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E D R , A S I H C RSS

"신명철"에 대한 역링크 찾기

신명철의 역링크


역링크만 찾기
검색 결과 문맥 보기
대소문자 구별
  • 강병철(야구인)
         2006~2007년에도 팀 성적은 나빴지만 리빌딩은 충실히 진행했다. 정말로 친척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던[* 성이 같아서 농담삼아 [[강병철의 양아들]]이 아니라 친아들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강민호]]는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로 등극했고 김주찬은 수비와 작전수행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긴 했지만 정말 죽도록 욕을 먹어가면서도 끝까지 라인업에서 빼지않고 밀어준 결과 결국 호타준족의 외야수로 성장해 공격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인구(야구선수)|이인구]]는 [[2008년]] 후반기 [[정수근]]의 파행으로 위기에 빠진 롯데 외야진에 구원투수 역할을 했고 꾸준히 투구폼을 고정시키고 꾸준히 선발 수업을 시킨 [[장원준]][* [[양상문]] 시절에는 특별한 혹사없이 선발수업을 받긴 했는데 투구폼을 못 잡아줘서 여러번 바뀌었다.]과 [[신명철]]을 내주며 콕집어 트레이드해온 [[강영식]]은 각각 선발과 불펜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자리잡았다. 무명이었던 [[정보명]]을 발굴해 레귤러로 키워내었고 [[이우민]]의 경우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3할타율을 강병철 감독 재임기간에 달성하기도 했다.
  • 강영식
         || [[신명철]](2004~2006) || → || '''강영식(2007~2017)''' || → || 현역 ||
         결국 [[권혁]]에게 밀려 2006년 11월 21일 2루수 [[신명철]]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됐다.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2008 준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에는 신명철이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포스트 시즌용'이라는 첨부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시에 강영식에게는 '페넌트레이스용'이라는 첨부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함께 밝혀졌다. 하지만 로이스터는 외국인이라 한글로 쓰인 설명서를 읽지 못했던 모양이다.
  • 김상수 (1990년)
         [[2009년]] 시범 경기에서 타율 0.348(2위), 44안타(1위), 8도루(1위)로 맹활약하며 주목받았고 시즌 경기에서도 빠른 발과 타격감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09년]] 시즌 중반 [[투수]] [[지승민]]과 함께 A형 간염에 걸려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6180112 삼성 루키 김상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6180112 }} - OSEN</ref> 빠른 발이 장점인 전형적인 교타자였으나, 시즌 중 체력 문제를 드러내며 오히려 같은 포지션에 있는 [[신명철]]의 기량이 늘었다.
  • 박경수 (1984년)
         2015년 8월 28일, [[KIA 타이거즈]]와의 서울에서 [[김광수 (1981년)|김광수]]를 상대로 3점 홈런을 쳐 내며 데뷔 첫 20홈런을 기록했다. [[2015년]] 시즌에 타율, 타점, 홈런, 장타율, OPS, 출루율 등 타격 관련 전 부문에서 자신의 역대 시즌 최고 기록을 단일 시즌에 갈아치워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015년 8월 30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채병용]]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 내며 시즌 1호이자 개인 통산 4호 만루 홈런을 기록해 자신의 커리어하이 시즌의 절정을 알렸고, 팬들의 많은 성원과 환호를 받았다. 유독 홈 구장에서 장타력을 더 과시해 '수원 거포'라는 애칭을 얻었다. 한편 홈 구장이 경수대로에 위치해 있어 홈런을 잘 치는 것이라는 속설도 있고, [[LG 트윈스]]에서 이적 후 활약해서 탈쥐 효과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2015 시즌 팀의 주장을 맡았던 [[신명철]]이 은퇴를 선언하며 팀의 2대 주장으로 선임됐다.
  • 손주인
         [[2002년]]에 입단하였다. 만년 백업 역할을 맡았고 팀의 주전 2루수는 [[조동찬]]이 차지했고, 당시 [[롯데 자이언츠]]에서 이적한 [[신명철]], 대주자 [[강명구 (1980년)|강명구]]와 포지션이 겹치며 입지가 더 좁아졌다.
  • 이대형
         2015년 8월 7일 주장이었던 [[신명철]]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며 임시 주장으로 선정됐다. [[KIA 타이거즈]]와의 광주에서 5타수 5안타로 맹활약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전임자=[[신명철]]
  • 채종범
          * 프로 현역 시절에는 외야수지만 마산고등학교 시절엔 유격수였으며,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는데 그 당시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던 선수가 [[신명철]]이다.
11830의 페이지중에 7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