올라 빠른 속도로 적의 크리스탈로 향한다.
로브의 강함은 락의 힘을 더욱 끌어냈고 한 차례 더 가속시켰다. 락은 로브도 반응하지 못하는 속도로 쐐기같은 킥을 꽂아넣었고 로브와 크리스탈을 단 일격에 파괴한다. K팀의 승리. 락은 엄청 재밌었다고 만족한다.
* 시작 전만 해도 사이가 나쁠 거 같았던 세 사람은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주고 받는다. 클라우스 조차도 기뻐하며 락에게 달려왔다. 푸리는 두 사람 모두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스타와 매그너는 동료의 승리를 기뻐하며 "너무 강해진게 아닌가" 투덜댔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결코 노엘을 이용한 것은 아니며 노엘을 도와준 것이나 친구가 되고 싶은 진심.
* 그러니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는데, 노엘은 친구와 어떻게 싸우냐고 반문한다.
* 키아토와 싸우는 아스타는 그의 기이하고 유연한 움직임에 농락당한다.
*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은 강적과 마주쳤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4회 일치
* 매그너의 협공으로 일시적이나마 베토의 공격이 멈추는데, 락도 그걸 보고 매그너와 첫만남을 생각한다.
* 예상대로 매그너는 언제나 전력으로 되갚아주러 왔는데 그러는 사이에 최근에 와서야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 한편 아스타와 키아토는 베토의 마력을 쫓아 무작정 뛰고 있다.
* 마법으로 신체강화를 하는 베토와 신체 자체가 강화마법이 걸린 수준인 아스타의 대결
- 블랙 클로버/72화 . . . . 4회 일치
* 리히트는 자신들도 그 새와 같이 별로 강하지도 않은데 그저 난다는 것 때문에 질투를 산다고 말한다.
* 리히트와 싸울 때 마력이 폭주했던 것과 같은 상황.
* 갇혀있던 곳을 어거지로 베어버리고 나와버렸는데.
* 보고 있었던 대신관 영감은 "너무 강해서 흥이 식어버렸다"며 카호노와 키아토를 돌보러 이동한다.
- 블랙 클로버/81화 . . . . 4회 일치
* 아스타는 왜 동료들ㅇ 땡땡이라도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창 밖에 노엘 실버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오는게 보인다.
* 동료들이 일부러 숨은 거라고 생각한 아스타는 창으로 몰래 엿보는데 노엘 실버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어딘가를 다녀오고 있다.
* 고슈 아들레이와 고든 아그리파는 왕립도서관에서 자료 조사 중
* 핀랄은 이 와중에도 은근히 노엘에게 작업을 걸려다 응징 당하는데, 노엘은 핀랄에게 "어떤 장소"에 데려다 달라는 말을 한다.
- 블리치/678화 . . . . 4회 일치
* 우라하라 키스케와 그림죠 재거잭의 계약은 "적을 죽일 때까지".
* 한편 제라드 발키리와 싸우던 곳에선 쿠치키 뱌쿠야가 도착한다.
* 뱌쿠야와 토시로는 "신장차"를 가지고 옥신각신 실 없는 소릴 주고 받는다.
* 제라드의 한 팔이 크게 썰려 나가는데 "대장이 줄줄이 와서 전멸 당했냐"며 자라키 켄파치가 등장한다.
- 블리치/679화 . . . . 4회 일치
유하바하의 친위대 제라드와 교전하던 호정13대 일행은 제라드의 능력 때문에 가로막힌다. [[자라키 켄파치]]는 무모하게 공격을 거듭한다.
* 마다라메 잇카쿠와 아야세가와 유미치카는 제라드가 날뛰는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자라키 켄파치가 앞질러 간 것에 경악한다.
* 켄파치가 자른 제라드의 오른 팔은 금방 재생하는데, 이걸 보고 뱌쿠야와 토시로가 "적의 능력은 거대화가 아니라 더 강하고 크게 재생하는 능력"이라고 간파한다.
- 블리치/686화 . . . . 4회 일치
유하바하와 이치고의 대결
* 한편 제라르와 싸우고 있는 쪽은 완전히 수세에 몰려있다.
* 루키아와 렌지는 제라르의 공격을 피하려다 휩쓸릴 뻔하고, 이때 뱌쿠야가 구해낸다.
* 하쉬발트와 싸우던 우류는 결국 쓰러진다.
- 서상일 . . . . 4회 일치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5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론에 떠밀려 제일야당 민주당과 진보당은 후보단일화협상을 갖게 되었는데 협상장에서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은 민주당 [[대통령]] [[신익희]]에게 양보의사를 밝히는대신 [[부통령]] 후보는 중요하지 않으니 민주당측이 양보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ref name="서158">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8 페이지</ref> 일단 [[신익희]]는 이 제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민주당 (1955년)|민주당]] 으로서는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왜냐하면 당시 신구파연합체였던 민주당은 당내경선에서 구파의 영수 신익희와 신파의 영수 장면을 나란히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던 것인데 신익희가 신파를 설득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익희ᆞ조봉암 회동이 이루어진지 6일만에 호남유세에 나섰던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안에서 뇌출혈로 급사함으로써 사실상 후보단일화는 엉뚱하게 조봉암으로 되어버렸지만 민주당은 당차원에서 조봉암을 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민주당 최고위원 김준연은 조봉암의 사상적 문제점을 들어 이승만 지지를 공개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때 서상일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놓고 [[조봉암]]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좋은 결론을 심사숙고하려 했다. [[조봉암]], 서상일 등은 원래는 선거가 종반전에 들어갈 때 정부통령 후보를 모두 민주당측에 양보하는 것에 합의했으나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조봉암이 사실상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자 선거말미에 가서 부통령 후보 박기출만을 사퇴시켰던것이다. <ref name="서158"/> 대선이후 서상일은 겉으로는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결성 운동을 추진했으나 이미 대선후보 결정당시 [[조봉암]]과 감정이 상했기 때문인지 [[진보당]] 결성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사실상 1인정당인 민주혁신당을 창당했으나 이 당이 사실상 힘을 쓰지 못하자 서상일 또한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지게 되어 정계은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1962년]]에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간장염]]으로 사망했다.
- 성시경 . . . . 4회 일치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사회학과]]와 동 대학 [[언론|언론대학원]] 방송학을 졸업하였으며, 방황 끝에 [[가수]]의 길을 선택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30&aid=0000003510 t MAP 성시경]『매거진t』강명석 수석 기자 2008년 6월 30일</ref>
성시경은 데뷔 이후, 오랜 기간동안 감성적인 [[발라드 (대중 음악)|발라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8년]] [[6월 28일]]에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 이후, [[7월 1일]] 현역으로 [[강원도 (남)|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102 보충대에 입대하였고, [[제1야전군 (대한민국)|제1야전군사령부]] 군악대 군악병으로 복무한 뒤 [[2010년]] [[5월 17일]]에 제대하였다. 제대 후, 매년 축가콘서트와 연말콘서트를 진행했으나 2015년을 마지막으로 연말콘서트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MBC FM4U]]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디스크 자키|DJ]]를 거쳐서, 현재 [[KBS2]] 《[[배틀 트립]]》, [[tvN]] 《[[모두의 연애]]》, [[OLIVE]], [[tvN]] 《달팽이호텔》 등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 원곡 : [[서태지와 아이들]]
*원곡 : [[서태지와 아이들]]
- 소진은 . . . . 4회 일치
[[조선총독부]] 군수를 지낸 [[소진하]](蘇鎭夏)와는 형제 관계이며, 아버지는 [[소영규]](蘇榮奎)이다. [[1911년]]에 문관보통시험에 합격하여 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1912년]] [[1월 29일]] 조선총독부 경상북도 김산군 서기로 임명되었고, 1914년부터 1920년까지 [[김천군]] 서기로 근무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다시 관계로 돌아와 총독부 군수직을 지냈다. [[평안북도]] 선천군수(1937년 8월 6일), 의주군수(1941년 3월 31일 임명)를 역임했다. 1938년 8월 1일 당시에는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으며, 그밖에 쇼와 대례 기념장(1928년 11월 16일), 훈8등 서보장(1930년 2월 12일), 훈7등 서보장(1933년 9월 4일), 훈6등 서보장(1935년 9월 9일), 훈6등 단광욱일장(1940년 4월 29일), 훈5등 서보장(1941년 8월 9일), 일본적십자사 유공장(1944년 12월) 등을 받았다. 특히 훈6등 단광욱일장은 선천군수 재직 시절 [[중일 전쟁]] 당시에 군대의 숙영 및 급식, 군용물자의 조달, 군대 군인 및 파견 가족의 후원 및 위로, 국채 소화 및 저축 장려,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 국방 사상 보급 및 선전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여 받은 것이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경시 부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와 경찰 부문에 수록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솔비 . . . . 4회 일치
2010년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미술에 흠뻑 빠지며 화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Trace'의 '공상'을 시작으로 셀프 콜라보레이션(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인 권지안과 솔비가 협업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선보였다. 셀프 콜라보레이션은 2016년 '블랙스완', '직지 코리아 국제 페스티벌' 초청작가, 2017년 '하이퍼리즘-레드',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까지 총 다섯 작품이다. 특히 솔비는 '하이퍼리즘'(정보와 콘텐츠의 홍수로 인해 현대인들의 욕망과 높아진 기대치들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반대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상실감 등의 부작용이라는 시대적 현상을 솔비가 정의한 용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현대인의 우울과 상처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이퍼리즘-레드'<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069|제목='다양성 가요계' 솔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성=정진영 기자|이름=|날짜=2017년 6월 1일|뉴스=|출판사=한국스포츠경제|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는 여성의 상처를 주제로 KBS 2TV '뮤직뱅크'에서 파격적인 [https://tv.naver.com/v/1717804 '레드' 퍼포먼스]를 펼치며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2018년 3월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 음원을 본인 유튜브채널에만 공개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 공헌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12년부터 경기도 한 보육원에 재능기부와 선행 등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16년엔 '파인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음원 'Find'를 발매,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펼쳤다. 같은 해 12월엔 '손모아 장갑'을 발표하며 청각·언어 장애인들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상처와 동정의 시선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왔다. 2017년엔 '다문화 아동 돕기 후원의 밤'에 참석해 특별 공연과 함께 5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사회적인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솔비는 2014년부터 꾸준히 세월호 추모 그림을 그리며 남다른 애도를 표하고 있다. 더불어 2018년 1월 EBS '신년특집 미래강연 Q-호모커뮤니쿠스, 빅 픽처를 그리다'에 강연자로 출연해 "스토킹 처벌은 벌금 10만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솔비가 제안한 해당 법안은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조정 점검회의에서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으로 확정, '스토킹 처벌법'(가칭)이 제정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076873|제목=스토킹 뿌리뽑는다…벌금 10만원→최장 징역 5년 추진|성=김계연 기자|이름=|날짜=2018년 5월 10일|뉴스=|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530678|제목=강연자로 나선 솔비 “스토킹 벌금 불과 10만원” 지적…피해자 입장 법안 제정 당부|성=이유진 기자|이름=|날짜=2018년 1월 1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또한 솔비는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를 발표하며 통해 계급사회를 비판기도 했다. 2018년 6월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05859&cid=40942&categoryId=32774 뮤코다당증] 난치병 환우회에도 참석, 가족들에게 응원을 복돋아주기도 했다.
* 1집 'Do IT' , '하얀 입맞춤' 솔로음반을 내서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로 변신을 했다.
- 송금식 . . . . 4회 일치
신장은 180cm이고 체중은 85kg이며 [[낚시]]에 취미가 있고 [[태권도]]와 [[쿵푸]]와 [[태극권]]에 특기가 있다.
* 2000년 《[[깡패 수업 3]]》 ... 이시기와 역 (우정출연)
* 2002년 EBS 《역사탐구 과거와의 대화》
- 슈퍼머슬봄버 . . . . 4회 일치
그러나 레슬링게임이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해보면 나름대로 꽤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대쉬와 로프 반동을 이용한 스피디한 공방은 이 게임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백미.
게임자체는 망하기는 했지만, 세계관은 그대로 남아있어서 [[파이널 파이트]]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연결되기도 한다.(대표적인 예가 [[해거]]와 [[버디]], [[휴고]])
참고로 이 게임의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은 머슬봄버와 마찬가지로 [[북두의 권]]을 그린 만화가 하라 테츠오. 그래서 북두의 권 스타일의 마초풍 일러스트를 이 게임에서 볼 수 있다.
- 스이츠 . . . . 4회 일치
일본에서는 어린이용 과자와 구별하여, 고급 양과자 점에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만드는 과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티라미스’ 같은 고급 양과자가 잡지 소개 등으로 붐을 타고 널리 퍼지게 되었다.
>───나의 이름은 아이(アイ)。마음에 상처를 입은 여고생。모테카와스림으로 연애체질의 사랑스러운 걸(ガール)♪
> 친구는 있어도 역시 학교는 지루해. 오늘도 미키와 사소한 일로 말싸움을 했다.
> ・・・아니야・・・지금까지의 남자와는 뭔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스피리츄얼한 감각이 나의 몸을
- 스쿼키 청소회사 . . . . 4회 일치
맥스와 모나가 이너서클의 일원인 코크런을 만나기 위해 그가 사는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맥스와 모나가 보다 빨리 도착해 코크런을 포함한 아파트 거주자들을 죽이고 있었다. 이들은 맥스와 모나도 죽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격퇴당하고 간부급 인물이던 카우프만 역시 죽게된다.
맥스와 모나가 사랑을 나누는 현장을 급습한다. 하지만 오히려 격퇴당하고, 후퇴하는 청소회사 밴에 맥스가 기어들어가 본거지를 습격당한다. 이 과정에서 맥스는 수많은 무기들과 폭발물, 수많은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는걸 보고 이들이 일반적인 떨거지들이 아니라는걸 알아낸다. 이 순간부터 청소 회사 위장을 그만두고 검은 복장으로 나오는 놈들이 생긴다.
- 스트라테고스 . . . . 4회 일치
아테네 이외의 다른 그리스 폴리스에서도 스트라테고스라는 말은 쓰였는데, 폴리스의 지도자나 장군을 나타내는 직위로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른 폴리스의 정치구조는 아테네와는 달리 자료가 부족해서 확실하게 어떤 지위였는지 알 수 없다.
[[콘스탄티누스 1세]] 시기에 마기스테르 밀리툼(Magister militum)이라는 직위가 창설되었는데, 그리스어로 이 지위는 흔히 스트라테고스로 번역되었다. 후기 로마 제국에서 이 지위는 비잔티움의 '로마 황제'와, '서로마 황제' 다음가는 고위 장군직이었다. 마기스테르 밀리툼은 갈리아,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오리엔트, 일리리아 등 넓은 범위의 속주 지역에 임명되었다. 이들은 광범위한 지역을 담당하면서 해당 지역의 야전군을 총지휘하고, 외적의 공격을 요격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이 지위는 중앙에서 임명되기도 했는데, 동로마 제국은 magister militum praesentalis이라 하여 2명이 임명되었고, [[서로마 제국]]에서도 임명되었다.
[[스틸리코]],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같은 사례가 그러하다. 이들은 서로마 제국 후기의 국방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으나, 너무 큰 지위였기 때문에 서로마의 '스트라테고스'는 황제와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스틸리코는 모함을 당해 처형되었고, 아에티우스는 암살당했다.
서로마와 마찬가지로 지방 테마의 스트라테고스는 지방 방위에 필수적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황제의 권위에 가장 큰 위협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야심만만했던 스트라테고스들이 황위찬탈을 목표로 반란을 일으킨적이 잦았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 . . 4회 일치
격투 게임의 대표적인 [[게임]]이며 <스트리트 파이터>를 시작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와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인지도도 남달랐는데 격투가의 전형인 류는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유명세에 어울리게 이후의 격투 게임 중에는 당장 아류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스파와 비슷한 게임들도 많이 나왔으며 캐릭터도 스파 시리즈와 비슷하거나 그러한 포지션에 있는 캐릭터들도 많았다. 그만큼 이 게임 시리즈의 존재감은 보통이 아니다.
* 캡콤이 만든 게임인 [[2010 스트리트 파이터]]란 게임이 있는데 스파 시리즈와는 아무 관련 없는 게임이다. 항목 참고.
- 스틸오션/독일 . . . . 4회 일치
>베르사유 조약 아래 독일의 잠수함 개발에 금지되었어도, 비밀 연구는 계속 이루어졌다. 잉글랜드와 독일 간 해군 조약이 이루어짐에 따라, 독일은 신세대 잠수함 U-1을 진수했다. 이 신형은 2A형(Type IIA)이라고 불렸다. 여섯척의 2A형 잠수함이 훈련과 시험용으로 사용되었다. 작은 크기로 인해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7형(Type VII)의 기본 시험형이었던 7A형(Type VIIA)은 독일 해군의 공격 잠수함으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3형에 기술적 기반을 둔 VIIA형 유보트는 1933년 설계되었다. 7형은 뛰어난 성능과 빠른 잠항 속도를 자랑했다. 모두 합쳐 11대의 7A형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이중에는 대서양 해전의 첫 희생양인 여객선 아테나(Athena)를 격침시킨 U-30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32는 배수량 42,348톤 정기선 엠프리스 오브 브리튼(Empress of Britain)을 격침시켰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손실된 7A형 잠수함은 U-29와 U-30 단 두척이었다. 살아남은 7A형 잠수함은 모두 자침되었다.
>필라우는 러시아 제국의 주문으로 단치히에서 건조중인 경순양함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이 순양함을 독일에 의해 몰수되어 독일 해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전시에 필라우는 제2 정찰대에 배속되어 북해와 발트해에서 활동했다. 1915년 리가 만 해전에 참가해 러시아 해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뤘다. 1916년 5월, 필라우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해 대구경탄에 맞아 큰 손상을 입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전투순양함 자이들리츠(Seydlitz)가 항구까지 도달하는걸 도왔다. 1917년 헬리골란트 바이트 해전에도 참가했다. 종전후 전쟁보상함으로 이탈리아에 양도, 바리(Bari)로 개명되었다. 바리는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P급 장갑함은 D급 장갑함의 후계자로써 도이칠란트급과 같은 설계와 전술을 사용했다. P급은 독일 해군의 Z 계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37년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타국의 8인치 순양함포를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2척이 계획될 예정이었으며, 1940년에 첫번째 P급 장갑함이 건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Z 계획의 변경으로 P급은 O급으로 교체되었고, P급은 마지막까지 완공되지 못했다.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4회 일치
1940년,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프랑스를 점령했다. 나치는 프랑코 정부와 같은 파시즘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를 지원하여 공화국을 무너뜨린 세력이었다. 당연히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에서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는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서유럽에 망명하고 있던 많은 공화파 망명자는 정치범이 되어 나치 독일에 끌려가 수용소에 갇히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스페인 공화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코 정권은 전쟁 중에 독일에 의용군을 보내는 등 상당히 친나치 성향을 보이고 있었으나, 명목상은 [[중립국]]이었고 전쟁 말미에는 의용군을 귀국조치 시키며 망해가는 히틀러와 거리를 두었고 연합국과는 협상을 벌였다. 결국 연합국은 스페인까지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코 정권은 전후에도 계속 파시즘 체계를 유지될 수 있었다. 희망이 좌절되자 공화파 망명자와 망명정부는 매우 낙담하였다.
1946년,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는 [[파리]]로 다시 옮겨갔다. 여담으로 바스크 망명정부와 카탈루냐 망명정부(…)도 파리에 설립되어 있었다.
- 식극의 소마/157화 . . . . 4회 일치
쿠로키바와 쿠스노키의 대결은 호각지세.
* 쿠스노키의 요리는 저온 조리로 레어로 조리한 연어와 동결건조기로 만든 "연어 아이스크림". 심사의원과 모모선배의 대호평을 받는다.
* 아리스가 멋대로 덜어와서 타도코로에게도 먹이는데 그야말로 극찬.
* 모모선배와 타도코로가 리액션 담당으로 맹활약.
- 식극의 소마/162화 . . . . 4회 일치
* 에리나는 히사코와 대화하며 "잔당 사냥에서 살아남는 연구회가 또 나올지도 모른다. 센트럴이 절대적인건 아니다."라고 말해 히사코를 놀라게 한다.
* 그런데 얘기를 나누며 복도를 지나던 중에 마침 츠카사와 소마가 얘기하고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된다.
* 여기에 자극받은 츠카사가 "그렇다면 시험해 보자"라며 "십걸의 1석 자리를 걸 테니 네가 지면 내 밑으로 와라."고 제안한다.
* 에리나와 히사코는 숨어서 보고 있다.
- 식극의 소마/166화 . . . . 4회 일치
* 설사 센트럴로 불러와도 써먹기는 커녕 제어가 안 돼 자기가 쓰러질 거라고.
* 이로써 덮밥연구회와 향토요리연구회는 존속한다.
* 츠카사는 이변을 전해듣고 "역시 올해 1학년은 뭔가 다르다고 말하는데, 나키리 총수와 독대하고 있다.
* 오랜만에 니쿠미와 타도코로 등장.--타도코로는 자주 나왔어. 병풍이었지만--
- 식극의 소마/179화 . . . . 4회 일치
* 소마와 타쿠미는 십걸과 대결할 수 있다는 말에 흥분.
* 이후 히사코와 연락으로 반역자 팀이 4개로 나뉘었다는걸 알게 된다.
* 그는 소마와 기숙사생들의 투쟁을 비하하며 소마가 어물대는 사이 자신은 정점에 올랐다고 으스댄다.
* 하지만 소마와 거의 비등한 수준으로 묘사됐던 하야마가 십걸을 먹어 버려서 밸런스 붕괴 아니냐는 말도 있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4회 일치
* 나키리 에리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도하려 하는데 마침 나키리 아자미가 근처에 와있다.
* 그때 유키히라 죠이치로와 나키리 센자에몬이 등장해 파란을 예고한다.
* 에리나는 애초부터 소마의 구상은 현실성이 없었다고 디스하며 이렇게 된 이상 자존심 같은건 내려놔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혹시 자신이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 애원하면 퇴학이 취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가려하는데 정작 어디있는지 모른다. 린도는 무슨 생각인지 사실 아자미 총수가 여기 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진급시험장을 돌면서 상황을 시찰하고 다니는데, 때마침 이 회장에 들른 상태이며 꾸물거리면 다음 장소로 갈 테니 빨리 헬기 착륙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 옥상으로 뛰어와 보니 정말 아자미가 헬기에 오르려는 참이다. 에리나는 가까스로 아버지를 따라잡았지만 아자미는 그녀가 소마 일행과 같이 있는걸 보고 "그녀석들도 곧 퇴학 당할 것. 아직도 그런 애들하고 같이 다니냐"고 꼰대같은 말이나 한다. 그리고 두 명이나 합격자를 낸게 불만인지 린도에게 근신을 명한다.
- 식극의 소마/238화 . . . . 4회 일치
* [[아카네가쿠보 모모]]의 냄비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은 [[카와시마 우라라]]가 정화되어 썩어빠진 내면까지 메르헨스럽게 변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이 믿기지 않는 변화를 보고 문제의 냄비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 샤름은 향기의 정체가 "다마스크 로즈"라는 특수한 장미의 향임을 알아챈다. 이것은 모모가 가장 좋아하는 꽃. "장미의 여왕"으로도 불리며 가장 우아한 향을 가졌다고 한다. 일설엔 클레오파트라가 목욕물에 띄웠다고 하는 장미가 바로 이것. 모모의 사과타르트는 이 다마스크 로즈의 향을 사과에 베게 해서 만든 것. 하지만 [[하야마 아키라]] 등은 의문을 표한다. 일반적인 조리법으로 장미향을 사과에 베게하려면 사과가 푹 무를 때까지 함께 삶아 형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 모모는 "삶지 않고 베게했다"고 설명한다. 우선 꽃잎을 정성들여 씻고 대량의 꽃잎을 한 번에 졸여서 장미시럽으로 만든다. 이 장미 시럽을 얇게 썬 사과와 함께 물에 담가두는 것으로 장미의 향과 색이 그윽하게 베이도록 만든 것이다.
* 이스트와르는 모모가 쉽게 말했지만 이정도로 퓨어한 장미시럽을 만드는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한다. 그리고 그걸 소재에 베이게 만드는건 더욱 어려운데, 그것을 해내면서 사과의 풍미도 떨어지지 않게 했다. 장미의 향도 사과 본연의 맛과 풍미가 베이스로 받쳐줬기 때문에 빛을 봤던 것. 그렇게 공들인 과자를 빵으로 만든 바구니에 담는 플레이팅 센스도 좋다. 이런 그녀는 먹는 사람을 동화속 공주님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사 같다고 총평한다.
* 모모의 타르트가 압도적이지만 소마는 그녀를 상대하는 [[타도코로 메구미]]를 걱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노력한 것들, [[시노미야 코지로]]에게 배운걸 전부 쏟아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데. 메구미는 이미 그런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시노미야의 코치를 받은 그녀는 마치 투사와 같은 자세. 시노미야의 가르침을 되뇌이고 있다.
- 식극의 소마/239화 . . . . 4회 일치
* [[시노미야 코지로]]의 가르침을 되세기며 파이팅하는 [[타도코로 메구미]]. 그런데 내놓은 요리는 매우 소박한 도라야끼.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안에 백앙금과 함께 깍뚝썰기된 사과가 들어가 있다. 싱싱한 사과의 향기가 강점이지만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선보인 타르트에 비하면 외견도 향기도 미치지 못한다. 샤름은 모모보다 명백히 밑이라고 냉정히 평하는데 이스트와르는 도라야끼라는 과자 자체를 꽤 선호하는 모양. 좋아라 맛을 보는데 생각이상으로 강렬한 리액션이 따라온다.
* 사과 도라야끼는 평범한 외견과 달리 매우 섬세하고 산뜻한 맛을 냈다. 와삼봉 설탕에 벌꿀과 두부를 넣고 만든 빵반죽에 부드러운 백앙금의 풍미와 톡톡 튀는 사과의 산미가 더해져 있다. 안은 이것이 "뇌수까지 퍼지는 초노급 촉촉함"이라 표현한다. 이스트와르가 한 가지를 더 발견한다. 그것은 빵 안 쪽에 바른 "사과버터". 간 사과에 레몬즙과 설탕, 버터를 넣고 가열해 녹여서 만드는데 보통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재료다. 그게 가능했던건 시노미야에게 사사한 "몽테 오 뵈르", 프랑스 요리의 기법 덕이다. 시노미야는 이 기술을 가르치면서 몇 번이나 호통을 치고 "굼벵이"라고 다그쳤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서 "굼벵이지만 결코 얼간이는 아니다"며 내심 타도코로를 인정한다.
- 신고은(가수) . . . . 4회 일치
[[2014년]] [[7월 19일]]자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뮤지컬 배우 지망생으로 나왔다. 패널들은 아름다운 미모와 가창력을 칭찬했으며, 닮은꼴로 [[한선화]]와 [[고아라]]를 언급했다.
그 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41~50회 #s-4|2016년 2월 21일]]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4차 경연에서 [[만나면 좋은 친구 엠빅]]이라는 가명으로 나와 파트너인 [[부활한 백투더퓨처]]와 3표 차 접전을 벌였다. 이 때 연예인 판정단 대부분은 가수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나중에 리포터로서의 모습만 알고 있는 판정단은 "리포터가 저렇게 노래를 잘 하다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88명의 일반인 판정단에선 동점이었고 연예인 판정단에서 승부가 갈렸다.]
- 신적강하 . . . . 4회 일치
이와는 극적으로 대조적인 사례가 [[명나라]]이다. 명나라의 경우는 황족에 대한 대우가 비교적 후하고 황족을 정리해고하는 제도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약 200여년간 황족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낳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 재정으로 후한 복지 혜택을 받고 있었다. 그 결과 너무 많이 불어난 황족들 탓에 말기에는 재정 압박이 상당히 심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황족들은 거의 다 복지제도에만 의존하고, 반란을 명나라에서는 의도적으로 황족의 관직 진출 등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니트족]]으로 살고 있어 사회 문제가 심각했는데 명나라는 법률적으로 이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기도 어려웠다.
결국 재정난에 시달리던 [[숭정제]]는 재정건전화를 위해서 역졸을 대대적으로 정리해고했다가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이 반란군으로 변질되어 [[이자성의 난]]을 일으켜서 멸망했다. 물론 그 많은 명나라 황족들은 명나라가 멸망하는 와중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명]] 정권에서도 유력 황족들이 서로 싸움질이나 할 뿐, 제대로 협력해서 가문을 일으켜보려는 사례는 찾을 수가 없다.--역졸이 아니라 황족을 해고했어야지.-- 그들의 조상 [[주원장]]이 가난하고 빈곤한 떠돌이의 신분이었음에도 가문의 도움 따윈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정말 '헝그리 정신'의 차이처럼 보일 정도.
물론 일본과 명나라와는 시대적 차이, 관습적 차이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서 명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섬나라라서 대외 침략의 위험이 적었고, 일본 황족은 관습적으로 친족 내의 근친혼이 권장되었기 때문에 근친결혼으로 황족의 숫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약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황족 문제에 대처가 거의 없으면 고작 200년 만에 국가 재정이 파멸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실즈 . . . . 4회 일치
일본의 학생운동 단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自由と民主主義のための学生緊急行動)을 뜻하는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의 약자에서 따왔다. 단체 스펠링은 다르지만 일본어 발음은 영어 실즈(SHIELDS)와 비슷하여 영어로 '방패'와 연관을 지어서 지은 이름으로 추측된다.
* 어벤저스에 나오는 특수조직 실즈와는 무관하다.
-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 . . . 4회 일치
2015 K리그 클래식 12라운드 성남 vs 광주의 경기[* 경기번호는 클래식 2015-99]에서 어이없는 심판의 판정 번복이 일어나면서 나오게 되었다. 그때 관중석에서 일갈이 나오는 것이 방송을 타버렸으니, 바로 이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이 발언은 당시 공중파 방송인 KBS1에서 중계한 경기중에 여과없이 나온 발언이었기에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고, 해당 경기와 관련이 있던 성남과 광주의 팬들 뿐만 아니라 심판의 오심에 관련하여 데인 기억이 많은 K리그 전체 팬들에게 호응을 얻어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K리그는 다른 리그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오심]]이 많은 건 아니다.''' 당장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사례와 비교해봐도 전체적으로는 준수한 경기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칼카나마의 쑥덕축덕만 봐도 라 리가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오심으로 [https://twitter.com/Kalkanama/status/727232395842187265|강등을 당하는 팀도 있고], 소위 [http://www.kfa.or.kr/news/news_column_view.asp?BoardNo=1086&Page=1&Query=|유령골이라고 불리는 옆그물 골]이 발생한 경우도 있으며, [http://http://www.teamtalk.com/news/ref-review-the-incorrect-decisions-from-week-31|한국인 선수가 뛰는 리그]도 예외없이 이런 이슈에 대해 아주 잘 소개된 바 있다. 농담 안 하고 세계 어디를 가든 심판의 수준은 사실상 도찐개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 심판의 판정에 있어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결코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 판정 번복 자체가 이 일관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득을 본 팀에게는 찝찝함을 주고, 손해를 본 팀에게는 억울함을 주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다 평할 수 있다.
- 아스팔트 우파 . . . . 4회 일치
과거에도 대한민국에 우파 정치단체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현존하는 아스팔트 우파와는 크게 관련성이 없다. 제1공화국 시기 [[자유당]]과 연계된 [[이정재]]의 [[화랑동지회]] 등 [[정치깡패]] 부류의 조직이 존재했으나, [[조직폭력배]]로서 처단, 와해되어 현재의 아스팔트 우파들은 이러한 조직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군사정권 시기에 정부에서는 우익성향을 가진 관변단체를 만들었으나, 민주화 이후로 이들은 대부분 몰락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고 현재의 조직들은 이러한 단체들과의 연관성이 모호하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나서, 진보 세력의 시민운동은 민주화 된 사회에서 집회나 시위 등을 통하여 정치적 요구를 표출하였고 [[촛불시위]]와 같은 시위 문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보수 진영 역시 [[이회창]], [[박근혜]] 등의 주요 정치인이 집회에서 연설에 나서거나, 특정 정치 사안에서는 직접 시위에 나서는 등 의외로 상당히 적극적인 시위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권 정치인이 아닌 재야 우파 세력은 비교적 발달(?)이 미비했다.
[[대한민국]]에서 '아스팔트 우파'를 자칭하는 단체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주로 조직되고 나타나게 되었다. 주로 사안에 따라서 정부나,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시위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독립적인 단체로 위장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정계의 압박에 따라서 [[전경련]] 등에서 지원을 받는 등, 이면에서는 우파 정치인들의 지원과 지시를 받고 있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0656.html (참조)]]
- 알렉스 볼더 . . . . 4회 일치
뉴욕시 경찰청 소속 형사였던 맥스에게 마약단속국으로 전근 올 것을 권유해왔다. 맥스는 아내와 딸이 있었기에 이를 거절해왔지만, 마약 "발키리"에 중독된 자들에게 가족이 몰살당한 후 마약단속국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맥스가 마약단속국으로 들어간 후, 맥스, B.B.와 한 팀으로 활동했다. 맥스 페인 3 코믹북에 따르면 서로의 목숨을 구한 적이 한번 이상 있었던 듯.[* 1편의 회상에서는 볼더가 추락하려는 맥스의 팔을 잡아줬고, 2편의 회상에서는 마약 거래 현장을 급습하려다가 붙잡힌 볼더를 구하기 위해 맥스가 난입했었다.] 맥스는 볼더 덕분에 가족이 죽고 나서 3년간을 덜 미친 채로 살았다고 회상한다. 그렇지만 맥스가 펀치넬로 패밀리에 들어가 잠입수사를 한 후로부터는 맥스와 만나지 못했다.
맥스가 잠입 수사를 시작한지 2개월 후, 로스코 거리 지하철역에서 맥스와 접선하던 중 살해당한다. 그를 죽인 사람은 뇌물을 받고 배신한 B.B.였다.
- 애니프사 . . . . 4회 일치
트위터의 계급 가운데 하나로, 정치인-정치 심취자, 종교인, 광고 스팸봇, 아이돌 프사[* 아이돌 프로필 사진의 약자. 주로 아이돌 팬들이 쓰고 다닌다.]와 함께 가장 흔히 보이는 계층 가운데 하나이다.
트위터 반 애니프사 계층에서는 대체로 애니프사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오타쿠 혐오]]와도 관련이 있다.
* 자신의 취미와 소수자의 인권을 동등한 것으로 여겨, [[인권]]의 숭고함 을 모독한다.
혐오와 능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탄하는 사례
- 얀데레 . . . . 4회 일치
츤데레와 함께 데레계 양대산맥.
다른 데레계 용어와 함께 발생하여, 다른 데레계가 츤데레 유행의 종료와 함께 사멸하는 가운데도 생명력을 유지했다. 어떻게 보면 츤데레보다 생명력이 질기다고 할 수 있는데, 차별화와 특이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4회 일치
교회의 종탑 위나 높은 나무의 꼭대기와 같은 높은 장소에 존재한다. 지도에는 새 모양으로 표시된다. 이 곳에서 뷰포인트 동기화를 하면 주변 지도를 밝힐 수 있다. 전 시리즈부터 있던 요소. 뉴욕의 몇몇 뷰포인트는 군대가 지키는 경계구역이니 조심하자.
* 공격(PC 기준 보통 설정 "LMB") - 카운터. 왠만한 잡병의 경우에는 그대로 죽지만 장교와 척탄병에게는 안 먹힌다.
독립전쟁이 배경인지라 애국자와 왕당파는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머스켓과 단검, 혹은 토마호크로 무장한 병사들. 건물을 기어오를 수 있으며 평타와 방어파쇄에 반격할 수 있다. 그래봤자 카운터킬에 푹찍. 애국파 경보병은 민병이랑 알아보기 힘들게 생겼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4회 일치
일반적으로 무기에 신경을 안 쓴다면 쓰게 될 무기. 헤이덤은 자주 본 듯한 방식으로 검을 잡지만 코너는 한손에 검, 한손에 단검[* 암살검의 날. 분리된다.]으로 운용한다. 장교와 예거가 들고 나온다.
Bait. 야채와 고기를 섞은 미끼. 사냥구역에서 미끼를 뿌리고 근처에 숨어있으면 동물들이 미끼로 모여든다. 이걸로 카운터킬은 못한다.
2,500 파운드. 농갈색 톤에 붉은색 포인트와 흰색 포인트가 들어갔다.
2,000 파운드. 담청색 톤에 붉은 포인트와 감색 포인트가 들어갔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4회 일치
[[F-16|F-16C]]로 이루어진 편대. 가름 편대와 같은 용병이다.
벨카 전쟁을 일으킨 국가. 나라가 쪼개지는 와중에 극우파가 득세, 우스티오의 자원이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우스티오를 침공했다. 전설적인 공군력으로 전쟁 초반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벨카 공군 제22항공사단 4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F-14|F-14D]]와 [[EA-6B]]로 이루어진 슈네에 편대의 편대장. 별다른 야망 없이 정규군 조종사로 싸우는 것만을 바랬다.
벨카가 개발한 레이저포. 스윽 그었더니 비행 중이던 [[수송기]] 편대가 격추될 정도로 강력하다. 사정거리도 생각보다 짧지 않은 듯. 근처에 건설된 네대의 [[발전소]]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고 있으며, 수많은 양의 [[대공포]]와 EMP 포드, 레일건을 탑재한 [[열차포]]의 방어를 받고있다.
- 연광철 . . . . 4회 일치
이후 [[청주대학교]] [[사범대학]]음악교육과에 진학하였고 이후 중앙음악콩쿠르, 동아음악콩쿠르에 준우승하였다. 오페라 상설무대의 <베르테르>, <페도라> 등의 무대와 국립오페라단 무대 등에 서며 가수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1994년부터 2004년 까지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런던 로얄오페라, 파리 바스티유,바이로이트 음악축제, 잘츠부르크 음악축제등에서 베토벤, 베르디, 바그너, 푸치니, 구노, 도니제티, 모차르트 등의 오페라와 음악극을 공연하고 있다.
가곡의 해석에도 일가견이 있어 정명훈의 반주로 <겨울여행(Winterreise)>를 소니 레이블로 출반하기도 했다. 그의 독일어에 대한 해석은 시대와 지방에 따른 뉘앙스와 억양의 차이까지도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분석적인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JCC아트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성악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 오시만 . . . . 4회 일치
'''오시만'''(吳始萬, [[1647년]] - [[1700년]])은 [[조선]]후기의 문신이다. [[1666년]](현종 7)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고 [[음서]]로 출사하여 [[통덕랑]]으로 재직 중 [[1676년]](숙종 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으로 합격, [[성균관]][[전적]]과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그 뒤 삼사의 요직을 거쳐 [[1679년]] [[헌납]]으로 재직 중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수찬, 부수찬, 부교리, 사간원헌납, [[홍문관]]교리 등을 지냈다.
[[1680년]](숙종 6년) 이조좌랑을 거쳐 [[경신대출척]]으로 파면되었다가 [[1689년]] [[승지]]에 오르고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중용되면서 1690년 대사헌에 올랐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로 전임되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유배되었다. [[서인]] 인사 일부와도 인척관계였으나 [[허새의 옥사]]를 전후하여 원수가 되었다. 본관은 [[동복 오씨|동복]]이며, 자는 영석(永錫), 호는 춘헌(春軒)이다.
1666년(현종 7) [[순천시 (전라남도)|순천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생원, 진사가 되었으며 그 뒤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그 뒤 [[음서 제도|음보]]로 관직에 올라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통덕랑으로 재직 중 1676년(숙종 2)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과 지평을 지내고, [[1679년]] 헌납(獻納)으로 있을 때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통훈대부]]로 승진하여 행[[홍문관]]수찬(修撰), 교리, 헌납 등을 역임하였으며 1680년 이조좌랑이 되었다가 [[경신대출척]]으포 파면되었다.
유배중에도 경학에 힘써 학문 연구와 문인들을 길러냈으며 문장에 특히 뛰어났다. [[1700년]](숙종 26)에 병사하였다.
- 오와콘 . . . . 4회 일치
[[쿠소게]]와 마찬가지로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99%의 콘텐츠는 1년 이내로 오와콘이 된다. 기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매년 신작 굿즈 생산 → 신작 굿즈 재고 처리 → 후년 신작 굿즈 생산 이라는 사이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붐이 일어난 작품은 좀 더 오래 끌 수 있지만, 매년 나오는 신작 러쉬에 밀려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니코니코 대백과]]에서는 오와콘을 [[빠]]와 [[까]]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찌질한 유저들이나 말하는 단어 정도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오지호(배우) . . . . 4회 일치
잘생겼지만 연기 못하는 배우 중에서도 무명급인지라 활동 지속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캐스팅[* 작가가 완강히 반대했으나 감독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촬영 직전에서야 겨우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된 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어 연말 시상식에서 남자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로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며 코믹한 역할을 상당히 많이 맡게 된다. 특징적으로는 원톱 여배우와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 편으로 [[환상의 커플(2006)|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 [[직장의 신]] 등 히트한 드라마 상당수가 그런 작품이 많다. ~~본격 원톱여주드라마 받침 남주역 전문~~ 얼빵하거나 코믹한 연기가 상당히 잘 어울리는데 본인은 코믹한 연기보단 진지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 결혼 한 2014년 이후로 코믹한 역할로 출연한 작품이 거의 없다.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 말로는 성실하고 정이 많은 성격 등 인간성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듯.
연기자 활동을 하면서 예능인 [[천하무적 야구단]]에도 출연하여 팀의 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다. 유연성이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정민태]] 투수코치는 오지호를 보고 "이렇게 뻣뻣한 사람이 왜 야구를 하지?" 라고 말할 정도였다. 투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몸이라고.]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절친 [[김성수(배우)|김성수]]와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의 주전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텐프로]]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전 여자친구가 [[자살]]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지호가 무명이던 시절 만나 그를 뒷바라지해주었으나 막상 오지호는 유명세를 얻고 난 뒤 그녀와 헤어졌고(다만 오지호의 말에 의하면 여자친구가 먼저 헤어지자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 뒤 그녀는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 게다가 오지호는 그녀의 [[장례식]]장에 문상을 오지 않았는데, 고인의 측근의 말에 따르면 고인이 죽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오빠에게 알려주라'는 문자를 남겼고, 이에 따라 오지호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오지 않았다고 한다(아마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으며 이 이후 방송활동도 비교적 뜸해진 편.
생일을 이틀 앞둔 [[2014년]] [[4월 12일]]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3세 연하의 신부와 결혼했다.
- 와일드 독 . . . . 4회 일치
상당히 안쓰러운 인생 끝에 자경단원으로 거듭난 인물. 원래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운동선수였으나 부상을 입으면서 팀을 나온데다 학교도 떠났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동료 대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제대, 이후 주립대학에서 야간수업을 받다 클레어 스미스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었으나 사실 그녀는 최근 살해된 시카고 갱단 두목의 딸인 클레어 카몬티였으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와일드독이 되어 범죄와 싸우기 시작했다.
인피니트 크라이시스 시기에는 [[메트로폴리스]]에서 [[크림슨 어벤저]], [[비질란테]]와 함께 싸웠다. 이때 [[매드맨]], [[트리거 트윈스]]를 쓰러뜨렸다.
총으로 무장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서 과격한 자경단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마블 코믹스]]의 [[퍼니셔]]와 비슷하다.
- 우동균 . . . . 4회 일치
*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 (2018년 ~ 2018년 5월 1일)
'''우동균'''(禹東均, [[1989년]] [[12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일본 독립 야구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의 [[외야수]]였다.(5월 1일 퇴단하였다.)
2018년에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에 입단하였다.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우미나리 시 . . . . 4회 일치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와 후속작 A's의 주요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
주인공 타카마치 나노하가 사는 고장으로, 우선 나노하의 가문부터가 무력적으로 범상치 않은데다(나노하의 부친과 오빠가 익힌 '미카미류'가 먼치킨성 고류 무술) 온갖 종류의 괴기 및 초자연적 존재들이 존재하고~~(이 쪽은 원작 '트라이앵글 하트 3'의 설정까지 포함시킨 경우가 많지만)~~, 나노하 시리즈에 이르면 지구와 우주, 차원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전투들(1편 - 페이트와의 항쟁 / 2편 - 어둠의 서와의 전투)이 벌어지는 살벌한 동네이다.
- 우치데노코즈치 . . . . 4회 일치
일본의 민담, 설화에 나오는 도구. 치면 뭐든지 나온다는 작은 망치(小槌). 일촌법사(一寸法師) 등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도깨비 방망이'와 비슷한 뜻.
이것은 독립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이다. 다른 지방을 방문한 사람이 뭐든지 나오는 작은 망치를 선물로 가져와서 --대체 어느 동네냐-- 그걸로 쌀과 창고를 꺼낸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망치를 빌려가서, "쌀, 창고(米코메、倉쿠라)"하고 빠르게 말하면서 빠르게 소리치자, 망치는 코메쿠라라고 인식하여, 작은 장님(小盲, 코메쿠라)이 척척 나오더니, 할아버지를 죽여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옛날 옛날 어느 곳에 가난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다. 할아버지는 장작을 팔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팔다 남은 장작을 [[용궁]]에 보내는 선물이라며 다리에서 "용녀님에게 선물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강에다가 떠내려 보냈다.[* 이는 일본의 옜날 풍속이다.] 그런데 어느날 한 사람이 나타나서 용궁에서는 장작이 부족[* 용궁인데 장작이 부족할까(…). 바다 속이니 부족할 수도 있겠다.]한데 매일 장작을 선물로 줘서 용녀님이 고맙다고 하여, 뭐든지 나오는 요술 망치를 선물로 주었다. 할아버지는 우선 [[짚신]]을 하나 꺼내서 집으로 돌아가고, 좋은 손도끼가 갖고 싶어서 손도끼를 달라고 했더니 황금 손도끼를 얻었다.
집에 돌아와니까 할머니가 먹을게 필요하니 쌀을 달라고 하여, 할아버지는 무심코 「쌀, 한말여덟되. 바바아(米、一斗八升。ばばあ)」라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갑자기 아름다운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둘이서 먹을 것도 부족한데 사람이 하나 더 나오다니 곤란하다. 라고 할아버지가 생각했는데, 그 아주머니의 콧구멍에서 쌀이 좔좔 흘러나오더니 --그로하다-- 아주머니는 쌀에 묻혀서 사라져 버렸다. 그 아주머니도 쌀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바바아, 한말여덟되(ばばあ、一斗八升)』라고 하여 한말여덟되의 쌀이 아주머니에게서 나왔던 것이다.[[http://kanbenosato.com/minwa/kancho_200610.html (참조)]]
- 원피스/818화 . . . . 4회 일치
* '''로드 포네그리프는 총 네 개'''가 있으며 '''사황 백수의 카이도와 빅맘 샬롯 링링이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다.'''
* 네코마무시는 '''"굳이 빼앗지 말고 탁본을 떠서 가져와라"'''고 권해주는데 몽키 D. 루피는 시큰둥해 한다.
* 하지만 와노쿠니의 "쇼군"과 카이도가 영합하여 '''코즈키 오뎅을 처형'''해 버리고 말았다
* '''선대 다이묘 코즈키 오뎅은 해적왕 골 D. 로저와 함께 라프텔에 도달해 "세계의 비밀을 알아낸 자"였다.'''
- 원피스/842화 . . . . 4회 일치
* 쵸파와 캐럿은 미러월드 안에서 브륄레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는 중.
* 그 정체는 바로 쵸파와 캐럿. 브륄레의 추격을 피해서 도망쳐 다니고 있다.
* 그때 시녀가 들어와 상디에게 출발할 시간이라고 알린다.
말도 안 되는 필살기가 나와버렸다.
- 원피스/843화 . . . . 4회 일치
* 일행은 홀 케이크 성으로 향하던 제르마의 고양이 마차와 마주치고 상디는 밀집모자 일행을 발견하고 크게 당황한다.
* 성에는 "귀가명령"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긴급경보와 함께 크래커의 패배가 빠르게 전파된다.
* 유혹의 숲에선 도망쳤던 파운드가 돌아와 혼자 달아나서 미안했다고 사과하고 있다.
* 킹 바움을 타고 이동하는 나미와 루피.
- 원피스/869화 . . . . 4회 일치
* 구속에서 해방된 빈스모크 일가. 그리고 [[상디]]. 아직 그들이 묶였던 테이블이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이들과 대치. 그는 다시 한 번 모조리 사탕으로 묶어버리려는 모양이다. 상디는 테이블 위에서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내려보며 말 없이 가보라고 손짓 한다.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저지. [[빈스모크 이치디]]는 나미 일행이 갖다 준 레이드 슈츠를 들여다보다 [[빈스모크 니디]]와 고개짓을 주고받는다. 빅맘 해적단이 빈스모크 일가에게 다시 총구를 들이 댈 때, 그들은 레이드 슈츠가 담긴 캡슐을 벨트에 장착한다. 변신.
레이드 슈츠를 장착한 빈스모크 일가에겐 아무 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빅맘 해적단의 열매 능력자가 불꽃세례를 퍼부었지만 조금의 타격도 없이 건재. 레이드 슈츠는 제르마 왕국의 과학 기술력 결집체인 형상기억합금 아머. 페로스페로도 그 가공할 방어력에 감탄한다. 더 늦게 전에 사탕으로 굳히려 들지만 속도에서 따라갈 수가 없다. 이치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와 반격한다. 니디는 오븐을 요격해 쵸파를 해방, 레이쥬가 스무디에게 독공격을 퍼부어 나미를 놓치게 한다. 욘디는 다이후쿠의 마인을 간단하게 제압, 그 틈에 캐럿도 풀려난다.
* 빅 파더 안, 해적동맹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인물이 없다. 벳지의 부하 비트 조차도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제르마에 정신이 팔려있다. 루피와 쵸파는 빅 파더에 꽂혀서 환호, 시저는 KX런처의 유폭에 대해 변명하기 급급하다. 벳지가 보기엔 속이 터진다. 벳지는 빅 파더에 환호하는 루피를 쏘아붙인 뒤 작전은 실패했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토로한다. [[브룩]]은 "과연 사황은 격이 다르다"고 감탄, 한가하게 차나 홀짝인다. [[징베]]가 앞으로 대책을 붙지만 솔직히 그런건 없다. 벳지는 빅 파더는 자기 자신이며 충분히 튼튼하지만 무적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성이 파괴되면 당연히 벳지도 죽고 일행은 바깥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 뒤는 그저 학살.
겁많은 나미와 쵸파가 당장 울먹거린다. 상디는 말없이 담배를 태우는데 전념한다.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시저가 또 자기 탓이 아니라 지루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벳지가 피를 토한다.
- 원피스/878화 . . . . 4회 일치
*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샬롯 페로스페로]]는 묘한 인연이 있는데, 페드로가 한 번 빅맘 [[샬롯 링링]]에게 수명을 뺏겼을 때 호송한게 페로스페로였다.
* [[몽키 D. 루피]]는 페드로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일댕을 먼저 출발시키고 자신은 카타쿠리와 싸우는데 전념한다.
* [[나미(원피스)|나미]]가 쿠 드 버스트를 발동해 써니호는 하늘을 날아 해상포위를 뚫고 도주에 성공. 그러나 루피와 카타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거울 월드에 갇힌 카타쿠리와 루피. 둘의 최종결전이 시작된다.
- 원한해결사무소/4화 . . . . 4회 일치
이번화 의뢰인은 사장 부인으로서, 불장난을 해다가 성관계 비디오를 찍혀서 지속적인 성관계와 금품을 뜯어내는 협박을 당하고 있는 여성. 원한해결사는 100만엔의 보수로서 사회적 말살 의뢰를 받는다.
마사토는 돈문치와 마약봉지를 발견했다가 들어온 야쿠자들에게 걸린다. 마사토의 가방에는 피킹 도구나 면허증이 들어 있고, 게다가 들어오기 전에 원한해결사가 야쿠자의 차에 송곳으로 낙서를 해놔서 완전히 누명을 쓰게 된 것이었다. 야쿠자는 차 수리와 손해배상으로 '3천'을 요구하고, 마사토는 차용증을 쓰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여자가 있다고 말하며 집으로 가게 된다.
집에 간 마사토는 협박용 비디오와 주소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경악한 마사토는 바로 도망치려 하지만 야쿠자들에게 다시 붙잡힌다. 야쿠자는 자신을 죽일 거냐는 마사토에게, 자신의 거래처 '스네이크 헤드'에게 팔아넘겨 남색가들의 파트너로 만들 것이라고 말해준다. '잃을 게 없는 인간'이므로 반대로 '증발해도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는 인간'이므로 팔아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 유승옥 . . . . 4회 일치
2013년 [[미스코리아]] 충북 선발대회에 출전하여 와인피부과성형외과상을 수상했으나 진선미에 들지 못해 본선 대회에 진출하진 못했다.
2015년에 SBS의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하고, 게임 [[철권 7]] 런칭쇼에서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신 캐릭터 [[카타리나 아우베스]]의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나와 유명해졌다. --하지만 신캐 반응이 썰렁해서 묻혔다.[* 실제로 그녀의 소속사 사이트를 가보면 다른건 다 기록되있어도 철권 런칭에대한건 나와있지 않았다(....)].-- 롯데월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철권 7 이벤트 매치를 벌이기도 했다. 플레이 당시 유승옥이 선택한 캐릭터는 홍보할 때 코스프레했던 캐릭터인 카타리나였고, 대전 상대는 한국의 여성 철권 고수로 유명한 카니스 (본명 양이섭)의 [[스티브 폭스]].
* 2013년 [[미스코리아]] 충북 와인피부과성형외과상
- 유태웅(탤런트) . . . . 4회 일치
|| [[2001년]] || [[MBC]] || 여우와 솜사탕 || || ||
|| [[2000년]] || 아가씨와 건달들 || || ||
* 골프와 스키와 수영과 검도에 취미가 있으며, 카레이싱도 수준급이고 아마추어 복싱 헤비급 신인왕을 차지했다.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한다.
- 윤덕주 (농구인) . . . . 4회 일치
'''윤덕주'''(尹德珠, [[1921년]] [[6월 23일]] - [[2005년]] [[7월 8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이자, 대한체육협회 부회장,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구한말의 계몽 운동가 [[윤필오]]의 손녀이자,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윤홍열]]의 딸이다. 4,5대 국회의원과 재무부 차관, [[호남정유]]사장을 지낸 [[서정귀]]의 부인이다.
[[1935년]] [[숙명여고]] 시절 선수로 농구와 인연을 맺은 뒤 대한농구협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각종 체육단체에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449350 윤덕주 농구협명예회장 별세] 매일경제 2005.07.08</ref> 1935년 숙명여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일제강점기 최고의 센터로 이름을 날렸으며 1940년대 초반 결혼 후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코트에서 뛴 것은 유명한 일화가 되기도 했다.<ref name="dibigos"/>
[[1945년]] 해방 이후에도 농구 선수로 활약하였고 [[서정귀]]와 결혼, 이후에도 임심 중에도 현역 농구선수로 활동하였다. 1950년대 은퇴 후엔 대한농구협회와 대한체육회에서 이사, 부회장 등을 두루 거치며 행정가로 활약했다.<ref name="dibigos"/>
- 윤석용 . . . . 4회 일치
[[2008년]] [[7월 29일]] 국회 민생안정대책특위에서, 민주노동당 당사에 인공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가 게양된 모습의 조작사진을 사실 확인 없이 들고 나와 물의를 일으켰다.<ref>{{웹 인용|제목=국회에서 '인공기' 꺼내 든 윤석용..논란에 휘말려|url=http://www.vop.co.kr/A00000217256.html|저자=[[Voiceofpeople]]|확인날짜=2008-08-07}}</ref><ref>{{웹 인용|제목=윤석용 의원 “민노당사에 인공기” 합성사진으로 밝혀 망신|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301644.html|저자=[[한겨레]]|확인날짜=2008-08-07}}</ref>
[[2012년]] [[2월 14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8275만원 상당의 옥매트 250개를 횡령해 지역 복지단체와 동료의원 사무실 등에 임의로 전달한 혐의,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동을) 선거구민과 연관된 단체에 축구공 100개와 30여만원 상당의 김ㆍ빵을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장애인체육회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단계적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내용의 투표 운동을 시켜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횡령혐의는 무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었다.<ref>{{웹 인용|제목=옥매트 횡령 윤석용 의원 불구속 기소(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2434.html|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2-02-14}}</ref>
윤석용은 2008년 18대 국회에 출사표를 던지며, 아래와 같은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ref>{{웹 인용|제목=강동의 미래 |url=http://blog.naver.com/nicekorea08/10029051209|저자=윤석용 블로그|확인날짜=2008-07-30}}</ref>
- 윤식 . . . . 4회 일치
* 미국 [[하와이 대학교|하와이 주립 대학교 대학원]] 농업토목학과 농학석사
* 미국 하와이 주립 대학교 대학원 자원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파평 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하와이 대학교 동문]][[분류:베일러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
- 윤인조 . . . . 4회 일치
* [[2016년]]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 (2016년 드라마)|굿 와이프]]》 - 유흥업소 마담 역
* [[2019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2]]》
* 《칠수와 만수》 (2007년)
- 윤주상 . . . . 4회 일치
* [[2011년]] [[JTBC]] 미니시리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 김 교위 역
* [[2016년]] [[SBS]] 드라마 스페셜 《[[돌아와요 아저씨]]》 ... 역장 역
* [[2016년]]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 (2016년 드라마)|굿 와이프]]》 ... 서재문 역
- 은혼/580화 . . . . 4회 일치
[[황안]]을 떠나는 [[우미보즈]]와 [[코우카]]. 그러나 힘든 현실이 닥쳐온다.
* 카무이는 시비를 걸던 동네 양아치들을 매번 박살내줬는데, 우미보즈는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더불어 "엄마와 가구라를 지킬 정도로 강해져라"고 하는데...
* 지금까지는 카무이와 우미보즈의 대립이 "부모 죽이기"라는 야토의 옛풍습에 따른 걸로만 알려졌었는데, 실제로는 코우카에 얽힌 애증 때문이었다.
* 용맥에서 태어난 돌연변이라는 점 때문에 [[우츠로]]와의 관계도 조명되고 있다. 용맥에서 태어난 존재인 코우카가 죽었다면 우츠로 또한 불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 은혼/584화 . . . . 4회 일치
* 그럼에도 카무이는 우미보즈와 승부에 집착하며 "한 쪽이 쓰러질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억지를 쓴다.
|| 너가 찾던 최강은 여기에 있다고? 원한다면 와라.
- 사카타 긴토키. 카무이와 격돌하며
* 긴토키와 카무이가 대결하는 거에 반감을 가지는 팬들도 있는데, 카무이는 우미보즈나 가구라가 처리했어야 맞지 않겠냐는 논리.
- 은혼/602화 . . . . 4회 일치
* 아르타나 해방전쟁이 시작되기 전, 자작은 어떤 별의 지휘관으로 이웃나라와 결전을 앞두고 있었다.
* 마침 원상의 아내가 출산이 임박해 있었는데, 이런 데서 입자포나 쏴댈 바엔 부인 곁에서 라마즈 호흡법이나 도와주는게 어떠냐고 드립을 친다.
*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결코 무익한 싸움을 원하지 않고 반드시 천도중의 수급을 들고 오겠다고 장담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장군인 자신의 목을 바치겠다고.
* 그 자유에 짓눌린다면 기다리는건 파멸 뿐. 그렇기 때문에 자유와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 은혼/651화 . . . . 4회 일치
* 황룡의 무녀 아네와 모네는 용맥을 진정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사명을 각성하고 달려온 [[사다하루]]와 합류한다.
* [[사카타 긴토키]]와 [[시무라 신파치]], [[가구라]]가 사다하루를 찾아나서고 특히 가구라는 자신의 당부 때문에 사다하루가 사라졌다 여겨 죄책감을 느낀다.
* 또다시 나타난 시생인 부대가 진선조와 해결사 일행의 앞길을 막는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4회 일치
2013년 3월 13일 [[AFC 챔피언스리그 2013]]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데뷔하였고, 후반 22분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비록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였으나, 당시 팀은 어린 선수 위주로 출전 명단이 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주목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데뷔골’ 이광훈, 측면 공격수 경쟁 점화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61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3-14}} }}</ref>
[[K리그 클래식 2013|K리그]]에서는 4월 13일 6라운드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K리그 클래식 2014|2014 시즌]]에는 차츰 출전을 늘려가는 듯 보였으나,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8월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ref>{{뉴스 인용 |제목='대전 임대' 이광훈,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어야죠"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1/sp2015010809201993650.htm |출판사=스포츠한국|date={{날짜한글화|2015-01-08}} }}</ref>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년 만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이란과의 8강전에서는 결승골을 성공시켜 한국의 4:1 승리에 기여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FC U-19챔피언십)한국, 이란 꺾고 4강 진출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4822065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12-11-12}} }}</ref>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는 후반 5분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왔으나 실축해 한국의 4강 진출이 실패되었다 .<ref>{{뉴스 인용 |제목=(U-20 월드컵) 빛나는 용병술, 이광훈 천금 동점골...현재 2-2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2001848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3-07-08}} }}</ref>
빠른 발을 활용한 측면 돌파가 뛰어나고 페널티박스 지역에서의 간결한 패스와 슈팅이 장점이다.
- 이노센트 투어 . . . . 4회 일치
세계관이 조금 특이한 것이 이 여행에 참여하는 주인공들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본질이 되는 신화가 다르다. 가령 엘프는 [[켈트 신화]], 발키리는 [[북유럽 신화]]를, 흑기사는 [[기독교]]와 [[헤브라이 신화]]에서 유래된 전승들을 바탕으로 디자인된 캐릭터이며, 이노센트 투어의 세계관에서는 이 모든 신화가 짬뽕으로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힌두 신화]]도 일부나마 추가되어 있다.
정령능력치는 아래에서 설명할 "정령"과 관련된 능력치이다. 이 정령 능력치는 '''스테이터스 창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유추할 수 밖에 없다.''' 단, 바람의 정령력은 마법의 결과값에 난수가 포함되지 않아 정확한 능력치를 역산할 수 있다.
HP나 배틀 능력치와 마찬가지로 각 캐릭터마다 초기 능력치가 다르며, 이 능력치의 상승도 다른 능력치와 똑같이 맵에서 플레이 하며 얻는 카드로만 상승이 가능하다.
- 이동찬(기업인) . . . . 4회 일치
1922년 4월 1일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코오롱그룹]] 창업주이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원만(1904)|이원만]](1904년~1994년)이다. [[와세다대학]] 전문부에 입학하고 1944년 1월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하였다.
이 무렵, 이동찬은 코오롱그룹을 기업공개(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주식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코오롱그룹의 주주가 된 장영자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영자와 식사도 자주 하고 골동품 구경도 하였다. 참고로 이동찬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다. 장영자와 친해지면서 1982년 5월경 이동찬은 장영자에게 코오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코오롱건설을 팔려고 하였다. 그런데 팔기 직전 장영자가 검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바람에 다행히 이동찬은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기소되는 화를 면하였다.
- 이병규 (1983년) . . . . 4회 일치
[[2012년]]부터 다시 본업인 [[1루수]]로 [[최동수 (야구인)|최동수]]와 번갈아가며 출장했고, [[2012년]] 시즌 후 10월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했다. [[넥센 히어로즈]]전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13년]] 2012년 10월에 무릎 수술 후 2013년에는 초반에 복귀하지 못하고 2군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후반기에 복귀하였다.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홈런을 기록했다.
[[2014년]] [[LG 트윈스]] 감독이 [[양상문]]으로 바뀌면서 세대 교체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혔는데 그가 팀이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라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116경기에 출전하여 360타수 110안타, 16홈런, 87타점, 3할대 타율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014년부터 팀의 4번 타자를 주로 맡았다. 특유의 중장거리포와 깔끔한 스윙을 갖고 있어서 타격에서의 재능이 뛰어났다.
[[LG 트윈스]] 시절 [[이병규 (1974년)|이병규]]와 구별짓기 위해 '작은'이라는 뜻의 '작뱅', [[김기태 (1969년)|김기태]]가 [[LG 트윈스]] 감독이었을 때 '작뱅'이라는 별명이 위축된다고 '빅뱅'이라고 불렸다.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롯뱅'이라고 불린다.
- 이안 (시인) . . . . 4회 일치
1999년 『실천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 2014년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내면서 시와 동시, 평론을 함께 쓰고 있다.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ref>http://cafe.naver.com/kidsmunhak/9566</ref>, 『고양이의 탄생』<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096758</ref>, 『글자동물원』<ref>http://hub.zum.com/munhak/1976</ref>을 냈으며,
2008년 『고양이와 통한 날』(문학동네)12판인쇄
- 이장희 (시인) . . . . 4회 일치
[[1900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남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남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영진, [[오상순]], 백기만, [[이상화 (시인)|이상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백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1924년]] 《[[금성 (잡지)|금성]]》 3월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 〈새한마리〉, 〈불놀이〉, 〈무대〉, 〈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의 시 작품과 [[레프 톨스토이|톨스토이]]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신민》,《생장》,《여명》,《신여성》,《조선문단》등 잡지에 〈동경〉, 〈석양구〉, 〈청천의 유방〉, 〈하일소경〉,〈봄철의 바다〉등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요절하였기에 생전에 출간된 시집은 없으며, 사후 [[1951년]] 백기만이 청구출판사에서 펴낸 《상화와 고월》에 시 11편만 실려 전해지다가 제해만 편 《이장희전집》(문장사, 1982)과 김재홍 편 《이장희전집평전》(문학세계사, 1983)등 두 권의 전집에 유작이 모두 실렸다.
시인 생존시에 이루어진 평으로는 [[박종화]]와 [[이상화 (시인)|이상화]]의 것이 있다. 박종화는 《조선문단》 1925년 10월호 〈9월의 시단〉에서 《여명》에 실린 이장희의 시〈청천의 유방〉과 〈비오는 날〉을 평가하면서 〈청천의 유방〉은 "기괴를 쓰랴는 마음, 상징을 위한 상징시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작자에 착각적 정서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다만 한 때에 마취된 감흥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혹평했다.<ref>이기철, 〈이장희 연구(1)〉, 《인문연구》6권,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4, 179쪽</ref> 반면, 이장희와 동향 친구였던 이상화는 같은 해, 《개벽》 6월호에서 이장희의 시 〈고양의의 꿈〉과 〈겨울밤〉을 이채 있는 시라고 하면서, 이상화를 정관(靜觀)시인이라고 고평하였다. 다만 생명에서 발현된 열광이 없음을 덧붙였다.<ref>{{서적 인용
- 이준승 . . . . 4회 일치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에는 [[동백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상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상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반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7년 5월 8일에 택시회사가 교통사고를 낸 운전기사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단체협약은 근로자의 권익보호와 복리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돼서는 안된다"며 "이 사고는 근로자의 잘잘못을 따질 것이 없이 업무수행 중 발생한 사고이므로 회사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대전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했다.<ref>매일경제신문 1987년 5월 9일자</ref>
- 이지현(1983) . . . . 4회 일치
초기에는 [[박정아]]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데뷔는 이지현이 [[박정아]]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는데[* [[1998년]]. 데뷔할 때 이지현은 중학생이었다. [[쥬얼리]] 데뷔는 [[2001년]].] 나이 순으로 [[박정아]]가 [[리더]]가 되어 버렸기 때문.~~내가 더 고참이야!!~~ 그러나 이후 1집에서 2집으로 사이의 [[쥬얼리]] 암흑기에 [[박정아]]가 홀로 [[박정아#s-2.1.1|동남아시아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인정하게 됐다고.
[[2006년]] 2월 [[쥬얼리]]를 탈퇴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 만료 후 [[스타제국]]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훗날 방송에서 얘기하길,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MC와 연기자 활동을 하며 방송 활동을 이어가나 싶었으나, 어느 순간 이후로는 뜸하다. 가장 최근의 방송 활동이 [[2008년]] 이후 3년 만에 2011년 [[박정아]]가 출연한 [[달고나]]에 출연한 것 정도.
2017년 9월 안과전문의와 재혼한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139505|단독 인터뷰]]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066588|2016년 12월 28일 BS컴퍼니와 계약했다]].
- 일곱개의 대죄/179화 . . . . 4회 일치
* 아마도 고르기우스와 비슷한 과정으로 여기에 온 듯한 사람들이 술잔을 나누며 수다를 떨고 있다.
* 호크에 이어 두 번째로 말하는 축생이고 고양이라는 점 때문에 "장화신은 고양이"와 연관이 있는 캐릭터라는 설도 있다.
* 장화신은 고양이는 주인을 위해 마신(오우거)을 때려잡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장화신은 고양이 자체는 영국의 동화는 아니지만, 모티브는 영국의 고양이 요정 "캐트시"로 추정된다. 고로 아서와 엮여서 나와도 크게 어색할건 없는 셈.
- 일곱개의 대죄/180화 . . . . 4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호크와 함께 "돼지의 모자"를 운영하며 "멜리오다스의 시체"를 보살피고 있다.
* 실수연발에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귀여운 외모와 상냥함으로 손님들을 휘어잡는다.
* 고르기우스는 호크와 엘리자베스를 한 눈에 알아보지만 신분을 감추기 위해 모른척 한다.
* 호크가 호들갑떠는 소리에 엘리자베스가 내려와 보는데, 유령기사가 엘리자베스를 알아본다.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4회 일치
* 덴젤이 목숨을 걸고 소환한 여신족 "신병장" 네로바스타. 그러나 그녀는 십계와 싸우길 거부하더니 급기야 도주한다.
* 데스피어스는 부디 이들을 물리쳐달라고 말하는데, 네로바스타는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자기더러 십계와 싸우라는 거냐고 따진다.
* 그 말에 따르면 여신족은 협정을 어기고 마신족 포로였던 여자와 아이들을 학살했다. 그것도 "수장"의 지시에 따른 것. 명령이 그랬다며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 길선더 등 성기사들이 달려와 승기가 기울었으니 탈출해야 한다고 알린다.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4회 일치
* 몬스피드와 데리엘은 엘리자베스 일행과 직접 대면하는데, 데리엘은 엘리자베스를 "네가 왜 여기있냐"고 경계한다.
* 그녀는 멜리오다스와 약속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왕국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 말한다.
* 다급히 피해야 한다고 외치는 호크와 자라트라스.
* 그녀는 엘리자베스와 직접 대면한다.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4회 일치
* 십계 두 명이 갑작스럽게 리타이어? 이미 젤드리스와 에스타롯사가 리타이어한 상황이라 십계와 일곱개의 대죄 간의 파워 밸런스가 턱없이 붕괴해버린 셈이다.
* 이렇게 줄줄이 박살나는 것도 이상하기 때문에, 몬스피드 정도만 리타이어할 거란 예상이 있다. 물론 젤드리스와 에스타롯사는 복귀. 이렇게 되면 일곱개의 대죄와 십계가 7대7로 숫자가 정확히 맞아, 앞으로 1대1 대결로 전환시켜도 짝이 맞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205화 . . . . 4회 일치
* 사대천사 [[사리엘]]과 [[타르미엘]] 등장. 이들은 하늘에서 나타나 십계와 마신족 대군을 "오메가 아크"(극대성궤)란 마법으로 몰살시킨다.
* 하지만 오메가 아크로도 십계는 소멸시킬 수 없었고 곧 몬스피드와 프라우드린은 사리엘을, 갈란과 데리엘은 타르미엘과 대결한다.
* 둘은 말을 끝내며 각자 손을 들어올린다. 눈치 빠른 [[갈란]]은 뭔가 낌세를 챘는제 옆에 있던 [[메라스큐라]]를 데리고 황급히 회피한다. "전원퇴각"이라고 외치지만 한 발 늦어서 사대천사가 발동한 "오메가 아크"(극대성궤)가 나머지 십계와 마신족 군대를 한 번에 옭아넣는다. [[몬스피드]], [[데리엘]], [[프라우드린]]은 부하들과 함께 아크에 갇혀 버리지만 프라우드린 외에는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몬스피드는 부하들에게 미안하다며 "원수는 꼭 갚겠다"고 다짐한다.
* 그런데 네로바스타가 이상하다. 갑자기 텅 빈 눈으로, 무감각한 목소리로 곧바로 원군을 부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녀의 목뒷덜미에는 수상한 마력의 꼬투리가 삐져나와있다.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4회 일치
* [[디안느]]와 [[킹(일곱개의 대죄)|할리퀸]]은 상공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눈이 휘둥그래 진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대치하고 있는 괴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멜리오다스]]가 십계가 계약을 통해 변신한 모습, "인듀라"라고 가르쳐준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파괴를 되풀이하는 존재. 디안느는 이대로는 브라타니아가 멸망할 거라고 걱정한다. 멜리오다스는 저들을 막기 위해선 저들의 남은 심장을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이러는 중에도 엘리자베스의 빛의 힘은 인듀라화한 십계로부터 어둠의 힘을 걷어내고 있다. 하지만 인듀라 안에 있는 어둠의 힘이 발악하며 빛의 힘을 밀어낸다. 데리엘과 몬스피트는 더욱 강해지나 인간의 형상을 잃고 기괴하게 변한다. 엘리자베스는 힘의 모자름을 통감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디안느와 킹은 멜리오다스에게 가세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자신이 힘을 쓰면 엘리자베스의 빛의 힘이 상쇄되기 때문에 끼어들 수가 없다.
* 그런데 이들이 가세한 것은 뤼드셀 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엘리자베스에게 보태준다. 뤼드셀이 당황하자 사리엘은 그의 말대로 가세하고 있지 않느냐고 조롱한다. 타르미엘은 자기들은 자기들 의지대로 움직이겠다며 뤼드셀과 선을 긋는다. 디안느와 킹은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는데.
*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어딘지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가 정신을 잃는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엘레인은 연인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금 날아오르고, 그 간절한 마음이 힘으로 바뀌며 나비와 같은 날개가 생겨난다.
전생의 기억이 깨어난 것이 어떤 영향을 준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전의 착란 같은 증세와는 차이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대신 멀린 쪽이 어색하게 머뭇거리고 있었다. 동료들이 그걸 이상하게 여길 때 쯤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 형태가 무너지던 그녀의 몸은 팽창을 거듭해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 쌍의 뿔이 달린 사악한 뱀. 그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메라스큐라는 이 형태를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반은 지금까지 모습보단 이쪽이 낫다고 빈정거렸다. 그 때문인진 모르지만 메라스큐라가 제일 먼저 노린 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반이었다. 메라스큐라의 주둥이가 반을 덮쳤다. 멀린은 고서와 엘레인을 퍼펙트 큐브로 보호하며 상공으로 날아올랐고 에스카노르가 호크가 휘날려가지 않게 붙들었다.
* 반은 입에 문 채로 코란도의 폐허를 휘젓는 메라스큐라. 엘레인은 퍼펙트 큐브를 뛰쳐나와 그 뒤를 쫓았다. 반을 구하기 위해서. 반이 오지 말라고 외쳤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엘레인이 "추격의 회오리바람"으로 메라스큐라를 공격했다. 하지만 약해지기까지 한 그녀의 힘으론 도저히 메라스큐라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뱀이 귀찮은 듯이 그녀를 꼬리로 쳐냈고 디안느가 아슬아슬하게 받아냈다. 반은 제발 무리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오빠 할리퀸도 같은 의견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엘레인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 임성은(가수) . . . . 4회 일치
그 뒤 1995년에는 군입대를 한 오지훈과 유현재를 대신해서 2집의 객원 멤버로 활동했으며 1996년에 영턱스클럽의 멤버로 들어와서 활동했다.
그 다음 2집에서는 힙합 풍을 접합한 'My love'로 활동했으며 영턱스 때 보여준 비보이 댄스 실력을 선보이면서 신나는 무대를 연출했지만 2세대 아이돌로 인기가 넘어가는 시대였던데다가 갑작스럽게 이미지를 급전환해서 그런지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후속곡으로 '짝사랑' 활동을 하였는데 트로트댄스 풍의 곡으로 돌아와 타이틀곡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노래방이나 전국노래자랑에서 이 노래가 많이 불려졌었다.
3.5집에서는 작곡가 윤일상과 작사가 윤사라와 의기투합한 테크노 곡인 'Set Me Free'로 활동했으며 본인도 의상 이미지를 바꾸는 등 많은 준비를 했지만 별 다른 반응을 얻진 못했다.
2006년에 리조트사업가와 같이 필리핀 보라카이 섬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가 이혼했으며 지금은 홀로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 장남교 . . . . 4회 일치
우선 알아둘어야 할 것은, 이 시기는 기본적으로 개인 단위가 아니라 '가(家)' 단위로 사회구조가 구성되어 있었다. 가는 '호주'와 '가족'으로 구성되며, 호주는 가족에 대해서 통솔권을 가지며 부양 의무를 짊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호주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 상당히 강력한 통솔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호주의 권리와 가문의 재산을 가독(家督)이라고 불렀는데 가독의 승계권은 장남이 최우선 되었다.
메이지 유신 시기였던 1871년 제정된 호적법에서, 장남은 가독(家督, 호주의 권리와 가문의 재산)을 승계할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 순위는 '지정가독상속인'이라 하여 호주가 생전, 또는 유언에 의하여 지정한 사람, 1순위와 2순위가 없으면 호주의 부모나 친족회 등이 같은 호적 내의 가족 가운데 지정을 한 사람이 승계한다. 대충 이렇게 된다.
- 장윤성 . . . . 4회 일치
'''장윤성'''(張允聖, [[1963년]] [[12월 9일]] ~ , [[서울특별시]] 출생)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창악회와 동아콩쿨, 중앙콩쿨 작곡 부문에서 입상하기도 했고, 아르스 실내 관현악단 연주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졸업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이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로 유학해 빈 국립 음악원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원에서 지휘를 배웠다.
1997년에 귀국해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조교수로 부임했고,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와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현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의 단장 겸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울산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고, 후기 낭만파에서 현대음악에 이르는 대곡들의 연주회로 호평을 받았다.
- 장태영(야구선수) . . . . 4회 일치
165cm의 단신의 몸에서 뭄어져 나오는 140km/h[* 당시에 스피드건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당시 야구 원로들이 회상하기로 140에 달하는 매우 빠른 공이었다고 회상한다.]빠른 직구와 칼같은 제구력으로 고교야구를 주름잡았던 인물이다.
>'''이런 맞수 대결은 어느 스포츠, 어느 선수에게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대결의식이 스포츠에 활기를 불어 넣는 요인이다. 나와 태영이는 고향과 성장배경이 달랐어도 야구라는 세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온 맞수며 둘도 없는 친구다.'''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영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태영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남중학교 2루수 정상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정상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상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상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어이없는 실책들로 결국 장태영이 이끄는 경남고는 통한의 패배를 안게 된다. 이후 장태영은 1974년에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력이 우세하다는 결정적인 사실, 그 누구도 경남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평범한 에러로 우리는 3연패를 저지당하고 통분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라며 회상하기도 했다.
- 전명운 . . . . 4회 일치
[[한성부]](현 [[서울특별시]]) 태생이다. [[한성학교]]를 졸업하고 [[1903년]] [[하와이 주|하와이]]로 이민을 떠났고 [[1904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안창호]] 등이 조직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08년]] [[친일파]] [[미국인]]으로 [[대한제국]]의 외부 고문을 맡고 있던 [[더럼 스티븐스|더럼 화이트 스티븐스]]가 귀국하여 [[일본]]의 보호가 한국에게 유익하며 [[한국인]]들도 환영하고 있다는 망언을 늘어놓자, 이 사실에 매우 격분하였다. 스티븐스의 망언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고, 공립협회는 [[대동보국회]]와 공동으로 항의를 위한 4인 대표단을 구성했으나, 스티븐스는 대표들의 항의에도 극언을 계속하다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그는 스티븐스의 친일 발언 이틀 후인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의 여객선 선착장에서 [[일본인]] 총영사와 함께 있는 스티븐스를 공격했고, 격투가 벌어지자 같은 목적에서 별도로 대기하던 [[장인환]]이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저격, 이틀 후인 [[3월 25일]] 절명하게 하는 중상을 입혔다. 그는 이때 장인환의 총격에 총상을 입고 장인환과 함께 구속되었으나, 공범 관계가 아님이 드러나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당시 교민들은 성금을 모아 [[네이던 코플란]]을 변호사로 선임했다. 이때 통역은 [[이승만]]에게 요청했으나 자신은 기독교인이라 살인범의 변호를 통역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함에 따라 유학생이던 [[신흥우]]가 맡았다.
- 전재용 . . . . 4회 일치
포항제철 명예회장 [[박태준 (1927년)|박태준]]의 넷째 막내딸 [[박경아]]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1992년]]에 공무원 출신의 최성대씨 딸 최정애와 재혼하였으나, [[2007년]] 2월 부인 최씨와 이혼하였다. 연기자 [[박상아]]와 결혼했으며,<ref>{{뉴스 인용
- 전혜빈 . . . . 4회 일치
안타깝게도 그룹 LUV 자체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체했고, 이후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전혜빈만 솔로 앨범을 내게 되었다. 왕성한 예능 활동을 하며 다이어트 운동 비디오 출시 및 프리 싱글곡 'Love Somebody'를 동시 발표하는 등 쉴틈없이 달려오다 2005년, 섹시하고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중무장했던 정규 1집 타이틀곡 '2AM'을 선보이며 호평[* 물론 안티도 있었던 반면, 당시 솔로 여가수 중 단연 돋보이는 퍼포먼스로 특히 춤선이 예쁘다는 반응으로 뜨거웠다. 아직까지 이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전혜빈의 끼와 퍼포먼스를 그리워하기도.]에 가까운 중박 정도를 거뒀다. 사실 본인도 밝혔듯이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가수로 데뷔한 케이스이니, 딱히 가창력이나 음악성에 대해 말할 게 없는 전형적인 '예능형 댄스 여가수' 정도로 소비되었다.
정글의 법칙 이후 또 다른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심장이 뛴다]]에 홍일점으로 출연했다. 방화복을 현직 [[소방공무원]]보다도 빨리 착용하는가 하면--[[트란잠]]-- [[말벌]]집을 제거하는 훈련도 가뿐하게 해냈을 뿐더러 실제로 말벌집을 제거하러 출동했을 때도 처음치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전사 캐릭터가 어디 가진 않는 모양이다. --말벌 종류를 잘못 외우긴 했지만-- 전혜빈의 정신력에는 함께 출연한 [[박기웅]]도 감탄했다. "방화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면 15~20㎏이 된다. 착용순서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입어야 한다. 틀릴 때마다 멘토에게 얼차려를 받는다. 혜빈 누나는 여자니 무릎을 꿇고 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똑같이 벌을 받더라. 남자도 힘든 건데 정말 대단하다"라는 [[박기웅]]의 증언처럼 전 훈련과정을 소화해 내었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것이 육체적인 한계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금)]] 역할을 맡아 빙썅연기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11화에서 박도경을 찾아가는 씬에서는 [[오해영(금)]]이라는 인물이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와 공감능력의 결여, 애정결핍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뛰어난 장면을 만들어냈다. 오해영 연기에 전혜빈이 영혼을 갈아넣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많이 늘어나는 중.[* 그런데 극중 라이벌인 전혜빈과 [[서현진(배우)|서현진]]은 실제로 꽤 친한 사이다.]
[[아는 형님]] 30회의 게스트에 출연하였다. 춤은 여전히 잘 추는 편이었고, 그와 반대로 조곤조곤한 말투로 아재들을 감동시키는 코너도 진행했다. 특히 연애편지나 강심장 등 신인시절 자신을 잘 챙겨준 [[강호동]]에게 고마운 마음에 세족까지 해 줬다. 반면 [[민경훈]]에게는 [[유준상]]의 아내 [[홍은희]]의 지인이었던 과거 썸녀 이야기 폭로로 녹화장 자진 퇴장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희철에게 '요즘 [[여장]]하고 춤춘다며!?!' + [[홍석천|석천오빠]] 말이 맞았어! 등의 독한 발언으로 그 희철마저 작살내는 활약을 보여줬다.
- 절대가련 칠드런/437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미나모토는 혹시라도 올 생각은 말라며 신신당부하고 나머지 인원들에게도 잔소리를 늘어 놓는데, 그때 쿠모이 유리와 산노미야 시호가 없는걸 눈치챈다
* 시호와 유리는 사카키 슈지의 집에서 "츠보미 후지코가 블랙 팬텀에게 오염됐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주고받는다.
* 미나모토가 소령으로 진급함으로서 일단 계급상으론 효부 쿄스케와 동렬이 됐다.
* 시호와 사카키가 얽히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4회 일치
*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쓰려는 효부지만 마기 시로가 오토바이를 타고 구출하러 와서 고비를 넘긴다.
* 그녀가 효부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와중에도 도망치지 못한다면 확실히 먹히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
* 마기와 후지코의 악연의 시작. 따지고 보면 마기는 후지코와 엮일 때마다 굴욕을 당하거나 험한 꼴을 당했다. 다행히 첫만남에선 한방 먹여줬던 걸로 밝혀졌다.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4회 일치
* 후지코가 갑자기 총을 꺼낸다. [[미나모토 코이치]]는 블래스터를 겨누며 무기를 버리라고 소리친다. 후지코는 이만큼 에스퍼를 데려와서 이런게 무섭냐고 빈정거린다. 그건 그냥 "악세사리"라는데. 그녀가 꺼낸 "특별한 추억의 물건"은 악취미적이기 그지없다. 과거 [[사오토메 에이지]] 대위가 효부를 쏠 때 썼던 그 권총이다. 후지코는 찾는데 고생했는데 그럴 보람이 있었다고 너스레 떤다.
효부는 반사적으로 이마의 흉터를 누르며 당혹해한다. 그의 동요에 미나모토는 냉정을 찾으라고 말한다. [[후지우라 요우]]와 [[아카시 카오루]]도 효부의 상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효부는 평정을 되찾는다.
* 카오루가 나서서 블랙팬텀의 음모라는걸 안다며 하지만 어째서 후지코를 비롯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묻는다. 후지코는 블랙팬텀의 세뇌는 본심을 거스르게 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동료"가 되면 알 거라며 오히려 칠드런 일행도 함께 세뇌 당하자고 제안한다.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가 반발한다. [[쿠모이 유리]]는 힙노를 전개하며 본심이었다면 후지코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며 "원래 자신"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후지코는 "본래의 자식"이란게 뭐냐는 식으로 반문하고 미나모토가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또다른 자신의 설득에 후지코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가 빛을 위해 살고자 했던 이유, "그들". 육군초능특무부대의 죽어간 동료들이 떠오른다. 효부와는 다른 형태지만 그녀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마음 속의 틈이었다. 그녀가 흔들리자 미나모토는 사카키에게 백신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한다. 후지코는 가까이 오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지만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4회 일치
* [[쿠모이 유리]]는 "이게 오빠의 목적인가"라며 당혹해 한다. 효부는 바닥에 떨어진 [[사오토메 에이지]]의 권총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눈 앞에서 후지코를 자살시킨다, 그것도 사오토메의 권총으로. 그게 "목적"인가? 효부는 아니라고 결론 짓는다. 그는 곧 카오루와 유리, [[노가미 아오이]]에게 퇴로의 확보를 맡고 자신은 [[산노미야 시호]], 미나모토와 함께 경비 시스템이 침투하겠다고 한다. 칠드런은 과연 그래도 괜찮을지 주저하는데 효부는 냉정한 태도로 "바보녀"의 처치는 "돌팔이"에게 맡기라고 잘라말한다. 그 말을 들은 "돌팔이" 사카키는 그 표현엔 반발하지만 맞는 말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자신은 치료에 전념한다.
* 하지만 그 판단은 조금 늦은 것이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면에서 탄소섬유가 뻗어나와 요우와 효부를 관통한다. 마기 시로였다.
- 정광용 . . . . 4회 일치
'''더 나아가 [[친박집회]]와중에 일어난 여러 폭력사태를 일으키게한 총책임자'''[* '''이 사람이 구속되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러한 책임들 때문이다.''']
탄핵반대 집회 관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박사모 집회에서 계엄령 선포요구, 폭력집회 선동, 내란 선동, 경찰관 폭행, 기자, 시민 폭행 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불법행동을 많이 저질러졌다. 심지어 3월 10일 박근혜 파면이 결정된 날에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폭동이 격화되는 바람에 사망자가 3명이나 나왔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의 주동자 정광용은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지만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책임지지 않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7885974|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결국 2017년 5월 25일 같이 폭력 시위를 선동한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와 함께 구속되었고 2017년 12월 1일 1심 재판에서 손상대와 함께 실형 2년을 선고 받았으나 2018년 5월 31일,2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http://naver.me/GGVzj1Wi|#]]
그 와중에 박사모에서는 '문재인 만세' 라는 역[[세로드립]]이 등장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6&aid=0001242456|#]]
- 정기고 . . . . 4회 일치
'''정기고'''(Junggigo, {{본명|'''고정기'''}}, [[1980년]] [[9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큐빅 (Cubic)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정기고는 2002년 [[넋업샨]]의 제의로 [[아이에프]]의 "Respect You (Urban Night Mix)"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ref name="interview">[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94151.htm 피처링으로 경력 다진 정기고 "이제 제 이름 알려야죠"], 《스포츠서울》, 2011년 12월 18일</ref> 그 후에도 [[데프콘]], [[재지 아이비]] 등 여러 힙합 뮤지션의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명성을 쌓아가던 정기고는 2005년 재지 아이비와 2인조 힙합 그룹인 서울스타 (Seoulstar)를 결성하고 1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나 그 후에 서울스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2006년 [[더 콰이엇]]의 "그 남자 그 여자"에 참여하며 정기고 (Junggigo)라는 예명을 큐빅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ref name="interview"/> 정기고는 그 후에도 [[이루펀트]], [[에픽하이]], [[매드 클라운]], [[도끼 (가수)|도끼]] 등과 작업을 지속하며 보컬 피쳐링 아티스트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 "Byebyebye"를 발표했고, 2012년까지 총 5장의 싱글 음반을 발매했다. 2011년에 발매한 "Waterfalls"는 영화 《[[오싹한 연애]]》의 공식 티져 영상에 삽입되어 화제를 모았다.<ref>[http://www.newstown.co.kr/?m=newstown&bid=bd&cat=bdj&uid=108452 정기고, 영화 오싹한 연애 OST 'WATERFALLS' 발매], 《서울타운》, 2011년 12월 2일</ref> 2013년 12월에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47433 "정기고, 매드클라운 이어 씨스타와 한솥밥 “숨은 보석”" 《스포츠월드》, 2013년 12월 4일]</ref> 그 후 2014년 2월 7일, [[씨스타]]의 [[소유 (가수)|소유]]와 "썸"이라는 곡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썸"은 공개 즉시 8대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정다정 . . . . 4회 일치
* 《[[세상을 여는 아침|세상을 여는 아침 강다솜입니다]]》- 매주 월요일 '냉장고와 열정 사이'코너 고정 게스트(2012년 10월 22일~12월 24일)
한편, 정다정은 [[10월 13일]] 자신의 웹툰 《[[역전! 야매요리]]》에서 ‘되는데요’라는 이광낙의 유행어를 사용했다. 이에 이광낙은 행사전 그림을 그려달라는 자신의 요청 [[전자 우편|메일]]을 무시했다고 정다정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고,<ref name=xports>{{뉴스 인용 |제목 = 군용텐트 이광낙-웹툰작가 정다정 '신경전 벌여'|url =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64187|출판사 = 엑스포츠뉴스|저자 = 온라인뉴스팀|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8}}</ref> 그녀의 [[트위터]]에 “T24 행사 전 도움의 손길은 뿌리치고 이제 와서 되는데요? 어찌됐든 재미있는 웹툰 야매요리”라고 글을 남겼다. 정다정은 “벌레님. 행사 전 메일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아까 답장 메일로 설명 드렸지만요”라고 답하였고, “그런 요청을 받았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려 드렸을 거고 일정이 바빴다면 죄송하다는 답장을 꼭 보냈겠죠. 확인되지도 않은 얘기를 트위터에 올린 건 좀 너무하신 것 같아요. 여하튼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ref name=chosun>{{뉴스 인용 |제목 = '역전! 야매요리' 정다정, '24인용 군용텐트 혼자 치기' 이광낙|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4/2012101400580.html|출판사 = 조선닷컴|저자 = |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야매요리’ 정다정 VS ‘벌레’ 이광낙, 왜 설전 벌어졌나?|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cul&arcid=0006530140&cp=nv|출판사 = 쿠키뉴스|저자 = 쿠키뉴스팀|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
=== 미티와의 논란 ===
2012년 10월 18일 만화가 [[미티]]는 [[네이버]]의 [[응용 소프트웨어|앱]] 홍보용 릴레이 웹툰 ‘앱피소드(Appisode)’에 정다정의 웹툰 《[[역전! 야매요리]]》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정다정의 분신인 ‘야매 토끼’를 등장시켰다. 미티의 이 웹툰에서 야매 토끼는 “이 남자 갖고 싶다”라는 대사와 함께 다리를 벌린 채 점액을 흘리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를 누리꾼들이 여성을 비하하는 뜻으로 해석해 성희롱 논란이 일어났다.하지만 미티작가는 그런 의도로 그린것이 아니라며 그날 바로 문제의 장면을 수정하여 다시 올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 네이버 웹툰 작가 저질 '성희롱' 만화 올려|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8/2012101802044.html|출판사 = 조선닷컴|저자 = |쪽 = |날짜 = 2012-10-18|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정다정-미티 성희롱 논란|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cul&arcid=0006555961&cp=nv|출판사 = 쿠키뉴스|저자 = 쿠키뉴스팀|쪽 = |날짜 = 2012-10-23|확인날짜 = 2012-10-27}}</ref>
- 정만조 . . . . 4회 일치
정만조는 명문가의 자제였지만 개화 사상을 익힌 앞서가는 지식인이었다. 당시 세도 세력인 [[여흥 민씨]] 일파와는 대립하다가 정치적인 사건에 말려들어 [[전라남도]] [[진도 (진도군)|진도]]로 유배되었다. 10년이 넘는 유배 생활 끝에 [[1907년]] [[대한제국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에야 사면을 받아 다시 관계로 복귀하였으며, 이후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이익에 따라 활동하는 친일 학자가 되었다.
뛰어난 학자에 문장가였던 그를 일본은 철저히 이용했고, 정만조 역시 초년에 그와 뜻을 같이 하던 선비들과는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는 일화가 여럿 전해질 정도로 철저한 친일파로 변신했다. 손자의 이름까지도 일본 천황 이름 [[다이쇼 천황]]에서 따와 '대갑(大甲)', '정갑(正甲)'으로 지었다는 설이 있다
- 정성룡(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야구선수. ~~골키퍼 [[정성룡]]과 이름이 같다.[* '''한자까지''' 똑같다., 심지어 출신고교도 같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절 김성범[* 1982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태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결국 백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1992년 시즌 종료 뒤 ~~왼손 유망주라면 사족을 못쓰는 [[김응용|코감독]]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 그해 해태가 삼성에게 완봉을 당한 경기가 있었는데 그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기 때문인 것이 유력하다. 즉 그 시즌 홈런 3개중 2개를 코감독 앞에서 그것도 연타석으로 쳤으니 [[인생경기]]를 한 셈.[* 다음 해에 김성래와 양준혁이 괴물활약을 한 것을 보면.. 프로생활을 3년이나 연장하고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도 꼈으니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1993~1995년까지 해태의 몇 안되는 좌타자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원조 10번이었던 [[장효조]]에 대한 올드 삼빠들의 대한 그리움과 그 이후 10번을 단 [[양준혁]]의 인기에 의해 지금은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태에서 10번을 물려받은 선수는 당시 신인이였던 [[장성호]]였지만 1년만에 1번으로 갈아탔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10번을 단 선수가 [[최훈재]] 그리고 [[양준혁]].
김응용 감독은 정성룡의 스윙을 보고 "저 스윙으로 3할을 못 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큰 기대를 했으며, 1993년 시즌에는 해태 타선의 몇 안 되는 좌타자로서 원포인트 대타나 지명타자로 쏠쏠한 활약을 하여 해태의 우승에 공헌했다. 이 해 타율은 0.246이고 홈런은 10개. 타율은 별로였지만 전반기에는 규정타석만 채우면 [[양준혁]]과 [[강기웅]] 등을 위협할정도로 3할1~2푼 수준을 유지했으나 후반기에서 까먹은 것. 홈런을 심심찮게 터뜨렸으며[* 1993년이 126경기 체제에서는 가장 적은 18명의 두자릿수 홈런 타자를 배출했다.]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한방이 많았다. 프로 데뷔 후 최다 출장인 107경기에 출장했다. 그리하여 당시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도 유력했으나 [[김기태(1969)|김기태]]의 지명도에 밀려[* 팀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김기태 본인의 성적이 별로였던 점을 감안하면..] 타지 못했다.
- 정성왕후 . . . . 4회 일치
정식시호는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원렬단목장화정성왕후'''(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元烈端穆章和貞聖王后)이다. 본관은 [[대구 서씨|달성]](達城).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와 잠성부부인(岑城府夫人)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다고 전해지며, 생전에 [[정빈 이씨]]의 소생인 [[조선 진종|효장세자]]와 [[영빈 이씨]]의 소생인 [[조선 장조|사도세자]]를 친아들 처럼 아꼈다.
[[1757년]], 66살의 나이로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아버지인 [[조선 숙종|숙종]]의 명릉(明陵) 근처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정성왕후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다. 그러나 [[1776년]], 영조가 승하한 뒤 손자인 [[조선 정조|정조]]는 당시 왕대비(王大妃)였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영조)|정순왕후]]를 의식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에 영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을 조성하였고 결국 정성왕후는 옆자리가 비워진채 홍릉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조선의 왕후와 대한제국의 황후}}
- 정성주 . . . . 4회 일치
| 주요 작품 = [[밀회 (드라마)|밀회]] (2014)<br />[[아줌마 (드라마)|아줌마]] (2000)<br />[[장미와 콩나물]] (1999)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작곡가 [[이승희 (1954년)|이승희]]와 결혼을 하였고 이승희는 [[2000년]] 3월 사망하였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194850 이승희 작곡가 별세]. 한국경제. 2000년 3월 11일.</ref>
* [[MBC]] 《[[장미와 콩나물]]》(1999)
* 제36회 [[백상예술대상]] 극본상 ([[장미와 콩나물]])
- 정시제 고등학교 . . . . 4회 일치
정시제와 대비하여 일반 고등학교를 전일제(全日制)라고 부른다.
통신제 고등학교와 함께, 전일제 고등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을 위한 제도이다. 통신제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은 전일제와 동등하게 얻을 수 있다.
- 정종철 . . . . 4회 일치
**〈강변사와 그림자〉
* [[2003년]]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큘라》 - 종철 역
* [[2004년]] 《마법경찰 갈갈이와 옥동자》 - 옥동자 역
== 각주와 인용 ==
- 정주관백 . . . . 4회 일치
관백(간파쿠)은 일본 헤이안 시대에서 부터 덴노를 대신하여 실권을 행사한 지위이다. [[후지와라 섭관가]]에서 대대로 이어받았으며 덴노가 어릴 때는 섭정(摂政)이 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관백(関白)이 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이를 섭관정치(摂関政治)라 부른다. 헤이안 시대 이후로 권력이 쇠퇴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오툐미 가문이 일시적으로 관백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에도 시대의 섭관 가문은 쇼군이 된 도쿠가와 가문의 후원으로 상당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으며, 도쿠가와 가문과 혼인을 맺기도 했다.
- 정진(1941) . . . . 4회 일치
그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중퇴하였으나 연극연출가 [[이해랑]](李海浪)에게 픽업되어 [[1962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를 하였고 5년 후 [[1967년]] [[동양방송|TBC 동양방송]] 특채로 [[텔레비전 드라마]]에 첫 출연하였으며 [[영화배우]] 데뷔는 [[1973년]] [[영화|사극 영화]] 《오타 줄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로 데뷔하였다. 이후 [[198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사극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설중매 (드라마)|설중매]]》에서 [[한명회]](韓明澮) 역을 배역하여 [[1985년]] 제2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 [[1973년]] 《오타 줄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
- 정진호(1956) . . . . 4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절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백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상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그런데 [[양승호]]와 함께 입시 비리로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본인 수사를 하면서 같이 곁다리로 걸린 [[이광은]]처럼 3천만 원을 청탁받았다나. 하지만 사람들은 양승호에 대한 신경을 쓰는지라 상대적으로 묻혔다. 1심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후 항소·상고하면서 대법원까지 갔지만, 2013년 말 대법원은 정진호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 원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역시 양승호보다 적게 해먹고 항소를 해서 그런지 추징금은 이광은과 같고 집유를 받았다.
감방에서 나와 [[고양 원더스]]의 마지막 훈련을 지켜봤다고 한다. 다리 쪽이 불편한지 [[http://m.sports.naver.com/baseball/news/read.nhn?oid=410&aid=0000204610|목발이 보였다.]]
- 조안(배우) . . . . 4회 일치
이후 아래와 같은 다수의 영화, 드라마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연기생활 2015년 기준으로 15년이 되었지만 딱히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아직 없다. 굳이 따지자면 작품 내외적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은 [[특수사건전담반 TEN]] 정도.
배우 [[박용우]], [[오만석]]과의 스캔들로 더 유명한 여배우이다. 예전에 11살 연상인 연기자 박용우와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박용우의 친구이자 연극배우인 오만석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귀게 되었다. 초반엔 열애설 이후 부인하더니 [[http://v.media.daum.net/v/20100717010704467|동반 일본여행]]이 들키자 결국 [[http://v.media.daum.net/v/20100717192305019|인정했다]]. 누가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 아직 박용우와 조안이 연인 사이였을 때 박용우가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여자친구와 드라마에 출연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으로 절친한 친구였던 오만석을 뽑은 적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런데 오만석과도 결국 헤어졌다.[[http://v.media.daum.net/v/20120103110514616|기사]] --[[김건모]]가 부릅니다. [[잘못된 만남]]--
- 조재윤 . . . . 4회 일치
* 2008년 《[[스토리 오브 와인]]》 ... 순데렐라 역
* 2016년 《[[날 보러와요 (영화)|날 보러와요]]》 ... 박 형사 역
* 2019년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 짚라인 . . . . 4회 일치
zipline. 이동수단의 일종. [[와이어]]에 움직일 대상을 매달아 이동하는 도구다. 그냥 매다는 건 아니고 따로 도구가 있다. 짚라인이라는 이름은 사용할 때 "지잎-"하는 소리가 나서 붙여졌다고 한다.
열대지방에서 여러가지 위험 요소를 피하기 위해 나무 사이를 와이어로 오가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레저 수단으로도 쓰이는 중.
국내에서 "짚라인"이라는 이름은 [[http://www.ziplinekorea.co.kr/|짚라인코리아]]라는 회사가 가지고 있다. 이 회사는 자신들 외의 다른 것은 "와이어 비행레포츠"라고 부르는 듯. 겁나 길고 안 외워지는 이름이다. 와이어 비행레포츠.
- 창작:바벨 코스트 . . . . 4회 일치
> * Project NA와 달리 좀 더 무게감이 있는 설정을 생각하고 있지만, 생각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 걱정입니다.
1940~1950년대, 미국 서부 해안에 위치한 가상의 도시인 바벨 코스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설정이다. 시대 배경과 인구 분포는 게임 '마피아 2'의 주요 활동지인 '엠파이어 시티'에서 영감을 얻었고 대체적인 분위기는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 시,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 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경, 제정 러시아가 폴란드를 위협해 오던 상황에서 몇몇 폴란드인이 영국을 거쳐 미대륙으로 건너가 서부 해안의 이름없는 땅에 자리를 잡은 것이 시작이였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모국의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며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성군인 카지미에시 3세를 떠올렸고, 크라쿠프의 바벨(Wavel) 성에서 이름을 따와 'Nowy Wavel'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영국계 백인들의 영향이 컸던 탓에 바벨(Babel) 코스트로 이름이 지어지게 되는 굴욕을 겪었다. Wavel을 영어로 읽으면 웨이블에 가까운 발음이 나지만, Babel이라 이름지은 것은 그저 발음나는대로 쓰다보니 이렇게 됐다고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유럽계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와 멸시에서 비롯되어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지었다는 해석도 있다.
- 창작:좀비탈출/5-1-1-1 . . . . 4회 일치
"니가 토트넘한테 뭘 '''선물'''했는지 잊었어? 도로 가져와. 그런다고 뭐라고 할 것 같냐? 가서 집어와. '''유일한 무기'''잖아."
지금 와서 말이지만, 토트넘의 집은 우리집하고 같이 지었다. 우리집이 지어지던 시절만 해도 이런 단독주택이 유행이었고, 시공사에서는 '''같은 설계'''로 여러 번 지으면서 공정을 단축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아버지가 해준 건데 한 귀로 흘려보낸 줄 알았던 것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뭐 아주 모르는 집에 들어온 건 아니라는 위안거리일까?
다시 집 얘기로 돌아와서, 앞마당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눈으로 보기엔 녀석들은 없다. 귀에 정신을 집중해도 녀석들 특유의 그르렁대는 소리도, 절규하는 듯이 짖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냄새를 맡아보려고도 했는데, 어차피 바깥에는 녀석들의 냄새가 언제나 떠돌고 있다. 아무리 희미해도 말이다.
- 채동선 . . . . 4회 일치
채동선은 1901년 [[대한제국]]령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에서 출생하였다.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채동선은 일제강점기 시절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유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복하고 편안하였던 그의 인생은 그가 고등학생이 된 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채동선은 서울로 올라가 현재는 [[경기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경성제1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3.1운동]]이 발생함에 따라 채동선은 만세 운동을 매우 열렬하게 하였고, 이러한 그의 행적은 일본경찰의 감시라는 낙인을 주었다. 3.1절 이후 일본에 회의감을 느끼며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이후 서양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채동선은 베를린 음악대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가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처음으로 만든 가곡이 바로 정지용 시인의 시를 가곡화해 만든 "'고향"'이다.[* 우리가 알던 정지용 시인의 고향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일제강점기 동안 더욱 처량하고 피폐해진 조국을 본 채동선의 마음이였을까 싶다.]
그렇게 일본의 착취와 폭력은 지속되었고, 채동선은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매우 분했고 안타까워했다. 채동선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동료 음악가들과 사이가 우호적이지 못하였는데, 이는 친일 행위와 연관성이 있다. 채동선이 일제강점기 시절 다른 음악가들과 다르게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홍난파]] 등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들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노래 가사 및 노래 작곡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과 달리 끝까지 친일 운동을 거부하였던 채동선은 광복절까지 창씨 개명과 친일 노래 작곡을 거부하였다. 해방 이후에 그는 이념적 성향으로 인해 다시 한번 동료 음악가들과 마찰이 있었다. [[한국전쟁]] 동안 피난길에 오른 그는 그의 병환이 깊어져서 1953년에 타계하며, 그의 작품은 향후 [[이은상]]에 의해 부활하게 되었다.
- 채상현 . . . . 4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5월 7일]]<br/>[[고척스카이돔|고척]] 대 [[SK 와이번스|SK]]전 대주자
2016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5월 7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대주자로 출전하며 1군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경기에서 1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하였다. [[2017년]] [[5월 10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하였다.
- 채수빈 . . . . 4회 일치
| 그와 그녀의 목요일
| 앙리 할아버지와 나
|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br /> (2019.3.15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ret>{{웹 인용|title=채수빈,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차기작 결정 |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20905|website=Naver}}</ref>
| 동원참치 - 아빠와 딸 편
- 챌린저스 오브 더 언노운 . . . . 4회 일치
[[둠 패트롤]](Doom Patrol), [[데드맨]](Deadman), [[스웜프 씽]](Swamp Thing), [[조니 더블]](Jonny Double), [[시 데블스]](Sea Devils)와 대면하기도 했다.
[[아말감 코믹스]]에는 [[판타스틱 포]]와 융합된 <챌린저스 오브 더 판타스틱(Challengers of the Fantastic)>이 있다.
* Brenda Ruskin[* More Weird Mystery Tales #1 (1996)에서 첫등장. 하단의 브로디, 카와, 코버트와 같이 등장했다.]
- 천호진 . . . . 4회 일치
| 소속사 = [[제이와이드컴퍼니]]
| [[아버지와 아들]]
| [[드라마게임]] - 뺑덕어미와 홍길동
{{제이와이드컴퍼니}}
- 최공웅 . . . . 4회 일치
1966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어 1969년 까지 재직하다가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 전보되어 1971년 까지 재직하였다. 1971년에 다시 서울민사지방법원으로 돌아와서 1975년 까지 근무하다가 1975년과 1976년에 [[춘천지방법원]]에서 합의부 재판장을 하였다. 1977년부터 1980년 까지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면서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치는 동안 1974년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비교법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78년에 Hague Academy of International Law에서 국제국제사법 과정을 연수했다. 특히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에서 국제사법 연수를 받고 저서 <국제 소송>은 국제사법 분야에서 바이블로 통한다.<ref>동아일보 1995년 11월 21일자</ref>
1980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1981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하다가 1982년에 사법연수원 교수를 하였으며 1983년에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민사부와 형사부를 번갈아 가며 재판장을 하다가 1985년에는 [[서울고등법원]]으로 전보되어 민사, 형사, 특별부 재판장을 하였다.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부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7월 27일 밤에 같은 재판부 구성원인 이범렬 부장판사와 동부서기 이남영과 함께 "1심에서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이 선고된 제주 김녕중학교 교장 이방택의 [[국가보안법]], [[반공법]]위반 피고사건의 항소심 증인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갈 때 피고인의 하경철 변호사로부터 왕복 항공료 3만3천원과 향응 비용 등 9만7천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조 사상 최초로 현직 판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800099203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1-07-28&officeId=00009&pageNo=3&printNo=1657&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1971년 7월 28일자]</ref> 이후 해당 피고인의 재판은 원심이 파기되어 징역1년6월 자격정지1년6월이 선고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900209207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29&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26&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1년 7월 29일자]</ref> 관행으로 이루어진 변호사의 경비 부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은 1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721000060]</ref>
* 대구지방법원 형사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6월 11일에 가짜 중등교사 자격증을 갖고 교직 생활을 했던 10명의 피고인들에게 뇌물공여, 공문서 위조와 동행사죄로 각각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6월 12일자</ref>
- 최석기 . . . . 4회 일치
최석기는 [[대전중앙중학교]] 3학년때부터 배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선수에 비하면 늦은 편이지만 키가 크고 블로킹 타이밍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였다. 대전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박준범]], [[진상헌]]과 함께 장신벽을 구축하며 철벽 블로킹을 과시하기도 했다.<ref>[http://sports.media.daum.net/nms/basket_volleyball/news/vb/view.do?cate=23794&newsid=209416 -대학배구 최강전- 한양대, 인하대와 결승 대결] 《연합뉴스》 2007년 11월 7일 16:18, 2009년 3월 19일 《미디어다음》에서 확인</ref>
그는 [[NH농협 2008~2009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수원 KEPCO 45]]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하였다. 그러나 팀은 단 한 번의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연패를 당하게 되었고, 이는 [[공정배]] 감독(현재[[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단장) 이 경질되는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이 상무를 이기고 기나긴 25연패를 끊으며 첫 승을 기록하였을 때에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2009년]] [[3월 5일]]에 열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의 경기에서 12득점, 5블로킹을 올리는 활약으로 이변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70908 〈프로배구〉KEPCO 45, 현대캐피탈 제압 '대이변'] 《제주투데이》 2009년 3월 5일 23:54, 2009년 3월 19일 1:37 확인</ref>
[[2015년]] [[12월 23일]] [[강민웅]], [[전진용]]과의 트레이드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로 이적하였으나 2017-18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고,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의 계약이 결렬되면서 다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으로 이적하였다.
최석기는 블로킹을 성공시키면 처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세레모니를 펼쳤다. 이날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와 [[수원]] 홈경기에서 최석기가 [[로베르틀란디 시몬]] 한테 블로킹을 무려 8개나 잡아내며 시몬 킬러로 등극했다. 득점을 올릴 때마다 자진방아타령이 울려퍼진다. 여기다 그가 세레모니하는 장면은 [[KBS N sports]]의 배구 프로그램 [[스페셜 V]]에서 선정한 주간 베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에 공격 성공후 자신이 개발한 세레모니를 펼치면서 팬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 최영이 (종교인) . . . . 4회 일치
그녀는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한국의 103위 성인]]에 속한 [[순교자]] [[최창흡 베드로]]와 [[손소벽 막달레나]] 부부의 딸이다.
최영이는 [[한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본받아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혼담을 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는 매우 독실한 교우여야 하지만, [[양반]]이나 부자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44세의 늙은 홀아비인 [[조신철 카롤로]]와 결혼했다. 이듬해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1840년]] [[2월 1일]], 최영이는 [[한양]] 근교의 [[당고개역|당고개]]로 압송되어 [[이문우 요한]]과 [[홍영주 바오로]]와 함께 [[참수형]]을 받았다. 그렇게 그녀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23세였다. 그 전날에는 최영이의 어머니가 처형 받아 순교하였는데, 모녀가 같이 순교하지 못한 까닭은 당시 [[조선]]의 [[형법]]에 따르면 친족을 같은 날에 처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최은석 (배우) . . . . 4회 일치
|이름 = 최은석 (너는 모델 장미관씨처럼 야구방망이와 벽돌로 머리통을 아프게 죽여버릴 거야.)
'''최은석'''([[1973년]] [[12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너는 모델 장미관씨처럼 야구방망이와 칼로 머리통을 아프게 죽여버릴 거야.)<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542101 최은석-다음인물정보]</ref>
* [[1999년]] 《[[아가씨와 건달들]]》 ... 베니 사우드스트릿 역(남자 조연)
* 《역사탐구 과거와의 대화》 (2002년, EBS)
- 최재성(배우) . . . . 4회 일치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했다. 젊은 시절 잘생기면서도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외모 덕분에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으며 충무로의 대배우로 아직까지도 유명한 [[박중훈]]이 중년 이후에도 젊은 시절 가장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배우로 항상 언급할 정도로 잘나가던 청춘스타였다. 당시 마치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강한 인상의 미소년 외모를 가진 반항기 가득한 고등학생' 이미지로 크게 사랑 받았으며[* 이장호의 외인구단 개봉 당시5살 연상인 [[이보희(배우)|이보희]]와 동갑내기 커플로 나온 최재성을 보고 사람들이 내린 평가가 '최재성은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같은데 이보희는 아무리 봐도 20대 중반은 되어 보여서 둘이 동갑으로 보이지 않는다'였다고 한다.]이 이미지는 80년대 초중반 그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된다.
젊은 시절 간지나는 잘생긴 외모로 각광을 받으며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연을 잡아 스타덤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미모는 죽지 않아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 역으로 호평받았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야인시대에서 마루오카 역으로 다시 슬럼프를 씻어냈다. 이후 [[MBC]] "개와 늑대의 시간"의 마오[* 드라마 자체도 큰 호평을 받았고, [[악역]]이면서도 사연이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연기력과 카리스마도 제대로 드러나서 호평을 받았다.],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원균]], [[SBS]] 연개소문에서는 이밀 역을 맡았다. 연개소문부터는 나잇살이 부쩍 많이 붙었다. 2010년 이후에는 재력가, 정치인, 특히 가족의 출생의 비밀을 가진 비운의 아버지 등의 역을 잘 한다.
최재성의 아버지는 최상현(KBS 드라마 연출가)이고, [[최진실]], [[최진영]] 남매가 6촌 동생들이다. 혈통이 혈통인지라 최재성, [[최진실]], [[최진영]] 모두 미남미녀들이다.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뒤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같은 직업에 종사한 덕에 최재성과는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최진실]] 사단"과 [[최진실]]의 어머니, [[최진영]] 이외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슬퍼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최재성과 [[최진실]]이 [[1994년]]에 방송된 [[드라마]]에서 극중 연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20500209121002&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4-02-05&officeId=00020&pageNo=21&printNo=22421&publishType=00010|#]] [[여담]]으로 어린 시절에는 [[최진실]]과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었다. 자라면서 외모의 차이가 생긴 것.
* [[2007년]] MBC 미니시리즈 《[[개와 늑대의 시간]]》 ... 리랏 마오 역
- 추성건 . . . . 4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0년~2001년)
'''추성건'''([[1970년]] [[8월 5일]] ~ )은 [[KBO 리그]] 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두산 베어스]],[[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자 현재 모교인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약 중이다. 선수 시절 등번호는 40번,3번이다.
{{SK 와이번스}}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캡틴 아톰 . . . . 4회 일치
DC로 오면서 설정이 대폭 바뀌는데 에너지를 방출 및 흡수하는데다 에너지 파장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쓸 수 있다. 이름이 너새니얼 크리스토퍼 애덤(Nathaniel Christopher Adam)으로 바뀌고, 과학자가 아닌 공군이 되었다. 아담은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사면하는 대가로 모종의 군사실험에 참여한다. 그런데 모종의 군사실험이...추락한 외계인 우주선을 핵폭탄으로 날리는 것. 아담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는데, 18년 뒤 외계 금속으로 코딩(?)한 신체와 초능력을 가진 채 등장했다. 이후 사형드립협박을 받아 어용관제 히어로(...)가 된다. 미 정부는 모든 기록을 날조하고 캡틴 아톰을 저스티스 리그에 침투시켰는데, 아담은 보기 좋게 즐 때리고(...) 히어로 길을 걷는다.
기본적으로 방사능을 다룰 수 있고 강력한 캐릭터지만 그다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슈퍼맨]], [[캡틴 마블]] 등등의 DC 코믹스 내의 강력한 파워캐릭터와 붙으면 쪽도 못쓰고 발린다. 언젠가는 세뇌돼서 캡틴 마블의 여동생인 메리 마블과 싸운 적이 있는데 그냥 발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와일드스톰 세계관을 여행중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타락]하고 [[슈퍼맨 프라임]]과 싸우다가 에너지를 감당 못하고 폭발해서 차원 하나를 날려버리며 사망. 그러나 돌아왔다.
[[리부트]] 이후의 [[NEW 52]]부터 개인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능력 때문에 뇌가 버티지 못하고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다. 또한 능력이 '''엄청나게 강화'''되어 거의 전능한 능력을 보여준다. 암을 치료하고 화산 폭발을 막아내며, 탱크의 분자를 수소와 산소로 바꿔서 소멸시키는데다가 방사능을 흡수하여 소멸시킨다. ~~그냥 닥터 맨하탄~~[* 참고로 리붓 이후의 DC 유니버스에도 닥터 맨하탄같은 캐릭터가 하나 더 있다. 파란색인 맨하탄과 달리 붉은색.] 하지만 판매량이 나빠서 2012년 9월에 폐간된다. ~~결국 안습.~~ 개인 시리즈가 부활하지 않는한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지 않으면 얼굴 볼 일이 없어지는 상황.
- 코난(미래소년 코난) . . . . 4회 일치
대변동 후, 남겨진 섬(残され島)[* 한국판에서는 '홀로 남은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12살 소년. 문명이 멸망할 때에 추락한 로켓의 탑승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과 대변동 끝에 멸망 직전까지 몰린 지구를 보아온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또한 풍성한 자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지혜와 놀라운 강함,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해변에 떠밀려온 소녀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바깥 세상을 알게 된 코난은 모험을 떠나게 되며, 도중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크게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그의 존재로 인해 주변인물들도 성장. 모험을 끝낸 후, 고향인 남겨진 섬으로 돌아가는데 그 동안 섬은 신대륙이 되어 있었다.[* 극중에서 언급되어온 지각변동의 영향이었다.] 이 신대륙에 라나와 같이 정착할 듯.
- 쿠와바라 쿠와바라 . . . . 4회 일치
쿠와바라(桑原)는 뽕밭을 뜻한다. 본래 [[낙뢰]]를 막기 위하여 외추는 주문이었다. 이후에 나쁜 일이나 재난을 피하는 주문으로 쓰이게 되었다.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가 [[다자이후]]에 좌천되고 실의에 빠져 죽었을 때, 각지에서 낙뢰가 있었는데 그의 영지에 있는 쿠와바라라는 마을에는 한 번도 번개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를 낙뢰를 피하는 주문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쿠와바라' 라고 외치면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 크립토나이트 . . . . 4회 일치
영화 슈퍼맨 3에서 이 레드 크립토나이트와 동일한 효과를 내는 인조 크립토나이트가 나왔는데 정작 원래 노린건 그린 크립토나이트의 슈퍼맨 약화였는데 그대신 이성 상실&난폭화가 돼서 슈퍼맨이 한참동안 날뛰게 되었다.[* 만들어진 계기가 걸작인데 슈퍼맨을 제거하려던 재벌 회장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크립토나이트의 성분을 분석해 재현하려고 했는데 얼간이 컴퓨터 --천재-- 거스 골먼이 "슈퍼맨은 [[담배]]는 안 필 테니까"라며 (아무도 모르게) 분석 데이터에 '성분 불명'이라고 돼있는 것을 '''[[타르]]'''로 바꿔 버렸다. 그 데이터 그대로 만든 인조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정신줄 놓은 슈퍼맨은 여기저기 다니며 깽판...;]
슈퍼맨의 불완전한 복제체인 [[비자로]]에게 그린 크립토나이트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반면 그린 크립토나이트는 비자로에게 효과가 없다. 슈퍼맨이나 다른 크립톤인들에게 쓰이는 장면은 확인하지 못해서 어떤 능력인지 알수 없다.
히어로와 빌런이 역전된 세계 지구-3의 슈퍼맨인 울트라맨은 블루 크립토나이트가 약점인듯 하다.
Superman's Pal Jimmy Olsen 70화에 등장했고 지미 올슨을 늑대와 양치기소년으로 만들었다. 이후 Superman/ Batman 49화에서는 망상에 빠지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 킹 오브 드래곤즈 . . . . 4회 일치
판타지 액션 게임인데 원래 캡콤은 그 유명한 던전 앤 드래곤즈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허가를 받기 전에(...) 어느 정도 만들어서 당시 판권사에게 보여줬으나 '이게 무슨 D&D야!'(...)라는 소리와 함께 허가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설정 및 타이틀을 바꿔서 나온 결과물이 본 게임인 킹 오브 드래곤즈다. 이후 캡콤은 판권사 허가를 받아 던전 앤 드래곤(게임)을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마법사와 엘프는 공격을 가하는 텀이 좀 길지만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는 것이 가능한 안정적인 운용을 할 수 있어서 처음 킹 오브 드래곤즈를 잡아보면 엘프나 위자드를 고르는 것이 편한 것 같이 느껴지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별 써먹기 힘들어서 대부분 엘프와 위자드를 고르는 편이였고 당시에도 인기가 많았지만, 먼 훗날. 근접 캐릭터들에게는 리치가 딸리는 대신 방패를 이용한 방어.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가능해서 특정 상황 혹은 가드에 상당히 익숙해지게 되면 원거리 캐릭터들 보다 더 좋은 재미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맛과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원거리 캐릭이 가드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 킹덤/499화 . . . . 4회 일치
* [[진시황(킹덤)|정]]은 몸소 군단 앞에 나와 사기를 돋운다.
* [[하료초]]는 남쪽에서 징집된 [[벽(킹덤)|벽]]과 재회한다. 간만에 인사를 나눈 둘은 이번 작전에 투입된 "연합군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료초는 그 규모가 20만에 이르며 근 10년 동안 합종군을 제외하곤 최대 규모라고 말한다. 그런데 벽은 그것 보다 이질적인 세 군단이 혼성된 점에 대해 더 놀라워한다. 하료초는 육장 시대에 가끔 있었다고 얘기할 뿐 특별한 감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뇌부와 가까운 벽은 좀 더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본영 상층부의 긴장된 분위기를 언급하며 "이 조 서부공략전은 훨씬 큰 전투가 된다"고 추측한다.
* 출병 행렬에 끼어 있는 비신데. 그런데 그들의 대장 [[이신]]은 행렬에서 빠져나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진시황(킹덤)|정]]. 그의 얼굴을 모르는 신병들은 왠 귀족나부랭이가 치근덕댄다고 투덜대는데 고참들이 쥐어박으며 그가 바로 진나라의 왕, 대왕 정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왕이 출병 행렬 앞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란이 일어나는데 신은 태연하게 진정시키며 얼른 갈 길이나 가라고 재촉한다. 정은 신이 큰 작전을 앞두고도 별로 긴장한 기색이 없다고 놀란다.
>모두와 함께 수라장을 헤쳐나가세요 신.
- 킹덤/500화 . . . . 4회 일치
* [[하료초]]는 양단화와 함께 앞으로의 전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지나친 긴장은 적에게까지 알려진다"는 충고를 받는다.
* 이 소식은 이목이 있는 무백성까지 전해진다. 게다가 그 수가 20만에 이른다는 보고에 [[카이네]]와 [[부저]]가 경악한다. 이목은 침착한 태도로 보고를 접수한다.
그 시각 하료초는 오랜만에 만난 양단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으로 펼칠 전략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듣고 있던 양단화는 그런 이야기를 벌써부터 하러 왔냐고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하료초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응인데, 양단화는 갑자기 화제를 바꿔버린다.
이번 작전은 고소의 기만전술. 흑양으로 출병하지만 실제 노리는건 업이다. 중간에 진로를 바꿔 단숨에 업으로 처들어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세를 흘리거나해서 적이 알아차린다면 시작해볼 수도 없는 작전이다. 이목은 분명 진군 내부에도 밀정을 심어놨을 것이며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면 분명 그 사실이 이목에게 전달될 것이다. 양단화는 그렇게 말하며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충고한다. 그 의미를 이해한 하료초는 감사를 표한다.
- 킹덤/515화 . . . . 4회 일치
창평군은 사전에 언질하길, 만약 수뇌부가 사전에 세운 계획이 어그러진다면 왕전 개인의 독단으로 움직여도 좋다고 허가했다. 즉 왕전이 이렇게 나온다는건 본래 계획을 버리고 왕전 개인의 판단으로 진로를 바꿨다는 얘기가 된다. 분명 그들에게 열미를 방어하지 못할 사정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왜 왕도권으로 진입했을까? 창문군은 그 점을 납득하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게 됐으면 당장 군을 물려서 돌아와야 할 일이다. 연합군의 병량이 떨어질게 불보듯 뻔하니까. 창문군은 어전에도 탁자를 내려칠 정도로 분개해하는데 누구 하나 말리지도 해석을 내놓지도 못한다.
* 지금껏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지시만 내렸던 왕전이지만, 이번엔 그가 그리는 전략을 편린이나마 보여준다. 여전히 어떤 목적 때문에 소도시들을 공략하는지 밝히진 않았으나 [[이목(킹덤)|이목]]의 움직임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 그가 왕도권으로 돌아와 통제력을 갖추기 전까지 어떤 "준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왕전이 보기에 이목이 함단까지 돌아오는데 하루, 그가 왕도권 군단의 통제권을 인수하는데 하루, 최종적으로 준비를 마치고 업에 도착하기까지를 하루로 잡아서 총 3일의 시간이 있는 걸로 계산했다. 왕전은 이제부터 군을 셋으로 나누기로 한다. 왕전 자신의 본대와 [[환의(킹덤)|환의]]군, [[비신대]]와 [[낙화대]], [[옥봉대]]를 합친 연합군의 세 갈래로 나눠 업 주위에 남은 일곱 성을 한 꺼번에 공략한다는 것이다. 작전 내용은 같다. 점령지의 식량을 빼앗고 백성들을 바깥으로 내몬다. 그들이 갈 곳은 "동쪽"이다.
- 킹덤/517화 . . . . 4회 일치
* 그는 이 요격 작전을 위해 군을 나누는데, 요양군은 현재 [[공손룡]] 휘하에서 [[양단화]]와 대치 중이므로 [[벽(킹덤)|벽]]에게 1만의 병력으로 지원하게 한다.
몸은 좋지 않아도 귀는 그렇지 않은지, 조왕은 그가 중얼거린 말을 듣고 "뭐라고 했냐"고 따진다. 이목이 얼버무리자 그럼 얼른 가서 의무를 다하라며 "업을 잃으면 이목 너와 네 추종자들의 목을 베겠다"며 깔깔거린다.
* 드디어 업을 포위한 진군. 총사령관 [[왕전(킹덤)|왕전]]은 마지막 작전을 실행하기 앞서 장교들을 불러놓고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이신(킹덤)|이신]]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귀를 기울인다. 우선 왕전이 가장 처음 정의한 전황은 진군이 포위한 업을 중심으로 왕도권의 모든 조군이 진군을 요격하러 온다는 것이다. 듣기에도 진땀이 나는 설명이지만, 왕전은 그 중에서 진정으로 진군을 저지할 수 있는 병력은 단 둘 뿐이라 일축한다. 바로 북서의 대도시 "알여"와 태향산맥 일대의 세력을 규합한 "요양"이다. 오직 이 두 군만이 업에 당도해 진군을 격멸할 힘이 있다.
* 한단에서 출격을 준비하던 이목 진영에 "진군이 군단을 나눠 알여와 요양을 요격하러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진군이 이목의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말이지만 이목은 당황하지 않고 [[순수수]]에게 요양군에 가 공손룡의 부장이 되라고 지시한다. 또한 요양성주는 괴짜지만 잘 조율해 보라 당부한다. 이 인사는 이목진영의 인물들에겐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는데, 무명이나 다름없는데다 다른 인물들과 친분도 없는 그를 단번에 십만 대군의 부장으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 킹덤/518화 . . . . 4회 일치
* 양단화의 오른팔인 [[바지오]]는 최근 양단화 밑으로 들어온 "휘고족", 그 왕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 휘고왕은 자신의 애조 "카푸로"라는 매를 어깨에 앉힌 채 바지오에게 말을 걸었다. 그토록 사투를 거듭했던 바지오와 그가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다. 그는 그걸 "모를 일이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셔 양단화가 여왕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싸웠을 거라고 말하는데. 바지오도 굳이 부정하지 않고 "어느 족장이든 같은 말을 할 것"이라고 대꾸한다. 그러자 휘고왕은 "왜 그 족장들이 양단화 밑에서 싸우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 양단화군이 행동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공손룡군은 두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첫째는 "양단화군은 조군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전"을 펼칠거라 생각했던 것. 그것은 뜻밖의 공격 시도로 보기좋게 빗나갔다. 방패와 창을 장비한 인족 보병들이 일사분란하게 조군으로 들이닥친다. 부관들이 동요하는 것을, 공손룡은 단칼에 조용히 시키고 이목이 위험시한 산민족 군세의 "힘"이란 어떤 것인지 지켜보기로 한다.
양단화군의 마나이는 바지오와 휘고족의 기마부대. 공손룡군이 좌우익의 조공에 당황하고 있을 때 단숨에 들이쳤다.
* 이것이 공손룡군이 놓친 두 번째. 산민족의 파괴력이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 조공을 막아내기에도 급급하던 조군 진영이 주공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와해된다. 그저 실력이나 보자고 생각하고 있던 공손룡은 크게 낭패해서 "진군이 이런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다니"하고 탄식한다.
- 킹덤/521화 . . . . 4회 일치
* 어쩔 수 없이 둘을 희생시킬 판이었으나 "말을 타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던 할아범 [[호점]] 부장이 부득부득 따라와 이들을 구해낸다.
* 기수는 낙화대를 얕본 점을 인정하고 전병력을 쏟아부워 빠르게 정리하려 하나 진군 본대에서 [[마광]]이 5천 병력을 끌고 와 훼방한다.
* 여기에 추가로 기마대와 보병대가 섞인 1만 5천 병력이 2파로 몰려오는게 확인되자 오히려 기수가 발이 묶이고 만다.
* 생각대로 풀리지 않기는 마정도 마찬가지. 좌측에서 새로운 병력이 나타났다. 할아범, [[호점]] 부장이었다. 자기로선 도저히 몽념의 기마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더니, 용케 여기까지 따라와 있었다. 호점의 기마대가 오영, 개전을 구하고 마정의 진로를 막는다. 그에게 몽념을 부탁 받았던 [[육주]]는 그가 올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늦었다고 한 소리한다.
- 킹덤/524화 . . . . 4회 일치
* 마남자가 아광군의 좌측을, 악영이 정면을 압박하자 아광군도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하는데, 어느 소규모 기마대가 나타나 아광군에 조력한다.
* [[왕분]]과 옥봉대는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의 지시로 전장에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광군이 적과 비등하게 부딪히자 모두가 감탄했으나 [[관상]]만은 그저 맞먹을 뿐이 아니며 아광군이 강한건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곧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양군의 제 1열은 적과 부딪히면서 큰 희생자를 냈다. 아무리 급박한 전장이라도 이렇게 격돌하고 나면 서로 부상자와 시신에 가로막혀 잠시 물러설 수도 있는 일. 그러나 아광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제 1열의 병사들을 방패로 삼고 넘어뜨리고 짓밟으면서 계속 전진했다. 관상은 선두의 기마들은 설사 그 앞에 있는게 자기 가족이라 해도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무엇이든 짓밟고 무너뜨릴 각오 뿐이라고 말했다.
* 이 정체불명의 기마대는 마남자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 기마대는 곧 말머리를 돌려 마남자가 있는 주공 3천을 향해 돌진해왔다. 분명 진군의 별동대다. 주공의 중심을 쳐서 전위를 고립시키려는 계산이다. 마남자는 [[친비]]를 시켜 우측에 나타난 새로운 적을 방어하도록했다. 친비는 기마대를 이끌로 적이 접근하기를 기다려 요격을 가한다. 그러나 적의 선두가 눈부신 창술을 펼쳐 친비와 그 부하들을 일소한다. 이들은 왕분과 옥봉대였다. 그렇게 얌전히 있으라고 일렀건만 결국 멋대로 전장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관상이 나중에 아광에게 한 소리 듣겠다 투덜대지만 왕분은 "시끄러" 한 마디로 대꾸했다.
- 킹덤/526화 . . . . 4회 일치
* 옥봉대의 장교들은 눈 앞의 적도 잊어버리고 왕분의 눈부신 기량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에 한 번 왕분을 사경으로 몰고갔던 위화룡 [[자백(킹덤)|자백]]. 왕분은 본래 자신의 기교와 속도에 더해 이제 파괴력은 그 자백을 연상시키게 했다. 그런 파괴력까지 습득한 지금의 왕분은 분명 자백 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장교들이 입을 모은다. 함께 있던 왕분의 부장 [[반양]] 또한 의견을 같이 했다. 자백을 꺾고 더욱 성장한 왕분의 창술은 분명 중화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경지다.
* 여전히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전장을 관망하던 [[조아룡]]은 그 흐름을 짐작하고 있었다. 마남자는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아광과 왕분에게 "지나치게 뭉쳤다"고 훈수하며 조군에 장수가 자신만 있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조군이 다시 힘을 받고 있었다. 마남자를 잡자고 아광과 왕분이라는 두 지휘관이 모두 집중된 게 틈이 됐다. 시간을 번 [[악영]]이 성공적으로 자군을 수습, 다시 대형을 갖춰 아광군에 들이쳤다. 그런데 정작 아광은 일선에 있지 않았으니 힘의 균형이 맞을 리 없었다. 전열이 위태로운 와중에 뒤에서는 마남자 2진까지 몰려오는 상황. 위기는 진군 쪽이었다.
진군 좌익, 낙화대의 [[몽념(킹덤)|몽념]]과 [[마광]]이 있는 곳. 신이 퍼뜩 낙화대와 몽념을 떠올렸다.
>네가 조장 기수의 목을 가져와라!
- 태보 . . . . 4회 일치
1980년대에 [[빌리 블랭크스]]가 창안한 무술 겸 트레이닝 프로그램. 이름은 태권도('''tae''' kwon do)와 복싱('''bo'''xing)에서 따온 것이다.
[[태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활용하여, [[춤]]과 [[에어로빅]]으로서 활동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다.
태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사용하여, 에어로빅처럼 음악에 맞춰 춤추듯이 움직이고 동작을 반복하여 트레이닝을 한다. 태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쓰기 때문에 운동만이 아니라 [[호신술]]로도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동작만 연습하는 것이고 실제 대련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에 무술로서의 성격은 희박하다.--대신 빌딩은 파괴할 수 있다.--
- 태영호 . . . . 4회 일치
빨치산 가문에서 태어난 태영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인민무력부장 등 빨치산 1세대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태영호는 평양 국제관계대학(5년제)를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20년간 중요 외교관으로 지내던 태영호는, 2016년 갑작스럽게 탈북하게 된다. 태영호는 2016년 여름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태영호와 친분이 있었던 [[BBC]]의 스티브 에번스 한반도 특파원은, 개인적으로 태영호와 만나면서 직전까지 탈북을 하려는 어떤 눈치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태영호의 탈북 요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 공사의 자녀 중 북한이나 영국 현지에 남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 테란 . . . . 4회 일치
부패한 독재 국가인 [[테란 연합]]이 등장. [[저그]]와 [[프로토스]]를 비롯한 [[외계인]]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 틈을 타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이끄는 혁명 조직 [[코랄의 아들들]]이 세를 불리고, 마침내 테란 연합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코랄의 아들들의 일원이었던 [[짐 레이너]]를 포함한 일부는 멩스크가 보였던 끔찍하고 비열한 행위[* 테란 연합의 수도성인 타르소니스로 저그 떼거리를 유인했다. 자신을 따라왔던 [[사라 케리건]]을 저그 떼 사이에 내다버린건 덤.]에 반감을 느껴 코랄의 아들들을 떠난다. 하지만 멩스크는 [[테란 자치령]]을 세우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앉는다.
지구에서 테란을 내쫓은 거대 세력 [[UED]]의 원정군 [[코프룰루 구역]]을 침공한다. 이들은 [[테란 자치령]]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초월체]]와 [[정신파 분열기]]를 손에 넣어 [[저그]]를 지배하는 등 엄청난 선전을 보인다.
하지만 [[사라 케리건]]이 이끄는 저그 잔당이 [[테란 자치령]], [[레이너 특공대]], [[프로토스]]와 손을 잡고 정신파 분열기를 파괴하며 UED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UED는 케리건에게 토사구팽당한 테란 자치령과 프로토스와 함께 케리건을 공격하지만 결국 전멸한다.
- 토리코/360화 . . . . 4회 일치
* 코마츠와 사천왕 일행은 제 2 대륙으로 향하고 있다.
* 한편 네오와 싸우는 돈 슬라임은 "천재지변이나 운석에 악의가 있는 것 같냐"고 묻고 "답은 그렇다. 이것이 내 악의다"라며 운석을 떨어뜨린다.
* 이들이 싸우는 여파는 낭왕 기네스와 대치하고 았는 토리코, 스타쥰도 볼 수 있을 정도다.
* 일행은 토리코와 같이 먹기 위해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시식하지 않았다
- 토리코/366화 . . . . 4회 일치
* 그리고 지금은 네오와 마찬가지로 "죽일 수가 없는 상대"를 조리해서 가두려고 꺼내왔다.
* 지로는 그걸 '''"농담"치부'''하며 자신을 묶은 와이어를 끊어내 버리고 '''블루 니트로들을 일방적으로 박살내 버린다.'''
* 심지어 지로는 니트로를 털어버리는 와중에 소생의 구슬도 하나 챙기는 여유를 보인다.
* "데빌"은 코코와 제브라의 악마가 각각 "포이즌 데빌"과 "사운드 데빌"로 명명됐으니 이쪽일 듯.
- 토리코/370화 . . . . 4회 일치
* 그리고 아카시아와 함께 GOD를 요리하기 위해 토카게를 부른다.
* GOD와 대치하고 있는 사천왕 일행은 각기 공격을 퍼붓지만 GOD는 별다른 수고없이 튕겨낼 뿐 미동도 하지 않는다.
* 그와 맛의 신선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은 이치류
* 죠아, 아카시아와 대면한 사천왕 일행.
- 토리코/376화 . . . . 4회 일치
* 블루 니트로들은 아카시아의 위기에 정신이 팔리는데, 청귀와 적귀는 그 틈을 노리려하지만 토리코에게 한계가 와서 몸안으로 돌아간다.
* 한편 텟페이와 함께 도착한 나카우메는 벌써 GOD를 향해 달리고 있다.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카시아와 블루 니트로, 죠아는 팔왕을 엄청나게 깔보고 있다.--현실은 개털리는 입장--
- 토리코/378화 . . . . 4회 일치
* 블루 니트로 센터가 돌아와 토키로를 공격하나 테리가 나타나 구해준다.
* 키스와 퀸도 도착하는데, 이들은 존게 패밀리를 데리고 왔다.
* 지금까지 구르메 나이트인 그는 식사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판단했지만 에리어0에 와서 처음으로 "먹는다는 목표"가 생겼다.
* 어째서 GOD의 조리 중에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지 의아해하는데, 저 먼 곳에서 그때와 같은 조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 토리코/381화 . . . . 4회 일치
[[토리코]] 381화. '''네오와 아카시아'''
* 그는 센터를 먹고 다시 네오와 합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네오가 한층 완벽한 상태로 부활하는 것이다.
* 스타준은 여전히 죠아와 교전 중.
* 블루 니트로 페어는 전부터 아카시아와 뭔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었는데, 센터를 죽이긴 했지만 임무를 계속하기 위해 그런 걸 보면 통수 치는건 아닌 듯.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4회 일치
추가적인 부와 행복도를 제공하는 건물들.
지방 이곳 저곳에 지어지는 건물들. 적 부대가 와서 못쓰게 만들 수도 있다. 못쓰게 된 건물은 수리해야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이곳이 항구였다면, 하나의 담과 기와로 집을 건설했을 텐데!"
다른 열강의 무역지구와 달리 사용 가능한 해상 무역로를 4개로 늘려준다. 왜 그럴까.
- 트로피코 4/인물 . . . . 4회 일치
대통령 각하와는 애인 관계로 보인다. 초등학교를 열었을 때 늙은 선원도 얼굴이 빨개질만한 책을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가져와서 낭독하는 모습을 보인다.
Sunny Flowers. 히피같은 의상을 하고 있는 여자. 페눌티모와 함께 "트로피코 뉴스 투데이"라는 방송을 진행한다.
Marco Moreno. [[체 게바라]]처럼 생긴 남자. 바스퀘즈 동무와 달리 장발이다. 미국에서도 수배중이 반란군의 수장으로 이상주의자, 몽상가다.
- 특촬물 . . . . 4회 일치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는 '''특수촬영물'''(特殊撮影物)의 약자. 넓은 의미로는 특수촬영기법이 사용된 모든 영상물을 말하지만,[* 오죽하면 [[닥터후]]나 [[히어로즈]]와 같이 특수효과로 점철된 [[드라마]]들도 특촬물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크게 보자면 틀린말도 아니긴 하다)--한 술 더 떠서 [[텔레토비]]도...--][* 대표적으로 몇 년 전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에서(여기선 특촬물 관련 글도 같이 취급한다) 일부 회원들이 저 두 작품을 두고 '이것도 특촬이다'라며 도배하면서 논쟁이 일어났다가 잠시 동안 특촬 관련 게시글이 금지가 됐었다.] 일반적으로 '특촬물'이라고 하면 전대물, [[괴수]]영화 같은 일부 장르의 영상물에 한정된다. 특수효과를 뜻하는 약어인 SFX(Special Effect)가 영상물 전반의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SF]]와 헷갈리지 말자! [[디워]]의 경우가 --애초에 이 영화 자체가 여러가지로 까이지만-- SF와 SFX를 구별 못한 대표적 사례로, SF영화라고 홍보했다가 엄청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하나 알아 둘 것이, 특촬물은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히어로물이기 때문에 만화와 같은 카테고리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 각주에서 언급한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도 그렇고 [[이글루스]]에서도 특촬 포스팅은 대개 [[애니메이션 밸리]]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 등, 유독 애니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 두 장르를 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특촬물을 특수 촬영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기는 하지만 특촬물은 엄연히 '''실사이자 드라마'''이다. 특촬물 더빙도 외화 더빙에 해당된다.
- 페어리 테일/493화 . . . . 4회 일치
* 아이린은 미라젠을 포박하고 고문하려다 오거스트와 브랜디쉬가 나타나 멈춘다.
* 검은 칼에서 리본이 뽑아져 나와 미라젠을 묶어버린다.
* 그때 나타난 오거스트와 브랜디쉬.
* 언니와 재회한 유키노.
- 페어리 테일/514화 . . . . 4회 일치
* 한편 [[루시 하트필리아]]는 [[해피(페어리 테일)|해피]]와 함께 [[나츠 드래그닐]]의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살을 맞댄다.
나츠는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상태가 나빠져만 간다.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폴류시카]]의 지시대로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살을 맞대고 있다. 그들은 나츠가 어서 눈을 뜨길 바라지만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아크놀로기아와 아이린이 모르는 사이로 보였다는 점 때문에 아크놀로기아는 아아린과 별개 루트로 멸룡마도사가 된게 아니냐는 설도 나온다.
나츠의 마음 속 세계에서 언급된 "안나"라는 여성의 떡밥이 강화 중. 안나는 아이린과 멸룡마도사의 진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최후까지 이그닐과 협력했던 것으로 보이고 또 루시와 관련된 인물로 보이는 등, 새로운 떡밥의 여왕으로 떠오르고 있다.
- 페어리 테일/523화 . . . . 4회 일치
* 나츠는 눈물을 흘리며 그레이를 설득하고 자기 자신이 직접 제레프와 싸우기 위해 나선다.
* 뒤따라 도착한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둘과 그레이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눈물로 호소하는 나츠의 모습을 보고 당혹하고 숙연해진다. 그레이는 더이상 아이스드 셸을 사용할 의지가 사라진 것 같지만, 이대로 제레프를 쓰러뜨리면 나츠가 죽는거 아니냐고 우려한다. 제레프는 거기에 맞장구치며 이기든 지든 죽는 잔혹한 운명이라 말한다.
* 제레프는 운명을 불태운다는 나츠의 말이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자신은 저주받은 운명을 받아들인 인간이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으며 나츠와 최종결전을 준비한다.
그의 등장은 [[길다트 클라이브]]와 싸우던 [[오거스트]]도 감지할 수 있었다. 오거스트는 "시간 초과인가"라고 중얼거린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4회 일치
* [[안나 하트필리아]]와 [[엘자 스칼렛]] 일행을 태운 [[블루 페가수스]]의 크리스티나호는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유인한다.
* 한편 [[나츠 드래그닐]]은 제레프가 쓴 마법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데 그때 [[메이비스 버밀리온]]이 도착해 제레프와 싸우려 한다.
* [[안나 하트필리아]]의 설명 후, [[웬디 마벨]]은 그녀와 단둘이 이야기한다. 웬디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데 안나는 그것도 이클립스의 영향으로 추정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웬디는 뭐라도 떠올리려고 애쓰나 안나는 무리하지 말라는 투로 자제시킨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떠올릴 거라면서 입버릇대로 "일에는 순서라는게 있으니까"란 말을 반복한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시간의 틈새가 가깝다는 소식을 전한다. 히비키, 이브, 렌, 제니는 조종에 총력을 다한다. 자신들도 시간의 틈새와 접촉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끝장이다. 시간의 틈새는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안나가 지정해준 좌표를 기준으로 시간을 재며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히비키의 계산에 따라서 시간의 틈새 쪽으로 계속해서 전진한다. 아크놀로기아가 턱 밑까지 따라붙고 시간의 틈새가 바로 직전에 나타난 상황. 크리스티나호는 불과 몇 m를 남겨두고 선체를 급격히 비틀어 시간의 틈새를 피한다.
- 페어리 테일/533화 . . . . 4회 일치
* [[길다트 클라이브]]와 [[카나 알베로나]]는 [[렉서스 드레아]] 일행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전언을 듣는다.
* [[오거스트]]와 격전 이후 대성당 부근에 있던 [[길다트 클라이브]]와 [[카나 알베로나]]는 방금 전 길드쪽에서 시작돼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골몰한다. 그것은 [[제레프 드래그닐]]이 페어리 하트를 습득, 백마도사 제레프로 각성한 여파였지만 둘이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음 주 잡지 휴간이라 [[페어리 테일/532화|532화]]와 동시 연재.
- 페어리 테일/534화 . . . . 4회 일치
* 그는 페어리 테일의 정문을 "신세계의 입구"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시간의 틈새를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게 되어 그 입구를 페어리 테일 길드의 출입구와 접속시킨다. 이제 페어리 테일의 문은 문자 그대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시간의 문이 되었다. 제레프는 자신이 만든 네오 이클립스의 문을 바라보며 말한다.
* 제레프가 이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사이, 공원의 [[루시 하트필리아]]와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일행은 다시금 END의 서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대한 문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유전자의 고리처럼 길게 이어지던 문자열에서 몇 개의 문자가 튕기듯 사라진다. 그레이는 나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 거라고 직감한다. 그것이 단서가 되었는지 루시는 몸의 어딘가에 큰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마법 팬을 들어 문서를 수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작전이 크게 어긋나는 단초가 됐다.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황급히 창 밖을 가리킨다. 안나와 엘자, 그리고 멀미로 누워버린 [[웬디 마벨]]도 바깥에 나타난 시간의 틈새를 "목격"했다.
* 루시는 장담한 대로 END의 서를 수복했다. 나츠의 부활도 분명 그 영향일 것이다. 그레이와 해피는 글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놀란 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루시가 이상하다. 책을 수정한 직후부터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뭔가 잠식 당하는 듯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4회 일치
아메바 컬쳐 소속으로서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를 발매해 방송에도 꾸준히 나섰다. 엠블랙 지오와 "I'm Back" 곡작업을 같이 한 것을 인연으로 엠블랙 "Sexy Beat"의 타이틀곡 "Smoky Girl"을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본인에 의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작업한 곡들 중 가장 녹음횟수가 많았다고 할 만큼 작은 추임새 하나까지도 심혈을 기울인 곡이다.<ref>[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621000878 "천둥 염색 이유…"팬들과 3년 전 약속 지켰다"", 뉴스핌, 2013-6-24]</ref>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절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상가상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절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백…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반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 프로페서 아이보 . . . . 4회 일치
[[매드 사이언티스트]]. [[저스티스 리그]]와 싸운 괴로봇인 [[아마조]]를 만든 [[과학자]]다. 죽음을 무서우리만치 두려워하며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아 불명을 원한다.
비슷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T.O. 모로우]]와는 친구. 다투기도 하나 이런 판임에도 일종의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에 등장하긴 하는데.. 이미 죽은 모습만이 등장한다. 용건이 있어서 렉스 루터가 찾아왔을 때는 그의 시체와 그가 만든 아마조만이 있었다. 영 저스티스에서는 살아서 등장. 멀쩡하게 생겼으며 코믹스에서처럼 모로우와 구면이다.
- 피서영 . . . . 4회 일치
Spires에 등록된 피서영의 논문 수는 총 66편으로 3800번이 넘는 피인용을 얻었으며, 특히 Alan Guth와의 인플레이션 초기 우주의 양자역학적 요동에 관한 연구는 1000여번의 피인용수를 받은 중요한 업적이다. 양자 요동이 밀도 요동(density perturbation)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 낸 사람 중에 한 명이다.
피서영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막내 딸로 수필 '서영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필 '서영이'에는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외에도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 등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딸에 관한 글을 남겼다.
피서영의 남편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이고, 아들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Stefan Pi Jackiw)이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407215 스테판 피 재키브 "난 아이돌 아닌 바이올리니스트"], 《매일경제》, 2011년 6월 27일</ref><ref>[http://news.donga.com/3/all/20080522/8580956/1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축복이었습니다], 《동아일보》, 2008년 5월 22일</ref>
- 핀 팡 품 . . . . 4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드래곤]]을 닮은 [[괴수]] 캐릭터다. 첫등장은 Strange Tales #89 (October 1, 1961) [[스탠 리]]와 [[잭 커비]]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이언맨]], [[토르]]와 싸웠으며 [[헐크]]와도 남극에서 싸웠다. 그리고 아이언맨의 아치 에너미인 [[만다린]]과 연관성이 있다.
고르길라(Gorgilla), 일렉트로(Elektro)[* [[스파이더맨]] 계열인 [[일렉트로]]와는 동명이인이다.], 구감(Googam)과 같이 '핀 팡 포'(Fin Fang Four)라는 팀[* [[판타스틱 포]] 패러디로 보인다. 그리고 표지 중 하나는 [[어벤저스]] 코믹스 표지 패러디.]을 만들기도 했다.
- 하이큐/271화 . . . . 4회 일치
* [[미야 아츠무]]는 여전히 [[니시노야 유]]를 노리고 서브. 하지만 그것도 4회차에서 미스를 범하며 아웃된다. 그런데 완전히 승부욕에 불타던 니시노야는 오히려 그걸 아까워한다. 스코어 17 대 8. 이번엔 [[카라스노 고교]]의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가 서브한다. 서브는 [[마지로 아란]]에게, 마지로가 리시브에 실패하며 득점으로 이어진다. 아즈마네의 서브 에이스. 곧바로 이어지는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마지로를 정확히 노렸다. 이번엔 마지로의 리시브 성공. 공은 아츠무에게. 좌측에서 [[미야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그러나 이는 연막. [[츠키시마 케이]]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중앙에서 한 박자 늦게 달려나오는 린타로를 놓치지 않았다.
* 린타로가 날아오르는 순간, 츠키시마와 카게야마는 정확한 위치에 블록을 펼쳤다. 일반적인 선수의 경우라면 그랬다. 하지만 린타로의 상체 전반을 쓰는 스파이크는 타점이 보통과 다르다.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카게야마의 우측을 크게 빗겨 떨어진다. 그 위치에서 [[사와무라 다이치]]가 손을 뻗었지만 팔에 맞고 아웃. [[이나리자키 고교]]의 득점. 아츠무는 수준이 높은 블로커일 수록 린타로에게 유도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다시 18 대 9로 더블 스코어.
* 관전 중인 [[네코마 고교]]의 [[코즈메 켄마]]와 [[쿠로오 테츠로]]도 린타로의 스파이크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쿠로오는 상황을 정확히 봤는데 블로커들이 딱히 문제를 범한 건 없었다. 그의 위치에서는 린타로의 "유도"가 좀 더 자세하게 보였다. 그 원리는 납득하면서도 스파이크의 위력을 전혀 떨어뜨리지 않고 구사하는 것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무렵 린타로의 팬인 노인도 같은 설명을 일행에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보통 MB의 속공은 다른 공격보다 콤팩트하기 마기 마련인데, 린타로는 제대로 토스만 올라오면 언제든 정면승부가 가능하다고 격찬했다.
- 하이큐/273화 . . . . 4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온화 모드" 발동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스코어는 20 대 12. 카게야마의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을 기점으로 [[이나리자키 고교]]가 첫 번째 TO를 쓴다. 중계진은 경기가 서브 경쟁으로 흐름이 바뀌는 걸로 보고 있고 과연 카게야마의 서브로 [[카라스모 고교]]의 반격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완벽한 서브. [[미야 오사무]]가 손을 뻗었지만 리시브 실패. 연속 서브 에이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세 번째 서브에 임한다. 이번엔 긴지마 쪽. 리시브에는 성공했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공은 [[오지로 아란]]에게 연결. 2세트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오지로.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의도도 그것이다. 아주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 피로감이 평소 플레이를 조금씩 뒤흔든다. 그리고 지금 미스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오지로의 스파이크엔 블록 세 장이 따라붙었다. [[사와무라 다이치]], [[히나타 쇼요]], [[타나카 류노스케]]. 오지로는 우카이 코치가 노린대로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블록을 의식하게 됐고 우측으로 길게 찌른 스파이크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0 대 14. 우카이 코치는 이것이 전환의 1점임을 단언한다. 관중석의 [[다이쇼 스그루]]와 여친 미카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그 아웃은 오지로에겐 "꺼림직한 아웃"이다.
* 카게야마의 4회차 서브. 이번에도 역시 강력하다. 긴지마가 받은 공은 크게 떠올라 다시 카라스노 진영이로. 여기서 카게야마가 또 묘기를 부린다. 서브 이후 "직결 셋업".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카라스노의 9번 카게야마를 보면서 "봄이 한 번에 돌아왔다"는게 무슨 말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10번, 히나타도 그랬다. 카게야마의 신속한 세트업 만큼이나 히나타가 날아오른 것도 빨랐다. 이나리자키 블록은 미처 따라붙지 못했고 완전 노마크로 스파이크. 하지만 득점하지 못한다. [[미야 아츠무]]가 귀신같이 루트를 꿰뚫어보고 리시브해낸다. 공은 오사무를 거쳐서 다시 오지로에게. 오지로는 방금 전 꺼림직함을 떨쳐내려는 듯 강렬한 스파이크로 1점을 되찾아 간다. 카게야마의 득점 행진은 여기서 멈췄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변했다.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와 미야 아츠무 간의 신경전. 그대로 고조된다.
블록에 빠릿빠릿하게 참가하고 카게야마가 4회차 서브 직후 직결 세트업을 올릴 때 쏜살같이 달려나와 스파이크를 날렸다. 이쪽도 카게야마 온화모드 못지 않게 팔팔한 상태지만 아쉽게도 득점은 하지 못했다.
- 한국영 . . . . 4회 일치
|클럽=[[쇼난 벨마레]]<br />[[가시와 레이솔]]<br />[[카타르 SC]]<br />[[알가라파 SC]]<br />[[강원 FC]]
[[2013년]] [[유럽]] [[프라이부르크]]와 [[셀틱]], [[클럽 브뤼헤]] 등이 한국영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이적이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한국영은 [[김창수 (축구 선수)|김창수]]가 뛰고있는 [[일본]]의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였다. [[2015년]] [[카타르 스타스 리그]] [[카타르 SC]]로 이적하였다.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쇼난 벨마레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SC의 축구 선수]][[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201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알가라파 S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
- 한준희 . . . . 4회 일치
'''한준희'''(韓俊喜, [[1970년]] [[6월 5일]]<ref>[https://twitter.com/geeone_/status/476129260285857793 인터넷 프로필에 따로 생일이 나와있지 않은데,이 트윗에서 6월 5일이 생일이라고 한다.]</ref>~ )는 [[대한민국]]의 [[축구]] 해설가이다. 현재 [[한국방송공사|KBS]]와 [[KBS N 스포츠]]에서 [[축구]]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허준호(배우) . . . . 4회 일치
신인 시절인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정이 많고 편안한 이미지의 캐릭터도 많이 맡았다. 뮤지컬 배우인지라 노래에도 자신이 있었는지 1994년에는 동료 탤런트 김대희와 함께 가수 활동을 한 적도 있고, 그가 부른 솔로곡 중에 '어머님의 자장가'('사랑과 평화'가 부른 노래를 리메이크)가 어느 정도는 유명하다.
* 1999년 MBC 《[[장미와 콩나물]]》... 호식 역
* 2001년 ~~KBS2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건 맞지만,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는 [[이미연(배우)|이미연]]의 당시 소속사인 GM기획이 음반 제작을 주도하면서 드라마 제작진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실제 뮤직비디오 속 배우와 드라마 속 배우들이 몇몇 배역의 경우 다르다. 대표적으로 뮤직비디오의 사실상 남자주인공이었던 [[정준호]]도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 2018년 MBC '''《[[이리와 안아줘]]》... 윤희재 역'''
- 현경련 . . . . 4회 일치
현경련은 [[한양]]의 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주문모]] [[사제|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1811년]]에 [[순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평온한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그녀는 또한 사람들의 성화와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기, [[냉담자|냉담교우]]를 격려하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병자]]들을 돌보기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등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선교사]]들이 방문한 동안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1893년]] [[기해박해|기해년의 박해]] 초기에, [[교리]] [[선생]]이 된 현경련은 박해를 피해 숨었지만, [[6월|6]] [[7월]] 경에 [[체포]]되었다. 관리들은 현경련이 [[선교사]]들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던 [[현석문]]의 누나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숨은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더 가혹하게 그녀를 고문했다. 그녀는 여덟 차례 [[심문]]과 두 차례의 [[주뢰형]] 그리고 300 여대의 [[장형 (형벌)|장형]]을 받았다. 형리들은 선교사들을 체포해서 포상을 받고 싶어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더 혹독하게 그녀를 고문했다. 그러나 현경련의 강한 의지로 인해서, 그들의 탐욕적인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그녀는 [[형조]]로 압송된 후에, 다리를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격심하게 매질을 당했다. 그녀의 온몸에 상처가 깊어서 피와 [[고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또한 그녀는 [[감옥]]에서 [[콜레라]]에 걸려 앓았다.
현경련은 동생 [[현석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많은 [[천주교]]인들이 그 편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처형 전에 수 시간을 단잠에 빠져 있었다. [[1839년]] [[12월 29일]]에 그녀는 [[서소문]] 밖의 사형장으로 끌려나가게 되어 행복해 했으며, 거기서 여섯 명의 교우와 [[참수]]를 받아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그녀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 46세였다.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현동완 . . . . 4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반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상태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상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 홍금주 . . . . 4회 일치
홍금주는 [[한양]] 교외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성격과 지력, 태도 그리고 어투에 있어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을 여의고 조모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0세 경에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15세에 한 이교도 남성과 결혼하면서 [[냉담교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녀의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떠나 [[미나리골]]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그녀의 아들마저도 이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기거하는 집의 주인 [[최 필립보]]가 그녀에게 새로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때로 눈물을 흘리며 열렬히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자애로운 행실에 감복하였고 그녀는 마치 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말하였다.
홍금주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제가 입을 빨간색 옷이 한 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순교자]]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녀는 [[최 필립보]]의 집에서 그의 제수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녀는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으며 배교할 것과 [[천주교]]인들이 숨은 곳들을 누설하기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형리는 그녀의 주뢰를 틀고난 뒤,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녀를 감방의 천장에 매달아 놓고서 그녀에게 매질을 가했지만, 그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사흘 후 그녀는 [[형조]]로 이송되었고 세 차례를 다리에 격심한 매질을 당했지만, 형조 [[판서]]에게도 굴복치 않았다. 그녀는 감옥에서 심한 열병을 앓아 거의 죽을 뻔 하였지만, 매우 빨리 회복되었다. 그녀는 [[사형]]이 집행 때까지 근 6개월을 형조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오직 사랑과 봉사로써 다른 수감자들을 돌보았다. 감옥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큰누이처럼 존경했다.
그녀는 [[1839년]]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여덟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3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홍은희(배우) . . . . 4회 일치
* 9살에 부모님이 이혼하여 24살에 결혼 전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방학 때만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었는데 그 기간이 1년에 10-20일 정도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19살 때 대학 등록금을 아버지께 요구하였는데 아버지께서 이를 들어 주시지 않아 마음이 닫히게 되었고 사이도 멀어졌다. 결혼식에도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고, 결혼 후 5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아버지가 계신 정읍 내장산을 지나가다가 남편 [[강호순]]의 권유로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만나게 되었다.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출연해 과거에 [[수영장]]을 [[나체]]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그 때 수영장 안에 수경을 놓고 와서 급히 가지러 간다는 게 순간 발가벗고 있다는 걸 깜빡하고 그 상태 그대로 수영장 안에 들어가버렸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제야 나체 상태인 걸 알아차린 홍은희는 몸을 가리자니 손이 3개가 있어야 될 것 같아 얼굴만 가리고 급히 뛰어 나갔다고 한다.
- 황은진 . . . . 4회 일치
방송PD 시절에 [[한국방송공사|KBS]]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서울 뚝배기]]》와 《노을》과 《[[형 (드라마)|형]]》을 연출 제작하였다.
방송 드라마 PD 직위 퇴임 이후에는 [[평론]]에 또다른 재능을 표현하여 [[미술]][[미술 평론|평론가]] 겸 [[고전음악]][[음악 평론|평론가]]와 [[연극]][[평론|평론가]]로도 등단하였다.
* [[1993년]] 《[[김환기]]와 [[구본웅]]의 기묘한 친척 관계》
* [[1994년]] 《[[신협 (극단)|극단 신협]] 산파역의 주역 양대산맥, [[토월회]]와 [[극예술연구회]]》
- 후지와라 요시후사 . . . . 4회 일치
[[헤이안 시대]] 일본의 귀족, 정치가. 제56대 [[세이와 덴노]](清和 天皇) 시기에, 섭정(摂政)이 되어 덴노를 대신하여 정치를 하게 되었다.
본래 이 무렵까지 황족이 아닌 신하, 후지와라 씨가 섭정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후지와라 씨는 천황가와의 혼인으로 인척관계가 강해졌고, 응천문의 변(応天門の変)이라는 사건을 처리한 것을 계기로, 반씨(伴氏), 기씨(紀氏) 등의 라이벌 씨족을 배척하여 섭정이 될 수 있었다.
- DC's Legends of Tomorrow . . . . 3회 일치
[[DC 코믹스]] 기반 드라마이며 [[애로우버스]] 소속 드라마 중 하나다. 시즌 1이 끝나고, 시즌 2가 방송 중. 방송국은 [[애로우]], [[플래시(드라마)|플래시]]와 동일한 [[The CW]].
타임 마스터 [[립 헌터]]가 [[반달 새비지]]를 저지하기 위해 과거로 와서 히어로들을 모아 대항한다는 내용. 그러다보니 현 시대의 히어로들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기도 하기에 시간여행물이기도 하다.
- FastSearchMacro . . . . 3회 일치
=== Dokuwiki Indexer와 비교 ===
1. 페이지를 생성할 때에 자동 인덱싱된다. 이와 별도로 `bin/indexer.php` (콘솔용), `lib/exe/indexer.php` (웹용) 인덱서가 따로 있다.
1. 약 1천500 페이지를 가져와서 인덱싱해보니 ~10분 이상 걸린다. 자체적 구현의 인덱싱방식이 너무 느린듯.
- GLA . . . . 3회 일치
개발 당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중동 테러리스트를 모티브로 한 세력. 화학무기와 게릴라 전술을 주력으로 사용한다.
정면 힘싸움보다는 게릴라전 중심이라는 점에서 구 C&C의 Nod와 다소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테러리스트 진영을 본격적으로 구현하다보니 다른 진영에 비해서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많이 나타났다.
거대한 스커드 로켓을 발사하는 차량. 폭발성 탄두와 독소 탄두 중 하나를 발사할 수 있다.
- JOY축제 . . . . 3회 일치
2003년 5월 18일, JOY 라는 여성은 남편 HIDE와 동생 부부와 함께 [[술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때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 갔으며, 아이들은 술집 안을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그걸 가게의 어떤 사람이 "부모의 훈육이 나쁘다."고 발언하고, 딸이 그 사실을 JOY와 HIDE 부부에게 말하자 분노한 HIDE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점원들을 추궁하고, 색출해내서 점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다음 가게 점장에게도 소리를 쳤다…라는 내용의 일기를 올렸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3회 일치
운영 변경사항으로 작년 2014시즌과는 달리 2위팀에게 다소의 어드밴티지를 주기 위한 조정의 흔적이 있다. 이에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경기 사이에 있던 휴식기가 1주일에서 3일로 줄어들었다.
대구는 [[K리그 챌린지]]에서 후반기 부진으로 [[K리그 클래식]] 자동진출권을 놓쳤기 때문에 사기가 상당히 저하된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2015시즌 대구는 수원을 상대로 1승 1무 2패로 상성마저 최악이었는데다가 대구가 챌린지에 합류했던 2014년부터 수원 FC와의 홈경기는 '''단 1승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을 믿을 수 있는건 무승부로 시합을 종료하여 승강 플레이오프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 사상 처음으로 준PO와 PO의 MOM(자파)이 같은 대회였다.
- MoniWikiTutorial . . . . 3회 일치
한 줄의 내용 전체가 같은 개수의 "=" 기호로 둘러쌓여 있는 경우. 이때 "=" 기호와 내용은 공백으로 분리되어 있어야 하며 그 줄은 "="기호의 개수만큼의 깊이를 가지는 제목줄이 됩니다.
== 일곱째 고개: 리스트와 테이블 ==
* 매크로는 페이지내에 {{{[[GoTo]]}}}와 같은 형식으로 집어넣습니다.
- V-22 오스프리 . . . . 3회 일치
[[항공모함]] 수송을 위해 [[https://youtu.be/_45aUrES-j0|날개와 로터를 접을 수 있다.]]
2016년 12월 14일 주일미군 MV-22 오스프리가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60105&code=11141100&sid1=int|훈련중 오키나와 앞바다에 추락했다.]] 이전부터 오키나와의 반전단체들은 오스프리가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더욱 불이 붙었다.
- head to head . . . . 3회 일치
사전적인 쓰임으론 face to face와 거의 같은 용어로 쓰이지만, 스포츠계로 넘어오면 제1순위결정기준으로 순위를 정할 수 없을 때 적용하는 동점간 직접비교를 통한 순위결정방식을 가리키는 단어다. 애초에 이 용어 자체가 상대전적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걸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만약 AFC 챔피언스 리그를 예로 든다면, 조별단계에 참가한 A, B, C, D라는 팀중에 승점이 같은 팀이 A와 B 2개팀이 있다면 이 승점이 같은 2팀끼리 붙었던 상대전적을 비교하여 평가한다. 즉, ACL 기준으로 헤드 투 헤드에 따르면 순위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기결과는,
스페인 프로축구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2015-2016시즌 라 리가는 1위팀 바르셀로나와 2위 AT마드리드가 대회 막바지까지 승점이 같아질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 규정에 의해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강중인 . . . . 3회 일치
'''강중인'''(姜仲仁, <small>일본식 이름: </small>德田仲仁, [[1908년]]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법조인이다.
{{인용문|일정(日政) 당시에는 내가 내 한 몸을 구하기에 여력이 없었습니다. 8·15 해방을 맞이하자 피고는 이때야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닙니다. 내가 어찌하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있을까 함이었습니다. 해외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투쟁하던 위대한 애국자들이 해방된 조국을 찾아 들어옴을 볼 때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후 피고는 남로당에 가입을 작정하였던 것이며, 법맹에도 초창기부터 가입하였습니다.}}
- 강타 . . . . 3회 일치
*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H.O.T]]가 해체된 후 그는 자신만의 솔로앨범을 내어서 2001년 <북극성>으로 솔로활동을 시작하여, <스물 셋>으로 활동을 이어감.
* 프로듀서로서 강타는 솔로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발라드를 만들어갔으며, S와 강타&바네스 앨범에서는 좀 더 새로운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려고 노력하였다.
* 2012년 [[중국]] [[SCTV]] 《고추와 김치》 - 강우혁 역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1화 . . . . 3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41화. '''우마루와 아프로'''
*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도마 우마루(UMR 모드)는 신작 게임을 하러 게임센터에 갔다
* 봄바가 알렉스와 실핀이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친구가 되어준 사실이 밝혀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3화 . . . . 3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3화. '''우마루와 축하'''
* 평소와 같이 뒹굴거리는 우마루.
* 우마루가 오빠와 무엇을 하고 싶냐는 것.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5화 . . . . 3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5화. '''우마루와 게임'''
* 또 오빠(타이헤이)가 퇴근하기 전에 놀러와버린 히카리
* 타이헤이는 저녁을 준비해주면서 "또 게임을 하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라. 우마루도 놀아줄 거야"라고 말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0화 . . . . 3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0화. '''우마루와 귀가길'''
* 타이헤이의 주선으로 도마가의 저녁 식사에 합석, 우마루와 함께 있던 키리에도 자연스럽게 동석한다.
* 도마가에서는 우마루(코마루)와 키리에가 호러 Tv프로를 보고 있다.
- 건포인트 . . . . 3회 일치
* 와이어잭(Wirejack)
루크 파이어암즈의 경쟁사인 인텍스의 CEO. 입이 상당히 험해서 Fuck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콘웨이와 접선할 때 처음 한말이 "씨발 넌 뭐하는 놈이냐?"[* Who the fuck are you?]일 정도. 콘웨이에게 루크가 진행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훔쳐올 것을 의뢰한다. 목격자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덤.
이스트포인트 경찰서장. 이스트포인트의 엄청난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전근왔다. 이전까지의 경찰서장들은 실종되거나 의심스러운 총기사고로 죽었다고. 정체를 숨긴 채로 콘웨이와 접선, 부패하고 게으른 자신의 부하들 대신 델가도 살인 사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달라고 의뢰한다.
- 경기도 . . . . 3회 일치
[[2017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경기도의 각 시와 인구와 면적은 다음과 같다. 인구는 12,783,741명이고 남여비율은 1.01로 전반적인 [[성비|남초]] 지역이다. 시군별로는 [[포천시]] (1.11)와 [[연천군]] (1.11)가 가장 높고, [[시흥시]] (1.10), [[화성시]] (1.07),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1.06), [[오산시]] (1.06), [[안산시]] (1.05), [[안성시]] (1.05), [[가평군]] (1.05), [[이천시]] (1.04), [[안성시]] (1.04), [[양주시]] (1.03), [[파주시]] (1.03), [[양평군]] (1.02), [[여주시]] (1.02), [[수원시]] (1.01), [[하남시]] (1.01), [[김포시]] (1.01), [[남양주시]] (1.00), [[부천시]] (1.00), [[의왕시]] (1.00), [[구리시]] (0.99), [[군포시]] (0.99), [[동두천시]] (0.99), [[안양시]] (0.99), [[용인시]] (0.99), [[광명시]] (0.98), [[성남시]] (0.98), [[고양시]] (0.97), [[의정부시]] (0.97), [[과천시]] (0.95) 순으로 높다.
- 고수희 . . . . 3회 일치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마녀]] [[죄수]]로 출연 [[이영애]]에게 죽임을 당하는 역할로 열연해 주목을 받았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43371 '친절한 금자씨' 고수희, 전통혼례로 사업가와 결혼] 마이데일리. 2009년 10월 18일</ref> 2011년 영화 《[[써니 (영화)|써니]]》에 칠공주파 멤버 장미 역으로 출연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524181 ‘써니’의 고수희 주연 영화 ‘바다’ 캐스팅 비화는?] 매일경제. 2011년 08월 20일</ref>
* [[2012년]], [[2013년]] : 《로미오와 줄리엣》 - 유모 역
* [[2015년]] : 《[[미쓰 와이프]]》 - 부녀회장 역
- 권민중 . . . . 3회 일치
신장은 170cm이고 체중은 51kg인 그녀는 [[영화]]감상과 [[골프]]와 [[수영(스포츠)|수영]]에 취미가 있고 한국 무용과 재즈 댄스, [[발레]]와 [[청소|실내 청소]]와 [[노래]]에 특기가 있으며 [[1996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한국일보'로 입상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 권영진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SK 와이번스]] (2008년 ~ 2013년)
'''권영진'''(權寧珍, [[1984년]] [[11월 18일]] ~ )은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대구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팀의 좌완 투수로 활약했으나 [[연세대학교]] 입학 후 [[내야수]]겸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연세대학교]] 마운드가 아닌 중심타선에서 맹활약하였다.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안동 권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권재진 . . . . 3회 일치
'''권재진'''(權在珍, [[1953년]] [[7월 27일]] ~ )은 [[대구]]에서 출생한 [[대한민국]]의 [[법조인]] 및 검사이다. 대검차장, 서울고검장,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했으며, [[2011년]] [[8월 12일]]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장관을 맡아서, [[2013년]] [[3월 11일]] 법무부 장관 퇴임을 했다.<ref>[http://media.daum.net/economic/stock/others/newsview?newsid=20130311184903997 권재진 법무부 장관 퇴임], 뉴스토마토, 2013년 3월 12일</ref>
* [[2009년]] ~ [[2011년]]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이 서울대 공익요원으로 배정을 받기위해 어머니와 봉천동으로 위장전입까지 한 상황에서 돌연 친구가 운영하는 포천의 회사로 근무지를 옮긴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었다. <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0808163942816&p=nocut&RIGHT_COMM=R11 권재진, 아들 감싸려 제출한 계좌가 되레 '화근']《노컷뉴스》2011년 8월 8일</ref>
- 권해효 . . . . 3회 일치
상당히 독특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데 부리부리한 눈과 큰 하관 때문에 턱과 관련된 별명이 많다. 예를 들면 90년대 말부터 불렸던 '''턱주가리'''라든지(...)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에르난 크레스포]]와 이목구비가 비슷하다. 또, 유럽 최대 컨설팅 회사 롤랜드버거의 샤를 에두아르 부에 CEO나 스티브 부세미와 몹시 닮았다.
* 2006 [[돌아와요 순애씨]]
- 규동 . . . . 3회 일치
번역은 보통 소고기 덮밥. 얇게 썬 [[쇠고기]]와 [[양파]]를 밥 위에 얹은 요리. 가게에 따라서는 규메시(牛めし)라고 한다.
고기와 양파 이외에 두부, 파 등을 넣기도 하며, 생강 절임, 날달걀 등을 취향에 따라 곁들이기도 한다. 대개 생강 절임이나 소스는 무료, 하지만 다른 토핑은 돈을 받는다.
한국 기준으로는 덮밥 종류와 비슷하지만 고기 [[비빔밥]] 처럼 생각하기에는 밥의 양이 좀 많다. 물론 고명의 양을 많이 담는 컨셉의 메뉴를 올리는 집도 일부 존재한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 . . . . 3회 일치
2017년 1월 기준으로 제일 최신작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 V]]와 그에 딸려있는 [[그랜드 테프트 오토 온라인]].
1997년 발매. 현재 나오는 GTA와 달리 탑뷰 형식이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바이스 시티, 뉴욕을 모티브로 한 리버티 시티, LA를 모티브로 한 산 안드레아스를 배경으로 한다.
2009년 발매. 로스트 앤 댐드와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의 합본.
- 기동전사 건담 . . . . 3회 일치
당시 만연했던 '로봇 프로레슬링'[* 매 화마다 특정 메카와 1대 1, 혹은 1대 다수로 일회성 대결을 펼치는 방식. '마징가 Z' 등을 떠올려보면 쉽다.] 플룻에서 벗어나 전쟁 서사적인 면을 다룬 스토리로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마니아 층에게 어필하여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인기를 끌어모아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로봇물에서 이른바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이라는 구분법이 생겨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 21세기 시각에서 돌이켜 보면 여전히 옛날 로봇애니의 요소들도 많이 담고 있기도 한 '과도기적 작품'이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21세기 작품들이 '옛날 로봇애니 요소'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유행은 돌고 돈다)~~]
전반적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태동된 우주개발 붐 문화('아폴로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작품[* 아폴로 붐 당시 우주개발에 대한 열기는 경제적인 문제로 본격적인 우주개발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현대와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이다. 또한 당시 인기를 끌었던 SF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다. 소년병들이 다수인 집단이 지구와 우주 각지를 떠도는 부분은 '15소년 표류기'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 기동전사 건담 실루엣 포뮬러 91 . . . . 3회 일치
코믹스는 사이버 코믹스(CYBER COMIX)[* 반다이에서 발매한 SF 만화 잡지. 건담계열 작품이 많이 연재되었는데, '''온갖 괴작'''이 넘쳐나는 잡지였다. 건담으로 닌자물이 되어버린 G의 인영이나, 마법의 소위 블래스터 마리 등등(…)]와 MS SAGA에서 발표되었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시. 소설은 MJ 지에서 발표되었다.
네오 사이코뮤 시스템으로 네오 건담 1호기를 조종. 최종전에서는 토키오와 레이라의 협공에 패배하여 사망한다.
처음에는 토키오 일행을 연방군으로 오해하여 교전을 벌였으나, 나중에는 협력하는 관계가 된다. 후반에는 실루엣 건담을 타고 토키오와 협력하여 가렘슨을 쓰러뜨려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
- 김경식 (희극인) . . . . 3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하여 [[부산광역시|부산]]과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광고창작학과]]를 [[전문학사]] 졸업하였으며, [[1989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1991년]] 뮤지컬배우 데뷔한 그는 이듬해 [[1992년 3월]] [[서울방송|SBS]]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정식 데뷔를 하였으며, [[틴틴파이브]] 멤버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가수 故 [[유채영]]과 함께 [[MBC 표준FM]] 《[[좋은 주말]]》을 진행한 적이 있으며, [[서현진 (방송인)|서현진]] 前 MBC 아나운서 와 함께 《[[생방송 원더풀 금요일]]》을 진행한 적이 있다.
* MBC Every1 《인간탐구 스토리 와일드 썰》
* [[MBC]] 《[[좋은 주말]]》 (2013~2015) - 故 유채영 / 김경아와 함께 진행
- 김동한 (1919년) . . . . 3회 일치
보통학교에 다닐 때 그와 그의 아우 [[김수환]]은 모친으로부터 나중에 신부가 되라는 권유를 받고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2170105 donga.com[뉴스]-“어머니 무릎서 신앙심 키웠다”<!-- 봇이 붙인 제목 -->]</ref><ref>[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2/16/200902160626.asp 고품격 콘텐츠페이퍼, 헤럴드경제<!-- 봇이 붙인 제목 -->]</ref>
그 뒤 김동한 가롤로 사제는 [[1949년]] [[6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창원시|경상남도 창원]]에서 사목하다가 [[1951년]] [[대한민국 해군|해군]]의 첫 [[군종장교|군종사관]](군종 신부)로 [[대한민국 해군|해군]] [[대위]] 임관하였다.<ref name="가톨1">[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36413 (한국교회사 인물 80) (하)]{{깨진 링크|url=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36413 }} 가톨릭뉴스</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528492 김동환 신부와 함께하는 故 김수환 추기경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1953년 4월 진해 및 인근 본당들과 함께 ‘군민 합동 성체대회’ 개최했으며 이 대회는 진해 지역의 천주교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ref name="가톨1"/> 그 이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계산성당]] 등에서 사목하였다.
한편 김수환이 추기경에 임직된 이후 그는 일부러 김수환을 피하였다. 추기경인 동생에게 누가 될까봐 주교관 출입을 일부러 피했던 것이다.<ref>[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454191&sid=E&tid=0 고뇌와 번민 적지 않았던 인간 김수환 《내일신문》]</ref>
- 김병기(배우) . . . . 3회 일치
~~[[홍준표]]와 닮았다.~~
* [[2004년]] [[SBS]] 주말특별기획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드라마)|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주 사장 역
- 김부식 . . . . 3회 일치
서경 천도가 불가능해지자 묘청·조광·유담 등은 [[1135년]](인종 13년)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김부식은 토벌군의 원수가 되어 일단 개경에 머물고 있던 서경파 정지상, 김안(金安), 백수한을 처형하고 출전하였다. 김부식은 중군장으로서 좌군장으로 [[김부의]](金副儀)<ref>김부식의 동생</ref>, 우군장으로 이주연(李周衍)을 거느리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인들은 묘청·유담들을 죽이고 항복하였으나, 조광(趙匡)이 또 반하므로 서경을 포위하고, 그 이듬해인 [[1136년]]에 잔당을 소탕하였다.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은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 칭호와 검교태보수태위[[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감수국사상주국 겸 태자태보(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監脩國史上柱國兼太子太保)로 임명되었다. 김부식은 이 전공을 이용하여 정적(政敵)인 [[윤언이]](尹彦頥)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인용문|고려부터 조선까지 1천 년간 ‘[[묘청의 난]]’보다 지나친 대사건이 없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역사가들은 왕의 군사가 반역자를 친 전쟁으로 알았을 뿐이었으니….(중략)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이며 진취적으로 진전했을 것이다.|{{서적 인용|저자=[[신채호]]|장=조선역사상(朝鮮歷史上) 일천년래(一千年來) 제일대사건(第一大事件)|제목=《[[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연도=[[1929년]]}}}}
반면 한국 사학 1세대로 평가되는 역사학자 [[이기백]] 전 이화여대·서강대 교수는 아래와 같이 그의 저술에 대해 호평하였다.
- 김선재 (아나운서) . . . . 3회 일치
*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모닝와이드]]》 ([[월요일|월]] ~ [[토요일]])
*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모닝와이드]]》,《[[SBS 12 뉴스]]》, 《SBS 취재파일 플러스》
*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토요일 《[[모닝와이드]]》 1, 2부 앵커 (2016년 12월 24일 ~ 2018년 1월 13일)
- 김성겸(탤런트) . . . . 3회 일치
|| '''신체''' ||'''183cm, 98kg'''[*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던 당시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중학교 때 키가 다 커서 중학생 때 180을 이미 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이웃 여학생을 찾았는데, 정작 그분은 김성겸을 기억 못했다. [[MC]] [[이상벽]]이 김성겸이 동네에서 제일 체격이 컸다는데 외모라도 기억이 안 나냐고 하자, 그 여성분의 아버지도 키가 180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살면서 키 큰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인상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그녀는 김성겸을 방송에서 본 모습으로만 기억했는데 그가 주로 맡던 역할 때문인지 그냥 좀 무섭다는 인상밖에 없었다고.. --간단히 말해 어렸을때 동네에 살았건 말건 TV에 나오건 말건 별 관심없었다는 이야기(...)-- 몸무게는 90년대 말에 KBS 모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밝힌 것.]||
* [[금 나와라, 뚝딱!]] - 이성웅
* [[장미와 콩나물]] - 최경손
- 김용준 (1904년) . . . . 3회 일치
[[1928년]] 귀국한 후로는 [[서울특별시|서울]]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길진섭]]과 함께 [[목일회]]를 창립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작품 활동 뿐 아니라 미술사 연구와 미술 평론계에서도 선구자 격의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본래는 서양화가로 출발하였으나 목일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된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화]]의 기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 그린 말년의 작품들은 조선화가 대다수이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48년]] 그의 호를 딴 수필집인 《근원수필》을 출간하기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 [[조선인민군]]이 [[서울특별시|서울]]을 점령했을 때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의 임시 학장을 맡았고, 그 해 가을 후퇴하는 [[조선인민군]]을 따라 월북했다. 월북한 후에는 [[조선미술가동맹]]과 [[조선건축가동맹]]에 참가했으며 [[평양미술대학]]의 강좌장이 되었다.
전통적인 모더니즘 계열에서 [[정지용]], [[이태준]]과 궤를 같이 하면서 광복 전·후로 좌익 예술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김용준의 월북 동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생으로 [[국대안 파동]] 때 [[한국의 군정기|미 군정]]과 충돌해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김진항]]의 추대로 [[한국 전쟁]] 중 얼떨결에 학장이 되었다가 월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설과, [[공산주의자]]였던 부인의 권유로 함께 북으로 갔다는 설이 있다.
- 김치볶음밥 . . . . 3회 일치
요리의 일종. 말 그대로 [[김치]]와 [[밥]]을 넣고 볶아먹는 요리다.
* 김치와 밥, 그외 같이 먹을 재료를 준비한다.
* 김치와 재료를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 김태룡(정치인) . . . . 3회 일치
1963년 [[국민의당(1963년)|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 민주당, [[민중당(1965년)|민중당]] 등의 야당에 몸담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김용태(1926)|김용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용태 후보와 [[민주통일당]] [[박병배]][* 재검표로 당선 확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되었다. 1977년 [[이철승]] 대표최고위원의 온건노선에 반발하여 신민당야당성회복투쟁위원회 공동의장 겸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광역시|대전시]] [[중구(대전)|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강창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1월 [[홍사덕]]의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4월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고 통일민주당에서도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대전광역시|대전시]] [[중구(대전)|중구]]) || [[신한민주당]] || - || '''당선'''[* [[민주정의당]] [[강창희]] 후보와 동반 당선] || ||
- 김형기 (법조인) . . . . 3회 일치
1927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김형기는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문학과 고서화에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던 김형기는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1981년에 임명된 서울형사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김중서]]의 정년 퇴임으로 공적이 된 대법원 판사에 1984년 7월 20일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다.<ref>매일경제 1984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 1984년 7월 18일자</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반공법]]위반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된 영화배우 [[박노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반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순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반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1월 19일에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때 선거 거부를 주장하다 기소된 전 서울대 학생 등 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1월 19일자</ref> 2월 9일에 통혁당 재건과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15년 자격정지15년을 선고받은 [[지정관]]에게 징역7년 자격정지7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박현채]]와 [[양정규]]에게 각각 징역2년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과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9일자</ref> 2월 22일에 '옛 석굴암'이라는 상호로 공예품 판매업을 하면서 문공부 장관의 허가없이 자신의 소장품인 유형문화재 청자 등 이조 자기류 10점을 점포에 진열하거나 매매 목적으로 진열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22일자</ref>
- 김효원 . . . . 3회 일치
김효원은 [[1542년]]에 태어났다. 증조부는 상원서 직장 수현(秀賢)이며, 할아버지는 전생서 직장 덕유(德裕)이다. 아버지는 영유 [[현령]](永柔 縣令) 홍우(弘遇)이며, 어머니는 윤은좌(尹殷佐)의 딸 [[해평 윤씨]]이다. 아래로는 동생 [[김이원]] 등이 있었다. 일찍이 [[한성]]에 올라와 한성부 남부 건천동(乾川洞)에서 살았는데 이때 [[류성룡]] 등을 만나 알게 되었다.
생원시를 거쳐 [[1565년]] 알성 [[과거 제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wa-bu.net/bbs/zboard.php?id=news&page=11&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45 윤종일교수의 남양주역사기행(26)-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남양주타임즈, 2007.01.26자] </ref> 그는 퇴계 [[이황]]의 문하와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황]]의 제자들 중의 한사람이며 [[김종직]]의 학통으로, 남명 [[조식]]의 문하에도 찾아가서 배웠다. 스승 중 한사람인 조식이 죽었을 때는 "방향 모르는 날 가르쳐주셨고(誘掖回迷走)/ 날 채워서 옳은 사람 되게 했다네(充盈見實歸)/ 인문이 이제는 끝나고 말았구나(人文今已矣)/ 이제 우리 도를 누구에게 의지할꼬(五道竟何依)?"라는 만사를 짓기도 했다. 그는 학문상으로는 [[김종직]]-[[이황]]의 학맥과 [[조식]]의 학맥을 두루 계승하였다.
청의(淸議)를 주장하여 사림으로부터 선명성을 인정받고 [[동인 (정치)|동인]]의 영수로 추대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2 /> 그러나 10여년간 지방관 생활을 하며 서원과 서당 설립을 장려, 권장하는 등의 문교 진흥 정책에 힘썼다. 또한 당쟁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고 정치와 시사(時事)에 대해서는 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또한 지방관으로 재임하며 사사로운 일로는 한 번도 도성을 밟지 않았다.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3회 일치
모리 토모코는 [[기독교]] 계열 종교의 신자로서, 종교 권유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본래 모리 토모코와 오오우치 마리아가 만나게 된 계기는 모리 토모코가 종교 권유를 위하여 오오우치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오오우치 마리아는 문을 열어줬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들어주고, 살해되기 얼마 전에는 휴대폰 번호도 가르쳐줄 만큼 가까이 끌어들였다고 한다.
살해 이후에는 부모님의 집으로 귀성하여 지내다가 경찰의 연락을 받게 되었고, 체포를 직감하고는 돌아와서 시체와 하룻밤을 보냈다고도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3회 일치
* 아이자와는 학생들을 격려하며 "임시 면허를 따면 너희들은 달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병아라, 세미 프로로 부화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 머리가 깨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웅영고와 경쟁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같이 텐션 높은 말만 늘어 놓는다.
* 아이자와는 그를 잘 알고 있는데, 그는 한때 웅영고의 유망주였던 "요아라시 이나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3회 일치
* 진심으로 싸우기로 작정한 [[미도리야 이즈쿠]]는 문득 [[바쿠고 카츠키]]와 오래 안 사이지만 한 번도 진심을 나눈 적은 없다고 깨닫는다.
* 미도리야는 올마이트와 마찬가지로 그가 가진 "굉장함"에 이끌렸고 그를 동경했음을 털어놓는다.
진심으로 싸울 것을 다짐하는 [[미도리야 이즈쿠]]. 그와 동시에 묘한 것을 깨닫는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그들이지만, 사실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3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27. '''서 나이트아이와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와 올마이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0화 . . . . 3회 일치
* 빌런이 [[리타이어]]하자 [[바쿠고 카츠키]]와 [[토도로키 쇼토]]가 빛을 내서 토코야미를 진정시킨다
* 여고생 같이 생긴 빌런 [[토가 히미코|토가]]는 [[우라라카 오챠코|우라라카]], [[아스이 츠유]]와 마주쳤다
* 우라라카가 돌아와 토가를 제압하지만 그녀가 마음을 읽는 듯한 행동을 하자 틈을 보이고 그 사이 피를 빼앗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3회 일치
* 야오요로즈 모모는 돌아가는 뇌무를 보고는 바쿠고가 결국은 적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판단, 이어서 현 시점에서의 최선의 판단을 위해 마지막 힘을 다 해서 단추 같은 소품을 만들고 함께 있던 B반 학생인 [[아와세 요세츠]]의 개성으로 뇌무에게 부착시킨다
* [[스피너]] 일행과 싸우던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푸시 캣츠]]는 각각 빌런을 제압했지만 누군가 난입해 방해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3회 일치
* 밤에 [[토도로키 쇼토]], 키리시마가 기다리고 있고 [[야오요로즈 모모]]와 미도리야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이다도 나타난다
* 그러나 토도로키와 키리시마는 "은밀행동"으로 전투를 피하고 최대한 숨어서 잠입해서 바쿠고를 구할 거라며, 아슬아슬하게 룰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 바쿠고 탈환작전이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고]]와 미도리야의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3회 일치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올마이트]]와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 [[올 포 원]]은 올마이트와 힘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이라면 바쿠고는 응하지 않을 테지만, 학기 내내 바쿠고와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했던 키리시마이기에 바쿠고는 응할 것이란 계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3회 일치
* 그는 오래전 올마이트와 전투로 눈이 멀어 버렸던 것이다.
* 간수는 이런 상태에서도 올마이트와 그렇게 싸웠다는 것에 치를 떤다.
* 미도리야가 "대사건"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에 올마이트의 죽음 등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올마이트와 올 포 원 모두 생존, 바쿠고도 무사히 돌아왔다.
- 남경민(배우) . . . . 3회 일치
1987년 10월 27일, [[경기도]] [[안성시|안성]]에서 당시 5년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2학년 휴학중이던 [[윤다훈]]의 딸로 출생하였고 [[이천시|경기도 이천]]과 [[김포시|경기도 김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녀는 1992년 6월에서 이듬해 1993년 6월까지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 유학하였으며 1993년 6월, [[대한민국]]에 귀국한 이후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하였다.
* 《[[KBS 드라마 스페셜]] -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KBS 2TV|KBS2]], 2013년) ... 강미 역
* 2017년 《[[아리랑 TV]]와 함께하는 [[한국관광공사]]의 한국절경》([[아리랑 TV]]) ... ([[더 이스트라이트|이스트 라이트]] & [[모모랜드|모모 랜드]] & [[엘리스 (음악 그룹)|엘리스]] with [[남경민 (배우)|남경민]] & [[안다빈]] & [[최다니엘]] & [[김소혜 (1992년)|김소혜]] & [[박종찬 (배우)|박종찬]] & [[이랑 (배우)|이랑]] & [[신세휘]] & [[이지훈 (1979년)|이지훈]] & [[신수지]] & [[박세영 (배우)|박세영]] & [[김예린 (미스코리아)|김예린]] & [[정다빈 (2000년)|정다빈]] & [[이수민 (2001년)|이수민]] & [[이상벽]] & [[이문세]] & [[박상원]] & [[박상면 (배우)|박상면]] & [[노희지]] & [[박중훈]] & [[이진우 (배우)|이진우]] & [[최현석]] & [[이원일]])
- 남기애 . . . . 3회 일치
|《오리와 공주》
|《더 게임- 죄와 벌》
|《더 게임- 죄와 벌》
- 남창희(연예인) . . . . 3회 일치
[[조세호]]와 동갑내기 친구로 예능에서 팀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예능에서는 게스트나 패널 역할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조연이나 단역위주로 출연했다.
* [[세 얼간이]](TV N) - [[이주호]]와 같이 팁이나 재연 영상 출연
*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 - 게스트 출연[* 조세호와 같이 출연. MLT-02&32&36([[김구라]]), MLT-03([[홍진경]])]
- 남치근 . . . . 3회 일치
포도대장으로서 남치근은 한 차례 임꺽정에게 크게 얻어맞았는데, 명종 15년 좌포도대장으로 있던 남치근은, 서울에 기습공격해온 임꺽정 패거리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서울 내에서 시가전을 벌였으며, 포도부장이 활을 맞고 사망하는 참패를 겪었다. 임꺽정은 유유히 달아났으며, 남치근은 임꺽정의 처 3명을 체포하였으며 임꺽정 일당을 계속 추적하려 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는다. 이에 명종은 남치근을 파면하지는 않고 체직(벼슬을 깍는 것)하는 처분을 내렸다.(우포도대장 이몽린은 이 때 와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참조 : 조선의 포도대장]
을묘왜변, 임꺽정 토벌에서 대단한 공적을 세운 장군이다. 하지만 서민의 대변자로서 [[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임꺽정을 토벌했다는 점, 그리고 황해도에서 상당히 잔혹한 토벌작전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사실 관서(황해도)에서의 토벌 당시 외에도 "제주 목사 시절에 왜선 5∼6척이 당물(唐物)을 가득 싣고 풍랑을 만나 표류해 와 정박해 있을 때, 왜인들을 전부 죽이고 금은 보화와 비단들을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고서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
- 네드 켈리 . . . . 3회 일치
1878년 4월, 피츠패트릭 순경(Constable Fitzpatrick)이라는 [[경찰]]이 켈리 가족에게 찾아온다. 피츠패트릭은 네드의 동생인 댄 켈리(Dan Kelly)를 말도둑 혐의로 체포하려고 했다. 피츠패트릭은 총에 맞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후 피츠패트릭의 주장이 있는걸로 보아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켈리 가족의 어머니인 엘렌 켈리(Ellen Kelly)는 이 일을 사주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네드와 댄은 도주했다. 훗날 네드의 친구인 조 번(Joe Byrne)과 댄의 친구인 스티브 하트(Steve Hart)가 합류, 켈리 갱(Kelly Gang)이라고 불리는 범죄 조직을 만들었다.
1880년 6월 27일, 켈리 갱은 빅토리아 주 글렌로완(Glenrowan)의 한 여관에서 경찰에게 포위당한다. 네드는 근거리에서 총알을 막아낼 수 있는 갑옷을 입고 밖으로 나타났지만 보호되지 않은 두 다리에 총을 맞고 쓰려졌으며, 조 번은 경찰이 불을 지른 여관에서 뛰쳐나오다가 사타구니에 총을 맞고 죽었다. 댄 켈리와 스티브 하트는 여관이 불타 무너진 후 잔해 속에서 소사체로 발견되었다. 이렇게 켈리 갱은 괴멸했다. 유일한 생존자는 네드 켈리 뿐이었다.
네드 켈리는 제릴더리(Jerilderie)의 은행을 털며 편지 하나를 남겼다. "제릴더리 편지[* Jerilderie Letter]"라고 불리는 이 편지는 1870년부터의 켈리 갱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당시 호주의 경찰이 부패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이 편지는 경매에 나와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이 사들였다. [[http://search.slv.vic.gov.au/primo_library/libweb/action/dlDisplay.do?vid=MAIN&search_scope=default_scope&docId=SLV_VOYAGER1636991&fn=permalink|전자책으로도 보게 해 주는 것 같으니 관심 있으면 클릭.]] 오른쪽의 View Online을 누르면 된다. 흘려쓴 영문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농가 . . . . 3회 일치
[[시골]]에 있는 오래된 농가(農家)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전시대적・봉건적・인권을 무시하는 사고 양식・행동 양식을 당연하다는 듯이 타인에게도 강제하는 인간, 또는 그 가정이나, 마을 등의 공동체. 농업 종사자로서의 「농가(農家)」, 또는 현대적으로 상식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농가(農家)」와는 구별하기 위해서 태어난 말이다. 고름 농(膿)을 사용한다.
농가(膿家)적 사고방식을 상기와 같은 행동 양식을, 절대지상으로 여기며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제하는 생각. 또는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농가뇌(農家脳)」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농가(膿家)」와 같이, 최저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농업 종사자는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 니세코이/212화 . . . . 3회 일치
* 오노데라와 경쟁할 수는 없다며 고백을 포기할까 하지만 어쨌든 모든걸 털어놓기로 한다
* 라쿠를 만나러 가는데, 우연히 라쿠와 마이가 대화를 듣게 된다
* 라쿠와 오노데라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걸 알게 된 치토게는 그대로 달아나 버리고 만다
- 니세코이/215화 . . . . 3회 일치
오노데라와 이치죠는 치토게를 찾아 미국까지 좇아온다.
* 이치죠는 모퉁이를 이용해 따돌릴 수 있었지만, 뒤이어 오는 오노데라와 딱 마주쳐 버린다.
* 이제와서 열쇠나 그림책의 정체는 아무래도 좋을 텐데...
- 니세코이/226화 . . . . 3회 일치
* 뒤늦게 달라연 루리와 슈.
* 오노데라의 열쇠로 자물쇠가 열리고, 안에서는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편지와 반지가 나온다.
* 오노데라와 함께 해서 행복했고 앞으로 쭉 그럴 수만 있다면 계속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 닥터 시바나 . . . . 3회 일치
New52에서도 등장하며 이전의 시바나와 달리 악인이 아니며 외모도 대머리에 안경 외에는 인상이 달라졌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마법]]을 찾아해매며 이때 블랙 아담의 무덤을 조사하다 번개에 맞아 마법을 보는 눈을 얻었다. 이 눈을 이용해 블랙 아담을 부활시키고, 그를 미국으로 안내한다. 이후 흩어져있던 7대 죄악을 모아 블랙 아담의 앞에 대령한다.
마법을 보는 눈을 얻은 후에는 이 눈을 통제하지 못해 본인이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미스터 마인드와 만났을 때에는 New 52 이전의 시바나와 비슷해졌다. 생각해보면 본래 선인이었던 시바나가 타락해 악인이 되간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한편 가족들을 구할 희망을 마법에 걸었는데 어째서인지 본인은 마법 때문에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3회 일치
[[6.25 전쟁]] 초기에 [[이승만]] 정부 측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민국의 망명정부를 일본에 설치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제안하고 일본 정부가 [[야마구치 현]][* 혼슈의 서쪽 끝, 큐슈와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다]에 설치하도록 추진했던 계획. 이 제안에 관한 기초적인 기록은 전 야마구치 현 지사, 전 통산성 장관인 다나카 다쓰오가 쓴 회고록과 미국 국무부가 발행한 <미국 외교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이틀 뒤, 1950년 6월 27일 오전 2시, 이승만은 [[대전]]으로 피신했다. 2시간 뒤인 오전 4시에 이승만은 [[수원]]으로 천도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존 무치오 주한미국 대사에게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울 수 있겠느냐?"고 문의했다. 이후 6월 28일 서울이 완전히 함락된다.
* 당시 일본은 [[GHQ]]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망명을 시도했다면 망명정부 설치 지시는 이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십만명 정도 규모의 망명정부는 결국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와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백제 시즌 2--
-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 . . . 3회 일치
D&D 클래식 룰과 미스타라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횡스크롤 게임으로 만들었던 전작 [[던전스 & 드래곤스: 타워 오브 둠]]의 후속작이다. 전작에 비해 확실하게 나아진 밸런스와 늘어난 직업군, 마법, 특수 스킬을 구현함으로써 인기를 얻었던 게임이다.
커맨드 입력기술이 [[천지를 먹다]]와 마찬가지로 캡콤 커맨드로 바뀌었다. TOD에서는 돌진기의 경우 ↓J, A+J를 해야 하는 등 조작성이 과거 캡콤의 횡스크롤 액션게임보다 복잡할 뿐더러 빠른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반면에 돌진기는 ↓↘→A, 대공커맨드는 ↓↑A 등으로 상당부분 변경점이 있었다. 또한 발악기(A+J)가 도입되었으며, 아무런 아이템이 없을 때 사용하던 효율성 제로로 평가받은 기술들은 삭제되었다.
매직유저의 등장으로 파이널스트라이크와 사용가능마법이 9까지 확장되었다. 또한 마법으로 각종 효과를 캔슬하는 전략도 생기는 등, 마법의 활용이 게임 내에서 전작에 비해 매우 중요하게 되며, 동일한 명칭인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마법물품으로 사용할 때보다 확연하게 직접 스펠을 사용할 때의 효과가 훨씬 성능이 좋은 부분도 표현했다.
- 도게자 . . . . 3회 일치
* 2013년 10월에 의류 체인점 [[시마무라]]에서 한 여성이 타월 몇점으로 클레임을 걸며 점원에게 도게자를 강요하고, 이를 [[트위터]]에 올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강요죄]](도게자를 강요한 것)와 [[명예훼손]](트위터에 사진을 올린 것)으로 체포되었으며, 30만엔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고작 타월 몇장 때문에 클레임을 한 결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 셈.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나온 '달군 철판 위의 사죄'가 도게자로 유명하다. 일명 철판 도게자. 작중에서 효우도 회장이 카이지와의 승부에서 패배한 [[토네가와 유키오]]에게 '사죄'로서 강요한 것이다. "진정 사죄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살을 녹이고 뼈를 태우는 달군 철판 위에서도 사죄를 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이론에서 나온 벌칙으로, 자신에게 도게자를 하면서 돈 갚는 것을 미뤄주거나 떼어먹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대처하는 회장의 취미로서 언급된다. 벌칙은 이 철판 위에서 30초 이상 도게자를 하고 손바닥과 이마가 타는데도 버텨야 하며, 대체로 저항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게자 강요기' 같은 굴욕적인 기계까지 있다.
- 독친 . . . . 3회 일치
부모와 자식으로서 인연을 끊겠다는 위협을 반복한다.
아이가 여럿 있을 경우, 마음에 드는 아이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나눠서 차별하기도 한다.
여담으로 독이 되는 부모라는 책에서는 부모와 진지하게 대화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지만, 그냥 절연하고 안 보고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듯.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3회 일치
지금의 프랑스에 있는 로데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두머리의'' 라몬 베렝게르 2세는 자신의 형제인 베렝게르 라몬 2세과 함께 바르셀로나 백국의 공동 통치자였는데, 형제와 불화를 겪다가 결국 동생에게 암살당한다.[* 이사건으로 인해 베렝게르 라몬 2세는 ''형제 살해자''칭호를 얻게 된다.] 이후 97년에 베렝게르 라몬 2세가 결투재판에 패해 1차 십자군에 강제로 떠밀려지게 된 이후, 그는 삼촌의 작위를 상속받게 된다.[* 베렝게르 라몬은 2년뒤(1097년에 바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거기서 횡사한다.]
이후 그는 1112년에 프로방스의 마지막 상속녀인 두세와 혼인해 프로방스 백작위를 획득하고, 우르겔과 페랄라다를 제외한 모든 카탈루냐 국가들을 합병한다. 이후 우르겔 백국과 동맹을 한 그는 바르바스트로와 발라구에르를 정복해내는데 성공한다.
- 랄프 알거 배그놀드 . . . . 3회 일치
1915년 가족 전통에 따라 영국 육군 왕립 공병대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전쟁이 끝날 때 까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하였다.
1921년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후 또다시 군대에 입대하였다. [[카이로]]에 배치된 배그놀드는 리비아 사막을 최초로 횡단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여러 탐험을 하다가 1935년에 퇴역하게 된다. 그는 잉글랜드로 돌아와 자신이 사막을 탐사하면서 얻은 경험을 담은 《리비아의 사막: 죽은 세상에서의 여행》[* Libyan Sands: Travel in a Dead World. 국내 정발된 책이 아니기에 임의로 번역한 제목이다.]을 집필한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배그놀드는 다시 현역이 된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LRDG|장거리 사막 정찰대]](Long Range Desert Group, LRDG)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한다. LRDG는 기존의 자석을 이용한 [[나침반]]이 대원들이 타고다니는 트럭 등에 교란될 것을 우려해 태양을 이용한 나침반을 사용했는데, 이 나침반 또한 배그놀드가 설계한 것이었다. 그는 전쟁 도중이었던 1941년에도 또다른 책을 펴내었다. 모래의 이동에 대한 연구를 담은 《바람에 부는 모래와 사막 사구의 물리학》[* The Physics of Blown Sand and Desert Dunes. 국내 정발된 책이 아니기에 임의로 번역한 제목이다.]이 그것이었다.
- 랑그릿사(검) . . . . 3회 일치
루시리스의 분신격인 [[제시카]]는 지크하르트와 대면하면서 "성검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당신"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며, 지크하르트는 스스로를 희생함을 결정하고 아들인 [[루인]]에게 신생 왕국 엘스리드를 맡기며 파사의 검과 융합하여 랑그릿사가 된다.
이 때문에 3의 시기에서 지크하르트와 깊은 인연을 지닌 자들은 랑그릿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후 시대에서 랑그릿사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광휘의 후예]]라 보통 부르게 된다.[* 그러나 랑그릿사3에서는 밸런스 때문인지 조카인 디하르트와 루인만이 사용이 가능하다.]
- 레이나 검랑전설 . . . . 3회 일치
어느 행성을 위협하는 발터 자르크라는 악당과 대결하는 내용이다. 자르크와의 대결에서 위기에 처한 롬을 돕기 위해서 레이나와 블루 제트, 로드 드릴, 짐이 나선다는 내용.
롬 일행은 크로노스 행성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악의 마도사가 롬과 레이나를 습격. 롬은 레이나를 구하려다가 사망해버리고, 레이나는 켄로의 힘으로 어둠의 바이캄프와 대결하게 된다.
- 레프카 . . . . 3회 일치
나중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라오 박사를 확보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최고위원회를 위협해 이용하는데 결국 코난 일행의 대활약으로 실패하며 몸이 망가진 라오 박사와 대화할수 있는 라나를 끌고 도망치려 하나 역시 코난에 의해 실패하고 추락한다. 그러나 사실은 살아있어서 최후의 부하들[* 이중에 한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고 사살했다.]과 같이 기간트를 움직이는데 이것조차 코난 일행에 의해 실패한다. 최후에는 기간트 선두 쪽의 소형 탈출선으로 탈출하려 하나 이것조차 실패하고 결국 기간트와 같이 바다에 침몰한다.[* 코난이 손을 잡아주기는 했으나 이때 다른 부하들이 몰려와 매달렸고, 이에 손을 놓쳐버렸다.]
- 류명선(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삼성 투수진을 지켰던 투수.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태한]] - [[김상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 마기/303화 . . . . 3회 일치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와 상회로서 첫대결에서 완패를 당한다.
* 알리바바는 자신이 신드바드와 상회로서 라이벌이라는 말에 당황한다.
* 이런 상대와 싸워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키며 이번의 정보 유포도 신드바드를 탓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 마기/316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는 오래전부터 어떤 목소리와 대화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윗
* 신드바드는 "어떤 목소리"와 대화하고 있다.
* 하지만 목소리는 끈질기게 유혹한다. 그와 신드바드는 "똑같고" 그 자신도 알마트란에선 유일하게 운명을 볼 수 있는 "특이점"이었다고 말한다.
- 마기/332화 . . . . 3회 일치
* 세계에 작별을 고하는 두 사람 앞에 [[쥬다르]]와 [[연백룡]]이 등장.
>내 꿈은 지금 너와 행복하게 사는 거야!
쥬다르는 이 기분 나쁜 세상을 부수러 가는거 아니냐며 자기들을 끼워주지 않으면 못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적어도 자기들 말고 두 명은 같은 생각을 한다는걸 알게 된 알리바바와 알라딘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 마기/334화 . . . . 3회 일치
* 기세등등하게 나타난 [[네르바 율리우스 가르아데스]]. 자신이 [[알리바바 사르쟈]]를 도와주겠다며 거들먹거린다. 그러나 정작 알리바바는 그가 누군지도 몰라 물어보는 지경이다.
* 그를 데려온 [[쥬다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대충 기억이 나는데. [[유난]]이 암흑대륙에서 알리바바를 구해줬을 때 이야기한 세 명의 수배자 중 한 명이다. 귀왜국의 [[야마토 타케루히코]]와 황제국의 [[연백룡]]의 뒤를 잇는 뢰엠의 금속기 사용자. 그는 본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등 기존 지도자들을 타도할 목적으로 금속기를 은닉한 채 반란을 도모하고 있었으나 그 거창한 설명과는 달리 철저히 존재감이 없이 살아왔다. 쥬다르의 설명으로는 일단 이 녀석도 타전을 해서 검은 루프를 쓸 수 있다는데.
* 알리바바는 백룡과, 그리고 모두와 만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지나간다. 백룡과 만나고 죽기 살기로 싸우기까지. 신드바드나 [[연홍염]] 형제들을 비롯한 모든 인연과 만나고 대립하고 화해하기를 거듭한 인연들. 그 결과 곁에 남은 소중한 사람들.
- 마기/346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자신이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마친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일 일라에 대한 이야기도 잊고 "다윗의 확신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 알리바바의 말대로 다윗은 자신이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고 성궁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그걸 막기 위해 되살아난 건데, 정작 그 두 가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 점을 지적하며 다윗이 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긴 커녕 회유당해 하수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는 김에 [[우고(마기)|우고]]와 일곱 진들 조차도 그의 편이 되어버린 것도 다시금 강조한다. 신드바드는 새삼 그동안 성궁에서 일어난 일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물론 이제와서 알리바바가 그걸 인정할리도 없었다. 신드바드는 그렇다면 "너희가 옳다면 나를 쓰러뜨려라"며 호기롭게 외친다.
* 신드바드가 마장 후르후르를 두르며 싸울 태세를 갖췄다. 대치하는 알리바바와 신드바드. 둘의 승부가 시작된다.
- 마이클 페이 . . . . 3회 일치
1994년 당시 18세였던 마이클 페이는 싱가포르에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지는 기행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마이클 페이에게 태형 6대와, 35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으며, 미 국무부는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 [[빌 클링턴]] 대통령 까지 나서서 "태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여담으로 미 연방정부의 조치와는 달리, 정작 미국 일반인들은 마이클 페이가 태형에 당한 것에 대해서 오히려 환영(…)하는 여론도 있었다. 1994년 봄에 USA투데이가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53%가 태형의 도입을 찬성했다. [[엄벌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사회의 경향 때문인듯.[[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27/2007072700998.html (참조)]]
* [[마이클 베이]]와 헷갈리면 곤란하다. 물론 마이클 베이에게 태형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 마치콘 . . . . 3회 일치
마치콘(街コン)이란 콘파에서 이름을 따온 이벤트로서, 지역 진흥과 만남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이벤트이다. 마치콘의 형식은 동성 2인 이상 1조가 되어, 개최 지역의 정해진 음식점을 순회하는 것이다. 각 점포에서 팔찌 등의 참가증을 제시하면, 이벤트 시간 이내에 동일한 가격으로 식사와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참가자는 100명 이상, 3000명 가량이 되는 경우도 있다.
* 마치콘에서 만난 상대와 교제하게 되었는데, 가명이었다. → 신분확인을 엄격하지 않아서 가명으로 참가하는 경우가 간단하다.
* 마치콘에서 만난 상대와 교제를 시작했지만, 또 다른 마치콘에 참가해서 바람을 피웠다. → 쉽게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관계가 문란한 사람인 경우도 많다.
- 망나니 장군 . . . . 3회 일치
1978년에서 2002년에 걸쳐, TV 아사히에서 방송된 시대극. 토에이와 TV 아사히가 제작하였다. 주연은 마츠다이라 켄.
[[에도 막부]]의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정체를 숨기고, 하타모토의 삼남 토쿠다 신노스케(徳田新之助)라는 이름으로 마을로 내려와 소방대 메구미(め組)의 식객으로서 읍민과 교류를 하며, 세상에 만연하는 악을 베어서 처단한다는 [[권선징악]] 작품이다.
- 명예백인 . . . . 3회 일치
[[나치 독일]]에서는 [[일본]], [[이탈리아]]와 [[추축국]] 동맹을 맺게 되자 일본인은 명예 아리아인으로 대우 받게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와 함께 나타났으며, 아파르트헤이트의 폐지와 함께 일단 사라졌다.
- 명탐정 코난 에피소드 "ONE" 작아진 명탐정 . . . . 3회 일치
1996년 1월 8일 방송된 제트코스터 살인사건은, 줄거리는 신이치와 란이 놀이공원 트로피컬 랜드에서 데이트 하던 중 제트코스터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신이치가 추리로 범인을 밝혀내지만 용의자 가운데 진과 보드카에게 수상함을 느껴 미행하다가 어둠의 거래 현장을 목격, 검은 조직에 습격당해 독약을 먹고 어린 아이의 모습이 된다는 전개.
작아진 명탐정은 신이치와 란 이외에도 후에 등장하는 검은 조직, 소년 탐정단, 모리 코고로, 아가시 히로시, 검은 조직 시절의 셰리 등이 출연하게 되며 다음과 같은 전개가 추가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 신이치와 마지막 작별할 때 란의 보낼 수 없었던 마음
- 몬스리 . . . . 3회 일치
하이하버를 일시적으로 점령했을 시기, 그녀는 살아있는 개를 보고는 평소와 다른 온화한 모습을 보이고는 과거를 회상한다.
시기는 아직 그녀가 어렸던 시절에 부모님, 애완견 무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거대한 비행체 다수가 지나가는데 이후 기절해있다가 깨어나니 옆에 있었던 것은 무크 뿐이고, 눈앞에는 대지의 균열 등 참혹한 광경 뿐이었다. 이어서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바다의 장벽을 보고는 무크와 함께 피하려 하나 이미 무크는.. 결국 해일에 휩싸이고, 이후 바다에서 피난선에 발견되게 된다.
- 문숙(배우) . . . . 3회 일치
이후로 한동안 ~~이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7번 바뀌고 다음 세기가 될 때까지~~ 감감무소식이다가 2007년에 이만희 감독과의 사랑을 담은 회고록인 '마지막 한 해'를 출간했고, 2010년엔 [[하와이]]의 마우이 섬에서 자연치유사로 살아가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웰빙]] 열풍에 발간한 두권의 라이프스타일 책('문숙의 자연치유', '문숙의 자연식')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책에 나온 요리법을 보면 스타푸르츠, 기(Ghee), 심황, 오크라, 병아리콩, 염소치즈 등 우리나라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을 재료로 하고있어 따라 만들어 보기가 어렵다.
2014년 8월 4일엔 MBN [[최불암의 이야기 숲 어울림]]에 출연하여 미국에 정착하자마자 외국인과 결혼했었음을[* 현재는 이혼함], 이만희 감독을 잃은 슬픔을 [[요가]]와 명상을 통해 치유했음을 밝혔다. 2014년에 하와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 문지애 . . . . 3회 일치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 진행 첫 날인 2008년 1월 7일,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를 진행하는 동안 클로징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중징계를 받아 하루 만에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에서 하차했고,<ref>[http://www.dailian.co.kr/news/view/96911 문지애 아나, 뉴스 멘트 후 웃음 터뜨려], 데일리안, 2008년 1월 8일 작성.</ref> 2008년 1월 8일부터 [[하지은]] 前 아나운서가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를 진행하게 되었다.
- 미도리야 이즈쿠 . . . . 3회 일치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를 동경하는 소년. 초능력이 일상화되어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라 불리고, 만화 속에서나 나오던 히어로가 현실의 직업이 된 세계에서 소수가 된 무개성이다. 비록 무개성인데다 작은 체구에 소심해도 착한데다 위기를 보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등 히어로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세상은 박하게 대하고, 일단은 소꿉친구라 할 수 있는 [[바쿠고 카츠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보통.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최고의 영웅이자 어려서부터 동경해온 히어로인 [[올마이트]]와 만나 히어로의 길을 걷게 된다.
원래 아무 초능력 없는 무개성이었으나 올마이트와 만나면서 원 포 올이라는 개성을 얻었다.
* 어려서부터 언젠가 히어로가 됐을 때를 대비해 개성 보유자들을 관찰해와서 그런지 분석 실력이 우수하다. 그러다보니 필기도 자주 한다.
- 미스터 하이드 . . . . 3회 일치
원래 뛰어난 의학자였으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실제 이야기라 믿으면서 일이 꼬였다. 재보는 [[인간]] 본성의 짐승 같은 면을 해방시키는 화학 공식을 발견하는 연구에 몰두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고용주들에게서 갈취했고, 이걸 안 도널드 블레이크는 그의 고용을 거절했다. 그리고 분노한 그는 도널드 블레이크에게 복수를 다짐하여 연구에 몰두해 몇 달 뒤, 연구에 성공했다. 특수약품을 만든 재보는 이 약품을 써서 사악함과 괴력을 지닌 미스터 하이드가 되었고 자신을 진정한 악의 의인화라 믿으며 도널드 블레이크를 자신의 첫 번재 희생자로 점찍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도널드 블레이크는 [[토르]]의 인간 모습.(...)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모티브란 점에서 [[헐크]]와의 공통점이 있다. 단, 이쪽은 빌런.
- 미이라(2017년 영화) . . . . 3회 일치
[[유니버설 픽처스]]의 영화. [[다크 유니버스]]의 첫번째 영화이며 유니버설의 대표적인 클래식 몬스터 중 하나인 [[미이라(영화)|미이라]](Mummy)[* Mummy는 '투탕카멘의 저주'와 마찬가지로 서구인들의 환상이 빚어낸 존재로, 원래의 미이라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를 다룬다. 감독은 알렉스 커츠만.
과거 30년대에 유니버설에서 만든 영화 미이라, 총 3편의 미이라 영화 시리즈와는 별개의 영화이다. 정확히는 30년대에 미이라가 나오고 이후 리메이크해서 3편의 미이라 시리즈, 이후 다크 유니버스를 준비하면서 새 미이라 영화가 나온 것.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 . . 3회 일치
* 바이오하자드 머서너리즈 VS. (2011)[* 더 머서너리즈 3D와는 다르게 [[iOS]]로 발매됐다.]
게임 내용은 부도덕한 거대 기업 [[엄브렐러]]가 몰래 개발하던, '생물체를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괴물로 변이시키는' 바이러스 병기가 유출되어 사람은 물론 벌레까지 감염되어, 게임 배경이 [[좀비]]와 별 희한한 괴물들로 득실대는 막장이 된 와중에 용감하고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들(경찰 관계자인 경우가 많다.)이 각종 화기를 능숙하게 휘둘러 온갖 몬스터를 처치한 후 탈출하는 것이다.
- 바키도/106화 . . . . 3회 일치
무사시와 피클은 손에 손을 맞잡은 상태에서 대치한다.
* 무사시와 피클은 악력을 겨룬다.
* 피클은 백악기 시절 무엇이든 움켜쥐는데 익숙했지만, 지금처럼 맞잡을 수 있는 상대와 싸우는건 최초였다.
- 바키도/125화 . . . . 3회 일치
* 도쿠가와는 무사시가 승락해야 대결이 성립한다고 말하고 무사시는 뜸을 들인다.
* 그러나 도쿠가와는 또 절차상 문제를 거론한다.
* 무사시, 모토베와 정식으로 승부에 나선다.
- 바키도/126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무사시는 그가 담배와 술에 복어독을 타놨음을 간파한다.
* 그와 함께 모토베는 술병으로 무사시를 가격하고 연막을 피운다.
* 도쿠가와는 이런데서 피는 놈이 어딨냐며 난처해한다.
- 바키도/135화 . . . . 3회 일치
* 트럼프는 단 한 명의 남자와 미국이 불가침 조약을 채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지 않는다.
* 전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백악관에 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그는 "오거"라는 이름을 전해듣지만 아는 바는 커녕 관심도 없다. 하지만 그와 불가침선언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이없어하는데.
* 그로부터 2주일 후 뉴욕의 어느 호텔. 역사적인 트럼프 행정부와 한마 유지로의 "불가침 선언" 채결일. 트럼프는 훗날 자서전에 이렇게 쓰고 있다.
- 박경석 (1960년) . . . . 3회 일치
'''박경석'''(朴敬石<ref name=hanshin>[http://www.bokjiro.go.kr/news/allNewsView.do?board_sid=308&data_sid=68170 한신대 교수된 '장애인 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ref>, [[1960년]] ~ )은 [[대한민국]]의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다. 현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 [[2002년]]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와 관련하여 [[서울지하철]] 철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가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ref name=pressian>[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6845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몸…당신은 자유로운가], 《[[프레시안]]》, 2014년 5월 4일</ref>
*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에 초청되어 대통령에게 장애인 인권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다가 경호실 직원들에 의해 퇴장당한 사건이 있었다.<ref name=khan />
- 박녹주 . . . . 3회 일치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반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상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남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23세인 [[1928년]]부터 음반을 취입[* 콜럼비아에서 취입한 것으로 단가 대관강산과 심청가 중 선인 따라가는 대목을 취입하였다.]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성악연구회에도 참여하여 춘향전, 흥보전, 심청전, 숙영낭자전, 배비장전 등 창극의 여주인공으로 자주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44세가 되던 [[1948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어 당시 창극 활동을 했던 여성 명창의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고, 국극의 연출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1948년 눈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해방 이전부터 접했던 [[아편]] 중독 증세로 인해 병고와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제자로는 김소희, 박송희, 조순애, 장영찬, 박초선, 성창순, 성우향, 한농선, 이일주, 조상현, 이옥천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박송희와 한농선이 그의 뒤를 이어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김소희, 성창순, 성우향, 조상현 등은 중요무형문화재 춘향가 및 심청가의 예능보유자로, 이일주, 이옥천 등은 각기 시도지정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는 등 굵직한 명창들을 길러냈다.
- 박동진 (1922년) . . . . 3회 일치
'''박동진'''(朴東鎭, [[1922년]] [[10월 11일]] ~ [[2013년]] [[1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외교관, 국회의원이다.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11대와 12대 전국구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주오 대학]]을 학사 학위하였다.<ref>{{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6_30065|박동진|朴東鎭}}</ref>
1951년 외무부에 들어와, 의전국장, 주 영국 참사관, 외무부차관, 주 월남 대사, 주 브라질 대사(1962년 10월~1968 2월)<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82100329201006&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62-08-21&officeId=00032&pageNo=1&printNo=5173&publishType=00020 브라질 大使에 朴東鎭氏] 《경향신문》1962년 8월 21일, 1면. <!--“最高會議 第63次 常任委員會는 21日 越南共和國駐箚大使 朴東鎭氏를 「브라질」合衆國特命全權大使로,...”--></ref><ref>{{서적 인용 |저자 = 외교통상부 |제목 = 한국 외교 60년 |url = 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장 = 부록 |확인날짜 = 2015년 2월 21일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3211841/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보존날짜 = 2016년 3월 3일 |깨진링크 = 예 }}</ref>{{Rp|496}}, 페루 겸임대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0429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04-29&officeId=00020&pageNo=1&printNo=13079&publishType=00020 朴東鎭브라질大使 駐『페루』大使兼任]〉 《동아일보》(1964년 4월 29일) 1면 <!--“政府는 駐「브라질」大使朴東鎭씨를 駐「페루」大使도 겸임토록 28일하오 國務會議에서 議決했다.”--></ref>, 주 제네바 대사, 주 유엔 대사,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11대.12대), [[대한민국 통일부|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다. 외무부장관으로서, 1976년 3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리타우딘 말레이시아 외무부 장관과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319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3-19&officeId=00032&pageNo=1&printNo=9377&publishType=00020 |제목= 貿易強化에 합의...韓․말聯 공동성명 |출판사 = 경향신문 | 날짜 = 1976-03-19 |인용문=<!--朴東鎭외무부장관과 리타우딘 말레이시아외상은 19일 공동성명을 발표, 평화․자유․번영이라는 공동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제국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朴장관은 지난 17일부터 3일간 말레이시아를 공식 방문한 후 발표한 이 성명에서...--> }}</ref> 1988년 4월 22일 한국 정부는 박동진을 주미대사에 임명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4220020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4-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0477&publishType=00020| 제목 = 駐美大使 朴東鎭씨| 날짜 = 1988-04-22| 출판사 = 동아일보}}</ref> 박동진은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었으나, 주미대사로 부임함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하였고, 민정당 전국구 예비후보 11번인 김종열이 5월 13일자로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 박세직 . . . . 3회 일치
[[외국어]]에 능통하였으며, [[영어]]를 비롯해 [[불어]]와 [[일어]]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계급)|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상태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본의 아니게 2017년 10월 10일, 다시 큰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박세직의 손녀와 수영선수 [[박태환]]의 교제 사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 축하한다는 반응도 많지만 교제 상대의 조부가 [[하나회]] 출신 주요인사라는 것이 주목받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 박정수(정치인) . . . . 3회 일치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백남억]] 후보를 누르는 한편 무소속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참고로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은 1973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되어 남편 박정수보다 일찍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변정일]], [[김수(정치인)|김수]], [[박용기]], [[함종빈]], [[윤재명]], [[정휘동]], [[임호(정치인)|임호]], [[임영득]], [[한갑수(정치인)|한갑수]], [[홍성우(1941)|홍성우]], [[권오태]] 등과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나서도 정치규제를 당하지 않아서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정의당 [[김상구]] 후보와 [[신한민주당]] 이재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박창달 . . . . 3회 일치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탈락,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였으나 새누리당 [[곽상도]]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동열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 박하나(배우) . . . . 3회 일치
|| [[금 나와라, 뚝딱!]] || 김 대리 || 조연 ||
|| 7월 10일 || MBC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SOS 해양구조대]] || [* 듀엣 파트너인 [[상큼한 산토리니]]와 한 표차 접전을 벌였으며 마지막에 투표한 [[공찬]]의 선택으로 승부가 갈렸다. 그녀는 가수 활동 때 음이탈을 저지르는 바람에 무대 공포증을 크게 겪은 게 있어서 [[음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나왔음을 밝혔다.] ||
* [[2018년]] [[7월 25일]] 언론을 통해 일반인 [[한의사]]와 열애설이 보도됐고, 소속사인 FN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열애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109&aid=0003830365|#]]
- 박홍우 . . . . 3회 일치
* 재산권 제한의 법리와 그 적용한계, 재판자료 제77집: 헌법문제와 재판(하), 법원도서관 (1997)
*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배분, 헌법재판의 회고와 전망, 헌법재판소 (1998)
- 방이설화 . . . . 3회 일치
신라시대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 방이는 가난하여 구걸을 했지만 동생은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종자를 구걸했는데, 동생은 성격이 심술궃어서 누에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방이는 그걸 모르고 누에와 씨앗을 열심히 가꿨는데, 누에알 가운데 하나에서 태어난 누에 한 마리가 소처럼 커졌으며, 질투가 난 동생은 누에를 죽였는데 사방에서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만들어줘서 방이은 큰 부자가 됐다.
종자에서 이삭이 하나만 났는데, 새 한 마리가 이삭을 물고 달아나서 방이가 새를 쫓아 산 속에 들어갔다. 거기서 방이는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금방망이를 꺼내서 돌을 두드려 바라는 대로 음식을 꺼내는걸 보게 된다. 방이는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놓고 간 금방망이를 주워가서 돌아와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된다.
- 백결 선생 . . . . 3회 일치
《[[삼국사기]]》에는 가문의 이력을 알수가 없다고 나와 있으나 《[[부도지]]》,《영해 박씨 족보》 등에 따르면, 그의 본명은 '''박문량'''(朴文良)이며, 414년(실성마립간 13)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제상]]의 아들이며, [[자비왕]] 때 [[경주시|금성]] 낭산 기슭에서 살았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생애에 대해 별다른 기록이 나와있지 않으며, 몹시 가난하여 옷을 백 군데나 끼워 입었기 때문에 백결 선생(百結 先生)이라 불리었다. 영계기를 존경해 거믐고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자 했다고 한다. [[섣달그믐날]] 아내가 이웃집 떡방아 소리를 부러워하자, 떡방아 대신에 아내에게 들려준 떡방아 소리인 〈대악〉(碓樂)이 유명했다고 한다.
《영해 박씨 족보》등에만 나와있는 기록으로는 관직을 떠날 때 귀향곡인 〈낙천악〉(樂天樂)이 있다고 한다. 청렴하고 결백했으며 궁중으로부터의 일체의 후원을 거절하고 스스로 궁색한 생활을 즐기다가 말년에는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 백남억 . . . . 3회 일치
1939년 조선총독부 철도국(鐵道國)에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46년 대구대학교(청구대학교와 통합된 현 [[영남대학교]]) 법학과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14년 동안 법학교수로 활동하며 [[형법]] 과목을 담당하였고,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항명파동으로 박정희의 분노를 사면서 자연스레 4인체제는 무너졌고, 백남억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상주시|상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김윤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박정수(정치인)|박정수]] 후보와 정휘동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자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 백승민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8년]] [[6월 21일]]<br>[[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대구]] 대 [[SK 와이번스|SK]]전
[[2014년]]에 입단하였다. [[2018년]] [[6월 21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 베를린 보병여단 . . . . 3회 일치
이름 그대로 베를린, 그 중에서도 서방 국가들의 구역이었던 서베를린에 주둔하는 부대이다. 주요 부대로는 1989년 기준으로 세개 [[기계화보병]] 대대와 [[치프틴 전차]]를 운용하는 한개 기갑 대대가 있었다. 이외에 방공부대, 공병부대, 헌병부대와 같은 지원 부대가 있었다. 항공 전력으로는 헬리콥터와 훈련기가 있었는데, 이 중 훈련기는 주독소련군과 연락하는데 사용되었다.
- 벨트스크롤 게임 . . . . 3회 일치
레버 조작법은 대개 ←→으로 좌우로 이동. ↑는 화면 안쪽(위쪽)으로 이동, ↓는 화면 바깥쪽(아래쪽)으로 이동한다. 횡이동을 거쳐서 같은 선에 위치하지 않으면 플레이어와 적은 서로 공격을 할 수 없다. 라인 이동의 개념이 있다는 것이 횡스크롤 과의 차이점이다.
버튼은 주로 2개, [[점프]]와 [[공격]]에 할당한다. 또 [[점프]]와 [[공격]]을 동시에 누르는 것으로, 일종의 필살 공격을 쓸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90년대 오락실에서 탈출기라든가 필살기, 발악기 등으로 부르는 공격이 그것.]
- 병거 . . . . 3회 일치
[[청동기 시대]]의 병거는 여러 마리의 말이 끄는 2륜 마차가 주로 쓰였다. [[마부]]와는 별도로 [[활]]로 적을 저격하는 [[궁사]]가 탑승하였는데, 대개 이 궁사가 병거가 가진 전투력에서 핵심이자 리더를 맡았으며 병거를 탄 전사들은 청동기 문명에서 [[귀족]] 계급을 차지하였다. 전장에서는 빠른 기동성과 돌파력으로 보병을 이끌었다.
그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과 속도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보병이 여러 마리의 말이 끌고 고속으로 이동하는 병거에는 근접하기 어려웠다. 병거에 탑승한 귀족 전사는 노련한 솜씨로 [[활]]을 쏘며 보병을 저격할 수 있고, 설사 보병이 병거에 근접한다고 해도 병거에 탑승한 전사는 병거의 높은 위치와 빠른 속도를 활용하면 유리한 위치에서 폴암류의 장병기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위력적인 병거의 개발과 생산, 운용에는 많은 수의 말의 보유, 마차의 제조와 유지, 전사의 육성 같은 과제가 필요하여 고등한 문명 지역에서만 대규모로 운용될 수 있었다.
- 보루토/4화 . . . . 3회 일치
* 귀가한 보루토는 히마와리와 히나타의 축하를 받는다.
* 백병전은 보루토와 막상막하지만 풍선껌을 사용한 인술을 쓰면서 우세해진다.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3회 일치
>아이를 낳아서 아이를 길러서 사회에 나와서 일하고 세금 내주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일본은 뭐가 불만이야?
[[아사히 신문]]의 기자가 이메일로 블로그 소유자와 연락한 바에 따르면, 블로그 소유자는 [[도쿄]]에 거주하는 30대 초반 여성이라고 자칭했으며, 남편과 1세가 되는 남자아이와 3인 가족이서 생활하고 있고, 사무직 정규직으로 4월에 복직할 예정이었으나 보육소에 아이를 넣을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하였다.
- 보쿠걸/97화 . . . . 3회 일치
미즈키는 타케루와 신사참배를 하러 간다.
* 미즈키와 타케루는 축제를 보러 가는데 미즈키가 유카타를 입고 나온다
* 미즈키의 아버지와 타케루의 아버지는 아는 사이로 악우 사이
- 보쿠걸/98화 . . . . 3회 일치
신사참배를 마치고 나오던 중, 미즈키는 로키와 마주친다.
* 토르와 함께 나타난 로키는 미즈키에게 자신이 신이라고 밝힌다
* 로키는 모래시계를 주면서 "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 다이쥬 고교의 거대한 거울 앞에 서서 남자와 여자, 어느 쪽으로 살지 보이면 그대로 고정될 것"이라 한다.
- 블랙 클로버/104화 . . . . 3회 일치
*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야미를 따라와 샬롯과 마주치는데,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연적을 감지하고 대결모드에 들어간다.
* 취한 샬롯은 어떤 마도사에게 저주를 받은 기억을 회상하는데, 18세가 되면 발동해서 그녀와 주변 사람들 모두를 시간의 감옥에 가두는 무서운 저주다.
* 추근거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죄로 초죽음이 된 버밀튼 남작.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푸른 들장미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였다. 샬롯은 가문으로도 개인의 역량으로도 버밀튼 남작을 한참 능가하는 알파걸이었고 그녀 자신도 그걸 무기 삼아 신랄한 독설로 멘탈을 부숴뜨린다. 육체와 멘탈 양면에서 죽기 직전에 놓인 버밀튼 남작.
- 블랙 클로버/111화 . . . . 3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는 노엘에게 그녀의 어머니 [[아시에 실버]] 이야기를 해주며 그녀와 다른 방식으로 강해지길 기원해준다.
* 한편 메레오레오나의 술권유를 어떻게든 뿌리친 샤론은 문득 칸막이 너머를 상상하는데, 거기서 [[야미 스케히로]]가 알몸으로 어슬렁거릴 생각을 하자 열이 올라서 그대로 리타이어. 마론이 식혀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한다. 탕에는 메레오레오나와 노엘만 남는데, 메레오레오나 측이 노엘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녀는 넌지시 "점점 더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말을 건다. 마치 그녀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 노엘은 워낙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은 탓에 별다른 기억이 없었다. 주위에서도 그녀에게 어머니에 대한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메레오레오나는 생각 끝에 조금 이야기를 해주는데, 뜻밖에도 대단히 강한 여전사였다 한다. 메레오레오나와 자주 대련하기도 했는데 전장에선 무패를 자랑했던 그녀가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시에 실버]]. 강철의 전희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 블랙 클로버/118화 . . . . 3회 일치
* 집사 발터는 그 집안에선 유일하게 릴에게 다가와 주었고 그림으로 인한 사고에도 아랑곳없이 그의 기량을 끌어내도록 도움을 주었다.
* 3시합을 마치고 쉬고 있던 E팀은 막간을 이용해 식사를 한다. 원래 잘 먹는 [[하몬 카세우스]]와 먹는거 마저 경쟁하는 [[레오폴드 버밀리온]] 사이에서 [[핀랄 룰러케이트]]는 식욕도 없는데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넣는다.
* X가 빛을 발하더니 가면이 부서지면서 유명인사가 등장한다. 물빛의 환록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회화마법을 구사한다는 역대 최연소 단장. X의 정체가 릴이라는데 놀라는 것도 잠시, 로열 나이츠 선발 시합에 단장이 직접 나왔다는데 도마에 오른다. 정말로 단장이 기사단도 팽개치고 나와도 되는 건가? 적어도 마법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명목상으론 "단장을 쓰러뜨리고 이름을 떨칠 찬스"를 준다는 거지만 실상 릴의 마법을 볼 수 있다는 덕후기질 발동이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명목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이럭절거 설득된다. 하긴 굳이 그를 쓰러뜨려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해볼만한 싸움일 것 같기도 하다.
- 블랙 클로버/125화 . . . . 3회 일치
* 네르슈는 높은 상공을 날면서 대량의 마법을 날려 아스타와 크리스탈까지 처리하려 하는데, 잭스는 여기에까지 대응책을 마련해놨다.
* 미모사는 오빠를 찾아와, 하층민들이 일견 빈곤해 보여도 그들의 "진정한 상냥함"은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하고 마지막까지 건투한 오빠 또한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 이런 이야기를 들은 네르슈는 경기 중 전력을 다해 싸웠던 아스타와 매그너의 모습을 떠올리며 "확실히 아름다웠다"고 인정하게 된다.
- 블랙 클로버/56화 . . . . 3회 일치
* 한편 마법제는 따로 누군가를 남기는데, 그건 [[야미 스케히로]]와 [[아스타]]였다.
* 산드라 수녀는 다행히 회복했다. 고슈 아들레이는 문병을 와서 서로 "죽다만 할망구"니 "전과자시스콤"이니 디스를 주고 받는다.
* 레베카는 [[노엘 실버]]와 아스타가 티격대는걸 보고 함께 싸워줄 수 없는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첫키스는 받아겠다며 난데없이 아스타에게 키스한다.
- 블랙 클로버/60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이긴다면 마석도 주고 미녀와 미주, 맛난 음식을 듬뿍 주겠다"는 꼬심발림에 넘어가 일동의 의욕이 샘솟는다.
* 아스타는 이와중에도 "나만은 똑바로 임무를 수행할 거다"라고 츳코미를 날리다 야미한테 "숨막힌다"고 쳐맞는다.
* 각 단원별로 실력발휘를 해야 하니 각각의 특기와 마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걸로 예상된다.
- 블랙 클로버/73화 . . . . 3회 일치
* 카호노와 키아토도 회복 중. 키아토는 노엘 실버에게 반해버린다.
* 대신관은 카호노와 키아토를 붙들고 오열.
* 노엘 실버는 카호노와 키아토를 문병하러 왔다.
- 블랙 클로버/74화 . . . . 3회 일치
* 카호노와 키아토는 완치되진 못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 야미는 마법제에게 보고와 포로 인계를 위해 챠미를 데리고 수도로 향한다.
* 그런 와중에도 검은 폭우는 사상자 없이 임무를 달성하고 백야의 마안을 격파하는 공적을 세웠다며 크게 칭찬한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3회 일치
* 여왕은 장담한 대로 힘을 보여달라고 추궁하고 아스타는 팔을 고쳐줘서 고맙다고 답한다. 판젤 크루거 일행은 안면이 있는 마르스와 접촉하려고 시도하는 듯 하다. 아스타는 죽지 말라고 격려하는데 판젤이 아직도 팬티바람이라 옷 좀 입으라고 한다.
* 부관격으로 보이는 변태 같은 마도사가 있는데, 이 녀석은 파마의 힘과 미모를 칭송하며 "한 번 상대하고 싶다"고 섹드립이나 날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마녀들을 끌고 가서 노예로 쓰겠다며 부하들을 출동시킨다. 부하들은 포박 계통의 마법으로 마녀들을 잡아간다. 어린 마녀 하나가 적에게 잡히는데 아스타가 바네사 에노테이커, 핀랄 룰러케이트, 노엘 실버와 함께 현장에 도착, 마녀를 포박한 마법을 베어버리며 구출한다. 하지만 마녀의 숲의 마녀들을 남자를 싫어해서 구해준 아스타를 할퀴고 달아나 버린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원래 그런 나라라며 대신 사과한다.
* 파나는 급히 두 번째 불구슬을 토해서 막아낸다. 아스타는 그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는데 핀랄과 바네사가 보조해 무사히 착지한다. 파나도 폭발에 휘말리긴 마찬가지. 아스타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아스타는 몇 번을 와도 몇 번이든 튕겨내주겠다고 호언한다.
- 블랙 클로버/90화 . . . . 3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90 '''배반자와 속죄'''
* 그의 마법은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라드로스에게 퍼붓던 마법은 수챗구멍으로 물이 빨려들어가듯 흡수돼 버렸다. 라드로스는 젤이 사라진 이후 군에서 특수한 개조를 받았다. 그건 "흡수와 방출". 자신이 받는 공격 마법을 흡수해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젤은 가까스로 도미나를 구하는데 성공했지만 치명상을 입었다. 그의 바람마법이 지켜줬지만 도미나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라드로스가 젤을 발견하고 내려와 그를 걷어차며 "소중한 사람이 정말 있었는데 당신은 여기 자빠져서 뭘하는 거냐"고 조롱한다. 그리고 젤을 괴롭히기 위해 그의 소중한 사람, 도미나를 잡아 올린다. 라드로스는 도미나의 얼굴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과 같이 도망쳤던 애인" 이라고 알아본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3회 일치
* 마르스가 반마법까지 알고 있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란 젤. 하지만 의문은 뒤로 미루고 우선은 그 사용자가 반대편에 와있다며 라드로스를 유인하자고 한다.
라드로스는 마르스의 힘까지 흡수한 이후 더욱 기세등등해서 마법을 난사한다. 하지만 그의 방심을 이용해 접근한 마르스와 젤은 강화마법이 달린 펀치로 라드로스를 떨쳐내고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을 찾아 속도를 낸다.
* 아스타는 젤 일행이 마르스, 라드로스와 함께 나타나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린다. 파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령마법을 날린다. 젤은 재빨리 아스타가 얘기해준 적이 있던 "마법을 튕겨내는" 반마법 검의 특성을 떠올리고 아스타에게 자기들 쪽으로 마법을 튕겨내게 한다.
- 블리치/688화 . . . . 3회 일치
* 오리히메는 과거 폭주와 같았던 호로화를 우려하며 이치고의 이름을 부르는데
* 원래 단독으로 퀸시와 사신, 호로의 힘을 제어한 신 호로화를 쓸 수 있어야 하지만, 아직 퀸시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탓에 일부러 유하바하의 퀸시의 힘을 얻어맞은 것이다.
* 이치고는 오리히메에게 물러서게 하고 유하바하와 다시 싸운다.
- 블리치/695화 . . . . 3회 일치
* 이치고와 렌지는 유하바하에게 덤벼드나 만해가 부숴지고 팔까지 잘린다.
* 그러나 아이젠은 그가 "보이는 것"이라 말하는데, 갑자기 완전히 회복된 이치고와 천쇄참월이 유하바하의 목을 날린다.
* 그의 저항은 기분 좋았다며, 소울소사이어티와 함께 멸망하라고 말하는데
- 빅터 차 . . . . 3회 일치
차문영에게는 빅터, 마이클이라는 두 아들이 있으며, 브롱스 리버베일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빅터 차는 아버지와 똑같이 콜럼비아 대학에 진학했고, 정치학 학사와 박사학위를 얻었다. 또한 영국 옥스퍼드에서 석사 학위를 얻었다.
그의 부인은 군인,정치인 김식의 딸이다. 김식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으며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 동기이다. 군에서 소장으로 전역했으며, 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으로 당선됐다. 13대에서는 낙선했고, 14대에서는 [[민주자유당]], 15대에서는 [[신한국당]]에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http://ko.pokr.kr/person/1933151 (참조)]] 13대에서 낙선한 이후로 농림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 사택 . . . . 3회 일치
회사가 직원에게 저렴한 임대로로 대여하는 주택. 가족 지향은 사택, 단신자용은 기숙사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사택은 기업이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와, 일반 임대 주택을 기업이 빌려서 직원에게 임대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후자의 경우, 이를 아웃소싱 해서 처리하는 사택 대행 서비스도 있다.
1. 복리후생: 복리후생의 일환으로서, 직원의 충성도와 동기를 높일 수 있다. 사택이 있는 회사에서는 싼 값에 주택을 임대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원 입장에서는 그 만큼 소득이 늘어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자산가치의 정확한 평가와 법인세 및 소득세의 확장을 위해서인데,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는 건물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장부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을 우려가 크다. 또한 직원 복리후생을 통해 법인세를 공제받음에 있어 일본의 적정임대료 책정 방식은,
- 샤잠 . . . . 3회 일치
주력 빌런은 [[닥터 시바나]]와 [[블랙 아담]].
* 해당 캐릭터의 이름은 본래 '캡틴 마블'이었으나 마블 코믹스 소속이 아니라 포셋에서 DC에 옮겨진 캐릭터다. 마블의 캡틴 마블은 따로 있다. 한편 이름과 관련해서 에피소드가 있는데 사정 탓에 코믹스아 못나오다 나중에 연재개 재개되었을 시기에는 이미 마블에서 캡틴 마블을 내와 DC는 '파워 오브 샤잠'이란 제목을 써야 했다.
* DC와 포셋의 법정공방 탓에 캡틴 마블 연재에 지장이 오자 영국에선 대체 캐릭터인 마블맨이 나왔다. 이 마블맨은 후에 미라클맨이 되었으며 소속은 마블 코믹스.
- 서림 . . . . 3회 일치
황해도 순경사(黃海道巡警使) 이사증(李思曾)이 임꺽정의 형 가도치(加都致)를 허위로 임꺽정이라고 속여서, 임꺽정을 체포하였다고 조정에 알렸다. 그런데 서림이 체포당한 가도치와 대질하여 그의 정체를 알렸기 때문에 이사증은 오히려 벌을 받게 된다.
국조보감에서는 실록의 기록과는 약간 다른데, 서림은 숭례문에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임꺽정 일당이 [[구월산]]에서 포위되자 관군에 승산이 없음을 알고 산을 내려와서 투항한다. 그리고 임꺽정 일당의 정보를 남치근에게 고해바친다. 여기에서는 서림을 '모주(謀主)'라고 하여, 그가 임꺽정의 모사꾼임을 언급하고 있다.
조선 인종 때 문신 박동량(朴東亮)이 저술한 기재잡기(寄齋雜記)에서도 임꺽정의 죽음과 관련되어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만 실록의 기록과는 상당히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며, 기록된 시기가 명종 시기와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설화적인 측면이 강한 기록으로 볼 수 있을듯 하다.
- 서명선 . . . . 3회 일치
영조 후반기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오르고 의주부윤으로 나갔다가 이후 강원도관찰사와 [[이조참의]]를 거쳐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도승지]] 등을 지낸다. 이어 강원도[[Javascript:hplink('18365')|관찰사]] 등을 거쳐 [[Javascript:hplink('78690')|부제학]](副提學)에 오르고 1774년 [[Javascript:hplink('127923')|이조]]참판 때, 세손(世孫: 正祖)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던 재상 [[Javascript:hplink('172387')|홍인한]](洪麟漢)을 탄핵, 파직시키고 [[Javascript:hplink('136845')|정조]]를 즉위하게 했다.
정조 때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내고 [[좌의정]]과 [[영의정]]을 또 한 차례 지냈다. 그리고 나중에 판중추부사와 영중추부사로 물러난다.
[[영의정]]과 중추부영사를 지낸 그는 [[조선 영조|영조]] 임금 때와 [[조선 정조|정조]] 임금 때의 원로대신 가운데 한 사람이며 [[시 (문학)|시인]]으로도 활약하였다.
- 서훈 (1942년) . . . . 3회 일치
경북대학교 법대 재학시 총학생 회장으로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고 ROTC 대위로 전역한 이후 신민당 시절 김영삼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번번히 낙선하였다. 영남지역 재야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 가난한 지역학생들을 위해 팔공 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랬동안 운영하였다. 1990년에 김영삼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때 이를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 총재와 결별하게 된다.
가족으로는 처 김리례와의 사이에 2남 1녀(첫째 서정진, 둘째 서정현, 세째 서정봉)를 두었다.
- 선거인단 . . . . 3회 일치
선출된 선거인단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후보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각 주의 선거에서 선출된 후보와는 별개의 인물에게 투표하는 것이 가능하다. 몇몇 주에서는 이러한 행위에 처벌 규정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관례적으로 선출된 후보를 선택하며 배신 투표는 지극히 드물다.
현대에는 선거인단 제도로 인하여 실제 투표수와 왜곡되는 경우가 있어, 이러한 측면에서 논란이 있다. 실제 투표수는 더 많이 받은 후보가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밀려서 패배하는 사례가 21세기에 몇 차례 나타나고 있으며,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직접 투표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선거인단 제도의 개혁론이 제기되고 있다.
- 세속주의 . . . . 3회 일치
세속주의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특정 종교의 규범이 국가기관을 통하여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반대한다. 세속주의는 국가기관이 어떤 형태로든 종교 단체와 관련되는 것을 비판한다.
세속주의 단체에서는 세속주의가 [[민주주의]]와 [[평등]]을 옹호한다고 본다
세속주의는 [[무신론]]과 혼동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무신론과는 달리 세속주의는 개인적인 생각 보다는 정치와 사회 구조에 집중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믿어도 상관없지만, 국가적으로 특정 종교를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손치은 . . . . 3회 일치
손치은은 [[김용무]], [[김병로]] 등과 함께 무료 변호로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ref>{{뉴스 인용
}}</ref> 존경을 받았으며, [[김창숙]]이 항일 운동 중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압송되었을 때도 김용무와 함께 변론을 자처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⑫] 안동 가와카미(川上) 순사 살해사건
- 송하윤 . . . . 3회 일치
|| [[아기와 나(한국 영화)|아기와 나]] || 김별 || [* 김별 이란 예명으로 활동 당시 배역명과 예명이 동일해 화제가 되곤 했다.] ||
|| [[2004년]] || 한국와이어스 || [[챕스틱]] || ||
- 스틸오션/미국 . . . . 3회 일치
>영국 구축함에 기반을 두어 건조된 패러것급 구축함은 전간기 설계를 사용한 첫 미국 구축함이다. 대형 선실과 연돌 두개를 장비한 패러것급 구축함은 5인치 함포와 Mk.37 사격통제장치로 무장하였다. 초기 패러것급은 다섯개의 포탑을 장비했다. 모너핸(Monaghan)은 진주만 공습 당시 폭뢰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켰다.
>해군력 이론가인 알프레드 마한 제독(Admiral Alfred Mahan)의 이름을 딴 마한급 구축함은 패러것급의 강화형이다. 강화된 어뢰 발사관이 특징인 마한급 잠수함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미해군의 주력으로 활동했다. 마한은 마셜 제도와 길버트 제도 습격에 참가했으며,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항공모함 호넷(Hornet)을 엄호했다. 마한은 전시동안 다섯개의 수훈성장을 받았다.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은 미해군이 운용한 마지막 "조약형" 순양함이다. 7척의 뉴올리언스급 함선이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했다. 살보섬 해전에서 3척의 뉴올리언스급이 침몰했다. 아스토리아(Astoria)는 65발의 포탄을 맞고 격침되었으며 퀸시(Quincy)와 빈센스(Vincennes)는 어뢰에 격침되었다.
- 식객 . . . . 3회 일치
식객이 복수를 한 사례로는 전국시대 초기에 조양자[* 위씨, 한씨와 함께 진(晉)나라를 3등분하여 '조, 위, 한' 중 조나라를 건국한 인물.]에게 패사(敗死)한 지백의 식객 '예양'의 사례[* 조양자를 시해하려다 연거푸 실패하고 붙잡히자 조양자의 옷이라도 베길 원한다고 말해 원을 풀고 자결한다. 공교롭게도,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조양자는 병이 들어 죽고 만다.]와, 삼국지에 나오는 [[손책]]이 [[허공]]을 죽이자, 그 식객들 가운데 몇몇이 손책을 암살한 사건이 있다.
*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은 본래 의미와는 달리 '미식가' 쪽에 가깝다.
- 식극의 소마/158화 . . . . 3회 일치
* 쿠스노키는 쿠로키바가 선발 결승에서 낸 요리와 근본적으론 같으나 격이 다른 완성도의 요리라면서 쿠로키바는 그때로부터 성장한게 아무 것도 없다고 디스한다
* 당혹해 하는 쿠스노키에게, 쿠로키바는 "선발 결승 때와 다르다는 걸 가르쳐주겠다"고 선언한다.
* 대망의 리액션 파트지만 평소와는 달리 심사의원 중 여자가 한 명도 없는 데다 리액션으로 벗은 쪽은 어째선지 쿠스노기.--초심을 잃었네--
- 식극의 소마/163화 . . . . 3회 일치
소마와 츠카사의 대결이 임박한다.
* 소마는 "누구의 방해도 없는 1석과의 식극"이라며 들떠하는데 사실 복도에서 에리나와 히사코가 숨어있는건 눈치채고 있다.
* 그는 재료를 아주 소중하게 다뤄서 마치 재료와 대화하는 듯 하다.
- 식극의 소마/169화 . . . . 3회 일치
* 에리나는 그날 죠이치로의 요리는 소마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이 훌륭한 요리였다며 레시피도 모르는 소마가 뭘 할 수 있냐고 툴툴댄다.
* 소마는 즐겁다는 듯 요리를 시작하고 에리나는 그걸 보고 십걸 제 1석 츠카사와 싸울 때도 즐겁다는 표정을 지었음을 상기한다.
* 아리스와 학원에 입학할 때도 아리스는 의욕에 불타는데 비해 자신은 진심으로 즐겁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우울해했다.
- 식극의 소마/197화 . . . . 3회 일치
* 죠이치로는 콩쿠르에서 토마토 육수와 발효 버터를 사용한 스키야키풍 소고기 요리를 선보인다. 심사를 맡은 요정 "쿠라키"의 후계자 쿠라키 시게노는 어떤 요리든 의연한 태도로 먹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시식에 들어간다. 그러나 여지없이 탈의되면서 굴복. 이번 콘테스트도 죠이치로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죠이치로 본인은 딱히 기쁘지도 어떻지도 않은 것 같은데.
지금 그의 상대를 해주는건 도지마나 아자미, 그리고 당시 2학년이자 십걸 4석의 [[에비사와 리코]] 정도였다. 그 밖에는 전부 학원 밖 콩쿠르 등에서 날뛰는 것 정도.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망의 THE BLUE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기대와 기대가 모여서 터무니없는 높이가 되어 있다. 모두가 그를 격려하고 내일의 선전을 기대하는 말들 뿐이다. 그 중에서도 현재 죠이치로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는 것은 후미오 여사 뿐이다. 그녀는 긴말 없이 일단 푹 쉬고 THE BLUE 이후엔 쉬는 걸 고려하라고 말한다. 평소 그를 걱정했던 도지마 조차도 석연치 않은 부분을 감지한 것 같지만 결국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함께 돌아간다. 그를 우러러 보기만 하는 아자미는 "당신의 진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기쁘다"라는, 가혹할 정도의 기대를 떠넘기고 간다.
- 식극의 소마/198화 . . . . 3회 일치
* 소문이 자자한 [[사이바 죠이치로]]가 나타나지 않자 The BULE 회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스텝들은 어떻게든 죠이치로를 찾기 위해 허둥대고 해외에서 그를 보러 왔던 요리사들은 어이가 없다며 "겁 먹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토오츠키 학원에선 그의 실종 소식이 전달되면서 "맨날 수업을 빼먹더니 더 블루까지 빼먹은 건가"라며 경악해 한다. [[시오미 준]]은 그렇다쳐도 이유가 뭔지, 왜 참석 조차 하지 않은 건지 의아해한다. [[나키리 아자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에비사와 리코]]는 그가 적어도 새벽에는 모습을 감췄을 거라고 추론하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더 블루가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면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니냐"고 불길한 소릴 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던 학생들도 진지하게 자해나 자살을 떠올리며 우려한다.
* 죠이치로는 먼 곳으로 떠난게 아니었다. 그는 가을선발 대회가 열리는 식극회장에 있었다. 회장 한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는 죠이치로. 도지마는 안도와 함께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최대한 태연하게 모두 걱정한다고 전하며 "이제 BULE에는 못 가지만,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을 꺼내는데.
* 얼마 후 죠이치로는 기숙사를 떠난다. 그는 쾌활한 얼굴로 아자미와 도지마에게 인사를 남기고 발걸음을 돌린다. 두 사람, 특히 아자미는 어더운 얼굴로 죠이치로를 배웅한다. 이때 떠나가던 모습이 그들이 학창 시절에 본 죠이치로의 마지막 모습이다.
- 신경림(대학교수) . . . . 3회 일치
초, 중, 고등학교 [[국어(교과)|국어]]나 문학 [[교과서]]에도 이 시인이 지은 몇몇 시들이 수록되었는데, '농무'와 '가난한 사랑 노래', '목계장터' 등이 교과서를 읽은 학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전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일화나 문단에서 사귀었던 여러 문학가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오늘날의 시점으로 봐도 심히 기이한 각종 [[기행]](...) 등을 재미난 입담으로 다룬 수필집을 내어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수필집과 회고록을 종합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자신의 시 중 하나인 <파장>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하였는데 신경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기행에 있어서는 당대 문단의 1,2위를 다투던 천상병이나 김관식의 일화는 배꼽을 잡게 할정도로 웃기고도 기이하다(...). 한편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학창시절을 다룬 파트에서는 당시의 어수선한 사회상은 물론이고, 자신이 저질렀던 비행이나 창피스러운 일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역시 재미있다. 중학생때는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 신영식(만화가) . . . . 3회 일치
아내 오진희 작가와 함께.
이후로 주로 월간 [[보물섬]]에 스피드 킹이라든지 극화체 모험물이나 격투기물도 그리다가 1988년에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에 가입하여 환경운동에 열성적으로 나서며 1990년에 만화잡지 <[[보물섬]]>에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를 연재한 걸 비롯해 <하나뿐인 지구>, <초록이네>, <깡통박사 찌노> 등의 환경만화를 내며 환경파괴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1999년에는 아내 오진희와 함께 [[녹색연합]]에서 펴낸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짱뚱이의 나의 살던 고향은>을 시작으로 '짱뚱이 시리즈'로 전 6권이 100만부 가까이 팔리며 또다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002년에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제에도 참가한 바 있다.
2004년 6월, [[부안]] 핵폐기장 유치반대 기자회견을 가진 뒤 식사 도중에 목에 걸린 듯한 통증을 느껴 진단을 해 보니 [[식도암]] 말기라는 판정이 내려져 [[식도]] 절제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원]]에서 방사선 수술을 권했으나 환경운동가인 그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살던 [[강화도]]로 돌아갔다. 이후 [[말라리아]]에 걸리고 [[암]]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자연요법으로 버티며 환경운동 활동과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다가 [[2006년]] [[1월 19일]]에 그간 앓던 식도암과 말라리아 증세로 인해 그토록 어린이들이 원했던 '짱뚱이 시리즈 7권'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만 56세.
- 십자군 전쟁 . . . . 3회 일치
한편으로는 당시 교황령은 이탈리아의 패권을 놓고 신성로마 제국과 프랑스 왕국과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고,[* 대표적으로 [[카노사의 굴욕]]과 프랑스 왕 [[필리프 1세]]의 파문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십자군을 선포함으로써 세속군주와의 대립으로 위협받고 있던 교황의 권위와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95년에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도와 성지를 탈환하자고 선포했고, 이에 십자군이 시작하게 된다.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3회 일치
[[고려]] 말기에 한반도 남부를 침공하였던 [[왜구]]의 장군 [[아기발도]]가 대표적인 아기장수 설화의 하나인 [[아기장수 우투리]]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전에는 [[인터넷]] 상에서 간간히 주장되던 이야기였으나, 2016년 1월에 이를 다룬 논문이 나온 바 있다.
아기발도와 우투리 사이의 연관성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공통점이 지적되고 있다.
* 아기발도는 본명은 불명하며 한 왜구의 장수에 대해서 고려인들이 붙인 별명으로, 아기는 '아이'라는 뜻으로 적이 [[소년]]이라는 것을 뜻하며, 발도는 몽골어 '바토르'를 음차한 것인데 '용사'라는 의미가 있다.[* 고려 말에는 몽골의 영향으로 몽골어가 사회에서 흔히 쓰였다. 바토르라는 말은 몽골사에서 자주 등장하며, 현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볼 수 있다.] 즉, '아기발도'는 그 의미가 '아기장수'와 매우 유사하게 된다.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3회 일치
쿠치노츠무라 마을(口之津村)에 살던 남만화가 야마다 우에몬사쿠(山田右衛門作)가 그렸다. 그는 아마쿠사에 와있던 이탈리아 출신 신부에게 서양화를 그리는 법을 배웠으며, 시진중기는 일본인이 그렸음에도 서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야마다 우에몬사쿠는 호소카와 번에 체포되어, 에도로 보내져서 심문을 받은 다음, 나가사키로 와서 생애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그는 내부에서 시마바라의 난을 관찰하여 편지를 보냈으며, 난이 종결된 뒤에는 『야마다 우에몬사쿠 구서(山田右衛門作口書)』를 남겨 시마바라의 난을 진술하여 남겼다.
- 안드로니코스 1세 . . . . 3회 일치
그는 마누엘 1세와 사촌의 관계로, 그의 아버지는 [[알렉시오스 1세]]의 아들인 이사키오스이다. 그는 젊은 시절 풍운아로 유명했는데, 대표적으로 그는 마누엘의 조카딸인 유도키아 콤네나를 건드렸고, 마누엘의 명령으로 킬리키아를 압박할때 예루살렘 왕 보두앵 3세의 동생이자 마누엘 황제의 처제인 필리파와 또 스캔들을 내 마누엘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마누엘이 그를 소환하려하자, 그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왕인 아모리에게 의탁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사고를 치는데, 보두앵 3세의 미망인이자 그의 친척인 테오도르 콤네나와 또다시 스캔들을 터뜨린것이다. 이렇게 되자 안드로니코스는 마누엘의 분노를 피해 룸 술탄국으로 도망치는데, 거기서 그는 아나톨리아일대에 영지를 하사받고, 인근에 그리스인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짓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는 총대주교로부터 파문까지 받게 되어버린다.
- 안종범 . . . . 3회 일치
|경력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br>[[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br/>[[청와대 경제수석]]<br/>[[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 분야 공약을 만들었다.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에 지명되면서 의원직을 사직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용되어 일하다가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대통령]]이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하면서 2016년 10월 30일 사임하였고 제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강석훈]]이 그 직을 임시 대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69333 靑 수석비서관들 일괄 사표제출…朴대통령 인적쇄신 가능할까]. 서울신문. 2016년 10월 30일.</ref>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28904 민정수석·청와대 비서관… 도대체 뭐 하는 자린고?]. 조선일보. 2016년 11월 16일.</ref> <ref>이상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74512 靑 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이 대행]. 머니투데이. 2016년 11월 16일.</ref>
- 알프레드 우든 . . . . 3회 일치
[[비니 고그니티]]를 찾아다니던 맥스 근처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며 맥스와 접촉하기 시작한다. 이때 우든은 맥스에게 경찰이 그곳으로 가고 있으니 서두르라는 경고만 하고는 끊어버린다. 이후 맥스가 펀치넬로 저택을 습격했을 때 또다시 전화를 걸어 무장 헬리콥터가 저택 마당에 착륙했으니 서두르라는 경고를 한다.
맥스가 BB를 죽인 직후 근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네 적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지금 당장 아스가르드 빌딩으로 와라"라고 전한다. 아스가르드 빌딩으로 온 맥스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과 함께 있는 우든을 목격한다. 그는 진범은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회장인 니콜 혼이라는걸 알려주며 혼을 제거하면 모든 책임을 져주겠다는 말을 한다. 그 직후 혼의 부하들이 맥스와 이너 서클 회원들이 있는 방을 습격한다. 맥스는 그때 그가 죽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죽은척을 했을 뿐이었다. 맥스가 CCTV로 본 그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이 죽은걸 보고 좋아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이 죽어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기를 바랬던 것. 이를 본 맥스는 우든을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판단, 혼이 우든에게 협박용으로 보냈던 캔디 던과의 섹스 테이프를 보험삼아 슬쩍했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3회 일치
* 살생님은 그녀가 나기사가 자폭 공격을 했을 때와 같은 눈을 하고 있다고 봤다.
* 만약 살생님이 구하러 온다면 살생님과, 그렇지 않는다면 사채업자와 서류와 함게 자폭할 생각이었다.
- 애로우버스 . . . . 3회 일치
* [[플래시(드라마)|플래시]] - 플래시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애로우와 연계되는 장면이 많다. 애로우에 비하면 비교적 부드러운 분위기다. --막장성도 덜하다.--
* [[DC's Legends of Tomorrow]] - 타임마스터 립 헌터를 중심으로 하여, 아톰, 파이어스톰, 화이트 카나리, 호크걸, 호크맨 등 애로우와 플래시에서 출연하던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애로우와 플래시에서 남는 애들을 모아놓은 잡탕 드라마.--
- 야규 슈메 . . . . 3회 일치
그런데, 이 결혼은 [[야규 무네노리]]가 이끄는 에도 야규 가문과 야규 토시요시가 이끄는 오와리 야규 가문이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토시요시는 여동생을 가문과 출신을 알 수 없는 타국 사람에게 시집 보낸 데다가, 게다가 사전에 오빠인 자신에게 상담없이 숙부 무네노리가 마음대로 결혼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분노하였다. 그리하여 토시요시는 무네노리와 [[절교]]를 선언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슈메 본인은 아내와 결혼하여 야규 가문의 가신으로서 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야규 가의 보리사인 방덕사(芳徳寺)에 그의 무덤이 야규 일족과 나란히 남겨졌다고 한다.
- 야차원숭이 . . . . 3회 일치
고대 일본에는 다수의 야차 원숭이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에 확인 된 것은 바키의 친구가 된 야차원숭이와 그 자식 야차원숭이 Jr. 뿐.
야차원숭이는 그래플러 바키 2부에서 바키와 대결을 하며, 싸움 끝에 친구가 된다. 그러나 [[한마 유지로]]에게 살해당하고 유지로는 바키에게 그 목을 던져서 분노를 돋군다.
야차원숭이 부, 자 모두 주인공 바키와는 친구이다.--왕따 바키의 몇 안되는 친구--
- 연경흠 . . . . 3회 일치
[[제이콥 크루즈]]가 입단한 2007년에 들어서 그의 기회는 더 줄어들었는데 역시 [[조원우]]와 고동진에 밀려서 빛을 보지 못했다. 결국 2007시즌 대부분은 거의 2군에서 머물었고 1군 기록은 36경기 1홈런 7타점 .260 .305 .377 .682를 기록하였다.
7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프로야구 통산 2만 호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기에, 연경흠 본인에게 있어 본의 아니게(?) 가장 눈부신 해가 되었다.
이후엔 2018년 대전서구유소년 야구단의 감독으로 한화에서 활약했던 외야수이자 현재 코치인 [[박상규(야구선수)|박상규]] 와 함께 창단 3년차에 불과하지만 양구대회에서 4강 진출, 인제군수배에서는 준우승을 거두는 등 유소년야구대회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501|관련기사]]
- 오다 노부나가 . . . . 3회 일치
오와리(지금의 [[나고야]] 인근 지역)의 [[다이묘]]였던 '오다 노부히데'의 적자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과 다른 언행을 보여 '얼간이'라고 취급받았으나 친인척과 가신들의 도전을 모두 물리치고 오와리의 지배권을 확립한다.
그 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격파하고 미노 지역을 흡수한 뒤 상락을 단행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일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에치젠 지역을 공격하다 매제 [[아자이 나가마사]]의 모반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포위망'을 펼쳐 견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치 및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차례차례 타개해 나가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후에 서쪽의 [[모리]] 가를 공략하던 도중에 혼노지에서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에서 사망하고 만다.
- 오대석 . . . . 3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등번호는 삼성에서 16번.[* 많은 사람들이 16번하면 김원형, 김종국, 박정태를 떠올리게 하지만 원조 16번이었던 오대석도 무시할 수 없다.], 롯데에서는 6번을 달았다.
[[김영덕]] 감독의 삼성 이적으로 촉발된 [[OB 베어스]]와 삼성간의 신경전이 한창이던 1984년 전기리그 때 OB와의 경기 도중, 병살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OB의 1루주자 이홍범이 과격한 [[슬라이딩]]으로 유격수 오대석의 허벅지를 걷어찼고, 이때 큰 부상을 당한 오대석은 이후 기량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1987년 [[류중일]]이 입단한 후엔 1985년부터 주전 3루수였던 [[김용국]]과 3루 자리를 번갈아 맡았다.
- 오승근 (가수) . . . . 3회 일치
오승근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1968년]]에 17세의 나이로 홍순백과 함께 음악 그룹《투에이스(=금과 은)》를 결성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4곡을 발표했는데 《빗속에서 울리라》, 《그 얼굴》, 《비둘기집》, 《두 마음》이다. 그 중에서 《비둘기집》(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은 발표 당시 인기를 얻으며 [[1970년]]에 KBS 가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1971년]] 약 3년 간 같이 활동한 홍순백과 결별하고 잠시〈영에이스〉라는 그룹사운드에서 최이철과 활동하다 입대를 하였으며 [[1974년]]에 복귀하면서 임용재와 함께 그룹 《금과 은》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조금씩 [[트로트]] 느낌이 나는 《빗속을 둘이서》(김정호 작사/ 김정호 작곡)를 히트시키며 다시 인기가수로 등극하였다. 또한 옛노래 모음(Remake)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처녀 뱃사공》(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이 히트하여 MBC 10대 가수상, KBS 최우수 남자 가수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볐다. [[1979년]]에 해체될 때까지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중창부문을 독식하기도 하였다.
사업에 전념하던 오승근은 지난 [[2001년]], 《있을 때 잘해》(이건우, 김정혜 작사/ 박현진 작곡)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복직하였다. 《있을 때 잘해》는 아이넷TV 성인가요 7주 연속 1위란 기록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오승근은 두번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곡은 모든 연령층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노래방 애창곡, 성인가요 애창곡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3년]]에 발표한 《장미꽃 한 송이》(하지영 작사/ 이호준 작곡)는 쉬운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중, 장년층들이 즐겨 부르는 곡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잘 될 거야》, 《사랑하지만》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다 최근 [[2012년]]에 발표한 《내 나이가 어때서》(박무부 작사/ 정기수 작곡)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곡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트로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12 상반기 트로트계 최대 히트곡으로 주목받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 대표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KBS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 많이 불렸던 참가곡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근 성인가요 메들리의 메인 타이틀로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2014년]]에는 [[홍진영]]이 리메이크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오원 (조선) . . . . 3회 일치
'''오원'''(吳瑗, 1700년 ~ 1740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주 오씨|해주]](海州). 자는 백옥(伯玉), 호는 월곡(月谷)이다.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이고, 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백부인 [[오태주]](吳泰周)와 조선 제18대 왕 [[조선 현종|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양자가 되었다. 1728년(영조 4)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났고 벼슬은 [[대제학]]에 이르렀다.<ref name="대제학">[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ua_11610010_001 《영조실록》 52권, 16년(1740 경신 / 청 건륭(乾隆) 5년) 10월 10일(정미) 1번째기사]</ref>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월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f>[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va_11712017_002 《정조실록》 38권, 17년(1793 계축 / 청 건륭(乾隆) 58년) 12월 17일(병자) 2번째기사]</ref>
오원은 [[해주 오씨]]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1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이고, 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백부인 [[오태주]](泰周)와 조선 제18대 왕 [[조선 현종|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양자가 되었다.
1738년(영조 14년) [[부제학]](副提學), 1739년 [[이조]][[참의]]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다. 영조에게 당나라 육지(陸贄)가 주의(奏議)한 양세법(兩稅法)의 여섯 가지 폐단을 강의하였고, 성학(聖學)의 긴요한 임무를 조목을 들어 밝혔으며, 성덕(聖德)의 문제와 시정(時政)을 거론하였다.
- 오지훈 (1973년) . . . . 3회 일치
그는 2년 후 자신과 동갑내기인 [[명지전문대학|명지실업전문대학]] 실용음악학과 휴학생 [[김지훈 (1973년 5월)|김지훈]]을 [[보컬|보컬리스트]]로 졸업 이후 [[명지전문대학|명지실업전문대학]] 기계설계학과를 중퇴한 [[유현재]]를 [[보컬|보컬리스트]]와 [[드럼]], [[베이스 기타|베이스 기타리스트]]로,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학과 졸업자 [[황혜영 (1973년)|황혜영]]을 객원 [[보컬|보컬리스트]]로, 역할들을 의기상투하여 [[1994년]]에 그가 리더로 내세워진 [[댄스 팝]] [[음악 그룹]] "[[투투 (음악 그룹)|투투]](Two Two)"의 [[건반 악기|전자 키보드]] 연주자 겸 [[기타 연주자|기타리스트]] 정식 데뷔하였다.
당시 그는 "[[투투 (음악 그룹)|투투]]"에서 [[건반 악기|전자 키보드]] 연주와 [[기타 연주자|기타리스트]], 리더(leader)를 맡았다. [[1994년]] 《[[일과 이분의 일|투투 1집]]》 음반 수록곡 전곡을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하였고 이 시기에 데뷔곡인 동시에 자신의 자작곡인 《[[일과 이분의 일]]》이 일약 큰 히트를 하였다. 투투 1집에 수록된 '재수생'의 경우 김지훈과 함께 보컬을 양분해서 불렀다. 또한 드라마 [[딸부잣집 (드라마)|딸부잣집]]의 [[OST]]인 《딸부잣집》은 《투투 1집》의 수록곡인 《내 인생의 러시 아워》를 그가 직접 드라마의 분위기에 맞게 개사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다. [[94 내일은 늦으리]] 앨범에는 자신의 자작곡인 《용사의 외침》을 실었다.
* [[딸부잣집 (드라마)|딸부잣집]] - 1994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 드라마|TV 드라마]]이며 "[[투투 (음악 그룹)|투투]]"의 《내 인생의 러시아워》라는 노래가 드라마와 동명의 제목인 《딸부잣집》으로 리메이크되어 이 드라마의 [[사운드트랙|OST]]로 사용되었다. [[딸부잣집 (드라마)|드라마 딸부잣집]] 의 OST는 오지훈이 작사, 작곡, 편곡, 보컬 모두를 담당하였다.
- 오태곤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1년]] [[9월 22일]]<br>[[사직야구장|사직]] 대 [[SK 와이번스|SK]]전 대타
[[2017년]] [[4월 18일]]에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그와 [[배제성]], [[kt 위즈]] 소속이었던 [[장시환]]과 [[김건국]]과의 2:2 트레이드로 [[kt 위즈]]로 이적하였다. 2018년부터 외야수로도 활동하였다.
[[2017년]] [[4월 8일]] [[LG 트윈스]]전에서 8회말 [[이대호]]의 대주자로 나와 9회말 타석때 끝내기 투런 홈런을 쳐 냈다. 이는 [[kt 위즈]] 이적 전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마지막 홈런이었다.
- 오토메 . . . . 3회 일치
오토메의 '오토'는 남자를 뜻하는 오토코(おとこ)와 같아서, 젊고 활기차다는 뜻의 동사였다. 메(め)는 여자라는 뜻이다.
파생된 말로 히오토메(非乙女)라는 말이 있는데, [[비처녀]]라는 뜻이 아니고 오토메에서 '사랑을 하는 여자'라는 뜻을 따와서 그와는 반대로 두근거리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 요괴:선풍기 . . . . 3회 일치
기괴한 형상의 요괴로서, 납짝한 발 하나에 길쭉한 몸통이 붙어 있다. 머리는 큰데, 철망으로 덮혀 있으며, 철망 안에 팔랑거리는 부채가 3~4개 달려 있다. [[여름]]에서 집 안에 자주 출몰한다. 다른 때는 대개 창고 같은 곳에 숨어 있다. 기계가 저 스스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일본]]의 [[츠쿠모가미]]와 유사한 종류이다.
이 요괴는, 사람이 깨어있을 때는 무해하지만 선풍기와 단 둘이 있는 채로, 방 문을 닫아둔 채 잠이 들면 다음 2가지 능력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지금도 왜 눈을 떴는지, 얼마만에 의식을 찾은 건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뜨뜻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르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해요. 바로 그 바람. 그게 눈 앞에 있었죠. 이상했어요. 분명히 꽤 떨어진 자리에 그게 있었는데. 손을 뻗으면 정확히 닿는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더군요. 게다가 회전시켜봤던 목이 똑바로 나를 향해 고정돼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가까워졌다는 표현... 이건 정확하지 않군요. 가까이 왔다고 다시 말하겠습니다. 그건 가까이 와있었어요. 실내 온도는 더 올라간 것 같았고 그놈이 토해놓는 바람은 이제 드라이기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비몽사몽한 가운데에도 그걸 꺼야겠다는 생각만은 또렷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예감이었죠.
- 요괴:조카몬 . . . . 3회 일치
취미인의 적. [[조카]]와 몬스터(Monster)를 뜻하는 '몬'을 결합한 단어. "좆까몬"이라고도 불린다. 그 흉악함으로 취미계에서 악명이 높다.
명절에 쉬고 있으면 집에 갑자기 나타난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괴성을 지르고 뛰어다니거나 욕설을 퍼붓고 사람을 때린다. 사람의 광을 뒤져서 귀중한 물건이나 도서를 찾고, 찾아낸 물건을 제 것으로 삼아 가져가려 한다. 조카몬이 물건을 부수거나 훔쳐가도, 집안 어른들은 허허 웃으면서 허락한다. 물건의 주인이 화를 내면 오히려 조카몬을 소중히 섬기지 않는 불경죄를 묻는다. 그리하여 조카몬이 나타나면 모든 보물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되고 크게 후회하게 된다.
* 흉기&급소 공격 : 힘은 약하지만 흉기와 교묘한 급소 공격으로 이를 보충한다.
- 요괴:파워블로거지 . . . . 3회 일치
이들의 행동이 [[거지]]와 같으며, 이들이 장사꾼을 위협할 때는 "블로그~ 블로거~ 파워블로거~"하는 요사한 주문을 외우면서 울기 때문에 "파워블로거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그슨새]]와 같은 사람이 겁을 먹을수록 커지는 요괴, [[누라리횬]]처럼 밥을 먹고 사라지는 요괴와 유사함이 있다.
- 원피스/819화 . . . . 3회 일치
* 오뎅은 마지막까지 라프텔에서 확인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와노쿠니의 개국"'''이라는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 조우의 '''밍크족은 처음부터 오뎅의 가신으로서 코즈키가와 운명을 함께할 것을 마음 먹었다.''' 그러나 설마 가뭄의 잭과 싸워 이런 결과가 나올 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다.
* 와노쿠니는 메이지 유신 직전의 일본을 모티브로 한 듯 하다.
- 원피스/823화 . . . . 3회 일치
* 사우스 블루의 "와루블랙 드럼왕국"에선 와포루가 여전히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도르곤에게 복수를 꿈꾸고 있다.
* 와포루는 표지스토리에서 재기하느게 나오긴 했었는데, 인성이 여전한 채로 재기한 것 같다--하여간 노답--
- 원피스/867화 . . . . 3회 일치
* 그녀는 세계정부와 내통하고 있었으며 정부에 우수한 자질의 고아들을 팔아넘기고 있었다. CP 요원들 대부분은 그녀가 공급한 고아들.
카르멜이 누군가와 접촉했다. 수상한 가면을 쓴 남자였다. 그는 설마 양의 집이 엘바프를 떠날지는 몰랐다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그 아이"를 버릴 수 없었던 거냐고 묻는다. 카르멜은 이렇게 대답한다.
카르멜은 사라졌다. 양의 집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은퇴작인 링링을 남기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링링이 먹다 남긴 탁자와, 잔해들 뿐. 카르멜의 옷자락만 잔해들 사이에 섞여 남겨져 있다. 어리둥절한 링링은 주위를 둘러보다 혹시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간건가 싶어 양의 집으로 가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링링이 모르는 사이에. 크로캉붓슈를 신나게 먹어치우던 그 순간에.
- 원피스/884화 . . . . 3회 일치
* 우연히 [[샬롯 시폰]]과 엇갈렸던 "파운드"는 딸을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카카오섬까지 따라왔다. 한창 작업 중인 과자공장에 찾아와 시폰을 만나게 해달라 간청하나 "아무도 안에 들이지 말라"는 명령이 있던 차라 딸과 만날 수가 없다. 게다가 작업을 살피러 왔던 [[샬롯 오븐]]과 마주치는데, 그는 의붓아버지를 두들겨패서 쫓아내려 든다.
* 시폰과 [[샬롯 푸딩]], [[상디]]는 바깥 사정을 모르는 채로 작업에 열중. 한편 시폰과 푸딩이 상디와 함께있다는걸 모르는 [[샬롯 브륄레]]는 전보벌레로 밀집모자 일당이 곧 카카오섬으로 간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9시간 뒤, 심야 1시에 그들과 그들을 추격하는 [[샬롯 페로스페로]]와 빅맘 [[샬롯 링링]]이 도착할 예정이다. 루피도 그때까지 카카오섬에 가겠다 했지만 카타쿠리에게 패할 테니 어림도 없다고 너스레떠는 브륄레. 살아남은 밀집모자 일당도 추격대가 처리할 거라 안심시키며 꼭 마마를 안심시킬 웨딩 케이크를 완성해달라 당부한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3회 일치
주간 스쿠프의 기자 토사쿠라 마나부는 원조교제를 하는 [[OL]] 하나무라 히토미에게 취재를 한다. 현금 21만엔이라는 취재비에 넘어간 히토미는 사진을 찍고 만다. 그런데 1주일 뒤 주간지의 '원조OL버스터즈'라는 기획으로 얼굴 모자이크도 없이 자신과 약혼자의 사진이 올라가버려, 회사와 약혼자, 가족에게 들키고 만다.
수치심을 견디다 못한 히토미는 자살. 토사쿠라 마나부를 죽여달라는 유서와 3백만엔을 남긴다. 이것을 히토미의 오빠가 '정보원'을 통하여 원한해결사에게 의뢰하게 된다. 원한해결사는 살해 의뢰비로서는 싸다고 하지만 정보원이 자신의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하여 결국 의뢰를 받아들인다.
토사쿠라는 저녁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다가 원한해결사와 만나고, 철도길에서 갑자기 쓰러진다. 원한해결사는 스코볼라민 용약을 넣어뒀는데, [[알콜]]과 섞이면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약물[* 과거에는 안약이 [[데이트 강간 약물]]로 쓰였다고 언급된다.]이었다. 결국 토사쿠라는 전철에 치어서 사망하고 만다.
- 원한해결사무소/6화 . . . . 3회 일치
의뢰인은 신혼 새댁 여성 마츠자와. 의뢰 대상은 맨션 관리조합의 '부이사'라는 아줌마. 결혼과 동시에 맨션을 사서 살기 시작한 마츠자와는 지어진지 6년이 된 맨션을, 리폼을 끝내고 2,200만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옆집 아줌마는 6년 전에 새로 지은 맨션을 6천만에 구입했기 때문에, 40이 되서 겨우 가지게 된 '내 집'을 땅값 하락 때문에 젊은 것들이 쉽게 삿다고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주택융자를 메꿀 수 있었다.]
그래서 부이사 아줌마는 시댁에게 못살게 굴었는데, 쓰레기를 뒤져서 '콘돔'을 발견하더니 얼굴에 집어던지거나, 우편함에다가 [[개똥]]을 대량으로 집어넣거나, 남편 앞에서 "갈색머리 남자와 놀고 있었다."면서 있지도 않은 불륜 모함을 하는 등. 치사하게 굴었다.
- 유열 (가수) . . . . 3회 일치
[[2012년 6월]]에는 15살 연하의 아내 배서윤씨와 결혼을 하였고, 이듬해 [[2월]] 아들 유정윤이 태어났다.
前 [[문화방송]] 기자인와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 2016년 KBS Happy FM [[매일 그대와]] 유열입니다
- 유지연(탤런트) . . . . 3회 일치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94년 뮤지컬배우 데뷔한 그녀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1993)로 연극 무대와 인연을 맺고 1995년 SBS 드라마 《[[다시 만날 때까지]]》에도 단역 출연하였으며 대학 재학 중 SBS와 KBS 탤런트에 동시 합격, 1996년 [[KBS]] 슈퍼탤런트 입상과 함께 1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 [[2008년]] 《[[아기와 나]]》 ... 룸싸롱 언니 역
- 윤용현(1969) . . . . 3회 일치
2007년 3월에 9살 연하의 피아니스트인 박수진씨와 결혼했다. 드라마에서의 인상이 강렬했는지 처가의 결혼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04/2014050400400.html|#]]
연기 외에도 2002년에 경기도 일산에서 "도끼와 뻘"이라는 조개구이 전문점을 차려서 나름 성공한 맛집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식당경영은 친형에게 맡기고 2018년부터 세종시에서 "오티움"이라는 이름의 웨딩홀을 운영하고 있다.
[[WWE]]의 [[사모아 조]]와 많이 닮았다.
- 윤철종 . . . . 3회 일치
그런데 정작 와보니 연습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홍대거리]] 길바닥에 주저앉아 연습을 하니 사람도 몰리고 돈도 벌어 '어? 이거 괜찮은데?' 싶어 알바도 다 끊고 --[[버스킹]]-- 길거리 연습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권정열의 성량이 웬만한 앰프를 쓴거보다 커서, 멀리서도 들리는 목소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그렇게 '''6개월'''을 길거리에서 보내다 보니 겨울이 됐는데, 추운 날씨를 피해 그들이 눈길을 돌린 곳은 [[홍대거리/공연장|라이브 클럽]]이었다. 연주를 하려면 팀 이름이 필요하다길래 대강 '''10cm'''[* 두 사람의 키 차이에서 따 왔다.]로 짓고 활동을 했다. 근데 그 이름으로 유명해지다 보니 바꿀 수도 없고 여차저차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1) "이부자리를 치우다 너의 양말 한 짝이 나와서 '''갈아신던''' 네 모습이..."
2017년 7월 4일 소속사 측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전속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던 6월 말, 멤버 윤철종이 개인적인 건강상의 이유로 탈퇴 의사를 밝혔고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후부턴 권정열의 1인 체제로 10cm가 유지된다고 한다. 이후 윤철종은 19일 소속사와의 연락에서 본인이 대마초를 흡연했던 문제로 인해 권정열과 소속사에 해가 갈 것을 염려하여 급하게 탈퇴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http://m.huffpost.com/kr/entry/17520376#cb|링크]] 이후 소속사는 10cm를 권정열 1인 팀으로 변경하여 9월 1일 4집 앨범으로 컴백했다.
- 은혼/574화 . . . . 3회 일치
* 가츠라, 긴토키와 신스케는 "지금은 하루사메를 치지만 다음은 너다"라면서 티격태격한다
* [[사카모토 다츠마]]가 중재하려고 끼어들어서 최대한 오블라트하게 표현을 바꿔주지만 [[가츠라 고타로]]와 [[사카타 긴토키]]가 학을 떼며 "누가 그따위로 통역하랬냐"고 쥐어터진다
"그날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만든 무수한 무덤은 선생님이나 동료들 뿐만이 아닌 우리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요시다 쇼요와 함께 그 제자들은 죽었다. 그 길이 더이상 교차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선생님의 가르침만은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망설이며 굽어진 길을 가자고, 어떤 때는 실수로 꺾어진 길을 가자고. 각자의 무사도를 찾아 방황하고 번민하며 걷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은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들의 길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다. 그것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한 순간의 해후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검을 맞대며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겠지. 긴토키, 다카스기. 설령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다시 한 번 요시다 쇼요의 제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 은혼/575화 . . . . 3회 일치
[[은혼]] 575훈. '''옛친구와 현재의 친구'''
* [[사카타 긴토키]]와 [[다카스기 신스케]]는 간만에 협공한 소감을 "최악"이라고 디스한다.
* 긴토키와 신파치는 사다하루를 타고 적진으로 향한다
- 은혼/595화 . . . . 3회 일치
* 긴토키와 자신이 쇼요를 몰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가하나 가츠라는 쇼요는 사전에 이런 상황을 위해 그라는 희망을 남겼다고 말한다.
* 가구라는 지구로 향하기 전에 코우카의 묘를 방문하는데 카무이가 이미 다녀갔고 우미보즈(바다돌이)도 꽃다발을 들고 와 세 개의 꽃이 묘에 놓인다.
* 만일 그 동안에 딸래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우츠로랑 같이 죽여버린다는 엄포와 함께.
- 은혼/650화 . . . . 3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는 [[카무이(은혼)|카무이]]의 구조로 무사히 생환.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와 합류한다.
* 긴토키는 해방군 모선과 무전이 연결돼 낙양 결전 이후 처음으로 [[다카스기 신스케]]와 육성으로 대화를 한다.
* 아네, 모네 자매는 황룡의 무녀로서 이누가미를 데리고 용맥을 안정시키기 위해 동분 서주 중. 그 과정에서 모습을 감췄던 [[사다하루]]와 만나는데.
- 이만섭 . . . . 3회 일치
이만섭은 [[1932년]] [[2월 25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1951년]]에 [[연세대학교|연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한 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주일 특파원과 주미 특파원 등으로 활동한 뒤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난 직후 발탁되어 [[1963년]] 10월에 공화당에 입당, 대선 후보 [[박정희]]의 지지 유세와 찬조연설을 다녔다.<ref name="경향_6310">民主共和黨에入黨 東亞日報李萬燮씨, 《경향신문》, 1963.10.3</ref>
하지만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은 [[1987년]] [[10월]]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고 다음 해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제13대 총선]]에서 본인을 비롯하여 모두 낙마하였다. 이후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였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민주자유당|민자당]]의 상임고문을 거쳐 [[신한국당]]의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신한국당]]의 총재서리로 임명되었고, [[1997년]]에 [[이인제]]를 지지하면서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 (대한민국)|국민신당]]의 총재가 되었으며,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을 추진하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지내기도 했다.
- 이미연 (배우) . . . . 3회 일치
1995년에는 배우 [[김승우]]와 결혼했지만, 2000년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김승우-이미연 이혼 속사정은…|url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출판사 = 한국일보|날짜 = 2007-10-11|확인날짜 = 2013-10-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501104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보존날짜 = 2013-10-05|깨진링크 = 예}}</ref> 이미연은 1990년대 중후반에는 영화 《[[넘버 3]]》, 《[[모텔 선인장]]》, 《[[여고괴담]]》,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영화에만 주로 출연하다 1999년 단만극 《[[TV영화 러브스토리]]》로 3년여만에 드라마에 컴백했고, 이후 2001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명성황후 (드라마)|명성황후]]》에서 젊은 명성황후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당시 소속사였던 [[김광수 (1961년)|김광수]] 대표의 프로젝트로 《이미연의 연가》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해 166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 PR비 파문 등 여파 가요계 ‘불황의 늪’…2002 한국 음반시장 결산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31324 |출판사= 국민일보|날짜= 2002-12-24 }}</ref>
* [[1992년]]~[[1993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 [[권인하]]와 공동 진행
* [[1994년]] [[SBS]] 《투맨쇼,두남자와 만납시다》
- 이상목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8년]] [[10월 4일]] <br/>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대표적인 [[포크볼]] 투수이며 [[199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지만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해 [[1993년]] 시즌 중에 [[포수]] [[박선일]]을 상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빙그레에 이적한 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였고 시속 140km대의 직구와 낙차 큰 [[포크볼]]로 많은 승수를 얻었으며 [[1999년]]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동했다. [[2003년]]에 15승 7패를 기록하여 한화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에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6년]]을 제외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2007년]]에 방출되었으며 [[선동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8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목동 경기에서 승리,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승리였다. [[2008년]] 10월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3회 일치
1990년 고졸우선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주로 중간 계투로 뛰었다. 1999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포수 [[진갑용]]을 상대로 현금 4억원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408061|제목=프로야구,진갑용-이상훈+4억 트레이드|날짜=1999-07-31|출판사=연합뉴스}}</ref> 2002년에 70경기 동안 133.2이닝을 소화하며 4승 10패 2세이브 6홀드와 93탈삼진 평균자책점 3.91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지만 2003년 기량 하락으로 방출되었다. 이후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지만 단 2경기 출장에 그치고 시즌 후 은퇴하였다.
은퇴 이후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신동주 (야구인)|신동주]]와 함께 스크린골프장을 개업하여 티칭 프로로 활동하였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78459|제목=전 프로야구 선수 신동주, 스크린 골프장 오픈|날짜=2007-06-28|출판사=OSEN}}</ref> 2017년에는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전병호 (야구인)|전병호]]와 함께 피칭 아카데미를 개설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16&aid=0001187340|제목=전병호-이상훈, 피칭 아카데미 개설...'길잡이 되어주고 싶다'|날짜=2017-01-21|출판사=헤럴드경제}}</ref>
- 이애란(가수) . . . . 3회 일치
예상 밖의 히트 덕분에 2015년 12월에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였으며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도 출연하여 처음으로 지상파 무대에서 원곡을 풀 사이즈로 불렀다. 뿐만 아니라 행사 섭외비가 6배나 뛰었다고 하며 데뷔 25년만에 첫 CF도 촬영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이상민(룰라)|이상민]], [[노민혁]]과 함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SNL코리아 시즌6]]의 마지막 방송에 카메오로 출연하게 되었으며 송년특집 [[개그콘서트]]에 [[레이양]]과 함께 출연했다. 과거 <땡벌>을 부른 가수 [[강진(가수)|강진]]이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트로트 가수는 히트곡 하나로 가수로서의 커리어를 역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장윤정]]과 [[홍진영]] 등 최상위권의 트로트 가수도 장윤정, 홍진영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으로 각각 어머나와 [[사랑의 배터리]]가 있다.] --[[역주행#s-2.4|역주행]] 했다고 전해라~--
2015 [[MBC 가요대제전]]에 출연했다.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51221095204206?f=m|#]] 걸그룹 [[DIA(아이돌)|DIA]]와 함께 출연.
북한이 벌인 [[4차 핵실험]]에 대한 보복으로 재개한 [[대북방송]]에 [[백세인생]]이 포함되었다. 노래와 함께 남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북한보다 약 10~15년 정도 길다는 내용의 해설을 담는다(...)
- 이영아(배우) . . . . 3회 일치
2011년 10월 20일자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하였을 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애완동물]]을 매우 많이 기른다고 한다. 특히 어류를 많이 키우는데 열대어, 해수어 등 500여 마리의 물고기를 키우며 심지어 '''[[빨판상어]]''' 까지 키운다고. 흠좀무. 어류 외에 개 7마리와 자라, 거북이까지 키운다고 한다. ~~집안이 동물농장~~
|| 2008년 || [[다찌마와 리]] || 네비게이션 || 목소리 우정출연 ||
* 이영아를 치면 자동적으로 다이어트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과거는 지금과 같은 몸집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거구였다고 한다.] 보기보다 상당한 글래머다. [[강소라|이 배우]]와 비슷하다.
- 이영은(1982) . . . . 3회 일치
[Include(틀:제이와이드컴퍼니 소속 아티스트)]
||<:> 소속사 ||<(> [[제이와이드컴퍼니]] ||
2014년 고정호 PD와 결혼하였고 2016년 득녀하였다.
- 이종근(1923) . . . . 3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해원(1930)|이해원]]과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시|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둘 다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단수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 [[이택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이 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해원 후보와 [[민주한국당]] [[김영준(1941)|김영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농사를 지으면서 잠시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 이종혁 (배우) . . . . 3회 일치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그는 이후 1998년 영화 《[[쉬리 (영화)|쉬리]]》로 데뷔하였고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름이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종혁, '엄마의 공책: 기억의 레시피'로 스크린 복귀|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64179|출판사 = 헤럴드POP |저자 = |날짜 = 2016년 11월 8일|확인날짜 = }}</ref> [[2002년]] [[6월 4일]] 최은애와 결혼식을 올려 장남 이탁수([[2003년]] 출생), 차남 이준수([[2007년]] 출생) 두 아들을 두었다. 2013년 MBC 예능프로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여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국민 아빠'로 불리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엄마의 공책'..이종혁, 철부지 아들로 변신 |url = 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9&aid=0003723802|출판사 = OSEN |저자 = |날짜 = 2018년 2월 22일|확인날짜 = }}</ref>
* [[2007년]] [[MBC]] 《[[놀러와]]》 - 129회
* [[2008년]] [[MBC]] 《[[놀러와]]》
- 이진만 (1675년) . . . . 3회 일치
과거 공부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문으로 소일하며 창설재 권두경(蒼雪齋 權斗經), 눌은 이광정(訥隱 李光庭) 등과 주로 교류하였다. 이후 그는 [[사서육경]]이나 경전 중에 [[주자]]의 주자어류(朱子語類), 성리대전(性理大全), 당육지(唐陸贄)의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 가공언(賈公彦)의 주례주소(周禮註疏),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 등의 책을 골라 모아서 한 권으로 편집하여 《대성집설 (大成集說)》이라 이름하고 늘 즐겨 읽었다. 이후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시문이나 기행문 등을 남겼다.
만년에는 고조부 [[이여빈]]이 지어 학문연구와 문하생들을 가르치던 [[인수정]] 바로 앞에 정자 백은당(白隱堂)을 짓고, 백은거사(白隱居士)라 자처하며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으로 세월을 보냈다. 저서로는 백은당문집(白隱堂文集)과 대성집설(大成集設) 등이 전한다.
- 이태현(씨름) . . . . 3회 일치
그러나 2006년 한국씨름연맹[* 흔히 (프로)씨름을 관장하는 단체가 대한씨름협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됐다. 쉽게 말하자면, 야구로 치면 대한씨름협회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국씨름연맹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같은 위치의 단체들이다.]의 막장 행정, 세력간 정치다툼으로 흑화가 되고 [[최홍만]]이 [[K-1]]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자, 이태현은 소속팀 현대삼호중공업과 2012년까지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며 [[종합격투기]]에 뛰어든다.[* 이 때 소속 팀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이태현에게 계약파기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가 취하했을 정도로 이태현은 종합격투기 진출 선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이태현은 국내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저 관중이 있는 곳에서 시합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종합격투기의 화려한 조명과 관중들의 환호, 매스컴의 관심 등을 보면서 엄청난 유혹에 시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쨌든 [[대한민국]] 최고의 천하장사가 종합격투기에서 엄청난 굴욕을 겪자, 씨름팬들은 비록 이태현이 씨름을 저버리고 종합격투기로 전향해서 비난했을지언정 이태현의 고전 앞에서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씨름계의 전설인 [[이만기]]는 이 장면을 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KBS가 2011년 추석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던 '천하장사 만만세'에서 이같이 술회했다. 당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씨름이 얻어터지는 기분이었다."'''] 씨름계의 흑화와 더불어 씁쓸하면서도 슬픈 장면이 오버랩되는 순간.
2011년 2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동년 3월에 모교인 [[용인대학교]] 격기학과의 씨름전공 교수로 정식 임용된 후 씨름 팀 감독으로 재직 중에 있으며, 이와 함께 [[2014년]] 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씨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도 출연해 여자 씨름 해설을 했으며, 출전자들을 지도해 주기도 했다.
- 이현보 . . . . 3회 일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강가에서 배를 탈 때 배에는 오직 화분(花盆) 몇 개와 바둑판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전사옹(田舍翁)으로 자처하며 집 앞 시냇가에 배를 띄우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니 사람들이 농암을
* 해제: 자연을 벗하며 고기잡이를 하는 한가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는 "가어옹(假漁翁)"으로, 실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어옹"이란 속세를 떠나 강호에서 낚시하면서 시나 읊고 술잔을 기울이던 양반을 이르는 말로, 작품에서도 실제 어부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천심녹수(千尋錄水)", "만첩청산(萬疊靑山)"과 같이 상투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관념적으로 어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의 어부의 삶이란 곧 자연 속에서의 은둔 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5수의 초장과 중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다.
- 인교진 . . . . 3회 일치
2000년 [[문화방송|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재동 역을 맡아 연기생활을 시작한 인교진은 2012년 4월 22일 종영된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말극 《[[내일이 오면 (2011년 드라마)|내일이 오면]]》을 통해 인연을 맺고 연인으로 발전, [[서우]]와 함께 공개 연애를 선언했으나, 2013년 5월 결별하였다. 이후 2014년 4월, 인교진은 12년 간 같은 기획사에서 만나 동료 연기자로 친분을 맺어 온 [[박수진 (1987년)]]과 교제를 시작했으며 동년 10월 4일 결혼식을 올렸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008217748&cp=nv 인교진-박수진 결혼 공식입장 “지난달 초 결혼 프로포즈… 10월 결혼”], [[국민일보]] 2014년 4월 9일자</ref> 그리고 임신 소식이 전해져 태명을 기쁨이로 지었다. 2015년 12월 4일에는 딸이 태어나 그의 딸을 박하은으로 지어 가족으로 발전되기 시작되었다.
* 2003년 [[서울방송|SBS]] 수목드라마 《[[선녀와 사기꾼]]》 ... 고민상 역
* 2019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2]]》 ... 곽하니 역
- 인비저블 우먼 . . . . 3회 일치
[[판타스틱 포]]의 일원. 본명은 수전 "수" 스톰(Susan "Sue" Storm)이며 [[리드 리처즈]]와 결혼한 이후 수전 리처즈가 되었다.
능력은 [[포스 필드]]와 투명화이다. 포스 필드는 방어력이 매우 높은 역장이며, 공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물건을 드는 등의 용도로 쓰기도 한다. 매체에 따라서는 날붙이처럼 쓰기도 한다. 셀레스티얼의 갑옷을 파괴할 수도 있는 등 그 힘은 판타스틱 포 최강이다.
[[미스터 판타스틱]]과 연인 → 부부 관계이다.[* 참고로 나이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거의 키잡에 가깝다.(…)] 판타스틱 포의 [[홍일점]]이며, 두 아이에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벤과 동생 조니, 워커홀릭 남편인 미스터 판타스틱이 그렇게 사고치고 속을 썩이는데도 용케도 끝까지 같이 사는 걸 보면 '''[[성녀]]''' 수준.(…) 게다가 퓨처 파운데이션 이후 집에 식구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것이, [[닥터 둠]], [[네이머]]와 서로 끌리는 관계에 있음을 그린 에피소드들이 많다. 수잔 스톰 자체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급의 미모를 자랑해서 그렇기도 하고.
- 일곱개의 대죄/174화 . . . . 3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젤드리스와 노려보고 있다가 먼저 공격을 가하지만 오히려 팔이 잘린다.
* 젤드리스의 신호와 함게 나머지 십계도 공격이 가세한다.
* 젤드리스는 멜리오다스와 동급이거나 버금가는 수준으로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3회 일치
* 젤드리스와 드레퓌스(프라우드린)는 다른 곳에서 리오네스 왕국의 성기사들을 상대하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와 성기사들은 그 조차도 십계엔 안 되는 거냐고 우려하는데.
* 에스타롯사도 풀카운트를 쓰는데 멜리오다스와는 정확히 반대. 순수한 물리력만을 튕겨낸다.
- 일곱개의 대죄/194화 . . . . 3회 일치
* 자라트라스는 사라지기 전 잠시 동안 드레퓌스와 핸드릭슨에게 인사하고 길선더에게 항상 지켜보고 있겠다고 전해달라 한 뒤 모습이 사라진다.
* 드레퓌스와 핸드릭스는 서로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 자책한다.
멜리오다스의 썩소는 에스타롯사와 닮았다는 의견이 많다.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3회 일치
* 원념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나타나자 믿기지 않는 듯했다. 기데온을 든 손이 축 늘어졌다. 대신 다가오는 투구를 손아귀에 넣었다. 그들에겐 보였다. 헬브람이다. 자신들을 학살한 요정. 이 마을을 멸망시킨 요정. 성채도시 코란도의 멸망은 마신족이나 십계 때문도, 전쟁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이 증오스러운 요정의 소행이다. 무수한 억울하고 분노한 영혼들이 얼굴을 들었다. 그들이 디안느를 빠져나와 헬브람의 목을 조르러 왔다. 헬브람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할리퀸이 친구에게 가지 말라고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헬브람은 아주 편안한 얼굴로 돌아섰다.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작별을 고하는 친구와 달리 할리퀸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 그걸로 끝이었다. 원념들이 디안느의 손아귀로 헬브람의 투구를 짓이겼다. 작은 소음과 함께 헬브람이 누리던 세 번째 삶도, 은원의 고리도 끊겼다. 고서는 그 직후 디안느를 사로잡고 있는 탁한 기운이 급속도로 흩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여전히 몇몇은 오갈데 없는 분노를 분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욱 격렬하고 끈질기게 디안느를 얽어맸다. 디안느의 자아는 누구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고 절규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원념의 것이었다. 바로 그때 갑작스런 강풍이 불어와 디안느가 휘청거렸다. "금풍의 역린". 바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원념에게 "이젠 잠들어도 괜찮다"고 속삭였다.
- 임기영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10월 1일]]<br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2017년]] [[4월 18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시즌 2승이자 데뷔 첫 완봉승을 기록했으며<ref>{{뉴스 인용
[[2017년]] [[6월 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7승이자 시즌 두번째 완봉승을 거뒀다<ref>{{뉴스 인용
- 임효성 . . . . 3회 일치
[[충주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 [[서울 SK 나이츠]]에 입단하여 프로에 데뷔했다. 전체 3번이라는 드래프트 순번에서 알 수 있듯이 데뷔 당시에는 제법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데뷔 후 SK에서 ~~벤치워머로~~ 한 시즌을 뛰고, 2번째 시즌 도중 [[문경은]]의 맞트레이드 상대로 지목되어 [[김일두]]와 함께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후 2번째 경기에서 23득점을 몰아치는 등 기대를 모았으나 그 이후 활약은 미비했다.
현재 아들 하나와 두 임로희임로린 딸의 아빠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한다. ~~그리고 아내가 넷째를 갖고 싶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밤마다 공포에 떨고 있다~~ [[카더라]]. '''그러다가......''' 아내의 도박 혐의가 만 천하에 공개되면서 인생의 실패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부부간의 이혼, 불화 의혹도 돌았지만 임효성이 아내가 물의를 빚은것에 대해 사과함과 동시에 불화설은 루머임을 밝혔다.]
- 자타라 . . . . 3회 일치
외형은 전형적인 서양 [[마술사]]. 딸인 자타나와 마찬가지로 단어를 거꾸로 읽어서 마법을 구사한다.
마법 계열 캐릭터인지라 [[팬텀 스트레인저]]와 대면하기도 했다.
자타나와 재커리 자타라 외의 관련 인물로 Luigi Zatara가 있다. 자타라의 할아버지이자 자타나의 증조부.
- 장덕균 . . . . 3회 일치
* 《청와대 가는 길》 (새와물고기, 1997.01)
* 《한다면 한다》 (새와물고기, 1997.10)
- 장발 (화가) . . . . 3회 일치
장발은 서양화가였지만,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신자(세례명: 루도비코)로서 [[성화상|성화]] 제작과 가톨릭 [[성당]] 건립에 참여한 것 이외에는 창작보다 [[미술]] 이론 연구와 교육 활동에 더 몰두했다.
우석 장발은 [[1901년]] [[4월 3일]] [[한성부]] [[종로구|종로]] 친척 집에서 인천세관의 관리 [[장기빈]]과 그의 부인이었던 황루시아의 아들로 태어났고 이후 [[인천광역시|인천]]에서 성장하였는데 그의 형은 후일 [[대한민국의 부통령]]을 역임하는 [[장면]](張勉)이다. [[인천광역시|인천]]의 개화한 집안에서 출생하였고, 초명은 지완(志完)이라 했다가 뒤에 발(勃)로 개명하였다. [[1920년]] [[일본]] [[도쿄 미술학교]]에서 유학한 뒤, [[1922년]]부터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수학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에 취임했으며, [[1961년]]까지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미술계와 미술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총리를 지낸 형 장면이 [[5·16 군사 정변]]으로 실각한 뒤에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여생을 보냈다.
- 장범준 . . . . 3회 일치
'''장범준'''([[1989년]] [[5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그룹 [[버스커 버스커]]의 리더이다. 그가 속한 그룹 버스커 버스커는 [[2011년]] [[엠넷]] 오디션 《[[슈퍼스타K3]]》에 참가해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그는 편안한 목소리와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으로 주목받았다. [[2012년]] [[3월 29일]] 첫 번째 앨범 《[[버스커 버스커 1집]]》으로 데뷔했다. '''장범준'''은 버스커 버스커로 데뷔하기 전에 [[다큐 3일]] 청춘의 봄날 홍대거리 편에 출연한 적이 있다. [[2014년]] [[8월 19일]]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 홍대와 건대 사이
* [[2019년]]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 고정출연 ([[송지수]]와 동반출연)
- 장석조 (판사) . . . . 3회 일치
1961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대전고등법원]] 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는 등 민사, 형사, 행정, 헌법재판소 근무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으며, 집행절차에 있어서의 채무자 보호, 판결의 편취와 절차적 기본권, 우리 헌법상 절차적 기본권, 조세법상 실질과세원칙의 적용한계, 헌법과 민사소송법, 민사재판과 헌법적 판단, 재판받을 권리의 헌법상 보장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2008년에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을 받았다.
*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9월 28일에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제기한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강남세무서장 등 15개 관서장이 고지한 각 증여세 139억원의 부과를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판결했다.<ref>[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4/09/20140926234304.html]</ref> 12월에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6곳이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상대로 낸 영업시간제한 등 처분 취소소송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달성되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뚜렷하지 않고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고 하면서 원고 승소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1심 판결을 인정하여 파기하여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ref>[http://www.ajunews.com/view/20151119130813012]</ref>
- 장성집 . . . . 3회 일치
그는 30세에 [[천주교]]의 [[교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성육신]]과 [[동정 (성 문화)|동정]] [[탄생]]의 교리를 믿지 못하였다. 그는 [[하느님]]이 스스로 겸손하게 [[인간]] [[사랑]]을 위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의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그는 천주교의 교리 공부를 단념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에게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설득하였다. 장성집은 과거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성경]] 읽기에 빠져 살았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마다하고 혼자 지내는 삶을 살았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왜 [[장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속세에서 부유함을 누리고 살기보다는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춥고 배고프게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대답했다. 그는 [[1838년]] [[4월]]의 같은 날에 [[영성체]]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장평도정 . . . . 3회 일치
아버지는 [[조선 태종|태종 이방원]]의 아들 [[양녕대군]] 이제(讓寧大君 李禔)이고, 어머니는 이름 미상의 첩이다. 그의 출생년도와 생일에 대한 기록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선원보략에는 그가 1438년생으로 나타나나 [[세종실록]]에는 1437년 정윤에 봉해진 기록이 나타난다.
[[파평 윤씨]]와 [[진주 강씨]] [[강위]](姜偉)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파평 윤씨는 딸 둘을 두었고, 진주 강씨에게는 3녀를 두었다. 서자로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 · 우성령(牛城令) 이석(李碩) 등의 2남이 있다. 부림령의 시호는 정숙공(靖肅公)이며, [[원주 변씨]] 변처관(邉處寬)의 딸과 혼인하여 수주정(樹州正) 이윤인(李允仁)<ref>이윤인은 이승만의 13대조 할아버지이다.</ref> · 유제도정(楡梯都正) 이윤의(李允義) · 덕풍부령(德豊副令) 이윤례(李允禮) 등의 3남을 두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rfo.co.kr/html/pachong_view.php?No=39&mode3=history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우성령 이석은 [[안동 권씨]] 종손(從孫)의 딸과 혼인하여 덕창부령(德昌副令) 이자인(李自仁) · 시천부령(矢川副令) 이자의(李自義) · 해평부령(海平副令) 이자례(李自禮) · 화성부령(化城副令) 이자지(李自智) · 가조부령(加祚副令) 이자신(李自信)의 5남을 두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장평도정의 손자 수주정 이윤인의 13대손이다.
- 전국 BASARA . . . . 3회 일치
도쿠가와 이에야스 휘하의 무장. 아무리 봐도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 나와야 할 것 같은 외양이다. 이동도 [[호버링]]으로 한다. 처음 나올 시 쓰러뜨릴 수 없으니 도망가라고 하지만 시간만 충분하면 잡을수도 있다. 방어력이 괴악하게 높은게 문제지.
* 이마가와 요시모토
- 전성군 (1488년) . . . . 3회 일치
생전 관직은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절제 도위, [[돈녕부]][[주부]] 등이었지만 후손들의 거듭된 출세로 [[증직|증]]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증직|증]] [[호조]][[판서]]와 [[증직|증]] [[이조]][[판서]]를 거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는 등 거듭 증직이 [[추증]]되었다. [[대한민국]] 초기의 정치인 만송 [[이기붕]]은 그의 13대손이다.
[[1527년]](중종 22) [[7월]]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 면직되었다. 이후 좌익찬(左翊贊), [[사복시]]주부, 겸[[한성부]][[참군]](兼漢城府參軍), [[장예원|장예]][[사평]](掌隷司評), [[종부시]]주부를 거쳐 다시 사헌부감찰이 되었다가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절제 도위,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 부정(副正) 이공장(李公檣)의 천거를 받았다가 [[사헌부]]로부터 성품이 본래 침착하지 못하고 소행도 탐욕스럽고 간특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ref>중종실록 94권, 1541년(중종 36년, 명 가정 20년) 2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헌부가 천거하는 자들이 사적으로 천거를 함으로 폐단이 심하다고 아뢰다"</ref>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낸 정종보(鄭宗輔)의 딸 동래정씨와의 사이에서 8남 1녀를 두었는데, 일곱째 아들이 권신 [[이량 (조선)|이량]]이고, 고명딸은 [[청송 심씨]] [[의정부]][[영의정]][[심연원]]의 아들이자 [[좌의정]] [[심통원]]의 조카 [[심강]]에게 출가했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왕릉골(현,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왕릉골 부락) 좌산 경좌에 부인 동래정씨와 합장되어 있으며, 아버지 여양군, 조부 율원군의 묘소 아래에 있다.
- 전수지 . . . . 3회 일치
* 《쁘와송 다브릴》 (2006년) - 주영 역
* 《[[성녀와 마녀 (드라마)|성녀와 마녀]]》 (2003년, MBC)
- 전예용 . . . . 3회 일치
}}</ref>)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관료이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총독부 사회과장, 황해도청 산업부 농업과장, 경성세무서 서무과속, 개성세무서속 등을 거쳐 경기도 광주군수를 지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 학무국장 보좌관으로 근무했으며 고려대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었다가 [[서울특별시 부시장]]이었고 [[6.25 전쟁]] 중 [[서울특별시장]] 직무대리를 역임했다.
그밖에 한국은행 부총재와 총재, 건설부장관, 부흥부 장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강사 등을 지냈다. [[서대문]]출신.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은행]] 부총재, 총재와 건설부 장관을 역임했고,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당료로도 활동하여 의장서리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에 [[서울시]] 부시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전쟁 발발 사흘 후에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서울시민들에게 통보 없이 미리 몰래 피난한 일이 있다.<ref>{{저널 인용
- 전장운 . . . . 3회 일치
전장운은 [[1811년]]에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인도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정장운은 어릴 때부터 [[농사]]와 [[가죽]] [[가방]]을 만들며 가족을 부양했다.
전장운 요한은 [[결혼]]하여 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 [[베르뇌]] [[주교]]는 그를 매우 독실한 신자로 인정하여, 그에게 [[세례]]를 베풀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최형 베드로]]와 [[임치화 요셉]]과 함께 그를 [[교회]] [[서적]]의 [[출판인]]으로 임명하였다.
[[1866년]] [[3월 1일]]에 포졸들이 그 [[인쇄소]]를 급습하여, 전장운은 [[체포]]되었고, [[목판 인쇄|목판]]들은 몰수되었다. 그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예수]]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모든 [[고통]]을 견뎌냈다. 그는 [[포도청]]에서 1회의 [[심문]]을 받은 후, [[의금부]]에서 9회의 [[심문]]과 2회의 형문을 받고 [[장형]] 32 대를 맞았고, [[1866년]] [[3월 6일]]에 [[형조]]로 이송되어, [[3월 9일]] [[사형]]을 선고받아 그날에 [[서소문]] 밖에서 [[최형]]과 함께 [[참수]]되었다. 그는 사형장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목]]을 자르는 [[망나니]]가 과거에 자신과 면식이 있는 전(前) 천주교우였음을 알아보았다. [[망나니]]는 전장운의 [[목]]을 자르기를 주저했는데, 남종삼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왕|임금님]]을 따르십시오. 저는 [[하느님]]을 따르겠습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전장운은 [[참수]]되었고, 사흘 후에 [[장례]]가 치루어졌다. 그가 자신의 신앙에 따라 [[순교]]했들 때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 전혜진(1970) . . . . 3회 일치
[[2010년]] [[놀러와]]에 출연한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자신의 사촌 동생이 전혜진임을 밝혔다. [[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10040611012458515|#]]
본인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제목처럼 실제로 4명의 딸이 있는 딸 부잣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990919|국민일보 기사]] 1991년 미스코리아에서 당선되었으며 배우와 MC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9월에 개신교식 예배로 4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했다.
|| [[1999년]] ||<|2> MBC || [[장미와 콩나물]] || 애경 ||
- 절대가련 칠드런/446화 . . . . 3회 일치
* 해적의 정체는 효부 쿄스케와 그의 심복 마기 시로, 카노 모미지, 후지우라 요우.
* 효부는 배에서 할 일은 자신과 마기가 할 테니 모미지와 요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고 지시한다.
* 모미지는 왠 일로 잡일을 하려고 하냐고 묻는데 효부는 자기도 가끔은 일을 한다며 "오랜 만에 마기와 둘만인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7화 . . . . 3회 일치
* 효부에게 쓰러지지만 카본으로 만든 더미. 와이어 커터를 생성해 공격한다.
* 마기는 은신한 채로 단분자 결정으로 만든 와이어 커터로 공격한다.
* 효부는 당황하지 않고 와이어 커터를 통해 "진전"의 전격을 흘려보낸다.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3회 일치
* 마기 시로와 교전을 이어가는 효부 쿄스케.
* 내전 중인 나라를 방문한 효부와 머슬 오오카마를 털어먹으려고 접근하는데.
* 자신의 불리함이나 약점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는 것이며 그의 전술 전반이 어린애와 같은 허세로 이루어져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3회 일치
* [[카노 모미지]]와 [[후지우라 요우]] 등이 인근에서 대기 중. 위급시 더 칠드런 일행을 구조할 생각이다.
* 미오는 증원군이 도착하자 기다렸다고 기뻐하다가 곧 츤데레 보정이 발동해 "우리들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라며 얼버무린다. 칠드런 일행도 그녀의 츤데레 기질엔 심드렁. [[산노미야 시호]]와 [[노가미 아오이]]는 알았다고 대충 흘려듣고 [[쿠모이 유리]]는 그보단 일행의 안위를 먼저 확인한다.
* 파티는 겉 보기엔 멀쩡하지만 카가리의 발화 능력으로 인해 능력을 엄청나게 소모한 상태. 카즈라는 모든 면에서 양호했지만 카가리는 아직도 가랑이의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리타이어 상태다. 일행 중에선 [[마츠카제 코우이치]]만 그 심정을 이해한다. 마츠카제는 원래 목적이었던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에 대해서도 확인하면서 이 시설의 모든 전말을 전달받는다.
- 정경호(1972) . . . . 3회 일치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무명이었다가 [[tvN]]의 [[재밌는 TV 롤러 코스터]] 에서 [[루저전]] 이라는 코너에서 만년 사법고시에 떨어지는 노총각 고시생으로 열연하여 이름이 알려졌다.
* [[2001년]] [[와니와 준하]] ... 사고 운전자 역
- 정규수(배우) . . . . 3회 일치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 최용수 역
* [[2008년]] 《[[아기와 나 (2008년 영화)|아기와 나]]》 ... 별이 부 역
- 정서임 . . . . 3회 일치
* 《라디오쇼》 - 곽규호씨와 공동 MC
* 1987년 《가족오락관》 - 김성환씨와 출연
* 2000년 WKTV 《홈쇼핑》 - 희극인 송영길 씨와 진행
- 정은표 . . . . 3회 일치
뒤이어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아들이 출연하여 아들도 함께 유명해졌다. 그리고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하여 엄청난 탁구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그리고 테니스 편에도 경기도 대표로 나와서 재출연! ~~"호동 씨는 탁구칠 때는 같은 편이라서 안 그랬는데 오늘은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본인 조는 에이스 조인 강호동, 신현준 조를 이겼으나 경기도 팀이 예체능 팀에게 졌다.
9여년동안 소속사 없이 활동해오다 2017년 4월에 '공중GM코리아'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한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610240|#]]
- 정혜선(배우) . . . . 3회 일치
[[1963년]], [[KBS]] [[공채]] 동기인 [[박병호(배우)|박병호]]와 [[결혼]]했으나, [[1975년]] [[이혼]]했다. 당시 박병호가 영화제작으로 생긴 빚을 일부 떠안았으나 이혼 후에도 묵묵히 다 갚으며 세 자녀를 키워냈다고 한다.
[[김희애]]와 [[전광렬]]하고 모자(녀) 관계로 수 차례 출연한 인연이 있다. 김희애의 경우 [[1991년]] 산너머 저쪽, [[1993년]] [[아들과 딸]], [[2003년]] [[완전한 사랑]]에서 모녀관계로 출연했으며, 전광렬의 경우 [[1999년]]판 [[허준(드라마)|허준]], [[2010년]] [[제빵왕 김탁구]], [[2017년]]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모자관계로 출연했다.
* [[금 나와라, 뚝딱!]]
- 주상욱 . . . . 3회 일치
주상욱은 1남 2녀중 둘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서 주상욱이 7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공직 생활을 하시며 삼남매를 키우셨다. 친구의 모델활동 현장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에이전트로 부터 부탁을 받았던 주상욱<ref>[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힐링캠프' 주상욱, "배우 데뷔? 모델 여자친구가…"]{{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ref> 은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대 중반까지 아역으로 활동했다. 제대 후 젠틀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실장님서 반장님… 다음은 허당 공무원이죠"|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저자=신정엽|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2-01-16|확인날짜=2013-05-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3073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보존날짜=2013-10-04|깨진링크=예}}</ref> [[2012년 7월]] [[김준호 (희극인)|김준호]]와 함께 《[[남자의 자격]]》에 합류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2019년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2]]》 - 톱스타 강민호 역 (특별출연)
* 2015년 불스원 레인오케이 하이브리드 와이퍼
- 진격의 거인/80화 . . . . 3회 일치
* 리바이와 엘빈은 엘런의 거인이 벽까지 날아와 처박힌걸 목격한다.
* 그는 언젠가 "답맞추기"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고,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면서도 아버지와의 꿈, 답을 맞추는 것에 걸고 여지껏 살아왔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3회 일치
* 한지 일행이 와서 사태를 진정시키면서 결국 엘빈에게 주사하는 걸로 결정되는 듯 했지만
* 쟝은 욕지거리를 연발하고 코니는 아르민에게 "다음에 보자"는 작별인사와 함께 눈물을 흘린다.
* 조사병단 측에선 두 번째로 확보한 거인화 전력. 아르민의 거인은 체구가 작고 머리가 큰 타입이다. 유미르의 거인화와 유사.
- 차명진 . . . . 3회 일치
* [[2010년]] [[7월 23일]] 에서 24일까지 참여연대가 실시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에 참여한 이후 후기가 논란이 됐다. 이 후기에서 차명진 의원은 "나는 왜 단돈 6300원<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00727034204810 “6300원짜리 황제의 삶” 차명진 의원 최저생계비 체험 수기 논란]</ref> 으로 황제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물가에 대한 좋은 정보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글을 써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응하여 민주노총은 개드립(개+애드립(ad lib))과 오버질에 불과하다며 비난했다. 차명진 의원은 결국 물의를 빚어서 죄송하다는 말로써 사과했다.
* 2011년 [[10월 1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 "삥" 등의 적절한을 총동원해 원색적이 비난해서 논란이 됐다. "박씨는 한 손으로 채찍을 들어 재벌들의 썩은 상처를 내리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삥을 뜯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이는 악어와 악어새의 동거"라며 "시민운동이 아니라 저잣거리 양아치의 사업방식"이라고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로 규다했에 대해 투명하게 재정상태를 공개해온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을 양아치로 묘사한 것에 많은 공가이 어다
- 차희식 . . . . 3회 일치
이러한 상황으로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점점 높아가는 때에 서울의 3·1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한 지역의 지도자들은 구장회의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구체화했다. 차희식은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인근 주민들에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우정면 주곡리와 석포리 주민들의 선봉에 서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4월 3일 군중은 점차 늘어나 1천여 명에 이르렀고 시위 행렬은 인근의 쌍봉산으로 이동하여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선생은 차병혁, 차인범과 함께 군중들을 인솔하여 우정면사무소, 화수주재소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일본 순사가 쏜 총에 주민이 피살되자 차희식을 비롯한 군중들은 격분하여 도망가는 일본 순사 가와바다를 추격하여 처단했으며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 5남 1녀를 두었다.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3회 일치
이 사건의 피고인은 재일영국인으로, 밤중에 귀가를 하다가 거리에서 음주를 한 여성 A와 피해자인 남성 B와 마주쳤다. 이 때 B는 A를 달래려고 하고 있었는데, A는 창고의 철제 셔터에 부딪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여성 A는 피고인을 보고 '''"헬프 미!"'''라고 소리쳤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여성의 도움 요청을 받고 피고인은 B가 A를 폭행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여성을 돕기 위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피고인은 A를 도와서 일으키고, B쪽으로 손을 내밀면서 접근했다. 피해자 B는 이 모습을 보고 피고인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피고인은 이것을 [[복싱]]의 파이팅 포즈로 오해. B가 자신에게 덤비려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자신과 A를 지키기 위하여 순간적으로 왼발 [[돌려차기]]를 날렸다.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3회 일치
이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사는 곳''' [* 다만, 단순 인간형 종족이라면 다른 대륙에서도 살고 있다.] 안덴산맥을 통해 남부와 북부가 구별되며, 남부 해안가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다. 큰섬들은 대강 하와이 정도의 크기이지만, 예외는 있다. 보통 섬에서는 거상들이 근처 영주와 협업해 그들만의 공화국들을 세우는 편이 흔하다.
- 창작:왕국 . . . . 3회 일치
>여왕폐하와 국가를 위해
== 지리와 기후 ==
남쪽에 있는 사발타와 친하긴 하지만 사발타는 시대를 역행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국가니 제외.
- 창작:좀비탈출/0-1-2 . . . . 3회 일치
놈들이다. '''썩은 피와 살을 가진 불쌍한 방문객.'''
담을 넘어도 문제다. 현관문은 엄청 두껍고 고급 아파트에나 쓰는 소재로 된 걸 달아놨다. 아버지는 이걸 달면서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와도 끄떡없어"라고 했는데, 나는 다 쓰러지고 허물어진 잔해 위에 문만 굳건히 서있는 장면을 상상했었다.
이대로는 굶어 죽을 것이다. 과연 어느 정도 거리를 돌아다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살려면 일단 나가야 한다. 나갔다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3회 일치
나는 오래간만에 샤워를 했다. 녀석들이 수도관을 파해치던 것과 그로인한 찝찝함은 잊어버렸다. 하긴 내 눈으로 아직 수도관은 멀쩡한걸 보긴 했으니까. 물론 그 밖에도 이 물이 어디에도 오는지, 그쪽은 안전하게 버티고 있는 건지 생각할 거리는 많았지만 피로와 의혹도 물줄기에 쓸려 보냈다.
간신히 거실로 나와서 햇볕을 받으니 약간은 증세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눈도 뜰 수 없는 상태에서 눈은 떠지는 상태로 호전이다. 눈물 나게 좋은 징조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모르겠다. 계속 정신을 잃는다. 몇 시간 간격으로 증세가 나타나는지 모르겠고 한 번 정신이 돌아와도 부지불식간에 잃어버린다.
- 창작:좀비탈출/5-1-2 . . . . 3회 일치
내가 치운 돌은 두 개째까지다. 기억이 맞다면 세 번째 부터는 된장, 고추장, 간장의 순서일 것이다. 물론 그것들도 필요하지만 이제 와서야 담아갈 수단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망할 놈의 그릇을 챙겨왔어야 했다. 그래서 세 번째부터 포기하고 쌀과 야채만 가방에 담을 수 있는 만큼 담았다. 이정도만 해도 대략 일주일치는 된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현관을 잠가 버리면 내 목숨은 적어도 일주일 연장되는 것이다.
어제 남은 죽으로 아침인지 야식인지 모를 끼니를 때웠다. 졸음이 몰려왔고 나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항상 같은 침대였는데 오늘만큼은 깃털처럼 부드럽다. 20시간이 조금 못 되는 인간적인 생활의 여파인지 피로와 공복감 밑에 숨어있던 다른 욕구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 미학적 욕구나 지식욕처럼 점잖은 거면 좋겠지만... '''나는 인간이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고 살아가는 실감이 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끔은…… 아니 '''어차피 혼자 있는데''' 눈치 볼게 뭐가 있어? 나는 졸음을 잠깐 미뤄뒀다.
기대와는 달리 욕구는 강렬하진 않았다. 조금씩 고개를 들려고 하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그라든다. 그 벽이라는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만큼 가깝진 않지만 귀를 막지 않고는 피할 도리가 없는 녀석들의 울부짖는 소리. '''그르렁'''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3회 일치
학교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예상 밖의 것을 발견했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철 울타리 너머에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가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하여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다. 생존자였다.
나 말고 살아있는 누군가를 본 것이 얼마만인가.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가 손짓하는 대로 교문 쪽으로 자전거를 움직였다. 그 사람 역시 교문 앞으로 달려와서 좀비들이 나를 눈치채고 교문으로 들어오기 전에 교문을 살짝 열어서 자전거가 들어올 수 있을 만한 틈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쏜살같이 그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민구는 더듬거리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박민구. 이녀석은 나와 1년 전에 같은 반이었던 녀석이다. 조용하고 말이 없고, 사실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다. 얘는 누구하고도 별로 친하진 않았지만.
- 창작:헤이즈 . . . . 3회 일치
이후 현 사이트로 옮겨 "헤이즈(Haze)"라는 이름으로 재개되었다. Haze는 '''아지랑이'''라는 뜻으로, 무동군의 마스코트이자 미스테리의 상징이기도 한 안개를 뜻한다. 동시에 동사로 쓸 경우 '''신고식을 시키다'''라는 뜻인데, 주어와 목적어가 각각 누구일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또한 '''미로(Maze)'''와도 철자가 비슷하다.[* 사실 제목의 후보군에 올라 있었고 많이 고민했지만 분위기가 안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탈락했다.]
'''{{{#red ※ 항목의 폭주와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에피소드 하나씩만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 채현국 . . . . 3회 일치
'''채현국'''([[1935년]] ~ )은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이자 [[문화운동가]]이다.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를 마쳤으며, 과거 [[흥국기업]]의 총수이자 현재 [[대한북레터협회]]와 [[효암학원]]의 [[이사장]]이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뒤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자금을 지원했다. 1988년부터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뒤에서 돌보고 있다. <ref>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557825 ‘꼰대’ 거부하는 채현국·신영복·호세 무히카 이런 ‘단호박 할배’들은 처음이다</ref>
현재는 아버지 채기엽의 호를 딴 [[효암학원]] 이사장과 [[대한북레터협회]]의 이사장으로 재임하고 있으며 2014년 새해에 한겨레와의 인터뷰로 인해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고 호응을 얻게 되어
- 철인 28호 . . . . 3회 일치
80년대에 방영. 국내에서도 더빙되어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다만 다른 철인 시리즈와는 거리감이 생겼다.
2004년,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판이 나왔으며 배경은 초대 철인의 시기다. 이 버전 이후 극장판인 '철인 28호 백주의 잔월'이 나왔다.
요코야마 선생의 철인 이후에도 코믹스가 나왔다. 하세가와 유이치의 <철인 28호 - 황제의 문장(鉄人28号 皇帝の紋章)>이 그런 경우. 소년탐정 김전일의 사토 후미야도 <철인탈환작전(鉄人奪還作戦)>을 내놓았다.
- 철인 28호(로봇) . . . . 3회 일치
[[카네다 쇼타로]]가 조종하는 [[거대로봇]]. 쇼타로의 아버지인 [[카네다 박사]]와 동료인 [[시키시마 박사]]가 만들었다. 쇼타로와 그의 파트너나 다름없는 [[오오츠카 서장]], 동료인 시키시마 박사와 함께 활약. 대표적인 적은 [[프랑켄 박사]]의 [[블랙 옥스]].
- 체육회계 . . . . 3회 일치
고등학교, 대학 등에서 운동부(체육회)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 사회 생활까지 가져온 운동부(체육회) 계통의 문화. 회사나 직장,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데 사용한다. 연예계가 체육회계가 강하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와는 '군대 문화', '군기잡기' 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 선배와 후배로 구분되며, 상하관계를 엄격하게 한다.
- 최상열 . . . . 3회 일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했다. 1988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94년 부산고등법원 판사, 199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하다가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2005년에 부장판사가 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쳤다. 2014년 2월에는 제17대 울산지방법원장과 제19대 울산광역시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2년간 역임한 이후 2016년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판장을 맡았으나 2018년 2월에 제36대 광주고등법원장에 임명되었다.
김우종 전 경희대 교수와 소설가 이호철씨 등 [[문인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씨 등이 지난 2003~2008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지정돼 생활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국가의 주장에 대해 "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지급한 보상금이 위자료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며 "국가는 총 6억 96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 최석민 . . . . 3회 일치
[[한성부]]의 출신이며 본적은 [[경성부]] 북부(北部) 이동(泥洞)이다. 의정부와 내각의 관리로 일하다가 지방의 군수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최석민은 관제 정비와 지방 제도, 세금 분야 등의 실무 전문가로 점차 고위직에 올랐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와 포상금 형식의 [[은사공채]](恩賜公債) 2만 5천원을 받았다. 조선귀족 중 남작 작위는 본래 전직 관료에게 주어졌으나, 그는 칙임관 1등 이상의 현직에 재직 중인 것을 기준으로 이 작위를 수작했다. 최석민의 작위는 양자 [[최정원 (조선귀족)|최정원]]이 습작했다. [[1911년]] [[8월 29일]]에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1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매일신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 최성관 (1925년) . . . . 3회 일치
* 처와 처 (1970년)
* 어머니와 아들 (1976년)
* 삐에로와 국화 (1982년)
- 최우석 (화가) . . . . 3회 일치
1915년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 입학하면서 [[안중식]]과 [[조석진]]의 문하생이 되었고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서화협회]] 전람회 정회원을 역임했다.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근대적인 채색화 수법을 응용한 풍경화와 한국의 역사 인물을 주제로 한 초상화 연작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연달아 수상했지만 그가 작품 활동 초기에 그린 풍경화와 인물화는 일본 화풍의 채색화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점차 한국의 전통적인 수묵 담채화의 관념적 작품으로 회귀하게 된다. 주로 산수화와 신선도 등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 최원권 . . . . 3회 일치
[[2000년]]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 해 [[아디다스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주로 [[미드필더|윙어]]로 활약하였으나 [[수비수|풀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하여, [[K리그 2001|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6년]]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자신의 프로 통산 첫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고,<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598 FC 서울 최원권 도움 헤트트릭 기록 ]</ref>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1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진호 (축구 선수)|이진호]]와 맞임대로 [[대구 FC]]에 임대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42738 제주, 박기동-최원권 보내고 이진호-황도연 데려온다] - 일간스포츠</ref>
* [[2013년]] {{국기그림|대한민국}} [[대구 FC]] ([[이진호 (축구 선수)|이진호]]와 맞임대)
- 최종원(국회의원) . . . . 3회 일치
[[강원도]] [[태백시]]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태백공업고등학교 광산과를 졸업하고 함태탄광에서 탄 분석 기사로 일했다. 1974년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정영애와 결혼했다. 서울예술대학교의 전신인 드라마센터 졸업. 1986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 1998년 고려대학교 산업정책대학원 졸업. 경운대학교 학사라고도 한다. 과거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학창시절 하위권 성적이 공개되었는데 공부 안하고 놀기 좋아했던것을 인정하며 웃어 넘겼다.
수상경력은 1995년 〈[[영원한 제국]]〉으로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 밖에 없지만,[* 정조의 정적인 노론의 수장 심환지역을 맡았는데 당시 쉰도 안된 나이로 칠순 가까운 노인 심환지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게다가 그릇된 노론사관이 짙은 영화임에도 수구세력이 아닌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나온 극중 심환지의 모습이 시너지를 이루었다.] 1993년 영화 [[투캅스]]의 악당 보스 역을 비롯하여, 사실 수많은 영화에 비중있는 단역이나 조연으로 출연했다. 단 한컷만 잡혀도 강렬한 마스크와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잊을수 없는 인상을 남겼던 그는 한국 영화 최초의 신스틸러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그의 활약 이후 [[이문식]], [[이원종(1966)|이원종]], [[유해진]], [[성지루]], [[김응수]] 등의 굵직한 조연급 배우들이 줄지어 그의 뒤를 이어 한국영화계의 신스틸러 소리를 듣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과 가까운데 국회의원 경력도 있다. [[2010년 재보궐선거|2010년 7.28 재보궐선거]] 강원도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 민주당 후보로 나서 55.01%(35271표)의 득표율을 기록, 44.98%(28841표)의 한나라당 [[염동열]] 후보를 제치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2008년)|민주당]], [[민주통합당]])을 역임하였다. 이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을 맡았던 [[유인촌]]과 마찰을 빚고 대립을 세우곤 했다.[* [[애초에]] 국회 입성을 앞두고 유인촌 장관과 마주치는걸 엄청나게 별렀는데 '''"유인촌 장관은 나랑 만나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라는 막말을 남겼을 정도(...) 실제로 당선 후 두 달 남짓 지난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을 예상대로 거하게 몰아붙였다.] 다만 [[19대 총선]]엔 출마하지 않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 최창흡 . . . . 3회 일치
그는 [[1839년]] [[6월]]에 체포되었는데, 그때 그의 사위 [[조신철]]이 [[베이징]]에서 가져온 [[성물]]들이 발견되어, 극심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그는 일곱 차례의 극심한 [[주뢰형]]과 주장질을 받고 [[태형]] 150대를 맞으면서도 결코 배교하지도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하지도 않았다. 그는 [[형조]]에서도 세 차례를 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신심으로써 견뎌냈다. 그는 사형장으로 압송되기 직전에, 한 형졸을 불러 수감되어 있는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울지 말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순교]]로서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청했다.
최창흡은 [[1839년]] [[12월 29일]]에 [[서소문]] 밖에서 여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다. 그렇게 그가 순교하던 때 그의 나이 53세였다.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카를로스 4세 . . . . 3회 일치
[[스페인]]의 [[국왕]] 재위 시기는 1788년에서 1808년. [[카를로스 3세]]의 둘째 아이로, 출생지는 [[나폴리]]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하여, [[왕비]] [[마리아 루이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와 그 애인 [[마누엘 고도이]]에게 국정을 맡기고 [[사냥]]과 취미생활에만 열중하였다. 결국 1808년 3월에 국민 폭동으로 퇴위하고 망명했다.
황태자 시절에 [[마리아 루이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와 결혼하고, 1788년 스페인 왕위에 올랐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성격으로 마리아 루이사와 그 애인으로서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20대 젊은 나이에 재상으로 임명된 [[마누엘 고도이]]에게 국정을 거의 떠맡기다시피 했다.
- 코난 월드 . . . . 3회 일치
* 운동 선수들의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NINJA와 동급.
참고로 세계의 위험도와 인간의 광기와 말도 안되는 능력에 대해서는 명탐정 코난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콩고릴라 . . . . 3회 일치
황금 고릴라의 몸에서 뛰어난 신체능력, 힐링팩터를 발휘한다. 이전에는 마법 반지를 문질러서 황금 고릴라와 정신을 교대하는 방식이라 이 당시에는 몸을 교대하면 원래 몸에는 고릴라의 정신이 들어갔다. 이후 그의 인간 몸은 사망했으며 그는 고릴라의 몸에 남게 되었다.
남아프리카계 히어로 [[프리덤 비스트]][* [[브와나 비스트]]의 후계자.]와 친구.
- 키드르 . . . . 3회 일치
쿠란 제18장 카흐프(동굴)에서 등장하며, 두 바다가 교차하는 점에서 [[모세]]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다만 쿠란에서는 '그'라고만 언급될 뿐. 직접적으로 키드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며, 이 인물이 키드르라는 것은 이슬람 학자들이 전통적으로 믿는 해석이다.
이슬람 전승에서 키드르는 모세 만이 아니라 무함마드, 우마르 2세 등과 직접 만났으며, 몇몇 학자들은 키드르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여긴다. 시아파에서는 키드르가 12번째 이맘 마흐디와 직접 만났다고 여겨지며, 시아파 이스마엘 파에서는 키드르는 '영원한 이맘'의 한 명으로 간주된다. 수피즘에서 키드르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이슬람 신화에서는 이스칸다르(알렉산더 대왕)과 연관지어지기도 한다. 키드르는 이스칸다르와 함께 어둠의 땅으로 생명의 물을 찾는 모험을 떠나며, 이 이야기에서 이스칸다르는 찾지 못하고 실패하지만 키드르는 생명의 물을 얻어 불로불사를 얻게 된다.
- 킹덤/506화 . . . . 3회 일치
* 뒤쳐져 있던 [[왕분]]은 [[비신대]]와 [[양단화]]군만이 열미성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돼서 한발 먼저 출발한다.
* 이를 걱정하는 [[이신(킹덤)|이신]]에게 양단화가 찾아와 [[바지오]]의 부대를 엄호할 궁병이 있는가를 묻는다.
* 양단화는 싸움이 한창인 성벽을 둘러보며 드디어 취약지점을 찾아낸다. 그녀는 [[라마우지]]를 시켜 바지오와 오가족을 준비시킨다.
- 킹덤/509화 . . . . 3회 일치
* 비신대와 산족 군대가 열미성을 함락. [[환의(킹덤)|환의]], [[왕분(킹덤)|왕분]] 등이 도착했을 땐 벌써 성을 점거하고 있다.
* 반나절 뒤. [[환의(킹덤)|환의]]와 [[왕분(킹덤)|왕분]]의 군대가 열미성에 도착했는데 이미 성이 함락된 걸 보고 경악한다. 이 열미성을 공략하는데 개전부터 불과 반나절, 그것도 최소한의 부대로 이뤄낸 성과였다.
그 옆으로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이 지나간다. 그는 핏발선 눈으로 성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핀다. 그는 뒤따르는 부장들에게 성의 세세한 부분은 물론 성벽의 구체적인 크기와 규모까지 자세하게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
- 킹덤/511화 . . . . 3회 일치
하료초가 그게 뭐냐고 버럭하자 왕전의 부하는 자기들도 정신이 없다고 같이 화를 낸다. 하료초는 기껏 이목을 따돌린 의미가 없어진다고 노발대발하는데 왕전 본인도 아닌 부하들에게 화를 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양단화]]를 따라왔던 산민족들은 무섭게 화를 내는 하료초를 보며 보기와 다르게 한 성깔한다고 혀를 내두른다.
신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뛴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지휘관들, 그리고 성을 면밀히 살펴본 하료초는 진작부터 알던 내용이었다. 하료초는 말해봐야 시끄러울 테니 일부러 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왕분은 직접 공격한 주제에 그런 것도 몰랐냐고 핀잔한다.직접 싸워보면 국문치곤 손맛이 없는 걸 알았을 거라면서. 신은 비신대와 산민족이 강해서 그런 거라고 반박한다.
몽념은 신을 진정시킨다. 자신도 비신대와 산민족이 강하다고 여기긴 하나 성의 설계 자체가 위화감을 준다. 몽념은 이틀간 성을 돌아본 뒤 확신을 얻었다. 열미성은 묘하게 동선이 흐트러져있고 성벽의 높이도 미묘하다. 이곳은 분명 의도적으로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진 성이다. 왕전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기 때문에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이신은 그렇다쳐도 왜 총대장이 사라지는 거냐고 묻지만 몽념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며 설명을 마친다.
- 킹덤/512화 . . . . 3회 일치
*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하릴 없이 열미성에 주둔하던 진군은 총사령관의 복귀를 확인한다. 아광을 비롯한 부하들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왕전은 상처 하나 없다. 열미로 돌아온 왕전은 휘하의 지휘관들을 불러모은다. [[환의(킹덤)|환의]]와 [[양단화]] 양대 장군들을 비롯해 [[이신(킹덤)|이신]]을 포함한 장교 전원이 집결했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그대로 왕전은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교시한다.
>즉 지금부턴 나와 이 왕전과 이목의 지략전이다.
* 이목은 방금 전의 첩보가 진짜라면 조와 진, 양국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시작된 거라고 말한다. 이미 확인했듯 진의 목표는 업이다. 여기에 떨어진다면 왕도 한단의 목전까지 진의 칼날이 들어온다. 조나라는 진에 의해 분단되어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반대로 진 연합군이 실패한다면. 업을 함락하지 못하고 궤멸한다면 진은 20만 병력과 대장군 왕전, 환의, 양단화에 유능한 장군과 참모들을 일거에 잃는다.
- 킹덤/514화 . . . . 3회 일치
* 조나라를 침공해 벌써 여러 성을 떨어뜨리고 "청가"성으로 향하던 [[오르도(킹덤)|오르도]]는 뜻밖의 적과 마주쳤다. 그야말로 "잠자던 대호"와 같은 인물로 그는 내심 [[이목(킹덤)|이목]]에게 왜 이런 인물이 연나라 전선에 배치돼 있다고 일러주지 않았냐고 농담을 한다. 그 사내는 [[사마상]]. 단 5천의 병력으로 2만 연군의 발을 묶고 있다.
>도양왕 9년. 조는 연의 이와 양 두 성을 취하였다.
오르도는 단번에 저 사내, 사마상의 전략임을 간파한다. 우둔한 조박이 구사할 만한 책략이 아니다. 사마상 자신이 오르도의 본진을 묶고 있는 사이 조박이 움직여 그들의 퇴로를 끊어버리는 것. 이렇게 되면 오르도가 군대를 물릴 수밖에 없게 됐다. 오르도는 자신이 크게 오판을 했으며 그건 바로 저 사내의 존재였다. 오르도는 이와 양을 탈환하고 조박의 목을 취하기 위해 퇴각을 결정, 그러면서 사마상의 이름을 기억하고 꼭 돌아올 것을 맹세한다.
- 킹덤/520화 . . . . 3회 일치
* 왕전의 포진은 조군에겐 의외로 받아들여지나 이목이 보기엔 "좌익을 쳐라"는 도발적인 포석으로 보인다. 뻔히 함정이 있다는 신호와 같은 것.
>사냥터에 어서와.
기수와 몽념, 3만 대 5천의 첫 싸움은 몽념의 압승.
- 킹덤/527화 . . . . 3회 일치
* 주해평원에서 [[이목(킹덤)|이목]]와 [[왕전(킹덤)|왕전]]이 총력전을 펼쳐지는 동안 [[양단화]]군은 [[공손룡]]군이 이끄는 요양군을 상대로 연합군의 명운을 가를 싸움을 시작했다. 본래 양단화군의 임무는 본대가 업성 공략에 나서는 동안 공손룡군의 발을 묶는 것. 그러나 전장의 판도가 뒤바뀌면서 양단화군 의 승패가 곧 전쟁의 승패가 될 수도 있었다. 주해평원으로부터 남서쪽. 약 300리 거리의 싸움이었다.
* 그때 산민족군 우익으로부터 불협화음이 일었다. 소수의 기마대가 격전이 벌어진 뒤쪽과 양단화군 본진 사이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벽은 그 수와 구성을 보고 전령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이목의 지시로 공손룡군의 대장으로 부임한 [[순수수]]의 등장이었다. 순수수의 기마대는 산민족 병사를 목 매달고 달리고 있었다. 순수수는 양단화에게 잘 보이는 자리를 일부러 골라 말을 세웠다. 그가 신호를 주자 부하들이 병사들의 숨통을 끊었다.
한편 한바탕 소동을 겪은 양단화군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벽과 진군 장교들은 아직까지도 방금 자기들이 본 장면이 무엇인지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었다. 양단화와 톳지는 훨씬 차분했으나 분노를 삭히고 있었다. 양단화는 순수수가 죽인 병사들의 시체를 내려보며 이를 갈았다. 복수의 때였다.
- 킹덤/529화 . . . . 3회 일치
* 견융족의 진격으로 [[양단화]]와 산민족 군대는 큰 혼란에 빠진다. [[벽(킹덤)|벽]]은 양단화에게 퇴각을 진언하나 양단화의 용기를 발휘해 역공을 취한다.
* 양단화는 산민족을 돌아보았다. 일선에서 깨져나가는 그들의 몸뚱이가 보였다. 자신에 전략적 실책 때문에 죽어나가는 동족들. 개전이래 처음, 그녀의 얼굴에 쓰라린 표정이 스쳐갔다. 그러나 잠시 뿐이다. 그녀는 곧 난관을 타개할 무언가를 찾아냈다. 부대의 우측 전방에 있는 산등성이였다. 그 위에 견융의 기마대가 포진해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양단화는 잠깐 고심했다. 방금 떠오른 직관이 전략적으로 타당할까? 고민은 오래지 않았다. 양단화는 용기있는 여자였고 한때의 실책이 그걸 꺾을 수는 없었다. 결단이 섰다. 메라 족, 타라 족, 콘 족을 불러서 저 산을 빼앗으러 가자고 호령했다. 나머지 부대는 벽의 진군 부대와 함께 퇴각을 속행. 벽은 귀를 의심했으나 분명 지시는 내려졌다. 만류해볼 틈도 없이 달려나가는 양단화.
>기수의 목을 따와라.
- 킹덤/531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정해진 승부는 뒤바뀌지 않았다. 마광의 혼신의 칼날보다도 빠르게, 이목이 내리친 칼이 마광의 목과 팔을 단칼에 잘랐다. 기수군을 몰아가는데 골몰하던 진군은 저희 대장의 목이 굴러디는 걸 보지 못했다. 반면 언덕에 있던 기수와 그 부관들, 조군 병사들은 똑똑히 보았다.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 믿기지 않기로는 목이 떨어진 당사자 못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부관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기수를 돌아보았다. 그도 눈 앞의 광경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리라 알고 있었는데도.
* 마침내 기수의 목을 치러 가던 [[이신(킹덤)|이신]]과 [[몽념(킹덤)|몽념]], 두 장수에게도 그 외침이 들렸다. 신은 무엇보다 "이목"이란 이름에 눈이 뜨였다. 그와 칼을 맡대고 있던 조군 병사가 "그러니 너희는 끝장"이라고 빈정거렸다. 신은 단칼에 상대를 베어넘기고 뛰쳐나갔다.
그도 기수처럼 이목의 힘에 탄복했다. 그는 와해될 지경이었던 전열을 빠르게 복구하고 공세로 전환, 빠른 속도로 진군을 쳐내려가기 시작했다.
- 타루 . . . . 3회 일치
# 너와 사귀어 주지 말걸
* [[타블로]] [[꿈꾸라]] - <시그널 송 "당신과 함께할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2008 Ver.>
* [[타블로]] [[꿈꾸라]] - <시그널 송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2014 Ver.>
- 타르콘 . . . . 3회 일치
기원전 2세기의 로마의 연대기 작가 그나이우스 겔리우스에 따르면, 리비아의 [[마르시아스]] 왕은 프리기아 사람 메갈레스와 함께 티베르 강에 사는 [[카쿠스]]를 타르콘 왕에게 사절로 보냈으나, 타르콘은 그를 감옥에 넣었다고 한다.
어느날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회색 머리와 아이 얼굴을 한 사람이 쟁기에 걸려 솟아났다. 그의 이름은 타게스(Tages)로서, 타르콘과 에트루리아의 다른 왕들에게 새와 동물의 창자로 점을 치는 기술을 알려주었다.
- 타바사 . . . . 3회 일치
그외에 [[포켓 파이터]]와 [[SVC Chaos]]에도 등장한다.
[[포켓 파이터]]에선 기본기와 기술 탓에 개캐...게다가 레드 어스에는 있을리 없는 [[롤링 어택]]같은 기술도 들고 나온다.
[[SVC Chaos]]에서는 기본기와 대공기가 매우 부실하지만 공대공 최강의 비둘기, 잡기거리가 매우 길면서 엄청난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커맨드 잡기, 맞으면 머리가 깨질듯한 심리전을 걸 수 있는 재밍 고스트, 그리고 맞으면 죽었다고 복창해야하는 익시드까지 가지고 [[가일]]과 함께 레귤러 캐릭터 최강자를 차지하고 있다.
- 태미 . . . . 3회 일치
[[초등학교]] 6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하였고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1위를 거머쥔 실력자로서, [[청와대]]에서 [[태권도]] 공연 이후 청와대 [[경호원]] 제안을 받았지만 행복하기 위해 배우를 택했다. 2007년 [[SBS]] 《[[스타킹 (2015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스타킹]]》에 출연한 이후 ‘[[얼짱]] 태권소녀’로 주목을 받았다. 강인한 이미지가 강해서 탈피하고자 2016년 영화 《'''여자 전쟁: 봉천동 혈투'''》에 도전하여 출연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783206 태미 “청와대 경호원 제안 받았지만 배우 택했다”] 매일경제. 2016년 08월 11일</ref>
- 테헤페로 . . . . 3회 일치
[[성우]] 히카사 요우코(日笠陽子)이다. 히가시 요우코(日笠陽子)와 나카무라 에리코(中村繪里子)가 진행하던 라디오 간사이의 방송 프로그램 「놀라움 전대 모모노키 파이브(おどろき戦隊モモノキファイブ) 」에서 처음으로 나온 것으로, 2009년 6월 방송된 제12화에서 나왔다.
초창기에는 주로 히카사 요우코와 성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당시 [[케이온!]]의 성우 멤버들이 감염되었으며, [[토요사키 아키]]가 자주 썻다고 한다. 이후 성우계를 넘어서 연예인들에게 퍼지기 시작했고, 청소년들에게 유행어로 빠르게 퍼져나가서 일반적으로 정착됐다. 히카사 요우코는 야망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2011년 3월 [[AKB48]]의 [[와타나베 마유]]가 감염되어 블로그에서 사용.
- 토리코/369화 . . . . 3회 일치
* 죠아는 GOD의 출연을 느끼고 아카시아(네오)는 블루 니트로 페어와 함께 현장으로 날아올 준비를 한다.
* 이 올챙이들이 지상으로 떨어지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앞다리, 뒷다리가 생기면서 개구리와 같은 모양으로 변한다.
* 제브라와 써니는 코마츠가 GOD의 안에서도 무사함을 확인해준다.
- 토리코/371화 . . . . 3회 일치
드디어 아카시아(네오)와 대면한 토리코와 사천왕
* "사람들의 먹걸이와 나의 운명. 모두 너에게 맡기마."
- 토리코/377화 . . . . 3회 일치
* 밤비나는 껍질을 벗어버리고 돌아와 자신이 당한 것이상의 파워로 아카시아를 쳐날린다.
* 토리코와 재회한 텟페이는 자질구레한 변명은 생략하고 코마츠의 심장을 터뜨렸던 일은 자신에게도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고 털어놓는다.
* 게다가 네오가 가는 곳마다 팔왕이 튀어나와서 인실좆의 쓴맛을 보여주고 있다.
- 토리코/379화 . . . . 3회 일치
* 그는 백채널을 겹겹히 쌓고 왜곡해서 죠아와 자신 간에 약간의 시간 격차를 만들어 그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 그는 테리와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다.
* 그와 격전을 치른 맹수들도 상당히 타격을 입었지만 건재. 네오의 몸이 소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아카시아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 토리코/380화 . . . . 3회 일치
* 완전체가 되어 네오와 분리된 아카시아.
* 각성해서 아카시아와 분리된 네오.
* 네오가 완전체가 되면서 아카시아와 분리되었는데, 토리코에 이어 두 번째로 구르메 세포의 악마를 체내로 완전히 분리시킨 사례
- 토리코/389화 . . . . 3회 일치
* 미도라는 자신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를 드러내며 아카시아의 구르메 핸드에 대항하고 토리코와 원왕은 아카시아 본체를 공격한다.
* 토리코가 최초로 풀코스에 넣은 식재는 "레인보우 후르츠". 바로 코마츠와 함께 포획했던 식재다.
* 네오의 색이 밝혀지면서 토리코 내면의 제 3의 악마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해졌는데, 네오와 같은 "검정"이라는 의견과 반대되는 "하양"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 토리코/390화 . . . . 3회 일치
* 마침내 지구의 붕괴가 시작되고 아카시아는 최종형태가 되어 토리코와 싸운다.
* 미도라와 아카시아가 부딪힐 수록 미도라 측이 미세하게 밀리면서 신체가 부서져간다.
* 소리도 기척도 없이 아카시아와 미도라 사이에 끼어들어 "나이프"로 꼬리를 잘라 버린다.
- 토이 솔져스: 콜드 워 . . . . 3회 일치
[[스팀]]에서 구매하는 방법은 [[토이 솔져스]]와의 합본팩인 [[http://store.steampowered.com/app/262120/|Toy Soldiers: Complete]]를 사는 수 밖에 없다. 따로 살 수 있는 [[토이 솔져스]]는 한글화도 되어있지만 이건 안 되어있다.
후속작으로 [[토이 솔져스: 워 체스트]]가 있다. 네개의 오리지널 진영(?)과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우주의 왕자 히맨]], [[G.I. 조]]와 그와 대적하는 악의 무리 [[코브라]] 장난감 진영이 나오는 라이센스비로 얼마를 썼을까 궁금해지는 게임.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3회 일치
말 그대로 닌자. 다른 가문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메츠케에게 약하지만 승려와 선교사에게 강하다.
* 파괴 공작원(Saboteur) - "파괴와 불길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 전설적인 포리(Legendary Thieftaker) - "네 기모노를 가져와, 넌 체포야!"
- 트로피코 4/외교 . . . . 3회 일치
게임 [[트로피코 4]]의 [[외교]]와 주변 국가를 설명하는 페이지.
트로피코와 좋은 관계인 국가들은 혜택을 배풀어 준다. 트로피코와 나쁜 관계일 경우, 무역에 여러가지 불이익을 주거나 엠바고를 때리거나, 몇몇 국가의 경우에는 트로피코를 침공해 당신을 끌어내릴 것이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3회 일치
그리고 [[아케이드]] ST-V 대응기판으로 제작된뒤 [[세가 새턴]]용으로 이식된 이 게임 캐릭터들이 나오는 3D 격투게임인 '파이널 파이트 리벤지'라는 [[쿠소게]]가 나왔고, 이젠 시리즈의 끝이라고 봐야 할 '파이널 파이트 스트리트와이즈'가 [[PS2]]로 발매되었다.
* [[파이널 파이트 스트릿 와이즈]]
딱히 부각되는 것은 아니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연관이 있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3회 일치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배트맨과 로빈]]보다 형편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단 사람에 따라 평에 차이가 생길 수는 있으나 적어도 앞의 두 영화와 같은 대열에 서게된 것은 확정되었을 듯.
[[엑스맨 실사영화 시리즈]]와 크로스오버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으나 영화 개봉 이후 그럴 일은 없다고 한다. 본 영화의 참패가 많은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측된다만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영화도 영화인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감독도, 폭스도 영 아니게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각본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지금의 영화와 많이 다르다고 하며 이에 호의적인 반응도 있지만 저건 저거대로 좀 그렇다는 식의 반응도 있다. 더불어서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도 거짓말이거나 부풀려졌다는 추측도 있는 듯 한데 이에 관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영화가 망했다는 현재의 사실은 바뀌지 않을 듯.
- 페어리 테일/482화 . . . . 3회 일치
* 렉서스를 비롯해 생존자들은 히스토리아와 힘겹게 싸워나간다.
* 바로 그때 카구야와 제라르가 도착한다.
* 나인하르트는 엘자의 인상착의와 마력을 보고 "설마 아이린 님의..."라며 두려움에 떤다.
- 페어리 테일/489화 . . . . 3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와 싸우는 아이린
* 가질이 사라진 뒤 오열하고 있는 팬서 릴리와 레비도 이 빛을 목격한다.
* 길드 지하의 메이비스와 카나도 이 빛을 인지한다.
- 페어리 테일/504화 . . . . 3회 일치
* 격돌하는 나츠와 그레이
* 루시는 해피와 함께 나츠를 찾기 위해 지하실을 떠난다.
* 나츠와 혈투를 벌이는 그레이.
- 페어리 테일/517화 . . . . 3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은 반격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나 웬디와 인연을 떠올리고 "이번엔 제가 당신을 지킬게요"라고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차마 손이 나가지 않는다.
웬디의 몸을 가진 아이린은 본체에 있을 때와 맞먹는 수준의 강력한 인챈트 마법을 사용하며 엘자를 공격한다.
* 하지만 웬디는 곧 아이린의 몸도 마력도 능숙하게 다룬다. 그녀는 아이린 본체의 마력이 굉장하다면서 이걸 포기하고 자신의 몸에 들어간건 실수라고 단언한다. 웬디는 곧 강력한 마력이 담긴 마법탄을 날린다. 마법탄은 놀라운 속도와 위력으로 아이린에게 날아간다. 아무리 웬디의 마력 잠재력이 높아도 역시 아이린 본체에 따를 수는 없었다. 웬디의 몸에 있는 아이린은 그 마력탄을 받아내는 것도 버거워한다. 반면 웬디는 마법탄으로 압박을 가하며 다른 한 손으론 분리 인챈트 마법까지 실행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3회 일치
감시 카메라는 바로 밑에 있거나 ECM으로 잠시 마비시키거나 아예 박살내는-당연히 소음무기로-방식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면 경비원이 무슨 일이 생겼나 보러 와서 신고해버리니 주의. 맵 어딘가 있는 경비실 문을 따고 들어가서 그곳의 경비원을 무력화시키면 모든 감시 카메라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영화 [[하드코어 헨리]]와의 콜라보로 추가된 하이스트들.
음지에서 일하는 자들의 비밀 천국, 컨티넨탈 호텔에서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영화 [[존 윅: 리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3회 일치
암호를 입력하면 베인이 해킹을 시작한다. 이때 경찰들이 방 안으로 쳐들어와서 해킹을 중단시키고 건물 어딘가에 있는 배전반을 내려버리는 방식으로 해킹을 방해한다. 방의 벽을 C4로 터뜨려서 길을 만들기도 하니 주의. 이들을 적당히 막아내며 해킹이 계속되도록 하면 된다. 암호를 알아야 하는 경우가 두번 더 있는데 세무서 직원에게-패지 말고-계속해서 물어보면 대답한다.
오버킬 난이도 이상의 Undercover 하이스트를 유탄발사기와 로켓발사기 만을 이용해 클리어
C4가 폭발하면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을 처리하자. 이후 바일의 헬리콥터가 다시 와서 자석을 옥상에 생긴 구멍 안으로 서서히 집어넣는다. 이때 누군가가 4층으로 내려가 패닉룸 윗부분에 자석을 붙여줘야하니 주의. 이후 헬리콥터가 패닉룸을 매달고 날아갈 때 까지 옥상을 지킨 다음, 1층으로 내려가 지하실로 탈출하면 클리어.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 . . . 3회 일치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 Co-Op이 지원된다. 싱글플레이의 경우 혼자 하는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봇을 데리고 할수도 있지만 봇들이 총쏘는 것 밖에 못하는지라 모든 행동은 자신이 해야한다.
샤프슈터 트리에서 해금되는 7.62mm 반자동소총. 높은 데미지와 중간치의 반동을 가지고있다. 모델은 M1A SOCOM.
테크니션 트리와 Counterfeit, Undercover 하이스트를 해금시켜주는 DLC.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3회 일치
* 브루스와 접선
결국 견디지 못한 맷이 밴에서 기어 나왔다. 서류가방은 맷의 손목에 수갑으로 묶여있는 상황. 베인은 일단 맷을 데리고 주차장에 와보라고 한다. 맷에게 주차장으로 가라고 명령하며 이동하자.
포크레인이 금괴운반차를 도로 옆 낭떠러지로 밀쳐버렸다. 옆건물 비상계단, 포크레인 옆 계단을 타고 내려와 도살장 건물에 들어가자. 머키워터 용병이 강하니 주의. 도살장 안에 있는 경비 두명을 처리하면 천장에 박힌 금괴 운반차가 보일 것이다. 기습 때 운반차를 쏘지 않았다면 운반차의 뒷쪽이 밑으로 가있다. 이 경우 뒷문에 C4를 설치해 금고를 떨어뜨려야 한다. 운반차를 쏘았다면 운반차의 앞쪽이 밑으로 가있다. 이 경우 전선을 쏴 운반차를 떨어뜨린 후, 뒷문에 C4를 설치해 금고를 꺼내야 한다. 전선을 쏘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려도 운반차가 떨어지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끔씩 차량 안에 불도저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 편의치적 . . . . 3회 일치
편의치적의 목적은 [[절세]]와 선원비용 절감이다. 선박은 국적이 등록된 국가의 법률에 속박되는데, 그 내용은 국가별로 제각각이며 좀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진 나라에 편의적으로 선적을 옮겨놓아서 혜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편의치적은 오래된 관행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라이베리아]], [[파나마]], [[소말리아]], [[온두라스]], [[레바논]], [[키프로스]], [[바하마]], [[버뮤다]], [[싱가포르]] 등의 소국이 외국 자본 회사의 설립을 쉽게 하는 회사법을 제정하고, 선박세를 저렴하게 하고 법적 규제를 완화하여 외국의 선박 회사와 선박을 유치하였다. 여기에 [[미국]]이나 [[그리스]]의 선주들이 대거 이들 나라로 옮겨가면서 편의치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대부분 미국의 석유 메이저 회사와 그리스 계 선주(특히 선박왕 오나시스) 였다.
- 포스탈 리덕스 . . . . 3회 일치
>공기가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들의 악취로 숙성된다. 승리의…향기로군
>맹렬한 반딧불이들이 동굴 벽에 나타나 지구를 먼지로 만든다. 와라, 작은 벌레들아. 와서 우리가 짠 거미줄을 보거라!
- 퓨어킴 . . . . 3회 일치
퓨어킴은 2011년 영어 EP <Mom & Sex>를 발표하며 대중 음악계에 등장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2년에 한글 가사로만 이뤄진 첫 번째 앨범 <이응>을 선보였다. <이응>에는 도발적이면서도 오묘하고 복잡하면서도 깊은 그녀만의 매력이 담겨 있다. 퓨어킴은 몽환적인 멜로디와 창의적인 가사, 그리고 독특한 목소리로 그녀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싱어송라이터이다.
2018년 5월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종료 후 작사가 활동을 시작했다.
*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슴사이즈를 언급했는데, "어려서는 글래머 몸매가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타고난 것을 어쩌겠느냐", "노래보다 몸매만 회자되면 당연히 속상하겠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슴 사이즈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미국 속옷 가게에서도 찾기 힘든 사이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는 "가슴이 좀 많이 큰데, 예쁘게 큰 게 아니라 좀 특별하게 커요.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거 보면 ‘아유, 웃기네’, ‘음, 별 거 아니네?’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발언들로 미뤄 보아 최소 J컵 이상은 확정이고[* 화성인 바이러스 기준으로 가장 큰 컵사이즈가 I컵녀였다. 다만 해당 인물은 이후 축소수술을 통해 풀B컵 정도로 확 줄였다.] 통상적으로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사이즈 최대치를 한국 기준으로 환산한 [[초유|K~L컵 사이]]일 것으로 추측된다.
- 하이큐/213화 . . . . 3회 일치
* 히나타는 와시죠 감독에게 여전히 홀대받지만 개의치 않고 나름대로 기술을 익혀나간다.
* 연습시합이 끝나고 시라토리자와 3학년과 OB가 돌아간다.
* 와시죠 감독은 "부르지 않은 놈에겐 밥도 잠자리도 없다"며 히나타를 홀대한다.
- 하이큐/269화 . . . . 3회 일치
* [[네코마 고교]] 대 [[사루카와 공고]]는 결국 네코마의 승리로 종료.
* [[이나리자키 고교]]와 [[카라스노 고교]]의 2세트는 더욱 치열해지는 중.
* [[미야 아츠무]]의 서브와 [[니시노야 유]]의 수비의 맞대결.
- 한냐 가면 . . . . 3회 일치
일본 전통 예능인 [[노오]](能)에서 쓰이는 가면의 일종이다. 한나 가면은 [[여성]]의 [[원령]]을 표현하는 [[가면]]. 한냐 가면은 무시무시한 생김새인데, 이마에는 2개의 [[뿔]]이 달려 있으며, 얼굴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눈은 부리부리하게 튀어나와 있다. 입은 웃는 것처럼 크게 벌리고 있는데 이빨이 튀어나와 있어, 격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속어로 단순히 한냐(般若)라고 하여, 한냐 가면에 빗대어 [[질투]]와 [[분노]]에 불타는 여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뜻으로도 쓰인다.
- 한상훈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1980년]] [[6월 3일]] [[서울특별시|서울]] 출신으로 [[서울화곡초등학교]]와 [[신일중학교]]를 거쳐 [[신일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신일고등학교]] 시절 투수로도 활동하였고,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로 [[한화 이글스]]의 2차 6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99학번)에 진학하였다.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99학번)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하였다. 민첩한 풋워크와 손놀림, 타구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때론 메이저 리그급 [[2루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ref>《스포츠 2.0》 2007년 프로야구 Complete Guide</ref> 뛰어난 수비 실력을 보여 주지만, 타격이 약한 편이다. [[2004년 한국 프로 야구 병역 비리 사건|2004년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었고, 2008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101 '한상훈 입대' 한화, '2루수 고민' 해소할까] 《Osen》, 2008년 12월 7일</ref>
2010 시즌 후 소집 해제로 팀에 복귀하였고, [[2011년]] 131경기에 나와 398타수 107안타 타율 2할6푼9리 3홈런 39타점 49득점 16도루로 공격력이 향상되었다. [[안치홍]]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골든 글러브 [[2루수]] 후보에도 올랐다. 시즌 후 [[신경현]]을 이어 주장이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9265 첫 골든 글러브 후보 된 한상훈의 남다른 각오] 《OSEN》</ref>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하여 4년 총액 13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 옵션 2억 원)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59141 한화, 내부 FA 3인방 전원 재계약 '이대수 4년 20억'] - OSEN</ref> 시즌 후 [[강동우 (1974년)|강동우]]가 현역 은퇴를 선언하자, 입대하기 전 자신이 썼던 등번호 3번을 되찾았다.2015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한화에서 방출되었다.
- 한성식 . . . . 3회 일치
* [[2003년]] 《[[와일드카드 (영화)|와일드 카드]]》 ... 중국집 배달원 역
* [[2017년]] 《[[련희와 연희]]》 ... 브로커 역
- 한수연(배우) . . . . 3회 일치
88만 원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너와 나의 21세기'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데뷔작 후보에 올랐었다.
|| 2015 || OCN || [[실종느와르 M]] || 이진영 || ||
|| 2009 || 너와 나의 21세기 || 수영 || ||
- 한승원 (만화가) . . . . 3회 일치
'''한승원'''(1958년 6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만화가다.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남편은 만화가 [[김동화 (만화가)|김동화]]이다. 김동화와 함께 작업하다가 1981년 〈다섯 번째 계절〉로 데뷔하였다.
| 《노랑방 여자와 파란방 남자》 || || 1996년 대원 전2권 ||
| 《아기자기 색동》 || 《[[파티 (잡지)|파티]]》 || 1998년 학산문화사 전5권 || 〈선녀와 나무꾼〉를 모티브로 함.
- 한재석(1973) . . . . 3회 일치
부친은 [[기아자동차]]에서 부회장을 역임했던 한승준이다. 1995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인 째즈가 그의 데뷔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의 정식 데뷔작은 1994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마지막 연인이다. 첫 주연 작품인 째즈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여세를 몰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라는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영화가 흥행과 비평에서 크게 실패하게 되고 연기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하락세 테크를 탔다. 순식간에 주연급에서 서브 조연급으로 확 떨어지고 만다.
2010년 [[거상 김만덕]]에 같이 출연한 [[박솔미]]와 2013년 4월 21일에 결혼했다. 2014년 3월 23일 득녀. 2015년 11월 22일 둘째 딸을 얻었다.
1999년 MBC 주말연속극 《[[장미와 콩나물]]》 ... 최순대
- 해원군 . . . . 3회 일치
20년 후 [[1657년]] '''해원군'''(海原君)에 진책되었으며 이후 청렴한 성품을 발휘하여 자신의 사저(私邸)에 조그만 서실(書室)을 짓고 그곳에서 [[한시]]와 [[시조]]를 작시와 아울러 [[서예]]와 [[서예|서화]]에 열중하여 당시 사람들이 삼절(三絶)이라 칭하였다.
- 허안나 . . . . 3회 일치
| 종교 = [[천주교]]([[영세명]] : 안나)<ref>[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87568&path=201707 복음의 가치에 재미까지 더한 ‘남 신부가 간다’ 시즌 2 가톨릭평화방송 TV 촬영 현장,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사목 소개]</ref>
허안나는 [[1984년]] [[11월 15일]] 생으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고 연극배우를 꿈꾸다 개그우먼을 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에 의해 개그우먼 시험을 봐 합격하였다.'''2005년''',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2007년, MBC 16기 특채 개그우먼'''으로 들어갔다, 2008년 당시 개그콘서트 감독이었던 김석현 감독에 의해 걸투홀에서 발견돼 특채로 들어갔으나 2009년 다시 시험을 봐 '''KBS 공채 24기 개그우먼'''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나를술푸게하는세상》, 《슈퍼스타 KBS》 코너를 연속으로 히트 시키며 '''KBS연예대상 2010년코미디부분우수상, 2014년코미디부분우수상'''을 받고 2016년 이후 코미디빅리그로 이적한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망원동짐승녀'''라는 웹툰을 연재중이며,'''안나Tv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2019년 1월 일반인남자친구와 결혼을한다.
*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코리아]] 《마이 펫 TV》- 실제 반려동물이자 고양이 흰돌이와 함께 인터뷰 출연
- 헤이즈 (가수) . . . . 3회 일치
2015년 [[언프리티 랩스타 2]]를 통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2016년에 발매한 싱글 《돌아오지마》와 《And July》의 음원 차트 순위권 진입이후 《저 별》이 주요 음원사이트 차트 1위<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217896|제목=[SS차트] 헤이즈 '저 별', 1위 장기집권 예고…新 음원 강자 등극|언어=ko|확인날짜=2017-06-26}}</ref>를 기록하였다.
학과 내에서 1등을 하면 서울로의 상경을 허락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과 수석을 하게 된 그는<ref>{{뉴스 인용|제목=‘여자 도끼’ 헤이즈, 친오빠 재조명...“세상에서 제일 친한 남자”|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3265032&page=1|날짜=2017-06-27|뉴스=MBN 뉴스}}</ref> 대구에서 상경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음원깡패★헤이즈, 하루에 알바 3건+종이가방 스타일링...털털4차원 인성甲|url=http://star.mk.co.kr/v2/view.php?sc=40900002&cm=%EC%97%B0%EC%98%88%20%EC%A2%85%ED%95%A9&year=2017&no=428641&relatedcode=|날짜=2017-06-27|뉴스=스타투데이}}</ref>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어 그는 한 번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ref>{{뉴스 인용|제목='최파타' 챈슬러X헤이즈가 밝힌 음악열정·공개연애(종합)|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6599|날짜=2016-11-29|뉴스=JTBC}}</ref> [[언프리티 랩스타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다.<ref name="s" /> [[크루셜스타]]와 교제하기도 했으나 [[2015년]] 헤어졌다. 헤이즈는 라디오방송에서 크루셜스타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했고 아직 잊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디오쇼' 헤이즈 전 남친 언급, '이별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91114132351596|날짜=2016-09-11|뉴스=아시아경제}}</ref> 헤이즈가 겪었던 이별의 경험은 그녀가 미니 앨범 《/// (너 먹구름 비)》를 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
* 2017년 8월 25일 -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 현덕 . . . . 3회 일치
'''현덕'''(玄德, [[1909년]] [[2월 15일]] ~ ?)은 [[일제 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소설가]], [[시 (문학)|시인]], [[아동 문학|아동문학가]]이다. 본명은 '''현경윤'''(玄敬允)이다.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延州)이다.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남]],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 김영순, [http://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hyundek&wr_id=4&page= 아동문학 선구자 현덕 - 생애와 업적] (동심넷 - 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 현재원 . . . . 3회 일치
| 소속 = [[서울 에이치 와이 스토리넷컴|서울 H.Y. 스토리넷컴]] 대표이사 <br /> 前 [[동국대학교|동국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br/> 前 [[중앙대학교|중앙대 문예창작과]] 강사
* 1996년 《[[재즈]]와 [[엔카]]를 물리친 대한국악 [[판소리]]》
* 1996년 《[[서울]] [[충무로]]와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 현재현 . . . . 3회 일치
* 2011년 Van Fleet상 수상. 현재현 회장은 한미재계회의를 이끌며 한미FTA체결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한미간 특허심사 하이웨이제도 도입 등 한미 양국의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2011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밴 플리트 상은 한미 우호증진과 양국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한 공이 큰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한국인 중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받았고, 미국인으로는 조지 W.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대사, 헨리 키신저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이 수상했다.
현재현 회장은 1980년대 금융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 선물•벤처투자 등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21세기 국가기간산업인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하며 제조업 중심의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해 종금, 보험, 투신업계에 무려 약 34조 9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동양그룹의 모든 금융계열사는 공적자금 지원 없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특히, 동양오리온투자신탁(현 동양증권)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대우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약 5,000억 원의 고객 손실을 전액 보전해주었다. 사회공헌차원에서 금융업을 제2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해온 현재현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동양생명은 부실한 태평양생명을 인수 합병하여 생명보험사 구조조정에 힘을 보탰다. 2007년 한일합섬 인수 이후 현재현 회장은 레저사업을 동양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의 골프장 사업에 리조트사업을 추가하고 강원도 삼척시와 연계한 레저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현재현 회장은 시멘트사업 중심의 그룹 제조부문을 친환경 에너지•자원 개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현 회장은 1989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매출 6,000억 원의 동양그룹을 제조•금융•서비스 부문 33개 계열사에 연 매출 9조 2,211억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 현정건 . . . . 3회 일치
이때 청년동맹회의 선언 문제로 [[의열단|의열단(義烈團)]]에서 시비를 걸어와 의열단측에서 윤자영을 구타하는 등 청년동맹회와 의열단과의 마찰이 있었는데, 의열단에서 먼저 자신들의 출판물 가운데 청년동맹회를 공격하는 글을 취소하고 청년동맹회에서도 성명서를 수정 발표하였고, 이때 청년동맹회 위원이던 윤자영ㆍ현정건 두 사람도 청년동맹회를 핑계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사사로이 쓴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일시직권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되면서 이틀만에 복권되고 두 단체간의 시비도 일단락되었다고 한다.<ref>「上海淸年同盟 宣言問題 解決」, 『동아일보』1925년 1월 9일자.</ref>
[[1925년]] 5월 9일에는 상하이에 있던 [[조소앙|조소앙(趙素昻)]]ㆍ여운형ㆍ윤자영ㆍ김상덕(金尙德)ㆍ최창식(崔昌植)ㆍ김규면(金圭冕)ㆍ손두환(孫斗煥) 등 약 30명의 조선인 동지와 함께 서문 밖 체육장에서 배일(排日) 중국인 단체의 집합에 참가하였고 이곳에서 "중국과 한국이 합동하여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의 『상하이주간(上海週刊)』5월 9일자 특별호에 실린 사설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ref>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 의해 7월 1일에 일본 외무성의 외무차관에 보고되었다. 국회도서관(國會圖書館)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韓國民族運動史料)』(중국편), 1976년, 567~568쪽.</ref> 9월 8일에는 상하이교민단의 의사원(議事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 호소키 카즈코 . . . . 3회 일치
현재 알츠하이머와 치매로 활동 잠정중단.
방송에서 하차한 원인으로 야쿠자와의 관련설이 있다.[[http://www.ikedahayato.com/20151007/32595427.html (참조)]]
* 2008년, 『호소키 카즈코 마녀의 이력서(細木数子 魔女の履歴書)』라는 폭로서적이 출간. 야쿠자와의 관련설이 지적되면서 방송에서 거의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https://www.amazon.co.jp/exec/obidos/asin/B00HPSTJNO/nubonba0a-22/ 참조]])
- 홍지호 . . . . 3회 일치
본관은 [[남양 홍씨|남양]](南陽)이고 [[서울특별시|서울]] 출생이며 [[경기도]] [[여주시|여주]]와 [[김포시|경기도 김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서울 홍지호 치과의원(舊 서울 홍지호·이신정 치과의원) 원장을 지내고 있다.
199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외래교수와 [[삼성의료원|삼성의료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치과 과장을 역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190605 <nowiki>[인물 포커스]</nowiki> 연예스타 꿈꾸는 치과의사 3인방] 2003년 6월 3일 동아일보</ref>
옛 교제녀와 1999년 동거하였다가 2001년에 결별한 전력이 있는 그는 이후 2005년 2월 배우 [[이윤성 (배우)|이윤성]]과 결혼하였다. 그의 첫째형 [[홍명호 (1939년)|홍명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가정의학과 의사이며 둘째형인 홍성호 원장은 성형외과 의사이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겸임교수 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를 지낸 경력이 있[[문화방송|MBC]]《[[타임머신 (MBC)|신]]》 [[한국방송공사|KBS]] 《야! 한밤에》, 《[[스펀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스펀지]] [[서울방송|SBS]] 프로그램 《[[솔로몬의 선택]]결혼 을 제
- 홍진경 . . . . 3회 일치
'''홍진경'''(洪眞慶,<ref>{{뉴스 인용 |저자= |제목= 탤런트 홍진경 중앙대 연극학과 합격|url=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230020913902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23&officeId=00020&pageNo=39&printNo=23090&publishType=00010|뉴스= 동아일보|쪽= 39|날짜= 1996-01-23|확인날짜= 2016-02-23|인용문= KBS 쇼코미디프로「슈퍼선데이」의 보조사회자로 활동중인 슈퍼모델 출신 고교생탤런트 洪眞慶(홍진경)양(18·정의여고3년)이 중앙대 연극학과 연기전공에 합격해 화제다.}}</ref> [[1977년]] [[12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모델 (직업)|모델]], [[방송인]], [[배우]], [[기업가]]이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식품회사 '''주식회사 홍진경'''을 설립, 자신의 어머니와 공동으로 경영하며([[최고경영자|CEO]] 직위) 김치, 만두 등의 생산 및 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홍진경은 2005년부터 [[여명학교]]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아동 보육 교육 시설, 청소년 공부방과 쉼터, 유니세프, 월드비전 등 총 12개 단체에 후원금과 물품을 지원했다. 특히 대한민국 내 보육원 아이들의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위한 후원과 아시아 지역 30명의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이 사는 지역을 살리기 위하여 매달 기부활동을 했다. 2012년 초에는 [[아프리카]] 차드 도바 지역에 자신의 딸 김라엘의 이름을 딴 '라엘탁아소'를 세우는 등 대한민국 외의 어려운 아이들에게까지 후원을 하기도 하였다.<ref name="이지">이지현.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71303 홍진경 7년째 선행, 국내외 기부+후원 아끼지 않아 '훈훈']. TV리포트. 2012년 10월 15일.</ref> 또한 《[[별에서 온 그대]]》에 천송이([[전지현]] 분)와 친한 만화방 사장님이자 동창생으로 등장하여 간간이 쇼스타퍼 역할, 약방의 감초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홍혜경 . . . . 3회 일치
'''홍혜경'''([[1959년]] 7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소프라노]] [[성악가]]이다.리릭 레제로 소프라노로 경력을 시작해 현재는 리릭-리릭 스핀토 소프라노까지를 아우르는 영역을 개척하였으며,[[조수미]]와 [[신영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로 손꼽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134148 <2006 신년특집-한국이 낳은 글로벌 리더들>“세계로 뻗는 한국문화 내가 이끈다” 기사 내용중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부분 게재되어 있음 《문화일보》2006-01-02 작성 : 김순환 기자]</ref>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신영옥, 조수미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소프라노로 자리잡고 있다.
* [[1999년]]《벨리니 : 카퓰렛가와 몬테규가》
- 황두성 . . . . 3회 일치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적하였으나, 1군 1경기에 그쳤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진은 상당히 탄탄했었기에 그에게는 기회가 찾아오지 못하고 그의 선수 생활은 주로 2군에 많이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투수]]들이 부진함에 따라 2군에서 선수 생활을 쭉 해오던 황두성은 비로소 1군에 올라와 기회를 잡게 되는데, 처음에는 불펜으로 자주 등판한 것을 시작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마당쇠 같은 역할을 하여 [[2005년]] 1군 60경기 11승 9패에 방어율 3점대 초반의 성적을 거두어 두각을 나타낸다. 데뷔 첫 승도 그 해에 기록했다. 그는 140 중후반대의 묵직한 직구와 체인지업 위주로 구사하면서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그는 [[2006년]] 시즌 처음에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2005년]]에 지나치게 등판하여 혹사한 탓에 후유증으로 크게 부진하여 2군에서 재활하게 된다. 그 뒤 시즌 중반에 1군으로 올라와 불펜 투수로 뛰면서하면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한다. [[2006년]] 시즌 3.91 평균자책을 기록하였다.
- 황치열 . . . . 3회 일치
* 2013년 우여곡절 끝에 전 소속사와의 계약을 8년 만에 해지하고, 2014년 '치열Ten2'라는 이름으로 싱글곡 '경상도 남자'를 발매하며 특유의 위트가 담긴 뮤직비디오를 자체 제작하여 발표.
* 2015년 4월 25일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첫 무대로 [[서유석]]의 '구름 나그네'를 불러 416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황치열'을 알리기 시작함. 2007년 가수 '치열'로 [[윤도현]]의 [[윤도현의 러브 레터|러브레터]]를 통해 첫 무대에 선 이후 9년 만에 같은 장소인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무대에 선 것으로, '가수 황치열'의 지상파 첫 선을 보이는 그의 스토리와 더불어 진한 무명의 설움을 담아 부른 노래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하여 더욱 주목받게 됨.
* 2015년 명실상부한 대세남으로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남성미 넘치는 춤, 구수한 경상도 억양을 담은 사투리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종횡무진 출연 중이며, 2015년 9월 KBS [[위기탈출 넘버원]]의 인턴 MC로도 자리매김 함. 그 외 각종 음악 행사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가수로써도 인지도를 높이며 활약 중임.
- 회맹 . . . . 3회 일치
회맹의 희생 제물은 본래 천자가 참석할 때는 소와 말, 제후들이 모일 때는 개와 돼지, 대부들이 모일 때는 닭의 피를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패자가 등장한 뒤에는 제후들의 회맹에서도 소와 말을 쓰게 되었다.
- 2016년 남양주 폭발사고 . . . . 2회 일치
현장에서는 부상자와 사망자를 포함하여 모두 17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3명은 다치지 않았다. 작업은 오전 7시에 시작되었는데, 30분도 되지 않아서 참변이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현장이 붕괴되었으며, 4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로 52세 서모 씨, 50세 김모 씨, 60세 정모 씨, 62세 윤모 씨 등 4명이 숨졌으며, 60세 안모씨와 51세 심모씨(중국인) 등 10여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 4곳으로 옮겨졌다.
- 2세대주택 . . . . 2회 일치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주택.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주택을 2세대 주택이라고 한다. 2세대 혹은 손자까지 3세대에 걸쳐서 다른 세대가 하나의 주택을 공유하게 된다.
- ATM . . . . 2회 일치
[[은행]]이나 [[편의점]] 등지에 배치되어있는 기계. 예금, 출금, 송금, 그외 등등을 할 수 있는 유용한 기계다. 기본적으로 은행이 담당직원이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이며, 사실상 직원을 대체하기에 서비스 제공자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버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은행 측에선 비용이 상당히 절감될 수 있기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이다. 이렇게 대중에 노출이 많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도때도없이 카드복제기나 도촬카메라 같은걸 설치한다. 조금이나마 힘 쓸 생각이 있는 놈들은 이걸 뜯어서 가져간다고한다. 이런 이유로 ATM도 보안에 대한 이슈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보안 업데이트를 꾸준히 실행한다. 자동화기기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위해선 어쨌거나 현금이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물 등지에서는 좀 최신식 [[금고]]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억지로 뜯으면 잉크가 뿌려지거나 해서 사용할 수 없는 돈이 된다는 설정을 붙이기도 한다.
- Europa Universalis 4 . . . . 2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인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서 만든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인 Europa Universalis 시리즈의 4번째 게임. 보통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Crusader Kings 2]]와 비교되는 편이 많으며, 실제로도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유사하다~~당연하지 둘다 같은 제작사니깐.~~[* 엔진이 클라슈비츠로 같은게 가장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크킹은 유저가 '''통치자'''에 입장에서서 자기 가문원을 늘리면서 확장해가는 방식이라면 유파는 유저가 말그대로 나라하나를 통째로 경영해가는 느낌이라는 것정도...?~~그러니깐 크킹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 유파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다~~
제작사가 와패니즈로 유명하다(...) 일본의 왠만한 다이묘들은 전부다 있으며, 몇몇 다이묘들은 서양에서 유명한 명군들보다 능력치가 높기도 하다. 거기다가 일본한테 붙어있는 사기 전통인 규율[* 쉽게 말해서 공격력+방어력. 규율이 높을수록 한번의 전투로 더 많은 상대군사를 잡을수 있고 더 늦게 패주한다.] 10%는 진짜(...)~~조선하면서 이것때문에 고통을 몇번 받은건지...~~[* 프로이센이 이념을 다열어야 규율 7.5%다. 이쪽은 개신교개종을 반드시 하게되있기에 2.5%추가되서 10%긴 하지만.]
- Europa Universalis 4/아나톨리아 . . . . 2회 일치
-초반 병종이 말그대로 깡패다. 다른 국가들이 군사 테크 10렙을 찍어야 겨우 보병에 사격능력치가 들어가지만 아나톨리아계 국가들은 군 4렙때부터 사격능력치가 들어가기 때문. 이때문에 군4렙찍은 오스만은 예니체리버프와 아나톨리아 초반 사기 병종덕에 그 어떤 국가와도 동수에서 우위를 취할 수 있다.
- F-15 . . . . 2회 일치
2,000 파운드의 추가 연료 탱크와 외부 연료 탱크 장착 기능을 추가하고 최대 이륙 중량을 68,000 파운드로 늘린 모델. 1979년 도입되었으며 일본에 있는 가네다 공군기지에 처음 배치되었다.
F-15C와 같으나 복좌형. 1979년 도입되었으며 일본에 있는 가네다 공군기지에 처음 배치되었다.
- IsbnMap . . . . 2회 일치
모니위키 1.1.3에서는 이와 관련된 버그가 고쳐졌고, 알라딘 같은 경우는 확장자가 jpg/gif인 경우를 자동으로 검출합니다. 이 경우 php.ini에 {{{'allow_url_fopen=1}}}같은 식으로 설정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또, config.php에 {{{$isbn_img_download=1;}}} 와 같이 옵션을 넣으면 이미지를 다운로드할 수도 있게 하여, 일부 referer를 검사하여 이미지를 보이지 않게 하는 사이트에서도 활용하기쉽게 하였습니다. -- WkPark [[DateTime(2009-01-13T07:14:27)]]
- MoniWikiOptions . . . . 2회 일치
* 상당수의 옵션은 세밀한 컨트롤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 윈도우즈 환경이라면 {{{$path='./bin;c:/program files/vim/vimXX';}}}와 같은 식으로 설정한다.
- MoniWikiProcessor . . . . 2회 일치
MoinMoin 1.1 이하에서는 Processor와 Parser로 분리되어있었고, 1.3 이후에는 Processor Parser가 Parser로 통합되었다.
MoniWiki에서는 이미 Processor와 Parser개념을 통합및 간소화 하여 Processor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 NTX위키 . . . . 2회 일치
구 NTX와 신 NTX 두군데에 있다. 두 곳의 데이터가 연동되는게 아니라 구 NTX 위키내의 데이터를 신 NTX로 옮겨온 것이기 때문에 구 NTX 위키는 현재 버려진 상태이다.
타 위키와 달리 저작권이 [[CCL]]이 아닌 @Copyright NTX다.
- Victoria II/개혁 . . . . 2회 일치
* 빈민이 제외된 불평등 선거: 중산층 이상이면 선거를 할 수 있지만, 부유층의 표 하나는 중산층의 표 두개와 같게 취급된다.
* 불평등 선거: 모두가 선거를 할 수 있지만, 부유층의 표 하나는 다른 계층의 표 두개와 같게 취급된다.
- Victoria II/디시전 . . . . 2회 일치
>오랜 기간 극동 및 인도와의 무역을 할 때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서가야 했다. 근대 공학의 경이로운 힘으로 수에즈를 관통하는 운하를 건설하면 우리는 아시아로 항해하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
* 캐나다는 '''Bangor(뱅고어)'''와 '''Caribou(카리부)'''에 대한 코어를 잃음
- 가상 메모리 . . . . 2회 일치
가상 메모리 기능이 있는 OS에서는 메모리 영역의 물리적인 어드레스 이외에 ‘보조기억장치’, 대표적으로 하드 디스크를 대상으로 가상의 어드레스를 할당하고 이를 OS에서 하드웨어의 MMU(Memory Management Unit)와 맞물려서 알아서 관리를 해준다.
이래서 가상 메모리를 사용하여 많은 용량의 메모리를 교체할 때는 [[하드 디스크]]와 [[램]]의 억세스 속도 차이 때문에 엄청난 [[랙]](…)이 발생하여, ‘일단 돌릴 수는 있지만 체감 스피드는 좆망’이 되버린다.
- 강호 . . . . 2회 일치
강호와 비슷한 무림(武林)이라는 말은 [[중화민국]] 시기에 나타난다. 강호와 무림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데, 강호가 일반적으로 다양한 무법자의 세계를 가리킨다면 무림은 무술 문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로서 좀 더 한정적인 의미가 있다.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2회 일치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힘이기에 현재로선 후전적으로 개성을 얻는 방법은 [[올마이트]]의 [[원 포 올]]을 얻는 수밖에 없는 듯 했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괴력, 타격 흡수, 초재생능력을 가진 [[뇌무]]와 [[올 포 원]]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원 포 올 외에도 후천적으로 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확인되었다.
* 기본적으로 한명에 한능력같지만 타고난 개성에 따라 만능적인 특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스이 츠유]]의 <개구리>가 좋은 예시. 토도로키 쇼토의 경우 아예 상반되는 힘을 타고 났다. 그래도 아스이의 개성은 결국 다방면에서 활약이 가능할 뿐이지 하나의 개성이며 토도로키도 부모의 유전으로 두가지 특성을 가진 하나의 개성을 타고난 것이다. 이와 구별되는 복수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기본적으로는 없는 듯 하다.
- 거대로봇 . . . . 2회 일치
사실 굳이 따지자면 극중 분위기의 차이라 볼 수 있다. [[마징가Z]]는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가 연상케되는 활극, [[기동전사 건담]]은 진지하고, 무거운 전쟁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 마징가에서도 무겁고, 진지한 연출을 볼 수 있고, 건담에서도 흔히 말하는 리얼리티와는 다른 요소를 볼 수 있다.[* 리얼로봇보다는 슈퍼로봇에 가까운 활약이라던가. 애초에 2족 보행 거대로봇 자체가 리얼리티나 현실성에 부합하지 못한다.] 구분하는 사람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 괜한게 아니다.
거대한 괴수와 싸우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으며 이 경우에 로봇은 괴수에 대한 대항책으로 나온다. 가까운 예시가 퍼시픽 림. 다만 그 이전부터 로봇과 괴수의 격투는 가상매체에서 다뤄왔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4화 . . . . 2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44화. '''우마루와 가구'''
* 우마루는 "방을 너무 가꾸지 않은 채로 살고 있다"고 하는데 타이헤이는 혼자 쓸쓸히 지내던 시절에 우마루가 살러와서 복닥거리게 된 걸 생각하며 "꼭 그렇진 않다"고 대답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8화 . . . . 2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8화. '''우마루와 초여름'''
* 초여름 더위에 늘어져 있는 우마루(코마루)와 히카리.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2회 일치
카놀리는 보니노 마피아들이 경영하던 스트립클럽으로 가 그곳에 있던 모두를 족치고 프랭키를 구한다. 이제 둘은 떠그타운에서 탈출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프랭키는 강 건너편 벨루치오 마피아 빌딩에 비행선이 있으니 그걸 타고 떠그타운에서 탈출하자는 의견을 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로 복무했다는 이야기는 덤. 하지만 비행선에 가려면 군대의 봉쇄를 뚫어야 했다. 카놀리는 프랭키와 함께 군대의 방어선을 돌파해 군대가 폭파시키려던 도개교에 도착한다.
한편, 벨루치오 빌딩에 도착한 프랭키는 벨루치오에게 카놀리가 모두를 죽이려 한다고 설득한다. 이에 속아 넘어간 벨루치오는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카놀리를 반드시 막으라고 명령한다. 이를 확인한 프랭키는 벨루치오를 뒤에서 쏴죽이고 탈출 도구와 돈을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 검은방 시리즈 . . . . 2회 일치
전 시리즈에 개근한 주인공. 과거 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어린아이와 여승아 둘 중 하나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여승아를 구했다. 이 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여승아)과 함께 감금당하게 되지만 하무열의 도움과 자신의 추리력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전 시리즈의 개근하는 조력자. 강력반 형사로, 1편의 사건 당시 허강민의 의도와 상관없이 납치당했다. 어쩌다가 납치당한 하무열로 인해 몰살로 끝나야 했던 허강민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 경관 . . . . 2회 일치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식 매장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식 매장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 경대수 . . . . 2회 일치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정범구 후보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 지난 선거와 달리 여권성향 무소속 후보 없이 1:1 매치가 이루어져서 비교적 쉽게 당선될 수 있었다. 이후 [[친박]]계에 속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 개편 과정에서 고향 괴산이 떨어져나가는 악재를 만나며 고향이 붙은 보은, 옥천, 영동, 괴산 선거구와 현재의 진천, 음성, 증평 선거구를 두고 고민하다가 현재의 선거구를 지키기로 결심하였고 재선되었다.[* 여담으로 소지역주의로 인해 진천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이기기도 하였다.]
- 경산시 . . . . 2회 일치
와촌면''' ||瓦村面 || 2,671 || 6,064 || 47.9
* [[김성도]] - "어린 음악대"로 유명한 작곡가, 교육자. 와촌면 출신. 하양초등학교 졸업.
- 고다이고 덴노 . . . . 2회 일치
일본에서는 고대사 이후로는 덴노가 직접 나서서 정치에 개입한 몇 안되는 사례이다. 후지와라 씨에 의한 섭관 정치, 상황에 의한 인세이 정치, [[막부]]의 통치 등으로 덴노가 직접 나설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 하지만 그 성과가 실로 비참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후 덴노들은 찌그러져 사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
주특기는 책임 회피와 부하나 자식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평가된다.--이러니까 망하지.--
- 고독의 요새 . . . . 2회 일치
초창기에는 거창한 [[설정]]은 없고 단순히 슈퍼맨이 내가 이렇게 큰 건물도 만들 수 있다는 일종의 [[자뻑]]으로 만든 기지였다. 그래서 진지한 비밀기지 연구소 같은 [[배트 케이브]]와는 반대로 그냥 슈퍼맨의 신비로운 비밀 요새같은 이미지였다. 요새 안에 표창장 트로피 방도 존재했을 정도.
이런 SF틱한 설정과는 반대로 보안은 굉장히 심플한데 그냥 열쇠구멍에 열쇠 넣고 돌리면 들어갈 수 있다. 열쇠도 그냥 문 근처에 존재해서 구하기도 쉽다. 문제는 이 열쇠가 '''슈퍼맨을 제외한 존재는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초창기에는 사이즈도 더럽게 커서 구멍에 넣기도 힘들었다가 근래에 들어서 단순한 열쇠 사이즈가 되었지만 무게가 몇 조(!) 톤이나 되어서 문앞 매트 밑에 넣어놨다.[* 보통 가정집 열쇠 보관하는 그 방식으로.] 슈퍼맨의 인간다움을 부각시키려는 장치의 일종이었는데 아무래도 고독의 요새라는 간지나는 네이밍과는 안 어울려선지 지금은 완전 SF틱한 분위기가 되어 열쇠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NEW 52 이후 부터는 슈퍼맨의 목소리와 DNA 검사로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고스트 패트롤 . . . . 2회 일치
[[프랑스]] 외인부터 시절 상관으로부터 프랑스가 통제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기술자 헨리로부터 임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일단은 참여했는데 주민들을 죽이길 원치 않았던 셋은 안전한 곳에 투하했다. 문제는 헨리가 주민들을 지키려고 셋의 전투기에 시한폭탄을 장치했다는 것으로 결국 셋은 사망해버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3인은 [[유령]]이 되어 있었고, 이를 나치와 싸울 두번째 기회라 생각했다. 이후 고스트 패트롤이 된 삼인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대항했다.
전후에는 범죄와 싸웠으며 [[섀도팩트]]에 협력하기도 했다.
- 고준희 . . . . 2회 일치
[[2001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맞추러 갔다가 우연히 권유를 받고 'SK 스마트 교복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해 금상을 수상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206604 주진모와 연인사이 밝힌 고준희는 누구?]</ref>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다.
||금강제화||르느와르 (슈즈)||
- 곽월 . . . . 2회 일치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내고 [[승정원]] [[좌승지]](承政院 左承旨)에 [[추증]]된 [[곽지번]](郭之藩)이고 아들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자 무신인 [[곽재우]]이다. 6세 때 어머니 허씨를 여의고 외가에서 성장하였다. 첫 부인 진주강씨와 결혼하여 재우를 얻었으나 일찍 사별하고 부인 허씨와 재혼하였다.
- 곽희성 . . . . 2회 일치
* [[2017년]] [[드라맥스]] & [[UMAX]] 수목드라마 《[[싱글와이프 (드라마)|싱글와이프]]》 ... 황재민 역
- 광해군 . . . . 2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순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순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상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영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영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영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영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영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 구천서 (야구인) . . . . 2회 일치
* [[SK 와이번스]] 수비코치 (2000년 ~ 2002년)
구천서는 1981년 대통령배 실업 연맹전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쌍둥이 동생 [[구재서]]와 함께 1981년부터 상업은행에서 활약했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가 출범하면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동생과 함께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 국부펀드 . . . . 2회 일치
국가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목적의 국영 펀드. 국부펀드는 주로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으며,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가지고 운용한다. 자금투자운용은 일반적인 투자펀드와 비슷하게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 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미국 텍사스 주, 오레곤 주의 주에서 보유한 펀드는 주정부 소유의 공유지 토지임대수익으로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
설립목적에 따라서 안정화펀드(stabilization fund)와 저축펀드(savings fund)가 있다. 안정화펀드는 자원가격의 변동에 대응하여 재정적인 안정적을 추구한다. 자원 수출에 외환 수익을 의존하다보면, 자원 가격이 떨어지면서 외환 수익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흑자일 때 모아두었다가 적자일 때 보전에 사용하는 목적이다. 저축펀드는 장래 자원이 고갈됐을 때, 미래세대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다.
- 궁가 . . . . 2회 일치
궁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왕실과의 친밀도에 의하여 [[토지]]와 [[노비]] 등 상당한 재산을 하사받아 보유하였다. 또한 왕실과의 직접적인 연결 때문에 정치적, 법률적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특권계급이었다. 하지만 중앙의 정치분쟁에 휘말려서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왕실과 연결이 가까운 시기에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세대수가 지나면서 왕실과 거리가 멀어지면 점차 낙향하고 자산이 분산되면서 지방의 평범한 서민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도 왕실과 연결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가문은 나름대로 사소한 특전은 누릴 수 있었으나, 생활상은 서민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미야케는 [[메이지 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천황가의 정통과 너무 멀어진 가문은 궁가의 자격을 잃고 정리하게 되었다. 현재는 소수의 가문만 남아 있으며, 그나마 모두 천황가와 마찬가지로 남성 적손이 부족하여 단절될 위기에 있다.
- 권민경 . . . . 2회 일치
미스코리아 대구 입상 후 모델 활동을 잠시 한 이후 그녀는 1990년 대구 출신의 변호사 조재원과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1남 2녀(1991년생 장녀, 1993년생 차녀, 1998년생 막내아들)를 두었고 자녀들 중 막내아들 조상우({{출생일과 만나이|1998|5|23}}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君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한림예고]] 출신인데 지난 2015년 TvN TV 프로그램 《[[고교10대천왕]]》에 10대천왕 패널 주인공 중 일원으로 출연한 전력이 있다.
그에 아울러 그녀는 프리 랜서 아나운서 출신 수필가 겸 연기자 [[김경화]]와 영화배우 겸 연기자 [[손예진]]의 [[정화여자고등학교|정화여고]] 선배이기도 하고 그녀의 막내아들 조상우 君은 가수 [[송유빈]] 君, 가수 [[태하 (1998년)|김태하]] 羊, 연기자 [[신동우 (배우)|신동우]] 君, 연기자 [[박종혁]] 君 등과 한림예고 동기이기도 하다.
- 권영해 (1888년) . . . . 2회 일치
1919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 당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대대적으로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회 집사 이상백(李相柏)·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전격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2일이 되자 그와 일행들은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太極旗)와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동리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횃불을 붙였으며 끝끝내 동리 야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들과 일본 헌병들에게 제압이 되며 끝내 강제로 해산되었지만 이후 이곳 민중들의 항일 저항의식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만세 시위 운동 관련 계획을 다시 협의하여 1919년 3월 14일 21시경을 기하여 2백 명의 동민과 아울러 동리 야산에서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결국 일경에 피체되었다.
- 귀면와 . . . . 2회 일치
귀신, 도깨비 얼굴을 한 [[기와]]. 고대에 주술적, 장식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분류:기와]]
- 규성 진씨 . . . . 2회 일치
* 호씨 : 일부는 시조 호공에서 따와서 호씨를 칭했다.
역시 맹상군의 후손이다. 맹상군의 이름 문(文)에서 따와 성씨로 삼았다.
- 그랜드 펜윅 공국 . . . . 2회 일치
영국인 기사에 의해 세워졌다. 이때문에 프랑스와 스위스 근처 위치함에도 영어를 쓴다.
와인이 특산품이다.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 . . 2회 일치
'헤드 기어'에서 내놓은 [[거대로봇물]]. 레이버라는 작업용 로봇이 탄생하고, 이어서 증가하게된 레이버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에서 준비한 패트레이버, 그 패트레이버를 운용하는 특차 2과와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다.
[[철인 28호]]를 연상케하는 요소가 있다. 주역기인 잉그램은 등장 초기만 해도 다른 레이버들보다 앞서는 성능의 신형기체였는데 내용이 진행되면서 잉그램보다 더 우수한 성능의 레이버가 등장하는 묘사는 [[철인 28호(로봇)|철인 28호]]와 닮았다. 심지어 잉그램의 대표적인 라이벌인 그리폰은 블랙 옥스처럼 검은 색에 굉장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적이다.
- 기축통화 . . . . 2회 일치
1970년대 까지, 미국 달러화는 세계 경제의 2/3를 차지했다. 나머지 1/3은 영국 파운드화와 소련 루블이 양분(각각 1/6)하였다.
1999년에 유럽 각국의 통화가 통합되고, 특히 서유럽에서 지배력을 가지는 독일 마르크화와 구 프랑스 식민제국이었던 서아프리카 경제권에 밀접한 프랑화가 핵심이 되어 유로화가 출범하였다.
- 김만수(정치인) . . . . 2회 일치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문수 대 만수'''라는 드립을 쳤다.(...) 원래 시의원일 때도 지역구가 오정구에 속한 원종2동이었지만, 오정구는 자신이 모신 [[원혜영]]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어서 결국 김문수가 지키고 있는 소사 지역구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는 김문수가 아직 개념잡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성실히 하고 지역구 관리 아주 제대로 하던 때였으니 탄핵풍을 등에 업었음에도 도저히 상대가 안되었다.
200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김문수가 ~~[[도지삽니다]]~~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집권여당의 인기가 최악이어서 낙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은 뉴타운 광풍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 최악의 패배를 당한 선거여서 김만수 역시도 그 광풍을 빗겨가지 못했다. 2006년과 2008년 모두 김문수의 보좌관 출신으로써 지역구를 물려받은 한나라당 [[차명진(정치인)|차명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2010년에 부천시장으로 당선되었을때 당이 다름에도 차명진 당시 의원이 축하 연설을 해 주기도 했다.
- 김만제 . . . . 2회 일치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이 때문에 역시 서강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던 전임 [[남덕우]], 후임 [[이승윤(정치인)|이승윤]] 경제 부총리와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종인]] 등과 더불어 서강 학파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다.]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1982년까지 재임하였다.
- 김명신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2017년]]에 입단하였다.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박치국]]과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였으며, 신인 투수가 캠프에 참가한 것은 5년 만이다. [[박치국]], [[함덕주]]와 5선발 경쟁을 하였으나, [[함덕주]]가 5선발로 낙점되었다. 그래서 불펜으로 나와 배짱투로 신인답지 않은 투구를 펼쳤다. [[4월 15일]]에 데뷔 첫 선발 등판을 하였다. [[4월 25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김민성 (1988년)|김민성]]이 친 타구가 그의 안면을 강타하여 안면 광대뼈가 골절되면서 선발진에서 하차하였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9187 두산베어스 김명신, 넥센히어로즈 김민성 타구에 '부상'… 야구팬 "빨리 완쾌되길"] -이뉴스투데이</ref>
- 김미경(강사) . . . . 2회 일치
양장점을 하는 어머니와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부모에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음대를 나와서 광고 음악 등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으나 적성이 맞지 않아 월급을 타는게 미안했다고 한다. 후에 대출금을 받아 피아노 학원을 개설하여 운영하였고 여기서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29살 때부터 강연을 하고 싶어 강사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공부하는 생활을 7년 동안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보여준 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김성주 (기업인) . . . . 2회 일치
매년 60여 개의 국내외 NGO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코소보의 전쟁피해자 지원 및 Asia House(UK)와 Victoria & Albert Museum(UK)등과 같은 각종 문화, 자선공연, 세계 여성 대회(Global Summit of Women)네트워크를 통한 여성들의 경제/사회 활동 활성화를 위한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다.<ref>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3110&g_serial=457190</ref> <ref>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3110&g_serial=454351</ref> <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112153405&code=910110</ref>
그녀는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을 통해 아름다운 자본주의의 모범이 되고, 중소기업과 젊은이,여성을 키워 글로벌 무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미션으로 진취적인 사업전개와 글로벌 활동을 펼쳐왔다. 세계의 주목을 먼저 받은 그녀는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2013년부터 Asia Pacific Economy Council의 ABAC (APEC Business Advisory Council)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5/2013062502603.html</ref>
- 김세윤 (1999년) . . . . 2회 일치
[[무산중학교]]를 거쳐 2015년 [[대전 시티즌]]의 유스 산하 학교인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인 김세윤은 2016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카타르 3개국 친선대회에 출전, 카타르와 말리와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4개국 친선대회에 대표팀에도 승선해 세르비아전에 출전했다.
- 김수자 . . . . 2회 일치
'''김수자''' ([[1957년]] ~ )는 [[뉴욕]], [[파리]],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개념 미술|개념 미술가]]이다. 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특별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품하였다.<ref name="biography">Kimsooja Biography: http://www.kimsooja.com/biography.html</ref>그의 작업은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를 넘나들며 가장 첨예한 회화적 질문으로부터 예술과 삶의 조건들을 연계하여 다루어 왔고 이 시대를 치열하게 직면해 왔다. 구겐하임 빌바오(201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3), 밴쿠버 아트 갤러리(2013), 국제 갤러리(2012), 뉴욕PS1/현대미술관(2001)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30여 회의 주요 국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artndesign&idx=11956&pageNum=3|제목=SPACE Magazine|웹사이트=www.vmspace.com|확인날짜=2016-11-18}}</ref>
- 김수학 (법조인) . . . . 2회 일치
1954년 3월 17일에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김수학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에 치러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9기를 수료했다.
1982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판사로 임용돼 [[대구지방법원]]. [[대구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장을 거쳐 2005년 [[대구지방법원]] 특별부와 2006년 [[대구고등법원]] 파산부에서 수석부장판사를 지냈다.
- 김영준(1941) . . . . 2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시]]-제원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해원(1930)|이해원]]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 당직개편에서 인권옹호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2년 민주한국당 충청북도지부장에 임명되었다. 1983년 민주한국당 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춘구]] 후보와 [[신한민주당]] [[이택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김우중 . . . . 2회 일치
광산김씨 김우중은 [[1936년]] [[12월 19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김용하와 전인항 사이의 6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자 15세에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게 된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 진학하고 1956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창생활을 보냈다.
- 김일엽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고졸우선지명<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7260007 해외파들, 어떤 절차로 한국 팀에 입단했나?] - OSEN</ref> 을 받았으나 [[단국대학교]] (1998학번)에 진학했고 [[투수]] [[이승학]]과 함께 [[2001년]] 3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8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1년]] 외에는 제대로 뛰지 못했고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2003년]] 5월에 방출당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189169 김일엽 메이저 리그 꿈과 좌절] - 한국일보</ref>
귀국 이후 수술을 반복하여 재활하였고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복무하던 중에 [[KBO 리그]] 복귀 유예 기간 규정이 지나 [[대한민국]]에서 활동이 가능해졌고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친 후 [[2007년]] [[1월 4일]]에 [[롯데 자이언츠]]에 [[신고선수]]로 입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0278662 롯데, 마이너 리그 출신 김일엽과 계약] - 뉴시스</ref> 하였으며,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1군에는 [[2008년]]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여 [[2008년]]에는 2승 1패 1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 3.21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에 들어서는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2009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선발 보직도 겸하였다. 그러나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아 [[2009년]]에는 승리 없이 5패, 평균자책 7.36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9년]] [[6월 21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KIA]]와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했음에도 단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5실점하여 강판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6210116 ‘데뷔 첫 그랜드 슬램’ 김현수 “만루포 처음이야!”], 《동아일보》 [[2009년]] [[6월 21일]]</ref> [[2012년]]에는 1군 1경기에 그쳤고 그마저도 대량 실점하여 평균자책 40.50을 기록한 후 방출되었다.
- 김종호(1935) . . . . 2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태(정치인)|김완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경질되었다.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세력, 학생운동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해서 [[박종철]]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으론 김종호 장관이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다. 정치일정이 있으니까 3월 개학 때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선 경찰들은 장관이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개학전까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무리한 강압수사(=[[고문(범죄)|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 [[민주정의당]] || '''95,781표(67.0%)''' || '''당선''' || [*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태(정치인)|김완태]] 후보와 동반 당선] ||
- 김종훈 (1952년) . . . . 2회 일치
[[2010년]] [[12월 13일]] [[한미 FTA]]와 관련된 세미나에서 FTA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농민을 두고 '정부관리를 매수하여 농업보조금을 타는 다방 농민'이라고 비판하였다. 민주당 부대변인 [[김현 (정치인)|김현]]은 "김종훈 본부장이 숭미사대주의에 빠져 쌀값 폭락과 구제역에 피눈물을 흘리는 농민들의 아픔은 아랑곳 않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언사를 듣고 있자니 김 본부장이 어느 나라 머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하였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662115 김종훈 '다방 농민' 발언 일파만파] 《노컷뉴스》 2010년 12월 14일</ref> [[진보신당]]도 "통상교섭본부장 그만 두고 다방에서 커피나 마시는 게 더 국익에 도움이 될 것"과 "한미FTA로 인해 고통당할 농민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공식적으로 비판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2141521251&code=940100 김종훈 ‘다방농민’발언에 “다방에나 가라” 역공] 《경향신문》 2010년 12월 14일</ref>
또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훈은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서 강북 출마설에 대해 묻자 강북을 저 어디 어두컴컴한 데'라고 묘사하여 물의를 빚었고,<ref>[http://www.mt.co.kr/edition/se_vote2012/vote_view.php?no=2012032014002808265&sec=news&gb= 김종훈 '강남아니면 컴컴한 곳'? SNS'폭발'] 《머니투데이》 2012년 3월 20일</ref> CBS와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20년이 됐다”며 “이것이 한-미 에프티에이(FTA)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발언으로 대한민국내 영세업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5380.html “컴컴한 데” 발언 김종훈 “구멍가게 20년전에…”] 《한겨레》 2012년 3월 26일</ref>
- 김주승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1980년에 연극배우로 먼저 데뷔하였으며, 그 이후 [[1983년]], [[MBC]] [[공채]] 16기 탤런트가 되었다. [[1990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5공비리]]의 큰 손 [[장영자]]의 [[사위]]가 되면서 화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2007년]] 초에 [[이혼]]하면서 그 이후로는 장영자와는 남남이 되었다. [[딸]]이 한명 있었으며, 딸은 전 부인이 데려갔다. 그리고 동년 [[여름]], 지병이던 [[췌장암]]이 악화되면서 결국 [[사망]]하였다.
* [[1983년]] [[MBC]] [[주말 드라마|주말 연속극]] 《아버지와 아들》
- 김청(1962년 6월) . . . . 2회 일치
1998년, 늦은 나이에 중견사업가 배모 씨와 결혼하였으나 3일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후 5년여간 자숙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00년대 초반에 복귀하여 지금까지 왕성히 활동 중이다.
[[SBS Plus]]에서 방송한 날씬한 도시락 시즌2 2회(2015년 11월 21일 방영분)에서 MC [[왕빛나]]의 말에 의하면 김청이 드라마 촬영때마다 한식 도시락을 웰빙 재료로 20인분 가까이 거창하게 싸와서 전기밥솥을 가져다가 밥을 지어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김청과 또 드라마를 꼭 함께 하고 싶다고 밝혔고 [[아이가 다섯]]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 김충섭 . . . . 2회 일치
공직을 퇴직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김천시장에 출마하게된다. 김천시장직은 박보생 시장이 3선 연임제한에 걸려 출마할 수 없었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TK지역 여당인 [[자유한국당]] 공천을 바라며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공천을 정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등 여러 문제로 공천 잡음 들이 생겨나게된다. 이러한 문제 들로 인해 이에 불복한 [[최대원|시장 후보 중 한명]]은 아예 탈당하고 체급을 올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 공천 문제로 분열된 자유한국당은 원래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더불어 민주당|친여 세력]]의 지원사격까지 받으며 진보층 세력까지 흡수한 김충섭 후보에게 시장직을 내주고 [[이철우(1955)|전직 의원]]이 경북도지사 후보로 영전함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격인 [[송언석]] 후보는 최대원 후보에게 1%정도 차이로 초박빙 승부를 벌이는 모습을 보이며 국회의원직도 겨우 당선되는 등 옆동네인 구미와 함께 자유한국당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 김현성(가수) . . . . 2회 일치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유희열팀의 슈가맨으로 출연하였다. 슈가송은 대표곡인 'Heaven'. 여전한 [[외모]]와 [[미성]]을 뽑냈다. 초반부에는 [[30대]]가 가장 많이 알았고 후렴구가 터져나온 직후 [[20대]] 이상에게는 확실히 기억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10대 쪽에선 단 2개의 불이 들어왔다. 또, [[유희열]]의 추천으로 '소원'을 불렀으며 [[10대]] 중에는 [[엔(빅스)|엔]]을 닮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거의 삼촌뻘인데 [[엔(빅스)|엔]]이 김현성을 닮은 거겠지..~~ ~~본인도 자주 들었다고 자화자찬한건 덤~~
그간의 사연을 밝혔으며 해당 프로그램에서 깨알 책홍보와 함께 새 앨범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날 방송에서 [[성대결절]] 및 오랜 활동 중단으로 인해 [[가창력]]이 많이 퇴보한 모습이 보여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목소리에 쇳소리가 많이 났고 특히 고음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 김현철(교수) . . . . 2회 일치
1962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심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1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최고위 경제분석과정 강의에서 “수출 부진과 가계부채 증가로 한국 경제는 파국에 접어들고 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경제]]가 1990년대 중반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일본경제와 닮았다고 평가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소니가 삼성 때문에 쓰러졌다고 생각하지만 소니는 삼성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무너뜨린 것"[* 소니가 안 무너졌다는 반론은 있다. 오히려 반등에 성공했다는 지표도 있다. [[http://it.chosun.com/news/article.html?no=2819018|링크참조]] 그러나 맥락상 포인트는 소니가 무너졌다 안무너졌다의 단순 팩트 체크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법인세율 인상 정책 때문에 소니가 피해를 입었다는 맥락이다.]이라며,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을 망가뜨리게 되고 나아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효진 (배우) . . . . 2회 일치
</ref> 2003년 개봉 된 사극 영화 《[[천년호]]》에서 '자운비' 역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이후 김효진은 이지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2년에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에서 주체적인 여성 윤나미 역을 통해 재조명받았고,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칸레드카펫을 밟았다.
2011년 12월에는 8살 연상의 배우 [[유지태]]와 5년여의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2014년 7월 5일, 첫 아이인 아들 유수인을 출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 유지태 부부 5일 득남 "가슴 벅차다"|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906672|출판사 =뉴스1 |저자 =권수빈 |날짜 = 2014-07-05 |확인날짜 =2017-09-29 }}</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1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도 새로운 슈츠와 함께 필살기 완성.
* 파워로더는 대신 사과하며 그래도 하츠메와 인맥을 잘 만들어 두는게 좋을 거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2회 일치
* 조개껍질로 경화된 문어다리가 거대화. 크라켄에 비견될 만한 위력이다. 세츠노는 "나 혼자서 충분하다"던 타마키의 말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확실히 셋이든 넷이든 문제가 없겠지. 경화를 자랑했던 호죠도 막는데 급급하다. 세츠노가 다급히 타베를 깨운다. [[아이자와 쇼타]]가 무력화 시킨 후 쭉 누워있었다.
그 목소리에 반응해 타베가 일어난다. 타베의 개성 "식". 문자 그대로 모든걸 먹는 개성. 어떤 것이든 씹을 수 있는 턱과 이, 먹자마자 소화시키는 위장. 타마키의 강화된 문어 다리 조차도. 타베는 "맛있다"면서 삶은 문어처럼 씹어삼킨다. 세츠노가 그 꼴을 보며 "타베의 배가 차는 일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말처럼 타베와 타마키, 둘의 "상성"이 아주 좋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8화 . . . . 2회 일치
* 래그돌은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의 동료인 토라에게 구출되지만 어쩐지 폐인같은 상태.--쩡같은 일을 당했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2회 일치
* [[쿠로기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공간을 연다'는 개념이 아니라 "대상만을 전송"하는 계통의 능력.
* 미도리야는 이 와중에도 난입하려 했지만 이이다의 의견처럼 객기에 지나지 않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2회 일치
*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의 토라는 "우리는 이정도 밖에 못한다"면서 "이겨줘.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No.1 히어로야"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2회 일치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가 자신을 얼마나 동경했는지와 그래서 웅영고를 고집한걸 생각한다.
* 미도리야는 동경을 넘어서 진정한 히어로의 가치와 보람을 일깨워가고 있다.
- 나폴레옹: 토탈워/프로이센 . . . . 2회 일치
프로이센은 다른 대프랑스 동맹 캠페인 국가와의 차이점이 하나 있다. 프랑스와는 전쟁 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충분히 힘을 기른 다음 나폴레옹 전쟁에 뛰어들 수 있다.
- 남의 집은 남의 집 우리 집은 우리 집 . . . . 2회 일치
よそはよそ、うちはうち(요소와 요소, 우치와 우치)
- 노예 . . . . 2회 일치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권리와 자유를 빼앗기고 남의 소유물로써 부려지는 사람들을 뜻한다.
19세기 경에 미국이 노예제를 폐지하려고 하자, 노예를 부리던 남부 주의 대다수가 "우리의 권리와 이권을 빼앗으려고 한다 빼애액!"을 외치며 미국에서 탈퇴해버렸다. 미국은 [[남북전쟁|이 반란군들을 철저히 짓밟은 후]]에야 다시 미국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다.
- 뇌가 끓고 있다 . . . . 2회 일치
아타마가와쿠(頭が沸く)/노우가와쿠(脳が沸く)/노우가니에테루(脳が煮えてる) 등등.
- 니세코이/225화 . . . . 2회 일치
* 약속의 장소에서 만난 오노데라와 이치죠.
* 약속의 장소에서 다시 만난 이치죠와 오노데라는 합류해서 함께 치토게를 찾아다닌다.
- 니세코이/228화 . . . . 2회 일치
* 오노데라와 재회하는 치토게.
치토게와 라쿠가 맺어져서 기쁜데…
- 닌자 거북이 . . . . 2회 일치
붉은 안대를 쓰며 무기는 쌍차. 성질이 급하고, 거칠어서 레오나르도와 충돌하기도 한다.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 슈레더와 협력한다.
- 단종 . . . . 2회 일치
문종의 적장자로, 조선 왕조 최초로 원손-세손-세자-왕이 된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타고난 왕'''이다. 그러나 문종이 너무 일찍 서거한데다 문종이 일찌기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수렴청정과 같은 왕권 수호책을 펼치기 힘든 등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을 위시한 장성한 숙부들의 정치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세종도 일찌기 이러한 우려를 하고는 있었으나, 형제들과 다투며 보위에 오른 태종과 자신의 선례를 의식했는지 과감하게 이들의 힘을 거세하지 못하고 다만 [[김종서]]와 [[황보인]] 등의 원로 대신들에게 단종을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즉위한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실권을 잡으면서 사실상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고, 그 후 금성대군과 손잡고 수양대군을 견제하려다 실패하고 나머지 친위세력이 모조리 거세된 뒤 이 일을 빌미삼은 수양대군 일파의 압력에 밀려 결국 즉위 3년만에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밀려난다.
- 대라신선 . . . . 2회 일치
사실 언급만 되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언급되는 걸 보면 나와봤자 별로 도움은 안될 것 같다.
대라신선은 보통 의술과 관련하여 언급된다. 그가 언급되는 장면에서는 보통 중병, 중상을 입었을 때 언급된다. 누군가가 중상을 입거나 중독되었을 때, 등장인물의 대사나 전지적 지문으로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을 것이다."라고 언급되는 것이다. 물론 초월적인 의술을 지닌 몇몇 작중 인물들은 이런 언급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살려내서 대라신선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2회 일치
1라운드는 총 28개 팀에게 참가자격을 부여하였으며, 그 상세는 아래와 같다. 참고로 대학이름 앞에 붙은 지역명은 해당 캠퍼스가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K리그 클래식]]에 속한 팀들은 본선 자동진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K리그의 12개 팀과 예선을 통과한 20개팀이 합류하여 32강 대진으로 토너먼트가 이루어진다. 4라운드(32강)~6라운드(8강)까지는 예선전과 마찬가지로 추첨을 통해 대진과 홈팀을 결정하며, 7라운드 대진은 추첨제와 원스타 시스템을 통해 홈팀과 결승 1차전 경기장을 정하게 된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서사모아 설치계획 . . . . 2회 일치
대한민국 정부에서 제안했던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과는 달리, 미 국방부와 합참본부가 계획한 것이다.
남한 정부와 60만 혹은 32만 8천명의 주민을 서사모아로 이주시켜서 새로운 한국(New Korea)를 건국한다는 계획이다.
- 데드 스페이스 . . . . 2회 일치
쉬프트키와 함께 누르면 달리기가 된다.
네크로모프라는 정체 불명의 생명체들. 주로 환풍구를 통해 이동한다. 얘네들에게 잡히면 [[QTE]]로 빠져나와야 한다.
- 돌턴 갱 . . . . 2회 일치
Dalton Gang. [[서부개척시대|미국 서부시대]]에 활동했던 8인조 갱단. 갱단 멤버 중 밥 돌턴(Bob Dalton), 그랫 돌턴(Grat Dalton), 에밋 돌턴(Emmett Dalton) 세명이 형제였기에 돌턴 형제(Dalton Brothers)라고도 불렸다. 이 세명은 연방보안관으로 활동하였으나 1890년경 무법자가 되었다. 이들은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돌턴 갱을 이루었고, [[오클라호마]]주와 [[캔자스]]주에서 [[은행강도]]와 [[열차강도]]를 벌였다.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2회 일치
온혈동물은 열을 생성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거의 모든 음식물을 열로 소모하고 있어, 포유류와 조류는 같은 무게의 냉혈 동물보다 훨씬 많은 음식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신체의 표면적에 비례하여 열이 손실되므로, 질량 대비 표면적이 적어진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등 감염원은 따뜻한 환경에서 살기 좋다. 세균류는 낮은 온도에서는 활동이 느려진다. 따뜻한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온혈동물의 몸은 이것들이 살기에 아주 좋다. 이 때문에 포유류와 조류는 냉혈동물보다 더 강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 드라콘 . . . . 2회 일치
나태하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이나 채소나 과일을 훔친 사람도,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나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처벌하였다. 즉, 경범죄도 사형이고 중범죄도 사형이었다. 사람들이 드라콘에게 경범죄와 중범죄의 처벌이 왜 같냐고 묻자, 드라콘은 중범죄는 더 무거운 벌을 주어야 하는데 사형 이상의 벌이 없어서 같은 벌을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디아스포라 . . . . 2회 일치
전체적으로 기존의 SNS들과 유사하고 호환성이 어느 정도 있다. 인터페이스는 페이스북과 유사하며, @,#태그를 사용할 수 있어 트위터와 흡사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Diaspora*의 게시물을 공유할 수 있으며, 페이스북의 친구 정보를 불러와서 Diaspora*로 초대할 수 있다.
- 레오(워저드) . . . . 2회 일치
칼을 쓰는 통상기들은 밀착해서 맞출시 데미지와 스턴치가 반토막나는 페널티가 있으므로 거리 조절이 관건. 엄청난 리치의 점프 약K과 앉아 중K으로 견제하며 서서 중K이나 앉아 강P로 대공을 처리하는 식의 싸움이 주가 된다.
크로노스 러시와 아킬레스 러시가 좀 이상하게 바뀌었다. 일단 공통된 커맨드로 몸통박치기를 발동한 뒤 이후 추가 입력에 따라 크로노스나 아킬레스로 갈리는 방식. 추가 입력을 넣지 않으면 맞추고도 상대보다 늦게 경직이 풀리는데다가, 둘 다 몸통박치기에서 연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 술 더 떠 사이에 살짝 딜레이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몸통박치기를 맞은 직후 승룡권처럼 발동이 빠른 기술을 썼다면 아무짓도 안 했건, 크로노스를 썼건, 아킬레스를 썼건 무조건 처맞는다. 두말할 나위 없는 No.1 봉인기.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2회 일치
2013년 10월 ‘Dandy Girl’을 발표한 이후 레이디 제인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모습을 비추어왔으며, [[홍진호]]와의 열애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2016. 《촉이와》 (with [[모세 (가수)|모세]])
- 로리타 패션 . . . . 2회 일치
일본에서 로리타 패션의 로리타는 「로리타(ロリィタ)」라고 쓰는 경우가 있다. 이는 소녀애를 뜻하는 「로리타(ロリータ)」와 혼동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다른 표기를 선택하는 흐름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리타(ロリータ)」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 「아오모지계(青文字系)」 혹은 「하라주쿠계(原宿系)」라는 표현도 있다.
검정색 등 다크 컬러를 중심으로 한다. 고스 문화와 퓨전되어 있다.
- 로손 . . . . 2회 일치
본사는 도쿄도 시나가와구 오오사키(東京都品川区大崎)
1974년 소매업계 대기업 [[다이에]](ダイエー)가 [[미국]] 식품회서 콘솔리데테드 푸즈(コンソリデーテッド・フーズ)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이 회사 산하에 있던 로손 밀크 프랜차일즈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 록맨 시리즈 . . . . 2회 일치
[[록맨]]이라는 로봇이 주인공인 게임으로 캡콤의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한 프랜차이즈이며 서구권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더불어 캡콤의 주요 시리즈 중 하나.
주된 내용은 록맨을 포함한 주인공들을 조종해 악당들과 싸우는 것. 주무기는 버스터 등의 장비이며 이외에도 다양한 패턴 연구를 통해 상대와 싸워 이겨나가야 한다.
- 류중일 . . . . 2회 일치
[[1982년]] 3학년 재학 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기념으로 열렸던 와의 우수 고교 초청 대회 결승전에서 [[투수]] [[김종석 (1964년)|김종석]]을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1호 홈런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10&aid=0000011188 류중일 감독, 손주인-강명구에게 특별한 선물] - 매일경제</ref> 1981년 봉황대기 미기상고 주장을 맡은 1982년 대통령배 감투상, 대붕기 최우수선수상을 수상. 초고교급 유격수로 발돋음하고. [[한양대학교|한양대]] 체육학과(1983학번) 시절 1985년 ~ 1986년에 3학년, 4학년 때 대학야구 올스타 [[유격수]]로 선정되었다.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상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태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 릭 존스 . . . . 2회 일치
고아원에서 도망쳐나와 떠돌다 배너 박사의 연구가 진행 중인 사막에 오게 되었다. 이때 그는 터지기 직전인 폭탄 근처에 있었고, 이를 본 배너 박사는 그를 구하기 위해 뛰쳐나갔다가 감마선에 노출되었다. 즉, 배너 박사가 헐크가 된 원인을 제공한 인물.
[[어벤저스]] 결성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로키]] 때문에 그의 요청이 오해되어서 헐크와 히어로들이 싸우게 된것이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아는 데로.
- 마~앙 . . . . 2회 일치
이 치~잉은 남성기(칭코,ちんこ)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므로, 여기에서 대비하여 여성기(망코,まんこ )에서 따와서 만들어진 말이 마~앙(웃음)이 된다. 대략 2014년 쯤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앙(웃음) . . . . 2회 일치
이 치~잉은 남성기(칭코,ちんこ)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므로, 여기에서 대비하여 여성기(망코,まんこ )에서 따와서 만들어진 말이 마~앙(웃음)이 된다. 대략 2014년 쯤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기/295화 . . . . 2회 일치
* 연백영(연옥염, 아르바)은 신드바드와 연락하며 흥분한 듯한 신드바드에게 "왜 그런 녀석을 상대로 안절부절 못하냐"고 묻는다.
* 홍명은 "마도연구시설"을 공개한다. 황제국의 독자적인 마법연구시설로 그 규모와 수준이 "마그노슈타트"조차 능가한다. 원래 홍명의 지휘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전쟁 이후에도 비밀조직으로 바꿔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 마기/296화 . . . . 2회 일치
* 3년 만에 바르카크와 재회한다. 바르다르는 민주정을 도입해서 바르카크가 의사당에서 일하고 있다
- 알리바바. 왕자로서 돌아와 달라는 바르카크에게
- 마기/297화 . . . . 2회 일치
* 마그노슈타르는 마법사와 비마법사가 공존하는 건전한 나라가 되었다.
* 3년 후 야무라이하의 요염한 자태와 '''겁나 큰 뱀'''이 씬스틸러.
- 마기/298화 . . . . 2회 일치
* 샤를르칸이 '''겁나 큰 뱀'''을 감고 있는건 이 나라의 관습. 왕족은 모두 그렇게 하지만 신드바드와 있을 땐 기후 상 하지 못했다고. 쇠사슬을 감고 다닌 이유는 뱀 대신이었다
* 이제는 세상이 평화로워졌고 전쟁의 위험이 없어져 왕국의 내분도 사라졌기 때문에 돌아와 왕이 되었다.
- 마기/299화 . . . . 2회 일치
* 뢰엠은 국제연합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는 뢰엠 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 뢰엠은 황제국이었지만, 그 황제는 의회에서 선출해 와서 실질적인 공화정 체제였다. 최근 완전한 왕정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무리가 있다.
- 마기/304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은 알리바바와 통신 중에 백영이 끼어든걸 느꼈지만 "설사 알더라도 이곳엔 못 온다"고 말한다.
* 성장한 알라딘도 아르바나 신드바드와 정면 승부할 수준은 못 되는 듯.
- 마기/312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은 물리법칙을 조작하는 마법을 구사하는데 연백영(아르바)는 "제 아비와 같다"고 경악.
* 위기의 순간마다 저쪽 차원으로 돌아갔다가 돌아와 몸을 갈아타왔다.
- 마기/313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 모르지아나와 만나고 처음 던전에 간 일들. 그리고 "사과"로 텃세를 부렸던 일 등.
* 오랜 만에 손을 맞잡으며 인사하는 알리바바와 백룡.
- 마기/318화 . . . . 2회 일치
* 황제국의 황제 연홍옥은 비장한 각오와 함게 본부에 참석한다.
* 동맹국들은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무는 군인인데 이 자리에 와있는 걸 지적하는데 그는 퇴역해서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 마기/321화 . . . . 2회 일치
* 이미 신드바드와 아르바의 몸에는 금같은 것이 나타나며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 신드바드는 길을 통해서 우고의 루프와 접촉한다.
- 마기/333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은 성궁에 가기에 앞서 일단 거기에 가면 자신이 [[우고]]와 결판을 내겠다고 말한다. 그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우고는 미쳤다"고 언급한걸 신경쓰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우고가 협조해서 신드바드가 성궁을 주무르고 있을 거라고 보고 꼭 그와 만나겠다고 말한다. 백룡도 신드바드의 힘을 반감하는 일이라면 해볼만하다고 맞장구친다.
- 마기/336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 일행 앞에 나타난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14살 당시의 신드바드였다.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서 알리바바와 신드바드가 격돌한다.
* 신드바드는 자신의 고향이 전쟁을 일삼는 지옥도였고 그걸 바꾸기 위해 던전 공략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솔로몬 왕의 세상은 인간의 선의만으론 바꿀 수 없는 부조리함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부조리한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힘으로 파괴하는게 옳은지 묻는다. 이것이 바알이 신드바드에게서 본 "분노와 영걸의 신념"이다. 바알은 이것이 단순한 살육전이 아니라 "신을 결정하는 시련"이므로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는 이상 결판이 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 마왕이 나타났다 . . . . 2회 일치
* 창세기전 1,2 : 실버 애로우와 다크 아머의 대결로 시작하더니, 베라모드의 정체와 신들의 음모가 밝혀지고 나서 전반부는 거의 없던 걸로 되고 마왕 엔딩으로 돌진한다.
- 마철준 . . . . 2회 일치
2004 시즌을 앞두고 2004 K리그 자유선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단 첫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풀백]]을 가리지않고 주전 선수들의 백업용으로 활동하다 투쟁심과 꾸준한 경기 운영 능력 등을 [[정해성]] 감독에게 높이 평가받아 후에 부천 SK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붙박이 사이드 [[풀백]]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마철준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과 기복 없는 플레이로 오랜 시간 [[제주 유나이티드]]의 측면을 책임지다 2012년 32살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신인 및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순]]의 [[상주 상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영입은 적절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상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반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 마터니티 마크 . . . . 2회 일치
그러나 지자체와 민간단체로서는 광범위한 보급이 어려웠고, 많은 마크가 발표되다보니 혼선이 일어났다. 또한 저작권 문제도 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후생노동성에서 사무국을 맡은 「 건강한 부모와 자식 21(健やか親子21) 」추진검토회에서 마터니티 마크를 디자인 공모하여 발표하게 된 것이다.
- 매카시즘은 이제 매카시워즘이다 . . . . 2회 일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농담]]으로 했다고 알려진 발언.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을 공산주의의 주구로 모함하고 다니며 개판을 치다 급기야는 미국 군부까지 공산주의 세력으로 모는 병크를 터뜨렸고, 전쟁영웅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카시 의원을 버리고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등 매카시를 정치적으로 거세[* 탄핵소추안 자체는 통과되지 않았으나, 명예를 존중하는 상원에서는 탄핵소추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로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인증 당한 것과 같다.]해 버렸다. 위의 발언은 이러한 '매카시즘의 종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발언.
- 맥시 제우스 . . . . 2회 일치
애니메이션에서는 [[배트맨 TAS]]와 더 배트맨에 등장한다.
배트맨 TAS와 달리 군대를 연상케하는 부하들과 강력한 무기, 심지어 공중전함까지 끌고 나타났다. 물론 배트맨과 동료들에 의해 패배.
- 맨씽 . . . . 2회 일치
[[헐크]]와 마주친 적이 있다.
2005년에 영화가 나왔으나 이 영화에서 맨씽은 주인공이 아니라 크리처물이나 괴수물에서 나오는 괴물 포지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맨씽의 모습은 코믹스와 달리 그루트 비슷한 나무인간형 괴물이다.
- 머슬봄버 . . . . 2회 일치
프로레슬링 게임 답게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등의 격투 게임과 달리 프로레슬링 경기 스타일. 적을 쓰러뜨리고 카운트를 세면 이기는 것도 구현. 이외에 1대1 싱글플레이와 2대2 팀플레이가 있는데 팀플레이 시에는 네명의 캐릭터다 하나의 링에서 싸운다. 그래서 4인 플레이가 가능. 플레이어가 없는 캐릭터들은 CPU에 의해 움직인다.
배경의 관중성을 자세히 보면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류와 춘리가 보인다.
- 머신맨 . . . . 2회 일치
[[어벤저스]]와도, [[엑스맨]]과도 접점이 있는 캐릭터.
마찬가지로 로봇 히어로인 조캐스타(Jocasta)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으나 조캐스타가 [[울트론]]의 손에 파괴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 메일빙 . . . . 2회 일치
일반 [[택배]]와는 달리, 택배 물품을 수취인의 우편함에 그냥 집어넣고 신경끄는 서비스(…). 배달 일시 지정이나 수취인에게 제대로 갔는지 확인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대신 요금이 싸다. 주로 [[책]], [[잡지]], [[상품 카탈로그]] 등 경량 소형 화물을 대상으로 하며, 메일빙으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은 크기나 무게가 제한되어 있다. 쿠로네코 메일빙의 경우 최대 크기 B4, 두께 2센티미터, 무게 1 킬로로 제한되어 있다.
택배와는 달리 일반 우편물과 비슷하게 화물 추적이나 등록 등이 엄밀하게 진행되지는 않으며, 이 때문에 분실이나 배달 지연 등의 위험이 약간 높다.
- 메탈멘 . . . . 2회 일치
이후 [[포에버 이블]]이 일어나자, [[크라임 신디케이트]]를 막으려는 [[사이보그]]는 플래티넘이 그리드와 연결되지 않은 로봇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매그너스 박사를 찾아가나 매그너스 박사는 메탈멘은 실패작이고 자신은 사이보그를 도울 수 없다고 한다.[* 사실 매그너스 박사는 자기가 봤던 감정을 지닌 존재들 중 메탈멘이 가장 착한 존재들이였기에 또 위험하게 만들기 싫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설득 끝에 매그너스 박사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메탈멘을 다시 가동시킨다.
* [[저스티스 리그]], [[아쿠아맨]], [[THE SANDMAN]] 등과 함께 워너 브라더스와 DC에서 영화화를 호시탐탐 노리는듯 하다.
- 모레츠 사원 . . . . 2회 일치
1969년 마루젠 석유丸善石油(현재의 코스모 속유)의 CM에서, 미니 스커트 차림의 오가와 로자(小川ローザ)가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오는 차가 일으킨 바람에 치마가 올라가면서 동시에 「Oh!맹렬(モーレツ,모레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장면이 있어 여기서 모레츠가 일시적으로 유행어가 됐다. 여기에서 모레츠 사원이라는 단어가 태어나게 됐다.
* [[기업전사]]와 유사하다.
- 모테루 . . . . 2회 일치
모테루(持てる)는 본래 어떤 물건 같은 것을 '들 수 있다','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떠받치다','지지를 받는다'는 의미가 파생되었으며, 여기서 '사람들이 떠받들어준다','사람들이 지지를 해준다'는 의미가 나와서 인기가 있다는 의미가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에도 시대]]에 이미 쓰이고 있었던 말이라고 한다. 표기는 모테루(持てる)라고 한자로 쓰고 있었으나, [[쇼와]] 중기 떄부터 모테루(モテる)라는 [[가타카나]] 표기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 목소리가 뒤집히다 . . . . 2회 일치
평소와는 다른 째지는 목소리 등이 나온 경우에 쓰는 말이다.
우라가에테루(裏返ってる)란 사물이 뒤집혀서 뒷면이 드러난 상태를 뜻한다. '겉면'에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상태, '뒷면(우라,裏)'에는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의미가 있어, 목소리에서 뒷면이 드러났다는 것은 곧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 문문 . . . . 2회 일치
전 여자친구를 많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애월'만 해도 가사에 여자친구와 제주도 애월에 여행갔던 기억이 담겨있고, '아침'은 여자친구와 아침산책 하면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그의 대표곡인 '비행운'도 전 여자친구가 해준 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라고 하니 말 다했다. 심지어 'Roach' 후렴구 부분은 문문의 전 여자친구가 피쳐링도 해주었다.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 . . . 2회 일치
중세 일본에서 [[세이와 겐지]]-카와치 겐지 씨족의 무사. 하치만 타로(八幡太郎)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 민룡 . . . . 2회 일치
올림픽에 앞서, 그는 5,000m 릴레이와 함께 1,500m 나 1,000m 개인전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민룡은 1,500m와 1,000m 개인전에 선발되지 못했고 5,000m 릴레이 예선 도중 심각한 부상을 입어 올림픽이 끝난 직후 조기은퇴했다.
- 민생위원 . . . . 2회 일치
민생위원은 각 지자체의 복지사무소와 연계하여 주민 생활을 파악하고, 생활 지도 등을 하는 활동을 벌인다.
아동복지법이 만들어지면서 민생위원은 아동위원(児童委員)을 겸하여 아동상담소와도 연계하여 활동한다.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 . 2회 일치
15년 전 아버지는 여자와 나가고, 그 어머니도 재혼하여 집을 떠났다. 세 자매를 키워준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장녀 사치, 차녀 욧쨩, 삼녀 치카는 넓고 오래된 [[카마쿠라]]의 집에 남겨져 있다.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에 나간 그녀들은 다른 여동생 스즈와 만나게 된다.
- 바키도/105화 . . . . 2회 일치
무사시와 피클의 대결이 절정으로 향해간다.
* 그와 함께 "너의 그 경력도 강함도 뿌리째 내것으로 삼아주마"라고 선언한다.
- 바키도/108화 . . . . 2회 일치
오로치돗포와 바키의 티타임.
* 한편 도쿠가와의 자택에서는 무사시의 칼 카네시게가 무사시에게 전달된다.
- 바키도/109화 . . . . 2회 일치
* 도쿠가와는 사람의 경추(목)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무사시는 힘도 들이지 않고 두부 자르듯 베어버린다.
* 마지막은 도쿠가와의 목울 살기로 베면서 장난을 친다.
- 바키도/127화 . . . . 2회 일치
* 도쿠가와는 자기 몸도 못 추스리겠다고 관중석으로 달아난다.
* 한마 바키는 가이아와 비슷하게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하는데, 폭약이든 독이든 어떤 수를 쓰든 모토베 이조가 살아있기를 기도한다.
- 바키도/132화 . . . . 2회 일치
* 이미 모토베의 우반신은 없어진 거나 다름 없다. 무사시의 일격으로 쇄골이 부러지고 폐가 내려앉아 오른팔은 이미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제와서 오른쪽 어깨가 좀 찔린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목을 조른다. 소매를 문 턱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이제와서...
- 바키도/140화 . . . . 2회 일치
*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는 총기를 소지한 경찰에게 다리를 노리고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겨누기가 무섭게 무사시의 반격이 들어온다. 꼬챙이가 날아와 경찰의 눈 밑에 박힌다.
* 좌우간 그 뒤에도 "포획"은 계속된다. 그러나 건장한 경찰 여섯이 한 꺼번에 덤비는 것도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한다. 분명 단단히 포위한 채 사방에서 달려들었는데, 막상 상대하게 되면 아군이 시야를 가리고 장애물이 되어 접근할 수 없고 무사시와 대면하게 되면 언제나 1대1. 오오츠카는 자신이 본 사실과 그들의 증언을 모두 전하며 그것이 당대에서 말하던 "병법"이라고 말한다. 이제 경시청에선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데.
- 박광정 . . . . 2회 일치
평소에 막역했던 사이로는 [[권해효]]와 [[안석환]]이 있다.
* 1996년 날 보러 와요
- 박기혁 . . . . 2회 일치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동했다. [[2008년]] 시즌 113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홈런, 36타점, 47득점, 16도루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박계원]] 이후 14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유격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상]]을 안겼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72 박기혁, 데뷔 첫 황금장갑 수상] 《Osen》, 2008년 12월 11일</ref> [[2006년 아시안 게임|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에 그쳤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9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여 [[박진만]]을 대신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본격적인 시즌 개막 이후 무릎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강정호]]와 [[손시헌]]에게 밀려 야심차게 노렸던 목표인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엔트리 진입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입대를 1주 앞두고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결국 [[2010년]]을 쓸쓸히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 15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2년]] 소집 해제하였다. [[2013년]]에 복귀한 뒤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잡으려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결국 프로 2년차인 [[신본기]]에 밀리고 말았다.
[[2014년]] [[11월 28일]] [[kt 위즈]]와 4년(3+1년) 총액 11억 4,000만원(계약금 4억 5,000만원, 연봉 1억 5,000만원, 옵션 3년간 연 3,000만원)의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019386 박기혁, "더 많은 기회 얻기 위해 kt 선택"] -OSEN</ref>
- 박성배 . . . . 2회 일치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다이노스]]<br />[[광주 상무 불사조]] <small>(군 복무)</small><br />[[FC 서울]]<br />→ [[부산 아이파크]] <small>(임대)</small><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영하트 마나와투]]<br />[[이스턴 서버브스 AFC|이스턴 서버브스]]<br />[[용인시청 축구단|용인시청]]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다이노스]]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고 2005년 [[FC 서울]]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바로 [[부산 아이파크]]로 임대를 갔고 그 후 2006년에는 정규 리그와 리그컵에는 전혀 출전하지 못하고 2군 리그인 [[R리그]]에서만 뛰다가 2007년 초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ref>[http://soccerlove.co.kr/news/news_detail.asp?idx=59399&cat=223&pg=141 재기 노리는 박성배-정광민 '팀공격력 내게 맡겨!]</ref>
- 박윤경(가수) . . . . 2회 일치
박윤경은 [[1970년]] [[8월 28일]]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에 재학 당시 모친 [[심영진]]과 친분이 두터웠던 작곡가 [[임종수]]와의 만남으로 4년간 연습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1989년]], 제10회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입상하고 그 다음해 [[1990년]]에 제4회 MBC 신인가요제에 출전하여 가창상과 대상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이를 계기로 [[1991년]]에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당시 트로트곡〈부초〉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아버지〉도 함께 인기를 얻었다. 데뷔와 동시에 톱 가수로 성장하게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국에 박윤경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95년]] 박윤경은 본격적으로〈알리바이〉라는 경쾌한 리듬의 곡으로 두 번째 음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대표적인 음악프로그램《[[열린음악회]]》에 출연하여 가창력을 인정받고 대중들에게 각광받았다.
- 박재홍(1941) . . . . 2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칠곡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현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김현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 박종준 . . . . 2회 일치
경찰대학 졸업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평창군|평창]][[경찰서장]], 공주경찰서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 [[마포구|마포]]경찰서장, 충남[[지방경찰청]] [[지방경찰청장|청장]],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 [[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박수현(정치인)|박수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13년 6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차장을 역임하였다.
- 박지일(배우) . . . . 2회 일치
* [[2017년]] [[tvN 토일드라마]] 《[[명불허전 (드라마)|명불허전]]》 - 청와대 경제수석 역 (특별출연)
** 《[[돌아와요 부산항애]]》 - 박 원장 역, 《[[궁합 (영화)|궁합]]》 - 윤현 역, 《[[라라 (영화)|라라]]》 - 김 대표 역
- 박홍 (신부) . . . . 2회 일치
강기훈은 법원으로부터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와 정황에 따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으나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13일]]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ref name=gg>{{웹 인용|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제목=강기훈 유서대필의혹 사건 진실규명결정|출판사=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저자=정책홍보팀|날짜=2007-11-13|확인날짜=2012-04-29}}{{깨진 링크|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 }}</ref> 이에 따라 2012년 대법원의 재심이 개시되었으며, 2014년 2월 13일 재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혐의·무죄로 재판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137599</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41789</ref>
- 배트맨 . . . . 2회 일치
[[고담]]에서 활동하는 [[슈퍼히어로]]. 본 정체는 고담시의 갑부인 브루스 웨인. 그는 어린 시절 강도의 총격으로 부모님을 잃었다. 이후 다양한 단련을 해서 배트맨이 되어 범죄와 싸운다.
* 와이어 건
- 백기만 . . . . 2회 일치
| 학력 = [[일본]]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 중퇴
* [[일본]]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 중퇴
- 백상원 . . . . 2회 일치
[[2013년]] [[4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어 그 날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1군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해 2군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김상수 (1990년)|김상수]]의 부상으로 다시 1군에 올라와 [[2013년]] [[10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김성배 (야구 선수)|김성배]]를 상대로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올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29325 '백상원을 아시나요' 삼성의 화수분 야구는 계속 된다] - OSEN</ref>
- 백이소 . . . . 2회 일치
고려 때 [[박경순]](朴慶純) 일당의 난을 진압한 [[청도]] 호장 [[백계영]](白桂英)의 후손인 선략장군(宣略將軍) [[백희]](白熹)의 둘째 아들로 [[경주부]] 서면 부산촌(富山村) 출신이다. 풍채가 크고 힘이 출중하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92년]](선조25) 6월 [[경주]]지역 의병장으로 경주부윤 [[윤인함]], 판관 [[박의장]]과 함께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였다. 노모와 아내를 산 속에 피신시킨 후 산에서 내려와 가복들을 이끌고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무찔렀다. [[1594년]]([[선조]] 27)에는 갑오별시 병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봉사에 특제되었다.<ref>《[[부암실기]]》</ref>
- 변정수(배우) . . . . 2회 일치
같은 대학의 복학생이었던 현재의 남편과 연애결혼했으며, 꽤 일찍 결혼한 편이다.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다. 결혼 후 결혼 사실을 업계에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촬영날에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을 스태프에게 들켜서 결혼 사실을 그냥 공개해 버렸다. 결혼 후에는 [[경기도]] [[광명시]] 오포읍 신현리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부터 활동해 온 모델 출신으로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연기력이 출중해서 현재는 드라마 연기자로 안착한 듯. 1~2년에 한 작품 정도 꼬박꼬박 출연한다. 목소리가 굉장히 허스키한데, 큰 키와 모델다운 날카로운 외모 등이 시너지를 일으켜 주로 맡는 역할은 서브여주, 악녀나 최종보스 계열. 다만 남자 주인공의 주책바가지 누나 역에도 특화되어 있다. [[전설의 마녀]]의 경우 두 가지를 조합한 듯한 푼수 악녀 역할로 인기를 얻었다.
- 병 속의 악마 . . . . 2회 일치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소설. 안에 악마(Imp)가 들어있는 마법의 병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하와이의 선언 케아위(Keawe)가 한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부유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왠지 슬퍼보였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자신의 모든 재산은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Imp)가 들어있는 마법의 병(magic bottle)으로 얻은 것인데, 이 병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만 죽기 전에 이 병을 팔아버리지 않으면 소유자는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병은 반드시 자신이 삿던 것 보다 싼 값으로 팔아야 한다. 케아위는 50달러를 주고, 노인에게 이 병을 사게 되며….
- 보증 . . . . 2회 일치
째째하게 사회적 '신용'을 엄밀하게 따지는 차갑고 냉정한 서양권과는 달리, 다른 사람이 타인의 인간성을 믿는다고 [[도장]] 하나만 찍으면 대출을 해주는 동양권의 '인심'에 근거를 둔 훈훈한 금융 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정(情)을 담보로 하는 제도로서, 이윤 밖에 생각하지 않는 차가운 금융 시장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증에 관련된 문학 가운데 하나로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가 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와 또한 다자이 오사무가 친구에게 술값을 보증서게 해놓고 술집에 친구를 맡겨놓은 다음 자신이 나중에 술값을 가져왔다는 훈훈한 일화에서 따왔다.
- 보쿠걸 . . . . 2회 일치
같은 반의 후지와라를 좋아하고 있지만, 우연히 장난의 신 로키와 얽히면서 진짜 여자애의 몸이 되고 마는데...
- 보쿠걸/96화 . . . . 2회 일치
미즈키와 타케루는 정월을 맞이해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왔다.
* 타케루는 아버지에게 미즈키와 관계를 가지고 놀림 당한다
- 불릿 타임 . . . . 2회 일치
과거을 바꿨다 어릴때 나 대로와 옛날 여성 대로와 장난쳤다
- 브로포스 . . . . 2회 일치
[[코만도]]와 같은 "붕붕펑쾅"스러운 액션물의 영향을 받은 게임이라 곳곳에서 폭발물이 난무한다. 거기에 브로가 휩쓸려 죽을수도 있으니 주의.
2번째 임무인 캄보디움의 보스. 폭탄 투하와 기관포 난사라는 두 종류의 패턴을 번갈아 사용한다.
- 브이원 . . . . 2회 일치
1996년 뮤지컬배우 첫 데뷔한 그는 [[대구광역시|대구]] 태생으로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전문학사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학위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대중예술학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브이원'이라는 예명으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강현수는 임채홍과 함께 [[2010년]] [[3월 27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입시 전문 방송아카데미 '배우&배움'을 열기도 했다. 평소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오랜 준비 끝에 개업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거나, [[2003년]] 방영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복학생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3/h20100325062909111780.htm|제목=강현수·임채홍 방송아카데미 오픈|성=|이름=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날짜=2010-03-25|출판사=한국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2006년]] 군 입대를 선언했다.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재입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강현수는 서울 광화문의 병역특례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경영난에 부딪힌 회사가 그를 퇴사조치 했다. 다른 병역특례업체를 찾아보던 중, 때마침 연예인 병역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강현수도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회사가 어려워 임금을 받지 못했던 것인데, 상황이 꼬이다보니 ‘무임금을 조건으로 취업했다’는 혐의를 받게 됐고 재 입대까지 통보 받게 됐다는 강현수의 주장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70147792&cp=nv|제목=‘하고 싶다’ 강현수 “남상미와 연기 하고파”|성=|이름=최은화 기자|날짜=2010-04-01|출판사=쿠키뉴스 국민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 블랙 클로버/120화 . . . . 2회 일치
* 드디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의 팀이 시합. 그런데 세 번재 멤버는 곧 죽을 것 같은 관상의 묘한 아저씨였다.
* 시합을 앞두고 주도권 싸움에 들어간 노엘과 유노. 그 앞에 상대팀 소속인 [[솔리드 노엘]]이 찾아와 노엘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 블랙 클로버/58화 . . . . 2회 일치
노엘과 아스타는 묘한 소녀 카호노와 함께 마력 컨트롤 특훈에 임한다.
* 이후 아스타, 카호노와 함께 매일 같이 수련에 매진하나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2회 일치
* 경악하는 노엘, 아스타와 달리 매그너, 고슈, 락은 순식간에 괴물을 작살낸다.
* 바네사와 핀랄은 이만한 크기의 괴물을 마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 블랙 클로버/80화 . . . . 2회 일치
* 오벤도 다른 물마법 사용자와 비슷한 회복마법을 사용하는데 스케일이 남다르다. 방에 해파리 같은 형채가 가득찰 정도.
* 고슈 아들레이는 마리를 보러 간다며 불참. 그외 그레이와 고든 아그리파도 어쩐지 보이지 않는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는 여기까지 와놓고도 왜 왔는지 영문을 모른다.
* 바네사를 발견한 아스타와 노엘은 당장 그 발을 치우라며 격노한다.
- 블랙 클로버/88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핀랄 룰러케이트와 바네사 에노테이커의 조력으로 엄청난 추진력을 가진 기술로 재탄생, 샐러맨더가 회복하기 전에 완전히 분쇄한다.
* 마르스와 라드로스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젤은 자신의 마법으로 속죄하겠다며 마검을 꺼낸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2회 일치
* 바깥으로 나간 그녀에겐 온갖 엉망진창인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검은 폭우 단원들이었다. 초면인 바네사에게 작업거는 [[핀랄 룰러케이트]], 무심해 보이는 [[고든 아그리파]], 음식을 나눠주었던 [[챠미 퍼밋슨]]과 [[그레이(블랙 클로버)|그레이]], 언제나 티격태격하는 [[락 볼티어]], [[매그너 스윙]], [[고슈 아들레이]]. 그리고 아스타와 노엘.
* 바네사는 마녀왕의 "내 가족"이란 말에 반박한다. 그리고 그녀의 "진짜 가족"이 사라지려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들이 사라진 이후의 모습도. 바네사는 이걸 멈추지 못할 바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는 거냐고 자문한다. 그리고 그녀를 평생 옭아맸던, 여왕이 그토록 바라던 "운명을 다루는 힘"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나와주기를 바란다.
- 블리치/682화 . . . . 2회 일치
* 자라키 켄파치가 제라드를 쓰러뜨렸지만 뱌쿠야와 토시로는 켄파치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 제라드는 반토막난 몸을 복구하기 시작하는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내뿜는다.'''
- 블리치/684화 . . . . 2회 일치
* 이치고와 오리히메는 드디어 유하바하의 거처 앞까지 도착
* 마침내 마주선 유하바하와 이치고.
- 블리치/691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하쉬발트는 "나와는 상성이 안 좋다"며 더 밸런스를 발동, 자신의 "불운"을 우류에게 되돌린다.
* 우류와 하쉬발트는 서로 능력 반사라 무지개반사 배틀이나 다름없다.
- 블리치/696화 . . . . 2회 일치
* 소울 소사이어티와 현세 전체가 올마이티에 동화하려고 할때
* 이 물질은 아우스발렌을 발동한 당사자의 피와 접촉하면 "그 자의 능력을 잠깐 동안 봉쇄한다"
- 빌리 블랭크스 . . . . 2회 일치
[[텔레비전]]으로 [[이소룡]]을 보고 무술에 동경을 느껴, 14살 때부터 무술을 시작했으며 [[가라테]]와 [[태권도]]를 배웠다.
1980년대에 태권도('''tae''' kwon do)와 복싱('''bo'''xing)을 결합한 무술 겸 트레이닝 프로그램 '[[태보]]'를 창안하여,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캘리포니아]] 일대에 널리 보급했다.
- 빗치 . . . . 2회 일치
* 성욕이 강하다. 여러 남자와 육체 관계를 가진다. 혹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 쾌락과 금전을 요구하고 남자와 육체관계를 가진다. 혹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 생령 . . . . 2회 일치
[[일본]] [[오컬트]] 심령학계의 용어. 이키료우(いきりょう) 혹은 세이레이(せいれい) 이키스타마(いきすだま)라고 읽는다. 생령이란 살아 있는 사람의 영이다. 이와 대조하여 죽은 사람의 영을 사령(死霊)이라고 한다.
생령이란 일본 문화에서 매우 뿌리 깊은 신앙으로서, [[겐지모노가타리]]에서도 이와 묘사가 나타난다.
- 서든어택 2/무기 . . . . 2회 일치
||AK-103은 AK-47 계열 돌격소총의 최신 버전이다. 구경을 5.45mm로 줄여 반동을 줄이고 명중률을 높였던 AK-47의 후속작 AK-74와 달리 AK-103은 다시 고전적인 7.62mm 탄약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만큼 높은 위력을 발휘하지만 고질적인 반동 문제도 다시 안게 되었다.||
||1969년 오스트리아군의 제식 저격소총으로 채용되어 이후 한국의 707특임대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군경에게 널리 사용된 저격소총이다. 그러나 개발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소총이고, 주력 탄종인 7.62 NATO 역시 신형 탄약이 다수 등장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저격총 탄약으로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사거리와 살상력이 부족한 편이다.||
- 서든어택 2/캐릭터 . . . . 2회 일치
얻으면 레드와 블루 둘 다 생기는 캐릭터들.
그녀와 한 전장에 설 수 있다면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기꺼이 맡겠다고 단언하는 과격한 용병 팬도 많다고 전해지며, 심지어 유명 용병 그룹 네 개가 제각각 그녀의 팬클럽을 자처, 누가 공식 팬클럽인지를 정하자며 소규모 전투를 치렀다는 소문마저 있다.
- 서수민 . . . . 2회 일치
[[개그 콘서트]], [[폭소클럽]]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주로 연출했고, [[2012년]] [[11월]] 개그 콘서트를 비롯한 2~4개의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책임프로듀서([[CP]])로 승진했으며 [[드라마]]국 소속의 김성근 [[PD(방송)|PD]]와 결혼했다.
유명 사진작가 조선희와는 같은 [[경상북도]] 출신[* 조선희는 [[칠곡군]] 출신이다.]에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동기라고 하며 연대 입학 후 만난 두 사람은 반지하방에서 자취하면서 룸메이트 생활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기획을 맡은 KBS2 드라마 '최고의 한방'의 포스터를 촬영했다고 한다.
- 서영무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영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OB]]의 이사로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돼 [[1984년]] [[5월 11일]] OB와 삼성의 대구 경기를 앞두고 원정 숙소였던 [[수성관광호텔]]에서 선수들의 방을 정하던 도중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경북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식물인간이 되었고, 긴 투병 끝에 [[1987년]] [[5월 26일]] 오전 7시 5분,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 서용주 . . . . 2회 일치
前 [[KIA 타이거즈]]의 외야수. 184cm, 89kg의 다부진 체격에 우수한 타격 파워와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졌다.
8월 23일에 [[김선빈]]과 [[최희섭]]이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윤완주]]와 함께 1군에 콜업,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80944|기사]] 그리고 8월 25일 목동 넥센전에서 9회초 [[이용규]]의 대주자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박기남]]의 적시타로 2루까지 진루하였으나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는 실패하였다.
- 서울특별시장 . . . . 2회 일치
서울은 1946년「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하여,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중앙정부 내무부 소속으로 들어갔으며, 특별시로 승격하였다. 그와 동시에 경성부윤(府尹)이 서울시장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서울특별시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관한특별조치법」에 따라서 서울시와 서울시장의 법적 대우가 향상되어, 종래의 내무부 소속에서 국무총리 직속이 되었다. 서울특별장은 별정직이 되었고, 국무회의 출석권을 얻게 된다.
- 서유정(배우) . . . . 2회 일치
* 2001년 SBS 단막극 오픈 드라마 남과 여- 그녀와 헤어지기 몇 시간 전
* 2003년 MBC 아침 드라마 [[성녀와 마녀]]
- 선원 . . . . 2회 일치
船員. 배에 근무하며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세일러복]]을 입고있다는 이미지가 있다만 이미지와 현실은 상당히 다르다.
- 선조 . . . . 2회 일치
~~[[인조]]와 함께 조선 최악의 왕 투톱 / 연산군이나, 망국의 군주 고종까지 합해서 '조선조 암군 F4'라는 사람도 있다 카더라~~[* 다만 고종의 경우에는 앞의 세 사람과 동급으로 비교할 정도는 아니고, 일제강점기를 막지 못한 부분이 이미지상 악영향을 미쳤다.]
왜란 이후에도 그의 삽질은 계속되어, 당시 세자인 '''광해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인목왕후를 들이지 않나[* 사실 이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충공깽이지만, 관례적으로 중전의 지위를 공석으로 놔둘 수 없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중전은 궁녀들의 모임인 내명부를 통솔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은 단순히 사적인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업무를 통솔하는 직책이기도 하므로 중전이 부재하면 궁궐의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전은 정치적으로 왕권과 후계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문종 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단종이 '수렴청정'을 통한 왕권 수호를 받지 못한 것이 세조의 쿠데타를 쉽게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인목왕후는 오히려 불안정만 불러왔지만--],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인 [[영창대군]]을 [[유영경]]등과 영합해 나중에 영창대군이 좀더 장성할 때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것때문에 광해군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왕위에 집착하게 되고, 영창대군의 최후와 [[인조반정]]의 원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 성현아 . . . . 2회 일치
2010년에 여섯 살 연상의 사업가와 재혼하여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재혼한 남편의 사업이 순탄치 않아 별거에 들어갔고, 이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2013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으나 [[2016년]]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인정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MBC로부터 출연금지를 받아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언론에 부담느꼈나? 성현아 끝내 제작발표회 불참| url=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276165| 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강은영| 쪽= | 날짜= 2018-02-06| 확인날짜= 2018-09-25}}</ref>
* [[2001년]] [[SBS]] 단막극 《[[SBS 오픈드라마 남과여]] - 나는 Mr. 하이디와 결혼했다》 ... 영혜 역
- 세미스텔스 . . . . 2회 일치
흔히 세미스텔스라고 불리는 기종들은, 스텔스를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본격적인 스텔스기와는 달리 기체 설계 전반에 본격적인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스텔스 기술을 상당히 고려하고 도입하여 RCS를 줄이는 것을 설계 목표에 포함하고 있다. 즉 본격적인 스텔스 전투기가 스텔스를 위하여 어느 정도 전투력 약화도 감수하는 설계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세미스텔스기는 기존의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스텔스 기술의 혜택을 얻는 설계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미스텔스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밀덕들은, 결국 실전 상황에서는 다양한 무장을 하면서 RCS가 늘어나고 결국 스텔스기보다는 비스텔스기와 별 차이 없는 RCS 밖에 나오지 않게 되므로, 세미스텔스는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서 세미스텔스 옹호론자들은 그래도 큰 돈 들여서 여러 회사들이 만든 것이니까, 쓸모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런 주장은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도박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본격적인 스텔스만은 못해도 세미스텔스 역시 상당한 전술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 세븐 솔저스 오브 빅토리 . . . . 2회 일치
크라이시스 이전에는 지구-2의 [[그린 애로우]]와 [[스피디]]도 멤버였다.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서 비질란티와 샤이닝 나이트, 크림슨 어벤저, 스트라입시는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로 등장.[* 그린 애로우도 등장했는데 금발에 수염을 기른 버전이다.]
- 세이와 덴노 . . . . 2회 일치
일본의 제56대 덴노. [[후지와라 요시후사]]가 섭정을 했다.
* 손자 츠네모토 왕(経基王)을 신적강하하여, 미나모토(源) 성을 내린다. 이 미나모토 츠네모토(源経基)의 자손이 [[세이와 겐지]]이며, 일본 무가정권의 시조가 된다.
- 세조 . . . . 2회 일치
재위 기간동안 민생을 돌보는 정치를 했다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의 치세에 일어난 각종 옥사나 반란(이징옥의 난, 이시애의 난 등)은 조선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고, 또한 이러한 변란의 여파로 인해 세종 조에 개척한 북방 영토 중 일부(4군 지역)를 관리를 포기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정통성이 완벽했던 조카를 상대로 찬탈했다는 사실은 정치와 관계없던 민초들에게도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여 세조와 관계된 야사나 민담은 좋은 게 없을 정도이다.
- 세종 . . . . 2회 일치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을 창제한 왕이기도 하며,북방의 여진족을 경계해 이징옥과 김종서를 보내 정벌하기도 했다. 음악(예악), 과학 기술 분야에도 힘을 쏟은 등 다방면에 걸쳐 주요 업적을 주도하여 조선 왕조를 기반에 올려놓았다. 본인도 독서와 공부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신하들도 그 학문적 깊이에 밀려 쩔쩔맬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처럼 정력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직접 일을 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섭식 문제(육식을 너무 좋아했다)와 겹쳐 각종 성인병에 시달려 고생하였다. 이 때문에 만년에는 세자(후의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기도 하였다.
- 세컨드 오피니언 . . . . 2회 일치
지금 담당하고 있는 의사([[주치의]]) 이외의 다른 의사에게 제2의 의견을 요구하는 것. 이와 대조하여 주치의가 내놓은 의견을 퍼스트 오피니언이라고 한다.
병원을 바꾸거나, 의사를 바꾸는 것과는 다르다. 세컨드 오피니언을 받고, 결과적으로 의사를 바꾸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의사에 따라서는 세컨드 오피니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존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의사가 있어, 기존 주치의와 환자의 관계에 지장이 올 수 있다.
- 소말리 족 . . . . 2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각각 영국령 소말리랜드와 이탈리아 령 소말리아로 식민지가 세워져 나누어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소말리 족 통일국가를 열망하는 '대 소말리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소말리랜드와 소말리아는 협력하여 통일-독립에 성공한다.
- 소벌도리 . . . . 2회 일치
[[일연]]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와 돌산고허촌의 촌장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연합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47848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기원전 69년]]에 6부의 촌장들이 모여 덕(德)이 있는 자를 찾아 왕으로 삼고 수도를 정해 나라를 열 것을 결의하였는데 나정(蘿井)에서 이상한 기운이 비치는 것을 보고 찾아가서 붉은 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알에서 나온 아이가 [[박혁거세]]이며, [[기원전 57년]]에 왕으로 옹립하여 [[신라|사로국]]을 건국하였다. 《[[삼국사기]]》는 나정에서 알과 혁거세를 처음 발견하여 양육한 것이 소벌공이라 기록하고 있다. 고허촌은 [[신라 유리왕|유리왕]] 때 사량부(沙梁部)로 개칭되고 최씨(崔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반면 《[[삼국유사]]》에는 정씨(鄭氏)의 조상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진주 소씨]] 족보는 소벌도리의 생애에 대해 다른 기록을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진한의 왕족으로 자(字)는 당운(當雲)이다. 진한의 초대 군주 소백손의 4대손이며 돌산고허촌의 촌장을 지냈다고 한다. 사후 [[신라]]의 개국공신에 녹훈되었고 사량부대인(沙梁部大人)이 되었다. [[516년]](법흥왕 3년) 충선(忠宣)의 [[시호]]가 추서되었는데, 뒷날 [[태종무열왕]]에 의해 왕으로 추존되어 문열왕(文烈王)이라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최씨와 소씨는 그를 시조로 하고, 각각 [[최치원]], [[최언위]], [[최준옹]], [[알천]](소경) 등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세대 수를 기세(起世)하고 있다.
- 손정혜 . . . . 2회 일치
[[1982년]], [[충청북도]] [[충주시]] 출생. 30대의 젊은 여성 변호사로 현재 [[이혼]], [[가정]][[법률]]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속은 비엔아이 법률사무소.[* 임방글, 백성문 변호사도 이 소속이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해 47회 사법고시를 1차와 2차를 한꺼번에 합격할 정도로 수재이다.(2차는 재수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 [* http://yurajun.tistory.com/3740 ] 근거 링크 혹은 확인 요망). 37회 사법연수원 출신이며, <청년변호사협회>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좋고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데 공헌하는 변호사 특유의 포부와 다양한 분야에 일하고 있으며, 건설 [[부동산]] 엔터테인먼트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법률신문에서 변호사를 인터뷰하는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송언석 . . . . 2회 일치
[[이철우(1955)|이철우]]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당협위원장직을 사퇴하자 2018년 2월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김천시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출마할 후보로 [[공천]]되었다.
그리고 무소속 [[최대원]] 후보와의 접전 끝에 493표 차이로 당선이 되었다.
- 송재호(배우) . . . . 2회 일치
원래는 배우가 아닌 성우 출신으로 1959년 [[KBS부산방송총국]]에서 성우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배우로 활동하였다. 1937년생인가 보니 일본의 [[시바타 히데카츠]]와 동갑에 연기력도 비슷한편.
* [[장미와 콩나물]] - 조동선
- 송정현 . . . . 2회 일치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상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순진 영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남, 9년 만에 FA컵 품었다…송정현·김태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컵 2연패 가능케 한 전남의 영웅 ]</ref>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반기 단발 계약]</ref>
- 송종익 . . . . 2회 일치
[[1936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하와이 주|하와이]]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 때 북미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석하여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설립했고 집행부 위원 겸 재무를 맡았다. 1941년 12월에 열린 대한인국민회 총회에서 [[로스앤젤레스]] 대표로 참가하여 대한인국민회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44년]]에는 주미외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다. [[1945년]] 11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귀국했지만 몇 달 뒤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다. [[1956년]] [[1월 7일]] 사망했으며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송지효 . . . . 2회 일치
* [[2004년]] [[10월 9일]] [[MBC]] 《[[놀러와]]》 20회
* [[2018년]] [[4월 10일]] [[온 스타일|on style]] 《[[송지효의 뷰티풀 라이프]]》 MC ([[권혁수 (배우)|권혁수]], [[모모랜드]] [[연우]], [[구재이]]와 함께)
- 송진현 . . . . 2회 일치
1952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 합격해 제8기 [[사법연수원]]을 수료, 공군 법무관을 전역했다.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항소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0월 24일에 [[인천역]]에서 다른 승객이 놓고 간 35000원 상당의 공구함을 들고가다 붙잡힌 피고인에 대해 "지하철이 종착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점유권이 지하철공사에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징역10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f> 1998년 1월 10일에 일반음식점 영업 허가없이 통조림, 캔류 등 안주류를 파는 24시간 편의방을 운영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1월 11일자</ref> 1999년 1월 10일에 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줘 공문서 부정행사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정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운전면허증을신분증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9년 1월 11일</ref> 4월 24일에 서울대 캠퍼스에서 집단 농성을 주도한 한국통신 서울본부 위원장에 대해 "서울대 총장이 한국통신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학내 출입을 금지했음에도 무단 진입했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4월 26일자</ref> 5월 17일에 [[한총련]] 범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위반과 건조물 침입죄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1년이 선고된 노래패 '희망새에 대해 단장 조모씨(31세)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라고 하더라도 공연의 목적으로 참석했고 구호를 외치거나 연설을 하는 등 집회,시위를 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집시법]]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5월 18일자</ref> 10월 7일에 폭력배를 동원해 채무 해결사 노릇을 했던 [[홍수환]]에 대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부탁으로 후배를 연결해준 점은 인정되지만 채권을 회수하기로 후배와 공모한 일은 그 뒤에 이뤄져 피고인이 개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10월 8일자</ref>
- 숙년이혼 . . . . 2회 일치
이 단어 자체는 1990년대 후반부터 비슷한 나오기 시작하다가, 2005년 10월에 숙년이혼이라는 드라마가 나와서 다른 동의어와 유사어를 통합할 정도로 인기 있는 유행어가 되었다.
- 슈퍼걸(드라마) . . . . 2회 일치
캣코 월드와이드 미디어의 사장.
클립톤 인 범죄자들의 두목. 카라의 어머니 알루라와는 쌍둥이.
- 슈퍼히어로 팀 . . . . 2회 일치
팀이기에 [[빌런]]측도 슈퍼빌런 팀 또는 더 큰 규모의 조직, 집단으로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하나이거나 그와 다를바없는 소수의 초강력 빌런에게 대항하기 위해 팀이 성립되는 묘사도 있다.
슈퍼히어로 한 명이 등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슈퍼히어로 팀으로서는 실사[[영화화]]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단 등장 캐릭터가 많고[* 히어로가 한 명이라 해도 그 히어로와 싸울 빌런과 히어로의 주변인물 등이 있다. 그런데 팀이라면 더 많아진다.], 각 캐릭터의 비중[*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캐릭터가 인기파인데 비중이 약하면 욕먹기 딱 좋다. 그리고 인기는 둘째 치고 등장했으면서 별 비중 없으면 왜 등장시켰냐는 비난을 듣기 쉽다.]과 액션[* 주역이 초능력자라면 그 초능력을 잘 묘사해야 하고 비능력자라도 뛰어난 격투신같이 좋은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주역이라면.]을 신경써야 하기에 그 난이도가 정말 높아진다. 90년대에 먼저 나온 닌자 거북이 실사판 3부작의 성공이 팀 무비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고, [[어벤져스]]의 대박으로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알렸다.
- 스키야키 . . . . 2회 일치
일본 [[요리]]. [[고기]](주로 쇠고기)와 [[파]], [[두부]], [[곤약]]을 넣고, [[냄비]]에 끓여서, [[간장]]과 [[설탕]] 등을 써서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
[[메이지 시대]] 이후 육식이 해금되면서, 도쿄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현재와 같은 스키야키가 퍼졌다. '서민의 음식'으로서 여겨졌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 . . 2회 일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프랜차이즈. [[워크래프트 시리즈]], [[디아블로 시리즈]]와 더불어 블리자드의 대표적인 게임 시리즈다.
[[우주]]를 배경으로 [[테란]], [[프로토스]], [[저그]] 세 종족의 이야기를 다뤘으며 1998년에 1편이 나오고, 이후 2010년에 2편이 나왔다. 이외에도 소설, 코믹스가 나왔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와 더불어 RTS의 유명 게임.
- 스탈리늄 . . . . 2회 일치
몇몇 [[월드 오브 탱크]]와 [[워 썬더]] 유저들은 제작사가 [[소련]]에 편향되었다는 주장을 해왔다. 소련 차량들이 비교적 성능이 좋은 편이었던데다가, 제작사들의 국적[* 월드 오브 탱크의 제작사인 워게이밍넷은 벨라루스 회사. 워 썬더의 제작사인 가이진은 러시아 회사.]도 구 소련의 구성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소련 전차&항공기들이 비정상적인 방어력을 뽐내는 상황이 목격되자 유저들은 저것들의 장갑은 일반적인 금속이 아니라 스탈리늄이라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었다고 드립을 치기 시작한다.
- 스파이 스매셔 . . . . 2회 일치
[[DC 코믹스]]의 히어로. 원래 포셋 코믹스 소속이었다. 1대와 2대가 존재. [[초능력]] 없이 전투능력이 뛰어난 인간이다.
2대 스파이 스매셔. 여성으로 정말 다양한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 거만한 성격이며 임무 완수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위험한 면을 지녔다. 1대와는 관계는 불분명하나 별명과 복장은 그에게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 스파이더 슬레이어 . . . . 2회 일치
스파이더 슬레이어 마크1은 [[시빌 워]]에도 등장, [[쉬헐크]]에서 아들이 쉬헐크와 결혼한다는 것을 안 제임슨 편집장이 쉬헐크 슬레이어라 칭하며 또 사용했다. 물론 파괴되었다.
슈피리어 스파이더맨에서 슈피리어 스파이더맨/[[닥터 옥토퍼스]]는 스파이더 슬레이어의 사형일 날 그의 탈옥 계획을 알고 자신의 스파이더봇들을 이용해 탈옥을 막았다. 스파이더 슬레이어는 [[벌처]]와 [[스콜피온]] 등을 감옥에서 빼내 스파이더맨과 제임슨 시장, 감옥 안의 민간인들을 죽이려 보냈지만 각각 실패하고, 오토에게 죽기 직전 마지막 수단으로 서로의 정신교환을 시전하지만(...) 이미 시전을 성공했던 옥박사는 그를 비웃고 사실을 알려준다. 결국 오토가 전에 날렸던 일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오토가 사용한 무기는 난투 때 앨리스터의 몸에서 뽑아낸 쇠갈고리 송곳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름과는 달리 마지막으로 싸운 적도 진짜가 아니었다고 평하는 오토의 대사가 걸작.[* 어색하지 않은 것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자칭한 자가 스파이더맨이라 해도 알맹이는 타인인 자에게 끝났으니..]
- 시치고산 . . . . 2회 일치
과거부터 일본에서는 15일이 길일로 여겨졌다. 시치고산과 유사한 풍속은 일본 역사에서 있었으나.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된 것은 근대의 일이라고 한다.
시치고산의 기원은 1681년 11월 15일에 [[에도 막부]] 5 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 아들 도쿠마츠(徳松 )의3 살 축하를 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속설이 있으나, 이는 확실한 것은 아니다.
- 식극의 소마/154화 . . . . 2회 일치
그저 정찰만 하려던 소마 일행은 쿠스노키 렌타로와 시비가 붙는다.
* 소마와 타쿠미는 "우리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정하지 마라"며 반발한다
- 식극의 소마/155화 . . . . 2회 일치
* 쿠스노키는 쿠로키바와 비슷한 속도로 능숙하게 연어를 다듬는다
* 식극장에 아리스가 과거 쓴 적이 있던 동결분쇄기와 스팀 컨벤션 오븐이 등장한다
- 식극의 소마/159화 . . . . 2회 일치
* 쿠로키바는 시금치와 시즈닝 스파이시를 썼다.
* 시즈닝 스파이시는 일종의 향신료 배합법으로 쿠로키바도 쿠스노키처럼 건조 베이컨 파우더를 향신료와 배합했다
- 식극의 소마/160화 . . . . 2회 일치
* 잇시키 사토시와 나키리 에리나는 식극 현장으로 가고 있는데, 잇시키는 아리스가 주장인 최첨단요리 연구부가 식극을 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 아리스와 에리나는 서로 츤데레 관계다.
- 식극의 소마/161화 . . . . 2회 일치
* 수업이 끝나고 에이시는 소마의 실력을 칭찬하는데, 소마는 무심결에 센트럴을 도와버렸다면서 당황한다
* 에이시는 그런 소마를 "쓸모 있는 남자"라 말하며 자신의 심복이 되라고 권유한다. 즉 "센트럴에 들어와라"라고 권하는 것.
- 식극의 소마/165화 . . . . 2회 일치
* 밤의 맛과 숯불향이 사슴고기와 어우러져 절묘한 맛이 난다.
* 사슴 등뼈로 만든 소스와 그걸 베이스로 과실을 더해서 상큼한 맛을 낸 소스.
- 식극의 소마/170화 . . . . 2회 일치
* 그와 처음 만나 요리를 대접 받은 에리나는 "이런 맛있는 요리가 될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냐"고 묻는데, 죠이치로는 그런건 모른다고 답한다.
* 에리나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을 때 내놓은 답변이 지금의 소마와 같은 대답.
- 식극의 소마/180화 . . . . 2회 일치
* 에리나는 이번 회에는 배신자 군단과 분리, 린도가 타쿠미와 타도코로도 시험을 설명한다는 명목으로 데리고 간다.
* 타도코고로와 알디니도 린도가 따로 설명해준다며 끌고 가버리고 소마는 혼자 남는다.
- 식극의 소마/223화 . . . . 2회 일치
* 제 1카드 [[쿠가 테루노리]]와 [[츠카사 에이시]]의 대결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황. 쿠가는 조리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데도 주재료인 "녹차"를 쓴 흔적이 없다.
* 소마는 찻잎을 다루는 츠카사의 자세를 보고 감탄한다. 그는 무려 네 종류에 달하는 찻잎을 한 꺼번에 다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루이 젠지]]가 지금껏 완전히 잘못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녹차라는 소재는 당연히 요리의 선택지가 제한될 거라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오산이었다. "녹차"라는 카테고리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그걸 살리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녹차는 본래 채취한 찻잎을 그대로 쪄서 발효를 막는 "비발효 차"류를 통칭하는 말. 대표적인 엽차나 옥로, 호지차 등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그걸 요리로 옮기면서 떫은 맛이나 쓴 맛에 악센트를 주는 식으로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 식극의 소마/235화 . . . . 2회 일치
* 그렇게 해서 심사에 오른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는 대호평. 이스트와르는 "역사에 남을 맛"이란 전에 없는 극찬을 남겼고 안은 "이렇게까지 아티초크를 들이부운 요리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마음에 들어한다. [[유키히라 소마]]도 안의 배려로 맛을 보는데 크림소스의 감칠맛이 아티초크의 쓴맛과 어울려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로스트비프의 농후한 맛을 잘 감싸고 있다. 육즙이 아주 묵직한 인상을 주면서도 한도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이 질리지 않는 맛. 고기요리임에도 채소 특유의 쓴맛과 감칠맛이 돋보이는 요리다. 안은 이것도 에이잔의 실력이며 아티초크를 넣음으로써 요리에 쓸데없는 단맛을 없앤 덕이라고 설명한다.
* 아자미가 갓 신임 총수가 됐을 무렵이었다. 에이잔은 어느 백화점에 입점한 케이크 가게를 프로듀스했다. 본래 경쟁에서 패할 위기에 처해있던 가게는 그와 손을 잡자마자 매출이 수직상승, 위기를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경쟁업체를 말려죽이고 있었다. 이때도 에이잔은 시음용 주스에 경쟁업체 주력상품의 맛을 지우는 성분을 대량으로 함유시켰다. 그렇게 상대방을 몰락시킨 뒤에는 다시 그쪽에 접촉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한다는 빌미로 자신의 고객으로 삼았다. 아자미는 이런 면모를 만족해 그를 포섭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 식극의 소마/236화 . . . . 2회 일치
* 쇠고기 시구레니가 메인인 [[타쿠미 알디니]]의 피자. 그런데 그건 반만 맞는 표현이었다. 피자의 절반은 시구레니가 듬뿍 올라가 있지만 나머지 반쪽은 치즈 온리. 즉 치즈와 쇠고기 시구레니 하프 앤 하프 피자였다. [[에이잔 에츠야]]도 이런 부분은 의외였던 모양이지만 심드렁하다. 과연 이것만으로 타쿠미가 공언한 대로 시나린 성분과 상관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걸까?
* 심사위원들은 상대의 함정을 역이용한 타쿠미의 수완을 격찬하며 "탈출불가의 일루전"이란 표현으로 에이잔과 동급 이상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승부를 이걸로 끝내기엔 부족하다.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도 극상의 맛이긴 마찬가지. 이스트와르는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거기서 타쿠미의 다음 비장의 수, "제 3의 요리"가 공개된다. 사실 [[유키히라 소마]]는 그의 피자를 봤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것 같다. [[타도고로 메구미]]에게 타쿠미의 피자가 "반달 두 개를 겹쳐놓은 듯한 모습"이라 하는데. "메짜루나"(반달). 타쿠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요리, "도피오 메짜루나 피자"(두 개의 달이 빛나는 피자"를 소개하며 진정한 맛을 보라고 하는데.
- 신귀식 . . . . 2회 일치
* [[1995년]] [[KBS 1TV|KBS1]] 《[[찬란한 여명]]》 ... [[후쿠자와 유키치]]
* [[1998년]] [[KBS 1TV|KBS1]] 《[[너와 나의 노래]]》
- 신년선물연하장엽서 . . . . 2회 일치
연하장 엽서와 [[복권]]을 결합한 것과 비슷하다. 엽서에 일련번호가 붙어 있어, 당첨이 발표되면 일련번호에 맞는 엽서를 소지한 사람이 소정의 상품을 받을 수 있다.
1949년 교토에 거주하는 민간인 하야시 쇼지(林正治, 당시 42세)가 "연하장이 전쟁 전처럼 부활한다면 좋겠다. 상품추첨을 더하면 연하장을 활발하게 보내서 서로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좌절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도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연하장에 상품추첨을 더하고, 요금에는 기부금을 추가하여 사회복지에 공헌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하야시 쇼지는 스스로 견본 엽서와 선전용 포스터를 만들어서, 우정성(郵政省)에 가지고 갔으며, 우정성 내에서 회의를 거쳐 채용이 결정되었다. 우정성에서 발매한 이 연하장 엽서는 매우 크게 히트하여 수십년동안 이어지는 전통 상품이 되었다.
- 신동호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 《와 e 멋진세상》
* 《[[MBC 뉴스와이드]]》(1993년 10월 18일 ~ 1994년 4월 8일)
- 신성왕후 . . . . 2회 일치
신성왕태후 김씨의 소생으로는 안종(安宗)으로 추존된 [[고려 안종|왕욱]](王郁)이 있는데, 그는 제5대 국왕 [[고려 경종|경종]]의 제4왕후 [[헌정왕후]] 황보씨와 정을 통해 제8대 국왕 [[고려 현종|현종]]을 낳았다.<ref>《고려사절요》</ref> [[1008년]] 현종(顯宗)이 즉위하고 [[1010년]] 왕후로 추존하여 시호를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라 하고 능호는 정릉(貞陵)이라고 하였다. 원당은 [[경기도]] [[장풍군]]에 있는 현화사이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1400&content_id=rp070314000001&print=Y 문화콘텐츠닷컴 〈현화사〉]</ref>.
{{고려의 왕후와 왕비}}
- 신혜성 . . . . 2회 일치
돌아와줘|
02. 돌아와줘<br />
- 심판 . . . . 2회 일치
[[스포츠]]에서 경기의 과정을 진행하는 사람. 득점과 실점을 판정하고, 선수들의 [[반칙]] 여부와 그에 대한 제재를 판단한다. 뭐 아무튼 중요하다.
직접 경기를 뛰는 것은 아니지만, 경기 내내 선수와 함께 하면서 플레이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므로 상당한 고충을 겪는다. [[축구]] 같은 경우는 경기시간 내내 내내 공을 쫓아다니며 뛰어야 하고, [[야구]] 같은 경우에는 공이나 방망이에 타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 아게만 . . . . 2회 일치
1990년에 개봉한 동명의 일본 영화가 존재한다. 여주인공인 게이샤 '나요코'를 중심으로 그녀와 관계한 남성들의 출세와 몰락을 그린 내용.
- 아기발도 . . . . 2회 일치
황산에서 [[이성계]]의 군대와 대치하여 싸우던 중에(황산대첩) 이성계와 이지란의 활에 의해 사살당한다.
- 아데랑스 . . . . 2회 일치
2017년 2월 10일, 가발 업계의 경쟁 심화와 수익 악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영진에 의한 인수를 통하여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하고, 비상장화와 사업기반 강화를 하게 되었다.[[http://www.nikkei.com/article/DGXLASFL09HEH_Z00C17A2000000/ (참조)]]
- 아웃 오브 안중 . . . . 2회 일치
기원을 따져보면 원래는 1980년대 일본에서 쓰던 대학생들의 속어에서 비롯된다. 논할 가치가 없다는 ろんがい(=논외)를 보다 강조해서 말하기 위해 영어와 섞어 쓴 게 그 시초다. 하지만 워낙에 일부에서만 사용하던 용어였기 때문에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사어가 되었는데... 이걸 [[시게노 슈이치]]가 연재했던 [[만화]] [[이니셜 D]]의 애니메이션 판에서 등장인물인 [[이와키 세이지]]가 쓰면서 재조명 된다.
- 아이유 . . . . 2회 일치
! scope="row" |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 style="text-align:center;"| <ref>{{뉴스 인용|url=http://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16886599435440&mediaCodeNo=258|script-title=ko:문화 연예 스포츠 이슈기획 오피니언 포토 스냅타임 검색 아이유, SBS '도롱뇽 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카메오 출연|trans-title=IU has a cameo appearance at SBS' Salamander Guru and The Shadows|work=E-Today|date=February 29, 2012|first=Seo Yoon|last=Jang|accessdate=October 25, 2019|language=ko}}</ref>
- 아카짱가에리 . . . . 2회 일치
* 자신의 신변 정리나, 인사를 소홀하게 하거나, 어머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기와 경쟁하여 젖을 마시고 싶어한다.
- 아토믹 스컬 . . . . 2회 일치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도 등장. 지하격투장에서 등장했는데 [[와일드캣]]과 싸웠다가 패했다. 이후 [[고릴라 그로드]]의 대규모 빌런 집단에도 합류해 재등장. 후반부에 [[다크사이드]]의 군대가 지구를 침공하자 히어로와 빌런들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아포콜립스의 전력에 대항했다.
- 악당 . . . . 2회 일치
[[http://rigvedawiki.net/w/%EC%95%85%EB%8B%B9/%EC%BA%90%EB%A6%AD%ED%84%B0|리그베다위키]]와 [[https://namu.wiki/w/%EC%95%85%EB%8B%B9/%EC%BA%90%EB%A6%AD%ED%84%B0|나무위키]]의 분류를 참고. 여기서는 예시보다는 각 유형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괴물이나 이종족의 경우 판타지, 외계인인 경우 SF인 경우가 많다. 물론 괴물/외계인을 사용한 다른 장르도 많다. ~~특히 로맨스와 19금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카더라.~~ 해당 유형이 별도의 언어나 문화적 체계를 지니고 있을 경우 비중이 커진다.
- 악평등 . . . . 2회 일치
* 2016시즌부터 적용된 [[K리그 다득점 우선순위 적용]]은 연맹의 의도와는 달리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사례로 기록될 전망으로 보인다. 공평하게 적용되었지만 찬성한 쪽이 지금 손해를 보고 있는 이상한 상황. 게다가 세계추세와도 별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았다.
- 안동준 . . . . 2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민주공화당 [[김원태]]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이충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오용운]] 후보와 신민당 이충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안석환 . . . . 2회 일치
* 2012년 [[SBS]] 금요시트콤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2회 ... 팔성파 보스 역(특별출연)
* 2016년 [[SBS]] 드라마 스페셜 《[[돌아와요 아저씨]]》 ... 차회장 역
- 안숙선 . . . . 2회 일치
이 외에도 친이모 강순영 명인에게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와 약간의 가야금 병창을 배웠고, 함동정월(최옥삼류), 원옥화(강태홍류), 김죽파(김죽파류)에게 가야금 산조를 사사했으며, 20대에 상경한 이후에는 향사 [[박귀희]](박귀희류 가야금병창)에게 가야금 병창을 사사하여, [[판소리]], [[가야금 병창]], [[가야금 산조]]에서 모두 일가를 이룬 명인이 되었다.
현재까지 안숙선의 주요 공연 이력은 판소리에 더 가깝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 이후 음악적 능력은 물론,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작품에 주역으로 섰으며, 특히 춘향역은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영원한 춘향'이라는 수식어를 받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창극 수궁가에서의 토끼 역 또한 작은 체구를 십분 활용한 익살스러운 연기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또 86년, 적벽가 완창으로 다섯 바탕 소리를 완창함으로써 전통 판소리의 연창과 전승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타 장르의 협업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재즈 뮤지션들과 자주 협연을 펼쳤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와 독일의 재즈그룹 [[레드 선]](Red Sun)과 함께해 [[1995년]] 발표한 〈토끼 이야기〉는 한국 퓨전음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 안지만 . . . . 2회 일치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5순위(전체 4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5년]]에 [[오승환]]과 함께 불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며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권혁]], [[정현욱]]과 함께 불펜의 '안정권' 트리오라는 별칭이 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200005 오치아이 코치가 바라보는 안정권 트리오] - OSEN</ref>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4홀드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8월 17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우완 [[투수]]로써 최초의 100홀드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77859 삼성 안지만, 우완 투수 최초 100홀드 대기록] - 스포츠조선</ref> 그리고 [[2014년]] 프로 데뷔 12년 만에 FA 자격을 획득하여 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원으로 총액 4년 65억에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재계약하였다. 그 뒤 [[2015년]] [[6월 5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 개인 통산 150홀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해외원정 불법도박 혐의로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년 한국시리즈]]에 승선하지 못했고 [[2015년 WBSC 프리미어 12|2015년 프리미어 12]]에도 탈락하였다. [[2016년]] [[7월 20일]]에 검찰로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자금 투자와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다음날 계약 해지를 발표함에 따라서 유니폼을 완전히 벗게 되었고, 구단에서 퇴출되었다. 퇴출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중화 타이베이]]([[중화민국]])와의 결승전에서 1점차로 뒤진 7회말 [[양현종]]으로부터 무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삼진 1개를 잡아낸 후 뒤따른 두 타자를 모두 외야 플라이로 처리하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냈고, 8회에도 등판하여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이때 위기 상황에서 등판할 시 자주 나오는 기합소리가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고, 이 경기를 통해 팬들로부터 '안순신'이라는 별명을 받았으며, 결승전 MVP로 선정되었다.
- 알 카에다 . . . . 2회 일치
알 카에다는 [[시아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 않으며, 수뇌부는 시아파 역시 같은 무슬림이므로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지시하고 있다. 이는 알 카에다가 [[이슬람 국가]]와 결별하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인데, 2003년에 이라크 알 카에다(AQI)[* 후일 이슬람 국가의 모태가 된다.]의 수괴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2006년 사망]가 시아파를 노리고 [[자살폭탄 테러]]를 저질렀을 때, 빈 라덴은 '불량한 두목'이라고 부르며 자르카위를 비판한 사례가 있으며 결국 알 카에다와 이슬람 국가가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04/0200000000AKR20160704184600111.HTML (참조)]]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2회 일치
* 평소에 지출이 헤퍼서 부업이라도 하나 했지만, 평범하게 경마와 복권에 중독된 아저씨였다. 게다가 가난하고 운도 없어서 고작 300엔짜리 마권에 전전긍긍하는 수준. 복권은 정작 자기 손으로는 긁을 수가 없어서 제대로 까볼 수도 없다.
* 이후 시카는 식당에 와서 동료들에게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 . . . . 2회 일치
* 야규 토시요시 효우고노스케(柳生利厳兵庫助) : 오와리 야규가를 열었다.
* 딸 : [[야규 슈메]]와 혼인한다.
- 야리만 . . . . 2회 일치
한국 속어에서 비슷한걸 찾자면 '걸레'와 비슷한 등급의 단어이다.
비슷한 말로 사세코(サセ子,サセコ,させ子)가 있다. 이쪽은 「부탁하면 해주는 여자애(頼めば○○○させてくれる女の子)」나 「누구와도 해주는 여자애(誰でも○○○させてくれる女の子)」의 줄임말.
- 야마우바 . . . . 2회 일치
노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흔히 키가 크고, 피부는 투명한 백색이며 눈빛이 날카롭고 귀까지 찟어진 입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잡아 먹거나 만난 사람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다고 하는데, 복을 주는 온화한 산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야만바'는 [[갸루]] 패션의 일종의 이름으로도 쓰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무렵에 유행했으며, 새까맣게 태운 피부에 하얀 아이새도우와 아이라인을 그리고, 머리를 탈색하여 마치 야마우바처럼 보인다고 하여 야만바라고 했다. 보다 발전하여 메이크업이라기보다는 페이스페인팅 수준이 된 것을 '맘바(マンバ)'라고 불렀다.
- 야설록 . . . . 2회 일치
* 前 [[와이디온라인]] 상임 고문
== 각주와 인용 ==
- 양키 . . . . 2회 일치
영어 Yankee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매사추세츠]]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영어 English나 프랑스어 Anglais에서 와전된 말로 영국계 식민지 사람들을 부르던 것이 퍼졌던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북부 미국인을 뜻하는 양키(Yankee)와의 관계는 애매하지만, 당시 미국인=화려하다 는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1983년 7월 21일 발매된 카몬 타츠오(嘉門達夫)의 양키 오빠의 노래(ヤンキーの兄ちゃんのうた)는 ‘나쁜 남자’를 뜻하고 있었다. 이 노래를 전후하여 전국에 양키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퍼지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2회 일치
사냥감은 플레이어가 접근하면 도망가는 종류와 달려드는 종류로 두 가지가 있다. 달려드는 종류는 [[QTE]]로 반격을 먹일 수 있다.
무역을 할 경우 일정 확률로 수송대가 공격 당한다. 육상 무역이면 지도에서 수송대의 위치를 확인, 달려가서 구해줄 수 있지만 해상 무역이면 구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습격당한 수송대를 구하지 못하면 해당 수송대와 무역품이 증발한다.
- 엉클 샘 . . . . 2회 일치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포스터에서 보는 이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백발에 흰 수염이 있고,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와 같은 컬러링의 의복을 입은 노인을 봤다면 그 캐릭터가 엉클 샘이다.
기원은 미극 민담에 등장하는 브라더 조너선(Brother Jonathan)과 양키 두들을 합친 것이라 한다. 뉴욕의 샘(새뮤얼) 그라고 윌슨이라는 고기납품업자가 [[쇠고기]] [[통조림]]에 United States 라는 뜻으로 U.S. 라는 도장을 찍기 시작했던 것을 납품고기를 검사하던 부대 감독관이 U.S → Uncle Sam으로 알아서 엉클 샘이라는 캐릭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반대로 납품업자가 자기 별명인 엉클 샘의 이니셜인 U.S.를 찍어 보낸 것을 감독관이 United States인 줄 알았다는 설도 있다.[* 이 엉클 샘에 대한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도 실린 이야기다.]
- 에릭 (가수) . . . . 2회 일치
에릭(Eric Moon, 문정혁)은 대구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1979년 2월 16일에 태어났다. 그는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바로 몇 개월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서를 졸업했다. 그는 미국에서 캐스팅되어 한국으로 귀국해 [[SM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는 연습생이었을 때 [[앤디 (가수)|앤디]]와 같이 [[S.E.S.]] 1집 수록곡인 'I'm your girl' 랩 피쳐링을 하였으며, [[S.E.S.]]와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에릭은 [[1998년]]에 [[신화 (음악 그룹)|신화]]에서 영어 랩을 담당하는 이국적인 외모 이미지로 데뷔를 하였다.
-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 . . . 2회 일치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일체화 되어 있는 중고일관교(中高一貫校)가 흔히 있는 형태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도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다닐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학비와 기타 비용(기부금 등)을 필요로 한다. 매우 고액이다. 한 번 들어가면 진학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 연정훈 . . . . 2회 일치
* 2013년 [[MBC]] 《[[금 나와라, 뚝딱!]]》 ... 박현수 역
| rowspan=2 | [[금 나와라, 뚝딱!]]
- 영국 요리 . . . . 2회 일치
제국주의 시대, 대영제국의 식민지는 [[인도]], [[홍콩]]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통하여 중국 요리와 인도 요리의 비법이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영국인들은 요리에서는 전 세계 어떤 문화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어, 집요하게 인도 요리와 중국 요리의 장점을 영국 요리에 받아들여 영국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켰다. 현재 [[만한전석]]은 영국에만 남아 있다.
- 영생 . . . . 2회 일치
영원한 삶이라는 뜻. 그 자체로는 [[불로불사]]와 같은 뜻이지만, 이 말은 주로 [[기독교]]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교리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단어에서 이름을 따온 [[사이비 종교]]로서 [[영생교]]가 있다. 그러나, 교주가 사망(…)하면서 거의 와해되고 말았다.
- 오보카타 하루코 . . . . 2회 일치
2008년 까지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2011년 이화학연구소에 들어와 객원 연구원을 거쳐 연구 리더가 되었다. 2014년 1월 STAP 세포 연구를 발표.
2014년 발표한 STAP 세포 논문은 조작이 드러나, 와세다 대학에서 학위 취소 처분을 받았으며, STAP 세포 재현을 위한 검증 실험에서도 실패. 2014년 12월 이화학연구소에서 퇴직한다.
- 오소영 (조각가) . . . . 2회 일치
1982년 조각가 첫 등단을 하였다. 1985년 영화배우 [[안성기]]와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2남을 두었다.
- 오오반후루마이 . . . . 2회 일치
* 위에서 따와서, 금품 같은 것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잘 쓰는 것. [[통큰]] 행동을 뜻한다.
원래는 밥과 전복, 매실장아찌, 해파리, 식초와 소금을 차린 밥상인 '오반'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국시대 시기까지는 정월에 아랫사람이 이 '오반'을 윗사람에게 헌상하는 것이 의례였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부하들을 대접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오재희 . . . . 2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주미·주일 공사, 주 파키스탄 대사,<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070009920101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3-11-07&officeId=00009&pageNo=1&printNo=5439&publishType=00020 | 제목 = 韓國, 파키스탄과 修交 | 날짜 = 1983-11-07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 인용문 = 政府는 7일 파키스탄 정부와 공식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외무부가 발표했다. 外務部는 이날 발표에서 韓․파키스탄 국교수립으로 양국 주재 총영사관이 각각 대사관으로 승격되고 양국 주재 대사 임명에 앞선 잠정조치로서 吳在熙 駐파키스탄총영사와 자베드․마수드 駐韓파키스탄 총영사가 각각 대사대리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ref>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차관|외무부 차관]], 주일 대사를 역임하였다.
- 오카마 . . . . 2회 일치
* 에도시대에 남창을 의미하는 「카게마(陰間, かげま)」와 연관이 있다는 설.
* 가부키(歌舞伎)의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 배우 「오야마(女形,おやま)」와 연관이 있다는 설.
- 옥중결혼 . . . . 2회 일치
감옥 내에서 결혼을 하는 행위. 감옥 내에서 수감자들 간에 하는 경우와, 감옥 밖의 이성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
=== 수감자와 일반인의 결혼 ===
- 온주완 . . . . 2회 일치
* 2014년 잉여공주로 만난 배우 [[조보아]]와 열애 중이었으나, 2017년을 기점으로 결별했다.
* 2017년 3월 19일 ~ 3월 26일에 방송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쓴 맛을 보여주마 한약도령]]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1라운드 상대인 [[완치요정 닥터피쉬]]에게 승리했으며 2라운드 상대인 [[2017 미스코리아 진~달래]]에게 밀렸다. 연기와 노래를 같이 하면 부담이 덜 되는데 노래만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으며 원래 꿈은 무용수였으나 춤도 추고 노래도 할 수 있고 연기도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 배우로 전향했다고 밝혔다.
- 옴 진리교 . . . . 2회 일치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츠모토 치즈오)를 [[교조]]로 하는 [[컬트 종교]] 집단. [[불교]]와 [[요가]]에 바탕을 둔 신흥 종교 단체로서 1984년에 활동을 시작하였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수의 신도를 모았으며, 점차 급진, 과격한 교리에 몰두하게 되어 다양한 범죄 활동을 일으켰다. 1995년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로 일으킨 [[지하철 사린 사건]]을 계기로 하여 교주 아사하라가 체포되었으며, 2000년에 [[파산]]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 잔당은 [[아레프]]와 [[빛의 고리]]라는 단체로 분열하여 여전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와일드캣 . . . . 2회 일치
[[권투]] 선수 출신으로 뛰어난 격투가. 특별한 [[초능력]]은 없다. 전신 검은 타이츠와 [[고양이]] 모양의 큐트한(…) 후드를 쓰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블랙 카나리]](2대)를 훈련시키기도 했다.
드라마 [[스몰빌]]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관련 에피소드에서도 짧게 등장. 이후 드라마 [[애로우]]에도 등장하는데 거의 카메오 수준인 [[스몰빌(드라마)|스몰빌]]과 달리 확실하게 등장한다. 다만 코스튬은 코믹스와 차이가 많다. 큐트한 고양이 가면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가리는 일반적인 검은 마스크를 쓰게 됐다. 주인공 올리버가 '애로우'로 활동하기 전부터 도시의 빈민가에서 활약하며 악당과 싸우던 가면의 영웅이었으나, 애로우가 등장하기 전에 은퇴한 몸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사이드킥'이었던 자가 악당이 되면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는 줄거리로 등장한다.
- 왓치맨 . . . . 2회 일치
WATCHMEN. 미국의 만화회사 DC 코믹스가 출판한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와 [[FROM HELL]]의 작가인 [[앨런 무어]]가 쓰고 [[할렘 히어로즈]], [[댄 데어]]의 작가인 [[데이브 기본즈]]가 그렸다.
1985년 10월 12일, 에드워드 블레이크라는 남자가 고층 아파트에서 내던져져 사망한다. 그는 "코미디언"이라는 히어로로 활동해오던 사람이었다. 히어로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을 죽인 자를 찾기위해 과거에 활동하던 히어로와 빌런을 찾아다닌다.
- 요괴:가면라이더 . . . . 2회 일치
가면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현대적인 요괴이다. 그 얼굴은 [[메뚜기]]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와 비슷하다는 목격담도 있다.
- 요괴:닭둘기 . . . . 2회 일치
[[비둘기]]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매우 살이 쪘다. 날개가 있지만 걸어다니지 않는다. 사람처럼 걸어서 다니고, 요사하게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신호등을 지키는 등. 사람의 행동을 흉내낸다.
[[공원]] 같은 곳에서 자주 나타나며, 새이면서 걸어다니는 요사한 행동을 벌여서 사람들을 놀래킨다. 달려들거나 돌을 던지면 잠깐 나는 듯 하다가 어느새 다시 내려와 주위를 배회한다. 과자를 뿌려서 소환할 수 있으며, 가끔 닭둘기를 소환하여 사역하는 음양사들이 공원에 출몰한다.
- 요괴:에어컨 . . . . 2회 일치
현대 요괴의 일종. [[요괴:선풍기|선풍기]]와 비슷한 종류이다.
하지만 이는 에어컨의 계략으로서, 한냥 두냥~ 여름이 지나고 나면 여름에 시원하게 지내도록 도와준 댓가로 막대한 금전을 빼앗아 간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피눈물을 흘리며 원망하게 된다.
- 우찬양 . . . . 2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으로 차세대 풀백 자원으로 주목받는 선수다. 곧바로 리그 데뷔전을 치른 2016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같은 팀의 [[이승모]]와 같이 2017 U-2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정도로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는 이미 검증을 마친 기대주다. [[신태용호]]에서는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출전하는 편이었다가 U-20 월드컵에서는 센터백은 [[정태욱]], 이상민 주전에 [[이정문(축구선수)|이정문]] 백업으로 굳어지고 풀백 두 자리를 놓고 [[이유현]], [[윤종규]], 우찬양 세 선수가 경합하는 판도가 되었다.
* 고등학교 1학년때 수비수로 전향한 케이스로, 초등학교와 중학교때는 공격수 포지션을 소화했었다.
- 우천석 . . . . 2회 일치
[[1268년]](원종 9)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로서 낭장(郞將) 박신보(朴臣甫)와 함께 원의 사신인 왕국창(王國昌)·유걸(劉傑) 등을 따라 흑산도(黑山島)의 바닷길을 살폈는데, 이는 남송(南宋)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원의 조처였다.
묘역은 후일 아들 우팽의 묘소와 함께 [[충청북도]] 기념물 제 110호로 지정되었다.
- 우츠미 사토루 . . . . 2회 일치
* 난치병, 교원병, 알레르기, 아토피 등에 대해서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 등의 치료 중지를 요구한다.
* '''항우울제와 마약, 각성제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유해하다.
- 웃음 주머니 . . . . 2회 일치
와라이 후쿠로
[[일본]]에서는 쇼와 45년(1970년) 무렵에 대유행 했다고 한다. 단순한 장난감이지만 왠지 유행해서 1년 정도 일본 각지에서 널리 팔렸으나, 단순한 장난감이었기 때문에 곧 유행은 사라졌다고 한다.「아오키 상회(青木商会)」라는 완구 제조업체에서 만든 것으로, 현재에는 법인명을 「아이코(アイコ)」로 변경하였으나 이후에도 발매했다고 한다.
- 원피스/822화 . . . . 2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조우에 남고자 한다. "즈니샤의 의지"와 다시 한 번 대화해보고 싶다는데.
* 네코마무시는 마르코를 찾으러 가고 조로, 로우, 킨에몬은 와노쿠니로 향한다.
- 원피스/829화 . . . . 2회 일치
* 쵸파와 캐롯은 다음엔 어떤 섬이 나올까 기대하지만 상륙하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한다.
* 징베가 어인섬의 포네그리프를 진상한 걸로 나오는데 빅맘은 "읽지는 못했다"면서도 고맙다고 만족해하는걸 보면 그 가치와 본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 원피스/860화 . . . . 2회 일치
* 징베는 [[몽키 D. 루피]]와 동료들은 [[상디]를 구하러 갈거라고 판단하고 구하려 했다.
그렇다 해도 징베는 빅맘의 산하를 떠나는 것 자체는 "인의"로서 대가를 지불하려고 했다. 그러나 빅맘이 요구한 대가는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포기했다. "룰렛"에 적혔던 것은 "징베와 함께 산제물이 될 동료의 수"였다. 징베는 자신에게 가해질 제재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지만 무관한 동료들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데서 말도 안 되는 불합리라고 느꼈다.
- 원피스/880화 . . . . 2회 일치
* [[샬롯 브륄레]]는 써니호와 연결된 또다른 거울을 발견하고 습격하려 한다. [[몽키 D. 루피]]가 그 거울을 깨뜨리려 하지만 [[샬롯 카타쿠리]]의 방해로 실패. 루피는 깨뜨렸던 거울의 파편을 발견하고 그걸로 [[나미(원피스)|나미]]에게 "써니호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을 부숴라"는 지시를 내린다. 루피는 이제 곧 적들이 다시 몰려가기 시작할 거라 경고하고 그렇게 되면 혼자서는 막을 수 없으니 적의 침입을 막고 자신이 카타쿠리와 결전에 집중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 원피스/882화 . . . . 2회 일치
* 브륄레는 사실 루피가 [[나미(원피스)|나미]]와 하는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 곧바로 오빠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밀집모자 일당이 살아있다는 것과 카카오섬으로 향할 거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페로스페로는 아직도 빅맘 [[샬롯 링링]]과 함께 바다를 건너는 중. 써니호가 파도에 삼켜지는 걸 봤기 때문에 브륄레의 정보를 반신반의하나 어차피 [[샬롯 푸딩]]이 카카오섬에서 웨딩케이크를 굽고 있는걸 알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빅맘은 페로스페로의 뜻과 달리 근처에 있는 "너츠섬"으로 향하려고 해서 곤란해진다.
* 카타쿠리와 루피의 결투는 미러월드를 거의 박살내면서 전개된다. 카타쿠리가 시종 공세를 취하고 있으나 루피는 요로조리 피한다. 루피도 피하기 어렵다고 투덜대는데 카타쿠리도 이만큼 공격이 빗나간 적은 없다며 "스트레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는 "흐르는 떡"이란 기술로 지면 그 자체를 떡으로 변환한다. 즉 그도 각성 능력자였던 것. 루피는 흐르는 떡에 휘감기는 순간 기어4로 탈출하려 한다. 카타쿠리는 기어4에도 흥미를 보인다.
- 원피스/885화 . . . . 2회 일치
* 루피는 브륄레를 납치한 채로 달아나는데 페로스페로와 너츠 대신 [[샬롯 아망드]]가 동생을 구하러 온다. 하지만 이들의 공격은 손발이 맞지 않아서 루피를 막지 못한다. 루피는 일단 아무 거울에나 뛰어들려고 무작정 뛴다. 한편으론 빅맘이 저러고 있는걸 보면 써니호는 무사히 도망친 걸로 봐도 되겠다고 여긴다.
* 써니호는 토트랜드 해상에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바다 위는 특별한 이상도 위협도 없지만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결국 관건은 [[상디]] 일행이 만드는 케이크. 그게 없으면 모든게 허사다. 그 우려대로 빅맘해적단의 선단이 총출동해 다시금 추격을 시작했다. 밀집모자 일당과 파이어탱크 해적단, 태양해적단이 그 목표다.
- 원피스/886화 . . . . 2회 일치
* [[상디]]와 [[샬롯 시폰]], [[샬롯 푸딩]]은 완성된 재료들을 배로 옮기려 하는데 [[샬롯 오븐]]이 훼방한다. 푸딩은 가도 좋지만 시폰은 배신자이니 처단해야 한다는 것. 상디는 숨어있는 상태라 구해주지 못한다. 시폰은 오픈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나미(원피스)|나미]] 일행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 텅 빈 바다를 가로질러 써니호도 어느새 카카오섬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작전 돌입으로 분주한데 문득 [[캐럿(원피스)|캐럿]]이 [[쵸파]]에게 뜬금없는 걸 묻는다. 오늘 밤 만월이 되지 않느냐고. 한편 빅맘 [[샬롯 링링]]에게서 도망친 [[몽키 D. 루피]]는 어느 민가에 숨어있다. 붙잡혀있는 [[샬롯 브륄레]]는 도망치고 싶으면 카카오섬으로 가면 될거 아니냐고 묻는데 루피는 다시 한 번 [[샬롯 카타쿠리]]와 승부를 낼 작정이다. 그의 견문색 패기도 패기인 이상 장기전으로 가면 소모될 거란 것. 하지만 루피 자신이 생각해도 그것만으론 충분한 전략이 못된다. 그는 [[실버즈 레일리]]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패기는 실전의 극한 상황에서 더욱 개화하며 더 강한 적과 싸울 수록 루피도 강해질 거란 것. 루피는 자신에게도 "가까운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중얼거리는데 브륄레는 허세부리지 말라고 일침한다. 루피는 그 말을 듣고 "전력을 내는 카타쿠리에게 이기고 싶다"고 승부욕을 드러낸다.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2회 일치
* 공격능력: 고폭소이탄(소련, NATO) - 일정 시간동안 고폭소이탄을 사용한다. 기관포탄에 폭발 효과와 화염 효과가 추가된다.
* 공격능력: 사이드와인더 미사일(미국)/빔펠 R-73 미사일(소련)/미스트랄 미사일(NATO) - 적 헬리콥터에게 강력한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한다. 플레어로 피할 수 있다.
- 유곽 . . . . 2회 일치
전근대시기에 있었던 매춘업소의 형태. 유곽의 곽(郭)은 성곽이라는 의미로서, 그 말에서 보여주듯이 외부와는 벽이나 도랑으로 차단하여 자유로운 출입을 막고, ㅊ출입구를 한 곳으로 하여 철저하게 관리되는 형태로 만들어진 매춘업소이다.
*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에도 부근에 있었던 요시와라가 유명하다.
-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 . . . 2회 일치
* 도쿄 디즈니랜드와는 달리 오사카의 이름을 쓰지 않지만, 사실 치바에 있는 도쿄 디즈니랜드와는 달리
- 윤덕홍 . . . . 2회 일치
서울교육감 민주진보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던 '서울 좋은 교육감 시민추진위'는 "시민경선에 참가하시길 권유했음에도 참가하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단일화 경선을 요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에 맞는 진보적 행동인가?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을 뽑는 선거인데, 이렇게 규칙을 어기고서라도 자신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행동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였다.<ref>[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4285 "윤덕홍 탈당 시점은?"] 참세상 2014년 5월 9일</ref>
대개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표하는데, 《한국인텔리서치》는 "담당자가 없다. 현재 홈페이지 개발 중"이라며 설문조사 문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ref>[http://www.redian.org/archive/70041 "윤덕홍 전 부총리, 교육감 출마와 동시에 지지율 1위?"] 레디앙 2014년 4월 28일</ref>
- 윤주희(배우) . . . . 2회 일치
||<#FF91AF> {{{#ffffff '''소속'''}}} ||<(> [[http://curoent.com/index.php|큐로홀딩스 매니지먼트 사업부]][* PI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2016년 7월 PI와 열음엔터테인먼트의 합병이 이루어짐,(열음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큐로홀딩스에 인수된 기획사) 합병이후 열음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서 PI출신배우들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어느순간 큐로홀딩스 매니지먼트사업부의 홈페이지가 따로 개설되었음. 내부사정을 알 수 없지만 아마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듯.] ||
|| 2005년 || [[엠넷|M-net]] || 와이드 연예뉴스 || || 고정패널 ||
- 은혼/579화 . . . . 2회 일치
* 가구라 엄마의 이름은 "[[코우카]]". [[카무이]]와 [[가구라]]를 반씩 닮았다.
* 우미보즈는 코우카를 만나러 황안에 드나들게 되고 오로치와도 친해지게 된다.
- 은혼/636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손맛이 없다. 노사는 어느새 평소의 작은 모습으로 돌아가 공격을 피했다. 자신도 싸우고 있던 [[아부토]]지만 그 황당한 전술에는 정신이 쏠렸다. 노사는 다시 거한으로 돌아와 카무이를 공격, 등 뒤를 노리는 가구라의 공격은 근육만으로 막아낸다. 신축자재의 신체를 100% 활용하는 모습.
*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도 이 바보남매는 노사는 재쳐놓고 서로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고 있다. 실수인데 이렇게까지 하냐는 가구라와 발목이나 잡는다고 디스하는 카무이. 서로 "죽거나 물러나라"며 치열한 접전으로 치닫는다. 부관인 아부토만 속이 터지는 상황. 이 한심한 작태에 그렇게 혈통드립을 쳤던 노사 조차도 "너무 오래된 혈통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한다.
- 이강덕 . . . . 2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12대 해양경찰청장[br]서울지방경찰청장[br]경기지방경찰청장[br]청와대 대통령실 치안비서관[br]부산지방경찰청장 ||
경찰대학 졸업 이후 [[대한민국 경찰청]] 소속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포항남부경찰서장, 구미경찰서장, 서울남대문[[경찰서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대통령실]] 치안비서관, 부산[[지방경찰청장]], 경기지방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등을 지냈다.
- 이계순 (1927년) . . . . 2회 일치
'''이계순'''(李季順, [[1927년]] [[3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 교육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1953년]] [[경남중학교]] 영어교사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교수와 명예교수, 정무제2장관을 역임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개설하였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만들었다. 1991년에는 그가 직접 나서서 공무원 연수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협조를 구했다. 이렇게 해서 개설되기 시작한 ‘여성관련’ 교과목은 ‘국가발전과 여성’ ‘여성문제의 현실과 정책방향’ 등의 과목명으로 1~2시간 특강 형식으로 배정됐다. 그러다가 정규과목으로 개설되고 교육훈련점수에도 반영되어 선택과정으로 전환되고 전문과정으로까지 확대됐다. 초창기 교수요원의 확보와 교육자료의 개발 등은 한국여성개발원이 담당했다.<ref>[http://www.womennews.co.kr/news/48170#.VNroPaJFBzo 공무원 양성평등교육이 제도화되기까지]</ref> 1990년 12월 27일의 개각에서 유임되었으며, [[1991년]] 퇴임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에 위촉되었다.
- 이광호 . . . . 2회 일치
'''이광호'''([[1963년]] ~ )는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교수이다. [[1963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의문학]]》 편집위원(1992~1999), 《포에티카》 편집위원, 《[[문학과사회]]》 편집동인(1999~2010)을 역임했다. [[2001년]] 제13회 「[[소천비평문학상]]」,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상]]」, [[2007년]] 제18회 「[[팔봉비평문학상]]」, [[2009년]] 제17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1996년]]부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이국철 . . . . 2회 일치
=== 검찰 기소와 금품 제공 폭로 ===
2010년 11월 [[창원지방법원]]은 뇌물 공여와 허위 공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된 회장 이국철과 이국철의 형인 대표이사 이 아무개를 대상으로 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ref>《뉴스1》(2011.09.21) [http://news1.kr/articles/124759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누구?]</ref>
- 이규환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이규환'''(李圭煥, <small>일본식 이름: </small>岩本圭煥, [[1904년]] [[2월 18일]] ~ [[1982년]])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영화감독]]이다.
[[1932년]]에 귀국하여 제작한 작품이 《임자 없는 나룻배》이다. [[나운규]]와 [[문예봉]]이 출연한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고 문예봉을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제작비 문제 등으로 순탄치 않은 영화 작업을 계속했다. [[1937년]]에는 [[성봉영화원]]을 설립하고 로컬리즘 색채가 강한 《나그네》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성봉영화원이 [[조선영화주식회사]]로 통합된 뒤 이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만주]]로 떠나, 일제 강점기 말기의 [[군국주의]] 영화 제작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 이근택(1865) . . . . 2회 일치
이듬해 돌아와 한성 판윤·의정부 찬정 등을 거쳐 1905년 법부 대신과 군부 대신을 역임하였는데 [[이완용]]이 주도한 을사 조약 체결에서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힘으로서 을사오적이 되었다. --결국 [[을사조약|다른]] [[일제강점기|방]][[경술국치|식]]으로 정부를 [[망국|전]][[전복(동음이의어) #s-2|복]]시켰다.-- --그 [[전복]] 아니다.-- 그 이후로 [[조선]] 민중들과 의사의 표적이 되어서 습격을 받거나 위협을 받았지만 살아남았고 이후로는 [[일본군]]을 호위 대동하여 출퇴근을 하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한규설]]의 딸이 이근택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서 [[사돈]] 관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규설은 을사 조약을 반대한 애국자이다. 그래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이근택에게 딸을 따라온 교전비(여종)가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와 꾸짖기를
- 이덕건 . . . . 2회 일치
*결국 1997년 7월 12일부터 10월 5일까지 9시에 방영된 KBS 2TV [[전설의 고향]] 16화 '걸귀'(8월 31일)와 26화 '초야'(10월 5일, 마지막회)로 복귀하였는데 SBS <[[이웃집 여자]]><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4242490|제목=SBS 주말극 야외 오픈세트 공개|저자=서한기|날짜=1997-06-17|출판사=연합뉴스|쪽=|확인날짜=2016-02-03}}</ref>와 경쟁한 바 있다.
- 이동춘 . . . . 2회 일치
통산 전적은 57전 45승(26KO) 2무 10패이며, [[1995년]] [[9월 5일]] [[도쿄도]] [[고라쿠엔 경기장]]에서 벌어진 [[세가와 세쓰오]]와의 경기에서 판정패한 뒤 급성 [[경막하혈종]]으로 쓰러져 4일 후인 [[9월 9일]] 사망했다.<ref>{{뉴스 인용|제목=韓國프로복싱선수,日링서 쓰러져 사망서|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925974|출판사=연합뉴스|저자=|날짜=1995-09-10}}</ref>
- 이동흡 . . . . 2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의 [[고성 이씨|고성]](固城) 집안에서 [[1951년]] [[1월 27일]]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여 5기 [[사법연수원]]과 군 법무관을 마친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종교는 [[불교]]이다.<ref>허신열,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701495&sid=E&tid=1 박근혜 인사에 불교계 민감반응], 내일신문</ref>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 집회 금지의 헌법 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에 헌법불합치로 결정할 때 "야간옥외집회 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정당한 입법목적 하에 규정된 것"이라며 합헌이라고 했다.<ref>백나리, 차대운,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8473.html 헌재,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연합뉴스]]</ref><ref>{{뉴스 인용 |제목 = 盧 지명한 2인 등 위헌, 검찰출신·한나라 지명자 합헌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41805005&code=940301 |출판사 = 경향신문 |저자 = 조헌철 기자 |쪽 = |날짜 = 2009-09-24 |확인날짜 = }}</ref>
- 이민호(1969) . . . . 2회 일치
||<:> '''소속팀''' || [[빙그레 이글스]](1993)[br][[한화 이글스]](1994~1998)[br][[쌍방울 레이더스]](1999)[br][[SK 와이번스]](2000) ||
1993년 빙그레 이글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3년에는 [[강석천]]의 백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한화 타선에 [[박지상]]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식]]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고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이상정 (1897년) . . . . 2회 일치
그는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사학자 [[이상백 (사학자)|이상백]](李相佰), 수렵가 [[이상오]](李相旿)의 형이다. 호적상에 등재된 부인은 2년 연상의 한문이(韓文伊, 1895년 5월 7일 ~ 1941년) 여사인데, 우리나라 여성 [[비행사]] 1세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 겸 항공비행사였던 4년 연하의 [[권기옥]](權基玉, 1901년 1월 11일 ~ 1988년 4월 19일) 여사와 [[1928년]], [[내몽골 자치구|중화민국 네이멍구 자치구]] [[후허하오터 시|후허하오터]]에서 다시 결혼하였다.
그는 [[서예]]와 [[전각]]에도 능하였고 [[1923년]]에는 [[시 (문학)|시인]]으로 문단 등단하기도 하였다.
- 이설주 . . . . 2회 일치
대구수창국민학교(현재의 [[대구수창초등학교]])와 대구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유학하면서 [[니혼 대학]] 경제학과에 재학했지만 사상범으로 체포되고 만다. [[1932년]]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의 문학 잡지 《신일본민요(新日本民謠)》에 시 〈고소(古巢)〉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 뒤 [[만주]]와 [[중국]] 등지를 방랑했고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 이시영 (1882년) . . . . 2회 일치
[[1914년]] 다시 출국하여 [[북경]]으로 가 그곳에서 항일운동에 이바지했다. 그가 그때 쓴 일기(손자 이용(李鏞), 원화여고 교장 역임)를 보면 [[백남채]](白南採)와 함께 활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name=autogenerated1 />
그러나 [[1919년]] [[7월 9일]] 피로와 식중독으로 병을 얻어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안창호]]는'문무 겸전한 우재가 갔으니 또하나 큰 별을 잃었구나'땅을 치며 통곡했고 성재 [[이시영 (1868년)|이시영]](省薺 李始榮)도 "나라의 큰 별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이시형 (1934년) . . . . 2회 일치
'''이시형'''(李時炯, [[1934년]] [[4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교수|의과대학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의사]]·前 [[군의관]]이다. [[경북대학교]]·[[성균관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하였으나 사실상 [[서울대학교]]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 이영 (1492년) . . . . 2회 일치
이영(李榮, [[1492년]] [[2월 10일]] ~ [[1583년]] [[10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은자|은사]]이다. 자(字)는 양수(陽臼+又), 호는 북산(北山), 본관은 [[우계 이씨|우계]](羽溪)이다. 조정의 부름을 거절하고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녹래리로 이주하였다. 뒤에 노인직으로 통정대부와 가선대부를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출신.
그의 초기 행적은 미상이다. 후에 유일의 후손으로 조정에서 그를 불렀지만 사양하고 두문불출하였으며, [[영천]]][[도촌]](후에 봉화로 편입되었다.)에서 [[예안]] [[녹전]] [[녹전면|녹래리]]로 들어가 외부와 단절하고 은거하였다.
- 이인성 (화가) . . . . 2회 일치
그는 [[1929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열린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했다. [[1930년]]에는 [[일본]] 다이헤이요 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 입학함과 동시에 일본 수채화 연맹(日本水彩畵聯盟) 회원이 되었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와 [[제국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기도 하였다.
익숙한 색체와 향토색을 잘 드러내었다 여기에 배경을 과거 신라 도읍지였던 경주로 설정했다 자세히 보면 뒤에 첨성대가 그려져 있고 소년의 발아래 깨진 전통 기왓장이 그려져 있어 장소가 경주임을 보여준다 소년들이 윗옷을 벗고 열대지방인 사람인 것 같은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근대화되지 않은 원시적인 풍경을 표현했다
- 이재영 (뮤지컬배우) . . . . 2회 일치
2006년 '와이키키 브라더스' 인희 역
2009년 '신 행진 와이키키' 강지수 역
- 이정호 (1982년) . . . . 2회 일치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삼성 라이온즈]]는 시즌이 끝나고 그 해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게 된 [[박진만]]과 [[심정수]]를 잡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정호가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그는 고향 팀을 떠나게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2545786 히어로즈 이정호 힘찬 부활의 날갯짓] - 뉴시스</ref> 현대에 이적한 후에도 병역을 이행해야 했기 때문에, 팔꿈치와 어깨 수술 등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와 재활을 병행하여 현대에서의 활동은 없었다.
- 이정훈 (1963년) . . . . 2회 일치
[[2008년]] 시즌 후 [[LG 트윈스]] 코치에서 물러나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고<ref> [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1270041 이정훈 전 LG 코치, 북일고 야구부 감독 취임] 《Osen》, 2008년 11월 27일</ref>, [[2012년]]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돌아와 유망주 육성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에는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직을 [[이강돈]]에게 넘기고, [[한화 이글스]]와 2군 감독 계약을 체결하여 2013 시즌부터는 2군 감독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 이정훈(배우) . . . . 2회 일치
* [[2002년]] [[한국교육방송공사|EBS]] 드라마 《역사탐구 과거와의 대화》
* [[1989년]] 《[[포기와 베스]]》 ... 포기 역(남자 주인공)
- 이종혁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8월 12일]] <br /> [[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2017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8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 이주승(영화배우) . . . . 2회 일치
* 영화 셔틀콕은 제대하자마자 --2일만에-- 찍기 시작한 작품이다. 그래도 영화에 나올건데 머리가 좀 길어야겠다는 생각에 행보관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진지공사를 하면 허락해 주겠다... 그리하여 작품을 위해서 말년병장이 매일 진지공사를 나갔다. 게다가 로드무비인 특성상 운전하는 씬이 많은지라 휴가 나와서 직접 면허 2종을 땄다고. 하지만 실제 본인은 길치고 여행에 대한 두려움도 많아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 성격이라 한다.
2008년 --수능을 보자마자-- 독립영화 '청계천의 개'로 데뷔했다. 다수의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 주로 참여했다. 필모그래피로 등록되지 않은 독립영화도 많다.
- 이준섭(군인,정치인) . . . . 2회 일치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대덕군-[[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 [[유한열]]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민주한국당]] 유한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석유개발공사 부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 이창동 . . . . 2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영화계로 들어선 이후에는 소설보다 영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를 통해 [[영화 감독|감독]]으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내놓은 영화 《[[박하사탕]]》은 1999년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오아시스’ 이창동―감독상·문소리―신인상 등 5관왕…베니스 영화제 쾌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18051|출판사=국민일보|저자=이광형 기자|날짜=2002-09-09}}</ref>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영화제]]에서 [[중화민국|타이완]]의 영화 배우 [[수치 (배우)|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창동 감독 장편 부문 심사위원 위촉… “칸에서 나의 국적은 영화”|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514004092&subctg1=15&subctg2=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09-05-14}}</ref> 2010년에 열린 50회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시 (영화)|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 이평 (1572년) . . . . 2회 일치
[[1612년]] [[유영경]]의 추죄와 광해군에게 존호를 올리기를 상소하였다.
유학(儒學)으로 [[1612년]](광해군 4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1612년]](광해군 4년) [[5월 12일]] [[광해군]]의 즉위를 방해한 [[유영경]](柳永慶)을 강경하게 탄핵하였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 광해군일기에 그가 유영경의 죄를 탄핵한 기록이 실려 있다. 유영경(柳永慶) 등을 추형(追刑)하고, [[광해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공신(功臣)을 녹훈하고, 역당(逆黨)의 흉서(兇書)를 중외에 반포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였다.<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일 을미 1번째기사, 이평이 유영경 등의 추형, 존호를 올리는 일, 공신을 녹훈하는 일 등을 상소하다</ref> 이에 그해 [[5월 29일]]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리는 일을 아뢰었는데 입계하였다. 광해군은 "임금은 부귀하기는 한 나라를 소유하였고 귀하기는 군왕이니, 그 영화와 높게 드러난 것이 그 이상 더할 수 없다. 저 존호를 올려 찬양하는 일은 하늘 끝의 한 점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명예에 대해 옛날의 지사(志士)들은 얻고 잃고 가고 오는 것을 역시 개의치 않았으니, 임금에게 헛된 칭호를 가하는 것이 무슨 털끝만한 보탬이라도 있겠는가. 도리어 손상만 시키는 것이다. 나는 감히 과장하지 못하겠으며 명예도 원치 않고, 다만 본분을 지키다 자연을 따라 죽고자 할 뿐이다. 더구나 지금 이평(李坪)의 상소 하나로 인하여 경들이 정청(庭請)을 그치지 않으니, 내가 더욱 통탄스럽게 여긴다. 내가 비록 불초하지만 어찌 한 애숭이 유자의 망언으로 인하여 경솔하게 당치도 않은 큰 칭호를 받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이럴 리는 없으니, 번잡하게 하지 말고 빨리 물러가도록 하라.<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9일 임술 3번째기사,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숭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ref>" 하였다.
- 이하율 . . . . 2회 일치
|2011||JTBC||[[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이유진||
|2018||JTBC||[[으라차차 와이키키]]||서진우||특별출연
- 이휘향 . . . . 2회 일치
* 1996년 [[KBS2]] 드라마게임 《아빠와 영혼》 ... 엄마 역
* 《[[포기와 베스]]》
- 인왕 . . . . 2회 일치
본래 고대 간다라 문명에서 [[불상]]이 처음으로 제작됐을 때, 금강역사의 원형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에서 그 모습에서 빌려온 [[석가모니]]와 유사하게,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의 모습으로서 석가모니를 수호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문명이 불교와 그리스 신화를 습합하여 신앙체계를 형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헤라클레스가 금강역사가 되어 수호신으로서 불교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2회 일치
대싸움축제에서 격돌하게 된 [[고서]]와 [[에스카노르]].
* 악몽 속의 멀린은 "내일이 없는 자와 함께 길을 걸을 순 없어. 왜냐면 네 저주는 절대 풀 수 없으니까. 강대한 저주는 이윽고 그 몸을 전부 침식하겠지. 너는 결국 내 실험 재료일 뿐인 존재.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일 없이 고독하게 죽어라 에스카노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 일곱개의 대죄/170화 . . . . 2회 일치
* 그가 신기를 해방하자 무서운 마력이 모이고 이 힘은 십계의 에스타롯사와 맞먹는다.
* 반은 제리코와 호크까지 죽을 거라고 말리려 들지만 멜리오다스는 무슨 생각인지 "에스카노르를 믿어라"면서 제지한다.
- 일곱개의 대죄/173화 . . . . 2회 일치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은 필사의 저항을 이어간다.
*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은 가까스로 버티며 멜리오다스에게 반격한다.
- 일곱개의 대죄/183화 . . . . 2회 일치
* 일곱개의 대죄와 리오네스 왕국의 성기사들은 십계의 공세에 대항해 최선을 다하지만 검을 들 수조차 없게 된다.
* 길선더는 이런 와중에도 멜리오다스의 원수를 갚겠다고 이를 갈지만 역부족.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2회 일치
* [[메라스큐라]]는 [[데리엘]] 일행과 떨어져 고서 쪽으로 합류했다. 메라스큐라는 문을 보며 여신족의 악취미라고 빈정거린다. 고서는 인질 구출 작전의 성패에 대해 묻는데 메라스큐라가 함정이었다고 알린다. 고서는 세세한 질문은 접어두고 직접 메라스큐라의 기억을 읽어서 십계의 대군이 전멸하고 사대천사와 십계들이 대치하고 있는걸 알게 된다. 메라스큐라는 기억 좀 읽지 말라고 짜증을 낸다. 고서는 메라스큐라에게 뤼드셀이 현장으로 간 사실을 알려주며 전황이 어렵게 됐다고 말한다.
* 그때 갈란의 몸을 빛줄기가 관통한다. 갈란이 저항하기도 전에 빛줄기는 두 번 세 번 공격을 거듭해 갈란을 쓰러뜨린다. 마침내 사대천사 최강자 뤼드셀이 전장에 도착. 어느새 [[프라우드린]]을 쓰러뜨린 상태다. 그는 갈란을 비웃듯 만남 인사와 작별인사를 동시에 한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2회 일치
* 다시 정신을 차린 엘리자베스는 뤼드셀을 물러나게 하고 직접 인듀라화한 십계와 싸우려 한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전장에 서보지도 못한다. 몬스피드가 촉수처럼 길어진 팔로 둘을 잡아 바닥에 처박는다. 그대로 옥염조와 유사한 불꽃을 무수히 내뿜는다. 폭격처럼 쏟아지는 공격.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2회 일치
* 격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 돼지의 모자 정은 아직 코란도로 향하는 다리 앞에 있었다. 안정을 취하고 있던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반과 그 일행에게 일어난 일을 느꼈다. 디안느의 의식이 공포와 분노의 소용돌이에 잠식되었다. 이대로 두면 자신과 반이 겪었던 일이 디안느와 오빠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일념으로 엘레인은 불편한 몸을 침대에서 끌어냈다. 동료들에게 가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으나 걷지도 못하는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위태롭게 기어다가 쓰러지는 그녀에게, 누군가 손길을 뻗었다.
- 일장청 호삼랑 . . . . 2회 일치
* '일장'이라는 표현에서 나와서 키가 크다는 뜻. 키가 작은 [[왕영]]과의 대비로 설정된 별명이라는 것이다.
* 청(靑)을 [[청면수 양지]]의 경우와 같은 '청'으로 해석하여, '[[문신]]'을 새긴 모습을 표현했다는 해석이다.
- 임혁주 . . . . 2회 일치
1975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1980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7기 [[배우|탤런트]] 정식 데뷔하였다.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와 [[연극]] 부문에서 활동하였다.
* 2002년 [[한국교육방송공사|EBS]] - 《역사탐구 과거와의 대화》
- 임효준 . . . . 2회 일치
'''임효준'''([[1996년]] [[5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평창올림픽에서의 대한민국 첫 금메달로서 더욱더 의미가 크다. 임효준은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뛰어난 기술이 장점으로, 전성기 시절 ‘제2의 [[안현수]]’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ref name="대구일보"/>
[[2017년]] 4월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통과해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었다.<ref name="대구일보"/> 장거리와 단거리 모두 능한 덕에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 1000, 1500, 5000m 계주 등 전 종목에 출전하게 되었다.<ref name="대구일보"/>
- 장가용 . . . . 2회 일치
그는 부인 윤순자 여사와의 사이에 슬하 1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장여구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육군]] [[군의관]] [[대위]]도 조부 [[장기려]]와 부친 장가용의 뒤를 이어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 장남석 . . . . 2회 일치
[[2008년]], [[이근호 (1985년)|이근호]], [[에니우 올리베이라 주니오르|에닝요]]와 함께 대구의 공격 축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4월 6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선 40초만에 골을 넣어 2008 시즌 최단시간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구FC 장남석 '40초 번개골' 올시즌 최단시간 골|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4061658272233|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윤신욱|날짜=2008-04-06}}</ref>
- 장도 (1876년) . . . . 2회 일치
[[1899년]] 도쿄법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의 법원을 순회하면서 견습까지 마친 뒤 귀국했다. [[1900년]]부터 사립 광흥학교 교사로 법학과 일본어 등을 가르쳤고, 이후 [[한성법학교]] 강사와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일하면서 [[형법]] 전문가로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경력 때문에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에 포함되었다.
- 장문규 . . . . 2회 일치
* 《[[으라차차 와이키키]]》 (2018년, JTBC)
* 《[[이리와 안아줘]]》 (2018년, MBC)
- 장민호 (1962년) . . . . 2회 일치
공안 당국은 북한과 그가 386 인사들과 접촉해 국내 정치 현안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ref name="dd11">[http://www.ytn.co.kr/_ln/0103_200610301602410348 24 HOUR NEWS CHANNEL ::::: YTN (와이티엔)<!-- 봇이 따온 제목 -->]</ref> 5.31지방선거와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처리과정 등이 포함돼 있고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자의 동향과 6자회담에 대한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의 입장 등도 보고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dd11"/> 이후 대한민국 검찰에 USB 메모리 칩과 이메일이 가압류되었고, 그는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 장성원 (배우) . . . . 2회 일치
[[같은 묘호와 시호 목록]]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 장성환 . . . . 2회 일치
*1970년 일본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과 공학석사
[[분류:1920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태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교통부 장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조선경비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기후 대학 동문]][[분류:도야마 대학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국방연구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장]][[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공군무관]]
- 장신애 (연극배우) . . . . 2회 일치
|[[2011년]] [[1월 27일]] ~ [[4월 30일]]||교수와 여제자2||부인||
|[[2011년]] [[4월 2일]] ~ [[9월 13일]]||교수와 여제자2||부인||
- 장용석 . . . . 2회 일치
'''장용석'''은 1993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최우등<ref>[http://web.yonsei.ac.kr/yongsukjang/Vita.htm ''Vita''], 연세대 행정학과 장용석 교수 홈페이지, 2008년 8월 </ref> 으로 졸업한 뒤, 2001년 [[스탠포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를 받았다. 지도교수였던 [[신제도주의]] 이론의 대가 [[존 W. 마이어]](John W. Meyer)와 사회연결망 연구의 권위자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영향 아래, [[거시조직]] 및 [[국가비교]] 연구 등에 주로 관여하였으며,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 및 [[투명성]]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대표 연구로는 The Worldwide Founding of Ministries of Science and Technology, 1950-1990 (2000)와 Sources of Rationalized Governance: Cross-National Longitudinal Analyses, 1985-2002 (2006)이 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유타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조교수]]를 역임하였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조교수 및 부교수로 재직하였다.
- 장우석 . . . . 2회 일치
[[2005년]] 7월 25일부터 8월 7일까지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국적포기필요없는나라만들기모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동북아평화를 위한 한일공동 일본열도 도보행진단'<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9522 "일본열도 걸으며 동북아 평화 외칠 것"], 《오마이뉴스》, 2005.7.21.</ref>과 함께 일본 오사카, 교토, 우토로, 후코야마, 히로시마 등 8개 도시를 걸으면서 동북아 평화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일련의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 장익 (1933년) . . . . 2회 일치
*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 [[1978년]]부터 [[1985년]]까지 그는 [[교황청]] 종교평화평의회 자문위원과 비그리스도교평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했는데, 활동을 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친분이 두터웠다.
- 장정희(배우) . . . . 2회 일치
* [[2008년]] [[아기와 나(한국 영화)|아기와 나]]
- 장항준 . . . . 2회 일치
=== 코너 소개와 다시 듣기 ===
*[[2004년]] [[8월 11일]] - [[피비 케이츠]]와 [[브룩 실즈]] 편
- 장후영 . . . . 2회 일치
}}</ref> ~ [[1985년]] [[11월 7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한성부]]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 법과와 [[일본]]의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대학원을 졸업했다. [[교토 제국대학]] 대학원에서도 수학한 바 있다.
- 저그 . . . . 2회 일치
스타일이 벌이나 개미와 비슷해서 각 개체의 파괴는 별 의미 없으며 중추에 해당하는 존재를 쳐야만 한다. 즉, 하이브 마인드. 워해머 40,000의 [[타이라니드]]와 비슷하다.
- 전가의 보도 . . . . 2회 일치
[[일본]]의 무가([[사무라이]] 가문)에서는 가문 대대로 명검(보도)를 유산으로 전수하는 사례가 많았다. 과거에는 공업 기술이 낮았으며, 칼을 만들려면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 때문에 명장이 만든 보도는 매우 높은 [[부가가치]]와 [[희소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자손 대대로 전수할 만한 자산이었던 것이다.
한국 인터넷에서는 "'전가의 보도는 옛날에 '양반가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검'을 뜻하는 말이다. 아들이나 아내가 불미스러운 일로 집안에 누가 되는 행동을 범했을 때 이를 처단하는 도구로도 사용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근거는 낮은 것 같다. 애초에 이 말은 한국 문화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http://www.vop.co.kr/A00000768894.html (민중의 소리)]]
- 전덕기 . . . . 2회 일치
[[상동감리교회]]의 전도사와 목사를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정선 전씨|정선]](旌善)이다. [[신민회]]와 [[상동청년회]]의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전동휠 . . . . 2회 일치
* 갓웨이: 락휠의 엔지니어가 나와서 새로 만들었다는 회사. [[https://www.youtube.com/watch?v=iWWNdmB03UU|산중턱에서 냅다 집어던지는 테스트]]를 하고도 굴러가는 등 내구성은 괜찮은 듯. 차기작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QRUatyguFrY|5인치 휠]]을 연구중인데 엄청 작다. 거의 핸드백에도 들어갈 수준.
* 전적으로 이동에 의존해야 하는 세그웨이와는 달리, 들고 다닐 수 있으므로 10kg에 달하는 무거운 무게 덕분에 되력 제법 운동이 될 것 같다.(…)
- 전락원 . . . . 2회 일치
1927년 5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鍾路區) 계동에서 장로교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田周富) 와 계성옥(桂成玉)의 2남 5녀 중 넷째이자, 수필가 [[전숙희]](田叔禧) 의 남동생이었다. 아버지 전주부는 생애중 14곳의 개척 교회를 설립한 목회자이자 기독교 운동가였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후 올림포스 관광호텔 대표이사로 관광업계에 종사하기 시작한 그는 [[1973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워커힐 카지노를 인수하며 국내 카지노 사업의 대표주자<ref name="카지노">[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408415 전락원회장 별세… 파라다이스그룹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로 활약하였다. 그는 워커힐 카지노를 통해 막대한 부와 인맥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차례로 부산, 제주, 도고, 인천, 아프리카 케냐 등에 파라다이스 호텔을 설립하고 부산과 제주, 인천에도 카지노를 개장하며 '카지노 업계의 대부'로 활동하였다.<ref name="카지노"/>
- 전숙희 . . . . 2회 일치
'''전숙희'''(田淑禧, [[1919년]] [[3월 15일]] ~ [[2010년]] [[8월 1일]])는 일제 강점기와 군정기, [[대한민국]]의 작가, 수필가이다. 본관은 [[담양 전씨|담양]], 호는 벽강(璧江),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의 딸이며 기업인 [[전락원]]의 누나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함경남도]] 협곡에서 출생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1938년]] [[단편소설]] 《시골로 가는 노파》를 《[[여성 (잡지)|여성]]》에 발표하여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10월]] [[미군정]]이 주둔하자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1948년]] 미군정이 물러난 뒤 다시 작가, 수필가로 돌아와 [[한국 전쟁]]을 거친 뒤 [[1954년]] 수필집 《탕자의 변》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수필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수필의 특징은 다정다한(多情多恨)한 여성심리를 조촐한 필치로 표현하는 데 있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33화 . . . . 2회 일치
* 효부는 최종후보 3인 중 배신자가 있을 걸로 확정하고 있는데, 사카키는 그 점을 아니꼬와 한다.
* 어떤 루트를 통했는지 오염 물질이 후지코와 접촉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1화 . . . . 2회 일치
*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쿠모이 유리는 이 상황을 염려한다.
* 효부는 정답이라며 마츠카제와 함께 길리엄의 흉내를 낸다.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2회 일치
* 카오루는 어수선해진 팀의 분위기를 조율하며 냉정을 찾게 도와준다.
* 아오이와 유리는 모포에 둘둘 말려서 객식에 격리되어 있었고 환각으로 능력이 봉인됐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2회 일치
* 마기의 소년 시절. 지난 회에서 교섭을 망치고 돌아가던 효부와 머슬 오오카마는 차량 고장으로 도로 한 가운데 정차한다.
* 효부는 재미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방법은 시원찮다고 한다. 에스퍼와 싸우는 것도 처음인 거 같다고 하는데 마기는 그렇다고 한다.
- 정몽규 . . . . 2회 일치
HDC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설립된 [[종합부동산인프라기업]]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단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40만여 세대의 주택을 공급했고, 대표사업지로는 ‘[[삼성동 IPARK]]’, ‘[[수원 IPARK CITY]]’, ‘[[해운대 IPARK]]’ 등이 있다. [[주택사업]] 뿐 아니라 [[도시개발사업]]과 [[건축]], [[토목]], [[플랜트]], [[SOC개발사업]] 등 다양한 건설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17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것을 목표로 ‘[[풍요로운 삶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그룹 철학 선포했다. 현대산업개발은 2018년 5월 투자회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 분할하고 정몽규 회장은 HDC 회장으로 취임했다. HDC는 자회사 관리와 부동산 임대사업 등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집중하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사업집중 회사로 주택, 건축, 인프라 부문에서 전문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 정무식(정치인) . . . . 2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영천시|영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권오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초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224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2-24&officeId=00032&pageNo=1&printNo=9921&publishType=00020|뇌물수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지종걸]]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에 임명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권오태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조규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9년 6월 권오태가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자 해당 지구당위원장직에서 사임하였다. 그리고 원양어업협회 [[회장]]이 되었다.
- 정욱(1973) . . . . 2회 일치
동명의 [[정욱(1938)|범죄자]]와 혼동되는걸 피하기 위해 한 때 정의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 2003년 《[[실화극장 죄와 벌]]》 (MBC) - 담당검사 역
- 정재민(2001) . . . . 2회 일치
* 《[[굿 와이프 (2016년 드라마)|굿 와이프]]》 (2016년, tvN) - 정재열 역
- 정종 . . . . 2회 일치
그나마 왕후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기에(후궁에게는 많은 자식을 보았다) 태종도 정치적인 이유로 견제해야 할 직계 혈통이 없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 그런데 사실 왕위 계승은 서자라도 상관없다. 왕실은 사가와는 달리 정실 소생과 측실 소생 사이의 적서 차별이 없기 때문. 애초에 다수의 후궁을 두는 이유는 혈통 단절을 막기 위해 '왕위 계승이 가능한' 많은 자손을 얻기 위해서이다. 계승 서열 자체는 적자>서자이므로, 적자가 따로 있는데 서자가 계승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적자>서자이기 때문에 '적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바로 다음 순위인 서자가 계승하는데는 어떤 문제도 없다.
- 정창영 (공무원) . . . . 2회 일치
| 경력 = [[한국철도공사]] 사장<br />[[대한민국 감사원|감사원]] 사무총장<br />감사원 제1사무차장<br />감사원 제2사무차장<br />감사원 국장<br />[[대한민국 국회|국회]] 예결위 입법심의관<br />[[대통령비서실|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br />감사원 과장<br />감사원 감사관<br />청와대 [[대통령경호실|경호실]] 감사담당관<br />감사원 부감사관<br />경북도 / 대구시 / 서울시 행정사무관<br />행정고시 24회
- 정환덕 . . . . 2회 일치
[[고려]]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이며,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정종소]](鄭從昭)의 12세손이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자 영월 환고사에 배향된 현령 증 병조판서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의 10세손이며, 대구부의 청호서원(淸湖書院)에 배향된 진주목사 [[정호인]](鄭好仁)의 8세손이다. 증 통훈대부(通訓大夫) 예식원좌장례(禮式院左掌禮) [[정하형]](鄭夏亨)의 증손이며,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감승(秘書監丞) [[정윤휴]](鄭胤休)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선략장군(宣略將軍) 행 선전관(宣傳官) 증 가선대부(嘉善大夫) 군부협판(軍部協辦) [[정의채]](鄭義采)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이씨(貞夫人 李氏)와 증 정부인 주씨(貞夫人 周氏)이다.
부인은 정부인 김씨(貞夫人 金氏)와 정부인 이씨(貞夫人李氏)이다.
- 제3의 로마 . . . . 2회 일치
제3의 로마란, 제1의 로마를 [[이탈리아]]에 수도를 둔 로마 제국으로 보고, 제2의 로마를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수도를 둔 [[비잔티움 제국]]으로 보며, 자국 혹은 현재 정권을 제1의 로마와 제2의 로마를 계승한 '제3의 로마'라고 보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민족주의]], [[공화주의]] 운동가들은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구호로서 이탈리아를 민중의 제3의 로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왕국]]이 이러한 사상을 계승하였으며,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에서도 제3의 로마 제국을 선전 구호로 내세웠다.
- 젬누 . . . . 2회 일치
여담으로 이 캐릭터는 '헐크'(!)라는 이름으로 첫등장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녹색 거인 헐크와는 별개의 캐릭터다. 이름도 녹색 거인 헐크가 등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인 'Xemnu'가 되었다. 다만 행적에서 헐크와 싸우는 등 대면이 이루어지기는 했다.
- 조선활자본 삼국지통속연의 . . . . 2회 일치
[[조선시대]]에 출판된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의 판본이다. 조선방각본 삼국지연의와 함께, 삼국지연구에 중요한 판본이다. 8권만이 현존하고 있다.
[[명종]] 년간(1534~1567)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금속활자로 간행되었고, 병자자(丙子字)를 썻다. 드문드문 굵기와 크기가 다른 목활자가 끼어 있어 '후기 병자자'로 추정된다. 활자로 볼 때 1552년 이후 1560년대 초중반 사이에 인출된 것으로 추측된다.
- 조커 . . . . 2회 일치
플라잉 카드의 패이며 숫자가 있는 다른 카드와 달리 광대가 그려져 있다. 게임의 종류에따라 그 사용법이 달라져서 와일드 카드가 되기도 하고, 안쓰이기도 한다.
- 주다영 . . . . 2회 일치
* 1997년 잡지 모델로 시작해 베비라 모델 ,비유와상징, 농협 아름찬 김치, 데이콤 08217, 우리은행, 해태제과 베스트 원 아이스크림, 페브리즈, 한국통신, 맥도날드, LG 휘센에어컨, 대교, 하나은행, 삼환 아파트, 마몽드, 장인가구, 풍성건설, 아디다스, 톰키드, 원아동복, 블루독, 정상어학원, 소니 핸디캠, LG CNS, 메이크업 포에버, 간지(GanGee) 2013년 12월호 표지모델, CAMPUS JOB&JOY 제52호 표지모델, 간지(GanGee) 2014년 11월호, 센트리얼 휘트니스
* 태하 - 돌아와줘 (2011년)
- 주아브 . . . . 2회 일치
이들은 붉은색의 통 큰 바지와 푸른색 조끼 등 "동양풍"의 복장을 입었다.
또한 치마의 종류인 주아브 스커트와 상의의 일종인 주아브 자켓은 이들의 복장과 비슷하다고 그런 이름을 얻었다.
- 주윤발 . . . . 2회 일치
10세 때였던 [[1965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홍콩 도심으로 이주하였으나,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하여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였고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는 끝내 중퇴하였다. 이렇게 초, 중, 고, 대학 등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던 중, 친구의 권유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7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73년]] [[영화]] 《투태인(投胎人)》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74년]]부터는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였으며 2년 후 [[1976년]]에는 [[영화]] 《지녀》(池女)의 주연을 맡았다. 그 후로도 홍콩 영화와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고,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1980년]]에 출연한 《상해탄》(上海灘) 등으로 입지를 다졌다. [[1988년]] [[가수]] 데뷔하였으며 [[1989년]] [[영화]] 《아랑적고사》(阿郎的故事)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각색도 처음 맡아 각색가로서 데뷔하게 되었다.
* [[와호장룡]]
- 주장환 . . . . 2회 일치
소설 '사바카' '그 바닷가 헛간은 따스했다' '겨울새 물살털기' '퇴계 이황' 등이 있으며 시집 '내마음 속에 사랑의 집 한 채' 교양서 '논어와의 대화' '참사랑의 길' '레오나르도다빈치와 함께 하는 논술,NIE' '로즈여사에게 배우는 특별한 자녀양육법 26' '노벨문학상 소프트' 등과 '배짱으로 살아라' '사랑을 주는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 주토피아 . . . . 2회 일치
이상향으로 보이는 것 같았던 주토피아는 인간이 만들어둔 일종의 [[모피]], [[고기]] 생산 시스템이었다. 정기적으로 납치되어 사라진 동물들은 모피와 고기로 바뀌어서 인간 세상으로 출하되고 있었던 것.
동물들이 모피와 고기가 되는 장면이 너무 처참하여 몇몇 국가에서는 18금으로 개봉했다.
- 죽으면 부처님 . . . . 2회 일치
이는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서 "일본에서는 죽으면 부처님. 그러니까 A급 전범 합사도 용인된다."는 식으로, 외국의 비판을 '문화적 차이'라고 실드치고 넘어가려는 움직임을 우익 논객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은 죽은 사람을 언제까지나 비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문화차별적 주장도 곁들여진다.
정토교의 포교와 함께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지소 . . . . 2회 일치
비하적인 의미가 강하며, 한국의 인터넷 속어로는 '애자'와 비슷한 뜻이다. 물론 이런 속어들이 그렇듯이, 멍청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도 쓰이는 말이 되었다.
* [[케이온!]] - [[히라사와 유이]] : 하는 짓이 멍청해서 까는 의미로 지소라고 부른다(…). 유이를 아예 지소로 보고 희화화 시켜 만든 '지소유이'라는 악질적인 패러디 사이트가 있다.
- 진격의 거인/82화 . . . . 2회 일치
* 쟝이 후방에서 미끼가 되고 샤샤와 코니가 전방에서 뇌창을 각각 발사, 양턱의 연결부위를 파괴해서 입을 벌리게 만드는 것이다.
* 하지만 라이너는 후방을 버리고 전방의 샤샤와 코니를 공격하고, 샤샤는 부상으로 명중시키지 못하고 코니만 왼쪽 턱을 부순다.
- 진격의 거인/99화 . . . . 2회 일치
* 어떤 병사가 [[테오 마가트]]의 호출이라며 [[포르코 갤리어드]]와 가비를 데려가는데 이는 함정. 포르코와 가비가 함정에 빠진다.
- 짐 브라부라 . . . . 2회 일치
이후 맥스가 [[알렉스 볼더]] 요원의 살해 누명을 쓰고 쫓기는 처지가 되자 그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맥스를 체포하는데는 실패한다. 제일 근처까지 접근한게 맥스가 루피노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이때는 건물 앞까지 와 항복 요구까지 했었다.
맥스가 게이트 상원의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모나 색스]]와 함께 행동하다 붙잡히자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며 맥스를 꾸짖는다. 맥스가 자신이 맡은 사건과 게이트 상원의원 사건이 연관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자, 두 사건 모두 윈터슨이 맡게 한다. 그러고는 맥스의 총을 빼앗고 해당 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다.
- 차금봉 . . . . 2회 일치
서울 미동보통학교(渼洞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용산(龍山) 기관차 화부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노동자들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식민지 현실의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20년 2월 조선노동문제연구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같은해 3월 [[김명식 (1890년)|김명식]]·[[오상근]] 등과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조직하여 교양부 간사를 맡았다. [[1922년]]에는 최상덕 등과 함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공제회의 쇄신운동을 폈으며, 동년 9월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조선금물직공조합·경성신문배달조합 창립을 지도했으며, 1923년 9월에는 조선노농대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4년 5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각지의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했다. 192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노동운동 단체와 농민운동 단체를 분리하는 정책을 실행시키기 위해 힘썼다.<ref name="역대"/>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결성한 [[신간회]] 단체가 결성되자, [[1928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경서(京西)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간사를 맡았으며, 한편으로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3·1운동 기념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지시하여 선전전단 20만장을 도쿄의 동성사에서 인쇄했는데, 우송 도중 서울우편국에서 발각되고 말았다. 1928년 7월 제4차 조선공산당이 발각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피신했으나 도쿄에서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당한 뒤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1929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했다.
- 차오루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는 [[장나라]]와 같은 기획사에서 활동했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555331 차오루 "중국 활동당시 장나라와 같은 소속사"] - 엑스포츠뉴스</ref> 장나라가 [[대한민국]]에서 중문 에디션 음반인 《비상》을 발매할 당시 홍보 활동을 도우면서 [[대한민국]]과 인연을 맺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0067007 장나라, 이번엔 합류 대사?] - 쿠키뉴스</ref>
- 차용학 . . . . 2회 일치
* 《나와 할아버지》 (2015년) - 작가 역
* 《너와 함께라면》 (2011년) - 남자친구의 아들 역
- 창작:Project NA . . . . 2회 일치
NTX(가칭)이라는 이름의 골동품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상, 그리고 그곳에 있는 골동품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다소 가벼운 느낌의 설정. 자유로운 참가와 창작 활동, 최대한의 적은 제약을 지향한다.
매일 가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저 커피나 차를 마시러 온 단골들이 보통이지만 가게주인의 과거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도 보이곤 한다.
- 창작:악마의 열매 . . . . 2회 일치
* 두껍두껍 열매 : 모델 두꺼비. 특유의 피부를 이용해 위장을 하거나 무기를 막을 수 있으며, 공기를 끌어모아 공기포를 발사할 수도 있다. 다른 열매와 마찬가지로 바닷물에 닿으면 약해진다.
* 사람사람 열매 모델 아재 : 사람사람 열매의 아종 중 하나. 먹은 사람을 아재로 만든다. 소위 아재아재 열매라 불리는 종류. 먹은 사람을 아재로 만들며 썰렁한 아재 개그와 발암을 유발하는 꼰대 능력을 부여한다. 아재 개그는 이 열매의 주요한 기능으로 이말년 서유기에 나오는 감요검처럼 듣는 이를 빡치게 하다 결국 죽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 아재 개그를 구사하기 위해 언행이 크게 바뀌게 되는데, 이 바뀐 언행이 발암발암 열매처럼 상대를 발암시키는 능력도 일부 지니게 된다. 다만 이 열매도 단점이 있으니, 아재들처럼 항상 드러누우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관절염이라는 무시무시한 패널티가 걸린다.
- 창작:좀비탈출/1-2 . . . . 2회 일치
나는 신중하게 뒷골목 쪽 담을 넘어서 나갔다. 다행히 이쪽에는 좀비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가다보니 다시 좀비와 마주쳤다. 나는 공격을 피하면서 좀비들 사이로 달려갔다.
나의 비명소리가 공원에 울려퍼진다. 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 창작:좀비탈출/4-0 . . . . 2회 일치
아아 두렵다. 나는 두려워서 할 수 없다. 죽더라도 썩어가는 이 몸이 나와 같은 옷에 나와 같은 걸음걸이로 나다니고 있을 생각을 하면 오줌을 지릴 것 같다.
- 창작:좀비탈출/4-1-1 . . . . 2회 일치
또 저 상태는 오래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걸까? 아니면 약간의 변수에 의해서도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와 버리고 마는 것일까?
허리쪽에서 엉덩이와 등 양쪽으로 바늘 천개가 돌아가며 찌르는 듯한 통증이 퍼져나왔다. 그 통증을 수습할 새도 없이 토트넘이 달려든다. 난 옆으로 누운 자세이고 놈을 뿌리칠 힘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두꺼운 겉옷이 녀석의 이빨을 한 번은 막아줬다. 두 번도 막아줄 수 있을까? 세 번이나 네 번은? 알 수 없다. 얼른 뿌리치고 일어나야 하는데, 이놈의 허리가 말썽이다.
- 창작:좀비탈출/4-1-2-2 . . . . 2회 일치
또 저 상태는 오래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걸까? 아니면 약간의 변수에 의해서도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와 버리고 마는 것일까?
허리쪽에서 엉덩이와 등 양쪽으로 바늘 천개가 돌아가며 찌르는 듯한 통증이 퍼져나왔다. 그 통증을 수습할 새도 없이 토트넘이 달려든다. 난 옆으로 누운 자세이고 놈을 뿌리칠 힘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두꺼운 겉옷이 녀석의 이빨을 한 번은 막아줬다. 두 번도 막아줄 수 있을까? 세 번이나 네 번은? 알 수 없다. 얼른 뿌리치고 일어나야 하는데, 이놈의 허리가 말썽이다.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2회 일치
왜 바로 머리를 내려치지 않았냐는 의문이 남지만…… 그거야 '''자기 마누라잖아.''' 아줌마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아저씨가 머리를 날려야 끝난다는 걸 알리는 없었겠지. 그리고 다 끝낸 다음에…… 머리가 없는 시신을 수습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서 생각해낸 절충안이 허리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척추는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게 절단되는 충격은 당연히 뇌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고, 원하는 결과로 이어졌겠지.
아줌마가 '''튀어 나왔다.''' 팔 밖에 없는 주제에! 내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누런 이빨이 '''목젖을 물어 뜯었다.''' 나는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마치 아줌마와 얼싸안은 것처럼 돼버렸다. 씨발! 무슨 감격적인 이웃상봉인가!
- 채상병 . . . . 2회 일치
[[서울특별시]] 출신으로 [[효제초등학교]]와 [[홍은중학교]]를 거쳐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휘문고등학교]] 졸업 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로 진학했다.
[[2009년]] 시즌에 접어들어서는 [[최승환]], [[용덕한]] 등의 팀 내 다른 [[포수]]들의 경쟁에 밀려 1군 경기보다는 2군 경기에서의 출전이 잦아지게 되었고 1군에는 몇 경기에만 나와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는 등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5231651142222&ext=na 두산 채상병-SK 채병용, 부상으로 1군 엔트리 말소] - 마이데일리</ref> 때마침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였던 [[진갑용]], [[현재윤]] 등이 잇따라 부상을 입으면서 남아 있는 포수는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신고선수 출신 [[이지영 (야구 선수)|이지영]]뿐이라 [[포수]] 자원이 부족해진 상황에 놓이자, [[2009년]] [[7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인 [[지승민]]을 상대로 한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7160125 두산, 삼성 좌완 지승민 영입] 《Osen》, 2009년 7월 16일 작성</ref> 하지만 [[2010년]]에는 [[진갑용]]과 [[현재윤]]의 회복, 그리고 [[이정식 (야구 선수)|이정식]]이 군에서 제대하여 다시 2군으로 밀렸다. [[2011년]]에 포수들이 대거 부상을 입어 주전 자리에 다시 앉게 되어 감각을 찾았고,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다.그러나 2012년 이후 부터 경쟁에서 밀리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4 시즌 후 구단과의 합의 끝에 은퇴를 결정하였고, 배터리 코치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 채형석 . . . . 2회 일치
[[2002년]] 1월부터 [[애경그룹]] 부회장이 되었고, 2006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다.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의 구조개편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애경백화점]]을 세워 유통업에 진출했고, [[애경개발]]을 세워 레저와 부동산개발업을 시작했다.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 파트너 자격을 따내며 [[제주항공]]으로 항공사업을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71|날짜=2016-01-12|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 장녀 : 채문선 - 미국 맨해튼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애경산업에서 근무했다.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와 2013년 결혼했다.
- 채호기 . . . . 2회 일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ref name="네이트"/> [[1988년]]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2000년]]에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이다.<ref>{{뉴스 인용
* 《밤의 공중전화》([[문학과지성사]], 1997) : 그가 줄곧 시의 화두로 삼아온 ‘육체’와 ‘소멸’의 세계를 다룬다.<ref>{{뉴스 인용
- 천운영 . . . . 2회 일치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2005년]] 문예진흥원 소극장에서 〈명랑〉을 노래와 춤, 모노 드라마 등으로 ‘번역’하는 공연이 있었다.<ref>{{웹 인용|url=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630.html|제목=천운영이 무대에 올랐을때|출판사=한겨레|저자=|날짜=2005-01-07|확인날짜=2010-10-18}}</ref>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2회 일치
그 능력외에도 어떤 환경에서도 쉽게 적응하며 누구와도 모나지 않게 친하게 지내는 것을 선보이기도 한다. 주 포지션은 저격수이지만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붙임성으로 잡입 임무에 투입되기도한다. 이 특유의 붙임성이 아이스 레인저 특유의 '같은 부대원들은 모두 가족'이라는 사상과 시너지를 일으켜 발할라 내의 모든 인물을 친구 혹은 잠정적인 친구로 여기는듯하지만 몇몇 인물들은 역시 껄끄러운듯 하다.
- 초한전쟁 . . . . 2회 일치
[[진나라]]의 멸망 이후, [[한고조]] 유방의 한나라와 [[패왕]] [[항우]]의 초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툰 [[전쟁]].
대중문화에서 초한전쟁은 진시황 말기에서 시작하여, 진승 오광의 난을 프룰로그로 묘사하고, 항우의 죽음으로 일단 마무리 된다. 일단 초한전쟁 자체는 여기서 끝나지만 여기서 끝내는건 조금 짧은 느낌이이 있어, 좀 더 가기도 하는데 유방의 [[토사구팽]]을 묘사하여 공신들의 최후를 그리거나, 좀 더 나가면 [[백등산 전투]]와 흉노 정벌 좌절과 유방의 죽음으로 마무리 한다. 유방 사후 여후까지 묘사하면 [[여씨의 난]]까지 가서 마무리 되며, 좀 더 길게 끌면 초한전쟁 시대의 자식 세대들까지 마지막 활약을 하는 [[오초칠국의 난]]까지 간다.
- 최민호(유도선수) . . . . 2회 일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영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순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순박해 보이는 인상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남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반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상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최성민(1995) . . . . 2회 일치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났으나 바로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특별시]] [[강동구]] [[길동]]에서 쭉 자랐다. 그 후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가 2년 정도 살던 와중에 서울에 있는 연예기획사 오디션에 합격을 하면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로 다시 이사를 하였다. 당시 합격한 회사는 현재의 [[MBK엔터테인먼트]]이다.
2016년 9월 15일, 신생기획사[* 동년 6월 계약한 [[나영희]], [[신다은]], [[윤세아]]가 소속되어 있다.] 스타캠프 202와 전속계약을 체결했음이 밝혀졌다.
- 최성준 (법조인) . . . . 2회 일치
최성준은 1957년 7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86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1989년 3월 서울형사지방법원 1990년 9월 제주지방법원 1992년 8월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를 거쳐 1994년 법원행정처 송무국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가 1995년 3월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98년에 특허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이후 2000년 2월 수원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계속하였으며 2005년 2월 특허법원 고등부장판사, 2006년 8월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 고등부장판사, 2010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수석부 부장판사를 하였으며 2009년 3월에는 2년 임기의 지적재산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2년 2월에 장인어른인 [[김용철 (1924년)|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1973년부터 2년간 법원장으로 근무한 춘천지방법원에서 제44대 춘천지방법원장 겸 제42대 강원도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도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명심보감 성심 편의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 든 반구저기(反求諸己)니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법관을 단순히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고급 간부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국민을 심판하는 권한만 있다"며 "국민으로부터 받은 법관의 권한은 재판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목적이 특정된 만큼 취지에 맞게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취임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2/16/0200000000AKR20120216185000062.HTML]</ref>로 시작한 법원장을 재임하여 임기 2년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돌아와 재판 실무를 담당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2014년 4월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방송통신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양헌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인 최기준과 법무법인 양헌에서 공동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는 최경준이 동생이다.
- 최수진 (성우) . . . . 2회 일치
* [[모래와 안개의 집]] ([[MBC]]) - 케시([[제니퍼 코널리]])
* [와호장룡]- 장쯔이
- 최윤 (소설가) . . . . 2회 일치
본명은 최현무(崔賢茂)이며, 1953년 7월 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여고 졸업 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1978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프로방스대학교에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ref> 1988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을 다룬 중편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문학과 사회》에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등단했다. 최윤의 소설은 언제나 사회와 역사, 이데올로기 등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룬다.<ref>{{두피디아|101013000712678|최윤}}</ref>
- 최재환(배우) . . . . 2회 일치
|| [[아기와 나(한국 영화)|아기와 나]] || 춘성 || ||
- 최정원(1981년 4월) . . . . 2회 일치
사진찍히는 것을 무지 좋아하는지 자신의 미니홈피에 거의 화보집 수준의 사진들을 올려놓았다. 가본 곳도 많다. 호주, 야구장, 와인창고 등등...
* 2017년 [[발칙한 동거 - 빈방 있음]][* 22~25회(2017년 12월 15일~2018년 1월 12일), 31~33회(2018년 3월 2일~2018년 3월 23일).]에 [[김승수]]와 출연하였다.~~분위기는 [[우결]](...)이었다.~~
- 최제훈 . . . . 2회 일치
'''최제훈'''([[1973년]]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73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 제7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 최태영 . . . . 2회 일치
'''최태영'''(崔泰永, [[1900년]] [[3월 28일]] ~ [[200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이다. 한국인 최초로 [[1925년]]에 법학 정교수가 되어 한국 근대 법학의 초기에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상법·민법·헌법·국제법·행정법·법제사·법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법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다.
[[고대사]] 연구에도 관심을 가져, [[단군]]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하였다. {{출처|날짜=2014-2-3|《[[삼국유사]]》의 ‘[[환인]](桓因)’은 ‘[[환국 (의사 역사학)|환국]](桓國)’의 조작이라는 주장을 통해 잘 알려졌다.}} [[1989년]]에는 《한국 상고사 입문》을 출간하였는데, 이 책이 [[이병도]]와 공저한 것이라 주장하였으나 정작 해당 책에는 이병도가 저술한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90세 이상의 고령일 때도 활발한 저작 활동을 펼쳤다.
- 최한경 . . . . 2회 일치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에서 활동했다. 1993년 삼성이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로 침체기였던 때에 홀연히 등장했다 사라진 비운의 투수. 별명은 '그라운드의 흑곰', '제2의 [[김상엽|만딩고]]'. 특히 만딩고라는 별명을 가졌던 팀 선배 [[김상엽]]과는 까무잡잡했던 얼굴과 속구를 던지던 것 때문에 많이 매치가 되곤 했었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시절에는 투타 만능에 빠른 공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졸업 후인 1993년 삼성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 12경기에 나와 2.8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으나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 최항석 . . . . 2회 일치
[[1981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M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그 후 [[1986년]] [[영화]] 《입을 연 석류》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이후 [[문화방송|MBC]], [[KBS]], [[SBS]], [[EBS]]의 공중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그는 [[2002년]] [[MBC]] [[텔레비전 드라마]] 《[[리멤버 (드라마)|리멤버]]》의 오 주임 역과 [[2002년]] [[SBS]]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의 임동호 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2002년]] [[MBC]] [[시트콤]] 《[[연인들 (시트콤)|연인들]]》에서는 극중에서 [[연극]] [[배우]]인 [[김형자]]와 함께 [[배우]]와 [[연출가]]들의 사이로서의 호흡을 오래도록 동반한 [[연극]] [[연출가]] 최항석 역, 연극연출가 이주헌 역, 연극연출가 김세호 역으로 각각 몇회간을 단역하였다.
- 최호중 . . . . 2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1956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주유엔 유럽사무소 및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제네바대표부]] 공사, 말레이시아·[[주 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벨기에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84년]] 상공부 차관을 지낸 뒤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등을 거쳐 [[1988년]] 12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 합의 의정서에 서명, 북방외교의 첫 성과를 대외에 알렸다. [[1990년]] 9월 30일 유엔에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재임 중 동구권 국가를 비롯해 18개국과 수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1990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당시 남북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잇단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이후 통일원 통일고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한국외교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 카미마치 . . . . 2회 일치
카미마치란, [[가출]]이나 기타 이유로 주거가 정해지지 않은 젊은 여성이 인터넷의 가출 사이트나 프로필 사이트를 사용하여, 숙박할 장소와 식사를 제공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이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사람을 '카미'='신'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카미마치란 단어를 쓰게 됐다. 다만 대가로서 뭔가를 요구하는 사람은 카미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원조교제]]와는 달리 일단 명목상으로는 성관계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 칼 루이스 . . . . 2회 일치
[[미국]] 의 유상선수. 단거리와 멀리뛰기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빠른 남자의 대표자. 육상 선수로서 칼 루이스의 명성은 21세기 초의 [[우사인 볼트]]와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캡콤 스포츠 클럽 . . . . 2회 일치
세가지의 게임 다 룰을 간략화 시키고, 조작도 단순하게 만들어서 머리 식히고 즐기기에는 최적이다. 다만 테니스의 경우에는 축구, 농구와는 달리 난이도가 죽여준다. 그런데 스포츠 게임이 잼병인 플레이어라면 답이 없다.(...) 세가지 종목을 전부 클리어하면 엔딩이 나온다.
또한 [[타임릴리즈]] 방식을 채용해[*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임릴리즈가 아니다. 코인이 1997개 들어가면 해금되는 방식. 성공하면 타이틀 화면에 멜로디와 강아지가 등장한다.] 나중에 보스[* 스타(축구), 골든 USA(농구), 멜로디(테니스).]들도 선택이 가능해진다. 보스들의 성능은 그야말로 최강.
- 캡틴 아메리카 . . . . 2회 일치
[[애국]] [[슈퍼히어로]]의 대표주자.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진 영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활동해왔으며 이후 세월이 지나 [[어벤저스]]에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 오해받기 쉬우나 서브컬처에서 나오는 비틀린 애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 다만 캡틴 아메리카에 모티브를 둔 캐릭터들 중에는 비틀린 애국자 캐릭터가 있다.
- 캡틴 코만도 . . . . 2회 일치
캡틴 코만도 코믹스에서는 대기업 사장이라는 배트맨틱한 설정을 가지고 있고, 쇼(닌자 코만도)와는 한대 수행동기였다고 한다.
미라 모습의 사나이. 두 자루의 나이프를 쓴다. 본 게임의 최고급 캐릭터. 기본 공격력은 약하나 긴 리치와 빠른 공속 덕에 안정감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메가크래시도 남다른데 다른 캐릭터들이 시전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것과 달리 쓰면서 이동이 가능하다.
- 캥거루 . . . . 2회 일치
[[호주]]의 상징 동물. 호주와 관련된 것에서 자주 등장한다. 콴타스 항공, 호주 공군, 그 외 등등.
호주(Australia)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오스트리아]](Austria)에 캥거루가 산다는게 드립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씩 오스트리아 동물원에서 캥거루가 탈출한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2회 일치
하지만 로마노프는 다른 생각을 품고있었다. 대서양에서 소련군 함선이 질주하는게 목격되었으며, 미국이 소련에 심어둔 첩보원들은 실종되거나 KGB 요원들과 함께 일하는게 목격되었다. 미국은 로마노프 근처에서 보이던 유리라는 남자가 미국의 첩보망을 와해시킨 장본인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북미방공사령부가 소련군의 대부대를 감지한다. 소련군 함대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오고 있었으며 소련의 지상군은 멕시코를 통해 북상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에대한 보복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했지만 유리가 미사일 사일로 장교를 세뇌시키며 실패한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뉴욕,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와 같은 미국 땅에 소련군이 상륙하기 시작한다.
- 컬트 종교 . . . . 2회 일치
* [[마인드 컨트롤]], [[세뇌]]와 같은 심리적 기법으로 신도의 의지를 꺽고 다수의 신도를 지도부의 명령에 따르도록 조종하여, 일반 사회와 유리된 가치관을 가지게 만든다.
- 코나시 . . . . 2회 일치
*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아그배]]'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배와 비슷하지만 작다고 하여 아그배라고 부르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배(梨,나시)와 비슷하지만 작다고 하여 작은 배(小梨, 코나시)라고 하는 듯. 근데 사진 보면 별로 안 닮았다.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2회 일치
1942년 9월 12일, [[독일]] 잠수함 U-156이 [[영국]] 병력수송선 라코니아(Laconia)를 격침시킨다. 징발된 민간 여객선이었던 이 선박에는 영국 군인, [[자유 폴란드군]] 군인, 이탈리아군 포로들이 타고있었다. U-156은 구조 지원을 요청한다. 코만단테 카펠리니는 구조를 위해 이동한다. 카펠리니는 15일에 현장에 도착, U-156, U-506, U-507과 함께 생존자들을 주렁주렁 태우고, 구명보트를 끌며 구조작업을 돕는다. 그와중에 [[미육군항공대]] 소속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에게 공격당했고, 이에 잠수함들은 견인하던 구명보트 줄을 끊고 잠항해버린다.
이탈리아 항복 다음날, [[일본군]]은 아퀼라 III의 승무원들을 포로수용소에 던져넣고 아퀼라 III를 독일에 넘겼다. 독일은 아퀼라 III를 UIT-24라는 이름으로 편입시켰다. 협조적인 이탈리아 승무원을 태운 UIT-24는 보르도로 돌아오기 위한 항해를 떠났으나 중간에 연료 보급을 해줄 [[유조선]]이 영국군 구축함에 잡혀 자침당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후 동남아와 일본 본토를 왕복하며 보급 임무를 수행한다.
- 코미디언(왓치맨) . . . . 2회 일치
한편으로는 예상 외의 모습을 보인다. 1966년 캡틴 메트로폴리스가 크라임 버스터즈라는 히어로 조직을 창설하려하자 "늙어서도 카우보이와 인디언 놀이를 하고 싶은"거라고 돌직구를 날리면서 [[냉전|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건 쓸모 없다고 씹는다. 임신한 현지처를 살해한 후에도 닥터 맨해튼이 이를 비판하자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녀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을 언급하면서 그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역으로 깠다.
사실 그가 해왔던 망나니짓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미러링~~패러디였다. 이는 로어셰크와 닥터 맨해튼의 독백에서 암시된다.
- 콩조림 . . . . 2회 일치
콩조림은 소스와 함께 콩을 삶아낸 요리다. 베이크드 빈즈(Baked beans)라고도 부르는데, 'Baked'에서 연상되는 '굽는다'라는 이미지와 달리 조림에 가깝다. 콩이 재배되는 거의 대부분의 지방에서 존재하는 요리 방식으로 대한민국에선 콩자반이라고도 부르는 콩조림 요리가 있다.
- 쿨 비즈 . . . . 2회 일치
쿨 비즈란, 여름 실내 온도를 28도로 설정하여 [[냉방]]을 억제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한편, 28도의 온도에서도 시원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여름에는 [[넥타이]]와 [[재킷]]을 벗고 반팔 와이셔츠 차림으로 활동하자는 비즈니스 모델 제안이다.
- 키모이 . . . . 2회 일치
기분나쁘다(気持ち悪い,'''키모'''치와루'''이''')를 생략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 비슷한 말로 『키쇼이(きしょい)』가 있는데, 이는 기색이 나쁘다(気色悪い,'''키쇼'''쿠 와루'''이''')를 생략한 것으로서, 키모이보다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킹덤/501화 . . . . 2회 일치
* 오르도의 목표는 진나라와의 전투에 이목이 쏠려있는 조나라 침공.
>이목, 나와도 조금 놀지 않겠나.
- 킹덤/502화 . . . . 2회 일치
대신 각 부대 지휘관을 찾는 전령이 분주하다. 비신대도 [[이신]]을 찾는 전령이 도착한다. 총대장 [[왕전(킹덤)|왕전]] 명의로 당장 총대장 막사로 집합하라는 것. 사정을 이미 알고 있는 이신은 [[하료초]]와 눈빛을 교환한 후 왕전의 막사로 향한다.
* 이신, 왕분, 몽념은 셋이 모여서 조금 늦게 천막을 빠져나간다. 이신은 비신대에 이 사실을 전하면 노발대발하며 꿈지럭거릴 거라고 투덜댄다. 몽념은 어차피 밤이라 목적지를 밝히지 않으면 잘 모를 테니 끝까지 말 안 할 거라고 한다. 그런 문제와 별개로, 이들은 진짜 작전의 시작을 즐거워한다.
- 킹덤/504화 . . . . 2회 일치
하료초와 [[이신(킹덤)|이신]]은 같은 생각을 한다. [[창평군]]이 작전 전 이신, [[몽염]], [[왕분]]을 따로 불러 당부한 것이다.
이후에도 조군의 소규모 부대와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지만 왕전은 그때마다 별동대를 차출해 대응하였고 본대의 행군은 조금도 늦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순조로운 행군 소식은 진의 수도 함양에도 전달된다.
- 킹덤/530화 . . . . 2회 일치
* 기수는 새로운 적이 전장에 나타나자 마자 보고를 받았다. 전령이 동쪽 측면에서 적의 새로운 기마대 출현을 알렸다. 숫자는 약 600에서 1천. 기수와 부장들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이 상황에서 1천의 기마 추가. 수뇌부는 낙담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건 두 번째 보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새로 나타난 적의 정체는 비신대. 그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전령이 도착했다. 비신대의 1진 돌파. 기수와 그 부관들은 모두 흑양에서 비신대의 위력을 실감했고 그래서 신의 조치는 큰 효과를 봤다. 부관들은 하나같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술렁거렸지만 누구하나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한 채 기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기수도 기수대로 고민에 빠졌다. 흑양의 악연이 필살의 기동대가 되어 자기 목을 치러 오고 있다. 모두 [[왕전(킹덤)|왕전]]의 포석이다. 그러나 이 치가 떨리는 함정 속에서도 이점은 있었다. 적어도 적의 힘을 오판할 여지는 없다는 것.
- 킹덤/534화 . . . . 2회 일치
* 기수의 본대가 움직이는걸 확인한 몽념은 자신과 낙화대를 방패막으로 세워 기수와 맞상대로 하기로 한다. 여기까진 사전에 예측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과연 이 마지막 힘싸움을 버텨낼지 확신은 여전히 없었다.
명색히 몽념과 대장군 자리를 겨루는 입장이면서 여전히 몽념의 전술안을 따라가지 못한다. 비신대를 이끌고 진군 우측을 점거한 건 좋았지만 몽념이 내린 지시를 이해 못 해 마정이 처들어왔을 땐 일기토까지 할 작정이었다. 다행히 강외가 작전을 잘 설명해준 덕에 적절한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후반에 힘겨루기 국면으로 넘어가자 잘 버텼다. 몽념이 기수 본대와 격돌하고 의식을 잃었을 무렵에도 잘 싸우고 있었고 조군이 물러날 때까지 제대로 전선을 지켜냈다. 몽념이 쓰러져 있는걸 발견해 데리고 왔다.
- 타타리 . . . . 2회 일치
[[일본]]의 오컬트 용어. 한국에서 말하는 '탈이 난다.', '동티가 난다'와 유사하다.
노로이와 타타리의 차이점은, 타타리는 신불이나 요괴에 의한 처벌 등 재난 발생이 예견되고 불가피한 경우를 뜻하며, 노로이는 어떤 주체가 저주를 하는 행위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념이 겹치는 경우도 많다.
- 타히 . . . . 2회 일치
[[일본어]] 속어의 하나. 죽을 사(死)를 [[가타카나]]의 타(タ)와 히(ヒ)로 나눠서 쓴 것이다. 죽을 사 자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 탈북자 망명정부 . . . . 2회 일치
* 북한은 유엔회원국으로서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어, 망명정부는 이해와 동정은 구할 수 있어도 정통성과 정당성을 인정받거나 실질적인 외교활동을 하기는 어렵다.
* 대한민국의 영토조항, 자유통일을 갈망하는 국민정서로 볼 때, 북한망명정부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 탐라국 여왕 . . . . 2회 일치
탐라국 여왕 설화는 부산과 제주도의 역사, 지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 부산 영도에서 아씨당이 세워져 숭배된 것은, 영도와 제주도의 교류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 태의경 . . . . 2회 일치
* [[3시와 5시 사이|태의경의 3시와 5시 사이]] ([[KBS 제2FM|KBS 2FM]])
- 텐프레 . . . . 2회 일치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영어에서의 템플릿(Templet, Templete)은 어떠한 판형을 의미하며, IT쪽에서는 좁게는 플로우차트에서 넓게보면 프로젝트 관리상까지 포함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관습 및 서식화된 표준을, 디자인에서는 일반화된 패턴과 믹스[* 글렌체크라든가 스프라이트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본의 속어로는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텐프로]]와는 무관.
- 토리코(토리코) . . . . 2회 일치
[[미식가(토리코)|미식가]]이며, 젊은 나이임에도 업계의 [[카리스마]]라 불리는 거물이다. 그만큼 굉장한 실력을 가진 강자. 요리사 [[코마츠]]와 콤비가 되어 다양한 모험을 한다.
[[IGO]]의 회장인 [[이치류]]의 밑에서 성장했으며 함께 성장해온 [[코코(토리코)|코코]], [[써니(토리코)|써니]], [[제브라(토리코)|제브라]]와는 [[IGO 사천왕]]이다. 라이벌은 [[미식회]]의 [[스타쥰]].
- 토리코/359화 . . . . 2회 일치
* 이치류는 왕의 자질을 가진 숙주로 아카시아, 지로와 비교해서도 최고의 식욕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돈 슬라임은 그 자질을 개발하라고 끊임없이 권하지만 항상 소박하고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식재만을 먹으며 귀 기울이지 않았다
* 지금까지 등장했던 구르메 세포의 악마들은 하나같이 음험하거나 음모를 꾸미는 이미지였는데, 돈슬라임은 이치류와 인간적인 우정을 과시해서 단숨에 호감형 캐릭터가 됐다.
- 토리코/361화 . . . . 2회 일치
* 제브라의 구루메세포 악마는 '''"보이스데빌"''' 엄청난 소리와 완력으로 여러개의 행성을 파괴 했다고 함
* 토리코와 스타쥰이 쌍둥이였다는 전개가 너무 뜬금없다는 비판이 많다.
- 토리코/365화 . . . . 2회 일치
블루 니트로와 대치하고 있던 [[지로"지로(토리코)"]]는 압도적인 힘으로 블루 니트로를 제압한다.
* 지로가 낭왕 기네스와 관련되었을 거란 떡밥이 완전히 회수됐다.
- 토리코/367화 . . . . 2회 일치
* 지로의 단말마는 전지구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백 채널 안에 있는 죠아와 미도라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 블루 니트로는 자기들의 전체 계획을 네오, 아카시아와 공유하고 있는게 아니었다.
- 토리코/368화 . . . . 2회 일치
* 이것은 마치 구르메계로 오기 전, 치치의 집에서 "풀코스의 냄새가 묻은 사과"를 보았을 때와 같은 반응이다.
* 그 시각 죠아와 싸우고 있던 미도라는 산산히 조각나고 저며져 있다.
- 토리코/372화 . . . . 2회 일치
* 제브라는 이 와중에 오오타케에게 보이스 배리어를 둘러주고 지난 화 지지에게서 전수받은 GOD의 조리법을 전달한다.
* 코코도 이런 말을 위해 모아두고 있었다며 순도 100%의 데빌 포이즌을 뱉는데, 이 독의 냄새를 맡고 어디선가 그린패치가 날아와 합류한다.[* 지효성 독으로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독이다.--마약이냐-- 그린패치가 쿠킹페스티벌 때 이 독을 먹고 중독되었었다. 이 또한 써니의 사탄 보밋과 함께 설명된 적이 있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2회 일치
오와리(尾張) 국 출신. 아버지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로 [[아시가루]](足軽) 신분이었던 키노시타 야에몬(木下弥右衛門)으로 알려져 있다. 아명은 히요시마루(日吉丸), 초명은 키노시타 토우키치로(木下藤吉郎).
* 말년에 얻은 자식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총애하였다. 어린 나이의 히데요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무리수를 썼고, 그 때문에 오히려 토요토미 정권의 기반을 악화시켜 히데요리는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망하고 토요토미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고 평가된다. 손녀 [[김혜수]]
- 토탈워 시리즈 . . . . 2회 일치
턴제 대전략과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을 잘 융합하였다. 플레이어는 세계지도를 보며 턴제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아군 군대와 적군 군대가 조우해 전투가 벌어지면 플레이어는 실시간으로 아군 군대를 지휘하게된다. 자동 전투 방식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쇼군 2부터 이새끼들이 고어 DLC를 팔고있다. 돈을 내면 팔다리와 머리통, 내장이 나뒹구는 것을 볼 수 있다. 살 수 밖에 없잖아 ㅅㅂ.
- 퇴계 이황 . . . . 2회 일치
[[화담 서경덕]] 학파와 대립하였는데, 서경덕의 제자 남언경(南彦經)이 무의(無意)와 무욕(無欲)으로 담일청명(湛一淸明)에 이르고자 하였을 때, 이를 불교식 수행법이라고 비판하였다.[* 퇴계전서 중 ‘남시보에 답하다’] 올바른 [[정좌관심|정좌(靜坐)]]는 신비주의적으로 정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갖추는데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계전서 중 ‘김돈서에 답하다’, 퇴계전서 중 ‘이굉중에 답하다’]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 . . 2회 일치
영화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의 속편. 감독은 전작과 동일하게 팀 스토리. [[판타스틱 포]]와 [[닥터 둠]]의 배우도 전작과 동일하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등장한 [[실버 서퍼]]가 등장하며 배우는 더그 존스가 맡았다. 다만 목소리는 로렌스 피시번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갤럭투스]]가 등장했다. 스탠 리도 등장. 리드 리처드와 수 스톰의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명단에 없다고 거절당한다.(...) ~~내가 이 만화 그린 스탠 리라니까!~~
- 페어리 테일/484화 . . . . 2회 일치
* 옛날 검은 천녀와 하얀 천녀와 남자를 놓고 다퉜다는 이야기. 결국 하얀 천녀가 승리하여 영원히 눈이 내리는 땅이 되었다 한다.
- 페어리 테일/496화 . . . . 2회 일치
* 길다트가 갓세레나와 매치업
* 로메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적의 군세와 강함을 보고 겁을 먹는다.
- 페어리 테일/505화 . . . . 2회 일치
* 그때 숨어있던 메이비스가 직접 뛰쳐나와 마카로프를 말린다.
* "동료와 함께 가면 길은 있다. 동료를 믿고 자신을 믿어라. 길드는 가족이며 잊어선 안 된다."
- 페어리 테일/506화 . . . . 2회 일치
나츠와 그레이의 싸움을 멈추는게 누구냐는 의견은 분분했는데 루시 하트필리아와 쥬비아 록서가 합심해서 막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엘자.--엘자 진히로인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로크 . . . . 2회 일치
수송기 제일 뒷부분 구석에 숨어들어간 상태로 시작한다. 빠르게 가면을 쓰고 뛰쳐나와 용병들을 해치우자. 패널을 조작해 수송기 뒷문을 열면 머키 용병들이 막혀있던 곳을 열고 나타난다. 용병들을 쏴죽이며 그대로 직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용병들이 빼곡한 객실이 나온다. 이 객실을 돌파하면 처음 시작했던 곳의 2층이 나오는데 2층에 있는 조작 장치를 건드려서 돈을 사출시키자. 이후 플레이어들도 낙하산 상자에서 낙하산을 하나씩 집은 다음 수송기 뒷문으로 뛰어내린다. 낙하산 없이 뛰어내렸다가는 바로 철장행이니 주의. 착지하고 나면 낙하산은 필요 없으니 내다버리자.
근처에서 사다리를 주워와 다리를 만들어야한다.
- 프리덤 파이터즈 . . . . 2회 일치
[[저스티스 리그]],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크로스오버된 적이 있으며 [[크루세이더즈]]가 등장한 적도 있다.
* [[레드 비]](The Red Bee)[* 위쪽의 레드 비와는 별도의 캐릭터로 추정.]
- 플래시(드라마) . . . . 2회 일치
[[The CW]]에서 방송하는 [[DC 코믹스]] 기반 드라마이며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 주연 드라마다. 동사에서 방송하는 드라마 [[애로우]]의 스핀오프이며 내용이 연계된다. 이는 다른 [[애로우버스]]와도 마찬가지.
과거에 한번 드라마화된 플래시와는 별개의 드라마이나 당시의 배우가 등장하는 등 팬서비스가 있다.
- 하시다 스가코 . . . . 2회 일치
'''하시다 스가코'''({{lang|ja|橋田 壽賀子}}, 1925년 5월 10일 -)는 일본의 [[각본가]]이자 [[극작가]]이다.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오사카부]] [[사카이 시 (오사카 부)|사카이 시]] [[니시 구 (사카이 시)|니시 구]]에서 자랐다. 본명은 이와사키 스가코({{lang|ja|岩崎 壽賀子}})로, 하시다는 결혼 전 성이다.
와세다대학 국문과 입학,전과해서 예술학과(연극)졸업. 92살에 안락사 찬성
- 하이큐/236화 . . . . 2회 일치
* 스코어가 18대 17인 상황에서 [[니시노야 유]]가 코트를 나가고 히나타가 후위로 내려간다. 히나타의 서브. 에치고는 히나타가 후위로 내려갔으니 한숨 돌렸다고 여기지만 그 우시와카를 막아낸 블록 [[츠키시마 케이]]가 전위로 올라온다. 오히려 에치고 본인에겐 힘겨운 상황.
우려한 대로 츠키시마는 들어오자 마자 테라도마리의 스파이크를 막아낸다. 공은 아즈마네의 토스로 [[사와무라 다이치]]의 스파이크로 이어진다. 이것을 마루야마가 리시브. 이번엔 마이코의 스파이크가 작렬하지만 츠키시마가 또 한 번 막아낸다.
- 학동 . . . . 2회 일치
학동보육(学童保育)의 약자. ‘방과후학교’와 비슷한 제도이다.
방과후에 보호자가 귀가할 때까지 아동을 맡아서 돌보면서 적절한 놀이와 활동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아동이 감소하여 빈 교실이 늘어난 초등학교의 빈 교실을 보육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한국진 . . . . 2회 일치
* 《[[미쓰 와이프]]》 (2015년) - 형사 1 역
* 《[[실종느와르 M]]》 (OCN, 2015년)
- 한비야 . . . . 2회 일치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르면서 자신감을 키웠다고 한다. 세계일주 여행의 첫 여행지가 ‘산들의 고향’인 네팔이라는 것만 보아도 한비야의 산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펴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이후 증가한 월드비전의 해외 후원을 바탕으로 구호팀원을 배출하고, WFP(세계식량계획)와 협력을 하기도 하였다.
- 한석명 . . . . 2회 일치
[[한성부]] 출신이다. [[관립한성법어학교]]와 독일협회중학교를 졸업하여 신학문을 익힌 뒤 [[대한제국]] 말기에 내부 소속 통역관으로 임용되었다.
지방 행정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1931년]]에 훈6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1935년을 기준으로 종6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경찰로 근무하던 [[1915년]]과 1928년에 각각 다이쇼대례기념장과 쇼와대례기념장도 받은 바 있다.
- 한성호 . . . . 2회 일치
|종교 = [[개신교]]([[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61993 유재석 FNC와 전속계약, FNC 뜻은?…한성호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ref>
'''한성호'''([[1974년]] [[1월 20일]] ~ )는 [[대한민국]]의 전 가수로, 현재 [[FNC 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 겸 [[대표이사]] [[회장]]이다. 프로필엔, [[1973년]]생이라 나와있지만 한성호 [[FNC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회장]]의 원래 생년월일은 [[FNC 엔터테인먼트]]의 주식 등의 대량소유상황보고서 공시에 표기되어 있는 생년월일 기준으로 [[1974년]] [[1월 20일]]생이다.
- 한운사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작가]].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 [[본명]]은 한간남이다. [[종교]]는 [[불교]]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니만큼 징집 당해 [[학도병]]이 되었다. [[운전병]]을 거쳤으며 해방될때까지 계속 운전병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아로운 3부작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대학을 다니던 때에 방송 극작가가 되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아로운 3부작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승자와 패자' 등을 썼으며 이 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영(1919)|김기영]] 감독이 영화로 연출하기도 했고 후에 TV [[드라마]]로도 나왔다. [[빨간 마후라]]의 시나리오도 한운사가 썼다. 후엔 자전적 에세이 '구름의 역사''를 썼다.
[[http://www2.ktrwa.or.kr/new/?doc=bbs/gnuboard.php&bo_table=han_story|구름의 역사]]와 [[http://www2.ktrwa.or.kr/new/?doc=bbs/gnuboard.php&bo_table=hans_life|인생만유기]]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공식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 한진희(1949) . . . . 2회 일치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남일호]]라는 [[범죄자]] 블랙기업인을, [[문화방송|옆 동네]]의 내일도 승리에서는 천사 그 자체인 자상한 아버지 [[서동천]] 회장님을 연기하는데 이중인격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전 두 캐릭터가 성격이 반대이다. 분명 동일인물이 연기를 하는데도 소름끼칠 정도로 [[서동천|절대 선]]과 [[남일호|절대 악]]으로 분리되어 있다. [[남일호]]가 한 짓을 [[서동천]] 회장님이 알면 참 볼만해질 것이다. 또한 [[남일호]]가 한 짓을, [[금 나와라, 뚝딱!]]의 [[박순상]]이나, [[왔다 장보리]]의 [[이동후]]가 봐도 볼 만해지실 것이다. 참고로 한진희보다 선배급 탤런트인 [[이정길]]도 2015년 즈음에 동시 방영된 내일도 승리의 전작인 이브의 사랑에서는 [[남일호]]처럼 악하게 생긴 악덕 블랙기업인 [[구인수(이브의 사랑)|구인수]] 회장을, 9월 쯤 방영된 [[내 딸 금사월]]에서는 [[서동천]] 회장처럼 인자하게 생기시고, 자상하고, 도덕관이 투철하고 투명한 생각을 가진 [[신지상]] 회장님을 연기한 적이 있다.
* [[금 나와라, 뚝딱!]](MBC, 2013) - [[박순상]] 역
- 한필수 . . . . 2회 일치
이후 한국에 돌아와 봉양읍장, 제천읍장을 역임했다. 재산을 기울여 [[제천고등학교|제천초급중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고 1946년 10월 개교와 함께 초대 교장으로 취임해 [[1948년]]까지 역임했다.
- 한호문 . . . . 2회 일치
할아버지는 [[배천군|배천]][[군수]](白川郡守)를 지냈고 [[증직|증]] 가선대부 [[병조]][[참판]](嘉善大夫 兵曹參判)과 서림군(西林君)에 증직된 한창서(韓昌緖)이고, 아버지는 어모장군 [[충의위]](禦侮將軍 忠義衛)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형판(刑判)을 지내고 사후 [[증직|증]]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贈正憲大夫 議政府左參贊)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과 서원군(西原君)에 추증된 한강(韓綱)이고, 어머니는 우계이씨(羽溪李氏)로 지중추부사 이전(李晉+戈)의 딸이다. 형제로는 한선문, 한의문, 한사문 등과 칠계군 헌민공 [[윤탁연]]의 아들 윤길원에게 출가한 누이가 1명 있다. 그의 형제들은 그의 아버지 한강보다 앞서 사망하였다.<ref>경기도, 《경기금석대관 2》, (경기도 편역, 1987) 한양위 묘갈편</ref>
[[1637년]]에는 도정(都正)으로 그 해에 열리는 무과 정시(武科 庭試)에 좌참찬(左參贊) 이덕형(李德泂), 지사(知事) 변흡(邊潝), 동지(同知) 한명욱(韓明勖) 등과 함께 무과 정시(武科 庭試)의 명관(命官)으로 선발되었다. [[10월 13일]] 그 해의 무과 정시 합격자가 5천 수백명이라서, 본업무와 함께 합격자를 정하느라 보고가 40일이 지체된 것을 대죄하였으나 인조가 이를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13일(정미)자 16번째기사, "출방할 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잘못이 있으므로 대죄한다는 무과 정시 명관인 좌참찬 이덕형 등의 계"</ref> 이후 부총관(副摠管)으로 전직되었다. [[10월 21일]] 전시의 시관으로 논박을 나갔는데, 즉시 왔어야 하는데 궐문이 닫힌뒤 천천히 왔다 하여 추고를 청하는 승지 김휼의 계에 의해, 추고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21일(을묘)자 18번째기사, "전시의 시관인 부총관 한호문을 추고할 것을 청하는 김휼의 계</ref> 그해 [[12월]] [[도총부]] 부총관과 [[훈련원]]도정으로서 [[예조]]의 인사 포폄을 마감하는 좌기(坐起)에 참석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2월 14일(무신)자 2번째기사, "부호관 한호문이 예조의 포폄 좌기에 나아가므로 표신을 내줄 것을 청하는 도총부의 계"</ref> [[12월 16일]] 이를 두고 [[사헌부]]에서 그가 위인이 용렬하다며 반대했지만, [[인조]]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하여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6일(갑진)자 6번째기사, "사헌부의 계에 대해, 정시웅은 체차하고 엄종남은 추고하라는 비답"</ref>
- 핫라인 마이애미 . . . . 2회 일치
자켓을 발견하면 빠른 속도로 달려와서 물어 죽인다. 주먹이 먹히지 않는다.
자켓을 발견하면 다가와서 패죽인다. 총기로만 처리 가능. 총알 몇 발 쯤 맞아도 얼마간은 살아있으니 산탄총으로 쏴버리자. 즉사한다.
- 핫라인 마이애미/등장인물 . . . . 2회 일치
쥐 가면을 쓴 남자. 자켓의 집에 들어와 매춘부를 쏴죽이고 집에 돌아온 자켓 또한 쏴버린다.
챕터 19에서 재등장. 가면쓴 사람들에게 지령을 내리고 있던건 이들이었다. 이들은 국수주의자로, 러시아[* 배경이 1989년 이므로 아직 소련일 때.]와 미국의 외교관계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러시아 마피아들을 습격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있던 것. 이 사실은 퍼즐을 모으고 맞춰야만 드러나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들은 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 허드슨 대학교 . . . . 2회 일치
현재의 뉴욕 주와 뉴저지 주 사이를 흐르는 허드슨 강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이며, 이름에 걸맞게 흔히 뉴욕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냥 그럴듯하게 있을 법한 이름으로 만든 것이므로 이 명칭 자체에는 저작권이 없는 듯 하다.
미국의 범죄 수사극 드라마 Law and Order와 그 스핀오프 시리즈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학'''.
- 헤타레 . . . . 2회 일치
본래 연예인 대기실에서 쓰이던 말로서, 아직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연애인을 뜻하며 한자로 헤타레(屁垂れ)라고 썻다. 오줌싸개(小便垂れ)와 비슷하게 아직 어린애라는 의미가 강했다.
은어로서 쇼와 시대에서 부터 쓰였으며, 간사이 지방에서는 이전부터 일반적으로 쓰였다. 헤이세이 시대 이래로는 TV방송에서 쓰이게 되면서 젊은이들을 시작으로 전국의 일반인들에게 퍼졌다.
- 현실문화사 . . . . 2회 일치
이후 "현실초점"이라는 이름의 계간지를 발간했다. 해당 잡지는 창간호에서 "우리 사회 내부의 무질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욕구 분출과 과격행동들이 빚어낸 민족의 재난을 경계하고 올바른 국가관·가치관을 뿌리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잡지 창간 목적을 밝혔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영] 해당 잡지의 내용은 재야와 [[운동권]]의 논리를 반박하는게 주를 이루었다.
현재도 "현실문화"라는 이름의 출판사가 존재하고 있지만, 해당 출판사는 본 페이지에서 설명되는 잡지 회사와 다른 것으로 보인다.
- 현제명 . . . . 2회 일치
대구 대남국민학교와 [[계성고등학교|계성학교]]를 다녔고, 대구에 있는 제일교회에 들어가 교회 성가대에 입대하여 음악단원이 되었다. 이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음악 교육을 받았고 1923년에 졸업한 후 [[전라북도]] [[전주시|전주]]에서 신흥학교의 음악 교사로 활동했다.
역대 [[음악가]]들 중 친일 행적이 드러나거나 논란이 된 유사 인물로는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와 [[홍난파]] 등이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당장 [[국가(노래)|국가]]를 쓴 놈부터 친일파라니...--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2회 일치
형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불평등'이며, 지배 계층의 '[[명예]]'와 '위신', 어떤 의미에서는 [[인권]]을 보장해주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예기가 쓰여진 [[춘추전국시대]]의 형벌은 신체 부위를 절단하거나 훼손시키는 잔인한 형벌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러한 형벌은 당연히 인간에게 커다란 치욕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형벌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진나라]]의 [[이사]], [[한경제]] 시기의 조조 등이 저자거리에서 처해지는 혹형에 처해진 것, [[한무제]] 시기에 [[사마천]]이 [[궁형]]에 처해진 것이 그 사례이다. 이사와 조조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치욕을 주려는 뜻에서 형벌이 가해진 것으로 보이며, 사마천은 본래 이 같은 상황에서는 자결을 해야 하지만 [[사기]]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궁형을 받아들였다.
- 호시즈나 . . . . 2회 일치
남태평양 지역의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별]] 모양의 [[모래]]. 사실 모래가 아니라, 유공충(有孔虫)이라는 원생동물의 골격이 [[파도]]에 밀려와서 [[퇴적]]된 것이다. 크기는 1밀리미터 미만으로 아주 작지만 자세히 보면 별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등의 몇몇 해변에 호시즈나를 볼 수 있는 해변이 존재한다. 채집은 금지되어 있지만,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 혼활 . . . . 2회 일치
[[연애]]와는 달리 마치 취업을 하는 것처럼 각종 관련 서비스에 가입하여 결혼 상대를 알아보는 것을 가리킨다.
(2) 중매 : 주로 성혼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성혼시에 성과 보수로 성혼료를 수령받는다. 일본 중매 협회와 전국 중매 연합회가 유명하다.
- 홍상수 . . . . 2회 일치
=== 김민희와의 불륜설 ===
2016년 영화배우 [[김민희 (1982년)|김민희]]와 불륜 스캔들이 터졌으며, 열애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 홍서범 . . . . 2회 일치
그 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라디오 DJ로 복귀하면서 wbs 라디오 홍서범의 wbs 가요 TOP 10 DJ와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wbs 라디오 홍서범의 노래 하나 추억 둘 DJ를 진행하였다. [[2006년]]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다재다능한 예능 감각으로 인하여 종합예술인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탤런트 [[강남길]]하고 중학교 동창이다.
* [[LG유플러스]] 국제전화 002 ([[전원주]]와 함께 출연)
- 홍예서 . . . . 2회 일치
* 《[[총리와 나]]》 (2013년, KBS2) - 장은혜 역
* 《역사탐구 과거와의 대화》(2002년, EBS)
- 홍예은 . . . . 2회 일치
* 와이즈캠프닷컴 와이즈캠프 ([[2006년]])
- 홍정욱 . . . . 2회 일치
홍정욱은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http://www.jungheesohn.com/ 손정희](1974년~)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인인 손명원은 [[현대미포조선]], [[쌍용자동차]] 사장을 지낸 전문 경영인으로 정치인 [[정몽준]]의 손윗 동서이다. 처의 증조부는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제2대 의장을 역임한 [[손정도]] 목사이고, 처의 친할아버지는 [[대한민국 해군]] 창군 주역이자 전 국방부 장관인 [[손원일]] 제독이다. 처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前 외무부 장관이다.
손정희는 미국에서 태어나 학교와 직장을 다닌 미국인으로 2008년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했으며, 홍정욱의 세 자녀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 시민권자인 손정희를 따라 [[국적법]]에 의해 미국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다.
- 황경태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7월 19일]]<br>[[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2016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7월 19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대수비로 출전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으나 타석에는 들어서지 못하였다.
- 황병승 . . . . 2회 일치
'''황병승'''([[1970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 제11회 「[[박인환문학상]]」, 2013년 제13회「[[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 《육체쇼와 전집》([[문학과지성사]], 2013)
- 황보관 . . . . 2회 일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에서 데뷔하여, 그 해 [[K리그 영플레이어상|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1994년]] [[8월 6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버팔로]]와의 경기에서 [[K리그 클래식|K리그]] 통산 7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 [[1995년]]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하여 [[1996년]] 팀의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는 등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였다. [[1998년]] 시즌 중 은퇴하였다.
[[2008년]] [[3월 25일]] [[슈에이샤]]에서 발매된 [[비즈니스 점프]]의 증간지 <BJ혼> ([[5월 1일]])에서 연재되는 '[[오이타 트리니타]] 이야기・제로부터 스타트'(원작:기무라 모토히코,작화:미야기 신지)가 [[오이타 트리니타]] 설립에 분주하였던 前 자치성 동료 [[미조하타 히로시]]와 황보관의 교류를 그리고 있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news/2008/0423/20080423101020202000000_5454151980.html 황보관 오이타 총괄 본부장, 일본 만화잡지 주인공 화제]</ref>
- 황석하 . . . . 2회 일치
* 《[[미쓰 와이프]]》 (2015년) - 김 팀장 역
* 《로미오와 줄리엣》 (2013년) - 몬테규 역
- 황선필(1939년) . . . . 2회 일치
| 경력 = 국무총리비서실 공보비서관<br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br />[[문화방송]] 사장
* 1982년 ~ 1986년 :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 황수범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5월 18일]]<br>[[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2011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5월 18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7년]] [[9월 2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첫 선발 승을 기록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1046010&rrf=nv '데뷔 첫 승' 황수범 "너무 오래 걸린 것 같다"] - 조이뉴스24</ref>
- 황연석 . . . . 2회 일치
2004 시즌 [[K리그]]에 처녀 출전하게 된 인천으로 이적한 후 큰 기대를 받았으나 2시즌 간 리그 14경기 출전 1골에 그쳤다. 하지만 [[2004년]] [[대구 FC|대구]]와의 리그 경기에서 기록하였던 오버헤드 킥 골이 한 시즌 간 가장 멋있는 골을 터뜨린 선수에게 주어지는 [[일간스포츠]] 제정 [[키카골]]에 선정되었다.
[[2008년]] 대구와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고양 KB국민은행 축구단|고양 국민은행]]으로 이적하였으며 [[서울 유나이티드 FC|서울 유나이티드]]를 거쳐 선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 황제성(코미디언) . . . . 2회 일치
2018년 8월 30일 [[해피투게더]] 에 [[정성호]]와 함께 출연하여 명불허전의 희극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MBC 레전드 희극인들의 대잔치]
* 복면가왕 21차 경연에서 [[질주본능 사이클맨]]이라는 가명으로 참가했으며 유상무와 신봉선을 비롯한 판정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춤도 정체가 공개되기 전에는 추지 않을 정도로 정체를 완벽하게 숨겼다.
- 황종률 (정치인) . . . . 2회 일치
'''황종률'''(黃鍾律, <small>일본식 이름: </small>光田矗顯, [[1909년]] ~ [[1972년]] [[1월 21일]], [[서울특별시|서울]])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관료 겸 정치인이다.
[[태평양 전쟁]] 종전으로 만주국이 소멸하자 [[미군정]] 지역으로 들어왔다. [[연희대학교]] 교수를 잠시 지내다가, 다시 경제 관료로 복귀했다. 제3공화국에서 [[대한민국 재무부]]와 [[대한민국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71년]]에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비례대표로 제8대 국회의원에 선출되었으나, 국회의원 임기 중 사망하였다.
- 휴전 . . . . 2회 일치
웹스터 영어사전에 의하면, 휴전(Armistice)은 [[라틴어]] armistitium에서 온 말이며 이는 라틴어로 arma(무기, 군사) 와 -stitium(정지) 을 결합한 것이다.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706년이다.[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armistice 참조]
국가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부상자 구출 등의 사유로 임시적, 일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 히게키리 . . . . 2회 일치
[[세이와 겐지]] 일족에 전해졌다는 보도. 히게키리란 수염을 벤다는 뜻인데, 이 칼이 죄인의 목을 베면서 수염까지 함께 베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별로 면도칼 같은게 아니다.
전설에 따르면 오오에산에 살던 오니 [[슈텐동자]]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헤이케 이야기에 따르면, 와타나베노 츠나가 미나모토노 요리미츠의 명을 받아 이 칼을 옮기다가 다리에서 오니를 만나 팔을 베었고, 그 이래로 '오니키리'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계속 히게키리로 불린다.
- 히노쿠니 . . . . 2회 일치
* 2016년 4월 16일에 여배우 [[후지와라 노리카]]가 자신의 [[블로그]]에 쿠마모토의 지진 뉴스에 마음이 아파하면서 이상과 같은 문장을 써서, 쿠마모토 현의 주민들이 [[신]]에게 벌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냐는 비판이 나와 논란이 되었다.[[http://www.asagei.com/excerpt/56724 (참조)]]
-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2회 일치
활동 내용은 범죄와의 싸움이나 재해현장에서 구조 활동 등도 포함되며 심지어 요리 분야에도 히어로가 있는 듯 하다. 이러다보니 활동양상에 따라 히어로들의 전문 분야도 달라져서 빌런 진압 전문, 재해 구조 전문 등 차이가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로부터 각 지구마다 일괄적으로 요청이 오고, 체포 협력이나 인명 구조 등의 공헌을 신고, 전문 기관을 거쳐 조사하고 나서 등급에 해당되는 돈을 받는다.
경찰이나 소방관처럼 국가에서 내는 돈을 받아서 일종의 준 국가 공무원이라 활 수 있으나 흔히 말하는 부업이 가능해 연예인처럼 광고를 찍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일종의 연예인스러운 느낌도 있어서 돈과 인기를 위해 지망하는 사람도 있으며 덕분에 사회에서 히어로를 비판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일단 이러한 부업에 대한 것은 공무로 정해졌을 때에는 일부에서 상당히 다퉜으나 인기와 수요에 의해 무마된 듯 하다.
- 히어로즈 포 하이어 . . . . 2회 일치
히어로 팀이라기보다는 돈 받고 일하는 [[해결사]] 집단에 가깝다. [[루크 케이지]]가 설립했으며 친구인 [[아이언 피스트]]와 동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주요 인물은 루크 케이지와 아이언 피스트이나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있다. [[미스티 나이츠]]가 그런 경우.
- 1000가지 위기의 순간 . . . . 1회 일치
골때리는 죽음이 많다. 캠핑 중 떡치다가 혈관이 눌려 눈이 머는데, [[텐트]] 밖으로 기어나왔더니 [[곰]]이 먹을거 먹으려고 나와있었다던가……. 그 외에도 진짜 위험한 행동을 다루기도 한다.
- 3월의 라이온 . . . . 1회 일치
[[영 애니멀]] 연재작. 작가는 [[허니와 클로버]]로 유명한 [[우미노 치카]].
- 3월의 라이온/119화 . . . . 1회 일치
* 키리야마 레이가 해설을 맡게 되는데 카와모토 자매는 일하는 키리야마가 낯설다
- 5분의 3 조항 . . . . 1회 일치
그리고 이 조항에서는 흑인들의 머릿수를 남부 주의 인구수로 합산함으로서 남부 측이 명백하게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남부의 백인들이 자신들이 노예로 부리는 흑인들의 투표권을 강탈해와서 자기들이 '대리투표'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이는 남부주에서 '''흑인들의 정치적 권리까지 노예화'''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 AC-130 . . . . 1회 일치
미국 게임인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에 등장한다.
- COCOM . . . . 1회 일치
1949년 11월, [[자본주의]] 국가들 측에서 공산권 진영에 대한 수출 통제기구로서 출범한 위원회이다. [[미국]]의 주장에 따라서 설립되었으며, 공산권에 대한 전략 물자와 기술 수출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였다. [[파리]]에 본부를 뒀다.
- Crusader Kings 2/궁정 . . . . 1회 일치
음모와 책략을 담당하는 비공식 직책. 자신의 음모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태준다.
- DC 코믹스 . . . . 1회 일치
[[마블 코믹스]]와 미국 코믹스 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회사이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그린 랜턴]],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도 DC의 히어로이며 이러한 영웅들의 팀인 저스티스 리그가 유명하다.
- DC 확장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애로우버스]]라 불리는 드라마 유니버스와는 '''연계되지 않으며''' 또 다른 드라마인 [[파워리스]]도 배경 세계가 연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슈퍼맨이 지구에 오기 이전 시기의 크립톤 행성이 배경이라는 드라마 크립톤도 배경 세계가 공유되는지 확실하지 않다.
- DQN . . . . 1회 일치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목격! 도큥(目撃!ドキュン)』에서 나와서 퍼진 단어. 이른바 [[불량배]]나 [[양키]]라 불리는 사람을 다룬 채널로서, 그들을 「도큥(ドキュン)」이라고 불렀다. [[2채널]]에서 도큥을 「DQN」이라고 표현하여 지금과 같은 표기가 되었다.
- EM 드라이브 . . . . 1회 일치
원불 형태의 밀폐형 챔버에 빛 입자와 극초단파(마이크로웨이브)를 쏘면, 원뿔의 넓은 쪽으로 튕겨 흐르면서 추력이 발생한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당초는 [[상온핵융합]] 같은 여러 황당한 가짜 발명 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겨졌으나, NASA의 연구 결과, EM 드라이브는 [[진공]]에서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 FrontPage . . . . 1회 일치
- 향후 창작 위키는 NTX 위키와는 별도로 분리되어 이동될 수 있다.
- GHQ . . . . 1회 일치
GHQ 통치 시기는 직접적인 군정이 아니라, GHQ의 지시를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시행하는 간접군정 방식이었다. GHQ의 영향력은 경제, 문화, 정치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미쳤는데, 정치적 측면에서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이 개정되었으며, 지방자치와 선거제도가 개혁되었다. 교육, 문화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켰으며, 경제 개혁으로 [[재벌]]이 해체되었고, [[농지개혁]]으로 농촌의 [[지주]] 계급이 해체되었다.
- House of the Rising Sun . . . . 1회 일치
여러 가수들이 부른 노래. [[도박사]] 아버지와 [[재단사]]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화자가 [[뉴올리언스]]에 있는 [[교도소]]로 이송되며 부르는 노래다.
- KY . . . . 1회 일치
"분위기를 읽어라."는 의미. 속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속어인 '눈새'('''눈'''치없는 '''새'''끼)와 유사한 데가 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K리그의 승강제가 도입된 2013시즌부터 적용된 공식경기이며 리그 외 대회의 성격을 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나온 기록은 클래식-챌린지 어느 쪽에도 기록되지 않는 대회이기도 하다. 이 승강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는 차기 [[K리그 클래식]]에 등록되고, 패자는 [[K리그 챌린지]]에 등록된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회 일치
세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이며, 2015 [[K리그 클래식]] 최종 11위였던 [[부산 아이파크]]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의 최종승자였던 [[수원 FC]]가 K리그 클래식 마지막 티켓을 두고 벌인 대회였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1회 일치
|| 경기장 ||<-3><:>안산 와스타디움||
- MoniWiki/HotKeys . . . . 1회 일치
||E 또는 W||action=edit ||[[Icon(edit)]] 메모지와 펜||
- NTX . . . . 1회 일치
* 채팅 : 언제나 일부 멤버가 모여서 채팅하는 곳. 새벽에는 사람이 없다. 밑에는 한줄글 게시판과 별도로 돌아가는 한줄글이 있는데 운세제비와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다.
- NavigationMacro . . . . 1회 일치
문서를 하나 만들어서, 총알 리스트를 만들고, 총알리스트 각 아이템 맨 앞에 링크와 함께 설명을 쓰면, 해당 문서의 총알리스트에 나열된 링크를 바탕으로 네비게이션 링크를 만들어줍니다.
- T.O. 모로우 . . . . 1회 일치
[[프로페서 아이보]]와 함께 안드로이드인 [[투모로우 우먼]]을 만들기도 했으며 이 투모로우 우먼을 이용해 [[저스티스 리그]]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 TPO . . . . 1회 일치
때와 장소, 경우에 따라서 복장, 행동, 말씨 등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TableOfContentsMacro . . . . 1회 일치
TableOfContentsMacro를 페이지의 상단에 {{{[[TableOfContents]]}}} 와 같이 넣으면,
- USS 뷰캐넌 . . . . 1회 일치
채리엇 작전의 목표는 프랑스의 도시 생나제르에 위치한 대형 건선거, "노르망디 독"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에서 캠벨타운의 역할은 폭뢰를 싣고 수문에 돌격, 수문을 폭파시키는 임무였다. 캠벨타운은 이 작전을 위해 개조되었다. 4문의 4인치 함포는 12파운드 함포와 20mm 기관포로 교체되었고, 독일 어뢰정처럼 보이기 위해 연돌 두개를 제거하였다.
- Victoria II/군사와 전투 . . . . 1회 일치
[[Victoria II]]의 군사와 전투를 소개하는 페이지.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 . . . . 1회 일치
* Work Control and Hierarchy(작업 관리와 계층제)
- World Of Guns: Gun Disassembly . . . . 1회 일치
해금된 총기(외 잡것)들로 할 수 있는건 아래와 같다.
- weeaboo . . . . 1회 일치
[[일빠]] + [[덕후]]. [[일본]]이나 일본 문화, 일본 애니에 과도한 집착을 가진 사람. 일상 생활에서 일본어를 가끔 쓰며 일본인처럼 행동한다. 만화 코너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한 말로 [[와패니즈]](wapanese)가 있다.
- ℃-ute . . . . 1회 일치
* [[하기와라 마이]](萩原舞) : 1996년 2월 7일 생, AB형, 출신지 [[사이타마현]]
- くぁwせdrftgyふじこlp . . . . 1회 일치
여기서 'ふじこ'라는 말만 따와서 '후지코한다(ふじこる)'라고도 쓴다.
- 가석방 . . . . 1회 일치
가석방은 형기가 종료되어 풀려나는 석방과는 다르다. 가석방 일에서 형기종료일까지 기간 동안은 관할경찰서나 보호관찰소의 보호와 감독을 받게 된다. 가석방자는 이 떄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가석방은 취소, 혹은 실효된다.--[[한군두|한감두]]-- 물론 남은 형기를 채워야 하며 당연히 저지른 범죄는 가석방 중에 저지른 것이므로 매우 질이 좋지 않게 본다.
- 가열 . . . . 1회 일치
'매울 가(苛)와 '세찰 렬(烈)'을 써서 가혹하고 격렬한 상태를 이르는 말. 보통 '가열차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으나, 표준어로는 '가열하다'라고 쓰는 게 맞다. ~~그런데 표준어가 더 헷갈리기 딱 좋은데...~~
- 가치제이 . . . . 1회 일치
게임, 오락 등에서 점수와 승패, 플레이 수준에 집착하며, 게임에 매우 '진지'하게 임하는 『진짜』들.
- 가키 . . . . 1회 일치
* 와루가키(ワルガキ)
- 강기웅 . . . . 1회 일치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상 등의 이유로 [[백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백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영입] - 연합뉴스</ref>
- 강세정 . . . . 1회 일치
'''강세정'''(Se Jung Kang, [[1982년]] [[1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전 [[가수]]이자, [[배우]]이다. [[2000년]] [[걸 그룹]] [[파파야 (음악 그룹)|파파야]]로 데뷔하였다. '''고나은'''이라는 예명으로도 활동하였다가 [[2017년]] [[4월 13일]]<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922762 강세정, 열음엔터와 전속계약…본명으로 활동]매일 매일경제2017.04.13 </ref>부터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 강우영 . . . . 1회 일치
제1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1950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대구지검,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61년 법무부 검찰과 과장을 하다가 1961년 서울고검 검사, 1962년 부산지검 부장검사, 1966년 전주지검 차장검사 1968년 서울지검 부장검사 1970년 부산지검 차장검사를 하였으며 1971년에 서울지검 영등포지청장이 되었다. 지청장 임기를 마친 이듬해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대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전주지검 검사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구지검 검사장, 법무부 법무실장을 하는 등 박정희 정부에서 법무부와 검찰 주요 요직을 거쳤다. [[전두환]] 등 신군부 집단에 의해 권력이 장악된 1980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22대 서울지검장을 하고 1981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으로 재직중인 1981년 4월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임기 5년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대법관에 재직중이던 1984년 7월 제6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대법관 퇴임이후인 1987년에는 대한공증협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 강은탁 . . . . 1회 일치
* [[2018년]] [[11월]] 드라마 [[끝까지 사랑]]에 함께 출연중인 배우 [[이영아]]와 [[https://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213&aid=0001069727|공식연애를 인정]]했다.
- 강정길 . . . . 1회 일치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양도로 [[이강돈]]과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였고, 정교한 타격을 선보이는 중거리형 타자였다. [[이정훈 (1963년)|이정훈]], [[이강돈]] 선수와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565 강정길, "삼성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Osen》, 2008년 12월 10일</ref>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지냈다.
- 강화종실 . . . . 1회 일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시기에, [[가톨릭]] 탄압인 신유교난(辛酉敎難)이 일어났는데, 은언군의 처 송씨(宋氏)와 며느리 신씨(申氏)가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드러나서, 1801년 은언군, 송씨, 신씨가 모두 사사되었다.(이들은 손자인 철종이 즉위한 뒤에 신원되었다.)
- 개구리 . . . . 1회 일치
[[올챙이]]가 성장한 동물. 물 속에 사는 올챙이와는 다르게 뭍에서 서식한다.
- 개밥 . . . . 1회 일치
말 그대로 "개가 먹는 밥", 혹은 여기에서 따와서 "개한테나 줄 만큼 맛 없는 밥"이나 그 모습이 영 보기 안 좋은 밥을 뜻한다. 개사료를 개밥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 개인용 웹페이지 저장 서비스 . . . . 1회 일치
웹 아카이브와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웹페이지 하이퍼 링크가 깨지는 경우에 대비해서 만들어져 있다.
- 거유 . . . . 1회 일치
* 거유(巨儒) : 훌륭한 --거대한-- 유학자(儒學者)라는 뜻. 아래와 혼동하면 매우 곤란하다.
- 건담 동물원 . . . . 1회 일치
>그만둬 지뢰와 조짜면 정신붕괴 해버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2화 . . . . 1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42화. '''우마루와 원고제출'''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4화 . . . . 1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4화. '''우마루와 데이트'''
- 검은 조직 . . . . 1회 일치
국제적인 범죄단체로서, [[에도가와 코난|코난]]이 어려지게 만든 원흉이다.
- 경마 . . . . 1회 일치
1174년, [[영국]]의 [[헨리 2세]] 때 현재와 같은 명칭을 쓰는 경마가 나타나게 된다. 중세의 경마는 왕과 귀족들이 즐겼기 때문에 왕의 스포츠(Sports of Kings)로 불렸다. 1780년 현대 경마의 기원이라 불리는 더비 경마가 열렸다.
- 경주시 . . . . 1회 일치
경주시의 캐릭터 관이와 금이
- 고독사 . . . . 1회 일치
고령화, [[핵가족]]화, 도시화로 인한 지역 커뮤니티 단절 등이 고독사가 증가하는 원인으로 여겨진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한신대지진]] 이후에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 붕괴와 경제불황에 따라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 고릴라 보스 . . . . 1회 일치
고릴라의 몸이기에 [[괴력]]을 지니고 있으며 부하들과는 종이와 필기구를 이용해 소통하는 듯.
- 고무장갑 . . . . 1회 일치
[[문자]] 그대로 [[고무]]를 써서 만든 장갑. [[설거지]]와 [[김장]] 등 일상 생활에 쓰는 빨강 고무장갑과 실험 및 의료에 사용되는 고무장갑이 있다.
- 고사기 . . . . 1회 일치
[[일본]]의 역사서. 주로 고대사나 신화가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서기]]와는 미묘하게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 고원희 . . . . 1회 일치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 강서진 역
- 고종(조선) . . . . 1회 일치
여기에 불만을 품은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희대의 병크-- [[갑신정변]]을 일으키게 되고 이로 인해 조선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바람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해 그 당시 조선 조정 내부에서 가장 친일적이었던 급진개화파는 세력이 엄청나게 쪼그라들어 구성원들 모두가 죽거나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에 위협을 느낀 민씨와 고종은 청과 일본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 골든 위크 . . . . 1회 일치
이 시기에 4월 29일 쇼와의 날(昭和の日), 5월 3일 헌법기념일, 5월 4일 녹색의 날(みどりの日, 식목일과 비슷), 5월 5일 어린이 날, 여기에 더해서 5월 1일 노동절이 있으며, 이 사이에 끼인 휴일이나 일요일이 겹친 대체휴일 등이 있어서 대략 1주일 정도의 연휴가 된다.
- 곰둘라 . . . . 1회 일치
마블의 [[괴물]] 캐릭터인 거대 [[미이라]]. 사실은 [[외계인]]이며 지구 정복을 위해 와서 이집트에 살고 있었으나 인간에게 패했다.
- 공산당 지도 원리 . . . . 1회 일치
아랍 사회주의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였는데, 시리아의 경우 시리아 바트당이 2012년 까지 헌법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2012년에 삭제되면서 다당제가 용인된다.--그러나 [[시리아 내전]]이 터져서 유명무실--
- 공의존 . . . . 1회 일치
>공의존이란,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타인의 인정으로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고, 그 때문에 호의를 얻으려고 자기 희생적인 헌신을 무리하게 행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 그 헌신은 결국 타인의 호의, 심지어 그 타인 자신을 컨트롤 하려는 동기와 결부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 행동이 자기 중심적이고 계략적인 것이 되어서 점차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된다. - 카토 아츠시
- 곽승준 . . . . 1회 일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 인수위원을 지내며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비서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 등을 지냈다.
- 구명환 . . . . 1회 일치
2018년 4월 19일 [[수원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즈]]-[[kt 위즈]]전에서 주심을 맡았을 때 경기 중 일부 타자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나타냈고, 판정을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4월 19일 비교적 정확했던 구명환 심판…어떻게 `괴물`이 됐나|url=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8&no=265344|날짜=2018-04-26|출판사=매일경제|확인날짜=2018-04-30}}</ref>
- 구성윤 . . . . 1회 일치
결국 2015년 출장 기회를 찾기 위해 세레소 오사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J2리그]] 소속의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이적 후 삿포로에서 개막전부터 기용[* 여담으로 이는 삿포로의 최연소 골키퍼 데뷔(20세 206일)라고 한다.]되며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하였고, 2016년에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과 [[J1리그]] 승격, 최소 실점 2위(33실점)에 크게 공헌했다. 또 2017년에도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면서 팀의 [[J1리그]] 잔류에 기여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https://twitter.com/Asia_Fball_News/status/937427111991697408|2018년에도 삿포로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삿포로의 붙박이 1선발 골키퍼로 맹활약하고 있다.
- 권수현(배우) . . . . 1회 일치
* 《[[으라차차 와이키키]]》 (2018년, JTBC) - 이준기의 선배 배우 역
- 권영준 (1952년) . . . . 1회 일치
*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대학원 경영학 박사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1회 일치
스크린샷을 찍을 때 사용되는 무기. 증거를 수집하거나 산 피에로 각지의 스냅샷을 찍는데 쓴다. 다른 무기와 달리 "발사"해도 경찰이 신경쓰지 않는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지역 . . . . 1회 일치
이들우드 경계 부근에 옷가게와 체육관이 있다.
- 그린 랜턴 . . . . 1회 일치
그린 랜턴은 [[지구]]의 그린 랜턴과 우주에서 [[외계인]]들이 만든 그린 랜턴이 존재한다. 이들은 특별한 힘을 가진 녹색 반지와 그 반지에서 나오는 녹색 에너지를 이용해 싸우며 이 공통점 외에는 그 기원이 전혀 다르다.
- 그린 애로우 . . . . 1회 일치
배트맨과 유사점을 보이는 캐릭터. 초능력이 없고, 전투실력이 뛰어나며, 특이한 장비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정체인 인물은 이름 있는 부자. 심지어 이전의 그린 애로우는 배트맨의 박쥐 동굴을 의식한 듯한 기지와 배트모빌을 의식한 듯한 애로우카라는 자동차가 있었다.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 [[2008년]]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2008 스타크래프트 부문 4위
- 김근 (고려) . . . . 1회 일치
[[1080년]](문종 34년) [[호부]][[상서]] [[유홍]](柳洪), [[예부]][[시랑]] [[박인량]](朴寅亮) 등과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송나라]]에 갔을 때 그는 [[박인량]]과 함께 시를 지었는데, 그의 시문에 감탄한 송나라 사람들이 직접 그에게 소화집(小華集) 이라는 문집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1086년]](선종 3년) [[예부]][[시랑]]으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이자위(李子威)와 함께 [[성균관]]시(成均館試)를 관장했고, 뒤에 [[국자감 (고려)|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左) 겸 좌간의대부(諫議大夫)에 올랐다. 네 아들 [[김부필]]·[[김부일]]·[[김부식]]·[[김부의]] 모두가 글을 잘하고 관직에 올라 문벌을 형성하였다.
- 김근백(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2004년]] [[1월 1일]], [[최인규(1981)|최인규]]와 함께 [[삼성전자 칸]]으로 [[이적]]했으며, 그 이후 [[스타리그]]에 2회 진출한다.
- 김기섭 (1939년) . . . . 1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아남산업]]에서 근무하다가 삼성계열사로 이직, [[신라호텔]]과 삼성전관 등에서 이사, 상무, 전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김영삼]] [[민주자유당]]의 총재특보로 발탁되었으며, 대선 당시 총재특보와 이미지메이킹 등을 담당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후 [[안기부]]의 기조실장과 운영차장을 역임했다.
- 김동석 . . . . 1회 일치
석방 후에 고향인 선산군 장천면으로 돌아와 양조장을 경영하였다. 한편 장천금융조합장, 김천청년동맹, 금릉학원 등에 몸담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송금, 비밀 잡지 근우(槿友)의 간행 등과 같은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 김문집 . . . . 1회 일치
중학교 때부터 일본에서 수학한 김문집은 일본 문학이론을 수입해 와 한국문학의 전통을 부정하는 친일적인 성향을 초기부터 보였다.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조선문인협회]] 발기인과 간사,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촉탁을 맡는 등 친일 단체에도 가담했다.
- 김민수 (1992년)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5년]] [[4월 21일]]<br>[[수원야구장|수원]]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 김병준(육상) . . . . 1회 일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13초43 한국신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2017 세계육상선수권에도 참가하였다.
- 김봉근(배우) . . . . 1회 일치
* 《[[역사탐구 과거와의 대화]]》([[EBS]])
- 김소혜(1992) . . . . 1회 일치
2015년에 [[내 마음 반짝반짝]] 9회에 천금비([[손은서]] 분)와 말다툼을 하는 혜원 역을 맡았고 이마저도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 김소혜의 인지도는 크게 상승하게 된다!'''
- 김소희 (2000년) . . . . 1회 일치
|[[나와 봄날의 약속]]
- 김승관 . . . . 1회 일치
이후 롯데에서 이런저런 보직을 맡다가, 2017년 시즌 초 타격 부진으로 인해 [[훌리오 프랑코]] 타격코치와 자리를 맞바꿔 1군 타격보조코치로 올라왔다. 시즌 후반기에 메인 타격코치였던 [[김대익]]이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이 바뀌자, 1군 메인 타격코치로 보직 변경됐다. 시즌 막판에는 [[이승엽]]의 사직구장 은퇴 투어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 김승환(배우) . . . . 1회 일치
|| [[2008년]] || SBS 아침연속극 [[며느리와 며느님]] || 오영훈 ||
- 김유미(1979) . . . . 1회 일치
최근 [[정우]]와 교제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16년 1월 12일 [[정우]]가 트위터에서 [[https://twitter.com/jungwoo109/status/687138314466373632|결혼을 발표했다.]] 2016년 12월 15일 첫째를 득녀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449048|#]]
- 김유현 . . . . 1회 일치
'''김유현'''([[1987년]] [[1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배우 김유현은 2015년 6월 7일 대구에서 9살연상 일반인 사업가(건설회사 부사장)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당분간은 신혼생활에 충실할 예정이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7050100050700003393&servicedate=20150704 김유현 결혼, 9살 연상 건설회사 부사장과…'전우치' 등서 청순연기]]</ref>
- 김장섭 . . . . 1회 일치
[[8.15 광복]] 이후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 대검찰청 검사를 거쳐 [[변호사]]를 개업했다.
- 김재권 (철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다트머스 대학교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철학자]][[분류:21세기 철학자]][[분류:심리철학자]][[분류:경암학술상 수상자]][[분류: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분류:노터데임 대학교 교수]][[분류:미시간 대학교 교수]][[분류:브라운 대학교 교수]][[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분류:코넬 대학교 교수]]
- 김정호 (1949년) . . . . 1회 일치
* 1999년 : 청와대 농림해양수산비서관
- 김종덕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6년]]에 입단하였다. [[2018년]] [[9월 7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대수비로만 출전하여 타석에는 들어서지 못했다.
- 김종호(1933) . . . . 1회 일치
게다가 둘 다 '영자'와 결혼했다. 16대 총장 김종호 제독의 부인은 김영자, 17대 총장 김종호 제독의 부인은 신영자.
- 김찬돈 . . . . 1회 일치
1959년에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능인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판사에 임용되었다. 1990년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0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2004년 2월에 부장판사에 승진하여 [[대구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대구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에서 재판장을 하다가 법원장으로 승진하였다.
- 김태훈 (1987년) . . . . 1회 일치
[[200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6년]] 4차 7라운드([[SK 와이번스]])
- 김필곤 . . . . 1회 일치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3월 31일에 모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판자로 가려줘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모텔 종업원에게 항소심에서 "해당 조항에서 처벌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 근거 조항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관리와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일반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7248.html]</ref> 7월 8일에 "지하철에서 장갑을 팔았다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한다"며 강제연행하려는 서울메트로 질서기동팀 소속 공익근무요원을 폭행한 홍모씨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한 피고인을 강제 연행하려 하거나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체포한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의 정당한 직무상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에 대항해 폭행을 가했다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0907080856516671?t=y]</ref> 12월 9일에 비자발급 심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부러 직무를 포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전 영사 황모씨에 대해 "중국 현지 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가 보완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자의적인 비자 발급으로 불법 체류자가 생긴 만큼 죄질이 나쁘지만 그동안 국가에 헌신해 왔고 나태한 마음으로 범행을 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09120911405515959&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2010년 2월 11일에 면허정지 기간에 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되자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차를 몰아야 성립하는데 최씨가 정지처분 통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경찰 당국이 통지를 대신하는 공고를 거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면허 정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002110848419738?t=y]</ref>
- 김하은(1984) . . . . 1회 일치
* [[2004년]] [[KBS2]] 《[[KBS 드라마시티|드라마시티]] - [[그녀가 바퀴벌레와 다른 점]]》
- 김형태(정치인) . . . . 1회 일치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허나 선거 기간부터 과거 [[제수]]씨 [[성폭행]] 미수 의혹으로 곤욕을 치뤘다. 이후 조카에게 사과하는 녹취록이 유포되어서 큰 망신을 당했다. 동생의 아내와 외도를 한 [[라이언 긱스]]를 빗대 '포항긱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하여 당선 직후 출당되어 [[무소속]]으로 지내다가 [[공직선거법]]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169&yy=2013|위반]]으로 2013년 7월 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김혜영(코미디언) . . . . 1회 일치
원래는 코미디언으로 1981년 제1회 M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그녀의 개그공채 동기로는 [[이경규]]와 [[김정렬(코미디언)|김정렬]]등이 있다. 코미디언으로서는 일요일밤의 대행진 시절부터 그 후속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 [[청춘행진곡]]등에 출연했다.
- 김혜옥 . . . . 1회 일치
40대 어느날부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그녀는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녀도 병명을 알지 못하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한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한의원에 찾아가 자신의 병이 가슴속 응어리진 한이 쌓여 생긴 '화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기도와 명상 등을 통해 3년 만에 병을 나았다. 2004년 KBS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천방지축 철부지 할머니를 맡아 인기를 끌어 수십년 무명의 설움을 씻었다. 이후, 드라마·영화에서 명품 연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f name="월간조선"/>
- 깨진 남비에 떼운 뚜껑 . . . . 1회 일치
"짚신에도 짝이 있다."와 비슷한 의미. 어떤 사람에게도 그에 맞는 짝이 있다는 뜻이다.
- 나가 . . . . 1회 일치
이들은 22세 이상의 성인 여성들이 중심인 가문으로 뭉치는데, 이 성인 여성들중 한명을 가주로 한다. 작중에선 가주에 대한 투쟁은 반쯤 전쟁수준으로 묘사되는데,[* 현실의 작위계승 관련을 생각해보면 쉬울듯.] 나이와 딸이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인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듯 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0화 . . . . 1회 일치
* 밀리오에 맞서는 철포옥 핫사이슈는 [[사카기 데이도로]]와 [[네모토 신]]. 둘의 공격하는 사이 오버홀은 다시 지하통로를 빠져나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1회 일치
오버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원 포 올 100%의 여파가 몸에 미치는 순간, 에리가 개성으로 "되돌려"준게 분명하다.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미도리야는 에리의 개성은 "매우 상냥한 개성"이라며 반대로 "돌아가는 이상의 속도로 몸이 상처입는 상태를 유지"하기로 한다. 원 포 올 풀 카울 100%. 미도리야는 힘을 개방하며 에리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8화 . . . . 1회 일치
* 안개를 조작하는 빌런을 발견하고 [[테츠테츠 테츠테츠|테츠테츠]]와 [[켄도 이츠카|켄도]]가 공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9화 . . . . 1회 일치
* [[테츠테츠 테츠테츠|테츠테츠]]와 [[켄도 이츠카|켄도]]는 가스능력자를 상대로 고전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7화 . . . . 1회 일치
* 한편 빌런연합의 아지트에서는 여전히 바쿠고와 대치하고 있다. 어떻게든 큰걸 한 방 터뜨리고 도망치려고 하지만 [[쿠로기리]]의 [[워프]] 능력이 거슬려서 실행을 못하고 있다.
- 나이츠 오브 더 라운드 . . . . 1회 일치
게임에서 점차 경험치를 쌓으면 캐릭터들의 무기와 갑옷이 보다 멋지게 향상된다. 다만 성능은 달라지지 않는다.
- 나폴레옹: 토탈워 . . . . 1회 일치
* [[나폴레옹: 토탈워/연구와 기술]] 페이지 참조.
- 나폴레옹: 토탈워/오스트리아 . . . . 1회 일치
플레이 가능한 대프랑스 동맹 국가들 중 직접적으로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한 채 시작하는 국가이기에 시작부터 전투를 치르게 된다.
- 남성진 . . . . 1회 일치
* 2004년 [[MBC]] 주간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 큰 아들 역
- 남윤정(탤런트) . . . . 1회 일치
* [[2001년]] [[MBC]] 주말연속극 《[[여우와 솜사탕]]》 ... 양양자 역
- 낭만 주먹 . . . . 1회 일치
조직폭력배와 관련된 [[도시전설]]의 일종이다.
- 네타바라시 . . . . 1회 일치
[[네타]]를 폭로하는 행위. [[네타바레]]와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 노 오디너리 패밀리 . . . . 1회 일치
가족 히어로라는 점에서 [[판타스틱 포]]를 연상케하는데 의도한 것인지 주연인 짐 파웰을 맡은 마이클 치클리스는 판타스틱 포 실사영화에 출연했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 것인지 국내에서 방송할 때도 제목이 '판타스틱 패밀리'. 방송사인 ABC도 [[마블 코믹스]]와 연관이 있다. 이외에도 가족 히어로라는 공통점 탓에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떠오르게 한다.
- 노경주 . . . . 1회 일치
* [[역사의 라이벌]] 황진이와 허난설헌 편 황진이 역 (1995년, [[KBS1]])
- 노동기준감독서 . . . . 1회 일치
노동기준감독서 감독관에게는 사법 경찰관으로서 권한이 있어서, 위법하다고 판단한 경우는 시정을 위하여 지도와 조사를 할 수 있고, 악성인 경우는 강제 수사나 체포를 할 수도 있다.
- 노루토끼 . . . . 1회 일치
본래 볼퍼팅어는 크립티드로, 토끼의 몸, 노루의 뿔, 날카로운 이빨에 꿩 날개를 가진 기기묘묘한 생물이라고 한다. 파필로마라는 토끼에게만 걸리는 일종의 피부병 때문에 이러한 환상종을 생각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보통 그려지는 모습은 뿔과 이빨, 날개가 분명하게 묘사되는 탓에 병이 있는 토끼와는 확연히 다른 건강한 매력이 느껴진다. 유사한 생물로 꿩 날개가 없는 [[재칼로프]]가 있다.
- 노무리쉬어 . . . . 1회 일치
* 캐릭터 디자인의 경우, [[지퍼]]와 실버 액세서리가 많이 붙어 있으며 흑색 기조, 현대적인 패션이 많다.
- 노영하 . . . . 1회 일치
* 부인 임명자 씨와 2남을 둠.
- 노인 홈 . . . . 1회 일치
[[양로원]]의 일종. [[노인]]이 거주하기 위한 시설. [[주거]]와 식사제공, 간호제공, 세탁과 청소 등의 가사, 건강 관리 등 일상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개 유료 시설이 많으며 입주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 노해 . . . . 1회 일치
본래 [[유교]]의 영향으로 경로 사상이 강한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말이었으나, 2010년대에는 세대간 갈등이 격화되며 온라인에서는 "틀딱충", "나일리지" 같이 이와 유사한 멸칭이 나타나게 되었다.
- 노현정 . . . . 1회 일치
* [[2003년]] : [[KBS1]] 《[[아침마당]]》 - (박사임 아나운서와 그동기들 출연)출연함. 및 2003 29기 KBS 여자 아나운서 출연
- 노형욱(배우) . . . . 1회 일치
* [[2005년]] [[해태음료]] 써니텐 ([[오윤아]]와 함께 출연)
- 녹색 종이 . . . . 1회 일치
녹색 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위와 같이 [[일본]]의 이혼신고서가 녹색으로 되어 있으므로.
- 뇌파 . . . . 1회 일치
심전도(ECG;Electrocardiogram), 근전도(EMG;Electromyogram)에서 따와서 뇌전도(EEG;Electroencephalogram)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르거의 공적을 기려 뇌파는 '베르거 리듬'이라고도 한다.
- 뉴 워리어즈 . . . . 1회 일치
[[DC 코믹스]]의 [[틴 타이탄스]]처럼 10대 영웅들의 팀인데 실제 틴 타이탄즈의 대박이 뉴 워리어즈 탄생에 영향을 줬다. 10대 히어로 팀이기에 [[어벤저스]]와 달리 젊은 히어로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지구의 [[노바]]도 뉴 워리어즈의 오리지널 멤버였다.
- 니세코이/213화 . . . . 1회 일치
* 라쿠와 친구들은 한동안 주변을 탐문하며 찾아보지만 결국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 니세코이/217화 . . . . 1회 일치
이치죠 라쿠와 히로인들은 텐쿠 고원으로 모인다.
- 니세코이/224화 . . . . 1회 일치
* 치토게는 두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 사건을 설명하는데 마리카의 추측대로 이치죠가 오노데라와 치토게 둘 모두에게 마음이 있다는걸 눈치채지 못했다.
- 니트로글리세린 . . . . 1회 일치
[[화약]]의 일종. 상온에서 액체인 화약으로 폭발력이 대단하지만 지나치게 민감해서 다루기 어렵다. 폭약으로는 흔히 [[규조토]]와 혼합하여 [[다이너마이트]]로 만들어서 쓴다. 소량은 약용 효과가 있어서 [[심장병]] 약으로도 쓰인다.
- 다마시우치 . . . . 1회 일치
상대방을 감쪽같이 속여서 방심하게 하고, 그 틈에 공격한다는 의미. '뒷통수치기'와 비슷한 의미이다.
- 다멘즈 . . . . 1회 일치
2000년에서 2013년 까지 연재된 『다멘즈 워커(だめんず・うぉ〜か〜)』라는 만화가 어원. 주로 몹쓸 남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는 여자들의 체험담을 소개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드라마화도 되었다. 이 만화의 제목은 카도가와 서점에서 발매하는 잡지 『Men's Walker』를 패러디 한 것이기도 하다.
- 다크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 영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은 이 세계에 소속된 영화였으나 현재는 취소되었고, 2017년에 개봉한 미이라가 다크 유니버스의 첫번째 영화가 되었다. 미이라 개봉 후에 공개된 예정 타이틀을 보면 드라큘라를 다크 유니버스에 등장시키려는 생각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다크 유니버스 자체가 취소되는 일이 있기도 해서 먼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나와봐야 알게 생겼다.
- 단기대학 . . . . 1회 일치
미국의 주니어 컬리지, 혹은 커뮤니티 컬리지에 해당하며, 한국에서는 전문대에 해당. 물론 나라마다 특징이 있으므로 세세하게는 차이점이 있다. 비슷하게 전문대학과 비교되는 ‘전문학교’와 ‘단기대학’은 또 다른 것이므로…. 혼란스럽다.
- 단신부임 . . . . 1회 일치
이와는 달리 배우자의 전근에 따라서 가족이 모두 [[이사]]를 반복하는 것을 [[전근족]]이라고 한다.
- 단축 도메인 . . . . 1회 일치
http://goo.gl/ - [[구글]] 운영, 한국에서는 이쪽에서 발행된 스팸이 워낙 많아 정부와 은행에서는 이 주소로 시작하는 주소를 절대 클릭하지 말라고 한다.
- 닭 . . . . 1회 일치
[[소]], [[돼지]]와 함께 대표적인 [[가축]] 중 하나다. [[알]]은 [[달걀프라이]]나 [[삶은 달걀]]이 될 수 있고. 몸뚱아리는 [[치킨]]이나 [[백숙]]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새끼인 [[병아리]] 까지도 [[초등학생]]의 [[노리개]]로 바치는 갸륵한 새다. 닭털은 쓸모가 없는 줄 알았더니 [[http://www.sciencetimes.co.kr/?news=%EB%8B%AD%ED%84%B8%EC%9D%80-%EA%B3%A0%ED%9A%A8%EC%9C%A8-%EC%97%B0%EB%A3%8C-%ED%83%B1%ED%81%AC|수소 저장고]]나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96762|플라스틱의 재료]]로 써먹을 가능성이 보인다.
- 담철곤 . . . . 1회 일치
중학교 3학년 서울에 있는 Seoul Foreign School 로 진학했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를 졸업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SFS에서 만난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에게 10년이 넘는 구애를 한 끝에 결혼했다.
- 대군 . . . . 1회 일치
외교문서에서 '일본국 대군(日本國 大君)'이라는 칭호를 썼다. 이는 명목상의 왕인 '[[덴노]]'와 실권자인 '쇼군'이 따로 존재하는 일본 정치의 특수성을 외부에 얼버무리기 위해 사용한 정치적 술책이다. 어떻게보면 [[외왕내제]]의 일종.
- 대전광역시 . . . . 1회 일치
백제와 신라의 경계였던 계족산성
- 데부센 . . . . 1회 일치
비슷한 말로 통통한 것을 뜻하는 '포챠리(ぽっちゃり)'에서 따온 '포챠리 전문(ぽっちゃり専門)', 생략해서 포챠센(ぽちゃ専)이 있다. 다만, 특별히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데부와 포챠리는 경계선이 사람에 따라서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
- 데부스 . . . . 1회 일치
데부(デブ)와 부스(ブス)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냥 이어버리면 데부부스(デブブス) 겠지만, 부(ブ)가 중복되므로 하나로 생략되면서 완전히 결합된 단어가 된다.
- 돈가스 . . . . 1회 일치
한국인들이 시험 전에 엿먹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시험 전에 돈가스를 먹는다. 이는 돈가스를 뜻하는 トンカツ의 カツ가 승리를 뜻하는 勝つ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
- 동전던지기 . . . . 1회 일치
이와 관련된 [[사기]] [[아이템]]으로는 앞뒤가 똑같은 동전이 있다.
- 딴따라 . . . . 1회 일치
과거 유교적 관습이 남아있던 시대에는 연예인이 그리 좋은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음악을 팔고 웃음을 파는 직업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비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수들의 이야기를 보면 노래를 연습하고 있으니 "너 딴따라 될거야?"라면서 부모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 떠있는 섬 . . . . 1회 일치
* 남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섬]] 역시 이와 유사한 사례이다.
- 런던 . . . . 1회 일치
런던이 본격적으로 번영한건 중세 말기 한자동맹을 주축으로 북해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때인데, 이때 플랑드르와 뤄벡, 유틀란드, 리가등의 북유럽 도시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 런던 맥주 홍수 사건 . . . . 1회 일치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이 있는데, 이 런던 맥주 홍수를 소개하는 글 대부분이 당밀 사건과 혼동해서 당밀 사건 관련 사진을 맥주 홍수 사건 현장으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던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현장에 보인다.)
- 레드 토네이도 . . . . 1회 일치
공기와 바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소용돌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외에 괴력과 내구력을 지니고 있다. 속도도 뛰어나며 자가 수리가 가능하다.
- 레이프 . . . . 1회 일치
[[라틴어]] rapere 에서 왔다. 이 단어는 제압하다, 유괴하다, 뭔가를 강제로 끌고 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게 현재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라틴어에서는 이러한 의미로는 stuprare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였다. 원시 프랑스어(Old French) rapir를 거쳐서, 영국식 프랑스어(Anglo-French) raper 를 거쳐, 중세 영어에서는 rapen, rappen으로 쓰였고, 현대 영어로 rape가 된다. 노르만어, 스웨덴어, 저지 독일어 등에도 유사한 단어가 있어 이들과의 연관관계도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 렉스 루터 . . . . 1회 일치
[[슈퍼맨]]의 대표적인 적. 뛰어난 [[두뇌]]와 [[돈|재력]]이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초능력]] 없는 인간이면서 슈퍼맨을 몇번이나 궁지에 몰아넣은 거물이다.
- 로미오 메일 . . . . 1회 일치
이혼, 이별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애인, 남편, 아내(「전」도 포함)가 보내 오는 메일을 뜻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스스로에게 도취하여, 마치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허세와 도취가 강하게 들어간 문장을 올리고 비웃으면서 노는 것이 이 보고 스레드의 취지로 보인다.
- 로빈 . . . . 1회 일치
[[배트맨]]의 [[사이드킥]]. [[알프레드 페니워스]]와 함께 배트맨의 오랜 동료다. 초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이 가장 유명한 로빈이며 배트맨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 10대 히어로 팀인 [[틴 타이탄스]]에서도 주요 캐릭터다. 그러다보니 현 시점에서는 배트맨의 사이드킥만이 아닌 별도의 히어로 캐릭터이기도 하다.
- 로어셰크 . . . . 1회 일치
16살이 된 코백스는 고아원을 나와 의류공장에서 잡일을 했다. 여자 옷을 만지는 일이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그러던 도중 한 여성이 주문했다가 흉측하다고 받아가지 않은 드레스를 발견한다. 닥터 맨해튼이 만들어낸 흰 바탕에 검은 얼룩 무늬가 끊임없이 바뀌는 드레스였다. 이에 매료된 코백스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그 드레스를 가져가 옷감으로 만든다.
- 롬팩 . . . . 1회 일치
내부에 게임 데이터 세이브를 위한 메모리를 탑재하기도 한다. 주로 긴 시간 플레이를 하는 RPG 게임이 대부분이다. [[건전지]]와 RAM의 조합을 이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RAM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건전지로 전력을 계속 흘려넣어서 보존하는 방식이다.
- 루이토모 . . . . 1회 일치
루이와 토모오 요부(類は友を呼ぶ)에서 나온 말이다.
- 류원기 . . . . 1회 일치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된 윤길자의 남편으로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돕기 위해 검사와 의사에게 뇌물을 수수하는 등 담합 및 횡령 등으로 징역 4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유호윤|제목=‘여대생 청부살해범’ 남편에 징역 4년 6개월 구형|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2783485|날짜=2014-01-04|확인날짜=2016-02-11|뉴스=KBS}}</ref> 1심 재판부에서 횡령 형의만 적용받아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저자=서재근|제목=法, '여대생 청부살해' 영남제분 회장 징역 2년 실형 선고(1보)|url=http://news.tf.co.kr/read/economy/1312481.htm|날짜=2014-02-07|확인날짜=2016-02-11|뉴스=더팩트}}</ref> 2014년 2월 바로 상고했다.<ref>{{뉴스 인용|저자=나혜윤|제목=‘여대생 청부살인’ 주치의·남편 모두 항소 네티즌 “뻔뻔의 극치.. 무기징역도 아까워”|url=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2|날짜=2014-02-11|확인날짜=2016-02-11|뉴스=go발뉴스}}</ref> 구치소에 수감된 채 2심 재판을 받던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선고 공판에 출석했으며, 같은 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여대생 청부살해’ 남편 영남제분 회장, 실형→집행유예 ‘감형’…주치의는 벌금형|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0/2014103002297.html|날짜=2014-10-30|확인날짜=2016-02-11|뉴스=조선일보}}</ref>
- 류자키 레이카 . . . . 1회 일치
만화 에이스를 노려라! 의 등장인물. 별명은 나비부인(お蝶夫人). 처음에는 냉철하고 거만하고 고압적인 성격으로 그려지지만, 주인공 히로미와 테니스 부 선배로서 좋은 라이벌 캐릭터가 되어간다.
- 류한수 . . . . 1회 일치
| 사진설명 = [[2016년 하계 올림픽]] 당시 [[래술 추나예프]]와 경기 중인 류한수(왼쪽)
- 류현경 . . . . 1회 일치
* [[SBS]] 시트콤 《[[도롱뇽 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2012) - 경자 역
- 류효영 . . . . 1회 일치
류효영은 [[2010년 4월]] 제80회 [[전국춘향선발대회]]에 참가해 춘향 진을 수상했으며 이후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동생 [[류화영]] [[유밴드]]과 출연하였고, 이로 인해 김광수 사장의 눈에 띄여 [[류화영]] [[유밴드]]과 함께 코어콘텐츠미디어(현 [[MBK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2010년]] [[KBS2]] 드라마 《[[정글피쉬 2]]》에 출연하였고, [[2010년|같은 해]] 혼성 아이돌 그룹 [[남녀공학 (음악 그룹)|남녀공학]]에서 한빛효영이라는 예명으로 데뷔했으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남녀공학 (음악 그룹)|남녀공학]]의 여성 유닛 그룹인 [[파이브돌스]]의 멤버로 활동했다. [[파이브돌스]]로 활동하던 [[2011년]]에는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 [[파이브돌스]] 맴버들과 함께 출연하였고, [[2012년]] [[KBS2]] 드라마 《[[학교 2013]]》에 이강주 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으며, [[2015년]]에 [[파이브돌스]]가 해체된 이후부터는 현재 소속사인 비에이엠컴퍼니와 전속계약해 배우로 전향하였다.
- 리전 오브 몬스터즈 . . . . 1회 일치
흡혈귀, 늑대인간, 미이라 등 마블의 괴물 캐릭터들로 구성된 팀이다. 두버전이 존재하는데 1976년 버전은 고스트 라이더가 리더이며 Starseed라는 존재와 관련해서 만들어졌으며 이후 해체되었다. 그리고 2010년 버전이 나왔는데 리더는 웨어울프 바이 나이트이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같은 형태로 되살아난 퍼니셔도 이들과 협력했다.
- 릴가민 . . . . 1회 일치
1편과 4편의 배경도 릴가민 왕국으로 보는 리뷰가 많지만, 사실 1편과 4편은 명확하게 '릴가민'이라고 언급된 바가 없다. 오히려 1편과 4편의 배경 스토리는 릴가민 왕국의 역사와는 동떨어진 요소가 많다. 하지만 릴가민이라고 언급하는 자료도 가끔 있어서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상태. 어느 쪽이던 명확한 것은 없어서, 한데 묶는 '1도설'과 별도의 나라라는 '2도설'로 나누어지고 있다.
- 마기/306화 . . . . 1회 일치
* 백룡은 아르바의 진의와 신드바드의 진실을 알기 위해 일부러 연극을 했던 것.
- 마기/308화 . . . . 1회 일치
* 아르바와 유난은 격렬히 싸운다.
- 마기/309화 . . . . 1회 일치
암흑대륙의 끝자락에서 아르바와 싸우는 유난
- 마기/319화 . . . . 1회 일치
* 항상 다윗의 목소리 따윈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의존하고 있었다"고 실토하고 있다.
- 마기/323화 . . . . 1회 일치
* 그것은 흡수 당했던 우고. 거대해진 다윗에 비교도 안 되는 크기와 힘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 마기/326화 . . . . 1회 일치
* 아무튼 세계의 구멍에 대해선 아직도 의심을 지울 수 없는데, 알리바바가 근처에 국제동맹의 본부가 있으니 신드바드에게 연락해보자고 한다. 그런데 신드바드가 정말로 연락을 받는다. 어찌된 일인지 평소처럼 상회에서 눈코 뜰 새없이 일하는 중. 알리바바가 낙뢰에 대해서 보고받은게 없냐고 묻자 그런건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의 결혼 건을 언급하며 "아무리 바빠도 거기엔 꼭 참석할 거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가 청한 적도 없는데 보호자로서 스피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일전에 알리바바가 "난 신드바드씨의 아들 격"이라고 말했던걸 되갚아준 것이다. 알리바바는 바르카크에게 변명하게 생겼다고 웃으면서 넘긴다.
- 마기/342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자신이 성궁에 오기 직전에, 사실 자신이 없어도 전란이 와도 다들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고 말한다.
- 마로 . . . . 1회 일치
미토 고몬의 문장을 보고서도 "마로는 미카도[* 덴노]로부터 정삼품의 관위를 받은 몸! 도쿠가와 가문의 부하가 아니니라! 마로의 저택에서 이런 난행을 벌이다니! 미카도에게 상주할 것이다!"라면서 버티는 대사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 정삼위는 미토 고몬 자신과도 동급이므로 일단 이 말은 거짓말은 아니다.]
- 마리네 . . . . 1회 일치
마리네는 [[식초]], [[소금]], 샐러드용 [[기름]], [[와인]]을 섞고 [[향신료]]를 첨가하여 향을 낸 즙에다가, [[생선]], [[고기]], [[야채]] 같은 재료를 재워서 만들어내는 요리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요리 역시 마리네라고 부른다.
- 마법병 . . . . 1회 일치
이 이름을 명명한 것은 도쿄제국대학 교수로서, 동물학자이자 어류학자였던 이이지마 하지메(飯島 魁)로 알려져 있다. 다만 명명 과정에서 약간의 착각(!)이 있었는데, 1907년 10월 22일자 도쿄 아사히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이지마 하지메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뭐든지 바라는 대로 나오는 마법의 병(매직 보틀)"에서 따와서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이솝 우화에는 없다(…). 아마 다른 동화를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착각'한 동화는 아마도 [[로버트 스티븐슨]]의 '[[병 속의 악마]](The Bottle Imp)'로 추측된다..
- 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미국]]의 [[만화]] 회사. [[DC 코믹스]]와 더불어 미국 만화 시장의 양대 산맥이다.
- 마츠리 . . . . 1회 일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일본제 서브컬쳐에서 어렵지않게 볼 수 있다.
- 만쥬 무섭다 . . . . 1회 일치
짧고 간단한 만담이며, 라쿠고 공연에서는 오프닝 등에서 공연된다. 수한무, 메구로의 꽁치와 함께 가장 유명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
- 맥시멈즈 . . . . 1회 일치
* 호넷 - [와스프] 패러디. 스카이스크래퍼의 연인.
- 맨불 . . . . 1회 일치
괴력캐라서 그런지 [[헐크]]와 싸워본 적이 있으나 이길 리가 없었다.
- 머가리 . . . . 1회 일치
머리, 혹은 대가리와 같은 의미.
- 먼슬리 맨션 . . . . 1회 일치
*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침대]] 등의 [[가구]]와 [[가전제품]]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입주하고 당일부터 자신의 방 처럼 지낼 수 있다.
- 메두사 헤드 . . . . 1회 일치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고전 악마성에서는 매우 짜증나는 적이다. 왜냐하면 시계탑 스테이지처럼 점프를 해서 올라가야 하는 위태로운 곳에서 꼭 등장하기 때문. 메두사 헤드와 접촉하면, 재수없을 경우 그대로 뒤로 밀리면서 석화+추락사 콤보를 당할 수 있기 때문. 오묘하게 위아래로 날아다니는 궤도 때문에 [[채찍]]으로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다수의 메두사 헤드가 출몰하는 곳에서는 신중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 메디나 . . . . 1회 일치
[[이슬람교]]의 [[교조]] [[무함마드]]는 [[고향]] [[메카]]에서 박해를 받아 이슬람교 신도들과 함께 메디나로 탈출했다. 그리고 메디나에서 힘을 길러 메카를 재정복 하게 되었다. 이 이래 메카와 메디나는 이슬람교의 2대 성지가 되었다.
- 메시마즈 . . . . 1회 일치
메시우마와는 반대로 타인의 행복을 보고 밥이 맛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상태를 보고 질투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은 아주 슬픈 소식이 들어왔을 때도 사용한다.
- 멸문지화 . . . . 1회 일치
다만, 중세유럽때는 위생상태와 의학의 미비로 인한 일족의 전멸, 또는 서자의 가문 계승권이 부정된 것 등으로 인해 단절된 가문이 흔했다
- 모리시오 . . . . 1회 일치
결계를 만들고 내부를 정화한다는 뜻으로 네 모서리에 두는 경우도 있다. 집의 경우는 부지의 네 모퉁리와 건물의 네 모퉁리, 방의 경우에는 방 안의 네 구석.
- 모테모테 . . . . 1회 일치
이성에게 인기를 모으는 상태를 뜻하는 『[[모테루]](モテる)』의 「모테(モテ)」에서 따와서, 이를 복합어로 만들어서 쓰는 일종의 [[의태어]].
- 몬스터버스 . . . . 1회 일치
[[고질라]]가 개봉하고, [[킹콩]]이 등장하는 콩: 스컬 아일랜드가 2017년에 개봉할 예정이며 이서서 고질라 2가 예정되어 있다. 심지어 고질라와 킹콩이 한 스크린에 등장하는 고질라 VS. 콩이 예정되어 있다.
- 몽고귀신 . . . . 1회 일치
[[서울대공원 구미호]]와 같은 시기에 퍼졌다.
- 무신 . . . . 1회 일치
문신과 무신의 분리는 세월이 지나가면서 서서히 나타나게 되는데, [[과거 제도]]가 나타나면서 문과(文科)와 무과(武科)가 시험 단계에서 분리되면서 문무의 분리가 가속되었다. 문신과 무신은 등용 과정 부터가 달라졌기 때문에 명확하게 별도로 구분되는 '집단'이 된 것이다. 무신은 오직 군사 관직에만 임명되게 되었고, 승진하는 루트도 달라져서 '직업군인'화 되었다. 또한 당나라 이후 중국에서 징병제가 사라지고 모병제가 중심이 되면서 무신의 전문화도 진행되었다.
- 무협/용어 . . . . 1회 일치
초창기 무협 번역에서는 '장풍'을 '손바람'으로 번역하는 등, 고유어 번역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이는 '정협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고유어 번역은 오히려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무협 번역에서 전문적인 작가의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화교]] 등 아마추어의 개입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 출판사가 영세화 되면서 번역의 품질이 나빠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어의 영향이 과도하게 들어간 일종의 '중국어 번역체'가 남발되게 되었고, 이를 무협 장르의 독자나 후발 작가들이 학습하면서 중국어 번역체의 영향을 받은 장르 고유의 문체가 형성되었다.
- 문맹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으나, 단순히 읽고 쓰는 게 아닌 어떠한 문장 내용을 읽고 뜻을 파악하는 '실질문맹률'이 OECD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OECD와 캐나다 통계청에서 만든 IALS(국제성인문해능력조사)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번역하여 2001년에 조사한 결과. (다른 OECD 국가는 1994년 ~ 1998년 사이에 조사.)]
- 문옥주 . . . . 1회 일치
192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36년 16살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가 만주와 동남아시아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하였다. 1991년에는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저축한 돈의 반환을 요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위안부 피해자 故문옥주 증언, 기록 일치"|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7/0200000000AKR20160517091600073.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1996년 10월 26일 새벽 대구동산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日軍위안부 문옥주할머니 숨져|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184&yy=1996|출판사=매일신문|날짜=1996년 10월 26일|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 문종 . . . . 1회 일치
문종은 조선 제 5대 국왕이다. 시호에 걸맞게 세종의 문재(文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영명한 군주로 세종의 업적 중 일부는 문종이 함께 일군 것이었다. 문종이라는 시호와는 달리 군사적인 부분에도 기여하는 등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 문호월 . . . . 1회 일치
문호월은 3박자 대중가요와 트로트, 신민요에 고루 능하여 다양한 음악을 구사했으나, 신민요 히트작이 많아 초기 신민요의 대표적 작곡가로 꼽힌다. [[1940년]]에 발표한 〈반달 뜨는 밤〉 이후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작품 활동이 드물어졌고, 사망 시기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미소지 . . . . 1회 일치
[[아라사]]와의 차이는 아라사는 25~34세를 뜻하며, 미소지는 딱 30살(혹은 30대)를 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25세가 되면 아라사에 진입하지만 아직 미소지는 아니다. 그리고 미소지가 되면 아라사가 된다.--라고 할까 정확하게 서틴--
- 미스터 마인드 . . . . 1회 일치
지능형이란 점에서 시바나와 동맹이 되어 일을 꾸미기도 했다.
- 미스터 아톰 . . . . 1회 일치
DC 코믹스의 많은 캐릭터들이 설정변경된 것처럼 미스터 아톰도 설정변경이 행해졌는데 찰스 랭글리 박사에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동일하며 포스트 크라이시스 버전은 그가 조수와 같이 만들었다는 것이 추가되었다.
- 미스터 판타스틱 . . . . 1회 일치
훗날 정부의 원조로 우주선 발사가 가능해졌을 때 리드는 우주 비행사가 된 벤과 성인이 된 수, 그리고 수의 동생인 자니 스톰(휴먼 토치 II)와 함께 직접 우주선을 타고 시험비행에 나선다. 그러나 리드의 예상치 못한 실수로 네 사람은 우주방사선에 노출되고, [[지구]]에 돌아온 뒤 그들의 육체가 변화를 일으킨 것을 알게 된 네 명의 초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판타스틱 포'를 결성하게 된다.
- 미스터 피어 . . . . 1회 일치
본명 래리 크래스턴. 무려 데어데블의 법학과 동기지만 적이 되었다. 1대, 2대와 달리 마음을 조종하는 마약을 만들어 악당들에게 퍼뜨렸고, 심지어는 데어데블의 아내에게도 마약을 제공헤 정신병자로 만들었다.
- 미저리 . . . . 1회 일치
폴을 구조한 것은 애니 윌크스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폴 셸던과 미저리 시리즈의 광팬이던 그녀는 폴을 발견해 자신이 추종하던 그 작가라는 것을 알고 집으로 데려온다. 전직 간호사였던 애니는 폴을 간호하면서 자신이 미저리와 폴 셸던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녀는 폴의 가방에서 발견한 새로운 소설의 원고를 읽어보지만 재미가 덜하고 언어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때려 치고 자신이 산 신작 "미저리의 아이"나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말까지 전부 읽는다.
- 미하 . . . . 1회 일치
단어 자체의 발상은 쇼와 초기, 192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1950년대에 널리 쓰이는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어원에 관한 설은 여러가지 있다.
- 민도 . . . . 1회 일치
기원은 '이거다'라고 볼 만큼 확실하게 사용된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친일문학가인 김동인의 글에서도 민도라는 용례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의외로 잘 안쓰는 단어지만 확실하게 과거에는 쓴 적도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이 민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제국주의적 의미의 "계몽"과 상통되는 의미로 쓰였다. 이후의 자료에서는 '생활수준'이나 '경제력', '문명수준'을 뜻하는 말로 나오지만, 최근의 인터넷 자료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식에 대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나오는 사례가 많다. 21세기에서 보면 제국주의 시대의 의미로 돌아온 느낌으로 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
- 민효린 . . . . 1회 일치
2007년 5월 가수로 데뷔하여 싱글 앨범을 발매했으며, '''Rinz''' 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대표곡으로는 Stars와 기다려 늑대가 있으며 특히 Stars는 [[나카시마 미카]]의 원곡으로도 유명하다. 2가지의 앨범 형태로 발매됐으며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진 'Stars 버전'과 '기다려 늑대 버전'이 있어 사용자들의 취향에 따라 구입할 수 있다.
- 바-로- . . . . 1회 일치
* [[에도가와 코난]]. 이 말을 자주 쓰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쓰지는 않지만 트레이드 마크 취급.
- 바레브 라인 . . . . 1회 일치
* [[공군]]의 지원을 상정하여 포병의 배치가 적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군은 2000 문 이상의 박격포와 야포를 동원하여, 1분에 1만발 이상의 포탄을 쏟아부어 포격전에서 압도하게 된다.
- 바코드 머리 . . . . 1회 일치
대머리에 검은 실선으로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상품에 붙어 있는 [[바코드]]와 같다고 하여 바코드 대머리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 바키 시리즈 . . . . 1회 일치
[[그래플러 바키]]로 시작하여 정기적으로 제목을 바꾸면서 연속되는 시리즈. 일단 장르는 비교적 현실성이 강한 이종격투기 만화…였지만 점점 갈수록 너무 황당한 전개가 튀어나와서 막장이 되어가고 있다.
- 바키도/123화 . . . . 1회 일치
* 도쿠가와는 뒤늦게 피클의 안위를 걱정한다.
- 바키도/128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정석적인 파지법대로 약지와 소지를 중심으로 칼을 쥐고 있을 뿐이다.
- 바키도/129화 . . . . 1회 일치
* 과거 주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면 지금은 자기 자신의 안위와 선량한 이웃의 안전을 위해서 거는 것이라 말한다.
- 바키도/130화 . . . . 1회 일치
* 모토베는 렛츠 카이오 때와는 달리 당장 내장을 쏟으며 쓰러지진 않지만 목석이 된 듯 굳어버린다.
- 바키도/131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생전 구마모토 성주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여흥에 어울린 일이 있다. 세키의 도공이 만든 뛰어난 "강철투구"를 쓴 무사를 벨 수 있겠냐는 것. 성주는 이미 같은 실험을 해서 진검 조차 이가 나간다는걸 확인했기 때문에, 다분히 무사시를 곤란하게 하려고 장난을 치는 듯 했다.
- 바키도/134화 . . . . 1회 일치
* 그는 이어서 "오우거", 한마 유지로는 이 시대의 신이자 질서이며 놓칠 수 없는 존재라 말한다. 시부카와 고키는 "국보"이자 "무형문화", 오로치 돗포는 "근대 가라데의 아버지"이며 "태양"같은 존재, 하나야마 카오루가 가진 자신만의 "긍지"나 오로치 카즈미의 "가라데의 2대 태양"이란 위치, 두말할 필요없는 인류의 재산이자 동료인 피클. 그 외에도 가이아나 시노기 형제 등 수많은 격투가들을 일일히 거명하며 이들이 모두 빠질 것 없는 "시대의 보물"이라고 칭한다.
- 박경석(1937) . . . . 1회 일치
1981년 초 민주정의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3월 치러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진우(1934)|이진우]] 대신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서종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 박기환(정치인) . . . . 1회 일치
'''지방자치제도 도입 후 [[TK]]에서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기초지방단체장.'''[*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울진군]]수에 당선된 신정 전 군수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된 [[장세용]] 현 시장이 있다.]
- 박노식(1930)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본관 [[밀양시|밀양]](密陽).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이냐시오이다. 1930년, [[전라남도]] [[여수시]] 에서 태어났으며[* 그런데 정작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시]] 출신인 [[해태(응답하라 1994)|해태]]가 여수 아줌마와 고향 대결을 할 때 박노식을 순천 사람이라고 내세운다. --해태 [[의문의 1패]].--],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여수 수산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학교[* 1946년 11월에 설립되었다가 1962년 2월에 폐교되었는데, 뒤이어 순천실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67년에 지금의 순천공업고등학교로 재개편되었다.] 체육과를 졸업했다. 1950년에 지금의 여수 소라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도사단]] 선무공작대에 입대·종군했다.
- 박부남 (1931년) . . . . 1회 일치
'''박부남'''(朴富南, [[1931년]] ?월 ?일 ~ [[2018년]] [[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소아과|소아]][[내과]] [[의사]], 대학 교수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구한 말의 관료 [[박중양]]의 손녀이며, [[청도군|청도]], [[상주군|상주]], [[청송군|청송]][[군수]]를 지낸 [[박문웅 (1890년)|박문웅]]의 딸이다. [[대구광역시]] [[북구 (대구광역시)|북구]] [[침산동]] 출신.
- 박상규(가수)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 겸 [[MC]]. [[종교]]는 [[장로회]]다. 1963년 가수로 데뷔한 것을 시작으로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MC로 맹활약했다. 토요일토요일밤에를 [[이덕화]]보다 먼저 MC를 했으며 12시 올스타쇼와 일요큰잔치 등 굵직한 쇼프로그램의 MC를 전담해왔다. 특유의 백발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요즘으로 따지면 연예계에서의 그의 입지는 [[손범수]] + [[이승기]] 정도. 국민MC의 계보를 이었다고해도 딱히 문제되지 않을 정도의 유명도가 있었던 분이었다.
- 박상돈(정치인) . . . . 1회 일치
이후 [[유신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지방행정국 지방기획과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충청남도 [[아산시|아산]][[군수]], 대천시장, [[서산시]]장, 충청남[[도청(행정)|도청]] 기획실장 등을 지냈다.
- 박상철(가수) . . . . 1회 일치
* 무조건(2005) : 사원급 [[직장인]]들이 [[회식]] 자리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 개사해서 부른다. ~~부장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2008년에 1박2일 시즌1 경남 [[거창]]편에서 1박2일팀이 전국 노래자랑 출전곡으로 이 곡을 불렀다. [[일본]]의 탤런트 카와사키 마요가 이 곡을 2015년에 [[리메이크]]했다.
- 박수영(연극배우) . . . . 1회 일치
* 《[[이리와 안아줘]]》 (MBC, 2018년) - 표택 역
- 박승호(정치인) . . . . 1회 일치
용인대학교 졸업 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1기 공채로 입사하여 [[노태우]] 조직위원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민주정의당]] [[총재]]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국가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관선 [[봉화군]]수를 지냈다. 이후 내무부, 행정자치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경상북도공무원교육원 [[원장]]을 지냈다.
- 박승효 . . . . 1회 일치
박승효(朴勝孝, [[1933년]]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전문 경영인이다. [[1969년]] [[선경합섬]]의 창립 초기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상무, 이사, 전무이사와 [[선경그룹]] 계열사인 [[요트]][[제조]]부문 [[선경머린]]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밖에 신풍제지 대표이사, [[동국무역]] 전자사업부문([[동국전자|동국종합전자]]) 대표이사, [[엔씨에스시스템]] 공동대표 등 전문 경영인으로 활동했다.
- 박은수 (1956년) . . . . 1회 일치
1980년 제2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법관 임용 심사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탈락하자, 사법부의 부당한 처사를 언론에 호소했고 마침내 사회지도층을 비롯한 각계 각층의 들끓는 여론에 힘입어 1983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서 법조계에 진출하였다. 이후 대구와 마산지방법원에서의 판사생활을 거쳐 1988년 대구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 박정철(배우) . . . . 1회 일치
* 1998년 KBS1 너와 나의 노래
- 박종윤 (1993년) . . . . 1회 일치
2015년까지 단 11경기에만 등판하여 10이닝을 투구했다. 2016년 6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웨이버 공시된 [[로버트 코엘로]]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한 깜짝 카드이자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했다. 경기에서 2이닝 동안 1실점을 하였다.
- 박준홍 . . . . 1회 일치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에서 정치인 생활을 했지만 선거에서는 계속 낙선했다. 특히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선거구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거구에서 사촌 형인 [[박재홍(1941)|박재홍]] [[민주정의당]] 후보와 대결하여 낙선하였다.
- 박진수(1985) . . . . 1회 일치
연극 토끼와 포수
- 박진주 . . . . 1회 일치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6년) ...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요 우비소녀
- 박칠용 . . . . 1회 일치
* [[2002년]]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역사탐구 과거와의 대화]]》
- 박태준 (작곡가) . . . . 1회 일치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이며 호(號)는 귀봉(龜峯)· 산남(山南)· 계산(桂山)이고, 종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개신교(예장통합)]]이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이후 미국 [[터스컬럼 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음대 및 대학원을 나왔다. 귀국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연세대학교]] 종교 음악과를 창설하였으며, 많은 작곡을 하여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술원 음악공로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64년 연세대학교 음대 학장을 지냈다. 작품으로 〈오빠생각〉 〈집 생각〉 〈사우(思友)〉 등 150여 곡이 있고, 동요곡집으로 〈중 중 때때중〉, 가곡집으로 〈박태준 가곡집〉 등이 있다.
- 박학기 . . . . 1회 일치
* [http://news.donga.com/3/all/20080817/8618408/1 박학기, 두 자녀와 함께 6년만에 신곡]
- 박화랑 . . . . 1회 일치
2009년 [[제4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을 비롯 [[제31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제90회 전국체육대회|제90회 전국체전]] 우승을 이끌며 우수 투수상 등의 개인 상 수상 및 청소년 대표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180568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청대' 출신 박화랑, 와신상담 끝에 삼성 '신고선수' 출발!] 《조이뉴스》 2010년 3월 9일</ref>
- 박휘순 . . . . 1회 일치
* [[2012년]] [[SBS]]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 카메오 출연
- 박희부 . . . . 1회 일치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대덕구|대덕군]]-[[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민주한국당]] [[유한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대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이인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합류하였다.
- 발 . . . . 1회 일치
인체의 신체부위중 가장 하단에 위치한 아름다운 부위로써, 다리와 더불어 인간의 몸을 지탱해주는 하반신의 중추이자 미의 정점이다. 동물이 직립보행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신체부위이고 기본적인 그 골격 구조는 상반신의 손과 같으나 복사뼈, 족저근막 위의 아치형 구조등, 좀 더 충격흡수를 효율적으로 하기위하여 예술적이고 독보적인 모양으로 변화되었다.
- 발암 . . . . 1회 일치
2014년대 부터는 인터넷 상에서 '속터진다','화가 난다'는 뜻으로 쓰인다. 대략 '이 상황이 짜증나서 암 생길 것 같다'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여담으로 미묘하게 [[카타르시스]]와 일맥상통.(…)
- 배재준 . . . . 1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에 2라운드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2018년]] [[4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0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였다.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1회 일치
1949년 3월, 외무장관직을 사임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하자 다시 복귀, 1956년 6월, [[니키타 흐루쇼프]]와의 정치적 불화로 해임되었다. 11월에 흐루쇼프 제거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모든 고위 관직을 잃었다.--[[숙청]]!--
- 법테라스 . . . . 1회 일치
[[일본]]의 무료법률지원서비스. 정식명칭은 일본사법지원센터(日本司法支援センター). 2006년 설립된 일본 법무성 소관의 공공법인으로서, 민형사상의 법적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 베로니카 마스 . . . . 1회 일치
--유령을 볼 수 있는 영매-- 여고생 베로니카 마스가 친구 릴리 케인의 --유령이 인도하는데 따라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미디엄, 고스트 위스퍼러와 유사함.--
- 베스타 . . . . 1회 일치
[[로마 신화]]의 [[여신]]. 화로의 여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헤스티아]]와 동일시 되었다.
- 베이지 . . . . 1회 일치
* 2010년 친구와 사랑에 빠질 때(Digital Single)
- 변신합체로봇 . . . . 1회 일치
변신합체 구조가 복잡해지면, 변신합체와 멋진 외관을 양립시키는 것이 어렵다.
- 변질자 . . . . 1회 일치
퇴폐, 변질을 뜻하는 [[프랑스어]] dégénéré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에 [[동성애자]]들이 정상이 아닌, '이상'으로 간주되었던 것에 기원을 가진다. 성적인 퇴폐, 정신장애를 사회적 병리와 동일시한 [[우생학]]과 연관이 되어 있는 말이다.
- 변현제 . . . . 1회 일치
2012년 10월, GSL 예선을 통과한 뒤 1라운드에서 '나니와' 요한 루세시를, 2라운드에서 [[이영호 (1992년)|이영호]]를 꺾고 3라운드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3라운드에서 이원표에게 패했고, 승강전에서도 패해 코드S 진출은 실패했다. 그리고 변현제는 이어진 시즌 코드A 1라운드에서 최용화에게 패해 다시 오프라인 예선으로 떨어졌다.
- 보쿠걸/104화 . . . . 1회 일치
* 후지와라는 음료수를 마시며 미즈키를 기다리고 있는데, 미즈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나타나자 얼른 안아준다.
- 보쿠걸/106화 . . . . 1회 일치
* 거울 앞에서 로키와 만난 미즈키.
- 보테바라 . . . . 1회 일치
배가 볼록 튀어나와 있는 모습. 주로 18금 작품에서 쓰이는 말이다.
- 보통국가 . . . . 1회 일치
[[일본우익 사관]]에서 말하는 '보통국가'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들의 역사관에서 현재 일본은 소위 '평화헌법'으로 인하여 전쟁할 권리가 박탈당한 '보통이 아닌 국가'이며, '보통국가'와는 달리 '전쟁을 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어서 전쟁을 할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평화헌법 폐지론을 펼치는 우익사관의 주장이다.
- 봉화군 . . . . 1회 일치
* [[강석훈]] - 19대 국회의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 부모교실 . . . . 1회 일치
교육으로는 출산의 순서, 임신 체조나 호흡법을 실기 교육, 영양이나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법에 대한 지도 등이 있다. 아버지의 경우, [[임산부]]의 배와 같은 무게의 덩어리를 배에 매달고 활동하여 임산부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교육 등이 실시되기도 한다.
- 불심자 . . . . 1회 일치
* 얼굴을 볼 수 없게,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가리고 있다.
- 불쑥 표주박 섬 . . . . 1회 일치
[[NHK]]의 [[인형극]] 프로그램.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등대가 있는 작은 섬이었던 표주박 섬(ひょうたん島)이, 어느날 화산 폭발로 바다를 정처없이 방황하는 처지가 되어, 선데이 선생님과 그 제자들, 국제경찰이 비행기로 호송중이던 암살자 댄디, 뗏목으로 표류해온 해적 토라히게, 자칭 표주박 섬의 대통령 돈 가바쵸 등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 블랙 클로버/115화 . . . . 1회 일치
* A팀의 저격 전술을 파훼했으나 허점을 노출해 궁지에 몰린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미모사 버밀리온]].
- 블랙 클로버/127화 . . . . 1회 일치
* 이미 승부가 났음에도 랜길스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핀랄이 사라져야 한다며 의식도 차리지 못하는 형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가 저지하고 나선다.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어느 새 날아와 랜길스의 목을 겨눴다. 비록 대회장에 난입하진 않았지만 [[챠미 퍼밋슨]]도 그리모어를 펼쳐들고 요격할 태세였으며 [[노엘 실버]]는 제일 먼저 핀랄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갔다.
- 블랙 클로버/51화 . . . . 1회 일치
* 증오의 파나는 불의 정령 마법을 구사한다. 유노와 같은 4대 정령 마법 중 하나.
- 블랙 클로버/52화 . . . . 1회 일치
|| 내가 와줄 거라고 믿어줘서 고맙다. 난 마력도 없는 우리 멍청이(검은 폭우의 단원)을 믿었다고. ||
- 블랙 클로버/53화 . . . . 1회 일치
* 노엘 실버는 레베카와 함께 있다.
- 블랙 클로버/55화 . . . . 1회 일치
* 백야의 마안은 반 클로버 왕국을 목표로 하는 50여명의 마도사가 모여있는 조직이다. 6년전 리히트가 창설하여 수장이 되었으며 그와 삼마안이 최강의 전력.
- 블랙 클로버/57화 . . . . 1회 일치
* 마침 특훈하고 있던 아스타와 합류하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들린다.
- 블랙 클로버/68화 . . . . 1회 일치
* "여동생을 부탁한다"고 말하는 친구와 그 여동생으로 보이는 베토의 신부.
- 블랙 클로버/75화 . . . . 1회 일치
* 유노는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팔휘장을 상대하고 야미 스케히로와 챠미 퍼밋슨도 현장으로 향한다.
- 블랙 클로버/86화 . . . . 1회 일치
리히트가 친구라고 불렀던 그 "인간"은 어딘지 리히트 일행과 생김세가 다르다. 그는 리히트와 그의 동족들을 모아놓고 "언젠가는 함께 살 수 있는 세계가 올 것"이라고 연설한다. 그들은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 블랙 클로버/95화 . . . . 1회 일치
* 이미 승리한 것처럼 폭소를 터뜨리던 라드로스에게, 폭연 속을 꿰뚫으며 반마법의 검이 날아와 꽂힌다. 단마의 검은 순식간에 라드로스의 마력을 무효화 시킨다. 라드로스는 자신이 무슨 공격에 당한건지 파악을 못한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1회 일치
*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의 치료에 전력하고 있던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는 무방비한 상태에서 라드로스에게 사로잡힌다. 그는 파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파나의 샐러맨더의 힘을 빼앗을 작정이었다. 파나를 위협해서 아까와 같은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 보라고 강요한다.
- 블랙기업 . . . . 1회 일치
이런 야쿠자 기업을 돌려서 표현하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는 노동환경과 관련하여 명백하게 노동기준법을 위반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거나 불법은 아닐지라도 보편적인 윤리 및 도덕적 시각으로 볼 때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들이 태연히 일어나고 있는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 블러드와인드 . . . . 1회 일치
블러드젬은 한 가족에 의해 보호되었고, 이후 그들의 후손은 블러드와인드가 되었다.
- 블루 마블 . . . . 1회 일치
한국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해병 출신에 뛰어난 과학자다. 연구하다가 실수로 반물질을 만들어서 네거티브 존에 빠지게 되었고, 그 안의 네거티브 존 방사선에 의해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 [[슈퍼맨]]과 비슷한 능력에 [[반물질|반물질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조작할 수 있고, 일반적인 상태의 센트리에게 어느정도 대항하는 초음속의 스피드와 93,000톤 가량의 물체를 감당해내는 힘, [[센트리]]를 지구 밖으로 날려보낼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갖춘 초인. 같은 마블 코믹스 캐릭터인 [[하이페리온(마블 코믹스)|히페리온]], 센트리처럼 슈퍼맨과 비슷한 캐릭터.
- 블리치/673화 . . . . 1회 일치
* 차드가 이치고와 오리히메를 노리는 석상들을 쳐내고 둘을 선행시킨다.
- 블리치/675화 . . . . 1회 일치
* 시호인 요루이치의 변신은 "순홍 뇌수전형 순륭흑묘전희". 고양이와 같은 형태로 변한다
- 블리치/681화 . . . . 1회 일치
* 지금의 켄파치 따윈 맨손으로 박살내주겠다며 오른손으로 공격하는데, 켄파치는 포효와 함께 제라드의 오른팔을 날려 버린다.
- 블리치/693화 . . . . 1회 일치
* 이치고는 다시 한 번 유하바하와 싸우러 간다.
- 비국민 . . . . 1회 일치
일제시절에 국가주의와 군국주의가 강화되면서, 이러한 말이 욕설로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 비니 고그니티 . . . . 1회 일치
블라드가 진정한 흑막이라는걸 알아낸 맥스가 블라드를 뒤쫓았을 때 재등장. 이미 블라드의 계략에 속아 폭탄이 설치된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을 쓰고 있었다. 걸을 때 마다 뾱뾱소리가 나는게 매력 포인트지만 벗으면 터진다고. 맥스에게 러시아 갱단의 습격으로부터 살아남게 해준다면 블라드를 잡는걸 도와주겠다고 애원해 맥스의 호위를 받으며 밴을 타고 도망친다. 맥스는 [[모나 색스]]가 폭탄을 해체할 수 있을거라며 모나가 숨어 사는 폐 놀이공원으로 차를 몬다.
- 빅 사이언스 액션 . . . . 1회 일치
[[불]] 제어, [[비행]] 등. Super Friends #8 (November 1, 1977)에 등장. [[글로벌 가디언스]]와도 관련이 있다.
- 빅맥 . . . . 1회 일치
빵+100% 순쇠고기 패티+양상추+빅맥 소스+치즈+피클+양파로 구성되어 있다. 빵은 위아래 뿐만 아니라 중간에도 끼어있고 패티, 양상추, 양파도 2개 층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히 큰 크기와 512kcal이라는 열량을 가지고 있다.
-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묘사를 보면 올마이트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 각지에서 난동을 부려온 듯 하며 올마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꺽인 상태다. 물론 이런 시점에서도 빌런들은 계속 남아있으나 이전과 달리 그냥 양아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는 [[빌런 연합]]이라는 세력이 [[유우에이 고등학교]]를 습격한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스테인]]이라는 악명 높은 빌런이 체포된 것이 계기가 되어 흩어져있던 네임드, 혹은 이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자극받고, 이어서 올마이트의 은퇴와 어둠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올 포 원]]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빠른이동 . . . . 1회 일치
*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공중날기와 텔레포트도 빠른 이동의 일부로 볼 수 있다.
- 사갈 . . . . 1회 일치
뱀(蛇,사)와 전갈(蝎,갈)을 함께 뜻하는 말. 남을 해치거나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비유해서 부르기도 한다.
- 사람을 죽여 보고 싶었다 . . . . 1회 일치
* 홋카이도 오토후케정 미용사 살인사건 : 2015년 8월 3일, 홋카이도 오토후케정(北海道音更町)의 아파트에서 회사원 소년(19세)이 피해자 콘노 에리카(金野恵里香, 미용사 31세)를 살해한 사건. 범인은 피해자의 아파트 윗층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피해자와 특별히 교우관계는 없었다. 3일 아침 열쇠가 걸려 있지 않았던 아파트 1층에 있는 피해자의 자택에 침입하여 날붙이로 목과 가슴을 찔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체포된 뒤에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누구라도 좋았다."고 진술했다.
- 사이마 . . . . 1회 일치
「채무(債務,사이무)」와 「er」을 합쳐서, 「사이마(サイマー)」라는 말이 태어났다.
- 사이쿄선 . . . . 1회 일치
일본의 철도. [[사이타마]]와 [[도쿄]]를 오가는 선이다.
- 사축 . . . . 1회 일치
회사가 하라는 대로, 어떤 일에도 불평을 하지 않고, 일하는 직장인을 풍자를 담아서 가리키는 단어로서,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회사인간(会社人間)」이나「기업전사( 企業戦士)」와는 달리 야유가 강하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양심도 버릴 수 있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 사쿠라 . . . . 1회 일치
* 에도 시대에 연극 오두막에서 배우에게 말을 거는 구경꾼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화려하게 분위기를 돋구고 확 사라지기 때문에, 확 피고 사라지는 벚꽃의 성질에서 따와서 사쿠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점상의 은어를 거쳐서 일반적으로 퍼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 사키모리 . . . . 1회 일치
고대 일본에서 관동 지방(지금의 도쿄 인근)에서 징병되고 큐슈로 파견되어 수비와 축성 등을 담당하던 군역(軍役)의 일종이다. 당시 농민들에게는 부담이 큰 일이었다.
- 사회 . . . . 1회 일치
사회라는 조직은 여러 학자들에 따르면 거의 모든 범죄에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온갖 흉악범죄에 연관이 되어 있으며, 살인,강도,마약거래 등 온갖 흉악범죄에 사회의 책임이 끼어있어 정말로 사회의 책임이 없는 범죄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빈곤,집단괴롭힘 등 온갖 문제와 도덕에도 사회가 깊이 관여되어 있어 사회의 책임은 매우 크다.
- 산마이오로시 . . . . 1회 일치
[[생선]]의 [[참수|머리를 자르고]], 중간의 등뼈를 따라서 칼날을 집어넣어, 양쪽 몸을 갈라서 중간의 뼈와 양쪽 몸이 '3장(三枚)'이 되도록 나누는 방법. 가장 기본적인 손질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 삼감의 난 . . . . 1회 일치
상나라의 옛 영토와 백성들은 주공단의 동생 강숙봉(康叔封)이 봉해지고, 이를 위나라(衛)라고 하였다.
- 삼자면담 . . . . 1회 일치
[[학교]]에서 [[학생]]의 지도를 목적으로 하여 담임교사와 부모, 학생이 면담을 나누는 것. 보호자 면담이라고도 한다. 삼자면담을 하는 경우, 학교에서는 학생의 생활, 학업 등 다양한 측면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 샘 윗위키 . . . . 1회 일치
가족으로는 [[아버지]]인 론 윗위키, [[어머니]]인 주디 윗위키, 애완견인 모조가 있다. [[트랜스포머(2007년 영화)|트랜스포머]]의 일로 미카엘라 베인즈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트랜스포머 2: 패자의 역습]]과 [[트랜스포머 3]] 사이에 깨진 것 같다. 이는 미카엘라 베인즈를 연기했던 [[메간 폭스]]가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마이클 베이]]를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620601007|히틀러 같다고 발언]]해 퇴출되었기 때문.
- 서울대공원 구미호 . . . . 1회 일치
* 구미호는 할머니로 둔갑해서 다니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할머니 귀신' 이야기도 나돈다는 기사가 있는데, 둔갑을 한다는 이야기로 보아 할머니 귀신도 서울대공원 구미호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 서정돈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6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를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석사, 197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학교와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임강사로 활동했고, 1976년 ~ 199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94년 ~ 199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학장을 역임했다. 1997년 3월 ~ 2003년 2월에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을 맡았고, 2003년 2월에는 성균관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2011년 1월까지 역임했다.
- 서정제 . . . . 1회 일치
1940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서정제는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에 임용되어 마산지방법원장, 대구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대구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 서지석(배우) . . . . 1회 일치
[[2018년]] [[3월 4일]], [[복면가왕]]에서 [[이거 그린 라이트인가요 마스크맨]]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성대 매트릭스]]와 미스미스터의 '널 위한 거야'를 불렀으며 2라운드 준비곡은 하동균의 '그녀를 사랑해줘요'였다. 그 뒤 74차 경연에서 판정단으로 참여했다.
- 서효림 . . . . 1회 일치
| 소속사 = [[콘텐츠와이]]
- 선문답 . . . . 1회 일치
* (한국어) 주어진 문제와 상관없이, 한가롭게 주고받는 불필요한 이야기.
- 성격 . . . . 1회 일치
여기 나와 있는 단어들은 '감정'에 가까운 것들도 있으나, ~~원래 창작을 위해 문서를 만들었으므로~~ 기재하기로 한다.
- 성세현 . . . . 1회 일치
||<#CD7F32> 동메달 ||<#ffffff> 2009 가루이자와 ||<#ffffff> 팀 ||
- 성역 도시 . . . . 1회 일치
2017년 1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역 도시들에 대해서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전국의 39개 도시와 364개 카운티 정부가 이에 대항하여 성역도시를 유지할 것을 선언했다.
- 성재(가수) . . . . 1회 일치
'''성재'''([[1980년]] [[1월 30일]] ~ )는 [[대한민국]]의 하드코어 밴드 [[비셔스글레어|비셔스글레어(Vicious Glare)]]와 언리시드앵거의 가수, 기타리스트이다. 본명은 '''박해진'''이며,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출신이다. 2008년 부터 ankind-Design'이라는 자신의 개인 디자인 브랜드를 운영, 음악 레코딩 [[프로듀서]] 및 [[작곡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하드코어 메탈 전문 레이블 [[GMC 레코드]]의 [[웹마스터]] /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다가 2014년 중순부터 레이블을 인수 받아서 CEO가 되어 운영중이다.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https://en.wikipedia.org/wiki/Straight_edge Straight Edge]라는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 세령(가수) . . . . 1회 일치
돌아와 제발
- 세이브 노가다 . . . . 1회 일치
어느때든지 세이브와 로드를 할 수 있는 게임라면 어떤 종류던지 가능하다.
- 센티멘탈 그래피티 . . . . 1회 일치
어린 시절 이사를 다니면서 전국에 [[소꿉친구]] [[플래그]]를 만들어둔 대단한 사나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찌나 과거의 여자가 많은지 편지가 와도 누가 보냈는지 모를 정도.
- 소지섭 . . . . 1회 일치
* 1995년, 소지섭은 청바지 브랜드 스톰(STORM) 전속모델 1기로 발탁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청바지 브랜드 스톰의 메인 모델은 [[듀스 (음악 그룹)|듀스]]의 [[김성재 (가수)|김성재]]였다. 평소 김성재의 팬이였던 소지섭은 단지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청바지 브랜드 스톰 모델선발대회에 지원했으며, 1위로 선발되었다. 2위는 송승헌이었다. 그러나 김성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하여 김성재 대신 소지섭이 청바지 브랜드 스톰의 메인 모델이 되었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4231456121001 소지섭, 故김성재와 과거 인연에 소야앤썬 뮤비출연 흔쾌히 OK - 뉴스엔<!-- 봇이 따온 제목 -->]</ref>
- 손광업 . . . . 1회 일치
* 《[[미쓰 와이프]]》 (2015년) - 형사 2 역
- 손전 . . . . 1회 일치
* 《[[돌아와요 부산항]]》
- 송남헌 . . . . 1회 일치
* <송남헌 회고록: 김규식과 함께 한 길,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하여>
- 수애 . . . . 1회 일치
2005년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출신의 통역관을 연기하였고, 2016년 영화 《[[국가대표 2]]》에서도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출신의 [[아이스하키]] 선수를 연기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11&aid=0000462127 '국가대표2' 수애 "동생 役 박소담, 저와 닮은 것 같아요"] 조이뉴스24. 2016년 07월 27일</ref>
- 슈퍼맨 . . . . 1회 일치
시력, 청력을 포함해 모두 뛰어나다. 청력의 경우 지미 올슨이 쓰는 시계와 관련한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 스마트폰 . . . . 1회 일치
[[인터넷]]도 할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그 외 여러가지를 할 수 있는 겁나 쩌는 [[핸드폰]]. 현재에 와서는 [[피쳐폰]]이라고 불리는 그 전 핸드폰의 대다수를 대체했다.
- 스타 연구소 . . . . 1회 일치
스타 연구소는 [[과학자]] 개리슨 슬레이트(Garrison Slate)가 설립했으며, '''정부와 기업의 간섭을 받지 않는, 국경을 초월한 연구소'''를 목표로 삼았다.
- 스트리트 파이터 . . . . 1회 일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첫번째 게임. 1P인 류, 2P인 켄을 써서 등장인물들과 싸우는 게임이다. 이 시기에는 게이머끼리 대전하는 격투 게임보다는 같은 캡콤 게임인 [[워저드]]와 비슷한 보스 러시계 게임에 가까웠다.
- 스트리트 파이터 2 . . . . 1회 일치
보통 한 스테이지는 3판 2선승제로 진행되며, 게임 도중 다른 플레이어가 난입, 먼저 하고있던 플레이어와 대결을 벌일수도 있다.
- 스파이더맨 . . . . 1회 일치
언듯 보면 호리호리한 체격이라 그리 강할 것 같지 않지만, 초인적인 [[괴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헐크, 씽 등의 파워맨 스타일에 비하면 약간 뒤지는 걸로 나오기도 한다. 또한 스피드와 반사신경 등이 놀라운 수준이다.
- 스피커 아줌마 . . . . 1회 일치
[[선풍기 아줌마]]와는 무관하다.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1회 일치
적군의 최고급 에이스와 일기토를 벌이는 임무. 1명만을 골라서 보내야 한다. [[만프레드 폰 리히토펜]]과 같은 실존 에이스를 상대하게 된다.
- 식극의 소마 . . . . 1회 일치
동잡지에 연재중인 [[토리코]]는 비슷하게 요리와 배틀을 접목시킨 작품인데, 이쪽은 어디까지나 배틀물인데 비해 식극의 소마는 전통적인 요리배틀 만화의 플롯을 지키고 있다. 기존 점프 만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정통파 요리배틀 만화.
- 식극의 소마/153화 . . . . 1회 일치
* 소마와 타쿠미가 "듣고 넘길 수 없다"며 현장으로 뛰어든다
- 식극의 소마/164화 . . . . 1회 일치
* 힘줄을 정리한 허벅지살을 잘게 다진 양파와 마늘에 묻혀 마리네한다.
- 식극의 소마/167화 . . . . 1회 일치
* 아자미는 이름난 미식가와 요식업 관계자들을 초빙해서 토오츠키 학원 중등부 학생들의 실력을 과시한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1회 일치
* 정작 에리나는 소마의 방에 왔는데, 뜬금없이 츠카사와 식극에서 진 일을 끄집어내서 "내가 선택해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들을 이유는 없다. 무모한 싸움을 건 네 잘못"이라며 비난한다.
- 식극의 소마/171화 . . . . 1회 일치
* 아자미가 그녀를 세뇌하기 위해 했던 "교육"을 부정하고 "요리와 요리인은 자유롭게 되길 원할 것"이란 결론을 내린다.
- 식극의 소마/173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에리나와 쿠로키바에게 "그것을 구할 수 있고 조리시간에 맞출 수 있겠냐"고 묻는데 둘 다 문제 없다고 자신한다.
- 식극의 소마/174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승산을 묻는 유키에게 "나카리에게 배운 특별한 냉동법"을 언급하는데 유키와 타도코로 모두 납득한다.
- 식극의 소마/177화 . . . . 1회 일치
* 열악한 상황임에도 감자와 전분가루로 면을 만들기 시작하는 반역자 군단
- 식극의 소마/231화 . . . . 1회 일치
* 소마와 사이토는 시작부터 진검승부에 나서며 승부욕을 불사른다.
- 신겐모치 . . . . 1회 일치
일본 야마나시현의 명산품. [[떡]]의 일종. 떡에다가 콩가루와 검은꿀을 묻혀서 먹는다.
- 신동일 (언어학자) . . . . 1회 일치
[[1990년]]에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영어과에서 응용언어학 분야 중 하나인 구술능숙도(spoken proficiency) 평가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99년]] 10월에 <진단목적으로의 영어 듣기 평가도구 타당도 검증: 수행능력 모형화 작업과 다차원구조 이슈 중심으로(Construct validation of a diagnostic L2 listening test: An operational model utilized and multidimensionality issues revisited)>라는 논문<ref>[http://www.slate.illinois.edu/people/graduates/#3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제 2언어습득 및 교육학과 동문]</ref>으로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 신은정 . . . . 1회 일치
* [[2004년]] [[MBC]] 법정드라마 《[[실화극장 죄와 벌]]》 ... 검사 역
- 신쥬 . . . . 1회 일치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자는 뜻으로 함께 죽는다는 것인데, 개념을 잘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대부분 불륜이라던가 근친상간, 신분차(가난한 무사와 기녀라던가...) 등으로 인한 자살이 많았고, 개중엔 짝사랑하던 상대를 죽인 다음 자기도 죽는 식의 막장스런 행패도 종종 일어났다.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해병대 창설의 계기도 신현준의 건의에서 시작됐는데, 1948년 여순 제14연대 반란사건 직후 신현준은 해군본부에 "육전대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진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 신현준의 보고내용에 주목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해군본부가 해병대 창설을 결심하게 되었다.
- 신현탁(영화배우) . . . . 1회 일치
* 2008년 《[[아버지와 아들]]》- 아들 역
- 신형철 . . . . 1회 일치
[[1976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2007~)으로 활동하면서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4~)로 재직 중이다.
- 신호권총 . . . . 1회 일치
* 게임 [[폴아웃: 뉴 베가스]]와 [[폴아웃 4]]에서 무기로 등장한다.
- 심학봉 . . . . 1회 일치
이후 이공계에서 활동하였다. [[특허청]] 특허심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실,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거쳤다.
- 아귀 . . . . 1회 일치
프레타(Preta)는 본래 [[베다 시대]]의 [[리그 베다]] 등의 경전에서는 [[하늘]]에 거주하는 조상의 영혼으로 여겨졌다. 이는 저승의 신 [[야마]] 역시 비슷하여, 하늘에 살면서 조상의 영혼들을 다스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인과응보와 업보 사상이 발전하면서 이들은 업보를 받아 괴롭게 사는 죽은 자의 영혼으로 여겨져서, 불교 육도의 하나로서 지하세계에 해당하는 [[아귀도]]에 사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아니키 . . . . 1회 일치
* 니키(ニキ) : 파생 용어. [[2채널]]의 뭐든지 실황(なんJ)판에서 사용한 용어로서, 카네모토 토모아키에서 따와서 한신에 입단한 선수들 가운데 실력파 선수에게 썻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존재감 있는 인물에게 경의, 애착 등을 담아 「○○니키(ニキ)」라고 부르게 되었다.
- 아사쿠마 . . . . 1회 일치
주로 [[나고야]] 시와 [[아이치 현]]을 중심으로 일본 각지에 점포를 열고 있다.
- 아이박 . . . . 1회 일치
마찬가지로 샤잠의 빌런인 [[닥터 시바나]]와 협력하기도 했으며 샤잠의 적들이 모인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에 합류하기도 했다. DC 코믹스 악당들의 대규모 집단인 시크릿 소사이어티 오브 슈퍼 빌런즈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 아키즈키 리츠코 . . . . 1회 일치
* 사실 리츠코가 전업 프로듀서로 나온건 2와 애니마스 뿐. 하지만 2차 창작에서는 대부분 전업 프로듀서다. 왜일까 원포올에서 복귀했음에도 복귀를 그리는 작품이 드물다.
- 아타리야 . . . . 1회 일치
* 당첨이란 말에서 성공이라는 의미가 나와서, 재수좋게 뭔가 운이 좋아서 인기를 얻은 가게나 상인, 예능인을 뜻하기도 한다.
- 아테지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자의 음차 표기와 비슷하지만 일본어의 아테지는 좀 더 복잡하다. 일본어는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 있어, 음독은 한자의 '음' 자체를 읽고, 훈독은 한자를 고유어 뜻 표기로 읽는 것을 말한다. 음독으로는 오음(呉音), 한음(漢音), 당음(唐音)이 있어 이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테지에서는 음독과 훈독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테지가 아니면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안가르즈 . . . . 1회 일치
야마네 요시아키(山根良顕)와 다나카 타쿠시(田中卓志)의 콤비이다. 둘 다 [[히로시마 현]] 출신.
- 안병근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에서 출생하였으며, 옥산초등학교, [[대구중앙중학교]]와 대구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도 安柄根 선수 프로필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070009921101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8-07&officeId=00009&pageNo=11&printNo=5670&publishType=00020|출판사=매일경제|저자=|쪽=|날짜=1984-08-07|확인날짜=2016-12-15}}</ref>
- 안효민 . . . . 1회 일치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태풍을 부르는 나와 우주의 프린세스]] - 목얼큰
- 암 . . . . 1회 일치
암은 사실상 다세포 동물과 함께 시작된 질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히드라와 같은 원시적인 다세포 동물조차도 암과 유사한 질병을 앓는 경우가 있다.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1회 일치
* 호타루는 나기사와 닮은 "초등학생"인데, 사실은 여학생이 아니라 "남학생"하고 닮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1회 일치
* 아즈사씨는 무사히 구조되어 호타루와 재회한다.
- 앙주 제국 . . . . 1회 일치
플랜태저넷 왕조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그 자식들은 [[리처드 1세]], [[존 왕]]이 다스린 영토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 영토는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노르망디]], 그리고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을 거쳐서, [[피레네 산맥]]에 도달하는 방대한 영토였다. 앙주 제국이라는 표현은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으며, 근대에 이 시기 플랜태저넷 왕조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 야간전투기 . . . . 1회 일치
레이더와 야간용 장비가 장착되어 특별히 성능 희생 없이 주야간에 모두 전투가 가능한 "전천후 전투기"가 대체하게 된다.
-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 . . . . 1회 일치
[[에도 막부]]의 관료, 정치가, 검술가. 야규 무네토시 세키슈사이(柳生宗厳 石舟斎)의 손자이며,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의 장남. 야규 가문의 적자이다. 아명은 시치로우(七郎). [[도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를 모셧다.
- 양시칠리아 왕국 . . . . 1회 일치
현재의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섬을 차지하였다.
- 양진성(배우) . . . . 1회 일치
|| [[2012년]] || [[tvN]] || [[우와한 녀]] || 유난희 || 조연 ||
- 양희승 (작가) . . . . 1회 일치
* [[2018]]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 얼티밋 에콜로지 . . . . 1회 일치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엘 우드별의 과학자 「드크타모리」는, 고요크 사가 대량으로 투기하고 있는 비행기등의 대형 쓰레기를 개조해 2기의 전투 메카를 완성시킨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 . . . 1회 일치
[[에이지 모브 미쏠로지]]는 특이하게도 기존 시리즈와 달리 신화가 주소재.
- 엔포서스 . . . . 1회 일치
본명 Daniel Brito. 첫등장은 The Amazing Spider-Man #10 (March 1964). 3인 중 가장 단신이지만 뛰어난 무술가이다. 유도와 가라데를 익혔다.
- 엘디아 인 . . . . 1회 일치
* 엘디아 제국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지극히 드문 듯 하다.
- 역사 . . . . 1회 일치
그냥 옛날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것이 그만큼 문명과 사회, 개인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왜곡이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비판받는게 아니다.
- 역적 . . . . 1회 일치
전근대 시절에 내란이나 외환 등의 수단으로 국가나 왕실을 전복시킬 것을 기도하는 이를 칭하던 명칭. 또는 한 지역이 통일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을 때에 자신의 정통성이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역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파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역적으로 모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 연설환희불교 . . . . 1회 일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마후라불(摩睺羅佛)이라 자칭한 번승(番僧)이라는 자가 시작하였다고 한다. 번승은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그 피를 불상의 입술에 발라 환희불(歡喜佛)이라 칭하고, 남녀가 벌거벗은 채로 서로 끌어안고 음란한 짓을 하는 불상을 만들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그 뼈를 가지고 수주(數珠,염주)와 음기(飮器,음란한 그릇)을 만들었으며, 술과 고기를 먹고 음탕한 짓을 하여 해를 끼쳤다.([[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h010&gunchaId=av008&muncheId=01&finId=001 (참조)]])
- 예종 . . . . 1회 일치
세조가 싸지른 똥(권신들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이를 견제할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고 개인의 카리스마로만 억누른 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으나 그로 인해 심신을 혹사한 끝에 요절한 왕. 그가 죽은 뒤 왕위는 정희왕후(세조의 비)와 소혜왕후(훗날의 인수대비)의 뜻에 따라 형의 차남인 잘산군(또는 자을산군)이 이으니, 그가 바로 성종이다.
- 오기노 쿄우사쿠 . . . . 1회 일치
여성의 생리 주기를 연구하여, 배란기와 임신가능한 기간에 대한 학설을 발표, 임신수태조절이 응용되는 오기노학설(荻野学説)을 제창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일본에서는 배란주기를 이용한 피임법을 오기노식(オギノ式)이라고 부른다.
- 오니요메 . . . . 1회 일치
[[오니]](鬼)와 [[며느리]]나 [[아내]]를 뜻하는 요메(嫁)의 합성어. 오니 같은 아내, 며느리라는 뜻이 된다.
- 오수미 . . . . 1회 일치
그러나 신상옥이 돌아오자 김중만과도 [[이혼]]하고, 그녀는 그녀의 아이들을 신상옥에게 돌려주고 그 이후로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살다가 [[19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 오승근 (1908년) . . . . 1회 일치
}}</ref>)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 오영실 . . . . 1회 일치
2008년 [[아내의 유혹]]에서 [[정하늘]]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는 사실상 연기자로 전업했다. 따라서 그 시점부터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정하늘이 연기 첫데뷔 캐릭터였는데 지적장애캐릭터여서 처음연기하기엔 부담스러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초월급연기력으로 잘 소화해내어 당시 큰 화제와 호평을 샀다.
- 오은석 . . . . 1회 일치
'''오은석'''(吳恩錫, [[1983년]] [[4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이다. [[런던]]에서 열린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구본길]], [[김정환 (펜싱 선수)|김정환]], [[원우영]]과 함께 단체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대한민국 펜싱 역사상 처음으로 나온 단체전 금메달이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392494 '14초의 찌르기' 오은석, 金 찌른 비장의 '히든카드'], OSEN, 2012년 8월 4일.</ref> [[한국방송공사|KBS]]의 리듬체조 해설가인 [[김윤희 (체조 선수)|김윤희]]와는 부부관계이다.
- 오이마치역 . . . . 1회 일치
JR동일본, 도쿄도 시나가와구에 있는 역.
- 오정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8년 3월 14일에 [[두산 베어스]]와의 시범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3타수 1안타 1도루를 기록하였다.
- 오준영 (1955년) . . . . 1회 일치
20세 시절이던 [[1974년]]에 [[가수]]이자 [[영화 배우|영화배우]] 겸 [[사회자|방송MC]]인 [[임성훈 (방송인)|임성훈]]의 《시골길》이라는 곡을 써서 [[작사가]]와 [[작곡가]]로 데뷔하였고 [[1978년]] 《오준영 1집》을 발표하여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였으며 [[1983년]] [[영화]] 《사랑만들기》로 [[영화 음악]][[영화 감독|감독]] 데뷔했고 [[1988년]] [[김연숙]]의 《초연》([[이호섭]] 작사)을 작곡 하였고 한때는 [[템페스트 (음악 그룹)|템페스트]]의 《동그란 얼굴》, 《가을비》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 오철환 . . . . 1회 일치
* [[1988년]] 영양 남씨와 결혼
- 오타쿠 서클의 공주 . . . . 1회 일치
이하와 같은 것이 유사 사례로 여겨진다.
- 오타쿠 혐오 . . . . 1회 일치
오타쿠 혐오 계층에서는 오타쿠는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오타쿠들의 상징인 특정한 취미 탐닉, 컬렉션 성향은 곧 사회성 부족의 징후로 여겨진다. 종족 이들의 컬렉션 자체가 반사회적 물건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총기]]와 같은 군장류([[밀덕]]), [[로리콘]]이나 [[도촬]] 등의 성적인 물건이 그러하다.
- 온나코도모 . . . . 1회 일치
'여자(女)'와 '아이들(子供)'을 합쳐서 가리키는 말이다. '여자아이'가 아니다.
- 올마이트 . . . . 1회 일치
생김세의 특징은 큰 체구의 근육질이며 더 큰 특징은 화풍(...). 서구 히어로 만화에 나와도 무리없는 화풍이며 그가 등장하면 정말 화풍이 다르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항상 웃는 표정이며 미세한 변화는 가끔 있으나 이외에는 얼굴에서 웃는 표정이 떠나질 않는다.
- 왕자 . . . . 1회 일치
왕, 혹은 왕의 자격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 '패자'(覇者)와 비교하면 좀 더 선천적이고 온유한 느낌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 왝더독 . . . . 1회 일치
일단 대통령 밑에 있는 사람 중 하나. 브린, 모스와 함께 다니지만 멘탈이 약하다.
- 요괴:트위터 . . . . 1회 일치
서양에서 처음 나타난 요괴, 전 세계 각지로 빠르게 퍼져서 이젠 이 요괴를 볼 수 없는 곳이 없다. 작고 푸른 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파랑새]]라고 하면 마치 희망을 느끼게 하지만, 흉조(凶鳥) 트위터라 불리며 여러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요괴이다.
- 요코타 메구미 . . . . 1회 일치
2014년,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는 요코타 메구미의 딸, 손녀와 올란바토르에서 재회했다.[[http://www.asahi.com/articles/ASJ693SH9J69UTIL00D.html (참조)]]
- 용융금속형 . . . . 1회 일치
* [[크라수스]] : [[파르티아]]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사망 후에 시신의 목에 당하였다.[[https://jmagazine.joins.com/forbes/view/313410 (참조)]]
- 우의형 . . . . 1회 일치
1948년 태어난 우의형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서울가정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서울고등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법원행정처에서 조사심의관으로 지냈으며 2003년에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장, [[청주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2005년에 변호사 우의형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2009년 7월 22일에 제17대 영남대 재단 이사장,<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7375.html]</ref> 2011년 11월 10일에 주식회사 화진 사외이사에 선임되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11111017081381674&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 운니의 차 . . . . 1회 일치
구름(雲)과 진흙(泥)의 차이라는 뜻.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뜻으로서, 우리 말로 '천양지차'와 비슷하다.
- 운명의 붉은 실 . . . . 1회 일치
오행사주추명술(五行四柱推命術)이라는 점술 사이트에서는 운명을 잇는 다섯 개의 색의 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료로 생년월일을 받아 상대와 점술을 쳐주고 있다.
- 운전기사 . . . . 1회 일치
이 때문에 높으신 분들 역시 운전기사와의 관계를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고. 반대로 그 높으신 분의 성격이 상당히 이상하거나 안 좋으면 운전기사 역시 고달프다.
- 운제부인 . . . . 1회 일치
* 친정어머니 : 박씨 -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딸
- 울트라 시리즈 . . . . 1회 일치
[[가면 라이더 시리즈]], [[슈퍼전대 시리즈]]와 함께 특촬물 업계의 대표적인 시리즈. [[울트라 Q]]가 나오고, 이어서 [[울트라맨]]이 등장해 거대 히어로의 대표주자격이 되었다. 그 거대한 인지도는 미국에 [[슈퍼맨]]이 있다면 일본에는 울트라맨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
- 원피스/816화 . . . . 1회 일치
* 루피일행은 사무라이와 밍크족을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 원피스/824화 . . . . 1회 일치
* 예상대로 상디는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안 좋다.
- 원피스/881화 . . . . 1회 일치
* 그린룸이란 거대한 파도가 휘감기는 순간 생기는 파도 속 공백지대, "파도의 방"이다. 어인족들이 놀이터처럼 이용하는 곳. 징베는 그곳으로 배를 몰고 있었다.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일행은 어리둥절하다. 징베는 멋진 배와 멋진 항해사가 있으니 조타만 좋다면 이 배는 무적이라며 그대로 그린 룸을 타고 파도를 가른다. 나미는 이만한 배를 수족처럼 다루는 징베의 조타 솜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무사히 항해를 계속하는 써니호. 하지만 빅맘 측은 써니호가 완전히 삼켜져 침몰했다고 착각한다. 빅맘이 파도를 일으켰을 땐 당황했던 페로스페로도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그는 그 소식을 전보벌레도 빅맘 해적단 전체에 전달한다.
- 원피스/888화 . . . . 1회 일치
* [[몽키 D. 루피]]는 다시 한 번 [[샬럿 카타쿠리]]와 격돌. 카타쿠리는 루피에겐 죽거나 산하로 들어오거나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하는데 루피는 "이긴다"를 택하고 카타쿠리는 "그런 선택지는 없다"고 빈정거린다.
- 원한해결사무소/3화 . . . . 1회 일치
이틀 뒤, 우메모토 사유리는 회사 입구에서 마츠지리 신지 사장을 스토커라고 욕하고 달아난다. 그와 동시에 사내 컴퓨터에서는 사장의 성추문을 열거하며 공격하는 메일이 전 사원에게 전달된다. 사내에서는 우메모토가 범인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게 되었고, 그걸 전해들은 사장은 다혈질 성격 답게 변호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부하의 말은 듣지도 않고 당장 우메모토의 집에 달려간다. 우메모토의 집 앞에서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화내던 사장은 곧 [[경찰]]에 체포당하고 만다.
- 위안부 소녀상 망치 테러 사건 . . . . 1회 일치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 반대! 대학생행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협상결과를 반대하고 특히 소녀상 철거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으며, 2015년 12월30일부터 소녀상을 경비하고 있었다.
- 위의공 . . . . 1회 일치
이민족인 적(狄)에 의한 위나라의 멸망은 이 당시 다른 어떤 제후국 또한 단독으로 대항해서는 이민족의 침공을 이기지 못하고 위나라와 같이 비참하게 멸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위의공이 도가 지나친 암군이었다는걸 감안한다고 해도, 다른 제후국들 역시 그 같은 암군이 집권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고(…)] 잘못하면 중원 문명국들이 이민족에게 각개격파-병탄 당하여 [[황하 문명]]이 [[인더스 문명]]처럼 땅 속에 묻히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 윌밍턴 . . . . 1회 일치
[[남북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항구였다. 이 도시가 함락되며 아메리카 연합국은 외부와 단절되게 된다.
- 유니콘남 . . . . 1회 일치
이 설명은 다음 2채널 스레드를 참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유니콘 계 남자와 비처녀 증오를 묶는 소스가 일본 인터넷에서는 이것 밖에 없기 때문.
- 유로달러 . . . . 1회 일치
* 유로컬런시라고 하지만 정작 유로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 유목민 . . . . 1회 일치
유목민의 대침략을 부르는 원인 가운데 하나. 유목민은 특정한 지역에서 가뭄과 기근이 닥치면 곧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부족을 밀어낸다. 밀려난 부족은 또 다른 부족을 밀어내고, 그 부족은 또 다른 부족을 밀어낸다 이 도미노 현상은 최종적으로 농경민족의 정주국가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면서 끝나는데, 농경민은 도망갈 데가 없기 때문(…).
- 유언/게임 . . . . 1회 일치
|| 와라베 ||잠깐만! ||
- 유언/만화 . . . . 1회 일치
|| 맥스 셰이 ||아뇨, 내 사랑. 아무 문제없어요. 이리 와요. ||
- 유카타 . . . . 1회 일치
본래 [[가마쿠라 시대]]에 귀인이 증기욕을 할 때 입었던 삼(麻)으로 만든 유카타비라(湯帷子)라는 옷의 이름을 줄여서 '유카타'라고 한 것이 기원이다. 카타비라(かたびら)는 「겹옷의 한쪽면(袷の片ひら,아와세노 카타히라)」라는 뜻으로서, 안감을 붙이지 않은 홀옷을 뜻한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봉오도리]](盆踊り)가 성행하면서, 유카타가 민간에 퍼지게 되었다.
- 유태공 . . . . 1회 일치
서경잡기(西京雑記)에 따르면, 유방이 천하를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공은 한탄을 했는데 자신은 고향 풍(豊)에 있을 때 길에서 술을 마시고 떡을 먹고, 투계(闘鶏)와 축국(蹴鞠)을 즐기는걸 좋아했으나 황제의 아버지가 되어 서민처럼 놀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유방은 [[소하]]를 불러 장안 동쪽에 아버지의 고향 풍과 꼭 닮은 거리를 만들게 하고, 풍의 주민들까지 모두 이주시켜서 아버지가 놀 수 있게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방과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거나 노는걸 좋아하는 [[한량]] 같은 성품이었던 듯.
- 유한식 . . . . 1회 일치
이후 [[한국농어촌공사]] 감사에 임명되어 정치계와는 좀 거리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 육홍균 . . . . 1회 일치
1922년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비밀결사 흑우회에 가입해, 회지 흑우, 소작농의 발간을 주도하였다. 1923년에는 [[박열]], [[김중한]] 등과 함께 불령사를 조직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출옥 후인 1926년 10월 흑우회가 흑색청년연맹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할 때에도 계속 참여하였다. 1927년 고향 선산군으로 돌아와 [[협동조합]] 우리살림사를 조직하였고, 옥성농우회를 통해 지역 농민운동을 이끌었다. 1939년 4월 검거되어 투옥되었다가, 출옥 후 [[중국]]으로 떠났다.
- 윤지숙(배우) . . . . 1회 일치
* [[2009년]] [[KBS2]] 아침드라마 《[[아내와 여자]]》 ... 이자경 역
- 윤진솔 . . . . 1회 일치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 신디 역
- 윤진식(국회의원) . . . . 1회 일치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였다. 청주고등학교 때부터 [[이시종]] 현 충청북도지사와는 절친인 동기생이었다. 단, 나이는 윤진식이 1살 더 많다.
- 윤천주 . . . . 1회 일치
192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래고등학교|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가나자와]]의 [[구제고등학교|제4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했으나 815해방으로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은혼/583화 . . . . 1회 일치
* 우츠로의 불사신 능력은 코우카와 차이가 있다는 의견과, 결국 본체가 죽고 가까스로 피한 오른팔이 살아남은 거니 결국 같을 거라는 의견이 충돌 중.
- 은혼/589화 . . . . 1회 일치
* 격돌 후 동시에 나가떨어지는 가구라와 카무이
- 은혼/652화 . . . . 1회 일치
*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의 복귀. 전장에서 [[가구라]], [[카무이(은혼)|카무이]]와 감동적인 가족상봉이 연출되나 했으나 카무이의 선빵으로 개판이 된다.
- 이경영(1958) . . . . 1회 일치
* MBC [[실화극장 죄와벌]] <죽음의 포즈> 편 - [[죽음을 연출한 사진]]의 범인 이동식 역[* 단 여기서는 한동수라는 가명으로 처리되었다.] (2003년)
- 이기광 (법조인) . . . . 1회 일치
1955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1986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87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1990년 [[대구지방법원]] 1996년 [[대구고등법원]] 1999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1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08년 [[대구고등법원]]을 거쳐 2011년까지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2년에는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15년 2월까지 보임하였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된 2012년 2월에 경상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2015년에는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1년동안 재판장을 하였다. 2016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2년동안 제18대 [[울산지방법원]]장에 임명되면서 제20대 울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0년이 넘는 공직자 생활을 마치면서 퇴임식에서 "아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저를 뒷바라지하면서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 준 제 아내, 무등 한 번 태워 주지 못했고, 손잡고 봄길 한 번 함께 걸어 보지못했다."며 아쉬워했다.<ref>로이슈 2018년 2월 12일자</ref>
- 이대근 (조선) . . . . 1회 일치
《순흥읍지(順興邑誌)》에 의하면 그는 선영을 다녀오던 중 순흥 청달리를 지날 때 그가 탄 말이 길을 피하여 비껴가는 곳이 있으므로 이를 이상하게 여겨 하마 후 살펴본 뒤 이곳이 금성대군이 피흘린 곳이라 생각하여 의심을 품은 채 지나갔다. 그날 밤 이대근의 꿈에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나타나 그 곳은 자신이 피흘린 곳임을 말함으로써 곧 府事와 함께 사람을 시켜 조사한 후 이 곳을 봉축하고 단을 쌓았다. 이를 [[금성단]](錦城壇)이라 부른다.
- 이득윤 . . . . 1회 일치
'''이득윤'''(李得胤, [[1553년]] ~ [[1630년]])은 [[조선]] 중기(선조-광해군)의 정치가·학자·음악 이론가이다.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년) 진사가 된 뒤, 참봉, 형조좌랑, 괴산(槐山)군수를 지냈다. 서기(徐起)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역학 (철학)|역학]](易學)에 뛰어났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1620년]](광해군 12년)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를 엮어서 세상에 내놓아 [[거문고]]의 법도(法道)를 바로 전하게 하였다. 음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여러 금보 및 그 저자와 [[거문고]] 대가에 대하여 다룬 것을 보면, 그가 음악에 조예가 깊고 상당히 박학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저서로 〈서계집(西溪集)〉이 남아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米院面) 가양리(佳陽里) 인경산(引頸山) 아래에 있다.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과 [[청안군|청안]](淸安)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되어 있다.
- 이미라 . . . . 1회 일치
* [[신 로미오와 줄리엣]] (1997년)
- 이별대행업체 . . . . 1회 일치
와카레사세(別れさせ)는 헤어지게 만든다는 뜻, 야(屋)는 특정한 일을 맡는 업자나 가게를 뜻한다. 2001년 니혼테레비에서 동명의 드라마가 방송된 바 있다.
- 이병석(정치인) . . . . 1회 일치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옥중 출마한 [[무소속]] [[허화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허화평의 [[국회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박태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이사강 . . . . 1회 일치
* 2013년 나인뮤지스 - 와일드 (Wild)
- 이상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6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 15경기에 등판해 5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 [[6월 15일]]에 1군에 올라왔다. 이 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56327 '아기공룡' 이상민의 성공적인 1군 데뷔전] - OSEN</ref>
- 이상화(1980) . . . . 1회 일치
2004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 구속은 140km 초중반 정도로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이 좋다고 평가되었다. 2006년 무려 121이닝을 소화하며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45경기 121이닝 5승 6패에 평균자책점은 3.87을 기록.], 이 때의 혹사 여파로 인해서인지 이후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금와서는 당시 [[서정환]]감독시절의 혹사로 [[한기주]], [[신용운]] 등만 거론되지만 어찌보면 이 둘보다도 더 심하게 굴려졌다. 2007년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였고, 2009년 시즌이 끝나면서 제대하였다. 하지만 혹사의 여파로 인한 부상으로 전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11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 이상훈 (1987년)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0년]] [[7월 13일]]<br>[[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대타
- 이승경 (1290년) . . . . 1회 일치
원나라에 들어가 올과(乙科)에 급제하여 태자첨사(太子詹事)가 되었고, 어사(御使)를 제수받아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해 요양성 참지정사(遼陽省參知政事)로 승진, 많은 공적을 쌓았으므로 원나라 조정(朝廷)에서 그의 아버지 천년(千年)과 조부(祖父) 장경(長庚)에게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追封)하였다. 공민왕 6년(1357년) 모친상을 당해 귀국, 이듬해 원(元)나라에서 요양성사(遼陽省事) 탑해첩목귀(塔海帖木鬼)를 보내어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 이에 공민왕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임명하였으며, 1359년 홍건적(紅巾賊)이 침범하자 도원수(都元帥)로 나가 서경(西京)을 회복하였으나 부하 장수들이 홍건적을 힘껏 쳐부수지 않았음을 분하게 여겨 음식을 폐한 끝에 병을 얻고 집에 돌아와서는 만사를 돌보지 않았다. 공민왕은 여러 재상들과 더불어 그의 노고를 칭찬하여 충근경절협모위원공신(忠勤勁節協謀威遠功臣)에 책록하였다. 사후 경상북도 성주(星州)의 안산서원(安山書院), 옥천의 보덕사(報德祠)에 제향되었다.
- 이승현 (1985년 7월) . . . . 1회 일치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파라과이]]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 이승효(탤런트) . . . . 1회 일치
2017년 10월 8일에 2009년부터 8년간 몸담은 소속사 매니지먼트 구와의 전속계약이 만료됐고, 2018년 1월 11일 [[블루드레곤]]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 이억년 . . . . 1회 일치
사위 광평군 이능의 본관은 성주로 기록되었으나, 이억년과는 다른 문중 사람이었다. 이억년의 선조는 신라의 재상 이순유였고, 이억년의 사위 이능은 고려 말에 사재감 동정을 지낸 이무재(李茂才)의 증손이었다.<ref>뒤에 이무재를 시조로 하는 이씨는 성산이씨, 광평이씨라 하여 성주이씨와 구별하려 부르고 있다.</ref>
- 이영 (1494년) . . . . 1회 일치
저서로는 시와 글을 모은 《괘편당실기 (掛鞭堂實紀)》가 있는데, [[1902년]](광무 5) 그의 외후손 곽종철(郭鍾澈) 등에 의해 편집, 간행하였다.
- 이원형(1951) . . . . 1회 일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창화(정치인)|정창화]]와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박철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 이은수(육군) . . . . 1회 일치
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 이인민 . . . . 1회 일치
도은 [[이숭인]]은 그의 사촌형제인 이원구(李元具)의 아들이다.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딸 [[경순공주]]의 부마인 [[이제]]는 그의 형 [[이인립]]의 아들이었다.
- 이장경 . . . . 1회 일치
[[이순자]]와 [[이규광]], [[이규동 (1911년)|이규동]]은 아들 [[이백년]]의 후손이었다.
- 이재룡(1964) . . . . 1회 일치
[[2000년대]] 초반, 연예계를 휩쓴 X-File 논란에서 "유호정과 쇼윈도 부부이며, 곧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실렸고, 실제로 연예인들이 집단행동에 나섰을 때에도 같이 했던 것 같다. 정작 부부는 "우리보고 벌써 [[이혼]]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면서요? 허허허"하며 웃어넘기는 분위기. [[최수종]] - [[하희라]]부부와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얻었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지만, 눈에 띄는 일 없이 지금까지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듯.
- 이재율 (1993년) . . . . 1회 일치
[[2016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손시헌]]의 안타 후 대주자로 교체되면서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이 도루는 2016년의 팀 내 첫 도루였다.<ref>{{뉴스 인용 |저자= 권태영|제목= NC 구창모·박준영·이재율 성공적인 데뷔전|url=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76362 |뉴스= 경남신문|출판사= |위치= |날짜= 2016-04-02|확인날짜= 2016-04-09}}</ref>
- 이정명 . . . . 1회 일치
'''이정명'''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경북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여러 해 일하다 1997년 첫 소설 '천년 후에'를 완성, 1999년 발표했다. 이후 [[뿌리깊은 나무 (2011년 드라마)|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드라마)|바람의 화원]] 등이 드라마화되며 인기를 끌었다.<ref>[http://ch.yes24.com/Article/View/14419 역사소설은 위대하고 재미있는 오답이다 - '바람의 화원'의 이정명] YES24, 2008년 10월 10일</ref><ref>[http://webzine.knu.ac.kr/wz3/mobile/pages/02.htm?VOL=159&mode=view 소설가 이정명 동문] 경북대웹진, 159호</ref>
- 이정우 (1950년) . . . . 1회 일치
'''이정우'''(李廷雨, [[1950년]]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이종희 (1942년) . . . . 1회 일치
이종희는 [[1969년]] 대한항공 공채 1기로 입사해 말단 직원에서 총괄사장 자리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받는다. 출범 당시 대한항공은 아시아의 작은 지역항공사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글로벌 톱10으로 세계적인 대형 항공사로 성장했다. 그동안 이종희는 [[대한항공]]의 성장 과정에서 40년 한국 민항 역사의 산증인 역할을 했다. 그는 경영학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정비분야로 입사해 30여년간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 항공사의 전문경영인이 되는 데 필요한 업무를 두루 섭렵한 '테크노 경영인'이다. 특히 여객 영업에만 20여년간 몸 담은 여객영업 분야 전문가로서 신규 노선 개척 및 세계 항공사와 제휴 업무를 주도적으로 맡아왔다. [[대한항공]]은 [[2009년]] [[12월]] 말 인사에서 이종희를 대한항공 상임고문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대한항공 대표이사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이종희 대한항공 고문과 서용원 부사장 3인의 각자 대표로 변경됐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22517362982441&outlink=1|제목=대한항공, "앞으로 3인 대표이사 체제"
- 이한응 (1849년) . . . . 1회 일치
[[1870년]](고종 7년) 봄 무과(武科)에 급제, 영의정 [[김병학]](金炳學)의 건의로 특별히 가설 내승(內乘)에 임명되었다.<ref name="dager1">고종실록 7권, 1870년(고종 7년, 개국 479년) 5월 20일 을유 1번째기사, 조선 개국(開國) 479년 문희묘, 의소묘, 육상궁, 연호궁, 선희궁에 전배하다</ref> [[김병학]]은 '(故) 충장공(忠壯公) 이복남(李福男)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절개와 의리에 대해서는 열성조(列聖朝)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보답하는 은전(恩典)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의 봉사손(奉祀孫)이 과거에 합격하였으니, 마땅히 조정에서 뜻을 보여주는 거조(擧措)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종전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선전관(宣傳官)과 내승(內乘) 중에 가설(加設)하여 단부(單付)한 전례(前例)가 이미 많았다'며 그에게도 선전관이나 내승을 가설하여 임명해줄 것을 청하였다.<ref name="dager1"/>
- 이현우 (가수) . . . . 1회 일치
* [[2012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금요시트콤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 현우 역
- 이황근 . . . . 1회 일치
* 1990년 《[[순돌이와 각시탈 품바]]》
- 이효린 . . . . 1회 일치
[[이수형]](李秀亨)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혜민서 참봉 은이고 어머니는 공주이씨 이성의 딸이다.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의 문하생으로 수학하였다. 순흥 재향지에 의하면 음사로 관직에 나갔다 한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사촌형 [[이흥문]] 등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김개국]] 의병장 휘하에서 왜적에 대항하였다. 그 공로로 [[내자감]] 주부(內資監主簿)와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지냈고, 80세에 수계(壽階)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 이효정(남배우) . . . . 1회 일치
|| '''학력'''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최민식]]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과]] 1년 선배가 된다.] ||
- 일곱개의 대죄/171화 . . . . 1회 일치
* 정면에서 나선다면 반드시 경계하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대싸움축제에 참가자로 들어와 방심을 노렸던 것.
- 일곱개의 대죄/172화 . . . . 1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은 원래 멜리오다스의 전우.
- 일곱개의 대죄/175화 . . . . 1회 일치
* 에스타롯사는 초반에 멜리오다스 수배서에 나온 얼굴과 동일인물. 멜리오다스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 일곱개의 대죄/176화 . . . . 1회 일치
* 그래서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이 들어오기 전까지 십계의 두 자리는 공석이었다.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1회 일치
*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레이로드와 프라우드린.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1회 일치
* [[일곱개의 대죄/188화]]와 소제목이 중복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는 불명.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1회 일치
* 자라트라스와 핸드릭슨은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을 상대로 선전하지만 점차 수세에 몰린다.
- 일곱개의 대죄/196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와 반은 오랜만에 재회한 셈이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 일곱개의 대죄/번외편 . . . . 1회 일치
* 그런데 거대화된 곤충들이 튀어나와서 바캉스는 최종적으로 엉망이 된다.
- 일념발기 . . . . 1회 일치
* [[발기]]가 들어있어 엄해보이는 단어지만 그 [[발기]]와는 다소 무관할 듯 하다.
- 일본 니카타현 이토이가와시 대화재 . . . . 1회 일치
2016년 12월 22일 오전, 일본의 [[니카타현]] 이토이가와시에서 발생한 대화재. 140여 가구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 일본어 단어를 찾아보기 좋은 사이트 . . . . 1회 일치
다시 돌아와서 구글. '''위의 사이트를 전부 한꺼번에 검색해서 결과를 보여주니까''' 결국 구글이 최강이다.
-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 . . . . 1회 일치
일본어는 한국어와 달리 기본적인 자음 구분을 서양 언어들처럼 유성음(voiced)과 무성음(voiceless)으로만 구분한다.
- 일본의 대학서열용어 . . . . 1회 일치
일본 최상위권 사립대학인 와세다 대학(早稲田大学)과 게이오 대학(慶應義塾大学)을 묶어서 뜻하는 말이다.
- 일요목수 . . . . 1회 일치
[[일요일]] 등 휴일을 사용해서 [[취미]]로서 간단한 목수로서 작업을 하는 것. 흔히 말하는 [[DIY]]와 비슷한 뜻이다.
- 임각수 . . . . 1회 일치
1980년 [[7급 공무원]] 공채에 합격하였다. 이후 [[강원도청]], [[이북 5도청]],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 임윤선(법조인) . . . . 1회 일치
2012년에는 [[문화방송|MBC]] <[[최강연승 퀴즈쇼 Q]]> 첫회에서 팀원으로 참여해 예선 광탈했지만, 9회에 다시 참여해서 '''최초이자 유일한 7연승 챔피언이 되면서''' 3억원을 받아 화제가 되었으며 그 상금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후 각종 방송 프로그램 진행 등을 맡으며 변호사와 방송 일을 병행하고 있다.
- 임지현(가수) . . . . 1회 일치
2014년 10월 스티(STi),울티마(ULTIMA)와 함께 [[비빔면]]이란 곡으로 데뷔했다.
- 임현준 . . . . 1회 일치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삼성 라이온즈]]의 4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2011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KIA]]와의 개막전에서 데뷔 첫 구원 등판하여 첫 구원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20266 '채태인 역전 만루포' 삼성 첫 승…KIA, 개막전 7연패] 《OSEN》</ref>
- 자본통제 . . . . 1회 일치
=== 경제위기와 자본통제 ===
- 자시키로우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에 다이묘(大名)와 하타모토(旗本)에 상응하는 직책에 있는 영주들은 엄격한 무가제법도에 따라서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이러한 자들 가운데 미치광이 같은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문란하고 분방한 행동을 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 부하인 가신(家臣)들은 지극히 곤란해졌다. 왜냐하면, 이러한 법도를 어긴 영주는 막부로부터 영지를 빼앗기는 등의 개역 처분을 당할 수 있었는데 영주가 쫓겨난 다음에는 가신들 역시 벼슬자리를 잃고 낭인 무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 장갑차 . . . . 1회 일치
장갑차라는 의미가 장갑이 달린 차라는 의미기에 일반 승용차도 장갑을 달면 장갑차라 부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장갑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군대에서 쓰는 군용 장갑차량이 많다. 그리고 군용이라 해도 흔히 탱크라 부르는 현대의 전차와도 구분하는 이미지.
- 장강명 . . . . 1회 일치
1975년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잡지사 기자이자 문학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4년 PC 통신 하이텔에 SF 소설을 연재하고, 군 복무 중에는 장편소설을 투고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였으나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고 퇴사하였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E%A5%EA%B0%95%EB%AA%85&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14607|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신문기자 관두고 2년만에 소설 6권, 문학賞 휩쓸어… 글만 써 먹고살고 싶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3112580|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조선닷컴 인물검색|url=http://cdb.chosun.com/search/db-people/i_service/manDisAllXml.jsp?uci=G010+1-0214200609200038034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YES24 《한국이 싫어서》 소개|url=http://www.yes24.co.kr/24/goods/1797227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
- 장기 . . . . 1회 일치
중국 장기와 일본 장기, 한국 장기는 각자 규칙이 다르다. NTX 위키는 한국 위키니까 한국 장기의 규칙을 설명한다.
- 장기오 (공무원) . . . . 1회 일치
1958년 창설된 특전사의 전신인 공수특전단의 창설멤버로 차지철 대위(포병간부 임관), 전두환 대위(육사 11기), , 장기오 대위(육사 12기), 최세창 중위(육사 13기)와 함께 1958년 미국에 유학하여 특수레인저 코스를 수료하고 한국군 최초로 윙뱃지를 달았던 군인으로 유명하다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12기]] 출신으로 [[하나회]]의 일원이었다.
- 장대환 . . . . 1회 일치
'''장대환'''(張大煥, [[1952년]] [[3월 21일]] ~ )은 [[매일경제]]와 [[매경미디어그룹]]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언론인이다. 본관은 [[흥덕 장씨|흥덕]].
- 장세현 (배우) . . . . 1회 일치
* 스니커즈 초코바(효도르와 팔씨름)
- 장소팔 . . . . 1회 일치
[[경성부]]에서 출생한 그는 [[1942년]]에 연극배우 첫 데뷔로 연예계에 입문했다.<ref>연합뉴스, 2002년 4월23일, 만담가 장소팔씨 별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0158511]</ref> [[1944년]] [[박춘재]]의 문하에서 '재담 수업'을 쌓은 뒤 [[한국 전쟁]] 이후 '한양합주단', '조선창극단'을 통해 만담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ref>동아일보, 2002년 4월23일, [명복을 빕니다]'만담의 帝王' 장소팔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25613]</ref> 이후 고춘자와 함께 전국 명승 고적을 두루 돌아다니며 만담으로 묘사, 당시 TV가 없는 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민요만담이 인기를 끌었다. [[1996년]] 만담보존회를 만들어 [[2001년]] 7월까지 회장을 지냈다.
- 장우혁 . . . . 1회 일치
* [[2005년]] [[문화방송|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 장운호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9월 21일]]<br />[[한밭야구장|대전]] 대 [[SK 와이번스|SK]]전 대타
- 장유환 . . . . 1회 일치
* oo이라고 나와있네요. (연애능력평가)
- 장윤희 (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배우자= 김정균<ref>[http://www.iheadlin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33 김정균 보령그룹 3세, 지난 5월 ‘미코’ 장윤희씨와 결혼]</ref> ([[2014년]] ~ 현재)
- 장은숙 (가수) . . . . 1회 일치
'''장은숙'''(張恩淑, 1957년 5월 2일 ~ )은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가수]]이다. 일본에서는 주로 [[엔카]]와 [[발라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 장준영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10월 9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홈경기서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고, 이날 경기의 MOM에 선정되었다.
- 장준휘 . . . . 1회 일치
* 《할머니와 돼지머리》 (2016년) - 중계인 역
- 재호 (배우) . . . . 1회 일치
《매일개서모도흔우상》에서는 다큐멘터리 촬영 차 중국에 왔다가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의 인기 배우 역할을 맡았고, 직접 중국어 연기까지 소화하며 현지 스태프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인간대포》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을 매력적인 남자로 거듭나게 도와주는 인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군’ 재호, 대륙이 먼저 알아본 라이징★|url=http://sports.donga.com/3/all/20180329/89357445/1|날짜=2018-03-29|뉴스=스포츠동아}}</ref>
- 쟈니즈 . . . . 1회 일치
일본 내에서 굉장한 인기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 저변교 . . . . 1회 일치
진학을 목적으로 하여 실적을 얻는 학교인 진학교와는 반대로 저변교는 그 자체가 ‘되도록이면 진학하고 싶지 않은 학교’로 취급받는다. 일단 교육환경이 나빠서, 학생들이 대부분 학력이 없어서(고등학생인데 분수 계산을 하지 못한다 등) 교육의 질이 해당 단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낮다. 물론 비행청소년이 넘쳐나고, 심지어 학교가 평판이 좋지 않다보니 취업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이유가 있다.
- 전관 . . . . 1회 일치
2007년 대선 출마 당시 [[새시대참사람연합]]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시 대선 포스터는 '''지키자, 대한민국!'''이라는 로고를 새겨넣고 철모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보병 제9사단장 및 [[학생중앙군사학교]]장을 지낸뒤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 전광우 . . . . 1회 일치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 전기안전관리법 . . . . 1회 일치
이전까지는 전기제품만 받던 KC인증(국가통합인증)을 의류나 잡화 등 신체와 접촉하는 모든 품목으로 확대되었는데, KC인증비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들고 위반시 과태료가 500만원이다. KC인증을 받지 않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은 제조, 수입, 판매, 구매대행, 판매중개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서 영세상인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 전기의자 . . . . 1회 일치
[[코끼리]] 한마리도 이런 식으로 처형된 사례가 있다. 톱시(Topsy)라는 이름의 코끼리였는데 [[사육사]]를 죽여버린 사고를 친 것. 그 결과 6,600 볼트 전류로 사형당했다. [[https://youtu.be/NoKi4coyFw0|유튜브 동영상-충격적일 수도 있음.]] 위의 최초의 인간 사형집행과 함께 잔인하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이와는 별개로 사보타주를 통해 교류를 밀던 웨스팅하우스를 파산시키기는 했으나 교류의 보급을 막는 데에는 실패했다.
- 전민제 . . . . 1회 일치
신장은 175cm이고 체중은 75kg인 그는 [[1950년]] [[8월 1일]]에 여성 영어영문학자 [[나영균]]과 결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슬하 1남 3녀를 두었다.
- 전상렬 . . . . 1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 전인환 . . . . 1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8년]] [[9월 25일]]<br>[[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 전정희 (배우) . . . . 1회 일치
**《[[웃으면 복이와요]]》
- 전진영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YTN 라이프|YTN 웨더]] : (2014년 ~ 2015년) 날씨와 음악이야기 진행
- 전희숙 . . . . 1회 일치
{{은메달|[[2012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2 와카야마]]|플뢰레 단체전}}
- 절대가련 칠드런/434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그 전에 자신을 방해한자와 배신한자들을 응징하려 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36화 . . . . 1회 일치
* 후지코는 자신이 깨어난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는데 이 8호가 예지한 미래가 뒤집혔다고 보는 견해를 "허술하다"고 보고 "하나를 처리하면 또다른 멍청이가 나오는 일에 질렸다"면서 갑자기 미나모토 코이치와 사카키를 더 칠드런 임무에서 배제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1회 일치
* 마기는 효부의 부하이자 가족으로서 요우와 모미지를 구하고 함께 판도라를 건설하게 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1회 일치
* 교복차림으로 돌아와 병원을 나서는 효부 쿄스케.
- 정다혜(1985) . . . . 1회 일치
* MBC [[이리와 안아줘]](2018) - 천세경
- 정다혜(1987) . . . . 1회 일치
* 2010년 [[KBS 월드]] 3D드라마 《스마트 액션》 ... 여와 역
- 정대석 . . . . 1회 일치
정대석은 전통적 기반위에 현재의 감성을 입혀 새로이 재구성하여 거문고를 일반인에게 알리고 보급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연주자다. 출중한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그동안 고고하게 기품을 유지해 온 거문고를 일반 계층에게 전파시키는데 기여해온 바 크다. 그는 거문고와 더불어 연주자 및 창작자로서의 삶을 일관하여 온 사명의식을 갖고 있는 국악인이다. 정대석은 일찍이 거문고의 창작음악에 몰두하여 많은 거문고 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곡들은 거문고의 고유한 특징과 매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을 받고 있다. 거문고연주자 정대석은 이런 관점에서 면면히 자기완성을 의지하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국악인으로서의 자태를 유지해온 예술인이다. KBS국악관현악단 수석 및 악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서울악회 동인, 거문고연구회 동보악회 대표이다. 2003년 KBS국악대상 대상 및 현악상과 제2회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3/11/20070311000979.html 거문고 명인 정대석씨 ''非음대'' 첫 서울음대] 교수세계일보(2007.03.12)</ref>
- 정도복 (고려) . . . . 1회 일치
고려 충정왕 3년(1351년) 영주 삼판서 고택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선생의 나이 16세에 양친 부모님을 모두 잃고, 큰형인 삼봉 [[정도전]]이 묘막에서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우연히 처음으로 [[성리학]]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20세 때까지 4년여간 [[성리학]]을 수학하였다. 이후 진사시(進士試)에 올랐으며, 우왕 11년에 지공거 염국보(廉國寶)와 동지공거 포은 [[정몽주]]가 주관한 과거에 제11위로 입격하였다.<ref>당시 우현보의 아들 우홍명(禹洪命)이 장원급제하고 함부림(咸傅霖), 변계량(卞季良), 한상덕(韓尙德), 박석명(朴錫命), 권원(權遠), 김자지(金自知), 이맹균(李孟畇) 등 기라성 같은 인물 33인이 급제한 과거에서 그는 제11위였다.</ref>
- 정동기 . . . . 1회 일치
* 2008년 6월 ~ 2009년 7월 : 대통령실 [[청와대 민정수석|민정수석비서관]]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6년]] [[6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프로데뷔전에서 첫 승리를 안았다. 이는 고교 신인선수 선발데뷔전으로 승리를 챙긴 6번째 기록이며 팀내에서는 [[김진우 (1983년 3월)|김진우]]에 이어 2번째였다.
- 정명재 . . . . 1회 일치
* 1991년 [[그림 도사와 홍길동]] - 그림 도사
- 정명환 . . . . 1회 일치
배우 [[김진화 (배우)|김진화]]와는 [[안양예술고등학교|안양예고]] 연극영화학과 동기이다.
- 정몽원 . . . . 1회 일치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단의 구단주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 정범균 . . . . 1회 일치
* ~라곤 안했다. 여기까지! 나머지는 알아서 찾아와(하극상)
- 정병오 . . . . 1회 일치
*《바람의 노래》는 소외된 자아를 회복하고, 중심 찾기를 모티브로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위기의식을 찾아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 정봉수(역사) . . . . 1회 일치
군대를 전역한 후 1987년 코오롱 마라톤 팀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선수들에게 소식(小食)과 풍부한 단백질 식단을 집중 공급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과학적인 선수 관리로 1990년과 1992년에 김완기가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1992년 황영조가 2시간 10분벽을 넘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와 김이용, 권은주를 발굴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키우면서 한국 마라톤을 육성, 발전시켜 세계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 정상희(정치인) . . . . 1회 일치
정상희의 차남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삼성그룹 초대회장 [[이병철]]의 4녀 [[이명희(기업인)|이명희]]와 결혼 했다. 이병철과 사돈관계이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시아버지 그리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의 할아버지다.
- 정소담 . . . . 1회 일치
#[https://brunch.co.kr/@sodamjjj/24 <칼럼> 홍상수와 김민희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 정영기(배우) . . . . 1회 일치
* 2002년 《날씨와 생활》 ...미남씨 역
- 정재안 . . . . 1회 일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7072156435&code=990402</ref>,등 다수의 글을 게제 하였고, 여러 다른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재활용산업의 현 주소와 문제를 알리고 개선하는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 정진(1976) . . . . 1회 일치
*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SBS, 2005년) - 정성식 역
- 정차온 . . . . 1회 일치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조산대부(朝散大夫)로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상주]][[판관]](尙州判官)에 이르렀다. [[1455년]] [[조선 단종|단종]](端宗)이 강제로 [[조선 세조|세조]](世祖)에게 강제로 선위하고 상왕이 되자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세조가 평양판관(平壤判官)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법무부장관 퇴임 후인 198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을 설립하였다. 1990년부터 1993년 초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장|장]]을 역임하였다.
- 정홍준 . . . . 1회 일치
'''정홍준'''(鄭弘俊, [[1983년]] [[5월 25일]]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후 [[2006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6년]] 2승 1패 평균자책 2.92로 나름 준수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부상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8년]]에 다시 1군에 올라와 등판했으나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2010년]]에 방출됐다.
- 정흥채(배우) . . . . 1회 일치
1987년 연극 '''끝없는 아리아'''를 통해 연극 배우로 데뷔하였다. 주로 연극 분야에서 활동하다 32세이던 1996년, SBS 드라마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서 주연 임꺽정 역을 맡아 무명을 씻고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단발성이긴 하지만 그간 [[백일섭]]이 전담하던 [[우루사]] 광고까지 따냈다.] 큰 체구와 부리부리한 눈매 때문인지 사극에 출연할 때는 [[차지철|힘세고 무식한 개그 캐릭터]]나 우직한 장수 역으로 등장할 때가 많다.
- 제너럴 우 . . . . 1회 일치
[[캡틴 아메리카]]와 싸운 빌런. 바트록의 협력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AIM과 관련이 있다.
- 제웅 . . . . 1회 일치
[[짚]]으로 만든 [[인형]]. [[일본]]에서는 와라닝교(わらにんぎょう, ·藁人形, 짚인형)이라고 한다.
- 조긍하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를 졸업하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8383&mobile&categoryId=1639 조긍하 - 네이버 지식백과]</ref>. 그 후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사진가|사진]] 촬영과 [[영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사진작가의 관록으로 조감독 수련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었는데, [[1952년]]에 《베일부인》을 감독한 것을 시작으로 《황진이》([[1956년]]), 《곰》, 《육체의 길》([[1959년]]), 《인간만세》, 《과부》([[1960년]])등의 영화를 감독하였고, 시나리오도 직접 집필해왔다. 또한, 1960년대 말에는 《상해임시정부》,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300032921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30&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181&publishType=00020 故(고) 趙肯夏(조긍하)감독의 人間(인간)과 作品(작품)세계 고지식하면서도 유머풍부 - 1982년 1월 30일 경향신문]</ref>.
- 조동혁(배우) . . . . 1회 일치
배구선수 [[한송이(배구)|한송이]]와 열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동혁도 키가 182cm로 한국 성인남성 평균보다 큰편인데, 한송이는 조동혁보다 큰 186cm이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64618|기사]]
- 주나라 . . . . 1회 일치
유왕의 태자가 정(鄭)의 후원을 얻어 낙읍(洛邑)에 재건되었다. 낙읍은 후대의 뤄양(洛陽,낙양)이다. 그러나 동주는 재건 당초부터 취약한 정권으로서, 정(鄭)나라와의 전쟁에서 참패하면서 사실상 실권을 상실, 각국의 제후들이 패자(覇者)로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고 주왕조는 천자(天子)로서 명분상의 권위만을 가진 정권이 된다.
- 줄리아나 도쿄 . . . . 1회 일치
[[도쿄]]에 있었던 [[버블 시대]]의 '''전설적'''인 [[디스코]] 홀. 1991년 5월에서 1994년 8월까지 도쿄 시바우라에서 영업했다. 영국의 레코드 회사 줄리아나와 합작하여 만들어졌다.
- 지렁이 . . . . 1회 일치
평소에는 땅 속에서 살지만 [[비]]가 오면 밖으로 나와 꿈틀거린다. 이는 숨구멍이 부족해 숨을 쉬려고 이러는거다. 이러다가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다시 땅을 파고들어가는데 실수로 타이밍을 놓치면 못 들어가고 말라 죽는다.
- 지뢰녀 . . . . 1회 일치
[[지뢰]]는 언듯 보기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지만, 밟게 되면 커다란 피해를 입힌다. 여기에서 따와서 사귀기 전에는 무해하게 보이다가 사기고 나서 해를 입히는 여자를 뜻하게 되었다.
- 진격의 거인/83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짐승거인이 "아버지와 닮지 않았군"이란 말을 한다.
- 진구 . . . . 1회 일치
| [[아가씨와 건달들]]
- 진선유 . . . . 1회 일치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 (쇼트트랙 선수)|이정수]]와 함께 [[KBS]]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게 된다.
- 질렸다 . . . . 1회 일치
>다 쓴 종이를 가지고 자고, 다음날에 종이가 없어지며, 지금까지와는 분위기에 차이가 나거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성공입니다.
- 차재욱 . . . . 1회 일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에서 온게임넷 스파키즈와 [[삼성전자 칸]]이 맞붙게되었는데 대구 전 차재욱이 상대 팀 삼성전자 칸 소속 프로게이머인 [[이성은]]에게 '''x밥'''이라는 발언을 하게된다. 이후 대구에서 승리한 이성은이 상대 팀 부스를 향해 공깃밥을 던지고 빠삐놈 병神 디스코 믹스를 배경음악으로 춤을 추면서 빠삐코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 착각남 . . . . 1회 일치
‘착각’을 뜻하는 칸치가이(勘違い)와 과거에 남성명으로 자주 쓰던 ~스케(助)를 합쳐서 ‘착각하는 남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 1501년-1561년) 등 실제로 과거에 쓰이던 인명이기도 하다.
- 창작:6피트 계획 . . . . 1회 일치
200X년, 이세계와의 접촉이 발표되었다.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이 대충 망했다.
- 창작:말퓨스 스토리 . . . . 1회 일치
타치바나 이즈미 : 츠키노 아스카의 라이벌이자, 이 작품의 유일한 메인 악역. 아스카를 격렬히 증오하며, 아스카와는 과거부터 악연으로 점철되어있다 못해 아주 길어져버린 사이이다.
- 창작:좀비탈출/0-1 . . . . 1회 일치
어쩌면 구조대가 올지도 모르고, 어쩌면 부모님이 찾으러 올 수도 있다. 어쩌면을 붙이면 누구든지 와줄 수 있을 것 같다.
- 창작:좀비탈출/1-1 . . . . 1회 일치
나의 비명소리가 골목길에 울려퍼진다. 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 창작:좀비탈출/2 . . . . 1회 일치
나는 담을 넘어서 옆집으로 갔다. 당장 골목에서 좀비와 맞서 싸우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창작:좀비탈출/4-1 . . . . 1회 일치
기억이 맞다면 마당 한 켠 음지에 그런 독을 최소 다섯 개는 묻어놨다. 내가 들어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컸고 각기 된장, 고추장, 쌀, 배추와 무 따위를 담았다. 그러니까, 놈들이 그걸 놔뒀다면, 굳이 열어서 침이라도 뱉어놓은게 아니라면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일 것이다. 그걸 가지고 올 수만 있다면.
- 창작:좀비탈출/4-1-2-1 . . . . 1회 일치
구로자와 아키라는 검객들이 비스듬히 칼을 곧추 세우는 장면을 자주 찍었다. 내가 라쇼몽에 나오던 그 검사처럼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내 희망사항일 뿐이다. 봐줄 사람이 있다면 내 모습은 골프채 뒤에 숨은 얼간이일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5-1-1-1-2 . . . . 1회 일치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옷은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리고 몸에 찌들은 토트넘의 냄새와 체액을 씻어냈다. 수돗물의 오염을 의심했던 며칠 전에 무색하게 자연스럽게 수도를 틀었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받아들였다. 승리의 기분이었다.
- 창작:좀비탈출/5-1-1-2 . . . . 1회 일치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옷은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리고 몸에 찌들은 토트넘의 냄새와 체액을 씻어냈다. 수돗물의 오염을 의심했던 며칠 전에 무색하게 자연스럽게 수도를 틀었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받아들였다. 승리의 기분이었다.
- 창작:좀비탈출/기록 . . . . 1회 일치
* 식칼 : 영화와 달리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은 것 같다. 그냥 본래 용도에 걸맞게 요리할 때나 써먹어야겠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1회 일치
나는 비닐시트와 철사를 바로 써먹기로 했다. 불과 10분 만에 뚝딱 구상한 아이디어가 겨울 철에 비닐 하우스를 만든다는 거 보다 훨씬 유용한 아이디어라는게 입증되었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2 . . . . 1회 일치
둔탁한 소리와 손에서 접시가 깨지는 듯한, 유리창을 부순 듯한 섬뜩한 촉감이 괴롭힌다. 정수리 한 복판. 언젠가 Tv에서 명인이 도자기를 깨뜨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갈라진 살갗 사이로 보이는 두개골이 도자기처럼 하얗다. 주의를 기울였지만 도자기 안의 검붉은 내용물이 튀기면서 손과 팔에, 그리고 얼굴까지 더럽혔다. 하나님 저게 입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비록 '''좀비가 득실대는 동네에 처박아 버렸지만'''.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1회 일치
개인 신상 : 과거의 기억의 절반 정도를 잃어버렸으나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보구인 천경원양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집안에서 물려준 드레스인 홍염의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게다가 어째선지 원치않게 라이벌과 엮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고군분투와 파란만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 채기영 . . . . 1회 일치
2014년 9월 초 갑작스러운 구단주의 해체 선언으로 많은 선수들이 방황하던 중 11월 말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가 진행 중 이였던 [[한화 이글스]]에서 입단 테스트 기회를 얻어 합격했다.
- 채영인 . . . . 1회 일치
[[런닝맨]]을 통해 [[송지효]]와 함께 연기자 동기 사이였음이 밝혀졌다. 덕분에 간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비췄다. 이미 결혼해서 딸까지 있는 상황.
- 채이식 . . . . 1회 일치
고려대학교와 런던대학교 정경학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을 맡고 있으며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의 한국수석대표 및 집행위 의장, [[국제해사기구]](IMO) 법률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해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 IMO법률위원회 의장에 채이식 교수 선출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989153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날짜 = 2005-04-28}}</ref>
- 챈슬러 (음악가) . . . . 1회 일치
'''챈슬러'''({{llang|en|Chancellor}}, [[1986년]] [[10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프로듀서이다. 과거에 힙합 트리오 '''Oneway'''와 프로듀싱팀 '''이단옆차기'''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 챔피언스 오브 앵거 . . . . 1회 일치
* T.A. - [[와스프]] 패러디 추정.
- 천장호 . . . . 1회 일치
이와 별도로 교수대표단(단과대학별 소속교수인원 비례로 선출) 16명중 86%가 천장호 총장 퇴진운동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나타냈다. 교수대표단이 퇴진운동을 해야 한다고 꼽은 이유는 ▲자주적 대학운영을 하지 못하는 재단의 종속 ▲조무성 전 이사장의 자녀 이사영입 방조 등이었다
- 천해성 . . . . 1회 일치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으로 근무했고, 통일부로 돌아와서는 회담기획부장으로 일하면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수의 남북회담에 깊숙이 관여했다.
- 청산콜라 무차별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1977년 1월 4일에서 중순까지, 도쿄와 오사카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인 사건.
- 초한춘추 . . . . 1회 일치
초한전쟁을 다룬 주요 사료지만, 산일되어 원형을 잃어버린다. [[청나라]] 때 사기와 한서 등에서 주석을 모아 집본이 나왔다.
- 총기 . . . . 1회 일치
용도와 구조에 따라서 다양한 총기가 있다.
- 최계훈 . . . . 1회 일치
* [[SK 와이번스]] 투수코치 (2001년 ~ 2003년)
- 최광식 . . . . 1회 일치
하지만 최 씨가 수술 등 적극적인 치료를 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 공익근무지 중 ‘가장 편한’ 곳으로 꼽히는 학교에서 근무했다는 점 등이 추가로 제기된 의혹이었다. 이에 최 후보자 측은 “수술을 받을 경우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는 의견에 따라 수술을 보류했다. 체중감량, 슬링운동치료와 함께 가벼운 운동을 해 오고 있으며 현재도 과격하고 힘든 운동을 삼가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아버지가 재직 중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진단을 받게 된 것은 ‘교직원 자녀에게 진료비가 할인(40%)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익근무지는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컴퓨터 무작위 배정 방식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으로 지정됐으며 당시 최 후보자 가족이 종로구 동숭동에 살고 있어 출퇴근 거리가 가까운 용산구의 학교에서 근무하게 됐다는 것이다.<ref>[http://news.donga.com/3/all/20110914/40286521/1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인사검증 리포트]《동아일보》2011년 9월 14일</ref><ref>[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10915000401 “최광식, MB정권서 3년여 초고속 승진”]《헤럴드경제》2011년 9월 15일 박정민·양대근 기자</ref>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1회 일치
[[자유한국당]] [[이철우(1955)|이철우]] 의원이 경북도지사 출마로 국회의원을 사퇴하게 되자, 해당 지역구인 [[경상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도전했다. 당초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도전을 시도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관계로 자유한국당 [[송언석]] 후보와 맞붙게 되는데, 이로 인해 민주당 및 진보 지지자들의 기권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민주당 도의원 후보의 암묵적인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자유한국당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친여무소속 취급을 받았다.
- 최동석 . . . . 1회 일치
* [[KBS 제1라디오]] 《KBS 뉴스와이드 3부》
- 최동희 . . . . 1회 일치
아들인 최동희를 최제우의 후계자로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잔치를 열었다 [[서울]] [[종로 (서울)|종로]] 출생이며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 운동을 하다가 [[1922년]] 7월 [[천도교]] 중심인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해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김광희]], [[강도희]]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갔다.
- 최란(배우) . . . . 1회 일치
*놀러와
- 최만린 . . . . 1회 일치
[[1935년]] 아버지 최춘빈(崔春彬)과 지석모(池錫模)의 외동딸인 어머니 지명순(池明淳) 사이에 2대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 최씨|수원]]. 부친은 [[동아일보]] 만주 지국장이었고 어머니는 모더니스트였다. 양친 모두 [[본적]]이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종로]]이며 모두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골수 서울 토박이였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외가에서 외조부의 사랑을 받으면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경기중학교 3학년 때인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 최민창 . . . . 1회 일치
[[2017년]] [[9월 1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경기에서 3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경기에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 최병철 . . . . 1회 일치
{{금메달|[[2012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2 와카야마]]|플뢰레 단체전}}
- 최선 (정치인) . . . . 1회 일치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124357_2687.html MBC와의 인터뷰 내용]
- 최성조 . . . . 1회 일치
* [[TV조선]] [[도사와 살아보기]]
- 최세창 . . . . 1회 일치
[[1980년]] [[5월 20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했으며 나중에 사단장, 육군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대한민국 국방부]]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장관]] 등을 역임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됐다.<ref>{{뉴스 인용
- 최수범 . . . . 1회 일치
2014년 11월 [[KSV e스포츠|젠지 e스포츠]]의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감독이었던 최윤상이 [[KSV e스포츠|젠지 e스포츠]]와 결별, 기존에 코치를 맡았던 최우범이 감독으로 승격했다.
- 최수환 . . . . 1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제13번)으로 당선되었다. 1984년 말 [[홍사덕]], [[김현규]], [[서석재]], [[허경만]], [[박관용]], 손정혁, [[김찬우(1933)|김찬우]] 등과 민주한국당 탈당 선언을 하고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정의당]] [[박경석(1937)|박경석]] 후보와 민주한국당 [[서종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최승환 . . . . 1회 일치
[[LG 트윈스]] 시절에는 [[김정민 (1970년)|김정민]], [[조인성 (야구인)|조인성]]에게 밀려 주전이 되지 못하고 8년간 2군을 전전했다. [[2008년]] [[6월 4일]] [[이성열 (야구 선수)|이성열]]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두산 베어스]]에서 [[LG 트윈스]]로 간 선수들은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 [[김용의]] 선수이다. 두산 이적 이후에 본격적으로 1군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상대 투수인 SK 와이번스의 [[조웅천]]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뽑아내면서 자신의 한국시리즈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 최웅 . . . . 1회 일치
| 종로 경찰서 순사 카카와
- 최원제 . . . . 1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8년]] [[10월 9일]]<br>[[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대타
- 최원홍 . . . . 1회 일치
2006년 [[SBS]] 드라마 《[[사랑도 미움도]]》를 통해 데뷔했으며, 이후 영화와 드라마 등에 출연하고 있다.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1회 일치
'''최윤정'''(1974년~)은 [[미누파탈]]의 설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이다. [[1974년]] [[대한민국]]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97년]] [[MBC]] 2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여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사랑과 성공, 진실, 마지막 전쟁, 가을에 만난 남자, 베스트 극장, 인어아가씨, 앞집여자 등에 출연하였다. 또한 [[영화]] [[선생 김봉두]]에도 출연하였고, LG텔레콤, [[P&G]], PCCW, 여성가족부 등의 [[CF]] 모델로도 활동하였다. [[2013년]] [[최정아]]와 함께 20~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미누파탈]]을 설립하였다.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1회 일치
[[세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2년 동계 올림픽|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과 [[한국체육대학교]] 3학년 때인 [[2006년 동계 올림픽|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2회 연속으로 3000m 계주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와 [[2004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2회 연속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005년]] [[중국]] [[베이징]]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 최재만 . . . . 1회 일치
* '''[[캐리어를 끄는 여자]] [[OST]] Part.2: 와준다면''' <2016.10.18 발매> (작곡, 편곡)
- 최재웅 (배우) . . . . 1회 일치
|날 보러와요
- 최재원(배우) . . . . 1회 일치
[[최재원(야구선수)|동명의 야구선수]]와는 관계가 없지만, [[야구]]가 [[취미]]라고 한다.
- 최정원(남자배우) . . . . 1회 일치
가수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 배우로도 활동들을 했는데 MBC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 둘째 아들 역 (2004), MBC "떨리는 가슴"- 정현 역 (2005), SBS "무적의 낙하산 요원"- 최선 역 (2006), KBS2 "[[선녀가 필요해]]"- 금모래 역 (2012), MBC '''[[딱 너같은 딸]]''' - [[안진봉]] 등을 했다.
- 최현진 (드러머) . . . . 1회 일치
'''최현진'''은 [[서태지 밴드]] 소속의 [[드럼셋|드러머]]이다. [[2002년]]에 [[바세린 (밴드)|바세린]]의 1집 앨범 《The Portrait Of Your Funeral》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서태지 밴드와 [[바세린 (밴드)|바세린]]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 최희준 (가수) . . . . 1회 일치
1936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때였던 1957년에 [[황병기]]와 함께 참가한 서울대학교 축제에서 [[샹송]] 《고엽》을 불러 입상한 뒤, 1959년 졸업과 함께 파피 김(본명 김안영)을 통해 미8군 무대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 춘추 . . . . 1회 일치
춘추는 역사서이며, 당시 학문을 익히던 사람들의 교과서이기도 했다. 『국어(國語)』에는 초어상 진어칠(楚語上 晉語七) 편에서 춘추를 배우고 익혔다는 언급이 있어, 춘추시대에 이미 춘추가 교과서로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춘추는 단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소박한 용도로만 쓰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공자]]와 연관되면서 복잡한 '춘추학'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 카라아게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부터 튀김 요리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현재와 비슷한 모습의 카라아게가 나타난 것은 1930년대로 추측된다.
- 카시오리 . . . . 1회 일치
사죄 방문을 할 때는 [[도게자]]와 셋트로 지참하는 것이 일반적.
- 카이고로시 . . . . 1회 일치
* 쓸모없는 사람을 해고하지 않고 평생 고용해주는 것. 평생고용 문화와 관련이 있다.
- 카타르시스 . . . . 1회 일치
정신분석학에서는 정신장애의 원인인 콤플렉스를 다시 강렬하게 체험함으로서, 이를 해소하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심리 치료와 그 결과를 뜻한다.
- 캐리 피셔 . . . . 1회 일치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와 에디 피셔(Eddie Fisher)의 딸이며, 1956년 캘리포니아 비버리힐즈에서 태어났다. 1975년 10대 시절에 영화 샴푸(Shampoo)로 데뷔했다.
- 캡콤 . . . . 1회 일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록맨 시리즈]] 등 유명한 게임 [[프랜차이즈]]를 보유한 회사이며 국내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오락실에 가봤다면 한번쯤은 캡콤 로고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만큼 다수의 게임을 만들었다. 다만 현재는 캡콤의 게임을 즐겨온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은 오너의 관심사는 와인이며 게임은 그냥 돈 나오는 지갑 취급이다.-- 까는 사람들은 '개껌'이라고 부른다.
- 캡틴 울트라 . . . . 1회 일치
슈퍼히어로 코스튬은 망토가 포함되어 있으며 초능력 형태로 보아 [[슈퍼맨]] 패러디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캐릭터인데 불 공포증을 보면 [[마샨 맨헌터]]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마샨 맨헌터도 슈퍼맨과 비슷한 캐릭터.
- 캡틴큐 . . . . 1회 일치
70년대 말 롯데주조에서 양주 시장을 노리고 개발, 1980년 1월에 시장에 내놓았다. 대한민국 첫 양주였다고. 위스키, 와인이 흔하지 않았던 1980년대 당시 양주의 대명사라고 알려져 있었다.
- 캬바쿠라 . . . . 1회 일치
[[일본]]의 [[유흥업소]] 형태 가운데 하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캬바레(キャバレー,cabaret) 」와 [[영어]]에서 유래한 「쿠라브(クラブ,club=클럽)」을 합성한 단어.--어느 한쪽만 하라고.-- 줄여서 캬바(キャバ).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1회 일치
미국만이 사용 가능한 특수기능. 지정한 위치에 수송기가 날아와 GI 몇명을 공수한다.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 . . . 1회 일치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특유의 시스템을 축소한지라 처음 나왔을 때는 "[[일렉트로닉 아츠|EA]] 놈들이 이상한걸 C&C라고 내놓았다!"라는 반응이 흔했다. [[커맨드 앤 컨커 4: 타이베리움 트와일라잇]]이 나온후 6년째 신작이 안나오는 지금은 그런거 없지만.
- 커피 젤리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처음 커피 젤리를 판매한 것은 미카도커피(ミカドコーヒー)의 창업자라고 한다. 미카도커피는 [[카루이자와]]에서 여름철에만 영업하던 카페로, 1963년 부터 판매하였으며, "먹는 커피"라고 하여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 케모 . . . . 1회 일치
그 기원이 기원이기에 독액을 생산하고 방출할수 있으며 괴력에 방어력, 재생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거기다 원래 생물이 아니라 모방한 것인지라 안죽는다. 그래서 몇번이고 다시 돌아와 메탈멘과 다수의 전투를 벌였으며 [[슈퍼맨]]과도 싸웠다.
- 켄시로 . . . . 1회 일치
[[북두신권]]의 전승자로서, 권법의 달인으로 평범한 불량배나 도적은 한 다스로 몰려와도 한 순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 일견 과묵하고 험상궃은 인물로 보이지만 악인에게 무자비하며 약한 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사나이이다.
- 코스트코 . . . . 1회 일치
* [[도매점]]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어, 점포 운영비와 판매비, 관리비를 절감하고 대신 가격을 낮춘다.
- 코타츠 . . . . 1회 일치
본래는 열원을 바닥에 놓고 다리를 아래로 내릴 수 있도록 탁자 아래쪽에 구멍을 파는 형태였다. 1950년대에 적외선을 이용한 전기 코타츠가 나타나고, 열원을 탁자 쪽에 설치하는 디자인이 나타나면서 현재와 같은 코타츠가 생겨났으며 폭발적으로 보급하였다.
- 코피페 . . . . 1회 일치
[[클립보드]]에 문자와 데이터를 임시 저장(카피)한 다음, 이를 다른 곳에 붙여 넣는(페이스트) 일련의 동작.
- 쿠죠 죠린 . . . . 1회 일치
* [[CLAMP]]는 죠죠 동인 활동에서 [[죠타로|쿠죠 죠타로]]×[[카쿄인 노리아키|카쿄인]]을 밀고 있었기 때문에, 죠린의 등장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원고를 쉬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스톤 프리]]가 선글라스를 끼고 실로 변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죠타로와 카쿄인은 마음으로 이어졌다!"고 믿고 회복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 크루세이더즈 . . . . 1회 일치
The Invaders #14 (March 1, 1977)에서 첫등장.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영국에서 활동한 팀이다. 코믹스에서도 알수 있듯이 [[인베이더즈]]와 대면.
- 크리미널 마인드 . . . . 1회 일치
* 패턴이 어느 정도 있어서, 오프닝은 대개 범인의 범행 장면으로 시작, 수사팀의 시퀸스와 범행씬이 교차한다. 마지막 전개는 대개 범인이 (마지막) 피해자를 살해하기 직전에 난입해서 가로막는 장면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범인은 사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살율이 매우 높지만, 때때로 [[체포]]되는 경우도 있다.
- 크림 전쟁 . . . . 1회 일치
1853년 7월, 러시아는 오스만 영토였던 [[몰다비아]]와 [[루마니아|왈라키아]]로 군사를 보냈다. 이에 오스만은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 키모오타 . . . . 1회 일치
기분나쁜 [[오타쿠]]라는 의미. 일본어이며 한국에서 쓰이는 [[혼모노]]와 비슷하다.
- 키이치 보우겐 . . . . 1회 일치
키이치 보우겐의 이야기는 조루리, 가부키 등으로도 만들어진다. 가공인물이지만 요시츠네가 유명하다보니, 그와 얽힌 키이치 보우겐도 음양사로 이름이 높아져서 각종 음양도 관련 문헌에 가공의 저자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 키프 . . . . 1회 일치
키프 군이란 여러 남자와 사귈 정도로 인기있는 여성의 관점에서, 진심을 내고 있는 남성 이외에 연인 미만의 교제를 하고 있는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국내속어로 하자면 어장관리의 물고기. 남자친구 예비군 같은 취급.
- 킷쇼 . . . . 1회 일치
기분나쁠 때 내뱉는 감탄사. [[키모이]]와 비슷하다.
- 킹덤/497화 . . . . 1회 일치
몽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몽념이 "내 동생을 너무 괴롭히지 마라"며 농담조로 던지는데 왕분은 전략에 자신도 없이 자기와 몽념을 불렀냐고 받아친다.
- 킹덤/507화 . . . . 1회 일치
* 각오를 다진 창인은 신들린 것처럼 적을 맞춘다. 화살 한 발에 적 하나. 심지어 지휘관만을 골라서 노리고 있다. 지휘관이 셋이나 화살 한 방에 가버리자 열미군도 저격수의 존재를 눈채지만 늦었다. 벌써 벽 위의 지휘관들이 줄줄이 죽어나갔다. 성벽 위는 혼란에 빠지고 일단은 조가족 쪽을 향해 응사를 해본다. 그렇지만 워낙에 빠르고 정확한 창인의 솜씨 덕에 성벽 위로 몸을 드러내는 것도 힘들다. 응사를 위해 잠깐 일어서기만 해도 화살이 어김없이 날아와 꽂힌다.
- 킹덤/516화 . . . . 1회 일치
같은 시각 진군에서 제일 먼저 업성에 당도한 환의군은 "공성전은 상정하지 않는다"는 지시와 함께 "업성의 각 성문을 막아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이목은 한단에 있으면서도 이같은 전개를 눈으로 보는 것처럼 훤히 파악한다. 단지 손을 쓸 수 없을 뿐이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이 심각한 변수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에 입을 모은다.
- 킹덤/523화 . . . . 1회 일치
* 조군의 좌익은 총 3만 병력에 보기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맹장 셋이 배치되었다. 우측부터 [[조아룡]], [[마남자]], [[악영]]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셋을 한 군으로 편성한 [[이목(킹덤)|이목]]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역시나 시작부터 신경전이 벌어진다. 선봉을 누가 맡는지 문제를 놓고 악영이 먼저 나서며 다른 두 장수를 무시했다. 마남자는 자기가 말을 꺼냈는데 냉큼 악영이 받아먹으려 들자 그를 "창쟁이"라 부르며 뭐하는 짓이냐 따졌다. 악영이 차가운 태도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둘에게 이 전장의 첫 칼날을 맡길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조아룡이 중재했다. 우선 악영이 마남자를 잘 모른다고 했으나 그럴 리는 없다. 마남자는 대단한 체격의 거한이면서 그 이목의 부관을 맡을 만큼 검증된 인물. 악영이 그 개인과 친분이 없을 지라도 그를 "보통내기"로 여기고 있을 리 없다고 지적한다. 악영도 그 지적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이번엔 조아룡을 두고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냐고 험한 소릴 입에 올린다. 조아룡은 쓴웃음을 짓고 말이 심하다고 할 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선전하지 않았다.
- 킹덤/532화 . . . . 1회 일치
* 그때 [[이신(킹덤)|이신]]이 [[비신대]]와 함께 추격해오지만 조군의 기마대가 나타나 비신대를 가로막으면서 위기를 넘긴다.
- 타력본원 . . . . 1회 일치
현대는 본래의 종교적 의미와는 조금 멀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 타베아루키 . . . . 1회 일치
혹은 특정 지역의 명물 요리, 맛있는 음식, 특이한 음식 같은 것을 돌아다니면서 먹는 취미를 뜻한다. [[식도락]]이나 [[맛집순례]]와 같은 뜻이라고 볼 수 있다.
- 타오팡파 . . . . 1회 일치
>……내가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 태학 . . . . 1회 일치
태학의 규모는 점차 발전, 확대되었는데, 태학이 생겨난 당초에는 학생 50여명에 불과했으나 후한 시대에는 무려 3만명에 달하게 됐으며, 학교 건물은 240채,1850실을 갖추게 되었다. 엄청난 수의 태학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려는 의식도 높아서, 후한말기에 태학은 [[청류파]]의 거점이 되어 외척과 환관 등 부패한 중앙 정치에 저항하는 역할을 했다.
- 토니 고 . . . . 1회 일치
'''토니 고'''(Toni Ko)는 [[대한민국]] 출신 [[미국]]의 사업가로, 화장품 브랜드 닉스(NYX Cosmetics)와 선글라스 브랜드 퍼버스(Perverse)의 창립자이다. 2억 6천 만 달러 이상 순수입으로,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자수성가한 미국인 여성 60인' 명단에 들었다.<ref name="포브스">[http://www.forbes.com/self-made-women/#2f767e7f4177 AMERICA'S RICHEST
- 토리코 . . . . 1회 일치
다양한 맛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미식가 토리코와 요리사 코마츠가 만나 함께 모험을 떠난다.
- 토리코/363화 . . . . 1회 일치
* 돈슬라임은 재생하지만 과거 싸웠던 때와 완전히 다르다고 느끼고 있으며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돈슬라임은 생전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 토시코 막스 . . . . 1회 일치
1936년 태생, 1971년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졸업, 1976년 영국 귀족 블로톤 남작 마이클 막스(Baron Marks of Broughton)와 결혼하여 블로톤 백작 부인 마크스 토시코(Honourable Toshiko Marks, Baroness Marks of Broughton)가 되었다.
- 토오리마 . . . . 1회 일치
* 마물의 이름에서 따와서, 무차별 살인마나 묻지마 살인 같이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로 피해를 입히는 범죄자를 뜻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을 토오리마 사건(通り魔事件)이라고 부른다.
- 토죠 노조미 . . . . 1회 일치
[[야자와 니코]]랑은 먹이사슬...이 아니라 커플링이다.
- 토츠카 요트 스쿨 . . . . 1회 일치
1979년에서 82년 까지 훈련생의 사망, 행방불명 사건이 잇다라 교장 이하 15명이 체포, 형사 재판이 벌어지며 이를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이라고 한다. 토츠카 교장은 6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으며, 2006년에 출소하여 학교에 복귀하고 운영을 여전히 담당하고 있으며,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 톤데모 . . . . 1회 일치
1989년, 후지쿠라 산(藤倉珊)이라는 인물이 「톤데모본의 세계(トンデモ本の世界)」라는 에세이를 쓰면서, 여기에서 이러한 기서(奇書) 종류를 톤데모본이라고 지칭하고, 이를 "저자는 진지하게 썻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에서 웃기고 재미있다."고 해설하여 톤데모라는 말이 나타났다.
- 티나 (1980년) . . . . 1회 일치
티나는 해외 팬이 많다. 그녀는 21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과 춤 접하면서 성장했었다. 2004년 한국에서 "설레임"이라는 앨범을 발매하였으나, 이와 관련하여 일절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 한달 만에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순위는24위에 올랐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꾸준한 음악활동을 하였고, 그녀의 음악적으로 묘한 매력과 놀라운 춤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도 러브 콜을 여러 번 제의 받았었다. 리키마틴, 켈리클락슨의 프로듀서인 Suren과 함께 2008 C U 2nite 타이틀"Catch me” 앨범을 미국에서 제작 하였고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했었다. C U 2nite 앨범은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 노래 역시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는 도중 티나는 EDM 전설이며 보컬 겸 그래미수상 경험이 있는 유명 프로듀서 Kevin Irving에게서 오디션 제안을 받았고, 케빈은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인 Dr Dre, Beyonce, 50cent. Pink, Janet Jackson과 같은 수많은 뮤지션과 작업을 해왔었다. 케빈 프 로듀서는 티나의 재능을 보고 영어 앨범을 제작 했고, 대표 곡” Come Mr. DJ”를 작업했다. 케빈은 티나에게 마돈나한테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가수라며 극찬하였다. 그녀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면 2014년 귀국했고 트로트 장르로 변경 2016년 7월20일 콩 앨범 발표하고 현재 활동 중이다.
- 티타노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티타노가 등장한 코믹스의 표지는 Alan Class Comics의 Sinister Tales의 에피소드 하나의 표지와 빼다 박은 수준으로 비슷하다.
- 파머보이즈 . . . . 1회 일치
현재는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일대에 90여개의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 파워 해리스먼트 . . . . 1회 일치
[[회사]] 등에서 직무상의 지위 같은 직장에서 가지는 우위를 배경으로 하여, [[업무]]로서 적정한 범주를 넘어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가하고,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약칭 파와하라(パワハラ).
-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 . . . 1회 일치
* 작품의 넘버링은 원래 로마숫자로 표기하지만 항목개설의 용이와 검색의 용이를 위해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한다.
- 파일 드라이버 . . . . 1회 일치
전일본 프로레슬링 출신으로서, 프로레슬링 NOA를 개양하여 사장 겸 레슬러로 활동하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경기중 파일 드라이버를 맞아 척추단열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
- 파치카스 . . . . 1회 일치
파칭코(パチンコ)와 카스(カス)를 합쳐서 '파치카스'라고 한다. 풀어쓰자면 파칭코 쓰레기. 즉, '파치레기' 정도의 느낌으로 볼 수 있다.
-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영화) . . . . 1회 일치
내용은 판타스틱 포의 기원과 [[닥터 둠]]과의 싸움을 다룬다. 그리고 막바지에는 리드 리처드와 수 스톰이 결혼하면서 끝. 즉, 해피 엔딩이다.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 . . 1회 일치
해당 영화에서 휴먼토치를 연기한 크리스 에반스는 후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에서 휴먼토치와 정반대의 성격인 [[캡틴 아메리카(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했다. 참고로 휴먼토치는 국내에서 이름이 '파이어'가 되었다.
- 패드립 . . . . 1회 일치
현실이건 인터넷이건 상대와의 관계를 화끈하게 파탄낼 수 있는 행위다. 당사자나 목격자에게 교양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으니 주의.
- 퍼니셔 . . . . 1회 일치
[[왓치맨]]의 [[로어셰크]]처럼 악을 없에기 위해 괴물이 된 캐릭터. 그러다보니 슈퍼 히어로 카테고리에 분류해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한다. 비슷한 캐릭터로 로어셰크 외에도 [[DC 코믹스]]의 [[와일드 독]]이 있다.
- 퍼키 팻의 전성시대 . . . . 1회 일치
핵전쟁이 나고, 생존자들은 쓰레기에서 수집한 물자와 [[화성]]에서 보내오는 생필품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생존자들 가운데 어른들은 생활물자에서 미니어처 하우스를 제작하고, 퍼키 팻(Perky Pat)이라는 인형을 만들어서 전쟁 이전의 삶을 --[[망상]]-- 추억하는 [[인형놀이]], [[롤플레잉 게임]]에 빠져 있다. 퍼키 팻은 이들이 만들어서 롤플레잉 게임에 사용하는 미니어처 인형의 이름이다. 이 게임에서는 핵전쟁 이전의 화려한 문명과 물자를 롤플레잉 하는 것이지만,
- 페어리 테일/481화 . . . . 1회 일치
* 엘자는 이카루가와 싸우지만 아즈마, 쿄우카까지 되살아나 불리하게 된다.
- 페어리 테일/483화 . . . . 1회 일치
* 제라르가 마법을 준비하는걸 감지한 메르디와 쥬비아는 힘을 합친다.
- 페어리 테일/485화 . . . . 1회 일치
* 나츠, 해피, 루시, 브랜디쉬는 오거스트와 교섭하러 출발한다.
- 페어리 테일/488화 . . . . 1회 일치
* 가질은 레비와 만난 덕에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 페어리 테일/495화 . . . . 1회 일치
* 해피는 제레프와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을 신경쓰고 있다.
- 페어리 테일/497화 . . . . 1회 일치
* 엘자와 아이린의 관계에 대한 떡밥이 재살포. 모녀설이 가장 지지를 얻고 있다.
- 페어리 테일/519화 . . . . 1회 일치
* 아이린은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그 과정을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던 엘자와 웬디. 엘자는 어째서 그런 거냐고 묻는다.
- 페어리 테일/527화 . . . . 1회 일치
오거스트가 방대한 마력을 전개하며 떠오르자 길다트와 카나가 무서운 열기에 삼켜진다. 대지가 무너지고 오거스트 자신의 말처럼 마법의 범위가 매그놀리아를 삼시간에 집어삼키고 피오레 전토로 뻗어나간다.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1회 일치
트립마인은 정면으로 레이저를 발사하는 폭발물로, 레이저에 경찰이 인식되는 즉시 폭발하는 폭발 모드와 레이저에 경찰이 인식되는 즉시 마킹시켜주는 센서 모드가 있다.
- 페이퍼 컴퍼니 . . . . 1회 일치
[[영어]]와 일본식 영어에서 의미가 상당히 다른 단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식 영어의 의미가 널리 쓰이고 있다.
- 편차치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편차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학력편차치(学力偏差値)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의 표준점수(Standard score)와 비슷하다.
- 편혜영 . . . . 1회 일치
* 《재와 빨강》([[창비]], 2010)
- 포리(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숲에 살고 있던 엘프종족 포리는 어느 날 어떤 남자를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눈이 먼 포리는 그에게 자신의 『노래』가 담긴 수정을 넘겨주게 되고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맹세하게 된다. 하지만 엘프의 계율은 엘프와 인간과의 사랑을 용납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수옥(水獄)에 갖혀 "달이 세번 뜰때까지" 가둬지는 벌을 받게 된다.
- 포챠포챠 . . . . 1회 일치
[[일본어]] [[의태어]]와 [[의성어]], 2가지 의미가 있다.
- 표민수 . . . . 1회 일치
* [[2018년]] [[MBC]] 《[[이리와 안아줘]]》 (극본: 이아람, 연출: 최준배) # 첫 제작
- 푸 파이터즈 . . . . 1회 일치
* 죠죠 베라(ジョジョベラー)에 따르면 미생물, 돌연변이, 외계인의 이미지로 디자인했으며, [[카멜레온]] 같은 파충류와 곤충적인 느낌을 넣었다고 한다. 디자인 면에서는 [[하이에로펀트 그린]]의 다른 버전이라고 한다.(말을 듣고 보면 약간 닮았다.)
- 프랑켄슈타인 안드로이드 . . . . 1회 일치
여담이지만 이 캐릭터는 마블의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처(프랑켄슈타인)|크리처]]가 아니다. 마블판 크리처는 따로 존재하는데 바로 [[프랑켄슈타인(마블 코믹스)|프랑켄슈타인]]. 다만 그 기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처와 닮은 점이 있는 것은 맞다.
- 프레샤 . . . . 1회 일치
* [[건담 시리즈]]에서 [[뉴타입]] 간에 서로 정신적 압력을 뿜어내서 서로를 감응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서로 적대적인 관계이고 뉴타입 능력이 강할 때 강력한 프레샤를 발하게 된다. 예시) "코노 프레샤와?! 샤아!"
- 프로라 . . . . 1회 일치
[[나치]]가 집권하던 1936년 당시 "Kraft durch Freude"[* 즐거움을 통한 힘. 기존의 사민당계, 공산당계 노조를 흡수하고 그 자산을 강탈하여 설립한 일종의 어용노조인 '독일노동전선' 산하의 단체로서, 노동자 복지와 레저 분야를 주로 담당하였다.]이라는 기관에 의해 건설을 시작했다. --쓸데없이 커다란걸 좋아하는 나치답게-- 20,000명의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로 설계되었다고.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건설이 중단되었다. 이후 프로라는 군사 시설로 사용되었고, 전쟁 막바지에는 피난민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소련군과 동독군의 막사로 사용되었다.
- 프로토스 . . . . 1회 일치
유닛과 건물을 포함해 배리어를 써서 사실상 체력이 2중이라 할 수 있다. 저그와 같은 재생능력은 없으나 배리어의 경우 회복할 수 있다.
- 프릭쇼 . . . . 1회 일치
* 킬링 조크 - 조커와 함께 인질을 괴롭히는 빌런들이 샴쌍둥이, 난쟁이 등 프릭쇼에 나오는 기괴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다. (배경이 낡은 유원지임을 생각하면 과거 이 곳에서 일하던 이들일 가능성도 있으나, 작중에선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 플래시(DC 코믹스) . . . . 1회 일치
스피드 포스와 연결되어 굉장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그 수준은 총알을 피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
- 피수영 . . . . 1회 일치
피수영은 인터뷰를 통해 "미국을 떠나 10년 후에 내가 살던 동네 서점에 갔는데 어떤 남자가 오더니 ‘당신 피 박사 아니냐’고 그래서 ‘날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까, 12살 먹은 아이를 불러와서 ‘당신이 살려준 애다’하였다. 그때 의사 하길 잘 했다, 보람이 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 피우진 . . . . 1회 일치
[[여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여성의 병 복무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군 간부직을 늘려달라는 여성단체의 요구에 대하여 "군대를 모른다"고 비판하며 "내가 겪은 '남자들로만 이뤄진 징집 군대'로선 여군 간부는 자리가 비좁다. 여군 간부직을 늘리자면 여군이 더 필요한데, 여자는 죄다 간부직만 차지할 것이냐."고 한 바 있다. 위 일화도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현 국군 안에서 여군들이 마주하는 부당한 처우와 차별들에 대해서 직접 겪고 싸워본 사람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발언. 다만 일반 여군들이 병 복무 시 마주하게 되는 부당처우 및 성차별적인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이 같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모범 군인으로서 소령까지 진급했음에도 번번이 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피우진 본인의 일화만 생각해봐도...)
- 하동부대부인 . . . . 1회 일치
셋째 아들 [[조선 선조|하성군]](河城君) 균(鈞)이 [[조선 명종|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조선 선조|선조]]로 즉위하였다. 선조는 생부와 생모를 [[1569년]](선조 2)에 송(宋)나라 [[북송 영종|영종]](英宗)의 생부 [[복안의황|복왕]](濮王)을 [[추존]]하는 고사(故事)를 따라 생부 [[덕흥군]]을 추숭하여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으로 하고, 생모 [[하동군부인]]은 하동부부인(河東府夫人)으로 추존하였다.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1회 일치
* 쌍으로 짝지어서 [[은행강도]]를 하고 돌아다닌 보니와 클라이드가 유명. 다만 좀 오래된 살인마들이라 인지도가 낮아졌다.
- 하주석 . . . . 1회 일치
제대를 앞두고 [[타이완]] [[타이중 시]]에서 열린 [[201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제29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처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 이 대회에서 중심 타자로서의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대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여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4차전 일본전에서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1점차로 지고 있던 9회말에 [[윤영환]] 감독에 의해 [[오선진]]의 대타로 출전해 상대 투수 [[콘도 히로시]]를 상대로 끝내기 투런 홈런을 기록하였다. 일본전 승리와 함께 대한민국은 드림팀 2기가 활약했던 1999년 제 20회 대회 이후 16년 만에 아시아 정상 자리를 되찾았으며, 그는 이 홈런 한 방으로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 하준영 . . . . 1회 일치
스프링 캠프에 합류했으며, 시범 경기에도 중간 계투로 등판하였다. [[2018년]] [[6월 16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 하지영 . . . . 1회 일치
| 사진설명 = <한밤의 TV연예> 하지영 BNT와 함께한 인터뷰화보 18P
- 학대의 연쇄 . . . . 1회 일치
투영하는 경우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어린 시절의 아이에게 투영하는 것으로, 자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학대한 부모에 대한 분노가 섞여서 복잡한 심리 상태가 된다.
- 한가인 . . . . 1회 일치
| [[김병찬]] 아나운서와 공동 진행
- 한규식 . . . . 1회 일치
[[2005년]] [[11월 2일]]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3:3 트레이드([[마해영]], [[최상덕]], [[서동욱 (야구 선수)|서동욱]] ↔ [[장문석]], [[손상정]], 한규식)로 [[KIA 타이거즈]]에 이적하게 된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0019774 마해영, 장문석 등과 3대3 트레이드로 LG행] - OSEN</ref>
- 한말숙 . . . . 1회 일치
* [[숙명여자고등학교]] 동창인 [[소설|소설가]] [[박완서]]와 절친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였다.
- 한명진 (1426년) . . . . 1회 일치
'''한명진'''(韓明溍, [[1426년]] ~ [[1454년]])은 [[조선]] 초기의 문신, 공신이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에 참여하였으며,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고 [[한명회]]의 아우이다.
- 한무숙 . . . . 1회 일치
* 누이동생: [[한말숙]](韓末淑, [[1931년]] [[12월 27일]] ~ . [[소설|소설가]]. [[숙명여자고등학교|경성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및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언어학과 졸업.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黃秉冀)와 결혼.)
- 한방의학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한의학]], [[중의학]]을 부르는 명칭이다. 일본에서는 자국의 한방의학이 전래된 중의학과는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별개의 요소가 많다고 주장한다. 한방(漢方)이라는 명칭은 [[에도 시대]] 중엽에 [[네덜란드]]의 의학이 전래되어 이를 란방(蘭方) 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와 대조하여 기존의 중국에서 전래된 의학을 '한방'이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 한보배 . . . . 1회 일치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 윤맑음 역 (특별출연)
- 한복 (1914년) . . . . 1회 일치
'''한복'''(韓宓, [[1914년]] [[9월 16일]] ~ [[1994년]] [[1월 15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법조인 겸 관료로, [[서울특별시]] 출신이며 본관은 청주이다.
- 한상원 . . . . 1회 일치
| 가족 = 아버지 [[한운사]](영화 각본가) <br /> 아내와 슬하 2녀
- 한승엽 (1985년) . . . . 1회 일치
2003년 SouL(현 STX SouL)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으며 아마추어 시절 강력한 프로토스 실력을 소유한 선수였으나 프로로 와서는 테란으로 전향하였다.
- 한승주 (공무원) . . . . 1회 일치
청와대는 2003년 4월 한승주를 주미대사로 서둘러 내정하였다. 여기에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용을 가급적 빨리 구축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시, 북핵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대두됐으나 양성철 당시 주미대사는 3년의 임기를 거의 마쳐가고 있는 상태였고 가능한 한 빨리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런 상태에서 한승주가 국내 인사로는 드물게 미국내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으며,1993년 북핵 위기 때는 외무부 장관으로서 평화적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점도 고려돼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북핵해결 위한 美지명도·인맥 고려…한승주 주미대사 내정 배경 |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18951804&code=11121200 |뉴스 = 국민일보 |날짜 = 2003-03-27 }}</ref> 이리하여 [[2003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제19대 주미대사를 지냈다.
- 한신 아와지 대지진 . . . . 1회 일치
1995년 1월 17일오전 5시 46 분,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 직하형 지진으로서, [[고베]], [[한신]], [[아와지시마]]를 중심으로 하여 피해가 있었다. 6434명이 사망, 24만 9천 채의 주택이 무너지는 거대한 피해가 있었다.
- 한용덕 . . . . 1회 일치
[[2006년]] 시즌 중반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지연규]]의 1군 합류와 함께 1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41623& 한화, 우완 조성민 1군 올리고 최동원 코치 2군행] 《Osen》, 2006년 7월 24일 작성</ref> [[2006년]] 시즌 종료 후 열린 전지 훈련에서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법을 전수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249270 신인 삼총사, '신무기 장착으로 2년차 징크스 넘는다'] 《조이뉴스》, 2007년 2월 21일 작성</ref> [[2007년]] 시즌 중반 [[이상군]]이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됨에 따라 재활군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733318& 한화, 1군 투수코치에 이상군]《연합뉴스》, 2007년 8월 22일 작성</ref>
- 한주완 . . . . 1회 일치
* [[2013년]] 《[[소설, 영화와 만나다]]》 ... 우현 역
- 한지우(배우) . . . . 1회 일치
통칭 '''리틀 [[송혜교]]'''. 송혜교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외모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중국에서 상당한 인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뜨거운 형제들]] 출연을 통해 유명해졌다. KBS 8부작 청춘드라마 '[[정글피쉬 2]]'의 주연으로 발탁돼 [[엄친딸]] '백효안' 역을 연기했다. [[무한걸스]] 시즌 3에 참여하였다.
- 한징 . . . . 1회 일치
'''한징'''(韓澄, [[1886년]] - [[1944년]])은 [[한글]]학자이다. 호는 효창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부터 10년간 <[[시대일보 (1924년)|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의 기자를 지냈다. [[1930년]] [[이윤재]]와 함께 [[조선어학회]] 사전을 편찬하는 데 힘썼으며 이어 [[표준말]] 사정위원이 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되어 옥살이를 하던 중 [[1944년]] 함흥 감옥에서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 한창희(전공기업인) . . . . 1회 일치
이시종을 시작으로 맹정섭까지 이어지는 충주시 보수정당 인사의 민주당계 전향자 라인이다.[* 웃긴건, 이시종, 한창희, 맹정섭 3인은 17대 총선에서 각각 다른 소속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넘어온 이시종이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한창희가 한나라당 후보로, 맹정섭은 무소속 후보로.] [* 아울러 한창희나 맹정섭이나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어지간히 섭섭했던 모양인지 그쪽 정당에서 있었던 일 자체를 거의 흑역사 취급하고 있다.]한창희 본인만 해도 열린우리당으로 갈아탄 이시종에게 패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조차 민주당으로 넘어와서 선거를 치뤘다. 그만큼 민주당계 정당이 충주에서 자생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반증일지도. 현재도 차기 총선의 민주당 유력 후보군이다.
- 한혁수 . . . . 1회 일치
* [[SK 와이번스]] 2군 수비코치 (2012년 ~ 2013년)
- 한현규 . . . . 1회 일치
* 1977년 제20회 행정고시 입격<ref>[http://news.joins.com/article/4304309 손학규 지사,청와대 現비서관 副지사로 내정] 중앙일보 2002.06.29</ref>
- 함대 컬렉션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중. 물론 양지로 나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음지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어 수많은 동인지와 SS, 팬아트, 매드무비 등등이 나오고 있다.
- 함신영 . . . . 1회 일치
* 《[[장미와 콩나물]]》 (MBC, 1999년)
- 함영준 . . . . 1회 일치
[[한양대학교]] 경영학과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오뚜기에 입사했다. 2000년 3월부터 2010년 오뚜기 사장이 되고 2010년부터는 회장이 되었다.
- 핼로워크 . . . . 1회 일치
애칭인 핼로워크(ハローワーク)는 Hello+Work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핼로워크를 줄여서 하로와(ハロワ)라고도 쓴다.
- 허가윤 . . . . 1회 일치
* 2016년 [[KBS]] 《앨리스와 그녀의 팀》 - 알리사 (목소리)
- 허근욱 . . . . 1회 일치
아버지 허헌은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 변호사로 활동했고, 독립운동가의 변호를 서던 중 [[신간회]], [[근우회]]에서 활동하던 [[황해남도]] [[신천]] 출신 유덕희를 만나 그를 낳았다. 그 뒤 [[허헌]]의 본부인 정긍자가 사망하자 허헌은 유덕희와 재혼하였다.
- 허미영 . . . . 1회 일치
'''허미영'''(許美英, [[1982년]] [[2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개그우먼]]이다. [[2015년]] [[2월]] 남편 국회의원 보좌관 박모씨와 결혼했다.
- 허범산 . . . . 1회 일치
[[2012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으며 [[3월 24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
- 허위 . . . . 1회 일치
심문을 받던 중 '의병을 일으킨 주동자와 대장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주동자는 [[이토 히로부미|이토]]이며 대장은 나다.'라고 대답하고, 이유를 묻자 '이토가 우리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의병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이토가 곧 주동자이다.'라고 대답했다는 야사가 있다.
- 허준 (1981년) . . . . 1회 일치
오랫동안 2군 생활을 하다가 [[2009년]]부터 [[강귀태]]의 백업 포수로서 본격적으로 1군 무대를 밟는다. 그 이후로 많은 기회를 받지만 부상으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2011년]] [[허도환]]의 등장으로 1군 경기 출전 횟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2011년]] [[11월 22일]] [[2012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차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팀 동료 [[조평호]]와 함께 [[NC 다이노스]]로 이적하게 된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45598 NC, 전체 1순위로 넥센 조평호 지명 '총 7명 영입' ] - 스타N뉴스</ref>
- 허진(법조인) . . . . 1회 일치
}}</ref> 항일의병장 왕산 [[허위 (1854년)|허위]]와 일가이다.
- 허협 . . . . 1회 일치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헤이안 시대 . . . . 1회 일치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 다이호 율령(大宝律令)가 제정되어 있던 시기에 나라의 토지는 모두 덴노의 것이라는 왕토사상 아래, 농민에게는 토지를 빌려주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구분전(口分田)이라고 하였으며, 개별 농민에게 과사게 이루어졌다. 새롭게 개간한 토지는 사유지로 삼을 수 있었으나, 1대에 한하여 반납하여야 했다. 이를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이라고 한다.
- 헥사밀리온 . . . . 1회 일치
중세 그리스의 성벽.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중부를 연결하는 비좁은 코린토스 지협에 세워진 성벽으로서, 헥사밀리온이란 '6마일의 성벽'이라는 뜻이다. 이 지협은 좁아지는 구간이므로 방어에 유리하여 성벽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최초로 건설한 것은 비잔티움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로 여겨진다. 그는 야만족에서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헥사밀리온을 건설했다. 헥사밀리온은 여러 차례 파괴, 수복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펠로폰네소스의 방어 거점이 되었다.
- 현재윤 . . . . 1회 일치
[[2012년]]에는 백업 경쟁자인 [[이지영 (야구 선수)|이지영]]에게 완벽히 밀리며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그 해 [[12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 간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하였다. 이는 양 구단 간 최초의 트레이드이다.
- 호준석 . . . . 1회 일치
* [[2000년]] ~ [[2003년]] : YTN 청와대 출입기자
- 호환성 . . . . 1회 일치
이는 [[정보공학]]의 호환성이다. 하나의 장치에서 처리한 데이터, 프로그램을 다른 장치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윈도우즈]] 프로그램은 컴퓨터에 관계없이 어떤 윈도우즈 기기에서도 호환성이 있다. 물론 [[사양]]은 있지만. 윈도우즈와 맥은 기종은 프로그램은 호환성이 없지만, 데이터는 서로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데이터 호환성은 있다.
- 혼모노 . . . . 1회 일치
* 애니메이션 말투의 일본어를 부분적으로 사용한다.[* 애니에서 쓰이는 일반적인 일본어 말투와는 사용되는 어휘, 어조가 다른데가 많다.]
- 홍가람 . . . . 1회 일치
* 《[[웃으면 복이와요]]》 (MBC)
- 홍성유 . . . . 1회 일치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도박을 좋아한 그는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김종철 (시인)|김종철]] 시인은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인하여 그는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 홍세화 . . . . 1회 일치
[[1947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서울특별자유시]](現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ref>1948년 이후 서울특별시로 명칭이 바뀐다.</ref>[[충청남도]] [[아산군]] [[염치읍|염치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서울창경초등학교|창경국민학교]],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 홍소희 . . . . 1회 일치
* 《[[사랑한다 말해줘]]》 (MBC, 2004년) - 희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자 역
- 홍승목 . . . . 1회 일치
[[한성부]] 출신으로 [[1875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하여 [[승정원]]에서 관직을 시작했다. 이후 [[홍문관]]과 [[사헌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1879년]] 형조와 병조의 참의 자리에 올랐으며, [[1881년]]과 [[1883년]]에는 각각 [[사간원]]의 대사간과 [[성균관]]의 대사성에 임명되었다. [[1890년]] 형조참판과 병조참판을 지냈고, [[1900년]] [[궁내부]] 특진관에 올랐다.
- 홍이주 . . . . 1회 일치
* 《[[철수씨와 02]]》 (MBN, 2018년) - 김동희 역
- 홍준표 (1949년) . . . . 1회 일치
* 일본의 항공기 부품 생산업체 아이신 타카오카사와 주조공정 설계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연구용역<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9&aid=0000110808 홍준표 연대교수, 日서 25만불 수주]</ref>
- 홍진기 . . . . 1회 일치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성=유진오|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 홍해성 . . . . 1회 일치
[[1935년]]에 상업연극 전문 극장인 [[동양극장]]이 개관하자, 동양극장 연출부로 이동했다. [[1943년]]에 지병으로 사임할 때까지 동양극장에서 총 400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승방비곡》, 《검사와 사형수》, 《어머니의 힘》 등이 대표적인 흥행작이다. 본격적인 전문 연출가로서 한국에 근대극을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데 이어, 동양극장 이적 후에는 세련된 상업 연극으로 대중극의 수준을 격상시켰다는 평이 있다.
- 홍헌표 . . . . 1회 일치
}}</ref> ~ [[1966년]] [[4월 20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관료이다.
- 화석연료 . . . . 1회 일치
* 탄소균형 문제 : 화석연료의 남용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자연적으로 축적하는 탄소화합물의 양보다 배출하는 탄소화합물의 양이 훨씬 많아져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쉽게 말해 '지구온난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 화식 화장실 . . . . 1회 일치
* 직접 변기와 접촉하지 않아도 되므로, 어떤 면에서는 위생적.
- 화표 . . . . 1회 일치
그러나 이 화표는 결국 2012년 보시라이가 실각하고 체포되어, 부패와 범죄로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면서 [[설레발]]로 끝나고 말았다. 게다가 2016년 8월 5일, 베이징 신경보(新京報)에서는 네티즌들의 소식을 인용하여 보시라이가 건설한 화표가 밤새 철거당했다는 소식을 알려, 보시라이의 꿈처럼 그가 세운 --설레발-- 화표 역시 소멸하여 보시라이의 야망이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렸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 황가히 . . . . 1회 일치
황가히는 [[2009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했으며, 연극 및 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이며, 또한[[레이싱 모델]]과 활동하고 있다. 2005년 데뷔하여 모터쇼, 레이싱경기, 방송,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바 있다. 황가히라는 이름은 한글의 첫글자인 "가"와 마지막 글자인 "히"를 따서 할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다.
- 황대봉 . . . . 1회 일치
1967년 [[포항버스]][* 이후 1990년대에 성원여객으로 통합되었고, 신안여객을 거쳐 現 코리아와이드 포항이다.]를 설립하여 현재의 대아그룹을 창업하였다. 이후 해운([[대아고속해운]]), 금융(대아상호신용금고), 건설, 관광레저(대아여행사), 문화사업, 지역언론사업([[경북일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1983년 포항에 [[세명고등학교]](학교법인 영암학원)를 설립하였다. [* 여담으로 세명고등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가끔씩 이사장이 오셨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황대봉 이사장과 악수를 하면 수능을 대박 친다는 일종의 카더라가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이사장이 등장하시면 3학년들이 악수한다고 난리였다고 한다.]해당 과정을 통하여 포항시에서는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지역 경제계에서 큰 인물로 인식되었다.
- 황병하 . . . . 1회 일치
1962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우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치고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인천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였다. 대법원 재판연구원,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지원장을 거쳐 2004년 2월 정기인사에서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2016년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나 [[대구지방법원]]과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평생 법관제에 따라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하고 있다.<ref>[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130901&part_idx=335]</ref>
- 황산 (삽화가) . . . . 1회 일치
* [[2010년]] [[나와 그녀가 마왕과 용사로 학생회장]] 일러스트 담당
- 황상경 . . . . 1회 일치
* 《[[으라차차 와이키키]]》 (2018년, JTBC)
- 황옥 (1885년) . . . . 1회 일치
1923년 [[김상옥 (1890년)|김상옥]]이 일으킨 [[종로경찰서 투폭사건]] 이후에 사건 관련자를 색출한다는 구실로 중국으로 출장을 가서 [[톈진]]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만났고,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수령, 김시현, 김재진, [[권동산]] 등과 함께 물건을 [[단둥]], [[신의주]]를 거쳐 [[경성]]까지 밀수했다.
- 황인숙 . . . . 1회 일치
*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br/>내 척박하고 황폐한 삶을 쟁기질하는<br/>다시금 시를 쓰고<br/>노래부르고 싶게 하는<br/>나의 운명에게 깊은 감사와 입맞춤을 보낸다
- 황정립 . . . . 1회 일치
[[2012년]] [[KIA 타이거즈]]의 8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확대 엔트리 시행 후 1군에 올라왔고, 2012년 9월 14일 광주 무등경기장 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8:7로 뒤지고 있던 연장 12회말 2아웃 데뷔 첫 타석에서 [[투수]] [[강영식]]을 상대로 3구를 받아 쳐 동점 홈런을 날렸다.
- 황정오 . . . . 1회 일치
[[경북 선산군 무을면 무이동]]에서 태어나 대구 [[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1979년]]에 유도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고 [[1980년]] [[폴란드]] 클라블라프에서 열린 세계 대학생 유도 선수권 대회 [[은메달]]을 획득해 주목 받기 시작했다.
- 황지웅 . . . . 1회 일치
[[2012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여 리그 20경기에 출전하였으나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고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개막전 출전 후 시즌 말미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 다시 기회를 잡기 시작하여 11월 3일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한데 이어 6일 뒤 [[강원 FC]]를 상대로도 골을 성공시키며<ref>{{뉴스 인용 |제목 = 무명 황지웅, 대전 구세주로 |url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20029003 |출판사 = 서울신문 |저자 = 강신 |날짜 = 2013-11-20 }}</ref> 활약하였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하였다. 다만 [[K리그 챌린지 2014|2014 시즌]]부터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팀의 승격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5년]] 팀내 최장수잔류자로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팀의 재강등을 막지 못했고, 2015 시즌을 끝으로 군 복무를 위해 [[안산 무궁화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 황태연 . . . . 1회 일치
필명 황태연과 황연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한국의 소설가이자, 외국인 번역가나 대리인 없이 영문 소설을 처녀작으로 직접 집필, 퇴고, 편찬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현재 [[Lotus]](ISBN-10: 1980979170, ISBN-13: 978-1980979173)라는 소설 작품으로 해외 [[아마존닷컴]]에 등단하여 종이책, [[아마존 킨들]] 전자책으로 판매 중이며 왕성한 활동 중인 작가는 연이어 한국 수영 이론서인 [[수영 바이블]]을 BOOKK란 출판사와 교보문고 퍼플 출판사, 유페이퍼 출판사를 통해 종이책 컬러본과 흑백본, 그리고 전자책으로 출간하였다.
- 후예 . . . . 1회 일치
* 대개 창작물의 후손은 선조와 닮았다고 묘사된다. 자신이 조상과 닮았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후지와라 노리카 . . . . 1회 일치
* 정유미 와 손나은 두명을 입양을했다고밝힌다
- 흑초 . . . . 1회 일치
* [[비타민 B]]와 [[미네랄]]이 들어 있어, 필수 영양소이다.
- 히키니트 . . . . 1회 일치
[[히키코모리]]와 [[니트]]를 결합한 말.
- 히토쯔마 . . . . 1회 일치
남(人,히토)의 아내(妻,쯔마)라는 뜻이다. [[유부녀]]와는 조금 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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