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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필성
         선수시절 주요 포지션은 [[3루수]]. [[실책]]을 자주 저지르는 와중에도 엄청 빠른 타구를 가슴이나 얼굴로 막아 내는 근성 수비를 보여 주었다.
         [[마산용마고등학교 야구부|마산상고]]와 [[경성대학교|경성대]]를 졸업하고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조만간 롯데의 확고부동한 주전 [[유격수]]감이라는 큰 기대를 받으며 롯데에 입단했지만 타격도 최악, 수비도 최악.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대형 실책을 저질러 '''"움직이는 화약고"'''라는 별명도 붙었다. 과거 파울볼을 잡다가 앞구르기를 두번이나 하면서 공을 놓쳐버린 일화도 있다. 3루수로 전업한 이후의 상황과 비교할 때 아무래도 조급함이 있었던 모양.
         총평을 하자면 1995년 한 해 동안 스물 두 번이나 공에 맞으며 세웠던 신기록[* 1982년 [[김인식]]의 18개 기록을 갈아 치웠다가, 1999년 31개를 맞은 [[박종호]]에 의해 깨졌다.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타격을 하는 버릇 때문에 당시 사구를 가장 많이 맞는 선수였다. 1995년엔 22개의 사구를 맞아 시즌 역대 최다 사구 기록을 경신했을 정도.] 정도가 자신의 커리어에서 자랑거리가 될까, 통산 0.248에 41홈런, 119실책은 평범한 선에서도 빠지는 기록이다. 그럼에도 그가 선수생활을 10년 정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리몸과는 거리가 멀었고 '''근성'''이라 할 정도로 그라운드에선 열정적이었기 때문. 그래서 선수 생활 후반에도 빠진 다른 선수들의 공백을 어느정도 메꿔주기엔 제격이었다. 물론 [[박현승]]이 나오기 전까진 별다른 3루수가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은퇴하는 2000년까지 열 한 번의 시즌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3할을 넘어서지 못했다. 1994년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리지도 못했고, 반대로 해마다 열 댓 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인 1992년이나, 1994-1995 시즌엔 공격 면에서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그 외엔 그다지 특별한 점은 없었다.
         프랜차이즈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코치로서의 능력은 매우 무능력하다. 롯데의 고질병인 허약한 수비를 개선시키지 못하면서도 물갈이가 되지 않아 '''철밥통''', '''꼴무원''' 등의 별명으로 롯데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그가 수비코치를 맡은 해엔 롯데는 '''항상 실책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는 그의 수비 철학이 자신의 선수 시절 스타일과 비슷한 "실책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수비해라"는 것이기 때문. 허나 롯데 경기를 보는 팬들이라면 알지만 그나마 그걸 바람직하게 보여주는 건 [[박기혁]]이나 [[박종윤]] 정도일 뿐이며 그나마 그들도 그에 맞게 실책은 많은 편이다. 그에 반해 다른 수비코치(주로 [[박계원]], [[조원우]])가 팀을 맡을 경우, 적어도 실책 1위는 거의 기록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주로 받은 평들이 '불사조 [[박영태]]의 뒤를 이은 최고의 [[철밥통]]', 'KBO 역대 최악의 수비코치', '그의 업적은 롯데에서 잘린 것이다' 등등 하나같이 조롱과 희화화된 평들이 많았다.
         2012시즌에는 2군 수비코치로 물러났으나, 2013시즌 다시 1군 수비코치로 승격하여 롯데 팬들을 [[충격과 공포]]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해 비록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초반 3경기만에 롯데는 '''7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선수 시절과 코치시절의 이미지가 극명하게 바뀐 케이스. 아니, 어쩌면 비슷한지도... 사실 선수 시절도 그렇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실책이 3루수임에도 유격수보다 많았으며, 3루수 치고 공격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까였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선수 시절 이미지가 거품인거지~~
         사실, 시즌 초반에는 최소 실책 1위를 기록하며 공필성 재평가 여론이 일기도 하였으나 팀 내부, 외부적인 일과 성적 하락이 겹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실책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여 시즌 마감시 최소실책 5위까지 떨어졌다.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 ~~정치질 소문이 돌던 시기와 적절히 맞물리는 건 덤~~
         '''그러나''' 초반에는 실책 수가 많았지만 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두산의 수비는 안정되고 9월 현재 두산의 팀 실책 순위는 8위이다. 시즌을 다 치룬 뒤에는 9위, 즉 최소 2위로 끝냈다. 시즌 초 수비진이 단체로 삽질했던 건 대체적으로 당해 시즌 직전 [[김인식호/2017년|WBC]] 때 두산 선수들이 너무 많이 끌려나가는 바람에 주전 선수들이 스프링캠프 기간에 수비 합을 맞춰보지 못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유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김강민
         2010년 9월 12일 현재 타율 0.324에 규정타석을 채워 타율 6위에 랭크되었다. ~~역시나 병역로이드~~ 스탯티즈에 의하면 팀 내 공헌도가 김광현에 이어 2위로 랭크되었다. 팀 내 타율 1위 도루 2위 타점 3위 홈런 4위. 심지어 실책이 0개로 수비율 1.000의 포스를 풍겼다.
         팬들은 2군에서 타격감을 끌어올리고 1군으로 다시 올라오길 바랬으나 [[박정권]]이 7할을 치는 2군에서도 여전히 '''사푼이'''... 거기에다 4월 17일 2군 경기에서는 수비 실책도 했다. 여러모로 본인의 입지가 위험한 상황.
          * 수비력은 한국 최고로 통하지만 가끔 나오는 [[실책]] 아닌 실책은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게 대부분이라 수비 못하는줄 아는 사람이 많았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 박석민
         팀내에서 [[최형우]]와 함께 단 둘만이 전 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79, [[홈런]] 14, [[타점]] 64를 기록하였다. 실질적인 첫 1군 풀타임 출장인 걸 감안하면 좋은 성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18개의 [[실책#s-2|실책]]으로 인해 [[박기혁]]과 함께 실책 공동 1위에 오른 것은 안습.
         5월 6일까지 .277의 타율을 기록했다. 타율은 다소 아쉽지만 볼넷을 많이 얻어낸 점은 고무적. 그러나 장타율이 다소 낮고 홈런이 2개 밖에 없으며 실책이 벌써 3개째이다.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범호]]의 평범한 3루측 땅볼을 잡았는데, 원래 이 상황에선 2루 주자가 진루할 필요가 없으므로 태그아웃 상황이지만 [[포스 아웃]] 상황으로 착각해 3루 베이스만 밟고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본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기록은 3루수 실책. 투수 [[미치 탈보트|탈보트]]와 동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질러 2루 주자가 3루로 가는 선에서 그쳤지만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 2사 1, 3루라는 위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최희섭]]이 플라이아웃 되어 망정이지... 팬들 반응은 '역시 개그맨' vs '[[채태인]]이랑 다를게 뭐냐'로 나뉘는 중. ~~다를게 많지~~
  • 신명철(야구선수)
         [[별명]]으로는 '''유혹의 명철신, 돈성의 심장, 돈성캘리버''' 등이 있다. ~~못할 때는 그런 거 없고 신멍청~~ '유혹의 명철신'은 삼성으로 이적한 후 응원가로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로 선정되면서 등장할 때마다 저 노래가 나오던 까닭에 기존의 별명이었던 '명철신'과 '유혹'이 합쳐지면서 나온 별명이다.[* 파생된(?) 표현으로 "유혹 성공", "유혹당했다"(…) 등이 있다. 다른 팀 선수들의 타구가 2루쪽으로 가서 병살을 당하거나, 신명철의 타구에 타팀 수비수들이 실책을 저지르거나, 파울라인을 타거나 수비수들 사이에 뚝 떨어지거나 하는 변태안타를 만드는 등의 상황이 발생할 때 주로 쓰인다. 신명철이 이렇게 ~~유혹에 성공하면~~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 [[까임방지권|평소때보다 덜 까며]] 그냥그냥 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09년과 10년 타선수들의 빈타 속에 결정적인 순간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돈성의 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가 돈성캘리버로 진화했고 타팀팬들이 영원한 돈성맨으로 남기를 염원하며 돈성의 심장이라는 별명도 붙여주었다. 자매품으로는 돈성의 채찍이라 불리는 [[강봉규]].
         2011년 5월 24일에는 롯데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신명철의 타구가 '''세 번이나''' 야수들의 [[실책]]을 유도했고, [[강민호]]의 태그조차 그를 피해갔다...~~유혹의 명철신~~
         4월 16일 SK와의 경기에서는 4타석 1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하였다. 다만 5회초에 한동민이 친 타구를 잘 잡지 못하는 등(안타성 타구의 성질이 더 컸다고 판단했는지 에러로 기록되진 않았다.) 조금씩 수비에 대해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은 걱정거리다. 4월 17일 경기에서는 4타석 1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했으며, 특히 8회말 5:5 동점 상황이었던 1사 1,2루 상황에서 1루 주자로 나서서 후속타자 [[진갑용]]의 좌익수 뒤 2루타성 타구를 '''상대 좌익수 이명기가 잘 잡지 못하도록 유혹'''하였다--사실은 그날따라 바람이 심했던 포항구장의 날씨 영향이 더 크긴 했다--. 4월 18일 경기에서도 4타석 1안타 1도루를 기록하였으나 7회초 1:2 상황이던 1사 만루 상황에서 이명기가 친 땅볼 타구를 더듬으로서 병살 플레이로 연결하는 데 실패하는 등 수비에 대한 불안요소가 더 커져가는 중이다. 4월 21일 롯데와의 경기에서도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상대 타자 손아섭이 친 2루 땅볼 타구를 악송구함으로서 실책 1개를 기록하였다.
  • 허웅 (1983년)
         ![[실책|실]]
         [[실책|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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