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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팀이 클래식에 있으면 팀의 존속을 보다 공고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챌린지로 강등되면 팀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는게 당연하므로 이 때만큼은 양팀 모두 사력을 다하게 된다. 분위기를 비유컨데 리그에서의 대결이 [[올림픽]] [[권투]]였다면, 승강 플레이오프는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검투사]] 대회로 비할 수 있다.
  • 강원도
         아이스하키는 2005년부터 춘천 [[의암 빙상장]]에 [[하이원(아이스하키팀)|하이원]]이 자리잡고 있고[* 경기도 고양시와 공동연고지라 홈경기가 나뉘어 열린다.], 2016년 강릉 하키센터를 홈구장으로 [[대명 킬러웨일즈]]가 창단해[* 평창 올림픽까지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 프로 아이스하키팀이 2팀이 되었다. 2팀 모두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 참가 중이다.
         ==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
         [[http://www.pyeongchang2018.com/horizon/kor/index.asp|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공식 홈페이지]]
         [[평창군]]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2010년과 2014년, 2018년까지 총 3번이나 도전했다. 강원도는 평창 올림픽 유치에 대부분을 올인하였기 때문에 평창올림픽 유치 실패=파산이다. 거짓말 아니다(...). 때문에 애시당초 혈세낭비하면서까지 올림픽 유치를 왜 해야되냐는 비판여론도 상당했으나, 어찌됐든 삼세판 끝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올림픽을 개최해 이득을 본 나라가 많지 않은 만큼 향후 강원도가 올림픽 효과를 보려면 사후관리가 중요할 듯. 당장 올림픽유치를 통해서 막대한 이득을 본다기보다는, 올림픽 유치를 통해 따라오는 각종 혜택과 예를 들자면 제2영동고속도로와 복선 같은 중앙정부 지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성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018 평창올림픽지원특별법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강원도의 발전을 기대해보자.[* 알펜시아가 빚더미라 재정파탄 이야기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과연...현직은 물론이고 차기 도지사까지도 머리 꽤나 아플 듯 하다.]
  • 그랜드슬램
          * 아마추어 개인종족 : 올림픽이 있는 종목이라면 보통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우승을 하는 것을 그랜드 슬램 달성으로 본다.
  • 김 마그너스
         | 올림픽 =
         {{메달 경기|[[청소년 올림픽]]}}
         {{금메달|[[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2016 릴레함메르]]|[[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크로스]]}}
         {{금메달|[[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2016 릴레함메르]]|[[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10km 클래식]]}}
         {{은메달|[[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2016 릴레함메르]]|[[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스프린트 개인전]]}}
         [[파일:Lillehammer 2016 Cross country sprint classic men medalists (24439047034).jpg|260px|섬네일|[[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스프린트 메달리스트들. 왼쪽이 김마그너스이다.]]
         '''김 마그너스'''([[1998년]] [[7월 21일]] ~ )는 [[대한민국]]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노르웨이식 이름은 '''망누스 뵈'''({{llang|no|Magnus Bøe}})이다. [[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부산광역시]]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노르웨이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대한민국과 노르웨이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운동에 소질을 나타내었고, 노르웨이의 인기 종목인 [[스키]] 선수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김마그너스 "올림픽? 억수로 나가고 싶어요"|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5&aid=0002443694|출판사=중앙일보|저자=김지한|쪽=|날짜=2015-02-27|확인날짜=2016-02-15}}</ref> 그는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출생시부터 노르웨이와 대한민국의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적법에 따라 22세까지는 양 국가의 국적 보유가 가능하나, [[올림픽]] 등의 국제 대회에는 한 국가의 국적을 대표하여 출전하여야 하게 되어 있으며, [[2015년]] 대한민국 국적으로 국제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설상 종목 최대 기대주' 김마그너스, 한국 국적 선택|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5&aid=0002472155|출판사=중앙일보|저자=김지한|쪽=|날짜=2015-04-27|확인날짜=2016-02-15}}</ref> 대한민국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국가대표]]가 된 그는, [[2016년]] 2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동계 청소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크로스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그는 대한민국의 스키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 규모의 국제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이후 2017년 2월 삿포로에서 열린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 크로스컨트리 스키 크로스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대한민국은 동계 아시안 게임 크로스컨트리 종목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분류:199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분류:노르웨이의 남자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크로스컨트리 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크로스컨트리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크로스컨트리 참가 선수]][[분류:청소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메달리스트]][[분류:2016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참가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부산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노르웨이계 한국인]][[분류:한국계 노르웨이인]][[분류:노르웨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에 거주한 노르웨이인]]
  • 김경훈 (태권도 선수)
         | 올림픽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f/Gold_medal_olympic.svg/15px-Gold_medal_olympic.svg.png×1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2000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kg급|+80kg]]}}
         '''김경훈'''(金慶訓<ref>{{뉴스 인용 | 제목=-장관기태권도-金慶訓, RSC승으로 준결 합류| 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705777 | 출판사=연합뉴스| 저자= | 쪽= | 날짜=1993-08-26| 확인날짜=2019-02-10}}</ref>, [[1975년]] [[7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남자 [[태권도]] 선수이다. [[200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db-ol-TKD2000>[http://www.databaseolympics.com/games/gamessport.htm?g=25&sp=TKD "2000 Summer Olympics – Sydney, Australia – Taekwondo"] {{웨이백|url=http://www.databaseolympics.com/games/gamessport.htm?g=25&sp=TKD |date=20080823081100 }} ''databaseOlympics.com'' (Retrieved on April 6, 2008)</ref>.
         김경훈은 [[1997년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태더급으로 출전하였고, 동메달을 획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258225|제목=-세계태권도선수권- 진승태, 3회연속 정상|이름=|날짜=1997-11-20|출판사=연합뉴스}}</ref>. 이후 [[2000년 하계 올림픽|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도 참여하였다. 당시 [[1992년 하계 올림픽|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였던 [[김제경]]선수가 우위에 있었으나, 허벅지 부상으로 기권하였고, [[문대성]]선수와의 시합에서 3-2로 승리해 대표팀에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8&aid=0000016343|제목=[태권도]김제경, 끝내 올림픽 출전 좌절|이름=|날짜=2000-08-02|출판사=한국일보}}</ref>. +80kg급 결승에 올라선 그는 [[2000년 하계 올림픽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단|호주]]의 [[대니얼 트랜튼]]선수를 꺽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db-ol-TKD2000/>.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2000년 하계 올림픽|시드니 올림픽]]에서 대결했던 [[문대성]]선수와 체급이 달라 동시에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두 사람다 금메달을 획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0254776|제목=<아시안게임> 문대성, 올림픽 한 풀었다|이름=|날짜=2002-10-13|출판사=연합뉴스}}</ref><ref name=re>{{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0254293|제목=<아시안게임> 김경훈, 은퇴무대 대미 장식|이름=|날짜=2002-10-12|출판사=연합뉴스}}</ref>. [[2002년 아시안 게임]]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에서 은퇴하였다<ref name=re/>.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kg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태권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태권도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태권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성내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동성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김경훈 (태권도선수)
         | 올림픽 = [[파일:Gold medal olympic.svg|15px]]×1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2000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kg급|+80kg]]}}
         '''김경훈'''(金慶訓<ref>{{뉴스 인용 | 제목=-장관기태권도-金慶訓, RSC승으로 준결 합류| 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705777 | 출판사=연합뉴스| 저자= | 쪽= | 날짜=1993-08-26| 확인날짜=2019-02-10}}</ref>, [[1975년]] [[7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남자 [[태권도]] 선수이다. [[200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db-ol-TKD2000>[http://www.databaseolympics.com/games/gamessport.htm?g=25&sp=TKD "2000 Summer Olympics – Sydney, Australia – Taekwondo"] {{웨이백|url=http://www.databaseolympics.com/games/gamessport.htm?g=25&sp=TKD |date=20080823081100 }} ''databaseOlympics.com'' (Retrieved on April 6, 2008)</ref>.
         김경훈은 [[1997년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태더급으로 출전하였고, 동메달을 획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258225|제목=-세계태권도선수권- 진승태, 3회연속 정상|이름=|날짜=1997-11-20|출판사=연합뉴스}}</ref>. 이후 [[2000년 하계 올림픽|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도 참여하였다. 당시 [[1992년 하계 올림픽|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였던 [[김제경]]선수가 우위에 있었으나, 허벅지 부상으로 기권하였고, [[문대성]]선수와의 시합에서 3-2로 승리해 대표팀에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8&aid=0000016343|제목=[태권도]김제경, 끝내 올림픽 출전 좌절|이름=|날짜=2000-08-02|출판사=한국일보}}</ref>. +80kg급 결승에 올라선 그는 [[2000년 하계 올림픽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단|호주]]의 [[대니얼 트랜튼]]선수를 꺽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db-ol-TKD2000/>.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2000년 하계 올림픽|시드니 올림픽]]에서 대결했던 [[문대성]]선수와 체급이 달라 동시에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두 사람다 금메달을 획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0254776|제목=<아시안게임> 문대성, 올림픽 한 풀었다|이름=|날짜=2002-10-13|출판사=연합뉴스}}</ref><ref name=re>{{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0254293|제목=<아시안게임> 김경훈, 은퇴무대 대미 장식|이름=|날짜=2002-10-12|출판사=연합뉴스}}</ref>. [[2002년 아시안 게임]]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에서 은퇴하였다<ref name=re/>.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kg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태권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태권도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태권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성내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동성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김광현 (야구 선수)
         |사진 설명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올림픽 = [[2008년]] 베이징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8 하계 올림픽|2008]]|중국 베이징}}
         또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에이스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일본을 두 번 상대해 두 번 모두 승리 투수가 되며 사상 첫 대한민국 대표팀의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세 경기에서 14.1이닝동안 12탈삼진을 기록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 [[200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MVP 수상자]][[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KBO 승리상 수상자]][[분류:KBO 평균자책점상 수상자]][[분류:KBO 승률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김해 김씨]][[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김광현 (야구선수)
         |사진 설명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올림픽 = [[2008년]] 베이징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8 하계 올림픽|2008]]|중국 베이징}}
         또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에이스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일본을 두 번 상대해 두 번 모두 승리 투수가 되며 사상 첫 대한민국 대표팀의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세 경기에서 14.1이닝동안 12탈삼진을 기록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 [[200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MVP 수상자]][[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KBO 승리상 수상자]][[분류:KBO 평균자책점상 수상자]][[분류:KBO 승률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김해 김씨]][[분류:덕성초등학교 (경기) 동문]][[분류:중앙중학교 (경기) 동문]][[분류:안산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김동주 (야구인)
         |올림픽 = 2000 시드니<br />2008 베이징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야구]]}}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야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모습.
         * [[2000년 하계 올림픽|2000년 시드니 올림픽]]
         * [[2008년 하계 올림픽|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200홈런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안타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타점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출루율상 수상자]][[분류:KBO 타율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해 김씨]][[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김문수 (배드민턴코치)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남자 복식}}
         '''김문수'''(金文秀, [[1963년]] [[12월 29일]] ~ )은 전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출신 [[배드민턴]] 선수이자,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금메달리스트}}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드민턴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올림픽 배드민턴 메달리스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배드민턴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배드민턴 참가 선수]][[분류:배드민턴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배드민턴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배드민턴 참가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배드민턴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배드민턴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 김민재 (1973년)
         * [[200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올림픽 = [[2008년]] 베이징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야구]]}}
         리그 정상급의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는데, [[2002년 아시안 게임|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에 선출됐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참가하여,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중앙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경남중학교 동문]][[분류:부산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김보름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매스스타트]]}}
         * 강원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참여홍보대사<ref>{{뉴스 인용|url=http://www.gw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81996|제목=강원도, '2018평창올림픽 참여홍보대' 위촉 - 강원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올림픽
         |올림픽
         |올림픽
         {{인용 상자|"스케이트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다. 운동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들도 많지만, 그 아쉬움은 좋은 성적이 나오면 다 잊을 수 있었다. 이젠 이런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로 우리와 다 똑같다. 다들 일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지 않나."<ref>{{뉴스 인용|url=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705160900003&sec_id=530101|제목=[창간특집] 김보름 “내 머리속엔 온통 평창올림픽…설렘보다 긴장감 더 크죠”|날짜=2017-05-16|언어=ko|확인날짜=2017-05-16}}</ref>}}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2년 2월 16일 서울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9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대학부 3000m 결승에서 김보름(19)은 4분18초11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17일 열린 1500m에서도 2분05초로 우승한 김보름은 대구-경북 동계체전 선수 중 유일한 2관왕 타이틀을 획득했다.<ref name=":5">{{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218.010200737070001|제목=대구경북 유일한 2관왕 ‘빙속 스타’ 김보름 “소치올림픽 금메달도 꿈만은 아닐 것”|성=영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8}}</ref>
         김보름은 월드컵을 거르며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비했으나 스피드와 체력 등에서의 네덜란드-캐나다등 서양 선수에 대한 역부족,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인한 페이스 조절 실패, 그리고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주종목인 5000m를 포기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좌절을 겪었다.<ref name=":15" />
         2013년 12월 13일 이탈리아 트렌티노의 바셀가디피네아이스링크경기장에서 열린 제26회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15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2분1초19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경기에 출전한 양신영, 박도영은 각각 5위, 6위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ire.co.kr/newsRead.php?no=728148|제목=제26회 트렌티노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첫 메달 획득|날짜=2013-12-15|뉴스=보도자료 배포, 온라인 보도자료 등록, 홍보 대행 - 뉴스와이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5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은메달을 땄다. 18일 열린 5000m에서도 김보름이 7분17초82만에 결승선을 통과, 마르티나 사브리코바(체코, 7분05초17)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동반 출전한 박도영(한국체대)은 7분26초58의 기록으로 3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21810402676378|제목=김보름·박도영, 동계U 빙속 여자 5,000m 은·동메달|날짜=2013-12-18|확인날짜=2017-03-13}}</ref>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과 박도영(20-한국체대), 양신영(23-전북도청)의 여자대표팀이 3분06초53으로 결승선을 통과, 일본(3분11초39)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221024004|제목=소치올림픽 금물결 꿈틀|뉴스=서울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2월 9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3000m 부문에서 김보름(21)은 4분12초08의 기록으로로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조로 경기를 치른 김보름은 21초05로 200m 구간을 통과한 후 2분31초34로 1800m 구간을 지났다. 이후 2200m 구간 통과 순간부터 스피드를 올리며 후반 들어 스퍼트를 올렸고, 결국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 기록을 남겼다. 김보름의 순위인 13위는 지난 2006 토리노 올림픽,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노선영(25-강원도청)이 기록한 19위를 넘어 한국 여자 3000m 부문의 가장 높은 순위다. 5조의 노선영은 4분19초02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200m 구간에서 21초32의 기록으로 지난 이후 속도를 올리지 못한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노선영은 전체 26위의 성적을 남기며 경기를 마쳤다. 6조에서 경기를 소화한 양신영(24-전북도청)은 4분23초67을 기록해 이날 대회를 뛴 28명 중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한편 이날 대회는 4분00초34의 이레네 부스트(네덜란드)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가져갔다. 대회 2연패를 노린 2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4분01초95)와 3위 올가 그라프(러시아-4분03초47)에 앞선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41654|제목=(소치올림픽)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13위..금메달 부스트|확인날짜=2017-03-21}}</ref> 16일 열린 1500m에서는 네덜란드의 요리엔 테르모르스가 1분53초51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쓸었다. 은메달은 이레인 뷔스트(1분54초09)에게 돌아갔고 동메달은 하를로터 판바이크(1분54초54)가 주인이 됐다. 심지어 4위도 네덜란드 선수인 마리트 리엔스트라(1분56초40)가 차지했다. 김보름은 1분59초78로 21위에 올랐다. 노선영(25-강원도청)은 2분01초07로 29위, 양신영(24-전북도청)은 2분04초13으로 최하위인 36위에 그쳤다.<ref>{{웹 인용|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3&newsid=01079126605991504&DCD=A20402|제목=[소치올림픽]테르모르스, 전날 쇼트트랙 뛰고 빙속1500m 올림픽新 금|성=포털|이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성2=무단전재|이름2=‘이데일리 스타in’-|날짜=2014-02-17|확인날짜=2017-03-21|성3=금지|이름3=재배포}}</ref> 김보름은 무릎 통증이 있어 5000m를 기권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9/20140219004640.html|제목=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성=세계일보|날짜=2014-02-19|뉴스=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2일 열린 팀추월 파이널D(7-8위 결정전)에서 김보름, 노선영(25, 강원도청), 양신영(24, 전북도청)이 나란히 달린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져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전날 8강전에서 일본에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여자 대표팀은 이날 3분11초54만에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해 3분8초35를 기록한 노르웨이에 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223322278172|제목=김보름·노선영·양신영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위에 그쳐|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3}}</ref>
         매스스타트가 동계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체택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10/2015061000080.html|제목='매스스타트' 이승훈, 평창 향해 달려라|언어=ko|확인날짜=2017-03-22}}</ref> "평창이 아니었다면 그냥 '평범한 선수'로 뛰다가 아무도 모르게 은퇴했겠죠."<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70206/82726991/1|제목=첫 정식종목 ‘매스스타트’ 남녀 세계1위 이승훈-김보름|날짜=2017-02-06|뉴스=동아닷컴|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제가 어릴 적부터 유난히 승부욕이 강했어요. 그리서인지 운동을 열심히 했고 달리기에서도 일등을 놓치지 않았죠. 매스스타트는 쇼트트랙과 비슷한데 제 앞에 어떤 선수가 있으면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이런 승부욕이 매스스타트라는 종목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ref>{{뉴스 인용|url=http://v.sports.media.daum.net/v/20170621060013537|제목=[피플人 인터뷰 영상] '빙속 원더우먼' 김보름, '빙판 위의 쌈, 그것이 마이 웨이'|날짜=20170621060011|뉴스=다음스포츠|언어=ko|확인날짜=2017-06-21}}</ref> 긴 방황 끝에 목표를 찾은 김보름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월드컵 1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우승을 했지만 2차 대회에서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시즌 말 종목별세계선수권대회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여제의 귀환을 예고했다.<ref name=":21">{{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730363.html|제목=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김보름은 은메달|날짜=2016-02-15|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2017 년 10 월 19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52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겸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파견 대표 선발전 3000m에서 김보름(강원도청)은 4 분 15 초 4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이 세운 대회신기록 4 분 17 초 63보다 2초 이상 빠른 기록이다. 이날 7 조 인코스에서 출발해 200m를 21 초 18에 주파한 김보름은 이후 마지막 바퀴를 제외하곤 매 바퀴를 32-33 초대로 돌며 줄곧 선두를 지켰다. 이날 3000m 2 위는 박지우(한국체대)로 4 분 16 초 78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9/0200000000AKR20171019198300007.HTML|제목='장거리 여왕' 김보름, 대표 선발전 3,000m 1위…대회 신기록|성=고미혜|날짜=2017-10-19|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0-22}}</ref> 김보름은 20 일 열린 1500m에서 2 분 3 초 31의 기록으로 노선영(콜핑팀-2 분 2 초 99)에 이어 2 위를 기록했다. 김보름은 7 조 아웃코스에서 박도영(동두천시청)과 레이싱을 펼쳤다. 첫 300m 기록은 다소 느렸다. 김보름은 28 초 17로 주파해 출전 선수 중 10 위에 그쳤다. 그러나 가속이 붙기 시작한 700m 구간부터 스피드를 올려 전체 2 위로 결승선을 끊었다. 김보름은 이미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매스스타트 종목 선발권을 땄고 전날 여자 3000m와 5000m, 팀 추월 종목 출전권도 확보했다. 여자 1500m 종목까지 출전권을 따낸 김보름은 ISU 월드컵에서 각 종목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 획듣에 도전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0/0200000000AKR20171020142600007.HTML|제목=빙속 김보름, 1,500m 출전권도 확보…노선영에 이어 2위|성=김경윤|날짜=2017-10-20|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0-22}}</ref>
         2017 년 10 월 19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52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겸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파견 대표 선발전 3000m에서 김보름(강원도청)은 4 분 15 초 4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이 세운 대회신기록 4 분 17 초 63보다 2초 이상 빠른 기록이다. 이날 7 조 인코스에서 출발해 200m를 21 초 18에 주파한 김보름은 이후 마지막 바퀴를 제외하곤 매 바퀴를 32-33 초대로 돌며 줄곧 선두를 지켰다. 이날 3000m 2 위는 박지우(한국체대)로 4 분 16 초 78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9/0200000000AKR20171019198300007.HTML|제목='장거리 여왕' 김보름, 대표 선발전 3,000m 1위…대회 신기록|성=고미혜|날짜=2017-10-19|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0-22}}</ref> 김보름은 20 일 열린 1500m에서 2 분 3 초 31의 기록으로 노선영(콜핑팀-2 분 2 초 99)에 이어 2 위를 기록했다. 김보름은 7 조 아웃코스에서 박도영(동두천시청)과 레이싱을 펼쳤다. 첫 300m 기록은 다소 느렸다. 김보름은 28 초 17로 주파해 출전 선수 중 10 위에 그쳤다. 그러나 가속이 붙기 시작한 700m 구간부터 스피드를 올려 전체 2 위로 결승선을 끊었다. 김보름은 이미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매스스타트 종목 선발권을 땄고 전날 여자 3000m와 5000m, 팀 추월 종목 출전권도 확보했다. 여자 1500m 종목까지 출전권을 따낸 김보름은 ISU 월드컵에서 각 종목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 획듣에 도전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0/0200000000AKR20171020142600007.HTML|제목=빙속 김보름, 1,500m 출전권도 확보…노선영에 이어 2위|성=김경윤|날짜=2017-10-20|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0-22}}</ref>
         11월 11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팀추월에 출전한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 노선영(콜핑팀)은 3분2초66으로 5위에 올랐다. 다카기 미호, 다카기 나나, 사토 아야노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은 2분55초77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105384|제목=日 빙속 女추월팀, 평창 앞두고 '무서운 질주'…ISU 월드컵서 '세계新' 우승|날짜=2017-11-11|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에서 김보름은 넘어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2/0200000000AKR20171112002800007.HTML|제목=빙속 이승훈, 월드컵 매스스타트 금메달…대회 2관왕(종합)|성=김경윤|날짜=2017-11-1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노르웨이에서 개최되는 2차대회에 김보름은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보름은 1차대회 1일차 매스스타트 준결승 경기 도중 다른 선수의 스키이트 날에 걸려 넘어 졌으며, 경기 후 허리에 통증을 느껴 1차대회 다른 경기 출전도 포기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xn--q20b51t9le1sh.com/sub_read.html?uid=19371§ion=sc51|제목=[전남방송] 스피드 김보름 선수, 월드컵 2차대회 출전 포기|뉴스=전남방송|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3차대회 여자 3,000m 디비전A(1부리그)에서 김보름은 4분06초4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4위를 차지했다. 3,000m에서는 다카기 미호(일본)가 3분57초09의 일본 신기록으로 우승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2/0200000000AKR20171202034500007.HTML|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3,000m 14위|성=이영호|날짜=2017-12-0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4일 열린 여자부 매스스타트에 나선 김보름은 11위에 그치면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김보름은 경기 초반 후미 그룹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6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끌어올렸지만 먼저 치고 나간 선두 그룹을 다라잡지 못했다. 하위권에서 막판 스퍼트를 노렸지만 이미 선두권과 격차가 너무 벌여져 결국 11위의 성적표를 받았다. 하편, 독일의 백전노장인 45세의 플라우디아 페히슈타인(독일)은 매스스타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49929a51806c4912ad5ee75e37e3b0d5|제목=이승훈ㆍ김보름, 월드컵 매스스타트에서 동반 부진|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1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4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9분00초72의 기록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일치감치 선두그룹을 만들어 질주한 프란테스카 롤로브리지다(이탈리아)가 8분 53초49로 금메달, 중국의 궈단이 8분57초54로 은베달을 목에 걸었다.<ref>{{웹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712110100073520005174&ServiceDate=20171210|제목='컨디션 회복'김보름 월드컵 4차 대회 매스스타트 동메달: 스포츠조선|확인날짜=2017-12-12}}</ref>
         ==== [[2018년 동계 올림픽]] ====
         [[평창올림픽]] [[2018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체 추월|여자 단체 추월]]에서 [[박지우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박지우]], [[노선영]]과 함께 출전해서 준준결승에서 7위로 탈락했다. 그러나 이후 2월 24일의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
  • 김승규
         [[홍명보]] 감독이 계속 지휘봉을 잡은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경우 한 살 위인 [[이범영]], [[하강진]]과 주전 경쟁을 펼쳤다. 결과는 [[하강진]]은 일찌감치 밀려나고 [[이범영]]이 주전경쟁에서 앞서나가서 김승규는 [[이범영]]의 백업 역할로 최종 엔트리에 들 것이 점쳐졌다. 그러나 [[정성룡]]이 와일드 카드로 뽑혀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주전이었던 [[이범영]]은 백업으로, 백업이었던 김승규는 [[런던 올림픽]]행 티켓 자체가 날아가 버렸다.
         9월 30일 현재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기록 중인 540분 무실점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기록인데, 비록 아시아로 한정만이지만 국제대회에서 540분 무실점은 최초이며 결승전도 무실점으로 마칠 경우 7경기 630분 무실점이라는 전무후무한 한국 기록을 세우게 된다. 올림픽에 준하는 대회인 아시안 게임이 A매치로 인정되질 않아 다소 아쉬운 부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4강 UAE전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승부차기]]에 대비하여 연장후반 종료 직전에 [[이범영]]과 교체했던 적도 있었다. 이범영도 2년뒤 올림픽 [[영국]]전에서 스터리지의 승부차기를 막아낼 정도로 페널티킥을 잘 막는 선수이기 때문에 게임 전 연습할때 [[이범영]]의 페널티킥 선방률이 김승규에 비해서 매우 좋았다거나 그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진짜 원인은 김승규의 손목 부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 한국은 이 교체 후 추가시간에 바로 골을 허용하여 승부차기에 들어가기도 전에 패배해 버렸다. 그 후 김승규는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귀국하자마자 손목뼈 실금 진단을 받고 수술 후 8개월 넘게 경기에 뛰지 못했다. [[http://sports.donga.com/3/01/20140526/63781797/3|#]]
          * [[이범영]],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과는 대한민국 골키퍼 계보를 이을 신흥 라이벌이다. 흡사 [[김병지]], [[이운재]], 김영광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구도이다. 연령별 대표를 거치면서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해 왔으며, 올림픽 대표로서 런던 올림픽을 치르며 이범영이 치고 나가는가 하면, 아시안게임에선 김승규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엎지락 뒤치락하며 경쟁 중이다. 그 중 A대표팀에서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김승규이다.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백업으로 뛰는 [[이범영]]의 한 살 터울 동생인 이범수 또한 김승규와 동갑이라서 연령별 대표팀에서 수차례 만나 경쟁을 벌여왔던 탓에 김승규는 이범영, 이범수 형제의 라이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게 [[2015년 AFC 아시안컵]] 결승전에 진출하고 무실점으로 활약을 인정받으면서 눈도장을 새롭게 찍은 김진현 때문에 [[김승규]]와 [[이범영]]이 주전에서 약간 밀려난 감이 있다. 하지만 [[이운재]]가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절, 다른 골키퍼들도 실력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김진현, 이범영과의 경쟁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전북 현대 모터스]]의 [[권순태]]와 [[포항 스틸러스]]의 [[신화용]]도 [[K리그 클래식]]에서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므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시험을 해 본다면 더욱 더 치열한 경쟁이 될 듯 하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오재석]]과 싸이에 이런 글을 남겨 야구팬들의 분노를 산 적이 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16&article_id=0000364241|당시 야구대표팀은 현지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피자, 햄버거를 밥 대신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정작 축구팀은 [[쇠고기]]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776485|공수해서 구워먹고도]] 허무하게 패했다.[* 축구대표팀은 스폰서 금액이 상당한 숫자인 만큼 (다들 세금 먹는 하마라 그러는데 핸드볼 지원금보다 적은 돈을 받는게 [[대한축구협회]]다. 대부분 스폰서 금액으로 충당하는 것.) 지원 자체가 다른 종목 국가대표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논란이 점점 커지자 김승규는 '야구팀이 아니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겨냥한 글이었다' 라는 변명을 내놓았다가 야구팬들에게 욕만 한 바가지 먹고(...) 글을 삭제하게 된다. [[축빠|일부 축구팬들]]은 야구대표팀이 대다수의 경기를 프로선수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나 사회인들로 급조된 팀과 하기 때문에 다른 종목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쉽게 금메달을 딴 것을 이유로 들어 저런 발언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근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처럼 엘리트 체육선수들이 출전하는 국가는 몇 없다. [[올림픽]]정신이 뭔지, 아시안게임의 정신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나 아마추어, [[일본의 사회인야구|일본 사회인야구선수들]]과 붙는 것을 욕하는 것이지.],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던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카누국가대표로 참가했던 김대진도 다음과 같은 말로 김승규와 오재석을 비판했다.
  • 김승용
         [[2007년]] [[광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한 뒤엔<ref>[http://www.sportalkorea.com/news_01/view.php?gisa_uniq=20061122101920 올림픽 대표 김승용 등 K리그 20명 , 상무 입대]</ref>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였다.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올림픽]] 직전인 [[2008년]] [[7월 27일]]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코트디부아르]]와의 친선경기에서 갈비뼈 부상을 당하여 대회 출전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ref>[http://isplus.joins.com/sports/generals/200807/28/200807281601206531010500000105110001051101.html 김승용, 갈비뼈 부상으로 베이징행 무산 위기]</ref> 하지만 집중 치료로 [[8월 1일]] 부상에서 회복하여 올림픽에 참가하였지만,<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8020207 부상회복 김승용 올림픽 출전 ]</ref> 몸이 완전한 상태로 회복되지 못하여 예선 3차전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온두라스]]전에 전반 37분을 뛰는 데 그쳤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감바 오사카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부리람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의 축구 선수]][[분류:칭다오 황하이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A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타이 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중국 갑급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중국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
  • 김예진 (쇼트트랙 선수)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3000m 계주]]}}
         {{올림픽 쇼트트랙 3000m 금메달리스트}}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 김재엽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1984년 하계 올림픽|1984 로스앤젤레스]]|-60 kg}}
         {{금메달|[[1988년 하계 올림픽|1988 서울]]|-60 kg}}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84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결승전까지 올랐으나 [[일본]]의 호소가와 신지에게 누르기 한판패를 당하면서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1986년에 열린 [[1986년 아시안 게임|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 [[서독]] [[에센]]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는 1984년 올림픽에서 패배를 안겨준 호소가와 신지와 또다시 결승전에서 맞붙어 통쾌한 허벅다리걸기로 한판승을 거두면서 패배를 설욕하였다.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에서는 전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한 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여유있게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경기를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1987년 세계 선수권자 김재엽과 198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호소가와 신지가 결승전에서 맞붙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으나 호소가와가 준결승에서 미국의 무명 선수 케빈 아사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손쉽게 판가름났다.
         서울 올림픽 직후 은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1992년에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유도 대표팀 코치로 대회에 참가하였다. 현재 [[동서울대학]] 경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올림픽 유도 남자 엑스트라 라이트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김정환 (펜싱 선수)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사브르 단체전]]}}
         {{동메달|[[2016년 하계 올림픽|2016 리우데자네이루]]|[[2016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사브르 개인전]]}}
         '''김정환'''(金政煥, [[1983년]] [[9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사브르 (펜싱)|사브르]]이다.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구본길]], [[오은석]], [[원우영]]과 함께 단체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이는 대한민국 펜싱 역사상 처음으로 나온 단체전 금메달이다. 4년 후인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개인전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2016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올림픽 펜싱 남자 단체 사브르 금메달리스트}}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체육훈장 청룡장 수훈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신동초등학교 동문]][[분류:신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김종현 (사격 선수)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50m 소총 3자세}}
         {{은메달|[[2016년 하계 올림픽|2016 리우]]|50m 소총 복사}}
         '''김종현'''(金鐘鉉, [[1985년]] [[7월 21일]] ~ )은 [[KT]] 소속의 소총 사격선수이다. [[2010년 아시안 게임|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2014년 아시안 게임|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은메달 1개를 획득하였다. 주종목인 소총 3자세에서 [[한진섭]]에 밀려 크게 빛을 보지 못하였으나 [[2012년 하계 올림픽|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 올림픽 소총 3자세 결선에서 마지막 발을 남겨두고 [[미국]]의 [[매튜 에몬스]]에 밀려 동메달이 거의 확정적이었으나 마지막 한 발에서 김종현이 뛰어난 집중력으로 10.3점의 높은 점수를 쏜 반면 [[매튜 에몬스]]는 7점으로 크게 실수하는 바람에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2016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사격 선수]][[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사격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사격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김차연 (핸드볼선수)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2004년 하계 올림픽|2004 아테네]]|[[핸드볼|여자 핸드볼]]}}
         {{동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핸드볼|여자 핸드볼]]}}
         * [[2004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12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4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동메달
         {{2004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4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용호중학교 (부산) 동문]][[분류:용호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철민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2014년 동계 올림픽|2014 소치]]|팀 추월}}
         2013-14 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4년 동계 올림픽]] 5000m와 팀추월 출전권을 얻었다. 올림픽에서는 5000m에서 24위를 했으며, 팀 추월에 [[이승훈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이승훈]], [[주형준]]과 짝을 지어 출전하여 은메달을 땄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hi2014&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771441 빙속 남자 팀추월, 네덜란드에 져 은메달] - 연합뉴스</ref>
         아버지는 스케이트화를 주문 생산하는 ‘쎈스포츠’의 대표라고 하며, 아버지가 만든 스케이트화를 신고 올림픽에 출전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hi2014&ctg=news&mod=read&office_id=025&article_id=0002319192 아버지의 스케이트로 … 김철민 은메달] - 중앙일보</ref>
         {{2014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2014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4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2013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참가 선수]]
  • 김청태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2000년 하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단체전]]}}
         서울체육고등학교 졸업.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자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5위. 2005년 제8회 한국실업양궁회장기 실내양궁대회 남자 개인전 우승(2연패). 2006년 제24회 대통령기 전국남녀양궁대회 리커브 남자 일반부 개인전 우승.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양궁 선수]][[분류:양궁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양궁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양궁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양궁 참가 선수]][[분류:체육훈장 맹호장 수훈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관악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한수 (야구인)
         |올림픽 =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0년 시드니]]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야구]]}}
         1998~1999, 2001~2002 시즌에는 3할 이상의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을 쳐 내며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특히 수비력을 인정받으며 2004 시즌까지 골든 글러브를 무려 6번이나 수상하였다. 특히 그 중 2001 ~ 2004 시즌 4회 연속 수상 기록은 [[한대화]]의 6회에 이어 해당 포지션 2위 기록이었다. [[2002년]] 시즌에는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정규 시즌 1위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 방’이 4강권 이끈다"]</ref>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아시안 게임|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된 그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각각 동메달과 금메달을 따는 데에 공헌하기도 했다.<ref name="kbsn" /><ref name="park1" />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한국 프로 야구 1500안타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신월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둠 패트롤
          본명 리타 파(Rita Farr).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할리우드]] 여배우로서 활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영화 촬영하다가 이상한 화산 가스에 노출되었고, 그 영향으로 자신의 몸 크기를 100피트까지 늘리거나 몇 인치까지 줄일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나중에 능력이 발전하여 신체 일부분의 크기만을 조절하기도 한다. 신체를 [[거대화]]화는 이미지도 있다.
  • 박동희 (야구인)
         |올림픽 = 1988 서울 (시범종목)
         시속 150km가 넘는 빠른 강속구가 주무기였던 그는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시절,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서울 올림픽]]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선출되어 [[올림픽]]에서 [[일본]]의 [[투수]] [[노모 히데오]]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는 등 아마추어 선수 시절부터 '[[선동열]]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부산고등학교|부산고]] 3학년 때 1차 3순위 지명을 받았고, [[고려대학교|고려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 1억 5천 2백만원의 계약금을 받으며 연고 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당시 '''수퍼 베이비'''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 [[1988년 하계 올림픽|올림픽]] 국가대표 ([[1988년|1988]])
         {{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68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한국시리즈 MVP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
  • 박세직
         1985년 2월 노신영 내각이 출범하자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을 지냈다. 1986년 제4대 체육부 장관으로 취임하고, '''제24회 [[1988 서울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후부터, 민주정의당 내에서는 대권주자로 발돋움 할 뻔 했으나 조직을 모으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3당 합당]] 이후에는 더이상 정치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 박우상
         이후 [[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사상 첫 은메달을 획득했고, 사상 첫 [[올림픽]] 출전 대회인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그리고 A조 2차전인 [[스위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스위스]]와의 서울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올림픽 내내 서울에 출전했다.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아이스하키 선수]][[분류:안양 한라 아이스하키단 선수]][[분류:대명 상무 아이스하키단 선수]][[분류: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박우상 (아이스하키선수)
         이후 [[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사상 첫 은메달을 획득했고, 사상 첫 [[올림픽]] 출전 대회인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그리고 A조 2차전인 [[스위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올림픽 내내 경기에 출전했다.
         [[분류: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성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박재홍 (야구인)
         |올림픽 = [[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야구]]}}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타점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300홈런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30-30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20-20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타점상 수상자]][[분류:KBO 홈런상 수상자]][[분류:KBO 신인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광주서림초등학교 동문]][[분류:광주제일고등학교 동문]]
  • 박종호 (1973년)
         |올림픽 = 2000 시드니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단체전]]}}
         [[1998년]] 시즌 중 [[최창호 (야구인)|최창호]]를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된 그는 이듬해 [[1999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2번 타자 역할로 [[전준호 (1969년)|전준호]]와 더불어 테이블 세터로 활동했다. [[2000년]] 시즌 타율 0.340으로 타격왕에 올랐는데, 이는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양손 타자([[스위치 히터]]) 타격왕이다. 그 뒤 [[2001년]]에는 2할 4푼대로 저조하였고, [[2002년]]에는 2할 6푼대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2003년|2003]]년 시즌에 2할 9푼대의 타율을 기록하여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3번째 우승에 기여하였고, 이후 [[FA|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자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하였다. 이때 [[현대 유니콘스]]에서는 출신 [[투수]] [[노병오]]를 보상 선수로 지명하였다. 현대에 있던 중 [[200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동메달 멤버로 활동했다.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안타 클럽]][[분류:KBO 타율상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밀양 박씨]][[분류:서울구암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
  • 박태환
         | 올림픽 = [[2008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2008]]<br />[[2008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자유형|2008]], [[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2012]]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자유형 400m]]}}
         {{은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자유형|자유형 200m]]}}
         {{은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자유형 400m]]}}
         {{은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자유형|자유형 200m]]}}
         '''박태환'''(朴泰桓, [[1989년]] [[9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이다. [[대한민국]]의 수영 역사상 최초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의 [[금메달]]과 자유형 200m에서의 [[은메달]]을 획득함으로써 한국인 최초로 수영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2012년 하계 올림픽]] 자유형 400미터서 실격 판정 번복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수영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자유형 200미터에서도 값진 은메달을 차지하여 [[한국]] 수영 최초로 2회 연속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국내에서 성적은 [[전국체육대회]]에서 2005년 [[울산광역시|울산]], 2007년 [[광주광역시|광주]], 2008년 [[전라남도|전남]] 대회까지 3번의 대회 MVP를 수상하였으며 그동안 2005년 전국체전 4관왕을 비롯 2006년 ~ 2008년까지 3년 연속 5관왕에 올랐다. 또한 2004년《제28회 [[아테네 올림픽]]》수영 국가대표, 2006년《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수영 국가대표, 2008년《제29회 [[베이징 올림픽]]》수영 국가대표, 2010년《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국가대표, 2012년《제30회 [[런던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 2014년《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수영 국가대표, 2016년《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수영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는 5살 때 의사의 추천으로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수영을 처음 시작했다. 그는 처음 부터 수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어릴 때 물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가자 수영이 좋아졌고 그 이후로 수영을 열심히 했다.<ref>[http://www.ytnstar.co.kr/_ln/0106_200808111033016242 올림픽 금메달 박태환의 숨은 감동 스토리] {{웨이백|url=http://www.ytnstar.co.kr/_ln/0106_200808111033016242# |date=20080921035034 }}, YTN STAR, 2008년 8월 11일.</ref> 3학년 때인 2004년 대한민국 선수단 중 최연소 국가 대표로 주목을 받으며 《[[2004년 하계 올림픽|아테네 올림픽]]》에 참가, [[자유형 (수영)|자유형]] 400m 예선에서 긴장으로 인한 부정출발로 실격당했으나 2005년 한 해 동안 무려 여섯 개의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우며 '신동' 소리를 들었다.
         결승전에서 그는 350m 지점까지 4위를 달리다가 마지막 50m에서 역영을 펼쳐, 3분 44초 30으로 2·3위를 기록한 [[튀니지]]의 오우사마 멜로리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랜트 해켓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기록은 자신이 갖고 있던 [[대한민국]] 기록이자 [[아시아]] 기록을 1초 42 앞당긴 것이다. 2007년 8월 21일에는 ‘프레 올림픽’ 대회인 2007 일본 국제 수영대회 400m 자유형에서 3분 44초 7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편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첫 금메달에 은메달까지 추가하며 한국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박태환이 중국으로 출국하기 전부터 광고모델 요청을 20건 넘게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2858501|제목=KB국민은행‥여름소년과 겨울소녀 "큰 물에서 좀 놀다 오겠습니다"|저자=조문형 (광고칼럼니스트)
         2008년 8월 10일에는 베이징의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수영 400m 자유형에서 3분 41초 86의 기록으로 그랜트 해켓, 장린 등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어 8월 12일에 벌어진 수영 200m 자유형 종목에서 1분 44초 85의 기록으로 [[마이클 펠프스]]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베이징 올림픽 금,은메달 수상 이후 심적 부담감 등의 이유로 심각한 부진에 빠진 박태환은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자유형 200m, 400m, 1500m 전종목 예선탈락이라는 부진에 빠지게 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3123|제목=고개 숙인 박태환, 1500m도 예선 탈락|저자=이택승 기자|날짜=2009-08-01|출판사=뷰스앤뉴스|확인날짜=2010-08-20}}</ref> 전신수영복에 대해 적응을 못하던 그는 2010년 1월 1일 부터 전신수영복 금지 규정이 생기면서 다시 한 번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2010년 4월부터 80일간 호주 전지훈련에 매달려 1500m를 집중 지구력 위주로 훈련을 하였다.
         2012년 하계 런던올림픽에서 자유형 예선에서 오심으로 인해 실격이 되어 결승에 올라가지 못할뻔 하였으나 실격취소를 판정받아 안좋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자유형200m와400m에서 은메달을 수상하였다.<ref>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49916{{깨진 링크|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49916 }}</ref>
         2013년 3월 28일 부산시청 수영부에 입단하여 현재 부산광역시청이 소속의 선수로 활동 중이고 2014년부터 한국화이자제약의 진통제 광고 모델을 비롯 [[삼성전자]]가 새롭게 선보인 리얼타임 패션 광고에 출연하여 박태환이 역대 메달리스트를 이끄는 모습으로 '갤럭시 응원단'의 응원 여정을 보여준 론칭 광고를 보여주고 있다.<ref>[http://news1.kr/articles/1515826 박태환, 동계 올림픽을 응원합니다] 뉴스1. 2014년 1월 28일</ref>
         2016년 리우올림픽 100m 예선포기로 귀국하였다.
         |[[2004년 하계 올림픽|제28회 하계 올림픽]]
         |[[2008년 하계 올림픽|제29회 하계 올림픽]]
         |[[2008년 하계 올림픽|제29회 하계 올림픽]] (예선)
         |[[2008년 하계 올림픽|제29회 하계 올림픽]]
         | [[2012년 하계 올림픽|제30회 하계 올림픽]]
  • 박태환 (수영선수)
         | 올림픽 = [[파일:Gold medal.svg|16px]] [[2008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2008]]<br />[[파일:Silver medal.svg|16px]] [[2008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자유형|2008]], [[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2012]]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자유형 400m]]}}
         {{은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자유형|자유형 200m]]}}
         {{은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자유형 400m]]}}
         {{은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자유형|자유형 200m]]}}
         '''박태환'''(朴泰桓, [[1989년]] [[9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이다. [[대한민국]]의 수영 역사상 최초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의 [[금메달]]과 자유형 200m에서의 [[은메달]]을 획득함으로써 한국인 최초로 수영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2012년 하계 올림픽]] 자유형 400미터서 실격 판정 번복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수영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자유형 200미터에서도 값진 은메달을 차지하여 [[한국]] 수영 최초로 2회 연속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국내에서 성적은 [[전국체육대회]]에서 2005년 [[울산]], 2007년 [[광주]], 2008년 [[전남]] 대회까지 3번의 대회 MVP를 수상하였으며 그동안 2005년 전국체전 4관왕을 비롯 2006년 ~ 2008년까지 3년 연속 5관왕에 올랐다. 또한 2004년《제28회 [[아테네 올림픽]]》수영 국가대표, 2006년《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수영 국가대표, 2008년《제29회 [[베이징 올림픽]]》수영 국가대표, 2010년《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국가대표, 2012년《제30회 [[런던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 2014년《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수영 국가대표, 2016년《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수영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는 5살 때 의사의 추천으로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수영을 처음 시작했다. 그는 처음 부터 수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어릴 때 물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가자 수영이 좋아졌고 그 이후로 수영을 열심히 했다.<ref>[http://www.ytnstar.co.kr/_ln/0106_200808111033016242 올림픽 금메달 박태환의 숨은 감동 스토리] {{웨이백|url=http://www.ytnstar.co.kr/_ln/0106_200808111033016242# |date=20080921035034 }}, YTN STAR, 2008년 8월 11일.</ref> [[대청중학교 (서울)|대청중학교]] 3학년 때인 2004년 대한민국 선수단 중 최연소 국가 대표로 주목을 받으며 《[[2004년 하계 올림픽|아테네 올림픽]]》에 참가, [[자유형 (수영)|자유형]] 400m 예선에서 긴장으로 인한 부정출발로 실격당했으나 2005년 한 해 동안 무려 여섯 개의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우며 '신동' 소리를 들었다.
         결승전에서 그는 350m 지점까지 4위를 달리다가 마지막 50m에서 역영을 펼쳐, 3분 44초 30으로 2·3위를 기록한 [[튀니지]]의 오우사마 멜로리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랜트 해켓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기록은 자신이 갖고 있던 [[대한민국]] 기록이자 [[아시아]] 기록을 1초 42 앞당긴 것이다. 2007년 8월 21일에는 ‘프레 올림픽’ 대회인 2007 일본 국제 수영대회 400m 자유형에서 3분 44초 7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편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첫 금메달에 은메달까지 추가하며 한국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박태환이 중국으로 출국하기 전부터 광고모델 요청을 20건 넘게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2858501|제목=KB국민은행‥여름소년과 겨울소녀 "큰 물에서 좀 놀다 오겠습니다"|저자=조문형 (광고칼럼니스트)
         2008년 8월 10일에는 베이징의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수영 400m 자유형에서 3분 41초 86의 기록으로 그랜트 해켓, 장린 등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어 8월 12일에 벌어진 수영 200m 자유형 종목에서 1분 44초 85의 기록으로 [[마이클 펠프스]]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베이징 올림픽 금,은메달 수상 이후 심적 부담감 등의 이유로 심각한 부진에 빠진 박태환은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자유형 200m, 400m, 1500m 전종목 예선탈락이라는 부진에 빠지게 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3123|제목=고개 숙인 박태환, 1500m도 예선 탈락|저자=이택승 기자|날짜=2009-08-01|출판사=뷰스앤뉴스|확인날짜=2010-08-20}}</ref> 전신수영복에 대해 적응을 못하던 그는 2010년 1월 1일 부터 전신수영복 금지 규정이 생기면서 다시 한 번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2010년 4월부터 80일간 호주 전지훈련에 매달려 1500m를 집중 지구력 위주로 훈련을 하였다.
         2012년 하계 런던올림픽에서 자유형 예선에서 오심으로 인해 실격이 되어 결승에 올라가지 못할뻔 하였으나 실격취소를 판정받아 안좋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자유형200m와400m에서 은메달을 수상하였다.<ref>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49916{{깨진 링크|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49916 }}</ref>
         2013년 3월 28일 인천시청 수영부에 입단하여 현재 인천광역시청이 소속의 선수로 활동 중이고 2014년부터 한국화이자제약의 진통제 광고 모델을 비롯 [[삼성전자]]가 새롭게 선보인 리얼타임 패션 광고에 출연하여 박태환이 역대 메달리스트를 이끄는 모습으로 '갤럭시 응원단'의 응원 여정을 보여준 론칭 광고를 보여주고 있다.<ref>[http://news1.kr/articles/1515826 박태환, 동계 올림픽을 응원합니다] 뉴스1. 2014년 1월 28일</ref>
         2016년 리우올림픽 100m 예선포기로 귀국하였다.
         |[[2004년 하계 올림픽|제28회 하계 올림픽]]
         |[[2008년 하계 올림픽|제29회 하계 올림픽]]
         |[[2008년 하계 올림픽|제29회 하계 올림픽]] (예선)
         |[[2008년 하계 올림픽|제29회 하계 올림픽]]
         | [[2012년 하계 올림픽|제30회 하계 올림픽]]
  • 방대두
         | 사진설명 = [[2012년 하계 올림픽]]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방대두(왼쪽)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1984년 하계 올림픽|1984 로스엔젤레스]]|그레코로만형 -52kg}}
         '''방대두'''(方大斗, [[1954년]] [[10월 4일]] ~ )는 [[대한민국]]의 은퇴한 [[레슬링]] 선수로 [[1984년 하계 올림픽]]에서 그레코로만형 -52kg급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레슬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197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74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체육훈장 거상장 수훈자]][[분류:체육훈장 청룡장 수훈자]][[분류:경산시 출신 인물]][[분류:한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봉중근
         * [[200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올림픽 = [[2008년 하계 올림픽|2008년]] 베이징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단체전]]}}
         [[2008년]]에는 좋은 성적으로 팀을 이끌어 갔으며, 그 해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였다. 시즌 중 개최된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도 기여했다.
         === [[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 올림픽]] ===
         당시 야구 국가대표팀은 [[2009년]] [[3월 7일]] 1번째 [[일본]]전 선발 [[투수]]로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 [[일본]]전에만 2승을 거둔 [[일본]] 킬러 [[김광현 (야구 선수)|김광현]]을 내세웠지만 [[일본]] 국가대표팀의 철저한 분석과 공략으로 [[김광현 (야구 선수)|김광현]]의 투구 패턴이 읽히면서 2-14로 콜드패를 당했다. 그래서 [[김인식 (1947년)|김인식]] 감독은 2번째 맞대결에서는 [[김광현 (야구 선수)|김광현]] 대신 볼 끝이 좋고 빠른 직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그를 선발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 서울에서 [[일본]]에 1-0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후 2라운드 3번째 [[일본]]전에도 그를 선발로 내세워 4-1로 승리를 거두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343196.html 철벽 '황금계투' 일본 잠재우다] 《한겨레》, 2009년 3월 10일 작성</ref> 특히 [[일본]]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고 시절부터 자신의 우상으로 여겼던 [[스즈키 이치로|이치로]]를 완벽하게 봉쇄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견제 모션을 취하자 이치로가 움찔하며 1루로 귀루하는 모습은 두고 두고 야구팬들에게 회자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를 [[중화인민공화국|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와 이름이 같다고 하여 "봉의사"라고 빗대었고 그의 소속 팀 [[LG 트윈스]]는 티셔츠를 한정 판매하여 반나절 만에 매진되자 [[일본]]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143&article_id=0001981974 한일 네티즌, 스포츠로 감정 격화] - 쿠키뉴스</ref> 또 그의 이니셜인 J.K.를 "Japan Killer"로 빗대어 "재팬 킬러 봉"(Japan Killer Bong)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본]]과의 5번째 대결 겸 결승전에 선발 등판해 4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연장 10회에 [[임창용]]이 [[스즈키 이치로|이치로]]에게 결승타를 허용해 대표팀은 3-5로 패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WBC 해트트릭에 실패했지만, 이 대회를 통하여 그가 확실한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신시내티 레즈 선수]][[분류: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하음 봉씨]][[분류:서울수유초등학교 동문]][[분류:신일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서이라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1000m]]}}
         '''서이라'''([[1992년]] [[10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서이라는 2011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면서 대한민국 쇼트트랙 유망주로 떠오른다. 하지만 같은 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6위에 머무르며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다. 그러나 부상을 입은 [[이정수 (쇼트트랙 선수)|이정수]]를 대신해 다시 국가대표의 기회를 잡게 되지만, 좋은 성적을 보여주진 못했다. 당시 서이라는 [[쇼트트랙 월드컵]] 서울를 통틀어 1,000m에서 동메달 하나를 목에 걸고 시즌을 마무리한다. 그것은 슬럼프의 시작이었다. 이후 서이라는 3년 연속으로 태극 마크를 달지 못한다. 그가 다시 살아난 건 2014-15시즌에 이르러서다. 국가대표로 복귀한 그는 시즌 쇼트트랙 월드컵 500m, 1,000m에서 금메달 2개를 목에 걸며 화려하게 복귀한다. 특히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취약 종목으로 꼽히는 500m에서 메달을 획득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슬럼프를 극복한 뒤로는 상승 가도를 달렸다. [[2017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1,000m 금메달, 3,000m 슈퍼 파이널 은메달, 남자 5,000m 계주·남자 1,500m·남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 모두 5개의 메달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 대회의 남자부 종합 우승도 당연히 서이라의 몫이였으며, 이로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치지 않고 2018년 동계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시니어 데뷔 7년 만에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결국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에 이른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07172&ref=A |제목=‘대타’에서 ‘스타’로…서이라, ‘강철 멘탈’로 동메달 |뉴스=KBS |저자=황경주 |날짜=2018년 2월 17일}}</ref><ref>{{뉴스 인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500&g_serial=1035425&rrf=nv |제목=평창. 생애 첫 올림픽 서이라…男 쇼트트랙 부활 이끈다 |뉴스=조이뉴스24 |저자=김지수 |날짜=2017년 7월 14일}}</ref>
         한편 그의 한국체육대학교 입학 동기이자, 훈련 도중 미끄러져 어깨와 팔꿈치가 부러지고, 치료 과정에서 악성 종양인 [[골육종]] 진단을 받은 뒤 투병중에 세상을 떠난 [[노진규]]와의 인연이 주목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친구이자 대학 동기인 노진규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날 서이라는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종합 99점을 따내 남자부 정상에 올랐다. 곧이어 2017년 3월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2017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6년 전 노진규가 차지했던 세계선수권 남자 개인종합 우승을 그가 이어받은 것이다. 그는 자국에서 열리는 2018년 동계 올림픽에 앞서 친구 노진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86312&code=12160000&cp=nv |제목=별이 된 ‘어린왕자’ 노진규 위하여… 평창, 서이라가 달린다. |뉴스=국민일보 |저자=김태현 |날짜=2018년 1월 17일}}</ref>
         그런데 2018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이후 중국과 대한민국 네티즌들로 부터 악플 공격을 받는다. 중국 선수인 [[한톈위]]의 반칙과 실격으로 구제를 받아 준준결승에 올기 때문이였다. 이에 화가 난 중국 네티즌들이 9만 개가 넘는 댓글을 남겼다. 이에 서이라는 "니 하오 워 아이 니(안녕하세요? 저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라는 댓글로 답했다.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
         [[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
  • 서호진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6년 동계 올림픽|2006 토리노]]|5000m 계주}}
         대구교대부설초등학교 재학 중에 쇼트트랙을 시작했으며, 이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ref name=et>[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543&yy=2011 토리노 동계올림픽 金 쇼트트랙 서호진 은퇴], 매일신문, 2011년 4월 21일 작성.</ref>
         서호진이 참가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2006년 동계 올림픽|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안현수]]의 역주에 힘입어 우승하였고 이 계주에 같이 참여해 금메달을 획득하게된 서호진은 군면제 혜택을 받았다.
         {{올림픽 쇼트트랙 5000m 금메달리스트}}
         {{2006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신목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손갑도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1984년 하계 올림픽|1984 로스엔젤레스]]|48 kg}}
         1973년 중학교 2학년 때에 형이던 손갑식의 권유를 계기로 레슬링을 시작하게 되었고 1978년 국가대표 선수에 발탁되어 1979년 [[몽골]]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이후 1981년 유고슬라비아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은메달, 1982년 [[1982년 아시안 게임|인도 뉴델리 아시안 게임]]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1983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슈퍼 월드 챔피언 국제 레슬링 대회에서는 세계 선수권 4연속 우승자인 [[소련]]의 세르게이 코르닐라예프를 결승전에서 누르고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1984년 [[1984년 하계 올림픽|제 23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동메달, 1986년 [[1986년 아시안 게임|서울 아시안 게임]] 동메달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입상하였다.
         1988년 은퇴와 동시에 제24회 서울 올림픽 레슬링 국가대표 트레이너를 맡은 바 있다. 1981년 10월 [[대한주택공사]](現:[[한국토지주택공사]]) 2급 소장으로 재직 후 2010년 2월 퇴사하였다.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주 손씨]][[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레슬링 선수]][[분류: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손민한
         |올림픽 = [[1996년 하계 올림픽 야구|1996년]],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0년]]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단체전]]}}
         '''손민한'''(孫敏漢<ref>{{뉴스 인용|제목=한국,日.대만과 자존심 대결-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17일|url=http://news.joins.com/article/3127907|출판사=중앙일보|저자=이태일|쪽=|날짜=1995-09-13|확인날짜=2017-01-05}}</ref>, [[1975년]] [[1월 2일]] ~ )은 전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투수]]이자, 현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수석/투수코치이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선수로도 활약하여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해 메달을 획득했다.
         입단 초기에는 같은 해에 입단한 [[문동환 (야구인)|문동환]]과 함께 미래의 에이스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입단 첫 해 개막전에 등판하여 끝내기 폭투를 범해 데뷔 전에서 패전 [[투수]]가 됐고 이후 3년 간은 부상으로 이렇다 할 활약은 하지 못하고 4년째인 [[2000년]]에 12승을 올려 간신히 기대에 부응했다. [[2000년 하계 올림픽|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으로 발탁되어 팀이 동메달을 획득해 병역 혜택을 받았다.
         * 1996년 : [[하계 올림픽]] 대표
         * 2000년 : [[하계 올림픽]] 대표
         {{1996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승리상 수상자]][[분류:KBO 평균자책점상 수상자]][[분류:KBO 승률상 수상자]][[분류:KBO MVP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밀양 손씨]][[분류:대연초등학교 동문]][[분류:대천중학교 (부산) 동문]][[분류:부산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손태진(태권도선수)
         | 올림픽 =
         {{메달 경기| [[올림픽]]}}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급|-68kg]]}}
         [[2008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급에서 [[2005년]] [[태권도]] 세계선수권 1위인 [[미국]]의 마크 로페즈를 3라운드 종료 직전 오른발 돌려차기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더욱이 '한국 [[태권도]]의 천적'이며 [[미국]] [[태권도]]에서 명성이 있는 로페스 가문을 무너 뜨려 화제를 모았다. 이로써 [[대한민국]]에게 10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손태진은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태권도]] 선수들 중 최연소였다.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태권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태권도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 참가 선수]][[분류:경산시 출신 인물]][[분류:경산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체육중학교 동문]][[분류:경북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밀양 손씨]][[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신승찬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16년 하계 올림픽|2016 리우데자네이루]]|여자 복식}}
         '''신승찬'''(申昇瓚, [[1994년]] [[12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복식을 주종목으로 하는 [[배드민턴]] 선수이다. [[정경은]] 선수가 그의 복식 파트너이며 2016년 8월 여자복식 세계랭킹 9위이다. [[2016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정경은]]과 함께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16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가평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드민턴 선수]][[분류:올림픽 배드민턴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배드민턴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배드민턴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실업팀
         지자체 실업팀(운동경기부)는 주로 [[전국체전]]과 그에 이은 [[올림픽]]을 목표로 육성되고 있다. 프로화가 활성되지 않은 종목에서는 지자체 팀은 사실상 예비 [[국가대표]]라고 할 수 있다.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 시기에 올림픽의 상업화가 추진되면서, 프로 선수의 출전을 용인하는 흐름이 되었다. 이 때문에 올림픽이라는 세계 무대가 프로 선수에게 전면적으로 개방되면서, 많은 스포츠 단체가 굳이 실업팀 같은 형태로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프로 스포츠로서 활성화된 종목에서는 실업팀이 대부분 고사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 안병근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1984년 하계 올림픽|1984 로스앤젤레스]]|-71kg}}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참가하여 71kg 이하급 결승전에서 전 [[1980년 하계 올림픽|모스크바 올림픽]] 챔피언 [[이탈리아]]의 [[에치오 감바]]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에도 [[1985년]] 세계 선수권 대회,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같은 무게급 타이틀을 보유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하였지만, 아깝게 탈락하고 말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코치로서 참가하였고<ref>{{뉴스 인용|제목= 올림픽 출전 선수단 명단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71600209216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7-16&officeId=00020&pageNo=16&printNo=21885&publishType=00020|출판사=동아일보|저자=|쪽=|날짜=1992-07-06|확인날짜=2016-12-15}}</ref>
         {{올림픽 유도 남자 라이트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양정모 (레슬링선수)
         | 사진설명 = [[1976년 하계 올림픽|몬트리올 올림픽]] 직후 [[1976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 환영회 당시의 양정모(1976년)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1976년 하계 올림픽|1976 몬트리올]]|자유형 -62kg}}
         '''양정모'''(梁正模, [[1953년]] [[2월 28일]] ~ )는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레슬링]] 선수이다.
         [[1976년 하계 올림픽|1976년 제 21회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레슬링 경기 자유형 62kg급에서 우승해 대한민국이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 경기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ref name=db-ol1976-WRE>[http://www.databaseolympics.com/games/gamessport.htm?g=19&sp=WRE "1976년 하계 올림픽 - 몬트리올, 캐나다 - 레슬링"] {{웨이백|url=http://www.databaseolympics.com/games/gamessport.htm?g=19&sp=WRE |date=20080917043704 }} ''databaseOlympics.com''. [[2008년]] [[4월 7일]]에 읽어봄.</ref>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행사 때 대회기가운반하여 [[올림픽기]]를 들고 관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적이 있으나, 현재 [[한국조폐공사]] 레슬링부 감독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올림픽 레슬링 남자 자유형 페더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레슬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197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197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197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7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74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1978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체육훈장 청룡장 수훈자]][[분류:체육훈장 백마장 수훈자]][[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원 양씨 (梁)]][[분류:남일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덕원중학교 (부산) 동문]][[분류:건국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여홍철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1996년 하계 올림픽|1996 애틀랜타]]|도마}}
         [[1996년 하계 올림픽]] [[체조]] 남자 개인 [[기계 체조#.EB.8F.84.EB.A7.88|도마]](뜀틀)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대한민국]] 올림픽 체조 최초의 은메달이다. 이후 그의 뒤를 이어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양학선]]이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체조]]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세계 기계 체조 선수권 대회]]에서도 두 차례 입상하였으며 대한민국 체조 선수로서는 최초로 [[아시안 게임]] 2연패를 달성하였다. [[2000년 하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체조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체조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체조 참가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체조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체조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체조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체조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체조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체조 참가 선수]][[분류:체육훈장 맹호장 수훈자]][[분류:체육훈장 백마장 수훈자]][[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함양 여씨]][[분류:광주학강초등학교 동문]][[분류: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 동문]][[분류:전남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유니버시아드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유니버시아드 은메달리스트]]
  • 원경수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 개막식의 음악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슬로바키아]] 작곡가인 페터 브라이너가 관현악용으로 편곡한 한국 민요 17곡을 서울음반에 취입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경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로 부임하기도 했고, 1994년에는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재차 임명되어 1996년까지 재임했다.
  • 원우영
         | 사진설명 = [[2012년 하계 올림픽]] 당시의 원우영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사브르 단체전]]}}
         '''원우영'''(元禹寧, [[1982년]] [[2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사브르 (펜싱)|사브르]]이다. [[2010년]]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10년 세계 선수권 대회의 남자 사브르 개인 결승전에서 [[독일]]의 [[니콜라스 림바흐]]를 15-9로 크게 이기고 우승하였다. 그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최초의 아시아 남자로 기록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311&article_id=0000038177 원우영, 남자 사브르 세계대회 첫 우승]{{깨진 링크|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311&article_id=0000038177 }} 2010년 11월 7일</ref> 2년 뒤,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남자 사브르 단체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펜싱 단체전 금메달이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 선수권과 올림픽을 모두 우승해본 선수가 되었다.<ref>대한민국의 역대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중, [[2000년 하계 올림픽]]의 [[2000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전|남자 플뢰레 개인전]] 챔피언인 [[김영호 (펜싱 선수)|김영호]]는 세계 선수권 대회 최고 성적이 [[1997년 FIE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1997년]] 개인전 준우승이었고, 런던에서 [[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여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한 [[김지연 (펜싱 선수)|김지연]]의 경우는 올림픽 금메달이 그녀의 첫 우승이다. 원우영의 팀 동료로 출전한 [[구본길]], [[김정환 (펜싱 선수)|김정환]], [[오은석]]도 [[2012년 하계 올림픽]] 이전의 FIE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은 없다.</ref>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SBS]]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게 된다.
         {{올림픽 펜싱 남자 단체 사브르 금메달리스트}}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펜싱 참가 선수]][[분류:체육훈장 청룡장 수훈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원주 원씨]][[분류:서울수색초등학교 동문]][[분류:서연중학교 (서울) 동문]][[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윤태일 (핸드볼 선수)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1988년 하계 올림픽|1988 서울]]|[[198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단체전]]}}
         {{금메달|[[1986년 아시안 게임|1986 서울]]|[[198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단체전]]}}
         '''윤태일'''(尹泰一<ref>{{뉴스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90900329220038&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9-09&officeId=00032&pageNo=20&printNo=13216&publishType=00020|제목=尹泰一|날짜=1998-09-09|출판사=경향신문}}</ref>, [[1964년]] [[11월 19일]] ~ [[경기도]] [[서울특별시|서울시]])은 전 [[대한민국]]의 남자 [[핸드볼]] 선수이자, 현 [[카자흐스탄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골기퍼인 그는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방어율 52%를 달성하며 팀의 은메달에 기여하였지만, 실업팀이 없어 지도자의 길을걷기 시작했다<ref name=coach/>. 현재 그는 [[카자흐스탄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있으며, [[2011년 여자 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참여하였다.<ref>{{웹 인용|url=
         [[2005년]] 3년 계약으로 [[카자흐스탄]]감독에 취임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869367|제목=윤태일씨, 카자흐스탄 핸드볼대표팀 감독 취임|저자=강건택|날짜=2004-12-31|출판사=연합뉴스}}</ref>. 하지만 협회의 압박으로 [[2006년 아시안 게임|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개최 2달전 사표를 냈고, 팀은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287675|제목=88올림픽 핸드볼 스타 윤태일씨 사업가 변신… 카자흐서 여행업|저자=김태현|날짜=2007-08-26|출판사=국민일보}}</ref>. 그후 다시 [[카자흐스탄]]감독을 맡아 [[2010년 아시아 여자 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고향팀 [[대한민국]]을 꺽고 우승을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836796|제목=아시아여자핸드볼 우승한 카자흐 윤태일 감독|저자=이희열|날짜=2010-12-26|출판사=연합뉴스}}</ref>.
         {{198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핸드볼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핸드볼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신남성초등학교 동문]][[분류:영동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카자흐스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인도네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경근 (유도선수)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서울]]|하프라이트급}}
         '''이경근'''(李璟根, [[1962년]] [[11월 7일]] ~ )은 은퇴한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로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3년 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에서는 결승전에서 [[폴란드]]의 [[야누시 파브워프스키]]를 꺾고 금메달 획득에 성공하였다.
         {{올림픽 유도 남자 하프라이트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 이공주 (핸드볼선수)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2004년 하계 올림픽|2004 아테네]]|[[핸드볼|여자 핸드볼]]}}
         * [[2004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4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
         {{2004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4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
  • 이승엽
         |올림픽 =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0년]],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8년]]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단체전]]}}
         {{동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단체전]]}}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11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ref>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79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ref><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0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ref> 그러나 그 해 45대구에 출장해 2할대 타율, 7할 5푼 5리의 OPS를 보였으며,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7대구 동안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이나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0년 시드니 올림픽]]
         *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민타자’,‘라이언 킹’ 등으로 불린다. 일본 진출 이후에 붙여진 애칭은 ‘승짱’({{llang|ja|スンちゃん}}, 한자 및 [[일본어]] 동시 표기: {{lang|ja|スン様}})이다. [[2008년 하계 올림픽]] 때 [[일본]]의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 호치》의 [[2008년]] [[8월 22일]]자 보도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올림픽,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와 같은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많은 병역 미필 선수들의 병역을 면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합법적인 병역 면제 브로커”라는 별명이 추가됐다.<ref>{{뉴스 인용|제목=승엽은 병역 브로커|url=http://www.donga.com/fbin/moeum?n=sports$e_701&a=v&l=0&id=200808270265|출판사=동아일보|저자=김도헌|날짜=2008-08-27}}</ref> 또한, 국제 대회나 중요한 대구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특히 8회에 결정적 역할을 해 '8회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제 2구장인 [[포항야구장]]의 성적도 뛰어나 '포항의 사나이'라고도 불린다.
         *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0년)
         *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8년)<ref>{{뉴스 인용|제목='국민 타자' 이승엽, 퍼펙트 金 약속 지켰다|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32121082221|출판사=마이 데일리|저자=박세운|날짜=2008-08-23|확인날짜=}}</ref>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오릭스 버펄로스 선수]][[분류: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분류: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타점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300홈런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400홈런 클럽]][[분류:한국시리즈 MVP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MVP 수상자]][[분류:KBO 장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출루율상 수상자]][[분류:KBO 득점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타점상 수상자]][[분류:KBO 홈런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광주 이씨]][[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임은주 (1966년)
         * [[2000년 하계 올림픽]] 주심
         * 2007년 [[대한올림픽위원회]] 여성분과위원회 위원
         === [[올림픽]] ===
         ; [[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여자]]
  • 임창용
         |마지막 경기 = [[KBO 리그|KBO]] / [[2018년]] [[10월 16일]] <br /> [[고척스카이돔|고척]] 대 [[넥센 히어로즈|넥센]]전 구원 <br />[[일본 야구 기구|NPB]] / [[2012년]] [[6월 22일]] <br /> [[나가노 올림픽 스타디움|나가노 스타디움]]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전 <br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 [[2013년]] [[9월 27일]] <br /> [[부시 스타디움]] 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세인트루이스]]전
         |올림픽 =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0년]]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야구]]}}
         그는 국가대표로도 많은 활약을 펼쳤는데, [[1998년 아시안 게임|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0년 하계 올림픽|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아시안 게임|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등 세 개의 국제 대회에 출전해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게임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일본 프로 야구 투수]][[분류: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150세이브 클럽]][[분류:KBO 세이브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분류:시카고 컵스 선수]][[분류:광주대성초등학교 동문]][[분류:광주진흥중학교 동문]][[분류:광주진흥고등학교 동문]][[분류:KBO 평균자책점상 수상자]][[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나주 임씨]][[분류: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임효준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1500m]]}}
         {{동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500m]]}}
         {{메달 경기|[[청소년 올림픽]]}}
         {{금메달|[[2012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2012 인스브루크]]|[[2012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 쇼트트랙|500m]]}}
         {{은메달|[[2012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2012 인스브루크]]|[[2012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 쇼트트랙|1000m]]}}
         '''임효준'''([[1996년]] [[5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평창올림픽에서의 대한민국 첫 금메달로서 더욱더 의미가 크다. 임효준은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뛰어난 기술이 장점으로, 전성기 시절 ‘제2의 [[안현수]]’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ref name="대구일보"/>
         임효준은 중학교 1학년 때 오른발 [[정강이뼈]]가 부러졌지만<ref name="스포츠조선"/> 재활 치료 이후 중학교 3학년 때 [[2012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1000m 금메달과 500m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스포츠조선"/> 고등학교 때에는 허리, 발목, 정강이, 손목 등에 부상을 입어 7번의 수술을 겪어야 했다.<ref name="대구일보"/><ref name="스포츠조선"/>
         === [[2018년 동계 올림픽]] ===
         [[2017년]] 4월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통과해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었다.<ref name="대구일보"/> 장거리와 단거리 모두 능한 덕에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 1000, 1500, 5000m 계주 등 전 종목에 출전하게 되었다.<ref name="대구일보"/>
         [[2018년]] [[2월 10일]]에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쇼트트랙 남자 15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무난히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분 10초 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1734.html#csidxc20cd80bba1b97989951bed5ea919c0</ref> 또한 이번 기록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세웠던 2:10.949의 기록도 경신하게 되었다.<ref name="2018olympics-final">{{웹 인용|title=Short Track Speed Skating Results - Men's 1,500m Final A|url=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website=[[2018년 동계 올림픽|2018평창올림픽 공식사이트]]|publisher=[[국제올림픽위원회]]|accessdate=10 February 20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10130015/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archivedate=10 February 2018|language=en|date=10 February 2018}}</ref>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오륜중학교 동문]][[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전희숙
         | 사진설명 = [[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 획득 직후의 전희숙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단체전|플뢰레 단체전]]}}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
  • 정경은(배드민턴선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전체적으로 부진했던 한국 [[배드민턴]]에 유일한 메달을 안겨준 동메달리스트.'''
         배드민턴 명문인 성지여자중학교와 성지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가대표에 붙박이로 승선하고 있는 김천시청 소속의 여자복식 선수. 본래 장예나와 호흡을 맞추어 세계랭킹 상위권에 올라있었으나, 항상 세계대회 8-4강권에만 머무는 성적 탓에 올림픽 약 1년 전인 2015년 협회에서 여자복식 투톱 듀오였던 장예나-정경은 듀오와 신승찬-이소희 듀오의 파트너를 서로 바꾸는 조치를 내려 [[삼성전기]] 배드민턴단의 신승찬과 새로이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호흡을 맞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남자복식 올림픽 출전자였던 유연성-이용대 듀오는 2013년, 김기정-김사랑 듀오는 2011년부터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세계대회에서는 루키라고 할 수 있었으나 [[리우올림픽]] 이전까지 세계랭킹을 5위까지 끌어올렸고 당시 기대했던 모든 선수들이 메달권 진입에 실패하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분투하여 한국에 값진 동메달을 안겨주었다.'''
         = [[올림픽]] =
         == [[2012 런던 올림픽]] ==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c1d72e><table width=350><-3><#c1d72e><:>{{{#white 올림픽}}} ||
         ||<#CD7F32> 동메달 ||<#ffffff>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2016 리우데자네이루]] ||<#ffffff> 여자 복식 ||
          *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왼쪽 종아리에 문신이 있어서 화제가 되었다. 이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때에는 오른팔 문신을 추가했다.
         [[분류:배드민턴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마산합포구 출신 인물]][[분류:1990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 정우영 (1989년생 축구선수)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축구]]}}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종목 최종명단에 낙마하였으나 한국영이 부상으로 제외되자 대체자로 발탁되어 합류하게되었고 4강전인 브라질전에 교체투입되어 올림픽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교토 상가 FC의 축구 선수]][[분류:주빌로 이와타의 축구 선수]][[분류:비셀 고베의 축구 선수]][[분류:충칭 리판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중국 슈퍼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중국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학성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울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18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9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
  • 정효정 (펜싱선수)
         | 사진설명 = [[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 획득 직후의 정효정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2012년 런던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에페 단체전]]}}
         그녀는 [[2012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 대회의 개인전에서는 [[러시아]]의 [[안나 시프코바]]에 12-15로 역전패를 당하였다. <ref>{{웹 인용|url=http://www.bbc.co.uk/sport/olympics/2012/athletes/8c91b0df-9910-42c2-ab8b-bbcb921199a4|제목=Hyojung Jung|출판사=BBC Sport|확인날짜=2012년 9월 11일}}</ref>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낙민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이사벨중학교 동문]] [[분류:이사벨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조준호 (유도선수)
         2012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최민호]]에게 한판승으로 2번을 졌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선발이 되어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대한유도회가 선발과정에서 세계랭킹이 더 높은 조준호가 점수를 더 받았기 때문이라 밝혔다.<ref>{{웹 인용|url=http://mnews.joins.com/amparticle/8203611|제목=중앙일보 - 장주영기자}}</ref> 2012년 [[런던 올림픽]] 8강에서 전원일치로 판정승 하였지만 이후 심판의 번복으로 패배하였다. 그럼에도 패자부활전에서 영국의 오츠 선수에게 승리하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스페인의 수고이 우리아르테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 66kg}}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부산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중현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삼성중학교 (부산)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일란성 쌍둥이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인하대학교 교수]][[분류:수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소사이어티 게임 참가자]][[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
  • 조혜정 (배구인)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1976년 하계 올림픽|1976 몬트리올]]|[[배구|여자 배구]]}}
         포지션은 레프트이고, 신장은 165cm, 체중은 58kg. 신장은 165cm로서 단신이지만 60cm 달하는 서전트 점프력으로 단신의 핸디캡을 커버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배구를 시작했다. [[1976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수상하였으며, 이것은 [[대한민국]] 구기 종목 최초이다. 국세청과 대농(미도파)을 거치며 현역 생활을 하다가 [[1977년]] 국내 무대를 은퇴한 후 [[이탈리아]]에서 2년간 선수로 뛰었고,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여자배구단]] 코치로 지도자 생활도 했다. 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감독 대행을 지낸 [[조창수]]와 [[1981년]]에 결혼, 스포츠 커플로도 화제에 올랐다. 현재 가족으로는 남편과 두 딸(골프 선수 조윤희, 조윤지)을 두고 있다. 결혼 뒤에도 [[송원여자고등학교]] 배구팀 코치, [[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등 다양한 일을 했으며 [[대구광역시]]에서 냉면 식당을 경영하기도 했다.
         *[[1972년 하계 올림픽|1972년 뮌헨 올림픽]]
         *[[1976년 하계 올림픽|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3위
         {{1976년 하계 올림픽 배구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구 선수]][[분류:1970년 아시안 게임 배구 참가 선수]][[분류:1972년 하계 올림픽 배구 참가 선수]][[분류:1974년 아시안 게임 배구 참가 선수]][[분류:1976년 하계 올림픽 배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배구 참가 선수]][[분류:197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7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배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배구 참가 선수]][[분류:197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배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창녕 조씨]][[분류:GS칼텍스 서울 KIXX의 감독]]
  • 진선유
         | 올림픽 = [[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2006]] [[파일:Gold medal olympic.svg|16px]]×3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6년 동계 올림픽|2006 토리노]]|1000m}}
         {{금메달|[[2006년 동계 올림픽|2006 토리노]]|1500m}}
         {{금메달|[[2006년 동계 올림픽|2006 토리노]]|3000m 계주}}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 (쇼트트랙 선수)|이정수]]와 함께 [[KBS]]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게 된다.
         |[[2006년 동계 올림픽|동계 올림픽]]
         |[[2006년 동계 올림픽|동계 올림픽]]
         |[[2006년 동계 올림픽|동계 올림픽]]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쇼트트랙 3000m 금메달리스트}}
         {{2006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여양 진씨]][[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차영철
          | 서훈 내역 =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서울 올림픽]] 은메달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서울]]|[[50미터 소총#50미터 소총 복사|50미터 소총 복사]]}}
         '''차영철'''(車榮澈, [[1959년]] [[7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하계 올림픽|올림픽]] [[국제식 사격|사격]] 은메달리스트이다.
         그는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 사령부|육군 특전사령부]]에서 중사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국제식 사격 국가대표 출전한 전력이 있고 이후 [[국군체육부대]]에서 준위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 남자 소구경 복사(현재는 남자 50 미터 복사) 종목에서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 이래 처음으로 사격부문의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사격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사격 메달리스트]][[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아시안 게임 사격 메달리스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최민호(유도선수)
         대한민국의 전 국가대표 [[유도(스포츠)|유도]] 선수이자 현 유도 코치, 별명은 '''작은 거인'''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유도 60kg급 [[금메달]]리스트, [[2004 아테네 올림픽]] 유도 60kg급 [[동메달]]리스트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상대인 [[오스트리아]] 파이셔 선수의 고간을 잡아 들어 업어 메치는 명장면[* 속된 말로 '''그냥 잡아 뽑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딱지치기라고도 했다.][* 다만 현재 룰에서 이는 반칙이다. 띠 아래쪽을 잡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파이셔 선수는 패배 후 최민호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을 때 가 일으켜 안아주고 마지막엔 최민호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축하해주는 매너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으로 금메달을 땄고, 국내 60kg급에선 2003년서부터 쭉 본좌 자리를 유지하고, 오로지 유도만 바라보며 사는 자타공인 유도 바보.
         2003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약 동 체급 최고의 선수로 부상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체중 감량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에 빠지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다시 말하지만 '''컨디션 난조'''로 올림픽 동메달이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 일주일 동안 -7kg을 뺀 것을 감안하면 동메달이라도 딴 것이 기적일 정도다.[* 일반인이 이런 페이스로 다이어트를 하면 급격한 에너지 부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평생 한 번 나가보기도 어려운 올림픽을 앞두고 운동선수로서 막바지 훈련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마어마한 정도의 체력 손실을 감내한 것이다.] 그 뒤로 한 때 66kg급으로 증량을 검토하다가 결국 60kg에 남았지만 2003년 무렵처럼 세계 강호가 아니라 3위권 선수가 되었다. 스스로도 동메달만 따서 지겹다고 할 정도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영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순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남]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식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남]]이다.]
         [[2012 런던 올림픽]]이 끝난 후 2012년 9월에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됐으며, [[2013년]] 말에는 [[용인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유도 국가대표 남자부 코치를 맡아 김원진, [[안바울]] 등의 선수들을 지도했다.
         ||<-3><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131230><table width=350><#131230> {{{#white 올림픽}}} ||
         ||<#FFD700> 금메달 ||<#ffffff> [[2008 베이징 올림픽|2008 베이징]] ||<#ffffff> -60kg ||
         ||<#CD7F32> 동메달 ||<#ffffff> [[2004 아테네 올림픽|2004 아테네]] ||<#ffffff> -60kg ||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순박해 보이는 인상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남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반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상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라면이 먹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하였고, 이후 신라면 광고를 [[https://youtu.be/EbzxKCQbPzY|찍었다.]]
         [[분류: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80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 최병철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전|플뢰레 개인전]]}}
         '''최병철'''(崔炳哲, [[1981년]] [[10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이다. [[2012년 하계 올림픽]] 남자 [[플뢰레]] 종목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올림픽에 출전한 남자 펜싱선수로는 [[2000년 하계 올림픽|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김영호 (펜싱 선수)|김영호]]에 이어 12년만에 메달을 건 선수가 되었다. 재치있는 입담과 특이한 경기운영방식으로 인하여 '''괴짜검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ref>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8&idxno=616081 기상천외한 공격펜싱 '최병철', 괴짜검객 등극] 《이투데이》, 2012년 8월 2일</ref>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방송공사|KBS]]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게 된다. [[2016년]] [[8월 10일]]에 있었던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박상영]]이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획득하자, '''그 어려운 걸 해냈지 말입니다'''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전주 최씨]][[분류:서울신동초등학교 동문]][[분류:신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사진 설명 = 올림픽 쇼트트랙 2연패 최은경 "마케팅 금메달 위해 달린다"
         | 올림픽 = [[파일:Gold medal olympic.svg|16px]] [[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2002]]<br />[[파일:Gold medal olympic.svg|16px]] [[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2006]]<br />[[파일:Silver medal olympic.svg|16px]] [[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2002]]<br />[[파일:Silver medal olympic.svg|16px]] [[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2006]]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2년 동계 올림픽|2002 솔트레이크]]|3000m 계주}}
         {{금메달|[[2006년 동계 올림픽|2006 토리노]]|3000m 계주}}
         {{은메달|[[2002년 동계 올림픽|2002 솔트레이크]]|1500m}}
         {{은메달|[[2006년 동계 올림픽|2006 토리노]]|1500m}}
         [[세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2년 동계 올림픽|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과 [[한국체육대학교]] 3학년 때인 [[2006년 동계 올림픽|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2회 연속으로 3000m 계주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와 [[2004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2회 연속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005년]] [[중국]] [[베이징]]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올림픽 쇼트트랙 3000m 금메달리스트}}
         {{2002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2006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용지초등학교 동문]][[분류:목일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최은숙 (1986년)
         | 사진설명 = [[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 획득 직후의 최은숙
         | 올림픽 =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에페 단체전]]}}
         {{은메달|[[2006년 아시안 게임|2006 도하]]|[[200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에페 단체전]]}}
         {{은메달|[[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201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에페 단체전]]}}
         그녀는 [[2012년 하계 올림픽]]의 [[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교체요원으로 참가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ref>[https://archive.is/20130427024930/www.london2012.com/athlete/choi-eunsook-1099397/ London2012.com]</ref>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유니버시아드 은메달리스트]][[분류:유니버시아드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1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메달리스트]][[분류:2011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펜싱 참가 선수]][[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광주효광중학교 동문]][[분류:남부대학교 동문]]
  • 최임정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2004년 하계 올림픽|2004 아테네]]|[[핸드볼|여자 핸드볼]]}}
         {{동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핸드볼|여자 핸드볼]]}}
         * [[2004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12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4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동메달
         {{2004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4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지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주례여자중학교 동문]]
  • 토비 도슨
         {{메달 경기|[[올림픽]]}}
         {{동메달|[[2006년 동계 올림픽|2006 토리노]]|모굴}}
         그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선발되어 출전하였으며,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에 따라 그의 사연은 미국과 대한민국 양국에서 모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언론을 통해 직접 친부모를 찾고 싶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217508 美입양한인 스키선수의 친부모 찾기 열망] [[연합뉴스]] [[2006년]] [[2월 12일]]</ref> 이에 따라 대한민국 각지에서 자신이 토비 도슨의 친부모일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수십명 이상 나타났으나, 부산에서 버스 운전을 하는 김재수라는 남성이 토비 도슨과 흡사한 외모와 여러 가지 주변 정황상 그의 생부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 다른 주장자에 비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103682.html “도슨은 내 아들” 부산 김재수씨, 친아버지 주장] [[한겨레]] [[2006년]] [[2월 20일]]</ref> 그러나 토비 도슨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친부모라 주장하여 혼란을 느꼈으며, 친부모를 찾는 일에 신중을 기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곧 대한민국에서 열릴 대회에 참가하면서 친부모를 찾으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대회에 불참하였다.<ref name="birth">[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1272073 한국계 입양아 도슨에 친부모 주장자 쇄도] [[연합뉴스]] [[2006년]] [[4월 15일]]</ref>
         그는 [[2006년]] 여름, 스키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골프]]로 전향, 프로 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중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652491& 골프 전향 토비 도슨 "코리안투어에 도전하겠다"] [[연합뉴스]] [[2007년]] [[5월 31일]]</ref> 대한민국 동계스포츠 발전을 위한 활동을 하여, [[2014년]] [[평창]] [[2014년 동계올림픽|동계올림픽]] 명예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스키장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모글 스키를 지도하기도 했다.
         2006년 동계올림픽 모굴부문 동메달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올림픽 프리스타일 메달리스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미국의 양자]][[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미국의 올림픽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
  • 프로 스포츠
         프로 스포츠 선수는 전통적으로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주 소득을 얻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반면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선수란 [[취미]]로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에 아마추어 스포츠는 상당히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무렵에 아마추어를 프로 스포츠와 구분한 이유는 프로선수는 돈 받고 전념하니까 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같은 틀에서 경쟁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프로 선수를 낮게 보았고[* 일종의 '사회적 차별'로서, '유산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에서 '노동자 계급'과 같이 여겨진 프로 선수를 배제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올림픽에 '아마추어' 규정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공산권이 무너지고 스포츠 시장이 구 공산권에 뻗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스포츠 마케팅]]이 극도로 발전하며 아마추어리즘을 퇴색시켰는데, 아마추어 선수라도 기업에서 막대한 스폰싱을 받으면서 사실상 '전업 아마추어 선수'로서 활약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고색창연한 아마추어리즘 보다는 '최고의 선수들의 최고의 경기'를 보는 것을 바랬고, 그것이 아마추어 대회를 유지하는 입장에서도 나았기 때문이다. 결국 1974년에 [[올림픽]]에서 아마추어 규정이 사라지면서 '아마추어'라는 틀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권투의 경우도 권투경기를 주관하는 주요 단체에 소속되지 않았다 뿐이지, 올림픽 권투경기를 보기 위해서 올림픽 관람료를 내야함은 물론이고 올림픽 성적에 따라 각 국가의 올림픽 관계 단체로부터 상금이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개중에는 스폰서가 붙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이전과는 달리 단순히 '돈을 번다'는 것 만으로는 프로 스포츠와 아마추어 스포츠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 한기주
         * [[2008년]]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올림픽 =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8년]]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단체전]]}}
         === [[2008년]]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 ===
         2008년에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됐다.
         그는 [[소녀시대]]의 막내 멤버 [[서현 (가수)|서현]]의 팬이었는데, [[2009년]] [[4월 5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시구를 위해 방문한 [[소녀시대]] 멤버 [[서현 (가수)|서현]]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서현 (가수)|서현]]이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 등으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렸던 그에게 '이름이 뭐에요?'라는 말을 해 그를 무안하게 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po&arcid=0921248125&cp=nv 기아 한기주 “서현에게 팬 이상의 감정 없다”] {{웨이백|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po&arcid=0921248125&cp=nv |date=20150711052729 }} - 쿠키뉴스</ref>
         | 제목 = '윙크보이' '극강매너' '한작가'…, 올림픽 스타들의 별명은?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청주 한씨]][[분류:광주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광주동성중학교 동문]][[분류:광주동성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허순영 (핸드볼선수)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1996년 하계 올림픽|1996 애틀랜타]]|[[핸드볼|여자 핸드볼]]}}
         {{은메달|[[2004년 하계 올림픽|2004 아테네]]|[[핸드볼|여자 핸드볼]]}}
         {{동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핸드볼|여자 핸드볼]]}}
         * [[1996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0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4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1996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
         * [[2004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동메달
         {{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4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4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
  • 홍정호 (핸드볼선수)
         {{메달 경기|[[올림픽]]}}
         {{금메달|[[1992년 하계 올림픽|1992 바르셀로나]]|[[핸드볼|여자 핸드볼]]}}
         {{은메달|[[1996년 하계 올림픽|1996 애틀랜타]]|[[핸드볼|여자 핸드볼]]}}
         {{동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핸드볼|여자 핸드볼]]}}
         * [[1992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1996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1992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금메달
         * [[1996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동메달
         {{199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인천구월초등학교 동문]][[분류:상인천여자중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황정오
         {{메달 경기|[[올림픽]]}}
         {{은메달|[[1984년 하계 올림픽|1984년 로스앤젤레스]]|-65 kg}}
         [[1981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고,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8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결승전까지 올라갔으나 [[일본]]의 [[마쓰오카 요시유키]]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무르고 말았다.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유도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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