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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한 (야구 선수)
         2011년 동국대를 졸업하고 8라운드로 입단했다. [[2012년]]에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당시는 군입대 예정이던 [[이원석 (1986년)|이원석]]과 [[오재원]]을 대신할 선수로 테스트할 예정이었으나 둘의 입대가 유보돼 [[2013년]] 시즌도 2군에서 시작했다. [[2012년]]에 좋은 모습을 보여 시즌 중반 종종 1군으로 콜업됐다가 다시 내려가는 과정이 반복됐고, 확대 엔트리가 되면서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출장했다. [[2013년]] [[9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대타로 나와 [[박희수]]를 상대로 역전 3점 홈런이자 결승 홈런을 쳐 내며, 팀의 역전 승을 이끌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309122204482225&ext=na '김동한 9회 2아웃 역전 3점포' 두산, SK에 7점차 뒤집기] -마이데일리</ref>
  • 김재호 (1985년)
         [[2008년]] 주전 [[유격수]]였던 [[이대수]]의 부상으로 대신 주전 [[유격수]]로 출전해 부상에서 돌아온 [[이대수]]와 주전 경쟁을 했다. 빠른 발은 있지만 타격이 부족해 그 후로는 [[손시헌]], [[고영민]], [[오재원]], [[이원석 (1986년)|이원석]] 등에게 밀려 주전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경기 막판 [[대주자]]나 대수비로 출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영민]]의 부진에 의한 2군 강등, [[이원석 (1986년)|이원석]]의 3루수비 고정, [[오재원]]의 1루수비 고정, 주전 유격수 [[손시헌]]의 노쇠화로 2012년 후반부터 기회를 얻기 시작했고, 2013년에 주전자리를 꿰차며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
         [[2016년]]에 [[오재원]]에 이어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 김진욱(스포츠해설가)
         다시 반복하지만 두산의 야수층은 생각보다 매우 얇았다. 군 입대와 [[FA 제도|FA]] 이적을 고려한다면 야수진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서술하면, 2013 시즌 종료 이후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 [[최준석]], [[손시헌]]이 FA자격을 얻으며, 모두 2013 시즌 후 이적했다. [[오재원]]과 이원석은 늦어도 2014년 말에는 군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오재원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함으로써 병역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이원석은 2014 시즌 종료 이후 [[상무 야구단|상무]]에 입대하였다. 이원석의 입대로 비는 [[3루수|3루]] 자리는 당시 타격이 모자랐던 [[최주환]]이나 [[허경민]]이 맡아야 했고, 결국 15시즌 가서야 [[허경민]]이 안정적으로 3루 자리를 차지했다.[* 3루 외인을 사용했다 [[잭 루츠]]와 교체 후 [[데이빈슨 로메로]] 모두 부진했다.] 두산이 넘치는 야수진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지 않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최대한 돌려가며 막아야''' 전력 유지가 되는 수준인 것이다.
         [[오재일]]-트레이드는 두 사람의 13시즌 모습을 한줄로 요약한 견해가 있다. '[[이성열(야구선수)|창]]을 내주고 [[오재일|방패]]를 얻었다.' 오재일이 출전하지 않을 경우 1루를 주로 보는 선수가 [[오재원]]이나 [[최준석]](...)임을 감안할 때, [[외야수]] 자리가 없어서 이성열을 놔두느니 1루 자원으로서 길게 보고 오재일을 키운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이것도 딱히 부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오재원은 결국 2루로 고정되었고 오재일이 15시즌 중후반부터 1루를 차지한데다 16시즌에는 홈런 27개, .316/.411/.592 의 3/4/5 슬래시 라인과 OPS1.003로 팀의 핵심 타자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두산이 절대 손해본 트레이드는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성열은 15시즌, 16시즌 모두 0.270이 안되는 타율에 10홈런도 치지 못하면서 거의 유일한 장점인 파워마저도 잃어버렸다.(...)
  • 나성범
         하지만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투수로 수비 위치를 바꿔 [[데이빈슨 로메로]]에게 초구 안타를 맞은 뒤 [[오재원]]을 땅볼로 아웃시켜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는 9회말 2아웃에 마지막 타자로 나와 팀의 시즌 마지막 투수이자 타자가 됐다.
  • 모창민
         대학교 2학년이던 2005년에 재학 중에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성균관대학교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게 됐고, 그의 실력도 급성장했다. [[2006년]]부터 [[단국대학교]] [[나지완]]과 함께 국내 각종 아마추어 대회 홈런 수위 자리를 다퉜다. [[성균관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 7월에는 [[박용근]], [[오재원]], [[전준우]], [[허도환]] 등과 함께 대학부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돼 한·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전 광주에서 4번 타자로 출장했다. 그 해 9월에는 제 61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4광주에 출장해 18타수 6안타, 타율 0.333, 3홈런으로 대회 홈런상을 수상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0041006 동국대, 창단후 첫 대학선수권 우승] - 스포츠조선</ref>
  • 민병헌
         [[2015년]] [[5월 27일]] [[NC 다이노스|NC]]전에서 7회초 1루수 땅볼로 물러난 [[두산 베어스]] [[오재원]]과 당시 [[NC 다이노스]]의 투수였던 [[에릭 해커|해커]] 사이에서 언쟁이 일어났고, 그라운드에 양 팀 선수들이 뛰어나오며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그 순간 [[두산 베어스]] 벤치 쪽에서 [[에릭 해커]]를 향해 공이 빠르게 날아왔으나 정확히 누가 공을 던졌는지 알 수 없었다. 심판은 당시 두산 [[장민석]]이 던진 것으로 판단하고 [[장민석]]을 퇴장시켰으나, 그가 범인이라는 네티즌 여론이 들끓었다.
  • 배영수
          * 2013년 3월 30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과 [[김현수(1988)|김현수]]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한만두|개만두]]를 시전하였는데 그 다음 등판인 4월 7일 NC전에서 '''"개만두 아십니까. 저, 개만두 됐습니다. 개만두!"'''라고 기자들한테 말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영수의 멘탈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 --그리고 깨알같은 선배 [[박찬호]]의 디스까지--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8825&date=20130409&page=1|#]]
  • 오재일
         {{혼동|[[오재원]]}}
  • 이대형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내야 땅볼을 안타로 만들 정도로 빠른 발과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로 상대 팀의 배터리와 내야수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컨택 능력과 타격 센스는 테이블 세터로서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ref>[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164194 대도 이대형, 비판에 귀닫고 빠른 발을 살린다] - 《일간스포츠》</ref> 도루 능력이 매우 뛰어나, [[2007년]] 53도루로 도루왕을 수상했고, 또한 [[외야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도 수상했다. 이후 [[2010년]]까지 계속 도루왕 타이틀을 얻었으며, [[2010년]] [[9월 26일]] [[KBO 리그]] 최초로 '3년 연속 60도루'를 달성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6월에 복사뼈 부상과 슬라이딩 중 당한 어깨 부상으로 인해 [[오재원]]에게 도루왕 타이틀을 넘겨줬다. [[2012년]] [[1월 11일]] 연봉 1억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삭감돼 [[KBO 리그|KBO]]에 [[연봉조정신청]]을 했으나, 이틀 만에 철회해 [[2012년]] 8,500만원에 연봉 계약을 했다. [[2013년]]에는 데뷔 첫 포스트 시즌에 출전했다.
  • 이효봉(야구선수)
          아무래도 윤희상이 그때까지 5이닝 3실점을 기록 중이었고, 3타자 연속 홈런을 맞기도 한데다 [[오재원]]과의 마찰도 있었고, 3:3 동점이었기 때문에 6회에도 등판하기는 힘들다고 본 듯 하다.
  • 최주환
         [[2006년]]에 입단하였다. 초반에는 주로 3루수로 출전하다가 [[오재원]]과 [[고영민]]의 부상으로 원래의 포지션인 2루수로 복귀했다.
  • 최준석
         군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아래에서도 언급할 무릎 수술 문제로 면제를 받았다. 문제는 수비위치인데, 1루에 붙박이로 들어가려고 해도 [[김진욱(야구)|수비 잘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감독 특성상]] [[오재원]]이나 김현수에게 밀리며, 지명타자 자리에는 [[홍성흔]]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지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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