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E D R , A S I H C RSS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을(를) 전체 찾아보기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역링크만 찾기
검색 결과 문맥 보기
대소문자 구별
  • 박근혜 . . . . 164회 일치
         |학력 = [[서강대학교]] 전자공학 학사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차녀<ref group="주">박정희의 전처소생 [[박재옥]]이 있으므로 박근혜는 차녀가 된다.</ref>이자 [[육영수]]의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나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청와대]]에서 자랐다. 1970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에 졸업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모친 사후]] 귀국하여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사실상 대통령 배우자 직무를 대행하였다. 아버지가 서거한 후에는 청와대에서 나와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에서 전시(戰時)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현재 이에는 돈부리집이 있는 상가가 위치해 있다.<ref name="kys">[[강용석의 고소한 19]] 1화</ref> 어머니 [[육영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형제로는 이복언니 박재옥이 있고 동복동생인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는 [[1917년]]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어머니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재의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봉직한 경력이 있었다. 외조부 육종관은 딸이 과거 혼인 경력이 의심스럽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박정희와의 결혼 결심을 굳힌 육영수가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박정희가 있는 [[대구]]로 가서 결혼을 강행하였다.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순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남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영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영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박근혜가 태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961년 5월 15일 오후 10시 경,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던 육군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에게 부인 육영수가 "근혜 숙제 좀 봐주세요."라며 가족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면담을 에둘러 요구하였다. 이에 박 소장은 잠시 방에 들러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생 박근혜와 곁에서 잠든 장모 [[이경령]]과 3녀 근영, 장남 지만을 훑어본 뒤에 집을 나선다. 이 때 "무슨 숙제입니까?"라는 거사 동지 [[장태화]]의 물음에 박정희는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라고 답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버지의 기척은 알았으나 자신이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후술하였다.
         [[서울장충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64년]] 2월 졸업하였으며, [[정몽준]] 전 국회의원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다.<ref>[http://news.mt.co.kr/view/mtview.php?no=2011091114473659729&type=1&outlink=2&EVEC 초등 동창 박근혜-정몽준, 대선 앞둔 지금은?]</ref><ref>[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9416&code=113 정몽준-박근혜 ‘외나무다리’ 만날까 - 위클리경향 814호]</ref> 그 뒤, 카톨릭계 미션스쿨인를 거쳐로 진학하였으며, [[1970년]]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에 진학하여 [[1974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에 입학하였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으로 살해당하였다는 소]]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영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역할을 대행하여야 하였다. [[1975년]]부터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최태민]]이 그의 새마을 사업에 참여한 것이 후일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박근혜는 의전상의 [[대한민국 대통령의 배우자|대통령 배우자]] 권한대행으로서 아버지 [[박정희]]의 공 행사와 해외 순방 등을 수행하였고 [[육영수 저격 사건]] 이듬해에 만들어진 [[육영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가 되었다.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1994년]] [[정수장학회]] 등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정치적 발언은 삼가하며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일에 전념하다가 [[1998년]]에 [[이회창]]의 정계 입문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재단 운영 과정에서 비판이 있었고 후일 그가 [[새누리당|한나라당]] 대표나 [[2007년]] 유력 대선 주자로 나올 때마다 비판이 제기되었다.
         [[2005년]] 12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여 처리하였다. 당시 대표인 박근혜는 곧바로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조차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한나라당이 무슨 장외 투쟁이냐"라는 비아냥도 있었고, 국회 등원에 대한 여론의 압박도 심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는 장외 투쟁을 계속했고, 결국 여야는 한나라당의 장외 투쟁 3개월 만에 사학법 재개정 논의에 합의하게 된다. 박근혜 대표는 주변의 반대와 원외 투쟁에 소극적인 한나라당의 체질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재개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었다. 2004년 17대 총선의 '한나라당 천막 당사' 역시 "쇼 아니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상징물로 기억됐다.<ref>[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27709&year=2010 MB·박근혜 '세종시' 문제 왜 타협 못할까]{{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27709&year=2010 }}</ref>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에는 친이명박 계열과 친박근혜 계열의 갈등이 있었다. 한나라당 내에서 친박계 의원들의 숫자는 2008년 5월 18대 총선 직후에는 당내외를 합쳐 50여명 정도였고, 2011년 6월 비공적으로 90 ~ 1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ref>[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5182 '월박' 바람, 수도권까지 흔든다] 시사저널</ref>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를 직접적으로 도와준 [[이재오]], [[이방호]] 등이 한나라당의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상대적으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은 홀대를 받았다.
         박근혜는 [[2009년]] [[10월 31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종시는 국회가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한 약속"이라며 "세종시 문제를 개인적인 정치 신념으로 폄하해선 안 된다"고 말하였다. [[정운찬]] 총리의 면담 제안에 대해서도 "국민과의 약속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설득하고 동의를 구한다면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해야지 내게 할 일이 아니다"라고 일축하였다. "[[행정복합도시]]라는 말 속에 문화시설과 교육, 과학 등을 다 포함한 자족기능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약속을 지키고 부족하면 플러스 알파로 더 잘되게 해야지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고 지적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 세종시 수정 발언에도 불구하고 [[11월 27일]] "할 말을 이미 다 했고, 입장(원안+알파(α))에 변함이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였다.<ref>[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54434 박근혜 "세종시 원안+α 변함없다"]</ref>
         박근혜는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되었고, 이재오, 이방호는 낙선하였으며, [[친박연대]]는 지역구 6석, 전국구 8석이라는 예상 외의 높은 지지율을 달성하였다. 친박 무소속 연대도 총 12명이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박근혜는 꾸준히 친박연대 및 무소속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을 요구하였다. 친박 측과 앙금이 남아있던 [[강재섭]] 대표의 임기가 종료되고 [[박희태]] 전 의원이 대표로 부임한 뒤 마침내 친박무소속연대 소속 의원과 친박연대의 지역구 의원 전원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여 한나라당 내 친박의원 의석수는 6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의원 5명은 당명 개정, 독자 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양정례]], [[서청원]], [[김노]]은 당선무효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박근혜는 [[2010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달성군수]]로 출마했던 한나라당의 이석원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지만 이석원 후보는 무소속의 김문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박근혜는 "달성군민이 판단한 것도 존중한다"고만 입장을 밝혔다.<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상처입은`선거의 여왕 박근혜, 침묵 끝 한마디] {{웨이백|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date=20100607172404 }} 매일경제 2010년 6월 3일</ref> 차기 대선 후보로써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25.1%를 기록하는 등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ref>(http://www.ccdailynews.com/section/?knum=152755 박근혜 지지율 2.3% 하락) 충청일보 2010년 6월 3일</ref> 박근혜는 2010년 하반기부터 차기 대선 행보에 초점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20일 열린 공청회에서 복지를 화두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박근혜는 인사말을 통해 "서구 선진국들의 전통적 복지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맞춤 생활 보장형 복지 국가를 제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3860 박근혜 대권 행보 시작‥공청회 '대선출정' 방불] mbc 2010년 12월 20일</ref> 이후 12월 27일 박근혜의 대선 구상을 내놓을 '국가미래연구원'이 출범했다. 출범에는 대한민국 내 학자들과 [[이한구 (정치인)|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박근혜, 빨라진 대권 행보‥'싱크탱크' 출범] {{웨이백|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date=20130927121326 }} mbc 2010년 12월 27일</ref> 그러나 [[심재철 (1958년)|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 얘기는 감추고 무조건 복지만 잘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4333 한나라당 심재철 "박근혜 복지, 솔직하지 못해"] mbc 2010년 12월 25일</ref>
         불안한 당내외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획득하여 과반 1당을 유지하였으며 그 후 공적인 당 지도부가 출범하였지만 당내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대통령 후보 선출 방 문제로 [[김문수 (1951년)|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과 대립하였고, 결국 [[정몽준]] 대표, 이재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 속에 경선을 치렀다. 8월 중순 치뤄진 경선에서 박근혜는 압도적 지지로 승리하였다.
         국회의원 재직 중 대선 경선을 맞이하게 된 박근혜는 대선 경선 캠프 선대위원장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 '경제 민주화'의 입안자인 전 [[민주정의당]] 헌법개정위원 [[김종인]]을 임명하는 등 [[사회양극화]] 문제 해소에 적극적 의지를 보였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20628031405843] 김봉기 기자, '경제 민주화' 원조 김종인… 내달 출범 박근혜 캠프 맡는다, 조선일보, 2012.6.28.</ref> 박근혜는 재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경제력 남용을 바로잡는 데 방점을 뒀다.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긍정적 역할은 인정하자는 쪽이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820160408085] 이제훈, 재벌이 싫어하는 헌법 조항, 한겨레21,2012.8.20.</ref> [[사회양극화]] 해소가 목적인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세수확보가 중요한데 박근혜 의원은 2012년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법인세는 가능한 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야기했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6%(지방세 포함)보다 낮은 편이다. 일본과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각각 39.5%, 39.2%에 이른다.<ref name="hani.co.kr">[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42826.html] 류이근, 성연철 기자, 박근혜 "법인세 인하"…친박서도 "경제민주화와 모순", 한겨레신문, 2012.7.17.</ref> 현재 법인세는 내국세 총액 가운데 부가가치세(33.0%) 다음으로 높은 비중(28.6%)을 차지한다.<ref name="hani.co.kr"/>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법인세를 낮추겠다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에서 ‘박근혜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ref name="hani.co.kr"/> '법인세 인하와 경제민주화 간의 모순성' 및 '법인세 감소분에 따른 대체 세수 확보' 등의 논란은 대통령 선거일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2010년 7월 10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 선언하였다. 2012년 7월 5일 [[이상일]] 캠프 대변인은 오전 10시에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로 정하였다고 브리핑을 통하여 밝혔다. 이 대변인은 "각계각층 국민들이 다니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 고려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캠프명은 '국민행복캠프'로 정하였다고 이 대변인은 덧붙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7/05/0200000000AKR20120705160300001.HTML?sns 박근혜 10일 영등포 타임스퀘어서 대선출마 선언] 연합뉴스 2012년 7월 5일</ref>
         2012년 [[12월 13일]], 해당 요원은 경찰청에 임의 제출 형으로 자료를 제출하였지만<ref>노현승,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0092711 '비방 댓글' 의혹 국정원 여직원, 경찰에 자료 임의제출], 뉴스원, 2012년 12월 13일</ref>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의 휴대전화와 이동 저장장치 제출요청은 거부하였다.<ref>김동현, [http://www.yonhapnews.co.kr/vote2012/2012/12/13/2901010000AKR20121213161051004.HTML '국정원 女직원, 컴퓨터 등 증거자료 경찰에 제출(종합)], 연합뉴스 2012년 12월 13일</ref> 한편 민주통합당은 해당 조직의 실체와 업무 내용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ref>정찬,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4054 민주 "국정원 심리정보국 70여명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폴리뉴스, 2012년 12월 12일</ref>
  • 식극의 소마/에피소드 . . . . 90회 일치
         [[극의 소마]] 에피소드 목록.
         [[극의 소마/152화]]
         [[극의 소마/153화]]
         [[극의 소마/154화]]
         [[극의 소마/155화]]
         [[극의 소마/156화]]
         [[극의 소마/157화]]
         [[극의 소마/158화]]
         [[극의 소마/159화]]
         [[극의 소마/160화]]
         [[극의 소마/161화]]
         [[극의 소마/162화]]
         [[극의 소마/163화]]
         [[극의 소마/164화]]
         [[극의 소마/165화]]
         [[극의 소마/166화]]
         [[극의 소마/167화]]
         [[극의 소마/168화]]
         [[극의 소마/169화]]
         [[극의 소마/170화]]
  • 트로피코 4/건물 . . . . 87회 일치
         ||이 장엄한 성당은 특별히 트로피코의 신부들과 주교들에겐 결혼을 허락하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부유한 자든 가난한 자든 동등하게 마음의 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증권 거래소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주 시세 표시기에 쓸 무작위 숫자를 정해야 하는게 너무 귀찮지만, 전문가들은 현대적인 경제를 확립하기 위해선 반드시 증권 거래소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해외에서 건설 비용과 노동자들의 임금을 받아 건물 하나를 건설한다. 건물을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건 아니고, 외국의 제안이 들어오면 해당 제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외국 민간인들이 관리하기 때문에 운영 계획이나 임금을 수정할 수 없지만 임대료를 지불한다.
          * 언제나 맑음: 맑은 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일기 예보관은 앞으로 좋은 소만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관광 평가가 5 증가하며, 이민자들이 2만큼 더 몰려옵니다.
          * 언제나 맑은 뒤 흐림: 언제고 맑은 날이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일기 예보관은 앞으로 우천 소만을 전할 것입니다. 관광 평가가 5 감소하고, 이민자들은 2만큼 뜸하게 섬에 몰려옵니다.
          * 재활 치료: 유명한 연예인들과 부유한 관광객들의 생활방을 바꿔줍니다. 환자들의 옛 병은 낫지만, 새 병을 얻고 돌아갑니다. 오직 관광객들만이 이용할 수 있게 되지만, 수익이 150% 상승할 것입니다.
         ||지역 요리에 특화된 당입니다. 시민들은 더없이 만족해하나, 관광객들 중엔 더 고급스러운 곳을 찾는 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 리넨 탁보: 유지비용은 50% 증가하나, 서비스 질도 10% 증가합니다.
          * 해적들의 소굴: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여러분의 귀중품들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를 즐겨보세요!
          * 산지직송 해산물: 접시에 놓인 생선이 윙크 하고, 바닷가재는 당신의 손가락을 자르려고 할 때에 그 요리가 신선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서비스 질이 어선 선착장과 양장의 수만큼 상승합니다만, 늘어나는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운영비가 2배가 됩니다.
          * 비극: 비극은 시민들의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시민들을 생각에 잠기게 하거든요. 생각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독재자들에게는 금기시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방문객들이 일정 확률로 지인 진영에 들어가게 됩니다.
         ||미가들은 음이라고 하기도 힘든 수상쩍은 음보들보단 정성스레 준비된 사를 선호합니다. 이 레스토랑에선 그야말로 맛의 향연이 펼쳐지지요.
         시민들도 이 곳에서 사가 가능하며, 가정 사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 리넨 탁보: 유지비용은 50% 증가하나, 서비스 질도 10% 증가합니다.
         이 건물이 있어야만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 헬기로 물을 뿌릴수도 있지만 5,000 딸라가 옆집 멍멍이 이름은 아니잖는가. 소방관이 화재 지역으로 소방차를 타고 가서 진압하는 방이니 교통에 신경쓰는게 좋다.
         === 초등학교 ===
         ||이고슨 아이드레게 글을 가르치는 고심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메바보다 못한 IQ의 저능아이지만, 초등학교를 통해서 트로피코의 미래를 일궈나갈 수 있는 지성을 함양할 수 있습니다. 밝은 내일을 이끌어갈 아이들을 위해 길을 닦으실 것인지, 아니면 멍청한 꼬마 좀비들로 자라게 할 것인지는 각하의 몫입니다. 교육은 지루한 거라고 그 누가 그러던가요?
         초등학교는 아이들을 교육시켜 훌룡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해주며 아이들의 지성도 향상시켜줍니다.||
         === 고등학교 ===
         고등학교는 각하의 시민들을 교육해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겁니다.||
  • 유키히라 소마 . . . . 84회 일치
          * 상위 항목: [극의 소마/등장인물]
         >'''"변변찮았습니다(御粗末)!"'''[* おそまつ. 사전상 의미는 시시하다, 변변치 않다지만 여기서는 사 후에 "잘먹었습니다"에 해당하는 ご馳走様でした에 대한 답으로서 요리를 만든 사람이 말하는 "별말씀을요/변변치 않은 것이었습니다"에 해당하는 御粗末様でした(おそまつさまでした)에서 온 말이다.--근데 번역본은 죄다 '변변찮군!'으로 되어있다--]
         [극의 소마]의 주인공. VOMIC판 성우는 [오노 유우키]. TVA 성우는 [마츠오카 요시츠구].[* PV에서의 하이톤 때문에 방영 전부터 소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인기 성우를 주역으로 기용하려는 경향의 폐해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마츠오카를 비롯한 젊은 성우들이 주역으로 자주 기용되는 이유는 낮은 랭크 때문. --한마디로 저비용 고효율.--]
         붉은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으로 작은 대중당인 '유키히라'을 경영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1화에서 얼굴이 햇빛에 가려진 사진에 나왔었던 것 외에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현재 나이는 15살으로 요리 경력은 12년. 3살 때부터 부엌칼을 잡았다고 한다.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이 일생의 목표로[* 1권 시점에서 0승 489패] 그런 소마의 꿈을 눈치챈 조이치로에 의해서[* '유키히라'를 몇년간 휴업시키고 본인은 소마와 통화했을 때 '''뉴옥 맨해튼 로열 호텔 VIP 전용 리셉션 홀'''에 가서 요리하는 중이었다. 조이치로는 예전에도 세계를 돌며 요리를 했던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그럴 셈이었던 것.] 상위 3%만이 들어간다는 초일류 요리학원 토오츠키에 들어가게 된다.[* 원래 소마 본인은 고등학교에 가지않고 가게에서 요리 수련을 할 생각이였다.] 이후 고등부 편입생으로 쿄쿠세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방은 303호실. 우연히도 아버지 조이치로가 썼던 방이다.]
         주인공답게 천재적인 요리 솜씨의 소유자로 그 실력은 토오츠키 십걸조차 경계할 수준. 그만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입학 때 단상 위에서 말할 때도 "손님 앞에 서 본 적도 없는 바보들에게 질 생각은 없습니다" 라며 어그로를 광역으로 끌기도 했고, 학원 졸업생에게 진심으로 이기길 바라면서 극을 걸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아버지의 당인 '유키히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매우 깊어서 땅을 팔라는 부동산 투기꾼의 제안이나 고급 당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십걸 제9석 에이잔 에츠야의 스카웃 제의를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유키히라'를 경영하며 쌓아온 실력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여러 음들을 만들어왔던 것 덕분에 고급스럽지 않은 재료들을 이용하여서 멋진 요리를 만드는 것이 특기이며, 다급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해 위기를 해쳐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점심 피크 타임 등으로 몸에 익은 초고속 접대 및 요리, 멀티 태스킹 역시 장기. 합숙에선 무려 후라이팬을 8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다만 이따금 만드는 신작요리는 [[괴]]의 영역이며 그걸 남한테 억지로 먹이려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현재 목표는 두 가지로 하나는 물론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 또 하나는 토오츠키의 정점인 '''토오츠키 십걸 제1석'''에 올라 학생 시절의 아버지도 보지 못했던 정상의 경치를 보는 것.
         주로 요리하는 건 정집 요리이며, 다른 캐릭터들이 양으로 승부할 때도 혼자만 정집 요리로 승부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 정집 요리만 배워서 그렇다.[* 이는 아버지인 사이바가 직접 언급했다. 실제로 소마는 작업의 속도와 정확성 등은 졸업생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요리에 대한 지 수준은 매우 얕다. 조 뷔페 메뉴 대결에서 뷔페 메뉴에서 중요한 맛의 지속성과 겉보기에서 최악인 수플레 오믈렛을 선택한다거나, 113화에서 아벨이 프렌치의 기초도 모른다고 하는건 다 이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집 요리 특성상 누구든지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까 언급을 하엿듯이 어릴때부터 당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다른 학생들과 달리 손님을 대하는 법을 안다. 그 부분 때문에 엘리트뿐인 학원에서 괜히 겉돌고 있다.
         번화가의 작은 정점인 '유키히라'를 경영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1화부터 아버지에게 요리대결로 489번째 패배를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인은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 중학교를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가게에서 연습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버지인 유키히라 조이치로에 의하여 요리학원인 토오츠키로 가게 된다.
         편입시험 중에서 심사관이자 토오츠키 학원 십걸(十傑) 평의회 10위인 [[나키리 에리나]]와 만나게 되며, 유키히라의 비밀 메뉴 8번인 둔갑하는 [[후리카케]] 밥을 선보인다. 에리나 본인도 맛있다고 생각했지만 소마옆에서 심사받던 소마가 "안가고 먹길 잘했지~?" 라던가 "늬들같은 높으신 분들은 못만드는 요리도 있지" 라던가 "자 어때? 맛있지! 맛있지!" 라는으로 좀 심하게 깐죽댄다가(...) 본인의 자존심 문제도 있고 해서 에리나는 홧김에 "맛없다"라고 발언. 불합격처리 당한다.
         > "그럼─ 짤막하게 두세 마디 정도만…. 어어… 유키히라 소마라고 합니다. 이 학교에 대해선 솔직히─ '''발판으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뜻하지 않게 편입하게 됐지만 손님 앞에 서본 적도 없는 인간들에게 질 생각은 추호도 없고요. 일단 들어온 이상은 '''정점을 차지할 거니까.''' 3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시업 날, 편입생으로서 단상에 올라오게 된다. 소마는 고등부 1학년들을 상대로 대형 어그로를 끌고 다시 한 번 나키리 에리나와 대면. 중등부에서 올라온 내부 진학자에 대해 자신은 12년간 주방에 살았다면서, 자신의 가게 이름을 먹칠할 수는 없으니 에리나를 상대로 "맛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앞으로 E점[* 최하위에서 바로 위 평가등급으로 토오츠키는 A~E의 5등급과 최하위 평가 판정인 우리가 알고 있는 F에 해당하는 '불가'가 있다.]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면 강제 퇴학이라는 위기에 놓여있던 [[타도코로 메구미]]와 콤비가 되어 조 편성 시험을 치루게 된다. 다른 조원의 방해가 있었으나 벌꿀을 사용한다는 지혜를 발휘해 A점수를 받으며 통과하게 된다. 메구미는 소마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나, 이후 '''오징어 벌꿀 절임'''을 시당한다(…).
         시험이 끝나고, 쿄쿠세이 기숙사로 향하며, 기숙사 입사 테스트때해 남은 재료를 사용한 고등어 버그 정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합격하여 소마는 303호실을 배정받는다. 이때 목욕을 하기 위해 탕으로 갔다가 메구미와 서로 알몸을 보여주었다(…). 목욕 후 [[잇시키 사토시]]와 만나며 환영회에 초대받는다. 처음에는 괴짜들인 쿄쿠세이 기숙사 맴버에 당황하지만 얼마 안 가 익숙해져서는 같이 괴짜 짓을 한다(…).[* 요리를 선보인다면서 실패작 요리를 건네주었다.]
         이때 [[잇시키 사토시]]와 (극이 아닌 평범한)요리대결을 펼치게 되며 그가 '''토오츠키 학원 십걸(十傑) 평의회 7위'''의 실력자임을 알게 된다. 이때 선보인 요리는 유키히라 비밀 메뉴 20번인 연어 주먹밥 차밥을 개조해서 만든 삼치 주먹밥 차밥. 승부는 무승부로 판정된다. 다만 이때 잇시키는 제대로 실력을 내지 않은 듯 하다.[* 이부사키 슌이 그의 요리를 보고 '''본 실력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덮밥 연구회에 찾아가며 미토 이쿠미와 극을 벌인다.
         == 재학생 VS 졸업생 극 대결 ==
         메구미는 상하기 시작한 콜리플라워의 문제를 보완하려고 와인초로 데치는 방법을 썼는데, 재료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것을 칭찬은 못할망정 '''자신의 르세트(레시피)를 망가트렸다며 주저없이 퇴학'''시켜버린 것이다. 소마는 메구미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며, 재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시노미야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전 주석에서는 테스트로 보기에는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 시노미야가 작중에서 말하듯 콜리플라워는 다루기 어려운 재료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리플라워를 챙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태가 나쁜 콜리플라워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시노미야는 당황하여 이 점을 망각한 학생들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누군가가 꼭 떨어져야 하는 '상대평가'였다면 말이 되는 테스트고, 학생들의 역량을 공평하게 실험하는 '절대평가'였다면 말이 안 되는 테스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험관 재량에 따라 퇴학시킬 학생의 숫자를 0부터 무진장 많이(...)까지 고를 수 있어 보이므로, 그냥 시노미야의 성격이 더러운 걸로 해석하는 게 옳다.] 반론하나 시노미야는 '''조리장은 자신이라며 소마의 의견을 묵살. 더이상 대들면 조리장 권한으로 소마마저 퇴학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다.
         > '''"극. 극에서 당신을 꺾으면 메구미의 퇴학, 취소해줄 수 없습니까?"'''
         메구미의 얼굴을 보고 격분한 소마는 시노미야에게 '''내가 극에서 이기면 메구미의 퇴학을 없던 걸로 해달라'''며 팔에 담긴 두건을 풀어보인다. 이를 시노미야가 거절하려는 찰나, 이누이와 도지마 긴이 개입한다.
  • 김재규 . . . . 82회 일치
         ||<:> '''학력''' ||<:> [[경북대학교|경상북도중등교원양성소]] [br] [[육군사관학교]] 2기 [br] [[육군대학]] [br] [[한양대학교]] [[대학원]]||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 해방 후 안동농림고등학교,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후, 그 해, 대구농업전문학교 중등교원양성소[* 이 당시에는 2년제 전문학교였다. 해방 후 대구농과대학을 거쳐 1951년 대구사범학교 등과 통합하여 경북대학교로 개교한다.]에 입학하여 1945년 수료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중등교원의 수가 부족한데 반해, 조선 내에는 고등사범학교가 없었다. 문과의 경우 [[경성제국대학]] 졸업자 등으로 수요를 채울 수 있었지만, 이공계 쪽의 교사가 부족하여 일제는 각종 전문학교에 2년제 '교원양성소' 과정을 도입하여 교사인력을 충원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이 징집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군 해군]]의 [[카미카제]] 양성을 위한 예과 후보생으로 차출되었으며 카미카제의 생존률이 0%라는것을 감안해보았을때 만약 일본이 빨리 몰락하지 않았다면 김재규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방 후 김천중학교[* 現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1946년 12월 졸업하였는데, 졸업당시성적은 196명 중 14등으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 대리로 복무 중에 군경체육대회 때 [[미 육군]]과 충돌을 일으킨 죄로 면관당한 후 잠시 낙향하여 김천중학교와 대륜중학교[* 現 [[대륜중학교]]&[[대륜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복직되어 22연대 정보주임으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의 공을 인정받아 3사단 22 연대 제 2 대대장으로 부임하는데, 공교롭게도 부임일에 6.25 사변이 발발한다. 김재규는 2대대를 지휘하며 의정부·대구·영덕 지구의 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 혈전을 벌였고, 6.25의 전투 중 치열하기로 손꼽혔던 황간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국군과 연합군의 북진에 선봉에 서서 함경남도의 땅까지 밟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어 남으로 후퇴하게 되고 이후 여수 제 2 보충연대장으로 부임한다.[* 참고로 박정희는 6.25때 후방에서 보급병과 장교로 근무하느라 전공은 커녕 북한군과 마주친 적조차 없다.] 1970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7년에 [[육군대학]] 부총장을 지낸 후 방첩부대장, 육군보안사령관, [[제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박정희]]와는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 동기생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고향이 같고(경북 구미) 군에 몸담기 전에 교사를 지낸 경력이 같았다. 이후 1954년 9월경 김재규가 5사단 36연대장으로 근무할 때 박정희가 사단장으로 부임하여 상관이 되면서 재회하게 된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우려해서 [[육군참모총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에는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만 앉혔고, 정말 유능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육군 장군은 [[사단장]], [[군단장]] 수준에서 전역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김종오]], [[박병권]], [[민기]], [[김용배]], [[김계원]], [[이세호]], [[임충]] 등은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들이 아니다. 다만, 12.12 군사반란 때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노재현]]이 보여준 추태가 워낙 커서 앞의 인물들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까이는 경우가 많다.] 김재규도 이런 케이스로, 월남전의 영웅인 [[채명신]] 장군 또한 [[대장(계급)|대장]]을 못 달고 중장에서 전역해야 했다. 이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 건설부 장관을 거쳐 1976년 12월에 제8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위 항소이유서에서 보다시피 '''현재 [[최순실]]이 [[박근혜]]와 함께 기업들에게서 돈을 뜯어낸 것과 똑같은 방'''으로 40년전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박근혜와 함께 부정한 방법으로 여기저기서 돋을 뜯어내었다. 1970년대 아버지가 했던 사기행각을 딸년이 그대로 2016년까지 써먹은 셈이다. 당연히 [[최태민]]의 범죄행각을 비판하는 민원이 빗발쳤으나,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에게 직언을 할 용기를 가진 관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소수만이 직언을 했다 핍박받는 실정이었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경호원들을 다 죽이고 [[확인사살]]까지 했으나 박상범은 기적적으로 총알이 치명적 부위를 피해간 데다 부상입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찧어 기절해 죽은 것처럼 보였고, 사하던 경호원들을 중정 요원들이 습격하는 과정에서 경호원들과 같이 사하던 중정 직원들[* 포섭해 두지 않아 내막을 몰랐던 이들]인 운전수와 [[요리사]]가 자신들의 총에 다치는 바람에 확인사살에 소극적이어서 죽음을 면했다.
         특히 박정희를 암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평소 차지철은 대통령 경호라는 미명으로 온갖 월권행위와 [[경거망동]]을 서슴치 않았고, 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주동자 1순위는 단연 차지철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실제로 사건이 터진 후 청와대로 들어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유고 소을 들은 김치열 당시 법무장관은 "그 새끼가 까불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군!!" 하고 호통을 쳤는데, 그 새끼는 물론 차지철을 지칭한 것이었다.
          * ② 김재규가 [[박정희]]를 순전히 우발적으로 저격했으므로 거사 후 사태장악에 대한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설. 사건 수사결과에 의하면 거사 후 김재규는 [[정승화]]와 승용차에 동행하여 사건현장을 떠나 이동하던 중,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에게 "정보부와 육본 중 어디로 가는게 좋겠느냐"고 묻자 정승화가 말을 가로채어 "육군본부로 가는게 좋겠다"고 제의하였고, 김재규는 아무 생각 없이 운전기사에게 육군본부 행을 지시했다. 이때 정승화는 안가 본관(연회장은 나동)에서 사를 하고 있다가 사건을 저지른 김재규와 차에 동승한 것이었는데, 그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가 육본으로 갈 때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박흥주 대령의 구두를 빌려 신을 정도로 우왕좌왕했던 행동을 볼 때, 이 견해도 설득력은 있다.
         당시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소수의견으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내란목적이 아니라 자연인 박정희를 살해한 단순살인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형사3부 판사인 양병호와 서윤홍은 '''[[내란]] 목적이라기에는 암살후 김재규의 움직임이 너무나 어설펐기 때문에 내란을 목적하고 박정희를 죽인 게 아니고 그저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본 것'''이며 최종판결 당시 민윤기 등 6명의 판사들이 내란죄 불성립 의견을 냈다. 이로 인해 소수 의견을 낸 판사 6명은 신군부의 보복으로 전부 법복을 벗어야 했으며 특히 양병호는 보안사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였다. 훗날 양병호는 김재규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박정희를 사살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당시 판결문은 비공개 처리되어 묻혀버렸으나[* 80도306 판결 참조. 내란죄에 있어서 목적에 대한 인의 정도는 미필적 인, 즉 자신의 행위가 범죄발생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하고 있는 상태만 되도 행위자가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인해 구성요건이 충족된다. 즉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일 때 국헌문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목적은 없었으나, 대통령의 사망이 국헌문란을 가져올 것을 미필적이나마 인하고 있었고 그것으로도 국헌문란에 대한 목적의 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소리다.], 훗날 공개되면서 당시 몇몇 재판관들의 용기있는 소수의견들이 밝혀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11034|한홍구,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 참조]].
         다른 한편으로는 김재규를 비판하는 재야/민주운동가들은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동기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의한 기여도 및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시도 “박정희 정권은 당시 [[부마항쟁]]을 비롯한 일련의 민중저항을 통해 어차피 붕괴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며 “김재규의 행위가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홍구는 하단의 긍정론에 서술되어 있듯 2013년을 기점으로 김재규에 대한 견해가 바뀌었다.] 진보적 사회운동가 백기완도 “당시는 박정희 유신독재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항쟁이 거셌고, 박정희 내부 권력의 모순이 더 격화되어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조그마한 사건일 뿐이며 민주화운동의 본체, 기본적인 흐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라고 주장하였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1784.html|출처]]
         김재규는 정권 내에서 온건파였고, 당시 [[부마항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때 [[박정희]]는 먼저 이승만과 곽영주 운운하며 총기사용을 지시했고 [[차지철]]도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거론하며 아부를 하여 무력사용을 부추겼다. 결국 대통령인 박정희가 직접 유혈진압을 지시한 이상, 김재규가 [[10.26 사건]]으로 박정희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부마항쟁 때 [[5.18 민주화운동]]이나 [[천안문 6.4 항쟁]]처럼 사격명령이 동반된 진압이나 심각한 경우 차지철 말대로 킬링필드급 학살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차지철이 킬링필드같은 개소리를 지껄여도 박정희가 저지하지 않은 점은 김재규나 차지철 입장에서는 박정희가 학살을 묵인하겠다는 암시로 해석될 수 있다. [[김재규/항소이유 보충서|김재규의 항소이유 보충서]]를 보면, 김재규는 부마항쟁에 대해서 대단히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었고 자칫하다간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기라고 판단했다. 또한 박정희의 곽영주&총기 사용과 [[차지철]]의 [[킬링필드]] 운운하는 발언에 심각한 문제의을 느끼고 있었음이 나타난다.
         또한 당시 [[한국]]과 [[미국]]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박정희]]가 미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경진압을 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37787|서울에도 계엄을 내리고 군을 투입할 계획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유혈사태로 번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재규 역시 박정희 사망 이후 비상계엄령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5개월 한정이라는 전재를 달았으며 부마민주항쟁 때도 유혈 진압을 비판했던 입장이기 때문에 강경한 방으로 막가파 운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군부의 시각을 돌리기 위해 그럴싸한 핑계를 대려고 했다가 뽀록이 났다는 견해다.
         >김재규의 거사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지만, 여성 연예인들이 저런 으로 대통령의 술자리에 불려가는 일만큼은 확실히 차단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김재규의 구명을 호소하면서 우리의 민주화가 김재규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민주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그 여성 연예인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에는 또다른 10·26 사건이 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쏜 날이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70년을 두고 2개의 10·26 사건이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군사독재가 왔는데,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이토의 제삿날과 군사독재의 상징인 박정희의 제삿날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중략)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득세한 나라에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구]]로 상징되는 보수우익 의사의 계보는 대가 끊어졌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으면서도 박정희의 명예는 끝까지 지켜주고자 했던 김재규는 대가 끊겼던 한국 보수우익의 계보학에서 돌출한 마지막 대륙형 인간이었다.
         가정이긴 하지만, 박정희가 살아있었다면 3저 호황을 통한 경제발전, [[핵무기]] 개발 등을 통해 [[리콴유]] 처럼 박씨 일가의 세습독재 체제를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다. 육사를 나와 장교가 된 박지만은 군부를 장악하여 [[리셴룽]]처럼 젊은 나이에 장성을 지내고 나서 정계로 들어와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고 박근혜는 최씨 일가의 도움으로 문화, 여성, 종교계를 장악했을 것이다. 반면, 박정희의 무리한 국가주도 경제정책과 국민들에 대한 과도한 통제, 오랜 독재정치로 인한 선진국들과의 외교갈등 등의 요소들을 고려해보면 과연 박정희가 80년대의 격변기를 유연히 대처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당시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미국정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도 아니었으며 영국, 프랑스 같은 강대국도 아니었기에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하였다고 하여 미국 등의 강대국들이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박정희의 오랜 독재체제를 못마땅해하던 카터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봤을때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했을 경우 국제적인 경제제재가 가해져 외교뿐만아니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말 더 간단한 예를 들어 반박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북한]]은 주민들이 다 멍청이라 3대 독재가 이루어졌나?''' 박정희는 헌정사상 독재자 중 가장 군을 잘 장악한 인물이었다. 박정희는 공무원, 군인 등을 다룰 때 소위 '금일봉 정치'라는 것을 행하였다. 이는 누군가에게 포상을 줄 때, 훈장이나 공적 상금 등의 공적 포상을 주지 않고, 지극히 사적인 포상인 '금일봉'을 전달하여 포상을 주는 사람이 바로 '박정희'라는 것을 부각, 충성심을 유도하는 정치행위였다. 이는 조선시대에 국왕이 [[내탕금]]을 가지고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에게 포상을 주는 것과 동일한 중세 수준의 정치행위였지만 효과는 매우 굉장했다. 이런 금일봉 정치는 상당한 비자금을 필요로 해서 박정희 휘하 3,4공 실세들은 정치자금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특히 출처나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중앙정보부]]의 돈이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활용되었고, 관행이 되었다.''' 당장 2010년대에만 해도 대통령이 [[국정원]]의 돈을 개인 쌈짓돈 마냥 써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터졌는데, 이는 박정희 당시,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돈을 갖다 바치던 '관례'가 고스란히 유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노무현]], [[김대중]]의 경우 특수활동비에 대한 사적유용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두 대통령과 달리 박정희 이후의 '''나머지 대통령은 다 받았다.''']
         김재규가 10.26을 일으킨 것은 결국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권력투쟁' 속에서 벌인것 이라는 해석이 있다. 2004년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도 김재규의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92551|출처]] 김재규는 자기보다 새파랗게 젊고 군대 계급도 낮은 차지철에게 면박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수모를 당했고 이에 대해서 격분했다는 증언이 주변 인물들로부터 흘러나온 바 있다.[* 대표적으로 김재규는 그가 교사 시절 제자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가까웠는데, 10.26이 터지기 전 [[이만섭]]과의 사 자리에서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차지철]]이 때문에 골치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031802395|출처1]] ] [[http://news.donga.com/3/all/20130813/56988552/1|출처]] 이런 점들로 비추어 보았을 때 김재규가 민주화 운운하는 것도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건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그가 차지철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비해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온건성향으로 비쳐질 따름일뿐, 그 역시도 '''결국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28100§ion=sectio|출처]]
         국가원수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을 통해서 급진적 권력 교체를 시도한다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치밀한 계획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10.26이 역사에 긍정적 영향을 주려고 한 계획이었다면, 단순히 [[박정희]]를 암살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박정희를 암살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이와 관계된 사람들과 철저하게 입을 맞추었어야 했다. 그리고 난 이후 정권교체 및 민주화까지 질서있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진정으로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중대한 일을 저지르는 입장에서 그는 너무나도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다.
         김재규의 "의사(義士)"로서의 [[재평가 받은 것들/인물|재평가]]는 그를 옹호하는 소수 사람들이 그 명맥을 이어왔으나 당시 대중들에게는 대부분 헛소리로 취급당했다. [[10.26 사태]]도 객관적으로 볼 때 사상 초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독재 국가에서 [[독재자]]가 살해당한 사례는 많이 있지만 집권 도중 최측근인 부하에게, 그것도 권력 찬탈 목적의 암살이 아닌 대놓고 너죽고 나죽자는 으로 살해한 사례는 많지 않다.] 이상할 정도로 언급 자체가 많지 않았다. 본격적인 재평가 흐름 이전 그에 대한 이미지는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자 홧김에 주인을 공격한 독재정권 권력자" 정도에 불과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후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인터넷 상에선 김재규 의사라고 불리기도 하며 그에 대한 드립과 진지한 논쟁이 지속해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주 갤러리]]는 '10·26 의거 명예회복 추진위’라는 조직까지 꾸리고 재평가에 앞장서고 있다. 여기에 일찍이 2013년 김재규와 10.26 사건에 대한 재평가가 담긴 평전인 문영심 작가[* [[SBS]] 환경 다큐멘터리 '물은 생명이다' 의 원고 집필로 유명, 이외에 2016년에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에 대한 재고찰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이카로스의 감옥>>을 집필하기도 했다.]의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역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부상한 대중의 김재규 재평가 여론과 맞물려 빛을 발하며 배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 영천시 . . . . 82회 일치
         ||<-2><bgcolor=#4C0B5F> {{{#FFFFFF '''링크'''}}} ||<bgcolor=#E3CEF6> [[http://www.yc.go.kr/|영천시 공 홈페이지]][br][[https://twitter.com/ycstar|[[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영천시 공 트위터]][br][[[https://www.facebook.com/star01000/|[[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영천시 공 페이스북]] ||
         시화는 장미, 시조는 비둘기, 시목은 은행나무이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으로 '''Star''' '''YeongCheon'''을 내세우고 있다. 영천에 보현산천문대가 있기 때문이다.--육군3사관학교에서 양성해냈던 장성급 장교의 계급장에 있는 별이 아니다-- 그리고 S-sound, T-Technology, A-art, R-river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 --대구를 제치고[* 사실 대구는 가로수길 조성 등 적극적인 수목정책에 힘입어 예전만큼의 혹독한 더위를 자랑(?)하진 않고 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덥긴 하다.--]-- 더위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심지어 2016년 8월 13일 최고기온 '''39.6도'''[* 기상관측소가 있는 망정동 쪽은 원래 시원한편인데도 이정도라면 시내인 완산동이나 인구가 많은 야사동이나 아파트가 밀집해있는 망정동 쪽은 40도를 넘겼을 수도 있다.]를 기록하면서 '''해방 이후 공적으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다만 1년만인 2017년 7월 13일 '''[[경주시]]에 39.7도로 역전당했다.''' 인근의 경주, 포항, 울산, 경산과 함께 최근 '''[[대프리카]]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지역특성으로 [[경상북도]] 동남부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경부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철도]]([[대구선]], [[중앙선]]), [[국도]]([[4번 국도]], [[28번 국도]], [[35번 국도]])가 통과하여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다. 그러나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실제 차량과 철도는 그냥 지나쳐 가기만 할 뿐이라 정작 도시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나마 과거에는 구미 - 대구 - 포항 으로 이어지던 국도를 이용할 때 반드시 영천을 통과해야 했지만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위로는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 아래로는 [[경부고속도로]]라는 완벽한 육지의 섬으로 탈바꿈...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나서 국도 주변의 기사당과 휴게소들 태반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상주영천고속도로]]도 열렸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인구에 대비해서도 절대적인 규모로 봐서도 5일장이 굉장히 크며 아직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덕에 시장으로의 출근길이나 시장을 통과하는 출근길이나, 성남여중•여고를 제외한 시내 주요 중•고등학교의 등교길은 평소보다 지각할 확률이 배로 늘어난다.][* 특히 [[영천IC]] 근처 가와인아파트쪽에서 오는 버스는 원래 등교길이나 출근길이 오래걸려 2,3분씩 늦기 마련인데, 장날은 지각하는날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런사정을 알고 학교선생님들이 넉넉히 10분내외로 봐주신다.]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품의 도매 거래활발하며 이를 통한 한약유통이 옛날부터 유명해 매년 한약축제도 벌인다.[* 한약은 생산량도많지만, 유통량이 조금 더많은데 큰 한약시장이 있기때문이다. 대구약령시장보다 더크며, 전국 유통량의 30%한약재중에 3분에1이 영천 것이라고 보면된다.] 내륙임에도 상어고기인 [[돔배기]]의 전국 물량 중 50%가 영천에서 팔린다. [[대구광역시|대구]]보다 높은 기온과 적게 오는 비로 포도를 많이 키워 '''전국 포도 생산량과 재배량 모두 1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똑같이 포도가 유명한 [[김천시]]는 생산량과 재배량이 2위이다.][* [[금호읍]]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미국으로 수출도 한다.'''] 이 때문인지 21세기 초부터 한약재 대신 포도를 시에서 밀어주며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별빛포도' 라는 자체 브랜드도 존재.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영천 포도는 53로 등록되어있다. 비는 적게 와도 수리시설이 발달한데다 전국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활용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유명하며, 우수 특산물에 '별빛촌'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영화관은 바로 옆동네 [[경산시]]의 읍단위인 [[하양읍]]에도 있는데[* 물론 하양읍은 대학교가 밀집해있어 학생들이 많은 탓이기도 하고 인구 2만 8천명의 대형읍인데다 진량읍과 함께 시내와는 거리가 재법 되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영천'''시'''인데도 '''하나도 없다'''. 물론 1960~70년대에 아카데미극장 과 영천호돌이극장 2곳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90년대 경영난으로 폐업하게되었다.(...) 그러나 2017년 영천공설시장에 영화관이 생겼다. 그래서 영천시민들은 주로 영천의 몇안되는--유일한-- 문화시설중 하나인 영천시민회관에서 상영해주는 철지난 영화를 보거나 극장이 있는 근처 [[대구광역시]]나 [[경산시]]에 있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이런 상황이 꽤나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2014년에 시민회관옆에서 영천중학교 근처[* 영천중학교는 참고로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하지만 시립도서관이 원래 있던 곳에서는 많이 떨어진 곳은 아니다.]로 이전한 시립도서관에서 대출증으로 책을 대출해주고 한번씩 시청각실이나 강의실에서 공연이나 수업을 한번씩 하는 정도.
         그나마 이마트[*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맞은 편에 있다.]가 있다는게 위안이다.....~~그 이마트도 잘 안간다~~[* 주로 평일이나 대구의 대형마트 휴일날을 제외하면 인근의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에 있는 반야월 이마트로 많이 가는 편이다. [[신서혁신도시]] 코스트코가 2018년 3월 개점하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혁신도시 코스트코는 개장 한달 전부터 망정동의 창신아파트근처에서 회원가입까지 받았다.]]
         유도대회와 탁구, 검도, [[세팍타크로]], 수영대회 등의 각종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여 침체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대구대학교]] 총장기 전국고교[[검도]]선수권대회는 2011년부터 영천에서 계속 개최하고 있는데 [[대구MBC]]에서도 매년 중계하고 있다.
         === 초등학교 ===
         ||순번||<:>학교명||<:>주소||
         ||1||영천초등학교|| 천문로 253 ||
         ||2||영천중앙초등학교|| 조양길 71 ||
         ||3||영천동부초등학교|| 호국로 209 ||
         ||4||영화초등학교|| 영화새싹길 22 ||
         ||5||포은초등학교|| 망정4길 72 ||
         ||6||청통초등학교|| 청통면 청통초등길 43 ||
         ||7||신녕초등학교|| 신녕면 큰골길 9 ||
         ||8||화산초등학교|| 화산면 장수로 942-9 ||
         ||9||자천초등학교|| 화북면 화북길 75 ||
  • 송병구 . . . . 80회 일치
         10-11시즌 1라운드에서 송병구는 승보다 패가 많을 정도로 부진에 빠졌다. 당시 송병구는 조금씩 하락세를 타는 추세였으나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송병구는 회복세를 보였다. 승수를 차츰차츰 쌓아나갔고 팀의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굳혀 나갔다. 2라운드와 비슷한 시기 개인리그에서도 송병구는 상승세를 타는 분위기였다. 3라운드 위너스리그서는 10-11시즌 MBC게임과의 경기에서 첫 역올킬을 달성하였고 본인의 첫 공전 올킬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는 화승OZ와의 경기에서 팀의 에이스 이제동을 꺾으며 3킬을 달성하며 프로리그 8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4라운드에 접어들면서 다시 패가 많아지게 되었다. 근근히 승리를 쌓는 송병구였지만 마침내 시즌 막판에 접어들면서 연패를 겪었고 택리쌍에 비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0-11시즌에서 40승을 기록하며 본인의 첫 프로리그 40승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14년 11월 13일 플레잉코치로의 전향을 공 발표했다.
         송병구는 택뱅리쌍중 김택용선수에게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이며 공전에 15:7로 크게 앞서고 있으며 비공전까지 포함해도 19:17로 앞서고 있다. 하지만 매번 결승 경기에 접전 끝에 패배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쪽은 김택용이었고 큰 경기에 약한 송병구는 우승 기부천사라는 다소 굴욕적인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 송병구 선수는 김택용 선수에게 공전 기준으로 7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다. 김택용 선수의 은퇴로 이기록은 불변이다.
         대 토스전에 굉장히 강한 이제동에게 송병구는10:9로 (공전) 앞서갈 정도로 이제동에게 강했지만 다전제에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종병기 이영호와의 상대전적은 공전만으론 11:10으로 앞서나 비공전까지 합치면 13:16으로 밀린다. 두 선수는 개인리그에서 자주 만났는데, [[다음 스타리그 2007]], [[에버 스타리그 2007]]에서는 모두 송병구가 승리했지만,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서의 이영호의 우승을 시작으로 이영호의 시대를 알리면서 테란전에 정말 강한 송병구마저 본좌 모드로 돌입한 이영호한테는 역부족이었다. 계속 만나도 패배가 훨씬 많았지만, 이긴 적도 몇번 있다.
         송병구선수는 정명훈선수와 인연이 깊은 편이다. 송병구가 만년2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우승했을때의 상대는 정명훈이였으며 반대로 정명훈도 2인자의 꼬리표를 떼고 우승했을때의 상대는 송병구였다. 공전 10승 8패로 조금 앞서있다.
         뛰어난 테란전 실력을 선보이는 송병구는 여러 테란 선수들에게 강세를 보이는데, 그중에는 한동욱이 있다. 상대전적 공전만으로는 3:0으로 강세. 비공전까지 합치면 5:0으로 더 강세다. 한동욱이 은퇴하면서 이제 둘은 더이상 만날 일이 없다.
         송병구만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던 염보성은 2008년 9월 6일 신한은행 올스타전경기에서 마침내 자신의 천적 송병구를 물리치며 승리소감으로 "엄마 나 병구형 이겼어!" 라고 인터뷰하며 그동안의 한을 조금은 씻어낼 수 있었다.<ref>실제 인터뷰에서 말한게아니라 채팅으로 말했다</ref> 그 경기는 송병구와의 천적관계를 조금은 극복하는 발판이 되면서 이후 계속된 대결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게 됐다. 하지만 상대전적은 공전에서 14:6, 비공전 포함 전적으로는 18:7로 여전히 송병구가 크게 이기고 있다. 현재 염보성은 은퇴를 했고 둘의 대결은 볼 수 없게 됐다.
         은퇴한 박지수에게는 크게 앞서 있다. 두선수는 공전에서는 9차례, 비공전까지 합쳐서는 11차례 만났는데, 프로리그에서만 1차례를 만났고 나머지 공전 8번 및 비공전까지 합쳐서 10번은 개인리그 및 비공전에서만 만났다. 상대전적에서 공전만으로는 7:2, 비공전까지 합치면 9:2로 앞서 있는데, 박지수가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와서 국내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서, 송병구의 해외대회가 아니고서는 맞설 기회가 없다. 따라서 전적 변화 가능성은 있으나 힘들어 보인다.
         함께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이성은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인다. 프로리그에서는 한차례만 만났고, 나머지 8번은 개인리그와 비공전의 전적인데, 상대전적 공전만으로 6:2, 비공전까지 합쳐서 7:5로 앞서 있다. 여담으로 비공전에서 맞붙었을 때 경기는 올스타전이었는데, 이성은은 저그로 맞붙었었고, 송병구는 주종인 토스였다. 그 후 스타리그 2012 시즌2 예선 4강에서는 이성은에 1:2로 패했다. 참고로 스타1에서 테란이 주종인 이성은은 스타2에서는 프로토스다. 이성은이 은퇴해서 이 전적은 그대로 이어진다.
         구성훈과의 전적은 공전만으로 3:5로 밀려 있다. 역대 프로토스 선수중 테란을 가장 잘 잡았던 송병구였으나 전상욱과 구성훈에게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송병구 선수는 박성균선수에게 크게 앞서있다. 공전만으론 6:2, 비공전까지 합치면 7:4로 앞서고 있다.
         * 2008년 4월 6일 TG삼보-인텔 클래 특별전 4강 A조 3경기 박성균 승
         * 2008년 4월 6일 TG삼보-인텔 클래 특별전 4강 A조 2경기 송병구 승
         * 2008년 4월 6일 TG삼보-인텔 클래 특별전 4강 A조 1경기 박성균 승
         투신 박성준은 프로토스전이 꽤나 강력한데, 여러 프로토스 선수들을 상대로 강세였고, 송병구를 상대로도 꽤 강세였다. 상대전적은 공전만으로는 2:5로 열세. 그러나 비공전까지 합치면 7:6으로 우세하다. 비공전만 보면 송병구가 5:1로 우세. 박성준이 스타2로 전향하면서 이제 두선수는 더이상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았으나, e스포츠가 스타2로 종목 전환을 하면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생겼다.
         은퇴한 임동혁과의 전적은 공전만으로는 2:2 동률, 비공전까지 합치면 4:2 강세다. 임동혁은 2009년 10월 은퇴해서 더이상은 맞붙을 일이 없다.
         * 2008년 11월 23일 TG삼보-인텔 클래 시즌2 32강 1경기 송병구 승
         * 2008년 11월 23일 TG삼보-인텔 클래 시즌2 32강 2경기 송병구 승
         신대근을 상대로도 강세인데, 4:1로 앞선다. 허영무는 그러나 공전만으로는 1:4, 비공전까지 합치면 1:5로 밀려 있는데(허영무는 최근에 신대근을 때려잡았다.), 특이한 점은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2]] 당시 1라운드 경기에서 같은 날 신대근이 두 프로토스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치렀는데, 송병구는 신대근에 승리하면서 3:0이 됐지만, 허영무는 신대근에 패하면서 공전만에서는 1:3, 비공전까진 1:4의 전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신대근과의 전적중에 비공전 전적은 없다. 참고로 송병구는 본래 신대근에 무패였으나, 2013년 1월에 처음으로 패했다. 그러나 2013년 4월에 다시 승리했다.
  • 마재윤 . . . . 79회 일치
         수어까지 붙으며 배틀넷 에서도 저그는 사기 종족이라 불리며 득세하게 된 계기가 된다.
         로스트사가 MSL 2009 8강에서 김명운에게 3:1로 패하며 이후의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시즌 중 이성은과 김택용을 잡아내면서 천적 이미지는 어느정도 불시키는데 성공한다.
         2010년 3월 프로리그 로스터에서 말소되며 사실상 팀 전력에서 배제되었던 마재윤은 4월 프로게이머 승부조작 의혹이 일면서 선수 생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많은 네티즌은 그가 유난히 전성기 이후인 2007년부터 빠른 추락을 거듭했다는 점, 또한 비슷한 시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작스런 졸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무엇보다 포모스 측에서 승부조작 의혹 기사에 올린 흑색 처리된 사진이 마재윤의 사진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의심하였다. 이에 마재윤은 자신의 승부조작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고, CJ 엔투스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승부조작을 의심하지 말 것을 공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5월 검찰의 수사 결과 마 모 프로게이머가 원 모 프로게이머와 함께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을 공 선언했는데, 프로게이머 중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 하나 뿐인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승부조작 혐의가 있음이 확실시되었다. CJ 엔투스는 검찰 발표 하루 전 마재윤을 선수 명단에서 제명했고, 마재윤을 임의 탈퇴 처리했음을 기사를 통해 밝혔다. 마재윤은 승부조작에 연루된 다른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공판이 진행 되었고, 6월 7일 케스파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영구제명을 당하여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ref>[http://esports.dailygame.co.kr/news/view.daily?idx=27900 불법 베팅 가담 프로게이머 11명 영구제명]</ref>
         마재윤은 집행유예 기간이던 2011년 6월부터 아프리카 개인방송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모습을 방송하였다. 이 소을 전해들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게임단에서는 즉각 방송을 중지하라 했지만, 마재윤은 이에 신경쓰지않고 계속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다. 승부조작으로 인해 영구제명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방송을 진행하여, 많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팬들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2012년 3월에는 시간당 돈을 받고 스타크래프트를 강의하겠다는 게시물을 작성하였다. 또한 자신에게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사용자는 강제로 방송국에서 퇴출시키며, 금칙어까지 만들어 아예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였다. 2013년 2월 자신을 비방한 네티즌들을 다수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범죄자라는 타이틀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한 시청자 수의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로 모든 금칙어와 제한을 해제하고 스스로 조작을 컨셉으로 한 방송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아래 기록들은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KeSPA의 공 기록에서 모두 삭제되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결승전에서 만나 마재윤이 3:1로 이기고 본좌에 등극하게 되는, 본좌 검증의 마지막 상대였다. MBC Movies 팀리그 결승전에서 한번 패하였으나 그 후 2007년 2월까지 거의 마재윤이 전승하며 상대전적이 한때 비공전을 포함해 11:3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12월1일 펼쳐진 3회 슈퍼파이트에서 마재윤이 [[이윤열]]을 3대1로 잡아내며 한 발 먼저 앞서간 바 있고, 다음해 2월 24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결승전에서도 마재윤이 이윤열을 3대1로 잡아냈다. 그러나 이후 신한은행 마스터즈 결승전에서 역으로 이윤열이 3:1로 이긴데다가 마재윤이 슬럼프의 늪에 빠지면서 상대전적의 폭도 대단히 좁아지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마재윤은 [[에버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서 2연패로 탈락하면서 오프라인 예선으로 가게 되었다. 다시 2009년 헤리티지 리그에서 풀리그때 1번 이기고 결승에서 2:1로 우승하면서 두 선수간의 상대전적은 공전만으로는 5:5이나, 비공전을 포함하면 20:11로 마재윤이 우세하다.
         이미 마재윤은 [[MBC게임 스타리그|MSL]] 우승으로 유명해지기 이전부터 최연성의 천적이었다. 최연성은 첫 맞대결인 WEF 2005 결승에서도 2:0으로 완패했으며, CYON배 [[MBC게임 스타리그|MSL]] 승자조 4강에서도 2:0으로 완패를 당하고 패자조로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비공전을 포함한 상대 전적 (WEF는 비공전으로 침)에서 4:0로 뒤쳐지던 최연성은 [[2005년]] LG Cyon 배 [[MBC게임 스타리그|MSL]] 패자조 결승에서 마재윤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면서 패배, 결국 3:0으로 전패하며 결승전 진출에 실패하고 전적도 7:0으로 벌어졌다.
         당시 마재윤과 최연성의 경기는 팬들에게서 "마괴록"이라 부르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상대 전적은 비공전을 포함해 11전 8승 3패인데, 비공 경기를 제외한 공 경기에서는 6전 6승 0패로 마재윤이 모두 승리하였다.
         2009년 1월 15일, 로스트사가 MSL 개막전에서는 천적 [[김택용]]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이로써 김택용과의 상대전적은 3승 12패(마재윤 기준)가 되었다. 또한 얼마전 치러진 올스타 종족 최강전에서 마재윤이 송병구를 극적인 역전승으로 잡고 그 이어 만난 김택용까지 잡아내며 상대전적을 비공전까지 포함해 12:4까지 따라잡았다. 그러나 12월 3일 [[NATE MSL 2009]] F조 패자전에서 다시 만난 김택용이 마재윤을 격파하면서 상대전적이 다시 공전만으로는 6:2 비공전을 포함해 13:4로 크게 벌어졌다.
         김명운은 마재윤을 상대로 공전만으로는 4연승, 비공 포함 8연승을 달성했다.
         [[송병구]]와의 첫만남은 비공전인 [[CYON MSL 2005]] 3차 챌린지 예선 D조 결승으로 이때 1:2로 패배, [[WCG 2005]] 1차예선 9조 4강에서도 0:2 셧아웃, 이어 공전에서의 첫만남은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플레이오프 삼성전자전 7세트였는데 여기선 송병구에게 패했다. 하지만,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삼성전자전 5세트에선 승리했다. 이어 이듬해 [[곰TV MSL 시즌2]] 16강 D조 경기에서 다시 만났는데, 마재윤이 2:0으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했다. 이어 비공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올스타전 열정팀전 7세트에서 다시 마재윤 승리, [[곰TV MSL 시즌3]] 16강 D조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때는 두 번째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끝내 마재윤이 2:1로 승리하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듬해 여름 비공전인 2008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1:2 패배, 그해 겨울 역시 비공전인 [[IEF 2008]] 8강 A조에서는 0:3 셧아웃 패배, 역시 비공전인 올스타 종족 최강전 프로토스전 6세트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상대전적 공전만으로는 5:2로 우세, 비공전까지 합치면 12:8로 더 강세.
         [[윤용태]]와의 첫만남은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한빛전 2세트였는데, 여기서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한빛전 5세트에서 또다시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비공전인 [[WCG 2007]] 최종 대표선발전 3, 4위전에서 2:0 셧아웃시키며 본선에 진출했고, [[곰TV MSL 시즌3]] 8강 B조 경기에서 3:1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2라운드 한빛전 1세트에선 패배하였다. 다시 비공전인 [[WCG 2008]] 대표선발전 24강에서 1:2 패배 탈락, [[TG삼보-인텔 클래 시즌2]] 32강에서 1:2 탈락, 상대전적은 공전만으로는 5:2, 비공전까지 합쳐서 9:6으로 우세.
         [[이제동]]과의 전적은 공전만으로는 3:3 무승부, 비공전까지 따지면 4:5 약간 열세. 첫만남은 비공전이었던 스타리그 24강 진출전 예선 M조 결승으로 이제동이 2:1 승리, 공전에서의 첫 만남은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C조 승자전으로 이때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곰TV MSL 시즌1]] 16강 패자전 1경기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르까프전 2세트에서 패하면서 2전전승이 끊겼다. 이어 [[박카스 스타리그 2008]] 16강 A조 1경기에서도 패했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3라운드 위너스리그 결승전 화승전 3세트까지 패하면서 이제동전 3연패를 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화승전 2세트에서 승리하면서 이제동전 3연패를 끊었다.
         테란전의 최종병기 [[이영호 (1992년)|이영호]]에게는 매우 약했다. 첫만남은 [[다음 스타리그 2007]] 16강 A조 3경기로 여기선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2007 2차 듀얼토너먼트 C조 승자전에서는 이영호에 패했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KTF전 1세트에서도 패했으며, [[에버 스타리그 2007]] 16강 D조 5경기에서도 패하면서 이영호전 3연패를 했다. 하지만 16강 D조 재경기 3경기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하면서 이영호전 3연패를 끊었다. 이어 비공전인 [[XNOTE-인텔센트리노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 A조 1경기에서는 다시 이영호에 패배, 3월 열린 올스타 스킨스 매치 이영호전에서는 3:0이었다가 내리 4개의 세트를 내주며 리버스 스윕 3:4 대역전패, [[TG삼보-인텔 클래 시즌1]] 특별전 4강 B조에서 0:2 완패, 다시 비공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올스타전 열정팀전 3세트에서는 마재윤 승리,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KT전 3세트에서 패배, 2라운드 KT전 2세트에서도 패했다. 상대전적은 공전만으로는 2:5로 열세, 비공전까지 합치면 6:12이다
         [[염보성]]과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MBC게임전 1세트와 [[박카스 스타리그 2008]] 16강 A조 6경기에서 패했으며, 2008년 3월에 열린 비공전인 올스타 스킨스 매치 염보성전에서 2:5 패배. 그 해 6월,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4강에선 2:0으로 승리했으나, 패자조 결승에서는 2:1로 패했다. 이어 다시 공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4라운드 MBC게임전 1세트에서 패했다. 상대전적 공전만으로는 0:3 무승, 비공전까지 합치면 5:10으로 약세.
         이전 팀 동료였던 [[변형태]]와는 8차례나 만났었는데, 모두 팽팽했다. 개인리그와 비공전에서만 만난 기록들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4강 B조 경기에서 마재윤이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스타리그 2007]] 8강 A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서 2:1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어 비공전인 2007년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2:1 승리. 상대전적 공전만으로는 4:4로 무승부이나 비공전까지 합치면 6:5로 앞선다.
         [[박정석 (프로게이머)|박정석]]과는 [[우주 MSL 2005]] 승자조 4강 2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으며, 결승전에서도 마재윤이 3:1로 승리했다. 이어 비공전인 [[WEF 2005]] 4강에서 2:0 승리,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1라운드 KTF전 1세트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했으며, 2라운드 KTF전 1세트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다시 비공전인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부산투어 2경기도 마재윤이 승리, 다시 공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1]] 16강 승자전 2경기에서도 마재윤이 승리, 그러나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KTF전 1세트에서는 패했다. 그러나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KTF전 4세트에도 패했다. 이어 다시 비공전인 제4회 슈퍼바이트 e스포츠 8강 A조에서 마재윤 승리, 다시 비공전인 2007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4강에서도 2:0으로 승리하면서 상대전적 공전만으로는 8:3, 비공전까지 합치면 14:3으로 마재윤이 초강세.
         [[강민 (프로게이머)|강민]]과의 첫만남인 MBC Movies배 팀리그 KTF전 3경기에서는 강민이 승리, 구룡쟁배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 F조 4경기에서도 강민이 승리했다. 그러나 [[CYON MSL 2005]] 16강 1경기에서는 마재윤이 승리, 비공전인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대구투어 결승에서는 1:2 패배 준우승, 다시 공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1]]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마재윤이 3:1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그해 8월 [[WEF 2006]] 4강에서 마재윤이 2:0 승리, 다시 공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2]] 4강 B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 또 마재윤이 3:1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어 [[곰TV MSL 시즌1]] 8강 B조 2경기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KTF전 2세트에서는 강민에 패했다. 비공전인 2007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4강 8강에서 2:1 승리, 다음날 최종 결승전에서 2:0 승리, 2년 뒤 7월, [[헤리티지]] 10강 B조 5경기도 마재윤이 승리하였다. 상대전적은 공전만으로는 8:5, 비공전까지 포함하여 18:8로 마재윤이 강세.
         [[박용욱]]과는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2라운드 SKT전 3세트에서 마재윤이 승리했으며, [[프링글스 MSL 시즌2]] 8강 B조 승자전에서도 마재윤이 2:0으로 승리하였다. 비공전인 [[헤리티지]] 10강 B조 2경기에서도 승리했다. 상대전적 공전만으로는 3:0, 비공전까지 합치면 4:0으로 마재윤이 강세.
         [[안상원]]과는 비공전에서 먼저 만났었는데, 다음 다이렉트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0:2 완패, 2006 2차 듀얼토너먼트 1조 결승에서 1:2 패배, 공전에서의 만남들인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온게임넷전 4세트에서 마재윤이 승리했으며, [[곰TV MSL 시즌2]] 32강 B조 최종전에서도 안상원에 승리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며, 14차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L조 최종전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하며 MSL 진출에 성공했다. 공전만으로는 0:3 열세이나, 비공전까지 합치면 4:4 동률이다.
  • 이열희 (1924년) . . . . 79회 일치
          | 기타 이력 =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 치과 의사 · 외과 의사 <br /> 구강성형외과 의사 <br /> 의학 교육자 및 대학 교수 <br /> [[치의학|치의학교육 저술가]] <br /> [[성형외과|구강성형외과학교육 저술]][[저술가|가]] 겸 [[수필|수필가]]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 이사장 <br /> 대한치과의학협회 경상북도 지회장 <br />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학장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
         '''이열희'''(李烈熙, [[1924년]] [[12월 18일]] - [[2012년]] [[8월 9일]])는 [[대한민국]]의 의학 교육자, [[치과]] 의사, [[구강 성형외과]] 의사, 대학 교수 및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위]]이자 [[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며, 치과, 악안면외과(악안면성형외과) 전문의였다.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의 치의학과 과장이자, 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초대 학장이었다. [[1962년]] [[11월]]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大韓顎顔面成形再建外科學會)의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에는 군의관으로 참전했고, [[1950년]]대부터 [[치과]]대학 부설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1979년]] [[경북대학교]]에 치의과대학을 별도로 설치하고, 이후 치과대학이 의과대학에서 분리, 단설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77년]] [[5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에 추대되었고,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 대한치과의학협회 경상북도 지회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치과대 학장, 경북치과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의 5촌 조카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도지사를 지낸 [[박중양]]은 그의 처조부가 된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고 호는 백산(白山)이다. [[천주교]] 영세명은 '''토마'''이다. [[대구광역시]] 출신.
         [[1946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대]] [[치과]]대학 조교가 되었으며, [[1947년]] 대구의학전문학교 치과학교실 조교가 되었다. 그해 [[3월]] 다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육군병원]]의 외과, 치과 의사로 근무하였다. 육군병원에 근무할 당시 구강외과를 설립하고 60년대초 구강외과내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신설하였다.<ref name="imails">[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5733&yy=1999 지방 국립대 7곳 치대 설립 '산파역'] 대구매일신문 1999년 06월 08일자</ref> [[구강외과]]를 전공한 그는 구강성형 분야의 완전한 의술확립을 위해 다시 경북대의대에 입학, 다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다녔다. 경북대 의대 재학 중에는 외과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ref name="imails"/> 그 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석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1961년 6월까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치의과의 전임강사로 활동했다.
         [[미국]] 제25육군병원에서 [[하버드 대학]] 출신인 [[치과]]전문의 [[마틴 D. 해치]](Martin D. Hatch) 박사의 지도 하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수학하였다. 이후 그는 육군 제1병원에 근무하였으며, 제1병원 재직 중 악안면성형 및 구강외과를 창설했다. 당시엔 전쟁 당시 발생한 부상이나 상처 등으로 턱, 안면 등에 변형이 생긴 환자들이 있었다.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마틴 D. 해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그에게 수술할 때 사용했던 소수술기구와 성형외과학서적 5권을 그에게 특별히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53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 전임강사가 되고, 그해 동 대학 조교수가 되었다. [[1956년]] [[4월]]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에 치의학과가 신설되자 동년 [[8월]]에 이열희는 조교수에서 경북대 치의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하였다.<ref>[http://www.denfol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악안면외학과교실] 덴포라인 2006.04.05</ref> 그러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치의학과는 [[1957년]] [[3월]] 폐지됐다.
         경북대 재직 초기 당시 그는 "치과대 설립을 허가해 주고는 예산을 제때 배정해주지 않아 교실없이 신입생을 모집, 강의실을 구하기 위해 우왕좌왕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ref name="imails"/> [[1957년]]부터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를 상대로 치과 관련 대학의 별도 단설을 주장, 설득한 끝에 [[1979년]] 경북대학교 치과 대학외 7개 대학교의 치과대학을 시범으로 설립하여 성과가 나타나자 각 대학의 치과대학 별도 설치를 허가받았다.
         [[1961년]] [[6월 6일]] 전임강사에서 조교수로 승진하여 [[경북대학교]]로 정 발령<ref>"정부인사", 경향신문 1961년 06월 06일자 1면 정치면</ref>, 경북대 치의학과 조교수에 임명되었다. [[1962년]] [[11월]] 오재인(吳在仁), 정순경(鄭淳慶), [[국군통합병원]] 의무과장 최형곤 [[대령]] 등과 함께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1972년]]부터 [[1976년]] [[11월]]까지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제3대 회장을 역임했다. 동시에 그는 무의촌대책위원회 치과분과 회장을 맡으며, 병원, 의료시설이 없는 무의촌의 치과 진료 봉사에도 참여하였다.
         [[1963년]] 치과의학회 경상북도지회장에 선출되었다. [[1963년]] [[8월 1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 논문 "인태아(人胎兒) [[소화기]]계의 [[점액]]선에 대한 발생학적 급조직 화확적연구"를 제출하고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3월 3일]] [[경북대]] 의대 부교수로 승진하였다. [[1967년]] [[10월]] [[대한구강악안면외과협회]] 제9차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에서 부회장에 선출되어 [[1969년]] [[10월 17일]]까지 재임했다. [[치과]]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한 그는 경북대 의과대학에 치의학과 재설치를 꾸준히 청원하게 됐다.
         [[1972년]]부터 4년간 [[대한구강안면성형외과학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1974년]] [[3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치의학부 교수가 되고 이후 대구시 치과의사회 회원이기도 했다. [[1974년]] [[3월]] 경북대 의대 치의학과장이 되었다. 1977년 5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에 추대되었고,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 [[대한치과의학회]] 경상북도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9년]] [[3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치과가 단과 대학으로 승격, 치의과대학이 의과대학에서 분리 신설되자, 그는 경북대 치의과대학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1981년]] [[3월]]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제2대 학장이 되었으나 그 해 9월을 기하여 물러났다. 이후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 평교수로 재직하며 경북치과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개인의로 개업하여 이열희 의원 원장을 맡기도 했다. [[1980년]] [[9월]] [[대한군진의학협회]] 명예회원에 위촉되고, [[1981년]] 정년 퇴임과 동시에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에 선임되었다. 1983년 3월 FICO학위를 취득하였다.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안면외과학 교실 명예교수로 활동했고, 그밖에 대한치과의사회 경북도회장, 대한악안면성형외과 부회장, 대한구강외과학회 부회장, 대한성형외과학회 이사, 무의촌대책위 치과회장,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에 살다가 [[2012년]] [[8월 9일]] 새벽 4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의 장성 건영아파트 304동 304호 자택에서 사망했다.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장례장 5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지난 11일 진행됐다. 장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산9번지에 안장되었다.<ref name="pisots">[http://www.kda.or.kr/kda/modules/kdaNews/news/NewsView2.aspx?NewsID=75541 이열희 경북치대 명예교수 별세] 치의신보 제2058호(2012년 08월호)</ref>
         * 악안면 성형외과에 있어서의 피부이에 대하야(1954년)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치의과대학]] [[치의학]][[학사|사]] 수석 졸업([[1946년]])
         *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졸업([[1950년]])
         * [[대한민국 육군 기계화학교|대한민국 육군기갑학교]] 졸업([[1951년]])
         * [[대한민국 육군 포병학교|대한민국 육군포병학교]] 졸업([[1952년]])
         * [[대한민국 육군 공병학교|대한민국 육군공병학교]] 졸업([[1952년]])
  • 강영식 . . . . 68회 일치
         ||<-2><#E1B81E> {{{#000000 강영(姜永植 / Young-Sik Kang)}}} ||
         || '''학력''' || 칠성초-경복중-[[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 || → || '''강영(2000)''' || → || [[박충]] (2002~2003) ||
         || [[신동주(야구)|신동주]](1994~2000) || → || '''강영(2001)''' || → || [[임창용]](2002~2006) ||
         || 이동은(1999~2001) || → || '''강영(2002~2006)''' || → || 김형근(2007~2008) ||
         || [[신명철]](2004~2006) || → || '''강영(2007~2017)''' || → || 현역 ||
         '''랜디 영'''
         매년 욕은 대차게 먹으나, 꾸준한 경기 출장과 시즌 종료 시 귀신같이 평균 정도의 스탯이 되어 있다(…). [[패스트볼]]-[[슬라이더]]만 구사하는 투 피치 투수로 좌완으로서 143~150km/h의 [[패스트볼]]과 130km/h대 중반의 [[슬라이더]]를 보유하였다. 굳은 듯한 폼에서 나오는 각도는 리그 최고 수준. 단 긁혔을 때'''만'''. 아주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좌완 계투가 전통적으로 약한 롯데이기에 오랜 기간동안 팀의 필승조에 속했다. 강영이 롯데에서 보낸 10년간 불펜에서 수많은 투수들이 등장했다 사라져 갔고 개중에는 강영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투수도 여럿 있었지만, 1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등판한 선수는 강영 뿐이었다.
         다른 팀 팬들이 그렇듯이 롯팬들 사이에서도 선수 개개인의 버릇이라던가 하는 일종의 징크스(?)들이 여럿 회자되지만 강영에게는 개중에서도 각별히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바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타자에게 던지는 초구의 로케이션이 어디로 가서 찍히는지를 확인하면 그 날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구가 우타자의 발등을 노리는 매처럼 날아들어 볼이 된다면(...) 불영, 초구가 인하이든 아웃로든 일단 스트존 안에만 꽂히면 랜디영 단순하지만 의외로 상당히 정확한 확인법이었는데, 2014년 스캠 인터뷰 기사에서 선수 본인에 의해 '''정말로 그렇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173596|확인된 바 있다.]]
         거의 190cm에 육박하는 장신에 140km/h대 중후반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던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그는 ~~덩치 큰 [[왼손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응용 감독은 왼손잡이, 그 중에서도 곰처럼 덩치큰 왼손잡이 선수를 매우 선호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우승을 그렇게 많이 해봤어도 그 라인업에서 투타 막론하고 좌완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꾸준히 활용할 수 있었던 선수가 [[김정수(1962)|김정수]] 말고는 가물가물할 정도니... ]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 [[김응용]]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직접 거둬서 [[햄]] 구워서 [[밥]]을 해 먹일 정도로''' 애정을 보였으며, 김응용 감독이 2001년 삼성 감독으로 가자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던 [[신동주(야구)|신동주]]를 보내면서까지 그를 삼성으로 데려올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김응용]] 감독이 이 정도로 대놓고 애정을 보여준 선수는 거의 없다. 후에 강영도 롯데로 트레이드될 때 눈물로 [[김응용]]에게 작별인사를 고했고, 여전히 꼬박꼬박 연락을 드린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의 생활이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733693&cpage=&mbsW=&select=&opt=&keyword=|방송 캡쳐]]로 떠도는데, 옆에서 같이 밥 먹던 어린 선수는 당시 전도유망했던 투수 '''[[채태인]]'''이다. ~~역시 좌완성애자 코감독!~~]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여담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첫 KS 우승이자, 드라마틱했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승리 투수가 바로 강영이다. 삼성에서 나름 의미있는 기록을 남긴 투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삼성 소속이던 2005년 제1회 코나미컵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지바 롯데]]를 상대로 구원등판 3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아 "국제용 투수 강영" 이라는 칭호를 들은바 있다. 하지만 2006년 제2회 대회에서는 좋지 못했다.
         2008시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로이스터 매직]]인지 아로요 투수코치의 [[아로요 매직]]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항상 랜디영 모드로 변신... 항간에는 강영의 메뉴얼이 영어로 되어있어서 외국인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루머도 있다. 시즌전에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뛴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모양.
         원래 고질적인 새가슴이 문제였지만 아로요 투수코치의 꾸준한 신뢰를 받아서 지금은 큰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믿으며 등판에 나선다고 한다. 인터넷에 퍼진 자기별명인 랜디 영도 알고 있으며 상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
         하여간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롯데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랜디영을 찬양하였다. 그 당시 팬 사이에서는 롯데의 차기 [[마무리 투수]]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괴상망측한 '우타자 더 잘잡는 좌완'[* [[KIA 타이거즈]]의 [[박경태(야구)|박경태]]도 이런 성향을 가진 좌완투수다.] 이라는 딱지는 떼지 못했다. 수치를 보면 좌타자에게 약한 것도 아니지만...
         2008 준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에는 신명철이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포스트 시즌용'이라는 첨부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시에 강영에게는 '페넌트레이스용'이라는 첨부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함께 밝혀졌다. 하지만 로이스터는 외국인이라 한글로 쓰인 설명서를 읽지 못했던 모양이다.
         2009 시즌 개막 후 다시 한번 롯데 불펜의 주축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전년도보다 떨어진 구속때문에 랜디 영이라 불리우던 그 명성은 많이 죽었다.
         그리고 제리 로이스터의 무리한 투수 운용으로 이기는 경기, 지는 경기 구분없이 등판하다가 허리 부상이 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허리부상이 아니라 팔꿈치 부상이었다고... 허리부상이라고 속였다가 당시 강민호의 팔꿈치 부상 이후 팀 내 모든 선수들의 부상 여부를 조사하다가 드러났다. [* 팀 내 다른 불펜 투수들은 3일 이상 연투 금지에 왠만하면 휴일을 지켜주고 불펜도 가능한 한 로테이션을 돌려 관리를 해주고 있지만 강영은 당시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을 제외하면 팀내 유일한 좌완 불펜이었다. 따라서 이닝은 많지 않은 데 비해 출장 경기수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08시즌에 64경기, 56⅓이닝을 던졌으니 원 포인트 릴리프라도 어지간한 경기에서 거의 항상 등판해오다 시피 한 것에 대한 후유증이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 [[김유신(1986)|김유신]], [[하준호]] 등을 비상적으로 투입--'''세 선수 합계 이닝이 30이닝 미만이라는건 함정'''--하여 계투진을 운용[* 로이스터는 좌완 원포인트로 써야할 선수인 김이슬을 좌타, 우타 가리지 않고 상대시켜서 --'''무려 13경기에 내보내서 8이닝씩이나 소화하게 하는 엄청난 혹사를 한 끝에'''-- --'''결코 80이닝이 아니다'''-- 망가뜨렸고 신인 하준호를 위급한 상황에 아무렇게나 투입하는 운용으로 난타당하게 만들었다.]하기보다는 [[이정훈(투수)|이정훈]] -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 [[김일엽(야구)|김일엽]] - [[임경완]] 등을 돌려가며 탄력적으로 필승계투조를 꾸려갔으면 훨씬 나았겠지만 [[로이스터]]의 투수 운용은 무조건 한놈만 팬다는 으로 특정 투수 한명만 주구장창 기용한 다음 그 선수가 혹사로 나가 떨어지면 다시 다른 선수로 옮겨가는 이라...[*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 롯데의 좌완 불펜이 거의 전무했던 문제도 있다. 사실 [[로이스터]]의 불펜 운용방은 로테이션을 돌리는 으로 불펜투수들에게 여유를 주는 운용방이었다. 다만 좌완투수의 경우 심각한 부족을 겪어서 이 방이 지켜지지 않았는데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 [[김유신(1986)|김유신]], [[하준호]]는 좌완투수의 부재로 어거지로 1군에 올려서 기용하였을 뿐 수준미달의 투수들로 잠시 1군에 기용된 이후 대부분 2군에 머물러 있는 선수들이었다. 심지어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은 구속이 130km대에서 상승하지 못해 결국 방출되기까지 하였다. 앞에서 이야기 한 [[이정훈(투수)|이정훈]],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김일엽(야구)|김일엽]], [[임경완]] 이 넷은 모두 우완투수로 당시 롯데 내에 쓸만한 좌완투수로는 사실상 강영이 유일한 상황이었다.]
  • 함인섭 . . . . 68회 일치
         |경력 = 前 [[대한민국 농림부|농림부 장관]] <br/> 前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농과학행정특임촉탁위원 <br/> 前 [[한국독립당]] 농림행정특보위원 <br/>前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br/>前 [[강원대학교]] 명예총장 <br/> 前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br/> 前 [[상지대학교]] 초빙교수
         |학력 = [[도쿄 농업대학|일본 도쿄 농업대학교 농업대학원]]
         |부모 = 함병철(부), [[진주 강씨 (강이)|진주 강씨]] 부인(모)
         '''함인섭'''(咸仁燮, [[1907년]] [[5월 3일]] ~ [[1986년]] [[9월 15일]])은 [[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이며, 초대 강원대학교 학장, 제6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그는 [[춘천농업대학]]([[강원대학교]]의 전신)의 설립에 참여, 개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과 2대, 4~5대 학장, 강원대학교 농과대학원장, 강원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제3대 부통령 송암 [[함태영]]의 손자이며, 26년 연하인 [[함병춘]]은 그의 배다른 이복 삼촌이었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촉탁직원이 되었다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 [[황주군|황주]][[춘광원예학교]]와 [[자동농업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의 [[교장]]이 되었다가 이후 주로 [[강원도]]에서 교편을 잡았다. [[강원대학교]]의 전신인 [[춘천농업대학]]의 설립에 주로 참여하였다. [[1952년]]에는 농림부 장관으로 잠시 재직하면서 8.25 직후와 건국 직후의 토지보상 문제와 토지 관련 분쟁을 모두 해결하였다.
         [[미군정]] 당시 대학 부지와 대학 설립 인가를 얻어서 [[1948년]] [[2월 1일]] 춘천농업대학을 개교하고 학장서리가 되었다가 [[1949년]] [[8월 30일]] 춘천농업대학의 학장이 되었다. 이후 춘천농대의 2대, 4~5대 학장이 되었고, 5대 학장 재직 중 춘천농업대학에서 강원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아명(兒名)은 '''함재인'''(咸在仁)이다. 본관은 [[강릉 함씨|강릉]](江陵).
         천안 출신인 그는 경성으로 올라와 [[1923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중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중동고보 재학 중인 1924년 3월 26일 유기환(柳基桓)의 딸 유순희(柳順嬉)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6남매를 두고 [[1949년]] 사별하였다. [[1927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0년]] [[3월]] [[동경농업대학]] 예과를 수료하고 동경농대 본과 농학부에 입학, [[1933년]] [[3월 24일]] [[동경농업대학]] 농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촉탁직원이 되었다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동시에 7년간 직접 농장을 운영하였다.
         [[일제 강점기]] 후반 [[황해도]] [[황주군]] [[춘광원예학교]](黃州春光園藝學校, 6년제, 소학교 과정) 교사와 [[경기도]] [[자동농업학교]](自東農業學校) 교사로 교단에 섰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일]]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미 군정]]청이 설치되자 함인섭은 미군정청 [[농산국]] 직원이 되었다. [[1946년]] 미 군정청 [[농림부]] 고문이 되었다가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그는 [[강원도]] 도내에 대학이 없는 것일 보고, 강원도내에 대학 설립 추진을 계획하게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춘천농업대학 창립 발기회를 결성하고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몇몇 뜻있는 지역 유지들과 함께 학교 부지를 물색하여 학교 부지로 쓸 20여만 평의 토지를 확보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고, [[1947년]] [[6월 14일]]에는 [[미 군정]] 문교부에 대학 설립인가를 신청해 승락받았다. 그는 [[강원도]] 지역이 삼림과 농촌이라는 점과 당시 농업과 임업이 주 소득원임을 감안하여 신설 대학을 농업대학으로 결정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농림부]] 농업경제국 통계과장이 되고 이어 [[문교부]] 농업교육담당이 되었으나 곧 사퇴했다. 이후 춘천 [[강원도립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농대 설립을 추진하다가 [[1948년]] [[2월 1일]]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現 강원대학교) 학장 서리가 되었다.
         [[1948년]] [[8월]]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現 강원대학교) 설립,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학장서리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는 [[문교부]] 국가고등고시 전형위원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1949년]] [[8월 30일]]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 건국 이후 그의 할아버지 [[함태영]]이 조선 말 [[독립협회]]사건과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수감된 [[이승만]]에게 관대한 한결을 내려 그 인연으로, 내각 법무장관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성사되지 않고 할아버지 [[함태영]]은 [[심계원]]장과 제3대 [[부통령]]을 지냈다. 전쟁이 발생하자 그의 동생 함의섭이 일가족을 이끌고 [[부산광역시|부산]]으로 피신하였다.
         [[1962년]] [[3월 27일]] [[도쿄 농업대학|일본 도쿄 농업대학교 농업대학원]]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3월 3일 춘천농과대학이 강원대학으로 바뀌면서 [[강원대학]] 학장이 되었다. 1972년 1월 1일부터 강원대학 학장에 재선임되고, 1972년 8월 31일 정년 퇴임하였다. 이후 학교법인 상임이사, [[강원대학교]] 명예 교수, 중동학교 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밖에 [[농학]] 학문연구 활동으로는 주로 [[콩]](豆)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였다.
         장례은 [[강원대학교]]장으로 거행되었고 상주는 차남 함춘호 였으며, 묘소는 [[춘천시]] 공원묘지에 있다.
         후일 그를 기념하는 함인섭 기념광장이 [[강원대학교]] 교정 내 대운동장 옆에에 설치되었고, [[2010년]] [[6월 12일]] [[강원대학교]] 개교 63주년을 기념하여 함인섭 광장 내에 [[강원대]] 미술학과 교수 양재건이 그의 동상을 제작, 건립하였다.
         * [[연희전문학교]] 촉탁직원
         * [[연희전문학교]] 교수
         * [[황해도]] [[황주군]] [[춘광원예학교]] 교사
  • 전태일 . . . . 57회 일치
         |학력= [[대구]] [[청옥고등학교]] 1학년 중퇴
         [[1969년]] [[6월]] [[청계천]] 공장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하고, 다니던 교회와 [[엠마누엘 수도원]] 등에서 잡역부로 일하던 중 다시 [[왕성사]]의 재단사로 [[청계천]]으로 돌아와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동대문구]]청과 [[서울특별시]]의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을 찾아가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 [[박정희]]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으나 전달되지 못했다. [[1970년]] [[10월]]에는 본격적으로 근로조건 시위를 주도하였다. [[11월]] [[근로기준법]] 화형과 함께 [[평화시장]] 입구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 자살하였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재확산되었다.
         전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남산동의 가난한 노동자인 전상수와 그의 부인 [[이소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가내수공업도 했으나 거듭 실패했다.<ref name="ganaess">[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419.html 전태일의 시간·공간·생각] 한겨레 21 2010.11.05 제834호</ref> 그러다 재봉사였던 아버지 전상수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954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남대문초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1963년]] [[3월]] 대구 청옥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지만<ref>1971년 문교부 시책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분리되기 전까지 한국의 학교들은 중고등학교가 함께 운영되었다.</ref>, 가정 사정으로 1학년 재학 중 그해 [[12월]] 자퇴하였다. 1963년 겨울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아들에게 자퇴를 강요하였다.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재봉]]일만 돌보라고 강요했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에 좌절하여 한때 가출, 집을 뛰쳐나갔다가 3일만에 귀가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를 발길질로 차고 구타하여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인용문|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원으론 어림도 없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공장 노동자 생활 중에도 고등학교 복학을 꿈꿨고, [[1967년]] [[2월 20일]] 자신의 바지와 하숙방에 있던 곤로를 팔아 연합중고등 통신강의록 <중학 1>권을 1백50원에 산다. 수중에 남은 15원으로 10원짜리 노트를 산 뒤 전화비 5원을 주머니에 남겨두고 3일간 금하였다. 당시 한 쪽지에 그는 "내일부터 23일까지 금이다. 설마 3일 금에야 죽지 않겠지. 정신수양의 금이야.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오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내년 3월에는 꼭 대학입시를 보자. 앞으로 3백76일 남았구나. 하루에 2시간씩 공부하면 내년에는 대학입시를 볼 수 있겠지."라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1969년]] [[7월]] 열악한 노동조건과 근로기준법 위반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노동청]]에 진정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후 [[노동청]]을 찾아가 근로 환경 개선, 위생 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1969년]] [[9월]]부터 [[1970년]] [[4월]]까지 일용직 건축 노동자로 일하였다. 이때 그는 [[감리교|감리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70년]] [[4월]]부터는 평일에는 자신이 다니던 감리교회의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노동자 동지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는 야학당 교사가 되었다. 주말 낮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노동운동의 대부로 인되는 탓에 그를 마치 반정부적이고 반체제적인 인물로 왜곡된 인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보낸 탄원서에서도 그는 '대통령은 국부이고, 곧 저희들의 아버지'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대통령에게 노동자들의 극히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해주기를 호소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다.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1970년]] [[10월 8일]] 그는 [[삼동회]] 대표들을 이끌고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노동자 [[숙소]] 다락방 철폐, 정 기숙사 설치, [[노동조합|노조]] 결성 지원, 위생 환경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 8개 항의 요구를 제출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도 탄원서를 보냈지만 [[탄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중간에 소거되었다. [[10월 24일]] 그는 [[서울]] 도심에서 근로 조건 개선 거리시위를 기도했으나, 오후 1시 사전에 경비원의 신고로 정보를 입수하여 출동한 [[대한민국의 경찰|경찰]]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 근로기준법 화형 ====
         이에 따라 전태일은 삼동회 회원들을 이끌고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고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경찰의 방해로 플래카드를 빼앗기고 시위가 무산된 뒤 점심 사를 마친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화시장 골목 근처에 있다가 오후 1시 30분경, 시장 골목에서 몸에 [[석유]]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켠 뒤,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왔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시장 앞길을 뛰어다녔다. 이때 전태일의 친구였던 이름 미상의 남자가 그에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조영래]]는 [[1983년]]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며 이 남성의 이름을 김개남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김개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민종덕이라는 설도 있다. 그에 의하면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가명인 전태일의 벗의 이름 '김개남(가명)'은 민종덕의 창작물이라고 본다. 그는 전태일을 자신의 고향, 고부에서 출정한 동학 전봉준에 비견하였고 비슷한 위용을 떨쳤던 김개남을 전태일 친구의 가명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042 전태일·조영래와 함께한 휴가] 오마이뉴스 2007.08.08</ref>'는 것이다.
         불길은 순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그는 몇 마디 구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ref name="chock283">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 전태일은 3분 가량 방치되었으며, 이때 누군가가 [[근로기준법]]을 불타고 있는 전태일을 향해 던졌다.
         {{인용문2|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한 회원이 [[근로기준법]] 책을 전태일의 불길 속에 집어 던졌다. 이렇게 하여 근로기준법의 화형은 이루어졌던 것이다.<ref name="chock283"/>}}
         [[파일:이소선 2.jpg|섬네일|전태일의 장례에서 영정을 안은 이소선]]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이 소을 듣고 병원에 온 어머니 이소선에게 전태일은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ref>〈이소선:아, 우리들의 어머니!〉, 《이야기 여성사 1》 163~4p, 여성신문사, 2000</ref> 쓰러졌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치료를 받은 전태일은 온몸이 굳어서 펴지지가 않았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아들에게 앞치마를 벗어 덮어주고 의사에게 갔다. 1만 5천 원짜리 주사 두 대면 우선 화기는 가시게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러면 근로감독관에게 가서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ref name="chock289">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이때 평화시장 담당 [[서울시청]]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전태일을 따라 병원에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내가 무엇 때문에 보증을 서요?"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다음은 전태일이 분신하기 전 청옥고등공민학교 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으로 쓴 유서의 전문이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ref>
         회사의 [[착취]]와 [[해고]]를 당하면서도 단결하여 투쟁할 생각을 못하던 [[노동자]]들이 [[죽음]]으로써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 열사를 보면서 각성한 것이다. [[1970년]] [[11월 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년]] 9월 한국회관(음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8월 [[신진자동차]] 노조 조합원과 가족 1900여명의 [[파업]]투쟁, [[한진상사]] 파월 노동자 400여명의 [[대한항공]] 빌딩 옥상 방화 농성 등이 주요한 사건들이었다. [[1971년]]의 노동자의 단결투쟁은 1600여건에 이르렀는데, 이는 전년도 165건에 비해 10배가 넘는 규모였다.<ref>지명관,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98~ 101쪽, 다섯수레, 1996년; 한국정치연구회, 《한국정치사》 352~ 353쪽, 백산서당, 1990년; 역사학연구소, 《강좌 한국근현대사》 347쪽, 풀빛, 1995년</ref>
         일부 미싱사 등은 냉소적으로 반응하였다. 일부 노동자와 미싱사들 중에는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ref name="ganaess"/> 당시 초등학교만 나와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일부 노동자들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귓등으로 흘렸다.<ref name="ganaess"/>
         기본적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고발한 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11월 16일]] [[서울대학교|서울대]] 법대생 1백여명은 그의 유해를 인수하여 학생장을 거행하겠다고 주장했고, 상대생 4백여명은 무기한 단 농성을 벌였다. [[11월 20일]] 서울대생, 성균관대생, 이화여대생 등과 기타 서울시내 학생운동가들이 모여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전태일 추도을 거행하고 공동으로 시위를 벌였다가 해산되었으며, 고려대, 연세대생들도 집회를 열었다.
  • 의성군 . . . . 56회 일치
         ||<-2><bgcolor=#FFB6C1> {{{#FF0080 '''링크'''}}} ||<bgcolor=#FFFFF0>[[http://www.usc.go.kr/|의성군 공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iseong.good|[[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의성군 공 페이스북]]
         [[http://blog.naver.com/uiseong-good|[[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15]]의성군 공 블로그]]
         [[https://story.kakao.com/ch/uiseong-gun|[[파일:카카오스토리 아이콘.png|width=15]]의성군 공 카카오 스토리]]
         [[https://twitter.com/hopefuluiseong|[[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의성군 공 트위터]] ||
         컬링 이전에는 [[씨름]] 스타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이 의성이다. 의성초등학교-의성중학교-의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지역 씨름의 계보가 탄탄하며 의성군청에서도 씨름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에 연고가 있는 유명 씨름인으로는 5대, 8대, 13대 [[씨름/체급|천하장사]]를 거머쥐었던 1980년대 씨름스타 [[이준희]] 대한씨름협회 경기위원장과 32대, 38대, 40대 [[씨름/체급|천하장사]] 출신이자 1990년대 씨름스타 [[이태현]] 용인대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의 출생지는 모두 의성이 아니지만 의성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씨름을 배웠다.
         그리고 1995년 단 6명의 인원으로 전국대회 준우승을 일궈낸 의성여자고등학교 농구부도 한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컬링]] 전용 빙상장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읍 충효로 104에 위치해 있으며, 의성군 내의 중, 고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엔 [[컬링]]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는 의성군 출신의 체육인이자 국내 컬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의 노력이 컸다. 전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김 회장은 컬링이라면 동양 선수와 서양 선수의 체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라 생각해서 의성군에 컬링훈련원을 개설했고 실제로 그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아서 한국은 단기간[* 1994년에 컬링 연맹 설립, 곧바로 세계 연맹에 가입했으며 2001년 아-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정도면 단기간이 아니라 초단기간 급성장이라고 봐야할 지경(..)] 내에 세계 랭킹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선수들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컬링은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었고, 결정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외면 받았다. 이 시기를 거쳐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아직 우리 컬링은 멀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낸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던 2013년 당시에도 컬링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사도 못할만큼 인지도나 후원이 열악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녀, 믹스더블 대표팀 모두 [[경북체육회 컬링팀]] 선수들이 선발됐고, 특히 여자팀의 선수들 중 중 네 명[* [[김은정(컬링)|김은정]], [[김영미]], [[김선영(컬링)|김선영]], [[김경애]]]이 의성 출신의 선수들이며, 모두 같은 학교 출신[* 의성여중-의성여고]에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만화 같은 이야기와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은정(컬링)]] 항목 참조.] 이 뿐만 아니라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이었던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의 [[이슬비(컬링)|이슬비]] 선수도 의성여고 출신이다. 이로써 2회 연속 올림픽 컬링 대표선수들을 길러낸 도시가 되었다.
         2017년 3월 1일 기준 의성군내 학교 현황이다.
         ==== 초등학교 ====
         || 번호 || 학교명 || 주소 ||
         || 1 || 의성초등학교 || 의성읍 군청길 26 ||
         || 2 || 의성남부초등학교 || 의성읍 문소1길 24 ||
         || 3 || 의성북부초등학교 || 의성읍 도토길 9 ||
         || 4 || 단촌초등학교 || 단촌면 신기길 42 ||
         || 5 || 점곡초등학교 || 점곡면 점곡길 8 ||
         || 6 || 옥전초등학교 || 옥산면 신감옥산로 1206 ||
         || 7 || 춘산초등학교 || 춘산면 금성현서로 1487 ||
         || 8 || 가음초등학교 || 가음면 산성가음로 2194 ||
  • 이상백 (1904년) . . . . 51회 일치
         | 소속 = 前 [[국제 올림픽 위원회|국제올림픽위원회]] 종신위원 <br/> 前 [[대한민국 문교부]] 편수관 <br/> 前 [[서울대학교]] 교수 <br/> 前 [[고려대학교]] 교수 <br/> 前 [[한국독립당]] 체육행정특보위원
         |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상백 형제의 할아버지 이동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구]]에 신 학교인 우현서루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남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교사를 초빙, 수학, 역사, 국어, 영어, 일본어 등 신 학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이동진의 뒤를 이어 큰아버지 이일우가 우현학교의 일을 맡아보았다.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했는데, [[2000년]]대 초반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학 학장 3명, 교수 10명, 의사 30명, 장군 2명, 언론·출판분야 11명을 배출하였다.<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또한 사촌 [[이상악]]은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육당 [[최남선]]과 사돈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 중에는 '박작대기' [[박중양]] 집안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하였다.<ref name="daemyonh"/>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에 의해 양육되었다.
         할아버지 이동진, 백부 이일우가 세운 우현서루(友絃書樓)에서 한학과 수학, 국어 등을 수학하고, [[1910년]]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15년]]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19년]] [[3·1 만세 운동]]의 여파로 대구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에 참여하려다가 실패하고 잠시 은신하였다. 그 뒤 [[부산항]]에서 배편으로 [[일본]]으로 유학, 일본 와세다제일고등학원(早稻田第一高等學院)을 거쳐, [[1923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수학, 연구하는 동안에도 자주 배편으로 귀국, [[경성]]과 [[일본]]을 내왕하며 국내 학계 학자들과 긴밀히 제휴하거나 학문적인 견해를 주고 받앗으며, [[진단학회]]의 결성준비와 창립 발기에 참여하고, [[진단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또한 [[진단학회]]의 기관지 [[진단학보]]에도 칼럼과 논문을 송고하였다. [[1927년]]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 3년간 동양학, 사회학을 수학하고 [[1930년]]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였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경성대학]](京城大學, [[서울대학교]]의 전신) 문리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를 창설, 이후 사회학과 주임교수에 임명되어 사망 직전까지 재임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부속 박물관장과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소장을 겸임하였다. [[1955년]] 서울대학교로부터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대학에서 국사, 근세사 외에도 사회학사, 한국사회론 등을 강의하였으며, 《질서와 진보》, 《중간계급의 성격》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사회학과의 개설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래 국내 최초로 사회학과를 설립하고, 대학 강의와 교양지 및 학술지를 통해 사회학을 보급하였다. 또한 사회학을 연구하는데 기초자료로서 통계조사와 설문을 채택, 통계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어 사회학의 연구와 보급을 위해 외국 사회학을 소개하는 데도 힘써, 미헬스(Michels,R.)의 《정치 사회학》, 루세그 와런의 《사회학개론》 등의 책을 [[한글]]로 손수 번역, 이들 서적의 [[번역서]]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문교부]] 대학교수자격 심사위원회 위원이 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3·1 문화상]] 심의위원 회 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여행을 좋아하여 일찍부터 그는 국내 명승고적지와 세계 5대양 6대주를 수없이 돌아다닌 여행가였으며, 기행문 등을 남기기도 했다.
         만년에는 그는 국학, 동양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서울대학교]]에 동아문화연구소를 설립, 초대 소장으로 재직하며 연구 계획을 수립하고 학술 세미나 개최를 기획, 준비하였다. 그는 장서가로, 젊은 시절부터 헌책방과 각종 서점을 돌며 평소 희귀한 한중고활자본을 비롯한 진귀한 많은 서적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만년에 자신이 수집한 책들 모두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상백문고(想白文庫)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1966년]] [[4월 1일]] 갑자기 쓰러져 [[서울대학교]]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 병세는 [[심근 경색|심장경색증]]을 비롯한 [[심장병|심장질환]]이었고, 결국 [[4월 18일]] 아침 8시경 [[서울대학교]] 대학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장례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한국사회학회, 진단학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5개 단체가 주관한 연합장으로 주관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현 [[대구광역시]] 남구 화원동)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묘비는 사후 1년 뒤인 [[1967년]] 그의 1주기에 세워졌는데, 묘비문은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이 짓고, 글씨는 이기우(李基雨)가 썼다.
         독립운동가인 [[이상정]],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는 그의 형이고, 치과의사 겸 성형외과 의사이며 [[경북대학교]] 치대 학장을 지낸 [[이열희 (1924년)|이열희]]는 5촌 조카였다.
         **** 5촌 조카 : 이섭희, 이재우(의사, 부산 [[고신대학교]] 의대 교수, 고신대 내과과장)
         **** 조카사위 : 최한웅,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
         **** 조카사위 : 이경형, [[서울대학교]] 공대 교수
         ** 아우: 이상오(李相旿, [[1905년]] ~ [[1969년]], [[사냥|수렵가]], [[바둑]]인. 아호(雅號)는 모남(慕南).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및 [[일본]] [[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졸업.)
         *** 조카사위: [[박창암]](朴蒼巖, [[1923년]] [[5월 15일]] ~ [[2003년]] [[11월 10일]], 군인, 정치가. '''이상오'''(李相旿)의 사위. 아호(雅號)는 만주(滿洲), 허주(虛舟), 농부(農夫). [[군사영어학교|대한민국 군사영어학교]] 1기 출신. [[대한민국 육군]] [[1성 장군|준장]] 전역.)
         * [[대륜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 우현보통학교]] 졸업
         * [[경북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고등보통학교]] [[졸업]]
  • 현진건 . . . . 50회 일치
         | 학력 = [[대륜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노동학교 보통부]] 졸업 <br/> 경성 보성고등보통학교 전퇴 <br/> 일본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 중퇴 <br/> [[후장 대학|중국 상하이 후장 대학교]] 독일어전문부 중퇴
         현진건은 [[광무 (연호)|광무]](光武) 4년([[1900년]]) 8월 9일(양력 [[9월 2일]]) [[대구광역시|대구부]](大邱府)에서 현경운과 어머니 완산 이씨(完山 李氏) 정효(貞孝)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당시 대구군 2정목(町目),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속칭 '뽕나무골'이라 불리던 마을이었다. 어머니는 [[융희]](隆熙) 4년([[1910년]]) 6월 13일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위로는 홍건(鴻健), 석건(奭健), [[현정건|정건]](鼎健)의 세 형이 있었는데, 맏형 홍건은 대한 제국의 육군 참령과 외국어학교(外國語學校) 부교관(副敎官)을 지냈고 칭경시예사무위원(稱慶時禮式事務委員)을 잠시 맡기도 했다. 석건은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정건은 훗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현진건의 집안인 연주 현씨는 [[역관]](譯官) 등의 [[잡과]](雜科) 출신을 많이 배출한 [[중인]](中人) 집안에 해당한다. 현진건의 6대조로 왜역(倭譯) 즉 [[일본어]] 통역관이었던 태형(泰衡)부터 한역(漢譯) 즉 [[중국어]] 통역관이었던 5대조 상복(商福), 몽역(蒙譯) 즉 [[몽골어]] 통역관이었던 시석(時錫)에 이르기까지 모두 역관으로서 활약하였으며(각자의 처가도 또한 역관 집안이었다) 증조부 경민(敬敏)도 왜역으로 [[동래]](東萊)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현진건의 숙부인 현양운이 조민회의 후임으로 주왜공사(住倭公使)가 된 사실을 기록하면서, 영운의 가계를 그의 할아버지(즉 현진건의 증조할아버지)가 왜역으로 오랫동안 동래에 머무르다가 현지 기생과의 사이에서 현양운의 아버지를 얻었고, 현양운 자신도 그 아버지가 첩에게서 본 자이었다고 적고 있다.<ref>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 양진오, 2008, p.26</ref>
         여섯 살 되던 광무 10년([[1906년]])부터 마을에서 한학(漢學)을 배우던 그는 2년 뒤인 융희 2년([[1908년]]), 양아버지가 세운 [[대구노동학교]]<ref>샘밖 골목 안에 있었다고 하며, 지금의 금호호텔 근처.</ref> 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국권 피탈 뒤인 [[1915년]], 16세의 나이로 당시 경주 향리의 부호인 [[진사]] 이길우(李吉宇)의 딸 순득(順得)과 혼인하여 [[대구부]] 수정(竪町) 255번지(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있던 처가에서 신혼생활을 하였다. 그 해 [[11월]]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2학년 재학 중인 이듬해 [[7월]]에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正則英語學敎)에 입학하였다.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백기만]](白基萬) ·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문학'이었다(다만 본격적인 동인지는 아니고 작문지 정도의 수준이었다고<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成城中學校)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3월에 다시 귀국하였는데<ref>일본 학자 시라카와 유타카에 의해 세이조 중학교 3학년 성적대장 일람표에서 현진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가 1917년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실제 이 학교에 재적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얼마간 대구에 머물다가 집안 몰래 형 정건이 있던 [[중화민국|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 가서 [[후장 대학]](扈江大學)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한다. 조선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여파가 상하이에까지 커져 상하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 다시 귀국하여, 당시 육군 공병 영관을 지낸 당숙 현보운(玄普運)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서울로 상경, 지금의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살았는데, 현보운은 1919년 음력 9월 10일에 사망하고 그가 호주가 되었다. 12월에 첫딸 경숙(慶淑)이 태어났으나 이듬해에 죽고 만다.
         [[1920년]], 현진건은 양아버지 현보운의 동생 [[현철 (1891년)|희운]](僖運)의 소개로 11월, 문예지 『[[개벽 (잡지)|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를 개재하면서 처음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보다 앞서 현진건은 『개벽』에 번역소설 「행복」(아르치바세프 원작)과 「석죽화」(쿠르트 뮌체르 원작)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자전적 성격도 동시에 가진 것으로 알려진 「희생화」는, 그러나 당시 문예평론가 [[황석우]](黃錫禹)로부터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하등 예술의 형을 갖추지 못한 무명 산문"<ref>황석우, 「희생화와 신시를 읽고」, 『개벽』 6호, 1920. 12.</ref> 이라는 혹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처음 「희생화」를 발표하던 때부터 현진건은 이미 '빙허'라는 아호를 스스로 지어 쓰고 있었는데, 대체로 그가 혼인을 올리던 1915년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1916년 사이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자신은 회고하고 있다. 다소 허무주의적 표현이 없지 않지만 '허공(虛空)에 의지한다'는 이 말이 자신의 심경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었고, 고대 중국 [[북송|송]](宋)의 문인 [[소 (북송)|소]](蘇軾)의 《적벽부(赤壁賦)》의 구절 가운데 "넓기도 하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서(浩浩乎! 憑虛御風而)..."란 구절에서 느낀 바가 있어 그대로 '빙허'를 자신의 아호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ref>「雅號의 由來(2)」 1930년 5월 1일자 『삼천리』제6호.</ref> [[1920년]] 11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1년]] 1월에 현진건은 다시 『개벽』에 단편소설 「빈처」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문단의 호평을 받아<ref>이때의 문인들의 평가는 성해(星海)의 「憑虛君의 『貧妻』와 牧星君의 『그날밤』을 읽은 印像」(1921년 05월 01일자 『개벽』제11호), 박종화의 「文壇의 一年을 追憶하야 現狀과 作品을 槪評하노라」(1923년 1월 1일자 『개벽』제31호)에 나타나 있다.</ref> 11월에는 다시 『개벽』에 단편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하였고, [[1922년]] [[1월]]부터 [[4월]]까지 『개벽』에 중편소설 「타락자」를 발표하였다. 작품 [[술 권하는 사회]]에서 그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나약한 지인상을 풍자하였다.
         이 전해부터 [[휘문고등학교]] 출신의 젊은 문인인 [[박종화]](朴鍾和) · [[나도향|나빈]](羅彬) · [[홍사용]](洪思容) · 이상화 · 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잡지 『백조(白潮)』의 동인이 되어, 『개벽』과 『백조』 두 잡지 사이를 오가며 『백조』 1호지에 수필 「영춘류(迎春柳)」, 2호지에 단편소설 「유린」을 발표하고, 또 기행문 「몽롱한 기억」을 기고하면서, 7월에 『개벽』에 다시 번안소설 「고향」(치리코프 원작)과 「가을의 하룻밤」(고르키 원작)을 각각 발표하였다.
         [[1922년]] 9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ref>1년에 걸치는 「조선일보」 근무에 대해서 현진건은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초기 「조선일보」가 보여준 노골적인 친일신문 표방 태도, 친일 색채가 농후한 발행 주체들이나 수시로 뒤바뀌는 발행인으로 인해 현진건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곤란했던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친일 분위기에 대해 현진건의 문우였던 박종화는 "월남 이상재 선생 사장과 신석우 부사장, 민세 안재홍 편집국장 등이 취임하기 전의 초기 「조선일보」에는 양심있는 사람으로는 오래 거접(居接)할 것이 아니었다"(박종화, 「빙허 현진건 군(君)」, 『신천지』 1954.10. p.139~140)고 하였으며,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에는 「조선일보」를 빗대어 아예 "썩은내, 더러운내, 곰팡내, 음탕한내가 감도는 분위기", "도야지(돼지) 우리"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35~13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최남선]](崔南善)이 만든 동명사(東明社)에 들어간다. 그 다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간 당시부터 민족적 색채가 농후했고, 역사지향적 성격을 추구하며 「조선통속역사강화」(최남선 저) · 「조선과거의 혁명운동」(문일평 저) 등 유독 국학(國學) 관련 논문이 자주 연재되었던 「동명」에서의 경험은 훗날 「고도순례 경주」, 「단군성적 순례」 등의 민족의이 농후한 작품을 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리고 11월 13일에 그의 첫 창작집 『타락자』가 조선도서주회사에서 발간된다.
         [[1925년]] 1월, 현진건은 『개벽』에 단편 「불」을 발표하였다. 이때 그는 「시대일보」의 사회부장이 되었으나 「시대일보」가 폐간되면서 동아일보사로 전직하여야 했다. 3월 1일자 『개벽』 제57호에는 이때의 현진건의 근황에 대해 "근래에 빙허(憑虛) 군은 신문사 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더 많은 독서와 연구에 노력하겠다 한다. 늘 군은 조선의 평론계가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을 매우 분개해서 앞으로는 논문도 쓰실 작정이라고. 고마운 일이며 즐거운 일이며 마음히 든든해지는 일이다."라고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다.<ref>「文壇雜談」 1925년 3월 1일자 『개벽』제57호.</ref> 그리고 박문서관에서 그의 중편 「지새는 안개」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2월에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를 『조선문단』에 발표하고<ref>현진건이 『조선문단』에 작품을 싣기 시작한 것은 『개벽』이 점점 '계급주의 문학'을 외치는 [[카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부터였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4월과 5월에는 수필 「목도리의 복면」과 「설 때의 유쾌와 낳을 때의 고통」을 각각 기고하였다. 7월에는 「조선문단과 나」라는 기고에서 작가는 삼삼오오 짝을 짓고 당을 나누어 서로 갈라서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일인일당(一人一黨)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며, 계급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카프의 주장에 맞서 내용적 가치와 계급적 가치란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문단』에서 만든 조선문단합평회의 정기회원으로서, 10월에는 『조선문단』 신추문예(新秋文藝)에 응모한 작품들의 심사를 맡아 처음으로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26년]] 1월에 현진건은 『개벽』에 평론 「조선혼(朝鮮魂)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기고하였다. 이 평론은 오늘날 현진건이 가진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ref>현진건이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실을 무렵에 기자로서 재직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현진건이 「시대일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최남선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최남선이 당시 주창한 '조선주의'가 현진건의 '조선혼' 주창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2월에는 『조선문단』에 수필 「무명 영웅」을 기고하고, 11월에는 『개벽』에 단편 「사립정신병원장」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해 3월에 단편집 『조선의 얼골』이 출판사 글벗집에서 간행되었다.
         [[1927년]] 1월부터 3월까지 『조선문단』에 중편 「해 뜨는 지평선」을 기고하였다. 같은 해 1월 2일자 「동아일보」는 현진건을 "산뜻한 표현의 미를 가진 단편작가"로, "표현에 노력을 빼앗긴 반면에 그 내용적 가치가 너무도 희박하다"고 하면서도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서 보여준 그의 새로운 모습을 향한 노력을 높이 사면서, "그의 자연주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그의 제재 방면도 분명히 향토로, 민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끝맺고 있다. [[1928년]]에는 드디어 「동아일보」 입사 3년만에 사회부장이 되었다(~1936년). 사회부장 시절의 현진건에 대해 당시 "대장을 놓고 제목을 붙이는데, 편집 칠팔명이 모여선 중에 붉은 잉크를 붓에 덤뻑 찍기만 하면 민각을 누연치 않고 진주 같은 제목명을 이곳저곳에 낙필 성장으로 비치듯 떨어져서, 선후배들로 하여금 그 귀재에 혀를 둘러 감탄케 할 지경"이라는 명성이 나돌았다고 한다.<ref>방인근도 그의 제목 붙이는 '민활하고도 묘미있게 붙이는 재주'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다.(「빙허회고기」, 『현대문학』 1962년 11월호.) 제목을 붙이는 것뿐 아니라 휘하의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지면에 적절히 배치하여,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기사는 신속하게 취하는 언론계의 명인같은 존재였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4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러나 이 해 1월, 상하이에서 한인청년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형 현정건이 체포되어 본국으로 이송되어 복역하였다.<ref>"원래 불면증이 있는 까닭에 어떤 때에는 무리하게 오전 삼시까지도 독서를 한다"(현진건, 「각 방면 명사의 일일생활」, 『별건곤』 17호, 1928. 12.)는 현진건 자신의 말에서 이때의 현진건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찾아볼 수 있다.</ref>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한 조선인 선수 [[손기정]](孫基禎)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에 실은 사건으로([[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해야 했으며,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5번지로 이사하여<ref>당시 부암동은 서울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5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그곳에서 땅을 빌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한편, [[1938년]] 7월 20일부터 다시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역사소설 「무영탑(無影塔)」을 연재한다.(~ 1939년 2월 7일) [[1939년]] [[7월]]에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 역사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 연재를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문예지 「문장」과 가진 인터뷰에서<ref>「침묵의 거장 현진건 씨의 문학종횡담」, 『문장』 1939년 11월. p.116~120.</ref> 현진건은 당시의 소설들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던 때에 비해) 문장이라든가 소설 만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할 만큼 진보.... 그러나 구상의 도약이 드뭅니다"라며 "동경(東京) 문단의 말기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또한 현재가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문학의 빈곤시대가 아닌가 싶다며 "문은 실상 기(氣)이며 기가 없으면 아무리 진주같다 해도 곧 사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같은 잡지에 또 한 번 「역사소설의 제(諸)문제」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원고료에 양계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던 현진건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방인근은 "박씨 성을 가진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했다) 기미(期米) 사업을 시작하지만, [[1940년]]에 당시 명동에 있던 증권회사에 미두를 투자했다가 그것이 모두 실패하면서<ref>이재민, 「새 자료로 본 빙허의 생애」, 『문학사상』 1973년 4월. p.355.</ref> 양계장이나 다른 재산, 부암동에 있던 집도 처분하고 신설동 고려대학교 정문 앞의 조그만 초가집(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 137번지 61호)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 실패로 현진건은 더욱 술에 빠져 살게 되었고 결국 '혈압' 때문에 쓰러져 눕게 되었다(이 해에 현진건의 단편소설과 역사소설 「무영탑」이 박문서관에서 「현진건 단편집」과 「무영탑」으로 발간되었다). 현진건은 『동아일보』 기자였던 양재하가 만든 친일잡지인 『춘추』 4월호에 소설 「선화공주」를 연재하지만 9월호에서 중단하였다(미완).
         숙부 '''[[현영운|영운]](映運)'''은 아내 [[배정자|분남]](粉男)이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된 것을 계기로 크게 출세하여, 장관급인 대한 제국 군령부 참장, 주일특명전권공사, 원수부 검사총장, 참모부 제1국장, 농상공부 협판 등의 고위직을 거친 구한말의 전형적인 친일관료였다. 이러한 그의 벼락출세가 영운의 형제들의 관직 진출에 음으로 양으로 크게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친 '''경운'''은 지위가 정3품 통정대부까지 올랐고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보사장을 거쳐 [[1895년]] 대구부 전보사의 주사로 취임하기도 했다.<ref>당시 전보사는 농상공부대신의 관리를 받으며 전보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였으며, 1등사와 2등사로 구분되었다. 한성(서울)과 인천, 원산, 부산, 의주, 경성, 함흥, 회령이 1등사에 속했고 대구는 2등사였다. 통신원 국장이란 직책은 수준은 미비할 망정 국가의 전신, 전화, 전기는 물론 우편과 운송 분야와 관련한 시설과 제도를 관리하는 자리였기에 아무나 역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33~3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숙부 '''철운'''은 안동관찰부 주사 겸 용궁군수를 지냈다. 숙부 '''양운'''은 관립영어학교 출신으로 궁내부 예원주사에 태복시 기사 등을 지내고 [[원산]]과 [[동래]]에서 영어교사로 일했으며 [[대한체육회]] 창설 멤버로 알려져 있다. 숙부 '''붕운'''은 태복시 주사를 지냈다.
         부친 경운의 첫 부인이자 현진건의 친어머니인 완산 이씨 정효(貞孝)는 진건을 비롯한 네 명의 아들을 낳은 뒤 막내 진건의 나이 열 살 때인 [[1910년]] 6월 13일에 죽고, 경운은 정선(旌善) 전씨를 후처로 맞아들여 또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진건의 큰형 '''홍건(鴻健)'''은 러시아 사관학교 출신으로 대한 제국의 육군 참령을 지냈다. 한때 러시아 대사관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으며, 《각사등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문헌에 따르면 광무 6년([[1902년]])에 외국어학교(外國語學校) 부교관(副敎官)과<ref>《각사등록》 광무 6년(1902년) 7월 28일조. 이듬해인 광무 7년(1903년) 4월 23일(양력 5월 19일)에 면관되었음이 《승정원일기》에 수록되어 있다.</ref> 칭경시(稱慶寺)의 예사무위원(禮式事務委員)을 잠시 맡기도 했다<ref>《승정원일기》 광무 6년([[1902년]]) 6월 24일조. 그러나 광무 7년(1903년) 2월 28일(양력 3월 26일)에 해임되었다(《승정원일기》 같은 날 기록).</ref> 말년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미소공동위원회|미(美)·소(蘇) 공동위원회]] 시절에 납북되었다는 설도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3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둘째 형 '''석건(奭健)'''은 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아우 정건이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변호를 맡기도 했다. 셋째 형 '''[[현정건|정건]](鼎健)'''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하다.
         이들 형제는 현진건이 5촌 당숙 '''현보운'''([[1875년]]~[[1919년]])의 양자로 [[입양]]되어 들어간 뒤 법적으로는 친형제에서 6촌 형제로 바뀌었다. 관립 일어학교 출신의 보운은 고종 33년인 [[건양]](建陽) 원년([[1896년]]) 8월 3일에 외국어학교의 교관(敎官)이 되었고, 광무 3년([[1899년]])에는 궁내부 번역관, 광무 4년([[1900년]]) 12월 24일에는 예원 참리관으로 임명되어 봉직하다가 [[러일전쟁]]이 일어난 광무 7년(1903년) 11월 11일에 주일공사관 이등참서관이 되었고, 광무 8년(1904년) 일본 보병대 수원(隨員)으로 일본으로부터 즈이호오 4등 훈장을 받기도 했다. 광무 9년(1905년)에는 [[병조|군부]] 군무국 포병과로 옮겨 정위가 되었다.
         두 살 연상의 아내 이순득에게서 얻은 두 딸 경숙(卿淑)과 애경(愛卿)은 각각 어린 나이에 죽고, 셋째 딸 화수(和壽)는 그의 문우 박종화의 장남 돈수(敦洙)에게 시집가서 1남 4녀를 낳았다.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박동건은 바로 화수의 아들이다.
  • 슈가(방탄소년단) . . . . 47회 일치
         ||<:><#00CED1>{{{#fff '''신체'''}}} ||<(> 174cm[* 정확히는 173.8cm.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다 같이 병원을 갔었는데, [[지민(방탄소년단)|지민]]과 키가 [[https://twitter.com/ah1069111/status/836601297583419392|2mm가 차이난다고 밝혔다.]] --[[정국(방탄소년단)|전루살이]]: 본인은 지민이 형보다 크다고 하지만 보기엔... 팀에서 제일 작아 보이죠--], 57kg[* [[LOVE YOURSELF 承 `Her`]] 활동 당시 바뀐 공 홈페이지 프로필에서 확인.], O형, 265mm ||
         ||<:><#00CED1>{{{#fff '''학력'''}}} ||<(> 태전초등학교 (졸업)[br]관음중학교 (졸업)[br][[강북고등학교]] (전학) → [[압구정고등학교]] (졸업)[br][[글로벌사이버대학교]] 방송연예학과 (재학) ||
         ||<:><#00CED1>{{{#fff '''별명'''}}} ||<(> 설탕, 민슈가[* 본명인 민윤기와 예명인 슈가를 합친 것. 자매품으로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이 있다. ~~feat. 민윤기천재짱짱맨뿡뿡아 울지마라~~], 민피디[* 슈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 슙기력[* 슈가 + 무기력], 민가마니, 슙슙이, 고유슈가, 민빠답, 윤기선배, 양꼬치 듀오[* [[정국(방탄소년단)|정국]]과 함께. 둘이 양꼬치를 자주 먹으러 간다고 한다. 옥수수 국수도.], 사탕[* 중국 팬 한정. [[중국어]]로 "탕탕" 이라고 발음된다. 설탕(슈가) 또는 사탕을 뜻하는 '탕(糖, táng)' 자를 두 번 연이어 쓴 것. 한글로 독음할 경우 '당당(糖糖)'], [[Agust D]][* 솔로 활동명. 2016년 8월 동명의 이름으로 믹스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공화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Agust D]] 항목 참고.],[br]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V앱 스타캐스트 참고.], 민윤지[* V앱 달려라 방탄 11화에서 여장을 했다.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같이 [[https://twitter.com/BTS_twt/status/826697453105606656|셀카]]를 찍고 SNS에 민윤지(하트)라고 올렸다.], 슙디[* 꿀FM에서 슈가슈가슙디... 라고 DJ를 맡았었다.], 송월[* 트리비아 항목 참고.], [[메타몽]], 미늉기, 민다가오지마[* [[LOVE YOURSELF 承 'Her']]의 컨셉포토 사진 때문에 생긴 별명.], 슈왜노잘[* [[LOVE YOURSELF 承 `Her`]] 앨범이 발매된 후 김영대 음악평론가가 올린 트윗에서 유래된 말이다. [[https://twitter.com/toojazzy25/status/909994408468029440|슈가 왜 노래 잘하지?]]], 민덩방아[* [[RM]]이 준 의자를 받자마자 엉덩방아를 찧고 아픔을 호소했는데, 이를 [[RM]]이 민덩방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A.R.M.Y|아미들]]은 슈가 놀리려고 실시간 트렌딩에 올려놨다.--] , 민형[* 민윤기 형을 줄인 말. 데뷔 전부터 민형이라 불렸다고 한다.], 각슈가[* 각설탕(...)], 민설탕, 민달팽이[* 초등학교 때 흔하게 민 씨들은 민달팽이이라는 으로 단순하게 지은 별명이라 한다. [[아는 형님]]에 나왔을 때 한 별명 맞히기에서 밝혀진 사실인데, 예명인 슈가와 관련된 별명을 내면 빠르게 들킬까 봐 민달팽이를 적어서 낸 것 같다.] ||
         예명은 Sugar(설탕)가 아니라 '''SUGA'''가 맞다. 이 예명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피부가 무척 하얀 데다 웃을 때[* 웃을 때 본인 특유의 입동굴을 보인다. 이 입동굴 때문에 팬들이 팬사인회에서 아랫니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예쁘고 달콤해서 슈가라는 예명을 지었다는 것. 하지만 힙합이 너무 달콤하면 안 된다는 소리에, 'SUGAR'에서 R이 없는 그냥 'SUGA'를 선택했다 한다. 힙합 용어에서 '슈가'는 '중독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학창 시절에 농구부에서 [[슈팅 가드]]를 맡았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줄임말인 '''슈가'''를 선택했다는 것. 모 인터뷰에서는 복싱이 터프하지만 정교한 기술이 필요해 'sweet science'로 불리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에는 스윗해 보이지만 음악적으로 시니컬한 면이 있어 이런 이중적인 면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슈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한 믹스테이프인 'Agust D' 뮤직비디오를 볼 때, 소속사에서 공적으로 올려 준 영어 자막을 틀고 보면 '성공'을 'sugar'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성공'''과 거리가 먼 형들 사이 눈엣가시네 -> I'm a pain in yo' ass too far from the '''sugar'''. 성공을 통해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예명의 본래 뜻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반해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매번 예명의 뜻을 설명할 때마다 이유가 달라진다. 때문에 최근에는 뭐 이젠 그런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요... 하고 답하기도 하였다.
         >'''학교를 가면 다 돈 많은 집 자들'''
         >'''그리곤 씨발 뭐 돈 없다던 가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초등학교 6학년 당시 "넌 안 돼", "넌 랩을 하면 안 될 친구야" 라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고 한다. 욕을 먹었을 때 본인의 반응은 '그래? 그럼 안 해' 혹은 '그래, 네가 욕한 만큼 다 보여 줄게' 둘로 나뉘는데, 음악의 경우 후자에 더 가까웠다고. 이후 수많은 노력 끝에 랩을 잘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랩을 할 때 [[https://youtu.be/jmG1EhBntCA|목을 긁어내는 ]]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고친 후 데뷔한 거라 지금은 목 긁는 소리를 내며 랩하는 슈가를 볼 수 없다.[* [[http://www.weiv.co.kr/archives/6420|이 인터뷰]]에서 발췌.] 하지만 솔로 믹스테이프에서 볼 수 있듯이 조금은 다시 목을 긁어내며 랩을 하는 듯. [[LOVE YOURSELF 轉 'Tear']] 앨범에서는 이전보다 더 다양한 톤과 플로우를 구사한다.
         '''13세 때부터 [[미디]] 작업을 시작했다.'''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곡, 편곡을 익혔고, 그 덕분에 녹음 장비와 음향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39&contents_id=122930|링크]] 고등학생 때는 학교 교가를 편곡하여 용돈벌이를 했다고 한다. 일본의 하루하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한 반면에, 학창 시절 음악 과목은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음악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정해져 있어서 그게 싫었다고. 그래서 교과서로는 음악 공부는 하지 않고 방과후에 음악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 실력 또한 본인이 독학으로 공부한 것.
         데뷔 전 언더 활동 시절 gloss[* 한국어로 본명인 윤기(...)]라는 예명을 쓴 적이 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ADV 크루의 리플로우 곡 중 Who am I의 비트를 찍었다.[* 참고로 이때 슈가의 나이는 19세,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다만 이때는 gloss란 예명을 쓰지 않고 본명을 그대로 사용했었다고.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음악을 하던 시절이 녹록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에서 버는 수입으로는 비와 교통비를 내기에도 벅찼다고 한다. 스튜디오 바로 앞에는 2천 원짜리 짜장면 집이 있었고, 한참을 걸어가면 천 원짜리 국수 집이 있었는데, 반대로 국수를 먹으면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고 짜장면을 먹으면 두 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했기에 매일 고민했다고.
         그러나 공적인 자리, 특히 팬들 앞에서는 밝은 미소와 [[https://twitter.com/lqyoongi/status/874689569815498757|애교]]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인터뷰에서 팬들 앞에만 가면 자꾸 애교를 부리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팬들은 '팬들 앞에만 서면 엄청난 조련 실력을 보여준다'라고 평가. 예를 들어... [[http://www.youtube.com/watch?v=mASFNt7etK8|더듬이를 찾는 꿀벌 슈가]] [[http://www.youtube.com/watch?v=jNs7q-3IvnA|고소당할 위기의 민윤기 씨(...)]] [[http://www.youtube.com/watch?v=BVOFEBh8PVg|밥으로 팬 조련하는 슈가]] [[https://twitter.com/sugaonthebeat39/status/914831884424667137|텍스트 애교 슈가]]
         그리고 멤버들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RM|]]을 '''준이'''라는 [[https://youtu.be/6CHNUAO0eZQ|애칭으로]] [[https://youtu.be/kuxNKfi8_P8|부르거나]], [[정국(방탄소년단)|밥 안 먹는 멤버]]한테 [[https://youtu.be/5M9ruwJIaXs|왜 안 먹냐고 챙겨준다거나(1분 55초부터)]] 등등... 휴대폰에 멤버들을 저장해 놓은 이름도 --예상 외로-- 귀엽다. [[RM|랩몬킴이야]], [[제이홉|호옵]], [[진(방탄소년단)|찐형]] 이다. 말 그대로 [[갭 모에]]. 툴툴거리면서도 멤버가 해 달라는 걸 다 해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http://www.vlive.tv/video/5999?channelCode=FE619|14분 16초부터]] --[[츤데레]]--[* 충수염에 걸렸을 때 혼자 병실에서 [[SBS 가요대전]]을 보다가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넘어진 것을 보고 TV 채널을 바로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무대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고... --흥! 널 딱히 좋아하는거 아냐!-- --츤츤-- '못 보겠더라고' 라고 말했다. 어투를 보면 놀라고 걱정되는 마음에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츤데레]]보단 [[다루데레]]에 가깝다--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단연 [[제이홉]]에게 치킨을 사다준 사연.[* 제이홉 [[제이홉#s-2|트리비아]] 항목 참고.] 달려라 방탄 ep.9에서 번지점프를 뛰는 [[지민(방탄소년단)|지민]][* 지민은 [[방탄소년단]]에서 겁이 두 번째로 많은 멤버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제이홉.]을 보고 "뛰었어? 뛰었네. 아이고" 라고 말하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면모가 많다. 때문에 슈가를 두고 '''무관심 속 유관심'''이라 일컫기도 한다. 제이홉 왈 그룹에서 슈가만큼 멤버들을 신경쓰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한다.
         가끔 매우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이 보인다. --정말 소시민 같다-- <[[O!RUL8,2?]]>에 수록된 If I Ruled The World 슈가 파트가 대표적인 예. --세계가 자기 건데도 참... 소박하다 이 남자-- '주과 도박 그딴 건 안 하고파' 라는 가사처럼 작은 내기 --도박--도 꺼리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BON VOYAGE2 5회에서 멤버들의 내기 경기가 끝난 후 슈가가 한 말은 "여러분들 현실에 만족하세요! 여러분들 한방은 없습니다! 제 인생의 지론이에요!"
         ▲ 불안함과 외로움은 평생 함께하는 것 같다. 그걸 어떤 방으로 풀어내느냐에 큰 의미를 두는데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 같다. 상황과 순간마다 감정은 너무 달라서, 매 순간 고민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나 또한 불안하고 당신 또한 그러하니 같이 찾고 공부해봅시다''''란 말을 하고 싶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841719|인터뷰 전문]]
         평소 '~슙' 이라는 말 습관이 있다. 일종의 의문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공 트위터 말투뿐만 아니라 팬들이 지어주는 여러 애칭과 자막에 '슙' 자가 종종 들어가는 것이 특징. 이 중 '슙기력'은 '슙'과 '무기력'이 합쳐진 용어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무기력한 모습을 빗댄 말이다. 또한 평소 '씁'에 가까운 정체 모를 언어를 매우 자주 사용한다. 이 역시 의문문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https://youtu.be/JcYjKdZUFJs|여기서 들어볼 수 있다.]]
         애교 많은 --공석상-- 밖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일상 대부분이 잠인데다가 만사를 귀찮아한다고 한다. 일부 모습을 보면 어째 맏형인 [[진(방탄소년단)|진]]보다 늙어 보인다. [[https://youtu.be/sjwrE0I-cXM|이것]]만 봐도 그런 것 같다. [[뷔|모 멤버]]는 팬싸인회 포스트잇을 통해 슈가의 정신연령이 50세라고 증언했을 정도. 리허설 때도 종종 무기력해보이는 모습을 보이며 오죽하면 스탭들이 '오늘 슈가 어디 아프니?' 라고 종종 물어 본다고 한다. 숙소에서도 주로 숨어있는다고 한다. 하지만 매번 숨은 게 티가 난다고.
         [[방탄소년단]] 꿀FM[* 방탄소년단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실제 라디오 방송은 아니며 데뷔 n주년, 크리스마스 등 불규칙한 시기에 유튜브 공 계정을 통해 업로드된다. 여담으로 6.13mhz라고 한다.]에서 '슙디(슈가+DJ)'로 DJ를 맡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의 특성상 차분한 저음과 능숙한 진행 능력 때문에 지목된 듯. 신인왕 때도 MC다래[* 당시 다래끼가 나 있었다.]로 발탁돼 매끄러운 진행을 보여준 바 있다.
         1절에서는 대구에서 서울로의 상경을 다짐하면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빅히트]]에 오디션을 보게 된 과정, 2절에서는 그의 연습생 시절 고충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신감과 패기로 똘똘 뭉친 채 상경했던 그가 서울에서 첫 저녁 사를 사 먹는 순간 현실을 마주하며 반전되는 가사의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그렇게 지친 몸 끌고 학교로 가면 잠만 자던
  • 서정돈 . . . . 46회 일치
         | 경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br />성균관대학교 총장<br />성균관대학 이사장
         |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br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
         2003년 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현재 학교법인 성균관대학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6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를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석사, 197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학교와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임강사로 활동했고, 1976년 ~ 199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94년 ~ 199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학장을 역임했다. 1997년 3월 ~ 2003년 2월에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을 맡았고, 2003년 2월에는 성균관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2011년 1월까지 역임했다.
         성균관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9년 동 대학 유학대학원에 학생 신분으로 입학하여 이듬해인 2010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11758305&code=100203 성균관대 서정돈총장 대학원 진학] - 경향신문, 2009년 2월 1일</ref>
         == 출신 학교 ==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석사(1969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1973년)
         *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2010년)
         * 1975년 6월 ~ 1980년 3월 : 서울대학교,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 1980년 4월 ~ 1984년 3월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 1980년 10월 ~ 1981년 6월 : 미국 [[예일 대학교]] 연구원
         * 1984년 4월 ~ 1989년 3월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교수
         * 1989년 4월 ~ 1997년 1월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1990년 6월 ~ 1993년 6월 :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
         * 1994년 5월 ~ 1996년 5월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학장(교무 담당)
         * 1997년 3월 ~ 2003년 2월 :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 2003년 2월 ~ 2011년 1월 : 성균관대학교 총장(제18대)
  • 토리코/395화 . . . . 46회 일치
         [[토리코]] 395화. '''모두가 둘러앉은 저녁탁'''
          * 인간계로 돌아온 토리코는 약속대로 린과 결혼을 거행한다. 많은 동료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낸다.
          * 코마츠는 오오타케, 나카우메와 결혼 피로연 음을 준비하며 그간의 모험을 회상한다.
          * 피로연 음은 토리코의 풀코스. 기존 풀코스에 지금까지 토리코와 코마츠가 함께 포획했던 재가 곁들여진 완성판이다.
          * 토리코는 장 한 곳에 빈 테이블을 놔뒀는데, 거기에 이치류, 지로, 아카시아, 플로제의 혼이 찾아와 함께 즐긴다.
          * 예의 마지막엔 미도라의 혼이 등장. 수백년 만에 이들 가족이 "모두 둘러앉은 저녁탁"에 모이게 된다.
          * 토라코와 코마츠는 미도라의 묘를 정한다. 작고 이름도 없는 비석 앞에 토리코가 가져온 재가 놓여있다. 원래는 이치류와 지로가 묻힌 몰의 곶으로 정했지만 미도라의 혼의 의향에 따라 삼형제가 수행하던 땅에 묻힌다.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지만 "형제가 같이 묻혀봐야 저세상에서 싸우기 밖에 더 하냐"는 말을 했다. 미도라는 아예 무덤도 필요없다고 했지만 토리코가 매주 풀코스를 가져다 주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이곳을 지명한 것이다. 항상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 둘 만 참석한 장례이 끝나고. 때마침 인간계에서 호출이 온다. 토리코와 린의 결혼이 임박했다는 호출이다. 두 사람은 서둘로 코마츠가 일하는 구르메 호텔로 달려간다. 결혼 준비는 이미 끝나있고 린도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 토리코도 턱시도로 갈아있고 합류. 린은 토리코가 예쁘다고 하는 말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도매상 톰을 비롯한 인연있는 요리사, 미가들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결혼과 더불어 오늘 피로연의 음, 토리코의 "풀코스"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예은 금방 끝나고 곧바로 피로연의 시작이다. 하객이 무려 5천명. 한 번이라도 토리코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축하해주러 왔다. 구르메 계의 주민들은 물론 스타준을 위시한 미회의 인물들까지 얼굴을 보인다. 코마츠는 조리장으로서 꼭 성공적인 피로연으로 만들자고 기합을 넣는다. 오오타케, 나카우메도 조력하러 온다. GOD를 요리한 전설의 요리사들이 모두 모이자 주방은 한 순간에 달아오른다.
          * 린은 장 한켠에 빈 테이블이 놓여있는걸 발견한다. 그런데 여느 가정집에서나 쓸법한 낡고 평범한 테이블이다. 린이 뭐냐고 묻자 토리코는 "어떤 혼들을 초대한 자리"라며 꼭 와주길 기대한다고 말하는데.
          * 풀코스의 "전채", BB콘이 등장. 하지만 통상의 BB콘이 아니라 치킨 키슈와 비장의 조미료 "멜크의 별가루"가 토핑돼 있다. 하객들이 대호평하자 초대 멜크와 2대 멜크도 만족스럽게 미소짓는다. 치킨 키슈도 공들인 작품. 다양한 재료로 만든 페이스트리 안에 커스타드 크림을 넣은 음인데 코마츠가 토리코와 처음 만났을 때, 토리코가 낚시로 잡았던 가재피시와 오미 독수리를 넣었다. 코마츠는 풀코스 안에 자신과 토리코의 인연과 여정을 새겨넣은 것이다.
          * 두 번째 요리는 "수프" 센츄리 스프. 아이스헬에서 죽을 고생을 해 손에 넣은 재다. 당시 토리코와 동행했던 멤버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그때 구르메 쇼윈도의 붕괴를 막지 못하고 끝내 센츄리 스프는 실전되지만 마지막 한 방울을 마신 코마츠가 천부적인 재능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미도라도 감탄했을 정도의 재로 인간계의 재료지만 구르메계의 주민들도 만족스럽게 먹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요리. 바게트 대신 함께 나간 약선떡도 에코김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유다는 사수가 침공했을 당시 코마츠의 천부적인 재능에 놀랐던 일을 회상한다.
          * 그러는 사이 토리코는 낡은 테이블에 기다리고 있던 혼들이 도착한걸 눈치챈다. 이치류와 지로. 어느새 도착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네 번째 "고기요리", 엔드 매머드(완상)의 스테이크. 사실상 네오의 고기라고도 할 수 있다. 놀랍게도 네오도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최종보스인 네오의 고기"라고 해설하자 제브라가 옆에 앉은 네오에게 "너보고 최종보스랜다"라고 놀린다. 네오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스테이크엔 라이브베아라가 제공했던 메테오 갈릭이 토핑. 고명으로 고대의 보 보석고기와 가라라 악어 고기가 올라갔다. 이 또한 토리코와 코마츠가 함께 포획한 고기요리의 총집성 같은 것. 코마츠는 특히 가라라 악어를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다. 스타준은 보석고기를 맛보며 리갈 매머드 안에서 토리코에게 패하고 "나도 언젠간 먹고 싶었다"고 말하던 일을 떠올리고 미소짓는다.
          * 다섯 번째이자 모두가 기다리던 "메인 디쉬" GOD. 토리코는 이미 한 번 맛봤던 것이지만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그의 욕 "적귀"와 이별하게 된 재이며 그와 함께 먹고 싶었던 재. 지금은 잘 다듬어져 마치 작은 지구를 잘라놓은 것처럼 보인다. 토리코는 GOD를 맛보며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토리코만이 아니다. 토리코와 GOD를 놓고 경쟁하기로 했던 아이마루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GOD를 칭송하고 앞다퉈 추가 주문한다.
          * 삼형제들의 테이블에는 어느새 새로운 손님이 도착했다. 아카시아와 플로제. 생전의 회한을 잊은 듯 단란한 모습이다. 아카시아는 잠시 블루 니트로 페어와 눈이 마주친다. 페어 또한 아카시아의 혼을 느끼고 있다.
          * 여섯 번째 "샐러드" 에어. 야채의 왕 오존초 위에 올려져 제공됐다. 요계의 인물들은 에어에 특히 감격하며 먹는데 코마츠는 개인적으론 처음 콤비 결성을 했던 오존초 쪽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토리코가 콤비를 짜자고 하던 말을 떠올리며 거의 통곡하는 코마츠.
          * 일곱 번째는 "디저트", 단맛의 백화점 무지개 열매다. 이거야 말로 코마츠와 토리코가 처음으로 포획한 "풀코스". 여기에 깜놀사과 레벨 100짜리, 림사의 보물 샤봉 플루츠, 냄새 폭탄 두두리안 붐. 두두리안 붐의 악취 때문에 작은 소란이 일지만 토리코는 추억의 냄새고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웃어넘긴다. 존게는 두두리안 붐의 냄새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냥 맛있게 잘 먹는다.
          * 대망의 최후의 풀코스 "드링크" 빌리언 버드의 알. 도탄에 빠진 인간계를 구원하고 새로운 구르메 시대를 개막한 구세주 같은 재다. 조청무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소년도 이 자리에 참석해 빌리언 버드야 말로 모두를 구원한 재라며 칭송한다. 오늘 나온 빌리언 버드의 알은 멜로우 콜라가 같이 나오는데 쉐이크로 만들면 빌리언 버드 멜로우 드링크가 된다.
          코마츠는 모든 서빙이 마치자 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데 멜로우 콜라 탓을 하며 말을 돌린다.
  • 울진군 . . . . 45회 일치
         ||<-2><bgcolor=#58D3F7> {{{#FFFFFF '''링크'''}}} ||<bgcolor=#CEECF5> [[http://www.uljin.go.kr/index.uljin|울진군 공 홈페이지]]
         [[https://twitter.com/marinepiauljin|[[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울진군 공 트위터]]
         [[http://blog.naver.com/uljingokr|[[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15]]울진군 공 블로그]]
         [[https://www.facebook.com/marinepiauljin|[[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울진군 공 페이스북]] ||
         가끔 일부 주민들이 원자력 발전소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이건 [[환경단체]]와 연계된 일부이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별 신경 안 쓰고 발전소의 혜택을 꽤나 많이 보고 있다. 발전소 하나가 '''울진군 세수의 70%'''를 담당하고 있고 부구리의 [[초등학교]]에는 놀랍게도 인조[[잔디]][[운동장]]이 깔려있다. ~~부럽다~~ 울진읍의 중학교에도 인조잔디운동장이 깔려있다.
         지역 전체를 둘러봐도 영화관이 한군데도 없어서 과거엔 결혼 예장에서 영화를 개봉하곤 했으나 --읍내리에 있던 울진소극장은 사라졌더라--현재는 군에서 청소년 수련관, 울진문화예술회관, 울진남부도서관,한울 원전 원자력 홍보관에서 개봉일이 좀 지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주다가 최근부터 1000원에 관람료를 받고 상영해주고 있다.
         ==== 초등학교 ====
         || ||<:>학교명 ||<:>주소||
         ||1||울진초등학교||울진읍 울진중앙로 143||
         ||2||울진남부초등학교||울진읍 울진중앙로 52-5||
         ||3||평해초등학교||평해읍 평해로 19||
         ||4||월송초등학교||평해읍 월송길 59||
         ||5||노음초등학교||근남면 노음6길 22||
         ||6||기성초등학교||기성면 척산2길 24-5||
         ||8||사동초등학교||기성면 해월헌길 19||
         ||9||부구초등학교||북면 울진북로 2081||
         ||11||삼근초등학교||서면 삼근2길 23||
         ||15||온정초등학교||온정면 온정학교길 49||
         ||16||매화초등학교||원남면 매화4길 21-4||
         ||17||죽변초등학교||죽변면 죽변3길 17||
  • 청도군 . . . . 45회 일치
         ||<-2><bgcolor=#ACDB67> {{{#0B3B17 '''링크'''}}} ||<bgcolor=#CEF6CE> [[http://www.cd.go.kr/|홈페이지]] [[https://twitter.com/icheongdo|[[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트위터]] [br] [[https://ko-kr.facebook.com/ichdo/|[[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청도군 공 페이스북]] ||
         남북과 동서의 교통 인프라가 크게 차이나는 기이한 곳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분지 지형이긴 하지만 동서쪽으로 지형이 남북 지형보다 험한 편이다. 남북으로는 [[경부선]], [[대구부산고속도로]], [[25번 국도]]가 [[밀양시]]ㆍ[[경산시]]로 향하지만 동서로는 [[20번 국도]]가 [[경주시]]ㆍ[[창녕군]](그것도 2차로로 좁은 데다 선형도 좋지 않다)으로 향하며 [[30번 지방도]]가 이서면에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팔조령 터널을 넘어간다.], 902번 지방도가 각북면에서 [[가창면]] 정대리[* 그것도 구배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헐티재를 넘어가야 한다.]로 향한다. [[창녕군]]으로 가려면 그나마 낫지만, [[달성군]]([[현풍면]] 방면)으로 가려면 [[창녕군]] 성산면을 거쳐 [[유가면]]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각면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비티재를 넘어 고암면 방리에서 1034번 지방도를 타고 성산면을 거쳐 등지교차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 이래저래 골 때린다. 더 난감한 것은 청도에서 [[달성군]]([[현풍시외버스터미널]])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전무하다. 청도군 또한 산이 만만찮게 많은 고장이니 결과적으로 이런 이긴 하지만 수요에서부터 벌써 넘사벽이다. 게다가 청도군은 동서로 긴 지형이고 산서(풍각, 각북, 각남)과 산동(매전, 운문, 금천)으로 나뉘는데 중심지인 청도읍과 화양읍이 산서와 한 분지에 속하고 산동과는 산이 가로막은 형세라 같은 행정구역이면서도 산동으로의 교통연결은 사실상 2차선 [[20번 국도]] 뿐이다. 그마저도 선형이 좋지 않아 돌아서 가는 편. 언제부턴가 4차선+선형개선 공사중이다.
         그나마 시외버스의 몇몇 구간(경주 등)은 20년 전에는 있지도 않았다.(...) [[청도공용버스터미널]]이 있는 청도군 읍내에서 청도군 내의 다른 읍을 잇는 버스들도 밤 9~10시면 다 끊긴다. 배차간격이 1시간인 아스트랄한 읍내도 많으며 이 때문에 읍내로 학교를 보내야 하는 외곽 지역 학부형들끼리 돈을 모아 승합차를 운행하거나, 역 앞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드물지만 근처에서 자취를 하거나 아니면 학교에 있는 조그마한 기숙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곤 한다. 여담으로 이 고등학교는 고3들에게 3끼 급을 다 제공해서 학부모들이 참말로 편하다 [[카더라]].
         매년 일정기간 청도 소싸움 축제를 하고 그외엔 주말에만 보통 경기를 여는데 입장료는 공짜고 대신 소싸움에 배팅을 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용암웰빙스파'와 '[[프로방스#s-2.3|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가 있어 온천과 빛축제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꽤 많다. 때문인지 주변에 [[펜션]]들과 음점들도 몰려있다.
         매년 여름에는 '''개나 소나 콘서트'''가 열린다. 개그맨 [[전유성]]씨[* 청도에 음점을 개업했다.]의 아이디어로 애완동물들을 위한 음악회. 클래 공연과 함께 사진전, 코미디 공연 등 여러 부대행사가 열린다.
         --[[경상도]]답게-- [[경상도 사투리]]. 단, 지리상으로는 [[경상북도]]에 속해 있으나 경북의 최남단에 위치한데다 [[경상남도]]와 접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경북 방언에 비교해 볼 때 억양과 강세가 그것보다 좀 더 뒤에 있는 편이다. 경남 방언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경북 방언을 구사한다. 쉽게 비유해서 [[안동시]]에 사는 사람이 이 곳 청도군에 놀러왔을 때 꼭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카더라]] . 그렇다고 해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사람들이 듣고 경남권 억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억양만 들어도 경상도 사람들은 경북/경남권인 거 [[악센트]]를 들어보면 딱 알 수가 있다. 2의 E승, 2의 2승, E의 E승, E의 2승의 위엄.(...) 엄밀히는 [[대구광역시]]와 더 가까운 형태의 방언이지만, 저런 [[이유]]로 딱히 다른 경북 지역만큼 경남 방언과의 차이를 느껴 어색해하지는 않는 면이 있다. 물론 방언 특징상 사람마다 편차는 큰 편.
         ==== 초등학교 ====
         ||1||<:>청도초등학교||<:>화양읍 청화로 38-10 ||
         ||2||<:>유천초등학교||<:>청도읍 유천강변길 68 ||
         ||3||<:>청도중앙초등학교||<:>청도읍 중앙로 81 ||
         ||4||<:>화양초등학교||<:>화양읍 동헌길 15 ||
         ||5||<:>남성현초등학교||<:>화양읍 남성현로 473-11 ||
         ||6||<:>각남초등학교||<:>각남면 각남로 59 ||
         ||7||<:>풍각초등학교||<:>풍각면 송서10길 22 ||
         ||8||<:>덕산초등학교||<:>각북면 덕남길 11-7 ||
         ||9||<:>이서초등학교||<:>이서면 학산2길 56 ||
         ||10||<:>금천초등학교||<:>금천면 섶마리1길 27 ||
         ||10-1||<:>금천초등학교(문명분교장)||<:>운문면 운문로 1558 ||
         ||11||<:>동산초등학교||<:>매전면 동산길 43 ||
         ==== 중학교 ====
  • 김운용 . . . . 44회 일치
          | 직업 = 스포츠기관단체인, 대학교
         김운용은 연희전문대(현재의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미국 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오며 익힌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1군사령관 [[송요찬]]의 부관으로 일했다. [[4·19 혁명]] 당시 계엄사령관인 송요찬의 부관으로 근무하였으며, 경찰의 실탄 요청을 송요찬이 거부하였다고 증언하였다.<ref>이문영,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3473.html “4·19때 경찰이 계엄사령관에 총탄 10만발 빌려달라 요청”], 한겨레신문</ref>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태권도 연맹]]을 역임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부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17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세브란스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yonhapnews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배진남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한국스포츠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오전 타계(종합3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20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news1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정명의 | 위치=서울 | 뉴스=뉴스1 | 제목=거목이 쓰러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걸어온 길 | url=http://news1.kr/articles/?3116999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158/http://news1.kr/articles/?3116999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
         * 1952년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 1952년 미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 1953년 대한민국 육군포병학교 졸업
         * 1954년 대한민국 육군공병학교 졸업
         * 1956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 1960년 미국 텍사스 웨스턴 대학교(텍사스 대학교 엘패소, University of Texas at El Paso) 학사
         * 1961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 1963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 과정 수료
         * 1976년 미국 메리빌 대학교(Maryville College) 법학박사 학위 과정 수료
         * 1962년 : [[동덕여자대학교]] 강사를 역임함.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메리빌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IOC 위원]][[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동덕여자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한성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교수]][[분류:서일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국민대학교 교수]][[분류:태권도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예천군 . . . . 44회 일치
         ||<-2><bgcolor=#00B1EB> {{{#FFFFFF '''링크'''}}} ||<bgcolor=#FFFFFF> [[http://www.ycg.kr/|예천군 공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ycnong|[[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예천군 공 페이스북]]
         [[http://blog.naver.com/chj0494|[[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15]]예천군 공 블로그]] ||
         ||<rowbgcolor=#F0F8FF> '''예천읍내 전경'''[* 모르는 사람은 안 보일테지만... 예천초등학교, 예천경찰서, 예천군청 구 청사 등의 시설들이 보인다. 왼편에 있는 산이 '흑응산'이고, 오른편의 냇물이 '한천'이다.] || '''예천군청 조감도''' (충효로 111)[* [[경상북도청]]의 디자인을 따와서 비슷한 컨셉으로 [[공모전]]을 한 결과이다.] ||
         === 초등학교 ===
         ||1||예천초등학교|| 예천읍 효자로 43 ||
         ||2||예천동부초등학교|| 예천읍 효자로 171 ||
         ||3||예천남부초등학교|| 예천읍 남부초등길 17 ||
         ||4||용문초등학교|| 용문면 금당실길 51-20 ||
         ||5||상리초등학교|| 효자면 도효자로 1558||
         ||6||은풍초등학교|| 은풍면 내동길 8||
         ||7||감천초등학교|| 감천면 충효로 1395 ||
         ||8||유천초등학교|| 유천면 유용로 34-10||
         ||9||용궁초등학교|| 용궁면 읍부1길 43 ||
         ||10||지보초등학교|| 지보면 지보로 136 ||
         ||11||풍양초등학교|| 풍양면 낙상1길 50-10 ||
         === 중학교 ===
         ||1||<:>공립|| 예천중학교|| 예천읍 예천중앞길 7||
         ||2|| ||용궁중학교|| 용궁면 읍부1길 33 ||
         ||3|| ||풍양중학교|| 풍양면 낙상1길 94 ||
  • 토리코/396화 . . . . 42회 일치
         [[토리코]] 396화. '''최종화 아직 보지 못한 재'''
          * 미지의 재들을 쌓아놓고 청귀, 백귀와 둘러앉은 토리코.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토리코는 1화에서 처럼 낚시를 하며 코마츠에게 두 욕의 악마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 구르메 일의 정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르메 위성"이 뚜껑처럼 태양을 가려서 생기는 것.
          * 우주에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재와 그 조리도구들이 널려있다.
          * 한때 "가장 끝의 땅"이라 불린 곳에는 미의 신이라 할만한 존재들이 살고 있었다. 이 존재들의 욕이 폭발한 것이 "구르메 빅뱅"
          * 139년 전 구르메 빅뱅으로 재들이 우주로 흩어지고 그 가운데 어떤 신의 가족이 지켜낸 재가 "별의 풀코스".
          * 운은 이들 미의 신들이 흩어져 에너지로 전환된 형태.
          * 풀코스 아톰의 효과는 "구르메 매터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지금의 토리코는 우주가 곧 미의 낙원으로 보인다.
          * 토리코와 코마츠는 우주의 재를 향해 출발한다.
          * 모든 것이 끝난 후. 토리코는 재를 쌓아놓고 청귀, 백귀와 둘러앉아 있다. 그는 두 욕의 악마가 하는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있는데.
          * 토리코와 린의 결혼으로부터 수년이 지났다. 오오타케는 꿈에 그리던 "과자의 성"을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GOD를 먹을 수 있는 고아원"으로 부활. 오랜 꿈을 이룬다. 코마츠는 이곳에 방문해 오오타케에게 축하를 건넨다. 모든 것은 IGO와 재생가들이 노력해준 덕에 GOD의 양과 품종개량이 가능해진 덕이었다. 아동보호 목적으로도 인기가 높지만 다른 목적으로 입원을 희망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GOD를 먹을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인 듯. 코마츠는 이 고아원 출신자들이 사회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을 전한다.
          *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토리코. 1화에서 처럼 메뚜기를 미끼로 삼고 있다. 코마츠가 도착하며 오오타케의 고아원에 들렀다 오느라 늦었다 사과한다. 코마츠는 날씨가 매우 좋다며 태양도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말하는데, 토리코가 그 말을 듣고 구르메 일의 진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 구르메 일은 "구르메 위성"이란 것이 태양을 가리면서 생기는 것. 고대에 니트로들이 만든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위성이 냄비뚜껑처럼 태양을 가려서 일어난다. 구르메 매터로 만들어진 것으로 니트로들이 별을 조리하는 방을 바꾼 것도 이 위성 덕.
          * 이런 소을 들은 토리코는 자기 내면에 남은 두 악마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들이 여러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선 "가장 끝의 땅"이라는, 미의 원류와도 같은 곳을 알려준다. 미의 신이라 부를 민족이 살던 곳으로 이곳에서 욕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구루메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킨데 139억년 전의 "구르메 빅뱅"이다.
          구르메 빅뱅의 여파로 우주가 확장되며 가장 끝의 땅에 저장된 재들이 우주로 뿌려진다. 어떤 가족은 그 가운데서 몇몇 재를 지켜내는데, 이것이 바로 "별의 풀코스". 지구에서 아카시아의 풀코스라 불린 재들이다.
          코마츠는 또 풀코스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PANGEA"(판게아)란 단어는 그 "가장 끝의 땅"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토리코는 운의 정체는 미의 신 일족의 거대한 에너지가 세포화한 것이었다며 어쩌면 그들이 자신들을 가장 끝의 땅으로 이끄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풀코스 아톰을 먹은 토리코는 눈이 밝아져서 구루메 매터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토리코에겐 우주는 곧 미의 낙원이나 다름없다.
          * 마침 그때 찌가 흔들린다. 낚아 올려보니 작은 사이즈의 자이언트 셸이었다. 6대륙의 그 녀석의 새끼. 토리코는 작으니까 미니멈 셸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이것은 구루메 천문학자들이 품종개량으로 우주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이 호수에서 양 중이다. 토리코는 이걸 타고 곧 출발하자고 한다. 코마츠는 우주로 떠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모될 텐데 린에게는 이야기 했냐고 하는데, 황당하게도 토리코는 "잠깐 사냥다녀 온다"고 밖에 하지 않았다.
          미니멈 셸은 백채널을 통해 광속을 넘어 시공의 틈새로 비행한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몇 년을 여행하든 지구로 돌아오는건 순간이며 지구 기준으론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다. 코마츠는 그대로 같이 갈 사람은 없냐 사천왕이나 테리 크로스를 언급하는데 테리는 이미 무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사천왕 중 코코와 제브라는 이미 우주로 떠났다. 아직 못 채운 풀코스 하나씩을 우주의 재로 채우기 위해서. 토리코는 어영부영 있다만 제브라에게 선수를 빼앗길 거라고 출발을 서두른다.
  • 청송군 . . . . 41회 일치
         ||<bgcolor=#04B486> {{{#FFFFFF '''링크'''}}} ||<bgcolor=#FFFFF0>[[http://www.cs.go.kr/|청송군 공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cheongsonggun|[[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청송군 공 페이스북]]
         [[http://blog.naver.com/gocheongsong|[[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15]]청송군 공 블로그]]
         [[https://twitter.com/cheongsonggun|[[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청송군 공 트위터]] ||
         유명한 관광지로 [[주왕산]]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외지 사람들은 "[[청송]]"이라는 동네 이름이 나오면 맨 먼저 '''[[청송교도소]]'''와 '''청송감호소'''부터 떠올린다. 이 지역에는 [[교도소]]가 무려 네 군데나 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에 [[흉악범]]과 [[정치범]]을 [[감금]]하기 위해 이런 외진 곳에 [[교도소]]와 [[감호소]]를 왕창 지어논 것. 사실 교도소가 있는 곳은 청송읍이 아닌 [[영양군]]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진보면이다. 청송이란 고장의 이미지를 깎는다고 [[대한민국 법무부]]에 지속적으로 진정이 제기되었는데 결국 이름이 경북북부교도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교도소가 들어서면 [[교정직 공무원]]들 및 면회객들도 오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청송군민들은 '''교도소를 추가 유치하겠다'''고 나설 정도.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5817&plink=ORI&cooper=NAVER|#]] 근데 이것을 역으로 보면 교도소 이외에는 지역경제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낙후가 심각하다는 거다.
         한때 [[호랑이]]가 21세기에도 사는 동네라 알려져 유명했다. 그 이유는 2001년 [[대구 MBC]]에서 취재한 보도기사였는데, 무인 카메라에 의문의 대형 [[고양이]]과 동물[* 몸길이 120cm에 꼬리가 [[호랑이]], [[표범]]과처럼 긴꼬리의 짐승이었다고 한다.]이 찍힌뒤로, 주변에서도 인근주민들의 호랑이 목격담을 취재하며, 호랑이가 맞다고 연일 보도를 해댔었다. 그 당시 MBC는 사활을 걸고 특별 취재팀까지 동원해서 이 사건을 계속 수사했고, 진짜 호랑이가 맞다 vs 아니다의 결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도 이후 6개월만에 [[대한민국 환경부|환경부]]에서 공적으로 '''이건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청송에서 취재된 사진이 [[호랑이]]가 아니다 뿐이지 뭔가 고양이과 야생동물이란것은 확실했고[* [[담비]]라는 설도 있으나 담비치고는 꽤 큰 덩치라 의견이 분분한 상태.], 아직까지도 이게 무슨 동물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양이과 야생동물중 가장 작은 [[삵]]만 하더라도 천연기념물인 한국에선 지금의 청송이 희귀 야생동물이 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일듯. 참고로 이 야산 인근 주민들은 아직도 호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농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사과]]와 [[고추]]가 있다. 실제로 [[청양고추]]가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의 '[[청]]', [[영양군]]의 '[[양]]'을 따서 이름지었다는 [[가설]]이 있다. [[청양고추]] 문서 참고. 그 외에도 [[담배(물)|담배]]와 [[파프리카]], [[야콘]]등이 있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청송 [[사과]]가 등록되어 있는데 [[경상북도]]에서 사과 생산량 2위를 기록한다. 청송하면 '''사과'''가 유명하다고 인 될만큼 사과가 유명하다. 버스 정류장 등의 시설물도 사과를 형상화한 모양으로 지어졌을 정도.[* [[청도군]]에서는 감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지어지기도 했었다.] 수확철에 이 지역을 방문하면 상인들이 도롯가나 주왕산 국립공원 등 노상에 자리를 펴서 사과를 잔뜩 쌓아놓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 주산지, 송소고택, 청송문화관광재단의 청송백자 전시관과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있으며, 청송문화관광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민예촌에서 한옥숙박체험도 가능하다. 또한 인근의 청송 달기약수탕 부근에 장난끼공화국 달빛예술학교에서 각종 체험 및 플리마켓등을 체험 할 수 있다.또한 지역의 전통문화유물인 청송백자,소설가 김주영선생의 소설 객주를 모티브로 한 객주문학관, 야송이원좌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군림청송야송미술관과 위장병과 관절에 좋은 약수가 나오고 있는 달기약수, 신촌약수터 등이 있다.
         ==== 초등학교 ====
         || ||<:>학교명||<:>주소||
         ||1||청송초등학교[* 1912년 설립된 역사 깊은 학교이며, 특이하게도 졸업생의 졸업회차와 출생년도가 일치한다. 가령 90년생은 90회 졸업생. 단, 빠른년생은 제외 ]|| 청송읍 중앙로 229-10||
         ||2||파천초등학교|| 파천면 안파로 1357||
         ||3||진보초등학교|| 진보면 진보로 149||
         ||4||이전초등학교|| 부동면 부동로 1011-74||
         ||5||안덕초등학교|| 안덕면 노하길 35||
         ||6||부남초등학교|| 부남면 부남로 509||
         ||7||화목초등학교|| 현서면 구산동로 21||
         ||8||도평초등학교|| 현동면 청송로 2679||
         ==== 중학교 ====
  • 김형준(배우,가수) . . . . 40회 일치
         ||<#00BFFF> '''학력''' ||대구초등학교[br]대구중학교[br][[대구고등학교]][br][[경기대학교]] 다중매체 영상학과[br][[경희사이버대학교]] 정보통신학과||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명예 [[프로게이머]].[* 명백히 케스파 공인 ''''명예'''' 프로게이머이다.] 같은 그룹 멤버 [[박정민(SS501)|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나왔으며 5인조 [[보이그룹]] [[SS501(아이돌)|SS501]], 3인조 유닛 [[Double S 301]] 멤버다. 동생으로는 [[유키스]] 전 멤버인 [[알렌기범]]이 있다. 친구이자 톰과제리의 톰인 [[박정민(SS501)|박정민]]과는 앙숙이자 절친이다.
          * 막내답게 눈물이 많다. 음악방송에서 1위하면 거의 운다. 리더 뒤에서 맨날 펑펑 운다. 뒤에서 달래주는 멤버들은 덤 --근데 데뷔 초엔 멤버들도 같이 울었다.-- --주로 규종이랑 같이 운다.-- --지금도-- SS501 내 공 울보
          * 매사에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잘 친하게 지내며 SS501 멤버들과도 같이 손잡고 화장실가고 --뽀뽀하고-- 할 정도로 친하다. 특히 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둘이 있으면 늘 티격태격격 하는 사이지만 한편으로 서로 챙겨주기도 해서 절친이다.
         그룹에서 막내 포지션을 맡고있다. 데뷔 초 곱상한 얼굴과 막내라는 이유로 --비주얼 멤버는 노래를 못한다는 인에 따라-- 노래를 못할 꺼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많은 파트와 안정적인 라이브 덕분에 그런 말은 빠르게 사라졌다. 19살에 막내로 데뷔했지만 중학생 때 부터 장장 5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기 때문에 멤버들 중 최고참이며 노래, 춤, 랩 등 많은 포지션을 담당할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래서 그런지 [[SS501(아이돌)|SS501]]에서 가장 많은 포지션을 담당한다. 화음, 코러스, --센터--, 랩, --기염-- 등. 노래를 잘 들어보면 본인 파트 외에도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목소리가 낮고 힘이 있어서 멤버들의 목소리가 묻히는 걸 수도 있다...-- --박정민 빼고 다들 하이톤--
          * 11월 27일 SS501 전원과 함께 MKMF 시상에 참여해 신인상을 수상하고 시상 진행을 맡았다.
          * 2월 5일, 12일에는 김현중과 19일에는 박정민과 함께 여걸스에 출연했다.
          * 12월 17일, 24일 김현중과 함께 여걸스에 출연했다.
          * 12월 10일 허영생, 김규종과 함께 안성종합고등학교를 찾아가 스쿨 오브락에 출연했다.
          * 6월 5일부터 7월 31일까지 [[신로드]]를 진행했다.
          * 12월 11일, 18일 김규종과 함께 [[신로드]]에 출연했다.
          * 1월 27일 게임 전문 공중파 방송인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 됐다. 제목이 곧내용으로서 김형준이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때 김형준이 들어가는 팀은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MBC GAME HERO]]. 처음에는 다소 무개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갤러]]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없는 모습이 어필 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고 결국 3월 4일에 감독 추천으로 공인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뮤탈 짤짤이의 창시자인 [[서경종]]과 매우 친해졌고 서경종은 이를 계기로 해설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하게 되었다.[* 훗날 서경종은 트윗 인터뷰[[http://esports.dailygame.co.kr/news/read.php?id=57529|#]]에서 김형준과의 친분은 100% 설정이었으며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방송 이후엔 연락도 안 했다고 밝혔다.][* 서경종의 트윗문답때문에 김형준의 빠순이들은 서경종한테 악플을 날리고 [[스갤러]]들은 [[빠가 까를 만든다]]면서 [[병림픽]]을 했다. ~~트리플S도 [[카시오페아(동방신기)|카시오페아]]나 [[엘프]]와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함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라..~~] 그리고 유독 [[러커]]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임할때 말버릇이 암요 까시까시맨~이라든지 자기를 가시저그라고 불러달라는 모습도 나왔다. 스갤에서는 주로 까시맨이라고 불린다. 결국 3월 31일을 마지막 방송으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스타 팬들에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다.
          * 6월 11일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해 [[K.WILL|케이윌]]과 함께 [[김원준]], [[박소현(배우)|박소현]] 신혼집에 초대되어 방문을 하였고 사도 하고 집수리도 도와줬다.
          * 8월 4일 허영생, 김규종과 함께 [[신로드]]에 출연했다.
          * 12월 12일 더블에스301 멤버들과 함께 해요TV K-COOK STAR에 출연했다. 삼행시도 짓고 철가방속에 있는 글씨를 맞춰야 요리을 먹을수 있는데 철가방을 순간에 열고 닫아서 맞추기도 어러웠는데 찜닭 이라고 외쳐 정답을 맞춰서 맛있는 찜닭을 먹었다. 닭 CF도 찍고 김규종이랑 막춤까지 추며 요리 대회에서 [[모일봉]]이랑 닭갈비랑 치즈 과일꼬치 요리를 했는데 팬들은 김형준의 [[요리치|요리실력]]을 잘 알기 때문에 당연하듯 허영생, 김규종 팀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주었고 김형준은 요리 대회에서 져서 벌을 받았는데 허영생이 싸이팬으로 김형준 얼굴에 그림(...)을 그렸고 김형준은 해요TV 시청자 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다.
         || Mnet || [[문나이트90]] || 박진영 || 다큐멘터리형 드라마 ||
          * 2011년 2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 공 팬클럽을 창단했다.
          * 2012년 4월 3일 [[B2M엔터테인먼트]] 길종화 대표의 결혼에 허영생, 김규종과 함께 참석해 핑클의 '영원한 사랑'을 불렀다.
          * 2012년 6월 3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김규종의 팬미팅에 김현중, 허영생, 김규종, 박정민과 함께 참석했다.
          * 2013년 1월 15일 아시아 모델 시상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 울릉군 . . . . 40회 일치
         ||<bgcolor=#01A9DB> {{{#FFFFFF '''링크'''}}} ||<bgcolor=#CEECF5> [[http://www.ulleung.go.kr/|울릉군 공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lleunggun/|[[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울릉군 공 페이스북]] ||
         [[울릉군]] 울릉읍에서 제일 큰 마을은 인구 약 5천명의 저동리이며 도동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도동의 인구는 약 2천 명으로서 [[포항시]]와 묵호항에서 오는 [[선박|배]]가 정박하는 곳이다. 그래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숙박업이나 음점은 대부분 도동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저동리는 도동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로서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다. 강릉과 후포에서 출항하는 배는 이쪽에 정박하며, 포항에서 출항하는 배의 일부도 저동항에 정박한다. 이쪽은 보통 울릉도민들이 사는 마을로서 옆에 항구가 있으며 주민을 상대로 한 상점과 편의시설들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일제강점기]] 때 도동이 일본인 마을로 통했다면 저동은 조선인 마을로 통했다는 점. 실제로 도동에는 아직도 일본 건축물이 약간 남아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으로 울릉도를 방문했을때[* 이후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였다.], 묵고 갔다던 당시 울릉군수 관사도 일본 건물이다.
         2018년부터 울릉도에 1개 중대 규모의 해병대 전투병력이 순환배치될 예정이라 한다. 2017년 7월 6일, 울릉도에 거주하는 주민에 의하면 폐교된 모 초등학교에 해병대원 20여 명이 6월에 며칠 동안 깨끗이 청소하고 갔다며 주둔지로 쓸 것 같다고 한다. [[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179567&part_idx=288|#]]
         2017년 8월 20일, 해병대가 최초로 중대급 병력 전개 훈련을 한 것이 확인되었다. 영상 중후반부에 초등학교가 나오고 운동장에 군용차량들이 정차된 것으로 보아 그곳을 주둔지로 사용할 계획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TEggXx89JQ4|#]] 그리고 8월 22일 국방TV 보도에 따르면 당초 언론보도에 알려진 중대급이 아니라 대대급의 해병대 병력이 울릉도에 배치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0xtG0uFhE|#]]
         기독교에 대한 인이 약한 제주도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해안, 섬 지역은 선교사의 포교가 용이한 관계로 기독교의 비율이 높은 편인데 이 곳 역시 [[불교]]가 초강세인 영남권에 있음에도 유일하게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곳이기도 하다. [[포항시|포항]]이나 [[거제시|거제]] 역시 영남권에서는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편이지만, 울릉군의 개신교 강세를 따라잡을 수준이 안된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주민의 47%가 [[개신교]] 신자로, 33%인 [[불교]] 신자 비율을 상회한다. 물론 영남도 대도시는 [[천주교]] 및 [[개신교]] 교세가 꽤 큰 편이라 이상할 건 없다. 당장 [[부산광역시]]에는 초대형 교회도 여럿 있고 [[대구광역시]]를 관할하는 [[가톨릭]] 교구는 무려 대교구([[천주교 대구대교구]])이며 [[부산]]에서 WCC총회도 열린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 서원섭 : 제10대 [[경북대학교]] 총장
          * 봉래폭포-성인봉에서 내려오는 폭포. 바로 저동 위에 있다. 가는 길에 유일한 찜질방이 있다고. 올라가는 길에 풍혈이라고 부르는 천연 에어컨이 있으며 위에는 사방댐과 봉래폭포가 있다. 이 물은 5천명의 저동사람들이 수로 쓴다고 한다.
          * 옛 일본인 가옥(이영관가옥)-등록문화재 235호. 도동항 골목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인 벌목업자가 지은 집이라고 하고, 입구에서는 까페라떼(...)와 쿠키 등을 판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건축양([[일본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을 바로 구경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으니, 배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살짝 들러볼 법하다.
          * 옛 울릉군수 관사-울릉읍사무소 옆에 위치해 있으며, 도동항 골목을 더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발견할 수 있다. 이영관가옥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의 일본 건축양으로 지어져 있으며, 울릉도 발전사에 대해 전시되어 있다.
          * 울릉자생물원-사동항 주변에 위치한,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물들을 모아놓은 물원으로 무료입장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사동항으로 출입하는데 배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면 잠깐 들를 만한 곳이다.
          * 태하항목모노레일-태하에 위치해 있는 모노레일로, 울릉도등대가 있는 전망대까지 연결되어 있다. 강풍이 불 경우 통제될 수 있다. 20명 정도가 되어야 출발하기 때문에, 일행이 적다면 대기시간이 최대 20~30분까지 길어질 수도 있다. 일몰을 보기에 특히 좋은 전망대. 태하마을에서 모노레일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황토굴이라는 깊지는 않은 해동굴이 있다.
          * 나리분지-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로, 나리꽃이 많은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투막집과 너와집과 같은 울릉도 전통 가옥을 볼 수 있는데, 2017년 9월 현재 너와집은 공사중이어서 볼 수 없다. --보통 인은 도동 루트로 성인봉 등산하고 나리분지로 내려와서 마지막에 술 한잔 하는 곳.-- 주변의 알봉 둘레길도 가볼만한 장소.
         [[경상북도교육청]] 소속의 울릉교육지원청이 관할하고, [[고등학교]]까지는 있다. 울릉도 유일의 중학교인 [[울릉중학교]]와 울릉도 유일의 고등학교인 [[울릉고등학교]]가 있으며 한 학년에 40여명이 있다. [[전문계]]와 [[일반계]]가 통합된 종합고등학교로 진학반, 취업반, 해양반으로 나뉘며, 대학 진학 전이라도 대다수는 [[포항]], [[경주]], [[경산]] 등 육지로 일찌감치 나가고, 울릉도에 남아있는 학생들은 매우 적기 때문에 [[수능]]도 당연히 울릉도에서는 치지 않아 수능 며칠 전부터 포항으로 나가 있어야 한다.[* 여담으로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자 본의아니게 포항에서 일주일간 숙박을 해야만 했다는 일이 있었다.] 울릉도에 사는 토익커들도 관내에 토익 시험장이 없어 시험을 보기 위해 포항 등 외지로 나가야 한다.
         당연히 [[대학교]]는 없다. 따라서 여기서 대학으로 진학하려면 무조건 고향을 떠나 본토로 나와야 한다. [[방송통신대]][* 방송대의 경우 출석수업이야 포항이나 대구까지 가야 되니 당연히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출석대체시험과 기말시험을 울릉고에서도 실시하므로 출석수업 전과목을 대체로 신청하면 외지로 안나가도 다닐 수는 있다.]나 [[사이버대학교]]로 진학하는게 아니라면. 우스갯소리로 울릉대 오징어심리학과가 있다는 말은 있지만... --울릉공대--
         그래서인지 이곳 출신 인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면 지역신문은 물론이고 중앙일간지에서도 실어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CE부문 [[대표이사]])[* 원래는 고2때까지 울릉수산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더 큰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대구에 있는 [[대륜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해 총 5년이나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남한권 [[예비역]] [[준장]]([[대한민국 육군]] 인사행정처장),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천주교]]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장 겸 [[덕원자치수도원]]장 서리) 등이 있다.
         관내에 [[결혼장]]이 없어서 울릉도 주민들은 포항 등 외지로 나가서 [[결혼]]이나 [[돌잔치]]를 치러야 한다.
         다만 그렇다고 바가지로 받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는 아이스크림을 시가보다 비싸게(천원이 정가라면 천삼백~오백정도)받았다고 하지만, 현재는 그냥 정가로 판다. 관광업이 주 수입원이다 보니 당의 가격이 비싼 건 맞지만, 일반 생필품 등의 가격이 육지랑 크게 차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울릉도가 물가가 비싸다라는 말이 유행해, MT나 친목도모회를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류/안주류를 사들고 오는데, 울릉도에서 구매하지는 않고 빈 병들만 투척하고 가는 바람에 입도비를 따로 받지 아니하는 울릉도는 벌이가 시원찮은 편.
         브랜드치킨으로 BHC 치킨집이 있는데, 브랜드 제과점은 없다. 도동 소재한 울릉호텔 옆에 양 레스토랑 '에띠앙' 이 자리잡고 있다.
  • 이채영(fromis_9) . . . . 40회 일치
         [[분류:2000년 출생]][[분류:아이돌학교/학생]][[분류:아이돌 댄서]][[분류:아이돌 래퍼]]
          * 상위 문서: [[아이돌학교]], [[유용근밴드리즈]]
         ||<bgcolor=#BBB3D8> '''{{{#white 학력}}}''' ||<(><bgcolor=#ffffff> 흥해남산초등학교 (전학) → 포항양덕초등학교 (졸업)[* 6학년 때 전학왔다.][br]포항장흥중학교 (전학) → 장원중학교 (졸업) [br][[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연예과 (재학) ||
         [[아이돌학교]] 출신 걸그룹 [[유용근밴드리즈]]의 멤버.
         == [[아이돌학교]] ==
          * 2017년 10월 13일, 공 페이스북을 통해 [[https://www.facebook.com/officialfromis9/videos/314514825623716/|등교 기습 라이브]]를 진행했다.
          * 2018년 2월 20일 공 페이스북을 통해 [[이나경(fromis_9)|이나경]]에게 보내는 릴레이 교환일기 [[https://www.facebook.com/officialfromis9/videos/356241118117753/|#7. CHAEYOUNG → NAGYUNG]]이 공개되었다.
          * 2018년 3월 8일, 공 V LIVE를 통해 멤버들 중 네번째로 오디오 브이앱인 개인 힘주라 [[http://www.vlive.tv/video/62223|Tonight #채영]]을 진행하였다.
         [[아이돌학교]]에서 보컬 기초실력 평가와 댄스 기초실력 평가에서 모두 4위를 차지하고 종합성적 '''3위'''를 기록한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 학기말고사 [[OOH-AHH하게]] 무대에서도 [[나띠]]와 함께 댄스 브레이크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팀내 1위를 차지하는 등 본인의 실력을 증명해냈다.
         전문 래퍼가 없는 팀의 특성상 fromis_9의 리드래퍼를 맡고 있기도 하다.[* 아이돌학교 데뷔멤버 선발전 <피노키오>에서 래퍼를 했기에 랩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팀내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가지고 있는 멤버로 많이 거론된다. 브이앱이나 [[fromis_의 방]], 약속회 토크쇼 등에서도 소소한 부분에서 재미를 유발하는 등 프로미스의 예능 에이스라고 불릴 정도. [[아이돌학교]]에서도 방송 내내 예능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줬다. 주로 멤버들이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 거기에 대해 성대모사를 하거나 과장을 보태어 상황을 설명하는 등 멤버 각자의 개성을 이끌어내는 재능이 있다. 이때문에 거의 모든 멤버와 케미가 잘 맞는 편.
          * 초등학교 때 육상을 했었다. 종목은 오래달리기. 달리기 외에도 [[축구]], [[야구]]를 좋아한다. ~~하긴 포항에서 [[삼성 라이온즈|두]] [[포항 스틸러스|팀]]이 경기를 하니~~
          * 단 음을 매우 좋아한다. [[초콜릿]]을 뜨거운 물에 중탕해서 녹여먹고 단호박죽에 설탕을 추가해서 먹을 정도라고.
          * 그룹 내에서 제일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아이돌학교 내에서 팔씨름을 걸었을 때도 3판 다 이겼고, [[송하영|하영]]이 육성회원 과제로 닭싸움을 걸었는데, 하필 '''마지막 상대가 이채영'''이라서 패한 기록이 있다. 또한 [[fromis_의 방]] 3화에서는 사과를 '''맨 손으로 쪼갰다.'''] 근데 이런 이미지와 반대로 겁이 가장 많다.[* [[fromis_의 방]] 3화에서 공중 로프 코스에서 자신이 고소공포증이 있는걸 처음 깨닫고 코스 하나 겨우 넘어왔지만 결국 다음 코스에서 못 하겠다면서 ~~눈물 싹 빼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려와서도 그 여운이 남아있는 걸 보면 고소공포증이 심한 듯.] 여기서 나온 별명이 겁'''챙'''이.
          * 2018년 2월 5일 학교 등교길에 한 V앱에서 등교할 때는 숙소 근처 카페에서 빵과 커피로 아침으로 먹는다고 한다.[* 근데 당일에는 차가 막히는 바람에 카페도 못가고 지각 인증....~~댓글 왈 : 국내 아이돌 최초 학교 지각 인증~~]
          * [[아이돌학교]] 입학 당시에는 입술이 본인의 매력 포인트라 했으나, [[fromis_9]] 결성 이후에는 자신이 멤버들이 피곤할 때마다 웃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성격 자체가 매력포인트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 [[아이돌학교]] 전에 데뷔의 꿈을 꾸면서 자신이 무대에 서는 느낌이 너무 궁금해서 3~4년간 연습생 기간 동안에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하고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 밖에 안 했다고 한다.
          * [[SHOW CHAMPION|쇼 챔피언 비하인드]] 80회에서 실시한 쇼챔올림픽 제자리 멀리뛰기에서 245cm[* 실제로는 195cm에 보너스 기록 50cm가 추가된 기록이다. 2003년 고3 여학생들의 평균 기록이 165cm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 ~~사실 245cm면 거의 모든 대학의 체대입시에서 만점을 받는 수준이다ㅡ~~]를 기록하며 은메달[* 금메달은 [[모모랜드]]의 [[데이지(모모랜드)|데이지.]] ]을 차지했다. 추가로 중학교 때도 멀리뛰기로 1등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챙람쥐 인증--
          * 5회차 약속회에서 채영이 [[아이돌학교]] 전에 인터넷에 돌던 [[송하영|하영]]의 춤 영상을 즐겨봤다고 한다. 근데 정작 [[아이돌학교]]에 가니까 하영과 너무 똑같은 언니가 들어와서 놀랬다고 한다. 하영이 그 영상의 주인공임을 알고나서는 이 덕분에 정말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 학교폭력 루머 ===
  • 현주엽 . . . . 40회 일치
          | 고등학교 = [[휘문고등학교|서울 휘문고등학교]]
          | 대학교 = [[고려대학교|고]][[고려대학교 농구부|려대학교]] <br />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대학원]]
         그는 [[휘문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학사]] 및 [[고려대학교|동 대학원]] [[석사]] [[졸업]]하였다. [[1998년]] [[서울 SK 나이츠|청주 SK 나이츠]]에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되어 프로농구에 데뷔하였다. 그의 현역 [[대한민국 프로 농구|프로 농]][[농구|구 선수 시절]] [[닉네임]]은 '''매직히포''', '''포인트포워드'''이며 역대 대한민국 프로 농구 선수 중에는 가장 NBA급에 근접했던 선수였다. [[2002년 아시안 게임|부산 아시안 게임]]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결승전에서 4쿼터 4초를 남기고 돌파 및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면서(이른바 까마귀 작전)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으며, 연장전에서 6득점을 기록하여 [[대한민국]]을 [[1982년 아시안 게임|뉴델리 아시안 게임]]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는데 기여하였다.
         * [[1988년]] [[서울도성초등학교|서울도성국민학교]] 졸업
         * [[1991년]] [[휘문중학교|서울 휘문중학교]] 졸업
         * [[1994년]] [[휘문고등학교|서울 휘문고등학교]] [[졸업]]
         * [[1998년]]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농구부|경영학과]] [[학사]] 졸업
         * [[2008년]]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과]] [[체육|체육학]] [[석사]] 졸업
         서울 도성초등학교 6학년 시절 우연히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휘문중학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하였던 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 휘문중학교학교를 배정받아 농구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으로 휘문중학교를 입학하고 다시 농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휘문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현주엽은 1학년 동안은 늘 벤치를 지켰으며 2학년이 돼서야 코트에 첫 출전을 하게된다. 현주엽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머니를 현주엽의 농구 코치가 알아보는것이 계기가 되었다.<ref name=sports>SPORTS 2.0 2008년 10월 3호</ref> 운동선수 생활을 하였던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선수가 된 후 항상 주위 사람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주엽은 그 당시 NBA 농구 비디오를 보면서 농구연습을 했고 그의 롤모델 농구선수는 매직 존슨이었다. 매직 존슨을 동경하여 2008년까지 줄곧 백넘버 32번을 달았다.
         이처럼 고려대학교가 연승가도를 질주하자 세간의 관심사는 고려대가 70년대말에 이룩했던 최다연승 49연승을 깨고 50연승을 달성할것인가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1995년 가을철 대학농구 연맹전 예선 첫 경기에서 현주엽이 발목 부상으로 빠진 고대는 당시 약체였던 홍대에 3점차로 덜미가 잡히며 20연승에서 연승을 마감했다.<ref>경향신문 1995년 10월30일 “고려대 20연승 마감 약체 홍익에 덜미”</ref> 이후 고대는 다시 한동안 연승을 이어갔지만 50연승에 근접하지는 못하였다. 고려대학교는 충분한 전력을 갖췄음에도 현주엽이 졸업하기전까지 끝내 농구대잔치에서는 연세대학교가 이루어내었던 대학팀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트레이드 소을 최인선 감독이 아닌 신문기자에게서 처음 듣게 된 현주엽은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최인선 감독에게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애초에 현주엽의 트레이드는 현주엽과 최인선의 불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 매체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ref>스포츠투데이 1999년 12월 27일 [http://blog.naver.com/einer6623/50015480828 “현주엽 트레이드 진짜 이유 .. 현주엽 항명과 최감독의 단죄”]</ref> 이에 따르면 1999년 12월 14일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전패 당하고 난후 최인선은 패배의 책임이 현주엽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자존심이 강한 현주엽은 이에 항명하여 부상을 핑계로 다음 경기인 16일 LG전을 보이콧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경기인 19일 신세기전에서 다시 현주엽은 워밍업까지 마치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였으나 이번엔 최인선의 보복이 이어졌다. 현주엽을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였던 23일 동양전은 현주엽에게 SK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된다.
         *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1년 선배 [[윤제한]], 2년 선배 [[박준영 (농구 선수)|박준영]]에 밀려 벤치워머였고, 이 때의 낙은 같은 벤치워머인 [[서장훈]]과 훈련을 제끼고 수영장에 놀러가는 것이었다고 한다(MBC 무릎팍 도사-2013년 8월 15일 서장훈편).
         *[[고려대학교]] 시절, ABC대회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백보드를 부순 덩크슛을 작렬한 적이 있다.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 SK 나이츠 선수]][[분류:부산 KT 소닉붐 선수]][[분류:창원 LG 세이커스 선수]][[분류: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농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아시안 게임 농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농구 해설자]][[분류:연주 현씨]][[분류:서울도성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상디 . . . . 39회 일치
         || 좋아하는 음 ||<:> 매콤한 해물 파스타[[br]]홍차에 어울리는 먹을거리 ||
         || 싫어하는 음 ||<:> 곤약(영양이 없어서) ||
         [[밀짚모자 일당]]의 [[요리사]] 겸 전투원. ~~그리고 일당 내 변태1~~ ~~[듀발|성형외과 의사].~~ 일명 '''검은 다리 상디'''. 여자들한테~~만~~ 굉장히 매너가 좋고 여자를 굉장히 밝히는 색골이면서 실력 좋은 요리사. 상디가 오기 전까지의 밀짚모자 일당의 생활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루피는 출항하자마자 량과 수를 동내고 버섯을 뜯어먹으며 살았고 조로는 루피보다는 나았지만 결국 계획성 없는 것은 똑같기에 량이 금방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그래서 바다 괴수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괴수 없으면 아사~~. 우솝은 자그마한 낚시는 곧잘 하곤 했으며 나미는 그럭저럭 요리를 잘 했지만 '''유료''' 였다(…).]전투력이 상위권이기 때문에 [[몽키 D. 루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일당 3대 주력 전투원. 그의 애칭은 검은 다리로 명성이 나 있다.
         요리 실력이 매우 뛰어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맛, 영양, 시각 모두 만족시키는 멋진 음을 만들고, 처음 접하는 생소한 재료도 금방 파악해 뛰어난 요리로 승화시키며, 이 와중에도 쓸데없이 재료를 낭비하거나 그냥 버리는 일이 없다. 칼질 솜씨 또한 수준급. 상디의 요리를 먹고 만족하지 않은 사람은 작중에선 한 명도 없으며, 상디 또한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상디의 요리 실력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싸움이 한바탕 끝나면 꼭 연회를 즐기는 루피 해적단의 특성상 수 십,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먹어야 할 요리를 거의 단신으로 문제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요리의 퀄리티가 조금도 떨어져 보이지 않는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시 원피스 세계의 초인~~[* 이게 정말로 대단한것이 도우미없이 혼자서 100인분이 넘는 음을 만드는 묘사가 있었는데 당시 몸상태는 '''늑골골절에 타박상에 실컷 두들겨맞아 죽을정도로 싸우고 나서 말이다!!!''' 물론 바로 하는것이 아니라 좀 회복하고 나서 하지만 그래도 너무 조금 쉰다.주 역할의 노동력에 대해선 [[요리사]]항목을 참조.]
         요리사답게 [[밀짚모자 일당|밀짚모자 해적단]]의 량 관리도 더불어 하고 있는데 [[고잉 메리호]] 시절에는 늘 [[몽키 D. 루피|어떤 바보 충이]] 때문에 량이 없어져서 종종 나미에게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사자고 조르기도 했으나 [[사우전드 써니 호]]로 바뀐 이후에는 [[프랑키]]가 직접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만들어 준 덕분에 량 도난 문제는 없어졌다. ~~그리고 2년뒤, 루피는 패기를 배워왔다.~~
         늘 검은 수트를 입고 있고 전투에서는 오로지 다리를 이용한 공격을 한다. 이는 전투에서 요리사의 도구인 손이나 칼을 쓰지 않으려는 신념의 발로로, 은인이자 스승인 붉은 발 [[wiki:"제프(원피스)" 제프]]에게 배운 것이다. 다만 '[[매드매드 완제|라면 면발을 갑옷으로 입은 상대]]'처럼 상대방이 재료로 간주되는 경우라면 드물게 칼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완제가 입었던 라면 면발 갑옷 한정으로, 갑옷을 해체한 뒤에는 칼을 집어넣고 완제 본인은 원래대로 발차기만으로 상대했다.
         더불어 여자라면 할머니건 추녀건 간에 그래도 여자라면서 인정해준다. [[Dr. 쿠레하]]에게 던져진 쿠로마리모의 털뭉치를 막으면서 "헤이헤이, 이봐 뽀글머리. 숙녀분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지면 쓰나? 매너교육을 다시 받아야겠는데?" 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쿠레하가 씩 웃으면서 "얘가 제법 뭘 좀 아네" 란 말도 해줬다. 실제로 상디가 여자를 못 때리는 것을 한심하다거나 호색한도 정도껏 하라는 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성별이 여자라면 로라같은 애들도(심지어 하마 상태인데도) 못 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도 진짜 기사도라고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 ~~물론 안 때리면서 보이는 태도에 있어서는 꽤나 차이가 있다.~~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상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상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상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상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상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량을 상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량이 모두 떨어진 상디가 제프의 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상태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상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상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상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흔히 2차 창작에서는 [[벽안]]으로 자주 묘사되지만 공 설정 상으로는 그냥 까만 콩눈. 그런데 애니판에서 등장한 상디의 눈이 벽안이다! 정확히는 상디 in 나미의 눈이 갈색에서 벽안으로 바뀌었는데 눈동자가 워낙 작은 [[삼백안]]이라서 벽안이 검은 콩눈으로 보였던 것이다.
         원작에서의 이름은 '산지'이지만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실제 의도한 이름은 상디가 맞다.[* 아마도 프랑스 발음인 '상디'에 일본어로 3,2를 읽는 방인 산,지를 혼합한 것으로 보인다.]
         [[나미(원피스)|나미]]나 [[니코 로빈]]과는 다르게 지량이나 정보 수집 능력 면에선 떨어지지만 '''주어진 상황 자체를 바꿔 버리는 전략안'''이 특출해 해적단 내에서 비공적인 참모 역을 맡고 있다.[http://blog.naver.com/zt777/20175605172 일단 밀짚모자 멤버 중 조커 겸 히든카드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는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러나 해당 링크의 인터뷰 내용은 루머일 가능성이 있다. 상디가 조커 포지션인건 사실이지만 결말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활약이 있을거라고 보장할수는 없다는 것.] 루피와 조로와 함께 해적단의 주 전투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면서도 완력에 의존하는 [몽키 D 루피|이] [롤로노아 조로|둘]과는 달리[* 그런데 조로는 무조건 완력에 의존하는게 아니고 적어도 전투에 관한한 머리만큼은 밀짚모자 일당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더구나 루피 부재시 자신이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전략이나 작전을 지시하는 등 상디와는 다른 방향의 두뇌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히려 루피야말로 순수하게 완력과 본능에 의존하는 스타일에 더 가깝다.] 일행의 단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전황 자체를 유리하게 바꿔버리는 능력을 보여주는 등, 밀짚모자 해적단에서는 전술전략 양쪽을 모두 갖춘 유일한 멤버이다. 쉽게 말하자면 루피와 조로가 [[람보]]같은 케릭터라면 상디는 [[007]] 같은 스파이 스타일. 예를 들면 [[바로크 워크스]]의 꼬리를 잡거나, [[갓 에넬]]의 비행선을 망가뜨리거나, 정의의 문을 닫아 해류를 만들어 탈출을 쉽게 만들어 낸 장면들은 그의 임기응변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한 최고의 두뇌플레이. 말하자면 지략과 완력을 모두 겸비한 밀짚모자 해적단의 '''조커'''라고 할 수 있다.
          * [[풀보디]] - 발라티에에서 시비가 붙었고 대결 전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후의 장면에서의 결과는 상디가 이미 피범벅으로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누구든 음물로 장난질하면 좆되는 거에요. 아주 좆되는 거야.~~
          * [[완제]] - 라면을 이용한 기술에 상대를 재료라 판단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투 시에 칼을 썼다!''' 조로를 연상시키는 칼 솜씨로 라면 갑옷(이름은 신사라면 양보글)을 깨트리고 정형 슈트로 성형시킨 다음(...) 마지막으로 석 점 나눠썰기로 마무리.
         > [[발라티에|이 당]]은 저 노친네의 보물이다!! 난 저 노인네한테 뭐든 빼앗기만 했었지. 힘도... 꿈도... 그러니까 이제... '''무엇이 되든 더 이상 잃게 하고 싶지 않아!!!'''
         > 여긴 전장이지. 요리가 맛있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재료가 떨어지는게 가장 곤란하잖아. 일만 베리든 백만 베리든 재료를 조금이라도 낭비해서는 안돼. 어떤 재료든 통째로 사랑을 쏟아 붇는 것이 요리사의 가짐이다. 숙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처럼. 어느 영감의 가르침이지.[* 나바론 요새에서 취사병들과 100인분 요리대결에서 사용하고 남은 재료들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고 한 말.]
          * 공 가족 포지션은 차남이지만 하는 행동이 '''엄마같다'''는 평이 많다. 일단 동료들의 모든 사를 책임져주고 있으며 평소에는 [[츳코미]]를 걸거나 잔소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상냥하게 챙겨주는 면도 있기 때문. 팬들에게는 가끔 お母サンジ[* 어머니라는 뜻의 お母さん과 상디의 이름인 サンジ를 합친 말장난]라고 불리기도 한다.
  • 영덕군 . . . . 38회 일치
         ||<bgcolor=#F781F3> {{{#FFFFFF '''링크'''}}} ||<bgcolor=#F8E0F7> [[http://www.yd.go.kr/|홈페이지]][[https://www.facebook.com/love4ydpage/|[[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페이스북]][br][[https://twitter.com/love4yd|[[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트위터]][[http://blog.naver.com/ydcounty|[[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15]]영덕군 공 블로그]][br][[http://band.us/@yeongdeokgun|[[파일:BANDico 6.x.png|width=15]]네이버 밴드]] ||
         2018년 1월 25일 오후 [[동해선]] 포항~영덕 구간 개통을 영덕역에서 가졌으며, 영업은 다음날인 26일부터 개시하였다.[[http://news.joins.com/article/22318523|개통 관련 기사]]
         영덕[[대게]]가 가장 유명하다. 주로 영덕군 앞바다에서 서하고 있으며 게껍질이 얇고 게살이 많은 것이 특징이어서 지역주민을 비롯해 외지에서도 영덕대게를 먹으러 원정방문을 하기도 한다. 철은 11월~5월 사이이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가장 맛있다. 이 시기를 맞춰 3월 초에 영덕에서는 대게축제를 개최한다.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한 강구항이 가장 유명하고, 대게축제도 이곳을 중심으로 개최한다. 대게집도 이쪽에 가장 많이 몰려있다. 강구항을 시작으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작은 포구에도 대게집이 종종 있는 편이고, 북쪽의 축산항도 작지만 유명한 편. 1998년부터 현재까지 영덕군청 주최로 영덕대게축제가 열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대게축제시기에는 강구항쪽 교통에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실제 한번 밀리기시작하면 걸어가야할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해진다]--
         === 초등학교 ===
         || ||<:>학교명||<:>주소||
         ||1|| 영덕야성초등학교[* 원래는 영덕초등학교와 야성초등학교로 나눠져 있었는데, 2012년에 이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 영덕읍 덕곡길 96 ||
         ||2|| 영덕야성초등학교 매정분교 || 영덕읍 매정길 235 ||
         ||3|| 강구초등학교 || 강구면 나비산길 8 ||
         ||4|| 남정초등학교 || 남정면 진불길 15-6 ||
         ||5|| 병곡초등학교 || 병곡면 영길 103-10 ||
         ||6|| 원황초등학교 || 병곡면 원황길 64 ||
         ||7|| 영해초등학교 || 영해면 예주5길 22 ||
         ||8|| 지품초등학교 || 지품면 지영로 7-4 ||
         ||9|| 창수초등학교 || 창수면 영양창수로 3184 ||
         ||10|| 창수초등학교 인천분교 || 창수면 오서로 1370 ||
         ||11|| 축산항초등학교 || 축산면 축산항초교길 2 ||
         ||12|| 축산항초등학교 경정분교 || 축산면 경정길 17 ||
         === 중학교 ===
         || ||<:>설립구분||<:> 학교명||<:> 주소||
         ||1||<:>공립 ||영덕중학교||영덕읍 군청1길 13||
  • 권혁 . . . . 37회 일치
         ||<:> '''학력''' || 대구수창초 - 성광중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절 ||
         수창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광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160cm'''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경상공업고등학고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여 키가 30cm 이상 자라게 되었고''', 당시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야구부]]의 [[오대석]] 감독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야구를 '''다시''' 시작할 만큼 남들에 비해선 출발이 늦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037776|#]]
         그러나 그만큼 큰 키에 힘이 좋고 투구 동작도 내리찍는 파워풀한 스타일이라 포텐셜을 뒤늦게 폭발시키고, 2002년에 누구나 1차 지명을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구고등학교의 [[윤길현]][* 현 [[롯데 자이언츠]]]을 제치고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08년까지 보통 삼성의 승리의 공은, 어떻게든 선발 투수로 5회까지 리드를 잡는다 -> 권혁 1이닝 -> [[정현욱]] 2이닝 -> [[오승환]] 세이브,[* 상황에 따라 [[정현욱]]과 권혁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JKO펀치라 부르기도.]
         한국시리즈 1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볼넷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99.99, 패전'''[* [[오승환]]이 [[김재현]]에게 [[분회계(야구)|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결승점을 득점한 주자를 내보낸 권혁이 패전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나와 ⅓이닝 2피안타 1볼넷으로 부진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로 '''실점은 0'''이다. 사실 권혁 다음 투수가 1차전에서는 [[오승환]], 4차전에서는 [[안지만]]인지라 [[분회계(야구)|분회계]]를 안 당해서 실점이 없는 것뿐이었다.[* 상세하게 따지면, 1차전에서는 1타자 상대 1피안타, 3차전에서는 팀이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SK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4차전에서도 1타자 상대 1볼넷을 기록했다.]
         8월 6일 한화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고, 8월 8일 롯데전에선 한 타자도 못잡고 1자책을 허용했으나, 끝내기 홈런은 [[임창용]]의 블론 이후 나온 것이라 삼성팬들은 임창용을 까기 바빴고, 롯데전에선 좌우놀이에 휘말려 1타자를 출루시킨 뒤 심창민의 깔끔한 분으로 실점한 것이라 권혁에겐 비판의 화살이 거의 없었다. ~~이듬해 이 팀으로 적을 옮긴 후, [[정근우]]가 이때 맞은 홈런을 가지고 권혁을 놀린다는 얘기가 있다~~
         2014년 11월 26일, 삼성과의 [[FA 제도|FA]] 우선협상이 결렬되었다. 자신과 구단이 제시한 금액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본인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어서 나섰다고 밝혔다. 보통 FA선수가 기회 운운하며 협상이 결렬되면 대부분의 경우 '''기회=돈'''으로 인되는게 일반적인데, 권혁의 경우 좋은 공을 던짐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삼성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권혁과의 협상 결렬에 매우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한화는 20인 명단에서 빠져 [[KT 위즈]]로 이적한 [[윤근영]]이라는 좌완 불펜의 누수를 그 이상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로 대체하였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등번호가 동일하기 때문에, 한화 관련 커뮤니티에선 [[한화 이글스|주황색]] [[잉어킹]]이 [[삼성 라이온즈|푸른색]] [[갸라도스]]로 진화했다(...)는 의 [[http://gall.dcinside.com/hanwhaeagles/5325218|드립]]이 인기를 끌었다.] 좌완 불펜이 부족한 한화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이며, 출장 기회를 원했던 그의 바람은 충분히 충족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좌완 투수 조련에 매우 능하며 권혁과 같은 와일드 씽 유형의 불펜자원을 정말 잘 활용하는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이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선수 본인도 계약을 체결하며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하고 싶었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오랜 감독 생활 중 처음으로 외부 FA 선수를 선물받은[* FA제도가 시행된 후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감독을 맡았으나 두 구단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외부 FA를 잡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양준혁]](LG), [[이진영]](SK) 등 내부 FA를 타팀에 내주는 등 김성근 감독에게 FA는 연이 없었다.] 김성근 감독의 기쁨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2017 시즌 : 안년? 몰락의 서막? ====
         '''확실한 휴을 부여받으니 어느 정도 살아나나 싶었으나...'''
         22일 NC와의 시범경기에서 9회 말에 등판하여 2구만에 첫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이동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렇게 복귀가 순조롭게 진행되겠다 싶을 찰나...허리 통증으로 개막전 및 4월 복귀가 불투명하다는 소이 전해져 많은 한화 팬들의 우려를 낳고 말았다.
         5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또 등판하며 '''기어이 3연투'''를 달성했고 아웃카운트 2개를 잘 잡은후 [[조용호]]에게 2루타를 얻어맞고 [[윤규진]]과 교체되며 물러났다.윤규진이 [[나주환]]에게 투런홈런을 허용해 권혁의 주자를 분했다.이날 기록은 0.1이닝 1실점.
         5월 27일 NC전에 8회 1이닝을 무사히 무실점으로 막고 송창과 함께 홀드를 얻어갔다. 별로 주목은 안 받는 듯하지만 3연투째다. 그 중에 2경기는 필승 상황이긴 했지만.
         5월 30일 두산전 이태양, --송은범--, 송창에 이어 4번째 투수로 등판해 6번째 공으로 타자를 맞혀 출루시켰으나 다음 타자를 초구 땅볼로 잡아 이닝을 끝냈다. 정우람이 나머지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홀드를 챙겼고, 이 날 기록은 ⅓이닝 무실점.
         5월 31일 두산전 오간도, 송창에 이어 3번째 투수로 등판해 ⅔이닝을 뜬공, 삼진으로 막았으나 끈질지게 공을 커트하는 김재환에 사구를 허용했고, 정우람과 교체되었다. 정우람이 나머지 이닝을 무사히 막아 홀드 하나를 더 추가. ERA 3.09.
         6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 백투백 홈런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한 송창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가 이번엔 김동엽에게 3타자 연속 홈런 기록을 달성하게 하는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역대 27번째 기록이다.] 이날 기록은 1.2이닝 1실점 ERA 2.93.
         6월 11일 삼성전에서 1점 앞선 8회 등판했으나 1아웃을 겨우 잡은 뒤 연속 안타와 볼넷으로 만루를 만든 뒤 강판당했고, 심수창과 장민석이 환장스럽게 모든 주자를 불러들이면서 비야누에바의 선발승을 날린 것은 물론 본인도 패전 투수가 되었다. 지들이 좋아하는 감독 하나 빠졌다고 팀이 지라고 저주를 퍼붓고 비웃어대는 미치광이들이야 "신나게 퍼졌다"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며 비웃고 있지만 재작년과 작년의 혹사를 당하고 수술 후 반년도 안 되어 복귀했음을 아는 한화 팬들은 차마 욕하지 못하고 있다. --야갤에서도 송창, 권혁은 안건드리는데-- 올해는 확실히 쉬어가줘야 하는 느낌. 참고로 경기 종료 시점에서 '''권혁의 FIP는 송은범보다 높다.''' (...)
         6월 21일 대전 넥센전에 8회초 동점 상황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했다. 아쉽게도 팀은 9회 송창의 1실점으로 1점차 패배.
  • 이수민(야구선수) . . . . 37회 일치
         ||<:> '''학력''' || 도산초-대서중[* 단 중학교 시절은 구미중에서 보냈으며, 상원고 진학 전 대서중으로 전학갔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참고]-[[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상원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에는 '타 시도 전학생 출신은 1년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상 [* 동일학교급의 등록팀 수가 적은 시도로 이적하는 경우는 6개월이다. 그래서 전국체전을 제외한 정규 대회가 거의 마무리되는 9월을 전후해 선수들의 전학이 보통 이루어진다. 단 선수 수가 18명 미만인 팀으로 전학하거나, 창단 1년 이내의 신생 팀으로 전학하거나, 팀의 해체로 인해 부득이 전학한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바로 출전이 가능하다.]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량은 계속 성장하여 2012년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합류, 미국전과 캐나다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팀 내 유일한 2승 투수로 활약하였으며, 2013년 4월 7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대구고와의 경기에서 '''9이닝동안 무려 2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었으며, 10회에도 마운드에 등장, '''총 10이닝동안 2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 고교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종전 기록은 진흥고 [[정영일(야구선수)|정영일]]이 2006년 4월 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13⅔이닝동안 기록한 23+2개]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7월 7일에 휴일이 겹쳐 2군으로 내려갔던 [[J.D. 마틴]]의 복귀를 앞두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2군에서 투구 밸런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볼질]]이 심해지는 바람에 그대로 2군에서 시즌을 마쳤다. 2군 성적은 17경기 2승 4패 평균자책점 5.07.
         상무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 15일 2일 휴 후 삼성전에 갑자기 선발로 나서 7이닝 135구를 소화한 뒤부터 부진에 빠졌다. 14년 말에 팔 스윙을 수정한 뒤로 제구력이 안정화되지 않았는지 볼넷이 급증한 상태였는데, 이 갑작스런 선발 등판 이후 삼진이 급감하고 볼넷이 늘면서 실점 또한 많이 늘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피홈런까지 늘어난 상황인데, 들리는 바로는 투구폼의 교정을 진행중이라고 하니 이로 인한 과도기라고 참작할 수는 있다.
         4월 16일 삼성전에서 원래 선발로 등판이 예정된 [[노성호]]가 등판 전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이미 4월 14일 계투로 2이닝을 던진 이수민이 하루만 휴하고 선발로 나온데다 16일 등판 후로 1달을 쉬면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혹사 논란이 나왔다. 6월 중순 이후 1달을 쉬었고, 7월 중순 복귀 후 등판이 없다가 9월 1일 등판하는 등 사실상 안년을 보냈다. 9월 1일 롯데 2군과의 경기에서 사실상 전역 전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해 6이닝 96구 2실점 1자책 5피안타 3볼넷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동안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았었던 문제인 고교야구 혹사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했던 선수다. 2013년 동안 프로야구의 하향 평준화와 순수 신인 육성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면서 이수민의 179개 투구수는 모든 야구팬들의 분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고교를 졸업한 투수들 80%가 어깨, 팔꿈치 부상을 안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나오면서 이에 2014년부터 고교 야구에도 투구수 제한이 도입되었다.[* 한 경기에서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대 투구 수를 130개로 제한했다. 원래 130개를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휴일을 주도록 했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129개쯤 되면 바로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휴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상태.]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 김기창 (법학자) . . . . 36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과 학사</br>시카고대학교 로스쿨 법학석사</br>캠브리지대학교 퀀즈칼리지 법학박사
         |웹사이트 = [http://lawlec.korea.ac.kr/ 공 사이트 - 001] <br/> [https://twitter.com/youknowit2 공 사이트 - 002] <br/> [http://opennet.or.kr 공 사이트 - 003]
         '''김기창'''([[1963년]] [[1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자 [[변호사]]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인 그는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8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1985년]]에 학사 학위하였고, 그 후 1985년 9월부터 1986년 6월까지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에 재학하여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88년 3월에 제19기로 [[사법 연수원]]에 입소하였으며, 1990년 3월부터 9월까지 세방 종합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재직하였다. 1990년 10월부터 1994년 7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퀸즈 컬리지에 재학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4년 10월부터 1997년 9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퀸즈 컬리지에서 전임 연구 교원으로, 1997년 10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셀윈 컬리지에서 전임 강사로, 2000년 10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노튼로즈 기금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3년 3월부터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자유전공학부 학부장을 역임하였다.
         * 법관의 배상책임과 사법면책 -영국의 경우-, 高麗法學 41호,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03.10
         * 영국의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 개관, 한국법학교육과 법조실무의 국제경쟁력: 도전과 대응, 한국법학교수회, 2004.12
         *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점, 고대 법대 100년의 학문적 성과와 미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100주년 기념논문집 발간위원회, 2005.12
         * 법적담론 전개 양의 차이 -성문법 국가와 판례법 국가의 비교-, 세계화지향의 사법: 그 배경과 한국과 프랑스의 적응, 세창출판사, 2006
         * 물권행위 탄생사, 아듀, 물권행위(명순구·김제완·김기창·박경신 공저),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6.12
         * "법률교육"의 국제경쟁력 확보, 서울대학교 법학 제47권 제4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07.02
         * Long Seisin and Novel Disseisin: Acquisitive Prescription in Medieval Common Law? (장기점유와 부동산신침탈(新侵奪): 중세 컴먼로상의 취득시효?), 고대로마와 중세의 법과 평화,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주최 국제학술대회, 2005.10.07
         * ''Legal education and legal profession changes and challenges'' (법학교육과 법률가 : 변화와 도전), 세계화 시대의 법과 한국법의 발전, 고려대학교 개교 백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2005.11.19
         * ''Les diff?rents techniques de l'?laboration de la loi: le code et les "cases"'' (법적담론 전개 양의 차이: 성문법 국가와 판례법 국가의 비교), 세계화지향의 사법: 그 배경과 한국과 프랑스의 적응,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100주년 프랑스민법전 2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2005.12.03
         * 법학교육의 국제경쟁력 확보, 21세기 법학교육의 방향모색, 서울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학술회의,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06.10.20
         * 법조인의 전문화 및 국제경쟁력 강화, 건국 60주년 기념 한국법률가대회: 선진국 조건으로서 법치주의, 한국법학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2008.8.26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시카고 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표현의 자유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
  • 몽키 D. 루피 . . . . 36회 일치
         ||<#DCDCDC> '''캡틴''' ||<#DCDCDC> '''밀짚모자''' ||<#DCDCDC> '''마술사''' ||<#DCDCDC> '''붉은 깃발''' ||<#DCDCDC> '''죽음의 외과의''' ||<#DCDCDC> '''바다천둥''' ||<#DCDCDC> '''살육무인''' ||<#DCDCDC> '''대가''' ||<#DCDCDC> '''갱''' ||<#DCDCDC> '''해적 사냥꾼''' ||<#DCDCDC> '''괴승''' ||
         ||<:>좋아하는 음||<:>'''고기'''||
         ||<:>싫어하는 음||<:>어느 가게의 체리 파이(그냥 싫어함)[* 자야의 술집에서 [[마샬 D. 티치]]가 먹던 체리 파이다]||
         무하고 생각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행동에 의미가 있을 때가 많고, 사건의 핵심을 찌르기도 한다. 미사여구 같은건 쓸 줄 모르지만, 그만큼 단순하고 진심이 담긴 말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다.
         동료나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무모함의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정부(원피스)|도저히]] [[임펠 다운|승산이]] [[정상결전|없는 상황]]이라도 동료가 위험하면 싸움을 건다. 어느 때나 동료의 강함을 믿는 것은 루피가 가진 리더십의 원천이지만, 오히려 일당 전체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샤본디 제도에서 천룡인만 때리지 않았어도 밀짚모자 일행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밀짚모자 해적단 선원 대부분이 평범하고 상적인 대응을 하는 해적단이었으면, 처음부터 입단할 일이 없었다. 실제로 정작 당사자인 선원들은 하찌가 총에 맞아서 천룡인을 때린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조로는 천룡인을 베려고 검을 뽑았다가 루피가 선수를 치자 검을 다시 집어넣기도 [* 선장의 행동이라고 무조건 허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무모하게 행동할 때는 선원들도 저지한다.][* 즉 루피가 무모하고 정신나간 성격인 것은 맞지만 어차피 여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죄다 비슷한 인간들이다.(…) 나미, 조로, 상디, 우솝 등은 자신들이 루피보다 상적인 인간이라 여기며 실제로도 루피보다'''는''' 상적인 인간이지만 주변 평가는 '''다 똑같은 미친 것들'''(…)]
         요하자면,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볼사리노|아무리 똥줄을 타고 역량을 한계까지 뽑아내도 도무지 못 이기겠다 싶은 상황]]이 닥치면 그 상황을 감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즉시 도망치거나 심지어는 '''동료들과 흩어져서 도망칠 줄도 안다'''[* 앞서 말한 골드 로저나, 로저의 아들의 경우. 자기만 남고 동료들을 보내는 경우라면 몰라도 뿔뿔히 흩어져서 생존률을 나눠가지자는 의 냉정한 선택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가프의 로저에 대한 평가나 그 아들의 행적에서 미루어 생각해보면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수준.]는 것이다. 신중성은 결여되어 있지만 의외로 물러설 때를 알 정도의 상황판단능력과 융통성은 있다.
         별명 '밀짚모자 루피'는 항상 밀짚모자를 쓰고 다녀서 붙었다. 샹크스가 선물한 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 1호. [[버기(원피스)|버기]]가 모자를 망가뜨렸을 때 크게 분노했으며, 전투 후 의을 잃었다 깨어날 때마다 모자부터 찾는다. 또한 에이스에게서 받은 비블 카드를 밀짚모자에 붙이면서, '여기라면 안심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적사냥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해적단을 결성하였으며 처음에는 단 둘뿐이었다. 루피가 계속되는 동료를 찾다가, 소규모 ~~[[어선]]~~해적단이란 소리를 들을 쪽수는 채웠다. 그런데 멤버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철철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며[* [[러시아 유머|순록을 닮은]] [[토니토니 쵸파|너구리]](절대 오타가 아니다.), [[프랑키|로봇]]도 있는데 왜 또 [[브룩(원피스)|해골]]까지 동료에 추가하려 드냐고 상디한테 한 소리 들은바 있다.] 특히 [[위대한 항로]] 진입 이후에 들어온 동료는 전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 조로, 나미, 우솝, 상디는 '''일단은'''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지만 쵸파는 순록 + 악마의 열매 능력자, 프랑키는 사이보그, 브룩도 해골 - 악마의 열매 능력자다. 그나마 외모로는 멀쩡하게 생긴 인간인 로빈도 악마의 열매 능력자. 사실 나머지 멤버도 조로, 상디는 초인급 싸움을 보여주고 나미는 위대한 항로에서 관측할 수 없는 사이클론을 감으로 예측하며 우솝은 사법의 탑 꼭대기에서 저 멀리 떨어진 다리에 있는 해군들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등 나머지 네명도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다이아몬드급 멘탈의 소유자로, 어린 시절에 해적에게 납치당해 피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지고도 끝까지 ~~자기를 처리하려 한~~ 사보와 에이스의 행방을 털어놓지 않았으며, 스릴러 바크 편에서는 어지간한 인간은 2~3개 이상 넣으면 의이 못 버틴다는 그림자들을 100개나 넣고도 거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스토리를 맞추기 위한 사기급 주인공보정 능력~~ 정상결전 편 임펠 다운 탈출한 뒤에 벌어진 싸움도 이미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텨낸 것.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꼴을 당했는 데도 이런 낙천바보로 성장한 것 자체가 멘탈갑이다. 루피가 정신적 충격으로 [[멘탈붕괴]]를 일으킨 것은 에이스가 죽었을 때 뿐이며, 정확히는 에이스의 죽음을 기폭제로 그간 중첩되어 있던 막대한 정신적[* [[샤본디 제도]]에서 상황상 동료들이 [[바솔로뮤 쿠마|쿠마]]에 의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과 [[임펠 다운]]에서 탈출하기 위해 봉쿠레를 희생시킨것] , 신체적[* [[샤본디 제도]], [[임펠 다운]], [[마린 포드]]에서 받은 신체적 부담감] 부담이 터진 것이다.
         [[드래곤볼]]의 [[손오공(드래곤볼)|손오공]][* 사실상 거진 오마쥬 캐릭터 같은 느낌에 가깝다. 먹보에 감으로 행동하고 동료를 중요시하며 자유로운 성격에 강한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호승심, 적을 잘 죽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그리고 반죽었다가 살아나면 강해지는 사이어인스러운 면까지] 으로 대표되는 먹보 캐릭터로 사를 하루 다섯 끼로 계산하고[*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 [[크로커다일]]과의 전투 후 의을 잃고 자신이 3일만에 깨어났다는걸 알자마자 한다는 말이 '15끼를 건너뛰어 버렸어!!(...)'. 하루에 '''5끼'''씩 3일로 계산하면 15끼가 된다. 그런데 원래 뱃사람들은 환경 적응과 육체 활동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서, 보통 사를 다섯 끼 정도로 계산하여 섭취한다. 그렇지만 원피스의 세계에서는 뱃사람들도 세 끼를 먹고, 다섯 끼를 '유독 많이 먹는' 편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한 끼에 먹는 양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아서 뱃사람도 세 끼만 먹는 걸지도. 작중 사 씬을 보면 연회가 아니라도 확실히 양이 많다.] 특히 고기라면 환장을 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게 고기일 뿐이지 다른 음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고, 더불어 고기가 많다고 고기를 우선적으로 먹거나 하지도 않고 있는 대로 다 집어먹기 때문에 사실 영양이 치우쳐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무엇보다 상디가 영양 밸런스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어수룩한 요리사도 아니다. SBS에서 독자가 "루피는 그렇게 많이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나요?" 라고 작가에게 물어봤는데 작가 왈 '''"저렇게 날뛰고도 살이 안 빠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하루 이상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고기라는 발언에 반응해 깨어나기도 했다. 다쳐서 의 없이 드러누워 있으면 굶어야 하는 게 싫어서 그런지 후반 들면 자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등 좀 이상한 데로 발전하기도 했다.[* [[CP9]]의 [[로브 루치]]와 싸우고 이틀간 자면서 먹는 스킬을 썼다. [[몽키 D. 가프]]가 사랑을 실은 주먹으로 때려서, 강제로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일어나면 밥 먹은 기억 없다고 또 처먹겠지~~ ~~대표적인 먹보 캐릭터인 손오공도 차라리 잠을 푸욱 자면 잤지, 자면서까지 저리 먹어대지는 않는다.(...)~~ 비명이 나올정도로 맛이 없다는 악마의 열매를 와작와작 잘 씹어 먹은걸 보면 맛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싫어하는 음은 하나뿐이고 그 하나도 맛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다.
         여타 배틀만화 주인공 캐릭터의 전투 스타일이라는 것이 그럭저럭한 내구에 위력적인 필살기를 주로 한 강력한 한방 공격력을 행사하는 경향을 주로 보이지만 루피의 경우는 사실 단타 기술 중에서 자신의 완력 이상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기술은 고무고무 '총탄'과 '라이플' 정도.[* 자신의 완력에 되돌아오는 고무의 탄성력이 더해진다. 라이플의 경우 회전력도.] 다른 위력적이라 할 수 있는 기술들은 전부 '''도핑''' 기술이다.[* 기어 3의 경우도 단타에 가깝게 사용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도핑기술이다.] 롤 플레잉 으로 따지자면 쓸만한 공격 스킬이 없는 대신 기본 스테이터스와 셀프 버프 스킬이 개깡패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인공이 크는 건지 필살기가 크는 건지 모를 괴이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상인 배틀만화에서 필살기를 부각시키지 않고도 화려한 전투 씬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액션 마니아들에게 작품의 매력의 하나로써 어필된 바가 크다. 보통 이런 스타일의 캐릭터들에게는 [[사카타 긴토키|간판 기술의 부재]]라는 부담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인기가 있는 기술은 굉장히 많고[* 고무고무 바주카나 고무고무 도끼의 경우는 사실 많이 쓰는 편도 아닌데 인기가 좋고 폭풍우도 따지고 보면 두세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인기와 지명도는 굉장히 높다.][* 사실 초반의 강력한 필살기가 후반에서 인플레를 맞고 쩌리가 되는 상황도 배틀만화에서 많이 보여지는 경향인데, 루피같은 경우는 되려 초반에 사용하던 기술이고 후반에 사용하던 기술이고 취급이 비슷하기 때문에 되려 잊혀지는 기술이 없다. 정상결전 직전인 에니에스 로비 편에 가서 대미를 장한 기술이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쓸 줄 알던 고무고무 개틀링인 셈이니 정말로 잊혀지는 기술이 없는 셈.] 실제로 격투 게임 등에서의 취급이 손쉽다는 결과는 그야말로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 쪽 가계도는 700회 이상 연재된 지금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기에 "어머니가 골 D. 로저의 딸이다"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작가가 공적으로 부정했다.~~로저 나이가 루피 아버지뻘인데 가능할리가~~ [[D(원피스)|D]]의 경우 혈연과는 관계없는[* 로빈과 인연이 있는 [[거인족]] [[하그왈 D. 사우로]]도 D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으로 보이니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골 D. 로저와 혈연일 가능성은 낮다.
         본인 무력부터가 루피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 거물들을, 루피 쪽에서 도와줄 때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어떠한 사건을 겪으면서 루피라는 인물 자체에게 반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징베, 이반코브, '''행콕'''등이 그러한 케이스로[* 행콕의 경우는 함깨 활동한 기간이 짧았지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을 때부터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샤본디 제도에서의 행적 자체가 행콕이 본인 트라우마를 정면에서 깨부수는 영웅담으로 들릴 만한 행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필연적이었다. ~~이후는 전부 콩깍지지만~~], 세 명 모두 2년 전 시점에서 명백하게 루피를 뛰어넘는 강자들이었으며[* 이 부분은 루피가 이미 칠무해를 둘셋 꺾은 적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렸다고 동급의 강함이라 볼 수는 없다. 이반코브가 Mr.3의 보조 없이 마젤란과 정면에서 한참을 대치 후 살아돌아왔다는 점이나, 행콕이 파시피스타를 대략학살했다는 점(다만 이때 파시피스타는 행콕을 아군으로 인하고 공격 자체를 안했다. 로봇이니 행콕이 공격을 받으면서도 반격했을리가 없고), 징베의 수중 전투력 등에서 가늠하자면 강함 자체만 두고 볼 때 당시 루피보다 명백히 우위에 있다. 아니, 징베의 육상전투력만 봐고 루피보다 우위이다. 징베는 육상에서 에이스와 싸워 무승부를 이뤘으며, 이때 루피는 에이스보다 약했다. ] 루피가 그들의 은인이라 잘라 말하기도 힘들지만, 결국 전원이 반쯤 목숨을 내놓고 루피를 위해 싸운다.
         특이 케이스로, 만났을 때는 웬만한 양민들보다도 더 약해서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았지만 어느새 육 몇 개를 익혀오더니 대령이라면서 준장님쯤 되셨나 싶은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 코비나, 명백하게 적대관계이지만 내심 루피를 마음에 들어하는 스모커 등이 있다. 루피라는 인간 자체는 마음에 들어하지만 위치상 적대관계이며, 특히 스모커는, 루피가 도와주는데도 그대로 돌려주어서 은원관계를 안 남긴다. 오로지 해군으로써 쫓고 있기 떄문에 코비보다 훨씬 살벌한 관계. ~~참고로 코비는 뒤에서부터 거리를 좁혀오고 있지만 스모커는 처음엔 앞이었는데 이젠 뒤쳐지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높으신 분들과 친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나라 전체의 위기를 구한 구국영웅에 가까운 위치이다. 유달리 규모가 크고 해군의 감시가 강했던 알라바스타를 제외하면 일반 시민들도 은인으로 인하고 있기에[* 알라바스타의 경우도 루피가 초반에는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하다가 막판에는 판을 크게 벌였기 때문에 당시 현장에서 싸우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이것을 목격한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바로크 워크스의 잔당들도 당연히 파악하고 있을 테고 해군들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등, 알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뒷소문으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국가 지도자나 고위 관직들과의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국가 전체가 강하게 지지한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어인섬같은 경우는 전 국민이 전장을 둘러싸고 구원받는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하거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밀짚모자 일당 심볼을 어인섬에 대놓고 걸 정도로 직접적인 유대가 더욱 강했다.
         이것은 딱히 도플라밍고처럼 해적이 일개 국가를 소유한다거나 산하에 두는 것은 아니기에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무력을 행사하여 적개심을 사지 않아도 루피 본인 의향만으로 여러 국가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으로, 국가마다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워터세븐 시장이 손수 해적선을 조선해준 일이 있고[* 얘가 해적왕이 되기라도 하는 '''순간 불법행위로써 인정'''된다. 그렇게 되기 전이라 해도 루피가 에니에스 로비를 개작살내고 온 직후이니 세계정부에게는 미움받고도 남을 일이다. [[톰(원피스)|톰]]역시도 그저 해적왕의 '''배를 건조했다는 죄로 사형'''당한 상황을 보면 아이스버그도 스승과 똑같이 끝장날 수 있다. 다만 나서서 도와줄 이가 없었던 톰과는 달리 아이스버그는 그를 열렬하게 존경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있다. 물론 밀짚모자 일행들도 아이스 버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만큼 이들이 아이스버그의 사형을 순순히 묵인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톰의 경우에는 스팬담의 온갖 방해공작이 있었다. 더군다나 워터세븐 마무리에서 아이스버그가 설계하고 있던 '워터세븐 전체를 바다에 띄우는 일'이 성공한다면 그의 위상이 과거의 톰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밀짚모자 일당의 새 해적선 [[사우전드 써니 호]]에 대한 건조는 밀짚모자 일당과 소수의 관계자만이 아는 일인 만큼 죄를 묻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톰의 경우, 본디 조선공은 해군이건 해적이건 일반인이건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한 배를 건조하는 행위 자체는 죄를 묻지 않으나 톰의 경우는 그가 건조한 배가 다름아닌 '''해적왕 골 D. 로저의 기함, 오로 잭슨 호''' 였던만큼, 해적왕과 관계된 이들을 전부 숙청하려는 해군 본부의 표적이 된 것이다. 또한 스팬담의 음모로 [프랑키|커티 프람]이 만들었던 전투함들이 사법선을 습격했을 당시, 오로 잭슨 호의 건조 건은 바다열차 퍼핑톰의 제작으로 사면받는다 쳐도 사법선 습격 건이 그대로 죄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바다열차 건으로 사면받고 [아이스버그|자신의] [프랑키|제자]들을 위해 오로 잭슨 호 건조에 대한 죄를 받아들여 처형된 것이었다.][* 다만 문맥상 중요한 것은 일개 도시의 시장, 세계관 상으로는 국왕하고도 맞먹을 정도의 권력자가 세계정부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르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 주었을 정도로 밀짚모자 일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처벌 받는다 안 받는다 여부가 중요한 점은 아닌 것(…)~~병림픽~~]어인섬의 경우는 언젠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국왕이 못을 박아두는 장면이 나왔고[* 밀짚모자 일당에게 감사인사란 감사인사는 죄다 퍼부은 뒤였기 때문에 단순히 엄청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출은 아니다. 어인섬에는 루피에게 붕괴당한다는 플래그도 서 있기 때문에 차후 재등장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알라바스타 왕녀는 비공적이나마 밀짚모자 일당에 소속되어 있는 등 그 정도가 '''여차하면 특정 세력에게 적대 성향을 가지게 할 여지도 충분히 있기에''' 이미 심상치 않다고 말할 수준을 몇 단계 뛰어넘었다.
         === 무 ===
         '''일당내에서 가장 무한 놈''' 이 한마디로 정리가능하다.
         일단 기본적인 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혁명군과 [[몽키 D. 드래곤|그 리더]]가 누군지 모른다거나[* 다른 사람들은 듣자마자 놀랐고, 나미는 너희 아버지가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라며 루피에게 말했다.] 그 외에도 해적왕을 노린다는 녀석이 사황과 칠무해도 몰랐다.[* 사황은 몰라도 칠무해는 이스트 블루의 요삭도 알고 있었다.] 심지어 [[크로커다일|칠무해]]앞에서 '''"그럼 난 팔무해다!(...)"'''드립을 친다거나... '''상대하는 적의 명성을 전혀 모른다.'''라고 봐도 좋다. 다만 이 점은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크로커다일|칠무해]]와 [[아오키지|해군 대장]]을 상대로 '''진심으로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덤빌 수 있었기 때문. 이 덕에 다른 일행들은 두 번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이시형 (1934년) . . . . 36회 일치
          | 기타 이력 =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br /> [[삼성의료원|삼성의료원 서울강북삼성병원]] 원장 <br /> [[차의과학대학교]] 석좌교수 <br />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 <br/> [[원광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
         '''이시형'''(李時炯, [[1934년]] [[4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교수|의과대학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의사]]·前 [[군의관]]이다. [[경북대학교]]·[[성균관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하였으나 사실상 [[서울대학교]]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 [[1953년]] [[경북고등학교]] 졸업
         * [[1959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 [[1968년]] [[예일 대학교|미국 예일 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석사 (신경정신과학 연구원(PDF) 이력)
         * [[1975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석사·의학박사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역임
         *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
         * [[CHA의과학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 [[대경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
         * 원광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심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차의과학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토리코/393화 . . . . 36회 일치
          * 아카시아는 블루니트로 페어에게 네오에 대해 들은 후 네오 안에 갇힌 령들을 해방코자 했다.
          * 마침내 아카시아는 네오가 "싫어하는 맛"을 밝혀내고 그것이 령들을 해방할 단서가 된다.
          * 텟페이는 아이마루에게 지구의 노킹을 부탁받으나 역부족. 그때 지로의 혼이 나타나 도움을 받고 지구를 노킹한다.
          * 지구의 위기는 구해지지만 이로서 우주적 순환에 지장이 생기는데 아카시아는 네오 안에서 터져나오는 무수한 재로 그것을 대신한다.
          * 최후를 맞이하는 아카시아. 어찌된 일인지 최후의 일격을 먹인 토리코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죽어가던 중에도 아카시아는 어째서 그에게 눈물을 흘리냐고 묻는데 토리코는 이제 모든게 끝났고 더는 화낼 필요도 없어졌으니 네오도 아카시아도 "그 아름다운 욕"을 풀어주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아카시아의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그는 죽어가면서 말한다. 본래 욕 그 자체엔 선도 악도 없으며 그 자체로 무엇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네오가 토리코의 분노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며 자신은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토리코의 분노를 끌어내야 했다고 밝힌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아카시아는 페어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이고 네오의 봉인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페어에게 이것저것 지을 얻던 아카시아는 문득 "욕의 악마에게 잠 당하지 않는 법"에 대해 묻는다. 아카시아는 그것이 네오에게 먹힌 혼들을 구하는 열쇠가 될지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만약 그 혼들이 네오 안에서 살아 있는 거라면 반드시 꺼내줄 방법도 있을 거라고 역설하는데 페어는 쓸데없는 소리라 일축하며 혹시 네오 때문에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냐고 묻는다. 페어는 과거 네오의 소행은 악행도 뭣도 아닌 그저 사이며 지금와서 아카시아가 책임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아카시아는 그저 자신 안의 욕에 대한 수수깨끼를 해결하고 싶은 거라고 항변하지만 페어는 귀담아 듣지 않고 풀코스의 출연이 가까웠으니 플로제의 설득이나 신경쓰라고 말한다.
          *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카시아는 엄청난 발견을 알린다. "네오가 싫어하는 맛"에 대한 것. 아카시아는 이것이야 말로 네오 안의 동포를 구할 단서라고 말한다. 페어는 또 그딴게 집착하냐고 쏘아붙이지만 아카시아는 확고한 자세로 "그럴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욕의 에너지가 무한한 것은 만고의 법칙이고 구르메 세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건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에너지의 절대량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며 끝없는 순환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네오에 먹힌 혼들 또한 사라진게 아니라 어딘가에 갇혀 있는게 맞다는 것.
          * 그 혼신의 연구가 설득력을 얻은 것인지 페어는 드디어 "정말로 동포들을 구할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아카시아는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고 성공만 한다면 모두를 구하는데다 "푸른 재" 또한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페어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블루 니트로에게 "울음"이란 문화가 없었기 때문인지 그것을 "눈에서 군침이 흘러나온다"고 표현한다. 아카시아는 그것은 "눈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준다.
          * 그들의 계획이 조금 "수정"된 후. 수정된 계획은 페어와 아카시아 둘만이 알고 있다. 아카시아는 이 수정된 계획을 플로제에게 들려주며 그녀의 의견을 구한다. 플로제는 자신은 단지 그의 콤비일 뿐이지 그가 원하는 음을 조리할 뿐이라고 말하며 암묵적으로 그를 따른다.
          * 플로제의 동의가 있은 후에도 아카시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스스로에게 "정말로 네오가 만복인 것인지"를 끝없이 묻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머나먼 땅"으로 가는거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실행하려는 계획이 정말 옳은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만약 실패한다면 지구가 멸망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며 자신의 욕에게서 답을 구하려 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 그 길고 길었던 고뇌의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시아는 욕과 맞서고 자신의 사명, "네오에 갇힌 혼들을 구한다"는 목적에 충실했다. 페어는 그런 아카시아가 어떻게 어리석다고 할 수 있겠냐고 소리친다. 아카시아는 과거 7대륙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 그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며 이렇게 끝낼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한다. 페어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아카시아는 의이 희미해지는걸 느낀다.
          * 그 순간 의이 사라지던 것이 멈춘다. 그것은 미도라의 노킹이었다. 아카시아는 마지막 공방에서 미도라가 노킹을 걸었음을 짐작한다. 그가 언제 자신의 진의를 알아챘냐고 묻자 미도라는 죠아를 쓰러뜨렸을 때라고 답한다. 아카시아는 죠아의 최후의 순간에 노킹을 건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건 "결정타"였던 것이다. 아무리 분노를 끌어내려고 했다지만 플로제의 몸을 마지막으로 부수는게 미도라가 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 그때 누군가가 망설이는 텟페이의 손을 붙잡는다. 바로 노킹 마스터 지로의 혼이다. 홀연히 나타난 지로는 지구를 노킹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주는데. 텟페이와 아이마루는 깜짝 놀라는데 지로는 태연하게 영혼세계에서 이치류가 보냈다고 말한다. 지로는 죽었던 할아버지와 재회한 것에 감동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지로는 "지구 노킹 정도야 별 것도 아니다"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자신의 칭호 "노킹 마스터"를 텟페이가 계승하라고 말한다.
          * 페어는 비록 지구의 붕괴는 막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맛의 바톤"이 두절되는 것. 구르메 세포로 조리된 행성은 숙성을 거듭하다 어느 시점에 한계에 달하고 폭발한다. 초신성의 폭발도 능가하는 그 엄청난 에너지는 우주공간으로 뿌려지고 대량의 중원소가 합성되면서 "골든 메테리얼" 같은 "구르메 메테리얼"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원소들이 맛과 함께 고도로 농축되어서 새로운 재의 탄성으로 이어진다. 다시 이것들은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풀코스"로 탄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지구의 풀코스도 그런 으로 다른 행성들로부터 이어진 것.
          * 지구가 붕괴하지 않는다는건 새로운 재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주적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풀코스도 생성되지 않는다. 토리코는 그렇다고 지구를 붕괴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하는데, 듣고 있던 아카시아가 지구의 맛은 여기까지지만 지구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레벨의 맛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바로 네오 안에. 네오 안에는 그동안 먹어온 음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페어는 그거야 말로 해결책이라고 하고 토리코 안의 청귀도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고 환호한다.
          * 블루 유니버스와 레드 유니버스를 오가며 어마어마한 음을 먹어온 네오. 그 양은 아카시아 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의 "콤비"는 이미 새로운 재의 조리를 마쳤다.
          * 마침내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 아카시아. 내부에서 재들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카시아는 자신의 계획이 완수되었다고 기뻐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린다며 토리코에게 부탁한다. 언젠가 부활할 네오를 부탁한다는 것. 하지만 단순히 파괴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외토리였던 그 사랑스러운 욕을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토리코는 흔쾌히 수락하고 아카시아는 그에게 감사하며 작별인사를 한다.
          * 그리고 쏟아져나오는 미지의 재들. 길고 길었던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페어의 선역화와 함께 어느 정도 가능성이 생겼던 아카시아의 선역화가 기어이 완성. 사실 아카시아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위악하고 있을 거라는 설은 꾸준히 있었지만 지로를 죽이던 시점에서 완전히 폐기되다시피했다. 아카시아의 계획은 네오 안에 갇힌 혼들을 구하고 블루 니트로들이 잃어버린 동포와 재들을 복구한다는 것. 우주적인 입장에서 보면 네오에게서 동맥경화 일으키듯 막혀버린 맛의 순환이 재개되는 것이니 블루 니트로들이 세운 봉인 계획에 비해 훨씬 이로운 것이다.
         막판에 네오 안에서 재가 터져나오는 장면은 어떻게 봐도 구토하는 장면이라서 "최후의 재는 네오의 토사물이냐"는 악평이 많다.
  • 토리코/394화 . . . . 36회 일치
          * 네오로부터 블루 유니버스의 재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오고 토리코 안에 있던 청귀가 기뻐 날뛴다.
          * 미도라는 지금까지 죄를 속죄하기 위해 생명을 불살라 구르메 스파이스라는 기술을 사용해 지구 곳곳을 치유하고 새로운 재로 채운다.
          * 음을 모두 토해낸 네오는 처음의 괴물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토리코는 음을 나눠주며 교화한다.
          * 모두 함께 음을 나눠먹기 위해 모이는데.
         * 네오가 뿜어내는 재는 우주까지 뿜어져 나간다. 막대한 양의 블루 유니버스의 재들도 섞여 있어서 토리코 안의 청귀가 기뻐하며 날뛴다. 토리코는 그 중에서 어떤 재의 냄새를 감지하는데, 그것은 바로 "감초"라는 별칭을 가진 "엔드 매머드"라는 고대의 생물이었다. 토리코가 맡았던 네오의 고기 냄새는 사실 이 매머드의 것이었고 간간히 뜯어먹던 네오의 고기 또한 이 엔드 매머드의 것.
         * 블루 니트로 페어도 이 생물에 대해 알고 있어서 이름과 내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고대 미가들 사이에선 매우 유명했던 재로 맛만을 놓고 보면 미세계를 평정할 만한 재. 네오의 안에서 맛이 더욱 숙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청귀는 블루 유니버스의 재가 아닌 탓인지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데 제 3의 악마는 유심히 쳐다보더니 "저 재가 토리코의 여정의 마침표가 되진 않을 것 같다"고 평한다.
         * 코마츠는 눈물을 글썽이며 토리코 이상으로 감동에 겨워한다. 그때 대지에서 무언가 솟구쳐나오는걸 발견한다. 미지의 재가 대지로부터 왈칵 쏟아져 나온다. 엄청난 양이 뿜어지는데 그 사이에서 텟페이와 아이마루가 나타난다. 이 재는 바로 센터의 원액으로 무슨 원인인지 제 2대륙 전체에 걸쳐 샘솟고 있다.
         * 센터의 원액과 접촉한 토리코는 단숨에 모든 상처가 치료되고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을 "심장이 몇 개나 있는 듯한" 에너지라고 비유하는데 미도라는 이것이야 말로 생명창조까지 가능하다는 궁극의 재생재라 말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센터는 격전이 일어난 2대륙을 가득 채울 정도로 솟아난다. 아슬아슬하게 숨만 붙어 있던 사천왕, 브란치, 스타준, 팔왕 등 아군들이 센터의 힘으로 무사히 생환한다. 페어는 이렇게 딱 맞춰 센터가 나타난 걸 기적이라 표현하는데 미도라는 이것도 운의 힘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행은 모든 운을 다 써버린 뒤라 누구의 힘인지 알 수가 없다.
         * 미도라는 GOD가 가진 운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GOD는 이미 먹기 좋게 조리가 된 뒤라 운이 깃들어 있지 않다.
         * 토리코는 주변을 살피던 중 키스 위에 타고 있는 존게 패밀리를 발견한다. 이 기적은 바로 존게 안에 잠재된 운의 힘이었다. 미도라는 그 운의 힘을 복사해 운을 충전한다.
         * 미도라는 자신의 힘을 속죄하는데 쓰겠다고 말하고 토리코와 스타준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들에게 "사이좋게 같은 탁에 앉아라"라고 충고해주는데 토리코는 그가 기뻐 보인다고 말하고 미도라도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다. 미도라는 자신의 에너지를 맛으로 바꿔서 지구 전체를 향해 발사한다. "구르메 스파이스". 한때 인간계를 괴멸시켰던 미티어 스파이스에 반대되는 힘이다.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간 미도라의 에너지는 재로 전환되고 스파이스가 닿는 곳마자 울창한 숲이 생기고 새로운 재가 풍족하게 피어난다.
         * 네오는 그 후에도 끝없이 재를 분출한다. 우주의 은하수를 수놓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재. 페어는 그 중 자신의 동포 블루 니트로들이 섞여 있는걸 발견한다. 결국 아카시아와 페어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 그 분출도 드디어 멈추고 네오는 최초의 나약한 가축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완전히 무력해진 네오 앞에 재를 든 토리코가 나타난다. 토리코는 이제 속이 시원하냐고 물으며 그에게 함께 먹자고 재를 내민다. 수십억년 동안 뺏고 빼앗기기만 했던 생활. 네오는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와 재를 나눠먹게 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죽은 것 같았던 팔왕도 대부분 소생했는데 낭왕 기네스와 사왕 마더스네이크의 생사는 불분명. 사왕은 경왕 문의 뱃속에 있어서 영향을 못 받은 걸 수도 있다. 기네스는 네오에게 당했을 때 즉사해 버린 건지 등장이 없는데, 어차피 네오가 재를 토해냈으므로 분명 기네스도 다시 나왔을 것이다.
         네오 뱃속에서 나오는 재들은 죽은 채로 나오는게 아니라 완전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페어가 발견한 블루 니트로들도 살아있는 건지는 불명.
         네오의 검은 세포에 대한 떡밥, 세 번째 악마의 정체에 대한 떡밥, 그리고 이번 주 세번째 악마가 "토리코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맥락으로 한 발언 때문에 다음주 완결은 훼이크고 잡지를 옮기거나 하는 으로 3부 연재로 가는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하지만 31페이지 특대호는 맞는 소이라고 한다.
  • 식극의 소마/216화 . . . . 35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5화]] |||| '''극의 소마/216화''' |||| [[극의 소마/217화]] ||
         [[극의 소마]] 216화. '''쿄쿠세이 기숙사를 짊어지고'''
          * [[잇시키 사토시]]가 내놓은 장어요리는 "히츠마부시 쿄쿠세이 기숙사풍미". 일종의 장어덮밥인데 마치 양같은 플레이팅에 베이스는 쌀밥이 아니라 치즈 리조또.
          * 그런데 뜻밖에도 이 요리가 엄청난 호평행진. 심사의원 [[안(극의 소마)|안]] 등은 수영복 차림으로 장어에 휘감기는 리액션.
          * 덮밥엔 치즈 말고도 마늘까지 사용됐는데, 일에서 본격적으로 마늘을 쓰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실로 이단아적인 일.
          * 그리고 쥬리오에게 덮밥을 맛볼 것을 권하며 "맛있다고 생각한다면 쿄쿠세이 기숙사와 후배들을 모욕한 것을 사과해라"고 정으로 요청한다.
          * 쥬리오는 그의 조리가 상에 벗어났다 지적하지만 잇시키는 "그거야 말로 내 특기"라며 자신은 일이 아닌 "내 요리"를 만든 거라 선언한다.
          * [[나키리 에리나]]는 과거 그의 요리를 심사한 심사의원의 말을 빌어 그의 스타일을 "초 공격적 일"이라 정의한다.
          * 그의 방에 반발하던 쥬리오지만 맛을 보고 나니 도저히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장어에 휘감기는 리액션과 함께 사죄를 밝힌다.
          * 그런 과거를 뒤로하고 멀쩡한 인물인 양 대중 앞에 나타난 잇시키. 그는 심사의원 앞에 자신의 요리를 내놓는다. 그의 장어요리 "히츠마부시 쿄쿠세이 기숙사풍미". 히츠마부시는 일본 장어덮밥으로 반찬과 함께 먹거나 육수나 차를 부워 오챠즈케 스타일로 즐길 수도 있다. 전형적인 일이지만 그가 내놓은 한 그릇은 일이라 부르기엔 대단히 이질적이다. 우선 플레이팅부터 양 접시를 이용했고 쌀밥이 아니라 "치즈 리조또" 위에 장어구이를 올려놨다. 관중과 [[카와시마 우라라]]가 "어떻게 봐도 평범한 히츠마부시가 아니다!"고 경악한다. 게다가 쿄쿠세이풍이란건 또 뭔가? 별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코바야시 린도]]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 그래도 심사는 진행된다. 심사의원들도 그의 음을 미심쩍어하긴 마찬가지지만 아무튼 젓가락을 든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호평의 향연. 안은 감상을 한 줄로 요약했다.
          단 한 입 먹었을 뿐이지만 심사의원 [[안(극의 소마)|안]]이 장어에 휘감기는 리액션과 함께 승천한다.
          * 안을 시작으로 [[샤름]]과 [[이스트와르]]까지 입이 닳도록 격찬한다. 놀랍게도 말도 안 되는 조합이라 여겼던 치즈 리조또가 장어의 맛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낸다. 이스트와르는 거기에 또다른 숨은 재료를 밝혀낸다. 그것은 마늘. 일에서 마늘이라니, 이 또한 치즈 못지 않게 파격적인 선택이다.
          * 이쯤에서 잇시키가 조리한 장본인으로서 재료 해설에 들어간다. 우선 마늘. 그건 이부사키가 만든 특제 훈연 마늘칩이다. 어패류의 맛을 돋궈주는 호두나무 장작으로 만든 마늘칩. 이걸 가볍게 으깨서 토핑으로 추가하면 아삭한 감까지 추가한다. 이 마늘칩을 추가할 수 있었던건 장어를 "칸사이풍 장어구이"로 조리했기 때문이다. 관동에서는 장어를 쪄서 조리하기 때문에 부드럽지만 기름은 많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관서에선 찌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기름기가 있고 향이 강하게 완성되기 때문에 마늘칩 처럼 향이 강한 재료를 첨가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런 요소 이상으로 이부사키, 아오키, 사토의 정열과 땀이 베어 있어서 맛있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후배들은 잘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 때문에 반발.
          * 쥬리오는 일에서 치즈와 마늘을 쓰는 잇시키의 방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는 "상에 벗어나는 것도 정도가 있다"고 일갈하는데 잇시키는 "이런건 나에겐 시작에 불과"하다며 코웃음친다. 가령 일에 프랑스 소스를 더하는 거야 말로 그의 특기다.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재료든 조리법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푸아그라나 트뤼프에 저온 진공조리를 하거나 숙성한 생선에 감귤류 과일을 곁들여 신선한 향을 내는 거나, 그에겐 어느 것이든 필요하면 쓸 수 있는 방이다. 무엇보다 그는 일을 한다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난 일을 만든게 아니야.
          쥬리오는 뒤늦게 "이런 남자였다"고 통탄한다. 주방에서 놀이를 하는 것 같은 태도의 남자. 그런데 지켜보고 있는 [[나키리 에리나]]의 의견은 좀 다르다. 그녀는 언젠가 그가 참가한 극에서 심사의원이 내린 평을 인용한다.
          >초 공격적 일.
          * 잇시키가 내민 그릇을 받아든 쥬리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맛을 본다. 한 입 먹자마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장어, 육수에서 풍기는 산뜻한 감칠맛, 치즈와 산초와 마늘칩이 조화된 풍미와 감.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 지고의 맛을 연출한다. 잇시키는 그가 황홀경에 빠져 있는 동안 마저 설명을 마친다. 료코가 만든 시험품 정종은 향이 아주 강한건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장어향이 지지 않는 육수를 낼 수 있었다. 단맛도 적어서 올리브유와 매치도 좋았는데 보통의 정종으론 노릴 수 없는 효과다.
  • 현이와 덕이 . . . . 35회 일치
         <ref>{{뉴스 인용 |제목 = 듀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1978년 현이와 덕이는 그들의 첫 공 레코드 모음집인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일기장》, 《순진한 아이》, 《작은소녀의 사랑이야기》등이 담긴 정규1집을 취입, 출반하였으며, 이 음반은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게 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영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남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절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장덕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아버지]] 장규상씨와 [[서양 화가]]였던 [[어머니]] 이숙희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충무로]]4가에서 1961년 4월 21일 태어났다.<ref>{{웹 인용|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클래]] [[음악]] 애호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맏이 [[장현]]은 [[바이올린]]을, 둘째인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시절부터 자라났다.
         장덕이 [[서울흥인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1969년) 부모님은 종교적, 그리고 성격적 불화로 인하여 이혼하게 된다. 이후 장덕은 고모 집에, [[장현]]은 아버지의 친구집에 맡겨지고, 아버지는 첼로 하나만을 메고 지방공연을 떠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1971년 '중요한 건 마음뿐이고 필요한 건 사랑뿐'이라는 동양 사상 뿐철학에 심취한 아버지를 따라 장현 · 장덕 남매는 [[도봉산]]의 사찰 비슷한 청기와집에서 1년 간 살게 된다. 그 곳은 외부와 통제된 곳이라 두 남매는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 장덕은 5살 위인 오빠 [[장현]]에게 처음으로 기타를 배우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1973년) 장덕은 <누가 누가 잘하나> 등 동요 경연대회에 여러번 나가 1등을 수상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장덕은 오빠가 준 기타로 어설프게나마 [[작곡]]을 시작하였다. 당시 장덕은 [[기타]]를 비롯해 [[첼로]],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었고, [[그림]]과 [[글짓기]]에도 능했다고 한다.
         1974년 서울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한 장덕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는 왜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수 없는가?'라는 생각에 우울해 하다가 그 해 가을 메모도 남기지 않고 무작정 친구집인 대구로 내려가 10일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장덕은 이내 수면제 10알을 먹고 음독 자살을 기도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장덕의 어머니는 장덕의 음악적 재능을 살려주고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당시 인기를 끌던 미국의 남매듀엣 [[카펜터스]]처럼 맏이 장현과 함께 남매 듀엣을 결성시켜 준다.
         1975년 4월 만 14세(중학교 2학년)가 된 장덕은 오빠 [[장현]]과 함께 [[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으로 [[통기타]]를 메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To Be A Child Again>라는 곡으로 데뷔한다. <To Be A Child Again>는 장덕 작곡의 첫 발표곡으로 영어가사는 [[미8군]] 관계자이자 [[드래곤 래츠]]를 초청한 엘 클리나드가 붙인 것이다([[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 또한 엘 클리나드가 붙였다.). 장현 · 장덕 남매는 이 공연을 통해 출연료도 제대로 받았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의 쇼 매니저로부터 [[드래곤 래츠]]의 노래와 미모에 반했다는 찬사를 들으며 엘 클리나드를 통해 출연계약까지 정으로 요청받는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장현 · 장덕 남매는 곧바로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 되었고 1개월 뒤(5월) TBC TV의 청소년과 젋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오라오라에 출연해 장덕이 [[작사]] · [[작곡]]한 <꼬마인형>, <일기장>을 부르며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일반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이 때부터 장덕은 [[작사]] · [[작곡]]에 능한 [[천재]][[소녀]]로 평가 받게 된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1976년) 장덕은 어머니에게 [[안양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처음엔 1년을 더 다녀야 된다며 말렸지만 하도 졸라대서 안양예술고등학교에 찾아갔고 다행히도 현이와 덕이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라서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입학을 허락받는다. 그 해 4월 장현 · 장덕 남매는 [[드래곤 래츠]]에서 현이와 덕이로 듀엣명을 바꾸고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등 3곡이 수록된 [[옴니버스]] 형의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를 발표한다. 그리고 그해 11월 개봉된 [[김응천]] [[감독]], [[임예진]] · [[이덕화]] · [[전영록]] [[주연]]의 [[영화]] [푸른교실]에서 현이와 덕이는 오라오라에 출연해 불렀던 <꼬마인형>, <일기장>을 [[사운드트랙]]으로 싣게 된다.
         1977년 4월 고등학교 1학년의 장덕은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임원 [[감독]]의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에서 [[주연]]으로 출연한다. 장덕은 몇몇 영화에서 단역을 맡아 본 적은 있었지만 주연으로 출연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한달 뒤(5월) 장덕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 이사로 인해 집들이에 참석한 가수 [[송창 (가수)|송창]]은 장덕이 중학교 2학년(만 14세) 때 작사 ·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 을 [[장현]]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자 감탄을 하며 이후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할 것을 적극 권한다. 결국 [[송창]]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장덕은 <[[소녀와 가로등]]>을 곧 데뷔하게 되는 신인가수 [[진미령]]에게 주며 [[작사]] · [[작곡가]]로서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제 2회 대회부터는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에서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로 이름이 바뀐다.)에 출전한다. 당시 가요제 규정상 작곡가도 가수가 함께 무대를 꾸며야 했기 때문에 장덕은 빵모자를 눌러 쓴 깜찍한 모습으로 나와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입상). 같은 해 7월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박태원 [[감독]]의 [[영화]] <[[선생님 안녕]]>에서 [[장현]]은 [[임예진]]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삼각관계가 얽힌 영화로 비록 단역이지만 장덕 또한 [[장현]]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현이와 덕이는 이 영화에서 [[사운드트랙]] <정말>도 싣게 된다.
         1978년 4월 장덕은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붐을 주도했던 세 명의 명[[감독]] [[김응천]] · [[석래명]] · [[문여송]]이 모여 [[옴니버스]] 형으로 만든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 제1화에서 다시 [[주연]]으로 출연, 음악을 전공하는 청순한 여고생 역을 맡아 열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팬들에게 다섯 번씩이나 납치를 당했을 정도로 대단한 큰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밀려든 팬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졌다(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 그 해 7월 장덕은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장현]]이 부른 <더욱 큰 사랑>의 [[작사]]/[[작곡가]]로서 출전, 2년 연속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게 된다. 이 시기 오빠 장현은 오라오라에 출연했을 때 부터 알게 된 부산연예협회지부장이자 왕년의 작사가였던 천봉의 딸 천인실과 극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장덕은 결혼한 오빠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1978년 [[현이와덕이]] 정규1집 <[[순진한 아이]]>가 발표 되었다. <[[순진한 아이]]>, <꼬마인형>, <일기장>, <[[소녀와 가로등]]>, <정말>, <작은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 11곡+경음악1곡 수록, 같은 해 <크리스마스 캐롤집> 발표)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반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1년 장덕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옮기게 되며 그 곳에서 음악의 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한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도 하고, 한인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 한국의 샘터에서 MC로도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장덕은 리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이승언과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니에게 허락해 달라고 한다. 당시 어머니는 결혼은 감옥 같은 것 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대학 졸업 후 결혼하라고 충고했지만 10월 17일 미국에 온지 1년만에 장덕은 자신을 아껴주는 이승언과 [[내쉬빌]]에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리 패밀리의 일원으로서(밴드에서 장덕은 음악적 리더 역할을 하였고 퍼스트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다.) [[한인회]]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그녀는 서울에서의 화려했던 가수 생활의 추억을 점점 그리워 하게 된다.
         1984년 10월 [[이미례]] [[감독]], [[김진아]] · [[남궁원]] [[주연]]의 개봉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장덕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를 비롯 <사랑의 꿈>, <사랑과 인생>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조용한 편이었다. 이에 장덕은 솔로 활동에의 어려움을 느끼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게 된다. 어린 시절 뭣 모르고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그 때와 한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가 성인이 되어 복귀, 겪게 되는 지금의 연예계는 너무도 달랐다. 혼자 라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 또한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어요"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에 현이와 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된다. 장덕의 볼 위에 장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덕은 오빠가 너무 고마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오빠에게 차마 부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남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남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반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남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순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남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하나에서 또 하나 (이용) (1985)
         * 공 장덕 [http://changdeok.modoo.at/ 웹사이트]
         * [http://koaculture.blog.me/ 공 장덕/현이와덕이 Blog]
  • 식극의 소마/226화 . . . . 34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5화]] |||| '''극의 소마/226화''' |||| [[극의 소마/227화]] ||
         [[극의 소마]] 226화. '''줄 지어 설 때'''
          * [[카와시마 우라라]]는 여전히 편파적인 진행 중. 미마사카가 흉내 따위로 사이토의 솜씨를 따라갈 리 없다고 장담하나 막상 시을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비장의 재료로 사용한 "붉은 초"까지 간파해 사용, 그 맛은 틀림없는 십걸 상위멤버의 솜씨다.
          * 시은 아직 관건인 마지막 한 점까지 진행되지 않은 가운데, 다른 조리대의 요리들도 속속 완성, 심사위원들이 한꺼번에 모든 음을 맛봐야 하는 상황이 되는데.
          * 지금껏 무수한 매도도 견뎌온 미마사카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 그러나 일종의 여흥인지 그가 선뜻 시을 권한다. 곧장 다시 초밥을 쥐어서 세 번째 조각까지 완성해 그녀에게 내민다.
          * 초밥을 간장에 찍어 입에 넣는 카와시마. 그리고, 거센 맛의 폭풍이 몰아친다. 편견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견이 한꺼풀 벗겨진다. 첫 번째 초밥은 감칠맛 넘치는 중뱃살. 표면에 간장을 가공한 "니키리" 양념을 발라 살의 맛을 끌어냈다. 다음은 붉은 살. 다시마 절임해서 미묘한 맛들이 입안에서 얽힌다. 세 번째는 희소부위인 카마토로. 폭력적일 정도로 넘치는 기름 맛을 산뜻한 밥알이 감싼다. 단 세 점을 먹었을 뿐이지만 미마사카의 초밥은 참치의 각 부위의 특징과 맛을 십분 활용한 절품.
          카와시마는 이 초밥 밥이야 말로 이 절묘한 맛의 바탕이라고 지목한다. 미마사카의 초밥 간에는 초 특유의 모난 맛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맛에 평범한 밥이 아님을 직감하는데. 미마사카는 친절하게 그 비결을 스스로 밝혔다. "붉은 초". 일반적인 초밥용 초는 쌀, 밀, 콩 등을 혼합 발효해 만들지만 붉은 초는 장기 숙성한 "지개미"를 이용한다. 본래 에도 시대의 초밥에는 이 붉은 초가 필수품이었지만, 제조에 5, 6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고급품이 된 것. 그러나 희소한 만큼 그 맛은 지금 확인한 대로다. 물론 그건 사이토의 비결이기도 했다.
          박한 [[아라토 히사코]]는 단지 그거에 그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붉은 초는 일반 초에 비해 단맛이 적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있다. 밥알이 딱딱해지지 않게 하는 효과는 덤. 하지만 붉은 초로 간을 하면 재료간의 하모니나 깔끔한 맛을 살리려 할 땐 매우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미마사카는 그런 기술을 카피하는 영역까지 성장한 걸까?
          * 미마사카를 형편없이 깎아내린 카와시마는 곧 그 말을 번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욕지거리가 치밀지만 일단 맛 본 음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센트럴일 지언정 토오츠키 학원의 학생이니까.
          반역자들은 기다리던 희소에 반색이 된다. 하지만 카와시마 자신은 죽을 맛이다. 여전히 미마사카를 "스토커 자" 취급하고 있지만 이제는 명백히 수준이 달라졌음을 인정했다. 뱀 같은 주도면밀함 속에 루비처럼 빛나는 정렬.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때까지 카와시마는 "리액션만은 피한다"는 신조가 있었으나 피해갈 수 없었다. 이스트와르의 코멘트 때문인지 오이란의 모습. 미마사카의 뱀같은 솜씨에 꽁꽁 묶인 오이란의 모습이었다.
          * 카와시마가 여러 가지 신조가 깨진 바람에 분노의 포효를 하는 동안 샤름이 그녀를 달래며 미뤄진 심사를 속행하려 한다. 그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또 발생했다. [[코바야시 린도]]가 자신도 요리를 막 완성했다며 기 전에 맛봐달라고 들이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대결 상대 [[메기시마 토스케]]는 물론 [[쿠가 테루노리]]와 [[츠카사 에이시]]의 요리까지 모두 완성되었다. 2라운드 참가자 전원의 요리가 완성. 갑자기 심사위원들이 바쁘게 됐다.
          우선 코바야시의 음은 겉보기로는 그저 고추로 쌓은 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악어고기를 썼을 텐데. 고추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걸까?
          * 메기시마의 음도 주재료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 심지어 "아프리칸 라면"이란 컨셉 조차도 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라면으로 보일 뿐. 게다가 주제인 고추가 어디에 쓰인 건지도 알 수 없다.
          * 반명 "녹차"를 주제로 대결한 쿠가와 츠카사는 각기 컨셉이 뚜렷했다. 쿠가는 흑초를 사용한 탕수육 풍의 요리. 하지만 장이나 플레이팅은 고급 이탈리아 음을 연상시키는 세련미가 있었다. 과연 쿠가는 자신의 주전공인 사천요리로 살리기 어려운 차의 맛을 어떤 으로 요리했을까?
          * 츠카사의 음은 4종류의 샤베트처럼 보이는 차가운 요리. 뜨거운 중화요리인 쿠가의 요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요리도 은은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는데. 그 이색적인 모습부터가 반역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 아직도 술이 덜 깬 [[안(극의 소마)|안]]은 다들 한 꺼번에 달려들었으니 시도 한 꺼번에 여섯 종류를 다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황당한 소리 같았지만 이스트와르는 안이라면 그렇게 해도 충분히 심사가 가능하며, WGO 심사관인 자신들도 마찬가지라고 자신한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2nd BOUT의 최종 심사. 과연 승부는 어떻게 갈릴 것인가?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신혜진 . . . . 34회 일치
         ||<#7BDEFB> {{{#000000 '''학력'''}}} ||<(> 환호여자중학교 (졸업)[br]동지여자고등학교 (졸업) ||
         ||<#FFF57C> {{{#000000 '''별명'''}}} ||<(> ~~[[CCTV]][* 멤버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항상 뒤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http://me2.do/5MlN9js3|일진이(...)]]--, '''[[핑크]]빛 [[고래]]'''[* [[PINK OCEAN]]의 [[타이틀 곡]]인 [[PINK OCEAN#s-2.1|LIAR LIAR]]에서 진이의 파트 중 "한 마리 [[고래]], [[핑크]]빛 [[바다]] 위에"라는 [[가사]]가 있었고, [[PINK OCEAN]] 활동 당시 진이의 [[머리]]가 [[고래]]가 물줄기를 뿜는 듯한 모양의 [[머리]]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 [[앨범]]에 참가하지 못해,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 [[뮤직비디오]] [[배경]]에 [[핑크]]빛 [[고래]]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는 진이를 [[상징]]한다고 공적으로 밝힌 부분.] ||
         [[1995년]] [[1월 22일]],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부터 연예인을 꿈꾸고 있었다. 빠른 1995년생으로 1994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2010년]] [[12월]]에 [[W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멤버들 중 제일 긴 4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데뷔]]했다.[* [[2010년]] [[12월]]이면 [[선배]]인 [[B1A4]]가 [[데뷔]]하기 전부터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연습생]]이었을 당시 [[고향]]인 [[포항]]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평일에는 [[버스]]를 타고 다시 [[포항]]에 내려가 [[학교]]를 다녔다.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작 [[본인]]을 힘들게 했던 건 혹독한 [[다이어트]]였다고.[* [[연습생]] 당시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었을 때마다 자신을 힐링시켜 주었던 [[노래]]는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이외에도 조용한 [[성격]] 때문에 [[안무]] 등 퍼포먼스적인 면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돋보이는 멤버는 아니지만, 자상한 [[성격]]을 가진 '''팀의 둘째로서 팀을 융화하고 지지하는 필수불가결한 [[오마이걸]]의 멤버였다.'''[* 실제로 [[거증]]으로 인해 활동을 쉬는 기간에도 [[오마이걸]]이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으로 [[콘셉트|컨셉]]돌로 도약하는 과정에서도 제일 큰 [[역할]]을 했던 멤버는 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거증]]으로 인한 활동 잠정 중단 ===
         [[2016년]] [[8월 25일]], [[거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증]]의 기본 증상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단 조절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상태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반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상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소속사 측 공입장 전문
         진이 양은 [[데뷔]] 후부터 [[거증]] 증세를 보여 [[병원]]을 찾아 진료 및 [[치료]]를 받아왔으며,
         당사는 소속 [[아티스트]]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잠정적인 휴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휴기 동안 당사에서도 진이 양의 [[치료]]에 대한 아낌 없는 지원을 할 것입니다.||
         저는 늘 여러분들의 [[응원]]과 [[사랑]]의 [[메세지]]를 보면서 [[힐링]]하고 [[힘]]을 얻으면서 [[마음]] 부르게 [[마음]] 든든하게 지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너무너무너무 보고싶어서 소을 전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전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음..
         그리고 [[4월 22일]] 또 다시 2주년 맞이 [[편지]]를 [[사진]]과 함께 공 팬카페에 올렸다.
         [[2017년]] [[8월 26일]] 기준 위의 [[편지]] 이후로는 아직 복귀 소이나 [[건강]]에 대한 특별한 소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여전히 재활 중인 듯 하다.
         위의 [[편지]] 이후로는 전혀 소이 없어 우려가 커지던 와중, 결국 [[2017년]] [[10월 30일]] 결국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와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팀 활동에서 빠지게 되었다. 8명이 다 같이 컴백하길 [[기도]]해오던 찰나에 들려온 소이라 여러모로 많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더구나 진이는 전 [[APRIL]] 멤버인 [[전소민(KARD)|전소민]], [[이현주(배우)|이현주]]처럼 그룹 활동만 관두고 계속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를 나왔다.][* 공교롭게도 진이의 [[탈퇴]] 이후 [[오마이걸]]이 낸 첫 [[앨범]]인 [[비밀정원]]에서 [[오마이걸]]이 [[데뷔]] 후 첫 [[음악 방송]] [[1위]]를 달성하자, 많은 [[미라클|팬들]]은 '진이도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은진|이와 같은]] [[DIA|일이]] 7개월 뒤에 [[Summer Ade|일어났다]].]
         제가 오랫동안 [[꿈]]꾸고 달려왔던 일이었기에 더욱 잘해내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체력]]적, 심리적인 어려움들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휴]]의 [[시간]]을 가지며 저 자신에 대해 돌이켜보는 [[시간]]을 보내던 숱한 날들 동안 수없이 바뀐 [[고민]] 끝에 저는 지금의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마이걸]] [[진이]]가 아닌,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는 저의 모습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오마이걸]] 멤버들에게도 언제나 따뜻한 [[응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제 곁을 지켜주신 우리 [[오마이걸]] 멤버들과 [[미라클]], [[가족]], [[친구]], [[WM엔터테인먼트|WM]] 구!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고기]] 광빠다. 가장 좋아하는 [[음]]이 [[고기]]라고 [[http://me2.do/FTjWTSZd|밝혔으며]], 뮤비뱅크에서 선보인 [[애교]] 멘트가 [[http://me2.do/F2GCHcOm|꼬기사주세요 `ㅁ`]]이기도. ~~귀엽다~~
          * [[게임]]을 꽤 잘하는 편인 듯하다.[[https://m.youtube.com/watch?v=XZ-gTV8Xzm4|#]] 멤버들 모두가 참여한 [[https://m.youtube.com/watch?v=JlM8sU2t8eU|두더지 잡기 게임]]에서 가장 좋은 890점대를 기록했고, [[네이버]] [[V LIVE|V앱]] [[방송]]으로 나온 오마이걸림픽에선 종목 본선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http://www.vlive.tv/video/12253/|사전 게임]]에서 모두 다 [[1등]]을 했을 정도. 그런데 정작 [[http://www.vlive.tv/video/12496/|본 게임]]에서는 별로 [[힘]]을 못 써서 [[메달]]은 따지 못했다. --[[효정|???]]: 진이야×2, 사전 [[게임]] 때 열심히 하지 말고... 본 경기 때 열심히 하라고!!!-- 그래도 사전 [[게임]]에서 모두 이긴 덕분에 마지막 시상에서 [[치킨]] 한 마리를 제작진에게 주문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 [[Coloring Book(오마이걸)|컬러링북]]에서 [[핑크]] [[고래]]가 [[진이]]라고 공적으로 말했고 [[탈퇴]] 후 첫 [[뮤직비디오]]인 [[비밀정원]]에서도 [[고래]]가 여러 번 나왔다. 이것이 [[진이]]라고 [[미라클|팬들]]은 추론하고 있다. ~~영원히 잊지 않을게~~
  • 정형돈 . . . . 34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s://www.fncent.com/JHD/b/introduce/10713 FNC 엔터테인먼트 정형돈]<br>[http://cafe.daum.net/kehaha 정형돈 공 팬 카페]
         *[[김천대학교]] 방송연예학과 (중퇴)
         정형돈은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 이전에 [[경상북도]] [[김천시]]으로 옮겨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불안장애' 정형돈은 누구? '웃기지 않은 개그맨'에서 '예능계 4대천왕' 섭렵|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2&aid=0000550194|출판사=부산일보|저자=김상혁 기자|날짜=2015-11-12}}</ref> 고교 시절 '금강 소리 하나'라는 교내 연극부에서 학년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예총]] 산하 6개 지부가 주관한 제8회 '부산 청소년 예술제'에 참가하여 '청소년 연극축전' 부문에서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부산시 고등학교 대표로 서울에서 개최된 '동랑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2001년까지 생산직으로 근무하였으며, 퇴사 후 곧바로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로]]의 개그맨 [[박준형 (희극인)|박준형]]과 [[정종철]]로 대변되는 '갈갈이 패밀리' 극단에 입단하여 예비 개그맨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키워나가던 중, 2002년 실시한 제17회 [[KBS]] '신인 개그맨 선발대회'에 응시하여 동상으로 입상, KBS 1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다. 동기는 [[김병만]], [[김다래 (희극인)|김다래]], [[권진영]], [[이정수 (희극인)|이정수]], [[김민정 (희극인)|김민정]], [[이경우]] 등이 있다.
         정형돈은 평소 음을 좋아하는 점에 착안해 도니도니돈까스사업을 비롯해 2012년에는 도니버거를 강남역점에 첫 오픈했다.
         * [[MBC]] 《행복주회사 - [[만원의 행복]]》
         * [[MBC 드라마넷]] 《[[신원정대]]》
         * [[Mnet]] 《M Super Concert - 진주산업대학교에서 (9월 11일) : MC》
         * [[SBS]] 《설 특집 - 상 스캔들 (1월 27일) : 게스트》
         * [[SBS]] 《좋은 아침 3224회 (9월 14일) : 결혼장 인터뷰》
         * [[MBC]] 《기분 좋은 날 792회 (9월 14일) : 결혼장 인터뷰》
         * [[올리브 네트워크|O'liveTV]] 《2009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시상 (11월 11일) : 시상자》
         * [[Y-STAR]] 《[[신로드]] 173회 (3월 15일) : 게스트》
         * [[MBC]] 《[[나 혼자 산다]] 81회 (11월 28일) : 카메오 (배상재(장미여관) 결혼 사회)》
         * [[MBC]] 《[[단팥빵]]》 - 초등학교 동창생 역 (카메오)
         * 2014년 6월 14일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434617 《빅토리송》,《승리의 시간》] - [[무한도전]] 응원단 공응원가
         * 2014년 9월 29일, 안성 중앙대학교 [https://www.facebook.com/caurun/photos/pcb.592424300883566/592424130883583/?type=1&theater 《2014 축제》] - 출연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2014년 10월 25일, 18시 00분,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https://www.samsungcard.com/yl/evt/event.do?method=selectOpenEventList&search_boardId=28 《삼성카드 톡&플레이 - 04 홀가분 청춘예찬》]{{깨진 링크|url=https://www.samsungcard.com/yl/evt/event.do?method=selectOpenEventList&search_boardId=28 }} - 출연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2004년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8793 《개그콘서트 : KBS 개그콘서트 공 개그북》]- 개그콘서트팀 공저 : 인터뷰, 에피소드
         * 2011년 12월 7일 [http://www.cau.ac.kr/04_ulife/causquare/excelsior/excelsior_view.php?primaryNum=19&bbsId=excelsior&schKey=title&schVal=&category1=×tamp=1323663583929&page=1&pageSize=30 《명사 특강》]{{깨진 링크|url=http://www.cau.ac.kr/04_ulife/causquare/excelsior/excelsior_view.php?primaryNum=19&bbsId=excelsior&schKey=title&schVal=&category1=×tamp=1323663583929&page=1&pageSize=30 }} - 연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학생회관 3층 루이스홀)
  • 김보름 . . . . 33회 일치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학교]], [[성화중학교]], [[정화여자고등학교]]를 거치며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0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하여 장거리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이후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인 강원도청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0-11년 시즌부터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로 국내외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으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주목받았다. 2011-12 시즌에도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며,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종합 3위에 올랐고, 팀추월에서는 우승하였다.
         *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학교]]
         * [[성화중학교 (대구)|성화중학교]]
         * [[정화여자고등학교]]
         *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과
         {{인용 상자|"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스케이트장에 놀러갔었는데, 그 때 친구 타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시작하게 됐어요"<ref name=":8">{{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SKATER-STORY-%EA%B9%80%EB%B3%B4%EB%A6%84-%ED%8E%B8-%EC%87%BC%ED%8A%B8%ED%8A%B8%EB%9E%99-%EC%A1%B0%EC%97%B0%EC%97%90%EC%84%9C-%EC%8A%A4%ED%94%BC%EB%93%9C-%EC%A3%BC%EC%97%B0%EC%9C%BC%EB%A1%9C%E2%91%A0|제목=[SKATER STORY] 김보름 편 쇼트트랙 조연에서 스피드 주연으로①|날짜=2012-12-21|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 초등학교 ===
         2003년 8월 2일 대구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7회 대구시장기빙상대회 여초등 5-6학년부 1000m에서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의 김보름은 1위로 결승라인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030804.00000009.000180|제목=계성초등 종합 우승, 대구시장기 빙상대회|성=영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3}}</ref>
         === 중등학교 ===
         === 고등학교 ===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3년 1월 7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3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2초3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8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20초37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팀추월에서는 박도영, 김보름, 임정수로 구성된 한국체육대학교팀이 3분11초86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8&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T&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4년 10월 29일 부터 31일 까지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9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이 4분24초06으로 1위에 올랐고, 전예진(한국체대-4분24초29)이 뒤를 이어 국가대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4413|제목=빙속여제 이상화 적수가 없다|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1500m에서는 노선영(강원도청)이 2분05초00으로 1위, 김보름이 2분06초75로 2위, 박초원(노원고등학교)이 2분06초99로 3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giantorenge.tistory.com/269|제목=2014 제49회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날짜=2014-11-01|뉴스=OOOOOOOOrenge|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2014-2015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4분14초43으로 3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전예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15초39로 9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3분39로 6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5초05 6위로 마쳤으나<ref name=":26">{{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88/112286|제목=[스피드 스케이팅] 김보름, 전예진 여자 매스 스타트|성=daum.net|이름=|날짜=11/16/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ref name=":24" /> 2014년 11월 21일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에서 김보름은 7분26초63을 기록, 9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260|제목=[포토Q]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김보름 '아쉬운 9위' - 스포츠Q(큐)|날짜=2014-11-21|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2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 04초01로 3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전예진이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김보름은 9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5984206|제목=[영상] '전예진, 김보름 출전'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2차 여자 매스스타트|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2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3초78로 10위에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06/2014120600407.html|제목='질주 재가동' 이상화, 빙속WC 3차대회 500m 1차레이스 金|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6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전예진이 3분08초49로 7위를 차지했다. 7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24로 20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3초56 4위로 마쳤으나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 2014년 12월 12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실내빙상장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4분13초61로 13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m.nocutnews.co.kr/news/4340083|제목=이상화, WC 4연속 金…男 팀추월, 사상 첫 金 - 노컷뉴스|확인날짜=2017-03-22}}</ref> 1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전예진, 김보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8초33으로 6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43으로 18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이바니 블론딘(캐나다, 8분24초01)과 불과 0.02 차이나는 8분24초03의 기록으로<ref name=":27">{{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87|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전예진, 김보름 출전)|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28">{{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92|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시상(김보름 은)|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김보름은 이날 월드컵포인트 80점을 추가, 총점 168점으로 클라우디아 페흐스타인(독일), 다카기 미호(일본) 등을 제치고 블론딘(350점), 이리네 슈텐(네덜란드, 320점),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 255점), 다카기 나나(일본, 200점)에 이어 5위로 뛰어올랐다.<ref name=":16">{{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121509490760404|제목=이승훈-김보름, 간발의 차로 은메달 거둬…“외모만큼 실력도 훈훈”|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4}}</ref> 2015년 1월 31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 15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2분00초99의 기록으로 13위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노선영(강원도청)은 2분01초39로 16위에 올랐다. 우승은 헤더 리처더슨(미국-1분56초30)이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099237&code=61161111&cp=nv|제목=[빙상 월드컵] 이승훈 부진한 출발… 스피드스케이팅 5차 월드컵 5000m 9위|확인날짜=2017-03-17}}</ref> 2월 1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2초38로 11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2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5년 1월 5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5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2초49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416&detailClassCd=03&rhCd=19&page=8&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6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20초54로 3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416&detailClassCd=02&rhCd=19&page=8&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팀추월에서는 전예진, 김보름, 박도여으로 구성된 한국체육대학교팀이 3분19초73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416&detailClassCd=08&rhCd=19&page=8&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T&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매스스타트가 동계올림픽의 정 종목으로 체택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10/2015061000080.html|제목='매스스타트' 이승훈, 평창 향해 달려라|언어=ko|확인날짜=2017-03-22}}</ref> "평창이 아니었다면 그냥 '평범한 선수'로 뛰다가 아무도 모르게 은퇴했겠죠."<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70206/82726991/1|제목=첫 정종목 ‘매스스타트’ 남녀 세계1위 이승훈-김보름|날짜=2017-02-06|뉴스=동아닷컴|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제가 어릴 적부터 유난히 승부욕이 강했어요. 그리서인지 운동을 열심히 했고 달리기에서도 일등을 놓치지 않았죠. 매스스타트는 쇼트트랙과 비슷한데 제 앞에 어떤 선수가 있으면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이런 승부욕이 매스스타트라는 종목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ref>{{뉴스 인용|url=http://v.sports.media.daum.net/v/20170621060013537|제목=[피플人 인터뷰 영상] '빙속 원더우먼' 김보름, '빙판 위의 쌈, 그것이 마이 웨이'|날짜=20170621060011|뉴스=다음스포츠|언어=ko|확인날짜=2017-06-21}}</ref> 긴 방황 끝에 목표를 찾은 김보름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월드컵 1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우승을 했지만 2차 대회에서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시즌 말 종목별세계선수권대회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여제의 귀환을 예고했다.<ref name=":21">{{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730363.html|제목=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김보름은 은메달|날짜=2016-02-15|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2017년 8월 26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17 데저트 클레에서 김보름은 여자 3000m에 나서 4분10초11을 기록, 미국의 페트라 액커(4분08초06)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27/0200000000AKR20170827028900007.HTML|제목='장거리 간판' 이승훈, 2017 데저트 클래 5,000m 우승|성=이영호|날짜=2017-08-27|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8-27}}</ref>
         머리 색을 노란 색으로 바꾼 이유는 "금메달을 의한 건 아니지만 염색을 한 뒤 성적이 쭉 좋았다. 주변에서도 '잘 어울린다'고 해서 노란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ref> {{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0645664|제목=2년 뒤 평창 시상대, 노란 보름달 뜬다|날짜=2016-09-28|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4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메달리스트]][[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문성초등학교 동문]][[분류:성화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영양군 . . . . 33회 일치
         ||<bgcolor=#FA5858> {{{#FFFFFF '''링크'''}}} ||<bgcolor=#F8E0E6> [[http://www.yyg.go.kr/|영양군 공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yeongyanggun|[[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영양군 공 페이스북]]
         [[https://twitter.com/HOTyyg|[[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영양군 공 트위터]] ||
         초등학교는 7곳, 중학교는 5곳, 고등학교는 3곳이 있다.
         참고로 어지간한 [[구(행정구역)|구]]는 물론이거니와 인구가 많은 [[동(행정구역)|동]]의 학교보다 개수가 적다. 대표적으로 [[강서구(서울)|강서구]] [[화곡동]]과 더불어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 [[노원구]] [[상계동]]이 그 예이다.
         === 초등학교 ===
         || || 학교명 || 주소 ||
         || 1 || 영양초등학교 || 영양읍 군청길 25 ||
         || 2 || 영양중앙초등학교 || 영양읍 영양창수로 53 ||
         || 3 || 입암초등학교 || 입암면 입암로 162 ||
         || 4 || 일월초등학교청기분교장 || 청기면 장갈로 1445 ||
         || 5 || 일월초등학교 || 일월면 영양로 2410 ||
         || 6 || 수비초등학교 || 수비면 한티로 499 ||
         || 7 || 석보초등학교 || 석보면 원리길 3 ||
         === 중학교 ===
         || || 설립구분 || 학교명 || 주소 ||
         || 1 ||<|4> 공립 || 영양중학교 || 영양읍 중앙로 81 ||
         || 2 || 영양중학교입암분교장 || 입암면 산해1길 9-4 ||
         || 3 || 석보중학교 || 석보면 석보로 572-6 ||
         || 4 || 수비중학교 || 수비면 낙동정맥로 2417 ||
  • 유승민(정치인) . . . . 33회 일치
         || '''최종 학력''' ||<white><(> [[위스콘신 대학교]] 경제학 박사 ||
         [[위스콘신 대학교]] 경제학과 조교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정치인)|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유시민]]이 나온 중학교다. 즉 유승민이 유시민의 중학교 2년 선배. 심지어 대학도 서울대 경제학과로 과까지 같은 직속 선후배다. 얼핏 학연과 지연(대구)으로 얽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무관하고 정치인생이 정반대. 또한 유시민의 유는 柳라 혈연은 확실히 없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심지어 대선출마 간담회 이후 참석한 기자들과의 사 자리에서, 한 기자가 정치부에 오기 전 다른 부서에서 작성했던 특집 기사를 언급해 동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고도 한다. 또한 대개 언론에서 국회의원 인터뷰를 할 때는 보좌진에게 질문 내용이 전달되고, 그걸 의원 본인이 추려서 대답하는 형으로 진행되지만 유승민은 그런 과정이 없이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한다.
         사실 이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절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혜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태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반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상임위 체제로 가니까, 모든 의원 분을 뵙기는 어려워요. 저희 상임위에서 보자면, 유승민 의원이라고 저희 위원회 위원장님이신데요. 사실 국방위 특성자체가 여야가 구분을 많이 짓지 않거든요. 사안 자체가 특별한 법률이 아닌 이상은 일반적으로 국가적 아젠다니까요. 그런 데다 유승민 위원장님이 여야 안배라든가 효율적 운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세요.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인품이 좋으신 게 느껴지세요. 그리고 가장 좋은 건, [[간]]을 잘 챙겨주세요.
         > 경제전문가인데요, 알고보면 군사적 견이 엄청나다. 군사적 견과 전략이 대단하신 분이다. 그리고 국방위원장으로서 여, 야에 대한 배려 그리고 균형감각이 뛰어나신 분.
         경제, 국방, 외교통상의 삼박자를 고루 거친 탓에 각 분야에서 웬만한 전문가급 견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그 때문인지 국방정책 관련으로도 주목할 만한 주장을 간간이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모 신문사에서 매년 평가하는 '국감 스코어보드'에서 유승민 의원은 항상 최상위권에 등재되어 유승민 의원의 국방관련 견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국회 내 대표적인 [[THAAD]] 도입론자이며, "국내 예산으로 [[THAAD]]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따르면, 2013년부터 [[THAAD]]도입을 주장했는데 정작 그땐 [[친박]]계에서 반대했다고(...) [[http://defense.na.go.kr/servlet/Download?committeeId=2005110000006&boardId=2006011000274&recordId=2014010040549&fileId=01|2014년 1월에 실시한 북핵방어관련 세미나 자료 -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유승민 당시 국방위원장은, 북핵대응 강화를 위해 기존의 종말단계 하층방어에서 중 고고도를 포함한 다층방어 체계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북핵(미사일) 방어능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우며, 현재 저고도 방공을 담당하는 대한민국의 PAC-2는 독일에서 중고로 들여온 1980년대 연에 원래는 전투기 요격용(...)으로 개발된 체계이기때문에 효용성이 낮다.
         또한 천안함, 연평해전 유족들은 물론이고, 각종 군관련 사고 영결장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고 한다. 모 네티즌은, 해군 링스헬기 추락사고 영결장에 정치인들이 방문해 유족들과 사진 찍고 5분 내로 가기 바빴는데,''' 한 노신사가 투벅투벅 보좌관도 없이 걸어와 유족들을 1시간 넘게 위로했고, 그게 유승민이었다고 한다.''' --훗날 유승민은 이 질문을 받자 그 영결장에 간 건 맞는데 본인이 노신사까진 아니지 않냐며 당황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hX4iojUKSo| 천안함 영결장에서 민평기 상사 어머님과 대화하는 유승민]]
         그 외에도 6.25 참전 소년소녀병에 대한 보상 법률안을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발의 했으며, 입대한 병사들에게 예산이 부족하다던 국방부에서 사관생도들에게는 나이키,아디다스 운동화, 심지어는 축구화 테니스화까지 지급한 행태를 보고 국방부 종합감사를 실시하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종합성적 1등의 여생도가 불이익을 받아 남생도로 바뀐 사태를 따져서 결국 그 여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이에 야당 국방위 간사였던 안규백 의원은 '''합리적인 대안을 잘 도출하시는 분이고, 남의 억울함을 못보는 정의로운 분'''이라 유승민 국방위원장을 칭찬한 바 있다.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도 절차상의 하자와 국민동의 미흡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찬성입장을 보이고, 사드 조기배치 및 추가 2~3포대 설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 핵무장은 반대하지만, '공포의 균형'을 근거로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미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NATO 핵공유를 모티브로 삼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NCND(Neither Confirm Nor Denied) 즉 전술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토론에서 밝혔다.
         대선토론부터 시작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에도, 유승민 후보는 일관되게 사드배치 조기완료와 추가도입을 주장했고, 전략성 모호성이라는 개념과 국회비준 운운하는 문재인정부를 '''사드배치를 왜그리 머뭇거리냐''' '''운동권 사고로는 국정 망친다''' 고 거세게 비난하였다. 그 이후 북한의 잇다른 ICBM도발과 6차 핵실험이 발생하자 결국 9월 7일 사드배치를 완료하였다. 또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에서도, 유승민 의원은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 자체는 찬성' 의 입장이였다. 2016년 당시 야당이였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배신한 밀약''' 이라고 거세게 비난하였고, 당시 문재인 전 대표도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으나, 2017년 8월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연장되었다.
         >"조국은 땅이 아니다. 땅은 그 토대에 불과하다. 조국은 이 토대 위에 건립한 이념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사상이며, 그 땅의 자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공동체에 대한 의이다. 당신의 형제 중 어느 하나라도 투표권이 없어 나라 일에 자신의 의사를 전혀 반영할 수 없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교육받은 자들 사이에서 교육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한,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일할 수 있고 또한 일하고자 하는데도 일자리가 없어 가난 속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야 하는 한, 당신에게 당신이 가져야만 하는 그러한 조국은 없다. 모두의, 그리고 모두를 위한 바로 그 조국을 당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 -[[성균관대학교]] [[https://www.youtube.com/watch?v=1tGolhbc8qg|강연]] 中
         이념적 부분에서는, 유승민 의원 스스로는 공화주의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의 정치사상을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흔히 자유주의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상으로 인되지만[* 사실 이 분류도 정확한 것은 절대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며, 안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화주의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친이세력과도 사상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딱히 그가 정계에 입문한 뒤에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변화가 있을지언정) 사상적 노선에서는 일관된 자세를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화주의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이다.
         >'''보수가 무엇입니까?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재벌대기업은 수십조원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4대강에는 22조원이나 쏟아부으면서, 밥을 굶는 결아동, 수천만원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힌 대학생, 월 백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쪽방에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기초생활보호도 못받는 할머니 할아버지,이 분들을 위해서는 “예산이 없다”라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제가 꿈꾸는 보수는 그런 보수가 아닙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칙이 지켜지고 정의가 살아있고 상이 통하는 세상입니다.'''
          * 자신을 [[유시민|유''''시''''민]]이라고 혼동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유시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유시민을 제대로 쓰면 류시민이 되기 때문에, 유승민과는 성씨가 아예 다르다.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삼국지)|유비]] 할 때 劉 씨를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음에서도 차이가 있다. ~~성향도 [[친노]]와 [[비박#s-4]],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다르다~~ 다만 이건 정치 행적 이야기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에 중학교도 선후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유승민은 [[빠른생일|빠른 58년생]]에 76학번 유시민은 59년생 78학번.]~~ 유시민이 JTBC 신년토론에서 말하면서 실제로는 깔 거 다 깠다~~[* 게다가 의외로 두 사람이 양 진영의 경제통으로 대립을 하기는 했지만 유승민은 전형적인 [[공화주의]] 복지관을 가진 인물로, 경제 이야기에서는 좌파라는 오해를 들을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 경향을 보인다. 한편 유시민은 진보세력치고는 기본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동안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다.(사회민주주의 쪽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정의당에서는 그의 리버럴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대단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을 정도) 즉 경제 이야기를 할 때는 두 사람이 생각만큼 사상적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애초에 유시민의 정치적 대부인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하였다~~ 실질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평당원으로 정치평론에 주력하는 과정에서는 유시민도 전보다 소폭 왼쪽으로 이동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경제 이야기에서는 서로 겹치는 면이 많은 편.]
  • 이승현(농구선수) . . . . 32회 일치
         ||<:> '''출신학교''' || 칠곡초 - 용산중 - [[용산고등학교|용산고]] - [[고려대학교|고려대]] ||
         ||<:> '''신체사이즈''' || 197cm, 105kg[*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공 프로필] ||
         ||<width=125><:>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 2013년 MVP. 2014년 대회는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FIBA 농구 월드컵]]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인천 아시안 게임]] 때문에 개최되지 않았다.][br]([[고려대학교]]) ||<:> → ||<width=125><:> '''이승현[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스]])''' ||<:> → ||<width=125><:> [[김시래]][br]([[국군체육부대|상 무]]) ||
         ||<width=125><:> [[김종규(농구)|김종규]][br]([[경희대학교]]) ||<:> → ||<width=125><:> '''이승현[br]([[고려대학교]])''' ||<:> → ||<width=125><:> [[문성곤]][br]([[고려대학교]]) ||
         ||<width=125><:>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br]([[고려대학교]]) ||<:> → ||<width=125><:> '''이승현[br]([[고려대학교]])''' ||<:> → ||<width=125><:> [[강상재]][br]([[고려대학교]]) ||
         ||<width=125><:>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br]([[고려대학교]]) ||<:> → ||<width=125><:> '''이승현[br]([[고려대학교]])''' ||<:> → ||<width=125><:> [[이동엽]][br]([[고려대학교]]) ||
         ||<width=125><:> 없음(원년) ||<:> → ||<width=125><:> '''이승현[br]([[고려대학교]])''' ||<:> → ||<width=125><:> [[허웅(농구선수)|허웅]][br]([[연세대학교]]) ||
         초등학교 5학년 무렵 95Kg이나 나간 몸무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유도를 시작했는데, 유도를 하면서 오히려 살이 더 찌는 바람에(...) 농구로 전업을 해서 농구 선수가 되었다.[* 이때 유도를 계속 하고싶었지만 농구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고, 만약 결승에서 이기면 유도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이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농구를 하면서 살을 30Kg을 뺐고, 키가 크면서 중학 무대와 고교 무대 모두에서 최고급 [[파워 포워드|4번]]-[[센터(농구)|5번]]을 맡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최고의 센터로 불린 이승현을 두고 대학팀 간 경쟁이 붙었고, 거의 연세대로 진로가 확정이 되는 듯 싶던 이승현은 고려대학교 이민형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결국 고려대로 진학하게 되었고, 1학년 부터 주전 자리[* 이전에 1학년부터 [[파워 포워드]]였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의 입학 이전인 1,2학년 시절에는 [[센터(농구)|센터]]를 맡았었고, 이종현 입학 이후 파워 포워드로 전향하게 된다. 2011~2012년 고려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는 [[정희재]]였다. 이승현은 센터 시절에도 입학과 동시에 [[장재석]], 김종규를 제치고 리바운드상을 수상하는 등 적어도 대학농구 내에서는 수위급 [[센터(농구)|5번]]의 면모를 보였다.]를 차지하면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4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이종현과 함께 트윈타워를 형성하며 고려대학교 농구부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고려대의 2013년 농구대잔치, MBC배, 프로-아마 최강전, [[한국대학농구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2014년 MBC배,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 전승 및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런 활약으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농구 예비 엔트리에도 진입하였으며 [[유재학]] 감독이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볼 때 발탁 가능성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최종 엔트리 진입에는 실패했다.
         > '''"제 별명이 두목 [[고려대학교|호랑이]]인데, 앞으로 KBL의 두목이 되어 보겠습니다."''' - 2014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오리온에 지명된 직후[* 여담으로 2년뒤 드래프트에서 같은 학교 후배가 "KBL의 두목 호랑이를 잡으러 가겠습니다."란 말을 남겼다.]
         장점 중 타고난 체력이 꼽히기도 하는데, 대학리그를 마치고 휴기 없이 바로 프로 데뷔 시즌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팀내 평균출장시간 1위(2014-15 시즌) 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시에 대학 말년에 장착한 3점슛이 일취월장하여 허일영(50%)에 이은 시즌 3점슛 성공률 2위(42.9%)를 기록하였다.
         '''입단 2년차에 오리온 포워드 농구의 핵심전력이자 KBL의 두목으로 거듭나다''' --2015-16 시즌 농구기자들의 연민의 대상--[* 외국인 선수 수비가 되기에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출전하지 못한 1라운드를 제외하고는 전 경기에 나서서 추일승의 노예로 장신 외국인 선수들을 수비했다. 2월 22일자 바스켓카운트에서 기자들이 노가다 수당이라도 줘야 되는게 아니냐며 동정하는 모습이었고 이는 정규시즌 시상 최우수수비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외국인 선수들과 하승진을 마크하면서도 그 선수들을 끌어내느라 3점까지 던져가면서 온갖 개고생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15-16 PO MVP를 받게 된다!!]
         헌데 오세근이 11-12시즌에 가장 근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15-16시즌부터 시작된 기자들의 과도한 언플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안티팬들이 대거 양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암투병 소을 접한 이후 오리온의 경기가 있을때마다 매번 아버지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에 팬들의 시각도 영 좋지는 못하다. 이런 와중에 동료 포워드들의 활약으로 이승현이 없이도 승수를 착실하게 쌓는 장면이 연출되자 안티팬들은 '''스탯도 오세근보다 낮으면서 고평가를 하는데 [[종범(인터넷 속어)|이승현한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도 있냐?]]''' 라면서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두 번째 장점으로는 몸이 상당히 튼튼하다는 것. 힘 좋은 장신 외국인선수들을 몸으로 버텨가면서 수비하는데도,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출장시간을 전 경기 뛰어준다는 것은 팀 입장에서는 업고 다녀도 모자랄 수밖에 없다.[* 특히 오리온의 농구 특성상 포워드들을 활용한 스페이싱 농구를 지향하기 때문에 포스트가 약해지는 건 필연적이다. 그렇기에 이승현의 활용가치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대학교 4학년부터 2014-15 시즌, 2015 아시아선수권, 2015-16 시즌까지 휴없이 경기를 소화했기 때문에, 아시안 게임까지 다녀왔던 양동근, 김선형과 근접한 수준의 혹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매경기 30분 이상의 경기를 큰 부상 없이 소화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금강불괴인 점도 장점으로 부각된다.[* 가드에 비해 빅맨이 더 과부하가 심하기 때문에 더욱 대단한 일이다.][* 심지어 2015-16 시즌 중에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선 발목이 돌아가는, 다른 선수같으면 1달이상을 쉬어야되는 부상을 당해놓고도 1주일 정도 쉬고 다른 국가대표들이 복귀하던 날에 같이 복귀했다!]
         자신이 소속했던 초(대구 칠곡초), 중(서울 용산중), 고(서울 용산고), 대(고려대), 프로(고양 오리온)팀 모두를 우승시켰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KBL총재배 초등부 농구대잔치 우승을 시작으로 중학교에선 춘계연맹전, 협회장기, 전국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오랜시간 무관에 그치던 용산고를 우승시켰다.[* 이승현은 꽤 어린 나이부터 용산고 OB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용산고 출신인 양동근이 "넌 여기 와도 돼. 우승시켰으니까" 라고 이승현에게 이야기 해줬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재학 중 단 한번도 지지않았으며, 김종규/두경민/김민구가 버티던 경희대를 꺾고 MBC배와 대학농구리그를 모두 제패해버렸다. 특히 4학년에 재학중이던 2014년 가을 MBC배 대학농구 결승전에선 종료 1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동점 3점슛을 작렬시키고, 종료 1초를 남기고 역전 2점슛을 성공시키는 원맨쇼까지 보여줬다.
          * KBL에서는 덩크를 하는 모습이 안 나와서 [[함지훈]]처럼 덩크를 못 한다는 소리가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시절에 연습 영상을 보면 덩크는 할 수 있는 듯하다. 2015 플레이오프에서 파울콜 상황에서 파워풀한 원핸드 슬램을 시도하기도 했고, 경기전 몸풀기때 이따금씩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것만 봐도.. 만약 경기 중에 혹시라도 덩크했을 때 실패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팀을 우선시하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닌이상 덩크를 경기 중에 하지는 않을 듯하다. 본인 말로는 덩크를 할 수 없을 나이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했다.
          * 2010년대 초반 고려대학교 왕조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선수가 누구였냐는 문제로 농갤이 시끌벅적해지는 때가 많다. 2013~17년 드래프트까지 [[박재현|지명된]] [[김지후(농구선수)|가드]] [[이동엽|선수들이]] [[믿고 거르는 고대가드|프로에서 제 기량을 내지 못하고 있고]] 이종현마저도 대학교에서 4년간 뭘 배웠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함께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사실 고대왕조의 핵심은 이승현이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79&aid=0002923366|평소 스파링 상대를 해왔던 김준일의 증언]]~~
  • 정재학 (1856년) . . . . 32회 일치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물러나던 중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br> [[김진만]]의 손자 [[김일]]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친척관계인 [[정운일]] ( 鄭雲馹 )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언도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조선총독부]]의 민지 조선에 대한 은행정책은 시기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1910년대에는 [[일반은행]] 신설을 장려했으나 1922년 이후 신설을 불허하고 합병정책으로 [[민족자본은행]]을 일본인소유은행으로 전환시켜갔다. 1910년대 수도권및 지방에 잇따라 신설된 민족자본은행들은 총독부의 관리를 받는 [[조선은행]]과 [[산은행]]의 주도로 일본인은행에 흡수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같은 일본인 임원의 침투전략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한국인은행은 일본인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어미새(국가)가 둥지를 틀고 품어줘야 새끼(자본주의)가 알을 깨고 나와 먹을 공급(은행)받아 성장할 수 있지만 남의 둥지를 독점한 뻐꾸기(총독부 산하 특수은행과 일본인은행)는 둥지의 원주인(조선인은행)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죽인다. 민지자본주의 조선인은행의 모습이었다."고 강조했다.<ref>정태헌, <<한성은행의 경영권 대주주 구성추이와 일본인은행화과정>> 한국사연구 P148~149 2010년</ref>
         [[정재학]]은 [[항일투쟁]] 경력의 대기자도 '대구지역 일제 대항 세력 중심'으로 인정 한 바 있는 민족자본의 수호자였다. [[정재학]]의 [[대구은행]]은 출발부터 일제에 대한 대항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경일은행]]은 일제에 순응하는 경영방을 택했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ref>
         임 대기자는 [[정재학]]에 대해 " 거리의 일개 건달에서 수만금의 재산가가 되고 군수라는 관직에 오르기도 했고 풍운아인데 [[대구은행]] 설립을 통해 일제의 대항 세력이 되어 지체를 높인 특이한 존재 "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의 대구은행 설립은 대구를 [[봉건시대]]에서 [[자본주의]]경제로의 이행으로 이끄는 혁명이자 국권회복을 위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정재학]]이 설립했던 [[대구은행]]은 일제에 대한 커다란 저항세력으로 한국 사람들의 저항의을 길러주는데 큰 몫을 했다"고 강조했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ref>
         임 대기자는 [[대구은행]]의 설립을 주도했던 [[정재학]] 외에도 [[이일우]]란 대구 지주 부호 역시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는 등 민족 의 고취에 앞장섰다고 강조했다. 이일우 가문은 체육계원로로 IOC (국제올림픽 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이상백]], 독립군을 이끈 [[이상정]] 장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경향파애국시인 [[이상화]] 등을 배출하는 등 대구지역에서 명문가이자 [[민족자본세력]]의 한 축을 이뤘다 . 또한 대구은행에 참여한 [[서상돈]] 역시 대구지역 민족경제인들의 결사체인 [[대구시의소]]를 이끈 [[대구]]의 명망가였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ref>
         그는 1930년대 말 [[대구은행]] 주을 대거 매집, 최대주주로 오른다. 그러나 총독부 당국은 그에게 경영권을 주지 않았다. 오구라 다케지스케는 1940년대 들어 은행 쪽에 발을 빼고 전력회사 경영에 몰두하게 된다. [[대구은행]]의 출범 시기는 1913년으로 선남은행 영업 개시후 1년 뒤였다. 대구 지역의 금융산업이 일본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경북 일대의 지주 등 민족 재력가들이 뭉쳐 [[대구은행]]을 설립하고 나선 것이다. [[대구은행]]의 설립계획서 제출 시기가 1912년 9월5일로 [[선남은행]] 설립일자인 1912년 9월1일에 비해 4일 뒤였다는 점은 대구 경북 지역 민족자본가들의 위기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ref>매일경제 1982년 11월 26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편</ref>
         [[대구은행]]의 이 같은 [[민족자본]] 수호 의지는 해방직후 [[조흥은행]]의 자본구성에서도 드러난다. 1948년 [[미군정]]이 우리 정부에게 넘겨준 주요 은행 주분포를 보면 [[조흥은행]]의 경우 한국인 지분비율이 54%에 달한 반면 [[상업은행]] (36%) [[저축은행]](6.3%) [[신탁은행]] (9.4%) [[상호은행]](9.5%) [[조선은행]](3.5%) [[산은행]](6.7%) 등 나머지 은행들은 대부분은 일본인 소유에서 미군정 관리에 이어 우리 정부로 귀속됐다. 일제 당시 총독부 등이 민족자본 기반의 은행들을 수탈, 국유화시키거나 일본인에게 주을 넘겼기 때문이다.<ref>경향신문 1978년 1월12일 5면</ref>
         [[조흥은행]]은 1997년 발간한 [[조흥은행100년사]]를 통해, 조흥은행의 출범에 대해 민족계은행의 대동합병이라고 규정했다. 조흥은행은 1943년 10월1일 최초의 민족은행인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이 합병하여 출범했다. 한성은행은 1938년 1월 29일 해동은행을 흡수했고, 그리고 1941년 경상합동은행을 합병했다. 조흥은행 출범에 앞서 일본 총독부는 다단계 인수합병을 거쳐 민족자본을 와해시키거나 통폐합시켰다. 한성은행 계열 5개은행(한성은행, 해동은행,구포은행, 주일은행,대구은행)과 동일은행 계열 4개은행(한일은행,호서은행,동래은행,호남은행)은 조흥은행으로 최종 통합된 것이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133</ref> <br>이 가운데 경상합동은행은 한성은행과 합병되기 직전인 1941년 6월말 현재 한국인 주주 비중이 더 컸다. 일본인 주주 비중은 33%였고 일본인보유 지분은 총 4만5000주 가운데 45.4%인 2만409주에 그쳤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173</ref> <br>조흥은행 출범 당시 한성은행 10만5000주와 동일은행 8만주를 합쳐 조흥은행 주 수는 18만5000주였다. 한성은행 총주10만5000주에는 대구은행을 설립한 정재학이 이끌어온 경상합동은행 4만5000주도 포함됐다. 경상합동은행은 1941년 9월30일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된 바 있다. 조흥은행 총주 18만5000주는 경상합동은행 4만5000주, 한성은행 6만주, 동일은행 8만주 등의 융합으로 구성됐다. 정재학 가문은 경상합동은행 주 가운데 1만여 주를 보유한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바 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조흥은행]]은 1943년 10월 1일 민족자본에 기반을 둔 9개은행( [[한성은행]] [[대구은행]] [[한일은행]] [[호서은행]] [[호남은행]] [[동래은행]] [[주일은행]] [[구포은행]] [[해동은행]])의 다단계 합병에 의해 탄생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창조사, 1972) p684쪽 조흥은행계보도</ref> 해방직후 [[조흥은행]]의 지분구성을 보면 일본인 5.1%, 한국인 53.7% 그리고 은행상호보유주 41.0%로 나타났다.<ref><< 조흥은행90년사 >> (조흥은행, 1987) p113~114</ref> 한국인지분 가운데 [[대구은행]]을 설립한 [[정재학]] 가문과 [[한일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한 [[민대]] 가문 등 두 가문의 비중이 가장 컸다.<ref>경향신문 1955년 10월22일 3면</ref>
         앞서 두 가문은 1930년대 말 [[경상합동은행]]의 경영권 공방전에서 극한 대립상황에 놓였었다.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찬탈시도과정에서 정재학 가문을 돕기로 했던 민영휘 가문이 돌연 오구라에 지분을 넘김으로써 정재학가문에 크나큰 상처를 안겼다.<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 오구라는 다른 여러 주주들의 주까지 매수 한 뒤, 경상합동은행 주 4500주 가운데 39.4%를 차지하면서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
         최대주주 자리를 잃은 [[정재학]]은 1940년 4월2일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f>동아일보 1940년 4월 9일 4면 합은두취사거</ref> [[정재학]]의 장례은 1940년 4월8일 거행됐다. 당시 20대의 자동차가 영구차를 뒸따랐다고 한다. 전국 각지의 부호들이 대거 영면을 빌기 위해 찾아들었다고 전해진다. [[고승제]] 박사는 " 당시 그의 영구차 행렬 가운데 '고통정대부연일정씨재학공지구 ( 故通政大夫 延日鄭氏在學公之柩 )란 [[영건]](靈巾)이 내걸렸고 이는 상민으로 태어난 정재학이 양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상징"이라고 평가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0</ref>
         그러나 오구라는 행장에 오르지 못한 반면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은 1940년 4월 27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표 이사 (대표취체역) 겸 행장에 선임됐다. 이듬해인 1941년 7월 총독부는 전시금융체제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금융기관 정리통합 방침을 밝혔다. 예상과 달리 [[경상합동은행]]은 [[대구상공은행]]과의 합병대신 1941년 8월10일 서울 소재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됐다. 정운용은 한성은행 주 1220주를 보유하면서 [[상무]] [[취체역]](상무이사)로 발탁됐다. 해방 후 한국인 최초의 은행장이 되는 계기였다. 오구라는 이에 상심한 듯 은행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본업인 전력산업에 집중한다.
         반면 민씨 가문은 1957년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조흥은행 주을 대거 팔아치우면서 주요주주 자리를 내놓게 된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ref><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ref>경향신문 956년 4월 22일 1면</ref> 조흥은행은 1995년 2월 확대이사회 결의를 통해 은행장의 순서를 조정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전에는 1943년 [[취체역]] 회장 (이사회장) [[민규]](閔奎植)을 1대 행장으로 대우했으나 1897년 한성은행장 [[김종한]] (金宗漢 )을 1대 조흥은행장으로 결정했다. [[민영휘]] 가문은 주요주주였음에도 조흥은행장을 배출하지 못한 격이 된 것이다. 반면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은 제5대 조흥은행장, 손자인 [[정운용]]은 제2대 조흥은행장에 이름을 올렸다.<ref>국가문화유산포털 조흥은행 http://www.heritage.go.kr/culture_2008/kor/search/pop_search_view.jsp?pk=PS01004029001422024000DC</ref>
         부친 아들 손자 등 3대에 걸쳐 은행장을 배출한 사례는 한국근대 금융사에서 유일한 사례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근대적 은행업은 구한말인 1897년부터 시작됐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도 은행업은 유지되면서 비록 일제 금융당국에 의해 통폐합되면서 조흥은행으로 통합됐지만 민족자본은행들의 한국인 지분은 [[조흥은행]]의 지분구성에서 절반을 웃돌았다. 해방 이후 조흥은행을 제외한 주요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일본인 지본이 절대 우위였으며 이 지분들은 미군정청에 귀속된 뒤 이승만 정권 당시 재계에 불하됐다. 조흥은행 100년사에 따르면 [[조흥은행]]만이 당시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한게 한국인 지분이 50% 이상이었다. 해방 직후 조흥은행의 총 주수는 18만5000주로 이 가운데 [[경상합동은행]]은 4만5000주, [[한성은행]]( 경상합동은행 합병전 기준) 6만주, [[동일은행]] 8만주 등으로 구성됐다. 해방이후 민족자본은행의 대표격으로 부상한 조흥은행의 지분 가운데 [[정재학]] 가문이 설립한 경상합동은행의 지분율은 24%에 달했다.
         정재학은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었다. 1922년 경북 고아구제회를 설립, 운영자금을 부담했다. 고아수가 260명으로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정재학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액의 재산보다 '어머니 없는 손자'들을 가진 것이 기쁘지 짝이 없는 일"이라고 주변에 널리 알렸다. 그러면서 고아들 전원에게 자신의 정씨 성을 붙여줬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0</ref> 또한 대구지역에서는 정재학에 대해 세 가지 재주를 겸비한 기인이란 평가가 돌았다고 한다. 우선 돈 버는 재주, 다음으로 아이 낳는 재주, 마지막으로 맛있는 음을 즐기는 호 등이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22</ref>
         [[1911년]]에 [[경상농공은행]] 감사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지역 금융계와 산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12년]] 선남은행 취체역, [[1913년]] 대구지주조합 설립위원과 대구전업주회사 감사역 겸 취체역, [[1915년]] [[조선산은행]] 상담역, [[1919년]] 계림농림주회사 상담역, [[1921년]] [[대구은행]] 은행장과 대흥전기 감사, [[1929년]] 경상합동은행 이사 및 은행장과 조선미곡 대표이사, [[1929년]] 수성수리조합 조합장 등 경력이 화려하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독립 요구는 불온사상이며 만세시위는 폭도들의 소요 사태라는 일제의 인을 그대로 받아들여 폭동 진압을 목적으로 한 대구자제단을 창립하는 데 참여했다. [[박중양]]이 단장을 맡은 이 단체는 민간의 수상한 활동을 정탐하여 경찰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고, 정재학은 발기인 및 평의원으로 참가하였으며 개인 재산으로 경비도 지원했다.
  • 토리코/392화 . . . . 32회 일치
          * 아카시아는 발악하듯 토리코를 공격하지만 그 공격은 령들이 막아주고 아카시아에게 먹힌 손, 코마츠 일행의 신체도 령이 대신 먹힌 것이었다.
          * 아카시아는 최후의 수단으로 토리코 일행의 모든 운을 빨아먹으려고 든다.
          * 비대해진 아카시아가 모든 운을 먹어치웠다고 믿고 토리코를 공격하나 그 공격은 한순간 나타난 세 번째 구르메 세포의 악마에게 가로막힌다.
          * 현재 토리코는 "진짜 풀코스"를 모아 욕의 속박을 벗어난 상태이기 때문에 아카시아가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있다.
          * 아카시아가 말한 "진짜 아카시아의 풀코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적합재를 모으지 못했고 시간이 갈 수록 자신의 욕 "네오"에게 먹히고 있다.
          * 그는 자신의 욕을 모은 거대한 구르메 펀치로 토리코를 내리찍는다.
          * "이 세상 모든 재에 감사를 담아, 잘 먹겠습니다."
          * 정확히 애초에 토리코는 손을 먹힌게 아니었다. 토리코를 둘러싸고 있는 령들이 대신 먹혔던 것.
          * 토리코의 운의 힘이 작용해 구르메 핸드, 네오의 욕 조차 방향을 잃고 흘러가 버린다.
          * 그는 토리코의 운을 빨아들이는데 토리코를 보호하고 있던 령들이 함께 끌려간다.
          * 토리코 뿐만이 아니다. 당한 것처럼 보였던 코마츠 일행도 실은 강력한 운으로 보호받고 있었는데 아카시아는 그 운마저 삼키고 있다.
          * 토리코 일행의 운을 빨아들이면서 비대하게 변하는 아카시아.
          * 토리코는 자신의 운은 스타준이 플로제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것이라 먹어치울 수 없다고 말한다.
          * 페어는 욕에도 한계는 있다며 폭발하고 말 거라고 소리친다.
          * 그 말이 더욱 자극이 되어 아카시아는 쉼없이 운을 빨아들인다.
          * 하지만 정말로 운을 다 먹어치운 것인지 토리코의 가슴을 관통하는 강렬한 펀치를 날린다.
          * 또 세 번째 악마는 아카시아는 지금 "과"을 하고 있다며, 벌써 수 십억 년 째 과 중이라고 비꼰다.
         아카시아는 토리코에게 패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네오에게 먹혀 사라질 운명이었다. "진짜 풀코스를 먹으면 된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적합 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고, 토리코 일행과 싸우며 자아를 먹혀간 걸로 보인다.
         그런데 플로제는 진작부터 "적합재로 구성한 풀코스가 있으면 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 아카시아는 미신으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를 맛 봤다고 공언되고 있다. 그 중에 적합재가 전혀 없었다는 걸까? 아카시아는 스스로 자신의 적합재를 판별하지 못했던 걸까?
         지난 회에서 팔왕들은 확실히 사망한 것 같지만 코마츠 일행은 운의 가호로 무사했던 걸로 밝혀졌다. 브란치도 옆에 있었으니 아마도 무사할 듯. 하지만 사천왕들도 운의 보호를 받은 건지는 미지수.
  • 아이린(레드벨벳) . . . . 31회 일치
          [*. 행정구역상으로는 대구칠곡도 북구소속이지만 북구지역과 칠곡지역은 중학교 학군이 6학교군(북구(칠곡지역 제외)), 7학교군(칠곡(칠곡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71613411729462|#]] ]||
         ||<:><#FE3E5F>'''{{{#white 학력}}}''' ||<#FFFFFF>[[대구광역시|대구]] 인지초등학교 (졸업)[br][[대구광역시|대구]] 운암중학교 (졸업)[br][[학남고등학교]] (졸업)[* [[서울특별시|서울]]로 [[전학]]을 갔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전학을 간 적도 없었고,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졸업사진도 역시 출신 학교였던 [[학남고등학교]]에서 촬영했다.] ||
          * 2009년 [[학남고등학교]] 3학년 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본인도 여성스러운 선을 살린 안무를 춰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인이 잘하는 것을 인하는 듯.
         [[예리]]의 영입으로 5인조로 개편되었을 때 인터뷰 대형과 거의 모든 무대 엔딩에서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엔딩센터뿐만 아니라 안무가 있는 타이틀곡이나 수록곡 무대에서 센터 비중이 제일 많고 포인트 안무와 댄스브레이크를 [[슬기(레드벨벳)|슬기]]와 분담한다. [* 사실 레드벨벳은 컨셉상 공적인 센터 담당이 지정되지 않았다.] 아이돌 비주얼 센터로도 늘 상위권에 꼽힌다. 특히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2017년 걸그룹 최강센터 총선거 1위'''에 등극했다. 흥미를 위한 콘텐츠이지만, 그 정도로 최근 여자아이돌계의 새로운 비주얼 멤버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
         [[김신영]]은 [[정오의 희망곡|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린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고 "이때가 대구를 호령하던 그때냐"고 질문하자 아이린은 수줍게 신입생 때는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배치고사를 보러 온 아이린의 옆 학교에 다니던 남학생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러왔다고 했다.
         [[조이(레드벨벳)|조이]]가 학생이었을 때 교복을 다림질해 주고 아침을 먹였다고 한다. 최근까지는 막내 [[예리]]의 교복을 다려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간 아이돌]]에서 다림질을 하고 미역국을 끓이며 집안일의 솜씨를 검증받았고 [[정형돈]]에게 어머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처음엔 굉장히 질색했으나 이제는 포기했으며 오히려 즐거워한다. --하지만 가끔씩 멤버들이 어머님이라고 부르면 (찌릿)한다.-- 이젠 막내인 예리가 학교를 졸업하는 바람에 다림질을 어필할 기회는 없어졌지만 최근 [[아이돌룸]]에 출연해서 '''생선 가시[* 갈치, 꽁치, 전어가 등장했다. 먹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시를 어설프게 바르면 입 천장에 가시가 박히는 생선들 뿐이다(...)]를 발라서 동생들에게 손수 먹이는''' 어미새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어필하며 어머님의 별명을 굳혔다(...)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닭을 전혀 못 먹는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일주일 동안 계속 간장치킨만 먹다 질려서 토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닭과 관련된 음을 전혀 못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린 어머니는 왜 그 때 일주일 내내 치킨만 시켜 먹었는지 기억을 못 하신다고(...). 때문에 [[주간 아이돌]]에 출연했을 당시, 랜덤플레이댄스에 실패 해 상품으로 걸린 치킨과 피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때 웬디가 아이린을 배려해 치킨을 포기했다. --착한 여자 웬디--
          * [[엠넷]] [[오늘하룸]]에서는 커피를 못 마신다고 한다. 대신, 혜를 좋아한다고.
          * 못 먹는 음이 닭이라면서 가장 자신있는 요리는 [[닭강정]]이라고 한다. 어린 멤버들이 닭을 좋아해서 그런 듯. 동생들이 닭을 시켜먹으면 자신은 샐러드나 다른 것을 먹으면 된다고 한다. ~~역시 어머님의 사랑~~ 지금까지 닭강정이 아닌 [[닭볶음탕]]이 가장 자신있다고 잘못 알려졌는데 160909 슈키라에서 닭볶음탕을 제일 잘한다고 하니까 "저.. 닭.. 닭볶음탕이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라고 했다.
          * 2015년 5월 1일부터 배우 [[박보검]]과 [[뮤직뱅크]]의 MC를 맡게 되었다. [[레드벨벳]]에서 첫 고정 스케줄을 갖게 된 멤버이기도 하다. 신고으로 [[투투(가수)|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을 불렀다. [[https://youtu.be/v3rY6QWl_uc|신고]] 사적인 대화는 물론 휴대전화 번호도 교환 안 했다는 후문.
          * 멤버들 중 유일하게 UFO타운의 프로필 사진으로 스냅샷이 아닌 Be Natural의 공사진을 사용한다. 이는 [[셀카]]를 잘 찍지 않는 아이린이 셀카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기계를 잘 다룰 줄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015년 정규 1집 사인회에서 어떤 팬의 질문에 사진을 꼭 바꾸겠다고 대답했다. {{{#!html <a href="/w/파일:ZshrPkL.png">}}}트윗{{{#!html </a>}}} --그러나 바꾸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웬디(레드벨벳)|웬디]]가 2015년 연말까지 프로필 사진을 바꾸라고 설득했다지만,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웬디(레드벨벳)|웬디]]의 위력으로--역시 순정 웬디맘-- 2016년 1월 1일. 새해가 되어서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다!! --만세! 드디어 해냈다 해냈어-- 근데 아이린이 사진을 바꿀 줄 몰라서 웬디가 바꿔 줬다.
          * 학남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동방신기]] 라이징썬을 췄다고 한다. 주간 아이돌에서 팬의 요청으로 인해 [[https://youtu.be/8wA-pmmHozw|8년만에 다시 췄다.]] --버벅거림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
          * 생일을 앞두고 2017년 3월 말 [[대구 버스 937]]번 시내버스 차량에 아이린의 생일 축하 광고가 붙었다. 이 노선은 아이린의 모교 중 하나인 운암중학교 근처의 구암네거리로 다닌다.[* 학교 바로 앞으로는 [[대구 버스 939|939번]]이 다닌다.]
         [[레드벨벳 갤러리]], [[일베저장소]], [[국내야구 갤러리]]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해서 딱히 별일은 없었다. 분노를 하거나 특정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혐오발언]]을 사용하며 "남자들이 분노했다''라는 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팬덤 내에서도 큰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읽을 수도 있지 뭐'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해당 발언(레벨업프로젝트2 생방송 팬미팅)이 나올 때, 아이린은 책 제목을 말할 때도 "그... 82년생... 그거 읽었고..."라며 제목을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했다. 읽었다는 다른 책들도 대다수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책들로, 제목을 기억하지 못했던 주황색 표지의 책도 시/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인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이란 책이다. 사실상 아이린의 취미가 독서이고 과거 인터넷을 잘 보지 않는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인터넷 상의 남녀갈등과는 별개로 그저 휴가를 가서 휴을 취하기 위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을 읽었고, '그중에 우연히' 82년생 김지영이 포함된 것이었을 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을 구실로 연예인을 비난하는 것은 그냥 생트집일 뿐이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30/2018033001538.html|조선일보]]에서는 "남성 청년층의 반페미니즘이 점점 도를 넘는다"라 평가하며, "소비자 지위를 악용해 사실상 사상 검증을 벌이는 "이라고 지적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3/2018041303076.html|오피니언]]에서는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물론이고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가 중요한 홍보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가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노출되는 상황"이라는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며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못한 채 언제나 방긋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면 '박제된 인형'이나 마찬가지"라 평가했다.
          * [[http://www.hankookilbo.com/v/af449985d0444b6db7f2f6a4642c4c26|한국일보]]에서는 "아이돌의 밥줄이 인기라는 걸 간파한 공갈"이라며, "페미니즘에 반대하겠다면, 그건 자유다. 그 자유를 누군가의 밥줄을 쥐고 흔드는 으로 행사하는 건 너무 저열하지 않은가"라 비판했다.
         이들이 특히 첨예하게 공격하는 대상은 페미니즘이며, 때문에 [[http://ppss.kr/archives/158704|페미니즘 같은 거 묻으면 장사 안된다]]라는 말까지 생겼다. "여자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말은 매우 상적인 수준의 문구임에도, "[[래디컬 페미니즘]]에서도 같은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그러한 내용의 컨텐츠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모두 적으로 규정된다. 이 일 역시 페미니즘의 ㅍ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다. 조선일보에서는 "점점 격렬해지는 페미니즘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했다.
  •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 . . . 31회 일치
         초등학교-중학교, 혹은 중학교-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일관적으로 진학하는 형태의 학교.
         일본에서는 공립 초등학교, 공립 중학교에 진학하는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입학 시험이 없으나, 사립 등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부터 학력 검사를 명분으로 한 입학 시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일한 학교 법인, 혹은 비슷한 계열이나 제휴 관계가 있는 학교 사이에서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혹은 고등 전문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 단기대학(전문대학) 등에 입학할 때 입학 시험없이 진학할 수 있는 별도의 선발 제도가 있다. 이를 한 번 타면 자동으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비유하여 에스컬레이터 학교라고 부른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일체화 되어 있는 중고일관교(中高一貫校)가 흔히 있는 형태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도 에스컬레이터 으로 다닐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그리 많은 비율은 아니지만,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품행에 문제가 있으면 퇴학되거나 추천이 삭제 되기도 하고, 가정 사정이 어려워진 경우에는 비싼 학비 때문에 학교에 다니가 어렵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더 높은 수준의 학교에 합격하여 내부 과정에서 떠나는 경우도 있다.
         수업진도 진행이 비교적 빠르다. 특히 중고일관교의 장점은, 6년 간의 수업 일정을 모두 한 학교에서 진행한다는 것이 꼽힌다. 예를 들어서, 고3 동안 1년 전체를 대학 입시를 위한 수업에 임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거 아니라도 하는데
         대학 수험의 경우, 대학과 제휴가 있는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추천 범위가 넓어서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
  • 이승엽 . . . . 31회 일치
         |월드베이스볼클래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06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13년]]
         {{메달 경기|[[월드 베이스볼 클래]]}}
         {{동메달|[[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06 샌디에이고]]|단체전}}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상했다가 불발됐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하겠다고 하여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재학 시절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ref>[[스포츠 조선]] - 2010년 5월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6/2010051601132.html "최동원, 선동열, 이승엽, 추신수, 봉중근, 이대호, 류현진… 청룡기가 낳은 한국 야구 대들보"]</ref>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ref>''[[OSEN]]'' - 2007년 12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이승엽-이대호, 모교서 방망이 날세운다"]{{깨진 링크|url=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ref><ref name="homerun">스포츠 춘추 - 2010년 9월 [[박동희 (기자)|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463 "이대호로 본 ‘홈런 타자는 어떻게 탄생하나’"]</ref>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이듬해 [[2007년]] 1월, 모친상 소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ref name="sword"/>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와의 첫 대구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반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ref name=world>{{뉴스 인용|제목=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구열|날짜=2007-10-22|확인날짜=2008-06-01}}{{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 }}</ref>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였다.
         전년도 시즌을 아주 저조한 성적으로 마친 그는 스스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WBC]] 불참을 선언하며 시범 대구에서만 8홈런을 기록하는 등 [[2009년]] 시즌에 대한 기대를 하게 했다. 기대에 부응하듯 시즌 초 3할 타율, 장타율 1위 등에도 오르는 등 나아진 모습을 보였으나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졌고, 7월에는 시즌 처음으로 2군에 내려갈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팀이 정규 시즌 우승 헹가래를 칠 때도 자리에 없었고, 결국엔 2군에서 정규 시즌을 마감했다. [[2009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는 2대구에 선발 출장을 했으며, 그 외의 경기엔 대타로 주로 출전했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5타수 6안타, 타율 4할의 호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후 비록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12월 8일]] 열린 [[KBO 골든글러브|골든글러브 시상]]에서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해 [[KBO 리그]] 최초 두 자릿수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됐다. 시즌 후 FA 선언을 해 2년 36억원에 잔류했다.
         그는 시즌 시작 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7년]] [[5월 21일]] [[송창 (야구 선수)|송창]]을 상대로 [[KBO 리그]] 첫 450호 홈런을 기록했고<ref>[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21&newsid=01666246615931216&DCD=A20102 '이승엽, 통산 450홈런'삼성, 661일만에 시리즈 스윕(종합)] - 이데일리</ref>, 2달 뒤인 [[7월 29일]]에는 [[김성민 (1994년)|김성민]]을 상대로 [[KBO 리그]] 최초로 4000루타를 달성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707291933932974&ext=na '라이언킹' 삼성 이승엽, KBO리그 최초 4000루타 돌파] - 마이데일리</ref> 시즌 후반기부터 소속 팀을 제외한 9개 구단에서 그를 위해 은퇴 투어를 진행했고 그 여정이 끝난 [[10월 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대구를 끝으로 공 은퇴했다. 그 대구에서 [[한현희]]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그의 은퇴를 바라보는 이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대구 후 팀은 그에 대한 성대한 은퇴을 열었고, 그의 등번호인 '36번'은 구단 역대 세번째로 영구 결번 처리됐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612121051081031 ‘일구대상’ 이승엽 “마지막 1년, 떠날 때 후회없도록”(일구상 시상)]</ref> 그는 은퇴 후에는 야구 관련 직종에 종사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며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 관련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3/0200000000AKR20170113128700007.HTML?input=1195m 이승엽 "은퇴 이후 일? 야구 관련 아니면 안 한다"]</ref>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06년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
         *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13년 제 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
         ‘국민타자’,‘라이언 킹’ 등으로 불린다. 일본 진출 이후에 붙여진 애칭은 ‘승짱’({{llang|ja|スンちゃん}}, 한자 및 [[일본어]] 동시 표기: {{lang|ja|スン様}})이다. [[2008년 하계 올림픽]] 때 [[일본]]의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 호치》의 [[2008년]] [[8월 22일]]자 보도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올림픽, [[월드 베이스볼 클래|WBC]]와 같은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많은 병역 미필 선수들의 병역을 면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합법적인 병역 면제 브로커”라는 별명이 추가됐다.<ref>{{뉴스 인용|제목=승엽은 병역 브로커|url=http://www.donga.com/fbin/moeum?n=sports$e_701&a=v&l=0&id=200808270265|출판사=동아일보|저자=김도헌|날짜=2008-08-27}}</ref> 또한, 국제 대회나 중요한 대구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특히 8회에 결정적 역할을 해 '8회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제 2구장인 [[포항야구장]]의 성적도 뛰어나 '포항의 사나이'라고도 불린다.
         == 출신 학교 ==
         * [[대구중앙초등학교]]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WBC]] 우수 선수 (2006년, 1루수 부문) & 초대 홈런왕 및 타점왕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올 WBC 팀}}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오릭스 버펄로스 선수]][[분류: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분류: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참가 선수]][[분류: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참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타점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300홈런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400홈런 클럽]][[분류:한국시리즈 MVP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MVP 수상자]][[분류:KBO 장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출루율상 수상자]][[분류:KBO 득점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타점상 수상자]][[분류:KBO 홈런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광주 이씨]][[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인 . . . . 31회 일치
         |경력 = 前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서울 광신상업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학력= 일본 [[니혼 대학|니혼 대학교 대학원]] 법학석사
         [[대구광역시|대구]] 달동의숙(達東義塾)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경북실업보습학교(慶北實業補習學校)로 진학하였다. [[1912년]] 경북실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1912년]] [[일본]]에 건너가서 세이소쿠 중학교(正則中學校)를 다니다가 [[1914년]] 졸업하였다. 그해 [[일본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법과 야간부에 입학했고, [[1916년]]에는 수료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과에 편입했다.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에는 대학원과정인 일본대학 고등전공과(高等專攻科)에 진학, 공부하였다.
         이후 [[장택상]] 등과 고학생의 상조(相助)기관인 갈돕회를 조직했다. [[1925년]]에는 갈돕회의 총재를 맡고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조직하는데 도움을 주어 고학생을 돕는 한편, [[조선어연구회]]의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위원이 되어 사전편찬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1927년]] [[신간회]]의 창립과 더불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신간회]]의 해소론이 제기되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만의 민족단체를 조직할 것을 주장했다. [[1930년]]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들의 흥농사(興農社) 사건을 변호하다 [[재판정|법정]]에서 일본의 학정(虐政)을 비난하여 법정불온변론 혐의로 6개월 동안 [[변호사]] 자격정지 및 정직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조선물산장려회]] 회장이 되었다. 1931년에는 조선변호사협회 회장이 되었고, 1935년에는 [[이우]](李祐植)·[[김양수]](金良洙)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비밀후원회를 조직하여 재정지원을 했다.
         [[1939년]] [[12월 18일]] 정동의 [[이화여전]] 강당에서 80여 명의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후원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12개조의 후원회 장정을 통과시키고 25명의 위원을 선출했다.<ref name="양현혜1">양현혜, 《빛과 소망의 숨결을 찾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 104페이지</ref> 이인도 이화여전 후원회 위원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었다.<ref name="양현혜1"/>
         1963년 [[민정당]](民政黨) 창당에 참여하고 최고위원이 되었으나 범국민단일야당운동 추진에 실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1965년]] 이인은 [[안재홍]] 사망 소을 접하고, [[서울특별시|서울]] 정의여고 강당에서 그의 장례을 집행, 주관하였다. 당시 [[안재홍]]은 자진월북자라는 오해와 편견으로 금기시되었고, 꺼려했다. 그러나 이인은 [[이범석 (1900년)|이범석]] 등과 함께 [[안재홍]]의 시신없는 장례을 진행하였다. 군사정권은 그의 의도가 불순함을 의심하여 내사하였으나 혐의점을 찾지는 못하였다.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를 결성했으며 [[국토통일원]] 고문에 선임되었다. [[1974년]]에는 [[국토통일원|통일원]] 고문에 재선임되었다.
         건국대학교·명지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건국훈장]] 국민장, 1969년 무궁화 국민훈장이 수여되었다.
         * 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학부졸업
         * 수원농림학교 학생사건으로 법정에서 불온한 변론을 해서 6개월의 정직처분 받음
         * [[1945년]] [[12월 1일]] 임시정부 봉영에 참석하였다. 서울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영이 시작되었다.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영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영문은 [[권동진]], [[김성수 (1891년)|김성수]], 이인을 통해 [[김구]]에게 전달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1993), 145페이지</ref>
         * [[1965년]] [[안재홍]] 사망 소을 접하고, [[서울특별시|서울]] 정의여고 강당에서 그의 장례을 집행, 주관하였다.
         * [[대륜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 경북고등실업학교]] 수료
         * [[세이소쿠가쿠엔 고등학교|일본 도쿄 세이소쿠 중학교]] [[졸업]]
         * [[일본]] [[메이지 대학|메이지 대학교 법학과]] 법학사 졸업
         * [[니혼 대학|일본 니혼 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법학]][[석사]] 졸업
         * [[건국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 [[명지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 [[강계]] - 《[[제1공화국 (드라마)|제1공화국]]》(1981년, [[MBC]] 드라마)
         * [[장현]]
         * [[김규]]
  • 김부식 . . . . 30회 일치
         |이름= 김부
         '''김부'''(金富軾, [[1075년]] ~ [[1151년]])은 《[[삼국사기]]》를 쓴 [[고려]] 시대 학자·문신·역사가이다.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ref>[http://people.aks.ac.kr/front/dirservice/dirFrameSet.jsp?pUrl=/front/dirservice/ppl/viewDocumentPpl.jsp?pLevel2Name=&pLevel3Name=&pAgeCode=&pAgeName=&pGanadaFrom=&pRecordID=PPL_5COb_A1075_1_0001702&pPplCount=&pOrderByType=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ref> 시호는 문렬(文烈)이다.
         김부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증조부인 김위영을 [[고려 태조]]가 경주(慶州)의 주장으로 임명하였다고 한다.<ref>《[[고려사]]》 권97, 열전10, 김부일전.</ref> 부친 김근이 좌간의대부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지위가 높은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부과 그의 형제들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김부은 [[고려 숙종|숙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안서 대도호부(安西 大都護府) 사록(司錄)과 참군 녹사(參軍錄事)로 배치되었고, 임기가 끝난 후 직한림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좌사간, 중서사인을 역임하였다. [[1121년]]([[고려 예종|예종]] 16년)에는 임금에게 경사(經史)를 강의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고려 인종|인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인 [[이자겸]]은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 시기 김부은 이자겸의 전횡에 비례(非禮)를 이유로 반대한 일<ref name="고려사 김부전">《고려사》 권98, 열전11, 김부전.</ref> 이 있으나 직접적으로 대항하지는 않고 묵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자겸 집권기에 순탄하게 승진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Ⅰ)》, 집문당, 1999년.</ref> 또한 [[1126년]]과 [[1127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하여 송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박승중(朴昇中)·정극영(鄭克永)과 함께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 어사대인(御史大人)·호부상서(戶部尙書)·한림원학사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승진하였고, 수사공(守司空)을 더하였다.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이 피살됨으로써 그의 전횡은 끝났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궁궐의 소실 등을 이유로 서경파가 득세하였다. 이 시기 김부은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승진하여 재추(宰樞)의 반열에 오르는 등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묘청]] 등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천도운동]]은 [[1129년]](인종 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인종도 자주 행차하였다. 서경파의 [[정지상]] 등은 묘청과 [[백수한]]이 성인이니 모든 정치를 그들에게 물어서 행하자고 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다. 조정 신료 가운데 오직 평장사 김부, 참지정사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ref>《고려사》 권127, 열전40, 묘청전.</ref> 그러나 서경의 서기(瑞氣)를 조작한 일이 탄로나고, 행차 때의 악천후 등이 잇따름에 따라 김부 등의 반대파 의견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부 일파는 [[1134년]](인종 12년) 인종의 서경 행차를 막는 데 성공하였다.<ref name="고려사 김부전"/>
         서경 천도가 불가능해지자 묘청·조광·유담 등은 [[1135년]](인종 13년)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김부은 토벌군의 원수가 되어 일단 개경에 머물고 있던 서경파 정지상, 김안(金安), 백수한을 처형하고 출전하였다. 김부은 중군장으로서 좌군장으로 [[김부의]](金副儀)<ref>김부의 동생</ref>, 우군장으로 이주연(李周衍)을 거느리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인들은 묘청·유담들을 죽이고 항복하였으나, 조광(趙匡)이 또 반하므로 서경을 포위하고, 그 이듬해인 [[1136년]]에 잔당을 소탕하였다. 반란을 진압한 김부은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 칭호와 검교태보수태위[[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감수국사상주국 겸 태자태보(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監脩國史上柱國兼太子太保)로 임명되었다. 김부은 이 전공을 이용하여 정적(政敵)인 [[윤언이]](尹彦頥)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1140년]](인종 18년) 이후 그의 세력이 약화되고 윤언이가 정계에 복귀하자 위기를 느낀 김부은 [[1142년]](인종 20년)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김부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인 [[1145년]](인종 23년)에 《삼국사기》 50권의 편찬이 완료되었다. 의종이 즉위하자 낙랑국 개국후(樂浪國開國候)로 봉했고, 그 뒤 김부은 《인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송나라의 사신 노윤적(路允迪)이 왔을 때 관반사(館伴使)로서 그를 맞아들였고, 같이 왔던 [[서긍]](徐兢)이 그의 《[[고려도경]]》에 김부의 집안을 실어 송나라 황제에게 진상함으로써 김부의 이름은 송나라에도 유명하였다.
         1123년 중국 [[송나라]]의 국신사로 고려를 다녀 갔던 서긍(徐兢)은 김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인용문|“박학강(博學強識)해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학사의 신복을 받으니, 그보다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인용문|고려부터 조선까지 1천 년간 ‘[[묘청의 난]]’보다 지나친 대사건이 없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역사가들은 왕의 군사가 반역자를 친 전쟁으로 알았을 뿐이었으니….(중략)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이며 진취적으로 진전했을 것이다.|{{서적 인용|저자=[[신채호]]|장=조선역사상(朝鮮歷史上) 일천년래(一千年來) 제일대사건(第一大事件)|제목=《[[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연도=[[1929년]]}}}}
         *** 본인 : 김부(金富軾)
         == 김부이 등장한 작품 ==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472&path=|183|193|&leafId=223 네이버 캐스트 : 오늘의 인물 - 김부]
         [[분류:김부| ]][[분류:1075년 태어남]][[분류:1151년 죽음]][[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고려의 불교 신자]][[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작가]]
  • 오병희 . . . . 30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의학 박사
         |소속 = [[서울대학교병원]] 원장<br>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오병희'''(吳秉熙, [[1953년]] [[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며,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학교병원장]]을 역임하였다.
         1953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1977년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순환기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병희는 심장질환과 고혈압 분야의 권위자다. 심부전·고혈압의 다양한 국제 임상시험 연구에 국가대표 연구자로 참여했다. 특히 2005년 국내 연구진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혈압 신약 다국가 3상 임상시험 총괄연구책임자로 선임됐다. 새로운 고혈압 치료제가 미국 품의약국(FDA)에 허가 받을 수 있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국내 임상시험 수준의 국제 신뢰도를 높였다.
         1994년 3월 국내 첫 원거리 심장이에 성공했다. 이후 서울대병원 심장이 프로그램 책임자로 심장이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고혈압·심부전 관련 200여 편 이상의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급 논문을 발표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강남센터 원장,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진료부원장 등 병원 경영과 관련된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포커스] 신임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박수 받는 이유|URL = http://jhealthmedia.join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86|출판사 = 중앙일보|날짜 = 2013-06-10}}</ref>
         2013년 5월 제16대 서울대학교병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1968년 ~ 1971년 : [[경북고등학교]]
         *1971년 ~ 1977년 :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내과학 석사
         * 1981년 ~ 1986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내과학 박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1998년 ~ 2002년 :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 실장
         *2003년 ~ 2007년 :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 원장
         *2004년 ~ 2007년 : 서울대학교병원 심혈관센터 센터장
         *2004년 ~ 2007년 :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분과장
         *2007년 ~ 2010년 :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 부원장
         *2013년 5월 ~ : 제16대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장
  • 몬스터 페어런트 . . . . 29회 일치
         몬스터(괴물)과 부모(페어런트)의 합성어. 학교에 자기중심적이고, 비상적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부모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교사에게 직접 클레임을 하지만, 교장, 교육청, 지자체 등 권한이 강한 부서에 클레임을 하여, 간접적으로 교사와 학교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서 교육가로 활동하는 무코우야마 요우이치(向山洋一)가 명명한 단어이다.(이 사람은 학급붕괴 등의 단어도 만들었다.) 2008년에 일본에서는 동명의 드라마로서 방송되어 유명해졌다.
         생략해서 몬페아(モンペア ), 몬페(モンペ) 로 부른다.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 등의 용어와 유사하지만 "몬스터"라는 수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공격성이 강한 단어이다.
         학교의 경우
          * "자신의 아이를 극진히 대우하기 위하여 전용 교원을 붙여라.", "내 아이를 학교 대표로서 지역 행사에 참여시켜라." 등의 요구
          * 교육문제 때문에 학교와 협상을 할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공표하겠다고 하는 등 협박을 가한다.
          *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낮아졌다. 1990년대 부터 이러한 종류의 보호자가 증가했는데, 이들이 부모가 되는 1965년대 전후 출생은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의 학교 폭력이 격렬한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애초에 희미했다. 버블 경제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기 때문에 당시 교직은 인기가 낮았다. 버블 이후의 구조조정으로 사회적 지위를 잃은 사람들은 종신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 교사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 보호자의 소비자 의의 폭주 : 교육에 대하여 서도 소비자 의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손해를 보는 대우를 받으면 참지 못하게 되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몬스터 페어런트의 출연으로 협상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게 되어,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업무에 방해를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개별 교직원이나 학교 단위에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교육위원회에서 이러한 문제에 지원을 하는 전문 팀을 구성할 것이 제언되었다.
         몬스터 페어런트의 자녀로서, 부모의 영향을 받아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부모에게 주로 의지하며 교사에게 반항적이고 위협적,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를 몬스터 칠드런(モンスターチルドレン)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반항기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고생 시기에 많았다면, 몬스터 칠드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반항적인 경향이 많다고 말해진다.
         이러한 단어가 학부모와 학교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존재한다. 학부모와 학교가 협력하는 것이 올바른 공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학부모와 학교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김으로서 협력 관계가 무너져 올바른 교육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몬스터 페어런트라는 단어의 등장이 보호자의 과도한 주장을 옹호하고 학교와 교원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언론의 풍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정당한 클레임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몬스터 페어런트로 싸잡혀서 비난을 받게 되는 풍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집단 괴롭힘 문제를 상담하는 변호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가 집단괴롭힘을 당해서 학교에 상담을 했는데,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몬스터 페어런트 취급을 당했다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기사]
         2010년 9월 사이타마 현의 시립 초등학교 여교사가 담당하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의 부모가 상을 벗어난 항의를 해와서 불면증이 되었다고 500만엔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피고인 어머니로부터 항의를 받고 상호연락책에 "최저의 선생","비상","악마"등의 발언을 쓰고, 교육위원회와 교육부에 비판하고 책임을 요구했다. 다른 날에는 교사가 급지도중에 피고 아동의 등을 가볍게 만진 것 만으로 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피해를 신고하였다. 교사와 학교 측은 대화를 가지고자 했지만 부모는 참석을 거부했고, 교사는 이 때문에 불면증에 몰렸기 때문에 제소를 단행하였다.
         학교 측은 제소 후 시 교육위원회에 "몬스터 페어런트에 지지 않기 위해서 소송"이라는 문서를 교장의 이름으로 제출, 언론은 이에 근거하여 기사에 '몬페어 재판" 등의 기사를 내놓았다.
         한편, 피고의 부모는 학교 측과 언론 보도에 불만을 품고 반박을 하였는데, 연락장의 문구 내용은 아무리 써도 답변이 없고, 학교에 전화를 해도 끊어버려서, 교육위원회에 상담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폭행에 대해서는 딸이 선생님이 등을 때렸다고 호소했지만, 교사는 허리를 가볍게 만진 것 뿐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교장도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상담했지만 피해 신고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 영주시 . . . . 29회 일치
         ||<-2><bgcolor=#04B486> {{{#FFFFFF '''링크'''}}} ||<bgcolor=#EFFBEF> [[http://www.yeongju.go.kr//|영주시 공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yeongjuCity|[[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영주시 공 페이스북]]
         [[https://twitter.com/yeongju_city|[[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영주시 공 트위터]]
         [[http://blog.naver.com/yeongju_city/|[[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15]]영주시 공 블로그]] ||
         북부로 [[소백산]]을 끼고 있어서 북쪽은 지형이 험한 편이지만 중부와 남부는 평탄한 침 구릉지대로 높은 산은 많이 없는 편. 다른 경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밭만큼이나 과수원이 많다. 특히 시골길엔 [[사과]] 농장이 정말 많다. 기후의 온난화로 [[대구광역시]] 등 경북 남부 지역에서 사과 주산지가 경북 북부로 올라온 덕에 이 지역 사과가 유명해지고 있다. ~~이제 이마저도 머지않아 [[강원도]]•[[경기도]]•[[황해도]] 쪽으로도 올라갈 듯.~~. 이미 영주에서 심은 묘목들이 철원이나 영월로 판매되고 있다.
         부석면의 봉황산 자락에는 그 유명한 [[부석사]]가 있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최순우 작가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배경)과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볼 수 있다.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 문화재인데, 이 좌상은 향토색이 강조되고 인체비례적 아름다움에서는 약간 떨어지는 ~~저퀄~~고려 불상과는 달리 [[신라]] 불상의 양을 계승해 균형미를 갖춘 불상으로 평가된다.
          * 시내에 분, 간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정도너츠의 생강도너츠, 시내 아디다스 앞 농협위치에 저녁에만 열리는 꼬치집(참고지만 김밥도 상당히 맛있다), 그리고 밑으로 조금 내려가 랜드로바 가게 ~~지금은 금강제화~~ 앞에 있는 랜드로바 떡볶이, 거기서 더 내려오면 롯데리아 옆 태극당(빵집), 그리고 나드리 분, 중앙분의 쫄면이 영주시내에서 시민들이 대표적으로 즐겨찾는 분/간집이다. ~~다만 맛을 너무 기대하진 말자.~~ ~~영주 출신인 부모님은 서울에 사셔도 1년에 3~4번씩은 쫄면 먹으러 꼭 내려가던데~~
          * 의외로 영주 시내에는 '맛집' 이라고 할만한 당들이 잘 소개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대부분 맛집이라고 할만한 당들은 영주시내에 있지 않고 "정말 이런데 당이 있어요?" 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주시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민물매운탕, 오리고기, 닭발과 같은 히든(?) 당들의 경우 대중교통으로 가기 불가능하며 광고도 하지 않아 입소문으로 알고가지 않는 한 알고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달을 시켜보려고 배달책을 펴는 순간 정말 먹을 것이 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 그러므로 지역민들이 점심 저녁으로 꾸준하게 찾을만한 맛있는 당을 아는 경우가 많아 영주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꽤 괜찮은 당을 알 수 있다.
          * [[헌혈의 집]]이 없다. 하려면 [[안동]]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헌혈의 집은 대부분 특별시, 광역시와 지역 중심 도시에나 있지 영주시보다 인구가 많은 곳조차도 헌혈의 집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므로 특이한 사항은 아니다. 비정기적으로 헌혈 버스가 학교로 오지만 1년에 1번꼴.(...)
          * [[선비]] 명칭 사용 때문에 --양반-- [[안동시]]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안동시와 영주시 간의 [[지역감정]]이 꽤 있는 편이다.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474|이런]][[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59|저런]]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61|내용]][[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21|의]] 시사만평이 지역언론에 실리는 것을 보면[* 이 시사만평의 작가는 영주 모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2015년 기준 같은 재단의 모 여고 교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제는 선비 명칭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안동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듯. ~~[[우리의 주적은 간부|우리의 주적은 안동]]~~
          * 삼정승고택([[정도전]] 생가 복원 건물)과 구 도립도서관 사이 강둑에 [[박정희]] 기념수가 있다. 대통령 취임 전에 와서 심은 거라 "장군" 기념수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과거 1961년 영주에 집중[[호우]]로 인한 대[[홍수]]가 나서 피해복구를 위해 군인들이 동원되었을 때 함께 참가했기 때문. 현재의 제민루가 있는 언덕과 시립도서관이 있는 산 사이(그리고 구성공원까지)는 원래 연결되어 있었으며, 서천 물길을 돌리는 직강공사를 하면서 절개 및 발파되었다. 그 때의 흔적으로 강바닥에 다른 곳에는 없는 바위가 드러나 있다. 현재의 나무는 처음 심었던 나무가 말라죽자 1979년에 다시 심은 것이다. 관련글: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931|#1]][[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226.010140730260001|#2]][[http://blog.daum.net/shgh1225/8762740|#3]]
          * 시내 서쪽을 흐르는 서천에는 교량 4개(서천교, 영주교, 가흥교, 제2가흥교)가 있는데 일부 다리는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LED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다. 강변에는 [[제방]]과 둔치가 있으며 시민들은 이곳을 뚝방(...)이라고 부른다.[* 영주 출신의 밴드 [[볼빨간사춘기]]의 곡 ‘가끔씩(우지윤의 보컬 스틸)’에서 언급된다.]둑 위에는 작은 길이 있어 운동하거나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으며 시민회관/주공아파트 주변에는 운동 시설과 쉼터, 당 등이 있다. 제민루부터 경북전문대까지는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철에 [[벚꽃]]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 [[강경(1936)|강경]] : 경제부총리, 국회의원.
          * [[금나나]] : 2002 미스코리아 진, [[동국대학교]] 품생명공학과 교수
          * [[우병우]] :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엄밀히 말하자면 출생지가 [[경상북도]] [[봉화군]]이므로 '''영주 출신은 아니고''', 초(?)중(영주중학교)고(영주고등학교) 유년기 학창 시절을 영주시에서 지냈다.
  • 정칠성 . . . . 29회 일치
         유년 시절에 기녀가 되어 “금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였고, 후일 필명이자 아호로 사용하였다. 기생학교에서 수료한 후 한남권번의 기생으로 있다가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성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24년]] [[허정숙]](許貞淑),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 여성들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창립하였고, [[일본]] 유학 중 1925년 도쿄에서 여자유학생단체인 삼월회를 조직했다.
         [[파일:Kisaeng School.JPG|섬네일|평양의 기생학교]]
         그녀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일곱 살에 기녀가 되어 각종 기예를 익혔고, [[경성부]] 한남권번(漢南券番) 소속 기녀가 되었다. 한남권번에서 '''금죽'''(錦竹)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기생학교]]에서 기예를 배운 뒤 한남권번에서 기생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기량이 뛰어나 [[기녀]]로서는 특별히 [[일본]]으로 유학, [[일본]]의 [[동경여자기예학교]](東京女子技藝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춤과 무용 수업을 빠지다가 선생에게 혼나기가 일수였다 한다. 시를 잘 지었고,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지만 그림도 잘 그렸으며, [[바둑]]과 [[장기]]를 잘 두었다고 한다. 기예로는 남중잡가, 가야금산조, 병창, 입창, 좌창, 정재 12종무 등의 실력에도 탁월하였다.
         [[3.1 운동]]에 참여한 [[기생]]의 한사람이었으며, [[조선총독부|총독부]]의 눈을 피해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여자기예학교]]를 수학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동조하게 되었다.
         1923년 [[물산장려운동]]에 한때 참여하였다.<ref name="dispose"/> [[1923년]] [[10월 17일]] 조영수, 이춘수(李春壽) 등과 함께 [[대구]] [[명신여학교]] 강당에서 [[기독교]] 등 종교모임의 부녀단체와 여성단체를 본따 [[대구여자청년회]](大邱女子靑年會)를 창립발기하였다. 바로 [[대구여자청년회]] 통과위원에 선출되었다.
         [[1924년]] [[5월 15일]] 그는 [[경성]] [[천도교당]]에서 [[허정숙]], [[주세죽]], [[김조이]], [[정종명]], 박원희, 김필애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여성 사회운동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를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여성동우회 창립발기의 사회자로 활동했다. 바로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이어 신사회 건설과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할 여성의 단결 등을 목표로 설정하였고,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사회운동을 벌였다.
         이후 [[일본]]에 건너가 체류 중, [[1925년]] [[3월]] [[도쿄]]에서 무산계급 및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이현경]], [[황신덕]] 등의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의 조선여성단체인 [[삼월회]](三月會)를 조직, 삼월회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3월 8일]] [[대구]]부내 노동공제회에서 [[대구여자청년회]] 주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에 연사로 초빙되어 '국제부인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3월 22일]]에는 [[대구청년회관]]에서 경북지역 인사들이 모인 사회주의 연구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3월 31일]] 다시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여자기예학교]]에 복학하였다.
         [[1925년]] [[11월]] [[일본]] 정부에서 가상의 적을 대비하여 각급 중고등학교에 군사훈련 및 각종 군사교육을 실시하자, 정칠성은 군사교육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11월 7일]] [[홋카이도]]의 소준고등학교 강당에서 일본내 시민단체, 여성단체, 사회주의 운동단체 및 조선인 유학생단체, 삼월회, 일월회(남성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군사교육 반대 집회]]에 그는 [[삼월회]]의 대표 자격으로 박경희(朴慶姫)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 2백 명이 급히 투입되어 진압하자, 바로 피신하였다.
         [[1926년]] [[1월]] [[삼월회]] 간부 자격으로 《조선일보》에 '신여성이란 무엇?'이라는 칼럼을 발표했다. 여기서 정칠성은 강렬한 자립정신, 강력한 계급의을 지닌 여자가 모든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진정한 여자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여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남자와 가정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경제력을 얻으려면 여자 역시 취직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1926년]]에는 조선여성친목회에 가입하였다. [[1926년]] [[3월]] 동경예기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0월 6일]] [[박원희]]와 함께 [[근우회]] 조사위원 겸 전권위원에 임명되어 [[경성]]에서 [[함흥]]으로 파견되었다. 바로 [[근우회]] 함흥지회를 개설하고, 함경도지역 조사 후 [[10월 6일]] [[함흥]] 오로리의 오로여자상조회(五老女子相助會)에서의 강연을 계획하였으나 함흥경찰에 의해 체포, 강연회 자체가 무산되고 되돌아왔다. 정칠성과 박원희가 경성으로 되돌아간 뒤 [[함흥여자청년회]]와 함흥기독청년회 주최, [[동아일보]], [[조선일보]] 후원 하에 부인문제대강연회가 열리자 연사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방해로 집회가 무산되자 오히려 사회단체의 집회를 방해한다 하여 지인층의 반발을 불러오게 됐다. [[10월 16일]] 근우회 집행위원으로 대구에 다녀온 뒤 다시 함흥으로 가서 근우회 함경남도 지부 조직에 착수하였다.
         1928년 5월 12일 경성부 경운동 천도교기념관에서 근우회 창립1주년 기념 때 사회자이자 연사로 활동했다. 이때 그는 '근우회 창립 일주년 기념을 맞으며'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6월 5일]]에는 [[경상북도]] [[영천]]에 파견되어 [[근우회]] 영천지회 조직에 착수하였다. [[6월 7일]]에는 근우회 영천지회 창립발기을 지원하고 근우회 조직 취지를 설명하였다.
         여자직업사의 수자수 교사와 근우회 각 지회설치 활동을 하면서도 동아일보, 삼천리지 등에 칼럼과 논설을 발표하였다. [[1928년]] [[5월 20일]]에는 황주청년회관에서 [[신간회]] 황해도 황주지회가 주최한 '사회문제대강연회'에 연사로 참여, '여성운동과 신간회'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강연 주제 중 그는 '우리 조선여자들은 남자들의 완롱물이요, 남자의 위안물이며, 남자들의 일개의 생기계에 지나지 않는 노예였다.'는 내용이 문제시되어 임석경찰관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다.
         [[7월 7일]] [[경성부]] 도화동예배당에서 열린 동아청년회 2주년 기념에서 '노동청년의 할일'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8년]] [[근우회]] 임시전국대회자격심사위원, 1929년 제2회전국대회준비위원회 의안부책임자를 거쳐 [[1929년]] [[8월]] [[서대문경찰서]]에 체포,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929년]]말 다시[[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근우회 위원장으로서 순회강연으로 항일 의을 고취하다가 수차례 검거되었다. 이후에도 합법적·비합법적 투쟁에 종사하여 요시찰 인물로 감시당하였다.
         또한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의 해방과 [[붉은 사랑]]의 여주인공<ref name="seoji193"/> 왓시릿샤(바실리샤)의 해방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칠성은 '노라는 '[[개인주의]]적인 자각'으로서 개성에 눈을 떠 남편의 집을 뛰쳐나갔지만 거리에서 얼어 죽은 '공상적 여성'인 반면, 바실리사는 노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해방되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진 여성이라 대답한다.<ref name="seoji194">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4페이지</ref> 이렇게 당시 사회주의 조선 신여성들에게 콜론타이는 "계급의을 바탕으로 성적, 경제적으로 해방된 진정한 자유를 얻은 여성"의 상징으로 수용되었다.<ref name="seoji194"/> [[콜론타이]]의 이론을 적극 수용, 조선에 소개시킨 여성운동가로는 정칠성 외에도 [[허정숙]], [[정종명]] 등이 있었다.
         [[1929년]] [[1월 21일]] 신간회 경성지회 사찰위원, [[1월 22일]] 신간회 임시대회에서 본부대회 대표회원에 선출되었다. [[2월 17일]] [[신간회]] 2주년 기념에 [[권동진]], [[허헌]], [[김여]], [[이종린]], [[홍명희]] 등과 함께 축사를 낭독하던 중 임석경관에 의해 소환되었다. [[2월 19일]] 근우회 중앙상무위원회에서 [[근우회]] 회보 발행책임위원에 선출되었다.
         정칠성은 삼월회 간부로서 1926년 1월 4일자 '조선일보'에 '신여성이란 무엇'을 발표하여 "진정한 신여성은 모두 불합리한 환경을 부인하는 강렬한 계급의을 가진 무산여성으로서 새로운 환경을 창조코자 하는 열정있는 새 여성이다" 라고 하였다.<ref name="dispose"/>
         그녀에게 진정한 신여성은 "모든 불합리한 환경을 부인하는 강렬한 계급 의을 가진 무산 여성"이었으며, 여성 해방은 계급 해방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ref name="propp"/> 남성과 사회로부터 여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는 것은 여자의 자립심, 자립 의지, 그리고 경제적 독립이라 하였다.
         1928년 5월 20일에는 황주청년회관에서 신간회 황해도 황주지회가 주최한 '사회문제대강연회'에서의 강연에서 그는 '우리 조선여자들은 남자들의 완롱물이요, 남자의 위안물이며, 남자들의 일개의 생기계에 지나지 않는 노예였다.'며 여성의 억압을 지적하였다.
  • 토리코/387화 . . . . 29회 일치
         [[토리코]] 387화. '''욕과 재회'''
          * 스타준은 충격을 이겨내며 토리코에게 그 둘이 형제이며 아카시아와 플로제의 자이라 한다.
          * 스타쥰이 리타이어 할 때, 무수한 혼들이 나와서 토리코에게 G.O.D.을 억지로 먹여준다.
          * 토리코는 적귀에게 감사를 표하는데 적귀는 "아직 너의 욕은 멈추지 않는다"며 토리코에게 센터를 먹이고 함께 싸우자며 자신을 토리코에게 먹인다.
          * 적귀가 흡수되고, 혼들이 잘 먹었습니다 자세를 취하며 토리코는 눈을 뜨게 된다.
          * 설사 그의 적합재인 운을 다시 먹는다 해도 더이상 회복은 불가능. 네오에게 먹힌면서 세포가 패배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 그는 토리코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온 재란 바로 "네가 나에게 줬던 것"이라고 알려준다.
          * 그들은 500년 전 태어난 아카시아와 플로제의 자이었다.
          * 그 백채널엔 막대한 운과 영양분으로 가득차 있었고 거의 정지돼 있던 시간 속에서 약 500년이 흘러가버린다.
          * 스타준이 찾고 있던 재는 결국 "토리코의 친절함".
          * 아카시아는 자신이 원한 아이는 "요리사"였는데, 이제 스타준이 죽었으니 "미가"만 남았다고 빈정거린다.
          * 스타준은 이제 운의 정체도 알았다며 토리코가 엄청난 욕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말해준다.
          * 스타준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혼으로 보이는 영혼들이 토리코를 끌어낸다.
          * 토리코가 슬픔 속에서도 놀랄 만한 맛과 풍미. 그 재의 정체는...
          * 적귀는 자신을 "너의 욕"이라 소개하며 토리코가 풀코스를 모두 먹은 덕에 원래 힘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 "네가 내 욕. 내가 했던 수 만번의 사... 모든 것을 함께한게 바로 너였구나."
          * 하지만 적귀는 "그건 네가 정한 것"이며 토리코의 욕은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 적귀는 혼들에게 센터를 토리코에게 먹이라고 명령한다.
          * 혼들은 어느 새 센터까지 가져와 토리코의 입에 밀어넣는다.
          * 그리고 감사해야 하는건 오히려 자신이라며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사는 정말로 행복했다고 말한다.
  • 토리코/389화 . . . . 29회 일치
          * 아이마루가 도착한 에리어 0은 재가 무한히 솟아나는 재의 고향 같은 곳.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강한 운의 도움을 받았다.
          * 코마츠는 플로제에게 들은 조언을 말하는데 적합재를 중심으로 자기 자신만의 풀코스를 만들면 구르메 세포의 악마의 속박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 미도라는 아카시아를 운으로 공격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 사이 토리코는 블루 니트로 페어에 의해 분노의 힘을 일깨운다.
          * 미도라는 욱을 전부 먹히고 반격 당해 위기에 처한다. 페어는 폭주하는 듯한 아카시아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 생전 처음보는 재의 낙원에 도착한 아이마루.
          * 사방에서 처음보는 재들이 꽃피듯 피어나고 있다.
          * 그리고 실제론 자신도 모르는 강력한 운의 가호가 있었다.
          * 아카시아는 마침내 욕을 사용하는 거냐고 말하며 새로운 구르메 핸드를 만들어낸다.
          * 코마츠는 사실 어떤 혼의 도움을 받았다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바로 어나더를 조리할 때 나타났던 플로제의 혼.
          * 브란치는 그것이야 말로 운이며 코마츠 자신의 힘이라고 말해준다.
          * 코마츠는 GOD를 요리하며 플로제의 혼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데, 그 중엔 지구의 풀코스를 먹은 자가 구르메 세포의 악마에게 사로잡혀 버린다는 것도 있었다.
          * 코마츠는 토리코 일행도 그렇게 되는 거냐고 묻는데, 잠시 뜸을 들이던 플로제의 혼은 "아닙니다"라고 답한다.
          * 열쇠를 적합 재. 욕의 선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한 고유한 풀코스를 만든다면 악마에게서 자아를 유지할 뿐 아니라 모습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 이것이야 말로 욕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인데, 토리코는 그런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 토리코가 최초로 풀코스에 넣은 재는 "레인보우 후르츠". 바로 코마츠와 함께 포획했던 재다.
          * 남과 나누고 함께하는 재야 말로 자신만의 풀코스일 수 있는 것.
          * 미도라의 운 공격.
          * 네오의 세포는 "검정". 검은 세포의 악마는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극악한 욕의 소유자이다.
          * 네오에겐 그 무엇이 됐든 먹이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재해는 물론 운 조차도 포함된다.
          * 미도라의 운을 빨아먹는 아카시아.
  • 김승대 . . . . 28회 일치
         ||<#ed0000> '''{{{#ffff00 출신학교}}}''' || 포철동초 - [[포항제철중학교|포철중]]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포철공고]][* 2013년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포철공고]]의 마이스터고 전환으로 현재는 [[포항제철고등학교|포철고]]에서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 [[영남대학교|영남대]] ||
         포항 출신으로 [[이동국]], [[신화용]], [[박원재]], [[우찬양]]과 함께 포철동초 - 포철중 - 포철(공)고 - 포항 스틸러스 까지 모두 거친 '''포항 역사상 단 다섯 명 뿐인 [[로컬 보이]]'''다.[* 탄탄한 유스를 자랑하는 포항이지만 의외로 로컬 보이는 극소수인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중에서, 중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고에서 중간 스카웃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김병수 1호기~ ~[[이명주]]는 대구, ~~김병수 3호기~~ [[손준호]]는 영덕 출신이다.][* 이동국도 성남 가기 전까진 포항 성골이다. 김승대가 포항시 송도동의 남자라면, 이동국은 포항시 죽도동의 남자다. --죽도시장에서 짧은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송도동-- ] 2011년 포항에 우선지명을 받아 영남대에서 뛰다가 2013년에 정계약을 맺고 포항에 입단했다.
          * 2011년 3월 12일, 영남대학교 소속으로 남양주시민축구단전에서 FA컵 데뷔전을 치뤘고, FA컵 첫 도움도 기록하였다.
          * 2013년 3월 17일, 수원전에서 K리그 클래 데뷔전을 치뤘다.
          * 2013년 7월 3일, 서울전에서 K리그 클래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 2013년 11월 3일, 부산전에서 K리그 클래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 2010 || 영남대학교 || - || - || - || - || - || - || - || - ||
         || 2011 || 영남대학교 || - || - || - || 2 || - || 1 || - || - ||
         || 2012 || 영남대학교 || - || - || - || - || - || - || - || - ||
         || K리그 클래 || 100경기 || 25골 || 20도움 ||
         === K리그 클래 ===
         ||<#00703c> '''{{{#eee156 2013.10.19}}}'''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전북}}}''' ||<#00703c> '''{{{#eee156 득점}}}''' [* K리그 클래, FA컵, ACL 통틀어 프로 데뷔골] ||
         상위 스플릿 시작과 동시에 황진성의 이탈로 포항팬들은 "우리 리그 망함"하고 좌절했지만, 황진성의 공백을 완벽하게 매꾸면서 [[대한축구협회 FA컵]] 2013 결승에선 전북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고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남은 리그 경기에서도 맹활약하며 2013 K리그 클래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다.
         4월 20일 서울전에서 이명주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김재성과 패스 플레이후 개인 돌파로 서울 수비 6명을 바보로 만드는 환상적인 득점을 보여주며 이명주 없는 시즌 첫 경기를 승리로 장했다. 아울러 경기 막바지 보여준 --며칠전 엘 클라시코에서 [[가레스 베일]]이 보여준--'''[[치고 달리기|치달]]'''쇼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http://naver.me/5TgLf1qD|골장면은 87분 30초, 치달은 91분 50초부터 보면 된다.]]
         나름 선전하긴 했지만 K리그 클래에서 탑 클래스로 평가를 받던 이명주와의 환상의 콤비가 깨진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2017년에는 재차 부진에 빠지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정리될 [[외국인 선수]]로 거론되는 등 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2017년 6월 13일 '''포항이 김승대 임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5693|단독 기사]]가 떴다. [[K리그]] 여름 이적시장 최대어인 [[이명주]]가 [[포항 스틸러스|친정]]과 [[FC 서울|마음 급한 황새]]를 사이에 두고 K리그로 복귀한다는 소으로 시끌벅적한 와중에 김승대까지 포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소이 들려오자 포항 팬덤은 순간 들끓어 올랐다.
         그러나 6월 19일 오전 이명주가 서울을 택했다는 공발표가 나온데 이어 같은 날 오후 연변 FC가 새 외국인 선수 영입에 실패해 김승대의 임대가 불발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역시 같은 날 포항 유스이자 U-20 대표팀 주전 미드필더였던 이진현의 오스트리아 리그 진출이 임박했다는 기사까지 나와 '''포항 팬들은 19일 하루 동안 뒤통수를 3번 맞았다.''' 기대했던 이명주, 김승대 영입이 모두 물거품되면서 이대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짐을 싸는가 '''했으나...'''
         ||<#00703c> '''{{{#eee156 K리그 클래}}}''' ||<#00703c> '''{{{#eee156 1회}}}''' ||<#00703c> '''{{{#eee156 2013}}}''' ||
         [[김병수(축구인)|김병수]]감독에 의하면 [[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_interview.php?gisa_uniq=2014052613515581|고등학교 때 측면에서 뛰었는데 대학교에서 가운데로 이동을 시켰다.]] 희한하게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가운데에서 프리롤을 주면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순간 스피드가 좋으며 체력도 굉장히 좋아서 지구력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라는 평가를 했다.
  • 식극의 소마/212화 . . . . 2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1화]] |||| '''극의 소마/212화''' |||| [[극의 소마/213화]] ||
         [[극의 소마]] 212화. '''온고 vs 지신'''
          * 먼저 심사받는 것은 [[키노쿠니 네네]]. 음은 9할 소바에 벚꽃새우 카키아게.
          * 심사의원들은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려 했지만 어느 새 완하고 네네에게 리필을 요구한다. 그리고 리필도 눈깜짝할 새에 비워버려서 아쉬워한다.
          * 안은 당황하는 두 부하들과 달리 태연하게 해설. 소바의 부드러운 목넘김과 벚꽃 새우 카키아게의 풍미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완하게 되는 것.
          * 그런데 나란히 앉은 심사의원들 뒤에 용도불명의 책 무더기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유키히라 소마]]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왜 저런게 있냐"고 묻는다. [[안(극의 소마)|안]]은 "지금까지 발행한 모든 교전"일 뿐이지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이 교전은 동서고금의 모든 미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어 오늘 심사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가져왔다는데, 소마는 "저렇게 쌓아놓으면 찾기 힘들지 않냐"고 왠 일로 상적인 지적을 한다. 여기에 대한 안의 답은 매우 모순적이다.
          * 그리고 심사의 시작. 안이 젓가락을 들자 부하들도 따라 시한다. 우선은 면부터. 일반적으로 9할 소바는 찰기가 부족해 퍼석거리는 감이기도 한데 네네의 소바는 매우 부드러운 목넘김을 선사한다. 그리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메밀의 향. 이들이 먹는 모습에 반역자들도 침을 삼키며 저녁은 꼭 소바로 먹겠다고 다짐할 정도다.
          * 이어서 벚꽃 새우 카키아게. 안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감에 감탄한다. 부드러운 소바의 감과 대조적인 아삭아삭한 감. 이렇게 번걸아 가며 먹으니 깊은 여운이 남는다.
          * 심사의원들은 감탄을 거듭한 첫 한 입을 마치고 한 입 더 소바를 먹어야 겠다며 고개를 숙이는데... 소바가 사라져버렸다? 고작 한 젓가락 씩 먹은 음은 누가 치워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샤름과 이스트와르가 "누가 음을 가져갔냐"고 흥분한다. 하지만 네네는 "벌써 다 드셨는데요?"라며 심사의원들을 진정시키고 소바를 리필해준다.
          * 허둥대는 두 사람과 달리 안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차근차근 이 음의 비밀에 대해서 밝혀낸다. 우선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벚꽃 새우 카키아게. 내용을 다 외우고 있단 말이 허풍이 아닌지, 그 많은 교전 더미에서 망설임없이 한 권을 골라낸다. 그리고 서슴없이 펼친 페이지에는 지금 필요한 정보가 정확히 기록돼 있다. 유명한 당 "무라마치 스나바"는 보리 새우 카키아게로 명성을 떨친 바가 있다. 키노쿠니는 여기서 강한 맛의 보리새우 대신 섬세한 맛의 벚꽃 새우로 대체해 자신이 만든 섬세한 맛의 9할 소바와 궁합을 맞췄다. 이 조합은 서로의 시너지를 이끌어내서 다 먹을 때까지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 파괴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맛에 취해서 언제 다 먹었는지도 모르게 만들 정도. [[요시노 유키]]는 그 위력이 차라리 무서울 정도라고 경악한다.
          네네는 간단한 일인 양 말하지만 [[나키리 아리스]]와 [[하야마 아키라]]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녀의 조리 기법은 섬세하고 연한 맛의 재료를 중첩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하되 특정한 한 가지만 두드러지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맛을 살리는 밸런스를 맞춘다는건 엄청난 실력자라도 애를 먹는 일. 이 음은 네네 본인이 쌓아올린 연마의 "시간"과 그녀가 계승한 에도 소바의 "전통"이 융합되어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드립은 여기까지하고, 아무튼 샤름은 심사의원을 대표해 "일의 저력을 맛봤다"고 표현할 정도로 깊은 감동을 표한다. 적이 이렇게 극찬을 받는다는 것은 반역자 팀의 위기. [[나키리 에리나]],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 네네의 평가가 끝나자 이번엔 소마가 음을 내놓을 차례. 그런데 압도적이기까지 한 네네의 평가를 보고도 소마는 전혀 주눅든 기색이 없다. 그는 오히려 이런 말을 꺼내 네네를 도발한다.
          그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그릇 째로 심사의원들 앞에 음을 내놓는다.
          * 그가 내놓은 음은 뜨거운 쇠그릇에 담겨진 야끼소바. 그러나 보기에는 어떤 특징을 갖춘 요리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네네의 소바를 앞지를 수 있을까? 소마는 자신만만하기만 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바 드립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패러디한 드립. 본문에도 "극의 소마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응원합니다"라는 멘트가 첨부돼 있다. 하지만 정말 저작권적으로 양해가 된 드립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20화 . . . . 2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9화]] |||| '''극의 소마/220화''' |||| [[극의 소마/221화]] ||
         [[극의 소마]] 220화. '''린도, 등장'''
          * 린도는 재료에 대한 방대한 지과 호기심을 겸비한 인물로 전세게의 오지를 누비며 새로운 맛을 탐구해왔다.
          * [[츠카사 에이시]]는 그녀는 세 가지 얼굴이 있다 평한다. 재력과 권력을 지닌 미가, 미지를 탐구하는 필드워커, 그리고 온갖 재를 다루는 바바리안.
          * 외부의 주목도가 어떻든 메기시마는 느긋하다. 그는 주제를 적은 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고추로 뭘 만들지 고민해 본다. 반면 린도는 거침이 없다. 벌써 주재료를 정하고 메기시마에게는 "고민할 틈이 있냐"고 도발한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악어]]. 일본에선 매우 희귀한 재료다. 린도가 살아있는 악어를 고르자 지켜보던 이들이 술렁거린다. 물론 구하지 못할 재료는 아니지만 극이란 무대에서 이런 특수한 소재를 고른다는건 대단히 자신이 있다는 얘기. 감옥에 갇힌 반역자들이 수군대자 카와시마가 괜히 기세등등하다. 그녀는 린도가 토오츠키 학원 역사에서도 드문 "희소재료 마스터"라고 소개한다. 희소재료란 말에 [[유키히라 소마]]가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하던 와중에 린도가 악어를 놓친다. 새끼 악어지만 상당히 빠른 몸놀림으로 카와시마에게 돌격,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 어찌됐든 악어는 린도에게 다시 포획.
          * [[츠카사 에이시]]는 새삼스럽게 감탄하지도 않는다. 그는 린도의 실력을 익히 알았고 진짜 대단한건 칼솜씨 보단 재료에 대한 방대한 지과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십걸의 2석을 차지하게 만든 힘. 그녀는 십걸에 들자마자 그 권력을 십분 활용, 전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다. 중국 고산지대부터 사막지대, 북극권, 아마존의 오지까지. 1학년 때 이미 일본 국내의 희소 재에 대해서 정통해 있었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그 여정 중에는 린도와 현지 스태프의 협력으로 새롭게 발견된 종도 있었다. 그녀는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 모든 것을 재료로 만들었고 손수 맛을 보았다.
          가령 토오츠키 학원의 축제인 "월향제"에서도 그 탐구심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매해 참가하는 연구회 중에는 "곤충 연구회"라는 끔찍하게 매니악한 동호회도 있었다. 소마 같은 괴 마니아 조차 "어떤 별종이 관심을 가질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이너. 그런 동호외의 단골손님이 린도였다. 그녀는 언제나 "120점포 올 클리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물론 곤충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그저 목표나 달성하자고 억지로 먹는게 아닌, 정말로 즐겁게 "귀뚜라미 풀코스" 같은걸 먹어치우곤 했다.
          첫째, 재력과 권력을 겸비하고 자신의 욕을 채우는 "미가"
          둘째, 미지의 재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필드워커"
          셋재, 온갖 재를 손질하고 와일드하게 먹어치우는 "바바리안"
          굳이 츠카사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실체는 지금 대회장의 전원이 목격하고 있다. 소마는 츠카사 앞을 저런 대단한 요리사가 가로막고 있을 줄 몰랐다고 감탄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녀와 함께 또다른 괴 연구가 사다츠카를 포섭해 "암흑 별종 삼두회"라는 정체불명의 결사를 조직할 야욕을 품는다.
          * 그녀가 본 것은 찻슈. 라면의 필수요소인 그 찻슈다. 메기시마는 지금껏 찻슈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평범해 보이는데. 그 밖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착실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육수는 물론 면을 삶을 준비까지. 메기시마 또한 임전태세를 갖췄다. 후배들은 린도가 희소재료 마스터라면 메기시마는 "라면 마스터"라고 절대적인 신뢰를 보인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이갑성 . . . . 28회 일치
         '''이갑성'''(李甲成, <small>일본 이름: 이와모토 마사이치(岩本正一) </small>, [[1889년]] [[10월 23일]] ~ [[1981년]] [[3월 25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경성부]]에 도착한 그는 처음에는 [[남대문교회]] [[함태영]] [[전도사]]를 만나 [[함태영]] [[전도사]]의 집에서 하숙하면서 [[그리스도 신문]]을 배달하였다. 그뒤 신문을 보던 한 선교사의 추천으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를 만나 [[1906년]] [[경신학교]]에 입학했다.
         [[1910년]]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진학, 약학을 전공했다. [[1913년]] 세브란스의전 약학과를 마치고 다시 배우다가 [[1915년]] [[세브란스의학전문]]을 졸업하였다. [[세브란스 연합의학교]] 부속병원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독립운동을 실행함에 있어 학생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경성부]]의 학생들이 시국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학교에서 영향력이 있던 학생들과 자주 만나 [[손병희]] 등 민족 지도자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한다며 독립운동 계획을 알려 동참을 호소하는 한편, 비밀리에 [[경성부]]내 각 고등학교, 전문학교 학생들의 동정을 주시하였다. 이에 [[고종 황제]]가 갑자기 죽자 그해 [[2월]]을 만세 거사 기일로 정하였다.
         [[2월 28일]]에는 목사 [[김창준 (1890년)|김창준]]에게 [[함태영]]이 인쇄한 독립선언서 900매 중 약 600매를 받은 뒤 이를 다시 인쇄하고, 그날 5매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설(李容卨)에게 교부하여 인쇄하게 한 뒤 학생들에게 돌리게 하였다. [[3월 1일]] 아침 일찍 이갑성은 독립선언서를 수천 장 인쇄하여 400여매를 병원 사무실에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상]](李容祥)에게 주어, 그중 200매는 대구의 목사 [[이만집]](李萬集)에게 보내고 나머지 200매를 [[마산]]의 독립운동 동조자 임학찬(任學瓚)에게 보내도록 한다. 또한 학생 [[김병수]](金屏沫)에게는 [[전라북도]] [[옥구군]]에 있는 [[박연세]](朴淵世) 등에게 보내기 위해 200매를 주었으며, [[충청남도]] [[천안]]에서 올라온 [[임영신]]에게도 일부 배포하고, [[경성부]] 강기덕(姜基德)에게 천500매를 주어 배포케 한다. [[2월 28일]] 밤 [[경성부]] 재동(齋洞)에 있는 손병희의 집에 모인 손병희 등의 민족대표들은, 당초에 독립선언 장소로 결정했던 [[파고다 공원]]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다시 그 장소를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華館)으로 정하였다.
         석방 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에 가입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재단 이사, 세브란스의약(醫藥) 지배인이 되었다. [[1925년]] [[2월]] 이창제(李昶齊), 현신덕(玄信德), 조철호(趙喆鎬), 배집(裵執), 변성옥(邊成玉) 외 5인과 함께 [[공산주의]] 계열의 [[반기독교 운동]]에 저항하기 위해 [[시사구락부]](時事俱樂部)를 조직하여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 주장에 저항하였다.<ref>김준엽, 김창순 공저,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9)</ref>
         [[1926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 이사로 선출되었다. [[1931년]] 주회사 경성공업(京城工業)의 [[경성]]공장 지배인이 되었다.
         이갑성은 광복 후에는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945년]] [[10월]] 반탁운동을 위해 결성된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에 참여하고 [[독립촉성국민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45년]] [[10월 5일]] 조선 각지에 파벌다툼이 심한 점을 지적, 이를 개탄하며 정당통일기성회를 결성하였다. [[12월 14일]] 김여(金麗植), [[권동진]] 등과 함께 신한민족당(新韓民族黨)을 창당하고 [[권동진]]을 당수로 추대했다.
         이때 [[김규]](金奎植) 등의 좌우합작에 협력하던 중 그뒤 단정 수립론과 남북협상론이 나오자 [[이승만]]의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48년]] [[3월]] [[미 군정]]청 군정장관 딘 소장으로부터 [[5·10 총선거]]를 관리하기 위한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에 임명되었다. [[1948년]] [[5월]]에는 [[이승만]]의 친위조직화된 [[대한인국민회]] 소속으로 대구에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대한인국민회]]를 지도, 운영하였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이승만(李承晩)대통령으로부터 전시내각(戰時內閣)의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國務總理)에 임명되기도 했다.<ref>[https://search.i815.or.kr/Indeman/Indeman.jsp?tid=ma&c1=%ED%9B%88%EA%B2%A9 ::: 독립기념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봇이 따온 제목 -->]</ref> [[11월]]에는 정 [[국무총리]]로 국회에 인준하였으나 부결되었다.<ref>대통령비서실,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 (역사비평사, 2008) 74페이지</ref>
         [[1952년]] [[대한인 국민회]] 회장 겸 최고위원에 추대되었으며,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과 흡수, 합병 형으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63년]] [[1월]]부터 민정 이양 시기에는 [[김종필]], [[윤일선]], [[정구영]] 등이 주도한 [[민주공화당 (대한민국)|공화당]] 창당 작업에 발기위원으로 참여했다. [[1963년]] [[건국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년]] [[1월 15일]] 한일회담 고문에 위촉되었으나 사양하였고 그해 [[광복회]] 회장에 취임, 독립유공자들의 발굴과 복지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1965년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재에도 선출되었다. 그 해, [[황신덕]] 등이 조직한 [[삼일동지회]](三一同志會)의 고문으로도 위촉되었다.
         * 경성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사(1915년)
         *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1956년)
         * [[1963년]] [[건국대학교]] [[명예]][[법학]][[박사]]
         * [[김규]]
         * 박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유신사, 1920)
         [[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이갑성|*]][[분류:허정숙]][[분류:김규]][[분류:윤치호]][[분류:윤치영]][[분류:경성경신고등보통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명예박사학위 동문]][[분류:자유당]][[분류:한국독립당]][[분류:민주공화당 (대한민국)]][[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
  • 장태영(야구선수) . . . . 28회 일치
         ||<#eeeeee><:> '''학력''' ||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등학교]]-[[서울대학교]] ||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등학교]] 청룡기 2연패, [[황금사자기]] 3연패의 주역이자 부산야구가 배출한 원조 슈퍼스타. 고교야구 통산 전적 32승 1패.
         >'''이런 맞수 대결은 어느 스포츠, 어느 선수에게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대결의이 스포츠에 활기를 불어 넣는 요인이다. 나와 태영이는 고향과 성장배경이 달랐어도 야구라는 세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온 맞수며 둘도 없는 친구다.'''
         1929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장인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살이 되던 해에 부산으로 내려가 살았다. 1944년에 경남중학교에 입학해 [[유도(스포츠)|유도]]부에 입부해 유도를 배우던 그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경남중학교에 야구부가 생기자 야구부에 입부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 축산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경남중 야구부후원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사람이었고 이런 환경속에서 그는 야구 하나만 보고 성장할수 있었다.
         처음 포지션은 유격수로 시작했고 그의 첫 고교무대 데뷔전이었던 1946년 제1회 [[청룡기|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왼손잡이 유격수로 출전해 허종만, 정상교, 조성일, 박정표, 송주창등과 함께 팀의 준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1947년, 故 고광적 당시 경남중 감독은 당시 선발이었던 장갑영 대신 그를 [[투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경남중등학교를 전국 최고의 팀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투수로 전향한후 출전한 1947년 제2회 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140km/h의 매우 빠른 공을 던져 타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황금사자기]]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끌어 내자 세간에서는 그를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빠른 직구 뿐 아니라 제구력도 매우 좋았는데 당시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중등학교]]의 에이스였던 [[어우홍]]은 그를 회고하며 "좌완에 아주 빠른 볼을 던졌다. 또한, 몸쪽, 바깥쪽 로케이션이 좋았고, 볼도 낮게 깔려 들어왔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2009|기사]]
         그의 활약으로 경남고등학교는 1947년 제2회 청룡기 부터 이듬해인 1948년 제2회 황금사자기 때까지 4개의 전국대회에서 파죽의 12연승을 기록했으며 1948년 제 4회 청룡기에서도 전주공업중, 춘천농업중,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연달아 꺾으며 연승을 15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김양중이 버티고 있던 광주서중과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때 김양중과의 연장 11회에 걸친 대결은 고교야구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경남중은 당대 최강의 야구팀이었고 그 누구도 우승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1,311명을 대상으로한 현장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4%가 경남중학교 우승을 점쳤고 광주서중의 우승을 점친사람은 단 8명, 0.6%의 인원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남중은 2년간 15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모든 트로피를 쓸어 담은 최강의 팀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장태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4회 청룡기에서도 1차전 전주공업을 상대로 13:1로 6회 콜드게임승, 2차전에서 춘천중학을 상대로 10:0 5회 콜드게임 승, 준결승에서 막강한 상대였던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둬 들였다.
         상대는 [[김양중(야구)|김양중]]이 이끄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서중]]. 광주서중은 전라도 지역의 최고의 팀으로 불리긴했지만[* 이때 [[군산상고 야구부]]는 창단되기 전이다. 군산상고 야구부가 만들어 진것은 1968년이다.] 전국대회 수준에서는 미치지 못한 수준의 야구팀이었고 에이스 김양중의 분투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중학]]과 대전사범중을 상대로 힘든 승부끝에 결승전에 올라왔다. 언론들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경남중학교의 우승을 점쳤고 경남중학교 측에서도 이 분위기에 흠뻑 취해 이미 이긴것이나 다름 없다며 전날 미리 축하연을 펼쳤다. 반면 광주서중은 이기든 지든 김양중을 믿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결의했다.
         8회말까지 장태영은 광주서중의 타선을 단 1안타로 꽁꽁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양중도 경남고의 타선을 철저히 틀어막으며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 스코어링에 0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것은 9회초,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의 1번타자 허종만과 2번타자 정상규가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2사후 1점을 기록하면서였다.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영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태영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남중학교 2루수 정상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정상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상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상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박현]](좌)과 [[장태영]](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정확히 말하면 당시 서울클럽이라는 야구팀 유니폼이다. 당시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데 나라에 돈이 없다보니(...) 유니폼을 따로 제작할수가 없어서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단 유니폼을 서울클럽에서 빌려서 출전했다.] ||
         경남중 재학시절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피가 날정도로 공부도 상당히 열심히 했던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후 그는 [[육군]]에 입대해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고교시절 라이벌 이었던 김양중, [[박현]]등과 함께 [[한국실업야구]] 무대를 누볐다.육군 시절에는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고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멤버로 참가, 야구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안타를 기록해 내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9|기사]]
         1957년에는 제5회 군-실업야구쟁패전[* 훗날 대학팀과 실업팀 토너먼트인 백호기의 전신인 대회.]에서 11타수 9안타, 타율 .818을 기록하며 타격왕을 수상했는데 이 기록은 1993년 [[홍익대학교]]의 문희성이 대학선수권대회에서 7타수 7안타 1.000을 기록하기 전까지 단일대회 최고 타율이었다.
  • Victoria II/POP . . . . 27회 일치
         POP는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을 뜻한다. 게임 내 정 용어는 인구(Population)지만 패러독스 팬덤에서는 POP라고 부른다.
          * Rel(종교): 별 존재감 없다. 가끔 주류 종교가 비주류 종교를 억압하는 이벤트가 뜨면 가지고 있는 종교에 따라 의도와 투쟁성이 변화한다. 예시의 POP는 대승 종교를 믿는다.
          * Consciousness(의도): 해당 POP의 정치 의이 깨어있는 정도. 머리 단면도(?)로 표시된다. 이게 높을 경우 개혁을 지지할 확률이 높아진다.
          * Life Needs(생명 욕구):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것들. 물컵으로 표현된다.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하려 하는 욕구로, 만약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도와 투쟁성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POP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반대로 생명 욕구를 충족하고 거주 프로빈스의 생활등급이 30 이상이라면 어떻게든 애를 낳고 기르면서 산다. 그러니까 인구가 증가한다.
          * Everyday Needs(일상 욕구): 지장 없이 살기위해 필요한 것들. 맥주잔으로 표현된다.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도와 투쟁성이 증가하며, 자신의 처지에 불만족해한다.
          * Luxury Needs(사치 욕구): 사치 좀 부리기위해 필요한 것들. 와인잔으로 표현된다.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도가 증가한다.
          * Literacy(자율): 해당 POP의 구성원들 중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 자율이 높으면 작업 효율, 제공하는 연구 점수, 더 좋은 직업으로 승진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의도 역시 높아져 요구하는게 많아진다. 예시의 POP는 10%대의 자율을 자랑하는데, 별로 좋은 수준은 아니다.
         모든 욕구를 충족한 POP는 문제를 일으키려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남아나는 돈을 모으거나, 예금하거나, 국립 은행에 투자한다. 이런 이들 중 의도가 높은 POP는 좀 더 상위 등급의 POP로 승진하기까지 한다. 반면 오랜 기간 불만족한 POP들은 (실업자일 경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주나 국가로 이주하거나 직업을 바꾸게 된다.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자신이 거주한 주의 자율을 높여준다. 동시에 해당 지역 POP들의 의도를 낮춰 요구하는 것을 적게 만든다. 추가적인 연구 점수도 제공한다.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소, 양모, 곡, 물고기 등의 원자재를 생산한다.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 생명 욕구: 양모, 소, 물고기, 과일, 곡
  • 김상조 . . . . 27회 일치
         || '''학력''' ||<(> [[대일고등학교]] {{{-1 ([[졸업]])}}}[br][[서울대학교]] {{{-1 (경제학 / [[학사]])}}}[br][[서울대학교]] {{{-1 (경제학 / [[석사]])}}}[br][[서울대학교]] {{{-1 (경제학 / [[박사]])}}} ||
         || '''약력''' ||<(> [[한성대학교]] 교수[br][[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br]재정경제원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br]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초빙연구원[br][[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br]경제개혁연대 소장[br]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1학번으로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부, 석사 및 박사과정을 거쳤다. [[1993년]] '설비자금의 동원 및 배분체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당시 지도교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었다.
         오랫동안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문제제기를 해왔던 사람이다. 이에 대한 저서도 여러 편 출간했다. 또 [[권영길]] 후보의 '[[국민승리21]] 정책자문단'의 총무국장으로 있던 적이 있고, 2004년 2월에는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지원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삼성의 주주총회에 참여연대 소속으로 소액주주로 참석했는데 삼성 경호원들에게 멱살을 잡혀 퇴장당하던 영상이 발굴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VH4_myrbBXg|#]]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최순실 국정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최순실 특검]]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조금씩 그 이름을 인시켰다.]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아주 오랫동안 재벌개혁 시민운동을 계속한 인물로 한국 재벌과 관련해서 학문적인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고 언론 기고 또한 활발했으며 독자적인 저술은 한 권밖에[* 제목은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을 읽어보면 통계적 근거와 [[경제학]]적 통찰을 근거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담백하게 논하는 대중 서적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인사라고 하면 거리를 둘 법한 주장도 많이 보인다.] 없는 듯하지만 [[알라딘]]에서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1%e8%bb%f3%c1%b6&x=0&y=0&|김상조]]를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경제, 재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저술에 저자로 참여해왔다. 공정위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이전 소장으로 적을 두고 있던 경제개혁연대에서 수많은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민병두]] 의원의 말에 따르면, 6월 2일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뒤 다음 날에 바로 학교에서 [[https://twitter.com/bdmin1958/status/870921482158751745|토요일 내내 보강 강의를 했다고......]]
         6월 4일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전성인 교수가 언론과 야당의 의혹공세를 반박하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197|김상조를 위한 변명]]이라는 지지글을 발표했다. 이후 전 교수의 주도로 선, 후배, 동료 경제학자 및 사회 각계 각층의 498명이 김상조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7664.html|#]] [[주진형]]의 말에 의하면 하루 남짓한 기간 동안 500명 가까이 함께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전 교수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물론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를 놓고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보다못해 지지 선언까지 내는 것 자체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오히려 김상조가 가장 먼저 청문회에 나서서 야당의 혹독한 의혹공세를 버텨냄으로써, 이후 청문회에서 실제로 무시못할 수준의 의혹을 지닌 다른 후보들의 흠결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아. 이번에도 야당이 별것도 아닌 걸로 트집잡나 보네."라는 으로 시큰둥하게 넘어간 경향이 있다.
         가족과 함께 2차례 위장전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주민등록초본을 보면 김 후보자 가족은 1994년 3월부터 경기 구리시 교문동의 동현아파트(현 구리두산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3년 뒤인 1997년 1월 김 후보자를 제외한 부인 조모 씨와 아들은 길 건너편인 교문동 한가람아파트로 서류상 분가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2개월 앞둔 때였기에 이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것.
         김 후보자 측은 “당시 중학교 교사였던 김 후보자 부인이 지방 전근 발령 난 상태에서 건너편 친척집에서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주소지를 옮겼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제 친척집에 살지는 않고 2주 만에 서울 중랑구 신내동으로 이사 갔다. 김 후보자 측은 “그런 으로는 교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부인이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이사했다”고 설명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260204001&code=210100|관련기사]]
         또 두 번째 사례인 1999년 2월 서울 양천구 목동 현대아파트를 거쳐 2002년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로 주소지를 변경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김 후보자는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 예일대 연수를 가면서 2004년 8월부터 다시 7개월간 목동 현대아파트로 주소지를 옮겼다. 이어 귀국한 2005년 2월 은마아파트로 주소지를 다시 변경했다. 중3 아들이 고교 진학을 앞둔 시기였다. 김 후보자 측은 “후보자가 해외연수 중 전세로 살던 은마아파트를 비워두고 우편물 등을 받아두기 위해 목동의 세입자에게 양해를 구해 주소지만 잠시 옮겨놓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05년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안년을 마치고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 처가 대장암 2기 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면서 “그때 수술한 병원이 강남의 모 병원으로, 치료를 위해 은마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603004011|관련기사]] 이에 청문위원들은 해당 건에 대해 머쓱해 했다고 한다.
         김상조 후보자의 아들이 하나금융투자와 BNP파리바은행의 인턴 채용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기사에 등장한 금융권 종사자는 김 후보자의 아들이 같은 인턴직에 지원한 사람들보다 대학교 시절 학점이 낮음에도 합격했다는 점이 '상적이지 않다'고 하였고 익명의 금융관계자는 “금융감독당국 고위직 자제들이 방학을 이용해 유수의 금융사에 단기 인턴으로 경력을 쌓는 것은 금융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http://mlbpark.donga.com/mp/view.php?u=http%3A%2F%2Fnews.kmib.co.kr%2Farticle%2Fview.asp%3Farcid%3D0923757051%26code%3D11151100%26cp%3Dnv|관련기사]] 관련 의혹에 대하여 김 후보자 측은 "자녀 인턴십에는 관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의혹제기에는 좀 문제가 있다. 기사와는 달리 실제 외국계 기업이나 금융권에서 1개월 수준의 체험형 단기 인턴 과정에서 학점은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않으며, 게다가 일반적으로 같은 학교 기준에서 이과 전공 학점은 문과 전공 학점보다 크게는 +1.0~+1.5 정도를 더 높게 쳐주는 경우도 있다. 만약 하단의 경우처럼 조건 자체에 학점 몇 이상이 제시되어 있었다면 논란의 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논란이라고 할 만한 건덕지가 그리 없는 분야라는 의견 또한 있다.
         김상조 아내도 부정 취업 의혹을 받고 있다. 아내 조 씨는 서울의 한 공업고등학교의 계약직 영어회화 전문 강사로 취직하여 5년 정도를 재직하였다.[* 참고로 영어회화 전문 강사는 임용고시를 통하여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계약직으로, 연봉은 현재 시점으로 약 2500만 원 수준이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11261849211&code=115|#]]] 자유한국당 측의 주장으로는 현재 취직 조건이 토익 901점인데 아내의 점수는 토익 900점이었으며, 채용 응시자는 조 씨 1명뿐이었고, 조 씨가 합격이 확정된 이후에야 지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동시에 재임용 과정에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30/2017053090046.html|관련기사]]
         현재 김상조 후보자 측에서는 지원자가 1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채용되었다고 해명하였다.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19766|#]] 이코노미 뉴스에서는 당시 조 씨의 이력서를 공개하였는데, 주장대로 토익 점수가 1점 미달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외 능력에서는 TESOL과 TEFL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였으며, 해외 거주 기간이 2년이 넘는다. 때문에 옹호하는 네티즌 측에서는 당연히 다른 후보가 있으면 모르되, 이 정도 자격증 및 경험 보유자는 학원을 가도 3천 이상의 연봉을 받는 수준이며, 사실상 취업 비리가 아니라 하향 지원 내지는 재능 기부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학교 입장에서도 학기 시작 전에 강사를 구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아내는 자기 입으로 자기 재벌 저격수의 별명을 가진 남편 이름을 남들에게 제대로 말하고 다니지 못한다면서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전성인 교수 역시 상단에 언급된 기고문에서 "방문 연구원"이라는 말이 오히려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라고 하며 해당 의혹 제기를 비판했다.[* 비슷한 예로 대학 교수들도 초임 교수진에 대한 공적인 명칭을 보면 "전임강사", "조교수" 같은 표현을 쓰곤 한다.]
         한성대 교수 시절인 2011년, 담뱃불로 인해 쓰레기통에 불을 낸 적이 있었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학교에 사과의 뜻으로 발전기금도 낸 것을 보면 재산피해에 대한 보상까지 마무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실화죄는 특별히 걸리는 것 없이 잘 넘어갔다.
  • 박주영 . . . . 27회 일치
         ||<:> '''학력''' ||<:> 반야월초등학교 (1992~1998) [br] [[청구중학교]] (1998~2001) [br] [[청구고등학교]] (2001~2004) [br] [[고려대학교]] (2004~2005) ||
         현재 대한민국 대구출생의 K리그 클래의 [[FC 서울]]에서 뛰고 있으며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다.
         고등학교 때인 2001년 [[포항 스틸러스]]의 후원으로 1년간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가 되었다. 2005년 후원해준 [[포항 스틸러스]]가 아닌 [[FC 서울]]에 입단해 놀라운 득점력으로 그 해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 등을 휩쓸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 모나코]]로 이적한 박주영은 첫 경기에서 1득점을 기록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10월에 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카디프 대첩|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박주영/국가대표 경력#s-3.2|박시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동료를 이용하는 움직임,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날카로운 감각과 창의성 높은 플레이, 뛰어난 볼 컨트롤, 기존의 한국 공격수들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문전 앞에서의 침착한 볼처리와 정확한 슛으로 한국에서 '축구천재'로 불렸었다.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인 2001년 프로구단 포항스틸러스의 후원으로 브라질에 1년간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2003년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2004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득점왕과 MVP 등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청소년대표로 일찍부터 국가대표로 뛰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임에도 득점을 올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7년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등에서는 활발한 경기를 펼쳐 2008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하여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에서 한국 축구 역사 상 첫 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 K리그 클래 우승 : 2016
         ||<#dcdcdc> 2005 ||<|4> [[FC 서울]] ||<|4> [[K리그 클래]] || 19 || 12 || 3 || 2 || 0 || 1 || 11 || 6 || 1 || - || - || - || - || - || - || 32 || 18 || 5 ||
         ||<#dcdcdc> 2015 ||<|4> [[FC 서울]] ||<|4> [[K리그 클래]] || 23 || 7 || 2 || 1 || 2 || - || - || - || - || - || - || - || - || - || - || 24 || 9 || 2 ||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백호와 동급이다~~)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인지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엄청 까이는 인물이다 보니 별명이 무하게 많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추가시 유의 바람. 야구의 김별명 같은 항목에서 명확하게 영향을 받아 생겼으며, 김별명 등 이 위키의 별명 항목은 까는 별명 좋은 별명 무차별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위키 전체적으로 볼 때 박주영만 이상한 항목이 아니다.
          * 쪼꼬형 : SNS에 부인이 준 발렌타인 초콜릿을 인증하면서 쪼꼬라고 하는 바람에 쪼꼬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는 FC서울 공 인스타그램에서도 박주영을 쪼꼬형이라고 부른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http://shootkim.khan.kr/493|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공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여담]]으로 그의 성격자체가 한 몫했고 그 성격의 소유자가 어린 시절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
          *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모르던 사실인데 FM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2006버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싫어하는 인물에 박주영을 넣어놨다. 그것도 혐오도 90에 영구적으로 혐오 체크까지. 실은 한국 FM 평점 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이영표]] 선수가 싫어하는 선수에 [[이임생]]이 들어가 있을 정도. 하지만 [[독자연구|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면]] 나중에 제작사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뒤 상껏 조정을 한다고 한다.
          * 풋볼 매니저에서의 능력치는 [[K리그]] 시절에는 유럽 주요 리그를 제외한 타 리그는 스카우터를 파견하지 않고 리그의 수준에 맞춰 랜덤 포텐[* 첫 등장인 06버전에서 -9포텐, 07에서는 -8포텐]으로 대신하게 되어있는지라 선수의 능력치를 잘 표현을 못했으나 유럽리그인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활약에 맞추어 능력치가 개편되었다. 개편 이후 2010까지 양발은 유지한 채 포워드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그에 맞춰 구단 내의 위상이 핵심 선수로 변경됨에 따라 초기 시작 시기에 영입을 타진하려면 400억 이상의 영입료를 지불해야 한다. 2011버전에 또다시 개편되어 양발 사용이 오른발 사용으로 바뀌면서 그에 비례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스날에 가면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한 탓인지, 2012에서는 골결정력이 11로 내려가는 등 폭풍 하향을 먹었다. 2013에도 골결정력이 또 10으로 내려갔으나 AS 모나코 시절의 능력치가 높게 평가되었는지 신체적 능력, 퍼스트 터치[* 정 발매판에서는 볼 트래핑] , 정신적 능력은 그리 너프되지 않아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따라서는 다득점을 노릴 수 있다. 2015에서는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과 아스날의 강제 방출 및 무적기간 덕분에 전작의 유럽 하부리그 준주전급 선수에서 유망주급 능력치로 변경되어 엄청난 너프를 먹었다.[[http://oi62.tinypic.com/2q22yid.jpg|##]]. 모나코 시절까지는 중간은 가던 프로 의도 아스널에서의 먹튀 행각과 셀타비고 임대 시절 보여준 워크에 때문인지 fm 2018 기준으로 멘탈갑 수준의 '''6'''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발로텔리와 동급'''이다. ~~'''멘탈갑의 전설들 테베스는 2, 아드리아누와 카사노는 3.'''~~
          * [[고려대]] 졸업 당시 서울 동북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동북고등학교 학생들이 축구하고 있었는데, 박주영이 나와서 학생들 공을 뺏고 드리볼 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마는데... 당황한 박주영은 다시 공을 빼앗아 중거리 슛을 날려 골을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 2011년 6월 12일에 한살 연상의 모교 선배와 결혼.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비공개 결혼을 올렸다. 사회자는 [[이휘재]], 축가는 [[김태우(god)|김태우]]. 가나전 이후에는 선수들이 여러모로 축하(?)해줬다.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6072239332235&ext=na|결혼축하 헹가레 받고]]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6070487|내동댕이 쳐져도 웃는다.]]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6070442|백호에게서 음료수 세례도 받았다.]]
  • 이경희 (1880년) . . . . 27회 일치
         기호중학교 졸업 후 대구 협성학교와 [[안동 협동학교]]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09년]] [[안창호]], [[윤치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조직했고, [[1910년]]에는 [[신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군사학교를 조직하려 했으나, [[105인 사건]]으로 [[만주]]로 망명했다.
         소년기에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895년]](고종 32) 대구 공산의 소학교에 입학하고, [[1901년]](광무 4) 공산 소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부]]로 상경, [[경성부]] [[기호중학교]](畿湖中學校)에 입학했다. [[1905년]] 한성 기호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그해 [[11월 17일]]의 [[을사 보호 조약]] 체결에 반대하였으나 조약이 강제로 통과되자, 관직의 꿈을 접고 교육계에 몸담았다. 그는 자신의 아호를 지오라 하였는데 이는 나라 잃은 나는 못난 이라는 뜻이었다.
         실력을 양성하는 길만이 조국의 독립을 앞당긴다는 신념으로 고향으로 내려와 [[대구]] [[협성학교]](協成學校)의 교사가 되었으며 [[안동 협동학교]](協同學校)의 [[교사]]를 겸임하여, [[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안동 협동학교에도 출강하며 교편을 잡고 교육구국에 힘썼다. 이 무렵 그는 [[유교]] [[성리학]]에서 [[대종교]]로 개종하였다.
         [[1909년]](융희 3) [[윤치호]],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결성하고, [[청년학우회]] 경성부지회의 회원이 되었다. [[1910년]] [[5월 13일]] 독립운동가 [[구찬회]]가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구찬회와 같은 고향 출신이던 그는 한국통감부와 일본의 눈을 피해 [[구찬회]]의 시신을 [[미역]] 속에 숨겨서 경성에서 대구 무태로 운반하여 [[구찬회]]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전달하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1910년]](융희 4) [[10월]]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청년학우회 한성지회의 일원으로 [[이동녕]](李東寧), [[윤치호]], [[안창호]], [[윤치소]], [[이회영]](李會榮), [[윤기섭]](尹琦燮), [[이승훈]], [[김좌진]](金佐鎭),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고 회원이 되었다. 이후 [[신민회]]의 비밀회의에 참여, 독립군 기지창건을 목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동참했고, [[105인 사건]]을 피해 바로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여 무관학교(훗날의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장사와 노동에 종사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돈을 모았다.
         동시에 현지 교민들의 문맹률을 보고 [[중국]] [[심양]](瀋陽)에서 달신학교(達新學校)와 중국어 학교를 세워 학생, 청년들을 가르치고, [[야학]]을 개설하여 성인들을 가르쳤다. 이어 마련한 돈으로 [[만주]] [[무송현]]에 둔전을 마련하여 다시 군자금을 만들고, 청장년을 훈련시켰다. [[1918년]] [[12월]] [[파리강화회의]]로 파견되는 [[김규]] 박사와 일행의 차비와 여비로 일부 자금을 [[상하이]]로 보냈다.
         무기와 폭탄이 들어오자 그는 [[김시현]], [[유석현]] 등으로부터 〈혁명선언서〉와 투항권고 격문 수백 장을 받아 [[경성부]] 시내 곳곳에 살포하고, 전국 각 도의 도지사와 경찰부(警察部)에 발송하였다. [[김시현]], [[유석현]](劉錫鉉) 등 [[의열단]] 단원들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회사]], [[조선은행]], [[매일신보사]] 등을 폭파하할 것을 계획하고 준비에 들어갈 때 이경희는 [[조선총독부]] 폭파를 맡았다. 그러나 [[1923년]] [[5월]] [[조선총독부]] 폭파 일보 직전에 이들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누군가의 신고로 밀정이 따라붙어, 동지 12명과 [[조선총독부]] 종로 경찰서에 체포되어 테러 미수 혐의로 재판받았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1년 넘게 형을 살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 [[1905년]] 기호중학교 졸업
         * [[1905년]] 대구 협성학교 교사
         * [[1905년]] 안동 협동학교 교사(겸임)
         * [[1912년]] 심양 달신학교 교사
         * [[신흥무관학교]] 개교에 참여
         * [[대구 협성학교]]
         * [[안동 협동학교]]
         * [[신흥무관학교]]
         * [[김규]]
  • 이소선 . . . . 27회 일치
         '''이소선'''(李小仙, [[1929년]] [[12월 30일]] ~ [[2011년]] [[9월 3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이다. 1970년 11월 13일 아들인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활동하다 분신하자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노동운동가들을 자신의 자처럼 대해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4717.html 노동자의 대모 이소선씨 별세], 한겨레, 2011년 9월 3일</ref> 민주화 운동 중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 모임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어머니 김분이는 이미 열넷이었던 장녀는 친정으로 보내고 아홉살 아들과 이소선을 데리고 이웃 마을인 [[박서면]]으로 후처 살이 재가를 하였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어머니는 해어진 이후로 큰 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소선의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재가했다는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리하였다고 한다. 이소선의 언니는 1남 3녀를 낳고 살다 1964년에 사망하였고, 이소선은 언니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언니가 있었다는 것은 전태일의 동상 재막 이후에 조카들이 찾아와 알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917591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1) - 목걸이로 부활한 ‘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29일</ref>
         새아버지는 어머니 보다 20살이 많았다. 이소선은 어머니의 재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번도 새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5181532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6) - 오빠 살리려 개가한 어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일제 말기에 오빠는 징용으로 끌려갔고 이소선은 공출을 위한 관솔가지 꺾기 등을 하며 어렵게 지냈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허락하지 않아 다닐 수 없었다. 한글은 어머니가 재가한 집안에 시집 온 분에게 배웠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6888 밤새 구구단 외워, 고무신을 상으로 받은 이소선],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9), 2014.06.12</ref> 이소선은 집안 몰래 일본이 세운 간이 학교(오늘날의 [[대구서재초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틈에 섞여 들어가 구구단을 배웠지만 곧 들켜 매를 맞고 그만두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517580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4) - 대물림 된 ‘못배운 한’], 2009년 2월 5일</ref> 헤어진 오빠와는 해방이 되어서도 다시 만나지 못했고 36년 만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217440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9) - 일본으로 떠난 오빠], 2009년 1월 22일</ref>
         전쟁이 끝나고 남편 전상수는 사업 기회를 보려 서울로 상경하였고 그 사이 시아버지가 사망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218300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3) - ‘버팀목’ 시아버지 별세], 경향신문, 2009년 3월 23일</ref> 아이들을 끌고 무작정 상경한 이소선은 [[염천교]] 근처에서 가족과 노숙하였다. 남편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이소선은 고등어의 배를 따는 일을 하고 얻은 품삯으로 시래기를 사서 국을 끓이고 아이들을 먹였다. 집이 없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잤고, 일을 구하지 못할 때에는 걸을 했다.<ref name="오마이뉴스18" />
         {{인용문2| 내가 밥을 구해오면 태삼이가 이런다. 엄마, 우리 밥은 왜 색깔이 뻘겋고 까맣고 여러 색깔이냐고 물어. 이집 저집에서 얻어오니 콩밥도 있고, 보리밥도 있고 하니 울긋불긋 하지 않았겠냐. 그 말을 들으니 막 설움이 치받아 올라오는 거야. 여기 가슴에서. |이소선<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51755255&code=210000&s_code=af077#csidx9d453f1619bfab5b3362c807fe859ba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4) - 걸·행상 ‘힘겨운 서울살이’],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전상수는 어렵사리 다시 자리를 잡고 술도 끊고 일을 했다. 남편이 남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사이 이소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 앞이며 도동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532 전쟁과 가난이 어린 전태일을 조숙하게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1), 2014.06.12</ref> 열심히 일을 해서 1년 만에 판잣집을 장만했고 다시 공장을 차렸다. 이 즈음 막내 [[전순덕]]이 태어났고 전태일은 초등학교에 정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 즈음 있었던 큰 규모의 학교 체육복 납품 과정에서 브로커가 대금을 가로채 잠적하자 집안은 다시 주저 앉았다. 전상수는 도망다녔고 이소선은 신경 쇠약에 걸려 밤마다 집 밖을 헤맸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617562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5) - 소년가장 된 전태일],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머니가 병약해지자 집안의 살림은 전태일이 꾸려야했다. 전태일은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신문팔이며 삼발이 장사를 했지만 시원치 않았다. 받아온 삼발이 값을 치뤄야 하는 월말이 되자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된 전태일은 무작정 가출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917400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6) - 전태일의 가출],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서울에서 다시 이리 저리 떠도는 생활을 하던 가족은 시동생의 권유에 못이겨 대구의 시댁으로 내려갔다. 전태일은 부산까지 떠돌다 비쩍 마른 모습으로 대구에 왔다. 대구에서 다시 모인 가족은 다시 재봉일을 하며 살았고 정으로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전태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전태일은 스스로 쓴 수기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했다. 그러나 전상옥의 사업은 결국 망했고 다시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소선은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는 전상옥을 보며 절망을 느꼈다. 전상옥이 집을 나가 버리자 남은 가족들은 꼼짝없이 굶게 되었다. 1964년 이소선은 일을 구하기 위해 홀로 서울로 상경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520 몽땅 굶어죽을 판... 서울로 가자],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4), 2014.06.12</ref>
         이소선이 서울에 올라와 일을 알아보는 사이 대구에선 아버지의 매질에 견딜 수 없던 전태일이 동생 순덕이를 데리고 상경하였다. 전태일은 순덕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시청 미아보호소에 맡겼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917524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1) - 태일이 막내동생과 생이별], 경향신문, 2009년 4월 9일 </ref> 그 사이 이소선은 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예전 서울 살 때 알았던 남산 판자촌의 지인에게 얹혀 살았다. 전태일이 그 집을 물어 물어 찾아와 이소선이 일하는 당 앞에 나타났다. 모자는 다시 만나게 되어 끌어 안고 울었다. 당에서 고되게 일하던 이소선은 어느날 심하게 하혈을 하였고 그 길로 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경향4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317503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2)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13일 </ref>
         하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당에서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쓰였다.<ref name="오마이뉴스2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699 애들 부끄럽지 않게... 미군 지프차를 돌려보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7), 2014.06.12</ref> 이소선은 병원을 나온 뒤 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워 삶아 팔았다.<ref name="경향42" /> 이소선과 함께 살게 된 전태일은 남대문시장을 돌며 구두닦이며 신문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지들 틈에서 동생 전태삼을 발견하였다. 전태삼은 어머니와 형을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온 뒤 거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후 전태일은 남대문에서 돈을 벌고 태삼은 달동네의 물지게를 지어 생계를 도왔다. 전태일은 아동보호소에 맡긴 순덕이를 찾아오기 위해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었고 [[평화시장]]의 미싱 보조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27" /> 가족은 지인 집 마루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9181908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4) - 봉제공장‘시다’로 첫 출근],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26일</ref>
         전상수는 서울 [[서울중부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가족을 찾고 있었다. 이소선은 남편과 사는 것이 싫었지만 전상수가 다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남산동 50번지 무허가 판잣집을 셋방으로 얻고 다시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다. 아동보호소에서 대려온 순덕이는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 지 웃음이 싹 사라져 있었고 새벽에 홀로 깨서 머리를 빗고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났다고 한다.<ref name="오마이뉴스30" /> 그러나 전상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남산동 살림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66년 판자촌에 불이나 이재민이 된 것이다. 이소선은 그 때의 충격으로 눈이 멀었고 이웃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멀었던 눈은 차츰 돌아왔고 모든 구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7 이소선, 화재 충격으로 눈이 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1), 2014.7.18</ref>
         [[파일:이소선 2.jpg|섬네일|전태일의 장례에서 영정을 안은 이소선]]
         이소선은 노동운동가들이 《전태일평전》을 읽고 그 길에 뛰어들었다는 말을 하면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다. 이후로도 계속 되는 노동자의 분신과 자살이 있을 때 마다 마치 자신이 죄가 있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ref name="오픈아카이브">[http://db.kdemocracy.or.kr/contents/view/165 어머니 이소선], 오픈아카이브</ref> 그래서 어디를 가서 이야기를 하던 제발 살아서 싸워라 살아서 싸우고 살아서 바꾸라고 이야기 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0468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씨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라"], 오마이뉴스, 2009년 6월 5일</ref> 1986년 신흥정밀 노종자 [[박영진]]이 분신했다는 소이 전해지자 이소선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을 막고선 형사들에게 내 아들이라고 소리치며 들어가 손을 잡고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야지 왜 그랬냐"고 하여 주위의 사람들을 숙연케 하였다.<ref name="오픈아카이브" />
         이소선은 80세의 고령에도 계속하여 부르는 곳이면 마다 않고 참석하였다. 그러나 부른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을 하지는 않았다. 2006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태일노동상의 시상을 마치고 내려가다 다시 마이크를 붙잡고 "입으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 뭐 하냐. 가장 밑바닥에서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비정규직을 나 몰라라 해서 어찌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냐 …… 손잡고 싸우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정규직도 비정규직 신세가 될 것"이라고 소리쳤고<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5965.html 노동자 어머니 이소선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할것 같냐”], 한겨레, 2008년 12월 5일</ref> 늘 노동자의 하나된 단결을 강조했다. 2009년 전태일 39주기 추모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리자 이제 되었다며 무척 기뻐하였다.<ref name="연합_전순옥">[http://klsi.org/content/%EC%9D%B4%EC%86%8C%EC%84%A0-%EC%96%B4%EB%A8%B8%EB%8B%88%EC%99%80-%EB%85%B8%EB%8F%99%EC%9A%B4%EB%8F%99 이소선 어머니와 노동운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ref>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소선은 늘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위기를 고용문제를 극복하자고 주장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9/03/0200000000AKR20110903057900004.HTML "이소선 여사는 따뜻한 마음의 노동운동가"], 연합뉴스, 2011년 9월 3일</ref>
         * 1970년 2월 20일 동화상가에 '후생당'개소, 노동자를 위해 국수를 삶는 일에 종사.
         * 1987년 8월 27일 거제도에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의 장례에 참석하다가 경찰의 수배를 받음.
         * 1988년 11월 13일 노동자 3만명 연세대에 모여서 전태일 18주기 추도 거행.
  • 태종무열왕 . . . . 27회 일치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에 대해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어느 날 서악(西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 일이 있고 열흘 뒤인 정월 오기일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끊은 뒤 자신의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며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문희가 대신 나서서 옷을 꿰매 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서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김춘추가 문희와 정으로 혼인하려 하지 않자 김유신은 "남편도 없는 것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다"며 곧 문희를 자신이 불태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고,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남산(南山)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서 뜰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발견한 여왕이 "저것은 무슨 연기인가?" 하고 묻자 옆에서 "아마도 유신이 제 누이를 불태우려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까닭을 묻는 여왕에게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고 묻는 옆에서, 마침 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여왕은 "너의 짓이구나. 당장 가서 구하라." 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ref group="주">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제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문희의 소생으로 무열왕의 장자인 [[문무왕]] 법민(法敏)이 태어난 것이 626년이라는 『문무대왕비』 기록에서 유추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이전의 일로 보인다. 이 경우 《삼국유사》가 전하는 김춘추의 혼인 에피소드가 있었을 당시 선덕여왕은 아직 즉위하기 전이었음에도 '왕'으로 표기한 《삼국유사》 기록은 모순이 생기게 된다.</ref><ref name="유사-기이1">《삼국유사》 권제1 기이 태종춘추공</ref>
         선덕여왕 11년([[642년]]) 8월, [[백제]](百濟)의 장군 윤충(允忠)이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경상남도]] [[합천군|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대야성의 성주였던 이찬 김품석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의 남편으로 김춘추의 사위였는데, 앞서 그에게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백제군과 내통한 부하 검일(黔日)의 배반으로 궁지에 몰린 김품석은 처자를 죽인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삼국사기》는 당시 김춘추는 이찬의 관등에 올라 있었고, 대야성에서 딸과 사위가 죽었다는 소이 전해지자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대야성의 일을 계기로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원병을 빌리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갈 것을 왕에게 건의한 김춘추는 고구려의 국왕 [[보장왕]]과 실권자 [[연개소문]]을 만나 원병을 청했지만, 원병 파병 조건으로 과거 [[진흥왕]](眞興王) 때에 신라가 획득한 죽령(竹嶺) 이북 땅의 반환을 내세운 고구려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김유신의 무력 시위,<ref name="선덕왕-1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선덕왕 11년(642)</ref> 그리고 고구려 대신 선도해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대로 왕에게 아뢰어 땅을 돌려주게 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ref name="김유신-상">《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상</ref>
         [[7월 9일]]에 김유신 등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 전투|황산벌]]에서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도 백제군의 저지를 뚫고 [[기벌포 해전|기벌포]]로 상륙하여, [[7월 13일]]에 사비성이 함락되고, [[7월 18일]]에는 웅진성으로 도망쳤던 [[의자왕]]도 항복하여 백제는 멸망하였다.<ref name="신라-660"/> 사비성을 함락했을 때 [[김법민]]은 백제의 왕자 [[부여융]](扶餘隆)을 말 앞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예전에 네놈의 아비가 내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었고 그 일 때문에 내가 20년 동안 마음 아프고 골치를 앓았었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구나!”라고 꾸짖었다.<ref name="신라-660"/> 의자왕의 항복 소을 듣고 29일에 금돌성에서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온 무열왕은 제감(弟監) 천복(天福)을 당에 보내 승리한 사실을 고하였다. 8월 2일에는 앞서 대야성이 백제에 함락될 때 신라측에서 내응했던 모척(毛尺)과 검일(黔日)을 잡아 처형하고, 주연(酒宴)을 베풀어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이때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을 마룻바닥에 앉혀 놓고 때로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여러 신하들 중 목메어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ref name="신라-660"/>
         무열왕 8년([[661년]]) 음력 6월 59세로 사망하였다. 시호(諡號)를 무열(武烈)이라 하고, 영경사(永敬寺)의 북쪽에 장사를 지냈으며, 묘호(廟號)를 올려서 태종(太宗)이라고 하였다. [[당 고종]]은 무열왕이 죽었다는 소을 듣고 낙성문(洛城門)에서 애도을 거행하였다.<ref name="신라-661"/>
         * 굉장한 대가로, 《삼국유사》에는 한 끼 사로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으며, 백제를 멸망시킨 경신년(660년) 이후로 점심은 먹지 않고 아침과 저녁만 먹게 되었는데, 그러고도 하루에 먹는 양은 쌀 여섯 말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고 한다.<ref name="유사-기이1"/>
         《삼국사기》는 태종 무열왕의 무덤이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있다고 기록하였으며, 지금의 경주시 서악동 842번지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소재한 서악리 고분군의 다섯 고분 가운데 가장 아래에 위치한 원형봉토분이 태종 무열왕의 능으로 비정되고 있다. 봉분의 면적은 14,169m<sup>2</sup>로, 신라의 왕릉 가운데 피장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덤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었고, [[1972년]]부터 [[1973년]]에 걸쳐 주변 정비가 이루어졌다. 굴 돌방무덤(횡혈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은 다른 왕릉에 비해 봉분 장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성덕왕]](聖德王)은 태종 무열왕의 명복을 빌고자 [[봉덕사]](奉德寺)를 지었으며,<ref name="유사-성덕왕">《삼국유사》 권제2 기이 성덕왕</ref> [[혜공왕]](惠恭王)은 오묘(五廟)를 정하면서 김씨로서 처음으로 왕이 된 [[미추왕]](味鄒王)과 더불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을 대대로 헐지 않는 신주(世世不毁之宗)로 삼았고,<ref>《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祭祀)</ref> 이것은 [[애장왕]] 2년([[801년]])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만 따로 떼어 모시는 사당을 지어 신주를 옮길 때까지 계속되었다.<ref>《삼국사기》 권제10 신라본기 제10 애장왕 2년(801)</ref> 9세기 중엽 신라의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郞慧和尙白月普光塔碑)』([[890년]]경 건립)에서 무열왕의 8세 손으로 당에 유학하여 불법을 배우고 돌아온 승려 [[낭혜화상]]의 행적과 무열왕의 업적을 교차대비시켜 "이때(태종 무열왕의 입당 후 귀국)부터 우리는 한 번 변하여 [[노나라]]가 되었다(自玆吾土一變至於魯)", "두 적국(敵國)을 평정하고 문명에 접하게 하여 주셨다(平二敵國俾人變外飭)"고 하여 태종 무열왕이 신라 국내의 제도를 당풍으로 개편하여 '문명화'시키고, 당시 신라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적국으로 여겨지던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여 평화를 가져왔다고 찬양하였으며, 또한 [[진성여왕]] 7년([[893년]])에 당의 태사시중에게 보내는 글에서 옛날 고구려와 백제의 강성함과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그 직후 무열왕이 당으로 들어가 수교를 맺고 원병을 청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과 이후 고구려의 유민들에 의해 세워진 [[발해]]와 당, 신라의 충돌 등의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3백여 년 동안 한쪽 지방은 무사하고 넓은 바다가 편안한 것은 곧 우리 무열대왕의 공로"라고까지 평가하였다. [[고려]]나 [[조선]]의 유학자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인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고 민지배하에 놓이면서, 기존의 한국 역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태종 무열왕은 외세를 끌어들어 민족사적 강역을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을사늑약]]을 비판하여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기고하기도 했던 [[장지연]]은 김춘추가 당병을 이끌어 동족(백제와 고구려)을 친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국 역사는 천여 년을 외국의 사상에 이끌려 다니며 자국의 위풍을 멸하고 타인의 위세가 늘어나게 되었다고 비판하였고 이것이 한국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 요인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ref>"新羅武烈王及金庾信이 能討滅麗濟고 統合邦土니 其 功烈이 可謂嵬矣나 驅唐兵而狀吾同族이 豈足謂能事哉아 因此而啓千餘年依賴外國之思想야 滅自國之威風고 增他人之勢力니 嗚乎라 此ㅣ 依賴之癮이 所以爲不能團合之第三病根也오." [[1906년]] 11월 25일자 《대한자강회월보》 제5호, 「團體然後民族可保」</ref>
         [[신채호]]는 민족주의적 견지에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다 똑같이 '신성한 부여족', 즉 '조선 한민족의 형제'라 부르며, 당과 손을 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친 김춘추(태종 무열왕)의 행동을 “도적을 끌어들여 형제를 죽인” 격으로, “다른 민족을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 백제를 없앤 역사의 죄인”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특히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4천 년간의 민족사는 [[부여족]] 소장성쇠(消長盛衰)의 역사라 하여 [[부여족]]이 주족이라는 인하에 긍정적으로 평가되던 ‘[[삼국통일]]’의 대업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비판해 [[김유신]](金庾信)·[[김춘추]](金春秋) 및 [[김부]](金富軾)의 공죄(功罪)를 논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 체계를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보았기 때문이다.<ref>신채호, [[:s:ko:독사신론#제9장 김춘추의 功罪|〈독사신론〉 제9장 김춘추의 功罪]] 《대한매일신보》</ref>
         해방 후에도 이러한 인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한국]] [[민속학]]의 원조이기도 한 [[손진태]]는 [[김유신]]이나 [[김춘추]]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족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민족과 연맹하는 것은 민족적으로 최대의 죄악"이며, 신라가 당과 손잡은 것을 "귀족 국가의 비민족적 본질"이라 비난하였고,<ref>〈한국민족사개론〉, 1948년</ref>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편찬한 <한국역사>(1992)는 '통일'이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그 통일의 '불완전함'과 '남북국 시대'라는 그 다음 시대의 성격을 강조했다.
         [[1993년]] [[성균관대학교]]의 김영하 교수는 [[천리장성]]의 예를 들어 축소된 강역으로 [[만주]]의 요동땅을 밟지못하고 고토를 잃고 살다가 [[조선]]에 와서야 겨우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를 내놓으면서 당의 [[한반도]] 경략에 발맞추어 외세와의 공조로 [[백제]]만을 겨우 정복한 [[신라]]는 "통일을 완수할 힘도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고 '통일신라 시대' 대신에 '신라와 발해' 내지는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신라의 '삼한통일', 나아가 그것에 처음 불을 당긴 김춘추의 대당 사대 외교에 대한 비판에서 주된 쟁점이 되는 것은, 과연 김춘추가 활동할 당시 혹은 그 이전에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사이에 서로를 '동족'으로 인하는 관념이 존재했느냐 하는 것이다.
         《[[구당서]]》 등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이 서로 말과 풍속이 같았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를 '동류'로 파악하는 의이 있었을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부여]] 계열인 고구려, 백제<ref group="주">토착세력은 [[삼한]] 중 [[마한]] 계열</ref>와 [[삼한]](三韓) 중 [[진한]] 및 [[변한]]([[가야]]) 계열인 신라는 시조 신화나 제사, 정치 체계 및 혼인풍속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었고, 특히 수백년에 걸쳐 계속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특화된 이질성과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적대감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다. 4세기 백제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는 당시 백제와 대립하고 있던 고구려와 연대했지만,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5세기 후반에는 다시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서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나제동맹 역시 552년 한강 유역을 둘러싼 갈등으로 파탄났으며, [[554년]] 백제의 [[성왕]]이 신라의 매복에 걸려 전사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642년]] 김춘추와 연개소문 사이의 교섭은, 신라에게 [[죽령]] 이북의 [[한강]] 유역 전체를 내놓고 현재의 [[영남]] 지역에 국한된 약소국으로 남기를 요구하는 고구려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한강 유역<ref group="주">현재의 [[경기도]], [[강원도 (남)|강원도]] 및 [[충청북도]] [[충주]]권</ref>을 잃으면 패망을 면할 수 없다는 신라 지배자들의 인이 타협의 여지 없이 상충되어 결렬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에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춘추의 선택은 그가 현대 [[한국인]]이 아닌 고대 [[신라]]인, 그것도 신라의 지배자였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하는 바탕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사방의 적에 둘러싸여 궁지에 몰리자 [[당 태종]]의 고구려 정벌 정책에 편승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전쟁의 결과로 당시 신라인들은 수백년간 지속된 전쟁 상태의 종, [[백제]] 영토의 흡수, [[당나라|중국]] 신문물의 수입에 의한 [[중화]] 개혁 등 신라의 국가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고구려]] 영토 역시 근·현대의 [[민족주의]]적 관점과 같은 인이 없었던 고대의 신라 지배층에게 있어서는 땅을 상실하기는 커녕 [[대동강]] 이남 지역(현재의 [[황해도]])을 신라가 획득함으로써 영토를 확장하는 성과를 낸 것이었고, 당대 최강 국가인 [[당나라]]를 상대로 한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다만, 이러한 냉정한 평가는 김춘추가 [[한민족]]사의 영웅이라기보다 중요 인물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본질과 한계를 재확인시켜 준다.
         * [[김부]],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신라본기 선덕왕~태종무열왕〉 - [[:s:삼국사기|위키문헌 번역본]] /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 국사편찬위원회 번역본]
         * 신형, 《武烈王權의 成立과 活動》(韓國史論叢 2, 1977)
         * 김태,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김영사, 2002)
  • 추미애 . . . . 26회 일치
         ||<#1870B9> '''{{{#FFFFFF 학력}}}''' ||<(> [[경북여자고등학교]] {{{-1 ([[졸업]])}}}[br][[한양대학교]] {{{-1 (법학 / [[학사]])}}}[br][[연세대학교]] {{{-1 (경제학 / [[석사]])}}} ||
         ||<#1870B9> '''{{{#FFFFFF 약력}}}''' ||<(> 제24회 [[사법시험]] 합격[br][[춘천지방법원]] [[판사]][br][[광주고등법원]] 판사[br][[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br][[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교수[br][[민주통합당]] [[최고위원]][br][[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
         ||<#1870B9> '''{{{#FFFFFF 링크}}}''' ||<(> [[http://www.choomiae.com/|공 사이트]], [[https://twitter.com/choomiae|트위터]] ||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 [[1971년]] 대구남산초등학교 졸업
          * [[1974년]] 구남여자중학교[* 현 구남중학교] 졸업
          * [[1977년]]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 [[1981년]] [[한양대학교|한양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1982년]] [[한양대학교|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과정 수료)
          * [[2001년]]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 [[2005년]] [[세종대학교|세종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2007년]]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수료
          * [[2004년]] ~ [[2006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 교수
          * [[2006년]] ~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 교수
          * 2017년 [[더불어민주당]]의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때는 [[아재개그|줌마개그]]를 선보였다. 호남권 경선 대회 때 개표 발표를 맡았던 [[홍재형]]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은 후보의 이름이나 총 득표율을 잘못 말하는 실수를 여러번 하였다. 이에 이름이 잘못 불리워진 후보 측에서 반발이 생기자 이후 충청권 경선 대회 때 자신의 말 실수를 공 사과했다. 이후 추미애는 홍재형 위원장의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달라고 말하며 "제 이름을 거꾸로 하면 애미가 되겠지요?"라는 농담을 했다(...).
  • 토리코/383화 . . . . 26회 일치
          * 어찌된 일인지 죠아의 구르메 운을 담은 공격은 스타준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 완전체가 된 아카시아의 욕은 무수히 많은 왕만찬이 되어 지구 곳곳에 쏟아진다.
          * 미도라의 등장. 왕만찬을 소멸시키며 아카시아와 대면한다.
          * 네오를 포하는데 성공한 아카시아는 마침내 자신의 욕을 손에 넣었다며 흥분에 떤다.
          * 페어는 스스로의 욕을 먹어치운 육체는 결국 붕괴할 것이라며, 죽을 거라고 말하는데 아카시아는 태연하다.
          * 그러나 스타준은 구르메 욱이 담긴 공격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 죠아는 어째서 자신의 운 공격이 먹히지 않았는지 경악하며 스타준은 "너의 운이야 말로 내가 찾던 재"라 말한다.
          * 니트로 사이에서도 동족 포은 금기였지만 그렇게 해서 세포의 힘을 끌어낼 수 있었고 그 힘으로 방금 전과 같은 "암기"를 쓸 수 있었다.
          * 그는 유언처럼 자기들 욕은 모두 "힘"의 노예이며, 그 레드 니트로의 힘을 사천왕들에게 쏟아부었으니 그 힘만 다룰 수 있다면 몇 십 배로 강해질 거라고 말한다.
          * 그말을 듣고 토리코가 놀라며 몸을 일으키는데, 치치는 자신들은 어차피 욕이며 언젠가 누군가의 욕으로 부활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뒤를 부탁한다.
          * 그 비란 아카시아가 완전체가 되는 순간 뿜어져 나간 욕의 비.
          * 대기로 날아간 욕들이 무수히 많은 "왕만찬"이 되어 내리는 것이다.
          * 아카시아가 지구를 먹어치우겠다고 선언하며 왕만찬의 비가 쏟아진다.
          * 왕만찬의 비는 기압돔 위로도 떨어진다. 마지막을 각오하는 세츠노.
          * 하늘을 매웠던 왕만찬들이 일제히 사라진다.
          * 미도라는 "비리비리한 욕"이라며 다이어트 중이냐고 조롱하고 아카시아는 "벌이라도 받으러 왔느냐"고 받아친다.
          * 치치는 동족포을 거듭해서 힘을 얻었음이 밝혀졌다. 정황으로 보면 맛의 선인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으로 보통 레드 니트로 이상의 힘을 얻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 치치는 토리코에게 "모든 레드 니트로의 힘을 넘겨줬다"고 하는데 그만큼 많은 레드 니트로를 포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 GOD를 제외한 풀코스를 완한 미도라. 정황한 센터도 먹었을 걸로 보인다.
          * 스타준과 토리코의 형제관계가 공언급됐다.
  • 우현(배우) . . . . 25회 일치
         [[1964년]]생으로 대표 [[노안]]배우다.[* 이 노안 얼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아내를 딸로, 아들을 손자로 본다"고 자주 언급한다.]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로는 [[안내상]][* 과 동기인 데다가 30년지기 절친한 친구이다. 그야말로 평생가는 친구. 다만 유난히 둘 사이가 튀었는지, 안내상의 아버지는 둘이 [[동성애]]를 한 줄 알고 헤어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현의 말로는 함께 젊을 적부터 학생운동도 하고 어울리고 했으나, 안내상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에 튀기에 좀 '그랬다고'(?) 한다.]과 [[이대연]]이 있고, 다른 동갑 연예인은 [[한석규]]와 [[이선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노안 문제는 한국을 벗어나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이 분이 '''[[키아누 리브스]]'''와 동갑이라는 점이다!! ~~뭐?~~ 키아누 리브스가 미치도록 동안인 것도 맞다. 저 둘을 누가 동갑내기 친구라 믿겠는가?] 닮은 꼴로 [[골룸]], [[요다]][* 실제로 <유자 상팔자>에서 우현의 얼굴에 요다 CG를 붙인 적이 있다.], 통아저씨 [[이양승]], 전 국회의원 [[조순형]]이 거론된다.
         사진 왼쪽에 [[태극기]]를 들고있는 사람이 우현이다.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의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여담으로 가운데에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청년이 정치인 [[우상호]]이다. 우상호 의원 회고에 따르면 저 당시 [[4.13 호헌조치]]로 투쟁 분위기가 무르익자 집행부가 단이냐 삭발이냐 선택하기로 했는데, 우현은 머리를 밀고, 본인은 단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상호 의원이 우현의 머리칼을 직접 밀어줬다고. 참고로 우측에 안경을 쓴 채로 고개를 숙인 사람이 [[안내상]]으로 오인받고 있는데, 안내상이 아니다.[* 우상호의원의 말에 의하면 안내상은 당시 집행부가 아니라 지하에서 암약하던 실행부였다고 한다.]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를 졸업했다. 이로 인하여 2016년 우현이 1:100에 출연할 때 100인 중에 김천대화오일뱅크주유소 학생들이 초청되었고, 그 중 한 학생은 우승까지 했다! 재학 중 학생운동을, 그것도 운동 최전선에서 움직이던 간부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행했다. 그래서 옥살이만 2번을 해서 소집제외되어 군[[면제]].[[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2078/read?articleId=20656465&nil_id=14&objCate1=497&bbsId=G005&t__nil_ruliweb=best&itemId=143&t__nil_ruliweb=best&nil_id=14|#]] 학번상 [[6월 항쟁]]의 선봉에 섰는데,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이한열]] 열사 최루탄 사망사건 항의 집회에서 최선봉에 섰기 때문에 [[타임지|미국 시사잡지]]의 1면 메인을 장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회장이 이미 그전에 잡혀간 뒤라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여, 다른 간부였던 우현이 선두에서 지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1987년]] [[6월 항쟁]]에 최선봉에 섰던 우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영화 [[1987(영화)|1987]]에서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 역할로 등장했다.
         90년대 신촌에서 '지리산'이라는 주점을 운영하였다. 앞서 언급된 [[타임지]]의 사진이 떡 하니 걸려 있던 술집. 당시 병맥주 전국 최저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저렴한 술값의 주점이라 학생들, 특히 동문인 [[연세대학교]]의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찾던 술집이었고, 사장인 우현을 비롯해 절친인 [[안내상]]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처음에는 운동가요만 틀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하자고 전략을 바꾸었고, 안주값을 천 원씩 받고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였다. 한 번은 겨울에 1주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손님들과 같이 놀면서, 큰 점퍼에 받은 술값들을 쑤셔넣으며, 문닫을 때가 되면 그냥 술집에서 바로 자고 일어나 다시 장사하고 하면서 생활을 해봤다. 1주일 뒤에 주머니나 바지속(?) 등 곳곳을 뒤져서 돈을 꺼내자, 500만 원이 넘게 돈이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배우 안내상도 자극을 받아 주점을 운영했다. 2003년까지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친구인 [[안내상]]과만 몇 번 출연하다가 [[JTBC]] [[유자 상팔자]]에서 가족과 함께 출연한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능에 진출했다. 본래 예능 울렁증이 있다 보니 우현보다는 가족들의 활약이 대단했었고 빵빵 터졌지만, 어느 정도 예능을 하다보니 본인도 평타를 치기 시작했다. 또한 극초반에 드라마 촬영 일정 때문에 아내와 외아들만 출연하다가, 잠깐 하차했다가 다시 매주 고정출연 중이다. 그 후 장모님이 타계 후 잠깐 쉰 적이 있지만, 그 후에도 프로가 종영할 때까지 꾸준히 참여하였다.
         [[무한도전]]에 출연 직후 순간에 대세 스타로 되었다. 무한도전 출연 직후에 MBC FM4U <굿모닝 FM [[전현무]]입니다>에 출연했고, <라디오스타>에서도 게스트로 출연했다.
         하지만 그 후 [[유자 상팔자|고정 출연 프로]]가 종영되면서 예능 출연 빈도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2016년 7월말 이후로는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다.
          * [[너를 사랑한 시간]](2015,SBS) - 변우
          * [[유자 상팔자]](jTBC, 2013년 ~2016년) - 가족과 함께 고정출연.
         아버지가 [[의사]]면서 병원 원장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자랐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용돈도 현금 300만 원을 가지고 있지만 다 쓰지를 못 했다. 어릴 때부터 쭉 소고기나 장어 등 당시엔 쉽게 먹기 힘든 음들을 자주 먹었고, 막상 감자탕이나 순대, 삼겹살 같은 음은 대학에 들어와서 친구나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특히 삼겹살을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있다니"라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습관 때문인지 [[편]]이 굉장히 심하다. [[잘 먹는 소녀들]]에 의하면 [[닭발]], [[족발]], [[곱창]]을 못 먹는다고 한다. 후에 [[잘 먹겠습니다]]에서 자신이 먹지 못한 곱창 먹기를 시도하였고, 성공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편]] 습관은 아들 준서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유자 상팔자>에서 보면 해산물이나 가지 등을 못 먹는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 먹기는 했다.]
         본래 가족과 방송 출연은커녕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그나마 아내는 인터뷰나 [[라디오스타]] 등에서 자주 언급했었고 부부가 영화 동반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유자 상팔자]] 계기로 온 가족이 방송에 출연했다. 하지만 출연 후에도 아내는 방송에서 자주 모습을 비추는 것에 비해 아들은 고정 프로그램인 <유자 상팔자>와 [[무한도전]]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잠깐 출연한 것 이외의 다른 프로그램에는 전혀 출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내상]]이 그런 얘기를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현이 아내를 잠시 포기하다가 오히려 아내 쪽에서 마음을 바꾸게 되어 사귀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되자 우현의 진심이 통해 아내가 마음을 열게 된 것을 안내상 역시 진심으로 기뻐하며 관계가 깊어질 수 있게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위 내용은 안내상 중심에서의 이야기며 부부 중심의 러브 스토리는 라디오스타나 유자 상팔자에서 나오니 알아서 찾으시길.]
          * 또한 현재 사는 아파트 말고도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에서도 주택이 있으며, 실제로 가족들과 3여 년간 살았었다. <유자 상팔자>에서 김천에서 살게 된 이유가 밝혀졌는데, 주유소들이 학교 생활을 힘들어해서 장모님의 추천으로 아들의 정신 건강을 치료할 겸 진도에 내려와 집을 지었다고. 가족들은 김천에서 지냈고, 본인은 일 때문에 [[대구]]과 진도를 오가면서 살았었다.[* 때문에 몇 년간 주말부부로 지내야만 했고, 주변에서는 "이혼한 거 아니냐"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그 진도 집은 [[동물농장]] 견스테이와 유자 상팔자 특집 코너[* 대표적으로 아빠, 삼시세끼를 부탁해! 코너. [[홍서범]] 과 함께 코너를 진행했다]를 진행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셀프카메라에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송일국]]의 차남 민국이와 상당히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민국이가 후에 우현이 되는 게 아니냐"며 드립이 성행하는 중. 또한 아들의 아기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상당히 아빠와 [[붕어빵]]이었다.[* 사실 <유자 상팔자>에서도 공개된 내용인데, 당시 우준서는 사진을 공개한 내내 상당히 좌절했고, 본인은 조기관리에 들어가겠다고 당돌하게 발언하였다. 이때 밝혀진 것인데, 아기일 적의 엄마와도 닮았다고 한다.]
          * [[유자 상팔자]]나 [[비정상회담]]에서 밝혀진 유명한 일례로, 대학생 시절 때 [[이탈리아]]로 혼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피렌체]]의 어느 골목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런데 당시 우현의 몰골이 얼마나 초췌했는지, '''소매치기범이 도리어 우현을 불쌍하게 여기고 훔친 지갑을 다시 돌려줬다고 한다.'''
          * 아들을 위해 착한 [[야한 동영상|야동]]을 만들어주고 싶어한다고 한다. 내용은 최소한 건전하면서도 짜릿한, 결말은 정의가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정작 당사자인 아들은 '세상에 착한 야동이 어딨냐'며 황당해했고 매우 부끄러워했다. 참고로 당시 아들은 막 [[중학교]]에 진학하는 시기였다.
  • 윤식 . . . . 25회 일치
          | 이름 = 윤 <br /> 禾中 尹埴
          | 경력 = [[국민대학교]] 교수 <br /> [[서울대학교]] 강사 <br /> [[인하대학교]] 강사 <br /> [[홍익대학교]] 강사 <br /> [[국방대학원]] 강사 <br /> [[경기대학교]] 강사 <br />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br /> 사단법인 4월회 회장
          | 학력 = [[베일러 대학교|미국 베일러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윤'''(尹埴, 1939년 4월 9일 ~ )은 대학 교수를 지낸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다.
         * [[경북고등학교]] 졸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정치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 미국 [[하와이 대학교|하와이 주립 대학교 대학원]] 농업토목학과 농학석사
         * 미국 하와이 주립 대학교 대학원 자원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 미국 [[베일러 대학교|베일러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국민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학과장 및 학생처장 역임)
         *서울대학교, 인하대, 홍익대, 경기대, 국방대학원 강사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파평 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하와이 대학교 동문]][[분류:베일러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
  • Victoria II/개혁 . . . . 24회 일치
          * 훈련 방
          * 현지 훈련 방: 병사들이 전통적인 방으로 훈련 받는다.
          * 해외 훈련 방: 병사들이 서양인 군사고문에게, 혹은 서양으로 훈련 받는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s-3.1|수발 소총]] 연구 획득
          * 군사학교: 장교들은 전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기 전에 잘 훈련 받는다.
          * 해군학교: 이론부터 배운다.
          * 오래된 방 고수
         문명국의 경우 POP들의 의도가 오르면서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만약 개혁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해당 개혁을 지지하는 POP들의 투쟁성이 증가하다가 결국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POP들이 개혁을 원하면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정치 체제, 경우에 따라서는 의회 구성원들의 지지가 있어야 개혁을 할 수 있다.
          * 교육체계 없음: 공립학교 없음
          * 기초적인 교육체계: 많지 않은 공립학교
          * 괜찮은 교육체계: 흔한 공립학교
          * 좋은 교육체계: 아주 많은 공립학교
          * 한 주에 두 표: 각 주마다 두명의 상원의원을 대표자로 두게한다. 현대의 미국이 이런 방이다.
          * 돈트: 각 정당의 득표수를 정수로 나누어 가장 수가 큰 정당부터 의석을 배분받는 비례대표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29735&cid=42140&categoryId=42140|#]]
          * 정치 인도 +100%
          * 자율이 의도에 미치는 영향 -25%
          * 정치 인도 +25%
          * 정치 인도 +50%
          * 자율이 의도에 미치는 영향 +25%
  • 김재박 . . . . 24회 일치
         || '''학력''' || 대구초-경북중[* 현 경운중]-[[대광고등학교 야구부|대광고]]-[[영남대학교|영남대]] ||
         이런 팬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경기운영위원장이 되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17&aid=0002721631|소]]이 들려오면서 팬들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거기에 개막 3일째인 4월 3일, 한화-LG와의 경기를 비가 그쳐가고 있는데 경기장 불량으로 취소를 해버려서 일요일 낮경기를 날려버린데다가 정작 경기시작시간인 2시에는 비가 그쳐버리면서 [[http://m.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2913861|욕을 더 먹고있다]]. 결국 KBO에서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10&aid=0000318562|기사]]가 떴다.
         하도 여론이 안좋아서 김재박이 술을 즐겨 술자리에 참석하기 위헤 우천취소를 시켰다거나, 강제우취시키고 관계자들과 회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야알못이 간다에서 자신은 술을 못하고 술자리 회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구광역시]] 토박이이지만 딱 한 번 대구를 떠난 적이 있었다. 경운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경북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구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체가 작았던 김재박은 [[경북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서울에 있는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대광고등학교]] 자체는 건재하지만 야구부는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박도 존재한다. [[김인]]감독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025078|“기술적으로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하며 대표팀 발탁에 반대한 만큼 [[추신수]]의 대표팀 탈락은 김재박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었으며, 당시 대표팀에 최종선발된 외야수는 [[이병규]], [[이용규]], [[이진영]], [[이택근]], [[박재홍(야구)|박재홍]] 총 5명으로 [[김인]]감독의 말대로 모두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외야수들로서, [[추신수]] 대신 이들이 대표팀에 선발된것이 대표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못한 반박으로서, 당시 추신수는 AAA에서 OPS .893 메이저리그에서 OPS .812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으로 온 어떤 용병타자보다 좋은 기록이었으며, 리그의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OPS만 비교한다 해도 이택근을 제외한 다른 국가대표 외야수들보다 OPS가 더 높았다. 명백히 급이 다른 선수를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뽑지 않은것이 맞다.
          * 선수 시절인 1986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장에서 시상자인 여배우 [[이보희(배우)|이보희]]가 유격수 수상자인 김재박의 이름을 김재'''전'''이리고 부른 해프닝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JTP7yPasIpg|해당 동영상]]).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이 사건 이후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이던 이보희는 [[두뇌풀가동|무하다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한자는 잘못 읽을 수도 있다. 문제는 김재박 선수가 너무나, 너무나 유명한 선수였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관심이 적은 스포츠 분야라고 하나, 시사 상에 어두운 것, 게다가 자기가 나가는 행사에서 수상자 이름까지 몰랐다는 건 욕 먹을 만한 일이다. 나중에 선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바뀐 뒤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5&no=8203959&page=1|창단 팀과의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대광고등학교 야구부, 영남대학교 야구부, 한국화장품 야구단 모두 창단된 팀이었고, [[MBC 청룡]]도 후반기 13경기 뿐이지만, 프로야구 원년에 경기에 활약했다. 그리고 감독도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 1998년 5월 14일 해태전, [[이대진]]이 10타자 연속 [[삼진(야구)|삼진]]을 기록하고 있을 때 11번째인 4번타자 [[김경기]]에게 [[번트]]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기록지에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된 것으로 나오고[* 번트였다면 유격수 땅볼아웃이 될 리가 없다.], 야구의 추억이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은]]은 이대진을 주제로 한 칼럼에 번트를 댔다는 내용을 썼지만 후에 이대진과의 인터뷰에서 "갖다 맞추려는 스윙을 했지 번트는 아니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경기 영상의 부재와 '''김재박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사건.''' 이미 10타자 연속 삼진을 당했는데 11타자 연속 삼진 막는다고 얻을 것도 없다. 그런 것은 상대방을 도와주는 꼴이다. 매경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신기록을 체크하며 경기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 2005년 [[KBO 올스타전]]은 [[장종훈]] 선수생활 마지막 [[올스타전]]이었는데, 당시 장종훈을 계속 기용하지 않다가 9회 마지막 투아웃 이후에, 그것도 원스트라이크 이후에 선수들과 팬들이 웅성거리니까 그제서야 마지못해 내보냄. 이 부분은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다. 2005년 올스타전은 장종훈 은퇴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장종훈이 대타로 나간 타석은 본래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의 타석이었다.[* 조인성이 빠지면 감독추천이었던 [[신경현]]이 포수 마스크를 썼어야 했는데, 당시 [[신경현]]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다.] 당시 중계화면을 보면 김재박 감독도 옆에서 말하기 전까지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머쓱 웃으며 출장을 지시하는데, 그 표정이나 상황이 아무리 봐도 '마지못해서'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 경기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KBO 역사의 한편을 장한 거포를 은퇴임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리고' 출전시키지 않은 것도 '마지못해' 내보낸 것 이상으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런데 당시 기사에는 조금 다르게 적혀 있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99326.htm|원문은 여기]]
  • 식극의 소마/222화 . . . . 24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1화]] |||| '''극의 소마/222화''' |||| [[극의 소마/223화]] ||
         [[극의 소마]] 222화. '''지키고 싶은 것'''
          * 그 말을 들은 [[나키리 에리나]]는 그가 뛰어난 인물이긴 하나 아군으로 끌어들이긴 어려울 거라며 그가 "극 혐오 요리사"라고 알려준다.
          * [[나키리 아자미]] 정권의 마수가 이곳에도 뻗혔기 때문. 아자미는 "파트너 십"이란 명목으로 홋카이도의 당들을 포섭, 자기들 수중에 넣고 있다.
          * 메기시마는 소마와 메구미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고 힘을 빌려달라는 부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애초에 극도 싫고 십걸이란 자리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 소마가 힘을 빌려주면 자신이 1석이 되어 라면계를 부흥시켜 준다고 택도 없는 소릴하는데 메기시마가 "입만 살았다"고 대꾸하자 극으로 증명하겠다 나선다.
          * 그 열의에 감복한 메기시마가 마침내 생각을 바꿔 연대극 참가를 표명한다.
          * [[나키리 에리나]]는 방금 전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한 말을 쌩뚱맞게 여긴다. 연대극 참가자를 순조롭게 모집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멤버 [[메기시마 토시케]]에게 거절 당하고 말았다. 그를 꼭 동료오 넣고 싶었던 소마가 전화로 거절 당하는건 납득할 수 없다며 그를 방문해서 다시금 동료권유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메구미도 같은 생각. [[잇시키 사토시]]가 전해준 정보로는 메기시마도 홋카이도에 와있다. 진급시험 때문은 아닌 듯 하지만 무슨 사정이 있다고 한다. 마침 거리도 가깝다.
          >극 혐오 요리사.
          * 아사히카와 시내. 이곳에 메기시마가 머물고 있는 라면가게가 있다. 소마와 메구미가 도착했을 땐 사람들이 몰려 당 입구까지 미어터졌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 손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친 그 사람들도 두 사람을 발견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토오츠키 학원 교복. 이게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같다. 곧 두 남자가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밀며 "적이 보낸 놈들"이 아니냐고 위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해요를 연발하는 메구미. 소마가 그녀 앞으로 나서서 대처한다. 그들이 말하는 "적"이란 누구인가?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들이 건네준 신문에는 척봐도 [[나키리 아자미]]가 흉계를 펼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진정한 미가를 표방하는 그 원칙을 대외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진급시험이 진행됐던 홋카이도가 그 시작점이었다.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십"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대고 실제로는 각 당들을 센트럴이 정한 원칙에 따라 요리하게 시키고 있다. 거부할 경우엔 유통루트에 손을 대서 자재를 납품 받는 것 조차 막는다. 이런 횡포로 인해 벌써 폐점의 위기에 처한 점포가 부지기수. 듣고보니 소마도 짚이는 구석이 있다. 전에 [[츠카사 에이시]]가 그렇게 말했다.
          * 메기시마는 한 번 분명히 거절한 이야기를 다시 끌고 온 소마 일행이 못 마땅했다. 그는 연대극이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 못박았다. 메구미가 그도 무관한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도 3석 자리를 뺏기지 않았던가? 여기서 이기면 그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메기시마의 태도는 시큰둥. 그는 본래부터 자신은 승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토로했다. 토오츠키에 들어간건 그저 최고의 요리학원이라 해서 그랬던 건데, 막상 들어가니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승부 타령.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거절했지만, 몇몇 끈질기게 달라붙는 녀석들과 극을 하긴 했다. 3석이란 결과는 그래서 얻은 것. 자신이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소마는 그것도 굉장하다 여겼지만 정작 당사자는 번잡스러워했다. 이제 그런 건 질색인 데다, 요리사가 승패를 논한다면, 그건 손님을 얼마나 기쁘게 했냐로 쳐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연대극에 참전해 주면 제가 십걸의 1석을 따서
          말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메구미가 듣기에도 그랬다. 애초에 실력면에서 보면 연대극에 승리했을 때 제 1석은 메기시마의 차지였다. 그렇게 지적하자 소마는 "그럼 그때는 메기시마 선배도 쓰러뜨린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메기시마는 이제 불쾌해졌는지 극도 싫지만 "입만 산 녀석"은 더 싫다며 등을 돌려버린다. 그가 이정도로 의사를 드러내는데 소마는 돌아갈 의향이 없다. 그가 자신의 힘을 실제 시험해 보지 않으면 입만 산 건지, 진짜배기인지 모르지 않겠냐며 승부를 청한다. 자신이 메기시마보다 맛있는 라면을 만들면 그 증명이 될 거라면서. 물론 이것도 메기시마에겐 "입만 산 녀석이란 증거"나 다름 없었다.
          >약속하지. 그 연대극에서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이유리(배우) . . . . 24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데뷔}}}'''||<(> [[2001년]] [[KBS]] 드라마 [[학교 4]] ||
         ||<:><bgcolor=#353535>'''{{{#white 외부 링크}}}'''||<(> [[http://the-jun.com|공]] [[https://www.instagram.com/LEEYURI007/|[[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width=24]]]]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인 KBS의 학원물 [[학교 시리즈]] 《학교 4》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으나 이 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출중한 외모와 안정된 연기력에 비해 소위 '뜨지 못하는' 연예인으로 많은 사람의 아쉬움을 샀으나 꾸준한 연기활동 끝에 2014년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을 통해 독보적인 악녀 연기를 선보이면서 대박을 쳐 주인공보다 더한 인기를 얻으며 2014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이후 활발한 연기 활동과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으로 커리어를 꽃 피우고 있는 '''대기만성형 배우'''. 다양한 스펙트럼과 본인만의 색깔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353535> '''{{{#FFFFFF ▲ 드라마 '학교 4' 中}}}''' ||
         독립영화 또는 단막극 등에서 조단역으로 연기경력을 쌓아오다가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자 많은 정상급 배우들을 배출해 낸 [[2001년]] [[학교 시리즈]]의 《[[학교 4]]》에서 미대 입시생 '박서원'으로 정 데뷔했다. 극 중 이유리는 삐죽삐죽 솟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대변되는 반항적이고 강한 이미지와 출연자 중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펼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녀는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발돋움 하면서 당시 23살의 나이로 청소년 연기상을 수상한다.
         학교 4 시즌 후반부였던 [[2002년]] 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 캐스팅되어 허약한 [[순종(대한제국)|순종]]의 첫 번째 아내인 [[순명효황후]] 역할을 맡았다. 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반항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기울어가는 왕조의 가련한 세자빈으로 분해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였다. 여담으로 《명성황후》에 캐스팅됐던 시점이 《학교 4》가 막 끝나던 시점이라 이유리뿐만 아니라 같이 나왔던 몇몇 연기자도 캐스팅이 됐다. 그 중 나름 커플 연기를 펼쳤던 김유민 역의 [[백승우]]가 《명성황후》에서 순종으로 캐스팅 되어 연달아 커플 연기를 했다.
         같은해 2002년 [[S.E.S]] 출신 [[유진(배우)|유진]]의 본격적 연기 데뷔작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KBS 드라마 《[[러빙유]]》에서 생애 첫 악역이었던 '조수경'역으로 출연했다. 그녀는 극 중 제주도 해녀인 '다래(유진)'의 중학교 동창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천사표로 동창인 다래를 몹시 위하는 듯 보이나 다래가 '혁([[박용하]])' 을 구한 증표인 프레임바를 훔쳐 마치 제 것인냥 공을 가로채려는 등의 각종 악행을 저질러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 안티가 급증하는 등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 후 KBS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왔다. 사실 《학교 4》 출연 배우들은 KBS와 2년 전속계약을 맺어 이유리는 이후로도 계속 출연했는데 그것이 거의 공무원 수준이었다. 또 이 시점에는 《학교 4》 출신이었던 [[공유(배우)|공유]], [[임수정]] 등이 굵직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며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에 비해 자신은 조연에 머무르는 처지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줌마1, 학생1, 학생2가 아닌 내 역할의 이름이 있다는 것, 단역 연기자들에겐 그 마저도 꿈이다. 내게 주어진 것만을 더 항상 감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매 순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 후 2004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KBS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서 '안성미'역으로 분한다. 김수현 작가의 가족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복하고 바람잘날 없는 대가족의 막내딸로 현실의 문제를 대변하는 젊은이로 나왔다. 이때부터 소위 '김수현 사단'이라 불리며 김수현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이 후 청춘스타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한 이미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폭을 넓히기도 했지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후 너무 이른 나이에 중장년층에게 어필하는 이미지가 고착된 것이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이유리는 이에 대해 후일 "《부모님전상서》 부터 같이 해서 그런지 기자 분들이 김수현 사단이라고 저를 부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제게 기회를 많이 주신 분이고 연기를 통해 배워갈 수 있게끔 해 준 연기사관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연기자가 한 작가로 인해 이렇게 많은 기회와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행운아 같다."며 생각을 밝혔다.
         2010년 SBS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 타이틀롤 '지순영'역을 맡아 기존의 지고지순한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쾌활한 역으로 또 한번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줌마가 여러 어려움과 역경을 거쳐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고 사랑도 잡는다는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공을 따른 드라마. 이유리는 극 중 톡톡튀고 당찬 연기로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드라마는 아침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지키며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순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영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반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영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3> 2001년 ||<|2> KBS2 || [[학교 4]] || 박서원 || ||
         || 2004년 7월 31일 || MBC || [[행복주회사]] - [[만원의 행복]] ||<|5> 게스트 || ||
          * 데뷔초부터 활발하게 주조연으로 활동했기에 여러 작품에서 만난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있다. 특히 [[이동욱]]이 대표적이다. 우선 학교 시리즈의 선후배 사이이며 《사랑은 이런거야》, 《러빙유》, 《부모님전상서》 총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이유리와 이동욱이 각각 재수생과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나와 커플연기를 펼쳤는데 그로부터 1년 후, 《러빙유》에서 재회했다. 초반에 이동욱이 이유리를 좋아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악녀본색을 내뿜는 이유리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다. 그 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작품이 《부모님전상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게 대가족이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유리는 4남매 중 각각 3호와 4호를 맡았다. 전작들보다 극중 상황이 더 나빠져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현실 남매 연기를 보여주었다.
          * 이유리의 형제관계는 4남매 중 막내로 큰 언니, 오빠, 작은 언니 그리고 이유리가 셋째 딸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은 [[이효리]]가 대표적[* 공교롭게도 이효리의 둘째언니 이름은 이유리 본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 가족의 막내딸이라 곱게만 자랐을 것만 같지만 이유리는 어릴 때부터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랬다며 지나가듯 푸념하면서 구가 많아 어릴 때 [[짜장면]] 같은 걸 시키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탐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이러한 형제관계였다. 허나 실제로 이유리는 1남 3녀 중 막내이고, 극중 변혜영은 1남 3녀 중 장녀이며, 둘째이다. 이유리 실제 형제의 맏이는 여자고, 극중 맏이는 남자라는 것이 차이점.] 10년 전 방송 '좋은 아침'을 통해 작은 언니의 얼굴이 잠시 비춰졌는데 막내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당시 언니는 성경책을 보고있는 동생 이유리에게 "지금 니가 대본을 봐도 모자랄 판에 성경책을 보냐"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이유리가 '만원의 행복'에 출연당시 부모님이 등장했는데 부모님과는 반반씩 얼굴이 닮은 듯하다. 이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 2006년 인기리에 연재된 박소희 작가의 동명의 순정만화가 드라마 《[[궁(드라마)|궁]]》으로 리메이크 된다는 소이 전해지자 네티즌으로부터 주인공 '신채경'역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준수한 연기력과 만화 원작의 신채경 모습과도 싱크로율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여주인공으로는 [[윤은혜]]가 낙점됐다. 이유리는 인터뷰에서 제의를 받았으나 연기자로서 차근차근 한 발을 내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다만 '《[[궁(드라마)|궁]]》의 전작이 바로 이유리가 출연한 《영재의 전성시대》였는데 바로 다음 작품을 출연하는게 말이 안된다.', '제작사는 이유리에게 캐스팅 제의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등을 근거로 들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으나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이유리는 주인공도 아니였을 뿐더러 전작을 했다고 다음 작품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견에 불과하고 제작사에서 캐스팅 제의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 또한 이유리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캐스팅 제의 사실을 분명히 언급했던것과는 달리 출처가 불분명 하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353535><#353535> '''{{{#white 수상 연도}}}''' ||<#353535> '''{{{#white 시상}}}''' ||<#353535> '''{{{#white 부문}}}''' ||<#353535> '''{{{#white 작품}}}''' ||<#353535> '''{{{#white 관련 영상}}}''' ||
         || [[2001년]] || [[KBS 연기대상]] || 여자 청소년연기상 || [[학교 4]] || ||
  • 이준(배우) . . . . 24회 일치
         ||<#878787> '''{{{#EEE156 학력}}}''' ||<(> 대구동평초등학교 [br] [[대구동평중학교]] [br][[영진고등학교]] [[무용]]과 (졸업) [br]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중퇴) [br] [[경희사이버대학교]] 정보통신학과 (학사) [br] [[http://mba.ssu.ac.kr|숭실대학교 경영대학원]] 콘텐츠경영학과 (석사과정 재학) ||
         2014년 10월 13일, 소속사 제이튠캠프와 계약이 종료되어 팀을 탈퇴 후 연기자 활동에 집중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소속사 측에서는 확실히 결정된 부분은 없다며 우선 부인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16일 두 멤버의 탈퇴가 공으로 보도된다.
         빠른 88년생이지만 출생년도에 맞게 1988년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팀내 87년생 멤버인 [[승호]]와 [[지오(엠블랙)|지오]]를 형으로 부른다.[* 출생년도만 봤을때 정상적으로 학교를 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준이 초등학교를 입학했던 당시에는 3월 1일을 기점으로 만6세가 되는 친구들을 함께 입학시킨 것이다. 만일 이준이 정상적으로 학교를 입학했다면 만6세가 되는 1994년에 승호와 지오와 함께 초등학교를 입학했어야 맞다. 즉, 고등학교는 2003년 입학, 2006년 졸업했어야 정상이다. 따라서,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1995년이었다.] 엠블랙 데뷔전에도 가발피팅, 홈쇼핑, 숙취해소음료 광고등 다양한 부분의 깨알같은 경력을 자랑한다.
         현대 무용수 출신이다. 국내 최고 예술대학인 [[영진고등학교]] 무용과 출신이다. 중3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진고등학교]] 졸업 후 [[영진고등학교]] 무용과를 입학하였으나, 이 학교는 졸업전까지는 방송 및 연예활동이 금지 되기 때문에 도중에 자퇴했다.[* 장동건이 한예종에 있던 과거에는 완전불가였으나 현재 연기과는 1학년은 여전히 불가, 2학년 교내작품은 가능(영화과 작품 출연 등) 3학년 교외활동도 가능하다. 무용·음악원은 여전히 금지. 영상·전통·미술원은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한 신경쓰지 않는다.] 워낙 들어가기 힘든 것으로 잘 알려진 한예종을 자퇴했다는 사실이 잊을만하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아예 '''한예종의 위엄'''이라는 유명한 짤방 시리즈가 존재한다. 당초엔 수석입학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일반입학이었다고 정정했다. "왜 그동안 정정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가 낸 소문도 아니고, 좋은 얘긴데 굳이 제가 나서서 정정할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반박할 수가 없다~~
         배우가 되기위해 오디션을 계속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 [[우린 안될꺼야 아마|난 아마 안될거야]] 상태로 제이튠에 오디션을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고 한다.[* 정 데뷔는 2008년에 방송된 MBC시트콤 [[그 분이 오신다]]를 통해 단역으로 데뷔하였다.]2009년 [[닌자 어쌔신]]에서 비의 아역으로 출연하였고 최연소 헐리우드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극 중 대사인 "You shouldn't do that." 을 예능에서 종종 써먹기도 한다. 닌자어쌔씬을 계기로 비와 친해져 방송에서 비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알게 될 수 있어서 시청자들도 호감적인 반응이었지만 방송 분량이 잘리겠다 싶을 때 비의 이야기를 절묘히 꺼낸 것 같다는 이유로 몇몇 시청자들의 비난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끝나면 모르겠는데 1월 23일 경, 팬카페에 '''내가 로봇도 아니고 거짓연기는 더 이상 못 한다. 참을만큼 참았다'''라는 으로 글을 올렸다가 삭제. 이에 대해서 [[우리 결혼했어요|거짓 연기]]라는 게 우결인지 관심이 쏠리는 찰나, 빠르게 소속사에서 해명을 했다. 쓴 글은 이준 본인이 썼으며, 소속사와 차후 활동에 대해서 의견조율이 잘 안되어서 쓴 것 이라고... 결국 우결에서 [[http://news.nate.com/view/20130130n26719|하차]]하여 2월 2일까지만 출연.
         [[김기덕]] 감독과 함께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감독의 오랜 팬이었으며 무명시절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감독에게 메일을 보냈던 등의 이야기를 하였고, 김기덕 감독도 호의를 보여서 김기덕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신연 감독의 [[배우는 배우다]]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사실상 이준이 모두 이끌어가는 원탑 주연의 영화로 기자시사회 후에도 이준의 연기에 호평이 꽤 이어졌다.
         웃을 때 팔자주름이 생기는 것이 특징. 사막여우를 닮았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듯한 솔직한 발언과 백치미스러움, [[정신줄|정줄]] 놓고 망가지는 모습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성격은 매우 소심하다. 막내인 [[미르(엠블랙)|미르]]가 [[천둥(가수)|천둥]]과만 논다고 삐져있다던지... 방송에서는 밝고 명랑한 천연 & 백치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면면을 살펴보면 속이 깊고 생각도 많으며 얌전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녔음을 간파할 수 있다. 방송에선 [[비글]]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말이 별로 없는 스타일. 하지만 의외로 애교도 많다 ~~반오십이후로는 애교부리는것이 민망해졌다고 한다~~ 쉴 때면 거의 잠만 자고 조용해서 멤버들 사이에서 별명이 물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듯하다. ~~멤버들이 예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디스패치]]가 [[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eball_new1&no=3540943|털지 못한 연예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따라다녔지만 라디오스타에서 밝힌대로 정말 김밥천국에서 김치볶음밥만 먹고 나오는 것만 포착했다고. ~~돈 안쓴다더니 사실이었구나?~~ 후에 한 번 더 따라 붙었지만 새우 튀김을 먹고 길거리에서 턴하는 모습만 찍혀 끝판왕 다운 면모를 보였다. [[디스패치]]에서 열애설 특종이 나올 때 마다 그의 김치볶음밥 썰은 전설처럼 다시금 언급된다. 그만큼 화제의 인물로 올랐으나 2018년 1월 1일 새해 첫 날, 해당지에서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정소민]]과 열애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http://www.dispatch.co.kr/1057864|관련 기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소속사에서 열애를 공적으로 인정하였다.
         ||<rowbgcolor=#696969> {{{#ffffff '''연도'''}}} || {{{#ffffff '''시상'''}}} || {{{#ffffff '''부문'''}}} || {{{#ffffff '''작품'''}}} ||
  • 진선유 . . . . 24회 일치
         | 대학교 =
         '''진선유'''(陳善有, [[1988년]] [[12월 17일]] ~ )는 [[대한민국]]의 전 [[쇼트트랙]] 선수이다. 현재 [[단국대학교]]의 [[쇼트트랙]] 코치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확인날짜 = }}</ref> 2007년 [[단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다. 2007년 ISU 세계선수권대회 3년 연속 우승 하였다.<ref>{{뉴스 인용
         이로 인해 [[2011년]] 2월에 참가한 동계체전이 현역 마지막 대회가 됐다. [[단국대학교]]를 졸업하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11년]] [[4월 1일]] [[단국대학교]] [[쇼트트랙]] 코치로 발령받아 활동 중이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009306 쇼트트랙 진선유, 모교 단국대 코치로 새 출발] - 연합뉴스</ref>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졸업)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졸업)
         *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 (졸업)
         * [[단국대학교]] 체육교육과 (학사)
         * [[단국대학교|단국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스포츠마케팅학과 (석사과정 재학)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여양 진씨]][[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 . . . . 23회 일치
          * '''철제 후장 화포''' 기술 연구시 '''{{{#green +2%}}}'''
          * '''후장 소총''' 기술 연구시 '''{{{#green +2%}}}'''
         === Flintlock Rifles(수발 소총) ===
          * '''Flintlock Rifle Armament (수발 소총 무장)'''
          * '''수발 소총 무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Muzzle-loaded Rifles(전장 소총) ===
          * '''Muzzle-loaded Rifle Armament (전장 소총 무장)'''
          * '''전장 소총 무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Breech-loaded Rifles(후장 소총) ===
          * '''Breech-loaded Rifle Armament (후장 소총 무장)'''
          * '''후장 소총 무장'''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Colonial Negotiations(민지 협상)'''
          * '''민지 협상''' 기술을 연구한 국가가 주요 열강일시 '''{{{#green +25%}}}'''
          * '''민지 협상''' 기술을 연구한 국가가 이웃 국가일시 '''{{{#green +25%}}}'''
          * 민지 개척에 요구되는 생활등급 최저선 '''{{{#green -10%}}}'''
         === Bronze Muzzle-loaded Artillery(청동제 전장 화포) ===
         === Iron Muzzle-loaded Artillery(철제 전장 화포) ===
         === Iron Breech-loaded Artillery(철제 후장 화포) ===
         === Steel Breech-loaded Artillery(강철제 후장 화포) ===
          * '''후장 소총''' 기술 연구시 '''{{{#green +1%}}}'''
  • 식극의 소마/194화 . . . . 2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3화]] |||| '''극의 소마/194화''' |||| [[극의 소마/195화]] ||
         [[극의 소마]] 194화. '''대가'''
          * 연대극(레짐 드 퀴진)은 양 진영이 한 명씩 선수를 내 대결, 승자가 계속 싸워 먼저 선수가 떨어지는 쪽이 패배하는 룰.
          * [[사이바 죠이치로]]는 자신이 지면 정집 유키히라를 폐업하고 [[나키리 아자미]]의 부하가 되기로 약속. 아자미는 기뻐하며 받아들인다.
          * 연대극(레짐 드 퀴진). 학생 집단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극 룰이다. 두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 선수를 내보내고 생존한 자들끼리 승부를 반복, 한 쪽 진영이 전멸할 때까지 계속한다.
          [[사이바 죠이치로]]는 "거래재료"는 있다며 [[나키리 아자미]]에게 연대극을 제안한다.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런 룰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편 [[유키히라 소마]]는 대체 아버지가 말한 "거래재료"란게 무엇인지 신경쓴다.
          죠이치로는 패배시 정집 유키히라의 폐업과 자기 자신이 아자미의 개가 되는 것을 조건으로 던진다.
          아자미는 이미 이긴 것처럼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선언한다. 고작 정집에서 썩고 있던 죠이치로를 구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쿠미가 "이겼다는 듯이 말하지 마시죠. 우리들이 이길 테니까!"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타도코로도 패배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모두를 구하고 싶다"고 필승의 의지를 다진다. 기세가 오른 타쿠미가 소마에게도 "우린 하나가 되어 싸울 것, 그렇지 않냐"고 한 마디 권한다. 하지만 소마는 무언가 생각에 골몰해 있어 어영부영 답한다.
          * 열차로 돌아온 소마 일행. 죠이치로는 당 칸의 바에서 혼자 한 잔하고 있다. 그때 소마가 찾아와 진짜 유키히라를 걸 건지 묻는다. 소마는 지금껏 몇 년이나 가게를 비워놓고 이젠 또 그 가게를 극에 건다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죠이치로는 설마 이길 자신이 없는 거냐고 몰아세우고 소마는 그렇건 아니라고 대꾸한다.
          * [[도지마 긴]]은 타쿠미와 타도코로에게 연대극 소을 듣는다. 사실 도지마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센자에몬과 죠이치로가 만나도록 주선한 것도 그이며 그 둘이 아자미에게 연대극을 제안한 것도 그의 복안이었다. 죠이치로가 나서면 아자미도 승부에 응할 거라고 본 그의 계획. 십걸의 과반을 따내서 정권을 뒤엎는 것도 그가 구상한 대로다. 사실 그들의 진급시험 자체도 계획 안에 있던 것.
          >내가 죠이치로와 치른 극의 전적은 121전 101패.
          * 그들이 아직 2학년 시절. 죠이치로가 또 바깥에서 일어난 분쟁 이야기를 끌고 온다. 죠이치로는 다른 연구회에서 일어난 분쟁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극에 참여, 최종적으론 자기들의 영역을 넓히는 괴팍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지마는 그가 그런 결과적인 것 보단 승부에 끼어드는 거 자체를 즐긴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승부를 즐기는 편이어서 결국 또 극이 일어나게 된다. 후배이자 같은 기숙사였던 [[시오미 준]]도 거절하는데도 얼렁뚱땅 끌어 들인다.
          * 소마와 죠이치로 사이에서도 그 시절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죠이치로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나날이라 말하면서도, 결국 고3 시기에 스스로 중퇴하고 학교를 나오게 된다. 소마는 그 이유를 묻는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8화 . . . . 2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7화]] |||| '''극의 소마/208화''' |||| [[극의 소마/209화]] ||
         [[극의 소마]] 208화. '''침착하게'''
          * 연대극의 세부룰은 각 팀에서 3명 씩 선발돼 각각 상대와 대결.
          * 이런 으로 대결을 계속해서 상대방 진영의 요리사를 전멸시키면 최종승리.
          * [[키노쿠니 네네]]는 [[잇시키 사토시]]가 [[유키히라 소마]]를 고평가하는걸 의하지만 대결주제가 "소바"인 이상 승산이 없을 거라 단정한다.
          * 소마는 전날 [[사이바 죠이치로]]에게 누굴 상대하든 "정집"이란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려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이같은 조리를 시도하는 중.
          * 본격적인 대결에 들어간 연대극. 펑키하게 세뇌된 [[카와시마 우라라]]지만 진행 자체는 성실하게 하고 있다. 연대극의 룰은 다음과 같다.
          각 진영에서 임의로 선발된 세 명의 요리사가 동시에 대결을 진행. 각 대결에서 승리한 요리사가 흰 별을 얻고 생존한다. 생존한 요리사는 새로운 대결에 나갈 수도 있고 아군의 대결에도 서포트해줄 수 있다. 이런 으로 대결을 반복해 상대방을 전멸시키는 쪽이 최종 승리. 카와시마는 이러한 룰은 제대로 전달했지만 소소하게 반역자 진영이 지라고 저주를 꽂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감옥에 갖힌 반역자들은 어느 틈에 카와시마가 세뇌된 건지 의아해하지만 원래부터 권력에 약한 속성이 있어서 그럴 거라는 가열한 추측이 대세다.
          * 일의 재능으로 십걸 6석에 오른 [[키노쿠니 네네]]. 게다가 자신의 특기 중의 특기 소바가 주제다. 키노쿠니는 잇시키가 소마를 고평가하는 것을 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제가 저런 이상 소마가 자신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벌써부터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키노쿠니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아이였다. 일의 명가 키노쿠니 가문에선 일본 문화에 정통한 후계자를 원했고 그녀는 네 살때부터 일본 무용을 시작으로 전통 문화를 익히는데 매진했다. 보통 아이들처럼 놀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는데, 그녀가 자유롭게 뛰노는 친구들을 부러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나키리 아자미]]는 그녀의 뛰어난 손반죽 실력에 대해 절찬을 늘어놓는다. 그녀의 손놀림에 의해 부드러운 흐름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메밀가루 입자 하나하나에 수분이 적절하게 묻는다. 이런 으로 반죽이 생기기 시작해 콩알만한 크기가 됐을 때 이것들을 뭉치는 치대기 작업에 들어간다.
          * 키노쿠니가 힘을 더해 반죽을 치대기 시작하자 낱알처럼 흩어져 있던 반죽들이 커다란 덩어리로 모이기 시작한다.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반죽에 순간에 점성이 더해지는 것과, 가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힘으로 반죽을 해나가는 것에 놀란다. [[나키리 에리나]]는 완벽한 자세를 이룬 그녀의 하체가 비결이라고 간파한다. 다리와 허리의 힘을 충분히 실어서 반죽하기 때문에 힘이 낭비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자미는 여기에 아주 섬세한 반죽 실력 덕분에 쓸데없는 물을 더할 필요도 없어서 필요최저한의 윤기를 머금은 "진짜 소바"가 되는 거라고 설명한다.
          그건 소마 자신도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다. 그저 "어떤 주제가 나오든 그때 떠오른걸 척"하고 내놓는다는, 실로 주먹구구의 해법이었다. 죠이치로는 그저 "그래서 선발 꽁치 대결 때 졌다"고 아픈 데를 찌른다.
          >"정집 이라는 것"이야.
          에리나는 면을 만들 때 "수타"를 칭송하긴 하지만, 수타가 딱히 맛있는 면을 만드는 비법은 아니다. 수타로 유명한 집들은 그냥 수타를 해서 맛있는게 아니라 "뛰어난 수타"를 구사해서 맛있는 것이다. 사실 유명 가게 중에도 제면을 기계에 맡기는 집도 적지 않다. 이미 매니아들 사이에선 어중간한 수타일 바엔 제면기를 쓰는게 낫다는 게 상이다. 그러니 수타 기술이 없는 소마가 제면기를 택한건 잘한 선택이다.
          소마가 생각한 "나다운 소바"란 일부 매니아들만 찾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어떤 손님이든 즐길 수 있는 "정집의 소바"였다. 소마는 철저하게 그런 소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9화 . . . . 2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8화]] |||| '''극의 소마/209화''' |||| [[극의 소마/210화]] ||
         [[극의 소마]] 209화. '''낙오자로 살아가는 법'''
          * 이들에게 주어진 주제는 장어. 양은 장어를 다루는데 서툴 거란 편견이 있지만 쥬리오는 초반부터 멋진 솜씨를 뽐낸다.
          * 시라츠 가문은 대대로 이탈리아 영사관의 전속 요리사 자리를 맡아온 명가. 특히 남 이탈리아에선 장어를 크리스마스 특으로 먹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 반면 잇시키는 느긋한걸 넘어 겨우 준비만 끝내놓고 "진다면 애들하고 장어양을 하자"같은 망상이나 즐기고 있다.
          * 따지고 보면 상대측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태도. 당연히 잇시키의 대결 상대가 반발한다. 그는 더이상 한눈팔지 말라며 타당한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이쪽도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은지 요리에 대한 예술론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말에 따르면 요리란 탁 위에 놓여진 것만이 아니라 요리 중 요리사의 행동, 즉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예술인 것이다. 이같은 예술론은 잇시키와 자신이라면 서로 마주해 하나의 예술을 만들 수가 있다며 꽤 오글거리는 소리로 이어진다.
          소마는 그가 묘하게 잇시키를 의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정작 잇시키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같은시 이탈리아 계통인 [[타쿠미 알디니]]는 이 대결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다. 일본인들의 편견과는 달리 장어는 서양에서도 고급 재이다. [[쿠로키바 료]]가 선발시합에서 선보였던 "장어 마틀로트"도 대표적인 이탈리아의 장어요리. 특히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음으로 장어를 먹는다. 그정도로 보편적으로 알려진 재. 따라서 이탈리아 요리 전문인 쥬리오도 나름대로 자신있는 분야일 거라고 추측한다.
          아리스는 어쨌든 조리복으로 보아 일 계통이라고 추정하고 그렇다면 일 장어요리에 일가견이 있지 않겠냐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쿠로키바는 부정적이다. 소바 요리에 "칼질 3일, 밀기 3개월, 반죽 3년"이란 말이 있다지만 장어도 그에 못지 않다.
          장어는 결코 만만한 재료가 아니다. 평생 장어만 다루는 전문가들도 그렇게 말할 정도니, 그저 일 전문인 걸로는 어쩔 수 없는 분야다. 쿠로키바는 그정도의 스킬이 잇시키에게 있을지 의문시한다.
          >이 연대극에서 지면...
          >장어 양장을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너를 위해서 말하겠어... 그런 곳에 있는 놈들은 잇시키가의 인간이 어울릴만한 자들이 아냐!
          소마도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예전에 그와 극을 한 잇시키는 진짜 실력의 절반도 채 발휘하지 않았었다는 걸.
          * 잇시키는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지만 설마 기숙사 후배들까지 그런 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의 웃는 얼굴은 돌아왔지만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23회 일치
         결국에는 여인을 따라잡은 헤이덤. 여인의 이름은 카니에티오(Kaniehtí:io)였다. 카니에티오는 유물에 새겨진 표을 어디서 보았지만 이를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고는 자신은 적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헤이덤을 데리고 언덕 위로 올라간다.
         또다시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코너는 배우고, 훈련하고, 일을 하고 아킬레스에게 템플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코너는 카니엔케하카의 자유를 위해 템플기사단에 맞서고 싶어했지만, 지금은 이길 수 없다는걸 알기에 참고 수련을 계속했다. 코너가 기술을 배우고, 지을 쌓고 성장하는 동안 아퀼라 또한 수리를 끝맞췄다.
         마서스비니어드에 도착한 두 사람. 폴크너가 주점에서 포술 장교인 클러터벅 형제를 영입하는 동안 코너는 템플기사단원인 벤자민 처치와 니콜라스 비들을 발견한다. 코너가 두 사람에게 찰스 리의 위치를 묻자 분위기는 순간에 험악해진다. 폴크너가 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비들은 폴크너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이에 주점 주인인 아만다 베일리는 폴크너와 코너, 클러터벅 형제를 주점에서 내보낸다.
         이후 저택으로 돌아온 코너. 아킬레스는 3주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코너를 꾸짖은 후, 그를 지하의 비밀 공간으로 데려간다. 그러고는 그에게 암살단의 복장을 입히고 그를 암살단원으로 입단시킨다. 입단 의은 코너도 아킬레스도 그런거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안 한다고.
         저택의 문을 두드렸던 사람은 카나도곤이었다. 카나도곤은 사람들이 와서 땅이 팔렸다고 주장하며 마을 사람들을 내쫓으려고 한다는 소을 전한다. 템플기사단원인 윌리엄 존슨이 이에 연관되었다는 걸 안 코너는 존슨을 막기로 결심한다. 아킬레스는 템플기사단은 강하다며 보스턴에 있는 새뮤얼 애덤스의 도움을 받으라고 한다.
         코너가 윌리엄 존슨을 찾는다는걸 알게 된 애덤스는 코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데려가려 한다. 길을 가는 도중 애덤스가 "드디어 사람들이 불의에 맞서는걸 보니 기쁘군"이라는 말을 하자 코너는 "노예를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라곤"이라며 애덤스를 까버린다. 애덤스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서리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둘은 민지인의 노예제에 대한 갑을론박을 하던 도중 세금 징수원이 왕당파 병사들을 대동하고 세금 징수를 거부하는 집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마침 민지인의 권리 문제가 더 심각하니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애덤스는 증거가 충분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대사를 치지만 코너는 애덤스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는 집주인의 편을 들어 병사들을 공격한다. 병사들을 처리하고 난 후, 코너는 집주인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만 집주인은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라고하고 감사를 표한 후 가버린다.
         >존슨: 그래. 그래야만 우리가 '''보호할''' 수 있었다! 착한 조지 왕이 원주민 백성들을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샐거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도시 사람들이 신경쓸거라고 생각하나? 아, 그래, 민지인들은 필요한 음이나, 거주지나, 군대에 필요한 물건을 거래할 때는 좋아해주겠지. 하지만 도시 방벽이 비좁다고 느껴질 때, 작물을 심을 땅이 필요할 때…여기에서…더이상 싸울 상대가 없어졌을 땐, 그놈들이 얼마나 좋은 놈들인지 알게 될거다.
         >코너: 민지인이 이로쿼이랑 싸울거리는 없어.
         윌리엄 존슨은 죽고, 코너의 마을을 빼앗으려던 템플기사단의 계획도 저지되었다. 하지만 윌리엄 존슨의 시체에서 발견된 편지는 또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존 핏케언에게 보내려고 했던 그 편지는 애국자들의 무기와 보급품을 싹 제거하라는 내용이었다. 핏케언이 성공한다면 애국자들은 패배할 것이고, 템플기사단이 아메리카 민지를 장악하기 쉬워질 것이다. 코너는 핏케언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1775년 4월 18일, 코너와 리비어는 강을 건너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말이 한 필 밖에 없으므로 코너가 말을 몰고 함께 탄 리비어가 방향을 알려주기로 한다. 둘은 첫번째, 두번째 민병대에게 소을 알리는데 성공하지만 세번째 마을은 영국군이 이미 와 있어서 들키고 만다. 코너와 리비어는 영국군에게서 도망쳐 새뮤얼 프레스콧의 집에 도착해 소을 알린다. 이후 둘은 애덤스와 핸콕이 숨어있는 렉싱턴으로 간다. 도스보다 빨리 도착한 코너와 리비어는 둘에게 영국군이 오고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둘은 영국군이 수색해봤자 아무것도 못 찾을거라고 하지만 핏케언이 그들을 죽이려는 소리를 듣자 도망치기로 한다.
         이후 리비어와-- 아직 도착하지도 못한-- 도스는 콩코드로 가 소을 전하고 코너는 애국자들인 존 파커와 렉싱턴에 남아 시간을 벌도록 한다.
         이후 코너는 애덤스에게서 핏케언이 보스턴에 틀어박혀 천여명의 영국군의 보호를 받는다는 소과 현재 이즈라엘 퍼트넘이 지휘하는 대륙군 군대가 보스턴을 공격하고 있으니, 벙커힐에 있는 퍼트넘에게 가서 필요한걸 제공 받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후 코너는 핏케언이 위험한 자이니 빨리 제거하는게 좋다고 하는 애덤스에게 찰스 리도 그렇다고 한 후 퍼트넘에게 간다.
         코너는 영국군 전열이 사격하는 동안 바위에 엄폐하고, 영국군 전열이 장전하는 동안 전진하는 방으로 몰튼 힐에 접근, 절벽을 기어오른다. 이후 핏케언의 야영지로 가 민지인들의 반발이 전쟁으로 번진 걸 안타까워 하던 핏케언을 살해한다.
         조지 워싱턴은 민지인들을 모아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 템플기사단은 그런 워싱턴을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코너는 템플기사단의 마수로부터 카니엔케하카를 지키기 위해 워싱턴을 지켜내기로 다짐한다. 이와 동시에, 코너는 템플기사단이 암살단원인 자신을 찾아내지 않을까 걱정한다.
         코너는 아버지랑 재회했지만 그게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감을 못 잡고있었다. 헤이덤은 코너처럼 민지의 독립을 바라고 있었지만, 코너의 마을을 불태우고 코너의 어머니를 죽인 찰스 리를 지지하며 워싱턴을 비방하고 있었다. 동시에, 코너는 독립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자유와 평등은 코너와 서리 같은 사람들을 뺀 백인들에게만 주어질 걸로 보였다. 생각할 것은 많지만 시간은 별로 없었다.
         코너는 앞서가던 애국자 전령들을 처리한 후, 카니엔케하카 마을의 부족 어머니에게 찾아간다. 하지만 부족 어머니는 뜻밖의 소을 전한다. 찰스 리가 카나도곤과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애국자들을 공격하러 간 것. 코너는 숲으로 달려가 근처 애국자들을 공격하려는 카니엔케하카 전사들을 제압한다. 마지막으로 카나도곤을 제압하려 하는 순간, 카나도곤은 라둔하게둔에게 단검을 휘두른다. 카나도곤은 찰스 리가 모든걸 말해줬다며 라둔하게둔이 카니엔케하카를 파괴하려 하는 자들을 돕는다고 주장한다. 라둔하게둔은 리는 거짓말을 하는거라고 주장하지만, 카나도곤은 애국자들이 카니엔케하카 바로 앞까지 왔는데 그렇게 주장할 수 있냐며 동족을 저버린 라둔하게둔을 죽이려고 한다. 카나도곤이 라둔하게둔을 덮쳐 단검으로 찌르려 하는 순간, 라둔하게둔은 암살검을 뽑아 카나도곤을 찔러 죽인다.
         크레인은 윌리엄이 앱스테르고에게 붙잡혔다는 소을 전한다. 앱스테르고의 과학자 워렌 비딕은 암살단이 가지고 있는 에덴의 조각인 "선악과"를 넘기면 윌리엄을 상처 없이 돌려보내주겠다는 영상 편지를 보내온다. 데스몬드는 윌리엄을 구하기 위해 비딕과 윌리엄이 있는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 등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그 등신이 아버지인데 어쩌겠냐고 생각하며.
         애국자들은 왕당파를 밀어내기 시작했지만, 템플기사단의 힘은 아직 건재했고, 워싱턴은 찰스 리를 살려주었다. 리가 조지 요새로 피신했다는 소을 들은 코너는 요새 벽 너머로 들어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코너는 리가 사라진다면 헤이덤과 화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781년, 쇠약해진 아킬레스는 코너를 부른다. 찰스 리의 정체가 들켜나 쫓겨났고 애국자들이 마지막 일격을 먹이고 있다는 소을 들은 아킬레스는 리와 헤이덤 둘 다 위험하니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코너는 리가 죽으며 헤이덤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아킬레스는 처음 왔을 때의 코너를 상기시키며 잘못된 감정으로 지금까지의 모든것을 망치지 말라고 한다.
  • 이명주 (축구선수) . . . . 23회 일치
         |청소년 클럽= [[포항제철중학교]] <br/>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br/> [[영남대학교]]
         [[포항 스틸러스]]의 산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쳐, [[2009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 지명 받은 뒤 [[영남대학교]]에 진학하였고, [[2012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이후로도 [[6월 27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전과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에서 1도움씩을 기록했고 팀의 [[FA컵 2012]] 우승에도 일조했지만 7월 1일 이후로 공격 포인트가 없어 "출장 수로만 신인왕 후보"이라는 비아냥을 받다가 10월 28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했고 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 MVP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 11월 1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전 1골, 11월 25일 [[경남 FC|경남]]전 1골 1도움, 11월 29일 [[FC 서울|서울]]전 2도움, 12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 1골을 터뜨리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5골 6도움 11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이명주는 [[12월 3일]] K리그 대상 시상에서 [[광주 FC]]의 [[이한샘]], [[전남 드래곤즈]]의 [[박선용]]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K리그 영플레이어상|신인 선수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대상) ‘신인왕’ 이명주 “포항의 축구스타일, 나랑 잘 맞았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45236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2-12-03}} }}</ref>
         2013년에는 시즌 내내 에이스로 활약하며 [[포항 스틸러스|포항]]이 국내 최초로 [[더블 (축구)|더블]], 즉, [[K리그 클래 2013|K리그 클래]] 우승과 [[FA컵 2013|FA컵]] 우승을 이루어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 받아 프로 데뷔 2년차에 연말 시상에서 MVP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을 놓쳤고, 그 해 [[K리그 베스트 11|K리그 클래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되었다.
         [[K리그 클래 2014|2014 시즌]] 2라운드 [[부산 아이파크|부산]]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하였으며, 이부터 12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전남]]과의 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할 때까지 총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5골 9도움)를 기록하며 리그 신기록의 위업을 달성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이명주 1골 2도움' 포항, 전남 3-1 꺾고 선두 질주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77658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4-05-10}} }}</ref>
         알아인 FC와 계약만료후 군 문제로 국내 복귀를 추진중이었다. 많은 팀들에서 오퍼가 왔으나 최종적으로 친정팀인 포항스틸러스와 황선홍 감독의 FC 서울이 경쟁 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52&aid=0000000664 [서호정의 킥오프] FC서울은 어떻게 이명주를 잡았나?]</ref> 2017년 6월 19일 [[FC 서울]]로의 이적이 공 발표 되었으며 계약기간은 6개월이다.
         * [[K리그 클래]] : 우승 ([[K리그 클래 2013|2013]])
         * [[K리그 클래 2013#수상|2013년]] [[K리그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
         {{2013 K리그 클래 베스트 11}}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아랍에미리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알아인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희근 (1929년) . . . . 23회 일치
         * [[경북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 경북고등보통학교]] [[졸업]]
         *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 1기
         *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 [[미국 공군비행학교]] 졸업
         * [[대한민국 육군 포병학교|대한민국 육군포병학교]] 졸업
         * [[대한민국 공군 방공포병학교|대한민국 공군방공포병학교]] 졸업
         * [[대한민국 공군대학|대한민국 공군대학교]] 졸업
         * [[미국 공군참모대학교]] 졸업
         * [[미국 국방참모대학교]] 졸업
         *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학원]] [[행정학]] [[석사]]
         * 1973년 공군사관학교 교장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백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김경준(축구선수) . . . . 22회 일치
         || 출신학교 || 반야월초등학교(2006~2008) [br] 백암중학교 (2009~2011) [br] [[신갈고등학교]](2012~2014) [br] [[영남대학교]] (2015~2016) ||
         [[박주영]]이 졸업한 반야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백암중학교를 거쳐서, 축구 명문 [[신갈고등학교]]를 거쳐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이끄는 영남대로 진학했다.
         반야월초등학교 시절에 수비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가끔 공격수를 보기도 했는데, 백암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고 조남의 감독이 포지션을 물어보자 공격수라고 대답했고, 공격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2학년은 경기 출전보다는 체격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키가 20cm나 성장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 경기를 출전했고, 18골을 기록했다.
         신갈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처음 진학한 학교는 백암고등학교였다. 하지만, 입학 후 1년만에 팀이 해체되었고, 용인축구센터를 떠나기 싫었던 김경준은 신갈고등학교로 전학갔다. 김상진 감독 덕분에 일찍 적응했다고 한다. 신갈고 시절에는 [[http://www.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1|4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신갈고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라고 불리었다. 3경기 7골을 득점하는 등 엄청난 골 결정력을 선보였으며, 고교 무대에서 주목받는 스트라이커였다. 결국 9경기 연속 골 기록을 세웠고, 14골을 넣었다. 이 때,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김경준을 보고 갔었고, 결국 김경준은 영남대로 진학하게 된다.
         영남대학교 시절 처음에는 조금 자만했던 듯 하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팀은 [[영남대]]였다. 포항의 패스 축구를 영남대에 이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은 김경준에게 포인트를 집어주며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족했던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팀메이트 전상오와 함께 훈련하며, 대학 1년을 보내었다. 이당시 [[영남대]]는 2015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권역 우승을 차지했다.
         4월 15일 토요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클래]] 6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64&gid=&cpage=1&spage=1|원정 경기에 후반 교체 출전]]했다. 오광진과 교체되어 들어갔는데, 김경준의 투입으로 공격라인을 끌어올렸다. 참고로 이 경기가 김경준의 리그 처녀 출전이다. 팀은 1:2로 패배했다.
         4월 22일 토요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클래]] 7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68&gid=&cpage=1&spage=1|원정 경기에 교체 출전]]했다. 팀은 2:4로 패배했다.
         5월 6일 토요일 [[전북 현대]]와의 [[K리그 클래]] 10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81&gid=&cpage=1&spage=1|홈 경기에 교체 출장]]했다. 전반 15분에 에반드로의 부상으로 최전방 공격수로 교체되어 들어갔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활발히 움직이며 슛을 날리고, 돌파를 시도했지만, 골은 기록하지 못하고 0:3으로 패배했다.
         [[박한빈(축구선수)|박한빈]]와 같이 신갈고등학교를 나왔으며, 현재 [[대구 FC]]에서 같이 뛰고 있다.
         롤모델이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이다. 인터뷰에서 자주 수아레즈를 닮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도 별명이 신갈고 수아레즈였다.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 시절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청소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승우(축구선수)|이승우]], [[황희찬]] 등 해외파나 전국구 유명세를 지닌 유망주들에게 밀렸다고 밖에 할 수 없을만큼 안타깝다
  • 박옥수 . . . . 22회 일치
         [[대한민국]]의 [[종교인]]. [[개신교]] 계통 [[신흥종교]]인 [[기쁜소선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산하 단체로 국제청소년연합(IYF)을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음력]] [[1944년]] [[6월 2일]] 출생이며, 출생지는 [[경상북도]] [[구미시]].
         기쁜소강남교회[*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때 보이는 그 [[교회]]이다. 참고로, 이 교회 건물은 불법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내에 건축제한이 있는데, 그걸 상큼하게 씹어먹은 것. 서초구청에서 강제 집행을 하려고 했었으나, 교인들이 죄다 나와서 막았다고...] 담임[[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외 기성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도 없고, 한국에 구원파 [[신앙]]을 들여왔다고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딕 욕에게 안수를 받았다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 선교사가 공 선교사거나 정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닌 등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세한 것은 [[구원파]] 참조. 게다가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목사안수 논란 문단을 볼 것.] 물론 어디까지나 [[신흥종교]]인 만큼 해당 교단 내에서 쓰는 직급으로 볼 수는 있다.
         핵심교리의 해석 차이만 있는 경우라면 일단 [[개신교]]부터 먼저 [[가톨릭]]으로부터 그런 으로 갈라져 나온 교파이기에 도찐개찐이다. 문제는 박옥수측이 주류 개신교단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교회라 홍보하는 것. 구원파 신도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라고는 하기 어렵고 주류 개신교단과는 다른 [[이단]]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아래의 또별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내부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기쁜소선교회 산하 집단인 국제청소년연합의 약자와 마크가 [[IYF]]인데 Y자 모양이 유명 선교단체인 [[IVF]]와 헷갈리기 딱 좋게 되어있다.
         예수교장로회연합회라는 단체에서 발표한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자에서는 이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친이단인사로 유명한 사람이고, 주류 개신교단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비평으로 볼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8592|참조]].] 결국 교단 측에서 이단 옹호책자로 완전히 털리고 책 자체가 완전 폐기되었고 예장연 측에서도 이 책의 내용을 공 부정하고 있다.
         박옥수는 지난 45년간 딕욕 선교사를 통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딕욕 선교사는 “박씨에게 안수를 준 적 없으며 목사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이라 답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는‘Shield of Faith Mission’ 선교학교에 입학(1962~1964년) - 딕욕, 말론 베이커 등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신학교 졸업, 딕욕(Dick York) 선교사로부터 목사 안수(1971년)라고 게시되어 있다. 하지만 딕욕 측이 운영하는 ‘믿음의 형제들’ 홈페이지에는 박씨에게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자신(박옥수)이 자신에게 안수를 준 것”이라 덧붙였다.
         딕 욕은 2010년 9월 30일 사당 청소년 문화의 집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교회에는 성직제도가 없어야 된다고 그들(故[[유병언]], [[이요한]], [[박옥수]])에게도 가르쳤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6월 2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진○○(박씨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측 변호사는 박씨가 딕욕 선교사에게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박씨는 4월 20일 수백억 원의 주을 사기로 판매했다는 혐의로 전주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현재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다.) 진○○ 측 변호사는 미국의 딕욕 선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딕욕 선교사가 박씨에게 목사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답해왔다며 박씨는 가짜 목사라고 밝혔다. [[http://hdjongkyo.co.kr/news/view.html?section=22&category=1007&no=14622|기사 전문]].
         === 품 판매 논란 ===
         박옥수의 교회인 기쁜소선교회에서는 신도가 운영하는 기업 운화의 제품인 또별~~[[무안단물]]~~이라는 품을 마치 의약품이자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홍보하였다. [[산삼]]배양근 등에서 추출한 물 [[줄기세포]]를 함유했다는 이 제품은 허가조차도 건강기능품이나, 음료(차류)로 받은 제품이다. 박옥수는 이를 직접 공적인 자리에서 의약품처럼 과대 광고를 했던 것이다.[* 의약품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질병 치료기능 선전은 건강기능품이어도 금지된다.]
         결국 암치료를 받지 않고 또별만 먹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문제가 되었다. [[http://christian.nocutnews.co.kr/show.asp?idx=1850923|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4777|또 다른 기사.]] 또한 [[한국방송공사|KBS]] 추적 60분 2012년 3월 21일자 방영분에서도 또별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추적 60분 보도 이후 KBS와 신동아에서 반론 보도를 냈다. [[http://m.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1450|기사 전문]] [[https://youtu.be/hNhIUwPlWKk|반론 보도 영상]] 결국 박옥수는 품위생법 위반으로만 벌금을 받았다고 한다.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52944|기사]]
         또별을 개발한 후 주으로 ~~상장~~[* 상장한 적 없다. 주회사로 설립하는 과정 주주로 참여했거나 비상장 장외 거래로 구주 매출을 했을 것.]하여 870명의 교인들에게 주 200억치를 판매하였다. 또별이 만병통치약으로 선전되면서 또별 개발사인 운화의 주이 유망한 줄 알고 산 사기피해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1/0200000000AKR20170711109100004.HTML|관련 기사]] 피해자 측에서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기적의 약이라는 '또별'이 알고보면 그냥 ~~[[나주 성모동산|율신액]]~~녹차가루라며 사기죄로 고소하자, 박옥수 측에서는 "해당 제품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홍보한 적은 없었다."라며 발뺌하였다.
  • 박진성(시인) . . . . 22회 일치
         [[1978년]] [[충청남도]] 연기군 에서 태어나 [[한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
         [[2017년]] 성폭력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성폭력 피해자라고 허위 폭로한 여성에 대해선 무고 및 허위 사실 유포 혐의가 인정되었으나, 심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의을 회복
          * 《물의 밤》 (문학과지성사, 2014)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http://www.gqkorea.co.kr/2017/09/29/%EC%A0%95%EC%A0%95%ED%95%A9%EB%8B%88%EB%8B%A4/?_C_=18|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백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남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남의 최후' 라던가 하는 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 [[트페미]]들이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의 피해자가 남성이라서 수사 진행 속도가 빠르다며 여혐이라는 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웃긴대학에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0&number=769815|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생까지 조작으로 세뇌시킨 페미니스트들의 횡포가 무섭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많다. [[아몰랑|조리돌림해놓고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양반이고, 아직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804441760350208|#1]][[https://archive.is/LXMJh|@1]][* 첫번째 예시에 나온 사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을과 시옷이라는 닉네임을 쓴 적 있고 김여선 또는 이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점 레스토랑 Cooper Room(카퍼룸)([[https://twitter.com/Copper_Room_|#트위터 계정]][[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37996846|#네이버 플레이스 정보]])에서 일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지망생[[https://twitter.com/satoy_0045/status/928626634474663936|#]][[https://archive.is/Nhple|@]]인데, 이 사건에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6453624502284288|박 시인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2명 중 한 명]]([[https://archive.is/yofTZ|@]])이다. 무고죄로 기소유예를 받은 뒤에 트위터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가 파란이 사그라들자 다시 계정을 복구하였다. 여러 문학 작품들만 인용하는 으로 한동안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탁수정]]과 박 시인 간의 설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2월에 갑자기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었는데, 김여선의 전과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다 도리어 대중들이 자신의 죄를 역으로 캐묻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것을 직감했는지 다시 트윗들을 삭제했고, 사태가 다시 잠잠해지자 자신을 비판했던 이들을 고소할 것을 선언했다. 3월에 또 박 시인을 공격했지만 예전에 비해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며칠 후부터는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듯했는데, 4월 16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887446482042883|'이후의 삶' 펀딩을 망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서 거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려는 수작이 들켰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http://web.archive.org/web/20171127054338/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 유진목이라는 1인 영상 제작사 목년사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다.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71395|#]]] 심지어 이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776705218068482|송승언]]([[https://archive.is/HxWyl|@]])이라는 사람은 [[http://moonji.com/bookauth/9173/|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2017년 5월 17일 이후로 주로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만 단정짓고 이야기했으며, 무혐의 처분 후에도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https://twitter.com/search?f=tweets&vertical=default&q=blanknoose%20박진성&src=typd|#]][[https://archive.is/286Iy|@]] 이후 박진성 시인의 무고가 확실해지면서 자신에게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한동안 [[https://twitter.com/blanknoose|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였다가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웃긴 것은 2017년 5월 24일부터 자신의 전 연인이자 후배 문학도에게 '문단창녀'라 성희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진성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송승언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거나 박진성 편을 드는 자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는 정신승리로 침묵하고 있으며 박진성 시인을 모욕했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있다(증거 자체는 예전부터 삭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67579611017658372|#1]][[https://archive.is/z5QTN|@1]][[https://twitter.com/blanknoose/status/936928452875186180|#2]][[https://archive.is/IMg8R|@2]][[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99014088801386496|#3]][[https://archive.is/IdmMq|@3]]]
         그리고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5282180711837697|ㅁㅊ]]([[https://archive.is/GZrdp|@]])이라는 전형적인 [[트페미]]는 자기 말로는 이미 등단한 실제 시인인데도 익명을 쓰고 있다고 추측되는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947768753299457|글]][[https://archive.is/uk1hs|@]]을 올렸다. 심지어 ㅁㅊ은 저 글 전체에서 간이 부었는지 트페미,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박가분]]과 [[유아인]]과 박진성을 같이 엮어 비꼬고 있다.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5280720691437568|#]][[https://archive.is/nKyFQ|@]][* 그리고 ㅁㅊ은 박진성을 비하하는 과정에서 '''문단_내_성폭력''' 태그를 처음 돌렸다고 자처했으며, 카페 창비에서 자기 편을 들거나 자기와 처지 같은 모임에 모인 사람 몇몇과 같이 뒷담화와 무차별 고소를 모의했다는 간접적인 자폭 시인(是認)을 해버렸다. 이는 박진성처럼 무고죄 처분을 받은 피해자들의 조사에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436470416334849|#]] [[https://archive.is/9IZbK|@]] 여담으로 [[http://www.hankookilbo.com/v/59c63886250945728a1b52d81920104c|이 기사]][[https://archive.is/eNOrA|@]]에 나온 비공 모금 출판 책 '참고문헌없음'에는 박진성 작가를 허위사실로 조리돌림한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유진목 작가, 탁수정(책은탁)이 공동 저자로 표기되어 있다([[https://tumblbug.com/baumealame4|해당 펀딩 주소]]). 즉, 저 자료도 무고죄 소송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965482632808026112|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 이 때 그녀는 '좋은 소'이라고 웃었는데 이 반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https://blog.naver.com/poetone/221212096465|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이들은 "무혐의 ≠ 결백"이라는 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백"이라는 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아전인수]]와 [[내로남불]] 그 자체인 상황.
          * 2017년 12월 2일, 오전 1시 29분 '''자살을 암시하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6633260062285824|트윗]]을 작성하여 우려가 이어졌다. 오전 1시 31분에 박진성 시인의 블로그에 '굿바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이후 블로그 갱신은 멈춘다. [[http://blog.naver.com/poetone/221153390296|해당 블로그 링크]] 이후 약을 먹고 쓰러진 박진성 시인을 박 시인의 어머니가 발견하여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가 14시간 만에 의이 돌아왔다는 내용을 박진성 시인의 아버지라고 밝힌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다. [[https://twitter.com/home_awaytwo/status/936878516280311809|해당 트위터 내용]] [[http://www.huffingtonpost.kr/2017/12/03/story_n_18712984.html|해당 기사 자료]]
          * 2017년 12월 7일, 오전 00시 47분에 의을 회복하고 블로그에 첫 글을 남긴다. 그 이후에는 언론들에게서 받은 심적 피해가 심대했는 듯,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를 고발하는 글 등 언론들의 무고 관련 보도 태도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들을 남기기 시작한다. 또한 블로그의 내용을 보면 박시인의 아버지 분도 거기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듯하다. [[https://blog.naver.com/poetone/221157223698|해당 게시글 링크]]
          2월 19~20일에 그는 이 상황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트위터리안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대다수는 그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린 거였지만, 비난하는 게 아닌 경우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그에게 트위터를 잠깐 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멘션을 보낸 트위터리안도 있다. 당시 위에서 설명한 무혐의 처분 결정을 탁수정이 공개하고 박진성 시인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한 탓에, 트위터 내에서 이 설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마녀사냥을 그만하라는 의미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5692582637453312|자신의 손목에 남아 있는 흉터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박진성 시인이 카톡 대화 전문 공개 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탁수정]]이 이에 대해 자살 시도까지 비꼬는 투로 그러면 병원 영수증을 내놓으라는 으로 공격하자 2월 28일엔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했다(저 공격을 하기 전에 탁수정과 탁수정을 지지하는 측이 그의 자살 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공개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해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로 굳이 공개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최후의 카드였던 셈.). 이후 그녀는 자신은 떳떳하니까 전문 공개하려면 하라고는 했으나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2018년 4월 11일에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3915291196342273|다시 자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중으로 [[리스트컷 증후군]]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 이 일 때문에 입원하게 된다면 자신이 진행 중인 싸움이 전부 중지되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지만, 며칠 뒤에 [[당뇨병]] 악화라는 다른 이유로 한동안 입원했었다.[* 탁수정이 또 영수증을 요구할까봐 미리 공개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796927143927808|#]]]
         >2008년 4월의 일입니다. C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고En 시인 초청 강연회에 갔었습니다. 200명 넘는 방청객들 사이에서 고En 시인은 정말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회고하고 나아가 한국문학의 위상에 대해서 말하는 고En 시인은 저의 앞으로의 ‘미래’였습니다. 뒷자리에 앉았던 저는 한 마디라도 놓칠까 싶어 고개를 최대한 앞으로 숙여 시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대학생, 대학원생들, 여러 학과의 교수들, 그리고 인근 주민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 행사는 ‘공개 개방 강좌’였습니다. 시인이라는 존재가 골방에만 쳐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뒤풀이에서 간단하게 사를 마치고 고En 시인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방이 따로 있는 그런 음점이 아니었습니다. 고기와 맥주 그리고 소주. 그리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성을 위한 음료수. 명백하게 ‘오픈’된 공간이었습니다. 오후 5시 경이었습니다. 술 기운에 취해서였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고En 시인이 당시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에게 “손을 좀 보자”고 했습니다. 고En 시인은 그 여성의 손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만지다가 팔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습니다. 그 여성은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당시 20대였던 여성은, 단지 고En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고En 시인에게 그런 ‘추행’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자리는 도대체 어떤 자리지? 저는 그 당시 그 자리로 저를 오게 한 K교수에게 항의했습니다. 도대체 안 말리고 뭐하는 거냐.
          * 故 [[성재기]]를 비상적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성재기는 [[성재기/평가|'박근혜 지지=남성연대지지'라며 박근혜 지지철회자들에게 "병신"이라며 "조금만 좋으면 학학대고 조금만 싫으면 획 바뀌는 인스턴트인생들,너희들이 하찮다.굿이나보고 떡이나 처먹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를 밀어줬고 박근혜 측도 "준비된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사용했는데도 그는 계속 '박근혜 지지=남성연대 지지'라고 주장해서 제대로 된 남성인권단체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아래는 박진성 시인의 평가다.
          >'''성재기 류의 비상적이고 몰시대적이고 희화화된 단체 말고''' '남성의 인권'을 대변해줄 기관이나 시민 연대 같은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단지 남성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량한 남성들을 지키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 표창원 . . . . 22회 일치
         ||<:>'''최종 학력'''||<(> 엑서터대학교 경찰학 박사 ||
         가난한 집안 형편에 절망해 학창시절 툭하면 주먹 싸움을 벌이고 패싸움에 휘말려 양호실에 실려가고 형이랑 싸우다가 칼을 휘두르는 등 모범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응?~~중학생때 전국일제고사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생때는 암기 교육이 싫어서 상습적으로 야자에서 도망갔지만 성적을 늘 상위권이었다.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경찰대학]]을 졸업한 동시에 임용되어 [[제주도]] 전경 소대장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임용 이듬해 1990년 [[화성시|화성]]에서 근무 할 때 그 유명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맞닥뜨리게된다. 수사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당시 직책이 전경 기동소대장이었기 때문에 직접 수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때 표창원 옆에서 바라본 당시 대한민국 경찰 수사라는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치밀한 범인의 완전범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피고 버린 담배부터 해서 증거가 차고 넘쳤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영...(..)] 결국 사건이 미제로 남게되자 패배감을 느꼈고, 당시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울때가 마땅치 않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후 1993년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엑서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찰학을 수학해 1997년까지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다. 범죄학이 아니다! 애초 엑서터 대학에는 경찰 및 범죄관련 석박사 과정이 없고 학사만 있다.[* 2015년 기준 [[http://www.exeter.ac.uk/undergraduate/degrees/sociology/criminologybsc/|학부과정]]은 개설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여전히 사회학만 [[http://www.exeter.ac.uk/postgraduate/research-degrees/sociology/mphil-phd_sociology/|개설되어 있다.]]] 다만 박사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확실히 경찰과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과정에 대한 오해를 하는데, 사실 영국에서는 박사 과정은 특정 주제를 공부한다고 학위를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와 연구방법론에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교수와 학교를 찾아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몇 단계의 심사를 거쳐 학위를 최종 승인받는다. 수년간의 연구(보통 5년 가량) 끝에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을 생산하면 소속 대학의 기준에 따라 학위를 수여한다.[* 예를 들어 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디자인 관련 책을 많이 보면 학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현재까지 성취된 지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지을 발견, 기록한 뒤 평가를 통해 학위를 수여받는 것이다.]
         박사학위청구논문의[* 'The police and crimewatch UK : a study of the police use of crime reconstruction and witness appeal programmes in Britain'] 주제만 놓고 보면 봤을 때, 표창원의 원래 전공분야는 미디어 매체[* [[http://www.bbc.co.uk/programmes/b006ppmq|Crimewatch UK]]는 우리나라의 [[경찰청 사람들]], [[공개수배 사건25시]]와 비슷한 TV 프로그램이다.]와 경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위청구논문 이후의 연구 성과에 따라서 전공분야가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표창원 박사의 경우 형사사법분야의 전반에 걸쳐서 연구를 하는 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찰에서는 [[경찰대학]] 졸업생 중 유학한 경찰들을 통해서 내부역량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학을 갔다온 경찰대 졸업생들의 논문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대개 집회시위법, 행정법, 형사절차 or 형사법에 관한 논문이 많다. 물론 표창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에는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나 프로파일링(Profiling) 전문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증거는 없고 이에 관한 전문적 연구 또한 미미하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죄심리학(Forensic psychology) 박사학위자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 재직중인 [[박지선(교수)|박지선]] 교수가 있다.]
         경찰관 퇴직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으로 활동[* 일선 "범죄심리분석관"은 아니고 경찰관 시절에는 수사관으로, 교수 시절에는 범죄심리분석 지원을 위하여 파견된 형으로 활동한 것이다.]하면서 본격적으로 [[강호순]] 사건, [[발바리]] 사건 등 많은 유명 주요 범죄사건 해결에 기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무한도전]] [[무도탐정사무소]]에 출연하여 멤버들에게 프로파일링을 짧게 강의하였으며, [[유재석]]을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는 등 중년의 폭풍간지를 보여주었다. 다른 멤버들은 '드디어 유재석도 혼나는구나' 하고 좋아 죽는 중이었다고.
         정계 입문 이후 여러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민주당 변호인을 활약했다. 특히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가 [[일본]]이 숨긴 금괴 1,000톤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맹신했던 어느 60대 남성이 문 대표의 [[사상구]] 사무실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을 두고 [[MBN]]의 [[김형오(1972)|김형오]] 앵커가 '문재인 대표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답정너]]으로 질문을 하자 "그럼 2006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피습을 당한 건 (그 피습범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가요?"라는 반문~~이건 몰랐지?~~으로 앵커를 [[역관광]]시켜--사실 [[마마무|음오아예]]를 부르게 한 거라더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지지층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http://tvcast.naver.com/v/676104|네이버]] [[http://tvpot.daum.net/v/73446472|다음]]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50137|곰TV]])[* 보도 자막이 포함된 인터뷰 전체 영상은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114977|MBN 홈페이지]]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7&aid=0000871698|네이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231111239813|다음]], [[http://news.nate.com/view/20151230n53189|네이트]] 등에 올라와 있다.]
         2016년 1월 17일, 더불어민주당이 영입 인사들을 공적으로 소개하는 '더불어 컨퍼런스 - 사람이 온다'에 출연해 '드라마를 씁시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https://youtu.be/TEBsRRrAQz0|강연 영상]]
          *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JTBC]])
          *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2017년 현재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학교 축구부 소속이다.
          * 서울 고려고등학교(現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에 흡연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http://www.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245|*]]
         >'매스미디아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오랜 관심과 우려는 흥미거리만을 �는 매스미디아의 '선택적 특성'과 이러한 보도가 사회의 범죄문제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그간의 숱한 미디아 프로그램 분석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미디아에 나타난 범죄가 특정한 범죄 - 강력사건 -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문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판적 범죄학자들은 매스미디아가 범죄문제를 '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규정지으며 사회일반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범죄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매체上의 폭력'은 오랫동안 학계와 일반대중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엽기적인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거나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1980년대 이후에는 '미디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84년 BBC 방송국이 경찰의 도움을 얻어 미해결된 강력사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며 목격자나 제보자를 찾는 'Crimewatch UK'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자 기타 민방들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의 原型은 1960년대에 시작된 독일 ZDF 방송국의 "미해결사건 XTZ..."이며 영국 BBC에서 도입한 이후 미국,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세계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대한 대중적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내용,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경찰이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들에 범죄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찰관 및 경찰장비를 제공해 준다.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들은 사건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홍보매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재구성' 프로의 범람에 대해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을 조장하며 독거노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시청률 올리기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방송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그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방송사들은 이에 대해 "범죄퇴치에 협력한다는 공익에 이바지할 뿐"이란 논리로 대응해 왔다.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신고가 주요범죄를 해결했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집행의 대명사인 경찰의 걍력한 지지가 이러한 '공익논리'를 받쳐주는 주요요소이다. 본 논문은 영국전역에 산재한 28개 지방경찰청, 내무성 경찰국, BBC Crimewatch UK 제작팀, 민간기구인 Crimestoppers Trust 등 30여 관련기관을 방문, 60여명에 이르는 관계자와의 심도깊은 면담 및 관련자료 분석결과와 13편의 Crimewatch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종합분석하여 '범죄 재구성'프로그램인 Crimewatch UK를 통해서 본 영국경찰의 매스미디아관련 정책과 실행, BBC방송국의 다큐멘타리 제작 지침과 실태상의 불일치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범죄통제 목적 CCTV 운영에 대한 경찰관들의 인 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 = The Analysis of Policemen's Perceptions on the Closed Circuit Television and the pursuit of Utilization Improvement, 2008 (표창원, 박현호, 조준택 공저)
  • 이강돈 . . . . 21회 일치
         || 출신지 || [[경상북도]] [[포항시]][*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00200329130003&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10-02&officeId=00032&pageNo=30&printNo=15897&publishType=00010|포항시 태생이다.]] 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보냈다.] ||
         || 학력 || 포항청림초 - 포항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건국대학교|건국대]] ||
         || 지도자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연수코치 (1998) [br]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1999) [br] [[한화 이글스]] 2군 주루코치 (2002~2003) [br]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04) [br]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감독 (2006~2008) [br]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등학교]] 감독 (2008~2009) [br]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0~2012) [br]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등학교]] 감독 (2013~2016) ||
         오랫동안 빙그레-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전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포항 사람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1978년~1981년 졸업)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1981학번)에 진학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시절에 비해 [[건국대학교]]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하면서 [[1984 LA 올림픽]] 국가대표[* 이 당시에는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로 발탁되는 등, 일약 대학 무대 최고의 톱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그래도 이강돈 본인은 타율보다 안타에 더 애착을 가졌던 만큼, 타격왕을 놓친 것에 큰 아쉬움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0 시즌 막판 한대화 등과의 타격왕 경쟁에서도 마음만 먹었다면 타율 관리 명목으로 쉴수도 있었지만, "정정당당히 승부하겠다"면서 이를 사양했다. 대신 그해 이강돈은 최다 안타 1위를 차지했고, [[KBO 리그]] 역사상 최다안타 부문에서 정으로 시상을 받은 첫 주인공이 되었다.
         안타 제조기로서 그의 의욕적인 타격은 구질을 가리지 않고 휘두르는 방으로 나타났는데, 이른바 '마구잡이 타법'이라고 불렀다. 이후 LG [[이병규]]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배드볼 히터였던 셈.
         || 1997년 은퇴을 앞두고 찍은 사진. ||
         이강돈은 1992년의 최후의 전성기를 끝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슬럼프에 빠지고, 여기에 여러 부상이 겹치면서 조금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벅지, 무릎, 어깨가 아프고 점차 그 자리를 신인들이 메우면서 이강돈의 입지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결국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하기에 이른다.
         은퇴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 호크스]]에서 연수를 받고 한화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한화에서 롱런하지 못했다. 그 뒤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 감독도 잠시 역임했다가 [[롯데 자이언츠]]로 건너가서 타격코치로 재임했다. 그러나 프로구단 코치로서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 시즌 종료 후에는 [[이정훈(1963년생)|이정훈]] 前 북일고 감독이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에 선임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감독에 선임되었다.
         201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를 이끌고 결승까지 올라가 지역 라이벌인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와 맞붙었는데, 0:4로 끌려가던 중 상대 [[선발 투수|선발]]인 [[김훈호]]의 볼질로 한점차까지 따라간 상황에서 뜬금없는 스퀴즈를 지시했다. 결과는...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주고는 [[김경문]]이 활약하며 [[MVP]]로 선정됐던 1977년 이후 36년만의 대통령배 우승이었다. 이 날 경기는 월요일에 목동야구장에서 진행되었으며 공주고 동문인 손혁, 박정배, 조동화가 와서 관전했다. 박찬호는 아예 덕아웃 옆에 있었고...]
         2016년 10월 말에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에서 물러나고, [[대전MBC]]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기존의 여정권[* 현직 체육교사(체육학 박사)] 해설과 로테이션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2013년 홈경기 임시 해설 이후 4년만.
  • 임효준 . . . . 21회 일치
         | 학력 = 한국체육대학교
         == 출신학교 ==
         * [[계성초등학교]]
         * [[경신중학교]] 전학 [[오륜중학교]]
         * [[동북고등학교]]
         * [[한국체육대학교]]
         [[1996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계성초등학교]]를 졸업, [[경신중학교]]에 진학했다가 [[오륜중학교]]으로 전학한 뒤, [[동북고등학교]]를 거쳤다. 현재는 [[한국체육대학교]]에 재학 중에 있다.<ref name="대구일보">https://www.idaegu.co.kr/news.php?mode=view&num=242141</ref> 어린 시절에는 [[수영]]을 좋아했으나, 초등학교 2학년 때 [[고막]]이 터지는 바람에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 수영을 포기해야 했다.<ref name="스포츠조선">http://sports.chosun.com/news/pcnews.htm?id=201802110100090830006597&servicedate=20180210</ref> 이후 초2때 종목을 바꾸어 빙상부에 들어갔고, 4학년 때부터는 종별대회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ref name="스포츠조선"/>
         임효준은 중학교 1학년 때 오른발 [[정강이뼈]]가 부러졌지만<ref name="스포츠조선"/> 재활 치료 이후 중학교 3학년 때 [[2012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1000m 금메달과 500m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스포츠조선"/> 고등학교 때에는 허리, 발목, 정강이, 손목 등에 부상을 입어 7번의 수술을 겪어야 했다.<ref name="대구일보"/><ref name="스포츠조선"/>
         [[2018년]] [[2월 10일]]에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쇼트트랙 남자 15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무난히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분 10초 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1734.html#csidxc20cd80bba1b97989951bed5ea919c0</ref> 또한 이번 기록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세웠던 2:10.949의 기록도 경신하게 되었다.<ref name="2018olympics-final">{{웹 인용|title=Short Track Speed Skating Results - Men's 1,500m Final A|url=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website=[[2018년 동계 올림픽|2018평창올림픽 공사이트]]|publisher=[[국제올림픽위원회]]|accessdate=10 February 20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10130015/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archivedate=10 February 2018|language=en|date=10 February 2018}}</ref>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오륜중학교 동문]][[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정인숙 (1945년) . . . . 21회 일치
         정인숙은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출처|날짜=2014-3-2|자존심 강하고 다소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에게는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 하나를 따로 두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 정도환은 본래 자 교육에 엄격하였는데, 정인숙의 오빠들 중에는 자신들에게는 차비도 짜게 줄 만큼 인색하면서 딸 하나 둔 것을 버릇없이 길렀다며 불평불만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터울 차이가 났던 두 오빠는 일찍 결혼하여 분가하였으나, 정인숙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가세가 기울면서 그는 방황하였고 [[대구]] [[신명고등학교|신명여고]]에 재학 중에 정인숙의 학교성적은 중위권 이하로 추락하였다. 그러나 영어실력만은 뛰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영어회화를 잘했는데, 정인숙이 영어를 잘 했던 것은 오빠들의 도움이 컸다. 당시 일본에서 전기 부속품상을 하거나 무역회사 등을 하던 오빠들은 모두 [[영어]]에 능통했다. 정인숙은 결혼하여 분가한 오빠들의 집에 종종 출입했고, 이런 오빠들 밑에서 영어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1962년]] 신명여고 졸업 후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명지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에는 가는둥 마는둥 하다가 중퇴하였다. 뛰어난 미모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아버지의 실직과 대학 낙방은 그의 방황을 부추겼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꿈에 영화감독을 만났으나 1년만에 헤어지고, 임신한 아이는 낙태하였다. 이후 요정에 들어가 요정업에 종사하게 된다.
         [[1980년]]대에 국회의원을 지낸 모 인사는 "정인숙을 편력한 이들은 박정희, [[박종규]], [[정일권]] 씨 등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ref>김충,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191</ref> 그 밖에 [[이후락]] 등과도 관계를 갖기도 했다.
         그녀의 출국 배경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인숙이 자신의 아들을 자꾸 박정희의 소생인 것처럼 행세하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f>이정, <정인숙 사건> 《권력과 여인》 (돋움, 2000) 273-274페이지</ref> 3대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재춘]]에 의하면 정인숙의 아이는 박정희의 아들이 아니라고 한다.<ref name="hp104"/>
         {{인용문|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뒤 자꾸만 고위층(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정 여인은 어쩌면 박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청와대를 귀찮게 하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골치가 아파졌다.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내보냈으나 자꾸만 귀국하겠다고 해서 일본에도 머물게 했다. 그때 [[일본]]에서 박종규 실장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정건영 씨였다. 마치이로 통하는 이 교포 사업가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암흑가의 신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정건영 씨에게 정인숙 모자를 돌보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건영은 그 대가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도록 실력자인 박종규 실장에게 부탁했다.<ref name="hp104"/><ref>김충,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216쪽</ref>}}
         이 때문에 정인숙이 죽임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대통령 선거가 일 년 앞으로 다가온 당시, 정인숙에게서 퍼져 나오는 소문이 박정희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그녀를 죽였다는 이야기다.<ref>이정, <정인숙 사건> 《권력과 여인》 (돋움, 2000) 297페이지</ref>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 평소 거느리는 주변 사람들의 여자문제에도 관대한 편이었다. 심지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직원을 시켜 정적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등의 사생활을 캐서 보고서로 제출하자 화를 내며 찢어버렸다. 그러나 자신과도 술자리 또는 잠자리를 같이 한 정인숙이 정일권과 관계를 맺어 자까지 두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 직후 “정 전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위의 건의에 “남자가 여자 만나는 것은 예사”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후문이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민당]]의 정치 공세는 계속되었다. 정일권은 박정희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고, 바로 해임을 시키면 세간의 루머만 커질 것을 우려한 박정희는 정일권을 불러 자진 사퇴를 권고한 뒤, 정종욱이 구속된 이후 잠잠해질 무렵 정일권을 해임하고 바로 미국으로 내보냈다. 정인숙 문제로 박정희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한 정일권은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유진산]] 당시 [[신민당]] 총재는 5월 13일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정인숙 사건에 대한 정부의 민감한 대처방을 통렬하게 비<ref name="kim99"/> 꼬았다.
         {{인용문|어제 이호 법무가 올라 오길래 무슨 법무 행정의 주요 문젠가 했더니 느닷없이 웬 강변3로 여자 살인 사건이란 말야(웃음소리). 대통령이 여자 살인 사건을 갖고서 모처럼 안 하던 결심을 해 갖고서 전 각료들을 국회에 내보내 자진 보고케 하라고(웃음소리). 질문이나 하면 그때 가서 거짓말을 하든지 말든지(웃음소리). 무슨 놈의 오빠가 여동생의 난륜(亂倫)을 분개해 가지고 권총을 쏘았다고.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 문제를 참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고하느냔 말야(웃음). 미인사건이라니까 여러분은 흥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친절은 없어도 좋지 않느냐 이거요. 국회의원의 질문이 나올 텐데 대통령 지시로 나온 분께서 하필 그 정인숙이라는 괴미인 살인 사건을 장시간 보고하니까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이겁니다.<ref>김충,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199~200</ref>}}
         대사(大蛇), 큰 뱀으로 불렸던 유진산은 권모술수와 밀실정치에 뛰어났다. 당시 [[김계원]]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은 유진산과 일부 야당 인사들에게 접근해 정인숙 사건을 쟁점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진산은 이를 쟁점화했고 뒤이어 다른 야당인사들도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정인숙 사건을 쟁점화시켰다.<ref>김충,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196~197</ref>
         {{인용문|정 여인에 관계된 사람이 26명이나 된다고 하고 총리가 관계되었다, 대통령이 관계되었다, 이렇게까지 얘기가 돌아다닙니다. ...(인용문)... 정 여인 사건은 계획된 각본에 의한 타살이요. 청부 살인 의혹이 있습니다.<ref>이정, 권력과 여인(돋움, 2000) 267~268</ref>}}
         [[201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검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당시 수사기록의 공개를 요청, 현장감 기록, 그리고 피해자 정인숙의 부검기록 등을 입수했다. 아울러 의문의 총기사진을 바탕으로,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권총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해 나갔다.<ref name="kyung0101"/> 사건 검증 결과 직접 차량 안에서 총격을 가하지 않고도 정인숙을 저격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SBS‘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정인숙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을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다각도로 조명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오빠 정종욱씨와 함께 검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당시 수사기록의 공개를 요청, 현장감 기록과 피해자 정인숙의 부검기록 등을 입수했다.<ref name="jon01"/>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정 전 총리의 측근인 김 아무개 전 의원과 얼마 전 사를 함께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가 최근 납치범으로 보도된 정 씨에 대해 고개를 흔들더라. ‘(금전적으로)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도 툭하면 손을 내밀고 하더니, 그 못된 버릇을 못 버리고 이런 흉악한 범죄까지 저질렀다’고 분개하더라”고 전했다.<ref name="ilyo01"/>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전 의원은 앞서의 관계자가 전한 ‘금품 지원설’에 대해 “내가 직접 한 것이 아니니 나 말고 정 전 총리의 비서를 지냈던 신 아무개 전 의원이나 김 아무개 전 의원 등에게 물어보라”며 즉답을 피했다.<ref name="ilyo01"/>
         [[분류:김종필]][[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정찬성 . . . . 21회 일치
         [[2018년]] 9월 1일 기준으로 [[한국인]]중에서 유일하게 UFC 공 랭킹 15위 안에 들어가는 파이터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간혹 '레프리 스탑이 너무 일렀다' 라며 까는 여론도 있는데 위의 짤방을 보면 알겠지만 호미닉은 다운 된 뒤 턱에 정타를 대 여섯대나 맞았다. 의이 혼미해 가드도 제대로 올리고 있지 못하던 상황. 저 때 스탑 안 걸면 '''진짜 죽는다.''' 호미닉도 인정했듯이 레프리 스탑의 타이밍은 전혀 문제가 없다. '정찬성이 잘한 게 아니라 호미닉이 바보짓을 했다' 라는 의견도 있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페더급 뿐만이 아니라 MMA 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복싱 테크닉을 바탕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호미닉이 본인의 특기를 버리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붕붕훅을 날린 것은 확실히 변명할 수 없는 바보짓. 하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것이고, 무엇보다 그 짧은 타이밍을 잡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또 호미닉이 한 행동부터가 매너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호미닉은 경기가 시작하고 글러브 터치를 하자마자 공격했는데 그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고 확실한 반격에 성공한 것은 정찬성의 실력이다. 그리고 사실 이 경기 승리는 정찬성에게 의미가 큰데, 흔히들 말하는 인생에 한 번 올까말까하는 기회를 움켜잡은 셈이다. 그 때문인지 경기에 이긴 뒤 눈물을 흘리며 호미닉을 포옹했다.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상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상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영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반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반 상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반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경기 후 정찬성이 포이리에를 상대로 수술을 요하는 어깨 회전근 부상을 안고 싸웠던 게 뒤늦게 확인되었다. 수퍼액션 중계에서 김대환 해설위원이 미트조차 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고 말할 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중에 외신의 보도 등으로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감탄을 넘어 황당해할 정도였으며 이 소을 전한 미국의 <어포우징 뷰스>는 정찬성을 가리켜 정말로 좀비 같은 근성을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버뮤데즈의 레슬링을 의했는지 가드를 꽤 아래로 내리는 스타일로 경기를 시작했고 초반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경기를 괜찮게 풀어갔다. 하지만 펀치가 대부분 빗나가면서 확실히 경기감각을 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버뮤데즈의 큰 라이트 펀치를 맞으면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뮤데즈의 왼손 셋업을 피하고 날린 어퍼가 그대로 턱에 꽂히면서 1R 2분 30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말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 상태에서 안말릴 경우 맞던 사람은 후유장애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찬성을 언더독으로 평가했지만 코리안 좀비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을 말하면서 연습했던 대로 잘 안됐다고 밝히거나 질문 내용을 못알아들으면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걱정하는 발언을 남기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vod/index.nhn?category=fight&listType=total&date=&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272392&page=1|영상링크]]
         2017년 2월 9일 UFC 공 랭킹 페더급 9위에 랭크되었다. 정찬성이 페더급 랭킹 9위에 입성하여 기존 11위에 랭크되어있던 최두호가 12위로 한단계 떨어졌다.
         2017년 5월 13일, 정찬성이 SNS에 본인과 [[최두호]]가 2017년 7월 29일(한국 기준 30일)에 열리는 UFC 214에 출전한다고 밝혔다! 최두호의 상대는 15위 바로 아래 수준의 안드레 필리. 그리고, 정찬성의 상대는 '''페더급 랭킹 3위의 [[리카르도 라마스]]'''이다. 정찬성과 라마스의 경기는 4월부터 각종 해외 종합 격투기 소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 어느정도 예상되었었다. [[UFC]]에서 공으로 정찬성의 상대가 라마스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각종 해외 격투기 소에서 정찬성 vs 라마스가 성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고, 정찬성 본인도 라마스와 잘 싸우고 오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둘의 경기도 확정인 듯 하다. 드디어 5월 말, UFC에서 공적으로 '''정찬성과 라마스의 경기'''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정찬성이 이번 경기에서 이길 경우 한 경기를 더 치루고 다시 다시 타이들전에 도전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채드 멘데스]]가 복귀전을 승리로 장하면서 정찬성보다 높은 순위로 랭킹에 재진입하였고, 정찬성은 9위로 한 단계 또 떨어졌다.
         2018년 7월 중반, 정찬성이 원하던 대로 '''프랭키 에드가'''와 경기가 추진 중이라는 뉴스가 각종 해외 격투기 소에서 나왔다. 게다가 이 소이 나올 때쯤 정찬성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 ___#기회, #도전, #coming soon___ 해시태그가 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에드가와의 경기에 대한 암시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며, 각종 해외 소에 의하면 2018년 10월 7일에 열릴 UFC 229에서 이 경기가 있을 것을 것이라고 한다.
         [[2018년]] 7월 20일에 드디어 [[프랭키 에드가]] vs 정찬성이 공적으로 확정되었다. 다만, UFC 229가 아닌 [[11월 11일]]에 열릴 UFC Fight Night 139에서 경기가 있을 것이며, 정찬성의 경기는 그 대회의 '''메인 이벤트'''로 결정됐다. 5라운드 경기로 에드가가 5라운드 판정 경기에 능숙하다는 점 때문에 불안감을 주고 있다. 게다가 이 경기의 장소는 [[미국]] [[콜로라도 주]]의 [[덴버]]인데, 이 지역은 해발 1,500m 정도의 상당히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정찬성이 이로 인해 체력이 저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http://naver.me/GJeUjkcH|#]] 만약 정찬성이 에드가를 이긴다면 타이틀전에 많이 가까워지게 된다. 정찬성의 말에 의하면 승리할 경우 타이틀전 보장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주짓수 및 서브미션은 명백히 정찬성의 강점.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MMA 기준으로 창의성 및 응용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트위스터는 기존에도 존재하던 서브미션 기술이지만, 이걸 MMA 에서 처음 보여준 것은 정찬성이다. 비단 트위스터 뿐만이 아니라 포이리에 전에서의 순간적인 포지션 뒤집기, 페이크 후 다스 초크, 알도 전에서의 테이크 다운 직전 역 테이크 다운 등 순간 순간 응용력이 뛰어나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게, 정찬성은 정 주짓떼로가 아니면서도 MMA 노기 주짓수를 바탕으로 MMA 무대에서 주짓수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절에는 정말 미친듯한 인파이팅을 보여줬는데, [[좀비]]라는 링네임이 붙은 이유는 맞아도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파고들어 접근전을 펼치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원거리에서는 펀치를 연타하며 접근, 인사이드에서는 넥클린치 니킥을 날리는 방을 주로 사용했다. 뭐 타격전의 근본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런 인기가 반영되어 UFC의 CEO [[데이나 화이트]]가 Korean Zombie의 티셔츠를 입고 공석상에 나타나기도 했고 UFC 114에서는 게스트로 무대를 찾은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상당한 유명인이 아니면 올 수 없다. UFC 114의 또 다른 게스트들로는 UFC 3대, 5대 웰터급 챔피언 [[맷 휴즈]], [[NBA]]의 슈퍼스타 팀 던컨 등이 있었다.
         2011년 12월 MMA 위클리 랭킹에서 페더급 10위에 랭크되었다. 한국인 파이터가 체급별 랭킹 TOP 10 안에 진입한 것은 2007년 김종만 선수가 랭킹 8위에 랭크된 이후 두 번째다. 2013년 2월 만들어진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10&aid=0000355574|UFC 첫 공 랭킹]]에서 '''페더급 3위'''에 올랐다.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21회 일치
         읍성 안에 지어지는 건물들. 적군의 약탈로부터 안전하다. 하지만 공성전을 벌일 때 무하게 다 때려부수고 들어가면 손상되서 수리해야한다.
          * 량 소비: 1
          * 량 소비: 2
          * 량 소비: 3
          * 량 소비: 4
          * 량 소비: 5
         부 획득량을 늘리고 메츠케를 고용할 수 있게 해주는 건물. 하지만 등급이 올라갈수록 량을 까먹는다.
          * 량 소비 1
          * 량 소비 2
          * 량 소비 2
         돈과 량을 제공하는 건물. 지방의 토양에 따라 수익량이 나뉜다. 메마른 토양-평범한 토양-비옥한 토양
          * 량 제공: 1
          * 량 제공: 2
         ==== 계단 농장(Terrace Farming) ====
          * 량 제공: 3
          * 량 제공: 4
         >나쁜 소은 매의 날개를 타고 날아다니지만, 좋은 소은 모든 주막을 거쳐 간다.
         ==== 군마 번장(Warhorse Studs) ====
         >학은 지혜를 날카롭게 하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어리석은 자는 눈으로 보기만 하고, 지 있는 자는 알려고 하며, 현명한 자는 이해를 하려고 한다.
  • 함신익 . . . . 21회 일치
         |학력 = [[건국 대학교]] 음악교육학과 졸업 <br />[[라이스 대학교]] 석사<br /> 이스트만 음대 지휘과 박사과정 수료
         '''함신익'''(咸信益, [[1957년]] - )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신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미국]]으로 유학해 [[라이스 대학교]] 석사 와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1991년 [[폴란드]]의 피텔베르크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밀브룩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와 퍼시픽 대학교 지휘 교수로 부임했다.199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에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린베이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와 예일 교향악단 음악 감독, 폴란드의 실레시아 오페라단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2001년~2006년까지 [[대전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2014년 현재, 혁신적인 재원 지원 정책 및 경영 방침을 근간으로 한 함신익의 심포니 송(Symphony S.O.N.G;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 오케스트라를 창단 후 창단연주회를 2014년 8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하였다.
         1995년 해외 음악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화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2003년에는 자서전 '다락방의 베토벤 을 출간하기도 했다.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지휘자들을 배출해냈으며, 그 중 싱가폴 출신의 Darrell Ang은 2007년도 브장송 국제지휘콩쿨에서 우승하였다.
         * [http://www.symphonysong.org 심포니 송 오케스트라 공 홈페이지]
         * [http://music.yale.edu/faculty/hahm.html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홈페이지 함신익교수(영어)]
         * [http://www.kkuaa.or.kr/family/ku_man_view.asp?Bord_Div=301005&Bord_Seq=3332&intPage=2 건국대학교 동문회 홈페이지 자랑스런 건국인]
         * [http://music.yale.edu/ 예일 대학교 음대 홈페이지(영어)]
         * [http://www.esm.rochester.edu/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 홈페이지(영어)]
         * [http://music.rice.edu/ 라이스 대학교 음대 홈페이지(영어)]
         * [http://www.konkuk.ac.kr/jsp/Coll/coll_01_14_01_04_tab01.jsp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학과 홈페이지]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라이스 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교수]]
  • 홍세화 . . . . 21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 경력 =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br/> 서울대학교 겸임교수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학위 이후,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언론인, 작가, 교육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프랑스 망명 생활 중에 쓴 책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을 지냈으며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2011년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 ([[노동당 (대한민국)|노동당]]의 전신) 당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1947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서울특별자유시]](現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ref>1948년 이후 서울특별시로 명칭이 바뀐다.</ref>[[충청남도]] [[아산군]] [[염치읍|염치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서울창경초등학교|창경국민학교]],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67년]] [[10월]] 자퇴하였다. 그 뒤, 다시 재수하여 [[196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문리대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였다. [[1972년]]에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되었다가, 다시 복학하였으며, [[1977년]]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ref>동숭동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사회과학대학 소속으로 변경</ref>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2010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이 되었고, 2010년 민주노총과 한신대학교에서 기획한 노동자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진보신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다 2011년 11월엔 <[[진보신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이후 2015년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해야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단체 일명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했다.
         * 창경국민학교
         *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외교학 학사
         [[분류:대한민국의 사상가]][[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반파시스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중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대한민국의 학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사회민주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반체제자]][[분류:홍세화|*]][[분류:아웃사이더]][[분류: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한겨레]][[분류:민중민주파]][[분류:프랑스어-한국어 번역가]]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20회 일치
         '''클래과 챌린지가 하나되어 팝콘을 뜯는 최고의 축구대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K리그의 승강제가 도입된 2013시즌부터 적용된 공경기이며 리그 외 대회의 성격을 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나온 기록은 클래-챌린지 어느 쪽에도 기록되지 않는 대회이기도 하다. 이 승강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는 차기 [[K리그 클래]]에 등록되고, 패자는 [[K리그 챌린지]]에 등록된다.
         2013시즌은 클래 팀이 14개팀, 챌린지가 8개팀으로 챌린지의 운영일정을 짜기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팀 수가 적었다. 이에 클래에서는 최하위 2개팀이 무조건 강등되고 차하위 1개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챌린지에서는 리그 우승팀만 승강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수 있었다.
         클래 팀은 스플릿 B의 차하위 팀(=11위)이, 챌린지 팀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차기 K리그 클래 진출을 두고 겨루게 된다.
          1. 경기진행은 [[홈 & 어웨이]]를 골자로 한다. 1차전은 챌린지 팀의 홈에서 치루고, 2차전은 클래 팀의 홈에서 치루게 된다.
          1. 승자결정 방은 누적 득점 방을 따른다.
         보면 알겠지만 마지막 두번째 경기까지 원정다득점까지 고려해도 무승부면 클래 팀의 홈에서 연장전이 곧바로 이루어지는데다가 연장전은 원정 다득점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클래팀이 다소나마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
         2013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승강 플레이오프가 3번 열렸지만 '''단 한번도 K리그 클래 팀이 승자가 되어 잔류에 성공한 이력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팝콘을 뜯게 만드는 동인이 되며 챌린지 진출팀에게는 희망을, 클래 진출팀에게는 절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K리그 클래에서 챌린지로 떨어지면 천단위 관객이 '''백단위'''로 줄어들고, 반대로 승격되면 백단위가 '''천단위'''로 늘어나는 마술을 지켜보게 된다. 또한 강등되면 보통은 지원금이 뚝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주축선수를 팔아버리는 상황도 각오해야 하며 '''팀이 언제 올라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영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팀이 클래에 있으면 팀의 존속을 보다 공고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챌린지로 강등되면 팀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는게 당연하므로 이 때만큼은 양팀 모두 사력을 다하게 된다. 분위기를 비유컨데 리그에서의 대결이 [[올림픽]] [[권투]]였다면, 승강 플레이오프는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검투사]] 대회로 비할 수 있다.
         팀에서 임하는 자세가 라이벌전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해당 팀의 팬들은 물론이고 여타 팀들에게 있어서 팝콘뜯기 아주 좋은 환경이 마련되는 셈. 덕택에 K리그 클래 스플릿 나누기나 FA컵 결승전을 뛰어넘는 흥행 카드가 되는 마술이 펼쳐진다. 팬들에게 있어선 우승에 대한 열망보다 승강이 더욱 중요한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K리그 클래]]
  • 식극의 소마/195화 . . . . 20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4화]] |||| '''극의 소마/195화''' |||| [[극의 소마/196화]] ||
         [[극의 소마]] 195화. '''황야의 개척자'''
          * 하지만 죠이치로는 VIP 위주로 돌아가는 요업계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 어느날 VIP들에게 공들인 음을 제공하지만, 그들은 음을 즐기기 보단 "더 뛰어난 음"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라고 독촉할 뿐이다.
          * 항상 만들던 고급 요리를 때려치우고 괴이나 대중음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사실 그날은 죠이치로의 십걸평의회 가입 최종심사와 임명이 있는 날. 그렇게 자리 비우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 모양이냐고 멱살을 잡는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태연한 태도로 "네가 내 몫까지 듣고 나중에 알려줘"라고 대충대충 넘어간다.
          [[다이미도 후미오]] 여사는 이들이야 말로 쿄쿠세이 기숙사의 황금기가 도래할 징조라며 높이 평가한다. 그런 그녀는 "나카무라", 후일 [[나키리 아자미]]를 언급하며 그 또한 둘에 못지 않게 성장하고 있다고 칭찬한다. 마침 아자미가 나타나는데, 그는 왠지 십걸 등극 보단 콩쿠르에서 우승한 쪽을 더 신경쓰고 있다. 그는 콩쿠르에서 우승한 음은 어떤 음이었냐고 묻고 조리법을 세세하게 따져묻는데 그게 다 자신의 노하우로 흡수해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때부터 검은 아우라를 풀풀 날려대는 속이 검은 타입이었다.
          어쨌든 이 셋이 쿄쿠세이 기숙사의 유망주 삼인이자 여학생들의 인기도도 가장 높은 삼인조. 셋은 일과가 끝나면 따로 모여 극을 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전반적으론 죠이치로가 언제나 우위.
          * 도지마는 그 시절의 죠이치로를 비유하길 "태풍이 날뛰는 황야의 개척자"였다. 항상 도전하고 있는 도지마와 아자미지만, 죠이치로의 요리를 볼때마다 항상 경이와 감탄으로 충만하다. 죠이치로는 그런 두 사람을 언제까지나, 어디로나 끌고 갈 거라는 얼굴이다. 도지마는 그때까지 "은"(긴)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만년 2인자라는 표 같아 탐탁지 않아했지만, 죠이치로와 함께라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까지 생각한다.
          그것은 아자미도 똑같았다. 그런 미의 탐구와 모험이야 말로 그들의 일상이고 즐거움이었다.
         도지마는 죠이치로의 기행을 언급하며 마치 자기는 정상인인양 굴지만 이 인간은 시 리액션으로 세라복 차림으로 유원지에 놀러가는 기분을 만끽하거나 대중탕에서 당당히 나체요가를 하거나 하는 등 숨은 변태임을 잊지 말자.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17화 . . . . 20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6화]] |||| '''극의 소마/217화''' |||| [[극의 소마/218화]] ||
         [[극의 소마]] 217화. '''1st BOUT를 거치고'''
          * 연대극 1라운드도 한 대결만 남은 상황. 2승을 확정지은 [[유키히라 소마]]와 반역자들은 득의양양한데 [[카와시마 우라라]]가 찬물을 끼얹는다.
          * 1라운드 이후 1시간 휴. 양측은 각기 대기실에서 다음 대전자를 선발하는데 메기시마다 한 번 더 나가겠다 나서도 [[미마사카 스바루]]도 승부욕을 어필한다.
          * [[유키히라 소마]]와 [[잇시키 사토시]]의 연승으로 1라운드는 어느새 반역자 팀의 2승. 이미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알몸 변태의 삶을 살던 잇시키가 멀쩡한 얼굴로 승리를 거두자 불신으로 가득했던 후배들도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부사키 슌]]은 남이 만든 재를 멋대로 썼다 지면 어쩔 생각이었냐고 심드렁하게 묻지만 잇시키가 "너희 재료를 쓰는 이상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쑥스러워한다.
          그래도 시제품에 자신도 없는 술을 멋대로 징발당한 [[사카키 료코]]는 "아직 화가 안 풀렸다"고 츤츤댄다. 이 언쟁을 들은 [[안(극의 소마)|안]]은 직접 잇시키에게 료코의 시제품을 시음하고 싶다 청한다. 당혹해 하는 료코. 그런데 안은 그 맛을 보더니 "당신이 이 극으로 지키고 싶은게 뭔지 이해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음을 WGO가 공명정대하게 심사하겠다 재차 공언한다.
          * 십걸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에 가까운데 [[시라츠 쥬리오]]는 너무 심하게 압살 당한 탓인지 좀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해 들것에 실려나간다. [[코바야시 린도]]는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뒷 일은 나에게 맡겨라"고 소란을 피운다. 정작 쥬리오는 잇시키만 찾으며 "너무나 멋지다"는 말만 하고 듣질 않는다. [[츠카사 에이시]]는 누가 봐도 맛이간 시라츠의 상태를 보고도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는 핀트가 빗나간 평을 남긴다. 옆의 [[사이토 소메이]]는 "잇시키의 강렬함이 작렬"한 대결이었다 총평한다. 특히 그의 "후배들을 위해 싸운다"는 대의에 감동한 듯 하다. [[에이잔 에츠야]]가 "그런게 아니라 대세에 거스르는 자신에 취한 것"이라 혹평하는데 사이토는 딱히 반박하진 않지만 "자신의 방을 관철한다는 강한 각오"를 느꼈다고 덧붙인다. 같은 2학년이 3학년 사이토에게 이정도까지 평가를 받자 에이잔은 물론 그에게 패한 [[키노쿠니 네네]]도 할 말이 없어진다.
          * 어쨌든 1라운드는 반역자팀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이대로 1승을 더 추가할 가능성도 타진한다. 소마도 거기에 호응해 그렇게만 된다면 꽤 큰 차이를 내는 거라고 하는데, 이 좋은 분위기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MC인 [[카와시마 우라라]]다. MC 주제에 마이크까지 내던져 놓고 호쾌한 뻐큐부터 들이민다. 그녀는 반역자팀의 전승 가능성을 "그렇겐 안 된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연대극은 각 대결 대결에서 한두판 앞서 가도 최종승리하고는 상관없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센트럴에 넘어간 관중들이야 이 드립에 크게 호응하지만 반역자팀의 분위기를 죽이진 못했다. 쿠가가 태연하게 "그러다 얼굴에 주름 생긴다"고 극딜을 넣자 이성을 놓고 Fuck을 연발, 역으로 도발 당한다.
          * 반역자들로선 꿈도 꾸지 않았던 반전. 1st BOUT 반역자팀의 전승 선언이 울려퍼진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키리 아자미]]는 순간에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보람이 없다"는 허세를 작렬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역자와 센트럴 측. 사이토가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현재 남은 인원은 반역자 8에 십걸 5.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3라운드에서 십걸의 전멸이다. 괜한 호들갑이나 떨던 린도지만 "그건 곤란하다"며 조금은 진지하게 듣는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네네에게 "너무 책임감 느끼지 마라"며 위로인지 부담을 주는 건지 알 수도 없게 격려한다.
          * 허세력을 뽐낸 아자미 총수가 객석에서 일어나 1라운드의 종료와 1시간의 휴을 선언한다. 그 동안 양 진영은 대합실에서 다음 시합에 나올 인원을 협의해야 한다. 잠시 뒤 대합실로 자리를 옮긴 반역자들. [[나키리 에리나]]가 아버지의 말이 맞다며 "전승했다고 기뻐할게 아니라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못박는다.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가 십걸 측이 어떤 인물로 승부할지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히사코의 분석으로는 1라운드 결과로 적도 초조해할 테니 갑자기 1석 츠카사나 2석 린도가 나오는 것도 상정할 법하다. 그 말에 얼굴이 파래지는 유키와 료코.
          >다음 극에서 나랑 싸우자고.
          * 쿠가의 개인적인 극 신청. 답지않게 진지해진 쿠가에게, 츠카사 또한 답지 않은 무심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유병수 . . . . 20회 일치
         |청소년 클럽 = [[둔촌중학교]] <br /> [[언남고등학교]] <br /> [[홍익대학교]]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홍익대학교]]로 진학했고, 홍익대학교의 전국 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우승에 기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0929174456§ion_code=10&key=%C8%AB%C0%CD%B4%EB&field=gisa_title&search_key=y |제목=홍익대, 전주대 꺾고 추계 1-2학년대회 우승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탈코리아}}</ref>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데뷔 시즌부터 득점포를 터뜨려 언론의 대단한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고, 국가대표에 승선하기도 하였다.
         유병수는 대구신암초등학교를 다니며 축구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대구 청구중학교에 입학한 후 서울 수서중학교로 전학해 매경기 1골이상을 득점하여 활약을 했고, 서울 [[언남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백록기 전국고교 축구대회 득점상과 추계 한국고교축구연맹전 득점상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홍익대로 입학을 결정한 그는 전국 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도움상을 받으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2011년]] [[7월 23일]], [[알힐랄 (리야드)|알힐랄]]이 유병수의 영입을 공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알 힐랄, 유병수와 3년 계약 공 확인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7250100208830017535&servicedate=20110724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박상경 |날짜=2011년 7월 24일}}</ref> 입단 초반 부상으로 고전하였으나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2011-12 시즌 크라운 프린스 컵에서 4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라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AFC 챔피언스리그 2012|2012 ACL]] 16강 경기에서는 무려 4골을 몰아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2013년]] [[6월 22일]] 알힐랄은 유병수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FC 로스토프]]로 이적한다고 공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200347.htm |제목=유병수, 사우디에서 러시아 FC 로스토프로 이적 |출판사=스포츠서울 |저자=신원엽 |날짜=2013-06-23}}</ref> 러시아로 이적한 유병수는 리그 득점왕 출신 팀 동료 [[아르템 주바]]에게 밀려 데뷔 시즌 선발 출전 2경기에 그쳤으나 주로 조커로 총 17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였다. 한편 [[러시아 컵]]서도 3경기에 출전하며 팀이 클럽 최초 컵대회에 우승하여 [[유로파리그]] 티켓을 획득하는 데 기여하였다.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유병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의 승선이 거론되었다.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도 그에 대해 관심을 숨기지 않았으며, 마침내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3연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806415&code=980201 |제목=신인 유병수, 허정무호에 ‘깜짝 승선’|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향뉴스}}</ref> 그리고 [[2009년]] [[6월 3일]]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평가전에 후반 교체 출전하여 A매치에 데뷔하였지만<ref>{{웹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90604122105§ion_code=10&key=%C0%AF%BA%B4%BC%F6&field=gisa_title&search_key=y |제목=A매치 데뷔 유병수, UAE전 승리 위한 '비밀병기'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탈코리아}}</ref> 오만전이 A매치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삭제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2009/0804/20090804101020201000000_7288524317.html |제목=6월 허정무호 오만전, FIFA A매치서 제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서울}}</ref> 이후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10월 4일]], [[조광래]] 감독이 [[10월 12일]] 열릴 한일전을 앞두고 유병수를 발탁하면서 다시 기회를 잡게 되었고<ref>{{웹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0041004362234&ext=na |제목=한일전 명단 발표…유병수-신형민 대표팀 복귀 |확인날짜=2010-10-04 |출판사=마이데일리}}</ref> 경기가 끝나기 9분 전에 교체 투입되며 공 데뷔전을 치렀다.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언남고등학교 동문]][[분류:수서중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둔촌중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알힐랄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FC 로스토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러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김포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득점상 수상자]][[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
  • 유열 (가수) . . . . 20회 일치
         [[대구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대구중학교]], [[대구고등학교 (대구)|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 [[고려대학교 문화예술 최고위과정수료]] [[1986년]] [[12월 19일]] [[MBC 대학가요제|제10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라는 노래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음악계에 데뷔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hosun.com/se/news/200601/200601190193.html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 [브라보~! 7080] '데뷔 20주년' 유열<!-- 봇이 붙인 제목 -->]</ref> 그 후 [[1989년]]까지 매년 [[한국방송]]·[[문화방송]]의 연말 10대가수로 선정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ww.izm.co.kr/news_view.asp?key=1&s_idx=1700 * IZM - New Stream *<!-- 봇이 붙인 제목 -->]</ref> 1996년 대한민국 동요대상,동요를 사랑한 가수상 수상
         前 [[문화방송]] 기자인와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 [[대구초등학교]] 졸업
         * [[대구중학교 (대구)|대구중학교]] 졸업
         * [[대구고등학교 (대구)|대구고등학교]] 졸업
         *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 학사
         *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문화예술최고위과정 수료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뮤지컬 감독]][[분류:1986년 데뷔]][[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음악가]]
  • 이영욱 (1980년) . . . . 20회 일치
         *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4년 ~ 2017년)
         *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 야구부 감독 (2018년 ~ 현재)
         '''이영욱'''(李永旭, [[1980년]] [[8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현 경북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의 야구부 감독이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8라운드 59순위로 지명을 받은 후 [[홍익대학교]] (1999학번) 진학 후 재학 시절 [[차일목]]과 배터리를 이루었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2군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본격적으로 1군에 올라온 [[2005년]]에 64.2이닝동안 1승 1홀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주전 중간 계투 자리를 굳히고, [[2007년]]에는 투수 조장에 발탁됐다. [[2008년]]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1년]]에 복귀했다.
         2014년부터 [[덕수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를 맡았고 2018년부터 경북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의 야구부 감독으로 활동한다.
         == 출신 학교 ==
         * [[대구칠성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 [[홍익대학교]]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하이큐!! . . . . 20회 일치
          * 공 홈페이지 하이큐!!.com [[http://www.j-haikyu.com/]]
          * 공 트위터 [[http://twitter.com/haikyu_com @haikyu_com]]
          * 애니메이션 공 홈페이지 [[http://www.j-haikyu.com/anime/index.html]]
          * 애니메이션 공 트위터 [[https://twitter.com/animehaikyu_com]]
         단행본으로는 2015년 3월을 기준 [[일본]]에서 15권까지 발매했으며, [[한국]]에서는 [[대원씨아이]]에서 정으로 수입하여 13권까지 정발됐다. 일본에서는 9권 발매시 [[애니메이션화]] 기념으로 [[드라마 CD]]가 동봉된 한정판도 함께 발매했으며 15권 발매시 [[점프]] 스페셜 애니메이션 페스타에서 방영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동봉된 한정판을 함께 발매했다.
         [[히나타 쇼요]]는 우연히 봄고 대회의 배구 경기를 보다 코트 위에서 활약하는 '작은 거인'에 이끌려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로부터 3년 뒤 중학교 처음이자 마지막 공 경기에서, 히나타는 '코트 위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속한 키타가와 제1 중학교와 맞붙어 참패당한다. 이후 배구 명문교에 진학했을 카게야마에게 리벤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작은 거인'이 다녔던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하지만, 그곳에서 웬일인지 카라스노에 입학한 카게야마와 마주치게 된다.
         본작의 원안이 되는 최초 단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는 세터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사실상 주인공이었으며 비중도 [[히나타 쇼요]] 보다 더 컸다. 후에 연재된 두번째 단편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정 연재분과 가장 흡사해졌고 둘의 비중도 뒤바뀌었다(...). 그리고 정 연재에 와서는 지금처럼 되었다.
         연재 초반에는 '''호러배구'''란 이명이 있었다. 스포츠물 답지 않은 연출과 그림체가 한몫해서, 섬뜩한(...)장면들이 간간이 나왔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는 평소엔 겁이 많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패기를 내뿜는다는 설정인데, 이 때 짓는 표정이 심히 [[얀데레]]스러워 ~~도저히 소년만화 주인공이 할만한 표정이 아니다~~ 순간에 장르를 호러로 만들어버린다.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작가의 전작]]이 본격 [[괴담]]만화였다는 걸 알고 납득한 사람도 있다[[카더라]]. 애니메이션도 이 점을 잘 살려서, 애니메이션 11화는 어떤 씬을 작정하고 호러로 연출했는데 [[원작초월]]급이 나와버렸다.
         1회전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약체팀들에도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을 단순히 주인공 학교의 1승 제물로 등장시키지 않고, 그들 역시 배구와 함께 고교시절을 보내는 청춘임을 묘사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부분의 팬들이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꼽을 때 꼭 언급되는 40화 '승자와 패자' 편(애니메이션에서는 16화). 인터하이 1차전이 끝난 후 1회전에서 탈락한 23개 팀 모두를 '''한 컷씩 다 그려냈다''' .[* 애니메이션에서는 분량 문제인지 23개교가 전부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 "우리들도 했어 배구" ''' 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작중 배경은 작가의 전작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처럼 [[미야기]]현이다. 미야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정도 되는 곳인데, 그 중에서도 [[카라스노 고교]]가 있는 곳은 시골이다. ~~괜히 얘네들이 패스트푸드점 대신 [[만두]]를 사먹으러 가는 게 아니다~~ 카라스노 학생들이 촌사람이라는 걸 반영한 연출인지, 도쿄에 간 [[카라스노 고교]] 부원들이 눈에 보이는 철탑 마다 [[도쿄 타워]]냐고 묻거나, [[타나카 류노스케]]는 [[관동]]의 학교들을 가리켜 '시티보이 연합'(...)이라 부르거나 한다.
          * 정 연재 이전의 단편은 주간소년점프 넥스트 2011년도 WINTER호, 주간 소년점프 2011년도 20,21 합본호 각각 두 번 게재되었었다. 점프 넥스트에 실렸던 단편에서의 본교는 카라스노가 아닌 히아시(日脚) 고교였으며, 본지 단편에서부터 카라스노라는 이름이 되었다.
          * 배구계에서도 작품의 인기와 영향력을 의하였는지 [https://twitter.com/ALan_twt_/status/507780608991322112/ 실제 일본 봄고 배구대회 포스터]까지 장하는 쾌거를 누린다.
          *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후루다테 작가가 졸업한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졸업 후 찾아왔었다는 포스팅이 어떤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댓글에서 어떤 팬이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을 묻자 '작가님이 직접 공개하지 않으신 사생활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철통방어(...)를 하기도 했다. 종합 1000만 부 이상 팔린 만화책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심지어는 인터뷰조차도 그의 활동은 적어 필명이 본명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품들이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을 작중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으므로 출신지가 그 쪽인 것은 분명하다. 작가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팀메이트 간의 감정 묘사, 이름 및 생일의 의미와 관련성까지도 계산한 ~~설정덕후의~~ 섬세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면 작가가 남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wiki:"니시노야 유" 니시노야]와 [wiki:"타나카 류노스케" 타나카]의 [wiki:"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빠질을 저렇게 완벽하게(...)그려내는 것은 남자밖에 하지 못한다.', '[쿠로코의 농구]도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등을 근거로 남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점치고 있다.
          * 종종 점프계열 행사가 열릴 때 공 트위터로 하이큐 부스에서 키요코 코스프레를 한 남성이 찍혀있는데, 하이큐 편집 담당자 혼다[* 本田佑行. 2010년 6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은혼 담당을 했었다. 은혼 애니화 재기로 4기 1화 방영 이후 하이큐 트위터 계정을 통해 비화를 밝히기도.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85738044281491456 이런 심한 얘기를 점프에 올린 사람이 누구?! 나인가?!]]다.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46458211255992320 점프페스타 2015]
          * 공 [[굿즈]]를 잘 뽑아낸다. 그중에서도 '''[[일코]]용 굿즈'''를 잘 낸다. 가방이나 신발 등의 의류는 그야말로 일코용 캐릭터 상품의 모범적인 예로 삼을 만한 정도. ~~그래도 알아볼 덕후는 다 알아본다~~
         2015년 2월 기준 13권까지 강동욱의 번역에 의해 정발되었는데, 그 사이에서 원어판과 비교해 오역이 많이 드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일어가 가능하다면 원서를 사서 보라고 할 만큼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1권 신젠 고교에서의 합숙 줄거리 중 보쿠토와 쿠로오보다 한 살 어린 아카아시가 뜬금없이 반말을 하거나, 오이카와의 그 유명한 '이와짱은 우리 엄마에요?'[* 원어로는 「岩ちゃんは俺のお母ちゃんですか?」.] 대사는 '''네가 내 엄마라도 되냐?'''라는 대사로 바뀌어 오이카와에게 일진카와(...)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대화에서 자주 쓰여진다고 보기 어려운 '~예요' 체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고, 당당하고 맹한 느낌을 주는 '[~슴다체]'가 번역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일단 번역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너무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큰 문제. ('''츠키시마: 짜 멋있는데.''') 당장 몇 년만 지나도 어색할 유행어 집어넣는것은 덤. (시합중의 멘탈은 '''갑 오브 갑'''이지만.) 번역가가 글자를 못 읽는 경우도. ('''네코마 농구부''' ~~쿠로오의 농구?~~ '''호쿠토. 아카아시 케이시''') 더 많은 오역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람].
  • Crusader Kings 2/특성 . . . . 19회 일치
          * 생력 +5%
          * 생력 +15%
          * 생력 +5%
          * 생력 +10%
          * 생력 +15%
          * 생력 -5%
          * 중독(Food Poisoning)
          * 생력 -50%
          * 박(Erudite)
          * 생력 +20%
          * 탐(Gluttonous)
          * 생력 -15%
         == 생활방 특성 ==
          * ''' Way of Life DLC 추가시 생활방 특성이 아니게 됨'''
          * ''' Way of Life DLC 추가시 생활방 특성이 아니게 됨'''
          * ''' Way of Life DLC 추가시 생활방 특성이 아니게 됨'''
          * 첩의 자(Child of Concubine)
          * 왕가 친족살해자(Dynastic Kinslayer) - '''문서 수정자의 자체적인 번역. 정 번역명으로 교체 바람.'''
          * 가족 친족살해자(Familial Kinslayer) - '''문서 수정자의 자체적인 번역. 정 번역명으로 교체 바람.'''
  • 김재권 (철학자) . . . . 19회 일치
         '''김재권'''(金在權, 제이슨 킴, Jayson Kim(or Jaegwon Kim), [[1934년]] [[9월 12일]] ~ )은 [[한국계 미국인]] [[철학자]]이다. [[브라운 대학교]] 석좌교수인 그는 [[심신수반론]]을 창시한 이로도 유명하다.
         김재권은 1934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여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2년 수료 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에 편입하여 불문학 전공 및 철학 [[수학]]을 연계전공하여 학부를 마치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석박사과정) 학위를 취득하였다.
         *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학사]] 2년 수료
         *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학사 (불어불문학 전공, 철학, 수학 연계전공)
         *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석박사과정) [[철학박사]]
         * [http://research.brown.edu/myresearch/Jaegwon_Kim 김재권의 홈페이지] - 브라운 대학교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다트머스 대학교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철학자]][[분류:21세기 철학자]][[분류:심리철학자]][[분류:경암학술상 수상자]][[분류: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분류:노터데임 대학교 교수]][[분류:미시간 대학교 교수]][[분류:브라운 대학교 교수]][[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분류:코넬 대학교 교수]]
  • 김재홍 (1958년) . . . . 19회 일치
         * 1976년 : [[중앙고등학교]] 졸업
         * 1981년 : [[한양대학교]] 행정학 학사
         * 1984년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1989년 : [[위스콘신 대학교|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 2010년 :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 지경제부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 지경제부 무역투자실 투자정책관
         * 지경제부 국무조정실 산업심의관
         * 지경제위원회 전문위원
         * 지경제부 신산업정책관
         * 2011년 6월 ~ 2013년 3월 : 지경제부 성장동력실장
         * 2014년 9월 ~ 2014년 12월 :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 2018년 3월 ~ : 한양대학교 정책과학대학 특훈교수
         |전임자 = [[윤상직]]<br/>(지경제부 제1차관)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효원 . . . . 19회 일치
         '''김효원'''(金孝元, [[1542년]] ~ [[159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퇴계 이황|이황]]과 [[남명 조|조]]의 문인이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611/wk2006111416012337070.htm 주간한국 : [종가기행 24] 善山金氏 省庵 金孝元 - 부친 여윈 뒤 家勢 기울어 "가문의 전통 범절 잘 몰라요"<!-- 봇이 붙인 제목 -->] </ref> 본관은 [[선산 김씨|선산(善山, 일선)]]으로, 자는 인백(仁伯)이고 호는 성암(省庵)이다.
         [[이황|퇴계 이황]]과 [[조 (1501년)|남명 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훈구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소장파 관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심의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다음해 [[심충겸]]이 [[이조]][[전랑]]에 천거되자 외척임을 들어 적극 반대하여 사림을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으로 갈라지게 하였다. 노수신과 이이의 조정책으로 외직으로 전출된 후 10년 간 한직(閒職)을 전전했다.
         생원시를 거쳐 [[1565년]] 알성 [[과거 제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wa-bu.net/bbs/zboard.php?id=news&page=11&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45 윤종일교수의 남양주역사기행(26)-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남양주타임즈, 2007.01.26자] </ref> 그는 퇴계 [[이황]]의 문하와 남명 [[조]]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황]]의 제자들 중의 한사람이며 [[김종직]]의 학통으로, 남명 [[조]]의 문하에도 찾아가서 배웠다. 스승 중 한사람인 조이 죽었을 때는 "방향 모르는 날 가르쳐주셨고(誘掖回迷走)/ 날 채워서 옳은 사람 되게 했다네(充盈見實歸)/ 인문이 이제는 끝나고 말았구나(人文今已矣)/ 이제 우리 도를 누구에게 의지할꼬(五道竟何依)?"라는 만사를 짓기도 했다. 그는 학문상으로는 [[김종직]]-[[이황]]의 학맥과 [[조]]의 학맥을 두루 계승하였다.
         그는 문을 닫고 봄에 직접 꼬은 신발 한 켤레로 십여 년 이상 신었다 한다. [[이황]]과 [[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조선 명종|명종]]말엽 [[윤원형]](훈구파)일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이황]]과 [[조]]의 문인인 덕에 신진사류의 한사람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1564년(명종 19)의 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바로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으로 수학하였다. [[1565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병조좌랑·[[정언]]·지평을 지냈으며 사헌부 지평으로 재직 중 김효원은 [[문정왕후 윤씨]]가 죽고 [[척신계]]가 정계에서 몰락하면서 새로이 정계에 진출한 신진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1574년]](선조 7년) 이조전랑으로 있던 오건(吳健)이 자리를 옮기면서 이조전랑으로 [[오건]]이 그를 추천하였으나<ref>1575년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이조 전랑의 임명은 전임자의 후임자 천거로 임명되었다.</ref> 과거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문객이었다는 이유로 이조참의 [[심의겸]](沈義謙)이 강하게 반대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는 외척도 아니고 [[이황]]과 [[조]]의 문인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심의겸]]의 반대를 견뎌내고 [[이조]][[전랑]]이 되었다. 또한 그는 [[심의겸]]이 외척으로 그의 집안이 [[윤원형]]의 집안과 인척이고 가까이 왕래한 것과, [[심통원]]의 부패, 비리를 지적하며 공격하였다.
         김효원을 지지했던 사림으로는 [[김우옹]], [[류성룡]], [[이산해]], [[정구 (1543년)|정구]], [[허엽]], [[임제]], [[이발]], [[정지연]], [[우성전]], [[정유길]]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개 [[이황]], [[조]]의 제자들과 화담 [[서경덕]]의 문인과 손제자들이었다. 이들을 [[동인]]이라 하고, [[심의겸]], [[이이]], [[성혼]], [[윤두수]] 등을 [[서인]]이라 칭했는데 이는 당시 김효원의 집이 서울 동쪽 건천동에 있었기 때문에 동인이라 하게 되었고, 심의겸의 집은 [[한성부]] 서쪽 정릉방에 있어 [[서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비들과 강론을 할 때면 가난한 살림에도 음을 나누었고, 더러는 해가 저물 때까지 사조차 잊을 정도였다. 또한 그는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여 [[이황]]과 [[조]] 등에게서 배운 학문을 후대에 전수하여, 직접 후학을 양성하여 [[성리학]]자들을 길러냈다.
         * [[조 (1501년)|조]]
  • 마니교 . . . . 19회 일치
         가장 나쁜 것은 번으로서, 번 행위는 영혼의 감옥인 육체를 재생산 하기 위하여 악마가 만든 최악의 함정으로 여겨졌다. 성욕을 끊어서 자손을 남기지 않는 것이 인류의 의무라고 보았다.
         교리는 엄격하였지만 성직자에 주로 부가되었다. 일반 신도는 전부 지킬 필요는 없었고, 일부일처제, 살생을 하지 않는 육은 허용되었다. 찬가 낭송도 하루 4회로 줄였다. 대신 일반 신도들은 성직자가 생활할 수 있도록 시주를 바치는 것이 요구되었다. 시주를 바치면 내세에 공덕이 된다고 여겼다.
         내세에 성직자는 [[천국]]에 올라가게 되며, 일반 신도는 영혼은 해방되지 않지만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고, 행실이 좋으면 선행을 쌓기 쉬운 성직자로 태어나 천국에 갈 가능성이 올라간다. 다만 행실이 나쁘면 동물로 태어나서, 선행을 하는 것이 어려워져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 이교도는 [[지옥]]에 떨어진다.
         마니교 문헌에서는 전도지에서 권력자의 딸이 병에 걸리고 이교도는 고치지 못하는데 마니교 성직자가 의료나 기적으로 치료하며, 그로 인하여 부친이 개종하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이는 마니교의 포교 전략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마니교라고 하면 비밀결사나 밀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는 탄압을 받아 숨어들어가게 된 중국 명교의 특수한 사례로서 오히려 중동의 마니교는 권력자와 지인과 같은 사회 지도층을 중심으로 포교[* 나쁘게 말하면 권력에 아첨]하는 경향이 강했다.
         마니는 어린 시절부터 교단에서 시리아 계 기독교 문헌을 많이 탐독한 것으로 추측된다. 마니가 신약 복음서를 인용한 발언을 보면 당시 시리아 교단에서 유행하던 통합 복음서 디아테사론(Diatessaron)[* 신약의 4대 공관복음서를 종합-요약한 서적. 아시리아 기독교인 타티아누스가 편집했다. 시리아에서 널리 읽혀졌으며 시리아의 일부 교회에서는 5세기에 금지될 때까지 정 복음서로 쓰였다.]을 인용하고 있었다. 마니는 신비주의 문헌인 [[에녹서]]를 중시하였으며, 구약의 신은 악(惡)한 신이며, 신약의 신은 선(善)한 신이라는 마르키온 파의 사상에 영향을 받게 된다.
         미프르 샤 덕분에 마니는 신하의 지위를 얻지만, 예언자로서가 아닌 '바빌로니아의 의사'로서 였다. 전해지는 에피소드에 따르면, 사푸르 1세의 가희에게 '배'를 바쳤는데 가희는 이를 증류하여 사푸르 1세에게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30년 가량 궁정의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적으로 페르시아 내에서 포교를 하게 되었다.
         기독교 계에서는 마니교에 경계의을 품고 맹렬하게 마니교를 공격했다. 특히 340년 경 주교 헤게모니우스는 아쿠타 아르케라이(아르케라이 행전)을 저술하여 마니교를 공격하였다. 이 책에 따르면 마니교는 다음과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티키아누스라는 장사꾼이 있었는데, 그는 창녀를 아내로 삼고 있던 타락한 남자였다. 그는 이집트와 장사를 하다가 이집트에서 마술 지을 얻었다. 그 제자 테레빈토스는 스티키아누스가 얻은 마술 지을 책으로 정리하였고, 이것이 마니교의 교의서이다. 테레빈토스는 바빌로니아로 떠나서 마술을 보여서 사람들을 현혹하다가 천벌을 받아 죽게 된다. 이 마술서를 하숙집의 여주인이 가져가서, 노예 소년 크루비키오스에게 가르쳐주며 길렀다. 여주인이 죽자 크루비키오스는 마니로 이름을 바꿔서 페르시아 왕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압바스 왕조의 3대 칼리프 알 마흐디가 마니교 탄압 명령을 내린다. 마니교도는 이원론, 의적 간통, 불륜, 음주, 남색, 우상숭배의 죄로 탄압당하게 된다. 연행된 사람들은 '''마니의 초상화에 침을 뱉고, [[새]]를 먹도로 강요'''당하고, 하지 못하면 [[참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박해 시기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명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마니교는 중앙아시아 소그디니아를 거쳐, 소그드인을 통하여, 중국으로 전해졌다. 이전에 이미 민간 신앙으로 들어와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684년 불다탄[* 佛多誕, 아후다탄을 뜻한다. 마니교 제3위 위계] 미후르 오흐르마즈드(미오물사密烏没斯)가 『이종경(二宗経)』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 공적인 첫 중국 포교이다. [[당현종]] 시기에 현종은 마니교를 수상하게 여겨 추궁하는데 마니교 측은 교리를 요약하여 『마니광불법의략(摩尼光佛法儀略)』으로 제출하지만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고 포교를 금지당한다.
         마니교도는 석굴 사원(마니스탄)을 건설하고, 국가로부터 지조를 받으며 장원, 가축 소유, 노예 소유 등을 하게 된다. 서위구르의 투르판에서는 300~400명의 마니교 승려가 위구르 귀족의 저택에 모여서 마니교 찬송을 벌였다고 전해지고 있어, 국교로서의 위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위구르 제국에서도 [[불교]]의 반격이 시작되는데, 위구르 어 불경을 만들고 전파를 시작하여 10세기 무렵에 마니교는 국교의 지위를 잃게 된다. 위구르 귀족들은 불교 사원을 세우는 반면, 10세기 말~11세기 초에는 마니교 사원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마니교는 [[불교]]의 영향을 받게 된다. 마니광불(摩尼光佛)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마니는 소린국(蘇隣国, 바빌로니아)의 발제(抜帝,파티크)의 왕국에서, 금살건중(金薩健種, 캄사라간가문)의 만염(満艶,마르얌)에게 태어났다는 으로 전파되는데, 만염은 목욕재계하고 청정한 가슴으로 마니를 낳았으며, 마니는 스스로 이종삼제(二宗三際)의 교리를 개시하였다고 여겨졌다. 마르얌이 가슴으로 마니를 낳았다는 것은, [[석가모니]]가 마야 부인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남송 육유(陸游)의 문집 『이남문집(渭南文集)』에 따르면, 강남의 농민 반란은 명교가 핵심이 되었다. 명교 등의 반체제 종교는 「끽채사마(喫菜事魔)」나「사마채(事魔食菜)」라고 불리웠다.
         명나라 시기에 명교는 오히려 박해를 받게 되는데, 이는 왕조의 국명과 같은 명(明)을 사용하는 탓에 불경죄로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명나라 시대에는 어느 정도 명교의 가르침은 기록으로 남게 된다. 명 말의 기록에는 마니에 대한 기록이 어느 정도 정확하게 기록되었는데, 하교원(何喬遠)의 기록에 따르면 208년 3월 12일 발제(抜帝, 파티크)의 처 만염(満艶, 마르얌)이 청정한 채로 가슴으로 낳은 것이 마니(摩尼)이며, 마니는 대(大食,아라비아), 불림(佛林, 로마), 토화라(吐火羅, 이란 동부), 파사(波斯)에서 선교하여, 266년에 파사에서 사망했다. 저서는 7권이며, 가르침은 대모도(大慕闍)에게 맡겨졌다고 기록되었다. 모도란 모자크로 마니교에서 제2의 위계에 해당한다.
         무려 21세기 초 2005년, 복건성(福建省)의 마을에서 마니광불(摩尼光佛)을 성황신으로 모시는 마을과 명교 사원 경주궁(境主宮)이 발견된다(…). 이 마을에서 모시는 마니는 일종의 [[성황신]]의 형으로 모셔지고 있지만, 영국과 호주의 종교 연구가들 방문하여 조사한 결과 이 마을은 '''재발견 된 마니교 사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이후 마니광불을 모시는 신앙이 복건성에서 소수 발견되었다.)
         마니교의 마지막 잔존형태인 경주궁 신앙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술의인 '마니광불진언'으로서, 청정광명 대력지혜(淸淨光明 大力智慧) 무상지진 마니광불(無上至眞 摩尼光佛)이라는 열여섯자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에서는 이 진언을 외우면서 수인을 맺으면 신체가 붉은 빛에 쌓여, 사악한 기운이 정화된다고 믿어지고 있다.
         마니교의 방대한 가르침과 복잡한 우주론이 극도로 단순, 간략화 되었으며 다른 종교들과 뒤섞였으나, 핵심적인 교리(이원론적 세계관, 빛과 어둠의 싸움, 채주의 등)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박승호 (야구인) . . . . 19회 일치
         * [[공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9년 ~ 2010년)
         [[대건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병역|군복무]]를 위해 [[대한민국 공군|공군]] 소속의 성무 야구단에 입단하여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 [[박흥 (야구인)|박흥]]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ref>[[매거진 t]] - 2008년 9월 기사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4000&article_id=48717 "t MAP - 이승엽"]</ref>
         [[200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0 시즌]]부터 박승호는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겨 4년간 타격코치로서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고, [[2004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4 시즌]]부터는 팀을 옮겨 [[KIA 타이거즈]] [[김성한 (1958년)|김성한]] 감독, [[서정환]]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타격코치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027357 기아 김성한 감독 재계약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481897 <프로야구소> 박관용 국회의장, KS 1차전 시구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9800 KIA, 서정환 2군감독 1군코치 임명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09720 최하위 기아 코칭스태프 개편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KIA 타이거즈]] 코칭 스태프 개편을 통해 [[서정환]]이 감독으로, 박승호가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190864 <프로야구소> KIA, 코칭스태프 보직 확정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7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7 시즌]] 전반기에는 팀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6월에 대대적인 코칭 스태프 개편이 있었고, 수석 코치로 있었던 박승호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ref>[[마이 데일리]] - 2007년 6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6181438192229 "KIA, 조범현 전 SK 감독 영입 등 코칭 스태프 개편"]</ref><ref>[[한겨레]] - 2007년 6월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216991.html "기아 1·2군 코치진 맞교체… “분위기 쇄신” 효과 관심"]</ref> 2007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KIA 타이거즈]]는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을 경질하였고, [[2007년]] 시즌 중 배터리 코치로 영입했다가 새로 선임한 [[조범현]] 감독이 코칭 스태프를 새로 구성하면서 그는 구단과 재계약하지 못했다.<ref>[[스포츠 칸]] - 2007년 10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212230173&sec_id=510201 "조범현 감독 KIA 코치진 물갈이"]</ref> 하지만 그가 키워냈던 [[이용규]]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우뚝섰다.
         프로 야구계를 떠나 [[2008년]] 그는 [[공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지도자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37047 공주고 야구 감독 경질 논란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한국일보]] - 2008년 8월 기사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8/h2008080802505591830.htm "북일 · 대전, 어깨가 든든"]</ref><ref>[[엑스포츠 뉴스]] - 2009년 8월 기사 [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103120/language/ko-KR/Default.aspx "봉황대기 고교 야구 - 안승민의 공주고, 8강행 확정"]</ref>
         == 출신 학교 ==
         * [[대구교육대학교부속초등학교]]
         * [[대건중학교]]
         * [[대건고등학교]]
         * [[건국대학교]]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
         [[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백낙청 . . . . 19회 일치
         | 학력 = [[하버드 대학교]] 박사<br />[[브라운 대학교]] 학사
         '''백낙청'''(白樂晴, [[1938년]] [[1월 10일]] ~ )은 [[한국]]의 대학교수, 영문학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이다. 친일관료 백붕제의 아들로 [[대구]] 출신이다.
         친가는 [[평안남도]] [[정주군]]에 있었지만, 외가가 있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백붕제|'''백붕제''']]는 친일관료로 6.25 때 납북되었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유학을 떠나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부임하였고, 1966년부터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인을 맡아 진보적 평론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4년 유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으나, 1980년 복직되었고, 2003년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이후에도 통일운동의 일선에서 일하며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는 범여권후보 단일화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 이모형 : [[백낙환]]([[1926년]] ~ ), 인제대학교 이사장
         ** 부인 : 한지현, 대학교
         ** 제수 : [[김윤희]](金潤喜, [[1949년]] ~ ), 대학교수 ([[김치열]]의 딸)
         *《[http://www.yes24.com/24/goods/5043455?scode=032&OzSrank=5 관악 초청 강연 백낙청 : 주체적 인문학을 위하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년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509&cid=41708&categoryId=41737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백낙청] , 권영민 저, 서울대학교출판부, {{ISBN|9788952104618}}
         * [[서울대학교]]
         [[분류:193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브라운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신민당]][[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수원 백씨]]
  • 서상기 (1946년) . . . . 19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사<br/>웨인 주립대학교 대학원 석사<br/>드렉셀 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
         |웹사이트 = [http://www.sks.or.kr 공 사이트]
         * 대구 칠성초등학교 졸업
         * [[경운중학교 (대구)|대구 경북중학교]] 졸업
         * 서울 [[경기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공대 졸업
         * 미국 [[웨인 주립 대학교]] 대학원 석사
         * 미국 [[:en:Drexel University|드렉셀 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
         * [[1999년]] ~ [[2004년]] : [[호서대학교]] 환경안전공학부 교수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호서대학교 교수]][[분류:웨인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드렉셀 대학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달성 서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친이]][[분류:친박]]
  • 식극의 소마/196화 . . . . 19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5화]] |||| '''극의 소마/196화''' |||| [[극의 소마/197화]] ||
         [[극의 소마]] 196화. '''선두를 걷는 자'''
          * [[사이바 죠이치로]]의 괴요리는 나날이 심해지고 후배였던 [[시오미 준]]도 단골 피해자가 된다.
          * 죠이치로는 이들 전원을 상대로 연대극을 선언하고 50대1의 말도 안 되는 승부를 시작한다.
          * 도지마는 이때부터 요리하는 죠이치로에게서 웃음이 사라졌으며 천재나 혁명가라는 수어에 더해 "수라"라는 불길한 명칭이 붙기 시작했다 말한다.
          * [[도지마 긴]]은 죠이치로에게 묘한 버릇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죠이치로는 당시 중1이던 [[시오미 준]] 등 후배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괴요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시오미는 질색하지만 결국 선배의 권력을 남요하는 죠이치로에게 잡혀 시의 고통을 맛본다. 그런데 어떤 여학생들은 그 해괴한 맛에 중독돼서 자청해서 먹으러 오는 등 기묘한 흐름이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상적이고 즐거운 생활이었다.
          그러나 막상 극을 해봤더니 공연한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죠이치로는 콩쿠르를 격파하고 나서도 여전히 쌩쌩해서 도지마와 아자미를 연거푸 패배시킨다. 도지마는 그 놀라운 체력과 무엇보다 뛰어난 발상력으로 만들어낸 요리에 경탄하며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고 다짐한다. 죠이치로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 기숙사가 최고"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아자미도 다음에는 지지 않겠다며 눈물을 훔치는데 죠이치로는 실컷 놀려먹으며 즐거워한다. 이렇듯 표면상으론 크게 이상할 것도, 변한 것도 없는 듯 했다.
          * 죠이치로가 대표로 선발된 소은 토오츠키 학원 전체에 퍼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출전을 축하하며 응원한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선출제로 뽑혔으니 선출의원들에게 꼬리쳐서 얻은 자리가 아니냐고 시비를 건다. 특히 그 중심에는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이 있는데 집안의 위신 때문에라도 십걸에 꼭 들어야 했지만 죠이치로 때문에 밀려난 전력이 있다. 그는 앞장서서 죠이치로를 깎아내리며 "출전권을 걸고 극이라도 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고 빈정거린다.
          * 함께 있던 도지마는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라고 죠이치로를 데려가려 하지만 의외로 그가 흥미를 보인다. 그는 그쪽에서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쪽은 머릿수가 많으니 "연대극" 룰로 승부하는게 어떻냐고 한다. 하지만 연대극은 보통 집단 대 집단의 싸움. 그런데 놀랍게도 죠이치로는
          혼자서 불만자 50명을 상대로 연대극을 벌이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도지마가 보기엔 무모할 뿐더러 의미도 없는 싸움. 죠이치로는 실력을 보여주면 잠잠해 질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지만, 도지마는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다.
          * 그렇게 해서 실현된 50 대 1의 연대극. 그 자체로 엽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죠이치로는 연승가도를 달리며 상대 진영을 압살한다. 오히려 "10명 씩 덤벼봐라"고 호기를 부리는데 상대가 어떤 수로 나오든 죠이치로는 그 이상가는 발상력과 기술이 가미된 요리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불만자들의 리더였던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도 그의 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를 비롯한 불만자들 진영에선 "어차피 천재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있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3화 . . . . 19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2화]] |||| '''극의 소마/203화''' |||| [[극의 소마/204화]] ||
         [[극의 소마]] 203화. '''재확인'''
          * 서로의 음을 시한 학생들은 각자 승자라고 생각하는 팀을 선택하는데, 놀랍게도 정확히 2대2로 표가 갈린다. 그것도 모두 상대방의 음을 선택.
          * 하지만 에리나는 아버지에겐 그런 "응석"을 부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센자에몬은 "부모자 간엔 제멋대로인 부분도 있는 법"이라며 권한다.
          *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양팀의 아쉬 파르망티에. 심판을 맡고 있던 [[나키리 센자에몬]]이 시을 앞두고 있다. 팀 도지마의 경우 어느 정도 정석에 가까운 아쉬 파르망티에지만, 팀 사이바 쪽은 정말 괴상한 발상들만 때려박은 물건이라 어떤 맛을 낼지 모두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학생들은 긴장된 가운데 시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나키리 에리나]]는 매우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센자에몬이 기를 내려놓으며 의외의 발언을 한다.
          심사의원은 바로 학생들. 학생들은 언뜻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서로가 만든 요리를 시해 본다. 우선은 외견부터 살펴보는 학생들.
          * 팀 도지마의 아쉬 파르망티에를 시한 에리나와 [[유키히라 소마]]는 보들보들한 머쉬 포테이토[*폼므 퓨레]를 연상한다. 소마는 마법처럼 섬세하게 만든 화과자 같다고 평.
          * 이번엔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팀 사이바의 아쉬 파르망티에를 시한다. 에리나가 구웠던 스테이크는 주사위 썰기 해서 건더기로 들어가 있고 [[사이바 죠이치로]]가 구웠던 크레이프는 이 스테이크와 소마의 치리멘차코, 그리고 머쉬 포테이토를 감싸고 있다.
          * 그리고 드디어 시. 양팀의 개성이 확연한 요리들. 학생들은 서로의 맛에 감탄하며 결과를 고민한다.
          * 하지만 타쿠미는 납득할 수 없는 평이라 말한다. 타쿠미는 팀 사이바의 참신함을 높이 평가한다. 아쉬 파르망티에의 세 가지 구조를 대범하게 재해석한 결과물이 이것이다. 팀 사이바는 마치 아티스트들이 상호의 개성을 맞부딪히는 전위예술과도 같다. 매우 이색적인 콜라보레이션인 것이다. 특히 에리나가 구웠던 스테이크를 칭찬하는데 쇠고기의 최고급 부위인 "앙트르코트"를 웰던으로 구운데다 볼트 와인을 아낌없이 쏟아부워 소스 보르돌레즈를 만들어 크레이프에 담았다. 이것으로 중후함과 감이 겸비된 미트 소스가 된 것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13화 . . . . 19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2화]] |||| '''극의 소마/213화''' |||| [[극의 소마/214화]] ||
         [[극의 소마]] 213화. '''가능성의 컵'''
          * 소마는 기존 컵 야키소바를 분석하고 고안을 더하곤 했는데 그때 지을 "철냄비"라는 "컵"으로 마무리한게 이른바 "유키히라류 코가시 소바"다.
          * 연대극의 진행되면서 바깥의 날씨도 더 춥고 가혹하게 변했다. 실내에 있던 반역자들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차가워졌다.
          * [[나키리 아리스]]는 이제서야 "뭔지 알겠다"고 하는데 막상 이야기를 꺼내보니 "외견에서 소바란 느낌이 안 든다"같은 한 박자 늦은 감상이다. 어쨋든 동료들의 주된 의견은 철냄비로 볶아버린 소바엔 메밀 특유의 풍미가 남지 않았을 거란 것이다. 그런데 향기의 스페셜리스트 [[하야마 아키라]]는 조금 의견이 다른 것 같다. 동료들과 다른 표정으로 소마의 시을 지켜본다. 그리고 [[잇시키 사토시]] 또한 소마에게 "그게 네 대답이구나"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한다. 소마도 알아들은 건지 "네. 잘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옆에서 보는 네네는 뜻모를 대화다.
          * 그리고 시. 사회자 [[카와시마 우라라]]는 "보나마나 풍미고 뭐고 사라졌을 것"이라 예측한다. 그런데 심사의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하나같이 진한 메밀의 풍미에 감탄한 얼굴. [[이스트와르]]는 소바의 풍미가 잘 살아있다고 발언한다. 네네는 뜻밖의 결론이 나오자 경악한다. 이어서 [[샤름]]이 "구운 부분이 바삭바삭해서 소바의 감을 배가한다"고 발언하고 이스트와르는 "오리고기의 기름이 소바의 감칠맛을 강화시킨다"고 짚어낸다. [[안]]은 소바 자체의 풍미가 잘 전해진다고 총평. 소마는 좋았어, 라고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가 기대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 자신의 상을 뒤집은 평이 나오자 네네는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소마의 조리대에서 답을 찾아나선다. 그녀는 곧 남은 소바를 살펴보고 소마가 "3번 가루"로 소바를 만들었음을 간파한다. 아리나처럼 일 문외한들은 잘 모르는 표현. 안이 부연설명에 들어간다.
          소바가루는 메밀을 갈 때 어느 부위를 쓰냐에 따라 1번부터 3번까지 번호로 구분한다. 밀가루가 밀의 종류나 가는 방에 따라 소맥분이나 강력분 등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1번 가루는 메밀을 갈 때 가장 처음 나오는 가루다. 배젖 중심 부분에 해당하며 이것으로 만든 소바는 목넘김이 좋고 기품있는 풍미를 낸다. 2번은 메밀을 좀 더 갈아서 배젖의 주변 부분인 배아부까지 쓴 것. 향기와 감의 밸런스가 좋다는 평가다. 3번은 2번까지 갈아내고 남은 외피 부분을 갈아 쓰는 것인데, 목넘김은 거칠지만 굉장히 풍미가 강렬한 가루가 나온다.
          네네의 소바는 당연히 1번을 써서 만든 것으로 기적적으로 가벼운 감과 목넘김을 자랑했다. 만약 소마가 같은 1번 가루를 썼다면 그가 선택한 조리법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3번 가루를 활용, 애초부터 향이 강하다는 이점을 살려서 강한 불에 구워도 향이 날아가지 않고 적절히 남았다.
          * 네네는 소마가 어떻게 그런 발상이 가능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설사 3번 가루를 쓴다고 해도 야부소바나 시골소바처럼 좀 더 상적인 요리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소바를 굽는다는 발상을 했을까? 여기에 대해서 소마의 답은 명쾌하다.
          사실 그는 특훈 기간 동안 소마를 방문했었다. 소마가 착안한 "정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조언을 해줬다. 잇시키가 보기에 그건 현 십걸에게도 없는, 매일매일 손님을 상대해본 소마만이 가지는 특기였다. 그런 점에서 [[사이바 죠이치로]]가 좋은 조언을 했다고 말한다. 잇시키는 여기에 "십걸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기분야가 있다"고 귀띔해주며 거기에 대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권한다. 설사 적의 특기가 나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게 말이다. 이때 처음으로 네네의 특기가 소바라는 걸 알려주는데, 그때만 해도 설마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은 이상 적의 특기에 딱 걸릴가? 이렇게 생각했지만, 전화위복이 됐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이철우(1955) . . . . 19회 일치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학력 ''' }}} ||<(><bgcolor=#FCFEFE> [[김천고등학교]] {{{-1 ([[졸업]])}}}[br][[경북대학교|[[파일:15-1.jpg|width=20]]경북대학교]] {{{-1 (수학교육 / [[학사]])}}}[br][[연세대학교]] {{{-1 (정치학[* 행정대학원 정치학과정] / [[석사]])}}}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링크 ''' }}} ||<(><bgcolor=#FCFEFE> [[http://www.leecw.pe.kr/|공 홈페이지]][br][[https://blog.naver.com/lcw619| [[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25]] 블로그]] | [[https://twitter.com/CUagainLee| [[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24]] 트위터]][br][[https://www.instagram.com/lee_cheol_woo|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width=24]] 인스타그램]] | [[https://www.facebook.com/lcw619|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24]] 페이스북]]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경력 ''' }}} ||<(> 화령중·고등학교 교사[br][[국가정보원]] 국장[br][[경상북도]] 정무부지사[br]새누리당 원내대변인[br]제18~20대 국회의원[br][[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br][[자유한국당]] [[사무총장]][br][[자유한국당]] 최고위원 ||
         1955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 곡송국민학교, 대구 [[영남중학교(대구)|영남중학교]], [[김천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이후 상주 화령중학교, 의성 신평중학교와 단밀중학교 수학 [[교사]]를 역임하였다가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 공채에 합격하여 정보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2005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이의근]] 도지사와 [[김관용]] 도지사 밑에서 경상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화령중학교 교사 때의 제자이던 [[임이자]]도 해당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제|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6년]]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간사이자 자유한국당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8년 9월 4일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하락하는 경북 경제의 해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제시하였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추어 포항, 울릉, 울진, 영덕을 중심으로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풍력, 수소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 확장에 나서고 농어업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스마트팜 혁신 밸리와 스마트 양장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http://www.etnews.com/20180903000231|[인터뷰]이철우 경북도지사...'동해안에너지클러스터와 4차 산업혁명 일자리 창출']]
         [[2014년]] [[4월 30일]]에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 당시 대통령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안전을 많이 강조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공무원들한테 다 전달이 안 됐고, 또, [[미개|국민 의이 그만큼 못 미쳐서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430500160&wlog_sub=svt_006|링크]]
  • 장대환 . . . . 19회 일치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1973년 정치학으로 학사를 받았으며 1987년 [[뉴욕 대학교]]에서 국제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대위이다.
         * 1970년 1월 : 경기고등학교 졸업
         * 1974년 5월 : 로체스터 대학교(미국) 정치학 학사
         * 1976년 2월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미국) 국제정치학 석사
         * 1985년 2월 : 뉴욕대학교 대학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석사
         * 1987년 6월 : 뉴욕대학교 대학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박사
         * 1977년 9월 :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연구조교
         * 1979년 3월 ~ 1983년 3월 : 공군대위.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정치학, 경영학 교관, 생도전대 상담교관 전임강사
         * 1988년 3월 ~ 97년 3월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강사(국제경영학)
         * 1998년 : 세계지포럼(World Knowledge Forum) 집행위원장
         * 2002년 3월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겸임교수
         * 2003년 3월 :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흥덕 장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매경 미디어 그룹]][[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로체스터 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김대중 정부]][[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정용화 . . . . 19회 일치
         * [[경희사이버대학교]] 중국학과 학사<ref>{{뉴스 인용|제목= 경희대 사이버 대학원 측 “정용화 관광레저항공 석사 졸업…박사과정은 경희대학원에서” |url=http://chicnews.mk.co.kr/article.php?aid=1516156769171420007
         *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관광레저항공학과 석사<ref>{{뉴스 인용|제목= 경희대 사이버 대학원 측 “정용화 관광레저항공 석사 졸업…박사과정은 경희대학원에서” |url=http://chicnews.mk.co.kr/article.php?aid=1516156769171420007
         * [[2011년]] [[10월 19일]]에 2년여 시간의 인디즈 생활을 마감하고 《[[In My Head]]》로 메이저 데뷔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워너 뮤직 재팬과 계약 체결…日 메이저 사냥 나선다|url =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출판사 = 티브이데일리|날짜 = [[2011년]] [[9월 1일]]|확인날짜 = 2012년 8월 19일|보존url = https://archive.today/20120720005549/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보존날짜 = 2012년 7월 20일|깨진링크 = 예}}</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10월19일 'In my head' 발매 日정데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90609394071723&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 |날짜 = [[2011년]] [[9월 6일]]}}</ref>《[[In My Head]]》의 타이틀 "In My Head" 를 작곡 하였고 "Mr.K.I.A(Know It All)" 작사 및 작곡, "In My Head(Inst.)"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첫 날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3위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메이저 데뷔곡 '인 마이 헤드' 오리콘 3위 '쾌거'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1020094523113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1년]] [[10월 20일]]}}</ref> 메이저 음반 발매 기념으로 한 이벤트에 1만4000여명이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이벤트 1만4000명 동원 ‘日 메이저 데뷔 성공적’|url= 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출판사= 스포츠동아|날짜= [[2011년]] [[10월 25일]]}}{{깨진 링크|url=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 }}</ref>
         * 공적인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활동을 [[2012년]] [[4월 22일]]에 마무리하고, [[2012년]] [[5월 5일]]에 드디어 첫 번째 [[씨엔블루]] 팬미팅을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국내팬미팅 헤드뱅잉+제기차기 ‘폭발반응’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5090735301002|출판사 = 뉴스엔|날짜 = [[2012년]] [[5월 9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팬들과 오붓한 팬미팅 개최 ‘함박웃음’ |url=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87198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년]] [[5월 9일]] }}{{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87198 }}</ref>
         * 같은 소속사 가수 [[주니엘]]의 데뷔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고 듀엣곡과 뮤직비디오 출연소이 연이어 들리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으며, 직접 출연한 선공개곡 ‘바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의 티저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팔에 키운 완두콩, 주니엘 뮤비서 공개 |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275926599530232|출판사 = 이데일리|날짜 = [[2012년]] [[5월 18일]]}}</ref> [[2012년]] [[5월 22일]]에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와 주니엘의 듀엣곡 ‘바보’ 22일 선공개 |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120521022078&subctg1=&subctg2=|출판사 = 세계일보|날짜 = [[2012년]] [[5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주니엘-정용화 듀엣곡 '바보', 실시간 차트 2위로 기분좋은 출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5월 22일]]}}</ref>
         * [[2012년]] [[7월]]부터 [[2011년]] [[6월]]부터 [[8월]]까지 방영된 [[문화방송 수목 미니시리즈|MBC 수목 미니시리즈]] 《[[넌 내게 반했어]]》가 일본 공중파 후지TV에 방영을 시작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일본 인기 파워 실감- ‘넌 내게 반했어’ 일본 공중파 입성 |url=http://nanumnews.com/sub_read.html?uid=42246§ion=sc208|출판사 = 나눔뉴스|날짜 = [[2012년]] [[5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출연작 '넌 내게 반했어' 日 후지TV 진출 '경사났네' |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26944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TV리포트 |날짜 = [[2012년]] [[5월 16일]]}}</ref> 또한, 공중파 방영 전에 [[2012년]] [[7월 16일]]에 일본에서 공적인 팬미팅을 개최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박신혜, 日 '넌 내게 반했어' 방영 앞두고 팬미팅 개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95980|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6월 13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박신혜,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성료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1006.html |출판사= 조선일보 |날짜= [[2012년]] [[7월 17일]] }}{{깨진 링크|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1006.html }}</ref> 티켓이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박신혜, ′넌 내게 반했어′ 日팬미팅 1만석 매진 ″현지 열기 후끈″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67085|출판사 = 아시아투데이|날짜 = [[2012년]] [[7월 11일]]}}</ref>
         * [[2012년]] [[11월 2일]]에 KBS에서 진행된 《MUSIC BANK IN CHILE》에서 본인의 솔로로 무대에 올라 기타 연주와 함께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불러 스페셜 무대를 꾸몄는데, 이 곡 편곡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전 출연자가 무대에서 부른 ‘아리랑’의 편곡도 맡아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편곡자로 실어 눈길을 끌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소에 네티즌 호평 "진정한 싱어송라이터"|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239010§ion=sc4|출판사 = 브레이크뉴스|날짜 = [[2012년]] [[11월 18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전 출연진 열창 순서에 자막 ‘편곡:정용화’ |url=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년]] [[10월 23일]] }}{{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ref>
         * 앨범발매로 바쁜 와중에 [[2013년]] [[1월 15일]] 말레이시아에서 진행된 제27회 골든디스크시상의 MC를 맡아 진행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니콜, 이홍기-다솜 ‘골든디스크 시상’ MC 확정|url=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92989&cloc=|출판사= 일간스포츠|날짜= [[2013년]] [[1월 11일]]}}{{깨진 링크|url=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92989&cloc= }}</ref><ref>{{뉴스 인용|제목= 말레이시아 팬들, ‘골든 MC’ 정용화-니콜 “환상의 커플” 극찬
         |《제27회 [[골든 디스크 시상]] 인 쿠알라룸푸르》
          |제목 = 정용화-니콜, 이홍기-다솜 ‘골든디스크 시상’ MC 확정
         |《제28회 [[골든 디스크 시상]]》
         * [[2013년]]~[[2014년]] 품 - 케이푸드 (K-Food)
         ! 시상
         * [https://web.archive.org/web/20150711175315/http://www.fncent.com/jyh/collabo/index.html?url=%2Fjungyonghwa%2Fb%2Fintroduce%2F7670 정용화 공 홈페이지]
         [[분류:씨엔블루의 일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2009년 데뷔]][[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사이버대학교 동문]][[분류: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최세창 . . . . 19회 일치
         [[1953년]] [[경동고등학교|서울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57년]]에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77년]] 육군 특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장으로 보임되었고 [[1979년]]에 일어난 [[12·12 군사 반란]] 당시 [[하나회]]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제3공수특전여단을 지휘했다.
         * [[경동고등학교|서울 경동고등학교]] 졸업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13기 졸업
         * [[미국 육군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졸업
         *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반 졸업
         *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졸업
         * [[한양대학교|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반란자]][[분류:하나회]][[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주 최씨]][[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반역죄 기결수]]
  • 추경호 . . . . 19회 일치
         |학력 = [[오리건 대학교|오리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추경호는 [[1960년]] [[7월 29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계성고]]를 졸업했고 [[1986년]]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리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1973년 [[대구수창국민학교]] 졸업
         * 1979년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계성고등학교]] 졸업
         * 1986년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 1988년 [[오리건 대학교|오리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2014년12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우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교우상’을 받았다. 이 상은 1980년부터 고려대 경영대 교우회가 각 부문 특성에 맞춰 뛰어난 동문에게 수여하고 있는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품성과 덕망도 함께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규제기요틴은 경제혁신을 가로막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규제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강도 높은 규제개혁 방이다. 이번 건의과제들에 대해 정부는 규제기요틴 이름에 맞게 그 어느 때보다도 속도감있게 전향적인 자세로 과제들을 검토했다." (2014/12/28 규제기요틴 민관합동 회의에서)
         |후임자 = [[김대 (대학 교수)|김대]]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오리건 대학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추계 추씨]][[분류:친박]]
  • 홍성유 . . . . 19회 일치
         |학력 =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직업= [[소설|소설가]] <br/> 도락가 <br/> 평론가 <br/>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위]]
         |장르= [[소설]], 미평론, 스포츠 평론
         * 1947년 [[경동고등학교|경성 경동고등보통학교]] [[졸업]]
         * 1951년 [[서울대학교|서울대 행정학과]] [[학사]]
         * 1952년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육군보병학교]] 졸업
         [[1928년]] [[10월 4일]] [[경성부]]에서 태어나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1951년]]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학사 학위하였다. 이어 같은 해 1951년 9월 [[갑종장교|육군 갑종사관]] 제10기로 육군 소위 임관하여 [[1951년]] [[대한민국 육군본부|육군본부 헌병사령부]] [[기관지]] 《[[사정보]]》(司正報) 기자·편집장을 지낸 이후, 1952년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육군보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1953년]] 국방부 군사잡지 《[[명랑]]》(明朗) [[편집장]]을 거쳐 [[1955년]] [[2월]]에 대한민국 육군 중위 예편하였으며 [[1957년]]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비극은 없다]]》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도박을 좋아한 그는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김종철 (시인)|김종철]] 시인은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인하여 그는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도락가로도 유명해 [[1987년]] 전국 각지의 맛있는 [[음점]]을 소개한 《[[한국 맛있는 집 666점]]》에 이어 [[1999년]] 《[[한국 맛있는 집 1234점]]》을 발간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는 《[[수평선에 별 지다]]》《[[비극은 있다]]》《[[정복자]]》《[[홍건적]]》 등이 있다.
         [[분류:1928년 태어남]][[분류:200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
         [[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한국독립당]][[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정일권]][[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남양 홍씨 (당홍)]]
  • K리그 챌린지 . . . . 18회 일치
         2013시즌은 8개팀으로 운영되었으나 2014시즌엔 클래에서 추가로 강등된 팀을 포함하여 10개팀으로 운영되었고, 2015시즌에는 서울 이랜드가 새로이 창단 및 합류하면서 총 11개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래는 기존의 K리그가 1부리그로써 [[K리그 클래]]이란 명칭을 부여받고, 새로 만들어질 2부리그가 K리그라 불릴 예정이었다. 이는 다른 리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기존 1부리그가 갖고 있던 명칭을 2부리그가 부여받는게 당연한 수순으로 받여들여지는 축구계의 풍조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쉽의 관계처럼 새로 1부리그에 부여하는 이름이 명확하게 다른게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의 명칭이 상당히 헛갈릴 우려가 있었던 점이 지적되었다. 이런 이유로 2부리그도 단순히 K리그의 이름을 물려받는게 아니라 K리그 클래처럼 충분히 구분가능한 명칭을 짓는 것이 공론화되었고, K리그 챌린지란 이름이 공화된다.
         챌린지의 대회 운영도 승강제 도입과 관련한 문제 때문에 각 시즌마다 다른 운영방으로 진행되었다.
         2013시즌은 8개 팀이 약 40주 일정에 가깝게 치뤄야 했으므로 [[홈 & 어웨이]] 방을 쓰되 서로 5번씩 만나는 구조로 운영되었다. 우승팀은 2014시즌 K리그 클래 승격을 위해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 진출자격을 부여받았다. 상주가 여기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리하면서 K리그 클래으로 승격을 이루게 되었다.
         2014시즌은 상주가 승격하고 K리그 클래에서 3개팀이 내려오면서 10개팀 체제로 운영하게 되었다. 10개팀이 되었기 때문에 2013시즌과 같이 5번씩 만나는 홈 & 어웨이에서 4번씩 만나는 홈 & 어웨이로 운영방이 변경되었다.
         또한 2014시즌부터는 정규시즌이 끝나면 챌린지 우승팀은 K리그 클래에 자동으로 진출하고, 2위에서 4위팀은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거쳐 클래 11위팀과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를 거치는 체제가 정립된다. 이 신설규정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쥔 대전이 클래으로 승격되었으며, 챌린지 4위였던 광주가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 자격으로 당시 클래 11위팀인 경남과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이김으로써 승격을 이루게 된다.
         기본 운영방은 변경이 없었으나, [[서울 이랜드 FC]]가 새로이 창단 및 합류함으로써 경기수가 40경기로 늘어난 상태로 운영하게 되었다. 이 밖에 리그를 구성하는 팀이 짝수가 아니라 홀수로 변경되었기에 각 라운드마다 1개팀은 휴기를 갖는 기회가 생겼으나, 일정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챌린지 팀들 사이에서 불거지게 된다.
         또한 챌린지에 기록되는 선수의 성적은 모두 정규시즌 중에 획득한 것으로만 한정했었다가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성적을 통산기록으로는 인정하되, 시즌이 끝나고 시상할 때는 산정기준에서 빼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과거 K리그가 K리그 챔피언십을 운영하였던 방과 유사하게 바뀐 셈.
         [[K리그 클래]]
  • 강상재 . . . . 18회 일치
         | 고등학교 =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 대학교 = [[고려대학교]]
         == 고려대학교 시절 ==
         * [[대구칠곡초등학교]] 졸업
         *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졸업
         *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졸업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곡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김성민 (1994년) . . . . 18회 일치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신분 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이후 [[KBO (야구)|KBO]]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공적인 항의 서신을 보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이러한 규정 위반에 대해 공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월 15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사무국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벌금 징계를 부과하였고 그와의 계약을 30일 간 잠정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31426 美볼티모어 부사장 “김성민 계약 파문 공 사과”],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2&aid=0002272362 MLB 사무국, 김성민 영입 볼티모어에 벌금 징계], 《해럴드POP》, 2012년 2월 16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계약은 미루어졌고 결국 [[6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의 계약 불발을 보도하면서 [[7월 7일]]에 공적인 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그는 국제 미아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196271 볼티모어, 김성민 계약 위해 MLB 승인 기다려], 《스포츠조선》, 2012년 3월 2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64872 '스카우트 파동' 김성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재계약 실패], 《OSEN》, 2012년 6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999 댄 듀켓, “김성민과 계약하고 싶지 않다”], 《OSEN》, 2012년 7월 8일.</ref> 결국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는 2013년 초에 일본의 [[후쿠오카 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14&aid=0000227125 고교야구 유망주 김성민 일본 대학 입학 왜?], 《MBC》, 2013년 1월 11일.</ref>
         2016년에 대학교 4학년 때 [[KBO (야구)|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8월 2일]]에 실시한 트라이 아웃에 참여하였다. 트라이 아웃에서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었고 1억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 출신 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SK 와이번스 선수]]
  • 김옥이 . . . . 18회 일치
          | 기타 이력 = 숙명여자대학교 초빙교수 <br/> 한나라당 특임위원 <br/> 한나라당 행정위원 <br/> 한나라당 경기도 의회 의원 <br/> 한나라당 상임위원 <br /> 한나라당 국회의원 <br /> 새누리당 국회의원 <br/> 새누리당 전임위원 <br/>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br/> [[자유한국당]] 보훈행정위원
         * [[대구달성초등학교]] 졸업
         * [[대구일중학교|대구일중학교(구.대구여자중학교)]] 졸업
         * 대구여자고등학교 졸업
         * 동아대학교 행정학 졸업 (학사)
         * 육군보병학교 졸업
         *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안보행정학 졸업 (석사)
         [[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일중학교 동문]][[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군 장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대한민국 육군 대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친이]][[분류:친박]]
  • 배영수 . . . . 18회 일치
         ||<:> '''학력''' || 대구칠성초 - 경복중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칠성초, [[경운중학교(대구)|경운중]]를 거쳐 대구의 야구명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를 졸업했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참교육|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05년에는 정규시즌 동안 11승을 올리면서 147개의 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오른적이 있다. 이 활약으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2006년 제1회 WBC]]의 국가대표 A팀에 승선하여 중간계투로 활약했으며, 특히 1라운드 A조 3경기 일본과의 경기에서 6회말 1사 후 봉중근을 구원하여 올라와 ⅔이닝을 잘 소화한 다음 7회말 일본의 공격 때 선두타자였던 [[스즈키 이치로|이치로]]를 초구부터 141km/h짜리 속구를 엉덩이 쪽으로 던져 맞춘 것이 유명해져 [[https://youtu.be/Gw8MEjLD3iM|배열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수술 소을 들은 [[박찬호]]는 배영수에게 "(재활기간)2년 생각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게다가 배영수는 선천적으로 간수치가 높아 예정보다 2달 가량 늦게 [[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news/sports/200701/20070129/71912005.htm|수술]]했다. ~~하지만 [[선동열|당시 감독]]은 박찬호의 말을 무시하고 말았는데...~~
         마침내 결정된 곳은 야쿠르트로, 등번호까지 결정되었을 정도로 계약이 거의 다 되었는데 메디컬 테스트 결과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로 계약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원래 배영수는 선천적인 이유로 간 수치가 높다고 한다. 그것때문에 2006년 시즌끝나고 수술을 미룬것.] 이걸 계기로 배영수는 'B형수', 'B영수'란 별명을 얻었다. 안티들은 배영수가 대구출신이고 간염 보균자다 보니 상어를 염장하여 구운 경북 대구 음인 돔배기에 빗대 '돔배영수'(...)로 부르기도 한다.[* 기존 위키는 돔배기가 상어를 삭힌 경상도 음이라 하였으나 주로 경북 대구 지역서 염장한 상어고기를 구워 주로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리는 음이다. 돔배기는 경북 영천이 유명하다.]
         4월 10일 문학 SK전과 4월 17일 대구 두산전, 4월 23일 목동 넥센전에서 연달아 승리함으로써 내리 3승을 거두었다. 삼성팬들에게는 기쁜 소이 아닐 수 없다.
         ||'''시즌 한 짤 요약.gif''' ~~빵 한번 찰지게 잘 굽는다~~[* 참고로 저 빵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진후 본인은 삼진이라 생각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려했으나 주심이 삼진을 잡아주지 않아 구운 것이다.] ||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492151|1일 저녁 급작스럽게]] 1군으로 콜업되었다. 속구 구속이 140km를 넘어섰다는 소을 들은 김성근 감독이 송은범, 안영명이 빠진 투수진에 합류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슬럼프를 이겨낼 경우 --실낱같은--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고문이라도 기대할만 했으나... 한번도 등판하지 못하고 1군에 등록된지 4일만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스프링캠프에서 20대 후배들을 한당에 데려가 원하는만큼 밥을 샀다고 해서 간만에 칭찬을 들었다. ~~[[송은범|34억]]은 어디서 뭐하냐는 비난은 덤~~ ~~34억 서산에서 의문의 1패~~
         그런데...감독에 의하면 시즌 초 10일에 한 번씩 던지게 할 것이라고 한다. 시즌 초 한 번 선발등판 후 2군으로 내려 휴을 주면서 젊은 투수들을 시험해볼 심산인 듯. 올해 31번 선발로 등판한다면 송진우의 통산 최다 선발 등판 기록을 넘어 1군 통산 378번의 선발 등판이 가능하겠지만, 감독이 공헌한대로 기용된다면 내년을 바라봐야 할 듯 하다.
         4월 20일 5일을 쉬고 넥센전 선발로 등판했으나 4이닝 5자책으로 멸망했다. 정말 10일 휴밖에 안되는 걸까...
         이후 MLB파크등 각종 야구커뮤니티에서는 배영수가 이전에도 이러한 행위를 했는지 찾았으며 그 결과, 롯데전 발까딱 부정투구 외에도 kt, 넥센전에서도 똑같은 방의 부정투구 의혹이 있는 행위를 한것으로 재조명되었다. [[http://mlbpark.donga.com/mp/b.php?p=1&b=kbotown&id=201707160006353548&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sig=h4aXGY2A6hjRKfX@hca9RY-Ajhlq|이전 부정투구 의혹 영상들]]
          * 개인통산 100승 달성 후 인터뷰에서 고마운 사람으로 가족 다음으로 --참교육자 [[펠릭스 호세|호세]]-- 배우 '''[[박재정]]'''을 언급했다. ~~[[너는 내 운명(드라마)|배영수와 호세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인가 보다]]~~ 경북고 동문으로 박재정이 1년 선배인데, 박재정이 배영수 결혼 사회를 봐줬을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 식객 . . . . 18회 일치
         중국사의 객이란, 귀족의 집에서 숙을 해결하며 그 대신에 자신의 '재주'[* 학문이나 무예는 물론, '계명구도'의 일화에서 나오듯이 개나 닭 소리를 흉내내는 특이한 재주까지 있었다.]를 팔아서 주인에게 도움을 주는 '손님'을 뜻했다. 즉 공적으로 종속 관계인 하인&고용인과 달리 상하관계가 자유로웠다. 본인에게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자신의 집에 찾아온 '객(손님)'이니만큼 항상 대접을 해주었던 걸로 추측된다. 본래 어느 문화권이든 사회 고위층은 '손님'을 우대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문화가 있는데 여기에서 발전하여 손님을 대접한다는 명분으로 세력을 모으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객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사람을 주인이 보호해주고 대접해주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문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객은 여러 나라의 귀족 계급의 분쟁에서 주요한 전력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뛰어난 실력을 살려서 일종의 [[사병]](私兵)이 되거나 주인의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주인이 살해되면 객이 [[복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서양 유력자들이 평민이나 해방노예들을 거느리고 세력을 형성하던 것과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느슨한 관계라서 주인이 실각하여 힘을 잃거나 하면 미련없이 떠나거나 다른 집에 객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많았다.
         맹상군, 신릉군 같은 전국사군자는 수백명의 객을 육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객들은 이 귀족들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점차 정부에서는 객들을 위험시 하여 왕족이나 귀족이 객을 두는 것을 정책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객이 복수를 한 사례로는 전국시대 초기에 조양자[* 위씨, 한씨와 함께 진(晉)나라를 3등분하여 '조, 위, 한' 중 조나라를 건국한 인물.]에게 패사(敗死)한 지백의 객 '예양'의 사례[* 조양자를 시해하려다 연거푸 실패하고 붙잡히자 조양자의 옷이라도 베길 원한다고 말해 원을 풀고 자결한다. 공교롭게도,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조양자는 병이 들어 죽고 만다.]와, 삼국지에 나오는 [[손책]]이 [[허공]]을 죽이자, 그 객들 가운데 몇몇이 손책을 암살한 사건이 있다.
         [[법가]] 사상에서는 이러한 객을 사회 위험분자로 보고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국시대의 위나라에서는 각 제왕(황족)이 객을 두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했다.
          * 허영만 화백의 만화 "객"은 본래 의미와는 달리 '미가' 쪽에 가깝다.
  • 식극의 소마/189화 . . . . 1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8화]] |||| '''극의 소마/189화''' |||| [[극의 소마/190화]] ||
         [[극의 소마]] 189화. '''제 2라운드'''
          * 하야마 아키라의 승리로 끝날 듯할 극이 "소스"라는 변수가 남아있었다.
          * 또 한 번 유키히라 소마의 패배로 끝나는 듯 했지만 꿀과 발사믹 초를 쓴 소스는 곰고기 멘치까스의 맛을 몇 배로 배가시켜 하야마 이상의 평을 받는다.
          * 하야마 아키라의 압승으로 끝나려던 극은 "소스를 찍은 맛"을 아직 보지 않아서 승패는 가려지지 않는다. 나키리 소우에는 이 점을 지적했지만 베르타와 실라는 아무 생각없이 --처묵--먹기만 해서 정말로 승부가 끝나버릴 지도 몰랐던 상황. 아무튼 유키히라 소마의 투지는 아직도 꺾이지 않았다.
          * 이어서 소마의 멘치까스를 재시한다. 소마 또한 곰고기 육수를 쓴 소스를 제출했는데 자세한건 아직도 불명. 베르타와 실라는 거기서 청주에 절인 오미자, 액센트로 추가된 마늘향을 간파하지만 어떤 "순한향"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쿠가 테루노리는 그것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데.
          * 베르타와 실라가 다시 소스를 찍은 멘치까스를 시하는 순간, 소스를 더했을 뿐인데 맛의 표정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소마의 소스 또한 요리의 맛을 끌어 올리는데 단순히 완성도를 더한다기 보단 전혀 다른,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듯한 향상이다. 매우 복잡미묘하면서도 곰고기의 달콤한 풍미를 배가시키는 신기한 소스다. 베르타와 실라는 소스를 다루는 것만큼은 소마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을 마치는데
          * 왠지 정말로 벗고 있다. 지금껏 잠자코 있던 도지마 긴은 하라는 음 설명은 안 하고 왜 저 리액션이 나왔는가 설명하고 앉았다. 이것은 "터지기"의 상위 기술로 나키리의 피에 흐르는 특유의 정신력이 극상의 맛에 의해 공기 중에 해방되어 나키리 가문이 아닌 사람도 풀어헤치기나 터지기가 발동하는 "전수"라는 기술인데 참 쓸데없고 어이없는 설정이다.
          * 어쨌거나 프라이드 베어를 맛본 이후 계속 벗고 있는 소우에가 소스의 비밀은 "꿀과 발사믹 초"임을 간파한다. 소마는 옅은 단맛으로 소스에 깊이를 주고 초의 신맛으로 맛을 꽉 묶어서 매우 정돈되면서도 깊고 진한, 동시에 산뜻한 맛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구상은 사냥꾼 아저씨에게 "곰은 꿈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하고 있던 것. "곰의 특성을 배운다"는 발상이 빛을 발햇던 것이다.
          * 하야마는 단지 그것만으로 저렇게 극적인 맛이 날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카라멜리제"에 생각이 닿는다. 그것이 정답. 당류를 가열하면 나타나는 산화현상으로 소마는 벌꿀의 카라멜리제를 핵심으로 삼았다. 벌꿀을 카라멜리제 시키고 발사믹 초를 넣어 점성을 만들고 잘게 썬 마늘과 양파, 오미자를 더해 곰육수를 붓고 간을 맞추는 것으로 소스가 완성. 그 맛은 리액션으로 본대로다. 참고로 이걸 만들고 있을때 쿠가는 옆에서 차나 마시며 빈둥대고 있던 모양.--결국 별 도움은 되지 않는 놈이다.--
          * 도지마는 이제야 음에 대해서도 해설을 하는데 곰고기와 꿀의 궁합은 워낙에 유명하다. 최고급 곰고기 요리인 "곰발바닥 요리"의 맛의 비결도 곰이 발로 꿀을 발라먹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도지마는 이러한 발상을 "완화와 강조"라는 말로 정의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97화 . . . . 1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6화]] |||| '''극의 소마/197화''' |||| [[극의 소마/198화]] ||
         [[극의 소마]] 197화. '''상처투성이'''
          * 죠이치로는 50인 연대극 이후엔 괴요리도 관두고 파죽지세로 외부 콩쿠르를 섭렵, 비길 자가 없는 강자로 진화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이들보다도 주목받는 존재 죠이치로. 쿄쿠세이 기숙사의 간판이자 학교 내에선 모르는 자가 없는 유명인이었고 그를 동경해 기숙사 입사를 원하는 신청자가 폭주해 [[다이미도 후미오]] 여사가 골머리를 썩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유명인사가 정작 기숙사에는 붙어있지 않고 학교나 외부에서 열리는 콘테스트에만 들락거리고 있었다.
          * 죠이치로는 콩쿠르에서 토마토 육수와 발효 버터를 사용한 스키야키풍 소고기 요리를 선보인다. 심사를 맡은 요정 "쿠라키"의 후계자 쿠라키 시게노는 어떤 요리든 의연한 태도로 먹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시에 들어간다. 그러나 여지없이 탈의되면서 굴복. 이번 콘테스트도 죠이치로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죠이치로 본인은 딱히 기쁘지도 어떻지도 않은 것 같은데.
          * 영웅의 귀환. 죠이치로는 많은 학생들의 환대를 받으며 기숙사로 돌아온다. 건성으로 이들의 환영을 받은 죠이치로는 어느새 조리대 앞에 서있다. 문득 시오미가 나타나 요즘 괴요리를 만들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죠이치로는 대답 대신 "그렇게 탐을 내는 거냐"고 놀려먹는다. 옆에 있던 도지마가 그 말을 듣고 극에도 낼 정도로 좋아하더니 왜 관뒀냐고 묻는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자세한 설명보다는 "너도 먹을 걸로 장난친다고 화내지 않았냐"고 답할 뿐이다.
          * 얼마 뒤 도지마는 십걸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아자미에게 묻는다. 요즘 죠이치로가 걱정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자미는 지금 죠이치로에게 문제될게 없다고 본다. 오히려 묘한 살기를 띄는 그가 정점에 어울린다며 존경스럽다고까지 말한다. 도지마의 생각은 다르다. 50인 연대극 이후에는 그 누구도 죠이치로에게 도전하는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극에 죠이치로가 관여된 듯 하면 사퇴해버리는 녀석들까지 나타났다.
          * 그때 문제의 죠이치로는 너무나 활달한 모습으로 나타나 극이나 한 판 하자고 제안한다. 도지마는 며칠 후면 오사카에서 심사회가 있고 다음 달엔 THE BLUE에도 참석해야 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죠이치로는 태연하게 승부감을 유지하려면 그게 좋다며 서류 작업 같은건 때려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서류작업은 모두 죠이치로가 팽개친걸 나눠하는 거니 원흉은 결국 그다.
          * TV에서 조차도 그는 칭송의 대상이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어 요리관련 채널이라면 어디든 그의 이름을 들을 수있다. 그럴 수록 학교 내에서 그를 숭상하는 발언은 수위가 높아지지만, 이 또한 죠이치로 본인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는 무감동한 얼굴로 바라볼 뿐, 다시 그의 여정으로 돌아간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11화 . . . . 1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0화]] |||| '''극의 소마/211화''' |||| [[극의 소마/212화]] ||
         [[극의 소마]] 211화. '''절대적 재정자'''
          * 이 조리는 적아군을 막론하고 "비상적"이라 고개를 저을 정도로 괴악한 행위.
          * [[카와시마 우라라]]는 화제를 돌려 연대극의 심사의원을 소개한다. 그들은 WGO란 집단에서 나온 집행관들이다.
          * WGO는 미계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단체로 이들이 내리는 별점평가는 요업에선 절대적. [[시노미야 코지로]]가 달한 "별을 딴다"는 것도 이것이다.
          * WGO는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단체인지 미과 자기네 평가서를 "교전"라 지칭하고 [[나키리 아자미]]와 비슷한 광신적인 행태를 보인다.
          * 안은 교전에 정집 유키히라가 없다는 이유로 비꼬는 듯한 말을 마구 하는데, 관중들이 거기에 편승해 엄청난 야유와 비난을 퍼붓는다.
          * 소마는 문자 그대로 면을 굽듯이 볶는다.[[요시노 유키]]와 [[이부사키 슌]]은 그야말로 경악. 일에 조예가 없는 [[나키리 아리스]]는 원래 야키소바는 철판에 볶는 요리니 잘못된게 아니지 않냐고 의문을 표한다. [[나키리 에리나]]가 설명하길, 원래 야키소바는 소바의 이름만 딴 완전히 다른 요리. 사용하는 면은 평범한 중화면이나 밀가루면이다. [[사카키 료코]]는 야마구치현의 명물 "카와라소바"를 예로 들며 삶아서 굽는 소바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차소바"라고 해서 가루부터 특이한 별개의 요리다. [[타쿠미 알디니]]는 만약 전통있는 에도소바 가게에 일하러 가서 저런 짓을 하면 즉시 쫓겨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소마의 조리는 상에서 벗어났다.
          * [[카와시마 우라라]]도 어쨌든 토오츠키의 학생인 탓인지 소마의 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 일축한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서 연대극의 심사를 맡은 3인의 심사의원을 소개한다. 그동안 심사의원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도 어떤 사람들이 나올지 주목한다. 그런데 나오라는 심사의원은 안 나오고, 왠 여성이 전화번호부만한 책 뭉치를 낑낑대고 옮긴다. 그녀는 소마의 조리대 옆에 책뭉치를 내려놓고 한숨 돌린다. 소마는 황당해하는데, 그때 관중석에서 여성이 내려놓은 책을 보고 동요를 일으킨다. 반역자가 갇힌 감옥에서도 잡학다한 이부사키는 그 책이 뭔지 알아보고 거품을 문다. 하지만 소마는 그런 분위기에 영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상황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 마침내 심사의원 앞에 선 두 사람. 바로 시에 들어간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19화 . . . . 1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8화]] |||| '''극의 소마/219화''' |||| [[극의 소마/220화]] ||
         [[극의 소마]] 219화. '''남학생 1'''
          * 쿠가는 츠카사가 "남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인간"이라 비난하는데 모든 것은 1학년 당시 츠카사와 했던 극에서 시작한다.
          * [[쿠가 테루노리]]는 스스로 "모든 걸 다 갖췄다"고 말하는 재수없는 부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집은 부자고 요리도 잘하고 생긴 것도 이럭저럭. 키는 못 받았지만 당사자가 애써 상관없다고 부정하는 부분이니 재쳐놓고. 어쨌든 부모의 애정도 듬뿍 받고 그만큼 여자애들의 애정도 듬뿍 받으며 무탈하게 성공가도를 걸어온 쿠가. 극에 있어서도 다를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다"는 말의 주인공은 자신이라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도 키는 별도 문제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자신감을 전부 태워먹을 정도로 역사적은 대패배"에 대한 것이었다.
          * 연대극 대회장. 예상대로 센트럴측은 가지고 있는 최강의 카드를 꺼냈다. [[츠카사 에이시]], [[코바야시 린도]], [[사이토 소메이]]. 십걸 1석, 2석, 4석으로 이어지는 클린업. 반역자측도 쿠가, [[메기시마 토스케]], [[미마사카 스바루]]로 결코 만만치 않은 강자를 준비했지만 이목이 쏠리는 걸 어쩌진 못했다. 이 대결의 주역인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잠자코 승부의 동향을 지켜본다.
          어떻게 보면 가장 생소한 재료. [[요시노 유키]]와 [[사카키 료코]]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유키는 "맛있는 차로 대결"인 거냐고 의문을 표하는데 료코는 "찻잎의 맛이나 향을 살리는 요리"를 하라는 걸거라 추측한다. 메구미는 하다못해 이 대결이 [[잇시키 사토시]]나 [[키노쿠니 네네]]가 낀 대결에서 나왔다면 일 요리사인 만큼 어떤 요리를 할지 이미지가 나왔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토 이쿠미]]도 같은 의견이다. 사천 요리 전공인 쿠가, 프랑스 요리 전공인 츠카사와 너무 동떨어진 주제다. 그 증거로 츠카사는 주제가 정해지자 한참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자신의 장르를 못 살리는 주제라면 남은건 2시간 뿐인 제한시간 동안 고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게 관건이다.
          * 쿠가가 츠카사에 가진 반감은 1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패배". 그 패배가 있은 뒤 쿠가는 넋 나간 상태로 뒹굴거렸다. 10일이 넘도록 그 상태가 이어지자 동급생인 [[에이잔 에츠야]]가 빈정거렸다. 애초에 1석한테 극을 거는 거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 "건방떨지 마라 꼬맹이"라고 까지 도발했는데 쿠가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에이잔도, 옆에 있던 네네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한다.
          그 자리에는 잇시키도 있었는데, 이땐 하급생이어서 그런지 옷도 벗지 않고 십걸로서 멀쩡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에이잔관 달리 "그래도 1석을 승부의 자리로 끌어냈다"는 점 자체가 대단한게 아니냐고 격려한다. 이게 제대로 먹혔다. 쿠가가 언제 풀죽었냐는 듯 회복. "츠카사 에이시가 2학년이 돼서 유일하게 극한 1학년"이 자신이라는 으로 정신승리하기에 이른다. 이젠 또 지나치게 기운이 넘치자 에이잔은 잇시키를 타박하면 "그냥 뒀으면 한 달은 조용했다"며 탓한다.
          * 2학년 선배가 츠카사에게 "하급생과 극한 일"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 쿠가의 일이었다. 이 또한 "상급생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해 우쭐거리는 쿠가. 실제 그 선배의 생각이 어쨌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츠카사에게 쿠가에 대해 물은건 사실이다. 그는 무슨 바람이 들어서 쿠가가의 장남이랑 극했냐고 묻는데. 그의 대답은 쿠가에게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숨어있던 1학년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눈동자가 흔들린다. 물어봤던 2학년도 당황해서 며칠 전 극했던 1학년이라고 오히려 설명을 한다. 그제서야 츠카사는 "사천요리하는 애"라고 떠올리고 이름이 쿠가였다는 것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달리 할 말도 없다. 2학년은 "요리 밖에 머리에 없는 녀석"이라고 놀리고 웃으면서 그 자리가 끝났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쿠가는 츠카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뼈져리게 실감했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23화 . . . . 1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2화]] |||| '''극의 소마/223화''' |||| [[극의 소마/224화]] ||
         [[극의 소마]] 223화. '''필드를 넘어서'''
          * 쿠가는 그 액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을 받자마자 바로 녹찻잎을 개봉하는데. 이렇게 조리 중에도 서로 도울 수 있는데 "연대극"의 진면목.
          * 사실 미마사카는 [[사이토 소메이]]가 아니라 쿠가를 퍼펙트 트레이스해 어떤 재료를 준비해준 것이었다.
          * 소마는 찻잎을 다루는 츠카사의 자세를 보고 감탄한다. 그는 무려 네 종류에 달하는 찻잎을 한 꺼번에 다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루이 젠지]]가 지금껏 완전히 잘못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녹차라는 소재는 당연히 요리의 선택지가 제한될 거라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오산이었다. "녹차"라는 카테고리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그걸 살리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녹차는 본래 채취한 찻잎을 그대로 쪄서 발효를 막는 "비발효 차"류를 통칭하는 말. 대표적인 엽차나 옥로, 호지차 등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그걸 요리로 옮기면서 떫은 맛이나 쓴 맛에 악센트를 주는 으로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박한 [[아라토 히사코]]는 그가 쓰는 다기도 눈여겨 본다. 우선 찻주전자는 물맛을 부드럽게 하는 남부칠기. 이걸로 끓인 물을 다기에 옮겨 적절한 온도로 히고 부드럽게 찻잎을 뜸들여 맛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낸다. 결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멋진 솜씨다.
          항간에는 츠카사가 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군림한다는 말이 퍼져 있으나, 지금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정반대라는 걸 알 수 있다. [[나키리 아자미]]는 그걸 이런 으로 표현했다.
          >재료라는 주군에게 끝없는 경의를 갖고 받들어 모시는 한 자루의 검이다.
          * 츠카사는 우리는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서인지 쿠가 쪽 조리대에 훈수를 둔다. 쿠가는 분명 찻잎에는 손도 대지 않고 중화 철냄비로 고기만 다루고 있었다. 츠카사가 이런 부분을 꼬집으며 "하나에 집중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자기 필드에 틀어박히는건 나쁜 버릇"이라고 충고했다. 지금 쿠가는 녹차, 일본의 재를 덤으로 여기고 있다. 소재를 살리기 위해선 자기 스타일을 억누르는 것도 필요한데 자기 고집에만 연연하면 새로운 맛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말로는 쿠가가 지닌 열의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런 으로는 나에게는 못이긴다"며 통렬한 도발을 날린다. 쿠가는 이에 대해서 단지 눈을 한 번 흘겼을 뿐, 별다른 반론을 펼치지 않는데.
          >그게 연대극이지?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27화 . . . . 1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6화]] |||| '''극의 소마/227화''' |||| [[극의 소마/228화]] ||
         [[극의 소마]] 227화. '''2nd BOUT의 행방'''
          * 둘은 각기 다른 음을 먹었고도 "소재의 에너지가 노도의 기세로 연속사출" 이라는 인상적인 평을 같이하며 대단한 호평을 내린다.
          * 초반에 [[쿠가 테루노리]]의 탕수육을 아리송해 했던 [[안(극의 소마)|안]]은 막상 맛을 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술에 더 취했다"는 정체불명의 평을 남긴다.
          * 쿠가는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라는 프랑스 소스를 이용해 발사믹 초와 훈제 간장으로 탕수육 고기의 맛을 정리해 녹차의 향을 극대화했다.
          * 그런데 츠카사는 "지금까지 쿠가와 다르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론 3학년들을 이길 수 없다 자신하고, 실제로 센트럴의 시이 시작되자 전세를 급변한다.
          * 드디어 시작된 2nd BOUT 최종 심사. 시작은 반역자 측부터. 이스트와르가 [[메기시마 토스케]]의 라멘을 맡고 샤름이 [[미마사카 스바루]]의 초밥, [[앤(극의 소마)|앤]]은 [[쿠가 테루노리]]의 탕수육이다. 반역자들의 요리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 샤름은 메기시마의 초밥을 먹기 전부터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인다. 불로 구운 초밥이 그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 메기시마의 라멘은 겉으로는 고추라는 주제를 어떻게 살린 건지 알기 어렵다. 이스트와르는 별첨된 빨간 테이스트가 고추 요소가 아닌지 짐작하며 신중하게 관찰한다. 그러나 어떤 으로든 짐작이 가능한 둘의 요리와 달리 쿠가의 요리는 문자 그대로 미지수. 앤은 취중에도 그 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중화 냄비로 튀기고 볶은 고기를 다시 훈재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 맛이나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는지는 먹어보지 않으면 전혀 예측이 불가능. 이제 이걸로 플레이팅에 대한 평가는 정리가 됐다.
          쿠가는 조용히 눈을 떴다. 그의 안에서 2년의 세월 동안 응어리쳐 있던 상념이, [[츠카사 에이시]]에 대한 분노가 어떤 으로든 끝날 때가 다가왔다.
          군함말이를 집어든 샤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함말이에 올라간 네기토로는, 사실 머렝이었던 것이다. 맛을 본 샤름은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발견했다. 훈제 간장이었다. 단지 쿠가에게 조력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게 아니었다. 최후의 어레인지를 위한 회심의 카드. 미마사카가 내놓은 어레인지 초밥은 "메추리살 노른자와 훈제 간장을 섞은 나카오치 군함말이"였다. 나카오치란 참치의 양쪽 살을 발라내고 남은 등뼈 부분의 살을 의미한다. 훈제 간장이 첨가된 밥과 김이 나카오치의 기름기와 만나 절묘한 향을 내고 그 위에 올려진 머렝, 메추리알 노른자, 파가 네기토로를 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을 연출한다. 샤름은 이것을 "궁극의 네키토로 메추라기밥 군함"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호평. [[카와시마 우라라]]가 이를 갈면서 분해했지만 그녀 또한 미마사카의 초밥을 맛 봤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 반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호평 행진. 이제 관건은 안이 담당한 쿠가의 탕수육이었다. 시 전에 안이 내키지 않아했던 인상이 마음에 걸리는데.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절정에 도달한 안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런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안은 그렇게 주장했다. 좌우간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격찬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흑초 탕수육"이었다. 흑초 소스가 발라져 장물처럼 반짝이는 탕수육. 그걸 먹는 순간 숨겨져 있던 녹차의 강렬한 향이 시야를 신록으로 물들이는 극상의 맛. 관건은 흑초 소스다. 발사믹 소스에 미마사카가 준 훈제 간장을 함께 졸여 향을 극대화했다. 쿠가는 기존 탕수육의 틀을 철저히 파괴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텁텁한 뒷막과 기름기를 신맛과 감칠맛으로 잡았다. 그 자리를 녹차의 향으로 채우면서 돋보이게 만들어 단연 요리의 주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 숟가락을 놓친 안. 술기운 마저 달아나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시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겁에 질린 듯, 심한 자극으로 마비된 듯 보였다. 츠카사 에이시는 그녀의 그런 모습은 알 바가 아니었다. 그의 요리는 각기 다른 네 가지 퓌레를 스프와 함께 먹는 요리. 츠카사는 퓌레와 함께 주변에 담긴 스프도 먹어야 한다고 권했다. 하지만 안은 여전히 몸서리를 치며 심사를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신동일 (언어학자) . . . . 18회 일치
         |직업= 응용언어학자, 교육언어학자, 대학교
         대구 출신으로 경상중학교,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90년]]에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영어과에서 응용언어학 분야 중 하나인 구술능숙도(spoken proficiency) 평가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99년]] 10월에 <진단목적으로의 영어 듣기 평가도구 타당도 검증: 수행능력 모형화 작업과 다차원구조 이슈 중심으로(Construct validation of a diagnostic L2 listening test: An operational model utilized and multidimensionality issues revisited)>라는 논문<ref>[http://www.slate.illinois.edu/people/graduates/#3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제 2언어습득 및 교육학과 동문]</ref>으로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숙명여자대학교의 MATE(Multimedia Assisted Test of English), [[YBM-Sisa]]의 [[SEPT]](Spoken Engish Proficiency Test), 크레듀가 참여한 [[OPIc]] (Oral Proficiency Interview computer), 교통부의 Pilot & Air Traffic Controller 대상 영어말하기능력인증평가, 교육부의 국가영어인증시험 등과 같은 학교, 기업, 국가 단위의 다양한 언어시험 개발/시행, 말하기/쓰기교육 콘텐츠개발에 관한 (책임)연구에 참여했다. 2000-2007년에 한국영어평가학회 총무로 일했고, 2007-2009년 동안은 비영리교육단체인 ACTFL((American Councils on the Teaching of Foreign Languages) 한국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2000년]]-[[2005년]])를 거쳐, 2005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8년에 신동일영어평가연구소를 창업해서 영어과 진단교육 콘텐츠를 학교 밖에서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일에 참여했다. 2013년부터 2016년 까지는 [[중앙대학교]]에서 [[BK21 PLUS]] 스토리텔러 교육공동체 사업단장을 맡았다.
         * [http://www.dongilshin.com/ 신동일의 공 홈페이지]
         [[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임대윤 . . . . 18회 일치
         |학력 = [[영남대학교]] 법학 학사<br/>[[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 석사
         * 1964 ~ 1970 [[대구초등학교 (대구)|대구초등학교]] 졸업
         * 1970 ~ 1973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졸업
         * 1973 ~ 1976 [[대륜고등학교]] 졸업
         * 1977 ~ 1984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법학사)
         * 1984 ~ 1987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 졸업, 외교학석사 (학위논문명 - 국제정치의 개입주의에 관한 일연구 :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정책을 중심으로)
         * 1996.08 ~ 1998 주회사 한백테크노 대표이사
         * 1996 주회사 경북듀라 대표이사
         * 2000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이사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울진 임씨]][[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조진호 (축구인) . . . . 18회 일치
         |사망지=[[대한민국]]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청소년 클럽 =[[경희대학교]]
         조진호는 [[대륜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아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남북단일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은 대부분 북한 선수들이었지만, [[서동원]]과 더불어 남한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조진호는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되며 당시 최연소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하였으며, [[1994년 FIFA 월드컵|미국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였으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과의 월드컵 직전 두차례 평가전서 연속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별리그 3라운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하였으며, [[구이도 부흐발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의 2:3 패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컵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상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태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선수 시절 활약하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201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였다. [[K리그 클래 2013|2013 시즌]] 말미 김인완 감독의 병세가 악화되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된 후,<ref>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57027/ 대전시티즌, 조진호 감독대행 선임] </ref> [[10월 9일]] [[경남 FC]]와의 홈경기서 처음 나섰으나 0:1로 패했다. 그러나 [[11월 20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원정경기 1:0승을 시작으로 [[11월 17일]] 성남전 1:0승리까지 총 리그 4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며 강등으로부터 구해내려 분투하였으나, [[11월 27일]] [[경남 FC]]와의 원정경기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최종적으로는 강등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30일]] 전남과의 리그 패막전 2:0 승리 등으로 시즌 막판 리그 6경기 연속 무패등의 부임 후의 좋은 성적에 힘입어 감독 대행 신분으로 2014 시즌에도 팀을 계속 이끌게 되었다.<ref>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090100072310004325&servicedate=20131208/ 대전 시티즌, 다음시즌은 조진호 체제] </ref>
         [[K리그 챌린지]]에서 시작한 2014 시즌 개막전에선 [[수원 FC]]에 대패하였으나 [[3월 30일]] [[고양 Hi FC]]전 4:1 대승을 시작으로 [[4월 27일]] [[부천 FC 1995]]전 까지 총 리그 5연승을 거두었으며, 5월 8일 [[감독 대행]]에서 정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월 21일]] [[대구 FC]]전까지 총 14경기 연속 무패와 더불어 한시즌동안 11경기 연속 홈 무패를 기록하며 구단의 한시즌 홈 최다 연속무패 신기록을 세움<ref> 이 기록은 2016년 [[최문]] 감독이 한시즌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깨졌다.</ref>과 동시에 리그의 절대강자로 치고 올라가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5월 8일]] 마침내 정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5월 11일]] [[안산 경찰청 축구단]]과의 정감독으로서의 데뷔전에서 2:0승을 이끌었으며,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ref> [http://osen.mt.co.kr/article/G1109868314/ 대전 돌풍 이끈 조진호, 연맹 선정 5월의 감독] </ref> 이후 시즌 종료까지 꾸준히 리그 1위 자리를 수성하며 대전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K리그 챌린지 최우수감독에 선정되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한시즌에 2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이 되었으며, 대전팬들 사이에서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28091/‘갓진호’, 축구특별시 부활 이끈 지휘자] </ref>
         [[K리그 클래]]에서의 [[K리그 클래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안영규]], [[정석민]], [[임창우]] 등 주축 선수들이 다수 빠져나가는 등 악재를 겪었고 시즌 개막 후 11라운드까지 1승을 거두는데 그치자 계약조건을 토대로 사임, 사실상 경질되었다.<ref> [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5/sp2015052110281493650.htm/ 대전 조진호 감독, 성적부진으로 사의 표명] </ref>
         그뒤 독일에서 지도자연수를 받은뒤,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상주 상무]]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ref>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343&aid=0000055866?? 상주, 신임 사령탑에 조진호 전 대전 감독 선임] </ref>2016시즌 상주를 최초로 리그 상위 스플릿 A에 진출시켰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64222/ 조진호 감독, “첫 상위 스플릿 진출 선수들에게 고맙다”] </ref> 이는 [[박항서]]도 하지 못한 [[K리그 클래]] 잔류를 상위 스플릿으로 확정지은 것이다.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2017시즌 K리그 시상에서 조진호 감독에게는 특별 공로상이 주어졌고, 아들 조함민 군이 대신 시상에 참여했다.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함안 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감독]][[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감독]][[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코칭스태프]][[분류: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태프]]
  • 현아 . . . . 18회 일치
         '''현아'''({{본명|김현아}}, 金泫雅<ref>[http://tw.weibo.com/5729740541 현아 웨이보]</ref>, [[1992년]] [[6월 6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92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재학 중 [[JYP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이 되었고 약 4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2007년 [[원더걸스]]의 싱글 〈[[The Wonder Begins]]〉로 데뷔했다. 그러나 같은 해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탈퇴를 했다.<ref name="as"/>
         * [[서울인왕초등학교]] (졸업)
         * [[충암중학교]] (졸업)
         * [[한국예술고등학교]] 음악과 (졸업)
         * [[건국대학교]] 영상영화학과 (중퇴)
         [[현아]]는 1992년 6월 6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현아]]의 아빠는 예전에 연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현아]]에게 "아빠 대신 네가 해보는게 어떻겠냐"라는 말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일곱 살때 엑스트라로 활동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웹 인용|저자=ARENA|제목=현아의 시간 - GUILTY PLEASURE|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65194|출판사=네이버 매거진|날짜=2014-08-01|확인날짜=2015-06-16}}</ref> 초등학교 1, 2학년때 대학로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처음 봤고, 이를 계기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 [[현아]]는 춤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컸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댄스 학원을 다녔다.<ref name="rta" /> 같은 시기 TV로 [[싸이]]의 〈새〉 안무인 새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ref>{{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현아 싸이 언급 "초등학교 3학년 때 싸이의 '새춤'보고 꿈을 키웠다"|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531.990010724435354|출판사=영남일보|날짜=2013-05-31|확인날짜=2014-04-24}}</ref> [[동명여자중학교]] 시절 [[현아]]는 춤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었다.<ref name="rta">{{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강심장' 김현아, 머리에 X만 찼냐→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춤사랑 공개'|url=http://www.tvdaily.co.kr/read.php3?aid=128268894982923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날짜=2010-08-25|확인날짜=2010-11-21}}</ref>
         이후 [[현아]]는 [[JYP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원더걸스]]의 두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그룹에서 랩퍼를 맡았다.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 싱글 〈[[The Wonder Begins]]〉를 발매했고, 타이틀 곡은 〈Irony〉였다. 파워풀한 랩과 춤으로 "야생마"라는 별명도 얻었다.<ref name="as">{{뉴스 인용|저자=남안우 기자|제목=‘원더걸스’ 김현아, 건강상의 이유로 팀 탈퇴|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73017515011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7-30|확인날짜=2008-12-31}}</ref> 2007년 5월 24일에는 [[안소희|소희]], [[브라이언]]과 함께 《[[쇼! 음악중심]]》 MC로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소희·현아 ‘쇼!음악중심’ 새MC|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5242109433&sec_id=54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조상인|날짜=2007-05-24|확인날짜=2014-06-29}}</ref> 하지만 MC에서 하차하고 나서 7월 [[원더걸스]]의 광고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탈퇴설이 돌았다.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멤버 교체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며 요양이라고 말했다.<ref name="세계일보">{{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멤버교체 위기 -­ 현아 이탈하나|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7/31/20070731002528.html|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린|날짜=2007-07-31|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원더걸스에서 탈퇴한다고 공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현아, 건강상 이유로 팀 탈퇴|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73016565270766&type=1&outlink=1l|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7-30|확인날짜=2014-06-29}}</ref> 실제로 [[현아]]는 [[만성장염]]을 앓고 있었고 세 번이나 탈진으로 쓰러지는 등 부모님의 반발을 샀다.<ref name="세계일보"/>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영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반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남연희|제목=김현아 '골반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백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시상
         [[분류:현아]][[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미닛의 일원]][[분류:원더걸스의 일원]][[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인왕초등학교 동문]][[분류:충암중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
  • 고성국 . . . . 17회 일치
          | 소속 = 前 [[단국대학교]] 전임교수
          | 학력 = [[고려대학교|고려대 대학원]]
         '''고성국'''(高成國, [[1958년]]<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A%B3%A0%EC%84%B1%EA%B5%AD&os=517736</ref> ~ )은 [[대한민국]]의 정치평론가이다.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학위 후 동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추적 60분]] 진행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여러 권의 정치서적을 펴냈다.
         === 초기 진보 지인 활동 ===
         [[고려대학교]] 정외과 강사 시절인 1986년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270032921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617&publishType=00020</ref> 당시 공안당국은 다산기획 대표이던 고씨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좌익]] 서적 100여 권을 들여와 번역한 뒤, 이를 [[백산서당]] 대표 이범(현 [[흥사단]] 일본특별위원장)에 넘겨 대학가와 시중에 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4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4&officeId=00020&pageNo=1&printNo=19855&publishType=00020</ref> [[1988년]] [[2월 27일]]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된 사면복권에서 특별사면복권 대상자가 되어 풀려났다.
         사면된 이후인 [[1988년]] [[11월 5일]]에는 진보적 학술단체인 학술단체협의회의 대외협력분과위원장으로 참가했다. 이 학회에는 고성국을 비롯, [[송건호]], [[최장집]] 등 진보 지인들이 참여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104002891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11-04&officeId=00028&pageNo=7&printNo=150&publishType=00010</ref> 이후에도 진보 학술, 정치세력의 포럼에 다수 참가했다.
         199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6년부터는 [[추적 60분]] 진행자로 활동하였다.
         * 《불량민국을 말하다》, 지의숲, 2012 {{ISBN|9788960001251}}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그루베니아 . . . . 17회 일치
         정 명칭 : 그루베니아 공화국
         그루베니아의 교육의 과정은 초급학교, 상급학교, 대학교로 구성되어있다. 초급학교의 교육기간은 6년으로 기초 학문을 가르친다. 상급학교는 인문학교, 일반학교, 실업학교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 교육기간은 인문학교는 6년이고 일반학교 실업학교는 4년 이수이다. 인문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입학 할 수있으며 ,일반학교, 실업학교의 경우도 졸업 이후 합격시험을 거치면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
         그루베니아의 요리는 대부분 육류을 사용한 요리가 많지만, 콩과 쌀 등 곡류도 자주 먹는다. 또한 그루베니아의 조주(造酒) 기술또한 유명하여 고품질의 맥주, 브렌디, 포도주, 보드카 등이 우주 각 은하계로 수출되고있다. 유트뵐리스에서는 긴 겨울을 버티기위해 고열량의 음이 많으며, 추위를 견디기 위해 보드카 등의 도수가 높은 술도 많이 즐긴다. 그루베니아에는 예로부터 아이가 성인이 되면 아이의 생일에 따른 탄생석으로 만든 악세사리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 김경식 (희극인) . . . . 17회 일치
          | 이름 = 김경
          | 학력 =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광고창작학과]] [[전문학사]]
         '''김경'''([[1970년]] [[11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 및 [[가수]]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하여 [[부산광역시|부산]]과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광고창작학과]]를 [[전문학사]] 졸업하였으며, [[1989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1991년]] 뮤지컬배우 데뷔한 그는 이듬해 [[1992년 3월]] [[서울방송|SBS]]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정 데뷔를 하였으며, [[틴틴파이브]] 멤버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가수 故 [[유채영]]과 함께 [[MBC 표준FM]] 《[[좋은 주말]]》을 진행한 적이 있으며, [[서현진 (방송인)|서현진]] 前 MBC 아나운서 와 함께 《[[생방송 원더풀 금요일]]》을 진행한 적이 있다.
         | 제목 = 개그맨 김경 고별무대 TV전파왕국(S 오후 5시55분)
         | 제목 = 개그맨 김경'군제대 신고'오락「이문세의 라이브」SBS 오후6:35
         * [[대구중앙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광고창작학과
         * MBC 《7인의 객》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성곤 . . . . 17회 일치
         [include(틀:역대 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
         1922년에 현풍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5년 대구로 이사하여 달성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 1928년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였으며, 4학년 때 교내 항일운동의 주동으로 퇴학당하여 다시 상경, [[보성고등학교(서울)|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 지금의 [[고려대학교]]의 전신. 김성곤은 나중에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을 맡기도 했다.]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엔 [[유도(스포츠)|유도]] 선수로 활동했고 정계에 있을 때 대한유도회 회장을 역임한 체육인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성곡컵 국제유도대회'가 있다.
         1940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1948년에는 고려화재해상보험과 자본금 1억 원의 금성방직을 설립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이 불탄 뒤, 1952년 동양통신을 창간하고 1953년 연합신문을 인수하였다. 1956년 태평방직과 아주방직을 인수하였다. 1959년 [[국민대학교|국민대학]]을 인수[* 보성전문학교 상과 시절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 교정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교정에서 풀을 뽑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육영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국민대에서는 김성곤을 학교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와 함께 양대 건학 공로자로 기념, 추모하고 있다.]하고,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하였다.
         1973년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에 취임하였고 1974년 대한양회를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에 취임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1975년 [[고려대학교]] 교우회장 자격으로 졸업 축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으며, 그의 묘는 원래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군]]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 김윤환 . . . . 17회 일치
         * 상위문서: [[경북대학교/출신 인물]]
         || '''학력''' || [[경북고등학교]] {{{-1 ([[졸업]])}}}[br][[경북대학교]] {{{-1 (영문학 / [[학사]])}}}[br][[오하이오 주립대학교]] {{{-1 (언론학 / [[석사]])}}} ||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지역 언론사인 [[영남일보]]와 [[대구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 일본특파원 및 편집국장 대리를 거쳤다. 이 시절에 오랫동안 주일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금권 정치, 계파-계보 정치, 막후 정치를 보고 배운다. 중간에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창환(정치인)|김창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는 등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978년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고등학교 동창인 노태우의 권유로[* 사석에선 [[전두환]], [[노태우]]와 서로 반말하면서 술 마시는 사이라고 한다.] [[민주정의당]] 창당 멤버로 들어갔다. 민주정의당 전국구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아래 [[청와대]]와 집권당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면서 정치권을 주무르는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한다.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상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영남후보를 세워서 영남표를 잠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순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적 화해 없이 세상을 떴다.
          * 사후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의 오상중고교 뒷편에 안장됐다. 오상중고교는 김윤환의 아버지인 [[김동석]] 전 국회의원이 세운 학교다.[* [[대구 버스 칠곡3|칠곡3번]] [[경운대학교|경운대]]행이 장천시외버스터미널에 정차하기 전에 오상중고교를 지나지만, 무정차 통과한다.(상장1리에는 정차한다.) [[대구 버스 칠곡3|칠곡3번]]을 탔다면 장천터미널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
          * [[시인(문학)|시인]]으로도 활동했는데, [[경북대학교]] 정문과 학생주차장 사이에 새롭게 단장한 KNU 센트럴 파크에 그의 시비가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잠깐 교수로 재직한 적이 있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 작품인 "꽃"도 KNU 센트럴 파크에 새겨져 있다.]
          *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배우 신귀이 맡았다.
  • 대한민국 FA컵 . . . . 17회 일치
         대한민국 FA컵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컵 대회]]이다. 프로, 아마추어 구분없이 KFA에 등록되어 있고 규정을 충족한 모든 팀이 겨루는 대회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경기는 단판승부가 원칙이나 흥행을 유도한다는 이유로 대회진행방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어 NTX위키에 일일이 적기가 어려울 정도.
         정 명칭은 FA CUP이며, 이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정한 공 명칭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FA컵이라는 명칭이 곳곳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보통 각 국가의 이름을 앞에 붙이는 방으로 구분하고 있거나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각 국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을 부여하고 있기에 언론에서는 스폰서의 이름을 붙이거나 대한민국 FA컵으로 보통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 FA컵의 전신은 1921년에 개최한 '전조선축구대회'와 해방 이후 1946년에 열린 '전국축구선수권대회'로 본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K리그가 시작된 1983년을 기점으로 관심이 시들해지고 또 출전 자격이 KFA가 자격을 심사한 뒤에 초청하는 형이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FA컵과는 거리가 동떨어져 있었다.
         본선부터는 32강체제로 가게되며, 32강부터는 최상위 리그인 K리그 클래에 속한 팀들이 참여한다. 이 때문에 본선은 32강을 짤 때, 1부리그에 속한 팀이 몇개냐에 따라서 한동안 예선 라운드가 제법 복잡했던 역사가 있다.
         2016시즌 기준으로 K리그 클래은 12개팀이므로 예선을 통과하는 팀 수는 20개팀이 된다.
         원스타 시스템이란, 7라운드 대진을 만들면서 적용하는 일종의 특수한 룰이다. 이는 결승전을 중립지역에서 단판승부를 하던 기존의 FA컵이 흥행을 끌어오지 못하자 적용한 결승전 홈구장 결정방으로 사용된다.
         FA컵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자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모든 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FA컵은 상금규모와 대회 진행에 따른 보상이 너무나도 초라했던 관계로 초창기에는 리그컵 내지는 그보다 못한 대회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대회라는 인이 없었다. 하지만 AFC에서 차기 ACL티켓을 부여하고부터는 K리그 클래 다음가는 권위있는 대회로 탈바꿈했다.
          1. K리그 클래 우승팀은 ACL에서 E조(1장)
          3. 클래 2위는 G조(1장)
          4. 클래 3위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플레이오프 승자가 될 시에는 H조에 편성(0.5장)
         동 시즌 클래 3위팀이 동 시즌 FA컵을 우승하면 3위팀은 F조에 편성되고, ACL 플레이오프 티켓을 4위팀에게 양도하게 된다. 가장 간단한 경우.
         === 클래-FA컵 더블인 경우 ===
         이 경우에는 클래 우승팀 자격이 더 격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F조에 편성될 자격을 양도하게 되며, 양도받는 팀은 FA컵 준우승팀이 아니라 클래 2위팀이 된다. 따라서 2위팀이 FA컵을 우승할 때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 무라하치부 . . . . 17회 일치
         현대에서는 직장, 학교, 지역 등에서 공동체 내의 합의, 규칙을 지키지 않은 자를 따돌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줄여서 하부(ハブ)라고도 하는데, 「하부로 하다( ハブにする )」「하부하다( ハブる )」 등으로 쓴다.
         무라하치부의 어원은 보통 다음과 같이 말해진다. 무라 하치부는 무라 사회에서 공동으로 하는 활동 가운데 성인, 결혼, 출산, 질병, 집의 신축과 개축, 수해 피해 복구, 매년의 법요(불교 제사), 여행 등의 8가지 활동에서 따돌리며, 장례과 소방 활동을 제외한 모든 활동에서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례과 소방 활동에는 도움을 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디까지나 도움을 주지 않으면 자신들까지 피해를 입을 상황에서 지원을 준다는 의미.
          * 장례을 치르지 못해서 시체가 썩으면 질병이 생기가 쉽다. 혹은 죽은 자는 벌을 줄 수 없다는 관념.(죽을 때까지가 벌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국시대에는 전국 다이묘에 의한 지배가 강화되고,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총촌의 자체적인 군사력이나 자치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한 무라(村, 촌락)의 경제적, 자치적 기능이 우수하여 전국시대의 영주들 역시 지배 단위를 무라로 삼았다. 무라 내부의 자치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고, 무라의 촌장을 통하여 촌락 단위로 지배[* 예를 들어, [[세금]]이 농민 개개인이 아니라 촌락 단위로 부가되는 등.]를 했던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근대적인 행정이 도입되었지만 전통적인 농촌 지역 사회의 공동체적 생활양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현대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와카슈(若衆)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젊은이들만이 모인 숙소에서 집단 생활을 하면서 마을 내에서 자경, 방위, 소방, 농지 경작 등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대의 학교이자 청년단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아니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므로 서로 간의 친목에 필요한 음주, 흡연을 가르치기도 하고 요바이(夜這い) 등을 통하여 연애, 결혼 상대를 찾기도 했다.
         이 긴 문단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라하치부의 배경이 되는 향촌자치는 언듯 생각하듯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것만은 아니며, 농촌 사회 지배층이 주도하는 ‘작은 사회’ 지배에 수반되는 무라의 폭력적인 처벌이 함께 뒤따랐다는 것이다. 무라하치부는 이러한 ‘처벌’의 형태 가운데 하나로서, 이 처벌 방이 다른 것들과는 달리 비교적 오래 남게 된 것은 추방, 신체형, 재산몰수, 사형 등의 다른 처벌과는 달리 근대 형법 제도에 크게 배척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당시 이 마을에 거주하던 중학생 소녀 이시카와 사츠키(石川皐月, 1935년 5월11일 생)는 1952년 부정선거의 풍조에 의문을 느껴 학내 신문인 우에노 중학교 신문에 이 사실을 고발하는 글을 개제하였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 모든 학생에게 배포된 신문을 회수하여 소각 처리했다. 1952년 5월 6일 열린 참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부정이 실행된 것을 알게 된 이시카와(당시 고교생으로 진학)는 아사히 신문에 이를 투고하여 고발하였다. 아사히 신문사의 기자는 5월 8일 이시카와를 방문하였고, 몇일 뒤에는 사건이 기사화 되었으며 사건 관계자 수십명이 경찰에 출두하게 되었다.
         6월 24일 자 아사히 신문을 시작으로 전국의 신문과 잡지가 따돌림 문제를 보도하여 우에노 마을은 전국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시카와는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마을을 사랑하는 길입니까?"라고 신문 지상에서 주장하였고, 이시카와가 다니던 후지노미야 고등학교(富士宮高等学校)의 학생회는 만장일치로 이시카와의 행동에 지지를 선언, 교직원들도 이시카와를 지지하여 7월 상순에는 교직원 조합의 후지노미야 고등학교 분회, 시즈오카 현 교직원 조합에서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가해자인 남성은 본래 이 지역 출신으로 농림업을 하던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상경하여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살고 있었다. 1994년 귀향하고 부모님을 개호하였으나, 가나가와 현에서는 미장이로 일하면서 귀향한 뒤에도 기술을 살려 집을 건축하고 현지 TV쇼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별한 뒤에 지역 주민들과 문제가 잇따르게 되었다.
         도쿄에서 모현에 이주한 T씨(34세) : 이주자는 1주일에 1번 마을 부흥의 선두 주자인 노부부의 집에 모여서 회을 한다. 나와 아내는 이주 전까지 했던 디자인업을 계속하면서 자급자족용으로만 농업을 하겠다고 말하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농업을 하지 않을 거라면 도쿄에 돌아가."라고 주민들이 둘러싸고 협박하였다.
         외벽이 파손되어 재도장 공사를 하니까 "비상이다."고 연명 항의서가 투고되었다.
  • 박경석(1933) . . . . 17회 일치
         [[대한민국]]의 [[군인]], [[시인(문학)|시인]], [[소설가]]이다. [[육군사관학교]] 생도2기 출신이다.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33년 [[연기군]] 조치원읍 본정(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원리 88번지)에서 출생 하였다. 이후 [[대전고등학교]] 31회로 졸업하고, 17세의 나이에 청운의 꿈을 꾸며, 첫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이때 17세라는 나이로 인해 자격 미달이 되었지만, 같은 나이의 당시 권력자 [[원용덕]] 장군의 자제 원창희 씨의 육사 입교 압력이 육사 심사위원들에게 들어오자--완전 개꿀 금수저--, 형평성 문제로 덩달아 박경석 생도도 합격되었다. [[http://blog.daum.net/koreanmarinecorps/17321|국방일보 박정인 장군 회고록에서 발췌한 원창희, 박경석 생도 합격 비화]]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영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남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절반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반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반창고 임관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이후, 전장에서 더 많은 위관장교 자원을 필요로 하자 정부는 이들을 신설된 [[육군종합학교]][* 12.12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동 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고 갑종 전우회 대부였던 [[하소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전두환]]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오자복]] 예비역 대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 예비역 대장, [[박정희]] 정부에서 경호실장을 지낸 [[차지철]] 예비역 중령 등이 육군 종합학교 출신이다.]에 입교시켜 단기 교육 후 소위로 임관시켰다. 박경석 소위도 이 때 임관된 초임장교 중 하나였다. 이들은 생도 2기 출신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새로 신설된 제9사단[* 사단장 [[장도영]], --5.16군사정변 당시 박정희의 얼굴마담, 핫바지 노릇했던 그 때 그 사람-- 사단 참모장은 [[박정희]] --5.16 군사정변에서 대통령에 오른 그 분--]의 소대장으로 갔다. 그 1명은 당시 권력자였던,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 소위였다. 원창희 소위는 임관과 동시 후방의 육군본부로 배속받았다.[* [[원용덕]] 장군도 최종 보직이 헌병 총사령부 사령관이었고, 아들 [[원창희]] 장군도 헌병의 꽃 헌병감 보직을 마지막으로 육군 준장에서 전역하였다.]
         그후 박경석 소위는 여러 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으며, 한 번은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사실 박경석 소위가 포로로 잡힌 북한군 내에서는 박경석 소위를 비롯한 많은 한국군 장교포로들을 해방군관이라는 이름으로 전향시키려 했지만, 그게 안 되었고, 포로 생활도 도망가든 말든 자유로웠다고 한다. 박경석 장군은 포로 시절을 회고하며, 포로로 잡힌 북한군 사단의 사단장이 적이었지만, 그의 리더쉽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부대에 량이 떨어지면 사단장도 부하들과 함께 굶는 등의 리더쉽에 영향을 받아 뒷날 한국군내 정치군인이 판을 칠때도 그들의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참군인으로써 군인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는데 계기가 되었다.
         1951년쯤, 전쟁이 교착 상태가 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초기 육사 생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려, 미 8군의 도움으로 육사를 재건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중위 신분이던 [[육사 생도 2기생]]들은 육사 생도 복귀를 놓고 논쟁하다가 결국은 새로운 모집 공고에 의한 [[육군사관학교]] 재건으로 [[전두환]], [[노태우]]등이 판을 치던 그 육사 11기생들이 첫 정규 4년제 육사 생도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위관, 영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영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영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태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965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과 월남의 파병 요청 형으로 [[조문환]]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주월 한군군]] 군사원조단 비전투부대 [[비둘기부대]]가 파병되었고, 뒤이어 미국의 대 한국 군사원조 약조인 [[브라운 각서]] 체결과 야당의 반대 등 진통 끝에 전투병력의 파병이 이루어졌다. [* 야당과 여당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월남 파병에 있어 한국군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특히나 집권 여당 공화당의 초대 당 의장을 지낸 [[정구영]]변호사는 "이 장관 엄밀히 따지면 호지명의 월맹은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우리가 그들과 총칼을 맞대야 하는거요. 내가 보기엔 그간 프랑스는 자신의 민지 정책의 일로 싸웠고,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 위세를 떨치려 월남에서 군사적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도와주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소. 물론 이 장관 말대로 우리는 가난하오. 월남전 파병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러나 더러운 전쟁에다가 피를 뿌리며 돈을 벌기보다는 궁핍하지만 깨끗하게 사는것이 옳다는 생각이오."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576|[[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발췌. [[http://gyuraeman.blog.me/110018127454|(대한 군사 원조의 약속인 브라운 각서)]]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포함한 경제적 원조와 월남이라는 특수 시장 개척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다는 파병의 조건으로 협상하였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박상원(배우) . . . . 17회 일치
         ||<#5F9EA0> '''{{{#ffffff 출생}}}''' ||<(> [[1959년]] [[4월 5일]],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그러나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초등학교는 대구 수창초등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
         ||<#5F9EA0> '''{{{#ffffff 학력}}}''' ||<(> [[수창초등학교]] (72년 졸)[br][[인천남중학교]] (75년 졸)[br][[동산고등학교(인천)|동산고등학교]] (78년 졸)[br] [[서울예술대학교]] (80년 졸)[br] [[한국방송통신대학교]] (99년 졸)(편입)[br] [[세종사이버대학교]] (2007년 졸)(편입)[br][[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
         [[대구광역시]] 출생이나 [[인천광역시]]로 이주해 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였다. 1979년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후 연극 쪽에서 활동하다 1987년 MBC 공채 탤런트가 되었다. 이후 1988년의 [[인간시장]]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89년 [[서울 시나위]]에서 [[변우민]], [[임미영]]과 같이 3명이 공동으로 주연을 맡아 활약하면서 인지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여명의 눈동자]]는 그의 이름을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신의(드라마)|신의]] 등 故 [[김종학]] PD의 작품에 많이 출연해 인연이 깊으며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백야 3.98, 태왕사신기 등 [[최민수]]와 많은 작품을 찍었다. 또한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와 여명의 눈동자, 여자의 방 등을 통해 [[고현정]]과도 여러번 호흡을 맞추었다.[* 셋 모두 故 김종학 PD가 아끼던 배우들이라 그의 장례 때 찾아와 빈소를 지켰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나이에 비해 꽤 젊은 이미지를 오래 가지고 간 배우이다. 첫사랑에서 대학생-대학원생 역을 맡을 당시 30대 후반이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주어진 고뇌하는 젊은 지인 캐릭터가 꽤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1990년대 전반에 [[에이스침대]] [[광고]]에 출연해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연하지만, 침대는 가구가 맞다. 그러나 이 멘트 때문에 한 초등학교의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으로 문제가 나왔는데 모두 "[[침대]]"라고 썼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1990년대 어린이들은 침대는 사이언스로 알고있다.~~
         2014년 현재 수 년째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연기과 교수직을 맡고 있다. 제자 중 한 명인 [[크레용팝]]의 [[초아(크레용팝)|초아]]의 2014년 발매 어이 CD 부클릿의 감사 인사말에서도 확인 가능.
          * 2014년 [[힐러(드라마)|힐러]] (KBS) - 김문
  • 박석민 . . . . 17회 일치
         || '''학력''' || 대구율하초 - 경복중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 ([[대구사이버대학교]]) ||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상호(1989)|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태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 [[최정]]([[SK 와이번스]]) || → || '''박석민'''([[삼성 라이온즈]]->[[NC 다이노스]][* 2015년 성적은 삼성에서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상 전에 NC로 FA 이적하는 바람에 공 기록에는 NC로 되어 있다.]) || → || [[최정]]([[SK 와이번스]]) ||
         대구고등학교 시절.~~날씬하다~~ ~~그리고 후에 [[삼적화]]가...~~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08년 시즌 초반 [[선동열]] 감독이 구상했던 [[양준혁|양]][[심정수|심]][[제이콥 크루즈|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까지 거의 김인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2009 시즌 목표치[* 한 영상인터뷰에서 2009시즌 목표를 0.315 홈런 32개라고 말해 한대화 코치에게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박한이에 이어 공 정신병자 2호.]에 부상으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 게다가 2008년 경기 도중 2루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다 다친 왼손 중지 부상으로 인해 [[유리몸]]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해서 자주 2군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6월부터 살아나면서 박석민이 홈런을 치는 경기는 이긴다는 공 성립. 그리고 마침내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 20홈런을 넘겼다. 이 해 20홈런 이상을 친 타자들 중 [[김상현(1980)|김상현]]을 제외하면 타석당 홈런 비율이 가장 높은 타자로 잔부상만 조심한다면 내년부턴 40홈런도 노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KBO 골든글러브]] 시상 격전지인 3루수 부문에서 [[최정]]과 2년 연속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결국 수비율과 홈런 등에서 앞서고 [[20-20]]을 달성한 최정에게 아쉽게 밀렸다.~~사실 최정도 박석민 이상의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기에 받을 만했다.~~ 아무튼 최정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3루수로 인정받을 만큼 성장했다.~~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자석남~~ 이를 위로라도 하듯(?)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소감에서 '제가 받을 자격이 있나 잘 생각해 보았는데 정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역시나 개그 본능을 보여주었다.
         풀스윙을 할 때 배트를 놓쳐 배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잦다. 카메라맨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고 상대 투수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위험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http://cfile287.uf.daum.net/image/184C3B194C2DD67D70ABC2|팀킬도 한다.]] 2011년 6월 21일 경기에서 [[오넬리 페레즈|오넬리]]의 투구에 삼진당하면서 놓친 배트가 오넬리에게 날아가는 바람에 오넬리는 당황, 박석민은 헉, [[신경현]]은 알밤 + 예끼~~[[한대화|니미 X발]]~~를 시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다행히 배트가 오넬리 정면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험했던 상황.[[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category=kbo&id=3478&gameId=20110621HHSS0&listType=game&date=20110621&page=1|영상]]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다행히 빗나갔기에 '역시 브콜돼' 소리를 듣는데 그쳤다. '''__하지만 박석민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왼쪽 중지 부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__''' 2010 시즌부터 수비할 때 중지에 테이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격할 때 중지와 약지를 테이프로 감아 하나로 묶어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격할 때 순간적으로 왼손에 힘이 빠지면서 배트를 놓치는 것. 중지를 총 두 번 수술해야 한다는데 2010 시즌 끝나고 한 번 했었고 2011 시즌이 끝나고 두번째 수술을 했다. 그 결과 100% 정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 2013 시즌까지도 휴일을 잡아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SNS에 올라온 글로 보아 히쓰마부시(장어모듬덮밥) 팬인 것 같다. ~~갈 때마다 먹는다~~
          * 즙전드, 즙가놈 : 골든글러브 시상 때,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 짰다고 하여 붙었다.
         자칭 야구[[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 2009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된 45년간 야구를 본 할아버지에게 PD가 2회 WBC 때 맹활약하던 이범호 고교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 이범호도 잘 했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박석민은 진짜 천재라고 수 차례 말했을 정도. 덕분에 허세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 고졸 신인이던 2004년에 1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도 거치지 않고 [[오주원|오재영]]에게 강하다면서 내보내달라고 졸라서 펜스 직격 2루타(!)를 꽂은 적이 있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잠실구장을 욕하면서 넘어갔어야 선발고정이라면서 김응용 감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697613&cpage=1&mbsW=&select=&opt=&keyword |#]]~~쳤으니 망정이지 못 쳤으면 원산폭격행~~
         천재교육에서 나온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의 귀퉁이에 박석민의 사진이 수록됐다. [[야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인데 오른손에 착용한 노란색 보호대 2개는 누가 봐도 박석민이다.
  • 식극의 소마/192화 . . . . 1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1화]] |||| '''극의 소마/192화''' |||| [[극의 소마/193화]] ||
         [[극의 소마]] 192화. '''난무'''
          * 유키히라 소마의 승리 소에 안도하는 나키리 에리나. 그러나 곧이어 나키리 아자미의 측근이 하야마 아키라의 퇴학처분을 알린다.
          * 뿐만 아니라 다른 루트의 쿠로키바 료, 나키리 아리스를 비롯한 반역자 전원이 패배. 퇴학처분 되었단 소이다.
          * 그런데 이들은 손쉽게 시험을 통과. 린도가 내건 조건은 "내가 맛있어 하는 음".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통과한다.
          * 낙승으로 테스트를 통과한 나키리 에리나. 센트럴의 수하들의 입에 발린 소리를 물리치며 서둘러 극 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유키히라 소마의 승리. 에리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자리에 있던 소마, 하야마 아키라, 시오미 준이 에리나를 발견한다. 소마는 머리가 엉망이라며 뛰어왔냐고 묻는다. 에리나는 민망했던지 서둘러 머리를 고치고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척하며 넘어간다.
          그런데 아이다가 전하는 소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 방금 전 시 상황. 린도는 뱀처럼 사악한 얼굴로 타쿠미의 요리를 시하는데... 의외로 간단히 "맛있다"고 해준다. 이어서 타도코로의 음도 먹더니 적당히 맛있다고 해주고 합격을 선언한다. 원래 시험 과제 자체가 "내가 맛있게 먹는 음"이었고 대결도 딱히 요리실력을 대결하는건 아니었다. 십걸 상대로 빡쎄게 싸우고 깨져나간 다른 루트 학생들관 달리 완전 날림 시험.
          * 그런데 소마는 뭔가 어정쩡하게 분노하고 있다. 타쿠미가 왜 그리 태평하냐고 갈구니 "어쨌든 요리승부로 진 것"이라며 적을 욕할 일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타쿠미도 그 점에는 반박을 못하지만 이 판국에 누구 편이냐며 까댄다. 그러자 소마는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십걸은 학교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지 않냐는 것.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18화 . . . . 1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7화]] |||| '''극의 소마/218화''' |||| [[극의 소마/219화]] ||
         [[극의 소마]] 218화. '''2nd BOUT'''
          * 2라운드 대전자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 반역자의 대기실이 떠들썩하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건 [[나키리 아리스]]. 그녀는 [[사토시 잇시키]], [[메기시마 토스케]], [[쿠가 테루노리]]로 현재 낼 수 있는 최강 전력을 구성해 "최대 전력을 단번에 투입해 적을 빠르게 제압한다"는 이론을 주창한다. 그녀는 이 이론을 강조하기 위해 별 상관없는 수까지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는 열성을 보였다. 여기에 대항해 [[마루이 젠지]]는 강한 카드를 순간에 소모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고했다. 상황을 보면서 전력을 온존하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 그 옆의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별 의견이 없다.
          * 논쟁은 평행선. 쿠로키바가 슬며시 [[나키리 에리나]]에게 결정권을 넘긴다.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연대극은 승자가 계속 싸우는 구조이므로 "버리는 패"같은건 큰 의미가 없다. 몇 승을 거둔들 상대측의 강자가 온전하다면 혼자서 연승을 거둬 역전을 거두는 것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 기회가 있다면 강한 카드를 상대로도 과감하게 덤벼볼 필요가 있다. 뭣보다 1라운드에 전승하지 않았나? 이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어떤 카드가 있을지? 에리나가 곧 결정을 내린다.
          * 동료들이 수읽기로 골몰하는 동안 쿠가는 돌발행동을 취했다. [[유키히라 소마]]는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그의 행동을 목격한다. 쿠가는 적측에 개인적으로 극 신청을 하고 있었다. 다음 라운드에서 자신과 싸우자고. 그 상대는 [[츠카사 에이시]]. 십걸의 제 1석. 상대방은 물론 현재 연대극 참가자 중 최강자다. 쿠가는 방금 전까지 촐랑거리고 있더니 승부를 신청하는 이 순간, 전에 없이 진지하다. 그걸 받은 츠카사 또한 푼수떼기같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을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 소마는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모퉁이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본다.
          멋대로 무언가를 양보한 소마가 "에리나가 벌써 3명을 정했을지 모른다"며 서둘러 돌아가자고 한다. 쿠가가 분위기에 휩쓸려 그를 따라가지만 곧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츤데레스럽게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 답지도 않은 연극까지 한다고 툴툴대는데 소마는 모른척하며 그런거 보단 자기는 [[극의 소마/162화|전에 츠카사 에이지와 싸운 적]]이 있으니 이번엔 쿠가 선배의 차례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이게 쿠가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신과의 대전은 한사코 피하는 츠카사가 왜 소마하고는 승부했단 말인가?
          * 쿠가의 심통은 소마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해결됐다. 그때 츠카사가 소마를 서포터로 스카웃하기 위한 비공 극이었다고 설명하자 쿠가는 신난 똥강아지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소마는 그저 서포터 자질을 보기 위한 거였고, 쿠가 자신은 "요리사로서" 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히려 소마에게 "풀 죽을 필요 없다"고 여유까지 부리는 마당이다. 너무 텐션이 올랐다. 소마는 쿠가가 츠카사에게 질 경우 자기가 복수하겠다고 장담하는데 쿠가는 소마가 그렇게 나오면 자신은 오기로라도 더 집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둘은 대기실로 향하며 다음 대결에 꼭 츠카사가 나오길 바라는데, 만약 나오지 않을 경우 쿠가가 츠카사를 끌어낼 때까지 다 때려잡겠다고 선언한다.
          * 연대극 2회전의 무대가 시작됐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반역자 측에서 나타난 출전자들은 이 셋. 쿠가, 메기시마, [[미마사카 스바루]]다. 셋 모두 더할나위 없이 자신감에 차 보이지만 관중들의 평가는 미묘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는건 역시 전 3석 메기시마. 그를 누구와 싸우게 하느냐가 2라운드 승패를 가늠할 것이다. 미마사카는 그저 "기분 나쁘다" 외에는 논외. 그리고 쿠가는 전 십걸 출신인데도 "3학년을 꺼내면 무난하게 이길 상대"라고 상당히 평가 절하 당한다. 어느 정도는 쿠가 자신도 그런 평가를 알지 모른다. 센트럴 측 출전자가 발표되려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재점검하고 소마의 승리를 떠올린다. 소마도 이겼는데 여기서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쿠가 테루노리의 이름이 운다면서. 그는 호기를 부려서 센트럴 측을 향해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 쿠가의 기합과 관중들의 환호에 등판하는 센트럴의 참전자. 1석 츠카사, 2석 [[코바야시 린도]], 4석 [[사이토 소메이]]. 현 십걸 중 최강 전력이며 연대극 참가자 전원을 기준으로 봐도 최강의 카드가 여기서 나왔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0화 . . . . 1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9화]] |||| '''극의 소마/230화''' |||| [[극의 소마/231화]] ||
         [[극의 소마]] 230화. '''승리를 노려라'''
          * [[도지마 긴]]은 연대극에선 각자의 역량이 필요한 국면도 있을 거라 판단, [[시노미야 코지로]]를 불러 1학년 삼총사의 특훈을 지도하게 한다.
          * 월광호에서 연대극 대비 특훈에 돌입하려던 [[유키히라 소마]] 일행은 뜻밖의 방문자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전 십걸출신 셰프 [[시노미야 코지로]]였다. 소마가 "시모니야 사부"라 부르며 반가움을 표했다. 여전히 당사자는 아니라고 질색했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에게도 그를 소개했다. 꽤 흥미롭게 그를 살펴보는데. 반면 시노미야는 같은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죠이치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 [[타쿠미 알디니]]가 그가 어떻게 홋카이도에 있냐고 물었다. [[도지마 긴]]의 섭외였다. 도지마는 지금까지는 팀워크 강화 훈련을 했으니 이제 개별훈련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연대극은 팀원 간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역량이 필요한 시점도 분명 온다. 지금부터 죠이치로, 도지마, 시노미야가 각각 1학년 삼총사를 맡아 맨투맨 학습에 들어갈 것이다. 소마는 물론 죠이치로, 타쿠미는 도지마. 마지막은 당연히 [[타도코로 메구미]]와 시노미야다. 메구미가 다소 어리둥절한 채로 대화에 따라가지 못하자 시노미야가 직접 선언한다.
          * 연대극 2일차. 3rd Bout의 시작. 대결 제 3카드 메구미 vs [[아카네가쿠보 모모]]의 대결주제를 선정한다. 메구미가 추첨용지를 집었다. 결정된 주제는 "사과". 반역자 팀에서 탄을 내뱉었다. 본래 사과라면 요리에도 많이 쓰는 만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초일류 파티셰 모모. 사과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특기 중의 특기 분야. 하다못해 채소였더라면 메구미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실망이 우세했다.
          * 몇 시간 뒤. 결국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시노미야는 반쯤 좌절했고 메구미는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느라 특훈은 진전이 없었다. 덤으로 타쿠미와 소마는 휴시간마다 메구미조를 기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진전은 요원했다.
          도지마도 메구미조의 주방을 찾았다. 그는 특훈과는 상관없는 화제를 들고 왔다. 시노미야가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게 의외였다는 얘기였다. 혹시 시노미야도 나름대로 토오츠키 학원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묻자 그는 또 "그냥 변덕"이라고 얼버무렸다. 애초에 아자미 정권 따윈 알바가 아니라면서. 시노미야는 일본 전국의 당을 "진정한 미"으로 통일한다는 그 사상은 퍽 대단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자기 가게는 그런 것과 얽힐 생각도 영합할 생각도 없다 했다. 오히려 센트럴의 지시를 받는 당들이 망하게 되더라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 시노미야의 "변덕"이란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가 이곳에 오게된 건 정말 작은 심경 변화 때문이었다. 자기 당을 돌보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안내상 . . . . 17회 일치
         |학력 =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사
         *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사
         안내상의 [[아버지]]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염색 공장을 하다가 [[보증]]을 잘못 서서 집이 망해 서울로 상경하여 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학우들을 괴롭히는 등, 초등학교 3학년 부터는 [[담배]]를 피우고 [[도둑질]]을 했다. 이 때 안내상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하여 [[개신교]] [[교회]]를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종교에 귀의한 후에 악행을 멈추었다고 회고했다<ref>[http://news.tf.co.kr/read/entertain/1569156.htm 안내상 "하나님 만난 후 악행 멈췄다"] 더팩트. 2015년 08월 16일</ref><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6010103591001 안내상 초딩시절 주먹질에 도둑질까지.. “난 깡패였다” 자폭] 뉴스엔. 2011년 06월 01일</ref>. 안내상은 중학교 1학년 시절 키가 175cm이었고 많은 학생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소외계층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사회 혁명"을 꿈꾸며 사회운동에 나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8년 2월 26일 광주직할시 (현재 전라북도 고창군) [[미국]] 문화원 내 도서관 진열장에 사제 시한폭탄을 설치한 혐의가 드러나 총포 도검 화약류 단속법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8개월 동안 수감된 후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출소 후에는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연극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2067175 안내상 교도소 갔었다 "1988년 폭탄투하, 신문 1면 장"] - 스포츠서울</ref>.
         * 배우 [[설경구]]의 전처는 안내상의 여동생이다. 또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인 설경구의 소개를 받아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들어갔고, [[이문]], [[권해효]], [[유오성]] 등이 당시 연극을 함께한 동료 배우들이다.<ref>[ 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00625070203869 [취중토크 ②] 안내상 “학생운동 올인…시위하다 수감생활도”] - 일간스포츠</ref>
         * 2011년 《[[굿바이 보이]]》 ... 경
         * 2018년 《[[구 (영화)|구]]》 ... 재구 형 역 (특별출연)
         * 2012년 [[OCN]] 메디컬범죄수사극 《[[신의 퀴즈 3]]》 ... 배태
         * 2019년 [[MBC]] 수목드라마 《[[더 뱅커]]》 ... 육관
         * 2015년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47~50회 게스트
         * [[이문]]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순흥 안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199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
  • 오경태 . . . . 17회 일치
         {{다른 뜻|오경태 (학교괴담)||학교괴담의 등장인물}}
         * [[농림수산부]] 농업정책국 량정책과장
         * [[2010년]] ~ [[2011년]] [[농품부]] 녹색성장정책담당관
         * [[농림수산품부]] 농업정책국장
         * [[대통령비서실]] 농수산품담당 비서관
         * [[2013년]] [[4월 18일]] [[농림축산품부]] 기획조정실장
         * [[2015년]] [[3월 30일]] [[농림축산품부]] 차관보
         * [[농림수산품기술기획평가원]] 4대 원장
         * [[대구]][[심인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졸업([[행정학]] [[석사]])
         *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 [[석사]])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심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동문]]
  • 윤덕홍 . . . . 17회 일치
         | 학력 = [[서울대학교]] 사회교육학 학사<br />[[도쿄 대학]] 대학원 사회학 박사
         서울교육감 민주진보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던 '서울 좋은 교육감 시민추진위'는 "시민경선에 참가하시길 권유했음에도 참가하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단일화 경선을 요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과 상에 맞는 진보적 행동인가?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을 뽑는 선거인데, 이렇게 규칙을 어기고서라도 자신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행동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였다.<ref>[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4285 "윤덕홍 탈당 시점은?"] 참세상 2014년 5월 9일</ref>
         * 동덕국민학교
         * 경북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1969년 : [[서울대학교]] 사회교육학 학사
         * 1974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교육학 석사
         * 1986년 : [[도쿄 대학|도쿄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석사
         * 1992년 : [[도쿄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박사
         * 1969 ~ 1977 :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
         * 2000 ~ 2003 : 대구대학교 총장
         * 2000 ~ 2002 : 한국시립대학교 총장협의회 부회장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부총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대학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동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장세용 . . . . 17회 일치
         ||<bgcolor=#1870B9> '''{{{#FFFFFF 학력}}}''' ||<(> 대구상업고등학교 {{{-1 ([[졸업]])}}}[br][[영남대학교]] {{{-1 (사학 / [[학사]])}}}[br][[경북대학교]] {{{-1 (사학 / [[석사]])}}}[br][[영남대학교]] {{{-1 (사학[* 서양사 프랑스사 전공] / [[박사]])}}} ||
         ||<bgcolor=#1870B9> '''{{{#FFFFFF 경력}}}''' ||<(> 전국대학강사협의회 공동의장[br]열린우리당 중앙위원[br]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정교수 대우)[br]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br]대구경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사회운동가, 정치인. [[경상북도]] [[구미시]]의 21대 시장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인문한국 교수)를 지냈으며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과 [[대구경북]]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1953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인동초등학교, 인동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사학과]]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를 졸업하였다.
         상술하였듯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개]]가 보수 정당 후보로 나온다고 해도 당선될 곳'이라는 인이 박혀있고 실제로 [[김관용]], 전임 시장이었던 [[남유진]]이 모두 내리 3선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 동네 서점 경영 지원으로 지공유 공간 활성화
         - '''초중고 무상 급과 무상 교복 지원'''
  • 토리코/386화 . . . . 17회 일치
          * 머나먼 땅으로 갈 자신이 이런 하찮은 별에서 죽을 리 없다고 절규하는데, 토리코는 지구는 작지만 이 별의 욕은 죠아의 예상보다 훨씬 컸던 거라고 일침한다.
          * 토리코는 미도라에게 "당신이 와준다면 만 명 분 든든하다"고 인사하는데 그와 함께 안 좋은 소도 전한다.
          * "앞으론 밥도 간도 없다"고 소리지른다.
          * 스타준은 죠아의 "운"을 먹어치우고 파워업. 운이야 말로 스타준의 "적합재"였던 것이다.
          * 미도라는 그런것 보단 "포획레벨 같은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자신의 욕은 언제나 한계를 돌파해왔으니 제대로 따라오라고 말한다.
          * "구르메 뷔페"(미의 연격). 구르메 펀치로 러쉬를 날린다.
          * 운으로 구르메 뷔페를 방어하는 미도라. 공격의 폭풍우에 휩쓸린다.
          * 아카시아는 미도라를 "너도 운에 의존하냐"며 비웃는다.
          * 스타준이 "내가 찾아다니던 재는 운"이라던 발언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다. 실제로 운을 "재"로 취급해서 섭취. 스타준이 등장하면서 "지금 나는 운이 있다"고 한걸 보면 죠아의 운을 흡수한 걸로 볼 수 있다.
          * 그런데 정작 운을 써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17회 일치
         각 유닛들은 크게 구 병종과 신 병종으로 나눌 수 있다. 게임 내에서 "얘는 구/신 병종이다,"라고 콕 찍어서 알려주지는 않으니 감이나 게임 내 보너스 등으로 알아내야 한다. 게임 초기에는 구 병종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구 병종의 가격과 유지비가 상승하고 신 병종의 가격과 유지비가 감소한다.
         소총을 든 민병 150명. 싸구려 가격에 걸맞는 싸구려 성능을 가지고 있다. 군학교가 없는 극초반에는 이녀석을 주력으로 굴려야한다. 군학교를 짓고 전열보병을 양산하게 된 이후에는 치안 유지용으로 쓰게 된다.
          * 군학교(Cadet School) 필요
          * 군학교(Cadet School) 필요
         소총을 든 병사 150명. 토사 번 전용 유닛이다. 다른 존왕파 번의 비슷한 유닛들의 사관학교 테크의 염가형 보병으로 있는 반면, 적웅대는 고급 전열보병으로 사용된다.
         ==== 장군 호위대 - 신(General's Bodyguard) ====
         장군과 그 호위병으로 구성된 18명 부대. 근대화 레벨이 3등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하타모토가 신으로 바뀐다.
          * 군학교(Cadet School) 필요
          * 야전 포병학교(Field Artillery School) 필요
         말로 운반하는 유럽 대포 4문과 운용병 30명. 폭발탄을 직사로 발사한다.
  • 한용덕 . . . . 17회 일치
         * [[월드 베이스볼 클래|WBC]]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13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나 [[대전광역시|대전]]으로 이주하였다.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하여 충남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과 인연을 맺게 된다. [[북일고등학교]]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로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때 어려워진 가정 환경과 무릎 관절염으로 인해 [[야구]]를 포기하고 대학도 자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01109 사회인 선수 → 프로 무대‘연습생 신화’] 《대전일보》, 2007년 4월 23일 작성</ref>
         [[동아대학교]] 중퇴 이후 병역을 마쳤으나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선수로서의 꿈을 이어 가던 중 [[북일고등학교]] 시절 은사이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의 주선으로 [[1987년]] 9월 [[빙그레 이글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2553 무관의 투수왕 '한용덕'] 《오마이뉴스》, 2006년 9월 27일</ref>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 주는 힘겨운 [[신고선수]] 시절을 보내고 2년 뒤에서야 비로소 정 선수로 승격되었다.
         [[2005년]] [[4월 5일]] 개막 경기에 앞서 은퇴을 거행했으며 이후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26426 “훌륭한 지도자로 돌아올 것”]《대전일보》, 2005년 4월 5일 작성</ref> [[2005년]] 시즌 종료 후 단행된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 정비에서 2군 [[투수]] 코치로 임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131374& 한화, 1군 투수코치 최동원 임명] 《연합뉴스》, 2005년 10월 25일 작성</ref>
         [[2012년]] [[8월 28일]] [[한대화]]가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경질되자, 감독 대행으로 보직 변경되어 남은 시즌을 치르고 시즌 후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한화 구단에서는 [[류현진]]의 해외 진출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LA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을 것을 제의하여 [[월드 베이스볼 클래|WBC]] 이후 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마친 후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로 복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95143 한용덕 코치, 프런트 변신 "한화맨으로 죽겠다"] - OSEN</ref>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대전천동초등학교 동문]][[분류:충남중학교 동문]][[분류:북일고등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곽결호 . . . . 16회 일치
          | 학력 = [[한양대학교|한양대 대학원]]
          | 경력 = 대구대학교 겸임교수 <br/> 환경부 차관 <br/>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 1974년 : [[영남대학교]] 토목공학과 학사
         * 1976년 : [[대한민국 국방대학교|국방대학교]] 행정학사 21기
         * 1980년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 2002년 : [[한양대학교]] 대학원 환경공학 박사
         * 1999년 : 대구대학교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겸임교수
         * 2009년 : 한양대학교 건설환경시스템 공학과 석좌교수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대구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
  • 노재헌 . . . . 16회 일치
         |근무 = 육군제3사관학교 법무과
         |기타 이력 = [[민주자유당]] 상임위원 <br/> [[민주자유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 <br /> <br /> [[수원대학교]] 외래교수 <br /> [[강남대학교]] 외부강사
         '''노재헌'''(盧載憲, [[1965년]] [[11월 3일]] ~ )은 [[노태우]] 前 대통령의 아들로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미국법자문사이다.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학사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 J.D.
         *1990년 육군제3사관학교 예비역 소위([[석사장교]])
         *2000년 수원대학교 법학과 외래교수
         *2000년 강남대학교 법학과 외부강사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강남대학교 교수]][[분류:수원대학교 교수]][[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노태우 가]][[분류:교하 노씨]]
  • 박기혁 . . . . 16회 일치
         |월드베이스볼클래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06년]]
         {{메달 경기|[[월드 베이스볼 클래]]}}
         {{은메달|[[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2009 로스앤젤레스]]|2009 WBC}}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동했다. [[2008년]] 시즌 113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홈런, 36타점, 47득점, 16도루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박계원]] 이후 14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유격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상]]을 안겼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72 박기혁, 데뷔 첫 황금장갑 수상] 《Osen》, 2008년 12월 11일</ref> [[2006년 아시안 게임|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에 그쳤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9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WBC]]에 참가하여 [[박진만]]을 대신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본격적인 시즌 개막 이후 무릎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강정호]]와 [[손시헌]]에게 밀려 야심차게 노렸던 목표인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엔트리 진입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입대를 1주 앞두고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결국 [[2010년]]을 쓸쓸히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 15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2년]] 소집 해제하였다. [[2013년]]에 복귀한 뒤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잡으려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결국 프로 2년차인 [[신본기]]에 밀리고 말았다.
         * [[2009년]]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WBC]]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성광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박신혜 . . . . 16회 일치
         *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부 연극전공 학사
         박신혜는 [[1990년]] [[2월 18일]] [[대구광역시]]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재학 시절 연예계 데뷔를 하면서 [[부산광역시]]로 이주하여 줄곧 그 곳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이승환 (가수)|이승환]]의 팬이었던 공부방 선생님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배우 오디션을 한다는 소을 듣고 박신혜의 사진을 드림팩토리에 보내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m.star.naver.com/ssinz/news/end?id=2035593|title='The Inheritors' Park Shin Hye, a very good example of growing up of child actress|publisher=Naver|accessdate=2013-09-15}}</ref> 그 후 이승환이 대표로 있는 드림팩토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연기, 노래, 댄스 트레이닝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m.star.naver.com/ssinz/news/end?id=2102028|title=[STARCAST] Park Shin Hye’s Life Graph "I hope to be someone who grows 1cm every year"|publisher=Naver|accessdate=2013-09-15}}</ref><ref>{{웹 인용|author=March 9, 2014 |url=http://www.soompi.com/2014/03/09/park-shin-hye-named-as-the-new-nations-little-sister/ |title=Park Shin Hye Named as the New "Nation’s Little Sister" |publisher=Soompi |date=2014-03-09 |accessdate=2016-12-29}}</ref>
         [[중앙대학교]] 수시 2학년 1학기 모집에서 미디어공연영상대학 연극영화학부 연극(연기) 전공에 응시하여 합격해 2008년 입학했다.<ref>{{뉴스 인용|제목=고아라·박신혜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수시합격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0198659|출판사=노컷뉴스 |저자=이지현|날짜= 2007-10-31|확인날짜=2016-02-15}}</ref> 2016년 2월 15일, 8년만에 예술대학 학위를 수여 받고 졸업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8년만에 대학 졸업, 졸업장 들고 '함박 웃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3630219|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문지영|날짜 =2016-02-15|확인날짜=2016-02-15}}</ref><ref>{{웹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6021514330231788&type=1&outlink=1|title=박신혜·유리·수영, 중앙대 연극과 졸업..캠퍼스와 작별(종합)|publisher=StarNews|accessdate=2016-02-15}}</ref><ref>{{웹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6021514524686335&type=1&outlink=1|title=박신혜, 8년 만에 중앙대 졸업..캠퍼스 밝히는 미소|publisher=StarNews|accessdate=2016-02-15}}</ref>
         박신혜는 2001년, [[이승환]]의 7집 앨범 타이틀곡 〈사랑하나요〉 뮤직 비디오로 출연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2003년에도 이승환의 〈꽃〉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박신혜는 당초 배우지망생이 아닌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을 본 2003년 12월 첫 방영 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인 한정서 역을 맡아 브라운관에 데뷔하였다.<ref>{{웹 인용|url=http://globerove.com/south-korea/tree-of-heaven-korean-drama/3740|title=Tree of Heaven Korean Drama|publisher=GlobalRove|accessdate=2014-09-0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15531/http://globerove.com/south-korea/tree-of-heaven-korean-drama/3740|보존날짜=2014-09-08|깨진링크=예}}</ref><ref name="hancinema1">{{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tree-of-heaven--a-new-tryout-for-a-resurgence-of-korean-wave-5387.html|title='Tree of Heaven': a new tryout for a resurgence of Korean Wave|publisher=The Korea Herald via Hancinema|accessdate=2013-10-08}}</ref><ref name="hancinema2">{{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park-sin-hye-invited-to-photo-exhibition-for-korean-top-stars-6302.html|title=Park Shin-hye Invited to Photo Exhibition for Korean Top Stars|publisher=KBS Global via Hancinema|accessdate=2013-10-08}}</ref> 이 작품에서 그녀는 14살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어린 소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싱그럽고 풋풋한 첫사랑 감정을 첫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한 연기를 선보이며, 안방극장의 뜨거운 사랑과 지지를 받았고 그 당시 이례적으로 아역들의 분량이 1회 늘어나기도 했다. [[SBS 연기대상]] 아역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연출을 맡은 이장수 감독은 박신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인용문2|“(박신혜씨 연기를) 정말 잘해요. 연기한 걸 직접 한 번 봐야하는데…우리나라 배우들이 자질이 정말 뛰어나다는 걸 신혜를 보면 느낄 수 있어요. 비록 신인이지만 잘 할 것으로 봐요”|MBN스타 2016년 7월 8일자 기사<ref name="mbn">{{뉴스 인용 |제목 =[M+TV피플] 박신혜, 꾸미지 않아 더 아름다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0989093|출판사 =MBN스타 |저자 =금빛나 |날짜 = 2016-07-08 |확인날짜 =2016-07-10 }}</ref> 중}}
         2016년 6월, 첫 방영 된 메디컬 드라마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에 캐스팅 된 박신혜는 학창시절 무기력한 반항아에서 사랑이 충만한 국일병원 신경외과 펠로우 의사로 성장하는 유혜정 역을 맡아<ref>{{뉴스 인용|제목=박신혜·김래원, '닥터스' 본방사수 독려 "오늘 첫방 아시죠?"|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10100156110010947&servicedate=20160620|출판사=스포츠조선|저자=정유나|날짜=2016-06-20|확인날짜=2016-06-20}}</ref> 한층 더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1.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따뜻한 감성 드라마로 호평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이게 바로 인간 승리…'공부의 신' 됐다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2374|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김수현 |날짜 = 2016-06-21 |확인날짜 =2016-06-21 }}</ref> 연출을 맡은 오충환 감독은 제작발표회 당시 박신혜에 대해 “촬영장 공 명칭이 ‘우리 신혜’다. 오전, 오후로 미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배우를 잘 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도 좋고 인성도 좋다”고 말했다.<ref name="mbn" /> 박신혜는 연말 [[SBS 연기대상]] 장르&판타지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우며, 제5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는 20대 여배우 중 가장 주목 받는 한류 스타이자 대표하는 ‘흥행배우’로 성장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종영기획②] '3연속 흥행퀸' 박신혜, 믿고 보는 20대 女배우 우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807409|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최지예 |날짜 = 2016-08-24 |확인날짜 =2016-09-01 }}</ref><ref>{{뉴스 인용 |제목 =[SS이슈]'닥터스' 박신혜,안방 흥행여왕+20대 CF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934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조현정 |날짜 = 2016-07-12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11월 개봉 된 코미디 영화 《[[형 (2016년 영화)|형]]》에서 국가대표급 오지랖 유도코치 이수현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만났다하면 케미퀸…이번엔 조정석x도경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23745|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6-11-08 |확인날짜 =2016-11-10 }}</ref>
         박신혜는 2017년, [[정지우 (영화 감독)|정지우]] 감독의 영화 《[[침묵 (2017년 영화)|침묵]]》에서 변호사 최희정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으로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ref>{{뉴스 인용 |제목 =최민x박신혜x류준열 '침묵' 11월 개봉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88848|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7-09-20 |확인날짜 =2017-09-20 }}</ref> 2017년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신혜는 2017년 6월부터는 지난 2013년 첫 투어 이후 4년만에 2017 아시아투어의 첫 스타트 무대를 홍콩에서 성황리에 마쳤으며, 이번 아시아투어는 올 해로 네 번째로 투어 수익금 전액은 기아대책에 기부되었다. 이외에도 대만, 필리핀, 일본, 싱가포르, 태국에서도 열릴 예정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아시아투어 첫 무대 성료…"MC 없이 단독진행"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105412|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정유나 |날짜 = 2017-06-12 |확인날짜 =2017-09-12 }}</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한류여제’ 파워 과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76478|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이정연 |날짜 = 2017-07-04 |확인날짜 =2017-09-12 }}</ref>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박신혜는 또한 2011년부터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결연아동 아반네를 결연후원 해오고 있으며 팬들과 해외 빈곤국에 센터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팬과 함께 봉사활동 나선 별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196660|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김원겸 |날짜 = 2014-04-08 |확인날짜 =2014-04-09}}</ref> 국내외 팬들과 전 세계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호 센터로 서부 아프리카 가나 ‘신혜센터(Shin Hye Center)’가 2013년 11월 완공되어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기아대책 홍보대사 박신혜, ‘러브백’ 특별행사 참여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5291628173210|출판사 =뉴스엔 |저자 =김찬미 |날짜 = 2014-05-29 |확인날짜 =2014-05-30}}</ref> 2014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189349|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이슈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42515493577725|출판사 =스포츠투데이 |저자 =김은애 |날짜 = 2014-04-25 |확인날짜 =2014-04-26 }}</ref> 또한 자신의 SNS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변경, 노란리본 캠페인에도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기부 이어 노란리본 캠페인 동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242446|출판사 =스포츠경향 |저자 =온라인뉴스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 }}</ref> 2015년, 박신혜는 ‘2015 Dream of Angel’ 타이틀로 아시아투어에 나섰고, 상해 팬미팅 수익을 [[NGO]] 단체 ’기아대책’의 별빛천사마을 만들기와 중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 ‘타소원’에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상해 팬미팅 수익금 전액 기부.."한류스타 이례적 행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217288|출판사 =이데일리 |저자 =강민정 |날짜 = 2015-03-30 |확인날짜 =2013-09-01 }}</ref> 4월, 박신혜는 큰 피해를 입은 [[네팔]] 국민들을 위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를 통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네팔 지진 희생자 위해 3천만원 후원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54697|출판사 =OSEN |저자 =정유진 |날짜 = 2015-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7월, 박신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혜센터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의 건립을 진행했다. 이에 박신혜와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센터건립에 앞서 필리핀 쌈빨록 지역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었고, 지난 3월 박신혜는 필리핀의 결연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아동결연센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센터 건립에 앞서 건축기념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9585|제목=박신혜가 또… 필리핀에 아동복지시설 ‘신혜센터’ 건립|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홍세영|날짜 = 2016-07-22|확인날짜=2016-12-09}}</ref>
         2016년 12월, 박신혜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대구 서문시장 화재피해 이웃돕기를 위해 5천만 원을 기부한데 이어<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aid=0000931937&oid=213&lightVersion=off|제목=박신혜 측 "서문시장 5천만 원 기부, 소속사도 몰랐다" [공입장]|출판사 =TV리포트|저자=박설이|날짜 = 2016-12-29|확인날짜=2016-12-09}}</ref> 밥상공동체복지재단를 통해서도 5,000만 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26953|제목=박신혜 또다시 선행…연탄은행에 5000만 원 기부 [공]|출판사 =스포츠동아|저자=홍세영|날짜 = 2016-12-14|확인날짜=2017-01-01}}</ref>
         * {{언어링크|ja}} {{공 웹사이트|http://www.parkshinhye.jp/}} (일본)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밀양 박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박철우(배구) . . . . 16회 일치
         || 출신학교 || 본리초 - 경북사대부중 -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경북사대부고]] - [[명지대학교|명지대]][*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데뷔를 했기 때문에 [[명지대학교]] 소속으로 뛰지는 않았다.] ||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배구)|이상열]]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 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학교|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배구)|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박철우는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기흉]]을 앓아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고, 특히 2007년에는 3번이나 기흉 수술을 받아 폐활량이 많이 떨어진다. 이를 반영하는지 '''가빈 몰빵 모드'''는 2009-2010 시즌에 이어 2010-2011 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신치용 몰빵배구의 대안을 찾지 못한--팀은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 서영무 . . . . 16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영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OB]]의 이사로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돼 [[1984년]] [[5월 11일]] OB와 삼성의 대구 경기를 앞두고 원정 숙소였던 [[수성관광호텔]]에서 선수들의 방을 정하던 도중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경북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물인간이 되었고, 긴 투병 끝에 [[1987년]] [[5월 26일]] 오전 7시 5분,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경북고등학교|경북고]] 출신의 명 선수인 [[이선희 (야구인)|이선희]], [[황규봉]], [[배대웅]], [[조창수]], [[임신근]], [[강문길]] 등이 그의 제자였기 때문에 '''대구 야구의 대부'''라고 불리며, 엄격한 훈련과 함께 선수들의 책임과 품위를 철저히 강조한 감독이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99354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⑩‘대부’의 쓸쓸한 퇴장, 원년 감독 서영무] - 매일신문</ref>
         == 출신학교 ==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 [[경북대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34년 태어남]][[분류:1987년 죽음]][[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식극의 소마/199화 . . . . 16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8화]] |||| '''극의 소마/199화''' |||| [[극의 소마/200화]] ||
         [[극의 소마]] 199화. '''소마의 강함'''
          * [[나키리 아자미]]는 연대극을 앞두고 들떠 있다.
          * 츠카사는 레분토 섬에서 연대극을 벌인다는 소을 처음 듣는다. 그것을 전한 [[나키리 아자미]]는 어쩐지 들떠서 기분 나쁘다. 아자미는 십걸 멤버들을 레분토 섬으로 집결시키도록 지시하고 거기서 모든걸 마무리 짓겠다고 말한다. 츠카사의 방을 나온 아자미는 [[사이바 죠이치로]], [[도지마 긴]]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죠이치로가 떠나던 모습과 그걸 지켜보던 자신의 비뚫어진 애정을 회상한다.
          그 죠이치로가 자신의 항복을 조건으로 극을 제안하고 있다. 아자미는 "요리인이 길을 잃는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토오츠키 학원과 요리계를 구원하겠다고 중얼거린다.
          * 아자미의 대두와 토오츠키의 위기는 도지마 긴이 사전에 감지한 바였다. 그는 죠이치로에게 이런 사실을 상담했으며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죠이치로임에 의견이 일치했다. 두 사람은 그런 야망이 이루어지도록 둘 수 없다고 보고 만약 아자미가 내세운 명분의 발단인 죠이치로가 자신을 걸고 극을 청하면 반드시 넘어올 거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하지만 타쿠미 쪽에서 단호한 태도로 사과를 거절한다. 오히려 이들의 작전이 없었다면 이번 극이 성립하지도 않았을 테니 도움을 받은 거라며 말이다. 타쿠미는 타도코로와 함께 아자미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타도코로도 여느 때와 다르게 적극적인 태도로 동참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참을 인자를 손바닥에 새기는게 영 불안하다.
          * 한편 당칸에서 정말로 대결을 벌이고 있는 유키히라 부자. 죠이치로는 아들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추억에 잠긴다. 문득 그는 소마에게 "지금까지 나하고 대결에서 몇 패나 했냐"는 걸 묻는다. 지나가는 투로 말하지만 한 번 자신을 쓰러뜨렸던 "천재"라는 망집이 아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우려한다.
          * 같은 시각, [[나키리 에리나]]는 자기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조부 [[나키리 센자에몬]]이 방문하는데 손녀를 걱정한 듯 하다. 그 걱정대로 에리나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아니, 확실히 두려움에 경직돼 있다. 아버지에게 맞선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들고 은땀을 흘릴 지경이다. 센자에몬은 손녀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 어쨋든 도지마는 갑작스럽지만 "오늘 밤부터 특훈을 시작한다"고 전달한다. 연대극에 대비한 첫 번째 특훈. 3 vs 3 "홍백전"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7화 . . . . 16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6화]] |||| '''극의 소마/207화''' |||| [[극의 소마/208화]] ||
         [[극의 소마]] 207화. '''악운'''
          * [[유키히라 소마]]의 상대 [[키노쿠니 네네]]는 주전공은 일. 하지만 메뉴가 뭐든 소마를 쳐부순다고 소마에게 메뉴를 선택하게 한다.
          * 네네는 이미 소마는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옆에서 경기 중인 잇시키를 더 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 [[나키리 에리나]]는 네네에 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복기한다. 주력 요리는 일 전반이며 특히 "소바"에 관해선 적수가 없는 달인이다. 본가는 칸다에서 소바가게를 하고 있으며 "에도 소바"의 전통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초일류 가게. 그런 본가에서 어려서부터 일의 정수를 교육받은 그녀는 일계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타쿠미 알디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거라 짐작하며 십걸로서 6석에 있었으니 단순 비교로는 잇시키보다 위가 아닐까 추측한다.
          네네는 안경을 닦으며 "일 특기"라는 꼬리표가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소마가 어떤 테마를 뽑든 그의 요리를 처부셔버리겠다고 자신한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메뉴 선정. 마치 조작이라도 가해진 것처럼 최악의 카드가 뽑혔다. 정적에 휩쌓이는 대회장. 반역자 측은 물론 센트럴을 응원하는 관객들과 네네 조차 얼어붙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환호성. 카와시마와 관객들은 벌써 네네의 승리가 정해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한편인 잇시키와 메기시마는 태연하게 카드를 뽑을 뿐. 잇시키는 "변함없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뜻모를 소릴하고 메기시마는 흥미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헤프닝처럼 시작돼버린 연대극.
          * 소마는 우리에 갇힌 친구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운이 없냐"고 원망을 듣는다. 하지만 소마가 신경 쓰는건 네네 쪽. "내가 일만 하는 요리인이라고 생각하지 마라"같은 소리를 해놓고 이런 결과가 나와버린 탓에 상당히 민망해하고 있다. 그래도 일단 재료준비는 착실하게 하고 있다.
          한편 네네는 상대인 소마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옆 조리대의 잇시키를 더 의하는 것 같은데.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15화 . . . . 16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4화]] |||| '''극의 소마/215화''' |||| [[극의 소마/216화]] ||
         [[극의 소마]] 215화. '''두꺼운 고기는 정의'''
          * 심사의원들은 재료가 장어의 맛을 끌어올리듯 자신들의 육체도 끌어올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 효과로 빈약한 [[안(극의 소마)|안]]이 글래머가 된 리액션.
          * 절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잇시키는 조금도 동요없이 자신의 요리를 내는데, 거기엔 "비장의 재료"가 들어가 있다고 선언.
          * 그런데 그가 공개한 비장의 재료란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이 평소 기숙사에서 쓰던 재들이었다.
          그는 기를 옮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 그때 먼저 음을 완성한 쥬리오가 심사의원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자신있게 내놓은 요리는 "카피토네 인 우미드". 토마토의 상큼한 향과 장어의 농후한 맛이 응축된 이탈리아 요리다. 소마는 외견과 향기는 대단한 임팩트라고 평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에 조예가 없어서인지 그 이상은 파악하지 못한다. 알디니가 설명하길 "인 우미드"는 "찜요리"를 뜻하고 "카피토네"는 장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 요리는 단지 그것만이 아닐거라는 늬앙스를 풍기는데.
          마침 맛 첫 한 입을 맛본 [[안(극의 소마)|안]]에게서 탄성이 나온다. 장어의 맛과 기름이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의 향으로 더욱 끌어올려졌다. 그녀는 "카피토네를 완벽하게 조리했다"고 평한다. 타쿠미의 예상대로 "카피토네"란 그냥 장어가 아니었다. "암컷 대형 장어"를 뜻하는 말로 크리스마스 탁에 오르는 재료. 사이즈가 크고 두꺼우며 기름기가 많아 고급품으로 취급한다. 일반적으로 쓰는 장어는 "앙길라"라 지칭.
          >재료와 진득히 대화하지 않으면 완벽한 요리가 되지 않아.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25화 . . . . 16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4화]] |||| '''극의 소마/225화''' |||| [[극의 소마/226화]] ||
         [[극의 소마]] 225화. '''관철하는 무사도'''
          * 종래의 한계를 뛰어넘은 [[미마사카 스바루]]의 새로운 필살기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강적 중의 강적인 십걸 4석 [[사이토 소메이]]의 기술을 완벽하게 따라하며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선전을 펼쳤다. 환호하는 반역자 동료들.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도 감탄을 마지 않는다. 아무리 동료와 연계가 허용된 연대극이라지만, 동료를 서포트하는 행동은 리스크가 크다. 십걸들 조차 자기 조리에 매진할 뿐 동료와 협조하진 않는 것도 그 탓. 이런 상황에서 서포트와 자기 조리를 양립할 수 있는 미마사카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이스트와르는 미마사카야 말로 반역자 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최고의 전력이라 단언한다.
          >아니... 하잖아 가끔.
          * 이사나키리를 쥔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그랬든 한 번의 기합으로 남은 참치해체를 단숨에 끝마친다. 사이토는 거기에 만족스러워하며 진짜 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따라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미마사카도 지지않고 그 태도에 대항한다. 둘의 사고방이 어떻게 됐건 간에, 지금 둘은 깨끗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반역자들은 저 미마사카가 군소리없이 사이토의 권유를 받은 것에 놀란다. 그도 자기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렬한 요리사가 아닌가? 하지만 타쿠미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쿠가 테루노리]]처럼 체면 따위는 내던져놓은 것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필사의 노력. 그 말대로 사이토의 조리 순간마다 미마사카의 눈이 빛을 내뿜었다. 끊임없는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 둘의 조리는 완벽하게 똑같았다. 붉은 살을 간장, 미림, 레드와인을 섞은 양념에 재우고 볼살 부분은 한쪽 면만 버터향을 입혀가며 굽는다. 사이토는 부위마다 다른 방으로 조리하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걸 따라갔다. 이번엔 사이토가 짚을 준비한다. 처음엔 장에 쓰려는 줄 알았으나, 그 정체는 볏짚구이. 참치살을 짚불에 올려 호쾌하게 구웠다.
          *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솜씨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었지만 역시 힘이 들었다.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의 고행에 가까운 노력은 연대극에 멤버로 지목된 이후부터 시작됐다. 월영 열차 당칸. 미마사카는 거기서 연대극에 대비한 "십걸 전원 트레이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던 그도 무릎에 힘이 빠질 만큼 고된 훈련이었다. 연대극에서 누구와 상대할지 모르는 만큼 십걸 전원 트레이스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요리사에 대해 동시에 트레이스를 진행하는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 연습단계에서 이정도라면 실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안종범 . . . . 16회 일치
         |학력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 학사·석사<br>[[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경력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br>[[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br/>[[청와대 경제수석]]<br/>[[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 분야 공약을 만들었다.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에 지명되면서 의원직을 사직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용되어 일하다가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대통령]]이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하면서 2016년 10월 30일 사임하였고 제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강석훈]]이 그 직을 임시 대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69333 靑 수석비서관들 일괄 사표제출…朴대통령 인적쇄신 가능할까]. 서울신문. 2016년 10월 30일.</ref>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28904 민정수석·청와대 비서관… 도대체 뭐 하는 자린고?]. 조선일보. 2016년 11월 16일.</ref> <ref>이상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74512 靑 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이 대행]. 머니투데이. 2016년 11월 16일.</ref>
         * [[계성고등학교 (대구)|계성고등학교]]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 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1996 . 11 ~ 1998 . 02 :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1998 ~ 2016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2003 . 09 ~ 2004 . 08 : [[성균관대학교]] 경제연구소 소장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박근혜 정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 원피스/839화 . . . . 16회 일치
          * 살풍경한 이야기 뿐인 제르마 왕가의 아침사.
          * 니디는 상디를 도발하나 상디는 그런것 보단 음을 깨작거리는 니디의 탈 예절을 신경쓴다.
          * 상디는 니디가 음 귀한줄 모르는 "멍청한 왕자"라 디스하는데 열받은 니디는 요리사 코제트를 불러 접시를 집어던진다.
          * 사 후 코제트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견되는데, 격분한 상디가 니디를 찾아나서려 하자 욘디가 안내를 자청한다.
          * 이치디와 니디의 귀환을 축하하며 아침사를 하는 제르마 왕가.
          * 니디는 그제서야 자기 사예절을 지적하는걸 깨닫고 "남길 거다"고 말한다.
          * 그는 음을 타박하며 "이런건 쓰레기행"이라고 말한다.
          * 상디는 모조리 먹으라며 "량의 중요함과 요리에 든 수고를 모르는 멍청한 왕자"라고 독설을 날린다.
          * 코제트는 자기가 치우겠다고 만류하지만 상디는 아무렇지 않게 음을 먹어버리며 "맛도 완벽"이라고 호평한다.
          * 저지가 "결혼 전"이라며 제지하다 직전에 멈춘다.
          * 상디는 음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멍청이도, 여자에게 손대는 남자도, 부하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왕족의 오만도 모두 자기 사상에 반한다고 일갈한다.
          * 형제들은 그를 비웃으며 당을 나간다.
          * 저지는 다시 한 번 "평화롭게 을 올리자"며 상디의 협조를 구한다.
          * 사 시간 후. 당을 나서던 상디는 코제트의 처참한 몰골을 발견한다.
  • 원피스/866화 . . . . 16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은 평범한 인간 부모에게서 태어났음에도 5살 때 신장이 5m를 훌쩍 넘길 정도로 몸집이 크고 탐이 강했다.
          * 링링의 비정상적인 힘과 탐은 큰 소동을 일으켜 "국외추방"형을 받고 거인족 전사들의 섬 "엘바프"섬에 버려지기에 이른다.
          * 그런데 당시 엘바프에는 "동지제"라는 축제가 있는데 12일 동안 단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이때 미리 "셈라"라는 단 과자를 먹어 기력을 보충해둔다.
          * 이 셈라 맛에 반한 링링은 6일 째까지는 필사적으로 배고픔을 참으며 단했지만 7일 째부터는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려 마을을 박살낸다.
          * 현대로부터 63년 전. 거인족 "엘바프족"이 사는 엘바프 섬에 묘한 배가 상륙한다. 그들은 한 아이를 해안에 내려놓는데 인간의 아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몸집이 거대했다. 그 아이가 바로 [[샬롯 링링]]. 지금의 빅맘이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그녀는 신장이 벌써 5m를 훌쩍 넘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인간의 자이었으며 사고방도 보통의 어린 소녀였다.
          부모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링링을 버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비정상적인 힘과 탐을 지닌 그녀는 큰 소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내려진 벌이 "국외추방". 부모는 링링을 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워낙 큰 사고를 친데다 도저히 자신들이 기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의 결정에 따랐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건 이 땅에 "성모"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녀가 링링도 구원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그들은 돌아간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떠나는 배에 손까지 흔들던 링링. 곧 밤이 찾아오고 가져온 음도 다 먹어버리자 불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링링은 양의 집 아이로 녹아들어 있었고 거인족 소녀 게르즈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링링에게 거인족 아저씨가 "너네 준비는 잘 돼가냐"고 묻는데, 거인족 마을에서 지내는 "동지제"라는 축제 얘기였다. 아이들의 태어남과 성장을 태양에 감사하는 축제인데 축제 당일까지 12일 간 금을 하는게 특징이었다. 그 해에는 거인족의 왕자 "로키"가 태어났고, 마을에서도 로드와 골드버그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동지제는 이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한 셈. 내일부터 시작하는데 누구보다 탐이 강한 링링이 질색을 하지만 게르즈는 "끝나면 즐거운 축제"라며 달랜다.
          * 이들이 외출한 것은 양의 집 아이들을 마을로 부르기 위해서였다. 이것도 동지제를 위한 행사 중 하나였다. 두 노병은 링링에게 "셈라를 먹으러 와라"고 하는데, 행사가 처음인 링링은 셈라가 뭔지 모른다. 게르즈가 설명해주는데, 동지제까지 12일이나 금하기 위해서 미리 영양가 많은 음을 먹어둬야 하는데, 그것이 셈라.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로 과자라면 환장하는 링링이 눈을 빛낸다.
          그날 마을에서 먹은 셈라는 링링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맛이 좋았다. 링링이 맛에 취해 흡입하기 시작하자 거인족 어른들이 와서 뜯어말릴 지경이었다. 단 대비용이므로 양을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링링이 먹어대는 속도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 그렇게 셈라를 먹고 시작된 단. 링링은 삼일 째부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카르멜은 태양제를 "죽음과 부활의 축제"라며 괴로움만큼 태양에 대한 감사가 깊어지는 거라고 타이른다. 그렇게 카르멜이 달래고 타일러가며 6일째까지 버틴 링링. 링링은 정말로 카르멜을 좋아했기 때문에 배고픔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셈라가 자꾸 생각났다. 그 환상적인 맛.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7일 째를 맞이하던 링링. 그리고 그날 사건이 생겼다.
          게르즈가 양의 집에 있던 카르멜을 급히 찾는다. 마을에서 링링이 난동을 부린다는 소이었다. 카르멜이 갔을 땐 이미 마을이 괴멸 상태. 거병 해적단 출신 전사들이 단 한 사람의 소녀에게 패했다. 그 파국의 한 가운데에는 세무라를 목놓아 부르는 링링이 있었다. 탐이 폭주해서 셈라를 내놓으라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아연해하는 카르멜.
  • 이윤열 . . . . 16회 일치
         그러나 이때부터 이윤열의 천적으로 자리잡은 마재윤에게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결승전, WEF 2006 결승전, CJ 슈퍼파이트 S3 결승전 등에서 패배하였고, 2007년 2월 24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3에서 마재윤에게 1:3으로 패배하였다. 이후 치러진 신한은행 마스터즈에서 마재윤에게 3:1 승리를 거두어 앙갚음을 하였고, 08-09 시즌에 열린 클럽데이 MSL, 로스트사가 MSL에서 연속으로 시드를 획득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이후 찾아 온 슬럼프와 미니홈피에 쓴 글이 은퇴를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었지만,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 우승을 전후하여 다시 게임에 매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일:Leeyoonyael.png|섬네일|오른쪽|160px|프링글스 MSL 시즌2에 출전하여 경기 중인 이윤열]] 2010년 9월 자신의 팀인 [[위메이드 FOX]]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고 스타크래프트 2로의 전향을 공 선언한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 '천재테란' 이윤열 스타2 전향 선언|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5795|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쪽=|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7}}</ref> 이후 스타크래프트 2 게임단인 [[oGs]]에 입단하여 10월 13일 [[Sony Ericsson STARCRAFT II OPEN Season 2]]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임요환·이윤열, GSL 오픈 시즌 2 본선 진출!|url=http://www.eto.co.kr/?Code=20101013111109640&ts=174147|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쪽=|날짜=2010-10-13|확인날짜=2010-10-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12053354/http://www.eto.co.kr/?Code=20101013111109640&ts=174147|보존날짜=2016-03-12|깨진링크=예}}</ref>
         2015년 11월 9일 일반인 여성과 교제의 끝에 혼인의 길을 맺었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측은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스타크래프트 II: 공허의 유산]] 출시행사에서 결혼을 가지게 되어 전세계로 생중계 되어 많은 팬들이 축하를 남겼다.
         * 2008년 곰티비 TG삼보-인텔 클래 시즌1 64강 2라운드
         * 2009년 곰티비 TG삼보-인텔 클래 시즌3 64강
         * 2009년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 우승 (3:1 [[홍진호]])
         * [[2012년]] 핫스 2012 GSL 시즌 1 Code S 32강
         * 2012년 핫스 2012 GSL 시즌 2 Code S 32강
         *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중 최초로 공전 500경기 출전 (2007년 8월 3일)
         *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중 최초로 비공전 포함 1000경기 출전 (2008년 6월 14일)
         *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중 비공 포함 최다전 최다승 기록
         * MBC게임 공전 출전 200경기 돌파 (2008년 11월 8일)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정구선수로 활동한적이 있다. 하지만 천으로 인해 정구를 그만 두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9&aid=0000083367 럭비ㆍ권투보다 e게임이 좋아]《디지털타임스》, 2004년 10월 15일</ref>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KT 롤스터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Old Generations의 선수]][[분류:SK 게이밍의 선수]][[분류:테란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골든마우스 수상자]][[분류:MSL 우승자]][[분류:MSL 금배지 수상자]][[분류:로열로더]][[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구미시 출신]][[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이지아(배우) . . . . 16회 일치
         || '''학력''' ||<(> 대구초등학교[br]대구중학교[br][[아트 센터 디자인 대학교]] 그래픽디자인과 ||
         [[2004년]] [[배용준]]과 함께 [[LGU+|LG텔레콤]] CF 촬영으로 연예계에 들어왔으나 후속 활동이 없었다. 공적으로는 [[2007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수지니 역으로 데뷔. 큰 배역임에도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때의 모습이 [[칼리(그라나도 에스파다)|칼리]]의 컨셉이 되었다.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상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2011년 3월 20일 마침내 열애설이 공 인정되면서 [[정우성]]을 남자친구로 둔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결혼까지 가면 레알 승리 입증. [[장동건]]을 잃은 데 이어 여성들은 뒷목잡고 쓰러졌다.
         2011년 4월 21일 [[서태지]]와 비밀 결혼했다가 이혼 후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 <[[스포츠서울]]>을 통해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5025394|보도]]되었다. 대한민국은 연예계 소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일 KBS 9시 뉴스에 나왔고, 다음 날 조선일보 2면을 가득 채우는 위엄을 달성.
         웬만한 스캔들에는 반응 안 하는 매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는데 인터넷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한 스포츠서울은 기사 제목에 당당히 [[특종]]을 박았다.~~15년 전의 복수~~ '믿을 수 없어''서태지와 이지아라니!'말부터 '애도 2명이나 낳았대'라는 미확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후에 아이는 없었다는 공발표가 있었다.
         본질적으로 얻을 것이 많지않은 소송을 굳이 해서 이지아가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서 출발하는 동정론도 있다. 신비주의로 일관하며 따라다니는 뒷말들에 계속 침묵으로 일관해왔는데 -일본 화류계 출신이라든가 텐프로 출신이라든가 하는 루머- 제대로 된 과거를 가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서태지가 직접 나와서 인정해주는 것 이외엔 없었다. 사실 '나 서태지의 전 부인이었어요' 라든가 '비공 결혼해서 이름까지 바꿨어요' 이런 걸 말한다고 믿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혼까지 한마당에 굳이 말할 이유도 없으니 본인의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소송을 했다는 의견이다.
         97년 결혼 이후 "서태지의 비공 아내"로 숨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동정하는 입장도 있다. 실질적으로 00년에 이미 별거(서태지측 주장)에 들어갈 만큼 결혼생활보다 소송기간이 더 길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여자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서태지의 행동이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며~~[* 하술된 기사 내용에 이 부분은 사실상 거짓] 06년에 이혼 소송을 할 때까지 결혼생활의 끝마무리를 이지아 혼자 해야 했다고 [* 서태지 측에서 04년 이혼에 대한 합의, 06년 이혼 요구를 받았다며 인정한 내용이다.]하니.
         그러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결혼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디스패치]]의 [[http://www.dispatch.co.kr/107147|반박 기사]]가 나왔다. 디스패치가 네바다 등기소까지 뒤져서 취재한 결과 결혼의 증인이 다름아닌 이지아의 이복 언니였다는 것. 이는 “양 측이 동의를 했고 많은 지인들은 두 사람의 교제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는 서태지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기사에서 확인된 이지아의 교통법규 위반 사실이나 쇼핑, 가족 왕래 증언 등으로 볼 때, 결혼생활에 자유가 없었다는 이지아 측의 주장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15년 전(1996년 11월 20일) [[스포츠서울]][* 그런데 15년 후에 이혼기사를 가장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도 '''스포츠서울'''이었다.--15년을 벼르고 별렀다-- --15년? [[JTBC]]는 [[언론통폐합|30년을]] [[동양방송|별렀는데]]--]에서 이 진실을 보도한 적이 있으나, 당시는 오보취급 당하고 묻혔다. ~~15년 묵은 성지~~ --[[맨 인 블랙]]-- --[[서태지|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 맞는 으로 본의 아니게 정의구현을 당하고 있는 [[신은경(배우)|신은경]]--
         초등학교 졸업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도 나왔다. 이 사진이 진짜 이지아의 예전 사진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007년에 이지아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은 적이 있는데, 허리춤에 수놓아진 자수를 두고 'Leejiatoes'--이지아 발가락--라고 해석해 이것을 거꾸로 읽으면 seotaijeeL이 된다는 설이 퍼졌으나, 소속사에서 이 글자는 'irresistible'이라고 밝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irresistible이 맞는다.[* '저항 할 수 없는' 이라는 뜻과 함께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이라는 뜻도 있는 단어다][* ~~그런데 irresistible은 2004년 발매된 서태지 7집 issue의 앨범커버에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에, 본인은 힘든 기간을 가졌다고 하면서 여전히 서태지를 따라다니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였다.~~ 앨범커버 왼쪽 하단에 잘려져서 쓰여져 있고, irresistible이라는 단어 자체가 흔하게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는 그냥 끼워맞추기 추측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디아블로 3]] 공 홈페이지에 [[리쌍]], 작곡가 [[윤일상]]과 함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http://kr.battle.net/d3/ko/blog/1468860/회상_디아블로를_추억하며-2012_05_03#blog/|"회상: 디아블로를 추억하며..."]]. 실제로 [[왕십리역]]에서 발매기념 사인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근데 서태지의 자동차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디아블로]]였다--
         ||<tablebordercolor=#C3C03A><rowbgcolor=#C3C03A> {{{#white '''수상 연도'''}}} || {{{#white '''시상'''}}} || {{{#white '''부문'''}}} || {{{#white '''작품'''}}} ||
  • 정웅인 . . . . 16회 일치
          | 학력 =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전 연극과]] 전문학사
         [[대구광역시]] [[달서구|경상북도 달서구]](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출생이며 [[부산광역시|부산]]과 [[전라남도]] [[담양군|전라남도 고흥군]]과 [[담양군|전라남도 담양군]]에서 성장하였고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4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1년 후 1995년 [[영화]] 《[[리허설 (영화)|리허설]]》의 단역 출연을 통하여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96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고 1년 후 1997년 [[서울방송|SBS 서울방송]]《천일야화》의 단역 출연으로 정 [[배우|연기자]] 데뷔하였다.
         |제목= ‘힐링캠프’ 정웅인 황금인맥 공개, “이병헌이 작품에 꽂아줬다” |url= http://news.donga.com/3/all/20140805/65596520/1 |출판사=동아일보|날짜= 2014-08-05 }}</ref> 이후 탤런트 공채시험에 줄곧 낙방을 하다 1995년 강정수 감독의 영화《리허설》로 영화계에 입문했고, 1996년에 드라마《천일야화》로 정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첫딸 공개한 정웅인 “코미디는 피같은 존재다” 연기열정 고백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7100023121001 |출판사=뉴스엔|날짜= 2008-07-10 }}</ref> 이후, 정웅인이 본격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으로 [[1998년]] 38.5%의 시청률을 기록한 《은실이》에 의리 있는 깡패 춘 역할에 이어, [[1999년]] 53.1%의 시청률을 기록한 《국희》에서 강하고 신념있는 자본가 김상훈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유웅인은 [[2005년 3월]] 대학 동기 결혼에 참석해 현재의 아내이자 12살 연하의 당시 대학생이던 이지인씨와 첫 만남을 가졌고,<ref>{{뉴스 인용
         |제목= 유웅인 아내 이지인, "자랑스럽다"던 남편 말과는 달리 '경북대 퀸카' 미모 |url= http://starin.edaily.co.kr/news/newspath.asp?newsid=01164406606184368 |출판사=이데일리|날짜= 2014-08-05 }}</ref> 연인관계로 발전하여 1년간의 열애 끝에 [[2006년]] [[6월 3일]] 결혼을 올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정웅인, 3일 결혼 올려..."띠동갑 신부와 행복하게 살게요" |url= http://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entertainment/200606/20060605/66e14002.htm |출판사=스포츠조선|날짜= 2006-06-04 }}</ref><ref>{{뉴스 인용
         *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졸업
         |align="center"| 황태
         |align="center"| 황춘
         |align="center"| 최두
         * 2006년 1월 8일 [[KBS2]] 《해피선데이 - 여걸스》
         * 2000년 [[MBC]] 《성탄특집 세친구 2000총결산 시상》<ref>{{뉴스 인용
         | [[1999년]] || [[농심]] || 《농심 콩라면》 || 라면 품 || [[박수홍]]
         ! 시상
  • 정종원 . . . . 16회 일치
         |학력 = [[일본]] [[니혼대학교]] 법학과 전문부
         1918년 일본 니혼대학 법학과 전문부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민지 시절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조선은행]]에 잠시 몸담았다. 당시 그는 가업인 은행업을 염두에 두고 성실히 근무했다. 후일 조흥은행 임원을 거쳐 행장에 오르게 된다.
         정종원은 구한말 경기여고와 서울 사범대 출신의 교사였던 부인 신양정(신양숙)과 슬하에 2남 4녀를 뒀다. 두 사람 다 재혼이고 전 배우자들과의 사이에 자들이 있다. 신양정은 정종원 사후 [[법시사]] 이사장과 법시 발행인을 역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3</ref> 장남 [[정운철]]은 하와이 최연소 부영사와 일본 고베 총영사를 역임했다. 정운철은 두산그룹 [[박용성]]과 동서 지간이다. 정운철과 박용성의 장인은 삼성물산 대표를 역임한 [[김선필]]이다.
         이로써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서 27년갖 은행장을 역임한 정재학은 3남 정종원, 장손 정운용을 조흥은행장으로 배출하게 됐다. 3대에 걸쳐 은행장을 낸 사례는 [[정재학]] 가문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 대한 정씨 가문의 지분은 조흥은행 출범 당시 조흥은행 주으로 변경됐다. 정종원과 정운용은 조흥은행 대주주로 남게 됐다.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봉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 씨 가문은 [[민덕기]](조선맥주)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 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 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 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상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가게 됐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 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을 배출한 바 있다.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
         1950년대 중반 [[정재학]] 가문과 [[민영휘]] 가문의 [[조흥은행]] 최대주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급부상한다. 이병철은 장내 외에서 조흥은행 주을 대량 매수하여 무려 50%를 확보한다. 그뿐 아니라 한일은행 80%, 상업은행 30% 등 주요 시중은행 주까지 대거 차지했다. 금융계를 독점하려는 재벌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ref>경향신문 1982년 7월 27일 5면 삼성총수 이병철</ref> 기타 은행 지분까지 사들이며 이병철은 전체 시중은행의 주 50%를 확보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종원 행장은 행장 자리를 유지했다.
         정종원은 이병철마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정계 관계에 인맥이 두터웠다. 게다가 지역 갑부의 자으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이병철과 달리 정종원은 일제 강점기 내내 최고층 재벌2세로 성장한 초상류층이었다. 정종원행장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발기인(총 79명)으로 참여, 언론계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ref>동아일보 1970년 4월1일 13면 전민족세력의 집결 동아일보 발기인</ref>
         정종원은 공교롭게도 1961년 5.16군사혁명 발발 보름 전 4년 반 동안 이어온 행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후 검찰이 추진한 3.15부정선거자금에 대한 특검에서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공소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종결됐다.<ref>경향신문 1961년 3월 5일 3면 특검천하 42일 (3)</ref> 그러나 [[군사혁명]] 발발 직후 [[이병철]]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시중 은행 주을 모두 강제 환수당했다. 이병철은 [[조흥은행]] 70%, [[한일은행]] 60%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ref>경향신문 1961년 10월 15일 1면 대주주소유 오개은에 환수통고</ref>
         정부가 조흥은행 등 시중은행의 주을 모두 거둬들이면서 주요 은행의 지배주주는 정부가 차지하게 됐다. [[관치금융]]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부는 1960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금융산업을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자금공급은 은행 자율보다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법시사는 1960년 10월 정종원 전 조흥은행장에 의해 발족됐다. 법시사는 '법시(法施)'를 사보형으로 1967년 8월까지 29호까지 계간지 형태로 펴냈다. 1967년 법시는 잡지윤리강령에 의거하여 정으로 공보처에 등록한 뒤 사보에서 잡지로 전환한다. 이에 따라 정 등록한 잡지 '법시' 1호는 1967년 9월 발간됐다.
  • 조원진 . . . . 16회 일치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석사||
         2017년 4월 11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경선 후보로 단독 입후보한 조원진을 대선후보로 공 확정했다.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소속을 유지한 채 7월 8일 [[대한애국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었으며 8월 30일 정 창당했다.
         [[1959년]] [[1월 7일]] [[대구광역시|대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종로초등학교, [[협성중학교]], [[인창고등학교(서울)]][* [[청구고등학교]]에서 전학],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19대 대선 선거송으로 유명 동요인 [[곰 세마리]]를 각색하여 쓰고있다. 그 외에도 실제로 곰을 닮은 ~~닮긴 뭘 닮어...~~ 외모를 의해서인지 19대 대선 후보중 유일하게 캐릭터를 내세우면서 홍보를 했다.
         2017년 6월 1일 새누리당에서 13개월 당원권 정지를 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882231|#]] 그리고 15일 뒤인 6월 16일, 공적으로 제명 처리되었다고 한다. [[http://saenuri.org/archives/53662|#]] 하지만, 정당법 33조에 의해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제명처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http://www.assembly.go.kr/memCond/hnumseat.do|#]] 일단은 새누리당의 유일한 국회의원 신분이다.
         2017년 6월 30일 신당 창당을 결의했다고 한다. 7월 8일 [[대한애국당]]으로 공 창당했다.
         단투쟁~~을 핑계로 다이어트~~ 중 이다. 2017년 10월 23일 단 투쟁 11일만에 단을 포기하고 휠체어에 앉아 실려나갔다.
  • 토리코/388화 . . . . 16회 일치
          * 형세가 역전된 것처럼 보였지만 아카시아는 일행에게 욕에 대한 철학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끌고 그 사이 지구 전체를 움켜쥐는 기술을 사용한다.
          * 아이마루는 에어리어 0에 도착해 재료의 천국을 보게 된다.
          * 아카시아는 토리코도 "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음을 확인하지만 빈정거리며 평가절하한다.
          * 토리코는 내면에서 격렬하게 치솟는 욕을 느끼며 그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 그 순간 토리코의 주위를 돌았던 혼들이 아카시아의 눈에도 보인다.
          * 혼들은 맹렬하게 회전하고 폭풍처럼 두 사람을 감싼다.
          * 이들 중 미도라만이 증오로 성장을 거듭했다면 자신에 근접한 욕을 가졌을 텐데, 스스로 내던졌다고 말한다.
          * 그는 욕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 욕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종의 번영이나 애정 같은건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 심지어 죽어가는 와중에도 배는 고픈데 욕이 멈추지 않고 그렇게 시키기 때문.
          * 그때 토리코가 말을 끊으며 "나와 스타준은 플로제와 사랑에서 태어났나 단지 욕이었나"라고 묻는다.
          * 욕이라고 단호히 말하는 아카시아. 그의 한 손은 허공을 움켜쥔듯 힘이 들어가 있다.
          * 그는 애정도 증오도 언젠가는 사라지며 욕 앞에선 덧없는 일이다. 미도라에겐 "너의 분노도 내 욕을 막을 순 없다"고 덧붙인다.
          * 그때 저 앞에서 빛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헤엄쳐가자 뜻밖에도 재가 산더미 같이 쌓인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 이곳이 바로 지구의 내부인 에리어 0. 지구 안에 존재하는 또다른 재의 천국이었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16회 일치
         === 민중을 위한 량 ===
         >모든 트로피코의 시민들에게 매일 두 끼의 사를 제공하자.
         일일 량 공급량을 2배로 늘린다. 시민 모두의 품 만족도가 크게 향상되지만 품 소비량도 2배로 늘어난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국제 구호 단체를 받아들인다. 구호 단체는 원조 캠프를 치고 5년간 무상 의료와 무상 량을 나누어준다. 외국인 따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므로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유쾌한'(gay) 시민들의 결혼을 허용한다. 지인의 존경심이 높아지지만, 종교인의 존경심이 감소한다.
         시민의 마음을 선동하는 반정부적 서적을 모두 태워버린다. 지인의 수가 50% 줄어들며 지인이 될 확률도 50% 감소한다. 불태워버릴 책에는 교과서도 들어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숙련도가 50% 감소한다.
         >내 신조를 학교에서 가르치게 될 날이 오다니!
         대통령 각하의 참된 사상을 책으로 펴서 가르친다. 모든 무학력자의 존경심이 3년간 유지되며 최대 10명의 시민이 충성파가 된다. 지인 진영의 존경심은 3년간 하락한다.
         모든 건설 비용이 20% 상승하지만 건설 비용의 10%가 스위스 계좌로 송금된다. 지인들의 존경심이 낮아진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 자연 다큐 채널을 불러 트로피코를 주제로 다큐를 찍도록 한다. 3년간 모든 시민, 특히 환경주의자와 지인의 존경심이 상승하며 관광 평가와 생태 관광객의 수도 증가한다.
         피임을 금지해 인구 증가를 촉진시킨다. 종교인의 존경심이 상승하지만 지인의 존경심이 감소한다.
         반역자들이 서로 연락할 수 없도록 만든다. 3년간 반역자의 수가 늘어나지 않으며, 반역자의 공격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충성파 절반에게 고등학교 학위를 뿌린 후, 일부에게는 대학 학위도 뿌려준다.
  • 권은희 (1959년) . . . . 15회 일치
         | 학력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공학과 석사
         | 웹사이트 = [http://www.eunhee.kr/ 공사이트]<br />[http://ehkwon1.blog.me 권은희 블로그]
         * 남도초등학교 졸업
         * 구남여자중학교 졸업
         * [[원화여자고등학교]] 졸업
         *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공학과 석사
         * 2012년 5월 ~ 2013년 3월: 제19대 국회 지경제위원회 위원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원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구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정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국회의원]][[분류:안동 권씨]]
  • 김성현 (1989년) . . . . 15회 일치
         * [[대구광역시|대구]] 본리초등학교 졸업
         * 대구 경복중학교 졸업
         * [[대구고등학교]] → [[제주고등학교]] 졸업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 활동했고, 대구고 1학년 재학 중이던 2005년, 대구고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맞상대가 프로 야구를 주름 잡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이끌던 [[동산고등학교|인천 동산 고등학교]]. 결승전에서 대구고는 먼저 8점을 내지만, 경험 부족으로 9점을 내주면서 대역전패하게 되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1차 지명이 있던 시기라 오랜만에 나온 유망주에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대구고 1학년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제주 관광 산업 고등학교(현 [[제주고등학교|제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제주관산고의 감독인 [[성낙수]] 감독의 스카웃 및 설득으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후에 고등학교 스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학생 출전 정지 규정에 묶여 1년을 쉬게 된다.<ref>[[빠른 생일]]이지만 다른 1989년생들과 같은 년도에 입단한 이유.</ref> 그리고 이때 [[경상남도]] [[김해시|김해]]에서 같이 제주관산고로 건너와 친하게 된 친구가 바로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김수완 (야구 선수)|김수완]]. 그 뒤 2년 동안 제주관산고에서 공을 던지지만 특별히 대구고 1학년 시절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김정행 . . . . 15회 일치
         ||<#131230> '''{{{#white 학력}}}''' || [[대건고등학교(대구)|대건고등학교]][br]대한유도학교 유도학[br][[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육행정학 석사[br][[경기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명예박사[br][[니혼대학|니혼대학교]] 대학원 스포츠의학 박사[br]중국문화대학교 대학원 이학 명예박사[br]대만국립대학교 대학원 이학 명예박사[br]호남사범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명예박사[br]레츠카프트체육대학 대학원 체육학 명예박사 ||
         1943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대건고등학교(대구)|대건고등학교]],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72년까지 유도선수로 활동하였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용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0년 동안 용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대한유도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도 겸임하였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아시아유도연맹 [[회장]]을 역임하였다.
  • 남유진 . . . . 15회 일치
         || '''학력''' ||<(> [[경북고등학교]] {{{-1 ([[졸업]])}}}[br][[서울대학교]] {{{-1 (철학 / [[학사]])}}}[br][[서울대학교]] {{{-1 (행정학 / [[석사]])}}}[br][[조지타운 대학교]] {{{-1 (경영학 / [[석사]])}}}[* 수료][br][[금오공과대학교]] {{{-1 (경영학 / [[박사]])}}} ||
         || '''외부 링크''' ||<(> [[http://www.namyoochin.com/|공 사이트]] [[https://blog.naver.com/namyoochin|[[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24]]]] [[https://www.facebook.com/namyoochin1|[[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24]]]] [[https://www.youtube.com/channel/UC9idNb2O1DSBW_Ua6sh-iEQ?view_as=subscriber|[[파일:유튜브 아이콘.png|width=24]]]] [[https://www.instagram.com/gumi_yoochin/|[[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width=24]]]] ||
         1953년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현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서 태어났다. 선산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제22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총무처, 내무부(이상 현 [[행정자치부]]), [[산림청]] 등에서 근무하다가 [[노태우 정부]] 후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관선 경상북도 [[청송군]]수를 지냈다. 이후 다시 내무부, 행정자치부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김관용]] 구미시장[* 15 ~ 17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밑에서 구미시 부시장을 지냈다.
         그렇게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구미시장 재선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구미에 암운이 드리웠다.''' 이 즈음부터 대기업들이 하나둘 씩 구미를 떠나기 시작했고,[* 2005년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파주 같은 과세율이 낮은 지역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기감은 인했고, 그 당시 구미시장 김관용도 어느 정도 이 현상을 감지는 하고 있었다. 다만 두 시장 모두 제대로 대처하지는 못했다.] 2010~11년을 전후해서 구미 1공단이 급격히 몰락한데다 2012년 즈음에는 2, 3, 4공단도 완벽하게 터져버렸다. 구미시민들은 안 그래도 물가도 비싸고 생활 환경은 최악의 수준임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불황 속에서 정말로 경제를 살려줄 수 있는 다른 후보가 혹여나 나설 수 있는지를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 류중일 . . . . 15회 일치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13년 WBC]],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2014년 AG]])
         [[1982년]] 3학년 재학 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기념으로 열렸던 와의 우수 고교 초청 대회 결승전에서 [[투수]] [[김종석 (1964년)|김종석]]을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1호 홈런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10&aid=0000011188 류중일 감독, 손주인-강명구에게 특별한 선물] - 매일경제</ref> 1981년 봉황대기 미기상고 주장을 맡은 1982년 대통령배 감투상, 대붕기 최우수선수상을 수상. 초고교급 유격수로 발돋음하고. [[한양대학교|한양대]] 체육학과(1983학번) 시절 1985년 ~ 1986년에 3학년, 4학년 때 대학야구 올스타 [[유격수]]로 선정되었다.
         [[한양대학교]] 체육학과(1983학번) 졸업 후 [[1987년]]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계약금 2천만 원, 연봉 1천 2백만 원)하여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 성적에 기여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 [[유격수]]로 주로 출장했고 골든 글러브([[유격수]] 부문)를 2번 받았다. 현역 시절에는 [[2루수]] [[강기웅]]과 함께하였던 키스톤 콤비가 막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고, 코치로 활동하면서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상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태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1억원(계약금 6억원, 연봉 5억원)에 계약하며 [[LG 트윈스]] 1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31314 오피셜 LG 공발표, "양상문 단장-류중일 감독"] - OSEN</ref>
         == 출신 학교 ==
         * [[한양대학교]]
         |후임자 = [[김인 (1947년)|김인]]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 류씨]][[분류:영덕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LG 트윈스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박재현 (야구인) . . . . 15회 일치
         * [[경상중학교]] 야구부 코치 (1997년 ~ 2000년)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1년 ~ 2004년)
         * [[계명대학교]] 야구부 코치 (2005년 ~ 2013년)
         [[경상중학교]], [[경북고등학교]], [[계명대학교]] 등 야구부 코치를 거쳐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 출신 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계명대학교]]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
  • 박칠용 . . . . 15회 일치
          | 학력 = [[명지대학교|명지대학교 대학원]] [[예술|예술학]] [[석사]]
         [[1969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1971년]] [[동양방송|TBC 동양방송]] 공채 [[배우|탤런트]] 12기로 정 데뷔한 그는 이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탤런트 극회로 공 지원하고 있다.
         * [[1969년]] 충청남도 연기 [[세종고등학교 (세종)|조치원고등학교]] 졸업
         * [[1985년]] [[연성대학교|안양공업전문대학]] 연극영화학과 전문학사
         * [[1989년]] 5년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 학사<ref>[[1986년]]에 3학년을 편입학하여 [[1989년]] [[1989년 2월|2월]]에 학사 학위</ref>
         * [[1992년]] [[명지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예술학 석사<ref>[[1990년]]에 입학하여 [[1992년]] [[1992년 2월|2월]]에 석사 학위</ref>
         * [[1986년]] 《[[대원군 (소설)|대원군]]》<ref>[[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과 [[유주현]]의 [[소설]] 《[[대원군 (소설)|대원군]]》을 혼합 형으로 각색 및 제작한 [[연극]] 작품.</ref> ... [[흥선대원군|흥선대원군 이하응]] 역(주인공)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9년 데뷔]][[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조치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성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대학원 동문]]
  • 배천석 . . . . 15회 일치
         |청소년 클럽 =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br />[[숭실대학교]]
         배천석은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 팀 산하의 포철동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쳤으며, [[2009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지명되었다. 이후 [[숭실대학교]]에 진학하였다가, [[2013년]]에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K리그 클래 2013|2013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 입단하여 3월 2일 [[FC 서울]]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며, 3월 30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4월 13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18분 교체투입된 뒤 6분 만에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AFC 챔피언스리그 2013]]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데에 이어 3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뒤 결승골을 넣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 [[K리그 클래 2013]] 우승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포항제철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비셀 고베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이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봉준호 . . . . 15회 일치
         | 학력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 [[잠실고등학교]] 졸업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파일:Bong Joon-Ho at 2010 Independent Spirit Awards.jpg|섬네일|[[독립영화 정신상]] 시상장에서 (2010년 3월).]]
         ! [[박노 (1971년)|박노]]
         * [[2017년]] 제17회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감독상
         * [[2014년]] 제14회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감독상
         * [[2010년]] 미국 그린 플래닛 영화 시상 최우수 외국영화 선정
         * [[2003년]] 제6회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감독상
         * [[2001년]]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신인 감독상 수상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신인감독}}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감독}}
         [[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잠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음 봉씨]]
  • 식극의 소마/188화 . . . . 15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7화]] |||| '''극의 소마/188화''' |||| [[극의 소마/189화]] ||
         [[극의 소마]] 188화. '''제 1라운드'''
          * 하야마 아키라와 유키히라 소마의 극이 결정된 그날.
          * 소마는 자신도 시시켜 주기로 했지 않냐며 자기 몫을 달라고 성화를 부린다.
          * 하야마는 소마를 귀찮아하며 "먹고 납득하면 학교를 나가라"고 말한다.
          * 바로 시에 들어가는 심사자들.
          * 마침내 시에 들어가는데 그 맛에 압도당해 실라와 베르타는 분석하는 것도 잠시 잊는다.
          * 함께 시했던 소마도 이 점에는 전혀 반박을 하지 못한다.
          * 처음 극이 결정됐을 때, 센트럴은 그에게 최첨단 연구시설과 연구자들을 지원해줬다.
          * 그러나 하야마는 이런 것들을 쓸데없는 간섭으로 봤고 시설의 향신료를 순간에 파악하고 조합해서 자신만의 스파이시를 만들어낸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5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13화]] |||| '''극의 소마/214화''' |||| [[극의 소마/215화]] ||
         [[극의 소마]] 214화. '''강자이기에'''
          * 심사의원 [[안(극의 소마)|안]]은 네네에게 "직접 맛을 보라"고 권하는데, 소마의 것이 아니라 네네 자신의 소바였다.
          * 이런 과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잇시키 사토시]]는 네네에게 "넌 다른 가루를 쓴다는 생각 자체가 없이 배운 대로 음을 했을 뿐"이라 쓴소릴 듣는다.
          * 마침내 침묵을 깨고 심사의원 [[안(극의 소마)|안]]이 입을 연다. 그녀가 지명한 건 네네. 그녀에게 "일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운을 띄우는데, 정작 무슨 말인지 기억이 안 나는지 산더미 같은 책 뭉치를 한참 뒤적거린다. 분명 "우리 단체의 경전"이라더니 알고보니 그냥 사전도 끼어있었다. 아무튼 사전에서 "말보단 증거"란 속담을 찾아낸 안. 그녀는 아직 추가분 소바가 남아있을 테니 요리를 직접 먹어보라 권한다. 네네는 이제와서 소마의 소바따윌 먹을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나, 안이 말한건 소마의 소바가 아니었다.
          * 비록 일에는 문외한지만 과학에는 일가견이 있는 [[나키리 아리스]]가 자신있게 설명을 자청한다.
          유독 대회장 안이 춥다는 이야기는 [[극의 소마/213화|지난 번]]에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인데다 홋카이도. 당연한 추위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승부의 열쇠였다니? 아리스는 소바의 향기의 "정체"부터 시작한다. 소바향은 "휘발성 알데히드"인 "노나날 데카날"같은 성분에서 기원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휘발량이 줄고, 따라서 소바가루 자체가 향을 덜 내게 되는 것이다.
          네네가 놓친건 대회장의 환경 만이 아니었다. 얼빠진 그녀에게 잇시키는 쉴 틈도 주지 않고 쏘아붙인다. 네네가 수많은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는 재능가이긴 하나 바르게 말하면 "현상의 본질은 보지 않고 가르쳐주는 것을 그저 반복하는"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부터 만드는 소바가 손님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풍미가 제대로 전해질지, 기술에서 알려주지 않는 부분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잇시키가 [[극의 소마/210화|"너는 소마에게 진다"]]고 했던 발언은 이 걸 꼬집은 말이었다.
          * 결과는 이제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네네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 "최고의 소바"를 만들기 위해 완벽한 수행을 해왔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십걸의 지위도 잊고 얕봐왔던 소마에게 "어떻게 그런 요리가 가능한 거냐"고 묻기에 이른다. 지금같은 극 상황은 평소 기량을 다 짜내는 것만 신경써도 부족할 텐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머리를 굴릴 수 있는가? 소마는 오히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그것이야 말로 그가 정점에서 길고 긴 시간 동안 키워 온 것이지.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24화 . . . . 15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3화]] |||| '''극의 소마/224화''' |||| [[극의 소마/225화]] ||
         [[극의 소마]] 224화. '''스트로보, 빛나다'''
          * 훈제 간장에 발사믹 초, 흑초, 설탕, 분쇄 한 찻잎을 넣어 소재와 소스에 두루 차향을 씌워 다층적인 향을 내는 것이 목적.
          *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는 쿠가의 조리법이 중화요리의 "홍샤오"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홍샤오는 재료를 튀긴 후 간장 베이스의 양념으로 걸죽하게 졸여내는 방법. 쿠가가 돼지고기를 튀길 때만 해도 전형적인 홍샤오의 조리법이었으나 조리는 공정을 훈연하는 공정으로 바꾼 점은 대단히 신선하다. [[마루이 젠지]]는 쿠가가 녹차엔 손도 안 댄다고 우려에 우려를 했으나 훈연으로 찻잎의 향기를 스트레이트하게 재로 옮기는 방을 보고 탄성을 내지른다. 이는 십걸 1석 [[츠카사 에이시]]와도 차별화된 접근법이다. [[유키히라 소마]] 또한 철냄비를 저런 으로 활용하는 것에 감탄한다. 그런데 정작 미마사카가 건낸 액체는 아직 쓰지 않는 것 같은데?
          * 쿠가는 그것도 착착 준비하고 있었다. 그 검은 액체는 "필살 소스"를 만들기 위한 핵심 재료였다. 그 정체는 "훈제 간장". 발사믹 초를 푹 졸여 맛과 향을 응축하고 흑초, 설탕, 분쇄한 녹차를 넣고 훈제 간장을 넣어 마무리. 훈제 얘기가 나오니 [[이부사키 슌]]도 말이 많아진다. 이부사키가 보니 미마사카가 줄곧 준비하고 있던건 바로 이 훈제 간장. 조리대에 철냄비와 훈제용 도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간장은 본래 부드러운 향을 내는 칩으로 훈연하면 부드러운 풍미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뒷맛에 남는 여운도 한층 강화. 여기서부터는 향기의 스페셜리스트 [[하야마 아키라]]의 차례다. 그는 고기 뿐만 아니라 소스에도 훈제 향을 더해 먹었을 때 향기의 중층감을 극대화하는 것을 노린 조리법이라고 설명한다.
          * 이스트와르는 쿠가가 돼지고기에 전념한건 미마사카의 조력 덕이라고 보고 멋진 팀워크라고 평하지만, 샤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결국 미마사카는 그 시간 동안 자기 조리는 하지 못한 채 쿠가를 돕는게 매진한 셈. 자기 승부는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건가? [[안(극의 소마)|안]]도 동의한다. 아직도 [[사카키 료코]]의 술 때문에 헤롱헤롱하지만 해설력만은 건재. 그녀는 미마사카의 상대가 십걸의 4석, 당대 최강의 스시 장인 [[사이토 소메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가 항상 가지고 다녔던 거대한 칼은 참치 해체용 칼이었다. 이제 구상을 마친 사이토가 참치에 칼을 댄다.
          미마사카의 회심의 수.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는 카메라의 스트로보(플래쉬)가 번쩍이듯 순간적으로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똑같은 장면을 재현한다. 복사 속도와 품질은 지금 본 대로. 이스트와르는 방금 설명으로 왜 미마사카가 쿠가의 서포트에 전력했는지 깨달았다. 이 방을 사용한다면 조리를 구상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게 가능하다. 그건 사이토가 대신 해준 셈이니까. 그 남는 시간을 쿠가의 서포트에 전부 투자한 것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28화 . . . . 15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7화]] |||| '''극의 소마/228화''' |||| [[극의 소마/229화]] ||
         [[극의 소마]] 228화. '''희망의 연대'''
          * [[쿠가 테루노리]]는 [[안(극의 소마)|안]]이 먹는 순간 승리를 확신할 정도로 뛰어난 요리를 했으나 [[츠카사 에이시]]의 벽을 넘지 못했다.
          * 양측 인원 모두 5명씩 남은 채로 연대극 1일차 종료. 그런데 소마는 아예 미리 대전자를 확정해 놓는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는데.
          * 2rd Bout종료. 그 결과는 3 대 0. 전패라는 충격적인 결말. 최종스코어는 물론 세부평에서 조차 단 한 점도 따내지 못한 완패였다. [[미마사카 스바루]]가 반발하고 있었다. 어째서 완벽한 트레이스에 어레인지까지 가미한 자신이 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심사한 샤름은 담담한 어투로 패인은 "칼집 넣기"라고 단정했다. 더욱 모를 말이었다. 칼집이라면 미마사카도 철저하게 트레이스했다. 초밥에서 칼집은 먹는 순간 밥과 재료가 녹아 섞이는 것 같은 감을 주며 참치의 맛을 입안 전체로 퍼뜨린다.
          * 그러나 2rd Bout에서 가장 주목할 음은 [[안(극의 소마)|안]]이 심사한 [[츠카사 에이시]]의 "네 가지 녹차를 사용한 그라데이션 퓌레 스프"였다. 각기 사용한 녹차와 가장 상성이 좋은 채솟, 버섯, 콩을 사용한 퓌레를 한 접시에 담은 요리다. 각각의 퓌레는 옥로와 아티쵸크, 찐 전차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현미차와 병아리콩, 전차와 포르치니의 네 가지 조합.
          병아리콩은 물에 삶아서 준비하고 아티쵸크와 아스파라거스는 손질해서 슬라이스로 썬 뒤 버터로 소테한다. 살짝 익으면 각각 조합된 차와 함께 푸드 프로세서로 퓌레 제작. 마지막엔 버터와 후추소금으로 간을 해서 크넬 모양으로 장. 거기에 함께 나온 카푸치노 스프를 곁들여 먹으면 맛의 그라데이션이 놀랍도록 깊어진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졌던 퓌레의 맛이 한데 모여 부드럽게 연결되는 풍미.
          만일 먼저 대전자가 강적의 전력을 충분히 소진시켰다면 바톤을 이어받는 대전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통상적으론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소모를 강요하는 것도 연대극의 전술. 패배는 사실이지만 무의미하진 않았다. 오히려 큰 희망을 남겼고 그걸 남은 사람들이 확실히 이어받게 될 것이다.
          소마의 말에 타쿠미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동의했다. 반역자팀의 3rd Bout 출전자는 이 셋으로 확정. 1학년 삼총사가 나간다. 잘 부탁한다고 외치는 소마. 이걸로 양측 모두 5명의 선수를 남긴 채, 연대극 제 1일차가 종료됐다. 그런데 소마는 또다른 제안을 했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안기효 . . . . 15회 일치
         ||<#F157FF> {{{#ffffff '''학력'''}}} ||<bgcolor=#ffffff> [[대구가톨릭대학교]] 스페인어학과 [[재학]] ||
         2008년 곰TV 클래 시즌1 64강 (VS[[김대엽]] 0:2)
         2008년 곰TV 클래 시즌2 16강 (VS[[이영호]] 0:2)
         2009년 곰TV 클래 시즌3 64강 (VS[[안상원]] 0:2)
         또한 조지명에서의 입담이 매우 좋은 선수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조지명에서 항상 기대되는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별명으로는 [[조지명]]에서의 포스로 입기효, 랩기효등을 갖고 있으며, 과거 [[위메이드 폭스]]의 찹스 온라인 출연으로 쌀기효, 찹기효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타 연습은 안 하고 찹스만 하냐? [[네 놈을 살려두긴 쌀이 아까워!|네 놈 먹이기에는 쌀이 아까워!]]"라는 으로 안기효가 까이는 내용.]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1 조 지명에서 선수들이 등장할 때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선수였는데, 다른 선수들은 다 좋은 곡이 나오더니(~~[[박명수(1987)|박명수]]~~ 제외.) 그가 나오는 그 때만 유독 모든 사람들이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이영호]]를 이기고 올라간 스타챌린지 1위 결정전에서는 [[이제동]] 마저 이기고 [[스타리그]] 본선 4번 시드를 쟁취했다.[* 시드를 따낸 후 안기효는 목 긋기 세레모니를 시전한다.] 안기효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끝날때까지, '''[[스타크래프트]] 공전에서 [[이제동]]을 다전제(5판 3선승제)에서 이긴 유일무이한 [[프로토스]]로 남았다.'''[* 당시 [[이제동]]은 [[역대 스타리그 일람#s-23|해당 스타리그]]에서 [[로얄로더]]를 달성했던 시절이였다. [[토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촉망받던 신예란 점을 생각해보면 안기효의 당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첫 우승이 [[EVER 스타리그 2007|토스 잡고 한 우승]]이긴 했지만 사실 이때는 이제동이 잘했다기 보단 송병구가 [[옛날토스|너무 못했다]](...) 토스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밀고가다 지는 경우가 많았고 송병구와의 결승전에서도 송병구가 우승할 것이란 예상이 훨씬 많았는데, 이걸 이제동이 우승하면서 토스전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스타리그]]에서는 3패로 [[광탈]]하는 아쉬운 모습을 선사한다.
         투신 [[박성준]]에게 천적 관계[* 사실 [[박성준]]에게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프로토스]]는 '''아무도 없다.''' [[박성준]]은 '''대 [[프로토스]]전 5전 3선승제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걸 넘어서, 5전제를 치를 때 2패째를 허용한 적도 없다.''' 전성기가 한참이나 지났다고 평가 받던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도 당시에 잘나갔던 [[도재욱]]을 상대로 3:0 떡실신을 먹였을 정도. 전무후무한 저그전 최강이라던 [[김택용]]에게도 3대3의 상대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박성준을 상대로 전적이 앞서는 프로토스는 비공 포함 7승6패의 [[송병구]] '''뿐.''' 이도 호각세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공 전적만 볼 때는 오히려 2승 5패로 송병구가 [[김준영]]만큼 고배를 마신 저그가 박성준이다. 안기효가 유난히 자주 만났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즉, '''그냥 재수없는 거다.'''(...)]이며, 두 번의 16강, 두 번의 8강, 그리고 [[WCG]] 대표선발전에서 에서 고배를 마셨으며,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유명한 미니맵 [[관광]]을 당한다. 실은 안기효가 첫 온겜 [[스타리그]] 데뷔전 당시 꺾었던 상대가 다름아닌 전대회 우승자였던 [[박성준]]이었다. 리버+캐논으로 인한 조이기 라인으로 체면이 팍 깎인 [[박성준]]이 그 후 안기효만 보면 잡아먹으려 든다는 이야기.(...) 아무튼 안기효의 개인리그 상위 라운드 진출은 번번이 [[박성준]]에게 막혔다. 전략성을 감안하면 개인리그에서도 4강 한 번쯤은 노려볼 수 있는 선수였기에 매우 아쉬운 일.
         중반까지 위기를 잘 넘기는 듯 했으나, 역시나 부족한 멀티태스킹 능력과 판단미스, 발전투 등 미숙한 점을 드러내면서 순간에 게임이 말리고 결국 패배하면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는 개인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거나 ~~스타 챌린지 우승도 나름 우승이라면 우승인가?~~ ~~어쨌든 공전 우승이니깐.~~ 프로리그에서 엄청난 승수를 쌓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특유의 쇼맨쉽과 입담으로 많은 스타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선수였다. 어떤 길을 가든지 간에 앞으로 살아갈 그의 인생을 응원해주도록 하자.
         [[분류:프로게이머/스타크래프트]][[분류:동구(대구) 출신 인물]][[분류:문서 삭제 이동]][[분류:아프리카TV BJ]]
  • 원피스/862화 . . . . 15회 일치
          * [[징베]]는 장담과는 달리 결혼이 임박해도 [[몽키 D. 루피]]가 일어나질 않자 당황한다. 결국 결혼이 시작하고 나서야 일어난다.
          * 결혼이 시작되고 푸딩은 계획대로 제 3의 눈을 드러내며 상디를 쏘려하는데, 상디는 죽을 위기인 것도 잊고 "너무나 아름다운 눈동자"라고 감탄한다.
          * 결혼 개시가 임박했는데도 [[몽키 D. 루피]]는 일어날 줄은 모른다. 시간에 맞추겠다고 장담했던 [[징베]]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무리 흔들고 때려봐도 루피는 여전히 잠꼬대만 한다. [[나미(원피스)|나미]]는 유혹의 숲 이후로 계속 뛰어다니기만 했으니 무리도 아니라며 이걸 깨우려면 고기라도 가져와야겠다고 한다. [[쵸파]]가 [[카포네 갱 벳지]]의 부하에게 고기를 구해줄 수 없냐고 요청하자 "지금 아침사를 한가는 거냐"고 질색한다.
          * 홀케이트 성의 요리장 "미기사" [[슈트로이젠]]이 부하 요리사들과 춤을 추며 입장한다. [[원피스/858화|케이크를 만들 때 희한한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슈트로이젠과 부하들이 한소절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은 이 희한한 노래와 함께 초특대 웨딩케이크를 하객들 앞에 내놓는다.
          빅맘 [[샬롯 링링]]은 케이크가 훌륭하다고 슈트로이젠과 부하들을 몸소 칭찬한다. 하객들도 칭찬일색이다. 신혼부부를 태운 찻잔은 초거대 웨딩케이크의 정상으로 향한다. 마치 장처럼 보였던 꼭대기의 지붕이 두 사람이 맹세를 주고 받을 단상이었다. 스튜시는 신부화장한 푸딩이 "옛날의 나처럼 아름답다"고 감탄하는데 옆에 있던 루 펠드가 "몇 십 년 전 일이냐"고 츳코미를 넣다가 얻어맞는다.
          빅맘은 최고의 케이크와 최고의 결혼을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건 최고의 살육쇼에는 비할 수 없다. 그녀는 결혼을 기다려온 것처럼 잠시 후 일어날 깜짝 살육쇼를 기대하고 있다.
          * 거대한 몸집의 주례가 신랑신부를 나란히 앞에두고 을 거행한다. 그는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혹은 부유하거나 가난할 때나 함께하고 죽을 때까지 사랑과 신실을 다하겠음을 맹세하냐고 묻는다. 그동안 고기의 힘으로 겨우 일어난 루피가 자기 때문에 늦은 주제에 "서둘러라!"며 일행을 닥달한다. 징베를 비롯한 밀집모자일당은 니트로가 끄는 수레에 타고 작전장소로 달려간다.
          * 결혼을 지켜보던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는 해석되지 않는 미래를 예지하고 흠짓한다. 그가 본 미래에선 상디가 아니라 여동생 푸딩이 쓰러지기 때문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이 왜 떠오른 건지, 카타쿠리는 당황하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굴린다. 삼장성 [[샬롯 스무디]] 오빠의 태도가 심상치 않은걸 느끼고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리고 눈치 빠른 벳지도 그가 미래를 보고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파악한다.
          >무슨 소릴하는 거야 이 자은!
          * 총성은 결혼장 전체에 파문을 일으킨다. [[빈스모크 저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신부가 총에 맞았다고 외친다.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걸 눈치챈다. 레이쥬도 이 이변에 당황한다.
          * 루피 일행에 휩쓸려 암살작전에 투입돼버린 [[샬롯 브륄레]]는 빅맘에게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울분인지 사죄인지 모를 말을 외친다. 하지만 그 말이 빅맘에게 들릴리는 없다. 루피는 상디를 꼭 돌려받겠다며 결혼장으로 난입한다. 그런데...
          웨딩케이크가 이상하게 뒤흔들린다. 빅맘의 표정이 사색이 된다. 루피는 케이크를 뚫고 그 안에서 등장하는데... 한 명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루피가 케이크를 폭발시키며 결혼당으로 뛰어든다. 그 대단한 빅맘도 경악을 감추지 못한다.
  • 윤천주 . . . . 15회 일치
          * [[정치인/목록]], [[가톨릭/인물]], [[서울대학교/총장]], [[부산대학교/주요 총장]]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0F0F70><:> '''[[서울대학교/총장|{{{#ffffff 역대 서울대학교 총장}}}]]''' ||
         192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래고등학교|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가나자와]]의 [[구제고등학교|제4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했으나 815해방으로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법대학, 정경대학에서 1963년까지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학계로 돌아갔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부산대학교]] [[총장]]을,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15회 일치
         |청소년 클럽=[[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이광훈은 [[포항 스틸러스]] 산하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쳤으며, 2011년 [[K리그 주니어|SBS 고교클럽 챌린지리그]]에서는 17경기 13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포철공고의 챌린지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축구 명문 포철공고 ‘고교 최강자 등극’|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314967 |출판사=세계일보 |date={{날짜한글화|2011-10-03}} }}</ref>
         [[K리그 클래 2013|K리그]]에서는 4월 13일 6라운드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K리그 클래 2014|2014 시즌]]에는 차츰 출전을 늘려가는 듯 보였으나,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8월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ref>{{뉴스 인용 |제목='대전 임대' 이광훈,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어야죠"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1/sp2015010809201993650.htm |출판사=스포츠한국|date={{날짜한글화|2015-01-08}} }}</ref>
         [[K리그 클래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 임대되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FC 서울]]전 한 경기 교체 출전에 그쳤다.
         |[[K리그 클래 2013|2013]] || 1 || 0 || 0 || 0 || 1 || 1
         |[[K리그 클래 2014|2014]] || 4 || 0 || 0 || 0 || 2 || 0
         |[[K리그 클래 2015|2015]] || 1 || 0 || 0 || 0 || colspan="2"|-
         * [[K리그 클래]]
         ** 우승 1회 : [[K리그 클래 2013|2013]]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강릉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3년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이성민 (야구선수) . . . . 15회 일치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서 [[영남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영남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직구 스피드가 147 km/h에 이르고 변화구 제구도 수준급이어서 스카우트 사이에서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 이전 부터 대졸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2012년]] [[8월 20일]]에 열린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윤형배 (1994년)|윤형배]]와 함께 특별 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208/h20120820204711111960.htm "4할 승률 위하여" 발톱 드러낸 NC] - 한국일보</ref> [[2012년]] [[12월 5일]]에 열린 2012 [[야구인의 밤]]에서 우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9144 '야구인의 밤' 영남대 이성민, 우수 선수상 수상 ] - 스타N뉴스</ref> [[대한민국의 대학 야구 대회|대학리그]] 4년 동안 17승 15패, 252 1/3이닝, 222탈삼진, 89볼넷,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였다.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특별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즉시 전력감 [[투수]]로 주목받았으나, 기대와 달리 시즌 초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2013년]] [[4월 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하여 7회에 구원 등판하였으나 [[박종윤 (1982년)|박종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해 구단 첫 패전 [[투수]]가 됐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30402/54154104/1 ‘제 9구단’ NC, 1군 데뷔전에서 롯데에 영봉패] - 스포츠동아</ref> 이후 필승계투로 활동하였으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부진한 투구와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잠시 C팀(2군)에 내려가기도 했으며, 자신감을 되찾은 후 [[7월 14일]] 올스타 휴기를 맞아 [[이재학 (야구 선수)|이재학]]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된다.
         이후 롯데는 이성민을 보류 명단에서 제외했고, 12월 20일 공적으로 임의탈퇴 처리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83982</ref> 팀은 이성민이 재판을 받고 있어 제대로 활동을 못하는 상황이니 더 이상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 출신 학교 ==
         * 대구남도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이영훈 (경제학자) . . . . 15회 일치
         '''이영훈'''(李榮薰, [[1951년]] [[9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토지소유와 농업경영'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안병직]] 교수의 수제자로, 뉴라이트 진영에서 [[민지 근대화론]]을 이끌며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신대학교 등에 강사로 출강했었고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및 다산학술문화재단 이사, 경제사학회 연구이사를 역임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후 2017년 2월 28일 정년 퇴임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28/0200000000AKR20170228081000004.HTML?input=1195m|제목=서울대 교수정년…'민지근대화론' 이영훈 등 28명 퇴임|성=이재영|날짜=2017-02-28|뉴스=연합뉴스|언어=ko-KR|확인날짜=2017-03-26}}</ref>.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ref>{{웹 인용|url=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2&nNewsNumb=20170324115&nidx=24116|제목=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자본주의 맹아론은 대한민국 부정으로 이어지는 주장”|언어=ko|확인날짜=2017-04-13}}</ref>
         그의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와 여러 논문에서 이영훈은 무력이 아니라 법과 무역을 통해 전개된 민지적 수탈을 논하였다.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영훈은 정신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점을 명확히 밝히고, 위안부는 강제 징집된 것은 아니나 배후에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2004년]] [[9월 2일]]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일제 민 통치를 찬양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와 동일시 하였다.<ref>{{뉴스 인용
         [[2007년]] [[5월 25일]] 《해방전후사의 재인》의 내용이 난해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쉽게 풀어 쓴 《대한민국 이야기》를 출간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651421 쉽게 풀어쓴 해방전후사의 재인] 뉴데일리</ref>
         * [[해방전후사의 재인]] (공저, 2006, 책세상)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민지근대화론]][[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
  • 이정호 (1982년) . . . . 15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0년 ~ 2011년)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5년 ~ 현재)
         '''이정호'''(李正鎬<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2년]] [[4월 27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자, 현재는 [[대구고등학교]]의 투수코치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이후 잠시 모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생활을 이어가다가, [[2011년]] 말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프런트로 입사하였다. 프런트로 꾸준히 활동하던 중 [[2014년]] [[9월 11일]] 구단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KBO에 의해 구단 해체를 선언한 후, 그 날 프런트직에서 물러났다.
         [[2014년]] [[12월 16일]] [[한화 이글스]]의 3군 투수코치로 부임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548544&date=20141216&page=1 '비운의 천재' 이정호, 한화 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 개척] - 마이데일리 2014년 12월 16일 확인.</ref> 하지만 2015 시즌 후 사임하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43 그 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1> 고졸 최고 대우, 삼성 이정호] - 이영미 칼럼</ref>
         == 출신학교 ==
         * [[대구내당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우리 히어로즈 선수]][[분류:히어로즈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
  • 이철희(1964) . . . . 15회 일치
         || '''학력'''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고려대학교/대학원|고려대학교]] 비교정치 석사[br][[한신대학교]] 국가와시민사회 박사 ||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사실 썰전을 하면서도 그 이외의 언론 인터뷰, 방송 인터뷰에서 "서로 성향이 달라 오히려 방송을 할 때의 상호 대화패턴의 호흡은 맞지만, 일상생활의 호흡은 맞지 않는다.", "방송을 1년 넘게 같이 했으면 친해질 만도 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와 나는 그렇지 않고, 주기적으로 사적인 만남과 친분을 가지는 사이가 아니다. 여전히 그에게 거리감이 있다.", "살아온 길, 사람을 대하는 방과 생각이 서로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었다.
         한편으로는 썰전에서 강용석이 이철희의 예상보다 토론주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온 티가 날 때 했던 적이 많아서("아니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아왔어?" 하는 ) 사적으로 사람 됨됨이가 괜찮다거나 하는 의미라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고, 방송하는 사람으로서의 성의있는 태도에 대해 인정하는 부분이었던 걸로 해석하는 게 유력하다.
         2015년 10월 29일 썰전 방영분에 의하면, 일부 네티즌들이 본인을 "[[종북|리철희]]"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북한을 싫어한다는 논리를 공공연히 드러낸 그이기에 이는 정말 개드립이며, 이는 진보를 무조건 종북으로 보는 매우 몰상한 짓인데다 설령 그가 친북인사라 할지라도 민주시민된 자로 신상드립은 하지 말아야 할 도덕적인 책무가 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2016년 1월 20일 [[권미혁]] 대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입당 인사에서 그동안 방송 덕분에 얻은 유명세를 내려놓는다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워봐야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 정계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와이프마저도 평소 '''당신이 한 말[* 썰전 등의 방송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지지해줬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흑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며 '''핫하게 싸워보고 지더라도 쿨하게 떠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나가던 시민이 잘 한다며 커피 한 잔 사주며 더 잘 하라고 격려하고 싶은, 그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썰전 출연 당시 그는 끝까지 썰전에 남을 것이며, 국회의원 출마는 안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강용석이 몇차례에 걸쳐 "총선쯤 되면 우리 둘다 여기 없을 수도 있는데~"라는 드립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부정했기 때문. 결국 둘다 나가게 되기는 했다. 굉장히 다른 방으로.
         차기 [[21대 총선]]에서 [[부산]] [[동래구]]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래구 지역위원장을 맡고있던 [[김우룡]] 지역위원장은 동래구청장에 당선되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하며 지역위원장에 공모하지는 않았다.[* 사직동 소재 [[동인고등학교]] 출신으로 지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최근 정권교체 이후 썰전 출연분에서는 경제 관련 이슈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정권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 논조를 전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는 그를 '전략가'로서 영입했으나 사실 그 이전까지 이철희 자신을 대중적 인지도 높은 스타로 키운 건 그의 발언 및 토론 능력이다. 침착하게 말하다가도 상대의 공격에는 바로 강하게 맞설 수 있고, 강하게 말하다가도 이내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능력이 굉장하다. 그러나 전략가라는 분야는 말을 잘해서 특정 상황을 잘 넘기거나 옳은 말로 물러나지 않고 맞서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전체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는 설계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데, 연륜과 언변으로 인한 기대치에 비해서 전략 측면에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전략가가, 합리적으로 상대가 잘못했고 자기 진영이 잘못이 없더라도, 정의와 논리로 이기기만 할 뿐이고 상대를 협상의 장으로 흡인력있게 끌어들이는 판을 만드는 설계 능력은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정치에서 항상 떠넘기기 상황 전개를 유지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실질 이득을 얻을 수 없어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기 쉽다.
          * 썰전에 출연할 당시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말을 잘 했으나, 경제적인 의제와 관련해서는 견 부족으로 그저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얘기만 늘어놓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강용석과 복지를 주장한 이철희의 성향차이라고 보면 된다. 썰전에서 차라리 정치적 부분은 양자가 타협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기도 했으나, 경제적 문제를 보는 인 차이는 완벽한 평행선이었다. 썰전에서 즐겨 인용한 말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였으니.
  • 최승욱 . . . . 15회 일치
         | 고등학교 = [[계성고등학교 (대구)|계성고등학교]]
         | 대학교 = [[경희대학교]]
         == 출신학교 ==
         * 해서초등학교
         * [[계성중학교]]
         * [[계성고등학교 (대구)|계성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
  • 카라스노 고교 . . . . 15회 일치
         [[하이큐!!]]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상징동물은 '''까마귀'''[* 학교 이름인 카라스노(烏野)의 '카라스(烏)'는 까마귀라는 뜻이다].
         도쿄에 있는 [[네코마 고교]]와는 유서 있는 [[라이벌]] 관계이다. 두 학교의 [[더비 매치]]는 아예 '''쓰레기장의 결전'''이라고 불린다. 네코마와는 여러차례 연습 시합을 가졌지만 공 무대에서는 한 번도 붙어보지 못한 [[안습]]한 역사가 있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는, 작은 거인이 있던 시절(=즉 가장 강했던 시절)에도 연습시합에서 네코마 고교를 이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두 학교의 감독들 모두 은퇴하면서 네코마 고교와의 인연도 끊어졌으나, 작중에서 5년 만에 연습경기를 가졌다. 그리고 두 학교는 공전에서 쓰레기장의 결전을 성사시키기로 결의한 상태.
         시합 때 입는 유니폼은 오렌지색과 남색을 배색한 디자인으로 무난하다는 평. 그런데 연습할 때 입는 배구부 트레이닝복이 상하의 모두 칙칙하다 못해 시꺼먼 '''검정색'''이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의 학교 체육복은 팥색.] 여기에 학교의 상징동물인 [[까마귀]]와 [[타나카 류노스케|얼굴만으로]] [[카게야마 토비오|사람을]] [[아즈마네 아사히|쫄게 하는]] 선수들이 더해지면서, 이미지만으로는 매우 살벌한 학교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대회장에서 '날지 못하는 까마귀' 운운했다가는 높은 확률로, 이들이 전원 [[죽은 눈]]을 한 채 호러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팀 스타일은 공격적이고 득점력도 높은 편이지만 에러나 범실이 많다. 한때 [[우카이 케이신]]은 네코마 고교와 비교하면서 카라스노의 팀 스타일에 대해, '들쭉날쭉한 팀을 세터 카게야마가 압도적인 재능으로 잇는 팀'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짜여진 조직력을 자랑하는 라이벌 [[네코마 고교]]나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사실상 상극이어서, 카라스노는 이 두 학교들과 붙으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애초에 중학시절 베스트 리베로 상을 받은 [[니시노야 유]]와 키타가와 제1중 출신의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는 것만으로, 전력상 무시 못 할 팀이다. 실제로 남덕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학교의 리베로와 세터가 너무 [[사기캐]]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 과장이 아닌 게 니시노야는 키 빼고[* 아무리 포지션이 리베로라 하더라도 [[니시노야 유|니시노야]]의 경우에는 '''너무 작다'''. 프로필 신장은 160cm 근방이지만 이 키가 세운 머리(10cm)까지 포함한 거다. 아무리 만화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신장으로 배구를 한다는 건 [[흠좀무]]다. 아직 고2니까 더 클 가능성도 있지만.] [[먼치킨]]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냥 [[스탯]]부터가 깡패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천재]]상으로 카게야마를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탯을 몰빵해놓은데다[* 현재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 능력치 총점에서 카게야마를 앞선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마저도! 때문에 독자들은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와카의 프로필이 어서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중 활약(문제의 토스들)만 따져도 얘만한 먼치킨이 없다.
         그렇다고 이 둘 말고 다른 선수들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어째 배구 외적인 일로 더 유명한~~ [[아즈마네 아사히]]와 [[타나카 류노스케]] 등 준수한 공격 자원들이 있으며, 공격과 수비 모두 다재다능한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있다. [[히나타 쇼요]]는 봄고 대회에서, 신장이 2m인 상대학교 선수와 대등하게 매치업하면서 타교 선수들에게 꽤 이름이 알려진 모양이다. 또 부원수가 적은 팀 치고, 주전과 벤치조 간 전력차가 그리 큰 편이 아닌 것도 장점이다. 1학년들 중 유일하게 벤치 멤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도 원포인트 서버로 활약하고 있으며, 존재감 없는 2학년 둘도 속공 없는(즉 카게야마가 없을 때)히나타 보다는 더 뛰어나다는 언급이 나온다.
         || 6 || 봄고 || 1차 예선 2회전[* 카라스노는 인터하이 시드배정교로 2차전에 자동진출했다.] || 오기미나미 고교[* 인터하이에서 1차전부터 시라토리자와를 만나 참패했던 팀.] || 승리 || 2 : 0 || 카지 고등학교 || 8월 11일 || 12권 ||
         || 7 || 봄고 || 1차 예선 3회전 || 카쿠가와 고교 || 승리 || 2 : 0 || 카지 고등학교 || 8월 11일 || 12권 ||
  • 허준 (1981년) . . . . 15회 일치
         * [[마산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4년 ~ 2015년)
         * [[백송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5년 ~ 현재)
         덕수정보고 졸업 후 [[현대 유니콘스]]의 지명을 받은 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2001학번)로 진학하였다.
         창단 멤버로 입단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2014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ref>[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31357 NC, 창단 첫 주장 허준·품절남 정성기 등 6명 방출] - 경남신문</ref> 이후 [[마산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
         ==출신학교==
         * [[서울미양초등학교]]
         * [[청량중학교 (서울)|청량중학교]]
         * [[덕수고등학교|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01학번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미양초등학교 동문]][[분류:청량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황보관 . . . . 15회 일치
         |청소년 클럽= [[서울대학교]]
         '''황보 관''' (皇甫 官, [[1965년]] [[3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감독, 축구 클럽 경영자이자 전 [[대한축구협회]] 소속의 행정가였다. [[일본]] [[J리그]] 팀 [[오이타 트리니타]]의 코치, 감독을 거쳐 오이타 구단의 부사장 및 이사를 맡았고 [[2010년]]부터 오이타의 감독직을 다시 맡게 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K리그 클래|K리그]] 팀 [[FC 서울]]의 감독을 맡아 [[대한민국]] 무대에 복귀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117일 만에 사임하고 [[최용수 (축구인)|최용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사임한 후 [[대한축구협회]]로 옮겨 기술교육국장을 맡았고 [[이회택]]의 후임으로 기술위원장이 되었다. 본관은 [[영천 황보씨]]이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침산초등학교]],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계성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축구부가 해체되어 [[서울체육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347934 "죽기 살기로 뛰기보다 상황대처 능력 키워라" 황보관 축구협 기술위원장] - 매일신문</ref> [[서울체육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A매치]]에서 종종 캐넌슛으로 골로 기록하여 '캐넌 슈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재엽]]과는 [[계성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에서 데뷔하여, 그 해 [[K리그 영플레이어상|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1994년]] [[8월 6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버팔로]]와의 경기에서 [[K리그 클래|K리그]] 통산 7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 [[1995년]]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하여 [[1996년]] 팀의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는 등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였다. [[1998년]] 시즌 중 은퇴하였다.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히나타 쇼요 . . . . 15회 일치
         ||<tablebgcolor="#ECECEC"> 학교, 학년 반 || 카라스노 고교 1학년 1반 || 생일 || 6월 21일 ||
         || 등번호 || 10번[* 과거 작은 거인이 달았던 번호. 주변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하지만 히나타는 운명이라고 믿고 있다.] || 출신 중학교 || 유키가오카 중학교 ||
         || 좋아하는 음 || 간장달걀밥 ||
         키와 몸집이 작아 배구선수로서는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특유의 민첩성과 스피드로 커버해낸다. 성격은 [[외유내강]]으로, 가끔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고 겁먹을 때도 많지만 본능적으로 야성적인 육계 포스를 발휘할 때가 많다. 특히 이럴 때는 작중의 인물들이 전부 움찔거리면서 땀을 흘리는 모습이 나온다. 작중에서는 '''승리에 굶주린 작은 짐승'''으로 묘사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경기에 대한 집념과 미숙한 세터가 토스미스한 공을 쳐낼 정도의 뛰어난 반사신경에 감탄한다. 하지만 히나타 외엔 누구도 의욕도 실력도 없었던 유키가오카 중은 불과 31분만에 세트포인트 2-0로 키타가와 제1중학교에 참패. 이 때 카게야마는 중학교 3년 동안 무얼 했냐며 히나타를 질책한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설욕을 다짐하며 남은 중학교 시간을 여자 배구부, 동네 아줌마 배구팀과 훈련한다. 그리고 그렇게 설욕을 다짐하며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러나 배구부가 있는 제2 체육관에 있던 건 바로 원수 카게야마였다.
          * 여타 다른 소년만화의 열혈계 주인공들과 다르게 의외로 겁이 많다. 특히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키 큰 사람 앞에만 서면 잔뜩 위축되서 겁을 집어먹고 다른 키 큰 사람 뒤에 숨는다.~~모에~~ 그랬던 놈이 시합에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서 자신이 겁먹었었던 그 큰 놈들을 상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 눈 희번뜩이고 달려드는 것이 포인트. 이 때의 기백과 기세가 굉장해서 상대팀의 강자들조차 살짝 움찔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런 그를 보고 '워밍업 존에서 갈망을 가득 쌓고 올라 온 작은 짐승'이라 표현하며 잔뜩 의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 공 인기투표에서 1회에선 2위였고, 2회에선 '''1위'''를 차지했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4회 일치
         현상금 사냥꾼들의 마을이었던 위스키 피크에서 Mr.5를 후 운동삼아 때려눕힌다. [[알라바스타 왕국]]의 왕녀 [[네펠타리 비비]]를 동료로 삼고 [[바로크 워크스]]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알라바스타 왕국으로 향한다. 도중에 [[드럼섬]]에 들러서 [[와포루]]를 물리치고 인간 순록 의사(…) [[토니토니 쵸파]]를 동료로 삼는다.
         루피는 이에 특례로서 후한 대접과 함께 샤본디 제도까지 갈 배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파티에서 섬의 여자들 사이에 "남자는 피부를 잡아 당기면 늘어난다."라는 이상한 상이 자리잡게 된다.(...)--특정 부위는 늘어날 지도...?--[* SBS에 의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잔치 직후 신문에서 자기 형인 [[포트거스 D. 에이스]]를 처형한다는 소을 듣고, 그를 도우려고 행콕에게 [[임펠 다운]]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괜찮았는데...정말 허리케인 같은 사랑의 열병으로 [[보아 행콕]]에게 플래그를 꽂았다.
         이후 금남의 섬 [[아마존 릴리]]에 떨어진 루피는 형 [[포트거스 D. 에이스|에이스]]가 임펠 다운에 갇혔다는 소을 듣고, [[보아 행콕]]의 도움으로 임펠 다운에 잠입한다. 그리고 에이스가 갇혀있는 LEVEL 6로 가던 중 LEVEL 1에서 [[버기(원피스)|버기]], LEVEL 2에서 [[Mr.3]], LEVEL 3에서 [[Mr.2 봉쿠레]]와 합류해 임펠 다운을 휘젓는다. 그러다 LEVEL 4에서 만난 임펠 다운의 형무소장인 [[마젤란(원피스)|마젤란]]의 [[독독 열매]]의 능력 앞에 패배, 맹독에 중독된 채 LEVEL 5로 이송되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 때 [[Mr.2 봉쿠레]]는 '친구를 죽게 할 순 없다'며 LEVEL 5까지 내려와 감방에서 그를 꺼내주고 기적을 일으킨다는 전설의 오카마를 찾아 루피를 해독시켜주려 돌아다니다가 계속되는 늑대들의 습격으로 결국 쓰러진다. 이 때 루피가 무의적으로 패왕색 패기를 발동. 늑대들을 쫓아낸 뒤 쓰러진다.
         약 2주일 뒤, 로의 치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의도 돌아왔지만 몸은 아직도 만신창이 상태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끼던 형의 죽음을 보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탓인지 에이스를 잃은 충격을 받아들이기가 벅찬 듯 수시로 병상을 뛰쳐나가 에이스가 죽은 순간의 기억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여인섬의 숲 속에서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징베가 뒤따라와 루피를 제압하고, 에이스는 죽었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루피는 이미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흐느낀다.
         하지만 가족에게 돌아가서 행복하게 지낼 줄 알았던 사보가 죽었다는 소을 듣게되고 에이스에게 다른 사람을 잃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겠다고 다짐한다. 그 뒤로 에이스와 자라 17세에 1권의 처음 모험의 시작처럼 바다를 나서는 것으로 회상은 끝난다.
         이후 동료를 찾으려 섬을 떠날 때, [[실버즈 레일리]]를 만난다. 레일리는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변한다고 충고하고, 루피에게 무슨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마린 포드'를 '또 다시' 습격하는 것으로 해군과 초신성은 이를 마린 포드에 있는 '옥스벨'[* 이 종은 옛날에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이며 그 시대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이라는 종으로 '신시대의 16타종'[* 해군 관습으로 옛날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인 옥스벨로 한 해의 끝과 시작에 한 해의 감사에 종을 8번을 울리고, 새로운 해를 맞아 종을 8번을 울린다. 합쳐서 16번을 울리는 관습으로 시대의 끝과 시작의 선언을 알리는 선언이다.]을 행해 울렸다는 것과 꽃다발을 던지며 묵도를 한 행동으로 미루어 이번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의형제인 에이스를 개인적으로 애도했다. 그리고 흰 수염이 죽어서 구시대는 끝나고,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의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의지 표시인 것으로 추측한다.[* 물론 [[해적왕]]이 목표라서 본래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루피답지 않은 사건을 일으켜 위화감을 느낀 동료들에게 뭔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묵도하는 루피의 오른쪽 팔에 3D2Y 문신(혹은 그림)이 있는데 3D에 X자가 그려져 있다. 사실 그 내용은 3 Day(X) 2 Year로 샤본디 제도에서 배의 코팅을 맡기고 3일 뒤에 만나자고 한 것을, 2년 뒤에 만나자고 정정하는 것으로 신문을 본 동료들이 루피가 보낸 메시지를 알아채는 모습이 나온다. 여담으로 S에 X자를 치고 AS(X)CE라고 적혀있는 에이스 문신과 위치가 같고 모양새가 흡사하다. 덕분에 에이스를 애도하는 장처럼 보인다. 3D2Y라는 단어를 괜히 감추려는 레일리의 지혜로 보인다. 그 후 행보는 2년 간 각자 수련한다고 추측된다(현 전개로는 신세계는 완전한 지옥으로 나오며, 또한 지금 동료들은 각자 누구나 한명씩은 스승, 혹은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함께 있으므로 가능성이 꽤 높다.).
         612화에서 어인섬 류구 왕국의 왕 넵튠의 궁궐으로 가서 멋대로 음 냄새에 일행들에게 이탈하여 먹을 걸 먹으러 가다가, 공주인 [[시라호시]]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공주도 [[거유]]에 미모가 [[보아 행콕]]에 대등할 수준의 [[미소녀]]인데, 또 연애플래그의 느낌이 든다… 일단 613화에서 [[반더 덱켄 9세]]가 날린 도끼로부터 시라호시 공주를 구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덱켄의 도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하면서 경각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라호시]]공주에게 산책을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시라호시를 상어 입 안에(…) 숨기고 시라호시가 가고싶은 바다숲으로 향한다.
         루피가 먼저 [[호디 존스]]를 공격하면 인간과 어인들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한 징베가 본인이 스스로 함정에 빠짐으로 루피를 영웅으로 만들자고 하지만 거절한다. 이때의 이유는 아주 가관으로, '''난 영웅을 좋아하지만 영웅이 되고 싶지는 않아! 영웅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 예를 들어 눈앞에 고기가 있다고 치자. 해적이라면 당장에 고기를 먹겠지만 영웅은 고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하잖아! 난 고기가 먹고 싶다고!!'''(...) 결국 징베가 '''네가 먹을 고기는 내가 마련해줄 테니까 말 좀 들어!''' 하니까 그제서야 수락한다(...)[* 조로의 영웅관 또한 걸작인데, 전투가 끝난 뒤 영웅대접 받기 싫어서 도망치자 시라호시 공주가 왜 도망쳤냐고 묻자 말하길 "그거 알고 있나! 영웅이란 건 네 술을 나눠주는 존재라고. 난 술이 마시고 싶어!" ~~이자들이 하나같이~~]
         이후 선수관람석에서 베라미의 B블록의 경기를 잠시 동행하게 된 캐번디시와 지켜보는 도중 콜로세움에 참가한 [[돈 칭자오]]가 나타나 '''"[[몽키 D. 가프|가프]]는 잘 계시는가? 루피 아우"''' 하고 물어보자 생각없이 바로 아저씨는 어떻게 할아버지를 아냐고 대답하는 바람에 또다시 정체를 발각당한다. 그리고는 옆에서 이를 들은 캐번디시가 루피가 맞냐며 추궁하자 당황하며 루피가 아니고 루시라며 발뺌하고,[* 이 와중에도 돈 칭자오의 계속되는 도발에 꼬박꼬박 반응하며 자기가 루피인 것을 계속 [[인증]]한다.~~역시 바보~~ 캐번디시도 그렇고 칭자오도 그렇고 애먼 데다 원한을 품은 인물들 때문에 보통 보케 담당인 루피가 츳코미를 해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캐번디시 曰 "남의 인기나 뺏질 않나 귀신의 손자로 태어나질 않나… 순 원망만 사는 쓰레기 자." 이에 루피 曰 '''"그거 다 내 알바 아니라니까?"'''] 돈 칭자오는 가프에게 수없이 살해당할 뻔 했다며 루피의 할아버지인 '''악마 가프'''[* 돈 칭자오가 활동하던 당시의 해적들에게 있어 가프는 악마로 통했다고 한다.]에게의 빚을 손자에게 갚겠다며 루피?를 공격하고, 이에 루피는 전력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지만 전혀 통하지 않고 흥분한 돈 칭자오는 계속 루피를 공격하려 하나 주변의 만류로 일단 와해된다. 이후 '''경기고 뭐고 일단 밀짚모자를 잡겠다는 캐번디시를 피해''' 관람석 외벽에 매달려 [[바르톨로메오(원피스)|바르톨로메오]]와 싸우던 [[베라미]]를 응원하지만, 결국 베라미는 엘리자벨로 2세의 왕의 펀치에 휘말려 탈락한다.
         784화에서 드디어 기어4가 등장. 명칭은 '''기어4 바운스 맨'''. 무장색 패기를 이용해서 탄력을 극한으로 강화한 모습이다. 고스트 루피를 연상시킬 정도로 몸집이 커지며 무장색으로 강화된 부분이 문신처럼 보인다. 이 상태에서는 신체를 몇 단으로 압축, 발사하는 것으로 강력한 파워와 놀라운 스피드를 겸비할 수 있으며 육의 월보처럼 허공을 차며 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고무고무 총에 추적기능이 추가되어 도플라밍고의 움직임을 쫓아가 명중시키기도 한다.~~올레인지 공격?~~
         기어4로 전세를 역전시켜 도플라밍고를 순간에 궁지로 밀어넣는데 성공하나 기어4는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심해서 약 10분 간 지쳐 쓰러지고 만다. 한편 도플라밍고는 "능력자에게는 각성이란 경지가 있다"면서 주위 사물을 실로 만들면서 반격을 시작, 다시 위기에 처한다. 새장도 해제되지 않고 시시각각 조여오는데, 이때 나머지 간부들을 정리한 밀집모자 일당과 콜로세움 일행이 합류해 시간을 벌고 있다.
  • 박경석 (1960년) . . . . 14회 일치
         | 학력 =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
         | 소속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br>노들장애인야학 (교장)</br>[[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박경석'''(朴敬石<ref name=hanshin>[http://www.bokjiro.go.kr/news/allNewsView.do?board_sid=308&data_sid=68170 한신대 교수된 '장애인 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ref>, [[1960년]] ~ )은 [[대한민국]]의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다. 현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영남대학교]] 재학중이던 [[1980년]]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입대, [[대한민국 해병대 수색대|수색대]]로 복무하였고 복무 당시에도 스킨스쿠버, 수영, 낙하산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ref name=park>[http://na-dle.hani.co.kr/arti/issue/501.html 니들의 잣대로 구별짓지 마라 - 손아람이 본 박경석], 《[[한겨레]]》, 2013년 11월 4일</ref> 전역 후 대학교 행글라이더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 중이던 [[1983년]] 8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던 중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ref name=park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92 하루 '5억원짜리' 삶, 이 사람 부럽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6일</ref>
         이후 5년간 집안에서만 생활하다가 [[1988년]] 서울장애인복지관에 입소, 그 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1년]]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으며<ref name=park /> [[2001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숭실대학교에 입학할 무렵 논의가 시작된 장애인을 위한 야간학교의 설립에도 참여하여 [[199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구의동]](현 [[광진구]]) 정립회관 일부를 빌려 노들장애인야간학교(현 [[노들야학|노들장애인야학]])를 설립하였다.
         [[2003년]]부터는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임용되어 사회복지학 개론 및 장애인 복지론을 강의하고 있다.<ref name=hanshin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0026055 강단에 선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 《[[오마이뉴스]]》, 2003년 3월 5일</ref>
         [[2007년]]말, 정립회관 측의 요구로 노들장애인야학은 그곳에서 퇴거당하여 [[이화동|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수업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8/01/02/20080102001716.html 터전 빼앗긴 ‘노들 장애인 야학’ 천막 개학], 《[[세계일보]]》, 2008년 1월 3일</ref> 시민들의 모금과 [[서울특별시]]의 예산 지원으로 [[2008년]] 3월 마로니에 공원 인근의 건물에 입주하게 되었다.
         * [[2012년]] [[10월 26일]] 장애인 당사자 인권운동가 김주영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광화문에서 장례 노제를 치르다 폴리스라인을 넘어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은 장애인 활동가 18명에게 총 1500여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였고, 박경석은 이를 대신하여 스스로 노역형을 자처, [[서울구치소]]에서 5일간 노역형을 복역하고 출소하였다.<ref name=park /><ref name=pressian />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지체 장애인]][[분류:밀양 박씨]]
  • 박부남 (1931년) . . . . 14회 일치
         '''박부남'''(朴富南, [[1931년]] ?월 ?일 ~ [[2018년]] [[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소아과|소아]][[내과]] [[의사]], 대학 교수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구한 말의 관료 [[박중양]]의 손녀이며, [[청도군|청도]], [[상주군|상주]], [[청송군|청송]][[군수]]를 지낸 [[박문웅 (1890년)|박문웅]]의 딸이다. [[대구광역시]] [[북구 (대구광역시)|북구]] [[침산동]] 출신.
         * 대구 ??초등학교 입학, 6학년때 상주국민학교로 전학
         * [[상주국민학교]] 졸업
         * [[경북고등여자보통학교]] 졸업(현 [[경북여자고등학교]])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석사·의학박사
         *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내과 의사]][[분류:소아청소년과 의사‎]][[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중양]]
  • 박인태 . . . . 14회 일치
         | 고등학교 = [[계성고등학교]]
         | 대학교 =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시절==
         * [[대구해서초등학교]] 졸업
         * [[계성중학교]] 졸업
         * [[계성고등학교 (대구)|계성고등학교]] 졸업
         * [[연세대학교]] 학사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송남헌 . . . . 14회 일치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의 패망”을 알리는 [[단파방송 밀청 사건|경성방송국 라디오 단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이후 [[한민당]]에 참여하였으나 [[1946년]] 이후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고 [[김규]]의 비서가 되었다. 이후 [[좌우합작위원회]]활동과 민족자주연맹 각주인 [[김규]] 박사의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대구사범학교 (1923년)|대구사범학교]] 졸업하고 교사로 지냈다. 일제강점기 말기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던 조선사람이 단파통신을 통해서 [[1943년]]에 있었던 [[얄타회담]]에 관한 소, 그리고 [[이승만]]박사 등의 외국에서의 한국독립운동에 관한 소을 듣고 친지들에 전한 것을 들은 죄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 사건이 [[단파방송 밀청 사건]]이다.
         광복 후 해방정국에는 [[한국민주당]]에 입당했다가 [[1946년]]부터 [[미군정]] 입법의원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직에 있던 독립운동가 [[김규]] 비서장을 지내고 우파를 대표하는 김규, 좌파를 대표하는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우파 진영 위원회의 비서로 지냈다.
         이후 [[민중동맹]]의 창당과 [[1946년]] [[12월]] [[민족자주연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1948년]] [[김구]],[[김규]]등의 발의로 [[남북협상]]이 시작되자 [[김규]]을 수행하여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참가하고 돌아왔다.
         * <송남헌 회고록: 김규과 함께 한 길,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하여>
         * [[김규]]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김규]]
         [[분류:조병옥]][[분류:장건상]][[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대구사범학교 (1923년) 동문]]
  • 송언석 . . . . 14회 일치
          * [[정치인/목록]]. [[경북고등학교/동문]]
         ||<bgcolor=#C9151E> '''{{{#FFFFFF 학력}}}''' ||<(> [[경북고등학교]] {{{-1 ([[졸업]])}}}[br][[서울대학교]] {{{-1 (법학 / [[학사]])}}}[br][[서울대학교]] {{{-1 (행정학 / [[석사]])}}}[br][[뉴욕 주립대학교 시스템|뉴욕주립대학교]] {{{-1 (경제학 / [[석사]])}}}[br][[뉴욕 주립대학교 시스템|뉴욕주립대학교]] {{{-1 (경제학 / [[박사]])}}}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0대 국회의원[br]기획재정부 제2차관[br]기획재정부 예산실 실장[br]자유한국당 경상북도 김천시 당협위원장[br]국민대학교 특임교수[br]제29회 행정고시합격 ||
         1963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대구[[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시스템|뉴욕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14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7화]] |||| '''극의 소마/168화''' |||| [[극의 소마/169화]] ||
         [[극의 소마]] 168화. '''만남의 날'''
          * 정작 에리나는 소마의 방에 왔는데, 뜬금없이 츠카사와 극에서 진 일을 끄집어내서 "내가 선택해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들을 이유는 없다. 무모한 싸움을 건 네 잘못"이라며 비난한다.
          * 그러나 "나키리" 가문의 일원이라는 사명감 때문에 시을 거절도 못하고 묵묵해 되풀이하는 에리나.
          * 어느날 사이바가 나키리의 할아버지 센자에몬에게 음을 대접하러 왔는데, 난생 처음으로 "맛있는 냄새"라고 느끼고 욕이 생겨서 꼬르륵 거린다.
          * 센자에몬은 할 수 없이 에리나에게 방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계속 꼬르륵 거리는 소리는 내자 할 수 없이 에리나에게도 음을 대접하게 된다.
          * 그 요리를 먹고, 에리나는 처음으로 음을 먹어서 즐겁다고 느끼게 되었다.
          * 사실 어린애한테 좋아하지도 않는 음을 계속 먹였으니 아동학대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노답 집구석--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81화 . . . . 14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0화]] |||| '''극의 소마/181화''' |||| [[극의 소마/182화]] ||
         [[극의 소마]] 181화. '''곰고기를 공략하라'''
          * 소마에게 조력하기 위해 나타난 쿠가 테루노리. 소마가 하야마 아키라에게 "십걸 자리"를 걸고 극을 거는 조건으로 조력을 약속한다.
          * 십걸 자리가 걸린
          * 소마는 극을 하려해도 자신은 십걸 자리에 걸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 은근슬쩍 "네가 하야마를 쓰러뜨리고 십걸에 들어가고 내가 십걸인 너한테 극을 걸면 압승할게 뻔하니 손쉽게 십걸로 복귀할 수 있다"는 사심을 드러낸다.
          * 어쨋든 극을 거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소마는 쿠가의 향신료를 사용해 새롭게 곰고기 요리를 시작한다.
          * 그래서 이대로 전골로 정해지는 듯 했지만, 소마는 이것은 자신의 요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뭣보다 하야마를 의하고 있다.
          * 지금까지 쭉 반역자팀이 반칙을 당했기 때문인지, 이번엔 소마의 반칙타임. 흡사 오픈북 시험 치는데 작년에 과탑했던 선배가 와서 도와주는 격이다. --이놈의 학교는 정상적으로는 시험 진행이 안 되나--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83화 . . . . 14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2화]] |||| '''극의 소마/183화''' |||| [[극의 소마/184화]] ||
         [[극의 소마]] 183화. '''새로운 단서'''
          * 시한 쿠가 테루노리와 대머리 군단은 옷이 날아갈 정도의 리액션을 보인다.
          * 소마는 사냥꾼인 그도 토오츠키 학원을 아는 것에 놀라는데, 사냥꾼은 오히려 음과 관련된 직종 중 토오츠키 학원을 모르는 자는 없을 거라 말한다.
          * 정체는 "오미자" 열매. 중국과 한국에서 널리 자생하는 물로 일본에서도 홋카이도와 혼슈 지방에서 자생한다.
          * 그때 쿠가가 곧바로 시에 들어간다.
          * 시하는 쿠가와 대머리 군단.
          * 사실 오미자는 합숙 기간 중에 배운 재였다.
          * 쿠가가 눈치 없이 "지금 9석을 걸고 극을 청해라"라고 부추기는데, 소마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98화 . . . . 14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7화]] |||| '''극의 소마/198화''' |||| [[극의 소마/199화]] ||
         [[극의 소마]] 198화. '''힘이 다한 자'''
          * [[나키리 센자에몬]]은 휴기를 가지라며 해외유학을 권유, 죠이치로는 웃는 얼굴로 떠나지만 그게 도지마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 소문이 자자한 [[사이바 죠이치로]]가 나타나지 않자 The BULE 회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스텝들은 어떻게든 죠이치로를 찾기 위해 허둥대고 해외에서 그를 보러 왔던 요리사들은 어이가 없다며 "겁 먹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토오츠키 학원에선 그의 실종 소이 전달되면서 "맨날 수업을 빼먹더니 더 블루까지 빼먹은 건가"라며 경악해 한다. [[시오미 준]]은 그렇다쳐도 이유가 뭔지, 왜 참석 조차 하지 않은 건지 의아해한다. [[나키리 아자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에비사와 리코]]는 그가 적어도 새벽에는 모습을 감췄을 거라고 추론하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더 블루가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면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니냐"고 불길한 소릴 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던 학생들도 진지하게 자해나 자살을 떠올리며 우려한다.
          * 도지마는 이렇게 그를 찾는 시점이 돼서야 죠이치로의 행동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다. 죠이치로가 괴요리에 푹 빠졌던 것은 일종의 휴.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올라도 만족이란 것을 몰랐으며 더 높고, 더 완벽한 요리를 요구했다. 거기에 응하야 한다는 부담감, 그걸 요리로 이어가는 피나는 노력은 "천재"라는 한 마디로 일축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괴은 그렇게 평가받는 요리에서 도피처로 이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 조차 하지 않게 됐을 땐 "도망치는 것 조차 할 수 없이 궁지에 몰린" 상태였던 것이다.
          * 죠이치로는 먼 곳으로 떠난게 아니었다. 그는 가을선발 대회가 열리는 극회장에 있었다. 회장 한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는 죠이치로. 도지마는 안도와 함께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최대한 태연하게 모두 걱정한다고 전하며 "이제 BULE에는 못 가지만,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을 꺼내는데.
          센자에몬은 죠이치로에게 잠시 이 나라를 떠나 휴을 가지라고 권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2화 . . . . 14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1화]] |||| '''극의 소마/202화''' |||| [[극의 소마/203화]] ||
         [[극의 소마]] 202화. '''에리나의 연찬'''
          * 한편 아자미는 양측의 열차가 교체하는 순간 접촉해 연대극의 세부 룰을 정리하자고 계획을 잡는다.
          * 문제는 죠이치로는 [[도지마 긴]]처럼 상적인 조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죠이치로는 만들라는 아쉬 파르망티에는 안 만들고 크레이프를 굽고 자빠졌다. 주변에선 갑자기 디저트라도 만드는 거냐고 난색. 에리나도 눈알이 뱅뱅 돌 정도로 고민해 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 한편 십걸 측도 열차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나키리 아자미]]로부터 연대극에 대한 소을 전해듣는다. 아자미나 소마측처럼 흥분된 분위기는 없지만 "한꺼번에 반란자를 일소할 수 있으니 좋다"는 정도의, 뜨뜻미지근한 호응이다.
          하지만 에이잔만큼은 유독 격렬하게 반응한다. 한 번 소마에게 패한 적이 있는 그는 이번 연대극을 복수의 장으로 삼을 작정이다. 그런데 정작 1석 츠카사는 그의 등판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또 지면 곤란하니까.". 츠카사 옆에서 통화를 듣던 [[코바야시 린도]]는 "후배에 대한 배려가 없는 놈"이라 매도하는데 "에이잔은 1학년 꼬마한테 완벽하게 진 불쌍한 놈"이라고 말하며 에이잔을 두 번 죽이는데 일조한다.
          * 한편 소마는 감자를 자르고 치즈를 준비하면서 이럭저럭 아쉬 파르망티에를 만드는 것 같더니만, 거기에 왠지 치리멘자코를 집어넣는 만행을 저지른다. 치리멘자코는 멸치나 정어리 따위의 치어를 쪄서 말린 음으로 물론 프랑스요리에서 쓰이지 않는다. 아무튼 소마는 치리멘자코를 섞을 치즈, 감자를 섞어서 굽기 시작하는데.
          * 이러는 사이 센트럴 측에서는 아자미가 연대극의 세부 룰에 대해서 조율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한다. 그는 그들의 열차와 다른 열차들이 교차하는 어떤 지점에서 세부룰을 확정하고 딸 에리나에게서 자신이 바라던 대답을 듣겠다고 기대하고 있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29화 . . . . 14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8화]] |||| '''극의 소마/229화''' |||| [[극의 소마/230화]] ||
         [[극의 소마]] 229화. '''3rd Bout'''
          *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이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아라토 히사코]]의 지도를 받으며 때아닌 서예 삼매경이었다. 백지에 쓰는 건 사람 인. 이제와서 때아닌 복수전공 지망인가? 하지만 손바닥에 사람 인 자 써서 삼키는 짓을 매번 하던 차였으니 거기서 스케일만 좀 커졌을 뿐 문제는 없었다. 반대로 [[유키히라 소마]]는 풀어야할 긴장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분명했다. 태평하게 설원화 호텔의 아침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으며 트럼프를 펼치고 있었다. 상대는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소마를 뺀 둘은 제법 본격적인 심리전을 펼치며 역시 복수전공을 고려 중인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반역자의 대장 [[나키리 에리나]]는 이 놀이에 끼지 못한 채 우두커니 구경 중이었다. 이 모든게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 문제는 없었다. 이쿠미는 새삼 어제의 대전카드 추첨 결과를 떠올렸다.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놀라봐야 소용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메구미는 사람 인을 쓰며 연대극 2일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타쿠미가 갸웃거리자 그녀는 "방금 전 붙인 별명"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녀는 귀여운 걸 좋아하는 소녀. 파티쉐인 것도 "모든 음 중 가장 귀여운 건 과자니까"라는 이유. 그렇게 귀여운걸 좋아하기 때문에 남을 부를 때도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게 그녀의 취향이었다. 내친 김에 그녀는 반역자가 보이는 족족 별명을 붙였다. 이사미는 이사먕, 이쿠미는 왠지 본명이 아니라 별명인 "니쿠미"를 한 번 더 변명해서 "니쿠먕".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게 "먀" 돌림이었다. 가장 귀엽다고. 이 자리엔 었지만 [[쿠가 테루노리]]도 별명이 있다. "테루냥". 쿠가처럼 나행이 들어간 이름도 좋다. "냥"도 먕 못지 않게 좋아하니까.
          십걸 평의회 시절 알아차린 거지만, 그녀가 저런 의 별명을 붙이는 상대는 정해져 있다. "자기보다 낮은 상대" 뿐.
          3rd Bout의 제 1카드 대결은 유키히라 소마 대 사이토 소메이. 역시 편파성 농후한 카와시마의 코멘트가 이어졌다. 소마를 "토오츠키에 도저히 안 어울리는 정집 출신"이라고 깎아내리면서 그런 주제에도 계속 이기고 있다며 잡아먹을 듯이 소개했다. 그리고 "헤이세이 최후의 무사도" 사이토에게 제발 무찔러 주기를 당부했다.
          제 2카드는 타쿠미 알디니 대 에이잔 에츠야. 의외로 타쿠미에 대한 소개는 평범하다. 이탈리아 태생의 유학생. 그의 눈에 보이는건 파멸인가 영광인다? 딱 상적인 수준의 멘트. 그런데 또 에이잔에겐 가차없다. "돈과 미의 망자". 아무튼 편파적인 건 변함없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신민아 . . . . 14회 일치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각종 패션잡지가 창간되고 '패션잡지 전성시대'였고, 10대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달별로 패션잡지를 사서 학교에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배두나]], [[김민희]], [[김효진]] 등 잡지 모델들의 인기도 상당했으며, cf모델등을 거쳐 연예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잡지 부록 경쟁도 한창 치열하여 다이어리, 화장품, 가방등 다양한 부록이 선보였다.] '키키'(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상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잡지(쎄씨, 신디더퍼키, 유행통신, 피가로 등)에 인기있는 모델로 얼굴을 도배했고, 촉촉한 초코칩, 네스카페, 코오롱 샴푸, 위스퍼, 매직 스테이션 등 tv광고도 수없이 많이 찍을 정도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대중에게는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 이 '당부' 뮤직비디오는 1999년에는 [[엠넷]]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영상음악대상]]에서 당시의 대세였던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쳐버리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다.] 로 "저 처자는 누구냐"는 반응을 끌어내며 얼굴을 널리 알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알려주는 VJ로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되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9/story_n_8328676.html|출처]] 약 7년간 10억원 가량의 기부를 해왔고 그 기부 소이 기사를 타자마자 부산 지역의 미혼모들을 위해 기부한 사실 또한 단체의 대표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이 아닌 부산지역에 기부를 한 이유는 부산 지역이 다소 소외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페북에 올린 한 번의 절박한 글에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신민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대표 또한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고 밝혔다.
          * 2015년 7월 22일 모델 [[김우빈]]과 2개월째 열애중임을 밝혔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39439&gid=999339&cid=1005053|공전문]]
          * 신민아의 연관 검색어 중 가장 꾸준한 것은 네일과 피어싱. 손톱 관리를 상당히 깔끔하게 잘하는 편으로 별다른 장이나 패턴 같은 것 없이 단색으로 깔끔하게 바르는 편인데, 그날 입은 옷과 컬러를 잘 맞추는 편이라 인기가 꽤 높다. 피어싱도 다른 여배우나 아이돌, 가수들처럼 신민아존이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안 아플까--
         ||2001||[[화산고]]||주연||유채이 役||김태균||170만 명[* 공기록 58만 명은 서울관객수이다. ] ||실패[* 사실 실패라고 보기 묘한게 국내에서 10억 정도 적자가 발생한건 맞지만, 수출로 메꾸고 오히려 더 남아서 2005년 속편 기획에 돌입했다가 회사 합병 등의 사정으로 엎어졌다. ] ||
         때려 이후의 첫 작품 [[이 죽일놈의 사랑]]. [[공효진]]과 상두야 학교가자로 우려를 단번에 불시키고, [[송혜교]]와 [[풀하우스(드라마)|풀하우스]]등을 통해 최고의 반열에 오를 뻔하였던 [[비(연예인)|비]]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명필을 휘날린 [[이경희]] 작가와 함께한 [[이 죽일놈의 사랑]]은 사상 최대의 폭망은 아니지만 시작도 하기 전 엄청났던 기대치를 단숨에 잠재우며 조용히 와서 조용히 떠나갔다. 사실 [[소지섭]]과 [[임수정]]을 톱스타 반열에 올려 놓은 미사의 위용을 이을 거라 생각했던 시작 전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망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여담으로 [[마왕(드라마)|마왕]]과 동시에 방영했던 MBC의 [[고맙습니다]]가 시청률 대박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화제성을 끌며 인기몰이를 했는데 이 작품의 작가가 [[이죽사]]의 작가인 이경희였고 여자 주연배우는 신민아가 [[이죽사]]에서 함께했던 [[비(연예인)|비]]를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연기자로 성공적 데뷔를 시켜주고 나중에 후술될 [[홍자매]]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후속작인 [[최고의 사랑]]을 히트쳐내서 홍자매의 명성을 다시 부활시킨 공효진. --공효진의 쩌는 선구안. 절친이라는데 좀 배웠으면--
         이후 다시금 [[건축학 개론]]과 [[시그널(드라마)|시그널]]의 [[이제훈]]과 뭉친 [[내일 그대와]]도 또 망했다. 그냥 망한 정도도 아니고 폭망했다. 내일 그대와 바로 전에 방영되었던 작품이 [[도깨비(드라마)|도깨비]]였음을 생각했다면 안습중에 안습. 나름 2016년들어 tvN 금토 드라마들이 자리를 잡아 평균 4~6%정도의 시청률을 올려주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1~2%의 시청률은 폭망했다고 봐야한다. tvN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에서 방영 내내 중간 광고에서 수차례 미뤄줬는데도 망했으니 푸쉬받지 못했다고 변명도 어려운 상황. 물론 이 작품에서 신민아의 연기가 별로 인것은 아니다. 나름 자신이 가장 잘하는 캐릭터를 골랐고 상대배우, 소재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으나 드라마의 전개나 진행방이 매우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고르는 안목 또한 배우의 역량이기에 기본적인 선구안이 매우 부족한 느낌. --제발 누가 옆에서 보고 골라줘. 원하는거 하지말고 시키는거 하세요.--
         다만 출연한 작품 중 영화에 있어선 비중이 상당히 작고, 아예 옴니버스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으니 작품을 줄세워놓고 앞 뒤 설명없이 '얘 존나 개망함ㅋ' 이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지는 않은 정도. --하지만 드라마에선 할말없다--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B14B60><rowbgcolor=#B14B60> {{{#white '''수상 연도'''}}} || {{{#white '''시상'''}}} || {{{#white '''부문'''}}} || {{{#white '''작품'''}}} ||
         || 한국광고주대회 광고주의 밤 시상 || 광고주가 뽑은 좋은 모델상 || ||
         || 납세자의 날 기념 || 모범납세자 지방청장 표창 || ||
  • 신화용 . . . . 14회 일치
         ||<:><-3> DF [br] [[김상(축구)|김상]]
         K리그 베스트 일레븐 GK에 선정된 2009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반박의 여지가 없는 K리그 최고의 골리 중 한 명이었으나 여러 가지 불운으로 인해 시상과 국가대표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골키퍼이기도 하다.[* 2015년에 '''특별상'''을 받기는 했지만 공로상에 가까운 여론 무마용 상이다.]
         포항제철동초등학교 4학년때 단거리 육상선수에서 축구로 전향하여 포철중-포철공고까지 유스 테크트리를 탔으나 골키퍼였음에도 작은 키와 실력 성장 정체가 문제가 되어 프로입단에 실패하게 된다.[* 졸업 당시 179cm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포항 원 클럽 맨이었던 최상국 감독이 청주대로 신화용을 부르게 되고 신화용은 청주대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청주대 축구부는 프로 입단,대학 입학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선수들의 의욕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때 허리 디스크 부상을 당하면서 축구를 그만둘뻔 하기까지 했다.[* 이때 디스크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게 된다.] 신화용이 2학년이 되자 청주대 감독이 유인권 감독으로 바뀌었고 유인권 감독의 지도하에 성장했다. 이때 포항의 백업 골키퍼였던 조준호가 이적하면서 팀에 키퍼가 부족해지자 포항은 신화용에게 입단 제의를 했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2015 K리그 클래 홈 개막전에서는 '''울산과의 경기에서 인생 최악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수비수와의 호흡 미스를 보이며[* 기존의 주전 수비인 [[김원일]]과 [[김광석(축구선수)|김광석]]이 죄다 부상으로 아웃되고 [[김준수(축구선수)|김준수]]와 [[배슬기(축구선수)|배슬기]]가 --왠 가수들이 센터백 서냐 생각할 수 있는데 축구선수다-- 그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첫번째 골은 수비진들과의 호흡 문제, 두번째 골은 [[마스다 치카시|마스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라 넘어갈 수 있다 쳐도, 3,4번째 골은 완벽한 신화용의 실수였다.] 한 골을 내주고, 김신욱의 중거리슛을 잡았다 놓쳐서 자책골과 다름없는 골을 내주며 2:4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김승규와의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했다. 그런데 이 경기가 더욱 뼈아픈 이유가 있었으니 후술 참조.
         하지만 시즌 클린시트 1위(17경기), 전경기(38경기) 출장, 실점률 2위 0.84에 후반기에는 포항을 사실상 먹여살리는 활약을 했음에도 실점률 0.97인 [[권순태]]가 우승팀 GK라는 이유로 베스트11 GK에 선정되었고, 13시즌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더욱 15시즌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13시즌에는 '''신화용이 우승팀 골키퍼였음에도''' 스탯이 더 좋은 김승규가 베스트11에 뽑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K리그 수상이 명확한 기준없이 시즌마다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 특히 15시즌은 논란이 컸던 것이, 득점4위인 이동국이 우승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시즌 MVP를 받았고. ~~13시즌 이명주는??~~, 득점1위 김신욱은 이동국을 베스트11에 넣느라 아에 베스트 11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신인들 중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와 활약을 보여준 황의조 대신 우승팀 버프를 받은 이재성에게 영플레이어상이 주어지는 등 전북팬을 제외한 모든 국축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나마 특별상 부문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FC서울의 오스마르와 같이 수상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15시즌이 끝나고 다른 한국 골키퍼들이 연달아 J리그로 떠나자, 해마다 포항 팬들에게 주목 받던 '''신화용의 거취문제가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높아졌다.''' 게다가 전남 드래곤즈와 [[김병지]]의 결별, 성남 FC의 [[박준혁(축구선수)|박준혁]]의 현역 입대,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으로 클래 팀들의 구애를 받게 된 [[이범영]]까지 골키퍼 연쇄이동이 점쳐지는 가운데 '''언급된 모든 키퍼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신화용이 재정감축위기에 빠진 포항을 떠날까 포항팬들이 걱정했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2016년|작년 시즌]], 세오타임(SEO TIME)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던 수원 수비 안정화의 일등공신. 2017 K리그 클래 클린시트 1위.'''
         2016년 12월 우선 협상기간 동안 신화용의 거취에 관심이 쏠렸다. [[http://news.donga.com/View?gid=82057389&date=20161227|기사]] 그리고 해를 넘겨 1월 3일수원과 이적 협상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이미 [[문창진]], [[김원일(축구선수)|김원일]], [[신광훈]] 등 신예 베테랑 가리지 않고 핵심 멤버들을 보낸 마당에 마지막 프렌차이즈 스타마저 떠난다는 소에 포항팬들은 [[멘붕]] 중. 게다가 팀을 떠나는 이유도 '''16시즌 종료 이후 구단이 직접 나서 신화용을 팔기 위해 여러 구단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포항 프런트와 수뇌부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특히 신화용은 자신의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포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연봉을 스스로 깎고 포항에 남았는데,''' 정작 16시즌 팀 성적과 신화용의 개인 성적이 하락하자 바로 신화용을 시장에 내논사실을 알게 된 신화용은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포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최순호]]가 급하게 구단에 강력요청하여 신화용을 잡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게 되나[*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프런트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팔겠다는 계획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포스코의 낙하산 사장에 휘둘리는 포항 프런트가 얼마나 막장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미 신화용의 마음은 포항을 떠났고 결국 신화용은 새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적료+'''[[노동건]] 임대'''를 하는 형으로 신화용을 내줬다. 노동건이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은 아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은 20대 골키퍼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원 프런트가 '과연 군필 골키퍼를 임대 후 이적 조건으로 포항에 줬을까?' 를 생각해본다면 즉전감 키퍼를 받고 후보 키퍼를 빌려줘 경험치도 먹이려는 [[호구]]딜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의 인생 최악의 경기인 2015 K리그 클래 홈 개막전 울산과의 경기를 슈틸리케 감독이 보도진 몰래 [[포항 스틸야드]]에 암행정찰을 왔다. --왜 잘 할 때는 안 오고-- 이 날 모습을 생각한다면 국대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신화용 >>>>>> 정성룡을 외치던 K리그 팬들을 입 다물게 한 반면에, 오히려 K리그까들로부터 '''정성룡이랑 뭐가 다르냐, 정성룡보다 더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롱받고 있는 중. 기량이 제대로 폭발한 이후로 실수가 상당히 줄어든 키퍼인데 역대급 실수를 엄청나게 보여주면서[* 그것도 공중파 전국 생중계였다. [[KBS]]가 올 시즌부터 K리그 클래을 전격 중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아니, 왜 잘할 때는 중계를 안 해주고-- 참고로 KBS의 K리그 클래 전격 중계는 [[이영표]]가 해설위원이 되면서 내건 조건으로 KBS는 이를 받아들였다라고만 서술하면 이영표 해설위원 혼자서 다 한 거 같게 느껴지는데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에서 따낸 계약 조건이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이영표의 기여도 차이가 있는 일이다.] 엄청 평가가 떨어졌다. 다만 이 경기를 관람한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에서는 언제든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실수였고, 선수들은 이런 실수가 나오는 데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7475|관련기사 1]],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8&article_id=0002396186|관련기사 2]]
         K리그 클래 주전 골키퍼 중에서도 수준급의 기량을 선보이며, 특히 수비 리딩은 정상급이다.[* 덕분에 2017시즌의 수원 수비가 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반사신경, 상황판단력등이 모두 평균이상이라 안정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과감히 수비라인을 전진시키며 전진압박을 유도하는 과감성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신화용이 골리였을 때인 2017년과,정성룡,양형모,노동건이 골키퍼였을때의 수비 라인 유동성이 크게 다르다.] 경기 중 말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를 통해 작전이 쉽게 전달되지만 상대 공격진에게 간파당할수 있는 위험성 역시 갖추고 있다. 거기에 골리치고는 단신에 속하는 신장인지라 공중볼 처리에 약점이 있으며, 역시 프리킥 상황에서도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이 작은 몸 탓인지 날렵한 편이라 반사신경과 더불어 슈퍼세이브를 많이 만들어내는 골리이다.
  • 오대석 . . . . 14회 일치
         || '''학력''' || 남도초 - 경구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한양대학교|한양대]] ||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2~1995)[br][[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1996)[br][[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1997~199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00~2001)[br][[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작전코치(2002)[br][[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 감독 (2004~200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11)[br][[한화 이글스]] 1군 수비·작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육성군 수비코치 (2014) ||
         1982년 삼성의 원년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도 [[김재박]] 다음 가는 유격수 2인자 [[함학수]], 상업은행의 주전 유격수 [[장태수(1957)|장태수]], 포철의 주전 유격수 [[서정환]]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함학수]]는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기용되었고, 장태수는 빠른 발을 살려 외야수로 전향해 주전 중견수로 기용되었고, [[서정환]]은 경쟁에 밀려 백업 내야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1년 뒤 해태로 트레이드되며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史의 첫 페이지를 장한다. ~~준 국가대표 수준이던 삼성의 위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삼성의 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다. 1982년 6월 12일에는 구덕 삼미전에서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그 해 유격수 부분 [[KBO 골든글러브]]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몇 년간 유격수를 거의 혼자서 도맡다시피 해서 였는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서정환|아무래도 괜히 보낸 거 아닌가 싶다.]]~~
         선수 은퇴 이후로는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롯데 자이언츠]]에서 코치를 했고 2000년부터 2년간 포철공고에서, 2004년부터 4년간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재직했다. 2011년에 다시 포철공고 야구부의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2011년 말 포철공고의 마이스터고 전환[* 마이스터 고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운영을 할 수 없다.]으로 야구부 해체가 불가피해지며 계약이 해지되었다.[* 그러나 포철공고 야구부는 다행히 해체되지 않고,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인계되어 현재는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다. 참고로 경주고, 구미전자공고의 야구부의 잇따른 해체로 2011년 부로 대구 소재의 고교야구팀을 제외하고 [[경상북도]] 소재의 고교야구팀은 포철공고가 유일하며, [[경주고등학교 야구부]]도 2013년 12월에 재창단했다. 구미전자공고 야구부도 포철공고처럼 마이스터고 전환 때문에 해체된 것.]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14회 일치
         2001년 6월 8일,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大阪教育大学附属池田小学校)에 37세 남성 타쿠마 마모루(宅間守)가 난입하고 칼을 휘둘러, 아동 8명이 사망하고 [[교사]]를 포함한 15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수많은 문제 사건을 일으키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타쿠마는 분풀이로 [[대량살인]]을 기도하게 된다. 당초에는 "[[일요일]]에 오사카 시내의 번화가를 덤프 트럭으로 돌진"하려고 생각했으나, 이후에 발걸음이 느린 어린이를 노리면 다수를 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초등학교를 노리게 된 것이다.
         사건 전날 밤, 타쿠마 마모루는 전화번호안내로 알아낸 이케다 초등학교의 전화번호를 네비게이션에 셋트하였으며, 8일 아침에 이케다 시내의 칼가게에서 부엌칼을 2개 구입하고, 이케다 초등학교에 간다. 남쪽정문이 닫혀 있엇기 때문에 계속 나아가서, 자동차 전용 게이트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왔다. 동쪽 문 앞에 정차된 차에서는 나중에 [[아이스픽]] 2개, 녹슨 칼이나 손도끼도 발견되었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2001년 6월 8일 오전 10시,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는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들어가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학교 앞에서 타쿠마 마모루는 자동차 전용 게이트로 침입하여, 체육관 앞을 지나갔다. 이 때 아이들과 화단으로 가던 교사 1명과 엇갈려 지나갔지만, 교사는 [[학부모]]라고 생각하여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인사를 했다.
         체포 직후 타쿠마는 "한큐이케다역(阪急池田駅)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100명 정도 난도질해왔다.", "요즘 계속 잠을 못 잤다. 초등학교에는 가지마."같은 이상한 발언을 반복했다. 타쿠마의 집에서는 진정제 등 10여 종류 200정 가량의 약품이 발견됐다. 체포되고 얼마쯤 지나서, "정신장애가 무거운 것처럼 위장했다."고 인정했다. 두 차례의 정신감정 결과 '인격장애'로 진단 받았으나, 책임 능력이 있음이 인정되었다.
         사건 직후에 오사카 교육대학, 오사카 대학, 부립 마음의 건강 종합센터, 오사카 피해자 상담실 등 전문가로 구성된 '멘탈 지원 팀'이 발족하였다. 교장은 기자 회견에서 대학부속 초등학교의 합동 장례을 할 의향임을 밝혔다. 2002년 정신지원팀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아동 680명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가진 아동이 2학년을 중심으로 10명에서 20명 정도였으며, 학부모와 교직원 가운데도 고통 받는 사람이 있었다. 무서워서 교실에 들어갈 수 없고, 원인 불명의 두통을 일으키는 아동이 1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케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전국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내에 수상한 사람이 침입하여 난동을 벌이는 것을 가장한 훈련을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이케다 초등학교에서는 추모비가 세워지고 「기도와 맹세의 모임(祈りと誓いの集い)」이 발족하여, 매년 6월 8일 유족을 중심으로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정부는 학교의 안전관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총 4억엔을 배상했다.
  • 이효상 . . . . 14회 일치
         | 소속 = 前 [[영남대학교]] 초빙교수
         * [[벨기에]] [[루뱅대학교]] 수학, 명예문학 박사
         * [[경북대학교]] 교수, 문리과대학장
         * [[대륜고등학교|대륜교육재단]] 이사
         * [[경북고등학교|경북중고등학교]] 동창회장
         그가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 때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 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효시로 보기도 한다.<ref name="김충">[[김충 (1954년)|김충]],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1 (1992, 동아일보사)</ref>{{Rp|305}}<ref name="이상우">[[이상우]], 박 정권 18년: 그 권력의 내막 (1986, 동아일보사)</ref>{{Rp|343}}<ref>{{웹 인용 |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제목=[DJ 삶의 5가지 꼬리표] 시련·멍에는 역사의 거목을 키웠다 |확인날짜=2010년 1월 3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824010951/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보존날짜=2009년 8월 24일 |깨진링크=예 }}</ref>
         * [[홍일]]
         * 삼남 [[이문조]] (전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코오롱 [[이동찬]] 명예회장의 사위)
         [[분류:1906년 태어남]][[분류:1989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경북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영남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성산 이씨]]
  • 임현준 . . . . 14회 일치
         [[대구고등학교]] 시절에는 [[1루수]]로 주로 활동했지만 제28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당시 선수가 부족하여 깜짝 선발로 등판하였다. 경기에서 6⅓이닝을 4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북일고등학교]]를 상대로 승리하여 모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7년]] [[경성대학교]] 진학하여 윤영환 감독으로부터 체계적인 [[투수]] 수업을 받은 뒤 입학하자마자 당시 4학년이었던 [[고창성]]과 함께 [[경성대학교]]의 간판 [[투수]]로 떠올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213906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삼성 새내기 좌완 임현준 "선동열 감독께 눈도장 받고 왔어요"] 《조이뉴스》 2010년 12월 5일</ref>
         [[2011년]] [[4월 16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8회 초 타석에 들어선 [[정수빈]]이 기습 [[번트]]를 시도하고 그가 1루 베이스를 커버하려고 가는 순간 갑자기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에 정전이 발생하며 순간에 모든 조명들이 꺼지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었고,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어 다음 날([[4월 17일]]) [[정수빈]] 타석부터 경기가 재개됐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4180307382224&ext=na 대구구장 정전 사태는 민폐의 결정판] 《마이데일리》 2011년 4월 1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099786 '정전 등판' 임현준, "선발 등판하는 느낌"] 《스포츠조선》 2011년 4월 17일</ref>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경성대학교]]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카치구미 . . . . 14회 일치
         일본어로 출판이나 언론 활동을 할 수 없고, 일본인끼리 모이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일본어 학교는 폐쇄되었다. 1942년에는 브라질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 외교관들도 [[포로 교환]]으로 일본으로 귀국하여, 완전히 본국과 연결이 단절되었다. 또 이 당시 [[포르투갈어]]를 읽을 수 있는 일본인은 숫자가 적었으며, 지인과 브라질 사회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에 국한되었고 대부분은 오지에서 농장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본어 신문이 폐지되었고, 본국과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날리는 [[단파방송]]만이 일본의 소을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루트였다. 하지만 단파방송 수신기를 가진 사람은 소수였고, 입에서 입으로 [[루머]]가 전파되기 쉬웠다. 게다가 단파방송으로 얻을 수 있는 일본의 소 역시, 군부에서 일방적으로 패전을 승전으로 바꿔서 발표하는 엉터리였기 때문에 일본은 항상 이기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쉬웠다.
         1945년 8월이 되자 당연히 패전 소이 퍼졌으나, 곧 '일본의 패전은 루머다'라는 소으로 바뀌었고, 이게 거꾸로 뒤집혀서 '일본이 이겼다'는 루머가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박하를 피부에 바르면 피부가 시원해진다. 이 같은 원리로 미국 전투기는 박하를 발라서 엔진을 히기 때문에 성능이 좋은 것이다.
         === 인파의 인운동 ===
         시간이 지날수록 브라질의 신문, 라디오에서 나오는 정보는 점점 일본인 사회에도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를 알아도 카치구미는 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카치구미를 내버려두면 브라질에서 일본인은 서로 죽이거나, 사기를 거듭하며 일본인 사회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일본인, 일본계 브라질인 가운데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카치구미를 설득하고자 했는데, 이를 '인파'라고 불렀다.
         10월 19일에 인파는 상파울루의 미국 총영사관에 일본으로부터 [[신문]], [[잡지]]를 주문해달라고 의뢰하여, 1946년 3월 16일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이를 각 도시에 배포했다. 하지만 3월 이후에는 카치구미가 더욱 과격화하여 '특행대'가 조직되고 일본계 사회 지도층과 인파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습격을 당하게 되었다.
         아무튼 카치구미의 테러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파 인사들 만이 아니라 미국 국무부, 일본 정부, [[GHQ]] 등에서 카치구미를 열심히 설득하였고, 일본 국내에서는 브라질에 친구와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호소가 퍼졌으며, 일본의 현재 영상을 브라질에 보내기도 했다.
         인파의 활동과 다방면의 노력으로 이 혼란은 1947년 1월 10일 암살 사건이 있었던 것을 마지막으로 진정되는 국면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 대립은 1950년대 중반까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 허근욱 . . . . 14회 일치
         [[1930년]] [[3월 28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에서 변호사 겸 독립운동가 [[허헌]]과 문화 유씨 유덕희(柳德禱, 또는 유문(柳文植))의 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이복 언니 2명이 있었고, 둘째 언니가 독립운동가 겸 여성운동가 허정자([[허정숙]]으로 개명)였다. 유덕희에게서는 첫 딸이었다. 그 아래로 음악가인 여동생 [[허선욱]]과 허기욱, 허영욱, 허선욱 그리고 [[북조선]]에서 외교관을 역임한 [[허종욱]] 등이 태어났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으로 진학했다. 해방 후에도 계속 가족과 함께 [[경성]]에서 체류하다가 [[1948년]] [[4월]] [[이화여대]] 영문학과 재학 중 [[남로당]] 당수이자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 [[허헌]], 이복 언니 [[허정숙]] 등을 따라 월북하였으며 [[평양러시아어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뒤 아버지 [[허헌]]은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의장이었고, 언니 [[허정숙]]은 북한 문화선전상, 보건성부상, 사법상, 최고재판소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다.
         [[1984년]] KBS 방송국 집필담당 전문위원이 되었으며, 그밖에도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협회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89년]] KBS 방송국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는 [[1992년]] [[4월]] [[남북문학교류위원회]] 위원<ref name="nambb">동아일보 1992년 4월 20일자 13면, 생활문화면</ref>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동창문인회 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서정범]] 등과 함께 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 중에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 문학 작품들도 존재한다. 이를 두고 자신의 출신과 관련된 남한 쪽에서의 모종의 제약 때문에 의적으로 이데올로기나 분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는 평도 있다. 또한 일찍이 이념과 삶의 진정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버지 및 가족과 결별하고 월남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누구보다 분단과 가족공동체의 회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있다는 작품평도 있다.
         * [[이화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중퇴)
         * [[평양러시아어대학교]] 수료
         * [[1948년]] [[이화여자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중퇴)
         * [[1950년]] [[평양러시아어대학교]] 수료
         * [[1992년]] [[4월]] [[남북문학교류위원회]] 위원<ref name="nambb"/>
         * [[이화여자대학교]] 동창문인회 임원
         [[분류:1930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양천 허씨]][[분류:일제 강점기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허정숙]][[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허준영 . . . . 14회 일치
         * 종로초등학교 졸업
         * 경북중학교 졸업
         * [[경북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 [[명지대학교]] 산업공학 박사
         * 2001.11 ~ 2002.11 : 중앙경찰학교 교장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해 허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경찰대학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경찰청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홍준표]][[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
  • 현재윤 . . . . 14회 일치
         * [[연세대학교]] 야구부 배터리코치 (2015년)
         [[신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 입단 대신 [[성균관대학교]](1998학번)에 입학한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 [[2004년 한국 프로 야구 병역 비리 사건|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였고 [[2007년]] 소속 팀인 삼성으로 복귀했다.
         ==출신학교==
         * 1986년 ~ 1992년 : [[서울수유초등학교]]
         * 1992년 ~ 1995년 : [[신일중학교 (서울)|신일중학교]]
         * 1995년 ~ 1997년 : [[신일고등학교]]
         * 1998년 ~ 1999년 : [[성균관대학교]] (1998학번)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수유초등학교 동문]][[분류:신일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연주 현씨]]
  • 현정건 . . . . 14회 일치
          | 총리 = [[이동휘]] <br/> [[이동녕]] <br/> [[신규]] <br/> [[노백린]]
         [[1924년]] 6월, 현정건은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해 오는 조선인 학생들의 중국 사회 적응과 그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돕기 위한 [[김규|김규(金奎植)]]의 제안을 받아들여, 상하이에서 [[1917년]] 여운형이 세웠던 인성학교(仁成學校) 내에 개설된 조선인 학생을 위한 예비교(豫備校, 예비강습소)에서 김규, 여운형 등과 함께 영어 과목을 맡아 가르쳤고<ref>이는 국내에도 알려져 신문에 「上海에 豫備講習」(『동아일보』 1924년 6월 6일자), 「豫備校 設立」(『시대일보』 1924년 6월 9일자) 등의 기사가 나기도 했다.</ref>, 그 뒤 상하이 고등보통학교(上海高等普通學校)로 개편된 뒤에도 여운형, 김종상(金鍾商) 등과 함께 전임교사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9월에는 상하이교민단에서는 실시한 의사원(議事員) 총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ref> 재상해일본영사관경찰부(在上海日本領事館警察部)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1946년, 동문사서점(東文社書店)</ref> 11월에는 상하이에서 윤자영이 조직한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 상하이한인청년동맹)에 가입, 집행위원이 되었고 『횃불』, 『새길』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1925년]] 5월 9일에는 상하이에 있던 [[조소앙|조소앙(趙素昻)]]ㆍ여운형ㆍ윤자영ㆍ김상덕(金尙德)ㆍ최창(崔昌植)ㆍ김규면(金圭冕)ㆍ손두환(孫斗煥) 등 약 30명의 조선인 동지와 함께 서문 밖 체육장에서 배일(排日) 중국인 단체의 집합에 참가하였고 이곳에서 "중국과 한국이 합동하여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의 『상하이주간(上海週刊)』5월 9일자 특별호에 실린 사설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ref>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 의해 7월 1일에 일본 외무성의 외무차관에 보고되었다. 국회도서관(國會圖書館)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韓國民族運動史料)』(중국편), 1976년, 567~568쪽.</ref> 9월 8일에는 상하이교민단의 의사원(議事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10월 10일에 중국사정연구회(中國事情硏究會)를 조직하여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1월에 상하이에서 의열단 창립 9주년을 맞아 재중 조선인들에게 격문을 발표하며 성대한 기념을 가졌다. [[1927년]] 4월 10일 홍진(洪鎭)ㆍ홍남규(洪南杓) 두 사람의 명의로 발표된 전민족적독립당결성선언문(全民族的獨立黨結成宣言文)에 따라 11일에 삼일당에서 약 40명이 모여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韓國獨立黨關內促成會聯合會) 창립총회를 열고,
         「동아일보」 [[1933년]] 1월 1일 기사에는 1월 3일 오후 1시에 현정건의 발인이 이루어질 것이고 영결이 가회동 177번지의 자택에서, 묘소는 동소문 밖의 미아리에 마련되었다고 적고 있다. 현정건의 부인 윤덕경(尹德卿)은 남편이 죽은 뒤 이레, 달포 동안 음을 전폐하다가 조금 밝은 모습을 보이는 듯 싶더니, 끝내 2월 10일에 "(남편이 없이) 아무래도 살 수가 없다", "죽은 몸이라도 형님(현정건)과 한 자리에서 썩고 싶으니 (남편 옆에) 같이 묻어달라"는 요지의 유서를 시동생 현진건에게 남기고 현정건의 영전 앞에서 음독자살하였다.<ref>「玄鼎健氏未亡人 尹德卿女史殉從」 『중앙일보』 1933년 2월 12일자. 「結緣卄年에 同居는 半世」 『동아일보』 1933년 2월 12일자. 유서의 전문도 함께 실려 있다.</ref> 남편이 죽은지 41일만의 일이었다. 다른 자은 없었다.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 현진건의 형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부인 윤덕경과의 사이에서 자은 없었고,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이자 연인으로 계옥(桂玉, 현규옥)이 있었다.
         * 「박종화의 삶과 문학」 윤병로 저, 1998년,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13회 일치
          * Mathematics(수학): 아이콘은 수. 주로 계산기 관련 기술에서 요구한다.
          * Jäger Kampfschule(예거 전투학교)
          * General Staff Academy(참모학교)
          * Zhukovsky Air Force Academy(주코브스키 공군사관학교)
          * K. E. Voroshilov RKKF Naval Academy(K. E. 보로실로프 RKKF 해군 사관학교)
          * Army War College(육군대학교)
          * Tokubetsu Heigakkō(특별병학교)
          * Huangpu Academy(황푸 군관학교)
          * Huangpu Naval Academy(황푸 해군군관학교)
          * Scuola di sanita'militare(군사의무학교)
          * Universita' La Sapienza(라 사피엔차 대학교)
          * Scuola Centrale di Alpinismo(중앙등산학교)
          * Ecole Militaire de Haute Montagne(고산지대 전투학교)
  • K리그 . . . . 13회 일치
         AFC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ACL)의 개편과 함께 2012년에 K리그도 [[승강제]]를 도입함으로써 2013 K리그부터 1부리그인 [[K리그 클래]]과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로 개편되었다.
         == K리그 클래 ==
         [[K리그 클래]]은 2012시즌 이전까지의 K리그 역사를 계승하는 1부리그이다.
         2016시즌 기준으로 클래과 챌린지에 참여하는 K리그 구단은 총 23개 구단이다.
         해당 구단들은 다소 역사상으로 논란이 컸던 축구단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규정상으론 현존 K리그 구단들이 역사를 계승하고 있으나, 팬들의 인으로는 같은 구단으로 인하지 않는 부분을 별도로 서술한다.
         2013시즌도 승강구조가 한시적으로 운영된 케이스이다. 클래 스플릿 B의 최하위 2개팀은 챌린지로 자동강등, 마찬가지로 스플릿 B의 차하위 1개팀은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에서 잔류 여부가 결정되었다. K리그 챌린지의 우승팀은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하며, K리그 클래 스플릿 B의 차하위 팀과 겨뤄 승격 여부가 결정된 시즌이다.
          1. 클래 스플릿 B의 최하위팀은 자동강등
          1. 클래 스플릿 B의 차하위팀은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결과에 따라 잔류냐 강등이냐가 결정
          1. 챌린지 우승팀은 K리그 클래으로 자동승격
         위와 같은 조건은 2014시즌에 정리된 이후, 2016시즌까지 유지되고 있음으로써 클래과 챌린지의 승강구조가 안착되고 있다.
          * [[K리그 클래]]
  • Victoria II . . . . 13회 일치
         이들 중 1~8위는 주요 열강(Great Power)으로 분류되며, 민지를 피거나 다른 나라를 자신의 영향권 내로 편입시킬 수 있는 등 사실상 세계를 마음대로 쪼개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다른 주요 열강의 견제만 어떻게 한다면야 말이다. 만약 기존의 주요 열강이 아닌 국가가 8위권 내로 들어오면 1년간의 유예 기간 이후 제일 순위가 낮은 주요 열강을 탈락시키고 주요 열강에 올라서게 된다.
         9~16위는 2등 열강(Secondary Power)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자신의 영향권을 형성하지는 못하지만 민지를 필 수 있다.
         ==== 민지 개척과 관리 ====
         HoD에서 민지 시스템이 역변하였다.
         민지를 개척하고 유지하는데는 민력(Colonial Power)이 필요하다. 민력은 코어가 박힌 영토에 있는 해군기지와 해군 유닛에게서 얻을 수 있다.
          * 자율이 높으면 연구 점수 획득량이 많아진다.
          * Avantgarde Intelligentsia(아방가르드 지계층): 해군 기술 연구 -25%, 문화 기술 연구 +5%, 산업 기술 연구 -5%
          * Prussian Constitutionalism(프로이센 입헌군주정) : 입헌군주제이긴 한데 사실상 국왕이 다 해먹는 유사 민주주의. 전제 군주정 국가에서 투표를 허가하면 이게 된다. 여당을 플레이어가 바꿀 수 있지만 일정 주기마다 치뤄지는 총선에 따라서도 바뀐다. 무정부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스트는 여당이 될 수 없다. 자코뱅 반란으로 뒤집어지면 민주정이 된다.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 게임 내 정 용어는 인구(Population)지만 패러독스 팬덤에서는 POP라고 부른다.
         악명(Infamy)는 해당 국가에 대한 국제적 시선이 얼마나 나쁜가를 의미한다. 전쟁 명분을 주작하다가 들키면 쌓인다. 악명이 높을면 높을수록 세계의 평화를 해치는 악당으로 인되어 적대적인 국가가 증가한다.
         게임을 하다보면 두 국가가 지방이나 민지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을 벌이게 된다. 분쟁이 일어나면 긴장(Tensions)라는 수치가 올라가는데, 이 긴장 수치를 유발할 수 있다. 위기가 발생하면 두 국가는 자국의 입장을 대변해 줄 주요 열강을 찾게 된다.[* 위기의 당사자가 주요 열강일 경우에는 자국이 대표자가 된다.] 어느 한쪽만 지지자가 생기거나 두 국가 모두 주요 열강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그대로 위기는 사그라든다. 하지만 두 국가 모두 주요 열강의 지지를 받게 될 경우에는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강재형 (아나운서) . . . . 13회 일치
         |학력 =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방송언론학과 언론학 석사
         * [[서일대학교]], [[한림대학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 [[1978년]] ~ [[1981년]] : [[영동고등학교 (서울)|영동고등학교]] 졸업
         * [[1982년]] ~ [[1986년]] :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 [[2001년]] ~ [[2009년]] :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방송언론학과 언론학 석사
         * [[2013년]] 12월 아나운서연합회 아나운서대상시상 대상
         * [[2008년]] 《[[울학교 이티]]》 - 화제집중 남자 아나운서 출연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2년 태어남]][[분류:1987년 데뷔]][[분류:영동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성주 (기업인) . . . . 13회 일치
          | 학력 =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1975년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학교]] 신학 학사를 받았다. 이후 [[애머스트 대학교]], [[런던정치경제대학교]],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등에서 공부했다.
         개인의 신념이자 경영철학인 “Succeed to Serve", 사회환원기업 (Social Enterprise)으로써의 책임의으로 2009년 ㈜성주재단을 설립, 기업의 순수익 10%를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 환원하며,
         MCM은 2008년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이래 클래한 유명 명품 브랜드들에 못지 않는 유니크한 브랜딩을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 시장에 역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3년 5월 김성주는 [[권상우]], [[피오나 헤프티]] 등과 함께 [[스위스]] [[취리히]]의 매장 오픈을 하거나 <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357509</ref>, CNBC, 르 피가로, 가디언 지 등에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MCM의 인기로 대서특필 되는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중이다. 개성있고 트렌디한 마케팅으로 유명한 주력 브랜드 MCM은 중국인들의 큰 사랑에 기인하는 글로벌 성장세에 힘입어 전 세계 35개국에 300여개의 매장을 운영중이다.
         * {{공 웹사이트|http://www.kimsungjoo.com/|김성주}}
         [[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친박]][[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여성 기업인]][[분류:애머스트 대학교 동문]]
  • 김성주(축구선수) . . . . 13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중학교]] - [[동래고등학교]] - [[숭실대학교]](중퇴) ||
         [[포항시]]에서 축구를 시작해 [[포항제철중학교]]까지 진학했지만 [[포항제철고등학교]]로는 진학하지 못했고, 대신 [[동래고등학교]]를 거쳐서 [[숭실대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리고 숭실대학교 재학중이던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까지 발탁되었을 만큼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다.
         [[숭실대학교]] 3학년 때 [[J1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을 하지만 여기서 기회를 얻지 못하며 올림픽 대표팀과도 멀어졌다. 이후 [[J2리그]] 카탈레 도야마로 임대 이후 이적까지 하면서 60경기를 뛰었으나 팀은 [[J3리그]]로 강등되었고, 이후 국내 복귀를 추진하였다.
         4월 11일 [[선문대학교]]와의 [[대한축구협회 FA컵/2015년|FA컵]] 3라운드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전반 30분 오창현의 드로인을 머리로 받은후 오른발로 접어 상대 수비와 골키퍼를 속인 뒤 왼발슛으로 첫골을 기록했다. 팀은 2:0으로 승리하여 32강전에 진출했다.
         2016년 [[상주 상무]]에 입대하여 11경기 1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K리그 클래]] 잔류에 일조하였다. 그리고 2017년에는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여 21경기 1도움을 기록하였고, 9월에 전역하여 [[서울 이랜드 FC]]로 복귀하여 5경기를 뛰었다. [[K리그]] 데뷔를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서 했기 때문에 실력에 의문을 갖는 팬들이 많았지만, 2년 연속으로 [[상주 상무]]의 클래 잔류를 도왔다는 점에서 클래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 듯.
  • 김숭실 . . . . 13회 일치
         [[1981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김숭실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밑에서 컸다. 대구봉덕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탁구부에 들어가 탁구를 시작했다. [[2000년]] 실업 무대에 데뷔한 이래 6년만인 [[2002년]] 12월 [[SBS 챔피언전]] 여자 단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182724.html 김창금, <만나봅시다 여자 탁구 샛별 김숭실>, 《[[한겨레신문]]》2007.1.8]</ref>
         * 2001 회장기 전국실업탁구연맹전 단 3위
         * 2001 제47회 전국남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 복 2위
         * 2001 제55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 단 3위
         * 2002 제48회 전국남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 단 3위
         * 2003 제49회 전국남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 복 3위
         * 2008 KRA컵 SBS 탁구 챔피언전 개인단 3위
         * [[2001년 ITTF 프로 투어]] [[브라질 오픈]] 복 2위
         * [[2003년 ITTF 프로 투어]] [[브라질 오픈]] 복 3위
         * [[2005년 ITTF 프로 투어]] [[한국 오픈]] 단 3위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탁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동문]]
  • 김용국 (야구인) . . . . 13회 일치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뛰어난 활약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84년 하계 올림픽|1984년 LA 올림픽]]에 참가하였다.<ref name="imaeil">[[매일신문]] - 2007년 7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9528&yy=2007 "최종문의 펀펀 야구 - 영어가 뭐기에"]</ref>
         [[한양대학교]] 졸업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1985년 한국프로야구]]부터 주전 [[3루수]]로 뛰었지만 [[1987년 한국프로야구]]에는 [[류중일]]의 입단으로 설 자리를 잃어 [[유격수]]에서 전향했던 [[오대석]]과 병용으로 출전했다.
         [[대한민국]]에서 연봉 5천만원에 [[LG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551908 <프로야구소> LG, 김대진, 김용국코치 영입]</ref> 그는 추후 자리를 옮겨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부터 [[2009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9 시즌]]까지 친정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비 코치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20171 삼성, 김용국·강성우 코치 영입]</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65 [사진]김용국 코치,'아픈 데는 괜찮나?'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76 [사진]김용국,'글러브 가볍고 괜찮네!'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9년]] 친정 팀의 코치 재계약에 실패한 후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엔 [[넥센 히어로즈]]에 자리를 옮겨 2군 수비·작전·주루 코치로 활동하다가<ref>''OSEN'' - 2009년 11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911190106 "히어로즈, 김용국 전 삼성 코치 영입"]</ref> [[류중일]]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부름을 받아 친정 팀의 코치로 복귀했다.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대구경상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김해 김씨]][[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김태우(god) . . . . 13회 일치
         ||<#878787> '''{{{#EEE156 학력}}}''' ||<(>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학사) ||
         god 당시 혼자만 소속사가 달랐다. 나머지 멤버들은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김태우만이 홀로 [[JYP]], 즉 박진영과 계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박진영이 싸이더스에 김태우를 '임대'해 주는 형이었다고 한다.[*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god 해체는 [[윤계상]]의 탈퇴만이 이유가 아니라, 김태우의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기존 회사에 남느냐 박진영과 계약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던 중에 발생하게 됐다. [[윤계상]]의 탈퇴는 이 우왕좌왕한 계약 시기에 염증을 느낀 결과였던 것.]
         어찌되었건 현역 복무(그것도 '''이기자부대''') + 연예병과 고사(固辭)를 한 덕에 [[까임방지권]]을 제대로 득템한 연예인. 사실 원래는 복무 중 연예병사에 지원하려 한 적이 있었으나 포기했다. 당시 연예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일종의 면접으로 연예병사로 근무하고 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갔는데, 먼저 근무하던 나이 어린 연예인 후배 선임이 군대으로 서열을 잡는답시고 한 깐깐한 행동들로 인해 열받아서 연예병사를 고사하고 말았다고. 금방 몇몇 동료들이 진상을 털어놓긴 했으나 어찌나 열을 받았는지 훗날 김태우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갔을 때 그 후배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연예계 활동 중에 내 눈에 띄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정작 이 말을 한 본인은 이후 그 행동을 되돌아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그 후배와 또 만났는데 그 후배가 '미안해요. 그때는 부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저희가 총대 멘 겁니다'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며 김태우는 앙금을 풀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꼰대]]질이 문제다--
         2012년 11월에 출연한 고쇼에서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재직 중인 연구원인 아내를 "서울대 박사"라고 지칭한 부분을 두고, 몇몇 네티즌들의 학력위조 드립이 있었으나 별다른 문제 없이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미국]]에서 대학 졸업, 이대 대학원 생명공학부에 재학하면서 서울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서울대 박사 학위가 아님에도 '서울대 박사'라고 칭한 것을 문제시한 것. 하지만 [[청춘불패]]의 흑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태우 자체가 상이 뚜렷한 편이 아니서 생긴 불찰. 일반적인 [[학력위조]]와 달리 학력을 사칭하여 이득을 꾀한 것도 아니다보니, 딱히 큰 논란은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 말부터 소속 가수인 메건 리와 계약 해지를 둘러싼 마찰이 일어났다. 메건 리는 미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모색하면서 소울샵측과 계약 해지를 주장했고, 길건은 메니징 소홀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김태우 처가 쪽 인물들의 경영 간섭. 오히려 이들은 김태우 [[본인]]에 대해서는 불만 없다는 으로 밝힌 것으로 봐서는 본인의 [[인성]]은 원만한 모양.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이 뚜렷한 편은 아닌데다 이와 관련된 흑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 푸는 실력은 좋은 편이다. 194회 전반전에 참가했을 때는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두번째 도전인 287회 후반전 방송분에선 [[1대 100/최고 단계 문제 #s-4.4|정규 최종 단계(당시 11단계)에서 6명과 대결을 펼쳤다.]](두 대결 모두 각각 8, 12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1인으로 3차 도전을 한 490회 방송에선 상금을 타면 후배의 뮤직비디오 제작비에 보탠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간 인터뷰 때 중학교 시절 당시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던 [[김제동]]에게 "가수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었더니 그가 "넌 안돼!"라고 말하는 것에 상처를 받아서 독기를 품어 노력을 한 끝에 가수에 데뷔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데뷔 이후 김제동이 "태우야,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는 김제동에 "형은 안돼요!"라고 받아쳐 [[역관광|제대로 복수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청춘불패 시즌1]]에서 [[구하라]]가 다리찢기를 하고 있는데 "넌 어려서 골반이 안 벌이지네"라고 말한 게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신영]]이 잠깐 발끈하기도 했고... 이걸 '어려서 경험이 없어서 안 벌어진다'는 의 [[성희롱]] 발언으로 해석한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가 있었으나 크게 불거지는 일 없이 금새 묻혔다. 이것을 두고 성실한 군복무로 인한 실드가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애초에 [[여성]]은 2차 성징이 끝나면 추가적으로 골반이 성장하지 않으며 골반이 벌어지는 문제와 성경험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이 외 그의 또 다른 개드립인 [[빈유|'목 돌아간 애']] 드립 등을 생각해보면, 그냥 '2차 성징이 안 온 꼬맹이'라는 의미로 쓴 게 맞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더 유연한 것이 '''[[상]]'''이지만, 이건 그냥 그가 '''무'''하다고 보면 될 문제다. 주로 성인 여성의 성적 특징과 관련한 드립을 치는 것이니 섹드립이라면 섹드립이지만, 직접적으로 [[섹스]]와 관련한 드립이라기 보다는 [[나르샤(브라운 아이드 걸스)|나르샤]]가 사과 두 개로 글래머 흉내를 낸 것과 같은 수준의 색(色)드립인 것.
         G7과 참여한 상상더하기에서는 참여한 여성 멤버 모두에게 변태라는 소리를 들을 적도 있으며, 상기 언급한 바대로 구하라에게 "가슴이 없어서 목이 돌아간 줄 알았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실제 청춘불패가 편집이 유연하지 못한 것이 그의 이러한 섹드립 때문이라고 상상더하기에서 멤버들이 말할 정도. 당시 회를 거듭하면서 군대 말투를 지나치게 쓴다든가 부적절한 멘트를 쓰는 것들을 지적받은 바가 있다.
         이때에 취할 수 있는 대처법은 성격 안 좋은 동료나 학우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방법과 똑같다. 그냥 뒤에서 욕을 하거나, 생까고 같이 놀지 말거나.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거라면 모를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군대으로 집합시켜서 군기 잡을 권리는 선배가 아니라 할애비라고 해도 없다. 그리고 김태우 같은 중간의 위치에 있는 가수가 저렇게 나선다면 밑에 있는 후배 가수는 정말 부담 백배로 선배를 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저렇게 후배들에게 반 강제로 인사를 시키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 나이 되면 이런 인사를 받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신만이 알겠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면 답이 없다. [* 다만, 김태우 본인의 말로는 오고가는 길에 마주쳤을 때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간단한 인사정도는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 김태희 . . . . 13회 일치
         김태희는 2011년 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했다.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수아|제목='마이 프린세스', 종영…여심 흔든 달콤한 '황실로맨스'|url=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11/02/25/65491.html|출판사=프런티어타임스|날짜=2011-02-25 |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송승헌]]과 함께 공연해 대학생 이설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미지의 변화와 이전보다 향상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김민호|제목=김태희 푼수연기 호평 "이제야 딱 맞는 캐릭터!"|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출판사=투데이코리아|날짜=2011-01-06|확인날짜=2011-01-06}}{{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 }}</ref> 4월 1일에는 《[[MBC 다큐스페셜]]》에서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MBC 스페셜 방영 목록#2011년|태희의 재발견]]이 방영되었고, 방송에서 김태희의 일상, 연기력 논란, 학창 시절 등에 대해서 다뤘다.<ref name="미디어스">{{뉴스 인용|저자=곽상아|제목=MBC스페셜 '태희의 재발견'…"황당·실망"|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0|출판사=미디어스|날짜=2011-04-03|확인날짜=2014-04-07}}</ref> 시청률은 지난 편에 비해 2배 가량 상승한 9.3%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저자=문완|제목=궁금했던 김태희..'태희의 재발견' 시청률 9.3%|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4020912530683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1-04-02 |확인날짜=2014-04-07}}</ref> 하지만 일부에서는 “뭘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태희 홍보프로”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ref name="미디어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MBC스페셜]]이 김태희도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다루는 방”이라고 말했다.<ref name="미디어스"/> 《[[마이 프린세스]]》가 종영되고 나서 김태희는 [[일본]] 기획사 [[스위트 파워]]와 계약을 맺고 [[일본]] 진출을 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진출…"일본서 적극적으로 활동 펼칠 것"|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출판사=SSTV|저자=신영은|날짜=2011-03-03|확인날짜=2014-04-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408214713/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보존날짜=2014-04-08|깨진링크=예}}</ref> 이후 [[일본]]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에 여주인공 한유나 역할로 출연해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드라마 주연…니시지마 히데토시와 호흡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9575|출판사=아시투데이|저자=정희영|날짜=2011-08-25 |확인날짜=2011-09-10}}</ref> 첫 [[일본]]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끝냈고, 많은 CF 촬영도 진행 할 예정이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日 드라마 성공 데뷔 후 해외 CF 러브콜 쇄도|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출판사=일간스포츠|저자=김인구|날짜=2012-02-21|확인날짜=2012-02-2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 }}</ref> 그러나 2005년 이완과 함께 스위스에서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빌미로 각종 CF 방영 계획이 취소되었고, 드라마 촬영 중단까지 요구되었다.<ref name="광주일보">{{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日 CF행사 취소..독도발언 때문|url=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9898239461109010|출판사=[[광주일보]]|날짜=2012-02-22 |확인날짜=2012-02-25}}</ref>
         2004년 김태희는 헤럴드경제 기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6&aid=0000148878 'I Love Companies'`기업사랑 캠페인` 본궤도 올랐다] ''헤럴드경제'' 입력일자 2004-09-21</ref> 2005년에는 남편 [[이완 (1984년)|이완]]과 함께 수호천사로 위촉돼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스위스]]에서 친선문화대사로 선정 돼 "독도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리메이크 앨범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ref name="광주일보"/><ref>[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SWISS FRIENDS 2005] {{웨이백|url=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date=20110813103724 }}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ref><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0217085145988&p=yonhap 김태희, 스위스친선문화대사 선정] 연합뉴스 입력일자 2005.02.17</ref> 이후 2007년 유방암의 위험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홍보대사로 활동을 했고, 7월 22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ref>[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419123412761&p=SpoChosun 김태희, 유방암 조심하세요 핑크리본 홍보대사] 스포츠조선 입력일자 2007.04.19</ref> 또한 12월에는 [[BC카드]]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밥차 배 봉사활동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밥차 배 봉사활동 펼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0027316|저자=탁진현|출판사=[[네이버]]|날짜=2007-12-05|확인날짜=2011-09-15}}</ref> 김태희는 2005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도 난치병 어린이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계속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난치병 어린이들과 따뜻한 만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6672|저자=김가희|출판사=[[네이버]]|날짜=2006-05-16|확인날짜=2011-09-15}}</ref>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난치병 아동들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앨범에 참여했는데, "Make-A-Wish"를 녹음했다.<ref>조성훈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배우 김태희,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음원 참여] {{웨이백|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date=20120316165433 }}, 《[[가온 차트]]》, 2011-09-15 작성. 2011-09-15 확인.</ref>
         2012년 12월 31일 [[디스패치 (대한민국)|디스패치]]는 [[이병헌]]과 [[이민정]]의 열애설을 터뜨림과 동시에 "디스패치가 새해 첫 커플의 사랑 소을 전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2013년 1월 1일 [[이완(1984년)ㅣ이완]]와 김태희가 데이트하는 현장 사진을 올리면서 [[열애설]]을 제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이완 열애설 보도한 ′디스패치′ 덩달아 주목|url=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101000202|출판사=뉴스핌|날짜=2013-01-01|확인날짜=2013-09-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03201303/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101000202#|보존날짜=2013-12-03|깨진링크=예}}</ref> 같은 날 오후 소속사 [[루아엔터테인먼트]]는 아직 만난지 1개월 밖에 안되었고, 알아가는 단계라며 교제설을 인정했다.<ref>{{웹 인용 |제목=김태희, "이완와 만난지 한달…알아가는 단계" 열애 공 인정
         |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92306|출판사= enews24|저자=전수미|날짜=2013-01-01|확인날짜=2013-09-12}}</ref> 2017년 1월 17일, 이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편지를 올려 "이제 저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훌륭한 [[남편]]이자 [[남자]]가 되려 한다. 그녀는 제가 힘들 때나 행복할 때나 변치 않고 늘 제 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많은 것들로 감동을 주었다"에 이어 "이제 신뢰가 쌓이고 사랑이 커져 결실을 맺게 됐다"며 "결혼과 시간은 현재 시국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여서 최대한 조용하고 경건하게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결혼 소을 알렸다. 두 사람은 2011년 한 소셜커머스 광고에 함께 출연하며 친분을 쌓았고, 2012년 가을부터 교제를 시작했고 2013년 1월 1일 열애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둘은 결별설 한번 없이 [[잉꼬]] 커플로 주목 받아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이완·김태희, 교제 5년만에 결혼…빅스타 부부 탄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8965318|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은정|날짜 = 2017-01-17|확인날짜 =2017-09-09}}</ref><ref>{{뉴스 인용 |제목 =이완, 손편지로 직접 결혼 발표 "김태희, 최고의 선물"[공입장 전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039239|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이유나|날짜 = 2017-01-17|확인날짜 =2017-09-09}}</ref>
         김태희는 이완와 2017년 1월 19일 [[대구광역시|대구]] [[달서구]] 이곡2동 의 한 [[성당]]에서 [[혼인성사]]로 비공개 대구에이더블유호텔 결혼을 올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단독] 이완♥김태희, 오늘(19일) 결혼 후 피로연…하객 대접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4087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예나|날짜 = 2017-01-19|확인날짜 =2017-09-09}}</ref><ref>{{뉴스 인용 |제목 =“이젠 부부” 이완·김태희, ‘007 작전’ 방불케 한 결혼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2920777|출판사 =노컷뉴스 |저자 =김현|날짜 = 2017-01-19|확인날짜 =2017-09-09}}</ref><ref>{{뉴스 인용 |제목 =[종합]이완-김태희 결혼…장수 톱스타 커플, 이젠 부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875953|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박세연|날짜 = 2017-01-19|확인날짜 =2017-09-09}}</ref>
  • 식극의 소마/163화 . . . . 1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2화]] |||| '''극의 소마/163화''' |||| [[극의 소마/164화]] ||
         [[극의 소마]] 163화. '''정점을 노리는 자'''
          * 소마가 이기면 츠카사의 1석을 가져가고 츠카사가 이면 소마가 츠카사의 서포터가 되는 조건의 극이 시작된다.
          * 소마는 "누구의 방해도 없는 1석과의 극"이라며 들떠하는데 사실 복도에서 에리나와 히사코가 숨어있는건 눈치채고 있다.
          * 츠카사가 말하는 그들의 야망은 "일본의 모든 당을 부수는 것"
          * 아자미는 요리라고 할 수 없는 "먹이"를 내놓는 당들은 존재해선 안 되며 일본의 미을 진보시키기 위해선 꼭 선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한다.
          * 소마는 유키하라 정집 같은 곳도 해당하냐고 반문하고, 츠카사는 단호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0화 . . . . 1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9화]] |||| '''극의 소마/170화''' |||| [[극의 소마/171화]] ||
         [[극의 소마]] 170화. '''얼어있던 마음'''
          * 에리나 조차도 생소한 음인데다 내용물이 흰지가 살짝 굳고 노른자가 반숙 상태인 이상적인 상태라 놀라워한다.
          * 소마는 간단하지만 맛있는 음이라고 자신만만하다.
          * 히사코는 고급 재에 길들여진 에리나가 저딴 세일 달걀이나 먹으면 쇼크사할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떤다.--비호감--
          * 계란을 냉동시키면 젤리처럼 탱글하고 쫄깃한 감이 되고 노른자는 감칠맛이 강해지는 것.
          * 또 에리나는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냐며, 요리인은 진귀하고 고급한 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게 보통이 아니냐고 묻는다.
          * 본편에서 나온 계란튀김은 우리나라 분집에서 파는 삶은 달걀 튀김하고는 조금 다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82화 . . . . 1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1화]] |||| '''극의 소마/182화''' |||| [[극의 소마/183화]] ||
         [[극의 소마]] 182화. '''신 십걸의 탄생'''
          * 현재. 유키히라 소마는 쿠가 테루노리의 도움을 받아 곰의 서지에 도착해 있다.
          * 하야마는 그때까지 잠자코 있었지만 이 도발에 응해 극을 벌인다.
          * 패자는 실려나가면서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위험한 향"이라고 말하는데.--역시 약을 탔네. 약청 불러와--
          * 그러면서 "네가 한 말(곰고기의 냄새를 살리고 싶다) 자체는 맞다"며 "냄새를 지운다"는 사고방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 하야마에겐 곰고기의 냄새를 매료되는 향으로 바꾸는건 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다.
          * 리액션으로 폭발하는 건 평범한 축이었지만, 왠지 진짜로 쓰러진데다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정말로 음을 먹인 건가--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85화 . . . . 1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4화]] |||| '''극의 소마/185화''' |||| [[극의 소마/186화]] ||
         [[극의 소마]] 185화. '''호적수와 재승부'''
          * 나키리 아리스는 하야마 아키라에 대한 소을 듣고 화내지만 유키히라 소마가 3회전을 돌파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시작되는 유키히라 소마 vs 하야미 아키라의
          * 타도코로 메구미와 알디니 타쿠미는 소마측의 소을 듣고 걱정하는데, 린도가 나타나 자신이 두 사람의 시험 상대라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 나키리 아리스는 전화로 유키히라 소마에게 하야마 아키라의 소을 듣는다.
          * 불과 15세 밖에 되지 않은 쌍둥이 자매지만 뛰어난 미각과 대뇌심리학 지을 가지고 있어 레오놀라에게 스카웃 된 것.
          * 소마의 극이 진행되는 동안 타도코로와 타쿠미의 시험도 시작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87화 . . . . 1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6화]] |||| '''극의 소마/187화''' |||| [[극의 소마/188화]] ||
         [[극의 소마]] 187화. '''터져라 멘치까스'''
          * 도지마 긴은 그의 "도박"이 성공했을지 기대하고 베르타와 실라는 악취가 나지 않을까 망설이며 쉽게 시하지 못한다.
          * 그러나 시 결과 오미자와 곰고기의 뼈에 가까운 고기를 대담하게 조합해 멋진 멘치까스를 완성했다.
          * 소마는 음을 먼저 제출하며 하야마 아키라에게 "네가 먹을 건 먹기 직전에 튀겨주마. 여유 생기면 말해라."라고 놀린다.
          * 이제 시에 들어가는데 도지마는 과연 그의 도박이 성공했을지 흥미로워한다.
          * 그만큼 어려운 방으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인데, 자칫하면 역겨운 악취가 튀김옷에 가득 차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를 따라 베르타와 실라도 시.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6화 . . . . 1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5화]] |||| '''극의 소마/206화''' |||| [[극의 소마/207화]] ||
         [[극의 소마]] 206화. '''어서오세요 결전의 땅에'''
          * 레분토 섬의 연대 극에는 [[나키리 아리스]]를 비롯한 탈락자들도 참석. 원래 금지였지만 아리스가 떼를 써서 어떻게든 합의했다.
          아리스를 비롯한 반역자 일행은 [[유키히라 소마]]의 연대극을 관전하기 위해 레분토 섬에 도착했다. 막 연대극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 원래 이들은 패배한 시점에서 강제송환이 확정돼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 자신이 고집을 부려서 훗카이도에 남는데 성공했다. 에리나 일행에게 연대극의 정보를 입수한 후로는 다른 루트로 그들을 따라서 북상 이 특설무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리스는 당당하게 결전의 장소로 가자고 일행을 다독인다.
          * 약 한 달 전, 소마 일행이 센트럴과 연대극 룰을 확정한 직후의 일이다. 아리스는 에리나 측의 정보를 전달 받으면서 소마 일행이 [[나키리 센자에몬]]의 특훈을 받게 됐다는 소도 듣는다. 하야마는 그들이 특훈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자신들이 어떻게든 구해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4화 . . . . 13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3화]] |||| '''극의 소마/234화''' |||| [[극의 소마/235화]] ||
         [[극의 소마]] 234화. '''끝났다고 너...'''
          * [[에이잔 에츠야]]는 대형 창고에서 [[타쿠미 알디니]]를 "패배로 몰고갈 재료"를 찾아 돌아온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조리로 돌아온 에이잔. 출전자 여섯 명의 요리가 속속 완성단계로 접어드는 가운데 에이잔은 한눈에 봐도 훌륭한 로스트 비프를 완성한다. 큼직한 크기에 잘려진 단면은 선명한 핑크색. 고기의 달인인 [[미토 이쿠미]]가 보기에도 결점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로스트비프다. 이어서 다진 쇠고기에 "호스레디쉬"라는 서양 와사비를 잘게 썰어넣고 생크림, 요구르트, 안초비를 더해 크림소스를 만들었다. [[카와시마 우라라]]는 그가 도구를 자신의 손발처럼 다루고 있다며 혀를 내두른다.
          * 반역자진영은 분하지만 에이잔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이잔은 이미 한 번 쿄쿠세이 기숙사를 없애려 했던 원한이 있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에이잔의 상대 타쿠미에게 저 "인텔리 야쿠자"를 무찔러 달라고 혼신의 응원을 보냈다. 그것은 에이잔에게도 들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녀석들 기숙사에 몹쓸 짓을 하긴 했다"며 선선히 인정한다. 원래 자기는 여기저기 원한을 산 적이 많고, 생각해 보면 타쿠미한테도 그렇다며 말을 걸었다. [[미마사카 스바루]]와 타쿠미의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 건으로 타쿠미가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 말하는 한편 [[잇시키 사토시]]를 보증인으로 내세워서 "그건 미마사카가 신청한 극이었고 나의 개인적인 의사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쿠미가 에이잔에게 원한이 있는 걸 전제로 한 소리였는데, 정작 타쿠미는 "그런 말로는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며 무시한다.
          * 에이잔이 그렇게 장담한 이유는 자신의 크림소스 때문이다. 에이잔은 모든 공정을 끝낸 뒤, 방금 전 시점에 한 가지 재료를 추가했다. 아티초크. 특별할건 없는 재료다. 여기에 에이잔이 설명을 더한다. 그가 노린 것은 아티초크에 들어있는 "시나린". 쓴맛을 내는 성분인데 사람의 미각을 저하해 맛을 착각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티초크를 먹은 뒤에 다른 음을 먹으면 정상보다 훨씬 달게 느껴진다. 관중들 중에선 정말 그런지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키리 아리스]]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단언한다. 실제로 아티초크를 디저트 전에 내서 디저트의 단맛을 극대화하는 기법은 많은 레스토랑에서 쓰고 있다.
          지난 회에 가지러 간다던 재료는 아티초크. 타쿠미가 단맛이 강한 피자를 만들 걸로 예상하고 미각을 조작하는 재료를 고르러 간 것이다. 아티초크의 시나린 성분이 미각을 조작해 단맛을 더욱 달게 느끼게 하므로, 자신이 요리를 먼저 먹인다면 타쿠미의 피자맛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반역자들은 당연히 비겁하고 자존심도 없다고 극딜하는데 어차피 이기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놈이라 노데미지. 어쩐지 심사의원 안도 그래도 상관없다고 허락해줘서 완전히 기세등등하다. 자신잇게 화이트 소스가 들어간 로스트비프를 내놓고 승리를 자신한다.
          시작부터 에이잔이 "미마사카에게 진 그 극은 내 책임이 없다"는 둥 도발을 늘어놓는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사이토는 명백하게 분노한 티가 난다고 한다. 순조롭게 조리를 마치고 최종공정에 들어갔을 때 에이잔이 아티초크를 이용한 함정을 공개하는데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이후에 에이잔이 "미마사카와 첫 승부 때 소마가 상대였으면 너와는 달리 극복했을 것"이라 모욕을 퍼붓지만 역시 무반응. 돌부처가 다 됐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양일환 . . . . 13회 일치
         '''양일환'''(梁日煥, [[1961년]] [[6월 10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투수코치이다. [[1990년]]부터 잠깐의 휴기였던 [[1999년]] ~ [[2000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의 팀 이동 없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투수]]코치로 재임 중이다.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입원하여 시즌을 마감한 [[장효조]] 2군 감독을 대신해 후반기 [[한국 야구 퓨처스리그|퓨처스 리그]]를 이끌었다.
         [[1983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 포지션은 당시에 드문 사이드암 [[투수]]였으며 [[1989년]]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하였다. [[양준혁]] 선수의 사촌 형으로 알려져 있다.
         == 출신 학교 ==
         * [[대구초등학교 (대구)|대구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 [[건국대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원 양씨 (梁)]]
  • 오경훈 . . . . 13회 일치
         | 학력 = [[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 [[대구신암초등학교]] 졸업
         * [[영동중학교 (서울)|영동중학교]] 졸업
         * [[용문고등학교 (서울)|용문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 [[1986년]] :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 [[2013년]] ~ : 명지대학교 연구교수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영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
  • 윤석용 . . . . 13회 일치
         |학력= [[경희대학교]] 한의학과<br /> [[중앙대학교]] 대학원
         |웹사이트=[http://www.yoonsy.co.kr/ 공사이트]
         [[1951년]]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에서 출생하여 1971년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어릴 때 얻은 소아마비로 장애등급 2등급을 받아 병역이 면제되었다.
         1981년 [[경희대학교]] 한의학과(28회)를 졸업하고, 1991년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직 18대 국회의원으로, 천호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 대한사회복지 개발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2012년]] [[2월 14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8275만원 상당의 옥매트 250개를 횡령해 지역 복지단체와 동료의원 사무실 등에 임의로 전달한 혐의,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동을) 선거구민과 연관된 단체에 축구공 100개와 30여만원 상당의 김ㆍ빵을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 주민투표]]를 앞두고 장애인체육회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단계적 무상급을 찬성하는 내용의 투표 운동을 시켜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횡령혐의는 무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었다.<ref>{{웹 인용|제목=옥매트 횡령 윤석용 의원 불구속 기소(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2434.html|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2-02-14}}</ref>
         * [http://www.yoonsy.co.kr/ 윤석용 의원 공사이트]
         [[분류:대한민국의 한의사]][[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구종로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지체 장애인]]
  • 이기택 . . . . 13회 일치
          * 상위 문서: [[정치인/목록]], [[고려대학교/출신 인물]]
         ||<#6e7edd> '''학력''' ||<#c5cae8>부산중학교[br] [[부산상업고등학교]][br]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
         ||<#6e7edd> '''경력''' ||<#c5cae8><width=250>고려대 학생위원장[br] [[신민당(1967년)|신민당]] 사무총장[br] [[신민당(1967년)|신민당]] 부총재[br]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정치학 객원 연구원[br] [[신한민주당]] 부총재[br] [[통일민주당]] 정무위원[br] [[통일민주당]] 부총재[br] 국회5공 비리조사 위원장[br] [[통일민주당]] 부총재 겸 원내총무[br] [[민주당(1991년)|민주당]]공동대표겸 상임고문[br]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총재[br] [[한나라당]] 상임고문 겸 총재 권한대행[br]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최고위원 ||
         [[개성고등학교|부산상업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하였다. [[4.19 혁명]]을 일으킨 여러 학생운동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때 함께 학생시위를 주도한 인물로 부산상고 동기동창인 [[신상우]]가 있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자형 이임용이 경영하는 태광산업(현 [[태광그룹]] 산하)에 입사하여 근무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될 당시 김영삼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결국 [[노무현]], [[김상현(1935)|김상현]]과 함께 잔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당시 잔류파들중에 지명도나 정치경력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이었다.] 이후 1991년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이기택이 김대중에게 시집 갔다"고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상 이때의 결단으로 이기택은 김대중에 이어 야권 제2인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백은 '한겨레그림판'에서 '로보트 야권V'라는 제목 하에 김대중과 이기택을 각각 로보트 태권V로 형상화하여 손을 잡은 모습을 그리고, 이에 놀란 김영삼을 괴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김대중과 이기택의 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 소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야권V'라는 만평은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10년 전에 이미 신민당 부총재였던 사람이다.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외모는 정치인이 아닌 대학교수를 연상케 하지만, [[조기축구]]와 새벽달리기로 체력을 연마한 강골이었으며, 키도 크고 듬직한 성품이어서 주변의 평판이 좋았다. 무엇보다 '4.19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상징성은 그가 가진 최고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13회 일치
         ||<bgcolor=#A50000> {{{#EEE156 학력}}} || 형곡초등학교 졸업[* 2018년 8월 30일 고향집 소개 영상에서 나옴.(중학교, 고등학교도 역시)][br]형남중학교 졸업[br]경북과학기술고등학교 졸업[* 모교에서 급먹기 영상에서 나옴.][* 이병욱이 재학했을 때는 '아포공업고등학교'였으며 졸업한 해에 교명 변경.] [br] 구미대학교 중퇴 ||
         ||[[https://youtu.be/gHER9rfwbmM|불량품 껌맛 나는 담배! 보헴 시가 리브레 솔직 후기!]]||
         ||[[https://youtu.be/8ADjQZOGqbc|마크정 (불닭볶음면+자이언트 마늘 떡볶이) 솔직리뷰]]||
         ||[[https://youtu.be/r23I5TmSJQc|초등학생때 자주 먹던 추억의 불량품 솔직 후기]]||
         >'''그럼 가으로 모든 사과문을 쓰길바라는거에요? 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건데'''
          * 가장 좋아하는 음은 [[피자]]라고 한다.
  • 이종희 (1942년) . . . . 13회 일치
          | 경력 = 前 [[대한항공]] 총괄담당 대표이사 사장 <br /> 前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 사장 <br /> 前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br /> 前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위원 <br /> 금탑산업훈장, 프랑스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자랑스런 단국인상 등을 수상
          | 학력 = [[단국대학교|단국대 경영학과]] 학사<br>[[연세대학교|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br>[[서경대학교|서경대 대학원]] 경영학 박사
         * [[대구상업고등학교]]
         * [[단국대학교]] 경영학과
         * [[연세대학교]]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 [[서경대학교]]대학원 경영학 박사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
  • 이주호 (1961년) . . . . 13회 일치
         |총리 = [[김황]]
         |학력 =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경제학 학사<br/>[[코넬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청구고등학교]]
         * 1979년 ~ 1983년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경제학 학사
         * 1983년 ~ 1985년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대학원 경제학 석사
         * 1986년 ~ 1990년 [[코넬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2002년 9월 ~ 2003년 6월 미국 콜게이트대학교 석좌교수
         |전임자 = [[우형]]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이중환(법조인) . . . . 13회 일치
         1959년 [[경상북도|경북]] [[구미시|구미]]에서 출생했으며 [[경북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15기(1986년)) 수료 후, 검사로 임용되어 2011년까지 근무하다 퇴직하고 변호사로 전직하였다. 이중환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5c6bc0><-2> [[최순실|{{{#white __최순실__}}}]] {{{#white 측근 / 변호인}}} ||<-3> ^^故^^[[최태민]] · ^^故^^[[임선이]] · [[최순득]] · __[[정윤회]]__ · __[[정유라]]__ · __[[장시호]]__ [br] ''[[최재석]]'' · ^^故^^''[[조순제]]'' · __''[[고영태]]''__ · __[[차은택]]__ · [[윤영]] / [[이경재(법조인)|이경재]] ||
         || 재단 · 협회 ||<#ddd> [[전경련]] || [[이승철(기업인)|이승철]] ||<#ddd> [[미르재단]] · [br][[K스포츠재단]] || [[정현]] · [[정동춘]] · ''[[이성한(미르재단)|이성한]]'' [br] ''[[노승일]]'' · [[박헌영(K스포츠)|박헌영]] ||
         ||<#ddd><-2>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이화여대 입시부정 및 특혜]] || [[김장자]] · __[[최경희]]__ · __[[김경숙(1955)|김경숙]]__[br][[남궁곤]] · [[이인화|류철균]] · [[이인성(교수)|이인성]] ||<#ddd>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br]블랙리스트]] || __[[김기춘]]__ · __[[조윤선]]__ · [[김희범]] · [[김소영(정치인)|김소영]][br][[정관주]] · [[신동철]] · [[모철민]] · [[송광용]] ||
         ||<#ddd><-2> 정치인 || __[[이완영]]__ · [[이정현(정치인)|이정현]] · [[김진태(정치인)|김진태]] · [[이만희(정치인)|이만희]] ||<#ddd> 기타 || ^^故^^[[이상달]] · ''[[김해호]]'' · ''[[조한규]]'' · [[정규재]] [br] [[최순천]] · [[정우(배우)|정우]] · [[신주평]][br][[조의연]] · [[정원(승려)|정원]] · [[이영복]] · [[린다김]] ||
         ||<#5c6bc0><-2>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특검|{{{#white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3> [[박영수(법조인)|박영수]] · [[이규철]] · [[박충근]] · [[이용복(법조인)|이용복]] · [[양재]] · [[윤석열]] · [[어방용]] ||
         ||<-6> [[박근혜정부]] · [[새누리당]] · [[친박]] · [[미르재단]] · [[K스포츠재단]] · [[더블루K]] · [[비덱]] ·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 [[팔선녀(단체)|팔선녀]] ·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 [[삼성그룹/비판 및 문제점#s-10|삼성그룹]]([[삼성전자 승마단]]) · [[국민연금공단]] · [[이화여자대학교/사건사고|이화여자대학교]] · [[영세교]] · [[알자회]] · [[고령향우회]] · [[통일교]] · [[일베저장소]] ·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 · [[대한민국 엄마 부대|엄마부대]] · [[박사모]] · [[아프리카TV/사건사고#s-1.10|아프리카 TV]] · [[주갤러리#s-2.5|주갤러리]] · [[JTBC]] · [[회오리축구단]] · [[워마드]] ||
  • 이헌일 . . . . 13회 일치
         * 1930년 2월, [[대륜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 우현보통학교]] 졸업.
         * 1936년 2월, [[경북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고등보통학교]] [[졸업]].
         * 1940년 2월, [[연세대학교|경성 연희전문학교]] 문과 [[학사]].
         * 1956년 2월, [[대한민국 국방대학교|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분류:1917년 태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희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육군 장교]][[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광복군]][[분류: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이현우 (가수) . . . . 13회 일치
         그는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1988년 [[미국]] [[뉴욕주]] [[뉴욕 시티]]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로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89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에 잠깐 놀러 왔다가 당시 [[가수]] [[강수지]]의 소속사 매니저의 소개를 받고 1990년 10월에 실험적인 [[테크노 팝|테크노]] [[댄스 팝]] [[대중음악|음악]] 장르 곡인 데뷔곡 《꿈》이 수록된 《12 Inch Dance Version》이라는 싱글 [[음반]]으로 첫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 1집 [[음반]] 《Black Rainbow》로 정 데뷔하였다.
         * 《[[수요미회]]》[[tvN]]
         * 《[[조용한 사]]》[[올리브 네트워크|Olive]]
         * [[웅진품]] 쑥의 향기 ([[2001년]])
         *[[농심]] 안성탕면 ([[2017년]]) (fest.[[TvN]] [[수요미회]] 팀)
         *[[롯데GRS]] 엔제리너스 커피 ([[2017년]]) (fest.[[TvN]] [[수요미회]] 팀)
         *[[동서품]] 맥심 모카골드 ([[2019년]]) (내레이션 & fest.[[기안84]])
         * [[미국]] [[워싱턴 D.C.]] 위트 고등학교 졸업
         * [[미국]] [[로스앤젤레스]] [[:en: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오티스 미술디자인대학교]] 중퇴
         *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학사
         * [[경원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미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미국의 개신교도]][[분류: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문]][[분류:경원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라크 전쟁 반전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전지수 . . . . 13회 일치
         | 학력 = [[한국체육대학교]]
         * [[대구파동초등학교]]
         * [[덕화중학교|덕화여자중학교]]
         * [[정화여자고등학교]]
         * [[한국체육대학교]]
         * [[한국체육대학교|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덕화중학교 동문]][[분류:대구파동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정영삼 . . . . 13회 일치
         | 고등학교 = [[계성고등학교]]
         | 대학교 = [[건국대학교]] (2004-2007)
         == 출신 학교 ==
         * [[대구대성초등학교]]
         * [[계성중학교]]
         * [[계성고등학교 (대구)]]
         * [[건국대학교]] 학사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대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조응천 . . . . 13회 일치
         || '''최종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하고 같은 대학에다가 같은 과 출신이다.] ||
         1962년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본인 말로는 당의 매니저, 셔터맨을 도맡았다고 한다. 실제 총선 후보 시절 직업란에 '''별주부짱 매니저'''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에 [[기독교방송|CBS]] 변상욱 기자가 김용민의 팟캐스트 관훈나이트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http://www.podbbang.com/ch/9954?e=21859559|조응천 씨가 횟집 이름]]을 '''[[정윤회|정윤횟집]]'''으로 지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주위에서 '''"그러다 너 죽는다"'''라고 뜯어말렸다 전해진다--
         이후 [[이동형]]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전 [[새정치민주연합]] 총무본부장과 함께 출연해서 2탄(?)도 공개했는데 한 술 더 떠 [[http://www.podbbang.com/ch/4362|'''십상스시''' 라고 지으려고도 했다]]고 한다. 이 이름은 [[십상시|십상]][[스시]]라고 하면 해물 음점인데 [[초밥]]으로 메뉴가 한정될 것 같아서 그만 뒀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이것도 주위에서 뜯어말린 거 같은데...-- 본인이 [[청와대]]에서 당한 것이 하도 억울해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다.
         선거 결과를 뒤집은 그 투표함은 주소지는 [[남양주시]]로 되어 있지만 타지에서 생활하는 관외 유권자들의 표를 모아놓은 사전 투표함이었다고 한다. 조응천 후보가 본인이 이겼다는 소을 들었을 무렵, [[새누리당]]의 심장수 후보는 [[설레발|자기가 이긴 줄 알고 미리 당선증 받으러 가던 길이었다]]고(...). ~~[[안습]]~~[* 여담으로 심장수는 8년 전인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며 출구조사에서는 앞섰지만 개표 결과 당시 현역 의원인 최재성 전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더욱이 심장수는 조응천의 대학 선배이자 검찰 선배이기도 했기에 더욱 패배의 충격이 컸을 것이다.]
         [[일베]] 용어를 잘 알고 있으며[* 특히 '레이디 [[가카]]'(= [[박근혜]])라고 쓰는 일은 많지만 '레카'로 줄여 쓰는 경우는 일베 외에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용어이다.][* '내일 오전 레카가~걱정하면 좋지 '''않겠노''' '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않겠'''노'''를 쓰고 있으며 일베 표현에 맞춰서 일부러 잘못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다.] [[정게할배]]들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318716667084&id=100008669135751|페북으로]]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439779988311&id=100008669135751|일베 드립]]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정도다. 이후 일반인에겐 생경한 일베드립을 친 것에 대해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488903316732&id=100008669135751|양해를 구하였다]]
          그리고 2018년 1월 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지난달 22일 조 의원에 대해 일부 공소권 없음, 일부 무혐의 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같은 혐의로 피소된 조 의원의 당시 비서관은 벌금 100만 원에 약 기소했다. [[http://v.media.daum.net/v/20180108190034848|*]] 그러나 [[김장겸|지목된 당사자]]는 별도로 조응천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였고 ~~MBC 사장직에서 쫓겨난 뒤에 치러진~~ 1심 재판에서 조응천 의원이 그 당사자에게 500만 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31426001&code=940301|*]]
          * 많은 사람들이 검사,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맡은 경력으로 인해 법조인으로 인하고 있어 묻히는 느낌이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첫 현직 [[자영업자]] 출신 국회의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 중에는 [[자영업자]] 출신 의원이 몇몇 있다.] [[자영업]]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 세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 자영업자들을 위한 법안에도 적극 매진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친 바 있다. ~~법조계에서 좀 날리다가, 먹는 장사로 업종을 바꿔 보니 녹록치가 않더라고~~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00655&CMPT_CD=MSUB1_2015#cb|##]]
          * [[김동철]] 의원과 같은 [[서울대학교]] 법학 출신이다.
          * [[마포구]]에 영업 중인 음점 별주부짱을 접는다는 소문이 돌았고 또 접을 예정이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으나, 2016년 6월 29일에 올라온 팟캐스트 "정치, 알아야 바꾼다!"의 코너인 청정구역 첫 회에 출연하여 그건 오보라고 밝혔다. ~~임대 계약이 내년까지라서 못 떠난다고...~~ 영업을 계속 한다고 짤막하게 홍보(?)하였다. 하지만 동년 10월 27일 [[SNS]]를 통해 별주부짱을 접는다고 알렸고, 11월 4일, [[SNS]]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해 조촐한 폐업을 가졌다.
  • 진학교 . . . . 13회 일치
         진학교(進学校,しんがっこう)란, 대학입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많고, 학교 측에서는 그에 대한 준비가 갖추어진 학교, 대학입시 분야에서 실적이 좋은 학교(명문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는 것)를 뜻한다. 고등학교 입시가 있으므로 중학교에 대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2ch의 속어로는 ‘자칭 진학교(自称進学校)’ 라는 것이 있다. 진학교를 자칭하고 엄격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정작 그 실적은 진학교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학교를 조롱하는 말이다.
         학교학교는 모두 진학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존재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듯. 굳이 말하자면 명문학교라고 할 수 있겠지만.
  • 최운정 . . . . 13회 일치
         | 학력 = [[고려대학교]]
         2015년 7월 19일 [[LPGA 투어]] 마라톤 클래에서 156전 157기만에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olf&ctg=news&mod=read&office_id=081&article_id=0002582231 최운정 LPGA 투어 마라톤 클래 우승, 156전 157기]</ref>
         == 출신 학교 ==
         * [[세화여자중학교]]
         * [[세화여자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재학 중
         * 2012년 : LPGA 매뉴라이프 파이낸셜 클래 준우승
         * 2013년 : LPGA 투어 미즈노클래 준우승
         * 2015년 : LPGA 투어 마라톤 클래 우승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LPGA 투어 골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골프 선수]][[분류:세화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트로피코 4/진영 . . . . 13회 일치
          * 충분한 량공급
          * [[트로피코 4/칙령#s-2.7|민중을 위한 량]] 칙령 발표
         == 지인 ==
          * 고등학교 건설
          * 대학교 건설
          * 고등학교의 운영 계획을 신학 교육으로 변경 - 지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병사수 확대 - 지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범죄자 처형 - 지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모든 벌목소 철거 - 지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외국인 처형 - 지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조각상 건설 - 지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가장 존경심이 낮은 시민 체포 - 지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황연석 . . . . 13회 일치
         |청소년 클럽= [[청구중학교]]<br /> [[청구고등학교]] <br/> [[대구대학교]]
         |감독 클럽=[[청구고등학교]] (코치)<br />[[해성중학교]]<br />[[용남중학교]]<br>[[신갈고등학교]] (코치)<br>[[대전 시티즌]] (2군 코치)
         [[청구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해성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재 [[용남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고양 KB국민은행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서울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
  • 권영진 (야구선수) . . . . 12회 일치
         '''권영진'''(權寧珍, [[1984년]] [[11월 18일]] ~ )은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대구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팀의 좌완 투수로 활약했으나 [[연세대학교]] 입학 후 [[내야수]]겸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연세대학교]] 마운드가 아닌 중심타선에서 맹활약하였다.
         == 출신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졸업
         * [[대구중학교]] 졸업
         * [[대구고등학교]] 졸업
         * [[연세대학교]] 졸업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안동 권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김상훈 (1963년) . . . . 12회 일치
         |학력 = [[영남대학교]] 법학 학사<br />[[오리건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1969.03 ~ 1975.02 : [[대구서부초등학교]](56회)
         * 1975.03 ~ 1978.02 : [[성광중학교]]
         * 1978.03 ~ 1981.02 : [[대구대건고등학교]]
         * 1990년 : [[영남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94년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1년 중퇴[1학기 수학]
         * 2004년 8월 ~ 2006년 6월 : 미국 오리건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성곤 (1913년) . . . . 12회 일치
         * [[1922년]] 현풍보통학교 입학
         * [[1925년]] 달성보통학교 편입
         * [[1928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입학
         * [[1929년]] [[대구고등보통학교]] 편입
         *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 졸업
         1929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지만, 4학년 때 교내 [[항일 운동]]의 주동으로 퇴학당하여 다시 상경,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년]]에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뒤 대두유 비축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이후 [[1948년]] 금성방직을 인수한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에 화재가 난다. 그 뒤 [[1952년]]에 [[동양통신]]을 창간하였으며, [[1953년]]에는 연합신문을 인수, [[1956년]]에는 태평방직, 아주방직을 인수하는 등 기업가로서 성공을 이어갔다.
         [[1958년]]에는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소속으로 달성에서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4.19혁명]]으로 인해 한때 정계 은퇴하였으며 [[5.16 군사정변]]이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 그 이후 [[1959년]] 국민학원(現 [[국민대학교]])를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0년]]에 [[대한유도회]] 회장에 피선되었으며 [[1962년]]에 [[쌍용양회]]를 설립한다. 그 이후 [[1963년]]에는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으며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이 되었다. [[1965년]]에는 [[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 당무위원이 되었으며 성곡언론문화재단, 성곡학술문화재단을 창립하였다. [[1967년]]에 [[쌍용제지]]를 설립하였으며, 제7대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67년]] 김성곤은 [[길재호]], [[백남억]], [[김진만]]과 함께 [[민주공화당]] 내의 핵심인물이 된다. 그 이후 [[1971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1년]] [[10월 2일]]에 야당과 동조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10.2 항명 파동]]이라 한다. 그 이후 김성곤은 [[10.2 항명 파동]]의 주동인물로 지목받아 경위조사를 받고,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뒤 [[1973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을 지냈으며, [[1974년]]에는 대한양회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 취임을 했다. 그 뒤 [[1975년]] [[2월 25일]] 사망하였으며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분류:1913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김해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한민국의 제6대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제7대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제8대 국회의원]]
  • 김일엽 (야구선수) . . . . 12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대구)|경운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단국대학교]] (1998년학번) (중퇴)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고졸우선지명<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7260007 해외파들, 어떤 절차로 한국 팀에 입단했나?] - OSEN</ref> 을 받았으나 [[단국대학교]] (1998학번)에 진학했고 [[투수]] [[이승학]]과 함께 [[2001년]] 3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8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1년]] 외에는 제대로 뛰지 못했고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2003년]] 5월에 방출당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189169 김일엽 메이저 리그 꿈과 좌절] - 한국일보</ref>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남명학파 . . . . 12회 일치
         남명 조을 시초로 하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상도를 나눌때 그 오른쪽(서부)에 속하는 학파이다. 영남학파중 하나로 분류되며, 조선의 붕당에서 대북이라는 세력의 주축을 형성했다.[* 엄밀히 말해서 대북=남명학파는 조금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아주 틀렸다 볼 수는 없지만, 이이첨등 애초에 남명학파도 아니면서 대북인 경우도 있고, 곽재우등 남명학파이면서 대북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한 이도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이들이 남긴 저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나마 이들의 시초인 조의 사상을 그의 애제자인 정인홍이 정리한 남명집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마음을 기본적으로 하나의 지켜야될 '성'으로 보았고, 이것을 공성하려하는 잡념이나 악심들을 막는걸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학문적 특징때문에, 이들은 군사학 역시 해박하게 공부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시기 이들은 의병장으로써 크게 활약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학문의 시조인 조은 노장사상역시 받아들였다고 하며, 이때문에 퇴계학파로부터 이단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이들은 전술했듯이 이론만 왈가왈부하면서 정작 그에 따라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혐오했으며, 이때문에 조선 성리학 이론을 집대성하려한 퇴계 이황과 그의 학파와는 앙숙이었다.[* 조은 이기론에 관한 논쟁을 '입만 나불댈줄 아는 유생놈들이 실천에는 신경쓰지 않고 이론가지고만 키배하는 짓'정도로 여겼을 정도였다.] 이황은 조을 두고 '오만해 중용이란것을 모르고, 노장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했고, 이에 조은 '요즘 학자들은 물뿌리고 청소하는 법도 모르면서 천리를 논한다.'라고 그를 간점적으로 비꼬았을 정도였다.
         이러한 논쟁은 둘모두가 죽고난뒤 조의 제자인 정인홍이 이황과 그의 스승 이언적이 문묘에 모셔진것에 분개해 상소를 올리면서 더더욱 격화된다.
          '''... 신이 일찍이 故 찬성 이황이 조을 비방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오만하고 세상을 경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높고 뻗뻗한 선비는 중도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장(老莊)을 숭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운에 대해서는 청은(淸隱)이라 지목하여 한 조각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원통하고 분하여 한 번 변론하여 밝히려고 마음먹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 이황은 과거로 출신하여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은 채 서성대며 세상을 기롱하면서 스스로 중도라 여겼습니다. 조과 성운은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산림(山林)에서 빛을 감추었고 도를 지켜 흔들리지 않아 부름을 받아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황이 대번에 괴이한 행실과 노장의 도라고 인하였으니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더구나 조과 성운은 비록 세상을 피해 은거하였다고 하지만 선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달려가서 한 번 임금을 존중하는 뜻을 폈고, 누차 상소를 올려 정성을 다해 치안과 시무를 발씀드렸는데, 이것이 과연 괴벽의 도리이며 이상한 행실입니까. 그때 나이 이미 70이었습니다. 어찌 벼슬을 그만두어야 할 나이인데 출임하려고 하겠습니까. 수레를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실을 닦고 삶을 마친 것이 과연 중도에 지나치고 괴이한 행실을 한 것이며 세상을 경멸하는 노장의 학문이란 말입니까 신은 의혹스럽습니다.'''
  • 박성원 (소설가) . . . . 12회 일치
         |학력 = [[동국대학교|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소속 = [[계명대학교]] 교수
         1994년 [[문학과 사회]]에 단편 "유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영남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계명대학교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박홍우 . . . . 12회 일치
         대전고등법원으로 재직하던 2015년 2월 대전고등법원 제3행정부 재판장으로서 행정본안재판의 일부를 직접 맡았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 시절인 1995년 시위 진압과정에서 최루탄에 도망가다가 넘어져 질사 사망한 성균관대 학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망인의 위자료를 5000만원 인정한 것과 2004년 [[세녹스]]의 석유사업법 위반 사건에서 1심에서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을 들었다.<ref>[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509100056]</ref>
         * [[경북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976년]] <ref>[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16747 조선 포커스]</ref><ref>[http://www.kcllaw.com/prof/?no=667]</ref>
         * [[서울대학교]] 대학원 헌법학 전공 석사 [[1979년]] <ref>[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16747 조선 포커스]</ref><ref>[http://www.kcllaw.com/prof/?no=667]</ref>
         * [[서울대학교]] 대학원 헌법학 전공 박사 [[1986년]] <ref>[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16747 조선 포커스]</ref><ref>[http://www.kcllaw.com/prof/?no=667]</ref>
         * [[서울대학교]] 세계경제최고전략과정(ASP) [[2008년]] 수료, 16기 <ref>[http://www.kcllaw.com/prof/?no=667]</ref>
         * [[1991년]] ~ [[1992년]] 미국 [[코넬 대학교 법학대학원]] Visiting Scholar <ref>[http://www.kcllaw.com/prof/?no=667]</ref>
         * 피의자 및 피고인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6)
         * 헌법심판절차진행중 청구인 등의 사망과 관련되는 문제점 검토, 법과 인간의 존엄: 청암 정경 박사 화갑기념논문집, 박영사 (1997)
         2007년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시절 [[김명호 (1957년)|김명호]] [[성균관대학교]] 전 조교수의 재임용 불복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했다가 결과에 불만을 품은 [[김명호 (1957년)|김명호]] 전 교수로부터 집 앞에서 석궁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을 소재로 [[2011년]] 영화 《[[부러진 화살 (2012년 영화)|부러진 화살]]》이 제작되었다.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식극의 소마/184화 . . . . 12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3화]] |||| '''극의 소마/184화''' |||| [[극의 소마/185화]] ||
         [[극의 소마]] 184화. '''은혜'''
          * 소마는 하야마를 도발해 극을 개시하게 된다.
          * 소마와 쿠가 테루노리는 목욕하러 가는데, 쿠가는 소마가 극을 걸지 않은게 불만이다.
          * 소마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극을 걸지 않은 모양.
          * 아자미는 하야마야 말로 자신의 "진정한 미"에 필요한 인재라 보고 협력을 강요한다.
          * 하야마는 그렇게까지 승부하고 싶다면 단념하게 만들어주겠다며 극이 성립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90화 . . . . 12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9화]] |||| '''극의 소마/190화''' |||| [[극의 소마/191화]] ||
         [[극의 소마]] 190화. '''누구를 위해'''
          * 소마가 소스에 넣은 벌꿀은 "황벽나무 벌꿀"이라는 특수한 재료로 나키리 소우에는 그걸 찾기 위해 온 산을 뒤진 집념을 높이산다.
          * 소우에는 소마의 음에서 "요리인의 얼굴"을 보았다는 극찬을 하는데, 하야마는 소마가 그런 수준에 달했을리 없다고 부정한다.
          * 다시 극의 장소. 소우에는 판정에 앞서 자신의 판정기준에 대해서 설명에 들어간다. 일단 요리사로서 실력을 호각이며 이는 베르타와 실라의 표가 갈린 걸로 증명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한 그가 승부를 가르는 요소로 제시한 것은 "요리사의 집념". 그는 소마가 소스에 쓴 꿀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걸 간파한다. 하야마도 승부에 집착해서 놓치고 있었지만 그 꿀은 보통 것과 다른 묘한 향기를 품고 있다. 뭔가 "떨떠름한 맛"의 향인데.
          *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원점. 시작은 순수하게 시오미를 위한 것이었다. 소년시절부터 시오미의 조리실에 들락거렸는데 어린 그의 요리를 시오미는 진지하게 시해주고 칭찬도 해주었다. 하야마는 자연스럽게 토오츠키 학원의 정점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극을 위해 준비하던 요 며칠 간. 그는 요리에 쓸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 무심코 시오미의 의견을 구한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던 시오미는 없다. 그는 그것 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0화 . . . . 12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9화]] |||| '''극의 소마/200화''' |||| [[극의 소마/201화]] ||
         [[극의 소마]] 200화. '''특훈개시!'''
          * 연대극은 동료와 힘을 합쳐 조리하는 것도 가능하며 팀워크를 잘 활용한다면 십걸을 상대로 대등 이상으로 싸우는 것도 가능하다.
          이들은 합류해서 우선은 연대극이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설명한다. 연대극은 그저 다대다의 극이 아니라 "팀워크"가 개입한다. 기본적으론 1대1 승부를 연속으로 치르지만 동료가 시합하고 있을 때 서포트해주는 것이 허용된다. 따라서 팀원들은 서로가 서로의 셰프이며 스테프로 팀워크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소마 일행 개개인의 역량은 십걸에 미치지 못하나, 이런 팀워크를 발휘하면 십걸을 쓰러뜨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 도지마는 내일부터 이런 연대극에 대비한 특훈인 2vs2 홍백전을 치를 생각을 했고 미리 팀원의 궁합에 따른 조합도 생각해뒀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그런 적성 같은 건 개무시하고 "아무튼 여러번 할 거니까 대충 제비 뽑아서 하자"고 주장한다. 게다가 팀구성 보다는 "졌을 때 받을 벌칙"에 더 연연하는데. 결국 도지마가 격분해서 싸움으로 이어진다. 나잇살 먹을 만큼 먹은 아저씨들이 초딩처럼 유치하게 싸우기 시작한다. 도지마는 죠이치로가 귀국한 직후 짜증났던 점을 들먹이면서 공격한다. 일단 귀국했을 때 연락을 하긴 했었나 본데 딱 한 번했고 게다가 주소도 말하지 않았다. 도지마가 뭔가 메모하려고 했을 땐 멋대로 전화를 끊어서 소용이 없었다. 도지마가 항의하지만 죠이치로는 드립이나 치면서 흘려듣는다. 이렇게 싸운 결과 왠지 요리대결로 결판내자는 흐름이 되었고, 인원이 딱 떨어지질 않아서 원래 부를 예정이 없었던 에리나를 합류시키러 온 것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5화 . . . . 12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4화]] |||| '''극의 소마/205화''' |||| [[극의 소마/206화]] ||
         [[극의 소마]] 205화. '''행복의 창조자'''
          * 그로부터 몇 년 뒤, 도지마는 죠이치로에게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와 아이를 데리고 가게를 냈다는 소을 듣고 안도하게 된다.
          * 도지마는 학생들에게 언급하진 않았지만, 죠이치로가 사라진 이후 그도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 항상 괴메뉴의 괴롭힘 대상이던 [[시오미 준]] 조차 죠이치로가 사라진 충격을 받을 정도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도지마도 일류 요리인이었던 만큼 여러 레스토랑에서 초청을 받지만 어느 것 하나 응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도지마 또한 폐인이 될 것 같았는데, 그때 그를 일깨운 것이 센자에몬이었다.
          * 그로부터 몇 년 뒤. 토오츠키 리조트에서 근무하던 비서가 뜬금없이 "웬 남자가 도지마 씨를 찾는다"며 전화를 연결한다. 영문도 모른 채 전화를 받는 도지마. 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소이 두절됐던 죠이치로였다.
          죠이치로는 어쩌다 마주친 친구에게 얘기하듯 가볍게 근황을 보고한다. 벌써 예전에 일본에 돌아왔는데 애도 하나 있고 정집도 하나 열고 있다. 전파가 좋지 않아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지만, 도지마는 허둥대며 주소부터 불러달라고 전화에 매달린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휴 시간이 끝나간다며 적당히 끊으려 한다. 그때 죠이치로는 인사 대신 이렇게 말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10화 . . . . 12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9화]] |||| '''극의 소마/210화''' |||| [[극의 소마/211화]] ||
         [[극의 소마]] 210화. '''동서의 악연'''
          잇시키가는 기원을 따져보면 무라마치 시대부터 대대로 교토에서 음점을 해왔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들은 [[키노쿠니 네네]]의 키노쿠니 가문과 함께 교토를 동서로 양분하고 있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동의 키노쿠니, 서의 잇시키란 말이 있을 정도. 이 둘은 관서를 넘어 "일계 전체에서 양대 명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 네네는 그런 과거지사를 숨기지 않고 공개한다. 후배들은 둘이 소꿉친구 사이냐고 놀라길 먼저한다. 하지만 인정하는 잇시키와 달리 네네 쪽은 "우리집에서 객을 하며 수행한 것 뿐이지 소꿉친구가 아니다"라며 여전히 적개심을 드러낸다. 잇시키는 뭘 그렇게 맨날 자길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핀잔하는데, 네네는 그 이유는 알고 있지 않냐고 응수한다.
          소마는 삶기 까지 마친 소바 면을 망설임없이 펜에 던진다. 이 상 밖의 전개에 관객들 까지도 "기다려 설마"라고 말리다시피한다. 하지만 소마는 분명히 소바를 굽고 있다. 유키와 이쿠미는 온면인지 냉면인지 했더니 아예 구워버린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네네도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이해불능 상태에 빠진다. 기껏 28소바로 안정적인 길을 선택해 놓고서 그걸 굽는다? 소바면은 저런 으로 구우면 메밀의 향기가 날아가 버린다. "야키소바"라고 하긴 했지만 절대로 해선 안 될 형태인 것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21화 . . . . 12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20화]] |||| '''극의 소마/221화''' |||| [[극의 소마/222화]] ||
         [[극의 소마]] 221화. '''매운 맛 대전투'''
          * [[안(극의 소마)|안]]은 [[사카키 료코]]의 술을 먹고 만취할 정도로 술이 약했으나 "취할 수록 미각과 신경이 향상되는 특이체질"이라 심사엔 영향이 없다.
          * 후배들의 빈궁한 상상력은 심사의원들이 책임진다. 이스트와르와 샤름은 고추와 아프리카라는 키워드를 조합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라면을 창작할 생각"이라고 추측한다. 메구미가 어떤 요리가 될지 알거 같냐고 묻는데, 그들을 대신해 책임자인 [[안(극의 소마)|안]]이 나서는데... 형편없이 비틀거린다. 주정을 부린다고 하는게 맞겠다. 헤롱거리면서 쓸데없이 "알려주길 바라냐"며 성가시게 군다. 샤름이 아까 마신 [[사카키 료코]]의 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심사의원 주제에 술에 터무니없이 약하다. 다행히 안은 특수체질이라 취할 수록 미각과 신경이 예민해져 심사에는 영향이 없다고... 고 이스트와르가 주장한다. 영 말같지 않은 소리라 소마가 쉽게 믿지 않는다
          저런 설명이 있었지만, 후배들은 여전히 알쏭달쏭해한다. 우선 저렇게 대량의 고추를 사용하면 너무 맵지 않겠냐는 것. 물론 심사의원들은 세계 최고의 미가들인 WGO의 집행관이다. 그저 맵기만해서는 통할리가 없는데.
          애초에 그 셋이 작당해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던 것이다. 그는 [[나키리 아자미]] 총수를 낚는 작전이 잘 됐다며 웃는다. 다음으로 연락한 멤버는 쿠가. 이쪽도 잇시키가 손을 써뒀다. 진작부터 잇시키를 통해 소을 접하고 있던 그는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이 [[미마사카 스바루]]였다. 이쪽은 잇시키와는 연관이 없었지만 소마에게 개인적인 빚이 있다고 승락한다. 전화를 받은 시점부터 바로 십걸 타도를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개시.
          단칼에 거절하는 메기시마. 소마와 메구미의 분위기가 순간에 썰렁해진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3화 . . . . 12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2화]] |||| '''극의 소마/233화''' |||| [[극의 소마/234화]] ||
         [[극의 소마]] 233화. '''성장의 증명'''
          * [[나키리 아자미]]가 [[나키리 센자에몬]]을 상대로 "토오츠키 92기는 센자에몬이 선별한 옥의 세대"라고 꼬집고 있는 동안, 극회장에선 격전이 이어진다.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 그리고 소마는 환상적인 호흡으로 상호의 서포트와 자신의 조리를 완벽하게 양립해간다. 그 모습에는 상대인 십걸 측도 꽤 인상적인 듯, 심사의원 샤름, 이스트와르, 안도 오래 함께 한 숙련된 주방 같고 이정도 연계라면 십걸 측이 패널티를 진 걸 수도 있다고 극찬한다.
          * 타쿠미가 주재료인 소고기 조리에 들어가는데 얇게 채친 쇠고기를 참기름에 볶으며 물과 간장, 설탕과 채친 성강을 투입한다. 그건 일의 조리법인데 [[사이토 소메이]]가 알아보고 [[시구레니]]를 만드는 거라고 설명한다. 생강을 더한 조림의 일종으로 농후하고 달면서도 생강의 강렬한 악센트가 포인트. 동생인 [[이사미 알디니]]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관건일 거라고 첨언한다.
          * 이 시구레니는 알디니가 스타지엘을 수행했던 요정 "후지사메"에서 익혔다. 후지사메에선 계절 회의 마무리 요리로 밥과 된장국, 절임에 더해 이것을 냈는데 특히 시구레니가 인기가 많았다. 선물로 따로 요청 받을 정도로 호평인걸 보고 타쿠미도 슬쩍 맛을 보는데, 그 맛에 깜짝 놀라서 이걸 만드는 기술을 반드시 훔쳐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기회가 생겼다. 어느날 후지사메의 주인이 그를 부르더니 왜 자기 당의 시구레니에 "바늘썰기"한 생강을 넣는지 아냐고 운을 띄웠다. 바늘썰기는 보통 채치기 보다 압도적으로 가늘게 썬 것을 말하는 것. 그는 다소 두서없이 그렇게 해야 시구레니 전체에 생강의 풍미가 퍼진다고 알려주는데, 이 기술을 먼저 익히지 않고는 다른 기술을 훔치고 어쩌고도 없다고 조언했다. 주인장이 타쿠미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슬쩍 조언을 해준 셈이다.
          * 그 후 타쿠미는 보란 듯이 그 기술을 훔쳐냈다. 이 극회장에서 그 기술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타쿠미가 눈부신 속도로 생강 바늘썰기를 시연하자 언제나 반역자를 야유하던 관중석이 쥐죽은 듯 고요했다. 심사의원 안은 "어메이징"이란 표현으로 아름답고 섬세하고 대단하다는 극찬을 남겼다. 대호평의 바늘썰기 이후 타쿠미가 착수한 것은 밀가루 반죽. 피자 도우를 만드는 공정이었다. 시구레니를 토핑으로 쓴 피자가 타쿠미의 계획. 이 역시 기대가 동료들과 심사의원으로부터 기대가 된다고 격찬을 맏는데, 왠지 동생 이사미만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오중기 . . . . 12회 일치
         || '''최종 학력''' || [[영남대학교]] [[철학]] 학사 ||
         || '''약력''' ||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특별보좌관[br]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br]영남대학교 총동문회 이사[br][[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br][[청와대]] 선임행정관 ||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생으로 [age(1967-07-23)]세의 젊은 나이가 강점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두 번의 대선 동안 경북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신뢰를 쌓아 2017년에는 대구경북 당직자 중에서 유일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학창시절에는 [[대동중학교(경북)|대동중학교]]와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6년 내내 반장을 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4.19혁명론'이라는 책을 보고 선생님께 '4.19는 의거인가요? 혁명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가 핀잔을 들었는데, '''정의'''라는 단어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영남대학교]] 철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인생 망친다'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집회 현장에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책자를 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 철학과 학생회장, 문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구경북지역대장까지 맡았다. 결국 탄압이 심하던 당시,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고 7개월 가량 도망다녔으나 붙잡혀 구속되었다.--잡히지 않기 위해 여장까지 했다고 한다.-- 몇달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3년에 특별복권되었으나 전과가 남았다.
         경북도당위원장 경선을 앞둔 2016년 8월 4일 오후 10시 30분께 대구 북구의 한 음점에서 민주당 지역위원회 간부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5만원 상당 음물과 현금 5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정당법 위반으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16/0200000000AKR20170216180200053.HTML|관련기사]] 당세가 약한 경북지역 특성상 고생하는 지역위원회에 대한 격려 및 경비 지급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당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사려깊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 이성구 (1942년) . . . . 12회 일치
         * [[대구공산초등학교|공산국민학교]] 졸업
         * [[경운중학교 (대구)|경북중학교]] 졸업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공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민주자유당의 정치인]][[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영천 이씨]][[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이정훈 (1963년) . . . . 12회 일치
         *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9년 ~ 2012년)
         [[2008년]] 시즌 후 [[LG 트윈스]] 코치에서 물러나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고<ref> [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1270041 이정훈 전 LG 코치, 북일고 야구부 감독 취임] 《Osen》, 2008년 11월 27일</ref>, [[2012년]]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돌아와 유망주 육성을 담당하고 있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진학했다.
         은퇴 후 도미하여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한화 이글스]]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코치로 활동했고,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005년]] 시즌 후 [[LG 트윈스]]에 영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48264 한화 이정훈 주루코치 LG로] - 대전일보</ref> [[2008년]]까지 [[LG 트윈스]] 코치를 역임한 후,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9년]] 제 6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2009년]] 제39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등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587634 <고교야구> 이정훈 북일고 감독 "이제 시작이다"] 《연합뉴스》, 2009년 4월 2일 작성</ref>
         [[2012년]]에는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직을 [[이강돈]]에게 넘기고, [[한화 이글스]]와 2군 감독 계약을 체결하여 2013 시즌부터는 2군 감독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KBO 신인상 수상자]][[분류:KBO 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이종화 (1949년) . . . . 12회 일치
         |학력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 봉화내성초등학교
         * 1962. 03. 02~1965. 02. 25 : 오성중학교
         * 1965. 03. 02~1968. 02. 25 : 대구고등학교
         * 1968. 03. 02~1975. 02. 25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 1975. 03. 03~1982. 02. 25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후임자 = [[배광]]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내성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오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이창동 . . . . 12회 일치
         *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학사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영화계로 들어선 이후에는 소설보다 영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를 통해 [[영화 감독|감독]]으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내놓은 영화 《[[박하사탕]]》은 1999년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오아시스’ 이창동―감독상·문소리―신인상 등 5관왕…베니스 영화제 쾌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18051|출판사=국민일보|저자=이광형 기자|날짜=2002-09-09}}</ref>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영화제]]에서 [[중화민국|타이완]]의 영화 배우 [[수치 (배우)|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창동 감독 장편 부문 심사위원 위촉… “칸에서 나의 국적은 영화”|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514004092&subctg1=15&subctg2=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09-05-14}}</ref> 2010년에 열린 50회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시 (영화)|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2001년]]~)
         * 영양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교사([[1981년]]~[[1986년]])
         * 2007년 제10회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감독상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감독}}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9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수훈자]]
  • 장우석 . . . . 12회 일치
         *[[대구광역시]] [[효신초등학교]] 졸업
         *[[대구광역시]] [[청구중학교]] 졸업
         *[[대구광역시]] [[영진고등학교]] 졸업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95학번)
         *경북산업정보전문학교 웹멀티미디어과정 수료 (3기)
         [[1977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음력 [[1976년]] 11월 20일)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경북산업정보전문학교 웹멀티미디어과정 3기를 수료했다.
         [[2004년]] 대구 평화영화제를 시작으로 대구 5.18영화제, 앞산달빛 마을영화제, [[영남대학교]] 북한영화제 등 여러 지역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를 지냈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50515.010350815480001 장우석 독립영화 감독·물레책방 대표, 10월항쟁·위안부 할머니 관련 다큐 제작], 《영남일보》, 2015.5.15.</ref>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영진고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효신초등학교 동문]]
  • 저변교 . . . . 12회 일치
         번역하자면, 조금 옛날 속어로 하자면 ‘똥통 학교’. 요즘 인터넷 속어로 하자면 ‘막장 학교’ 정도가 될 것이다.
         || 이런 학교(…) ||
         저변교(底辺校,ていへんこう)란, 밑바닥(底辺,저변)에 있는 학교라는 뜻이다. 본래 저변은 수학용어이지만, 속어로서 저변은 사회의 하층을 뜻한다.
         주로 고등학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가 있기 때문에 그 특성상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정한 수의 입시 낙오자가 나타나게 된다. 때때로 재수를 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를 재수하기에는 주변과의 연령차상 다소 곤란하기도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저변교를 가는 경우도 있다.
         진학을 목적으로 하여 실적을 얻는 학교인 진학교와는 반대로 저변교는 그 자체가 ‘되도록이면 진학하고 싶지 않은 학교’로 취급받는다. 일단 교육환경이 나빠서, 학생들이 대부분 학력이 없어서(고등학생인데 분수 계산을 하지 못한다 등) 교육의 질이 해당 단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낮다. 물론 비행청소년이 넘쳐나고, 심지어 학교가 평판이 좋지 않다보니 취업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이유가 있다.
  • 정성현 (배구선수) . . . . 12회 일치
         | 출신 학교 소속 연도 =
         | 출신학교 = [[대구서부초등학교]]</br>[[성지중학교 (부산)|성지중학교]]</br>[[성지고등학교 (부산)|성지고등학교]]</br>[[홍익대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성지중학교 (부산) 동문]][[분류:성지고등학교 (부산)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진격의 거인/86화 . . . . 12회 일치
          *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크는 부모님을 배신, 당국에 그리샤를 비롯한 엘디아 복권파를 밀고하고 일당은 "낙원"으로 끌려가 인거인이 될 위기에 처한다.
          * 공적으론 다이나 한 사람만 남은 걸로 되어 있지만 수용구에 잠복한 채 왕가의 비밀을 지키며 엘디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 조직은 전원이 "낙원"으로 보내지는데, 이건 이들을 파라디섬을 영원히 방황하는 "인 거인"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 악마의 자 ===
         베르톨트가 언급한 "악마의 자"이나 악마의 민족이란 표현의 정체가 밝혀졌다. 이는 마레 측의 표현으로 오랜 세월 거인의 힘을 앞세워 학살을 자행한 엘다이 인들을 지칭하는 것.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마레의 전사는 엘디아인을 대상으로 모집했으니 베르톨트와 라이너도 "악마의 자"의 피가 흐르는 셈이다.
         한편 지크를 비롯한 작전 관계자들은 모두 "엘디아는 악마의 자이며 멸망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걸로 보이는데 지크가 훗날 배신하는 것 등을 보면 고도의 세뇌가 가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이나가 가져온 거인대전의 정보도 날조를 의심할 수 있는데, 정작 벽 안에 있는 레이스 왕가는 분명 시조 거인의 힘을 이어받았을 것이며 역사의 모든 기억이 있을 텐데 깊은 죄의을 가지고 있고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말로 엘디아인이 대륙에 번영을 가져온 거라면 왜 그런 죄의에 시달리는 걸까?
         유미르는 원래 마레에서 사는 엘다이인이었으나 "낙원"으로 보내져서 인거인이 되는 형벌을 받았던 것. 그 상태로 파라디 섬을 배회하다가 시조 거인 탈환 작전을 위해 침투했던 라이너 일행과 조우, 마르쉘을 잡아먹고 자아를 되찾은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제 2의 인생"의 의미였다.
         거인화 능력이 어떻게 아홉개로 나눠질 수 있었냐는 것도 관심거리. 작중 밝혀진 방대로라면 거인화 능력은 1대1로 계승되는 것만 가능하다. 단순히 거인화 약물을 가진 것 뿐이라면 지성을 갖추고 거인화를 컨트롤하는 거인은 될 수 없으므로, 어찌됐든 유미르 혼자서 여덟명의 거인을 추가로 만드는건 불가능해 보인다.
         여기엔 "유미르는 직접 거인을 낳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설도 나오고 있다. 유미르가 여성으로 나오고 스스로 거인화 능력이 있는 인간을 낳은 거라고 한다면 몇 명으로 늘어나든 문제는 되지 않기 때문. 하지만 거인화 능력이 유전되는 거라면 레이스 왕가가 전대 계승자를 잡아먹는 과격한 방을 쓸 필요도 없다.
  • 진창현(음악인) . . . . 12회 일치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깎아 고무동력기를 만드는 등 손재주를 발휘했고, 이후 고향에서 약장수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현악기의 매력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소학교]] 4학년 때 [[중일전쟁]]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와 교사로 부임한 아이카와 키쿠에(相川喜久衛)가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기초적인 바이올린 연주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모습을 못마땅하게 봤고, [[경찰|순사]]가 될 것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교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중학교]] 과정을 끝마치기 위해 [[후쿠오카]]로 건너가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는 고학을 했다.
          * 혼자서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막노동과 바이올린 제작으로 소일하다가 [[1961년]]에 일본인 여성 나미코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 진창호와 차남 진창룡은 각각 현악기 제작자와 현악기용 현 제작자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자서전에 의하면 바이올린 제작을 위한 연장들을 찾기 위해 골동품 가게를 전전하다가 가게를 보고 있던 나미코를 처음 만났다고 하며, 가난한 조선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처음에는 결혼 승낙을 받기 어려웠지만 예전에 근무했던 건설 회사 사장이 장인에게 사위의 인품을 칭찬해 주면서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미코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할 때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 으로 이남이(李南伊)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일본인임에도 조선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아이카와는 교편을 잡으면서 병역을 피할 수 있었지만, 불과 2년 뒤 현역병으로 소집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편지를 통해 소을 주고받았지만,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는 소을 들은 뒤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창현은 이후 일본에서 현악기 제작자로 성공한 뒤 아이카와의 친족들을 수소문해 만나기도 했고, 죽기 직전까지 [[사이타마]]의 혼조 시에 있는 아이카와의 묘지를 정기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후지테레비의 드라마에서도 꽤 비중있는 인물로 나온다.
          * 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1970년]]의 한국 방문에서 당한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는지, 자서전에도 그 경위를 상세하게 적어놓고 있다. 일본으로 떠난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가난했던 삶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충 조사를 마무리지은 뒤 회비를 자신에게 모두 떠넘겼다거나 1976년에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다시 귀국했을 때 자신이 만든 악기가 위조품으로 간주되어 반입 불가를 당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어서 당시 한국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한국이 [[민주화]]되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념적 재단 같은 편파적인 잣대가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 국민훈장을 수상하면서 공적으로도 명예회복을 이루었다. 말년에는 한국 언론들과 자주 인터뷰나 대담 등을 가지기도 했고, 생전에 마지막으로 언론과 접촉한 것도 타계 열흘 전인 5월 3일에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이 병상을 찾았을 때였다.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12회 일치
         학교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예상 밖의 것을 발견했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철 울타리 너머에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가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하여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다. 생존자였다.
         우리 학교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업을 중지하기는 커녕 야간자율학습도 그만두지 않았다. 이유는 교감이 "'''이럴 때일수록 더욱 면학에 전념해야 합니다! 6.25 때도 학교는 닫지 않았습니다!"'''라고 열광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걸 눈치챈 가족들은 등교하지 않거나, 등교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고작 1/10 정도 밖에 되지 않게 되었는데도 교감은 열성적이었다. 심지어 선생들 까지도 학교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교감은 "감독을 쉽게 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마지막 야간자율학습 때는 딱 1개 교실에 등교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자신이 직접 감독을 했다.
         그러다가 저녁 10시 쯤, 학교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막 들려왔다. 아마 사태가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좀비에게 습격당하는 것이 빈발하게 되었을 상황일 것이다. 교감은 얼굴이 새하얗게 되더니, 벌떡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교에는 수십명 가량의 학생만 남겨졌는데, 이 지경이 되서도 야간자율학습에 보내는 부모를 둔 녀석들인 만큼 다들 조금 무기력한 데가 있어서 다음날 대낮이 되도록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걸 깨닫고 하나 둘 무단으로(?) 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도 물론 돌아오지 않았다. 얘들도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런 공부벌레들이 이런 좀비가 우글거리는 거리를 헤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고, 돌아갔다고 해도 집은 이미 안전한 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남아 있던 녀석들 가운데 반 이상이 조용히 학교를 나가기를 선택한 다음,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소도 없자 나머지 녀석들도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다만 민구는 애초에 나가기를 거부한 쪽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 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학교 자체는 작년에 야자탈출에 신경질적이었던 교감의 지시로 담벼락이 2미터 가까운 높이의 콘크리트 블록담으로 개수되어 있어 되려 어지간한 주택 보다도 안전했다. 넓은 학교에 평소에도 음울하고 조용한 공부벌레들만 몇명 있다보니까 소음도 크게 나지 않고, 벽이 높고 보안이 튼튼하다보니 피난처로는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 최민호(유도선수) . . . . 12회 일치
         ||<#131230> '''{{{#white 학력}}}''' ||<#ffffff> 모암초등학교[br]석천중학교[br][[진량고등학교]][br][[용인대학교]] 학사[br][[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br][[용인대학교]] 대학원 박사 ||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남]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남]]이다.]
         [[2012 런던 올림픽]]이 끝난 후 2012년 9월에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됐으며, [[2013년]] 말에는 [[용인대학교]] 교수로 정 임용됐다.
          * 이후 [[경북대학교]] [[대나무숲(대학교)|대나무숲]]에 당사자의 글로 추정되는 글이 올라왔다. 당시 여자친구에게 허세를 부려 봤다가 이 꼴이 나서 [[이불킥]] 수준으로 창피하다고 한다.
          * 시그니처 기술로는 속칭 말아업어치기로 불리는 변형 업어치기가 유명하다. 정 명칭은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Korean Seoi-nage, 혹은 Reverse Seoi-nage로 불리고 있다. 현역시절의 영상을 보면 동체급대비 압도적인 힘으로 일단 말리기만 하면 넘어가는 호쾌한 장면을 연출하는 기술.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12회 일치
         | 학력 = [[한국체육대학교]]
         [[세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2년 동계 올림픽|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과 [[한국체육대학교]] 3학년 때인 [[2006년 동계 올림픽|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2회 연속으로 3000m 계주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와 [[2004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2회 연속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005년]] [[중국]] [[베이징]]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 출신 학교 ==
         * [[대구용지초등학교]]
         * [[목일중학교]]
         * [[세화여자고등학교]]
         *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 심리학]] 박사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용지초등학교 동문]][[분류:목일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최준석 . . . . 12회 일치
         믿기 힘들겠지만, 입단 당시엔 100m를 12초에 끊는 호타준족형의 포수였다고 한다. 2017년 지금은 50m 12초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다 위에서 언급한 [[이대호]]와 같이 살던 시기에 거의 매일 [[야]]을 같이 먹으며 살이 쪄서 주루 능력은 많이 줄게 되었다. 2005년엔 그 당시 주전 [[최기문]]의 병풍사건 연루와 부상 등으로 출전 기회가 늘었지만, 포수가 아니라 [[지명타자]]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 해 [[526 대첩]]의 영웅으로, 9회초 11:11 동점 상황에서 [[신윤호]]에게 결승 2점 [[홈런]]을 뽑아낸 적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8홈런 42타점으로 거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시즌 초에는 연이은 부진으로 35억은 오버페이라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시즌 중반 이후 타격감이 살아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이자 이전의 비난은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시즌 후반들어 페이스가 떨어지는 바람에 시즌 종료 후의 성적은 극심한 타고투저였음을 감안하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지만 타율 0.286, 23홈런, 90타점으로 꽤 괜찮은 편. 4년간 35억이라는 가격에 관해서도 괜찮게 나온 시즌 성적과 더불어 계속되는 FA시장의 과열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 가격이면 납득할 수 있다는 의 재평가도 이뤄지는 중. ~~그리고 도루 쿠폰도 채웠다~~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이 전해진 가운데, 12월 4일 롯데 구단 측은 최준석, [[이우민]] 두 선수가 다른 구단과 계약할 경우 보상선수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art_id=201712041422003|관련 기사]]
         2018년 1월 12일 롯데가 넥센과 1+1년 10억원에 계약한 1루수 [[채태인]]을 싸인 앤 트레이드[* FA 선수가 원소속 팀과 FA 계약 체결 이후 바로 타 팀으로 트레이드하는 방. 번거로운 보상선수-보상금 조건을 피하기 위해 취하는 방이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현재 코치로 활동 중인 [[김태균(1971)|김태균]], [[홍원기]] 등이 있다.]로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96892|영입하면서]][* 롯데는 채태인의 대가로 좌완투수 [[박성민(1998)|박성민]]을 보냈다.] 최준석의 입지가 더 위태로워졌다. 게다가 롯데 측에서 [[http://sports.donga.com/3/all/20180111/88133959/3|최준석, 이우민과 계약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으며 [[FA 미아]]가 될 확률이 더 높아졌다.
          * 그 별명에 맞게 야심한 밤에 항상 야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롯데 1기 시절에 [[이대호]]와 [[룸메이트]]였고 [[이대호]]가 살찐 이유는 최준석과 같이 야을 먹은 이유도 있다고 한다. 사실 최준석도 포철공고 때는 100M를 11초에 끊는~~실화?~~ 호타준족 포수였다. 그래서인지 두산에 간 이후 이대호에게 장갑을 빌려줄 정도이며, 실제로 롯데 락커룸에 자주 놀러가서 이대호 배트를 많이 받아온다고 한다. 롯데 출신이다보니 롯데 고참들과도 두루두루 친해서 라커룸에 가는 것도 거리낌없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두산 시절에는 [[이대호]]와는 등번호도 10번으로 똑같았다. 승승장구에 출연해서 말한 바에 따르면, 롯데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될 때 일부러 이대호와 같은 등번호를 택했다고 한다.
          * 예전에는 [[정수빈]]과 한방을 쓰며 정수빈을 시켜서 야을 먹었다고 한다. 정수빈과 동갑인 신인 투수였던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의 체중을 늘리기 위해서 코치들이 일부러 방을 최준석과 같이 쓰게 했다고 한다. 둘이서 야도 많이 시켜 먹고 그랬는데 현실은...
          * [[강민호]]와 포철공고 선후배 사이인데[* 3년 차이라서 같이 뛴 적은 없었지만.], [[강민호]]는 고등학교 시절 최준석을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이 안되겠지만, 100m를 11초에 끊는 호타준족의 [[포수]]였었으니깐.[* 덤으로 이 시절에는 굉장한 훈남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또 다른 별명은 '''[[http://cfile225.uf.daum.net/image/121511404DB12A142256FF|장돈건]]''']
          * 《[[2015년|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15. 3. 23.)》행사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s-1|주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배지현|사회자]]의 "[[홈런]] 세리머니[* 각 루를 차례로 돌고난 뒤 홈 베이스를 밟을 때 하늘을 향하여 두 번 손짓.]의 의미가 혹시 경기 끝나고 [[족발]] 2인분?"이라는 질문에...[*스포일러 "[[중학교|중]]1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이 [[홈런]]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대답하여 빵터졌던 장내를 일시에 숙연하게 하였다.] [[https://youtu.be/11ez9dbOz94|백문이 불여일견(유튜브 링크)]] ...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 세리머니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407001&redirect=false|홍성흔과의 합작품.]] 원래는 홈런친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외부에 드러냄으로서 동료의 사기를 높이고 상대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고... 이후 세리머니 논란을 의했는지 대외적으로는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2016년부터는 세리머니를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kbotown2&id=2203353|안 하기로 결정했다.]]
  • 최채흥 . . . . 12회 일치
         ||<:> '''학력''' || 경주 동천초 - 포항중[* 경주중에서 전학]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 - [[한양대]]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시절에는 동기에 밀려 주로 1루수로 출장했고 고등학교 3학년때 3할 4푼 5리의 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http://www.hsbaseball.kr/player/daesang25]]] 그러나 1루수로는 특출난 성적을 내지 못하여 지명받지 못하고 한양대로 진학한다.[* 고교야구 팬이 아니라면 의아함을 느끼겠지만, 경기수가 적어 0.345의 타율도 높은 성적은 아니다. 그 해 [[http://www.hsbaseball.kr/record/batter_unity.htm|타율 40위이고]], 파워도 있는 편이 아니다.]
         한양대학교 진학 후, [[김한근]] 한양대 감독에게 투수가 아니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김한근 감독은 너를 투수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투수로 전업하여 1학년 때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팀의 마무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67.2이닝 동안 피홈런 없이 54삼진 6사구 16볼넷 평균자책점 0.93을 기록했다. 1학년이던 2014년부터 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는 팀을 17년만의 대통령기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투수상을 수상했고 바로 U-21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승선했다. 투수 전업 첫 해에는 평균구속이 130km/h 중반대에 불과했지만, 빠른 성장세로 평균구속을 10km/h 가까이 끌어올리면서 탈삼진 능력도 늘어나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2015년에는 27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활약했다. 2016년에는 학점 관리한다고 8월 이후에는 경기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 U-23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임지섭]]과 원투펀치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혹사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
         이렇듯 엄청난 퍼포먼스로 뛰어난 커리어를 쌓으면서, 대졸 선수들의 연속된 실패로 대학 졸업반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여론이 굉장히 부정적임에도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신인드래프트]]에 참가 예정인 투수 중에서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 [[안우진]]과 함께 전체 1번을 겨룰만한 선수로 거론되었다. 거기에 삼성이 이 해 1차지명 후보로 최채흥 외에 강력한 후보가 없었던 만큼, 지명 전부터 최채흥의 1차 지명은 기정 사실 수준의 평가를 받았고 2017년 6월 26일, 2018년 1차 지명에서 고향팀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9월 30일 대구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선발 [[윤성환]]이 5회에 수비도움을 받지 못하며 급격히 무너지면서, 추격조로 등판했다. 5회 2사 만루 상황에서 첫 타자인 [[최항]]에게 좌중간에 싹슬이 3타점 적시 2루타를 허용하며 분회계를 해버렸으나, 이 후는 침착하게 잘 막아내면서 2⅓이닝 동안 2탈삼진을 기록하는 준수한 투구를 해주었다. --상수야. 이게 다 너 때문에 벌어진 나비효과란다.--
         9월 25일에 7이닝을 소화하며 순간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18⅓이닝으로 늘어나자 구단측에서 노린것인지, 막판 순위싸움에서 요긴하게 기용하려고 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불펜으로만 등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28이닝으로 30이닝을 넘기지 않아 '''2019시즌 신인왕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는 강백호같이 눈에 띄는 특급 신인들이 많지 않아 올해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신인왕이 유력하다.]
         주목할만한 점은 9월 25일 복귀한 이후 시즌 끝날 때 까지 선발 1번, 구원 4번하여 총 5번의 등판에서 --분회계를 빼고-- 총 16⅔이닝동안 단 2자책만 했으며, '''방어율이 무려 1.08'''로 6월 8일 LG전까지[* 1군 엔트리 말소 이전] 6.35였던 방어율과 0.365였던 피안타율을 각각 3.21과 0.270으로 낮춘 점을 봤을때 [[양창섭]]보다도 내년이 더 기대케 되는 피칭을 보였다. ~~최채흥은 대졸인데 당연하지~~ 그리고 후반기 탈삼진은 무려 16개를 뽑는 동안 볼넷은 단 3개만 내주었다는 부분에서 내년을 확실히 기대하게끔 하는 투구를 보였다. 특히 투구폼을 교체한 이후 확실히 진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년 2019 시즌에는 큰 부상이 없는 한 [[양창섭]]과 함께 나란히 선발 로테이션에 들 가능성도 충분히 보인 9~10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빠른 년생]]이지만 중학교 시절 경주중에서 포항중으로 전학하면서 1년 유급해 이점이 없다.
         오해들을 하는 것이, 최채흥을 단지 흙수저 출신의 깜짝 활약 선수로 많이 인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틀린 것이 최채흥은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고교]]시절 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나, [[한양대학교|대학]]야구의 에이스 투수였고 대학야구 3대명문중의 하나인 한양대를 나왔으며, 대표팀 역시 아시아선수권 우승,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동메달, 23세 이하 세계선수권 3위 등을 이끌고 대표팀 역시 u-18,u-21,u-23 등 연령대 대표팀을 단계적으로 밟았을 뿐만 아니라 핵심투수로 활약하며 엘리트 코스는 차근차근 밟은 선수다. 오히려 대표팀 경력만 보면 또래인 95년생 동기들보다 화려하다.
  • 토리코/371화 . . . . 12회 일치
          * 그가 미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불과 4세 때.
          * 이미 처음 먹은 재 같은건 기억도 나지 않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건 "자기 안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 도저히 쫓아낼 수 없는 존재였다.
          * 자기는 누구이며 이 괴물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기를 되풀이하며 욕에 휘둘려 왔다. 운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세상의 재를 모두 먹어채운 뒤였다.
          * 이 세상엔 아직 아무도 모르는 맛이, 누구도 본 적도 없는 재가 있다는 귀띔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토리코는 "뭐든 욕 탓, 구르메 세포 탓만 한다"고 일갈하며 "너는 쓰레기고 인간은 모두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분노도 욕이 아닌 나의 것"이라고 비난한다.
          * 아카시아는 자신을 미신이라 칭하며 자신에게서 전우주 최고의 미가의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 그러나 토리코는 비웃으며 "삼류 미가의 냄새일 뿐"이라고 도발한다.
          * 그러나 토리코의 일갈대로 모든 것 욕 탓으로 돌리고 있을 뿐이다.
          * 토카게에서 소환되는건 아마도 세뇌했던 미회 간부들인 듯.
  • 토리코/385화 . . . . 12회 일치
          * 죠아는 미도라에게 공격을 부었지만 모두 실패. 오히려 모든 운을 스타쥰과 전투에서 쏟아부어 바닥난다.
          * 죠아는 운을 쥐어짜내 보지만 역부족.
          * 아무리 운을 짜내도 미도라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죠아는 스타준에게 모든 운을 써버렸다는걸 깨닫는다.
          * 플로제가 원했던 것은 단지 평화였다. "모든 사람들이 한 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
          * 미도라는 또 멍청한 짓을 했다고 죠아를 비웃으며 "아카시아가 널 구하러 오는게 마지막 운이냐"고 묻는다.
          * 그리고 토리코가 온 것은 미도라의 운. 죠아에겐 불운이 되었다.
          * 운을 소진한 죠아의 몸이 먼지로 변해간다.
          * 플로제의 꿈이란 바로 "가족과 함께 하는 사". 이것이 미도라의 "드링크"다.
          * 운이 소진된 죠아의 몸부림은 힘엇이 튕겨져 나간다. 미도라는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음에도 죠아는 저항 조차 하지 못한다.
          * 죠아의 리타이어. 묘사로 보아 운이 소진되어 자연소멸되거나, 운으로 방어를 못해서 헝그리 스페이스에 먹혀지는 느낌이다.
  • 함영준 . . . . 12회 일치
         |학력 = [[한양대학교]] 경영학 학사<br>[[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자녀 = [[함윤]], [[함연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오뚜기에 입사했다. 2000년 3월부터 2010년 오뚜기 사장이 되고 2010년부터는 회장이 되었다.
         * [[오산고등학교]] 졸업
         * [[한양대학교]] 경영학 학사
         *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 오뚜기품 부사장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강릉 함씨]][[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현제명 . . . . 12회 일치
         대구 대남국민학교와 [[계성고등학교|계성학교]]를 다녔고, 대구에 있는 제일교회에 들어가 교회 성가대에 입대하여 음악단원이 되었다. 이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음악 교육을 받았고 1923년에 졸업한 후 [[전라북도]] [[전주시|전주]]에서 신흥학교의 음악 교사로 활동했다.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계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이수하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창설하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 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한 조선문예회 정회원으로 가입하다가, 독립 계몽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친일 성향 단체인 대동민우회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총독부의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음악가협회를 해체하고 이후에도 시국대응전선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등에도 가입하면서 친일 행위를 하였던 전적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특히 친일 찬양적인 성향의 '''[[후지산]]을 바라보며'''에 작곡자로 개입하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가입해서 극우 보수파로 활동하여 반공, 반북 운동을 전개하였고 1946년에는 경성음악학교([[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전신)를 설립하여 교장이 되었다. 1953년 한국음악가협회 위원장,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영구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가 1960년 10월 16일 [[간경변]]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천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북대학교]] 교가, [[제일은행]] 시절 행가도 이 사람이 작곡하였다.
  • 홍상수 . . . . 12회 일치
         *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
         * 시카고 예술학교 예술학 석사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예술공예대학|캘리포니아예술공예대학]](California College of Art and Crafts)에서 학부 과정을 마쳤으며, [[시카고 예술학교|시카고예술대학교]](The 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연출한 단편 실험영화로 《개미 보는 여인》이 있다<ref name='kmdb' />. 에릭 로메르,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세잔|폴 세잔]]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학과 교수를 지냈으며<ref name='kmdb' />, 현재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영화전공 교수이다.<ref>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19001002&article_id=63886</ref>
         * 1997년~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
         * 2008년~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영화학과 교수
         * 1998년 제51회 [[칸 영화제]] 공부문《[[강원도의 힘]]》
         * 2006년 제9회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감독상 《[[해변의 여인]]》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감독}}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11회 일치
         신성로마제국 소속 국가들은 황제국 전용 디시전을 8단계까지 마치면 신성로마제국을 형성할 수 있다. 다만 황제자리는 군주국만 차지할 수 있다. [* 굳이 제국 소속 국가가 아니더라도 일단 황제국만 되면 자기나라를 제국령에 포함시키는 형으로 제국에 가입할 수 있다. 편입시킬때마다 쌓이는 제국권위 1퍼는 덤.]
         본격 자기가 안싸우고 자기 동맹이랑 자기가 동군연합한 국가들만 싸우는 국가. 헝가리랑 보헤미아를 동군연합하는 미션이 있으며, 이둘은 굳이 퍼유미션을 안받아도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1500년이전에 둘다 퍼유해버릴수 있다. 이후에 부르고뉴 분할 상속 이벤트등으로 세를 불릴 수도 있다. [* 단, 최신버전부터는 부르고뉴 상속방이 결혼국 70퍼, 카스티야 20퍼, 황제국 10퍼형으로 바뀌었다. 부르고뉴가 오스트리아를 자주 라이벌지정하지 않게 바뀐지는 한참됬으니 왠만해선 결혼은 해두자. 취향에 따라선 초반에 부르고뉴랑 동맹해 프랑스를 견제하는 방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최신버전에선 카스티야랑 사이가 좋으면 '''아예 카스티야에 합스부르크가 들어서는 이벤트도 생겼으니!''' 잘알아두도록 하자. 신대륙확장은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고 하기도 어려우니, 프랑스나 오스만등과 치고 받고 해서 구대륙쪽으로 확장하는걸 주력으로 삼자.
         ''' 평화란 전쟁사이의 휴기일 뿐이다. -루덴도르프 '''
         은근히 확장하기 어려운 국가. 이탈리아지방은 신롬소속이 대부분이라 그림자왕국 이벤트 뜨기전까지는 어렵고, 그외에 발칸반도에 있는 민지들은 플레이하다보면 알겠지만 짐짝인 경우가 상당하다(...) 거기다가 오스트리아랑 헝가리가 시작지점이든 플레이하다가든간에 적어도 1550년안엔 무조건 공화국을 라이벌지정하게 되있으므로, 충돌은 필연적이다. 아, 그리스지방쪽이랑 로도스노리고 전쟁질해대는 오스만은 덤이다(...)
         장미전쟁이 끝나면 정부체제가 고유 정부체제인 잉글랜드 왕정(English Monachy)으로 바뀐다. 효과는 행정 22렙이후에 뜨는 입헌 군주정이랑 비슷한 편.그외에 영토상황으론 백년전쟁도중이란걸 표현하기 위해 프랑스지방에 영토를 들고 있으며, 포르투갈이랑 시작시 동맹상태다. 근데 문제는 잉글랜드가 백날 힘을 써봐야 프랑스 육군을 절대 못이긴다는거(...) 플레이방이 둘로 나뉘는데, 우선은 대륙의 모든 영토를 프랑스에게 팔고(...) 조용히 민지 개척이나 준비하는 것과 속전속결로 프랑스를 처리해서 유럽 최강으로 나아가는것.
         우선 전자야 어렵지 않다. 어찌됬든 전자의 경우도 브리튼 섬 통일은 무조건 하게 되있기에 스코틀랜드를 독립보장하는 프랑스와의 전쟁은 불가피한데(...) 그냥 해군으로 틀어막으면 된다. 시작시기든 어떤 시기든 프랑스 해군은 절대로 잉글랜드 해군을 이길 수 없다는걸 프랑스에게 상기시키면서 도버 해협을 틀어막자. 단 한번이라도 프랑스 육군의 상륙을 막으면 스코틀랜드는 간단하게 잉글랜드의 맛집으로 변한다. 아일랜드야 뭐 9개왕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다가 서로서로 사이도 나쁘니 각개격파시키면 되고... 그 이후에야 천천히 민지 개척을 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민지 개척에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으므로 빠른속도로 북아메리카부근에 민지를 건설하자. 굳이 구대륙으로 가면서 프랑스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면 스웨덴 독립전쟁에 끼어들어 북유럽쪽으로 가면 된다.
  • 고아성 . . . . 11회 일치
         | 학력 =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휴학
         고아성은 6살 때인 1997년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외환카드 광고 아역 모델로 연예계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자체발광' 고아성 "은호원으로 희로애락 다 펼쳐…시즌2 희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26821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정현|날짜 = 2017-05-16|확인날짜 =2017-09-07}}</ref> 이후 그는 2004년 어린이 드라마 《[[울라불라 블루짱]]》의 타이틀롤을 맡아 배우로서 정 데뷔했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에서 박강두([[송강호]])의 딸 역을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대한민국영화연기대상 영스타상,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신인연기자상을 수상하였다.
         *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휴학
         | [[결혼 후에]]
         | 스틴<ref>{{웹 인용|제목=2010 미쟝센 단편 영화제 국내초청부문 - 스틴|url=http://www.msff.or.kr/2015/history/history_view1.asp?b_id=188&page=1|확인날짜=2016-01-09}}{{깨진 링크|url=http://www.msff.or.kr/2015/history/history_view1.asp?b_id=188&page=1 }}</ref>
         ! 시상
         | 제9회 [[디렉터스 컷 시상]]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여자연기}}
         [[분류:2004년 데뷔]]][[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
  • 곽성문 . . . . 11회 일치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사학 (학사)
         |후임자 = [[배영]]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선진통일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남조 . . . . 11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1944년 돌아와 경성여자전문학교(이화전문)에 입학하였다.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마산고등학교와 여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ref>이은영,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9 예술가 위한 공간 ‘예술의 기쁨’ 개관하는 원로시인 김남조], 서울문화투데이</ref>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숙》, 《잔상》으로 등단하였고, [[1953년]] 첫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초기에는 인간성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시풍을, 이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와 윤리 의을 표현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2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시인]]
  • 김동재 . . . . 11회 일치
         == 출신 학교 ==
         * [[계성초등학교 (대구)|대구 계성초등학교]](1973년)
         * [[경운중학교 (대구)|대구 경운중학교]](1976년)
         * [[경북고등학교]](1979년)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1983년)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김동한 (1919년) . . . . 11회 일치
          | 기타 이력 = 1940년 [[대구가톨릭대학교|경상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전문학사 출신 <br /> 1956년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출신 <br/> [[성직자]], [[천주교]] [[사제]], [[수필|수필가]], [[군인]] <br/> [[신민당 (1967년)|신민당]] 국가보건행정특보위원(1975년) <br /> [[한국가톨릭결핵시설연합회]] 회장
         그의 가계는 천주교 순교자 집안이었다. 할아버지 김보현 요한은 조선 후기였던 1868년 무진박해 때 체포되어 [[한성부]]에서 순교하였다.<ref name="한경1">[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21957741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분이었나 ] 한국경제 2009-02-20 </ref> 옹기장수인 아버지를 여의고 포목행상으로 살림을 꾸리는 어머니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ref name="한경1"/> 이후 [[대구가톨릭대학교|경상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 후 사제가 된다. 이후 그의 동생 [[김수환]]도 그의 영향을 받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로 진학하게 된다.<ref name="한경1"/>
         보통학교에 다닐 때 그와 그의 아우 [[김수환]]은 모친으로부터 나중에 신부가 되라는 권유를 받고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2170105 donga.com[뉴스]-“어머니 무릎서 신앙심 키웠다”<!-- 봇이 붙인 제목 -->]</ref><ref>[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2/16/200902160626.asp 고품격 콘텐츠페이퍼, 헤럴드경제<!-- 봇이 붙인 제목 -->]</ref>
         선종 당시 동생 [[김수환]]은 1983년 9월 말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체류하여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형 김동한 신부의 선종 소은 당시 로마에 체류중이던 [[장익 (성직자)|장익]] 주교가 직접 전했다.<ref>[http://www.kwnews.co.kr/view.asp?aid=209021900127&s=601 장익·지학순 주교 일화·사북 탄광체험 등 소개 강원일보]</ref> 형의 임종에 참석하지 못하였던 [[김수환]]은 귀국 후 김동한이 임종한 곳에서 며칠을 보냈다고 한다.
         [[분류:1919년 태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령]][[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함세웅]][[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구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
  • 김동호 (야구선수) . . . . 11회 일치
         2015년에 입단하였다. 신고선수에서 정선수로 전환된 건 이 때여서 공적인 입단년도는 [[2015년]]이다.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성광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
  • 김정재 . . . . 11회 일치
         ||<bgcolor=pink> '''{{{#0C0C0C 학력}}}''' ||<(><bgcolor=#F6EDF8> [[포항여자고등학교]][br][[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br][[미국]] 프랭클린피어스대학교 법학 박사 ||
         ||<bgcolor=pink> '''{{{#0C0C0C 소속위원회}}}''' ||<(><bgcolor=#F6EDF8> [[농림축산품해양수산위원회]] ||
         ||<bgcolor=pink> '''{{{#0C0C0C 약력}}}''' ||<(><bgcolor=#F6EDF8> 제20대 국회의원[br][[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br][[새누리당]] 부대변인[br][[서울특별시]]의회 시의원(재선)[br][[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
         1966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중앙초등학교, 동지여자중학교, [[포항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김정혁 . . . . 11회 일치
         || '''학력''' || 포항초 - 포철중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동국대학교|동국대]]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와 [[동국대학교|동국대]]를 졸업하고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에서 복무를 마친 후 [[삼성 라이온즈]]에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저러한 활약에 신고선수가 정으로 1군 등록이 가능한 [[6월 1일]]에 바로 정선수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1군에는 올라오지 않아 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감독님 한번 좀 써 봅시다~~ 1군에서 기용하기에는 수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로스터가 확장되는 9월에는 1군에 올라오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손목 부상으로 [[10월 4일]]이 되어서야 1군에 등록되었다. 정규 시즌 게임이 고작 3경기가 남았을 때 올라온 것. [[안습]].
         시즌 초반에는 3루수로 출장하다가 [[정현(야구선수)|정현]]의 3루 출장 비율이 늘면서 1루수로 출장했다. 8월 초반부터 결장하면서 2군 시즌을 마쳤지만, 0.302의 타율로 2011년 이후 3년 만에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10월 8일 [[조동찬]]이 허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정선수로 재전환됨과 동시에 3년 만에 1군에 올라왔다.
         6월 4일 한화전에서 [[조동찬]] 대신 3루 대수비로 출장해 7회 말 [[송창(야구선수)|송창]]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6월 14일 대구 SK전에서 솔로 홈런을 쳤다. 시즌 2호 홈런. 그러나 팀 타선이 '''살인적인 물 타선'''을 보여 준 끝에 4:1로 패했다. 그나마 김정혁이 홈런을 쳐서 영봉패를 면한 것.
          * [[강민호]]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때 친구로, 김정혁이 고교 시절 1년 유급하는 바람에 동기는 아니다. 고교 때의 유급으로 1살 어린 [[배영섭]]과 대학 동기가 되었다. 또한 김정혁도 [[배영섭]] 못지 않게 타격폼이 특이하다. 그래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서는 [[사무라이]]라고 불린다.
  • 김태한 . . . . 11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초등학교 (대구)|대구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 [[계명대학교]]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동 김씨 (신)]]
  • 김형렬 (1959년) . . . . 11회 일치
         * 대구영선초등학교(1965년 3월 ~ 1971년 2월)
         * 대구중학교(1971년 3월 ~ 1974년 2월)
         * 대륜고등학교(1974년 3월 ~ 1977년 2월)
         * 경북대학교 행정학박사(1983년)
         * 경북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1985년)
         * 경북대학교 학생처 근무(1983년 ~ 1984년)
         * 경북외국어테크노대학교 겸임교수(1998년 ~ 2002년)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노현정 . . . . 11회 일치
         | 학력 = [[경희대학교]] 아동주거학, 신문방송학 학사<br />[[대구고등학교]]
         [[2003년]] [[KBS]] 29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뉴스앵커 등으로 활동을 하던 중 [[2006년]] 8월 초, [[현대그룹]] 창업주 3세인 [[정대선 (기업인)|정대선]]과 결혼을 발표하였다. 결혼은 8월 27일에 열렸다.
         * [[대구초등학교]] 졸업 (1991년)
         * [[대구중학교]] 졸업 (1994년)
         * [[대구고등학교]] 졸업 (1997년)
         * [[경희대학교]] 생활과학부 아동주거학, 언론정보학부 신문방송학과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류영수 . . . . 11회 일치
         * [[원광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0년 ~ 2013년)
         * [[마산용마고등학교|마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79년 ~ 1982년)
         ==출신학교==
         * 대구칠성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고흥 류씨]]
  • 마철준 . . . . 11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중학교]] - [[포항제철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포항제철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03년 경희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모 프로 팀과 입단 계약을 조율하였으나 협상이 뜻밖에 결렬되어 미아 신세가 되고 말았고 그렇게 방황하다 2003년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에 입단하여 K2리거로 실업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2003년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에 입단하였지만 당시 김포 할렐루야는 2003년 K2리그 전기 리그에만 참가하고, 후기 리그는 불참하는 등 안정적인 팀이 아니었던터라 마철준은 6개월만에 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모색하다 부천 SK의 이동근 선수의 제의로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되었고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정으로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를 탈단 후 방황하다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이때 마철준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이는 당시 부천 SK 소속의 이동근 선수였다. 이동근은 포항제철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철준과 한솥밥을 먹으며 [[경희대학교]]까지 나란히 진학했던 동기였기에, 마철준에게 자신의 소속 팀인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고 이에 마철준은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 문무왕 . . . . 11회 일치
         2년([[662년]]) 봄 정월에 당은 문무왕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 [[신라]]왕으로 책봉했다. 2월에는 [[탐라국]] 임금 도동음률(徒冬音律)이 항복해 와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2"/> 이때 [[신라]]에서는 [[백제]]에 주둔하고 [[고구려]]를 치는 당군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량을 보내고 옷을 보내고 하느라 창고에 쌓아둔 양은 고갈되고, 농사 때를 망쳐 백성들이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반대로 [[웅진도독부]]에 있는 당군의 군량 창고에는 쌀이 남아돌다 못해 썩어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에서는 그 뒤로도 수시로 [[신라]]에 군량을 요구하였다. 3월에 내린 대사면령은 이러한 가운데서 오는 민심이반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된다.{{출처|날짜=2018-06-27}} 7월 왕은 왕제(王弟) [[김인문|인문]](仁門)을 사신으로 당에 보내는 한편, [[웅진도독부]]의 당군은 지라성(支羅城)과 윤성(尹城), 대산(大山)과 사정(沙井)의 [[백제]] 목책을 깨뜨리고 [[신라]]군과 합세해 진현성(眞峴城)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신라]]의 군량수송로를 열었다. 8월<ref group="주">《[[동사강목]]》에는 7월로 표기됨</ref>에는 [[김흠순|흠순]] 등 19장군을 시켜 내사지성(內斯只城)의 [[백제]] 부흥군을 깨뜨렸고, 대당(大幢) 총관(摠管) 진주(眞珠)와 남천주(南川州) 총관 진흠(眞欽)이 병을 핑계로 한가로이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를 물어 처형하고 그 일족까지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62"/>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6년([[666년]]) 4월에는 대신 김천존의 아들인 [[나마 (관직)|나마]] 한림과 김유신의 아들인 나마 [[김삼광|삼광]](三光)을 모두 당에 들어가 숙위하게 하였으며, 고구려를 없애고자 당에 군사를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6">《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6년(666)</ref> 12월에부터 당은 [[이세적|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사열소상백(司列少常伯) 안륙현(安陸縣) 사람인 학처준(郝處俊)을 부장으로 삼아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는데,<ref name="삼국사기-666"/> 이때 고구려는 실권자였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죽음에 이어 그의 아들들 사이에 형제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마침내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남생]]이 아우 [[연남건|남건]]과 [[연남산|남산]]에게 쫓겨 [[국내성]] 등의 성을 거느리고 당에 항복해버리면서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ref name="고구려-666">《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5년(666)</ref> 이 와중에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정토]]가 24명의 부하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항복해오자, 정토와 그의 부하들에게 옷과 양, 집을 주어 서울 및 주·부에 안주시키고, 온전한 여덟 성에는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한다.<ref name="삼국사기-666"/>
         8년([[668년]]) 2월 [[이세적|이적]] 등이 이끄는 당군이 고구려의 [[부여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연남건|남건]]이 5만의 군사로 그 땅을 수복하려 애썼지만 설하수(薛賀水)에서 3만 명이 죽는 대패를 당하고 퇴각했다.<ref name="고구려-668">《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7년(668)</ref> 3월에 신라는 북방의 요충지였던 비열홀(比列忽, 비열성)에 주를 설치하고 파진찬 용문(龍文)을 총관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8">《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8년(668)</ref> [[6월 12일]]에{{refn|group=주|문무왕이 설인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유인궤가 신라군과 함께 평양으로 간 것이 5월이라고 기록돼 있다.<ref name="삼국사기-671"/>}} 당의 우상(右相)<ref group="주">정확한 관직명은 요동도안무부대사(遼東道安撫副大使) 요동행군부대총관(遼東行軍副大摠管) 겸 웅진도안무대사(熊津道安撫大使) 행군총관(行軍摠管) 우상(右相) 검교태자좌중호(檢校太子左中護) 상주국(上柱國) 낙성현개국남(樂城縣開國男)이다.</ref> 유인궤가 당 고종의 칙명을 받들고 신라의 숙위 사찬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党項津)에 도착하자 왕은 [[각간]] 인문을 보내 성대한 예으로 맞이하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68"/> 이에 유인궤는 약속을 마치고 신라의 선발군을 이끌고 고구려 땅인 천강(泉岡)으로 향하고, 문무왕 역시 [[6월 21일]]에 한성주에서 후발부대를 사열했다. 이때 신라군의 주요 장수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ref name="삼국사기-668"/>
         남한주(南漢州)로 돌아온 문무왕은 [[10월 22일]]에 논공행상을 벌여 서라벌에 남아있던 김유신에게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의 직위와 읍 500호, 궤장을 하사하고 그의 모든 보좌관들에게도 각각 위계 한 등급씩을 올려 주었다.<ref name="김유신-하"/> 또한 인문을 대각간, 다른 이찬과 장군들을 모두 각간으로 삼고 소판 이하에게는 모두 관위 1등급씩 더해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10월 25일]]에 왕은 욕돌역(褥突驛)에 이르러 국원사신(國原仕臣) 용장(龍長) 대아찬에게 사적으로 대접받았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고구려 사람 7천 명을 포로로 거느리고 [[11월 5일]]에 서라벌로 들어온 왕은 다음날 문무 관료들과 함께 선조묘에 전쟁이 끝났음을 고하고, [[11월 18일]]에는 전사자들의 신분에 맞춰 부의(賻儀)를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68"/>
         12년([[672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봄 정월에 백제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기고, 2월에는 다시 백제의 가림성 공격을 시도했다.<ref name="삼국사기-672">《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2년(672)</ref> 7월, 당나라 장수 고간(高侃)의 한병(漢兵) 1만, 말갈족 출신의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 3만이 함께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머물렀다.<ref name="삼국사기-672"/> 이들은 8월부터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馬邑城)을 쳐서 이기고 백수성(白水城) 5백 보 거리까지 전진해 주둔하는 등 신라 땅을 침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72"/>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이들을 쳐서 이기고, 추격하는 당병을 석문(石門) 벌판까지 뒤쫓아가 싸웠지만, 군 내부에서의 논공행상 및 전략에 대한 견해차로 분열된 사이에<ref name="김원술">《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전 부록 원술(元述)</ref> 당병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대아찬 효천(曉川), 사찬 의문(義文)·산세(山世), 아찬 능신(能申)·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安那含)·양신(良臣) 등이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72"/> 태대각간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원술]]도 여기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아버지 유신은 자신의 아들을 군법으로 처형해야 한다며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ref name="김원술"/> 한편 각자 맡은 곳을 지키며 방어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자는 유신의 진언에 따라, 한산주에 둘레 4,360보 되는 주장성(晝長城)을 쌓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ref name="삼국사기-672"/> 9월에는 앞서 신라 땅에 억류하고 있던 웅진도독부 소속의 백제인 관원들과 앞서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면서 왕이 직접 표문과 많은 물품을 바치는 등 당에 대해 유화책을 폈다.<ref name="삼국사기-672"/>
         14년([[674년]]) 1월 당에서 숙위하다 귀국한 대나마 덕복(德福)이 가져온 신력(新曆)을 반포했다.<ref name="삼국사기-674">《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4년(674)</ref> 같은 달 문무왕이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이고 백제령을 지배하에 두는 것을 보고 화가 난 고종은 조서(詔書)로 문무왕의 관작을 깎아 없애려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4"/> 왕의 동생으로 당에 머무르고 있던 우효위원외장군(右驍衛員外大將軍) 임해군공(臨海郡公) 김인문을 신라왕에 봉하면서, 그를 귀국시키는 편에 많은 군사를 딸려보내 대규모로 신라를 치려 했다.<ref name="삼국사기-674"/>{{refn|group=주|인문은 이를 간곡히 사양했으나 고종이 들어주지 않았다.<ref name="김인문">《삼국사기》 권제44 열전 제4 김인문</ref>}} 문무왕은 8월에 서형산(西兄山) 아래에서 대규모 사열을 벌이고, 9월에는 영묘사(靈廟寺) 앞길에서 다시 대규모 사열과 함께 아찬 설수진(薛秀眞)의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관람하는 등의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이 달에 고구려왕 안승을 다시 [[보덕국|보덕왕]]으로 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4"/>
         {{Cquote|과인은 나라의 운(運)이 어지럽고 전란의 시기를 맞이하여,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능히 영토를 안정시켰고 배반하는 자들을 치고 협조하는 자들을 불러 마침내 멀고 가까운 곳을 평안하게 하였다. 위로는 조상들의 남기신 염려를 위로하였고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았으며,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두루 상을 주었고,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벼슬에 통하게 하였다.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살게 하였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요역을 줄여주니,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들이 풍족하며 민간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게 되었다. 곳간에는 언덕과 산처럼 쌓였고 감옥에는 풀이 무성하게 되니, 혼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았고 관리와 백성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스스로 여러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마침내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고, 정치와 교화에 근심하고 힘쓰느라고 다시 심한 병이 되었다. 운명은 가고 이름만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갑자기 긴 밤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는가? 태자는 일찍이 밝은 덕을 쌓았고 오랫동안 태자의 자리에 있어서, 위로는 여러 재상에서부터 아래로는 뭇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죽은 사람을 보내는 도리를 어기지 말고, 살아 있는 임금을 섬기는 예의를 빠뜨리지 말라.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므로, 태자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또한 산과 골짜기는 변하여 바뀌고 사람의 세대도 바뀌어 옮겨가니, 오(吳)나라 왕의 북산(北山) 무덤에서 어찌 금으로 만든 물오리의 고운 빛깔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위(魏)나라 임금의 서릉(西陵) 망루는 단지 동작(銅雀)이라는 이름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지난날 모든 일을 처리하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면,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판다. 헛되이 재물을 쓰면 서책(書冊)에 꾸짖음만 남길 뿐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넋을 구원하는 것이 못된다. 가만히 생각하면 슬프고 애통함이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이와 같은 것은 즐겨 행할 바가 아니다. 죽고 나서 10일 뒤에 곧 고문(庫門) 바깥의 뜰에서 서국(西國)의 의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 장례를 치르는 제도를 힘써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변경의 성·진(城鎭)을 지키는 일과 주현(州縣)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 율령격(律令格式)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다시 고치도록 하라.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 이 뜻을 알게 할 것이며, 주관하는 자는 시행하도록 하라.|《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21년(681)}}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11회 일치
         미즈우치의 사생활은 주변에서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듯 하며, 주변에는 성실한 경찰관 청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미즈우치의 동급생이었던 여성은 "'검도 성적이 좋아서 부경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기뻐했었다. 믿을 수 없다."고 발언했으며, 지인인 여성은 "예의바르고 정의감이 강한 아이가 어째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검도를 지도했던 은사는 인터뷰에서 "바보야! 라고 말하고 싶다(アホや! と言いたい)"고 발언했다. 미즈우치의 3살 연하인 동생 역시 검도를 시작하여 [[인터하이]]에 선수로 출전했고, 경찰의 길로 나아갔다고 한다.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는 야마가타 현 출신으로, 친가는 니시카와쵸(西川町内)에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부]]로 활동하여,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요네자와 시(米沢市)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배구부]]로 활동하여 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고교 졸업 이후 미야기 현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론을 배웠으며, 2014년 4월 부터 오사카 시내의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평소 업무 시작 30분 전에 출근하고 무단 결근도 한 번 없었던 성실한 사원으로서, 동료와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의료 사무원이었다.
         그런데 2014년 6월에 미즈우치는 갑자기 시라타의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공판에서 진술에 따르면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해서 막차를 놓쳤다. 돌아가는 것이 귀찮아져서, 시라타 씨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이후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미즈우치는 시라타와 단 3번 만나게 된다. 그리고 2014년 8월에 '''미즈우치 타카시는 한 여성과 [[결혼]]을 올렸다.''' 오사카 경찰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성대한 결혼이었다고 한다.
         이후 미즈우치는 오사카에 있는 단골 술집에 시라타를 데려가서, 후배 경찰관 A와 만나게 하여 셋이서 사를 가졌다. A는 미즈우치가 기혼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즈우치의 의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시라타는 후배 경찰관 A를 소개받은 것을 기뻐했다고 한다. '애인'으로 승인된 것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2014년 크리스마스에도 시라타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1월 12일, 시라타 히카루는 A의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미즈우치와 아내의 결혼 사진'''을 발견하였다.
         사실 결혼 뒷풀이 때, 미즈우치 타카시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지 않도록 간사를 맡은 A에게 부탁을 했으며, 그 이유로 "아직 끊어내지 않은 여자가 있다."고 댔다. 그러나 주위에 모두 세심하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참석자 한 명이 페이스북에 올리고 시라타가 그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시라타는 1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혼을 눈치챈 것을 암시하는 "사정이 나쁜 건 눈치채지 못한 척 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올렸다. 또 시라타 히카루는 "몰랏다. 결혼을 알았다고 그에게 말조차도 할 수 없다."고 심하게 우울해졌다고 그녀의 지인들이 말했다.
         범행 직후, 미즈우치 타카시는 아베노 경찰서로 돌아가서 오전 9시부터 오전 11시 까지 도장에서 검도 연습으로 땀을 흘리고, 흉기인 벨트를 도장 구석에 있던 쓰레기 봉투에 버리고 동료들과 점심 사를 하러 나갔다. 이 벨트는 나중에 미즈우치가 체포되고 조사를 시작한 경찰이 쓰레기장에서 발견하였다.
  • 박진옥 . . . . 11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중학교]] - [[영덕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
         || 지도자 || 제주중학교[* 2018년부터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어 제주 유나이티드 산하 U-15 팀으로 지정되었다.] 코치 (2018~) ||
         [[포항제철중학교]], [[영덕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축구부에 진학하였다.
         [[경희대학교]] 대학교 졸업 후 2005 [[K리그]] 자유선발로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시 부천 SK의 [[정해성]] 감독은 박진옥 선수의 킥력과 수비 센스를 눈여겨보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요긴하게 사용하였으며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의 수비 전술에서도 항상 중요 자원으로 분류되었으며 2005년에서 2012년까지 8년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였다.
         현역 은퇴 후 2018년부터 제주중학교 코치로 부임하여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같은 해에 제주중학교가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어 '''제주 유나이티드 산하 U-15 팀으로 지정'''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 박태준 (작곡가) . . . . 11회 일치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이며 호(號)는 귀봉(龜峯)· 산남(山南)· 계산(桂山)이고, 종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개신교(예장통합)]]이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이후 미국 [[터스컬럼 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음대 및 대학원을 나왔다. 귀국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연세대학교]] 종교 음악과를 창설하였으며, 많은 작곡을 하여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술원 음악공로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64년 연세대학교 음대 학장을 지냈다. 작품으로 〈오빠생각〉 〈집 생각〉 〈사우(思友)〉 등 150여 곡이 있고, 동요곡집으로 〈중 중 때때중〉, 가곡집으로 〈박태준 가곡집〉 등이 있다.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동요 작곡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여자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투스큘럼 칼리지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
  • 백상원 . . . . 11회 일치
         [[단국대학교]]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2년 연속 국가 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단국대학교]] 졸업 후 [[2010년]]에 4라운드(전체 28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2010년]] 퓨처스 리그 개막 때부터 4월 말까지 56타수 3안타로 매우 부진해 그 해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력한 끝에 남부 리그 [[수위 타자]]가 되었다.
         == 출신 학교 ==
         * [[대구남도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단국대학교]]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수원 백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백일섭 . . . . 11회 일치
          | 학력 = [[명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명지대학교 재학 시절이던 [[1963년]]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하였고 이듬해 [[1964년]] [[뮤지컬배우]] 데뷔하였으며 1년 후 [[1965년]] [[한국방송공사|서울중앙방송]](지금의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5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1969년]] [[문화방송]] 개국과 더불어 KBS에서 MBC로 자리를 옮겨 MBC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청와대로 초청받은 연예인 1호로 알려지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백일섭이 극 중에서 취중에 독특하게 부르는 옛 노래〈홍도야 우지마라〉가 다시 인기를 끈 일이 유명하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6011010100691636&type=1 박원숙 정혜선 백일섭, 맛깔스런 연기에 "역시!"]《머니투데이 스타》</ref> 가수 [[조영남]]과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 [[명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 [[2008년]] [[MBC]] 미니시리즈 《[[달콤한 인생 (드라마)|달콤한 인생]]》 ... 박병
         * [[2011년]] [[KBS2]] 주말연속극 《[[오작교 형제들]]》 ... 황창
         * [[2013년]] [[MBC]] 단막극 《[[MBC 드라마 페스티벌|드라마 페스티벌]] - 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 ... 김구봉 역
         * [[1994년]] [[동방종합품]] 와송엽엑기스
         * [[서일대학교|서일대학]]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2001년 8월 ~ 2002년 2월)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창극 배우]][[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
  • 식극의 소마/154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3화]] |||| '''극의 소마/154화''' |||| [[극의 소마/155화]] ||
         [[극의 소마]] 154화. '''이를 드러내다'''
          * 쿠스노키는 당장 극으로 때려잡겠다고 벼르지만 쿠마이 시게미치에게 붙잡혀 돌아간다
          * 아리스는 "최첨단 요리 연구회"의 부장이었고 부실을 유지하기 위해 쿠로키바 료에게 극을 시킨다.
          * 원래 최첨단 연구회는 따로 있었는데, 중학생 시절 아리스가 "부실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극해서 빼앗았다.
          * 쿠스노키 vs 쿠로키바 극의 막이 오른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60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9화]] |||| '''극의 소마/160화''' |||| [[극의 소마/161화]] ||
         [[극의 소마]] 160화. '''아리스의 생각'''
          * 잇시키 사토시와 나키리 에리나는 극 현장으로 가고 있는데, 잇시키는 아리스가 주장인 최첨단요리 연구부가 극을 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 에리나는 그 소을 듣고 크게 놀라는데 "걱정하는 거냐"고 묻자 얼버무린다
          * 회장에선 아리스가 "숙부님의 방은 납득할 수 없다"며 대놓고 디스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67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6화]] |||| '''극의 소마/167화''' |||| [[극의 소마/168화]] ||
         [[극의 소마]] 167화. '''떠오르는 얼굴과 아닌 얼굴'''
          * 하지만 아자미 정권 하에서 바뀌는 진급시험은 평범하게 기존 커리큘럼을 따라오기만 하면 누구나 통과할 수 있게 된다.--요리로 일본정복하겠다는 미친 놈이 이런데서만 상적이야--
          * 아자미는 이름난 미가와 요업 관계자들을 초빙해서 토오츠키 학원 중등부 학생들의 실력을 과시한다.
          * 사실 아자미 정권이 내놓은 커리큘럼 자체는 극히 상적. 하지만 일본정복을 꿈꾸는 세력치고는 이상하게 온건하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2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1화]] |||| '''극의 소마/172화''' |||| [[극의 소마/173화]] ||
         [[극의 소마]] 172화. '''싸움의 땅으로'''
          * 에리나는 감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홋카이도에서 재배하는 50여 종의 감자 종류를 몽땅 머리에 우겨넣으라고 스파르타 학습을 진행한다.
          * 감자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에서 생산하는 온갖 재에 대한 자료를 주입으로 박아넣는다.--노답 주입교육--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3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2화]] |||| '''극의 소마/173화''' |||| [[극의 소마/174화]] ||
         [[극의 소마]] 173화. '''불평등'''
          * 1차 시험은 5인1조 [[조별과제]]. 학교 측에서 정한 멤버로 시험을 치른다.
          * 합격선에 미달할 경우 다섯 명이 즉시 퇴학당한다. 조는 이미 학교 측에서 짜놨으며 조에 따라 복수의 방으로 나뉘어 치뤄진다.
          * 하지만 반역자팀에 주어진 연어는 산란을 마치고 품질이 떨어진 최하급품이다.[* 홋챠레. 산란후의 연어를 가리키는 말인데 용으로 안 쓴다고 한다.]
          * 유키는 호들갑을 떠는데 소마는 침착하게 "이 연어는 야으로나 먹자"고 딴전을 핀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93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2화]] |||| '''극의 소마/193화''' |||| [[극의 소마/194화]] ||
         [[극의 소마]] 193화.
          * 이 단순무한 제안에 에리나는 말을 잊는다. 타도고로 메구미는 자기들이 어떻게 십걸을 쓰러뜨리냐며 우는 소릴하지만 소마는 타도고로 정도면 충분하다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불언허는다. 타쿠미 알디니는 그러자면 극을 해야 하는데 그쪽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지 않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그 부분은 소마도 "어떻게든 될 거다" 정도로 대충 구상하고 있다. 게다가 왠지 타쿠미도 "우리가 이길 수 있지만 저쪽에서 안 받아줄 거다"라고 근자감이 하늘을 찌르는 상태다.
          >토오츠키 전통 변칙 극!
          >연대극'''레짐 드 퀴진'''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4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3화]] |||| '''극의 소마/204화''' |||| [[극의 소마/205화]] ||
         [[극의 소마]] 204화. '''제 10석의 결의'''
          * 연대[[극]]의 룰을 조율하기 위해 [[유키히라 소마]] 일행과 접촉한 [[나키리 아자미]]와 [[센트럴]] 군단.
          * 최종시험인 6차 시험이 결행되는건 한 달 뒤. 레분 섬 남단에 특설회장을 설치하고 연대극을 거행한다. 현재 진급시험을 받고 있는 학생들도 최종적으로는 여기에서 극을 관전하게 된다.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결국 반역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거리로 삼겠다는 악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회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이 십걸 자리를 전부 가져가는 심플한 결론. 그리고 대전에 참가할 인원은 딱히 규정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자미 측에서 먼저 [[사이바 죠이치로]]의 1대50 연대극을 예로 들며 제안한다. 정말로 쿄쿠세이측에 가세하려는 인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도 좋다는 호기.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2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1화]] |||| '''극의 소마/232화''' |||| [[극의 소마/233화]] ||
         [[극의 소마]] 232화. '''건곤일척'''
          * 기존 조리를 마친 양팀 선수들은 대회장 옆에 마련된 대형 재 창고에서 보다 전문적인 재료를 찾아나선다.
          * 한편 장외의 반역자들은 [[유키히라 소마]]가 맡은 "버터요리"에 대해서 우려하는데 [[나키리 에리나]]는 특훈 기간 중에 전문가급 지을 쌓았을 테니 안심이라 하지만, 사실 같이 특훈을 들은 동료들은 수업 중 잠이나 자던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대형 량창고에 돌입해서 쇼핑하는 기분으로 이것저것 마구 챙겨댄다. 언제나 그렇듯 매우 부산스러워서 타쿠미 알디니가 이렇게 쇼핑 기분 낼 때냐고 마음 속으로 츳코미한다. 상대인 사이토 소메이는 조용히 오렌지 같은 감귤계 재료를 챙기는데 이를 유심히 지켜본다.
          하지만 아주 황당한 짓도 아닌게 두유로 끓이면서 녹인 뒤 소금 후추로 간을 하면 거의 정 레시피로 만든 화이트 소스와 비슷한 "유사 화이트 소스"가 된다. 이스트와르도 처음 말만 들었을 땐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마의 설명을 들은 뒤에는 납득. 어차피 화이트 소스는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루에 우유를 첨가해 만드므로, 성분적으로는 네모 떡을 두유로 녹이는 것과 큰 차이는 없어진다. 네모떡의 전분이 녹으면 점성이 있는 소스가 될 테고 다른 조미료도 포함돼 있을 테니 원조 화이트 소스보다 경쾌한 맛이 더해진다. 이후에 1cm 크기로 깎둑썰기한 닭고기에 양파, 새우, 생쌀을 함께 넣고 버터에 볶는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5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4화]] |||| '''극의 소마/235화''' |||| [[극의 소마/236화]] ||
         [[극의 소마]] 235화. '''의 연금술사'''
          * 반역자들은 시나린의 효능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키리 아리스]]가 설명에 나선다. 시나린 성분은 미각수용체, 즉 혀의 미뢰에 직접 작용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 성분이 입안에 들어가면 혀에서 단맛에 대한 반응을 억눌러서 쓴맛이 부각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이 효과는 일시적이라 곧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문제는 이때 억눌렸던 미뢰가 예민해져 단맛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즉 시나린 성분이 들어간 음을 먹고 쓴맛을 느꼈다가, 다음에 오는 요리에 대해서는 단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소마는 그것도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 느낀다. 에이잔이 시나린 성분을 노리고 아티초크를 대량으로 썼지만, 그 경우 자기 요리의 맛도 무너지는게 당연지사. 하지만 에이잔의 요리는 완벽한 맛을 연출하고 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잇시키 사토시]]는 그 점에 대해서 "경험치"라고 추측한다. 에이잔의 전공분야는 "프로듀스". 많은 당을 프로듀스하면서 경쟁업체의 "맛"을 "지우는" 수법을 자주 사용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쌓인 경험치가 극에서도 발휘됐을 거라는 것. 실제로 [[나키리 아자미]]가 에이잔을 등용한 것도 그런 점을 높이사서였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6화 . . . . 11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5화]] |||| '''극의 소마/236화''' |||| [[극의 소마/237화]] ||
         [[극의 소마]] 236화. '''처음부터...'''
          * 심사위원 샤름이 이 피자는 어떻게 먹는 거냐고 묻는데 타쿠미는 어떻게 해도 좋지만 "시구레니가 올라간 오른쪽부터" 먹으라고 조언한다. 그건 에이잔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행동. 반역자들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에이잔은 아예 자포자기한 거라 폄하한다. 심사위원들도 원래는 맛있었을 피자인데 애석하게 됐다며 시에 들어가는데... 반전이 일어난다.
          * 타쿠미의 피자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절제된 단맛이 느껴지는 품위있는 맛. 이게 타쿠미의 자신감이었다. 비결은 유자된장소스. 사전에 피자반죽에 유자된장소스를 발라 시나린의 효과를 억제한 것이다. 본래 양념에 쓰는 백된장, 설탕, 미림의 양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유자과즙의 양을 대폭 늘려 신맛을 보충. 유자의 껍질을 갈아넣어 쓴맛과 떪은 맛을 첨가한다. 이것은 심사위원들이 에이잔의 로스트비프를 먼저 맛본다는 걸 전제로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심사위원 안은 알디니가 자신의 피자를 메인디쉬로 만들기 위해 에이잔의 음을 전체로 취급해버린 거라 극찬한다.
          타쿠미의 계산은 이랬다. 에이잔이 상대의 음맛을 방해하는 요리를 하는건 필연. 그렇다면 어떤 재료를 선택할 것인가? 우선 그는 자신이 쇠고기 시구레니를 들고 나오면 반드시 단맛에 장난을 칠거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지금 재료창고엔 어떤 재료가 있는가? 단맛을 방해하는 재료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다른 대결에 영향을 주지 않고 단기간에 쓰일 재료는 아티초크 뿐이었다. 가령 미라클 후르츠도 단맛에 영향을 주지만 지속시간이 몇 시간에 달해 다른 십걸의 요리까지 방해할 것이 뻔하다. 고로 선택지는 처음부터 아티초크 하나 뿐. 타쿠미는 이같은 결론은 에이잔을 유심히 관찰해 "트레이스"한 결과라고 말한다. 결국 트레이스대로 움직여준 에이잔이야 말로 타쿠미의 "노림수"에 걸린셈.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신혜성 . . . . 11회 일치
         * [[백석대학교]] 영문학과 (학사)
         Composed & Arranged by 송광 Lyrics by 송광<br /><br />
         :객 O.S.T VOL.1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
         :연세대학교 대강당
         :경희 대학교 평화의 전당
         * [[1월 18일]] 《아시아모델상시상》 아시아 최고인기상
         *[http://www.lworks.co.kr/HYESUNG/ 신혜성] - 공 웹사이트
         [[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천안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안석환 . . . . 11회 일치
         * [[단국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 2010년 [[SBS]] 드라마 스페셜 《[[대물 (드라마)|대물]]》 ... 손본
         * 2012년 [[SBS]] 특집드라마 《[[가족사진]]》 ... 한상
         * 2013년 [[tvN]] 월화드라마 《[[빠스껫 볼]]》 ... 민태
         * 2015년 [[MBC]] 월화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 (드라마)|빛나거나 미치거나]]》 ... 김종
         * 2016년 [[네이버 TV]] 웹드라마 《치안전문주회사 저스티스》 ... 부장 역
         * 1997년 《[[넘버 3]]》 ... 도강파 두목 강도
         * 2001년 《[[조폭 마누라]]》 ... 결혼 주례사 역(특별출연)
         * 2002년 《[[공공의 적]]》 ... 강동경찰서 감과 반장 역
         * 2003년 《[[선택 (2003년 영화)|선택]]》 ... 오태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양예나 . . . . 11회 일치
         ||<bgcolor=#FF69B4><:>'''{{{#ffffff 학력}}}''' ||<(>지묘초등학교 (졸업)[* [[샤이니]]의 [[Key(샤이니)|Key]]가 나온 그 학교다.][br]공산중학교 → [[용인한빛중학교]] (졸업)[br][[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
         [[대한민국]]의 6인조 [[걸그룹]] [[APRIL]]의 멤버다. 2000년에 탄생한 밀레니엄 베이비 세대다. 15세라는 상당히 이른 나이에 데뷔했는데, 이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은 [[아이유]]와 [[샤이니]]의 [[태민]], [[f(x)]]의 [[설리(배우)|설리]]와 [[크리스탈(f(x))|크리스탈]], [[포미닛]]의 [[권소현]], [[현아(가수)|김현아]][* [[포미닛]]으로 데뷔 전 [[언더걸스]] 멤버였다.], [[유용근밴드리즈15]]의 [[오하영]], [[언더걸스]] [[선미]], 배우 [[안소희]][* [[언더걸스]] 멤버였다.] 등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막내가 아닌데, 팀에 데뷔 당시 기준으로 [[이진솔|前 대한민국 공 최연소 여자 아이돌]]이 있기 때문.
          * 음 중에서 빵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가족들도 인정하며 편의점내 수 많은 음중에 빵만 고를 정도였다.
          * 2016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이후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예나가 입학하게 된 기수부터 연기예술과의 명칭이 연극영화과로 변경되어서 연기예술과로 표기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진솔]], [[레이첼]]을 고등학교 후배로 맞이하게 된다.
          * 2016년 10월 16일 [[V앱]] 방송에서 [[오버워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마 [[https://youtu.be/MnTYBcukAJA?t=1m05s|이 방송]] 이후부터 하기 시작한 듯하다. 이후 공 팬카페에 직접 인증했다. 2018년 3월에 드디어 [[오버워치/경쟁전|티어 등급]]을 [[https://youtu.be/DkIplZ822XI?t=1m1s|땄다고 밝혔다]].
  • 양윤재 . . . . 11회 일치
         | 그림설명 = [[commons:2004년 11월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소방서 준공|2004년 11월 강남소방서 준공]]
         '''양윤재'''([[1949년]] [[2월 21일]] ~ )는 [[대한민국]]의 대학교수, 정치인이다.<ref>{{뉴스 인용|제목=조선일보 인물DB|url=http://cdb.chosun.com/search/db-people/i_service/manDisAllXml.jsp?uci=G010+1-02141999110100161095|출판사=조선일보|날짜=|확인날짜 =2016년 4월 29일}}</ref>
         *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수료
         * 1981.09 ~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부교수
         * 1986 ~ 1987: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부원장
         * 1986 ~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장
         * 1996 ~ 1999: 서울대학교 국제교류센터 소장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부시장]][[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우의형 . . . . 11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경력 = 청주지방법원장<br/>인천지방법원장<br/>[[영남대학교]] 재단 이사장
         1948년 태어난 우의형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서울가정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서울고등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법원행정처에서 조사심의관으로 지냈으며 2003년에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장, [[청주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2005년에 변호사 우의형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2009년 7월 22일에 제17대 영남대 재단 이사장,<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7375.html]</ref> 2011년 11월 10일에 주회사 화진 사외이사에 선임되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11111017081381674&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4년 5월 17일에 [[상문고등학교]] 교장으로부터 1500만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된 국립교육평가원장 박병용에게 "유죄는 인정되나 큰 과오없이 30년간 공직생활에 충실했다"며 [[특가법]]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 추징금15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4년 5월 18일자</ref> 1994년 6월 10일에 상무대 사업과 관련하여 공사대금 189억여원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된 청우종합건설 전 회장 조기현에게 [[특가법]] 횡령, 사기죄 등을 적용해 징역5년을 선고했다.<ref>매일경제 1994년 6월 11일자</ref> 6월 14일에 접착테이프로 암달러상의 입을 막고 금품을 빼앗으려다 전치2주 상처를 입혀 구속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4년 6월 15일자</ref> 7월 15일에 [[범청학련]] 결성에서 인공기를 게양하여 구속된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영하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징역2년 자격정지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4년 7월 16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1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1년 3월 22일에 이우자 [[상문고등학교]] 재단인 동인학원 이사장 등 민선이사 6명이 서울시 교육감을 상대로 낸 임원승인 취소처분 취소청구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102350]</ref>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단양 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우찬양 . . . . 11회 일치
         ||<#ed0000> '''{{{#ffff00 출신학교}}}''' || 포철동초 - [[포항제철중학교|포철중]] - [[포항제철고등학교|포철고]] - [[영남대학교|영남대]] ||
         K리그 클래 16라운드 제주전에서 최순호 감독이 대대적인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시즌 첫 선발출장을 했다. 팀 자체가 2군급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눈에 띌만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K리그 클래 20라운드 서울전에서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강상우를 대신해서 시즌 2번째 선발출장을 했다. 그러나 공수 양면에서 모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성인무대의 쓴맛을 톡톡히 봤다. 특히 이상호가 중앙으로 내려올 때 그대로 끌려갔는데 이는 결국 실점의 발단이 되는 주세종의 크로스로 연결되었다.
         || K리그 클래 || 4경기 || - || - ||
          *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는 육상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 고등학교 1학년때 수비수로 전향한 케이스로, 초등학교와 중학교때는 공격수 포지션을 소화했었다.
  • 유지태 . . . . 11회 일치
         * [[대구고등학교]] 졸업
         *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연극영화과 학사
         *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전공 석사
         * [[SK주회사]] OK캐쉬백 (2003)
         ! 시상
         | 현대무용시상
         | 제6회 아시아모델상시상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강릉 유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윤덕주 (농구인) . . . . 11회 일치
         [[1935년]] [[숙명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농구 선수가 되어 해방 후, [[1950년대]]까지 농구 선수로 활동했다. 자녀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현역 농구선수로 코트에서 활약하여 화제가 되었다.
         [[2005년]] 5월 부천에서 열린 2005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리그의 개회선언을 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했고 7일에도 지인들과 함께 점심사를 할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81754171&code=100402 <nowiki>[</nowiki>부고<nowiki>]</nowiki> ‘여자농구의 대모’ 윤덕주씨 별세] 경향신문 2005.07.08</ref>
         * [[1999년]] [[4월 27일]] ~ [[1999년]] [[6월]] 제18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5월2-9일, 일본 시즈오카) 한국 선수단 단장<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70997 한국 여자농구대표팀 28일 결단]</ref>
         * [[2004년]] [[대한체육회]] 고문<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49723 <nowiki>[</nowiki>스포츠종합<nowiki>]</nowiki> 대한체육회 창립 84주년 기념] 동아일보 2004.07.12</ref>
         *** 외당숙 : 이상오(李相旿, [[1905년]] ~ [[1969년]], [[사냥|수렵가]], [[바둑]]인. 아호(雅號)는 모남(慕南).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및 [[일본]] [[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졸업.)
         **** 외6촌제부 : [[박창암]](朴蒼巖, [[1923년]] [[5월 15일]] ~ [[2003년]] [[11월 10일]], 군인, 정치가. 이상오의 사위. 아호(雅號)는 만주(滿洲), 허주(虛舟), 농부(農夫). [[군사영어학교|대한민국 군사영어학교]] 1기 출신. [[대한민국 육군|육군]] [[1성 장군|준장]] 전역.)
         * [[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 [[숙명여자고등학교]]
         [[분류:1921년 태어남]][[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FIBA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은혼/599화 . . . . 11회 일치
          * 긴토키가 자기 판을 가지고 "지구가 고로케고 그 주위에 뿌려진 메이플 시럽이 해방군이며 중앙에 꽂힌 빼빼로가 우츠로"라는 판도 상황도 정신나간 비유를 들면서 혼란으로 치닫는다.
          * 그는 지금껏 거부했던 쾌원대의 단을 직접 배받는다.
          * 노부노부는 "고로케는 이렇게 먹는 거냐"는 말을 하며 기꺼이 판을 비운다.
          * 가츠라는 지구의 상황을 묻고 신파치는 "이쪽이야 말로 진짜 스타워즈"라며 소을 전한다.
          * 자경단을 위해 카바레 아가씨들이 음을 준비해 오는데
          * 가구라가 노부노부 판에 뿌린 타바스코와 마요네즈도 진선조 복귀의 복선이라는 설이 있다.--사실 지금 아니면 나올 타이밍이 없어--
          * 야토족이 전부 가구라처럼 폭을 하는지는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었는데 무츠가 가구라 이상으로 폭을 해대면서 "야토족 자체가 폭을 한다"는 쪽으로 확인됐다.
  • 이계순 (1927년) . . . . 11회 일치
         '''이계순'''(李季順, [[1927년]] [[3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 교육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1953년]] [[경남중학교]] 영어교사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교수와 명예교수, 정무제2장관을 역임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개설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1940년]] [[교토]](京都) 제일고녀를 다녔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421094 일본인들이 부러워한 조선인 석주명] 국민일보 2009.09.14</ref> 귀국 후 [[1953년]] [[부산]] [[경남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었다. 이후 부산연세실업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64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되었다. [[1977년]]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이 되어 여성단체 활동에 뛰어들었고 교수직과 병행하였다. [[1985년]]부터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맡았다. 1990년 3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정무제2장관을 지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만들었다. 1991년에는 그가 직접 나서서 공무원 연수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협조를 구했다. 이렇게 해서 개설되기 시작한 ‘여성관련’ 교과목은 ‘국가발전과 여성’ ‘여성문제의 현실과 정책방향’ 등의 과목명으로 1~2시간 특강 형으로 배정됐다. 그러다가 정규과목으로 개설되고 교육훈련점수에도 반영되어 선택과정으로 전환되고 전문과정으로까지 확대됐다. 초창기 교수요원의 확보와 교육자료의 개발 등은 한국여성개발원이 담당했다.<ref>[http://www.womennews.co.kr/news/48170#.VNroPaJFBzo 공무원 양성평등교육이 제도화되기까지]</ref> 1990년 12월 27일의 개각에서 유임되었으며, [[1991년]] 퇴임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에 위촉되었다.
         [[분류:192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여성주의자]][[분류: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정무제2장관]][[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관섭 (1961년) . . . . 11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br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석사
         * [[경북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석사
         * 2009년 9월 ~ 2010년 1월 : [[지경제부]] 산업경제정책관
         * 2010년 1월 ~ 2011년 5월 : [[지경제부]] 에너지산업정책관
         * 2012년 1월 ~ 2013년 3월 : [[지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민호(1987) . . . . 11회 일치
         ||<#878787> '''{{{#EEE156 학력}}}''' || 포항영신중학교 (졸업) ||
         ||<#878787> '''{{{#EEE156 링크}}}''' || [[http://leeminho.kr/|공사이트]] [[https://m.facebook.com/OfficialLeeMinho|페이스북]] [[https://instagram.com/actorleeminho/|인스타그램]] ||
         반짝스타가 아니고 아역부터 올라온 연기자다. [[박보영]]과 함께한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 [[문채원]]과 호흡한 SBS '달려라 고등어',[* 여담이지만, [[박보영]], [[문채원]]과는 여러 편 같이 한 바 있다. 박보영과는 '비밀의 교정', '달려라 고등어', 영화 '울학교 이티'에서 같이 나왔으며, 문채원은 여기서 '비밀의 교정'을 뺀 나머지 두 작품에 같이 나왔다.] [[박민영]]과 함께하는 [[아이 엠 샘(드라마)]] 등등으로 드라마 주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사랑찬가]]'나 '[[논스톱]]', '[[반올림(드라마)|반올림]]' 같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단막극 '나도 잘 모르지만'에서 주연을 맡거나 영화는 '울학교 이티'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도 출연했다.[* 중견기업으로 위장한 조폭 두목인 [[정재영]]이 키우던 건달 ~~유스~~ 유망주 중 하나였는데 건달짓에 회의를 느낀 이민호를 오른팔 [[김남길]]을 시켜 살해하고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담으로 꽃보다남자 에서 이민호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김현중(SS501)|김현중]]은 이민호를 '''아 그 영화에서 나오자마자 칼맞고 죽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대박을 치고 얼마간의 휴기를 가지다가 2010년에 3월 31일 MBC에서 방영한 '''개인의 취향'''에서 '''게이는 아닌데 게이로 오해받고 마침 게이로 오해한 여자의 집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상당히 중요한 집이라 어쩔수 없이 게이취급 받으면서 그 집에 들어가게 되는 남자(...)'''역을 맡아서 [[손예진]]과 좋은 호흡을 보였다.
         2015년 초에 개봉한 [[강남1970]]의 [[김종대#s-2]] 역할로 영화 첫 주연작품을 찍었다. 이민호의 새로운 연기 변신에 호평을 받았고 눈빛 연기, 액션 연기 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청불임에도 불구하고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총 관객수 220만 명으로 막을 내리는 걸로 스크린 데뷔을 치렀다. [[강남1970]]으로 2015년 52회 [[대종상영화제]] 남자신인상 수상, 19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듀서초이스상을 수상하였다.
         || [[울학교 이티]] || 오상훈 || ||
         || 2006년 || EBS || [[비밀의 교정]] || 박두현[* 정 데뷔작] || ||
         ||<rowbgcolor=#696969> {{{#white '''연도'''}}} || {{{#white '''시상'''}}} || {{{#white '''부문'''}}} || {{{#white '''작품'''}}} ||
         || 제12회 중국 싱샹대전 시상 || 아시아 최고인기상 || ||
         || 제7회 바이두 페이디엔 시상 || 아시아 최고 배우상 || ||
  • 이상민 (야구선수) . . . . 11회 일치
         '''이상민'''(李相旼, [[1990년]] [[11월 4일]] ~ )은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다. 그의 사촌 형은 전 [[KBO 리그]] [[고양 원더스]]의 [[내야수]] [[이성엽]]이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27 信人을 꿈꾸는 新人들 ④ 동의대학교 이상민ㆍ강동호ㆍ김성호] - NC 다이노스</ref>
         [[동의대학교]] 3학년 때인 [[2011년]]에 [[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호투하여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 출신 학교 ==
         * [[남도초등학교]](수성리틀)
         * [[대구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동의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이영세 (1947년) . . . . 11회 일치
         '''이영세'''([[1947년]] [[6월 15일]] [[경상북도]]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을 지낸 교육자이다.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 [[경북고등학교]]
         * 2010~ 제3대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
         * 2006~2010 제2대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
         * 2002.03~2006 대구사이버대학교 초대 총장
         * 1979.09~1981.06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초청교수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이장희 (시인) . . . . 11회 일치
          | 학력 = [[일본]] [[교토 대학|교토 중학교]] 졸업
         [[1900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남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남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영진, [[오상순]], 백기만, [[이상화 (시인)|이상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백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 [[대구종로초등학교|경상북도 대구 대남보통학교]] 수료
         * [[대구초등학교 (대구)|경상북도 대구보통학교]] 졸업
         * [[일본]] [[교토 대학|교토 중학교]] 졸업
         시인 생존시에 이루어진 평으로는 [[박종화]]와 [[이상화 (시인)|이상화]]의 것이 있다. 박종화는 《조선문단》 1925년 10월호 〈9월의 시단〉에서 《여명》에 실린 이장희의 시〈청천의 유방〉과 〈비오는 날〉을 평가하면서 〈청천의 유방〉은 "기괴를 쓰랴는 마음, 상징을 위한 상징시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작자에 착각적 정서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다만 한 때에 마취된 감흥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혹평했다.<ref>이기철, 〈이장희 연구(1)〉, 《인문연구》6권,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4, 179쪽</ref> 반면, 이장희와 동향 친구였던 이상화는 같은 해, 《개벽》 6월호에서 이장희의 시 〈고양의의 꿈〉과 〈겨울밤〉을 이채 있는 시라고 하면서, 이상화를 정관(靜觀)시인이라고 고평하였다. 다만 생명에서 발현된 열광이 없음을 덧붙였다.<ref>{{서적 인용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2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자살한 작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음독 자살한 사람]][[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교토 대학 동문]]
  • 이종혁 (배우) . . . . 11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gngpro.co.kr/management_02.php?ReturnID=32 이종혁 공 사이트]
         *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 [[동도중학교 (대구)|동도중학교]]
         * [[대구초등학교]]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그는 이후 1998년 영화 《[[쉬리 (영화)|쉬리]]》로 데뷔하였고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름이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종혁, '엄마의 공책: 기억의 레시피'로 스크린 복귀|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64179|출판사 = 헤럴드POP |저자 = |날짜 = 2016년 11월 8일|확인날짜 = }}</ref> [[2002년]] [[6월 4일]] 최은애와 결혼을 올려 장남 이탁수([[2003년]] 출생), 차남 이준수([[2007년]] 출생) 두 아들을 두었다. 2013년 MBC 예능프로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여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국민 아빠'로 불리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엄마의 공책'..이종혁, 철부지 아들로 변신 |url = 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9&aid=0003723802|출판사 = OSEN |저자 = |날짜 = 2018년 2월 22일|확인날짜 = }}</ref>
         * [[2014년]]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19~22회 일산대진고. 편, 23~25회 고대부속고 편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분류: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동문]][[분류:동도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197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
  • 이지우 (야구선수) . . . . 11회 일치
         율하초등학교를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좋은 타격성적을 보여주었다. 고교 통산 58경기 타율 0.357 출루율 0.441 장타율 0.464 74안타 1홈런 48타점 25볼넷 21삼진을 기록하였다. [[2013년]] [[8월 26일]]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에서 NC 다이노스에 2차 3라운드 26순위로 지명되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421 왼손 거포의 계보를 이어갈 NC 이지우] - NC 다이노스</ref>
         == 출신학교 ==
         * [[대구율하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11회 일치
          * 효부는 의은 또렷하지만 마기에게 입은 치명상 때문에 심장이 박살나 인공심폐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 그러나 효부는 계획대로 되었다고 말한 뒤 공적으로는 자신이 '의불명'인 것으로 해 놓고 PANDRA의 지휘를 [[아카시 카오루]]에게 맡긴다고 한다.
          * 츠보미는 '여왕', 즉 카오루가 길리엄에게 노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나 정작 카오루 본인은 전혀 인하지 못하고 있다.
          효부는 모미지를 진정시키며 원래부터 자기는 유령같은 존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농담을 던진다. 모미지는 열불이 터져서 그런지 블랙 팬텀이 운영하는 블랙마켓에서 이용 심장 같은건 당일배송이 없는지 알아본다.
          * [[머슬 오오카마]]가 효부의 부상 소에 사색이 돼서 달려온다. 효부에게 자신의 심장을 바칠 테니 써달라는 참 갸륵한 말을 하지만 역시 머슬이 하는 소리라 그런지 효부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거절한다. 머슬은 로비에트 정부가 블랙팬텀에 넘어갔는지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했다는 소을 전한다. 이제 대사직도 없어진 자신이 조직에 헌신하는건 그런 것 정도라고 말하지만, 효부는 그 제안에 심전도가 떨어질 정도로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결국 보류된다.
          길리엄은 효부의 정신을 흔드는게 목적이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며, 자신은 공적으로 "의불명"인 걸로 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마기는 당분간은 얌전하게 있을 거라는 조언도 함께한다.
          효부는 이렇게 된 마당에 뭐가 즐거운지 "내 장례도 열어지 않겠냐"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다 모미지에게 무시 당한다. 하지만 농담이었는지, 진지한 말투로 "마기는 걱정하지 마라"고 모미지에게 전한다. 모미지는 납득되진 않지만 소령이 마기를 죽이는건 무리일 테니 초조하게 굴지 않고 기회를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방을 나선다.
          * 우츠미는 효부가 이런 상황에서 너무 몸을 사리는게 아닌가 의문스러워한다. 그가 기억하는 효부는 적에게 당하고 얌전히 있을 타입이 아니기 때문. 그러자 츠보미 문서는 길리엄의 정신이 "어떤 의"에 닿지 않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현재의 효부는 가족이나 원한 이상으로 어떤 존재에 의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효부는 자신과 링크된 길리엄이 그 존재를 눈치채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 존재는 물론 파괴의 여왕, 아카시 카오루의 미래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카오루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그게 누구냐"고 묻고 있다.
  • 지증왕 . . . . 11회 일치
         '''지증왕'''(智證王, [[437년]]~[[514년]], <small>재위:</small> [[500년]]~[[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내물왕]]의 증손이며 [[복호 갈문왕]]의 손자이자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이다. 전임 [[소지 마립간]]과는 6촌 형제간이었다. [[법흥왕]]의 아버지로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502년]]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이듬해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 군주의 칭호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ref>그러나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는 칭호는 지증왕의 장남 법흥왕의 때까지도 비공적으로나마 잔존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울진 봉평신라비와 울산천전리각석에 기록되어 있다.</ref>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504년]] 상복법을 제정하였으며, [[505년]]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었다. [[509년]]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고, 512년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였다. 또한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던 [[순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한 군주이기도 하다. 시호는 지증인데, 신라 최초의 [[시호]]이기도 하다.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智度路)이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ref> 그는 6촌 형제간인 [[소지 마립간]]과 사돈이었고 즉위 전 [[갈문왕]]에 봉해진 것이 [[영일냉수리신라비]]를 통해 확인되었다.
         [[마립간]]의 칭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임금이다.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지대로, 지도로, 혹은 지철로라고 한다. [[내물 마립간]]의 증손자이며 [[소지 마립간]]의 재종 아우이다. 부인은 [[연제부인]](延帝夫人) 박씨이며, [[소지 마립간]]이 아들이 없이 죽어 64세에 왕위를 이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奈勿王之曾孫 習寶葛文王之子 炤知王之再從弟也 母金氏鳥生夫人 訥祇王之女 妃朴氏延帝夫人 登欣伊湌女 王體鴻大 膽力過人 前王薨 無子 故繼位 時年六十四歲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ref>[[514년]] 죽은 뒤 [[시호]]를 지증이라 하였는데, 이때 이후로 신라의 시호법이 시작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五年 ... 王薨 諡曰智證 新羅諡法 始於此 (15년(514) ...왕이 죽었다.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이라 하였는데, 신라에서 시호를 쓰는 법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ref> 지증왕은 [[사탁부]](沙啄部) 출신으로 왕위에 올랐다.
         [[502년]] [[순장]]을 금하고, 신궁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 음력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親祀神宮 三月 分命州郡主勸農 始用牛耕(3년(502) 봄 2월에 영(令)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 이르러 금한 것이다. 왕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 )}}</ref> [[503년]]에 국호를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야(徐耶)·서라(徐羅)·서벌(徐伐) 등에서 “신라”(新羅)로 통일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四年 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또 살펴 보건대 예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만을 칭하고 높이는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뭇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이에 따랐다. )}}</ref>
         즉위 초부터 그는 제도와 체제 개편을 추진하였다. [[504년]] 음력 4월 상복법을 제정하고, 음력 9월에 파리, 미실, 진덕, 골화 등 12성을 쌓는 등 고대 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五年 夏四月 制喪服法頒行 秋九月 徵役夫築波里 彌實 珍德 骨火等十二城(5년(504)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가을 9월에 인부를 징발하여 파리성(波里城), 미실성(彌實城), 진덕성(珍德城), 골화성(骨火城) 등 12성을 쌓았다.)}}</ref>
         [[509년]]에는 시사(市肆, 혹은 [[시전]])를 관리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東市典)을 설치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年 春正月 置京都東市(10년(509) 봄 정월에 서울에 동시(東市)를 설치하였다. )}}</ref> 이리하여 무역과 상인들의 거래를 단속, 통제하였다.
         또한 처음으로 지방에 군주(軍主)를 두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六年 春二月 王親定國內州郡縣 置悉直州 以異斯夫爲軍主 軍主之名 始於此 (6년(505) 봄 2월에 왕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군(郡)·현(縣)을 정하였다.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는데, 군주(軍主)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ref>[[512년]] 실직주(悉直州)의 군주이자 [[이찬 (신라의 관직)|이찬]]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복속시켜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게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三年 夏六月 于山國歸服(13년(512) 여름 6월에 우산국이 항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 )}}</ref>
  • 최병일 . . . . 11회 일치
         * [[경북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 [[예일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 [[예일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서울대학교 정보통신고위정책과정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통상협력연구소 소장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
  • 최항석 . . . . 11회 일치
          | 학력 = [[용산중학교|서울 용산중학교]] 졸업 <br /> [[용산고등학교|서울 용산고등학교]] 수료 <br /> [[오산고등학교 (서울)|서울 오산고등학교]] 졸업 <br /> [[인하대학교]] 학사 졸업
         [[1981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MBC]] 공채 탤런트로 정 데뷔하였으며 그 후 [[1986년]] [[영화]] 《입을 연 석류》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이후 [[문화방송|MBC]], [[KBS]], [[SBS]], [[EBS]]의 공중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그는 [[2002년]] [[MBC]] [[텔레비전 드라마]] 《[[리멤버 (드라마)|리멤버]]》의 오 주임 역과 [[2002년]] [[SBS]]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의 임동호 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2002년]] [[MBC]] [[시트콤]] 《[[연인들 (시트콤)|연인들]]》에서는 극중에서 [[연극]] [[배우]]인 [[김형자]]와 함께 [[배우]]와 [[연출가]]들의 사이로서의 호흡을 오래도록 동반한 [[연극]] [[연출가]] 최항석 역, 연극연출가 이주헌 역, 연극연출가 김세호 역으로 각각 몇회간을 단역하였다.
         * [[엘앤피코스메틱 주회사|엘앤피코스메틱㈜]] 사장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추자현 . . . . 11회 일치
         | 웹사이트 =[http://cafe.daum.net/choojahyun 추자현 공 팬카페]
         | 학력 =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 출신 학교 ==
         * [[대구인지초등학교]]
         *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2019년 5월 29일 혼인신고한지 2년만에 아들 바다가 돌을 맞이해 돌잔치겸 결혼을 올렸다.
         * [[2010년]] 《[[객: 김치전쟁]]》 ... 성찬 모 역(우정출연)
         * [[2006년]] 제9회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신인 연기자상 《[[사생결단]]》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여자신인연기}}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인지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1996년 데뷔]][[분류:추계 추씨]]
  • 츠라츠라 와라지 . . . . 11회 일치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할 때 영주와 장남이 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차남 '쿠마다 테루타카'가 가문을 이었고, 이에야스는 화친 후 쿠마다를 묶어놓기 위해 히데요시를 움직여 테루타카를 억지로 이혼시키고 도쿠가와 가문의 여과 결혼시켰다. 이 때의 원한이 대를 이어 내려왔고, 이 때문인지 후임 영주 쿠마다 타카토시(테루타카와 전처의 소생)가 석연찮게 급사하고 그 아들 미츠타카는 2차례에 걸쳐 전봉당해 오카야마 지방에 자리잡게 되었다.
          * 쿠마다 이즈미 : 수행 가로. 하루타카의 가신으로 쿠마다 종가인 '아마키 쿠마다 가'(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가문)의 자손. 기본적으로 학이 깊고 영민하지만 17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로 불과 4개월 전에 가로가 되어 미숙한 면이 있으며 쿠마다 종가의 긍지와 체면을 매우 강하게 의하고 있는 가문의 기풍 때문에 매사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꽃꽂이가 취미.
          * 쿠마다 하야토 : 제5가로. 슬하에 자이 많아서, 자이 없는 나가토가 그의 가문에서 양자를 들일 생각을 하고 있다. 가로 경력 27년.
          * 쿠마다 치카라 : 전 수석 가로로 이즈미에게 가독을 넘기고 은퇴했다. 쿠마다 종가의 긍지나 체면을 강하게 의해서 이즈미에게도 항상 그것을 주지시키는 완고한 인물[* 쿠마다 종가의 사람들은 역대로 이러한 경향이 강했다고 하는데, 일례로 초대 가로의 경우에는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한 가신에게 원한을 사 강을 건너던 중 살해당했다고 한다. (초대 가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야스와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자손으로 추정되는데, 숙부인 테루타카에게 가독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모난 성격이 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로, 이 때문에 나가토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 쿠라치 마사노스케 : 큐사쿠(쿠라치 큐타로)의 부친으로 '고큐소쿠오니와노모노시하이'(御休息御庭之者支配. 오니와반슈의 우두머리 직책으로 '고큐소쿠오니와노모노'는 오니와반의 정 명칭). 큐사쿠를 하루타카의 다이묘 행렬을 염탐할 밀정으로 추천했다. 정치적인 판단을 일절 배제하고 오로지 밀정의 본연 임무를 중시하는 인물.
          * 관백 : 후지와라 씨의 혈통을 지닌 다섯 가문 중 하나인 이치죠 가문 출신 공가(公家. 귀족). 형제가 없어서, 종제(從弟)인 이즈미(관백의 모친이 이즈미의 백모)가 수행 가로가 되었다는 소을 듣고 그를 만나고 싶어하여 거짓 칭병(稱病)을 하였다. 조정과도 사이가 소원한 사다노부에게 반감을 갖고 있으며, 반대로 하루타카의 인품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 협본진 찬모 : 고오리야마 본진(本陳. 에도 시대의 숙박 시설 중 다이묘와 그 수행원들이 이용하던 숙사의 통칭)의 찬모(반찬을 비롯한 음을 만드는 여자). 누명을 쓰고 탈번(脫藩. 번을 이탈하여 낭인이 되는 것. 당시 무단으로 탈번하는 것은 중죄였다)한 관리와 정을 통한 사이로,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관리가 숙사를 수배하러 온 선발대에게 들켜 처형당하자 쿠마다 가에 원망을 품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하루타카가 그녀 뱃속의 자을 자신의 사생아인 것으로 꾸미고 이를 인정하는 듯한 연기를 하여 협본진에서 계속 일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원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하루타카의 배려에는 감사하게 된다.
          * 미야노 요시키요 : 코케하타모토(高家旗本. 막부의 행사나 의을 담당하는 막부 직속 무사계급). 막부의 명으로 이세 신궁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쿠마다 가에서 수배한 본진의 팻말을 보고는 막부와 사이가 나쁜 하루타카를 골탕먹일 속셈으로 억지로 숙사를 빼앗아 묵는다. 그러나 하루타카 일행이 본진 문 앞에서 야영을 하면서 숙박비는 그대로 치러서 숙사 인근이 잔치 분위기가 되는 바람에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체신머리없다, 쪼잔하다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 츠키시마 케이 . . . . 11회 일치
         ||<tablebgcolor="#ECECEC"> 학교, 학년 반 || 카라스노 고교 1학년 4반 || 생일 || 9월 27일 ||
         || 좋아하는 음 || 쇼트케이크 ||
         || 최근의 고민 ||||||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또 주위 사람들이 이름을 물어보는 것[* 蛍(반딧불이 형)은 [[wiki:케이]]로도 읽을 수 있지만 [[wiki:호타루]]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둘 다 사람 이름으로 쓰일 수 있다. 단 호타루로 읽을 경우 여자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 ||
         인터하이 3차 예선, 아오바죠사이와의 시합에서 [wiki:"스가와라 코시" 스가] 및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가는 카게야마와 교체되면서 카게야마에게 '츠키시마는 '''정면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직접적으로 생각을 물어보아야 한다'는 뉘앙스의 조언을 했다. 이 조언을 들은 카게야마가 경기 중 츠키시마 본인에게 방금 토스는 어땠냐고 정면으로 물어오자 처음에는 '닥치고 이 공을 때려, 서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짜증난다고 답했다. 이후 카게야마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생각을 하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다, 내게도 나름대로의 방이 있으니 균일한 토스를 달라'고 --웬일로 짜증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듣고 고분고분하게 츠키시마가 본인의 생각대로 공을 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한 토스를 올려준다. 이 토스를 활용하여 츠키시마는 수준급의 페이크를 여러 번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스파이크로 결국 점수를 따낸다. ~~장하다 츳키~~
         공부를 잘 한다. 부활동이 끝나고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츠키시마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에? 싫어(...).' 히나타가 재차 부탁하자, '[wiki:"히나타 쇼요" 작은 쪽]에게만 부탁하게 했다니 비겁하네, 그 쪽의 [wiki:"카게야마 토비오" 큰 쪽].'이라며 카게야마에게도 부탁을 요구했다. 결국 카게야마에게는 엎드려 절 받기로 부탁을 받아 냈다. --공부르으을!! 가르쳐주세요 이 자아아아!!!-- 이후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성격부터 안 맞다보니 여러모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 인기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다. 제 2회 인기투표에서 4위를 차지했다.
         츠키시마가 '불타오르는 녀석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형[* 츠키시마 아키테루(月島明光). 케이가 초등학교 5학년일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나 아키테루가 빠른년생(3월 8일생)이라 나이차는 6살.] 때문이다.
         중학교 때만 해도 주전으로 활동하던 아키테루는 카라스노고등학교 배구부에 입부하면서 주전에서 떨어졌다. 당시의 카라스노는 우카이 전감독과 [[히나타 쇼요]]가 동경하는 '작은 거인'이 활동하던 시기로(아키테루와 작은 거인은 아키테루쪽이 한 학년 위), 카라스노가 현내 톱의 강호였던 시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츠키시마는 카라스노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도, 벤치도 아닌 응원석에 있는 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의 실력을 '에이스'라고 믿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 그 이후부터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마인드가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고, '목숨 걸 필요도 없는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는 사람'에게 회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순간의 목격을 무의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
  • 토리코/375화 . . . . 11회 일치
          * 마치 거대한 행성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으며 그 표면에는 미지의 동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 지지가 전해준 조리법은 "GOD의 세포에 새겨진 '''음의 기억'''을 푸는 것"
          * GOD의 세포에는 지구상 모든 "음의 기억"이 누적된다. 결국 GOD의 조리는 그 모든 음을 처리하는 것이 되는데, 재의 목소리를 따라 올바른 경로를 파악해서 그 끝에서 빛나고 있는 맛을 포획하는 것이다.
          * 죠아는 운명따윈 운이 없는 자들이나 하는 말이라며 발광균으로 그의 시야를 차단한다.
          * GOD에 지구의 모든 재의 맛이 누적되어 있는지 설명은 되지 않지만 GOD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포->다시 동면에 들어가고 지상에 새로운 생태계가 번창->또 깨어난 GOD가 싹쓸이 하는 으로 재의 맛이 누적되어온 듯하다.
          * --팔왕이 죄다 네오나 갓의 한끼 사거리로 전락할 거라는 의견도--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11회 일치
         마을 안에 지어지는 건물들. 적군의 약탈로부터 안전하다. 하지만 공성전을 벌일 때 무하게 다 때려부수고 들어가면 손상되서 수리해야한다.
         구 지상 유닛들을 모집할 수 있게하는 건물들.
         === 신 군대 계열 ===
         신 지상 유닛들을 모집할 수 있게하는 건물들.
         ==== 군학교(Cadet School) ====
         >근대적인 방으로 전쟁을 치른다면 명예가 결여될 수 있다.
         ==== 야전 포병학교(Field Artillery School) ====
         ==== 포병 사관학교(Artillery Academy) ====
         >프랑스 공학과 양은 모든 것이 일맥상통한다.
          * 해당 지방에서 신 유닛의 모집 비용 -5%
          * 해당 지방에서 신 유닛의 모집 비용 -10%
  • 함준호 (교수) . . . . 11회 일치
         '''함준호'''(咸駿浩, 1964년 2월 11일 ~ )은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다.<ref>{{뉴스 인용 |제목=한은 떠나는 함준호 금통위원 "더 편하게 시장과 소통할 것"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3936133 |날짜=2018-05-09 |뉴스=한국경제}}</ref> 본관은 [[양근 함씨|양근]]이다.<ref>{{웹 인용 |제목=함준호 인물정보 |url=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54450 |웹사이트=조선일보}}</ref>
         * [[상문고등학교]] 졸업
         *1982 ~ 1986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1986 ~ 1988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8 ~ 1993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
         *2007 ~ 2009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부원장
         *2009 ~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2009 ~ 2012 연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소장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근 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상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
  • 홍유경 . . . . 11회 일치
         * [[대구초등학교]] 졸업
         * [[대구중학교]] 졸업
         * [[대구고등학교 (대구)|대구고등학교]] 전학
         * [[대구고등학교]] 연기예술과 졸업
         *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 {{공 웹사이트|http://www.a-cube.co.kr/|에이큐브}}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2011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가수]][[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에이핑크]][[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10회 일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규정하는 공경기 중 하나로 [[K리그 챌린지]]의 정규 라운드가 종료되고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위해 열리는 플레이오프대회다.
         [[K리그]]가 [[승강제]]를 도입하고 [[K리그 클래]], [[K리그 챌린지]]로 나뉜 이후 2014시즌부터 열린 대회이다. 2013시즌은 K리그에 있어 승강제 도입의 과도기적 기간이었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는 있었으나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별개의 대회는 없었다. 이후 2014시즌부터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시행과 정착이 시작되었다.
         첫 대회가 열렸던 2014시즌에는 이 대회 역시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규정한 공경기지만 챌린지의 기록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기록했었다. 이는 챌린지 플레이오프가 엄밀히 말하면 챌린지의 정규 라운드의 연장선이 아니라 승강 플레이오프라는 [[승강제]]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 대회로 보기 때문이며, K리그의 소을 전하는 공매체인 [[K리그 웹진]]에서도 2014시즌의 데이터는 챌린지와 호환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K리그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보고 이 데이터를 공으로 집계하기 시작하였으며, K리그 웹진 2015년 12월호에서는 다 통합하여 데이터를 공개하였다.
         단, 개인기록과 팀 기록을 통해 시상할 때는 과거 [[K리그 챔피언십]]과 마찬가지로 '''공기록으로는 인정하나 정규라운드 시상과는 별개'''로 본다.
         챌린지 플레이오프가 처음 시행되었던 2014시즌에는 리그 4위였던 [[광주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었고, 또 기세를 이어가 [[K리그 클래]]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2015시즌도 리그 3위였던 [[수원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어 2016시즌에 클래에 안착하는 등, 2위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는 안습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2015시즌 2위였던 대구는 마지막 한 경기를 놓치면서 상주 상무에게 1위자리를 놓치며 2위로 내려왔는데 대구는 수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자동승격권을 놓친것과 더불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마저 놓치는 등 2위 징크스를 K리그 팬들에게 널리 알리는 안타까운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응원팀이 K리그 챌린지에 있는 팬들은 ㅋㄲㅈㅁ를 외치는 중. 물론 여기와 관련없는 클래 팬들은 매번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팝콘뜯고 구경하는게 다반사다.
  • K리그 클래식 . . . . 10회 일치
         K리그 클래은 2012년 기존 K리그가 [[아시아축구연맹]] AFC의 [[AFC 챔피언스 리그]]의 개편에 따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승강제]]를 도입함으로써 구분된 대한민국 최상위 프로축구리그다.
         이로써 2012년에 승강제 계획안이 발표되고, 2013시즌부터 대한민국 최상위 프로축구리그의 명칭은 '''K리그 클래'''이 되었다.
         2016년 기준, K리그 클래의 리그 수준은 아시아 '''최고'''다.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통틀어 1위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ACL 무대에서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허나 AFC의 최근 트렌드가 축구 개발도상국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4장을 배정받던 과거완 달리 현재는 3.5장으로 줄었다. 현재 AFC의 정책이 점점 UEFA의 정책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봐서는 기존 강호들은 3.0장으로 줄어드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본래 16개팀으로 운영하던 대회가 장기적으로는 승강제를 도입함으로써 12개팀으로 축소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홈 앤 어웨이]] + 6강 플레이오프"''' 방으론 2011시즌까지 유지되던 40주일정과는 괴리가 큰 이유로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SPL)를 본따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 및 운영하게 된다.
         2012시즌은 클래 시즌은 아니지만 승강제를 도입할 준비를 위해 스플릿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하였으며, 16개 팀 중에서 하위 2개팀이 강등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즉, 2부리그 구성을 위해 승격은 없고 강등만 있던 시즌.
         [[홈 & 어웨이]] 방으로 정규 라운드를 30경기를 치뤄 스플릿을 구성하였다. 상위 8개팀이 상위 스플릿, 하위 8개 팀이 하위 스플릿으로 나뉜 뒤엔 스플릿끼리 다시 홈 & 어웨이를 치뤄 14경기를 추가로 마치게 되었다.
         2014시즌부터는 연맹의 장기계획에 따라 큰 변화가 없는 이상 12개팀으로 구성되며, 대회운영방이 안정된다. 이는 2016시즌까지 유지되고 있는 중.
         "(클래12개팀 - 자기자신) * 3"이라는 형태로 홈 앤 어웨이를 치루며, 정규라운드동안 상대팀을 세번씩 만나게 되는 구조다.
         K리그 클래은 AFC에서 인정하는 ACL 진출 가능 리그이다. 2016년 기준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K리그 클래/2016시즌]]
  • head to head . . . . 10회 일치
         사전적인 쓰임으론 face to face와 거의 같은 용어로 쓰이지만, 스포츠계로 넘어오면 제1순위결정기준으로 순위를 정할 수 없을 때 적용하는 동점간 직접비교를 통한 순위결정방을 가리키는 단어다. 애초에 이 용어 자체가 상대전적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걸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이 방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리그의 순위결정방이 월드컵과 같이 "승점 - 골득실 - 골득"순으로 정했던 것이 "승점 - 승자승 - 골득실 - 골득"이라는 기준으로 개편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또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도 리그의 최종순위 결정방에 승자승을 도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승자승 방에 대한 정보가 축구팬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 결정방 ==
         이 되는 것이다. 나머지 2팀과 붙었던 전적은 철저히 배제하고 평가하는 셈. 사실상 토너먼트의 [[누적득점 집계방]]과 동일하다.
         이 여섯 경기를 바탕으로 평가하게 된다. 누적득점 집계방에선 사실상 승무패로 갈리기보다는 득점과 원정골 여부만 생각하면 되는 반면에 3팀 이상을 고려해야 하는 헤드 투 헤드는 득점과 원정골보다 원정승의 여부가 정말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스페인 프로축구도 이 방을 채택하고 있다. 2015-2016시즌 라 리가는 1위팀 바르셀로나와 2위 AT마드리드가 대회 막바지까지 승점이 같아질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 규정에 의해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승자승이라는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단순히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까지도 고려해 평가하는 방이기 때문에 번역 자체가 난감한 경우이기도 하다. 상대전적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번역하기 까다로우므로 오히려 마케팅이나 라디오처럼 발음 그대로 쓰는 편이 나은 용어로 보인다. 상대전적을 가리키는 헤드 투 헤드일 때는 "상대전적"으로 번역하고,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한 우위비교일 때는 헤드 투 헤드로 부르는 게 낫다는 이야기.
  • 고도현 . . . . 10회 일치
         ==출신 학교==
         * [[대구내당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대구)|경운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동의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제주 고씨]]
  • 권영준 (1952년) . . . . 10회 일치
         '''권영준'''([[1952년]] [[5월 15일]]~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경영학자인 대학교수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과 한국재무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대학원 경영학 박사
         * [[미국]] [[앨라배마 대학교]] 조교수
         * [[한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영학과 부교수
         * [[경희대학교]] 국제경영학부 교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금조(나인뮤지스) . . . . 10회 일치
         ||<#732788> {{{#FFFFFF '''학력'''}}} ||<(> 범물중학교[br][[수성고등학교(대구)|수성고등학교]][br][[계명대학교]] 실용음악과 ||
         사실 알고보면 나름 험난한 연습생 생활을 보낸 멤버이다. 20세에 [[계명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담당 교수의 추천으로 상경하여 가수준비생 생활을 시작했으며[* 나뮤캐스트 6회 신입생 환영회편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 전 소속사인 아이맥스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중 [[소진(나인뮤지스)|소진]]을 비롯한 다른 연습생들과 잘 맞아서 이번에 데뷔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한번 엎어진 후 회사에서 나와 [[스타제국]]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 어느 날 [[이유애린]]과 [[성아]]가 지하 연습실에 찾아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희 힘들지"라는 한마디에 고맙다며 울음을 터트렸고 이를 보던 [[이유애린]]과 [[성아]] 또한 같이 펑펑 울었다고, 이에 용기를 얻고 계속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마침내 4년 간의 연습생 생활 끝에 [[나인뮤지스]]의 새로운 멤버로서 정 데뷔를 하게 되었다.
         [[2015년]] [[1월 12일]] 자정에 [[나인뮤지스]] 공 [[트위터]]를 통해 신곡 <DRAMA>의 티저 사진으로 새 멤버의 뒷모습 사진으로 처음 공개가 되었으며 이어 같은 날 정오에 [[나인뮤지스]]의 새 멤버로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날 공개된 나뮤캐스트 6화 신입생환영회 편에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같이 등장했다. 깨알 같은 트로트는 덤. 그리고 본인이 연습생 생활동안 힘들었던 점을 같은 새 멤버 출신인 [[문현아(가수)|현아]], [[성아]], [[경리(나인뮤지스)|경리]]한테 털어놓는 등 금조의 데뷔 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무슨 일인지 컴백할때마다 타이틀곡 파트가 줄어들고 있다...--안습-- [[DRAMA]] 활동 당시에는 [[경리(나인뮤지스)|경리]]와 함께 파트 독이었지만 [[9MUSES S/S EDITION|다쳐]] 활동 때는 --파트고자-- [[박민하(1991)|민하]]에게 1절 파트를 주고 2절 맨 끝자락에서야 본인파트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뒷 부분 후렴구 세 파트[* 근데 가끔 마지막 후렴구 일부가 잘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금조의 파트가 있다. 즉 파트 길이로만 따지면 [[9MUSES S/S EDITION|다쳐]]에서도 멤버 중 가장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였는데 잠은 안 오고 배는 고프고에서는...
         ||<#ab9a9e> {{{#FFFFFF '''사이트'''}}} || [[http://kstar.ihq.co.kr/iamactor/|공홈페이지]] ||
          * [[카톡]] [[카톡#s-3.2|오픈 채팅]]에서 유행하는 "고독한 ○○○"방 중 본인방에 직접 들어가서 자신의 오빠 결혼때 사진이라고 말하고는 예쁜 사진 주고 받으라고하고 쿨하게 떠났다. [[http://img.theqoo.net/BZcgG|캡쳐]]
  • 김명신 (야구선수) . . . . 10회 일치
         |출신학교 =
         == 출신 학교 ==
         * 대구남도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경성대학교]]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
  • 김문오 . . . . 10회 일치
         * 1962 화원초등학교 졸업
         * 1965 경상중학교 졸업
         * 1968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 1973 [[경북대학교]] 법학 학사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김민수 (1991년) . . . . 10회 일치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2014년]] [[한화 이글스]]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 출신 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상엽 (야구인) . . . . 10회 일치
         * [[영남대학교]] 야구부 코치 (2002년 ~ 2010년)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출신 [[영남대학교]] [[권영호]] 감독의 제안으로 [[영남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 [[투수]] [[박찬호]]의 주선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077 오릭스 김상엽 코치 “박찬호야말로 진정한 위너다”] - 이영미 칼럼</ref> 연수 후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김양 (1953년) . . . . 10회 일치
          | 학력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 경력 = [[창조한국당]] 보훈행정위원 <br/>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 객원교수
         * [[1975년]]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 [[1980년]] :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외교|외무]][[행정학]] 전공)
         * [[1982년]]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국제 관계|국제관계학]] 전공)
         * [[2013년 2월]] ~ [[2013년 8월]] :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 객원교수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동 김씨 (구)]][[분류:김구 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장]][[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문국현]][[분류:창조한국당]][[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국방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김지석(배우) . . . . 10회 일치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브래드필드 컬리지)를 다니다가 [[한국외대]]로 진학한 이력이 있으며 원래는 2001년 5인조 댄스그룹 리오로 데뷔했다가 리오가 묻히면서[* 참고로 이 그룹의 소속사가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슈가]]를 배출했고, 소녀시대 [[써니]]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스타월드였다.] 가수의 길은 접고 연기자로 전업해 2004년 MBC 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로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연예계 생활에 회의, 혹은 불안을 느낀 것인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중전공으로 [[독어]]/[[영어]] 교사 자격을 얻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연예인 포기하고 정말 학교 선생님으로 전직할 생각이었던 모양.
         그리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이동경로에 따라 자을 낳으셨는데, 세 아들의 이름을 각각의 출생지를 따서 김[[북경]] - 김장충[* 이전 버전에서는 중국 [[장춘]]을 말하는건데 자막이 잘못 나온것 같다고 했는데, 라스에서 장충동에서 태어나서 김장충이라고 말했다.] - 김[[온양]]으로 지으셨다고. 심지어 김보석의 형은 신사동에서 태어나서 김신사[* 현재 이름은 김반석. 문제적 남자에 출연했을 당시 공개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김반석으로 나와있다. '신사'라는 이름은 아주 어렸을때 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촌은 [[런던]]에서 태어나서 김런던.~~런던에 사는 런던 킴~~ 김지석도 형과 같은 신사동에서 출생했는데 [[부활절]]에 태어나서 김부활로 하려다가 ~~빨리 발음하면 뭔가 [[부랄|문제가 될게 틀림없는 이름이다]]~~ 형의 새 이름과 맞춰 김보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집안의 작명은 할아버지의 센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러모로 대담한 집안이다.
         상기했듯이 형이 한 명 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김지석이 출연하는 [[문제적 남자]]에 나와서 밝혔고 그 출연료는 전부 기부했다고 한다. 옥스퍼드에 입학하기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도 지원을 했었고 실제 입학시험에서는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합격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걸 이해 못해서 케임브리지에 상당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옥스퍼드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고 왜 거기서 떨어졌는지 깨달핬다고 한다.[* 그냥 수학 테크닉만 좋은 학생의 한계를 느꼈다는듯이 이야기를 했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고교시절,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와 수영한 적이 있다고 한다. 2주마다 [[영국]]에서 열리는 지역 대회에서 항상 옆레인에 윌리엄 왕자가 있던터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되었고, [[허구연의 저녁사|사도 했었다]]고 한다.
         ||<tablebordercolor=#009e25><rowbgcolor=#595959> {{{#white '''수상 연도'''}}} || {{{#white '''시상'''}}} || {{{#white '''부문'''}}} || {{{#white '''작품'''}}} ||
  • 김필곤 . . . . 10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사
         1963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4년 12월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6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육군 법무관을 전역한 이후 1988년 10월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대구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가정법원]] 등에서 판사를 했다.
         2018년 2월 13일에 있은 [[대전지방법원]]장 취임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재판을 함으로써 국민과 헌법이 우리들에게 부여한 소명을 다하자"고 말했다.<ref>[http://news1.kr/articles/?3235611]</ref>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3월 31일에 모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판자로 가려줘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청구한 정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모텔 종업원에게 항소심에서 "해당 조항에서 처벌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 근거 조항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관리와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일반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7248.html]</ref> 7월 8일에 "지하철에서 장갑을 팔았다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한다"며 강제연행하려는 서울메트로 질서기동팀 소속 공익근무요원을 폭행한 홍모씨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한 피고인을 강제 연행하려 하거나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체포한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의 정당한 직무상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에 대항해 폭행을 가했다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0907080856516671?t=y]</ref> 12월 9일에 비자발급 심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부러 직무를 포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전 영사 황모씨에 대해 "중국 현지 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가 보완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자의적인 비자 발급으로 불법 체류자가 생긴 만큼 죄질이 나쁘지만 그동안 국가에 헌신해 왔고 나태한 마음으로 범행을 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09120911405515959&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2010년 2월 11일에 면허정지 기간에 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100만원에 약 기소되자 청구한 정재판에서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차를 몰아야 성립하는데 최씨가 정지처분 통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경찰 당국이 통지를 대신하는 공고를 거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면허 정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002110848419738?t=y]</ref>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혜옥 . . . . 10회 일치
          | 학력 = [[중앙대학교|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언론학 석사
         '''김혜옥'''(金惠鈺, [[1958년]] [[5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연기자]]이다. 1978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1980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특채 탤런트로 정 데뷔를 하였다. 대표작으로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있다.
         *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학과 전문학사
         * 5년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교육학과 학사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언론학 석사 졸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컷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문득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홍익대 미대에 원서를 넣었으나 떨어졌다. 그런데 당시 시험감독관으로 들어온 교수가 그림에는 소질이 없어뵈지만 연기를 하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했고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에 진로를 바꿔 서울예대 연극과 응시, 합격하였다.<ref name="월간조선">{{웹 인용|성1=서철인 |제목=중견배우 인터뷰 탤런트 김혜옥 “다들 저보고 귀엽다네요” |url=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307100055 |웹사이트=월간조선 |날짜=2013-07 |확인날짜=2018-08-18}}</ref>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김홍미 . . . . 10회 일치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바로 대과를 보지 않고,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했으며 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이후 홍문관과 예문관에서 근무하였으며 형제가 옥당에 근무하여 사대부들의 부러움을 샀다. [[정여립의 난]] 관련자로 누명을 쓰고 [[기축옥사]] 때 불이익을 받았다. 당색으로는 [[동인]]이었다가, 뒤에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질 때 [[남인]]이 되었다. 남명 [[조]](曺植),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문인이며, [[류성룡]]의 조카사위이고 [[류운룡]]의 사위이다.
         역사와 제자백가에 대한 지이 있었고, 경연에서 반드시 옛 사례를 인용하여 당시의 일을 정정함으로써 왕의 찬탄을 받았다. 선박 제조 기술이 있어서 [[조선 선조|선조]]는 그에게 [[판옥선]] 설계 제조와 [[거북선]] 설계 제조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그는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잘 외웠다 한다. 어려서 남명 [[조]]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서애 [[류성룡]]의 문하에 가서 수학하였다. 나중에는 류성룡의 형인 운룡(雲龍)의 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다.
         관례(冠禮)를 치르기 이전에 그는 향시(鄕試)에 응시하였는데, 향시의 응제 "사마온공(司馬溫公) 염중론(念中論)"으로 향시에서 장원하였다. 그 문장이 정미롭고 아름다웠으므로 합격자 발표 후에는 그의 글을 돌려가면서 암송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한다. 남명 [[조]]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제문을 지었다. 그는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바로 대과를 응시하지 않고 사마시에 응시한다. [[1579년]](선조 12) [[과거 제도|년진사시]]에 제2등으로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85년]](선조 19년) [[과거 제도|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가 되었고 [[홍문관]]에 등용 되었으며,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에 발탁되고, [[홍문관]]정자, 저작, 부수찬 등을 거쳐 [[예문관]]검열, 다시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당시 그의 형인 김홍민(金弘敏)도 옥당(玉堂)에서 근무하여, 형제가 모두 옥당에 근무한 일로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후에도 [[1588년]] [[홍문관]]의 관직에 결원이 생기자 [[조선 선조|선조]]는 [[이조]]에 특명을 내려 홍문관의 빈자리에 그를 임명할 것을 지시했다.
         [[1589년]]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누군가 그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지목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파면되었다. 이후 [[상주]]에 내려가 몇년 간 집에서 칩거하였다. 그 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뉠 때에는 그는 [[남인]](南人)이 되었다. [[1589년]] 그에 대한 복권 여론이 나타나자 [[사헌부]]가 이를 지적하며 그가 이진길(李震吉)의 집에서 유숙한 일을 들었고,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복관되어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그해 [[7월]] [[경상좌도]][[도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어머니 창녕조씨의 상을 당해 사직하였다. 그러나 상중으로 내려간 뒤에도 선조는 [[정경세]]를 시켜 그와 그의 형의 안부를 묻고, 그의 학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기도 했다.
         탈상 후 [[1595년]] [[9월]]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가,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교리 겸 [[시강원]]문학(校理兼侍講院文學)을 거쳐 그 다음해 [[경연관]]에 임명되었으며, [[경연관]]으로 《[[주역]]》의 [[경연]]을 맡아보았다. 그때 마침 [[조선 선조|선조]]가 《주역 (周易)》을 강론하기 앞서 경학(經學)에 정통한 선비를 선발하여 경연의 강관(講官)을 충원하라고 명하였는데, 이때 그가 경연에서의 강론에 고전의 의리를 인용하여 정밀하게 분석하였으며, 가끔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예로 들어 10여 줄을 연달아 외웠으므로, 임금이 싫증내지 않고 경청하면서 그가 박하다고 거듭 칭찬하였다.
         * [[조]]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10회 일치
         || 정명칭 || 2016 KEB 하나은행 FA CUP ||
         || 경기진행 방 || 토너먼트 ||
         21번째 [[대한민국 FA컵]] 대회로 정 명칭은 '''2016 KEB 하나은행 FA CUP'''이다. 후원사는 명칭을 보면 알겠지만 KEB 하나은행.
         = 대회진행방 =
          * 경기의 홈팀 배정은 추첨과 원스타(★) 배정방을 통해 결정한다.
          * 기본적으로 단판 토너먼트지만 결승전은 흥행을 고려하였는지 홈 & 어웨이로 결정한다. 즉, 결승전만 딱 2번 치루게 되는 것.
         예선라운드는 [[K리그 클래]]을 제외한 71개 팀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상세는 소항목을 참고.
         [[K리그 클래]]에 속한 팀들은 본선 자동진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K리그의 12개 팀과 예선을 통과한 20개팀이 합류하여 32강 대진으로 토너먼트가 이루어진다. 4라운드(32강)~6라운드(8강)까지는 예선전과 마찬가지로 추첨을 통해 대진과 홈팀을 결정하며, 7라운드 대진은 추첨제와 원스타 시스템을 통해 홈팀과 결승 1차전 경기장을 정하게 된다.
          * K리그 클래팀: 전남, 전북, 성남, 광주, FC서울, 수원 삼성, 울산
         대략적인 평가는 늘 그래왔듯이 이변이 속출하였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K리그 클래 팀 중에 절반에 가까운 5개팀이 탈락하였으며, 총 16경기 중에 하위리그팀이 상위리그팀을 잡아먹은 경기가 4경기가 나옴에 따라 하극상 비율이 25%나 되었기 때문. 다만, 대진운 때문에 내셔널리그팀은 본선에 진출한 5개 팀들 중 리그 1위인 용인시청만 살아남게 된 반면에 K3리그팀인 경주시민축구단은 같은 K3리그팀인 포천시민구단을 이기고 올라오는 등 선전을 보였다.
  • 문호근 . . . . 10회 일치
         | 학력 = [[독일]] [[뮌헨 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석사
         [[경상북도]] [[김천시|김천]] 출생이며 본관은 [[남평 문씨|남평]](南平)이다. 재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장남이자 [[영화배우]] [[문성근]]의 형이다.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 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 서울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작곡과 졸업
         * [[독일]] [[뮌헨 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석사]]
         [[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남평 문씨]][[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뮌헨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문익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박경호 (1949년) . . . . 10회 일치
         * 1956.03 ~ 1962.02:화원초등학교
         * 1962.03 ~ 1965.02:달성중학교
         * 1965.03 ~ 1968.02:한남정보고등학교
         * 1968.03 ~ :대구공업대학교(재학 중)
         * 영남대학교(학사)
         *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수료)
         * 화원초등학교 총동창회장(현)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중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박승호(정치인) . . . . 10회 일치
         || '''학력''' ||<(> 연세대학교 도시행정학 석사[br]한국체육대학교 이학 박사 ||
         1957년 (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달전초등학교, 동지중학교, [[포항고등학교]], [[용인대학교]] 체육학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도시행정학 석사,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이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용인대학교 졸업 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1기 공채로 입사하여 [[노태우]] 조직위원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민주정의당]] [[총재]]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국가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관선 [[봉화군]]수를 지냈다. 이후 내무부, 행정자치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경상북도공무원교육원 [[원장]]을 지냈다.
  • 박정호 . . . . 10회 일치
         |학력 = [[대구고등학교]]<br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사<br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br />
         == 출신 학교 ==
         * [[대구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배장원 . . . . 10회 일치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신고선수 신분으로 입단했으나 방출된다.
         ==출신 학교==
         * 대구남도초등학교
         * 대구경상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홍익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백기만 . . . . 10회 일치
          | 소속 = 前 [[여명 (잡지)|여명]] 편집위원 <br /> 前 [[동아대학교]] 초빙교수
          | 학력 = [[일본]]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 중퇴
         * [[대구초등학교 (대구)|경상북도 대구보통학교]] 졸업
         * [[경북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고등보통학교]] 졸업
         * [[일본]]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 중퇴
         [[분류:1902년 태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
  • 백남억 . . . . 10회 일치
         1914년 11월 11일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를 1936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39년 [[큐슈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39년 조선총독부 철도국(鐵道國)에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46년 대구대학교(청구대학교와 통합된 현 [[영남대학교]]) 법학과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14년 동안 법학교수로 활동하며 [[형법]] 과목을 담당하였고,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준규, [[김재순]], [[민관]] 등과 함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내리 당선되었다. 이때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당무의원을 지냈다.
  • 브이원 . . . . 10회 일치
         | 학력 = [[단국대학교|단국대 대학원]]
         |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KHS 강현수 공 팬카페]
         1996년 뮤지컬배우 첫 데뷔한 그는 [[대구광역시|대구]] 태생으로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전문학사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학위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대중예술학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브이원'이라는 예명으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강현수는 임채홍과 함께 [[2010년]] [[3월 27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입시 전문 방송아카데미 '배우&배움'을 열기도 했다. 평소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오랜 준비 끝에 개업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거나, [[2003년]] 방영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복학생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3/h20100325062909111780.htm|제목=강현수·임채홍 방송아카데미 오픈|성=|이름=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날짜=2010-03-25|출판사=한국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128화 . . . . 10회 일치
          * 클로버 국왕은 눈 앞에서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파악할 역량 조차 없는지 "짐 앞에서 무슨 짓들이냐"고 아우성칠 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마법제는 할 테면 해보라는 듯 "당장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랜길스 보드]]의 요청을 허가한다. 하지만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이 붙으려 하자 시간 구속마법 "크로노 스테이시스"로 정지시킨다. 실전같이 싸워주면 좋긴 한데 어쨌든 이건 "시합"이라는 것. 하지만 둘의 열이 기 전에 준비를 마치겠다고 말한다.
          * 바깥에서 관전하던 이들은 누구도 랜길스의 행동을 수긍하지 못했다. [[네르슈 버밀리온]]도 "보드가는 대체 어찌된 건가"며 개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는 아예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벙벙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만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다. 시합이 있기 얼마 전. 백야의 마안의 뒷공작을 감지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마법제는 "무의의 배신"이라는 추론을 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배신자"는, 사실 자신이 백야의 마안에 협조한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마법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역시 마법이 아니겠는가 의견을 냈지만 마법제는 마법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헤맸다. 어쨌든 그는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그걸 확인하려 했다. 전장에서 강한 마력을 상대로 싸우다 보면 무의 중에 꼬리를 드러낼 거라면서. 마르크스는 마법제의 감은 잘 맞는 편이라며 "무의의 배신자"에 대해선 납득했지만, 그런 방으로 확인하는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마법제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지금와서 보니 어쩌면 랜길스가 그 무의의 배신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스타는 선두에서 서서 날아오는 공간마법을 베어냈다. 그 공격 자체는 단순해서 [[매그너 스윙]]의 마구에 비하면 간단했지만 숫자가 압도적이라 조금씩 상처를 입었다. 그때마다 미모사가 물 치유마법 "희유의 꽃옷"으로 회복. 일단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랜길스는 아무리 회복마법을 걸어도 한계는 올 거라고 단언한다. 그러니 비참한 꼴을 당하기 전에 아스타가 발언을 정정하라고 강요한다.
          팀원의 보조도 거절하고 혼자 힘으로 아스타를 꺾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스타에게 발언을 정정하라며 찌질하게 굴고 자신이 승자니 뭘 해도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아스타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한편 마법제의 보좌인 마르크스는 마법제가 언급한 "무의의 배신자"가 랜길스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랜길스의 행태에 매우 분노한 듯 보이지만 당장 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요청은 선선히 수락한다. 마르크스는 마법제가 랜길스를 "무의의 배신자"로 의심하고 진상을 확인하려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그냥 랜길스가 개인적으로 띠껍고 아스타가 충분히 랜길스를 참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합을 시킨 걸로도 보인다.
          백야의 마안이 심은 스파이는 스스로 자각없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무의의 배신자"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게 마법인지 다른 어떤 수단에 의한 건지는 확신이 없다. 로열 나이츠 시합에서는 뭔가 꼬투리를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던게 마르크스의 회상으로 드러났다.
  • 서현진 (방송인) . . . . 10회 일치
         |학력 = [[캘리포니아대학교|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대학원]] 저널리즘 [[석사]] 졸업
         |웹사이트 = {{싸이월드|22691259|서현진}} <br/> [https://www.instagram.com/itsme_seohyunjin/ 공 인스타그램] <br/>{{인스타그램|itsme_hyunjin|서현진}} <br/> {{트위터|hyunjin_seo|서현진}}
         * [[서울예술고등학교]] 고전무용, 발레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무용 학사
         * [[캘리포니아대학교|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버클리 캠퍼스]] 저널리즘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무용가]][[분류:미스코리아 선]][[분류:미스 월드 참가자]][[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호창 (1967년) . . . . 10회 일치
          | 학력 =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 웹사이트 = [http://www.hochang21.com/ 공 사이트] <br /> [https://www.twitter.com/HOwindow 공 트위터] <br /> [http://blog.naver.com/shochang 공 블로그]
         * [[대구고등학교]] 졸업
         * [[인하대학교]] 경제학 학사
         * [[2012년]] [[9월 27일]] [[문화일보]]의 '송 의원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캠프로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기사에 대해 그의 보좌진이 문화일보 기자에게 약 20분 동안 [[안철수]] 캠프로 갈 생각이 없다고 강력하게 항의를 했으나 [[10월 9일]] 그는 [[안철수]] 캠프 합류 공선언.<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92701033623236004안철수, ‘새 정치 하자’ 전문가 의기투합… ‘실험적 리더십'] 문화일보 2012-09-27</ref><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01101070723236002 “安캠프 안간다”던 송호창…] 문화일보 2012-10-11</ref>
         * [http://www.hochang21.com/ 송호창 공 사이트]
         [[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7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친문]][[분류:문재인]][[분류:박원순]][[분류:안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196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산 송씨]]
  • 수애 . . . . 10회 일치
         1999년 KBS 드라마《[[학교 2 (드라마)|학교 2]]》로 정 연기자로 데뷔했고 그 뒤 MBC 주말연속극 [[맹가네 전성시대]]에서 베일 속의 여인 허주연 역을 맡으며 비중있는 조연으로 자리잡았다. 2달 후 MBC 월화드라마 [[러브레터 (드라마)|러브레터]]에서 여의사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 《[[학교 2 (드라마)|학교 2]]》
         ! 시상
         | 제7회 [[디렉터스 컷 시상]]
         | 제28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시상
         | 제47회 저축의 날 기념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여자신인연기}}
  • 식극의 소마/152화 . . . . 10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1화]] |||| '''극의 소마/152화''' |||| [[극의 소마/153화]] ||
         [[극의 소마]] 152화. '''정찰에 나서다'''
          * [[잇시키 사토시|잇시키]]가 [[십걸]]에서 내려오는게 공화. 대신 새로운 [[극]] 룰인 "잇시키룰"을 만들었다.
          * 해체대상 동아리가 극을 신청할 경우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며, 이기면 동아리가 존속, 지면 폐부. 심사의원은 외부에서 초빙한 공정한 인사여야 한다는 룰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55화 . . . . 10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4화]] |||| '''극의 소마/155화''' |||| [[극의 소마/156화]] ||
         [[극의 소마]] 155화. '''최대출력'''
         쿠로키바 Vs 쿠스노키 극 개시.
          * 원래 아리스는 연구회 활동에 관심이 없어서 극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쿠스노키의 도발에 쿠로키바 료가 넘어가 대결하게 되었다
          * 극장에 아리스가 과거 쓴 적이 있던 동결분쇄기와 스팀 컨벤션 오븐이 등장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65화 . . . . 10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4화]] |||| '''극의 소마/165화''' |||| [[극의 소마/166화]] ||
         [[극의 소마]] 165화. '''두 가지 표정'''
          * 소마는 순간에 조리를 마쳐서 오히려 츠카사보다 먼저 요리를 내놓는다.
          * 에리나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심사해주겠어"라며 정으로 심사를 맡는다.
          * 에리나는 엉망으로 만든듯 보이지만 사실 프랑스 요리의 기본기를 충실히 빠른 음이라며 "소마 치곤 프렌치로서 인정할 만하다"고 평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6화 . . . . 10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5화]] |||| '''극의 소마/176화''' |||| [[극의 소마/177화]] ||
         [[극의 소마]] 176화. '''눈 오는 날의 장난'''
          * 그러나 에리나 선생님의 초 스파르타 특훈을 떠올리며 전혀 동요치 않고 요리를 시작하는데
          * 이번 시험도 조별로 치뤄지는데 학교측은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조부터 순차적으로 출발시킨다.
          * 후미오는 이 광경을 보며 "음 마왕의 일족"이라며 감탄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80화 . . . . 10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9화]] |||| '''극의 소마/180화''' |||| [[극의 소마/181화]] ||
         [[극의 소마]] 180화. '''리벤지 매치'''
          * 그는 소마에게 짧게 인사하고 곧장 극 룰에 대해 설명한다.
          * 하야마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는 못하겠지?"라고 도발하자 소마는 "리벤지 매치는 나로서도 환영"이라며 극에 응한다.
          * 드디어 시. 야성적이고 강렬한 향이지만 특별히 불쾌한 것은 없이 맛있게 먹는가 싶은데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01화 . . . . 10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00화]] |||| '''극의 소마/201화''' |||| [[극의 소마/202화]] ||
         [[극의 소마]] 201화. '''타쿠미의 집념'''
          에리나는 죠이치로가 팀 도지마처럼 왕도적 노선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하는데, 그때 도지마 측에서도 색다른 시도를 시작한다. 본래 레시피에서는 쓰지 않던 앤초비와 바질을 참가한 것. 같은 팀의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도 이상하게 여긴다. 게다가 담는 그릇도 보통 가정에서 쓰는 그라탕 접시가 아닌 평범한 접시. 에리나는 그걸 통해 가정으로서 아쉬 파르망티에가 아니라 레스토랑의 정찬으로서 아쉬 파르망티에를 만드는 거라고 유추한다.
          * 이 시기의 타쿠미는 그 전에 없던 "간절함"과 "집념"이 깃들이 시작했다. 그는 소마에게 자신만만하게 리벤지 매치를 선언했지만 가을선발에서 [[미마사카 스바루]]에게 패하면서 아끼던 칼 "메잘루나"까지 빼앗기는 굴욕을 당했다. 타쿠미는 지금까지의 자신으로는 안 된다는걸 깨닫고 그동안 쌓아왔던 "알디니의 요리"를 깨부수는 작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 도지마가 갑자기 애드립을 첨가한 레시피로 전환하자 타쿠미도 거기에 응수한다. 그는 화이트와인 비네거와 올리브 오일을 준비한다. 도지마가 앤초비와 바질을 선택한건 소스를 만들기 때문. 넓은 접시에 담기는 이상 소스를 추가하는게 상이다. 에리나의 짐작대로 타쿠미도 그걸 간파하고 있었고 곧 도지마는 바질과 앤초비를 메인으로 한 "앙쇼야드 소스"를 만들 준비를 한다. 여기에 대항해 타쿠미는 이탈리안 요리에서 자주 쓰는 "소프리토"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본래 양파나 마늘처럼 향이 강한 채소를 다져서 튀기듯 오래 볶아 페스토로 만드는 것이다. 카레 등을 만들 때 양파를 오래 볶아 카라멜라이즈 시키는 것과 유사한 조리법. 여기에 이탈리안의 소프리토는 파프리카나 피망을 더해 도지마의 앙쇼야드 소스와 잘 어울리는 요리다. 소프리토도 원래 아쉬 파르망티에에선 사용하지 않는 조리법인데, 타쿠미는 도지마가 양쇼야드 소스를 준비하는 걸 간파, 거기에 어울리는 조리를 즉석에서 떠올린 것이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신영식(만화가) . . . . 10회 일치
          * [[강사]]에 대해서는 [[신영]]을, [[짱구는 못말려]]의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노하라 히로시]] 참조.
         신영 [[본인]]이 그린 캐리커쳐.
         [[1949년]] [[2월 11일]]에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고등학교[* 현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 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다니다 중퇴한 뒤 1971년 소년한국일보에 <승리의 그날>을 시작으로 만화계에 데뷔한 뒤 주로 반공, 전쟁 등을 소재로 한 극화만화를 그려오다 1980년에 소년동아일보(현 어린이동아)를 통해 4쪽짜리 만화 <돌배군>을 장기간 연재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2004년 6월, [[부안]] 핵폐기장 유치반대 기자회견을 가진 뒤 사 도중에 목에 걸린 듯한 통증을 느껴 진단을 해 보니 [[도암]] 말기라는 판정이 내려져 [[도]] 절제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원]]에서 방사선 수술을 권했으나 환경운동가인 그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살던 [[강화도]]로 돌아갔다. 이후 [[말라리아]]에 걸리고 [[암]]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자연요법으로 버티며 환경운동 활동과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다가 [[2006년]] [[1월 19일]]에 그간 앓던 도암과 말라리아 증세로 인해 그토록 어린이들이 원했던 '짱뚱이 시리즈 7권'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만 56세.
         1987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홍보 만화를 그렸는데 지금 보면 꽤나 엉터리다....노태우가 연대장이던 시절, 야간 보초서던 징집병에게 수고한다면서 뭐라도 사먹으라고 돈주려고 했더니만 지갑을 안가져오자 손목시계를 그 보초병에게 줘서 이거라도 [[전당포]]에 팔아 먹을 거 사먹으라는 게(...) 나온다. 지금 봐도 어이가 없지만 이 만화를 본 당시 어른들도 이건 너무 엉터리라고 어이없어했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노태우 홍보만화에서 신영 만화에서만 이게 나왔다는 것.
  • 오은석 . . . . 10회 일치
         | 학력 = [[동의대학교]]
         == 출신 학교 ==
         * [[영선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오성고등학교]]
         * [[동의대학교]]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오성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오철환 . . . . 10회 일치
         * 1971 수창초등학교
         * 1974 대구중학교
         * 1977 대륜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경영학 (77학번 학사)
         * 경북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83학번 석사)
         * 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 공공행정학 (12학번)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우동균 . . . . 10회 일치
         [[200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아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신인시절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장효조]]의 총애를 받아 팬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2202&yy=2008 아버지 꿈 이룬 우동균] - 매일신문</ref>
         == 출신 학교 ==
         * [[대구칠성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경일대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분류:경일대학교 동문]][[분류:단양 우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윤문영 . . . . 10회 일치
         |월드베이스볼클래 =
         ==출신학교==
         * 율하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계명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은혼/626화 . . . . 10회 일치
          * [[오우가이]]는 [[헤도로]]가 변한 것은 기생종 물 "파라파헤븐" 때문이라 하나 헤도로는 아랑곳 없이 누가 꽃을 짓밟았냐고 묻는다.
          * 음양사들이 수많은 신들을 소환. 게도마루는 기껏 도와주러 왔는데 도망치는 거냐고 위협하며 긴토키와 가부키쵸 주민들을 전장에 몰아넣는다.
          * 대군 한 가운데 나타난 기이한 [[다키니]]족 사나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보다는 짓밟힌 꽃 한 송이를 신경쓰는 그는 [[오우가이]]가 기억하는 "신의 뿔"이 틀림없었다. 그의 머리 위에 피어있는 꽃은 혹성 코하쿠의 기생종 물 "파라파헤븐". 숙주의 뇌에 뿌리를 내리며 머릿속을 꽃밭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무서운 물이다. 신의 뿔은 오우가이와 함께 "뿔의 단"이란 용병단을 이끌며 무수히 많은 행성을 침략했으나 이 기생종에 당하면서 딴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 그 한심한 도주를 후려쳐 막은 것이 [[게도마루]].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이 신 게도마루, 음양사 집단 게츠노슈와 함께 전장에 도착한 것이다. 게도마루는 긴토키를 두들겨패서 진정시키고 설사 마왕이든 악귀나찰이든 나타나도 에도엔 게츠노와 음양사가 있다는 믿음직스런 말을 한다.
          * 게도마루는 게츠노슈의 신으로서가 아닌, 해결사의 친구로서 이 자리에 왔다고 말하며 그들에겐 자신이 붙어 있으니 긴토키에게 더이상 꼴사납게 도망치지 말라고 한다.
          음양사들이 지옥의 신들을 불러내 긴토키와 가부키쵸 주민들을 압박한다. 등을 보이고 달아나던 가부키쵸 병력들은 다시금 신에 떠밀려 해방군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음양사들이 불러낸 신들은 헤도로와 마찬가지로 해방군에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다. 하지만 긴토키와 가부키쵸 주민들에게도 공포를 주긴 마찬가지라 이들은 해방군들을 앞질러서 도망가는 지경에 이른다.
          * 가구라는 긴토키에게 잠시 뿐이라도 가부키쵸에 평화가 돌아왔다는 기쁜 소을 전하려하는데... 긴토키는 파리한 낯빛으로 헤도로에게 달라붙어 있다. 그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헤도로의 꽃, 파라파헤븐의 꽃이... '''꺾여져 있다'''
  • 이덕건 . . . . 10회 일치
         * [[대구수창초등학교]]
         * [[경일중학교 (대구)|경일중학교]]
         * [[청구고등학교]]
         *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 [[경북대학교]] 학보사에 몸을 담고 있던 [[1978년]] 데모에 몇 번 가담한 일로 요주의 인물로 찍힌 적이 있었다.<ref>{{뉴스 인용
         [[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일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
  • 이동흡 . . . . 10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의 [[고성 이씨|고성]](固城) 집안에서 [[1951년]] [[1월 27일]]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여 5기 [[사법연수원]]과 군 법무관을 마친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종교는 [[불교]]이다.<ref>허신열,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701495&sid=E&tid=1 박근혜 인사에 불교계 민감반응], 내일신문</ref>
         * 1966년 ~ 1968년 [[경북고등학교]]
         * 1969년 ~ 1972년 [[서울대학교]] 법학사
         * ~ 197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민사법 석사
         * 조지타운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 [[서울고등법원]] 선거 전담 재판부인 형사10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3월 22일에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03년 9월 선거구 아파트 조기축구회 창단에 참석해 고사상에 현금 20만원을 기부하고 같은해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이장단 단합대회에 두차례 참석해 1100만여원 상당의 음값과 술값을 후배를 통해 지급하여 기소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이장단 단합대회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여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19344]</ref>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2년이 선고된 정용천 전국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에 대해 징역6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51]</ref> [[열린우리당]]을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시스템클럽]]에 게시하여 1심에서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군사평론가 [[지만원]]에 대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74]</ref> 3월 29일에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경선 당시 인쇄물을 배부한 대상은 입당 원서가 지구당이나 중앙당에 제출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진정한 의미의 당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21828]</ref>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고성 이씨]]
  • 이만섭 . . . . 10회 일치
         |학력 = [[연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이만섭은 [[1932년]] [[2월 25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1951년]]에 [[연세대학교|연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한 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주일 특파원과 주미 특파원 등으로 활동한 뒤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난 직후 발탁되어 [[1963년]] 10월에 공화당에 입당, 대선 후보 [[박정희]]의 지지 유세와 찬조연설을 다녔다.<ref name="경향_6310">民主共和黨에入黨 東亞日報李萬燮씨, 《경향신문》, 1963.10.3</ref>
         * [[1944년]] [[대구수창초등학교|수창공립보통학교]] 졸업
         * [[1950년]] [[대륜중학교]] 졸업
         * [[1955년]] [[연희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 [[1989년]] [[연세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최규하 정부]][[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분류:김영삼 정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김대중 정부]][[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륜중학교 동문]][[분류:한국국민당 (1981년) 당원]][[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국민신당]][[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윤치영]][[분류:김종필]][[분류:동아일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1932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합천 이씨]]
  • 이미연 (배우) . . . . 10회 일치
         | 학력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졸업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이미연은 1971년 9월 23일 [[대구광역시]]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다. 그녀의 대학 동기로는 배우 [[고현정]], [[김정난]] 등이 있다.
         2000년에는 영화 《[[물고기자리 (영화)|물고기자리]]》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02년 영화 《[[중독 (2002년 영화)|중독]]》으로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7년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로 6년여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했지만 흥행에 참패했고, 2010년 드라마 《[[거상 김만덕]]》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후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인터뷰으로 최근 모습의 성덕선을 연기함과 동시에 호평이 많았다.
         || [[사랑의 방]]
         ||[[두산건설]]||위브||[[동서품]]||[[맥심]] 모카골드
         * 2003년 2003 [[한국광고주대회]] 광고주의 밤 시상 광고주가 뽑은 좋은 모델상
         * 2000년 제3회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연기자상 《물고기 자리》
         {{디렉터스 컷 시상 올해의 여자연기}}
         [[분류: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수상자]][[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 이씨]]
  • 이병규 (1983년) . . . . 10회 일치
         [[2006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주로 2군에서 머물렀고 데뷔 첫 해 7경기에만 출전했다.
         == 출신 학교 ==
         * [[대구율하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이상호 (1989년) . . . . 10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 대구 [[경운중학교 (대구)|경운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강릉영동대학교]]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영동대학교 동문]][[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이선희 . . . . 10회 일치
         * [[1984년]] [[삼양품]] 포장마차 (남성 그룹 [[송골매 (밴드)|송골매]]와 함께 출연)
         * [[1985년]] [[해태제과]] 노노껌 (Feat. [[이용 (희극인)|이용]])
         === 시상===
         * [http://www.leesunhee.com 이선희 공 웹사이트]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8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새한국당]][[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계명문화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한산 이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이설주 . . . . 10회 일치
         | 학력 = 수창국민학교 졸업 <br /> 대구고등보통학교 졸업 <br /> 니혼 대학 경제학과 중퇴
         대구수창국민학교(현재의 [[대구수창초등학교]])와 대구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유학하면서 [[니혼 대학]] 경제학과에 재학했지만 사상범으로 체포되고 만다. [[1932년]]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의 문학 잡지 《신일본민요(新日本民謠)》에 시 〈고소(古巢)〉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 뒤 [[만주]]와 [[중국]] 등지를 방랑했고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광복 이후인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대구여자상업학교(현재의 [[대구제일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문고판형 전집 《설주문학(雪舟文學)》을 비롯한 여러 시집을 출간했다. [[2011년]] [[3월 24일]] [[한국문인협회]]는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한국 현대 시문학과 시조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설주문학상을 제정했다.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신학 . . . . 10회 일치
         * 옥포초등학교
         * 경상중학교(1960년 3월)
         * 경희대학교 경영학과(학사)(1971년 2월)
         *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AMP과정(수료)(1985년)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행정대학원 AMP과정(수료)(1990년 12월)
         * 보영금속공업 주회사 대표이사(1986년 2월 ~ 2002년)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포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이영수 (야구인) . . . . 10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광산 이씨]]
  • 이재학 . . . . 10회 일치
         ||<:> '''학력''' || 대구옥산초 - 경복중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
         [[NC 다이노스]]의 야구 선수이자 우완 사이드암[* 팔 높이는 스리쿼터까지 올라가지만, 공의 궤적이나 그립 등을 보았을 때 사이드암으로 분류한다. [[임창용]]이 오버핸드 투수가 아닌 것처럼. 본인 또한 사이드암 투수로 인하고 있다.] [[투수]].[* 컨디션이나 성적이 좋을때는 쓰리쿼터까지 올라가지만 오히려 컨디션이 좋지 않을땐 사이드암까지 내려간다.]
         두산 시절에도 순박한 얼굴과 특유의 빨간 볼[* [[http://youtu.be/8iTg4pqyDDQ|XTM 담벼락토크]]에서 투구수가 많이 늘어날수록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온 영상이 2013년 시즌 8월 7일 LG전에서 9실점했을 때(...)]로 신인 중 귀요미 소리를 들었다. 빨간 볼과 여드름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능금', '[[딸기]]'. NC 이적 후부터는 아예 딸기가 공 별명이 되었고, 활약하는 날이면 Strong+Strawberry='''STRONGBERRY'''가 된다. 이 문구는 이재학의 개인 첫 완봉승 기념 티셔츠에 적혀있다. 한때 [[마산 야구장]]에 있는 다이노스 카페에서는 아예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88568|딸기주스 '''이재학''']]을 판매했을 정도.[* 2017년 현재는 그 자리엔 '더리터'로 입주 업체가 바뀌었다. 이재학을 팔지 않는 대신 [[박민우(야구선수)|민우에게 바나나]]를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2340520109998&id=241899065820824|팔고 있다.]]]
         사이드암 투수로서 140km의 패스트볼과 수준급의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구사하며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드래프트를 앞둔 2009년에는 53.1이닝 동안 67개의 탈삼진을 잡아냈고, 볼넷 허용은 단 11개에 불과했다. K/9는 무려 11.38이었으며 ERA는 1.53에 불과했다. 빼어난 성적을 기록한 이재학은 [[한국프로야구/2010년/신인드래프트|201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0순위라는 빠른 순번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계약금 1억에 입단 도장을 찍었다.
         2012년 퓨처스리그 4월 경기에 3번 등판해 모두 승리를 거두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선배이기도 한 [[김상엽]] 투수코치에게[[http://osen.mt.co.kr/article/G1109390480|커터를 전수받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12년 2군에서 15승 2패로 남부리그 다승왕을 수상했고, 방어율 1.55, 탈삼진 100개로 남북부 통틀어서 퓨처스 리그를 씹어먹었다. 팀이 막 창단한 시기라서 투수 뎁스가 얇고 보직이 확실하지 않던 상황이기에 1군에서도 같은 활약을 펼쳐준다면 선발진에 충분히 들어갈 거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무혐의일 가능성이 생겨서 8월 13일 1군에 합류했으나 10월 7일 경찰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과 동시에 구단에서 축소은폐한 정황을 포착(검찰이 직접 밝힌 사실이 아니라, 기사에서 소개한 '정통한 소통' 이 검찰이 이재학 승부조작을 포착했다고 한다. 조금 더 기다려보도록 하자), NC 다이노스 프런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어 압수수색이 실시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508577|#]].
         두산 시절에는 정통 사이드암 투수로 140km/h 초중반대의 빠른 공과 준수한 서클 [[체인지업]]으로 주목받았다.[* 보통의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투구폼으로 구속과 분당 공 회전수를 줄여 타자의 타이밍을 망가뜨리는 방이나 이재학은 되려 회전수가 높은 변형 서클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좋은 컨트롤과 준수한 탈삼진 능력으로 즉시전력감으로 주목받았으나, 프로에 입단해서는 현격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23이닝 5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서클 체인지업을 이용한 삼진 능력은 당시에도 인정받았으나 지나친 코너웍을 의하다가 사사구를 내주며 자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만 개선하면 롱릴리프 및 중간 계투로 일익을 담당하리라 기대되는 준수한 유망주였다. NC에 와서는 두산 시절에도 준수했던 서클 체인지업이 더 강력해졌으며, 이를 필두로 탈삼진 능력이 뛰어난 편. 통산 K/9가 8.2에 달하고, 2016년에는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규정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팀 내에서 삼진을 가장 많이 잡았다.
         서클 체인지업 그립과 투구폼이 [[권오준]]과 꽤 흡사한데, 이는 고등학교 시절 권오준의 그립이 찍힌 사진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롤모델이 권오준이라고 한다.
         2018 시즌에는 확실한 투구폼 교정에 이어, 드디어 보여주기 에 그쳤던 슬라이더를 서드 피치로써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폼의 안정화로 인해 BB/9가 예년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만큼 제구가 안정되기도 했고, 슬라이더의 구사율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 우타자 상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되면서 우타자 상대 약점을 극복한 모습.
  • 이태현(씨름) . . . . 10회 일치
         ||<#FF8000> '''{{{#white 학력}}}''' || [[의성고등학교]][br][[용인대학교]] 체육교육과 학사[br][[용인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br][[용인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박사 ||
         [[대한민국]]의 전 [[씨름]] 선수이며 현재는 [[용인대학교]] 격기지도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씨름판을 지배했던 천하장사. [[의성고등학교]]를 거쳐 1993년 청구건설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 씨름계에 데뷔했다. 1993년 데뷔부터 2006년 1차 은퇴까지의 전적은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고,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 지역장사 12회, 백두장사 20회를 기록했다. 특히 백두장사 20회 기록은 [[이만기]]의 백두장사 18회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2006년까지 역대 총 상금 역시 5억 9,000여 만원으로 1위. --모래판의 황태자의 위엄. 오오!--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절친이자 라이벌인 [[백승일]][* 백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태 후 순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백승일을 의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백승일을 비롯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태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영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태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결국 이태현은 종합격투기를 떠나고 초등학교 때 은사인 [[구미시]]청 김종화 감독의 권유로 씨름판에 복귀했다. 복귀 후 다시 씨름판에 잘 적응하며 백두장사 2회를 더 기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백두장사 최다 기록을 20회로 경신했다.
         2011년 2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동년 3월에 모교인 [[용인대학교]] 격기학과의 씨름전공 교수로 정 임용된 후 씨름 팀 감독으로 재직 중에 있으며, 이와 함께 [[2014년]] 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씨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도 출연해 여자 씨름 해설을 했으며, 출전자들을 지도해 주기도 했다.
  • 이하영(강사) . . . . 10회 일치
         [[EBSi]]의 수학 영역 강사. 현 [[서초고등학교]] [[수학교사]].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교육과 98학번.
         고향은 [[경상북도]] [[포항시]]로, 포항제철서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학창시절 합창단[* 포커스 인터뷰에서 본인이 방황했던 시기 사진으로 합창단 사진이 나왔다.], 전교부회장으로도 활동했었다.
         [[수능개념]]의 경우 중학교 개념, 고1 개념 등등의 수능 비출제 범위이지만 수능 수학의 기초가 되는 부분을 초반에 강의해 기초가 없는 학생들을 배려한다.이후 [[수능특강]], [[수능완성]]등에서 문풀을 할 때도, 어려운 공 등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며[* 이 부분에서 최상위~~어차피 걔넨 ebs 무시하지?~~--무시하는게 아니라 자기들 공부커리에서 ebsi가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학생들은 잘 동의를 하지 않는다.] 공을 잘 쓰지 않고 일일히 풀어 쓰는 편.
  • 임기영 . . . . 10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수창초등학교]], [[경운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로 [[한화 이글스|한화]]에 지명됐다.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전상렬 . . . . 10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 출신 학교 ==
         * [[대구칠성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천안 전씨]]
  • 전종화 . . . . 10회 일치
         == 출신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대구)|경운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정재호 (1964년) . . . . 10회 일치
         |학력 = [[고려대학교]] 행정학 학사
         |웹사이트 = [http://wewin.kr/ 공홈페이지]
         * 본리국민학교
         * 경운중학교
         * [[달성고등학교]] ([[1983년]] 졸업)
         * [[고려대학교]] 행정학 학사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노무현]][[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달성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
  • 정홍준 . . . . 10회 일치
         '''정홍준'''(鄭弘俊, [[1983년]] [[5월 25일]]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후 [[2006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6년]] 2승 1패 평균자책 2.92로 나름 준수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부상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8년]]에 다시 1군에 올라와 등판했으나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2010년]]에 방출됐다.
         == 출신 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 성광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KT 위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진격의 거인/95화 . . . . 10회 일치
          * [[포르코 갤리어드]]는 지금껏 전쟁에도 정치에도 개입없이 무위도하던 그들이 영웅행세를 하게 됐다고 꺼림직해 한다.
          지크가 내놓은 간단한 결론. 자리의 분위기가 순간에 무거워진다. 콜트가 침묵을 깨뜨리고 해결책은 없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없지는 않다. 결국은 또 팔라디섬이다. 시조거인을 탈환한다. 그렇게 해서 팔라디섬의 자원과 완전한 거인의 힘을 되찾고 마레의 국력을 안정시킴과 동시에 세계의 위협을 엘디아인의 손으로 해결했다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사람, 포르코의 탐탁치 않았다. 그가 보기에 타이바 가문은 뭐랄까... 우선 그들은 망치 거인을 가졌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적이 없고 엘디아인이 수용구에서 생활할 때 자기들은 넓은 토지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무위도했다. 그러던 것들이 이제와서는 입바른 소리를 해주는 대가로 영웅행세라?
          라이너는 본부 건물을 나와서 전사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전 상황은 대규모 작전의 전초작업이었다. 사상검증.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방. 그리고 눈 앞에서, 전사후보생을 놓고 다투는 가비와 파르코. 뭔가를 지키기 위해 죽일 듯이 다투는 모습.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방.
          라이너는 어안이 벙벙했고 당황했다. 짧은 시간 폭언과 욕설로 모든 것을 설명한 아버지는 그가 뭐라고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방을 떠나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출항하는 날까지, 라이너의 의은 지워진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를 배웅하러 온 자리에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상태의 아들이 그저 자랑스러워서 이렇게 말했다.
          * 시간이 정지했다. 라이너의 의 속에서. 다시 사고가 작동하고 마르셀에게 묻고 싶은 말이 떠올랐을 땐 벌써 아침이 오고 있었다.
          * 라이너의 어머니 [[카리나 브라운]]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들을 사랑했으나 신분 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걸로 나오지만, 정황으로 보면 아버지는 그저 원나잇으로 카리나를 농락했을 뿐이며 자이 생기거나 그 자이 마레의 전사가 되는 상황은 전혀 의도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대사로 보면 따로 "가족"을 가지고 있고 카리나나 라이너를 가족으로 보지 않았다.
          * 마르셀이 라이너를 구한 행동은 동생을 대신해 희생시켰다는 죄의에서 비롯된 걸로 보인다.
  • 창원시 . . . . 10회 일치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는 바둑판 모양의 주택가 '''설경'''.[* 창원지역은 '''정말로 눈이 안 오는 지역이다.''' 창원뿐만 아니라 [[부울경]] 쪽에는 거의 눈이 안 온다. 몇 년에 한 번씩 눈이 나풀거리기라도 하면 SNS에 마구 올라오며, 적설량이 3cm를 넘어가면 마산합포구 일대의 산복도로는 교통지옥이 되어버린다. 제설차 따위는 당연히 본 적도 없고, 사람들이 눈길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모른다. 체인이라는 것도 자동차 처음 살 때 끼워주지 않으면 구비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리고 눈이 1cm라도 쌓이면 무조건 휴교이다. 학교가 산이면 산일수록 휴교 확률이 높아지고 시험날이라도 선생님부터 등교가 불가능 수준이라 시험을 뒤로 미뤄버리거나 12시 등교해 시험을 치는 경우도 있다. 2018년 8월 기준으로, 눈이 많이 내려 하루 이상 쌓여있던 날은 2015년 2월 이후로 없다(...)]
         반면 뚜렷한 지역성과는 반대로,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창원시내버스협의회|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상남동(창원 성산)|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 현 창원시 의창구]와 회원현[* 현 마산시 회원구]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왜정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한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바다에 바로 접해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와 강풍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 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미터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이다.
          * 멍게 : 미더덕과 함께 많이 양되는 해산물. ~~이건 된장찌개에는 잘 안 넣는다. 비싸거든~~
          * [[몽고간장]] : 일제시대 몽고정 옆에 있던 간장 양조장. 현재도 몽고품 본사가 이 자리에 있고, 경남지역 간장 시장점유율 부동의 No.1이다. 수도권에서는 기성업체에 밀려 보기 힘들지만 가성비가 괜찮기 때문에 가끔 수도권의 오래된 당들이 플라스틱 벌크통째로 사다가 쓰는 게 관측되기도 한다.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산업체들이 몰려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다음 폭격 지역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전쟁나면 일단 창원을 뜨라고들 말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박살나게 되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본진 군수공장이나 관문을 장악당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 때 [[소련]]이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으로 옮겨, [[독일]]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무리한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이다.
         그 외에도 [[진해구]]는 해방 직후부터 해군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애초부터 해군의 거점 도시로 발달한 곳이다. 지금도 해군 신병들을 교육하는 [[해군제1군사교육단]]과 해군 장교를 양성하는 [[해군사관학교]]가 진해구에 있다.
          * [[문서 삭제 이동]](창원 → 창원시)
  • 킹덤/513화 . . . . 10회 일치
          * 진이 열미성을 돌파하고 진군하고 있다는 소이 전 중화에 전파된다.
          * 위나라의 [[봉명]], 한나라의 [[왕안왕]], 초나라의 [[와린]]도 해방 소을 듣고 각기 생각이 복잡해진다.
          * 진의 군대가 열미를 빠져나왔다는 소은 빠르게 중화 전토로 퍼진다. 위나라의 의자성. 전선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봉명]]은 진나라의 진군 소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각 나라 조정에도 소이 도착한다. 한의 왕안왕, 연의 금왕 희, 제의 제왕 건은 무겁게 소을 듣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 초의 재상 [[와린]]은 [[이원]]과 함께 그 소을 듣는다. 그녀는 바뮤와 옥죽이란 남자 하인에게 팔을 주무르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착한 소을 허투루 들은게 아닌지 "진이 진심으로 조를 치려 한다"며 진지하게 의견을 밝힌다.
          와린은 진의 진짜 노림수가 한단 밑의 업이라는걸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이원은 "그렇다면 진은 업을 치지 못하는가?"라고 질문을 고친다. 와린이 보기엔 치지 못한다. 와린은 바뮤를 단상 밑으로 내던지고 설명을 이어간다. 그녀는 조 왕도권의 지리와 방어체제를 잘 알고 있다. 적이 쉽게 들어와도 산맥과 대하로 둘러싸인 입구, 열미만 수복하면 적은 그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질해 죽는다.
          * 열미를 빠져나온 진군은 바쁘게 진격하고 있지만 지휘관들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하료초]]는 [[이신(킹덤)|이신]]에게 이 작전이 불길한 예감 밖에 안 든다고 토로한다. [[몽념]], [[왕분]]도 이들과 말머리를 같이하고 달려가고 있다. 하료초는 병참인 열미를 버리고 가지고 있는 병량만 가지고 업을 친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몽념의 의견도 같다. 전략을 아는 사람이 취할 방법이 아니란 것이다. 그러면서 "네가 자살행위라고 했던 그 행동"이라고 왕분을 끌어들인다. 몽념은 [[왕전(킹덤)|왕전]]에게 간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인 왕분 뿐이라며 은근히 그가 작전을 중단시켜 주길 청한다. 왕분은 말없이 한 발 앞서 가버린다.
  • 토리코/368화 . . . . 10회 일치
          * 브란치도 구르메 일이 다가옴을 알고 있다. 일의 여파로 지구권의 기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 죠아는 어떤 균을 "요리 재료"로서 공간에 퍼뜨려 놓았다. 이 균은 니트로 조차 단 1초면 부시키는 강력한 곰팡이.
          * 미도라의 분노에 찬 공격도 죠아에겐 닿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운 때문.
          * 아카시아가 플로제를 그토록 원했던 이유도 "운"이라는 "재능" 때문이었다.
          * 모두 압도적인 운 덕분.
          * 그러나 그런 상황조차 미도라에겐 타격이 되지 않았고, 순간에 재생하며 이번엔 이치류의 기술이던 마이너리티 월드를 발동한다.
          * 압도적인 운 덕에 겨우 승리할 수 있었다.
          * 심지어 모든 것이 "운" 하나로 땜빵.
          * 그놈의 운빨 때문에 코마츠 최강설이 대두되었다.
  • 토리코/374화 . . . . 10회 일치
          * 원래 구르메 세포의 악마는 100% 순수한 욕의 구현화이기 때문에, 서로 잡아먹거나 하기 힘들다.
          * "센터"가 숨겨진 재였던 것은 블루 니트로가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인데, 센터는 "지구의 구르메 세포"의 핵에 해당하며 구르메 세포 그 자체와 같기 때문.
          * 지로도 그 압도적인 힘 때문에 니트로를 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아카시아는 "신"이 무엇으로 사를 하는지 아냐고 묻는데, 정답은 "맨손". 구르메 핸드라는 기술로 토리코를 공격한다.
          * 하지만 아톰은 "그때 너희의 욕에 한 가닥 희망을 가졌지만 완전히 빗나갔다"고 대꾸한다.
          * 그리고 지금까지 숨겨두고 있던 "욕병기"의 기폭 스위치를 해제한다고 하는데.
          * 미회 요리장 클래스와 싸우고 있는 부요리장들은 손쉽게 이들을 처리해 버린다.
          * 스타준은 "어느새"라며 경악하는데, 죠아는 백채널에서 한 시간이나 싸웠고 그들의 기백에는 감탄했지만 안타깝게도 "운"이 없는 그들에겐 죽음 뿐이었다고 한다.--또 그놈의 운빨이냐--
          * GOD에 접근하고 있는 오오타게는 GOD의 욕을 감지하고 에너지를 흡수하는 루트를 간파한다.
          * 지로가 니트로를 포했다고 했을 때 블루 니트로가 놀라는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지로가 압도적인 존재였기 때문.
  • 토리코/379화 . . . . 10회 일치
          * 사천왕은 생명활동은 이미 끊어졌고 실낱같은 욕만 붙들고 있다.
          * 죠아는 운의 힘으로 공격을 피하고 있는데, 그에 대항하는 스타준도 비장의 수가 있었다.
          * 그러자 죠아는 운이 가진 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 순간에 포착 당하고 궁지에 몰린다.
          * 이것은 나무가 아니라 "구르메 플라워" 우주 튤립이다. 우주공간에서 자라는 물이다. 죠아가 가지고 있던 위험도 S랭크의 초위험한 물건인데 슬쩍 해온 것.
          * 텟페이는 그 물은 아톰의 모든 양분을 흡수해 꽃이 필 때까지 자랄 것이고, 그대로 두면 지구마저 위험한 물건이라고 한다.
          * 아톰은 물 따위에 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매우 위험해서 휴면 상태에 들어가려고 한다.
          * 그러나 두 마리의 구르메 세포 악마를 꺼내놓은 탓에 극도로 지쳤지만 GOD에 의해 욕이 자극되어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었다.
          * 그런데 말 떨어지기 무섭게 2대륙에 서하는 모든 배틀울프가 이 자리에 집결한다.
          * 그가 가진 욕이 점점 작아지고 결국 소멸해버리는걸 느끼는 스카이디어.
  • 페어리 테일/545화 . . . . 10회 일치
          * [[그레이 풀버스터]]과 [[쥬비아 록서]]는 커플 지위를 확립,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도 공 커플화.
          * [[엘자 스칼렛]]은 내색하진 않고 있으니 그 소 이후 몸단장을 빠짐없이 하는 등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중.
          * 페어리 테일 길드 전원, 루시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바깥이든 수상장이든 새기 마련. 자기네 길드에서 하던 대로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흥청망청 마시고 있다. 루시는 파티에 부르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지나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런 건 무리"라며 시원스럽게 약속을 어긴다. 사실 떠드는 정도로 그치면 별 일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기행이 문제. [[가질 레드폭스]]는 파티장의 기를 "고급철"이라며 뜯어먹는데 사실 [[팬서 리리]]의 말에 따르면 이건 철 조차 아니다. 나츠는 정장을 갖춰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혼자 일상복으로 와있고, 그걸 지적하는 [[그레이 풀버스터]]는 또 어느 순간에 탈의를 자행하고 팬티바람이다. 이 문제로 또 시비가 붙자 [[엘자 스칼렛]]이 두들겨 패서 얌전히 만들고 [[쥬비아 록서]]는 취해서 그레이 대신 벗겠다고 탈의쇼에 돌입. 루시를 위한 파티가 개판으로 치닫는다.
          * 루시는 전쟁 이후 틈틈히 글을 계속 썼다. 그렇게 해서 적은 "이리스의 모험"은 썩 많이 팔린 건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 신인상까지 수상하며 꿈 중에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안나 하트필리아]]도 소을 듣고 축하하러 와주었다. 그녀는 아직 현대에 남아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중. 지금도 종종 루시는 만나러 가곤 하며 오늘도 선조이자 선배 작가로서 조언을 해주었다.
          나츠는 둘이 모여있는 걸 보고 새삼 "둘의 냄새가 같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차분해지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가질은 어린 시절 기억이 돌아온 건지 "나츠는 옛날에 안나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정작 나츠는 그래서 어쨋냐는 이라 오히려 가질이 당황한다.
          * 웬디는 여전히 [[샤를(페어리 테일)|샤를]]과 함께 지내며 종종 라미아 스케일을 방문하고 있다. 본인은 딱히 하고 싶어하진 않지만 아이돌 노릇도 계속 하는 중이다. 올해도 [[셰리아 브렌디]]와 감사제에서 공연했다. 그보다 반가운 소은 셰리아가 조금씩 마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웬디는 그런 소을 빠짐없이 루시에게 말하곤 했다.
          * 그레이와 쥬비아는 저런 으로 결론이 난 셈이지만 그 말고도 신경쓰이는 관계는 더 있다.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도 한 때는 그런 관계였지만 지금은 공인된 관계가 돼서 논외. 의외로 [[렉서스 드레아]]도 혐의가 짙다. [[미라젠 스트라우스]]와는 전부터 그런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 요즘은 또 잠잠한 모양. 그래도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여동생 [[리사나 스트라우스]]와도 제법 친한 관계. [[카나 알베로나]]도 의외로 같이 마시는 사이로 소문을 뿌린 적이 있다. 이렇듯 염문설은 잔뜩 뿌리고 다녔으나 정작 어디까지 진실이고 루머인지 알 수 없는, 렉서스의 여자관계.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스테리의 영역인 데다가 신경쓰이는 방향이 다르다.
          그런데 루시가 모르겠는 부분은 여기서부터. 제랄도 한숨 돌리게 됐고 분명 엘자도 기뻐할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내색도 없다. 루시가 쓴 소설이 "너무 어렵다"고 호소하는 걸 보면 전쟁 후유증으로 머리가 나빠진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루시는 그녀가 감추는 부분을 알고 있었다. 은사 소이 전해지고 나자 전혀 관심도 없었던 머리 손질을 하기 시작해 지금은 매일 머리를 빗고 있다는 걸. 그게 루시가 원하는 답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 하이큐!!/등장인물 . . . . 10회 일치
         기본적으로 전국 8강에는 들어간다고 언급될 정도의 강호 학교. 전국대회 단골 출장 학교로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다테 공업 고교]]를 영원한 [[콩라인]]으로 밀어냈다. 다만 작중 시점에서 5년 전, [[카라스노 고교]]에게 밀려 딱 한 번 전국대회 진출을 못 했던 모양.
         [[카게야마 토비오]]가 이 학교를 일반 입시로 가려고 했으나 떨어져서, [[히나타 쇼요]]에게서는 그냥 '''카게야마가 떨어진 학교'''정도로 인되고 있었다. 시라토리자와 학원은 일반 입시도 어렵다고. * 3학년
          사진 속 가운데 인물. 현역 대회 출전 선수중 가장 '작은 거인'의 플레이 스타일을 닮았다는 키 작은 에이스, 본인도 작은 거인의 플레이를 동경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닮은 꼴인 쇼요를 조금 의하는 모습도 보인다.
         도쿄 단체 합숙에 참여한 학교.
         == 유키가오가 중학교(雪ヶ丘) ==
         [히나타 쇼요]의 중학교 당시 배구부 멤버들이다.
          본명은 우카이 잇케(烏養 一繋)[* 참고로 우카이(烏養)라는 성은 '까마귀를 기르다' 라는 뜻이다.]. 우카이 케이신의 할아버지이다. 카라스노 배구부의 전설적인 명장이다. 은퇴 했으나 최근에 복귀. 그러나 나이가 있는지라 무리하다 쓰러져 현재는 복귀 계획이 없다. 2,3학년들은 그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엄청난 스파르타 훈련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엔노시타 치카라]] 등 2학년은 도망가기도 했다.
  • 하이큐/231화 . . . . 10회 일치
          * 카라스노 선수들은 타학교의 반가운 얼굴들과 재회하며 정신없는 개막을 치른다.
          * 개막을 앞두고 선수들이 대기실에 모여든다. 카라스노 고교의 사와무라 다이치와 네코마 고교의 쿠로오 테츠로는 서로 긴장했냐고 디스하며 압박감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쿠로오가 "너네 10번(히나타 쇼요) 미아같은 상태인데 괜찮냐"고 하는데 정말로 상태가 좋지 않다. 완전 길잃은 고양이 모드. 위축돼서 서성거리다 다른 선수에게 부딪혀서 비틀거린다.
          히나타는 전에 타나카가 "여왕"[* 니야마 여고는 여자배구계의 여왕으로 통한다.]이랑 아는 사이라고 자랑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 타나카는 "니야마 여고의 차기 에이스는 내가 키웠다"고 허풍을 떨었는데 반은 맞는 말이었다. 타나카의 소꿉친구로 초등학교 동창. 4학년 때까지 같이 놀았던 모양이다. 그때도 타나카보단 훨씬 컸다.
          그런데 소꿉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영향인지 타나카는 달라진 아마나이의 모습 때문에 얼어버린다. 카라스노 3학년들은(특히 스가와라 코시) 이 꼴을 보고 "여자한테 말을 쉽게 거는걸 보고 이상하다 했다." "여자임을 인해 버렸다."같은 말을 하며 수근댄다.
          * 왁자지껄하게 있던 사이 드디어 봄철 고교 배구 전국 고교 선수권이 개막한다. 개회이 시작하자 각 현을 대표하는 학교들이 차례로 정렬한다. 카라스노의 학년들은 처음 와는 오렌지색 코트에 감격한다.
          개회가 끝나고 곧바로 시합에 들어가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1, 2시합이 배정된 학교들은 바로 코트로 들어가고 나머지 학교들은 워밍업할 장소를 찾아 바쁘게 이동한다. 정신없이 이동하는 사이 시미즈 키요코는 야치 히토카를 잘 챙겨서 데리고 다닌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타나카가 "여왕"팀에 아는 사람이 있다던 복선이 회수됐다. 일단은 귀중한 신 여캐. 시미즈에 이어 작중 공적으로 "미인"으로 지칭된 두 번째 여캐. 현역 배구선수여서 그런지 엄청난 장신을 자랑한다.
  • 허용석 . . . . 10회 일치
         * 1975년 : [[덕수고등학교|덕수상업고등학교]] 졸업
         * 1980년 :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
         * 1988년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 1991년 : [[밴더빌트 대학교|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관세청장]][[분류:덕수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밴더빌트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양 허씨]]
  • 허일상 . . . . 10회 일치
         == 출신 학교 ==
         * [[서울학동초등학교]]
         * [[휘문중학교]]
         * [[덕수고등학교|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 [[단국대학교]]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허씨]]
  • 현덕 . . . . 10회 일치
         | 학력 = [[경기고등학교|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중퇴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남]],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 [[인천박문초등학교|경기도 인천 대부보통학교]] 중퇴
         * [[서울중앙고등학교|경성 중동고등보통학교]] 수료
         * [[경기고등학교|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중퇴
  • 현재현 . . . . 10회 일치
         * '''학력''' 1971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1981년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 1971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7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민사법 석사학위를 받았다.
         * 197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1981년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연주 현씨]]
  • 강대식 . . . . 9회 일치
         ||<width=30%><:>제25·26대[br][[이재만(1959)|이재만]]||<:>→||<width=30%><:>'''제27대[br]강대'''||<:>→||<width=30%><:>제28대[br][[배기철]]||
         ||<bgcolor=#00B4B4> '''{{{#FFFFFF 이름}}}''' ||<(> 강대(姜大植) ||
         ||<bgcolor=#00B4B4> '''{{{#FFFFFF 최종 학력}}}''' ||<(>[[영남대학교]] 경영학 박사 ||
         1959년 [[경상북도]] [[경산시|경산군]] 안심면(현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송정초등학교, [[안심중학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경순왕 . . . . 9회 일치
         [[935년]] 11월 그는 재위 8년만에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하고, [[고려]] 조정으로부터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군되었다. 또 정승공(政承公)에 봉해지고 [[경주시|경주]]를 읍으로 하사받았는데 그 품위가 [[태자]](太子)보다 높았다. 신란궁(神鸞宮)을 하사 받고, [[경주시|금성]]의 [[사심관]]에 임명되어 [[고려|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935년]] 11월 [[고려 태조]]는 태상(太相) 왕철(王鐵) 등을 보내 경순왕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경순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고려에게 가는데 향나무 수레와 구슬로 장한 말이 30여 리에 이어지니, 길이 막히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장을 친 것과 같았다.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교외에 나와 경순왕을 영접하여 위로하며, 궁궐 동쪽의 제일 좋은 구역(지금의 정승원(正承院))을 내주어 머물도록 하였다.
         [[935년]] 12월 경순왕을 정승공(正丞公)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하고 위계를 태자(太子)의 위에 두고 녹봉으로 1,000섬을 주었다. 또 왕을 모시고 온 관원과 장수들도 모두 다 관직을 주어 등용시켰다. 신라를 [[경주]]로 고치고 읍으로 삼도록 하고, [[경주]]의 [[사심관]]에 임명하여 [[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경순왕은 첫째딸을 [[고려 태조]]의 손자인 [[고려 경종|경종]]에게 출가시켰는데, 그녀가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이다. 이 일로 [[고려 경종|경종]]은 그를 특별히 배려하여 상보령(尙父令)으로 삼고 읍과 녹봉을 더해 주었다. 그는 [[고려 태조]]부터 [[고려 혜종]]·[[고려 정종|정종]]·[[고려 광종|광종]]·[[고려 경종|경종]]대까지 5대에 걸쳐 살았으며,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죽은 후에도 왕 다음으로 높은 존재로 인되고 그 영향력이 컸다.
         경순왕릉비는 [[1748년]](영조 24) [[연천 경순왕릉|경순왕릉]] 있근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고랑포 마을 민가에서 후손 [[경주 김씨]] 김빈(金礗)과 김굉(金硡) 등이 발견한 것으로, 비문 내용은 10여자 정도 남아 있는데 자연풍화 등으로 많이 훼손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다.<ref name="dk01"/> 이후 한국전쟁 당시 경순왕릉에서 300m 떨어진 고랑포리 시가 지역에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73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이전되었다가, [[1987년]] 경순왕릉 정화사업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비석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크기는 높이 132cm, 너비 65cm, 두께 16cm 이며, 상태는 1면만 겨우 남아 10여개의 문자만 판독되고, 내용은 거의 알 수 없다.<ref name="dk01"/>
         *** 1남: 김은열(金殷說), 고려조 경주군(慶州君), [[경주 김씨|경주김씨 은열공파]] 시조<ref>부왕 경순왕의 읍(食邑)을 습봉함 </ref>
         고려에 항복 후 경순왕은 첫째딸을 [[고려 태조]]의 손자인 [[고려 경종|경종]]에게 출가시켰는데, 그녀가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이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정승공(正丞公) 상보령(尙父令)에 봉해지고 읍과 녹봉을 더 받았다.
         * 《[[태조 왕건 (드라마)|태조 왕건]]》([[KBS]], [[2000년]]~[[2002년]], 배우:[[신귀]])
  • 구본욱 . . . . 9회 일치
         == 출신학교 ==
         * 수창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성균관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권민경 . . . . 9회 일치
         * [[대구달성초등학교|달성국민학교]]
         * [[경명여자중학교]]
         * [[정화여자고등학교]]
         미스코리아 대구 입상 후 모델 활동을 잠시 한 이후 그녀는 1990년 대구 출신의 변호사 조재원과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1남 2녀(1991년생 장녀, 1993년생 차녀, 1998년생 막내아들)를 두었고 자녀들 중 막내아들 조상우({{출생일과 만나이|1998|5|23}}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君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한림예고]] 출신인데 지난 2015년 TvN TV 프로그램 《[[고교10대천왕]]》에 10대천왕 패널 주인공 중 일원으로 출연한 전력이 있다.
         그에 아울러 그녀는 프리 랜서 아나운서 출신 수필가 겸 연기자 [[김경화]]와 영화배우 겸 연기자 [[손예진]]의 [[정화여자고등학교|정화여고]] 선배이기도 하고 그녀의 막내아들 조상우 君은 가수 [[송유빈]] 君, 가수 [[태하 (1998년)|김태하]] 羊, 연기자 [[신동우 (배우)|신동우]] 君, 연기자 [[박종혁]] 君 등과 한림예고 동기이기도 하다.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86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명여자중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김건우 (1990년) . . . . 9회 일치
         == 출신학교 ==
         * 칠성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성균관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김대진 (야구인) . . . . 9회 일치
         == 출신학교 ==
         * [[대구삼덕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김대휘 . . . . 9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 박사
         '''김대휘'''(金大彙, 1956년 ~)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춘천지방법원]], [[의정부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법무법인 화우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법조인과 대학교수로 구성된 학술단체인 형사판례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5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4년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0기 [[사법연수원]]과 해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3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2008년 2월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법원]], [[의정부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 법관에서 퇴직하여 법무법인 화우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하면서 동국제강 사외이사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였다. 2014년에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규제개혁분과위원회 전문가위원에 지명되었으며 2014년부터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석좌교수를 하였다.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예안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병윤 . . . . 9회 일치
         1922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전문학교(현 [[긴키]]대학교) 법과를 중퇴하고 포항수산대학(현 [[포항대학교]]) 증학과를 졸업하였다.
         1946년 동지교육재단을 설립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 때부터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교장]], 포항시의회 의원, 동지교육재단 [[이사장]], 농림부(현 [[농림축산품부]]) [[차관]], 포항[[시장(공무원)|시장]], 포항수산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영천시|영천군]]-울릉군 선거구로 민주공화당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그 때마다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정무]]에 밀려 탈락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한 [[청학고등학교]]의 역사과목 선생님이다.
  • 김성민 (1991년) . . . . 9회 일치
          | 학력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 [[2003년]] [[대구초등학교]] 졸업
         * [[2006년]] [[대구중학교]] 졸업
         * [[2009년]] [[대구고등학교]] 졸업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과 (2009학번) 졸업 (학사)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
  • 김성조 . . . . 9회 일치
         || '''직업''' || [[한국체육대학교]] 제6대 총장 ||
         || '''학력''' || [[영남대학교]] 화학공학 학사[br][[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br][[금오공과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
         1958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대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동양전자화학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한나라당 사립학교법 재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한나라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5년부터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 김세윤 (1999년) . . . . 9회 일치
         |청소년 클럽=[[무산중학교]]<br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대전 시티즌]])
         [[무산중학교]]를 거쳐 2015년 [[대전 시티즌]]의 유스 산하 학교인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인 김세윤은 2016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카타르 3개국 친선대회에 출전, 카타르와 말리와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4개국 친선대회에 대표팀에도 승선해 세르비아전에 출전했다.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무산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시진 . . . . 9회 일치
         [[2008년]]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에서는 [[이광환]]을 경질하고 그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구단과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8억원에 계약을 맺으면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8년 [[10월 10일]] 감독 취임을 가졌다.<ref>《한겨레》, 2008, 10, 11.</ref> [[2009년]]에 6위를 기록하였지만, 시즌 후반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치열한 4위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시즌 초반에는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특히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와 [[강정호]], [[황재균]] 등의 젊은 선수들은 [[이택근]],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의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파동|트레이드 파동]] 때 "트레이드 불가"로 못박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2009년]] [[8월 6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감독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2014 시즌 들어 수비진의 안정화로 리그 최소 실책 부문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나 [[강민호]]와 [[전준우]]를 필두로 하는 타선의 부침과 [[송승준]]의 부진이 겹쳐 6월까지 5할대 승률을 기록했다. 한편, 9구단 체제로 인한 휴일에 팀 내부 사정으로 인해 [[권두조]]가 수석코치에서 중도 사임하였다. 이후 프런트와의 마찰로 인해 [[2014년]]을 끝으로 사퇴하였다.
         == 출신 학교 ==
         * [[한양대학교]]
         * [[포항중학교]]
         * [[포항중앙초등학교]]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키움 히어로즈 감독]][[분류:현대 유니콘스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감독]][[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KBO 승리상 수상자]][[분류:KBO 승률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포항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김정수 (1991년) . . . . 9회 일치
         == 출신학교 ==
         * 대구칠성초등학교
         * 경북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성균관대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
  • 김태훈 (1987년)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9회 일치
          * 속속 등장하는 라이벌 학교
          * 유명세만큼 전력이 노출돼 있는 웅영고는 시합 개시와 동시에 타학교의 집중 공격을 당하나 미도리야의 지휘 아래 돌파해나간다.
          * 그는 다짜고짜 "여기있는 1540명 전원 승자진출 방의 연습을 실시"한다고 선언한다.
          * 미도리야는 여기서는 일단 같은 학교끼리 뭉치는게 유리하다고 보고 A반 인원들에게 한조로 움직이자고 제안한다.
          * 왜냐하면 "그들의 개성을 다른 학교에서도 알고 있기 때문"
          * 사실상 학교 단위 대항전 성격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개성은 물론 약점, 스타일까지 알려진 톱학교"가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
          * 시합 개시와 함께 모든 학교가 웅영고를 집중 공격한다.
          * 어차피 프로가 되려면 "개성을 공개"하는 것이 필연.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히어로라는 지론과 함께 "우리 학생들은 다른 학교보다 더 앞을 보고 있다"고 장담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9회 일치
          * 의협 히어로 "크림슨 라이오트"를 동경해 단련하고 있었으나, 같은 학교의 [[아시도 미나]]처럼 진작부터 웅영고 지망생으로 취급되지도 않았다.
          * 그 남자가 같은 학교 여학생들에게 길을 묻는데, 학생들이 겁먹고 아무 말도 못하자 남자가 점점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키리시마는 희미해지는 의 속에서, 그가 잘못 본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패트껌의 회심의 수 같은건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를 움직였던 건, 과거의 어떤 기억.
          * 어느 학교에나 불량한 학생은 있었다. 키리시마가 다닌 중학교도 그랬다. 당시 3학년이었던 키리시마는 후배의 개성을 악용하려는 녀석들에게 한 마디 해주려고 했다.
          키리시마의 이런 참견은 그 학교 깡패들 사이에선 유명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별다른 위협이 되진 못했는데, 당시만 해도 키리시마의 경화는 어정쩡한 수단이었고 싸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조금 단단해지는 정도의 개성"으로는 횡포를 말릴 수가 없었다. 깡패들은 그를 귀찮아 하며 삥뜯던 후배를 끌고 다른 데로 가버린다.
          * 그래서 가버린 깡패들을 쫓아가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이 선수를 쳤다. 4반의 [[아시도 미나]]였다. 학교의 유명인이었던 그녀는 강패들이 삥 뜯는 현장을 발견하거니 일단 꾸짖는다. 그리고 특유의 붙임성으로 그 깡패들과 금새 친해지더니 뜬금없이 춤을 추다가 모두를 화해시켜 돌아가게 만들었다. 뭔가 정체불명의 전개였지만 이런 일은 흔한 듯했다.
          키리시마와 같은 학교 학생들이었다. 단지 길을 묻고 있었지만 수상한 분위기와 몸집 때문에 여학생들이 겁을 먹었다.
          의협심이 발동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삥뜯는 양아치들과, 이것은 다르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인이 마침내 말이 짧아진다.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9회 일치
          * 온혈동물(Warm-Blooded) : 항온동물(ectotherms)이라고도 한다. 몸의 내부에서 음으로 얻은 에너지를 소모하여 열을 발생시킨다. [[포유류]], [[조류]] 등이 있다.
         = 조절 방 =
         냉혈동물은 주변의 온도에 따라서 활성 상태가 달라진다. 체온이 낮아진 시간대(주로 밤)에는 활동이 크게 둔해지며, 사냥을 하거나 포자를 피하기 전에는 체온을 먼저 올려야 한다. 체온이 낮은 상태에서는 활동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냉혈동물은 아주 위험해진다.--저 녀석을 잡아. 체온을 낮췄으니 오래가지 못할 거야-- --체온이 없어서.... 힘이 빠진다.--
         온혈동물은 열을 생성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거의 모든 음물을 열로 소모하고 있어, 포유류와 조류는 같은 무게의 냉혈 동물보다 훨씬 많은 음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신체의 표면적에 비례하여 열이 손실되므로, 질량 대비 표면적이 적어진다.
         또한 몸은 일정한 크기 이상이 되어야 한다. 너무 작은 온혈동물은 열을 생성하는 것보다 열을 더 빨리 잃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온혈동물은 큰 온혈동물보다 더 자주 사를 섭취해야 한다.
         냉혈동물은 체온 유지에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양의 음으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다. 이는 온혈동물보다 훨씬 적은 음만 먹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며,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 생존성이 높아진다. 냉혈동물들은 음이 부족한 경우, 가능한한 신체 온도를 낮게 유지하려 한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9회 일치
         실제로 그는 당시 소렌토의 공작으로써 살레르노 공작과 대립중이던 그의 동생인 기욤[* 앞에서 설명된 '강철팔' 기욤과는 다른 인물이다.]을 격파하는데 힘을 보태주는 대신, 살레르노 공작의 땅을 잠하는데 성공한다.
         기스카르에게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비잔티움의 황후가 될 수 있으니 상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제위계승에 끼어들 수 있는 명분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훈장을 받는건 미하일에게 뇌물을 받는 꼴이라 좀 찝찝하긴 했지만 감수못할 위험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신부감이 젖먹이 약혼자가 결혼할 나이로 자라기전 신부수업을 받기위해 콘스탄티노플로 떠났다[* 떠난 신부감은 곧 그리스으로 세례를 받은뒤 헬레나로 개명했고, 정교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그러나 1078년에 니케포로스 보타네이아테스에 의해 미카일 7세가 폐위되고 그가 니케포로스 3세로 즉위하자, 헬레나가 황후가 될 일은 막혀버렸다. 퇴위된 미카일은 수도원에서 은거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10세를 닮아 학자기질이 다분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생활은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의 며느리가 될뻔했던 기스카르의 딸에게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을 삶이었을것이다. 이는 기스카르에게 좋은 개전 명분이 되었다. 마침 남이탈리아에 반란이 일어나 원정이 지체 되었지만, 1080년 여름에는 전쟁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 제국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빠져 아나톨리아를 잃는등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었기에, 개전이 늦어지는건 그에게 큰 상황이 없었다.
         그러나 그정도로 기스카르의 열정을 꺾을수는 없었다. 해전전 미리 육군을 상륙시켜뒀기에 육군은 건재했는데다가 그병력은 이미 디라키온을 포위했기 때문이다. 이에 알렉시오스는 그의 신뢰하는 부하이자 매제인 게오르기오스 팔라이올로고스를 소규모 병력과 함께 디라키온으로 보내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병력을 모집해 지원할때까지 병력을 묶어놓으라고 지시했고, 디라키온 수비군은 지원군이 온다는 소에 더욱 격렬히 저항했다. 여름 내내 진행된 포위전은 상당히 격렬했는데, 하루는 게오르기오스가 투구에 화살촉이 박힌 상태로 하루종일 방어전을 진행했을 정도이다. 이윽고 그해 10월 15일에 알렉시오스가 직접 지원군을 몰고 왔고, 4일뒤 역공이 시작되었다.
         디라키온 함락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꺾일줄을 몰랐다. 그의 군세는 순간에 일리리아 전역을 장악했고, 카스토리아를 지키던 수비대는 기스카르에게 항복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마 비잔티움의 멸망은 약 400년정도 앞당겨질 상황이었지만...''' 그때 ''' 이탈리아에서 사절이 왔다.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캄파니아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사절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서신을 가져왔는데, 주교서임권 문제로 그와 다투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공성중이니 한시바삐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답은 바로 비잔티움 전통의 외교술이던 이이제이였다. 예전부터 비잔티움은 외국의 이민족들이 자국을 위협하면 천혜의 무역입지를 통해 쌓인 돈과 보물로 경쟁이민족을 끌어들여 견제하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외교술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것이다. 우선 그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피신해있던 기스카르의 조카인 아벨라르를 끌어들여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쥐여 이탈리아로 비밀리에 보내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한편으로는 하인리히 4세에게 사절을 보내 아풀리아 공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장차 위험해질거라고 충고하면서 금괴 36만개와 진주가 박힌 황금 가슴장, 그외 수많은 귀중한 보물들을 선물해 그를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기스카르는 즉각 이탈리아로 돌아와 1083년 한여름 안에 아벨라르와 그의 형제인 에르망의 난을 진압하고, 산탄젤로성에서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교황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군대를 모집했고, 이듬해 초여름에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는 기스카르와 직접 싸움을 걸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로마성문으로 들이닥치기 사흘전에 군대의 대부분을 거느리고 롬바르디아로 숨어버린것이다. 한편, 기스카르는 5월 27일 밤에 병력을 거느리고 조용히 도시의 북쪽으로 돌아가,섀벽에 공격을 개시했고, 순간에 돌격대의 선봉이 플라미니우스 성문을 뜷고 도시로 진입했다. 로마 시민들은 노르만군에게게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마르티우스 광장 전역이 불타는 지역으로 변했다. 이후 노르만 병사들은 로마를 약탈하고, 말그대로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한때 군중들이 기스카르를 포위해 그대로 끔살시킬뻔하기까지 했다(...) ~~아깝게도~~ 그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차남인 로제르 보르사가 병력 1천명을 이끌고 그를 구원해 겨우 목숨을 건진 기스카르는 노르만군들에게 도시를 모조리 불태우라고 명령한뒤, 교황을 데리고 남이탈리아로 돌아가 비잔티움에 대한 후속 원정을 준비한다.[* 참고로 이때 기스카르의 나이는 예순 여덟이었다!! 그것도 서양이니 한국이면 칠순(....) 대단한 집념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가지 불행이 있었는데, 항해를 할때마다 폭풍이나 기타 연유로 제대로 함대를 유지시키기 힘들었으며, 후계권 문제로 그가 죽은 이후 남이탈리아가 개판이 되버린것이다.(...) 최종적으로 이후 남이탈리아는 그의 자손이 아닌, 그의 동생인 로제르의 아들인 시칠리아 공작 로제르가 시칠리아 왕 루지에로[* 로제르의 이탈리아 인명]로 즉위하면서 통일되게 된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9회 일치
          풀네임은 타미클 로빙 3세. 일본 홋카이도 출신으로 정부군 대위이다. 아버지는 우수한 군인이었으며, 타마 또한 중학교 졸업 즉시 군대에 들어갔다. 20대에 대통령을 구했으며, 군대에서 사귄 친구인 마르코와 함께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메탈슬러그 이후 은퇴해 바이크샵을 차리려고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상부의 요청으로 연기되었다.
         [[http://www.metalslug10th.com/top_e.html|메탈슬러그 공 웹사이트(영어)]] - 2006년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다. 도메인을 보아 2006년에 10주년 기념으로 만들고 내버린 듯.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5/english/ms5_top.html|메탈슬러그 5 공 웹사이트(영어)]]
         [[http://www.metalslug10th.com/top_j.html|메탈슬러그 공 사이트(일본어)]] - 영어 버전과 상동. 이쪽은 업데이트가 2009년까지 되었다.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ms4_top.html|메탈슬러그 4 공 웹사이트(일본어)]]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5/ms5_top.html|메탈슬러그 5 공 웹사이트(일본어)]]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6/|메탈슬러그 6 공 웹사이트(일본어)]]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7/|메탈슬러그 7 공 웹사이트(일본어)]]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xx/|메탈슬러그 XX 공 웹사이트(일본어)]]
  • 박보생 . . . . 9회 일치
         ||<bgcolor=#808080> '''{{{#FFFFFF 학력}}}''' ||<(> 김천농림고등학교 {{{-1 ([[졸업]])}}}[br][[한국방송통신대학교]] {{{-1 (행정학 / [[학사]])}}}[br][[경북대학교]] {{{-1 (행정학 / [[석사]])}}}[br][[경북대학교]] {{{-1 (행정학 / [[박사]])}}} ||
         1951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농공(농림/공업)고등학교(현 [[김천생명과학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김천농림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천시청에서 기획실장, 행정지원국장, 사회산업국장, [[경부고속철도]] 김천역 유치 행정지원단장, 예술단 부단장, 인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 박지훈 (야구선수) . . . . 9회 일치
         ==출신 학교==
         * [[대구본리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단국대학교]]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박진영 (야구선수)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배기철(정치인) . . . . 9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학력}}}''' ||<(> 김천고등학교[br][[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사[br][[계명대학교]] 대학원 환경과학과 휴학 ||
         1957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계명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았고 본선에서 현직 [[구청장]]인 [[바른미래당]] [[강대]]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8월 10일 동구의 한 음점에서 금연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기자의 불을 꺼달라는 요구에 마지못해 끄면서
         '[[망언|안 걸리면 그만이지. 지금 단속 나온 것도 아닌데...]]' 라고 했다. [[http://www.nocutnews.co.kr/news/5013522|구청장이 금연음점에서 버젓이 흡연. 게다가 안 걸리면 그만이라고?]]
  • 백승민 (야구선수)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남도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수원 백씨]]
  • 백승주(정치인) . . . . 9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학력}}}''' ||<(> [[심인고등학교]] {{{-1 ([[졸업]])}}}[* [[유시민]] 작가의 모교다.][br][[부산대학교]] {{{-1 (정치외교학 / [[학사]])}}}[br][[경북대학교]] {{{-1 (정치학 / [[석사]])}}}[br][[경북대학교]] {{{-1 (정치학 / [[박사]])}}} ||
         [[1961년]] [[3월 20일]]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에서 태어났다. 구미 오로초, 대구 성광중,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3월]]에 국방차관으로 선임되었다. 보통 국방차관은 예비역 [[중장]]이나 드물게 재정 전문가가 보임되는데 비해서 순수하게 안보 연구(북한군사 전문)를 해온 [[민간인]]이 선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역대 최연소 차관이며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거의 독점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몇 안 되는 민간인[* 여기서 민간인은 비장성 출신.] 출신이다. 참고로 병역은 [[중위]]로 마쳤다.[* 아무래도 보직이 보직이다 보니 예비역 병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이 파격적이다.]
         1.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0804&yy=2016|불법이지만 단 1달러도 줄 수 없다!]] 국방부 차관 재직당시인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나라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이 MS 소프트웨어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사용료 지급을 요구했다. 윈도 서버 접근 권한인 '사용자 서버 접속 허가'(CAL·Client Access License) 구매 숫자를 훨씬 초과해 윈도 서버에 접속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MS사는 피해 액수가 무려 연 2011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으나, 백승주는 '''라이센스 등록 안하고 접속하는 곳 만큼 등록해놓고 접속 안 하는 곳도 많다! 라이센스 관리를 미숙하게해서 그렇지 플러스 마이너스 따져보면 우린 정당하게(?) 돈 내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 1달러도 못 준다! => 우리가 자체 조사해보니 불법 사용자도 없더라![* 말이 자체 조사지, 군부대와 군시설에 공문 보내서 혹시 불법으로 쓰는 곳 있으면 자백해라 정도 였을 것이다.] => 못 믿겠으면 니네가 니네 비용으로 전수조사해서 증명해라! => 대신 군사기밀을 건드려서는 안되고 당연히 우리는 조사에 협조도 못해준다!!!'''라는 의 --어거지--주장을 강력하게 펼쳤다.
  • 블랙 클로버/122화 . . . . 9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122. '''나의 방'''
          * 미모사는 극비 중에 극비인 시합 장소를 미리 안 점을 미심쩍어하고 아스타는 비겁한 술수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나 잭스는 "나의 방"을 꺾지 않는다.
          * 잭스가 "나의 방"을 포기하지 않아 자신도 "나의 방"을 관철한 아스타. 기세등등하게 적과 아군 모두를 도발한 결과가 되는데.
          그건 다른 함정도 설치했었다는 것. 정확한 추론이었다. 잭스는 새삼 아스타가 "기"를 읽을 수 있다는 걸 상기하며 성가셔했다. 하지만 여기서 숨기거나 얼버무리는 건 무리수. 그는 깔끔하게 그렇다고 인정했다. 사전에 정보를 긁어모아서 이 장소를 찾아냈고 어제 미리 함정을 설치해놨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미모사는 거기서 또다른 의문점을 찾아냈다. 로얄 나이츠 시합 장소는 극비 중의 극비. 어떻게 잭스가 그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걸 추궁할 기회를 놓쳤다. 아스타가 "그건 반칙"이라며 반발했던 것이다. 잭스는 정보전도 실력의 일부라 우기며 비난을 일축했다. 애초에 그런게 안 된다는 룰이 있지도 않고 실제로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는 논리. 궤변이지만 아스타에게 반박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미모사는 순간에 논파되고 분개하는 아스타가 귀여웠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스타가 고작 생각해낸 반론은 함정 위치를 공개하라는 거였다. 정말로 전술이고 팀 플레이의 일환이라면 어째서 그 위치를 숨기는가? 잭스는 그것도 "너한테 알려주면 적도 알아차린다"는 핑계로 넘어갔다. 그는 철저히 자기 방대로 할 생각이었다.
          >나는 내 방으로 하겠어.
          분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아스타는 자기도 "자기 방"대로 하겠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잭스는 그의 "쬐깐하고 썩은 대가리"로 퍽이나 좋은 방도가 생각나겠다고 빈정거렸다. 미모사는 돕겠다고 "아스타씨가 작은건 신장 뿐"이라 거들었지만 안 하느니만 못했다.
          * 아스타의 방대로. 그게 비록 적과 아군, 양측의 분노를 사더라도.
  • 손전 . . . . 9회 일치
         |학력 = 경상북도 대구농립농업학교 졸업 <br /> 일본 니혼 대학교 경제학과 중퇴
         '''손전'''(孫全, [[1910년]] [[1월 27일]] ~ [[1999년]] [[9월 8일]], 본명: '''손병철''', 孫秉喆)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제작자]], [[영화감독|감독]]이다. 손전, 손일포, 한일호 등의 예명을 사용하였다. [[1925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30년]] [[니혼 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총 1천 5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 출신학교 ==
         *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 졸업
         * 《[[0점하의 자들]]》
         [[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 배우]][[분류:1932년 데뷔]][[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10년 태어남]][[분류:1999년 죽음]][[분류:밀양 손씨]][[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
  • 손형준 (야구선수)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식극의 소마/162화 . . . . 9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1화]] |||| '''극의 소마/162화''' |||| [[극의 소마/163화]] ||
         [[극의 소마]] 162화. '''나'''
         * 소마도 "바라던 바"라고 받아치며 극이 시작된다.
         * 설마했던 제 1석과의 극.
         [[분류:극의 소마]] [[분류: 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4화 . . . . 9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3화]] |||| '''극의 소마/174화''' |||| [[극의 소마/175화]] ||
         [[극의 소마]] 174화. '''시간을 달리는 연어'''
          * 시험관은 이들의 인맥과 지에 감탄하지만 어차피 시간 안에 조리는 불가능할 거라고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 소마는 한술 더 떠서 "우릴 너무 얕본거 아니냐"며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시장에서 분투하는건 당의 일상"이라며 도발까지 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5화 . . . . 9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4화]] |||| '''극의 소마/175화''' |||| [[극의 소마/176화]] ||
         [[극의 소마]] 175화. '''토오츠키 열차는 달린다'''
          * 합격자들은 사를 마친 후 열차에 탑승, 밤새 달려서 내일 새벽 2회전 시험장에 도착하게 된다.
          * 그러다 뉴스에서 나오는 어떤 소을 보고 "이거다"라고 외치는데.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9화 . . . . 9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8화]] |||| '''극의 소마/179화''' |||| [[극의 소마/180화]] ||
         [[극의 소마]] 179화. '''대면'''
          * 시오미 세미나는 그냥 "망했다"고 일축. 자신은 정상의 자리를 손에 넣었다며 소마에게 퇴학이 걸린 극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 린도는 호텔에서 아침사를 하며 소마일행에게도 권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원피스/841화 . . . . 9회 일치
          * 상디는 6개월이나 감금되어 있었고 사 때만 철가면을 벗겨주는 극악한 대우를 받는다.
          * 상디는 철가면을 벗길 열쇠를 찾다 저지에게 발각되는데, 오히려 저지는 "수치스러우니 절대로 내 자이란걸 밝히지 마라"는 조건으로 내버려둔다.
          * 그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이 붙여져 있어서 사를 준비하는 요리사들 조차도 누구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고 있다.
          * 상디는 오직 사할 때만 가면을 벗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입주위만 느슨하게 하는 것이고 완전히 벗을 순 없다.
          * 상디가 홀로 사하고 있을 무렵 형제들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빈스모크 저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 상디는 사 하면서 처음 요리를 했던 일을 회상한다.
          * 아무래도 자신도 사람이고, 상디처럼 "글러먹은 놈"이라도 친자을 직접 제거할 수는 없었다는 것.
          * 기어 4의 시간 제한 때문에 도망치다 병사가 다가오면 부숴서 먹어치우는 으로 싸우고 있나 보다.
          * 정황으로 보면 기어4가 되는 동안 비스킷 병사를 부순다->기어4가 끝나면 먹어서 체력회복->쿨타임되면 다시 기어4, 이런 으로 싸운 듯.
  • 원피스/845화 . . . . 9회 일치
          * 그 말에 감동받은 상디는 푸딩에게 정으로 프로포즈한다.
          * 홀케이크 성. 빅맘 샬롯 링링은 빈스모크 일가와 만나기 위해 가는 중이다. 그런데 작은 소녀 "아나나"가 요리장이 칼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징징댄다. 봉제인형을 찢어야 한다나. 빅맘은 옆에서 풍선을 타고 놀던 뚱뚱한 도르체, 도르제 형제에게 빌려주라고 하지만 도르체는 그러면 아나나가 자기들 풍선을 터뜨려 버릴 거라며 싫어하고 아나나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위협한다. 다른 아이들도 빅맘 주위로 몰려와 도르체와 도르제가 "나쁜 말"을 쓴다고 일러바친다. 빅맘은 껄껄 웃으며 "누구에게나 죽이고 싶은 상대는 백이나 이백 정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한다. 빅맘은 내일로 다가온 샬롯 푸딩의 결혼과 사위가족과 만날 일로 들떠 있다.
          * 마침내 한 테이블에 모인 제르마 왕가와 샬롯 링링. 빅맘은 푸딩의 결혼을 기대한 것과는 달리 "정략결혼이니 나와 빈스모크 저지만 만족하면 된다"는 으로 떠들어댄다. 오히려 저지 쪽에서 "그래도 애들이 행복하면 나쁠 건 없다"고 자을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화기애애한 이들과 달리 푸딩과 상디는 표정이 무겁다. 특히 상디는 심란한 와중에 음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난리를 쳐서 더욱 짜증이 난다. 그러던 중 푸딩은 살짝 쪽지를 전해 나중에 단둘이 이야기하자고 전하는데.
          * 레이쥬는 그의 상처를 치유해준 것이 아니라 가죽같은 마스크로 덮어 씌워놨던 것이다. 그 밑에는 얻어맞아 퉁퉁 부운 얼굴이 그대로 나타난다. 상디는 피로 이어진 가족이 있어도 이꼴이고 자신의 편은 하나도 없다고 털어놓는다. 푸딩은 그의 처참한 몰골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상디는 이 결혼을 피하려 하면 자신도 밀집모자 일행도 끝장이고 그의 "대은인"인 제프 또한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 대신 루피 일행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여기에 남은 것이다.
         미러 월드의 쵸파, 캐럿은 아직도 소이 없고 브룩과 페드로의 행방도 불명. 적어도 루피의 원군으로 갈 사람은 없어 보인다.
  • 원피스/848화 . . . . 9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은 제르마의 힘과 옥갑을 얻은게 기뻐 [[몽키 D. 루피]]의 도발도 웃어넘긴다. 그때 보물전에 침입자가 생겼단 소이 그녀의 기분을 망친다.
          * 브룩은 보물전 안에 남은 체스병들을 연주와 노래로 순간에 제압한다.
          그래 "샬롯 앙그레"란 꼬마가 애벌레를 타고 들어온다. 앙그레는 "보물전에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소을 가지고 왔는데.
          빅맘은 내일 일만 생각하면 뭐든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런데 빅맘의 모자가 "염파"를 감지하고 신호를 보낸다. 그건 자들이 보내는 보고용 염파. 보물전에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소이다. 빅맘은 그 침입자가 옥갑을 노리는건 아니냐고 격노한다.
          * 푸딩은 자신의 방에서 유모와 함께 있다. 유모는 루피 일행이 잡힌 소을 전하면서 그들이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푸딩이 정했던 드레스는 빅맘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가 따로 고른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고 알린다.
          * 보물 전 안의 [[브룩]]은 빅맘의 자들과 체스병들에게 포위 당해있다. 그래도 아까보단 줄은 숫자. 페드로가 이목을 끌어준 덕이다. 빅맘의 자들은 브룩을 "별난 생물" 취급하며 꼭 잡아서 빅맘에게 바치고자 한다. 체스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브룩은 태연하게 기타를 꺼낸다. 페드로가 사전에 체스병에 대한 정보를 준 건데 그들은 "사람의 영혼"이 물건에 들어가 있는 병사. 즉 "소울"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푸딩이 말하는 "결심"이란 로라처럼 결혼을 거부하고 떠나는 걸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상디를 속박할 명분도 없어지고 빅맘이 밀집모자일당을 적대할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 원피스/873화 . . . . 9회 일치
          * 그런데 빅맘의 탐이 폭주하는 사태가 발생, 웨딩 케이크를 못 먹는 바람에 눈이 뒤집혀서 날뛰기 시작한다.
          * 빅맘해적단의 기사회생. 옥갑의 폭발로 촉발된 홀 케이크 성 붕괴로 까딱하면 성과 스위트 시티가 함께 괴멸할 뻔 했으나 총요리장 [[슈트로이젠]]의 능력으로 성 자체를 케이크로 변화시키셔 가까스로 인명피해를 면했다. 그러나 성은 파괴되었고 어마어마한 케이크 더미에 깔린 사람들을 구출하느라 어수선하다. 빅맘 해적단의 간부들은 자기들이 아는 정보를 공유하며 다과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밀집모자 해적단과 파이어 탱크 해적단이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전모를 밝혔다. 다과회, 결혼이 엉망이 됐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카포네 갱 벳지]]는 [[몽키 D. 루피]]와 손잡고 빅맘을 배신, 오히려 [[샬롯 링링]] 암살을 도모했다.
          * 하지만 풀린 수수깨끼도 있다. 왜 다과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성 안의 간부들은 까맣게 몰랐을까? 그건 벳지의 공작이었다. 성내로 연결되는 연락라인이 전부 불통 상태였던 것. 마침 짚이는 것도 하나 더 있다. 다과회 개시 직전 동쪽 해안을 점거 중이던 태양 해적단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 소은 [[페콤즈]]가 직접 전했다. 용캐 성으로 돌아온 페콤즈가 그들이 자기만 해안에 남겨놓고 짐까지 빼앗아 가버렸다고 성을 냈다. 이야기를 맞춰보니 그건 [[징베]]가 안전하게 빅맘 산하를 떠나 밀집모자 일행과 합류하기 위한 조치였다. 빅맘의 분노가 어인섬과 태양 해적단에 미칠 걸 우려한 징베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려고 한 짓이다. 그래서 한 번은 탈퇴를 취소했다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갔다는 소을 듣고 나서야 다시 탈퇴를 확정한 것이다.
          * 자초지종을 물을 것도 없었다. 빅맘의 폭주. 또 탐을 부리고 있다. 그 가차없는 먹부림에 이미 [[샬롯 오페라]]가 희생 당했다. 넋이 나가서 빅맘 손아귀에 인형처럼 들려있다. 케이크를 찾으며 보이는 건 전부 파괴하고 입에 쑤셔박는 빅맘. 괴수가 따로 없다. 분명 웨딩 케이크를 못 먹게 된게 세삼 분해서 저럴 것이다. 몬도르가 눈치 빠르게 오페라가 당한 걸 보고 누구도 빅맘 주위에 다가가지 말라고 주의시킨다.
          * 스무디는 이럴 때 어찌하는지 기억에 새겨질 정도로 숙지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빅맘이 찾는 음을 대령하는게 최선. 문제는 웨딩 케이크를 담당했던 슈트로이젠의 상태였다. 쿡쿡 열매의 능력으로 성을 케이크로 만들고 사람들을 구한 것까진 좋았지만, 하필이면 착지할 때 와장창 실패. 전신에 붕대를 감고 드러누웠다. 의사가 적어도 며칠은 있어야 회복이 된다고 진단. 답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페로스페로는 머리가 좋은 만큼 현실적이었다. 스무디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 총요리장이 며칠을 들여서 그걸 만들었던가? 여러 나라에서 상납받은 "환상의 재"도 이젠 없다. 물론 있다 해도 그걸 만들 당사자가 의불명. 난관은 더 있다. 빅맘은 지금까지 이런 "최고의 웨딩 케이크"를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빅맘이 고대에 고대를 거듭하면서 기대치는 한껏 올라갔고, 이제 그게 다시는 못 먹데 된 셈이다.
          그리고 번뜩이는 권총. [[상디]]를 쏘려던 그 총이다. 항상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푸딩만 알았던 시민들은 이렇게 돌변한 모습에 당황하지만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연연할 수가 없었다. 푸딩의 "작전"은 계속된다. 그녀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예견이나 한 것처럼 마지막 난관도 타파한다. 재료 문제. "환상의 재"라면 예비분이 있다. 그것도 푸딩이 거주하는 카카오섬 "쇼콜라 타운"에. 그녀는 페로스페로에게 빅맘이 루피 일행을 처치한다면 이후엔 쇼콜라 타운으로 오게 유도해달라 부탁한다. 방금까지 죽는 줄만 알았던 페로스페로가 반색하며 "고맙다"고 말한다.
  • 이상훈 (1987년)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칠성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성균관대학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 이상휘 . . . . 9회 일치
         || '''최종학력'''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박사 ||
         || '''현직''' ||<(> [[세명대학교]] 교양학과 교수 ||
         [[위덕대학교]] 부총장
         [[대한민국]]의 대학교수이자 전 정치인이다. 현재 [[세명대학교]] 교수다.
         [[197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해양과학고등학교, [[용인대학교]]를 졸업 및 학위를 취득했으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이후, [[데일리안]]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위덕대학교]] 부총장까지 지냈다.
  • 이석훈 . . . . 9회 일치
         ||<#0D3EA3> {{{#ffffff 학력}}} ||<(><rowbgcolor=#ffffff> [[포항명도학교]] (졸업)[br][[동아방송예술대학교]] 영상음악과 (전문학사)[br][[청운대학교]] 방송음악과 (학사)[br][[경희대학교|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 ||
         동아방송예술대학 영상음악계열, 청운대학교 방송음악과를 거쳐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2015년 1월, 방송에서 만난 발레리나 최선아 양하고 결혼한다는 소을 밝혔다.~~이젠 교회 오빠 아닌 교회 아저씨~~ 멤버들이 신곡을 녹음하는 도중에 최선아 양이 찾아와서 먹을 걸 가져왔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내조를 하는 듯.~~그리고 용준이는 울었다~~
         결혼 날짜는 2016년 1월 17일로 결정되었다. 이 사실을 직접 팬카페에 손편지로 남겼다.~~글씨체가 둥글둥글하다. 귀...귀엽다!~~
  • 이재율 (1993년)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포항제철중학교]]
         * [[포항제철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이지찬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옥산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 [[경성대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이희성 (1988년)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칠성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성균관대학교]]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
  • 정승화(육군) . . . . 9회 일치
         ||<#2e8b57><:> {{{#ffffff '''최종계급'''}}} ||<#8fbc8f> 대장[* 전두환에 의해 이등병으로 17계급 강등 및 예편되었다가 대장으로 복권되었다. 따라서 현역 최종계급은 공적으로 대장.] ||
         [[대한민국]]의 [[군인]]. [[육군사관학교]] 5기, 최종 계급은 [[대장(계급)|대장]]. [[종교]]는 원래는 [[불교]]였다가 후에 [[천주교]]로 [[개종]]했으며 [[세례명]]은 베드로다.
         [[경상북도]] 김천군(현 [[김천시]]) [[봉산면]] 출생이다. 상관을 잘못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으로 [[임관]]한 뒤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하필 강태무/표무원 [[소령]]이 [[월북]]해 버리는 사건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3사단 백골부대 예하 [[대대장]]으로 보임되어서 참전하였는데 [[군단장]]이 [[유재흥]] 장군이었고 그 전투는 [[현리 전투]]였다. 이 때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일도 있었다. 탈출할 때 한 화전민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후 보답으로 여러 편의를 봐주었다고 한다.
         [[5.16 쿠데타]] 때는 방첩대장(현재의 명칭은 [[국군기무사령부|국군기무사령관]])을 역임했다.회고록에 따르면 이후의 원수지간이 되는 노태우와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노태우는 방첩대 정보과에 있었는데, 방첩대의 특성상 정치 분야에 관여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너무 그 쪽(정치)에 열중하지 마라. 군인이라면 야전에서 일하는게 더욱 군인답지 않겠나'라고 가볍게 충고한 적이 있었다고. 이 때 육군사관학교 제11기생들의 쿠데타 음모를 감지하였으나 육군사관학교 5기 동기생인 [[김재춘]]과 함께 이 사건을 덮기로 하였다. 김재춘은 5.16쿠데타에 가담해서 한때 중앙정보부장까지 올랐으나 김종필을 중심으로한 육사 8기생 그룹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면서 군부정권 핵심부에서 밀려났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 3공화국, 4공화국을 거치면서 계속 승승장구했다. [[제7보병사단]][[사단장|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인사국장, [[제3군단]][[군단장|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이후에 [[1979년]] [[2월]]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 여담으로 당시 정승화는 [[김대중]]에게 부정적이라 그가 당선되어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편파적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여하간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시도는 없었다.
         공선거운동 시작 직후 김영삼이 정승화를 통일민주당 부총재로 영입하자 김영삼의 지지율이 1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터지고 선거 바로 전날 [[김현희(1961)|김현희]]가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엄청난 북풍이 불었고, 3김이 서로 먼저 대통령 해보겠다고 동시출마하는 병크까지 터뜨려, 결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노태우-36%, 김영삼-27%, 김대중-26%, 김종필-7%[* 보면 알 수 있듯, 3김이 단일화만 했어도 노태우는 절대 당선될 수 없었다.], 즉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의 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 10.26 당시 자신을 몰라보는 육군본부의 초병에게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그 초병이 대답하기를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요?"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대통령 저격이라는 비상사태가 일어났으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정승화 대장은 군복이 아닌 사복, 즉 [[정장]] 차림이었고,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 육본의 초병도 "한밤중에 갑자기 민간차량을 타고 나타난 사복 차림의 장년 남성"이 설마 육군참모총장이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다른 장교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알아보고 무사통과시켰다고.
          * 가족으로은 아내인 신유경 씨와 3남 1녀가 있다. 자녀 중 셋째인 정이열 씨는 아버지처럼 육군사관학교(육사 38기)를 나와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대령으로 예편 및 전역했다.
  • 정운용 . . . . 9회 일치
         |학력 = [[일본]] [[메이지대학교]] 법학과 전문부
         '''정운용 (鄭雲用)''' (1904년 ~ 1963년 10월24일 )은 [[조흥은행]] 2대행장으로 일본 민통치에서 해방된 이후 최초의 한국인 행장이었다. 그는 [[경상합동은행]] [[취체역]](이사), 경상합동은행 [[두취]] (행장),한성은행 상무취체역(상무이사) 등을 거쳐 1945년 11월 조흥은행 행장에 올랐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31~234</ref>
         정운용은 1938년 24세의 나이에 경상합동은행 취체역(이사)에 선임됐다. 조부인 정재학 경상합동은행 두취(행장)이 은행경영권을 손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동일은행 최대주주였던 민대 등 황실외척이었던 민씨가문에 의한 경영권 장악 기도는 물론 대구상공은행을 운영하던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탈취시도와 맞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ref name="ReferenceA">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재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씨 가문은 [[민덕기]]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상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갔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을 배출했다. 그러나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ref name="ReferenceA"/>
         [[김진만]]의 손자 [[김일]]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먼 친척관계인 [[정운일]](鄭雲馹)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아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50653</ref><ref>놀라운 사실은 [[정재학]] [[대구은행]]장이 자신을 협박대상으로 꼽았던 친척 [[정운일]]에 대해 각별히 배려해줬다는 점이다. 정재학 행장은 정운일의 아들인 [[정인택]]( 1911~ 1973 )이 감옥에 있는 부친 때문에 상급학교진학이 어려웠던 사정을 알고 보증인 역할을 해줬다. 정인택은 정 행장의 보증 덕에 대구고보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 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태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인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ref>
  • 조긍하 . . . . 9회 일치
          | 학력 =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
         *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를 졸업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를 졸업하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8383&mobile&categoryId=1639 조긍하 - 네이버 지백과]</ref>. 그 후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사진가|사진]] 촬영과 [[영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사진작가의 관록으로 조감독 수련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었는데, [[1952년]]에 《베일부인》을 감독한 것을 시작으로 《황진이》([[1956년]]), 《곰》, 《육체의 길》([[1959년]]), 《인간만세》, 《과부》([[1960년]])등의 영화를 감독하였고, 시나리오도 직접 집필해왔다. 또한, 1960년대 말에는 《상해임시정부》,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300032921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30&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181&publishType=00020 故(고) 趙肯夏(조긍하)감독의 人間(인간)과 作品(작품)세계 고지하면서도 유머풍부 - 1982년 1월 30일 경향신문]</ref>.
         *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 졸업
         *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 학사 (테너 전공)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1942년 데뷔]][[분류:투자가]][[분류:자유 연애]][[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구니타치 음악대학 동문]][[분류:1919년 태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풍양 조씨]]
  • 조청희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충암고등학교]]
         * [[건국대학교]]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조씨]]
  • 차일목 . . . . 9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홍익대학교]]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연안 차씨]]
  • 채현국 . . . . 9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
         |직업 = [[학교법인인]]<br/> [[문화운동가]]
         '''채현국'''([[1935년]] ~ )은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이자 [[문화운동가]]이다.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를 마쳤으며, 과거 [[흥국기업]]의 총수이자 현재 [[대한북레터협회]]와 [[효암학원]]의 [[이사장]]이다.
         채기엽은 이후 무역·목축·임산·조선·해운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늘렸고, 경남대학교의 전신인 옛 해인대학이 기틀을 마련하도록 지원했다. 그후 양산시 웅상에 현재의 효암학원을 설립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ref>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50112191904563 </ref>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뒤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자금을 지원했다. 1988년부터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뒤에서 돌보고 있다. <ref>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557825 ‘꼰대’ 거부하는 채현국·신영복·호세 무히카 이런 ‘단호박 할배’들은 처음이다</ref>
         *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한테 물려 줄 게 아니다."
         *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학교법인인]][[분류: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콩고(소설) . . . . 9회 일치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유럽 합작 기업의 탐사대가 추격 중이라 바짝 긴장한 연구소는 급히 과학자 카렌 로스를 팀장으로 삼아 소규모 탐사대를 재차 투입한다. [* 이렇게 급하게 탐사대를 다시 꾸린 건 경쟁 기업의 추격도 있었지만 해당 지역이 정부군과 인종 키가니족이 내전 중이라 어렵게 따낸 탐사 허가를 또다시 따낼 틈이 없어 일단 탐사대의 전멸은 비밀로 한채 새로운 탐사대를 투입하는 걸 들키기 전에 얼른 투입시키기 위해 서둘렀다.] 영상에 집힌 고릴라의 이미지 때문에 영장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카렌은 수화를 할 줄 아는 [[고릴라]] 에이미와 그녀를 돌보는 동물학자 피터 엘리어트, 아프리카의 백인 용병 찰스 먼로 등이 이끄는 탐험대가 자이르 정글 깊숙한 곳으로 잃어버린 전설의 다이아몬드 광산도시 진즈(Zinj)를 찾는 모험이 중심 소재이다. 마치 전형적인 모험 소설 같지만, 탐험의 주체가 현대적인 광산 기업이거나, 위성으로 연락,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거나 NASA에서 개발된 탐험 장비를 사용하는 등 상당히 현대적인 가제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정글에 투입시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시작으로 인종의 인 행위를 목격하고[* 창칼로 무장한 원시인 수준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이라 닳고닳은 용병인 먼로도 경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이 멀쩡한 건 아니라 수틀리면 간빼먹는 건 일도 아니게 생각할 병사들이 그득하다고.] 하마의 공격에 혼쭐나기도 하고 피그미족에게 구출된 1차 탐사대원도 만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마디도 못하는 폐인이 된 상태였지만 에이미의 냄새를 맡자 극도로 흥분한다. 이들이 당했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 일본, 독일, 네덜란드의 합작 기업을 추격하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연구소의 소에 좌절하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털레털레 가지만 정작 추락한 합작 기업의 수송기에 실린 물자는 그대로고 곧이어 찾은 합작 기업의 탐사대 캠프 역시 전멸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카렌 로스가 지질 조사를 위하여 화약을 설치하고 폭파시키도록 지시한 탓에 화산 폭발이 일어나 버린다. 탐험대는 필사적으로 진즈에서 도망치지만 진즈와 회색 고릴라들은 용암에 묻혀 사라져 버린다. 생존자들은 겨우 목숨만 건진 채로 일단 충분한 물자가 있고 거처로도 쓸 수 있는 합작사업의 추락한 수송기로 가지만 하필 인종 무리와 마주쳐 전투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고릴라와 싸울 때와 달리 수송기 동체라는 방호벽에 화물칸에 쌓인 무기 덕으로 인종을 닥치는대로 쓸어버리고(...) 주술사까지 죽여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다음 공격이 있기 전 준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물자를 뒤지던 일행은 합작기업이 준비했던 [[열기구]]를 타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먼로의 오른팔격인 현지인 청년. 꽤 유머러스하고 성격에 붙임성도 좋다. 다른 대원들은 마구 죽어나가는 와중에 본인은 끝까지 살아남는데 성공. 다만 이런 의 탐사는 해본 적이 없는지 피터와 카렌을 보고 학자로 위장한 밀수업자로 생각했다. 본인은 먼로가 무기밀매 아니면 이렇게 나설 일이 없다고 믿는 듯.
         정글에 묻혀 있는 고대도시 진즈의 잔해에 거주하는 회색 [[고릴라]]. 평범한 고릴라가 아닌 신종으로서, 현재는 사라진 진즈의 주민들에게 경비병으로 훈련되어 있다. 언듯 보기에는 평범한 고릴라지만, 털 색이 회색이며 평범한 고릴라와는 해부학적 특징이 다르고,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지적인 생물이다. 다만 얌전한 초동물인 고릴라와는 달리 흉폭성도 높아서 위험한 생물이다.
         기본적으로 정글 탐험과 보물찾기를 하는 스토리지만, 테크노스릴러 답게 당시 시점에서는 최신 기술이었던 위성통신 기술이나, "나사에서 만들었다."는 수어가 붙는 최신 장비를 여러가지 동원하여 흥미진진한 정글 탐험이 진행된다.
  • 킹덤/514화 . . . . 9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은 어느덧 난성에 도착, 추격에 박차를 가하나 [[왕전(킹덤)|왕전]]이 소도시 "오다"를 공략했다는 소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그런데 왕전은 묘한 지시를 내리는데, 오다의 량은 모두 징발했지만 백성들에겐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다른 도시로 피난하게 한 것이다.
          * 조의 총사령관 이목은 바람같이 행군을 거듭해 벌써 "난"성까지 도착했다. 예정보다 하루 가량 빠른 속도였다. 그는 여기서도 잠시 쉬기만 할 뿐 곧 출발할 거라며 급히 보급을 행한다. 난성에 도착해 보니 그 앞에 들어온 보고가 두 건 있었다. 하나는 사마상이 오르도를 격퇴했다는 것. 이로써 연군을 걱정할 필요 없이 진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른 소은 진군의 동향. 그런데 보고하던 성주는 자신도 미심쩍다는 듯이 양해를 구하며 그 내용을 전달한다.
          천하의 이목 조차도 상을 초월하는 이 같은 소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오다성에 입성한 [[환의(킹덤)|환의]]병사들은 민가를 털어서 병량을 끌어모은다. 약탈행위를 질색하는 이신이 제지하려 하지만 [[몽념]]은 이번만큼은 저들의 "코"가 도움이 됐다며 이신을 자제시킨다. [[마론(킹덤)|마론]]은 환의에게 순조롭게 량징발이 끝났다고 보고한다. 이제 이걸로 오다에 남은 량은 없다.
          왕전이 계속해서 하는 말은 더더욱 예상 밖의 것이다. 그는 전쟁인 이상 "마음은 괴롭지만" 그들로부터 량과 성을 뺏을 수밖에 없다며 량을 잃은 백성들은 어떻게든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근처 성까지" 이동하길 바란다며, 자신을 "용서해달라"고까지 말한다.
  • 타쿠마 마모루 . . . . 9회 일치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을 일으킨 흉악 살인 범인.
         ## 간단한 이력, 연표형.
         범인 타쿠마 마모루는 1963년에 이케다 시의 서쪽에 있는 이타미시(伊丹市)에서 출생했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7살 차이가 나는 [[형]]이 있었다. 6학년 때 오사카 교육대학 부속 이케다 중학교에 수험을 하고자 했으나, 모의시험 결과가 나빠 포기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가정폭력을 받게 되었다. 중3때는 칠판에 자신의 경력이나 "[[항공자위대]]에 들어가겠다."고 쓰고 [[군가]]를 노래하는 등의 기행을 벌였다. 하지만 동급생들은 무시했다. 이 때부터 "나는 IQ가 높다."고 말했으나,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타쿠마 마모루는 중학교에서 공업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야구부]]에 소속되었지만, 연습 태도가 나빠 상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고등학교 2학년에 [[중퇴]]했다. 중퇴 이후에는 이타미 시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1990년 6월에 [[의사]]라고 거짓말을 하여, 18세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으나, 거짓말이 들켜서 3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였던 19세 연상의 여성(오사카 교육대학 출신)과 결혼했다. 1993년에 이타미시 교통국에 노선 버스 운전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동료와 싸움을 벌이거나, 버스에서 운전석 뒤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향수 냄새가 나니까 뒷자리로 가달라"고 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1994년 9월 21일에 아내와 이혼한다.
         1998년 부터 이타미 시내 초등학교에 기술자로 근무했다. 1999년 3월에 교사 4명에게 정신안정제를 넣은 차를 먹여서 상해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간이감정에서 "정신분열증 의심"이라고 진단을 받고, 니시노미야 시(西宮市)의 정신병원에 입원조치 된다. 사건은 불기소가 되었다.
  • 토리코/359화 . . . . 9회 일치
          * 이치류는 왕의 자질을 가진 숙주로 아카시아, 지로와 비교해서도 최고의 욕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돈 슬라임은 그 자질을 개발하라고 끊임없이 권하지만 항상 소박하고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재만을 먹으며 귀 기울이지 않았다
          * 이는 그가 진귀하고 사치스러운 음을 먹기 보다는 '''남과 나누고 버려지고 잊혀져가는 재를 되살리는 일이야 말로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동생이나 아카시아를 먼저 챙기고 자신은 소박한 재를 먹어온 것이다
          *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돈 슬라임은 끝없이 이치류에게 보다 좋은 것을 먹고 강해지라고 권하지만 '''이치류는 항상 남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검소한 콩 같은 것이나 먹는다. IGO를 세우고 세계의 일인자가 되었지만,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 탁에서 똑같은 것을 먹고 약자도 강자도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거야 말로 자신의 "욕망"이라고 하는데, '''어느덧 돈 슬라임도 이치류가 먹는 검소한 음들이 맛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 내 꿈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과 같은 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거야.
         모든 사람이 웃는 얼굴로 탁에 앉아 마주 보는 것.
  • 토리코/362화 . . . . 9회 일치
         브란치는 미도라가 미회를 비운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토리코 일행은 금관두 안에 든 음을 확인하는데...
          * 미회에 들른 브란치는 오오타케에게 "미도라는 이미 이 곳에 없다"는 사실을 듣고 당황한다(미도라는 페어 입수 후에 NEO의 본거지를 공격하러 갔고 죠아와 싸우고 있다.)
          * 브란치는 이런 데서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오오타케 네가 가서 미도라에게 음을 만들어 줘라"'''며 그를 데리고 구르메계로 향한다
          * 미회를 나오는 와중에 구르메 일이 시작되고, 아주 먼 곳 단 한 곳에만 빛이 비추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 그 밑은 토리코 일행이 풀코스를 먹고 있던 현장. 금관두(통조림)에 봉인돼 있던 재를 개봉하는 순간이다.
          * 오가이는 고대의 해양생물로 고동과 비슷한 종류다. 토리코 일행의 구르메 세포 악마들 조차 멸종된 줄 알았던 초고대의 생물. 겉보기엔 작지만 실은 내부에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 있다. 고대 바다의 모든 생물을 먹어봤다고 전해지며 악귀, 도깨비와 같은 욕을 지녔다고 한다.
          * 스타쥰은 자신도 "오래 전부터 찾아오던 재"를 찾았다고 얘기하는데 토리코가 뭐냐고 묻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답하지 않는다. '''대신 GOD를 포획할 때가 되었다 한다.'''
  • 토리코/372화 . . . . 9회 일치
         * 그러나 영양분이 필요하던 GOD에겐 사를 제공한 격이었다.
         * 같은 으로 사방팔방 혀를 뻗어서 몰려든 맹수를 포한다.
         * 그것은 전 미회 간부들
         * 써니는 이런 으로 나온다면 자신들에게도 방법이 있다며 사탄보밋을 사용해 과거 먹은 바 있던 토미로드를 뱉어낸다.[* 300화에선 사탄 보밋으로 과거 먹은 적이 있는 재를 뱉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 나왔는데 이게 복선.]
         * 스타준, 그린패치, 토미로드의 미회 부주방장들이 합심해 싸운다.
         * 조리법을 전수받은 오오타케는 포에 정신이 팔린 GOD에게 접근하고, 죠아는 GOD를 만지지 말라며 공격을 가한다.
          * 그런데 막바지에 달해가고 있는데도 코마츠의 친구 우메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쪽도 죠아조차도 하나 밖에 보지 못한 테이스티 로드를 수 십개를 본 운의 소유자.
  • 토리코/373화 . . . . 9회 일치
          * 아이마루는 소을 원칙으로 삼는 구르메 나이트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욕의 악마를 숨기고 있었다며 다른 단원들이 까무라칠 거라고 자조한다.
          * 아이마루가 GOD를 목표로 하게 된 것은 사실 욕 때문.
          * 그리고 그들이 지금 향하는 것도 욕이 인도하는 것이다.
          * 그런데 정작 GOD가 에리어0이 아닌 "머나먼 땅"이라는 어떤 곳으로 이들을 이끌고 간다면, 자신들은 욕의 노예가 되어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한다.
          * 금관두를 비롯해 황금색의 기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다.
          * 나카우메는 이 기들이 블루 니트로들이 풀코스를 조리하며 썼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GOD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자청한다.
          * 제우스는 그의 강한 운을 알아보고 텟페이는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로 두려움에 떨던 그가 일류 셰프의 눈빛을 내는 걸 보고 "너의 용기는 내 힘으로 대신할 수 없겠다"며 GOD에게 데라다 주겠다고 한다.
          * 하지만 토리코는 코마츠와 함께 얻은 재를 풀코스에 넣을 거라고 한 적이 있는데, 네오는 어떻게 봐도 그렇지가 않다.--한 입으로 두 말하는 남자 토리코--
  • 페이데이 2/하이스트/베인 . . . . 9회 일치
         || 진행 방 || 스텔스/라우드 ||
          * 방: 스텔스/라우드
          * 방: 스텔스/라우드
          * 방: 스텔스/라우드
          * 방: 스텔스
          * 방: 스텔스/라우드
          * 방: 라우드
          * 방: 스텔스
          * 방: 스텔스/라우드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9회 일치
         || 진행 방 || 스텔스/라우드 ||
         >이 네곳의 가게에서는 몇번의 강도가 발생했던 반면, 이웃 가게에서는 강도가 발생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계산대를 털고 빠르게 도주하는 히트 앤 런 방을 사용하였다.
         >블라드가 자신을 밀고한 놈의 결혼을 망치려한다. 도와주자.
         블라드를 밀고해 경찰에 잡히게 했던 동료 디미트리의 결혼을 망치는 의뢰. 보석상을 습격해 결혼에 쓸 티아라를 훔치는게 목적이다.
         || 진행 방 || 라우드 ||
         || 진행 방 || 라우드 ||
         || 진행 방 || 라우드 ||
         || 진행 방 || 라우드 ||
  • 하이큐/262화 . . . . 9회 일치
          * [[타나카 류노스케]]가 막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 1학년이었을 시절엔 강호의 지휘를 잃고 주변학교에선 퇴물취급을 받고 있었다.
          * 오지츠 중학교 출신으로 막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한 [[타나카 류노스케]]는 인상부터가 존재감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1학년인데도 반삭 금발. 제법 험악한 인상에 목소리마저 우렁차서 자기소개 시간엔 옆의 [[엔노시타 치카라]]나 [[나리타 카즈히토]]가 눈에 안 띌 정도였다. 당시 2학년이었던 [[사와무라 다이치]], [[아즈마네 아사히]], [[스가와라 코시]]는 이 신입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아즈마네는 거의 겁 먹었고 스가와라는 언제나처럼 속을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와무라는 간단하게 표현했다.
          타나카가 봤을 때, 당시의 카라스노도 썩 나쁘지 않았다. 3학년에 히사 중학교 출신의 "쿠로카와"가 있었고 사이코다이 중학교 출신인 아즈마네는 꽤 인지도가 있었다. 둘 다 대회에서도 얼굴을 보였던 스파이커들. 동년배 중에선 [[니시노야 유]]처럼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도 있었다. 면면만 보면 강호를 칭해도 괜찮은 학교였다.
          그런 타나카가 보기에도 카라스노의 경기성적은 좋지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빴다. 인근 학교와 연습시합에서도 번번히 패했다. 3학년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은퇴했다. 남겨진 입장이 된 타나카는 "수수한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말로 심정을 표현했다. 이 시기 카라스노는 전용 체육관은 커녕 체육관을 쓰게나 해주면 감사해야 하는 처지였다. 타나카는 이런 대우에 반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주장을 물려받은 사와무라는 "작년보단 낫다"거나 "밖에서도 할 수 있는게 있다"면서 말을 돌렸다. 타나카에겐 "느슨"하게 보였다.
          다시 사와무라의 웃는 얼굴은 돌아왔지만 타나카가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도 거든다. 스가와라가 지는건 일상 다반사니 익숙해지라고, 아즈마네가 공전에서도 이러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사와무라도 무슨 얘긴지 알았다. 셋이 입을 모아 말했다.
          * 스파이크. 블록을 피했다. 극히 좌측. [[미야 오사무]]의 우측으로 꽂히는 공. 그러나, 라인을 넘겼다. 아웃 판정. 동료 선수들도 관중석도, 탄이 꼬리를 문다. 이나리자키의 득점. 스코어는 25 대 25. 듀스. 다시 피말리는 시소게임으로. 아츠무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번 플레이가 실점으로 이어졌다면 역전이 될 뻔했다. 사실 오사무는 이미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 이번엔 꼭 세 개 들이 한 세트가 아닌 하나짜리 고급 푸딩을 뜯어낼 작정이다.
          * 아츠무가 역전을 면한 대가로, 타나카가 독박을 쓴다. 그의 심정이 누구보다 공감되는지 [[보쿠토 코타로]]가 얼굴을 감싸며 탄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도 모르지 않았다. 방금 플레이는 딱히 무리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오늘 타나카는 실수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나리자키의 집요한 블록과 점수를 벌어야 한다는 부담은 어태커에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게다가 자신을 노리는 서브를 계속 받아왔으니 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것. 아카아시가 짐작하는 바를, 보쿠토가 한 줄로 요약했다.
  • 한가인 . . . . 9회 일치
         | 학력 = [[경희대학교]] 관광경영학과 졸업
         한가인은 2003년 [[KBS 1TV|KBS1]] 드라마 《[[노란손수건]]》을 인연으로 2년간의 열애 끝에 그룹배우자 [[유젝보이]]과 2005년 4월 26일 [[대구광역시|대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애스톤하우스에서 결혼을 올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연정훈·한가인 웨딩마치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40556|출판사 =서울신문 |저자 =뉴스팀 |날짜 = 2015-04-17 |확인날짜 =2018-04-17 }}</ref> 2016년 4월 13일 결혼 11년 만에 첫 딸을 출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유젝보이·한가인 11년만에 득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1&aid=0002272198|출판사 =문화일보 |저자 =김구철 |날짜 = 2016-04-14 |확인날짜 =2018-04-17 }}</ref>
         * [[경희대학교]] 관광경영학과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ref>{{뉴스 인용 |제목 =‘획기적인 쇼’ 한가인 “태어날 때부터 예뻤다”…노래실력도 우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257174|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예나 |날짜 = 2012-10-27 |확인날짜 =2018-04-17 }}</ref>
         | 네이버 지검색
         | 웅진
         | rowspan="2"|
         ! 시상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데뷔]]
  • 한현규 . . . . 9회 일치
         * [[1973년]] [[2월]] [[경기고등학교]] 졸업
         * [[1973년]] [[3월]] ~ [[1977년]] [[2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경영학 학사)
         * [[1977년]] [[3월]] ~ [[1980년]] [[2월]][[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석사]]
         *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석사]]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기도 부지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시러큐스 대학교 동문]]
  • 한혜령 . . . . 9회 일치
         * [[성주초등학교 (경북)|성주초등학교]]
         * [[성주여자중학교]]
         * [[성주여자고등학교]]
         * [[한국체육대학교]] 졸업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하키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성주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
  • 홍경인 . . . . 9회 일치
         || '''학력''' ||<(> [[대구고등학교(대구)|대구고등학교]][br][[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하였다. [[1992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엄석대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으며[* 촬영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는데 성인 배우도 소화하기 힘든 복잡한 역할인 엄석대를 겨우 중학생이었던 그가 아주 살벌하고 소름끼치게 표현해내어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는 천재 배우가 나왔다며 발칵 뒤집혔다. 참고로 선생님 역할로 [[신구]]와 [[최민]]이 나온다.],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전태일]], KBS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의 정신지체아 수철 역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연기력의 화신에 가까운 배우라는 평가를 받은 전무후무한 아역배우였다. [* 그야말로 연기 스펙트럼이 엄청났다. 독재자(엄석대 역)부터 노동운동가([[전태일]]), 그리고 정신지체아까지. 근데 이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다 '''10대 때, 즉 중·고,대학생 신분으로 전부 쌓았다(...)''']
         하지만...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영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 더불어 영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2016년 12월 11,18일에 방송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참가해 모처럼 시청자들을 찾았다. [[동네방네 스피커]]라는 이름으로 나서서 [[내 안에 첫눈 있다 스노우볼]]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으며 [[조율하고 가실게요! 바이올린맨]]에게 밀렸다. 참고로 그를 가수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데꿀멍...... 뭐 정 앨범을 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연기를 하다가 매너리즘이 와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연기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고 밝혔으며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팔로우 숫자 뒤에 K가 안 붙는다며 이번을 계기로 K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
         || [[2013년]] || tvN || [[환상거탑]] || 형 || ||
         || 채널 스나인 || 석기 ||
         ||<table align=center><rowbgcolor=#696969> {{{#white '''수상 연도'''}}} || {{{#white '''시상'''}}} || {{{#white '''부문'''}}} || {{{#white '''작품'''}}} ||
  • Crusader Kings 2/종교 . . . . 8회 일치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을 가질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을 가질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을 가질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을 가질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을 가질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을 가질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을 가질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을 가질 수 있음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8회 일치
         세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이며, 2015 [[K리그 클래]] 최종 11위였던 [[부산 아이파크]]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의 최종승자였던 [[수원 FC]]가 K리그 클래 마지막 티켓을 두고 벌인 대회였다.
         사상 처음으로 '''각종 기록이 난무한 대회'''였으며,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가 승강전에 유리하다는 인을 확고하게 다지게 된 대회라는 점에서 대회종료 후 많은 이슈를 낳았다.
         대회요강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과 동일하였다. 이에 따라 1차전은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인 수원 FC의 홈에서, 2차전은 클래 11위 부산의 홈에서 경기를 가졌다.
         양 팀은 단 한번도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기에 클래에서 쌓은 내공이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었다. 게다가 수원 FC는 후반 6분경에 수비수 임하람이 거친 백태클로 경고 없이 레드카드를 받아 나가는 상황까지 겹쳤지만 경기는 단 1골로 승패가 가려졌고, 수원 FC가 선승을 가져가면서 2차전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게 된다.
          1. 3회 연속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가 클래 티켓을 거머쥠으로써 징크스를 확고히 다지게 된 점.
          1. 수원 FC가 승격함으로써 [[K리그 클래]] 사상 최초로 지역더비가 완성된 점.[* 축구역사에서 더비라는 용어는 '''지역라이벌'''을 가리키는 것이 확장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축구사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 셈]
         [[K리그 클래/2015시즌]]
  • 광주 FC . . . . 8회 일치
         2010년 12월 16일에 창단한 구단[* 창단 기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승인은 10월에 이미 나 있던 상태였다.]으로 2011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K리그의 16번째 구단이며, 순서상 6번째 [[시민구단]]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두고 활동한다. 정명칭은 "광주시민프로축구단".
         이에 따라 2010년 5월에 법인을 설립하는 한편, 6월부터 9월까지 시민주 공모를 통해 창단자금을 마련하여 동년 12월에 창단을 갖음으로써 2012시즌에 참가하는 신생구단 광주 FC가 탄생하게 된다.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상위스플릿, FA컵 결승 등, 상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상주 상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2014 || K리그 챌린지 || 10 || 2 || 16강 || - || 승강PO, 클래 승격 ||
         || 2015 || K리그 클래 || 12 || 10 || 16강 || - || 승격팀의 첫 잔류사례 ||
         || 2016 || K리그 클래 || 12 || 대회진행중 || 대회진행중 || - || ||
         [[K리그 클래]]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8회 일치
         [[정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 [[1992년]] [[미국]] [[덴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 [[정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참가한 [[1994년 동계 올림픽|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전이경]] 등과 함께 여자 3,000m 계주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000m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1994년]] [[영국]] [[길퍼드]]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153531 쇼트트랙 김소희 은퇴] - 연합뉴스</ref>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We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스포츠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2012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 연구원 및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현장 실사에도 나섰다.
         김소희는 [[2003년]]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그 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열린 1, 2차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종합 우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쇼트트랙 선수)|강윤미]], [[진선유]] 등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이 사생활 간섭<ref>{{뉴스 인용|제목 =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여자 쇼트트랙 '폭력의 얼음판' | url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9734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성규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상습적 구타<ref>{{뉴스 인용 | 제목 = 여자 쇼트트랙 구타 쇼크 "매일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국제대회장서도 되풀이 | ur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4/11/006000000200411101828268.html | 출판사 = 한겨레 | 저자 = 성연철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등 코치의 강압적인 지도 방에 불만을 품고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가 대한빙상연맹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복귀했다. 연맹 측은 [[11월 11일]] 상습구타 사건에 연루된 코치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고, 7명의 부회장단도 총 사퇴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선수 매질`파문..빙상聯 부회장단 사퇴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88254 | 출판사 = 문화일보 | 저자 = 이준호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이후 연맹은 여자대표팀을 선수촌에서 퇴촌시켰으며, 11월 말 열린 3, 4차 월드컵 대회 출전도 정지시켰다.<ref>{{뉴스 인용 | 제목 =여자 쇼트트랙 새 사령탑 선임 | url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411/sp2004111522171658130.htm | 출판사 = 스포츠한국 | 저자 = 허재원 | 쪽 = | 날짜 = 2004-11-15 | 확인날짜 = 2014-02-17 }}</ref> 이 사건 이후 현장 지도에는 나서지 않고 연구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해설자]][[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
  • 김우중 . . . . 8회 일치
         |학력 = [[연세대학교]] 경제학 학사
         * [[196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 학사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자 15세에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게 된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 진학하고 1956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창생활을 보냈다.
         [[1960년]] 25세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32세에 [[서울특별시|서울]]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여 [[1970년대]] 초반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1974년]]에 1억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며 신흥 재벌이 되었다. [[1981년]]에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1982년]] [[1월]]에는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4위에 올랐다.
         5년 8개월 간의 해외로 도피 생활을 지속하다가, [[2005년]] [[6월 14일]] 입국하여 [[대한민국 검찰|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며,<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61640 관련기사]</ref>[[2006년]] [[11월 3일]] 열린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천 253억원의 형을 구형받았고, 항소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2007년]] [[12월 31일]] [[사면|대통령 특사]]로 사면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추징금의 0.5%정도인 약 887억원을 납부하였다. [[2013년]] 김우중법에 대해 논란이 일었고, 여전히 17조 8000여억에 달하는 추징금을 미납한 상태이다. [[2014년]] [[대우그룹]] 창립 기념일에 추징금 문제가 불거져 참석하지 못했다. 그해 [[8월 26일]]에 [[대우그룹]] 해체 15주기를 맞아《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분류:193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우그룹]][[분류: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수훈자]]
  • 김인철 . . . . 8회 일치
         || '''학력''' || 포항초-포항제철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 '''지도자 경력''' ||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2017~) ||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선수이자 2017년 11월 현재는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 등번호는 67번(1991~1994) - 13번(삼성) - 40번(KIA, 한화)
         2004 시즌 후 기아에서 방출되지만,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한화의 [[김인]] 감독이 그를 영입했다.
         2005 시즌은 대타요원으로 시즌을 시작하였는데 1호포를 대타홈런으로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개막 후 4월 한달동안 6홈런을 때리며 잠깐 홈런 1위를 한 적도 있을 정도. 이 활약으로 톱타자로 선발출장하기도 했는데 이후 페이스가 떨어져서 두 자리수 홈런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땐 철밥통 소리 들을 정도로 썼던 것도 아니고 대타요원으로 시작했다가 자기가 잘해서 주전을 꿰찼던 거라 그리 욕 먹지도 않았는데 이 때 이후로 성적이 하락하여 2006년~2007년에는 신인 외야수들의 앞길을 막는 존재로 인되어 이도형 등과 함께 한화팬들에게 김인의 양아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었다. 그 와중에 문학서 끝내기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는데 연장전에 들어가고 SK의 공격때 주자 1루에서 히트앤드런이 걸렸고 1사 1,3루의 위기가 될 상황이었는데 좌익수이던 김인철이 포구후 바로 송구를 하지 않고 머뭇거리던 틈을 타 3루주자인 정근우가 홈을 파고 어이없게 끝내기 패배(즉 1사 1루에서 힛앤런이 걸렸는데 단타로 1루주자가 홈까지 접전상황도 만들지 않고 홈으로 들어와 경기가 끝나버린 상황이다)를 당해버렸었다. 그거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국 2007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었다.
         현역 은퇴 후에도 자신의 마지막 현역 팀인 [[한화 이글스]]와의 관계를 유지했고, 한화의 원정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다가 스카우트팀 과장으로 인사이동되었다. 그 후 2017년 선수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장 모 감독과 심 모 감독의 뒤를 이어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역 야구부인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 김재엽 . . . . 8회 일치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4년 대구 [[남산초등학교]] 4학년때 유도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대구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국규모대회를 20여차례 석권하였다. 특히 계성고 3학년이던 1982년에는 100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983년 [[계명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였으며, 1982년 6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유도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
  • 김종훈 (1952년) . . . . 8회 일치
         |학력 =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010년]] [[12월 13일]] [[한미 FTA]]와 관련된 세미나에서 FTA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농민을 두고 '정부관리를 매수하여 농업보조금을 타는 다방 농민'이라고 비판하였다. 민주당 부대변인 [[김현 (정치인)|김현]]은 "김종훈 본부장이 숭미사대주의에 빠져 쌀값 폭락과 구제역에 피눈물을 흘리는 농민들의 아픔은 아랑곳 않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언사를 듣고 있자니 김 본부장이 어느 나라 머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하였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662115 김종훈 '다방 농민' 발언 일파만파] 《노컷뉴스》 2010년 12월 14일</ref> [[진보신당]]도 "통상교섭본부장 그만 두고 다방에서 커피나 마시는 게 더 국익에 도움이 될 것"과 "한미FTA로 인해 고통당할 농민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공적으로 비판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2141521251&code=940100 김종훈 ‘다방농민’발언에 “다방에나 가라” 역공] 《경향신문》 2010년 12월 14일</ref>
         [[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미자유무역협정]][[분류:SK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
  • 김호근 . . . . 8회 일치
         |학력= [[영남대학교]] 경제학 학사
         * [[경북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경제학 학사
         *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경제학 석사과정
         * [[한국체육대학교]] 총무과장(부이사관)
         * [[군산대학교]] 사무국장(일반직고위공무원)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리그컵(K리그) . . . . 8회 일치
         [[K리그]]의 리그컵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프로축구구단을 위한 대회다. 1992년에 처음 시작되어 2011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폐지라고는 했지만 2016년 기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아직 리그컵을 공경기로 보고 있다. 이는 다시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프로축구선구권대회가 흥행참패를 겪고나서 1992년에 와서야 리그컵이 열리게 된다. 당시 후원사가 아디다스를 한국에 판매하고 있던 제우교역이었기 때문에 통칭 아디다스컵으로 불린다.[* 잉글랜드의 칼링컵과 마찬가지로 스폰서가 원하는 타이틀을 달아주는 형이다.] 이 시기에도 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단조로운 리그의 홈 & 어웨이의 연속보다는 리그 외에 별도로 경기 수를 채울 이벤트를 기획하였고, 제우교역을 스폰서로 구해 첫 리그컵으로 볼 수 있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다.
         프로축구사에서 운영을 위한 타이틀 스폰서가 붙은 건 공적으로 리그컵이 최초다. 공적으로 최초의 리그컵으로 볼 수 있는 92' 아디다스컵은 대회 스폰서인 제우교역의 요구에 의해 붙여진 명칭이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축구에 있어 스폰서가 붙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스포츠사에서 해외업체의 이름을 대회명에 붙인 최초의 사례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말이 많았다.
         두번째 대회에 좀 나아졌냐면 또 그것도 아니라서... 리그가 끝난 10월에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상으론 제법 널널했을텐데도 각 팀은 1주일에 2번씩 경기를 치루는 하드코어한 일정을 보낸다. 이쯤되면 운영방에 대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을 지경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K리그의 상금과 위상이 리그컵을 명백히 넘고나서부턴 각 구단이 2군리그와 비슷하게 취급하게 된다.
         게다가 첫 아디다스컵 이후에도 흥행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회 운영방을 바꾸는데, 하나같이 팀이나 팬이나 지치게 만드는 요인밖에 안 되어 결국은 흥행은 흥행대로 날려 종국에는 "리그컵은 종이컵"이라는 조롱을 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공격축구를 하겠다고 무승부시에 승부차기를 한다거나 서든데스제도를 도입하는 등, 골 수를 늘려보겠다고 별별 짓거리를 다 했지만, 1회차 대회부터 수비축구를 한 일화가 우승을 함으로써 지나친 실험정신은 변화를 꾀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말았다.[* 첫 대회때 우승한 일화는 3승 4무 2패에 골득11 골실10로 공격축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오히려 일화보다 더욱 공격적인 축구를 했던 LG가 4승 1무 3패 골득15, 골실11로 2위가 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촌극 끝에 결국에는 승점체계가 국제경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승3무1 방으로 감으로써 당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흥행이라는 미명하에 한 행동이 모두가 뻘짓이 된 것.
         K리그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만 어쨌거나 현재로써는 공 기록을 찾기가 가장 어려운 대회가 되었다. 리뉴얼 이전 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에서도 이 대회에 대한 정보를 찾는건 상당히 어렵다. 비교적 협회보다 자료정리가 더 잘 되어 있고, 일반에 공개하는 자료양이 훨씬 많은 연맹임에도 그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다.[* 협회쪽은 FA컵의 위상이 상당함에도 경기 관중 수나 카드 이력등을 별도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협회가 비판받는 대표적인 부분.]
  • 마기/321화 . . . . 8회 일치
          * 성궁으로 가기 위한 의이 시작된다.
          * 아르바는 실패하면 죽는 의을 진행하는데 신드바드가 너무 평온하고 심지어 웃을 수 있는 걸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
          * 의이 진행되자 "길"에 신드바드가 먹혀 버린다.
          * 아르바는 의의 성공 확률은 100분의 1도 안 된다며 실패하면 죽는다고 경고한다.
          * 시작되는 의. 금속기들이 위치에 놓인다.
          * 신드바드는 뒤에서 의을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자신은 왜 성궁에 가려 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 아르바는 필사적으로 의을 진행한다.
          * 신드바드는 선민의을 벗었지만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없이 추구하는 인간으로 변모했다. 위선적 인간에서 솔직한 악당으로 변신?
  • 맥스 페인/줄거리 . . . . 8회 일치
         조사 결과 맥스의 가족을 죽인 자들은 제작자를 알수 없는 마약 "발키리"를 투약한 상태였다. 가족의 장례이 끝난 이후 맥스는 알렉스에게 마약단속국으로 전근하겠다고 말한다.
         결국 막다른 곳에 몰린 비니는 부하들과 함께 맥스를 공격한다. 하지만 맥스는 부하들을 모두 해치우고 비니를 쓰러뜨린다. 맥스는 비니의 멱살을 잡고 루피노의 위치를 불게 시킨다. 하지만 비니가 엿먹으라느니, 과잉 진압이라느니 하며 말하기를 거부하자, 맥스는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총은 비어있었지만 겁에 질린 비니는 루피노가 라그나록에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감옥에 넣어달라고 애원한다. 맥스는 "네 권리는 네 장례에서나 읽히게 될거다,"라며 빈 총을 던져버리고 비니를 떠난다.
         기절한 맥스는 가족들이 몰살당한 날의 악몽을 꾼다. 언제나 그렇듯이. 맥스는 뉴저지에 있던 집에 들어왔다. 딸의 울음과 아내의 애원이 들리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복잡한 미로로 되어있었다. 맥스가 2층으로 올라가 아기 방 문을 열었을 때, 오르골 소리와 울음 소리만 들릴 뿐 아기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뻗어나간 핏줄기가 있을 뿐이었다. 맥스는 핏줄기를 타고 아기한테 갔을때, 아기는 핏투성이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순간에 아기는 사라지고, 옆에 놓인 알파벳 블록 장난감이 스스로 움직여 D3AD(죽었음)라는 글자를 만들어낸다. 맥스는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한다. 침실 문을 열고 권총을 쏜다.
         알프레드 우든이 저택 전화를 통해 무장 헬리콥터가 저택 마당에 착륙했다는 소을 알려주지만 맥스는 더 많으면 더 좋다고 받아친다.
         맥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토사물 위에 은땀을 흘리며 엎어져 있었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들었던 말을 떠올린 맥스는 뉴욕 바깥에 위치한 "콜드 스틸"이라는 공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트럭들이 오가고 있었다. 맥스는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 베레타 한 정만 가지고 콜드스틸 지붕 위 채광창을 통해 잠입한다.
         맥스는 콜드 스틸을 지키는 용병들을 처리하며 콜드 스틸을 탐사한다. 용병들은 잘 무장되어 있었고, 잘 훈련받았었다. 또한 콜드 스틸 곳곳에는 레이저 감지 지뢰가 설치되어 있었다.
         === 3장: The Deep Six (딥 스) ===
         엘레베이터가 내려간 곳은 기계장치가 즐비한 지하 시설, 딥 스였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 그리고 용병 한명이 있었다. 용병은 자신들이 맥스를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장을 입은 남자들은 용병을 쏴죽이고는 장치를 조작해 자폭 절차를 발동시킨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8회 일치
         그는 유약한 미카엘을 교모히 충동해 바르다스가 그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거라고 이간질했으며, 그에게 바르다스를 제거하는게 그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부추겼다. 음모는 바르다스가 크레타에 원정을 갈 준비를 할때 준비되었던걸로 보이는데, 바실레이오스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암살음모가 바르다스의 첩보망에 걸려버렸다. 그러자 바르다스는 원정을 취소하고 수도로 가서 미카엘에게 따졌으며, 결국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성모 마리아 칼코프라테이아 성당에서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공 선언서에 서명하게 된다.[* 바실레이오스는 글을 몰라서 서명란에 십자가만 그리게 된다.] 이후 바르다스는 크레타 원정전 막사에서 황제에게 작전을 의논하던중 바실레이오스에게 죽는다.[* 죽기전에 미리 칼을 뽑았으나 바실레이오스가 그냥 맨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고(...)] 해당 행위는 미카엘도 어느정도 관여를 했던게 확실한듯 한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포티우스에게 바르다스가 반역죄로 즉결 처분되었다고 암살이 실시된 후 바로 알린것으로 알 수 있다.이후 포티우스의 조언에 따라 수도로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돌아갔고, 이후 성령강림절에 바실레이오스는 공동황제로 임명된다.
         단독 황위에 오른 바실레이오스는 적극적으로 제국의 고토를 되찾으려 했는데, 그 중 하나인 남이탈리아의 장악을 위해서는 교황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걸 위해서 그는 우선 서방과 사이가 좋지못했던 포티우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해임하고, 그의 정적이었던 이그나티우스를 새로운 대주교로 임명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열며, 포티우스를 해임했다는 소을 교황에게 전하는데, 당시 교황이던 히드리아누스 2세는 황제의 해당 행위를 회개의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포티우스 분열]]을 일으켜 동방과 서방교회의 관계를 험악하게 만든 포티우스를 처벌하게 만들기 위해 사절을 보낸다.
         이후 그는 건축사업에 착수하는데, 우선은 성 소피아 성당과 성 바울 성당을 보강했고, 이후 '네아 바실리카'라 불리는 그의 걸작품인 성당을 축조한다. 이 성당은 바실레이오스의 성 소피아 성당이라 할 수 있는데, 금을 입힌 돔은 도시밖에서도 보였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돔내부에는 예수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으며, 그외에 천사, 대천사, 순교자, 사도 등등이 묘사된 모자이크가 실내 곳곳을 장했다. 성상 칸막에는 금은과 보석들이 장도 있었고, 주제단은 '금보다 더 귀한 금속으로'장되 있었다고 하며, 은을 입힌 닫집 기둥[* 중간을 오목하게 파서 장한 기둥]이 성당주위를 둘렀다. 그외에도 그는 금고와 목욕탕, 트리클리니움[* 침상이 구비된 당]을 많이 지었으며 칼케대문과 도시의 수많은 궁전들을 보수하고 일일이 장했다. 말그대로 그의 치세에 도시는 전성기를 열었다.
  • 박성환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출신학교==
         * [[대구월배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대구)|경운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9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월배초등학교 동문]] [[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배재준 . . . . 8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에 2라운드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2018년]] [[4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0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였다.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배씨]]
  • 배지환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 신입생 시절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아 활약하였다. 3학년이던 2018년에는 [[이영민 타격상]]<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80784 경북고 배지환, 2017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선정] - OSEN</ref>과 도루상을 수상하였다.
         루키 팀에서 전지 훈련을 하였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시범경기에서 병살타를 이끌어내는 수비를 하였으며, 1득점을 기록하였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8&no=194076 배지환, 파이어리츠 첫 공 경기는 ML 시범경기 ] - MK스포츠</ref>
         == 출신 학교 ==
         * 대구 본리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피츠버그 파이리츠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
  • 백정현 . . . . 8회 일치
         ||<:> '''학력''' || 옥산초 - 대구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이후 [[류중일]] 감독의 지시로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와 함께 BB아크행. 하지만 한화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도 부진했다. 퓨처스리그 일정이 끝난 후에도 별다른 소이 없다가 9월 29일 1군에 올라왔다. 30일 한화전에서 1이닝 3실점을 했고, 10월 2일 [[알프레도 피가로]]가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4월의 기록은 7경기 7.1이닝 평균자책점 1.23이고 16시즌 약화된 삼성불펜으로 인한 분회계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월 14일 롯데전 3번째 투수로 등판해 무려 '''11경기 연속 출전을 달성했다!''' ~~대전 모 팀 감독님도 이런 짓은 안 하시는데...~~ 박근홍이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는데, 이닝 쪼개기와 좌우놀이를 즐겨 하는 코칭스태프의 성향상 팀 내 유일한 좌완 계투인 백정현이 휴일 외에는 계속하며 등판하고 있으며 선수는 선수대로 연투에 지쳐서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코칭 스텝의 상의 끝에 불펜으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팀내 믿음직한 좌완 불펜이 사실상 전무하다 시피 한점 때문에 내린 결정 같은데, 하지만 작년에 선발로써 보여준 가능성을 생각해서라도 이러한 결정에 대한 비판여론이 많다. 비판을 의했는지 확정 의견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8월 12일 NC전에 등판하여 6이닝 2실점 8삼진을 잡아내며 초반 잠깐 흔들리는듯 햇으나 타선 지원을 받으며 멘탈을 추스린 후 백쇼모드로 돌변, QS와 더불어 시즌 5승을 챙기며 다시 한번 [[엔나쌩]]임을 증명해냈다. 아시안 게임 휴기를 앞두고는 등판할 일이 없어 8월 14일 1군에서 제외됐다.
  • 서호진 . . . . 8회 일치
         '''서호진'''(徐昊辰, [[1983년]] [[6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이다. [[경희대학교]] 체육학부에서 스포츠지도학을 전공했다. [[서울시청]]에서 활약한 바 있다.
         대구교대부설초등학교 재학 중에 쇼트트랙을 시작했으며, 이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ref name=et>[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543&yy=2011 토리노 동계올림픽 金 쇼트트랙 서호진 은퇴], 매일신문, 2011년 4월 21일 작성.</ref>
         [[2011년]] [[4월 16일]] 쇼트트랙 선수에서 은퇴했다.<ref name=et /> 현재는 동아종합인쇄사의 부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부터 가업을 잇기위한 경영수업을 듣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현수]] 선수 폭행 논란 및 금메달 양보 의혹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라질 줄 알고 침묵했다" 라며 부인했고, 관련 루머를 퍼뜨린 유포자에 대해서 경찰 수사의뢰하겠다며 강력한 조치 의사를 밝혔지만, 소이 없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hi2014&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761293 서호진씨 "안현수 선수 구타한 적 없다…억울하다"], 연합뉴스, 2014년 2월 18일 작성.</ref>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신목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서훈 (1942년) . . . . 8회 일치
         경북대학교 법대 재학시 총학생 회장으로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고 ROTC 대위로 전역한 이후 신민당 시절 김영삼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번번히 낙선하였다. 영남지역 재야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 가난한 지역학생들을 위해 팔공 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랬동안 운영하였다. 1990년에 김영삼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때 이를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 총재와 결별하게 된다.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분류:영남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전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통일민주당 당원]][[분류:통일국민당 (대한민국)]][[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국민당 (2000년)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의 정치인]]
  • 식극의 소마/153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2화]] |||| '''극의 소마/153화''' |||| [[극의 소마/154화]] ||
         [[극의 소마]] 153화. '''죽음의 회장'''
          * 피어스 요리사가 극에서 진 요리사들을 도발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56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5화]] |||| '''극의 소마/156화''' |||| [[극의 소마/157화]] ||
         [[극의 소마]] 156화. '''절대온감'''
          * 쿠스노키의 특기는 가열. 불의 미묘한 온도차를 조절해서 재료를 최상의 상태로 조리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58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7화]] |||| '''극의 소마/158화''' |||| [[극의 소마/159화]] ||
         [[극의 소마]] 158화. '''그 차이'''
          * 그러나 정작 심사의원들은 재시 후에 "쿠로키바 쪽이 연어라는 소재를 더 잘 살렸다"며 쿠로키바의 승리를 선언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61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0화]] |||| '''극의 소마/161화''' |||| [[극의 소마/162화]] ||
         [[극의 소마]] 161화. '''경연'''
         * 에이시는 프랑스 요리의 어뮤즈(프랑스 코스 요리에서 주문 전에 나오는 간단한 음) 5개를 만들기로 한다.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분류:극의 소마]]
  • 식극의 소마/164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3화]] |||| '''극의 소마/164화''' |||| [[극의 소마/165화]] ||
         [[극의 소마]] 164화. '''스승과 제자'''
         소마는 극의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66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5화]] |||| '''극의 소마/166화''' |||| [[극의 소마/167화]] ||
         [[극의 소마]] 166화. '''압도'''
          * 시간이 지나 잔당사냥 이틀째. 극현장.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69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68화]] |||| '''극의 소마/169화''' |||| [[극의 소마/170화]] ||
         [[극의 소마]] 169화. '''리벤지'''
          * 마치 극처럼 되어 버린 소마의 요리재현.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1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0화]] |||| '''극의 소마/171화''' |||| [[극의 소마/172화]] ||
         [[극의 소마]] 171화. '''팔로우 미'''
          * 이 상태라면 어차피 진급시험 결과도 뻔할 테니 자진해서 학교를 떠나는게 어떻냐고 극언을 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7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6화]] |||| '''극의 소마/177화''' |||| [[극의 소마/178화]] ||
         [[극의 소마]] 177화. '''일어서는 여기사(잔다르크)'''
          * 일행은 칼 손질에 쓸 녹말가루까지 총동원해 열심히 면을 만든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86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85화]] |||| '''극의 소마/186화''' |||| [[극의 소마/187화]] ||
         [[극의 소마]] 186화. '''맛의 줄타기'''
          * 하야마보다 한 발 먼저 시을 시작하는 소마.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91화 . . . . 8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90화]] |||| '''극의 소마/191화''' |||| [[극의 소마/192화]] ||
         [[극의 소마]] 191화. '''격전 끝에'''
          * 예상대로 소우에는 소마에게 투표하고 2대1로 극은 소마의 승리로 돌아간다. 오랜 시간 복수전을 준비해왔던 소마는 기쁨을 만끽한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신동호 (아나운서) . . . . 8회 일치
         |학력 =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신동호'''([[1965년]] [[1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다.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문화방송]]에 입사하였다.
         * [[대건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MBC 아나운서국의 8월 성명에 따르면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마이크를 잡지 못하게 하고, 다른 부서로 발령시키는 등 동료, 후배 아나운서들의 정치적 발언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탄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ref>{{뉴스 인용|제목=MBC 아나운서들이 직접 밝힌 “우리가 TV에서 사라진 이유”|url=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882|뉴스=PD저널}}</ref> [[2017년]] [[10월 16일]]에는 [[문화방송]] 노조에 소속된 아나운서들이 부당노동행위를 하였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찰을 진행하여 신동호를 고소한다는 성명을 냈다.<ref>{{뉴스 인용|제목=[공입장 종합] 파업 아나운서들 "MBC 신동호, 부당인사+비상 사찰..고소"|url=http://www.osen.co.kr/article/G1110752639|뉴스=OSEN}}</ref>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데뷔]][[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평산 신씨]]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8회 일치
         뉴욕에 있는 가게에서 망치 대가리와 손잡이를 사고 나오던 코너는 병사들이 빅 데이브에 대해 얘기하는걸 듣는다. 대번포트 농지로 돌아간 코너는 빅 데이브에게 도구를 전해주며 영국군이 그를 찾고 있다는 소을 전한다. 빅 데이브는 그럴 줄 알았다며, 언젠가는 영국군을 상대해야겠다는 말을 남긴다.
         코너가 마일즈 엔드에 들렀을 때, 한 남자가 찾아와 숙을 부탁한다. 그가 런던에서 건너온[* 영국 출신이라는 말에 고프리가 비웃지만 그는 자신이 왕당파가 아님을 밝힌다.] 성직자라는 걸 알게 된 주민들은 지금까지 마을에 성직자가 없었던걸 떠올리며 그를 받아 들인다.
         여관으로 가는 도중, 티모시 신부는 코너에게 결혼 중 미리암의 아버지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노리스는 전통에 까다로운 사람이라 아버지 역할이 필요한데 미리암의 아버지는 어딨는지 알 수가 없다고. 코너가 이를 승낙하자 티모시 신부는 결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면서 대번포트 농지 사람들이 해야할 일을 열거한다.
         며칠 후, 대번포트 저택에서 결혼을 준비하던 미리암이 사라진다. 코너는 미리암이 발코니로 나가버렸다는걸 추리해내고 미리암을 쫓아가 설득한다. 결국 미리엄은 마음을 다잡고 코너와 함께 결혼이 열리는 교회로 간다.
         미리암과 노리스의 결혼이 끝난 후, 주민들은 마일즈엔드에서 뒤풀이를 벌인다. 노리스와 미리엄이 함께 춤을 추는 동안 코너는 다른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끝난 후, 엘렌이 코너와 주민 모두를 위한 선물이 있다며 입을 연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구해낸 일을 말하며 꺼낸 물건은 그녀가 만든 대번포트 농지의 깃발이었다. 엘렌은 이 깃발을 코너에게 주며, 원하는 사람에게 깃발을 하나씩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코너는 엘렌에게 감사를 표한 후 깃발을 주민들 앞에서 높이 들어보인다.
         코너는 아킬레스에게 돌아가 얻은 물건, 암살단 복장을 건내준다. 누가 암살단 복장을 그런 곳에 두었냐고 묻는 코너에게 아킬레스는 자신이 했다고 대답한다. 그 옷은 민지에 첫번째로 왔던 암살단원의 옷이었다.
         >코너: 너의 민지 해안 지배도 끝나겠군.
  • 원피스/829화 . . . . 8회 일치
          * 빅맘은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데 특정한 음이 먹고 싶어지면 그게 나타날 때까지 마구잡이로 주위를 파괴하고 폭을 거듭한다.--[[토리코]]냐--
          * 이번에 찾는 음은 "크로캉 부슈". 슈크림을 쌓아올린 과자다.
          * 이곳에는 온갖 사물과 재료, 음 따위가 모두 자아를 가지고 대화도 나누고 있다. 모두 빅맘의 폭에 휩쓸려 먹힌다.
          * 그가 빅맘 입안에 음을 처넣자 미친 것처럼 날뛰던 빅맘이 "맛있어!"라고 외치며 정신을 차린다.
          * [[토리코]]스러운 에피소드.--미회냐--
  • 원피스/849화 . . . . 8회 일치
          * [[상디]]는 [[몽키 D. 루피]] 일행의 소을 듣지만 귀를 닫고 [[샬롯 푸딩]]을 위해 요리하는데 여념이 없다.
          * 미러월드의 [[샬롯 브륄레]]의 집. 아직도 [[캐럿(원피스)|캐럿]]을 요리하고 있다. 캐럿은 부글부글 끓는 솥 위에 매달려 있는 상태. 브륄레가 솥을 젓고 있고 학기사 랜돌프를 비롯한 부하들이 솥 주위에 모여서 음을 기다리고 있다. 잡힌 척하고 있는 [[쵸파]는 캐럿을 죽이지 말라고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 잡혀있는 캐럿은 진짜가 아니다. 그건 브륄레가 만든 가짜. 자신의 능력으로 개구리를 캐럿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아마 쵸파를 혼란시키려고 한 짓같지만 이번엔 자기 무덤을 판 짓이 됐다.
          탁에서 음을 기다리던 귀족 악어는 아웅성치는 소리를 듣지만 둔해 빠져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몬스터 모드로 변한 쵸파는 귀족 악어를 붙잡아서 우왕좌왕하는 조무라기들 위로 매쳐버린다. 유일하게 디젤만 무사히 도망치지만, 자기 발이 빠르다고 자부한 것관 달리 캐럿에게 너무나 쉽게 따라잡힌다. 결국 디젤까지 간단하게 정리. 섬 전체와 연결된 미러월드가 쵸파 일행에게 함락된다. 쵸파는 이 미러월드를 이용해 흩어진 동료들을 찾자고 한다.
          * 상디는 자기 방에서 꽃다발을 다듬고 있다. 그때 빅맘의 부하가 와서 밀집모자 일당의 행방에 대해 소을 전한다.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는 체포,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브룩]]은 난동 중. 상디는 꽃다발을 매만지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소을 듣다가, 결국 이젠 됐다며 귀를 닫아버린다. 그 대신 부탁한 재료는 사왔냐고 하는데.
          부하는 재료를 건네며 배가 고프다면 뭐든 드릴 수 있다고 하는데, 상디는 자기가 먹을 요리를 하는게 아니다. 그가 준비하는건 푸딩을 위한 요리. 그녀가 사시간에 자리를 비워서 걱정된다며 손수 요리를 하려는 것이다. 그 마음씀씀이에 빅맘의 부하도 감동한다.
  • 원피스/858화 . . . . 8회 일치
          * 빅맘 해적단의 총 요리장 미기사 [[슈트로이젠]]은 기묘한 노래를 부르며 다과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과회까지 남은 시간은 약 4시간.
          * 홀 케이크 성 8층 "거대 키친"은 결혼에 쓸 웨딩 케이크 제작으로 정신이 없다. 빅맘 해적단의 총요리장 "미기사" [[슈트로이젠]]은 기묘한 노래를 부르며 다과회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슈트로이젠과 요리사들은 이 노래에 맞춰 분주하게 음을 만든다.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슈트로이젠은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보인다. 케이크는 이렇게 격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부선장 [[알라딘(원피스)|알라딘]]과 그의 아내 [[샬롯 플라리네]]는 징베가 대신 보고를 하러 갔도 벳지는 응징 당하고 있을 거란 감언이설로 그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페콤즈는 눈치가 빨라서 그런 거짓말로는 설득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난 밤 섬에서 소란이 일어난 걸 이미 알고 있는데다 태양 해적단의 행동도 수상하다는 걸 간파한다. 그는 구해준 건 고맙지만 가야겠다며 억지로 자리를 일어나려고 한다. 태양 해적단은 어떻게든 그를 저지하기 위해 은땀을 흘린다.
          * [[나미(원피스)|나미]]와 [[캐럿(원피스)|캐럿]]도 목욕을 하고 있다. 그녀들 옆에는 [[샬롯 시폰]]이 아기를 돌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는 나미에게 쌍둥이 언니 [[샬롯 로라]]의 소을 들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나미는 [[스릴러 바크]]에서는 물론 유혹의 숲에서도 로라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며 그녀에게 감사한다. 시폰은 여동생에게도 너희는 큰 은인이라며 감사한다. 캐럿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바다가 얼마나 재미있고 모험이 넘치는 곳인지 새삼 느낀다.
          벳지는 시작부터 위협적으로 나온다. 부하들과 이야기할 때보다 더 위협적이고 딱딱한 태도다. 상디는 거기에 딴죽을 건다. 자신이 죽었다간 자체가 없어지니 찬스가 제로라는 것. 게다가 그는 개시 2시간 전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의심을 살 것이다. 벳지는 유감이라며 그 말에 동의한다. 징베는 그렇게 밀당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끼어든다. 그는 루피에게 직감적으로 이들과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어떻지 의향을 묻는다.
          루피가 지적하자 쵸파가 시저가 어디있냐며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상디나 나미는 벌써부터 알고 있어서 새삼스러운 이야기나 한다고 투덜거린다. 그 말대로, 행색은 달라졌지만 그는 시저가 맞다. 시저는 토트랜드로 끌려온 이후 줄곧 빅맘의 감시 하에 있었다. 하지만 "룩"의 칭호를 받고 전권을 위임 받은 벳지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시저의 심장까지 입수해서 문자 그대로 생사를 쥐고 있다. 벳지는 빅맘에게서 도망치게 해주는 대가로 협력을 강요했다. 시저는 거절하려고 해봤지만 밀집모자일당까지 온다는 소을 듣고 그들만큼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서 벳지에게 협력한다. 그렇게하고도 결국 만나게 됐지만.
  • 은혼/627화 . . . . 8회 일치
          * [[오우가이]]까지 패퇴시킨 가부키쵸 주민들. 짦은 휴의 시간이 찾아오지만 그들의 동향은 [[야토]]족 용병부대에 주시되고 있다.
          * 누나 [[시무라 타에]]는 태클과 인외연애에 여념없는 신파치를 염려해서 쉬라고 권한다. 그녀는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사실 게도마루는 신파치를 심란하게 하는 것 말고도 부상자들의 치료와 휴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물론 아까도 부상자들을 도우며 태클 말고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신파치보단 훨씬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게도마루와 음양사들은 늦게 온 만큼 조금 더 컷에 나와서 분량을 뽑고 싶다는 의향에 따라 가부키쵸 주민군에 늘러앉았다.
          게도마루와 신들은 판데모니엄으로 차린 다채로운 급과 배자들의 호러블한 비쥬얼로 배을 익사이팅하게 해주며,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순찰대를 빙자해 서로 신이 더 흉악하고 무섭다고 싸우며 소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은 기도로 싸움하게 좋은 날씨를 만들며 싸움을 조장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토세는 부상자들에게 지금은 푹 쉬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부상자들은 지금이라도 적들이 처들어올게 두려워서 편히 쉬지도 못한다. 오토세는 자신들이 있으니 잘 먹고 잘 쉬라며 특제 다크마타를 처먹여 영원히 쉴 수 밖에 없는 몸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게도마루는 재기불능이 된 병력에게 판데모니엄을 데코레이션하는 흉악한 짓을 하는데 신파치는 제대로된 량을 배급하라며 태클을 건다. 그때 또다시 나타나는 판데모니엄씨. 이제 신파치의 본심을 알았다며 떠나려고 하는 그녀. 신파치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판데모니엄을 먹어치우려고 한다. 가구라는 머리가 맛이 가버린 신파치에게 좀 쉬는게 좋겠다고 권한다.
  • 이강덕 . . . . 8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학력}}}''' ||<(> [[달성고등학교]] {{{-1 ([[졸업]])}}}[br][[경찰대학]] {{{-1 (법학 / [[학사]])}}}[br][[고려대학교]] {{{-1 (공안행정학 / [[석사]])}}}[br][[동국대학교]] {{{-1 (법학 / [[박사]])}}} ||
         1962년 [[경상북도]] 영일군 지행면(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 장기면)에서 태어났다. 포항산서초등학교, 포항장기중학교, 대구[[달성고등학교]], [[경찰대학]] 1기,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공안행정학 [[석사]], [[동국대학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이강철 (1947년) . . . . 8회 일치
         * 대구서부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계성고등학교]]
         *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민아 (축구선수) . . . . 8회 일치
         |청소년 클럽 =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br /> [[영진전문대학]]
         * [[대구상인초등학교]] 졸업
         * [[상원중학교 (대구)|상원중학교]] 졸업
         *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졸업
         [[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동문]][[분류:영진전문대학 동문]][[분류:대구상인초등학교 동문]][[분류:상원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 이상정 (1897년) . . . . 8회 일치
         * [[대륜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 우현학교]] [[졸업]]
         * [[일본]] [[육군유년학교 (일본)|도쿄 세이조]] [[도쿄 공업대학|중학교 육군유년학부]] 졸업
         * [[도쿄 예술대학|일본 도쿄 미술전문학교]] [[전문학사]]
         * [[히토쓰바시 대학|일본 도쿄 상업전문학교]] 전문학사
         * [[고쿠가쿠인 대학|일본 고쿠가쿠인 대학교 역사학과]] [[학사]]
         [[분류:1897년 태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장교]][[분류:한국의 장군]][[분류:반일 감정]][[분류:김구]][[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육군 장군]][[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자유 연애]][[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조각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공업대학 동문]][[분류:도쿄 예술대학 동문]][[분류:히토쓰바시 대학 동문]][[분류:고쿠가쿠인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
  • 이승현 (1985년 7월) . . . . 8회 일치
         |청소년 클럽=[[한양대학교]]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청구고등학교]],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빠른 스피드로 인하여 '스피드 레이서'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슷한 외모 때문에 '[[보거스는 내 친구]]'의 캐릭터인 '보거스'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데뷔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였다. [[2007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한 후 슬럼프를 겪기도 하였지만,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였다. [[2007년]] [[터키 수페르리그]]의 [[베타시 JK]]로부터 이적설이 떠돌기도 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41406 박병규-조용형-이승현, 터키 무대서 '러브콜' ]</ref>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반야월초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윙어]]
  • 이정무 . . . . 8회 일치
         194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선산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1978년부터 [[대구백화점]]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경상북도 군위군-선산군-칠곡군-성주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다가 [[신현확]]에 밀려 탈락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년 후배인 [[박철언]]이 조직한 월계수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9년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2005년부터 [[한라대학교]] 총장을, 2012년부터 한국물포럼 [[총재]]를 역임하고 있다.
  • 인교진 . . . . 8회 일치
         [[단국대학교]]에 재학중이던 2000년 [[문화방송|MBC]] 29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2011년까지는 '''도이성'''(陶伊成)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소속사를 옮기면서 예명을 버리고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다.<ref>[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12011222692917&type=1&outlink=1 유리아·인교진 "김주리·도이성은 잊어주세요!"(인터뷰)], 머니투데이 2012년 1월 23일자</ref>
         2000년 [[문화방송|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재동 역을 맡아 연기생활을 시작한 인교진은 2012년 4월 22일 종영된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말극 《[[내일이 오면 (2011년 드라마)|내일이 오면]]》을 통해 인연을 맺고 연인으로 발전, [[서우]]와 함께 공개 연애를 선언했으나, 2013년 5월 결별하였다. 이후 2014년 4월, 인교진은 12년 간 같은 기획사에서 만나 동료 연기자로 친분을 맺어 온 [[박수진 (1987년)]]과 교제를 시작했으며 동년 10월 4일 결혼을 올렸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008217748&cp=nv 인교진-박수진 결혼 공입장 “지난달 초 결혼 프로포즈… 10월 결혼”], [[국민일보]] 2014년 4월 9일자</ref> 그리고 임신 소이 전해져 태명을 기쁨이로 지었다. 2015년 12월 4일에는 딸이 태어나 그의 딸을 박하은으로 지어 가족으로 발전되기 시작되었다.
         *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 2016년 [[KBS2]] 월화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 ... 홍두
         ! 시상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교동 인씨]][[분류:키이스트 소속]]
  • 정정용 . . . . 8회 일치
         |청소년 클럽=[[청구고등학교]]<br/>[[경일대학교]]
         |감독 클럽= [[대한민국 U-14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4]] (코치)<br />[[대한민국 U-14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4]]<br />[[대한민국 U-14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4]] (코치)<br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 (코치)<br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코치)<br>[[대구 FC]] (수석 코치) <br />[[현풍고등학교]]<br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8]]<br>[[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감독 대행)<br>[[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 (감독)<br>[[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감독 대행)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이랜드 푸마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주중학교 동문]][[분류:청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일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 FC의 코칭스태프]][[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정창영 (공무원) . . . . 8회 일치
         | 학력 =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학사]]<br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법률학]] [[석사]]
         * 1973년 : [[경북고등학교]]
         * 1980년 :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학사
         * 1998년 : [[모스크바 대학교|모스크바대학교]] 대학원 법률학 석사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감사원 사무총장]][[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진격의 거인/94화 . . . . 8회 일치
          * 저녁엔 브라운 일가와 가비의 가족들이 사를 하며 전쟁 중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라이너가 "가비의 거인 계승은 결정적"이라 말해 모두 기뻐한다.
          * 라이너가 마레의 전사에 지원한 이유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마레인과 사랑했으나 신분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에게 희망을 걸었다.
          파르코는 라이너를 의해서 힐끗힐끗 돌아봤던 건데, 가비는 그걸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이걸 "반역의 예조"라며 부대에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파르코가 "이게 누구 때문인데!"고 항변한다. 가비가 알아듣지 못하자 라이너와 지나가던 병사들이 "가비 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사자만 의미를 몰라서 반발하느라 파르코에게서 관심이 떨어진다.
          * 라이너의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저녁 사 자리에서 가비는 자신이 어떤 으로 무장열차를 끝장냈는지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라이너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흥분되고 자랑스러운 눈길로 그녀에게 집중한다. 가비의 자랑이 끝나자 카리나가 아들에게 "가비가 다음 전사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라이너는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말에 부드럽게 대답한다.
          * 가비는 카리나에게 "전사대가 섬의 악마들로부터 엘디아인을 지킬 거야"라고 안심시킨다. 팔라디섬에 대한 의견은 엘디아인 전반에서 공통적이다. 그들은 마레에서 가르친 대로 섬의 악마들이 언제든 대륙으로 돌아와 모든 걸 멸망시킬 거라고 믿고 있다. 이 탁에 모인 사람들도 그랬다. 엘디아인이 멸시 당하는 것도 바로 그들 때문이라 생각했다. 화제가 이렇게 돌아가자 자연히 그 섬에서 5년이나 생활했던 라이너에게 화살이 쏠린다. 은연 중에 그 섬에 대해서 묻는데, 가비가 그런 걸 물으면 안 된다며 가족들을 말렸다. 애초에 팔라디섬에 대한 정보는 기밀인데다, 그 지옥 같은 섬에서 잠복했던 경험을 누가 말하고 싶겠냐는 것이다. 가비의 아버지가 조카의 입장을 생각 못했다며 사과하지만, 사실 라이너가 난처한 것은 가비의 발언 쪽이었다.
          >그건 군의 입대이 한창일 때의 일...
          라이너가 복잡한 심경으로 이 말을 마쳤을 때 탁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카리나는 자기 아들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그리고 아들은 어머니가 눈치 챘다는걸 알았다. 라이너는 곧 "잊어달라"고 발언을 번복한다. 그때 라이너의 말에 대답하는건 가비 밖에 없었다.
  • 진격의 거인/97화 . . . . 8회 일치
          * 당에선 또다른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너의 옆 테이블에서 [[엘런 예거]]와 [[아르민 알레르토]], [[미카사 아커만]]이 사 중이었다. 엘런은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라이너가 유독 살기등등하다고 말을 걸자 맞은 편에 앉은 [[장 키르슈타인]]이 어제 훈련 탓이라고 참견했다. 입체기동장치 실습. 자기 와이어에 얽혀 죽을 뻔한 엘런. 장이 꼴사납다고 빈정거리자 엘런은 "거인한테서 도망치는 훈련을 하는게 더 꼴사납다"며 말상자이라고 받아쳤다. 장은 다시 엘런은 용감하게 돌격하자 와이어가 엉켜 죽을 거고 거인이 그걸 보고 미친 듯이 웃을 거라고 빈정거렸다. 슬슬 때가 됐다. 어김없이 멱살잡이가 이어진다. 그걸 막는 것도 라이너의 일과. 병단에 들어온 뒤 항상 하는 일이다. 달라진건 없다. 저쪽,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애니가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것 외에는. 애니는 [[미나 캐롤라이나]]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사에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당의 전원이 소동을 구경하고 있는데 애니는 촛점 없는 시선을 정면에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베르톨트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월 로제 파괴는 해산 다음 날로 정해놓고 있었다. 엘런을 일으켜 세워주고 있을 땐 몰랐지만, 엘런은 정말 계속 나아가는 녀석이었다. 진격의 거인. 그날 마르코가 먹히고 전사로 돌아가길 결심하고. 애니와 함게 포획된 거인을 제거한 날. 그때 몇가지를 주의했더라면 지금처럼 틀어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벽 위에서 엘런에게 모든 걸 발설하고 그를 납치했을 때. 파트너 베르톨트에게 뒤를 맡기고 최후의 작전을 결행했을 때도 그랬다. 그때는 뭔가 돌이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그때, 엘런을 일으켜세워주던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엘런은 라이너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라이너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에게, 라이너는 이런 말도 해주었다.
          장발 사이로 드러난 얼굴. 파르코가 알리 없는 얼굴이었고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은 결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병사는 그 사람에게서 배운 교훈을 똑같은 방으로 전하고 있었다.
          * 레벨리오의 마레군 본부 앞에는 헤로스 상이란 동상이 있었다. 거인을 쓰러뜨린 마레인 영웅의 동상이다. 한 남자가 일가를 이끌고 그 동상 곁을 지나왔다. 그 뒤로 본부는 습격을 당한 것처럼 술렁거렸다. 때마침 전사대 대장 [[테오 마가트]]가 복귀했다. 부관이 요인의 방문 소을 전했다. "전추의 거인". 타이버 일가의 방문이었다.
  • 창작:티겔 왕국 . . . . 8회 일치
         상티겔 왕국은 달순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순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순때 상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순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순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상속법을 장자상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상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이러한 성과의 결과는 (달제가 원하진 않았겠지만)상티겔 왕국 멸망이후 하티겔 왕국의 형성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하티겔의 형성이후까지 이뤄지는 사냥꾼과 티겔 왕국의 협력에 기반을 닦아두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후 남쪽에 탐험가를 보내어 동부 대륙 남쪽에 농사짓기 좋은 평야가 있다는 소을 듣고[* 현재의 티겔 평원] 그곳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다만, 거리가 거리다보니 대부분 일부만 겨우 도착했다.] 한편으론 동북쪽의 강자들인 하이엔 왕국과 츄프 왕국과 연합해 남진을 시도하는 레잉 왕국의 침략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 특히, 북티겔 언덕에서 벌어진 회전에선 레잉의 왕과 태자까지 사살할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국경선에 요새를 쌓고 방어를 준비하는데 힘썼다.
         달윤은 죽기전에 자신의 성을 레잉인 '다르트'로 바꿨는데 그때문에 역사가들은 달윤이후의 왕들을 '다르트'왕조로 묶는다. 다만 다르트 왕조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못한데, 레잉 왕국빠라서 아예 왕국의 주요도시중 하나였던 레잉을 라이엘기스에 공짜로(..) 넘겨주려 한 베르코 1세[* 다만, 그의 동생이 그를 막으려고 정변을 일으켜서 성공하진 못했다.], 형보단 나았다가 중론이지만 어째 하는 원정마다 싹다 말아먹은 에르두른 1세, 하루 일과가 술먹고 여자꼬시는거였던 '시인' 그레두아[* 다만, 그의 시들은 꽤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백성들 가축까지 뺏어먹으려들었던 '탐왕' 세프등등.... 결국 온갖 암군들이 넘쳐났던 다르트 왕조덕에 상티겔 왕국은 패권을 다시 되찾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이후 하이엔 왕국을 제압하고 동부대륙의 중북부패권을 완벽히 장악하려 한 '대제' 샤를 1세[* 라이엘기스 대공으로 따지면 샤를 4세]에 의해 상티겔왕국은 멸망한다.
         그러나 상티겔이 멸망하고 티겔이 불타갈때, 한무리의 군인들이 마지막 왕 에르두른2세의 아내였던 아르든 백작부인을 데리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우여곡절끝에 어찌저찌 상티겔왕국이 남쪽에 세웠던 민지인 '센티겔'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아르든 백작부인은 애를 베고 있었고, 당시 센티겔의 지방관이자 아르든 백작부인의 보호자였던 계형은 그 아이를 에르두른 2세의 적법한 후계자로 선언하고, 그를 티겔 왕국의 왕으로 선언하면서 섭정직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국가를 하티겔 왕국이라 하며, 대중적으로 그냥 티겔 왕국이라 한다.
         처음에 이문제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북부파의 세는 미약했으며 왕국의 섭정이던 계형이 '사람을 협박하고 회유하는데 아주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문제는 다른데서 터지는데, 계형의 주도로 열린 레이먼제국과의 전쟁에서 상인연합과 츄프왕국, 사냥꾼들과 연합해 구 상티겔의 영역을 상당수 회복하는데 성공하는데,[* 이곳을 탈환지라 부른다.] 이과정에서 북부파가 가지고 있었던 영지들 대부분이 전부 남부파로 간것이다. 거기다가 계형은 상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인물이라서, 영지를 되돌려받고 싶으면 이름을 옛방으로 바꾸고 레잉의 풍습을 완전히 버리라는 말까지 했다는게 문제였다.
         이문제는 당장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레이먼 제국이 무력으로는 호랑이족을 복속시킬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조카 루이를 끌어들여 '태겡 대공국'을 만들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레두아는 북부파의 군소영주를 구워삶아 자신이 티겔을 공격할때 이들이 자신에게 협력한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물론 보상으로 옛영토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결국 츄프 왕국이 언제나처럼 남쪽의 대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에 고생해 티겔을 도와주기힘들때 공격해왔다. 레이먼으로부터 상당한 량의 군자금과 용병대를 지원받은 태겡의 공세는 날카로웠고, 군소영주들의 협력까지 이루어져 순간에 탈환한 영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기에 이른다. 그나마 섭정인 계형이 직접나서서 태겡과의 일전에서 태겡 병력의 반을 한번에 분쇄시켰기에 공세를 막아내고 탈환지 영토의 반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태겡(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레이먼 제국) 대공국과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은 군소영주들의 반란역시 계속되었다.
         하나가 된 거인족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여러개의 씨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냥꾼들을 쉽게 제압했고, 졸지에 고향을 잃게 된 그 일대 사냥꾼들은 당시 대륙 서남부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남부의 최대던 문씨나 고씨족은 박살났으므로] 신씨일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으로, 어느 야만족들이 사냥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부리고 마을을 불태운다는 소은 모든 사냥꾼 씨족들을 자극시켰고, 이로인해 모든 사냥꾼들을 규합해 이들에게 대항하는 사냥꾼들의 '대군주' 작위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어 이어진 대군주를 정하는 회의에서 참석한 모든 씨족들이 문씨와 고씨가 몰락한 상태에서 제일의 씨족이 된 신씨일족의 가문 수장 신유를 대군주로 추대하게 된다.
  • 초식계남자 . . . . 8회 일치
         통칭 초계, 혹은 초남.
         연애에 있어서 수동적, 물욕이나 출세욕이 적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남자. 그 소극적인 모습을 [[초동물]]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반댓말은 육계(肉食系). 일본에서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으로, 소비욕구가 얕고 이성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세대가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원인의 한가지로는 환경 교육이나 젠더 교육의 영향도 있다고 여겨진다.
         2006년 니케이 비지니스 온라인(日経ビジネスONLINE)에서 「초남자(草食男子)」라는 표현이 등장했으며, 2008년에는 여성잡지 등에서 초계남자의 공략법(草食系男子の攻略法)같은 기사를 내놓고, 일반 매스컴에도 침투하게 되었다.
          * [[트러블 다크니스]] : [[모모 베리아 데빌룩]]이 [[유우키 리토]]를 초남에 비유하면서, 육남으로 만들겠다고 '하렘계획'을 세운다.
  • 킹덤/516화 . . . . 8회 일치
          * 그런데 [[호주(킹덤)|호주]]가 "진군이 소도시들을 함락하고 그 난민을 업성으로 몰아넣었다"는 소을 전하면서 그의 계획이 틀어진다.
          * 무려 아홉 성에 달하는 소도시의 난민들이 업성으로 몰리는데 업의 성주는 좋은 사람이라 모든 난민을 수용해 순간에 병량이 거덜난다.
          * 쾌속진격한 [[이목(킹덤)|이목]]은 순조롭게 수도 한단에 도착했다. 전 삼대천 [[인상여]]의 부하들이 그를 맞이한다. 이들은 이목이 처음 지시했던 한단군 출병을 이루지 못했으나 자신들과 사병의 출병은 허가를 받아냈다. 그 병력은 북쪽 염 성에서 1만, 문 성에서 1만씩 총 2만이다. 이목으로선 뜻밖의 희소이었다.
          * 이목은 새롭게 얻은 병력을 진군을 포위하는데 돌린다. 업성에 투입할 수도 있으나 그러지 않아도 업성은 왕도권에서, 아니 중화전토에서 최고의 성. 진군이 보급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왕도권까지 들어왔으니 이들을 업으로 유인한 뒤 조군으로 포위한다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숨통을 조일 수 있다. 이른바 "병량공세". 이목은 우선 조왕을 알현하고 정으로 왕도권 전역의 통수권을 받기로 한다.
          * 이목의 도착 소을 접한 [[호주(킹덤)|호주]]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진작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목은 그동안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것에 감사를 표하는데 호주에겐 그보다 다급한 용건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알현 뒤엔 그를 찾아가려 했던 이목이었다. 호주는 지금 왕도권에서 속속 들어오는 최신첩보를 정리해왔다. 진군은 병력을 세 가래로 나눠 왕도권의 소도시 아홉을 정복하고 업으로 향하고 있다. [[공손룡]] 장군의 9만 병력은 [[양단화]]군의 산민족 5만과 대치하느라 발이 묶인 상황. 그런데 그 전선이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왕도권 남부로 방출된 난민 무리는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쫓기듯 동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 이목의 통찰대로 구름떼 같은 난민 무리가 업성으로 모여들었다. 업성의 각 입구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난민 행렬을 통제하기 위해 병사들이 분주하다. 백성을 수용하고 나서도 각 성의 사람들이 뒤섞이고 일행이 헤어지지 않게 통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숫자. 벌써 2곽이 꽉 찼는데 아직도 행렬이 이어진다. 현장 지휘관은 제 3곽도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려 하는데, 부하는 이 3곽도 꽉 찬지 오래라고 보고한다. 이만한 숫자는 먹이는 것도 문제다. 량도 지니지 않은 채 먼 길을 온 난민들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했다. 우선은 배급을 진행 중이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 업의 성주 [[조이백]]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면 업성의 부양능력을 그만큼 믿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이제 난민을 그만 받자는 상소가 올라오는데 그는 일언지하에 각하한다. 아직 진군이 당도하지도 않았는데 나라의 근간인 백성을 버릴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진군이 도달하기 전까진 난민을 받아라"란 지시가 내려간다. 자비롭고 관대한 명령이지만, 이 전시에 타당한 것일까? 가신들이 난색을 표하는데다 난민의 수가 늘 수록 량창고가 비어가는 속도도 빨라진다. 얼마 안 가 제 3 창고가 텅 비었다는 보고가 올라오는데, 조이백은 놀라기는 하지만 "창고는 얼마든지 있다"며 제 4, 5 창고까지 개방한다.
          >아니면 아홉 성의 백성이 업의 량을 먼저 다 해치우는가 하는...
  • 토리코/390화 . . . . 8회 일치
          * 운을 다 쓰고 위기에 몰리는 미도라.
          * 그는 분노를 공격에 응축시키는 방으로 타격을 주는데 성공한다.
          * 미도라는 토리코 안의 "정체모를 욕"을 언급하며 자신이 유일하게 전율을 느낀건 오직 그것 뿐이라고 말한다.
          * 운을 소진하고 무방비하게 공격을 받는 미도라.
          * 토리코의 설명을 들은 미도라는 "공포"라면 자신이 "전율"했던 유일한 대상은 토리코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욕"이라고 말해준다.
          * 토리코는 대결을 서두르자며 "어느 쪽이 미의 꿈을 이룰지!"라고 소리친다.
          * 이치류는 이것을 우주공간에 비교하며 강한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의 정체는 "음의 맛을 닮은 에너지"라고 분석한다.
         지금까지 네오에게 먹혔던 혼들이 모두 모여있는 거라면 네오를 처치하는 것으로 이들을 해방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8회 일치
          * 말 사육장(Horse Breeders)을 군마 번장(Warhorse Studs)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됨
          * 관개시설 농장(Improved Irrigation)을 계단 농장(Terrace Farming)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 병원(Hospital)을 예수회 신학교(Jesus Seminary)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 량 -1
          * 계단 농장(Terrace Farming)을 경지정리 농장(Land Cosolidation)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 량 +2
          * 기독교: 예수회 신학교(Jesuit Seminary)를 예수회 신학대학(Jesuit College)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조화되지 않고 깔리는 돌은 그저 갈등의 안처일 뿐이다.
  • 트로피코 4 . . . . 8회 일치
         2012년 3월 30일 발매된 [[확장팩]]. 냉전 뿐만 아니라 21세기까지 뻗어나간다. 년도에 따라 해금되는 현대 건물들이 추가되며, 구 건물을 현대 건물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도 있게 된다. 인터넷 통제, 축제 개최 등 10개의 칙령이 추가된다. 또한 보이지 않는 막강한 힘으로부터 트로피코를 지키는 싱글 플레이 캠페인도 추가된다. 연도에 따라 이벤트가 발생, 생산품과 건물의 가격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일도 발생한다.
          * 장용 시설로 경비소, 감시탑, 위장망 씌운 탄약고, 콘크리트 바리케이드, 장갑차 추가
          * 장용 시설로 저수지, 풍차, 급수탑, 꽃침대1, 꽃나무1 추가
          * 장용 시설로 깃대, 작은 공원, 꽃침대2, 꽃나무2, 건설인부 동상 추가
          * 이스트 포인트 사관학교 건물 추가
          * 생존 전문가 캐릭터 특성 추가 - 시민들의 량 요구량 감소, 환경주의 진영의 존경심 증가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8회 일치
         == 게임 방 ==
         은밀하게 침투해 목적을 이루고 탈출하는 방. 솔직히 말해서 신고만 안 들어가면 된다. 이 과정에서 들키면 플랜 B로 넘어가지만[* 스텔스 전용 하이스트의 경우에는 탈출할 시간을 준 다음에 그 전에 탈출하지 못하면 실패 처리. 탈출 지역의 경우 목적을 완수해야지만 표시된다.] 보통은 게임을 리스타트한다.
         감시 카메라는 바로 밑에 있거나 ECM으로 잠시 마비시키거나 아예 박살내는-당연히 소음무기로-방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면 경비원이 무슨 일이 생겼나 보러 와서 신고해버리니 주의. 맵 어딘가 있는 경비실 문을 따고 들어가서 그곳의 경비원을 무력화시키면 모든 감시 카메라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고난이도라고 해도 요령만 있다면 장비가 나빠도 할 수 있는 방. 하지만 요령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몇번씩 리스타트해가며 해야한다. 못해먹겠다면 유튜브에서 스텔스 공략이라도 보자.
         님들이 생각하는 무장강도. 미국 영화 같은데 나오는 은행털이를 생각하면 된다. 총들고 들이닥쳐서 죄다 제압하고 요구 아이템 가지고 빠져나오는 방.
         장비빨을 많이 타는 게임 방으로, 난이도가 높을 수록 인간인지 의심가는 수준의 경찰들이 나온다. 이들을 때려잡기 위해 고화력의 무기가 요구되는건 덤. 데스위시-원다운 수준까지 가면 일종의 정형화된 트리가 존재할 정도다.
         === 클래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 페이지 참조.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8회 일치
         [[페이데이 2]]의 클래 하이스트 목록. 전작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의 하이스트들을 페이데이 2에 맞게 리메이크한 것들이다.
         || 진행 방 || 스텔스/라우드 ||
         || 진행 방 || 라우드 ||
         || 진행 방 || 라우드 ||
         암호를 입력하면 베인이 해킹을 시작한다. 이때 경찰들이 방 안으로 쳐들어와서 해킹을 중단시키고 건물 어딘가에 있는 배전반을 내려버리는 방으로 해킹을 방해한다. 방의 벽을 C4로 터뜨려서 길을 만들기도 하니 주의. 이들을 적당히 막아내며 해킹이 계속되도록 하면 된다. 암호를 알아야 하는 경우가 두번 더 있는데 세무서 직원에게-패지 말고-계속해서 물어보면 대답한다.
         || 진행 방 || 라우드 ||
         || 진행 방 || 라우드 ||
         || 진행 방 || 라우드 ||
  • 풍운 . . . . 8회 일치
         결국 악행을 하지 말라고 회공에게 제지를 당하며, 그에게 패배하고 다시 대결하여 이길 때가지 독일문을 시켜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지킨다. 만화 시점에서는 회공과의 재대결에서 다시 패배, 회공을 꺽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독일문을 버리고 회공을 따라서 떠난다. 회공에게 일단 라이벌 의을 가지고 있으며 성품 자체는 매우 포악하지만, 자신을 '개'가 아닌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대우해준 회공에게 깊은 은혜를 느끼고 있어 의리를 지키는 의리남.
         배검산장-절세호검편에 등장. 간사한 외모를 가진 검법가. 자신의 무공에 맞는 검을 찾는데 집착하고 있으며, 좋은 명검을 받는 대신에 마누라를 검마에게 넘겨줄 정도(…)로 검에 극도로 집착한다. 그 만큼 검을 보는 안목은 대단히 높다. 하는 짓을 보면 개그 캐릭터 같지만 상당한 강캐였는데, 배검산장 편이 끝나고 동영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순간에 삭제당해서 검마와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무명에 필적할 정도의 고수. 현재 배검산장을 지배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손가락에서 그냥 빔을 쏘는 거지만 검기를 쏘는 거니까 검술이라고 주장하는(…) 단맥검기를 무공으로 사용한다. 배검산장 편의 최종보스로 엄청난 무공을 자랑했으나, 동영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순간에 삭제당해서 사형제인 검빈과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순간에 정리된 캐릭터지만, 이 때문에 섭풍은 독고명, 독고몽 등 무쌍성 잔당들의 원수가 되나, 나중에 알고보니 죽은 독고일방은 가짜였다. 진짜는 살아있었던게 아니고, 다른데서 죽어있었다.--두 번 죽이냐--
         보경운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위기 상황에서 여래신장의 최종초을 사용하여 자신의 공력을 보경운에게 모두 전수해주고 승천한다.
         보경운과 간통을 하다가 섭풍에게 들키게 되고, 섭풍은 못본 척 할테니 천하회를 떠나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분노한 보경운은 섭풍을 죽여버리려 하여 공자가 보는 앞에서 보경운과 섭풍은 사투를 벌이게 된다. 보경운은 배운장의 '운래선경' 초을 사용하여 섭풍을 죽이려고 했으나, 공자가 끼어들어서 섭풍을 대신하여 맞고 치명상을 입게 된다. 거기에서 진상도 등장하여, 공자가 보경운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 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공자는 죽어가면서 섭풍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수라장(…)을 벌이게 된다.
         '''항룡신퇴''' : 무쌍성의 소군주 독고명이 사용하는 무공. [[사조영웅전]]의 [[항룡십팔장]]의 퇴법 버전 같으며, 상당수의 초명이 겹친다. 이래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마영성이 김용 만화를 그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특별히 문제는 없는듯. 여래신장처럼 독고명의 사망과 함께 작중에서 사라진다.
         '''성령검법 ''' : 검성의 무공. 초명이 단순하게 숫자로 메겨져 있는데, 20을 넘어가면 스물 입(廿)자를 써서 검입일(劍廿一), 검입이(劍廿二), 검입삼(劍廿三)으로 나아간다.
  • 한필수 . . . . 8회 일치
         |그림제목=한필수 흉상 ([[제천고등학교]])
         |학력= 일본미술학교 졸업
         서울에서 [[휘문고등학교|휘문의숙]]을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는 중국 용정의 동흥중학교 교사로 있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봉양읍장, 제천읍장을 역임했다. 재산을 기울여 [[제천고등학교|제천초급중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고 1946년 10월 개교와 함께 초대 교장으로 취임해 [[1948년]]까지 역임했다.
         제2대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 입당하여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4월 10일]] 87세로 사망하였다. 사후 [[1996년]]에는 [[제천고등학교]] 개교50주년을 맞아 교정에 흉상이 세워졌다.
  • 허범산 . . . . 8회 일치
         |청소년 클럽= [[동명초등학교]] <br /> [[재현중학교]] <br /> [[재현고등학교]] <br /> [[우석대학교]]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동명초등학교 동문]][[분류:재현중학교 동문]][[분류:재현고등학교 동문]][[분류:우석대학교 동문]]
  • 홍양호 (1955년) . . . . 8회 일치
         * [[경북고등학교]] 졸업
         * [[경북대학교]] 경제학 학사
         * [[조지아 대학교|조지아대학교]] 대학원 석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후임자 = [[엄종]]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영현 . . . . 8회 일치
         == 출신 학교 ==
         * [[서울갈산초등학교]]
         * [[신월중학교 (서울)|신월중학교]]
         * [[배명고등학교]]
         * [[동국대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8회 일치
         화장실의 하나코 씨란, 학교의 화장실에서 '특정한 행동'을 했을 경우, 하나코 씨라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지역, 학교마다 차이가 있다.
         일설로는, 토오노 소학교(遠野小学校)에서 있었던 사건이 발상이라고 한다. [[http://dostoev.exblog.jp/15064163/ (참조)]]
         1937년, 토오노에서 어느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경찰관이며, 아내와 아들, 두 딸로서 5인 가족이었다. 이 가족은 토오노 초등학교 바로 뒷편에 있는 경찰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경찰관인 아버지는 여자 버릇이 나빠서, 어느날 창녀와 둘이서 온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을 알게 된 아내는 질투한 나머지, 가족동반자살을 하고 말았다. 먼저 아들과 둘째 딸을 교살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이었던 이쿠코(いく子)는 무서워서 관사에서 학교로 도망쳐서 체육관 뒤에 있던 공동 화장실에 숨었다.
         이 사건 이후로, 토오노 초등학교 체육관 뒤의 공동 화장실 안쪽 세번째 칸에서, 노크를 하면 아무도 없는데 노크가 3번 되돌아오거나, 있을 리가 없는 여자아이를 목격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 『학교의 무서운 이야기 하나코 씨가 왔다』는 단편 연작 애니메이션이 있다. 하나코 씨가 괴담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이야기지만, 사실 도와주지 않기도 한다.--일해라--
  • 황용식 . . . . 8회 일치
         |이름 = 황용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br>미국 [[터프츠 대학]] 플레처 대학원 석사
         '''황용'''(黃龍植, [[1944년]] [[5월 28일]] ~ )<ref name="사전">{{서적 인용|title=한국인명사전 (연합연감 1999년판 별책) |publisher=[[연합뉴스]] |page=840 |date=1999-04-30}}</ref>은 [[대한민국]]의 외무공무원이다.
         * 1963 : [[경북고등학교]] 졸업<ref name="사전"/>
         * 1967 : [[서울대학교]] 법대 법학과 졸업<ref name="사전"/>
         * 1973 : [[대한민국 외무부|외무부]] 입부<ref name="文大"/> (73.04 제7회 외무고시 합격)<ref name="충북일보">{{웹 인용|title=전 튀니지대사 황용, 충주대 강연 |publisher=충북일보 |url=http://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31171 |archiveurl=http://archive.is/Z8zKO |archivedate=2016-11-25 |accessdate=2016-11-25}}</ref>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타이베이 주재 대한민국 대표]][[분류:튀니지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터프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창원 황씨]]
  • 황치열 . . . . 8회 일치
         * 2015년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가족특집에서 [[인순이]]의 '아버지'를 불러 첫 우승을 차지함. 이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2015년 슈퍼루키특집'에서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부르며 공적인 '2015년 슈퍼루키' 타이틀과 함께 우승을 거머 쥠.
         * [[구미중학교 (경북)|구미중학교]] 졸업
         * 2015년 8월 1일 -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남성 보컬리스트 특집) - 〈슬픈 언약
         !시상
         |rowspan="2"| Music Radio중국Top음악시상(MusicRadio中国TOP音乐盛典)
         * 2016년 3월24일 주상하이한국문화원의 한중문화홍보대사로 임명<ref>[http://s.kocenter.cn/www/public.jsp?_page.id=Page0144b47dcdfe0001&news.id=News0153a8738793004f 주상하이한국문화원 소]</ref>
         * [http://cafe.daum.net/hwangchiyeol 황치열 공 팬카페 TEN2]
  • AFC 회원 랭킹 . . . . 7회 일치
         = 통계방 =
         기본적으로 회원순위를 산정할 때는 해당 회원이 운영하는 클럽과 리그에서 거둔 "클럽 점수"와 국가대표팀이 거둔 "국가대표팀 점수"(=National Team points, 이하 국대 점수)를 구해 이 둘을 합산하는 방으로 한다. 클럽 점수와 국대 점수를 합산하면 최대 100점을 부여받을 수 있다. 2016년 기준, 클럽과 국대간의 가중치는 7:3으로 클럽 점수는 70점 만점에 국대 점수는 30점 만점으로 책정되어 있다.
         보다 상세한 점수 집계방은 아래 소목차에 따로 소개한다.
         산정방은 ACL과 동일하나 '''AFC 컵에서 얻은 1포인트는 ACL에서 얻는 1/3 포인트로 환산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즉, AFC 컵에서 승리해 3점을 얻어도 마지막에는 1/3점으로 깎이기 때문에 ACL에서 무승부를 거둬 얻는 1점과 동일하다는 것.
         국대점수는 [[FIFA 랭킹]]에 의거하여 점수를 계산한다. 계산공이 매우 간단하다.
         이는 AFC 챔피언스 리그와 AFC 컵의 대회진행방이 갖고 있는 한계점 때문으로 해당 대회들은 이 순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결승전을 제외하면 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맞붙을 일은 전혀 없다. 동아시아든 서아시아든 획득하는 클럽점수의 상당부분은 같은 지역끼리의 대결을 통해 얻으므로 아시아 지역 전체를 총평하는 설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
         여기에 대해 동아시아쪽이 서아시아보다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는게, 2016년 시점에서 바라보면 명백히 서아시아는 동아시아보다 ACL 우승횟수가 떨어진다.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ACC)이 ACL로 개편된 이후의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면 서아시아는 2015년까지 4번 우승, 동아시아는 9번 우승이다. 누가봐도 명백히 클럽 성과가 동아시아쪽이 더 치열하고 강한데다가 2013시즌부터는 자꾸 서아시아가 우승을 못해 흥행이 저하될 우려가 보이는지 토너먼트전에서 동서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기존 방을 결승전에서만 동서끼리 교류가 가능한 구조로 바꿔버린다. 이러다보니 2015시즌 AFC 회원 순위를 보면 1위가 대한민국인 건 그간의 성적을 미뤄 봤을 때 논란이 적을 수 있으나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중국이 사우디, 이란, 아랍에미레이트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는 상황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7회 일치
          * 상위항목: [[K리그 클래]]
         || 정명칭 ||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 2016 ||
         || 경기진행 방 || 정규라운드 + 스플릿라운드 ||
         대한민국 축구리그 중 최상위 리그로써 34번째 대회로 정 명칭은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 2016'''이다. 후원사는 현대오일뱅크.
          1. 순위결정방이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에서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으로 다득점이 득실차(=골득실)보다 우선적용되는 변경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다소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에서 다룬다.
  • MC메타 . . . . 7회 일치
         ||<:> '''학력''' ||<(> [[홍익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석사]] ||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을 나왔는데, 별로 인기 없던 친구가 소풍때 기타를 치니까 여자애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Rock음악을 했다고 한다. 힙합은 방송 [[AFKN]]에서 처음 접했다고..
         90년대 중반부터 [[블렉스]]라는 하이텔 PC통신 흑인음악동호회에서 활동했고, 거기서 [[나찰]]과 만났다. 97년도 블렉스 멤버들과 '푸른굴 양장'이란 공연장에서 공연하다가, 98년부터 '푸른굴양장'이 이름을 바꾼 클럽 [[마스터 플랜]]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실력은 공 데뷔로는 14년차 블렉스시절까지 합하면 거의 20년 동안 랩을 하고 있지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수준급 스토리텔링과 시적인 가사, 특유의 한국어 라임 구성, [[붐뱁]] 비트, 재지(Jazzy)한 비트, [[트랩]] 비트 등에서도 랩을 할 수 있는 넓은 비트 스펙트럼. 플로우는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고, 엇박을 잘 타는 것도 아니지만 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포스가 그 모든 걸 덮는다. 2018년 현재 48세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이다. 가리온 2집의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에서 아직 본인의 랩 실력이 꺾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대부분의 1세대 래퍼들이 현재 랩을 안 하거나 퇴물 취급 받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실제 마스터플랜 멤버 중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랩 작업물을 내는 건 메타와 나찰 정도 밖에 없다.--더럽게 안내지만--]
         그리고 굉장히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무까끼하이[* 대구 사투리, 대구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희귀한 사투리라 한다. 뜻은 뭔가 고지하고 뭔가 무해 보이는 어떤 사람 혹은 상황이라 한다.]처럼 [[경상도 사투리]]로 랩을 한다든지 심지어는 다큐멘터리 <사투리의 눈물>에서는 21분간 랩으로 사투리 나레이션을 시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재즈와 힙합을 합친 개념인 재즈합이라는 프로젝트 밴드 활동도 하고, 프로듀서 [[돕플라밍고]]의 'Hellevator'에서도 새 스타일을 시도 하였고, 2016년 최근에 발표된 Heritage 싱글에서는 끝말잇기 랩을 시도하기도 했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 . . . . 7회 일치
          * 민력 점수 '''{{{#green +100}}}'''
          * 민지 국가가 아닐시 '''{{{#green +2%}}}'''
          * 민지 국가가 아닐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s-4.3|철제 후장 화포]]''' 기술 연구시 '''{{{#green +1%}}}'''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s-4.4|강철제 후장 화포]]''' 기술 연구시 '''{{{#green +1%}}}'''
          * '''Gun Hydraulics(유압 포탑)'''
          * '''Literate NCO's(자 부사관)'''
  • Victoria II/상품 . . . . 7회 일치
         특정 프로빈스의 RGO[* Resource gathering operation. 지역 특산물 정도로 이해하면 편하다.]에서 생성되며, 다른 상품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상품들. 농부와 노동자 POP가 생산한다. 자국에서 나지 않는 원자재의 대부분은 수입하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민지|원자재가 나는 곳을 영토로 만들던가.]]
         물고기를 생산하는 국가들은 가끔 "노인과 바다" 이벤트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 경우 물고기를 비축할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빈민들에게 나눠줘 투쟁성과 의도를 감소시킬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차를 생산하는 국가들은 풍년으로 발생한 차들을 처리하는 "우리 나라의 모든 차"[* 해당 이벤트 이름은 영어 표현인 All the Tea in China에서 따왔다. 매우 값진것을 의미하는 표현. 보통 "중국의 모든 차를 다 준다고 해도 거부하겠다," 같은 으로 쓰인다.] 이벤트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차를 비축할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빈민들에게 나눠줘 투쟁성과 의도를 감소시킬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자본가들에게 나눠줘 소지 자금에 보태게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유리와 곡을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 Canned Food(통조림 품) ===
         철, 소, 물고기, 곡을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 강기웅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대구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강동우 . . . . 7회 일치
         || '''학력''' || 칠성초-경상중-[[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단국대학교|단국대]] [* 1994학번]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단국대학교|단국대]]를 졸업하고 [[199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삼성의 외야에는 [[최익성]], [[신동주(야구)|신동주]], [[양준혁]]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전년도 맹활약했던 최익성-신동주 우타 외야 라인에 부진 및 부상이 닥치자 데뷔 첫 해 주전 자리를 꿰차며 맹활약했다. 그 해 신인왕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고졸로 12승을 거둔데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누린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김수경(투수)|김수경]]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줬다. 또한 그 해 개최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어 있었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 토박이인지라 프랜차이즈성도 탁월하여 향후 삼성의 주전 [[외야수]]가 될 것으로 기대받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16일]] 벌어진 사건으로 인하여 강동우의 지독한 불운이 시작되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이미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삼성 팬들에게 [[강기웅]], [[박충]]과 함께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가슴에 남는 선수다.[* 다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까였던 적도 있다.] 강동우와 관련된 신문기사의 리플을 보면 '''[[한화 이글스|한화]] 팬들보다 삼성 팬들의 응원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는 간간히 '은퇴만큼은 삼성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미 [[마해영]]의 사례도 있고.
  • 고유민 . . . . 7회 일치
         || '''학력''' || 포항동부초등학교[BR]포항여자중학교[BR][[대구여자고등학교]] ||
         || '''배구 입문''' || 초등학교 6학년 ||
         초등학교 6학년때 부터 [[배구]]를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위기가 많았지만[*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227|프로입단 당시의 지역신문 기사]]] 복지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배구]]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2013년 [[대구여자고등학교]]의 주 공격수였으며 [[이고은]]과 콤비를 이루어 주요 대회인 2013년 [[기독교방송|CBS]]배 전국남녀 중고배구대회 여고부에서 우승했다. 이때 선수는 겨우 10명 이었고 악조건 속에서의 우승이었다.
         안습하게도 2주 동안 공 홈페이지 프로필이 얼굴만 바뀐 채로 야나 프로필이었던 적이 있었다.
  • 고준희 . . . . 7회 일치
         |웹사이트 = {{공 블로그|www.instantcoop.com/}}<br>{{인스타그램|gojoonhee/}}
         [[2001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맞추러 갔다가 우연히 권유를 받고 'SK 스마트 교복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해 금상을 수상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206604 주진모와 연인사이 밝힌 고준희는 누구?]</ref>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다.
         ||2009||동서품||필라델피아 크림치즈||[[이소정 (배우)|이소정]]
         |rowspan=7|2013||현대약품 ||미에로화이바 (이음료)||
         * {{공 블로그|www.instantcoop.com|고준희}}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01년 데뷔]][[분류:YG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구명환 . . . . 7회 일치
         ==출신학교==
         * [[대구내당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분류:구씨]][[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
  • 구성윤 . . . . 7회 일치
         ||<:> '''학력''' ||<:> 포항청림초등학교 - [[재현중학교]] - [[재현고등학교]] ||
         포항청림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대부분의 골키퍼들이 어린 시절에는 필드 플레이어로 축구에 입문했다가 골키퍼로 전향하는 것과 달리 구성윤은 축구를 배울 때부터 골키퍼로 시작했다. 이후 고향 [[포항시]]를 떠나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재현중학교]]를 거쳐 [[재현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입학 후 키가 훌쩍 크면서 신입생임에도 주전 골리로 골문을 지켰는데, 이를 우연히 지켜본 [[세레소 오사카]] 스카우터의 눈에 들면서 재학 중 [[세레소 오사카]]의 입단 테스트를 받고 2012년 세레소 오사카의 U-18팀에 입단하였다. 이후 구성윤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는 스카우터가 다른 선수를 보러 왔었는데, 운 좋게도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호평을 내렸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47&aid=0002166201|#]]
         2013년 성인 팀으로 승격하였으나,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 입었던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전반기를 날렸고, 여름에 재활을 마친 후 다시 엔트리에 복귀했으나 전지훈련을 떠나는 당일에 또 부상을 당하며 다시 [[벤치워머]]가 되었다. 이후로도 2009년부터 꾸준히 [[세레소 오사카]]의 골대를 지키고 있던 선배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에게 밀리면서 2014년까지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다. 이후 삿포로로 이적한 장면을 보고, 세레소팬들은 구단한테 [[김진현]]선수의 후임이라고 했으면서 육성을 실패한다는게 말이되냐면서 비난이 이어졌다. 물론 그 비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구자욱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구천서 (야구인) . . . . 7회 일치
         == 출신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신일고등학교]]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쌍둥이 스포츠인]]
  • 권재진 . . . . 7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서울대 대학원]]
         * [[경북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법학과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형사법학과 법학석사 수료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안동 권씨]][[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분류:LS그룹]]
  • 김상훈 (1990년)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율하초등학교
         * 대구경운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김수학 (법조인) . . . . 7회 일치
         |후임2 = [[최우 (법조인)|최우]]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사
         1954년 3월 17일에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김수학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에 치러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9기를 수료했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숙자 (1389년) . . . . 7회 일치
         [[1414년]](태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고,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본처와의 이혼 경력으로 요직에 임명될 때마다 거듭 [[사헌부]]에서 논계하였다. 사예(司藝), 중훈대부에 이르러 관직을 사직하고 [[1456년]] 처가인 [[밀양]]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냈다. 아들이자 문하생인 [[김종직]]을 통해 [[정몽주]]의 학통을 전수하였다.
         김숙자는 12세 때부터 [[길재]](吉再)로부터 『소학』과 경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역학에 밝은 당시 [[조선]] 유학자 별동 윤상(別洞 尹祥)이 황간현감으로 임명되어 내려와 있다는 소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걸어가서 배움을 청하자 윤상은 그 열의를 보고 『[[주역]]』의 깊은 뜻을 힘써 가르쳐주었다. 윤상은 다시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생 중 한 사람인 조용(趙庸)이 [[1392년]](태조 1) [[역성혁명]]을 반대하다가 [[예천]]에 유배되어 오자, 조말생(趙末生)·배강(裵杠) 등과 함께 조용을 찾아가 그를 사사하여 문인이 되었다. 김숙자는 [[길재]] 외에도 윤상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정몽주]]의 학통을 이었다. 그밖에 그는 조용, 김말 등과도 교류하였다.
         [[1414년]](태종 14) 봄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417년]](태종 17) 봄 중성균시(中成均試)에 일등으로 합격하였으나, 그 해의 회시(會試)에는 낙방하였다.<ref>佔畢齋集彝尊錄 佔畢齋集彝尊錄 (上) 子通訓大夫前善山都護府使宗直撰, 先公紀年第二</ref> [[1419년]](세종 1) [[안동]][[향시]](安東鄕試)에 제2등으로 합격하여 [[한양]]으로 상경,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년 문과]]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였다. [[장사랑]] 권지[[성균관]]학유에 임명되거 고향으로 돌아왔다. [[1421년]] 봄 학유에 다시 임명되고 이듬해 [[1월]] [[한양]]으로 올라가 관직을 시작하였고, 사관(史官)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처인 한씨와 이혼하였다.<ref name="ginyon"/> 전처 한씨의 자매의 남편 김주(金宙)는 의술 재주가 있었는데, 김주는 성주목사 이상선(李相善)에게 그가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후 아내를 출처했다고 고하였고, 이는 그대로 [[예문관]]에 보고되었다.<ref name="ginyon"/>
         [[1422년]](세종 4) [[5월]] 종사랑으로 승진, 성균관학록이 되었다. 아들 김종직에 의하면 [[1423년]] 김주가 한성으로 간 뒤, 장인 한변(韓變)을 불러서 [[사헌부]]에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사헌부]]에 소환된 그는 대질심문을 받았으며 낙직(落職)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한다.<ref name="ginyon"/> 고령현감을 거쳐, [[1423년]](세종 5) [[7월]] 성균 직학(成均直學)이 되었을때, [[사헌부]]가 [[세종대왕]]에게 그가 자이 있는 조강지처를 망령되이 서얼(庶孽)이라 일컬어 아무 까닭도 없이 버려 이별하였으니, 형률에 의거하면 곤장 80대를 치라는 계를 올렸다.<ref>세종실록 21권, 1423년(세종 5년, 명 영락 21년) 7월 4일 임오 3번째기사, "성균 직학 김숙자를 처벌하다"</ref> [[1431년]] [[7월]] 모친 유씨가 죽어 밀양에서 분상했는데, 8월 아버지도 사망하였다. 그는 할머니 김씨부인 묘소 하에 빈소를 마련하였다. 이후 3년간 복상하였다. [[1433년]] 가을 상복을 벗고 [[밀양]]으로 돌아왔다.<ref name="ginyon"/>
         [[1440년]](세종 22) [[선교랑]], 1441년(세종 23) [[1월]] 김해교수관 노호(盧浩)와 보직상환 변경되어 [[김해]]로 내려갔다. 이듬해 2월 남부령(南部令)이 되었다가 특별히 동반직을 받아 승의교위(承義校尉)에 제수되고,중군섭부사직 겸 성균관주부(中軍攝副司直兼成均注簿),남학교수관(南學校授官)이 되었다가 그해 11월 승훈랑(承訓郞)이 되어 고령현감(高靈縣監)으로 나갔다. [[1445년]] [[2월]] 승의랑이 되었다가, 지방의 수령들의 직급을 1계급씩 강하한다는 명에 따라 강임되었다. [[1447년]](세종 29) 10월 다시 승의랑으로 환급되고, 11월에 [[성균관]]주부 겸 남학교수관, [[1448년]] [[7월]] [[교서관]]교리가 되었다가 한달만에 전제경차관(田制敬差官)에 임명되어 [[전라도]] [[남원]], [[옥과]], [[장흥]], [[순천]], [[장흥]] 등을 순시하고 그해 [[10월]]에 봉훈랑으로 승진한 뒤, 12월에 도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ginyon"/> [[1450년]](문종 즉위) [[8월 13일]] 지풍기군사(知豊基郡事)로 발령, 부임하였다.
         * 「한국의 명문 종가」, 사림의 학맥형성과 그 특성, 이순형 저, 서울대학교출판부(2000년, 17~33p)
  • 김유현 . . . . 7회 일치
         |학력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연극영화과
         '''김유현'''([[1987년]] [[1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배우 김유현은 2015년 6월 7일 대구에서 9살연상 일반인 사업가(건설회사 부사장)와 결혼을 올렸으며, 당분간은 신혼생활에 충실할 예정이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7050100050700003393&servicedate=20150704 김유현 결혼, 9살 연상 건설회사 부사장과…'전우치' 등서 청순연기]]</ref>
         * [[경일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성악화과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연극영화과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
  • 김윤동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출신 학교==
         * 남도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안동 김씨 (신)]][[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정호 (1949년) . . . . 7회 일치
         * 1968년 : [[서울고등학교]] 졸업
         * 1972년 : [[서울대학교]] 섬유공학 학사
         * 1981년 : [[오리건 대학교|오리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 2012년 : 운산그룹 품소재사업 부회장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농림부 차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현민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출신 학교==
         * 대구남도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제주고등학교]]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
  • 김현철(교수) . . . . 7회 일치
         || '''학력''' ||<(> [[심인고등학교]] {{{-1 ([[졸업]])}}}[br][[서울대학교]] {{{-1 (경영학 / [[학사]])}}}[br][[서울대학교]] {{{-1 (경영학 / [[석사]])}}}[br][[게이오기주쿠대학]] {{{-1 (경영학 / [[박사]])}}} ||
         || '''약력''' ||<(> 쓰쿠바 대학 부교수[br]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위원[br]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br]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br]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br]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 ||
         1962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심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김형철 (가수) . . . . 7회 일치
         |학력 =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 [[영신고등학교 (대구)|경상북도 대구 영신고등학교]] [[졸업]](1979년 2월)
         *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학사]](1987년 8월)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김현]][[분류:유재하]][[분류:신해철]][[분류:김성재]][[분류:이승환]][[분류:김광석]][[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효진 (배우) . . . . 7회 일치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 [[한양대학교|한양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석사)
         김효진은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동대문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그녀를 본 모델 에이전시의 권유로 잡지 모델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데뷔한 이후, 각종 잡지 모델과 광고에 출연했고,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입문했다. 그녀는 [[김민희 (1982년)|김민희]], [[공효진]], [[신민아]] 등과 대표적인 [[2000년]]대초 N세대 스타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김민희·배두나, 스크린 점령한 'N세대 아이콘'|url =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30320092456112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 |날짜 = 2013-03-20|확인날짜 =2013-03-24 }}
         * 2004년 제27회 황금촬영상 시상 신인여우상 《[[천년호]]》
         * 2012년 제7회 아시아 모델상 시상 모델스타상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7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21. '''후기 시업'''
          * 둘의 싸움 소은 학생들에게 전해져 질문세례를 당한다.
          * 교장 [[네즈]]는 시업에서 모두 사회의 후계자라는걸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 다음날 아침부터 이들이 싸움 소은 구설수에 오른다. [[아시도 미나]]와 [[하가쿠레 토오루]]가 가장 먼저 달려든다. 미도리야와 바쿠고는 아침부터 공동구역을 청소하고 있어서 소문은 더 빠르게 전달됐다. 둘은 한 바탕 놀림감이 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화해는 한 거냐고 하는데 사실 화해인지 아닌지 애매한 무언가라서 미도리야가 대충 얼버린다. [[이이다 텐야]]는 어쨌든 둘은 시업에 빠질 수밖에 없겠다며 나머지 학생들을 인솔해 기숙사를 나선다. 나가면서 [[토도로키 쇼토]]는 임시면허 보충수업 어쩔 거냐고 하는데 바쿠고는 퉁명스럽게 상관하지 말라고 대꾸할 뿐이다.
          * 시업을 위해 이동하는 중. B반의 [[모노마 네이토]]가 나타나 시비를 건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너네 쪽에서 떨어진건 너겠네"라고 받아치는데 모노마는 한바탕 웃을 뿐 말없이 돌아선다. 그런데.
          올마이트의 은퇴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뒤따르겠지만 무엇보다 히어로 학과 학생들에게 현저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네즈는 2, 3학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히어로 인턴" 참가자들도 위기의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1학년 A반 학생들은 아직 히어로 인턴제도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7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의 네거티브한 성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타마키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됐는데 첫날부터 자기소개에 실패한다. 이름을 말하긴 커녕 우물거리다 "히..."라고 중얼거리고 끝났다. 모처럼 시업에 맞춰 간 전학이었지만, "스타트부터 실패했다"는 자기혐오 때문에 다른 애들이 친구를 만들어 갈때 끼어들지 못했다. 그렇게 또 우울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려 할때, 구원이 내려왔다. 타마키는 거기서 [[토오가타 밀리오]]와 만났다. 풀죽은 타마키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친구. 그는 "히"라는 말이 혹시 "히어로"를 말하는 거였냐며 어떤 히어로를 좋아하느냐 묻는다.
          타마키는 공언한 대로 자기 혼자서 이 셋을 상대하겠다 재차 선언한다. 단발머리는 세츠노. 개성은 "절도". 대머리는 호죠. 개성은 "결정". 빵봉투는 타베. 개성은 "". 이상 세 명이다. 타마키는 패트껌 사무소에서 타코야키를 충분히 먹어서 문어다리의 숙련도도 최고조에 달했고 지난 번 사건의 경험으로 원거리 공격에도 민감해진 상태다. 그는 이런 조무래기들 상대로 프로히어로가 몇 명이나 묶여 있는 거야 말로 적들이 바라는 일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후배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가 주저하나 이런 상황일 수록 프로들의 개성을 아껴두는게 좋다고 상사인 패트껌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 호죠의 공격을 받는 순간, 그리고 "기대 받으면 부응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타마키도 떠오른 것이 있었다. 중학교 때 "개성 교육" 시간. 이때도 타마키의 성격이 문제였다. 교사들에게는 "좀 더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 받았지만 쉽게 긴장하는 탓에 제대로 개성을 쓰지 못했다. 결국 교사도 포기하고 빠져있으라는 상황.
          >그러니까 네 대로 말하면, 너는 태양보다 굉장하단게 되거든.
          * 호죠의 공격은 적중하지 않았다.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타마키, 히어로 "선 이터"가 취한 방은 방어가 아니다. 그는 문어다리를 게껍질로 감싸 "경화"시켰다. 빌런의 어중간한 경화 따위는 가볍게 분쇄할 수 있는 강력한 힘. 그는 호죠의 주먹을 부수며 예전 친구가 붙여준 이름을 자랑스럽게 밝힌다.
  • 남일해 . . . . 7회 일치
         | 학력 = [[대건고등학교]] 졸업
         * [[대구중앙초등학교]]
         * [[대건중학교]]
         * [[대건고등학교]]
         [[분류:193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 농가 . . . . 7회 일치
         [[시골]]에 있는 오래된 농가(農家)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전시대적・봉건적・인권을 무시하는 사고 양・행동 양을 당연하다는 듯이 타인에게도 강제하는 인간, 또는 그 가정이나, 마을 등의 공동체. 농업 종사자로서의 「농가(農家)」, 또는 현대적으로 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농가(農家)」와는 구별하기 위해서 태어난 말이다. 고름 농(膿)을 사용한다.
         농가(農家) 전체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고, 농업 종사자 이외에도, 사고・행동 양이 그렇다면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민 전체를 싸잡아서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농가(膿家)적 사고방을 상기와 같은 행동 양을, 절대지상으로 여기며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제하는 생각. 또는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농가뇌(農家脳)」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농가(膿家)」와 같이, 최저한의 상을 가지고 있는 농업 종사자는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 담철곤 . . . . 7회 일치
         중학교 3학년 서울에 있는 Seoul Foreign School 로 진학했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를 졸업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SFS에서 만난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에게 10년이 넘는 구애를 한 끝에 결혼했다.
         1980년 장인의 회사인 동양그룹에 입사해 동양시멘트 구매부서에서 일했다. 1년 후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1983년 상무, 1984년 전무에 오르고 1985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이 창업주가 타계하자 동양제과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경영권을 물려 받았다. 동양제과를 동양그룹과 계열분리하고 사명을 오리온으로 바꾸면서 오리온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후 제과사업뿐 아니라 유통, 미디어, 영화, 외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다 2013년 부인 이화경 부회장과 함께 오리온그룹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 [[서울외국인학교]]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마케팅학과 학사 수료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켄트외국인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오리온그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중국계 한국인]]
  • 라이징 스톰 . . . . 7회 일치
          38보병총. 주축군 Rifleman의 기본 주무기. 총검이 기본적으로 달려있다.
          99단소총. 총검이 기본적으로 달려있다.
          100기관단총. 주축군 Assault의 기본 주무기.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반동 감소와 고성능 조준기가 해금된다.
          96경기관총. 주축군 Machine Gunner의 기본 주무기.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총검이 해금된다.
          14년권총. 주축군 병사들의 보조무기.
          97수류탄.
          89중척탄통. 주축군 Light Mortar가 사용할 수 있는 장비. 일종의 박격포로 어딘가에 거치하고 난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포탄이 상황에 따라 직사도 가능.
  • 로힝야 . . . . 7회 일치
         이들이 기원에 대해서는 미얀마 정부 측과 로힝야 측의 주장이 다르다. 미얀마 정부 측은 [[영국]]이 1824년 미얀마를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서 민통치를 시작한 뒤, 똑같이 영국의 민통치 지역이었던 방글라데시에서이 이주해왔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사람이라는 뜻에서 '벵갈리'로 부른다.
         1982년에는 시민권법이 개정되어, 로힝야는 미얀마 국적도 박탈되었다. 1982년 시민권법은 미얀마 국민을 ‘태생시민’(Citizen), ‘제휴시민’(Associate Citizen), ‘귀화시민’(Naturalized Citizen)으로 분류하는데, 태생시민은 미얀마 정부가 인정하는 공 종족과, 미얀마-영국 1차 전쟁이 있었던 1824년 이전부터 현재의 미얀마 영토에 거주했던 조상을 둔 주민에게 부여된다. 미얀마 정부는 130개 이상의 소수민족을 인정하고 있으나, 공 종족으로 포함되지 않아 시민권을 얻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버마무슬림협회와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이 폭동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동원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미얀마 정부가 밝힌 공 사망자는 43명, 모스크 37곳과 건물 1300여채가 불탔고, 1만 3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버마무슬림협회는 사망자가 70~100여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천명의 난민이 방글라데시로 탈출하였으며, 방글라데시 경찰은 난민이 2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3일 미얀마 대사를 불러서 정으로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역시 우려를 표시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시민들은 이에 분노하여 항의 시위를 벌일 정도로 감정이 악화되었다.
         미얀마 승려 위라투는 이 음모론에 대응하는 '969 운동'을 시작했는데, 9는 붓다, 6은 법륜, 9는 붓다의 제자, 승려를 뜻한다. 969 운동은 무슬림의 '786 음모'에 맞서는 운동임을 주장한다. 위라투는 2003년 버마 중부 만달레이주 카욱세의 반 무슬림 폭동에서 배후를 자처했다. 이 때 위라투를 비롯한 5명의 승려가 경찰에 '증오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 그는 민간 정부 출범을 기념한 대사면으로 석방됐으며, 이후로 미얀마 전역의 불교 사원을 순례하며 반무슬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운영하는 회사나 무슬림 상점에 보이콧을 선동하고, 신심있는 불교도라면 969 운동의 [[스티커]]가 붙은 가게에서만 물건을 사야 한다는 이다.
  • 문호월 . . . . 7회 일치
         |학력 = [[휘문고등학교|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는 설과 [[일본]]에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는 설이 있으며, [[1927년]]경부터 [[기타 연주자]]로 공 활동을 시작했다. 작곡가로 데뷔한 것은 [[1933년]]에 [[오케레코드]]에서 [[김능인]], [[신불출]]의 가사에 곡을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제목=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192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일제 강점기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민효린 . . . . 7회 일치
         * [[대구동부고등학교|대구동부여자고등학교]] (졸업)
         * [[계명대학교]] 패션디자인과 (학사)
         ! 시상
         | 제49회 [[대종상영화제]] 개막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06년 데뷔]][[분류:대구동부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박기환(정치인) . . . . 7회 일치
         1948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 고향인 포항시에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박승욱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칠성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박종윤 (1993년)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박창달 . . . . 7회 일치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 학사[br][[영남대학교]] 행정학 석사||
         [[대한민국]]의 [[정치인]]. [[포항시]] 출신. [[계성고등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계성학교총동창회 회장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 박태호 (야구인) . . . . 7회 일치
         은퇴 이후 모교인 [[대구고등학교]] 감독과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을 거쳐 현재 [[영남대학교]] 감독을 맡고 있다.
         == 출신학교 ==
         * [[대구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박홍 (신부) . . . . 7회 일치
         |직업 = 종교인, 대학교
         [[1989년]]부터 8년간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28919 [서강대] 박홍신부 총장 복귀 유력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1994년]]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 주사파 관련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다.<ref>[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767077 1등신문 대전일보 59년 정통언론<!-- 봇이 붙인 제목 -->]</ref>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종교분과위원장을 지냈으며, '주사파'발언 이후 경찰관 2명이 그를 밀착하며 신변을 보호하기도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hani.co.kr/h21/data/L000626/1pau6q2f.html 한겨레 21<!-- 봇이 붙인 제목 -->]</ref> [[1997년]] 총장직에서 퇴임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5&aid=0000004186&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 [[서강대학교]]
         * [[홍일]]
         [[분류:194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반공주의자]][[분류:서강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예수회]]
  • 박화랑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수창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백운산 물고기 . . . . 7회 일치
         본래는 열대어지만, 관상어로 유통되는 종은 오래 전에 채집되어 양된 종으로서, 수온 변화나 오염에 강한 변이를 거쳤기 때문에 [[겨울]]에도 기온 10도 정도 온도의 실내라면 버틸 수 있어 사육이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베트남에서 채집된 종류는 변이가 없는 열대어라서 쉽게 얼어죽는다.
         가장 잘 알려진 종류는 [[중국]] [[백운산]]이 원산지인 백운산 미락어(白雲山 米諾魚,Tanichthys albonubes)이며, [[베트남]]에 서하는 Tanichthys micagemmae, Tanichthys thacbaensis 2가지 종류가 있다.
         백운산 종은 광둥성 백운산, [[홍콩]] 등에 서하였으나, 개발로 서지가 파괴되어 야생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하이난 섬]]에서 새로운 서지가 발견되었다.
         번 자체는 쉽지만 [[알]]을 보면 자기가 먹어버리기 때문에 번을 시키려면 공을 들여야 한다.
  • 서동민 . . . . 7회 일치
         ==출신 학교==
         * 율하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달성 서씨]]
  • 서수민 . . . . 7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졸업[br]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
         [[경상북도]] [[포항시]] 출생[* 1박 2일 2016년 1월 31일 방송에서 [[유호진]] PD를 통해 언급됐다.]으로, [[한국방송공사|KBS]] 예능국 소속 PD다. [[1995년]]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를 졸업한 다음 KBS에 입사했다.
         유명 사진작가 조선희와는 같은 [[경상북도]] 출신[* 조선희는 [[칠곡군]] 출신이다.]에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동기라고 하며 연대 입학 후 만난 두 사람은 반지하방에서 자취하면서 룸메이트 생활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기획을 맡은 KBS2 드라마 '최고의 한방'의 포스터를 촬영했다고 한다.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은 역시 미디어 노출이 너무 잦다는 점. 용감한 녀석들에서 매주 박성광이 그녀를 디스하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이게 딱히 재미있는 드립들도 아니었어서 많은 비판을 들었다. 대개 개콘 연출자의 이름은 연말 시상에서 개그맨들이 수상소감으로 OOO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정도로 듣게 되는데 매주 들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나온 비판. 무한도전의 김태호, 1박 2일부터 지금까지의 나영석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얼굴이나 목소리가 공개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서수민은 그 과정조차 부자연스러웠다.
          *[[장학퀴즈|장학퀴즈 학교에 가다]] (2016년)[* 본인 모교인 [[포항제철고등학교]]의 선배로 나왔다.]
  • 서정제 . . . . 7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40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서정제는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에 임용되어 마산지방법원장, 대구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대구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구고등법원장으로 재직하던 1993년 7월 13일에 대법원이 법관인사위원회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이원배]] 서울민사지방법원장, [[박영 (법조인)|박영]] 광주지방법원장과 함께 위원으로 추가 임명되었다.<ref>동아일보 1993년 7월 14일자</ref>
         [[분류:194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서정환 . . . . 7회 일치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 감독에 취임하였다.
         == 출신 학교 ==
         * [[대구신암초등학교]]
         * [[건국대학교]]
         [[분류:KIA 타이거즈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도루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
  • 서태식 . . . . 7회 일치
         '''서태'''(徐泰植, [[1938년]] [[11월 22일]] ~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이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을 창립하고 30년간 회장직을 맡아온 기업인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47257 |제목= 서태 회장, '회계업계 살아있는 역사' |출판사= [[머니투데이]] |날짜=2005-06-09 |확인날짜=2013-04-03}}</ref>
         * [[경북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 [http://search.nate.com/search/all.html?q=%BC%AD%C5%C2%BD%C4&hi=PR277650&ht=h_pf&ssn=012&dsn=4 서태 네이트 인물검색]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 식극의 소마/157화 . . . . 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6화]] |||| '''극의 소마/157화''' |||| [[극의 소마/158화]] ||
         [[극의 소마]] 157화. '''연어는 춤춘다'''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59화 . . . . 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58화]] |||| '''극의 소마/159화''' |||| [[극의 소마/160화]] ||
         [[극의 소마]] 159화. '''성장'''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178화 . . . . 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177화]] |||| '''극의 소마/178화''' |||| [[극의 소마/179화]] ||
         [[극의 소마]] 178화. '''빛나는 거리'''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1화 . . . . 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0화]] |||| '''극의 소마/231화''' |||| [[극의 소마/232화]] ||
         [[극의 소마]] 231화.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7화 . . . . 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6화]] |||| '''극의 소마/237화''' |||| [[극의 소마/238화]] ||
         [[극의 소마]] 237화.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8화 . . . . 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7화]] |||| '''극의 소마/238화''' |||| [[극의 소마/239화]] ||
         [[극의 소마]] 238화. '''여왕님의 타르트'''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식극의 소마/239화 . . . . 7회 일치
         |||||||||| [[극의 소마/에피소드]] ||
         || [[극의 소마/238화]] |||| '''극의 소마/239화''' |||| [[극의 소마/240화]] ||
         [[극의 소마]] 239화. '''그녀의 파이팅 스타일'''
         [[분류:극의 소마]] [[분류:극의 소마/에피소드]]
  • 안병근 . . . . 7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에서 출생하였으며, 옥산초등학교, [[대구중앙중학교]]와 대구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도 安柄根 선수 프로필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070009921101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8-07&officeId=00009&pageNo=11&printNo=5670&publishType=00020|출판사=매일경제|저자=|쪽=|날짜=1984-08-07|확인날짜=2016-12-15}}</ref>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안지만 . . . . 7회 일치
         * 힙지만 - 그는 시합에 나갈 때마다 [[모자]] 챙을 세우면서 나가는데, 이로 인해 '힙지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 챙을 세우게 된 이유로는 예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강영 (야구 선수)|강영]](현재 [[롯데 자이언츠]])과의 내기로 모자 챙을 세웠다고 한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는 이유는 예전에 같은 팀 선배였던 [[양준혁]]이 "너는 인상이 선해서, 모자로 포인트를 줘봐라" 라고 한 후 쭉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던 [[장효조]]가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무렵에는 경기에 나갔을 때 추모를 위해 모자 챙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힙합모자를 쓰지 않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42945 삼성 안지만, 힙합 스타일을 버린 까닭은?] - 스포츠조선</ref>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홀드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
  • 야설록 . . . . 7회 일치
         '''야설록'''(1960년 2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무협 소설]] [[작가]]다. 야설록은 [[필명]]으로 본명은 최재봉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고 [[대구고등학교 (대구)|우신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를 중퇴했다.
         * 주회사 야컴 대표이사
         *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만화예술창작과 주임교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만화 스토리 작가]][[분류:무협 작가]][[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오재희 . . . . 7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br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수료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주미·주일 공사, 주 파키스탄 대사,<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070009920101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3-11-07&officeId=00009&pageNo=1&printNo=5439&publishType=00020 | 제목 = 韓國, 파키스탄과 修交 | 날짜 = 1983-11-07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 인용문 = 政府는 7일 파키스탄 정부와 공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외무부가 발표했다. 外務部는 이날 발표에서 韓․파키스탄 국교수립으로 양국 주재 총영사관이 각각 대사관으로 승격되고 양국 주재 대사 임명에 앞선 잠정조치로서 吳在熙 駐파키스탄총영사와 자베드․마수드 駐韓파키스탄 총영사가 각각 대사대리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ref>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차관|외무부 차관]], 주일 대사를 역임하였다.
         1991년 2월 19일, [[노태우 정부]]에 의해 주일 대사에 임명되었다. 오재희 대사의 기용은 그의 직업외교관 경력으로 미루어 자연스런 인사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등학교]] 동기동창이고 [[노재봉]] 총리의 매형, [[이상옥]]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외무부 장관]]과는 대학 동기 사이라는 학연, 혈연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었다. 성격이 꼼꼼하고 일처리가 치밀하며 빈틈없어 부하 직원들로부터 오검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첫 주일 대사이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21900329201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2-19&officeId=00032&pageNo=1&printNo=13971&publishType=00020 | 제목 =大使7명 이동 | 날짜 = 1991-02-19 | 출판사 = 경향신문}}</ref>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공사]][[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파키스탄 주재 대한민국 대사]]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7회 일치
          블라즈코윅즈를 보살피던 정신병원의 수간호사. 블라즈코윅즈와 함께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폴란드 출신으로, 의사와 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고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전쟁 때문에 고고학을 배우는걸 그만두고 가업인 정신병원 운영을 돕게 되었다.
          나치 사령관들이 사용하는 제 권총. 단거리에서 경무장한 적을 상대하는데 적합하다. 소음기를 장착할 수 있다.
          첫번째 챕터에서만 등장하는 무기. 미 육군의 제 기관단총이다. 권총과 같은 탄약을 사용한다. 단거리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데 적합하다……고 한다.
          독일 육군의 제소총. 단발과 연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중거리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데 적합하다.
          * 거치 기관총
          데스헤드가 손수 만들어낸 강화보병. 화학적 처리 등 여러 개조를 한 후 방탄 갑옷에 쑤셔박은 인간이다. 개조 과정 중 뇌를 원초적인 수준까지 열화시켜 매우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만든다. 거치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죽인 후 몸에 붙어있는 철갑판을 떼어내 방어력 회복 수단으로 쓸 수 있다.
          정 명칭은 WESPE 드론. 40년대 말에 독일 최고의 무선 기술자인 루드비히 발트 박사가 개발하였다. 플레이어를 발견하면 레이저를 쏴갈긴다. 격추될 시 폭발하니 주의.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7회 일치
         서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의 행렬은 이어졌고, 소련군이 미국을 침공하였다는 소은 라디오 방송국의 방청자 제보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소련군은 공수부대를 시애틀 외곽에 투하하고 있었다. 배넌은 고속도로 다리에 방어선을 설치했다. 방어선이 돌파당한다면 소련군은 피난민들을 따라잡고, 워싱턴 주 전체로 뻗어나갈 것이었다.
         소여 대령은 파인밸리 언덕에 휘하 중대장들을 모아놓고 브리핑을 시작한다. 무전병인 유리스 이병이 소여에게 안 좋은 소을 전해온다. 윌킨스 대대가 제시간에 오지 못할 것 같다고 무전을 보내온 것이다. 이때, 유리스 이병이 저격수에게 당해 쓰러진다. 소여는 위생병을 부른 다음 브리핑을 재개한다. 소련군 증원군이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마을을 탈환하고 농성을 벌여야 했다. 소여는 배넌의 C중대에게 북쪽의 슈퍼마켓을 점거하도록 하고 이들을 웹 대위의 중대가 지원하도록 한다. 파커 중위에게는 동쪽의 주유소를 최대한 빨리 탈환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소여는 아직까지 미군 병사들이 처리하지 못한 저격수 좀 어떻게 해보라는 말과 망할 위생병은 안 오고 뭘하냐는 말로 브리핑을 끝낸다.
         헬리콥터가 도착한 곳은 인근 지역 모두를 볼 수 있는 48번 고지였다. 이곳 역시 민병대가 차지하고 있었기에 로마노프가 이들을 처리해야 했다. 전투 도중 레베디예프로부터 미군 제4기갑기병연대가 접근 중이라는 소을 들은 올로프스키는 자신들이 소규모 민병대 이상의 무언가를 상대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노프는 언덕을 확보해 민병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낸다.
         헬리콥터가 떠날 준비를 시작할 무렵, 올로프스키는 말라셴코를 부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말라셴코가 민병대로 추정되는 인물을 심문하러 근처 농장으로 갔다는 이야기 뿐. 한편, 말라셴코는 병사들에게 무기를 숨긴 민간인들을 처형할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말라셴코가 우물쭈물하는 병사들에게 짜증을 내며 자기 손으로 민간인들을 처형하려 할 때, 올로프스키가 난입해 이를 저지한다. 올로프스키는 병사들에게 민간인들을 데리고 나가게 한 후 말라셴코를 추궁한다. 말라셴코는 민간인들이 민병대를 위해 무기와 음을 숨기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올로프스키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말하자 말라셴코는 명령이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해야하냐며 화를 낸다. 이에 올로프스키도 다시 한번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군사재판에 회부해서 소련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받아친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나가버리는 말라셴코. 올로프스키는 이를 보고있던 레베데예프에게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레베데예프는 맞건 틀리건 올로프스키는 자신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대답을 한다. 올로프스키는 레베데예프가 자신의 선택을 했는지 되묻고는, 조만간 선택할 순간이 오게 될 것이라면서 농장을 떠난다.
         소여 대령과 휘하 중대장들은 초등학교에서 마지막 브리핑을 벌인다. 소여는 소련군이 캐스케이드폴스를 뚫기 위해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예상과 공군의 근접항공지원이 있을거지만 그걸로는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말을 했지만 모두가 진지한 태도였다. 심지어 배넌 대위마저도. 얼마 되지 않아 소련군이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소여와 중대장들은 방어전을 지휘하기 위해 각자의 부대로 돌아간다.
         소여 대대가 마을 중앙에 알박기를 하고 버티는 동안, 소여는 나쁜 소을 전해온다. 소련군 기갑대대 3부대가 캐스케이드폴스로 막 투입되고 있었다. 이는 소여 대대가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후퇴해서 모든걸 잃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배넌에게 소여는 전술 핵폭탄을 투하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핵폭발에 휩쓸리지 않도록 북쪽 다리 너머 고등학교로 후퇴할 것을 지시한다. 이때, 배넌이 모든 부대가 후퇴하면 소련군이 알아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부하들과 상의가 끝났으니 자신의 중대가 미끼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다. 소여는 자신은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결국 배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파커의 중대와 웹의 중대가 후퇴한 후, 마을 중앙에 남겨진 배넌의 부대가 자신들의 좌표를 보낸다. 파커는 배넌이 보낸 좌표로 전술 핵미사일을 유도한다.
  • 유재호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출신학교==
         * [[대구남도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강릉 유씨]]
  • 윤진이 . . . . 7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br />(現 [[서울특별시]])<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1990년]]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 (現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어릴 때 현대무용을 하였던 경력이 있다. 중학교 3년 간 미국 얼바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고,<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귀국 후를 졸업하고 영화예술학과 진학하였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였다.<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2011년, 학교로 오디션을 보러온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다.<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2012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 역으로 데뷔했다. 2018년 하반기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데뷔 이래 최대의 악역을 맡았다.
         ! 시상
         | 제8회 아시아 모델상 시상
         * {{언어링크|ko}} [http://cafe.daum.net/yungenie 공 팬카페-Genie] - 다음
  • 은혼/629화 . . . . 7회 일치
          * [[히자카타 토시로]]와 [[진선조]]는 겐가이 영감의 실종, 잠정적으론 적에게 납치 당한 걸로 보인다는 소을 각지에 전한다. 히지카타는 이제 가부키쵸 병력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타 긴토키]]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방문을 연다.
          * 불빛 하나 없는 에도성. [[소요 공주]] 등 에도성에 남은 인물들은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의 보호를 받고 있다. 마츠다이라는 에도성을 중심으로 일대에 숨어있는 해방군의 잔존 병력을 감시한다. 그는 이 조용한 밤이 싫다. 낮에 열 때문에 이성을 놨던 적들도 이쯤되면 슬슬 머리가 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들은 움직이지 못하는게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숨죽이며 무언가가 오길 기다린다. 그런 동향으로 볼 때, 지구가 얻은 보너스 스테이지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마츠다이라는 생각한다. 그러니 에도성에 있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쉴 수 있을 때 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통신이 회복되었다는 소은 가부키쵸에도 전해졌다. 히지카타는 [[오키타 소고]]와 진선조 병력을 이끌고 한 시라도 빨리 겐가이를 탈환하기 위해 추적에 나선다. 그는 적의 수중에 들어간 겐가이가 통신을 복구하지 않았나 우려한다. 그렇다면 통신이 문제가 아니다. 곧 다른 기계화 병력이 부활하는 것도 시간 문제. 어떻게든 그 전에 겐가이를 탈환해야만 한다.
          신파치는 그래도 겐가이 영감이라면 뭔가 단서를 남기지 않았겠냐고 하는데, 오키타도 같은 생각이다. 오키타는 곧 길가에 널부러진 응가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응가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씩 이어져 있다. 오키타는 이게 겐가이가 아군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헨젤과 그레텔 적인 그런 방을 취한 거라고 판단한다. 오키타는 이걸 따라가면 겐가이 영감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하지만 히지카타는 정말 자신있으면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어보라고 자꾸 김전일 네타에 집착한다.
          * 대변은 길고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진다. 오키타는 대변의 양으로 보아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이 쌀 수는 없다며 위험한 상태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릴하지만 긴장감이 생길리가 있나. 오키타를 앞세우고 추적한 추악한 헨젤과 그레텔의 표 끝에는...
          * 사라져 버린 실마리. 하지만 히지카타가 새로운 단서를 포착한다. 길에 혈흔이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겐가이가 남긴 표은 이쪽일지 모른다. 하지만 상당한 양의 피가 계속 흘러나온 걸 볼때 이미 위험한 상황, 어쩌면 늦었을지 모른다. 히지카타가 그렇게 추리하자 아까 헨젤과 그레텔 때문에 빈정이 상했는지 오키타가 "곱창의 이름을 거는 겁니까"라고 물고 늘어진다. 히지카타도 할아버지 이름을 걸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는다.
          * 누가 봐도 치사량에 가까운 출혈의 양. 불안한 예감이 들게하는 검붉은 표의 끝에는....
  • 의식 높은 계 . . . . 7회 일치
         자신을 "의이 높은 사람"으로 가장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어른에게 찾아오는 [[중2병]].
         의이 높다는 것은 사회적 의이 높다는 의미이며, '계(系)'라는 것은 특정한 계열의 사람('~족'과 비슷한 의미)을 뜻하는 말이다. 본래는 '의이 높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되어야 하지만, '의 높은 계'라는 뒤틀린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러한 표현이 붙는 사람들이 뭔가 뒤틀린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취업 활동 관련 이벤트에서 '의이 높은 학생이 모이는 이벤트'라는 표어에 마구 참가하여, 취업보다 오히려 취업활동이 목적이 되버린 듯한, 착각이 많은 취업활동 학생을 가리켜서 "의 높은 학생ㅋㅋㅋ"이라고 불렀던 것을 시작으로 여겨진다.
  • 이병석(정치인) . . . . 7회 일치
         1952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및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강사]],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객원[[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 이상목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성광고등학교]]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이수진(치어리더) . . . . 7회 일치
         ||<:> '''학력''' |||| [[현일고등학교]] - [[대경대학교]] 모델과 ||
         [[구미시]]에 위치한 [[현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경대학교]][*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2/3/4년제 전문대학.] 모델과를 졸업했으며, 여러 직업캠프 다니면서 힙합,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의 댄스 수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그 후, 모델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춤을 추고 싶던 도중 [[치어리더]] 모집글을 보고 지원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키는 모델과 출신답게 174cm이다.
         [[한국프로야구/2014년 포스트시즌]]을 맞아 [[XTM]]의 [[베이스볼 워너B]]에서 제작한 치어리더 배틀 영상에 출연했다.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30M67wdL7Fw|여기]].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했는데, 각 팀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댄스 배틀을 펼치는 방이었다. 이수진은 넥센 치어리더 임경미와 대결을 했다. 여기서 자신의 키만큼 발차기를 하고 다리 찢기를 하는, 놀라운 유연성을 선보였다.
          * 박기량과 아주 친하다고 한다. 2014년 SBS 설 특집 페이스오프에 같이 출연하면서 친해졌고 얼마 전 클래시리즈 금토는 블루다 행사에서 같이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 가냘픈 몸매를 가지고 있으나 의외로 엄청난 [[대가]]다. 2017년 12월 8일자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짜장면을 무려 3그릇이나 해치웠다.~~ㄷㄷ~~ ~~같이 방송했던 안지성 치어리더도 2그릇을 해치운건 덤~~ 사실 치어리더는 직업상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기에 그만큼 잘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 이장영 . . . . 7회 일치
         * [[경북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경제학 학사
         * [[뉴욕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박사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정명 . . . . 7회 일치
         | 학력 = [[경복중학교]]<br />[[영신고등학교 (대구)|영신고등학교]]<br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정명'''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경북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여러 해 일하다 1997년 첫 소설 '천년 후에'를 완성, 1999년 발표했다. 이후 [[뿌리깊은 나무 (2011년 드라마)|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드라마)|바람의 화원]] 등이 드라마화되며 인기를 끌었다.<ref>[http://ch.yes24.com/Article/View/14419 역사소설은 위대하고 재미있는 오답이다 - '바람의 화원'의 이정명] YES24, 2008년 10월 10일</ref><ref>[http://webzine.knu.ac.kr/wz3/mobile/pages/02.htm?VOL=159&mode=view 소설가 이정명 동문] 경북대웹진, 159호</ref>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종혁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옥산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장혁주 . . . . 7회 일치
         '''장혁주'''(張赫宙, <small>일본 이름:</small> 野口稔('''노구치 미노루'''), 野口赫宙('''노구치 가쿠추'''), [[1905년]] [[10월 13일]] ~ [[1998년]] 2월)는 [[한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본명은 '''장은중'''(張恩重)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9년]] 이후부터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지만, 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계급문학에서 유행하던 농민소설에 못지않은 현실 비판 의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판사=서울대학교출판부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9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재일 한국인]]
  • 전호영 . . . . 7회 일치
         ==출신학교==
         * 율하초등학교
         * 경상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정선 전씨]]
  • 정상교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율하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정종철 . . . . 7회 일치
         그는 [[경상북도]] [[포항시]] 정 씨에서 출생하였고 [[부산광역시]] [[영도구]] 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한정 요리·중화 요리·일 요리 자격증을 취득 보유한 그는 월 260만원을 받으며 냉면집 주방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정종철은 TV에 나온 [[심현섭]]을 보고 자신은 심현섭보다 더 재주가 많다는 생각을 하였고 오디션을 치렀으며 한번에 KBS 공채 15기 개그맨이 되어 데뷔하였다. 이후 [[개그콘서트]]에서 '옥동자'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못생긴 얼굴'이라는 컨셉으로 전자 오락실 게임 소리 등 각종 효과음을 흉내 내어 큰 인기를 끌었다.
         * [[동양미래대학교]] [[전문학사]] 졸업
         * "둥둥둥~ 삐익~ 사랑하는, 사랑하는, 온곡, 온곡, 초등학교, 초등학교, 어린이,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 "OOO하는 놈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OOO이냐, OOO이냐, OOO이냐!", "웃지 마, 웃지 마, 웃지 마! 웃지 마, 웃지 마, 웃지 마!", "젠장, 젠장, 젠장!" - 개그콘서트 코너 '갈갈이 삼형제' 중 (정종철이 초등학교 조회 시간 때에 있었던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재연할 때에 등장하는 대사)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동양미래대학교 동문]][[분류:개그야]][[분류:하땅사]]
  • 조현근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
         [[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평양 조씨]][[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진격의 거인/90화 . . . . 7회 일치
          * [[리바이 아커만]]과 [[한지 조에]]는 신문사의 로이, 뷰레와 만나 보도 이후의 소을 듣는다. 민중은 혼란에 빠져있다.
          * 아르민은 여전히 자신이 엘빈 대신 살아남은 것에 죄의을 가지고 이으며 [[엘런 예거]]는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또다시 기억의 혼선이 일어나며 주저한다.
          * 의전이 시작되고 크리스타가 직접 훈장을 목에 걸어주는 의 중에 엘런은 크리스타와 접촉하면서 아버지 [[그리샤 예거]]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난다.
          * 왕궁에서는 이번 작전의 전사자들을 기리고 생존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의전이 진행되고 있다. [[히치 도리스]]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다. 104기 생들은 그녀에게 인사하지만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그녀는 이미 [[마를로 센드]]의 전사 소을 전해받았다. 생존자인 이들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 대화가 단절된 사이 리바이가 다가와서 의전이 시작될 시간이라고 알려온다.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왕 앞으로 나가 의을 거행한다. 히스토리아는 여왕으로서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훈장을 걸어준다. 처음으로 한지에게 목에 훈장을 걸어주고 한지가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춘다. 다음은 리바이, 엘런의 순서다. 의이 거행되는 동안 엘런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다.
          그 순간이었다. 엘런은 그 기억이 살아나는 것과 함께, 의이 진행 중인 것도 잊어버렸다. 동료들과 히스토리아는 정지한 것같은 그가, 무서운 표정으로 분노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 진헌식 . . . . 7회 일치
         1902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양정고등학교(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 [[일본]] [[주오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및 모교인 양정고등보통학교에서 [[강사]]로 근무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무소속 이긍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1년 12월부터 1952년 8월까지 관선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 충청남도지사 임기 중이던 1952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충남대학교]] [[총장]] [[서리]]를 [[충남대학교/역사|겸직하였다]]. 이어서 1952년 8월부터 1953년 5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가 [[곡물]] 관리상의 문제로 경질되고 구속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류지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창작:좀비탈출/0-1-2 . . . . 7회 일치
         벼락처럼 의이 돌아온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구조대인가? 결국 온 건가? 현관으로 향했다. '''쿵 쿵……'''
         나는 현관문으로 바싹 다가간다. 가볍게 문을 울리는 떨림에 귓가를 간질인다. 나는 문 너머를 뚫어 보기라도 할 것처럼 의을 집중했다.
         사실 주방 겸 당은 거실하고 구분도 없이 이어져 있으니까 한 공간이다.
         저 커다란 유리창도 아버지의 연구의 산물이다. 처음엔 벽으로 막아버릴 생각이었지만 아버지는 도난에 대한 두려움 만큼 거실에서 바라다 보는 탁트인 전경 또한 사랑했다. 비록 별볼일 없는 동네지만 당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밝아 오는 아침해가 마을에 드리우면 잘 만든 드라마 세트처럼 사랑스러워 보였다.
         놈들은 '''낮보단 밤'''에 수가 더 많고 움직임도 활발했다.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저놈들이 저 썩어가는 살갗으로 햇볕의 따가움을 느끼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흐물흐물해진 눈알로 태양빛을 인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한 편으론 어딘가 량을 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머리를 굴려보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집을 버리는게 아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다. 약간의 량과 안전이 확보된 물을 찾아서. 그리고 가능하면 무기를 찾기 위해.
  • 창작:좀비탈출/3-2 . . . . 7회 일치
         나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로 이동했다.
         솔직히 학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사건이 이렇게 까지 커지진 않았을 때부터 이미 동네 분위기는 상당히 어수선 했기 때문에 나는 일치감치 학교도 빼먹고 있었다. 좀비들의 출현은 처음에는 '한밤중에 아이를 습격해서 물어뜯는 괴한'이니, '길거리에서 습격해오는 취객'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소문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치안 사정에 불안감을 느끼던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학교 역시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고, 도시가 불안하다며 아예 시골로 피난간 가족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등교하길 그만뒀을 때는 이미 반수 이상이 등교를 멈춘 상태였다.
         그럼에도 학교로 자전거를 움직인 것은 그저 익숙한 길이기 때문일까, 매일 같은 일과를 반복하다가 생겨난 빌어먹을 습관 때문일까.
          * [[창작:좀비탈출/학교|좀비탈출 학교생존기 편]]
  • 창작:좀비탈출/5-1-2 . . . . 7회 일치
         ||<:>→||<:><#008000>'''{{{#white 량을 챙긴다.}}}'''||
         다시 냉정해질 차례다. 팔자에도 없는 액션 영화 촬영 탓에 머리에 피가 너무 몰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잊지 말자. 나는 량이 필요하다. 게다가 토트넘을 보라. 녀석은 90kg는 나갈 것이다. 저 무거운 덩어리를 어디로 치운단 말인가? 애초에 그런게 가능한 체력이 나한테 있는 걸까? 땀을 뻘뻘 흘리고 노동을 한 뒤에 몸살이라도 나서 쓰러져 버리면 토트넘에게 물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량을 옮긴 뒤 깨끗히 몸을 씻었다. 물리진 않았지만 잠깐이나마 녀석들과 접촉했던 것은 찜찜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라디오 정보에선 녀석들에게 물리거나 체액이 혈관에 들어가지 않는 한은 안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까지 진실일까? 혼란을 막아보려는 질병관리국의 정보조작이 아니란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 그러다가 내가 씻는 그 물이 며칠 동안 찜찜해서 쓰지 않았던 "수돗물"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뭐가 어떤가? 왠지 이젠 신경쓰이지 않는다. 체약이 묻었던 옷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렸다. 세탁을 하기엔 물이 아깝고 시간도 아깝다.
         가져온 쌀은 밥을 하려다가 포기하고 죽으로 바꿨다. 그편이 양을 늘려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무나 배추같은 야채도 가져올 수 있었지만 막상 해먹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잘게 썰어서 죽에 넣고 끓여버렸다. 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엉망진창인 죽이었지만 간만에 손으로 만든 음을 먹고 나는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보통 생활에 다가간 듯한 기분'''. 마당을 온전히 손에 넣는다면 조금 더 보통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 만있다면 지옥이 내려앉은 이 세상에서도 당분간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남은 죽으로 아침인지 야인지 모를 끼니를 때웠다. 졸음이 몰려왔고 나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항상 같은 침대였는데 오늘만큼은 깃털처럼 부드럽다. 20시간이 조금 못 되는 인간적인 생활의 여파인지 피로와 공복감 밑에 숨어있던 다른 욕구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 미학적 욕구나 지욕처럼 점잖은 거면 좋겠지만... '''나는 인간이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고 살아가는 실감이 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끔은…… 아니 '''어차피 혼자 있는데''' 눈치 볼게 뭐가 있어? 나는 졸음을 잠깐 미뤄뒀다.
         좋아,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시간은 썩어나게 많으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잡지를 치웠다. 이 잡지는 안방에서 찾았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말을 말자. 인터넷도 전기도 끊긴 지금은 이게 유일한 반찬거리다.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적어도 정신적 위안은 찾을 수 있다. 구이라 고맙습니다 아버지.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7회 일치
         좋은 소 하나. 우리 집에 "쓸만한게 없다"고 한 말은 철회한다. 그건 섣부른 말이었다. 내가 이것들을 재쳐놓았던건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필요성을 미처 인하지도 못했거나. 엄마가 정리하는 냉장고에선 콜라 하나도 찾을 수가 없지 않던가? 이제 생존의 목표가 분명해지고 보니 우리집 창고가 보물단지나 다름 없다.
         우선 내가 찾아낸 작은 물건들에 감사부터 해야겠다. 꽃삽이다. 아마 어머니가 화단을 정리하면서 썼던 물건이리라. 앞으로 시작될 농사에 혁혁한 기여를 기대한다. 본격적인 농사용구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그러면 어때. '''맨손'''보단 백배는 낫지. 벌써부터 파헤칠 수 있는 면적이 배로 늘어난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또 뭘 찾아냈을까? 바로 비료 푸대다. 솔직히 농업적 지이 없는 나로서는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어떻게 뿌려줘야 할런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우리 어머니는 분명 영어 까막눈일 텐데 어째서 포장지에 영어만 잔뜩 써져 있는 비료를 샀을까? 그 사정을 물어볼 날이 올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다. 좌우간 지금은 도움되는 물건이 발견된 것 자체가 기뻐하자.
         그럼 이쯤에서 나쁜 소도 하나.
         생각할 수 있는건 많다. 당구대, 야구방망이, 삽, 곡괭이, 죽창 등등.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토록 쉽게 줍는 물건이 내게는 하나도 없다. 나는 배란다 문을 닫아놓고 거실에 주저 앉았다. 어느덧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당은 태풍의 한 가운데처럼 한산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놓고 여전히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조금 시끄러운 행인들이라고 생각하면 5분 정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머리를 혔다.
         내가 만든 것은 일종의 간이 방검복이다. 이 경우 녀석들의 이빨과 손톱을 의해서 만든 거니까 "방치복"이라고 하는게 나으려나? 개떡같은 어감이군.
         비닐 시트는 일반적으로 하우스에 치는 것만큼 얇고 약한 소재가 아니었다. 다루면서 보니 그보다는 방수포에 가까운 두꺼운 물건이었다. 실험 삼아서 손으로 당겨서 찢어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녀석을 다듬는 역할은 방금 찾은 전지가위에 맡겼다. 하지만 재활용도 염두해야 하고 나는 재단 일에도 문외한이다. 최대한 길고 네모낳게 잘라냈다. 잘라낸 비닐을 팔다리에 둘둘 감고 그 위에 철사를 감아서 고정시켰다. 몸통도 비슷한 방으로 처리했고 그 외에 비닐로 감을 수 있는 곳은 전부 감았다. 제일 얼려운건 머리였다.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적당한 크기의 패트병이 있었고 주인공은 디자이너였다. 어떻게 해도 방도면같은 형태는 되지 못했고 그냥 머리에 둘둘 감은 후 눈구멍과 숨구멍만 뚫었다. 숨쉬는게 다소 불편했지만 어쨌든 호흡이 가능하고 앞도 보였다.
  • 창작:치킨교 . . . . 7회 일치
         치킨교는 치킨을 치느님(Chi-nunim, The Chicken God)으로 신격화 하며, 이를 성스러운 존재로 본다. 치킨을 먹는 것을 하나의 신성한 행위로 보며, 신도들은 주기적으로 치킨을 섭취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치킨을 섭취하는 의을 벌이면서 치킨=우주=신과 일체가 되는 행복과 기쁨을 얻는다.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 흔히 "제1차 외전쟁"에서 죽을 쑤자 나타난 종파였다. 제1차 외전쟁은 미국의 위대한 선지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한반도에 선교를 하러 오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애매한 하이브리드인 롯데리아가 참전하면서 시장통을 지배하던 후라이드 치킨교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 결과로 치킨교는 제법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피해로 인해 후라이드 교는 일종의 종교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부에서도 별도의 총대주교(소스) 세력에 불과하면 양념파가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
         어쨌든 이들은 소스라 불리는, 찍먹에 불과했던 것을 넘어 아예 스스로를 치킨교를 대표할 수 있는 총대주교라 선포하며 하나의 종파로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초기의 이들은 치킨의 가장 우월한 형태는 양념을 두른 치느님이라 강하게 주장하는 한편, 이 강한 호전성을 바탕으로 이교도와의 외전쟁에서 어느 정도 치킨교도들을 끌어모으는 데 아주 주요한 역할을 했다.
          1. 치느님은 스스로 양이 되시기 위해 처음으로 탁위에 오르사, 그 형태는 뼈가 있었다는 점을 보면 순살교도들의 주장과는 달리 결코 순수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유아들에게 부담없이 치느님을 쉽게, 그리고 많이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임을 내세우며 순수한 인간인 유아들을 위한 홍보가 제대로 먹혀들어 가 엄청난 세력을 꾸준히 불리게 된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후라이드 교황과 양념 총대주교 모두 이들도 치킨교도임을 인정함으로써 치킨교 내부의 종교전쟁이 종된다.
  • 최진순 . . . . 7회 일치
         [[2005년]]부터 [[중앙대학교]] 미디어공연영상대학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를 맡기 시작한 최진순은 저서 《한국 신문의 뉴 미디어 혁신》(2006)을 비롯 《온라인 신문, 경쟁과 생존》, 《신문도 TV도 죽었다》, 《뉴스의 혁명, NewsML》, 《혁신 저널리즘》 등의 책을 잇따라 펴냈다. [[2008년]]에는 방송·통신 융합 시대 [[인터넷]] 정책현황분석 및 주요 이슈 (한국인터넷진흥원) 연구보고서(공저)를 냈다.
         [[2005년]] [[한국경제신문]]으로 이직해 [[2016년]] 9월 현재 편집국 기자로 재직 중이며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신문협회]] 기조협의회 포털팀(TFT) 등 신문업계 기구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2005년]]부터 블로그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을 운영 중이다. [[2013년]]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강의 과목은 온라인저널리즘, 디지털스토리텔링, 블로그저널리즘 등이다.
         == 출신 학교 ==
         * [[대륜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2005년~2012년) 강의과목 온라인저널리즘
         * 현재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2013년~) 강의 과목 온라인저널리즘
         [[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
  • 최충연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수창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경북고등학교]]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탁민제 . . . . 7회 일치
         | 학력 =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 학사 </br> [[텍사스 대학교]] 대학원 석사·박사
         * ~ [[1976년]] [[서울대학교]] 학사
         * ~ [[1983년]] [[텍사스 대학교]] 대학원 석사
         * [[1986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캠퍼스 대학원 박사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과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탁씨]][[분류:항공우주공학자]]
  • 태영호 . . . . 7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빨치산 가문에서 태어난 태영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인민무력부장 등 빨치산 1세대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태영호는 평양 국제관계대학(5년제)를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2000년 12월에 [[영국]]과 북한이 수교를 맺고, 2003년 4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이 정 개설되자, 1등 서기관 신분으로 런던에 파견되었다.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 대사의 뒤를 잇는 2인자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태영호는 공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태영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2016년 8월 17일, 갑자기 영국에서 고위급 북한 외교관이 탈북했다는 소이 퍼졌으며 곧 그가 태영호 영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가족과 함께 탈북한 태영호는 한국 [[망명]]행을 택했는데, 1997년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 장승길이 망명한 이래 최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이었다.
         태영호의 큰 아들은 26세로 영국에 거주하며 현지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2016년 망명 당시 19세로, 영국 가디언 지의 보도에 따르면 [[수학]]과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며, 명문대학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이름은 'Kum Tae'. 둘째 아들에게는 [[영국인]] 친구들도 많아서 갑자기 페이스북에서 소이 끊겨서 다들 걱정했는데 망명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모두 안심했다고.--너 숙청당한줄 알았어--
         북한-중국 경계에서 영업하는 북한쪽 당의 경우 한국인을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는 중·고교 수학여행시 종종 여행경로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그리고 국정원에서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고 그러지만~~ 북한이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있어 아예 수학여행도 취소될 가능성이 생겼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8631654&date=20160821&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0|네이버 뉴스]]
  • 토리코(토리코) . . . . 7회 일치
         [[미가(토리코)|미가]]이며, 젊은 나이임에도 업계의 [[카리스마]]라 불리는 거물이다. 그만큼 굉장한 실력을 가진 강자. 요리사 [[코마츠]]와 콤비가 되어 다양한 모험을 한다.
         [[IGO]]의 회장인 [[이치류]]의 밑에서 성장했으며 함께 성장해온 [[코코(토리코)|코코]], [[써니(토리코)|써니]], [[제브라(토리코)|제브라]]와는 [[IGO 사천왕]]이다. 라이벌은 [[미회]]의 [[스타쥰]].
         이외의 특징은 무지막지한 사량. 거구이지만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요리도 먹어치우는 대가다. 또한 경찰견을 능가하는 매우 우수한 후각의 소유자.
         미세포라는 것이 잠재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셋이나 되는 특이 케이스.
         큰 체구에 거친 이미지이고, 확실히 그런 면모가 있으나 근본은 선량한 사람인데다 상냥함까지 가지고 있다.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사 목적이 아닌한 살상을 자제하는지라 그 굉장한 힘을 쓰지 않고 상황을 해결했다.
  • 토리코/364화 . . . . 7회 일치
          * 돈슬라임은 저세상에서 또 이치류와 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최후를 맞이하려는데...
          * 네오는 폭발하는 초신성 자체를 먹어치워서 일대에는 아무 피해도 없다. 돈슬라임을 경악하며 "너의 그 어마어마한 욕은 대체 어디서 온 거냐"고 묻는다
          * 사실 돈슬라임은 '''현세로 오기 전에 이치류의 혼과 만났었다'''. 그는 부활을 강권하지만 이치류는 "죽은 자는 되살아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거부한다
          * 이치류는 영혼세계에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는데 마치 네오와 닮아있다.''' 그는 "무언가가 태어나려 한다"면서 엄청난 욕의 에너지를 감지한다.
          * 이치류는 이것을 관찰하면서 "영혼세계에 조차 욕은 존재한다"면서 욕이란 진화의 촉매이고 생물은 이 욕을 바톤처럼 이어받으며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소견을 밝힌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저것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라고 하는데, "아카시아님"은 저것이 어디서 온 무엇인지, 그걸 알고 싶어하셨을 거라고 짐작한다.
  • 토리코/381화 . . . . 7회 일치
          * 일행에 합류하기 위해 날아오던 브란치는 미도라가 "구르메 운"을 익혀서 부활하는걸 목격한다.
          * 그러나 죠아의 "구르메 운" 앞에서는 제 3의 눈도 속수무책. 계속 공격을 허용한다.
          * 말하자면 "구르메 운도 한계가 있는거 아닌가"라는 것.
          * 그 말을 듣고 죠아는 한층 더 맹렬하게 공격한다. 스타준은 그런 으로 운을 쏟아부워 바닥날 때까지 써버리라고 도발한다.
          * 죠아는 미도라 조차도 구르메 운 앞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고 쏘아붙인다.
          * 게다가 죠아의 구르메 운까지 복사해버렸다는데? 반격의 시작인가?
          * 미도라의 부활. 사실 삼제자 중 유일하게 죽지 않았고 단지 봉인만 됐기 때문에 풀려난다는 설이 많았다. 하지만 자력으로 금관두를 박살낸데다 구르메 운까지 훔쳐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는 듯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7회 일치
         근대화가 3단계 이상으로 올라가면 호위대 역시 근대화된다. 구 호위대가 말 위에서 검을 휘두르는 사무라이 한 뭉치라면 신 호위대는 말 위에서 권총을 쏘는 군인 소수다.
          방어자 스킬 요구. 방어 시 지휘력 +1, 구 호위대의 경우 "고수"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음, "사기 진작" 기능의 효과 +20%
          * 위안(Solacer) - "위안은 다양한 방으로 줄 수 있다."
          * 게베어 전장 활강총 - "탕!"
          * 드라이제 단발 후장 소총 - "견실한 총탄과 볼트 내장형 격침"
          * 마티니-헨리 후장 소총 - "이 총은 반동이 심하지만 좋은 군인이라면 마다치 않을 것이다."
  • 판타스틱 포 . . . . 7회 일치
         '''Marvel's First Family'''[* 마블에서 밀어주는 공 별명으로 마블에서 가장 대우받는 가족(퍼스트 패밀리는 주로 대통령의 가족등,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가족들에게 붙여주는 별칭이다)이자 마블 최초로 가족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판타스틱 포》가 나오기 전부터 여러 작품의 스토리를 다루었지만 리는 이게 마음에 안들어서 만화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고 《판타스틱 포》의 제작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리의 아내가 "그럼 당신이 쓰고 싶은 얘기를 써보세요"라고 얘기했고 리는 아내의 말에 따라 《판타스틱 포》를 자기가 원하는 방대로 썼는데 그게 대성공했다. 이때 처음 사용한 방이 바로 리가 대략적인 개요와 플롯을 작화 담당에게 주면 작화 담당이 여기에 따라 원고를 완성하고 리가 대사를 쓰는 방이었다. 이런 방으로 작화 담당들의 끼가 폭발할 수 있었으며 리 본인도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동시에 더 편하게 작업할수 있었다.
         판타스틱 포는 마블 최초의 히어로 팀이기도 했으며 스탠 리와 작화 담당의 공동협력 방이 사용된 최초의 시리즈였다. 그리고 마블 코믹스를 조그마한 만화 출판사에서 메이저로 올린 장본인이다. 한마디로 '''판타스틱 포 없이는 오늘날의 마블 코믹스도 없다.'''
         === 비공 멤버 ===
  • 페어리 테일/511화 . . . . 7회 일치
          * 라케이드는 "악의 혼"이란 마법으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공복감에 사무쳐 서로 잡아먹게 만든다.
          * 렉터와 프로시는 동료를 생각해 공복감에 저항한다. 스팅은 그걸 계기로 욕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해치지 못하게 기절시킨다.
          스팅은 그걸 사실이라 쳐도 본래 사람의 냄새는 형제든 부자든 다 다르다 말한다. 실제로 나츠와 제레프 드래그닐도 서로 냄새가 다른데, 유독 라케이드는 나츠와 같은 냄새라며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자 라케이드는 "나츠도 어떤 의미론 제레프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며 빛의 참격을 날린다. 하지만 "하얀 것"이 먹이인 스팅에겐 간거리가 날아오는 거나 다름 없다.
          * "악의 혼". 하늘에서 부적들이 내려와 스팅을 감싼다. 이 마법은 공복감을 유발한다. 스팅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니 배고픔에 지쳐 힘이 나지 않는다. 라케이드는 등에 매고 있던 십자가를 날려 공격한다. 배를 찔리는 스팅.
          * 스팅은 너무 배가 고파서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그를 응원하는 동료들이 음으로 보일 지경이다. 급기야 렉터를 닭다리인 줄 알고 물어 뜯는 지경에 이른다. 카구라 미카즈치는 눈을 뜨라고 호소하는데, 유키노가 갑자기 그녀를 깨문다. 유키노의 눈도 스팅처럼 공복에 허덕이고 있따. 곧이어 카구라도 전염된 것처럼 배고픔을 느끼며 유키노와 카구라는 서로를 물어 뜯는다. 스팅에게 물린 렉터도 공복을 느끼고 스팅을 깨물고 있다.
          * 그 말이 계기가 돼서 스팅과 렉터가 정신을 차린다. 렉터도 욕을 참으며 스팅에게 희생하겠다고 하자 스팅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제외한 동료들을 기절시킨다. 이걸로 서로 해치지는 못하게 됐지만 남은 스팅은 극심한 공복감에 체력저하까지 겹쳐서 힘이 남지 않는다.
          그 사이 라케이드는 새로운 빛과 부적으로 몸을 감싼다. 인간의 삼대 욕구 성욕, 욕, 수면욕 중 자신이 마지막으로 부여할 것은 "수면욕"이라며 그것이 곧 영원한 수면이 될 거라 말한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7회 일치
          아직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END의 서를 계속 수정하고 있었다. 본래 이것은 책 자체에 씌인 악마의 힘이 수정자를 침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미 루시의 오른팔 전체가 침 당했고 서서히 우반신 전체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루시는 펜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마침내 책의 수정이 끝났다. 책이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던 문자들이 책으로 돌아온다. 해피와 그레이는 그 모습을 신비롭게, 그리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루시는 펜을 놓으며 말했다.
          * 루시는 END의 서를 닫았지만 침은 나아지지 않고 힘이 다해 쓰러진다. 그레이가 그녀를 부축하며 자신의 멸악마법의 힘으로 루시 안에 들어간 악마의 힘을 뽑아낸다. 그러자 루시가 막혔던 숨이 터져나오듯 기침과 함께 눈을 뜬다.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의 몸에선 악마의 문양이 사라졌다.
          전쟁의 끝, 제레프의 사망을 알린 나츠는 또다른 소도 전한다.
          충격적인 소이었지만 나츠가 담담한 투로 "그래도 어두운 얼굴을 하면 안 될 거 같다"고 말한다. 분명 그건 초대가 원했던 일이었을 거라면서. 어쩐지 일행도 그의 말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츠가 말했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물리쳤다. 그러나 마룡을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기 위해 두 사람도 함께 휘말리고 말았다. 살아남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과 [[엘자 스칼렛]], [[제라르 페르난데스]], [[웬디 마벨]]. 그들은 바다를 건너 작은 바위섬 위에서 휴을 취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마룡과 싸우며 만신창이가 됐던 제랄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엘자의 무릎에 누운 채로 또 살아남았다고 한탄조로 말한다.
          그의 말에서 죄의이 묻어났다. 그 의문의 답은 [[제니 리아라이트]]가 말해줬다.
  • 한혁수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충암초등학교
         * 충암중학교
         * [[충암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헤이즈 (가수) . . . . 7회 일치
         | 학력 = [[부경대학교]] 경영학과
         어린 시절 [[첼로]]를 배웠고 [[클래]]과 [[발라드]]를 좋아했던 그녀는 미니홈피를 통해 랩을 듣게 된 이후 직접 랩 가사를 쓰고 랩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부경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하였으나 공부를 멀리하고 랩 가사를 써왔다.<ref name="s">{{뉴스 인용|제목=[인터뷰] 대구소녀 헤이즈의 파란만장 랩퍼 성공기|url=http://sports.donga.com/3/02/20160204/76324120/2|날짜=2016-02-04|뉴스=스포츠동아}}</ref>
         * 《[[수요미회]]》 (2017년)
         === 시상 ===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언프리티 랩스타 참가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CJ ENM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무학초등학교 (경남) 동문]][[분류:마산제일여자중학교 동문]]
  • 현재덕 . . . . 7회 일치
         | 학력 = [[경기고등학교|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졸업]]
         * [[인천박문초등학교|경기도 인천 대부보통학교]] 졸업
         * [[경기고등학교|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졸업
         [[분류:191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삽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동화작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삽화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화작가]][[분류:아동미술가]][[분류:박헌영]][[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분류:월북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주 현씨]]
  • 호준석 . . . . 7회 일치
         |학력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서울 [[한영고등학교 (서울) |한영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2004년]] ~ [[2005년]] :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객원연구원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국영 . . . . 7회 일치
         [[1776년]] [[3월]] 정조는 즉위하자 마자, 정적이었던 홍인한, 정후겸 일당을 숙청했다. 이어 당론서인 《명의록》을 펴내 이 조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홍보했다. 흔히 홍인한-정후겸이 정조의 즉위를 막았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으나 이는 와전된 내용이고, 이 책에서 밝힌 공적인 죄명은 첫째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은 것과 둘째 세손의 오른날개, 즉 홍국영을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책에서 정조는 홍국영을 '의리의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가 자신의 즉위과정을 도운 1등공신(소위 동덕회원同德會員)이자 최측신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군문의 장임으로는 정조 즉위년 11월 수어사에 임명되었던 것을 시작으로 잠시 총융사를 거쳐 [[1777년]] 5월에는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대개 금위대장과 훈련대장을 돌아가며 맡았다.(그러나 훈척만이 맡을 수 있는 호위대장에 임명된 적은 없다.) [[1777년]](정조1년) 7월, 전술한 [[홍상간]], [[홍계능]]의 궁궐자객침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사건 연루자에 호위청의 무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이유로 호위청을 축소하였는데 <ref> 이 때문에 호위청은 3청에서 1청으로, 인원은 1000명에서 350명 가량으로 축소되었다. </ref>, 대신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하고 홍국영을 그 대장에 임명 하였다. 정조는 숙위대장에게 특별히 대장패와 전령패를 차게 하며, 안으로 위장, 부장, 금군과 도감의 군병, 각문의 수문장ㆍ국별장과 밖으로 궁궐 담장 바깥에 삼군영의 입직하는 순라까지 매일 숙위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런 보직들은 대개 겸직이었으며 그의 대표적인 보직은 도승지와 훈련대장/숙위대장, 약원부제조였다.<ref>홍국영은 (원빈 사후 2개월 가량을 제외한) 집권 기간 대부분 동안 약원부제조직을 맡았다. 이는 임금의 최측근인 그가 임금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하루동안 임금과의 공적인 면대를 2회 이상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도 해석된다.</ref> 그외 각종 제거 역시 다수 겸직하였으며 잡류 제거직으로 인한 격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록도 종종 보인다.
         1778년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이 된다. 이때 원빈 홍씨의 지위는 유례 없는 것이었다. 후일 이 모든 이례적인 처사는 모두 홍국영의 세도로 인해 일어난 일이란 으로 설명되게 된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홍국영이 자교(이 경우 후궁 간택령)를 내리게 했다"라고 쓰고 있다. 《한중록》에서는 이어 원빈의 입궁에 대해, 홍국영이 세도를 탐내어 제 누이를 들여보낸 것으로 자신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란 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정조)어제인숙원빈행장》(정조가 원빈 사후 작성한 원빈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에서는 혜경궁 자신의 진술과는 반대로 혜경궁이 원빈에 대해 각별한 정의(情誼)를 나타냈다고 한다.<ref>[http://yoksa.aks.ac.kr/jsp/aa/HajeView.jsp?aa10up=kh2_je_a_vsu_20664_000 어제인숙원빈행장(御製仁淑元嬪行狀)]</ref> 《순조실록 혜경궁 행장(김조순 저)》에서 혜경궁은 원빈에 대한 각별한 정의를 지녔던 혐의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 강조한 대목이 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wa_11601021_002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 1월 21일 신축 2번째기사]</ref> 홍국영 일가의 인물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고전소설 《숙창궁입궐일기》는 원빈의 입궐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혜경궁은 효의왕후 쪽인 인상을 준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1844|제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창궁입궐일기|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1779년]] [[음력 9월 26일]] 홍국영은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조정의 실직(實職)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담은 은퇴 상소를 올렸으며, [[정조]]는 당일 이를 수락한다. 이때 정조는 불과 32세의 홍국영에게 [[봉조하]] 직함을 내려주는데, 일찍이 백발의 봉조하는 있어도 흑발의 봉조하는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고 하여 그는 “흑두봉조하”라고 불리게 된다. 《한중록》과 《정종대왕행장》 등 사후적인 기록에서는 공통적으로 홍국영이 자진 사퇴의 형으로 물러난 것 자체가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정설로 통하나, 이와 같이 사퇴시킨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홍국영의 몰락에 대해서는 각종 설만 난무할 뿐,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탄핵의 포문을 연 김종수의 상소에서 언급된 공적인 탄핵 사유는 '후궁 간택을 막았다'라는 것이었다. 또한 (원빈의 수원관)완풍군을 정조의 양자로 들여 동궁으로 삼으려 했다는 가동궁 사건설도 몇몇 군데에서 언급된다. 정조7년 문양해 반란사건 당시 '왕비의 목숨을 위협했다'라는 기록도 있고,《정종대왕묘지문》에는 홍국영이 [[은전군 이찬]]([[조선 정조|정조]]의 이복 아우)을 죽게해서 몰락했다고 정조가 원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속설 중에 홍국영이 완풍군을 원빈의 양자로 삼았다거나, 효의왕후 김씨의 음에 독약을 넣었던 것이 발각되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는 19~20세기에나 등장한 야사로 짐작된다.
  • 홍명찬 . . . . 7회 일치
         ==출신학교==
         * 응암초등학교
         * 홍은중학교
         * [[한서고등학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응암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한서고등학교 동문]]
  • 홍병선 . . . . 7회 일치
         홍병선이 귀국한 해에 과거 경성학당 교장이었던 일본조합교회의 와다세(渡賴常吉)가 정 선교사로 임명되어 조선에 파견되어 왔고, 홍병선은 와다세가 설립한 한양교회의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동시에 [[보성전문학교]], [[피어선기념성경학원]], [[배화여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25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홍병선은 신흥우와 함께 [[1927년]] [[덴마크]]와 [[미국]]의 농촌사업을 시찰하고 돌아온 뒤, 농촌 협동조합 및 구락부를 조직하는 사업에 열중했다. 덴마크 농촌사업을 위해 [[1931년]] 서울 [[신촌]]에 농촌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고등농민수양소를 세우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출판사=지산업사
         광복 후에는 보린회 이사장, 성인교육중앙총본부 이사장, [[대한민국 농림부|농림부]] 농림위원, [[국민대학교]] 및 [[중앙신학교]] 강사, 농업협동조합 고문, 한국YMCA 명예회장 등을 지냈다.
  • 홍해성 . . . . 7회 일치
         | 설명 = 한국 근대극 최초 연출가 홍해성 흉상 제막
         | 본명 = 홍주
         '''홍해성'''(洪海星, [[1894년]] [[10월 13일]]([[음력 9월 15일]]) ~ [[1957년]] [[12월 6일]])는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연극인이다. 본명은 홍주(洪柱植)이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계성고등학교]] 전신인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도쿄]]에서 극예술협회를 결성하고 연극 운동에 뛰어들었다. [[마해송]], [[홍난파]], [[최승일 (1901년)|최승일]] 등이 회원이었다.
         |제목=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분류:1894년 태어남]][[분류:195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황경태 . . . . 7회 일치
         == 출신 학교 ==
         * [[옥산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상원고등학교]]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황대봉 . . . . 7회 일치
         1930년 [[경상북도]] 영일군 창주면 대보리(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 호미곶면 대보리)에서 태어났다.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이상은]](다스 회장), [[이상득]](前 13~18대 국회의원), [[이명박]](前 대통령) 삼 형제의 모교로 유명하다.],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을 졸업하였다.
         1967년 [[포항버스]][* 이후 1990년대에 성원여객으로 통합되었고, 신안여객을 거쳐 現 코리아와이드 포항이다.]를 설립하여 현재의 대아그룹을 창업하였다. 이후 해운([[대아고속해운]]), 금융(대아상호신용금고), 건설, 관광레저(대아여행사), 문화사업, 지역언론사업([[경북일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1983년 포항에 [[세명고등학교]](학교법인 영암학원)를 설립하였다. [* 여담으로 세명고등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가끔씩 이사장이 오셨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황대봉 이사장과 악수를 하면 수능을 대박 친다는 일종의 카더라가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이사장이 등장하시면 3학년들이 악수한다고 난리였다고 한다.]해당 과정을 통하여 포항시에서는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지역 경제계에서 큰 인물로 인되었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 . . . . 6회 일치
          * 민지 이민 +5%
          * 민지 이민 +5%
          * 민지 이민 +5%
          * 민지 이민 +5%
          * 민지 이민 +5%
          * 민지 이민 +5%
  • 강구열 . . . . 6회 일치
         프로리그에서 팀플레이 전담 선수로 활약하였고, 2007년엔 [[곰TV MSL 시즌2]] 8강에 진출하며 화제를 낳았다. 당시 MSL 작가진에서 붙여준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약칭 날빌귀)'란 수은 그대로 그의 별명이 되었으며, 이후론 소위 '강라인'의 수장이라 불리고 있다.
         두 선수의 첫 인연은 곰TV [[MSL]] 시즌2 조지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조지명에선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영구제명)와 [[박성훈 (프로게이머)|박성훈]]([[삼성전자 칸]])의 신경전이 한창이었는데, 이는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일어난 '버그 사건' 때문이었다. 시종일관 박성훈은 "벌레(버그)테란과 맞붙고 싶다" 등의 공격적인 멘트로 김창희를 자극하였다.
         그러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말았다. 김창희가 전대회 4강에 올랐던 [[진영수]](당시 [[STX 소울]] 현 영구제명)에게 "만만하다"며 도발하자, 진영수가 "나와 승부하려면 강구열부터 꺾고 오라"며 응수한 것. 결국 별다른 친분도, 사연도 없던 강구열과 김창희는 진영수에 의해 같은 C조에 편성되었고, 김창희는 강구열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종 진영수만 자극하기에 바빴다. 가만히 지켜보던 강구열이 "나는 버그 쓴 테란에게는 지지 않는다"며 김창희를 공격했고, 이에 김창희가 "버그가 아니라 스킬인데 자꾸 버그버그 하니까 좀 그렇다"라며, 한편으로는 "강구열 선수 물론 별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하면서 순간에 두 선수 사이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또한 이 장면은 각 커뮤니티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MSL에는 8강에 오른 선수들에게 그 특징을 살린 별명, 문구를 붙여주는 관행이 있다. 당시 강구열에겐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 BLADE TERRAN'이란 수이 붙었는데, 이는 기본기나 운영보다는 초반 빌드에 집중하는 강구열의 플레이 스타일에 착안한 것이었다. 5판 3선승제로 치러진 8강에서 강구열은 예의 그 '날카로운 빌드'를 시전했으나 송병구의 탄탄한 운영에 모두 막히면서 0: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혹시모를 이변을 기대했던 팬들은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에 크게 실망했고, 시드를 획득한 강구열이 곰TV MSL 시즌 3 32강에서 [[손주흥]]과 [[김윤환 (1988년)|김윤환]] (KTF)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맥없이 탈락하자 "거품이다", "천운 8강이다" 등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한때 강라인의 열기가 는 듯했지만, 2008년 12월, 강구열이 바투 스타리그 36강에 진출하면서 강라인의 열기가 다시 뜨거워 질 조짐이 일고 있다. 36강 진출을 확정지은 직후 강구열의 인터뷰 때문, 강구열은 인터뷰에서 "09-10 시즌을 진짜 벼르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강라인의 팬들은 09-10 시즌에서 9와 10을 강구열의 이름에서 강자를 뺀 구와 열로 풀이, 즉 구-열시즌으로 해석하면서 다시금 뜨거워 지고 있는 것이다.
  • 강연재 . . . . 6회 일치
         | 학력 =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학사
         * [[신명여자고등학교]]
         *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학사
         * {{공 블로그|https://blog.naver.com/yjk-black|강연재}}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신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안철수]][[분류:홍준표]][[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 당원]]
  • 강정길 . . . . 6회 일치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양도로 [[이강돈]]과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였고, 정교한 타격을 선보이는 중거리형 타자였다. [[이정훈 (1963년)|이정훈]], [[이강돈]] 선수와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565 강정길, "삼성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Osen》, 2008년 12월 10일</ref>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지냈다.
         == 출신 학교 ==
         * [[경북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곽승준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정치인]], 방송인이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그의 친누나이다.
         1960년 [[경상북도]]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서울[[한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귀국 후 모교인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이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돌아갔고, [[tvN]]에서 곽승준의 [[쿨까당]]을 진행하였다.
  • 권희동 . . . . 6회 일치
         || '''학력''' || 경주동천초 - 경주중 - [[경주고등학교 야구부|경주고]] - [[경남대학교|경남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신인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86번]]([[NC 다이노스|NC]])[* [[http://youtu.be/uvuodHYib-8|XTM 워너비 담벼락토크]]에서 출연했을 때, 4라운드까지 지명이 안되자 친구한테 '군대 말뚝 박을까?'하고 말했다고 한다.(...) [[임용수]]가 그때 심정이 암담했겠다고 위로하니 돌아온 대답이 ''''중계방송 끝나고 그냥 잤어요''''(...) 그런데 자는 도중에 전화로 9라운드 지명소을 들었을 때 '''"아 진짜?"하고 다시 잤다고 한다'''(...) 인터뷰했던 임용수는 포복절도.] ||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 팀 [[NC 다이노스]]에 9라운드 전체 86순위로 입단하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13|2012년 인터뷰]]][* 여기에 썰이 하나 있는데 권희동이 그날 당시 지명이 안 될 줄 알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지명됐다는 소을 듣고 나서 다시 잤다는(.....)썰이 있다.] NC에서 2군 시절 모교인 경남대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박으뜸|찍은 선수 2명 중 하나]]이다. 사실 권희동의 경우 스카우터 사이에선 타격은 좋으나 수비력은 물음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포의 1할 타자, SK만 만나면 수비요정~~
         NC가영입함에 따라, 2014 시즌은 주로 백업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나성범 역시 중견수 이외 포지션의 수비는 미숙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택근, 전준우 등 예외적인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중견수의 코너 외야수 전향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었다. 나성범도 이들처럼 외야수 전향 경력이 짧은 피지컬에 의존하는 중견수라는 점 또한 사실이긴 했지만...] 이종욱이나 김종호가 코너 외야로 갈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라... 이후 언론에서 나성범이 우익수로 전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이 전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김종호 이종욱 나성범으로 이어지는 외야 라인에서 백업으로 뛸 가능성이 커졌다. 2014시즌에 선수 본인의 분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수비는 코너 외야수로서는 좋은 편. [[경남대학교|경남대]] 시절 외야 수비 능력은 낮다고 평가받았었지만 프로에 와서는 집중력이 있고 실책이 적어 오히려 수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호수비가 아주 인상적이다. 코너 외야수뿐만 아니라 [[중견수]]로도 상당히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정말 급할 때는 [[포수]]도 가능하다. 주력/송구 능력은 보통.
  • 김경식 (1960년) . . . . 6회 일치
         '''김경'''(金景植, [[1960년]] [[1월 1일]] ~ , [[대구광역시]])는 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차관이다.
         * 성광고등학교 졸업
         * [[한양대학교]] 경제학 학사
         * 버밍엄대학교 대학원 주택행정학 석사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차관]][[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광석 . . . . 6회 일치
         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우리 가요에 깃든 '서른'|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78450|출판사=머니투데이 스타뉴스|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9-27|확인날짜=2011-12-10}}</ref>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 (서울)|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이 열렸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10694037|제목=김광석 12주기 추모콘서트 개최 ‥ 노래비 제막도 함께 진행돼|출판사=한국경제신문|저자=디지털뉴스팀|날짜=2008-01-06|확인날짜=2008-01-06}}</ref>
         1964년 1월 22일, [[서울특별시|경기도 서울시]] 남창동 (서울) (남대문시장4길) 서울남대문시장 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현재는 [[연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부인 [[서해순]]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상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역시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다.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착하고 남한테 해코지할 사람도 아니다" 라며 아들의 자살을 믿지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 김광석 타살의혹 재점화… 가족들 입 모아 “자살 아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2269614|출판사=한국일보|저자=최인경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또,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개인적으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문점들이 지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밝혀져 김광석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혼자 남은 밤 /더 클래
  • 김근 (고려) . . . . 6회 일치
         '''김근'''(金覲,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신라]]왕실의 후예이다. [[김부일]], [[김부필 (고려)|김부필]], [[김부]](金富軾), [[김부의 (고려)|김부의]] 형제의 아버지이자 [[김돈중]], [[김돈시]]의 할아버지이다.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 [[경상북도]] 출신.
         본관은 경주로 역사가 김부의 아버지이다. 신라 왕실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경주]] 주장(州長)에 임명되었던 위영(魏英)이고 아버지는 원충(元冲)이다. 그의 생애 초기나 가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아들 4형제가 중앙관료로 진출할 때까지는 경주에서 생활했다 한다.
         [[1080년]](문종 34년) [[호부]][[상서]] [[유홍]](柳洪), [[예부]][[시랑]] [[박인량]](朴寅亮) 등과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송나라]]에 갔을 때 그는 [[박인량]]과 함께 시를 지었는데, 그의 시문에 감탄한 송나라 사람들이 직접 그에게 소화집(小華集) 이라는 문집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1086년]](선종 3년) [[예부]][[시랑]]으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이자위(李子威)와 함께 [[성균관]]시(成均館試)를 관장했고, 뒤에 [[국자감 (고려)|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左) 겸 좌간의대부(諫議大夫)에 올랐다. 네 아들 [[김부필]]·[[김부일]]·[[김부]]·[[김부의]] 모두가 글을 잘하고 관직에 올라 문벌을 형성하였다.
         ** 아들 : [[김부]](金富軾)
         * [[김부]]
         [[분류:김부]][[분류:고려 중기의 문신]][[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고려의 외교관]][[분류:고려의 시인]][[분류:경주 김씨]]
  • 김대호(축구선수) . . . . 6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철공고를 졸업하였으며, 2007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지명된 뒤 숭실대학교에 진학하였고, 2006년 3월 5일에 숭실대 소속으로 굿 부앤부 FC전에서 FA컵 데뷔전을 치뤘다. 이후 2010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고 2010년 3월 20일에 강원전에서 K리그 클래 데뷔전을 치뤘다.
         || 2006 || 숭실대학교 || - || - || - || 1 || - || - || - || - || - ||
         || 2007 || 숭실대학교 || - || - || - || 1 || - || - || - || - || - ||
         || 2008 || 숭실대학교 || - || - || - || - || - || - || - || - || - ||
         || 2009 || 숭실대학교 || - || - || - || 1 || - || - || - || - || - ||
  • 김용준 (1904년) . . . . 6회 일치
         [[경상북도|경북]] [[구미시|선산]]에서 태어나 [[경성부]]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화가 [[이종우 (1899년)|이종우]]에게 수학한 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건설이냐? 파괴냐?〉로 입선하면서 화단에 데뷔했다. [[1926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미술학교]]에 입학해 서양화를 공부했다. 이때 같은 도쿄 유학생이던 동갑의 [[이태준]]을 만나 평생 동안 교유했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48년]] 그의 호를 딴 수필집인 《근원수필》을 출간하기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 [[조선인민군]]이 [[서울특별시|서울]]을 점령했을 때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의 임시 학장을 맡았고, 그 해 가을 후퇴하는 [[조선인민군]]을 따라 월북했다. 월북한 후에는 [[조선미술가동맹]]과 [[조선건축가동맹]]에 참가했으며 [[평양미술대학]]의 강좌장이 되었다.
         전통적인 모더니즘 계열에서 [[정지용]], [[이태준]]과 궤를 같이 하면서 광복 전·후로 좌익 예술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김용준의 월북 동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생으로 [[국대안 파동]] 때 [[한국의 군정기|미 군정]]과 충돌해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김진항]]의 추대로 [[한국 전쟁]] 중 얼떨결에 학장이 되었다가 월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설과, [[공산주의자]]였던 부인의 권유로 함께 북으로 갔다는 설이 있다.
  • 김준 (배우) . . . . 6회 일치
         * [[대구고등학교]]
         * [[한국외국어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화학과
         *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부 (편입)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석사과정)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호루라기 연극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김준희 (1960년) . . . . 6회 일치
         ==출신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지훈(배우) . . . . 6회 일치
         || '''학력''' ||<(> 포항양학중학교 (졸업) ||
         박근혜 탄핵집회에 연예인 중에서는 최다 참석했다는 비공 집계로 화제가 되었다.
         ||<|4> 2015년 || MBC || [[무한도전]] || 420회, [[무한도전 스맨 : 시크릿 멤버]] ||
         || tvN || [[내친구와 샤를 합시다]] || 멤버 ||
         || [[신화(아이돌)]] || 너의 결혼(Wedding) ||
         ||<table align=center><rowbgcolor=#696969> '''{{{#ffffff 수상 연도}}}''' || '''{{{#ffffff 시상}}}''' || '''{{{#ffffff 부문}}}''' || '''{{{#ffffff 작품}}}''' ||
  • 김진향 . . . . 6회 일치
         * [[1976년]] ~ [[1982년]]:[[대구동곡초등학교]]
         * 1982년 ~ [[1985년]]:[[다사중학교]]
         * 1985년 ~ [[1988년]]:[[영진고등학교]]
         * 1988년 ~ [[1992년]]:[[경북대학교]] 정치학 학사
         * 1996년 ~ [[2000년]]:경북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노무현 정부]][[분류:북한학자]]
  • 김찬돈 . . . . 6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사
         1959년에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능인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판사에 임용되었다. 1990년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0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2004년 2월에 부장판사에 승진하여 [[대구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대구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에서 재판장을 하다가 법원장으로 승진하였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능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충섭 . . . . 6회 일치
         ||<bgcolor=#808080> '''{{{#FFFFFF 학력}}}''' ||<(> [[김천고등학교]] {{{-1 ([[졸업]])}}}[br][[영진전문대학교]] {{{-1 (행정학 / [[학사]])}}} ||
         195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봉곡초등학교, 김천중학교, [[김천고등학교]], [[영진전문대학]] 행정과를 졸업[*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김 시장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큰 병이 걸려 3번이나 큰 수술을 하였고 이로인해 1년 늦게 졸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천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대학을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공직에 진출하였다. 대학은 이후 공직에 있으며 [[영진전문대학]]을 졸업하였다.]하였으며. [[청도군]] 부군수, [[김천시]] 부시장, [[구미시]]의 부시장, 경북도청 문화관광체육국장과 경북청소년수련원 원장직을 역임했었다.
  • 김현정 (1979년) . . . . 6회 일치
         | 학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통대 영문과]] [[학사]]
         * [[배화여자전문대학]] 전통복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ref>[https://news.knou.ac.kr/news/article.html?no=18562 "연기만큼 학업도 열심히!
         "], 방송통신대학교 학보사, 2005년 8월 1일 작성.</ref>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배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김천시 출신]]
  • 김형기 (법조인) . . . . 6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27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김형기는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문학과 고서화에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던 김형기는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1981년에 임명된 서울형사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김중서]]의 정년 퇴임으로 공적이 된 대법원 판사에 1984년 7월 20일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다.<ref>매일경제 1984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 1984년 7월 18일자</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반공법]]위반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된 영화배우 [[박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반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순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반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분류:193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6회 일치
          * 인턴제도는 직업 체험과 비슷한 제도로 임시면허 취득자를 대상으로 졸업 전에 "정 히어로 활동"을 행하는 제도.
          * 근신이 풀리고 등교한 미도리야. 교실에 이 학교의 톱 유망주들 "빅3"가 방문하는데 그 중 하나가 벽에 나타난 그 얼굴이었다.
          츠유는 정으로 손을 들고 "히어로 인턴 제도"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그러자 [[세로 한타]]나 [[토코야미 후미카게]]도 맞장구를 친다. 야오요로즈도 손을 들고 선배들도 하고 있는 제도라고 들었다며 질문을 더한다.
          * 정으로 질문을 받자 아이자와도 입을 연다. 원래 얘기해줄 생각이었다는데. 히어로 인턴은 한마디로 말해 "정 히어로 활동". 프로 히어로와 협력하는 직업 체험을 본격화시킨 버전이다.
          인턴제도 자체는 임시면허를 딴 걸 전제로 한 것인데, 본래 임시면허는 따기 어려워서 이번처럼 1학년들이 대거 습득한 예가 적다. 빌런 활성화 등 사회적 문제도 있기 때문에 1학년들의 인턴제도 참여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여기에 대해 제도에 참가 중인 3학년들의 경험담을 듣거나 하는 으로 많은 사전 준비 작업이 이루어질 텐데, 아무튼 어른들이 차근차근 준비해줄 거라고 설명한다.
  • 니세코이/213화 . . . . 6회 일치
         치토게는 갑작스럽게 학교를 떠난다.
         * 츠구미는 치토게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을 가져온다.
         * 학교에서 사정을 들어 보니 간밤에 조직원들에게도 말 없이 사라졌다.
         * 아침에 학교 우편함에 들어 있었지만 본인하고 연락도 되지 않고 부모님도 알려주는 것이 없어서 결국 수리되지도 못했다.
         * 결국 날은 흘러서 종업날이 되도록 치토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 울적하게 종업을 맞이한 라쿠에게 오노데라가 땡땡이를 치지 않겠냐고 말해오는데...
  • 독친 . . . . 6회 일치
         부모와 자으로서 인연을 끊겠다는 위협을 반복한다.
         자이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서도, 특별히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한다.
         사, 수면, 복장이나 머리 모양 등의 사소한 생활, 학교, 직장, 친구, 연인 등의 인간관계에 간섭이 격심하다.
         자을 독립시키지 않고, 언제까지나 지배하려 한다. 이에 대해서 일본 사회는 고령화, 만혼화 하면서 부모가 자의 인생을 지배하는 것이 쉬워졌다는 견해가 있다.
  • 동군연합 . . . . 6회 일치
         유럽 지역에서 동군연합 같은 형이 나타나게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 중세 유럽 문화에서 왕위나 귀족의 작위는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지위로서 인되었다. 동양에서는 한 명의 군주에게 보통 1개의 왕위나 작위 칭호만이 있지만, 중세에는 군주가 가지는 왕위나 작위가 2개 이상에서 수십개에 달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충렬왕]]이 고려왕과 심양왕을 겸하였던 사례가 있기는 한데, 이는 정말 특수한 사례이다. 픽션에서는 [[초한지]]에서 [[한신]]이 삼제(三齊)의 왕을 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현실에서 있었던 사례는 아니다.]
         본래 포르투갈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에서 건너온 가문인 카페가문의 분가인 보르고냐가문의 분가인~~뭐저리 복잡해~~ 아비스가문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포르투갈의 왕인 세바스치앙이 북아프리카로 원정을 나가다가 모로코 술탄국에게 대패하고 본인도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사해버리면서 문제가 생긴다. 왕위 자체는 그의 종조부인 엔리케 추기경이 환속하면서 상속받았지만, 그의 나이는 이미 66세인데다가 자도 없어서 후사를 남길 가능성이 적었다. 결국 그가 2년 뒤인 1580년에 죽으면서 문제가 터졌다. 당시 왕위 주장자는 총 세명이었는데, 브라간자 공작 주앙 1세와 결혼한 카타리나 공주와, 주앙 3세의 손자인 안토니오 대주교와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있었는데,[* 3명 모두 조부가 포르투갈 왕 마누일 1세였다.(펠리페는 외손자)] 결국 펠리페 2세와 협업한 알바 대공 페르난도가 리스본을 점령하면서 펠리페가 다른 주장자들을 물리치고 포르투갈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영국과 협업한 포르투갈 토착 귀족들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승리해 해체된다. [* 단, 세우타는 스페인이 가졌다.]
         여담으로, 브란덴부르크가 핵심지였지만, 이후의 국명은 '프로이센'이 되는데 이는 프로이센이 당시 '독일 바깥'으로 인되었기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독일왕'을 겸하므로 독일영역 내부의 영주는 별도의 왕위를 주장할 수 없다. 프로이센은 본래 독일인의 영역이 아닌 발트계 민족 프루사 족의 땅이라서 별도의 왕위로서 '프로이센 왕'이라는 칭호를 내세우는게 가능했던 것이다.(마찬가지로 체코 지역도 본래의 독일 지역이 아니었으므로 '보헤미아 왕'을 칭할 수 있다.) 다만, 역시 프로이센 공작위도 엄밀히 말하자면 본래 폴란드 왕의 봉신인 신세라 이걸로 트집이 잡힐걸 우려해서인지 'King of Prussia'(프로이센 왕)이 아닌 'King in Prussia'(프로이센 안의 왕)이라는 일종의 외왕내제 편법을 썼다. 이후 프리드리히 대왕시기에 'King of Prussia'라는 칭호를 쓰게 됀다.
         남프랑스 전역을 거의 장악하던 아퀴텐의 여공인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왕의 헨리2세와 혼인하면서 결성된 동군연합. 이로 인해 당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령에서는 명목상 프랑스 왕의 봉신이면서 정작 프랑스 왕보다 더 쎈 기묘한 위치를 차지했다(...). 사실 이 플랜태저넷 왕조 - 일명 '앙주 제국'의 정체성은 단지 '잉글랜드 영토'라는 으로 국한하기는 좀 복잡했다.
  • 동북중고등학교 . . . . 6회 일치
         서울시 강동구 둔촌 1동에 위치한 사립 남자 중고등학교이다.
         === 당 ===
         조선소나 산업 단지를 연상시키는 컨테이너 박스들로 건설되었다.영국 사람이 영양사로 근무하는지 김밥볶음밥,떡볶이 스테이크 같은 기괴한 신메뉴들과 굽지 않은 장어구이를 내놓거나 누룽지 속에 김치 덩어리가 발견되는 등 강동구에서 악명높은 급을 제공한다.
         ~~어떤 날라리라도 출입시 지을 탐구하는 학자가 되는 성역이다~~
         학교 내에서 교무실 외에 유일하게 깔끔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마법천자문, 내일은 과학왕 등의 만화책들이 인기있다.대부분의 학생들은 만화책을 보러오거나 공부를 하기위해 도서실에 온다.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초판인 공포의 보수[* 엄밀히 말하면 해적판]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초판 등 의외로 희귀한 도서들이 많다.
         [[분류:학교]]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6회 일치
         청소부들이 도망치기 위해 엘레베이터 문을 연 순간, 그 안에서 [[모나 색스]]가 나타나 청소부들을 처리한다. 맥스는 죽은 줄 알았던 모나를 보고 놀라지만, 모나는 이런 으로 만나는건 좋지 않다[* [[맥스 페인]]에서 니콜 혼에게 고용되어 나타났을 때 같은 대사를 쳤다]고만 말하고 사라진다.
         경찰들이 보드카에 도착해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블라드는 비니 고그니티가 주모자일거라고 추정한다. 비니가 무기 밀매 사업을 하는데 경쟁자라고 생각한 모두를 쓸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 블라드는 자신은 행동을 고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며, 보드카는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당이 될 것이며 자기는 부유해지고 유명해질거라고 자신한다. 한편, 핀의 죽음에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맥스는 블라드가 왼손을 다친 것을 보고는 아까전 총격전에 다친건지 물어본다. 블라드는 어제 뜨거운 데이트가 있었다고 대답한다.
         파트1의 병원 장면으로 돌아간다. 맥스는 윈터슨의 시체를 보고 진통제를 털어먹다가 시체에서 당 "보드카"의 상표가 그려진 성냥갑을 발견한다. 그때, [[스쿼키 청소회사]] 코만도가 맥스를 발견한다. 하지만 맥스가 영안실 문을 잠갔기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맥스는 청소회사 코만도가 동료들에게 무전을 보내는 동안 문을 열고 도망친다.
          * 해당 챕터는 맥스의 추측이다. 화자는 맥스고, 그 때 맥스는 의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
         배경이 경찰서 사무실로 전환된다. 브라부라는 수술대에 누워 사건을 해결하라고 말하고는 의을 잃는다. 의료진들은 브라부라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브라부라는 죽고만다.
         맥스는 불타는 지하를 빠져나와 1층으로 올라간다. 블라드와 청소부들은 폭발물을 쌓아두고 그 곳에 수류탄을 던지는 의 함정을 파 두었지만 맥스는 이에 걸리지 않았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6회 일치
          인더스트리에서 쓰는 자원. 인더스트리아는 플라스칩을 이용해 석유, 빵이나 의류 등을 가공해낸다. 아마 인더스트리아에 자급자족할 농작물이 없어서인 듯하며 그러다보니 옛날에 생산된 플라스팁을 땅에서 캐내어 쓴다. 커피도 합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빵 이외의 음물도 플라스칩을 쓰는 드사..
          플라스틱이 아닐까 싶은데[* 일본어 표기는 플라스칩이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을 사람이 먹는 음으로 바꾼다는 것이 매우 놀라운 기술인데, 어쩌면 그게 아니라 이 시대의 플라스틱은 우리가 말하는 "바이오 플라스틱," 즉 물 섬유를 주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일지도. (그래도 놀라운 기술이긴 하지만...)
          [[비행정]]. 기간트를 제외하면 작품상에 등장하는 유일하게 전투가 가능한 비행기다. 전체적으로 기체는 둥글며, 주익은 있지만 수평꼬리날개가 없고, 수직꼬리날개 상단 후방에 수소가스터빈엔진으로 구동하는 프로펠러 1기가 장착된다. 최고속도는 360km/h 이며, 최저속도는 60km/h 까지 가능하다. 기수에 고정된 기관총과 선회 기관총으로 무장한다.
          인더스트리아에서 침몰한 여객선을 인양하는 데 사용하는 선박. 현대의 동종선박과는 달리 자력항해가 불가능하다. 선박에는 크레인과 각종 작업도구가 있으며, [[잠수복]]은 외부에서 인력펌프로 공기를 넣어주는 공기 호스가 달린 구 물건이다. 작품상에서는 간신히 여객선을 인양하는 데 성공했으며, 해당 여객선은 인더스트리아 주민들의 피난선으로 사용되었다.
          * 하이하버 (ハイハーバー) [* 영어표기로는 '높은 항구 (High Harbor)'가 된다. 더빙판에서는 '하이하바'라는 일본 발음으로 불렸다.]
  • 박상돈(정치인) . . . . 6회 일치
         1949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에서 태어났다. 연기소정초등학교, 천안중학교, [[대전고등학교]][* [[송영무]] 국방부장관과는 동창생이다. 송영무는 해군사관학교를 재수로 들어갔다.], [[육군사관학교]] 제28기[* 동기생으로 [[김관진(군인)|김관진]], [[김병관(군인)|김병관]], [[박흥렬]]이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박은수 (1956년) . . . . 6회 일치
         |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과
         | 공홈페이지 = [http://blog.daum.net/parkeunsoo/ 블로그]
         * [[1975년]] 대구 계성고등학교 졸업
         * [[1979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면천 박씨]][[분류:지체 장애인]]
  • 박희부 . . . . 6회 일치
         1938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서 태어났다. [[천안중학교]], [[경기공업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 [[4.19 혁명]], [[6.3 항쟁]]에 참여하며 구속되기도 하였다.
         동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신민당(1967년)|신민당]] 사무국 직원으로 근무하며 조직부국장 등을 지냈다.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거나 수감되기도 하였다.
  • 배성룡 . . . . 6회 일치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반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절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순으로 상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조선농촌연구의 준비지〉(1933)
  • 블랙 클로버/118화 . . . . 6회 일치
          * 3시합을 마치고 쉬고 있던 E팀은 막간을 이용해 사를 한다. 원래 잘 먹는 [[하몬 카세우스]]와 먹는거 마저 경쟁하는 [[레오폴드 버밀리온]] 사이에서 [[핀랄 룰러케이트]]는 욕도 없는데 꾸역꾸역 음을 밀어넣는다.
          * 그때 [[노엘 실버]]가 익숙한 솜뭉치가 떠다니는걸 발견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탐이라면 빠지지 않는 [[챠미 퍼밋슨]]이 등장한다. 왠지 [[네로(블랙 클로버)|네로]]까지 끼어왔다. 나오자마자 넉살좋게 하몬에게 음을 요구하는 챠미. 하몬은 의외로 쉽게 음을 나눠준다. 노엘이 여긴 왜 왔냐고 묻자 우물쭈물 대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응원하러 왔다"고 하는데 그 대상인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무슨 말인지 눈치채지 못한다.
  • 송진현 . . . . 6회 일치
         1952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 합격해 제8기 [[사법연수원]]을 수료, 공군 법무관을 전역했다.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항소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0월 24일에 [[인천역]]에서 다른 승객이 놓고 간 35000원 상당의 공구함을 들고가다 붙잡힌 피고인에 대해 "지하철이 종착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점유권이 지하철공사에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징역10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f> 1998년 1월 10일에 일반음점 영업 허가없이 통조림, 캔류 등 안주류를 파는 24시간 편의방을 운영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에 대해 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1월 11일자</ref> 1999년 1월 10일에 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줘 공문서 부정행사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정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운전면허증을신분증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9년 1월 11일</ref> 4월 24일에 서울대 캠퍼스에서 집단 농성을 주도한 한국통신 서울본부 위원장에 대해 "서울대 총장이 한국통신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학내 출입을 금지했음에도 무단 진입했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4월 26일자</ref> 5월 17일에 [[한총련]] 범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위반과 건조물 침입죄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1년이 선고된 노래패 '희망새에 대해 단장 조모씨(31세)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라고 하더라도 공연의 목적으로 참석했고 구호를 외치거나 연설을 하는 등 집회,시위를 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집시법]]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5월 18일자</ref> 10월 7일에 폭력배를 동원해 채무 해결사 노릇을 했던 [[홍수환]]에 대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부탁으로 후배를 연결해준 점은 인정되지만 채권을 회수하기로 후배와 공모한 일은 그 뒤에 이뤄져 피고인이 개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10월 8일자</ref>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은진 송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송창현 . . . . 6회 일치
         ||<:> '''학력 ''' || 포항대해초 - 매송중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야탑고]] - [[제주국제대학교|제주국제대]]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야탑고]]를 거쳐 제주국제대로 진학한다.
         이후 마무리 캠프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서 간만에 소이 전해졌다.
          * 2013 시즌 신인이기는 하나 [[오선진]]과 동갑이다. 송창현이 1년 유급을 했기 때문.[* 고등학교는 정상적으로 마친 것을 보면 중학교 때 포항에서 성남으로 전학하는 과정에서 유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화팬들 사이에서는 데뷔 시즌에 제대로 활약 못하면 군대부터 보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 스틸오션/사령관 . . . . 6회 일치
          * 약점 인(Weakness Recognition)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주포 관통력 15% 증가.
          * 3 확산탄(Type 3 Expanding Shell) - 대공포 데미지 10% 증가.
          * 약점 인(Weakness Recognition)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주포 관통력 15% 증가.
          * 약점 인(Weakness Recognition)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주포 관통력 15% 증가.
          * 약점 인(Weakness Recognition)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주포 관통력 15% 증가.
          * 약점 인(Weakness Recognition)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주포 관통력 15% 증가.
  • 식극의 소마 . . . . 6회 일치
         [[요리사]] 양성 기관인 [[토오츠키 학원]]을 배경으로 "극"이라 불리는 요리대결을 다루고 있다.
         정집 아들인 중학생 [[유키히라 소마]]는 요리인인 아버지를 목표로 수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동잡지에 연재중인 [[토리코]]는 비슷하게 요리와 배틀을 접목시킨 작품인데, 이쪽은 어디까지나 배틀물인데 비해 극의 소마는 전통적인 요리배틀 만화의 플롯을 지키고 있다. 기존 점프 만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정통파 요리배틀 만화.
         [[극의 소마/에피소드]]
         [[극]]
         [[분류:소년 점프]] [[분류:만화]] [[분류:극의 소마]]
  • 신형철 . . . . 6회 일치
         [[1976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2007~)으로 활동하면서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4~)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문학동네]]》 봄호에 평론 〈당신의 X, 그것은 에티카〉를 발표하면서 평단에 등장했다. [[2007년]]부터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2014년]]부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으로 제5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으나, 현대문학의 소설 거부 사태로 인해 상을 반려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22015575&code=960100 문학평론가 신형철] 경향신문, 2014-05-02</ref>
         * [[2014년]] ~ 현재 :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조선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 . . . 6회 일치
         암의 정체는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돌연변이]]를 일으킨 [[세포]]가 폭주하여 무제한적으로 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암세포가 증하여 덩어리를 이루는 것을 악성 종양, 다시 말해 암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이렇게 폭주하는 세포 덩어리가 일으키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 때문이다.
          * 일단 한번 발생하면 주변의 정상 세포들을 침하여 자신과 같은 암세포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생성된 암세포들은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조직의 활동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 암세포는 폭주하여 증하는 과정에서 체내의 산소 및 영양분과 같은 자원을 무제한적으로 소모한다. 이는 신체 전체를 축내는 것이다. 암의 증상 중 하나가 “이유없는 체중 감소”인 이유가 이것이다.
          * 암세포는 혈관 또는 림프절을 통해 체내에 무작위적으로 퍼질 수 있다. 한 조직에 발생한 암세포가 다른 조직에 달라붙어 증한 것을 “전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암을 치료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암이 한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곳만 수술로 잘라내면 살 수 있지만, 암이 온 몸으로 퍼졌다면 수술로는 치료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암이 진행되어 신경을 침하기 시작하면 극한의 고통이 찾아온다. 이 고통은 [[모르핀]]과 같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만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에게는 무제한적인 모르핀 사용이 허가된다.
  • 오석락 . . . . 6회 일치
         |학력 =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193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난 오석락은 [[김천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김덕주]] 전 대법원장, [[최재호 (법조인)|최재호]] 대법관, [[이재성 (법조인)|이재성]] 대법관, [[김진우 (법조인)|김진우]] 헌법재판관, [[김태경 (법조인)|김태경]] 경기도지사, 김동환 변호사 등과 함께 30명을 선발한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에 임용되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청주지방법원|청주지방법원장]] 등을 지내다가 대학교로 가지 않고 동서인 [[김기홍 (법조인)|김기홍]]의 권유로 변호사를 개업해 문인구 변호사가 회장으로 있던 1987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1987년) 공보이사와 총무이사 겸 사무총장을 하다가 김선 변호사가 회장으로 재임하던 1995년에 부회장을 하였으며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독교인]][[분류:김천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2014년 죽음]]
  • 요괴:선풍기 . . . . 6회 일치
          * [[산소]]를 파괴하여 방 안의 공기를 없애 나간다. 잠든 사람은 마침내 [[질]]하여 죽게 된다.
         || "그거"야 현장에 언제나 있는 거죠. 여름철이지 않습니까? 거실이나 안방할 거 없이 사람이 누워있는데면 하나씩은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가보면 방마다 하나씩이 아니라 사람 수대로 하나씩 있어요. 이거 없이 열대야를 넘기라면 못할 짓입니다. 부엌에 칼이 있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듯이 현장에 이게 놓여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감반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찝찝했어요. 현장은 내집보다 자주 들락거리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먹고 자는건 아니니까요. 화장실에서 밥먹고 당에서 세수하는건 어색하잖아요. 현장은 아직도 우리가 그어 놓은 표시가 남아있었어요. 며칠 내로 치워줘야겠지만 그때까진 살인현장이라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죠.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그저 사무적으로 바라봤던 그 공간이 거슬리기 시작하더군요. 뭐랄까, 그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느낌... 비유가 이상했군요. 그건 일종의 냄새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혼자 있는데 내가 뛰지 않은 방귀를 맡는 기분. 이것도 이상한 비유군요. 어쨌든 그랬어요. 이상한 긴장감 속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죠.
         아무 생각없이 그걸 켰어요. 나에게 얘기해준 사람이 경고하긴 했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믿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 믿지도 않는 얘기를 가지고 확인하러 갔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그냥 마가 꼈던 거죠. 고개가 빙빙 돌아가면서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죠. 창문은 여전히 고장난 채였습니다. 검할 때도 봤지만 건물 자체가 서서히 비틀리고 있어서 거기만 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죠. 내부온도가 30도를 웃도는데도 믿을 건 "그거" 밖엔 없었습니다. 짜증이 밀려들었죠.
         지금도 왜 눈을 떴는지, 얼마만에 의을 찾은 건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뜨뜻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르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해요. 바로 그 바람. 그게 눈 앞에 있었죠. 이상했어요. 분명히 꽤 떨어진 자리에 그게 있었는데. 손을 뻗으면 정확히 닿는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더군요. 게다가 회전시켜봤던 목이 똑바로 나를 향해 고정돼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가까워졌다는 표현... 이건 정확하지 않군요. 가까이 왔다고 다시 말하겠습니다. 그건 가까이 와있었어요. 실내 온도는 더 올라간 것 같았고 그놈이 토해놓는 바람은 이제 드라이기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비몽사몽한 가운데에도 그걸 꺼야겠다는 생각만은 또렷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예감이었죠.
  • 원 포 올 . . . . 6회 일치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순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상태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상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개성을 양도하는 방이 매우 깨는데 이전 사용자의 신체 일부(정확히는 DNA)를 먹어야 한다. 계승에서 이즈쿠가 받은 건 올마이트의 머리카락 한 올. 그러나 이즈쿠가 본 역대 원 포 올 계승자들로 추정되는 자들의 모습 등 '먹는다'는 방법은 일종의 페이크일 가능성도 있다. 개성의 양도할 때는 작가가 비밀이 남아있는 분위기를 그려두었다. --DNA흡수로 해결되면 여친이랑 [[검열삭제]]나 [[뽀뽀뽀]]]만 해도 즉시 양도된다!! 이러면 말이안돼...혹은 고자로 살거나?--... 본인이 원해야지만 넘겨줄수있다고나왔다...
         이 엄청난 힘을 올마이트는 무리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해왔으며 미도리야는 힘을 넘겨받은지 얼마 안된 입장이라 큰 힘을 쓰면 항상 부상을 입었다. 이 약점에 대처하기 위해 원 포 올을 손가락 하나에 집중시켜 쓰는 방으로 피해를 줄이고 있다.[* 그렇다 해서 미도리야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USJ편에서 힘을 사용하고도 반동이 없는 등 점차 성장하고 있다.[* 일단 힘의 일부만 발휘되었을 수도 있으며 USJ편의 경우는 '사람에게 쓴다'는 점에서 마음 속으로 브레이크가 작동된 듯.] 일단 체육제편까지를 기준으로 미도리야가 쓸수 있는 힘의 안전선은 전체의 5% 정도. 그러나 이후 미도리야의 성장 덕에 8%까지 상향되었다.
         올마이트가 숨기다보니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나 이와 별개로도 아직 많은 것이 드러나지 않아서 어떤 의미로는 불가사의가 맞게 되었다. 올마이트가 스승과 만나 인정받고 힘을 계승받은 과정, 미도리야가 체육제 토너먼트에서 보게된 사람들의 모습의 구체적인 의미,[* 올마이트는 자신도 예전에 봤으며 원 포 올에 대한 감이 잡기 시작했다는 으로 설명했으나 미도리야가 나간 뒤에 리커버리 걸이 보통 때와 다른 분위기로 올마이트에게 '너도 있었다고'라 하고 올마이트는 잘된 일이라 답하는데 이때 분위기도 뭔가 있어보인다.] 스승이나 그 이전의 계승자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원 포 올의 기원 등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
          * 유우에이 고등학교의 교장 [[네즈]]
          * 유우에이 고등학교의 양호교사 [[리커버리 걸]]
  • 원피스/854화 . . . . 6회 일치
          * 오페라는 아무리 자이라도 둘을 놓쳤다간 빅맘에게 무사할 수 없어서 거짓 보고를 한 것이다.
          * 상디는 자기도 모르고 보빈을 때려눕히며 "네가 먹을 음이 아니다"고 일갈한다.
          * 홀 케이크 성은 침입자와 탈주자들로 어수선하다. [[징베]]는 [[나미(원피스)|나미]]를 태우고 경비들을 피해 이동하는 중이다. 이미 성내에는 징베의 모반에 대한 소이 퍼지고 있다.
          브룩은 계속되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파악한다. 빅맘이 짜놓은 "결혼"의 전모는 이렇다. 모두가 주목하는 "맹세의 키스"를 하는 순간, 상디가 푸딩의 베일을 벗기면 그 아래 있는 "제 3의 눈"을 발견하고 당황할 것이다. 그때 푸딩이 상디의 "미간"에 총알을 박으면 이것이 신호가 돼서 빈스모크 일가의 배후에서 무수한 총알이 쏟아질 것이다.
          총 여섯 명의 침입자 중 둘이 남는다. 루피와 나미. 그런데 이들은 분명 죄수도서실에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이들도 탈출했다는 소이 도착해 있다. [[샬롯 몬도르]]는 경비를 서고 있었던 [[샬롯 오페라]]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크게 반발하며 "사실 무근인 헛소문"이라 일축한다. 지하엔 아무도 오지 않았으며 빅맘의 명령대로 [[샬롯 로라]]의 위치를 캐내기 위해 고문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태워죽여버렸다는 얘기다. 오페라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빅맘에게 모든 수명을 뺏길 거라고 두려워해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몬도르는 미심쩍어하지만 형인 오페라를 대놓고 의심할 수는 없어 넘어간다.
          침입자들은 이렇게 정리됐다 치고 상디와 빈스모크 일가도 문제가 없다는걸 확인하자 몬도르는 모든 방해꾼이 사라졌고 결혼 준비만 무사히 마치면 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역시 오페라를 신용할 수가 없어서 따로 병력을 차출해 일대를 감시하게 한다.
  • 원피스/859화 . . . . 6회 일치
          * 결혼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 중. 아무것도 모르는 빈스모크 일가는 참석할 채비를 하는데 [[빈스모크 레이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그 말에 동감한다. 암살이라면 순간에 처리할 필요가 있고 그게 실패하면 포위 당해 죽을 뿐이다. [[몽키 D. 루피]]는 역시 사황은 그정도로 대단한 거냐고 묻는데 [[브룩]]을 구할 때 직접 대면했던 [[나미(원피스)|나미]]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치를 떤다.
          브륄레는 한패 인것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반발하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빅맘에게 죽을 거라고 생각한 브륄레는 어떻게든 소을 알리려고 한다.
          * 토트랜드 각지의 백성들은 다과회에 어떤 음모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 다가올 축제를 기뻐하고 있다. 이들은 [[샬롯 푸딩]]의 결혼을 축하하며 제르마 왕국과 강력한 파이트가 연결되게 되엇다며 기뻐한다. 이번 다과회에 참석할 손님에 대해서도 소문이 돈다. "루펠드 재단"의 일족이 항구에 들어왔다는 소이 있다.
          * 제르마 왕국 쪽도 비슷한 양상이다. 병사들은 결혼 같은거에 호위가 필요하겠냐며 답지 않게 풀어진 모습이다. 홀 케이크 성의 제르마 일가는 정장으로 갈아입는 중. [[빈스모크 저지]]는 [[빈스모크 레이쥬]]가 없어진걸 눈치채지만 깊게 신경쓰진 않는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별실에서 준비를 끝냈을 거라 여기며 역시 신경쓰지 않는다.
          * 9층 빅맘의 침실에선 빅맘이 가벼운 발작을 일으킨다. 병사들이 혼비백산해서 가보니 브룩이 가짜로 바꿔치기 된 걸 눈치 못채고 "해골이 죽어버렸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오늘은 다과회"라고 달래자 웨딩케이크를 떠올리곤 급빵긋한다. 병사들은 온 김에 "모건즈"란 사람이 손님으로 도착했다는 소과 다른 내빈들의 도착을 알린다.
  • 원피스/860화 . . . . 6회 일치
          *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동쪽 하구에서 [[페콤즈]]를 돌보던 어인 해적단은 그를 해변에 묶어둔 채 토트랜드를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페콤즈는 이들이 떠나려 하자 빅맘 [[샬롯 링링]]도 이 사실을 아는 거냐고 묻는다. [[알라딘(원피스)|알라딘]]은 "떠나는 자는 죽인다"는게 이 나라 절칙이니 오히려 알면 안 된다고 응수한다. 페콤즈를 버리는 모양세가 됐지만 그가 굶지 않게 량을 준비해놨고 금방 그를 발견할 사람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징베]]는 페콤즈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며 어인 해적단의 배가 출항한다.
          * 이런 행동은 모두 징베의 안배였다. 징베는 페콤즈에게 빅맘 암살 작전과 제르마 암살 작전을 듣게된 건 기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을 접하게 되면 [[몽키 D. 루피]]는 반드시 [[상디]]를 구하려고 무리를 할 것이며 밀집모자 일당은 위기에 처할 거라고 내다본다. 그걸 두고 볼 수 없는 징베는 그들을 돕기로 결정한다. 그 말은 그저 빅맘 해적단 산하에서 빠지는 걸 넘어 "모반"을 꾀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는 사탕으로 옥상으로 가는 "캔디 에스컬레이터"를 만든다. 그의 사탕 공예는 귀빈들은 물론 몰려든 일반 시민들에게도 인기만점이다. 페로스페로를 빅맘은 지각을 싫어한다며 귀빈들을 에스컬레이터로 모신다. 그리고 몰려든 꼬마들에게는 직접 만든 사탕을 나눠주고 3분 쯤 지난 다음에는 캔디 에스컬레이터도 먹어도 된다고 허락한다.
          그는 분명 빅맘의 초대장을 받은 거물. 하지만 그때는 참석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장례이 있었기 때문이다.
  • 원피스/863화 . . . . 6회 일치
          거대한 케이크는 하객들 위로 무너져 내린다. 케이크의 상단, 장 위에 있던 [[상디]]는 정신을 잃은 [[샬롯 푸딩]]을 안고 밑으로 뛰어내리며 루피에게 뒤를 부탁한다.
          * 빅맘의 자들은 죽은 줄 알았던 루피가 최악의 형태로 재등장하자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샬롯 스무디]]는 죄수 도서관에서 죽은게 아니었냐고 경악하고 [[샬롯 몬도르]]도 역시 [[샬롯 오페라]]가 거짓말을 했던 거라고 이를 간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빅맘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루피의 등장도 열 뻗힐 일이지만 웨딩 케이크가 무너진 것은 최악의 사태다. 거의 마더 카르멜의 사진에 이변이 생겼을 때처럼 평정을 잃는다. [[슈트로이젠]]은 빅맘이 정신을 잃을까 우려해서 진정시키려 하지만 부하 요리사들은 오히려 그가 피해야 할 때라고 간청한다. 아니나 다를까, 빅맘은 성미를 참지 못하고 근처 요리사들에게 "당장 새 웨딩 케이크를 가져와라"고 억지를 쓴다. 그런게 될리가 없다. 그러자 그녀는 "라이프 오어 웨딩 케이크?"라는 질문을 내뱉는다. 그러자 하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모간즈가 특종이라며 환호한다.
          * 곧이어 나미, 캐럿, 쵸파도 회장으로 돌입. 시저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나미는 그에게 "뒷정리를 부탁해 인간쓰레기"라며 빈정 상하는 소릴 한다. 캐럿이 그 말을 듣고 그렇게 글러먹은 사람이냐고 놀라자 쵸파가 나미에게 맞장구치며 "저 자은 최악"이라고 매도한다. 시저는 딱히 반박할 기회도 없이 그저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나미 일행도 미러 월드 바깥으로 나간다.
          하지만 징베도 상적인 사람에 불과했다. 그리고 루피는 상적이지 못했다. 루피는 케이크를 퍼먹으며 "나다!"라고 대답한다. 징베는 소울 보커스에 걸린 것도 아닌데 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이 된다. 빅맘은 루피를 짓뭉게버리겠다며 달려든다.
          * 카타쿠리는 자 주제에 끼어들지 말라며 야단치지만 그가 루피의 진짜 목적이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라고 밝히자 얼굴 색이 바뀐다. 카타쿠리는 루피에게 "그런 기밀을 아는 건 우리 쪽 인간 뿐일 텐데 누구에게 들은 거냐"고 루피를 심문한다. 벳지는 그 순간 작전이 꼬여버린 걸 직감한다. 어찌됐든 사진을 깨긴 해야겠는데...
  • 원피스/868화 . . . . 6회 일치
          * 또다른 목격자도 있었는데 인근에서 해적을 은퇴하고 요리사로 지내던 [[슈트로이젠]]이었다. 모든 것을 재로 만들 수 있는 "쿡쿡열매" 능력자.
          * 설상가상 [[샬롯 카타쿠리]]가 자신의 떡으로 임시 귀마개를 만들어서 형제들에게 나눠줘 빅맘의 괴성을 극복, 연합군은 순간에 포위된다.
          * 빅맘은 몰랐지만 그 사건엔 목격자가 있었고 그것도 둘 씩이나 됐다. 그들은 빅맘도 인하지 못한 부분까지 모든 걸 목격했다. 우선 한 사람은 엘바프의 전사. 그는 양의 집과 카르멜이 신경 쓰여서 보러오던 길에 그 사건을 목격했다. 그 터무니없는 광경이라니. 그는 차마 양의 집에 와보지도 못하고 그 길로 섬을 떠났다. 엘바프로 돌아간 그는 사건의 전모를 전파했고 [[원피스/867화|이전의 사건]]에 더해서 빅맘은 거인족들에겐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존재로 낙인 찍혔다.
          * 또 한 사람은 그 섬에서 살던 요리사였다. 은퇴한 해적이었던 [[슈트로이젠]]. [[샬롯 푸딩]]의 [[원피스/858화|웨딩케이크]]를 만든 그 요리장이다. 그도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재미있는 사건"으로 여기며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쿡쿡 열매"의 능력자. 이 세상 만물을 모두 재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난 능력자였다. 그는 나무토막을 생햄으로 만들어 먹으며 이 재미있는 사건을 일으킨 "괴물"에 대해 생각했다. 본 적도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굶어 죽겠지. 슈트로이젠은 그 힘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망친 엘바프 전사와는 달리 링링에게 다가갔다. "꿈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 그에게 링링은 경계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슈트로이젠은 "너의 마더가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겠다"는 말로 구슬렸고 이 만남이 훗날 빅맘 해적단의 토대가 되었다.
          * 빅맘 자신을 제외한 다과회장의 모든 사람이 빅맘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샬롯 카타쿠리]], [[샬롯 스무디]] 등 그녀의 자들도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탄두가 날아가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빈스모크 일가를 해방시킨 [[나미(원피스))|나미]] 일행과 임무를 무사히 수행한 루피 일행,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었던 푸딩까지. 귀를 틀어막고 간신히 그녀의 최후를 지켜봤다.
          * 회장 안을 들여다 보고 음흉하게 웃던 [[시저 크라운]]. 그러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작전이 어찌됐건 자신의 차례는 변하지 않는다. 일행을 탈출시켜야 한다. 설마 탄두를 파괴할 줄은 몰랐다며 투덜거리며 탈출용 대형 거울을 챙겨서 날아오른다. 그가 날아오자 회장에 흩어져 있던 연합군이 재빠르게 집합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탄두를 파괴할 정도로 무한 압력이 그대로 몰아쳐서 거울까지 깨뜨렸다.
  • 원피스/872화 . . . . 6회 일치
          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둘이다. 그 둘,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스튜시와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건즈는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스튜시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로 옥갑이 이 사태를 일으킨 거 같다고 말하자 모건즈가 달리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성의 붕괴는 다과회장의 구도를 많이 바꿨다. [[샬롯 카타쿠리]]에 제압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빈스모크 이치디]]가 해방됐다. 역시 포위됐던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 루피도 탈출 성공. 레이쥬는 급변한 상황의 원인을 궁금해하지만 상디는 그딴건 됐으니 우선 도망치자고 다그친다. 가장 경황이 없는 건 빅맘.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처형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그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온통 쓰러지고 뒤엎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 사이 사로잡혔던 [[빈스모크 니디]], [[빈스모크 욘디]]가 무사히 빠져나와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무사히 구출했다. 의을 잃은 채지만 목숨까지 잃진 않았다. 물론 최종적으론 이 무너지는 성에서 벗어나야 그렇겠지만.
          * 그 거대했던 홀 케이크 성이 다리가 부러진 탁처럼 쓰러진다. 성은 온통 비명과 패닉으로 아우성친다.
          * 벳지의 의견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이 성은 성 밑 마을보다도 거대하다. 이제와서 뛰어봐야 달아날 수 있을리가 없다. 어떤 주민들은 이렇게 절망하며 주저앉아 통곡했다. 성 위에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빅맘 해적단 멤버들이 우왕좌왕하며 무엇이든 붙들고 있었다. 카타쿠리는 이런 와중에도 형제들을 진정시키고 다니며 살 길을 모색한다. 모건즈는 이런 와중에도 특종을 잡았다고 기뻐 날뛴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다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는 새인 주제에 날지 못했다. 하지만 스튜시는 육을 마스터한 몸이므로 당연히 "체"로 여유롭게 날아오른다. 벳지와 시저는 혼란을 틈타 탈출에 전력하고 이치디는 이들이 충분히 거리를 벌린걸 확인한다.
          누가봐도 끝장인 것 같은 이 상황. 그러나 돌파구는 있었다. 총요리장인 미기사 [[슈트로이젠]]이 실력을 발휘한다.
          * 놀랍게도 사망자는 전혀 없었다. [[샬롯 다이후쿠]] 등 샬롯가 형제들 전원 무사. 주민들도 생크림 범벅이 되는 걸로 끝났다. 빅맘은 애초에 제우스가 태워줘서 추락을 면했다. 그녀는 사방에 널린 케이크 잔해를 먹어치우고 있었지만 조금도 만족하지 않았다. 우선 슈트로이젠이 능력으로 만드는 재는 별로 맛이 없는데다, 그녀의 성도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세삼스럽게 기대해 마지 않던 "웨딩 케이크"를 못 먹게 되었단 것이 떠오르고 말았다.
          * 천운 덕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해적동맹군은 홀케이크 아일랜드 북서쪽에 이르러 잠시 휴했다. 밀집모자 일당의 써니호와, 파이어탱크 해적단 아지트 사이의 중간 쯤 되는 지점이었다. 벳지는 체내의 밀집모자 일당을 바깥으로 쏟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 선언한다. 나미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벳지는 "좋은 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니 관둬라"며 말을 가로막았다. 시저는 고생한 건 자기라고 나대는데 나미가 독설을 퍼부어 조용히 시킨다.
  • 윤진솔 . . . . 6회 일치
         | 학력 = [[동아방송예술대학교]]<br />[[조선대학교]] 중국어과
         * [[동아방송예술대학교]]
         * [[조선대학교]] 중국어과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이경석 (배구인) . . . . 6회 일치
         | 출신 학교 소속 연도 = 1980 - 1984
         | 출신학교 = [[경기대학교]]
         | 감독직 역임팀 = [[경기대학교]] 감독<br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LIG손해보험]] 감독
         '''이경석'''(李京錫, [[1961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의 세터 출신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모교 [[경기대학교]]에서 감독을 했으며, 2011-12시즌 [[김상우 (배구인)|김상우]] 감독이 경질된 후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LIG]]의 감독에 부임했다. [[2012년]]에는 KOVO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LIG의 KOVO 주관 대회 첫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2012-13시즌 성적이 부진하여 시즌 도중 경질당했다. <ref>{{뉴스 인용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배구 감독]][[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배구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배구 참가 선수]]
  • 이규환 (영화감독) . . . . 6회 일치
         '''이규환'''(李圭煥, <small>일본 이름: </small>岩本圭煥, [[1904년]] [[2월 18일]] ~ [[1982년]])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영화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나 어릴 때 [[경성부]]로 이주하여 자랐다. [[우미관]]을 드나들며 [[찰리 채플린]]의 작품을 보며 성장하였다. [[1919년]]에 대구 [[계성고등학교]]의 전신인 계성중학교에 재학 중, [[3·1 운동]]으로 인해 [[밀양시|밀양군]]의 시골 마을에서 2년 동안 피신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이규환의 영화 작품에 드러나는 향토적 화면에 영향을 미쳤다.
         [[1932년]]에 귀국하여 제작한 작품이 《임자 없는 나룻배》이다. [[나운규]]와 [[문예봉]]이 출연한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고 문예봉을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제작비 문제 등으로 순탄치 않은 영화 작업을 계속했다. [[1937년]]에는 [[성봉영화원]]을 설립하고 로컬리즘 색채가 강한 《나그네》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성봉영화원이 [[조선영화주회사]]로 통합된 뒤 이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만주]]로 떠나, 일제 강점기 말기의 [[군국주의]] 영화 제작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제목=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분류:1904년 태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감독]][[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이기광 (법조인) . . . . 6회 일치
         |학력 = [[영남대학교]] 법학 학사
         1955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1986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87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1990년 [[대구지방법원]] 1996년 [[대구고등법원]] 1999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1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08년 [[대구고등법원]]을 거쳐 2011년까지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2년에는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15년 2월까지 보임하였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된 2012년 2월에 경상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2015년에는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1년동안 재판장을 하였다. 2016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2년동안 제18대 [[울산지방법원]]장에 임명되면서 제20대 울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0년이 넘는 공직자 생활을 마치면서 퇴임에서 "아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저를 뒷바라지하면서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 준 제 아내, 무등 한 번 태워 주지 못했고, 손잡고 봄길 한 번 함께 걸어 보지못했다."며 아쉬워했다.<ref>로이슈 2018년 2월 12일자</ref>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이사강 . . . . 6회 일치
         수능 279점으로 중앙대학교 연극과 98학번 특차로 들어가서 1학년을 다니다가 언니가 있는 런던으로 유학 필름스쿨 영화학 학위를 받았다.
         * 동덕초등학교
         * 경일여자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연극학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뮤직 비디오 감독]][[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상오 . . . . 6회 일치
         * [[대륜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 우현보통학교]] 졸업
         * [[대륜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졸업]]
         * [[일본]] [[호세이 대학|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학사]]
         [[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 평론가]][[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구]][[분류:한국독립당]][[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호세이 대학 동문]]
  • 이영희 (1936년) . . . . 6회 일치
         * 주회사 매종 드 이영희 대표
         * [[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무대미술과 교수
         * [http://people.mygo.co.kr/people.php?cmd=view&pp_no=37308 마이고 인물정보 - 이영희 前 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분류:1936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신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이전환 . . . . 6회 일치
         * [[청구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석사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 차장]][[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제석 . . . . 6회 일치
         '''이제석'''([[1982년]] [[10월 1일]]~)은 [[대한민국]]의 광고 제작자로 [[이제석 광고연구소]]의 대표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다. 자칭 '광고천재'라는 수어를 사용한다.
         * [[협성중학교]]
         * [[계명대학교]] 시각디자인학 [[학사]]
         * 예일대학교 그래픽디자인 석사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남]][[분류:광고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협성중학교 동문]]
  • 이홍우(1959) . . . . 6회 일치
         || '''최종 학력''' ||[[계명대학교]] 회계학과 학사 ||
         [[1959년]] [[10월 21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대구동인초등학교, 대구영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대구)|대구경신고등학교]], 계명대학교를 졸업하였다.
  • 임은정(법조인) . . . . 6회 일치
         || '''최종 학력''' ||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 ||
         [[1974년]] 7월 14일 생으로,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2001년]] 제30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검찰생활을 시작하였다.
         2007년 3월 광주지검에서 근무할 당시 일명 ‘도가니 사건’([[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공판검사를 맡았다. 이때 임 검사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겼다:
         그러나 임 검사의 퇴직 사유를 발견하지 못한 법무부는 지난해 1월8일 결국 ‘적격’ 판정을 내렸다.[* 사실 이 적격심사제도로 잘린 사람은 매우 적다. 자세한 것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240998|기사]] 참조. 그리고 이런 방의 찍어내기는 오히려 법관이 훨씬 더 심하다. 저 기사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정작 검사적격심사제도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다(...). 임은정 검사의 경우도 열리긴 열렸지만 저렇게까지 찍힌 임은정 검사도 문제가 없어서 적격 판정 받아 문제없게 되었다. 물론 이후 승진이 느려지긴 했으나 적어도 이 적격심사제도로 강제퇴직 당하진 않았다. 그러나 판사의 경우, 판사의 임기가 10년이므로 판사 본인이 직을 더 유지하고 싶어한다면, 10년마다 무조건 재임용 심사를 받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이 있다.]
         2016년 6월 27일에는 최근 자살한 후배 검사가 "부장검사 폭언에 힘들어했다"고 밝힌 검사 부친의 기사를 링크하며, 자신이 당한 폭언 사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검사와 스폰서, 그런 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간부를 만나고는 성매매 피의자로 보여 결재를 못받겠으니 부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스폰서달고 질펀하게 놀던 간부가 저를 '부장에게 꼬리치다가 뒤통수를 치는 꽃뱀 같은 여검사'라고 욕하고 다녀 제가 10여년 전에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그러면서 검사적격기간을 단축하는 검찰청법개정안에 대해 인사부터 좀 제대로 하고 적격심사를 강화하는게 순서일 거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0799|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상당히 의외인 인터뷰인데 검찰 내에서 언론과 대응하는 공 직책은 차장검사로 차장검사를 제외하고는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언론과의 접촉이 금기시 되는 게 검찰 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윤리강령상 이런 인터뷰는 기관장 승인 사항이다. 또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특정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의 ‘사건’에 대한 인터뷰가 아닌, 검찰 전체에 대한 비판을 SNS에 쏟아냈던 임은정 검사의 평소 견해를 중심으로 이뤄진 인터뷰였기 때문에 훨씬 더 이례적이다. 임은정 검사도 인터뷰에서 “대검찰청에서 (인터뷰) 허락을 해주다니 얼떨떨하다. 정말 세상이 좋아졌나 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천지개벽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도가니 사건, 백지구형 사건 등 여러 뒷이야기들과 검찰과 검찰 개혁에 대한 임은정 검사의 얘기와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시라면 역시랄까, 이 인터뷰를 가지고 상부에서 뭐라고 했다고.[[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273053|#]]
  • 전순옥 . . . . 6회 일치
         |학력 = 워릭대학교대학원 노동사회학 박사
         | 경력 =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
         * [[워릭대학교]] 대학원 석사
         * [[워릭대학교]] 대학원 노동사회학 박사
         * 2001 ~ 2002 : 성공회대학교 교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여자 정치인]][[분류:전태일]][[분류:워릭 대학교 동문]]
  • 전혜진(1970) . . . . 6회 일치
         ||<:> '''학력''' || 김천중앙초등학교[br][[청담중학교(서울)|청담중학교]][br][[진선여자고등학교]][br][[한양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 학사 ||
         본인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제목처럼 실제로 4명의 딸이 있는 딸 부잣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990919|국민일보 기사]] 1991년 미스코리아에서 당선되었으며 배우와 MC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9월에 개신교 예배로 4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했다.
  • 정겨운 . . . . 6회 일치
         * [[대덕대학교]]
         * [[2013년]] 웹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 ... 음치 학교 짱 역 (특별출연)
         * [[2015년]] [[KBS2]] 월화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 ... 임우 / 임스타 역
         | [[고양이 장례]]
         | 조태
         ! 시상
  • 정링컨 . . . . 6회 일치
          | 학력 = [[한양초등학교]]
          |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Lincoln1001 공 웹 카페] <br/>{{인스타그램|lincoln1001}} <br/> {{트위터|Angel_Lincoln}}
         * [[서울도곡초등학교]](前) → [[한양초등학교]]
         * [http://cafe.daum.net/Lincoln1001 공 팬 카페]
         [[분류:200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램버트, 링컨]][[분류:21세기 터키 사람|람베르트, 파울]][[분류:미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한양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침례교도]][[분류:미국계 터키인]][[분류:한국계 터키인]][[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터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브루나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정의동 . . . . 6회 일치
         * [[경북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경제학 학사
         *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밴더빌트 대학교 동문]]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6회 일치
          * [[정치인/목록]]. [[법조인/목록]]. [[경북고등학교/동문]]
         1937년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졸업하였다.
         1994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범죄방지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한편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 재단이사장도 지냈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6회 일치
          * 마레군은 거인부대 "마레의 전사"들을 공수부대 형으로 전선에 투입, 스라바 요새에 투하한다.
          마침내 허공의 엘디아인 낙하산 부대는 같은 수의 지성없는 거인들로 영영 바뀐다. 그저 욕 뿐인 괴물들이 중력에 따라 요새 위로 쏟아진다. 아래에서 보면 거인이 비처럼 내리는 것 같다. 이들의 육중한 신체는 그 자체로 요새에 폭격을 가하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거인들이 쏟아지는 곳 마다 벽이고 건물이고 상관없이 무너져 내린다. 중동연합의 병사들은 허겁지겁 피하지만 그래봐야 의미가 있을까?
          마레 지상군은 멀찍히 떨어진 참호에서 그 괴상한 종전파티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거인들이 음을 주워먹는 것처럼 적 병사들을 잡아먹는다. 파르코의 아이러니를 비웃던 장교가 좌우의 엘디아인들을 향해 인상깊은 감상평을 남긴다.
          가비와 파르코를 비롯한 엘디아인 누구도,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저 탐적으로 변한 자신의 동포들을 눈에 새긴다.
          * 갑옷의 거인이 낙하. 가비는 그것을 보고 "라이너, 조심해"라고 작게 속삭인다. 옆에 있던 파르코가 그걸 의한다. 거기까지 들리진 않았겠지만 라이너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 그는 낙하와 동시에 요새 벽 위의 야전포를 차례 차례 쓸어버린다. 문자 그대로 벽 위의 먼지를 쓸어내는 것처럼. 적들은 대거인전용 철갑탄으로 응수한다. 이 철갑탄은 라이너의 갑옷을 꿇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라이너는 첫 응사를 막아내지만 오래 노출돼봐야 좋을게 없다. 다음 탄을 장전하는 사이 라이너가 철갑탄을 쏜 쪽으로 우선 달려든다. 하지만 충분히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사격 준비가 끝난다.
         이번 호 표지는 진격의 거인이 장.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6회 일치
          * 4년을 허비한 전쟁은 끝났지만 승전국 마레의 사정은 좋지 않다. [[지크 예거]]가 적의 마지막 함대를 섬멸한 건 좋았으나 그 대가로 갑옷 거인 [[라이너 브라운]]을 희생시켰다. 비록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지만 "마레의 갑옷"이라 일커러지는 그가 빈사에 처했다는 사실,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어찌보면 마레의 승리가 초라할 정도로 "과학기술의 승리"를 대서특필, 소을 접한 나라들은 패전국인 중동연합을 칭송하는 기현상이 일고 있다.
          중동연합과의 전쟁은 해상전이었다. 대부분의 중요한 전투는 거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해상전. 연합 측은 최신전함을 보유했지만 마레는 수만 많은 구함을 구색만 맞춰둔 오합지졸. 다른 참모가 "우리 함대가 오합지졸이라 졌다는 거냐"고 따지자 마가트는 그게 본질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마레는 팽창적인 민지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건 거인의 힘을 과신한데 따른 전략이다. 잘 먹혀왔지만 그만큼 다른 나라는 거인에 대항하는 힘을 기르는데 필사적이었고, 이제 그 성과가 가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육상에서 거인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겠지만, 이대로 항공기가 계속 발달하고 상공에서 수십 kg의 폭탄이 비오듯 쏟아져 내린다면?
          * 회의 후. 지크는 콜트를 데리고 건물 옥상에 올라왔다. 마레 군부가 있는 지역은 긴 언덕 위에 건설된 계단 도시였다. 지크는 담배를 피우며 콜트에게 회의에서 발언을 사과한다. 콜트는 사과받을 일이라 여기기 보단 "멋졌다"고 말한다. 엘디아인이 마레군의 총수에게 발언할 기회가 있다니, 엄청난 활약이다. 게다가 그 간언이 채택돼 임무를 부여받다니. 그리고 콜트는 지크의 발언이 틀린 것도 아니라고 인정한다. 설사 자신이 짐승 거인을 이어받아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지크는 매우 특별하니까. 그의 척수액이 투여된 거인은 지크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고 달만 떠있다면 밤에도 활동한다. 이런 능력은 역대 어떤 짐승 거인에게도 없는, 마치 시조 거인과 같은 능력이다. 이야기를 하던 콜트는 새삼 이상하게 생각됐다.
          간을 다 먹은 갤리어드는 라이너의 감사를 거절한다. 그가 구한건 라이너가 아닌, "네가 갑옷을 잃어 버리는 실수에서 조국 마레를 구한 것"이라면서. 라이너가 아무 대답도 없자 갤리어드는 조금 더 전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9년 전, 팔라디섬 작전에서 자신이 갑옷 거인을 계승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 가비는 떠들썩하게 전사단이 리베리오의 본부로 돌아가게 된 소을 전한다. 그녀는 목소리 좀 낮추라는 라이너의 제지는 무시하고 "그 전까지 마을을 돌아보자"며 그의 손을 잡아 끈다. 파르코는 내키지 않는지 라이너에게 "자두는게 좋지 않겠냐"고 권하는데 라이너는 괜찮다며 사양한다. 가비가 "너야 말로 가서 자라!"고 쏘아붙이자 파르코도 기운차게 "나도 간다!"고 결정한다. 우도는 가비가 "애들이 가면 안 되는 거리"로 가려는 걸 신경쓰는데 조피아는 "그래도 마가트 대장이 가는 걸 봤다"며 은근히 충동질한다. 시끌벅적한 네 명의 소년소녀들. 마레의 전사, 후보생. 라이너는 익숙한 장면이 떠오른다. 유년기의, 없어진 친구들이 있던 풍경. 꿈에서 처럼, 라이너는 그 풍경을 향해 손을 뻗는다.
  • 진격의 거인/98화 . . . . 6회 일치
          * [[빌리 타이버]]의 방문으로부터 한 달 뒤. 타이버가의 연설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라이너 브라운]]을 포함한 마레의 전사들은 마레군 수뇌부에 팔라디섬의 정보와 공략법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라이너의 의견을 자세히 검토도 하지 않고 "엘디아인에게 괜히 물어봤다"며 쓸모없는 취급을 한다. [[포르코 갤리어드]]는 이에 불만을 품고 "팔라디섬 계획은 참 순조롭다"고 빈정거린다. 라이너는 의견이 묵살된 것 보다는 대장인 [[테오 마가트]]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쪽을 의한다.
          * 수용구 안에서는 "축제"가 준비 중. 실제로는 타이버가가 팔라디섬 침공을 선언하는 "선전포고" 연설이 메인이벤트다. 가비는 타이버가의 연설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도는 마레인 이상으로 엘디아인을 증오하는 세계의 사람들이 협조해줄리 없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마가트와 [[빌리 타이버]]도 준비 중인 무대를 살펴보고 있다. 빌리가 한 달 전 본부를 방문했을 때 둘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빌리는 마가트에게 군의 전권을 넘기기로 한 상태다. 마가트는 이 나라가 "빌리 타이버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의이 없다. 그는 자신을 "나라는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고 자신은 그저 조타수일 뿐"이라 여기는 데다, 그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다. 마가트는 "집안"이 무너질 위기지만 쓸만한 자들도 있고, 그들이 "집안에 생쥐가 들어왔다"는 정보를 전했다고 귀띔하는데.
          * 가비가 다음 날 일어나보니 수용구가 완전히 변한걸 보고 크게 놀란다. 수용구 바깥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생전 처음보는 벼라별 가게를 열었다. 파르코와 친구들은 진작에 일어나서 즐기고 있었고 곧 가비랑 합류해서 축제를 잔뜩 즐긴다. 라이너도 뒤따라와서 가비 일행에게 군것질거릴 사주며 함께 즐기는데, 가비는 너무 과해서 걷지도 못할 정도가 된다. 그래도 가비는 "요즘은 처음 있는 일만 일어난다"며 뭔가가 바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는데. 라이너는 주저하다가 그럴 거라고 대답하고 만다.
          파르코가 가비를 꺾는 걸 보고 기뻐하지만 "그래도 가비가 유력한건 변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썰렁한 분위기를 만든다. 포르코가 "당국의 기준은 애매하다"며 꼭 가비가 유리한 것도 아니란 늬앙스로 말하자 반발하면서 자기가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데 파르코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으로 말해 지크에게 한 소리 듣는다. 하지만 지크는 그가 형이라서 동생을 생각해 한 말이라는걸 이해해준다. 이때 대화를 들은 포르코는 자기 때 일이 떠오른 건지 생각에 잠기는데.
          파르코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파르코가 "널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려 한다"고 사실상 고백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걸로 나를 위한다는 거냐"고 반응하며 전혀 의미를 읽지 못한다. 이후 우도, 조피아와 수용구 안에서 준비 중인 무대 건설 현장을 보는데, 가비는 타이버가의 선전포고 선언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도나 조피아가 회의적인 의견을 어필하자 "그럴 수록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인다. 전야제에선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우도가 히즐국 부인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겁한다. 가비가 그 부인을 보고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다음날 축제에선 완전 별천지를 본 것처럼 즐거워한다. 요즘엔 "처음 있는 일" 뿐이라며, 앞으론 뭔가가 변할 것 같다는 말을 라이너에게 하고 동감을 받는다.
          속셈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밝혀진다. 한 달 전 빌리 타이버의 방문 때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내통하는 관계가 된 것. 부패한 군당국을 "집의 증축 건"으로 비유해서 "대대적인 해체공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한다. 빌리는 만족스러워하며 그에게 군의 전권을 맡기고 "원수"로 승격시킨다. 이때 빌리가 "군은 네 것"이라 말하자 "군은 나라의 것이며 나라는 빌리의 것"이라고 대답하는데, 사실 빌리는 그렇게 특권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시키듯이 "집안이 무너질 판이지만 쓸만한 기둥도 있다"며 그들이 보고한 집안에 든 생쥐에 대해서 전달한다.
  • 진동한 . . . . 6회 일치
         || 학력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고려대]] ||
         || 지도자 ||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업고등학교]] 감독 (2014~2016년)[br]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 (2017년)||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다. 언더핸드 투수로 [[양일환]] - '''[[이태일]] - [[박충]]'''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잠수함 투수 중 하나.
         은퇴 후 쌍방울에서 스카우트로 있었다. 구미 도산초등학교 코치를 거쳐 도산초 감독으로 재직하다가 2014년에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고]] 감독으로 선임되어 3년간 지도를 하였다. 이후 2018년에 포항 대해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 창작:IDF . . . . 6회 일치
         IDF는 모병에 있어서 선진국의 사관학교 출신자, 군복무 경험자를 우대하며, 특히 장교급 지휘관이나 특수부대 출신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다. 그 결과, IDF의 영관급 이상 장교는 선진국 사관학교 출신자나 퇴역장교 출신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반면 병사들은 상당수 생계를 위해서 IDF에 개인적으로 참가한 제3세계 출신이며, 선진국 출신자 역시 저소득 계층 출신이 많다.
         파견 주둔지에서 민사작전을 담당한다. 공병대와 의무대로 구성되며, 피해 복구와 재건 작업, 민간인 구호 등을 진행한다. 배급소와 진료소를 설치하고 운영하여 민간인들에 대한 량, 의료 서비스 공급 등의 업무를 한다. 파견 지역의 치안 확보와 재건에 기여하고 반군의 성장을 막는다. 각종 국제 구호 조직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재해지에 나타나는 볼란티어(자원봉사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임무도 맡는다.
         소국에서는 자국이 타국의 침략을 받아 점령 등을 당했을 때의 대비책으로 IDF에 가맹하고 있으며, 군사정권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성공한 몇몇 정부에서는 기존에 독재 정권과 협력하거나 군정을 하던 군부에 대한 경계 의이 강한 탓에 IDF에 가맹하는 경우도 있다. 내전을 겪었던 나라나, 침략을 받았던 나라에서도 치안유지 병력확보나 보다 나은 안전 보장을 위하여 가맹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주의-민족주의 입장에서는 다국적 군대인 IDF에 대한 경계의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일국에 필적하는 무력을 해외 기구에 의탁함으로서,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각국의 군대, 특히 선진국 군대의 장교들은 일종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IDF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같은 전장에서 싸운 '전우'로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선진국 출신자가 사무국, 군간부 등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IDF의 내부 구조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 한가지 원인은 IDF가 자체적으로 사관학교 같은 교육 시설을 갖추지 않아, 지휘관 교육 등 본격적인 군사교육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체적으로는 하사관 교육 이상의 교육 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아, 장교층을 선진국 출신에 의존하는 문제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창작:맹수인 . . . . 6회 일치
         사자족은 맹수인들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며, 현실의 사자와 비슷하게 수컷들은 수북한 갈기를 자랑하며, 이 갈기가 수북하고 아름다울수록 미인으로 취급된다. 사용하는 언어는 레잉어이며, 주로 서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북부와 그곳에 연결된 지방인 아프반 반도.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늑대족은 보통 다른 종족에게 도적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크게 두개의 부류로 나뉘는데, 북극인근의 '눈늑대섬'과 아프반반도 북부, 대륙 북부일부에 서하는 '눈늑대족', 그리고 대륙 중부 '메말사막'과 대륙 중북부를 나누는 '등퍼산맥' 인근에 사는 '늑대족'으로 나뉜다. 메말사막에 사는 이들은 메말사막 북쪽 초원에서 말을 공급받아 그 말들로 노략질을 하는것으로 유명한데, 츄프의 몇몇 대귀족들까지 연관되있어 뿌리뽑기 매우 힘들다. 츄프 왕국은 티겔 왕국과 동맹관계기에 이 부정한 동맹을 뿌리뽑으려 노력했지만 현재까지도 잘 근절되지가 않는 실정이다.
         곰족은 등퍼산맥 너머 동부 대륙 동부와, 터크퍼산맥 이북 북부에 주로 서하는 이들이다. 이들역시 둘로 나뉘는데, 등퍼산맥 너머에 주로 사는 '불곰족'과 대륙 북부에 주로 서하는 '흰곰족'으로 나뉜다. 이들은 본래 한종족이었으나, '북쪽의 전사' 네프친스키가 그의 삼촌 메첼에게 크누고 공작위를 빼앗기면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도망, 이후 그들의 후예는 추운 북쪽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하이에나족은 '하이엔'지방에 서하는 족속들로, 등에 갈기가 있다. 이들은 한때 중북부에 '하이엔 왕국'이란 상당히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레이먼 제국의 창시자인 샤를 대제에 의해 멸망당하고 레이먼제국의 피지배민족으로 있게된다. 이후 이들은 수많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모두 실패하고, '유일황제'샤를이 아라스 제국에 패배하면서 하이엔등 '상 하이엔'지방은 아라스 제국에게, 그외 ''하 하이엔'지방은 레이먼 제국에게로 분열된다.
  • 창작:좀비탈출/4-0 . . . . 6회 일치
         위험해. 량도 없는데 체력을 소모할 수는 없어.
         마침내 량은 다 떨어졌다.
         병중에 량이 없다는건 놀라운 일이다. 아무렇지 않은 병도 순간에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의이 멀어진다.
          * {{{#red 적어도 의주만큼은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6회 일치
         나는 터무니없는 과로를 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당초 예정했던 노동량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그래도 량도 챙겨왔고 위험요소도 제거했다. 이로써 우리집은 안전한, 이 판국엔 안 어울리지만 어쨌든 좀 더 안전한 집이 되었다.
         병이 나는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예상을 따라가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그 예상이란건 해열제나 소화제로 처리되는 병에 대한 것이고 이토록 격렬한 발열과 의의 끈이 끊기는 상황을 상정한게 아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손발이 남의 것 같고 신체 어느 것 하나 맘대로 움직이는게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 우연히 그게 전멸한 도시 한 복판에서다. 이런 기막힌 상황이 있나!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우선은 뭔가 먹어야한다. 다행히 어제 먹고 남은 죽이 있다. 상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주방으로 기어갔다. 아마 탁위에 그대로 뒀을 것이다. 힘을 내서 다가가 보자…… 좋아. 그릇이 보이는 것 같아.
         먹으려면 일어서야 한다. 하지만 일어서기엔 기운이 없다. 젠장, 우슨 엿 같은 역설이야. 아무튼 일어나야 해. 제발, 제발. 조금만. 손이 탁 위로 올라갔다. 그래 하다 못해 죽 그릇을 당기기라도 하자. 가지고 내려오는 것만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모르겠다. 계속 정신을 잃는다. 몇 시간 간격으로 증세가 나타나는지 모르겠고 한 번 정신이 돌아와도 부지불간에 잃어버린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의심가는게 너무 많아서 모르겠다. 샤워를 한게 문제였을 수도 있다. 아니 그 물로 밥도 지어먹었으까 취물에도 문제가 있었겠군. 그리고 녀석들이 활보했던 마당을 돌아 다니고 한 놈을 쓰러뜨리고 그 체액이 범벅돼서 돌아다녔으니까…… 아무튼 뭐든 하나만 걸렸어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겠군.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6회 일치
         '''딱 한 번만 외출'''하겠다는 계획은 폐기다. 앞으로 나는 '''자주 외출할 것이다'''. 이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첫째, 생각보다 독 안에 있는 량이 많다. 지금 가방으로는 몇 번 왕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둘째, 집안에는 이 많은 량을 저장할 방법이 없다. 냉장고를 살릴 수만 있으면 모를까. 알다시피 빌어먹을 전기는 끊겼다. 셋째, 이렇게 말하기는 정말 싫은데, 말하는 나도 제정신인 것 같지 않은데, '''바깥은 생각보단 안전하다.'''
         가장 먼저 떠오른건 '''빗물탱크'''였다. 와트니처럼 나도 물은 충분히 있지만 사정이 좀 다르다. 아직은 수도가 끊기지 않았지만 공급이 얼마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도 외에 수를 찾아야 하고 제일 먼저 생각난게 빗물이다. 그건 옥상의 물탱크를 쓰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정수 문제나 물탱크의 물을 수도로 연결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일단 그건 미뤄두자.
         다음으로 '''농사'''를 짓는 문제인데, 이건 어려운 문제는 아닐 거 같다. 어제 독에서 감자를 봤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감자 때문에 마션이 떠올랐다. 나는 물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화성보다는 좀비에 점령 당한 지구 쪽이 농사엔 적합할 거라 본다. 초등학생 때 컵에다 감자 싹을 키워본 경험도 있고. 이쪽은 마션에 의지하지 않아도 이럭저럭 해결될 거라 본다.
         전기를 되살리는 문제도 궁리해봤는데, 내가 아는 전기지이라곤 차단기가 내려가면 전기공급이 안 된다는 것 뿐이다. 그래도 내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긴 한데, 약간 위험이 따르는 부분이라 보류한다.
         이성의 소리였다. 아니, 이건 이성이 아니겠지. 골빈 소리겠지. 목공소를 털 여력이 있다면 이런데서 요새를 만들겠다고 하지도 않을 거다. 가까운 곳에서 얻어야 한다. 그것도 안전하다고 믿을만한 장소에서. 지난 번엔 골프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물론 칼과 아령이 있긴 한데…… 미덥지가 못해서.
  • 최원홍 . . . . 6회 일치
         | 학력 =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 소속사 = 스오션스
         | 웹사이트 = [http://6oceans.co.kr/artist_board/494#0 스오션스 최원홍]<br>{{싸이월드|50316077}}<br/>{{인스타그램|choi.wonhong}}
         *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재학)
         * 2013년 [[KBS2]] 《[[왕가네 구들]]》 - 왕대박 역
         [[분류:200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6회 일치
         [[1967년]]에 [[경상북도]] 금릉에서 태어났다. 1984년 부산 [[내성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89년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학과]]를 졸업하였다(서울법대 84학번). 1996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검찰은 홍만표 변호사의 통화추적 등을 통해 홍 변호사가 최윤수 차장을 두 차례 찾아갔고, 최윤수와 무려 20여 차례나 통화한 사실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결국 최윤수 국정원 제2차장을 소환하지 않고 서면으로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당시 검찰은 ‘제 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 당시에도 최윤수와 우병우 간의 관계가 입길에 올랐다. 우병우는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이듬해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기용될 때까지 1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고, 이 기간에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사실상 ‘2인 1조’로 움직이면서 정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정운호 대표 등의 ‘몰래 변론’을 맡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홍만표와 우병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수사기획관과 1과장으로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우병우가 변호사 활동을 할 때 사무실을 연 곳이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로, 홍만표의 사무실(1010호)과 같은 건물 아래 위층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홍만표와 최윤수 차장 간의 연결 고리가 우병우 아니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de4c88fecae9760b9b6c86f97f5e042|#]]]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6회 일치
         숙련도 시스템은 각각의 유닛들이 전투 경험을 통해 승급하는 방.
         네개 진영 중 가장 이질적인 운영 방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진영들은 건물로 된 본부를 가졌지만 영국군은 본부가 지휘트럭이다.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MCV]] 같이 지휘 트럭을 펼치고, 접어서 위치를 바꾸고, 다시 펼치고 하는 방. 지휘 트럭이 위치한 지역은 확보 판정을 받아 자원 제공량이 증가하고 적이 점령할 수도 없지만 지휘 트럭을 움직이는 동안에는 모든 지역이 보급이 끊겼다는 판정을 받게된다.
         숙련도 시스템은 전투 유닛들에게 버프를 주는 지휘관 유닛-중위, 대위, 크롬웰 지휘전차-등이 버프를 주는 유닛들의 전투를 통해 승급하는 방.
         숙련도 시스템은 전투 지휘소에서 특정 계열의 유닛들을 일괄적으로 승급시키는 방.
         숙련도 시스템은 각각의 유닛들이 전투 경험을 통해 승급하는 방. 알아서 업그레이드 되는 미군과는 달리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할 것인지, 방어력 업그레이드를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 콜 오브 듀티 . . . . 6회 일치
         이후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는 달리 필드에 놓인 회복약을 먹어 체력을 보충하는 방을 사용한다. 세이브 방도 체크포인트제인 후속작과 달리 세이브 로드 방. 오토세이브도 지원된다.
          >접이 개머리판이 달린 .30구경 반자동 소총인 M1A1 카빈은 보통 공수부대원들에게 보급됩니다. 대형 소총과 같은 저지력은 없지만 가볍고 정확하고 휴대하기 좋습니다.
          >영국 공수부대도 애용해는 미 공수부대의 제 권총입니다. 7발이라는 적은 장탄수를 가지고 있지만 .45 구경 대형탄은 콜트를 위급시 쓸만한 무기로 만들어줍니다.
          >1907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처음 등장한 리엔필드는 영국 보병의 제 소총입니다. 강력하고 장거리 사격에 적합한 볼트액션 소총입니다. 10발을 장전할 수 있으며, 두개의 5발들이 스트리퍼 클립으로 장전됩니다.
  • 키라키라 네임 . . . . 6회 일치
         비상적이고 특이한 이름을 뜻하는 일본의 속어.
          * DQN네임 : DQN네임(DQNネーム, 도큥 네임)이란, 2ch 용어이다. 「DQN인 부모가 아이에게 붙일 듯한 이름・DQN인 부모가 아이에게 붙이는 이름」을 뜻한다. 「DQN」이란 「상을 일탈한 사람・비상적인 사람」을 뜻하므로, DQN네임은 상에서 일탈한, 몰상하고 기묘한 이름을 놀리는 의미로 쓰인다.
          * 물건이나 음의 이름을 붙인 이름…티아라(千秋楽,涙愛,星愛麗,姫愛蘭), 판다(大熊猫), 라이온(獣王), 바나나(束生夏)
  • 태학 . . . . 6회 일치
         [[유교]] 경전에서는 고대에 이미 비슷한 성격의 학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예기]]에는 순 임금이 상상(上庠)이라는 --상상력이 증진될듯한-- 학교를 만들었다고 하며, [[주나라]] 천자는 벽옹(辟雍)이라는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들을 국학(國學), 태학(太學), 대학(大學)으로 총칭했다.
         태학의 규모는 점차 발전, 확대되었는데, 태학이 생겨난 당초에는 학생 50여명에 불과했으나 후한 시대에는 무려 3만명에 달하게 됐으며, 학교 건물은 240채,1850실을 갖추게 되었다. 엄청난 수의 태학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려는 의도 높아서, 후한말기에 태학은 [[청류파]]의 거점이 되어 외척과 환관 등 부패한 중앙 정치에 저항하는 역할을 했다.
  • 토리코 . . . . 6회 일치
         다양한 맛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미가 토리코와 요리사 코마츠가 만나 함께 모험을 떠난다.
          * [[미가(토리코)|미가]]
          * [[미세포]]
          * [[미회]]
          * [[재]]
  • 토리코/369화 . . . . 6회 일치
          * 그리고 GOD는 이 행성의 최상위 포자. "구르메 일에 의한 종의 대멸종"은 사실 허구였고, 구르메 일 때 올라온 GOD가 보이는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 달도 순간에 먹어채운 GOD는 다시 토리코 일행을 공격한다.
          * 잘 보면 GOD가 등장하는 방은 포유류의 수정방과 닮았음을 알 수 있다.
  • 토리코/378화 . . . . 6회 일치
          * 아이마루는 난생 처음 진정한 "욕"을 느꼈다며 에리어0로 뛰어들고 브란치는 지중에서 무언가의 움직임을 느낀다.
          * 아이마루는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욕"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 지금까지 구르메 나이트인 그는 사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판단했지만 에리어0에 와서 처음으로 "먹는다는 목표"가 생겼다.
          * 브란치는 더이상 그를 말리지 못하고 운을 빈다.
          * 그는 견습생 시절 B급 재에도 쩔쩔매던 것을 떠올린다.
          * 그것은 코마츠. 게다가 오오타케가 까다로워하던 재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 토리코/391화 . . . . 6회 일치
          * 그외에도 다양한 재가 끝도없이 쌓여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 한켠엔 본 적도 없는 재가 끝없이 쌓여있는데, 그 가운데 뜻밖의 인물이 보인다.
          * 아카시아는 어차피 차지에 시간이 걸리는 기술이라며 코웃음을 치는데 록왕 스카이디어의 백채널로 순간에 차지가 끝난다.
          * 그는 모두가 희망의 탁에 앉게 될 거라며 자신과 동료들의 결의를 믿어의심치 않는다.
         다른 팔왕들은 변변한 활약도 없이 그대로 리타이어. 사천왕은 그 팔왕 만큼의 기여도 못해보고 순간에 사라졌다. 뭔 일이 생겨도 절대 위험하지 않던 코마츠도 하반신이 사라지는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대로는 사망 확정?
         이치류가 발견한 시체들과 재의 산은 네오가 먹어치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디로 소멸된게 아니라 영혼세계에 봉인되어 버렸던 걸로 보인다. 플로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의외라는 의견이 많은데, 원래 영혼세계에 플로제가 있었고 어나더를 조리할 때도 조력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 트로피코 4/인물 . . . . 6회 일치
         모던 타임즈 캠페인에서는 대통령 각하가 휴가가면서 맡긴 트로피코를 말아먹는다. 반란군을 없앤다고 농장을 죄다 불태웠고, 그 결과 량 부족 현상이 일어난 것.
         대통령 각하와는 애인 관계로 보인다. 초등학교를 열었을 때 늙은 선원도 얼굴이 빨개질만한 책을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가져와서 낭독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임 내에서는 지인의 주장을 대변한다.
         정책을 제안할 때 "그분"의 계시라는 의 대사를 자주 친다.
         캠페인에서 영국 정부가 반대하는데도 무명의 섬을 냅다 영국 민지로 만드는 걸 보면 한가닥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막장 블랙코미디물이라 그런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대통령 각하의 사업 파트너였지만 대통령 각하가 몰락하자 "난 당신 모르오"라며 내쳐버린다. 결국 각하의 첫번째 복수 대상이 되어 프루타스 주의 과반수를 빼앗기고 해고당한다. 마지막 발악으로 올림픽 개최지 후보 세곳을 후원했으나 트로피코가 올림픽 개최지가 되며 알거지가 된다.
  • 페어리 테일/502화 . . . . 6회 일치
          * 그런데 제이라가 이때까지 사라지지 않았지만 메이비스가 의을 되찾으면서 점점 사라진다.
          * 제라는 사라지기 전 메이비스의 의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 제이라는 메이비스의 무의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녀가 의을 차리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 메이비스의 의 속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는 두 소녀.
          * 브랜디쉬는 간신히 의이 붙어 있었는데 폴류시카가 긴급히 조치한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6회 일치
          * "부모와 자간의 사랑"에 집착했돈 오거스트. 사실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은 제레프였다.
          * 오거스트는 아직도 "부모와 자간의 사랑"에 집착하고 있지만 싸우는데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는 "부모 자 간의 사랑 따위"라고 중얼거리며 카나를 지팡이로 찌른다. 길다트가 몸을 던져서 그 앞을 막지만 이전 아크놀로기아가 뜯어먹은 왼팔의 의수 부분을 관통 당한다. 카나는 무리하지 말라고 염려하는데 오히려 길다트는 딸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겠다며 투지를 끌어올린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만 생각하고 살았지만 애가 생기니 그게 전부 아이를 위한게 되더라며 신기하다고 말한다. 카나는 전투 중인 것도 잊었는지 지금도 실컷 싸돌아다니지 않냐고 핀잔을 주는데, 그것도 카나가 아버지를 껄끄럽게 여기는 것 같아서 한 행동이다. 만약 카나가 같이 있어주길 원한다면 언제까지라도 곁에 있겠다고 하는데 역시 카나는 그런건 싫다고 질색한다.
          * 페어리 테일 길드에서는 분노한 [[제레프 드래그닐]]이 쓰러진 [[라케이드 드래그닐]]을 짓밟는다. 제르프는 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왜 자신을 공격하냐고 묻는 라케이드에게 "나에게 아이 따위는 필요없다"고 폭언을 내뱉는다. 죽어가는 라케이드는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자신은 자이라고 항변하는데 제레프는 비웃을 뿐이다.
          라케이드는 제레프의 자 같은게 아니었다. 그저 [[나츠 드래그닐]]을 END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실험체일 뿐이다. 단지 그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기에 "드래그닐"이란 성을 부여한 것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인 주제에 자신과 나츠의 싸움을 방해하다니, 그는 라케이드를 "덜 떨어진 놈"이라 부르며 걷어찬다. 너무 심한 처우에 보고 있던 나츠 조차 그만두라고 끼어든다. 오로지 나츠와 대결에 정신이 팔린 제레프는 라케이드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돌아서버린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마력을 가진 아이는 살아남았다. 그는 프레히트를 원망하진 않았다. 자신의 부모에 대한 것도 마력을 통해 기억을 되살려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연고가 없는 어린아이였기에 삶은 힘들었다. 사는 민가에서 도둑질을 해서 해결했고 무엇을 하든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아버지, 제레프였다. 숲을 방황하던 아이는 우연히 제레프와 마주치고 그가 누군지 깨닫는다.
  • 페어리 테일/527화 . . . . 6회 일치
          * 오거스트는 무슨 일이 생겨도 카나만은 지키려는 길다트의 노력을 보고 새삼 부모자 간의 사랑에 대해 곱씹는데, 그때 마침 근처에 있던 메이비스를 발견한다.
          >자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부모가 있을리 없으니까.
          * 오거스트의 의은 몸이 재로 변하고 나서도 남아 있었다. 그는 마지막 의을 모아 유언을 전한다.
          메이비스는 어떤 존재를 느끼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섰을 땐 아무도 없었고 오거스트의 의을 담았던 재도 허공으로 흩날려가고 있었다.
          * 페어리 테일 길드. 나츠의 공격으로 쓰러졌던 제레프가 몸을 일으킨다. 그는 "자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부모가 있을리 없다"는 나츠의 말에 대꾸한다.
  • 하이큐/228화 . . . . 6회 일치
          * 주장 지시도 있고 하니 히나타도 서둘로 귀가하지만 집에 가서도 개인연습을 시작한다. 학교에선 카게야마가 있으니 주로 스파이크 연습을 하지만 리시브는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 집에 있던 여동생이 기웃거리자 여동생에게도 시켜준다. 나츠는 자신만만하게 덤비지만 만만치가 않다.
          * 한편 우카이 케이신은 상점가 사람들하고 사를 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매우 좋은 소을 받은 것 같은데, 바로 봄고 대회 첫 대결상대의 시합 녹화본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봄고 대회.
         양팀 3학년들이 돌아선 뒤 잡담 내용이 웃기다. 사사야 타케히토는 의외로 핑크취향. "카라스노는 유니폼이 검은 색이라 인상이 나쁘지 핑크가 좋겠다"는 발언을 한다. 카마사키는 아마 아사히를 의했는지 수염을 길러보려고 고민한다. 카라스노 3학년들은 다테 공고에 쓴맛을 본 트라우마가 아직도 있는지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라며 호들갑 떤다. 일단 모니와는 착한 사람으로 인되나 본데 그래도 그 2학년 군단을 통솔한걸 보면 모르는 일이라고 흑막 취급을 당하고 있다.
         키노시타는 자신 때문에 카라스노가 전력 공백을 겪고 있다고 자책하지만 사실 고등학교 스포츠에서 특정 포지션이 부족한건 흔한 일. 게다가 카라스노 정도면 선수층이 두껍지는 않아도 갖출 건 다 갖춘 팀이다.
  • 하이큐/230화 . . . . 6회 일치
          * 휴 시간에 사와무라는 작전회의를 위해 자리를 비운다. 그 사이는 엔노시타에게 인솔을 맡기는데 부주장인 스가와라 코시가 왜 자기한테 맡기지 않느냐고 항의한다. 스가와라는 분위기 타고 같이 놀기 때문에 인솔로 부적합.
          히토카는 "훈장"이라며 멋지다고 말해버리는데 곧 쓸데없는 말이라고 자책한다. 하지만 시미즈는 기쁜 말이라며 웃어넘긴다. 시미즈는 중학교 땐 사교적이지 못해 딱히 친한 후배도 없었고 카라스노에 들어온 이후에도 매니저가 안 생겨 이런 으로 이야기하는건 히토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 3학년인 시미즈에겐 마지막 기회다. 히토카도 그 말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선수들은 각자의 방으로 밤을 맞이한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런닝 삼매경. 츠키시마의 생각과 달리 쉽게 돌아오지 못할 듯하다. 아즈마네를 중심으로 동영상에 푹 빠진 파. 니시노야는 속편하게 자고 있다. 여관의 밤이 깊어간다.
          * 마침내 오고야 만 1월 5일. 도쿄 체육관에 당도한다. 전국 배구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 통칭 봄고대회. 배구의 갑자원이라 불린다. 히나타는 작은 거인이 싸웠던 무대라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다른 학교 선수들이 지나가다 히나타와 부딪히는데 사과도 없이 가버린다. 상당히 키가 큰 그룹. 츠키시마는 2m가 넘을 거라고 예상한다.
  • 학대의 연쇄 . . . . 6회 일치
         [[아동학대]]를 받으며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자을 학대하게 되어, [[아동학대]]가 부모-자으로 [[연쇄]]되는 현상을 뜻한다.
         반복하는 경우는 자신의 학대 경험에 대해서 자신이 나쁜 아이였기 때문에 혼이 났다고 믿어버리고, 학대라는 인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훈육 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며, 이것이 학대라는 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학대를 반복하는 부모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회상하지 않으려 하며, 이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언급하기를 거부한다. 학대를 반복하지 않는 부모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회상하여 솔직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학대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하고 있다.
         [[체벌]]이 훈육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에서는 별달리 문제시 되지 않았으나, 아동학대에 대한 의이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학대의 연쇄 역시 진지한 문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를 받다가 보호, 구조받은 아동에 대해서 면밀한 정신적 케어가 요구되고 있다.
  • 한태균 . . . . 6회 일치
         ==출신학교==
         * [[1987년]] ~ [[1990년]] : [[광영고등학교 (서울)|광영고등학교]]
         * [[1990년]] ~ [[1991년]] : [[연세대학교]]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허용 . . . . 6회 일치
         ==출신학교==
         * [[선린인터넷고등학교|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 (2000년 졸업)
         * [[경희대학교]] (2000학번-2004년 졸업)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현재원 . . . . 6회 일치
          | 소속 = [[서울 에이치 와이 스토리넷컴|서울 H.Y. 스토리넷컴]] 대표이사 <br /> 前 [[동국대학교|동국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br/> 前 [[중앙대학교|중앙대 문예창작과]] 강사
          | 학력 = [[동국대학교]] 철학과 [[학사]]
         [[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홍승규 . . . . 6회 일치
         ==출신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 [[성균관대학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
  • 홍은철 . . . . 6회 일치
         |학력= [[감리교신학대학교|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신학]][[석사]]
         * [[1978년]] ~ [[1985년]] 숭실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 2010년 ~ 2013년 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신학석사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1985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동문]]
  • 황선필(1939년) . . . . 6회 일치
         | 학력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 출신 학교 ==
         * [[경북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
  • 회맹 . . . . 6회 일치
         고대 [[중국]]의 의. 여러 제후를 모아 맹주(盟主)를 뽑아 집단 동맹을 맺는 의이다.
         회會는 여러 제후들이 시간, 장소, 의제를 정해놓고 모인다는 의미이며, 맹盟은 안건에 합의한 뒤 삽혈歃血을 하여서 맹세를 하는 의이다. 삽혈은 제물로 쓴 소牛의 피를 [[입술]]에 바르는 의으로서, 회맹의 맹주가 가장 먼저 삽혈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삽혈 의을 생략하고 구두로만 서약할 때도 있는데 이를 황성불맹荒成不盟이라고 했다. 그러나 구두 서약은 삽혈보다 신뢰성이 낮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 때문에 황성불맹은 형적인 약속을 뜻하게 되었다.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5회 일치
          * 올해도 8월이 찾아왔다. 장기회관을 찾은 [[니카이도 하루노부]]와 [[키리야마 레이]]. 니카이도가 게시판에서 반가운 소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 니카이도는 뭘 모른다는 으로 대진표를 일일히 짚어주며 설명한다. 그 내용 상으론 니카이도와 [[소야 토지]] 명인이 한 조로 편성, 니카이도가 1승만 거두면 2회전에서 대전한다. 이거야 말로 니카이도가 꿈꾸던 대결. 니카이도는 자기가 키리야마보다 먼저 소야 명인과 공전을 치르게 됐다고 으스댄다. 키리야마는 공전은 자기가 먼저 했다고 항변하지만 니카이도가 그건 기념 대국일 뿐이지 공전도 뭣도 아니라고 반박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5회 일치
          >지친 고집쟁이는 이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귀족적 방과 굽힘 없는 행동으로 그걸 보완하려 한다. 정치적으로 지친데다가 우유부단한 인물로, 자신의 무능력함이 드러나는 것을 겁내고 있다.
          * Biased Intellectual(편향적인 지인)
          >편향적인 지인은 교양있고 학구적인 자로, 이들의 학문적 성과는 다른 나라와 그곳의 국민들을 결정짓는데 편향되어있다. 편향적인 지인은 싫어하는 나라한테는 오만하고 재치있게 굴지만, 좋아하는 나라 앞에서는 알량거리며 환심을 사려고 한다.
  • MoniWikiOptions . . . . 5회 일치
          * 메뉴를지정한다. 숫자는 accesskey를 지정하기 위해 쓰이는 값이다. "alt-1, alt-4"라는 으로 지정된다.
          * 미디어위키 위키워드 띄어쓰기 사용 여부 설정
          * 이 값을 '/home/foobar/tmp' 으로 바꾸고 /home/foobar/tmp 디렉토리의 퍼미션을 777과 같이 주는 방도 가능합니다.
          * 윈도우즈 환경이라면 {{{$path='./bin;c:/program files/vim/vimXX';}}}와 같은 으로 설정한다.
  • NEC 코퍼레이션 . . . . 5회 일치
         1995년 10월에 [[NEC]]에서 소프트웨어 관련 부문이 분리되어 NEC인터채널 주회사로 창립됐다. 2004년 3월에 NEC가 보유하던 주의 대부분이 양도되어 2004년 7월 1일에 '주회사 인터채널'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이 회사 전성기는 NEC인터채널 시대로 그냥 '인터채널'로 하면 도무지 적을 정보가 없으니 이걸로 쓰자.
         주로 각종 에로게 등을 콘솔로 전연령화하여 이하면서 연명하였고, [[센티멘탈 그래피티]]를 엄청난 비용을 쏟아 만들었다가 폭망하면서 2004년에 인도될 떄 쯤에는 거의 그로기 상태. 그 이후에도 변변히 벌어들인게없다.
         * [[에로게]]를 콘솔로 이한게 많다.--회사의 성향을 알만하다.--
  • Q.E.D. 증명종료 . . . . 5회 일치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에 무관심한 15세에 [[MIT]]를 졸업한 [[천재]]소년 [[토마 소]]가 일본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해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천재들이란...] 체력과 의욕이 넘치는 [[미즈하라 가나]]와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인물설정 때문인지 오일러의 공이라든지 초끈이론이라든지 일반인으로서는 머리아픈 수학, 과학적 이론이 많이 나오는데 작가는 건축과 출신으로 과학은 취미로서 좋아한다고 한다.[* 현학적이라 장점이자 단점. 팬들은 좋아하지만 골치아프다고 포기하는 독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만화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기타 추리물처럼 오류가 있다. 이를테면 4권에서 클란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를 공격한다는 장면에서 '''MIT'''출신자인 토마와 로키가 원자력 발전소, 미사일 사일로 등을 걱정하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내용. 기술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어지간한 중요 시설은 '''물리적'''으로 일반 네트워크와는 분리되어 있다.[* 즉 아예 물리적인 서버 자체가 따로 구축되어 있다. 은행권의 경우 인터넷 뱅킹 등으로 외부 전산망과 연결되어 있고 그 틈을 노릴 수 있지만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는 네트워크'''는 공개 전산망에 이어지는 회선 자체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폐쇄 네트워크를 공격하기 위한 [[스턱스넷]]과 같은 공격기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약정한 공격행위를 하는 것뿐으로 외부에서 원격 조종하는 개념은 아니다.] 즉 직접 가서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일개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반인의 통념이라면 모르겠는데 '''MIT''' 현역이 저런 소리를 하니..
         같은 작가의 [[C.M.B. 박물관 사건목록]]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극중에서 토마가 언급한 괴짜 사촌이 바로 박물관 사건목록의 주인공인 [[사카키 신라]]. 콜라보레이션 기획으로 두 작품의 주인공이 만나는 편도 있다. 이제까지 총 2번의 기획이 진행되었으며, 해당 단행본은 첫번째가 QED 28/CMB 6권[* 이 때는 서로 다른 사건을 쫓다가 마주하게 되었다. 사건이 성격이 각각 다르기에 둘의 지능에 우열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 자기가 쫓는 사건이 아님에도 신라보다 진상 파악이 빨랐던 것으로 보이는 토마의 판정승이라 보는 의견이 많다.], 두번째가 최근의 QED 41/CMB 19권.[* 전편을 의한 것인지, 이번엔 아예 각자의 두뇌를 한껏 활용하면서 말 그대로 정면충돌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예고편 동영상이 올라오면서 뭇 팬들을 설레게 했었다. 밝혀진 결과물은 정면 충돌.
          * 작품 자체의 소재가 일반인들은 접해보지 않은 개념들이 많아. 상당히 상적인 면에서 읽어볼만하나 원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많기도 하고, 일본어 특유의 외국어 표기법(ex, 마구도나루도)으로 번역자가 그대로 해석해서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연속체 가설에서 만화책에서는 '아레후'라고 나오지만 제대로 된 명칭은 [[알레프]].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 . . . . 5회 일치
          * Regulated Buying and Selling of Stocks(통제되는 주 거래)
          * State Bond Monetary Mechanism(주체권 통화 방)
          * 통조림 품 공장을 건설 가능하게 함.
          * 통조림 품 해금
          * Old Style Family Business(구 가업)
  • 강동진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출신학교==
         * [[경북고등학교]]
         * [[한국사이버대학교]]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사이버대학교 동문]]
  • 고기 . . . . 5회 일치
         품의 일종. 동물의 살이다. 이것을 먹는걸 육이라 한다.
         옛날 [[일본]]에서는 고기를 먹는걸 금지했다. 이는 19세기 일본이 서구화를 위해 육을 허용할 때 까지 지속되었다.
          콩을 사용한 고기 모조품. 동물 고기에 비해 여러모로 떨어진다는 인이 있다.
         다른 생명을 먹기 싫다는 생각이나 고기는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해 이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채주의자라고 한다.
  • 고수희 . . . . 5회 일치
         |학력 = [[대진대학교]] 영화과
         == 출신 학교 ==
         * [[대구과학대학교]] 방송연예과
         * [[대진대학교]] 영화과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진대학교 동문]]
  • 구자춘 . . . . 5회 일치
         1950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교사 자격을 얻었다. 그 해 [[6.25 전쟁]]이 터지자 [[포병]] [[소위]]로 임관하여 전쟁에 참여하였다. 전쟁이 끝난 1954년 미국 육군학교를 졸업하였다.
         1963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경찰로 근무하여, 치안국(현 경찰청) 정보과장, 서울시경(현 서울지방경찰청) 국장, 경찰전문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뒤이어서 제주도지사, 수산청장, 경상북도지사를 차례로 맡았다.
  • 권영해 (1888년) . . . . 5회 일치
          | 학력 = 경상북도 [[대륜고등학교|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1919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 당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대대적으로 발발하였다는 소을 접하고 교회 집사 이상백(李相柏)·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전격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2일이 되자 그와 일행들은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太極旗)와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동리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횃불을 붙였으며 끝끝내 동리 야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들과 일본 헌병들에게 제압이 되며 끝내 강제로 해산되었지만 이후 이곳 민중들의 항일 저항의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만세 시위 운동 관련 계획을 다시 협의하여 1919년 3월 14일 21시경을 기하여 2백 명의 동민과 아울러 동리 야산에서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결국 일경에 피체되었다.
         [[분류:1888년 태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안동 권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한국독립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김근석 . . . . 5회 일치
         ==출신학교==
         * [[경북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청보 핀토스 선수]][[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김덕현 (변호사) . . . . 5회 일치
         김덕현은 판사 출신으로 [[1986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여성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여성문제연구실무위원장,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이사,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등을 거쳤다.<ref>김효섭.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0011071 전원위원회 구성 어떻게]. 서울신문. 2004년 8월 25일.</ref> <ref>강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0033227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한양대]. 서울신문. 2005년 2월 28일.</ref> <ref>심규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323957 <헌법재판관 5인 교체 앞두고 하마평 무성>(종합)]. 연합뉴스. 2006년 6월 11일.</ref> <ref>이하나. [http://www.womennews.co.kr/news/54417 네 번째 여성 대법관 탄생하나]. 여성신문. 2012년 8월 17일.</ref>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과 졸업(학사 학위)
         [[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김동석 . . . . 5회 일치
         1903년 [[경상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 선산면 동부리(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안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협성학교에 재학하다 중퇴하였다. 이후 [[일본]] [[도쿄]] 외국어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직전인 1945년 4월 1일 오상중학교를 개교하였으며, 1951년 9월 1일 오상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 김민수 (1983년) . . . . 5회 일치
         | 학력 =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 [[대구고등학교 (대구)|대구고등학교]]
         ! 시상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민아 (아나운서) . . . . 5회 일치
         |학력 =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학사
         * [[정화여자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 학사 (2002학번)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아나운서]]
  • 김선재 (아나운서) . . . . 5회 일치
         | 학력 = [[대일외고]] 스페인어과 졸업 <br/>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학사
         *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학사 (외교학·서어서문학)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2015년 데뷔]]
  • 김성윤 (1991년) . . . . 5회 일치
         == 출신 학교 ==
         * 율하초등학교
         * 대구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동의대학교]]
  • 김승관 . . . . 5회 일치
         || '''학력''' || 옥산초-경복중-[[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 '''지도자'''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br] 롯데 자이언츠 3군 타격코치 (2015~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보조코치 (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7~ ) ||
         은퇴 후 [[박영진(야구)|박영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모교인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의 타격코치로 부임했으며, 잠시 투수코치를 겸하기도 했다.
  • 김종덕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출신 학교==
         * [[대구칠성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 김형태(정치인) . . . . 5회 일치
         1952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동지중학교]], 대구[[성광고등학교]],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외교안보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국민대학교 졸업 후인 1979년 [[한국방송공사|KBS]]에 [[기자(직업)|기자]]로 입사하였다. 2003년까지 주로 정치부,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 니세코이/229화 . . . . 5회 일치
          * 초대장이란 다름아닌 청첩장. 소을 들은 슈는 루리에게 결혼하자고 조른다.
          * 마이는 쿄코 선생님에게도 소을 전한다.
          * 결혼 소을 듣고 자기들한테는 왜 왕자님이 나타나지 않냐고 좌절한다. 가게가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다고 투덜댄다.
          * 이치죠는 유이에게도 소을 전한다.
          * 결혼의 웨딩케잌을 맡겠다고 자청. 시제품을 막 완성했다.
  • 마기/306화 . . . . 5회 일치
          * 오로지 친자의 육체만이 적합하기 때문에 옥염이전에는 그 어머니, 또 이전에는 어머니의 어머니로서 자을 낳아왔던 것.
          * 자신이 낳은 자들을 희생가며 육체를 갈아타온 것이다.
          * 덤으로 자신의 전생방을 알려준 탓에 "지금 백영의 육신이 죽으면 부활하지 못한다"는 약점까지 노출해 버리고 만다.
          * 반대로 마지막 페이지의 편집자 멘트가 "복수를 극복한 아들 백룡에게 끓어오르는 애증"이라고 되어 있는 점, 백룡 백영만큼은 자신이 낳은 친자이라고 인증한 점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모성애"가 발현된 것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아르바의 마지막 대사(그 분만이 소중하다. 그것 뿐이다)의 의미도 자연스러워진다.
  • 마기/345화 . . . . 5회 일치
          * 연구할 거리가 생기자 이곳의 무한한 시간이 득이 됐다. 사람들은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가며 수을 시험해 본다. 그 옆에는 와히드의 코치로 알리바바의 특훈이 시작됐다. 마법을 짜도 알리바바가 발동을 못하면 허사다. 그래서 알리바바가 마법을 쓸 수 있게 훈련시키는 건데, 애초에 마법사가 아닌 그의 입장에선 돌에대고 명령을 하는 느낌이라 뜨악하기만 하다.
          테스는 자신이 왜 그런 마음을 가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또 한 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건 아마 마법수을 만들며 옥신각신하는 어른들의 변화와 같을 것이다. 알리바바는 그것을 보며 뭔가를 생각한다.
          * 마법 연구도 특훈도, 그리고 수인족들의 또 다른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마침내 마법진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수인들이 작업하던 것은 돌을 사용한 인공신체다. 거대한 석상 형태. 알리바바가 현세로 돌아가려면 몸이 필요한데 이게 그걸 대신해줄 것이다.
          * 알리바바는 셋타와 와히드의 특훈을 마쳤다. 그는 주변의 돌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있게 됐다. 하지만 그건 1단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만든 수은 차원과 차원을 잇는 대마법이다. 그걸 통과해서 현세로 갈 것이다. 알리바바는 혹시 그걸 통해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냐고 묻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차원을 연결한다 해도 산 육신으로 버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죽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마법인 셈. 지금부터 알리바바는 가짜 몸에 들어가서 연결된 차원을 건너가는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이곳 시간으로 100년, 혹은 200년으로 느껴질만큼 길고 험난한 훈련. 와히드는 그걸 견딜 수 있겠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 마치콘 . . . . 5회 일치
         마치콘(街コン)이란 콘파에서 이름을 따온 이벤트로서, 지역 진흥과 만남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이벤트이다. 마치콘의 형은 동성 2인 이상 1조가 되어, 개최 지역의 정해진 음점을 순회하는 것이다. 각 점포에서 팔찌 등의 참가증을 제시하면, 이벤트 시간 이내에 동일한 가격으로 사와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참가자는 100명 이상, 3000명 가량이 되는 경우도 있다.
         "콘파(コンパ)"란, 주로 학생이나 젊은이가 벌이는 회 모임을 뜻한다. 독일어 Kompanie , 영어 company , 프랑스어 compagnie 등에서 유래하는데, 메이지 시대에 학생들이 돈을 모아 술이나 음을 모아서 사먹으면서 환담을 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컴퍼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이후 세대의 대학에 계승되면서 "콤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마치콘은 여기에 거리를 뜻하는 '마치'를 붙여서 대학이나 학생 중심이 아닌, 지역 중심의 만남의 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바키도/115화 . . . . 5회 일치
          * 도쿠가와는 무사시와 야외에서 사를 하는데 파리가 꼬인다. 무사시는 젓가락으로 날개만 잡아서 뜯어내는 신기를 펼친다.
          * 피클은 지하격투장에서 음을 전폐한 채로 "야생의 베스트 컨디션" 만들기에 여념없다.
          * 도쿠가와는 이거야 말로 "무사시는 사 때 꼬이는 파리를 젓가락으로 잡았다"는 일화의 기원이라고 생각한다.
          * 사를 마친 후, 무사시는 피클이 그를 먹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 피클은 벌써 엿새째 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고 있다.
  • 박근영 (야구인) . . . . 5회 일치
         ==출신 학교==
         * [[대구고등학교]]
         * [[경남대학교]]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 박성우 (정치인) . . . . 5회 일치
         *[[상주대학교|상주공립농잠학교]] 졸업
         ** 외손자: [[이승하]](시인, [[중앙대학교]] 교수)
         |같은 지역구 의원 = (상주군 을)[[백남 (1901년)|백남]]
  • 박승효 . . . . 5회 일치
         *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
         * [[경북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상과대학<ref name="daeghanj"/>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최고 경영자]][[분류:SK그룹]][[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연우 . . . . 5회 일치
         | 학력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졸업<br>[[중앙대학교]] 경영학 석사<br>[[중앙대학교]] 대학원 산업경제학과 경제학 박사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박정수(정치인) . . . . 5회 일치
         1932년 2월 9일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던 195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958년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65년에는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과 함께 미국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1968년 무임소장관 보좌관을, 1973년 [[국민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 박종준 . . . . 5회 일치
         1964년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서 태어났다. 공주중동초등학교, 공주봉황중학교,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경찰대학]] 행정학과,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학사]]과정을 졸업하였다.
  • 백성현 . . . . 5회 일치
         | 한우
         | 길충
         | 심대
         | [[울학교 이티]]
         ! 시상
  • 베이식 (가수) . . . . 5회 일치
         | 이름 = 베이 (Basick)
         '''베이'''(Basick, {{본명|이철주}}, [[1986년]] [[8월 12일]] ~ )은 [[이노베이터]]와 같은 [[더블 트러블]] 멤버이자 힙합 가수이다. 본관은 [[광주 이씨|광주(廣州)]]로 베이은 2007년 2월부터 리드머 스튜디오를 통해 처음 가사를 쓰고 랩을 시작해 꾸준히 활동하다, [[2007년]] 여름 Z-juc 의 앨범을 통해 데뷔를 했다. [[DJ Soulscape]] 창작과 비트 Rap Competition 에서 2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ref>[http://www.openmic.co.kr/bbs/bbs/viewbody.html?code=bbs_3&category=61&page=1&sort=1&number=210813&keyfield=&key= DJ Soulscape 랩컴피티션 발표]</ref>, 2007년 11월, 크루 [[Jiggy Fellaz]]에 영입되었다. [[이노베이터]]와 함께 [[더블 트러블]]을 결성했다. Jiggy Fellaz의 Vasco가 설립한 Independent Record로 거처를 옮겼지만 Vasco의 이혼으로 레이블이 와해되며 현재 [[RBW]]와 계약을 맺었다.
         * [http://rbbridge.com/pages/artist6 베이] - [[RBW]]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 이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힙합 가수]][[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지기 펠라즈 음악가]][[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
  • 벤 존슨 . . . . 5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도널드트럼프 45대 대통령취임때 멜라니아트럼프여사손잡았다!!고전해진다! 벤존슨군은 멜라니아여사에게최면을걸었다고한다! 도널드트럼프취임이끝이났다!
         두번째로뒤이어서취임이또개최가된다!! 벤존슨이 제1대 대통령으로취임을개최가된다 이때 멜라니아여사가참석을한다 멜라니아여사는벤존슨의영부인이된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5회 일치
          * 아스타, 매그너 스윙, 고슈 아들레이, 락 볼티어의 활약으로 스코어는 순간에 9:5로 벌어진다.
          * 챠미는 여기서도 자신의 마법으로 음 만들어 먹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 야미는 벌로 일주일간 금시키겠다고 선언.
          * 아스타는 보이는 족족 베어가며 단순무하게 돌진하고 있다.
          * 챠미가 백야의 마안의 마도사도 순간에 리타이어 시켰던걸 생각하면, 챠미를 쓰러뜨린 해저의 마도사는 굉장히 수준이 높다.--더러운 수면기--
  • 서든어택 2/무기 . . . . 5회 일치
         ||M4A1 소총은 베트남전 때부터 제기된 M16의 카빈(단축형 소총) 소요를 맞추기 위해 등장한 M4 소총의 개량형으로, 총열을 굵게 만들어 연사 능력을 높힌 총이다. 1997년에 제 채용되어 장갑차량 승무원과 기계화보병, 특수부대 중심으로 보급이 시작되었으며, 2001년 대테러 전쟁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다양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어 전군에 지급하기 시작, 이제는 미군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버릴 정도로 모든 병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프랑스군의 제 돌격소총으로 그 독특한 외모 때문에 군용 불펍 소총으로는 일반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소총이다. 적지 않은 부분에 경화 플라스틱을 적용해서 경량화를 시켰으나 그럼에도 꽤 무거운 편으로, 불펍 특유의 뒤로 치우친 무게중심과 높은 발사속도 때문에 반동 통제가 어렵다는 결점이 있다. 그럼에도 신뢰성과 명중률은 상당히 높아 우수한 소총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9년 오스트리아군의 제 저격소총으로 채용되어 이후 한국의 707특임대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군경에게 널리 사용된 저격소총이다. 그러나 개발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소총이고, 주력 탄종인 7.62 NATO 역시 신형 탄약이 다수 등장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저격총 탄약으로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사거리와 살상력이 부족한 편이다.||
         ||1951년에 등장한 펌프액션 산탄총이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근접전 및 실내전에 산탄총을 즐겨 써 온 미군과 각국의 군 기지경비대, 경찰들이 대량으로 사용해 온 베스트셀러로, 총 생산량은 민간 사냥용을 포함해서 1천만 정을 넘는다.
  • 서울특별시/인물 . . . . 5회 일치
         * [[김인]] - 성북구
         * [[김유]] - 송파구
         * [[임현(BTOB)|임현]] - 도봉구
         * [[우원]] - 성동구
  • 서지훈 (1997년) . . . . 5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managementkoo.com/bbs/board.php?bo_table=star_1&wr_id=58&sca=actor 공사이트]
         | 이상한 나라의 특별
         | [[학교 2017]]
         | 민
         ! 시상
  • 성세현 . . . . 5회 일치
         ||<:><#87CEEB>'''{{{#white 학력}}}'''||<:><#ffffff> 의성공업고등학교[br]경북과학대학교 사회체육과[br]안동대학교 체육학과 ||
         고등학교 때 컬링을 시작했다. [[의성군]]에 [[경북컬링훈련원]]이 생겼을 당시 의성공고에 부임했던 김양 교사는 의욕이 없는 학생들에게 자신들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기 위해 컬링 동아리를 만들었다.[[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47&aid=0001951039|#]]
  • 세종 . . . . 5회 일치
         그러나 이처럼 정력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직접 일을 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섭 문제(육을 너무 좋아했다)와 겹쳐 각종 성인병에 시달려 고생하였다. 이 때문에 만년에는 세자(후의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기도 하였다.
         자으로는 [[문종]], [[세조]], [[안평대군]] 등이 있다. 그 아비에 그 자인지 다들 능력은 걸출했다. ~~(세조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후레자이지만)~~
  • 송아영 . . . . 5회 일치
         1963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에서 태어났다. 세종교동초등학교, 세종[[조치원여자중학교]], 대전[[충남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한국영상대학교]] 음악과 [[교수]]를 지냈다.
  • 송정현 . . . . 5회 일치
         |청소년 클럽=[[아주대학교]]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대구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유독 [[FA컵 (대한민국)|FA컵]]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해 'FA컵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이 '송'씨인 것에 착안하여 '쏭'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경북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송종호 (1956년) . . . . 5회 일치
         * 1975년 : [[계성고등학교]] 졸업
         * 1982년 : [[영남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 2013.05 ~ : 경일대학교 경영학부 석좌교수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중소기업청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
  • 송주훈 . . . . 5회 일치
         || '''학력''' || 광명공업고등학교 (2009~2012) [br] [[건국대학교]] (2012~2014) ||
         광명공고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입학해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이후 [[J리그]]로 진출하여 2014년 [[J1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 최초로 입단했으나, 한국 대표팀 소집 훈련 중 턱 부상을 당해 큰 수술을 했고 이후 재활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2경기 출장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에는 [[http://cafe.naver.com/jliga/24009|다리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으면서 전치 3개월 판정을 받았고,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팀의 배려로 재활과 출전 기회 획득을 위해 [[J2리그]]의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되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유럽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김영권]]의 대체 선수로 송주훈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이 들려와 이적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8&aid=0002571906|#]] 광저우에서 [[김형일(축구)|김형일]]을 대신 영입함에 따라 광저우 이적은 무산되었고, 결국 2017년 임대가 만료되어 본래 팀인 니가타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819043605956304899|#]][* 그러나 2017년 슈퍼 리그의 외국인 쿼터가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각 구단들은 더욱 고연봉인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벤치워머]]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중국 이적이 무산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 실제로 송주훈 대신 이적한 김형일 역시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방출되었고, 반대로 송주훈은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있으니 정말로 일본에 남은 것이 이득이 된 셈이다.]
          * U-23 대표팀에서 함께 활동 중인 [[박용우(축구선수)|박용우]] 선수와는 [[건국대학교]] 동기이다. 다만 서로 부상당했던 시기가 달라 송주훈이 부상에서 복귀하면 박용우가 없고, 박용우가 부상에서 복귀하면 송주훈이 없는 기이한 (...) 로테이션과 더불어, 송주훈은 대학 생활을 일찍 마치고 J리그로 진출했기 때문에 정작 친해진 것은 대표팀에서 다시 만난 이후라고 한다.
  • 신동주(야구) . . . . 5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 최문호(1993) || → ||<:> '''신동주(1994~2000)''' || → ||<:> [[강영]](2001) ||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태(1969)|김기태]](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상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태(1969)|김기태]]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러나 [[김기태(1969)|김기태]]와 [[마해영]] 등 거포영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상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초 [[강영]]과의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해태-KIA에서도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후 KIA로 이적한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친정팀인 삼성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오고 이듬해인 2006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영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4년부터 정 코치가 되어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결정됐는데, 실제로는 1군 선수단과 동행 중이다. 2015년부터 1군 타격코치로 [[김한수]]와 같이 타격코치를 맡게 됐다.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5회 일치
         * 이 일을 어느 당에서 동료 암살자들과 이야기한다
         * 이 당은 "아즈사"라는 부인과 "호타루"라는 딸이 꾸려가고 있는데, 암살자들은 연극 연습이라는 핑계로 이런저런 암살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맨날 깔끔 떠는 것과는 달리 자기 아지트는 돼지우리. 완제품이나 레어한 컵라면, 화장품, 덮밥에 딸려오는 생강절임, 재사용 중인 나무젓가락 등등 온갖 지저분한 물건들이 다 쌓여있다.
         * 이후 시카는 당에 와서 동료들에게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 그런데 사실 문제의 "문어씨"도 이 당 단골. 마침 방문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 양시영 (1944년) . . . . 5회 일치
         * [[1962년]] [[경북고등학교]] 졸업
         * [[1970년]] [[영남대학교]] 토목공학 학사
         * [[1982년]] [[영남대학교|영남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5회 일치
         >1775년의 아메리카 민지. 시민 불안과 사회적 파동이 아메리카 곳곳에 깔려있던 시대입니다. 땅과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아메리카 원주민 암살자로써, 그는 어린 국가의 혁명에 불을 지필 것입니다.
          "대표 없이 조세 없다,"를 외치며 영국에 대항하는 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당시 민지인의 40~45%가 애국자를 지지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보스턴 한구석에만 자리잡고 있다가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왕당파를 몰아내기 시작, 스토리가 끝난 시점에는 전 지역을 차지한다.
          애국자의 반역에 맞서 영국을 지지하는 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민지인 다섯명 중 하나는 열성 왕당파였다고 한다.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며 점점 세력권이 좁아지다가 메인 스토리 완결 후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 미국 독립 이후 왕당파는 아직 영국령으로 남아 있던 [[캐나다]]로 도주했다.]
  • 에릭 (가수) . . . . 5회 일치
         *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연극전공 (학사)
         에릭(Eric Moon, 문정혁)은 대구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1979년 2월 16일에 태어났다. 그는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바로 몇 개월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서를 졸업했다. 그는 미국에서 캐스팅되어 한국으로 귀국해 [[SM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는 연습생이었을 때 [[앤디 (가수)|앤디]]와 같이 [[S.E.S.]] 1집 수록곡인 'I'm your girl' 랩 피쳐링을 하였으며, [[S.E.S.]]와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에릭은 [[1998년]]에 [[신화 (음악 그룹)|신화]]에서 영어 랩을 담당하는 이국적인 외모 이미지로 데뷔를 하였다.
         * 2003년 [[MBC TV|MBC]] 《[[나는 달린다]]》 ... 신상 역 (조연)
         * 2004 [[한국광고주대회]] 광고주의 밤 시상 광고주가 뽑은 좋은 모델상
         [[분류:신화의 일원]][[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여정남 . . . . 5회 일치
         * [[경북고등학교]] 졸업
         *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경북대 학생회장.
         * [[1969년]] 경북대학교 복학.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영국 요리 . . . . 5회 일치
         제국주의 시대, 대영제국의 민지는 [[인도]], [[홍콩]]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통하여 중국 요리와 인도 요리의 비법이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영국인들은 요리에서는 전 세계 어떤 문화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어, 집요하게 인도 요리와 중국 요리의 장점을 영국 요리에 받아들여 영국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켰다. 현재 [[만한전석]]은 영국에만 남아 있다.
         근대에는 또한 맛 뿐만이 아니라 건강과 영양에 대한 관심도 대두되어, 영국 요리는 건강영양으로 개량되었다. 건강영양을 먹은 영국 병사들은 높은 전투력을 발휘하여, 대영제국이 군사적으로 명성을 떨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인덱스 : 오늘도 형편없어. 음 쓰레기 좀 그만 먹여. 토우마.
         픽션에서도 이처럼 영국 요리의 명성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영국계 캐릭터=[[미가]]라는 [[클리셰]]가 있을 정도.
  • 오하라이 . . . . 5회 일치
         [[일본]] [[신도]]의 주술 의. 재앙이나 부정을 씻어내고 퇴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 무속의 [[굿]]과 비슷하며, 굿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본래 신도의 의의 하나지만, 민간에서는 나쁜 영적 존재에 홀리거나 했을 때, 영적 존재를 퇴치하고 쫓아내는 의을 포괄하여 말하기도 한다.
         의을 할 때는 대개 신관이 [[고헤이]](御幣)를 흔들면서 축문을 외운다.
          * 교통안전(交通安全)이라고 해서 자동차가 안전하게 다니도록 하는 축원의도 있다.
  • 왝더독/줄거리 . . . . 5회 일치
         선거 직전, 일행은 "알바니아의 숲 속에서 찾아낸" 슈만 상사의 귀환을 열기 위해 군대에서 슈만 상사를 인수받는다. 슈만 상사는 [[수녀]]를 [[강간]]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 육군 교도소에 수감된 정신 이상자였다. 귀환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악천후를 뚫고 비행하던 비행기는 슈만의 난동으로 추락하고, 일행은 멕시코인 [[불법체류자]]가 모는 콤바인을 타고 귀환장으로 향한다. 이 와중에 슈만은 중간에 들른 상점 주인의 딸을 강간하려다 상점 주인의 [[총기|총]]에 맞아 죽는다.
         어찌어찌 귀환장에 도착한 일행. 슈만의 영결을 진행하는 동안 브린과 모스는 TV를 본다. TV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대까지 올라갔다는 내용의 방송을 하며 그 공을 홍보 영상에게 돌린다. 모스는 자신의 업적을 병신같은 홍보 영상 따위에 빼앗긴 것에 분노,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브린과 말싸움을 하다 자리를 떠난다. 이후 요원들이 모스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간다.
  • 우라 게시판 . . . . 5회 일치
         일본 인터넷에서 학교 등 특정 단체에 공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사이트로서, 그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게시판. 익명 게시판 형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주로 학교 같은 것에서 만들어지고 학생들에게 관리가 된다. 때때로 개인정보 유출, 온라인을 통한 집단괴롭힘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DC 인사이드의 학교 갤러리나, [[대나무숲]]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 원피스/828화 . . . . 5회 일치
          * 푸딩은 빅맘이 해적단의 강화를 위해 마음대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들 대부분은 자유롭게 사는 걸 포기하고 있다고 밝힌다.
          * 자들 중엔 이미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있어서 결국 빅맘 해적단은 정말로 가족으로 이루어진 해적단.
          * 일행은 량을 챙겨서 써니호로 돌아오는데, 페콤즈는 보이지 않고 그가 남긴 걸로 추정되는 메시지만 발견한다.
          * 그는 "(전투가)4시간이나 걸렸다"면서 동생(상디)의 결혼에 가야 한다며 남자를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 초콜릿 섬에는 초콜릿 햄버거나 초콜릿 튀김 같은 음이 잔득 있다.--영국이었냐 여기--
  • 원피스/842화 . . . . 5회 일치
          * 루피의 위장은 한계에 당했고 큰소리 친것과 달리 슬슬 포기하려고 하지만 나미는 "루피야 말로 해적왕이 될 남자"라며 욕에도 끝이 없다고 부추긴다.
          * 빈스모크 일가는 결혼 참석을 위해 케이크 성으로 출발한다.
          * 나미는 "네가 사황의 간부 나부랭이라도 루피는 해적왕이 될 남자이며 욕도 무한대!" 라고 소리치며 또 비를 만들어 뿌린다.
          * 이건 붓기를 빠르게 빼는 팩인데 몸의 정상적인 반응을 억제하는 방. 따라서 실제로 상처가 낫는건 아니고 오히려 몸에 나쁘다.
          * 회상을 마친 상디는 "공룡 시대부터 상"이라고 얼버무린다.
  • 원피스/856화 . . . . 5회 일치
          * 상디는 쓰레기같은 가족이라도 구해주고 싶다고 고백하고 루피는 그거야말로 상디다운 일이라며 그들이 을 엉망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 도시락을 완한 루피는 미라같이 말랐던 신체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상디는 "먹었으면 돌아가라"고 말한다. 루피는 당연히 상디도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상디는 세 가지를 들어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렇기에 나는 결혼에서 도망칠 수 없어!
          >이 시작되면 이제 나 혼자선 아무 것도 막을 수 없는데!
          >우리가 있어! 을 때려부수자!!
  • 원피스/874화 . . . . 5회 일치
          * "번개는 번개를 좋아한다"는 나미의 추정대로 제우스는 블랙 볼을 맛있는 간으로 여겨 정신이 팔리고, 이 때문에 빅맘은 제우스에서 떨어진다.
          * 다과회와 결혼이 엉망이 되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고대해 마지 않았던 웨딩 케이크까지 엉망이 되어 먹을 수 없다. 숨가쁘게 이어진 기막힌 사건들 때문에 빅맘 [[샬롯 링링]]의 탐이 폭주한다. 한때를 모면하기 위해 [[샬롯 페로스페로]]는 웨딩 케이크는 밀집모자 일당이 가져갔다는 거짓말을 하고, 빅맘은 그 말에 따라 직접 밀집모자 일당을 뒤쫓는다. 뇌운 "제우스"에 탄 빅맘은 놀라운 속도로 돌아와 "킹밤"을 타고 도주하던 밀집모자 일당을 따라잡았다. 역시 밀집모자 일당을 추격하던 빅맘 해적단의 병력들은 빅맘이 하늘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앞질러가자 이상하게 여기나 곧 그녀의 먹부림이 도진 것임을 알아차린다.
          나미의 판단이 정확했다. 느긋한 얼굴로 빅맘을 태우고 다니던 제우스는 근처에 떠다니는 작고 검은 뇌운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빅맘이 다시 한 번 위국을 쓰려고 나폴레옹을 치켜들었던 그때, 제우스는 임무도 팽개치고 블랙볼을 따라 방향을 돌렸다. 빅맘은 발 밑이 흔들리면서 땅바닥에 위국을 꽂았고 자신도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주인을 닮아도 너무 닮은 제우스는 빅맘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줄로 늘어선 블랙볼을 차례로 맛보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때까지 상공에서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이 어이없는 실수에 뜨악해한다. 나폴레옹도 황당해한다. 둘이서 질책해도 간에 정신 팔린 제우스는 들은 척도 없었다. 그 사이 킹밤은 반토막난 몸으로도 바람 같이 달려서 유혹의 숲으로 향했다.
          * 나미는 유혹의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쪽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맞는 판단이었다. 유혹의 숲의 나무들, 지형들은 그들의 주인인 킹밤이 나타나자 경례를 붙이며 길을 텄다. 그들이 열어준 길 끝에 해안에 정박 중인 사우전드 써니호가 보였다. 이제 해안까지 일직선. [[캐럿(원피스)|캐럿]]이 역시 나미는 대단하다며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상디]]도 눈이 하트가 돼서 나미를 찬양하는데 여념없다. [[징베]]는 달리 칭찬하진 않았지만 "빅맘이 제우스를 타지 못하면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나미의 작전에 감탄한 듯 하다. 나미는 징베의 말에서 방금 자신이 농락한 구름이 "제우스"란 이름인 걸 알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려서일까? 제우스가 일행을 쫓아왔다. 징베는 벅찬 상대라며 경계했지만 이 구름에겐 싸울 의사가 없었다. 먹을 걸 구걸하러 왔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자기가 먹은 "작은 먹구름"에 극찬을 늘어놨다. 그런 음은 처음 먹어 본다며 더 달라고 청했다. 아주 농후하고 목넘김이 훌륭한 구름이라나. 루피는 대뜸 "그런것 보단 태워달라"고 요구하는데 제우스도 썩 싫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한테 혼을 준 마마 밖에 못 태우니까 무리"라고 대답한다. 루피는 "단순한 구름"이라고 실망. 하지만 쭉 듣고 있던 나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인다.
  • 원피스/881화 . . . . 5회 일치
          * 그린룸이란 거대한 파도가 휘감기는 순간 생기는 파도 속 공백지대, "파도의 방"이다. 어인족들이 놀이터처럼 이용하는 곳. 징베는 그곳으로 배를 몰고 있었다.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일행은 어리둥절하다. 징베는 멋진 배와 멋진 항해사가 있으니 조타만 좋다면 이 배는 무적이라며 그대로 그린 룸을 타고 파도를 가른다. 나미는 이만한 배를 수족처럼 다루는 징베의 조타 솜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무사히 항해를 계속하는 써니호. 하지만 빅맘 측은 써니호가 완전히 삼켜져 침몰했다고 착각한다. 빅맘이 파도를 일으켰을 땐 당황했던 페로스페로도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그는 그 소을 전보벌레도 빅맘 해적단 전체에 전달한다.
          * 미러 월드의 빅맘 해적단 병력들도 그 소을 접했다. [[샬롯 카타쿠리]]의 전보벌레에서 그 소이 흘러나오자 루피는 믿기지 않는 듯이 거울조각으로 일행을 부른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다. 밀집모자 일당의 전멸이 기정사실화되고 [[샬롯 브륄레]는 새로운 거울로 진군할 필요도 없겠다며 작전을 중지시킨다. 그런데 부하들은 여전히 거울 너머에 아무런 일도 없다고 이상해 하는데, 그때 갑자기 거울이 깨진다. 그리고 미래를 예지하는 카타쿠리 만큼은 페로스페로의 공지에도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 루피가 눈치 빠르게 빅맘 해적단의 눈을 피해 응답한다. 곧 일행이 무사하다는 소과 배의 모든 거울이 깨졌다는 소을 받는다. 일행은 루피가 귀환할 수 없게 됐다고 하지만 루피는 "어떻게든 하겠다"고 대답한다. 나미가 아무 대책도 없이 잘 되겠냐고 잔소리한 뒤 자신들은 곧 카카오 섬으로 향한다고 알린다. 도착은 약 10시간 뒤. 심야 1시가 될 예정. 나미는 반드시 "그녀석"을 날려버리고 카카오섬으로 이어지는 거울을 찾으라고 말한다. 나미는 거기서 만나자고 확인하듯 루피의 대답을 기다리지만, 루피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카타쿠리의 공격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공격의 여파로 루피가 가지고 있던 거울 조각이 부스러진다.
  • 유재한 (1955년) . . . . 5회 일치
         * [[경북고등학교]](1973년)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1973년 ~ 1977년)
         * 국방대학교 파견(2003년 1월 ~ 2004년 8월)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유한식 . . . . 5회 일치
         ||<:> 제35대 [br] 최준섭 [br] ,,,(권한대행 박영수),,, [br] ,,,(권한대행 남궁주),,, ||<:> → ||<:> 제36대~37대 [br] '''유한'''[br] ,,,(권한대행 윤호익),,, ||<:> → ||<:> 연기군 소멸 [br],,,(세종특별자치시 출범),,, ||
         ||<height=40><width=20%><bgcolor=#C9151E> {{{#FFFFFF ''' 이름 ''' }}} ||<width=80%><(> '''유한(兪漢植)'''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학력 ''' }}} ||<(> [[대전고등학교]] {{{-1 ([[졸업]])}}}[br][[충북대학교]] {{{-1 (축산학 / [[학사]])}}}[br][[홍익대학교]] {{{-1 (경영정보학 / [[석사]])}}} ||
  • 윤찬수 . . . . 5회 일치
         == 출신학교 ==
         * [[경북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율리우스 네포스 . . . . 5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동로마 황제 제논은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즉위가 로마법에 비추어보아 정당성이 없다고 하여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정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비록 서로마 제국의 지배권은 잃었지만 네포스의 서로마 황제 지위는 동로마에서는 공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로마 황제 신분을 바탕과 자신과 연고가 깊은 달마티아를 근거지로 하여, 네포스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도아케르는 충성의 증거로서, 자신의 지배영역에서 발행되는 금화에서 네포스 황제의 이름과 초상화를 각인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적인 조치였으며 네포스의 통치는 달마티아에 밖에 미치지 못했다. 네포스는 오도아케르를 명목상으로는 부하로 만들게 되었는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 지배를 되찾기 위한 군사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480년, 네포스는 궁전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당시 사료에서 이 사건은 네포스의 장군 오비다가 배신했거나, 네포스의 신하가 되어 있던 글리케리우스(Glycerius)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아무튼 이 사건은 오도아케르에게는 희소으로서,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주군인 네포스가 '다른 부하'에게 시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오도아케르는 이를 명분으로 하여 달마티아를 공격하고, 달마티아를 지배하던 오비다는 패배하고 사망했다. 달마티아 지역은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당한다. 여담으로 글리케리우스는 이후로도 오도아케르의 신하로서 살아서 음모론의 소재가 됐다.
  • 은혼/630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희소이 채 전파 되기도 전에 자작제독은 [[엔죠 황자]]가 최악의 결단을 내렸다는 비보를 전한다.
          * 소요공주와 그 오빠 [[도쿠가와 시게시게]]에게 죄의을 가진 노분노부는 죽기를 각오하고 마지막 작전에 임하며 소요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당부를 남긴다.
          우주의 해방군 본부에서 무전을 보내고 있던 노부노부는 심하게 당황한다. 그는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과 함께 해방군 본진에 억류되어 있었으나 [[가츠라 고타로]] 일행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덕에 막 해방되려는 참이었다. 이 소을 전하기 위해 지구에 무전을 한 것인데 우연치 않게 그걸 소요 공주가 수신한 것이다.
          다츠마는 이 말을 끝으로 통신을 종료한다. 다츠마는 이걸로 됐냐고 노부노부에게 말을 붙이는데, 그는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다. 그런데 부하들에게서 상황 보고를 받은 자작 제독이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자작 제독은 방금 전 다츠마가 전했던 희소이 무색하게 최악의 소을 알린다.
  • 이광호 . . . . 5회 일치
         '''이광호'''([[1963년]] ~ )는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교수이다. [[1963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의문학]]》 편집위원(1992~1999), 《포에티카》 편집위원, 《[[문학과사회]]》 편집동인(1999~2010)을 역임했다. [[2001년]] 제13회 「[[소천비평문학상]]」,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상]]」, [[2007년]] 제18회 「[[팔봉비평문학상]]」, [[2009년]] 제17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1996년]]부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도시인의 탄생》(서강대학교출판부, 2010)
         [[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이명규(국회의원) . . . . 5회 일치
         1956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릴 때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자랐다. 대구수창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이보림 . . . . 5회 일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3~14회|1차 유닛 발표]]에서는 8계단 상승한 17위를 기록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9~20회|2차 유닛 발표]]에서는 [[비(연예인)|비]]가 '유닛G의 대표 비주얼'이라고 소개한 16위를 기록했다. 이에 '고비가 많았었는데 한 단계 순위를 높여주신 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7~28회|파이널]]의 [[킬링파트]]를 위한 안무 오디션 시작 전에는 항상 지적만 해왔던 김화영이 이보림에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솔직한 말로 너무 잘해 줬다'고 이야기했다. 안무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김화영이 '이제 [[의진(소나무)|의진]]이 없어도 돼?'라고 물었고 이보림은 '서서히 독립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의진도 '좋아, 얼른 가!'라고 이야기했다. 제작진이 예고 없이 보여준 가족들의 영상에서는 따로 이보림의 가족 영상은 방송에 안 나왔지만, 합숙소를 찾아와 준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은 나왔다. 마지막을 앞두고 참가자들에게 남기는 말에서는 '같이 하는 협동심을 너무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본 경연에서는 'You&I'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는데 맡은 파트가 적어서 무대에서 모습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남녀 합동곡인 'PRESENT'에서는 엔딩 파트를 맡았다. 최종 유닛 발표에서는 17위를 기록하면서 데뷔조 합류에는 실패했지만, [[연습생]] 경력도 없고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비 가수 출신 참가자가 그 많은 전현직 걸그룹 멤버 및 연습생 및 솔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온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 이시영 (1882년) . . . . 5회 일치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듬해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고 남의 나라를 삼키려는 일본을 무찌르겠다는 결연한 각오 아래 [[중국]]으로 망명,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베이징]], [[만주]]일대 그리고 국내의 각지를 그야말로 날개달린 호랑이처럼 다녔다. 괄괄한 성격의 그는 실력투쟁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윤상태]](尹相泰), [[서상호]](徐相鎬), [[정운일]](鄭雲馹) 등과 [[애국단]]이란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애국단을 조직한 그들은 우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모라는 당시 대구부호의 지원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서부자는 이름난 구두쇠인데다 민족의이 없어 말로 해서는 응하지 않을 것 같았고 더욱 서는 우재의 사돈(族兄의 妻家)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1919년]] 3월 [[3·1운동]] 직후 그는 그를 따르는 [[한위건]](韓偉健), [[김영호]](金永浩) 등 청년을 데리고 [[만주]]로 가서 [[유하현]] [[삼원포]](柳河縣 三源浦)에 [[한인무관학교]](韓人武官學校)를 설립하였다. 무관학교에서 독립운동의 인재를 길러내 힘으로 왜적을 몰아내겠다는 결심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그러나 [[1919년]] [[7월 9일]] 피로와 중독으로 병을 얻어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타계했다는 소을 들은 [[안창호]]는'문무 겸전한 우재가 갔으니 또하나 큰 별을 잃었구나'땅을 치며 통곡했고 성재 [[이시영 (1868년)|이시영]](省薺 李始榮)도 "나라의 큰 별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이예린 (1974년) . . . . 5회 일치
         | 학력 = [[명지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사
         * [[대구고등학교]] 졸업
         * [[명지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사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1994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이은수(육군) . . . . 5회 일치
         ||<bgcolor=#808080> '''{{{#FFFFFF 학력}}}''' ||<(> [[오상고등학교]] {{{-1 ([[졸업]])}}}[br][[경북대학교]] {{{-1 (법학 / [[학사]])}}} ||
         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가족관계로는 남편과 딸 하나가 있었으나 남편은 07년에 지병(암)으로 사망하였고, 부친도 이 장군의 전역 3개월 전에 별세하였다.[* 이은수 장군은 자신의 장군 취임 때 연평도사건으로 인하여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부친을 모시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의 전역 때는 부친을 꼭 모시고자 마음먹었으나 전역 3개월을 앞두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모친의 병간호로 무리했는지 사망했다.]
  • 이장훈(배우) . . . . 5회 일치
         | 학력 = 김천생명과학고등학교
         1972년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부거리길에서 태어난 이장훈은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관객을 압도하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이다. 가족 뮤지컬《피노키오》부터 미스터리 영화《물고기》, 그리고 코믹적인 요소가 가득 담긴 드라마《푸른거탑》까지, 탁월한 집중력과 진짜인지 연기인지 모를만큼 훌륭한 연기력으로 어떤 배역이든 맛있게 소화해 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는 서울호서예술전문학교 연기예술학부의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기절 전문 대대장 이장훈 역할로 [[tvN]] 《[[푸른거탑]]》에서도 맹활약하였다.
         *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뮤지컬과 지도교수(2002~2008)
         * 동서울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출강
         * 호서예술전문학교 출강
  • 이정우 (1950년) . . . . 5회 일치
         '''이정우'''(李廷雨, [[1950년]]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판석 . . . . 5회 일치
         1934년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 석우동(現 칠곡군 가산면 석우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대구대학교 상학과(현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5회 일치
          * 마신족이 브리타니아를 점령하고, 그 압제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그들이 시키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해야했다. 인간의 영혼을 먹고 사는 마신들은 마을 주민들을 살려두는 조건으로 그만큼의 인간 영혼을 요구했고, 각 마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당량을 채우려 들었다. 한때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아만드"란 이름으로 은거했던 마을에서도 그랬다. 이 마을 촌장은 여행객들을 속여 마신족에게 바쳐왔다. 그렇게 생긴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마을 공동묘지는 묘비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촌장의 어린 아들 "페리오"는 그런 아버지의 방에 반발했다. 촌장으로선 마을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선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며, 아버지나 어른들은 모두 겁쟁이고 자신이 마신족들을 다 물리치고 말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촌장은 자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그런 말을 틀어막으려 했다. 그 말이 누구 귀에 들어갔다간...
          하필이면 그 자리에 마신족이 있었다. 하급 마신은 어린애가 한 말 조차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곧 마을 광장에서 어처구니 없는 결투가 시작됐다. 마을 사람 전부가 입회인이란 명목으로 불려나왔다. 하급 마신족은 덩치가 큰 마신과 함께였다. 그는 페리오를 일방적으로 두들겨패며 본보기로 삼았다. 주민들 대부분은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페리오의 친구인 소녀 메라는 저대로는 페리오가 죽을 거라고, 어떻게든 말리려고 해봤지만 어른들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어른들은 차라리 나았다. 어떤 사람들은 촌장에게 다가가 당신의 바보같은 자 때문에 모두가 위험해졌다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촌장은 쏟아지는 눈물을 삼켰다. 죽어가는 아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 페리오는 어린애가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당하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작은 막대기에 의지해 몸을 가누며 아버지를,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신족의 악행을 꾸짖었다. 그는 언제나 성기사가 되길 꿈꿨다. 그런 자신이 괴물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고,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저급한 존재에겐 고결한 신념이 영향을 줄 수 없었다. 하급 마신이 꼬리로 페리오의 목을 졸라 들어올렸다. 이젠 질렸으니 죽이겠다면서 말이다. 이런 족속에게는 보다 직접적이고 무자비한 방으로만 행동을 고칠 수 있다.
          반은 눈 앞의 쓸모없는 것을 치워버렸다. 자신에게 치미는 화를 어찌할지 몰라 연인에게 호소를 보내봤다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돼지의 모자정에 있으면서도 그의 고통과 죄의을 고스란히 느끼고 작은 목소리로 책망했다.
  • 장남교 . . . . 5회 일치
         장남교란, 장남을 특별시 하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을 비꼬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무엇이든 "장남이니까 ~해야 한다.", "장남의 아내니까 ~해야 한다."고 부모나 친척, 주변에서 자 측에게 강요하는 것을 '장남교'라고 부른다.
         또한 장남이 아닌 자들(남동생들, 딸들)을 무시하거나 차별 대우하는 풍조도 장남교로 본다.
         설사 정처가 아무리 남편과 오랫동안 함께 부부생활을 하면서 자을 많이 낳았다고 해도 낳은 자들이 전부 딸이라면, 남편이 첩이나 애인이 사귀다가 사생아라고 해도 아들을 낳아버리면, 사생아는 '비적출자 장남'으로서 가독상속을 받을 최우선 권리를 얻게 된다.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5회 일치
          | 학력 = [[숙명여자대학교]] 무용학과 [[학사]] 졸업
         * [[경북예술고등학교]]
         * [[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7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진]][[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5회 일치
          * 문제는 타니자키와 미나모토가 산 속에서 미아가 되어 버린다. 도시는 커녕 아직 산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다. 타니자키는 GPS를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수원을 끼고 하산하는 방을 썼는데 이게 잘못돼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그들이 따라가던 강은 폭도로 이어져 길이 끊겨버린 것이다.
          * 이렇게 된 거 체력이나 회복하자고 미나모토가 간단한 요리를 하려 한다. 추운 지방이므로 일단 따뜻한 음을 먹고 체력과 체온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타니자키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이정도면 움직이면 아무렇지 않다"며 팔다리를 휘젓는다. 미나모토는 만류하는데 그런 으로 팔다리를 휘두르면 혈액순환에 나쁘도 체온이 너무 올라가 버린다. 타니자키는 너무 열이 올라서 무조건 벗어 재낀다. 그렇게 순간에 체온을 다시 떨어뜨리면 결국 체력만 소모하고 생명에 위협만 늘게 되는데.
          산노미야 시호는 어떤 조사를 위해 타니자키를 두고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려오라고 말하며 현장에 있는 더 하운드와 나오미도 따라달라고 말한다. 협력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카키는 블랙 팬텀에게 "백도어"로 이용당해 왔고 그쪽에선 다시 사카키를 지배하려 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 그 말을 들은 미나모토는 사카키를 혼자 두고 온 걸 후회한다. 본래는 ESP 감지기에 사카키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관측소에 두고 온 건데 이런 으로 악수가 됐다. 나오미는 자신이 먼저 관측소에 가보겠다고 하는데 미나모토는 혼자 움직이는건 위험할 거라 판단해서 전원이 돌아가기로 한다. 미나모토는 이 작전에 대해선 모든 것이 자신의 판단미스라고 후회한다.
  • 정봉수(역사) . . . . 5회 일치
         정봉수(鄭奉守)는 1935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옥동마을에서 부유한 농가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증산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육상을 시작해 경상북도 내 크고 작은 육상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고 시온중학교에 진학한 후 16세에 경상북도 단거리 육상 대표로 선발되었다. 1950년 육군에 입대해 육군 육상 대표가 되었고 3군 대항 체육 대회에서 우승하고 육군 육상부 감독, 3군 대항 체육 대회 총감독, 88올림픽 꿈나무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군대를 전역한 후 1987년 코오롱 마라톤 팀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선수들에게 소(小食)과 풍부한 단백질 단을 집중 공급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과학적인 선수 관리로 1990년과 1992년에 김완기가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1992년 황영조가 2시간 10분벽을 넘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와 김이용, 권은주를 발굴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키우면서 한국 마라톤을 육성, 발전시켜 세계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천시 증산면민들은 우리나라 마라톤의 주역을 키워낸 정봉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9년 2월 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700여 만 원의 성금을 모아 1999년 5월 6일 증산초등학교 운동장에 공적비를 세웠다. 높이 2m인 3단으로 된 오석에 정봉수의 업적이 새겨져 있다.
  • 정시제 고등학교 . . . . 5회 일치
         일본의 학제. 주로 직업과 학업을 양립하는 사람을 위하여, 야간부, 혹은 주간부(오전부/오후부) 등으로 나눠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교육을 실시하는 고등학교.
         정시제와 대비하여 일반 고등학교를 전일제(全日制)라고 부른다.
         통신제 고등학교와 함께, 전일제 고등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을 위한 제도이다. 통신제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은 전일제와 동등하게 얻을 수 있다.
  • 정진호(1956) . . . . 5회 일치
         || '''학력''' || 포항초-[[경상중학교|경상중]]-[[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연세대]] ||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1~1995) [br] [[현대 유니콘스]] 1군 수석코치 (1996~2006)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7~2009) [br] [[연세대학교]] 감독 (2011~2012) ||
         그런데 [[양승호]]와 함께 입시 비리로 잡혀갔다는 소이 들려왔다. 본인 수사를 하면서 같이 곁다리로 걸린 [[이광은]]처럼 3천만 원을 청탁받았다나. 하지만 사람들은 양승호에 대한 신경을 쓰는지라 상대적으로 묻혔다. 1심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후 항소·상고하면서 대법원까지 갔지만, 2013년 말 대법원은 정진호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 원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역시 양승호보다 적게 해먹고 항소를 해서 그런지 추징금은 이광은과 같고 집유를 받았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야구부는 2015년에도 또 다시 입시비리 사건에 휘말려 감독이 출국금지를 당했다.
  • 존 딜린저 . . . . 5회 일치
         1903년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의 료품점 아들로 태어났다.
         사춘기에 접어든 딜린저는 학교를 중퇴하고 공작소에서 일을 하게된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본 딜린저의 아버지는 료품점을 팔아치우고 인디애나 주 무어스빌로 이사해 농장을 경영한다.
         결혼까지 했음에도 딜린저는 에드 싱글턴(Ed Singleton)이라는 남자와 함께 무어스빌의 료품에서 강도짓을 벌인다. 그리고 빠르게 체포ㅋ. 싱글턴은 법정에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해 징역 2년을 받았지만 딜린저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죄를 고백했다가 징역 2~14년+징역 10~20년[* 미국은 범죄를 여러개 저지르면 형량이 따로 붙는다.]이라는 선고를 받고 큰집에 처박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해리 피어폰트(Harry Pierpont)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7월 22일 오후. 딜린저, 해밀턴, 그리고 쿰파나슈는 영화를 보러 길을 나선다. 쿰파나스가 어떤 극장에 갈지 아직도 몰랐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FBI와 경찰은 두 극장 모두 경찰을 배치하는 방으로 대응했다. FBI 요원들은 세 명이 바이오그래프 극장으로 들어가는걸 목격하지만 사람들이 몰린 극장에서 딜린저가 저항할 위험을 피해 대기했다.
  • 진격의 거인/85화 . . . . 5회 일치
          * 의이 없는 듯 한데 "아파"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아르민이 꿈에서 들은 목소리는 사샤의 것.
          * 그때 조사병단의 귀환 소이 들려온다.
          * 그와 함께 윌 마리아 탈환 소도 전파되고 인류는 모처럼 환호성을 내지른다.
          * 베르톨트는 벽 안 인류를 "악마의 자들"이라 불렀고 적으로 인하고 있었다. 짐승거인 또한 차이는 없는 듯. 따라서 바깥 인류와 벽 안 인류는 적대관계로 추정할 수 있다.
  • 진격의 거인/96화 . . . . 5회 일치
          >... 망할 자.
          베르톨트는 그 서슬에 말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라이너는 턱을 걷어차이는 동안에도 그녀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의이 좀처럼 날아가지 않았다.
          애니는 귓가에서 속삭이는 라이너의 말을 들으며 의을 잃었다.
          다행히 노인이 죄의을 짊어지고 산 날은 오래지 않았다. 얼마 뒤 그는 나무에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노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뒷수습을 했다. 라이너 일행도 그 노인의 최후를 봤다. 어느 시점에 본 건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그들에겐 이제 새 고향이 생겼다는 것. 지도에도 없는 마을. 나중에 친구들에게 말해줄 이야깃거리도.
          라이너는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갔다. 윌 마리아를 파괴했지만 진짜 왕은 움직이지 않았다. "타이버 가"에서 나온 정보가 정확하다면 벽의 왕은 "부전의 맹세"에 묶여 있다. 애니가 맞장구치며 "그러니 바로 결판을 내자"고 말했다. 라이너도 무슨 말인지 안다. 윌 로제와 윌 시나까지 전부 파괴하는 것. 그래서 벽의 왕을 끌어내자는 것. 하지만 그 방법은 애초에 틀렸다. 그런 으로 시조의 거인을 끌어낸다면 전혀 승산이 없다. 그 시조의 거인이 한 번 소리치는 걸로 모든 것이 뒤집힐 것이다. 거인을 조종하는 힘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할 것이고, 그 분노의 반격은 섬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우리에게 간섭하면 벽에 숨은 몇 천만의 거인이 지상을 전부 평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프리츠 왕이 대륙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
  • 진유현 . . . . 5회 일치
         | 학력 = [[중앙대학교]] 중어학과
         * [[경신고등학교 (대구)|경신고등학교]] 졸업
         * [[중앙대학교]] 중국어문학과 졸업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경신고등학교 (대구) 동문]]
  • 창작:좀비탈출/0-1 . . . . 5회 일치
         량은 아직 충분하다. 적어도 일주일은 버티겠지.
         세상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 량은 착실하게 사라져 갔다.
         처음엔 량이 한 달은 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부족했다.
         단 한 쪽도 늘어나는 법 없이 그대로인 량.
         량이 없이 석 달을 버틴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 채호기 . . . . 5회 일치
         }}</ref>~ )는 [[대한민국]]의 시인, 대학교수이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ref name="네이트"/> [[1988년]]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2000년]]에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이다.<ref>{{뉴스 인용
         * ~ 1985년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시작품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전대학교 동문]][[분류:인천 채씨]][[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최한경 . . . . 5회 일치
         ||<:> '''학력''' || 대해초-포항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시절에는 투타 만능에 빠른 공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졸업 후인 1993년 삼성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 12경기에 나와 2.8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으나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은퇴 후 LG 트레이너로 있다가 [[대전고등학교 야구부|대전고]], [[홍익대학교|홍익대]] 코치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의 야구 팀인 장쑤 호프스타스의 감독, 광동 레오파드의 코치로 있다가 현재는 귀국해 고향 포항에서 스포츠센터를 운영 중이다.
  • 카쿠스 . . . . 5회 일치
         카쿠스가 등장하는 것은 헤라클레스가 몸통이 셋 달린 괴물 [[게리온]](Geryon)의 소떼를 몰고 [[티베르 강]]에 도착했을 때였다. 헤라클레스는 강가 풀밭에서 쉬면서, 음과 술을 많이 먹고 잠에 빠졌다. 그 때, 시골 양치기 카쿠스는 강하고 용맹하여 헤라클레스가 거느린 게리온의 소 떼 가운데 가장 좋은 무리를 훔쳐서 달아났다. 그리고 교활하게 발자국을 숨기기 위해서 뒷걸음질을 치면서 소떼를 동굴에 숨겼다.
         프로페르티우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선의 여신의 성스러운 신전 안에 있는 샘물에서 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여신에 대한 의은 비밀스럽고 여성에게만 한정되어 있어 여사제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 물을 마셨다. 하지만 여사제에게는 되돌아가서 소떼의 갈증을 없애준 보답으로 제단을 세우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의례에는 어떤 여자도 참석할 수 없게 했다.
         기원전 4세기의 청동 거울에서, 에트루리아 인 '카쿠'는 그의 시종으로 추측되는 아르틸레(Artile)와 함께 [[카일리우스]]와 아울루스 비벤나라는 두 용사의 습격을 받는 죄수로 등장한다. 카쿠가 묘사되는 장례 항아리나 설화석에서 카쿠는 잘 생긴 젊은이로 묘사되며, 현금을 켜고 있으며 아르틸레는 어떤 글이 그려진 장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점성술 지인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 킹덤/500화 . . . . 5회 일치
          * 이 소은 곧바로 [[이목(킹덤)|이목]]에게 전달된다. 소을 들은 이목은 큰 의심은 하지 않지만 뭔가 의혹이 남은 듯 하다.
          * 이 소은 이목이 있는 무백성까지 전해진다. 게다가 그 수가 20만에 이른다는 보고에 [[카이네]]와 [[부저]]가 경악한다. 이목은 침착한 태도로 보고를 접수한다.
          이목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조치라고 평한다. 부저는 그 남의 일 말하는 듯한 태도에 "적을 칭찬하고 있을 때냐"고 지적한다. 특히 부저는 양단화가 이끄는 산민족이 개입한 것을 의하고 있다. [[순수수]]는 이목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태도로 "반대로 이긴다면 큰 타격을 주는 셈"이라고 말한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목은 카이네에게 지시를 내려 수도 한단에 있는 호첩 장군을 움직이게 한다. 호첩은 "왕도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장수로 적이 총력전으로 나오는 이상 이쪽도 최선의 인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수도 회성으로 간 전 이안성주 기수도 불러들여야 한다고 의견을 낸다. 이목이 이를 받아들여 카이네에게 기수에게도 소을 넣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부저는 곽성에서 1만을 차출해 오도록 한다.
  • 킹덤/501화 . . . . 5회 일치
          * 진의 군단은 금안을 목전에 두고 잠깐 휴을 가진다. [[왕전(킹덤)|왕전]]은 무슨 수를 썼는지 소나기를 미리 예견하고 피하고자 한 것.
          * 이목이 오르도를 의하는 사이 진군이 금안에 도착한다.
          * 그런데 하늘을 쳐다보던 왕전이 갑자기 전군에 휴을 명한다. 각 지휘관들은 왜 이런 데서 휴을 하나 의아해하는데 하료초는 이런 시점에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게 좋을거 없을 거라 우려한다. 하지만 [[강외]]만은 왕전이 그랬듯 하늘을 바라보더니 비 때문일 거라고 중얼거린다.
          [[몽념]]도 그 의미를 깨닫고 옳은 판단이라 생각하지만 대체 어떻게 왕전이 기상을 미리 알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시한다. [[왕분]]은 조용히 술을 마시며 대기 중. 하료초도 이때는 휴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왕전이 생각보다 치밀하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이미 왕전에겐 전쟁이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 킹덤/512화 . . . . 5회 일치
          * 소을 접한 [[이목(킹덤)|이목]]은 왕전이 터무니없는 오판을 내렸다 판단하며 [[진시황(킹덤)|진왕 정]]이 선언했던 중화통일은 물거품이 됐다 자신한다.
          * 그건 상적이지도 않고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곳은 조 왕도권의 가장 깊숙한 곳. 이쪽은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소대병력 밖에 갖추지 않았다. 가뜩이나 삼언한 적의 경계속에서 느긋하게 군략을 짠다? 이러다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끝장이다.
          * 경비병 둘은 순간에 치웠지만 위기가 끝난건 아니다. 소란을 감지한 경계부대가 이쪽으로 오고있다. 부하들은 서둘러 철수할 채비를 하려고 하나 왕전은 가만히 아광을 부른다. 아광은 곧 접근하는 부대가 자신들의 배는 됨직하다고 보고한다. 잠시 생각하던 왕전은 "괜찮겠나?"라고 한 마디만 던진다.
          * 그리고 이 소은 이목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지금 그는 조의 "절"성에 있다. 태행산맥 산길에 숨겨진 작은 성이다. 북서로 왕도권 입구 "알여"까지 이틀거리였다.
          급보로 진군이 열미를 버리고 진격한다는 소이 도착하자, 가장 당황한 건 이목이었다. 그는 지도 위에 놓여진 진군의 패를 보며 왕전에게 묻는다.
  • 타베아루키 . . . . 5회 일치
         타베루(食べる)는 먹는다는 뜻이고 아루쿠(歩き)는 걷는다는 뜻이므로, 두 가지를 합쳐둔 '타베아루키'는 '음을 먹으면서 걸어다닌다'는 뜻이다. 걸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 같은 것을 뜻한다.
         혹은 특정 지역의 명물 요리, 맛있는 음, 특이한 음 같은 것을 돌아다니면서 먹는 취미를 뜻한다. [[도락]]이나 [[맛집순례]]와 같은 뜻이라고 볼 수 있다.
  • 텐프레 . . . . 5회 일치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영어에서의 템플릿(Templet, Templete)은 어떠한 판형을 의미하며, IT쪽에서는 좁게는 플로우차트에서 넓게보면 프로젝트 관리상까지 포함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관습 및 서화된 표준을, 디자인에서는 일반화된 패턴과 믹스[* 글렌체크라든가 스프라이트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본의 속어로는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 [[편지]], [[연하장]]의 서이나, 디자인 파일의 양 등을 뜻한다. 어떤 양이 정해져 있고, 몇가지 단어나 문장만 바꾸는 것. 여기에는 프로그램 오류 제보등을 했을 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며 앞으로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같은 [[코피페]]스런 대응도 포함된다. 친절하지만 별로 쓸모없고, 때로는 화까지 돋게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스런 대응까지 포함.
          * 니코니코 동영상 서비스에서는 ここまでテンプレ(여기까지 텐프레)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이곤 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가령 [[동방프로젝트]]에서 에린이 나오면 흘러가는 코멘트로는 " ( ゚∀゚)o彡"이 뜨고, 마지막 코멘트로는 "ここまでテンプレ"가 뜨는 . 일종의 암묵의 룰이 적용되는 걸 알리는 텐프레된(?) 코멘트이다.
  • 토리코/366화 . . . . 5회 일치
          * 지로 앞에서 '''황금기'''를 꺼낸 블루 니트로는 갑자기 자신들은 "구르메 세포의 악마"라며 설명을 시작한다.
          * 구르메 세포의 악마들은 번력도 무엇도 없지만 죽지 않으며 죽어도 부활하는 존재.
          * 그들은 재가 바닥나서 먹을 게 없어질 때만 소멸하기 때문에 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에 주력했다.
          * '''그 정점이 "금관두". 어떠한 재도 썩지 않게 보존해주는 "통조림"이다.'''
  • 토리코/367화 . . . . 5회 일치
          * 지로는 목이 날아간 것처럼 보였지만 생명구에 깃든 "혼"이 대신 당한 거였다.
          * 생명구의 정체는 "혼이 깃든 재". 가지고 있는 인물의 데미지를 혼이 대신 맞고 죽어주는 거였다.
          * 지로는 "이게 얼마만이냐"며 반가운듯 다가가지만 순간에 노킹을 건다.
  • 토리코/370화 . . . . 5회 일치
          * 아이마루는 자신의 눈엔 "스스로의 욕조차 잃고 조종당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고 한다.
          * 하지만 코마츠가 없는 이상 기댈 것은 오오타케의 "운" 뿐. 오오타케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다고 한다.
          * 우주에 구르메 세포가 생겨난 이래 "맛"은 줄곧 성장하고 커져왔다. 증가된 맛이 생명력과 욕을 증대시키며 순환했고 이러한 순환 끝에 팔왕과 같은 강력한 존재들이 탄생했다.
          * 이 인플레이션의 정점에 선 것이 지금의 GOD. 100억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의심할 여지없는 최강 최고의 재가 되었다.
          * 지지는 조리법을 미처 알려주지 못하고 죽었지만, 사실 코마츠가 있는 한 재의 목소리로 어떻게든 할 것이다
  • 토리코/384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이미 타락한 아카시아는 그가 가진 운이 중요할 뿐 플로제인지 아닌지는 무관하다고 비웃는다.
          * 그에게 필요한건 플로제의 운 뿐이며 그것만 있으면 죠아가 누구인지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
          * 미도라는 운을 써서 이것을 피한다.
          * 죠아 본인이 자신이 무엇인지 말하려다 미도라에게 가로막히고, 본인은 플로제를 어머니로 인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또다른 존재일 가능성도 높다.
          * 미도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풀코스를 거의 완한 상태라 그런지 진화한 아카시아와 거의 대등한 상태. 엠페러 링이 증거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5회 일치
          * 무사도: 구 유닛의 모집 비용 -10%
          * 전통: 구 유닛의 숙련도 등급 +1
          * 해외 무역: 신 유닛의 모집 비용 -15%
          * 적응력: 신 건물과 유닛의 비용 -10%
         나가사키를 본거지로 둔 번. 이 번을 다스리는 나베시마 가문은 전국 시대 당시 도쿠가와 가문에게 충성을 다한 댓가로 사가 번을 하사받았다. 일본 내 공적으로 유일한 서방과의 접촉로인 나가사키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서방의 여러 이념과 기술들이 흘러들어왔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5회 일치
          * 순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순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
          * 순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순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
         포르투갈에서 데려온 병사들. 유럽 갑주와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뛰어난 사격 능력과 카타나 사무라이 수준의 근접 공격 수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근접 방어가 빈약하므로 근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 순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순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
          * 순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순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
  • 파머보이즈 . . . . 5회 일치
         [[https://www.farmerboys.com/|공 홈페이지(아마)]]
         Farmer Boys. 미국의 음점. 상표 밑에 써진 것에 따르면 [[햄버거]], 아침사 그외 등등이 주력 메뉴인 것 같다.
         이런 류의 음들이 그렇듯이 칼로리가 높다.
         [[https://www.farmerboys.com/|공 홈페이지(아마)]]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5회 일치
         파이널 파이트 정 속편들은 [[슈퍼패미컴]]으로 2탄과 3탄이 나왔다. 다들 1편만도 못한 함량미달로 묻혔으나 [[슈퍼패미컴]]용 2탄의 여성 캐릭터 '[[겐류사이 마키]]'가 [[CVS2]]에 등장하면서 잠시 재조명될 뻔 하기도 했다. 마키는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더블 어퍼 등의 이작에서도 등장하는데, 이작들 반응이 좋지 않아서 역시 그냥 묻혔다.(...)
         그리고 [[아케이드]] ST-V 대응기판으로 제작된뒤 [[세가 새턴]]용으로 이된 이 게임 캐릭터들이 나오는 3D 격투게임인 '파이널 파이트 리벤지'라는 [[쿠소게]]가 나왔고, 이젠 시리즈의 끝이라고 봐야 할 '파이널 파이트 스트리트와이즈'가 [[PS2]]로 발매되었다.
         원조 방의 벨트스크롤 액션 시리즈들은 [[게임 오버]]시에 [[컨티뉴]] 화면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묶인 채로 여러 가지 장치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며, 시간이 지날 때까지 발버둥치다 컨티뉴를 안 하면 결국 사망하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조금 잔인한 연출이 들어있는 전통의(...) 특징이 있다.
  • 프로 스포츠 . . . . 5회 일치
         [[스폰서]]는 의료 회사, 품 회사 등 주로 소비재 기업이 서는 경우가 많은데, 스포츠 용품 회사들은 '''[[마이클 조던]]이 쓰는 나이키를 신으면 자신도 [[덩크슛]]을 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청소년들이나, '''[[타이거 우즈]]가 입는 골프 셔츠를 입으면 자신도 타이거 우즈 만큼 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아저씨들의 돈을 모아서 성립되고 있다.
         [[냉전]] 시기에는 [[국가]]의 개입으로 아마추어리즘이 퇴색하게 되었는데, 공산권을 중심으로 사실상 국가에서 아마추어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하면서 생계까지 책임져주면서 국위선양을 위하여 아마추어 스포츠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스포츠 선수 군단'을 육성함으로서 '프로나 다름없는 아마추어'가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 이러한 전략으로 [[동독]] 등은 많은 메달을 따냈고 [[국위선양]]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와 냉전 종으로 이 같은 흐름은 크게 퇴색하였다.
         또한 아마추어 리그인 K3도 K리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적어도 인기 종목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경계는 사실상 전통적인 방으론 더 이상 경계를 가르기가 어려워 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는 '신규 참가자=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매우 경계하여 경기 리그를 매우 독립적, 폐쇄적으로 운영한다. 이것이 프로 스포츠의 본질을 보여주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 스포츠 마케팅에서 강한 선수, 강한 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관객들이 강한 선수나 강한 팀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다만 반대로 강한 선수나 강한 팀이 흥행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누구누구만 나오면 이기니까 재미가 없다.", "어디 팀만 무조건 이기니 재미없다."는 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 시장에서는 이러한 '흥행'을 고려하여 리그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을 변경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 하이큐/233화 . . . . 5회 일치
          [[스가와라 코시]]는 긴장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손이 자꾸 는다며 불평한다. 하지만 [[카게야마 토비오]]는 자신은 긴장이 안 되며 "여기는 통과점에 불과할 뿐"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 스가와라는 얄밉다고 걷어찬다.
          공 워밍업 시간 동안 [[히나타 쇼요]]는 코트에 서지 못하고 볼보이로 활동하며 몸을 덥힌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시미즈 키요코]]가 도착, 간신히 신발을 장착한다. 사전의 우려와는 달리 히나타의 해프닝 덕에 긴장감은 조금 떨친 듯하다. 히나타와 [[타나카 류노스케]]는 힘찬 함성을 지르며 시합이 시작되기만을 고대한다.
          오오사도 감독도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 어차피 여기에 올라온 이상 각지의 강호를 꺾고 올라온 학교들이다. 그리고 봄고에선 그런 강자들도 또다른 강자에게 쓰러지며 "이 회장에 먹히는 쪽"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 타케다 고문은 배구는 공간 인 능력이 필수불가결한 경기이니만큼 긴장감과 낯선 체육관 탓에 경기감각이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현재 선수들의 공간 인 능력은 평소보다 현저한 듯 한데, 그건 특히 초정밀 세트를 올리는 카게야마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 하이큐/245화 . . . . 5회 일치
          * [[카라스노 고교]]의 선수들은 히나타와 비슷하지만 상위호환격인 그의 플레이를 보며 히나타가 지나치게 의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카게야마는 정직으로 호시우미를 소개한다. 카모메다이 학원 2학년인 호시우미 코라이. 등번호 5번에 포지션은 WS고 키는 불과 169cm. 전일본 유스에선 카게야마 앞에서 놀라운 기량을 선보여 히나타의 성장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 상대를 의한건 히나타 뿐이 아니었다. 호시우미는 소개를 끝내자마자 히나타에게 포지션과 키에 대해 묻는다. 히나타는 경쟁의 때문인지 포지션은 제대로 MB라고 대지만 키에 대해서는 165cm라고 살작 반올림해서 대답한다. 원래는 아직도 164cm. 호시우미는 최고도달점도 묻는데 현재 히나타는 333cm다. 호시우미는 그 대답을 듣고 이겼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 호시우미의 동료는 이쯤에서 인터뷰를 끊는다. 그는 호시우미 대신 "말이 꼬인 것 같다. 죄송하다"고 기자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호시우미에겐 "칭찬하는 사람은 사심없이 칭찬하는 거고 실제로 너 자신이 불리한 것도 자각하고 있고 그런데도 활약했으니 대단하다고 말하는 거다. 넌 자의 과잉이다"라고 속사포로 제재를 가한다. 동료가 호시우미를 달랑달랑 들어올리며 사과드리라고 하자 호시우미가 싫어하면서도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하면서 상황은 종료된다.
          팀으로 돌아온 히나타. 우카이 코치가 돌아와서 막 짐을 꾸리는 중이다. 야마구치가 왔느냐고 말을 거는데 그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다. 히나타가 호시우미를 의하게 된 걸 눈치챈 3학년들은 그의 반응을 주의깊게 살핀다.
  • 하이큐/266화 . . . . 5회 일치
          * 고교 1학년을 맞이한 [[코즈메 켄마]]는 빡빡한 훈련 일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교를 출발해 인근 하천을 끼고 도는 런닝 코스는 고역이었다. 강압적인 3학년들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코즈메는 그런 와중에도 좋은 구석을 찾아내곤 했다. 달리는건 싫지만 뛸 때의 풍경과 뛰면서 펼치는 공상의 나래는 조금은 좋았다. 저 강물 위로 드래곤이 거닐고 있다면, 맞은 편 건물에 자라난 담쟁이 덩쿨을 타고 오를 수 있다면. 그걸 타고 올라간 지붕 위엔 보물상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게 즐거웠다. 마음껏 상상만 펼칠 수 있다면 고된 런닝도 조금은 즐겁다. 문제는 그런 평안을 뒤흔드는 존재가 있다는 것 뿐.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태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상은 명백했다.
          * 2학년들이 슬슬 말려야 되지 않나 생각했지만 야쿠는 재미있는 볼거리를 엎어버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2학년의 묵인 아래 둘의 싸움은 계속됐다. 야마모토가 특유의 근성론으로 코즈메를 질타했다. 연습 중에 기합이 들어 있지 않으니 시합도 그 모양인 거라며 "근성없는 놈이 근성얘기 꺼내지 마라"고 일갈했다. 코즈메도 이젠 한계였다. 근본적으로 야마모토의 근성론은 코즈메의 사고방으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뜬금없는 물세례에 어이없는 개그. 한순간 야마모토의 게슈탈트가 붕괴했다. 어디서부터 뭐부터 지적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게 됐다. 하지만 야쿠에겐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코미디 피날레였다. 그리고 의외로 코즈메도 "후쿠나가 군은 재밌다"며 열이 올랐던 머리를 혔다.
          네코마타 감독은 반대진영의 제자와 그가 길러낸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 제자들이 자신의 방침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위기의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하이큐/273화 . . . . 5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온화 모드" 발동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스코어는 20 대 12. 카게야마의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을 기점으로 [[이나리자키 고교]]가 첫 번째 TO를 쓴다. 중계진은 경기가 서브 경쟁으로 흐름이 바뀌는 걸로 보고 있고 과연 카게야마의 서브로 [[카라스모 고교]]의 반격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완벽한 서브. [[미야 오사무]]가 손을 뻗었지만 리시브 실패. 연속 서브 에이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세 번째 서브에 임한다. 이번엔 긴지마 쪽. 리시브에는 성공했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공은 [[오지로 아란]]에게 연결. 2세트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오지로.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의도도 그것이다. 아주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 피로감이 평소 플레이를 조금씩 뒤흔든다. 그리고 지금 미스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오지로의 스파이크엔 블록 세 장이 따라붙었다. [[사와무라 다이치]], [[히나타 쇼요]], [[타나카 류노스케]]. 오지로는 우카이 코치가 노린대로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블록을 의하게 됐고 우측으로 길게 찌른 스파이크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0 대 14. 우카이 코치는 이것이 전환의 1점임을 단언한다. 관중석의 [[다이쇼 스그루]]와 여친 미카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그 아웃은 오지로에겐 "꺼림직한 아웃"이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오사무의 차례. 아츠무는 카게야마를 의했는지 신경질스럽다. 오사무를 상대로 2세트를 마무리 지으라고 말하면서 왠지 또 "오늘 서브 에이스는 내 압승"이라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오사무도 그못지 않게 신경질적이다. 그게 영향을 줬는지 오사무의 서브는 크게 뜨면서 아웃. 코트를 한참 벗어나 스코어보드를 맞추는 홈런이다. 옆에 있던 [[야치 히토카]]가 화들짝 놀란다. 중계진은 원래 이나리자키는 가끔 이런게 나온다며 웃어넘긴다. 아츠무에게 "누가 홈런 경쟁을 하랬냐"고 갈구다가 "네가 쓸데없는 소릴해서 그렇다"며 오지로에게 쥐어박힌다. 사실 오사무는 대범한 척해도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있다. [[스나 린타로]]는 자기랑 동류라고 표현한다.
          * 바로 이 시점에서 선수교체. 오지로 대신 이나리자키의 주장 [[키타 신스케]]가 등판한다. [[타나카 사에코]]는 주장이 이런 시점에서 에이스를 쉬게 하는 거냐고 경악했다. 시마다도 비슷하게 봤는데 아마도 이번 세트를 이미 딴 걸로 생각하고 마지막 세트에서 에이스인 오지로를 풀로 활용하기 위해 잠깐 휴시키는 걸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지금이 찬스일수도 있지만, 막상 교체로 들어온건 팀의 주장. 그냥 "대역"은 아닐 공산도 있었다. 카라스노의 벤치도 그 점을 경계하고 있었다. 특히 [[타케다 잇테츠]]는 기어코 자료로 접하지 못했던 선수가 나왔다고 우려했다. 우카이 코치는 거기에다 오지로를 조금 더 흔들어 놓고 싶었던 참이라 아쉬워한다.
          무려 2연속 서브 에이스에 3연속 득점을 이끌며 2세트를 뒤집어놓았다. 4회차 서브도 득점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서브 직후 바로 세트업을 올리는 묘기를 보여주면서 이나리자키를 압박했다. 미야 아츠무의 저지로 득점행진은 끊어졌지만 아츠무가 심하게 의하게 된 건 분명하다.
          미야 아츠무는 카게야마가 서브로 대활약하자 엄청나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우카이 코치의 의도는 주포 오지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전술인데, 본의 아니게 아츠무 쪽에도 엄청 스트레스를 선사했다. 그리고 아츠무는 그 성질을 괜히 형제 오사무에게 풀면서 오사무의 컨디션까지 영향을 주고 말았다. 이런 으로 팀 전체의 분위기까지 흔들린다.
  • 하지영 . . . . 5회 일치
         * [[대구혜화여자고등학교]]
         * [[서일대학교]] 연극영화과
         * 《[[광이 동생 광태]]》 (2005년) - 여후배 1 역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일대학교 동문]][[분류:대구혜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한보배 . . . . 5회 일치
         * [[2015년]] [[SBS]] 심야드라마 《[[심야당 (2015년 드라마)|심야당]]》 ... 지희 역
         * [[2017년]] [[KBS2]] 월화드라마 《[[학교 2017]]》 ... 서보라 역
         ! 시상
         * [http://cafe.daum.net/hbblove 한보배 공 팬카페]
  • 허가윤 . . . . 5회 일치
         '''허가윤'''(許嘉允,<ref>[http://tw.weibo.com/cubeent/3823525469463236 큐브 공웨이보]</ref> [[1990년]] [[5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가수]], [[영화배우]]이다. 과거 걸 그룹 [[포미닛]]의 메인보컬을 맡았었다.
         *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학사)
         * 2015년 [[tvN]] 《[[샤를 합시다 2]]》 - 홍민아 역 (특별출연)
         * [http://www.cubeent.co.kr/fourminute 포미닛 공 웹사이트]
         [[분류:포미닛의 일원]][[분류:2009년 데뷔]][[분류:아이돌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K-pop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허규옥 . . . . 5회 일치
         ==출신학교==
         * [[대건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김해 허씨]]
  • 허안나 . . . . 5회 일치
         *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허안나는 [[1984년]] [[11월 15일]] 생으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고 연극배우를 꿈꾸다 개그우먼을 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에 의해 개그우먼 시험을 봐 합격하였다.'''2005년''',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2007년, MBC 16기 특채 개그우먼'''으로 들어갔다, 2008년 당시 개그콘서트 감독이었던 김석현 감독에 의해 걸투홀에서 발견돼 특채로 들어갔으나 2009년 다시 시험을 봐 '''KBS 공채 24기 개그우먼'''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나를술푸게하는세상》, 《슈퍼스타 KBS》 코너를 연속으로 히트 시키며 '''KBS연예대상 2010년코미디부분우수상, 2014년코미디부분우수상'''을 받고 2016년 이후 코미디빅리그로 이적한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망원동짐승녀'''라는 웹툰을 연재중이며,'''안나Tv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2019년 1월 일반인남자친구와 결혼을한다.
         # 문당 (2018.04.15~2018.06.24)
         * 2014 제 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막,레드카펫)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혐저 . . . . 5회 일치
         [[일본]]의 속어. 돈벌이는 나쁘다고 하는 사고방, 혹은 [[부자]]를 증오하고 질투하는 사고방을 뜻한다. 읽는 방은 「이야쵸(いやちょ)」「이야모우(いやもう)」「켄모우(けんもう)」등 다양하다.
         이러한 사고방이 확대되어, 광고적인 내용을 많이 넣어서 [[스팸]] 같은 경향이 나타나는 [[블로그]], 2채널에서 인용한 글을 주로 만든 서적류에 대한 불만, 거기에서 더 나가가 동영상 사이트([[니코니코 동화]] 등) 같은 곳에서 공개된 음악([[보컬로이드]] 등)이 상업적으로 전개되는 것, 동영상 사이트에서 게임 플레이 영상 중개, 나아가서 '''"다른 사람이 인터넷을 통하여 돈을 버는 것 자체"'''에 불만을 느끼는 분위기를 뜻하게 되었다.
         이런 사고방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2채널 등의 익명 인터넷 커뮤니티이 이른바 [[현실]]에서 외면받는 사람들, [[루저]] 문화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 홍예슬 . . . . 5회 일치
         *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졸업
         * [[선일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 [[연서중학교]] 졸업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인덕대학 동문]][[분류:연서중학교 동문]][[분류:선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
  • 황광희 . . . . 5회 일치
         스타제국 연습생 시절인 [[2009년]]에 [[Mnet]]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피스 리얼리티 - 제국의 아이들》과 《제국의 아이들 리턴즈》에 출연하여 이동 무대 차량인 윙카로 전국을 순회하는 게릴라 공연을 펼쳤고,<ref>{{뉴스 인용|제목=연예계 뒷얘기 ‘제국의 아이들’… 100% ‘리얼’ 가능할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089654|저자=김보람|출판사=매일경제|날짜=2009-04-06|확인날짜=2012-08-25}}</ref><ref>{{뉴스 인용|제목=제국의 아이들, 거리공연으로 호된 데뷔 준비중|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000932|저자=이수현|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9-10-01|확인날짜=2012-08-25}}</ref> [[2010년]] [[1월 15일]]에 9인조 [[대한민국]]의 남성 그룹 [[ZE:A]]의 멤버로 데뷔하였다.
         *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중퇴)
         *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 시상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황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 황성관 . . . . 5회 일치
         ==출신학교==
         * [[대구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황정오 . . . . 5회 일치
         [[경북 선산군 무을면 무이동]]에서 태어나 대구 [[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1979년]]에 유도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고 [[1980년]] [[폴란드]] 클라블라프에서 열린 세계 대학생 유도 선수권 대회 [[은메달]]을 획득해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85년]]에 은퇴한 황정오는 [[1987년]]에 미국의 마린 대학교로 유학을 가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1997년]]에는 테네시 대학교에서는 대학교수로 발탁되었으며 2010년에는 미국태권도고단자회 관장을 맡고 있다.
  • 흑초 . . . . 5회 일치
         [[초]]의 일종. [[쌀]]이나 [[보리]], [[밀]]을 [[발효]]시켜서 만드는 초로서, 숙성 과정에서 흑갈색으로 변하여 '흑초'라고 한다.
         좋은 영양성분이 많아 [[건강품]]으로 여겨진다. [[고혈압]]을 예방하고, 혈류를 개선하며, 항산화 작용과 [[대장암]] 억제 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분류:초]]
         [[분류:품]]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4회 일치
         2016시즌 [[K리그]]를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순위산정방의 변경을 알리면서 발생한 논란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은 여타 스포츠 종목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던 대회운영방과 동일하였기에 딱히 큰 문제는 되지 않았으나[* 가령 전/후반기 통합우승결정전이나 플레이오프는 미국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에서도 그대로 적용하여 행하고 있을 정도.] 문제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행하고 있지 않는 '''다득점을 승점 다음가는 순위결정 요인'''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2015시즌까지 K리그는 클래과 챌린지를 막론하고 다음과 같은 순위결정방을 따랐다.
  • DQN . . . . 4회 일치
         난폭하고 비상적인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인터넷 은어]] .
          * 질서, 상을 지키지 않는다.
          * DQN 기업 : 회사 내외에서 비상적이고 폭력적인 일이 만연하는 기업을 뜻한다.
          * DQN 카 : DQN 들이 타고 다니는 차. 차를 화려하게 개조하고 이상한 장을 붙인 경우에 하는 말이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4회 일치
         싸고 생산 시간도 짧지만 일회용이니 짭잘하지는 않다. 전략폭격 밖에 할 수 없으며 이동도 전략적 재배치로만 가능하다. 비행폭탄과는 달리 격추가 불가능하다. 속도가 엄청나서 공중전이 벌어져도 순간에 해당 프로빈스를 벗어나기 때문.
         통상파괴에 특화된 유닛으로, 뛰어난 대상선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될 확률이 적다.
         대공 공격력과 대공 방어력을 올려주는 여단. 함재기는 항모의 능력치를 강화시켜 주는 형이므로 대공포 단다고 잘 막을 수 있거나 하진 않다.
         대공 공격력과 대공 방어력을 올려주는 여단. 함재기는 항모의 능력치를 강화시켜 주는 형이므로 대공포 단다고 잘 막을 수 있거나 하진 않다.
  • FastSearchMacro . . . . 4회 일치
          1. Berkeley DB나 다른 DB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인 인덱스방을 사용한다.
          1. 약 1천500 페이지를 가져와서 인덱싱해보니 ~10분 이상 걸린다. 자체적 구현의 인덱싱방이 너무 느린듯.
          1. 제목검색 인덱싱 방 적용.
          1. 역링크검색 인덱싱 방 적용.
  • IsbnMap . . . . 4회 일치
         IsbmMacro에서 사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으로 ISBN을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으로든 그림의 주소를 전달하는 방을 만들 수 있을까요?
          모니위키 1.1.3에서는 이와 관련된 버그가 고쳐졌고, 알라딘 같은 경우는 확장자가 jpg/gif인 경우를 자동으로 검출합니다. 이 경우 php.ini에 {{{'allow_url_fopen=1}}}같은 으로 설정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또, config.php에 {{{$isbn_img_download=1;}}} 와 같이 옵션을 넣으면 이미지를 다운로드할 수도 있게 하여, 일부 referer를 검사하여 이미지를 보이지 않게 하는 사이트에서도 활용하기쉽게 하였습니다. -- WkPark [[DateTime(2009-01-13T07:14:27)]]
  • RecentChangesMacro . . . . 4회 일치
          * timesago: MoinMoin 최근버전에서 제공하는 방으로, 편집 날짜 대신에 몇일 전 몇시간 전이라고 보여줌
          * `board` 옵션 추가 (게시판으로 보여줌
          * `editrange` 옵션 추가 : 여러 사용자가 편집에 참여한 경우 각 편집의 편집자를 범위를 표현하는 방으로 보여줌
         table 으로 출력할 때 TABLE과 각 TD에 class를 부여해야 CSS를 쓸 수 있습니다.
  • 개밥 . . . . 4회 일치
         과거 농촌에서는 사람이 먹고 남은 음 찌꺼기를 개에게 먹으라고 줬으며, 현대에도 특별히 개를 신경써서 기르지 않는 경우에는 먹고 남은걸 대충 섞어서 개한테 먹으라고 준다. 음 찌꺼기이므로 영양분은 있지만, 남은 잔반을 마구 섞어버렸으니 사람이 먹기에는 겉모습이 이상하고 맛도 좋지 않아서 "개밥"이라고 하면 이러한 음을 뜻하게 됐다.
         사실 인간이 먹는 음은 영양 밸런스나 염분 측면에서 개의 몸에 그리 좋지 않아, 장기적으로는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4회 일치
          실제 플레이에서도 히카리는 마을을 꼼꼼하게 돌아보자고 하지만 우마루는 일단 밖에 나가서 보이는대로 몬스터를 잡아댄다. 그러면서 순간에 레벨이 20대로 성장. 히카리를 크게 앞지른다. 이것만 봐서는 게이머로서는 우마루가 한 수 위... 라는 것 같았지만.
          * 한참 게임을 하고 쉬는 우마루. 히카리는 집에 가서도 혼자 플레이해도 되겠냐고 하자 우마루가 그러라고 답한다. 자기도 짬짬이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론 음을 미뤄놓고 게임에만 전념한다. 그저 레벨을 잔뜩 올려서 다음 번에 히카리가 왔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들 목적. 하지만 후반이 되자 우마루 조차 고전하는 적들이 나오는데, 그걸 깨면서 히카리를 도와주고 우쭐 댈 생각에 젖는다.
          * 막상 다음 플레이 때 합류해 보니 히카리 쪽이 레벨이 더 높다. 게다가 우마루가 고전했던 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 약점 속성을 찌르며 수월하게 진행한다. 서포트해주려 했던 상대에게 서포트를 받게 되자 굴욕감을 느낀 우마루. 다음 번에야 말로 역전해주겠다는 각오로 또다시 게임에 매진하지만 오히려 레벨차는 더 벌어져 버린다. 히카리는 기본적으로 시간도 많이 투자하지만 게임 센스도 있다. 특히 메뉴얼로 시스템을 숙지하고 그 내용을 실전 플레이에서 검토해서 최고로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플레이 방이라 무작정 닥돌하는 우마루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 그래도 우마루는 자신의 경륜을 내세우며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런데 히카리는 그렇게 골몰하는 우마루를 보고 시무룩해한다. 같이 게임을 하면 "우마루짱이 별로 즐거운거 같지 않다"고 봤기 때문. 우마루는 이건 "라이벌을 만나서 불타오르는 것"이라며 나름대로 즐기는 방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마루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데.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특별편 8화 . . . . 4회 일치
          * 집안에선 단정치 못하게 있고 간만 먹으며 어쩐지 빙빙 돈다.
          * 히카리는 "언니랑 같은 학교가 아니냐"고 묻는데, 사실 이 시절 카나우는 타이헤이와 거리가 있는 사이였다.
          * 학교는 같아도 카나우는 특진 클래스라 다른 건물에서 생활했기 때문. 그러다 표창에서 나란히 수상하며 만났다.
  • 경관 . . . . 4회 일치
         삼국지 등애전에 [[등애]]가 촉한을 평정하고, [[면죽]]에 가서, 대(臺)를 쌓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면죽에서 [[제갈첨]]이 크게 패배하였기 때문에 촉한 병사의 시체가 많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특이한 점은 등애는 촉한의 병사들 뿐만 아니라, 위나라의 사졸(士卒) 가운데 죽은 자들 역시 경관에 함께 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군 전사자를 이런 으로 경관에 함께 묻는 것은 이례적이다. 등애가 왜 위나라 사졸의 시체들까지 함께 경관에 묻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가설이 있다.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 매장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삼국지 등애전에 [[등애]]가 촉한을 평정하고, [[면죽]]에 가서, 대(臺)를 쌓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면죽에서 [[제갈첨]]이 크게 패배하였기 때문에 촉한 병사의 시체가 많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특이한 점은 등애는 촉한의 병사들 뿐만 아니라, 위나라의 사졸(士卒) 가운데 죽은 자들 역시 경관에 함께 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군 전사자를 이런 으로 경관에 함께 묻는 것은 이례적이다. 등애가 왜 위나라 사졸의 시체들까지 함께 경관에 묻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가설이 있다.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 매장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 경산시 . . . . 4회 일치
         * [[강경]] - 전 국회의원
         * [[김성도]] - "어린 음악대"로 유명한 작곡가, 교육자. 와촌면 출신. 하양초등학교 졸업.
         * [[박문현]] - 자인면 출신, 동의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세금혁명당 대표. 경산고등학교 졸업
  • 구광본 . . . . 4회 일치
         '''구광본'''(具洸本, [[1965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동 대학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9056&yy=2007 매일신문 2007-07-04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구〉]
         * [http://www.idaegu.com/?c=8&uid=346911 대구일보 2016-08-22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구〉]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구성재 . . . . 4회 일치
         1960년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 세천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에서 [[기자(직업)|기자]]로 근무하였다. 이후 조선일보를 퇴사하고 대구광역시 검도회 [[회장]] 등을 지냈다.
  • 김기섭 (1939년) . . . . 4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아남산업]]에서 근무하다가 삼성계열사로 이직, [[신라호텔]]과 삼성전관 등에서 이사, 상무, 전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김영삼]] [[민주자유당]]의 총재특보로 발탁되었으며, 대선 당시 총재특보와 이미지메이킹 등을 담당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후 [[안기부]]의 기조실장과 운영차장을 역임했다.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 주회사 [[아남산업]] 공장장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녕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호텔 경영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영삼]][[분류:김영삼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김만제 . . . . 4회 일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가서 덴버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를 졸업하고 [[미주리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이 때문에 역시 서강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던 전임 [[남덕우]], 후임 [[이승윤(정치인)|이승윤]] 경제 부총리와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종인]] 등과 더불어 서강 학파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다.]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1982년까지 재임하였다.
  • 김문순 (언론인) . . . . 4회 일치
         * [[계성고등학교]] 졸업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 김상희 (1951년) . . . . 4회 일치
         * 1969년 : [[경북고등학교]] 졸업
         * 1973년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연수(작가) . . . . 4회 일치
         ||<:>[[구효서]][br]명두[br](2006) || → ||<:>'''김연수[br]달로 간 코미디언[br](2007)'''|| → ||<:>수상작 없음(2008)[* 본심에 오른 작품 중 수상할 만한 작품 없음. 독자의 반응을 의한 편향성이 명확하며 완성도가 수상에 부합할 수준에 못 미침.] ||
         [[대한민국]]의 [[작가]]. 1970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본인 스스로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왔다'고 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수상 경력도 화려하며, 내놓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김훈(소설가)|김훈]], [[박민규]]와 더불어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 중 한 명이며 중학교 동창인 [[문태준]], [[김중혁]]과 함께 김천 3인방이라고도 불리며, 21세기의 블루칩이라는 말 또한 들어왔다.
         최근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캐릭터를 만들 때 처음 아무렇게나 써보고 그 이후에 새로 쓴다고 밝혔다.
  • 김중혁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1971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슈퍼집 아들이었다고 한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소설가]] [[김연수]]--역전 앞 뉴욕제과 아들--, [[시인(문학)|시인]] [[문태준]]과는 고향 친구이자 중학교 동창이다.
         복선은 처음부터 많이 깔려 있었다. 지금은 아싸지만 학기초에는 과묵한 게 컨셉인 줄 알아 인기가 많았다는 과 여동기의 발언, 술김에 박미정 이야기를 하는 동진에게 도대체 뭘 알고 말하는 소리냐는 발언[* 그리고 또 이 말을 들은날에 평소와 다르게 술을 진탕 취할정도로 마시고 살기 힘들다고 술주정까지 한다.], 동진의 행선을 추적하면서 알아낸 법칙을 허은실에게 설명할 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발언, 박미정을 따르는 고양이가 김중혁한테도 친근감을 느끼고 몸을 비빈다든가, 박미정에게 저 또한 주위 사람이 많이 다쳤습니다 라는 의 말이 전부 자신도 동류의 사람임을 뜻하는 말이였다.
         여담이지만 친구인 동진에 비해 꽤 [[노안]]이다(…).[* 작가도 이점을 인하고 있었는지 후기에 설정이 노안 맞다고 우기겠다고 한다(...). 참고로 작중 나이는 32-33세 정도.] 현재 외모와 사람들을 피하기 전 외모를 비교해 보면 눈물난다.
  • 김태룡(정치인) . . . . 4회 일치
         1934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이후 충남대학교 법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4회 일치
         독일군 장성들은 마음껏 자신들의 지휘관으로서 전문적 견, 군사 기술을 칭송하고, 독일군 장병의 용기와 인내심을 강조했다. 모든 전쟁 범죄의 책임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돌렸고, 독일 국방군은 "'''어쩔 수 없이''' 나치스에 남용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범죄를 반대하고 억제했다'''."는 자기 변호를 '역사 기록'으로 만들어냈다.
         냉전이 종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던 1986~1987년에 걸쳐서 사학계에서는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에서 국방군의 역할을 추궁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 열린 '함부르크사회조사연구소'에서 주최한 "인종 말살 전쟁. 1941~1945년 독일군 범죄 전시회"가 열리면서 이 같은 연구 결과가 대중에 밝혀졌다. 전시회는 1999년에 일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1999년 까지 90개 가량의 도시에서 열리면서 독일 사회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1996~1997년에는 전시회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기독교민주당]], [[기독교사회당]], [[민족민주당]](NPD), 그리고 퇴역군인 단체가 나섯다. 하지만 결국 국방군 전쟁범죄는 공적으로 추궁받게 되었고, 마침내 독일 국방부가 국방군의 전쟁범죄 참여를 인정하게 되었다.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의 영향은 [[소련군]]에 대한 폄하로도 나타난다. 독일군 장성들은 패전 이후에도 슬라브인을 멸시하는 인종주의를 버리지 못하여,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이 단지 물량을 바탕으로 한 막무가내 [[우랴돌격]]에만 의존한 군대였다는 으로 서술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 같은 관점을 전쟁사 계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소련군을 폄하하는 잘못된 관점이 오랫동안 독소전쟁 역사에서 뿌리깊게 남게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 측 역시 실증이 될만한 자료 공개를 하지 않고 [[프로파간다]]에만 집중하여 냉전이 끝날 때까지는 이런 관점이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못하였다.
  • 나가 . . . . 4회 일치
         인간형의 비늘을 가진 냉혈동물로, 네 선민종족중 하나. 네신중 '물'을 상징하는 '발자국없는 여신'이란 신을 섬기며, 말을 할 수 도 있지만, 대부분 '니름'[* 마음속으로 말하는것. 프로토스의 소통방을 생각해보면 쉽다.]으로 서로 소통하며,[* 물론 나가가 아닌 다른 종족과는 평범하게 말로 소통한다.] 이때문에 청력이 그리 좋지는 못한 편이다.[* 이때문에 음악을 즐기지 못한다.] 특이하게도 열을 볼 수 있지만 그때문에 그림을 즐기지 못한다. 그외에 냉혈동물이라 그런지 허물을 벗기기도 하고, 일정 수준이상의 온도가 제공되지 않으면 활동할 수 없다.[*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한계선'이라고 하는데, 가장 짧은 간격이 200km라는듯(...)] '소드락'이란 약물을 투여하는것으로 일정시간동안 엄청난 속력과 민첩성을 보여줄 수 있다.
         이들은 22세가 되는해에 '심장적출'이란 의을 가지는데, 일종의 성인으로, 심장을 말그대로 '빼서' 심장탑에 보관하는 이다. 이상태의 나가는 사실상 불사로, 목이 잘려도 어느정도의 시간과 영양공급만 있으면 목이 다시 붙는듯. 심장을 뽑지 않은 나가는 '비에나가'라 부르는데, 이들은 말그대로 '가짜 나가'취급을 받는다. 만약 어쩌다 사정이 생겨 심장을 뽑지 못했을경우엔, 여성은 그 다음해에 심장적출이 벌어지는때까지 가문에서 보호해주지만, 남성은 무조건 끔살이라는듯(....)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4회 일치
          * 훈련이 끝나고 여학생들의 휴시간. 훈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 이들은 "동쪽엔 웅영 서쪽엔 사걸"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명문 히어로 학교 "사걸 고교".
          * 그동안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다른 히어로 학교"의 등장.
          * [[극의 소마]]도 시험을 치고 있는데 이쪽도 하고 있다.--[[보루토]]도 치고 있다고--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4회 일치
          * 설상가상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노출되어 집중 공격을 받는데, 그때 우라라카와 재회한다.
          * 미도리야는 필사적으로 뿌리치는데 그때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발각된다.
          * 그러나 다른 학교 학생들이 그냥 보고 있을리가 없다. 우라라카도 공격을 당하고 발을 헛딛이며 벼랑에서 떨어진다.
          * 그리고 다리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그 누구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더라면 임간학교 사건 때도 실패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4회 일치
          진심으로 싸울 것을 다짐하는 [[미도리야 이즈쿠]]. 그와 동시에 묘한 것을 깨닫는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그들이지만, 사실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 바쿠고는 폭발로 직접 데미지를 주는 전술을 버리고 폭발의 추진력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가속하고 급선회, 급감속을 거는 등 놀라운 응용력을 선보인다. 미도리야가 가드한 후 튕겨지는데 착지하기도 전에 급격히 거리를 좁히고 폭발을 이용해 점프 궤도를 변경, 순간에 미도리야의 후방을 잡는다.
          * 미도리야는 겨우 한숨 돌리며 바쿠고가 상상 이상으로 기술이 향상됐음을 깨닫는다. 바쿠고는 움직임을 보고 바로 대응하는 동물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 그건 움직임을 예측해서 싸우는 자신의 방으론 대응하기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웃고 마는데, 그것이 바쿠고의 눈에 거슬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4회 일치
          * 어쨌든 밀리오는 원거리 타입 개성보유자들을 순간에 제압하고 근접전 개성 보유자들만 남겨놓고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가 뭘한건지, 어떤 개성을 가진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절규한다.
          *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 사실을 예측하고 카운터를 노린다. 밀리오는 미도리야가 기척을 감지하기도 전에 반격을 준비하는 걸 보고 감이 좋은게 아니라 철저하게 "예측"한 결과임을 파악한다. 그렇지만 그정도로 밀리오에게 카운터를 먹일 수는 없었다. 밀리오는 그대로 미도리야의 몸을 통과하더니 핀 포인트로 미도리야의 눈을 찌른다. 미도리야가 자세를 무너뜨리자 그는 명치를 쳐서 제압, 사실 대부분 카운터를 노리는 적들은 그런 방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카운터에 대응한 역 카운터.
          * 이들의 생각대로 처음엔 밀리오도 개성을 활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금방 남들보다 뒤쳐졌으며 옷 조차 제대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위"를 노리려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성의 약점을 끊임없는 연구와 "예측"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가능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보다 대련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직업체험에서는 말하자면 "손님"으로서 견학하는 것 뿐이지만, 인턴에 참가하면 한 사람의 "사이드킥"으로서 "프로"로 취급된다. 그건 엄청난 공포와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지만, 반대로 학교에선 절대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 기숙사로 돌아온 학생들의 관심사는 단연 인턴십이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 1학년의 참여 여부를 결정한게 없어서 구체적인 건 이야기할게 없다. 그런데 미도리야는 따로 적당한 인물에게 의견을 구한다.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였다. 직업 체험에서 그를 지목했던 그랜토리노라면 인턴으로 채용할 가능성도 높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4회 일치
          * [[마그네]]가 반발해서 덤볐지만 오버홀의 "개성"에 당해 순간에 사망, [[Mr. 컴프레스]]가 보복하려 하지만 역시 팔을 당한다.
          *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그네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오버홀을 공격한다. 그는 자신들은 누구 밑에 들어가려고 모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빌런연합이 휴기를 가지는 동안 자신의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그 또한 마그네와 마찬가지로 오카마였다.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그네와 달리, 그녀는 세상의 눈을 의하며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상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녀는 마그네는 거기서 뛰쳐나갈 용기가 있엇지만 자신에겐 없었다고 부러워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4회 일치
          * 창과 방패의 대결은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의 승리. 키리시마는 의이 오락가락면서도 패트껌을 지키겠다는 의협심만은 꺼지지 않았다.
          * [[패트껌]]의 선언대로 창과 방패의 대결은 방패와 방패,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의 승리로 끝났다. 키리시마가 지키고 패트껌이 완성한 최강의 창이 텐가이의 배리어도 랏파의 포텐셜도 뚫고 반대편 벽에 커다란 크리에이터를 만들었다. 적들의 완패. 키리시마가 의을 찾은건 그때였다. 그러나 아직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곁에 있는 패트껌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지경에서도 키리시마는 "패트... 지키겠어"라고 중얼거린다. 패트껌은 감격하며 새삼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랏파에게도 있느냐는 별개 문제. 랏파는 그를 가볍게 즈려밟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텐가이가 회복한 여력은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가벼운 한 발로 의이 다시 날아갔다. 랏파가 배리어를 칠 여력도 없는 주제라고 빈정댔다. 하지만 그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다. 여기저기 뼈가 부러져 도저히 싸울 상태가 아니다. 패트껌은 그 묘한 대화를 보고 있다가 대체 뭘하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정말로 함정이 아닌 건가? 랏파의 답은 이번에도 단순했다.
          * 패트껌은 반박할 기분도 별로 나지 않았다. 일단은 이제 랏파는 체포될 거고, 감옥행이 될 테니 재시합이고 뭐고 그냥 진거라고 말해 본다. 랏파는 그것도 알바가 아니다. "아무도 죽지 않으면 무승부", 그런 지론이었다. 그는 패트껌이 움직이지 않자 먼저 문으로 향한다. 그쪽이 의무실인 모양이다. 랏파는 기인이긴 하지만 기인 나름의 방을 지키는 부류였다. 욕구에 충실한 인간인 만큼 하는 말이 딱히 숨기는게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이나 키리시마가 이 몸으로 일행과 합류하기는 글렀다. 패트껌은 키리시마를 안아든 채로 랏파의 뒤를 따랐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4회 일치
          [[오버홀]]은 이들의 신고를 받으며 심심한 유감을 표시했다. [[마그네]]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죽음에 대해서]]. 오버홀도 "그"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고 이젠 지나간 일이니 한 구가 된 이상 잘 해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이 트와이스의 신경을 긁었다. 우선 마그네의 아이덴티티는 "그녀". 트와이스가 그걸 가차없이 지적하며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포장만 잘했다"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그 오락가락하는 성격대로 곧바로 태도를 바꿔 "그래서 뭘하면 되냐"고 적극 협조적으로 나온다. 어지간히 어처구니 없는 녀석들은 철포옥 핫사이슈들 조차도 그 성격에는 어이가 없다고 평한다.
          * 이렇게 해서 신고은 큰 탈 없이 마무리.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버홀 뒤쪽에 있는 시커먼 녀석이 한 가지 더 질문을 던졌다.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대답은 당연히 No. 토가와 트와이스 모두 망설임없이 답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대답일지? 적어도 오버홀은 그걸로 만족했다. 그들을 시에핫사이카이의 새 구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 뿐. 수배범인 그들을 자유롭게 둘 수 없으니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지하의 거주 공간에서 생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둘이 연금이 아니냐고 반발하지만 오버홀은 "신용할 수 있게 되면 좀 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공수표 같은 말로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이리나카가 우쭐거린다. "언제까지 그런 태도면 안 된다는 말"이라며 으스댄다.
          >알았으면 하라는 대로 하라고 짜들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4회 일치
          * 그녀는 "빌런에게 습격당해 수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학생이 부상 당하는걸 막지 못하는 그런 학교에는 더이상 다니게 하고 싶지 않다"고 전학 의사를 밝힌다.
          * 미도리야는 자신의 부상은 학교의 정책과 무관하며 그들은 언제나 말려왔지만 자신이 잘못돼서 다치게 된거라고 변호한다.
          * 그러나 어머니는 "그 결과가 이 상황이라면 더더욱 학교 책임"이라고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 학교로 돌아가려는 올마이트. 미도리야는 배웅하러 나온다.
  • 다크 유니버스 . . . . 4회 일치
         [[유니버설 픽처스]]의 [[셰어드 유니버스|배경 세계 공유]] 영화 시리즈. [[드라큘라]], [[늑대인간]], [[미이라]],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투명인간]], [[길맨]] 등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클래 [[몬스터]]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고전 [[괴물]]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다.
         [[미이라(2017년 영화)|미이라]]가 2017년에 개봉했다. 늑대인간을 다룬 울프맨도 각본을 준비 중이라 하며 투명인간도 리메이크 소을 밝혔다. 좀 더 진행되는 것을 봐야 알 터이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길맨, 반 헬싱도 영화화될 듯. 다만 미이라의 실패 이후, 계획이 취소되었다가 다시 재게되는 등 진행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상황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예정된 상황. 현재 투명인간이 나온 상황이다.
          * 본 게시물은 정 명칭이 나오기 전까지 '유니버설 몬스터즈(Universal Monsters)'라 표기되었다. 영문 위키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유니버설 픽처스의 괴물 영화 목록 페이지인 유니버설 몬스터즈에도 링크되어있다. 정 명칭 공개 후에는 별도의 명칭을 가지게 되었으며 물론 영문 위키의 유니버설 몬스터즈 항목에서도 다크 유니버스를 찾을 수 있다.
  • 도예종 . . . . 4회 일치
         * 1937년 대구 계림초등학교 졸업
         * 대구대학 경제학과(현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 [[상주고등학교]] 교사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인혁당 사건]][[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
  • 돈부리 . . . . 4회 일치
          * 그릇. 음을 담기 위한 두껍고 깊은 그릇을 뜻한다. 흔히 '사발'로 번역된다.
          * 음. 돈부리 그릇에 담아서 먹는 음을 뜻한다. 흔히 일본에서는 [[덮밥]] 종류를 여기에 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음을 돈부리라고도 한다. 이 경우 돈부리모노(どんぶりもの)를 생략한 것이 된다. 생략해서 -동(どん,丼)이라고 한다.
  • 둠 패트롤 . . . . 4회 일치
          본명 클리프 스틸(Cliff Steele).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으며, 치프가 그의 [[뇌]]를 [[로봇]] 몸체에 이하여 살려냈다. 자신의 몸 때문에 [[우울증]]이 있다. 로봇 신체에서 [[괴력]]을 발휘.
          * 2006년에 [[워너 브라더스]]에서 영화로 만든다는 소이 있었지만, 2014년에도 소이 없는 걸로 보아 엎어진 듯.
          리타 파. 별명은 리타 스타. 전 할리우드 영화배우. 이상한 가스에 노출되어 세포 구조가 변경되었다. 감정이 항상 기분 좋음에 고정되어 있어야 신체 형태가 유지 된다. 그래서 웃는 표정으로 지낸다. 하지만 집중이 풀리고 감정이 안 좋아지면 몸이 순간에 젤라틴으로 바뀌면서 녹아 내린다. 신체 크기를 변경해서 거인이 될수 있다.
  • 랑그릿사 . . . . 4회 일치
         정규 타이틀은 5까지 발매하였으며, 이 중 1부터 3까지는 PC버전으로 정발매되었다. 그러나 3의 흥행이 시원치 않았는지 4와 5는 한국에 발매되지 않았다. 그런데 외전으로 볼 수 있는 랑그릿사 밀레니엄은 또 한글화되어 발매되었다. 발매기준에 대해서는 좀 모호한 편.
         단순한 유사성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서로 다른 경쟁 게임기에서 비슷한 장르로, 이렇게 많이 비슷한 게임이 나왔다는 점에서 보면, 랑그릿사는 파이어 엠블렘을 굉장히 많이 의하여 대항하는 관점에서 만든 게임으로 보는 것도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파이어 엠블렘 역시 랑그릿사를 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전의 계보(1996)에서는 먼저 나온 랑그릿사 2[* 정확히는 멀티엔딩 요소와 더불어 분기에 따른 연애까지 갈라지게 만드는 [[슈퍼패미컴]] 이작 데어 랑그릿사를 가리킨다. 메가드라이브판 랑그릿사 2는 빛의 후예 엔딩 하나만 있는 리아나 일직선이다.]를 연상케 하는 '연애 요소'를 도입한데 더해서, 단순히 엔딩에서 맺어지는 상대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2대에 걸치는 싸움을 묘사하는 등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 램즈혼 달팽이 . . . . 4회 일치
         하지만 반대로 너무 대량으로 번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일명 '폭풍번'이라고 부른다. 생존능력이 강해서 쉽게 번하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번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는 평가.
  • 마기/315화 . . . . 4회 일치
          *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의 약혼 소을 전하기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는 [[알라딘]] 일행
          * 여러 나라를 돌며 그들의 소을 전하고 마지막에는 신드바드와 대면하기로 결정한다.
          * 연백룡은 쥬다르를 찾기 위해 홍옥에게 소을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출발한다.
          * 황제국에서는 알리바바의 약혼소으로 화제.
  • 마기/324화 . . . . 4회 일치
          * 한편 지상에 있던 아르바는 의을 잃은 채로 방치돼 있었다.
          * "신의 의지는 하위 세계의 생명은 알 수가 없어. 마치 사람을 구성하는 미세한 세포 하나하나에 자신의 존재의과 사람의 의 따위를 영원히 알 수 없는 거랑 비슷하지 않아?"
         신드바드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지는 미지수. 루프로 완전히 돌아간 걸로 보였는데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상에서 다윗이 한 것처럼 그에게 접근해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여전히 성궁을 탈취할 생각인 듯 한데 "고지에 오르기 위한 포석"이라는 걸로 보아 이미 방법은 연구를 끝낸 듯.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그와 다윗이 성궁에 있기 때문에, 실제론 그들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우고가 한 것처럼 보다 상위의 신으로 위상을 바꾸는 방으로 우고를 처리하려 할 것으로 예상.
  • 마기/328화 . . . . 4회 일치
          * 뢰엠 제국이 국제동맹에 정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이 복귀했다. 화상으로 소을 접한 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뢰엠 제국을 방문한다.
          신드바드는 계속 말한다. 솔로몬은 희망의 정의를 각자에게 떠넘겼지만 그는 마음의 안처를 통합함으로써 분쟁과 배척을 줄이고 싶었으며 결과적으로 황제국과 뢰엠과도 분쟁할 일이 사라졌다고 과시한다. 그러면서 알라딘이 기껏 화합하려는 세계를 다시 어지럽힐 거냐고 공격한다. 알리바바는 적어도 홍옥과 티토스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알라딘이 분노하는 이유는 신드바드가 그의 사고방의 롤모델이었기 때문. 자기가 루프를 다시 썼다는 신드바드에게 바르바드에서 한 얘기로 받아친 부분을 봐도 알 수 있다. 알라딘으로선 부모님이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고 전혀 반대되는 말을 하는 거나 다름 없기 때문.
  • 마기/350화 . . . . 4회 일치
          * 그런데 아이디어를 낸 신드바드는 암담한 기분이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하고도 크게 낙담하는데, 지금껏 자신이 진행하던 작업은 그토록 증오했던 "군국주의적 방법론"이었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들은 적이고 타도해야 한다. 그는 세상이 그런 으로 굴러가는게 싫어서 칠해연합을 만들었고 국제동맹으로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어떤가? 입으로는 혁신가를 자처해왔지만 결국 그도 알마트란 때부터 이어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서 벗어난 것은 타인의 의지, 알리바바 덕분이다. 그는 지금껏 운명을 꿰뚫어보고 만인을 이끄는게 "특이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사고가 타의에 의해 변했다면?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끌려가는게 당연해지는게 아닐까?
          * 가능성은 미지수, 그 말을 곱씹던 신드바드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인정한다"고 말하고 새로운 길이 열렸는데 낡은 방에 연연했다며 자신도 정체자였을 따름이라고 고백한다. 그 말을 들은 알라딘과 알리바바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의 생각이 변했다는 징후였다. 그 기대대로 신드바드는 새롭게 도출된 방을 승인했다.
          * 이런데 분명 마법은 멈췄을 터인데, 주변의 루프가 심상치 않다. 이변은 계속되는 건가? 이것은 신드바드도 알 수 없는 반응이다. 바깥에선 먼산에 걸려 있던 해가 그대로 저물어 버린다. 그러더니 순간에 깜깜한 밤으로 변하는데,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백룡과 쥬다르는 그저 아연한 표정으로 성궁이 바뀌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마카나이 요리 . . . . 4회 일치
         마카나이 요리는 요리인이나 종업원들이 자신들이 사를 하기 위해서, 맞춤 재료로 만드는 요리를 뜻한다. 즉, 가게에서 제공되는 사. 가게에 따라서 사정은 다르다.
         마카나이(賄い)는 사나 연회의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기숙사 등에서 만들어 내놓는 사나, 그것을 만드는 요리인을 뜻한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마카나이라는 말이 요리인들이 자신들이 먹으려고 만드는 요리를 뜻하게 됐다. 「마카나이 요리」라고 하여, 공이 든 요리를 준비하는 가게도 있다.
  • 맥스 페인 . . . . 4회 일치
          단발 유탄발사기. 펀치넬로 저택을 방어하는 마피아 하나가 들고 있는게 첫 등장. 첫 등장시 [[스카페이스|방문을 날려버리는]] 위엄을 선보이지만 맥스가 따라할 수는 없다.
          착탄한 곳에 화염을 만들어낸다. 해당 화염 효과와 접촉한 적은 불춤을 추며 죽는다. 적들이 화염 효과를 인하지 못하므로 유용하다. 접촉시 즉사는 맥스도 해당되니 주의.
          Trio. 안젤로 펀치넬로의 경호원들. 펀치넬로 마피아들 사이에서 겁나 무서운 대상으로 인되는 것 같다. 펀치넬로 저택에 쳐들어온 맥스를 죽이려고 하지만 역으로 죽는다.
          Frankie "The Bat" Niagara. 펀치넬로 패밀리의 구성원. 모나가 먹인 약탄 위스키에 기절한 맥스를 의자에 묶어놓고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팼다. 펀치넬로 패밀리에 손해를 입힌 맥스를 개처럼 죽이라는 명령에 따른 것. 잠시 휴시간을 가지러 바에 간 사이 탈출한 맥스에 의해 죽는다. 사용하는 무기는 듀얼 잉그램.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4회 일치
         [[http://www.rockstargames.com/maxpayne2/|공 홈페이지]]
          2발 장전 가능. 펌프를 당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펌프액션 산탄총보다 월등한 연사력을 보여준다. 장탄수야 불릿타임중에 총알 다 떨어지면 순간에 채우니 논외.
          Mike the Cowboy. 러시아 갱단의 일원. 맥스가 마피아들에게 습격당한 블라드의 당을 찾아갔을 때 처음 만났다. 첫 등장부터 AK-47 한 자루로 네명의 펀치넬로 마피아를 처치하며 나타난다. 이후 맥스와 함께 마피아를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죽을수도 있다.
          살아있다면 청소부들을 부리는게 블라드라는 걸 알아낸 맥스가 그의 당을 습격했을 때 재등장한다. 방송으로 러시아 갱단원들에게 맥스를 처리하라 지시하는 역할. 러시아 갱단원들이 역으로 발리자 자신이 블라드의 방에서 방송을 하고 있으니 와서 끝장을 보자고 한다. 결국 블라드의 방에서 맥스에 의해 죽는다.
  • 바키도/131화 . . . . 4회 일치
          * 마침내 한마 바키가 승부는 났다며 경기를 중단시키려 하지만 모토베는 희미한 의 속에서도 동료 무도가들을 지키려는 의지를 불사른다.
          * 투구를 쓴 무사도 성주도 그때까진 웃는 낯이었으나 대번에 표정이 변하고 특히 무사는 은땀을 흘리며 두려워한다. 무사시는 자기가 뱉은 말대로 바로 베려고 나선다. 무사는 "살살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는데 무사시는 "전쟁에서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셈인가?"라며 단숨에 내려친다.
          * 무사시는 확인사살을 하듯 오른쪽 어깨를 내리친다. 어깨가 잘려나간 거나 다름 없을 정도로 깊이 패인다. 이 시점에서 모토베는 의이 희박해진 듯 눈이 풀리고 만다.
          * 한마 바키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승부는 낫어어어! 멈춰어어!" 그러나 모토베는 희미해지는 의 속에서도 "그랬다간 지킬 수가 없다"고 독백하고 있다.
  • 박소연 (배우) . . . . 4회 일치
         * [[서울대학교]] 성악과 학사
         * 서울예술대학교 공연학부 겸임조교수 (2012년 ~ )
         *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 외래교수 ( 2009년 ~ 2014년 )
         * [http://cafe.naver.com/onlysoyeon 공팬카페]
  • 박순석 . . . . 4회 일치
         1904년 [[경상북도]] 흥해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대구광역시|대구]] [[계성고등학교|계성중학교]], [[경성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 박술희 . . . . 4회 일치
         그러나, 이후 호족 세력과 왕권, 그리고 [[왕규의 난]] 사이에 얽힌 복잡한 권력 투쟁은 정치가가 아니라 군인이었던 박술희에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왕무|혜종]]의 세력 기반은 미약하였고, 이복동생인 [[고려 정종 (3대)|정종]]와 [[고려 광종|광종]]은 외할아버지의 세력인 충주 호족 세력과 [[왕렴]]을 중심으로 한 [[서경 (고려)|서경]] 세력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외척인 [[왕규의 난]](王規)도 왕위를 탈취하려고 하고 있었다.
         === 성 ===
         《[[고려사]]》(高麗史)열전에 의하면 그는 육을 좋아하여 소.돼지고기는 기본이고 두꺼비·개구리·뱀·개미에 이르기까지 즐겨먹는 특이한 성이 있었다고 한다.
  • 박재홍(1941) . . . . 4회 일치
         1941년 2월 28일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큰형 [[박동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백수]]로 있다가 [[박태준]]의 도움으로 [[포스코|포항종합제철]]의 중간간부를 역임하다가, 동양철관(주)의 사장, 회장을 역임하였다.
  • 박준규(1925) . . . . 4회 일치
         [[1925년]] 9월 12일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 묘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출생하였다[* 일명 '묘골마을' 이라하는 순천박씨 집성촌. 현재 묘골에 있는 [[박팽년]] 등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 앞에 그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경북고등학교|경북중학교]] 및 구제 마쓰야마[[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구마모토 [[의과대학]] 재학 중에 [[8.15 광복]]을 맞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로 편입하였으나, 동 대학 법문학부 정치학과로 전과하였고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 박학기 . . . . 4회 일치
         박학기는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렸을 때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로 이사하여 학창시절을 보냈다. 1983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 팝 가수 첫 데뷔한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를 나오고 1988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3집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라는 곡으로 정 가수 데뷔하였다. 이듬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 〈이미 그댄〉, 〈향기로운 추억〉 등을 히트시키며 골든디스크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김광석]]의 친구로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주최하고 있다.
         [[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밀양 박씨]]
  • 백진희 . . . . 4회 일치
         | 월화드라마 《[[샤를 합시다 3]]》
         * [[동서품]] 핫초코미떼
         ! 시상
         * 본인의 고등학교(명덕여고) 선배인 [[박솔미]]가 출연한 드라마 중에 SBS [[나쁜 여자들]]이 있는데<ref>{{뉴스 인용
  • 벨트스크롤 게임 . . . . 4회 일치
          * 회복 아이템은 왠지 전통적으로 [[음]]이라서 길거리에 떨어진 음을 주워먹고 체력을 회복하는 생각해보면 묘하게 거지같은 꼴(…)을 자주 볼 수 있다. 음이 아니라도 그렇지만.
          * 다인 플레이를 지원하지만 그 만큼 플레이어 간의 견제가 치밀해지기 쉬운 것이 특징. 단순히 회복 아이템만 먼저 먹어버려도 견제가 되기 때문. 또한 [[캐딜락과 공룡들]]처럼 피아별이 없어서 아군에게도 공격이 들어갈 수 있는 게임도 있다. 혹은 [[황금도끼]]에서 벨트스크롤을 일부러 땡기지 않아 추락사하게 만드는 방법 등, 여러모로 [[우정파괴]]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 보쿠걸/107화 . . . . 4회 일치
          * 다이쥬 고등학교의 입학
          * 메이는 성공적으로 수험을 치러 다이쥬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 이마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미즈키를 잊으려 했는데, 때마침 꽃꽃이부 일동이 커밍아웃&고백을 해봐 할렘상태. 가끔 선배 자격으로 학교에 들른다.
  • 블랙 클로버/102화 . . . . 4회 일치
          * 웬일로 [[야미 스케히로]]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게 휴을 명령한다.
          * 언제나 사람을 개처럼 굴리는 [[야미 스케히로]]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었는지 막 부상에서 완쾌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겐 당분간 임무를 맡지 말라고 휴을 명령한다. 하지만 임무가 없으면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아스타에겐 오히려 고역이었다. 임무를 빼면 자신에게 뭐가 남냐는 아스타에게 야미는 근육이 남는다고 냉정히 말한다. [[핀랄 룰러케이트]]가 시간 때우기 적당한게 있다고 말하려는데, 마침 아스타의 치료법을 찾아 던전으로 떠났던 [[매그너 스윙]]과 [[락 볼티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스타는 고마웠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인간의 형상을 포기한 [[챠미 퍼밋슨]]. 마법버섯에게 기생 당해 자기 몸에서 자라난 버섯을 자기가 먹는 기이한 마법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챠미의 먹성으로 먹어도 하나 먹으면 세 개가 자라는 미친 번 속도 때문에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레이는 차마 이 꼴로는 변하지 못했는데 변신을 똑바로 못했다며 자학하고 있다. 역시 아스타의 치료법은 찾지 못한 채 이상한 버섯이나 산열매 따위나 잔뜩 가져왔다. 야미는 챠미만큼은 자리 비운 만큼 급료에서 제한다. 버섯은 매그너가 태워서 없애준다.
          * 사실 아스타가 굳이 이들을 부른 것은 선물이 있어서였다. 그는 키아토에게 잘린 다리를 잘 가져오라고 했는데 키아토는 그 말대로 물마법으로 보존해 잘 간수하고 있었다. 아스타는 [[마녀왕]]의 마법 "멸주의 피고치"를 병에 담아 왔다. 마법을 풀어놓자 순간에 키아토와 카호노의 상처를 치료해 버린다.
  • 블랙 클로버/111화 . . . . 4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는 노엘에게 그녀의 어머니 [[아시에 실버]] 이야기를 해주며 그녀와 다른 방으로 강해지길 기원해준다.
          * 한편 메레오레오나의 술권유를 어떻게든 뿌리친 샤론은 문득 칸막이 너머를 상상하는데, 거기서 [[야미 스케히로]]가 알몸으로 어슬렁거릴 생각을 하자 열이 올라서 그대로 리타이어. 마론이 혀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한다. 탕에는 메레오레오나와 노엘만 남는데, 메레오레오나 측이 노엘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녀는 넌지시 "점점 더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말을 건다. 마치 그녀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 남탕 쪽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를 상대로 시시한 경쟁심을 발동했다. 그의 쿨한 태도를 무너뜨려 주겠다고 물온도를 올려대기 시작한 것. 레오폴트가 나름대로 용을 쓰는데 유노는 빰을 뻘뻘 흘리면서도 "완전 괜찮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끼어들어서 그 허세를 폭로한다. 쿨한게 아니라 단순히 지는게 싫은 성격. 그렇게 까발린 주제에 자기도 지고 싶지 않다며 참기 대결에 끼어든다. 정작 유노는 바람 마법으로 물을 히다가 적발, 자기도 마법의 힘을 쓰는 건데 뭐가 잘못됐냐고 뻔뻔하게 나온다.
          * 젊은 애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만족해하는 야미. 왠일인지 조용히 있는 아스타에게도 "따라갔다 오라"며 껄껄 웃는다. 언제나 야미에게 선동 당했던 아스타. 그런데 이번에는 "나는 시스터를 소중한 사람으로 정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는 선비스러운 일갈과 함께 거절한다. 마치 찬물을 뿌린 것 같이 된 남탕. 이상한 열기를 혀버린 탓인지 결국 파국은 없이 온천합숙이 종료된다.
  • 블랙 클로버/113화 . . . . 4회 일치
          * 그렇게 있는대로 어그로를 끌더니, 이번엔 아스타에게 한 팀인 모양이니 잘 부탁한다며 악수를 청한다. 어리숙한 아스타는 방금 전 그따위로 나오는 걸 보고도 일단은 그 악수를 받는데, 아니나 다를까 악수를 가장해 클로버 왕국에서 최악의 악취를 자랑하는 "무지개 노린재"를 쥐어준다. 함정. 이 곤충은 일곱 빛깔의 가스를 내뿜는 정말로 극악한 마법생물. 아스타가 뒤늦게 그의 본색을 깨닫지만 잭스는 "얼빵한 얼굴에 텐션만 높고 무한걸 까발리고 다니는 시끄러운 꼬맹이"라고 더욱더 독설에 박차를 가한다. 말주변 없는 아스타가 받아친답시고 "입 주위에 뭔가 멋있는걸 두른 녀석"이라고 해보지만 칭찬도 욕도 아닌 애매한 무언가다.
          * 팀원간 통성명이 대충 끝나자 코브란 공간마법사가 일행을 진짜 경기장으로 안내한다. 그는 핀랄과 비슷한 타입의 공간마법을 사용하는데 거대한 문을 생성해 목적지로 인도하는 형이다.
          * 아스타의 B팀과 A팀의 대결. A팀은 오만불손하고 마법제를 모욕했던 잭스에게 이를 갈고 있다. 그 분노로 일치단결한 A팀과 달리 B팀은 시작부터 개판. 우선 아스타가 텐션을 높이고 있으려나 어김없이 잭스가 빈정거리며 실제 승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부터 찾으라고 정론으로 공격한다. 팩트폭력에 부들거리는 아스타. 미모사는 콩깍지 모드라 부들거리는 꼬락서니에도 헤롱거린다. 그래도 일단 이 중에선 제일 자기 할 일을 찾아한다. 그녀는 곧 자군의 전력을 파악하자며 각자의 능력을 확인한다. 미모사는 회복, 서포트, 원호 등이 가능한 물마법사. 아스타는 반마법을 사용하는 근거리 검사다. 잭스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그녀가 잭스에게 어떤 마법을 사용하냐고 묻는데 공교롭게도 그 대답을 들을 기회를 놓친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적의 공격이 자군의 크리스탈에 명중한다. 그러나 적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스타가 당황하는 동안 미모사는 크리스탈의 보호가 최우선이라 판단, 일단 물마법으로 크리스탈을 피신시키려 한다. 그때의 빈틈도 놓치지 않는 적의 공격. 역시 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적은 초장거리에서 정밀한 저격을 가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4회 일치
          * [[잭스 류그너]]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네르슈 버밀리온]]을 처리하는 동안 양팀 여성진의 격돌이 있었다. [[미모사 버밀리온]] 대 [[솔 마론]]. 마론이 골렘을 앞세워 그녀를 덮쳐왔으나 미모사는 물마법 "마포의 꽃"으로 골렘을 분쇄한다. 마론은 그녀가 예상이상으로 강적이란걸 인정했지만 그녀를 오래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마포의 꽃의 레이저를 맞고 날아간 골렘의 오른팔이 공중에서 형태를 바꿨다. 흙마법 "흙덩이 봉인". 하늘에서 거대한 토사가 미모사를 덮쳤다. 거기에 파묻힌 미모사는 당분간 움직임을 봉쇄 당했다.
          * 이때 일으킨 굉음이 말썽이었다. [[매그너 스윙]]에게 위치가 발각됐다. 그는 새로운 마법 불꽃 강화마법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려왔다. 아스타와 잭스, B팀의 크리스탈까지 발견. 아스타는 예상 외로 빠른 그의 접근에 놀랐지만 매그너는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버린 상태에서 정지. 그게 매그너의 "필승존"이었다. 매그너는 그 상태에서 특기인 원거리 공격으로 나왔다. 그는 아스타를 노리고 "입단 때의 리벤지"를 선언했다. 아스타도 선뜻 "덤벼보십쇼 선배!"라며 그때처럼 자세를 잡았다. 그 다음 매그너의 전력투구. 아스타는 입단 때와 같은 방법으로 받아치려고 했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이라면 더 정확하게 받아칠 수 있다,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불꽃의 마구가 눈 앞에서 사라져 크리스탈을 강타하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동문대결은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아스타가 사라지는 마구에 속수무책. 크리스탈에 계속 타격이 갔다. 기를 읽는 방법도 어렵고 표적 자체가 작아서 더욱 어려웠다. 그 크기 또한 매그너의 섬세한 계산이었다. 마력용량이 적은 그로선 고위력으로 대량의 마법을 쓸 방법이 없었다. 에너지 효율과 공격빈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것이 이 형태. 매그너의 표현대로 "하층민의 싸움방"이었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4회 일치
          * [[핀랄 룰러케이트]]의 유년시절은 부모님의 매도로 가득했다. 어머니에게 핀랄은 자 조차 아니었다. 그는 동생 [[랜길스 보드]]와 비교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 정도였다. 공부든 운동이든 랜길스가 월등한 것에 만족하며 핀랄은 자기 자 조차 아니라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자은 오직 랜길스 뿐. 그런 말을 핀랄의 면전에서 하는 말이었다.
          저 시시한 여자가 나를 형보다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랜길스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그때까지 경쟁 상대 조차 못 된다고 생각했던 돼먹지 못한 형이, 우등생 동생이 확실히 짓밟아야할 상대로 재인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핀랄이 끝내 가문을 등지고 나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4회 일치
          * 핀랄은 몰랐지만 보드가의 모두 사람이 랜길스를 지지했던건 아니다. 고용인들 사이에선 재능은 뒤쳐져도 상냥하고 대인관계가 좋은 핀랄을 높이 평가하는 여론도 있었다. 랜길스는 그걸 의하고 있었고 자신도 형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피네스" 양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을 떨쳐낼 수도 없던 것이, 누구보다 자신이 핀랄을 상냥한 형이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핀랄은 부모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랜길스를 챙겨주는 좋은 형이었다. 하지만 그런 배려가 랜길스를 더욱 자극했고 비뚫어지게 만들어 "내가 우수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므로 무엇 하나 형에게 져선 안 된다"는 아집을 키우고 말았다.
          * 이미 승부가 났음에도 랜길스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핀랄이 사라져야 한다며 의도 차리지 못하는 형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가 저지하고 나선다.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어느 새 날아와 랜길스의 목을 겨눴다. 비록 대회장에 난입하진 않았지만 [[챠미 퍼밋슨]]도 그리모어를 펼쳐들고 요격할 태세였으며 [[노엘 실버]]는 제일 먼저 핀랄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갔다.
          마법제가 냉담하게 내뱉자 랜길스는 그나마 억누르고 있던 호전성을 폭발시킨다. "그 자", 핀랄과 함께 있어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아스타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아스타도 피차 일반.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으르렁거린다.
  • 블랙 클로버/95화 . . . . 4회 일치
          * 아스타는 라드로스가 쏘는 마법탄을 그대로 돌려보내는 방으로 대응하지만 마력을 흡수하는 타입이라 별 타격이 되지 못한다.
          * [[라드로스]]의 급습으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일행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다. 중요한 전력인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도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를 지키다 치명타를 맞고 쓰러진다. 아스타는 마르스의 숨통을 끊으려는 라드로스의 공격을 베어내며 나타난다. 마르스는 결국 의을 잃고 파나는 마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빠르게 회복시켜주지 못한다. 현재 아스타 일행의 전력은 아스타 뿐.
          * 라드로스는 [[판젤 크루거]]에게 사용했던 마법탄 폭격을 다시 구사한다. 그는 아스타의 전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핀랄 룰러케이트]]의 공간마법 보조가 없으면 아스타의 공격 범위는 크게 감소한다. 라드로스는 그 점을 들어 아스타를 "좋은 표적"이라 조롱한다. 아스타는 폭격을 쳐내고 반사해 보내는 으로 대응하는데 라드로스는 자신의 마력도 재흡수할 수 있어서 아무런 타격도 되지 않는다. 라드로스는 더욱 거세게 공격의 고삐를 죄며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 이미 승리한 것처럼 폭소를 터뜨리던 라드로스에게, 폭연 속을 꿰뚫으며 반마법의 검이 날아와 꽂힌다. 단마의 검은 순간에 라드로스의 마력을 무효화 시킨다. 라드로스는 자신이 무슨 공격에 당한건지 파악을 못한다.
  • 블랙 클로버/97화 . . . . 4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자신의 의 속에서 블랙 클로버의 마도서에 깃든 반마법의 악마와 만난다.
          어느새 아스타의 정신이 돌아와있다. 그의 오른팔을 비롯한 우반신은 단마의 검에서 나온 검은 그림자에 잠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스타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다시금 일어선다.
          * 여왕은 그냥 의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스타가 제대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놀란다. 지금 그를 휘감은 검은 그림자는 "단마의 검"에서 나온 반마법의 힘이다. 본래 단마의 검은 반마법의 에너지가 항상 흘러나오고 있다. 그 때문에 그 검을 들 수 있는 이는 극소수. 아스타는 "마력이 없다"는 천성 덕분에 아무런 제약없이 검을 사용해왔다. 그러면서 무의 중에 반마법의 힘을 제어하는 감각을 익혔다.
  • 블리치/697화 . . . . 4회 일치
          * 신 대장 취임. 루키아가 새로운 13번 대장이 되고 기술개발국의 아콘이 부대장이 됨.
          * 정으로 호정 13대 총대장에 취임하여 활동하고 있다.
          * 대장들이 서둘러 향하는 곳은 신임대장 취임장이었다.
          * 대장들이 모이고 이 거행된다.
  • 빅터 차 . . . . 4회 일치
         아버지 차문영은 한국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도자기, 자개, 병풍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 가게를 열었으며, 동양 화병에 미국제 갓을 얹고 중국제 나무로 받침대를 한 --기괴한-- 동양램프라는 상품을 백화점에 납품하여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차문영은 2001년까지 40년간 아시아하우스를 운영하고, 2005년 타계했다.
         그의 부인은 군인,정치인 김의 딸이다. 김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으며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 동기이다. 군에서 소장으로 전역했으며, 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으로 당선됐다. 13대에서는 낙선했고, 14대에서는 [[민주자유당]], 15대에서는 [[신한국당]]에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http://ko.pokr.kr/person/1933151 (참조)]] 13대에서 낙선한 이후로 농림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 서림 . . . . 4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서림의 생애는 임꺽정과 관련된 기록에서 중요하지만 단편적으로 등장한다. 명종 15년(1560년) 11월 24일 기사에서 서림의 체포 소이 등장하는데, 그는 엄가이(嚴加伊)라는 가명으로 숭례문(남대문) 밖에서 거주하다가 관군에 체포당하여, 심문을 당하고 임꺽정 일당의 계획을 누설하게 된다.
          * 다른 설화에서는 임꺽정의 살아남은 부하들이 그에게 복수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녀서 결국 거짓으로 자신의 장례을 치렀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간사한 배신자' 서림은 임꺽정 이야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서림은 원초적인 완력을 강조하는 '[[백정]]' 임꺽정과 대비되어, 몰락양반이나 아전 등 [[지인]] 계층의 인물로 등장한다.
  • 서상일 . . . . 4회 일치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09년 [[안희제]]·[[김동삼]]·[[윤병호]] 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 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한때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 [[1945년]] 8·15광복 후에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장덕수]] 등과 함께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을 창설하고, 사실상 집단지도체제하의 정당의 최고위원이라 할 수있는 8총무단의 일원으로 선임되었다.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분류:대한제국의 사회 운동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호헌동지회]][[분류:윤보선]][[분류:윤치호]][[분류:조봉암]][[분류:장택상]][[분류:민주당 (대한민국)]][[분류:진보당 (대한민국) 정치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 서씨]][[분류:간 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손담비 . . . . 4회 일치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백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백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 사이트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백…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영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반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백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백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상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상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절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영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절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절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 {{공 웹사이트|http://www.sondambi.kr}}
  • 손병조 . . . . 4회 일치
         * 영남대학교 학사
         *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 한남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4회 일치
         캣 그랜트는 시겔 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 카터를 돌볼 수 없게 되어 시상에 갈 수 없었는 상황이었다. 카라는 자신이 카터를 돌봐주겠다고 나서서 그랜트에게 호감을 산다.
         제임스는 루시와 사를 하며 애정 공세를 받지만, 제임스는 카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떨떠름하게 느낀다. 제임스는 루시와의 관계를 힘겨워한다. 카라는 빌딩에서 터지는 폭탄 테러를 감지하고 날아가서 무너지는 빌딩을 떠받치고 화재를 끄는데, 수수께끼의 무인기가 카라를 관찰하고 있었다.
         DEO에서는 범인을 얼마 전에 해고된 에단 녹스로 추정한다. 카라는 즉시 잡으러 가려고 하지만, 알렉스는 카라에게 지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면서 휴을 권유한다. 카라는 카터를 보러 가는데 카터는 윈과 함께 잘 놀고 있었다. 카라는 카터에게 주려고 사를 사러 갔다가, 루시 레인과 마주치게 된다.
  • 스이츠 . . . . 4회 일치
         2005년 부터 일본의 여성 잡지들이 ‘스위츠(スイーツ)가 붐이다’라는 기사를 내놓에서 자주 사용하면서 널리 침투하게 되었다. 일본 스위츠(和スイーツ), 홈메이드 스위츠 같은 표현도 나타났다.
         >내가 같이 노는 친구들은 원조교제를 하고 있는 미키, 학교에는 비밀로
         > 친구는 있어도 역시 학교는 지루해. 오늘도 미키와 사소한 일로 말싸움을 했다.
         동인용어의 기초지
  • 신은정 . . . . 4회 일치
         | 학력 = 김천신평불고기
         [[199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5년 후 [[1997년]] [[서울방송|SBS]] 7기 공채 탤런트로 정 데뷔하였다. 이에 앞서 1994년 [[SBS]] 추석특집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주인공 심순애 역을 맡았으며, 그 외에도 [[SBS]] 《[[기쁜 우리 토요일]]》, [[KBS2]] 《토요일 전원출발》 객원 MC, HBS 드라마 《작은 영웅들》, 시트콤 《둘 곱하기 하나》 등에 일찍부터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 김천신평불고기
         * [[2001년]] [[MBC]] 시트콤 《[[세 친구 (시트콤)|세친구]]》 ... [[윤다훈]]과 [[박상면]]과 [[정웅인]]의 문화고등학교 1년 후배 신은정 역으로 특별출연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4회 일치
         구멍을 판 다음 리사는 일단 귀가하고, 저녁사를 마친 뒤 남편 유우키를 해변으로 데려갔다. 오후 10시 쯤 집에서 약 9킬로미터 떨어진 현장에 도착. 두 사람은 조금 걸어가다가 10시 30분 쯤 낮에 파둔 구멍에 빠지고 말았다.
         데무라 부부는 머리부터 추락. 그런데 공교롭게도 시트에 뿌려둔 모래 만이 아니라 구멍 주위도 무너져서 대량의 모래에 묻혀버렸다. 부부가 떨어질 때 비명을 듣고 유우키가 함정에 빠지는걸 기다리고 있었던 리사의 친구들이 달려왔으나, 역시 해안이 어두워서 발견에 시간이 걸렸고 발견했을 때 이 부부는 구멍 바닥에서 모래에 묻혀 발만 모래 밖으로 나와있는 상태였다. 부부는 모래에 묻혀 질사 하고 말았다.
         친구들은 일단 자기들 스스로 구조 작업을 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는지 나중에야 소방서에 연락했다. 결국 구출할 때까지는 2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구급대원 2명이 끌어내서 병원에 이송됐지만 이미 늦었다. 부검 결과, 부부의 사인은 모래에 묻혔을 때 흉부 압박에 의한 질사였다.
         판결에서는 발안자였던 아내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인정하고, 아내의 부모가 1030만엔을 지불하며, 나머지 3100만엔은 부모와 친구 6인이 연대하여 지불하게 했다. 다만 친구들도 구두 변론에서 부부가 장난을 치다가 함께 떨어졌다는 증언을 하여, 남편도 구멍의 존재를 인하고 스스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남편의 과실도 40%로 인정했다.
  • 심학봉 . . . . 4회 일치
         196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경북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이공계에서 활동하였다. [[특허청]] 특허심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실, 지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거쳤다.
  • 안영준 . . . . 4회 일치
         || '''출신학교''' || 삼광초 - 용산중 - [[경복고등학교|경복고]] - 연세대 ||
         삼광초-용산중-경복고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저학년 시절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활약하였다. 3학년 시절에는 팀의 주축선수로 활약하였으며, 4학년 시절에는 주장인 [[허훈]]과 팀의 챔피언결정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허재]]감독의 아들이자 [[허웅]]의 동생인 주장 [[허훈]]에 가려져있긴 하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하는 선수이다.
         '''SK의 알토란 스맨으로서 자리잡다.'''
  • 야차원숭이 . . . . 4회 일치
         [[바키 시리즈]]에 등장하는 생물. 일단 [[일본]]에 서하는 [[원숭이]]의 일종으로 되어 있다.
         ## 간단한 이력, 연표형.
         멸종 위기에 달한 크립티드 급 생물. 본래 [[칼]]든 [[사무라이]]도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이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특징으로, 마치 [[야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을 초월한 괴력과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흉폭한 짐승은 아니고, 상당히 지능이 높아서 가족이나 친구의 개념, 원수를 갚는 의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감정적 교류도 나눌 수 있는 알고보면 좋은 생물.
         고대 일본에는 다수의 야차 원숭이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에 확인 된 것은 바키의 친구가 된 야차원숭이와 그 자 야차원숭이 Jr. 뿐.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4회 일치
         일반적으로 무기에 신경을 안 쓴다면 쓰게 될 무기. 헤이덤은 자주 본 듯한 방으로 검을 잡지만 코너는 한손에 검, 한손에 단검[* 암살검의 날. 분리된다.]으로 운용한다. 장교와 예거가 들고 나온다.
          기본 무장. 민지 최초의 암살단원이 사용하던 토마호크로, 대대로 내려져왔다고 한다. 잘 보면 날 부분이 암살단 문양처럼 되어있다.
         전장 권총. 재장전 시간이 길다. 보통은 단발이지만, 더블배럴 같은 예외도 있다.
         Trip Mines. 독일제 플라더미네(Fladdermine)에 영감을 받은 감압 지뢰. 플라더미네보다 작고 쓸만하다. 적이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폭발한다. 설치에 시간이 걸린다. 카운터킬에 사용하면 폭발한다.
  • 연분홍 . . . . 4회 일치
         * [[경북예술고등학교]]
         * [[경북대학교]] 국악학과 학사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염재욱 . . . . 4회 일치
         * [[서울예술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 [[2002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연인들의 점심사]]》
         * [[2003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결혼장 100m 전》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영창대군 . . . . 4회 일치
         >대군이 죽을 때의 나이가 9세였다. 정항이 강화 부사로 도임한 뒤에 대군에게 양을 주지 않았고, 주는 밥에는 모래와 흙을 섞어 주어서 목에 넘어갈 수 없도록 하였다. 읍 안의 한 작은 관리로서 영창 대군의 위리(圍籬)를 수직한 자가 있었는데 불쌍히 여겨 몰래 밥을 품고 가서 먹였는데 정항이 그것을 알고는 곤장을 쳐서 내쫓았다. 그러므로 대군이 이때부터 밥을 얻어 먹지 못하여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강화 부사(江華府使) 정항(鄭沆)이 영창대군(永昌大君) 이의(李㼁)를 살해하였다.【【정항이 고을에 도착하여 위리(圍籬) 주변에 사람을 엄중히 금하고, 음물을 넣어주지 않았다. 침상에 불을 때서 눕지 못하게 하였는데, 의가 창살을 부여잡고 서서 밤낮으로 울부짖다가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의는 사람됨이 영리하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대비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염려하여 괴로움을 말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상복을 입지도 않았다. 그의 죽음을 듣고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하였다. 이정표가 음에다 잿물을 넣어 올리자 영창 대군이 마시고서 3일 만에 죽었다. 강화 사람들이 지금도 이 일을 말하려면 슬픔으로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한다.
         독살설은 인조실록 8권에 나오는 영창대군의 비문 기사에서 나온다. 여기서는 실행자가 별장 이정표이다. 증살설과는 반대로 오히려 불을 때지 않았다고 언급되어 있고, 음에 잿물을 먹여서 죽였다고 되어 있다.
  • 오유나 . . . . 4회 일치
         *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 [[2000년]] [[KBS1]] 청소년 드라마 《[[학교 3 (드라마)|학교3]]》 ... 배이경 역
         {{학교 시리즈}}
  • 요괴:냉장고 . . . . 4회 일치
         그때 엄마가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지금도 왜 그렇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냉장고랑 내가 단 둘이 있는 거였어요. 내가 충분히 자라고 나서는 엄마의 잔소리도 사라지거나 정말로 전기세 때문에 하는 얘기였죠. 그게 대략 중학교 입학 이후였고, 그 다음에는 제 동생한테로 넘어갔어요. 걔는 좀 둔한 애니까 말하는 대로 믿는 것 같아요. 하기야 동생은 언제나 착하고 말 잘 듣는 애니까요. 엄마는 나한테 뭐라는지 아세요? "우리집은 누나가 동생을 닮아야 돼"라니까요?
         얘기를 좀 바꿔야겠는데, 나는 첫남친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생겼어요. 이거 우리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엠바고에요 엠바고. 내가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었어요. 남친이래 봐야 둘이서 자전거타고 공원까지 갔다 돌아오는 사이 정도였죠.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니까 만든 거지 그 이상 관심은 없었어요. 오히려 진지하게 나온건 그쪽이었죠. 점심시간에 부르더니 그러더군요. "오늘 우리 집에 엄마아빠 없어"라고요.
         대답은 없었어요. 인기척도 없었죠. 집안이 갑자기 텅 빈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느낌만이 아닐 거란 이상한 확신이 생기더군요. 동생은 여전히 햄스터에 빠져 있었어요. 나는 의을 주방 쪽으로 집중했죠... 거기서는 아무 것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곳에서만 온기가 쏙 빠져나가고 액자 속으로 박제되어 버린 것 같았죠.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결국 햄스터는 사주지 않은 것과, 그 애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는 거에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길에서도. 그 애가 잘 다니던 어디에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죠. 걔네 부모님들은 필사적으로 찾아다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죠. 나는 차라리 나타나지 않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돌아온다면...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무엇을 하다 온 걸까요? 그 애가 원래 살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건 물어볼 일이 없는 편이 나았죠.
  • 우츠미 사토루 . . . . 4회 일치
          * 음과 체질의 상성 진단
          * [[양학]](食養学)
         >장애아가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낳기 전과 임신 전에 부모의 음과 생활이 흐트러져 있었는가 하는 증거, 그것은 평생에 걸쳐서 반성해야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 아이를 평생 지켜 나가는 것이 진정한 부모에게 주어진 시련입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장애아를 낳은 부모는 출산 전에 음과 생활이 어지러웠던 증거이며, 평생 반성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에게 비판을 당했다.
  • 워저드 . . . . 4회 일치
         대전액션이나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겨우 4명. 플레이어끼리의 방은 다른 대전액션게임과 다를 게 없으나 CPU전은 거대한 보스 캐릭터와 1 vs 1 싸움을 한다. 싸움에서 이기면 경험치를 습득해 레벨업을 해서 점점 강해진다.
          특이 사항이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루안을 클리어 했을 경우 플레이어중 루안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이며[* 레오와 타오의 경우는 서로 대화하면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방으로 진행되고 타바사의 경우는 타바사가 찾는 지은 위험하다고 말하며 타바사도 거기에 대답을 한다. 하지만 무쿠로의 경우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하늘로 올라갈 뿐이다. 무쿠로가 대화하는 상대는 주군의 또다른 부하.] 두번째로 특수 피니쉬 연출 3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다.[* 세로 쪼개기는 레오, 타바사도 있지만 가로 쪼개기와 심장 뽑기는 무쿠로 전용 피니쉬이다. 반대로 타오는 특수 피니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징어 모습을 한 요괴. 성우는 호소이 오사무. 회오리를 날리거나, 자신의 자을 생산하여 상대에게 날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뜻밖에도 캡콤 파이팅 잼에선 타오와 타바사를 제치고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했다. 하우저와는 달리 제법 할만한 편.
  • 원피스/840화 . . . . 4회 일치
          * 그리고 순간에 상디의 등뒤에서 나타나 목을 휘감는다.
          * 상디는 자기 방에서 생쥐에게 손수 만든 음을 주며 귀여워하고 있었다.
          * 저지는 쥐와 음을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다시는 요리하지 마라"라고 금지한다.
          * 그는 상디가 조난을 당했다고 발표하고 장례을 치뤄버린다.
  • 원피스/850화 . . . . 4회 일치
          *"왜 결혼을 하지않겠다고 했냐면, 완전히 나한테 반해버린 그 바보를 결혼 도중에 죽여버릴거라서야. 너희들도 어찌되었던 살아서 돌려보내지 않을거야. 안녕 안타까운 생쥐들아"
          * [[상디]]는 자신의 방에서 [[샬롯 푸딩]]을 위한 요리를 마친다. 평소 습관대로 너무 많이 만들어 버렸는데, 푸딩의 사량을 생각해서 덜어내려다 "내가 다 못 먹겠으니 상디씨가 먹어줘 아앙"같은 패턴을 망상하며 역시 전부 가져가기로 한다.
          >내가 결혼 도중에... 쏴죽일 거란 말이야.
          이것 또한 빅맘의 계획대로. 푸딩은 내일 결혼에서 이들 전부를 "몰살"할 거라고 선언한다. 비에 젖은 채 그 모든 것을 듣고 있는 상디.
  • 원피스/861화 . . . . 4회 일치
          * 게스트들이 진상한 다양한 선물과 함께 어인섬의 비보 "타마테바코"도 공개. 빅맘은 [[샬롯 푸딩]]의 예 후에 다 함께 열어볼 작정이다.
          모건즈는 그녀가 "해저의 대비보"를 손에 넣었다고 들었다며 반가운 소릴 해준다. 빅맘은 기다렸다는 듯 어인섬의 비보 "타마테바코"를 꺼낸다. 게스트들은 호들갑을 떨며 장단을 맞춘다. 빅맘은 [[샬롯 푸딩]]의 결혼이 끝나면 이 옥갑도 다른 선물들과 함께 개봉할 작정이다.
          * 예까지 30분이 남았지만 벳지가 확인해 보니 "미끼"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됐다. 시저처럼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은 벳지의 몸 속에 숨어 있다. 벳지가 들여다 보니 [[징베]]를 제외하곤 곯아 떨어진 상태. 벳지가 준비는 어쨌냐고 호통을 친다. 징베는 상륙 후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니 냅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10분 전까지는 준비를 마치겠다고 장담한다. 벳지는 별로 믿음직하지 않은지 "걸림돌이 되면 바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징베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라고 이른다.
          * 이렇게 음모와 악의가 촘촘하게 깔린 결혼장이지만, 거기로 내려오는 신랑신부의 얼굴은 그저 행복해 보인다. 특히 상디는 너무나 사심없이 행복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벳지는 그가 대단한 "연기파"라고 감탄하고 만다.
  • 원피스/864화 . . . . 4회 일치
          * [[샬롯 푸딩]]은 [[상디]]를 여러번 쏘면서 "항상 이런 으로 남들을 속여왔다"고 외치는데 상디가 "자기 자신도 말이야?"라고 지적하자 크게 동요한다.
          * 그땐 혼란한 다과회장을 "살려줘"란 다급한 목소리가 뒤흔든다. 루피는 그 목소리를 듣고 벳지의 "연기"를 뿌리치고 달려가려 하고 상디는 "얘기가 다르다!"고 분개한다. 어느틈에 샬롯가의 형제들이 빈스모크 일가를 둘러싸고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제야 암살계획을 알아차린 [[빈스모크 저지]]가 빅맘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악의 세계에도 인의는 있다"는 말을 하는데 누구하나 수긍하지 않는다. 그의 자들 조차도.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은 자기들도 머리에 총알을 박을 판인데 오히려 냉소한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웃으며 어차피 이제 살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그들의 몸을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무기도 레이드 슈츠도 지금은 없다고 내뱉고 [[빈스모크 니디]]는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 하하하"라고, 게임에 진 정도의 반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지는 자들의 냉담한 태도에 "제정신이긴 하냐"고 대꾸하지만 [[빈스모크 레이쥬]]는 그것도 자업자득이라 여긴다. 그들을 감정없는 기계로 기른 것은 저지 자신이다. 설사 가족이나 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무감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노스 블루의 나라들에 복수하기 위해 바쳐왔다고 하소연한다. 하객들은 대놓고 그를 빈정거리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는 암살 주모자 빅맘에게 "무슨 말이든 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그가 호소하는 빅맘은 웨딩케이크의 붕괴, 망쳐진 결혼, 밀집모자 일당, 그리고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깨진 것 등등.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 뇌가 정지하다시피했다. 페르스페로가 이런 빅맘의 상태를 전하며 대신 대답한다.
  • 원피스/875화 . . . . 4회 일치
          운행 중 바깥을 살피던 쵸파가 "인어"를 발견했다고 알렸다. 브룩의 불쾌한 기분을 달래줄 좋은 소이었으나, 그 인어는 남자. 브룩의 관심이 빠르게 었다. 쵸파는 그를 좀 더 관찰했는데 잘 보니 낚시 같은 걸 하는 것 같았다. 물 속에서 낚시라? 어쨌든 브룩은 눈도 돌리지 않았다. 이제 써니호가 가까웠다.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빅맘은 미쳐있는 중에도 제우스가 없는게 불편해 죽겠는지 제우스에게 돌아오라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하지만 나미의 구름 맛에 홀린 제우스는 눈치만 보지 결코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보다못한 "프로메테우스"가 쫓아와서 왜 마마의 명령을 거역하냐고 제우스를 다그쳤다. 그럴 수록 나미는 더욱 맛있는, "쥬시한 먹구름"으로 제우스의 환심을 샀다. 결과는 대성공. 역시 제우스는 빅맘의 부하가 맞았고 탐에 눈이 머는 것도 똑같았다.
          * 루피는 "태양" 녀석이 다가오자 킹 밤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무장색을 두른 "JET 개틀링"으로 프로메테우스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언뜻 프로메테우스의 몸이 흩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주 잠깐. 아무 소용도 없었다. 루피는 당황해하며 패기 조차 통하지 않으면 "자연계"보다 성가신 적이 아니냐고 소리쳤다. 다행히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데리고 가는게 우선이어서 그런지 일행에게 반격할 기미는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거듭 마마에게 돌아가자고 재촉하자 헤롱거리던 제우스도 조금 정신을 차렸다.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단, 마지막으로 맛있는 구름을 원껏 먹고 나서. 부모를 똑닮은 자.
  • 유승옥 . . . . 4회 일치
         ||<:><#ffdae0>'''{{{#white 학력}}}'''||<#ffffff>[[공주대학교]] 생물산업공학과 학사(졸업)||
         [[1990년]] [[6월 21일]]에 태어났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이다. [[공주대학교]] 생물산업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교생으로 수업을 가르친 적이 있다.
         7월 15일 모 온라인 매체의 '''기승전유승옥'''이라 불리는 기사 시리즈가 화제가 됐다. 인터넷상의 화제에 대해 서술한 후 유승옥의 반응을 덧붙이는 으로 기사를 무한 생산한 것이다. [[http://me2.do/xzIctqPl|이런 기사가 뜬 이유]] ~~만물의 전문가 유승옥~~ 소속사는 "기자가 물어오면 코멘트를 전달하는 으로 응대한 적은 있다"며 홍보 목적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http://m.mt.co.kr/renew/view.html?no=2015071516054343015&ca=society|해명기사]]
  • 유태웅(탤런트) . . . . 4회 일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귀국한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성장했다. [[1993년]] [[SBS]]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 단역 출연해서 연기자 첫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94년]] [[문화방송|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정 데뷔했다.[*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이현경]], [[최지우]],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 2003년에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 역으로 열연했다.
         || [[2010년]] || [[MBC]] || [[역전의 여왕]] || 구용철[br](구용의 이복 형) || ||
          * [[방시혁]], [[김성민(1973)|김성민]]과 [[경기고등학교]] 87회 동기다. 학교 연극반 출신이며 연극반 출신 졸업생들의 모임인 화동연우회가 주최하는 공연에도 출연하고 있다.
  • 윤철종 . . . . 4회 일치
         ||<#eee> '''학력''' ||<(> 현일고 - [[대구예술대학교|대구예술대]] 실용음악 ||
         권정열과 윤철종 둘 다 [[구미시]] 출신인데, 알고 보니 구미 [[현일고등학교]] 밴드부 매드펄스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다.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밴드 '해령'에서도 같이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권정열은 그대로 보컬이었지만 윤철종은 베이스를 맡았다.] 그런데 멤버들의 군 입대로[* 이 둘도 그때 같이 군대 갔다 왔다] 밴드가 해체되자, 둘은 '''색다른 밴드'''를 만들어 보고 싶어 [[대구광역시|대구]]로 [[상경]]하게 된다.
         2010년 3월 28일 자체제작해 발매한 [[EP]]앨범으로 정 데뷔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냥 보통의 홍대 인디밴드가 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2017년 7월 4일 소속사 측의 공적인 입장에 따르면 전속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던 6월 말, 멤버 윤철종이 개인적인 건강상의 이유로 탈퇴 의사를 밝혔고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후부턴 권정열의 1인 체제로 10cm가 유지된다고 한다. 이후 윤철종은 19일 소속사와의 연락에서 본인이 대마초를 흡연했던 문제로 인해 권정열과 소속사에 해가 갈 것을 염려하여 급하게 탈퇴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http://m.huffpost.com/kr/entry/17520376#cb|링크]] 이후 소속사는 10cm를 권정열 1인 팀으로 변경하여 9월 1일 4집 앨범으로 컴백했다.
  • 은혼/631화 . . . . 4회 일치
          하타 황태자는 옆의 [[네스(은혼)|네스]]가 주모자인양 빠져나가려 하지만 주군에 대한 충성은 밥말아먹은 네스가 그냥 뒤집어 쓸리가 없었다. 둘은 엔죠 황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누가 이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떠미는 추태를 부린다. 급기야 이들은 누가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해방군에게 맡기기로 한다. 하타 황태자는 눈을 감고 있을 테니 그런 말 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시킨다. 그러면 해방군은 보고 그렇게 알게 될 거라면서. 네스는 실눈 뜨지 말라면서 "절대 안 볼 테니 급비 훔친 애는 손을 들어라"고 개드립을 첨가한다.
          * 거기에 또 낚이는게 [[하세가와 다이조]]. 역시나 마다오 답다. 하타 황태자의 말만 믿고 당당하게 거수하는데 딱 걸렸다. 하지만 그는 급비를 훔친게 아니었다. 하타 황태자의 간인 고급 푸딩을 훔쳐먹었을 뿐. 그는 그 원인을 개밥이나 주는 열악한 처우로 돌린다. 결국 푸딩에서 비롯된 결투로 치닫는데, 알고 보니 네스도 항상 하타 황태자의 푸딩을 훔치고 있었다. 그도 먹잇감을 가로챈 원한을 하세가와에게 풀기 시작하고, 셋은 뒤엉켜서 추접한 전쟁을 시작한다.
          * [[히지카타 토시로]]와 [[오키타 소고]]는 부활한 부전으로 6시간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비보를 접한다.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의 무전이었다. [[소요 공주]]와 [[이마이 노부메]]가 무전으로 접한 소을 그에게 전달한 것이다.
  • 은혼/634화 . . . . 4회 일치
          * 헨페이타의 응답은 썩 좋은 소만 전하지 않았다. "원군"이 늦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헨페이타의 역할은 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적의 시선을 끄는 역할이었나 보다. 그것이 늦어진다는건 좋지 않은 징후였다. 보고를 받은 다카스기는 "그놈"은 함대전보다 더 재밌는 싸움을 찾아갔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 역시 해방군을 상대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놈"들이 나설 차례는 없을 거라고 호언한다. [[키지마 마타코]]는 어차피 자신들이 나선 이후 세상을 지키든 부수든 둘 중 하나라며 히노카구츠치의 해석은 어떻게 되었냐 묻는다. 사실 이들은 대책없이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뒤쪽으로는 기술자를 잠입시켜 해방군 모함의 데이터를 해킹하고 있다. 이 자료는 그대로 헨페이타의 전함으로 송신, 적 병기의 헛점을 찾을 단서가 됐다. 헨페이타는 "별을 파괴할 수 있는 병기"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구 병기라며 데이터를 분석하면 파고들 틈이 있다고 장담한다.
          그의 짐작대로 추락한 것은 정체불명의 우주선. 긴토키 일행이 싸우고 있던 큰 길로 불시착한다. 이걸 피하느라 양진영은 잠시 분단, 싸움이 멈추치지만 잠시 뿐이다. 우주선 표면엔 놀랍게도 우주해석 "하루사메"의 표이 있다. 이윽고 서서히 문이 열리는데, 긴토키 일행은 긴장한 채 그 안에서 내리는 사람이 누군지 주시한다.
          * 폭발은 현장에 있던 야토족 부대를 집어삼킨다. 하지만 겐가이는 아니었다. 가구라가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폭발 속에서 겐가이 영감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겐가이는 구했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정도 대폭발로도 야토족 부대를 일소하지는 못했다.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야토족들이 추적해온다. 가구라가 그들을 의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역시 건재한 노사가 가구라의 정면에서 나타나 공격을 가한다. 가구라가 쓰러지면서 겐가이도 멀리 밀려나간다.
  • 은혼/635화 . . . . 4회 일치
          * 카무이의 말처럼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러 온 하루사메 함대. 전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가 카무이의 동지로서 하루사메 잔당을 규합, 귀병대를 지원하러 온 것이다. 이들의 도착 소에 [[다카스기 신스케]]는 "꽤 늦었다"며 쓴소릴 날리지만 바토우는 늦은 만큼 매꿔주겠다고 대꾸한다. 작전방침 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늦었다는데. 그들의 대장이 총대장인 주제에 곧 날아가버릴 지구로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어지간히 단세포인 사루가쿠도 두 손 들었다며 "대장이 당하기 전에 해방군을 처리한다"고 최종적으로 결정. 무엇보다 카무이는 그 지구에 해방군 전체보다 위험한 놈이 있다고 강변했다 한다. 신스케가 그 말을 듣고 "해방군은 그냥 시작에 불과하다"고 카무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사루가쿠는 자기도 내려가 볼걸 그랬다고 투덜거린다.
          * 카무이는 우주는 그들에게 맡겨뒀고 뭣보다 해방군을 부숴봐야 변하는건 없다고 단언한다. 카무이는 "진정한 적"을 쳐부숴야 한다며 [[우츠로(은혼)|우츠로]]를 지목한다. 그 우츠로를 쳐부수기 위해, 카무이는 가구라에게 이제 일어서라고 말한다. 그 [[우미보즈(은혼)|대머리]]의 자이 이런데서 당한 채로 끝나선 안 된다면서. 그리고 자신은 다시 일어나 우미보즈에게 "최강"의 칭호를 뺏어간 우츠로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약함"을 들추고 이기고 도망친 "여동생"에게 이겨보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일어나는 거야 말로 "최강"이라는 걸 알려준 것은 바로 가구라. 그러니 이젠 가구라가 일어날 차례이다.
          * 그런 변신은 평범한 야토에게는 없는 기술이다. 단원들이 당황하자 아부토는 오래 전 들었던 정보를 언급하는데, 그 또한 야토의 전설적인 용병으로 일명 "장로"라 불리는 자다. 기공의 달인으로 육체를 자유자재로 가사상태로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런 방으로 긴 수명을 손에 넣은 그는 무려 200년 이상 전장에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토의 산신령 같은 존재. 아부토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노사가 달려든다. 그의 공격에 여러 야토가 단 번에 날아간다. 그는 젊고 강한 육체를 가지고도 거기엔 썩은 피가 흐르고 있다며 한탄한다.
          * 카무이의 힘은 오히려 노사를 밀어낼 정도였다. 그때, 노사의 후방에서 또 한 명의 쿄쿠카의 자, 가구라가 날아든다. 아까까지 티격거리던 남매는 이 순간 의견 일치를 본다.
  • 은혼/654화 . . . . 4회 일치
          * 우주의 전쟁이 끝난 뒤. 그 소은 하타 황태자의 배에도 전해졌다. [[하타 황태자]]는 전쟁은 혼자 다 해먹은 것같이 폼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전투 중엔 화장실에 처박혀서 압사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황태자가 이만한 군세가 단번에 백기를 들 줄은 몰랐고 "전쟁을 결정짓는건 숫자가 아니라 각오"라며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기백에 해방군이 패배를 깨달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전직에 실패해 내세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하세가와 다이조]]는 써놓은 유서가 첨부된 그 대로 어디서 기어나와서 그 개드립에 "나도 매일 각오를 다지며 죽음과 마주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영감 [[네스]]는 거기에 일일히 츳코미하며 어차피 이 전쟁에 조력한 것도 억지러 한거 아니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됐건 하타 황태자의 도움이 있어 이길 수 있던게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쓸데없이 훈훈하게 뭉뚱그려지고 있는 찰나, 해방군 모선에 진입했던 부대와 연락선을 잇는 작업 도중 적의 모함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하타 황태자는 전리품을 쓸어담고 도주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접 추격할 것을 명한다.
          아네 모네 자매와 합류해 용맥의 폭주를 죄다 정리해버려 순간에 해결사 일행 중 최고의 공을 세웠다. 하지만 너무 검력을 소진한 바람에 같은 이누카미인 코마코와 함께 형편없이 작아졌다. 코끼리 만하던 덩치가 이젠 소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아네는 이누카미들은 영성으로 육체를 유지하는데 검력을 너무 써서 영성이 약해진 탓에 육체마저 사라지고 있는 거라 진단, 더이상 무리를 하면 둘이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사다하루를 찾기 위해 뛰는 중이지만 막상 어딜 가서 찾을지 감은 못 잡고 있다. 다시 용맥이 폭주하는 기미를 보이자 가구라가 제일 먼저 사다하루 쪽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직감하고 그게 사실이었다. 노부메는 용혈에 대해서 잡지이 많아서인지 지진을 보고 곧 용혈을 컨트롤하는 문 그 자체가 붕괴할 지경이라는 걸 직감한다. 그 직감대로 터미널은 붕괴하고 아르타나는 "용"이 되어 우주로 뿜어진다.
          전투 내내 화장실에 짱박혀 있던 주제에 끝난 뒤에는 혼자 다 싸운 것처럼 생색내며 베르세르크의 가츠같은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났다. 하세가와는 이 와중에도 자살시도를 멈추지 않다가 역시 다 끝나고 나서야 "나는 항상 죽음을 마주하고 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고 하타와 드립을 주고 받는다. 다들 싸우느라 떠나서 츳코미 역이 없어 네스 영감이 열심히 츳코미를 넣고 다닌다. 어쨌든 하타 황태자가 도와줘서 전쟁에 이긴 건 사실. 하세가와가 "맨날 지구를 멸망시킬 뻔 했던 너네에게 도움 받을 줄은 몰랐다"며 감사를 표한다. 만일 여전히 공무원이었으면 지구 대표로 하타황태자에게 정으로 감사할 뻔 했으니 차라리 짤린게 다행이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 이근직 . . . . 4회 일치
         1903년 [[경상북도]] 김산군(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관상가의 조언으로 이근직으로 개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가서 도쿄고료척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에도 1949년까지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서울특별시청]] 산업국장, 1952년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 제2국장, 1952년 [[함태영]]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55년 2월부터 1957년 9월까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경상북도지사 재임 중이던 1957년 8월 [[가짜 이강석 사건]]이 일어났다. 1957년 9월부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 장관|장관]]을 지내다가 1958년 6월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자유당]] 당무위원으로 있다가 1959년 3월부터 1960년 5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품부]]) [[농림축산품부 장관|장관]]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 재임 중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구속 기소되었다.
  • 이동찬(기업인) . . . . 4회 일치
         이 무렵, 이동찬은 코오롱그룹을 기업공개(주회사로 전환하고 주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코오롱그룹의 주주가 된 장영자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영자와 사도 자주 하고 골동품 구경도 하였다. 참고로 이동찬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다. 장영자와 친해지면서 1982년 5월경 이동찬은 장영자에게 코오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코오롱건설을 팔려고 하였다. 그런데 팔기 직전 장영자가 검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바람에 다행히 이동찬은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기소되는 화를 면하였다.
          * 생전에 [[재벌]][[회장]]임에도 [[짜장면]], [[칼국수]]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977670_13449.html|1997년 5월 17일 MBC 뉴스데스크]] 아들인 이웅열 현 코오롱 회장도 이런 성을 물려받았는지 짜장면을 즐긴다고.
  • 이동훈 (1996년) . . . . 4회 일치
         == 출신 학교 ==
         * [[대구본리초등학교]]
         * [[경운중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이선아 . . . . 4회 일치
         |학력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졸업
         [[2004년]]에를 졸업하고, [[2010년]]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05학번)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전의 이씨]]
  • 이원형(1951) . . . . 4회 일치
         195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영남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계명문화대학교]] 관광영어통역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 이종원 (1953년) . . . . 4회 일치
         [[서울대학교]] 공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복역. 중퇴후 [[1982년]] 도일했다.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졸업. [[도쿄대학교]] 법학정치학연구과 정치학 전공 석사 과정 수료. 법학 박사 학위 취득. 도쿄대 법학부 조교, [[도호쿠 대학]] 법학부 조교수, [[릿쿄대학교]] 법학부 교수, 2012년 4월부터 [[와세다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 교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객원연구원. [[아사히신문]] 아시아네트워크 객원연구원.
  • 이진만 (1675년) . . . . 4회 일치
         이진만(李鎭萬, [[1675년]] ~ [[1752년]])은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로 자(字)는 맹능(孟能)이고, 호는 백은(白隱), 본관은 우계이다. [[1699년]](숙종 25) 문과에 합격하였으나 시험 주제에 문제가 있다 하여 파방되었다. 뒤에 [[1702년]](숙종 28) 년시 생원 3등에 합격하고 그 해의 진사시에 다시 응시하여 년시 진사 3등으로 합격하여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하였지만 관직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1699년]](숙종 25) 문과(文科)에 갑과(甲科) 3등으로 급제하였으나 시험 문제에 문제가 있다 하여 합격이 취소, 파방되고, 왕명으로 다시 시험에 응시하게 하니 이것은 선비가 취할 길이 못된다고 거절하였다. 그는 [[과거 제도]]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문을 올린 뒤 낙향하였으며, 이때부터 벼슬길을 단념하고 [[성리학]](性理學)과 도학(道學)연구에만 전념하였다. [[1702년]](숙종 28) 년시 생원 3등에 합격하고 그 해의 진사시에 다시 응시하여 년시 진사 3등 53위로 합격하였다.
  • 인종개량 . . . . 4회 일치
         인종개량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19세기 말, 일본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서양 문명을 도입하던 시기로써, 우생학도 일본에 전해지게 되어 이것이 인종개량론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인종개량이라는 것이 혼혈을 통한 개량은 매우 극소수의 사람이 주장하던 것이였고, 의주 같은 환경을 개량하여 순혈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우자는게 주류고 이게 인종개량을 주장하던 사람들의 대부분 의견이었다. 근데 그래봤자 인종개량이라는거 자체가 일본에서 주류는 커녕 존재감이 크게 없었다.
         정치가 카토 히로유키(加藤弘之)는 1886년 「인종개량의 변(人種改良ノ弁)」이라는 주장으로 타카하시 요시오의 인종개량론에 반박하였다. 그것을 위해서는 [[의주]] 등의 환경을 개량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종 생산을 통한 인종개량의 비현실성도 지적하였다. (1) 어떤 조합으로 인종을 개량해 나가야 할지, 그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하다. (2) 많은 세월이 걸려서 비현실적이다. (3) 몇대나 잡종을 반복하다보면 일본인의 피가 멸종해버린다.
         [[후쿠자와 유키치]]와 모리 아리노리는 인터넷에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인과 서양인과의 잡혼을 통한 인종개량을 주장한 적이 없다. 영문과 일어 어느쪽에서도 관련 근거를 찾을수 없다. 아마 타카하시 요시오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제자란 점과 모리 아리노리가 극단적인 영어 공용어화를 주장했다는 점 때문에 루머가 퍼진듯하다. 단, 건강한 일본인끼리의 결혼이나 의주의 개량을 통한 것은 주장했을 수도 있다.
         일본인의 의주의 개선을 통한 환경개량은 괜찮은 호응을 얻었을지 몰라도 타카하시 요시오가 주장하는 서양여자를 수입해와 잡혼을 통해 혼혈로 일본인종을 개량하자는 주장은''' 당시에도 극단적인 개소리로 취급됐고, 단 한번도 일본정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시행된적이 없다.''' 애시당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일본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사실이다.
  • 인천광역시/인물 . . . . 4회 일치
         * [[김현(가수)|김현]] - 중구(인천)
         * [[이용]] - 옹진군(인천)
         * [[최민]] - 옹진군(인천)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4회 일치
         attachment:침.jpg
         * 악몽 속의 멀린은 "내일이 없는 자와 함께 길을 걸을 순 없어. 왜냐면 네 저주는 절대 풀 수 없으니까. 강대한 저주는 이윽고 그 몸을 전부 침하겠지. 너는 결국 내 실험 재료일 뿐인 존재.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일 없이 고독하게 죽어라 에스카노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 에스카노르는 어둠 속으로 점점 침된다.
         * 고서는 절망을 보여줘서 에스카노르의 의을 영원히 잠재워 버린 거였지만, 그는 잠들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4회 일치
          * 반은 "단장 답지 않은 방"이라며 의문을 느끼는데.
          * 멜리오다스는 그를 비웃으며 마신왕에게 정으로 십계를 부여받은 적도 없고 그저 "놈의 대리"라고 말한다.
          * 드래퓌스가 절망적으로 절규하고 프라우드린은 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한다.
         고우서와 비슷한 모습의 십계도 재등장. [[일곱개의 대죄/176화]]에서 십계 시절 멜리오다스를 묘사하며 등장했었다. 프라우드린은 사실 정 십계가 아니라 "무욕의 십계"의 대리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 자가 진짜 무욕의 십계일 가능성이 높다. 고우서와 거의 비슷한 외향에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듯한 태도 또한 유사하다.--이제 곧 진(眞) 십계 가 나올 듯 하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4회 일치
          * 대체 왜 이 "은총의 빛"에 십계가 있는가? 무엇을 하는 건가? 네로바스타는 그런 의문을 해결할 시간이 없다. 메라스큐라는 천계로 이어진 문을 마계로 이어진 문으로 바꾸고 있다. 네로바스타는 당황한 나머지 눈이 휘둥그레 진다. 그러나 막을 방법이 없다. 그녀로선 두 십계를 상대할 힘이 없고 침되는 문을 복구할 능력도 없다. 그녀는 은땀을 흘리며 "어쩌지"라는 고민으로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러나 진상을 아는 [[게라이드]]는 어두은 얼굴이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불편한 얼굴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그로키시니아]], 그 몸을 가진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에게 경호를 부탁받았던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혹시 인간인 자신이 호위라 불안한 거냐고 묻는다. 게라이드는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라며 당치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로우는 그녀의 오빠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지 않느냐며 자신을 의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빠로서 그로키시니아는 어떤 인물이냐고 묻기도 한다. 게라이드가 다정하고 자기가 곤란해하면 언제든 달려와준다고 말하자 로우는 아주 흐뭇하게 웃는다. 그런데 게라이드는 그 웃음을 보면서 무언가 미심쩍은 점을 느끼는데.
          그는 거인족 병사의 목을 벤다. 거인이 쓰러지자 요정족 병사가 보복하려든다. 그러나 요정족의 자잘한 마법따윈 검으로 튕겨버리고 그대로 가슴을 찔러버린다. 순간에 병사 둘을 처리한 로우.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그가 평범한 인간도, 스티그마에 협력하는 것도 아니라는걸 직감한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4회 일치
          * 이 기가막힌 소은 [[멜리오다스]]의 귀에도 들어갔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부탁으로 단 둘이 대화할 곳을 찾던 그들은 리오네스 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봉우리에 도착했다. 멜리오다스는 마가렛의 소을 전하며 "그 얌전한 마가렛이 이럴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엘리자베스는 10년이나 구속된 끝에 겨우 해방됐는데 눈 앞에서 연인을 납치 당했으니 무리도 아니라고 말한다. 멜리오다스는 "그 둘"이 같이 가게 돼서 안심했다고 하는데.
          * 대지의 모자정 옥상에선 낮잠에서 깬 디안느가 기지개를 켰다. 느긋한 옥상과 달리 당 안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방은 심각한 분위기. 지난 밤 연회 이후로 멀린이 무섭게 앓았다. [[핸드릭슨]]이 용태를 보러와 있다. [[에스카노르]]가 그저 안절부절. 핸드릭슨의 주위에서 알짱대면서 상태를 묻는다. 핸드릭슨은 이것이 무서운 저주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체 멀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에스카노르가 아는 거라곤 어젯밤부터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 걱정돼서 아침에 와보니 이렇게 악화되었다. 열도 엄청나고 의을 차릴 기력 조차 없다. 핸드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드루이드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할 거라고 말한다. 갑자기 드루이드를 어디서 모셔올 건가? 에스카노르가 절망한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4회 일치
          * 돼지의 모자정은 순조롭게 목적지로 향한다. 가끔 마신족이 접근하기도 했지만 강해진 호크 엄마가 콧방귀만으로 날려버린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저주가 나은 이후론 당 구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에스카노르]]가 바를 지키고 있다. 멀린의 정신은 온통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의 안녕에 쏠려있다. 그는 음료를 마시면서도 아서가 무사하기만을 기원한다. 자연 울쩍한 모습인데,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에스카노르]]의 마음도 무겁다.
          *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당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호크]]가 달려와 엘리자베스에게 큰 일이 났다고 알린다. 전원이 당으로 달려간다. 엘리자베스와 디안느는 티타임을 마치고 당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그때 엘리자베스가 발작을 일으켰다. 아니, 착란이라 말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녀는 "할자드"란 인물이 웨어울프에게 물렸다면서 빨리 멜리오다스에게 알려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영문을 모르는 디안느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지만 엘리자베스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나자 그녀는 "할자드가 중상이라고 기사단에서 연락이 왔다"며 뜻모를 소릴 해댄다. 그 말을 들은 멜리오다스가 가슴이 철렁한다.
  • 임인배 . . . . 4회 일치
         195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검찰청]] 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1995년 현직 검찰 수사관 신분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12800329116014&edi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5-01-28&officeId=00032&pageNo=16&printNo=15325&publishType=00010|"조국을 남기고 님은 가셨습니다"라는 소설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따서 덕천장학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천고등학교 동기생인 [[이철우(1955)|이철우]]에게 밀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2014년부터 [[안양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 임진숙 . . . . 4회 일치
         * [[1979년]] ~ [[1982년]] : [[대구여자고등학교]]
         * [[1982년]] ~ [[1986년]] :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
  • 자본통제 . . . . 4회 일치
          *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생산적인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적정한 외자유입은 주시장 활성화, 소비 진작, 기업 자본조달비용 저하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금-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던 브레턴우즈체제(1944~1971년)에서 단기자금의 국가간 이동은 제약이 많았다. [[고정환율제도]] 때문에 단기자금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익을 얻기 힘들었고, 자본통제는 각국의 금융을 안정시켜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인되었다.
         1974년, 미국은 자본자유화가 국제무역을 증가시킨다는 견해로 자본통제 정책을 폐지했다. 선진국들은 자본자유화 정책을 대세로 삼았으며, 우리나라는 1995년 OECD 가입을 계기로 하여 자본통제를 풀기 시작했다. 1997~1998년에 IMF 사태를 겪으면서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채권, 금리, 외환, 주 등의 금융자산을 기초로 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파생금융상품'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를 노리는 [[헤지펀드]]가 크게 성장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 "글로벌 자금 흐름의 단기적인 속성과 내재한 변동성이 문제가 있다는 인이 커지고 있다"며 신흥 시장과 미국 등 국제 자본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국가들은 새로운 규칙과 과세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 전병조 . . . . 4회 일치
         * [[대구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4회 일치
          * 석연치 않은 기분에 돌아온 모미지와 요우. 우려대로 마기는 블랙 팬텀에 침 당했고 효부 또한 그를 구하기 위해 침을 무릅쓰고 있다.
          * 마기의 의 속으로 점점 더 깊게 들어가는 효부.
          * 이미 그도 상당히 침이 진행되어 있다.
  • 정재안 . . . . 4회 일치
         |학력 =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학사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전공을 하였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직능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또한 한국재활용산업 발전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성공회대학교]] 졸업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성공회대학교 동문]]
  • 정정아 . . . . 4회 일치
         |학력= [[세종대학교]] 대학원 영화연기예술학과 예술학 석사
         * [[2009년]] [[세종대학교]] 대학원 영화연기예술학과 예술학 석사
         * 2013년 <미운 남자> - 과학교사이자 아내 역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9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세종대학교 대학원 동문]]
  • 정종 . . . . 4회 일치
         정종은 조선의 2대 왕이다. '1차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쥔 정안군 이방원(후의 태종)의 의도에 의해 '[[징검다리]]'처럼 추대된 왕이어서 대중적으로 조선 왕 중에서 가장 이미지가 희박한 편이다. 부친 이성계에게도 신임을 얻은 등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괜찮은 구석도 있지만, 정치 역학적인 이유로 존재 자체가 묻혀버렸다가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정으로 정종이라는 시호를 얻게 된다.
         그나마 왕후와의 사이에 자이 없었기에(후궁에게는 많은 자을 보았다) 태종도 정치적인 이유로 견제해야 할 직계 혈통이 없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후궁 소생이라고 계승을 인정하지 않으면 후궁 제도는 혈통 단절을 막는 제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저 왕의 성욕 처리에만 동원되는 제도로 전락한다. 정종이 자기 자에게 계승을 못한 것은 워낙 세력이 밀렸기 때문이지 서자만 있어서 계승을 못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그만큼 태종의 세력 기반이 탄탄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 정채진 . . . . 4회 일치
         * 경북대학교 사회학 학사(1959년)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1967년)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산림청장]][[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조재윤 (체조선수) . . . . 4회 일치
         * [[대구체육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체육학과
         [[분류:대한민국의 체조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1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주다영 . . . . 4회 일치
         | 학력 = 김천무골
         * 김천무골
         * [[2013년]] [[JTBC]] 주말드라마 《[[무자 상팔자]]》 ... 미혼모 역
         <!-- 위키백과에서는 공사이트가 아니면 팬사이트나 팬카페를 기재 할 수 없습니다. -->
  • 주윤발 . . . . 4회 일치
         | 학력 = [[중학교]] 중퇴
         대구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대구광역시]] 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그 후 1965년(10세 시절)까지 홍콩 라마 섬 도서촌에서 성장하였다. 학력은 [[중학교]] 중퇴이다. 그는 [[홍콩 영화 금상장|홍콩 금상장영화제]]의 남우주연상과 [[금마장|중화민국 타이완 금마장 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0세 때였던 [[1965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홍콩 도심으로 이주하였으나,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하여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였고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는 끝내 중퇴하였다. 이렇게 초, 중, 고, 대학 등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던 중, 친구의 권유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7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73년]] [[영화]] 《투태인(投胎人)》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74년]]부터는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였으며 2년 후 [[1976년]]에는 [[영화]] 《지녀》(池女)의 주연을 맡았다. 그 후로도 홍콩 영화와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고,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1980년]]에 출연한 《상해탄》(上海灘) 등으로 입지를 다졌다. [[1988년]] [[가수]] 데뷔하였으며 [[1989년]] [[영화]] 《아랑적고사》(阿郎的故事)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각색도 처음 맡아 각색가로서 데뷔하게 되었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4회 일치
          크루거가 먼저 질문은 없냐고 묻자 그리샤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재촉에 우선은 "올빼미, 너의 정체"부터 묻는 그리샤. 크루거는 정으로 자신을 밝힌다.
          크루거는 의사는 첩보원에 적합한 직업이라 설명한다. 적당한 교양과 사회적 지위을 갖추고 "거인화학"에 적용 가능한 지도 있다. 그리고 크루거가 보기에 그리샤는 꽤 잘한 편이다. 그가 복권파를 이끌고 [[다이나 프리츠]]와 아이를 만든 것, 그리고 그 아이 [[지크 예거]]를 마레의 전사로 키우려 한 것, 그 모든 계획에서 올빼미의 존재까지 고려한 것은 모두 타당성이 있는 계획이었다. 다만 그 결과는 그라이스의 한탄대로였지만.
          * 하지만 크루거도 죄의이 없는건 아니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을 구하지 못한건 자신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살아서 벽까지 도달할 수 있는건 거인화 능력을 계승할 한 사람 뿐이었다. 크루거는 자신은 역할을 다했더니 그리샤도 그렇게 하라고 독촉한다. 하지만 좌절해 버린 그리샤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뭣보다 크루거가 만든 복권파를 괴멸시킨 건 그리샤 자신. 그럼에도 그리샤가 해야 한다는 크루거의 확신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행동에 수반되는 "고통"을 모르고 있었다. 동료를 잃는 것도, 아내와 자을 잃고 손가락마저 잃는 것도. 알았더라면 이런 대가를 지불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단언한다.
  • 차오루 . . . . 4회 일치
         |학력 =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2008학번)<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976276 '라디오스타' 차오루, 학교 동기 “박신혜 롤모델 삼아"] - 세계일보</ref>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pop 가수]][[분류:중국의 여자 가수]][[분류:중국의 여자 배우]][[분류:2004년 데뷔]][[분류:중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먀오족 사람]][[분류:카카오엠 소속]][[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의 아이돌]]
  • 창작:좀비탈출/5-1-1-1 . . . . 4회 일치
         그럼 나는 지금 탄피를 주으러 가는 건가? 이웃집 마당에 내려서며 중얼거렸다. 마당은 우리집보다는 어수선했고 누군가의 손을 탄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예상대로 이곳도 대문이 열려있다. 이 모양이니 온동네에 도둑이 들끓었지. 부족한 방범의 덕에 녀석들의 사시간이 더 편리해졌겠군.
         처음 정오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곧장 떠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량을 가득 채운 가방을 바리바리 들고 정오의 따가운 햇볕을 방패 삼아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큰 길까지만 가면, 운이 좋아서 거기서 자전거라도 하나 주워 탈 수 있다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울 외곽까지 충분히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없고 적어도 녀석들이 오지 않을 법한 곳을 찾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나의 상상력이 그림을 그렸다. 자유를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
         이 모든 문제가 차의 존재로 달라진다. 단순한 망상이 매우 현실적인 탈출 플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나는 차창으로 운전석을 확인했다. 아날로그 계기판은 분명 휘발유가 만땅으로 차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좋았어! 정말 좋은 징조다.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4회 일치
         좋아하는 음 그루베니아 토속 음 전반, 술
         싫어하는 음 해산물 요리 전부
         술을 굉장히 좋아하며 임무가 없을땐 거의 술을 입에 달다시피하고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간이 3배정도 튼튼하다고 병원에서 들었으니 3배는 더 마셔도된다는 괴악한 논리를 펼치고있다. 술뿐만이 아니라 홍차도 주로 자주 마시는 편이지만 이미 다른 발할라 요원이나 관계자들은 주당으로인하고있으나 본인은 사실이니 신경쓰지않는 모양이다(...)
  • 최상열 . . . . 4회 일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했다. 1988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94년 부산고등법원 판사, 199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하다가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2005년에 부장판사가 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쳤다. 2014년 2월에는 제17대 울산지방법원장과 제19대 울산광역시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2년간 역임한 이후 2016년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판장을 맡았으나 2018년 2월에 제36대 광주고등법원장에 임명되었다.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4회 일치
         한편으론, 비잔티움은 황제 요안네스 8세가 죽고, 그의 동생 콘스탄티노스가 콘스탄티노스 11세로 즉위한다. 그는 모레아의 친왕으로써 모레아를 비잔티움의 봉신인 모레아 전제국으로 일통하고, 바르나 십자군에서 그리스 지방 거의 전체를 일시적으로나마 탈환할 정도로 능력있는 자였으나... 바르나 십자군에 협력한거 때문에 초강대국이었던 오스만의 지도자였던 무라트 2세에게 찍혀서 재혼[* 당시 그는 두 번의 결혼을 치뤘으나 두 번 모두 자이 없었다]도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관도 콘스탄티노플이 아닌 모레아에서 치뤘고 콘스탄티노플에 올때도 카탈루나 배를 빌려타고 온 안습한 처지가 되었다.
         사절의 요구를 들은 메흐메트는 생각해보겠다며 차갑게 대꾸한 이후, 보소포로스 해협의 가장 협소한 지역에 요새를 짓기 시작한다. 이소을 들은 황제는 경악하면서 사절을 보내 외교적으로 해결을 하려하지만, 술탄은 그들을 쫓아내는것으로 대답을 해줬다. 황제는 그 대응으로 도시내의 튀르크인들을 투옥하는걸로 맞대응했으나, 별 소용없는 행위였고, 결국 모두 풀어주었다. 그렇게 당대에 '보코하즈 케센', 그리고 현재는 '루멜리 히사르'라고 불리는 요새가 완공되었고, 이로인해 이곳을 왕래하는 모든 함선들은 요새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이는 이곳을 통해 무역을 하는 이탈리아 상업국가들에게 큰 위협을 줬는데, 단적인 예로 베네치아인 안토니오 리초가 이끄는 함선이 요새의 검문요구를 무시했다가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살아남은 선원과 선장모두 사형을 당했다. [* 선장은 특별히 말뚝형에 처해졌다.] 더더욱 급해진 황제는 교회통합을 요청하며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건 겨우 200명정도의 병력뿐이었다.[* 별 수 없는게, 당시 교황령의 군사력은 제국보다 별볼일 없었다.(....) 차라리 모레아 전제국이 훨씬 더 국력이 탄탄했을거다.] 하기야 소피야 성당에선 교회통합을 선언하는 미사가 열렸지만, 해당 미사는 황제와 그 일부 측근들, 일부 통합파 사제들과 교황청에서 온 주교들 일부만 왔을뿐이었다.
          * 사실 이 당시 제국의 본령은 [[모레아 전제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콘스탄티노플보다는 모레아의 비중이 더 컷다. 콘스탄티노플은 여전히 대도시였지만, 제국의 전체 국력에서 보자면 단지 적진에 포위된 위요지 도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수도라는 정치적 상징, 총대주교좌가 놓여 있다는 종교적 상징으로서 가치는 모레아 영토와는 비교할 수 없었고, 이 사건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다는 인이 강하게 세워졌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4회 일치
         사다리를 타다가 공격당했다던가, 개틀링에 공격당했다던가 하는 등, 상적으로 총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발동되지 않는다. 또한 죽음의 감각을 발동한 후 죽어도 게이지가 다시 차있거나 하지도 않는다.
          아메리카 원주민. 의을 치르던 중 미 육군의 습격을 당해 딸을 잃었다.
          * 스슈터(Six Shooter)
          레버액션 소총. 적을 관통할 수 있다.
  • 콩조림 . . . . 4회 일치
         콩조림은 소스와 함께 콩을 삶아낸 요리다. 베이크드 빈즈(Baked beans)라고도 부르는데, 'Baked'에서 연상되는 '굽는다'라는 이미지와 달리 조림에 가깝다. 콩이 재배되는 거의 대부분의 지방에서 존재하는 요리 방으로 대한민국에선 콩자반이라고도 부르는 콩조림 요리가 있다.
         주로 영국 요리, 특히 영국 아침 사(Full English breakfast)에 많이 곁들여지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색 소스에 졸여진 콩조림이 바로 베이크드 빈즈다. 설탕이나 시럽이 첨가된 토마토 소스에 콩을 넣고 졸이면 되는 간단한 요리지만,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이 길어지는 탓에 주로 통조림에 든 베이크드 빈즈를 사용하기도 한다.
  • 크립토나이트 . . . . 4회 일치
          * 그 대단한 슈퍼맨을 위협하는 유명한 물질이다보니 약점의 대명사로도 인용된다. [[AMD]]의 CPU 이름들이 한때 K6, K7...이런 이었는데, 그 K가 크립토나이트에서 따온 것이다. [[인텔]]은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슈퍼맨이지만 AMD는 그것을 이기는 크립토나이트가 될 것이라고 CPU 이름을 저런 으로 지었다고 한다. --[[테그라#s-3.3|사실 슈퍼맨은 nVIDIA에 존재하는 것이 함정]]--
          * 참고로 크립토나이트는 실존하는 물질이다. DC설정에서 크립토나이트에 가상의 화학을 붙여놨는데, 똑같은 화학을 가진 물건이 발견된 것. 상상력이 현실을 때려맞춘격.
  • 킹덤/511화 . . . . 4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은 부하들을 이끌고 시시각각 열미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열미성 함락 소에도 그는 자신의 계략대로라고 여기는데.
          * 열미로 행군하던 [[이목(킹덤)|이목]]은 열미성이 함락됐다는 급보를 받고도 태연하다. 부하들은 [[공손룡]]장군이 한 발 늦었다고 탄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시대로라며 "열미엔 내가 뿌려둔 비밀이 있다"고 한다. 이는 부하들도 몰랐던 보험이었다. 이목은 비록 열미를 뺏겼다 해도 진군이 이 비밀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승리가 틀림없다 확신한다. 단지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진 않다고 추측한다. [[왕전(킹덤)|왕전]]의 존재 때문이다. 왕전이 그 비밀을 알아챘다면 진군은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한편 본진에서 일어난 이변은 당연히 [[환의(킹덤)|환의]]에게도 전해진다. 환의군의 장군들도 "총대장이 사라졌다"는 소에 영문을 몰라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환의 만큼은 예상했던 바라는 듯 술잔을 기울인다.
          *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왕전의 실종은 군 수뇌부만 아는 극비로 처리됐고 일선 병사들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런 이틀의 휴이 다음 진격을 위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 킹덤/515화 . . . . 4회 일치
          * 창평군의 물음이 있었을 무렵, 왕전은 오다를 공략한 직후 곧바로 또다른 소도시를 공략해 함락시켰다. 이번에도 모든 량을 빼앗고 그곳 백성들을 성 바깥으로 내몰았다. 왕전은 언덕 뒤에서 피난가는 백성들의 행렬을 보며 뜻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상적이다. 특히 지금 양단화군이 본대의 방패막이 되기 위해 공손룡의 9만 병력과 싸우고 있다. 이신은 그들을 봐서라도 빨리 진군하자고 성화다. 낙화대의 [[몽념]]은 저렇게 직설을 퍼붓는게 "바보의 특권"이라면서도 모두가 묻고 싶어하던 말임은 부정하지 못한다.
          * 지금껏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지시만 내렸던 왕전이지만, 이번엔 그가 그리는 전략을 편린이나마 보여준다. 여전히 어떤 목적 때문에 소도시들을 공략하는지 밝히진 않았으나 [[이목(킹덤)|이목]]의 움직임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 그가 왕도권으로 돌아와 통제력을 갖추기 전까지 어떤 "준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왕전이 보기에 이목이 함단까지 돌아오는데 하루, 그가 왕도권 군단의 통제권을 인수하는데 하루, 최종적으로 준비를 마치고 업에 도착하기까지를 하루로 잡아서 총 3일의 시간이 있는 걸로 계산했다. 왕전은 이제부터 군을 셋으로 나누기로 한다. 왕전 자신의 본대와 [[환의(킹덤)|환의]]군, [[비신대]]와 [[낙화대]], [[옥봉대]]를 합친 연합군의 세 갈래로 나눠 업 주위에 남은 일곱 성을 한 꺼번에 공략한다는 것이다. 작전 내용은 같다. 점령지의 량을 빼앗고 백성들을 바깥으로 내몬다. 그들이 갈 곳은 "동쪽"이다.
          * 백성들은 이런 사정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개중에는 북쪽 요양 쪽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으나 그쪽에서 15만 규모의 대전투가 일어났다는 소이 있다. 결국 그들도 진군을 피해 계속 동으로, 동으로 기약없이 가야만 한다.
  • 킹덤/518화 . . . . 4회 일치
          셋째, 필요하다면 요양에 "틀어박힌" 주력 부대를 끌어다 쓰라는 것. 이 또한 부관들은 의문을 표시한다. "틀어박혔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지금도 공손룡군은 9만, 양단화군이 5만으로 숫적으로 우세하다. 그런데 증원을 부르라는건 숫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쪽이 불리할 거라 봤다는 것인데. 공손룡은 이목을 대신해 "이목님은 순간에 최를 해방시켰던 산민족 군세의 실제 역량을 가늠하려 하시는 것"이라 설명해 부하들을 납득시킨다.
          * 양단화군에 도착한 전령도 비슷한 소을 전했다. 업성의 상황과 왕전이 그리는 큰 그림. 그리고 [[벽(킹덤)|벽]]이 1만의 증원과 10일치 병량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 전령은 왕전이 공손룡의 9만이 더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어떻게든 요양군을 저지해 업성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사항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들으면서도 적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양단화는 전령의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돌려 상냥하게 치하의 말을 전한다. 뜻밖의 친절에 전령이 감사를 표하고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만 달라고 고한다.
          * 양단화군 진영에 왔던 전령은 이 상을 무시한 공격에 당황한다. 그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양단화는 "다나이"라고 답한다. 양단화는 막 깨지기 시작한 적의 좌익과 우익을 바라보며 "다나이란 평지 말로는 조공"이란 말을 덧붙인다. 벌서 적의 전열을 다 깨부수고 있는데 그게 "조공"이라니. 양단화의 설명이 이어진다.
          * 이것이 공손룡군이 놓친 두 번째. 산민족의 파괴력이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 조공을 막아내기에도 급급하던 조군 진영이 주공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와해된다. 그저 실력이나 보자고 생각하고 있던 공손룡은 크게 낭패해서 "진군이 이런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다니"하고 탄한다.
  • 킹덤/531화 . . . . 4회 일치
          몽념은 조군이 떠드는 말들을 전부 거짓정보라고 단정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만큼 난데없는 소이었지만 조군의 사기가 이상하게 올라간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 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몽념은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지 섬뜩하기만했다.
          * 마정은 이 기회를 몰아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그도 이목이 마광을 쳤다는 소에 반신반의할 뿐이었다. 그러나 진군이 동요하고 기수가 공적으로 선언을 하고 나자 믿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목이 왕전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이 뭐였나 싶었다.
          >이자...
  • 킹덤/534화 . . . . 4회 일치
          * 그날밤 조군 중앙 본진에 비보가 날아든다. 진형도를 펼치고 이틀 째의 전술을 구상하던 이목은 금모가 가져온 급보를 받는다. 지금까지 구상한 이틀째의 전략을 전부 다시 짜야 한다는 소이었다.
          * 조군이 물러난 자리. 시체들이 적도 아군도 없이 뒤엉켜 있다. 이신이 그 사이에서 몽념을 찾아냈다. 숨이 붙어있었고 곧 정신을 차렸다. 몽념은 맨 처음 기수군의 동향을 물었고 이신은 방금 전 막 물러났다고 대답했다. 이신은 그밖에 좋은 소도 가지고 있었다.
          명색히 몽념과 대장군 자리를 겨루는 입장이면서 여전히 몽념의 전술안을 따라가지 못한다. 비신대를 이끌고 진군 우측을 점거한 건 좋았지만 몽념이 내린 지시를 이해 못 해 마정이 처들어왔을 땐 일기토까지 할 작정이었다. 다행히 강외가 작전을 잘 설명해준 덕에 적절한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후반에 힘겨루기 국면으로 넘어가자 잘 버텼다. 몽념이 기수 본대와 격돌하고 의을 잃었을 무렵에도 잘 싸우고 있었고 조군이 물러날 때까지 제대로 전선을 지켜냈다. 몽념이 쓰러져 있는걸 발견해 데리고 왔다.
          별 활약은 없었지만 몽념이 지시한 것도 까먹고 마정하고 맞짱을 까려고 하던 이신을 타일러서 물러나게 했다. 따지고 보면 몽념이 단순무한 이신에게 제대로 설명도 없이 우측으로 보냈는데, 그녀가 없었다면 작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의 숨은 공신.
  • 토리코/357화 . . . . 4회 일치
          * 그리고 재에 일부러 스트레스를 주면 더 맛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 구루메 일의 정체는 태양 에너지를 차단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
          * 과거에는 압도적인 포자를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을 썼는데, "네오"도 그런 용도로 만든 맹수 중 하나
          * 네오는 과거 목성 정도의 행성을 1개월 만에 완한 적이 있다
  • 토리코/360화 . . . . 4회 일치
          * 일행은 토리코와 같이 먹기 위해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시하지 않았다
          * 이들이 사를 시작할 무렵부터 구르메 일이 시작될 조짐을 보인다
          * 드디어 구르메 일이 시작된다.
  • 페어리 테일/509화 . . . . 4회 일치
          * 크림 소르시엘을 이끌고 오거스트와 싸웠던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처참한 패배를 맛본다. 제랄 측은 일어설 힘도 없을 정도로 철저히 당했는데 오거스트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제랄만이 겨우 의이 있는데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하지만 오거스트에게 짓밟힌다.
          * 오거스트는 제랄이 한 때 제레프 드래그닐을 신봉했던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를 져버리고 다른 길을 걷는지 묻는데 제랄은 "내 마음을 비추는 빛을 손에 넣었다"고 말하며 엘자 스칼렛을 떠올린다. 그런데 대답을 들은 오거스트는 빛은 정의고 어둠은 악이라는 사고방은 어리석다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제레프 드래그닐에겐 "아들"이 한 명 있다고 말을 꺼낸다. 제랄에겐 놀랄 틈도 없이 오거스트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 아이는 강대한 빛의 힘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했으며 어느 쪽도 아닌 무의 경지에 도달했다. 오거스트는 빛과 어둠에 선악은 무관하다며, 굳이 정의가 있다면 그건 "사랑" 뿐이라 말하며 돌아선다. 그러는 사이 제랄은 엘자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다짐하며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라고 시도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 라케이드 드래그닐과 대치하고 있는 카구라 미카즈치. 제레프의 아들이라는 말에 반문한다. 라케이드는 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제레프의 아들이라고 강조한다. 유키노 아그리아, 렉터와 프로시는 "드래그닐"이란 성을 듣고 나츠 드래그닐을 떠올린다. 라케이드는 내친 김에 그가 제레프의 동생이며 자신의 숙부에 해당한다고 폭로한다. 충격을 받는 유키노와 카구라. 라케이드는 그들에게 나츠와 만나는걸 기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라케이드는 중증의 파더콤. 나츠를 삼촌이라고 인하는데 "아버지가 나츠를 더 신경쓰니 제거한다"는 사고로 움직이고 있다. 오거스트는 방황한 끝에 "무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데 하는 짓은 얀데레. 무의 경지가 아니라 얀데레의 경지다. 빛과 어둠 양쪽에서 방황했다는 언급도 있으니 현재는 빛의 마법만 사용하지만 어둠의 마법도 사용할 것으로 추정. 또 같은 빛속성인 스팅이 나오면 어떤 대결이 될지도 관심사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4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의 의 속에선 스팅이 사라지고 로그가 그를 인도한다.
          * 그때 [[제레프 드래그닐]]이 다시 의 속에 나타나 안나라는 여성을 아는 척한다.
          * 나츠가 의이 없는 와중에도 제레프를 타도하겠다고 중얼거리자 [[해피]]는 제레프가 죽으면 나츠도 죽는다고 털어놓고 만다.
          * 루시는 망설이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고 받아들인다. 그때 나츠가 제레프의 이름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는 의이 없는 중에도 제레프는 자신이 쓰러뜨리겠다고 수없이 되뇌인다.
  • 페어리 테일/535화 . . . . 4회 일치
          * [[그레이 풀버스터]]는 함께 수정할 능력은 없지만 자신의 얼음 마법으로 루시의 열을 혀주며 마지막까지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 END의 서를 복구해 [[나츠 드래그닐]]을 구해낸 [[루시 하트필리아]]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그녀가 책을 수정한 펜으로부터 정체불명의 얼룩이 퍼져나와 마치 몸이 침당하는 것 같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갑자기 악화된 그녀의 상태에 당황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윽고 루시는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수구린다. 그레이가 부축하려 손을 뻗는데 루시의 몸이 엄청나게 뜨겁다. 루시가 겨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나츠의 불꽃. END로서 가지고 있는 불꽃의 힘이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 그레이와 해피는 거기까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역시나 어쩔 방법이 없다. 루시는 그래도 이게 "단서"라면서 이 마력을 따라가면 나츠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해피는 그렇게 하면 나츠 안의 악마를 바꿔 쓰는 것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그래서는 루시가 어찌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루시가 그래도 자신은 할 거라고 고집을 부리자 그레이는 말 없이 얼음마법으로 불덩이 같은 루시의 몸을 힌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 악마의 문자를 다룰 수 있는 인간은 얼마 없으니까. 다루더라도 그 인간은 침 당해 어둠에 빠진다. 그렇지만 나츠가 저렇게 일어났다는 것은... 제레프는 눈 앞의 사실을 인정하기로 한다. 나츠의 부활은 "그야말로 기적의 부활"이라며 다음은 없고 개변자의 목숨이 사라질 거라고 경고한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4회 일치
          * 작전의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 루시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의 도움으로 하루지온으로 향한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항구가 불탄 걸 보지만 동료들을 믿기로 하고 곧바로 페어리 스피어 발동 준비를 한다. 함께 온 [[레비 맥거딘]]과 [[프리드 저스틴]]은 초대형 술을 준비하기 위해 흩어진다.
          * 그러나 시간의 틈새에 있는 나츠는 절채절명의 위기다. 멸룡마도사들이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를 향해 무수한 공격을 시도했으나 단 한 번의 유효타도 내지 못했다. 이미 [[가질 레드폭스]], [[렉서스 드레아]], [[웬디 마벨]],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는 의을 잃은 상태. 나츠가 간신히 쓰러지지 않았으나 심하게 피를 흘린다. 아크놀로기아는 몹시 만족해한다. 그가 바라던 광경이다.
          나츠를 공격했던 아크놀로기아의 마력이 나츠에게 흡수 당한다. 마룡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 해답은 웬디에게 있었다. 의을 잃은 줄 알았던 그녀는 나츠에게 자신의 인챈트 마법을 부여했다. 그 힘이 마룡의 힘마저 나츠에게 주입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웬디는 곧 모든 멸룡마도사들의 힘을 끌어온다. 정신을 차린 멸룡마도사들은 최후의 힘을 쥐어짜 나츠에게 전한다. 곧 마룡의 힘에 더해 그 자리에 있던 일곱 멸룡마도사의 힘 전부가 나츠에게 축적된다. 이제 나츠에게서 전에 없던 새로운 힘이 탄생했다.
          * 미라젠과 엘자가 마룡을 유인한다. 작전을 까맣게 모르는 마룡이 낮게 비행하며 따라온다. 레비와 프리드의 술 작업도 막바지. 쥬비아가 바다의 해류를 조종해 배를 적당한 위치까지 몬다.
  • 하이큐/235화 . . . . 4회 일치
          * 카라스노의 어태커들이 일제히 네트 앞으로 뛰어간다. 츠바키하라는 히나타가 움직이는걸 봤지만 "10번에만 신경쓰면 안 된다"고 의한다. 하지만 이미 그걸 의해 버린 시점에서 반은 휘말려든 것. 카게야마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의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잘못 됐어.
          * 상을 초월한 카게야마의 파인 플레이에 배구를 잘 모르던 관중들까지 들썩인다. 특히 카게야마가 서툴다고 깔봤던 커플은 서로 카게야마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중계진은 새삼 카게야마가 전일본 유스에 지명될 정도로 유망한 선수라고 추켜세우고 호흡을 맞추는 히나타 또한 "잘 쳤다기 보다도 공중에 있었다"라고 할 정도로 결성한지 1년도 안 된 콤비라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칭찬한다. 이와중에도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방금 플레이에 불만이 있는지 서로 옥신각신하는데.
  • 하이큐/239화 . . . . 4회 일치
          *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심정으로 핀치 히터를 기용한다. 그것도 실전 경험이 전혀 없고 공전 첫 데뷔인 1학년 [[히메카와 아오이]].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비슷한 포지션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 히사시]]가 보기엔 지나치게 긴장했다.
          * 히메카와는 특이하게 "언더핸드 서브"를 구사한다. 초심자들이 많이 쓰는 방으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게 특징. 카라스노에서는 그저 특이하게 친다는 정도로 인하고 있지만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다.
          테라도마리도 "맞추려면 나 빼고 맞춰라"고 웃어넘긴다. 히메카와가 가장 의했던 2학년 츠키오카도 3학년 마루야마에게 "종반부터 서브가 어설펐다"고 쓴소리를 퍼부울 뿐, 아무도 히메카와의 실책을 문제삼지 않는다. 히메카와는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조금 어리둥절하다.
  • 하이큐/246화 . . . . 4회 일치
          그때까지, 공적으로 [[시미즈 카요코]]에게 어택하던 걸로 돼있던 타나카는 처절한 퇴짜의 나날을 떠올린다. 동시에 썸이란, 자신에게 그런 장밋빛 무드는 존재한 적이 없었단 사실을 깨달으며 멘붕으로 접어든다.
          카노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를 한다. 그때도 유독 큰 키 때문에 악동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었는데, 그때 도와주던 것이 타나카였다. 타나카도 악동이긴 마찬가지였는데 무슨 생각인지 "넌 키 크고 멋있으니까 허리를 똑바로 펴라"며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거기가 바로 초등학교 배구부였다. 카노카는 그때를 계기로 배구를 시작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 원래도 몰라보게 자라버린 카노카를 어색해했는데 낮에 엔노시타가 "썸이다"라고 했던 얘기가 의돼 엄청나게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둘은 쮸뻣거리며 영양가 없는 이야기나 주고 받으며 변죽만 울린다. 그러다 갑자기 카노카가 속도위반을 한다.
  • 한주완 . . . . 4회 일치
         *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중퇴<ref>{{뉴스 인용 |제목 =2012년 개교50주년 맞아 4년제 개설하며 교명 변경 "대한민국의 넘치는 끼 세계에 뿌린다"|url =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560614|출판사 =경기일보|날짜 =2012 }}</ref>
         * [[2013년]] [[KBS2]] 주말연속극 《[[왕가네 구들]]》 ... 최상남 역
         * [[2017년]] [[KBS2]] 월화드라마 《[[학교 2017]]》 ... 심강명 역
         * 〈왕가네구들 O.S.T〉 - 그 사람(with [[이윤지]])
  • 한지호 . . . . 4회 일치
         |청소년 클럽=[[안동고등학교]]<br />[[홍익대학교]]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안동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함가연 . . . . 4회 일치
         {{은|[[2011년]] KUDF [[한양대학교]] 총장배 라틴부문 2위|개인}}
         *[[2011년]] KUDF 한양대학교 총장배 라틴부문 2위
         * [[서울고등학교]] 졸업
         [[분류:댄스스포츠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함기호 . . . . 4회 일치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 학사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기계공학 학사
         *[[카네기멜론 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 석사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근 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해쉬스완 . . . . 4회 일치
         해쉬스완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힙합 음악을 시작하여, 고등학교 2학년 때 [[바스코 (래퍼)|바스코]]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2016년 ⟪[[Show Me The Money 5]]⟫에 출연하여 1대1 배틀에서 [[주노플로]]를 이겼으나, 팀 선택에서 탈락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nocutnews.co.kr/news/4629928|제목=[힙합릴레이⑮] 해쉬스완 "'쇼미5' 최대수혜자? 운이 좋았다"|뉴스=노컷뉴스|확인날짜=2017-07-20}}</ref> 2016년 10월 [[일리네어 레코즈]] 산하의 앰비션 뮤직에 합류하였다.<ref>{{웹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0666052?cloc=rss%257Cnews%257Ctotal_list|제목=김효은·창모·해쉬스완, 도끼·더콰이엇 앰비션뮤직行 '확정'(종합)|날짜=2016-10-02|언어=ko-KR|확인날짜=2016-10-03}}</ref>
         * [[김포제일고등학교]] (졸업)
         [[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일리네어 레코즈]][[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김포제일고등학교 동문]]
  • 허건엽 . . . . 4회 일치
         || '''학력''' || 도산초-포철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절 65회 [[청룡기]]에서 [[순천 효천고등학교 야구부|효천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다. 또, 63회 황금사자기에서 임찬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SK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 허지애 . . . . 4회 일치
         | 학력 = [[경희대학교]] 현대무용학과
         * 학력: [[경희대학교]] 현대무용학과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허화평 . . . . 4회 일치
         1937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17기 출신이다.
         육군사관학교 동기 [[김진영(군인)|김진영]], [[허삼수]]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특히 허삼수와는 단짝이었다.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대령]])이었다. 말하자면 개국 공신 중의 공신인 셈이다. 1980년 9월 [[준장]] 진급 및 동시 예편하였다.
         좌천된 상태에서도 저 정도의 위상이라면 실세로서 잘나가던 시절에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견제 기회로 인하고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항명으로 비춰져 1982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허삼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와 [[미국]]에 체류하며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 현석문 . . . . 4회 일치
         현석문은 [[1797년]]에 [[한양]]에서 [[중인]] [[신분]]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5살 되던 [[1801년]]에 [[신유박해]]로 [[순교]]하였고, 그의 아내와 자들은 [[1839년]]에 [[기해박해]]로 옥사하였다. 그의 누나 [[현경련]] 또한 기해박해로 순교하였다.
         그는 빈번히 [[베이징]]으로 전령을 보내 [[선교사]]들과 연락하였다. [[1845년]] 그는 [[부제 (기독교)|부제]] [[김대건]]과 함께 작은 나무배를 타고 [[상하이]]로 가는 험란한 항해에 동참하였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조선교구]]의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를 맞아들였다. 현석문은 [[한양]]으로 돌아온 뒤, 위험을 무릅쓰고 김대건 [[사제|신부]]의 집을 자신의 명의로 [[등기]]하였다. [[1846년]]에는 [[병오박해]]가 일어났다. 현석문은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을 듣고 새로운 집을 구입하여 교회의 모든 재산을 그곳으로 옮겼으며, 김 신부의 처소에 남아 있던 여성 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켰다.
         }}</ref> [[시복|시복]]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홍광호 . . . . 4회 일치
         * 계원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중앙대학교 연극학 학사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계원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승목 . . . . 4회 일치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회장 [[신기선 (1851년)|신기선]]이 사망하자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대동학회 후신인 [[공자교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1908년]]에는 [[민원]]이 주도한 [[제국실업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 역시 일본인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친일 성향의 보부상 등을 끌어모아 합방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벌인 친일 단체였다. 이 무렵 [[윤덕영]], [[민영기 (1858년)|민영기]]가 [[박제순]]을 회장으로 내세워 조직한 [[관진방회]]에 가담했고, [[1909년]] 이완용이 [[일진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민연설회]] 기초위원도 지냈다.
         아들은 경술국치 때 자결한 [[홍범]]이며, 손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상을 지낸 소설가 [[홍명희]]이다.
         *** 딸 : 홍정(洪貞植, ? ~ [[1945년 2월]]), [[풍양 조씨|풍양인]] [[조완구]](趙琬九, 1881 ~ 1952?)에게 출가
         *** 아들 : [[홍범]](洪範植, 1871 ~ 1910), [[경술국치]] 때 자살
  • 홍예은 . . . . 4회 일치
         * [[화정고등학교]]
         *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화정고등학교 동문]][[분류:동덕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2004년 데뷔]]
  • 홍준표(야구선수) . . . . 4회 일치
         ||<:> '''출신학교''' || 구미도산초 - 구미중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구미전자공고]] - [[한민학교]] - [[우석대]]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최후의 프로 선수'''[* 2009년 해체 당시 홍준표가 재학 중이었고 홍준표 외에 구미전자공고 출신 야구선수는 현재 [[KBO 리그]]에 없다.]
  • 황선희 . . . . 4회 일치
         | 학력 = [[상명대학교]] 연기전공
         * [[상명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 시상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프레인TPC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4회 일치
         2016년 2월 27일 밤,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니시구에 있는 [[예비교]]에 다니는 19세 여성 키타카와 히카루(北川ひかる)가 같은 예비학교에 다니는 19세 소년에게 살해당한 사건.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구마모토 현 아사쿠사 시(熊本県天草市) 출신이다. 현지에서는 수재로 평판이 좋아, [[진학교]]로 알려진 현립 구마모토 고등학교(県立熊本高)에서 공부를 했으며,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검도]]를 배워서 검도 2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도부 단체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5년 봄에는 [[도쿄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여, 후쿠오카 시내에서 동생과 같이 살고 [[예비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범인 소년은 키타카와 히카루와는 같은 구마모토 현 출신으로 다른 학교를 나왔다. 평소 친구에게는 "키타카와 씨를 좋아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고 한다. "(키타카와 씨에게) 바보취급 당했다."고 경찰에 설명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오빠도 "교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부정하였다.
  • 휴먼 토치 . . . . 4회 일치
         [[댄 슬롯]]이 스토리를 담당한 "스파이더맨 - 휴먼 토치" 미니 시리즈에선 10대 시절부터 피터가 학교 선생이 되고 불가피하게 휴먼 토치에게 정체를 드러낼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있는데 서로 심술부리며 싸우면서도 도와주고[* 일례로 닥터 둠이 휴먼 토치를 얼음속에 가둬두고 없애버리려 하자 스파이더맨은 닥터둠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숙적인 휴먼 토치를 없애게 해달라고 조아린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닥터 둠은 스파이더맨에게 휴먼 토치를 끝내라고 얼음 전체를 주지만 스파이더맨은 휴먼 토치를 들고 도망간다(...)] 마지막에 피터가 다니는 학교에서 휴먼 토치와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물리친뒤에 가면을 벗고 대면하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을 얘기한다[* 피터는 쟈니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판타스틱 포와 온갖 모험을 하고 언론의 음해를 당하지 않는 유명인의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쟈니는 피터에게 자상한 숙모가 있고(쟈니는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친한 미인 여자친구들이 많으며 미스터 판타스틱 못지 않게 머리도 좋고 사진도 잘 찍는 것을 부러워했다. 이러면서 피터처럼 운이 좋은 걸 파커 럭이라고 불렀다는데, 원래 파커 럭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피터의 삶을 얘기하는 단어이다(...)]. 슈피리어 이후 피터가 돌아온 것을 안 쟈니는 옥토퍼스가 몸을 차지한 기간동안 피터가 놓친 영화, 드라마, 음악등을 USB에 담아주기도 하며 자기가 죽었다 돌아온 시절을 얘기하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한다.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이나 울버린등이 어디까지나 가까운 "동료"라면 휴먼 토치는 몇 안되는 '''친구'''이다.
         570호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잦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져 팬들의 불안을 야기했으며 결국 587호에서 백스터 빌딩 안에 [[네거티브 존]]이 어나이얼레이션으로부터 강제로 열려지자 [[인간]]으로 돌아온 [[씽(마블 코믹스)|씽]]과 백스터 빌딩에 거주하는 학생들과 객 그리고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네거티브 존에 남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 만화 특성상 결국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 옛날에 나온 애니메이션 판에선 혼자 짤리고 허비(H.E.R.B.I.E)라는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먼 토치를 보고 아이들이 자기 몸에 불을 붙힐까봐-라고 짐작했고 80년대의 판타스틱 포 만화에선 이를 의한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은 마블이 [[헐크]]처럼 실사화를 위해 휴먼 토치를 판권을 다른 회사에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판권은 넘겼지만 당시 기술론 휴먼 토치를 재현해낼수가 없어서 결국 실사화는 안되었다.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카와모토 자매는 결국 6인분의 국수를 둘이서 과하고 드러누워 버린다.
          * 요리법 설명이 [[극의 소마]]보다 자세하다.--음만화가 아닙니다.--
  • 3월의 라이온/126화 . . . . 3회 일치
          * 산가츠 마을 봉오도리 개시. 카와모토가는 노점을 준비하는데 츠구미를 비롯해 학교 지인들이 와서 도와준다.
          * 팔다 남은 음들을 서둘러 챙기야 하는데 테이블이 무너지면서 음이 쏟아질 뻔 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3회 일치
          포탑달린 전함부터 현대 전함까지의 전함에 대한 연구. 외전격으로 Super Heavy Battleship 연구와 Improved Super Heavy Battleship 연구가 있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잠수정부터 현대 잠수함까지의 잠수함, 기본 대형 잠수함에서 개선된 대형 잠수함까지의 대형 잠수함에 대한 연구. 외전격인 Super Heavy Submarine 외에는 잠수함을 연구하면 대형 잠수함도 함께 해금된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초기 순양전함부터 현대 순양전함까지의 순양전함에 대한 연구. Battleships 트리 중 Dreadnought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 HelpOnEditing . . . . 3회 일치
          * `#aabbcc` 형의 RGB 색상 코드
          * 예시1) '''{{{#630031 RGB HEX 형의 색상}}}'''({{{{{{#630031 RGB HEX 형의 색상}}}}}})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3회 일치
         이는 연맹과 K리그 구단들의 공적인 발표는 없으나, 경기장이나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티켓에 시즌권(=연간회원권)과 배포한 무료티켓을 합산하여 나온 결과라고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인구 수를 매년 잘못 파악한다고 치면 해당 도시의 인구가 왜 늘어났는지, 혹은 반대로 왜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초현상이 발생했으면 왜 여초현상이 발생했는지, 여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헌데 2011시즌까지의 K리그는 사실 이게 불가능한 정도를 넘어 구단들이 알아서 뻥튀기를 했고, 또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걸 공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K리그가 지금 흥행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대대적인 실패를 하고 있는건지 진단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사실 허수로 부풀린 관객수로 투자를 받아 봤자 투자자는 관객수에 비해서 수익이 적다는걸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된다. 차후에 실제로 관중이 발표한 만큼 늘어나도 축구=수익이 안 되는 사업이라는 인에 가로막힐 수 있기 때문. 부풀린 데이터를 제시하는건 일종의 '투자 사기'이며,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투자에 필요한 신뢰를 얻는데는 기본적인 사안이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3회 일치
         2014 K리그 클래 11위였던 경남과 동시즌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최종승자인 광주가 만나 승격이냐 잔류냐를 두고 [[홈 & 어웨이]]로 경기를 치뤘다.
         동점골로 추격 의지를 꺾은 김호남이 MOM에 오르면서 광주는 2012시즌에 강등된지 3시즌만에 클래으로 복귀하게 되었으며, 경남은 2015시즌부터 챌린지에 머물게 된다.
         [[K리그 클래/2014시즌]]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3회 일치
         역사상 두번째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이며, 사상 최초로 [[K리그 클래]]에서 시즌을 보낸 적이 없는 팀이 최종 승자가 된 대회이다.
         운영 변경사항으로 작년 2014시즌과는 달리 2위팀에게 다소의 어드밴티지를 주기 위한 조정의 흔적이 있다. 이에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경기 사이에 있던 휴기가 1주일에서 3일로 줄어들었다.
         대구는 [[K리그 챌린지]]에서 후반기 부진으로 [[K리그 클래]] 자동진출권을 놓쳤기 때문에 사기가 상당히 저하된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2015시즌 대구는 수원을 상대로 1승 1무 2패로 상성마저 최악이었는데다가 대구가 챌린지에 합류했던 2014년부터 수원 FC와의 홈경기는 '''단 1승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을 믿을 수 있는건 무승부로 시합을 종료하여 승강 플레이오프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 MoniWikiTutorial . . . . 3회 일치
          * 사용자 ID: 영문으로 사용자 ID를 만들 경우 보통 소문자 구성된 사용자 ID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위키위키에서는 FooBar같은 낙타 사용자 ID를 종종 사용합니다. 한글로 만드셔도 됩니다.
         모니위키에서는 총알 아이콘(*)과 숫자 넘버링 방(1,2,3,...)의 리스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 매크로는 페이지내에 {{{[[GoTo]]}}}와 같은 형으로 집어넣습니다.
  • That 70's show . . . . 3회 일치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 재선을 위하여 포인트 플레이스에 선거 유세를 하러 온다. 대통령이 온다는 소에 키티는 엄청나게 흥분하고, 밥 핀시오티, 재키 아버지 등 마을 유지들의 위원회는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질 '일반 시민'으로 레드를 선정한다. 한편, 에릭과 하이드, 켈소, 페즈는 항의 시위로서 알몸으로 벗고 달리는 스트리킹 시위를 하기로 결심한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단 지구 반대편이고, 영국과 네덜란드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외국인 유학생. 뜨거운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여자에게 열심히 들이대지만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5시즌에서 추방 위기에 놓이지만 로리와 결혼하여 회피에 성공,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걸 위탁부모 가정에 알리지 않고 그냥 살다가 들켜서 쫓겨나고, 에릭네 집에서 몰래 얹혀살다가 들킨다. 이후 켈소와 룸메이트가 된다. 미용실에서 샴푸보이를 하게 되는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게 된다.
          * 할머니는 [[스웨덴]] 출신. 키티는 할머니의 억양이 이상해서 부끄러워서 졸업에 부르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그로부터 16년 뒤에 통풍에 걸려서 돌아가셨다는 사연이 있다. 1시즌 1에피소드에서 도나에게 이 사연을 이야기 해줄 때 말하는 교훈은 "모든 가족은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게 되는건 죽은 뒤일 뿐.(…)"
  • 강세정 . . . . 3회 일치
         | 학력 = [[경기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 [[경기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강원 FC . . . . 3회 일치
         원래 강원도는 축구 열기가 정말로 높은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강릉시에 위치한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와의 대결인 [[강릉 축구 정기전]]이 고등학교 축구경기임에도 강릉시의 단오제 행사 중,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890|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K3리그]]에 참가하는 [[춘천시민구단]]의 개막전 3000명 관중 사례만 봐도 강원도의 축구열기는 분명 전국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역적으로 산세가 험해 원정을 가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팀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과거 천안 일화가 천안시의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강릉으로 연고를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타 팀들이 "연고 이전은 상관 없는데, 강원도는 불편해서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는 요청이 들어왔었던 사실은 제법 유명하다. 결국 일화가 강릉이 아닌 성남으로 옮기자 이를 반기는 타 구단들의 입장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
         || 2013 || K리그 클래 || 14 || 12 || 16강 || - || 승강 PO, 챌린지 강등 ||
         [[K리그 클래]]
  • 개돼지 . . . . 3회 일치
          * 돈견(豚犬)이라는 고사가 있는데, 중국 삼국시대에 [[조조]]가 [[손권]]의 군세를 보고 "자을 낳는다면 손중모[* 중모는 손권의 자]와 같아야지, 유경승(유표)[* 경승은 유표의 자]의 자들[* [[유기]]와 [[유종]]을 가리킨다.]은 돼지나 개(豚犬)와 같다."고 감탄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자신의 미흡한 자을 뜻하는 말로 돈견이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0화 . . . . 3회 일치
          * 많이 먹고 학교에 홍보를 해달라고 하는데.
          * 키리에는 화려한 가게 장과 친구들의 차림을 보고 왜 자신은 후줄그레한 차림으로 왔는지 부끄러워 한다.
          * 그때 코마루와 함께 케이크를 서로 "앙~"해주며 먹었을 때를 떠올리며, 무의 중에 "맛있어(우맛샤)~!"를 외치고 부끄러워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5화 . . . . 3회 일치
          * 친구랑 해본 적이 없냐고 물으니 친구가 없어서 해본 적이 없고, 학교도 잘 나가지 않아 학교 친구도 없다고 한다.
          * 특진 클래스는 출석율이 상관이 없어서 거의 학교에 가지 않는 건데, 우마루는 그걸 듣고 "무한하게 뒹굴뒹굴할 수 있어 좋겠다"라고 부러워한다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3회 일치
         '''정 명칭 아님. 정 명칭 아는 사람이 추가 바람.'''
          80발이 장전되는 수냉 기관총. 그런데 카놀리건 군인이건 이걸 들고 쏜다. 톰슨보다 데미지가 높다.
  • 경주시 . . . . 3회 일치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align="center"|[[이태]]
         |align="center"|대학교
  • 곤조야키 . . . . 3회 일치
         주로 불량배들이 자신의 근성(인내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벌인 행위이다. 주로 선배가 후배의 손목이나 손등에 담배불을 꺼서 후배의 근성과 충성을 얻는 행위였다. 동료의을 높이고, 집단에 귀속의을 높이는 목적으로 행해진다. 곤죠야키를 하면 화상 흉터가 눈에 뛰게 남게 되는데, 불량배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흉터는 하나의 훈장처럼 다루어지고 있었다.
          * 집단괴롭힘의 일환으로 행하여지는 경우도 있다. 2012년 센다이 시내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곤조야키를 당했다는 호소가 있었는데, 왼팔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무려 23개나 되는 곤조야키를 당했다.[[http://www.j-cast.com/2012/08/07142160.html?p=all (참조)]]
  • 국가원수 . . . . 3회 일치
         의원내각제 국가의 의례적인 국가원수는, 총리나 내각 각료에 대한 임명권[* 사실상 의회의 선출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형적.], 외국 사절에 대한 신임장 및 소환장을 발행, 접수 등의 의례를 실시한다.
          * 리비아 : 무하마르 알 카다피는 형상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혁명지도자'라는 비공적인 직함으로 사실상 국가원수로 활동했다.
  • 권혁 (기업인) . . . . 3회 일치
         '''권혁'''(1950년생)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출신<ref>[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4910 탈세범이냐 정상 기업가냐 판정대 오른‘선박왕’]</ref>의 일본 시도상선 회장이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해운]] 출신으로써 국내 해운업계의 독보적인 존재이며, 시도상선은 보유척수 175대, 매출액 2조 1700억원, 자산 5조원의 거대 선박임대회사이다.<ref>[http://news.donga.com/Society/New/3/03/20110412/36340407/1 국세청 4101억 세금 추징 ‘시도상선’ 권혁회장은 누구]</ref> 이는 국내 1위 선박업체로 알려진 [[한진해운]]보다 높은 수치이다. 2011년 4월에는 탈세 혐의로 4101억을 추징당한 바 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72718.html 해운업 호황의 ‘대박’ 유령회사에 숨겼나]</ref>[[2012년]] [[11월 29일]], 징역 7년과 벌금 2284억원의 중형이 구형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915172 검찰,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 징역 7년 구형]</ref> 그 뒤 2013년 2월 12일엔 징역 4년에 벌금 234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66800 ′횡령 혐의′ 시도상선 권혁 회장, 징역 4년·법정구속]</ref> 그러나 2013년 10월 14일, 보석으로 석방됐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986489 `선박왕` 권혁 회장 보석 석방]</ref> 그리고 2014년 2월 21일 항소심에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선고되면서 감형됐다.<ref>[http://news.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120413661939&md=20140221204249_AO 조세포탈 혐의 ‘선박왕’ 권혁 회장, 항소심서 집행유예 감형]</ref>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
  • 그린 애로우 . . . . 3회 일치
         [[활]]과 [[화살]]을 써서 싸우는 궁수 히어로. 화살은 보통 화살만이 아니라 특수 장비이기도 한 트릭 화살이기도 하다. 화살에 따라 폭탄이 있거나, 글러브가 있다던가 하는 . 이러한 화살을 써서 다양한 전투에 대응한다.
         배트맨과 유사점을 보이는 캐릭터. 초능력이 없고, 전투실력이 뛰어나며, 특이한 장비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정체인 인물은 이름 있는 부자. 심지어 이전의 그린 애로우는 배트맨의 박쥐 동굴을 의한 듯한 기지와 배트모빌을 의한 듯한 애로우카라는 자동차가 있었다.
  • 기은세 . . . . 3회 일치
         * [[백석대학교]] 회화과
         * [[2007년]] [[동서품]] 프리마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백석대학교 동문]]
  • 김가을 (수영선수) . . . . 3회 일치
         |학력 = 포항신흥초등학교<br>경북체육중학교<br>경북체육고등학교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 [[2008년]] 곰TV TG삼보-인텔 클래 2008 시즌1 32강
         * [[2008년]] 곰TV TG삼보-인텔 클래 2008 시즌2 16강
         * [[2009년]] 곰TV TG삼보-인텔 클래 2008 시즌3 16강
  • 김대륙 . . . . 3회 일치
         || '''학력''' || 대해초-포철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동아대학교|동아대]] ||
         퓨처스리그에서 32경기에 나와 타율 0.321 4홈런 30타점의 좋은 모습을 보여 6월 5일 엔트리 대거 변경때 [[박준서]], [[김대우(1984)|김대우]]와 함께 1군에 등록되면서 정선수로 전환되었다. 등번호도 113번에서 42번으로 바뀌었다.
  • 김대환 (법조인) . . . . 3회 일치
         1942년에 [[경상북도]] 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육군 대위를 전역한 이후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와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수석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999년 10월 11일에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된 직후인 11월 20일에 수원지역 주민들의 등기민원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2000년까지 수원시내 택지개발지구에 2개 등기소 를 설립하였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559307]</ref> 2000년 6월에 [[최종영]]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신임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08261]</ref> 2000년 7월21일에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01년 2월 12일에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전보되면서 대법원장에 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 지명되었다.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법무법인 율촌에서 송무 Group<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6&aid=0000189786]</ref> 변호사를 하다가 2004년 3월 2일에 박영철 고려대 교수와 함께 대법원장 추천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에 임명되었다. 2013년 4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관할하는 서울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과 센터장을 맡았다.<ref>[http://news1.kr/articles/?1087614]</ref>
         자격정지3년을 선고하면서 박일룡 전 안기부 1차장에게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자격정지2년, 임광수 전 101실장과 임경묵 전 102실장 등 전직 안기부 간부 4명에게 징역8월~1년6월 집행유예2~4년 자격정지1~2년을 선고하면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X파일 시리즈를 게재한 격주간지 인사이더월드 발행인 손충무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1월 23일자</ref> 4월 26일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선거공보에 실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벌금150만원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4월 27일자</ref> 5월 20일에 [[자민련]] 후보가 시장 후보를 결정하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새정치 국민회의]]의 추천을 받았다며 선거운동을 했던 경기 안성시장 [[한영]]에게 원심대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5월 21일자</ref> 8월 31일에 성남시 지하상가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오성수]] 전 성남시장에 대해 징역5년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선고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벌금100만원, 업무상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9월 1일자</ref>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상희 (가수) . . . . 3회 일치
         '''김상희'''(金相姬, 본명 : 최순강(崔順江), [[1943년]] [[3월 29일]]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ref>김상희는 예명이고, 본명은 최순강이다.</ref>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1년]] 가수로 데뷔, [[1965년]]부터 활동하였다.<ref>처음 리사이틀 갖는 金相姬, 《경향신문》, 1970.1.17.</ref> [[1971년]] [[동양방송|TBC]] 가요대상, 1973년 제1회 대한민국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부문, [[1977년]]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동경 국제 가요제에서 "즐거운 아리랑"을 부르며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방송예술진흥원]]의 학장 및 [[한국교통방송]]의 DJ로 활동 중이다.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주 최씨]]
  • 김수자 . . . . 3회 일치
         김수자는 1957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김수자의 화가로서의 근본은 그녀의 예술 발전에서 중요한 시작점이다.<ref>Arum Sok, Christina, Kimsooja: A Modern Day Global Nomad Transcending boundaries, re-constructing a global identity 2014, paper Abstract, in Kimsooja’s official website: http://www.kimsooja.com/texts/sok_2014.html</ref> 김수자의 "꿰매기" 시리즈는 세계의 뒤엉퀸 모습을 수평면과 수직면의 체계에 합성하여 십자형의 구조를 형성하는 천의 아상블라주를 만든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루초 폰타나]]가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캔버스를 날이 선 단도로 꽤뚫었던 것과 같이 김수자 또한 작품의 표면을 꿰매어 더 이상 환상의 화면이 이닌 3차원 구조의 예술을 창조하였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 {{언어링크|en}} [http://www.kimsooja.com 공 웹사이트]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행위 예술가]][[분류:설치미술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김승목 . . . . 3회 일치
         1929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부산상업고등학교(현 부산[[개성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 김쌍수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업인]]. [[LG그룹]] 부회장[* LG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부회장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윤종용, [[이학수]]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공부잘하는 [[엄친아]], [[엄친딸]]들이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로 삼는 인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기업 부회장 자리는 게임으로 따지면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한 것이다.], 前 [[한국전력공사]] 사장, 現 [[수원 KEPCO45]] 프로배구단 구단주. 졸업 고교는 [[성의고등학교]].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이다.
          *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 [[부산대학교]] [[명예박사]]
  • 김지훈 (영화감독) . . . . 3회 일치
         | 학력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분류:김지훈 감독 영화|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희정 (펜싱선수) . . . . 3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혜여자중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목원대학교 동문]]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3회 일치
         오오우치 마리아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살인]]을 꿈꾸고 있었다. 범행에 사용된 도끼는 이미 [[중학생]] 시절에 구입한 것이었다. 오오우치 마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죽이고 싶어했다.", "사람을 죽였을 때는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성취감을 얻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입시를 앞둔 시기에는 [[황산탈륨]]을 [[쥬스]]에 넣어서 동급생 남학생을 살해하려 했다. 이 남학생은 거의 실명에 이를 뻔 했으나 원인 불명의 건강 이상으로 처리되었다. 교내에서는 범행을 의심하는 소문이 퍼졌고, 병원에서도 학교 측에 특수한 약물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통보했으나, 학교에서는 입시철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요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안이하게 처리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3회 일치
          * [[유우에이 고등학교]]
          공 소설. 일상물 스타일 옴니버스.
          공 설정집.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3회 일치
          * 미도리야와 바쿠고는 나름대로의 방으로 난관을 타개한다.
          * 미도리야는 두 사람이 진짜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다른 학교는 적어도 10명 단위로 움직이고 있어 너무 불리하다며, 이대로 다른 동료들을 기다리자고 한다.
          * 권두 컬러는 2주년 기념 제 2회 인기 투표 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3회 일치
          * 구호소 바로 근처에 빌런이 나타났다는 소이 수험생들 사이에 퍼진다.
          * 채점은 감점으로 50점 미만이 된 수험생은 바로 탈락, 빌런이 나타난 지금도 적절한 판단과 활동이 중요하다.
          * 하지만 그는 토도로키를 보자마자 엔데버의 자이며 그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3회 일치
          * A반 사이에서 토도로키의 탈락 소도 전파된다. 하필이면 A반 투톱이 전부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카미나리 덴키는 바쿠고에게 폭언 때문이라며 깐죽거려서 화를 돋군다. 미네타는 둘다 "자기 본위의 플레이가 발목을 잡았다"는, 밥맛없지만 정확한 팩트폭력을 시전하다 이이다 텐야에게 치워진다. 야오요로즈 모모와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마음을 신경써 주지만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한다.
          * 채점지를 받은 미도리야는 이렇게 세세한 채점방을 보고 일단 한 번 감점되면 만회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파악한다. 그런데 주최측은 탈락자들이 50점 밑으로 떨어져도 배제하지 않고 계속 시험을 치도록 했는데 그 저의가 무엇인지 의문스러워한다.
          * 시험도 끝나고 다른 학교 인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Ms.조크는 아이자와 쇼타에게 나중에 합동 연습이라도 하자고 제안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다. 요아라시는 토도로키에게 다음 강습에서 또 만나자고 하지만 너무 솔직하게 "여전히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고 직구를 던지고 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3회 일치
          * 새로운 소음이 들린다. 또다른 사건이다. 트와이스는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본래는 그도 평범한 빌런의 하나였다. 그의 개성은 "두 배". 하나를 둘로 늘리는 능력이다. 처음엔 자기 자신에게 사용했다. 자신을 둘로 늘리고 늘어난 쪽이 다시 자기를 늘리는 으로 자신을 잔뜩 만들어서 부려먹었다. "본체"는 그들의 왕으로 편하게 지냈지만, 어느날 평화가 깨졌다. 분신이 그가 왕인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이다.
         마스크를 벗으면 다중인격 성향이 드러나는데 상당히 중증. 평소에도 또다른 자아가 생각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마스크를 쓰는 걸로 자아를 확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임간학교편 당시에도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등, 본인이 괜찮다고 여길 뿐 전혀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원래 캐릭터 모델이 데드풀로 추정되는데 실제 데드풀도 다중인격 성향이 있다.
         올마이트 은퇴 후의 사회상도 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었는데 상당히 혼란에 빠져 있는 걸로 보인다. 빌런들이 조직화돼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히어로측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버홀의 경우 일종의 현상금 사냥꾼 같은 이미지인데 정작 본인도 빌런 생활을하는 걸로 보인다. 엔데버는 기껏 No.1 히어로 자리에 올랐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고 있지 않다. 게다가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히어로 약체화의 상징" 같은 꼴사나운 수어가 생겨버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3회 일치
          물에 빠진 학생이 당황한 나머지 수질을 초로 바꿔버렸는데, 무적의 올마이트로 초에 잠수하는 바람에 눈이 따가워 눈을 묘하게 찡그렸다. 미도리야는 이때의 얼굴을 재현한 것이라 주장한다. 나이트아이는 자신을 그저그런 팬인줄 아냐고 대꾸하지만 분명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걸 알고 있고 그걸 화제로 신나게 오덕 토크를 한다.
          * 나이트아이는 실컷 이야기하고 나서 미도리야가 방문한 목적, "인턴 채용" 건에 대해서 듣는다. 미도리야가 가져온 서류에 나이트아이가 도장을 찍음으로 성립한다는데, 나이트아이는 일반적인 기업에서 하는 인턴과는 다르다며 학교 수업에도 영향을 미쳐 출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도리야는 "발을 맞추고 있는 것만으론 톱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당당히 서류를 제출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3회 일치
          * 궁지에 몰린 빌런은 팔뚝에서 칼날을 뽑아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키리시마의 경도를 이길 수 없었다. 칼날이 깨져나가고 키리시마가 "레드 카운터"로 손쉽게 때려눕힌다. 키리시마는 다소 경멸적인 어조로 "얌전히 잡혀라 권총자"라고 내뱉는다. 그런데 널부러진 빌런이 일어날 생각도, 다시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상대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자 키리시마는 금방 당황한다.
          >방심했구나 꼬마자!
          임시면허시험 직전의 특훈 기간 동안 키리시마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할 뾰족할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올마이트에게 들은 조언을 친구 [[바쿠고 카츠키]]와 [[카미나리 덴키]]에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조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도 너희와 맞설만한 방법이 없었다"라는 푸념이 뒤따른다. 옆에는 [[토코야미 후미카게]]와 [[세로 한타]]도 있다. 키리시마가 분석하기로 이들은 모두 중,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단이 있고 기동력도 괜찮다. 단 키리시마만 빼고. 키리시마는 자신에겐 그들이 가진 무기가 전혀 없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카미나리는 친구들에 대한 고평가에서 자만 쏙 빠지자 핸드폰 공짜 충전 안 해준다고 협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3회 일치
          미도리야는 일단은 "에리쨩 보호에 전력으로 임해야 한다"는 각오로 여러가지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미 아슬아슬한 상태인 거라고 자평했다. 그도 그럴게 고민하는 기색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고 남에게 보여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지금도 학생 당에서 밥을 앞에 두고 멍하니 있다가 [[토도로키 쇼토]]가 "안 먹냐"고 지적했다.
          * 지난 회의에서 불평만 늘어놓다 끝난 레게풍 히어로는 일단 임무는 충실히 이행했다. 미도리야가 학교에 있는 동안 어느 도심지. 그는 시에핫사이카이와 연루된 시설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거점이 될만한 포인트"를 염두하며 원탑 형태의 어떤 건물을 조사했다.
          그 뿐만 아니라 조사에 참가한 히어로들은 저마다의 방으로 나이트아이에 협조하고 있었다. 수사는 시시각각 진행되고, 이틀이 지났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3화 . . . . 3회 일치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 일행은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에 실패하고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 최종적으로 학생 40명 중 15명이 의불명의 중상, 11명의 중경상자, 1명의 행방불명. 무사한건 13명 뿐
          *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에선 심각한 사태로 보고 회의를 소집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3회 일치
          * 올마이트의 은퇴 공화, 베스트 지니스트는 가까스로 생존했지만 장기 리타이어, 래그돌은 개성을 돌려받지 못해 무개성이 된다.
          * 올마이트는 현역 은퇴를 공화. 미국의 히어로계에서도 동요하고 있다고 한다.
          * 그래서 이 학교라면 바쿠고를 제대로 봐줄 거라고 생각하고 맡기기로 결정한 것.
  • 노해 . . . . 3회 일치
          * 이 경우는 "○○은 노해다.","저 영감은 노해다."는 으로 직접적으로 개인을 가리키면서 쓰인다.
          * 노인이 과거의 지을 맹신하고, 새로운 지이나 연구 결과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 뇌내 꽃밭 . . . . 3회 일치
         --[[뇌]]에 [[물]]이 [[기생]]하여 [[꽃]]이 자라나는 무서운 질병.--
         뇌내(脳内)는 뇌의 안쪽, 여기서는 [[정신]]을 뜻하며, 오하나바타케(お花畑)는 [[꽃밭]]이라는 뜻으로, 이상적인 사고방을 뜻한다. 봄의 만발한 꽃밭의 풍경으로 과도하게 이상적인 사고방을 풍자하는 것이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3회 일치
         이승만의 제안은 미 [[국무성]]에 보고되었다. 이 제안을 전달받은 일본 정부는 당시 야마구치 현 지사 다나카 다쓰오에게 임시정부를 수용할 6만명 규모의 시설 및 량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다나카 지사는 현의 [[소학교]]를 망명정부 시설로 확보하는 한편, 일본 정부에 대하여 특별 량배급 요청 여부를 검토하였다. 당시 다나카 지사의 비서 역시 관련 증언을 하였다.
  • 돌턴 갱 . . . . 3회 일치
          * 그래턴 "그랫" 돌턴(Gratton "Grat" Dalton) - 돌턴 가족의 7번째 자.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사망.
          * 로버트 "밥" 돌턴(Robert "Bob" Dalton) - 돌턴 가족의 10번째 자.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사망.
          * 에밋 돌턴(Emmett Dalton) - 돌턴 가족의 11번째 자.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체포됨. 1937년 사망.
  • 동백기름 . . . . 3회 일치
         [[동백]]의 씨앗에서 채취한 [[기름]]. 황색이며 독특한 냄새가 난다. 공업용, 화장품, 품 등으로 사용된다. [[일본어]]로는 '츠바키 아부라'
          * [[용유]]로 사용한다.
         [[분류:품]] [[분류:기름]] [[분류:화장품]]
  • 라늬 . . . . 3회 일치
         *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 [[계명대학교]] 무용과 (휴학)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 러브라이브! . . . . 3회 일치
         학교단위로 활동하는 아이돌인 "스쿨 아이돌"이 존재하는 배경으로, 스쿨 아이돌 활동이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이다.
          * μ's - 국립 오토노키자카 고등학교의 스쿨 아이돌. "뮤즈"라고 읽는다. 2016년 4월 1일 파이널 라이브 이후 해체되었다.
          * Aquors - 사립 우라노호시 여자 고등학교의 스쿨 아이돌. "아쿠아"라고 읽는다. 러브라이브! 선샤인!!의 주역 인물들.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3회 일치
          Marksman의 주무장. 소총과 반자동 소총에 조준경을 달아놓은거다. 조준 상태에서 6을 눌러 기계 조준기로 전환할 수 있다. 볼트액션 방의 경우 클립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한발씩 장전하므로 장전 속도가 느리다.
          연합군이 공격, 주축군이 방어인 맵. 평야에서 시작해 시가지로 들어가는 으로 진행된다. 주축군의 방어가 거센 곳은 초반 평야 지대와 마지막 포인트 바로 앞의 강. 연합군에게 지형적으로 불리한 위치인지라 소련 측은 T-34를 사용할 수 있다.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3회 일치
         * [[숙명여자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학사)
         * [[Y-STAR]] 《[[신로드]]》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 로리타 패션 . . . . 3회 일치
         소녀스러움을 강조하는 패션 양. [[레이스]], [[리본]], [[프릴]] 같은 것을 다용하며, 헤드 드레스 같은 것을 도입하는 등, 중근세 유럽의 패션 디자인을 모방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형태이다.
         아마(甘)는 달콤하다는 의미. 백색이나 핑크색을 기본으로 하여, 프릴이나 리본 같은 장을 많이 사용한다. 동화책 속의 공주님을 이미지 한 듯한 의상이다.
         캐쥬얼 의상과 로리타 패션을 접목시킨다. 캐쥬얼 의상에 부분적으로 로리타 패션을 도입하여 포인트를 내는 방이다.
  • 로버트 켈리 . . . . 3회 일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정치학 박사 출신, 2008년 9월부터 공개채용을 받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서 근무하고 있다.
         ## 간단한 이력, 연표형.
         2017년 초, [[반기문]] 사무총장의 귀국과 대통령 후보 논란에 대하여, "그는 구 관료이며 그 점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그를 선택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반기문을 변화를 가져올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매우 '대가 약한 사람'(milquetoast)", "올해는 수십만 명의 한국인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한 '격동의 해'(big year)"라는 언급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남겼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2/0200000000AKR20170112199600009.HTML (참조)]]
  • 로손 . . . . 3회 일치
         1974년 소매업계 대기업 [[다이에]](ダイエー)가 [[미국]] 품회서 콘솔리데테드 푸즈(コンソリデーテッド・フーズ)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이 회사 산하에 있던 로손 밀크 프랜차일즈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1975년 다이에 로손 주회사(ダイエーローソン株式会社)로 시작하여, 1979년 주회사 로손 재팬(株式会社ローソンジャパン)으로 변경, 1996년 LAWSON, INC.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 류종원 . . . . 3회 일치
         * [[리라컴퓨터고등학교]]
         *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연극전공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리라컴퓨터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류한수 . . . . 3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레슬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마기/331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모르지아나는 "루프로 돌아간다"는 소을 알고 있었고 남을 위해 행동하는 알리바바 성격상 그 길을 택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 모르지아나는 그 변화를 인하지 못한다. 아주 기쁜 얼굴로 "죽기 전에 결혼을 올리자"면서 말한다.
  • 마츠리 . . . . 3회 일치
         제(祭)는 제사라는 의미인데, 일본의 마츠리는 주로 신토 의으로 각 지역이나 신사의 신(神)을 모시는 축제를 벌이는 형인 경우가 많다. 현대에는 엄숙한 제사 의이라기보다는, 마을 축제로서의 의미가 더 강해졌다.
  • 몬스터버스 . . . . 3회 일치
          * 본 게시물은 정 명칭이 나오기 전까지는 '고질라-콩(Godzilla-Kong)'이라 표기되었다가 정 명칭이 나오면서 수정되었다.
          * 정 명칭인 몬스터버스는 킹콩 관련 완구에서 처음 나왔다.
  • 민도 . . . . 3회 일치
         어떤 국가나 지역에서, 국민이나 주민들의 생활 수준, 경제력, 문명 정도를 뜻하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에 대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나오는 사례가 많다. 굳이 따지자면 '시민의'에 가까운 표현이다.
         기원은 '이거다'라고 볼 만큼 확실하게 사용된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친일문학가인 김동인의 글에서도 민도라는 용례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의외로 잘 안쓰는 단어지만 확실하게 과거에는 쓴 적도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이 민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제국주의적 의미의 "계몽"과 상통되는 의미로 쓰였다. 이후의 자료에서는 '생활수준'이나 '경제력', '문명수준'을 뜻하는 말로 나오지만, 최근의 인터넷 자료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에 대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나오는 사례가 많다. 21세기에서 보면 제국주의 시대의 의미로 돌아온 느낌으로 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 . 3회 일치
         15년 전 아버지는 여자와 나가고, 그 어머니도 재혼하여 집을 떠났다. 세 자매를 키워준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장녀 사치, 차녀 욧쨩, 삼녀 치카는 넓고 오래된 [[카마쿠라]]의 집에 남겨져 있다.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장례에 나간 그녀들은 다른 여동생 스즈와 만나게 된다.
         믿음직하지 못한 양어머니를 떠받치며, 다부지게 행동하는 중학생 스즈를 보고 자매들은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카마쿠라의 집에 스즈를 초대한다. 네 자매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데, 할머니의 칠주기에 소불통이었던 어머니가 나타난다.
          * 공 사이트 : http://umimachi.gaga.ne.jp/
  • 박경석(1937) . . . . 3회 일치
         1937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기자(직업)|기자]]로 근무하였다. 정치부 기자를 거쳐 경제부차장, 논설위원, 주일본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통일국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이상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지적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부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로 근무하였다.
  • 박동진 (1922년) . . . . 3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주오 대학]]을 학사 학위하였다.<ref>{{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6_30065|박동진|朴東鎭}}</ref>
         1951년 외무부에 들어와, 의전국장, 주 영국 참사관, 외무부차관, 주 월남 대사, 주 브라질 대사(1962년 10월~1968 2월)<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82100329201006&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62-08-21&officeId=00032&pageNo=1&printNo=5173&publishType=00020 브라질 大使에 朴東鎭氏] 《경향신문》1962년 8월 21일, 1면. <!--“最高會議 第63次 常任委員會는 21日 越南共和國駐箚大使 朴東鎭氏를 「브라질」合衆國特命全權大使로,...”--></ref><ref>{{서적 인용 |저자 = 외교통상부 |제목 = 한국 외교 60년 |url = 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장 = 부록 |확인날짜 = 2015년 2월 21일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3211841/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보존날짜 = 2016년 3월 3일 |깨진링크 = 예 }}</ref>{{Rp|496}}, 페루 겸임대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0429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04-29&officeId=00020&pageNo=1&printNo=13079&publishType=00020 朴東鎭브라질大使 駐『페루』大使兼任]〉 《동아일보》(1964년 4월 29일) 1면 <!--“政府는 駐「브라질」大使朴東鎭씨를 駐「페루」大使도 겸임토록 28일하오 國務會議에서 議決했다.”--></ref>, 주 제네바 대사, 주 유엔 대사,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11대.12대), [[대한민국 통일부|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다. 외무부장관으로서, 1976년 3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리타우딘 말레이시아 외무부 장관과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319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3-19&officeId=00032&pageNo=1&printNo=9377&publishType=00020 |제목= 貿易強化에 합의...韓․말聯 공동성명 |출판사 = 경향신문 | 날짜 = 1976-03-19 |인용문=<!--朴東鎭외무부장관과 리타우딘 말레이시아외상은 19일 공동성명을 발표, 평화․자유․번영이라는 공동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제국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朴장관은 지난 17일부터 3일간 말레이시아를 공 방문한 후 발표한 이 성명에서...--> }}</ref> 1988년 4월 22일 한국 정부는 박동진을 주미대사에 임명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4220020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4-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0477&publishType=00020| 제목 = 駐美大使 朴東鎭씨| 날짜 = 1988-04-22| 출판사 = 동아일보}}</ref> 박동진은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었으나, 주미대사로 부임함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하였고, 민정당 전국구 예비후보 11번인 김종열이 5월 13일자로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국토통일원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최규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베트남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브라질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민주정의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밀양 박씨]]
  • 박두을 . . . . 3회 일치
         박두을에 관한 공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남편 [[이병철]]의 일생이 자서전과 소설, 추모집 등을 통해 자세히 알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하긴 그 옛날 내조하는 아내의 전통적인 삶이란 게 이렇게 철저히 그림자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병철]]조차 286쪽에 달하는 자서전에서 박두을에 대한 언급을 단 몇 문장으로 줄였다.
         [[의령군|의령]]의 부잣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와 자 놓고 어려움 없이 지내던 박두을에게 시련이 닥쳤다. 남편이 대학을 자퇴하더니 무위도하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남편의 대학 자퇴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1학년 2학기 말 심한 각기병에 걸린 것이다. 2학년이 되자 휴학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학업을 단념하고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귀향했다.
  • 박세웅(1996) . . . . 3회 일치
         ||<:> '''학력''' || 대해초 - 포항중 -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 ||
         한 해 선배인 [[황영국]]과 동기인 [[주권(야구선수)|주권]]과 함께 2013년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의 돌풍을 주도하면서 맹활약했다. 비록 창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전국 대회 결승에 오른 청주고의 돌풍은 협회장기와 전국체전 준우승으로 끝나며 아쉽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당시 2학년이던 주권과 박세웅이 원투펀치를 이룰 청주고는 2014년 강력한 고교야구의 패권자로 꼽혔다. 그런데 주권은 기대대로 잘 했지만, 정작 박세웅이 썩 빼어낸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면서 청주고의 돌풍은 아쉽게 2013년 한 해의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동명이인인 전 [[NC 다이노스]]의 [[포수]] [[박세웅(1993)|박세웅]]과는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 사이이다. 다만 3년 터울이기 때문에 같이 고교 생활을 한적은 없다.
  • 박세직 . . . . 3회 일치
         [[육군사관학교]] 제12기 출신이다. [[박희도]][*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1공수여단장이었으며, 1985년 12월부터 1988년 6월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박준병]][*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이었으며, 이후 국군보안사령관과 국회의원([[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소속)을 지냈다.]과 함께 [[하나회]] 회원이었다. 그리고 박희도, 박준병, 박세직 등을 가리켜 '''쓰리 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계급)|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상태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 박소희 (만화가) . . . . 3회 일치
          | 학력 = [[공주대학교]] 만화예술학과 [[학사]]
         * 《[[영혼결혼]]》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만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공주대학교 동문]]
  • 박정근 (법조인) . . . . 3회 일치
         1942년에 경상북도 에서 태어나 1950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1955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59년에 임용된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1979년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법원, 1980년 전주지방법원 1980년 대구지방법원 1981년 광주고등법원 1982년 9월 1일대구고등법원, 1984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7210009921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7-21&officeId=00009&pageNo=11&printNo=5656&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3년 4월 27일에 연인인 카바레 종업원에게서 사업자금 145만원을 빌렸다가 빚 독촉을 받게 되자 소요산으로 유인해 15미터 바위 아래로 떨어트려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심리 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된 사건에서 "소요산으로 유인해 가는 것을 산 입구에서 보았다는 증인들의 진술만 가지고 강도살인했다는 것에는 잘못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4월 27일자</ref> 8월 8일에 덕성여대 유신숙 살해한 이상균에 대해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 다시 파기환송된 사건을 맡아 강간치사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3년 8월 8일자</ref> 1974년 2월 22일에 고려대학교 NH회를 중심으로 민우지를 발간하여 내란음모를 했다는 사건 항소심에서 김낙중 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게 항소를 기각하면서 징역7년 자격정지7년에서 징역1년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하고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을 선고받은 피고인 2명에게는 원심을 깨고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4년 2월 22일자</ref>
         [[분류: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동문]]
  • 배경 세계 공유 . . . . 3회 일치
         다양한 창작물이 하나의 세계를 배경으로 공유하는 방. 어느 한쪽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쪽에 영향을 주는 의 묘사를 볼 수 있다. [[마블 코믹스]], [[DC 코믹스]] 등의 미국 만화가 대표적이며 영상화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상당한 역사을 지니고 있으며 영상화쪽도 MCU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 클로버필드 관련 배경 공유 작품들[* <클로버필드 유니버스>라고도 하나 이는 정명칭이 아니다.]
  • 배상면 . . . . 3회 일치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농예화학과 졸업하고 1952년부터 대구에서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1960년 기린 소주를 개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03181 연합뉴스, 국순당 창업자 배상면씨 별세]</ref> 1983년 [[국순당]]의 전신이 된 배한산업을 설립하고, 1991년 [[백세주]]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배상면 주류연구소 설립했다.
         * 《과실 및 약용물을 이용한 가양주 만들기》(홍선천, 배상면)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달성 배씨]]
  • 보루토/4화 . . . . 3회 일치
          * 나루토는 시카마루에게 보루토의 2차 시험 돌파 소을 듣고 환호한다.
          * 보루토는 수세에 몰리는데 아버지가 보고 있다는걸 의한 나머지 또다시 과학닌구에 의존하게 된다.
          * 보루토의 준결승 상대는 시카다이. 아버지들이 고대하던 자대결이다.
  • 보에몽 1세 . . . . 3회 일치
         그러나 그는 오히려 아드리아해 인근을 횡단하면서 규율을 엄하게 잡아 그들이 근처 마을을 약탈하지 않도록하고, 행군중 근처 마을에서 량을 사들일때도 제값에 량을 사들이는등[* '''전부''' 사버리는 바람에 뒤에 따라오던 툴루즈의 레몽에게 큰 민폐가 되었지만] 황제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십자군 초기 그들사이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었던 황제의 충성서약 요구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많은 군사적 공적을 세웠으며, 특히 안티오크 공방전에서 안티오크를 영위하겠다고 공적으로 선언하고 반년에 걸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안티오크 점령에 성공, 안티오크 공작 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안티오크 시내의 이슬람이나 시리아계 기독교인 다수를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현대까지도''' 지속되는 악명을 쌓았다(…). 안티오크를 획득한 보에몽은 예루살렘 원정에서 이탈하여 안티오크 공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전념한다.
  • 부모교실 . . . . 3회 일치
         아버지 학교나 어머니 학교, 혹은 [[일본]]에서는 양친학급(両親学級), 모친학급(母親学級), 부친학급(父親学級)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곧 부모가 될 사람에게 부모로서 자각을 심어주고, 출산, 육아에 필요한 지을 알려주는 교실이다.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주최된다.
  • 불단 . . . . 3회 일치
         자세한 구조나 양은 종파에 따라서 세세하게 다르다.
         네모난 직육면체 상자 같은 형태로 제작되며,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문이 달려 있다. 크기는 장롱 만한 커다란 것에서, 벽에 걸 수 있는 작은 상자 만한 비교적 컴팩트한 사이즈까지 다양하다. 주로 나무로 제작된다. 소박한 모양도 있지만, 비싼 불단은 금박으로 장하거나 옻칠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매일 1회 불단을 청소하고, 종파에 따라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의과 염불을 올린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3회 일치
          * 마법기사단의 실적을 발표하는 현장. 올해 1위 금색의 여명단과 2위 검은 폭우단을 대표하는 신인으로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단상에 올라와 있다. 큰 무대지만 둘은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서로 자신이야 말로 마법제가 될 자라고 티격태격한다. 유노의 경우는 그러는 동안에도 성장폭자체는 검은 폭우 쪽이 높다고 의하고 있다.
          * 아스타가 반사적으로 마법을 베어버린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작은 격돌의 여파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스타가 "왜 맨날 느닷없이 이런 짓을 하냐"고 발끈한다. 유노는 살아있으니 됐고 죽으면 그것 뿐인 녀석인게 아니냐고 얼버무린다. 둘에겐 일상같은 장난이지만 그걸 지켜 본 시민들은 인이 바뀐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이고 그걸 또 간단하게 막아내는 걸 보고 더이상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사라졌다. 셋케 또한 자신이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른 둘을 보고 경악한다.
          * 마법제의 연설이 적중해서 시민들은 하층민은 약하다는 편견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신분고하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인이 퍼진다. 아스타는 시민들이 자기들에게 환호를 보내는걸 보고 새삼스러운 감정이 든다. 유노도 마찬가지다. 마법제를 꿈꿨던 하층민 고아들. 그 두 사람이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그런 실감이 둘에게 생겼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3회 일치
          * 이 사건이 전해지지 못한 채 시작되는 선발시험. 각 기사단의 유망주들이 집결한 가운데 시험방은 무작위 팀추첨에 의한 팀대항 토너먼트다.
          >모르거든, 그딴 같잖은 자은.
          괴한은 종자가 늘어놓은 말들을 일축해 버리고 "시종 주제에 떠들지 마라. 네 주인은 너 없으면 자기 소개도 못하냐?"고 비아냥댄다. 그리고 잭스가 적용한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해서도 "높으신 분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멋대로 처분해도 된다는 거냐"고 왜곡한다. 그러면서 "네가 자랑하는 마법으로 정의의 벌을 내려봐라"고 조롱한다. "권력을 장으로 두른 폭력집단의 부단장 나으리"라는 빈정거림과 함께. 잠자코 있는 듯 했던 잭스는 마침내 조용히 분노를 일으켜 자신의 얼음마법으로 공격을 가한다. 골목을 가득 매우는 송곳니와 같은 얼음 공격. 그 공격이 다가오는 데도 괴한은 이를 드러내며 웃기만 하는데.
  • 블랙 클로버/116화 . . . . 3회 일치
          * 매그너와 마론 모두 생리적으로 키르슈를 용납할 수 없었다. 없던 알레르기가 생겨날 지경이엇다. 매그너가 목에 핏대가 생길 때까지 기분 나쁘다고 소리쳐 보지만 키르슈에겐 그저 추한 이의 탄이고 그의 아름다움을 질투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더욱 최악은 이런 소감을 여과없이 입으로 나불댔다는 것. 어지간하면 지지않는 매그너가 대화를 포기할 지경에 이른다. 마론도 생리적으로 거부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이쪽에 대고는 "여성이 그렇게 험한 말 쓰는게 아니다"는 짜증나는 설교까지 곁들여진다. 그러면서 마론도 생긴 바탕은 아름다운 편이라면서 자기를 본 받아 정진하라는 성질 돋구는 소리를 쏟아놓는다.
          이것을 키르슈가 서툰 농담 취급하면서 분위기는 급속히 는다.
          * 키르슈와 같이 있는거 자체가 고통인 매그너는 일단 무조건 공격하고 돌격하고 본다. 한 시라도 빨리 끝나야 이 고통이 끝날테니까. 하지만 적측의 견제가 거세다. 적동마법 "체인스 자칼"이란 마법으로 매그너의 돌격을 방해한다. 매그너가 성가셔하며 일단 적동으로 만들어진 자칼을 때려잡고 본다. 그때 키르슈가 반짝거리며 다가온다. 매그너에게 조언해주기 위해서였다. 말투는 여전히 니글거리지만, 의외로 상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선 매그너는 근원거리를 가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데 무작정 돌격하는건 합당치 않다. 적의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자연스럽게 마나를 운용하고 근원거리를 적절히 나눠서 공격할 필요가 있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3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129. '''어느 한 사내의 삶의 방'''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두 번에 걸친 블랙 상태 발동과 부상 덕에 [[미모사 버밀리온]]의 백업을 감안해도 오래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랜길스 보드]]의 맹공이 끝날 줄을 모르고 크리스탈도 점점 파괴되면서 패색이 짙어진다. 항상 아스타를 신뢰하던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우려를 금하지 못한다. 아스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 번째 블랙 모드를 쓰려했다. 원래 하루에 발동할 수 있는 한계는 두 번. 세 번째는 유노와 결승전에서 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마저도 한숨 돌릴 타이밍이 필요해 지금처럼 숨도 쉴 수없는 상황에선 도저히 기회가 없다. 그때 아스타는 다름 아닌 [[잭스 류그너]]에게 도움을 청하며 발동 자세로 들어간다. 아스타의 요청이라면 들은 척도 안 하던 잭스였으나 "저 자(랜길스)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해준다"며 아스타의 앞을 막아준다. 하지만 그가 도와준다는걸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아스타의 태도를 보며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입맛이 쓰다.
          역대 가장 쓰레기같은 마법기사단 인증. 이전에도 단장이 비리를 저지르다 마법제 차원에서 조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부단장인 잭스 류그너가 인덕으로 유명하다는 둥의 얘기가 나와서 이미지 쇄신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에피에서 하층민이 동료가 됐다는 것만으로 팀킬을 자행하질 않나 그 성자라던 잭스는 인간말종이질 않나 최악의 기사단으로 전락했다. 사실 하층민 동료를 차별하는 묘사는 마법기사들 전반에 흔했지만 대놓고 팀킬을 해버리는 예는 이번이 처음. 금색의 여명이나 은익의 참수리 조차 선민의은 쩔어도 아스타 등이 대활약하자 생각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쪽은 만회의 여지가 없다.
  • 블랙 클로버/74화 . . . . 3회 일치
          * 검은 폭우 일행은 휴을 마치고 본부로 귀환한다.
          * 그런데 보고 도중 뜻밖에 적국의 침공 소을 듣는다.
          * 그때 마르크스가 긴급한 소을 전한다.
  • 블리치/698화 . . . . 3회 일치
          * 한편 쿠치키 뱌쿠야는 루키아의 대장임명이 끝나자 마자 유하바하의 잔재를 찾아 나선다.
          * 그에게 연락을 한건 소이퐁. 원래는 루키아를 호출하려 했지만 후에 곧바로 사라져서 대신 불렀다.
          * 사신이고 명문가의 자손인 이치카는 사신 견습인데 평범한 인간의 자인 카즈이는 이미 사신이다.--금수저를 뛰어넘은 금수저--
  • 빈스 맥마흔 . . . . 3회 일치
         사실 그는 [[게이]]였다. 특히 덩치크고 근육이 많은 근육맨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게이로서, 이것이 그가 레슬링 산업에 빠진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향을 감추었는데 이는 그가 보수적인 [[공화당]]의 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빈스 자신도 모르는 무의적인 진실이다.
         그의 게이 성향은 WWE가 WCW에 밀려서 망할 지경이 되자 본격적으로 드러났는데, 궁지에 몰린 빈스는 자기 스스로 링에 올라가 레슬러들에게 "내 엉덩이에 키스를 해라!"고 소리치는 광적인 퍼포먼스를 벌이게 됐다. 이는 평소 빈스가 가지고 있었던 게이로서의 성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상적으로 생각해서, 그가 동성애자가 아닌 이상 이런 퍼포먼스가 생각날 리가 없다. 아마도 망하게 생기게 되자 리미터가 풀리면서, 될대로 되라는 심경으로 숨겨진 욕망을 뿜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광적인 퍼포먼스에 일반 팬들은 그냥 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설마 공개적으로 방송되는 WWE에서 공적으로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미친 놈이 있을 리가 없다는 선입견 때문에 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던 숨은 게이들은 이에 열광하였고, WWE의 매상은 급상승, WCW를 물리치고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 삼자면담 . . . . 3회 일치
         [[학교]]에서 [[학생]]의 지도를 목적으로 하여 담임교사와 부모, 학생이 면담을 나누는 것. 보호자 면담이라고도 한다. 삼자면담을 하는 경우, 학교에서는 학생의 생활, 학업 등 다양한 측면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분류:학교]]
  • 서정윤 . . . . 3회 일치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만남·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절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 등과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2012년, 대구[[영신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이었으나, [[2013년]] [[11월 12일]], 제자를 성추행하여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50대 유명시인 겸 교사, 학교서 여제자 성추행 '충격'(종합)| url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1112192806356|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3년]] [[11월 12일]]}}</ref>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성범죄자]][[분류:대한민국의 교사]]
  • 소격서 . . . . 3회 일치
         조선전기에 [[도교]] 재초를 거행했던 관청이다.
         연산군 때, 소격서는 형적으로 혁파되었다. 하지만 형적일 뿐이었고 초제는 그대로 거행하였다.
  • 소냐(가수) . . . . 3회 일치
         [[김천시|김천]]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고 어머니를 8세 때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김천시|김천]]에 있는 외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고학을 했고, 1998년 5월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을 통해 사연이 소개된 뒤 1999년 5월에 가수로 데뷔했다.
          * [[2012년]] [[KBS 2TV]] [[불후의 명곡 2]] - 제35, 36회 [[송창(가수)|송창]] 편 우승 '상아의 노래'
  • 손요리 . . . . 3회 일치
         [[번역]]은 '직접 만든 요리', '손수 만든 요리', '가정요리', '가정 요리' 등등. 유행어 '집밥' 역시 대체로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가정에서 만든다고 해도 [[재료]]까지 모두 직접 조달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 직접 [[DIY]]한 비율이 높으면 손요리로 본다. 그래서 슈퍼에서 사온 반찬이나 즉석 품인 [[레토르트]] 품은 포함되지 않는듯.
  • 손지민 . . . . 3회 일치
         | 학력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송상진 . . . . 3회 일치
         * 대구사범, 대구대학(현.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1957년]] 대구 덕화중학교 교사.
         [[분류:1930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스쿨 카스트 . . . . 3회 일치
         [[일본]]의 교육현장 용어. 학교 내에서 학생들 사이에 일종의 '계층'이 갈라지는 것을 뜻한다.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카스트 제도]] 같은 현상이라고 하여 '스쿨 카스트'라고 부른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것은 있지만, 스쿨 카스트라는 명칭은 주로 일본에서 사용한다.
         이라는 가사에서도 잘 나오듯이 생각보다 이런 인은 상당히 많은 퍼져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일본 외 국가에서도 별반 다르진 않다. 몬스터메탈그룹 Lordi의 Hard Rock Hallelujah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서구권의 스쿨 카스트가 묘사되고 있다.
  • 신년선물연하장엽서 . . . . 3회 일치
         1949년 교토에 거주하는 민간인 하야시 쇼지(林正治, 당시 42세)가 "연하장이 전쟁 전처럼 부활한다면 좋겠다. 상품추첨을 더하면 연하장을 활발하게 보내서 서로 소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좌절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도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연하장에 상품추첨을 더하고, 요금에는 기부금을 추가하여 사회복지에 공헌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하야시 쇼지는 스스로 견본 엽서와 선전용 포스터를 만들어서, 우정성(郵政省)에 가지고 갔으며, 우정성 내에서 회의를 거쳐 채용이 결정되었다. 우정성에서 발매한 이 연하장 엽서는 매우 크게 히트하여 수십년동안 이어지는 전통 상품이 되었다.
         연하장의 상품은 매년 조금씩 바뀌었는데, 제1회 신년선물연하장엽서의 상품은 특등상으로 [[재봉틀]], 1등으로는 순모옷감, 2등으로는 학생용 장갑, 3등으로는 학생용 우산이었다. 1966년에 특등상이 폐지되고 1등이 최고상으로 바뀌었으며, 1956년에는 전기세탁기, 1960년에는 발포 고무 매트리스, 1965년 이후로는 휴대용TV나 8밀리 촬영기, 영사기 세트, 1984년에는 전자레인지, 1986년에는 비디오테이프레코더 같이 서민들이 손에 넣기에 약간 어려운 상품들이 주류였다. [[헤이세이]] 이후로는 해외여행, 최신 TV, PC 등 몇가지 가운데 1가지를 선택하는 형으로 바뀌었다.
  • 신웅 . . . . 3회 일치
         | 본명 = 신경
         '''신경'''(1953년 11월 30일 ~ )은 예명 '''신웅'''으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아들은 가수 [[신유 (1982년)|신유]]이다. 현재는 아들인 신유의 프로듀서 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ref name="신웅">{{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495486.html|제목=뽕짝뽕짝~우리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웹사이트=[[한겨레]]|날짜=2011년 9월 8일}}</ref> 비공 집계로 3,000만장의 음반을 판매하였다.<ref name="신웅"/>
  •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 . . . 3회 일치
         2015 [[K리그 클래]]에서 나온 의도치 않았던 [[방송사고]]이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사자후]].
         2015 K리그 클래 12라운드 성남 vs 광주의 경기[* 경기번호는 클래 2015-99]에서 어이없는 심판의 판정 번복이 일어나면서 나오게 되었다. 그때 관중석에서 일갈이 나오는 것이 방송을 타버렸으니, 바로 이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이 발언은 당시 공중파 방송인 KBS1에서 중계한 경기중에 여과없이 나온 발언이었기에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고, 해당 경기와 관련이 있던 성남과 광주의 팬들 뿐만 아니라 심판의 오심에 관련하여 데인 기억이 많은 K리그 전체 팬들에게 호응을 얻어냈다.
  • 안효민 . . . . 3회 일치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엄청 맛있어! B급 음 서바이벌!]] - 소스의 달인 강사장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성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애로우버스 . . . . 3회 일치
          * '''본 문서의 명칭은 정 명칭이 아닙니다. 공 명칭이 확정되면 수정 바랍니다'''.
         상단에 서술되어있는 것처럼 '애로우버스'라는 명칭은 정 명칭이 아니라 팬덤 사이에서 붙여진 수준의 것이다. 애로우버스라 불리게 된 이유는 드라마 애로우가 첫 방영을 하고, 이후 플래시가 등장한 후에 드라마화가 되어서인 듯 하다.
  • 양키 . . . . 3회 일치
         영어 Yankee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매사추세츠]]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영어 English나 프랑스어 Anglais에서 와전된 말로 영국계 민지 사람들을 부르던 것이 퍼졌던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처음에는 뉴잉글랜드 주민을 뜻하는 말이었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영국군이 민지군을 뜻하는 말로 썻다. [[남북전쟁]] 시기에는 남부 측에서 북부 측을 양키라고 부르며 경멸하였다.
         이 시대의 스타일을 가리켜서 “클래 양키”라고 부른다. 만화 등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고전적인 양키 불량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1990년대에 이미 보기 드물게 된 스타일로서, 불량 청소년들의 패션은 1990년대에는 컬러갱 스타일, 2000년대에는 힙합 패션 등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다만 일부 지방도시에는 아직도 이런 스타일이 남아 있다는 괴담(?)도 있다.
  • 연초아 . . . . 3회 일치
         * [[대구고등학교]]
         * [[수원대학교]] 무용과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영혼결혼식 . . . . 3회 일치
         죽은 사람과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결혼시키는 의. 과거 죽은 사람들이 미혼으로 죽을 경우 원혼이 되기 쉽다는 관념이 있어서 이를 막고 혼을 달래기 위해 벌어졌다. 주로 고인과 인연이 있던 이성(약혼자 등)이나 혹은 특정한 동일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미혼인 이성들을 임의로 짝지어서 의을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역사의 영혼결혼 =
  • 오국영 . . . . 3회 일치
         '''오국영'''(吳國泳, <small>일본 이름: </small>大原國泳, [[1889년]] [[10월 26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출신 기업인으로, [[대한민국]]에서도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경성부]]에서 잡지 《천민》을 발행하면서 청년 지도에 뜻을 두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의성양조주회사 전무취체역과 사장을 지내고 의성군주조조합장을 맡는 등 의성군에서 양조업 기업을 운영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경상북도자동차협회 이사를 지내고 [[남선전기주회사]] 감사역으로 재직했다. [[1954년]]까지 남선전기 감사로 현직에 있었다.
  • 오타쿠 혐오 . . . . 3회 일치
          * [[멸치]] : 비만과는 반대로 과도하게 마르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섭장애의 한가지 형태로, 건강하지 못한 인상을 준다.
         오타쿠의 혐오적 외모를 구성하는 복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애니메이션 프린트'''나 코스프레 의상 등, '오타쿠' 임을 강하게 별할 수 있는 복장.
  • 오픈 캠퍼스 . . . . 3회 일치
         대학, 전문학교 등에서 학교를 외부인에게 개방하여,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 등을 학교에 방문하게 해주는 행사이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3회 일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상론, '''SF 창작 설정'''.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이 갖춘 과학적 지과 따라서 상상한 것을 뜻하므로,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체제와의 '명확한 대비'를 위하여 이 문서에서는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을 떄떄로 사용하고 있다. 소설로서 써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SF적으로 창작된 이상론이라고 봐도 좋다.
         "완벽한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1) 망했잖아 그거"라는 사람을 일단 "무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소련은 사실 공산주의(2)'''가 아니고''', 공산주의란 내가 말하는 '완벽한 공산주의'가 맞는 거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는 상대방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활동이 아니라, 단지 언어의 개념정의에서 오는 혼란에 불과하다.
          * 매트릭스 시리즈 : 매트릭스에 들어간 인간들은 영양 공급 받고, 체온만 제공해주면 의주를 모두 기계가 제공해주므로 일단은 완전한 공산주의에 가깝다.
  • 요괴:파워블로거지 . . . . 3회 일치
         [[당]] 같은 가게에 나타나 밥을 먹거나 물건을 가져간다. 홀연히 사라져버리거나, 돈을 내지 않고 오히려 돈을 내지 않으면 당의 평판을 떨어뜨린다고 소리친다. 이 때 겁을 먹고 돈을 던져주면 기쁘게 웃으면서 홀연히 사라지지만 몇일 뒤에 또 나타나서 같은 짓을 요구한다. 계속 같은 일을 하면 파워블로거지는 밥통이 점점 커져서 점점 더 많은 음을 먹고, 또 다른 파워블로거지의 무리가 나타나서 점점 손해가 커진다. 마침내 가게를 망하게 만든다.
  • 우라센케 . . . . 3회 일치
         [[센노 리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마찰을 빚어 [[할복]]한 뒤, 리큐의 양자 쇼우안(少庵)은 교토에서 재흥을 허락받아 후신안(不審庵) 같은 리큐와 연고가 있는 다실을 재건했다. 또한 불교에 들어가 있던 아들 소우탄(宗旦)을 [[환속]]시켜서 가문을 이어받게 하고 다도를 보급하는 것을 맡겼다. 소우탄은 도쿠가와 가문 등에 자들을 다두(茶頭)로서 임관시켜 가문을 부흥시켰으며, 소우탄의 자 대에 센 가문은 셋으로 갈라진다.
          * 삼남 코우신 소우사(江岑宗左) : 정으로 소우탄의 뒤를 이어 「오모테센케(表千家)」를 일으켰다. 키슈 도쿠가와 가문(紀州徳川家)의 다두(茶頭)로 임관했다.
  • 원피스/817화 . . . . 3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사실 킨에몬의 아들이 아니다. 그는 쿠즈키 일족의 후계자 "쿠즈키 오뎅"의 자 "쿠즈키 모모노스케". 지금까지는 신분을 속이고 있었다. 쿠즈키 일족은 "와노쿠니"의 대 다이묘다.
          * 코즈키가 실은 높은 분의 자이라는건 알라바스타 에피소드의 재탕이다.
          * 라이조는 기대와 다르게 우스꽝스럽게 생긴 구닥다리 닌자. 인술을 구경거리 취급하는 일행에게 일갈할 정도로 고지하지만, 막상 시무룩해하니까 리퀘스트에 응해주었다.--나루토가 끝나서 점프에서 사라진 [[닌자]] 분량을 보충하는 걸지도--
  • 원피스/820화 . . . . 3회 일치
          * 나미는 지금 자신들은 '''기록지침대로 항해하지 않고 있다'''며, 크로커스가 일러준 지과 로드 포네그리프의 지이 다르다고 말한다.
          * 이누아라시는 '''크로커스가 일러준 대로 항해를 하다보면 로드 포네그리프 등과 만나게 되는 거'''고, 그 '''로드 포네그리프의 지에 따라 다시 항해하는 것이 최종단계'''라 한다.
  • 원피스/824화 . . . . 3회 일치
         혁명군 괴멸 소을 들은 일동은 경악한다.
          * 게다가 루피가 대량으로 조리한답시고 일주일치 싹 써없애서 갑자기 량난에 시달리게 됐다.
          * 상디는 아버지를 "개자"이라 부른다.
  • 원피스/832화 . . . . 3회 일치
          * 상디는 이런 "재수없는 장"이라고 말하며 마구 까는데 레이쥬는 오히려 "아버지의 꿈은 다시 노스 블루를 제압하는 것이고 남자가 힘과 명성을 추구하는게 뭐가 어떻냐"고 대답한다.
          * 샬롯가 제 8녀 브륄레 등장. 현재까지 등장한 빅맘의 자들 중에선 가장 나이가 많다.
          * 얼굴에 사선으로 깊은 흉터가 있는 등 기존에 등장했던 자들과는 인상이 확연히 다르다.
  • 원피스/847화 . . . . 3회 일치
          * 미러월드 안에 있는 샬롯 브륄레의 집. 캐럿과 쵸파는 결국 잡혔다. 브륄레는 캐럿을 토끼 수프로 만들려고 한다. 언제 들어온 건지 학기사 랜돌프와 유혹의 숲에 있던 악어도 동석. 악어는 본래 자신은 인간은 먹지 않지만 밍크족은 어찌어찌 될 거 같다며 사를 고대하고 있다. 쵸파가 진자 토끼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항변하자 악어가 망설이는데, 브륄레는 쵸파더러 빅맘의 "컬랙션"에 들어갈 거라며 입다물고 있으라고 조롱한다.
          뜻밖에 격노하는 빅맘. 나미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빅맘은 어디있는지 당장 불라며 킬러를 보내겠다고 한다. 심지어 "아직도 부모자인줄 알다니 기가막히다"는 발언도 한다. 빅맘은 자은 부모맘을 모른다며 로라를 "역대 최고의 결혼 상대를 걷어차고 도망친 멍청한 딸년"이라 매도한다.
  • 원피스/851화 . . . . 3회 일치
          푸딩은 [[메모리메모리 열매]] 능력자. 사람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필름 형태로 끄집어 낼 수 있으며 마음대로 편집할 수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레이쥬를 저격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잘라내고 대신 "유탄"에 맞은 병사의 기억을 덧붙인다. 이것으로 레이쥬는 지금 들은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을 잃게 된다. 푸딩은 의을 잃은 레이쥬를 의료실로 옮기게 한다.
          * 그의 정체는 [[징베]]. 한동안 소이 없었던 그가 루피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얘기는 나중에 하자며 일단 거기서 나오겠냐고 묻는다. 루피는 기쁘게, 나미는 절실하게 나가겠다고 소리친다.
         푸딩의 무기 "워커"는 철판도 뚫는 철갑탄으로 원피스 세계관에선 별볼일 없는 무기 취급이었던 총기가 엄청나게 상향. 육의 철괴나 신체를 철 이상의 강도로 만드는 열매 능력자들과의 상성이 기대된다.
  • 원피스/869화 . . . . 3회 일치
          빅맘은 여전히 패기가 실린 절규를 내뿜고 다과회장은 아수라장. 암금왕 [[루 펠드]]도 간신히 귀를 막은 채 버티고 있었다.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뿌린 떡 귀마개가 그의 앞까지 굴러온다. 그걸로 괴성을 막고 한숨 돌린 루 펠드. 그런데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하나 더 나타난다. 빅맘이 결혼 후 열어보기로 했던 넵튠왕의 옥갑이었다.
          * 악의 히어로 GERMA 66(제르마 더블 스) 등장이다. Sparking RED 이치디, Dengeki BLUE 니디, Poison PINK [[빈스모크 레이쥬|레이쥬]], Winch GREEN [[빈스모크 욘디|욘디]]. 그리고 저지.
          벳지가 캔디 월을 우회해서 사격하려 하지만 이번엔 대포가 말썽이다. 발사되지 않고 폭발하는데. 또 카타쿠리의 짓이었다. 각 위치의 부하들이 대포가 떡으로 틀어막혔다고 보고한다. 낭패한 벳지. 나쁜 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빅 파더의 다리가 사탕으로 묶였다. 페로스페로가 그 사실을 마이크로 떠벌렸다. 사면초가.
  • 원피스/870화 . . . . 3회 일치
          * 샬롯가의 형제들은 느긋하게 성이 붕괴하기만을 기다린다. 성이 무너지면 벳지가 죽고 안에 피신한 해적동맹도 바깥으로 떨어진다. 그들도 이걸 알고 있었다. [[샬롯 카타쿠리]]와 [[샬롯 스무디]]는 다과회와 결혼을 엉만으로 만든 대가로 톡톡히 본보기로 삼아주겠다 벼른다.
          * 빅파더 내부의 방. 벳지의 분신체가 고통에 겨워 몸부린친다. 빅파더의 위용에 환호하던 [[몽키 D. 루피]]도 상황의 위급성을 인한다. 본래 빅파더는 보통 대포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 방어력을 지녔지만 빅맘은 차원이 너무 달랐다. 루피는 더는 못 보겠다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빅맘을 날려버리겠다고 성화다. 그걸 [[쵸파]]와 [[나미(원피스)|나미]]가 찍어누르다시피 막는다. 나미는 그가 화풀이로 싸우려 드는 것에 불과하다며 밀집모자 일당의 목표는 모두 달성됐다고 쏘아붙였다. 그들은 [[상디]]를 탈환하고 [[포네그리프]]의 사본을 확보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그 분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법한 방으로는...
  • 원피스/882화 . . . . 3회 일치
          * 홀케이크 아일랜드의 스위트 시티에선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전사 소이 알려진다. 의제인 [[페콤즈]]가 오열하고 숙적이었던 [[타마고 남작]]도 애석해하는 동시에, 그렇게까지 해서 살리려던 밀집모자 일당에게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며 크게 경계한다. [[샬롯 몬도르]]는 단지 여러 우연이 겹쳐 일이 커졌을 뿐이라 단정하나 타마고 남작은 "밀집모자가 온 뒤로는 예상 밖의 사고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며 만에 하나라도 빅맘의 명성에 흠집이 갈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 그때 [[카포네 갱 벳지]]를 추적 중이던 샬롯 커스터드에게 연락이 온다. 벳지 일행을 놓쳤다는 소. 무슨 일인지 영역 바다소가 위치정보를 보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뜻밖에 손쉽게 포위를 벗어난 벳지는 [[샬롯 시폰]]을 마중하기 위해 카카오섬으로 향한다.
          * 하지만 낭보도 도착한다. 샬롯 누스토르테가 1만 병력으로 제르마66을 추격, 그들을 괴멸하고 왕국을 손에 넣었다는 보고였다. 누스토르테는 밀집모자 일당의 추격결과에 대해서도 묻고 몬도르는 의심없이 정보를 공유한다. 그것이 실수. 사실 제르마를 쫓아간 병력은 전멸 당했다. [[빈스모크 니디]]가 누스토르테의 목소리를 흉내내 전화를 건 것. 밀집모자 일당이 서쪽으로 출항했다는 소을 접수한 제르마66은 곧 그 방향으로 출항한다.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3회 일치
         제2화 살인의 방정
         죽은 눈을 하고 있는 미노리카와는 자신은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부채 5억엔을 떠앉고 있어 이달 안으로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와 집을 잃고 구들이 자살해야 할 판이라며, 자신도 '누군가를 죽여서 보험금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기겁한 아지야마는 문을 닫아걸고 미노리카와에게 킬러냐며 화를 낸다. 미노리카와는 '사고는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아지야마는 은땀을 흘린다.
  • 은혼/578화 . . . . 3회 일치
         * 우츠로와 싸우는 우미보즈. 우츠로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생물이란 아무리 진화해도 피자와 포자를 정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며 "생태계의 정점에 선 우리가 이렇게 되는건 정해져 있던 것"이라고 말한다.
         * 우츠로는 한 팔이 날아가는 중상을 입지만 순간에 재생한다.
  • 은혼/594화 . . . . 3회 일치
          * 이들은 우츠로의 불로불사를 탐내 불사의 피를 자신들의 몸에 이하나 부작용으로 죽지 않을 뿐 썩어문드러지는 신세로 전락한다.
          * 그들은 우츠로의 원정 중에 생긴 중대한 소을 전하는데, 행성 "탄황"의 용맥이 폭주, 터미널이 소멸하고 지부는 괴멸했으며 아직 피해 규모 전체를 확인하지도 못했다.
          * 곧 소이 올 것이고 희생된 별의 생존자들은 천도중에게 복수하려 할 것이며, 아직 안전한 별들도 천도중을 그냥 둬선 안 된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 은혼/595화 . . . . 3회 일치
          * 자신은 코우카에게 쫓겨났고, 비록 자들에게 꿀밤을 먹일 팔도 없어졌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며 "이런 팔이라도 꽃다발을 따올 수는 있다"며 준비해온 꽃을 꺼낸다.
          * 루머처럼 돌던 실사화 소이 공 발표되었다.
  • 은혼/602화 . . . . 3회 일치
         [[은혼]] 602훈. '''양아치의 자은 뒷머리가 길다'''
          * 그때 급한 보고가 들어오는데, 자작은 출산 소일 거라고 생각하고 "승자는 그대의 아내였다"고 축하한다.
          * 현장의 해방군은 이 상 밖의 공격에 당황하며 미친게 아니냐고 말한다.
  • 은혼/616화 . . . . 3회 일치
          * 철통 같았던 가부키쵸의 문을 열어젖힌 [[오우가이]]. 그의 뒤를 따라 해방군이 물밀듯이 밀어닥친다. 다키니족이 선봉에 서서 전진. 순간에 가부키쵸 측이 수세에 몰린다.
          벽 밖에서 싸우고 있던 [[핫토리 젠조]]는 역시 잔꾀만으론 이 대군을 막기 힘들다고 혀를 찬다. 후방의 [[진선조]]는 적이 가부키쵸에 진입했다는 소이 전해지지만 눈 앞의 적과 싸우느라 손이 비지 않는다. [[곤도 이사오]]는 특동대를 가부키쵸에 배치해놨으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한 명이라도 더 처치하라고 지시하지만 부장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우려한다.
          * 사이고의 의지와 달리 스마이루 일행은 생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타에가 척후를 맡아 뒤를 방비하며 피신 중. 그러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정면에서 덮쳤다. 앞서 가던 남자 주민이 순간에 피떡이 되면서 진로가 막힌다. 설상가상 뒤에서 추격하던 다키니들도 목전까지 도달.
  • 은혼/625화 . . . . 3회 일치
          오우가이는 그런 감정이 조금도 공감되지 않는다. 다른 동료들이 말했듯 신의 뿔은 코하쿠 행성의 기생종에 당해 머리가 이상해진 거라고 빈정거린다. 항간에서 말하는 코하쿠 행성의 기생종은 뇌에 기생하는 물로 숙주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 또다른 3대 용병부족의 일각 [[신라(은혼)|신라]] 부대 또한 급히 퇴각하고 있다. 건물 위로 뛰어다니던 부대가 호각을 불자 산발적인 퇴각이 시작된다. 지휘관 [[소타츠]]는 [[사카타 긴토키]]의 일격으로 패배, 의을 잃었다. 집단전술을 자랑하는 신라도 지휘관이 부재하면 오합지졸일 뿐이다. 백화와 [[코제니가타 헤이지]] 등과 싸우던 신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을 개시한다.
          *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지 익숙하다. 오우가이는 분명 그를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짓밟인 꽃에 가슴아파하는 덩치 큰 사내의 머리 위에는, 수상한 꽃이 피어있다. 그것은 분명 수 년전, 그의 뿔이 꺾였을 당시의... 기생종의 물이 뇌에 박혀 상태가 바뀌었던...
  • 은혼/628화 . . . . 3회 일치
          * 가부키쵸가 다음 싸움을 위한 휴에 들어갈 때, [[히지카타 토시로]]는 우주와 교신하기 위해 [[히라가 겐가이]]를 찾아나선다.
          * [[야규 빈보쿠사이]]의 야규진음류 일가는 그 의견에 동감한다. 빈보쿠사이는 이 승리가 기적적인 것이었다는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야규진음류는 확실히 가장 큰 출혈을 본 파벌이라 할 수 있다. [[니시노 츠카무]]가 한 팔을 잃고 빈사, 후계자인 [[야규 큐베]]도 [[오우가이]]에게 당해 아직 의을 되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빈보쿠사이는 기적같은 승리 뒤에는 그만한 대가도 있는 거라 말하며 이 이상을 바라면 반드시 잃는 것도 더 나올 거라고 경고한다.
         >방 같은건 어떻게 되던 사소한 일이야
  • 이기백(군인) . . . . 3회 일치
         [[1931년]] [[충청남도]] 연기군(現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전두환]],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과는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다.
         [[1983년]] [[6월]] [[김윤호]]의 뒤를 이어 [[합동참모의장]]이 되었다. 합동참모의장으로 있던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버마(現 [[미얀마]])에 갔다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해 부상을 당하였으나, 다행히 그가 입고 있던 [[장교]] [[정복]]과 정복에 달린 [[훈장(상훈)|훈장]]이 [[방탄복]] 역할을 하여 살아남았다. 그리고 수행했던 [[전속부관]] [[전인범]] [[중위]]에 의해 구조되었다. 귀국 후 그 정복을 육군사관학교에 기증하여 육군사관학교 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이민호(1969) . . . . 3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영남대학교|영남대]] ||
         1993년 빙그레 이글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3년에는 [[강석천]]의 백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한화 타선에 [[박지상]]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고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3회 일치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4년 ~ 2016년)
         은퇴 이후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신동주 (야구인)|신동주]]와 함께 스크린골프장을 개업하여 티칭 프로로 활동하였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78459|제목=전 프로야구 선수 신동주, 스크린 골프장 오픈|날짜=2007-06-28|출판사=OSEN}}</ref> 2017년에는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전병호 (야구인)|전병호]]와 함께 피칭 아카데미를 개설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16&aid=0001187340|제목=전병호-이상훈, 피칭 아카데미 개설...'길잡이 되어주고 싶다'|날짜=2017-01-21|출판사=헤럴드경제}}</ref>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인성 (화가) . . . . 3회 일치
         그는 [[1929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열린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했다. [[1930년]]에는 [[일본]] 다이헤이요 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 입학함과 동시에 일본 수채화 연맹(日本水彩畵聯盟) 회원이 되었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와 [[제국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기도 하였다.
         [[1945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1946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으며 [[1949년]]에 열린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으나 [[한국 전쟁|6.25 전쟁]] 중이던 [[1950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 이재영 (뮤지컬배우) . . . . 3회 일치
         || 학력 ||<(> 혜화여자고등학교 [br]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br]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 ||
  • 이주현(배우) . . . . 3회 일치
          * 학력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전]][* 탤런트 [[차태현]]과 동기(방송연예과)이다]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편입)
          * [[사랑찬가]] - 홍두
  • 이준승 . . . . 3회 일치
         1934년에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이듬해 졸업한 이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61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처음으로 검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1963년 [[청주지방검찰청]]과 1966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를 하였으며 1969년 [[국회사무처]]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파견되었다가 1971년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검찰에 복귀하였다. 이후 1973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1977년 [[서울지방검찰청]] 1978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였으며 1978년에 차장검사로 승진하여 [[청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되어 1979년에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전보되어 차장검사로 재직하였다.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6년 11월 24일에 남성전기 주회사 대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학력을 속여 취업을 했더라도 신뢰관계나 기업질서유지에 영향을 주지않고 특별한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직일 경우 이를 이유로 해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위장취업을 이유로 노조간부 등에 대해 해고를 하는 것에 제동을 건 최초의 판결이다.<ref>동아일보1986년 11월 25일</ref>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안동시 출신]][[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이홍기(군인) . . . . 3회 일치
         [[1953년]] [[8월 25일]][* [[음력]]이다.], [[경상북도|경북]] [[김천시|김천]] 출신으로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육군사관학교]] 33기로 입교해 1977년에 임관했다. 2012년 [[제3야전군사령관]] 이·취임에서 이임과 동시에 36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예편했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3회 일치
          * 서로 근황을 확인하던 중 [[디안느]]가 기억을 찾았다는 소에 [[고서]]가 불가능하다 말한다.
          * 이곳이야 말로 그의 "마음의 거처"였지만, 나자의 기억이 되살아날 것 같자 무의 중에 그것을 거부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의 기억과 마음을 지우기로 한다.
          * 마법의 심장이 어떻든, 우선은 고서를 쫓아갸아 한다. 디안느가 그렇게 성화를 부리며 멀린에게 자신을 작게 만들어 달라 부탁한다. 반은 여전히 위기의 없이 "먼저 고서를 잡는 사람한테 한 잔 쏘기" 내기를 제안, 할리퀸이 한심하게 여긴다. 에스카노르도 얼른 쫓아가자고 건의하자 멜리오다스도 일곱 개의 대죄의 네 번째 규칙을 들어 허가한다.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3회 일치
          * 이를 감지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일행을 도우려 가려 하는데, 그때 의을 되찾은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나타난다.
          * 격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 돼지의 모자 정은 아직 코란도로 향하는 다리 앞에 있었다. 안정을 취하고 있던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반과 그 일행에게 일어난 일을 느꼈다. 디안느의 의이 공포와 분노의 소용돌이에 잠되었다. 이대로 두면 자신과 반이 겪었던 일이 디안느와 오빠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일념으로 엘레인은 불편한 몸을 침대에서 끌어냈다. 동료들에게 가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으나 걷지도 못하는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위태롭게 기어다가 쓰러지는 그녀에게, 누군가 손길을 뻗었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3회 일치
          나자가 그렇게 말하자 바트라는 커튼을 향해서 "그렇다고 합니다"라고 신호를 준다. 그러자 커튼 뒤에 숨어있던 고서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메이드차림이다. 바트라는 병사들 눈도 있으니 이렇게 하는 쪽이 눈에 덜 뛰고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나자는 고서에게 이상한 버릇이 들면 어쩔 거냐고 따진다. 아무튼 고서는 나자를 끌어안으며 미움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기뻐한다. 이건 멜도르 이야기에서 공주가 일어났을 때 멜도르가 껴안아 준 것을 따라한 것이다. 나자는 동생의 눈을 의해서 얼른 떼어놓지만 어쨌든 자신이 고서를 싫어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확언해준다.
          * 고서의 "이"은 실패했다. 자신에게 마음과 인간성을 준 심장은 그녀의 안에서 아무 작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경비병이 온 것도 모른 채로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린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만, 동시에 마음이 빠져나가 딱딱해진 표정으로 바뀌어간다. 그는 구속됐다. 성내에 공주가 시해되었다는 소이 전해지고 파란이 일어난다. 내막을 어느 정도 아는 바트라는 끝내 자신의 예지가 이루어진 것을, 누나의 죽음을 깊이 슬퍼한다.
  • 임신균 . . . . 3회 일치
         [[공포]]가 소재가 되었던 기존의 도시전설과는 달리, [[임신]]과 생활동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의 도시전설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공포 소재의 도시전설이 [[어린이]]들에게 주로 소비되었다는 점을 볼 때,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도시전설 유행환경이 변화하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시골에서 [[돌하르방]]이나 각종 문화재(…)를 갈아서 --문화재 파괴-- 그 가루를 자 혹은 아들을 낳는 약이라고 쓰거나, 자을 낳는 여러가지 비법이 쓰였다는 점에서 볼 때, 한 때 [[가족계획]]이라는 저출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문화로 위축되었던 이 같은 임신과 관련된 속설과 미신이 [[저출산 고령화]]로 임신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압력이 강해지면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임혁주 . . . . 3회 일치
         | 학력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졸업
         1975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1980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7기 [[배우|탤런트]] 정 데뷔하였다.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와 [[연극]] 부문에서 활동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5년 데뷔]]
  • 자시키로우 . . . . 3회 일치
         감금된 대상은 일반적으로 장애인, 미치광이 같은 정신질환자, 행실이 불량한 자, 그 외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바깥으로 내보내기 부적절하다고 생각된 자 등이다. 하지만 기준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도 많으며, 후계자가 아닌 아들, 불륜으로 태어난 자이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연애를 한 자 등도 자시키로우에 감금될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다다미 방이며, 철이나 나무 격자 등으로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둔다. 사적인 감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출입 자유는 박탈하지만 일단 생존에는 지장이 없도록 음 등을 공급하며 관리하는 것이 관습이다.
         그러나 대개 감금된 사람은 겨우 음만 먹으면서 최소한의 생존만을 유지할 뿐, 위생관리 등은 되지 않아 생활이 지극히 비참하며 알몸으로 오물에 덮혀 살아가는 경우도 많이 보고되었다. 공간 역시 부족하여 한평 반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지어 환자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우므로 그러지 못하도록 벽에 빽빽하게 못을 박아두는 경우도 있다.
  • 장남석 . . . . 3회 일치
         |청소년 클럽=[[중앙대학교]]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중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타고난 골 감각을 보여주며, '장남석'이라는 이름이 '[[수학의 정석]]'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득점의 정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장우혁 . . . . 3회 일치
         *[[백제예술대학교]] 전통예술과 무용전공 (전문학사)
         *[http://www.whworld.org 장우혁] - 공 웹사이트
         [[분류:H.O.T.의 일원]][[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태어남]][[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댄서]][[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
  • 절대가련 칠드런/452화 . . . . 3회 일치
          * 어쨌든 효부는 자신의 삶의 방을 바꾸지 않았으며 이후 효부는 후지코에게 구속, 바벨의 감시 하에 놓인다.
          * 마기는 끝까지 그런 방을 납득하지 않았으며 효부가 "언제까지고 꼬맹이"인 채라면 자신이 그보다 성장해서 망령 하나 쯤은 짊어질 수 있게 되겠다고 다짐한다.
          * 모미지가 말한대로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그런 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3회 일치
          * 나오미는 자신의 검진용 ID와 비밀 코드를 사용해 연구시설로 접근시켜준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미지수. 사카키는 곧바로 혈청을 제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사카키는 완전히 잠된게 아니므로 혼자만 두지 않으면 작업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고 혈청만 잘 만들어지면 [[츠보미 후지코]] 관리관을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사카키는 오명을 반납하겠다며 사명감에 불탄다.
          * 카오루는 "애인이라기엔 좀. 이런 이불도 가구도 없는 방에"라고 말했다가 "이불"에서 에로한 상상을 하며 폭주한다. 이런 사태를 예견한 아오이와 시호가 경고를 해놨지만 카오루는 오히려 그런 말 때문에 의된다며 몸부림 친다.
          어쨌든 상황이 진정된 이후 미나모토는 간단하게 음이라도 해주겠다며 외출하자고 한자. 혹시 시간이 늦어지면 곤란하냐고 묻는데, 카오루는 미리 [[스에츠무 하나에]]씨에게 말해뒀다고 하는데.
  • 정도복 (고려) . . . . 3회 일치
         '''정도복'''(鄭道復)은 [[고려]]시대 말기,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선, 상시 등을 지내고 [[조선]] 건국에 참여하였으며 밀직제학, 한성부우윤,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으며 형 [[정도전]]이 암살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성주 유학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 인녕부사윤에 이르렀다. 본관은 [[봉화 정씨|봉화]](奉化)이고 자(字)는 내지(來之)이고 호(號)는 일봉(逸峯)이다. 형부상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이며, [[정도전]](鄭道傳)의 친 아우이다.
         얼마 아니 되어 밀직제학을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올라 성균관대사성을 겸임 했으며, 태묘공신의 봉호를 받았다. [[1398년]] 왕자 난 때 큰형 삼봉선생이 화를 입은 뒤 문하찬성사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이후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 태종 3년(1403)에 성주 유학교수(星州儒學敎授)에 부임하여 7년여 동안을 교육에 힘쓰다가 동왕 9년(1409) 8월에 인녕부사윤(仁寧府司尹)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다시 유배되는데 태종실록 태종 13년(1413) 7월 12일조에, “사헌부에서 2품 이상으로서 외방(外方)에 있는 자의 죄를 청하는 계청(啓請)에, “2품은 외방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법이 있습니다. 검교(檢校) 한성 윤(漢城尹) 손가흥(孫可興)·박상경(朴尙絅)·박후(朴厚植)·고도관(高都琯)·윤사혁(尹思奕)·최함(崔咸)·여극해(呂克諧)·정도복(鄭道復)·전이성, 병마사(泥城兵馬使) 정과(鄭過) 등은 항상 외방에 거주하니 심히 미편합니다. 청컨대, 고신(告身)을 거두고 다른 도(道)에 이치(移置)하소서.”라고 비난하였다.
  • 정명환 . . . . 3회 일치
         [[1980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후 1982년 6월에서 1985년 6월까지 [[국방의 의무|대한민국 육군 사병 복무]]한 그는 [[1986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정 데뷔하였으며 [[1988년]] [[영화]] 《둥지 속의 철새》의 단역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9년]] 영화 《모래성》에 단역 출연하였으며 이후 [[배우|텔레비전 연기자]]로서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서울방송|SBS 서울방송]], [[한국교육방송공사|EBS 한국교육방송공사]]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배우 [[김진화 (배우)|김진화]]와는 [[안양예술고등학교|안양예고]] 연극영화학과 동기이다.
         * 1993년 SBS 《우리 구 열다섯》
  • 정성룡(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절 김성범[* 1982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태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결국 백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 정치공학 . . . . 3회 일치
          * 정치학의 분야로서 정치공학은 정치적 의사결정, 규칙제정 또는 제도도입 등에 공학이론을 접목시킨 것이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2859601 (참조,이상천 영남대학교 총장)]]
         이에 대해서는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미국 남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던 주관중(朱冠中) 교수가 1960년대 후반 '정치공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냈는데, 이 책이 청와대에서 모두 회수하고 박정희 정권은 주관중 교수를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임명했다. 그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공학적 수완'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31758521&code=990326#csidxb914cb4e3f87ea0a4d75944b31219dc (참조)]]
         정치공학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여, 공학전공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2859601 (참조,이상천 영남대학교 총장)]][[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32114015&code=990304&med_id=khan&rccode=lvRc (홍영진 동명대 교수·전기공학과)]]
  • 지훈(TRCNG) . . . . 3회 일치
         ||<#262626> {{{#FFFFFF '''학력'''}}} ||<#ffffff><(> 일산낙민초등학교, 일산백석중학교 (졸업)[br][[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
  • 진격의 거인/89화 . . . . 3회 일치
          * 아무튼 억울해진 엘런이 대체 뭐하러 왔냐고 소리치자 리바이는 감옥 문을 열어준다. 사실 그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형적인 것이었다. 리바이와 한지가 [[다리스 작클레]]와 협상해서 "갑옷 거인과 초대형 거인을 쓰러뜨린 영웅들을 처벌하는건 말도 안 된다"는 명분으로 이런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거역한 지휘관은 결과적으론 갑옷과 짐승거인을 놓친 실책을 범한 점도 고려되었다.
          * 리바이가 엘런 일행을 데려온다. 이들은 나름대로 예절을 지켜서 고개를 숙이지만 크리스타는 공적인 자리가 아니니 의전은 필요없다며 평소처럼 대한다. 크리스타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며, 그저 자신을 편히 앉아 남쪽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라고 씁쓸해한다. 하지만 엘런 일행은 그녀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리스타는 생각한 것보다 이들이 그모습 그대로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걸 엘런 일행은 말하지 못한다.
          한지는 그가 중2병이 와서 저 모양이라고 대충 얼버무리는데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면서 공적으로 중2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엘런에겐 그런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 진종채 . . . . 3회 일치
         1925년 [[경상북도|경북]] [[포항시|포항]]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졸업한 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8기로 졸업했다.[* 진종채를 군내 요직에 중용했던 [[박정희]]도 대구사범과 육사를 함께 졸업했다.] [[김종필]], [[김형욱]] 등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동기다. [[서종철]], [[노재현]], [[윤필용]] 등과 함께 [[전두환]] 등 [[하나회]]의 주요 후원자로 꼽힌다.[* 윤필용 사건으로 중간에 숙청된 윤필용과 달리 진종채, 서종철, 노재현은 [[10.26 사건]] 때까지 군에 영향력을 행사, 영남 군벌 3인방으로 불렸다.]
  • 착취용 애완용 아이 . . . . 3회 일치
         기본적으로는 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노예라고 생각하며, 대우는 극히 나빠서 매도, 방치, 학대 등을 당하게 된다. '용도'에 어긋나거나 단순히 돈이 아깝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개 부모가 교유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한 탓으로 친구 한 명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독부모라고 인하여 관계를 끊었다고 해도 나중에 사정이 곤란해진 독부모가 의지해오면 독부모에게 가적이라고 해도 인정과 애정을 받는 것이 기뻐서 컨트롤 당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정신적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3회 일치
         === 서하는 종족 ===
         === 서하는 종족 ===
         === 서하는 종족 ===
  • 창작:좀비위키 . . . . 3회 일치
          * 좀비기관차 : 좀비력 5년 전후에 모 생존자 조직에서 제작. 좀비를 수거하여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 연료(?) [[증기기관]] 차량. 작동방은 단순하여, 기관차 위에 있는 화부들이 기관차에 다가오는 좀비를 갈고리로 낚아서 끌어올린 다음, 토막을 내고 말려서 연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한 연료를 보일러에 투입하여 좀비 시체를 보일러에서 불태워서 그 화력으로 증기기관을 돌려서 작동하는 차량이다.
          건조 기후에서는 마른 좀비가 잘 타서 이동이 쉽게 되지만, 우기나 비가 많은 지역에서는 좀비가 물기가 많아서 연료로 쓰기 부적합하여 이동이 어려운 것이 단점. 이 때문에 미리 토막을 내서 좀비를 말려서 연료 보관고에 보관하는 방을 택한다. 제작자에 따르면 원래는 차가 고장나서, 어쩔 수 없이 나무로 가는 증기기관이라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좀비들 사이에서 고립되어 할 수 없이 좀비를 잡아다가 태우게 되었고 생각보다 효율이 좋아서 여러 생존자 캠프에 보급되었다고(…).
  • 창작:좀비탈출/4-1 . . . . 3회 일치
         내가 이렇게 결심할 수 있는 것은 작년 겨울에 뒷마당에 '''그걸''' 묻었기 때문이다. 항아리 말이다. 그렇다. 우리 집은 아직도 된장이니 고추장이니 김치 같은 것을 담가먹는 구 집안이다. 서울에도 이런 집이 남아있다는게 놀랍지 않은가? 그걸 묻겠다고 콘크리트 바닥을 깨부술 땐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미친 짓이 날 살릴지도 모른다. 하! 하! 감사합니다 아버지.
         기억이 맞다면 마당 한 켠 음지에 그런 독을 최소 다섯 개는 묻어놨다. 내가 들어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컸고 각기 된장, 고추장, 쌀, 배추와 무 따위를 담았다. 그러니까, 놈들이 그걸 놔뒀다면, 굳이 열어서 침이라도 뱉어놓은게 아니라면 깨끗하고 안전한 품일 것이다. 그걸 가지고 올 수만 있다면.
          * [[창작:좀비탈출/4-1-1|칼]]
  • 창작:좀비탈출/5-1-1 . . . . 3회 일치
         그건 농담만은 아니었다. 토트넘은 지금까지 본 녀석들 중 압도적으로 '''신선했다.''' 아직도 신체 일부는 분홍빛을 띄고 있고 단련된 하체는 근육이 뭉그러지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상체는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지방의 부패가 시작되었지만…… 의할 수록 그게 사람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옆집 앞에 모였다가 근처 초등학교에서 친선경기를 뛰고나서 탕수육에 소주를 들이붓는 사람들이다. 뛰어서 소모한 칼로리보다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들. 뱃살이 늘어지고 머리가 벗겨진 비슷비슷한 얼굴들. 똑같이 토트넘 유니폼을 걸치고서……. 운동신경이란 단어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긴 토트넘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가? 죽어서도 담을 뛰어넘을 정도로 체력이 좋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니면 생전에 밥 먹듯이 반복한 행동이다 보니 죽어서도 무의적으로 반복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3회 일치
         순간적으로 마비되어 있던 감각들이 깨어났다. 다리가 굳고 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하반신이다. 게다가 녀석들 쪽이다. 생존자가 이런 꼴이 됐더라면 필시 피가 흐르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이 방이 빨간 방으로 보일 정도로 화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체액이 튄 흔적은 없다. '''절단면'''에 검은 끈끈이 같은게 엉겨 있는게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쳐낼 수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아저씨는 토트넘이 되었다.''' 살아있는 채로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엉성한 부분이야 어쨌든 아저씨가 토트넘이 되어버린 결과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 그가 아줌마를 깔아뭉게고 잘라내는 과정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았을 거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면 이미 "아줌마"라고 무의적으로 부르고 있는 저것은 왜 상반신이 사라진 걸까? 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점점 더 확인된 사실처럼 여겨지는 걸까?
         이런 정신상태에서도 다이너스티 키를 찾기 위한 수색은 계속되었다. 나는 혹시라도 상반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며 작은 방도 살펴봤고 화장실까지 열어놨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열쇠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 때려치고 돌아가 버릴까? 몸에 엉겨붙은 토트넘의 체액이 너무 역겹다. 돌아가서 샤워와 함께 오늘의 기억도 말끔히 흘려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 물론 량도 챙기고.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3회 일치
         냉기는 없었다. 재료를 담은 봉지가 녹아서 흐물흐물해졌다. 문이 열리면서 몇 가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철퍽하는 소리가 듣기에도 부패의 느낌이 났다. 다만 아줌마의 상태는 상체만 남은 걸 빼면 양호했다. 그야 부패의 기미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지만 매일 햇볕에 노출되었던 토트넘에 비하면야. 잘 됐군요 아줌마. 처음으로 아저씨보다 동안이란 말을 듣게 됐어요. 냉동실에서 들은 거긴 하지만.
         죽은 아내를 냉동실에 처박아야 했던건…… 글쎄?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정 장례를 밟으려면 십중팔구 아저씨가 감옥에 가야 했다. 뭐, 그래도 이감되기 전에 녀석들이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테니까 누명은 벗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때쯤이면 교도소 안이 '''사회보다 안전'''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방에 내버려 둘 수야 있나? 그 썩는 냄새를 어쩌려고.
         나는 잠시 동안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부질없는 퍼즐 맞추기를 계속한 결과, 한때나마 원래는 인간이었고 이웃이었고, 내가 말을 주고 받던 대상이었음이 떠오르고 말았다. 한 명은 내가 마무리를 지어줬는데 어떤 면으론 장례을 치뤄준 셈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내는 지금 냉동실에서 썩은 고기가 되어 있는걸 발굴해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썩어빠진 인간관계'''가 돼버렸네
  • 창작:좀비탈출/5-2 . . . . 3회 일치
         그리고 녀석들이 햇볕에 오래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냈다. 정답은 '''팽창'''이었다. 마당에 있는 녀석들은 장시간 햇볕에 노출된 끝에 폭발하기 시작했다. 상태가 나쁜 녀석부터. 과학지이 짧아 정확한 설명은 무리지만, 아마도 체내에 축적된 부패가스가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펑, 폭발해 버리는 거겠지.
         량이 떨어진지 벌써 일주일 째다. 결국 타협해서 수돗물을 마시게 됐지만 이것만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집안에 보이는 거울이란 거울은 다 깨뜨리거나 뒤로 돌려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앙상해지는 내 몰골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다가 바지가 헐렁하게 벗겨져 버리는걸 보고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다음번 의을 차릴 때는 없겠지. 유서라도 적어두고 싶지만 그런 부질없는 짓도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기록 . . . . 3회 일치
          * 일종의 일지 형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일지 느낌을 내기 위해 추정하거나 잡담 등을 기록해 둬도 된다.
         == 량 ==
          * 칼 : 영화와 달리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은 것 같다. 그냥 본래 용도에 걸맞게 요리할 때나 써먹어야겠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3회 일치
         출발 전 마지막으로 물자를 체크했다. 가방에 티셔츠와 아령으로 만든 철퇴. 산지 1년 쯤 된 티셔츠와 바지, 아디다스에서 구입한 운동화, 연이 20년이 좀 넘은 한국남자 하나. 그리고 정오의 햇볕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좋아 완벽하군.
         나는 한 발을 옮길 때마다 부정적인 전제를 깔며 움직였다.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는 걸로 경계심을 다잡고 언제든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바보같다는 것 안다. 누가 보면 클래 시트콤 매니아인줄 알겠네. 와트니와 다르게 나는 시트콤에 빠질 기회가 없었다. 전기가 끝장난 이래 내게 주어진 오락거리라곤 초라한 소장도서 몇 권과 잠 밖에 없었다.
         녀석은 그늘 아래로 들어가서 담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들의 정오의 햇볕을 피한다는 가설은 분명 맞아떨어졌다. 토트넘 같은 놈은 어떻게 특이해서 돌아다닐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은 저런 이겠지.
  • 창작:헤이즈 . . . . 3회 일치
         이후 현 사이트로 옮겨 "헤이즈(Haze)"라는 이름으로 재개되었다. Haze는 '''아지랑이'''라는 뜻으로, 무동군의 마스코트이자 미스테리의 상징이기도 한 안개를 뜻한다. 동시에 동사로 쓸 경우 '''신고을 시키다'''라는 뜻인데, 주어와 목적어가 각각 누구일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또한 '''미로(Maze)'''와도 철자가 비슷하다.[* 사실 제목의 후보군에 올라 있었고 많이 고민했지만 분위기가 안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탈락했다.]
         무동고등학교의 영화동아리인 RECORD의 일원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 영화 촬영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원일기처럼 동네 소개 영상에 불과했지만, 시나리오에 살이 점점 붙어가자 아예 스릴러 영화를 찍자는 쪽으로 계획을 고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의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창작:세정종합병원|세정종합병원]]의 별관에 숨어들어 촬영을 하기로 한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계획이 이상해진다...
  • 채윤아 . . . . 3회 일치
         |학력 = [[경희대학교]] 인문학부
         * [[2002년]] ~ [[2006년]] : [[경희대학교]] 인문학부 학사(2002학번)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3회 일치
         || '''최종 학력''' ||<(> [[대구대학교]] 행정학 박사 ||
         1956년 3월 10일, [[경상북도]] [[김천시]] 에서 태어났다. 김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영남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했다. 고려장학회 이사장 등을 지낸 경력이 있다.
  • 최수환 . . . . 3회 일치
         1933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및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 최윤동 . . . . 3회 일치
         * 중국 운남 육군사관학교 졸업
         * 중국 봉천성 신흥학교 교관
         * 대구상공주회사 중역
  • 카네다 쇼타로 . . . . 3회 일치
         성우는 1기는 [[타카하시 카즈에]], 2기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는 [[야마다 에이코]]/[[최수민]](대영비디오판), 철인 28호 FX는 [[타나카 히데유키]], [[오리카사 아이]](소년시절)/[[김용]](MBC), 4기는 [[쿠마이 모토코]] 5기는 齋藤智美.
         철인 28호를 조종하는 소년 [[탐정]]. 쾌활하고 기민한 행동력과 어른을 압도하는 추리, 발상으로 사건을 해결해서 철인을 조종하기 이전부터 소년 탐정으로서 명성을 날려왔다. 경시청에도 출입하며 수사에 협력할 정도. 뛰어난 사격실력에 자동차 운전, 제트 전투기 탑승, 헬기 조종 및 잠수 작업 등도 해낸다. 철인 28호를 얻은 후부터 철인과 함께 사건을 해쳐나간다. 집은 서양 저택으로 혼자서 생활. 부친은 [[카네다 박사]]이며 중요한 동료로는 [[오오츠카 서장]], [[시키시마 박사]]가 있다.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재세편]]에 등장해선 모범생의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쇼타콘의 어원답게 연상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모습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애쉬포드 학원 이벤트에서 여고생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하악 거린다던가(...).] 나이 대가 비슷한 [[무적로보 트라이더 G7]]의 [[타케오 왓타]]와 [[무적초인 점보트3]]의 [[진 캇페이]]와 친구. 갓마즈의 [[묘진 타케루]]하고도 서로 믿고 지내는 형동생 사이로 나온다. 참고로 왓타 또한 쇼타로처럼 원작에서 악당을 자비심 없이 끔살시켰던 초딩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리지만 고지한 면이 있어서 [[솔레스탈 빙]]이나 [[흑의 기사단]] 같은 전직 테러리스트와 동료로서 같이 싸워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나중엔 그냥 받아들이지만.
  • 칼 루이스 . . . . 3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채주의]]를 하고 있으며, [[비건]]이다.
         [[분류:육상선수]] [[분류:채주의자]] [[분류:미국 인물]]
  • 캡콤 스포츠 클럽 . . . . 3회 일치
         세가지의 게임 다 룰을 간략화 시키고, 조작도 단순하게 만들어서 머리 히고 즐기기에는 최적이다. 다만 테니스의 경우에는 축구, 농구와는 달리 난이도가 죽여준다. 그런데 스포츠 게임이 잼병인 플레이어라면 답이 없다.(...) 세가지 종목을 전부 클리어하면 엔딩이 나온다.
         또한 [[타임릴리즈]] 방을 채용해[*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임릴리즈가 아니다. 코인이 1997개 들어가면 해금되는 방. 성공하면 타이틀 화면에 멜로디와 강아지가 등장한다.] 나중에 보스[* 스타(축구), 골든 USA(농구), 멜로디(테니스).]들도 선택이 가능해진다. 보스들의 성능은 그야말로 최강.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3회 일치
          크로노 기술을 적용한 보병. 이동을 순간이동으로 한다. 순간이동한 후에는 순간이동한 거리만큼 딜레이가 있다. 공격 방이 특이한데, 적을 죽이거나 파괴하는 방으로 싸우는게 아니라 적을 시간대에서 지워버리는 방으로 싸운다. 지워지고 있는 유닛이나 건물은 그대로 굳어버린다.
  • 킹덤/508화 . . . . 3회 일치
          * 성벽 위를 순간에 정리한 산민족들은 파죽지세로 성벽 아래로 치닫는다. 바지오는 "지다족"에게 지시해서 성문의 개폐장치를 찾게 한다. 지다족은 후각이 매우 발달한 민족으로 후각을 동원해 숨겨져 있던 개폐장치를 찾아낸다. 성벽 아래 지하실에 있었다. 평범한 바닥으로 위장돼 있었지만 지다족의 후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입구가 열리자 열미병들이 뒤늦게 막으려 들었지만 이미 주위를 산민족이 호위하고 있었다. 지다족은 곧바로 개폐장치를 확보한다. 양단화는 이 개폐장치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는지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두었고 지다족은 어려움 없이 성문을 연다.
          * 성문이 열리고 비신대의 병력이 선두로 나선다. 성 안의 열미군은 당황하지만 화살을 날리며 필사적으로 응전한다. 본대인 [[왕전(킹덤)|왕전]]의 군단에선 벌서 성문이 열렸다는 소을 듣고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왕전은 잠자코 있지만 그도 예상보다 훨씬 빠른 전개에 놀라는 모양이다. [[몽념]]의 낙화대에서도 이 일로 술렁거린다. 몽념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라며 혀를 내두른다.
          * 지휘부의 감탄이야 어쨌든 전장에서는 치열한 난전으로 전개된다. 열미군은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여차하는 순간 역전 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기세가 강했다. 비신대의 신병들은 지나친 긴장과 첫전투의 흥분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간두]]는 노평 등과 함께 황오장 밑에 있었다. 다들 숨쉬기도 버거워할 정도로 첫 전투의 신고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간두는 그들 중에선 오를 유지하라고 강조하며 훈련받은 대로 하자고 부대원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흥분한 노평이 실수를 저지른다.
  • 킹덤/519화 . . . . 3회 일치
         [[킹덤]] 제 519화. '''총대장의 방'''
          * 환의는 부관 [[마론(킹덤)|마론]]과 함께 기마대의 활약을 지켜본다. 마론은 이옥 기마대의 위력에 만족한다. 아마 흑양전에서는 일대가 수림지라 기마대를 굴릴 기회가 없어서, 그 분풀이를 하는 모양이라고 말한다. 마론이 보기엔 셋으로 나뉜 진군 중 자기들이 가장 편안한 위치다. 여러 방향에서 조군이 들이닥친다지만, 당장 업성에 접근하는데 급급한 중소부대들 뿐. 이런 부대들을 이옥 기마대가 선회타격하는 걸로 낙승을 딴다. 당분간은 이런 방으로 여유롭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쾌재를 부른다.
          그런데 일이 쉽지많은 않을 모양이다. 반대편의 [[뇌토] 부대가 좋지 않은 소을 보냈다. 그쪽에서 삼천인 부대를 만나 압도했으나 거기서 다시 좌우로 이천씩 도합 사천의 부대가 접근 중. 이에 뇌토가 흑앵의 기병 1천을 증원으로 보내달라 요청했다. 방금 전까지 "여유롭다"고 너스레를 떨던 마론의 표정이 구겨진다. 환의는 옆에서 쓴웃음을 짓는다.
  • 킹덤/520화 . . . . 3회 일치
          * [[기수]], [[마정]]이 조군 우익을 이끌고 진의 좌익,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로 진격. 소을 들은 몽념은 어쩔 수 없다며 덤덤하게 진격을 개시.
          * 기수가 움직인다. 그 소은 곧 낙화대에도 도달했다. 장교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몽념은 "어쩔 수 없다"고 담백하게 반응한 뒤 출진을 결정한다. 압도적인 물량차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덤덤한 반응이다.
          * 기수가 이끄는 조군 우익은 진격이 딸라서 어느덧 예정의 절반 이상을 왔다. 그런데 진군은 초기 배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된다. 장교들 사이에선 왕전이 멍청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 기세라면 좌익은 고사하고 본진까지 순간에 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수는 신중하게 판단했다. 우선은 현재 위치에서 군을 멈추고 한동안 상태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주]]의 기마대 1천을 내보내 정찰을 맡긴다.
  • 킹덤/523화 . . . . 3회 일치
          작전이란 결국 이런 이다. 아광군이 단독으로 적과 맞서 싸우고 옥봉대는 "일격필살의 유격대"로 전력을 보존하며 대기하다가 아광군 측이 전령을 보내면 그때 지시에 따르면 된다. 언뜻 듣기에는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왕분이나 관상은 그 참 뜻을 바로 이해했다. 왕분이 누가 이런 작전을 짰냐고 묻자 아광은 자신과 왕전이 짠 것이라 대답한다. 왕분은 더는 참지 않았다.
          이 말이 떨어지자 옥봉대의 장교들이 겁해했다. 아무리 총대장의 자이라지만 직책과 계급으로서 왕분은 말단에 가깝지 않은가? 총대장이 직접 작성한 작전지시를 오천인장이 다시 짜라 마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광이 "도련님"에게 "우책이 아니다"고 잘라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킹덤/528화 . . . . 3회 일치
          * 영역의이 강해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 이들은 곧 양단화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위험을 느낀 [[슌멘]]이 나서나 가볍게 제압 당한다.
          견융왕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지만 분위기가 순간에 었다. 순수수는 견융왕과 시선을 마주친 채 조금도 물러섬이 없이 대답했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3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할아버지 타이라노 타카모치(平高望)는 간무 덴노(桓武天皇)의 손자로서, [[신적강하]]하여 카즈사 국(上総国)[* 지금의 치바현 중부]을 다스리는 쿠니시(国司)였다. 그는 카즈사 국에서 임기를 마친 뒤에도 교토에 귀환하지 않고, 아들들과 토착하여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에서 개간을 거듭하여 방대한 장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방대한 장원은 자들에게 상속되었는데, 장남 쿠니카(国香)는 히타치(常陸), 차남 요시카네(良兼)는 카즈사(上総), 삼남 요시마사(良将)는 시모우사(下総)의 영지를 나눠받게 된다.
         이 무렵 [[세이와 겐지]]의 시조 미나모토노 츠네모토가 무사시국에 부임한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 토탈워: 쇼군 2 . . . . 3회 일치
         수동 전투를 결정했다면 공격 측은 어떤 날씨에 싸울지를 선택한다. 날씨를 그냥 정할 수 있는건 아니고 "랜덤으로 날씨 정해짐→선택하지 않음→다시 랜덤으로 날씨 정해짐"과 같은 방으로 선택한다. 세번 내에 선택해야 하며, 만약 세번 모두 선택하지 않았다면 강제적으로 마지막의 날씨에서 싸우게 된다. 날씨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군이 연설하고 병사들이 환호하는 컷신이 나온다. 이 컷신은 스킵할 수 있으며 반란군을 상대할시에는 나오지 않는다. 컷신이 끝나면 자신의 부대를 맵에 배치한다. 대부분의 부대는 자신의 지역에만 배치할 수 있지만 일부 특이한 부대는 중립 지역에도 배치할 수 있다. 방어측은 이 시기에 궁병이나 조총병들로 여러가지 방어용 장애물을 설치할 수 있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전투 시작 징을 클릭해 전투를 시작한다. 인근에 다른 아군 군대가 있었다면 전투가 시작하고나서 지원군의 형으로 난입한다. 지원군이 오는 방향은 해당 군대가 있던 방향과 같다.
         만약 한 가문의 군대가 다른 가문의 성을 공격하면 포위가 시작된다. 포위당한 가문은 그 성에서 부대를 추가적으로 모집하거나 병력 손실을 보충받을 수 없게 되지만 포위당한 성의 주둔군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포위를 건 가문은 성 안의 량이 떨어질 때 까지 버틸 것인지, 아니면 직접 공격해 점령할 것인지, 정 안되겠으면 포위를 풀고 후퇴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직접 공격하는 선택지는 자동 전투와 수동 전투 두가지가 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 . . . . 3회 일치
          * 량 개념이 사라졌다.
          * 기술을 연구하고 도시를 확장시킬수록 점점 근대화가 이루어진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면 연구 가능한 기술이 늘어나고 신 유닛의 비용이 할인되지만 동시에 구 유닛의 비용이 증가하며 불만도도 증가한다. 근대화로 인한 불만도를 통제하지 못하면 사무라이 계급의 반란이 일어난다.
  • 퇴계 이황 . . . . 3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이황은 전습록(傳習錄) 등을 지어서 당대 [[명나라]]에서 유행하던 [[양명학]]을 비판하였는데, 진헌장과 왕수인(왕양명)의 심즉리(心卽理)를 비판하고, 이것이 선불교의 돈오돈수 처럼 근거없이 자의에 빠질 우려가 높다고 보았다. 또 자신의 마음에 치우쳐서 사물의 객관적인 이치를 탐구하는 것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
         [[화담 서경덕]] 학파와 대립하였는데, 서경덕의 제자 남언경(南彦經)이 무의(無意)와 무욕(無欲)으로 담일청명(湛一淸明)에 이르고자 하였을 때, 이를 불교 수행법이라고 비판하였다.[* 퇴계전서 중 ‘남시보에 답하다’] 올바른 [[정좌관심|정좌(靜坐)]]는 신비주의적으로 정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갖추는데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계전서 중 ‘김돈서에 답하다’, 퇴계전서 중 ‘이굉중에 답하다’]
  • 특이한 세금 . . . . 3회 일치
          * 가발에 뿌리는 파우더세 : 1795년 도입. [[가발]]에 뿌리는 파우더에 과세가 이루어졌다. 이 당시까지 서양에서는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매우 위엄있는 가발(…)을 쓰는 것이 관례였으며 가발에는 파우더를 뿌려서 향이나 장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 세금을 물리게 되면서 가발의 이용률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 자른 베이글세 : 뉴욕주. 베이글을 자르고 구워서 팔면 8센트를 더 내야 한다. 가공품으로 분류되기 때문.
          * 수세 변기세 : 매릴랜드 주. 체서피크 만(Chesapeake Bay)의 환경보전을 위하여 60달러를 내야 한다. 이름은 좀 그렇지만 일단 환경명분.
  • 패밀리 레스토랑 . . . . 3회 일치
         [[가족]] 손님을 대상으로 하여, 저렴하고 맛있는 사를 제공하는 양 [[레스토랑]]. [[일본]]에서는 파미레스(ファミレス)라고 줄여서 부른다.
         [[분류:당]]
  • 페어리 테일/507화 . . . . 3회 일치
          * 그 말을 들으며 END로 각성했던 나츠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레이도 전의를 잃고 멸악마법의 표이 사라져간다.
         오거스트는 상대방의 마법을 똑같은 방으로 받아치는 방으로 싸우고 있는데 위력이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오거스트의 마법이 사실은 반사&배가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떡밥이 나온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3회 일치
          페어리 하트가 빠져나가면서 메이비스는 기력과 의을 잃어간다. 그녀는 실낯같은 의을 붙잡고 제레프를 만류하는데 사용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만난" 이 세계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애원하지만 제레프는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페어리 하트를 적출하며 방출되던 빛이 사라진다. 제레프는 정신을 잃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이걸로 이 세계에 남은 미련은 전부 정리했다고 말한다.
         표지는 사실상 공 커플들 투샷.
  • 페어리 테일/533화 . . . . 3회 일치
          * 제레프는 나츠가 의이 끊기기 전 [[마카로프 드레아]]의 죽음을 전하고 "천국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 채 네오 이클립스를 작동시키려 떠난다.
          * 백마도사로 각성한 제레프. 그에 대치하는 나츠. 나츠는 의이 없는 메이비스의 몸을 수습해 한 쪽으로 치운다. 나츠는 메이비스에게 "이젠 제레프를 없앨 수 밖에 없다"고 사과한다. 제레프는 그 말을 듯고 코웃음을 친다.
          나츠는 의을 잃어가면서도 그의 죽음에 눈물을 보인다. 제레프는 그를 남겨 둔 채로 작별을 고한다.
  • 페어리 테일/537화 . . . . 3회 일치
          * 같은 시각 [[렉서스 드레아]]가 보호하던 [[마카로프 드레아]]가 기적적으로 의을 차리는데.
          그는 긴 잠에서 깨듯이 의을 되찾았다.
          * 깨어난 마카로프는 정말로 자고 있었던 것처럼 의이 없던 시간 동안 본 "꿈"에 대해 들려준다. 그건 참 이상한 꿈이어서 꾸고 있는 동안 자신의 안에서 따뜻한 생명의 힘이 내달리는 듯 했다. 그리고...
  • 페어리 테일/542화 . . . . 3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태운다는 계획을 위해 하루지온으로 급파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 등 항구에서 휴하던 아군의 도움으로 배를 수배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본래 알바레스 제국이 타고온 군선. 거대한 갤리온 함선이다. 그동안 [[엘자 스칼렛]]과 [[카나 알베로나]]를 비롯한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도 도착. 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 하나가 끝났다. 이제 문제는 이 배에 어떻게 아크놀로기아를 태우냐는 것. 엘자가 그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다. 어떻게든 상공에서 아크놀로기아를 떨어뜨리겠다고 하는데.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마법도 물리공격도 안 통하는 상대에게 그게 가능할지 의심했다. 엘자는 반드시 해보이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 스팅과 로그도 같은 의견이었다. 마룡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동료들을 볼 낯이 없다, 그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쓰러질 순 없다. 세이버투스 길드원들은 오라시온 세이스의 바톤을 받아서 같은 방으로 하루지온까지 마룡을 유도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거리는 프록시와 렉터의 도움을 받은 미네르바와 유키노가 하늘을 날아서 단숨에 끌어들인다.
          * 작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한 것인가? 망연자실해진 마도사들. 시간의 틈새에 있는 정신체가 그랬듯, 마룡이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린다. 이 또한 마룡의 본능. 미네르바는 마룡이 자신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인해서 먼저 파괴해 버렸음을 깨닫는다.
  • 페이데이 2 . . . . 3회 일치
          [[핫라인 마이애미]]와의 콜라보 DLC. 러시아 마피아 두목을 족치는 Hotline Miami 하이스트와 기관단총 3개(Cobra, Blaster 9mm, Uzi), 야구빠따, 칼, 정글도, 소방도끼가 들어있다.
          전직 부패 경찰 드라간과 근거리 전투에 특화된 Infiltrator 퍽 덱, 돌격소총(Lion's Roar), 칼이 들어있는 DLC.
          영화 [[스카페이스]]와의 콜라보 DLC. 소사 카르텔의 두목 에르네스토 소사를 조지는 내용의 Scarface Mansion 하이스트와 4연장 로켓발사기인 Commando 101, 그리고 근접공격용 구 휴대전화가 들어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로크 . . . . 3회 일치
         || 진행 방 || 라우드 ||
          * 음
          음점 어딘가에서 카드키를 찾아 카운터 뒷편 문을 딴 다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 페이퍼 컴퍼니 . . . . 3회 일치
         [[영어]]와 일본 영어에서 의미가 상당히 다른 단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본 영어의 의미가 널리 쓰이고 있다.
          * 등기가 되어 있어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사업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 [[회사]]를 뜻하는 '[[일본]] 영어'다. 영어로 이러한 회사는 껍데기 기업(shell corporation), 더미 회사(dummy company), 우편함 회사(mailbox company)라고 불린다. 주로 조세 회피 및 [[탈세]]를 목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법체계가 다른 제3국 국적으로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 폴리스 . . . . 3회 일치
         폴리스의 특징은 시민 계급이다. 폴리스에서 [[시민]]은 곧 [[전사]]이며, 이들은 [[호플리테스]]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중장보병의 구성원으로서, 폴리스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중장보병이 되기 위하여 무장을 갖출 경제력을 보유한 토지 보유자([[지주]])이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는 중세 유럽의 도시 시민들이 [[상인]]이나 [[수공업자]] 계층이었던 것과는 대비를 이루는 점이다.
         폴리스는 기원전 1000년경에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아티카(Attica, [[아테네]] 주변 지방)와 에우보이아(Euboea)에서 나타났으며, 그리스 본토와 에게해 도서 지역, 소아시아의 해안 지역에 폴리스 체계가 퍼져나갔다. 기원전 750년 이후에는 그리스 민도시(Apoikia)가 각지에 건설되었는데 이들 역시 폴리스형 국가체계를 갖추었다.
         에게 해 도서 지역이나 이오니아 연안 지역에서는 이주민들이 점차 다른 폴리스를 정복하거나, 계층 분화가 이루어지는 형으로 발전되었다고 여겨진다.
  • 하마치 . . . . 3회 일치
         [[일본어]]로 [[방어]]의 새끼, 혹은 양 방어라는 뜻이다. 현재는 주로 양 방어라는 뜻으로 쓰인다.
         [[세토 내해]]에서 양으로 방어를 기르게 되면서, 간사이 지방의 호칭이 퍼지면서 크기에 관계없이 '하마치'라는 호칭이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 하이큐/219화 . . . . 3회 일치
          * 그때 쿠니미가 나타나 "너는 중학교 때 일을 너무 신경 쓴다"고 일침한다.
          * 쿠니미는 적당히 킨다이치를 데리고 가며 "별로 카게야마한테 관심없다. 다음 공전에서 박살내주마"라고 싫은 소릴한다.
          * 듣고 있던 감독은 "높이 라는 것에 대한 굶주림"을 언급하며 의하든 안 하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건 절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하이큐/232화 . . . . 3회 일치
          * 달리면서 처음 매니저 일을 시작할 때를 회상하는 키요코. 시작은 [[사와무라 다이치]]의 권유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줄곧 해온 육상을 그만두었다. 연습을 거듭해 쌓아온 것은 상상보다 훨씬 허무하게 끝난다. 그 상실감과 허무함을 잊기 위해 시작한 일. 그녀는 육상을 잊기 위해 배구부 매니저일에 몰두한다.
          * 공 워밍업 타임이 끝나는 휘슬이 들린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도착했다. 키요코는 관중석에서 코트 위의 히토카에게 짐을 넘긴다. 짐은 확실히,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키요코는 코트 위의 3학년들과 승리의 제스쳐를 교환한다.
         키요코의 중학시절, 고교1학년 시절도 잠깐 나오는데 중학교 때는 안경을 쓰지 않았던것 같다. 1학년 땐 트윈테일에 안경이라는 실로 반장스러운 속성.
  • 하이큐/243화 . . . . 3회 일치
          * 경기 직후 휴시간. 사와무라는 학생 대표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시미즈 키요코]]는 팀에 합류.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사와무라는 졸업생들과 따로 만난다. [[니시노야 유]]와 [[타나카 류노스케]]는 졸업생들을 알아보고 인사하는데 1학년들은 당연히 그들을 잘 모른다. [[히나타 쇼요]]나 [[야마구지 타다시]]는 "선배의 선배"라며 기웃거리는데 [[츠키시마 케이]]는 무시, [[카게야마 토비오]]는 가볍게 인사만하고 지나간다.
          졸업생들도 지금 1학년들에 흥미를 보이는데 특히 카게야마와 히나타의 괴짜콤비를 궁금해한다. 카게야마가 전일본 유스에 불려갈 정도의 우수한 선수라는걸 듣고 그런 천재가 어째서 자기네 학교에 왔는지 의아해한다. 3학년들은 히나타에 대해선 "활발한 꼬맹이"나 "운동능력 요괴"라고 말하다 사와무라가 "가끔씩 정체모를 녀석"이라고 평한다. 스기와라는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지마 와카토시]]도 경계했던 적이 있다고 말하자 타시로가 깜짝 놀란다.
          쿠로카와는 "정체모를 녀석"이란 말을 이어서 다른 학교 입장에선 지금 카라스노 고교 자체가 그런 녀석들로 보일 거라고 말한다.
  • 하이큐/260화 . . . . 3회 일치
          * 야마구치가 긴장을 억누르고 다른 리셋포인트를 찾는다. 그러나 동공이 대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동료들은 그의 서브가 늦어지자 의아해한다. 다른 리셋포인트를 찾으려는 노력은 허사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장은 다양한 소음으로 가득하다. 거기서 다시 집중할 지점을 찾는다니. 의할 수록 주위는 더 흐트러진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나리자키 진영. [[미야 아츠무]]가 촐싹 맞게 "당했다!"고 탄한다. 그 소리에 리시브를 실수한 오지로가 급 시무룩해졌다. 긴지마가 거 보라며 아츠무를 쪼아댄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로테이션으로 오미미가 나가고 2학년 WS인 [[코사쿠 유토]]가 들어온다. 코사쿠의 서브. 네트 위에서 뚝 떨어지는 날카로운 서브다. 공은 사와무라에게. 받아내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사와무라의 팔에 맞고 크게 떠서 이나리자키 응원석 쪽까지 날아가 버리는 공. 사와무라가 낭패한다. 양측 응원석은 이미 득점이 인정된 것처럼 탄과 환호를 교환한다.
  • 하이큐/265화 . . . . 3회 일치
          * 봄고 1일 차의 밤은 살아남은 모든 팀에게 주어졌다. 당연히 [[네코마 고교]]에게도 싱숭생숭한 밤이 왔다. 3학년 [[쿠로오 테츠로]], [[카이 노부유키]], [[야쿠 모리스케]]는 숙소 로비의 쇼파를 차지하고 시시덕 거렸다. 그들에게도 첫 전국대회였다. 인터하이와는 또다르게 들뜨는 밤이었다. 야쿠가 좀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칸센을 타고 싶다면서. 카이는 은퇴하고 나면 올해 인터하이 때 응원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야큐가 나갈 수는 있겠냐고 반쯤 빈정대자 쿠로오가 후배들을 좀 믿으라고 면박했다. 마침 그 후배가 근처에 있었다. 카이가 자판기에 들른 [[코즈메 켄마]]를 발견했다. 음료를 뽑으려는데 다른 학교 학생 둘이 그 앞에서 잡담 중이었다. 숫기가 없는 코즈메는 비켜달라고도 못하고 뒤에서 머뭇대고 있었다. 그러자 학생들 쪽에서 먼저 그를 발견, "자시키와라시"인 줄 알고 자리를 양보해준다.
          코즈메는 그렇게 하면서도 성적을 유지했기 때문에 들키는 건 좀 나중에 가서였다. 그런 행동방으로 보면 "좋아하지 않으면 애초에 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았다.
          쿠로오는 야쿠가 정서란 말을 알기는 할지 궁금했다. 야쿠가 현재 최대로 신경 쓰는건 팀의 승리도 보람찬 플레이도 아니라 남은 봄고 4일차 동안 자신이 가장 튀어야 한다는 쇼맨십이었다. 여기에선 쿠로오도 지지 않았다. 자기는 벌써 여자 아나운서하고 인터뷰할 구상까지 해놨다고 대항했다. 이렇게 둘이서 투닥거리며 소란이 일었다. 아까 자판기를 선점하고 있던 타학교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렸다. 소란을 사과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사람은 카이 뿐이었다.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네코마의 봄고 1일차가 끝난다.
  • 하이큐/268화 . . . . 3회 일치
          * 야마모토의 리시브는 언제나 한 가지 원칙에 출실했다. 반걸음 빨리 공에 도달하는 것. 그 반걸음 만큼 공을 조작할 여유가 늘어난다. 그 차이는 코트 바깥의, 다른 학교 선수들이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은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저런 정성스런 리시브가 가능한지 감탄했다. 코즈메의 주문 대로다. 높게 네트 앞으로 띄워진 공. 정확히 코즈메의 머리 위. 상대는 코즈메의 유도와 양 사이드의 공격에 모두 유의하고 있었다. 들어갈 구멍이 있을까? 그렇다면 정중앙. 심플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쿠로오가 스파이크. 이것이 허를 찔렀다. 네코마의 득점. 스코어 29 대 28. 네코마가 마침내 역전. 매치 포인트에 도달한다.
          얼마나 파김치가 되든, 뒤쳐졌든 상관없었다. 결국엔 해낸다. 코즈메가 포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게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다시 보게된 이유. 코즈메 켄마 근성론이었다.
          >그럼 너네 학교 강해?
  • 학동 . . . . 3회 일치
         여담으로, 후생노동성은 한국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한다. 한국의 방과후학교는 교육부에서 관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부서는 문부과학성이다.
         학동보육(学童保育)의 약자. ‘방과후학교’와 비슷한 제도이다.
         방과후에 보호자가 귀가할 때까지 아동을 맡아서 돌보면서 적절한 놀이와 활동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아동이 감소하여 빈 교실이 늘어난 초등학교의 빈 교실을 보육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한다민 . . . . 3회 일치
         | 학력 = [[경희대학교]] 사회학 학사
         * [[경희대학교]] 사회학 학사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함석원 . . . . 3회 일치
         == 출신 학교 ==
         * [[충암고등학교]]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 함씨]]
  • 해외결혼식 . . . . 3회 일치
         결혼 풍속의 하나. 해외의 관광지에서 올리는 결혼을 뜻한다. 호화, 사치스러운 결혼으로서 행해지기도 하지만, 관광지 이벤트로서 비교적 간소하게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 허미영 . . . . 3회 일치
         | 학력 =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국대학교 동문]]
  • 허범욱 . . . . 3회 일치
         | 학력 = [[숭문고등학교]]<br>한국영화아카데미
         2009년 첫 단편 애니메이션 《평범한 사》를 자력으로 제작하였다. 2010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교육과정에 애니메이션연출 전공으로 입학하였으며 2011년 12월부터 교내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연구과정을 시작하였다. 2015년 《창백한 얼굴들》로 제18회 홀랜드 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김민섭 (1983년)|김민섭]]과 유년시절 친구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삽화를 그려주었다.<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필모그래피|url=http://movie.naver.com/movie/bi/pi/filmo.nhn?code=241358&v=i|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7%88%EB%B2%94%EC%9A%B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94376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140&aid=0000028389|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창백한 얼굴들’, ‘사이비’ 이어 세계 4대 애니 영화제 대상 쾌거|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130704|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백한 얼굴들', HAFF 그랑프리 수상|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46193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창백한 얼굴들', 홀랜드애니페스티벌 장편 대상|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482651|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
         *2009년 : 《평범한 사》 - 각본/감독
  • 허진(법조인) . . . . 3회 일치
         [[191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판사·검사고시에 합격한 뒤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다가 1925년부터는 [[대구광역시|대구]]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정년퇴임한 뒤에는 [[서울]] [[성북구]]에 자신의 호를 따서 명명한 우촌국민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 헌터X헌터/369화 . . . . 3회 일치
          * 왕위계승전의 무대가 되어버린 BW호. 그러나 배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바다 위에 떠있었다. 목적지는 암흑대륙. 출항 2일 째. 항구를 떠난지 18시간이 되는 시점이었다. [[크라피카]]가 눈을 뜬 시각이었다. 끔직한 파열음을 끝으로 기억이 끊겼던 크라피카. 그는 여전히 [[오이토]] 왕비의 주침실에 있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빌"이었다. 그는 크라피카가 의을 되찾은 걸 보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리스크를 감수해더라도 의사를 불러야 되나 망설이던 참이었다. 크라피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몇 시냐고 물었다. 빌은 그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크라피카가 실신했던 사실을 함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경호원들은 그가 임무 수행 중인줄 알고 있다. 크라피카가 안달하지 않아도 빌은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잘 전달해주었다. 그가 쓰러진지는 약 9시간. 크라피카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렇게나 지났을 줄이야. 크라피카는 왕비의 안위도 확인했다. 그리고 빌은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 5왕자 츠베파는 철저하게 실리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사전에 접촉시켰던 사설병 대장 "마올"을 다시 파견하고 "롱기"라는 머리가 긴 남자를 딸려보냈다. 그 역시 츠베파의 사설병. 그들의 목표는 "크라피카의 두뇌". 그를 동료로 확보하는 것이다. 와블 왕자까지 포함해도 좋으니 꼭 동료가 될 수있도록 설득하라는게 진짜 목표였다. 넨 습득은 오히려 구실. 마올은 다른 진영 경호병의 눈을 의해 은밀하게 처리하려면 편지를 사용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롱기도 같은 생각이다. 부호를 쓰거나 동작으로 신호를 주고 받는 것도 노출된 우려가 컸다.
          벤자민이 보낸 "휴리코프"는 몹시 음험해 보이는 남자였다. 일단은 텐후토리처럼 정찰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진짜 "임무"는 따로 있다. 설마 와블 측에서 먼저 초대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좋은 기회다. 적의 넨능력을 파악할 수단은 많다. 외견, 수업방, 언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계통이나 능력 자체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건 휴리코프만의 기술이었다. 넨능력이 아닌, 경험에 의한 노하우. 어찌보면 이거야 말로 그의 생명선이었으며, 그런만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장의 수였다. 가령 능력자와 비능력자는 안구의 움직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옆에서 안구를 봤을 때 그 주변의 흔들림을 보는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구분법이었다. 지금도 그는 1014호실 거실에 모인 안구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 현경련 . . . . 3회 일치
         현경련은 [[한양]]의 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주문모]] [[사제|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1811년]]에 [[순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자이 없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평온한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그녀는 또한 사람들의 성화와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기, [[냉담자|냉담교우]]를 격려하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병자]]들을 돌보기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등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선교사]]들이 방문한 동안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ref> [[시복|시복]]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현민 . . . . 3회 일치
         ||'''학력'''||[[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br]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아동상담치료학과 ||
  • 홍연아 . . . . 3회 일치
         *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전산과학과 졸업
         * (가)상록고등학교설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통합진보당 당원]][[분류:민중연합당]][[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홍효의 . . . . 3회 일치
         || 학력 || 포항초-포항중-[[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구미전자공고]]-강릉영동대 ||
         2013년 팀에 복귀, 신고선수가 아니라 정선수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군복무 전과 달리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다. 5월 18일 LG 2군전에서 시즌 처음 선발로 등판했지만 1⅓이닝 동안 5실점을 하면서 강판되었고, 팀도 5대22로 대패했다. 결국 부진한 성적 탓인지 5월 이후로는 나오지 못했다.
         2013 시즌 후 2014년 보류선수명단에 들지 못했는데 보류선수 제외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아, 임의탈퇴로 공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014년 초 삼성 공홈페이지 선수단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 황병일(1960) . . . . 3회 일치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고 정평났으나,[*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이다. 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백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1982)|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야구)|박흥]]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 황부인전 . . . . 3회 일치
         한나라 말기, 효령황제 시절 형주의 구월산에 황승언이라는 처사[* 필사본 황처사전에서는 헌제 때 황경은]가 살았다.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자이 없다가, 늦게 딸을 낳았는데 용모가 추하고 16세가 되었으나 배필을 정하지 못했다.
         제갈량은 운명에 따라 길에서 황소저가 타고 있는 교자를 만나고, 청혼을 하여 성례하게 된다. 하지만 혼례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갈량은 첫날밤에 신부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도망가려 하는데, 황부인이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서 옷이 찢어진다. 황부인이 옷을 꿰매줄 테니 꿰맨 옷을 입고 가라고 하여 옷을 꿰매게 된다. 바느질 하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바느질 한 옷이 [[천의무봉]]하여 감탄한다. 또 요기나 하고 가라고 해서 밥을 먹게 되는데, 밥을 만드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밥을 차린 것을 보니 인간 세상의 음이 아니라 감탄한다.
         그리하여 제갈량과 황부인은 부부의 연을 맺는데, 황부인은 신술을 부려 조조의 모친 생일잔치에 쓰는 음을 날라 제갈량의 친우들을 대접하고, 신술을 부려 군무지사를 베풀기도 한다.
  • 2세대주택 . . . . 2회 일치
         부모세대와 자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주택. 부모세대와 자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주택을 2세대 주택이라고 한다. 2세대 혹은 손자까지 3세대에 걸쳐서 다른 세대가 하나의 주택을 공유하게 된다.
  • EZ2AC . . . . 2회 일치
         [[http://ez2ac.co.kr 홈페이지]][[http://twitter.com/ez2ac 공트워터]]
         2013년 부터는 SQUALE PIXLES의 공출범및 EZ2AC이라는 게임사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 FootNoteMacro . . . . 2회 일치
         매크로를 쓰지 않고 {{{[* Hello World]}}}같은 으로 집어넣으면 FootNote가 들어갑니다. 여러가지 사용 예는 FootNotes 참조.
         config.php에 다음과 같은 의 설정을 넣으면 모든 페이지에 {{{[[FootNote]]}}}매크로가 자동 삽입됩니다.
  • LDK . . . . 2회 일치
          * D는 Dinning(당)
         3LDK는 방이 3개에 거실, 당, 부엌이 있는 주택. 2LDK는 방이 2개인 것을 뜻한다.
  • MoniWikiACL . . . . 2회 일치
         # <?php exit()?> // 파일은 php이지만 형은 php가 아닌 일반 텍스트다.
         config.php에 {{{$acl_debug=1}}} 옵션을 넣으면, 어떤 으로 적용될지를 보여줍니다.
  • NTX . . . . 2회 일치
          * 위키 테이블 : 자주 쓰는 표의 서을 적어두는 곳.
          * 위키 : 창작 위키. 내부에는 엔하위키라는 명칭이 조금씩 남아 있지만, 정은 아니다. 사이트 리뉴얼과 함께 사라졌다. 현재는 임시로 NTX 위키에 세들어있다. 그런데 과거 설정 위키의 데이터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 OK 본 . . . . 2회 일치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졸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2회 일치
          * Food Packing System(품 포장 체계)
          * Drying Techniques(건법)
  • ∀건담 . . . . 2회 일치
         달은 과거의 기술과 역사를 잃어버린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일환으로 지구귀환작전을 펼친다. 그리고 [[정력]] 2343년, 운하인으로 태어난 문레이스 [[로랑 세아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인 [[프란 돌]], [[키스 레제]]와 함께 모빌슈츠 [[플랫]] 2호에 탑승하여 [[잉그렛샤]]에 내려가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갔다. 그렇게 지낸지 2년이 지난 정력 2345년, 로랑은 정착하기로 한 비시니티에서 성인을 치루던 도중 달의 지구귀환작전이 발동되면서 지구는 전쟁속에 휩싸이게 되고,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때맞춰 깨어난 기계인형 화이트돌에 탑승하게 된다.
  • 강화종실 . . . . 2회 일치
         은언군은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숙빈임씨(肅嬪林氏)의 자이다.
         [[조선 헌종|헌종]]이 자이 없이 사망하자, 은언군의 아들 전계군(全溪君)의 아들 덕완군(德完君)이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철종이다. 하지만 철종은 후사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강화종실은 대가 끊어졌다.
  • 개구리 . . . . 2회 일치
         [[올챙이]]가 성장한 동물. 물 속에 사는 올챙이와는 다르게 뭍에서 서한다.
         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날로 먹지는 말 것.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6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실제론 잘하지 못해서 중학교 때도 매번 지고 친구들이 하는걸 보기만 했다.
         * 우마루는 UMR변장이 남자 같아 보이는지 신경쓰지만, 그냥 봄바의 안면인 장애같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7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노점음에 낚여서 결국 따라간다.
          * 우마루는 연애방면으론 봄바의 안면인 능력만큼 둔감하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8화 . . . . 2회 일치
         정적으로 담당이 붙은 키리에는 상업용 그림책을 새로 그리게 된다.
          * 키리에는 예비작가로서 편집장과 정 미팅을 가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8화 . . . . 2회 일치
          * 타이헤이는 히카리가 여름을 타는줄 알고 우마루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히자"고 하지만 저녁 먹고 나서 먹으라고 타이헤이가 말린다.
          * 갑작스러운 소에 카나우는 패닉.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9화 . . . . 2회 일치
          * 귀갓길에 칠석 탄자쿠가 장된 집을 발견하는 우마루.
          * 베란다에 에비자가 가져온 조릿대 장이 놓이고 타이헤이는 저녁을 준비하러 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0화 . . . . 2회 일치
          * 타이헤이의 주선으로 도마가의 저녁 사에 합석, 우마루와 함께 있던 키리에도 자연스럽게 동석한다.
          * 그러나 우마루의 조언 탓인지 키리에가 의적으로 모토바에게 다가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2화 . . . . 2회 일치
          * 카나우는 정으로 초대받고 도마가에 입성하게 된다.
          * 오빠의 지위가 올라간다 = 급료가 오른다 = 내 생활도 풍족해진다는 등.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6화 . . . . 2회 일치
          * 타치바나 실핀포드는 이게 "여자들의 싸움"이라고 말하는데 어머니들이 평소 얼마나 미의이 있는지를 겨루는 시험의 장이라는 것.
          * 이 묘하게 빗나간 인은 바로 실핀의 어머니에게 들은 것이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2회 일치
          * 에비나 나나는 전문학교에 진학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 일단 진학 희망이고 어머니는 "수영이 강한 학교"가 좋겠다고 한다. 들어가서 키리에가 다 쓰러뜨릴 거라는 것.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타이헤이는 카나우 말에 맞장구치며 이렇게 밤샘을 하면 학교 생활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 잠시 어색한 침묵이 도는데 카나우는 이게 타이헤이가 자신을 의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 게맛살 . . . . 2회 일치
         [[밀가루]], [[어육]] 등을 사용해 [[게]]의 살 맛을 흉내낸 가공품. 게살을 흉내낸거지 게살로 만든게 아니다.
         [[분류:품]]
  • 경마 . . . . 2회 일치
         기원전 800년 경 [[호메로스]]의 [[서사시환]] 〈[[오디세이아]]〉에서 경마를 묘사하는 기록이 등장한다. 기원전 776년 경 그리스의 장군 [[아킬레우스]]가 친구를 위하여 장례을 올리며 마차 경주를 벌였다. 제23회 고대 올림픽 제전에서 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이용한 전차 경주가 경마로 등장하였으며, 제33회 올림픽에서는 사람이 직접 기승하는 경마가 등장했다.
         한국의 경마는 1898년 서구 경마가 처음으로 열렸다. 나귀경주, 기병경주가 열리다가 1922년 본격적인 경마가 시작되었다.
  • 고다이고 덴노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주특기는 책임 회피와 부하나 자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평가된다.--이러니까 망하지.--
  • 고독의 요새 . . . . 2회 일치
         이런 SF틱한 설정과는 반대로 보안은 굉장히 심플한데 그냥 열쇠구멍에 열쇠 넣고 돌리면 들어갈 수 있다. 열쇠도 그냥 문 근처에 존재해서 구하기도 쉽다. 문제는 이 열쇠가 '''슈퍼맨을 제외한 존재는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초창기에는 사이즈도 더럽게 커서 구멍에 넣기도 힘들었다가 근래에 들어서 단순한 열쇠 사이즈가 되었지만 무게가 몇 조(!) 톤이나 되어서 문앞 매트 밑에 넣어놨다.[* 보통 가정집 열쇠 보관하는 그 방으로.] 슈퍼맨의 인간다움을 부각시키려는 장치의 일종이었는데 아무래도 고독의 요새라는 간지나는 네이밍과는 안 어울려선지 지금은 완전 SF틱한 분위기가 되어 열쇠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NEW 52 이후 부터는 슈퍼맨의 목소리와 DNA 검사로 문을 열어주는 방으로 바뀌었다.
  • 고원희 . . . . 2회 일치
         * 2015년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 시즈코 역
         ! 시상
  • 골든 위크 . . . . 2회 일치
         이 시기에 4월 29일 쇼와의 날(昭和の日), 5월 3일 헌법기념일, 5월 4일 녹색의 날(みどりの日, 목일과 비슷), 5월 5일 어린이 날, 여기에 더해서 5월 1일 노동절이 있으며, 이 사이에 끼인 휴일이나 일요일이 겹친 대체휴일 등이 있어서 대략 1주일 정도의 연휴가 된다.
         골든 위크라는 이름은 이 시기에 "자유학교"라는 영화를 개봉하고 흥행이 정월, 오봉 연휴 이상으로 대성공한 것을 기념하여, 다수의 관객 동원을 목적으로 영화사 다이에이(大映)가 1952년 무렵에 만든 선전 용어였다. 이 용어가 각계에 퍼지게 되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선전 용어라는 이유로 골든 위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 곽희성 . . . . 2회 일치
         * [[중앙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12년 데뷔]][[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교육 마마 . . . . 2회 일치
         자 교육에 열심인 어머니 라는 뜻. 지나치게 교육에만 관심을 쏟고, 과도하게 학원에 보내거나 학대적인 육아를 하여 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좋지 않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구미시/인물 . . . . 2회 일치
         * [[김덕]] - 대학교
         * [[김상조]] - 정무직공무원, 대학교
  • 구본홍 . . . . 2회 일치
         * 2005년 8월 ~ 2008년 7월 :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좌교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
  • 금춘수 . . . . 2회 일치
         * [[안동대학교]] 경제학 학사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안동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안동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 기간트 . . . . 2회 일치
          * 운용계획의 붕괴 : 원래 레프카가 생각한 운용계획은 삼각탑을 기지로 해서 원로위원회등 기술력과 과학력을 가진 요원들이 직접 정비하고, 충성심과 전투력이 높은 1급 시민과 측근들로 기체의 승무원을 조달하며, 일단 한번 비행해서 태양 에너지를 가득 충전한 후에는 목표를 공격하고 삼각탑으로 귀환하는 으로 장기적인 운용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레프카가 권좌에서 쫒겨난 상황이었고, 아직 자신을 따르는 얼마안되는 부하[* 애니에서 나온 부하들 수는 많아도 10명이 넘을까 말까 정말이지 수가 적었다! 게다가 이 가운데 항복하여 같이 공존하자고 충고하는 부하 1명을 레프카는 군말없이 쏴죽여버렸다.]들만 이끌고 삼각탑에서 탈출하는 방으로 출격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정비나 인원보충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코난 일행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장기간 기간트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일부 지역을 점령해서 레프카가 왕국을 세울수는 있겠지만...
  • 기동전사 건담 . . . . 2회 일치
         당시 만연했던 '로봇 프로레슬링'[* 매 화마다 특정 메카와 1대 1, 혹은 1대 다수로 일회성 대결을 펼치는 방. '마징가 Z' 등을 떠올려보면 쉽다.] 플룻에서 벗어나 전쟁 서사적인 면을 다룬 스토리로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마니아 층에게 어필하여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인기를 끌어모아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로봇물에서 이른바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이라는 구분법이 생겨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 21세기 시각에서 돌이켜 보면 여전히 옛날 로봇애니의 요소들도 많이 담고 있기도 한 '과도기적 작품'이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21세기 작품들이 '옛날 로봇애니 요소'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유행은 돌고 돈다)~~]
         마징가Z가 이미 10가지 이상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고, 콤바트라 V 같은 것은 수십종류 이상으로 무기 만으로도 도감을 차릴 수 있을 정도. 이러한 로봇물에서 후반 20여분 대의 핵심 전투씬은 매화마다 적절한 무기 뱅크씬을 돌려쓰고, 무기가 적당히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대사를 외치다가, 최종적으로 필살기로 마무리 하는 형이었으며, 때때로 '신무기 추가'라는 이벤트로서 뱅크씬을 교체했다.
  • 길은혜 . . . . 2회 일치
         * [[2012년]] [[KBS2]] 월화드라마 《[[학교 2013]]》 ... 길은혜 역
         {{학교 시리즈}}
  • 김경태 (배우) . . . . 2회 일치
         * [[동국대학교]] 화학공학과
         * 《어 맨스 월드》 (2012년) - 일
  • 김륵 . . . . 2회 일치
         그러나 그의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는 [[북인]]들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인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조 (1501년)|조]]이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고 그의 이황, 이언적 문묘 종사를 반대했는데, [[북인]]과 [[남인]]간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자신의 생모 [[공빈 김씨]]를 왕후로 추존하려 하였으나, 그는 생모를 왕비로 [[추증]]하려는 [[광해군]]의 뜻을 비판, 반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고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좌천되었다.
  • 김문집 . . . . 2회 일치
         '''김문집'''(金文輯, <small>일본 이름:</small> 大江龍之介(오에 류노스케), [[1907년]] [[7월 7일]] ~ ?)은 [[한국]]의 문학평론가이다. 아호는 화돈(花豚)이다.
         중학교 때부터 일본에서 수학한 김문집은 일본 문학이론을 수입해 와 한국문학의 전통을 부정하는 친일적인 성향을 초기부터 보였다.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조선문인협회]] 발기인과 간사,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촉탁을 맡는 등 친일 단체에도 가담했다.
  • 김민교 (가수) . . . . 2회 일치
         * [[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학사]]
         [[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1967년 태어남]][[분류:1989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봉환(1921)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관료, 법조인([[변호사]]), [[정치인]]이다. 호는 선주(善洲)이다. [[신광순]] 전 국회의원이 그의 손아랫동서이다. 또한 [[손경]]의 장인어른이다.
         [[일제강점기]]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관료로 근무하였다. [[8.15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였다.
  • 김우동 . . . . 2회 일치
         [[8.15 광복]] 이후 선산중학교-[[선산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 김우식 (1886년) . . . . 2회 일치
         '''김우'''(金禹埴, [[1886년]]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헌정회|816|김우}}
  • 김종호(1933) . . . . 2회 일치
         동정복 어깨에 육군용 견장 계급장이 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1987년 12월 육군이 해군의 [[수장(장)|수장]] 계급장을 못알아본다고 해서 채택했다가 1992년 11월 폐지되었다.
         1952년에 [[해군사관학교]] 10기로 입학해 1956년 임관했다. 목성함장과 부산함장을 지냈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함대사령관을 지냈다. 해당 한국함대는 뒤에 명칭이 바뀌어 [[해군작전사령부]]가 되었다.[* 해작사의 영어 표기도 Naval Operation Command가 아닌 Korea Fleet Command이다. 일본의 경우 작전사령부에 해당하는 함대가 [[자위함대]]로 [[함대]]급 부대인 [[잠수함대]], [[호위함대]], [[항공집단]]의 상위기관이다.] 1986년 2월 1일에 한국함대가 해군작전사령부가 되자 초대 작전사령관을 지냈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2009년 8월]] 손목 터널 증후군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은퇴의 뜻을 밝혔으며, 팀의 프로리그 09~10 시즌 첫 경기가 열린 [[2009년]] [[10월 10일]]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은퇴을 가졌다.<ref>{{뉴스 인용
         * [[2008년]] 곰TV TG삼보-인텔 클래 2008 시즌2 32강
  • 김지훈(1993) . . . . 2회 일치
         ||<:> '''학력''' || 포항초-경포중-[[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고]] ||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고]] 역사상 처음으로 드래프트 지명을 받은 선수로서, 178cm에 75kg의 투수로서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최고 구속 148km, 평균 구속 140km 중반대의 공을 던지면서 상위 지명이 예상되었으나 예상 외로 3라운드까지 밀렸다. 투타 양면에 재능을 보여 2011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는 내야수로 선발됐다.
  • 김태환(1943) . . . . 2회 일치
         1943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에서 임원으로 근무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2회 일치
          * 타학교의 집중마크에도 불구하고 웅영고 학생들은 모두 생존 중.
          * 동시에 고깃덩어리가 됐던 타학교 학생들도 일제히 원상태로 돌아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2회 일치
          * 이미 같은 으로 몇 명을 모았고 야오요로즈가 통솔 중. 아오야마도 그쪽으로 합류시켜 주겠다고 한다.
          * 상황은 일소되어 웅영이 타학교를 상대로 무쌍을 벌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2회 일치
          * 우라라카는 그런 모습을 의하면서 가슴이 술렁인다고 불쾌해한다.
          * 다른 학교 학생들은 잠정위험 구역을 설정하고 헬기 이착륙장과 길을 만드는 등 능숙하게 대처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2회 일치
          * 나머지 A반 학생들은 몇 개의 조로 나뉘어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합력하는게 좋겠다고 결정한다.
          * 다른 학교라도 자신의 개성과 잘 조합할 수 있는 개성과 함께하는게 채점에 유리하기 때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2회 일치
          * 그는 토도로키에게 말을 붙이려고 혹시 엔데버의 자이 아니냐고 묻는데.
         토도로키와 요아라시의 다툼은 별거 아닌 감정싸움으로 보이는데, 어차피 당시 이들은 중학교를 막 졸업한 소년들이었고 지금도 고작 고1 정도. 어른스럽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2회 일치
          *미도리야는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한다. 바쿠고는 그저 감으로 찍은게 아니라 나름대로 추리를 했다. 올 포 원이 개성을 뺏거나 부여하는 것을 보았고 올마이트는 녀석과 면이 있다. 개성을 이동시키는게 가능하며, 그 당사자와 올마이트와 연관돼 있고, 미도리야는 올마이트와 유사한 개성을 "받았다"고 한다. 또 올마이트와 만나서 미도리야가 바뀌었고, 그는 힘을 잃었다.
          >너만이 다른 방으로 받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2회 일치
          아이자와의 개성은 "개성의 말소". 그래서 개성을 파괴하는 이 약물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인체에 +알파 요소인 "개성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자와의 경우는 개성을 일시정지 시키는 형이고 개성인자 자체에 데미지를 주진 않는다. 패트껌이 조사한 바로는 이 약물은 개성인자 자체를 "파괴"한다. 물론 타마키의 경우는 자연치유될 정도로 미미한 타격이었지만.
          * 미도리야와 밀리오의 얼굴은 은땀으로 범벅이 된다. 둘은 정확히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그들이 놓치고 말았던, 지금와서 보면 치명적이었던 복선. 치사키와 함께 있던 소녀. 그리고 그 상처들.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는 정보들과 그들이 본 것, 모든 것을 합쳐보면 무시무시한 자괴감이 그들을 덮쳤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2회 일치
          * 기존에 협조하고 있던 히어로들은 대부분 참석했다. [[패트껌]] 사무소도 물론 참석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얼른 가자며 의욕을 보이는데 선배인 [[아마지키 타마키]]는 언제나 그렇듯 시들시들하다.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야)|류큐]]의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옆에 있었는데 이들은 잘 모르는 환경이라서 긴장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경찰과의 협력 같은 상황은 별로 알려주지 않았다. 류큐도 이런걸 배우지 못해서 신인 시절엔 고생했다고 회고한다.
          내부에서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부에도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직원들이 일행을 방해했다. 가면을 쓰지는 않았지만 수색영장을 들이대는 경찰을 향해 개성을 사용한 공격을 가한다. 히어로들은 순간에 이들을 제압하며 진격을 제촉한다. 나이트아이와 패트껌이 선두에서 이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2회 일치
          * 나이트아이가 예지로 확인한 진로에 따라 일행은 숨겨진 통로 앞까지 이른다. 평범한 장공간 같지만 마루의 특정 공간을 일정한 순서로 누르면 비밀 공간으로 이어진다. 마치 닌자저택같은 구조. 예지에서 본대로 조작하자 마침내 통로가 열리는데, 거기서도 여지없이 조직원이 배치돼있다.
          * 다혈질인 패트껌은 선전포고로 인하고 "프로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이를 간다. 하지만 그때, 타마키가 "프로의 힘은 목적을 위해서 쓰라"며 막아선다. 이 녀석들은 자신이 처리하겠다면서.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2회 일치
          * 타베의 개성 ""은 뭐든 무한정 먹을 수 있는 능력. 타마키의 문어다리를 씹어먹으며 봉쇄를 푼다. 자유로워지자 호죠가 "결정"으로 역공.
          그 목소리에 반응해 타베가 일어난다. 타베의 개성 "". 문자 그대로 모든걸 먹는 개성. 어떤 것이든 씹을 수 있는 턱과 이, 먹자마자 소화시키는 위장. 타마키의 강화된 문어 다리 조차도. 타베는 "맛있다"면서 삶은 문어처럼 씹어삼킨다. 세츠노가 그 꼴을 보며 "타베의 배가 차는 일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말처럼 타베와 타마키, 둘의 "상성"이 아주 좋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2회 일치
          >아무 것도 없는 거냐 이 자!
          * 패트껌은 이미 너덜너덜해졌지만 의을 놓지 않았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그렇게 자신을 격려했다. 랏파는 그가 완전히 그로기라고 생각해서 "거짓말이지? 더 할 수 있지?"라고 도발한다. 맞는 말이다. 패트껌은 휘청일지언정 쓰러지지 않았다. 랏파는 패트껌이 완전히 "방패"라고 오해하고 있다. 패트껌은 그게 랏파의 목숨을 앗아갈 거라 장담한다. 그에게도 "창"이 있다. 단지 그걸 구현하기 위해선 자신의 방패를 포기해야 할 뿐이다. 랏파가 패트껌 몸에 쌓은 충격은 고스란히 "흡착"해서 오른팔에 "담았다". 이 축적엔 막대한 열량이 필요해 방패인 지방을 활활 태우고 있다. 그래서 방패를 포기하는 것. 그러나 이 과정이 끝났을 때 어떤 방패도 쳐부수는 "창"이 생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입학 당일. 수험기간 중에도 알게 모르게 키리시마와 마주쳤던 미나는 확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른바 고교 데뷔란 것이다. 미나가 뿔 같은 머리 모양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이건 키리시마 나름의 의지의 표명이었다.
          * 그러고 보니 미나에게도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1년 전 면도 없던 여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였던 그 날.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2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를 습격한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야쿠자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나이트아이를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비웃으며 "야쿠자를 얕보지 말라고" 뻔뻔스럽게 외쳤다. 하지만 상대하는건 자신이 아니다. "랏파"의 "카피"가 나이트아이에게 러쉬를 가했다. 트와이스의 개성은 이런 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두뇌파 히어로의 대위기. 그러나 다음 장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이트아이 자신만을 제외하곤.
          시가라키는 맨 얼굴인 채로 아까 하려던 설명을 이어갔다. 시에핫사이카이, 오버홀은 빌런 연합의 기동력을 깎으면서 연합의 유용한 인재들을 회유하려는 속셈이다. 바깥으로 끌어내 구슬려서 정으로 시에핫사이카이의 장기말로 만들려는 수작. 저쪽은 처음부터 이쪽과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 시가라키도 마찬가지였다. 세력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가. 그 부분이라면 시가라키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2회 일치
          * 밀리오가 그 약속을 져버린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꿈을 이루려는 아들을 전력으로 도왔고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도 나타났다. [[아마지키 타마키]], [[네도 하지레]]는 좋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처음부터 잘 풀렸던건 아니지만 꾸준히, 쉼없이 계속한 결과 어느날부터 좋은 소이 들렸다. [[서 나이트아이]]가 그를 스카웃했고 이제는 자신의 개성이 까다롭지만은 않았다. 어느날 하지레가 말했다.
          오버홀의 반격은 히어로 루밀리온에게 스치지도 못했다. 그는 반격했고 오버홀은 대책없이 얻어맞았다. 네모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적의 개성은 사라졌고 사카기의 만취 개성에 노출되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족쇄까지. 왜 쓰러지지 않는가? 왜 약해지지 않는가? 그는 여전히 오버홀을 압도하고 있엇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모토는 흐려지는 의 속에서 계속 고민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2회 일치
          * 의이 남아있던 나이트아이는 정말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가 본 예지에는 자신과 미도리야가 죽고 오버홀이 도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가 "원 포 올은 밀리오에게 줘야했다"고 말한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를 멈추진 못했다. 미도리야는 설령 "쓸데없는 참견"일 지라도 누구도 죽게하지 않고 에리를 구하겠다고 선언하며 다시 일어섰다. 바로 그때, 현관에서 철포옥 핫사이슈와 싸우던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류큐]] 팀이 적과 함께 천장을 부수며 도착한다.
          지난 회에 당한 채로 널부러져 있으나 의을 잃진 않았다. 오버홀에게 자신과 미도리야가 당하고 그가 도주하는 미래를 예지했기 때문에 절망하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미도리야가 꺾이지 않는 걸 보고 무언가를 느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2회 일치
          * 오버홀은 의이 거의 날아간 상태에서도 조직의 부흥과 위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야쿠자가, 두목이 바보나 빌런취급 당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 상황을 끊고 싶다는 일념이 평생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 중에도 그의 팔은 미도리야에게, 에리에게 뻗쳤다. 그러나 에리의 능력은 한도를 넘어서 폭주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닿은 것만으로 오버홀의 융합이 "되돌려"져서 무방비하게 내쳐진다. 그때 류큐 등과 함께 히어로 연합군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우라라카 오챠코]]가 재빠르게 오버홀을 제압. 하지만 에리의 폭주와 거기에 휘말린 미도리야에겐 손을 쓸 수 없었다. 이대로는 미도리야가 되감겨 사라질지도 모른다.
  • 나폴레옹 빠 . . . . 2회 일치
          * [[박정희]] - [[조갑제]]의 박정희 평전 등의 자료에 따르면, 대구사범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폴레옹 전기를 애독했다고 한다.
          * [[보카사 1세]] -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독재자]]. [[쿠데타]]로 집권하여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다. 국가예산의 2배를 들여서 나폴레옹 1세를 흉내낸 [[대관]]을 벌이거나, 옥좌는 나폴레옹 독수리를 본떠서 프랑스에서 제작한 2톤 짜리 거대 청동옥좌를 사용했다.
  • 남봉진 . . . . 2회 일치
         * [[경북대학교]]
         [[분류:1921년 태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영양 남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
  • 남상태 . . . . 2회 일치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대우중공업]]에 입사하였으며, 2006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사장으로 재임하였다. 연임을 위한 정치권 로비의혹이 제기되었다.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 남지현 . . . . 2회 일치
         학력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사이트 공사이트, 인스타그램
  • 남효온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남효온의 여러 저술 가운데서 가장 영향력이 돋보이는 것은 역시 육신전이다. 육신전은 사실 공 기록인 [[조선왕조실록]]과는 차이가 있으며, 여러가지 오류가 존재한다. 또한 남효온의 연령이나 행적으로 보아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사림파 내부에서 전해지던 단종복위운동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여 남기는데 의의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 니세코이/212화 . . . . 2회 일치
         * 마이가 지난 밤의 얘기를 하며 "좋아하는 사람의 무릎베개를 한 소감은 어떠냐"는 으로 라쿠에게 말하는걸 듣는다
         * 그런 말을 하고 들를 곳이 있다며 먼저 돌아가는데, 이후 치토게가 학교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
  • 니세코이/216화 . . . . 2회 일치
          * 이치죠가 중학교 졸업 이후 집안일을 하게 됐기 때문에 집에는 거의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작품활동 중.
          * 사실 이치죠 어머니도 상당한 기인.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에게 모든 집안일을 다 맡기다니--아참 야쿠자 마누라였지. 어쩐지--
  • 니세코이/228화 . . . . 2회 일치
         이자 언제나 반성도 안하고 사람으로서 어떨까 생각한다
         이자 곧 바람필 것 같고 ||
  • 니트 . . . . 2회 일치
          * 고등학교 대학 등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 담배 . . . . 2회 일치
         기호품과 마약의 경계에 선 미묘한 물품. 본래는 북미 원주민들이 의 등의 목적으로 즐기던 것을 유럽인들이 도입하고 퍼뜨려 전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다. 대부분 담배에 불을 붙여서 그 연기를 들이마시는 으로 즐기지만, 간혹 입으로 씹는 '씹는 담배'나 담배를 고운 분말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코담배' 등도 있다.
  • 대구광역시 . . . . 2회 일치
         미국의 대한군사원조(AFAK)를 통한 자재 원조로 지어진 대구시청사 감사(1955년)
         대구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
  • 대구광역시/인물 . . . . 2회 일치
         * [[강대]] - 동구(대구)
         * [[강영]] - 북구(대구)
  • 대전광역시 . . . . 2회 일치
         충남대학교
         한밭대학교
  • 도게자 . . . . 2회 일치
         본래 고대로부터 일본에서 귀인이 통행할 때,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인사를 했는데 여기에서 도게자가 유례하였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된 풍속이었다. [[다이카 개신]]에서 궤례를 폐지하고 중국 입례를 도입하는 칙령을 내렸으나,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게자는 계속 유지되어 [[가마쿠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의 귀족 사회 예법서인 『홍안예절(弘安礼節)』에서도 공적으로 유지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다이묘]]가 지나갈 때 [[서민]]은 도게자를 해야 했으며, [[사무라이]] 역시 신분이 높은 귀족에게는 도게자를 해야 했다.
  • 도균 . . . . 2회 일치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연극예술학과
         * 《[[상두야, 학교가자]]》 (2003년, KBS2)
  • 돈가스 . . . . 2회 일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서양인의 체격을 따라잡기 위해 육을 허용[* 일본은 675년부터 1872년까지 포유류 고기를 먹는걸 금지했다.]했다. 하지만 10세기 넘게 고기를 먹지 않았던 일본인들이 고기에 적응할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일본인들 입맛에 맞는 고기 요리가 만들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돈가스다.
         돈가스는 서양의 커틀렛을 일본으로 개조해 만들어졌다.
  • 돈키호테(할인점) . . . . 2회 일치
         [[일본]]의 할인점 체인. 주회사 돈키호테에서 전개하는 할인점. 통칭 돈키(ドンキ).
         전자제품, 일용잡화, 품, 시계, 패션용품, 스포츠 레저용품, DIY 제품 등 별의 별 것을 다 판다. 편의점과 할인점을 겸비한 느낌.
  • 두부 . . . . 2회 일치
         음의 일종. 콩을 약간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든다.
         [[분류:품]]
  • 듄 2 . . . . 2회 일치
         RTS 형이지만 완전한 RTS라고 하기는 약간 과도기적인 모습이 있다. 유닛의 움직임이 상당히 딱딱하고, 반응이 느리기 때문에 생각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초기 버전은 한번에 한 유닛만 조종할 수 있기에 컨트롤이 어렵다. 또 싱글 플레이에서 게임 중에 생산되는 유닛이나 건물을 전환할 때는 일시적으로 건물이나 유닛 일러스트가 큼지막하게 뜨는 큰 화면으로 바뀌면서 게임이 정지된다.
         웨스트우드 사에서는 이후에 듄 2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오리지널 시리즈인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로 발전시킨다. 이 때문에 듄 RTS 시리즈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와 게임 체계 면에서 유사점이 많다. 건설소에서 건물 테크트리가 시작하며, 사이드바를 사용하여 건물 생산과 유닛을 조종하는 게임 인터페이스, 그리고 자원 채집도 유사하여 듄에서는 빨간색 지형에서 채집하던 스파이스가 커맨드 앤 컨커에서는 녹색 지형에서 채집하는 [[타이베리움]]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게임 인터페이스 가져다 쓰려고 지구가 타이베리움에 침당하게 되버렸다(…).]
  • 딴따라 . . . . 2회 일치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20세기 후반 까지도 연예인에게 [[저작권]], [[초상권]] 등의 권리가 제대로 존중되지 않았고 연예계는 [[조폭]]이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에, 연예인이라고 해도 돈도 제대로 못 벌고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등 [[3D]] 업중에 가까웠다. 결국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고달플 수 박에 없었고, 그래서 이런 인이 부모님 세대에게 뿌리깊이 남아 있었다고 보면 된다.
         오늘날에는 연예인의 지위가 향상되고 중요한 문화활동의 일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칭은 거의 사장되었고 일부 팬덤에서 적대시하는 연예인 등을 비하하기 위해서나 쓰고 있다. 잘 쓰이지 않게 되면서 비칭으로서의 의미도 점차 '탈색'되면서 몇몇 가수들이 스스로를 '딴따라'로 규정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스스로 딴따라라고 자칭하는 것은 일종의 겸양, [[언더독]] 의을 드러내는 말이다.
  • . . . . 2회 일치
         생물이 먹은 음물에서 영양분을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
         사람들의 인은 더러운 것. 실제로도 더럽다.
  • 레갈리아 . . . . 2회 일치
          * 즉위, 대관 등 군주가 왕권을 이어받는 행사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레오(워저드) . . . . 2회 일치
         칼을 쓰는 통상기들은 밀착해서 맞출시 데미지와 스턴치가 반토막나는 페널티가 있으므로 거리 조절이 관건. 엄청난 리치의 점프 약K과 앉아 중K으로 견제하며 서서 중K이나 앉아 강P로 대공을 처리하는 의 싸움이 주가 된다.
         크로노스 러시와 아킬레스 러시가 좀 이상하게 바뀌었다. 일단 공통된 커맨드로 몸통박치기를 발동한 뒤 이후 추가 입력에 따라 크로노스나 아킬레스로 갈리는 방. 추가 입력을 넣지 않으면 맞추고도 상대보다 늦게 경직이 풀리는데다가, 둘 다 몸통박치기에서 연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 술 더 떠 사이에 살짝 딜레이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몸통박치기를 맞은 직후 승룡권처럼 발동이 빠른 기술을 썼다면 아무짓도 안 했건, 크로노스를 썼건, 아킬레스를 썼건 무조건 처맞는다. 두말할 나위 없는 No.1 봉인기.
  • 로라 로라 . . . . 2회 일치
         아메리아 대륙에 위치한 [[잉그렛샤]]의 영주 [[구엔 서드 라인포드]]의 적극적인 스카웃 제의로 잉그렛샤 밀리샤의 에이스 파일럿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녀가 타는 [[기계인형]] "[[화이트돌]]"은 지구인과 [[문레이스]] 모두에게 그녀의 전용기로 인되고 있으며 지구인들에게는 희망을, 문레이스에겐 최강의 적으로 보이는 듯 하다.
         구엔의 정략적 선택은 효과가 발군이라서 지구와 문레이스 일부를 제외하고 일반 병사들에게 수염([화이트돌])의 파일럿 = 로라라는 여자로 인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구엔의 사심도 들어가 있는 것이 구엔은 로랑을 로라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길 바랬던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의 존재로 구엔은 빼도박도 못하는 ~~[[로리콘]]~~[[쇼타콘]]으로 확실시되었다. ~~잠깐. 첫 만남때가 로라가 15살때잖아?~~
  • 류명선(야구선수) . . . . 2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계명대 ||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 - [[김태한]] - [[김상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 류원정 . . . . 2회 일치
         *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졸업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마기/294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신드바드가 소을 듣고 연락해 온다.
          * 홍염은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었는데, "백룡에게 줘버렸다"고 하는 걸로 보아 이시켜 준 듯.
  • 마기/301화 . . . . 2회 일치
          * 파르테비아는 TV와 비슷한 방송매체가 있고 알리바바가 황제를 접견한 소이 벌서 뉴스로 나오고 있다.
          * 그런데 페르테비아에서 약속한 기한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도 돌아오지 않고 문의를 넣어봐도 답변이 없다.
  • 마기/302화 . . . . 2회 일치
         * 이미 황제국은 내수로 소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량을 생산하고 있었고 팔 곳이 없어진 이상 국가는 붕괴할 수 밖에 없다.
         * 사실 황제국의 처지는 일본의 처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매우 상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 마기/307화 . . . . 2회 일치
          * 나나우미는 연백영(아르바)에게 알라딘의 신변이 노출되었다는 소을 듣고 우려한다.
          * 백룡은 "쥬다르는 전송마법진은 순간에 됐다"고 말하는데 알라딘이 울컥한다.
  • 마기/312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은 아르바를 압도하고 제압, "연금마법"으로 백영의 육체를 아르바의 자이 아닌 새로운 육체로 치환시켜 아르바의 정신을 쫓아낸다.
          * 유난은 인체처럼 복잡한걸 치환하려면 얼마나 많은 마법이 필요하냐고 묻는데 알라딘은 "대충 102만 2천개 정도"라고 아무렇지 않게 답한다.
  • 마기/313화 . . . . 2회 일치
          * 현재 연백룡은 순수한 아르바의 아이가 아니다. 연홍염이 피닉스로 팔다리를 이해주었을 때 루프가 섞여버린 것이다.
          * 아르바 광탈. 최종보스로 거론되던 인물이 순간에 쩌리가 되고 말았다.
  • 마기/320화 . . . . 2회 일치
          * 아르바와 알사멘이 모은 마고이로 의을 진행할 경우 확률은 100분의 1. 게다가 실패하면 그도 아르바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쟈파르는 미래에도 자신들처럼 봉기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전쟁이 일어날테지만, 그건 신드바드의 분신도 자도 아니다.
  • 마기/325화 . . . . 2회 일치
          * 그 옆에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가 결혼 준비로 바쁘다. 알리바바는 청첩장 쓰는 일로 정신이 없는데 상회 단골들을 빠짐없이 초대하려고 엄청난 수의 청첩장을 집필 중. 심지어 일일히 수기로 적고 있다. 모르지아나도 마스루드 앞으로 보낼 청첩장을 작성하는데, 청첩장이라기 보단 도전장에 가까운 디자인. 게다가 여전히 글씨가 지저분하다. 알리바바는 콩깍지가 낀 영향인지 "글씨가 예뻐졌다"고 칭찬하고 백룡도 진담인지 빈말인지 달필이라고 칭찬. 홍옥만 위화감을 느낀다.
         본래 최종보스 후보로 점쳐졌던 다윗은 꾸준히 신드바드를 현혹하고 잠한 거라고 생각됐지만 결국 그 자신이 신드바드를 "왕"으로 만드는 "마기"였음이 드러났다. 결국 다윗의 장대한 계획은 신드바드에게 바쳐지기 위해서였던 것. 지금껏 신드바드가 마기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도 바로 다윗이 마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 마기/327화 . . . . 2회 일치
          * 사건은 조금 전에 있었던 어떤 "말다툼". 함께 사를 했는데 알리바바가 연홍옥이 국제동맹을 탈퇴하는걸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그 일로 연일 회의 중인데 알리바바는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평한다. 그런데 거기서 모르지아나가 반대한다. 모르지아나는 황제국의 이탈이 국제동맹의 붕괴를 초례할 것이며 결국 힘이 분산돼 전쟁을 일삼는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홍옥은 자국의 내전까지 겪었으면서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냐고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한다. 알리바바는 당황하며 홍옥도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옹호하는데 그러자 버럭 소리를 지른다.
          * 그 뒤로 3일이 지났다. 그런데 충격적인 뉴스가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놀라게 한다. 갑작스럽게 뢰엠이 국제동맹에 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의 동맹 복귀가 공화된 것이다. 그토록 신드바드를 꺼림직해하던 두 지도자들이 신드바드와 손을 맞잡는다. 심지어 무는 "일국의 독자성 같은건 작은 일"이라며 지금까지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무와 타케루, 홍옥도 "백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라고 입을 맞춘 듯이 되풀이한다.
  • 마기/333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이 방은 게이트에서 마고이를 보내는 역할이 필요해, 결국 현재 인원으로 한 사람이 남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게이트를 열어서 성궁에 가는 방은 누군가 게이트로 계속 마고이를 공급해 줘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넷 중 하나는 여기에 남아야 한다는 것. 불편함 침묵이 찾아오고 알라딘은 얼렁뚱땅 쥬다르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성궁에서 날뛰는 편이 재미있을 거라며 절대로 남지 않겠다고 한다. 마고이를 보내는 역할은 금속기 사용자도 가능하기 때문에 연백룡이나 알리바바에게 시키려고 해보는데, 이들 역시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국 왕의 그릇 둘과 마기 둘이 답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시간만 낭비한다.
  • 마기/339화 . . . . 2회 일치
          * [[팔인장]]들은 신드바드를 연호하며 응원하고 있다. 백룡은 이들을 의하는데, 신드바드는 거기에 "왕의 그릇들 중 가장 기대가 되지 않는 자"라며 도발한다.
          * 두 번째 전신마장 "베리알"을 사용한 백룡. 바레포르의 꼬리를 파괴한 것도 베리알의 힘이었다. 신드바드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여유로운 태도로 돌아간다. 그리고 꼬리의 썩은 부분을 잘라버리더니 순간에 재생해 버린다. 베리알이 썩힌 꼬리를 간단하게 재생하는걸 보자 백룡은 보통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 마기/340화 . . . . 2회 일치
          * 그곳은 결혼장 같은 배경에 17세의 신드바드와 원래 제파르의 소유자였던 [[세렌디네]]가 기다리고 있다.
          * 앞장서 던전에 들어온 알리바바는 이번에도 기이한 던전 속의 풍경을 목격한다. 이곳은 결혼장 같은 분위기의 던전. 재단 앞에 한 쌍의 남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17세의 신드바드와 그의 반려였던 [[세렌디네 파르테비아]]다.
  • 마기/344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아르바(마기)|아르바]]에게 자신이 사후세계,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겪었던 일을 알려준다. [[연백룡]]과 싸우다 패한 것만이 기억에 있는 그는 갑작스럽게 아무 것도 없고 시간 조차 흐르지 않는 곳으로 날려져 당황하지만 곧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던 삼인조와 말문을 트는데 이들은 [[알마트란]] 시대 솔로몬 대왕의 동료였던 [[와히드]]와 [[셋타]], 그리고 와히드의 자 [[테스]]였다.
          * 그들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고 말한다. 흉악할 뿐 그저 쾌락 범죄자, 광신자라고 무시했던 다윗은 보통사람과 전혀 다른 인종이었다. 알리바바가 어떻게 다른 거냐고 묻는다. 와히드는 그를 "더 거대한 사명을 짊어진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 무한한 시간과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야망을 간직하는 것은 보통 정신력으론 불가능하다. 실제로 셋타와 와히드 같은 인물도 여기서는 순간에 삶을 포기했다. 셋타는 그가 무시무시한 인물이라며 이렇게 평한다.
  • 마기/348화 . . . . 2회 일치
          자기 개인의 힘만이라면 신드바드는 커녕 아르바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대단한 일을 달성하는 것, 이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르바는 그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하면 결국 네 힘이 아니다"고 하는데, 그의 말은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고 보통을 능가하는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드바드와 아르바 조차 알리바바에게 휘말린 인간이다. FANFAN상회 때도 그렇다. 신드바드는 그때 왜 알리바바를 도왔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으로 도움을 끌어냈고 "운명" 조차 초월하는 성공을 거뒀다. 신드바드 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운명을 초월하는 알리바바. 그렇기에 그는 "나도 대단한 인간"이라 자부한다.
          * 그의 "대마법"은 차원과 차원을 순간적으로 연결하는 마법이었다. 이론적으론 일 일라가 있는 차원 조차 현세로 연결할 수 있고, 알리바바 자신이 실증했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말한다. 그의 주장은 마치 파르테비아의 고층건물처럼 높은 건물을 1층부터 꼭대기까지 주파하는 이다. 대마법을 사용한다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층 그 자체"를 없앨 수 있으니까. 각 층의 천장이 없어지면 맨 꼭대기에 있던 존재 조차 "같은 층"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모두 같은 층에 있게 되면 누가 누구의 운명을 쥐고 있는건 불가능하다. 신드바드의 방법은 "거대한 힘"이 필요한 반면, 알리바바의 방법은 적은 힘으로도 가능성이 있다.
  • 마누엘 고도이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이후에는 유럽대륙의 패권을 잡아가는 프랑스 제국에 접근하였고, 스페인 해외 민지를 노리는 영국과 대립하게 된다. 1801년에는 프랑스와 동맹하여 영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1805년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패하고 스페인 함대는 전멸하고 만다. 이로서 스페인은 18세기에 걸쳐서 건설한 함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중남미 교역 항로를 영국에게 빼앗겨서 제해권을 상실한다.
  • 마더콘 . . . . 2회 일치
         처음 나타난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1965년대에 이미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1973년에 현대 용어 기초 지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어머니 애착증"이라고 밖에 언급되저 잇지 않다. 1970년의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 사자에상의 작가)의 4컷 만화에서는 효도를 하는 것이 마더콘으로 여겨진다는 풍자 소재가 있다.
         『계속 당신을 좋아했다(ずっとあなたが好きだった)』라는 드라마는 29세 여성 니시다 미와(西田美和, 연기자는 카쿠 치카코賀来千香子)가 도쿄 대학교 출신 엘리트 은행원 카츠라다 후유히코와 맞선 결혼을 하지만, 같은 시기에 옛 남자친구인 오오이와(大岩)와 재회하여 흔들린다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원래는 그다지 마더콘 설정이 아니었으며, 1화에서는 그리 기분 나쁘지 않고 지적이고 상냥한 좋은 사람으로 감기에 걸린 미와를 배려하여 샐러드와 죽을 만들어주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 마루코메 . . . . 2회 일치
         1854년에 창업한 전형적인 일본 노포이나, 정 회사로의 발족은 2차대전 후인 1948년(...)에 했다. 또한 2000년대 이후로는 미소뿐 아니라 누룩[* 코우지, 밀을 이용하여 덩어리 형태로 만드는 한국 누룩과 달리 낱알 형태이므로 입국(粒麴)이라고도 한다.]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 마블 퍼즐퀘스트/1성 . . . . 2회 일치
         === 호크아이(클래) ===
         === 자거노트(클래) ===
  • 마츠자카소 . . . . 2회 일치
          * 2009년 3월에 마츠자카시 차원의 문제가 되었는데, 2004년 2월 24일 푸젠성의 한 품회사가 송판(松阪)이라는 상표를 신청하여, 2008년 12월 20일 중국 상표국이 공고하였다. 마츠자카시에서는 2009년 3월 3일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를 통하여 이의를 제기하였으며 시장이 중국을 직접 방문할 계획도 발표했다.
          * 2010년 5월 12일 발표에 따르면, 2006년에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는 마츠자카육(松阪肉), 마츠자카소(松阪牛) 등으로 중국에서 상표 출원을 하였으나, 중국 국가상표국에서는 '이미 2001년 9월 마츠자카 문자와 소의 얼굴 일러스트로 상표가 등록되어 있음', '마츠자카소는 일반적인 재료 명칭', '마츠자카는 외국의 지명'이라는 3가지 이유로 출원을 기각하였다.
  • 메시마즈 . . . . 2회 일치
         메시우마와는 반대로 타인의 행복을 보고 밥이 맛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상태를 보고 질투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은 아주 슬픈 소이 들어왔을 때도 사용한다.
         요리치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런 표현을 주도한 스레드는 가정판의 아내의 밥이 맛이 없다(嫁のメシがまずい) 스레드이다. 이 스레드에서는 단순히 요리를 잘 하거나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상천외한 엽기적인 음의 이야기가 투고되고 있다.
  • 모리오리 족 . . . . 2회 일치
         이 소을 듣게 된 마오리 족은 모리오리 족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마오리 족은 모리오리 족이 자신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반항하는 자는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몇일 만에 수백명의 모리오리 족이 살해되었고, 몇년 동안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났다. 모리오리 족의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마오리 족은 [[인]] 풍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모리오리 족은 문자 그대로 '''잡아먹혔다.'''
  • 무료로 책 읽는 사이트 . . . . 2회 일치
          전자도서관들은 현재 각 도서관의 정책에 따라 일정한 가입절차 및 인증절차에 의해서 자신의 기기에서 전자도서를 대여할 수 있다. 위키러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도 전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을 테니 학교에 문의하면 사용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으니 참고.
  • 미니게임기 . . . . 2회 일치
         주로 [[문방구]] 앞에 설치되어있어서 "문방구 게임기"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문방구 앞에만 설치되어 있었던 건 아니고, [[도서대여점]], 동네 [[마트]], 좀 큰 [[당]]의 애들 놀이방 등지에도 설치되어 있었다.
         2008년 8월 3일 부터 학교 반경 200m 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27609.html|설치가 금지되었다.]] 그 이후 멸종.
  • 미미도시마 . . . . 2회 일치
         경험은 없지만, 타인의 말을 듣거나 접하거나 하여, [[수박 겉핥기]] 으로 지이 풍부한 젊은 여성을 뜻한다.
  • 미소시루 . . . . 2회 일치
         [[일본]] 된장국. 미역과 된장을 주재료로 하여, 여러가지 건더기를 넣는다. 일에서 거의 표준적으로 쓰이는 국 요리.
  • 민룡 . . . . 2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경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 . . 2회 일치
         === 정 시리즈 ===
         === 정 시리즈 파생 작품 ===
  • 바키도/113화 . . . . 2회 일치
         난데없이 단투쟁에 돌입한 피클?
          * 피클은 무사시와 만나고 돌아온 이후부터 줄곧 사를 거부하고 있다.
  • 바키도/122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피클은 무사시가 자신이 대응할 수 없었던 "곤충"의 모습으로 보이면서 욕을 잃어 버린다.
          * 피클은 욕을 잃고 등을 돌린다.
  • 바키도/134화 . . . . 2회 일치
          * 바키는 현대의 투사들을 대표해 그간의 저평가가 완전히 오판이었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무사시의 역량까지 잘못봤다고 뼈아픈 반성을 한다. 바키는 자신의 격이 모자랐다고 인정하며 정중한 태도로 고개숙여 사과한다.
          * 그때 병실문이 열리며 닥터 쿠레하가 들어온다. 밖에서 듣고 있었는지 모토베가 거명한 것 중에 자기도 있어 한시름 놨다고 농담을 던진다. 그는 마침 무사시에 대해 중요한 소을 가져왔는데, 무슨 일인지 그가 TV에 나오고 있다는데.
  • 바키도/141화 . . . . 2회 일치
          * [[미야모토 무사시(그래플러 바키)|무사시]]가 도주한 사건은 "검호의 난동" 이란 으로 뉴스에서 보도된다.
          모토베는 병석에서 "우리는 모두와 이어져 있다"는 말을 했다. 현대인은 모두 누군가와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사시는 어떨까? 바키는 이제가 돼서의 그의 지적이 얼마나 타당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는지 실감한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무사시의 고독". 그것을 제대로 인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쥔다.
  • 박수일 (축구선수) . . . . 2회 일치
         |청소년 클럽=[[광주대학교]]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대학교 동문]][[분류:김해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종호 (1964년) . . . . 2회 일치
         '''박종호'''([[1964년]] [[12월 7일]] ~ )는 [[KBO 리그]] [[OB 베어스]]에서 3루수로 뛴 [[야구]] 선수였다.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OB 베어스 원년 멤버가 되었다. 프로 전체 선수 중 가장 나이가 적었고, 원년 네 경기에 출전한 것이 통산 기록의 전부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기회가 그만큼 적었던 것이다.<ref>《SPORTS 2.0》"그들은 지금 - 프로 야구 원년 선수 142명", 2007,6,4</ref>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대구고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진주 . . . . 2회 일치
         |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
         ! 시상
  • 박현진 (음악가) . . . . 2회 일치
         | 학력 = 영서초등학교 졸업, 영서중학교 재학
  • 방우정 (방송인) . . . . 2회 일치
         |학력= [[계명대학교]]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
  • 방이설화 . . . . 2회 일치
         신라시대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 방이는 가난하여 구걸을 했지만 동생은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동생에게 누에와 곡종자를 구걸했는데, 동생은 성격이 심술궃어서 누에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방이는 그걸 모르고 누에와 씨앗을 열심히 가꿨는데, 누에알 가운데 하나에서 태어난 누에 한 마리가 소처럼 커졌으며, 질투가 난 동생은 누에를 죽였는데 사방에서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만들어줘서 방이은 큰 부자가 됐다.
         종자에서 이삭이 하나만 났는데, 새 한 마리가 이삭을 물고 달아나서 방이가 새를 쫓아 산 속에 들어갔다. 거기서 방이는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금방망이를 꺼내서 돌을 두드려 바라는 대로 음을 꺼내는걸 보게 된다. 방이는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놓고 간 금방망이를 주워가서 돌아와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된다.
  • 백대현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법요 . . . . 2회 일치
         유족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선공양(追善供養)을 법요라고 한다. 법사(法事), 불사(仏事)라고도 부른다. 불교 제사라고 할 수 있다.
         법요를 올림으로서 고인이 극락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고인을 공양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의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외적으로, 정토진종(浄土真宗)에서는 임종하는 순간에 극락왕생 한다고 생각하며 법요의 의미는 고인을 그리워하며, 불법에 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벚꽃놀이 . . . . 2회 일치
         현대의 벚꽃놀이는 벚꽃이 핀 공원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술과 음을 마시면서 노는 것이다. 휴대용 [[가라오케]] 기기를 쓰기도 한다. 벚꽃놀이로 유명한 장소에서는 벚꽃놀이를 할 자리를 잡기 위해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귀족 문화에 영향을 받은 사무라이 계급, 서민 계급에서도 벚꽃놀이가 벌어지게 됐다. [[에도 시대]]에는 서민들 역시 벚꽃놀이를 널리 즐기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길가, 하천부지, 공원, 학교 각지에 벚꽃을 심는 것이 유행하여 전국 각지에 벚꽃놀이를 즐기기 좋은 장소가 마련되었다.
  • 베스타 . . . . 2회 일치
         상위 여사제였던 그녀는 새로 들어온 여사제에게 성화를 돌보도록 맡겼으나, 새 여사제는 그만 불길을 꺼뜨리고 말았다. 사제들은 아이밀리아가 정절을 잃을 행동을 했는지 조사하게 되었는데, 아이밀리아는 제단에 손을 얹고 베스타 여신에게 자신이 30년 동안 성스러운 의무를 다했으니 기적을 일으켜 자신의 정절을 인정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의복의 일부를 찢어서 은 재에 집어던지자 커다란 불길이 솟아났다.
         ## 자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변현제 . . . . 2회 일치
         * [[2012년 10월]] 2012 핫스 GSL Season 4 Code A 24강
         * [[2012년 11월]] 2012 핫스 GSL Season 5 Code A 48강
  • 보루토/3화 . . . . 2회 일치
          * 가아라는 의해야 할 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마을의 라이벌들이라고 하지만 신키는 "다른 마을 따위 문제는..."이라며 자신을 보인다.
          * 시카마루는 새로운 서류와 함께 보루토의 1회전 돌파 소을 나루토에게 전한다.
  • 보루토/7화 . . . . 2회 일치
          쵸쥬로는 킨츠키가 "덩치가 큰 주제에 잽싸다"고 하는데 확실히 속도 면에서 킨츠키의 우위. 재빠른 검술로 순간에 쵸쥬로를 궁지에 빠뜨린다. 도끼로 히라메카레이를 쳐내고 왼쪽 어깨를 베어내는데, 킨츠키는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유인책에 지나지 않았다. 땅 속에서 쿠로츠치가 등장, 회심의 붕권을 먹인다.
          * 모모츠키는 킨츠키가 구속된 것도 확인한다. 사스케는 동료도 저 모양이라며 단념하라 하지만 모모츠키는 쉽게 포기할 셈이 아닌 듯 하다. 그는 나루토 부자를 바라보더니 나루토에게 "네 자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백안으로 보루토를 훑어 보더니 "재미있는 운명을 지녔다"는 뜻모를 말을 한다.
  • 부등교 . . . . 2회 일치
         [[학교]]에 가지 않는 것. 등교거부라고 한다.
         [[분류:학교]] [[분류:일본 풍속]]
  • 브레이니악 . . . . 2회 일치
         [[슈퍼맨]] 관련 [[빌런]]이며 [[렉스 루터]] 못지 않은 악연이다. 외계에서 온 [[천재]]이며 이에 어울리게 굉장한 지과 첨단장비를 활용.
         [[애니메이션]] [[슈퍼맨 TAS]]와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서도 등장했는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는 클립톤 행성의 멸망을 알리지 않고 그들이 멸망하게 방치했다는 설정이 생겼으며 이후 렉스 루터를 부려서 자기 몸을 만들게 했다. 이후 JLU에서 재등장했는데 이때 브레이니악은 정말 치밀하기 짝이 없는 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 브레이니악은 몸이 만들어지자 렉스를 공격했는데 이때 이 공격은 렉스를 죽이지 못했다. 애초에 그에게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 이때의 공격은 브레이니악의 일부를 렉스에게 옮기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이 일부는 렉스의 안에 잠복하게 된다. 그러면서 렉스라 크립토나이트 오용으로 얻은 암을 치유하고 괴력을 줬는데 렉스가 아마조를 기반으로 한 나노머신 로봇 몸에 의을 옮기는 때를 기다렸다가 그게 좌절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저스티스 리그의 눈을 피하는 동안 렉스에게 설득되어 이전에 지구를 침공한 외계의 병기를 흡수하고 렉스 루터와 융합되었다. 그러나 플래시의 활약에 의해 패배.
  • 브레이킹 배드 . . . . 2회 일치
         >- [[전미가 울었다]]! 말기 암에 걸린 고교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의 투병기를 다룬 감동의 인생극장.
         주인공. 평범한 고교 화학교사였으나 말기암에 걸렸다는 것이 밝혀진다. 죽어가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어 일확천금을 노리고,
  • 블랙 클로버/104화 . . . . 2회 일치
          * 그때 야미를 찾아다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나타난다. 역시 평소 습관대로 진탕 마시고 헤롱거리는 상태다. 그녀는 야미를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오다가, 그 옆에 있는 샬롯과 눈이 마주친다. 여자의 육감 탓일까? 두 여자는 무의 중에 상대를 연적으로 간주한다. 바네사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져선 안 된다"고 막연히 직감하고 샬롯은 "묘하게 야미한테 친하게 구는 여자"라며 질투한다.
          * 샬롯은 야미를 의해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탄한다. 자신이 뭘하고 있는 건지 한심해하던 그녀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어떤 "저주"에 관해 회상한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2회 일치
          * 국왕은 여러모로 모자란 아저씨로 특히 [[마법제]] 율리우스를 크게 의해 곁에 서지도 못하게 할 정도다.
          국왕은 당당한 걸음 걸이에 한 눈에 봐도 남을 내려다 보는 눈빛을 가진... 뭔가 모자라게 생긴 아저씨다. 별 건 없는데 오만한 낯짝이 기분 나쁜 아저씨다. 그의 이름은 "A 킬러 클로버 13세". 명실상부한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맞지만 어딘지 격이 떨어지고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마법제를 지나치게 의해서 그가 곁에 서있는 것도 불편해 한다. 하긴 키 차이가 머리 하나 정도로 나니 더욱 그럴 것이다.
  • 블랙 클로버/108화 . . . . 2회 일치
          * 새 단장의 매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단원들 꼬라지를 보니 푸에고레온이 어지간히 무능한 단장이었고 이런 녀석들을 남겨놓고 드러누웠으니 단장 실격이라고 무자비하게 비난한다. 게다가 그를 지칭하는 단어도 "멍청한 자, 바보" 따위니 그를 믿고 따르던 단원들과 특히 동생인 레오폴트는 참기 어려웠다. 결국 레오폴트가 제일 먼저 인내심이 바닥난다.
          *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보자"며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려다가 역시 잡힌다. 이런 으로 휘말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캐릭터성까지 의심할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2회 일치
          * 두 단장에겐 단원들과 같은 위기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미는 그저 "누님레온한테서 도망칠 수가 없으니 후딱 해버리자"는 정도의 귀찮음 때문에, 샬롯은 "술 기운도 깰 겸, 그리고 이정도도 못하면 여자의 이름이 운다"는 정도의 적당한 기분으로 거침없이 등반에 나선다. 야미는 분출과 함께 쏟아지는 화산바위를 가볍게 베어내고 샬롯은 가시덩쿨 마법을 몸에 둘러서 빠르게 이동한다.
          * 통찰력에선 조금 늦었지만 유노도 레오폴트의 방법을 따른다. 곧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바람의 마나로 마나스킨을 전개, 심지어 시원하고 쾌적하게 등반할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순간에 일행을 앞질러 가며 아스타에게 "내가 온천에서 뻗기 전에 올라와라"고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레오폴트도 아스타에게 먼저간다며 유노의 뒤를 쫓고 마론도 "샬롯과 온천에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마나스킨을 유지하며 아득바득 발을 옮긴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A팀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잭스는 무방비했고 아스타는 멍청했지만 미모사는 머리회전이 빠른 마법기사였다. 그녀가 A팀의 저격 전술에 대응책을 찾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 물창성마법 "마화의 이정표"로 일대의 지형과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한다. A팀의 위치도 한 눈에 드러났다. A팀의 크리스탈은 언덕 위. 그 옆에 저격수 둘이 있고 그 앞으로 약 600m 앞 나무 위에 한 명이 있다. 마화의 이정표에는 저격수 쪽에서 급격한 마력 팽창도 감지됐다. 합체마법을 쓰고 있다는 소리였다.
          * 미모사가 물마법으로 크리스탈을 감싸 보호하며 전진한다. 아스타는 앞장서서 날아오는 공격을 족족 떨어뜨린다. 잭스의 이탈로 수가 부족해 크리스탈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적을 공격하기에 어려운 B팀의 난점을 잘 극복한 전술이었다. 궁여지책에 가까웠지만 상당히 유효했다. 이제 B팀은 속도를 붙이기 시작, 시작지점을 벗어나 중간지대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2회 일치
          * 격류의 안쪽은 의외로 잔잔한 해역. 희귀한 동물의 보고다.
          * 경악하는 노엘, 아스타와 달리 매그너, 고슈, 락은 순간에 괴물을 작살낸다.
  • 블랙 클로버/60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이긴다면 마석도 주고 미녀와 미주, 맛난 음을 듬뿍 주겠다"는 꼬심발림에 넘어가 일동의 의욕이 샘솟는다.
          * 대결 시의 승패는 기절시키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쪽. 대전 방은 자유여서 동료를 찾아 팀을 짜도 좋고 도망만 다녀도 된다.
  • 블랙 클로버/63화 . . . . 2회 일치
          * 같은 방으로 락과 매그너도 순간에 박살내 버린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2회 일치
          * 키아토는 춤을 추며 무의의 트랜스 상태가 되는 요령이라고 가르쳐주는데, 아스타는 또 즉석에서 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 베토는 약자는 먹히고 그저 절망할 뿐이라고 도발하는데, 절망하면 "그 자(아스타) 보기 쪽팔려서 선배로서 들 낯이 없다."며 다시 일어선다.
  • 블랙 클로버/72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베토는 완전히 의을 놓고 있는게 아니었다.
          * 보고 있었던 대신관 영감은 "너무 강해서 흥이 어버렸다"며 카호노와 키아토를 돌보러 이동한다.
  • 블랙 클로버/75화 . . . . 2회 일치
          * 이때를 기회로 삼아 다이아몬드 왕국의 병력이 진격. 도시는 순간에 위기에 처한다.
          * 야미는 벤전스를 의하고 있는 듯 한데.
  • 블랙 클로버/76화 . . . . 2회 일치
          * 던전에서 마주친 적이 있던 로터스는 부장으로 참가 중인데, 윌리엄 벤전스가 상을 벗어난 마법을 준비하는 걸 보고 아군에게 경고하지만 무시된다.
          * 물의 뿌리같은 덩쿨이 일대를 뒤덮고 있는데.
  • 블랙 클로버/80화 . . . . 2회 일치
          * 아지트로 돌아온 이후 야미 스케히로가 고기를 쏴서 오랜만에 포한다.
          * 그리고 그리모어 수여 때의 일을 생각하며 "내가 진심으로 낙담한건 그때로 끝"이라고 다짐한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2회 일치
          * 강화된 라드로스의 마법은 아스타가 기를 감지해도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순간에 전세가 역전된다.
          * 아스타가 뒤따라 가봤지만 한발 늦었다. 강한 빛과 함께 샐러맨더의 흡수가 시작된다.거기서 내뿜어지는 강력한 힘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때의 강렬한 빛 때문인지 [[노엘 실버]]가 의을 되찾는다.
  • 블랙 클로버/98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는 라드로스에게 다가간다. [[노엘 실버]]는 방금 전 보여줬던 강함, 전투방이 도저히 평소 아스타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여긴다. 현재의 모습도 마치 악마와 같은게, 폭주해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라드로스는 다가오는 아스타에게 각오는 됐다며 죽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빙의가 풀리자 전투로 입은 상처가 일제히 고통을 호소한다. 아스타는 급히 회복을 요청하지만 동료들도 널부러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나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도 살아는 있지만 아직 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스타는 어쩔 수 없이 마녀의 숲으로 모두 데려가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2회 일치
          * 자신의 혈액마법으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 [[마녀왕]]. 그녀는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의을 빼앗긴 아스타는 마녀왕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 바깥으로 나간 그녀에겐 온갖 엉망진창인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검은 폭우 단원들이었다. 초면인 바네사에게 작업거는 [[핀랄 룰러케이트]], 무심해 보이는 [[고든 아그리파]], 음을 나눠주었던 [[챠미 퍼밋슨]]과 [[그레이(블랙 클로버)|그레이]], 언제나 티격태격하는 [[락 볼티어]], [[매그너 스윙]], [[고슈 아들레이]]. 그리고 아스타와 노엘.
  • 블리치/677화 . . . . 2회 일치
          * 우라하라 키스케의 만해는 "고쳐 만드는 능력". 일정한 영역 안에서 무엇이든 고치거나 갈라진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아스킨의 몸을 순간에 갈라버렸고 자신의 상처는 순간에 고쳤다. 마치 실로 봉합한 듯한 모양.
  • 빅맥 . . . . 2회 일치
         세계적으로 팔리는 음이다 보니 이 음을 가지고 통화 구매력이나 환율 지수를 평가하는 [[빅맥지수]]라는게 있다.
  • 빌리 블랭크스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2009년 6월에 오사카 시내에서 결혼과 피로연을 열었으며, 7월에 오사카 신사이바시에 트레이닝 스튜디오 빌리 브랭크스 인터내셔널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2009년 4월에 일본에 [[영주권]]을 신청했음을 밝혔다.
  • 산킨고타이 . . . . 2회 일치
         이전부터 사무라이들은 일종의 군역으로서, 중앙에 상경하여 귀인을 호위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교토대번역(京都大番役)이라고 하여 지방무사들이 교토에 상경하여 호위를 맡는 관습이 있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가마쿠라 대번역(鎌倉大番役)이라고 하여 가마쿠라에도 상경하도록 어성패목(御成敗式目,가마쿠라 시대의 무가법률)에 지정되어 있었으며, 교토에 상경하여 호위하는 임무도 무사들마다 균등하게 분배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일본에서 어느 정도 통일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반복되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서도 오사카에 각 영주들을 상경하여 주둔하고 가족을 인질로 두게 만들었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서 도쿠가와 막부가 열리고 에도 시대가 시작되자, 다이묘들은 에도에 처자를 두고 영지와 에도를 오가면서 생활하는 관행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무질서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에 폐해가 많아,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반포한 간에이령(寛永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의 제2조에 지정되어 공적인 제도가 되었다. 법령으로 정해진 까닭은 이전까지는 참근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아 오히려 다이묘들이 불편[* 일일이 참근할 것인지, 영지에 돌아갈 것인지를 막부에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하였기 때문에 1년 간격으로 하도록 명확하게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법령이 정해짐으로서 다이묘들이 막부에 '인사'를 오는 것이 명확하게 결정되어, 막부와 다이묘의 상하관계가 완성되었다.
  • 샬롯 링링 . . . . 2회 일치
         [[위대한 항로]]를 주름잡는 최강의 [[해적]]인 '''[[사황]]''' 중 한 명이자 [[빅 맘 해적단]]의 선장이다. 통칭 '''빅 맘'''.[* 그녀의 배에 써 있는 글씨에 따르면 Big Ma'am이 아니라 Big Mom이다. 전자는 마담, 후자는 마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나온 바로는 빅 맘 해적단의 선원들은 샬롯을 '''"마마"'''라고 부르고 있다. 원피스 그린에서는 BIG MOM이라고 써 있는데 610화에서 파파구의 설명에서는 배경에 BIG MAM이라고 써 있다. Mam은 마마(Mamma)의 준말이니 의미상의 차이는 없지만. 다른 표기가 작중 또는 공 설정집에 나왔다면 출처와 함께 [[추가바람]].] 생일은 [[2월 15일]].
         다만 이와는 반대로 '''부하를 최소한 한 명은 잡아먹었다.''' 그런데 이 부하들이라는 것이 인간이 아닌 과자로 된 병사들일 수 있다. 만화책에서는 651화에서 자세히 나오지 않았으나, TVA에서는 [wiki:"보빈" 과자로 만들어진 듯한 부하]가 빅 맘에게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빅 맘은 과자 같은 무생물을 사람처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인지도 모른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730화에서 빅맘의 배'''[[선수상]]이 노래를 불러서''' 이 무생물에 생명 부여 설이 강화되었다. 무엇보다도 빅 맘이 정말 [[wiki:"인" 사람을 잡아먹는]] 사악한 인물이었다면, 그 [[징베]]가 머리를 숙이고 산하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 단, 징베의 경우 [[사황]] 페이지에도 언급되었듯이 속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빅 맘 본인이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자일 필요는 없고 그냥 해적단의 간부 중 하나가 그런 능력자일 수도 있다.] 또한 오다가 제일 존경하는 작가이고 콜라보도 함께한 [[토리야마 아키라]] 의 [[드래곤볼]]에 나온 [[마인부우]]도 인간을 과자로 만들어 먹는 기술이 있어 여기서 따왔을수도 있다.
  • 서용주 . . . . 2회 일치
         || '''출신학교''' || 대해초-포철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동의대]] ||
  • 소명(가수) . . . . 2회 일치
         * [[1977년]] [[대구고등학교]] 졸업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전실업전문대학 동문]]
  • 소진은 . . . . 2회 일치
         '''소진은'''(蘇鎭殷, <small>일본 이름:</small> 伊蘇正峰, [[1892년]] [[1월 18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경찰 간부로,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 삼립정이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다시 관계로 돌아와 총독부 군수직을 지냈다. [[평안북도]] 선천군수(1937년 8월 6일), 의주군수(1941년 3월 31일 임명)를 역임했다. 1938년 8월 1일 당시에는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으며, 그밖에 쇼와 대례 기념장(1928년 11월 16일), 훈8등 서보장(1930년 2월 12일), 훈7등 서보장(1933년 9월 4일), 훈6등 서보장(1935년 9월 9일), 훈6등 단광욱일장(1940년 4월 29일), 훈5등 서보장(1941년 8월 9일), 일본적십자사 유공장(1944년 12월) 등을 받았다. 특히 훈6등 단광욱일장은 선천군수 재직 시절 [[중일 전쟁]] 당시에 군대의 숙영 및 급, 군용물자의 조달, 군대 군인 및 파견 가족의 후원 및 위로, 국채 소화 및 저축 장려,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 국방 사상 보급 및 선전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여 받은 것이었다.
  • 솔 인빅투스 . . . . 2회 일치
         [[로마 제국]]에서 숭배되었던 [[태양신]].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왕국]]으로 3분 되었던 로마 제국--로마 삼국지--을 재통일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시기에 공적으로 숭배가 강화되었다.
         ## 자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송지효 . . . . 2회 일치
         ! 연도 !! 시상 !! 부문 !! 작품 !! 결과
         *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 학교문화 바꾸기 온라인 홍보대사
  • 쉬르스트레밍 . . . . 2회 일치
         [[스웨덴]]의 요리. [[발효품]]. [[염장]]한 [[청어]]를 [[통조림]]으로 만든 것이다.
         세계 최악의 냄새를 가진 품으로 악명이 높다. 또 통조림이 밀폐된 상태로 발효가 되기 때문에 내부에서 [[가스]]가 발생해서 통조림 깡통이 볼록해진 상태가 되기 쉽다. 그래서 '''터지기도 쉽다.''' 냄새나는데 터지기까지 하면 정말로 최악(…).
  • 슈퍼걸(드라마) . . . . 2회 일치
         별로 곤충 같지는 않은데 왠지 곤충으로 언급된다. 위장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형으로 변신하는 것 이외에는 크게 언급이 없다. 입이 마치 [[프레데터]] 마냥 벌어진다. 인간과 유전구조가 달라서, [[DDT]]를 용으로 하는 특성이 있다. 지구에서는 DDT가 유일하게 먹을 만한 것인데 DDT가 금지되는 바람에 료를 구하기 어렵게 된 나름 불쌍한 녀석(...) 후각이 뛰어나고, 손바닥에서 침 같은 것을 발사하는 능력이 있다. 벽을 기어다니고 점프를 하고 차 벽 정도는 가볍게 찢어낼 수 있지만 그리 강한 편은 아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2회 일치
         그랜트는 카라가 바로 오지 않자 고함을 지르는데, 카라는 왜 그렇게 못되게 구냐고 분노를 퍼붓는다. 그랜트는 갑자기 어디로 가자고 카라를 끌고 간다. 알렉스는 레드 토네이도의 팔을 맥스웰 로드에게 가져와서, 찾는데 협력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맥스웰은 알렉스의 요청을 거절한다. 제임스는 루시, 레인 장군과 사를 가진다. 레인 장군은 지미를 파파라치라고 비하하며 딸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대라고 깍아내린다.
         그랜트는 카라를 바에 데리고 온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분노를 조절하고 풀어내는걸 알아내고, 정말로 화나는게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조언을 해준다. 제임스와 루시, 레인 장군이 저녁 사 자리에서 나오는데 레드 토네이도가 나타난다. 루시는 레드 토네이도의 공격에 날려가고, 레인 장군은 중지를 명령하지만 레드 토네이도는 듣지 않고 공격을 하다가 제임스의 호출을 받고 날아온 슈퍼걸과 대결하게 된다.
  • 스낵 . . . . 2회 일치
         [[일본]]의 유흥업소. 본래는 '스낵바'라고 하며, 경(스낵)을 제공하는 바를 뜻한다. 여성 점장을 마마(ママ)라고 부르른다.
         안주로 하는 경양과 주류를 제공한다. 시간 단위로 요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 스위스 방공호 . . . . 2회 일치
         핵전쟁에 대비한 시설이므로, 대규모 방공호에는 방사능 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시설, 취사 시설, 대기-수 정화 장치, 숙박용 침대, 그 밖에 침대와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갖추어져 있다. 좀 특이한 시설로는 비상시에 화장실 대용으로 쓰기 위한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양동이, 그리고 전기와 석유의 공급이 끊겼을 때 교통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전거'''까지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08/2007080800710.html 참조]]
         1960년대 건설되었다. 지하 대수층에서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 받을 수 있으며, 호텔 수준의 숙박 시설과 사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 스키야키 . . . . 2회 일치
         [[메이지 시대]] 이후 육이 해금되면서, 도쿄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현재와 같은 스키야키가 퍼졌다. '서민의 음'으로서 여겨졌다.
  • 스틸오션/미국 . . . . 2회 일치
         >1930년대 발생한 경제 위기는 미국의 조선 공업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1934의 뉴딜 계획에 따라, 신형 디젤-전기 고속 잠수함인 P급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기술의 발전에더 불구하고 P급 잠수함은 뇌격 능력이 부족했다. 훗날 설계된 많은 잠수함이 P급의 설계에 기반을 두고있다. 10척의 P급 잠수함이 세개의 배치(batch)를 거쳐 건조되었다. 각각의 배치는 이전 배치보다 근소한 성능 향상을 보였다.
         >오마하급 순양함은 고속 성능과 적 구축함을 격퇴하기 위한 대구경 함포를 가진 순양함이었다. 구 함선답게 오마하급 함선들은 2선에 보내졌다. 10척의 오마하급 중 격침된 함선은 없다. 밀워키(Milwaukee)는 소련 해군에 대여되었다.
  • 식물인간 . . . . 2회 일치
         SF소설에 나오는, 물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의이 없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경 기능만 움직이는 상태의 환자.
  • 신수항 (배우) . . . . 2회 일치
         * [[한양대학교]] 섬유디자인
         * 《[[샤를 합시다 3]]》 (2018년, tvN)
  • 신쥬 . . . . 2회 일치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자는 뜻으로 함께 죽는다는 것인데, 개념을 잘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대부분 불륜이라던가 근친상간, 신분차(가난한 무사와 기녀라던가...) 등으로 인한 자살이 많았고, 개중엔 짝사랑하던 상대를 죽인 다음 자기도 죽는 의 막장스런 행패도 종종 일어났다.
         막부에서는 이를 엄금하여, 신쥬를 하여 죽은 이는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였고, 자살 미수자는 처형하거나 또는 천민으로 격하시키고 사적인 제재를 묵인하는 등의 방으로 처벌하였다.
  • 신현준(군인) . . . . 2회 일치
         부모를 따라 일찍 [[만주]]로 이주하여 [[하얼빈]]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이 [[만주]]에 세운 봉천군관학교에 [[1936년]] 4월 [[입학]]하였다. [[졸업]]한 후에는 [[만주군]] [[대위]]로 근무했으며, 이때 [[박정희]]보다 상관으로 같은 부대에 있었다. 그는 [[박정희]]를 비롯하여, [[정일권]], [[백선엽]], [[이한림]], [[김석범]], [[원용덕]], [[김창룡]] 등과 함께 국군 내의 대표적인 만주군 인맥이었다.
  • 실업팀 . . . . 2회 일치
         실업팀의 운영 실태는 모 회사나 운영단체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일반 종업원과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잔업 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만 연습과 시합을 하며 어디까지나 부가 활동으로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상 실업팀 활동이 주가 되며 활동이 거의 프로 스포츠 [[클럽팀]]과 같은 수준으로, 형만 실업팀일 뿐이지 종업원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만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의 기준에 따라 준프로 내지는 세미프로로 규정되기도 하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다.[* 축구의 경우, KFA에서는 세미프로로 규정된 실업팀들은 대학팀 같은 완전한 아마추어 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FA컵]]에서 1라운드 예선을 면제받고 2라운드부터 참가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근대 팀 스포츠는 노동자의 여가 생활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반대로 개인 스포츠는 귀족적인 여가 생활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은 주로 소속된 공장, 회사 단위로 스포츠 클럽을 조직하였는데, 이런 형의 스포츠 클럽이 훗날 실업팀의 모체가 되었다. 공장 단위로 조직된 것은 서로 스케쥴이 맞고 연락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 쌍둥이 . . . . 2회 일치
         한 어머니의 탯속에서 두 명 이상의 아이가 한꺼번에 태어나면 그 아이들을 쌍둥이라고 부른다. 세 명 이상이 태어나면 '세 쌍둥이' 하는 으로 따로 숫자를 덧붙인다. 수정란이 분화 과정에서 각각의 개체로 분열하여 태아가 된 것을 일란성 쌍둥이, 두 개의 난자가 각각 수정하여 태아가 된 것을 이란성 쌍둥이라고 한다.
         지역마다 쌍둥이에 대한 취급은 조금씩 달랐는데, 대체로 농경사회에서는 사람 머릿수가 곧 노동력이었기에 쌍둥이에 대한 인이 대체로 나쁘지 않았으나, 예외로 일본의 경우에는 쌍둥이를 '짐승이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 것과 같다'고 하여 터부시하기도 했다.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2회 일치
         쿠치노츠무라 마을(口之津村)에 살던 남만화가 야마다 우에몬사쿠(山田右衛門作)가 그렸다. 그는 아마쿠사에 와있던 이탈리아 출신 신부에게 서양화를 그리는 법을 배웠으며, 시진중기는 일본인이 그렸음에도 서양으로 그려져 있다.
         [[십자군]]은 수 세기에 걸쳐서 여러 차례, 여러 형으로 이루어진 만큼, '십자군 군기'로 분류할 수 있는 깃발은 그 종류도, 형태도 매우 다양했을 것이다. 애초에 '특정한 깃발'이라고 볼 수 없다.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작중에서 아멜리아의 행동 양은 세일룬의 왕녀로서 냉정한 정치력과 판단력, 그리고 무녀로서 신탁을 얻어서 행동하거나 하는 신비한 모습이 줄기가 된다. 또 원작의 아멜리아는 리나와 동갑으로, 거기에 걸맞게 리나와 대등한 수준으로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 아이네이아스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아이네이아스와 같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비정하는 신화는 그리스 계 민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르고스]]에서 쫓겨난 [[디오메데스]]는 다우니아의 왕 다우누스의 딸과 결혼하여 그 땅을 이어받아 브린디시 등의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하며[* 디오메데스는 똑같이 이탈리아에 표류한 아이네이아스와 대적하던 에트루리아의 투르누스에게 동맹을 요구받지만, 디오메데스는 아이네이아스 개인에게는 원한이 없다는 이유 혹은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려워 거절하였다고 한다.], 크레타의 지배자였던 이드메니우스 역시 크레타에서 쫓겨나 이탈리아 남부로 도망쳤고, 살라미스 섬의 테우크로스는 키프로스로 떠나[* 테우크로스는 살라미스의 영웅 [[아이아스]]의 가족이었지만, 아이아스의 자살을 말리지 않고 복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아스의 아버지 테라몬 왕에게 미움을 받았다.] 살라미스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지고 있었던 필로크테이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에, [[트로이의 목마]]를 만든 에페이오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시온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무렵 이탈리아 그리스 계 도시에서 있었던 유행에 로마 역시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2회 일치
         >과거 220 만 광년 너머 안드로메다 성운. 하나의 별에서 이제 막 결혼이 올려지고 있었다.
         안드로메다 성운의 혹성 아스투리아스(惑星アストゥリアス)에 위치하는 코스모라리아 왕가(コスモラリア王家)의 황태자 이타카(イタカ)는 왕으로 즉위하여 아스토라르타 3세(アストラルタ3世)를 칭한다. 그리고 아오도야 왕가(アヨドーヤ王家)의 리리아(リリア) 공주와 결혼을 올린다.
  • 애니 일본어 . . . . 2회 일치
         소위 '애니 목소리', 우리나라 으로 말하면 '성우 목소리'. 애니메이션에서 성우 목소리는 전체적으로 높은 소리를 내며, 음의 높낮이가 크다. 또 여캐의 경우는 귀여움을 강조하려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보통 대학교의 일본어과의 경우 일상물이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그럭저럭 추천하고 있다.
  • 양시칠리아 왕국 . . . . 2회 일치
         양시칠리아 왕국은 남부 이탈리아 지방(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섬 지방(시칠리아 왕국)을 겸하였다는 칭호이다. 빈 회의 이후에 성립된 부르봉 왕조의 양 시칠리아 왕국은 공적으로 1816년에서 1860년 까지 유지된 것으로 본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나폴리 지역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에 정복되고, 부르봉 왕조는 시칠리아만을 유지하였다. [[빈 회의]] 이후에 두 지역은 부르봉 왕조의 통치 하에 들어갔으며, 1816년 12월 '양 시칠리아 왕국'으로 공적으로 명명되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2회 일치
         === 민지인 ===
          한때 암살단의 멘토였던 노인. 템플기사단이 민지 암살단을 풍비박산내면서 혼자 남게 되었다. 암살단이 되기 위해 찾아온 라둔하게둔을 내쫓으나, 라둔하게둔이 계속 찾아오고 아킬레스의 집을 습격한 강도에 대항해 대등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까지 보이자 그를 훈련시키고 암살단에 입단시킨다.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2회 일치
          * 스 멘즈 모리스(Six Men's Morris)
         영입한 암살단원들을 민지 각지로 보내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기능. 성공하면 여러가지 보상을 받고 임무를 보냈던 암살단원의 경험치도 오른다. 실패하면 임무를 보낸 암살단원들이 부상당해 한동안 뭔가를 시킬 수 없게된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2회 일치
          오시아 방공군[* 사실상 공군. 오시아의 군대 정 명칭에는 Defence가 붙어있다.] 제8항공사단 3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YF-23]]과 [[F-16|F-16XL]]로 이루어진 위자드 편대의 편대장.
          오시아 방공군[* 사실상 공군. 오시아의 군대 정 명칭에는 Defence가 붙어있다.] 제8항공사단 3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F-15|F-15S/MTD]]로 이루어진 소서러 편대의 편대장. 적에게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자.
  • 역행 . . . . 2회 일치
         역행 장르는 과거로 돌아가지만, 육체나 조건은 그대로이며 의만이 과거로 돌아간다. 역행 장르에서 주인공은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과거를 새롭게 살아가게 된다.
         대개 미래의 지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최적의 행동을 취하게 되며, 이러한 어드벤티지로 주인공은 대활약을 하거나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구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게 된다. 하지만 역행의 결과가 언제나 순풍만범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작품에서는 역행 탓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 오봉 . . . . 2회 일치
         불교의 우란분재(盂蘭盆齋) 의 기원 설화는 이러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목련존자는 신통력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아귀도에 떨어져 굶주림에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석가모니에게 어떻게 해면 좋은지 물엇다. 석가모니는 여러가지 음, 과일, 초를 준비하여 스님들의 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에 공양을 하면 아귀도에 떨어진 자들 역시 음을 먹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대로 행하자 목련존자의 어머니 역시 아귀도에서 구제되었다.
  • 오석산 . . . . 2회 일치
         불로장수, 건강증진에 효험이 있는 약이라고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복용하면 발얼을 하여, 열을 발신시키기 위해서 돌아다니며 '행산'을 할 필요가 있었다. 차가운 물을 먹어서 열을 히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를 한산(寒食散)이라고 했다.
  • 와타나베 나오미 . . . . 2회 일치
         1987년 10월 23일 생으로, 신장 157센티미터에 체중 95킬로그램. 혈액형은 [[A형]]으로, 출신지는 [[이바라키 현]]이다. 취미는 먹기, 흉내, 노래, 춤추기, 중국어. NSC 도쿄 학교 12기생이다.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요시노야 . . . . 2회 일치
         [[일본]]의 [[규동]] 체인점. 전국으로 전개하고 있는 대규모 체인점이다. 주로 규동 등의 정을 판매한다.
         [[분류:일본 음점]]
  • 요코타 메구미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1977년 11월 니가타 현의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실종됐다.
  • 원피스/823화 . . . . 2회 일치
          * 일행이 사 문제로 소란스러운 사이, 페드로는 신문을 보는데
          * 난데없는 혁명군 본부 괴멸 소. 특히 혁명군 서열 2위 사보의 동생 스테리가 등장해서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 원피스/825화 . . . . 2회 일치
          * 한편 루피의 실책으로 량을 날려먹은 써니호 일행은 아사직전.
          * 나머지 인원은 나미가 상디의 메모를 토대로 안전하게 조리해서 포--누가 코마츠 좀 데려와라--
  • 원피스/827화 . . . . 2회 일치
          * 한편 빅맘은 다가오는 결혼을 기대하며 뮤지컬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그저 결혼에 정신이 팔려 있는듯 했는데, "밀집모자 일행"이 영역에 들어온걸 이미 알고 있었다!
  • 원피스/830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부모자의 잔을 나눠놓고 돌려받는건 수치"라며 자신은 징베라는 큰 전력을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 페드로는 이곳 지리에 대해서 해박한 지을 가지고 있고 일행에게 많은 조언을 한다.
  • 원피스/834화 . . . . 2회 일치
          * 징베가 빅맘에게 탈퇴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 뒤에 따라온 "대가"가 두려워서 취소했다는 소이 돌고 있기 때문.
          * 그녀는 "모든 인종이 가족이 되어 같은 눈높이로 탁에 둘러앉는 것"--[[이거"토리코"]] 아냐?--
  • 원피스/836화 . . . . 2회 일치
          * 크래커는 팔을 두드리면 팔이 늘어나는 묘한 기술을 쓰는데 이런 으로 팔을 여덟개까지 늘린다.
          * 로라가 빅맘의 딸임이 공적으로 확인.
  • 원피스/843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나미에게 빅맘의 자들 조차 가지지 못하는 비브르 카드를 어떻게 손에 넣었냐고 묻는데 나미는 "그만큼 중요한 물건인가 보네"하며 입맛을 다신다.
          * 루피는 상디가 결혼을 올리면 빅맘의 동료가 되는 거라고 말하고 나미는 오늘 빈스모크가가 입성할 거라고 말한다.
  • 원피스/865화 . . . . 2회 일치
          루피를 저지하러 가는 카타쿠리는 빈스모크 일가를 포위한 형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빨리 그들을 처치하라고 당부한다. 페로스페로는 "알고 있다"고 대답하나 "미래를 보는 남자는 참 바쁘다"고 빈정거릴 뿐 곧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잡은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게 더 즐거운가 보다. [[빈스모크 저지]]가 하다못해 레이드 슈트라도 있었더라면, 하고 통탄한다. 페로스페로는 "어린 아들 결혼에 무기 같은걸 가져오는 거냐"고 또다시 빈정댄다.
          * 빅맘이 패왕색 패기를 섞여 날리는 괴성은 홀 케이크 성을 무너뜨릴 기세다. 게다가 잠깐 나는 소리가 아니라 사이렌처럼 길게 이어지는 비명이었다. 하객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빅맘 해적단과 샬롯가의 자들도 귀를 부여잡은 채 쓰러진다.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루피는 너무 가까워서 그런지 귀마개를 깜빡해서 그런지 엄청난 타격을 받으며 나뒹군다. 강화인간 빈스모크 일가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공격이었지만 샬롯가 형제들이 죄다 쓰러져 버려서 목숨 만은 부지하게 됐다.
  • 원피스/867화 . . . . 2회 일치
          * 배고픔에 눈이 뒤집혀 거인족 마을을 파괴한 [[샬롯 링링]]. 동지제의 기념음 "셈라"를 찾으며 폭주한다. 도저히 아이의 짓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만행에 엘바프의 웃어른 폭포수염 [[요를]]이 진노한다. 그는 링링을 더이상 아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아이의 탈을 쓴 악귀"라고 욕하며 처단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거인족 전사를 여럿 해치운 링링에게 노쇄한 그의 공격이 먹힐리 없었다. 요를이 내리치는 검을 간단하게 부러뜨린 링링은 그의 긴 수염을 잡아 내동댕이 쳐버린다.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피를 토하는 요를. 링링의 보호자 [[마더 카르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 링링은 진심으로 행복했다. 인생 최고의 생일이었다. 너무 기뻐서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정신없이 눈 앞의 음을 먹어치웠다.
  • 원피스/877화 . . . . 2회 일치
          * 징베는 브룩과 쵸파의 상태를 확인하며 닻을 끌어올렸다. 배가 무사히 빠져나가도 그 둘이 죽는다면 안 될 말이었다. 하지만 징베가 아무리 불러봐도 이미 사탕에 묶인 둘이 소리를 내는건 불가능했다. 그때 징베는 수평선에 빅맘의 군함이 몰려드는 걸 발견하고 첩첩산중이라고 탄했다. 쿠 드 버스트는 아직도 준비가 안 끝났다. 나미 말고는 아무도 작동법을 모르는 게 문제였다. 그녀는 사용법은 알아도 콜라 세 통을 장비시키는 데도 애를 먹고 있었다.
          * 카타쿠리와 격전을 펼치는 루피. 루피가 맞고 쓰러지면서 바닥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배의 상태가 이상했다. 사탕이 배를 잠하고 있었다. 페로스페로의 "캔디 웨이브". 나미가 확인했을 땐 이미 코팅이 상당히 진행돼서 쿠 드 버스트를 쓸 수도 없을 정도였다. 페로스페로는 어느새 배에서 내려 해안가에 있었다. 그는 발이 묶인 채 빅맘이 코 앞까지 닥쳐온 써니호의 상황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캐럿이 해안가의 그를 발견하고 아우성쳤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퇴양난. 빅맘에게 뭉개지는게 먼저인가 군함의 포격에 삼켜지는게 먼저인가? 그리고 일행에겐 페로스페로가 몰랐던 제 3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 원피스/879화 . . . . 2회 일치
          [[몽키 D. 루피]]를 완전히 가지고 노는 중. 부하들이 일기토를 구경하는 중인데 "삼장성 최강은 카타쿠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루피가 손도 발도 못 써보고 발리는 중. 루피가 사용하는 기술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더 강하게 어레인지해서 되돌려주고 있다. 자기입으로 "고무가 되는게 내가 안 될릭 없다"고 주장 중. 루피가 레드호크 개틀링을 쓰면 자신은 팔을 늘려서 천수관음같은 모습으로 막아내고 그 많은 팔로 러쉬를 가해 되갚아주는 으로 싸우고 있다. 견문색 패기로 루피의 움직임을 완전히 읽고 있어서 루피가 "체"로 모습을 감춰도 전혀 소용이 없다. 결국 루피의 필살기격인 엘리펀트 건까지 더 크고 아름답게 배껴서 밟아버린다.
          츤데레 증상이 갈수록 심해져서 상디랑 같이 앉아있지도 못하게 됐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상디와 앉아 있으면 "부부 사이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하고 있다. 상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사악한 얼굴과 뿅간 얼굴을 오가며 바쁜 츤데레 활동에 여념이 없다. 양탄자 밑에 몸을 말고 숨어있는 중. 이동 중에 시폰이 밝히기론 로라가 사라진 뒤 초콜릿 대신 자리가 비었고 푸딩이 후임이 돼야 했지만 푸딩의 의사로 무산되었음이 밝혀진다. 푸딩은 로라야 말로 진짜 초콜릿 대신 자격이 있고 언젠가는 돌아올 거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
  • 원피스/886화 . . . . 2회 일치
          * 오븐은 진심으로 시폰을 처단하려 드는데 보다못한 "파운드"가 달려들어 오븐을 막으려 든다. 시폰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순간 어리둥절하는데. 모두의 이목이 파운드에게 몰린 사이, 상디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동, 마치 파운드가 후려친 것처럼 꾸며 오븐을 날려버리고 시폰을 구한다. 오븐은 잠시 어리둥절해하지만 "파운드 이외 누군가가 공격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인한다.
          * 다시 일어선 오븐은 곧바로 일행을 추격해 재료를 옮기던 마차에 올라탄다. 시폰을 다시 사로잡았을 때, 마침 전보벌레가 울리는데 파이어탱크 해적단의 [[카포네 갱 벳지]]가 카카오섬으로 가고 있다는 소이다. 아내를 버릴 수 없었던 벳지는 결국 카카오섬으로 시폰을 마중하러 온 것. 오븐은 곧바로 벳지의 배에 연락해서 시폰을 인질로 잡고 카카오섬 항구에 정박할 것을 명령한다. 시폰은 자기 때문에 "진짜 가족"을 희생시킬 수 없고 꼭 살아남아 언젠가 복수해달라고 외치지만 벳지는 끝내 상륙을 받아들인다.
  • 유기농 . . . . 2회 일치
         [[화학비료]],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되는 농축산물을 뜻한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기술을 유기농 농법,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된 생산물은 유기농 품이라고 한다. 다 싸잡아서 '유기농'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 한국에서 유기농 제품은 (1) 3년 이상(다년생작물, 그외 작물은 2년) 화학비료/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논/밭에서 재배되어야 함 (2) 농수산품부에서 인정한 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아야 함 이라는 두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http://hyunsoolim.com/eco-friendly/holes-of-organic-food/ 참조]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2회 일치
         |학력 = [[주쿄대학교]] 대학원
         고교 시대부터 한국 대표 선수로 활약,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10위),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 하계 애틀란다 올림픽]](5위)에서도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1991년부터 남자하키 일본 리그 '表示灯'(현재의 나고야 프레이터(NAGOYA FRATER))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이 팀 감독에 취임했다.1996년에 일본 [[주쿄대학교]] 대학원 졸업을 하였고, 1996~2001년 일본 남자 하키 대표팀 코치, 2006~2007년 [[덴리 대학]] 여자 하키부 감독, 2006~2008년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2008년부터 여자 하키 일본 리그의 '코카콜라 웨스트' 감독을 맡았다. 2011년에는 같은해 현재 아시아 10명 밖에 없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코치 면허를 취득 했으며 2016년에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Coach Educator 자격과 함께 [아시아 하키연맹] 코칭 판넬에서 코치를 위한 코치 강습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10월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됐다. 2016년부터 경상북도 체육회 여자하키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 육홍균 . . . . 2회 일치
         1900년 [[경상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 대학 문과를 수료하였다.
  • 윤휘 . . . . 2회 일치
         *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청주시, 《청주읍지》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03)
  • 윤흔 . . . . 2회 일치
         묘비는 [[1640년]](인조 18)에 세워졌으며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이 비문을 짓고, 전서(篆書)의 대가였던 [[신익성]](申翊聖)이 글씨를 썼다. 그의 7대손이 [[윤웅렬]], [[윤영렬]] 형제였고, 8대손은 독립운동가 겸 사상가 좌옹 [[윤치호]]였다. 9대손은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의 대통령|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과 [[서울대학교]]의 부총장과 [[서울대학교의 총장|총장]]을 지낸 [[윤일선]]이었다.
  • 은혼/579화 . . . . 2회 일치
         * 우미보즈는 음을 전폐하고 12일이나 찾아 나선다. 보다 못한 오로치가 숲속으로 인도하여 드디어 코우카를 찾아낸다
         * 코우카가 하고 있는 머리장은 가구라의 것과 같다. 유품인 듯.
  • 은혼/586화 . . . . 2회 일치
          * 카무이는 의이 가물해지면서 "아직도 버리지 못했는가"라고 독백하는데
          * 일반적인 야토에게선 볼 수 없는, 우미보즈와 코우카의 자이기에 가진 재능인 듯
  • 은혼/601화 . . . . 2회 일치
          * 신파치와 가구라는 하루빨리 우츠로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지만 그들의 리더는 은혼 실사화 소에 정신이 팔려있다.
          * 점프에 실린 은혼 실사화 소에 경악 중
  • 은혼/603화 . . . . 2회 일치
          * 적과 아군 모두를 소모하는 우츠로의 방에 치를 떠는 해결사 일행.
          *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그저 산제물을 바치는 의이다."
  • 은혼/606화 . . . . 2회 일치
          * 아무튼 봉인을 해제한 곤도는 순간에 건물 위로 뛰어오르고 해방군의 공격을 요리조리 나비처럼 피해 다니는 등 엄청나게 강하다.
          * 니코틴 해주란 금연으로 폐활량이 늘어나고 사가 더욱 맛있어지는 히지카타의 새로운 힘이다.
  • 은혼/609화 . . . . 2회 일치
         지난 번 초중대발표로 실사화, 애니메이션4기 등을 발표했는데 이번 주도 중대발표가 있었다. 일본의 의류업체 earth와 콜라보 소.
         가구라풍 머리장. 2390엔
  • 은혼/620화 . . . . 2회 일치
          * 츠쿠요는 [[사카타 긴토키]]에 애정이 있는 걸로 공 인증.
          불시의 기습을 받은 큐베는 의을 잃고 쓰러진다.
  • 은혼/621화 . . . . 2회 일치
          * 그때 뜬금없이 [[쿠로고마 카츠오]]가 팔자에도 없는 안경을 쓰고 나타난다. 그는 겐가이포는 자신과 흙탕쥐파 야쿠자들이 만든 거라 주장한다. 그는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어떻게 만든 건지 말해주라고 부하들을 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나 부하들이나 일자무한 인생이라 "덧셈 뺄셈으로 만들었다"는 황당한 대답 밖엔 나오지 않는다. 카츠오는 그걸 한심해하지만 어차피도 그도 도찐개찐이다.
          * 소타츠는 그것을 보며 이런 으로 나온다면 모두를 몰살할 거라고 위협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다.
  • 은혼/624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사카타 긴토키]]와 협력해 순간에 상황을 반전, 신라 부대를 뿌리치고 역으로 베어버린다. 그와동시에 긴토키는 소타츠를 처리.
          * 이 개판을 지켜보던 긴토키는 상인이나 된 것처럼 "해방군을 몰아내도 꼬라지가 이래서야 마을은 평화롭지 못하겠다"고 입바른 소릴한다. 지로쵸는 자신이 죽으면 이 마을이 얌전해진다는 말이냐며 비웃는다.
  • 은혼/636화 . . . . 2회 일치
          * "진자 야토"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노사에 대항해 그 야토를 수천년 동안 지켜봐온 어머니 [[쿄우카]]의 피를 가지고 있다 응수하는 [[카무이(은혼)|카무이]]. 카무이가 노사를 막는 동안 쿄우카의 피를 이은 또다른 자 [[가구라]]가 노사의 뒤를 노린다. 가구라가 노사의 머리를, 카무이가 고간을 걷어차는데.
          *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도 이 바보남매는 노사는 재쳐놓고 서로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고 있다. 실수인데 이렇게까지 하냐는 가구라와 발목이나 잡는다고 디스하는 카무이. 서로 "죽거나 물러나라"며 치열한 접전으로 치닫는다. 부관인 아부토만 속이 터지는 상황. 이 한심한 작태에 그렇게 혈통드립을 쳤던 노사 조차도 "너무 오래된 혈통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문제의을 가지게 한다.
  • 은혼/637화 . . . . 2회 일치
          * 특수한 기공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노사. 그에겐 "진짜 야토의 피"를 보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와 [[쿄우카]]의 자 [[가구라]]와 [[카무이(은혼)|카무이]]가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쓰러진 채로 자신의 혈통을 가지고도 저 둘만큼은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남매의 눈에는 자신 따위는 들지도 못했으며 눈 앞의 적이 아닌, 더 먼 곳의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전사로서의 수명도 남자로서의 수명도 끝장이 나고 만다. 마지막까지 꽂꽂해던 그의 금수슬이 수그러들면서 영영 ED의 길로 접어들어 버린다. 부하들은 그의 금구슬을 보고 전장의 전설이 단지 애송이들의 손에 끝장났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구라만이 이 중에선 유일하게 확인 방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 은혼/646화 . . . . 2회 일치
          * 어떻게 보면 그저 동맹일 뿐인 사루가쿠가 이렇게까지 헌신한 건 이상한 일이다. 그건 어떤 약속 때문이었다. 바토우. 죽어간 해적들. 그들은 죽더라도 누가 뼈라도 주워줄 이도 없는 인생들이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는다면, 살아남은 쪽이 그 뼈 위에 적들의 두개골을 장해 주기로. 그게 해적의 긍지였다. 사루가쿠가 여기에 있는건 그 긍지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 통로 저편에서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그 정체는 통신기를 통해 [[한카이]]가 알렸다. 히노카구츠치의 파괴. 드디어 이루어졌다. 하지만 희소 만은 아니다. 히노카구츠치 파괴는 완전하지 못했고 적의 다음 행동은 계속된다. 다케치의 책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필요할 때 할 일을 하는 남자다. 그는 선내에 남은 잔존병력을 최대한 긁어 모으게 했다. 적은 틀림없이 아메노토리후네를 지구에 격돌시키고 자신들은 탈출하려 할 것. 그렇다면 결전의 장소는 이미 정해진 셈이다. 그는 사루가쿠에게 그 장소로 모두를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 은혼/648화 . . . . 2회 일치
          엔쇼는 의이 남아있었다. 그는 몸의 고통따윈 잊은 것처럼 노부노부의 권유를 조소했다. 거기에 반박하는데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오래 전에 한 번 떠올린 말이었고, 이미 한 번 했던 말이었다. 이젠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했던 말.
          싸움은 끝났다. 신스케의 안에서는 그랬다. 그는 엔쇼와 자신을 "우리"로 묶었다. "우리들"에게는 죽는 것도 안일지 모른다. 자신도 엔쇼와 같다고 말한 신스케는 자신은 셀 수도 없는 죄로 얼룩져 있고 그렇기에 오히려 꼴사납게라도 살아가는 거라고 말했다.
  • 의상 (신라) . . . . 2회 일치
         [[당나라]]에 체류 중 그의 설법에 참석하던 여성 중 그를 사모하는 선묘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의상이 신라로 귀국하던 날, 선묘의 집에 찾아갔지만, 선묘가 집을 비워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의상의 귀국 소을 접한 이 선묘는 자신이 죽어 그를 지켜주겠다며 황해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후에 의상이 [[영주 봉황산]]에 산사를 지을 때, 지역 주민들이 와서 집단으로 들고 일어서자 어느 날 사람 수백 명의 머리를 덮고도 남을 크기의 바위가 공중에 떠다니면서 주민들을 따라다녔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해산하였고, 의상은 사찰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 [[범어사]]의 전설에 따르면, [[흥덕왕]] 때에 왜병이 내침한다는 소을 듣고 [[금정산]](金井山)에 빌어서 미연에 방지하였다고 하나 근거 있는 것은 아니다.<ref name="글로벌-의상"/>
  • 이국철 . . . . 2회 일치
         * [[대봉초등학교]]
         * [[국립철도고등학교]]
  • 이노센트 투어 . . . . 2회 일치
         기종은 [[PC98]]로 최초 발매하였다가 후에 IBM PC로 컨버전되었으며, 이에 따라 사운드 블래스터를 정 지원하게 되면서 음악의 질도 상당히 좋아지게 되었다.
         게임의 진행방법은 여타 보드 게임과 마찬가지로 턴이 돌아오면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에 의거해 행동을 결정하는 방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주사위 대신 "카드 뽑기"에 나온 결과에 따라 행동을 정하고 "결승점"에 자신의 캐릭터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이병후 . . . . 2회 일치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1957년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58년 12월 17일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야간에만 개표를 했던 대구병구 올빼미 개표사건, 팔공산에서 생포한 대남 간첩사건 등에서 배석판사로 심리하는 등<ref>동아일보 1959년 4월 4일자</ref><ref>동아일보 1958년 12월 17일자</ref>1961년 8월 27일 대구지방법원<ref>동아일보 1961년 8월 27일자 1964년 5월 19일자</ref> 1966년 11월 15일 대구고등법원 196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69년 3월 31일 서울고등법원 1969년 10월 7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장 1971년 4월 1일 부산민사지방법원 1973년 3월 27일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성동지원장, 1974년 성북지원장을 거쳐 1976년 12월 29일 서울고등법원<ref>동아일보 1976년 12월 30일자</ref> 1977년 11월 5일 서울고등법원<ref>매일경제 1977년 11월5일자</ref> 1980년 영등포지원장 1981년 4월 20일 수원지방법원장<ref>매일경제 1981년 4월 21일자</ref> 1982년 3월 12일 대전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2년 3월12일자</ref> 1983년 8월 12일 인천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3년 8월 12일자</ref><ref>동아일보 1986년 4월 3일자 매일경제 1966년 11월 16일자 경향신문 1969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1969년10월7일자 매일경제 1971년 3월 26일자 경향신문 1973년 3월 27일자</ref>을 거쳐 1986년 4월 16일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87년 대법원이 상고허가 신청사건의 처리를 전담하는 상고허가신청부를 신설하면서 [[정기승]] [[황선당]]과 함께 전담 판사로 구성되었으며<ref>매일경제 1987년 1월 5일자</ref> 1987년 5월 18일에 대법원장 추천으로 [[헌법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ref>동아일보 1987년 5월 16일자 매일경제1986년4월3일자</ref>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이상화(1980) . . . . 2회 일치
         ||<:> '''학력''' ||송주초-포항중-[[경주고등학교 야구부|경주고]]-경성대 ||
         2012년부터 [[KIA 타이거즈]]에서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5시즌 후에 결혼 소이 전해지면서 오랜만에 이름이 거론되었다.
  • 이선민 (1988년) . . . . 2회 일치
         | 학력 = [[숭실대학교]] 졸업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구미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숭실대학교 동문]]
  • 이원석(1981년) . . . . 2회 일치
         * 중앙대학교 연극학 학사
         * 《[[한반도 (드라마)|한반도]]》 (2012년, TV조선) - 김정
  • 이현 (1983년) . . . . 2회 일치
         * [[대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졸업
         [[분류: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남]][[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
  • 인카운트 . . . . 2회 일치
         특별히 아무 표도 없는 필드나 던전에서 이동하다보면 일정 확률로 --뜬금없이-- 적이 나타난다. 적과 싸우려면 필드를 하염없이 걸어다녀야 하고, 또 인카운트 확률이 지나치게 높으면 짜증나게 만든다.
         필드나 던전에 적의 표 같은 것이 있어, 그것과 플레이어 캐릭터를 접촉시키면 적과의 전투가 시작된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2회 일치
          * 일곱개의 대죄 폭의 죄 멀린 부활.
          * 일곱개의 대죄 폭의 죄, 멀린 부활.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2회 일치
          * 하우저가 멀린을 원호하다 당한다. 하지만 멀린은 순간에 완치시킨다.
          * 그녀는 뜬금없이 "실험"에는 시간이 들어간다는 설명을 시작한다. 시간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하고 그동안에 지에 대한 "탐구욕"은 충족되긴 커녕 더욱 굶주리게 된다.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2회 일치
          * 영창 바스키어스 제 7형태 "달의 꽃"(문 로즈). 그로부터 "생명의 물방울"이 흘러나온다. 물방울은 죽어가던 할리퀸과 디안느를 순간에 소생시키고 기력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마지막 생명의 물방울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십계인 그로키시니아가 두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한다.
          * 아직도 모를 일 투성인데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멜리오다스는 드디어 넷이 모였다고 "작전개시"하자고 한다. 그것도 분명 뜻모를 얘기지만 두 사람의 눈은 새로 나타난 사람한테서 떨어질 줄 모른다. 나타난 사람은 엘리자베스. 디안느가 어째서 네가 여기있냐고 묻는데 "넷이서 합류하자는 약속"이냐며 무슨 소리하냐는 으로 답한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그녀의 등장도 그렇지만 또 하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화에 정신이 팔려있다. 엘리자베스의 등에 무언가 달려 있는 것이다. 요정족의 날개와도 다른 "그것"이. 멜리오다스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2회 일치
          *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는 진짜 3천년 전으로 옮겨진게 아니라 의만 옮겨진것. [[헬브람]]이 킹을 깨워보려 하지만 반응이 없다.
          * [[헬브람]]은 의을 잃고 쓰러진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을 깨우려고 안간힘 쓴다. [[디안느]] 또한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다. 그런데 헬브람이 당황하는 모습이 [[그로키시니아]]에게 보이는 모양이다.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2회 일치
          * 스티그마 내에서는 마신족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이 돌고 있다. 각지에서 마신족에게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데 "십계"는 물론 "흑의 육기사"라는 조직에게도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모여있던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이같은 소들을 공유하며 마신족에 대해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마신족을 섬멸하고 멸종시키겠다는 발언을 한다.
          * 디안느는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에게 승리를 자랑하듯 어떻게 봤냐고 의견을 구한다. 킹은 건성으로 대답하는데 실은 방금 전에 본 뤼드셀이란 남자를 의하고 있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그 마력은 십계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숲 깊숙한 곳에서도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데 그 기색은 뤼드셀과 같은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킹은 이런 의문점에 대해 디안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지만 디안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짧은 시간만에 이곳 생활에 적응한 건지 거인족들을 따라다니며 "한 번 더 승부하자"고 조르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2회 일치
          * 십계의 대군이 당도했다는 소이 요정왕의 숲 곳곳으로 전파된다. [[그로키시니아]]의 몸을 빌린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은 이게 [[뤼드셀]]의 노림수라면 이걸로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의문스러워한다. 그때 [[드롤]]의 몸을 빌린 [[디안느]]가 "이게 진짜 시련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거야 말로 그로키시니아가 말한 시련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도착한다.
          아크 안에는 실종됐던 마신족의 모습이 보인다. 대부분 비전투원. 아크 안의 마신족들은 몸과 마력을 잠 당해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갇혀 있다. 그 안에는 데리엘의 언니도 보이는데.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2회 일치
          그는 [[메라스큐라]]를 조종해 시공의 틈을 연다. 그리고 진짜 고서, 무욕의 고서가 틈을 통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본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고서는 "나도 고서. 하지만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인형 쪽과 싱크로된 상태라 동시에 같은 포즈로 같은 말을 해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고서는 헷갈린다면서 "싱크로 오프"란 주문으로 인형 고서와 동조를 단절한다. 그러다 조용히 의을 잃는다. 무욕의 고서는 인형 쪽도 감옥 안에 있는 자신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준 "동지"라고 말하며 그 또한 고서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고서는 인형 고서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마치 자을 어루만지는 부모같다. 인형 고서의 지능은 자신과 다를 바 없지만, 감정은 막 태어난 아기나 다름 없다. 사실 고서는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것만은 이루지 못하는 꿈이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2회 일치
         [[일곱 개의 대죄]] 제 219화. '''영웅들의 휴'''
          * 올론디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며 징징대는 소릴했다. 이젠 돌아가도 되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 곁에 닥친 이변은 멀린이 먼저 감지했다. 올론디가 "주변이 어두워졌다"고 겨우 인했을 무렵엔 이미 위험이 목전에 닿았다. 십계 [[젤드리스]]가 그를 붙잡았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2회 일치
          * 다시 술잔이 한 바퀴 돈다. 디안느는 문득 성전시대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을 고서에게 물었다. 대체 진짜 고서는 어떻게 성전을 종결지었냐는 것. 할리퀸도 자기도 궁금했다고 말을 보탠다. 하지만 고서는 난처한 기색이다. 그리고 성전시대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른 인워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어지간히 지이 있는 멀린이나 당시 참전했던 멜리오다스 조차 고서가 직접 성전을 끝냈다는 말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일단 에스카노르가 "여신족이 자신들의 몸을 희생해 마신족을 봉인해서 끝났다"는 전승을 읊는다. 멜리오다스는 "어둠의 관"을 혹시 고서가 만든게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멀린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건 거인 명공 "다프즈"란 인물이 만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주위를 환기킨다. 그들이 당면한 목적은 젤드리스의 계금으로 포로가 된 백성들과 성기사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최종적으론 카멜롯의 해방. 젤드리스와 승부를 보는건 그 다음이다. 멀린이 그의 말대로이며 만전을 기한 뒤에야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 말한 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자러 간다. 엘레인은 그녀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만 그걸 바로 짚어내진 못했다. 멀린이 당을 나서기 전, 에스카노르가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를 건네는데도 멀린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2회 일치
          * [[에스카노르]]와 [[핸드릭슨(일곱 개의 대죄)|핸드릭슨]]의 놀라운 시선을 받으며 엘리자베스의 정화의이 끝난다. 그녀가 젤드리스와 접촉한 일이 이것과 관련이 있을까? 저주에서 풀려난 멀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건강해진 모습에 에스카노르가 감격. 그때 멜리오다스 일행도 들어온다. 깨어난 멀린은 자신은 젤드리스의 마력에 사로잡혀 잠드는 저주에 걸렸었다고 말한다. 이런 추태를 보인 것에 사과하고 저주를 풀어준 엘리자베스에게 감사한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젤드리스의 마력을 풀어냈다는 말을 듣고 놀란다. 멀린은 간호해준 에스카노르에게도 감사를 전하는데, 그는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못 됐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사실 그는 멀린이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 팬드래곤]]을 "그는 내 희망 자체"라고 했던 일을 마음에 걸려하고 있다.
          방을 나선 엘리자베스는 당으로 내려온다. 잠시 뒤 소란을 듣고 온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무슨 일이냐 묻는다. 그런데 그녀가 고개 숙인 채 눈물을 떨구고 있다. 호크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자 그녀가 안심시킨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2회 일치
          * 그런 으로 영원히 헤매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운명.
          마신족을 다스리는 "마신왕", 그리고 여신족을 이끄는자 "최고신". 성전을 통해 반목과 학살을 주고 받던 두 존재가 한 연인을 처벌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들의 무서운 힘 앞에서는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의 저항도 보잘 것 없었다. 그는 벼락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불려가 싸웠으나 순간에 목숨을 빼앗긴다. 죽어가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2회 일치
          걷어차인 킹이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헬브람의 투구가 지켜준 덕에 직격만은 면했지만 의을 잃었다. 고서가 상태를 보려고 다가갔는데, 그는 할리퀸 곁에 찌그러져 있는 투구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곧 멀린이 다가과 상태를 물어서 깊게 신경쓰지 못했다.
          * 고서가 그런 에스카노르를 제지했다. 할리퀸의 말대로 디안느를 상처입힐 필요는 없었다. 정신지배라면 자신의 전공분야니까. 디안느가 다시 달려든다. 고서는 자신이 구하겠다며 "인베이전"을 사용한다. 고서의 손에서 발사된 빛이 디안느의 머리를 감싸자 두 사람의 정신이 연결됐다. 이제 고서의 의은 디안느의 심상세계에 있었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2회 일치
          * 모두 당황하는 가운데 [[에스카노르]]만이 신부 릿타를 들고 마신왕의 힘에 잠된 멜리오다스를 상대하러 나선다.
          * 사냥감을 어이없이 빼앗긴 메라스큐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는 건 이제부터다. 코란도 중심부에 있던 거대한 건물이 알 수 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아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메라스큐라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멜리오다스를 암담의 고치에 가둬 숨겨놓은 곳. 거기서 이변이 생겼다는 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거대하고도 사악한 파동. 그 기는 분명 그 사람의 힘이었다. 이젠 일곱 개의 대죄 일행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멜리오다스. 그가 결국 자력으로 암담의 고치를 파괴했다. 메라스큐라만이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한 암담의 고치는 십계 중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는 술법이었다. [[젤드리스]] 조차도 마신왕의 마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럴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멜리오다스는 흉흉한 기운을 날개의 형상으로 뻗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마신왕의 마력 없이는 젤드리스도 깨뜨릴 수 없다. 그렇다면 멜리오다스에 내뿜은 사악한 힘의 정체는 분명했다. 마신왕의 힘. 그는 그 힘에 잠된 듯 보였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2회 일치
          * 엘레인이 서둘러 다가오려 했지만 반이 막았다. 그가 당한 이 독, 보통 독이 아니다. 데들리 포이즌은 메라스큐라의 소화액이다. 무시무시한 강산인데다 피어오르는 증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반의 불사신 육체도 이 독 앞에서는 무력했다. 독액이 그의 몸을 녹였고 증기가 남아서 재생하는 것 보다 빠르게 그의 몸을 부시키고 있었다. 엘레인은 그가 한 줌의 핏덩이와 해골로 변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때 그녀를 대신해 엘리자베스가 나섰다. 그녀는 독기가 자욱한 반의 곁으로 주저없이 다가갔다. 메라스큐라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독기가 그녀에겐 통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반을 향해 손을 뻗고 여신족의 힘을 발휘했다. 그건 마법이나 주술이라기 보단, 마치 명령. 언령이라고 부를 만했다.
          언령에 따라 메라스큐라가 자랑하던 맹독이 순간이 정화되어 간다. 뼈 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가던 반이 빠르게 회복했다. 메라스큐라가 엘리자베스를 "더러운 여신족"이라 욕했지만 그녀에게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일본의 대학서열용어 . . . . 2회 일치
         구 제국대학의 약칭. 과거에 제국대학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학교들을 뜻한다.
         도쿄 대학(東京大学), 교토 대학(京都大学), 히토츠바시 대학(一橋大学), 도쿄 공업대학(東京工業大学)의 4개 학교를 묶어서 말하는 말이다.
  • 일즙삼채 . . . . 2회 일치
          * 일즙일채(一汁一菜)는 1종류의 국과 1종류의 반찬으로만 구성된 간소하고 소박한 단을 뜻한다.
          * 일즙오채(一汁五菜)는 반찬을 5가지 쓰는 호화로운 단을 뜻한다.
  • 자의식과잉 . . . . 2회 일치
         자의과잉이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하여 자의이 과도하게 심한 상태를 뜻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보이는가 하는걸, 지나치게 과도하게 생각한다.
  • 잠버릇 . . . . 2회 일치
          * 이갈기 : 이를 가는 증세. 비염, 천,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 침흘리기 : 인후나 도의 기능 장애로 일어나기도 한다.
  • 장문규 . . . . 2회 일치
         *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장범준 . . . . 2회 일치
         * [[상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전공 (재학)
         [[분류:버스커 버스커]][[분류:1989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장씨]]
  • 장철 (1967년) . . . . 2회 일치
         * [[중앙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졸업]]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전국 BASARA . . . . 2회 일치
          * 보물(정 명칭 아님)
          제육천마왕. 어둠속성. 한손엔 검, 한손엔 산탄총을 들었지만 산탄총 발사가 특수기다. 고로 특수기 선택에 따라 산탄총을 장품으로 만들 수 있다. 천하통일 모드에서 승리하면 천하통일을 축하하러 온 부하들 앞에서 지구본을 돌리며 "이것이 천하다!"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온다.
  • 전수희 . . . . 2회 일치
         * [[우석대학교]] 무용과(휴학)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우석대학교 동문]][[분류:2011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공화국]]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2회 일치
          * 아니나 다를까 왼팔에선 세뇌의 잔재가 발견된다. 잔재일 뿐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인을 교란시켰던 것 같다.
          * 미나모토는 ESP록을 사카키의 왼팔에 채운다. 이것으로 무의 수준에서도 세뇌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 사카키의 세뇌는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지만 본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사카키는 관리관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고 미나모토에게 뒷공작을 한 것도 자신이었던 거냐며 좌절한다. 미나모토는 다 적의 계략일 뿐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정보"로 사태의 확산을 막았으니 제대로된 반격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사정을 듣지 못했던 사카키는 그 "누군가"나 "정보"가 뭐냐고 묻는데 미나모토도 사실 그 이상은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정보를 아네 모르네 잠시 옥신 각신.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2회 일치
          * 미나모토는 용무를 묻기에 앞서 그가 어떻게 여기에 온 건지 묻는다. 효부는 [[마츠카제 코우이치]]를 경유에 이곳에 접근했다. 아직도 학생회장을 연기하고 있는데 마츠카제 쪽에서 먼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접촉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바벨의 감시가 이루지고 있을지 모르는 곳. 효부는 판도라도 같은 문제가 있는건 맞지만 여기서 상담은 무리라고 거절한다. 그러면서 마츠카제의 등을 떠미는데, 그때 텔레파시로 그에게 승락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건은 판도라에도 손을 빌려주는 것.
         목욕탕 카운터를 보고 있는 인물은 [[시이나 타카시]]의 전작 [[엽기열탕 카나타]]의 주인곤 카나타. 머리 위에 있는건 [[성룡도]]다. 워낙 망한 작품이라 작가 본인도 흑역사 취급에 "절대로 공에선 그리지 않겠다"고 공언한 물건인데 왠지 카메오로 등장.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2회 일치
          * 카오루가 나서서 블랙팬텀의 음모라는걸 안다며 하지만 어째서 후지코를 비롯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묻는다. 후지코는 블랙팬텀의 세뇌는 본심을 거스르게 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동료"가 되면 알 거라며 오히려 칠드런 일행도 함께 세뇌 당하자고 제안한다.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가 반발한다. [[쿠모이 유리]]는 힙노를 전개하며 본심이었다면 후지코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며 "원래 자신"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후지코는 "본래의 자"이란게 뭐냐는 으로 반문하고 미나모토가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2회 일치
          탄환이 머리에 박히긴 했지만 효부의 힘으로 치명적이지 않은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하지만 출혈이 심하고 후지코의 의도 돌아오지 않는다. 효부는 필사적으로 출혈을 막으며 소리친다.
          >잊지 마. 나도 당신의 자이야.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마츠카제 코우이치]]가 좋지 않은 소을 전한다. 감시 영상에는 특수부대가 ECCM까지 준비해서 접근하고 있다. 이미 복도는 봉쇄. 더이상 지체되면 탈출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사카키도 좋지 않은 소을 더한다. 후지코는 여전히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까지 나빠졌다. 그녀의 상처도 효부가 염동력으로 억제하고 있었는데 효부가 쓰러지면서 악화돼버린 것이다. 결국 효부는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을 세워버린 셈.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2회 일치
          그는 카오루의 말을 이어받아 자신이 지금 형태가 된 것까지 포함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카오루는 그가 소년 "쿄스케"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현재 효부는 여전히 혼수상태지만 파티의 도움으로 입자를 조종해 작은 분신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입자는 소맥분. 파티가 상당히 특훈을 시켜줘서 선내라면 이런 으로라도 돌아다닐 수 있다. 소년의 모습인 건 체형이 작은 쪽이 컨트롤이 편해서. 나름대로 잘 터득했다는 자부심인지 자신을 다빈치 같은 천재라도 창피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파티는 어쨌든 효부의 쇼타 모드를 볼 수 있어서 대만족 상태.
          * 우츠미는 유리의 능력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것 같다고 칠드런 일행에게 말한다. 유리는 이미 오염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돼서 정면 승부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반대로 정신오염 네트워크를 이용한 반격이 가능하다. 정신오염에 당한 사람들은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 감응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이 네트워크 포탈을 몇 군데 점거하는 으로 전체 정신오염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자면 포탈의 절반, 적어도 3분의 1을 점거할 필요가 있다. 그 숫자는 약 10개 안팍. 문제는 아직 그 위치가 불분명해 정보를 더 모아야 한다. 카오루는 그 말을 기대 반 아쉬움 반으로 여기며 마음 속에서 미나모토에게 좀 더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2회 일치
          * [[츠쿠시 미오]]가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를 데리고 [[미나모토 코이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단이탈, 그 미오 일행을 쫓아 [[히노 카가리]], [[타마키 카즈라]], [[파티 크루]]도 이탈. 이들이 위기에 처하자 더 칠드런 일행까지 적의 함정에 뛰어들었다는 소이 [[효부 쿄스케]]에게까지 전해진다. 사념체 형태로 겨우 운신만 하던 효부는 그 소을 듣고 너무 놀라서 본체의 인공심폐가 일시 정지한다. 상황을 보고한 것은 [[쿠구츠 타카시]]. [[우츠미 세이시로]]는 효부의 상태에 악영향이 갈 줄 알고 전달을 반대했지만 쿠구츠는 "어떻게 그러겠냐"며 강행한다.
  • 정무식(정치인) . . . . 2회 일치
         1924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8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하며 [[육군정보학교]] [[교수]]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중앙정보부]]에서 대구[[대공분실]]장, 제3국장, 정보부장 특별보좌역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 정재호 (1930년) . . . . 2회 일치
         *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분류:193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조훈 . . . . 2회 일치
         [[한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휴학)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한신대학교 동문]]
  • 주상욱 . . . . 2회 일치
         ! 시상
         |제6회 아시아모델상시상
  • 주상철 . . . . 2회 일치
         || '''학력''' ||[[계명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br] [[대건고등학교(대구)]]||
  • 죽으면 부처님 . . . . 2회 일치
         [[일본]] [[정토교]]에서 흔히 쓰이는 격언. "죽으면 부처님", "죽으면 모두 부처님(死んだらみんな仏さま)", "죽으면 누구라도 부처님" 같은 으로 쓰인다.
         이는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서 "일본에서는 죽으면 부처님. 그러니까 A급 전범 합사도 용인된다."는 으로, 외국의 비판을 '문화적 차이'라고 실드치고 넘어가려는 움직임을 우익 논객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은 죽은 사람을 언제까지나 비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문화차별적 주장도 곁들여진다.
  • 진격의 거인/78화 . . . . 2회 일치
          * 라이너는 머리가 날아가는 중상을 입었지만 의을 거인의 뇌로 옮겨서 살아있다. 머리의 복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 아르민은 라이너가 가까이 있어 변신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라이너는 의을 조금씩 되찾아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고 베르톨트는 거인화한다
  • 진격의 거인/87화 . . . . 2회 일치
          * 그의 동료, 처음으로 그리샤와 접촉했던 복권파인 그라이스가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끌려온다. 그리샤가 무심코 그를 부르자 그라이스는 곧 그리샤를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는 왜 지크가 자신들을 밀고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그리샤가 아무 말도 못하는게 더 화를 돋궜는지 어떻게 자이 부모를 파냐고, 그리샤의 교육이 잘못됐던게 아니냐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리샤는 깐죽거리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는 놈이 아니었다며, 다이나와 복권파를 이런 놈에게 맡긴게 실수였다고 한탄한다. 그리샤가 얼 빠진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의 절망을 부채질할 뿐인지 힘없이 "왜 이런 녀석에게..."라고 중얼거리며 엘디아는 끝이라고 내뱉는다.
          그리샤는 "엘디아인만 아니라면"이란 꼬리표에 귀를 의심한다. 글로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군다. 막 거인으로 변한 죄수를 가리키며 "저게 너희의 정체"라고 말한다. 단지 "거인의 척수액"을 체내에 주입하는 것만으로 거인으로 변하는 엘디아인이 어떻게 "같은 인간"일 수 있냐는 것이다. 글로스는 지구상의 생물 중 이렇게 되는건 오직 "유미르의 자들"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의 가죽을 썼을 뿐인" 괴물이 대량으로 발생한 것은 악몽이라 말한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2회 일치
          * 아군 참호로 돌아온 형제. 소년의 이름은 "파르코", 형은 "콜트"였다. 참호엔 비슷한 또래의 소년소녀들이 파르코의 생환을 반긴다. 파르코는 뇌진탕으로 일시적인 기억상실 증세를 보이고 있다. 친구들은 기억하지만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인하지 못한다.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차르 . . . . 2회 일치
         [[비잔티움 제국]]에서 카이사르 칭호는 점차 위상이 하락하였다. 이는 고대세계의 가부장제에 따른 상속 계승보다, 종교적 권위가 중요하게 된 비잔티움 시대의 사회상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렉시오스 1세가 황제의 부칭으로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kratōr)를 제정하면서 제3위격의 칭호가 되었고, 데스포테스(Despotēs,[[전제공]])가 지정되면서 제4위격까지 떨어졌다. 황제가 보유하는 칭호의 위격순은 바실레우스->데스포테스->세바스토크라토르->카이사르 순서가 된 것이다. 이렇게 격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고위의 칭호로 여겨졌다.
         이 칭호는 드물게 외국의 군주에도 수여되었으며, 슬라브어를 따라서 '차르'라고 쓰게 되었다. 불가리아의 시메온 대제가 비잔티움 황제로부터 해당 칭호를 받은게 그 시초다. 이후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이 해당 칭호를 사용했고,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통일한 모스크바 대공이 해당 칭호를 썼다.[* 그리고 이게 가장 유명하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군주의 칭호를 그냥 서구의 황제칭호인 임페라토르로 바꿨지만[* 여성의 경우엔 임페라트리자] 전부 그냥 차르라 불렀다(...).
  • 창작:Project NA . . . . 2회 일치
         처음엔 작은 카페에서 시작했으나, 탐험가들이나 객들이 보내온 사연 있는 물건을 모으다보니 어느새 골동품 가게가 되었다.
         === ~~손놈~~객들 ===
  • 창작:악마의 열매 . . . . 2회 일치
          * [[발암|발암발암 열매]] : [[발암]]스러운 짓을 해서 상대가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게 만든다. 피아 별이 안 되는 것이 단점.
          * 콜록콜록 열매 : 공기를 이용한 열매. 기본적으로 독성은 없지만 질사를 시킬 수는 있다. 또한 연기를 끌어모아 새총이나 대포처럼 사용하는 것도 가능.
  • 창작:좀비탈출/0 . . . . 2회 일치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남성이다. 수수하지만 이럭저럭 흠은 없는 외향에 체형도 그리 둔하진 않다. 전문적인 운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체력관리 차원에서 가벼운 조깅 정도는 꾸준히 했다. 게임, 영화나 만화를 잡으로 좋아했고 어딜 가나 있을 법한 남자 대학생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Tv는 잘 안 보지만 걸그룹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가 마지막까지 Tv로 보고 있던게 [[트와이스]]와 [[AOA]]였다.
         집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뒤져서, 어떻게 제법 많은 량과 물자를 모았다. 이 정도라면 얼마 동안은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안에 남든, 혹은 여기를 뛰쳐나가든.
  • 창작:좀비탈출/4-1-1 . . . . 2회 일치
         하지만 해야한다. 놈을 쓰러뜨려야 량을 확보 할 수 있다.
         '''량.'''
  • 창작:좀비탈출/4-1-2-1 . . . . 2회 일치
         혹시 모르니까 닫아야겠다. 할 수 있을 때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일대가 전멸했다면 그만큼 좀비들의 숫자도 넘쳐날 것이고, 그것들이 전부 우리 집으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량을 손에 넣는데 실패하더라도 마당으로 오는 놈들이 줄어든다면 다음 기회도 생길 수 있으니까. 나는 문 너머에 놈들이 있진 않나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을 닫는 순간에 나는 소리가 행여라도 놈들을 깨우게 되진 않을지 주의하며 움직였다.
         독을 묻은 자리는 놈들이 건드린 흔적이 없었다. 그때 이것들을 묻으면서 커다란, 거의 바위에 가까운 돌덩이를 하나씩 올려놨었다. 개나 고양이가 파해치는걸 막으려는 조치였는데 그게 이런 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한두 마리 정도는 여기에 찝적거렸겠지만 그놈들 힘으로 이걸 치우는건 무리였을 거다. 이 고무적인 사실 때문일까? 조금 긴장이 풀렸다. 꽉 졸려있던 기관지가 풀리면서 몇 주만에 맛보는 바깥 공기가 달게 느껴졌다.
  • 창작:좀비탈출/4-1-2-2 . . . . 2회 일치
         하지만 해야한다. 놈을 쓰러뜨려야 량을 확보 할 수 있다.
         '''량.'''
  • 창작:좀비탈출/5-1 . . . . 2회 일치
         토트넘이 다가오는 순간 그 속도와 무기의 위치와 내가 손을 뻗는 속도의 차이에 대해서 계산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풀리지 않는 방정이 머리를 괴롭히는 사이 몸은 직관적인 행동을 취했다. 자세를 낮추고 팔을 뻗어 손아귀에 싸늘한 손잡이가 잡히는 동안, 토트넘은 '''정확히 2m 앞'''에 있었다.
          * [[창작:좀비탈출/5-1-2|량을 챙긴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2회 일치
         나는 앞마당을 가로질러 차고문으로 갔다. 혹시 바깥 쪽에서 뭔가 있을까 싶었지만 딱히 기척이 느껴지진 않았다. 확정하기엔 부족하지만 아마도 토트넘처럼 정오에도 잘 돌아다니는 녀석은 소수일 것이다. 그 다음 나는 차고가 전동문이 아닌 걸 확인했다. 만약 그렇다면 닫을 방법이 없으니까. 다행이 옛날 도르레가 달린 셔터문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철컹철컹 소리가 나며 문이 내려갔다. 기름칠을 한지 오래됐는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잠깐 아령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겨우 차고문이 닫혔다.
         나는 비명을 지를 기회도 없었다. 이 허접해 보이는 녀석이 무는 힘 만큼은 확실했다. 기도가 뻥 뚫리면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의이…… 멀어진다…….
  • 청년 튀르크 당 . . . . 2회 일치
         [[파리]]에서 학생, 청년 사관, 지인들이 비밀 결사인 '통일진보위원회(Committee of Union and Progress/CUP)'를 조직하여, 헌법의 부활과 전제 정치 폐지를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아메드 리자라는 지인이 이 단체의 주대변인이 되었다. CUP는 [[자유주의]] 사상을 유포하고 고무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 최웅 . . . . 2회 일치
         * [[대경대학교]] 모델과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분류:대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최재혁 (음악가)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인디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
  • 츠츠모타세 . . . . 2회 일치
          * 면도 없는데 집에 초대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여성은 경계심이 강하고 방범 의이 높기 때문에, 처음 보는 대다가 친하지 않은 남자를 집에 불러들이지 않는다. "호텔비가 아깝다."같은 말을 하면서 집에 불러들일 경우, 그 집에서는 남편이나 남친을 자칭하는 남성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 카자미노 시 . . . . 2회 일치
         본래 [[TV판]]에는 직접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도시였다. 쿄코는 단순히 '다른 마을에서 온 마법소녀' 로만 설명되었고, 어디 출신인지 구체적인 묘사는 없다. 그러다가 드라마 CD에서 도시의 이름이 언급되었고, 극장판에서 공적으로도 이름이 나오면서 정 설정으로 올라갔다.
  • 카쿄인 노리아키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죠죠니움 인터뷰에 따르면 공 이름은 '노리아키'지만 아라키 자신은 '카쿄인 텐메이'라고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엔야 할멈과의 대결에서 숙박부에 써진 '카쿄인 텐메이'라는 이름은 이걸 이용한 장난이었다고.
  • 캡틴 아톰 . . . . 2회 일치
         패턴만 벌써 네다섯 번 반복된 캐릭터다.(...) 그래서 요녀석이 죽어봐야 "또 어디서 여행 중이겠지" 하고 다들 쿨하게 넘긴다. 그리고 장례조차 안 치러준다! 캡틴 아톰은 절대 죽지 않을거라고 다른 히어로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기때문에...이거 기뻐해야 하나?
         <[[킹덤 컴]]>에서는 마곡을 포함한 몇 명의 초인들과 함께 [[패러사이트]]를 쫓다가, 패러사이트의 공격으로 제어복이 찢겨져 폭발, 방사능으로 미국 중부지방을 살균(...)해 버린다. 그 결과로 전세계 량부족크리...
  • 쾌락절임 . . . . 2회 일치
         즈케(漬け)는 일본 절임 요리를 뜻한다. 시오즈케(塩漬, 소금절임), 사토즈케(砂糖漬, 설탕절임), 미소즈케(みそ漬, 된장절임) 같은 것이 있다. 주로 조미료 같은 것에 재료를 담궈서 하는 요리를 뜻하는데, 뭔가에 푹 빠졌다는 의미도 된다. 카이라쿠즈케라고 하면 쾌락에 푹 빠졌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 쿄로충 . . . . 2회 일치
         [[교실]], [[당]] 등에서 자신의 지인이 있는지 항상 두리번 거리면서 같이 행동을 할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혼자서 학생 당 등에서 밥을 먹는 것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며, 그런 자신을 누군가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데 강한 두려움과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 키프 . . . . 2회 일치
          * 멧시 군 : 사를 사주는 남자. 어원은 사를 밥(메시)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 킹덤/504화 . . . . 2회 일치
          이후에도 조군의 소규모 부대와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지만 왕전은 그때마다 별동대를 차출해 대응하였고 본대의 행군은 조금도 늦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순조로운 행군 소은 진의 수도 함양에도 전달된다.
          * 함양의 수뇌부는 전장에서 날아오는 희소에 부담을 조금씩 덜어가고 있다. 창평군을 비롯한 참모들은 이들의 행군이 계획보다 하루 이상 빠른걸 확인한다. 진군은 현재 낭토에 도달했는데 열미까지 불과 이틀 거리. [[진시황(킹덤)|정]]은 드디어 결전의 때가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 킹덤/506화 . . . . 2회 일치
          * 뒤쳐져 있던 [[왕분]]은 [[비신대]]와 [[양단화]]군만이 열미성을 공격한다는 소을 듣고 걱정이 돼서 한발 먼저 출발한다.
          * [[환의(킹덤)|환의]]군, [[왕분]]대에 파발이 온다. 이들은 도중에 마주쳤던 조군을 성공적으로 격멸하고 막 휴에 들어가던 참이다. 파발은 열미성 공략이 시작되었고 산민족과 [[비신대]]만이 투입되었다고 알린다. 왕분은 예상과 다른 인선에 움찔한다. 부하 장수들은 자기들이 맡은 역할 때문에 비신대에게 선수를 뺏겼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 사이에 왕분은 조용히 자리를 뜬다. 관상이 어딜 가시냐고 묻자 중요한 전투에서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이 이같은 지시를 내린 의도를 물으러 간다며 본대는 부상자 조치를 마친 뒤에 따라 오라고 지시한다. 한모대가 호위를 자청. 관상은 왕분의 핑계가 솔직하지 못하다며 그냥 비신대가 신경쓰여서 간다고 하시면 된다고 하지만 왕분은 대답없이 그대로 출발한다.
  • 킹덤/517화 . . . . 2회 일치
          태자는 도양왕에 비하면 정치적 견도 대국을 보는 눈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곧 진나라도 여기까지 온 이상 침공이 실패하면 국운이 흔들릴 거라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도 진왕 [[진시황(킹덤)|정]]이 "최"성에서 그랬듯 직접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사기를 북돋으면 어떻겠냐고 이목의 의견을 묻는다. 이목은 명심해두겠다면서도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하지만 태자 가는 "지금이 그 필요한 시기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목도 거기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한다.
          * 한단에서 출격을 준비하던 이목 진영에 "진군이 군단을 나눠 알여와 요양을 요격하러 간다"는 소이 전해졌다. 진군이 이목의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말이지만 이목은 당황하지 않고 [[순수수]]에게 요양군에 가 공손룡의 부장이 되라고 지시한다. 또한 요양성주는 괴짜지만 잘 조율해 보라 당부한다. 이 인사는 이목진영의 인물들에겐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는데, 무명이나 다름없는데다 다른 인물들과 친분도 없는 그를 단번에 십만 대군의 부장으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 킹덤/524화 . . . . 2회 일치
          * 조군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아광군이 난데없이 측면을 요격당했다. 선두는 마남자. 그의 창이 번뜩일 때마다 주인 잃은 목이 나뒹굴었다. 오직 정면의 적에 집중하던 아광군이 순간에 위기에 처한다.
          * 적을 몰아붙이는데 골몰하고 있던 아광군은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약화되고 있엇다. 1진은 이미 악영군과 한참 교전 중이라 측면을 강화하러 보낼 병력이 없었고 2진도 마남자가 세운 벽에 걸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싸움은 순간에 난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이때 1진과 2진 사이를 소속 불명의 기마대가 가로질러갔다. 양군 모두 전투의 도중인데도 저 기마대가 어디서 온 건지, 누구의 편인지 어리둥절해했다.
  • 킹덤/530화 . . . . 2회 일치
          * 정면에서 섣부른 싸움을 벌였던 마정은 톡톡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마광군과 대치한 언덕의 싸움은 갈 수록 치열했다. 마정 자신의 부대는 백중세로 막아내고 있었으나 후방이 어지러지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에겐 본대의 어려움이 시시각각 보고되고 있었다. 마침내 비신대의 등장까지. 하다못해 기수로부터 다른 지시라도 내려오길 바랐지만 그쪽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물론 이쪽도 본진을 도우러갈 여유가 없었고. 그가 새삼 마광이라는 적장을 용병술에 탄하고 있을 때, 그의 시야로 유동의 기마대가 비신대 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부하들이 유동의 기마대라도 한 발 늦게 보고하자 자신도 안다고 꾸중했다. 그는 이제는 없는 유동을 떠올리며 그가 저들을 지켜봐주길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 언덕의 뒤를 오르던 낙화대는 소이 조금 늦었다. 몽념은 비신대가 전장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듣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보고는 달라지지 않았다. 비신대가 마광과 낙화대 사이를 뚫고 기수에게 향하고 있다. 몽념은 왕전이 이 그림을 그리려고 비신대를 중앙군 뒤에 빼둔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그보다 그렇게 좋은 부분만 빼먹는건 언제나 낙화대의 담당 아니었나? 몽념은 부대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쪽이야 말로 비신대를 "이용해서" 기수를 칠 심산이다.
  • 테헤페로 . . . . 2회 일치
         표기는 이모티콘 판, 별장 판, 장없는 히라가나 판이 있다.
  • 토리코/361화 . . . . 2회 일치
          * 어나더를 시한 일행은 '''새로운 맛의 지평'''이 열려 사물 조차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며 구르메세포의 활성화로 세포의 기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스타쥰이 느껴온 "어떤 맛의 기억"도 구르메 세포의 기억.
          * 토리코가 사를 마치려 할 때 코마츠가 "남은 것이 있다"며 통조림을 꺼내는데, 전에 8대륙을 통과할 때 얻었던 '''황금색 통조림'''(금관두)이다.
  • 토리코/380화 . . . . 2회 일치
          * 이번에야 말로 GOD를 포
          * 이것이야 말로 자기 욕의 진정한 모습이라 말하는 아카시아.
  • 토리코/382화 . . . . 2회 일치
          * 결국 싸움은 죠아의 구르메 운의 승리로 끝났다.
          * 현재까지는 네오=아카시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아카시아가 풀코스를 먹는다=네오가 완전체가 된다는 공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카시아가 풀코스를 먹는 것과 네오가 먹는 것은 일단 별개로 보인다.
  • 토시코 막스 . . . . 2회 일치
         1936년 태생, 1971년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졸업, 1976년 영국 귀족 블로톤 남작 마이클 막스(Baron Marks of Broughton)와 결혼하여 블로톤 백작 부인 마크스 토시코(Honourable Toshiko Marks, Baroness Marks of Broughton)가 되었다.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말년에 얻은 자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총애하였다. 어린 나이의 히데요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무리수를 썼고, 그 때문에 오히려 토요토미 정권의 기반을 악화시켜 히데요리는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망하고 토요토미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고 평가된다. 손녀 [[김혜수]]
  • 페어리 테일/488화 . . . . 2회 일치
          * 메스트는 브랜디쉬의 기억을 덮어 씌워서 오거스트를 원수로 인하게 만들었다.
          * 오거스트는 그정도로 죽을 리도 없었고 브랜디쉬에게 "잘 알았겠지? 이게 놈들의 방이다"라며 분노를 불사른다.
  • 페어리 테일/490화 . . . . 2회 일치
          * 브랜디쉬는 오거스트와 함께 있는데 그녀가 낸 상처를 축소시키는 방으로 치료 중.
          * 세계재구축 마법이라는 설명 때문에 아예 현실조작 능력인것처럼 인됐지만 그정도는 아니었고 대륙 수준의 재구축 마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긴 하지만.
  • 페어리 테일/491화 . . . . 2회 일치
          * 제이라는 메이비스의 마력이 리셋되면서 그녀의 무의을 기반으로 부활. 그래서 그녀가 제이라를 인지하게 되면 사라진다.
          * 그리고 자신은 메이비스의 마력이 리셋되면서 그녀의 무의 속에서 부활했으며 그녀가 자신을 인지하게 되면 금세 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 페어리 테일/505화 . . . . 2회 일치
          * 버서커들은 끝없이 밀러들고 페어리 테일을 순간에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다.
          * 요정군사의 입장에선 각자 한 명의 병사일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들이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2회 일치
          나츠는 아직도 의을 되찾지 못하고 상태가 나빠져만 간다.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폴류시카]]의 지시대로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살을 맞대고 있다. 그들은 나츠가 어서 눈을 뜨길 바라지만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 아이린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멸룡마법은 대성공을 거둬 많은 멸룡마도사가 탄생했고 전황은 단숨에 역전된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건 아니었다. 드래곤의 강대한 힘을 이한 탓에 부작용에 시달리는 멸룡마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강대한 힘에 휘둘려 흉포화하거나 드래곤의 감각과 인간의 감각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망가져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부작용. 멸룡마법을 받은 인간은 그 체내에서 성장하는 '''용의 싹'''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곧 '''사람을 용으로 바뀌는 것.''' 이것이야 말로 멸룡마도사의 최후였다.
  • 페어리 테일/525화 . . . . 2회 일치
          * 오거스트는 길다트와 카나의 관계를 보며 부모자 간의 애정은 당연한 건데 "어째서 폐하의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 건가"라고 중얼거린다.
          * [[오거스트]]가 "자이 죽으면 어떤 감정이 들겠냐"고 물었다. [[길다트 클라이브]]는 [[카나 알베로나]]를 놓고 협박한다고 생각해 불같이 화를 낸다. 카나는 적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리지만 눈이 뒤집힌 길다트는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2회 일치
          * X777년. [[피오레 왕국]]의 왕도 크로커스. 시민들은 월이 일어나자 불길한 징조라고 여겨 꺼려한다. 왕궁의 [[히스이 E. 피오레]] 공주는 어두운 달 옆으로 다섯 개의 유성이 지나가는 걸 목격한다. 그런데 이상한 유성이다. 함께 목격한 [[아르카디오스]]는 유성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법인데, 저건 "아래에서 위로" 솓구친다고 별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공주를 데리고 국왕을 찾으러 간다. 국왕이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아 찾던 참이다.
          이것은 레이라의 할머니, 혹은 그 이전부터 집안에 전해지던 책에 씌여진 구절이다. 안나는 그게 자신이 쓴 책이라고 밝힌다. 토마 왕은 이해가 안 된다며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안나의 시간 대에서 이클립스를 개발했을 때, 해당 시간 대에서 누군가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는게 밝혀진다. 안나는 이 문제를 기발한 방으로 해결했는데, 바로 자신의 자손들에게 비술과 함께 기록을 남겨서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클립스의 문을 열어라"고 전승시킨 것이다. 비록 그 전승의 의미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만은 제대로 전해져서, 레이라 대에 이르러 마침내 이클립스가 열리고 두 시대가 연결됐다. 토마 왕은 "그렇다면 당신은 400년 전 사람이냐"고 경악한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2회 일치
          * 루시는 장담한 대로 END의 서를 수복했다. 나츠의 부활도 분명 그 영향일 것이다. 그레이와 해피는 글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놀란 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루시가 이상하다. 책을 수정한 직후부터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뭔가 잠 당하는 듯 의을 잃어가고 있다.
  • 페어리 테일/541화 . . . . 2회 일치
          * 시간의 틈새,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는 공격을 멈춘 멸룡마도사들에게 현세의 소을 알린다. 곧 현세에 있는 자신의 육체가 세계를 멸망시킨다. 나츠는 대체 뭐가 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 아크놀로기아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 종전을 맞이한 할지온 항구는 생존자들이 부상을 치유하며 휴하고 있었다.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는 누군가 워프로 접근하자 고개를 돌린다. [[메스트 그라이더]]의 도움을 받은 쥬비아와 그레이였다. 그레이는 한 번에 더 많이 옮길 순 없냐고 독촉하는데 메스트가 말도 안 되는 요구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쥬비아는 메스트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레이와 단 둘이 워프하는게 딱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소을 듣고 달려온 [[메르디(페어리 테일)|메르디]]가 전대륙의 마도사들을 링크로 연결해준다.
          아크놀로기아의 패배와 소멸, 그리고 나츠 일행의 승리가 하루지온을 들끓게 했다. 소이 퍼져나가면서 생존자들의 환호소리로 항구가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진정한 전쟁의 종결이었다. 그때였다. 하루지온의 상공에 균열이 일었다. 아크놀로기아가 돌아올 때와 같은 균열이었다. 안나와 이치야가 시간의 틈새에서 배제된 것처럼, 마룡의 힘이 사라지자 멸룡마도사들도 시간의 틈새에서 밀려나온 것이었다.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2회 일치
         트립마인은 정면으로 레이저를 발사하는 폭발물로, 레이저에 경찰이 인되는 즉시 폭발하는 폭발 모드와 레이저에 경찰이 인되는 즉시 마킹시켜주는 센서 모드가 있다.
  • 프레샤 . . . . 2회 일치
          * 보통은 뉴타입의 특수기로 인되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기동전사 Z건담]]에서 묘사한 프레샤가 가장 강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는 프레샤는 올드타입도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뭔가 전장에서 별 가능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프레샤라 봐도 무방할 듯.
  • 핑커톤 . . . . 2회 일치
         [[https://www.pinkerton.com/|핑커톤 공 홈페이지(영어)]]
         [[https://www.pinkerton.com/about-us/history|핑커톤 공 홈페이지의 역사 부분(영문)]] - 홈스테드 철강소 파업 같은 치부는 빠져있다. 솔직히 빼는게 당연하겠지만.
  • 하이큐/208화 . . . . 2회 일치
          * 고문 타케다는 카게야마가 전일본 유스 합숙에 초대받았다는 소을 가지고 온다.
          * 어쨌든 축제 같이 어수선한 분위기에 타케다는 소이 하나 더 있다며 주목시킨다.
  • 하이큐/215화 . . . . 2회 일치
          * 사시간.
          * 카게야마는 여름합숙 때 만났던 치카야 에키라와 함께 사한다.
  • 하이큐/221화 . . . . 2회 일치
          * 아즈마네 아사이도 "그걸 믿었냐"는 으로 디스한다.
          *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발언 때문에 코가네가와를 엄청 의한다.
  • 하이큐/222화 . . . . 2회 일치
          * 츠키시마 케이는 "뻔뻔한 녀석"이라 평하고 후타쿠지 켄지는 "도발"이라고 인했다.
          * 공은 아슬아슬하게 넘기지만 순간에 둘이나 따라붙은 데다 확실히 블록의 손에 닿는다.
  • 하이큐/223화 . . . . 2회 일치
          * 분명 플레이 중에 그정도 진로방해를 눈치챈 카게야마는 대단하지만 지적하는 방이 나쁘다는 말이 나온다.
          * 타나카가 스파이크를 때리지만 너무 블록을 의한 탓에 네트에 맞는다.
  • 하이큐/224화 . . . . 2회 일치
          * 동료 선수에게 폭언을 늘어놓다가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고 의기소침해진다.
          * 그 순간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고 마는 카게야마. 트라우마 스위치가 켜진다.
  • 하이큐/226화 . . . . 2회 일치
          * 다른 학교라면 초속공 자체를 의해서 히나타를 집중 마크하다 틈을 보이기 마련인데, 다테는 오히려 초속공을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 하이큐/238화 . . . . 2회 일치
          * 카라스노가 2점 앞서가면 츠바키하라가 한 점 따라붙는 으로 점수차는 1, 2점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카라스노의 꾸준한 리드. 츠바키하라에서 9번 아테마가 나가고 5번 [[미카와 다이]]가 들어온다. 그때 우카이 코치가 살짝 "조금 앞으로 나와라"는 조언을 한다. 그것이 적중해서 미카와의 서브는 앞쪽으로 떨어진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정확히 그 위치에 있다가 받는다. 하지만 살짝 흐르는데 니시노야가 잽싸게 커버,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연결한다.
          * 이 타이밍에 츠바키하라의 선수 교체. 8번 이와무로가 나가고 핀치 서버로 [[이와무로 아오이]]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 히메카와는 이번이 공전 데뷔라고 하는데. [[야치 히토카]]도 데이터엔 없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카이 코치는 왠지 그를 주시하는데.
  • 하이큐/247화 . . . . 2회 일치
          쓰레기장 결전은 카라스노와 네코마가 3회전까지 올라가야 성립한다. 그러기엔 2회전 상대가 워낙에 난관이다. 선수들을 불러모은 우카이 코치가 "이제와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내일의 상대 "이나리자키 고교"를 정으로 소개한다. 인터하이 준우승에 빛나는 이 대회 시드교이자 우승 후보다. 말이 필요없는 강호.
          *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사정이 있다. 어제 저녁 회의 시간. 히나타의 근자감 어필 직후 그는 "미야 아츠무가 무지막지한 녀석이니 그 녀석을 노려서 송구하면 된다"는 주먹구구 해결책을 제시한다. 같은 과인 니시노야는 명안이라고 감탄하지만 우카이 코치가 보기엔 한참 부족하다.
  • 하이큐/248화 . . . . 2회 일치
          * 1회전부터 감초처럼 등장하던 바보커플이 2회전 관람 일정을 짜고 있다. 남자 쪽은 배구 지이 상당한지 남녀 강호팀에 대해서 자세히 안다. 그들은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형제를 보려고 대진표를 확인하는데 상대팀이 [[카라스노 고교]]인걸 발견한다. 그들은 꽤 인상깊은 팀이었는데 탈락확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나리자키는 그만큼 강호로 작년 봄고와 인터하이에선 각각 3위를, 이번 인터하이에선 또다른 강호 "키류"를 누르고 2위를 기록했다. 결승에서도 패하긴 했으나 그 왕자 "이타치야마"에게 한 세트를 뺏어왔을 정도로 상승세. 지금 가장 주목 받는 팀이다. 여자 쪽은 개인적으로 미야형제팬인지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자 남자 쪽이 인상을 구긴다.
          * 관중석은 아직 1시합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기분 나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음악단은 물론이고 치어리더의 안무와 시라토리자와 학교를 연상시키는 전교 응원. 엄청난 규모의 "대악단" 응원단이다. 카라스노의 보통 규모 응원단은 소리가 파묻힐 지경이다. 사실 이나리자키는 배구 말고 취주악부로도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그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그게 낭비가 아닌지 야마구치처럼 기가 약한 선수들은 응원전 만으로 벌써 위가 쑤시다며 위축된다. 히나타같은 단세포는 "커다란 나팔이 멋지다"며 정작 응원에는 무신경하다.
  • 하이큐/249화 . . . . 2회 일치
          * [[히나타 쇼요]]는 [[호시우미 코라이]]의 점프를 의하며 자세를 교정해나가는데 아츠무는 그의 점프력을 매우 눈여겨 본다.
          * 공 워밍업 시간 중에도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는 주목의 대상이다. [[오오미 타로]] 감독은 마지막 공을 미야 형제에게 띄운다. 그런데 둘은 동시에 뛰어 올라서 "유체이탈 시간차" 같은 장난이나 친다. 둘이 쌍둥이란 걸 이용한 장난. 딱히 시간차도 뭣도 아니지만 객석에는 멋지다고 호평한다.
  • 하이큐/253화 . . . . 2회 일치
          이도류란 스파이크 서브와 점프 플로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보통 선수마다 주력 서브는 정해져 있다. [[아즈마네 아사히]]나 히나타는 스파이크 서브, [[야마구지 타다시]]는 점프 플로터, 이런 이다. 아츠무는 어느 쪽이든 때릴 수 있어서 서브가 날아오기 전에는 구분할 수 없고, 그래서 리시브할 위치를 선점하기 어렵다. 거리로는 단 한 걸음이지만, 실제 플레이에선 그 작은 차이가 실점으로 이어진다.
          아츠무의 서브. 방향은 정가운데, 니시노야. 정확히 위치를 포착했다. 하지만 니시노야가 밀렸다. 카라스노의 서버인 야마구지와 [[키노시타 히사시]] 니시노야 조차 받지 못하는, 눈 앞을 순간에 스쳐가는 아츠무의 서브에 경악한다.
  • 하이큐/258화 . . . . 2회 일치
          >"처음엔 인하고 있었지만 쌍둥이의 속공을 본 뒤로
          * 스코어는 20 대 19. 1점 차를 유지했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두 번째 TO를 전후로 명백히 기세가 꺾였다. 이런데다 이나리자키의 사령탑은 채찍질을 그치지 않았다. 아츠무가 오사무의 플레이에 트집을 잡았다. "꾀를 부린다"는 것. 방금 전 아츠무의 눈에 걸린게 그거였다. 오사무가 "일단 미끼할게요" 의 불성실하게 들어왔다. 오사무도 그걸 부정하진 못하고 "전력으로 뛰면 어떻게 끝까지 뛰냐"고 투덜댄다. 그러다 아츠무는 "치면 들어간다"며 일단 전력을 다하라고 질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작은 블록"이 두렵냐는 것.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오사무. 그런데 이 논쟁은 뜻밖의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 하이큐/261화 . . . . 2회 일치
          은 땀이 흐른다. 그러나 주눅들 순 없다.
          * 미야 아츠무의 서브가 무섭다는건 전날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우카이 코치는 그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으며 선수들이 질릴 때쯤 "그 서브에 반격하는 로테이션"을 꺼냈다. 아츠무가 서브일 때 중앙의 니시노야가 요격하는 수비. 거기에 더해 서브를 끊을 방법도 연구했다. 그는 "이것저것 여러 방법"으로 끊었으면 좋겠다며 지금껏 공전에서 한 번도 안 했던 걸로 그걸 해보자고 한다.
  • 하이큐/263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벤치는 타나카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멘탈을 믿었다. [[키노시타 히사시]]가 맨 처음 "타나카니까 괜찮다"고 입을 열었다. [[엔노시타 치카라]]도 같은 의견이었다. 시합에서 언제나 튼튼한 타나카. 팀이 어떤 상태이든 팀에 남아주었던 건 타나카 뿐이다. 적어도 2학년 중에선. 3학년 [[아즈마네 아사히]] 조차 한 번은 팀을 등진 적이 있고, [[니시노야 유]]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잠시 팀을 떠나있었다. 도중에 열정이 었던 엔노시타나 키노시타, [[나리타 카즈히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다시 불러모은 것도 어찌보면 타나카였다.
          * 네트 앞으로 달려가면서, 타나카는 자신이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체격면에서든 능력 면에서든. 그도 자신이 "천재가 틀림없다"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 조금 솔직하게 말하면 중학교 때. 정말로, 뻔뻔하게 말한다면 지금까지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키가 180까지 자라지 않을 건 분명하다. 그리고 운동능력이 좀 뛰어나긴 하지만 어느 부분이든 팀에서 제일 가진 않는 것도 키만큼이나 분명하다.
  • 하이큐/272화 . . . . 2회 일치
          * [[오오미 타로]]는 오지로에게 "천천히 가자"고 지시한다. 이나리자키의 서브. [[스나 린타로]]와 교대해 1학년 서버 리세키가 투입된다. 이나리자키에선 그리 유명한 선수는 아니다. 중학교 시절엔 만년 벤치 신세에 딱 한 번 핀치 서버로 기용됐다가 서브 미스로 경기를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 고등학교에선 강호 이나리자키에 들어온 건 좋으나 여전히 기회는 적었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산도 있다. 미스하면 본전도 없다, 이런 부담을 안고 "일단 들어가는 서브"라는 안전빵을 택한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 됐다. 우선 자군 벤치에서부터가 시들한 반응. 무난하게 아사히에게 떨어지는 것을 안전하게 리시브, 히나타의 스파이크로 이어지는데 하필이면 그게 리세키가 있는 위치로 떨어지면서 리시브까지 실패하고 만다. 간만에 손맛을 본 히나타가 기뻐날뛰려는데, 이나리자키 관중석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뻘쭘해진다.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자군 서버의 실수를 "볼보이는 안 불렀다"고 극언해가며 까대는 소리였다. 대부분 관중들은 딱히 실수한 것도 없는 자기편 선수를 디스하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단숨에 알아챘다. 이른바 "이나리자키 도깨비 응원단". 소심한 플레이를 인정사정없이 욕하는 묘한 기질이 있다. 사실 프로도 아닌 고교 선수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장외플레이. 적이라도 같은 서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마저 기를 죽일 정도로 무자비한 야유였다. 그리고 이 야유는 의외의 인물도 자극하는데, 바로 카게야마였다.
  • 한길로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한동근 . . . . 2회 일치
         [[2018년]] [[8월 30일]] 밤 11시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덕여자고등학교 인근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실이 드러났다.<ref>{{뉴스 인용 |저자=황미영 |제목=[단독] 가수 한동근, 음주운전 적발…오늘(5일) 조사 |url=https://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421&aid=0003572860 |뉴스=뉴스1 |출판사= |위치= |날짜=2018-09-05 |확인날짜=2018-09-05}}</ref>
         * {{공 웹사이트|http://www.pledis.co.kr/html/artist/handongguen}}
  • 한창수 . . . . 2회 일치
         [[1888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급제하여 [[승정원]]에서 주로 벼슬을 하였으며, [[1895년]]에는 [[한성재판소]]의 판사를 맡기도 했다. 외국어에 능통하여 [[관립한성외국어학교]], [[한성사범학교]]의 교장직과 함께 [[유럽]] 지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바도 있었다.
  • 한확 . . . . 2회 일치
         동생 한전(韓磌)·한질(韓)이 모두 일찍 죽었는데, 한확이 그 고아를 무육(撫育)하기를 자기 자과 다름이 없었다. 작품으로는 [[고려]]말기의 문신 [[차원부]]를 애도하는 치제문이 있다. 그가 죽자 [[조선 세조|세조]]는 9월 22일까지 정사와 조회를 중단하였다. 이때 강무까지 중단하려 하였으나 [[승정원]]의 반대로 강무는 계속하였다.
         넓은 도량과 온간(溫簡)한 성품으로 상하의 신망이 있었으며, 명나라 황실과의 유대와 공정하고 결단성 있는 정사로 외교와 내치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아우 참의공 전이 일찍 죽자 아버지 없는 어린 조카들을 데려다가 내 자과 같이 양육하였다.
  • 함두영 . . . . 2회 일치
         * [[양정고등보통학교]] 졸업
         * 경강물산주회사 지배인
  • 함중아 . . . . 2회 일치
          | 학력 = [[대구대학교]] 기계공학과 중퇴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사이키델릭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키보드 연주자]][[분류:김현]][[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명지전문대학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함화진 . . . . 2회 일치
         한편 [[1912년]]부터 조선정악전습소의 가야금 교사로 재직했고, [[193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이론과 거문고, 가야금, 양금 등 실기를 가르쳤다. [[1930년대]]에는 [[편경]]과 [[편종]]을 제작하고 [[처용무]]를 재현하는 등 국악 전통의 복구와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분류:1884년 태어남]][[분류:1948년 죽음]][[분류:양근 함씨]][[분류:일제 강점기의 국악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
  • 허드슨 대학교 . . . . 2회 일치
         DC 코믹스의 허드슨 대학은 1969년에 배트맨(The Batman) 코믹스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딕 그레이슨]](로빈, 나이트윙)이 이 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묘사된다. 1984년 New Adventures of Superboy 코믹스에서는 슈퍼맨 클락 켄트가 이 학교에 다닐 것을 고려하는 묘사가 있다. 즉, '''[[슈퍼맨]]도 거부한 대학'''이다(…).
  • 허민행 . . . . 2회 일치
         * [[성수공업고등학교]]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수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허위 . . . . 2회 일치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는 허위가 순국하자 그곳에 있던 수로 쓰는 우물이 빨갛게 물들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말이 쓰여있다. [* 출처. 백범일지. 치하포 사건 후]
         여담으로 그의 증조카가 [[일제강점기]] 시기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 무장 투쟁 활동을 했던 [[허형]]이다.[[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local=gumi&dataType=01&contents_id=GC01201509|#]] 또한 당조카인 허길의 아들이 바로 시인 [[이육사]]이다. 직계 제자로는 대한 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이 있다. 박상진은 허위가 순국한 후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루기도 했다.
  • 허윤희 (방송인) . . . . 2회 일치
         * [[경희대학교]] 국제관계학 학사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허협 . . . . 2회 일치
         }}</ref> [[시복|시복]]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현소환 . . . . 2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출신인 그는 [[대한민국 해병대]] 간부후보 30기 출신이기도 하며 예비역 대한민국 해병 중위이다.
         [[분류:1937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 해병 중위]][[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2회 일치
         형불상대부라는 원칙이 사대부 계급을 [[면책특권]]이나 [[치외법권]]의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고대의 예(禮)는 엄격한 의으로서, 이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사대부로서 대우를 받을 수 없고 같은 사대부 계급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거나, 신분을 박탈 당하고 서인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또한 사대부로서 법을 어겨 형벌을 받을 상황에 놓이게 되면, 형벌을 받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치욕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었다.
         [[조선왕조]]에서 널리 쓰인 [[사약]]은 형상으로는 '자결'로서, 형불상대부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 호소키 카즈코 . . . . 2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한국 단국대학교에 많은 장학금 기부함
  • 홍금주 . . . . 2회 일치
         }}</ref> [[시복|시복]]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홍병주 . . . . 2회 일치
         }}</ref> [[시복|시복]]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홍서범 . . . . 2회 일치
         그 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라디오 DJ로 복귀하면서 wbs 라디오 홍서범의 wbs 가요 TOP 10 DJ와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wbs 라디오 홍서범의 노래 하나 추억 둘 DJ를 진행하였다. [[2006년]]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다재다능한 예능 감각으로 인하여 종합예술인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탤런트 [[강남길]]하고 중학교 동창이다.
         * [[2013년]] [[JTBC]] 《[[유자 상팔자]]》
  • 홍아름 . . . . 2회 일치
         [[고등학교]] 2학년 때 게임회사 광고 모델로 발탁된 것이 계기가 돼 [[FT 아일랜드]]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게 됐고 다시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에 출연하여 연기자 데뷔를 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5&aid=0000010871 인기드라마 ‘삼생이’ 의 주역, 경쾌한 스물다섯 홍아름] 레이디경향. 2013년 05월 06일</ref>
         ! 시상
  • 화식 화장실 . . . . 2회 일치
         [[의자]] 형태로 걸터앉을 수 있는 좌(양)과는 달리, 바닥에 설치된 변기 위에 쪼그려 앉게 되어 있는 형태.
  • 화표 . . . . 2회 일치
         그러나 이 화표는 결국 2012년 보시라이가 실각하고 체포되어, 부패와 범죄로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면서 [[설레발]]로 끝나고 말았다. 게다가 2016년 8월 5일, 베이징 신경보(新京報)에서는 네티즌들의 소을 인용하여 보시라이가 건설한 화표가 밤새 철거당했다는 소을 알려, 보시라이의 꿈처럼 그가 세운 --설레발-- 화표 역시 소멸하여 보시라이의 야망이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렸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 후리소데 . . . . 2회 일치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의 일종. [[소매]]를 길게 만든 기모노이다. 고대에는 [[관례]]를 치르기 이전의 남녀가 모두 입었으며, 현대에는 주로 미혼여성의 정장으로 사용된다. [[성인]], [[결혼]] 등에서 입는다.
  • 후예 . . . . 2회 일치
         후손이라는 말의 범위는 조금 애매한데, 직계자, 손자는 제외하는 것이 보통. 하지만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 창작작품 등장인물의 후손이 활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들 가운데 특히 자과 손자가 활약하는 경우를 [[2세물]]이라고 한다.
  • 히나마츠리 . . . . 2회 일치
          * 히나 인형(ひな人形) - 히나마츠리에 장하는 인형. [[헤이안 시대]]의 궁중 의상을 모델로 하고 있다.
         히나마츠리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헤이안 시대에는 인형 놀이로서 행해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에도 시대에 장물과 놀이로서의 의미 이외에, 인형이 대역이 되어 재액을 대신 받아낸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포함되었다. 에도 시대에 일본 전국에 널리 퍼진 풍속이 되었다.
  • 1000가지 위기의 순간 . . . . 1회 일치
         1000 Ways to Die. [[단막극]] 형으로 사고사 사례를 보여주는 미국의 TV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는 케이블 채널인 [[스마일TV]]가 방송 중.
  • 155밀리 롱 톰 . . . . 1회 일치
         [[미군]]에서 사용하던 [[야포]]. M1, M2, M59 등으로 발전했다. 롱 톰은 애칭이지만 형번호로 쓰면 오히려 혼동되니까 이걸로 쓰는 경우가 많다.
  • 2013 K리그 심판매수 . . . . 1회 일치
         웃긴 사실은 매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남은 강등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는 동년 11월에 검찰이 공으로 발표함으로써 경남은 매수구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연맹은 2016시즌에 들어가기 앞서 경남 FC에게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21&aid=0001794783|승점 -10점과 벌금 7000만원을 부과]]함으로써 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연맹차원의 제재까지 가해지게 되었다. 당시 경남팬들은 말도못할 [[멘붕]]을 겪음은 물론이고, 구단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정도. 그리고 이 사건은 잊혀지나 했는데...
  • 3월의 라이온/122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키리야마는 뻔뻔할 정도로 침착하게 받아치며 선배들의 우려를 불시킨다.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한 편으론 그런 으로 사양하고 거리를 뒀다면, 키리야마가 굉장히 섭섭하게 생각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 3월의 라이온/127화 . . . . 1회 일치
          * 아카리를 의하고 있었던 건 처음 봤을 때부터.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1회 일치
          * 가게는 순간에 그때 일로 이야기꽃이 핀다.
  • ATM . . . . 1회 일치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은행 측에선 비용이 상당히 절감될 수 있기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이다. 이렇게 대중에 노출이 많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도때도없이 카드복제기나 도촬카메라 같은걸 설치한다. 조금이나마 힘 쓸 생각이 있는 놈들은 이걸 뜯어서 가져간다고한다. 이런 이유로 ATM도 보안에 대한 이슈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보안 업데이트를 꾸준히 실행한다. 자동화기기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위해선 어쨌거나 현금이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물 등지에서는 좀 최신 [[금고]]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억지로 뜯으면 잉크가 뿌려지거나 해서 사용할 수 없는 돈이 된다는 설정을 붙이기도 한다.
  • COCOM . . . . 1회 일치
         1991년 12월에 소련이 붕괴하여 냉전이 종되고, 1994년 3월에 폐지되었다.
  • CharacterTemplate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Crusader Kings 2/DLC . . . . 1회 일치
         궁정의사를 고용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시 궁정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성공적인 치료를 받았을 경우에는 능력치와 체력 수치에 버프를 받아 생존 확률이 증가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역으로 페널티가 붙는다. 이놈들은 "실험적인 치료"로 몸 한구석을 잘라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실험적인 치료는 사실상 로또라는게 문제지만. 신비주의자 의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자을 제물로 바치거나 자신을 제물로 바쳐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또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혀주는 건물인 병원을 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역병에 죽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을 위해 성문에 못질하고 가신들과 함께 [[히키코모리|히키짓]]하는 디시전도 생겼다.
  • Crusader Kings 2/궁정 . . . . 1회 일치
         음모와 책략을 담당하는 비공 직책. 자신의 음모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태준다.
  • DC 확장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 '''현재의 게시물 명칭은 정 명칭이 아닙니다.'''
  • Daisy Bell(Bicycle Built For Two) . . . . 1회 일치
         멋진 결혼을 할 수 없고 마차를 장만할 수도 없지만 함께 자전거를 탈 수는 있다며 청혼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1회 일치
         호전도는 해당 국가에 대한 인이 얼마나 깡패인지를 의미한다. 호전도가 높다는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핍박하는 일을 많이 했다는 뜻이므로 외교에 불이익이 붙는다. 호전도는 국가를 해방시키거나 괴뢰국을 해방시키거면 내려간다.
  • E-4B 나이트워치 . . . . 1회 일치
         1974년 처음 도입됐다. 냉전 종 이후에는 주로 국방장관의 의전용 비행기로 활동하고 있다.
  • Europa Universalis 4 . . . . 1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인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서 만든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인 Europa Universalis 시리즈의 4번째 게임. 보통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Crusader Kings 2]]와 비교되는 편이 많으며, 실제로도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유사하다~~당연하지 둘다 같은 제작사니깐.~~[* 엔진이 클라슈비츠로 같은게 가장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크킹은 유저가 '''통치자'''에 입장에서서 자기 가문원을 늘리면서 확장해가는 방이라면 유파는 유저가 말그대로 나라하나를 통째로 경영해가는 느낌이라는 것정도...?~~그러니깐 크킹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 유파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1회 일치
         이게임시작지점에서 가장 많은 땅덩어리를 지니고 있으며, 가장 높은 총개발도(developement)를 지닌 국가. 상당히 많은 고유시스템을 들고있는데, 고유 팩션인 천조국 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관료, 사원, 환관이 행정, 군사, 외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각 팩션의 영향력이 가장 높을경우 그 팩션이 보너스를 주는 형이다. 그리고 고유 정부체제인 천조국(Celestial Empire)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기술비용과 안정도 비용을 10%줄여주며, 모든 땅의 수입이 반이된다. 천명이란 시스템으로 반란도를 5줄여준다. 만약에 정통성이 70이하이거나 안정도가 음수가 될경우엔, '천명을 잃음'이 뜨면서 천명의 보너스가 사라지고 반란도가 5상승해 최종적으로 반란도 10이 늘어난다(...) 거기다가 중국계 문화권이 엄청 세분화되어 천명한번 터질경우엔 오나라, 촉나라, 연나라, 제나라등 소국들이 죄다 반란일으키고 독립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기도 한다...~~안습~~ 내적 완결성등 명한테 들어있던 수많은 디버프들이 전부 사라져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여전히 천명이란 고유시스템덕에 빵빵터지는 반군들을 맛볼 수 있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서구화를 하도록 하자
  • FrontPage . . . . 1회 일치
          * 반달리즘 행위에 대해서는 IP차단을 하며, 별 된다면 NTX 아이디에도 제제 조치가 가해집니다.
  • GHQ . . . . 1회 일치
         GHQ 통치 시기는 직접적인 군정이 아니라, GHQ의 지시를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시행하는 간접군정 방이었다. GHQ의 영향력은 경제, 문화, 정치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미쳤는데, 정치적 측면에서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이 개정되었으며, 지방자치와 선거제도가 개혁되었다. 교육, 문화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켰으며, 경제 개혁으로 [[재벌]]이 해체되었고, [[농지개혁]]으로 농촌의 [[지주]] 계급이 해체되었다.
  • GodTemplate . . . . 1회 일치
         ## 자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InterMap . . . . 1회 일치
         # 아래 "Uploads" 인터위키 Uploads:는 노스모크 모인모인 파일 연결을 지원하기 위함입니다.
  • JOY축제 . . . . 1회 일치
         2003년 5월 18일, JOY 라는 여성은 남편 HIDE와 동생 부부와 함께 [[술집]]에 가서 저녁 사를 했다. 이 때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 갔으며, 아이들은 술집 안을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그걸 가게의 어떤 사람이 "부모의 훈육이 나쁘다."고 발언하고, 딸이 그 사실을 JOY와 HIDE 부부에게 말하자 분노한 HIDE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점원들을 추궁하고, 색출해내서 점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다음 가게 점장에게도 소리를 쳤다…라는 내용의 일기를 올렸다.
  • MythTemplate . . . . 1회 일치
         ## === 동물, 물 ===
  • NavigationMacro . . . . 1회 일치
         목록문서를 다음과 같은 방으로 지정해주면 문서 상/하단에 Navigation 링크가 자동으로 추가됩니다.
  • PW1200G . . . . 1회 일치
         미국의 항공기 엔진 업체 플랫 앤 휘트니(P&W) 사에서 개발한 엔진. [[터보팬엔진]]이며, 회전하는 제트 터빈과 팬 사이에 기어를 넣는 기어드 터보 팬(GTF) 방을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기어드 터보 팬을 사용하여 터빈과 팬이 각각 가장 효율적인 속도로 회전하게 만들었으며, 터빈과 팬을 연결하는 축의 회전이 감속되어 소음과 연비가 크게 개선되었다.
  • PeopleTemplate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Project:Union . . . . 1회 일치
         [[동・물 관련 정보]]
  • StoryTemplate . . . . 1회 일치
         ## === 동물, 물 ===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1회 일치
          은행가.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인 주니어스 모건에게 금융업과 사업을 배웠지만 아버지와 다른 방[* 주니어스는 검증되지 않은 사업에 투자하는걸 꺼렸지만 모건은 검증되지 않은 사업인 전기에 투자했다.]을 선택한다. 위기에 처한 기업을 잡아먹는 일을 해온다.
  • This is the Police . . . . 1회 일치
          마피아 두목. 청바지와 니트를 입고다니는 나이에 비해 트렌디한 노인 같지만 실은 굉장히 잔인한 사람. 어떤 무기상들이 샌드의 허가 없이 프리버그에서 사업을 벌이자 그 무기상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어린 자까지 죄다 죽여버렸다고 한다. 켄드릭이 도망친/끔살당한 이후 보이드를 협박해. 켄드릭이 하던 일을 대신 하게한다.
  • USS 뷰캐넌 . . . . 1회 일치
         USS Buchanan.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미국-영국 [[구축함]]. 인상깊은 최후로 인해 원래 이름인 "USS 뷰캐넌"보다 영국 이름인 "HMS 캠벨타운"이 더 유명하다.
  • Victoria II/디시전 . . . . 1회 일치
         >비공적인 아루스투크 전쟁에 이후, 1842년 웹스터-애슈버튼 조약이 영국과 미국 간에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메인과 브런즈윅 사이 경계선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 결정안에는 오대호의 공동 사용과 49도선의 재확인, 대서양 노예 무역의 종결에 대한 약속이 담겨있었다.
  • Y2K 버그 . . . . 1회 일치
         연도를 두글자로 기억하는 컴퓨터들이 2000년이 되면 연도를 1900년으로 인,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버그. 당시 1990년대만 해도 컴퓨터가 상당히 많은 곳에 퍼져 있었기에 이 버그는 회사나 국가의 전산 시스템, 병원의 의료기기 등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것이라고 예상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22900099118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8-12-29&officeId=00009&pageNo=18&printNo=10254&publishType=00010|매일경제 1998년 12월 29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くぁwせdrftgyふじこlp . . . . 1회 일치
         예상외의 일이 일어났을 때 의이 혼란해서 내뱉는 말을 표현하는 문장.
  • 가상 메모리 . . . . 1회 일치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은행 순번표 같은 형[* 이를 페이징(Paging)이라고 한다.]으로 각 메모리 공간마다 순번을 할당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돌려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 메모리 공간을 초과한 프로그램을 올려도 '일단은'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또한, 메모리 단편화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이는 메모리를 일정한 단위로 쪼개어 쓰기 때문이다.
  • 강중인 . . . . 1회 일치
         '''강중인'''(姜仲仁, <small>일본 이름: </small>德田仲仁, [[1908년]]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법조인이다.
  • 강호 . . . . 1회 일치
         강호는 『장자(荘子)』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말로서, 『사기(史記)』 「화열전(貨殖列伝)」에서도 발견된다.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개성 발현 2~3세대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구시대의 악습.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끼리 결혼시켜 더 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결혼이다. 사실상 인간 품종 개량이라 봐도 무방한 것. 개성 사회의 씁쓸한 부분이며 현 시대에서는 상술한 대로 구시대의 악습이라 인되는 듯 하다. 그런데 극중에서 한 히어로가 이를 현대사회에서 실행했다.
  • 개표방송 . . . . 1회 일치
         과거에는 단순히 숫자만 올라가는 단순한 형의 개표방송을 했지만, 2010년 들어서는 방송사들끼리 경쟁이 격화되면서 개표방송에도 다양한 컨텐츠가 나타났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1화 . . . . 1회 일치
          * 봄바는 안면인 장애를 넘어서 성별도 못 알아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2화 . . . . 1회 일치
         * 용기를 얻은 키리에가 학교에서 바깥 우마루에게 부탁하여 같이 출판사로 향하게 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5화 . . . . 1회 일치
          * 옛날 정육점 고로케를 사먹으며 산책을 시작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9화 . . . . 1회 일치
          * 공 사이트의 확률은 5%. 나오지 않을 정도의 확률은 아니지만 매우 낮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3화 . . . . 1회 일치
          * 드디어 학교에서 마라톤 대회가 개최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4화 . . . . 1회 일치
          * 정으로 출판을 진행하고 있는 모토바 키리에는 어느새 키링링이란 펜네임도 생겼다.
  • 건포인트 . . . . 1회 일치
          $600. 배터리 하나를 소모해 콘센트를 이용한 부비트랩을 만든다. 콘센트에서 기구로 전선을 이은 후 콘센트에 입력하면 연결된 기구에 전기가 흐르는 방. 복잡해 보이겠지만 직접 해보면 안다.
  • 경골목구조 . . . . 1회 일치
         183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건축법]]. [[나무|목재]]로 골조를 만든 후, 그곳에 [[기계]]로 만든 목재를 기계로 만든 못으로 고정하는 방이다. 이 건축법이 발명되기 전까지의 나무 집은 바람이 잘 들어오는 [[통나무집]]이나 비싼 공법으로 만든 나무 집이었다나.
  • 계력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고대 그리스 . . . . 1회 일치
         --[[고려대학교]] 그리스어과--
  • 고릴라 보스 . . . . 1회 일치
         갱스터. 가스실에서 사망했으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려 뒀는데 그 내용은 자기 뇌를 [[고릴라]]에게 이하는 것. 이렇게 해서 고릴라의 몸을 얻었다.
  • 공의존 . . . . 1회 일치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며, 그렇게 인정을 받음으로서 정신적 안정을 추구하고, 자신의 희생으로서 타인을 컨트롤 하려고 하는 행위. 연인이나 부부, 부모자 등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기 쉽다. 자아 존중감이 약한 개인에게 발생하는 일이 많다.
  • 곽월 . . . . 1회 일치
         ***** 자부 : [[상주 김씨]](尙州金氏), [[조]]의 외손녀
  • 광해군 . . . . 1회 일치
         왕이 된 이후에는 이이첨과 정인홍 등의 [[대북]]을 중용했으며[* 다만 유희분과 박승종 등의 [[소북]]도 이 시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또한 반대로 정치적인 중용과는 별개로 이이첨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강성해가는 후금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당시 사르후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던 강홍립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동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다만 광해군 본인은 세간의 인과 달리 대동법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 괴인 통카라통 . . . . 1회 일치
         학교의 무서운 이야기 하나코씨가 왔다 에서 등장했다. 주제가에서 아이들을 괴이에서 지켜준다고 하는 하나코씨는 이 에피소드에서는 특별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 국부펀드 . . . . 1회 일치
         국가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목적의 국영 펀드. 국부펀드는 주로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으며,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가지고 운용한다. 자금투자운용은 일반적인 투자펀드와 비슷하게 [[채권]], [[주]], 부동산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 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미국 텍사스 주, 오레곤 주의 주에서 보유한 펀드는 주정부 소유의 공유지 토지임대수익으로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
  • 궁가 . . . . 1회 일치
         일본의 궁가인 미야케는, 역사적으로 다소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게 된다. 본래 고대에 천황가의 방계후손은 [[신적강하]]라는 절차를 거쳐서 성씨를 받고 천황가에서 이탈하여 신하의 가문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후대에는 신적강하를 하지 않고 천황가의 일원으로 남으면서, 천황가의 분가를 창설하는 것이 허용되게 되었는데 이를 미야케라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천황가의 분가로서 미야케는, 천황가의 본류 혈통이 단절되면 양자로 입적하는 형으로 천황가를 계승,유지하는데 공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 권성욱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1998년]] [[2월]]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의 지역방송국인 PSB 부산방송(현재 [[KNN]])으로 입사하여 아나운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주로 프로야구 중계를 많이 담당하였다. [[2001년]]부터는 스포츠 전문 케이블방송인 [[KBS N 스포츠]]로 소속을 옮겨 [[2013년]]까지 [[KBO 리그]], [[KBL 리그]] 농구 중계를 담당하였다.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때는 일부 필드경기 및 시상 장내해설을 맡은 바 있다. [[2014년]]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마이크를 내려놓았는데, 2015년 5월 2일과 10월 21일 2경기 마이크를 잡았으며, 2016년 4월 1일, [[KT 위즈]]와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 귀면와 . . . . 1회 일치
         귀신, 도깨비 얼굴을 한 [[기와]]. 고대에 주술적, 장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 규동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일에 바쁜 육체노동 아저씨들이 대충 끼니를 때우는 용도로 인되었다.
  • 규성 진씨 . . . . 1회 일치
         춘추시대에 규성 진씨에서 규성 전씨가 분리된다. 진(陳) 나라의 공자 완(完)이 [[제나라]]로 망명하고, 제환공에게 중용되면서 전(田)씨가 시작되었다. 진씨가 전씨로 바뀐 까닭은 몇 가지 설이 있는데 (1) 진완이 전(田) 땅을 [[읍]]으로 받았다.[* 《사기집해》, 응소] (2) 진(陳)과 정(田)이 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 《사기색은》, 사마정] (3) 진완이 본국의 이름을 쓰기를 꺼려했다.[* 《사기정의》, 장수절] 등이 있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 . . . . 1회 일치
          1997년 발매. 현재 나오는 GTA와 달리 탑뷰 형이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바이스 시티, 뉴욕을 모티브로 한 리버티 시티, LA를 모티브로 한 산 안드레아스를 배경으로 한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1회 일치
          그로브 스트리트 패밀리즈의 단원. CJ의 친구로 엄청난 대가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1회 일치
          단발 소총. 상당히 먼 거리까지 날아간다.
  • 그랜드 펜윅 공국 . . . . 1회 일치
         매우 작아서 듣보잡 취급 받는 국가. 대부분이 중세 시대에 멈춰있다. 군대의 주무장이 장궁일 정도. 하지만 해외에 대한 소은 접하는 듯.
  • 그린 랜턴 . . . . 1회 일치
         DC의 인기 히어로다보니 실사 영화 소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 금고 . . . . 1회 일치
         [[현금]], 중요 서류, [[귀금속]] 등의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한 [[금속]]제 상자. 쉽게 뜯기 힘들도록 튼튼하게, 옮기기 힘들도록 무겁게 만들며 [[자물쇠]]를 달아놓는다. 자물쇠는 열쇠나 다이얼키, 번호키 등 다양한 방으로 만들어진다.
  • 금일봉 . . . . 1회 일치
         [[돈]]을 집어넣은 [[봉투]]. 쉽게 말하면 '돈봉투'. 시상 등에서 점잖게 말할 때 금일봉이라고 한다.
  • 금형 . . . . 1회 일치
         취미계에서 금형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 곳은 [[프라모델]] 취미이다. 프라모델 제조는 금형에 플라스틱을 붓고 주조하는 형으로 만들어진다.
  • 기동전사 건담 실루엣 포뮬러 91 . . . . 1회 일치
         제브라 존의 폐기 콜로니에 숨어사는 네오지온의 잔당. 연방정부에 그 존재는 일단 인되고 있으며, 생존권은 보장되고 있다.
  • 기축통화 . . . . 1회 일치
         1999년에 유럽 각국의 통화가 통합되고, 특히 서유럽에서 지배력을 가지는 독일 마르크화와 구 프랑스 민제국이었던 서아프리카 경제권에 밀접한 프랑화가 핵심이 되어 유로화가 출범하였다.
  • 긴나라 . . . . 1회 일치
         ## 자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김무력 . . . . 1회 일치
         금관가야 구형왕은 [[신라]] [[법흥왕]]에게 항복하였다. 이 떄 구형왕의 세 아들은 첫째가 노종(奴宗), 둘째가 무덕(武德), 그리고 막내가 무력(武力)이다. 법흥왕은 이들에게 가야 땅을 [[읍]]으로 주고 벼슬을 내렸다.
  • 김민호 (희극인) . . . . 1회 일치
         [[경일대학교]] 기계공학 중퇴
  • 김병준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2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병준(육상) . . . . 1회 일치
         ||<#131230> '''{{{#white 학력}}}''' || 대구체육고등학교 ||
  • 김석형 (역사학자) . . . . 1회 일치
         김석형은 1963년 칠지도의 명문을 근거로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고 고대 삼국이 일본(당시 왜)에 민지 국가인 분국을 세웠다는 이른바 [[삼한 삼국 분국설]]을 주장했다.
  • 김장섭 . . . . 1회 일치
         1958년부터 1959년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1959년 농림부(현 [[농림축산품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김익노]]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상북도)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반민주주의자로 결정되었다. 이에 공민권 제한 대상자가 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김정우(1990) . . . . 1회 일치
          * What U 활동 당시 일명 참치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본인은 정말로 방송 대기용 단으로 받는 참치김밥이 싫증나는 심정에 일을 벌였을지 모르나 [[동원참치]]로부터 참치튜브를 선물받고, 결과적으로는 정말 참치왕자가 되어버렸다..[[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36624|#1]] [[http://www.scoopnest.com/kr/user/topstarnews/616167750969479168|#2]]
  • 김처선 . . . . 1회 일치
         SBS [[사극]]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 각색이 심하게 되어 실제 김처선의 일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려진다. 당장 활동 연대부터 실제 역사와는 크게 달라 성종 즉위 이후부터 내관을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론 손녀 뻘인 [[폐비 윤씨]]와 비슷한 나이로 설정되어, 그녀를 평생 동안 사모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폐비 윤씨의 자인 연산군을 어려서부터 돌봐준 인물로 중종 반정으로 귀양가 있던 연산군이 어린 시절 김처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후회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로, [[배우]]는 [[오만석]].
  • 김취경전 . . . . 1회 일치
         [[계모]] 안씨(安氏)는 남매를 사랑하다가 자신의 아이 설애(雪愛)를 낳고 나자 시기하고 모함을 한다. 결국 취경은 집에서 쫓겨나고, 선애는 안씨에게 반대하는 이복동생 설애[* 보통 계모 소설에서 계모 자은 계모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취경전에서는 계모에게 반대하는 역할로 나온다.]와 함께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1회 일치
          * 현장에 있던 전원이 순간에 탈락. 요아라시가 혼자 120명을 탈락시키고 최초 합격자가 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3화 . . . . 1회 일치
          * 불꽃 소용돌이에 갇혀버린 갱 오르카. 토도로키 쇼토와 요아라시 이나사의 집념이 담긴 합체공격은 갱 오르카를 효과적으로 붙들어놓는다. 갱 오르카도 방금 전의 감점사항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대처라고 만족해한다. 두 사람이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갱 오르카는 범고래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건조에 약하다. 그래서 이런 방의 공격에는 대처하기 매우 까다로운데. 부하들은 갱 오르카를 구출하기 위해 몰려드나 이것을 예상한 토도로키가 얼음벽을 쳐서 방어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1회 일치
          * 방송으로 올마이트에게 물러나라고 통보된다. 올 포 원은 "유감스럽게도 여기선 날 때릴 수 없다"며 조롱한다. 올마이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모든 걸 아는건 너 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차피 올마이트도 올 포 원의 생각은 짐작하고 있다. 그는 올마이트가 가장 싫어하는 것만 생각하니까. 분명 스승의 자인 시가라키가 올마이트를 죽이고 그의 제자 미도리야 이즈쿠도 죽이게 하려는 계획이다. 올 포 원은 여유롭게 "그래서?"라고 되묻는다. 올마이트는 잠시 [[그랜토리노]]의 말을 생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8화 . . . . 1회 일치
          * 그라운드 베타의 소란은 곧 감시자들의 눈에 들어간다. 소은 곧장 담임인 [[아이자와 쇼타]]에게 전달된다. 아이자와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같은 통보에 "진짜냐"고 투덜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1회 일치
          돌격하던 미도리야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바쿠고는 공중전으로 가면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며 첫 킥을 막고 카운터를 넣을 작정으로 함께 뛰어오른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이 순간에도 작전을 짜고 있었다. 방금 전 부딪힘으로 바쿠고는 풀카울 8%의 킥을 강하게 의하게 됐다. 도약도 전부 이 점을 노린 계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1회 일치
          그녀도 아마지키 못지 않게 괴짜같은 면모를 드러낸다. 인턴 제도의 설명을 부탁받고 왔다면서 곧바로 A반 학생들을 뜯어보며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기 시작한다. 우선은 앞에 있던 [[쇼지 메조]]에게 마스크를 왜 썼냐고 묻는다. 근데 쇼지의 대답도 듣지 않더니 다음은 [[토도로키 쇼토]]에게 얼굴의 화상 자국 같은 민감한 부분도 마구잡이로 질문한다. 또 대답도 듣지 않고 다음 학생, 그런 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게 신기하거나 이상하다고 말하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카미나리나 [[아시도 미나]]는 천연스럽고 유치원생 같다며 귀여워하는데 대부분은 불편해한다. [[미네타 미노루]]는 "나의 알(머리에 생성되는 알)에 대해 묻다니 성희롱이다"는 개드립을 치다 제지 당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1회 일치
          * 밀리오는 예상대로 미도리야 이전에 후계자 후보. 올마이트는 그 점을 아직도 의하고 있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1회 일치
          밀리오의 히어로명은 "루밀리언". 올마이트를 의한 작명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1회 일치
          * 첫 인턴활동을 마친 미도리야. 그러나 그때 들은 말들이 마음에 걸려서 학교 생활에 영향이 올 정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회 일치
          * 올마이트는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미도리야를 후계자로 정했을 때 당연하겠지만 [[서 나이트아이]]에게도 소을 전했다. 그러나 무개성의 중학생이 그 주인공이라고 하자 나이트아이가 크게 반발했다. 그런 아이가 뭘할 수 있냐는 나이트아이에게,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의 "남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마음 만으론 구할 수 없고 달리 적합한 인간은 얼마든지 있을거 아니냐고 정론을 펼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1회 일치
          오버홀은 보안을 위해서 한 조치이고 이 지하엔 그런 으로 구성된 루트와 방이 몇개나 있다고 말한다. 오버홀 옆의 작은 복면이 그런 괴팍함 덕분에 아직까지 생존하는 거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시라가키에게 지난번 전화로 한 말, "조건에 따라 가담하겠다"고 한 말은 사실이냐고 묻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1회 일치
          >네 얘기는 알바 아니라고 자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1회 일치
          * 상적인 접근법이긴 하지만 너무 신중한 움직임이다. [[패트껌]]은 "[[올마이트]]의 사이드킥 칙곤 답답하다"고 힐난한다. 다혈질인 그는 이미 소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너무도 지지부진한 방법이라고 성토한다. 나이트아이는 거기에 "우린 올마이트가 아니다"고 받아치며 그러므로 분석과 예측을 거듭해 성공률을 10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항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1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 [[패트껌]]을 필두로 히어로와 경찰 연합군은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고 있다. 추격대에 있는 [[키리시마 에지로]]는 학교 선배이자 사무소 선배이기도 한 타마키의 안전을 걱정하고 [[미도리야 이즈쿠]]도 동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록록의 잠금도 한계는 있고 [[미도리야 이즈쿠]]가 잠금 한계를 넘어서 압박하는 벽을 직접 때려부수는 으로 겨우 지탱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0화 . . . . 1회 일치
          * 둘은 개성을 조합해 밀리오를 물심양면에서 농락하나 밀리오는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각오를 새롭게 하고 순간에 둘을 쓰러뜨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1화 . . . . 1회 일치
          * 밀리오는 어떻게 자신의 아이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일갈하나 그는 "나에겐 자이 없다"고 대꾸하고 통로를 파괴, 재수복하면서 밀리오를 고립시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1회 일치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의 행동을 보였지만 미도리야, 밀리오, 나이트아이가 죽어도 에리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이면서 의이 바뀐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죽고 다치기를 원치 않는데서 나아가 자신이 남을 돕고자 생각을 바꾼 것. 본래 개성은 대상을 "되감는 능력"으로 오버홀의 수복 능력의 상위호환이다. 어린 탓에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스스로 의지로 쓰지도 못하고 불현듯 발동해 아버지를 태어나기 전 상태로 "되감아"버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모친인 두목의 딸에게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버림 받았지만 두목에게 거둬졌다. 두목은 오른팔격인 오버홀에게 보호와 개성 규명을 맡겼는데 오버홀이 조직을 장악하고 연구를 악용해 지금에 이른 것. 한 번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떨어지는 루밀리온의 망토를 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각성, 그와 함께 뿔에서 능력이 발현해 네모토 신과 융합한 오버홀의 상태를 이전으로 돌린다. 그리고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붙잡고 올라오도록 돕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1회 일치
          * 한편 지하에서는 [[류큐]]가 드래곤 폼으로 일행을 지킨 덕에 사상자는 생기지 않았다. 오버홀은 쏟아지는 잔해에 휩쓸렸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몸을 재구성해 무사하다. 여전히 에리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며 의을 잃은 "카츠카메 리키야"를 흡수해 다시 한 번, 이번엔 완전히 미도리야를 죽이려 든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1회 일치
          * 마침 [[올마이트]]도 도착해 있는데, 나이트아이의 상태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을 듣고 오는 길이다. 나이트아이는 상태가 너무 나빠 리버커리걸의 치료도 먹히지 않는다. 나이트아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병상에서 올마이트와 재회, 올마이트가 "네게 끔찍한 짓을 했다"고 사과하자 그저 올마이트가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가 저항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올마이트는 그도 저항하라며,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남에게 폐를 끼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며 그동안 올마이트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오늘 미래를 바꾸는걸 보여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미래를 바라는 힘이 "에너지"의 형태로 모여서 미도리야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추측한다. 원 포 올 100%가 해방된건 그 덕. 그렇게 미래가 바뀌는 걸 봤으니 만족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9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토코야미가 빌런을 순간에 박살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2화 . . . . 1회 일치
          * 다비는 "[[올마이트]]와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고]]를 계속 흔들면 결국 사회 전반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겠냐"며 자신들의 활동이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들을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1회 일치
          * 바쿠고 탈환작전이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고]]와 미도리야의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1회 일치
         * 거리의 대형스크린에서는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 관계자들의 사죄방송이 방영 중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1회 일치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을 앞두고 프로 히어로,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고]], 학생들 사이에서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이 감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2화 . . . . 1회 일치
          * 시가라키 토무라 또한 히어로의 자일 거라는 추측이 많았는데 심지어 올마이트의 스승 시무라 나나의 손자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1회 일치
          * 그는 올마이트가 미도리야에게 그랬듯 시가라키 토무라에게 "경험도 증오도 회한도 모두 양으로 삼아라"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미도리야에게 정으로 "은퇴다. 정상적으로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다."고 고백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1회 일치
          * 우측이 여자동, 좌측이 남자동인데 1층은 공동 구역이며 탕, 욕탕, 세탁 등을 처리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1회 일치
          * 당선자는 사토 리키도. 여자 표를 독하며 우승했다.
  • 남동훈 . . . . 1회 일치
         | 학력 = [[한국체육대학교]] 재학
  • 내추럴 하이 . . . . 1회 일치
         일본 영어. [[내추럴]]과 [[하이]]를 결합한 말. 여기서 하이는 아마 마약의 고양 상태를 뜻하는 듯.
  • 네마와시 . . . . 1회 일치
          * 사전교섭 : 협상, 회의 같은 것을 수행하기 전에, 미리 사전 교섭을 진행해두는 것이다. 비공적으로 미리 협상이나 회의에 나올 사람들에게 교섭을 하여, 실제 협상이나 회의를 원할하게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 노 오디너리 패밀리 . . . . 1회 일치
         가족 히어로라는 점에서 [[판타스틱 포]]를 연상케하는데 의도한 것인지 주연인 짐 파웰을 맡은 마이클 치클리스는 판타스틱 포 실사영화에 출연했다. 이러한 점을 의한 것인지 국내에서 방송할 때도 제목이 '판타스틱 패밀리'. 방송사인 ABC도 [[마블 코믹스]]와 연관이 있다. 이외에도 가족 히어로라는 공통점 탓에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떠오르게 한다.
  • 노예 . . . . 1회 일치
         같은 [[기독교]]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금기시 되었으나, [[유럽]] 대륙에는 암암리에 사실상 노예인 [[농노]]가 존재했다. 근대 시기에 들어서 [[영국]], [[프랑스]] 등은 [[노예제|노예 제도]]를 철폐했지만 [[민지]]에서는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 노인 홈 . . . . 1회 일치
         [[양로원]]의 일종. [[노인]]이 거주하기 위한 시설. [[주거]]와 사제공, 간호제공, 세탁과 청소 등의 가사, 건강 관리 등 일상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개 유료 시설이 많으며 입주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 노포 . . . . 1회 일치
         조상 대대로 같은 [[가업]]에 종사하면서 열어온 가게를 뜻한다. 단순히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만큼 격이 있고 신용이 있는 가게를 의미한다.
  • 녹색 종이 . . . . 1회 일치
          * "아침에 일어났더니 책상 위에 녹색 종이가 놓여있었다."라는 으로 쓰인다.
  • 뇌가 끓고 있다 . . . . 1회 일치
         뇌에 과도한 열을 받으면 신경 세포에 타격이 가서 정신적으로 이상해지는데, 정상적인 사고방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이러한 상태를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제정신이 아니다."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 뇌피셜 . . . . 1회 일치
         '뇌내 오피셜'의 약자. 그 자신의 뇌내에서만 오피셜(공적)인 정보라는 것이다. 주로 "내 주변에서" 같이 한정된 사례를 논쟁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그리고 한글판 공메뉴얼에도 당당하게 나와있는 '''"유아체형"'''이며, 빈유다 못해 가슴이 없다. 여기에 콤플렉스가 있는지 나이스 바디를 가진 리젤의 가슴을 가지고 놀려먹는게 일상이다.
  • 니세코이/217화 . . . . 1회 일치
          * 이치죠가 텐쿠 고원으로 향했다는 소을 듣고 마리카는 "마지막 억지"라며 요코에게 부탁한다.
  • 니세코이/221화 . . . . 1회 일치
          * 열쇠 증의 원흉은 유이.
  • 니세코이/224화 . . . . 1회 일치
          * 자기 하나만 사라지면 둘이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냐며, 정말로 그럴 작성이라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학교를 다니던가 모든 것을 이야기한 후 양보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 니시노 카나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니쿠쟈가 . . . . 1회 일치
         ※) 조우니(雑煮)…일본 떡국
  • 닥터 시바나 . . . . 1회 일치
         설정에 따라서는 재벌 설정도 붙었으며 이 시기에는 [[렉스 루터]]에게 주 사기를 치기도 했다. 가족들도 있다.
  • 단기대학 . . . . 1회 일치
         미국의 주니어 컬리지, 혹은 커뮤니티 컬리지에 해당하며, 한국에서는 전문대에 해당. 물론 나라마다 특징이 있으므로 세세하게는 차이점이 있다. 비슷하게 전문대학과 비교되는 ‘전문학교’와 ‘단기대학’은 또 다른 것이므로…. 혼란스럽다.
  • 단기선교 . . . . 1회 일치
         [[대한민국]] 교회의 단기해외선교 활동은 1989년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만 1990년대 중반까지 단기선교는 일반 참가자가 아닌 해외 선교사 육성을 위하여 선교사 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체험여행에 가까운 형으로 일반인을 모집하여 단기선교를 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는 일종의 이벤트 사업으로서 대형교회의 재정적 이유가 배경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단종 . . . . 1회 일치
         문종의 적장자로, 조선 왕조 최초로 원손-세손-세자-왕이 된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타고난 왕'''이다. 그러나 문종이 너무 일찍 서거한데다 문종이 일찌기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수렴청정과 같은 왕권 수호책을 펼치기 힘든 등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을 위시한 장성한 숙부들의 정치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세종도 일찌기 이러한 우려를 하고는 있었으나, 형제들과 다투며 보위에 오른 태종과 자신의 선례를 의했는지 과감하게 이들의 힘을 거세하지 못하고 다만 [[김종서]]와 [[황보인]] 등의 원로 대신들에게 단종을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한다.
  • 대군 . . . . 1회 일치
         덴노가 있다는 것은 외부에서도 왠만큼 다 알고 있지만, 덴노에게 실권이 없다는 것도 알만큼 다 알고 있었으므로, "자칭 일본 황제라는 놈이 있대. 근데 이름만 그럴 뿐이지 걔가 다스리는건 아냐."하는 수준으로 인되고 외부에서는 쇼군이 진짜 통치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 대마신 . . . . 1회 일치
         [[괴수물]]에 시대극적 요소가 융합된 특이한 [[특촬물]]인데 주역 괴수 대마신의 행동도 다른 괴수가 단순무한 파괴인 것에 비해 악인에게서 사람들을 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보니 가메라처럼 수호자의 캐릭터성이 있는 편.
  • 대잠비행정 . . . . 1회 일치
         상대적으로 해군력이 뒤떨어지는 소련의 경우는 대잠비행정을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비행정 제조는 주로 벨리에프 설계국[* 소련 붕괴 이후 수호이의 사업부로 흡수]이 맡았는데, 이 설계국에서 개발한 Be-12는 소련 붕괴까지 계속 운용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등 몇몇 나라에서 대잠공격기 등의 용도로 운용되었다. 1980년대에 소련은 Be-12의 후속기로서 A-40 ALBATROSS를 개발하였으나, 소련 붕괴에 경제위기가 닥치고 붕괴한 탓에 정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 대중흑기 . . . . 1회 일치
         [[가마쿠라 시대]]에 겐지 일족이 각지에 정착하여 여러 분가로 분할되면서, 백기 역시 그대로 쓰이지 않고 분리된다. 대중흑기는 백기의 바탕에다가 검은 실선을 그려서 만들어진 닛타 가문의 표이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서사모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 당시 사모아가 뉴질랜드의 민지였기 때문에 제안될 수 있었던 플랜이다.
  •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 . . . 1회 일치
         D&D 클래 룰과 미스타라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횡스크롤 게임으로 만들었던 전작 [[던전스 & 드래곤스: 타워 오브 둠]]의 후속작이다. 전작에 비해 확실하게 나아진 밸런스와 늘어난 직업군, 마법, 특수 스킬을 구현함으로써 인기를 얻었던 게임이다.
  • 데모데모닷데 . . . . 1회 일치
         본인에게 문제가 발생하고, 상담을 원해서 상담을 받아주고,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줘도 「하지만」나한테는 무리. 「하지만」못할 것 같고. 「그래도」 자신 없고. 이런 의 답변만을 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회피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사람, 혹은 그러한 태도를 뜻한다.
  • 데일리 야마자키 . . . . 1회 일치
         [[야마자키 제빵 주회사]]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프랜차일즈.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 마트 등의 대규모 편의점에 비해서는 보기 드물다.
  • 도광록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14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도노 . . . . 1회 일치
         주로 중세 일본에서 [[영주]] 급의 [[귀인]]에 대하여 부르는 높임말. 인명이나 신분에 붙여서 "-님" 정도의 수어로도 쓰인다.
  • 도모세 . . . . 1회 일치
         * [[협성고등학교]]
  • 도부스 . . . . 1회 일치
         부스(ブス)는 추녀를 뜻하며, 접두사 [[도-]]는 강조하는 수어이다. 따라서 도부스(ドブス)라면 엄청난 추녀라는 뜻이 된다.
  • 돌비 . . . . 1회 일치
         커피나 두유 등의 음료는 기포발생의 핵이 될 수 있는, 그릇 안쪽의 요철이나 액체 내부의 고형물이 없을 경우 과열 상태가 될 수 있으며, 된장국 같은 걸죽한 품 역시 대류가 일어나기 어려워 부분적으로 과열상태가 되고 돌비가 발생할 수 있다.
  • 돗자리 . . . . 1회 일치
         [[삼국지]]의 [[유비]]의 이전 생업이 돗자리 장수. 물론 물을 엮어서 만든 과거의 그 돗자리다.
  • 동왕부 . . . . 1회 일치
         ## 자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듀폰 . . . . 1회 일치
          * 다니스코(Danisco) - 품회사.
  • 드라콘 . . . . 1회 일치
         드라콘 법은 가해자의 의도에 따라서 구별하는 방을 도입하여, 에페타이(Ephetai)라는 [[배심원]] 법정을 설치했다. 이 법정에서는 피살자의 모든 '유족'(부모 형제가 살아 있을 경우에는 부모나 형제, 그렇지 않을 경우는 사촌이나 친척)이 용서해줄 경우 사면을 내릴 수 있으며, 유족이 없고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판단되면 프라트리아(Phratria)라는 기관[* 씨족과 부족의 중간 단계. 민주정치 이전에 시민의 명단을 관리했다.]에서 사면 여부를 결정한다. 우발적인 살인의 경우, 국가는 살인자가 아테네를 떠나서 국외로 망명할 수 있도록 안전한 이동을 보장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 드래곤볼 . . . . 1회 일치
         토리야마 아키라 원작의 만화. 한 시대를 풍미한 소년만화의 왕도격인 작품이었다. 스토리상으로 초반에는 '서유기'를 기반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 '닥터 슬럼프'를 섞어넣은 듯한, 슬랩스틱 코메디가 섞인 로드 무비 방이었으나 점차 소년 격투만화 스타일로 변모해 갔다.
  • 드럭스토어 . . . . 1회 일치
         드럭스토어는 약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슈퍼마켓]]처럼 각종 소매용품을 함께 판매하여 수익 증대를 꾀한다. 전통적인 약국이라기보다는 [[화장품]]이나 [[건강보조품]] 등을 파는 상점처럼 보인다.
  • 디펜더 2 . . . . 1회 일치
         전작과는 달리 한글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이 상당히 엉망이다. 'Strength'를 힘이 아닌 발음인 '스트렝스'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Final Judgement'를 '말일심판'이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Life'를 '생활'이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Kills'를 '죽이기'라고 번역하거나 'Final Fantasy'를 직역해서 '최종환상'이라 번역하는 등.... 위의 몇 오역된 표현들이 중국이고, 이 게임이 [[중국]]에서도 서비스가 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중국 번역을 중역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사실 Droidhen이 중국 회사인걸 생각해보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 딩크 . . . . 1회 일치
         영미권에서 [[맞벌이]]를 하면서 의적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부. 수익은 2인분, 아이는 없음을 뜻하는 더블 인컴 노 키즈(Double Income No Kids)의 머리문자에서 따왔다. Dinky라고도 한다.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1회 일치
          * 비타 솔샤르 슬레이마야 : 해리건의 영역과 인접한 슬레이마야 일족의 지도자. 로리한 외모와는 달리 나이는 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를 조종하는 마법을 구사하며, 마녀들에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제시하는 나가에게 흥미를 느끼고 해리건 일족과 연합한다. 본인도 나이를 의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나가가 맘에 들어서인지 나가가 그녀를 보고 귀엽다느니, 나이가 많은 게 믿겨지지 않는다느니 하니까 기분좋은 반응을 보여준다.
  • 라구 . . . . 1회 일치
          * 서양 요리로, 같은 발음이 나는 요리는 두가지가 있다. 두 요리의 이름은 모두 '욕을 돋구다', '마음을 끌다'라는 뜻을 가진 불어인 ragoûter에서 유래된다.
  • 라데츠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라마 . . . . 1회 일치
         영국의 코미디 프로그램 [[몬티 파이슨의 날으는 서커스]]에서는 강에 서하며 꿀을 먹고 사는 위험 생물로 설명된다. Cuidado! Llamas!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랄프 알거 배그놀드 . . . . 1회 일치
         1915년 가족 전통에 따라 영국 육군 왕립 공병대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전쟁이 끝날 때 까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하였다.
  • 러시안 룰렛 . . . . 1회 일치
         미친 게임으로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리볼버]] 권총의 회전 탄창에 [[탄환]]을 1개 넣고 장전한다. 탄창을 돌린 다음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 런던 . . . . 1회 일치
         브리튼 섬이 로마의 민지이던 시절, 로마군이 세운 요새 "론디니움"(Londinium)이 시초이다.
  • 레드맨 . . . . 1회 일치
         [[https://www.youtube.com/channel/UC5PBnSG7C0WXp5gjd4bzKtw|유튜브의 츠부라야 공 채널]]에서 일주일에 몇개씩 시한부로 풀어줬었다. 지금은 다 풀어줘서 [[오프닝]]과 1화만 볼 수 있는 상태.
  • 레이나 검랑전설 . . . . 1회 일치
         레이나가 [[지구]]로 [[차원이동]]하여 [[여학생]]이 되어서, 학교에서 암약하는 악의 존재를 물리치는 내용이다. [[라이너 브라운|특별한 이유는 없는 뜬금없는]] 차원이동에, [[Equestria Girls|레이나가 별다른 묘사도 없이 학생들 사이에 끼어들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라진 뒤에는 친구들의 기억에서 애매하게 잊혀지는, 몽환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다.
  • 레이프 . . . . 1회 일치
         [[라틴어]] rapere 에서 왔다. 이 단어는 제압하다, 유괴하다, 뭔가를 강제로 끌고 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게 현재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라틴어에서는 이러한 의미로는 stuprare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였다. 원시 프랑스어(Old French) rapir를 거쳐서, 영국 프랑스어(Anglo-French) raper 를 거쳐, 중세 영어에서는 rapen, rappen으로 쓰였고, 현대 영어로 rape가 된다. 노르만어, 스웨덴어, 저지 독일어 등에도 유사한 단어가 있어 이들과의 연관관계도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 로어셰크 . . . . 1회 일치
         18살 때, 코백스는 [[키티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 40여명의 시민들이 제노비스가 소리치는 걸 들었음에도 그녀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걸 방관했다는 소을 접한 코백스는 2년 전 자신이 얻었던 옷감으로 마스크를 만들고 "로어셰크"로써 활동하게 된다. 이때는 범죄자들을 죽이지 않았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1회 일치
          * 리 인 : 사이파카르의 객으로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글래머. 사이파카르야말로 제국의 통치자에 합당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다.
  • 롬팩 . . . . 1회 일치
         내부에 게임 데이터 세이브를 위한 메모리를 탑재하기도 한다. 주로 긴 시간 플레이를 하는 RPG 게임이 대부분이다. [[건전지]]와 RAM의 조합을 이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RAM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건전지로 전력을 계속 흘려넣어서 보존하는 방이다.
  • 류원기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류자키 레이카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리듬게임 . . . . 1회 일치
         비디오 게임의 일종. 재생되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서 버튼을 누르는 으로 진행되는 게임을 뜻한다.
  • 리스트 컷 . . . . 1회 일치
         손목(wrist)을 벤다(cut)는 뜻으로 만들어진 일본 영어이다.
  • 마기/295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는 시설과 홍명의 견을 보고 "조금만 빨랏어도 정말로 황제국이 세계를 정복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마기/303화 . . . . 1회 일치
          * 어쨌든 자신이 황제국의 재군비에 대한 우려를 불시킬 이유는 없다고 단언한다.
  • 마기/308화 . . . . 1회 일치
          * 뉴스에서는 황제국 상회의 희소이 다뤄지고 있다.
  • 마기/309화 . . . . 1회 일치
          * 핏덩이가 된 몸을 순간에 재생해서 "이정도 상처는 금방 낫는다"며 비웃기까지 한다.
  • 마기/310화 . . . . 1회 일치
          * 암흑대륙의 물을 이용한 마법으로 균을 침투시켜 신체를 부수는 마법.
  • 마기/317화 . . . . 1회 일치
          * 그녀가 원한을 가지고 있는 "그 일"은 황제국의 내전을 종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강조한다.
  • 마기/319화 . . . . 1회 일치
          * 그녀는 급한 소이라며 "성궁에 갈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는데.
  • 마기/326화 . . . . 1회 일치
          * 그러다 문득 유난이 잠시 의을 놓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곧 아무렇지 않다고 알라딘을 안심시킨다. 알라딘은 부상의 영향일 거라고 생각하고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유난은 자기는 일단 은신처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알라딘도 황제국으로 돌아가기로 하면서 조사는 종료.
  • 마기/341화 . . . . 1회 일치
          알라딘의 말은 이어진다. 그는 "내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고 인정하며 처음엔 루프의 인도에 따라 주어지는 대로만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그는 변했다. 사고방은 변한다. "다른 누군가"와 만날 때마다. 신드바드는 "그럼 결국 누군가에게 끌려가야만 한다고 말하는 거냐"고 반박한다.
  • 마기/342화 . . . . 1회 일치
          >우리 인간은 그런 으로 만들어졌어.
  • 마기/343화 . . . . 1회 일치
          그 중 가까운 곳에 있는 두 사람이 "시끄럽다"고 투덜거렸다. 알리바바는 죽은지 얼마 안 돼서 기억이 재생되는게 "떠들썩"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소리가 그들에겐 시끄럽게 들렸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성욕이나 욕 같은 욕구도 옛날 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들 말고도 어떤 꼬마도 그에게 누구냐고 말을 건다. 이때 알리바바는 주위에 자신 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걸 자각한다.
  • 마기/349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가 내놓은 해결책에 누구보다 감탄한 것은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였다. 그가 이곳에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비롯한 네 사람을 부른건 진정으로 신에 어울리는 자가 누구인지 가리기 위함이었다. 거기서 이기는 것이 "운명"에 선택 받은 존재일 거라는 전제로. 그런데 알리바바는 그가 생각도 못했던 제 3의 길을 발굴했다. 신드바드는 그걸 "어중간한 타협책"이라 부르면서도 그의 의향에 휘말리고 있는걸 깨달았다. 이제 성궁의 싸움은 어떤 으로 흘러갈까?
  • 마기/352화 . . . . 1회 일치
          아르바가 알리바바의 의혹을 확인해준다. 아르바는 자기 자신이 분신체로 오래 지내서 인지 지금 여기있는 다윗도 분신체에 지나지 않음을 간파한다. 과연 자신의 "생부"라면서 방까지 똑같아서 징그럽다고 동족혐오발언을 한다.
  • 마리네 . . . . 1회 일치
         마리네는 [[초]], [[소금]], 샐러드용 [[기름]], [[와인]]을 섞고 [[향신료]]를 첨가하여 향을 낸 즙에다가, [[생선]], [[고기]], [[야채]] 같은 재료를 재워서 만들어내는 요리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요리 역시 마리네라고 부른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마마토모 . . . . 1회 일치
         [[공원]], [[놀이터]], [[보육원]], [[유치원]], [[학교]] 등, 아이가 다니는 장소에서 알게 된 어머니들 끼리의 관계나, 그런 관계로 알게 된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1회 일치
          * 게임내 이벤트는 크게 2가지가 있으며, 보상도 2가지로 나뉜다. 먼저 이벤트는 크게 PvP이벤트와 PvE이벤트로 나뉜다. PvP이벤트는 각자 구성한 팀으로 플레이어간 경쟁을 하는 이벤트이다. 허나 실시간으로 직접대결하는것이 아닌, 방어측은 컴퓨터가 운용하여 다소 공격측이 유리하게 되어있다. PvE 이벤트는 사용자가 보유한 캐릭터 레벨에 비례하여 적의 레벨이 올라가며, 전투를 하면서 짤막한 시나리오를 알게되는 으로 구성되어있다.
  • 마이클 페이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마터니티 마크 . . . . 1회 일치
         이에 따라 2006년 후생노동성에서 사무국을 맡은 「 건강한 부모와 자 21(健やか親子21) 」추진검토회에서 마터니티 마크를 디자인 공모하여 발표하게 된 것이다.
  • 막부 . . . . 1회 일치
         결국 [[오닌의 난]]과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 개막 후에는 권위가 실추되어 다른 실력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가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폐쇄된다. 노부나가는 이후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잡아가다가 [[혼노지의 변]]으로 변사하여 어떤 형태의 정권을 만들려고 했는지 제설만 분분하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후에 일본 전역을 제압하여 천하통일을 이뤘으나,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막부를 열 수는 없었고, 이 때문에 그 대신 '후지와라' 등 귀족 성을 받아 귀족이 되는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도요토미' 씨를 창씨하며, 조정의 최고 관위인 '[[관백]]'과 '태정대신'을 수여받는 등 조정의 권위를 빌리는 방을 택하였다.
  • 맘모스교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학생이 많은 학교를 가리키는 말. 대체로 2,3천명 정도로 맘모스교라고 부른다.
  • 망나니 장군 . . . . 1회 일치
         [[에도 막부]]의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정체를 숨기고, 하타모토의 삼남 토쿠다 신노스케(徳田新之助)라는 이름으로 마을로 내려와 소방대 메구미(め組)의 객으로서 읍민과 교류를 하며, 세상에 만연하는 악을 베어서 처단한다는 [[권선징악]] 작품이다.
  • 매카시즘은 이제 매카시워즘이다 . . . . 1회 일치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을 공산주의의 주구로 모함하고 다니며 개판을 치다 급기야는 미국 군부까지 공산주의 세력으로 모는 병크를 터뜨렸고, 전쟁영웅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카시 의원을 버리고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등 매카시를 정치적으로 거세[* 탄핵소추안 자체는 통과되지 않았으나, 명예를 존중하는 상원에서는 탄핵소추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로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인증 당한 것과 같다.]해 버렸다. 위의 발언은 이러한 '매카시즘의 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발언.
  • 맥닐의 법칙 . . . . 1회 일치
         유럽인들은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선전했고, 원주민들이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타락한 생활을 한 데 따른 징벌이라고 주장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신이 질병 앞에 무력하고 가호를 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치자 열등감과 패배의을 가지게 되었다.
  • 맥스 페인 시리즈 . . . . 1회 일치
         [[http://www.rockstargames.com/maxpayne/index.html|공 홈페이지]]
  • 맨씽 . . . . 1회 일치
         신체는 물적인 것으로 보이며 거구에 괴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재생도 가능. 거기다 접촉한 자를 태울 수 있다.
  • 멀티플맨 . . . . 1회 일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해서 현재와 자신과 동일한 복제를 생성. 각각의 복제들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본체와 [[텔레파시]]로 연결되어있으나 독립적인 사고를 한다. 복제를 다시 흡수할 수도 있으며 이때 복제의 지이나 기술, 기억 등도 흡수. 다만 죽은 복제는 흡수할수 없다.--[[환영분신술]]--
  • 메시아 컴플렉스 . . . . 1회 일치
         통속심리학 용어. 자신이 '구세주'([[메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비정상적인 강박관념을 가지고,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이다.
  • 메타 발언 . . . . 1회 일치
         창작물의 등장인물이, 스스로가 창작물의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의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언급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등장인물이 제4의 벽을 깨고 독자나 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건내거나, 저자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을 뜻한다.
  • 모나 색스 . . . . 1회 일치
         맥스가 [[블라디미르 렘]] 소유의 창고에서 [[스쿼키 청소회사]]와 총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등장. 경찰차 사이렌을 듣고 도망가려던 청소회사 직원들을 데저트이글로 죽여버렸다. 맥스에게는 이런으로 만나는건 그만해야 한다는 말만 하고 사라진다.
  • 모레아 전제국 . . . . 1회 일치
         [[오스만 제국]]의 성장으로 트라키아와 발칸 반도 북부가 오스만의 지배 하에 넘어가면서 수도 콘스탄티노플과의 육상교통이 단절되어 '위요지'가 되었다. 하지만 위요지라고는 해도 모레아는 영토, 인구 면에서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콘스탄티노플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제국의 핵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지닌 정치적, 종교적 상징성 탓에 모레아 전제국은 어쩐지 무시당한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제국의 영토가 사실상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아예 무시(…)하고 설명하거나, '모레아도 공격받았다. 모레아도 망했다.'는 으로 고작 한 줄 남짓 언급되는 등.
  • 모리시오 . . . . 1회 일치
         하나는 불교, 신토에서 정화하는 의미로 소금을 사용한 데서 왔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장례 이후 소금을 뿌리거나, 신토에서 신단에 소금을 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 몬스리 . . . . 1회 일치
         한편으로는 현재의 세상에 대해 분노가 컸는지 첫등장 시기에 코난의 할아버지에게 너희 세대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되었다는 으로 분노를 토하기도 했다.
  • 몽고귀신 . . . . 1회 일치
         1984년 9월 무렵 국민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 퍼진 귀신. 일부 아이들은 해가 진 뒤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 무선호출기 . . . . 1회 일치
         [[이동통신]] 장비. 약칭 호출기. 단방향 통신 장비로서 호출기 쪽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은 할 수 없고, [[전파]]를 받아서 전화번호 숫자나 짧은 문자를 표시할 수 있는 기능만 가지고 있다. 전화번호를 받아오면 [[공중전화]]를 찾은 다음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연락을 할 수 있는 형이다.[* 일부지만, 제품에 따라서는 수신만이 아니라 문자 송신 정도는 가능한 모델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삐삐'라고 불렀다. [[일본]]에서는 포케벨(ポケベル)이라고 불렸다.
  • 문맹 . . . . 1회 일치
         고대에는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지인]]으로 여겨져서 문맹인 사람이 아주 많았으나, [[공교육]] 체계가 정착한 나라에서는 문맹이 매우 적게 된다.
  • 문석희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문연주 . . . . 1회 일치
         * [[2016년]] 2016 KOCIA 전국 노래교실 회원의 날 시상 10대 가수상
  • 문태준(시인, PD) . . . . 1회 일치
         1970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 물에 흘려보내다 . . . . 1회 일치
         이 같은 관념 때문에 개인 간의 시시비비나 사회적 정의보다 집단의 화합을 과도하게 중시하여, 명백한 피해자에게 "물에 흘려보내라"는 으로 합의를 강요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비판이 있다.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 1983년 1월에 국내에 '미래소년 쿤타-버뮤다 5000년'이라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왔는데 많은 의미에서 미래소년 코난을 참고한 것이 보인다. 심지어 성우 배치까지. 좀 웃기는건 중반부부터 [[거대로봇물]]이 된다. 실제 포스터에서도 거대로봇이 등장.(쿤타가 원시소년이므로 모션 트레이싱 하는 방이다.) 일단 이 미래소년 쿤타는 과거 한희작 원작의 '신세계 소년 디노'의 애니화인데 이 디노와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신세계 소년 디노의 내용은 주인공 디노는 이로 물어서 쇠사슬을 끊을 정도로 무는 힘이 센 원시소년이며 인공지능 로봇과 손잡고 다수의 인류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디노가 대항한다는 이야기다.
  • 미스터 피어 . . . . 1회 일치
         본명 졸탄 드라고. 원래 밀납인형 박물관 경영자였으나 자신의 화학지으로 인형들을 생명체로 만들어서 부하로 삼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포가스를 얻었다. 공포가스를 이용해 옥스, 일을 부하로 삼아 펠로우쉽 오브 피어라 칭하며 활동을 시작, 그러나 데어데블에게 패했다. 최초의 미스터 피어이나 두번째 미스터 피어은 스타 색슨의 손에 죽었다.
  • 미스터 하이드 . . . . 1회 일치
         원래 뛰어난 의학자였으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실제 이야기라 믿으면서 일이 꼬였다. 재보는 [[인간]] 본성의 짐승 같은 면을 해방시키는 화학 공을 발견하는 연구에 몰두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고용주들에게서 갈취했고, 이걸 안 도널드 블레이크는 그의 고용을 거절했다. 그리고 분노한 그는 도널드 블레이크에게 복수를 다짐하여 연구에 몰두해 몇 달 뒤, 연구에 성공했다. 특수약품을 만든 재보는 이 약품을 써서 사악함과 괴력을 지닌 미스터 하이드가 되었고 자신을 진정한 악의 의인화라 믿으며 도널드 블레이크를 자신의 첫 번재 희생자로 점찍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도널드 블레이크는 [[토르]]의 인간 모습.(...)
  • 미이라(2017년 영화) . . . . 1회 일치
         [[유니버설 픽처스]]의 영화. [[다크 유니버스]]의 첫번째 영화이며 유니버설의 대표적인 클래 몬스터 중 하나인 [[미이라(영화)|미이라]](Mummy)[* Mummy는 '투탕카멘의 저주'와 마찬가지로 서구인들의 환상이 빚어낸 존재로, 원래의 미이라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를 다룬다. 감독은 알렉스 커츠만.
  • 바-로- . . . . 1회 일치
          * 일본어 욕설, 바카야로(馬鹿野郎)의 준말. 뜻은 "바보자"으로 같지만, 약간은 부드러운 느낌. "멍청이" 정도.
  • 바르나바 복음서 . . . . 1회 일치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사본은 문헌 비평 등으로 미루어보아,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로 된 바르나바 복음서는 대략 14세기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문서의 생활상 묘사나 지으로 미루어보아, 일반적으로 [[중세]] 시기에 만들어진 문헌으로 추정하고 있다.
  • 바캇타 . . . . 1회 일치
         트위터는 쓰는게 쉽고, 동료들 가운데서 폐쇄적인 커뮤니티로 느끼는 사용자가 많아, 트윗이 전 세계로 발신되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않고, 비상적인 내용이나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문제성이 있는 트윗을 날리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 바키도/110화 . . . . 1회 일치
          * 모토베는 도쿠가와에게서 무사시가 진검을 해금하고 피클과 재대결한다는 소을 듣는다.
  • 바키도/112화 . . . . 1회 일치
          * 자신이 순간에 4등분 되는걸 보고 전의를 상실한다.
  • 바키도/114화 . . . . 1회 일치
          * 사가 끝나갈 무렵 도쿠가와는 전날 바키에게 전해들은 말을 꺼낸다.
  • 바키도/116화 . . . . 1회 일치
          * 여기 있는 격투가들은 설사 세간에 살육극이라 지탄받아도 "그 나름대로 선택한 삶의 방"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와 신념의 소유자들.
  • 바키도/117화 . . . . 1회 일치
          * 애니화 소이 발표됐지만 내용이 이래서야 기대할 맘이 안 생긴다.
  • 바키도/119화 . . . . 1회 일치
          * 정작 무사시는 표적이 완전히 썰리지 않고 어중간하게 상처만 줬다고 탄한다.
  • 바키도/123화 . . . . 1회 일치
          * 전의도 욕도 상실한 피클은 무사시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인다.
  • 바키도/124화 . . . . 1회 일치
         도장에서 멀어진 일상. 양치, 사, 타인과 접촉에 따른 희노애락.
  • 바키도/125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 모토베와 정으로 승부에 나선다.
  • 바키도/129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순간에 창을 잘라버리면서 "50점도 아깝다"고 생각한다.
  • 바키도/135화 . . . . 1회 일치
          * 트럼프는 전임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몇 번이나 질문한다. "대국이 일개 개인에게 불가친 선언이라니". 사실 트럼프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비상적이라 여길 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 들은게 아니며 들은 그대로의 내용이라고 확인해준다.
  • 바키도/136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이걸로 "실물"을 받아들였냐고 묻는다. 아나운서는 자신이 당한 참격을 시청자에게 설명하는데 그 순간 또 에어참격이 날아온다. 이번엔 목이다. 아나운서는 은 땀을 흘린다.
  • 박남현 . . . . 1회 일치
         * 《[[바리케이드 (영화)|바리케이드]]》 (1997년) - 고달
  • 박승임 . . . . 1회 일치
         * [[조]]
  • 박영진 . . . . 1회 일치
         사이트 공사이트, 인스타그램
  • 박준홍 . . . . 1회 일치
         2012년 3월 가석방되어 지지자들이 환영을 열었다. [[http://www.seoulpost.co.kr/paper/news/view.php?newsno=18894]]
  • 박현정 (배우) . . . . 1회 일치
         |학력 = [[대구고등학교]]
  • 박희광 . . . . 1회 일치
         박희광은 만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통의부, 참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일본 영사관 습격, 친일파 정갑주와 가족 암살, 독립운동가 체포를 위해 활동한 스파이 배정자(裵貞子, 일본 이름: 다야마 사다코) , 이용구, 최정규 암살임무 등 항일 독립운동단체와 임시정부에 무기와 군자금을 조달 했었다.
  • 배영호 . . . . 1회 일치
         [[분류:1915년 태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성주 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법원행정처장]][[분류:대한민국의 국회사무총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
  • 백작 . . . . 1회 일치
         북게르만어에서 '족장'을 뜻하는 야를(jarl)에서 따온말이다. 바이킹들의 지속적인 브리튼으로의 침략과 그에 따른 교류로 인해 나온 칭호. 다만 브리튼 내부의 영지를 두고만 earl이라고 했던걸로 보이며, 섬외부 영지는 count of~으로 구별해 뒀다.
  • 벌교 백여우 . . . . 1회 일치
         1960년대 전남 보성군에 있는 벌교국민학교에서 퍼진 괴담.
  • 법테라스 . . . . 1회 일치
         [[일본]]의 무료법률지원서비스. 정명칭은 일본사법지원센터(日本司法支援センター). 2006년 설립된 일본 법무성 소관의 공공법인으로서, 민형사상의 법적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 베를린 보병여단 . . . . 1회 일치
         지상의 섬이었던 서베를린 특성상 전쟁이 나면 100% 녹아 사라질 부대였다. 다행스럽게도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고 냉전이 종되면서 해체되었다.
  • 병 속의 악마 . . . . 1회 일치
         ## === 동물, 물 ===
  • 보루토/1화 . . . . 1회 일치
          * 중닌 시험을 앞두고 하급닌자들에게 속속 신청서가 주어지고 모에기 밑의 이노진, 쵸쵸, 시카다이에게도 소이 간다.
  • 보루토/5화 . . . . 1회 일치
          * 순간에 대회장을 뒤덮을 정도로 커지는 미수옥.
  • 보통국가 . . . . 1회 일치
         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의 '[[전쟁]]에 대한 [[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걸 무시하고, 1차대전 이전 기준으로 마음대로 다른 나라에 '침략'(그네들 말로는 '출병')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는 것이 일본 우익들의 주장인 것이다.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는걸 의도적으로 국민들에게 감추고, 1차대전 이전의 질서가 올바르다고 주장하고 있는 어이없는 모습이다.
  • 부산광역시 . . . . 1회 일치
         부산대학교
  • 부산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김규]] - 동래구
  • 북유럽 신화 . . . . 1회 일치
         === 동물, 물 ===
  • 북한의 역사왜곡 . . . . 1회 일치
         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월미도에서 리대훈 해안포 중대장이 단 4문의 포, 1,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천의 함선의 함선을 이끌고 공격하는 맥아더의 5만 대군을 3일간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위 내용은 1983년에 북한에서 "월미도"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홍보하였으며 북한의 공적인 역사관으로 보인다.
  • 분류:양념 . . . . 1회 일치
         [[분류:품]]
  • 분류:요리 . . . . 1회 일치
         [[분류:품]]
  • 분류:음료수 . . . . 1회 일치
         [[분류:품]]
  • 불심자 . . . . 1회 일치
         2001년,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이 일어났고, 여기에 대한 대응으로 2002년 [[문부과학성]]이 위기관리 매뉴얼을 발행했는데, 여기에서 '불심자'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쓰였다고 한다.
  • 브로포스 . . . . 1회 일치
          장.
  • 브로포스/브로 . . . . 1회 일치
          순서대로 사용된다. 마티니는 그냥 잉여. 제트팩은 즉시 브로켓티어의 점프를 한번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레이저 시계는 전방 넓은 범위를 레이저로 지지며, 복면은 테러리스트들에게 가까이 접근해도 테러리스트들이 더블 브로 세븐을 인하지 못하게 해준다.
  • 블라디미르 렘 . . . . 1회 일치
         맥스는 그를 "명예와 도덕을 지닌 구 악당 중 하나"[* one off those old-time bad guys, with honor and morals]라고 평했다.
  • 블랙 블록 . . . . 1회 일치
         2014년 마이클 브라운 사살 사건 이후로 이에 항의하는 퍼거슨 시위 등 시위현장에서 출몰하면서 언론에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주로 반 트럼프 시위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트럼프 취임에 대한 항의 시위나, 버클리 대학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우익 인사를 저지하는 항의 시위에 나타나서 주목을 받았다.
  • 블랙 클로버/100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몇 초 전으로 되돌아간다. 마녀왕이 봤던 장면은 환상처럼 사라져버린다. 아스타는 노엘을 찌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의으로 마녀왕의 조종에 필사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마녀왕이 [[핀랄 룰러케이트]]를 공격하게 하지만 마찬가지 결과였다. 마녀왕은 한 번 그가 죽임 당하는걸 보지만 그 현실은 금방 사라지고 공격이 실패한 장면으로 대체된다.
  • 블랙 클로버/101화 . . . . 1회 일치
          그녀가 바네사에게 달려가 안기는 동안 [[핀랄 룰러케이트]]도 끙끙대며 의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조종이 덜 풀린 건지 아직 얼떨떨한 얼굴이다.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는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를 회복시킨다. [[라드로스]]는 앙상해진 몰골인 채 그런 둘을 보며 휘파람을 분다. [[판젤 크루거]]는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 블랙 클로버/103화 . . . . 1회 일치
          폭탄선언일 수도 있는 얘기는 아무렇게 던지자 반응이 즉각적으로 돌아온다. 순간에 열이 달아오른 노엘이 당황하며 물마법으로 아스타를 날려버린다. 카호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며 날아간 아스타는 내버려두고 "이번엔 노엘과 데이트"라며 여자들끼리 놀러 간다.
  • 블랙 클로버/110화 . . . . 1회 일치
          * 혼자 남은 아스타는 어떻게든 반마법 상태를 끌어내려고 궁리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는 단지 "죽기 직전에 무의적으로" 그런 힘을 끌어낸 거였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그럼 마그마에 무작정 뛰어들어보면 어떨까?"같은 말도 안 되는 발상도 나왔다. 하긴 그는 샐러맨더의 폭탄 속에도 뛰어든 적이 있으니 마그마 정도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 블랙 클로버/119화 . . . . 1회 일치
          * 이어지는 6시합은 [[락 볼티어]]의 차례였다. K팀은 검은 폭우의 5등 하급 마법기사 락과 금색의 여명의 3등 중급 마법기사 [[클라우스 류넷]]이 한 팀이었다. 락은 이런 전투광 답게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클라우스는 고지하게 "진지하게 임해라"고 한 소리 늘어놓아서 티격태격한다.
  • 블랙 클로버/121화 . . . . 1회 일치
          >그걸 그런 으로 상처 입히는 소리를 하다니... 용서못해!
  • 블랙 클로버/133화 . . . . 1회 일치
          * 한편 불완전연소로 대회를 마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멍한 상태로 검은 폭우단 아지트에 방치돼 있다. 유노가 새로운 힘에 각성한 것이나 잭스가 실제론 사칭이었던 것, [[핀랄 룰러케이트]]의 용태 등으로 머리가 복잡해서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챠미 퍼밋슨]]도 유노에 대한 상사병이 도져서 멍하지만 밥은 잘 먹고 있다. 노엘이나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는 서로 자기야 말로 로얄 나이츠로 선발될 거라며 티격태격한다. 핀랄은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중환자. 의이 돌아오지 않았다. [[랜길드 보드]]는 연행. 노엘은 그가 막판에 발휘했던 수상한 마력을 찜찜해한다.
  • 블랙 클로버/53화 . . . . 1회 일치
          * 노엘과 레베카는 서로를 연적으로 의하는 듯.
  • 블랙 클로버/58화 . . . . 1회 일치
          * 카호노는 노엘의 마력 컨트롤에 대해 조언해주는데, 너무 억제하려고 의하는 것은 마이너스. 편안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집중할 때 효과가 있다고 한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카호노는 "너는 이미 마력을 컨트롤하게 됐다"면서 맞추지 못하는 것은 컨트롤 문제가 아니라 "남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무의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 블랙 클로버/66화 . . . . 1회 일치
          * 적은 급변한 상황에 당황해하고 일어난 챠미는 적이 자신의 고기를 가로채려는 걸로 인한다.
  • 블랙 클로버/68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잿더미로 변한 그의 결혼 풍경.
  • 블랙 클로버/77화 . . . . 1회 일치
          * 벤전스는 영광으로 알라며 "네 마력은 클로버 왕국의 양이 된다"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78화 . . . . 1회 일치
          * 유노도 왕도에서 만났던 걸 기억하고 음을 받아먹는다.
  • 블랙 클로버/79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유노와 챠미는 아무 생각없이 간이나 먹고 있다.
  • 블랙 클로버/81화 . . . . 1회 일치
          * 챠미 퍼밋슨과 그레이는 저주를 고치는 재를 찾아 여행 중
  • 블랙 클로버/83화 . . . . 1회 일치
          * 검은 폭우의 마녀 바네사 에노테이커였다. 여왕에게 당해 의을 잃은 상태.
  • 블랙 클로버/84화 . . . . 1회 일치
          * 바네사는 아무튼 여왕에게 이야기해 아스타의 팔을 고쳐주겠다고 하는데 이미 그 "거래"에 대해 알고 있는 아스타는 단호히 거절한다. 아스타는 바네사가 희생하는 그런 방이 싫은 것인데 바네사는 바네사대로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고집을 부려서 옥신각신하게 된다. 어지간해서는 결판이 안 날거 같자 아스타는 자신에게 최종 수단이 있다며 그리모어를 꺼낸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탄을 베어버리며 적들에게 날아간다. 이미 아스타는 절망의 베토를 쓰러뜨린 걸로 적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있다. 적들이 경계하지만 아스타는 적들을 밟고 날아다니며 순간에 쓸어버린다. 부관은 어떻게든 아스타를 저지해 보려 하지만 거침없이 달려드는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단 한 방에 박살이 나고 만다. 바네사는 그 실력을 칭찬하며 일단 저렇게 기세를 타면 막을 수 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86화 . . . . 1회 일치
          * 증오의 파나가 다루는 불의 정령 샐러맨더의 힘은 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샐러맨더의 갈퀴손이 지나간 자리는 울창했던 숲도 건물도 남아나지 않는다. 정령에 대해 잘하는 바네사 에노테이커도 그 위력에는 경악한다. 원래 샐러맨더는 4대 정령 중에서 가장 공격력이 높고 일국의 군사력에 필적하는 전력으로 평가된다.
  • 블랙 클로버/87화 . . . . 1회 일치
          * 물 창성마법 "해룡의 둥지". 물의 방어마법이 펼쳐지며 샐러맨더의 열기를 힌다. 숲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노엘 실버가 아무리 불길을 잡아도 끝이 나질 않아 전투현장까지 온 것이다. 노엘은 샐러맨더를 보고 겁을 먹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는다. 동료들은 물마법을 구사하는 노엘이라면 화염의 샐러맨더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블랙 클로버/88화 . . . . 1회 일치
          * 바네사는 무한 발상이라면서도 최대한 돕기로 한다. 자신의 실 마법을 두 빗자루에 걸쳐 팽팽하게 당긴 후 활처럼 아스타를 쏘아보낸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1회 일치
          * 마르스는 마리엘라를 보호하며 광물 마법으로 라드로스를 날려보낸다. 하지만 이것도 라드로스에겐 사거리다. 흡수된 마력은 레이저가 돼서 돌아온다. 마르스는 젤 일행을 보호하며 라드로스의 광선공격을 피한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1회 일치
          * 젤은 분명 파나라는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르스, 라드로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키우던 아이였다. 그가 망명하고 학생들이 모리스 밑에 들어간 이후엔 그녀가 죽었다는 소을 들었을 뿐, 자세한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증오의 파나를 뜯어 보면 그때의 파나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변신마법이라고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할 이유도 딱히 없을 터.
  • 블랙기업 . . . . 1회 일치
         이게 일본에서 상당한 이슈를 끌었기에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다. 한국에서도 개봉되었으며, 원작 소설도 "블랙회사"라는 제목으로 정 발매되었다.
  • 블러드와인드 . . . . 1회 일치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제이콥 휘트니라는 인물이 운영하는 면 재배지가 있었는데 그곳의 노예들은 모든 노예들의 불행과 눈물에서 창조된 블러드젬을 연마하기 위해 25일 밤 넘게 자신들의 혈액을 이용한 고대의을 치루었고, 이후 블러드젬은 휘트니를 영원히 가두었다.
  • 블루 마블 . . . . 1회 일치
         강력한 능력을 지녔으나 60년대쯤 히어로로 활동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에게 불려나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기를 종용 당했다[* 흑인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 여론을 의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이후 잠정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중단하다 [[피어 잇셀프]]에서 잠시 등장. '[[인피니티(마블 코믹스)|인피니티]]'에서는 뉴욕 한복판에 소환된 [[슈마고라스]]의 일부를 무찌르는데 일조했으며 [[루크 케이지]]의 마이티 [[어벤저스]]에 합류한다고 한다. 물체를 원자 단위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반물질을 조작해 체내의 양성자가 반양성자로 인해서 분해되는 상태의 [[스펙트럼(마블 코믹스)|스펙트럼]]이라는 여성 히어로를 구하기도 했다.
  • 블리치/682화 . . . . 1회 일치
          * 분명 초반엔 미완성이라 얼음꽃이 지면 끝이라고 했던거 같은데...--그런 이면 켄파치 상시해방형은 뭐가 되냐--
  • 블리치/685화 . . . . 1회 일치
          * 유하바하는 "(너의 부모는) 너를 낳고 나의 양이 되기 위해 살았는데 무엇이 슬프냐? 이 이상의 행복이 있냐?"고 거듭 도발한다.
  • 블리치/690화 . . . . 1회 일치
          * 새로운 천쇄참월은 두 자루의 시해를 하나로 합쳐서 전개하는 방.
  • 비니 고그니티 . . . . 1회 일치
         [[블라디미르 렘]]이 개장을 준비하던 당 "보드카"를 습격하며 등장. [[스쿼키 청소회사]] 사건으로 블라드를 찾아왔다가 총격전에 휘말린 맥스를 보고 기겁하며 부하를 보낸다. 부하들이 전부 당하자 블라드를 죽이는걸 포기하고 도망친다. 블라드는 비니가 불법 총기매매사업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처리하고 있다며 그가 스퀴키 청소 회사를 부리는 흑막이라고 주장한다.
  • 비둘기 . . . . 1회 일치
         비둘기는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조류의 일종이다. 흔히 "구구"나 "꾸룩꾸룩" 거리는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나 비둘기에게 달려들지 않는 한 그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는 사람들이 버리거나 흘린 혹은 '''토한''' 음물을 먹고 살아간다.
  •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묘사를 보면 올마이트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 각지에서 난동을 부려온 듯 하며 올마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꺽인 상태다. 물론 이런 시점에서도 빌런들은 계속 남아있으나 이전과 달리 그냥 양아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는 [[빌런 연합]]이라는 세력이 [[유우에이 고등학교]]를 습격한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스테인]]이라는 악명 높은 빌런이 체포된 것이 계기가 되어 흩어져있던 네임드, 혹은 이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자극받고, 이어서 올마이트의 은퇴와 어둠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올 포 원]]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사택 . . . . 1회 일치
         이유는 당연하지만 자산가치의 정확한 평가와 법인세 및 소득세의 확장을 위해서인데,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는 건물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장부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을 우려가 크다. 또한 직원 복리후생을 통해 법인세를 공제받음에 있어 일본의 적정임대료 책정 방은,
  • 사혈 . . . . 1회 일치
          * 의사들이 파를 너무 많이 빼다가 혈액이 부족해서 환자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사혈요법을 맹신하던 의사들은 이를 ‘치료과정에서 생긴 불행한 [[의료사고]]’ 혹은 ‘사혈을 과감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판단했다. 사혈 도중에 환자가 의을 잃으면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 당시 사혈 기록을 보면 정말 사람 잡을 정도로 피를 뽑고, 죽으면 사혈이 부족했다고 애도하는 무섭달지 황당하달지, 싶은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 살바도르 달리 . . . . 1회 일치
         달리는 부인 갈라가 죽고 7년 뒤에 사망했는데, 자이 없어서 달리의 작품들은 스페인 정부에 유산으로 남겨졌다. 달리의 시신은 피게레스에 있는 극장의 지하실에 묻혔다.
  • 삼류무공 . . . . 1회 일치
          * 삼재검법(三才劍法) : '초이 3개 밖에 없는 삼류무공'으로 여겨진다.
  • 섀도우문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서든어택 2/캐릭터 . . . . 1회 일치
         그녀와 한 전장에 설 수 있다면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기꺼이 맡겠다고 단언하는 과격한 용병 팬도 많다고 전해지며, 심지어 유명 용병 그룹 네 개가 제각각 그녀의 팬클럽을 자처, 누가 공 팬클럽인지를 정하자며 소규모 전투를 치렀다는 소문마저 있다.
  • 서영종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서울대공원 구미호 . . . . 1회 일치
         1984년 9월 무렵 국민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 퍼진 귀신. 이 해 여름에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석경 . . . . 1회 일치
         유교는 한나라 시기에 국교화 되었다. 경전의 문장을 공화-통일화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국가교육기관인 태학에서 이를 배우게 할 목적으로서 석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모방하여 불교, 도교에서 석경을 건설하게 된다.
  • 선거인단 . . . . 1회 일치
         미국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단은 각 주의 [[투표]]로 선출된다. 각 주에 할당되어 있는 선거인의 숫자는 각 주의 인구에 비례하여 차이가 난다. 현재 미국에서 다수의 주는 주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선거인을 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성인 . . . . 1회 일치
          * 성인(成人) : 다 큰 사람. [[어른]]. 성인이 할 수 있는 짓을 공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되어, 묘하게 야한 의미.
  • 성현아 . . . . 1회 일치
         대기업 이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모델 일을 하였고 [[1994년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예선대회에서 진, 본선에서 미에 당선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성현아, `사업실패` `가족의 죽음` 굴곡진 과거사| 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119403| 출판사= 스포츠월드| 저자= 류일한| 쪽= | 날짜= 2017-05-05| 확인날짜= }}</ref>
  • 세금도둑 . . . . 1회 일치
         주로 공무원 등이 세금을 낭비한다는 인 하에서 나타나는 욕설이다.
  • 세이와 겐지 . . . . 1회 일치
         츠네모토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과 관련이 있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 세이와 덴노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세조 . . . . 1회 일치
         단종이 즉위한 뒤에는 [[한명회]] 등을 비롯한 모사나 왈패들을 모으며 정국 불안을 주시하다 동생 [[안평대군]] 일파가 정변을 꾀한다는 소을 듣고 선수를 쳐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참살하고 궁을 장악하여 실권을 잡는다(계유정난). 그 후 반 수양대군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고 단종을 협박하여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 센티멘탈 그래피티 . . . . 1회 일치
         당시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대히트로 연애 시뮬레이션이 엄청난 인기를 모으던 시절이었으며, 센티멘탈 그래피티는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서 미디어믹스 전략의 선구를 달렸다. 그 때문에 발매전에 이미 엄청난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나온 게임은 거지같아서 순간에 버블이 꺼져버렸다.
  • 소말리 족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각각 영국령 소말리랜드와 이탈리아 령 소말리아로 민지가 세워져 나누어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소말리 족 통일국가를 열망하는 '대 소말리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소말리랜드와 소말리아는 협력하여 통일-독립에 성공한다.
  • 손민수(희극인) . . . . 1회 일치
         || 학력 || [[동아대학교]] [[생명공학]] [[휴학]] ||
  • 솔롱고스 . . . . 1회 일치
         - 한몽몽한사전, 울란바토르대학교
  • 슈퍼걸(드라마)/1시즌 2화 . . . . 1회 일치
         DEO에서는 헬그램마이트가 DDT를 용으로 삼고 있다는걸 알게 되고, 이를 이용하여 붙잡기로 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제임스를 만나러 가는데, 로이스의 여동생 루시 레인이 제임스를 만나러 왔다. 루시는 제임스에게 관계를 끝내기는 싫었다면서 저녁 사를 제안하고 제임스는 그걸 받아들여, 카라는 상심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8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아스트라와의 과거를 떠올리며 고뇌한다. 자이 없었던 아스트라는 카라를 매우 아꼈었다.
  • 슈퍼맨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 . . . . 1회 일치
          능력은 자신의 복제를 만들고 합체할 수 있으며 고체를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과학자이기에 과학지을 가지고 있다.
  • 슈퍼머슬봄버 . . . . 1회 일치
         레슬링게임이었던 전작과는 달리 링아웃, 핀, 4인대전을 없애고 1라인에서 상대방이 쓰러질때까지 1 VS 1로 싸우는 [[대전액션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을 훌륭하게 재현한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게임성으로 수많은 악평을 받으며 순간에 게임센터에서 철수하고 그 이후로 후속작도 나오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 스네이크 . . . . 1회 일치
         동인용어 기초지
  • 스카이 김 . . . . 1회 일치
         '''스카이 김'''([[1982년]] [[11월 24일]] ~ )은 [[호주]]의 [[양궁]] 선수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국적을 호주로 바꿨다. 한국명은 김하늘. 호주에서 사용하는 정 이름은 '하늘 스카이 김'이다.
  • 스타 연구소 . . . . 1회 일치
         [[DC 코믹스]]에 등장하는 단체. 정 명칭은 "The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Advanced Research Laboratories"지만 흔히 스타 연구소로 줄여 쓴다. ~~절대 [[스타크래프트]] 연구소가 아니다!~~
  • 스트레인지리얼 . . . . 1회 일치
         Strangereal. [[에이스 컴뱃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가상 세계의 명칭.정 명칭인지는 불분명하다. 작중에서는 그냥 지구라고 부르는 듯 하다. [[에이스 컴뱃: 어설트 호라이즌]] 같은 일부 예외를 빼고는 해당 세계가 배경이 된다.
  • 스틸오션/아이템 . . . . 1회 일치
          * 전기유체 조타기(Electro-hydraulic Steering Gear)
  • 스틸오션/일본 . . . . 1회 일치
         >네척의 순잠1형(巡潛一形, Type J1)과 한척의 순잠1형개(巡潛一形改, Type J1 Mod.)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이 발발할 때 순잠1형의 무장은 95 어뢰로 강화되었다. 이들은 전쟁 초기 알류산, 인도양, 하와이 등에서 활동했다.
  • 스파이더맨 . . . . 1회 일치
          몇몇 관련 작품에서는 몸에서 직접 만들어져 발사된다. 정 시리즈에서는 일시적으로 가졌던 능력이며, 샘 레이미의 영화판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묘사로 나왔다. 이런 종류에서는 보통 손목에서 거미줄 발사관이 있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올드한 팬들은 이쪽 설정은 징그럽게 느끼는 것 같다(…).
  • 시가라키 토무라 . . . . 1회 일치
         [[빌런 연합]]의 수장인 젊은 빌런. 얼굴을 포함해 팔 곳곳에 '손'을 붙인 모습이다. [[미도리야 이즈쿠]]를 비롯한 [[유우에이 고등학교]] 학생들이 USJ에서 훈련을 하려고 하던 때에 [[쿠로기리]], [[뇌무]]를 위시한 다수의 부하들을 이끌고 등장했다. [[올마이트]]에게 큰 악감정을 품고 있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회 일치
         알렉산더는 알렉스를 그를 모르는 척 하며 사를 대접한다. 그러고는 알렉스에게 술을 계속 먹여 기절시킨 후, 그를 방 안에 가두고 환희의 송가를 크게 틀어놓는다. 루드비코 요법의 영향으로 환희의 송가를 버티지 못하게 된 알렉스는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다.
  • 시노자키 아이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시마지로우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시바 . . . . 1회 일치
         ## 자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신성왕후 . . . . 1회 일치
         * [[김부]]
  • 신적강하 . . . . 1회 일치
         사실 신적강하가 이루어진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일본 황실의 재정난'''(…)이다. 황족은 방치해두면 자연적으로 번(…)하면서 그 숫자가 지속적으로 불어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혈통이 먼 황족이라고 해도 황족으로서 품위 유지를 위해서 어느 정도 비용을 지출해줘야 하는데 이런 황족의 숫자가 불어나면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 신종령 . . . . 1회 일치
         [[분류:개그콘서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1982년 태어남]]
  • 신호권총 . . . . 1회 일치
         대부분 단발이다.
  • 심령 스팟 . . . . 1회 일치
         대표적인 심령 스팟으로는 [[런던탑]], [[후지산]]의 [[주카이 숲]]이 있다. [[폐가]], [[흉가]] 등과 부분적으로 겹친다. 폐병원, 폐학교, 폐터널, 폐탄광 등도 심령 스팟에 자주 들어간다.
  • 심판 . . . . 1회 일치
          * 스포츠 게임에서는 심판은 사실 장물일 뿐이고, 규칙은 내부적으로 컴퓨터가 판단을 내리고 있다.
  • 아게만 . . . . 1회 일치
         세간에선 주로 "남자의 고민이나 부담감을 덜어주고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여자"라는 이미지로 인한다.
  • 아데랑스 . . . . 1회 일치
         [[일본]]의 종합모발기업. 1968년 설립, 2007년 무렵 13개국 2백 50여 곳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규모 종합모발기업이다. 가발 상품 이외에 증모, 육모 분야에서도 다각도로 탈모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남성용 브랜드 아데랑스 이외에, 여성용 맞춤가발 레디스 아데랑스, 여성용 레디메이드 가발 브랜드 폰티누(FONTAINE), 해외에서 모발이클리닉을 전문으로 하는 보즈레(BOSLEY), 해외용 판매 브랜드 헤어클럽(HAIRCLUB)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 아돌프 히틀러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 비디오 . . . . 1회 일치
         영상 대부분에 사회자가 코멘터리인지 나레이션인지 모를 무언가를 하는데 미국 말장난이 대부분이라 한국인들은 이해 못 한다.
  • 아웃 오브 안중 . . . . 1회 일치
         안중은 눈 안, 혹은 관심이나 의의 범위 내에 있다는 뜻이다. [[무관심]]을 뜻하는 말로 '안중에 없다'는 말이 본래 있었는데, 이것을 [[영어]]로 '벗어나 있다'는 뜻인 'Out of-'를 붙여서 강조한 것이다.
  • 아키즈키 리츠코 . . . . 1회 일치
          * 대부분의 2차 창작에서 상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디어리 스타즈의 세계관을 적용하면 리츠코는 사촌 남동생을 여장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버린 코토리도 소름끼쳐할 변태다. 디어리 스타즈가 상당히 흑역사이기는 한데 아무튼 이쪽도 존재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으므로, 이 점은 대부분의 세계관에서 변하지 않게 된다. 765프로덕션에서 숨은 최강 변태.
  • 악당 . . . . 1회 일치
          크게 쌍둥이 둘 다 사악할 경우, 혹은 한 쪽만 사악할 경우로 나뉜다. 둘 다 사악할 경우 일반 악당에 '쌍둥이'란 설정을 입힌 셈이라 임팩트가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다른 쪽으로 개성이 필요하다. 반대로 한 쪽만 사악할 경우 그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깨달았다든지 하는 으로 충격을 줄 만한 요소가 많다.
  • 악마의 대변인 . . . . 1회 일치
         본래 가톨릭 교회에서 시복/시성 절차에 있어 대상의 결점을 남김없이 조사하는 역할을 하는 Promotor Fidei 지위를 뜻했다. 정 명칭은 아니며, 속칭이다.
  • 안가르즈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알프레드 우든 . . . . 1회 일치
         비밀조직 "이너 서클"의 일원인 애꾸눈 영감. 공적으로는 미국의 상원의원 자리를 맡고있다. 직위가 이런 만큼 집도 대따 크다.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1회 일치
         * 뒤늦게 소을 들은 암살자들은 자신감을 잃고 자신들이 무얼 하겠느냐고 낙담해 한다.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1회 일치
          * 호타루는 자기도 엄마를 구하러 가겠다며 칼을 꺼내든다.
  • 앙주 제국 . . . . 1회 일치
         플랜태저넷 왕조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그 자들은 [[리처드 1세]], [[존 왕]]이 다스린 영토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 영토는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노르망디]], 그리고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을 거쳐서, [[피레네 산맥]]에 도달하는 방대한 영토였다. 앙주 제국이라는 표현은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으며, 근대에 이 시기 플랜태저넷 왕조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 애니멀-베지터블-미네랄맨 . . . . 1회 일치
         신체를 [[동물]], [[물]], [[광물]]로 변화시킬수 있다. 그런데 이게 몸 전체나 한번에 하나씩이라던가 하는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동시에 이렇게 된다. 그러다보니 실로 괴랄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특징. 거대화도 가능.
  • 애니프사 . . . . 1회 일치
         애니프사들이 현실의 여성을 인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사례
  • 야규 무네노리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야규 슈메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야마토 나데시코 . . . . 1회 일치
         나데시코(撫子)는 패랭이꽃이라는 뜻으로, 가을에 피는 대표적인 물이다. 야마토 나데시코는 이 꽃의 별명이며, 고래에 일본 여성을 이 꽃에 빗대어 칭찬하는 말이기도 하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1회 일치
         == 음(Food) ==
  • 엥겔 지수 . . . . 1회 일치
         [[독일]]의 [[통계학|통계학자]] C.L.E.Engel〔1821-1896〕이 당시 [[노동자]]의 소득 수준과 가계 지출을 조사하여 발견한 수치. 가계의 총 소비 지출 가운데서 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백분율]]로 나타낸다.
  • 여태조 . . . . 1회 일치
         명나라가 베트남을 점령하면서 제4차 북속시기가 시작되자 세력을 모아서 남산기의를 일으키고 명의 민지배에 저항하였다. 처음에는 병력의 질과 수적 열세로 명나라군에게 패배를 거듭했다.
  • 연하장 . . . . 1회 일치
         해방 이후에는 고위 공무원들이 일본에서 대량으로 주문한 카드로 신분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정권 교체 시기에는 허례허이라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카드 및 연하장 교환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 영국 . . . . 1회 일치
         서유럽에 위치한 섬나라. 정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수도는 [[런던]].
  • 영생 . . . . 1회 일치
         다소 사이비 스러운 [[간증]]에서는 천국에서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크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면서 맛있는 음을 먹는 등 상당히 세속적인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묘사가 흔히 있는 반면, 엄격한 종파에서는 극도로 경건하고 종교적인 모습의 이상향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 오기노 쿄우사쿠 . . . . 1회 일치
         여성의 생리 주기를 연구하여, 배란기와 임신가능한 기간에 대한 학설을 발표, 임신수태조절이 응용되는 오기노학설(荻野学説)을 제창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일본에서는 배란주기를 이용한 피임법을 오기노(オギノ式)이라고 부른다.
  • 오드아이 . . . . 1회 일치
         좌우 [[눈동자]]의 색깔이 다른 경우를 말한다. '금은요동'(金銀妖瞳)이라는 일본 표현을 쓸 때도 있다. 판타지에서 간혹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으로 간혹 쓰이며, 그 특이성 때문에 ~~중2병~~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 선망하기도 한다.
  • 오방낭 . . . . 1회 일치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에서 등장한 바 있다. 이 때 오방색의 방위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방위가 상생이 아니라 상극을 상징하게 되어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http://news.joins.com/article/20784391 (중앙일보)]][[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102709342496489 (아시아경제)]]
  • 오보카타 하루코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오오모리 . . . . 1회 일치
         일본어에서 밥을 수북하게 담는 것을 뜻한다. 음점 등에서 옵션으로 주문할 수 있다. 오오모리보다 훨씬 더 많이 담는 메가모리(メガ盛り)도 있다.
  • 오오반후루마이 . . . . 1회 일치
         원래는 밥과 전복, 매실장아찌, 해파리, 초와 소금을 차린 밥상인 '오반'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국시대 시기까지는 정월에 아랫사람이 이 '오반'을 윗사람에게 헌상하는 것이 의례였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부하들을 대접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오유우기 . . . . 1회 일치
         접두사 오를 붙여서 오유우기(お遊戯)가 되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나 무용을 뜻하게 된다. 주로 집단으로 하는 것을 뜻한다. 오유우기카이(お遊戯会)는 학예회, 장기자랑을 뜻하는 말이다.
  • 오이다시베야 . . . . 1회 일치
         일본의 기업 문화에서, 해고 대상이 된 직원을 이동시키는 부서를 통칭한다. 정 명칭은 아니며, 회사마다 부서의 명칭은 다르다.
  • 오칸 아트 . . . . 1회 일치
         집안에 장하여 기괴한 분위기를 돋구거나, 아이들에게 강제로 사용하게 하여 수치심을 주는(!?)데 사용한다.
  • 오토하(연예인)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오픈베타 . . . . 1회 일치
         일단 형적으로는 미완성된 게임을 열어놓고 테스트 하는 것이지만, 업데이트가 지속되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사실상 오픈베타=서비스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와규 . . . . 1회 일치
         [[분류:품]]
  • 와일드 독 . . . . 1회 일치
         상당히 안쓰러운 인생 끝에 자경단원으로 거듭난 인물. 원래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운동선수였으나 부상을 입으면서 팀을 나온데다 학교도 떠났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동료 대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제대, 이후 주립대학에서 야간수업을 받다 클레어 스미스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었으나 사실 그녀는 최근 살해된 시카고 갱단 두목의 딸인 클레어 카몬티였으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와일드독이 되어 범죄와 싸우기 시작했다.
  • 왓치맨 . . . . 1회 일치
         국내에서는 [[시공사]]의 정 한국어판이 판매중이다.
  • 왕당파 . . . . 1회 일치
          * 귀족, 성직자 등 왕정의 기득권 세력이 핵심 인력풀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다만 왕당파가 곧 기득권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층민들 가운데서도, 공화제 이념에 의화 되지 않았거나, 봉건적 충성심에 감화되어 왕당파를 지지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 요괴:리모콘 숨기기 . . . . 1회 일치
         보통 이 요괴가 리모컨을 숨기는 곳은 소파밑이나 사이라고 하며, 그외에 책상밑이나 탁위(...)~~그런데 숨겼는데도 못찾냐~~, 쿠션밑이나 아니면 주인밑이라고 한다.
  • 요시다 세이지 . . . . 1회 일치
         요시다 세이지는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동원부장으로 일했다고 주장했으며, 1977년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1983년 '나의 전쟁범죄'라는 책을 저술하여, 이 책에서 자신이 군부대를 이끌고 [[제주도]]의 마을 등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강제로 징병하여 위안부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1982년 9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증언하였다. 1900년대 아시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다수의 기사를 작성했고, 이는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널리 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소위 '요시다 증언'에는 의혹도 뒤따르게 되었다.
  • 욕창 . . . . 1회 일치
         정상인은 자고 있는 동안에도 무의중에 몸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욕창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비]] 상태, [[혼수]] 상태에 있거나, 매우 쇠약한 사람, 구속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욕창이 생기기 쉽다. 피부가 당겨지거나, 마찰을 일으키거나, 습기에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도 나타나기 쉽다.
  • 우메즈 카즈오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우물가 회의 . . . . 1회 일치
         비슷한 시기에 관청이나 회사에서는 의사결정 방으로 회의가 정착되기 시작하여, 남자들이 여자들의 수다를 회의에 빗대어 조롱하는 말로서 우물가 회의라는 말이 나타났다.
  • 우유 . . . . 1회 일치
         소가 가축화되기 시작한 기원전 6천년 경부터 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우치데노코즈치 . . . . 1회 일치
         이것은 독립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이다. 다른 지방을 방문한 사람이 뭐든지 나오는 작은 망치를 선물로 가져와서 --대체 어느 동네냐-- 그걸로 쌀과 창고를 꺼낸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망치를 빌려가서, "쌀, 창고(米코메、倉쿠라)"하고 빠르게 말하면서 빠르게 소리치자, 망치는 코메쿠라라고 인하여, 작은 장님(小盲, 코메쿠라)이 척척 나오더니, 할아버지를 죽여버린다(…)는 이야기이다.
  • 우키시마 . . . . 1회 일치
          * [[늪]]의 수면에 떠있는, 섬 같은 것으로서, 실제로는 물풀, 물이끼, [[이탄]] 같은 것의 덩어리이다. 위에는 물이 자란다.
  • 운전기사 . . . . 1회 일치
         [[자동차]] 등을 [[운전]]하는 사람. 다른 수어 없이 '운전기사'라고만 하면 보통 승용차 운전기사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 운제부인 . . . . 1회 일치
         '''운제부인'''(雲帝夫人,雲梯夫人, 생몰년 미상) 혹은 '''아루부인'''(阿婁夫人)은 [[신라]] [[남해 차차웅]]의 정비(正妃)이며, 사후 신격화되어 운제산신으로 존숭되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서 발견되어 [[경주 이씨]] 족보에 참고용으로 실린 '35대 실전세계'에 의하면, 운제부인은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의 손자인 계림후(鷄林侯) 이타(李它)의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적 고증의 어려움과 용어의 모순 등을 이유로 공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자료이다.
  • 워터보딩 . . . . 1회 일치
         심문 대상이 물을 들이마시지는 않으므로 폐에 물이 들어갈 일은 없다.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질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 원피스/819화 . . . . 1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루피에게 동맹이 되어줄 것을 청한다
  • 원피스/826화 . . . . 1회 일치
          * 한동안 소이 끊겼다가 최근 밀집모자일당이 재결성하면서 상디의 정보도 다시 얻었고, 아버지는 수배서를 "생포할 것"으로 고치고 현상금도 올려서 재배포했다.
  • 원피스/833화 . . . . 1회 일치
          * 저지는 검을 뽑으라고 하지만, 상디는 자기 손은 요리사의 손이므로 재도 아닌 이상 손도 칼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원피스/835화 . . . . 1회 일치
          * 우누는 크래커에게 사정하며 "쉬폰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결혼했다는 소을 들었지만 축하도 해주지 못했기 때문.
  • 원피스/837화 . . . . 1회 일치
          * 크래커는 "네놈에게도" 신고을 치뤄주겠다고 하는데.
  • 원피스/846화 . . . . 1회 일치
          * 킹밤은 기어이 두 동강 나고 나미는 아망도에게 몸수색을 당한다. 아망도는 나미의 앞섬에서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찾아낸다. 가렛은 체스병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 것과 유혹의 숲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 이것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이걸 어떻게 손에 넣었냐고 묻는다. 빅맘의 군사들은 그게 로라를 죽이고 빼앗은 거라고 여긴다. 여기서 로라는 가출소녀 취급.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의은 있는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유언은 남긴게 없냐고 묻는다. 나미는 친구라서 받은 거라고 항변하지만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 원피스/852화 . . . . 1회 일치
          보물전 앞에서 경비를 총괄하고 있는 [[샬롯 스무디]]는 이 또다른 난동을 접하고 골치 아파한다. 그녀는 징베의 모반 사실을 은폐하기로 결정한다. 기분파인 빅맘이 이 소을 들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고 내일의 "계획"도 장담할 수 없다. 스무디는 보물전이 있는 4층을 철저히 봉쇄하고 3층 이하에서 루피 일행을 몰살하는 걸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 원피스/857화 . . . . 1회 일치
          >이제부터 빅맘의 다도회와 결혼을 쳐부수고
  • 원한해결사무소/1화 . . . . 1회 일치
         제1화 원한의 방정
  • 원한해결사무소/3화 . . . . 1회 일치
         이번 의뢰인은 마츠지리 신이치. 품회사 마츠지리 푸주의 47세 전무이사. 자신의 2살 아래 동생 마츠지리 신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1회 일치
          * 공격능력: 긴급수리 - 대상 차량의 많은 내구도를 순간에 수리한다.
  • 월하노인 . . . . 1회 일치
         "세살 때, 안겨서 시장에 갔는데, 미치광이가 나타나 찔러서, 칼 흉터가 남아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꽃장으로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십칠년이 지나, 숙부가 노룡(盧龍)님의 보좌관직을 얻게 되어, 마침내 유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로서 당신에게 시집을 간 것입니다."
  • 위안부 소녀상 망치 테러 사건 . . . . 1회 일치
         대학생들은 "경찰이 이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보고 꼬리자르기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A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동행했던 한 학생은 "경찰 질문에 여성이 '생활지원금을 받기로 했다'고 답했다"며 "경찰은 배후가 누구인지 엄중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위의공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위저드리 6 . . . . 1회 일치
          * 바드 : 초기 아이템으로 '류트'를 가지고 있는데, 류트에는 슬립 효과가 있다. 초반에는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도중에 바드로 전직하는 방으로는 류트를 손에 넣을 수 없다.
  • 위키 작성 참고 자료 . . . . 1회 일치
          *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지 http://www.urimal365.kr/
  • 위키 템플릿 . . . . 1회 일치
          * [[FoodTemplate]] - 음 템플릿
  • 위키규정 . . . . 1회 일치
          * 반달리즘 행위에 대해서는 IP차단을 하며, 별이 된다면 NTX 아이디에도 제제 조치가 가해집니다.
  • 위키백과 . . . . 1회 일치
         위키미디어재단에서 운영하는 위키 중 하나. 정명칭은 위키피디아로 한국에서 알려진 위키 중 하나다.
  • 유니콘남 . . . . 1회 일치
         '초계 남자' 이후로 잡지 업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계 남자' 가운데 하나이다.
  • 유목민 . . . . 1회 일치
         유목민이라고 하면 [[말]]. 유목민들은 승마 기술을 처음으로 익혔으며, 그들의 생업인 유목의 특징상 어린 시절부터 승마를 배워 뛰어난 마술(馬術)을 발휘하였다. 이렇게 평소부터 단련된 유목민들은 거의 모든 부족원이 순간에 위력적인 기마병이 될 수 있었으며, 이는 유목민족의 높은 전투력의 근원이 되었다.
  • 유사국가 . . . . 1회 일치
         형상 '[[국가]]'지만 나라꼴이 영 나라 답지 않다는 뜻.
  • 유태공 . . . . 1회 일치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유방은 황제가 되고 나서도 5일에 한 번은 태공을 방문하였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은 서민과 같았기 때문에, 유태공의 가령(家令, 집사)이 아무리 부모 자이라고 해도 유방은 황제, 태공은 신하이니 이런 태도로는 황제의 위엄이 손상된다고 의견을 냈다.
  • 은혼/576화 . . . . 1회 일치
         복귀한 [[카무이]]는 1사단장 시시를 순간에 썰어버리고 [[우미보즈]]와 대결한다.
  • 은혼/577화 . . . . 1회 일치
         * 자들의 혈투를 막으려는 우미보즈의 부성애가 인상적.
  • 은혼/581화 . . . . 1회 일치
         * 호우센은 강해지고 싶다면 다시 오라고 하는데, "닮았다"라고 말하는걸로 보아 우미보즈의 자임을 짐작하고 있는 듯 하다.
  • 은혼/583화 . . . . 1회 일치
          * 우미보즈는 희미한 의 속에서도 우츠로가 돌아간 걸 알아차린다.
  • 은혼/587화 . . . . 1회 일치
          * 아부토가 카무이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은 그 가정사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일지 모른다.
  • 은혼/592화 . . . . 1회 일치
          * 무츠에게 소을 전해들은 우미보즈는 "악동은 악동인 채로 해적으로 돌아갔다"고 소감을 말한다.
  • 은혼/593화 . . . . 1회 일치
          * 사람들은 갖은 방으로 그를 죽이려 했고 그는 그때마다 다시 살아났다. 그럴 수록 사람들의 증오와 경계는 심해졌다.
  • 은혼/596화 . . . . 1회 일치
          * 가부키쵸 주민들의 저항 의지는 모이고 있지만 구심점인 해결사 일행은 아직도 소이 없다.
  • 은혼/597화 . . . . 1회 일치
          * 하세가와는 거듭 보스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천인들은 어째서 그래야 하냐며 상적으로 대답한다. 하세가와는 다시 자기가 입국관리소 소장이라 말하는데 평범하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없다고 하니 그냥 끌고 간다.
  • 은혼/600화 . . . . 1회 일치
          * 이상의 소을 전하는 가츠라와 다츠마. 자신들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무전으로 그걸 듣고 있는 신파치.
  • 은혼/604화 . . . . 1회 일치
          * 히츠기는 기껏 비중있게 등장하나 했는데 순간에 리타이어... 하긴 했지만 불사신 보정을 받고 부활. 긴토키를 정말로 집요하게 물고늘어진다.
  • 은혼/605화 . . . . 1회 일치
          * 신 Tv 애니화 소화 함께 진선조 전격 복귀.
  • 은혼/612화 . . . . 1회 일치
          * 가츠라는 생각지도 못한 방으로 하타 황태자를 인질로 잡고 강제로 황태자 일행의 협조를 받아내는데.
  • 은혼/613화 . . . . 1회 일치
          * 하타 황태자의 이별의 메시지를 전하던 목소리. 자작 제독은 이마를 가리고 있던 장을 뜯어버린다.
  • 은혼/615화 . . . . 1회 일치
          [[사이고 토쿠모리]]의 자비없는 징수. 순간에 아들을 잃어버린 병사들. 긴토키와 같은 신세가 되어 사이좋게 누워버린다.
  • 은혼/617화 . . . . 1회 일치
          *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 하지만 [[야규 빈보쿠사이]]가 이들을 순간에 베어버린다.
  • 은혼/618화 . . . . 1회 일치
          * 오우가이는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도 있는걸 보고 전장은 여자나 애들의 놀이터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전쟁은 남자들이 목숨과 명예를 건 신성한 의인데 이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큐베는 싸움을 모르는건 네놈들이라며 그 말을 칼같이 반박한다.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남자든 여자든 어린애든 구분없이 잿더미에 집어던졌다. 이제와서 갓난애나 여자들의 목을 벨 각오도 없이 전장에 서있냐면서 이들은 이미 걸만한 명예도 없고 그 목숨도 얕보던 여자한테 빼앗길 거라고 선언한다.
  • 은혼/619화 . . . . 1회 일치
          큐베의 말과 함께 가구라와 신파치가 과감히 뛰어내리며 각자 왼팔과 오른다리를 친다. 왼다리가 통나무더미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는 순간에 사지가 봉쇄된다. 짐승처럼 포효하는 오우가이.
  • 은혼/622화 . . . . 1회 일치
          * 지로쵸의 검 앞에 신라의 병력이 순간에 쓸려나가고 소타츠가 단독으로 지로쵸와 맞선다.
  • 은혼/632화 . . . . 1회 일치
         어린이날 기념 페이지는 [[사카타 긴토키]]의 개드립으로 시작. [[가구라]]가 놀고 있으려니 어린이날이 있으니 어른의 날도 있어야 한다고 드립친다. [[시무라 신파치]]가 "근로의 날이 있다"고 대꾸하자 "세상엔 근로를 안 하는 성인도 있다"고 응수. 그래서 2월 10일로 어른의 날을 정하고 5월 인형 비슷한 [[하세가와 다이조]]를 장한다던가 하는 날로 정하자고 한다. 신파치는 그건 어른의 날이 아니라 "니트의 날"이고 인형이 아니라 산송장일 뿐이라 꼬집는다.
  • 은혼/633화 . . . . 1회 일치
          이때만 해도 상가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던 가츠라는 한숨을 쉬며 달을 쳐다본다.
  • 은혼/640화 . . . . 1회 일치
          * 폭발은 그들이 지나온 구역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떨어진 잔해가 반사이를 깔아뭉갰다. 마타코가 그를 꺼내보려고 안간힘 쓴다. 반사이는 아직 의이 있다. 그는 멍청하게 바라보는 신스케를 질책한다.
  • 은혼/643화 . . . . 1회 일치
          * 이들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해방군에겐 충격이었다. 해방군들 사이에서 그러한 경악와 탄의 말이 터져나온다. 가츠라는 그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받아친다.
  • 은혼/644화 . . . . 1회 일치
          무츠는 아직 남은 의을 모아 다츠마를 칼날의 진행 방향에서 밀쳐냈다. 칼날은 무츠를 관통해 천장까지 찔러들어갔다.
  • 은혼/647화 . . . . 1회 일치
          * 중추 시스템의 하부에서 신스케를 발견한 사루가쿠는 난감했다. 그는 제일 먼저 참모 [[다케치 헨페이타]]에게 무전을 날렸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먼저 반갑다면 반가운 소을 전했다.
  • 은혼/651화 . . . . 1회 일치
          * [[곤도 이사오]], [[오키타 소고]], [[히지카타 토시로]]는 [[진선조]]의 지휘계통을 복구하며 정보를 교환하지만 좋지 않은 소 뿐이다.
  • 의심암귀 . . . . 1회 일치
         열자에서는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라고 한다. 현대 일본어에서는 주로 『의심암귀가 되다(疑心暗鬼になる。)』는 으로 표현한다.
  • 의천도룡기(영화) . . . . 1회 일치
         무당산을 공격했을 때 장무기와 대결, 일단 형상으로는 이 영화의 최종보스 격. 조민은 장무기에게 3가지 조건으로서 구양신공과 건곤대나이를 쓰지 못하게 하여, 장무기는 장삼봉에게 즉석에서 태극권을 전수받으면서 싸우게 된다. 싸우면서 장삼봉의 시범을 보면서 즉석에서 태극권을 마스터하는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다. (장삼봉) "네 이름이 뭐냐?" (장무기) "모르겠습니다!" (장삼봉) "됐다" 이러는 대사가 나온다.
  • 이미라 . . . . 1회 일치
         |공 웹사이트 =
  • 이상무(만화가) . . . . 1회 일치
         [[유작]]은 바로 [[전인권]] 신곡 눈눈눈눈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림. 그래서 전인권이 [[장례]]에 참석했다. 그런데 [[웹툰]] 진출도 기획하며 차기작을 기획 중이던 터였다고 한다. 결국 웹툰은 그리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 이승경 (1290년) . . . . 1회 일치
         원나라에 들어가 올과(乙科)에 급제하여 태자첨사(太子詹事)가 되었고, 어사(御使)를 제수받아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해 요양성 참지정사(遼陽省參知政事)로 승진, 많은 공적을 쌓았으므로 원나라 조정(朝廷)에서 그의 아버지 천년(千年)과 조부(祖父) 장경(長庚)에게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追封)하였다. 공민왕 6년(1357년) 모친상을 당해 귀국, 이듬해 원(元)나라에서 요양성사(遼陽省事) 탑해첩목귀(塔海帖木鬼)를 보내어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 이에 공민왕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임명하였으며, 1359년 홍건적(紅巾賊)이 침범하자 도원수(都元帥)로 나가 서경(西京)을 회복하였으나 부하 장수들이 홍건적을 힘껏 쳐부수지 않았음을 분하게 여겨 음을 폐한 끝에 병을 얻고 집에 돌아와서는 만사를 돌보지 않았다. 공민왕은 여러 재상들과 더불어 그의 노고를 칭찬하여 충근경절협모위원공신(忠勤勁節協謀威遠功臣)에 책록하였다. 사후 경상북도 성주(星州)의 안산서원(安山書院), 옥천의 보덕사(報德祠)에 제향되었다.
  • 이영 (1494년) . . . . 1회 일치
         특히 [[제주도]]에서는 도민이 그의 업적을 추모하여 그의 초상화를 그려서 봉안하고 참배하였으며 그 당을 괘편당(掛鞭堂)이라 하였다. 그의 졸기에 의하면 [[대구]](大丘)의 집에 화재를 당하여 처자가 살 데가 없게 되자, 주상이 그 고절(苦節)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집을 지어 내려주고 또 의복과 량을 이어주게 하였다 한다. 그러나 성질이 편협하고 급하여 형벌이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는 평도 있다. 1563년 2월 호군으로 재직 중 졸하였다.
  • 이원재(축구선수) . . . . 1회 일치
         || 출신학교 || 포철공고 ||
  • 이준섭(군인,정치인) . . . . 1회 일치
         1933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 이진주 (1678년) . . . . 1회 일치
         유학(幼學)으로 [[1710년]](숙종 36년) 경인(庚寅) 증광사마시(增廣司馬試) [[진사]]에 3등(三等)으로 입격,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714년]] [[성균관]]학유<ref>안명하, 松窩先生文集卷之九, 遠遊錄 西征記行</ref>, [[1719년]] [[1월 12일]] 전강에서 숙종이 친히 출제한 과제에 우승하여 직부전시의 명을 받았다. [[1721년]](경종 1년) [[과거 제도|년 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 4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병조]][[좌랑]](兵曹佐郞), 겸 [[춘추관][[기주관]], [[1723년]](경종 3) [[3월]] [[성균관]]학유, [[5월]] 학록, 8월 학정이 되고 [[1724년]](경종 4) [[2월]] 양현고직장(養賢庫直長)이 되었다. 그해 [[5월 17일]] 다시 학정, 이후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등을 지내다.
  • 이토 시로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이현보 . . . . 1회 일치
         [[1498년]] (연산군 4)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됐다.
  • 이홍열 (바둑기사)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 이효린 . . . . 1회 일치
         순흥 재향지에 의하면 수(水息) 석람(石嵐) 동쪽 산 아래 두 시냇물 사이에 정자 아양루(峨洋樓)를 지었으나 뒷날 소실되었다 한다. 묘소는 [[경상북도]] 에서 매장되었다.
  • 이휘향 . . . . 1회 일치
         ! 시상
  • 인비저블 우먼 . . . . 1회 일치
         [[미스터 판타스틱]]과 연인 → 부부 관계이다.[* 참고로 나이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거의 키잡에 가깝다.(…)] 판타스틱 포의 [[홍일점]]이며, 두 아이에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벤과 동생 조니, 워커홀릭 남편인 미스터 판타스틱이 그렇게 사고치고 속을 썩이는데도 용케도 끝까지 같이 사는 걸 보면 '''[[성녀]]''' 수준.(…) 게다가 퓨처 파운데이션 이후 집에 구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것이, [[닥터 둠]], [[네이머]]와 서로 끌리는 관계에 있음을 그린 에피소드들이 많다. 수잔 스톰 자체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급의 미모를 자랑해서 그렇기도 하고.
  • 인천광역시 . . . . 1회 일치
         인천대학교
  • 일곱개의 대죄/176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왕바보자"이라며 비난 아닌 비난을 하고, 반은 "바보 끼리 마음이 맞는다"고 응수한다.
  • 일곱개의 대죄/177화 . . . . 1회 일치
          * 너무 순간에 일어난 일이나 반은 멜리오다스를 지키지 못한다.
  • 일곱개의 대죄/180화 . . . . 1회 일치
          * 호크의 말마따나 엘리자베스는 맛없는 음을 만드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1회 일치
          * 그것은 과거의 기억일 뿐이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의 일행을 인하지 못한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1회 일치
          * 에스카노르의 비상적인 전투력은 십계 조차 경악하는 수준.
  • 일곱개의 대죄/186화 . . . . 1회 일치
          * 의을 시작하는 덴젤.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1회 일치
          * 마신들을 순간에 갈아버리는 걸로 봐서 약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1회 일치
          * 데리엘은 의은 돌아오지만 복부에 치명상을 입었다. "어둠"으로 치료하지만 체력은 많이 떨어진 상태.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1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아직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지 못했다고 짐작한다. 그때 잠자코 있던 반이 멜리오다스의 목을 조른다. 어젯밤에 축배를 들 때 멜리오다스가 없어 흥이 나지 않았다는 것.--흥이 깨졌으니 단장이 책임져-- 반은 그런 으로 서먹함을 풀려고 한다. 멜리오다스에게 "어제는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무슨 표정으로 말을 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멜리오다스의 뭔가가 바뀐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멜리오다스는 반이 잘못한게 아니라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1회 일치
          * "눈을 떠", 어디론가 옮겨진 디안느와 할리퀸은 그 목소리에 의을 되찾는다. 숲에서 춤을 추다가 기억이 끊겼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때 할리퀸의 투구에 깃든 헬브람이 "최악의 전개"라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할리퀸은 곧 엄청난 이변을 깨닫는데 바로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등장이었다. 두 사람을 납치한 것이 바로 이들. 할리퀸은 둘 모두 도망치는건 불가능하다 여기고 자신이 막는 동안 디안느를 도피시치려 한다. 그러나 디안느는 함께 싸우자며 "마지막이 할리퀸과 함께여서 다행"이라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1회 일치
          * 갈란이 마법탄에 짓뭉개지고 있을 때 [[몬스피드]]는 옥염조로 타르미엘의 세 머리를 한 번에 꿰뚫는다. 어떤 상처든 순간에 복구하던 타르미엘이지만 이 공격에는 한동안 회복을 못한다. 타르미엘을 처리한 순간 몬스피드도 사리엘의 공격을 맞고 몸 여기저기가 잘려나간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회 일치
          * 혼자 힘으로 대적이 어렵자 뤼드셀은 [[사리엘]]과 [[타르미엘]]을 가세시키나, 이들은 몬스피드에게 순간에 재생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입는다.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1회 일치
          * 할리퀸은 멜리오다스에게 한 번 구해줬다고 해도 십계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들이고 언젠가는 멜리오다스를 죽이러 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그때는 그때"라며 밝게 웃는다. 슬슬 의이 돌아오고 있는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자코 누워있다. 디안느는 멜리오다스의 태평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할리퀸은 "예전부터 변함이 없다"며 한숨을 쉰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1회 일치
          * 메라스큐라는 의을 마치고 마계로 통하는 문을 완성하지만 그녀가 예상한것 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타난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1회 일치
          * 그때 할리퀸은 등에서 원인 모를 통증을 느낀다. 상당히 심한 통증이라 은땀이 흐른다. 그로키시니아가 심상치 않게 바라보는데 드롤은 이것이 시간회귀술법의 부작용이거나, 어쩌면 다른 "징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일곱개의 대죄/번외편 . . . . 1회 일치
          * 그런데 대왕오징어가 나타난다? 순간에 해체해서 구워먹는다.
  • 일념발기 . . . . 1회 일치
         다음과 같은 으로 쓴다.
  • 일장청 호삼랑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잔디깍기 . . . . 1회 일치
         게임 [[물 Vs. 좀비]] 시리즈에서 최후방어선으로 등장한다.
  • 저그 . . . . 1회 일치
         엄청난 물량전이 특기인 우주 괴물들. 다른 종족을 흡수하고, 자기대로 만들어서 쓴다. [[테란]]과 [[프로토스]] 두 종족에게 피를 보게 만든 포지션.
  • 전기의자 . . . . 1회 일치
         [[코끼리]] 한마리도 이런 으로 처형된 사례가 있다. 톱시(Topsy)라는 이름의 코끼리였는데 [[사육사]]를 죽여버린 사고를 친 것. 그 결과 6,600 볼트 전류로 사형당했다. [[https://youtu.be/NoKi4coyFw0|유튜브 동영상-충격적일 수도 있음.]] 위의 최초의 인간 사형집행과 함께 잔인하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이와는 별개로 사보타주를 통해 교류를 밀던 웨스팅하우스를 파산시키기는 했으나 교류의 보급을 막는 데에는 실패했다.
  • 전동휠 . . . . 1회 일치
          * 나인봇: 어딘가의 터릿이 생각나는 매끈한 디자인이 특징. 이전부터 세그웨이 짝퉁들을 의욕적으로 내놓고 있으며 [[http://www.cnet.co.kr/view/131959|최근]] [[러시아_유머|이 짝퉁 회사가 세그웨이를 잡아먹었다!]]
  • 전라북도/인물 . . . . 1회 일치
         순창군 - [[김동진(프로게이머)|김동진]] [[고경표]] [[고소영]] [[성시경]] [[박경림]] [[임현]]
  • 전자레인지 . . . . 1회 일치
         마이크로파의 성질을 이용해 음을 가열하는 조리기구.
  • 절대가련 칠드런/432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레어메탈을 미량씩 섭취시켜 자신도 모르는 틈에 조종하는 방을 썼을 거라고 판단, 용의자들의 혈액을 채취해 염파로 반응을 살피는 검사를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34화 . . . . 1회 일치
          * 길리엄의 새로운 최면 지배는 내면의 불만과 분노를 표출시켜서 당사자는 자유롭고 해방감을 느끼게 만드는 방.
  • 절대가련 칠드런/436화 . . . . 1회 일치
          * 후지코는 의외로 얌전하게 사나 하고 있다. 칠드런 일행을 평범하게 반긴다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1회 일치
          * 칠드런 일행은 미나모토와 사카키의 이동 소을 [[효부 쿄스케]]에게 전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1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마츠카제가 생각한 방이란 [[도게자]]
  • 절대가련 칠드런/443화 . . . . 1회 일치
          * 마츠카제가 가지고 있던 쿠키는 그냥 주머니에 들어 있던 건데, 미나모토가 사라지기 전에 준 거니 적어도 2주는 주머니에 있던 것이다--중독 걸린다--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1회 일치
          * 아오이와 유리는 모포에 둘둘 말려서 객에 격리되어 있었고 환각으로 능력이 봉인됐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45화 . . . . 1회 일치
          * 시호가 사카키의 근황을 의하는 듯한 묘사가 나오는데 마츠카제는 "츤데레라기엔 츤의 살상력이 너무 높다"고 꼬집는다.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1회 일치
          * 효부 쿄스케는 ESP의 주파수를 바꿔 빠져나갈 수 있지만 비장의 카드를 그런 으로 낭비해야 할지 망설인다.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1회 일치
         표지는 유년기의 사카키 슈지. 서플리먼트 4컷 내용을 의한 것 같다. 4컷 상에서 소개된 효부의 검거상황은 "아카시의 탄생을 보러 갔다가 의사로 오인 당해 신나게 과로하고 지친 채로 후지코와 싸우다 도주, 숨어있다가 사카키에게 노출되는데 사카키가 그대로 후지코에게 신고했다"라는 상황.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1회 일치
          * 블랙 팬텀의 오염물질에 잠된 BABEL의 수뇌부는 "전 에스퍼 등록격리법안"이란 반인권적 법안에 적극 찬성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1회 일치
          * [[마기 시로]]의 공격으로 칠드런 일행은 순간에 제압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1회 일치
          * [[미나모토 코이치]]가 테러리스트 혐의로 에스퍼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소을 듣고, [[츠쿠시 미오]]는 격분해서 판도라의 거처에서 뛰쳐나온다. 그러나 기세 좋게 나온 것 치곤 아무런 계획도 전략도 없는 상황. 미오는 일단 형무소 담벼락은 초능력으로 통과할 수 있다는걸 알고 희희낙락한다. 차라리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쪽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데, 외벽 쯤에서는 초능력이 통해도 형무소 내부는 ECM으로 무장하고 있을 거라며 무작정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설치류도 알 만큼 뻔한 사실이지만 미오는 "그런건 들어가 보기 전엔 모른다"며 ECCM도 가져왔으니 어떻게든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1회 일치
          * [[미나모토 코이치]]가 에스퍼 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소은 함정이었다. 그 대신 일행의 앞을 막아선 자들은 동료였던 [[팀 토이]], [[바렛 실버]]와 [[우메가에 나오미]]였다.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오염에 당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1회 일치
          카오루가 왠일로 상적인 얘기로 마츠카제의 편을 들어준다. 지금 우선해야 할 건 미오일행의 구출이라는 것. 오염된 멤버의 구출은 제 2순위다. 최종적으로 승리하면 모두를 되돌릴 수 있지만, 지금은 판도라가 최종 방어선. 미나모토가 뒤를 맡기고 효부가 판도라의 지휘관을 일임한 이상 책임을 다해야 한다.
  • 절연금 . . . . 1회 일치
         ※ 위자료로 번역할 수 없게 되는 사례는, 일단 관습적이고 쌍방의 동의만 있으면 합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자료를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절연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위자료와 절연금을 지불했다.’는 으로 위자료와 절연금이 별도로 언급되어 있을 경우, 양쪽을 모두 위자료로 번역하기는 곤란해진다.
  • 정광용 . . . . 1회 일치
         2018년 4월 16일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였으나 서을 갖추지 않아 처리되지 않았다.
  • 정재민(2001) . . . . 1회 일치
         |학력 = 서강대학교
  • 정충원 . . . . 1회 일치
         '''정충원'''(鄭忠源, <small>일본 이름:</small> 烏川忠源, [[1896년]] [[5월 22일]] ~ [[1977년]] [[3월 12일]]<ref>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는 정충원의 출생일이 [[1893년]] [[5월 22일]]로 표기되어 있으며 사망일은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다.</ref>)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금융인으로 본관은 연일이며 다른 이름으로 '''정종원'''(鄭宗源, 1949년 10월 개명한 이후부터 사용한 이름)이 있다.
  • 정혜선(배우) . . . . 1회 일치
         ||<width=30%><:>―[br][* 백상예술대상 TV부문은 1979년 제15회 시상부터 수상했다.] ||<:> → ||<width=30%><#FFFFA1><:> '''정혜선'''/[[김혜자]]/[[김영옥(배우)|김영옥]][br]'''(1979)''' ||<:> → ||<width=30%><:>김민자[br](1980) ||
  • 정환덕 . . . . 1회 일치
         [[고려]]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이며,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정종소]](鄭從昭)의 12세손이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자 영월 환고사에 배향된 현령 증 병조판서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의 10세손이며, 대구부의 청호서원(淸湖書院)에 배향된 진주목사 [[정호인]](鄭好仁)의 8세손이다. 증 통훈대부(通訓大夫) 예원좌장례(禮式院左掌禮) [[정하형]](鄭夏亨)의 증손이며,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감승(秘書監丞) [[정윤휴]](鄭胤休)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선략장군(宣略將軍) 행 선전관(宣傳官) 증 가선대부(嘉善大夫) 군부협판(軍部協辦) [[정의채]](鄭義采)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이씨(貞夫人 李氏)와 증 정부인 주씨(貞夫人 周氏)이다.
  • 제2편성제도 . . . . 1회 일치
         전시 상황에서 사단장은 완편 사단을 거느리고, 2명의 부사단장 가운데 1명만 데리고 전선으로 이동한다. 하부에서도 이는 반복되어, 평시에 부사단장, 부참모장, 부연대장, 부대대장을 수행하던 사람이 각 1명씩 남게 된다. 이들은 동원명령을 받고 입소하는 예비군으로 새로운 사단을 편성한다. 새로운 사단에는 기존 사단이 무장을 교체하면서 남겨두었던 구 무기들을 지급한다.
  • 제령 . . . . 1회 일치
         나쁜 영적 존재를 쫓아낸다는 뜻. 일본 오컬트 계통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며, 한국에서는 그리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신토 의인 [[오하라이]]가 있다.
  • 존 왕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존 헨리 . . . . 1회 일치
         민담에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에 특별히 고정된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기계와 대결을 벌이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배경은 공사 현장에서 가장 뛰어난 노동자 존 헨리가 있었는데, 건설 현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게 되자 존 헨리가 동료들을 위하여 기계와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으로 전개된다.
  • 존오그로츠 . . . . 1회 일치
         [[코뿔바다오리]], [[회색물범]], [[범고래]]를 볼 수 있다. 코뿔바다오리는 번기인 늦봄~초여름에 찾아온다. 이 세 동물이 홈페이지에서 볼드체로 밀어주는 동물이나 [[갈매기]] 같은 것도 살고있다고 한다.
  • 종활 . . . . 1회 일치
          * 장례, 묘지의 결정.
  • 주나라 . . . . 1회 일치
         지방 통치에서 주나라는 [[봉건제]]를 실시했다. 무왕은 자신의 형제들을 노(魯), 위(衛), 채(蔡), 조(曹), 등(滕)의 16개국에 봉하였고, 무왕의 아들은 진(晉) 등 4개국에 봉해졌다. 주공 단의 자들은 형(邢) 등 6개국에 봉해졌다. 강태공의 후손이 봉해진 제(齊) 등, 그 외 약 140개의 제후국이 존재했다.
  • 주아브 . . . . 1회 일치
         이들은 미국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남북전쟁]] 중 남북 양쪽의 몇몇 의용군 부대가 주아브라고 자칭하거나 주아브 복장을 입었다.
  • 주장환 . . . . 1회 일치
         '''주장환'''(1957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신문기자, [[소설가]]이다. 서울신문(스포츠서울)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중소기업사랑 청소년글짓기 공모전 심사위원장, 대한민국장애인예술대상 문학부문 심사위원, 충효예실천운동 본부 상임위원,부총재 [[731부대]] 한국인 희생자 진상규명위원회 대변인을 거쳐 [[극동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다. 하버드대학 Literati China 과정 수료. 월간조선 객원기자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1회 일치
         이로서 [[대만]]의 [[중화민국]]은 국제적 지위가 붕 떠버리게 된다. 정 국가가 아니라 일개 '정권'으로 취급받게 되는 것. 이에 반발하여 하다못해 '쫓겨나는 굴욕'만은 모면하려고 중화민국은 국제연합에서 스스로 탈퇴하게 된다.
  • 지뢰녀 . . . . 1회 일치
         [[지뢰]]는 언듯 보기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하지 못하지만, 밟게 되면 커다란 피해를 입힌다. 여기에서 따와서 사귀기 전에는 무해하게 보이다가 사기고 나서 해를 입히는 여자를 뜻하게 되었다.
  • 지무시 . . . . 1회 일치
         초반에는 자신이 살던 섬에서, 라나를 찾으려는 코난과 어찌어찌 얽혀 그 섬을 떠나게 되어, 코난을 내켜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친 사고에 대한 징벌(나무판으로 볼기 맞기)을 술로 인사불성이 된 자신 대신, 코난이 맞아[* TV판 4화에서, 지무시는 바라쿠다 호에서 다이스 선장의 음과 술 등을 훔쳐 먹고 주방장을 기절시키는 등 사고를 쳤다. 만취한 지무시를 데리고 코난은 달아났으나, 잡혀서 이전의 로보노이드 파손 등의 죄목과 합쳐져, 교수형과 볼기 맞기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게 된다. 볼기 맞기를 견디면 이 배에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두들겨 맞는데, 만취한 지무시는 단 한 대에 기절해버린다. 이에 코난이 대신 맞겠다며 나선다. 지무시가 맞을 몫인 20대까지 떠맡아, 코난은 선원 한 명당 40대씩 맞았는데, 바라쿠다 호의 선원들이 대략 30명이라 쳐도 1,200대, 곤장을 건강한 성인이 맞아도 보통 10대가 넘어가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이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반전, 코난과 우정을 쌓으면서 코난을 돕게 된다. 모험 이후에는 코난, 라나처럼 신대륙이 된 코난의 고향에 정착한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1회 일치
          * 아르민의 시체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는 사이, 갑자기 엘빈이 팔을 휘둘러 약을 뿌리친다. 마치 의이 있는 것처럼.
  • 짐 브라부라 . . . . 1회 일치
         맥스는 그를 "수상쩍은 습관과는 별개로 브라부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Apart from his suspicious food habits I figured Bravura to be one of the good guys.]라고 평했다.
  • 집단등하교 . . . . 1회 일치
         일본의 학교에서 안전을 위하여 아이들이 등하교반을 짜서 집단으로 등교, 하교하는 제도이다.
  • 차내 피난생활 . . . . 1회 일치
          * [[음]]의 [[배급]]이나 [[정보]]의 전달이 피난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행정의 보호에서 소외될 수 있다.
  • 차재욱 . . . . 1회 일치
         * [[2008년]] TG삼보 인텔 클래 시즌3 64강
  • 창작:바벨 코스트 . . . . 1회 일치
         미국의 국력이 커져가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음에도 유색인종 비율이 많은 탓에 거점 도시로의 역할이 주어지지는 못했다. 공업이 발달하기는 커녕 해군 부대가 들어서는 일도 없었다. 그저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업이나 소규모 상업 정도가 도시의 주요 산업으로 인되었다. 이후 사람들의 재정 수준이 높아지자 고급 주택이 세워지고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이 생겨나며 휴양도시로의 이미지가 잠시 생겨났다. 공해도 적고 교통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곳에서 휴양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지라 수많은 부유층들이 들어오면서 경기가 활성화되었다.
  • 창작:왕국 . . . . 1회 일치
         풍부한 농업 생산량을 지니고 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해안가로부터 물을 끌어오거나 땅속에서 지하수를 끌어오는 방으로 농경지를 확대시키는 중. 이렇게 얻은 땅에서는 보리나 밀, 포도, 그 외 등등을 재배한다.
  • 창작:좀비탈출 . . . . 1회 일치
          * 선택지 항목은 다음과 같은 으로 만든다.
  • 창작:좀비탈출/2-1-2 . . . . 1회 일치
         나는 옆집 부엌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엌에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집보다 먼저 량을 모두 소모한 모양이다.
  • 창작:좀비탈출/3 . . . . 1회 일치
          * [[창작:좀비탈출/3-2|학교]]
  • 창작:좀비탈출/5-1-1-1-2 . . . . 1회 일치
         하지만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어느덧 태양이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시체가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원래 목적대로 량을 챙겨야 한다. 이제 공복과 피로를 버티는 것도 지겹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내가, 갑자기 좀비버스터 노릇을 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과로로군.
  • 창작:좀비탈출/5-1-1-2 . . . . 1회 일치
         하지만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어느덧 태양이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시체가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원래 목적대로 량을 챙겨야 한다. 이제 공복과 피로를 버티는 것도 지겹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내가, 갑자기 좀비버스터 노릇을 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과로로군.
  • 책표지 . . . . 1회 일치
          * 색상을 도출하는 방법은 2002년, 미 존슨홉킨스 대 천문학팀이 '우주의 색'을 정하는데 사용한 방을 본떴다. 이 연구팀은 20만개 이상의 은하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별들이 내는 빛의 색을 평균으로 만들었다. 이 색상의 이름은 ‘코스믹 라떼’(Cosmic Latte)이며, RGB값은 255, 248, 231이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1304.html 기사]
  • 체육회계 . . . . 1회 일치
         고등학교, 대학 등에서 운동부(체육회)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 사회 생활까지 가져온 운동부(체육회) 계통의 문화. 회사나 직장,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데 사용한다. 연예계가 체육회계가 강하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와는 '군대 문화', '군기잡기' 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 초한전쟁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 초한전쟁은 진시황 말기에서 시작하여, 진승 오광의 난을 프룰로그로 묘사하고, 항우의 죽음으로 일단 마무리 된다. 일단 초한전쟁 자체는 여기서 끝나지만 여기서 끝내는건 조금 짧은 느낌이이 있어, 좀 더 가기도 하는데 유방의 [[토사구팽]]을 묘사하여 공신들의 최후를 그리거나, 좀 더 나가면 [[백등산 전투]]와 흉노 정벌 좌절과 유방의 죽음으로 마무리 한다. 유방 사후 여후까지 묘사하면 [[여씨의 난]]까지 가서 마무리 되며, 좀 더 길게 끌면 초한전쟁 시대의 자 세대들까지 마지막 활약을 하는 [[오초칠국의 난]]까지 간다.
  • 최란(배우) . . . . 1회 일치
         ||<#878787> '''{{{#EEE156 학력}}}'''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 ||
  • 최승자 . . . . 1회 일치
         1971년 [[수도여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하였다.
  • 최재만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
  • 춘추 . . . . 1회 일치
         춘추시대, 각국의 사관이 편찬한 공적인 기록이다. 『[[맹자]]』에서는 진에 '승', 초에 '도올', 노에 '춘추'(晉之乘, 楚之檮杌, 魯之春秋)가 있다고 하였으며, [[묵자]]에는 주나라, 송나라, 연나라, 제나라에 춘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춘추는 점차 국가 기록이 아닌 개인에 대한 기록에도 쓰이게 됐는데, 여씨춘추, 노씨춘추, 안자춘추 등이 그것이다.
  • 카라아게 . . . . 1회 일치
         [[일본]]의 [[튀김]]요리. 일본에서는 여러 음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편의점]]에서 팔기도 한다.
  • 카를로스 4세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카리아게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에, 다이묘 제후가 재정 궁핍을 막기 위하여, [[가신]](家臣)에게 빌려 쓰는 형으로 감봉을 행했던 것에서 유래한다.
  • 카미마치 . . . . 1회 일치
         카미마치란, [[가출]]이나 기타 이유로 주거가 정해지지 않은 젊은 여성이 인터넷의 가출 사이트나 프로필 사이트를 사용하여, 숙박할 장소와 사를 제공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이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사람을 '카미'='신'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카미마치란 단어를 쓰게 됐다. 다만 대가로서 뭔가를 요구하는 사람은 카미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원조교제]]와는 달리 일단 명목상으로는 성관계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1회 일치
         참고로 오카모토 요시키가 '게임 비평'의 칼럼에서 "원작의 반짝 인기처럼 애니메이션도 반짝 인기 후 본국에서 조기 종영 되었던 것처럼, 게임 버전도 '''사업적인 면에서(게임성이 아니라)''' 말아 먹었다."는 의 술회를 한적이 있다.
  • 캐리 피셔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1회 일치
          * 소코비아 협정에서 '''와칸다 국왕이 연설도중 암살 당한다.'''
  • 캥거루 . . . . 1회 일치
         유대류 동물의 일종. [[오세아니아]]에 서한다.
  • 커피 젤리 . . . . 1회 일치
         [[젤라틴]]과 [[커피]]를 사용하여 만든다. [[일본]]에서는 재료가 쉽게 구할 수 있어 가정용 간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카페나 다방, 편의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 코노나가레 주의 . . . . 1회 일치
         분쟁, 마찰이 없이 평온하게 지나가는 것을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사고방이나 행동을 뜻한다. 무사안일주의, 소극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 코스트코 . . . . 1회 일치
         [[미국]]에 본사가 있는 회원제 도소매 체인점. 료품에서 전자제품 등 다양한 상품을 폭넓게 취급한다.
  • 코토부키 퇴사 . . . . 1회 일치
         코토부키(寿)는 축하나 경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축복할 만한 일이나 그런 예이라는 의미가 있다. 고토부키 퇴사에서는 [[결혼]]을 뜻한다. 그래서 고토부키 퇴사(寿退社)는 결혼에 따라서 회사를 퇴사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 . . 1회 일치
         왠지 서양 인터넷에서는 [[서든어택]]과 비슷하게 인중. '초딩들이 빽빽 거리면서 하는 총쏘는 게임'정도로(…).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1회 일치
         사일러스는 빌리가 숨어사는 스팅키스프링스 근처 버려진 농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편에 속해있었던 보안관, 팻 가렛의 추격대가 빌리의 은신처를 습격한 것이었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를 들은 사일러스는 서둘러 빌리의 은신처로 달려간다. 팻 가렛의 수많은 부하들이 빌리가 있는 농가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포위망을 정면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사일러스는 농가 뒷쪽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적들을 기습한다. 실력이 형편 없었던 적들은 기습을 당하자 마자 순간에 무너진다. 사일러스는 빌리 일당의 엄호를 받으며 농가 뒷문으로 들어간다. 그는 계단에서 소총을 쏘던 [[https://en.wikipedia.org/wiki/Dave_Rudabaugh|더티 데이브]]를 지나 빌리와 [[https://en.wikipedia.org/wiki/Charlie_Bowdre|찰리 보우드레]]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 콜만스코프 . . . . 1회 일치
         콜만스코프는 19세기 후반에 [[다이아몬드]] 붐으로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이 지역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다이아몬드를 캐려는 광부들과 그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정착한 것. 콜만스코프가 성장하면서 거주민들을 위한 술집, 학교, 병원, 오락 시설 그 외 등등도 만들어지며 큰 마을이 되었다.
  • 콩고릴라 . . . . 1회 일치
         황금 고릴라의 몸에서 뛰어난 신체능력, 힐링팩터를 발휘한다. 이전에는 마법 반지를 문질러서 황금 고릴라와 정신을 교대하는 방이라 이 당시에는 몸을 교대하면 원래 몸에는 고릴라의 정신이 들어갔다. 이후 그의 인간 몸은 사망했으며 그는 고릴라의 몸에 남게 되었다.
  • 쿠죠 죠린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쿠챠러 . . . . 1회 일치
         음을 먹을 때 쿠챠쿠챠(クチャクチャ,밥 먹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태어. 쩝쩝 같은 것.)하는 소리를 내면서 먹는 사람(-er). 매너가 나쁘다고 여겨지며, 놀림을 받거나 비난, 혐오의 대상으로서 미움을 받는다.
  • 쿼터뷰 . . . . 1회 일치
         2D 스프라이트를 이용하여 3D를 유사하게 표현하는 기법 가운데 하나이므로, 본격적으로 3D가 사용되게 된 시대 이후로는 쿼터뷰 방은 이용이 줄어들었다.
  • 크리스토퍼 라킨 . . . . 1회 일치
         * {{공 웹사이트|http://www.christopherlarkin.com/}}
  • 키이치 보우겐 . . . . 1회 일치
         요시츠네는 키이치 보우겐에게 육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으나, 키이치 보우겐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요시츠네는 키이치 보우겐의 막내딸을 꼬드겨서 육도삼략을 훔쳐 손에 넣는다.--딸자 키워봐야...--
  • 킹덤/499화 . . . . 1회 일치
          * 출병 행렬에 끼어 있는 비신데. 그런데 그들의 대장 [[이신]]은 행렬에서 빠져나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진시황(킹덤)|정]]. 그의 얼굴을 모르는 신병들은 왠 귀족나부랭이가 치근덕댄다고 투덜대는데 고참들이 쥐어박으며 그가 바로 진나라의 왕, 대왕 정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왕이 출병 행렬 앞에 나타났다는 소이 전해지자 소란이 일어나는데 신은 태연하게 진정시키며 얼른 갈 길이나 가라고 재촉한다. 정은 신이 큰 작전을 앞두고도 별로 긴장한 기색이 없다고 놀란다.
  • 킹덤/503화 . . . . 1회 일치
          * 전서구는 조의 왕도 한단까지 날아간다. 전서구가 전한 소을 들은 [[호주(킹덤)|호주]]는 새파랗게 질려서 [[공손룡]]장군을 불러 바로 궁에 입궐할 채비를 한다.
  • 킹덤/505화 . . . . 1회 일치
          * 열미성에는 이틀이면 도성에서 원군이 도착하는 소이 전해져 있다. 그러나 열미군은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호전적이기 이를데 없어서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자체 병력만으로 진군을 격퇴하자고 함성을 드높이고 있다.
  • 킹덤/509화 . . . . 1회 일치
          * [[공손룡]]은 함락 소을 듣고 일시 후퇴. 하지만 적을 올가미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으로, 모든 것은 [[이목(킹덤)|이목]]의 방책이라 한다.
  • 킹덤/510화 . . . . 1회 일치
          신병들은 상을 초월하는 대활약에 입이 딱 벌어진다. 송좌도 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함께 싸우면 그 이상으로 대단한 일 투성이다. 송좌와 숭원은 그보다 열 살은 많아 평소엔 신을 꼬마 취급하지만, 그래도 전장에선 그 누구보다 멋진 남자가 신이라며 추켜세운다.
  • 킹덤/521화 . . . . 1회 일치
          * 마정이 포위. 적 복병의 등장. 기수군에 좋지 않은 소만 줄을 이었다. 낙화대 병력이 이제 몽념의 별동대로 모여들면서 총 5천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 반명 황각과 마정이 이끄는 기마대가 합류해도 병력차는 두 배 이상. 마정을 잃을게 불 보듯 뻔하다며 부관들이 원군을 보내자고 아우성친다. 기수는 그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으나 조용히, 냉정하게 상황을 다시 되짚는다. 벌써 1천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적의 수가 적다고 얕본게 문제였다. 분명 몽념은 수많은 전략을 능수능락하게 구사하는 인물일 것이다. 지금 펼치는 전술도 기마대의 기동력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 조군의 병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방치하면 외측의 보병대의 출혈을 피할 수 없고 어중간하게 기마대를 써도 덫에 걸린다. 뛰어난 전략적 안목을 옅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킹덤/526화 . . . . 1회 일치
          * 거기까지 지시만 해도 충분히 상 밖이었지만, 왕전의 다음 발언은 더욱 뜻모를 것이었다.
  • 킹덤/527화 . . . . 1회 일치
          * 총대장 왕전의 명으로 양단화군에 조력하러 온 [[벽(킹덤)|벽]]은 감탄이라기 보단 탄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만의 병력을 증원으로 끌고 왔으나 양단화의 산민족은 5만의 병력으로 적의 9만 병력을 철통같이 막아내고 있었다. 이는 전황이 전면전으로 바뀐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병전에서, 기마전에서, 난전에서. 어떤 전장에서든 산민족 병사의 위용은 눈부셨다. 자신이 힘이 되지 못하는걸 알고 벽이 씁쓸해하자 옆에 있던 "톳지"라는 산민족 간부가 산민족말로 "평지의 장군이 괜히 왔다"며 조롱했다. 벽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양단화는 알아들었다. 그에게 놀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 양단화는 벽에게도 임무를 부여했다. 현재 전황이 산민족에 유리한건 사실이나, 적의 움직임은 수상하기 그지없다. 전술이 너무 단조로운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벽과 그 병력에겐 이 돌발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를 갖춰두라는 것이었다. 벽이 기꺼이 그 임무를 받았다.
  • 킹덤/529화 . . . . 1회 일치
          * 양단화가 고지를 취하는 모습은 조군 진영에서도 보였다. 그녀가 고지를 쟁취한 것도 그랬지만 퇴각 중인 군대가 구태여 그 위치를 따내는 것도 상이 어긋났다. 그래봐야 작은 산. 저런 데로 가봐야 퇴로가 막혀 전멸당하기 십상이다. 조군 장교들이 그렇게 수군대자 견융왕은 조금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 타르콘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타오파이파이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타오팡파 . . . . 1회 일치
         >두 사람 모두 이제 슬슬 결혼을 의해가던 어느 날, 그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어요.
  • 타카하타 유우타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탐라국 여왕 . . . . 1회 일치
         ## 자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토리스 위스키 . . . . 1회 일치
         1946년에 "싸고 품질이 좋은 위스키"라는 모토로 발매되었다. 1950년에는 토리스 위스키를 취급하는 토리스 바(Tory's Bar)를 체인점으로 열게 되었다. 1956년에는 토리스 바를 위한 홍보용으로 약간 성인 대상 잡지 『양주천국』을 간행하기 시작했으며, 1958년에는 광고용 캐릭터 앙클 토리스가 선보였다. 2010년에는 토리스 하이홀이, 2015년에는 토리스 클래이 발매되었다.
  • 토리코/358화 . . . . 1회 일치
          * 한편 죠아도 미도라에게 네오의 진실을 알리며 '''"무한한 의 낙원"을 추구'''하자고 한다. 그러나 미도라는 '''"내 앞에 있는 작은 밥상 하나 외엔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
  • 토리코/365화 . . . . 1회 일치
          * 아마도 태어나면서도 '''레드 니트로나 순도 100%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를 포'''해왔을 거라 추측한다. '''지로는 "많이 먹었다고 했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 토리코/377화 . . . . 1회 일치
          * 지로의 풀코스였던 아수라 사우르스도 알려진 것보다 강력한 "원종"이란 형으로 등장. 포획레벨은 4990.
  • 토죠 노조미 . . . . 1회 일치
         하지만 작화나 등장 매체에 따라 여신과 돼지를 넘나드는데, Snow Halation에서 등장한 여신머리는 그녀에게 명실공히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애니메이션의 작붕과 풍만한 바스트 덕에 돼지로 인되는 안습함을 보여준다.
  • 토츠카 요트 스쿨 . . . . 1회 일치
         1979년에서 82년 까지 훈련생의 사망, 행방불명 사건이 잇다라 교장 이하 15명이 체포, 형사 재판이 벌어지며 이를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이라고 한다. 토츠카 교장은 6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으며, 2006년에 출소하여 학교에 복귀하고 운영을 여전히 담당하고 있으며,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1회 일치
         >선교사는 기독교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의 열성적인 전도자입니다. 이들은 적군의 사기를 꺾을 수 있고 적 마을에서 불안을 조성할 수 있는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아군 부대의 사기를 증진하고 읍성에 거주하는 백성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또한, 선교사는 경건하게 살아가는 속죄의 삶을 통해 기독교로 백성을 개종할 수 있고 적 요원이 임무를 단념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들은 특히 메츠케에 맞설 때 효과적입니다.
  • 톤데모 . . . . 1회 일치
         가타카나로 '톤데모'라는 것은 매우 강한 의미가 있어서, 특히 커다란 오해, 망상에 기반하여 세워진 이론을 주장하고, 일반적인 학문계의 상과 어긋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뜻한다. [[유사과학]]이나 [[유사역사학]], [[음모론]] 등의 부류가 여기에 들어간다.
  • 톰 최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디모인 출신]]
  • 통일주체국민회의 . . . . 1회 일치
         명목상으로는 돈 선거, 부패 선거를 없애겠다는 이유로 기존 정치인이나 정당인의 진입을 배제하였으며, 공적인 선거 연설과 포스터 이외의 선거 운동도 금지하였다.
  • 트로피코 4/외교 . . . . 1회 일치
          * 지인 진영과 좋은 관계
  • 특별고등경찰 . . . . 1회 일치
         1910년의 통칭 '대역사건'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의이 심화되어 설치되었다. 당초 사회주의자에 대한 감시를 맡았던 특별고등경찰은 점차 조직이 비대해지고 권력이 강화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도 감시가 심해져서 악명을 떨쳤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1회 일치
         영화도 영화인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감독도, 폭스도 영 아니게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각본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지금의 영화와 많이 다르다고 하며 이에 호의적인 반응도 있지만 저건 저거대로 좀 그렇다는 의 반응도 있다. 더불어서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도 거짓말이거나 부풀려졌다는 추측도 있는 듯 한데 이에 관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영화가 망했다는 현재의 사실은 바뀌지 않을 듯.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 . . 1회 일치
         영화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의 속편. 감독은 전작과 동일하게 팀 스토리. [[판타스틱 포]]와 [[닥터 둠]]의 배우도 전작과 동일하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등장한 [[실버 서퍼]]가 등장하며 배우는 더그 존스가 맡았다. 다만 목소리는 로렌스 피시번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갤럭투스]]가 등장했다. 스탠 리도 등장. 리드 리처드와 수 스톰의 결혼에서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명단에 없다고 거절당한다.(...) ~~내가 이 만화 그린 스탠 리라니까!~~
  • 패드립 . . . . 1회 일치
         현실이건 인터넷이건 상대와의 관계를 화끈하게 파탄낼 수 있는 행위다. 당사자나 목격자에게 교양없는 사람으로 인될 수 있으니 주의.
  • 퍼니셔 . . . . 1회 일치
         본명 프랭크 캐슬. 원래 [[군인]]이었던 캐슬은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갔다가 갱단에 의해 가족들을 잃었고, 이후 퍼니셔가 되어 세상의 악인들과 싸우게 되었다. 그 방은 살인. 통상 히어로가 악당과 싸우도 제압하고 끝내는 것이 보통이라면 퍼니셔는 그런 일 없이 아예 끝장을 낸다. 그러다보니 [[캡틴 아메리카]] 등 보편적인 히어로들과는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 페어리 테일/481화 . . . . 1회 일치
          * 바다까지 떨어진 제라르는 의을 잃고, 카구야는 제라르가 시몬을 죽였던 기억이 세삼 떠올라 그를 구해야 할지 갈등한다.
  • 페어리 테일/487화 . . . . 1회 일치
          * 예고됐던 중대발표는 소울 이터로 유명한 오오쿠보 아츠시의 신작 "염염의 소방대"와 콜라보 이벤트 소이 함께 실렸다.
  • 페어리 테일/498화 . . . . 1회 일치
          * 쥬비아는 죽어도 그레이를 상처 입힐 수는 없다며 의이 남아있을 때 자결하려 한다.
  • 페어리 테일/503화 . . . . 1회 일치
          * "딱"소리가 나고 디마리아가 순간에 나츠 옆으로 이동하는데 그녀의 마법을 모르는 루시는 순간이동이라고 생각한다.
  • 페어리 테일/510화 . . . . 1회 일치
          그가 나츠를 이그닐에게 맡긴 이후의 기억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혼룡 의의 영향으로 매우 훼손된 기억. 사실 이그닐과 함께 있던 시절부터 나츠와 다른 멸룡마도사들은 인연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가질 레드폭스는 항상 티격태격하던 사이. 웬디는 둘을 말리러 오곤 했는데 항상 울고 있었다. 제레프는 잠시 "그 애"도 곧 웬디랑 만나게 될 거라며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하는데.
  • 페어리 테일/515화 . . . . 1회 일치
          * 어느날 장군이 그녀가 있는 감옥에 나타난다. 그는 아이린의 처형이 결정되었다는 소을 전할 뿐 어떤 동정의 빛도 띄지 않는다. 아이린은 뱃속의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장군은 "3년이나 태어나지 않는 아이가 어디있냐"며 헛소리 취급한다. 그건 아이린이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마법으로 지연시키고 있는 거지만 그런 해명도 장군에겐 용납할 수가 없다.
  • 페어리 테일/519화 . . . . 1회 일치
          아이린은 결국 딸에게 인챈트하는 것을 포기했다. 한 번 유혹에 넘어갔던 그녀도 자이 귀여워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결심이 흔들리고 다시 인챈트를 시도하게 될까봐 우려했고, 딸을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기로 결정했다.
  • 페어리 테일/521화 . . . . 1회 일치
          *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유니버스 원이 해제되면서 매그놀리아는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길드원들은 순간에 익숙한 매그놀리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걸 보고 환호성을 지르지만 아직도 적군의 병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 페어리 테일/524화 . . . . 1회 일치
          * 오거스트는 다소 엉뚱한 소리를 꺼낸다. 카나에게 "아버지를 사랑하냐"고 물은 것. 카나는 쑥스러워하며 "딱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길다트는 교전 중이면서도 그런데 일일히 충격을 받는다. 이번엔 길다트에게 "딸을 사랑하냐"고 묻는데 물론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오거스트는 이 말을 꺼낸 이유가, 자신은 이 세상의 온갖 마법을 습득했지만 딱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한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부모 자 간의 애정".
  • 페어리 테일/531화 . . . . 1회 일치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시간의 틈새가 가깝다는 소을 전한다. 히비키, 이브, 렌, 제니는 조종에 총력을 다한다. 자신들도 시간의 틈새와 접촉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끝장이다. 시간의 틈새는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안나가 지정해준 좌표를 기준으로 시간을 재며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히비키의 계산에 따라서 시간의 틈새 쪽으로 계속해서 전진한다. 아크놀로기아가 턱 밑까지 따라붙고 시간의 틈새가 바로 직전에 나타난 상황. 크리스티나호는 불과 몇 m를 남겨두고 선체를 급격히 비틀어 시간의 틈새를 피한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1회 일치
          의을 회복한 제랄은 이치야의 이름을 부르며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 페이데이 갱 . . . . 1회 일치
          [[미국]]인. 본명은 톰 비숍(Tom Bishop). 배우 및 성우는 [[론 펄먼]]. 베인이 [[폭주족]] 단체인 오버킬 MC에 심어놓은 내부인이다. 정 페이데이 갱단원이 되는 대가로 오버킬 MC의 동료들을 배신했다. 작중 나이는 61세. [[환갑]]을 넘었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 . . . 1회 일치
          적을 자동으로 인하고 공격하는 무인포탑. 설명에 따르면 인터넷에 나돌아다니는 설계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갓-인터넷. 설치하면 화력을 대폭 증대시키지만 총알 제한이 있다.
  • 평론을 쉽게 쓰는 법 . . . . 1회 일치
         "프로이트의 구강기 이론에 따르면", "칼 융의 집단무의 이론에 따르면",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에 따르면"
  • 푸 파이터즈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프레퍼 . . . . 1회 일치
         비상사태에 대배하여 [[량]], [[무기]], [[탄약]]을 과도하게 비축하는 사람. [[폭동]], 경제 붕괴, 핵전쟁, 세계 종말 등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것을 믿고 활동한다.
  • 하이큐/210화 . . . . 1회 일치
          * 와시죠 감독은 볼보이라고 못박으면서도 히나타에게만 엄하게 대하는 등 의하고 있다.
  • 하이큐/211화 . . . . 1회 일치
          * 학교로 돌아와서도 타케다 고문과 사와무라 다이치에게 연달아 설교를 당한다.
  • 하이큐/212화 . . . . 1회 일치
          * 히나타는 계속 코트 위를 관찰하며 훌륭한 플레이라도 다 같은 건 아니며 선수에 따라 다른 방을 취한다는걸 알게 된다.
  • 하이큐/216화 . . . . 1회 일치
          * 저녁 사 중인 코치들은 와시죠 감독의 심경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 하이큐/217화 . . . . 1회 일치
          * 이런 으로 리듬을 정돈하고 들어가는 것만으로 여유롭고 "편한" 플레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 하이큐/218화 . . . . 1회 일치
          * 다음 일정으론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사이토 코치가 담당인데, 그가 굴을 먹다 중독에 걸려서 일정이 변경된다.
  • 하이큐/220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는 호시우미의 용수철 같은 점프를 히나타에게 이해보려는 모양이다.
  • 하이큐/227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는 다소 개선된 방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 좋은 흐름이 된다.
  • 하이큐/234화 . . . . 1회 일치
          그를 코치한 시마다 마코토는 한 가지 요령을 전수한다. "마음이 진정되길 기다리지 말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연습을 하라"는 것. 중요한건 "리셋하는 시점"이다. 워밍업 단계에서 시선을 진정시킬 지점을 하나 정한다. 그게 표이든 비상구든 뭐든 상관은 없다. 이 이야기를 할 때 리셋지점은 전봇대에 걸린 시마다 마트 봉지. 여기에 집중하는 걸 신호로 삼는 것이다.
  • 하이큐/237화 . . . . 1회 일치
          * 수비능력 자체는 장이나 다름 없었던 [[히나타 쇼요]]가 차츰 한 사람 몫을 하기 시작한다.
  • 하이큐/241화 . . . . 1회 일치
          * 아테마는 에치고와 함께 블록하려 하는데 순간 라이트 측에서 뛰어오르는 히나타를 보고 망설인다. 하지만 그게 함정. 진짜는 레프트에서 뛰어오르던 아즈마네였다. 깨끗하게 꽂히는 아즈마네의 스파이크. 히나타를 너무 의한 결과였다. 이 시점에서 츠바키하라는 두 번째 TO. [[오오사토 타츠미]] 감독은 다음 로테이션에 10번(히나타)가 내려가고 상대측 블록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으니 눈 딱 감고 강하게 치라고 지시한다.
  • 하이큐/250화 . . . . 1회 일치
          * 카라스노가 순간에 밀려나는 상황. 문득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시작 직전에 언급했던 [[하이큐/248화|최강의 도전자]]라는 별명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 하이큐/254화 . . . . 1회 일치
          * [[마지로 알렝]]은 "쌍둥이라 나올 수 있는 신뢰감"이라며 둘을 부러워하는데, 정작 그 말을 들은 오사무는 시큰둥하다. 애초에 그는 오사무를 딱히 신뢰하지도 어떻지도 않았다. 아츠무는 옛날부터 오사무의 말이라면 지지리도 안 들었다. 깨워달라고 하면 "니가 안 일어났다"며 먼저 가버리기 일수였고 빌려간 옷은 돌려주는 법이 없으며 남의 간을 처먹으면서 태연하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치는, 아주 좋지 않은 형제였다.
  • 하이큐/255화 . . . . 1회 일치
          >유일무이하지 않다는건, 그에게는 좋은 소이 아닐까?
  • 하이큐/264화 . . . . 1회 일치
          이 재미난 볼거리 이후 부원들 사이의 타나카에 대한 인은 싹 달라졌다. 키노시타의 소감처럼.
  • 하이큐/267화 . . . . 1회 일치
          중계진은 사루카와가 네코마의 센터 라인을 경계한다고 분석했다. 쿠로오와 하이바로 이어지는 센터 라인은 막강했다. 방금 전 사루카와의 공격도 하이바의 움직임을 의할 측면이 컸고 그래서 좌측의 후쿠나가가 살아날 수 있었다.
  • 한기웅 . . . . 1회 일치
         *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 할머니가 기른 아이는 세푼싸다 . . . . 1회 일치
         세푼쌈(三文安)으로 줄여서 쓴다. 우리 으로 번역하면 '반푼이'에 가까울 듯.
  • 함신영 . . . . 1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iboxmedia.co.kr/sub/business/artist.php?no=234&type=starbox#starbox_list 공사이트]
  • 허남성 . . . . 1회 일치
         *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 허만하 . . . . 1회 일치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195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용래 문학상 수상자]]
  • 헤소린 가스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현동완 . . . . 1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반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상태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상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 혼모노 . . . . 1회 일치
         진짜 오타쿠들을 "쉿 저놈들은 『진짜』다.", "혼모노다!"라는 으로 장난치며 놀리던 것이 이들을 가리키는 보편적인 명사로 굳어진 것.
  • 홍나영 . . . . 1회 일치
         | 학력 = 명지전문대학교 연극영상학과
  • 홍석형 . . . . 1회 일치
         * 증조부 : [[홍범]](洪範植, 1871 ~ 1910), [[경술국치]] 때 자살
  • 후지와라 요시후사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후카다 쿄코 . . . . 1회 일치
         ## 간단한 이력, 연표형.
  • 히노쿠니 . . . . 1회 일치
         이 지역은 아리아케(有明), 시라누이(不知火) 바다에 접한 지역으로서, 고대에는 농업만이 아니라 [[산]]과 [[바다]]의 물산이 풍부한 지역으로서, 히노키미(火君,肥君)라는 호족 군주를 중심으로 하여 대호족이 발전하였다. 지역의 독자적인 장이 있는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 히모 . . . . 1회 일치
         [[일본어]]에서 히모는 일반적으로는 '끈'이라는 뜻이다. 남녀관계에서 속칭으로 쓰일 때는, 여성을 일하게 하고 자신은 그녀가 주는 돈으로 놀고 먹는 [[정부]]를 뜻한다. 정으로 혼인관계를 맺으면 히모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농담이나 놀림삼아 불릴 수는 있지만.
  •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얼마나 있는지 명확하게는 나오지는 않았으나 히어로를 양성하는 시설도 있으며 [[유우에이 고등학교]]는 이러한 곳들 중에서도 최고의 양성기관이다.
  • 히치하이킹 . . . . 1회 일치
         2014년 [[중국]]에서 상하이에 사는 한 여성이 [[여자친구]]가 되어주는 대신에 여행경비를 받겠다고 [[웨이보]]를 통하여 홍보하는 방으로 중국 전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하여 화재가되었다.[http://insight.co.kr/view.php?ArtNo=8219 참조]
  • 히토모도키 . . . . 1회 일치
         인간으로서 상이 통용되지 않는 존재, 혹은 창작물에 나오는 인간으로 의태하는 [[요괴]] 종류를 뜻한다.
11531의 페이지중에 2207개가 발견되었습니다 (3960개의 페이지가 검색됨)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7-02-02 20:20:09
Processing time 6.1435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