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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람
         감찰을 거쳐 그 뒤 [[1451년]](문종 1년) [[집현전]]교리(校理)로서 [[수양대군]](首陽大君, 훗날의 世祖)과 함께 《[[역대병요]] (歷代兵要)》를 편찬하는데 참여하였다. 이때 수양의 측근이 된다. 《역대병요 (歷代兵要)》를 함께 편찬하고 음주(音註)를 편찬하는 데 동참하여 그와 더 가까워졌다.<ref name="park114">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14페이지</ref> 역대병요의 음주를 달던 중 권람은 [[수양대군]]이 큰 뜻을 품고 있음을 알고 그와 가까이 지내다가 [[수양대군]]과 뜻이 통하여, 그의 참모가 된 뒤 [[양정 (조선)|양정]](楊汀), [[홍달손]](洪達孫), [[홍윤성]], 유수(柳洙), 유하(柳河) 등 무장들을 설득, 포섭하는데 기여하였다.
         이후 [[양정]], [[홍달손]], 유수(柳洙), 유하(柳河) 등 무사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이들을 통해 많은 무사들과 무신들을 포섭하거나 사병을 양성하였다. [[1453년]](단종 1년)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이 되어 경연대독관(對讀官)을 겸하였다.
         * [[양정]]
  • 신면
         [[1465년]] [[5월]] [[도승지]](都承旨)가 되어 [[조선 세조|세조]]를 보필하였고 [[1466년]] 다시 [[도승지]]가 되었다. 같은해 아버지인 [[신숙주]], [[정창손]](鄭昌孫) 등과 함께 독권관(讀券官)이 되어 문과의 초시, 중시를 관장하였다. 그해 [[양정]]이 [[조선 세조|세조]]의 퇴위를 권고하자 의금부 판사(義禁府判事) 윤자운(尹子雲)과 함께 [[양정]]을 탄핵, 처형하게 했다.
         * [[양정 (조선)|양정]]
  • 한명회
         과거로는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친구 [[권람]]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찾아가 거사를 논의하였다. [[경덕궁]]직으로 있을 때 그는 역시 같은 [[경덕궁|경덕궁직]]에 있던 무사 [[홍달손]](洪達孫), [[홍윤성]], [[양정]] 등을 만나 사귀게 되는데, 한명회는 이들 30여 명을 [[조선 세조|수양대군]]에게 적극 천거하여 이들의 인맥을 통해 거사를 일으킬 병력을 모으게 된다.
         * [[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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