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애 ¶
야규 가문의 가전 기록인 『옥영습유(玉栄拾遺)』에 따르면, 「전하기를 슈메라는 자 조선국의 종자라 한다(伝に曰く、主馬者朝鮮国の種也)」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 다른 기록(야규번구기柳生藩旧記, 수은초袖隠抄 등)에 따르면 「어떤 곳에서 말하길 슈메는 타국인으로 문벌(씨氏)도 모르는 자(然る所主馬は他国人にて氏も不知者)」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어떤 사정[1]으로 일본으로 가게 된 인물이거나, 그 자손으로 추측된다.
사노 슈메(佐野主馬)라는 이름으로 야규 가문의 가신으로 봉사하다가, 야규 가문의 딸(야규 토시요시柳生利厳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데릴사위로 들어가고, 야규 성씨를 쓰는 것을 허락받아 '야규 슈메'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이 결혼은 야규 무네노리가 이끄는 에도 야규 가문과 야규 토시요시가 이끄는 오와리 야규 가문이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토시요시는 여동생을 가문과 출신을 알 수 없는 타국 사람에게 시집 보낸 데다가, 게다가 사전에 오빠인 자신에게 상담없이 숙부 무네노리가 마음대로 결혼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분노하였다. 그리하여 토시요시는 무네노리와 절교를 선언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슈메 본인은 아내와 결혼하여 야규 가문의 가신으로서 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야규 가의 보리사인 방덕사(芳徳寺)에 그의 무덤이 야규 일족과 나란히 남겨졌다고 한다.
3. 가족사 ¶
- 쇼메의 아내는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柳生新二郎厳勝)의 딸로서, 야규 토시요시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이가(伊賀)의 재야 무사 야마자키 소우자에몬(山崎惣左衛門)에게 시집갔으나, 이혼을 하고 야규 가문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다. 1659년 까지 살았다고 한다.
- 적남 야규 하치로우자에몬(八郎左衛門)은 야마자키 이에하루(山崎甲斐守), 치쿠고 국 쿠루메 마을(筑後久留米)의 아리마 가문(有馬家)을 모셨다.
- 딸은 타케데 효베에(竹田与兵衛)라는 인물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