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 8대 국왕 ¶
그의 치세에는 세조의 쿠데타에 동참해 권신이 된 구공신 세력들과,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세조가 말년에 총애한 신공신파의 대립이 첨예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젊은 나이에 크게 출세했고 혈기도 왕성했던 남이가 제일 위협적이었는데, 이에 예종은 처음엔 남이의 벼슬을 깎아 견제했고 남이가 이에 불만을 품어 구공신 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정황이 포착되자 남이를 역모 혐의로 처단하고 이어서 유자광을 제외한 신공신 세력을 일소하기에 이른다.
또한 부친이 추진하던 '경국대전'의 편찬에 심혈을 기울이고 한명회 등의 구공신 세력에 대해서도 견제를 꾀했으나 불과 20살의 나이로 급사하고 만다. 평소 시호를 '예'(睿)로 해달라고 했던 말을 좆아 시호를 예종이라 하게 된다.
세조가 싸지른 똥(권신들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이를 견제할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고 개인의 카리스마로만 억누른 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으나 그로 인해 심신을 혹사한 끝에 요절한 왕. 그가 죽은 뒤 왕위는 정희왕후(세조의 비)와 소혜왕후(훗날의 인수대비)의 뜻에 따라 형의 차남인 잘산군(또는 자을산군)이 이으니, 그가 바로 성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