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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격호
         ||<width=30%><:> 롯데그룹 창립 ||<:> {{{+1 ←}}} ||||<width=30%><#CF1020><:>'''{{{#white 1대 신격호}}}''' || {{{+1 →}}} ||<width=30%><:> 2대 [[신동빈]] ||
         ||<#CF1020> {{{#FFF '''이름'''}}} ||신격호 (辛格浩)||
         ||<#CF1020> {{{#FFF '''부인 및 동거인'''}}} ||故노순화, 시게미츠 하츠코[* 사실혼 전 성은 '타케모리(竹森)'[[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308500094|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부인 시게미츠 하츠코 법률혼 아닌 사실혼 관계]].], [[서미경]]||
         ||<#CF1020> {{{#FFF '''자녀'''}}} ||[[신영자]][* 신격호 회장이 망처와의 사이에서 유일하게 법적인 혼인관계에 있던 중 태어난 딸], [[신동주]], [[신동빈]], 신유미[* 1983년생이다. 장녀인 신영자와 42세 차이다,]||
         이후 신격호는 약간 남은 밑천으로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리고 유지류나 특수고무같은 물질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당시에 시판되고 있는 껌들을 죄다 사다가 한번씩 다 씹어보고 각각의 껌들에 한두 가지씩 존재하는 장점들을 모두 집약해서 껌을 개발했다. 그런데 신격호가 이렇게 개발한 껌이 인기가 엄청 좋아서 과자점 주인들이 서로 납품하겠다고 신격호의 연구소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섰다. 이에 신격호는 투자자를 모집해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려서 껌을 팔기로 했는데 그것이 롯데그룹의 효시였다. 껌이 엄청나게 잘 팔렸기 때문에 신격호는 거대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식 츄잉껌을 처음 만들어 낸 Wringley사가 맨 처음 내놓은 츄잉껌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여성을 타겟으로 한 Vassar,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반시장을 타켓으로 한 Lotta였다. 또한 신격호가 츄잉껌 시장에 뛰어든 1948년 당시 츄잉껌의 주 소비계층인 젊은층,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패전국인 독일의 작품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고.]
         창작물 캐릭터가 이상형이라서 회사 이름까지 그렇게 지었다는 것 보단 최초의 츄잉껌 이름 +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 = 롯데(Lotte)가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실제로 롯데의 각종 건물, 브랜드, 온갖 서비스 명칭엔 늘 샤롯데가 붙는다. 각종 언론에서는 첩 서미경씨를 신격호 회장의 샤롯데라 불렀다.
         더불어서,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도 꽤나 많이 까이는 편이다. 롯데 자이언츠 특유의 보수적이고 꼭 써야할 돈조차 안쓰는 인색한 운영[* 과자값 사건부터 시작해서 이걸로 발생한 병크를 열거하면 끝이없다.]이 전적으로 모기업의 운영 방침을 고스란히 따라가기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 때문에 부산, 경남권에서도 신격호와 롯데에 대한 인식은 무관심 내지 냉랭한 편이다.
         신격호가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큰 실패를 겪고도 불굴의 의지로 일어나서 재벌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롯데그룹은 입사시험을 위한 면접과정에서 신격호의 이력을 묻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격호의 공과는 사람들마다 평이 다르겠지만, 창업자로서 가지는 노력과 끈기/도전정신 등은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물론 현대 사회는 재무관리와 금융체계의 발전으로 투자안 평가 및 대출이 산술적으로 진행되고 사업 실패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청산이 이루어지기에 신격호처럼 실패 후 다시 돈을 빌려 사업을 반복하는 경영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신격호는 수요초과시대에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돈 빌리는 운이 좋았던 사업가로 여기는 게 적합하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범 삼성가]]나 [[범 현대가]]같은 재벌들과는 달리 의료기관을 운영하지 않는 이유로 신격호 회장 본인부터가 원체 병원 갈 일이 없어서라고 해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속칭 왕자의 난 이후 신병 이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언론 보도로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10/0200000000AKR20150810047000030.HTML|롯데 측 핵심 관계자의 증언]]를 소스로, 2010년대 초반에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았으며, 치료제을 복용하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후의 신격호 명예회장의 인터뷰를 보건데 이 주장은 롯데그룹의 언론 플레이일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214&aid=0000547410|기사]]
         한동안 그의 국적은 미스터리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인]]이고 [[일본]]에서는 [[일본인]]'''인 기묘한 형태. 때문에 편법적 이중국적자로 의심받았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일관계]]의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 회장은 [[한일기본조약|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에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일본과 대사급 외교 관계가 없었던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체제에서는 그의 일본 국적 취득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한국 국적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1985년까지 [[이중국적]]을 허용했으므로 일본 내에서도 그의 한국 국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중국적이지만 이중국적이라 말할 수 없고, 신격호는 한국인이고 시게미츠 타케오는 일본인이라는 기묘한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그런데, 한 언론사가 입수한 일본 롯데 계열사의 대주주 목록에는 신격호와 시게미츠 타케오가 함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며, 신격호 회장은 한 번도 일본 국적 취득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중 호적이 심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2015년]] [[7월 28일]] 신격호는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되고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이 되었다[* 애초에 이전에 '명예회장'이라는 직함을 거부하고 '총괄회장'을 맡았던 것 역시 끝까지 경영을 직접 하겠다는 신격호의 ~~똥고집~~ 현역 의지 때문이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01/2015080100243.html|기사]] 해당 기사는 신격호와 신동빈의 경영 스타일 차이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27일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 몰래 롯데가 인사 여럿과 함께 일본에서 자신을 제외한 차남 신동빈 회장을 포함 여섯 명의 이사들을 해임하려고 했다가 이사회에서 제동을 건 것이다. 한마디로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고령의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등에 업고, 차남 신동빈 회장 체제를 무너뜨리려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한 것이 된다.
         문제는 장남 신동주가 처음에 해임했던 인물들에 포함된,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쓰쿠다 다카유키가 예전에 신격호 총괄회장으로부터 "잘 부탁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점. 그런 쓰쿠다를 신격호+신동주가 다시 해임했다는 것은 신격호 회장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장남에게 설득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자들의 분석이 있다. 하여 차남 신동빈 측에서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는 것. 이 때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대행 [[신동인]] 역시 신동주의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무능함의 대명사이자 롯데 자이언츠 CCTV사건에도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는 [[신동인]]이 드디어 짤릴 수 있다면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 신동빈 회장님! [[신동인]]부터 잘라 주세요!~~
         하지만 [[2015년]] [[5월 22일]] [[잠실 롯데월드타워]]을 방문하여 건설보고를 받는 모습을 밀착취재한 기사들만 봐도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867271|노병용 롯데물산 사장과 무리 없이 대화]] 했다고 하거나 [[http://news.mk.co.kr/newsRead.php?no=494137&year=2015|건설에 대한 매우 상세한 사항]]을 물어보며 현장의 상황을 살폈기에 위의 신동주 쿠데타-신격호 노환설을 부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무엇보다도 신격호는 꾸준히 신동빈을 밀어주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끈 다 떨어진 신동주를 다시 당긴다는 건 아귀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신격호가 신동주를 이용하여 양국 회장급에 취임한 신동빈에게 어떤 제스처를 취하며 권력의 운용과 책임에 있어서 무한대로 자유로운 상왕으로서의 포지션을 취하려고 했는데 신동빈의 갑작스러운 제스처에 당해 권력없는 상왕이 되어 버렸다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2015년]] [[7월 30일]] 신동주 부회장이 일본롯데에 대해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고 그 골자가 신격호 회장의 복위(+ 신동주 부회장의 복위)라고 한다. 신동빈 회장은 펄펄 뛰는 중이라고. 또한 신동주 측에서 "아버지 신격호 역시 신동빈+쓰쿠다를 그만두게 했다"라며, 이와 관련한 신격호의 (일본어)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 상황이 묘연해지고 있다. 신격호가 이전에 쓰쿠다에게 "잘 부탁한다"라고 한 것은 "(그만두고 나서도) 다른 데 가서 잘 하라"는 덕담이었다는 것(…). [[http://joongang.joins.com/article/912/18364912.html|기사]] 신동빈 쪽에서는 "롯데 경영 전반에 있어 아버님(신격호)의 의중이 중요하긴 하지만, 신동빈+쓰쿠다 해임 지시는 제대로 된 절차 없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따를 수 없다"며 맞서는 중. 신격호의 장녀 신영자는 신격호+신동주에 가세하는 양상. 하지만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105475|2011년에 신동빈을 한국 롯데 회장에 임명해 놓고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 등]]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모습을 보여 정말 신격호가 판단력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도 의심 되었었다.
         2015년 10월 15일 둘째 아들 [[신동빈]]으로부터 집무실에 CCTV 를 설치 당하고 직원들의 감시에 놓이게 되자 즉각 철수를 요구하였고, 10월 16일 장남 [[신동주]]와 직원들이 집무실에 진입하여 신격호의 거처를 탈환(..)하였다. 이후 한국 언론과 인터뷰 하였는데 고령이라 귀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인터뷰도 아주 똑바로 하고 의사표시도 분명하게 하는 걸로 봐선 그간의 정신이상설은 모두 근거없는 헛소문임이 거의 확실해젔다. 롯데그룹의 언론플레이가 의심되는 상황. 이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장남 신동주에 대한 지지의사를 확고히 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214&aid=0000547410|기사]],[[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421&aid=0001682216&date=20151016&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1|기사2]]
         2016년 2월 12일, 신동주는 신격호가 경영관 분쟁과 관련해 인터뷰하는 동영상과 친필 서명이 들어간 일본어 문서를 공개했다. 일본말로 진행된 해당 인터뷰에서 신격호는 “당연히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또 신동빈을 롯데에서 추방해야한다는 내용도 남겼다. 문서는 2015년 12월 30일자 서명이 있었다. [[*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068|#]]
         하지만 2016년 3월과 6월에 두 차례에 걸친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에서 또 다시 신동주 측의 안건은 죄다 부결되면서 신격호의 롯데그룹 자체의 장악력이 이제는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 6월 29일, 신격호 회장이 2010년부터 치매약을 복용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88396|기사]]
  • 신현준(배우)
          * [[롯데그룹]] 신씨 일가의 일원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헛소문이다. 신현준은 평산 신씨로 [[신격호]]와 본관도 다르고 매울 신씨인 롯데가하고 한자자체도 다르다.
  • 울산광역시/인물
         * [[신격호]] - 울주군
  • 이임용
         [[2010년]] [[1월 26일]] 이임용 묘 도굴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도굴범(당시 49세)은 한적한 이 도로에 차를 세우고 농로를 따라 100여 미터 떨어진 산소로 가서 3시간 동안 봉분을 파헤쳤다. 범행 다음 달에는 바로 그룹비서실에 전화해 유골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10억 원을 요구했으며,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인근 3거리에 설치된 방법용 폐쇄회로 TV와 휴대폰 통화내역 등을 추적해 용의자를 검거했다. 놀랍게도 용의자는 [[1999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부친 묘소를 파헤쳐으며, [[2004년]]에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조부모 묘소를 파헤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553444_5780.html 재벌 묘 전문 도굴범 검거‥10억 원 요구]{{깨진 링크|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553444_5780.html }}</ref>같은해 [[2월 2일]]에는 유골이 7일만에 회수되었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102218 대기업 창업자 묘 도난 유골 회수]</ref>[[4월 19일]]에는 [[포항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용의자가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232120 대기업 가족묘 도굴범 교도소서 자살(종합)]</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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