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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회 . . . . 3회 일치
그는 관향인 [[충청북도]] [[청주]]에 안장되기를 희망하여 처음에는 [[1476년]](성종 6년) [[1월]] [[청원군]] 장명리(長命里)에 안장되었으나 곧 [[충청남도]] [[천안군]](현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로 이장되었다.
[[조선 세조|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1488년(성종 19년)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산에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졌다.<ref>1994년 11월 4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32호로 지정되었다.</ref> 그 뒤 [[폐비 윤씨]] 폐출 사건을 막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하여 [[조선 연산군|연산군]] 대에 와서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정창손]] 등과 함께 12간의 한사람으로 지목되어, 관작을 [[추탈]]당하고 그 [[시체]]가 [[무덤]]에서 꺼내져 [[부관참시]](剖棺斬屍)되어 시체는 토막내어졌으며 목을 잘라 한양 네거리에 걸렸다. 그의 [[부관참시]]를 하던 날, 갑자기 날이 흐려지고 비가 왔는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자 병사들이 그의 [[부관참시]] 집행을 주저했다 한다.
*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990086&cloc= <nowiki>[</nowiki>명문家를 찾아서<nowiki>]</nowiki>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한명회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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