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정보
|이름 = 양정모
|원어이름 = 梁正模
|사진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사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국적 = 대한민국
|직업 = 기업인
|경력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br/> 국제그룹 회장
|배우자 =
|자녀 =
|부모 = 양태진(부)
|종교 =
|웹사이트 =
}}
양정모(梁正模, 1921년 9월 13일 ~ 2009년 3월 29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국제그룹 회장이었다.
|이름 = 양정모
|원어이름 = 梁正模
|사진 =
1921|9|13}} |
2009|3|29|1921|9|13}} |
|국적 = 대한민국
부산고등공업학교]] 졸업 |
남원]] |
|배우자 =
|자녀 =
|부모 = 양태진(부)
|종교 =
|웹사이트 =
}}
양정모(梁正模, 1921년 9월 13일 ~ 2009년 3월 29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국제그룹 회장이었다.
생애 ¶
1949년 부친 양태진과 함께 부산에 국제고무공업사를 설립하여 이후 《왕자표》 고무신을 첫 생산하기 시작했다. 6.25 전쟁 와중에 군수품 생산으로 큰돈을 모았다. 신발 회사 ‘국제신발’은 1962년 대한민국 최초로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1963년 신발류와 비닐제품 생산업체 진양화학을 세워 1970년대초 신발 수출 붐을 타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후 직물가공업체 성창섬유, 국제상선, 신동제지, 동해투자금융 등을 잇따라 창업하고 동서증권, 동우산업, 조광무역, 국제토건, 국제종합엔지니어링, 원풍산업 등을 인수하며 재벌 반열에 올랐다. 1980년대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7위의 국제그룹으로 키웠다. 1981년 전경련 부회장을 지냈다.
국제그룹이 해체 시련을 겪은 이유는 양 전 회장이 정치자금 헌납 등의 요구를 거부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모임에 늦게 나타난 것이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이것이 그룹 해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1980년대 말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한 세미나에서 {{출처|날짜=2013-06-10||"국제그룹의 경우처럼 기업인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일군 기업군을 일거에 분해시켜 버린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경제 정책가들은 그런 일을 다시는 해서는 안되고, 경제계도 다시 그렇게 당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양 전 회장은 정부를 상대로 국제그룹 해체가 부당하다며 위헌소송을 벌여 승소했지만, 이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자금 유포 사건 등에 휘말리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결국 그룹 재건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