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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의석
         |직업 = 학생운동가, 인권운동가, 시민운동가, 반전 평화 운동가, 영화감독
         [[2005년]] [[9월]] 그는 한국권투위원회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권투]]선수가 되었음을 밝혔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9191822441 강의석군 “이번엔 세계챔피언이 꿈”]. 경향신문. 2005-09-19.</ref> 그러나 권투 선수가 될 마음은 없었고, 종교 비판과 시민 사회 운동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후 재학 중이던 [[서울대학교]]에서 2008학년도 1학기를 휴학하고 사람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며 [[택시]] 운전기사를 했으며<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8&no=165631 서울대 휴학 택시모는 강의석씨] {{웨이백|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8&no=165631 |date=20131106021948 }}. 매일경제. 2008-03-25.</ref>, 4월말부터는 호스트바에서 일하다가<ref name="chosun_200805">{{웹 인용 |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04/2008050400148.html |제목=종교자유 외쳤던 '대광고 강의석', "병역 의무 왜곡된 것": 종교자유 선봉에서 택시기사, 그리고 호스트바에서 일하기까지…| 출판사=조선일보}}</ref>,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ref name="kyung">{{웹 인용|url=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4231429305&code=900315 |제목=“미친듯 헤매도 내 뜻대로 사는 행복을 위해” |저자=김다슬 |웹사이트=경향닷컴 |출판사=경향신문사}}</ref> 그는 또한 권투를 하다 머리를 다쳐 징병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판정처분(신체등위 4급)을 받았다.<ref name="chosun_200805"/>
         그는 국가대표 선수라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고 주장해 왔다. [[박태환]]이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이로 인하여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자 강의석은 [[박태환]]에게 군대 가라며 ‘대학 내일’ 434호에 기고한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마린보이, 난 자칭(!) ‘영화감독’ 강의석이야. [[2009년]] [[2월]] 완성될 블록버스터 다큐 ‘군대?’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예정”이라며 “그렇게 되면 ‘국위선양’의 이름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되겠지만 나는 그 혜택을 거부하고 감옥에 갈 생각”이라고 소개했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photomovie/general/2008/0907/20080907101060500000000_5973825154.html Sportsseoul.com - '1인시위' 강의석, 병역특례 박태환 "불공평해!" 네티즌 찬반논란<!-- 봇이 따온 제목 -->]{{깨진 링크|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hotomovie/general/2008/0907/20080907101060500000000_5973825154.html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08&aid=0001957174 강의석 "박태환, 너도 군대 가"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qtv.freechal.com/Viewer/QTVOutViewer.asp?docid=1689869&srchcp=N&playtimePos=&q=강의석%20박태환{{깨진 링크|url=http://qtv.freechal.com/Viewer/QTVOutViewer.asp?docid=1689869&srchcp=N&playtimePos=&q=%EA%B0%95%EC%9D%98%EC%84%9D%20%EB%B0%95%ED%83%9C%ED%99%98 }}</ref> 그는 메달을 이유로 병역을 피하는 것은 부당한 병역 회피이며, 악조건에서 태어나 군대로 끌려가야 하는 서민 남성들의 처지를 돌아보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월드컵 대표선수 비판과는 달리 박태환 비판 이후 그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다. 그러나 곧 최진실 자살 사건으로 강의석에 대한 비판 여론은 묻혀졌다. [[10월 2일]]에는 "평화는 맛있다!"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총 모양의 튀김과자를 만들어 접시에 담은 뒤 거리에서 평화를 원한다는 뜻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2009년]] 강의석은 잡리스, [[이계덕]] 등과 함께 영화감독 및 음반제작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고 있으며, 신해철이 진행하던 TVN 이색뉴스쇼 등에서 요원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0년]] [[4월 1일]], "친구의 누나에게"의 제목으로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였다. 강의석은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하기도 하였다.<ref>[http://music.naver.com/video.nhn?m=detail&mvid=18081 '친구의 누나에게' 뮤직비디오]</ref>
  • 강의석 (영화감독)
         |직업 = 학생운동가, 인권운동가, 시민운동가, 반전 평화 운동가, 영화감독
         [[2005년]] [[9월]] 그는 한국권투위원회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권투]]선수가 되었음을 밝혔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9191822441 강의석군 “이번엔 세계챔피언이 꿈”]. 경향신문. 2005-09-19.</ref> 그러나 권투 선수가 될 마음은 없었고, 종교 비판과 시민 사회 운동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후 재학 중이던 [[서울대학교]]에서 2008학년도 1학기를 휴학하고 사람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며 [[택시]] 운전기사를 했으며<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8&no=165631 서울대 휴학 택시모는 강의석씨]{{깨진 링크|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8&no=165631 }}. 매일경제. 2008-03-25.</ref>, 4월말부터는 호스트바에서 일하다가<ref name="chosun_200805">{{웹 인용 |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04/2008050400148.html |제목=종교자유 외쳤던 '대광고 강의석', "병역 의무 왜곡된 것": 종교자유 선봉에서 택시기사, 그리고 호스트바에서 일하기까지…| 출판사=조선일보}}</ref>,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ref name="kyung">{{웹 인용|url=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4231429305&code=900315 |제목=“미친듯 헤매도 내 뜻대로 사는 행복을 위해” |저자=김다슬 |웹사이트=경향닷컴 |출판사=경향신문사}}</ref> 그는 또한 권투를 하다 머리를 다쳐 징병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판정처분(신체등위 4급)을 받았다.<ref name="chosun_200805"/>
         그는 국가대표 선수라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고 주장해 왔다. [[박태환]]이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이로 인하여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자 강의석은 [[박태환]]에게 군대 가라며 ‘대학 내일’ 434호에 기고한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마린보이, 난 자칭(!) ‘영화감독’ 강의석이야. [[2009년]] [[2월]] 완성될 블록버스터 다큐 ‘군대?’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예정”이라며 “그렇게 되면 ‘국위선양’의 이름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되겠지만 나는 그 혜택을 거부하고 감옥에 갈 생각”이라고 소개했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photomovie/general/2008/0907/20080907101060500000000_5973825154.html Sportsseoul.com - '1인시위' 강의석, 병역특례 박태환 "불공평해!" 네티즌 찬반논란<!-- 봇이 따온 제목 -->]{{깨진 링크|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hotomovie/general/2008/0907/20080907101060500000000_5973825154.html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08&aid=0001957174 강의석 "박태환, 너도 군대 가"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qtv.freechal.com/Viewer/QTVOutViewer.asp?docid=1689869&srchcp=N&playtimePos=&q=강의석%20박태환{{깨진 링크|url=http://qtv.freechal.com/Viewer/QTVOutViewer.asp?docid=1689869&srchcp=N&playtimePos=&q=%EA%B0%95%EC%9D%98%EC%84%9D%20%EB%B0%95%ED%83%9C%ED%99%98 }}</ref> 그는 메달을 이유로 병역을 피하는 것은 부당한 병역 회피이며, 악조건에서 태어나 군대로 끌려가야 하는 서민 남성들의 처지를 돌아보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월드컵 대표선수 비판과는 달리 박태환 비판 이후 그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다. 그러나 곧 최진실 자살 사건으로 강의석에 대한 비판 여론은 묻혀졌다. [[10월 2일]]에는 "평화는 맛있다!"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총 모양의 튀김과자를 만들어 접시에 담은 뒤 거리에서 평화를 원한다는 뜻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2009년]] 강의석은 잡리스, [[이계덕]] 등과 함께 영화감독 및 음반제작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고 있으며, 신해철이 진행하던 TVN 이색뉴스쇼 등에서 요원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0년]] [[4월 1일]], "친구의 누나에게"의 제목으로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였다. 강의석은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하기도 하였다.<ref>[http://music.naver.com/video.nhn?m=detail&mvid=18081 '친구의 누나에게' 뮤직비디오]</ref>
  • 구명철(영화감독)
         | 직업 = [[영화감독]]/ [[작가]]/ [[영화제작자]]
         '''구명철'''(具明哲)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다. 한남대학교 졸업 후 1978년 11월 TBC 동양방송에 입사 후 40년을 연출, 영화감독, 방송프로듀서로 현재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1999년 12월 공중파 방송을 떠나 시네마픽쳐스 영화사 설립하여 독립영화 [길뜸] [마로니애]등 4편과, 극 영화 [갈잎의 노래]로 각본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2000년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사 주식회사 비전TV를 설립하여 공중파,종편,케이블 방송 등 프로그램 제작 및 인터넷 신문 대표이사로 있다.
  • 김소영 (영화감독)
         '''김소영'''([[1968년]] ~ )은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이다. 데뷔 영화 《[[방황의 날들]]》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 김태균 (영화 감독)
         '''김태균'''(金泰均, [[1960년]] [[6월 17일]]~ )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다.
  • 김한일(영화감독)
          | 직업 = [[동양화]][[화가|가]] <br/> [[서예|서예가]] <br/> [[영화감독]] <br/> [[영화 평론|영화평론가]] <br/> [[미술 평론|미술평론가]] <br/> [[영화 각본|영화 시나리오 작가]] <br/> [[연극]][[연출가]] <br/> [[영화]] [[연출가|영화편집감독]] <br/> 영화 총지휘제작감독 <br/> [[투자가|영화 기획가]] <br/> [[교수|대학 교수]] <br/> [[기업가]]
          | 형제자매 = 누나 1명 <br/> 형 2명 <br/> 둘째형 [[김소동]](영화감독)
         '''김한일'''(金漢日, [[1921년]] [[2월 10일]] ~ [[1975년]] [[4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동양화|동양]][[화가]] 겸 [[서예|서예가]]이며 [[영화 감독|영화감독]] 겸 [[기업가]]이다.
         * 1956년 영화 《여성의 적》으로 영화감독·영화 편집감독 데뷔.
  • 김화랑
         | 직업 = 작가, 연극인, 영화감독
         '''김화랑'''(金火浪, <small>일본식 이름: </small>星野正史, [[1912년]] [[10월 8일]] ~ [[1976년]])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이며 연극인이다. 다른 이름으로 '''이익'''(李翼)이 있고, 본명은 이순재(李順載)이다.
         [[중일 전쟁]]을 배경으로 [[1939년]]에 [[조선문화영화협회]]가 제작한 《국기 아래서 나는 죽으리》를 연출하여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했다. [[최운봉]]과 [[복혜숙]]이 출연한 《국기 아래서 나는 죽으리》는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고 근로와 저축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할 것을 주제로 삼고 있는 직설적인 어용 영화이다. 주인공은 동네에서 손수 [[일장기]]를 만들고 나누어 주고 [[신사참배 강요]] 정책에서 앞장서 모범을 보이며, 마지막에는 일장기 아래에서 일본 궁성을 향해 죽는 인물이다.
         </ref> 하였고, 이후 시나리오는 사극 《거지왕자》(1963) 한편만 쓰고 영화감독으로 주로 일했다. [[한국 전쟁]] 초기에는 피난을 가지 못해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숨어지냈다. 부인인 가수 [[신카나리아]]는 [[조선인민군]]에게 잡혀갔다가 북행 중 도망쳐오기도 했다. 전세 역전 이후 이들 부부는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 소속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
         |제목=한국 영화감독 사전
  • 박찬욱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제작자]], [[영화평론가]]
         《삼인조》의 실패로 어려움에 처한 그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제작자를 설득하다가 당시 [[명필름]] 심재명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심재명 대표로부터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박상연]]의 소설 'DMZ'를 영화화 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감독을 제안받게 되고 소재나 미스터리 느낌의 줄거리에 끌려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의 감독을 맡았다.<ref name=story1/>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와 유머가 살아 있으면서 사회적 의미도 담고 있어 관객의 호응을 받았으며 58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0905/e2009052519331294220.htm|제목=박찬욱, 또 한번 '칸'의 선택을 받다|출판사=서울경제|날짜=2009-05-25|확인날짜=2010-08-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2113202/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0905/e2009052519331294220.htm#|보존날짜=2013-12-12|깨진링크=예}}</ref> 이 영화로 박찬욱은 경력에 큰 획을 그었고, 영화계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이 영화로 [[2000년]] 제2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2001년]]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도빌 아시아영화제 작품상, 제38회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다.
  • 서세원
         | 직업 = [[희극 배우|코미디언]], [[영화감독]],<br>솔라그라티아 [[교회]] 담임 [[목사]]
         '''서세원'''(徐世源, [[1956년]] [[3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였고, [[방송인]], [[영화감독]], 솔라그라티아 [[교회]] 담임 [[목사]]였다.
  • 석래명
         '''석래명'''(石萊明, [[1936년]] [[5월 19일]] [[서울특별시|서울]] ~ [[2003년]] [[5월 20일]])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었다.
  • 손전
         |직업 = 연극배우 <br /> 영화배우 <br /> 연극연출가 <br /> 영화감독 <br /> 영화제작자
         '''손전'''(孫全, [[1910년]] [[1월 27일]] ~ [[1999년]] [[9월 8일]], 본명: '''손병철''', 孫秉喆)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제작자]], [[영화감독|감독]]이다. 손전, 손일포, 한일호 등의 예명을 사용하였다. [[1925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30년]] [[니혼 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총 1천 5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 양우석 (영화 감독)
         '''양우석'''([[1969년]] [[10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만화작가이다.
         * [[2014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스타의 밤 자랑스러운 영화감독상 《[[변호인 (영화)|변호인]]》
  • 양우석 (영화감독)
         '''양우석'''([[1969년]] [[10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만화작가이다.
         * [[2014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스타의 밤 자랑스러운 영화감독상 《[[변호인 (영화)|변호인]]》
  • 오우삼
         '''오우삼'''({{Zh|c=吳宇森|p=Wú Yǔ Sēn|h='''우위썬'''}}, {{llang|yue|ng<sup>4</sup> jyu<sup>5</sup> sam<sup>1</sup>|응위삼}}, 영문명 '''John Woo''', [[1946년]] [[5월 1일]] ~ )은 [[홍콩]]의 [[영화감독]]이다.
         * 2010년 제4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2009년 최고 흥행한 영화감독
  • 유석현 (1994년)
         | 직업 = [[영화감독]]
  • 이구영 (영화 감독)
         '''이구영'''(李龜永, [[1901년]] [[2월 11일]] ~ [[1973년]])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영화인이다.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배우]], 평론가를 겸하였다.
  • 이만희 (영화 감독)
         |기타 이력=[[경신고등학교 (서울)|서울 경신고등보통학교]] 졸업 <br />영화감독<br /> 前 [[연극배우]]([[배우]] 은퇴) <br /> 前 [[영화 배우|영화배우]]([[영화 감독|감독]]으로 전향)
         '''이만희'''(李晩熙, [[1931년]] [[10월 6일]] ~ [[1975년]] [[4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이며 [[서울특별시|서울]] 출생이다. [[경신고등학교 (서울)|서울 경신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55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56년]] 영화 《[[사도세자 (영화)|사도세자]]》에서 자객 역으로 단역 출연하여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고 그 후 [[안종화]] 밑에서 감독 수업을 시작하여 습득을 한 끝에 [[1961년]] 영화 《주마등》으로 [[영화 감독|영화감독]] 데뷔하였다. 《[[칠인의 여포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의 영화를 감독했다. 여성 영화배우 [[이혜영 (1962년)|이혜영]]의 아버지인 그는 마지막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인 《삼포 가는 길》의 편집을 마무리하던 중 간암으로 타계하였고, 그가 죽고 1개월 후 유작이 개봉되었다.<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6386018 청춘은 맨발이다 (120) 명감독의 최후]{{깨진 링크|url=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6386018 }} - 중앙일보</ref> 그의 오랜 히로인이자 페르소나인 배우 [[문정숙 (배우)|문정숙]]과는 7년 이상 연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ref name=autogenerated1>{{뉴스 인용 |제목 = "문정숙·이만희 시들해진「여보·당신」" |url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0515550004 |출판사 = 선데이서울 |쪽 = |날짜 = 1969-09-21 |확인날짜 = 2015-01-27}}</ref>
  • 이영은
         * '''[[이영은 (영화 감독)|이영은]]'''([[1971년]] ~ )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다.
  • 이창동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제작자]], [[소설가]], [[교수]], [[교사]], [[전 문화관광부장관]]
         '''이창동'''([[1954년]] [[4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영화감독]]이다.<ref>[[네이버]] 인물 정보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9D%B4%EC%B0%BD%EB%8F%99&os=158601 이창동]</ref><ref>MDL http://www.mydvdlist.co.kr/mdlkth/movie/name.asp?peoplecode=51334</ref>
  • 장동국 (1972년 9월)
         | 활동 영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영화감독
         '''장동국'''([[1972년]] [[9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자 [[영화감독]]이다.
  • 장항준
         | 직업 = [[영화감독]]
         '''장항준'''([[1969년]] [[9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자 드라마 작가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다.
  • 최은희
         [[한국]]의 [[배우]] 이자 [[영화감독]]. [[1926년]] [[11월 20일]], [[경기도]] [[광주시]] 출생.
  • 최하원
          | 직업 = [[연극배우]]<br/>[[소설가]]<br/>[[극작가]]<br/>[[연출가|연극연출가]]<br/>[[영화감독]] <br/>[[영화]] [[시나리오]] [[영화 각본|각본 작가]]<br/>[[각색|영화 각색가]] <br/>[[대학 교수]] <br/>[[기업가]]
         '''최하원'''(崔夏園, 본명(本名)은 '''최승용'''(崔承容), [[1937년]] [[8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영화 각본|작가]]이다. [[본관]]은 [[해주 최씨|해주]](海州)이고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 [[1968년]] 영화 《나무들 비탈에 서다》로 영화감독 데뷔.
         소설가 [[황순원]] 작품 애호가로도 유명한 그의 영화감독 대표작에는 [[1969년]] [[대한민국 영화|영화]] 《[[독짓는 늙은이 (영화)|독짓는 늙은이]]》 등이 있다.
  • 홍상수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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