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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수 (1959년)
         [[서울효제초등학교]],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원년인 [[1982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에 입단하여, [[1992년]]까지 [[내야수]]로 활동하였다. [[손시헌]]의 [[2003년]] [[신고선수]] 입단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12290012 두산의 또다른 힘, 유망주 영입 '네트워크'] - OSEN</ref>
  • 김민겸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계약금 = 없음 ([[신고선수]] 입단)
  • 김민겸 (야구선수)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계약금 = 없음 ([[신고선수]] 입단)
  • 김민재 (1973년)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1991년]] [[부산공업고등학교|부산공고]]를 졸업하고 계약금 1,000만원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고,<ref name=JoyNews>[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56950 한화 김민재, 사상 2번째 '2천경기 출장' 철인 기록 세우다]《조이뉴스》, 2008년 9월 10일</ref> 주로 활동했다.
  • 김민호(1969)
         || '''프로 입단''' || 1993년 [[OB 베어스]] [[신고선수]] 입단 ||
         [[경주고등학교 야구부|경주고등학교]]와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OB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 김사훈 (야구선수)
         [[김사율]]의 소개로 2011년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2012년 사이판 훈련 직전에 정식 계약했다.
  • 김상호 (1989년 5월)
         [[2012년]] [[9월 22일]] 정보명의 대타로 나와 장원삼을 상대로 데뷔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0&article_id=0000026263&redirect=true 롯데 김상호, 삼성전에서 데뷔 첫 안타] - 스포츠한국</ref> [[2013년]] 초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정식 선수로 승격되었다.
  • 김상호 (1989년)
         [[2012년]] [[9월 22일]] [[정보명]]의 대타로 나와 [[장원삼]]을 상대로 데뷔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0&article_id=0000026263&redirect=true 롯데 김상호, 삼성전에서 데뷔 첫 안타] - 스포츠한국</ref> [[2013년]] 초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정식 선수로 승격되었다.
  • 김선우 (1973년)
         |드래프트 순위 = [[199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2년]] [[신고선수]] 입단 ([[태평양 돌핀스]])
  • 김일엽 (야구선수)
         귀국 이후 수술을 반복하여 재활하였고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복무하던 중에 [[KBO 리그]] 복귀 유예 기간 규정이 지나 [[대한민국]]에서 활동이 가능해졌고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친 후 [[2007년]] [[1월 4일]]에 [[롯데 자이언츠]]에 [[신고선수]]로 입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0278662 롯데, 마이너 리그 출신 김일엽과 계약] - 뉴시스</ref> 하였으며,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1군에는 [[2008년]]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여 [[2008년]]에는 2승 1패 1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 3.21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에 들어서는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2009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선발 보직도 겸하였다. 그러나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아 [[2009년]]에는 승리 없이 5패, 평균자책 7.36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9년]] [[6월 21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KIA]]와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했음에도 단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5실점하여 강판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6210116 ‘데뷔 첫 그랜드 슬램’ 김현수 “만루포 처음이야!”], 《동아일보》 [[2009년]] [[6월 21일]]</ref> [[2012년]]에는 1군 1경기에 그쳤고 그마저도 대량 실점하여 평균자책 40.50을 기록한 후 방출되었다.
  • 김준태 (야구선수)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에 6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나 이듬해 [[신고선수]]로 전환됐고, 이후 다시 정식 선수로 복귀했다. [[2013년]] [[10월 1일]] [[LG 트윈스|LG]]전을 앞두고의 팔꿈치 부상으로 포수진 증원을 위해 1군에 등록됨과 동시에 이 경기를 통해 1군에 데뷔했다. 대수비로 나온 후을 상대로 10회 말에 끝내기 안타를 쳐 냈고 이는 프로 데뷔 첫 안타, 타점이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17364 ‘데뷔 첫 안타가 끝내기’ 김준태 “부모님 얘기 때문에 울컥했죠”] - 스포츠경향</ref>
  • 나영철
         |드래프트 순위 =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4년]] [[신고선수]] 입단 ([[OB 베어스]])
  • 노진용
         [[2008년]]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LG 트윈스]]에 2차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으나, 그 해 시즌 중 불미스런 일로 시즌 후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9160072 '젊은 피' 노진용, "차별화된 잠수함 되겠다"] - OSEN</ref>
         이적 후 별 활약 없이 [[신고선수]]와 정식선수를 반복하면서 보내다가 2016 시즌 후 결국 방출되었다.
  • 박상현 (1989년)
         '''박상현'''(朴相眩<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9년]] [[11월 22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다. [[2010년]] [[11월 30일]] [[KBO (야구)|KBO]]에 공시된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SK 와이번스]]와 결별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 [[신고선수]]로 돌아왔지만 다시 방출되었다.
  • 박석진 (야구선수)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박석진'''(朴石鎭, [[1972년]] [[7월 19일]]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투수]]이자, 현재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2군 [[투수]]코치이다. 우완 사이드암 [[투수]]로서 삼성과 롯데를 여러 차례 오가며 선수 생활을 했으며, [[신고선수]] 출신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수영초등학교 (부산)|수영초등학교]], [[대천중학교 (부산)|대천중학교]], [[경남고등학교]],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신고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
  • 박지철 (야구선수)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롯데 자이언츠]]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1997년]] 14승 5패 7세이브, 2.45의 방어율을 기록했으나, 이듬해에 단 2승에 그치면서 부진에 빠졌고 1999년에는 재활군에 머물렀다. [[2001년]] 13승 7패로 데뷔 후 두 번째로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면서 [[손민한]]과 함께 팀의 원투펀치를 이루었다. [[2002년]]에는 부상으로 5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3년]] [[4월 6일]] [[수원야구장|수원]] [[현대 유니콘스|현대]]전에서는 [[심정수]]의 얼굴을 맞혀 [[KBO (단체)|KBO]]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심정수]]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당시 프런트를 맡고 있었던 [[염경엽]]의 제안을 받아 이 때부터 얼굴보호 헬멧(일명 검투사 헬멧)을 사용하게 된다. [[4월 20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6회 2사까지 무실점 호투로 팀을 개막 12연패 뒤 첫 승을 선사했으며, 이후 그는 [[롯데 자이언츠]]가 연패에 빠질 때마다 호투하면서 팀을 연패에서 구해 냈다. 하지만 어깨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 박해민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 (육성선수 입단,신고선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는 데 실패하고, 입단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1군 서울에는 [[2013년]]에 첫 출전했는데, 단 한 서울 대주자로 출장 후 타석에는 서 보지도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2013 시즌 후 [[상무 야구단|상무]]에 지원해 서류 전형에서는 합격했지만 실기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붙박이 중견수였던 [[배영섭]]의 입대와 함께 1군에서 기회를 잡았다.
         신고선수로 입단해 3년 만에 힘들게 주전 자리를 꿰찼지만 2년차 풀 타임 징크스 없이 시즌 전 서울에 출전했다. 2할 9푼 3리의 타율, 47타점, 96득점을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중견수로 떠올랐다. 또한 팀 역사상 첫 시즌 60도루를 기록하며 첫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 손민한
         하지만 결국 정식 선수 등록 마감일까지 이적할 팀을 찾지 못했다. [[2013년]]에 선수로 복귀하기 위해서 [[신고선수]]로 입단해 [[6월 1일]] 이후부터 1군 등록이 가능한 [[신고선수]] 등록 기간에 돌아오는 길밖에 없었다. [[NC 다이노스]]에서도 그의 부상 이력 때문에 최대한 몸을 만들 때까지 복귀를 서두르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코칭스태프가 전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3월에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 영입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다.<ref>[http://www.sportsworldi.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130131023242&subctg1=25&subctg2=00&OutUrl=naver 선수등록 마감일을 넘긴 손민한…6월에는 돌아올까] - 스포츠월드</ref> 이후 [[2013년]] [[4월 15일]]에 연봉 5,000만원의 조건으로 [[신고선수]] 계약을 맺었다. 퓨처스 팀에 합류해, 몸 상태를 고려하여 퓨처스 경기에 등판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576398 NC, 손민한과 연봉 5,000만원에 입단 계약] - OSEN</ref>
  • 송산
         [[2012년]] [[공익근무요원]] 소집 해제로 복귀한 후, [[2012년]] [[5월 5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대타 연장 끝내기 내야 땅볼 결승타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시즌 중반 2군에 내려가고 오른쪽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시즌 후 긴 재활을 이유로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신고선수]]로 전환됐다. 그리고 이듬해 3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송주호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2007년]]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010년]]에 방출당했다.
  • 송주호 (1988년)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2007년]]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010년]]에 방출당했다.
  • 신창호
         [[2011년]] [[10월 2일]] [[KIA 타이거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뉴스 인용
  • 양영동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2006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2006년]] 1군에 2서울에만 나오고 이듬해 방출되었다.
  • 오종우 (야구인)
         |드래프트 순위 = [[199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1년]] [[신고선수]] 입단 ([[LG 트윈스]])
  • 오현근
         2010년 시즌 자신을 처음 지명했던 [[두산 베어스]]와 신고선수 계약을 맺었다.
         2015년 2월 롯데의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 오현택
         원광대 시절 인상적인 성적을 기록했지만 구속이 138km에 머물러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고, 결국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직구 구속의 이슈를 극복하기 위해 [[권명철]] 코치와 상의 끝에 투구 스타일을 [[사이드암]]으로 수정했고, 이후부터 빠르기보다 무브먼트에 투구의 초점을 맞췄다.<ref>{{뉴스 인용|저자=박현철|제목=‘새로운 피’ 오현택, “책임 갖되 욕심 없이”|url=http://mosen.mt.co.kr/article/G1109576241#imadnews|뉴스=OSEN|날짜=2013-04-15|확인날짜=2018-11-21|깨진링크=아니오}}</ref> 한동안 2군 생활을 계속 하다 [[2009년]] [[6월 3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서울를 치렀다.
         [[2010년]] [[4월 27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서 2.1이닝 2탈삼진, 노히트를 기록하며 데뷔 첫 승을 달성했다.<ref>{{뉴스 인용|저자=박현철|제목=신고선수' 출신 오현택, '실질적 패배' 속 발견한 성과|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30/2010073000334.html|뉴스=조선일보|통신사=OSEN|날짜=2010-07-30|확인날짜=2018-11-21|깨진링크=아니오}}</ref> 두 시즌 종합 29서울에 등판해 45⅔이닝동안 1승,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2010 시즌 후 팀 동료인 [[유희관]] 등과 함께 [[상무 야구단]]에 입대했다.<ref name="sangmu">{{뉴스 인용|저자=박현철|제목=‘기량 급성장’ 상무 오현택, “아내에게 너무 미안”|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12/2012061200440.html|뉴스=조선일보|통신사=OSEN|날짜=2012-06-12|확인날짜=2018-11-22|깨진링크=아니오}}</ref>
  • 유영원
         |드래프트 순위 = [[199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2년]] [[신고선수]] 입단 ([[쌍방울 레이더스]])
  • 유태준
         |드래프트 순위 = [[199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3년]] [[신고선수]] 입단 ([[쌍방울 레이더스]])
  • 윤요섭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2008년]]에 [[SK 와이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데뷔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0523/20080523101010100000000_5559791765.html|제목=<주말스페셜> 신고선수 SK 윤상균 24시|출판사=스포츠서울|날짜=2008년 5월 23일|확인날짜=2010년 2월 27일}}{{깨진 링크|url=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0523/20080523101010100000000_5559791765.html }}</ref> [[2008년]] [[한국 프로 야구 퓨처스 올스타전|퓨처스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프로야구 퓨처스 올스타전 출전선수 확정|url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11120522222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08년 8월 11일 |확인날짜 =2010년 2월 27일}}</ref> [[2009년]] [[4월 21일]] [[목동야구장|목동]] [[넥센 히어로즈|히어로즈]]전에서 [[지명타자]] 및 3번 타자로 데뷔 첫 선발 출장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목동야구장 이모저모> SK 윤상균, 첫 선발 출장 外|url = 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97341/language/ko-KR/Default.aspx|출판사 = 엑스포츠|날짜 = 2009년 4월 12일|확인날짜 = 2010년 2월 27일}}{{깨진 링크|url=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97341/language/ko-KR/Default.aspx }}</ref>
  • 이동학(야구선수)
         첫 해 8승을 거둔 이후 7년 동안 2승을 추가하는 데 그치는 부진 끝에 결국 2010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되었고, [[한화 이글스]]가 그를 영입한다. 입단과 함께 수술을 받고 재활에 매달렸으나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한화는 그를 포기했고, [[LG 트윈스]]가 [[신고선수]]로 데려갔다.
  • 이병규 (1983년)
         [[2006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주로 2군에서 머물렀고 데뷔 첫 해 7경기에만 출전했다.
  • 이상호 (1989년)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2013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안타를 친 후 근육통을 호소하자 [[대주자]]로 출장하며 첫 1군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5065708 이상호, '운이 따르네~'] - 뉴시스</ref> 이후에는 주로 대주자로 나왔으며 [[지석훈]]과 [[노진혁]]의 부진으로 종종 선발출전도 했다.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노진혁]]의 땅볼 때 [[서동욱]]의 태그를 절묘하게 피하며 병살을 피하였고<ref>[http://osen.mt.co.kr/article/G1109668015 이상호, '태그를 피하는 방법' ] - OSEN</ref>, 타격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결승타) 2도루로 경기의 MVP가 되었다.
  • 이여상
         [[동국대학교|동국대]]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고, [[동국대학교|동국대]] 체육교육학과 시절 감독이자 은사이고,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였던 [[한대화]]의 배려로 [[2006년]]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0428/20080428101010100000000_5470953928.html 김현수, 또 한명의 신고선수 스타 탄생]{{깨진 링크|url=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0428/20080428101010100000000_5470953928.html }} 《스포츠서울》 2008년 4월 28일 작성</ref> 이후 [[2010년]]에는 이적한 팀인 [[한화 이글스]]에서 다시 [[한대화]]와 만났다. 주로 2군에서 활동하며 2007 시즌 2군 남부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시즌 막판에는 정식 선수로 등록돼 1군에 잠시 올라오기도 했다.
  • 이윤재(야구선수)
         입단 후 [[신고선수]] 전환이 되기도 했지만 2014년 [[SK 와이번스 2군]] 감독으로 부임한 [[박경완]] 감독이 “부족한 점은 많지만 그래도 키워볼 만한 자원"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2군 주장직까지 맡기며 육성했다.[* 참고로 박경완은 이윤재와 을 인정하는 포수 3명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 전민수
         [[2014년]]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016년]] [[4월 22일]]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 데뷔 9년만에 프로 첫 안타를 쳐 냈다.<ref>[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9928481&cloc= kt 전민수, 데뷔 9년 만에 첫 안타…역전 2루타] -일간스포츠</ref>
  • 전준호 (1986년)
         그렇게 1년을 쉬고 [[경찰 야구단]]에 들어가 군 복무를 마친 후 삼성의 테스트에 합격하면서 [[신고선수|신고 선수]]로나마 다시 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28광주에 등판해 8.78의 상당히 높은 [[평균자책점|평균 자책점]]을 기록해 1년 만에 또 방출되었다.
  • 차영화
         그의 아들은 현재 [[KBO (야구)|KBO]] 소속 심판인 [[차정구]]이며, [[2011년]]에 KBO에서 교육을 받고 심판 자격을 취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876033 <야구소식> 심판육성과정 수료식] - 연합뉴스</ref> [[2006년]]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1시즌 간 활동했다.
  • 최동수 (야구인)
         [[2010년]] 시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그는 그 해 [[7월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내야수]]가 필요하였던 [[SK 와이번스]]와 [[투수]]가 필요하였던 [[LG 트윈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는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LG 트윈스]]는 [[SK 와이번스]]로부터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 [[김선규 (야구 선수)|김선규]], [[포수]] [[윤요섭]]을 받았다. 그 때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3연전 중이어서, 트레이드 된 선수들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7월 28일]] 당일, 트레이드 당사자인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그는 같이 이적한 [[안치용]]과 함께 선발 출장하였고 [[권용관]]은 도중에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선수 중 [[윤요섭]]이 대타로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경기에서 그는 3점 홈런을 쳐 내는 등 4타점을 쓸어담아 맹활약하였다. 그 날 [[SK 와이번스]]는 연장전에서 [[권용관]]이 [[정성훈 (1980년)|정성훈]]의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여 패했다. 특히 그에겐 프로에서 눈을 뜨게 해 준 [[김성근 (야구인)|김성근]]과의 재회여서 더 의미가 컸으며, 2차 드래프트가 있기 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감독직에서 경질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해 시즌 후 32번을 쓰고 있었던 [[외야수]] [[박윤]]이 보류 선수에서 빠져 [[신고선수]]로 전환되자, 자신의 번호였던 '32'번을 되찾았다. [[2011년]]에는 [[박경완]]의 재활이 장기화되어서 10년 만에 그의 본업인 [[포수]]로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이후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 하지호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하지호'''(河智皓, [[1984년]] [[12월 16일]] ~ ) 는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2008년]] [[신고선수]]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였으나 [[2010년]] [[11월 30일]] [[KBO (야구)|KBO]]에 공시된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SK 와이번스]]와 결별하였다.
  • 한상훈 (야구선수)
         하지만 [[이양기]],[[지성준]]과 같이 [[신고선수]]로 복귀하였다. 선수등록 마감일인 2016년 1월 31일까지 타 구단의 영입제의를 받지 못했고 소속구단과의 협상도 결렬됨으로써 사실상 팀에서 방출되었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60219/76546617/1 한상훈, 13년간 몸담았던 한화 떠난다] -스포츠동아</ref>
  • 한용덕
         |드래프트 순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동아대학교]] 중퇴 이후 병역을 마쳤으나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선수로서의 꿈을 이어 가던 중 [[북일고등학교]] 시절 은사이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의 주선으로 [[1987년]] 9월 [[빙그레 이글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2553 무관의 투수왕 '한용덕'] 《오마이뉴스》, 2006년 9월 27일</ref>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 주는 힘겨운 [[신고선수]] 시절을 보내고 2년 뒤에서야 비로소 정식 선수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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