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E D R , A S I H C RSS

"순"을(를) 전체 찾아보기


역링크만 찾기
검색 결과 문맥 보기
대소문자 구별
  • 박근혜 . . . . 61회 일치
         |혐의 = [[박근혜-최실 게이트]]·[[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뇌물수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기밀누설 등<br>----<br>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뇌물수수·국고손실)<br>----<br>공직선거법 위반(공천개입)
         |죄값 = 2심 징역 25년·벌금 200억 원, 검찰 단독 항소·상고로 상고심 진행중(최실 및 블랙리스트 관련)<br>----<br>1심 징역 6년, 검찰 단독 항소로 항소심 진행중. (국고손실 유죄. 뇌물수수 무죄.)<br>----<br>징역 2년 확정<ref>https://news.joins.com/article/23164465</ref>(공직선거법 위반,공천개입)
         |현황 = [[박근혜-최실 게이트]] 관련 구속영장에 따라 2019년 4월까지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수감 후 상고심이 완료되지 않아 공천개입 실형 2년 집행 중<ref>http://www.nocutnews.co.kr/news/5073073</ref>
         재임 직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라는 위기를 맞으며 국정을 본 박근혜는 임기 중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창조경제]]를 위시한 추진한 정책 다수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미숙한 국정운영과 불통 논란 등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2016년 말 [[박근혜-최실 게이트]]가 터져 민간인의 국정 개입 사실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2016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ref name="impeachment" />되어 12월 9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주영재·허남설|제목=[속보]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찬성 234·반대 56·무효 7·기권 2|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091610001|뉴스=[[경향신문]]|날짜=2016.12.09 16:10:00}}</ref>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ccourt.go.kr/cckhome/kor/event/adjuList.do|제목=선고목록 및 결정문 - 헌법재판소|확인날짜=2018-12-1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429073|제목=[영상]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3-10}}</ref> 탄핵 후에는 곧바로 3월 21일 검찰에 소환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ref>{{뉴스 인용 |title=[박근혜 검찰 출석] 최실 ‘곰탕’·이재용 ‘자장면’…박근혜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 |url=http://news.donga.com/3/all/20170321/83428508/2 |work=동아일보 |date=2017-03-21 |accessdate=2017-05-18}}</ref> 3월 31일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최실 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구속…"혐의소명·증거인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30/0200000000AKR20170330171251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3-31}}</ref>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17년 10월 16일 6개월인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으나 검사가 앞선 구속영장에 적시하지 않은 뇌물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기간이 최대 6개월 연장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 측은 반발하였고 모든 변호인단이 사임하였다.<ref>[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10171022138598395_1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남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영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영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박근혜가 태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이후 박근혜는 의전상의 [[대한민국 대통령의 배우자|대통령 배우자]] 권한대행으로서 아버지 [[박정희]]의 공식 행사와 해외 방 등을 수행하였고 [[육영수 저격 사건]] 이듬해에 만들어진 [[육영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가 되었다.
         한나라당이 '역풍 위기'에 처했을때, 착실하게 당 내에서 입지를 쌓고 있던 박근혜가 그의 뒤를 이어 [[3월 23일]] 당 대표가 되었다.<ref>대한민국에서 여성 정당 대표 중 [[박천]]에 이어 두 번째다.</ref> 기존의 다선 의원, 중진 의원, [[운동권]]에서 포섭해 온 세력 등과 다르게 박근혜는 여러 차례 기자 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사죄를 표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제17대 총선|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원내 1당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121석을 차지하여 예상 외의 선전을 하였다. '탄핵 역풍 위기'에서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구해낸 것이다. 이때부터 박근혜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잠재적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0071934& 2004 정치권 뜬별진별]</ref>
         불안한 당내외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획득하여 과반 1당을 유지하였으며 그 후 공식적인 당 지도부가 출범하였지만 당내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 문제로 [[김문수 (1951년)|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과 대립하였고, 결국 [[정몽준]] 대표, 이재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 속에 경선을 치렀다. 8월 중 치뤄진 경선에서 박근혜는 압도적 지지로 승리하였다.
         국회의원 재직 중 대선 경선을 맞이하게 된 박근혜는 대선 경선 캠프 선대위원장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 '경제 민주화'의 입안자인 전 [[민주정의당]] 헌법개정위원 [[김종인]]을 임명하는 등 [[사회양극화]] 문제 해소에 적극적 의지를 보였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20628031405843] 김봉기 기자, '경제 민주화' 원조 김종인… 내달 출범 박근혜 캠프 맡는다, 조선일보, 2012.6.28.</ref> 박근혜는 재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경제력 남용을 바로잡는 데 방점을 뒀다.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긍정적 역할은 인정하자는 쪽이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820160408085] 이제훈, 재벌이 싫어하는 헌법 조항, 한겨레21,2012.8.20.</ref> [[사회양극화]] 해소가 목적인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세수확보가 중요한데 박근혜 의원은 2012년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법인세는 가능한 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야기했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6%(지방세 포함)보다 낮은 편이다. 일본과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각각 39.5%, 39.2%에 이른다.<ref name="hani.co.kr">[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42826.html] 류이근, 성연철 기자, 박근혜 "법인세 인하"…친박서도 "경제민주화와 모", 한겨레신문, 2012.7.17.</ref> 현재 법인세는 내국세 총액 가운데 부가가치세(33.0%) 다음으로 높은 비중(28.6%)을 차지한다.<ref name="hani.co.kr"/>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법인세를 낮추겠다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에서 ‘박근혜식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ref name="hani.co.kr"/> '법인세 인하와 경제민주화 간의 모성' 및 '법인세 감소분에 따른 대체 세수 확보' 등의 논란은 대통령 선거일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한편 경선 8일 뒤인 [[2012년]] [[8월 28일]] 박근혜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유족과 노동자들의 거부와 반대로 무산되었다. [[전태일]]의 여동생이자 구 [[민주통합당]]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인 [[전옥]]은 진정으로 [[전태일]] 정신을 생각한다면 쌍용차나 용산참사 희생자 등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먼저 찾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른바 국민대통합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현안이 일어나는 현장을 먼저 찾아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현재의 진실은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거의 삶이 일치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5·16 쿠데타와 유신, 군사 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전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8/28/0200000000AKR20120828048951001.HTML?did=1179m 전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 연합뉴스, 2012년 8월 28일</ref> 그러나 [[이상일]] 대변인은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대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박근혜의 대통령 방 목록}}
         2013년 5월 7일 밤(미국 기준시) 홍보수석비서관실의 [[윤창중]]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방인 미국 방문 중 술을 마시고, 주 미국 한국대사관에서 지원한 인턴 여성의 둔부 근처에 손을 댄 행동과 다음 날 새벽 호텔에서 과도하게 노출된 상태로 해당 여성을 마주했다는 의혹이 발생, [[윤창중]]은 바로 성추행으로 미국 경찰에 신고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이 윗선에 보고되어 경질되었다는 내용이 언론에 유포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3/05/12/0501000000AKR20130512057900001.HTML "윤창중, 靑진술서 '엉덩이 터치·본인 노팬티' 시인"]《연합뉴스》2013년 5월 12일 신지홍 기자</ref><ref>[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33 윤창중의 출국 누가 도와줬나?]《시사인》2013년 5월 11일 김영미 국제문제전문 편집위원</ref> 이 사건으로 직속 상급자인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차관급)이 사과발표를 하였으며, 사의를 표명하였다. [[이남기]]의 사직서는 5월 중 수리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1129691 靑 "윤창중 사건, 美측에 조속한 수사 진행 요청"]《뉴스1》2013년 5월 12일 장용석 기자</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586998.html 이남기 홍보수석 사의…허태열 "책임 피하지 않을 것"]《한겨레》2013년 5월 12일</ref> 또한,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과 윤창중 전 수석대변인 간의 진술 차이, 대통령에 대한 사과 표현 등이 문제시되어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장관급)이 공식사과를 발표하였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ewsflash/3281506_7612.html 靑 허태열 공식 사과…이남기 홍보수석 사의]《MBC》2013년 5월 12일</ref>
         이후 해경 및 정부의 구조 및 사고 대응에 있어서 매스컴 및 여론의 엄청난 비판이 발생하였다. 박근혜는 사고 발생 후 10여일이 지난 4월 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하여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여론의 비난은 계속되었고 일부 진보세력은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면서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통령 하야 청원글을 올리기도 하여 논란을 빚었다.
         여야는 6월 세월호 사고 관련 국정조사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6월 말 실시하기 시작한 국정조사는 고성과 막말 속에 흐지부지 종료되었으며, 7월 중부터는 세월호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야당측과 세월호 사고 유가족의 국회 내 농성, 거리 행진, 데모 등이 벌어졌다. 이러한 도중에 실시된 7월 30일 재보궐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승리하였고, 8월 초 새누리당 이완구-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월호 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담은 소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야당 내부의 반발이 벌어지면서 여야간의 합의는 파기되었다.
         한편, 세월호 사고 유가족 김영오가 7월 중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가 매스컴의 관심을 받았다. 김영오는 광화문광장에서 40여일 간 단식을 진행하면서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욕설 등을 퍼붓기도 하였다. 김영오의 단식에는 문재인 민주당 의원, 가수 김장훈 등이 호응하여서 동조하기도 하였다. 또한 김영오의 단식에 대하여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좌파성향 매스컴이 옹호, 지지를 표하며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여야간의 정쟁이 계속되던 9월 중, 박근혜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은 국가의 권한으로서 민간 위원회에 주는 것은 부적절하며, 여야의 2차 합의안을 넘는 유가족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여야간의 협상이 계속되었고, 9월 말 여야는 조사위원회 구성 등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10월 말 소위 세월호 특별법과 정부조직법, 범죄은닉재산 환수법 등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파동은 종료되었다.
         2014년 6월 13일 개각으로 내정된 경제부총리 최경환은 7월 중 취임하였다. 최경환은 취임 직후부터 금융완화, 부동산규제 완화, 가계소득 증대 및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통하여 세월호 사고 영향으로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발표하였다. 그의 이러한 적극적인 경제정책에 대하여 언론에서는 [[초이노믹스]]라 부르고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하여 대통령의 이름이 아니라 장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서, 최경환이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다는 점, 최경환이 추진하는 경제정책이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라는 점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의 취임 이후 종합주가지수 역시 크게 상승하였다.
         {{본문|박근혜-최실 게이트}}
         2016년 10월 민간인인 측근 [[최실]]이 [[박근혜-최실 게이트|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임기중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인생의 전반을 최실이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며 대통령취임이후 현재까지 모든 정책에 최실이 관여한것으로 추측되고있다.<ref>[http://www.weeklyseoul.net/news/articleView.html?idxno=34889 ‘최실 게이트’ 의혹에 정치권 발칵, 진실은?]</ref>
  • 경순왕 . . . . 57회 일치
         |이름 = 신라 경
         |설명 = 신라 경왕 영정
         |시호 = '''경'''
         '''경왕'''(敬順王. ? ~ [[978년]])은 [[신라]]의 제56대 군주<small>(재위: [[927년]] ~ [[935년]])</small>이다. 성은 [[김 (성씨)|김]](金)이고, 이름은 부(傅)이며, 시호는 경(敬順)이다.<ref name="dk0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70495 장례 행렬이 고랑포 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 오마이뉴스] 2008년 08월 29일자</ref>
         그러자 [[927년]] 음력 11월 후백제 견훤이 신라의 수도 금성을 기습하여 [[경애왕]]과 왕비를 죽이고, 그의 친척 동생인 경왕을 왕으로 세워 왕위에 올라 [[927년]]부터 [[935년]]까지 재위하였다.
         '''신라 김씨'''(新羅 金氏){또는 '''계림 김씨'''(鷄林 金氏)} 시조 [[김알지]]의 7대손인 미추왕(신라 13대)에 이르러 비로서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신라 마지막 왕인 경왕(알지의 28세손)이 [[935년]] 11월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손국하기 까지 38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경왕은 이름이 부(傅)이며,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대아찬]](大阿飡)을 지낸 [[김효종 (신라)|김효종]]이고, 어머니는 [[신라 헌강왕]]의 딸인 계아태후이다.<ref>성은 김(金)씨이다. 출처: 한국고대인명사전 - 헌강왕(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73670&cid=42953&categoryId=42953)</ref> [[927년]]부터 [[935년]]까지 재위하였다. 가계는 [[신라 문성왕]](文聖王)-상대등 '김안'(金安)-각간 '김민공'(金敏恭)-추존 의흥왕 '김실홍'(金實虹. 일명 仁慶)-추존 신흥왕 [[김효종 (신라)|김효종]](金孝宗)-경왕(敬順王)으로 이어진다.
         경왕 영정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74호)
         그는 즉위 초 아버지 [[대아찬]](大阿飡)을 신흥왕(神興王)으로, 할아버지 각간(角干) 김실홍을 의흥왕(懿興王)으로 각각 추존하였다. 재위시에 국력이 쇠퇴하고 특히 여러 차례에 걸친 [[후백제]]의 침공과 약탈로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따라서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ref name="nate01">[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128 경왕:네이트 한국학]</ref>
         === 고려 귀 및 멸망 ===
         [[935년]] 10월에 경왕은 민심이 신흥 [[고려]]로 기울어짐에 따라,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 하기로 결심하자, [[마의태자|태자]]와 막내아들 [[김덕지]] 및 이유(李純由) 등이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였으나, 경왕은 이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에게 국서를 보내 [[고려 왕건]]에게 항복을 청하였다. 일설에는 어전에서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935년]] 11월 경왕이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시켜 항복 국서를 [[고려 태조]]에게 받치니 천년([[기원전 57년]] ~ [[935년]])의 [[신라]](新羅)는 멸망했다.
         === 고려 귀 후 ===
         [[935년]] 11월 [[고려 태조]]는 태상(太相) 왕철(王鐵) 등을 보내 경왕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경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고려에게 가는데 향나무 수레와 구슬로 장식한 말이 30여 리에 이어지니, 길이 막히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장을 친 것과 같았다.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교외에 나와 경왕을 영접하여 위로하며, 궁궐 동쪽의 제일 좋은 구역(지금의 정승원(正承院))을 내주어 머물도록 하였다.
         또 [[고려 태조|태조 왕건]]은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를 경왕의 아내로 삼게 하였는데, 경왕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살기 때문에 이름을 고쳐 신란공주(神鸞公主)라 하고, 시호는 효목(孝穆)이라 했다. 아홉째 딸인 '부인 왕씨'(夫人 王氏)도 아내로 삼게 하였다.
         [[935년]] 12월 경왕을 정승공(正丞公)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하고 위계를 태자(太子)의 위에 두고 녹봉으로 1,000섬을 주었다. 또 왕을 모시고 온 관원과 장수들도 모두 다 관직을 주어 등용시켰다. 신라를 [[경주]]로 고치고 식읍으로 삼도록 하고, [[경주]]의 [[사심관]]에 임명하여 [[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고려 태조|태조 왕건]]도 경왕의 백부 김억렴(金億廉)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녀가 제5왕후인 [[신성왕후]] 김씨이다. 슬하에 왕욱(王郁)을 두었으며, 왕욱(王郁)의 아들이 고려 제8대 왕 [[고려 현종]]이다.
         이후 경왕은 첫째딸을 [[고려 태조]]의 손자인 [[고려 경종|경종]]에게 출가시켰는데, 그녀가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이다. 이 일로 [[고려 경종|경종]]은 그를 특별히 배려하여 상보령(尙父令)으로 삼고 식읍과 녹봉을 더해 주었다. 그는 [[고려 태조]]부터 [[고려 혜종]]·[[고려 정종|정종]]·[[고려 광종|광종]]·[[고려 경종|경종]]대까지 5대에 걸쳐 살았으며,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죽은 후에도 왕 다음으로 높은 존재로 인식되고 그 영향력이 컸다.
         {{참고|연천 경왕릉}}
         1904년작 경왕 영정 초본
  • 이순재(1935년 10월) . . . . 55회 일치
         ||<width=30%><:> 제13대 [br] [[이상수]] ||<width=5%><:> → ||<#FFFFA1><width=30%><:> 제14대 [br] ''' 이재 ''' ||<width=5%><:> → ||<width=30%><:> 제15대 [br] [[이상수]] ||
         {{{#FFFFFF '''이재의 주요 수상 이력 ''' }}} }}} ||||
         ||<width=30%> (첫 시상식) || →||<width=30%><#FFFFA1> '''이재'''[br]김성원[br][[여운계]][br]김희준[br][[사미자]][br]'''(1970)''' || → ||<width=30%> 김철[* 1971년에는 대상이 없이 남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br](1971) ||
         || 김성원[br](1973) || → ||<#FFFFA1> '''이재'''[br]'''(1974)''' || → || 정해창[br](1975) ||
         ||<width=30%> [[유재석]][br](2006) || → ||<width=30%><#FFFFA1> '''이재'''[br][[무한도전]]팀[*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가수)|하하]]][br](2007) || → ||<width=30%> [[강호동]][br](2008) ||
         ||<width=30%> 김희라[br](1976) || → ||<width=30%><#FFFFA1> '''이재[br](1977)''' || → ||<width=30%> [[신성일]][br][[황해#s-3]][br](1978) ||
         ||<#878787> '''{{{#EEE156 이름}}}''' ||<(> 이재(李順載) ||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를 처음부터 함께해 온 배우이자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 2인중 1인.'''[* 나머지 한 명은 다름아닌 '''[[송해]]'''. [[신구(배우)|신구]]는 이재 다음 서열이지만 그는 원래 연극을 주로 하다가 방송가에 데뷔한 것은 1970년도이기에, '방송사'의 산 증인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 이 시절의 철학계는 [[독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독일어가 필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전공책들을 '''[[독일어]] 원서'''로 읽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독일어]] 실력이 동년배에 비해 썩 나은 편임을 [[꽃보다 할배]] 스위스편에서 독일어로 쓴 지명을 부드럽게 읽음으로써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 팬들과 일본어로 문제 없이 소통 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명문대 출신들은 비록 회화는 어렵더라도 왠만한 일본어 원서는 그냥 읽을만큼 일본어가 능통하다. 애당초 대학교 교재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거나 국내에서 쓸만한 교재들이 쓰이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도 [[박정희]] 군부독재시절이라 마땅히 읽을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자본론을 일본어로 읽었다.]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연극부 부원 중에는 --요즘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채현국 이사장을 건너 [[고건]] 전 국무총리와도 아는 사이. 사실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 박사가 이재를 가르쳤던 주임교수였다. 한 번은 4학년 때 연극 합숙 연습 때문에 수업을 두 차례 빠져야 해서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라며 흔쾌히 봐주었다고.]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젊은 시절 ~~[[줄리엔 강|재도 잘생겼어]]~~
         특히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우연히 본 [[야한 동영상|야동]]에 빠져 [[이재(거침없이 하이킥)|가족 몰래 보던 것이 들켜 빈축을 사게 된 일명 '야동 재' 캐릭터로 인해 젊은 층에 친숙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여지껏 그가 맡았던 역할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역할이었으나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작품의 인기에 일조했다. 하이킥은 젊은 출연자들도 고충을 토로한 일일 시트콤이었던 것을 당시 70이 넘은 배우임을 감안하모습에 감탄할만하다.
         게다가 이재는 타고난 천재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올라운드 그 자체'''다. '풍운'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가장,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나이값 못하는 돌팔이 의사, '야인시대'에서는 자상한 할아버지 등 어떤 캐릭터를 맡겨도 100% 소화해내는 모습은 시청자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방송국 원로대접 받는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악역도 많이 했다.[* 수미옥 13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때 술회한 바에 의하면 TBC 범죄수사극 검은수첩에 범인 역으로 고정 출연해 미성년자 강간치사범이라는 지금 이미지로는 상상도 안되는 역을 했었다고 한다. 강간치사범 포함해서 33번이나 범인으로 출연해서 이미지 회복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렸다고 한다.]
         스스로 작품 복은 좋은데, 상복은 없는 배우라 말할 정도로 히트작은 많지만 굵직한 상과는 인연이 없다.[* [[동양방송|TBC]] 시절 이 후에는 큰 상을 받은적이없다.] 하이킥의 야동재 역으로 [[무한도전]] 팀과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공동 수상한 게 가장 큰 상일 정도.[* 아무래도 연예대상 시상식인 만큼 같이 수상한 [[무한도전]]팀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재 또한 겸연쩍다는 내용의 수상소감을 했다.] [[연기대상]]을 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김혜자]]와 [[강부자]]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했다.
         이재는 젊은 시절에 주연급 톱스타는 아니었다.[* 이재 본인이 직접 자신이 항상 첫번째는 아니고 신성일처럼 스케줄이 넘치는 스타의 대타였다고 밝혔다.] 이재는 활동 초창기부터 자기보다 유명한 배우를 많이 만났다. 60년대 시점에서는 신성일, 신영균, 남궁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수많은 흥행작을 낼 때, 이재는 이들 영화에서 고작해봐야 조연으로 나오는 정도였다. 70년대 시점에서도 한진희, 노주현, 박근형, 임채무처럼 당시에도 쟁쟁한 후배가 많았다.
         그렇다고 이재가 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TBC]] 드라마 남우주연상도 2회 이상 받았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한 배우이며, 당시에도 실력을 인정 받았다.[* 오히려 위에서 거론된 대기만성형의 대표주자는 [[백윤식]]이다. 그도 한창 젊은 시절인 70-80년대에는 비중없는 조단역에만 머물렀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드라마 [[서울의 달]]로 주목을 받고 2000년대 들어서 영화판에서 굵직하게 활약하여 노년에 들어 입지를 굳힌 케이스다.] 한 마디로 [[이재]]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으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은 덕택에 자기보다 인기 있던 스타가 모두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MBC에서 최민수의 노인폭행 누명을 다룬 특집 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작진은 연예인들을 둘러싼 각종 악성루머들을 조명하며 한번도 구설수에 없는 이재를 찾아가 비결을 물었다. 이재가 말한 비결은 무조건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것이었다.]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남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움상회 때문에 보람상조에서 나온 멘트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라이나생명]] 광고 멘트이다. 이 멘트가 이재를 대표하는 멘트가 되어서인지, [[광동제약]]의 헛개나무 숙취해소 음료 광고에서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험처럼 마시자'''라는 어레인지된 멘트를 쓰기도 했다. ]는 [[개그 콘서트]]의 [[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 이 조치 때문에 보험 광고를 촬영하는 연예인인 [[손범수]], [[문천식]], [[정은아]], [[김상중]] 등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속작인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이재(지붕뚫고 하이킥)|이재]] 역으로 출연했다. 전작을 이어 출연하는 단 두명인 배우(다른 한 명은 [[풍파고 교감]] 분의 홍창).
         2009년에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업(애니메이션)|업(Up)]]'''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칼 프레드릭슨)'''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반적인 [[비성우 더빙]]' 수준이 아니라 '역대 애니메이션 [[비성우 더빙]] 사상 최고의 목소리 연기', '원작 초월' 소리를 들을 정도의 평가를 받을 만큼 절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강수진(KBS 성우)|강수진]] 성우가 맥심 인터뷰에서 '대가는 어디를 가나 통하더라'며 칭찬을 했다.[[http://news.maxmovie.com/74030|#]]] --이것이 바로 이재의 업(業, Karma, 카르마, 운명)이니라.-- 한 평론가는 "[[초콜렛]]"이 아닌 "쪼꼬렛"이라는 할아버지 캐릭터에 맞는 발음을 구사한 것을 극찬하기도 했다.[* 사실 이재는 옛날의 후시녹음 체제 때부터 활동해온 배우라 발음과 발성이 좋은 편이고,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었던 옛날 젊은 시절에는 성우로 일하면서 더빙을 해서 얻는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환경이 개선되면서 오래도록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그냥 이재의 자기 관리와 연기력이 뛰어난 거다. 본인은 카메라 연기와는 방식이 달라서 쉽지 않았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comment_srl=2358142&listStyle=gallery&mid=movietalk&page=997&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764826|#인터뷰]] 적당히 유명세 마케팅으로 투입된 배우, 아이돌, 개그맨들과는 내공이 다르다. 애초에 가벼운 마인드로 연기하시는 사람이 아니다.]이재가 맡은 배역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에드워드 애스너.]도 연극활동은 1940년대[* 대학생이던 [[1947년]]도부터 활동했다.], 영화산업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베테랑 명배우다.
         여담으로 당시 이재는 디즈니 시리즈에 한국어 더빙을 한 배우&성우들 중 최고참이었다.
         [[왕비호]]는 이재를 까보라는 요청을 주변에서 자주 받았지만 '그건 진짜로 욕먹는다'는 이유로 결국 고사했다. 겨우 한 것도 겨우 "어이! 이재!"라고, 존칭을 빼고 부른 정도고 바로 사과했다.
  • 김재규 . . . . 39회 일치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최태민]]의 조사를 지시했고, [[10.26 사태]]가 발생하기 3일 전 [[최태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었다. 이 보고서엔 최태민과 [[박근혜]] 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최태민의 문란하고 부적절한 사생활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를 처음 입수한 언론에서 공개한 시점이 2012년 말, 즉 [[18대 대통령 선거]]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직전]]이였기 때문에 당시엔 [[찌라시]] 취급을 받으며 묻혀졌지만 [[박근혜-최실 게이트]]가 터지며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위 항소이유서에서 보다시피 '''현재 [[최실]]이 [[박근혜]]와 함께 기업들에게서 돈을 뜯어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40년전 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박근혜와 함께 부정한 방법으로 여기저기서 돋을 뜯어내었다. 1970년대 아버지가 했던 사기행각을 딸년이 그대로 2016년까지 써먹은 셈이다. 당연히 [[최태민]]의 범죄행각을 비판하는 민원이 빗발쳤으나,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에게 직언을 할 용기를 가진 관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소수만이 직언을 했다 핍박받는 실정이었다.
         위의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나왔듯이, 청와대 내에서 실세 권력이 높았던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 방법이 없어서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는 단한 [[공주]]가 아닌 육영수의 분신이었고,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 사건]]으로 죽은 영부인의 딸이란 동정표까지 더해져, 당시 노인들은 박근혜만 보면 '''"[[공주]]님 오셨다"'''며 큰 절을 올리며 눈물 흘릴 정도였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1042107005|#]] 더욱이 마음에 안드는 경찰청장이나 도지사를 호출하여 호통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최태민에게 분노한,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으라고 직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언을 듣기는 커녕 박근혜를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직에 올리고 최태민을 명예총재직에 올리는 조치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절망감이 [[10.26 사건]]의 동기가 되었다고 김재규는 증언하였다.
         즉, [[10.26 사태]]를 결심한 동기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 [[박근혜]]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겼다. 김재규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가 지속될 경우 벌어질 잠재적 위험성을 알고 이를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기며 최후의 간까지 경고 했지만, 그의 우려와 경고는 37년 뒤 [[박근혜-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월 26일날 최씨 일가도 같이 쏴버렸어야 했다.--
         어쨌든 거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김재규가 이동한 곳은, 엉뚱하게도 중정이 아닌 [[육군본부]]였다. 만약 김재규가 거사 후 중앙정보부로 향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도 중론이다. 암살장소인 안가는 중앙정보부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었으므로, 부장인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이 박정희를 죽인 사실을 은폐하고 불세력의 소행으로 몰아가 국무위원과 장성들을 깨끗하게 속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사태 수습을 빌미로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써갈 수도 있었다.
         특히 박정희를 암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평소 차지철은 대통령 경호라는 미명으로 온갖 월권행위와 [[경거망동]]을 서슴치 않았고, 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주동자 1위는 단연 차지철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실제로 사건이 터진 후 청와대로 들어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유고 소식을 들은 김치열 당시 법무장관은 "그 새끼가 까불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군!!" 하고 호통을 쳤는데, 그 새끼는 물론 차지철을 지칭한 것이었다.
          * ② 김재규가 [[박정희]]를 전히 우발적으로 저격했으므로 거사 후 사태장악에 대한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설. 사건 수사결과에 의하면 거사 후 김재규는 [[정승화]]와 승용차에 동행하여 사건현장을 떠나 이동하던 중,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에게 "정보부와 육본 중 어디로 가는게 좋겠느냐"고 묻자 정승화가 말을 가로채어 "육군본부로 가는게 좋겠다"고 제의하였고, 김재규는 아무 생각 없이 운전기사에게 육군본부 행을 지시했다. 이때 정승화는 안가 본관(연회장은 나동)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가 사건을 저지른 김재규와 차에 동승한 것이었는데, 그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가 육본으로 갈 때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박흥주 대령의 구두를 빌려 신을 정도로 우왕좌왕했던 행동을 볼 때, 이 견해도 설득력은 있다.
         당시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소수의견으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내란목적이 아니라 자연인 박정희를 살해한 단살인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형사3부 판사인 양병호와 서윤홍은 '''[[내란]] 목적이라기에는 암살후 김재규의 움직임이 너무나 어설펐기 때문에 내란을 목적하고 박정희를 죽인 게 아니고 그저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본 것'''이며 최종판결 당시 민윤기 등 6명의 판사들이 내란죄 불성립 의견을 냈다. 이로 인해 소수 의견을 낸 판사 6명은 신군부의 보복으로 전부 법복을 벗어야 했으며 특히 양병호는 보안사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였다. 훗날 양병호는 김재규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박정희를 사살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당시 판결문은 비공개 처리되어 묻혀버렸으나[* 80도306 판결 참조. 내란죄에 있어서 목적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미필적 인식, 즉 자신의 행위가 범죄발생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만 되도 행위자가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인해 구성요건이 충족된다. 즉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일 때 국헌문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목적은 없었으나, 대통령의 사망이 국헌문란을 가져올 것을 미필적이나마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으로도 국헌문란에 대한 목적의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소리다.], 훗날 공개되면서 당시 몇몇 재판관들의 용기있는 소수의견들이 밝혀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11034|한홍구,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 참조]].
         반면 상대적으로 비판[* 옹호든 비판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등은 김재규 부장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당시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와 말년의 박정희는 대한민국은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기에 김재규가 10. 26 사태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박정희 역시도 여타 독재자처럼 말년이 비참했을 것이고 후세의 평가도 좋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쪽에서는, '''그 또한 과거 유신정권하에서 한자리를 해먹던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며, 박정희를 암살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를 국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심판할 기회를 빼앗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 갖은 압제와 고문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해오던 자신들보다, 단히 박정희 한 명 암살했다고 김재규가 포커스를 더 받는 건, 몇십 년을 민주화 투쟁한 사람들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의해 투쟁해온 이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게 애초 김재규는 박정희와 친형제 같은 사이였고 중정부정이라는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10.26 단행 이전의 행보를 보더라도 정보수집과정에서 유신정권도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박정희도 말년에는 20년 절대 권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10.26 단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는 차지철, 이후락 같은 다른 유신인사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근데 전두환 노태우꼴을 보면 심판도 안받았을 확률이 높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재규를 비판하는 재야/민주운동가들은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동기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의한 기여도 및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시도 “박정희 정권은 당시 [[부마항쟁]]을 비롯한 일련의 민중저항을 통해 어차피 붕괴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며 “김재규의 행위가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홍구는 하단의 긍정론에 서술되어 있듯 2013년을 기점으로 김재규에 대한 견해가 바뀌었다.] 진보적 사회운동가 백기완도 “당시는 박정희 유신독재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항쟁이 거셌고, 박정희 내부 권력의 모이 더 격화되어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조그마한 사건일 뿐이며 민주화운동의 본체, 기본적인 흐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라고 주장하였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1784.html|출처]]
          * 실제로 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 내의 시민들이 대거 경찰서로 끌려가거나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또 [[김영삼]] 당시 [[신민당(1967년)|신민당]]총재 외에도 [[김대중]], [[이철승]] 등 호남인사가 신민당에 있었고 [[여촌야도]] 현상이 강하여 수도권 민심이 야당에 있었으므로 단히 부마에만 그치지 않고 '''호남, 수도권까지 퍼져 전국적으로 경찰, 군인들과 시민들의 대규모 충돌'''이 생겨 엄청난 희생자가 났을 것이다.
         김재규는 [[차지철]]과의 갈등 이전에도 유신의 방향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자주 내비쳤고, [[장준하]] 등의 민주화 운동 인물들을 비밀리에 도우면서 관련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박정희를 '환자'로 비유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고, 법정에서도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보이며 사형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자세를 보았을 때 단히 차지철과의 갈등으로 인한 우발적인 권력 싸움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결정적으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결단했던 건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대응책 방향이었는데, 박정희와 차지철은 강압적인 진압을 요구했으나 김재규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이것이 10.26이라는 도화선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김재규의 거사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지만, 여성 연예인들이 저런 식으로 대통령의 술자리에 불려가는 일만큼은 확실히 차단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김재규의 구명을 호소하면서 우리의 민주화가 김재규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민주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그 여성 연예인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에는 또다른 10·26 사건이 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쏜 날이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70년을 두고 2개의 10·26 사건이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군사독재가 왔는데,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이토의 제삿날과 군사독재의 상징인 박정희의 제삿날이 같다는 것은 단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중략)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득세한 나라에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구]]로 상징되는 보수우익 의사의 계보는 대가 끊어졌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으면서도 박정희의 명예는 끝까지 지켜주고자 했던 김재규는 대가 끊겼던 한국 보수우익의 계보학에서 돌출한 마지막 대륙형 인간이었다.
         박정희의 금일봉 정치는 단히 금전을 제공해 충성심을 유도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 만은 아니었다. [[전두환]]에게 고급 자동차를 선물한 것처럼, 박정희는 자신이 해당 군인에게 가지고 있는 '총애'의 표현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아무리 금일봉이라지만 '누구에게 얼마를 주었다더라.'는 여기저기 소문으로 퍼져나갔고, 이는 박정희가 그 '누구'에게 보이는 '[[전투력|총애의 정도]]'가 되었다. 돈 자체도 좋지만 금일봉의 액수는 박정희가 자신에게 보이는 총애와 관심이었고, 유신 정권 아래에서 이는 곧 '''자신의 발언권과 권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 수뇌부는 충성 박치기를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사실상 박정희의 사병(私兵)이 되었다. 국토를 수호하고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이 마치 [[조선인민군]]마냥 독재자 개인의 친위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가 쿠데타 당시 보여주었던 일련의 치밀하지 못했던 행동 역시도 결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당시 김재규는 [[차지철]]과 [[박정희]]를 암살한 후, 자신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이동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수 시간만에 체포되었다. 이는 김재규가 단히 차지철, 혹은 박정희를 암살한다는 계획만 세웠을 뿐, 그 후 신정부 수립이나 정국 주도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계획이나 마찬가지였음을 보여준다.
         국가원수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서 급진적 권력 교체를 시도한다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치밀한 계획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10.26이 역사에 긍정적 영향을 주려고 한 계획이었다면, 단히 [[박정희]]를 암살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박정희를 암살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이와 관계된 사람들과 철저하게 입을 맞추었어야 했다. 그리고 난 이후 정권교체 및 민주화까지 질서있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진정으로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중대한 일을 저지르는 입장에서 그는 너무나도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다.
         최후의 진술을 통해 [[박정희]] 정권동안 나라에는 많은 쓰레기가 꽉 들어차 있고, 당시까지 정부나 대통령이 리대로 선출된 적이 없음을 지적하며, 자신이 앞장서서 리대로 하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어 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최규하]] 대통령에게 자유민주주의가 문 앞에 왔으니, 받아들이기를 간청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한다고 말하였다. 또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20~25년 앞당겨놨다는 자부을 가지며 간다는 말을 남기면서 그 자유민주주의의 만발을 보지못하고 가는게 아쉽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을 따라준 부하에 대해 그들은 좋은사람이고 자신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며 선처를 바라면서 극형만은 면해줄 것을 청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재평가 흐름에 정점을 찍게 만든 것이 바로 2016년 말 벌어진 한국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인 [[박근혜-최실 게이트]]였다. 1970~80년대 독재 정권에서나 일어날 법한 박근혜의 후안무치한 행각과 헌법부정으로 인해 퇴진운동이 불붙으며 자연스럽게 그 아버지인 [[박정희]]와 그의 독재정권을 종결시킨 김재규에 대한 관심도도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비록 그의 암살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주장은 있지만 적어도 그의 행동이 박정희의 절대권력을 깨부 것은 사실이며, 이전부터 보여온 친민주화적 행각이 대중들 사이에서 조명 받으며 재평가 움직임은 대중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단히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박정희 독재를 종결'한 것이 재평가 받은게 아니라, '생전에도 존경받을만한 많은 언행 + 특히 독재정권에 몸을 담고는 있지만 민주세력들을 배려하는 행동 + 사형 직전까지 재판에서 보여준 평소 신념에 대한 논리정연함' 등이 조명받으면서 '''"권력 투쟁이 아닌, 진심으로 시민과 민주주의를 생각한 거사"'''로 뒤바뀐 평가가 퍼져나간 것이다.
         [[http://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84600|1]] [[http://www.kc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102|2]]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61116000475|3]]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5531|4]] 그 결과 정치에 관심이 많은 반독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김재규에 대한 "진지한 재평가"가 보편화되었다. 여전히 김재규와 10.26 암살을 유머 소재로 써먹지만 예전처럼 단히 박근혜와 박정희에 대한 조롱만을 담은 것이 아닌 김재규라고 하는 의사에 대한 존경심 또한 일반화 된 상황. 혹자는 박근혜가 박정희 신화를 무너뜨렸다고 평했는데 그와 동시에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도 한껏 불러일으킨 셈. 물론 김재규 역시 독재 정권에 종사했기 때문에 과도 쌓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재자 변명거리용으로 자주 써먹히는 공7과3이란 단어가 사실은 김재규한테 진정 어울리는 평이란 느낌.
  • 스틸오션/일본 . . . . 34회 일치
         >네척의 잠1형(巡潛一形, Type J1)과 한척의 잠1형개(巡潛一形改, Type J1 Mod.)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이 발발할 때 잠1형의 무장은 95식 어뢰로 강화되었다. 이들은 전쟁 초기 알류산, 인도양, 하와이 등에서 활동했다.
         >잠 갑형 개2(巡潛甲形 改2, Type AM)는 잠 갑형 개1(巡潛甲形改1, Type A2)에 기반을 두고있다. 건조가 시작된 후 함재기 두대를 싣기 위해 설계가 변경되었다. I-13은 미해군에 의해 격침되었고 I-14는 전쟁이 끝나자 바다에서 항복했다.
         >잠3형(巡潛三形, Junsen III)을 기반으로 여덟척의 병형(丙形, Type-C)이 건조되었다. 어뢰 발사관과 어뢰 탑재량은 증가했지만 일본 잠수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수상정찰기가 제거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갑표적(甲標的, Ko-hyoteki) 모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후부키급 구축함은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 해군이 건조한 구축함급이다. "특형 구축함"으로 설계된 만큼 전에 만들어진 어떤 구축함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초도함인 후부키는 엔다우 전투에서 연합군 구축함 한척을 격침시켰으며, 다해협 전투에서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후부키는 에스페란스 곶에서 격침되기 전까지 과달카날에서의 몇몇 전투에 참전했다.
         == 양함 트리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II ||
         >왕립해군의 아레투사(Arethusa)급의 영향을 받은 텐류급 경양함은 당시 제일 빠른 양함이었다. 구축함을 상대하기 위해 140mm 함포와 어뢰발사관으로 무장했다. 텐류급 양함 두척 모두 중일전쟁에 참가했다. 텐류는 1941년의 사보섬 해전에도 참가했다. 전쟁 후반기에는 훈련 및 수송 용도로 사용되었다.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III ||
         >영국 양함의 영향을 받은 쿠마급 양함은 일본제국해군이 처음으로 운용한 5,500톤급 경양함이었다. 텐류급에 기반하여 무장과 속도를 향상시켰으며 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 태평양전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했으며, 키타카미와 오오이는 추가적인 어뢰발사관을 장비하고 고속 수송선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IV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I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II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III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III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IX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X ||
         >콩고급 구축함은 전함 역사상 초기 함급에 속한다. 이 함급은 원래 HMS 에린(HMS Erin)같은 장갑양함으로 설계되었다. 유틀란트 해전 이후 콩고급 전함으로 개장되었다.
         >수히 일본제국해군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함급이다. 그 당시 제일 큰 구경이었던 410mm 주포를 장비한 나가토급 두척은 미국의 콜로라도급 세척, 영국의 넬슨급 두척과 함께 "빅 7"이라고 불렸다. 1930년대 전면적인 현대화 개수를 거쳤다. 야마토급이 취역하기 전까지 나가토급은 연합함대 기함을 맡았다. 나가토급 두 척은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다. 1943년 6월, 하시라지마에 정박해있던 무츠가 후방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다. 나가토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미육군에게 나포되어 교차로 작전(Operation Crossroads)의 표적함으로 함생을 마쳤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33회 일치
         >중전차는 당신 부대의 하드 어택과 소프트 어택에 상당한 증가량을 줍니다. 적 전선을 돌파하는 간의 중전차는 파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전차는 당신 부대의 이동속도를 느리게 하며 엄청난 양의 보급품과 연료를 소모합니다.
         주둔한 공군 기지를 중심으로 한 작전반경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다. 유일하게 작전반경 따지지 않고 날아갈 수 있는 간이 있긴하다. 다른 공군 기지로 재배치 할 때.
         싸고 생산 시간도 짧지만 일회용이니 짭잘하지는 않다. 전략폭격 밖에 할 수 없으며 이동도 전략적 재배치로만 가능하다. 비행폭탄과는 달리 격추가 불가능하다. 속도가 엄청나서 공중전이 벌어져도 식간에 해당 프로빈스를 벗어나기 때문.
         주둔한 해군 기지를 중심으로 작전반경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다. 유일하게 작전반경 따지지 않고 날아갈 수 있는 간이 있긴하다. 다른 해군 기지로 재배치 할 때.
         ==== Light Cruiser(CL, 경양함) ====
         >경양함은 대형 구축함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이들은 빠른 속도와 넓은 행동범위를 위해 장갑을 얇게 둘렀습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전함이나 항모와 같은 주력함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이들은 주로 적 항공기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잠수함의 공격 역시 막아낼 수 있습니다.
         ==== Heavy Cruiser(CA, 중양함) ====
         >중양함은 경양함보다 크고 장갑을 더 둘렀습니다. 이들은 대구경 함포로 무장해 지상의 적 부대에게 포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적 수상함, 특히 구축함과 경양함에게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항공기와 잠수함의 공격에는 취약합니다.
         ==== Battlecruiser(BC, 양전함) ====
         >양전함은 대구경 주포, 우월한 장갑, 합리적인 속도, 좋은 항속거리가 결합된 초중양함입니다. 전함을 따돌리고 호위함을 제압할 수 있는 양전함은 적의 대양 항로를 휘젓는데 사용됩니다.
         전함의 짭. 이 녀석부터 주력함으로 취급된다. 전함과 비슷하지만 약간 딸리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대함 방어력이 특별히 높은 전함에 비해 양전함은 대함 방어력도 낮으니 주의. 대전기 초중반 전함이 속도 20대 찍을때 혼자 30찍고 쌩쌩 달린다. 물론 45년 넘어가면 일반 전함도 30찍는데 얘는 속도가 30에서 늘지 않으니 대전말에는 얄짤없다.
          * 부착 가능 사단: 경양함, 중양함, 양전함, 전함, 대형 잠수함
          * 부착 가능 사단: 구축함, 경양함, 중양함, 양전함, 전함, 잠수함, 대형 잠수함
          * 부착 가능 사단: 구축함, 경양함, 중양함
          * 부착 가능 사단: 구축함, 경양함, 중양함
          * 부착 가능 사단: 구축함, 경양함, 중양함
          * 부착 가능 사단: 구축함, 경양함, 중양함, 잠수함, 대형 잠수함
          * 부착 가능 사단: 양전함, 전함, 호위항공모함, 경항공모함, 항공모함
          * 부착 가능 사단: 양전함, 전함, 호위항공모함, 경항공모함, 항공모함
          * 부착 가능 사단: 양전함, 전함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32회 일치
          * Naive Optimist(진한 낙천주의자)
          >진한 낙천주의자는 능력있는 관리자이자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희망적인 생각에 치우쳐 그를 노린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 긍정적인 효과: 중양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경양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구축함 전대 생산 비용 및 시간 -5%
          * 부정적인 효과: 중양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경양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구축함 전대 생산 비용 및 시간 +5%
          >케인즈 경제학은 민간 분야의 선택이 비효율적인 거시경제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이나 정부의 재정정책과 같은 공공 정책을 시행해 경기 환의 생산량을 안정화 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론 과학자는 명문대 출신의 늙었지만 유능한 교수이다. 당연하게도 그는 이론과 응용 두 분야의 전문가이다. 하지만 군사적 문제에서 민간 분야가 큰 성과를 보일만한 시간에, 이론 과학자는 힘겹게 우선 위를 매긴다. 이 때문에 그는 전자공학과 통신 같은 중립적인 분야를 지지한다. 하지만 그가 충분히 괴상한 인물이라면, 비밀 병기는 그의 전문 분야가 될 것이다.
          * 부정적인 효과: 중양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경양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전함의 공격 능력 -10%, 전함의 방어 능력 -10%, 양전함의 공격 능력 -10%, 양전함의 방어 능력 -10%
          * 긍정적인 효과: 전함의 공격 능력 +5%, 전함의 방어 능력 +5%, 양전함의 공격 능력 +5%, 양전함의 방어 능력 +5%, 중양함의 공격 능력 +5%, 중양함의 방어 능력 +5%, 경양함의 공격 능력 +5%, 경양함의 방어 능력 +5%
          * 긍정적인 효과: 항공모함의 공격 능력 +5%, 항공모함의 방어 능력 +5%, 경항공모함의 공격 능력 +5%, 경항공모함의 방어 능력 +5%, 호위항공모함의 공격 능력 +5%, 호위항공모함의 방어 능력 +5%, 경양함의 공격 능력 +5%, 경양함의 방어 능력 +5%, 구축함 전대의 공격 능력 +5%, 구축함 전대의 방어 능력 +5%, 수송선전대의 공격 능력 +5%, 수송선 전대의 방어 능력 +5%
          * 긍정적인 효과: 전함의 공격 능력 +5%,전함의 방어 능력 +5%, 중양함의 공격 능력 +5%, 중양함의 방어 능력 +5%, 경양함의 공격 능력 +5%, 경양함의 방어 능력 +5%, 항공모함의 공격 능력 +5%, 항공모함의 방어 능력 +5%, 경항공모함의 공격 능력 +5%, 경항공모함의 방어 능력 +5%, 호위항공모함의 공격 능력 +5%, 호위항공모함의 방어 능력 +5%
          * 긍정적인 효과: 구축함 전대 생산 비용 및 시간 -5%, 수송선 전대 생산 비용 및 시간 -5%, 양전함의 공격 능력 +10%, 양전함의 방어 능력 +10%, 잠수함 전대의 공격 능력 +10%, 잠수함 전대의 방어 능력 +10%, 대형 잠수함의 공격 능력 +10%, 대형 잠수함의 방어 능력 +10%
          * 긍정적인 효과: 전함의 공격 능력 +7%, 전함의 방어 능력 +7%, 양전함의 공격 능력 +7%, 양전함의 방어 능력 +7%, 중양함의 공격 능력 +7%, 중양함의 방어 능력 +7%, 경양함의 공격 능력 +7%, 경양함의 방어 능력 +7%
  • 킹덤/527화 . . . . 29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의 지시로 요양군을 지휘하게 된 [[수수]]는 전장에 도착하자마자 양단화의 면전에서 그녀의 병사를 죽이며 도발한다.
          * 공손룡과 합류한 수수는 곧바로 전군 후퇴를 명하는데, 그것은 요양에서 적을 완전히 격멸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기 위해 "요양의 엄니"를 쓸 거라 하는데.
          * 조군은 요양성까지 퇴각을 거듭한다. 수수가 노린 것은 그 요양성을 처지하고 있는 어떤 무리들. "요양의 엄니"라 불리는 무리였다.
          * 그때 산민족군 우익으로부터 불협화음이 일었다. 소수의 기마대가 격전이 벌어진 뒤쪽과 양단화군 본진 사이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벽은 그 수와 구성을 보고 전령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이목의 지시로 공손룡군의 대장으로 부임한 [[수수]]의 등장이었다. 수수의 기마대는 산민족 병사를 목 매달고 달리고 있었다. 수수는 양단화에게 잘 보이는 자리를 일부러 골라 말을 세웠다. 그가 신호를 주자 부하들이 병사들의 숨통을 끊었다.
          * 수수의 의도는 명백했다. 그는 손을 들었다. 그 끝은 언덕 위, 양단화를 지목하고 있었다. 그 도발을 목격한 산민족의 가면 속 얼굴은 벽의 드러나 있는 얼굴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경악과 분노. 그리고 당혹감.
          * 양단화의 얼굴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조용히 이를 세우는 양단화. 그리고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느끼는 벽. 전멸의 기마대가 일갈과 함께 뛰쳐나갔다. 그러나 수수는 거기서는 더 욕심 부리지 않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히 도망치지조 않았는데 한창 격전을 벌이고 있는 산민족 1진의 배후로 들이쳤다. 한창 눈 앞의 적에 집중하던 병사들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 수수는 산민족 1진이 미처 혼란을 감지하기도 전에 돌파를 감행했다. 그는 맨 선두에 서서 적진을 무인지경처럼 빠르게 돌파했다. 양단화의 맞은 편, 공손룡군 본진에서도 적진을 가로지르는 수수를 볼 수 있었다. 공손룡은 그가 전장에 나타난 이후의 행동을 빠짐없이 목격했다. 새로운 지휘관은 여러모로 자기 상상을 뛰어넘은 인물이었다.
          한편 한바탕 소동을 겪은 양단화군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벽과 진군 장교들은 아직까지도 방금 자기들이 본 장면이 무엇인지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었다. 양단화와 톳지는 훨씬 차분했으나 분노를 삭히고 있었다. 양단화는 수수가 죽인 병사들의 시체를 내려보며 이를 갈았다. 복수의 때였다.
          * 조군의 수뇌부 또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새로운 총대장의 지시가 당혹스러웠다. 수수는 지휘권을 넘겨 받고 제일 처음 전군 후퇴를 명했다. 부하장교들은 난처해하며 혹시 현재 전황이 정체된 탓인지 물었다. 이 전황은 수수의 도착을 기다리느라 그런 거라며 변명을 하기도 했다. 수수가 부하들의 채근에 입을 열었다. 그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후퇴를 결정한 건 그게 필승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진군을 보다 깊은 곳까지 끌어들여 단 한 놈의 생존자도 없이 몰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수는 요양에서 그저 이기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진군이 여기서 패한다면 그 병력은 필시 주해평원으로 향할 것이다. 요양에서의 패잔병이 주해평원에선 이목의 부담을 가중시킬 증원군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막고 완전한 승리를 위해, 왕도권 수호를 위한 전략이었다.
          수수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부관으로 내려앉은 공손룡은 별다른 말 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수수의 설명이 끝나자 그가 입을 열어 후퇴한다면 어느 선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수수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시종 침착했던 공손룡이 당황했다. 여기서 성이라면 그것은 요양성. 그곳엔 대단히 성가신 요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을 지적하려던 공손룡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며 설마했다. 수수의 의도가 정확히 그것이었다.
          * 진군을 요양성으로 끌어들인다, 공손룡은 후퇴 자체보다도 그 같은 결정을 더 마음에 걸려했다. 그는 행군 중에도 수수에게 진심으로 그런 작전을 감행할 거냐고 물었다. 수수는 말없이 행군을 속행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부하 장수들은 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수수가 암시한 작전의 전모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명이 그에게 직접 묻기도 했다. "요양의 엄니"란게 대체 무엇이냐고. 그의미를 아는 것은 수수 자신과 공손룡 뿐이었고 둘 중 누구도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수수였다. 요양성이 목전에 있는 위치에서였다. 우선 설명에 앞서 "요양군"의 병력 구성을 짚고 넘어갔다. 이들은 요양 일대에서 모집된 병력이긴 하나 요양성에서 데려온 병력은 아니다. 그걸 지적한 것은 앞으로 맞이한 전장은 진군에게만큼이나, 조군에게도 당황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진군은 조군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산을 끼고 있는 거대한 성. 그러나 성에 틀어박혀 지구전을 펼치자는 수작은 아니었다. 수수가 필요로 했던 것은 성 바깥, 억덕 위로 도열한 한 무리의 병력이었다. 양단화는 그 위험성을 한 눈에 알아봤다. 당장 전군정지 명령과 함께 적의 돌격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조군에게 유리한 전장, 강력한 원군. 그녀가 우려했던 두 가지가 한때에 나타났따.
          * "요양의 엄니", 언덕 위의 병력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조군과 다른 인종" 그것도 알만했다. 마치 개나 늑대를 본뜬 그들의 무장 상태는 한 눈에 봐도 중원과 달랐다. 하지만 아직도 조군 장수들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양군의 포진이 끝나자 수수가 직접, 이들을 소개했다.
          한때 천자의 나라 주나라를 몰락시킨 이민족의 후예. 지금은 요양성을 자치하고 있는 자들. 수수가 이들을 전장에 끌어들였다. 이민족 대 이민족이라는 [[이이제이]]나 다름없는 상황. 지금껏 볼 수 없전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현이와 덕이 . . . . 29회 일치
         | 〈'''진한 아이'''〉
         1975년 [[미8군부대]]에서 데뷔한 [[장현 (1955년)|장현]](1956~1990)과 [[장덕]](1961~1990)은 이듬해인 1976년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고 한국 가요계에 데뷔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이들은 《선생님 안녕》, 《우리들의 고교시대》, 《내마음 나도몰라》, 《꿈초올 둘이서》등과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였다.(이들 남매는 10여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여 하이틴스타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장덕]]은 작사,작곡 능력이 뛰어나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ref>{{뉴스 인용 |제목 = 듀엣 현이와 덕이 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1978년 현이와 덕이는 그들의 첫 공식 레코드 모음집인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일기장》, 《진한 아이》, 《작은소녀의 사랑이야기》등이 담긴 정규1집을 취입, 출반하였으며, 이 음반은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게 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 1978년 : 정규 1집 - [[진한 아이 (음반)|진한 아이]] (12곡) - 대표곡 :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일기장, 진한 아이, 작은소녀의 사랑이야기 등
         * 《진한 아이》
         1978년 4월 장덕은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붐을 주도했던 세 명의 명[[감독]] [[김응천]] · [[석래명]] · [[문여송]]이 모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 제1화에서 다시 [[주연]]으로 출연, 음악을 전공하는 청한 여고생 역을 맡아 열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팬들에게 다섯 번씩이나 납치를 당했을 정도로 대단한 큰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밀려든 팬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졌다(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 그 해 7월 장덕은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장현]]이 부른 <더욱 큰 사랑>의 [[작사]]/[[작곡가]]로서 출전, 2년 연속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게 된다. 이 시기 오빠 장현은 오라오라에 출연했을 때 부터 알게 된 부산연예협회지부장이자 왕년의 작사가였던 천봉의 딸 천인실과 극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장덕은 결혼한 오빠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1978년 [[현이와덕이]] 정규1집 <[[진한 아이]]>가 발표 되었다. <[[진한 아이]]>, <꼬마인형>, <일기장>, <[[소녀와 가로등]]>, <정말>, <작은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 11곡+경음악1곡 수록, 같은 해 <크리스마스 캐롤집> 발표)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3년 10월 이혼을 하게 된 장덕은 가수 생활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 · 오빠 ·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고국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서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모 한장만을 남기고 한국으로 귀국해 한남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ref>[http://www.mbn.co.kr/pages/vod/programContents.php?progCode=613&menuCode=3439 아궁이 65회 - 파란만장 가족사] "MBN 2014년 7월 11일 방송 참조"</ref> 그리고 한달 뒤(11월) 그녀는 어렵게 서라벌레코드와 3년간 1000만원이라는 금액에 전속계약을 맺고(그녀는 오랫동안 공백을 가진 스타였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는 계약이 쉽지 않았다.) 타이틀곡 <날 찾지 말아요>를 비롯 <안녕히 계세요>, <가을에 만난 소녀>, <철없는 안녕>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1집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날 찾지 말아요>가 발표한 지 6달 만에 PCI(인기가요위 조사연구소) 집계 한 달(1984년 5월) 동안 방송을 가장 많이 탄 노래 부문 3까지 오른다. 많은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장덕으로서는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 본인이 당시 방송을 꺼려한 탓인 지는 몰라도 방송을 가장 많이 탄 가수 부문에서는 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이사이(1984년 2월) 장덕은 새 음반을 내는 자매듀엣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를 작사/작곡하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국보자매는 현이와 덕이, 그리고 장덕에 의해 각각 발표된 바 있는 <끝없는 마음이야>, <첫사랑>까지도 리메이크 하여 자신들의 새 음반에 수록한다.
         1985년 6월 [[장현]] · 장덕 남매는 7년만에 재결합,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며 타이틀곡 <너너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비롯 <이젠 안녕>, <그대의 투정>, <해바라기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의 타이틀곡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가 단숨에 가요위 10위권 내에 들며 인기를 끌었고 장덕에게 막힌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이 앨범에서는 장현 또한 작사/작곡에 많은 참여를 하였다. 현이와 덕이의 정규 1집 《진한 아이》에서는 모든 곡들을 장덕이 작사/작곡했지만 이 앨범에서는 B면 3번 트랙 <그댄 없지만>과 그들의 정규 1집 《진한 아이》에 실린 버전들의 재편곡 버전인 B면 4번 트랙 <소녀와 가로등>, B면 5번 트랙 <진한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을 [[장현]] · 장덕 남매가 함께 만들었다.
         1986년 5월 장덕은 훗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또 그녀가 작곡한 가장 훌륭한 곡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는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모습처럼>을 작곡, 동료가수인 [[이은하]]에게 주어 빅히트를 안겨준다. 그리고 6월 오빠 장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달랐던 장덕은 솔로로서의 욕심으로 인해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타이틀곡 <님 떠난 후>를 비롯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사랑해줘요>, <소외> 등이 수록된 솔로 정규 3집 《[[님 떠난 후]]》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포크뮤직]]에 [[디스코]]가 섞인 타이틀곡 <[[님 떠난 후]]>가 [[KBS]] [[가요톱10]]에서 5주(1987년 2월 18일 ~ 1987년 3월 18일) 연속 1위를 차지,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MBC 라디오 인기가요, KBS 2FM 인기가요 광장, PCI(인기가요위 조사연구소), 뮤직박스(도서출판), 전국 DJ 연합회 등 각종 인기 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된다. 1986~87년 장덕은 제 2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인정받았다.
         1987년 7월 장덕은 타이틀곡 <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비롯 <이별인줄 알았어요>, <이 노래를 들을때면>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4집《[[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두봉엔터프라이즈를 통해 발매되었으며 재킷에 <골든앨범1집>이란 타이틀이 표기되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이별인줄 알았어요>가 가요톱10 등 가요 위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시기 장덕의 오빠 장현도 타이틀곡 <마지막 진실>을 비롯 <연민>, <어느날>, <만날 수 없는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솔로 데뷔 음반 《마지막 진실》을 발표하게 된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장덕 작사/작곡의 곡들로 채워져 있어 장덕이 오빠 장현을 위해 만든 앨범으로도 여겨진다.) 9월 장덕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 3회 [[ABU]](아시아 태평양 방송연합) 가요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는데, 당시 불렀던 노래 <너를 기다릴거야>는 1989년 발매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에 재편곡되어 수록되게 된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남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남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반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남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남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진한 아이]] (1978)
         * [[정 (장덕의 음반)|정 (장덕의 고운노래모음 Vol.2)]] (1980)
         ** 현이와덕이 오마주9 (장필) (2017) - 소녀와 가로등
  • 킹덤/528화 . . . . 27회 일치
          * [[수수]]의 지휘로 퇴각하는 요양군과 그것을 추격한 [[양단화]]의 산민군.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요양성을 점거한 견융족의 군대였다.
          * 견융왕 "로조"는 조군 조차 적대시해 총대장 수수를 베려하나 그가 유창한 흉노의 말로 교섭을 시도하자 그를 주목한다.
          * 수수의 유창한 흉노말을 쓰고 갑옷에 늑대 문양이 있는 점을 눈여겨 본 그는 그 [[이목(킹덤)|이목]]의 대리 자격이라고 하자 흥미를 가진다.
          * 수수는 견융족에게 협조를 당부하며 그 대가는 "전년처럼 이목님이 스스로 베푸실 맛있는 양고기"라고 하는데, 견융왕은 그걸 마음에 들어하며 협력한다.
          * [[수수]]가 퇴각한 진의가 드러났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요양성. 산을 끼고 있어 그 자체로 요새와 같은 성이었다. [[벽(킹덤)|벽]]이 그 성의 위용에 기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나, [[양단화]]를 비롯한 산민족 군대의 이목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 우습지만 그들의 존재가 뜨악한 것은 조군도 마찬가지였다. 일선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었고 장수들 또한 "견융족"이란 이름만 알 뿐, 왜 그들이 이곳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견융족은 500년 전 주나라를 멸망시킨 대기마민족으로 역사서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중화대륙에선 사라진 종족. 그들이 어째서 조나라에, 그것도 왕도권인 요양에 있단 말인가? 술렁거리는 장교들을 향해 수수가 입을 열었다. 견융족은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라진게 아니었다. 처음엔 그들도 대륙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대부분의 무리는 북쪽으로 유입되었다. 그것이 오늘날에 "흉노"라는 형태로 변해 조나라와 지겹게 싸워왔다. 하지만 모든 견융족이 흉노가 된 것은 아니다. 일부는 태행산맥을 근거지로 잔류했으며 훗날 조나라가 태행산맥을 끼고 생겨나면서 그들과 충돌했다. 조나라는 이들과 다투기보다는 회유하는 정책을 펴 요양성을 내주고 왕도권에 편입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편입시켰다는 건 조나라의 입장일 뿐.
          그렇다면 수수는 왜 이 급박한 전황에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그의 노림수는 한 가지. 견융족이 지닌 극도의 배타성이었다.
          * 양단화는 이들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견융족이 배치된 언덕은 그야말로 깍아지는 절벽. 그러나 견융의 기마는 마치 언덕을 내려오는 것처럼 태연하게 절벽을 타고 쏟아졌다. 수수는 이들의 진로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절벽 밑에 주둔한 조군에게 길을 트게했다. 절벽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기마대. 말을 탄 늑대와 같은 무리가 진군을 향해 돌진했다. 벽을 위시한 진군의 장수들은 이들의 존재를 그제야 파악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 그토록 자신들을 괴롭혔던 산민족이 초전박살나자 조군은 경이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조군 또한 즐거워하고 있을 상황이 못 됐다. 그들도 "영역"에 침범한 상대였다. 어느 새 공손룡과 수수의 사이로 거대한 체구의 견융족 장수가 나타났다. 그 거구의 견융족이 자신을 밝혔다.
          [[로조]]라고 자신을 밝힌 견융왕. 존재감에 압도된 조군 장수들을 돌아보던 그는 바로 옆에 있는 공손룡을 "애꾸눈"이라 부르며 이 군의 총대장이냐고 물었다. 뜻하지 않게 무시를 당한 수수는 그 반대편에서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냐"고 빈정거리며 자신이 총대장이라 밝혔다. 그러자 견융왕이 그렇냐고 웃으며 "볼프"라는 부하 장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볼프는 어느 새 수수의 등 뒤에서 나타나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당장 목이 날아가게 생긴 수수는 놀라운 침착성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견융왕이 생각을 바꿀 만했다. 이민족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 짧은 문장이었으나 짐짓 놀란 볼프가 칼끝을 멈췄다. 견융왕도 흥미를 보이고 그가 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수수는 이민족의 말을 계속했다. 그는 사전에 양해없이 영역을 침범한 점을 사죄했으나 자신은 지금 [[이목(킹덤)|이목]]의 대리로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신을 베면 이목을, 조나라의 승상을 베는 것과 같은 격이다.
          수수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다. 견융왕은 거기에 반박을 미뤄둔 채 수수가 이민족말을 구사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수수가 밝히길 그건 흉노의 말이었다. 견융왕은 그 솜씨가 유창하다고 칭찬하는 한편 수수의 행색을 면밀히 살폈다. 갑옷에 새겨진 늑대 문양. 견융왕의 시선이 거기에 멈췄다.
          견융왕이 본 것은 무엇일까? 수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챘지만 그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말을 잘랐다. 여기까지 모든 대화는 수하게 이민족의 말, 흉노의 말로 주고받고 있었다. 조군 장수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견융왕이 먼저 평지의 말로 그들의 말을 들어는 보겠다며 적대감을 누그러뜨렸다. 이목의 이름을 댄 것이 효과가 있었다. 견융왕은 조나라 도양왕을 "쓰레기"라 칭했지만 이목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게 보았다. 그는 매년 한 번씩 직접 요양을 방문했으며 그때마다 안문 땅에서 가져온 맛있는 양고기를 베풀었다. 그 이목의 대리를 칭하는 수수를 봐서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 수수의 목이 떨어질 시간은 조금 더 미뤄졌다. 볼프의 칼이 여전히 목에 닿아있었으나 수수는 그런 엄포에 개의치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용건은 간단했다. 이 자리에서 조군과 함께 진군과 싸워 적을 격멸하는 것. 견융왕도 자질구레한 것은 거론하지 않았다. 바로 보상이 뭐냐고 물었다. 수수는 그 대답보다는 현재 진군이 업성을 노리고 왕도권에 진출한 것, 그걸 저지하지 못하면 더 많은 진군이 처들어와 공세를 펼치고 요양도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견융왕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지만 분위기가 식간에 식었다. 수수는 견융왕과 시선을 마주친 채 조금도 물러섬이 없이 대답했다.
          농담 같은 진담. 그 뿐인가? 결국 수수의 말은 "살려주는 대가로 싸워라"고 엄포를 넣는 거나 다름 없었다. 진군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심지어 견융왕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이 달린 사람이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조군들 사이에서 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제 그들은 총대장의 시체를 수습할 방법이나 찾아야 했다.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잠시 뒤 그들은 자신들도 살아남고 총대장의 시체를 처리할 방법도 필요가 없어졌다.
          뜻밖의 수락. 무엇이 견융왕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크게 만족해했다. 곧 부하들을 시켜 성 안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데려와 "축제"를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단 하나, 진군의 격멸만이 남은 수수는 견융왕에게 상대를 얕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적의 정체가 서쪽 산민족을 통일한 자라고 알려주려 했는데, 견융왕은 그의 정보가 필요치 않았다.
  • 한명회 . . . . 27회 일치
         |자녀= 아들 한보, 딸 [[공혜왕후]], [[장왕후]], 딸 [[장나라]] 한, 아들 한복(韓福), 한임(韓林), 한수(韓壽), 한목(韓睦), 한석(韓碩), 한서(韓恕), 한우(韓佑), 한온(韓瘟), 딸 한씨(韓氏), 한씨(韓氏), 한씨(韓氏)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영통사]](靈通寺)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상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중추원사]](中樞院使) [[민대생]](閔大生)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남 4녀가 태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조선 예종|예종]]비 [[장왕후]]와 넷째 딸이 [[조선 성종|성종]]비 [[공혜왕후]]이다.
         그는 세조 집권 초반부터 변방의 성곽 수축과 병력 양성을 건의하고, 해안가에도 성곽을 쌓고 병력을 보내 방비를 튼튼히 해야 하며 미구에 있을 왜구와 [[여진족]]의 침략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56년]]부터 [[조선 단종|노산군]]과 [[금성대군]]을 처형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조선 세조|세조]]가 듣지 않았다. [[1457년]](세조 2년) 초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진하고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한 뒤,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었다. 그해 [[금성대군]]과 [[흥부|흥]][[부사]] [[이보흠]]의 모의를 적발하여 처형시켰다. 그해 겨울 [[조선 예종|해양대군]]의 [[왕세자]] 책봉을 주청(奏請)을 위한 [[세자]][[책봉]]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의 [[연경]](燕京)에 들어갔다.
         세자 책봉을 성사시키고 [[1458년]] 봄에 귀국,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여름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의 3도에 흉년이 들어, 그를 특별히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3도 찰사(巡察使)에 특별히 임명되어 구호물자를 싣고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시하며 백성들을 구휼하고 돌아왔다.
         [[1463년]] 4도 찰의 명을 받고 [[평안도]], [[강원도]], [[함길도]], [[황해도]]를 찰하였다. 그가 행을 갈 때 특별히 세자가 나와서 그를 전송하였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정난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갔다.<ref name="park115"/> 그는 우선 세조와 사돈을 맺어 딸을 [[장왕후|예종비]]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다른 딸을 [[공예왕후|성종비]]로 만들어 딸들을 2대에 걸쳐<ref name="park116"/> 왕후로 삼게 했다. 또한 [[권람]]은 일찍 요절한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남이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손자 [[한경침]]을 다시 사위이기도 한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 소생 서녀 [[공신옹주]]와 혼인시켜 3대에 걸쳐 왕실과 겹사돈관계를 형성한다.
         그해 [[남이]](南怡)가 쓴 시구가 문제가 되어 [[남이의 옥|모역사건]]으로 몰리자 [[유자광]]의 고변을 듣고, [[신숙주]], [[유자광]] 등과 함께 [[남이]], [[강]] 등의 사형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남이]] 등이 처형된 후 [[유자광]], [[신숙주]] 등과 [[남이]], [[강]]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추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推忠保社炳기難翊載功臣) 1등관의 호를 받고는 [[1469년]](예종 1년)에 다시 [[의정부]][[영의정]]이 되었으나 곧 사직했다.
         이때 그는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자 자신의 넷째 사위인 [[조선 성종|자을산군 혈]]을 적극 지지하여 차기 왕으로 즉위시킨다. [[1469년]] [[조선 성종|성종]]이 즉위하자 [[이조판서|판이조사]]와 [[병조판서|판병조사]]를 겸했고 성종의 즉위를 지지한 공로로 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洪弘佐理功臣) 1등의 공신호를 받았다. 이어 그해 [[춘추관]]영사로서 [[최항 (1409년)|최항]](崔恒), [[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야사에는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당했다 한다.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되자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도끼로 자신의 정강이 또는 자신의 집 대들보를 내리찍었다고 한다. 그는 왕실과 이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했는데, 그의 큰딸은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의 아들 윤반과 혼인을, 그의 작은딸은 [[신숙주]]의 맏아들 신주와 혼인하였고 셋째 딸은 [[조선 예종|예종]]의 정비([[장왕후]])가, 막내딸은 [[조선 성종|성종]]의 정비([[공혜왕후]])가 되어 영화를 누렸으나, 이 딸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의 처 황려부부인 민씨는 단종비 [[정왕후]]의 외종이모뻘이었다. 장인 [[민대생]]은 단종비 [[정왕후]]의 외조부인 [[민소생]]의 형이었고, [[정희왕후]]의 친척이자 [[정현왕후]]의 증조부인 [[윤곤]]이 그의 고모부였다.<ref>영원부원군 윤호가 내종조카였고, [[윤필상]] 역시 그의 인척이었다.</ref>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도 그의 당숙모의 조카였다.
         * 정실: 황려부부인(黃驪府夫人) 여흥 [[신애라|황려부부인]] - [[증직|증]][[의정부]][[우의정]] 민대생(閔大生)의 딸. (? ~ [[1490년]]) [[조선 단종|단종]]비 [[정왕후]]의 모친 여흥부부인과 친사촌지간이다. 민중립의 아들 민소생, 민대생
         *** 손자: 한경(韓景珣)
         ** 삼녀: [[장왕후]](章順王后, 1445년 ~ 1461년) - [[조선 예종|조선 제8대 국왕 예종]]의 정비(正妃)
         ** 구남: [[장성원(배우)]] 장왕후의 아들
         * 장인: [[민대생]](閔大生, 1372 ~ 1467) - 단종비 [[정왕후]]의 외조부인 [[민소생]]의 형이다.
         * 박정 - [[2008년]] 《길》, 연극
         === 장왕후와 공혜왕후 ===
         그는 [[조선 세조|세조]]와 그의 장남이자 자신의 사위인 [[조선 예종|예종]]의 형인 [[조선 덕종|의경세자]]와도 이중 사돈관계를 형성하였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왕후]](章順王后)는 그의 셋째 딸이고, [[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恭惠王后)는 넷째 딸로, 이들은 친정 자매간이면서 시가로는 시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되는 관계가 된다.
         * [[이지]]
  • 헌경왕후 . . . . 27회 일치
         |전임자 = [[효왕후|현빈 조씨]](효왕후)
         |사망일 = 조 15년(1815) [[음력 12월 15일]] (80세)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영조]]의 차남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ref>조실록 19권, 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ref> [[대한제국 고종|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로도 알려져 있다.
         홍봉한은 [[1770년]](영조 46년)경 반대파 김귀주, 정후겸의 공격으로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고 봉조하의 직함으로 교외에 거주했으며 이후에도 이복동생이던 홍인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형을 배신했다고 정조가 말한적이 있다. 사도세자 생전부터 있었던 정왕후 외척가문과의 정쟁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에도 김귀주 정파의 홍봉한 탄핵이 여러번 있었으며 정조 즉위초에도, 정조 사후에도 이들이 홍봉한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다. 사도세자의 추숭에 대해 당시 세손이던 정조와 사석에서 홍봉한이 나눈 이야기를 김귀주가 영조에게 고자질해서 홍봉한을 역적으로 몰기도 했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가 83세에 서거하고, 대리청정하던 세손 이산이 25세의 젊은 나이에 등극하니, 곧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장헌(莊獻)'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어머니 혜빈 홍씨 역시 '혜경궁(惠慶宮)'으로 궁호가 높아졌다. 당시 왕실에서 혜경궁 홍씨가 제일 연장자였으나, 서열상 10살 아래인 [[정왕후 (조선 영조)|정왕후]]가 대비의 위치를 차지하여 왕실 서열상 제2위의 위치에 있었다.
         [[1800년]] 정조가 죽고, 정조의 아들이자 혜경궁 홍씨의 손자인 [[조]]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정조 치세기간 부터 집필하던 회고록 한중록(閑中錄)의 제목을 조 즉위 후 한중록(恨中錄)으로 고쳤다. 이를 두고 [[1910년]]부터 [[한국]]의 일부 사학자들은 그가 한중록을 쓴 이유가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친정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였다.
         생전 그는 효강 자희 정선 휘목 혜빈(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의 존호를 받았다. [[1805년]](조 5년)부터는 담현증(痰昡症)을 앓아 오래 병석에 누웠다. [[1815년]](조 15년) 창경궁 경춘전에서 8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며 헌경빈(獻敬嬪)의 시호를 받았다. 이는 총명하고 예지(睿知)함을 헌(獻)이라 하고 밤낮으로 경계함을 일러 경(敬)이라 하였다 한다.<ref>조실록 18권, 조 15년(1815 을해년 / 청 가경 20년) 12월 25일(을해) 2번째기사, "빈청에서 혜경궁의 시호를 다시 의논하여 올리다"</ref> 조 즉위 직후 혜경궁은 아들 [[조선 정조|정조]]의 약속을 이유로 친정에 대한 신원을 요구했고, [[1814년]](조 14년) 그의 친정집은 신원, 복권된다. 또한 [[홍봉한]]의 죽음 직전에 그를 비난했던 정이환, 이심도 등의 처벌을 요구한다. 이심도는 사형에 처해진다.
         **** 시어머니 : [[정왕후 (조선 영조)|정왕후 김씨]] (貞純王后 金氏, 1745~1805)
         ***** 형님 : [[효왕후|효소황후]] 조씨(孝順昭皇后 趙氏, 1716~1751)
         ******* 손자 : 제23대 [[조선 조|조숙황제]](純祖肅皇帝, 1790~1834)
         ******* 손부 : [[원왕후|원숙황후]] 김씨(純元肅皇后 金氏, 1789~1857)
         전임자=[[정왕후 (조선)|정왕후]]<br />([[효왕후]])|
  • 세정(구구단) . . . . 25회 일치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소속 8인조 걸그룹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멤버이다. [[2016년]] [[프로듀스 101]]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최종 위 2위를 기록한 출전자로, 남녀노소 다양한 팬층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I.O.I]]로 정식 데뷔하기도 전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출연자 중 상위권에 속하는 비주얼에 [[아이돌]] 가수로서의 춤과 노래의 기본기가 탄탄하고, 또 털털하고 밝은 성격에 강한 멘탈과 무대 장악력까지 갖추어 [[프로듀스 101]] 방송 초반부터 국민 프로듀서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러 명의 뛰어난 연습생들 사이에서 실력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훌륭한 인성으로도 주목을 받았고, [[프로듀스 101]] 방영 내내 각종 투표 및 평가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며 '''갓세정, 퀸세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후추닷컴의 [[최동원]]-[[선동열]] 평가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 [[프로듀스 101]] 사상 단 한 명의 여자 연습생을 뽑는다면 아마도 그 1등은 [[SIXTEEN|식스틴]] 팬덤을 안고 출연한 [[JYP엔터테인먼트|JYP]] 연습생 [[소미|전소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소미([[선동열]])를 출연시키고도 승패의 결과가 가장 불확실할 것 같은 연습생 한 명을 꼽는다면 그건 바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젤리피쉬]] 연습생 김세정([[최동원]])일 것이다.] [[프로듀스 101/11회|마지막 방송]]에서는 [[소미|전소미]]에 이어 최종 위 2위를 차지하여 프로젝트 걸그룹 [[I.O.I|아이오아이]]에 합류했고, [[2016년]] [[5월 4일]]에 [[데뷔]]하여 [[I.O.I|아이오아이]]의 멤버로 활동했다.
         [[프로듀스 101]] 시즌 1에서 뛰어난 리더십과 훌륭한 실력, 따뜻한 성격으로 대중들의 호감을 사 종합 위 2등에 올라 마침내 [[I.O.I]]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오후 3시 진행 예정이었던 행사가 비로 인해 40분이 지연되고 난 뒤 총 선착 200명의 팬에게 커피를 나눠 주었는데 상암 팀은 3명씩 조를 이루어 나눠 주었다. 3명은 커피 차 안에서 커피를 만들고, 3명은 커피를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세정은 101번부터 밖으로 나와 커피를 나눠줬다.[* 앞 번호에서는 안에서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다른 이벤트와는 달리, 같이 사진 찍을 시간, 싸인 받을 시간[* 앞 번호 때만.]을 주어 엄청난 혜자 이벤트가 되었다! ~~ I.O.I는 게릴라를 꼭 가야 한다~~ 당연히 실시간 중계만 보던 팬들은 배아파하며 통곡했다는 후문이...
          * 2017년 6월 5일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226217|기사]]를 통해 [[KBS 2TV]] 월화드라마 [[학교 2017]]에 출연을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이는 [[I.O.I]] 멤버들 중 최초로 지상파 정극 데뷔이자, 최초의 풀 타임 주연이다.[* [[학교 2017]] 첫방 이틀 후에는 [[정채연]]이 2번째로 지상파 정극에 데뷔하였고, 이후 [[김소혜(1999)|김소혜]]와 [[미나(구구단)|강미나]]가 뒤이어 지상파 정극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다만 [[미나(구구단)|강미나]]와 [[정채연]]은 '''아역'''이며, [[김소혜(1999)|김소혜]]가 주연을 맡은 [[강덕 애정 변천사|드라마]]는 [[KBS 드라마 스페셜|단막극]]이다.] 본래 이 드라마에 [[김유정(배우)|김유정]]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실패한 후 오피셜이 떴다. 해맑고 쾌활한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웹툰]] 작가 지망생 '[[라은호]]' 역할을 맡았다. 첫 정극 연기인데, 주연을 맡게 되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69600|#]] 본인이 예전부터 [[연기]]에 꿈이 있었고 과거 시, 도 대회에서 상도 수상했다.
          * 6월 24일부터 7월 8일까지 3주간 방영된 임자도편은 자급자족을 통해 젓갈을 만드는 미션으로 진행됐다. 합류 전부터 촬영에 대한 기대를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각종 물품--상추, 쌈장, 마이크 등--을 꼼꼼히 챙겨 멤버들에게 살림꾼이라며 인정받기도 했다. [[경수진]]에게 [[PICK ME]]를 전수했으며 멤버 선정을 위해 진행된 팔씨름과 허벅지 씨름에서 가뿐히 승리했다. 밴댕이 잡기 대결에 진 세정 팀은 젓새우와 황강달이 잡이에 나서 6시간 동안 강행된 조업에 어민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했고, 처음 먹어본 밴댕이 젓갈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선착으로 진행된 병어잡이 배 동상어몽퀴즈에 실패해 병어잡이 조업에 나가게 되었다. 새벽 4시부터 진행된 쉴 틈 없는 조업에도 지친 기색 없이 [[김종민]]과 서로 장난을 치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업을 마치고 병어회를 먹을 때에 같이 고생한 선장에게 제일 먼저 권유한다던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김병만]]에게 음식을 챙겨주는 등 특유의 배려심이 돋보였다. 대파 모종 심기 작업을 걸고 대결을 펼쳤다. 갯벌 카약 대결과 갯벌 썰매 대결에서 연이어 세정 팀의 승리. 이후 이들이 구해온 대파와 병어를 이용한 요리에 극찬을 표했다. 이후 돌아온 숙소에서 그동안 쌓인 피로에 지친 모습이 보였다. '오길 잘했고, 먹길 잘했고, 일하길 잘했다. 한번 더 오고 싶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그 소감은 실제로 이루어졌고, 7월 8일부터 방영된 '여수'편에 재방문했다.] 높은 체력 소모를 요구하는 일정에도 방송 내내 지친 기색 없이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성실히 조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원더세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2017년 11월 17일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711170100160400011531&servicedate=20171117|기사]]를 통해 [[SBS]] [[런닝맨 ]] '상속녀가 돌아왔다 레이스' 특집에 출연을 밝혔다. 11월 19일 방영. 방송 중 망설임 없이 한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는 적극적인 [[Act.3 Chococo Factory|신곡]] 홍보에 'PR 로봇'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살아남은 최고 위 커플이 상속자 후보가 되어 판정대 위로 올라가거나, 막내딸과 함께 올라가면 막내딸이 승리하는 최종 레이스 '서열 정리 이름표 뜯기'에서는 막내딸이었던 [[고성희]], [[송지효]]와 함께 우승했다.
          * 2017년 11월 30일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664260&lfrom=twitter|기사]]를 통해 [[SBS]] [[자기야 - 백년손님|자기야]]에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 [[조혜연(2000)|혜연]]과 함께 출연을 밝혔다. [[나르샤(브라운 아이드 걸스)|나르샤]]와 함께 '후포리'를 찾아 김장을 담그기에 도전했다고 한다. 12월 7일 방영. 후포리 주민들과 김장 300포기 품앗이를 도왔으며,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려 트로트를 부르기도 했다. 김장이 끝나고 이들을 위해 준비된 한상을 보며 '대게는 소울푸드이다. 대게를 먹는 간에는 대게와 나만 있는 느낌이다'라며 대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이에 혼자 5마리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2018년 1월 5일부터 방영중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스페셜 MC로 종종 나오고 있다. 이대 편에 이어 충무로편에도 출연하고 있으며, 충무로 편에선 세정의 '''놀라운 센스에 백종원이 감탄하는 모습이 몇 차례 나오기도 했다.''' 세정과 백종원 두 사람이 떡볶이를 함께 먹으며 평가를 하는 장면이 해당 방송 분량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직접 시식을 하려던 백종원이 '우리 딸'이라고 부르며 세정을 떡볶이 시식장소로 불렀고, 세정은 떡볶이보다는 대곱창전골에 떡 사리를 넣은 느낌이 난다거나, 굳이 여기까지 와서 먹고 싶다는 인상은 심어지지 않는 그냥 평범한 맛이라는 등 촌철살인 평가를 내렸다. 그외에도 식당의 간판, 벽지 색깔, 튀김의 종류, 떡볶이 속 만두 상태, 손님 회전율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http://mlbpark.donga.com/mp/b.php?m=search&p=1&b=bullpen&id=201811150025412321&select=stt&query=%EC%84%B8%EC%A0%95&user=&site=donga.com&reply=&source=&sig=hgj9Gg-Yj3DRKfX@hljXGY-gLmlq|#]]]
          * [[갈릴레오 : 깨어난우주]] 출연자들이 입국을 할 때 세정 혼자 공항에 보이지 않아 팬들 사이에 작게나마 논란이 되었으나 V앱[* 이때의 V앱에서 프로듀스 48 출연자들을 위한 응원과 조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거기서 경쟁하지 마세요. 서로 얘기를 조금만 나눠보면 같은 마음이구나를 알게 되거든요. 멋진 무대 여러 번 만들고 가야지 하고 임하면 최고로 잘 될 수 있을 거에요. 절대 경쟁하지 마세요. 경쟁하려는 간 너무 경쟁자가 많아져요. 그냥, 좋고 멋지고 예쁜 무대를 이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임했으면 좋겠습니다."]을 통해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LA에서 볼 일[* 엠바고가 걸렸는지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을 보고 귀국했음을 설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출전을 맞이해서 빅스 레오 및 구구단 멤버들과 함께 응원 공연을 몇 차례 가졌다. 독일전 2:0 승리를 끝으로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일정과 그에 동반된 응원 행사가 마감된 이후인 6월 29일에는 tvN 짠내투어 촬영을 위해 승리(빅뱅), 조세호 등과 함께 중국 푸젠성 샤먼으로 출국했다.
          * 8월 31일 저녁 있었던 [[프로듀스 48]] 최종회 위발표식에 선배 자격으로 [[I.O.I]] 일부 멤버들(소미와 최유정)과 함께 [[고양체육관]]으로 초대되어 배석, 위 발표가 있을 때마다 감정이입을 하면서 지켜보는 모습이 몇 번 잡혔는데, 카메라에 잡힌 자신의 표정에 민망해하며 고개를 숙이기도.
          * [[2017년]] [[1월 12일]] 새벽 1시 기준 실시간 차트 [[멜론(웹사이트)|멜론]] 13위, [[엠넷닷컴]] 2위, 벅스 58위, 지니 13위, [[네이버]] 뮤직 23위에 진입했다.[* [[구구단(아이돌)|구구단]] Wonderland [[멜론(웹사이트)|멜론]] 차트 진입 위가 17위인 데다가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 OST에 [[빅뱅(아이돌)|빅뱅]], [[무한도전]] 음원까지 치열한 차트 속에서 기록한지라 더 대단한 기록이다.]
          * 멜론 5분차트 3위에 잠시 보였으나 최고 위는 실시간차트 6위.
          * 프로듀스 101 당시 콘셉트 평가에서 팀이 3위를 한 것 빼고는 프로그램 안에서 죄다 A, 1위를 찍었고, 팬 투표에서도 2위 밖으로 밀린 적이 없는 괴력을 과시했다. 전소미와 더불어 모든 회차에서 데뷔권에 든 연습생이며, 평균 위는 1.63등으로 1.88등의 전소미보다도 더 좋다.
          * 소속 그룹마다 성향이 좀 다르다.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내에서는 멤버들에게 스킨쉽하는 것과 그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을 즐기는 장난꾸러기 동생 이미지라면, [[I.O.I]] 내에서는 듬직한 언니 이미지에 가깝다. 아무래도 [[구구단(아이돌)|구구단]]에서는 막내라인에 가깝지만(생일으로 5번째), [[I.O.I]]에서는 서열 3위 언니라인[* 생년월일 으로 볼때 [[청하(가수)|청하]]와 동갑이지만, 청하는 빠른 생일이라서 맏언니인 [[나영(프리스틴)|나영]]과 친구로 지내고 있다. 또한 세정이 청하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걸로 봐서는 실제로는 3위로 봐야 할 듯.]이기 때문일 지도. 그리고 멘트나 소개 등 거의 실질적으로 [[나영(프리스틴)|나영]]과 함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ㅡ 프로듀스 101 5회 첫 번째 위 발표식 소감 中
         >ㅡ 프로듀스 101 10회 세 번째 위 발표식 소감 中
         >저한테 꿈에 대한 조언을 물어보시면 늘 하는 대답 중에 하나가... 꿈을 '직업'으로 꾸지 말고 '단어'로 꾸라고 늘 말씀해드려요. 직업으로 한정되면 그 꿈은 직업을 이루면 끝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제가 노래를 불러도 꿈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고 노래를 써도 꿈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틀어줘도 꿈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 되거든요. 꿈을 단어로 꾸는 간 죽을 때까지 꿈을 꿀 수 있어요.
         >거기 있는 모든 연습생들 다 화이팅입니다. 진짜, 얼마나 예뻐요. 꿈을 위해서 도전하고... 그리고 이 말 너무 해주고 싶어요.''' 거기서 경쟁하지 마세요. 서로 얘기를 조금만 나눠보면 이 친구도, 나도 같은 마음이구나를 알게 되거든요. 그런 같은 마음을 모아서 멋진 무대 여러 번 만들고 가야지 하고 임하면 최고로 잘 될 수 있을 거에요. 절대 경쟁하지 마세요. 경쟁하려는 간,너무 경쟁자가 많아져요.''' 그냥, 좋고 멋지고 예쁜 무대를 이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듀스 48 친구들, 니혼... 니혼... 죄송해요. 일본분들도 화이팅이에요, 모두 모두 화이팅!
         > Q : 사실 팬덤이란 건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때론 식간에 사라지니까요.
  • 이금서 . . . . 25회 일치
         |배우자= 신란궁부인 김씨(고려 태조 외손녀, 신라 경왕 3녀)
         |친척= [[신라]] [[경왕]](장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장모, 고려 태조 장녀), 대안군 [[김은열]](처남, 신라 경왕 4남)
         '''이금서'''(李金書)는 [[고려]]초 문신으로, 호는 남계(南溪),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다<ref>[[경주 이씨|경주이씨]](慶州李氏)는 [[신라]](新羅) 개국원훈(開國元勳)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중시조는 [[효공왕]](孝恭王)때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이다</ref>. 경주 이씨(慶州李氏) 중시조 신라 말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의 손자이다. [[신라]] [[경왕]](敬順王)의 사위이다.
         [[신라]] 때 중원태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을 역임하고, [[935년]](신라 경왕 8년) 11월 [[신라 경왕]]이 [[고려]]에 귀할 때 함께하였다고 한다. [[고려 태조|태조]] 때 개국공신 삼한공신에 책록되고, [[고려]]조에 출사하여 광록대부를 역임하였다.
         [[경주 이씨]] 대종보에 따르면 이금서의 아들은 1남 이윤홍(李潤弘), 2남 이윤원(李潤遠), 3남<ref>[[평창 이씨]] 본원 선계록에 의하면 "금서공은 신라 [[경왕]] 김부의 셋째 딸 '신란궁부인'을 맞아 부마가 되어 두 아들을 두셨다. 장자는 휘 윤홍이니 [[경주 이씨]]의 선조가 되시고, 둘째 아들은 휘 윤장이니 [[평창 이씨]]의 시조이시다."라고 하여 이윤장을 2남으로 기록하고 있다.</ref> 이윤장(李潤張)이며, 이윤원은 [[가평 이씨]](加平李氏)로 이윤장은 [[평창 이씨]](平昌李氏)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평창 이씨]]는 [[경주 이씨]] 분적종이 아니라고 밝혀져 분적종에서 제외되었고, [[가평 이씨]](加平李氏)는 중국에서 유래되어 본래부터 분적종이 아니다. [[평창 이씨]] 내부적으로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를 근거로 이광(李匡)을 이윤장(李潤張)의 8세 손으로 보아 이윤장(李潤張)을 시조로 보는 분파와 이광(李匡)을 시조로 보는 분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가 위작으로 밝혀져 이광(李匡)을 시조로 확정하고 이윤장과의 관련성에 선을 그었다.
         === [[경왕]] 3녀 김씨와 연대상 모 ===
         경주이씨 세보에 의하면, 이금서는 [[고려]]조정에 처음 출사하였다 한다. 또한 [[고려 태조|태조]] 때 [[고려]]의 삼한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런데 [[경왕]]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고려 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 일명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와 혼인한 것을 고려할 때, 여기서 태어난 [[경왕]] 3녀 김씨가 이금서와 혼인할 연령이 되려면 [[경왕]]이 [[고려]]에 귀부한 이후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여기서 태어난 이금서의 아들들이 활약할 연령이 되려면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금서의 아들들이 [[경왕]]의 [[고려]] 귀부 이전에 활약했다는 기록들은 이러한 사실과 30여 년 이상의 연대상 오차가 생기게 된다.
         1남 이윤홍이 신라말 병정(兵正)을 지냈다는 기록은 [[경왕]] 3녀 김씨의 연대와 맞지 않을 뿐더러 [[이색]]이 [[이제현]]의 묘지명에서 이금서와 [[경왕]] 3녀 김씨 사이에 이윤홍을 낳았다는 기록과도 모이 발생한다.
         대학자인 [[이색]]의 인품과 그가 지은 [[이제현]]의 묘지명의 기록연대를 고려할 때, 기록 연대가 뒤처지고 위조나 오기가 발생하기 쉬운 족보상의 기록보다는 [[이색]]이 찬한 [[이제현]] 묘지명의 신빙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에 근거하여 모점들을 생각해볼 때, [[경왕]] 3녀 김씨의 높은 신분을 고려하여 그 소생인 이윤홍을 이복형들인 이윤장, 이윤원에 앞서 1남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신라말' 병정을 역임했다는 부분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고려초'의 오기로 보인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이금서(李金書)의 증손자 [[이주좌]](李周佐)를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주좌의 증조부 이금서(李金書)는 중원태수 호부랑중을 역임하고 고려 태조의 외손녀이며 신라 경왕의 딸인 신란궁부인 김씨와 혼인하였고, 조부 이윤홍은 병정(兵正)을 역임하였는데, 비록 부친 이승훈(李承訓)이 칠품 관직인 정조시랑(正朝侍郞)에 그쳤다고 한미한 가문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 가계<ref>이금현의 가계는 [[경주 이씨]] 족보를 기준으로 정리하였다. 2남과 3남의 서 및 실존에 대하여 논란의 소지가 있다.</ref> ==
         *** 부인 : [[신라 경왕]]의 3녀
         ** 장인 : [[신라 경왕]]
         * [[신라 경왕]]
         * [[이우]]
  • 홍순언 (1530년) . . . . 24회 일치
         '''홍언'''(洪純彦, [[1530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군|남양]](南陽)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구원군 파병에 공을 세웠으며, [[종계변무]]에 세운 공로로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었다. 기방에 팔려온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의 남편이자 당시 [[예부]][[시랑]] [[석성 (명나라)|석성]]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그의 일화는 [[정재숭]]의 동평위공사견문록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 [[이익]]의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 등에 부분적으로 전해지다가 [[1928년]] [[정인보]]가 그의 행적을 기술한 당릉군유사징을 편찬하여 널리 알려졌다. 초명은 덕룡(德龍), 자(字)는 사준(士俊)·언(純彦)이고, 호는 동고(東皐)이다. [[홍겸]]의 서자이다. [[한성부]] 또는 [[경기도]] [[광주군]] 출신.
         서출이었던 홍언은 일찍이 [[한어]](漢語)를 익혀 한어역관이 되었다. 처음 이름은 덕룡(德龍)이고 자는 언이었는데 뒤에 언을 본명으로 쓰게 되었다. 동생인 수언과 이복 동생인 덕린이 있었는데, 동생 수언은 1549년의 역과에 급제한 인물로 한어역관으로 활동하였다.
         홍언은 기막힌 사건에 연류된다. 이 사건이 후에 홍언의 생애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명나라]] 연경에 체류 중 명나라의 예부 관원은 사신들을 대접한다며 홍등가로 데려갔다. 이때 홍언은 그중 가장 값이 비싼 금 3천냥을 해어화채(解語花債<ref>기생의 몸값</ref>)로 제시한 기생의 방에 들게 되었다.
         그가 들어간 방의 기녀는 용모가 준수하였으나 소복으로 슬픈 모습이었다. 홍언이 기녀에게 사연을 물은 즉 소녀의 성은 류씨로,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이다. 그러나 아버지 류모가 공금횡령 혐의로 누명을 쓰고 옥사하고 모친마저 죽게 되자 부모의 장례를 치를 사람과 비용이 없었고,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방으로 팔려왔다는 것이다. 또한 이왕 첫 정을 바칠 바에는 용렬한 사내에게 정을 주느니 통이 큰 사내에게 정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홍언은 대죄하여 무릎꿇고 '작은 나라의 미관 말직 벼슬아치가 어떻게 대국의 귀한집 따님을 욕보이겠습니까' 하며 부복하여 절을 올리고, 자신이 가져온 돈 2천 냥과 인삼을 그녀에게 주었다. 2천냥과 인삼을 팔아 마련한 돈 1천냥으로 그날로 류씨 소녀의 빚을 청산해주고 장례비용까지 대주었다. 류씨 소녀는 거듭 감사하다 하며 그에게 성과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자신은 그냥 [[조선]]의 홍역관이다.<ref>혹은 성을 밝히지 않고 그냥 조선의 역관이라 했다.</ref>라고 했다. 류씨소녀는 은장(恩丈)이라 하며 거듭 감사를 표시했고, 그는 친히 소녀를 배웅하였다. 조선의 역관들은 조정의 허락 없이도 사적으로 인삼과 비단 무역이 가능했는데, 동료 역관들은 이것을 공짜로 류씨 소녀에게 주고 온 그를 바보라고 놀려댔다. 도리어 그가 류씨 소녀에게 준 2천냥의 돈이 공금이라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옥에 갇혔다. 하지만 얼마 뒤 석방되었다.
         이후 동료 역관들은 홍언이 [[명나라]]에서 소녀를 구한 사실을 물었으나 그는 덮어두라며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기방에서 석방된 류씨 소녀는 홍언이 준 3천냥으로 빚을 청산하고 부모의 장례를 치룬 뒤 아버지의 친구였던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집에 하직인사차 들렸다. 오갈데 없던 그는 당시 [[석성]]의 본부인이 병환을 앓고 있었으므로, 석성 부인의 병구완과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류씨 소녀의 지극정성의 간호에도 석부인은 병환의 차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자신의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에 감격한 [[석성]]은 류씨 소녀를 자신의 계비로 맞이하였다.
         석성은 [[예부]][[시랑]]으로 있다가 뒤에 [[병부]][[시랑]]을 거쳐 [[예부]][[상서]]로 승진했다. 류씨 소녀는 하루하루 황금 비단을 손수 짰는데, 병부시랑 석성의 후처가 된 뒤에도 류씨부인은 밤마다 직접 비단을 계속해서 짰다. 비단에는 보(報)와 은(恩)이 쓰여 있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석성]]이 류씨 부인에게 사연을 묻자 류씨부인은 아버지 류모의 빚과 장례비 마련이 어려워 기방에 갔던 일과 홍언을 만난 일을 고백하였다. 석성은 동이족 중에도 의인이 있다며 그 기상을 칭찬하였다.
         이윽고 [[1588년]](선조 21년) [[대제학]](大提學) [[황정욱]](黃延或)을 종계변무사로 [[홍성민]](洪聖民)을 부사로 파견했다. 이때 홍언은 역관으로 파견되었다.
         사신이 탄 말이 [[압록강]]에 이르렀는데 류씨 부인과 하인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짐승도 은혜를 아는 법인데 사람이 되어 은혜를 모른다면 그것은 금수만도 못한 것이라며 비단을 받기를 거듭 부탁하며 하소연하니 비단을 받아서 되돌아왔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공으로 홍언은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고, 면천 허통하여 [[자헌대부]] 당성군(唐城君)에 책봉되었다.<ref>홍언은 서자의 신분이었다.</ref> 후에 우림위장(羽林衛將)이 되었다. 이후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조선]] 조정에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청병사신을 파견하게 되었다. 홍언은 청병사신으로 북경에 갔다. 이때 [[조선]]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바칠 뇌물을 마련하여 홍수언에게 주었으나 홍수언은 진심으로 설득해도 설득이 될까말까 한데 어찌 뇌물로 매수할 생각을 하느냐며 대신들을 호통쳤다.
         홍언의 일화는 [[조선]] 후기의 소설 《[[이장백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그의 행적은 [[정재숭]]과 [[박지원]], [[이익]]의 저서를 통해 일부 알려졌으나,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일화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20년]]대였다.
         [[조선]] 멸망 후 [[1928년]] 위당 [[정인보]]는 그의 방계후손 [[홍정구]]의 부탁을 받고 당릉군유사징(唐陵君遺事徵)을 찬하였다. [[정인보]]는 당릉군유사징의 '唐陵君遺事徵引文'에서 홍언 동생 [[홍덕린]]의 후손인 [[홍정구]](洪正求)가 자신([[정인보]])을 찾아와 선조 당릉군의 행적이 너무 미약하니 선조의 행적을 기술한 유사(遺事) 편찬을 부탁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홍정구]]는 여러 번 [[정인보]]를 찾아와 거듭 부탁하였고, [[정인보]]는 시대가 바뀌어 가족도 몰라보는 시대에 [[홍정구]]의 조상을 추모하는 의리에 감동하여 결국 이를 수락했는데, [[정인보]]는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동평위공견사문록, 열하일기의 옥갑야화편 외에도 직접 여러가지 사적을 조사하여 [[1928년]] 당릉군유사징 제1권《당릉군유사 (唐陵君遺事)》를 집필하였다.
         [[허봉]]은 그가 말을 잘 한다고 평가하였다. '홍언의 말은 조리가 있어서 기록할 만하고, 들어도 싫증나지 않으며 오래 들으면 피로도 잊었다<ref>허봉, 《조천기 》(상)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연행록선집 1》 (경인문화사, 1976) pp.86-169</ref>'고 높게 평가하였다.<ref>김영숙, 〈역관 홍언과 조명외교〉,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제70집 (2011년 02월호)》 (중국사학회, 2011) pp 195</ref>
         * 김영숙, 〈역관 홍언과 조명외교〉,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제70집 (2011년 02월호)》 (중국사학회, 2011) pp195~222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99 역관 홍언]
         *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b_A1530_1_0019427 홍언: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 전태일 . . . . 21회 일치
         |친척= 여동생 [[전옥]], 여동생 [[전덕]], 동생 전태삼
         [[1968년]]에 우연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ref>[[위기철 (작가)|위기철]]이 쓴 전태일 위인전(산하)에 의하면, [[노동운동]]을 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읽게 되었다고 한다.</ref> 그 뒤 해설서를 구입해 그 내용을 공부하면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의로운 분노를 느끼고,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ref>바보회라는 이름은 전태일의 노동자로서의 반성이 담긴 이름이다.노동자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투쟁을 하기보다는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에 응한 바보라는 뜻이 담긴 것이다.</ref> 를 창립하여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하고 설문을 통해 현재의 근로실태를 조사하였다.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불길은 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그는 몇 마디 구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ref name="chock283">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 전태일은 3분 가량 방치되었으며, 이때 누군가가 [[근로기준법]]을 불타고 있는 전태일을 향해 던졌다.
         {{인용문|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ref>금력(金力)을 뜻함.</ref> 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성냥불을 켜서 갖다 대어 달라는 전태일의 부탁이 심각하였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긴 했으나 "설마…"하는 생각에 그는 성냥불을 켜서 전태일의 옷에 갖다 대었다. 간 전태일의 옷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친구들 보고 먼저 내려가라고 한 뒤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한 되 가량의 석유를 온 몸에 끼얹고 내려왔던 것이다.<ref name="chock283"/>
         그의 몸에 불이 붙은 뒤에도 현장에 사람이 있었으나 3분 가량 방치되었다. [[조영래]]에 의하면 "(석유를 온 몸에 뿌린 그의 몸에) 불길은 식간에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그는 몇 마디 구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입으로 화염이 확확 들이 찼던 것인지 나중 말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 소리로 변하였다.<ref name="chock283"/>" 한다. 그러나 전태일은 현장에서 3분 가량 방치되었다. 도리어 [[근로기준법]] 화형식이라 하여 [[근로기준법]] 법전들을 불타는 전태일을 향해 던졌다.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ref name="chock283"/> 그러다가 한 친구가 뛰어와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재킷|잠바]]를 벗어서 불길을 덮었다.<ref name="chock283"/>
         그의 어머니 이소선(李少線)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 유가족 8명이 [[12월 31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보상금 지급을 현실화해 줄 것을 요구하며 재심을 청구했다.<ref name="hjaeshims">[http://www4.hankooki.com//nation/200212/h2002123116132714510.htm "민주화운동 보상금 현실화" 전태일씨 유족등 재심청구] 한국일보 2002/12/31</ref> 어머니 이소선은 "태일이가 보상금으로 930만원으로 받는데 비해 [[1991년]] 분신 자살한 [[윤용하]]씨는 2억 3천만원을 받는다"며 "이는 태일이의 보상금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당시 임금만을 단 반영한 [[호프만식 계산법]]으로 산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f name="hjaeshims"/> 재심청구를 주선한 전국민주민족유가족협의회(유가협)도 보상금심의위원회가 당시 전문 기술자였던 전씨를 [[단일용직 근로자]]로 분류해 [[보상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ref name="hjaeshims"/>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은 전태일이 죽은 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여동생 [[전옥]]도 노동운동가가 되어 2012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여동생 전옥은 35세에 영국으로 유학하여 노동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1년 영국인과 결혼하였다.
         ** 여동생 [[전옥]]([[1953년]] [[5월 5일]] ~ ), 노동운동가, 노동학자, 정치인
         ** 여동생 전태리 (본명 : 전덕)
         '''자식들에 대해서''': [[이소선]]은 "난 자식들한테 할 말이 없는 사람이야.내가 미쳐 돌아다녔는데, 애들이 밥을 먹었는지, 어찌 살았는지 모른다. 해준 것이 없어. 딸(옥)이 영국 유학갈때 난 그것도 몰랐어 짐싸놓고와서 간다길래 가는가 했지, 학비 한번 대준 적이 없어. 태삼이 그거는, 니는 쌍둥이 자식도 있으니 데모하는데 나오지 마라고 해도, 알았다면서 데모가면 나와있어. 엄마가 노동운동 못하게 한다고 원망해. 덕이는 우리집 사람들은 전부 가출했다고 말한 적이 있어. 언니도 오빠도 모두 노동운동하러 다니고 집에 아무도 없다는거야. 그런 덕이가 시집가서 뒤늦게 집을 장만했다는데도 난 가보지 못했어. 그렇게 오라고해도 갈수가 없어. 지들 사는데 무슨 도움을 주었다고…참 난 못난 사람이야"라고 구술했다.
         '''태일의 동무들에 대해''': "나 그대들 없었으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어. 태일이가 죽고 병원에 찾아와서 이제부터 지들이 내 아들이라는거야. 그리고 지금 40년 가까이 지났어. 변치않고 엄마 이상으로 잘해줘. 얼마나 챙겨주는지 몰라. 난 정말로 태일이 친구들을 내 아들이라 생각해. 배곯아가며 두들겨 맞아가며 청계노조를 만들고 지켜냈지. 이들이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태일이와의 마지막 약속도 지킬 수 없었을거야. 난 그냥 미쳐 죽었을테지. 어머니라고 얼마나 생각해 주는지, 덕이 결혼할때도, 손주들 대학들어갈때도 이들이 태일이 노릇 다했어. 열서너살 먹은 여공들, 그 어린 것들이 얼마나 고생했냐. 이들이 없었으면 청계노조를 지탱해올 수도 없었을꺼야. 명절때마다 한복 차려입고 세배하고 그랬어. 지금 다 시집가고 애낳고 살지만 그래도 떡이랑 사들고 찾아오고 그래 이 엄마 준다고."<ref>오도엽《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177,203,273,285쪽</ref>
         * [[전옥]] : 전태일의 여동생이자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정치인
  • 이소선 . . . . 20회 일치
         |자녀 = [[전태일]]<br/>[[전태삼]]<br/>[[전옥]]<br/>[[전덕]] [[윤손하]]
         전상수는 여러 사업을 크게 벌리다 일이 어렵게 되자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갔다. [[한국 전쟁]] 직전이었다. 이소선은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자갈치시장]]에서 지냈다. 1950년 6월 15일 둘째 [[전태삼]]을 낳았다. 집도 없이 시장에서 지내다 전상수가 포목점에 취직하여 지낼 곳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3137 자갈치시장서 둘째 낳은 소선, 고생은 계속됐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5), 2014.06.12</ref>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면서 잠시 장사가 잘 되어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산 적도 있지만 공장을 크게 늘린 일이 잘못되어 가세가 기울었다.<ref name="경향30">[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518242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0) - 아득한 행복했던 간], 경향신문, 2009년 3월 15일</ref> 장마철 큰 비에 창고 지붕이 무너져 재료를 모두 못쓰게 된 것이다.<ref name="오마이뉴스1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490 "말짱한 젊은 년이 뭐가 아쉬워 구걸을 다녀"],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8), 2014.06.12</ref> 전상수는 점점 술에 취해 폭력적으로 변해갔고, 일이 풀리지 않아 빚을 지면 가재를 모두 팔아 정리하고 가족을 길바닥에 둔채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017511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7) - 지우고 싶은 남편의 기억], 경향신문, 2009년 3월 10일</ref> 1953년 셋째 [[전옥]]이 태어났다.<ref name="경향30" />
         전상수는 어렵사리 다시 자리를 잡고 술도 끊고 일을 했다. 남편이 남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사이 이소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 앞이며 도동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532 전쟁과 가난이 어린 전태일을 조숙하게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1), 2014.06.12</ref> 열심히 일을 해서 1년 만에 판잣집을 장만했고 다시 공장을 차렸다. 이 즈음 막내 [[전덕]]이 태어났고 전태일은 초등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 즈음 있었던 큰 규모의 학교 체육복 납품 과정에서 브로커가 대금을 가로채 잠적하자 집안은 다시 주저 앉았다. 전상수는 도망다녔고 이소선은 신경 쇠약에 걸려 밤마다 집 밖을 헤맸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617562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5) - 소년가장 된 전태일],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이소선이 서울에 올라와 일을 알아보는 사이 대구에선 아버지의 매질에 견딜 수 없던 전태일이 동생 덕이를 데리고 상경하였다. 전태일은 덕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시청 미아보호소에 맡겼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917524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1) - 태일이 막내동생과 생이별], 경향신문, 2009년 4월 9일 </ref> 그 사이 이소선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예전 서울 살 때 알았던 남산 판자촌의 지인에게 얹혀 살았다. 전태일이 그 집을 물어 물어 찾아와 이소선이 일하는 식당 앞에 나타났다. 모자는 다시 만나게 되어 끌어 안고 울었다. 식당에서 고되게 일하던 이소선은 어느날 심하게 하혈을 하였고 그 길로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경향4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317503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2)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13일 </ref>
         하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식당에서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쓰였다.<ref name="오마이뉴스2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699 애들 부끄럽지 않게... 미군 지프차를 돌려보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7), 2014.06.12</ref> 이소선은 병원을 나온 뒤 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워 삶아 팔았다.<ref name="경향42" /> 이소선과 함께 살게 된 전태일은 남대문시장을 돌며 구두닦이며 신문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지들 틈에서 동생 전태삼을 발견하였다. 전태삼은 어머니와 형을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온 뒤 거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후 전태일은 남대문에서 돈을 벌고 태삼은 달동네의 물지게를 지어 생계를 도왔다. 전태일은 아동보호소에 맡긴 덕이를 찾아오기 위해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었고 [[평화시장]]의 미싱 보조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27" /> 가족은 지인 집 마루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9181908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4) - 봉제공장‘시다’로 첫 출근],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26일</ref>
         이소선은 지인의 집에 남편이 다녀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길로 집을 나와버렸다. [[서울중앙시장]]에서 배추 잎을 주워 살며 거지들 틈에서 지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886 중앙시장에서 배추 잎 줍기... 하루 백원벌이 인생],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8), 2014.7.8</ref> 이소선은 중앙시장에서 신임을 얻어 노점을 열 수 있게 되었고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월급을 받게 되니 다시 집을 장만하고 함께 살 희망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전태일은 수제비집에서 우연히 동생 옥이를 만났다. 전옥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 올 때 따라 왔다.<ref name="오마이뉴스30">[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0 태일이네 가족, 다시 한곳에 모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0), 2014.7.15</ref>
         전상수는 서울 [[서울중부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가족을 찾고 있었다. 이소선은 남편과 사는 것이 싫었지만 전상수가 다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남산동 50번지 무허가 판잣집을 셋방으로 얻고 다시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다. 아동보호소에서 대려온 덕이는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 지 웃음이 싹 사라져 있었고 새벽에 홀로 깨서 머리를 빗고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났다고 한다.<ref name="오마이뉴스30" /> 그러나 전상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남산동 살림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66년 판자촌에 불이나 이재민이 된 것이다. 이소선은 그 때의 충격으로 눈이 멀었고 이웃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멀었던 눈은 차츰 돌아왔고 모든 식구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7 이소선, 화재 충격으로 눈이 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1), 2014.7.18</ref>
         당국은 이재민에게 천막 하나를 주고 [[도봉동]] 개울가로 내몰았다. 이소선의 가족은 [[쌍문동]] 공동묘지 근처 208번지로 이사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2175815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5) - 판자촌에 다시 모인 가족], 경향신문, 2009년 4월 22일</ref> 이소선이 살던 쌍문동 집은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간혹 단속반이 와서 헐고 갔기 때문에 시멘트 블럭만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들었다가 헐리면 다시 세웠다. 전태일은 단속반이 집을 헐며 블럭을 부수면 다시 사야하기 때문에 단속반이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미리 집을 헐어 두었다고 한다.<ref name="경향46">[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317454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6) - 쌍문동 208번지], 경향신문, 2009년 4월 23일</ref> 이 무렵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되었으며 동생 옥이 만한 어린 소녀들이 퀴퀴한 다락방에서 쉴 새 없이 일하다 폐병을 앓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전태일은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자세히 말하곤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6185902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7) - 춥고 배고픈 어린 시다들], 경향신문, 2009년 4월 27일</ref>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아들 [[전태일]]이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엔 쉬게 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0 전태일 분신 간 오갔던 긴박한 대화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 2014년 6월 12일</ref> 이소선은 구역 예배를 돌고 있다 동네 주민이 건내준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고 이 사실을 알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23 아들이 죽었는데... 버스 타고 간 이 여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 2014년 6월 12일</ref> 전태일은 메디컬 병원에서 성모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미 가망이 없었다. 전태일은 달려온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한 일을 다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태일은 이소선에게 거듭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 간청하였고 큰 소리로 대답하게 하였다. 이소선은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고 크게 대답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752042&code=210100&s_code=af077#csidxf48d2d357d2bfa4844d69c179a524c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9) - 문학 보수화, 예술적 성취 다양한 분석], 경향신문, 2009년 5월 21일</ref> 그날 오후 10시 전태일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이소선은 80세의 고령에도 계속하여 부르는 곳이면 마다 않고 참석하였다. 그러나 부른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을 하지는 않았다. 2006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태일노동상의 시상을 마치고 내려가다 다시 마이크를 붙잡고 "입으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 뭐 하냐. 가장 밑바닥에서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비정규직을 나 몰라라 해서 어찌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냐 …… 손잡고 싸우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정규직도 비정규직 신세가 될 것"이라고 소리쳤고<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5965.html 노동자 어머니 이소선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할것 같냐”], 한겨레, 2008년 12월 5일</ref> 늘 노동자의 하나된 단결을 강조했다. 2009년 전태일 39주기 추모식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리자 이제 되었다며 무척 기뻐하였다.<ref name="연합_전옥">[http://klsi.org/content/%EC%9D%B4%EC%86%8C%EC%84%A0-%EC%96%B4%EB%A8%B8%EB%8B%88%EC%99%80-%EB%85%B8%EB%8F%99%EC%9A%B4%EB%8F%99 이소선 어머니와 노동운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ref>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소선은 늘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위기를 고용문제를 극복하자고 주장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9/03/0200000000AKR20110903057900004.HTML "이소선 여사는 따뜻한 마음의 노동운동가"], 연합뉴스, 2011년 9월 3일</ref>
         국회의원이 된 딸 [[전옥]]은 어머니를 10대에서 70대까지 누가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하던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하면서 스스로도 민주화 운동 시절 경찰서에서 취조 받으며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늘 어머니라고 대답했다고 회고하였다.<ref name="연합_전옥" /> 《가톨릭 신문》은 이소선의 삶을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삶에 비견하였으며<ref>[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어머니, 이소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년
          9월 6일</ref> 노제에 참석한 [[박원]]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이소선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자들 편에 서셨다"고 추모하였다.<ref>[http://news1.kr/articles/?11109 이소선 여사 마지막 길엔 노동자들이 함께 해], 뉴스1, 2011년 9월 7일</ref>
         * 1954년 5월 5일(음력) 장녀 옥 태어남.
         * 1960년 4월 15일(음력) 차녀 덕 태어남.
         * [[전옥]]
  • 스틸오션/독일 . . . . 19회 일치
         == 양함 트리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II ||
         >필라우는 러시아 제국의 주문으로 단치히에서 건조중인 경양함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이 양함을 독일에 의해 몰수되어 독일 해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전시에 필라우는 제2 정찰대에 배속되어 북해와 발트해에서 활동했다. 1915년 리가 만 해전에 참가해 러시아 해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뤘다. 1916년 5월, 필라우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해 대구경탄에 맞아 큰 손상을 입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전투양함 자이들리츠(Seydlitz)가 항구까지 도달하는걸 도왔다. 1917년 헬리골란트 바이트 해전에도 참가했다. 종전후 전쟁보상함으로 이탈리아에 양도, 바리(Bari)로 개명되었다. 바리는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III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IV ||
         >엠덴은 바이마르 시기 건조된 첫 경양함이다. 전체적으로는 쾰른(Köln)급과 닮았지만, 배수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제거했다. 계획되었던 어뢰발사관 네문은 연합국의 반대에 부딫혔다. 엠덴만이 건조가 완료된 엠덴급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훈련함으로 개장되어 사용되었다. 1940년 4월의 노르웨이 침공에 동원되었으며 그후 어느 전투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독일이 항복한지 2틀 후에 킬에서 자침되었다.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 ||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3~4척만의 경양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자 독일은 각각 6,000톤에 달하는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양함 세척을 설계했다. 초도함인 쾨니히스베르크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에서 훈련함으로 활동하다 북해의 기뢰 부설 임무를 맡게되었다. 베저위붕 작전 도중, 베르겐 해안포에 의해 쾨니히스베르크가 피해를 입었고, 다음날 최소 다섯대의 영국 폭격기에 의해 격침되었다.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경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I ||
         >M급은 독일 해군의 Z 계획 하에 계획된 함급으로, 150mm 주포를 장비한 7,800t 짜리 경양함이었다. 해상 습격과 교란 작전을 위해 비교적 빠른 속도를 가질 예정이었다. 여섯척의 M급 경양함이 계획되었지만, 건조가 완료된건 하나도 없었다.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II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VIII ||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IX ||
         >P급 장갑함은 D급 장갑함의 후계자로써 도이칠란트급과 같은 설계와 전술을 사용했다. P급은 독일 해군의 Z 계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37년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타국의 8인치 양함포를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2척이 계획될 예정이었으며, 1940년에 첫번째 P급 장갑함이 건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Z 계획의 변경으로 P급은 O급으로 교체되었고, P급은 마지막까지 완공되지 못했다.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함급''' || 중양함 ||<bgcolor=#cccccc><tablestyle="width:500px"> '''티어''' || X ||
  • 정칠성 . . . . 19회 일치
         그는 작문에도 능하여 글과 논설을 지어 발표하였는데, 여성의 계몽, 교육의 장려, 사회 부조리의 개선, 위생 청결론 등을 주장하여 이른바 '사상 기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시 태화관을 출입하던 소설가 장혁주는 그의 존재를 인상깊게 기억했다가 회상하기도 했다. [[1920년]]에는 [[김일엽]], [[나혜석]], [[김명 (1896년)|김명]] 등과 함께 잡지 [[신여자]]지의 필진으로 참여하였으나 [[신여자]]지는 재정난으로 곧 폐간되었다. 이후 그는 [[조선]]의 역사 관련 서적, [[사회주의]] 사상과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을 구해서 독서하였다.
         정칠성은 정종명, 오수덕 등과 함께 종래의 소극적 여성운동을 극복하고자 여성해방단체조직에 착수하였다.<ref name="dispose"/>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이란 생소한 것이었기에, 정칠성은 일반 부인을 대상으로 직접 회원모집에 나섰다.<ref name="dispose"/> 이후 그는 각지의 회강연과 칼럼, 기고를 통해 여성 계몽운동에 나섰고, 경성에서 다른 여성단체의 일을 보면서도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을 겸직하였다. [[1924년]] [[7월 20일]]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으로, 인천노동총동맹회 상무위원(仁川勞働總同盟會常務委員)에 선출, 겸임하였다. 또한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 일도 겸하였다.
         그는 여성의 자유를 넘어서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가정과 결혼에서 독립하는 것이 바로 여성의 해방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나혜석]], [[김일엽]], [[김명]] 등이 여성 해방을 외치지 못하고 여성의 자유, 남녀 평등만을 외친다는 점을 두고 상당히 소극적이라며 비판했다. 단한 자유를 넘어서 남성과 가정,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않는 한 여성의 권리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동아일보]]와 매일신문 [[삼천리]]지 등에 칼럼과 논설, [[대구]], [[부산]], [[전주]] 등지의 전국으로 회강연을 다니며 여자의 자유 연애와 여자의 남자, 가정으로부터의 독립, 자립을 역설하였다. [[1927년]] [[6월 6일]]에는 [[평양여성동우회]] 주최로 [[평양]]부내 평양천도교당에서 열린 평양여우강연회와 여성문제대강연회(女性問題大講演會)의 연사로 참여하였다. 여성문제대강연회의 연사로 연설을 끝마친 뒤 평양경찰이 난입해 강연을 중단시켰다. 이후에도 그는 각지로 돌아다니며 가사노동 등으로부터의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였고, 경찰의 감시망에 오르게 되었다.
         [[1928년]] [[1월 15일]] 서대문구 서대문정에 있는 [[조선여자직업사]](朝鮮女子職業社)의 교사로 출강하였다. [[1928년]] [[2월 3일]] [[근우회]] 총회에서 경성지회 설치가 결정, 심은숙(沈恩淑), 조원숙(趙元淑), 문인(文仁順) 등과 함께 근우회 경성지회를 조직하였다. [[2월 23일]] 공평동 근우회관에서 [[허정숙]] 등과 함께 근우회 경성지회 창립 발기인이 되고, [[3월 13일]]에 근우회 경성지회 출범 후 경성지회 중앙위원에 위촉되었다.
         [[1928년]] [[근우회]] 임시전국대회자격심사위원, 1929년 제2회전국대회준비위원회 의안부책임자를 거쳐 [[1929년]] [[8월]] [[서대문경찰서]]에 체포,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929년]]말 다시[[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근우회 위원장으로서 회강연으로 항일 의식을 고취하다가 수차례 검거되었다. 이후에도 합법적·비합법적 투쟁에 종사하여 요시찰 인물로 감시당하였다.
         정칠성과 [[허정숙]] 등은 단한 성적 해방, 성적 자유를 넘어서 기존 [[가부장제]]의 폭력성과 [[유교]]적 도덕윤리에 대한 저항적인 측면에서 성 해방담론을 형성하였다.
         [[1929년]] [[3월 3일]] 근우회 경성지회 대회 준비위원이 되어 천도교당에서 근우회 경성지회 대회를 개최하였다.[[3월 7일]] 아현리에서 열린 신춘여성문예대강연회에서 '여자의 속과 해방'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3월 30일]] 근우회 영주지회 창립 준비에 파견되어 영주지회 조직을 지원하였다. [[4월 28일]]에는 근우회 전국지방회강연 조를 편성하자 [[경의선]]지역 회강연 연사로 선정되었다.
         [[5월]] 근우회 각 지역회강연 대표자를 전국에 파견할 때 근우회 중앙상무집행위원으로 경의선 라인 담당을 맡아 회강연에 나섰다. [[5월 8일]] 그의 강연지는 장단, 개성, 사리원, 해주, 재령, 연백, 평양, 진남포, 정주, 의주, 신의주로 정해지고, [[5월 12일]] 경성에서 열차를 타고 황해도, 평안도를 다녔다.
         5월 22일 평양 백선행기념관에서, 5월 25일에는 진남포에서 에버트 청년회관에서 '근우회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6월 1일]] 근우회 경성지회 상무위원을 겸하였고, 의주에 도착하여 의주공회당에서 강연하였다. 이후 신의주 강연을 거쳐 [[6월 14일]] 인천 내리에서 조선여성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회강연을 마쳤다. [[6월 18일]]에는 개성 고려청년회관에서 개최된 근우회개성지회 대회 행사에 사회자로 참석하였다.
         * [[김애]]
         * [[김명 (1896년)|김명]]
         * [[박천]]
         * 김중, 〈근대화의 담지자 기생〉, 계명대학교, 《한국학논집 제43집:2011년 6월호》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1) pp 161 ~ pp 194
  • 장순왕후 . . . . 18회 일치
         |이름 = 장왕후
         |별칭 = 왕세자빈, 장
         |시호 = 장(章順)
         '''장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조선 예종|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이며,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절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야사에서는 장왕후와 그의 동생 [[공혜왕후]], 형부 [[조선 덕종|덕종]](의경세자), 남편 [[조선 예종|예종]]과 아들 [[인성대군]] 등 [[조선 세조|세조]]의 자손들이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이 [[조선 단종|단종]]을 억울하게 죽인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 세조|세조]]는 총애하던 며느리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온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것을 장(章), 유하고 어질고 자혜로운 것을 (順)이라 하여 세자빈 한씨에게 장(章順)의 시호를 내리고 장빈(章順嬪)으로 삼았다. 후일, 장빈의 제부이자 시조카인 [[조선 성종|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녀를 장왕후로 추존했다.
         능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파주삼릉]] 내에 위치한 [[공릉 (장왕후)|공릉]](恭陵)이다. 장왕후로 추숭되면서 왕후의 예에 걸맞은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애초에 세자빈의 묘로 지어졌기 때문에 다른 왕후들의 묘소보다 초라한 행색을 갖추었다.
         == 장왕후가 등장한 작품 ==
         * [[공릉 (장왕후)|공릉]]
         후임자=[[안왕후]]|
  • 몽키 D. 루피 . . . . 17회 일치
         무식하고 생각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행동에 의미가 있을 때가 많고, 사건의 핵심을 찌르기도 한다. 미사여구 같은건 쓸 줄 모르지만, 그만큼 단하고 진심이 담긴 말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다.
         해적사냥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해적단을 결성하였으며 처음에는 단 둘뿐이었다. 루피가 계속되는 동료를 찾다가, 소규모 ~~[[어선]]~~해적단이란 소리를 들을 쪽수는 채웠다. 그런데 멤버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철철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며[* [[러시아식 유머|록을 닮은]] [[토니토니 쵸파|너구리]](절대 오타가 아니다.), [[프랑키|로봇]]도 있는데 왜 또 [[브룩(원피스)|해골]]까지 동료에 추가하려 드냐고 상디한테 한 소리 들은바 있다.] 특히 [[위대한 항로]] 진입 이후에 들어온 동료는 전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 조로, 나미, 우솝, 상디는 '''일단은'''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지만 쵸파는 록 + 악마의 열매 능력자, 프랑키는 사이보그, 브룩도 해골 - 악마의 열매 능력자다. 그나마 외모로는 멀쩡하게 생긴 인간인 로빈도 악마의 열매 능력자. 사실 나머지 멤버도 조로, 상디는 초인급 싸움을 보여주고 나미는 위대한 항로에서 관측할 수 없는 사이클론을 감으로 예측하며 우솝은 사법의 탑 꼭대기에서 저 멀리 떨어진 다리에 있는 해군들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등 나머지 네명도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조로를 완력에 기교, 상디를 발력에 기교라 친다면 루피는 완력과 발력[* 원래 미친듯이 빠르다기 보다는 몸날림이 가볍다는 수준의 묘사가 많았다. 그런데 체 습득 후에는 실상 스피드탑. 같은 체 사용자가 상대가 아니고서야 속도에서는 질 일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에 내구이다. 기술 자체는 많지만 대부분이 이름만 붙인 평타에 가까워(…) 실상 기술적인 전투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야 할 듯. 가끔 고무의 특성을 이용해 상황을 타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술적인 전투라기 보다는 전투 감각 자체에서 앞서고 있기에 내보이는 임기응변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어인섬편에서 죽은 에이스의 불주먹을 형상화한 '레드호크'란 기술이 나왔기 이걸 어느정도 필살기로 볼 있다. 그런데 이것 역시 한방 필살기라기에는 취급이 영(…) 호디도 이걸 맞았지만 결국은 기간트 피스톨에 뻗었고 도플라밍고는 그냥 거의 신경도 안 쓰는 수준이다. ~~모티브가 하필이면 이글이글 열매라서 그렇다 카더라~~ ~~지진펀치나 보고 따라해보지~~
         사실 이런 전투 스타일은 조로나 상디에 비해 기술 자체의 임팩트가 적어보인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미친 듯한 완력에 더해 패기와 기어 2,3 까지 더해지면서 실상 하자가 없어졌다. 대표적으로 한 방 임팩트가 강한 엘리펀트 건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버프 두개 걸고 쏘는 단한 평타'''이다.(…) 그러나 작중 스케일이 공성포나 마찬가지라 위력이나 연출 면에서 한방 필살기로써 하자가 없다.
         은근히 인맥이 세다.--노골적으로 세다-- 원피스 전체에서 살펴봐도 루피만큼 인맥이 센 인물은 없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스팬담보다도 인맥이 더 세다.(…) 다만 인맥으로 은혜를 입은 일 보다는 자기 쪽에서 은혜를 입혀서 생긴 인맥이 많고, 나머지는 스스로의 인격이나 포부를 보여 거물들에게 인정받아 생긴 인맥이 대부분이다. [[스팬담|장관 아들로 태어난 것 하나만 가지고 낙하산 출세하고 졸개들한테도 뒷담이나 먹고있는 누구씨]]와는 애시당초 비교하기가 힘든 부분. ~~인맥은 써야 인맥이지 쓰지 않으면 그냥 단한 술친구다~~
         루피가 인맥 덕을 봤다고 단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하면 단연 레일리. 무력 면에서나 경험 면에서나 이미 만렙을 찍은 전설급 괴물이지만 2년 후로 접어들기 전에 이미 인정받았다. 여기서 한번 인정받은 것만 가지고 키자루한테 살해당할 뻔하다가 도움받고, 정상결전에서 돌아온 다음에도 레일리 덕분에 2년동안 힘을 기를 제안도 받고, 그걸 동료들한테 전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고, 2년동안 직접적으로 지도까지 받는 등 두고두고 엄청나게 도움을 받는다. 루피가 워낙 오지랖이 넓다보니 사실상 이 정도로 루피가 받기만 한 인물도 얼마 없다. 그런데 정작 레일리에게 인정받는 과정 자체는 고작 하루만에 이루어져서 이렇게 잔뜩 덕 본 것치고는 너무 간략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사실 레일리와의 인연은 비단 레일리 한 명과의 인연이 아니다. 시당초 레일리가 루피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루피의 밀짚모자 때문이고, 즉 어릴때부터 줄곧 같이해오던 샹크스와의 인연에서 이어진 관계이며, 아직 밀짚모자의 사연이 세세하게 드러나지 않았기에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로저까지도 얽힌 길고 긴 인연일 가능성이 크기에 당시의 레일리와 루피의 대화가 둘의 인연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레일리의 동거인인 샤키의 루피에 대한 태도나 언급등을 보면 레일리 또한 루피가 어느정도 주위의 이목을 끄는 간부터 쭉 루피의 행보를 지켜봐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높으신 분들과 친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나라 전체의 위기를 구한 구국영웅에 가까운 위치이다. 유달리 규모가 크고 해군의 감시가 강했던 알라바스타를 제외하면 일반 시민들도 은인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알라바스타의 경우도 루피가 초반에는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하다가 막판에는 판을 크게 벌였기 때문에 당시 현장에서 싸우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이것을 목격한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바로크 워크스의 잔당들도 당연히 파악하고 있을 테고 해군들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등, 알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뒷소문으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국가 지도자나 고위 관직들과의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국가 전체가 강하게 지지한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어인섬같은 경우는 전 국민이 전장을 둘러싸고 구원받는 그 간을 직접 목격하거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밀짚모자 일당 심볼을 어인섬에 대놓고 걸 정도로 직접적인 유대가 더욱 강했다.
         이것은 딱히 도플라밍고처럼 해적이 일개 국가를 소유한다거나 산하에 두는 것은 아니기에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무력을 행사하여 적개심을 사지 않아도 루피 본인 의향만으로 여러 국가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으로, 국가마다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워터세븐 시장이 손수 해적선을 조선해준 일이 있고[* 얘가 해적왕이 되기라도 하는 '''간 불법행위로써 인정'''된다. 그렇게 되기 전이라 해도 루피가 에니에스 로비를 개작살내고 온 직후이니 세계정부에게는 미움받고도 남을 일이다. [[톰(원피스)|톰]]역시도 그저 해적왕의 '''배를 건조했다는 죄로 사형'''당한 상황을 보면 아이스버그도 스승과 똑같이 끝장날 수 있다. 다만 나서서 도와줄 이가 없었던 톰과는 달리 아이스버그는 그를 열렬하게 존경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있다. 물론 밀짚모자 일행들도 아이스 버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만큼 이들이 아이스버그의 사형을 히 묵인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톰의 경우에는 스팬담의 온갖 방해공작이 있었다. 더군다나 워터세븐 마무리에서 아이스버그가 설계하고 있던 '워터세븐 전체를 바다에 띄우는 일'이 성공한다면 그의 위상이 과거의 톰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밀짚모자 일당의 새 해적선 [[사우전드 써니 호]]에 대한 건조는 밀짚모자 일당과 소수의 관계자만이 아는 일인 만큼 죄를 묻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톰의 경우, 본디 조선공은 해군이건 해적이건 일반인이건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한 배를 건조하는 행위 자체는 죄를 묻지 않으나 톰의 경우는 그가 건조한 배가 다름아닌 '''해적왕 골 D. 로저의 기함, 오로 잭슨 호''' 였던만큼, 해적왕과 관계된 이들을 전부 숙청하려는 해군 본부의 표적이 된 것이다. 또한 스팬담의 음모로 [프랑키|커티 프람]이 만들었던 전투함들이 사법선을 습격했을 당시, 오로 잭슨 호의 건조 건은 바다열차 퍼핑톰의 제작으로 사면받는다 쳐도 사법선 습격 건이 그대로 죄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바다열차 건으로 사면받고 [아이스버그|자신의] [프랑키|제자]들을 위해 오로 잭슨 호 건조에 대한 죄를 받아들여 처형된 것이었다.][* 다만 문맥상 중요한 것은 일개 도시의 시장, 세계관 상으로는 국왕하고도 맞먹을 정도의 권력자가 세계정부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르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 주었을 정도로 밀짚모자 일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처벌 받는다 안 받는다 여부가 중요한 점은 아닌 것(…)~~병림픽~~]어인섬의 경우는 언젠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국왕이 못을 박아두는 장면이 나왔고[* 밀짚모자 일당에게 감사인사란 감사인사는 죄다 퍼부은 뒤였기 때문에 단히 엄청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출은 아니다. 어인섬에는 루피에게 붕괴당한다는 플래그도 서 있기 때문에 차후 재등장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알라바스타 왕녀는 비공식적이나마 밀짚모자 일당에 소속되어 있는 등 그 정도가 '''여차하면 특정 세력에게 적대 성향을 가지게 할 여지도 충분히 있기에''' 이미 심상치 않다고 말할 수준을 몇 단계 뛰어넘었다.
         그래도 아무리 산 속에서 살았다곤 하지만 산적들도 신문은 읽기 때문에 평소에 관심을 갖고 읽었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내용들을 가르쳐 줄 때 보이는 반응을 보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그냥 본인이 알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질 않는다. 보통 동경하는 [[샹크스(원피스)|해적]]이 생기면 [[바르톨로메오(원피스)|바르톨로메오]]처럼 그 [[몽키 D. 루피|해적]]의 정보를 신문에서 찾는 게 정상이다. 샤키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나는 점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정보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매스컴 자체에 관심이 없는 듯.[* 아닌게 아니라 현상금이 올라가면 단히 올라갔다고 좋아라 하지만, 매스컴에서 자기를 두고 떠드는 소리소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자기 기사에도 관심이 없는데 남 기사에 관심이 있을까(…)] 그나마 이 해적단 내에서 나미나 로빈 정도가 정기적으로 신문을 읽고 있어 중요한 정보는 귀에 들어오는 편이다. 그런데 나머지 멤버들은 흥미있는 정보다 싶으면 들여다 보기라도 하는데 루피는 웬만해서는 그냥 말로 듣고 놀란다. ~~가만, 얘 진짜 글 읽을 줄 아는거 맞나?~~
         사실 원작이 아닌 애니 오리지널 스토리에서의 장면이지만, 루피가 딱 한 번 책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긴 했었다. 계속 비가 와서 놀지도 못하고 심심해 미칠 지경인 상태에서, 로빈이 읽던 책을 보고는 무슨 책이길래 그렇게 읽냐며 물어보더니 모험기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고 읽어보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동시에 옆에 있던 동료들은 경악) 뭐 결국에는 읽으려는 간 상륙할 섬이 보이는 바람에 곧바로 내던지고 나가버렸지만, 사실상 원작과 애니 오리지널을 통틀어서 루피가 책에 관심을 가진 건 이 때가 유일하다.
          * '''[[제트(원피스)|제트]]''' - 극장판 12기 한정.[* 극장판 11기에는 실력자가 없었다.] 제트와의 3 번째 대결에서 끝내 이겼다. 하지만 3 번째 대결때는 기어를 이용해서 싸워 왔으나 막판에는 단히 무장색 강화만 써서 서로 주먹 교환에 집중했다. 이 때 제트가 신념에 신념으로 답해준다면서 핸디캡으로 오직 팔에다가만 무장색 패기를 두르고 공격을 맞아주었기에 건강과 나이 때문에 한계가 있었기에 이길 수 있던 것.[* 실제로 루피의 무장색 패기를 담은 주먹은 제트의 부하인 슈조의 무장색 패기 + 철괴에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하거나 패기를 담은 주먹에 막히기도 했다. 30년이 넘게 무장색 패기 마스터로 이름을 날렸던 제파의 패기의 힘을 생각하면 제파가 전신에 무장색 패기로 무장을 했다면 루피는 데미지를 줄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이 싸움마저도 루피의 모든 기술을 쏟아부으면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엘리펀트 기술도 쓰지 않았다는 점도 있고 레드 호크(불주먹)같은 기술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있다. 사실 이런 기술은 2년 후에 루피가 등장하면서 쓴 지 얼마 안 되었던 기술이고 게다가 현재 시점으로 아직 2년 동안 수련된 상태의 루피의 기술이 아직 다 나오지 않았다.]
  • 이보림 . . . . 16회 일치
         ||<table width=390><#FFF><table align=left><-4><:>'''위표''' ||
         ||<:><#3F00FF> {{{#fff '''회차'''}}} ||<:><#7FFFD4> {{{#202020 '''위'''}}} ||<:><#FEF127> {{{#202020 '''등락'''}}} ||<:><#FFA500> {{{#202020 '''득표 및 비고'''}}} ||
         ||<:><#202020> {{{#fff '''23~24'''}}} ||<-2><:> 위 미공개 || - ||
         ||<:><#202020> {{{#fff '''17~18'''}}} ||<-2><:> 위 미공개 || - ||
         ||<:><#202020> {{{#fff '''11~12'''}}} ||<-2><:> 위 미공개 ||<|2> 현장 투표[br]'''113표''' ||
         ||<:><#202020> {{{#fff '''1~6'''}}} ||<-2><:> 위 미공개 ||<#202020><:>'''{{{#4DDFE3 ● 4부트}}}''' ||
         ||<#FFF32B> {{{#202020 '''팀'''}}} || 유닛 빨강[br](지금은 청시대) || 유닛 검정[br] || 유닛 노랑[br](10시 45분) ||
         ||<#2D73FF> {{{#FFF '''위A'''}}}[*B 팀내 개인위] || 7 || 4 || 3 ||
         ||<#6348FD> {{{#FFF '''위B'''}}}[*C 부문별 위] || 45 || - || - ||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포지션 배틀]] 중 댄스 부문에 가장 먼저 [[http://tv.naver.com/v/2366699|참가]]해서 43부트를 받았는데, 뒤에 나온 [[박지원(1997)|박지원]]이 48부트를 받아 밀려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RESTART 미션]]에서는 빨강팀에서 'Gee'를 공연했는데, 막내 [[한비(립버블)|한비]]에게 안무를 배우면서 연습에 매진했다. 초보자인지라 안무 중간 점검에서는 김화영에게 주시당했는데, 팀원들의 커버를 잘 받아서 '팀복은 타고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도 많이 늘었다'는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래서 네가 틀리면 안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본 경연 도입부분에서 혼자 틀리는 실수를 범해 무대가 끝난 다음에는 이에 대한 자책감에 눈물을 보였고 이에 [[우희(달샤벳)|우희]]와 팀원들이 첫 실수 이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무대를 마친 것을 칭찬해 주며 격려했다. 현장 투표에서는 113표로 7위를 기록했다. 첫 미션에서 보여 준 [[의진(소나무)|의진]]과의 케미와 성장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방송 종료 후 공개된 중간 개인 위에서는 무려 19계단이나 상승해 25위에 올랐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9~20회|2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유닛G의 대표 비주얼'이라고 소개한 16위를 기록했다. 이에 '고비가 많았었는데 한 단계 위를 높여주신 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1~22회|21~22회]] 방송 종료 후 공개된 중간 개인 위는 8계단 떨어져 24위를 기록,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7~28회|파이널]] 진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 김석훈(탤런트) . . . . 15회 일치
         ||<bgcolor=#3B485A> {{{#FFFFFF '''학력'''}}} ||<(> [[금남리토종대국]] ||
         원래 [[금남리토종대국]](구 가평예전)에 들어가 연극영화를 전공했었다. 본인의 회고에서 금남리토종대국는 실전 연기와 실기를 충실히 단련해 지속적으로 익히는 점에서 최고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에 머물지 않고 연기내면의 깊이와 표현력을 높이는 한 방식인 이론 탐구도 갈구해 [[금남리토종대국]]에 입학한다. 입학 후 연기이론에 정통해 진 것 외에도 철학과 심리 등 인문계통 학문을 여럿 접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했다. 거기다 학문소양도 차근차근히 다져, 자신의 연기로도 폭 넓게 반영 하고 배울 수 있어 뜻 깊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배우에게는 인간에 대한 관심 및 인간심리, 각종 군상들을 다각도의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다지는 일이 필수다. 이런 사안을 본인이 이미 그 중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본격적인 영상영역활동 중 하나인 TV출연은 정세호PD와 국립극단에서의 강력한 권고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국립극단에서는 극단의 인지도 향상과 활력을 위해, 방송국에서는 드라마에서의 국면 전환과 참신한 인재발굴을 위한다는 점이 서로 맞아들어간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명의 극단배우에서 데뷔작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한간에 스타가 되었다.[* 그것도 홍길동이다. 소재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드라마다. 거기에 무명은 둘째치고 TV 경력이 없는 배우가 주연을 맡은 셈이다. 하지만 홍길동은 당시 신인이었던 김석훈이 맡았던 첫 작품임이었지만, 캐릭터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았다. SBS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에 신선한 배우를 캐스팅한 사례가 또 있었으니 바로 [[임꺽정]].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32세 [[정흥채]]는 브라운관 데뷔작을 타이틀롤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당시 최고의 인기배우 [[김희선]] 주연 드라마 [[토마토(드라마)|토마토]]에서 김희선 상대역인 남자 주연배우가 되었으니... 그리고 둘 다 최고의 시청률(50%를 넘겼다!)을 얻으며 전성기를 구가한다.'''단 1년 만에.''' 엄청난 향상이다. 김희선이나 김석훈이나 당시 비주얼 면에서도 최고를 달렸던 시기.[* 지금도 두 배우는 비주얼이 변함없이 최고다.]
         드라마나 사극에서 주연 외에도 내레이션과 공연관련 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궁금한 이야기 Y]]의 MC로도 활동중이며, [[징비록(드라마)|징비록]]의 [[이신(징비록)|이신]]으로 캐스팅되었다. 일례로 들자면 징비록에서 얼마나 연기를 진지하게 했는지, 보고있던 주위의 제작진을 몰입시켜 현장을 다 숙연하게 했다는 전언이다. 카리스마 있고 군율에 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백성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이신을 탁월히 조화하며 잘 표현했다. --그것이 알고싶은 궁금한 이야기 Y--
         연기폭이 넓은 점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연기가 아닌 일(내레이션, DJ)에서도 탐구를 하는 인물인데, 연기인 캐릭터를 탐구해 폭이 넓어진 것은 당연하다. [* 위엄있고 의연한 연기도 소심한 연기도 잘해도 너무 자연스레 잘한다.] 표정연기와 감정표현에서 미묘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폭 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위엄과 지도력이 넘치는 이신 역과 소심한 현대시민 등 다양한 연기영역의 반경을 넘나들고 넓혀가며 호평을 받고 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공연에서 명 연출가 줄리안 마쉬역을 맡았다. 서울공연에서 성황리에 높은 유료점유율을 기록하고 지방회공연을 이어갔다. 본인이 맡은 노래2곡을 배역에 조화롭게 녹여내기 위해, 무려 2달간을 꼬박 연습에만 매달렸다. 공연에서 마쉬의 캐릭터인 카리스마의 경중 조절에서, 상황별로 깊이있는 연기로 표현했다. 공연때나 리허설때나 스태프 및 출연진과 소통하며 배우는 신인의 자세를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 이는 그간 인터뷰에서도 나타냈던, 데뷔당시의 변치 않는 신념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즉 본인이 말한 대로 철저하게 기초부터 다지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임해 많은 호평을 이끌어 냈다. [* 공연관람에 평소 흥미가 없었다고 한 층까지도 신규관람층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전년과 대비해 김석훈은 공연에 참여한 이후로, 신규층의 높은 관람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호평받았다.]
         [[금남리토종대국]]에서 연기 강의도 하는데, 제자인 [[임수향]]은 김석훈의 강의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로 데뷔하고 활동하는 데 있어 부딪히는 각종 난관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해주고 조언을 아낌없이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제자인 [[진세연]]도 같은 언급을 하였다.
         || 2000년 || SBS || [[경찰특공대(드라마)|경찰특공대]] || 이동하 경 ||
         ||<|2>2015년|| KBS1 || [[징비록(드라마)|징비록]] || [[이신(징비록)|이신]] ||
          * 《정만화》 (2005년, TU DMB)
  • 도영(1996) . . . . 15회 일치
         ||<#FF0133><:>'''{{{#white 별명}}}'''||<(> 도코몽[* 도영+코코몽.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도영이 냉장고 나라 코코몽을 닮았다는 말이 있어서], 토끼왕자, 도깽, 당근총각[* [[토끼]]를 닮아서 지어진 별명. 당근가게 망한 애라는 별명도 있다.], 또잉[* ‘도영’을 [[중국어]]로 발음하면 ‘따오윈’인 것을 모른 채 자신을 ‘또잉’이라고 소개해서 지어진 별명.], 우동[* “우리 동영이”의 줄임말. 비슷한 경우로, [[재현(NCT)|재현]]은 “우리 재현이” 즉 ‘우재’라는 별명이 있다.], 토평고 6대천왕[* 아이비클럽 일일카페에서 본인피셜 학교축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멤버들피셜 멤버들앞에선 1대천왕이라고 한다고..형은 잘생긴 외모덕에 토평고4대천왕 출신.--], 미코[* 미성의 코러스. 뮤비뱅크에서 자신의 키워드로 써서], 도룡[* 도영+공룡. 언뜻 공룡도 닮아서], 왕증이[* 왕 큰데 앙증 맞아서(...) 그런데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아하는 별명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왕증이라고 대답했다.], 팩폭남[* 팬들과 밀당하는 밀당남. ~~요정이라는 별명을 극도로 싫어한다~~], 삼청이[* 청 청아 청초(...)], 직진남[* 형인 공명과 똑같이 직진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 TV프로그램에서 형의 가상 와이프에게 직진질문을 한 것을 보여주었다.], 도영글래스[* 유리잔같이 소중히 다뤄야하는 존재로 가장 잘 삐지는 멤버이다. 태용의 전화에 그렇게 저장 되어있다.], 도영왕댜님[* 도영 자신이 정한 별명이다.], 도영임굼님[* SM 할로윈때 임금님 코스프레를 했는데 NCT 나잇나잇에서 임금님보단 유니크하게 임굼님이라고 도영이 바꾸었다.] ||
         루키즈 시절에는 도입부를 많이 맡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Giao5WKndk|Under the Sea]], [[https://www.youtube.com/watch?v=3BCRUewBgcs|Switch]], [[https://www.youtube.com/watch?v=Re-DiAW0grg|Show me your love]] 등 모든 루키즈들이 함께하는 무대나 [[https://www.youtube.com/watch?v=8Oy--IFD_T4|Mirotic]], [[https://www.youtube.com/watch?v=05xMerUATt4|View]] 등 큰 루키즈들끼리의 무대, [[https://www.youtube.com/watch?v=5Q4mKCyZI3k|텐데]], [[https://www.youtube.com/watch?v=pfnm8chwDfM|Who Are You]] 같은 보컬라인의 무대 등 다양한 곡에서 도입부를 많이 맡은 편. 주로 도영-재현 서로 시작하는 곡이 많았다.
         노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 그의 무대를 보면, 자신의 파트가 아님에도 가사를 곱씹는 장면이 종종 포착된다. 특히 [[위닷츄|WITHOUT YOU]] 무대를 보면 흥에 넘쳐하는 그의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https://youtu.be/L53QGmAUjsM|160606 엠카운트다운 스페셜 NCT U - WITHOUT YOU + 일곱 번째 감각 by플로라]] 발매된지 약 2년이 지난 2018년 5월 팬파티에서 또 이 노래를 불렀는데 언제나처럼 너무나 행복하게 부르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후에 라디오에서 그 간이 너무 즐거웠고 2018년 들어 최고로 흥이 올랐던 간이라고 밝히기도.
          * 루키즈 시절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봄[* 봄과 민들레를 좋아한다고.]이라고 했었는데 2018년 기준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로 바뀌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가을하면 단풍이 떠오른다고 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길을 따라 가로수들이 서 있고 그 아래가 주황빛으로 물든 풍경. 여름과 겨울 중에는 겨울이 좋다고 한 것을 보아 선호 계절 위는 가을>봄>겨울>여름인듯 하다.
          * 먹는 그 간보다 먹을 걸 생각하는 간이 더 좋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뭘 먹을지 미리 생각해놓는 타입이라고. 본인이 뭘 먹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점을 멤버들이 신기해하기도 한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1주일 안에 꼭 먹어야 하는 타입이라고.[* 라디오 생방 중에 마라탕이 먹고 싶어져서 중간 광고 타임에 '마라탕 먹을 사람?'이라며 마라탕 팟을 구한 적도 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있었던 팬싸인회에서 마라탕 먹었냐는 질문을 20번 넘게 들었다고.] 하고 싶은 취미 활동으로 맛집 투어를 여러번 이야기하기도 했다. 맛집 블로그도 해보고 싶다고. 다만 도영의 음식 취향이 좀 독특해서 멤버들은 늘 안 맞는다고 하는 것 같다. 쟈니는 도영의 맛집 블로그가 신뢰감은 별로 없을 거 같다고.
          * 핸드폰에 드림 멤버들을 꼬마OO[* 시작은 꼬마 동혁이었다고]라고 저장해두었다. 그런데 마크는 본인이 직접 도영의 핸드폰을 가져가서 이마크 사랑하는[* 사랑하는 이마크인데 아이폰이라 서가 뒤집힌 것]으로 바꿨다고 한다.--정작 마크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제노의 휴대폰에 도영은 '도영이형아'라고 저장되어 있다.
          * 평소에 잡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잡생각이 없어지는 간은 노래할 때. 노래할 때는 다른 때와 달리 온전히 그것만 생각할 수 있어서 노래를 좋아한다고. 비슷한 맥락으로 잘 때, 공부할 때는 노래를 들으면 안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노래를 들을 때는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없고 노래만 들리는 타입이라고.
          * 2018 평창 SM 워크샵에서 직원과 함께하는 듀엣가요제 코너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탔다. 곡명은 [[이지훈(가수)|이지훈]]&[[신혜성]]의 인형.[* 후에 듀엣이 가능한 버전으로 에브리싱에 영상이 올라왔다.]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NCT 전 멤버가 일어나서 환호하는 것을 무대 위에서 보고는 월드컵인 줄 알았다고 한다. 상금은 직원분의 몫과 합쳐서 1000만원이었는데 NCT 18인이 지금까지 전원 모여서 회식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상금으로 회식을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결국 2018년 7월 NCT가 [[엘리트(교복 브랜드)|엘리트]] 교복 모델이 되어 촬영을 위해 18명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그 날 저녁 회식을 쐈다고. --윈윈:멋있어요 도영형 역시 본부장ㅎㅎ-- [* 엔나나에서 밝혀진 바로는 테이블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인당 3~4인분 정도는 먹었다고 한다.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루카스로 지성의 증언에 의하면 약 10인분 정도 먹은 것 같다고.] 또 동 워크샵에서 EDM 파티도 즐기고 온 것 같다. 원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하는 사람인데 조명이 반짝반짝하고 음악이 울려서 그 간 음악에 취해 처음으로 신남을 느꼈다고 밝혔다.
          * 가장 재미있게 녹음한 곡은 Sun&Moon, 가장 어려웠던 곡은 Without You. 그런데 본인이 참여한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 또한 Without U, 부를 때 정말 행복하다고 한다. Chain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100. Regular-Irregular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지금 우리. 돌려 말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수한 느낌의 가사라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NCT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오프닝이나 엔딩 곡으로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곡은 태용이 작곡에 참여한 곡이기도 한데 처음 들었을 때는 태용이 형이 만든지 모르고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드림의 곡 중 좋아하는 곡은 마지막 첫사랑, We Young[* 가장 해보고 싶은 드림의 곡도 We Young], My page[* 도입부의 런쥔이의 목소리가 정말 좋다고 언급하였다.]
          * 쇼챔피언, 인기가요 MC 경험 때문인지 하차 이후에도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멤버들 사이에서는 장난식으로 '인기가요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본인이 스스로 아들이 아니라 (전)아들이라고 정정하자 제작진이 아들 맞다고 이야기하였다. 제작진이 인정한 아들답게 유독 인기가요 무대에서 도영의 클로즈업이 많은 편이며 도영에 대한 인기가요의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는 무대가 2018년 2월 25일 boss 무대. 노래가 시작하고 초반 30초 가량이 계속 흑백으로 처리되다가 도영의 파트가 시작되는 간 컬러로 전환되는 효과를 보여준다.
          *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서 숙소에 있을 때는 침대에 누워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본 태용은 집이를 넘어선 침대이의 단계라고 이야기했다.] 전 룸메인 [[해찬]]에게 불을 꺼달라는 등 자잘한 부탁들을 자주 해서 해찬이가 피곤해했다고. 다만 현 룸메인 [[마크(NCT)|마크]]에게는 잘 시키지 않는 것 같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주로 하는 것은 드라마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649s7NX4wfM|추천 드라마]]로는 [[비밀의 숲]], [[품위있는 그녀]],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등을 이야기하였다. 하루 종일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서 멤버들은 제발 집에 있으면 있는 티를 좀 내라고 말한다.
          *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서 생긴 각종 어록들이 있다. '자신을 사물에 비유한다면 베개', '걷는건 취향이 아니다', '가지고 싶은 초능력은 간이동. 그 이유는 집에 들어갈 때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은 방에서 안나오고 에어컨 틀기', '밥과 잠이 없으면 인생이 없죠'. 등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15회 일치
         이야기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온다.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은 시작이 아니였다. 돌이킬 수 없는 간이었을 뿐이다.
         청소부들이 도망치기 위해 엘레베이터 문을 연 간, 그 안에서 [[모나 색스]]가 나타나 청소부들을 처리한다. 맥스는 죽은 줄 알았던 모나를 보고 놀라지만, 모나는 이런 식으로 만나는건 좋지 않다[* [[맥스 페인]]에서 니콜 혼에게 고용되어 나타났을 때 같은 대사를 쳤다]고만 말하고 사라진다.
         >나는 평소대로 업무로써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모나를 보여준 간 모든 것이 변했다.
         계단 끝의 문 너머에는 검시실이 있었다. 모나 색스가 나타나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하는 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블라디미르 렘]]이 그의 애인에게 남긴 메시지였다. 간 사이렌이 울린다. 윈터슨과 모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맥스는 모나가 애니 핀이 있던 창고에 온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간, 맥스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뉴욕 경찰을 보고 손을 든다. 그 자리에서 모나를 체포하고 있던 윈터슨 형사는 맥스에게 뭘하고 있었냐고 묻는다. 재차 묻는 윈터슨을 보며 맥스는 고개를 떨군다.
         맥스는 건물 안을 찰하던 청소부들을 죽이며 건물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TV에서는 경찰서에서 일어난 폭발을 틈타 구속되어 있던 [[모나 색스]]가 탈출하였고, 경찰은 모나와 그녀의 탈출을 도와준 형사 맥스 페인에 대한 수색을 벌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맥스는 한 방에서 엄청난 양의 불법 총기를 발견했다. 그걸 본 맥스는 청소부들이 전문가들일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구덩이의 법칙이다. 밖으로 기어나오기 위해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해도 한간에 떨어질 수 있다.
         어느 간, 병원 복도는 정신병원으로 바뀐다. 철장 안에는 또다른 맥스들이 갇혀 있었다. 어떤 맥스는 자신이 아내와 아기를 죽여서 장미 덤불 밑에 묻었다며 울부짖고 있었다. 어떤 맥스는 이런 일을 저지른 놈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주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맥스는 자기가 경찰인지, 환자인지, 갱단원인지, 살인자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맥스는 모나의 신음 소리를 향해 달려갔다.
         갑자기, 모나의 웃음 소리가 들리며 맥스의 주변이 바뀐다. 맥스는 불타는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다. 경찰들은 모두 죽어있었다. TV에서는 맥스가 윈터슨을 쏜 간이 방송되고 있었다. 맥스가 윗층으로 올라갔을 때, 경찰서 전체가 불타고 있었다. [[짐 브라부라]]는 쓰러져 피를 흘리며 맥스에게 경찰 내에 있는 배신자를 찾아내 달라고 부탁한다.
         그 간, 시간은 다시 저택에 있던 간으로 넘어간다.
         >당신은 일구어낸 모든 것이 무너지는 간에 처하게 된다.
         맥스가 모나를 멈춰세우려고 한 간, 모나가 맥스의 머리를 권총으로 후려쳐 쓰러뜨린다. 모나는 맥스에게 총을 겨누고 자신의 일을 설명한다. 이 난장판을 정리하는 것. 맥스도 그 정리 대상 중 하나였던거다. 맥스는 총을 버리라는 모나의 말에 말없이 총을 버린다. 이를 본 모나는 자기 뒤에 있는 감시카메라를 흘깃 보더니 자기는 맥스를 죽일 수 없다며 총을 버린다.
         블라드는 맥스 역시 죽이려고 했지만, 그 간 우든이 나타나 블라드를 제지한다. 그는 맥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후, 블라드에게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 홍국영 . . . . 15회 일치
          | 친인척 = [[홍낙]](백부)<br/> [[경주 김씨]] 부인(백모)<br/>[[원빈 홍씨]](누이동생)<br/> [[상계군|상계군 이담]](양외조카)
         서울 풍산 홍씨들의 비조격인 홍이상의 8대손, 선조의 적녀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6대손으로서, 역시 영안위 후손인 [[혜경궁 홍씨]]와 11촌의 동문이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그의 아버지 [[홍낙춘]]에 대해 "광증이 있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개 홍낙춘이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인물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조부 홍창한은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이고 백부인 [[홍낙]]은 대과에 급제했고 숙부인 홍낙빈도 진사였으나, 홍낙춘은 원빈이 후궁이 되기 전에는 관직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홍국영은 도성의 경화사족 집단의 일부로서 그의 고조 홍중해는 인현왕후의 고종사촌이었고, 당대에도 [[정왕후 (영조)|정왕후]] 김씨<ref>홍국영의 대고모가 정왕후의 6촌 김면주의 생모(김한희 처)였다.</ref> 외 이익보, 이정보, 홍계능, 조중회, 김이도 등과도 인척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이 예쁘장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이며 시문을 잘 짓고 창을 부르기 좋아하였다 한다.
         군문의 장임으로는 정조 즉위년 11월 수어사에 임명되었던 것을 시작으로 잠시 총융사를 거쳐 [[1777년]] 5월에는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대개 금위대장과 훈련대장을 돌아가며 맡았다.(그러나 훈척만이 맡을 수 있는 호위대장에 임명된 적은 없다.) [[1777년]](정조1년) 7월, 전술한 [[홍상간]], [[홍계능]]의 궁궐자객침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사건 연루자에 호위청의 무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이유로 호위청을 축소하였는데 <ref> 이 때문에 호위청은 3청에서 1청으로, 인원은 1000명에서 350명 가량으로 축소되었다. </ref>, 대신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하고 홍국영을 그 대장에 임명 하였다. 정조는 숙위대장에게 특별히 대장패와 전령패를 차게 하며, 안으로 위장, 부장, 금군과 도감의 군병, 각문의 수문장ㆍ국별장과 밖으로 궁궐 담장 바깥에 삼군영의 입직하는 라까지 매일 숙위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런 보직들은 대개 겸직이었으며 그의 대표적인 보직은 도승지와 훈련대장/숙위대장, 약원부제조였다.<ref>홍국영은 (원빈 사후 2개월 가량을 제외한) 집권 기간 대부분 동안 약원부제조직을 맡았다. 이는 임금의 최측근인 그가 임금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하루동안 임금과의 공식적인 면대를 2회 이상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도 해석된다.</ref> 그외 각종 제거 역시 다수 겸직하였으며 잡류 제거직으로 인한 격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록도 종종 보인다.
         1778년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이 된다. 이때 원빈 홍씨의 지위는 유례 없는 것이었다. 후일 이 모든 이례적인 처사는 모두 홍국영의 세도로 인해 일어난 일이란 식으로 설명되게 된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홍국영이 자교(이 경우 후궁 간택령)를 내리게 했다"라고 쓰고 있다. 《한중록》에서는 이어 원빈의 입궁에 대해, 홍국영이 세도를 탐내어 제 누이를 들여보낸 것으로 자신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란 식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정조)어제인숙원빈행장》(정조가 원빈 사후 작성한 원빈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에서는 혜경궁 자신의 진술과는 반대로 혜경궁이 원빈에 대해 각별한 정의(情誼)를 나타냈다고 한다.<ref>[http://yoksa.aks.ac.kr/jsp/aa/HajeView.jsp?aa10up=kh2_je_a_vsu_20664_000 어제인숙원빈행장(御製仁淑元嬪行狀)]</ref> 《조실록 혜경궁 행장(김조 저)》에서 혜경궁은 원빈에 대한 각별한 정의를 지녔던 혐의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 강조한 대목이 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wa_11601021_002 조실록 19권, 조 16년 1월 21일 신축 2번째기사]</ref> 홍국영 일가의 인물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고전소설 《숙창궁입궐일기》는 원빈의 입궐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혜경궁은 효의왕후 쪽인 인상을 준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1844|제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창궁입궐일기|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元嬪 洪氏)는 가례를 올린 지 1년이 되지 않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한중록》에는 홍국영이 원빈의 죽음을 독살로 여기고 그 배후로 [[효의왕후]]를 의심하여 왕비의 나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는 내용을 전하며 그 죄를 성토하는 대목이 있다<ref>조실록에서 같은 건으로 탄핵당하는 대상자는 [[정민시]]이다.</ref>.
         정조는 홍국영을 퇴진시키고 숙위소를 혁파시켰으나 동시에 그의 백부 [[홍낙]](洪樂純)을 정승에 임명했다. 따라서 한동안 그의 세력은 조정에 계속 건재했으며 그 자신도 계속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에 홍국영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반대로 조정에서 축출 당한다. [[1780년]] 1월에는 홍낙이 파직과 문외출송되고, 다음달 26일 김종수의 탄핵상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다. 김종수의 탄핵 상소를 시작으로 하여 홍국영에 관한 탄핵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중록》은 김종수의 상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원도]] [[횡성]], 그 다음에는 [[강릉]]으로 방출되었던 홍국영은 결국 이듬해인 [[1781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 《부패한 측근의 단호한 척결 - 정조》(2002, [[EBS]], 배역: [[차철]])
         후임자=[[김조]]|
  • 김상조 . . . . 14회 일치
         오랫동안 [[삼성그룹]]의 [[환출자]]식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문제제기를 해왔던 사람이다. 이에 대한 저서도 여러 편 출간했다. 또 [[권영길]] 후보의 '[[국민승리21]] 정책자문단'의 총무국장으로 있던 적이 있고, 2004년 2월에는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지원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삼성의 주주총회에 참여연대 소속으로 소액주주로 참석했는데 삼성 경호원들에게 멱살을 잡혀 퇴장당하던 영상이 발굴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VH4_myrbBXg|#]]
         훗날 [[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영수 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에는 특검에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는 조언을 하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과정 등에 대해 특검에 '''족집게 강의'''를 함으로써, 제2차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7/2017051702090.html|#]] 2016년 12월에 열린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상당한 손해를 봤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http://v.media.daum.net/v/20170315111345502|#]]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최실 국정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최실 특검]]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조금씩 그 이름을 인식시켰다.]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아주 오랫동안 재벌개혁 시민운동을 계속한 인물로 한국 재벌과 관련해서 학문적인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고 언론 기고 또한 활발했으며 독자적인 저술은 한 권밖에[* 제목은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을 읽어보면 통계적 근거와 [[경제학]]적 통찰을 근거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담백하게 논하는 대중 서적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인사라고 하면 거리를 둘 법한 주장도 많이 보인다.] 없는 듯하지만 [[알라딘]]에서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1%e8%bb%f3%c1%b6&x=0&y=0&|김상조]]를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경제, 재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저술에 저자로 참여해왔다. 공정위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이전 소장으로 적을 두고 있던 경제개혁연대에서 수많은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취임 이후에 각종 대기업의 부정한 내부거래 감사와 프랜차이즈 갑질 조사와 징벌적 손해보상 도입 등 정력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국민적 여론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특히, 그가 오랜 기간 강력하게 비판해온 재벌의 재벌그룹의 [[환출자]] 개선에 적극 힘 쓰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 취임 1년 사이 대기업집단(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환출자 고리가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119&aid=0002254122&sid1=001|*]]
         공정위에 따르면 17년 5월 기준 3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규모 10조 원 이상)이 보유한 93개의 환출자 고리가 18년 4월 확인 결과 10개로 줄어들었다. 자산규모 5조 원 이상 10조 원 미만인 공시대상기업집단도 17년 9월 1일 지정 당시 26개 집단이 보유한 189개의 환출자 고리가 18년 4월 31개로 축소됐다. 이를 종합하면 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57개 대기집집단의 환출자 고리가 282개에서 41개로, 약 85%가 해소된 셈이다.
         해당 기간 동안 [[롯데]]가 67개, [[농협]]이 2개, [[현대백화점]]이 3개, [[대림]]이 1개 고리를 해소해 기업집단 내 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버렸으며 [[영풍그룹|영풍]]도 6개 고리를 없앴다. [[삼성]](3개)과 [[현대중공업]](1개)도 합병, 분할 등의 사유로 신규 형성·강화된 환출자 고리를 공정거래법상 유예기간 내에 해소했다.
         공정위가 ‘칼’을 내 빼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집단이 자발적으로 기존 환출자까지 해소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재벌들의 불합리한 소유·지배구조를 자발적으로 개선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이른바 ‘김상조 효과’가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칼집만 들썩거렸을 뿐인데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바짝 엎드리고 있는 모양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4086135|*]]
         >삼성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을 회유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한 유일한 주체다. 그 힘을 오남용하는 삼성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다.[* [[최실 특검]]이 [[박근혜-최실 게이트/재판/이재용·박상진·최지성·장충기·황성수|공판]]에서 이 말을 인용했다.]
  • 문무왕 . . . . 14회 일치
         2년([[662년]]) 봄 정월에 당은 문무왕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 [[신라]]왕으로 책봉했다. 2월에는 [[탐라국]] 임금 도동음률(徒冬音律)이 항복해 와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2"/> 이때 [[신라]]에서는 [[백제]]에 주둔하고 [[고구려]]를 치는 당군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식량을 보내고 옷을 보내고 하느라 창고에 쌓아둔 양식은 고갈되고, 농사 때를 망쳐 백성들이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반대로 [[웅진도독부]]에 있는 당군의 군량 창고에는 쌀이 남아돌다 못해 썩어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에서는 그 뒤로도 수시로 [[신라]]에 군량을 요구하였다. 3월에 내린 대사면령은 이러한 가운데서 오는 민심이반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된다.{{출처|날짜=2018-06-27}} 7월 왕은 왕제(王弟) [[김인문|인문]](仁門)을 사신으로 당에 보내는 한편, [[웅진도독부]]의 당군은 지라성(支羅城)과 윤성(尹城), 대산(大山)과 사정(沙井)의 [[백제]] 목책을 깨뜨리고 [[신라]]군과 합세해 진현성(眞峴城)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신라]]의 군량수송로를 열었다. 8월<ref group="주">《[[동사강목]]》에는 7월로 표기됨</ref>에는 [[김흠|흠]] 등 19장군을 시켜 내사지성(內斯只城)의 [[백제]] 부흥군을 깨뜨렸고, 대당(大幢) 총관(摠管) 진주(眞珠)와 남천주(南川州) 총관 진흠(眞欽)이 병을 핑계로 한가로이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를 물어 처형하고 그 일족까지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62"/>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흠]]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 '''대당총관(大幢摠管)''' || 각간 김인문·김흠·김천존·문충(文忠), 잡찬 진복(眞福), 파진찬 김지경(金智鏡), 대아찬 김양도(金良圖)·김개원(金愷元)·김흠돌(金欽突)
         | '''경정총관(京停摠管)''' || 이찬 진(陳純)<ref group="주">진춘(陳春)이라고도 한다.</ref>, 화랑 [[죽지]]
         | '''하서주행군총관(河西州行軍摠管)''' || 파진찬 선광(宣光), 아찬 장(長順)·장(純長)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상훈">이호영·이상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백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상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백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백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백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백제의 남은 세력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백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반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백제령을 모두 백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백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 외숙부 : [[김유신]](金庾信, [[595년]]~[[673년]]), [[김흠]](金欽純, 생몰년 미상)
         * 한국 해군의 [[DDH-976 문무대왕]]함은 [[충무공이신급 구축함]]의 제2번 함이다.
  • 이기택 . . . . 14회 일치
         ||<width=30%><:> 초대 [br] [[박일(1927)|박일]]·[[장을병]] ||<width=5%><:> → ||<width=30%><:> 제2대 [br] ''' 이기택 ''' ||<width=5%><:> → ||<width=30%><:> 제3대 [br] [[조(1928)|조]] ||
         ||<width=30%><:> 초대~제2대 [br] [[조(1928)|조]] ||<width=5%><:> → ||<width=30%><:> 권한대행 [br] ''' 이기택 ''' ||<width=5%><:> → ||<width=30%><:> 제3대 [br] [[이회창]]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로 출마할까 말까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못 이기는 척(?) 전국구 상위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다. 반면에 [[노무현]]과 [[김정길(1945)|김정길]]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부산에 출마해서 [[지역감정]]의 역풍 속에서도 처절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노무현은 4번, 김정길은 총 7번을 떨어졌으나, 김정길은 장관이 되었고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면서 죽을둥 살둥 싸우는데, 정작 격전지에 출마해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당대표는 유유자적 전국구 상위 번으로 편하게 금뱃지를 달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지역구 당선가능성을 보고 간을 보다가 지역감정으로 안 될 거 같으니 전국구로 도망간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실제 당대표이자 영남권에서 가장 정치경력도 길고 지명도가 높은 이기택이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면서 민주당의 영남권 선거전략이 제대로 꼬인 건 사실이다. 결국 노무현, 김정길과 몇몇 정치지망생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모조리 낙선하였다. ~~뭘하던 당시 부산에서 김영삼을 넘기는 힘들었겠지만...~~]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정치적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김대중과 동교동계 의원들이 떠나면서 민주당의 거대한 당사와 당재정을 그에게 물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어쨌든 그 후에도 시민운동가들이 창당한 개혁신당을 흡수하여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을 창당한 뒤 [[조(1928)|조]], [[노무현]], [[이부영]], [[이철]], [[김원기(1937)|김원기]], [[제정구]], [[김정길(1945)|김정길]], [[홍성우(1938)|홍성우]], [[서경석(목사)|서경석]], [[강창성]] 등 쟁쟁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긴 하였으나, 문제는 이들이 이기택 말을 듣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모든 정치권이나 재야민주화운동, 시민운동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평범한 국회의원급은 뛰어넘는 지명도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당시 통합민주당은 스타군단으로 불렸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게 마련.]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정계은퇴를 권유하였으나, 놀랍게도 통합민주당을 [[신한국당]]과 합당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김영삼의 밑에 있다가, 김대중과 손을 잡았는데, 그 뒤에는 이회창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때 조, 이철과 제정구는 이기택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갔다. 그러나 노무현, 김정길, 김원기는 이기택과 절연하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로 합류하였다.] 이기택으로서는 DJ, YS, JP 3김을 중심으로한 정치에 염증이 느끼고 있었고, [[1996년]] 김대중의 정계 복귀 뒤에 김대중과 갈등이 크게 겪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통합민주당이 와해당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3김 정치 청산을 내세운 이회창과 손을 잡은 것은 당연한 수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을 창당했으나, 결국 1997년 12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여당해보나 했더니 또 야당됐네~~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독선에 반발하여 [[김윤환]], [[이수성(정치인)|이수성]], [[신상우]], [[조(1928)|조]] 등과 함께 탈당하여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부산광역시 [[연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권태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기택뿐만 아니라 김윤환, 신상우, 조, [[김상현(1935)|김상현]], [[김동주(정치인)|김동주]] 등이 모두 낙선하였으며, 지역구에서 홀로 당선된 [[한승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민국당 인사들이 결국 낙선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계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안습]]인 인물이 재야에 있다가 뜬금없이 김윤환 등과 손을 잡은 장기표. 어쨌든 이때 이기택은 [[망했어요]].-- ~~아무 실익도 없이 통합민주당만 갖다바친 꼴~~ ~~통합민주당을 그냥 지키고만 있었어도 이런 꼴은 보지 않았을 것을~~
  • 이유리(배우) . . . . 14회 일치
         학교 4 시즌 후반부였던 [[2002년]] 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 캐스팅되어 허약한 [[종(대한제국)|종]]의 첫 번째 아내인 [[명효황후]] 역할을 맡았다. 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반항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기울어가는 왕조의 가련한 세자빈으로 분해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였다. 여담으로 《명성황후》에 캐스팅됐던 시점이 《학교 4》가 막 끝나던 시점이라 이유리뿐만 아니라 같이 나왔던 몇몇 연기자도 캐스팅이 됐다. 그 중 나름 커플 연기를 펼쳤던 김유민 역의 [[백승우]]가 《명성황후》에서 종으로 캐스팅 되어 연달아 커플 연기를 했다.
         이 후 KBS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왔다. 사실 《학교 4》 출연 배우들은 KBS와 2년 전속계약을 맺어 이유리는 이후로도 계속 출연했는데 그것이 거의 공무원 수준이었다. 또 이 시점에는 《학교 4》 출신이었던 [[공유(배우)|공유]], [[임수정]] 등이 굵직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며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에 비해 자신은 조연에 머무르는 처지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줌마1, 학생1, 학생2가 아닌 내 역할의 이름이 있다는 것, 단역 연기자들에겐 그 마저도 꿈이다. 내게 주어진 것만을 더 항상 감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매 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10년 SBS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 타이틀롤 '지영'역을 맡아 기존의 지고지한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쾌활한 역으로 또 한번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줌마가 여러 어려움과 역경을 거쳐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고 사랑도 잡는다는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공식을 따른 드라마. 이유리는 극 중 톡톡튀고 당찬 연기로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드라마는 아침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지키며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영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반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식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영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 || [[명효황후]] 민씨 || ||
         || 2010년 || SBS || 당돌한 여자 || 지영 || ||
         || [[완벽한 아내]] || 이정/이은경/이유리 ||<|2> 특별출연 ||
          * 2006년 인기리에 연재된 박소희 작가의 동명의 정만화가 드라마 《[[궁(드라마)|궁]]》으로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으로부터 주인공 '신채경'역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준수한 연기력과 만화 원작의 신채경 모습과도 싱크로율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여주인공으로는 [[윤은혜]]가 낙점됐다. 이유리는 인터뷰에서 제의를 받았으나 연기자로서 차근차근 한 발을 내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다만 '《[[궁(드라마)|궁]]》의 전작이 바로 이유리가 출연한 《영재의 전성시대》였는데 바로 다음 작품을 출연하는게 말이 안된다.', '제작사는 이유리에게 캐스팅 제의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등을 근거로 들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으나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이유리는 주인공도 아니였을 뿐더러 전작을 했다고 다음 작품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견에 불과하고 제작사에서 캐스팅 제의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 또한 이유리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캐스팅 제의 사실을 분명히 언급했던것과는 달리 출처가 불분명 하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 토리코/393화 . . . . 14회 일치
          * 지구의 위기는 구해지지만 이로서 우주적 환에 지장이 생기는데 아카시아는 네오 안에서 터져나오는 무수한 식재로 그것을 대신한다.
          * 최후를 맞이하는 아카시아. 어찌된 일인지 최후의 일격을 먹인 토리코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죽어가던 중에도 아카시아는 어째서 그에게 눈물을 흘리냐고 묻는데 토리코는 이제 모든게 끝났고 더는 화낼 필요도 없어졌으니 네오도 아카시아도 "그 아름다운 식욕"을 풀어주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아카시아의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그는 죽어가면서 말한다. 본래 식욕 그 자체엔 선도 악도 없으며 그 자체로 무엇보다 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네오가 토리코의 분노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며 자신은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토리코의 분노를 끌어내야 했다고 밝힌다.
          *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카시아는 엄청난 발견을 알린다. "네오가 싫어하는 맛"에 대한 것. 아카시아는 이것이야 말로 네오 안의 동포를 구할 단서라고 말한다. 페어는 또 그딴게 집착하냐고 쏘아붙이지만 아카시아는 확고한 자세로 "그럴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식욕의 에너지가 무한한 것은 만고의 법칙이고 구르메 세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건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에너지의 절대량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며 끝없는 환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네오에 먹힌 식혼들 또한 사라진게 아니라 어딘가에 갇혀 있는게 맞다는 것.
          * 그 간 의식이 사라지던 것이 멈춘다. 그것은 미도라의 노킹이었다. 아카시아는 마지막 공방에서 미도라가 노킹을 걸었음을 짐작한다. 그가 언제 자신의 진의를 알아챘냐고 묻자 미도라는 죠아를 쓰러뜨렸을 때라고 답한다. 아카시아는 죠아의 최후의 간에 노킹을 건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건 "결정타"였던 것이다. 아무리 분노를 끌어내려고 했다지만 플로제의 몸을 마지막으로 부수는게 미도라가 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 지구가 붕괴하지 않는다는건 새로운 식재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주적 환이 끝나고 새로운 풀코스도 생성되지 않는다. 토리코는 그렇다고 지구를 붕괴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하는데, 듣고 있던 아카시아가 지구의 맛은 여기까지지만 지구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레벨의 맛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바로 네오 안에. 네오 안에는 그동안 먹어온 음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페어는 그거야 말로 해결책이라고 하고 토리코 안의 청귀도 이 간만을 기다려왔다고 환호한다.
          * 마침내 최후의 간이 다가온 아카시아. 내부에서 식재들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카시아는 자신의 계획이 완수되었다고 기뻐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린다며 토리코에게 부탁한다. 언젠가 부활할 네오를 부탁한다는 것. 하지만 단히 파괴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외토리였던 그 사랑스러운 식욕을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토리코는 흔쾌히 수락하고 아카시아는 그에게 감사하며 작별인사를 한다.
         페어의 선역화와 함께 어느 정도 가능성이 생겼던 아카시아의 선역화가 기어이 완성. 사실 아카시아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위악하고 있을 거라는 설은 꾸준히 있었지만 지로를 죽이던 시점에서 완전히 폐기되다시피했다. 아카시아의 계획은 네오 안에 갇힌 식혼들을 구하고 블루 니트로들이 잃어버린 동포와 식재들을 복구한다는 것. 우주적인 입장에서 보면 네오에게서 동맥경화 일으키듯 막혀버린 맛의 환이 재개되는 것이니 블루 니트로들이 세운 봉인 계획에 비해 훨씬 이로운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선역화를 염두에 뒀는지 의심스러운 구석도 많은데 플로제가 아카시아의 계획을 막으려 했던 점, 그리고 그 결과가 죠아의 탄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에피소드에서 히 아카시아에게 찬동하는 모습과 모된다. 페어도 아카시아가 돈슬라임을 잡아먹는 시점에서 나타나 무언가를 하려고 망설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싶어 관두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봐도 금관두 사용을 고민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또 페어는 센터를 먹은 아카시아를 네오에게 먹여 완전히 부활시킨 후 봉인하려 들었고 이게 원래 합의됐던 계획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카시아에게 설득 당해 다른 블루 니트로들에겐 비밀로 새로운 작전을 짠 걸로 묘사된다. 이 또한 모된 묘사다.
  • 현석문 . . . . 14회 일치
         |직업 = 교자
         '''현석문'''(玄錫文, [[1797년]] ~ [[1846년]] [[9월 19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가롤로'''(Carolus)이다.
         그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신부]]가 [[교]]하고 사흘 뒤에 교하였다. 현석문은 [[앵베르]] [[주교]]를 [[조선]]에 데려오고 [[샤스탕]] 신부를 도와 여러 곳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함께 한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현석문은 [[1797년]]에 [[한양]]에서 [[중인]] [[신분]]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5살 되던 [[1801년]]에 [[신유박해]]로 [[교]]하였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1839년]]에 [[기해박해]]로 옥사하였다. 그의 누나 [[현경련]] 또한 기해박해로 교하였다.
         {{인용문2|그는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는 고덕과 온화하고 친절하며 박한 성품을 지녔다.}}
         현석문은 교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독실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조선 헌종|헌종]] 2년([[1836년]])에 [[의주]]로 가서 [[앵베르]] 주교를 [[조선]]으로 맞아들였다. [[1837년]]에 [[샤스탕]] [[사제|신부]]가 입국하자, 현석문은 그의 [[복사 (기독교)|복사]]가 되어 신부와 함께 [[선교]] 여행에 동참하는 한편, 교인들의 신앙지도에 힘썼다.
         [[앵베르]] [[주교]]와 [[선교사]]들이 체포될 때, 현석문은 [[한양]]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주교는 [[교]] 전에 [[조선]]의 [[교회]]를 맡겼다. 이 사실은 주교와 교우들이 그를 얼마나 크게 존경했는지를 보여준다. 현석문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이재영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는 새로 입교한 교우들을 격려했고 여러 [[선교]]지들을 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을 모아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뒷바라지 하였다.
         그는 아내와 누이가 교한 후에 《[[조선]] [[천주교]] [[교자]] 열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기해박해]]가 끝나자, 그것의 편찬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상하이]]까지 피해다니기도 하면서 살아남은 [[최희원]]과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의 [[복사 (기독교)|복사]] [[최형 베드로]], [[이승훈 베드로]]의 손자 [[이재의 토마스]] 등의 협조를 받아 [[교]] 자료를 모아서 확인 및 보충 정리하여 3년 만에 단편의 《[[기해일기]]》를 완성하였고 교우들에게 배포하였다.
         === 교 ===
         현석문은 [[1846년]] [[9월 19일]]에 [[한양]]의 [[새남터]]에서 [[참수형]]을 받았고 [[군문효수]]되었다. [[김 카타리나]]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평온하고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그가 [[교]]하던 때의 나이는 52세였다.
  • 이중환(법조인) . . . . 13회 일치
         [include(틀:프로젝트 문서, 프로젝트=박근혜-최실 게이트 프로젝트)]
         [Include(틀:박근혜-최실 게이트)]
         ||<tablewidth=100%><-6><#3F51B5> [[박근혜-최실 게이트|{{{#white {{{+1 박근혜-최실 게이트}}}}}}]] {{{#white {{{+1 관련 인물 및 단체}}}}}} ||
         ||<#5c6bc0><-2> [[최실|{{{#white __최실__}}}]] {{{#white 측근 / 변호인}}} ||<-3> ^^故^^[[최태민]] · ^^故^^[[임선이]] · [[최득]] · __[[정윤회]]__ · __[[정유라]]__ · __[[장시호]]__ [br] ''[[최재석]]'' · ^^故^^''[[조제]]'' · __''[[고영태]]''__ · __[[차은택]]__ · [[윤영식]] / [[이경재(법조인)|이경재]] ||
         ||<#ddd><-2>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 · [[삼성그룹/경영승계 문제|삼성그룹]] · 승마협회 관련 || __[[문형표]]__ · [[홍완선]][br]__[[이재용]]__ · [[김재열]][br][[최지성]] · [[장충기]] · [[박상진(기업인)|박상진]] ||<#ddd> [[박근혜-최실 게이트/의료 관련 논란|의료 논란]] || __[[김영재]]__ · [[김상만(의사)|김상만]] · [[주사 아줌마]][br] [[이선우(군인)|이선우]] · [[조여옥]] · [[신보라(군인)|신보라]] · [[이슬비(군인)|이슬비]][br][[이임]] · [[서창석]] · [[박채윤]] ||
         ||<#ddd><-2> 정치인 || __[[이완영]]__ · [[이정현(정치인)|이정현]] · [[김진태(정치인)|김진태]] · [[이만희(정치인)|이만희]] ||<#ddd> 기타 || ^^故^^[[이상달]] · ''[[김해호]]'' · ''[[조한규]]'' · [[정규재]] [br] [[최천]] · [[정우식(배우)|정우식]] · [[신주평]][br][[조의연]] · [[정원(승려)|정원]] · [[이영복]] · [[린다김]] ||
         ||<#5c6bc0><-2> [[박근혜-최실 게이트/특검|{{{#white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3> [[박영수(법조인)|박영수]] · [[이규철]] · [[박충근]] · [[이용복(법조인)|이용복]] · [[양재식]] · [[윤석열]] · [[어방용]] ||
         [[분류:박근혜-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 [[분류:1959년 출생]]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현진건 . . . . 13회 일치
         | 배우자 = 이득(李順得)
         국권 피탈 뒤인 [[1915년]], 16세의 나이로 당시 경주 향리의 부호인 [[진사]] 이길우(李吉宇)의 딸 득(順得)과 혼인하여 [[대구부]] 수정(竪町) 255번지(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있던 처가에서 신혼생활을 하였다. 그 해 [[11월]]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2학년 재학 중인 이듬해 [[7월]]에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正則英語學敎)에 입학하였다.
         [[1922년]] 9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ref>1년에 걸치는 「조선일보」 근무에 대해서 현진건은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초기 「조선일보」가 보여준 노골적인 친일신문 표방 태도, 친일 색채가 농후한 발행 주체들이나 수시로 뒤바뀌는 발행인으로 인해 현진건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곤란했던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친일 분위기에 대해 현진건의 문우였던 박종화는 "월남 이상재 선생 사장과 신석우 부사장, 민세 안재홍 편집국장 등이 취임하기 전의 초기 「조선일보」에는 양심있는 사람으로는 오래 거접(居接)할 것이 아니었다"(박종화, 「빙허 현진건 군(君)」, 『신천지』 1954.10. p.139~140)고 하였으며,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에는 「조선일보」를 빗대어 아예 "썩은내, 더러운내, 곰팡내, 음탕한내가 감도는 분위기", "도야지(돼지) 우리"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35~13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최남선]](崔南善)이 만든 동명사(東明社)에 들어간다. 그 다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간 당시부터 민족적 색채가 농후했고, 역사지향적 성격을 추구하며 「조선통속역사강화」(최남선 저) · 「조선과거의 혁명운동」(문일평 저) 등 유독 국학(國學) 관련 논문이 자주 연재되었던 「동명」에서의 경험은 훗날 「고도례 경주」, 「단군성적 례」 등의 민족의식이 농후한 작품을 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리고 11월 13일에 그의 첫 창작집 『타락자』가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간된다.
         [[1929년]] 7월 8일부터 12일까지 [[신라]](新羅)의 고도였던 [[경주]](慶州)를 답사하고, 그 기행문 「고도례 경주」를 7월 18일부터 8월 1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이 고도기행은 당초 경주뿐 아니라 [[공주]](公州)와 [[부여]](扶餘), [[평양]](平壤)까지도 계획에 넣고 있었던 것 같지만 경주 이후로 고도기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문예공론』 7월호에 단편 「신문지와 철창」을 기고하였으며, 12월에는 『신소설』에 「정조와 약가(藥價)」를 발표하였다.
         [[1930년]] 2월과 12월에는 장편 「웃는 포사」를 『신소설』과 『해방』에 연재하다 4회만에 중단하고, [[1931년]] 10월에 단편 「서투른 도적」을 『삼천리』에, 11월에는 『신동아』에 「연애의 청산」을 발표하였다. [[1932년]] 7월 8일부터 23일까지 단군(檀君)의 전승이 남아있는 [[안주군|안주]](安州), [[묘향산]](妙香山), 평양, [[황해도]](黃海島), [[강화도]](江華島) 등지를 답사하고 그 기행문 「단군 성적(聖跡) 례」를 7월 29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11.9). 그러나 이 해, 3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6월 10일에 출소한 형 현정건은 현진건이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소설 「적도(赤道)」를 연재하기 시작한지 열흘 뒤인 12월 30일에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고, 이듬해 형수(현정건의 부인) 윤덕경(尹德卿)도 자결하는 등 현진건에게 개인사적 비극이 잇따랐다(「적도」는 [[1934년]] 6월 17일에 완결되었다).
         {{인용문|나는 역사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태도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br />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수한 역사소설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코트의 제(諸)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 「단종애사」, 상허의 「황진이」 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br />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놓은 경우입니다. 쉔키비치의 「쿠오 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춘원의 「이차돈의 사(死)」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br /> 제1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大作)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2의 경우에야말로 웅편(雄編)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가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니 아니오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
         현진건이 사망한 뒤에 그의 친아버지 현경운도 대구에서 사망하였고, 부인 이득도 대구의 친정에서 사망하였다.
         두 살 연상의 아내 이득에게서 얻은 두 딸 경숙(卿淑)과 애경(愛卿)은 각각 어린 나이에 죽고, 셋째 딸 화수(和壽)는 그의 문우 박종화의 장남 돈수(敦洙)에게 시집가서 1남 4녀를 낳았다.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박동건은 바로 화수의 아들이다.
         * 부인 : 이
         * [[이광수]] - 박종화의 일기에 보면, [[1922년]] 현진건이 홍사용 · 박종화 등의 문인들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문예지 《백조》 창간호에 이광수의 시 「악부(樂府)」가 실리게 되었을 때, 상해에서 《백조》를 받아보고 현진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한국의 꽃봉오리 같은 젊은 청년들이 발표하는 깨끗한 《백조》지에, '귀장'을 쓰고 항복해 들어간 이광수가 동인이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빨리 동인에서 제거하라"며 항의했고, 결국 《백조》 동인에서 이광수는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광수는 이미 당시 춘원은 허윤숙이라는 여인과 동거하면서 일제에 이른바 '귀장'이라는 것을 써서 독립지사들의 정보를 넘겨주고 변절한 상태였던 것이다.<ref>윤병로 「박종화의 삶과 문학」1998, 신효정「문학산책」2000, 역사문제연구소 편찬「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2003.</ref>
         * 부부생활과 관련해서는, 지인 대부분이 "아내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실 그 시절에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하며 따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었으며, [[김동인]]처럼 아예 자기 아내를 버리고 평양에서 서울로 거처까지 옮겨서 기생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기만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내를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을 뿐이요, 다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었다"고 했으며, 방인근은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기생이 옆에 와서 지근덕거리면 미남에다가 신문기자라면 기생들이 홀딱 반해서 덤벼드는 시절이니 그러면 빙허는 좋아하는 체 대꾸를 하면서도 쌀쌀하게 범접치 못할 기상으로 난잡하게 굴지 않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현진건의 아내 이득도, 남편이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황라 두루마기와 비단 마고자가 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들어와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f>문인들의 이러한 '딴집 살림'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교육을 받은 소위 '구여성'과의 조혼을 괴로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데서 온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8~5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 . . . . 12회 일치
          * '''방호양함''' 발명 발견시 '''{{{#green +2%}}}'''
          * 양함의 선체 능력치 '''{{{#green +5}}}'''
          * '''Protected Cruisers(방호양함)'''
          * '''양함'''을 건조 가능하게 함
          * '''Advanced Cruisers(진보한 양함)'''
          * 양함의 선체 능력치 '''{{{#green +1}}}'''
          * 양함의 공격력 능력치 '''{{{#green +1}}}'''
          * '''Modern Cruisers(근대 양함)'''
          * '''진보한 양함''' 발명 발견시 '''{{{#green +2%}}}'''
          * 양함의 최고 속도 '''{{{#green +1KHP}}}'''
          * '''방호양함''' 발명 발견시 '''{{{#green +2%}}}'''
          * 양함의 어뢰 공격력 능력치 '''{{{#green +8}}}'''
  • head to head . . . . 12회 일치
         사전적인 쓰임으론 face to face와 거의 같은 용어로 쓰이지만, 스포츠계로 넘어오면 제1위결정기준으로 위를 정할 수 없을 때 적용하는 동점간 직접비교를 통한 위결정방식을 가리키는 단어다. 애초에 이 용어 자체가 상대전적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걸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리그의 위결정방식이 월드컵과 같이 "승점 - 골득실 - 골득"으로 정했던 것이 "승점 - 승자승 - 골득실 - 골득"이라는 기준으로 개편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또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도 리그의 최종위 결정방식에 승자승을 도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승자승 방식에 대한 정보가 축구팬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헤드 투 헤드를 통한 위결정은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1. 특정 시점[* 여기에서 말하는 특정 시점은 위를 측정할 때를 이야기한다.]승점이 같을 시에 헤드 투 헤드를 적용한다.
         만약 AFC 챔피언스 리그를 예로 든다면, 조별단계에 참가한 A, B, C, D라는 팀중에 승점이 같은 팀이 A와 B 2개팀이 있다면 이 승점이 같은 2팀끼리 붙었던 상대전적을 비교하여 평가한다. 즉, ACL 기준으로 헤드 투 헤드에 따르면 위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기결과는,
         허나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승점이 같은 팀이 3팀이 있다면 이 3팀끼리 붙었던 경우만 계산하게 되는 별도의 조별리그 위표가 작성된다. 만약 A, B, C라는 팀이 승점이 같다고 칠 때 경기결과는
         이 규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대회이며, 매 시즌마다 이 규정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팀이 꼭 생길 정도로 대회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2016시즌만 봐도 A조의 [[알 이티하드]], G조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각조 2위에 비해 골득실이 높았지만 이 원칙에 의해 위에 밀려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승자승이라는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단히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까지도 고려해 평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번역 자체가 난감한 경우이기도 하다. 상대전적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번역하기 까다로우므로 오히려 마케팅이나 라디오처럼 발음 그대로 쓰는 편이 나은 용어로 보인다. 상대전적을 가리키는 헤드 투 헤드일 때는 "상대전적"으로 번역하고,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한 우위비교일 때는 헤드 투 헤드로 부르는 게 낫다는 이야기.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2회 일치
         현상금 사냥꾼들의 마을이었던 위스키 피크에서 Mr.5를 식후 운동삼아 때려눕힌다. [[알라바스타 왕국]]의 왕녀 [[네펠타리 비비]]를 동료로 삼고 [[바로크 워크스]]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알라바스타 왕국으로 향한다. 도중에 [[드럼섬]]에 들러서 [[와포루]]를 물리치고 인간 록 의사(…) [[토니토니 쵸파]]를 동료로 삼는다.
         이 때 [[Mr.2 봉쿠레]]는 '친구를 죽게 할 없다'며 LEVEL 5까지 내려와 감방에서 그를 꺼내주고 기적을 일으킨다는 전설의 오카마를 찾아 루피를 해독시켜주려 돌아다니다가 계속되는 늑대들의 습격으로 결국 쓰러진다. 이 때 루피가 무의식적으로 패왕색 패기를 발동. 늑대들을 쫓아낸 뒤 쓰러진다.
         약 2주일 뒤, 로의 치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몸은 아직도 만신창이 상태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끼던 형의 죽음을 보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탓인지 에이스를 잃은 충격을 받아들이기가 벅찬 듯 수시로 병상을 뛰쳐나가 에이스가 죽은 간의 기억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여인섬의 숲 속에서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징베가 뒤따라와 루피를 제압하고, 에이스는 죽었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루피는 이미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흐느낀다.
         반면 어인은 수중에서는 오히려 이동범위에 있어 부자유가 없어지고 속도와 힘도 더 붙고 기술폭까지 늘어나 전체적인 컨디션이 대폭 상승한다. 이건 '''ES를 과다복용한 호디를 기준으로 해도 압도적인 실력차가 있지 않고서야''' 이기기 힘든 게임이다. 그런데 루피는 이걸 이긴다음에 체력이 남아서 노아를 때려부다. 사실 따지면 따질수록 이 상황에서 못 이긴 호디가 보스로써 수준미달 이었다는 결론이 난다.(…)
         마젤란과의 전투 이후 독에 항체가 생겨 [[가스가스 열매]]의 능력자 [[시저 클라운]]의 [[독가스]]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후 압도하는 듯했으나, 가스가스 열매는 '''공기 자체를 조종하는 열매'''였기에 산소부족으로 기절, 이후 트라팔가 로, 스모커와 같이 감금되었다. 그래도 로 덕분에 탈출해서 다시 시저와 맞붙게 되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잘 싸웠다. 그러나 하피 모네가 시저를 도주시키는 데 성공하고 모네의 능력도 시저처럼 수 전투력만으로는 불리한 터라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래도 어떻게든 벗어나긴 했지만 하필 쓰레기장에 떨어진 터라 그곳에 발이 묶인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작은 용과 만났다. 그런데 루피는 그 용을 장어라 불렀다.
         696화에서는 로의 회상에서 자신이 사황을 모두 무찌르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 때문인지 로는 누가 이용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또한 로가 카이도를 먼저 무너뜨리자라는 말에 샹크스도 쓰러뜨리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패륜]]이니 뭐니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그러나 루피는 해적왕이 되는 것이 목적이며, 그를 위해서는 사황이라는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안 되니 당연한 선택이다.[* 루피는 이미 알라바스타 시점에서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는 에이스와도 싸우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샹크스를 쓰러뜨린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샹크스를 이김으로서 그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함일 뿐이고, 사황인 빅맘, 카이도, 검은수염은 루피가 쓰러뜨려야 할 이유가 있는 상대다. 빅맘은 어인섬 문제, 카이도는 로와의 동맹 때문에, 그리고 검은 수염은 말할 필요도 없는 악연의 적.[* 이게 아니라 해도 해적왕이 목표인 루피이고, 이들이 조용히 루피가 해적왕이 되도록 보고 있을 인물들도 아니니 어떤 형태로든 결국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다 샹크스는 단한 장애물이 아니라 정신적인 스승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니 만큼 루피가 넘어야 할 진정한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루피의 사상의 중심점은 자유에 맞춰져 있고 사황은 신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로에게 전해들은 신세계의 상황은 루피의 기대와는 달리, 이전까지와 같이 자유롭게 모험을 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니라 사황의 밑에 들어가 통제를 받으며 항해하느냐 사황을 적대하느냐로 예상 외로 갑갑한 환경이 되어있었는데, 루피가 이것을 탐탁찮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사황 격파 발언은 신세계의 얘기를 듣자마자 갑툭튀로 내뱉은 말.] 루피의 사황 격파는 누구에게 원한이나 감정이 있고 없고 이전에 신세계 전체를 자유로운 바다로 만드려는 의도일 확률이 크다. 실제로 사황을 전부 쓰러뜨리겠다는 말이야 했지만 자신이 사황이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애시당초 루피가 현상금 올라가면 단하게 기뻐할 지언정 자기한테 붙는 소문이나 명성을 기뻐하는 타입은 아니다.], 샹크스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사황의 일각으로써 신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샹크스가 스스로 사황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고서야 결국은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근데 독자들은 전부 둘이 붙는걸 한번 보고싶을거 아냐? 어떻게든 싸우게 할거야 아마~~
         이후 선수관람석에서 베라미의 B블록의 경기를 잠시 동행하게 된 캐번디시와 지켜보는 도중 콜로세움에 참가한 [[돈 칭자오]]가 나타나 '''"[[몽키 D. 가프|가프]]는 잘 계시는가? 루피 아우"''' 하고 물어보자 생각없이 바로 아저씨는 어떻게 할아버지를 아냐고 대답하는 바람에 또다시 정체를 발각당한다. 그리고는 옆에서 이를 들은 캐번디시가 루피가 맞냐며 추궁하자 당황하며 루피가 아니고 루시라며 발뺌하고,[* 이 와중에도 돈 칭자오의 계속되는 도발에 꼬박꼬박 반응하며 자기가 루피인 것을 계속 [[인증]]한다.~~역시 바보~~ 캐번디시도 그렇고 칭자오도 그렇고 애먼 데다 원한을 품은 인물들 때문에 보통 보케 담당인 루피가 츳코미를 해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캐번디시 曰 "남의 인기나 뺏질 않나 귀신의 손자로 태어나질 않나… 원망만 사는 쓰레기 자식." 이에 루피 曰 '''"그거 다 내 알바 아니라니까?"'''] 돈 칭자오는 가프에게 수없이 살해당할 뻔 했다며 루피의 할아버지인 '''악마 가프'''[* 돈 칭자오가 활동하던 당시의 해적들에게 있어 가프는 악마로 통했다고 한다.]에게의 빚을 손자에게 갚겠다며 루피?를 공격하고, 이에 루피는 전력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지만 전혀 통하지 않고 흥분한 돈 칭자오는 계속 루피를 공격하려 하나 주변의 만류로 일단 와해된다. 이후 '''경기고 뭐고 일단 밀짚모자를 잡겠다는 캐번디시를 피해''' 관람석 외벽에 매달려 [[바르톨로메오(원피스)|바르톨로메오]]와 싸우던 [[베라미]]를 응원하지만, 결국 베라미는 엘리자벨로 2세의 왕의 펀치에 휘말려 탈락한다.
         743화에서 ~~루피는 모르는 작전이지만~~ SOP 작전이 성공하자마자 장난감 병정이었던 퀴로스가 눈깜짝할 새 도플라밍고의 목을 베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놀랍다는 듯 우와!!! 밍고가 죽었어!!! 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 744화에선 쫓아오는 글라디우스를 피해 바이올렛과 함께 모양의 방에 뛰어들어간다. 동맹이 끝났다며 가버리라고 화를 내는 로의 말을 ~~당연히~~ 그대로 무시하고 해루석을 만지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그의 수갑을 풀려고 하는데, 그 간 '''잘린 도플라밍고의 머리가 말을 했다!!''' 루피는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우와!!! 밍고가 살아있어!!!"''' 라고 ~~이마저도 태연하게~~ 말한다. (...)
         그리고 781화에서 새장의 크기를 줄이며 시민 모두를 죽이려 하는 도플라밍고에게 격노하여 문답무용으로 정면 돌진...하는가 했더니 사실은 거기까지가 이미 죽은 줄 알았던 로의 작전이었다. 공격하려던 간 샴블즈로 뒤쪽에 있던 로와 위치를 교체, 방심하고 있던 도플라밍고에게 로가 능력으로 치명상을 입히는 데에 성공한다. 도플라밍고는 깡으로 버티며 로를 공격하려 하지만 이어서 루피가 도플라밍고를 공격하고, 그로기 상태가 된 도플라밍고에게 로가 혼신의 카운터 쇼크를 날린다. 그 동안 로를 막으려던 트레볼은 루피가 발차기 한 방으로 날려버린다. 하지만 정작 치명상을 입었던 도플라밍고가 자신의 실실 능력으로 부상을 치료하고 로를 짓밟으려 하는 간 루피가 뻗은 발이 도플라밍고의 발을 받아내고, 서로 발을 맞댄 채로 노려보는 장면으로 781화 종료.
         기어4로 전세를 역전시켜 도플라밍고를 식간에 궁지로 밀어넣는데 성공하나 기어4는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심해서 약 10분 간 지쳐 쓰러지고 만다. 한편 도플라밍고는 "능력자에게는 각성이란 경지가 있다"면서 주위 사물을 실로 만들면서 반격을 시작, 다시 위기에 처한다. 새장도 해제되지 않고 시시각각 조여오는데, 이때 나머지 간부들을 정리한 밀집모자 일당과 콜로세움 일행이 합류해 시간을 벌고 있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2회 일치
         도청을 통해 처치가 물가에 갇혀 있다는걸 알아낸 헤이덤은 찰스 리를 데리고 물가로 간다. 이때 찰스 리가 상당히 약하니 조심할 것. 들키면 앗 하는 사이에 죽어버린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부둣가 창고에 들어간다. 그 간 그들이 목격한건 보호비를 내라는 사일러스 대처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손 없고 혀 없는 고자가 될 위기에 처한 벤자민 처치였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사일러스 대처의 부하들을 죽이고 처치를 풀어준다.
         이후 헤이덤과 찰스 리는 브래독이 지휘하는 찰대를 미행한다. 이후 찰대를 으슥한 곳으로 유인한 후 습격, 브래독을 제외한 모두를 쓰러뜨린다. 헤이덤은 옛 동료였던 브래독에게 다음 번에는 봐주지 않을 거라고 경고한 후, 핏케언을 데리고 빠져나간다.
          * 찰대의 의심을 15초 이상 받지 않음
         쓰러지는 나무에 의해 낙마한 브래독. 헤이덤은 그를 쏴죽이려고 했지만 뒤에서 나타난 워싱턴이 헤이덤의 말을 쏴 낙마시킨다. 워싱턴이 헤이덤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이려고 하는 간 카니에티오가 나타나 워싱턴을 제압한다. 또다시 도망가는 브래독. 헤이덤은 그를 뒤쫓아 쓰러뜨린다.
         구 주청사의 군인들은 몰려든 군중들을 해산시켜 보려고 하지만 군중들은 해산을 거부하는 상태. 이 와중에 코너와 아킬레스는 헤이덤을 발견한다. 아킬레스는 헤이덤의 행동이 지금 상황에 불을 붙일 것이라고 판단, 코너를 시켜 헤이덤의 부하를 미행하게 한다. 코너는 헤이덤의 부하를 쫓아가 그가 군중에게 총을 쏘려는 간 암살한다.
         마서스비니어드에 도착한 두 사람. 폴크너가 주점에서 포술 장교인 클러터벅 형제를 영입하는 동안 코너는 템플기사단원인 벤자민 처치와 니콜라스 비들을 발견한다. 코너가 두 사람에게 찰스 리의 위치를 묻자 분위기는 식간에 험악해진다. 폴크너가 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비들은 폴크너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이에 주점 주인인 아만다 베일리는 폴크너와 코너, 클러터벅 형제를 주점에서 내보낸다.
         코너는 구 남부 예배당(Old South Meeting House) 앞에서 샤페우, 몰리뉴와 만난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몰리뉴에게 코너가 대체 무슨 신호냐고 물은 간. 애덤스가 "이 모임으로는 더이상 나라를 구할 수 없소"라고 선언하며 예배당에서 나와버린다. 코너가 끌려다니기 싫다며 뭘 할건지 물어보자 애덤스는 나다니엘 브래들리의 집에서 사람을 모은 후 그리핀 부두로 가서 배에 있는 차를 모두 내다버릴것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이것은 잉글랜드에 메세지를 보내는 동시에 존슨의 재정에 손상을 줘 코너의 마을을 지키는 일이라며, 코너한테 선두에 서보라고 권유한다.
          * 헤이덤과 교회에서 나간 뒤로 주변을 조사할 때, 근처 영국군 찰대와 싸움이 붙을 수 있다. 주의.
         코너는 앞서가던 애국자 전령들을 처리한 후, 카니엔케하카 마을의 부족 어머니에게 찾아간다. 하지만 부족 어머니는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찰스 리가 카나도곤과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애국자들을 공격하러 간 것. 코너는 숲으로 달려가 근처 애국자들을 공격하려는 카니엔케하카 전사들을 제압한다. 마지막으로 카나도곤을 제압하려 하는 간, 카나도곤은 라둔하게둔에게 단검을 휘두른다. 카나도곤은 찰스 리가 모든걸 말해줬다며 라둔하게둔이 카니엔케하카를 파괴하려 하는 자들을 돕는다고 주장한다. 라둔하게둔은 리는 거짓말을 하는거라고 주장하지만, 카나도곤은 애국자들이 카니엔케하카 바로 앞까지 왔는데 그렇게 주장할 수 있냐며 동족을 저버린 라둔하게둔을 죽이려고 한다. 카나도곤이 라둔하게둔을 덮쳐 단검으로 찌르려 하는 간, 라둔하게둔은 암살검을 뽑아 카나도곤을 찔러 죽인다.
         3층에서 데스몬드는 크로스를 만난다. 크로스는 자동권총으로 데스몬드를 압도하며 21세기에 작은 단검 하나로 몸을 지키냐며 데스몬드를 비웃지만, 데스몬드를 죽이려는 간 혼입 효과를 일으키며 뛰쳐나간다. 당황한 비딕이 데스몬드는 죽어도 상관 없으니 선악과를 가져오라고 경비들에게 명령하는 가운데, 데스몬드는 크로스를 쫓아가 죽인다.
  • 윤종신 . . . . 12회 일치
         2009년 [[무한도전]]의 '강변대로 듀엣 가요제'에 '영계백숙'을 작사/작곡하기 했다. 그 기세로 또 하나의 푸드송 "막걸리나"를 내놓았다(국당이 부탁해서 만든 막걸리 로고송) 2013년에는 망고 쉐이크라는 노래도 냈다. [* 다만 팥빙수와는 다르게 영계백숙이나 막걸리나, 망고 쉐이크는 레시피를 다루진 않았다.] 2014년에는 '눈송이 빙수', 2015년에는 '쿠바 샌드위치'로 영계백숙에 이은 두번째 핫 푸드 송도 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 [[박경림]]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쳤던 곡 '착각의 늪'이 수록된 앨범 '박고테 프로젝트'에 '안녕 핫바'라는 푸드송을 수록하기도 했다. 당시엔 본격적인 예능인이 되기 전 시절이라 방송에서도 진지하게 작사작곡을 하는 모습만 비춰졌다.
         [[2016년]] 이후에는 월간 윤종신 수록곡들을 통해 단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제외한 다른 주제들도 자주 노래하는 편이다. [[2017년]] 1월호 '세로'에서는 차트 줄세우기 위주의 음반계를, [[2016년]] 12월호에서는 촛불정국을 노래했다. 중장년층, 혹은 나이든 뮤지션으로서의 심경도 자주 노래하는 것 같다. [* 마지막 간, Old school, 나이, Birdman 등...]
         윤종신과 음악노예: [[유희열]], [[조정치]], [[성시경]], [[박정현]], [[하림(가수)|하림]], [[투개월]]([[김예림]], [[도대윤]]) .[* 이 서는 그림 서이고, 실질적으로 '음악노예'라는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은 유희열, 하림, 조정치 정도까지로 봐야 한다. 가수 활동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나 윤종신과 함께 일한 지 몇 년 정도 밖에 안 된 다른 사람들은 사실 노예 수준 노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에 비해 유-하-조 세사람은 그와 함께 적지 않은 기간 일하면서 가수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작곡과 편곡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림의 경우는 윤종신 관련 음반 편곡의 대다수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희열은 독립이라도 했지 하림은 윤종신에게 여전히 속해 있다.][* 이 중 [[김예림]]은 미스틱을 떠났다. 이제는 저 자리에 [[박재정]]이 들어와야 맞다 카더라...]
         이후 [[015B]]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015B]] 2집 '두 번째 에피소드'의 수록곡 '친구와 연인', 'H에게", 3집 '제3의 물결'의 수록곡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박선주]]와의 듀엣곡), '1월부터 6월까지' 등 간간히 [[피처링]]으로 [[015B]]를 돕고 있다.], 솔로 앨범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2집 '[[Sorrow]]'(TITLE : 너의 결혼식)[* 원래는 작곡가 박강영에게 편곡을 맡기려고 아는 사람한테 번호를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실수로 작사가 박주연의 번호를 알려 줬다고 한다. 차마 잘못 걸었다고 할 없어서 작사를 부탁드렸는데, 그 잘못 걸린 전화로 인해 윤종신의 초기 양대 명곡으로 꼽히는 너의 결혼식과 [[오래전 그날]]이 탄생하게 되었다.] 때가 윤종신의 전성기로, 개그맨 [[박휘]]이 윤종신의 팬이었다고 한다. 판매량 38만 장.
         9월 15일, 오랜만에 [[신치림]]의 이름으로 [[에디킴]]과 함께 신곡을 냈다. [[미스틱]]의 음악플랫폼 [[LISTEN]]의 열네 번째 곡으로, 곡명은 '지금'. 윤종신으로서는 '좋니'에 이어 두 번째 [[LISTEN]] 참여곡. 미스틱과 [[SM]]의 컬래버레이션 음악 예능 [[눈덩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미션인 '황혼'을 주제로 한 노래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간을 소중히 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서정적인 발라드이다. 작곡 하림, 작사 윤종신, 편곡 강화성의 완벽한 조합..
         2017 전국투어 콘서트가 결정되었다. 콘서트명은 무려 '''윤종신 좋니?'''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7012241|링크]] 광주 (10월 28일)부터 차적으로 일정 공개.
          *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언더그라운드 가수 역으로 특별 출연해서 '팥빙수'를 잠깐 부른 바 있으며[* 극중 내용: 꼴통 4총사(노영삼 외 3인)가 방학 중 휴가비 마련을 위해 팥빙수 장사 시작 → 윤종신이 매일 사먹으면서 '이 빙수를 먹으면 악상이 떠오른다'고 말하며 이 노래를 부름 → 1주일 뒤 빙수를 먹으면서 배가 아파오는 것을 단히 장이 나빴던 것으로 의심하다가 그 빙수를 사먹은 종신의 어머니도 똑같이 복통을 호소 → 결국 빙수 제조 공정의 불량(위생얼음도 안 쓰고 청결상태가 [[영 좋지 않다|영 좋지 못한]] 손으로 제조)을 눈치채서 빙수 장사를 접게 만들고 끝.], 어느 네티즌이 '팥빙수'에 가사만 바꾼 패러디곡 '[[보신탕]]'이 [[소리바다]]에 떠 돌아 다닌 적도 있었다.
          * 유희열의 말론 한때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비토 다케시)라고 자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장훈은 윤종신과 달리 비트 다케시는 재밌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때의 윤종신은 '''예능 늦둥이'''로 불리던 시절로 2015년 기준 현재처럼 그다지 예능계에 영향력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두 분야 각각 충분히 인정받고있지만 그땐 아직 음악인 윤종신으로서의 모습이 강했기때문에 낯설어 하는 사람들과 젊은 세대들에겐 알듯말듯한데 예능계에 자주 눈에띄어 가수인지 예능인인지 헷갈려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렇게 틀린말도 아니긴하다... 다른점이라면 다케시의 경우 코메디를 하다가 영화인도 겸하게 된경우고 윤종신은 거꾸로 음악을 하다가 예능계로 손을 뻗은 경우. 둘 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서를 떠나 비슷한 것은 변함없다.[* 흔히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윤종신은 예능을 '''꽤 오래전부터''' 하고 싶어했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의 언급을 보면 줄곧 벼르고 있었던 듯. 음악을 떠나 라디오라든지 시트콤, 활동기간에서의 방송을 보면 그 부분이 두드러져 있는 걸 알 수 있다.]
  • 이지은(2000) . . . . 12회 일치
         믹스나인 5회의 최고의 수혜자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그에 걸맞는 분량을 몰빵받았다. 5화는 위발표식과 포지션 배틀의 준비와 경연의 절반을 보여준 에피였다. 포지션 배틀은 댄스, 보컬, 랩 곡 하나를 선택해, 남녀간 배틀을 붙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랩퍼인 이지은은 랩을 선택했고, 노래는 [[치타(가수)|치타]]의 My number.
         ==== 7회(2차 위발표식) ====
         전체위 83위, 여자연습생 37위로 2차 위발표에서 생존했다! 여자 연습생 중 자그마치 40위(77위 -> 37위)가 올라버리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분량도 10초 정도 나왔다. 마지막엔 시청자들에게 9ood 9irl 멤버들이 큰절을 하기도...
         이번 화는 여자연습생 포메이션 배틀 조 위와 남자 연습생 포메이션 배틀 경연으로 구성된 화였다.
         12월 3주차 위에서 15위로 22계단 급상승했다! 제작진에서도 이것을 띄워주려는 듯, 여자연습생 그 쥐꼬리만큼의 분량 중에서도 15라는 위를 크게 표시해서 4~5컷 정도 보여 주는 편집을 했다.
         ==== 10화(2차발식) ====
         음원미션 준비와 3차 발식이 방송이 되었다. 같은 조에서 살아남은 게 이지은 혼자였다. 최종 위는 여자 24위.
         ==== 13화(3차 발식) ====
         3차발식과 파이널 무대 곡선정 에피였다. 18위까지 합격이고, 2개의 곡을 선택해 파이널 무대를 준비하는 내용이었으나 23위로 최종탈락하게 된다.
  • 정찬성 . . . . 12회 일치
         ||<#000002> '''{{{#white 체급/위}}}''' || 페더급(-65kg)/'''10위''' [[http://kr.ufc.com/rankings|.]] ||
          * '''[[조제 알도]]''' - 4라운드 '''[[어깨]] [[탈골]]으로 인한 TKO패.''' 이 경기는 '''한국인 최초의 UFC 타이틀전'''이다. 1, 2라운드를 알도에 내준 정찬성이 3라운드에 기세를 잡으면서 한국 팬들의 기대를 받는 간 어깨가 빠져버리며 한국인 첫 UFC 타이틀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 경기 후 정찬성은 군복무를 하며 고질적인 어깨 문제를 치료하고 부족한 근력 강화에 집중하게 된다.
         2011년 3월 UFN 24에서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러버매치로 UFC 무대에 데뷔했다. 1라운드 약간 신중한 타격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그라운드에서 마운트까지 잡았으나 공이 울리며 라운드 종료. 2라운드에서도 다시 한 번 상위를 잡고 엘보우와 파운딩을 날려주며 앞서 나갔고, 가르시아가 이스케잎을 시도하는 간 백을 잡고는 트위스터를 작렬시키며 멋진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이 트위스터는 매우 고급기술인데 MMA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찬성은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보면서 익혔고 코리안 탑 팀에서 훈련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본 인터넷 카페에 '한 번 연습해서 써먹어봐야겠다.'고 댓글을 달았고 결국 트위스터로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채드 멘데스]]가 복귀전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정찬성보다 높은 위로 랭킹에 재진입하였고, 정찬성은 9위로 한 단계 또 떨어졌다.
         '''굉장히 특이한 스타일.''' 단히 정찬성을 '난타전을 잘하는 선수' 내지는 '투지가 돋보이는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완성형 파이터' 라고 표현하는건 적절하지 않다.
         레슬링은 버뮤데즈가 지적했듯이 강점은 아니다. 하지만 버뮤데즈가 지적한 알도 전은 어깨 부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으로 정찬성의 레슬링이 약하다고 할 없으며, 무엇보다 이런 지적을 한 버뮤데즈부터가 정작 경기에서는 정찬성을 테이크다운하지 못했다. 버뮤데즈가 페더급에서도 상당한 레슬러라는 걸 감안하면 정찬성의 레슬링 실력은 테이크 다운 방어를 중심으로, 레슬러에게 그라운드 및 그래플링 주도권을 쉽게 내주지 않을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주짓수 및 서브미션은 명백히 정찬성의 강점.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MMA 기준으로 창의성 및 응용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트위스터는 기존에도 존재하던 서브미션 기술이지만, 이걸 MMA 에서 처음 보여준 것은 정찬성이다. 비단 트위스터 뿐만이 아니라 포이리에 전에서의 간적인 포지션 뒤집기, 페이크 후 다스 초크, 알도 전에서의 테이크 다운 직전 역 테이크 다운 등 간 응용력이 뛰어나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게, 정찬성은 정식 주짓떼로가 아니면서도 MMA 노기 주짓수를 바탕으로 MMA 무대에서 주짓수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조지 루프 전 이전의 정찬성은 그 '''센스'''의 위치를 본능이 대신하고 있었다면, 조지 루프 전 이후의 정찬성은 명백히 센스를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합한 해법을 그때마다 내놓고 있다. 정찬성의 센스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떤 방법을 썼을 때 상대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 지 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 이 뛰어나다. 또는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지 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 이 뛰어나다. 이는 타격에서도 그래플링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트위스터라는 MMA 역사상 나온 적 없는 서브미션을 활용해서 상대를 끝낼 기회를 포착하고 실행한 점, 포이리에 전에서 테이크 다운을 당하고 이를 간적으로 스윕한 것, 알도에게 플라잉 니킥이 실패한 후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테이크 다운을 건 것, 버뮤데즈에게 타격으로 밀리다가 레프트 타이밍에 어퍼컷을 정확하게 넣은 것 등 남이라면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 기회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포착해 이기거나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게 뛰어나다. '''다만 그 중에서도 서브미션, 특히 주짓수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조성모(가수) . . . . 12회 일치
         ▲ 조성모의 최고의 간 중 하나인 1999년 [[KBS 가요대축제|KBS 가요대상]] 대상 수상 간이다. 조성모는 그해 KBS와 MBC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서울가요대상과 골든디스크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며 4관왕을 달성했다.
         이 중 [[2000년]]에 발매된 2.5집 리메이크 앨범(타이틀곡: 가시나무)은 '''160만 장'''이 팔렸으며 타이틀곡 아시나요가 수록된 정규 3집 앨범은 '''출시 당일 하루 만에 40만 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고 총 '''20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2000년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두 앨범들이 2000년 한 해 앨범 판매량 위에서 1위와 2위를 석권했다[* 조성모의 두 앨범 외에 2000년 출시 앨범 중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은 god 3집과 서태지 6집 뿐으로 2000년 음반 판매 위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2000년은 가히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로 [[넘사벽]]급의 '''[[리즈 시절]]'''이었다. 특히 2000년에는 서태지의 전격 컴백을 비롯하여 인기 아이돌 그룹과 톱 가수들이 대거 컴백하여 경쟁이 치열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정규 4집 '잘 가요 내사랑'부터 한계를 보이더니 기존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과의 불화로 인해 소속사를 바꾸어 출시한 5집 '피아노'를 기점으로 점차 내리막길을 타고 정규 6집 이후로 지금까지 히트곡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필래가 2010년 8월 마지막 주 [[엠 카운트다운]]에서 [[http://www.nocutnews.co.kr/news/748873|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는 했으나]] 조성모 본인은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211/sp2012111915515496010.htm|바람필래를 실패작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사실 4집 이후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지 음악방송 1위는 꾸준히 하였다.]
          - [[http://youtu.be/ynlG1-OQgxg|To Heaven (1집)]] : [[이병헌]], [[김하늘]], [[허준호]], [[조민수]], ~~꼽사리~~[[정웅인]][* 이병헌의 친구 역으로 연기하였음.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탐문수사하는 형사 허준호한테 ~~X나게~~ 두들겨 맞고 멱살잡히는 장면이나, 이병헌의 도움요청에 이병헌과 김하늘이 악당들에게 기습당하는 곳에 쳐들어가 함께 싸워주는~~(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장면에서만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최종원]][* 간주 중 회상씬에서 잠시 등장. 이병헌과 조민수의 아버지로 이들의 어린 시절에 경찰로 근무중 찰을 돌다가 동네 양아치들의 집단 폭행으로 살해당한다. 누나와 함께 살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 어린 이병헌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양아치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성장하여 복수하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주요 스토리다.] ~~[[오상훈]]~~[* 명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계에서 조연급으로 얼굴이 익숙한 배우이며, 특히 조성모의 대표 뮤직비디오들에서 악역으로 인상깊게 각인된 배우다. 'To Heaven' 뮤직비디오에서는 김하늘을 승용차에 가둬놓고 석유를 뿌려대고 불붙이는 대머리 조폭 역으로 짧지만 상당히 인상 깊게 등장한다.]
          - [[http://youtu.be/7BttP5wx3Cw|다음 사람에게는 (3집)]][* 조성모의 3집 후속곡 뮤직비디오가 맞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던 2000년 말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이미연을 모델로 내세운 발라드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戀歌)'의 홍보 뮤직비디오의 성격이 더 강했다. 청가련의 대명사인 이미연의 보증수표 이미지에 조성모 뮤직비디오의 날개를 달은 덕분에 홍보효과는 백점 만점인데다, 컴필레이션 구성 또한 심심하게 옛날 발라드 명곡들만 넣은게 아니라, 조성모의 '아시나요'를 비롯해 2000년 당시 최신 인기 발라드 곡들까지도 과감히 비중있게 수록한 4CD의 알찬 구성 덕분에 최초라는 수식과 더불어 최다 음반 판매라는 수식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와 다르게 '연가'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조성모의 곡이 아닌 원곡인 정재욱의 곡이 담겨 있다.] : [[이미연(배우)|이미연]], [[류시원]], [[김세아]], [[김채연]], ~~[[황인성]]~~
         [[히든 싱어]] 2부 3회인 조성모편에서는 2라운드에서 총 100표 중 81표를 얻어 '''원조가수 최초로 바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유는 모창가수들은 조성모 전성기 시절을 토대로 모창을 했지만, 조성모는 전성기 때의 혹사로 성대 결절을 겪게 되어 창법이 변하게 되어버린 것. 조성모의 앨범들을 시간대로 들어보면 이미 4집때부터 조금씩 허스키한 톤으로 살짝 변했고 창법도 살짝 바뀌기 시작했다. 다만 4집때 까지는 그 전까지의 여리여리한 미성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고 조성모 특유의 창법이 거의 그대로 구사 됐었다. 그 후 공백 후 5집때부터는 톤도 많이 허스키하게 변했고 창법도 시원하게 질러 부르는 창법으로 많이 변해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성모 전성기 시절의 목소리는 1-3집까지의 특유의 미성과 실크위를 거닐듯 부드럽게 밀어부르는 창법. 그래서 패널들이 전성기 시절의 조성모 목소리만 기억했기 때문에 그를 찍어줄 리가 없었다.
         이 흑역사는 결국 2014년 [[SNL 코리아]]의 조성모 편에서 다시 등장했다. 광고에서 조성모가 했던 멘트들이 다시 재현될 때 이 대사를 듣고 '''사람들이 [[손발이 오그라든다|너무 오그라든]] 나머지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건 드라마로 재현. 이 날 마지막 서로 유희열과 토크쇼에서 그문제의 초록매실 광고주 [[웅진그룹|웅진식품]]에서 보낸 화환이 공개됐는데, 그 화환에 적힌 문구는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838804|우리도 이럴줄 몰랐어요...ㅠㅠ]]'''[* 이 날 웅진식품에서 초록매실의 PPL을 하기도 했으며, 관객들에게도 초록매실이 1병씩 증정되었다.]
         수하고 아름다운 미성의 목소리 음색을 가졌다.
         리메이크 앨범인 2.5집의 타이틀곡 '가시나무'는 빅 히트를 했지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42&aid=0000003256|뮤직비디오에서 문학적이며 종교적인 원곡을 단한 사랑노래로 해석하면서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원작자인 하덕규도 석연찮은 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팬사랑이 지극하다. 데뷔 초부터 2000년 초반까지, 그의 공식팬클럽 '마리아' 회원들과 함께 마리아 여름캠프를 진행했다. 특히 마리아 여름캠프의 경우 선착 무통장입금으로 참가가 결정되는 방식이라 입금 경쟁이 치열했다. [* 허락되는 인원은 약 500명 가량. 조성모와 체육대회도 하고 김밥도 나눠먹고, 조성모 본인이 방마다 돌아다니면 조별로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는 식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그야말로 제대로 계타는 1박 2일 일정. 저녁에 조성모의 작은 공연을 볼 수 있었다면, 아침에는 그가 직접 떠주는 국을 배식받을 수 있었다. 여름캠프를 내용이 잡지에 실리고, 연예뉴스로 방송에 송출된 적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동시에 특별한 일이었다.]
         2018년 10월 4일 방송된 [[해피투게더]] 내 아이디는 얼굴 천재 특집 2편[* 2018년 9월 27일 방송된 1편에 이어 방영된 것으로 [[김진]], [[김승현(배우)|김승현]]과 함께 출연하여 [[출발 드림팀]]을 비롯, 1990년대와 2000년대 활동기의 일화들을 털어 놓았다.]에서, 선착으로 모집한 200명의 팬들과 데뷔 20주년 기념 캠핑을 다녀온 사실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공연은 이전에도 해왔으니 기념이 될만한 색다른 것을 해보자 싶어 바베큐 파티, 클럽, 힐링캠프 등으로 주제를 설정하여 팬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다고.
  • 창작:티겔 왕국 . . . . 12회 일치
         과거, 현재 티겔의 강역은 거의 다 숲이었으며, 거기에 스스로를 '사냥꾼'이라 부르는[* 현재도 존재하며 티겔의 영토의 25%를 차지하는 미개척지에 알박으면서 살고 있다. 보통 티겔에서 용병으로 일하고 있다.] 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들 분파중 가장 세가 컸던 무리의 족장의 장남이었던 '달구'란 자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 그과정에서 자기를 막으려던 자기 무리들을 싹다 죽이고 떠났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전부 죽이지는 못했다.]북쪽으로 올라가서[* 가는 와중에 지금의 메말사막 일대에 존재했던 늑대족 마을들을 전부다 약탈해버리고 거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메말사막의 생성원인중 하나. 그것때문에 메말사막에 사는 늑대족 마적들은 호랑이족을 증오한다.] 중북부에 적당한 위치에 티겔이라는 도시를 세우고 거기서 자기가 왕노릇을 한게 시초.[* 이때부터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중북부를 통합하기전까지 유지됬던 때를 상티겔왕국이라 한다.]그렇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되지 못했는데 10여년뒤, 그의 막내여동생인 '달'이 그를 죽이고 자기가 직접 왕위에 올랐기 떄문. [* 이게 또 대단한게, 잠깐 행차를 나간사이 달이 달구의 경호원 10여명을 혼자서 죽인뒤(....)살해했다. ~~리얼 소드마스터~~] 달의 통치하에 상티겔왕국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데, 그전까진 그냥 일개도시국가수준이던 상티겔왕국을 전제군주국가로 바꿔버렸다는 평을 받을정도이다. 그의 치세하에 상당한 량의 농지를 얻어내 이후 티겔이 본격적으로 중북부의 패자가 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달여왕은 한편으론 음유시인들의 이야기로도 자주나오는데, 그녀의 모험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만 십몇편은 될정도.
         상티겔 왕국은 달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때 상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식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상속법을 장자상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상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이문제는 당장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레이먼 제국이 무력으로는 호랑이족을 복속시킬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조카 루이를 끌어들여 '태겡 대공국'을 만들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레두아는 북부파의 군소영주를 구워삶아 자신이 티겔을 공격할때 이들이 자신에게 협력한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물론 보상으로 옛영토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결국 츄프 왕국이 언제나처럼 남쪽의 대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에 고생해 티겔을 도와주기힘들때 공격해왔다. 레이먼으로부터 상당한 량의 군자금과 용병대를 지원받은 태겡의 공세는 날카로웠고, 군소영주들의 협력까지 이루어져 식간에 탈환한 영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기에 이른다. 그나마 섭정인 계형이 직접나서서 태겡과의 일전에서 태겡 병력의 반을 한번에 분쇄시켰기에 공세를 막아내고 탈환지 영토의 반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태겡(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레이먼 제국) 대공국과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은 군소영주들의 반란역시 계속되었다.
         이에 계로는 태겡이 티겔을 정복하면 단히 숲을 개간해 정착지를 늘리는 수준이 아닌, 숲을 통채로 태워 농경지로 개간할것이라고 사냥꾼들에게 겁을 주어 끌어들였고, 결국 흑군과 사냥꾼들을 적재적소에 이용해 태겡군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계로는 레이먼제국과 태겡에 대항하기 위해 긴 장벽을 세우는데, 이를 '계 장벽'이라 한다. 계 장벽을 세워둔뒤, 계로는 적극적인 확장에 나서는데, 탈환지 북부에 대한 공세로 계형시기에 탈환했다가 빼앗긴 땅을 전부 되찾았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북부 원정을 감행해 한때는 태겡을 멸망직전에 몰아넣기도 했다. 라이엘기스대공이 직접 군대를 몰고 회전에서 그를 패배시키면서 그것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11회 일치
          방호양함부터 미사일 경양함까지의 경양함에 대한 연구.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초기 양전함부터 현대식 양전함까지의 양전함에 대한 연구. Battleships 트리 중 Dreadnought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장갑호위함부터 미사일 중양함까지의 중양함에 대한 연구.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원자력 경양함과 원자력 중양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Missile Light Cruiser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작부터 전술폭격기&조직력 타격 중심의 Heavy Target Destruction Priority와 근접지원기&전력 타격 중심의 Infantry Destruction Priority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후 연구 서는 제일 먼저 선택한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대다수의 연구를 공유한다.
  • 고소영 . . . . 11회 일치
         ||<#896AB7> {{{#ffffff '''학력'''}}} ||<(> 창고등학교[br][[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연극학과[br][[중앙대학교|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공연영상학과 석사과정 (중퇴) ||
         [[대한민국]]의 여배우. 창초등학교, 창중학교, 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졸업 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중퇴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컴퓨터과학과|컴퓨터 정보학과]] 석사를 수료하였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광고 모델이 주업인 배우'''로 손꼽힌다.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전도연이 자타공인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데 반해 이쪽은 정말 발전이 없었다. 90년대 [[김희선]]처럼 연기폭이 좁은것도 아니고 그냥 연기를 못한다. [*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녀배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지금도 두사람이 같이 거론되지만 배우로서는 엄연히 김희선이 위다. 김희선은 브라운관안에서의 존재감에 비해 연기력이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은 90년대에도 선하고 청 발랄한 캐릭터를 맡기면 대박을 터트렸고 원톱 주연을 맡아 완판을 기록했으며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주목을 덜받었을 뿐 《세상 끝까지》나 《안녕 내사랑》같은 90년대 말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원숙함과 노력에 더해진 2010년대에는 진지한 역, 억척스러운 역, 우아한 역 다 해내면서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연기 잘 하는 배우 반열에 올라섰다.]1990년대에는 워낙 잘나가서 그런 얘기가 드물었지만 2002년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의 흥행 참패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력 논란이 제기 됐으며, 이 논란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앞서 말한 2000년대 들어 활동이 없다시피한 것도 결국 그녀의 연기력이 문제로 작용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출연작 중 그나마 연기평이 좋았던 출연작은 [[강풀]]작가 웹툰 원작의 영화 [[아파트(영화)|아파트]] 정도.
          * 90년대 연기력이 안 좋은 걸로 유명했지만, 스타로서의 쇼맨십이나 예능감 같은 기질도 그다지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 같으면 방송 태도로 논란이 일었을 만한 간이 꽤 있었다. 첫 드라마 데뷔작인 [[내일은 사랑]]에서도 주인공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으며 비중이 큰 주연으로 출연했었으나, 뻣뻣한 연기로 질타를 받은 것과 제작진과의 불화로 드라마팀 회식에 혼자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드라마 초반에 하차하기도 했다. (이 대타로 [[박소현(배우)|박소현]]이 투입됨.) 이 때문에 고소영이 다시 KBS 드라마에 나오는 것은 5년 뒤(1998년) '맨발의 청춘'에 가서야 가능했다. 'PD들이 제일 싫어하는 배우'같은걸로 앙케이트에 뽑혀서 예능에서 본인이 그걸 해명하기도 했을 정도.
          * 고소영이 나온 창고등학교는 사립학교이다보니 고소영이 과천여고 재학생이었던 시절부터 2016년 현재까지도 현역 근무 중인 선생님들이 적지 않게 계신다. 과천여고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계시는 선생님 몇 분이 가끔씩 고소영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하실 때가 있는데, 주변에 폐를 끼치거나 다른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을 괴롭히거나 했다는 말은 없지만 선생님들은 고소영을 썩 좋게 보진 않으시는 듯하다. 여고 재학 시절에도 연예계 쪽 활동[* 광고 활동이나 오디션 참가 등으로 추측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일이 일반 학생보다 많았고, 그 때문에 어른인 선생님들의 눈에 좋게 보이진 않았던 듯. 그래도 앞에 적었다시피 악평을 하신 분은 없었다.
          * 창고등학교 출신 인물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창여고 출신 유명인 중엔 배우 [[이인혜]]도 있지만 인지도나 명성에서 고소영이 훨씬 더 앞선다.] 창여고와 창고등학교[* 재단이 같아 두 학교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지어졌다.]의 공동식당 배식구 옆 벽면 에는 '''고소영'''과 과천외고 출신 유명인 중 하나인 랩퍼 [[길(리쌍)|길]]의 사진이 붙어있다. 사족으로, 두 사람의 사진과 함께 인쇄되어 있는 글귀는 '후배님들~ 여기서도 배식해요~'이다. 먼 선배인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이용한 [[시선강탈]]을 통해 다른 배식구로도 학생들이 분산되게 하려는 의도일 듯. 만약 식당 벽면의 이 부착물이 변경되거나 떼어지게 된다면 내용 [[추가 바람]].
  • 문근영 . . . . 11회 일치
         [[2005년]]작 영화 댄서의 정에서는 수한 연변 처녀의 역을 맡아서 춤 솜씨, 연변사투리 실력와 함께 120%의 존재감을 선보였다. ~~대신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로 당시 극강의 댄서로서 군림하던 [[박건형]]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 문근영의 아우라에 묻히고 말았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수함을 표현하기 위한 '반딧불이...' 운운하는 대사의 경우 다른 여배우가 이런 대사를 했으면 관객들의 손발이 오그라들었을텐데, 문근영이 그런 대사를 하니까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나왔다. 진부한 스토리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문근영이 연기한 여주인공 캐릭터의 애잔함이 영화를 완전히 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흥행성적은 220만 관객으로 중박 정도였지만, 영화가 중독성이 있어서 문근영 팬과 상당수 남성 관객들에게는 거의 컬트 수준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30대 유부남은 이 영화 한번 보고 너무 좋아서 아내 눈총 받아가며 무려 1달 동안 매일 저녁 이 영화 비디오를 보고 잠이 들었다 한다.]
         [[2013년]]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로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했다. 또 [[남장여자]] 역이라 [[바람의 화원]]을 다시 보는걸로 착각할 정도. 그래도 남장은 초반에 잠깐(...) 나오고 다시 여자로 돌아간다. 본인이 후에 인터뷰에서 "남장여자 씬은 전히 드라마 재미를 위해 추가로 들어간 씬이고, 원래는 계획에 없던 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얼굴은 다시 갸름해졌다~~ ~~초반에 갸름했다가 뒤로 갈수록 체력이 딸리고 부상을 입어 제대로 부었다(...)~~ [[청담동 앨리스]] 때도 그랬지만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면서 작품 때문에 제대로 까였다. 팬사이트에서도 옹호해주는 팬이 없을 정도... 전작 [[무사 백동수]]를 은하계 너머로 보내버린 전적이 있는 작가가 화근이었다. 거의 만화 영화 대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치하고 간단한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했다. 그나마 [[전광렬]]의 연기가 혹평을 피하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줬으나 다른 누구도 작가의 발대본 앞에 살아남지 못했다(...)
         [[2006년]] [[성균관대학교]] 인문학부에 특별전형 지원으로 합격했다. 입학 전 [[수능]] 성적으로 [[대학]] 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고 수능 당일날 교실 하나를 혼자 쓰면서 요란하게 수능까지 봤다. 그런데 막상 원서 쓸 때가 되니까 특별전형, 그것도 연예인들이 으레 가는 '''[[연극영화과]]가 아닌 [[국어국문학과]]에 응시했고''' 간단히(?) 합격해 버려서 당시 [[고3]]들에게 엄청난 [[어그로]]를 끌어버렸다. 아무래도 본인 수능성적이 예상 이하였던 모양이다.[* 문근영이 고3이던 당시, 모교인 [[국제고등학교(광주)|국제고등학교]](일반계 고등학교)를 방문한 졸업생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하다. 영화 [[댄서의 정]] 이후 학업에 열중하겠다는 언플이 있었으나, 영화 개봉과 무대인사가 모두 끝난 5월 말까지도 등교가 아닌 외부활동(교사의 말에 따르면 [[칸 영화제]]를 '구경'갔다고 한다.)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미 특별전형을 고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08년]]까지는 학업에 전념했으나, 이후 연기 활동으로 인해 휴학하고 09년에 복학,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최종적으로는 2012년에 현대소설론을 마지막으로 수료했다.[* 모든 대학들이 그렇듯, 수업만 전부 다 듣는다고 해서 [[졸업]]이 되는 것이 아니다.(가장 일반적인 것으로는 졸업 [[논문]] 미통과.) 수업을 다 들어도 졸업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졸업이 되지 않고 수료만 된 것으로 처리된다. [[성균관대학교]]는 학점 이수 외에도 영어 공인 점수, [[자격증]] 등의 3품을 따야 졸업 요건이 충족된다. 문근영은 학점도 이수하고 졸업 논문도 제출했으나 3품을 따지 못해 졸업은 하지 못했고, 국어국문학 학부를 수료만 한 상태이다. 그래도 3품 제출 기한이 무기한이기 때문에 문근영의 경우 대학에서 요구하는 영어 점수와 자격증을 취득하는 간 바로 당해 학기에 졸업 처리가 된다.] 수료상태를 끝내고 2015학년도 전기학위수여식(2016년 2월)에 학사학위를 수여받았다.
         당시 특종보도로 많은 미디어에서 다루어졌는데,가장 유명한 기부활동으로는 [[2006년]]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목사 부부에 의해 운영되다 재정악화를 맞은 공부방을 인수해 [[2009년]] [[개신교]] 계열 [[NGO]] '굿피플'에 기증한 것. 원래 익명으로 하려 했으나, 후에 기증하러 온 여인이 문근영의 어머니임이 밝혀져서 기증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그 외에 [[2005년]]부터 [[천시]]의 도서관에 2,500만원을 기부한 것과, [[2002년]]부터 다년간 고향 [[광주광역시]] 빛고을장학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2009년 여동생이 유학 중이고 친척의 연고지이기도 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한글도서관에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 [[2005년]] || 댄서의 정 || 장채린 || 220만 명 || 성공 ||
          * 임성 작가가 쓴 `문근영은 위험해`라는 소설이 있다. 은행나무에서 나왔으며 회사 시리즈 3부작의 2번째 책이지만 전작, 후속작과 거의 연결고리가 없다는 게 함정. 정작 책을 쓴 작가는 책에 나오는 문근영과 배우 문근영이 1도 관계 없음을 목 놓아 외치고 있다만 영락없는 빠돌이로 보인다. 책의 내용 자체는 문근영과는 약간의 관련만 있을 뿐 매우 충격적일 수 있다.
         ||<|2> 2005년 || 제42회 [[대종상]] || 여자 인기상 || 댄서의 정 ||
         || 2006년 || 제29회 황금촬영상 || '''최우수 여우상''' || 댄서의 정 ||
  • 박명수(MC) . . . . 11회 일치
         ||<width=25%><:> [[유재석]][br](2006) ||<:> {{{+1 → }}} ||<width=25%><#FFFFA1><:> [[이재]], '''[[무한도전]]팀'''[*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가수)|하하]]][br](2007) ||<:> {{{+1 → }}} ||<width=25%><:> [[강호동]][br](2008) ||
         국내에서 가장 [[별명]] 많은 [[연예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칭 쩜오 연예인'''. [[애초에]] 그 쩜오라는 말을 쓴 것도 방송에서 [[본인]]이 애드립으로 썼던 것이다. [[무한도전]] 죄와 길 특집에서 유재석 심문을 하다가 박명수가 유재석의 1인자 위치를 얘기하다가 자기 자리로 들어가는데 [[유재석]]이 즉석에서 "박명수씨 정말 본인이 2인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들어가던 박명수가 간 "쩜오" 라고 대답했고, 그게 방송에 나가고 시청자들에게 웃겼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자주 쓰이게 된 것이다. 사실 쩜오라고 불리는 것은 예능계에서 메인MC가 아닌 서포터이자 2인자 포지션인 본인을 재밌게 하기위한 말일 뿐이고 박명수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장수하고 있는 베테랑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나타내는 능력있는 연예인이다.
         2012년 12월 29일. 데뷔 20년만에 '''[[MBC 방송연예대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2007년도에도 대상을 수상했지만, 그때는 [[무한도전]] 팀 6명은 물론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재]]와 공동 수상한 것이었기에 단독 수상인 이번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국민예능으로 만든 영향력과 2011년 나는가수다 흥행 중심에 있어서 그때 받을시기를 2012년에 받은 셈.
         이에 대해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90년대에의 콩트 프로그램에서는 현재의 버라이어티 예능쇼처럼 무작정 한 장면이나 단락적으로 웃기고 그걸 유재석과 같은 중재자가 받아서 잘 정리해주는 게 아니라, 일정한 스토리의 틀이나 흐름 속에서 희노애락 등을 나름대로 표현해 가면서 김국진이나 홍기훈, 김진수처럼 기본적인 연기력+반전으로 웃기는 패턴이었기 때문에 대본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박명수는 자연스레 그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발력이 중요해진 이후 시점의 코미디 하우스 등에서의 무대에서조차 '약방에 감초'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박명수는 콩트에서는 특이한 얼굴이나 말투를 바탕으로 극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이었다. 종종 회자되는 박명수의 대표코너격인 [[코미디 하우스]]의 3자 토론이 대표적인데, 이회창 역으로 출연하며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기에서조차 박명수는 약방의 감초 역할에 불과했다. 코미디 하우스의 대표코너는 [[정준하]]의 출세작 노브레인 서바이버, 조혜련의 골룸 개그, 김현철의 1분 논평 등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대 박명수의 위상을 대략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3자토론은 코미디 하우스 내에서 반응이 그렇게까지 좋진 못했던 코너여서 자주 편집되기까지 했으니...
         그리고 가끔가다 '''무한도전 스태프들이 어떤 주제로 멤버들을 평가할 때 보면 의외로 좋은 평가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 1위다.'''[* 누가봐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은 유재석은 친해서 장난으로 약올리려고 투표를 했을진 몰라도 워낙 FM적인 인생을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는 증언은 종종 있다.] 2009년 세계여행 특집에선 <같이 여행가고 싶은 멤버>투표는 2위[* 총 67명 중 17표, 이유 "방송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자상하다, 개인활동을 좋아해서 나한테 신경안 쓸거 같다."] /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에서 <잘생긴 멤버>투표는 하하와 함께 공동 1위(!)[* 투표를 누가 하든, 이런 외모 투표는 거의 대부분 인기투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누가봐도 잘생겼다고 보기 힘든 박명수가 스태프가 뽑은 외모 위에서 1위를 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평소에 스태프들 사이에 박명수 이미지가 나빴다면 절때 불가능 했을 거란 소리.] 2012년 300회 특집에서 <멤버 전원 싱글이라면 사귀거나 소개시켜주고 싶은 멤버>투표는 3위[* 젊은 박명수라면 가능... 절때 바람 못 필거 같아서. 참고로 이때 정준하와 길은 0표였다.~~안습~~] 2015년 425화 오프닝에선 <오디오 끄고 싶은 멤버>는 5위[* 이때는 멤버가 5명이었다. 이유는 말을 별로 안해서] <사진 찍고 싶은 멤버>는 2위[* 박명수가 찍지 말라고 해서 거의 못 찍어서 그래서 더 찍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총각이면 이상형 위>는 1위[* 한 명의 여자작가가 뽑은 위에서 1위를 했다. 이유는 질리지 않을 거 같아서] 2017년 히든카드 특집에선 '스태프들이 돈을 얼마나 빌려 줄지' 배포를 적었는데 박명수 매니저가 5,000만원을 적음으로써 1위 및 배포킹으로 뽑혔다. 사실 이 스태프 투표가 의외로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은 멤버들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반해 스태프들은 사적인 모습도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는 안티의 대부분이 방송 때문에 생긴 것인데[* 보통 욕먹는 타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사생활은 매우 깔끔한 사람인데 오직 방송 모습때문에 안티가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 만약 방송 외적으로도 그랬다면 스태프들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렸을리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대체로 밥값을 잘 쏘는 멤버로 보인다. 멤버들끼리 떠들때도 큰 거는 재석이형과 명수형이 산다고 증언하기도 했고]
         가족 관계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며 남동생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재에도 양친 모두 건강하시다. 참고로 어머니의 성함은 '신갑'이시라고. 결혼 당시 나이가 19세로 굉장히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박명수를 낳았는데, 박명수는 "그 시절은 원래 그랬다. 할 거 없어서 결혼 그냥 빨리 했다"라고 말했다(...). 어시장에서 넘어져 크게 다쳐 주변을 피로 물들여 '''어시장 피바다'''라는 이명을 가지고 계시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물으며 방송 나가면 좋은 반응뿐 아니라 나쁜 반응도 부지기수라 힘들거라고 맴버들 모두가 걱정하고 박명수 역시 나쁜 반응으로 상처받는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간 반대해왔고 못 견딜거 같으면 하지 말라고 하자 이에 "한번 견뎌 볼께요."로 쌍 해골을 날려준다. 해당 분량이 방송되던 날 검색어 위 목록에 ''''한수민 무한도전''''이라고 뜨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방송에서 악역 캐릭터를 맡고 있음에도 악성 루머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박명수 본인은 방송에서 자꾸 자신의 선행을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부끄러워서 그런 것도 있겠으나, 컨셉이 독설, 호통인데 너무 '착한 사람' 이미지가 강해지면 웃길 수가 없어서인 듯하다. 실제로 캐릭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미담이 밝혀지는 걸 꺼린다고 하하가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9802012&ctg=1502|인터뷰]] 했다. 무한도전에서 만들어준 컨셉인 '''억지기부'''도 엄청 껄끄러워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이런 류의 잘 알려지지 않는 미담이나 방송상에서는 펄쩍 뛰면서도 잊을 만하면 억지기부 컨셉을 반복하는 걸 보면 그냥 개그를 위해 그런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가장 압권은 춘향전편에서 그네를 타면서 외친 '이제 더 이상 기부할 수 없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유재석한테 꼬투리 잡혀서 에어컨과 햄버거 100개를 기부하게 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경악할만한 발언인데, 박명수가 하다보니 다들 빵 터졌을 뿐 누구도 논란으로 삼지 않았다.]. 알바생이나 택시 기사의 실수로 인한 사고도 자신이 수리비를 부담한 것도 무한도전에서 얘기가 나오니 "보는 눈이 많아 이미지 관리하려고 그랬다."[* 택시의 경우 블랙박스도 있는데다가 여자 승객들이 스마트 폰을 들고 있어서 겁 먹었다고 드립을 쳤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드립이고, 실상 그렇게 보는 눈이 많다면 더더욱 본인 실수가 아닌데 수리비를 부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택시측 수리비까지 내줬으니 선의를 의심할 여지는 별로 없다.], "스트레스 풀려면 제 차를 받아라." 라고 말하고, 이 간 생긴 '도로 위의 성자'란 별명도 멤버들이 줄여서 '도성'이라 하는 등 개그로 승화시켰다. 무한도전 300회 특집에서 나온 노홍철의 말에 따르면 일부러 실생활에서도 캐릭터를 연기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나오게 유도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형은 그게 진짜 같은데...~~ 노홍철도 그 가르침을 받아 사기꾼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실생활에서도 평소 선행과는 별도로 생활하는 습관을 고수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준하]]의 바지를 최소한 2번 이상 벗긴 연예인이다. [[SS501(아이돌)|SS501]]이 나왔을 때 한 번, 뉴욕 갔을 때 한 번 벗겼다. 특히 SS501이 나왔을 때 벗겼을 때는 너무 충격적이게도 '''하반신의 모든 것'''을 벗겼는데 하필 그날 녹화현장에 SS501 여성팬들도 많아서 문자 그대로 대 망신을 당했다. 그래서 박명수도 정준하에게 엄청 미안해했다고 한다. 항상 물고 뜯던 정준하에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하라는 방송은 안하고]]~~ 그렇게 살갑게 구는 박명수는 앞으로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방송 후반부에선 어느 간부터 박명수는 물론이고 무한도전이고 SS501이고 하나같이 정준하가 뭘 할때마다 과하게 환호 해주고 오버액션까지 하며 잘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 이랬는지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바로 바지 벗기기 때문. 이것 때문에 정준하는 잠시 박명수와 관계가 불편해지기도 했다하며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심하게 우울해하는 등 마음에 상처가 컸던 것 같다. 하&수로 늘 티격태격하며 정준하를 갈구는 박명수도 이 사건만큼은 몇년이 지난 지금 이야기해도 아무 반론이나 개그없이 미안했다고 숙연해지는 등 두사람 모두에게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듯하다.
  • 박희광 . . . . 11회 일치
         이 사건은 당시 뤼(여)지역 언론에 보도된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사건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 독립운동을 펼치는데
         박희광은 1924년6월7일 상해임시정부(김구 선생)의 지령으로 김광추, 김병현과 함께 봉천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이날 저녁 대서관(大西關)에서 군자금을 탈취하고, 금정관(金井館)에서 다시 군자금 300엔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일본, 중국 경찰과 총격전끝에 현장에서 김병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김광추는 총격전을 벌이다 현장에서 국하였다
         == 뤼감옥 수감생활 ==
         박희광선생은 뤼지방법원 1심에서 사형, 뤼지방고등법원 2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1924년부터 1943년까지 뤼형무소(중국 뤼지역)에서 신채호, 이회영, 우덕, 김병현 등과 함께 수감생활을 했었다. 선생은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받았으며, 출옥후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렸다고 한다.
         뤼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로써는 최장기 복역중 일본천황 즉위와 황태자 출생 등 두 차례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2016년 8월15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뤼감옥 박물관과 다롄외국어대 김월배 교수의 도움으로 안중근, 신채호, 박희광, 백여범, 채세윤 등 이분들의 수감생활을 짐작할수 있는 역사적 자료를 전시하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 스틸오션/미국 . . . . 11회 일치
         == 양함 트리 ==
         >오마하급 양함은 고속 성능과 적 구축함을 격퇴하기 위한 대구경 함포를 가진 양함이었다. 구식 함선답게 오마하급 함선들은 2선에 보내졌다. 10척의 오마하급 중 격침된 함선은 없다. 밀워키(Milwaukee)는 소련 해군에 대여되었다.
         >애틀랜타급 양함은 원래 선도구축함으로 설계된 경양함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효과적인 대공구축함이라는걸 증명해냈다. 애틀랜타급 양함 총 네척과 개선형인 오클랜드급 양함(Oakland-class) 네척이 발주되었다. 애틀랜타는 1942년 11월 13일에 일어난 과달카날 해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격침되었다. 주노(Juneau)는 인디스펜서블 해협에서 후퇴하던 도중 일본 잠수함 I-19에게 격침되었다. 이때 사망자에는 설리반 오형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설리반 오형제의 죽음으로 미 전쟁성은 솔서바이버 정책[* Sole Survivor Policy. 형제들 중 전사자가 있을 경우 병역이나 전투병과에서 제외되는 정책.]을 채택한다.
         >15문의 6인치 함포로 무장한 브루클린급 양함은 일본 모가미급의 대항마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들은 최전선 각지에서 활동했다. 헬레나(Helena)는 쿨라 만 해전에서 어뢰에 맞아 격침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몇몇 브루클린급이 다른 나라로 양도되었다. 그중 하나인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예전 이름은 피닉스(Phoenix)-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구축함에 의해 격침되었다.
         >뉴올리언스급 중양함은 미해군이 운용한 마지막 "조약형" 양함이다. 7척의 뉴올리언스급 함선이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했다. 살보섬 해전에서 3척의 뉴올리언스급이 침몰했다. 아스토리아(Astoria)는 65발의 포탄을 맞고 격침되었으며 퀸시(Quincy)와 빈센스(Vincennes)는 어뢰에 격침되었다.
         >렉싱턴급 항공모함은 본래 양전함으로 계획되었지만 워싱턴 해군 조약으로 인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두척의 렉싱턴급이 항모 전술 훈련에 사용되었다. 초도함인 렉싱턴은 산호해 해전에 참가해 한척의 일본군 항공모함을 격침시켰지만 자신도 피해 수습에 실패해 침몰하였다.
  • 영주시 . . . . 11회 일치
         ||<bgcolor=#21610B> {{{#FFFFFF △ 선비촌 (영주시 흥면 소백로 2796)}}} ||
         || 영천군[br](榮川郡, 1895)[br]풍기군[br](豊基郡, 1895)[br]흥군[br](順興郡, 1895) || → || 영주군 [br] (榮州郡, 1914) || → || 영주시 [br](1980) [br] 영풍군 [br](榮豊郡, 1980) || → || '''영주시''' [br] (1995) ||
         2018년 6월 26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영주시청이 2019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영주시 흥면 청구리(소수서원)~단산면 병산리(선비세상 관광단지) 2.8㎞ 구간에 총 사업비 100억원(국비 50억, 경북도비 5억, 영주시비 45억원)을 투입해 모노레일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노레일 설치와 함께 탑승장 3곳과 정거장 5곳, 회랑(1548㎡)을 설치하고 모노레일 차량 14량(8인승)을 투입한다고 한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65078|꿈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rain&no=868480|이루어진다]].
         대부분 [[소백산]] 자락인 시의 북부에 위치해 있다. 안동에 다소 묻힌 감이 없잖아 있지만 영주 역시 전통 문화의 향수가 짙게 배인 곳. 흥면에는 선비촌이라는 한옥마을이 존재하고,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이 이 곳에 위치한다. [[1박 2일]]에서도 촬영한 바 있다.
         부석면의 봉황산 자락에는 그 유명한 [[부석사]]가 있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최우 작가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배경)과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볼 수 있다.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 문화재인데, 이 좌상은 향토색이 강조되고 인체비례적 아름다움에서는 약간 떨어지는 ~~저퀄~~고려 불상과는 달리 [[신라]] 불상의 양식을 계승해 균형미를 갖춘 불상으로 평가된다.
         영주에 왔으면 딴건 다 못해도 한우는 꼭 먹어보자. 정말 싼 가격에 좋은 한우를 구입할 수 있다. [[과일]]의 경우 전체적으론 사과가 주류이지만 흥면의 경우 [[복숭아]], 단산면은 [[포도]]도 유명하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대한민국의 지리적 표시제]]를 적용받는 농산물로는 영주 사과가 있다.
          * 의외로 영주 시내에는 '맛집' 이라고 할만한 식당들이 잘 소개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대부분 맛집이라고 할만한 식당들은 영주시내에 있지 않고 "정말 이런데 식당이 있어요?" 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주시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민물매운탕, 오리고기, 닭발과 같은 히든(?) 식당들의 경우 대중교통으로 가기 불가능하며 광고도 하지 않아 입소문으로 알고가지 않는 한 알고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달을 시켜보려고 배달책을 펴는 간 정말 먹을 것이 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 그러므로 지역민들이 점심 저녁으로 꾸준하게 찾을만한 맛있는 식당을 아는 경우가 많아 영주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꽤 괜찮은 식당을 알 수 있다.
         || '''흥면''' ||<:>14.62%||<:>{{{#C9151E 62.76%}}}||<:>13.97%||<:>5.64%||<:>2.31%||<:>{{{#808080 ▼48.14}}}||<:> 80.05 ||
         || '''읍·면지역'''[* 풍기읍, 이산면, 평은면, 문수면, 장수면, 안정면, 봉현면, 흥면, 단산면, 부석면 (구 영풍군)] ||<:>15.15%||<:>{{{#C9151E 60.00%}}}||<:>14.06%||<:>6.98%||<:>2.75%||<:>{{{#808080 ▼44.85}}}||<:> 73.60 ||
          * [[경상북도]]에서는 [[경주시]] 다음으로 [[양반]]이 많았던 곳으로, ~~[[안동시]]는?~~ 전국에서는 경주, 목천[* 현재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및 그 주변.] 다음의 3번째 위였다.
          * 2016년 11월 15일, [[박근혜-최실 게이트]]의 여파로 전국 유림 중 최초로 영주 지역 유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격문을 발표했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56736|#]]
  • 은지원 . . . . 11회 일치
         ||<#000000> '''{{{#FFFFFF SNS}}}''' ||<(> [[https://www.instagram.com/1_kyne_g1/|인스타그램]][* 비공개 상태다. --사실 [[박근혜-최실 게이트|이 사건 때문에...]]--] ||
         실제로 보면 무표정한 얼굴에 눈매가 정말 매섭고 ~~다크서클도 진해서~~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다. --죽여달라거나 덮쳐보자는 식의--센 문구 투성이였던 당시 팬들의 응원 현수막에는 정말 이례적으로 매우 공손하게 '은지원! 쳐다봐도 되나요?'라는 문구가 있었을 정도였고, 젝키 멤버들이 밴에서 내릴 때 은지원만은 팬들이 알아서 길을 터줄(...) 정도로 포스 있었다. 현장을 따라다니던 팬들이 은지원의 말은 알아서 꼬박꼬박 잘 들을 정도였다. --날이 어두워지니 집에 가라고 하면 히 갔다고 한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어서 팬들에게 자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는 장난 섞인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이미지가 고민이었는지, 자신이 재밌는 사람이 아니지만 웃음을 주어 친근해지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된 수필 같은 것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예능에서 은초딩이 되었다--
         2012~2013년까진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시즌1]], [[쇼미더머니2|2]]에 출연했었다. 그것도 참가자나 프로듀서가 아닌 MC로 지금이야 쇼미MC하면 [[김진표]]가 제일 유명하지만 이 사람이전에는 쇼미MC라는 소리를 들었었고, 아이돌 출신으로서 최초로 쇼미더머니에 출연하였다. 그것도 진행자로.[* 쇼미[[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시즌1]], [[쇼미더머니2|2]]와 [[쇼미더머니3|3]], [[쇼미더머니4|4]], [[쇼미더머니5|5]], [[쇼미더머니6|6]]의 MC맨트가 다른걸 알수 있다.] 쇼미더머니 MC를 하차한 이유는 음악에 위를 매기는 것에 회의감이 느껴져서라고 한다.
         다만 이러한 뛰어난 미션 수행 능력과는 반대 급부로 복불복 운은 정말 지지리도 없는 편. 대표적으로 전남 벌교 편에서 5000원쓰고도 20만원을 쓴 이수근의 꼬막 2000개를 같이 캤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일명 '꼬막의 저주'라 불리우는 08년도~09년도의 겨울 내내 야외취침과, [[1박 2일/낙오일람|낙오된 횟수]]도 4회로 가장 많은 편.[* 2번째로 많았던 경우는 [[이승기]]의 3회인데 전북 장수편에서는 이수근과 함께 낙오했으며, 녹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짰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반면에 은지원은 3회는 복불복으로, 1회는 날씨운 때문에 낙오한 것이며, 4회의 낙오를 모두 '''혼자서 겪어야 했다'''.] 낙오된 것도 굵직 굵직한 것들만 걸렸는데 첫번째 낙오는 '''무인도인''' 사승봉도, 국토대장정 특집에서 대중교통 이용해서 혼자 베이스캠프까지 찾아오기, 복불복 특집에서는 악천후에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복불복에서 단히 '서해 어촌마을' 정도만 정해졌고 정확한 위치는 가면서 정한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차림을(바보 분장에 등에는 [[지게]]를 멨다.) 하고 혼자 찾아오기, 5대섬 특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호도에 걸려서 운이 좋은 듯 싶었으나 '''풍랑주의보로 인한 결항'''으로 혼자서 다큐 3일을 찍기도 하였다.
         게다가 어릴 적에 외국에 가 있었기 때문인지 기초지식이나 어휘력 등이 상당히 빈약하다. 토토가 이전에 '뇌가 수한 사람'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도 있고, 젝스키스 멤버들이 단체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는 은지원 혼자만 '친탁', '총망라'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며 한글 맞춤법도 자주 틀리는 편. 즉, 타고난 눈치나 잔머리는 뛰어나지만 후천적인 지식이 부족한 타입.
         하지만 이것을 단지 운이 좋아 얻은 것처럼 표현 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예능 혹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수많은 연예인이 거쳐가고 고정이 되었지만 은지원만큼 캐릭터를 얻고 예능적 활약으로 두드러져 주목 받아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은지원은 젝스키스 시절부터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듯이 뜨기위해 야망이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예능에서 웃기기위해 예능감을 쌓고 필요한 간에 필요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센스를 다년간 기르며 꾸준히 노력해서 성장했다.
         그랬기에 '천하장사'나 '공조7' 혹은 '인간의 조건', '옆집의 ceo'등 수많은 리얼예능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고, 장수하는 예능인으로 방송계에서 꾸준히 살아남았다. 해당 예능 프로그램들은 장수하지 못한 프로그램이지만, 그 안에서의 분량을 찾아보면 감초역할로 간적인 리얼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예능센스가 다른 출연진에 비해 돋보인다. 다만 예능 프로그램이 단지 출연진 한, 두명이 웃긴다고 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작진이나 연출 방향, 편집 스타일, 프로그램 의도, 미션이나 주어진 상황과 게임, 출연진간의 케미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하장사'나 '공조7'은 출연진들이 센스가 넘쳤고, 케미도 좋았으나 다수의 시청자들이 제작진들의 프로그램 방향이나, 의도 또는 연출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받은 바 있다.] 1박 2일 이후 신서유기를 제외하고 특히 히트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 또한 복불복 운과 같이 운이 없는 축에 속하는 편.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진외당고모[* 陳外堂姑母, 아버지의 외사촌 누나 또는 여동생. 자신과는 5촌.]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2011년 박근혜의 트위터에 "조카 지원이와 함께..." 라고 올라온 사진이다. 쉽게 말하면 은지원은 [[박정희]]의 누나의 손자이다. 박정희의 큰누나인 박귀희는 박정희가 태어났을 당시 은씨 집안으로 시집가서 장남을 임신한 상태였고 은지원의 아버지 은희만은 박귀희의 둘째 아들이다.[* 다른 기사에는 장남으로 나오기도 하고 또 다른 기사에는 셋째 아들이라고 나오기도 한다.] 즉, 은지원 아버지의 외삼촌이 바로 박정희. 이 때문에 '''연예계를 대표하는 금수저'''로 항상 언급된다. 하지만, [[박근혜-최실 게이트]]로 인해 결국 [[박근혜|고모]]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탄핵 인용]]'''이 되면서 '''흑역사 중의 흑역사'''가 됐다.
         '''그리고 그 [[박근혜|고모]]'''는 '''[[최실 게이트|초대형 사고를 치고 감옥간 대한민국 최악의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많이 시달리는듯 하다. 자신이 저지른 사고는 아니지만 사고의 규모도 규모고 앞장서서 지원유세까지 했기 때문...
          * [[츤데레]]다. 문제는 팬들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츤데레라는 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425001447491|젝키 시절 사생팬들에게 쓴 손편지]] 멤버들 중 유독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과 티격태격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도시락 때문에 싸웠다거나 이재진이 반항을 많이 했다는 언급도 몇번 해서 사이가 나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친하다. 애초에 이재진이 코가 크다는 이유로(...) 젝키 멤버가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막 합류한 김재덕이 이재진을 두둔했는데[* 이재진과 김재덕은 부산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재덕에게 처음으로 춤을 가르쳐준 사람이 이재진이고 같은 댄스팀에서 활동했으며 함께 상경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이 때 은지원이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라면서 회사를 설득하여 무사히 젝키 멤버가 되었다. 해체 후 각자 솔로활동을 하던 시절에 이재진이 라디오 출연했을 때 [[https://youtu.be/BZ2QCgkw_pg|은지원이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고, 이재진이 군대 전역 후 인터뷰에서 '입대 전까지 지원이 형, [[강성훈|성훈이]]랑 연락했다. 이제 나왔으니 또 연락할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둘이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서로를 까면서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 간 죽이 맞거나, 남들이 까면 은근히 편을 들어주거나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잡지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은지원을 꼽기도 했다. 젝스키스 무대나 예능에서도 은지원이 동생들을 계속 모니터링하며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프로 츤데레일 뿐-- 해체 직후에 총알받이가 되어가며 황급히 솔로로 나온 것 자체가 동생들이 최대한 편히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누가 먼저 나오든 엄청난 욕을 먹을 것이라 나서서 총대를 맨 것. 재결합 전까지 젝스키스 언급을 자제하거나 상징색을 노랑이 아닌 은색을 써서 팬들에게 젝스키스를 부끄러워한다, 싫어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오해받을 당시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젝스키스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 당시 현실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발언해 어린 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등 돌린 부분도 크다.-- 젝키가 다시 뭉쳤을 때 일개 추억팔이가 되어 과거의 추억까지 격하당할 것을 염려한 흔적이 많다. 게다가 그동안 리더로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재결합 후 반응이 좋자 마치 용서받은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노란색 관련해서는 예능에서 남들이 다 싫다는 샛노란 체육복을 젝키는 노랑이라며 좋아하거나, 우비를 노란 우비 위주로 입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희준이 방송에서 은지원은 오해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문제는 오해받더라도 해명하지 않는다는 것.
  • 정성왕후 . . . . 11회 일치
         |후임자 = [[효왕후|현빈 조씨]](효왕후)
         |후임자2 = [[정왕후 (조선 영조)|정왕후]]
         [[1757년]], 66살의 나이로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아버지인 [[조선 숙종|숙종]]의 명릉(明陵) 근처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정성왕후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다. 그러나 [[1776년]], 영조가 승하한 뒤 손자인 [[조선 정조|정조]]는 당시 왕대비(王大妃)였던 영조의 계비인 [[정왕후 (영조)|정왕후]]를 의식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에 영조와 정왕후의 무덤인 [[원릉]]을 조성하였고 결국 정성왕후는 옆자리가 비워진채 홍릉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 며느리 : [[효왕후|효소황후]] 조씨(孝順昭皇后 趙氏, 1715~1751)
         후임자=[[정왕후 (조선 영조)|정왕후]]|
  • 풍운 . . . . 11회 일치
         이 만화에서 보기 드물게 정말로 수하게 올곧은 마음을 가진 정의로운 사나이.--풍운도 일단 올곧은 마음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뭔가 깨는 면이 있다.--
         회공이 나중에 사부의 복수를 위해서 연철수를 연마하기 위해 제석천을 찾아가 천문과 엮이게 되면서, 천문 스토리가 시작된다. 제석천의 정체를 알게 되자 상대가 안됨에도 제석천과 필사적으로 대결을 벌이게 되고, 제석천을 경악하게 만들 정도의 연철수의 위력을 보여주지만, 결국 제석천에게 죽음을 맞고 만다. 회공의 죽음을 보고 보경운이 '회형제'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명을 받을 정도로 감동적. 정말 이 만화에서 보기 드물게 수하고 올곧은 청년이라 회공의 죽음은 감명이 깊다.
         제석천에게 낚여서(…) 천문에 들어가지만, 천문의 문도로서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과 회공과의 우정에 갈등을 느낀다. 결국 회공을 돕기로 하고 천문을 배신한다. 최후의 간에는 제석천의 공격에 받아 얼음에 갇힌 회공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부딪쳐서 얼음을 부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장렬하게 사망. 그러나 그의 피가 얼음의 틈새로 뚫고 들어가 회공의 몸에 닿는 간, 무이의 죽음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 회공은 연철수의 공력이 극한을 넘어서 얼음을 뚫고 나와 제석천에게 타격을 입힐 정도의 활약을 하게 된다.
         배검산장-절세호검편에 등장. 간사한 외모를 가진 검법가. 자신의 무공에 맞는 검을 찾는데 집착하고 있으며, 좋은 명검을 받는 대신에 마누라를 검마에게 넘겨줄 정도(…)로 검에 극도로 집착한다. 그 만큼 검을 보는 안목은 대단히 높다. 하는 짓을 보면 개그 캐릭터 같지만 상당한 강캐였는데, 배검산장 편이 끝나고 동영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식간에 삭제당해서 검마와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무명에 필적할 정도의 고수. 현재 배검산장을 지배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손가락에서 그냥 빔을 쏘는 거지만 검기를 쏘는 거니까 검술이라고 주장하는(…) 단맥검기를 무공으로 사용한다. 배검산장 편의 최종보스로 엄청난 무공을 자랑했으나, 동영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식간에 삭제당해서 사형제인 검빈과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식간에 정리된 캐릭터지만, 이 때문에 섭풍은 독고명, 독고몽 등 무쌍성 잔당들의 원수가 되나, 나중에 알고보니 죽은 독고일방은 가짜였다. 진짜는 살아있었던게 아니고, 다른데서 죽어있었다.--두 번 죽이냐--
         '''성령검법 ''' : 검성의 무공. 초식명이 단하게 숫자로 메겨져 있는데, 20을 넘어가면 스물 입(廿)자를 써서 검입일(劍廿一), 검입이(劍廿二), 검입삼(劍廿三)으로 나아간다.
         '''성령검법 검입삼''' : 웅패와의 대결에 나서던 검성이 노령으로 기력이 다하여 미처 대련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간에 완성한 성령검법의 궁극형태. 검성이 죽음을 맞는 간의 의지로서 구현된 검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양기와 생명의 표상인 무명의 '천검'에 대응하는 죽음의 검법. 무림의 신화, 검성을 능가하는 실력을 지닌 영웅 무명 조차도 검입삼은 천하무적의 무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을 정도. 그 설명에 걸맞게 위압감은 엄청나다.
         그 실체는 검법인지 무공인지도 불확실한 것으로서(…)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을 멈추고''' 자기 혼자만이 움직이면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 적에게 일격을 날리는 검법이다.--[[더 월드]]-- 단히 혈도를 찌르거나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천지를 검기로 억압'해서 시간이 멈춘 상태로 다가가면서 걸리는건 전부다 죽음을 맞게 하는 무차별 살상기술이다. 시간을 멈추는 공격이므로 당연히 검입삼은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듯. 엄청난 사기성에 웅패도 죽음을 각오했으나, 검성이 웅패도 같이 하늘로 데려가기 직전에 보경운이 검성의 시체에 발길질을 날려서 계단에서 날려버린 탓에(…) 검입삼이 깨지고 검성의 영혼이 그대로 승천하면서 웅패는 살아남는다.(다만 검성의 영혼이 찌른 손가락에 심한 내상을 입었다.)
  • 한규복 (1881년) . . . . 11회 일치
         [[1903년]] [[대한제국]]의 [[탁지부]] 주사가 되었다. [[1904년]](광무 7년) [[9월 27일]] [[대한제국 국군]] [[참모부]] [[번역관]]보(參謀部飜譯官補)가 되고 [[판임관]] 6등(判任官六等)에 임용되었다. [[1905년]](광무 8년) [[3월 21일]] [[군부]] [[번역관]](飜譯官)으로 승진,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이 되었다. 이후 [[군부 (대한제국)|군부]], [[탁지부]] 등 여러 부처에서 번역관 벼슬 등을 지내고 [[탁지부]] 서기관과 주임관을 역임하였다. [[1905년]] [[11월 5일]] [[경기전]]을 건축하는데 참여한 공로로 6품으로 승진하였다. [[1906년]] 탁지부 번역관으로 옮겼다. 그해 [[1월 19일]] [[릉]]비각영건과 표석 수립에 감독관으로 참여한 공로로 다시 6품에서 정3품으로 [[가자]], 일약 승진하였다.
         }}</ref> 인물평은 “탁월한 식견과 정려한 행동으로 출세”한 인물로 되어 있으며, 소신과 추진력이 있어 가는 곳마다 치적을 쌓고 민정을 화시켰다고 적혀 있다.
         [[1937년]] [[1월]] [[방송선전협의회]](放送宣傳協議會) 위원으로 위촉되어 수양강좌·부인강좌·상식강좌의 강사로 출연하였고, [[7월]] [[중추원]] 주최 행사에 참여하였다. 동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들의 소득을 조사할 목적으로 국민소득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 한규복은 국민소득조사위원회 경성지역 관내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8월 3일]]부터는 [[10월]]까지 총독부 학무국에서 지나사변 이후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고자 회시국강연위원회를 조직할 때 연사가 되어 [[서울]]과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8월 16일]]에는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시국강연을 하였다. [[9월 10일]]에는 용인공보교 대강당에서 [[용인군]] 지역 시국강연회를 주최하였다.
         [[1939년]] [[6월 4일]] [[중추원]] 참의로 재선되었다. [[8월 5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주최로 전국 회강연을 할 때, 회강사가 되어 국민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백억 저축 생활 쇄신'이라는 주제로 전국 회강연을 다녔다. [[9월 26일]]에는 각지의 노무자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사회조사위원회]] 위원에 피임되었다.<ref>"勞務者와 細窮民을 來月中에 綜合調査", 동아일보 1939년 09월 26일자 2면, 사회면</ref> 그해 [[9월 30일]] [[경성]]에서 자본금 백만원을 투자하여 [[조선공영회사]](朝鮮工營會社)를 창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5일]]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임시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사퇴했다. [[12월 22일]] [[세제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39년]]부터 그는 [[경성부]], [[충주군]], [[함양군]], [[수원군]], [[용인군]], [[양주군]] 등을 다니며 저축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인용문2|자수 편지<br /><br />천운(天運)이 환하사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되니 산천(山川)과 초목이 다시 금빛이 나고 잃었던 자유가 우리 몸에 다시 오니 일반의 환희는 무엇으로 형용하리요. 하물며 일제시대에 허다의 압제를 견디면서 관리생활을 계속한 본인으로서는 더욱더욱 감개무량이외다. 본인은 대한제국시대에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조도전 대학早에서 정치경제과를 졸업한 고로 행정관으로 출세하여 민중지도에 노력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관계(官界)에 투신하여 도지부 서기관으로 재임한 채로 병합을 당하여 임시토지조사국 감사관에 임명되었을 때 본인은 자신처리에 대하여 재삼 고려한 결과 나의 지력과 성력의 한도대로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견해로 관리생활을 계속하여 [[도지사]]를 역임하고 正4位 勳3등까지 되었으니 가위 고급관리의 지위까지 점진하였다고 하겠으며 30여 년간 관리생활을 하는 중에 민중의 계발을 여하(如何)한 정도로 하였느냐 하면 구체적으로 진술할 재료는 제공치 못하나 다만 양심적으로 민중을 지도하고 또한 민중의 의지를 대표하여 항거할 점은 어디까지든지 항론도 사양치 아니 하였으며 평범한 정치로 민중에 임하고 공정렴근(公正廉謹)으로서 관계일생(官界一生)의 목표로 삼은 것은 천인(天人)이 공인(共認)하는바 옵니다. 그러하니 민중에 대하여 행복이 되고 이익이 된 점을 일일이 수거치는 못하고 다만 장구한 세월의 관리생활을 하였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며 무엇이라고 변명하오리까. 금일에 지하여는 전일의 양심적으로 민중을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보도, 노력한 점은 무형(無形)으로 돌아가고 다만 관계생활(官界生活)을 하여 일제에 아부한 자로 추인되어 이 점이 기탄불기(慨歎不已)할 뿐더러 관리생활로 일생을 보낸 것이 참회되는 바이며 근신(勤愼)할 뿐이 옵니다. 오직 현명한 당국의 선악을 분별하사 관대한 처분만 바라옵고 감히 소회(所懷)의 일단을 진백(陳白)하나이다.<br><Br>단기 4282년 8월 12일<br />위 인 한규복<br><br>반민행위특별조사위원회 귀중|[[1949년]] [[8월 12일]] 자수 직전에 [[반민특위]]에 보낸 편지}}
         [[1949년]] [[8월 31일]]의 [[반민특위]] 최종 심리에서 그는 반민법(제4조 2항, 3항) 위반의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사실及이유 본건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의 의견서 기재 범죄사실에 관하여 수사한 바, 피의자는 한일합방 전부터 일제시대까지 30여년 간에 亘하여 관리생활을 계속하고 최후에 [[중추원]] [[참의]]까지 임명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으나, 평소 그가 악질적으로 민족에게 해를 끼쳤다는 현저한 증거가 없음으로 주문과 如히 결정함'이라고 결정되었다. 그는 히 수사에 협조, 진술하여 정상참작이 되었다. [[1950년]] 초 한규복은 [[김시권]](金時權) 등과 함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 자부 : 여흥민씨 민정(閔貞順, [[1930년]] [[6월 19일]] - ?), 민학수의 딸
         한규복만큼 영달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초기에 고도간에 다녔던 조선인 학생들은 거의 다 저항보다 체제 응을 선호했다.<ref>인물과사상사, 《인물과 사상 2004년 7월호》 (인물과사상사, 2004) 212페이지</ref>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10회 일치
         ||<#9A7CA7> {{{#FFFFFF '''출생'''}}} ||<(> [[1971년]] [[3월 2일]] ([age(1971-03-02)]세)[br][[전라남도]] [[화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0&aid=0000063442|1989년]] [[미스코리아]] 선[* 당시 진은 [[오현경(여배우)|오현경]]이었다.] 출신. 그런데 연기자로 데뷔는 [[한국방송공사|KBS]]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주인공 집안의 딸인 말숙 역으로 했다. 미인대회 출신이면서도 촌스럽다 생각할 수 있는 역부터 시작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 촬영장에 대기하는 시간 동안, '선생님들'이랑 어울릴 없으니까 같이 나왔던 아역 탤런트들 군기(..라고는 해도 자기가 제일 크니까 키서 나이서로 줄세우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 인터뷰가 있다. 무려 그때부터;]
         은퇴한 지 딱 10년 후, 일드 '별의 금화'를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봄날"을 통해 실어증에 걸린 인물의 역할을 소화해내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조인성]]과 호연하여, 원래 [[지진희]]와 이어져야 했는데 시청자 반응으로 [[NTR]] 발생. 공교롭게도 모래시계를 찍고 떠난 [[SBS]] 드라마를 통해 복귀하였다.] 2006년에는 충격의 후속작 "여우야 뭐하니"[* [[내 이름은 김삼]]을 쓴 김도우 작가의 후속작으로, 여주인공 고병희는 3류 에로잡지 기자 겸 편집부 겸 영업부 겸... 이 드라마에서 고현정의 동생으로 출연한 김은주는 드라마가 끝난 후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이름을 본뜬 [[고준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현재도 둘은 친하다고.~~립서비스 같지만 넘어가자~~], [[홍상수]] 감독 최초의 15금 영화(...나머지는 물론 19금) "해변의 여인",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 콤비의 [[히트(2007)|히트]]를 찍으면서 두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봄날" 빼고는 다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고현정의 시대는 갔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 단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을 캐스팅한 것이 예산의 대부분일 정도로 저예산일뿐 아니라 원래 대충 찍어도 졸라 좋은데 대중성은 엿바꿔 먹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제외해도 좋다.] 히트로 인연을 맺었던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의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아 카리스마로 신드롬을 터뜨리며 [* 삼성경제연구소 올해의 10대 히트상품에 [[소녀시대]]와 같이 실려버림.~~본진을 털었다!~~] "역시 고현정이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수현 드라마 주연 출신이어서, 정확하고 약간 빠른 발음을 구사한다. 연기력은 엄마의 바다나 두려움없는 사랑이 인기였던 모래시계 이전에도 주연을 맡을 만하다는 평이었는데,(우는 장면에서 근성의 노메이크업으로 펑펑 울거나) 모래시계 때 레전설 소리를 들었다.~~그리고 총알은퇴. 관광지 [[정동진역]]을 남기고.~~ [* 김종학 감독은 연기력이 아까워 결혼을 말렸다고 이후에 인터뷰한 바 있다.] 김종학 감독은 20대 초반의 고현정을 두고 한 줄의 대사로도 파급력을 갖는 배우라고 이야기했으며 복귀 후의 고현정은 봄날의 실어증 여주인공, 여우야 뭐하니의 음란 잡지 기자, 히트의 강력반 형사 등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를 펼쳤다. 트레이드마크인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디테일한 연기[* '무언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미덕(단히 매력이 아닌)을 지니고서도 나쁜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미실을 얼굴의 오른쪽과 왼쪽, 입과 눈과 눈썹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며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로 강렬하게 소화해낸 고현정은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이자 일등공신이다.' -이영미(문화 평론가). 시사IN 기사 중] 는 선덕여왕 때 처음 화제가 되었다. 비결에 대해, '사극이라 몸이 안움직이니 얼굴이라도 움직여야 시청자들을 잡겠다 싶어서...'라고 코멘트. 같이 촬영했던 [[이재]]도 인상적이었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이재]]는 헐리우드로 지금 당장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김명민]], [[김희애]], 고현정을 꼽았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주인공에 비해 많지 않았던 분량임에도[* 어느 팬의 편집 결과에 의하면 62부작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나온 시간은 1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주요 시상식을 휩쓸고 그해 실시된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38%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51965|#]] 차기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대물은 방영 내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작가, 감독이 바뀌는 등 내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드라마 내용은 산으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의 연기는 호연이었다는 반응과 함께 2년 연속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때 2위와의 격차가 무려 23%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156691|#]] 여왕의 교실은 시청률 면에서는 고현정 필모그래피에서 최하를 기록했지만 무표정에서 종종 보여지는 미세한 표정 연기(일명 나노 연기)는 미실을 능가했다는 반응도 얻어 원작과 다른 마여진을 만들어냈다며 호평을 받았다.
         ||<|2> 2009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주연 || 고 ||
         [[분류:한국 여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성 방송인]][[분류:화군 출신 인물]][[분류:1971년 출생]][[분류:1989년 데뷔]]
  • 권혁 . . . . 10회 일치
         그리고 결국 4월 16일 1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까]]라인~~[* [[정현욱]]-[[오승환]]-권-[[권오준]]-[[안지만]]의 이니셜 앞글자를 따면 JOKKA다. 자세한건 조까항목 참고. ~~선수들 욕하는 아니다. 타자들 조까라는 뜻~~]...이 아니라 [[안정권KO]] 라인이 완성되었다.[* 사실 조까보단 안정권KO가 등판서에 더 어울린다. 그리고 2011년엔 안지만이 선발로 나오면서 진짜 안정권KO 서대로 등판할 뻔 했다!]
         22일 NC와의 시범경기에서 9회 말에 등판하여 2구만에 첫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이동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렇게 복귀가 조롭게 진행되겠다 싶을 찰나...허리 통증으로 개막전 및 4월 복귀가 불투명하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한화 팬들의 우려를 낳고 말았다.
         팬들은 권혁은 2군으로 내려서 쉬게하고 추격조에서 가장 폼이 좋은 [[이동걸]]이나 구위는 좋으나 선발로 쓰기에는 이닝 소화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윤규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자존심에 히 받아들일지는...필승조가 좋아보인다고 황금알 낳는 거위 배가르듯 써버린 대가로 '''한화는 6월 초 필승조가 단 한 명도 없는 팀이 되었다.''' --양심 있으면 권혁은 건드리지 말자--
         그런데 허리 통증을 참아가면서 던졌다고 한다. 테이핑을 하고 참아가며 던지다가 더 악화된 것이며 '많이 던졌으니 다칠 때가 되었다'는 우려 섞인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고.--말하지만 이는 대놓고 말할 없으니 돌려 말한 것일 거다.--
         7월 19일 게재된 [[최계훈]] 2군 코치의 [[http://naver.me/xNOThHc9|인터뷰]]에 의하면 재활이 조로운 것인지 육성군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2016년 8월 24일, 권혁은 팔꿈치 통증으로 인하여 1군에서 말소되었다. 2016년 8월 25일 기준으로 권혁은 66경기 95.1이닝을 기록 중인데, 비록 리그는 다르지만 [[MLB|메이저 리그]]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등판하고 있는 [[오승환]]이 61경기동안 64.1이닝을 던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오승환은 전문 마무리라 단 비교는 어렵지만 그런 오승환조차 최근 잦은 등판으로 인해 혹사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당연히 오승환도 무지막지한 혹사다.--[[마이크 매시니|매시니]] [[세이콘 드립|네 이놈]]-- '''다만 이 혹사에 가려진 것 뿐이다.'''--그리고 그쪽은 [[야디어 몰리나|야디]]라도 있지 이쪽은 [[조인성(야구선수)|얘]][[차일목|네]][[허도환|들]][[정범모|뿐이라]]--]
          * [[안지만|힙합보이]]나 [[정현욱|국민노예]]에 비해 임팩트가 있는 별명이 오랫동안 없었다. 데뷔 때는 겉으로 보면 한 성깔 할 것 같은 외모, 항상 짧은 헤어스타일, 큰 키와 덩치까지 겹쳐셔 별명이 '''강백호'''였으나 금방 묻혔고(...), 오히려 다른 권씨 성을 가진 선수인 [[권오준]]과 함께 엮여서 '쌍권총'이라고 불리는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허구연|허구라]]가 발음하는 '''궈넥'''이 별명으로 쓰였을 정도. 그러던 와중 2012 시즌에 [[채태인|채르노빌]], [[최형우|최형우라늄]], [[차우찬|차르 봄바]]와 함께 하는 '''원자력 라인'''에서 [[핵]]을 맡았다.[* 사실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삼성의 사실상 유일한 좌완 필승조라는 점에서 권혁을 '불펜의 핵'으로 자주 일컬었기 때문. ~~하지만 팬들에겐 그런 거 없고 핵폭발~~] 팀을 옮긴 첫해인 2015년, [[윤규진]]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필요한 간마다 삼진을 잡아내며 '''불꽃남자''', 그 인기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대전 구장]] 내 아이돌급이란 의미인 '''대전 아이돌'''이란 별명이 추가되었다.
          * 2015년 시즌 전반기 시점에서 한화의 최고 인기 선수 중 한명. 6월까지 '''중위권'''을 유지해 본게 너무 오랜만(...)인 한화인데[* 근데 [[삼성 라이온즈|원래 있던 팀]]은 오히려 중위권에 위치해있으면 이상한 팀이다(...)--는 [[삼성 라이온즈/2016년|2016년]] 미칠듯한 너프--] 그를 위해 [[박정진]],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과 함께 눈물나는 투혼을 보여준 중간계투의 핵이기 때문이다. 대전 구장에서 권혁의 등판 간 제일 환호가 커지며, 유니폼도 권혁 마킹이 제일 잘나간다. 4종류 유니폼 권혁 마킹이 죄다 동이 나는바람에 예약까지 받는데, 예약조차 몰려서 대기자도 엄청 많다는 구단 프런트의 얘기가 있을 정도. [[한화 이글스 갤러리]]엔 이미 그의 [[등짝]]에 하악(...)대는 팬들이 출몰하고 있으며, 한화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불꽃 투혼을 가장 잘 나타내는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 한화 이글스 갤러리의 애칭은 '''권따'''. [[야민정음]]이 아니라, 2015년 청주 경기에서 '권혁 따랑해'라는 아재들의 응원 문구가 중계 영상에 잡혔는데, 이 표현이 너무 찰지게 입에 붙은 나머지 권따로 줄여 부른다. 특히 권혁이 불꽃 투구를 펼친 날에는 온갖 [[짤방]]과 [[움짤]]이 올라오고 권따 뒤에 하트를 몇개씩 붙인다(...). ~~다들 그렇게 [[게이]]가 되는거야~~
  • 김보름 . . . . 10회 일치
         | 최고위 =
         2011년 1월 14일 막을 내린 2011 전국남녀 주니어빙상선수권대회 1500m와 3000m에서 김보름은 각각 2분3초93과 4분21초30의 대회신기록을 찍으며 1위를 차지했고, 최종위에서도 167.430포인트로 대회기록을 갈아치우며 정상을 밟았다.<ref name=":1" />
         2014년 2월 9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3000m 부문에서 김보름(21)은 4분12초08의 기록으로로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조로 경기를 치른 김보름은 21초05로 200m 구간을 통과한 후 2분31초34로 1800m 구간을 지났다. 이후 2200m 구간 통과 간부터 스피드를 올리며 후반 들어 스퍼트를 올렸고, 결국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 기록을 남겼다. 김보름의 위인 13위는 지난 2006 토리노 올림픽,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노선영(25-강원도청)이 기록한 19위를 넘어 한국 여자 3000m 부문의 가장 높은 위다. 5조의 노선영은 4분19초02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200m 구간에서 21초32의 기록으로 지난 이후 속도를 올리지 못한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노선영은 전체 26위의 성적을 남기며 경기를 마쳤다. 6조에서 경기를 소화한 양신영(24-전북도청)은 4분23초67을 기록해 이날 대회를 뛴 28명 중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한편 이날 대회는 4분00초34의 이레네 부스트(네덜란드)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가져갔다. 대회 2연패를 노린 2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4분01초95)와 3위 올가 그라프(러시아-4분03초47)에 앞선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41654|제목=(소치올림픽)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13위..금메달 부스트|확인날짜=2017-03-21}}</ref> 16일 열린 1500m에서는 네덜란드의 요리엔 테르모르스가 1분53초51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쓸었다. 은메달은 이레인 뷔스트(1분54초09)에게 돌아갔고 동메달은 하를로터 판바이크(1분54초54)가 주인이 됐다. 심지어 4위도 네덜란드 선수인 마리트 리엔스트라(1분56초40)가 차지했다. 김보름은 1분59초78로 21위에 올랐다. 노선영(25-강원도청)은 2분01초07로 29위, 양신영(24-전북도청)은 2분04초13으로 최하위인 36위에 그쳤다.<ref>{{웹 인용|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3&newsid=01079126605991504&DCD=A20402|제목=[소치올림픽]테르모르스, 전날 쇼트트랙 뛰고 빙속1500m 올림픽新 금|성=포털|이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성2=무단전재|이름2=‘이데일리 스타in’-|날짜=2014-02-17|확인날짜=2017-03-21|성3=금지|이름3=재배포}}</ref> 김보름은 무릎 통증이 있어 5000m를 기권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9/20140219004640.html|제목=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성=세계일보|날짜=2014-02-19|뉴스=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2일 열린 팀추월 파이널D(7-8위 결정전)에서 김보름, 노선영(25, 강원도청), 양신영(24, 전북도청)이 나란히 달린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져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전날 8강전에서 일본에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여자 대표팀은 이날 3분11초54만에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해 3분8초35를 기록한 노르웨이에 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223322278172|제목=김보름·노선영·양신영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위에 그쳐|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3}}</ref>
         2015년 2월 26일 서울 태릉빙상경기장에서 열린 제96회 전국동계체전 대학부 3000m에 출전한 김보름(대구)이 대학부 3000m 4연패를 달성했다. 김보름은 이날 박도영(경기, 한국체대)과 같은 조로 경기를 펼쳤으며 차분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박도영과 거리를 유지해 나갔다가 경기 중반에 이뤘을때 치고 나가기 시작해 박도영과 거리를 벌리며 4분18초95로 여유롭게 결승선에 찍었다. 한편 김보름과 같은 조로 출전한 박도영은 4분21초13으로 최종위 2위로 여자 대학부 3000m를 끝마쳤다.<ref>{{웹 인용|url=http://www.yachtpia.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3|제목='전국 동계체전' 여자 대학부 3,000M 김보름 선수 금메달 획득 - 해양레저전문미디어 요트피아|언어=ko|확인날짜=2017-03-15}}</ref> 27일 열린 1500m에서도 김보름(22)이 2분04초97로 참가선수 7명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내며 4회 연속 2관왕의 대업을 일궜다. 박도영(22-한국체대-2분06초50)과 남지은(20-한국체대-2분07초01)이 각각 은, 동메달을 차지했다.<ref name=":18">{{뉴스 인용|url=http://news.zum.com/articles/20096322?cm=popular|제목=[동계체전] 곽윤기, 쇼트트랙 남자 3관왕[종합]|언어=ko|확인날짜=2017-03-17}}</ref>
         2017년 2월 9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4분03초85를 기록했다. 위는 6위에 그쳤지만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4분04초62)을 0.77초 앞당겼다. 우승은 3분59초05를 기록한 네덜란드의 이레인 뷔스트(31)가 차지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김보름의 뒷심이 발휘됐다. 첫 200m 구간을 20초45(9위)로 통과한 김보름은 레이스 중후반인 1800m 이후에도 랩타임을 줄곧 32초대로 유지하며 위를 끌어올렷다. 메달 획득은 하지 못했지만 아시아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70210/82801694/1|제목=매스스타트 간판 김보름, 3000m서 ‘한국신 스퍼트’|날짜=2017-02-10|뉴스=동아닷컴|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가 3분02초95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2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출전해 8분00초97를 기록해 60점을 획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tv.co.kr/MYH20170213003000038/|제목=김보름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금메달 획득|날짜=2017-03-31|뉴스=연합뉴스TV: : 대한민국 뉴스의 시작. 채널 23|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레이스 동안 5위 안팎에서 벗어나지 못해 곡선 코스마다 선두 진입을 노리던 김보름은 마지막 바퀴에서 앞에서 달리던 네덜란드 선수가 일본 선수와 충돌해 넘어진 틈을 타 역전에 성공했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 코너워크가 장점인 김보름의 장점이 발휘된 간이었다. 자칫하면 김보름까지 휩쓸려 넘어질 수 있던 상황에서 간적으로 인코스 진입을 시도해 선수들을 차례대로 제쳤다. 마지막 직전코스에서 1위를 달리던 일본 다카기 나나까지 따돌리며 태극기를 드높였다. 다키기는 8분00초90의 기록으로 2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3위는 8분01초36을 기록한 미국 헤더 베르그스마가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3070|제목=뉴스포스트|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 김연경(배구선수) . . . . 10회 일치
         || '''프로 입단''' || 2005-2006 V리그 1라운드 1위(흥국생명) ||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위로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동기 [[김수지]]([[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 [* 이때 출전한 대회가 2005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득점 3위를 기록했다.]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의 1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배구선수)|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전체 1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반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 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이라 쓰고 [[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개소리]]~~[* 인삼공사 감독 시절 보면 답이 나온다. 주전들이 모두 은퇴하자 갑작스레 구단에서 사퇴하여 이후 인삼공사 망가뜨린 주범이다.]을 남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현 연고지는 [[인천광역시]]이지만 김연경이 뛰던 당시에는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캐피탈]] 더불어 천안 [[유관체육관]]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했었다.]에서 뛸 때는 공격 위를 거의 혼자 정복하면서 리그를 평정, 2005-06, 2006-07, 2008-09시즌 V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 시기 김연경을 막아낸 팀은 2007-08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단 한 팀이다.
         다만 국가대표 자리를 담보로 흥정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김연경을 비판하는 입장도 좀 있는 편. 사실 흥국은 선수를 쓰고 6년이나 보낼수 있었음에도 대승적 차원에서 임대를 해주었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을 악마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꼭 그런것만도 아니다. 그래서 사실 국가대표 은퇴란 카드를 꺼내들 필요도 없었다. [[임의탈퇴]] 조항은 '''V-리그에서만''' 적용될 뿐이고 협회가 이적동의서만 써 주면 어디서든 뛸 수 있다. '''문제는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가는데 한 몫 했던 협회가 히 이적동의서를 써줄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출하지 않기로 했던 서류까지 이용해 가면서 노골적으로 구단편을 들고 구조적으로도 구단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협회에게서 공정성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어려웠다.
         다음 시즌 남녀부 샐러리캡 차이는 11억 원이다. 최근 상승중인 여자배구 인기만 보면 이를 여자배구에 대한 차별로 볼 수 있다. 샐러리캡은 그러나 외견상 액수만 갖고 단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여자부와 남자부의 시장가치, 티켓파워, 그리고 프로배구 출범시 태생적 차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반면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경기당 3,300만 원 가량 수익을 올렸다. 단히 남자부와 여자부 차이로 보긴 어렵지만 여자부 1위 팀 수준이 이와 같다는 사실은 분명 주목할 대목이다. 한 시즌 티켓 수입을 모두 합쳐도 팀내 최고연봉 선수에게 줄 돈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 김영철(배우) . . . . 10회 일치
         '[[옴 마니 반메 홈]]', '짐은 미륵이니라' 등 김영철 특유의 몸동작과 말투로 표현된 궁예의 대사들은 수많은 대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전국민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궁예가 자주 썼던 '[[관심법]]'이란 대사는 너무 크게 유행하는 바람에 단한 [[유행어]]를 넘어 '상대방의 뜻을 아는척하며 넘겨짚는 행위'라는 뜻의 [[신조어]][* 물론 역사기록에 실제로 궁예가 썼던 걸로 기록된 말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신조어라 하기는 애매하지만, 드라마 이전에 역사연구하던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이 그 단어를 알거나 쓰는 경우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수준이 되어 지금까지도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태조 왕건이 방영되던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말 못하는 아기였던 학생들도 쓸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뜻으로 쓰지는 않고, 주로 상대의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쓰인다. 아예 관심법 대신 '궁예질'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어찌보면 궁예질이 진정한 신조어라 볼 수 있다,] '태조 왕건' 방영이 끝나고도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예인들이 궁예의 유행어를 따라하고 궁예 패러디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년이 지난 뒤에도 예능에서 궁예 성대모사(?)[* 아는형님에서 김희철이 하는데 비슷하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깊게 남는 대히트를 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또 나이 지긋한 분들은 김영철을 볼때면 안대 안하고 왔냐고 물을정도. 2017년 현재도 포털에 궁예를 검색하면 김영철이 여전히 함께 뜬다.
         대왕세종이 기존의 대하사극의 느낌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가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 되버렸고 시청률도 부진해서 덩달아 태종 이방원역까지 아쉽게 묻힌데 비해 공주의 남자는 달랐다. 기대치 않았던 젊은 주연배우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이긴 했으나 주연은 아니었으며 애초에 분량이 적고 조용한 캐릭터였다. 당시 공주의 남자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더군다나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아가씨를 부탁해]] 이후 소속사 계약만료로 약 2년간 공백기가 있었다가 [[괜찮아, 아빠딸]]로 복귀한 후였다. [[박시후]]도 사극 출연은 2008년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가 전부이며 사극의 메인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일지매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연기여서, 공주의 남자 방영전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 게다가 [[송종호]]는 아예 사극 첫 출연이라 당시 극 초반에 발성이 무척 어색했다. 결국 촬영 중에 이재로부터 사극 발성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너무 불안한 캐스팅이라 느꼈는지, 서브조연 커플인 경혜공주와 정종 역은 [[왕의 여자]],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에 출연해 나이에 비해 사극 경험이 풍부했던 [[홍수현]]과 동 나이대 사극본좌 [[이민우]]가 캐스팅되었다.] 속에서 이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예상치 못한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얻게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김종서]] 역을 맡은 [[이재]] 옹과의 연기 대결은 이 드라마 초반부의 백미. [[박시후|드라마 두]] [[문채원|주인공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훌륭하다고도 볼 수는 없었는데[* 실제로 연기대상에서 두 주인공이 남녀 최우수상을 싹쓸이하자 드라마 인기빨로 수상했다는 말이 조금 있었다.] 베테랑 김영철이 중간에서 미칠듯한 연기를 뽐내는 바람에 더 그래보였다(…). 이재가 극의 1/3 지점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홀로 미친존재감을 선보이며 끝까지 열연했다. 이 작품은 최고시청률 25%까지 기록했는데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수양대군 캐릭터는[* 궁예나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포지션이다. 그냥 '''악역 그자체'''. 아마 김영철이 연기한 배역중 최악이자 최고의 악역이 아닐런지.] 욕을 한사발 얻어먹으며 '''[[천하의 개쌍놈]]'''이라 씹혔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서 나름 반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시청자들의 평가가 한간에 역전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mNFY4R3IA5A|마지막회영상(스포주의)]] 한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김영철의 열연 덕에 24화동안 쌓아온 욕들 어디로 가고 수양대군을 안쓰러이 여긴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황당했다고.(...)[* 사전제작이었던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 퀄리티가 떨어졌으나 전히 김영철만의 광기어린 열연으로 극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물론 박시후와 문채원도 제 몫을 다해줬다.] 종영 직후 나온 기사에도 수양대군의 마지막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에 감탄하는 댓글이 많았다.[[http://news.nate.com/view/20111006n35385?mid=n1008|당시기사]]
         [[삼시세끼]]에서 아들(?) [[손호준]]과 밤에 옥봉에서 입수를 했다(...) [[이재]]를 깍듯이 모시면서 동시에 후배 연기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챙기고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주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 2000년 애보[* 한일합작영화]
  • 김윤아(1974) . . . . 10회 일치
         [[분류:싱어송라이터]][[분류:밴드 보컬]][[분류:창군 출신 인물]][[분류:1974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CF89D7> {{{#ffffff '''출생'''}}} ||<#FFFFFF><(> [[1974년]] [[3월 11일]]([age(1974-03-11)]세), [[전라북도]] [[창군]] ||
         ||<#CF89D7> {{{#ffffff '''학력'''}}} ||<#FFFFFF><(> 창초등학교[br]창중학교[br]창고등학교[br][[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93학번)[* 4학년 2학기까지 수료하고 자우림 활동으로 인해 중퇴하였으나 20년만인 [[2017년]] [[2월 23일]] [[성신여대]]로부터 명예학사 학위를 수여받아 ~~명예~~졸업하였다.] ||
         창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김문철[* 김홍철과 친구들의 초창기 멤버였으며 김홍철 3집 수록곡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작곡하고 듀엣을 했던 음악가이다.]의 친구였던 김홍철에게 직접 [[요들송]]을 배웠으며 이때부터 자기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gLADlQoOd8k|링크]] 5학년 때 전학 가는 친구를 위해 처음으로 작곡을 하였고, 초등학교 시절 잠깐 배운 요들송과 [[피아노]] 이외에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라디오를 계속 듣지 못하다가, [[창중학교]] 1학년 때 가족들의 눈을 피해 몰래 튼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Honesty'를 듣고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하며, 비슷한 시기에 '[[퀸(밴드)|퀸]]'을 듣고 밴드음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배철수의 음악캠프]],[[AFKN]], [[아메리칸 탑 포티]] 등의 라디오를 통해 팝송을 접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창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부에서 활동하였는데 직접 작곡하여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표정 연기, 무대 연출 등 이 시절 연기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 영어 선생님의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로 A Lover's Concerto를 부른 것이 첫 공식 무대라고.
         2008년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KMF]]에서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쥬얼리]]와 합동 공연을 했다. 두 팀의 공연 이후 마무리로 등장, 여왕님 버전으로 '매직 카펫 라이드' 를 불러 무대를 먹어치웠다.[[http://www.youtube.com/watch?v=zBiTAub4K3c|MKMF 브아걸, 쥬얼리, 자우림 합동 공연]] [[브라운 아이드 걸스|브아걸]], [[쥬얼리]] 등 단독으로 놓아도 뛰어난 팀들이 식간에 들러리로 전락하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연출했다. 사실 브아걸이나 쥬얼리는 연습 시간이 짧았던지 가사를 계속 틀리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리고 사실 브아걸과 쥬얼리의 공연은 립싱크였고. ~~립싱크인데 가사를 틀릴 수 있나?~~ 하지만 이 공연에는 문제가 있었으니... 쓸데없이 많은 백댄서들과 김윤아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 3명이 묻히는 등 여러 문제가 많았다.
         이하늘이 한 질문인 "비주류가 되고 싶은 주류는 아니고요?"는 '취향이 비주류면 삶도 비주류여야 한다.'는 대명제로 '당신은 주류다' 라는 비판을 한 것은 아니다. 김윤아가 대표적인 주류의 인생을 살며 대중적 음악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취향에 있어서는 비쥬류 성향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본인의 예술적 감수성이 비쥬류에 있는 것처럼 과도하게 어필하는 것이 과연 모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사람들이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웹상에서 두고 두고 회자되는 것이다. 충분히 논리적인 문제제기이며 상업적 음악을 하고 자의식 과잉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 김혜옥 . . . . 10회 일치
         * [[2006년]] [[KBS2]] 4부작드라마 《[[도망자 이두용]]》 ... 김복
         * [[2007년]] [[KBS1]] 일일연속극 《[[미우나 고우나]]》 ... 이종
         * [[2008년]] [[KBS2]] 아침드라마 《[[난 네게 반했어]]》 ... 손점
         * [[2008년]] [[MBC]] 아침드라마 《[[하얀 거짓말]]》 ... 나진
         * [[2010년]] [[MBC]] 아침드라마 《[[주홍글씨 (드라마)|주홍글씨]]》 ... 정임 역
         * [[2011년]] [[MBC]] 미니시리즈 《[[로열 패밀리 (드라마)|로열 패밀리]]》 ... 서애 역
         * [[2011년]] [[SBS]] 주말특별기획 《[[여인의 향기 (드라마)|여인의 향기]]》 ... 연재 모, 김정 역
         * [[2013년]] [[KBS1]] 일일연속극 《[[사랑은 노래를 타고]]》 ... 유진
         * [[2014년]] [[JTBC]] 미니시리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 정옥 역
         * [[2017년]] [[KBS2]] 수목드라마 《[[맨홀 - 이상한 나라의 필]]》 ... 윤끝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10회 일치
          * 그러다 이리나카는 한간 압박을 풀고 히어로 팀들을 양단시키는데 록록과 [[아이자와 쇼타]], 미도리야가 본대와 분단된다.
          * 록록은 오른팔을 들어 방어했다. 칼날이 손에 박혔다. 그 간 "잠금". 이제 나이프는 쓸 수 없다. 나이프에 매달린 토가도 멈칫. 록록이 왼쪽 손으로 주먹을 날린다. [[빌런 연합]]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스트레이트가 토가를 맞췄다고 생각한 간, 그건 단한 반죽 덩어리일 뿐이다. 진짜는 이미 배후에서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 록록이 습격 당했다. 얇은 벽은 록록이 습격 당한 간의 소음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벽 하나 사이에 있던 미도리야와 아이자와가 그 소리를 들었다. 아이자와가 불러도 그의 대답이 없자 미도리야가 벽을 파괴한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두 명의 록록. 한 쪽은 뻗어있다. 멀쩡한 록록은 "가짜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가짜가 나타나 갑자기 공격했으니 그들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 간 록록의 시선이 미도리야에게 꽂힌다. 아이자와는 재빨리 쓰러진 "가짜" 쪽에 다가간다. 뭔가 이상하다. "칼자국"이었다. "가짜"는 칼에 찔렸다. 록록이 날붙이를 지녔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간, 록록이 자리를 떠나 미도리야에게 향했다. 미도리야에게 "그쪽은 괜찮냐"면서 접근한다. 미도리야가 별 의심없이 빨리 [[오버홀]]을 쫓아가자고 말하려는 간, 록록이 기괴하게 웃는 얼굴로 나이프를 내리찍는다. 재빨리 록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아이자와는 나이트아이가 배제했던 가능성을 떠올렸다.
          틀렸다. 무효화가 발동하는 간 모든 것이 일목요연해졌다. 미도리야는 록록의 얼굴이 녹아내리며 토가 히미코의 얼굴이 튀어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가 반사적으로 이름을 외치자 토가가 좋아 죽으려고 몸부림 친다. 그런 와중에도 나이프를 휘두르는 손만큼은 멈추지 않는다.
          * 아이자와는 최악의 상황이란 생각과, 그래도 여기서 한 명을 처리하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붕대를 끌어당겼다. 행복한 간을 방해받은 토가가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무효화는 잘 작용하고 있었지만, 토가의 전투력은 개성에서 나오는게 아니었다. 토가는 아이자와가 팽팽하게 당기는 붕대를 잡고 축으로 삼아 공중제비를 돌았다. 몸이 재쳐지면서 아이자와의 머리 위를 지났다. 그때 미도리야를 찌르려던 나이프가 아이자와의 어깨 뒤쪽에 깊이 박힌다. 아이자와가 나이프를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 반격했으나 붕대만 잘려나갔을 뿐. 토가는 아이자와의 후방에 착지하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 몸에 감긴 붕대를 팽개친다.
  • 박휘순 . . . . 10회 일치
         {{구별|[[박희]]}}
         | 이름 = 박휘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siruduk/}}<br>{{페이스북|hwisoon.park.1}}<br>{{싸이월드|siruduk}}<br>[http://cafe.daum.net/qkrgnltns 박휘 팬 카페 네 멋대로 해라]
         '''박휘'''(朴徽淳, [[1977년]] [[7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다.
         ** 《내이름은 안상
         * [http://movie.daum.net/movieperson/Summary.do?personId=99215 박휘 Daum 영화]
         * [http://people.nate.com/people/info/pa/rk/parkhs/ 박휘 네이트 인물]{{깨진 링크|url=http://people.nate.com/people/info/pa/rk/parkhs/ }}
         * [https://web.archive.org/web/20060224211031/http://epg.epg.co.kr/star/profile/index.asp?actor_id=13115 박휘 EPG 스타정보]
         *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116043 박휘 씨네서울 인물상세]{{깨진 링크|url=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116043 }}
         | 현재명 = [[유세윤]], 박휘, [[안영미 (1983년)|안영미]], [[신봉선]]
  • 슈가(방탄소년단) . . . . 10회 일치
         ||<:><#00CED1>{{{#fff '''별명'''}}} ||<(> 설탕, 민슈가[* 본명인 민윤기와 예명인 슈가를 합친 것. 자매품으로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이 있다. ~~feat. 민윤기천재짱짱맨뿡뿡아 울지마라~~], 민피디[* 슈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 슙기력[* 슈가 + 무기력], 민가마니, 슙슙이, 고유슈가, 민빠답, 윤기선배, 양꼬치 듀오[* [[정국(방탄소년단)|정국]]과 함께. 둘이 양꼬치를 자주 먹으러 간다고 한다. 옥수수 국수도.], 사탕[* 중국 팬 한정. [[중국어]]로 "탕탕" 이라고 발음된다. 설탕(슈가) 또는 사탕을 뜻하는 '탕(糖, táng)' 자를 두 번 연이어 쓴 것. 한글로 독음할 경우 '당당(糖糖)'], [[Agust D]][* 솔로 활동명. 2016년 8월 동명의 이름으로 믹스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Agust D]] 항목 참고.],[br]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V앱 스타캐스트 참고.], 민윤지[* V앱 달려라 방탄 11화에서 여장을 했다.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같이 [[https://twitter.com/BTS_twt/status/826697453105606656|셀카]]를 찍고 SNS에 민윤지(하트)라고 올렸다.], 슙디[* 꿀FM에서 슈가슈가슙디... 라고 DJ를 맡았었다.], 송월[* 트리비아 항목 참고.], [[메타몽]], 미늉기, 민다가오지마[* [[LOVE YOURSELF 承 'Her']]의 컨셉포토 사진 때문에 생긴 별명.], 슈왜노잘[* [[LOVE YOURSELF 承 `Her`]] 앨범이 발매된 후 김영대 음악평론가가 올린 트윗에서 유래된 말이다. [[https://twitter.com/toojazzy25/status/909994408468029440|슈가 왜 노래 잘하지?]]], 민덩방아[* [[RM]]이 준 의자를 받자마자 엉덩방아를 찧고 아픔을 호소했는데, 이를 [[RM]]이 민덩방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A.R.M.Y|아미들]]은 슈가 놀리려고 실시간 트렌딩에 올려놨다.--] , 민형[* 민윤기 형을 줄인 말. 데뷔 전부터 민형이라 불렸다고 한다.], 각슈가[* 각설탕(...)], 민설탕, 민달팽이[* 초등학교 때 흔하게 민 씨들은 민달팽이이라는 식으로 단하게 지은 별명이라 한다. [[아는 형님]]에 나왔을 때 한 별명 맞히기에서 밝혀진 사실인데, 예명인 슈가와 관련된 별명을 내면 빠르게 들킬까 봐 민달팽이를 적어서 낸 것 같다.] ||
         본인의 믹스테이프의 마지막 트랙인 "So Far Away"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가수 [[SURAN|수란]]의 디지털 싱글 "오늘 취하면(Feat. [[창모]])"을 작곡 및 프로듀싱하여 2017년 4월 27일 음원이 발매되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인 슬로우 래빗과 공동 작곡, 프로듀싱이다.] [[http://m.sportschosun.com/news.htm?id=201704220100204200014681&ServiceDate=20170421&f_url=#_adtep|기사]] [[방탄소년단]]과 본인이 아닌 타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에는 처음 참여한 곡으로, 슈가와 수란에게는 꽤나 의미가 큰 곡인데, 수란의 경우 언더 가수에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슈가는 발매 이후 각종 음원 사이트 위 1-2위를 다투고 멜론 [[http://www.melon.com/chart/month/index.htm#params%5Bidx%5D=1¶ms%5BrankMonth%5D=201705¶ms%5BisFirstDate%5D=false¶ms%5BisLastDate%5D=false|5월 월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리스너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과 함께 뛰어난 곡 퀄리티로 큰 호평을 받으며 본인의 프로듀싱 역량을 인정받았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15269|#]] 멜론 [[http://www.melon.com/chart/age/index.htm?chartType=YE&chartGenre=KPOP&chartDate=2017#params%5Bidx%5D=1|2017년 연간 차트 9위]]를 달성하였다.
         아기어피치뿐만이 아니라 찹쌀떡스러운 얼굴에 점처럼 박힌 눈, 웃을 때 커다란 입인 캐릭터와 대체적으로 닮았다. 예를 들자면 [[지방이]], [[포켓몬스터]]의 [[우파]], [[누오]], [[메타몽]]. 이는 [[방탄소년단]] 멤버들 피셜로 증명된 것인데 2017년 슈가의 생일에 올라온 사진에 있는 멤버들이 그린 [[https://imgur.com/sMAY6qG|그림]]을 보면 지방이와 우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한참 한국에 [[포켓몬 GO]]가 유행했을 때 같은 멤버인 [[RM]]이 누오에게 온한 슈가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https://twitter.com/BTS_twt/status/836489701561356288|#]] 또한 한때 팬들 사이에선 메타몽짤과 함께 야 호바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슈가와 싱크로율 100%인 메타몽과 말투가 잇 포인트다. [[https://twitter.com/JIMINLOVE1o13/status/905450603551137792|야]] [[https://twitter.com/URBlossomStar/status/901760359660265473|호바]]
         이처럼 알면 알수록 모된 성격으로 슈가에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하여 생긴 말이 '''민빠답'''.[* '''민'''윤기에게 '''빠'''지면 '''답'''이 없다.]
         ▲ 불안함과 외로움은 평생 함께하는 것 같다.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큰 의미를 두는데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 같다. 상황과 간마다 감정은 너무 달라서, 매 간 고민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나 또한 불안하고 당신 또한 그러하니 같이 찾고 공부해봅시다''''란 말을 하고 싶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841719|인터뷰 전문]]
         1절에서는 대구에서 서울로의 상경을 다짐하면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빅히트]]에 오디션을 보게 된 과정, 2절에서는 그의 연습생 시절 고충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신감과 패기로 똘똘 뭉친 채 상경했던 그가 서울에서 첫 저녁 식사를 사 먹는 간 현실을 마주하며 반전되는 가사의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 Cypher 트랙에서는 항상 마지막 주자를 맡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랩의 강도가 보통 [[RM]]-[[제이홉]]-슈가의 서로 강해진다.]
          * 빅히트 윤석준 이사에 따르면 멤버들과 화양연화라는 단어를 통해서 청춘을 표현하자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되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슈가였다고 한다. "사실 그 나이 때의 슈가를 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농구코트에서 홀로 농구공을 던지다 땀에 젖은 채로 앉아 있는 슈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런 얘기를 슈가에게 전달하였더니 슈가도 실제 그런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하더라. 그 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랩으로 만들어주면 그게 곧 청춘 그 자체일 거 같다고 얘기했고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왔다. 자신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젊음의 단면을 농구하는 소년을 통해 그려낸 우화라고 받아들여주면 될 거 같다. 내 입장에서 이 곡은 단히 이번 음반만의 인트로가 아니라 화양연화 2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그려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http://www.mbn.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31260|인터뷰 전문]]
          * 해외의 뱀 애호가가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에 Agust D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볼파이톤]] 동영상이 올라왔다. [[https://instagram.com/p/BaZhszOl4hz/|링크]] 이 볼파이톤의 주인은 평소 유튜브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 동영상을 볼파이톤과 함께 감상했는데, 그날 뱀을 자신의 어깨에 올려 놓고 Agust D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간 이 뱀이 스르르 기어나가 슈가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뱀은 수컷이다.
  • 신화용 . . . . 10회 일치
         약점이던 수비 리딩도 발전하여 포항은 2013 시즌 리그 실점 위에서 2위(38실점)를 달성했고 신화용 본인도 경기당 실점율 0.93을 달성했다. 하지만 신화용 보다 더 낮은 실점률을 기록한 [[울산 현대]]의 [[김승규]]가 시즌 베스트11의 골키퍼 자리를 차지했고 [[신화용]]은 우승팀 골키퍼 에도 불구하고 생애 두 번째 베스트11에 실패했다.
         9월 말 기준 14경기에서 무실점 경기를 하였고 제주전에서는 PK까지 막아내는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등, 포항 공격진이 여전히 득점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혼자서 팀의 승리를 지켜내고 있다. 10월 현재 경기당 0.82 실점으로 실점률 1위. 무실점경기 1위, 유효슈팅 선방률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36라운드 기준으로 17경기 클린 시트(무실점 경기)를 달성하며 클린시트 2위인 박준혁,권태(13경기)를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시즌 클린시트 1위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시즌 클린시트 1위(17경기), 전경기(38경기) 출장, 실점률 2위 0.84에 후반기에는 포항을 사실상 먹여살리는 활약을 했음에도 실점률 0.97인 [[권태]]가 우승팀 GK라는 이유로 베스트11 GK에 선정되었고, 13시즌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더욱 15시즌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13시즌에는 '''신화용이 우승팀 골키퍼였음에도''' 스탯이 더 좋은 김승규가 베스트11에 뽑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K리그 수상식이 명확한 기준없이 시즌마다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 특히 15시즌은 논란이 컸던 것이, 득점4위인 이동국이 우승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시즌 MVP를 받았고. ~~13시즌 이명주는??~~, 득점1위 김신욱은 이동국을 베스트11에 넣느라 아에 베스트 11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신인들 중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와 활약을 보여준 황의조 대신 우승팀 버프를 받은 이재성에게 영플레이어상이 주어지는 등 전북팬을 제외한 모든 국축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나마 특별상 부문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FC서울의 오스마르와 같이 수상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특히 신화용은 자신의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포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연봉을 스스로 깎고 포항에 남았는데,''' 정작 16시즌 팀 성적과 신화용의 개인 성적이 하락하자 바로 신화용을 시장에 내논사실을 알게 된 신화용은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포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최호]]가 급하게 구단에 강력요청하여 신화용을 잡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게 되나[*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프런트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팔겠다는 계획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포스코의 낙하산 사장에 휘둘리는 포항 프런트가 얼마나 막장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미 신화용의 마음은 포항을 떠났고 결국 신화용은 새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적료+'''[[노동건]] 임대'''를 하는 형식으로 신화용을 내줬다. 노동건이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은 아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은 20대 골키퍼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원 프런트가 '과연 군필 골키퍼를 임대 후 이적 조건으로 포항에 줬을까?' 를 생각해본다면 즉전감 키퍼를 받고 후보 키퍼를 빌려줘 경험치도 먹이려는 [[호구]]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즌 초반 팀이 엄청 부진할때 강원과의 경기에서 PK를 막아내며 첫 승의 이끌었고 이후 포항에서 보인 안정감을 되찾으며 팀의 위 상승에 기여해 좋은 영입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그러나 15시즌 이후 이어지는 잔부상을 피하지 못해 결국 전열에서 빠지게 되었다.
         이후에도 허둥지둥대며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자 유명한 축구 팟캐스트 [[히든풋볼]] 멤버이자 [[이스타TV]] 멤버인 해설위원 [[이주헌]]씨와 캐스터 [[박종윤]]씨는 전 토트넘 골키퍼 고메즈가 고메디언이라 불린거 처럼 신화용을 신메디언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국 2017 시즌까지 경쟁상대로 보기도 힘들었던 노동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으며 '''단신이라는 단점에도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발력과 판단력이 나이를 먹으며 결국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즌을 마칠 경우 수원과의 재계약 마저 불투명한 상황.
         김진현이 2015 시즌 중반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기회가 오나 싶었지만 이번엔 역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권태]]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뽑히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골키퍼 3명 중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한 명을 제외하면 젊은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한 살 아래 권태도 나이 때문에 김승규, 김진현에게 밀리는 상황이라 신화용의 대표팀 발탁은 요원해보인다. ~~무슨 지옥같은 스페인 국대 골키퍼 경쟁인줄~~[* 김승규, 김진현, 정성룡에 권태와 이범영. 올림픽 대표팀에서 기대받고 있는 구성윤과 김동준, 이창근에 청대 출신 골키퍼 조현우(구성윤은 2015년 동아시안컵 때 백업으로나마 성인 대표팀에 뽑혔고 김동준은 예비 명단에 들었던 바 있다. 조현우도 예비명단에는 올랐었다.)까지 포함하면 유래없는 골키퍼 풍년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 2016년 기준으로 전부 한창 나이다. 거기에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인 이호승과 윤보상, 가장 포텐이 기대가 되는 [[김로만]]과 전종혁 등등 K리그 역사상 최대의 인재풀이 가동되어 있다.] 하지만 ACL 우라와전을 비롯하여 슈틸리케 감독이 꾸준히 포항 경기를 찾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손준호]]와 더불어 국대 발탁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있다고는 말 못한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10회 일치
         [[겁]]이 많은 편이다. 예리가 레드벨벳에 합류하기 전에 혼자 방을 쓸 때 불을 켜놓고 잤을 정도.[* 그러다 방을 바꿔서 조이와 예리가 한 방을, 언니 셋이 한 방을 쓰기도 한다. 레드벨벳은 활동 시기마다 일부러 방을 새로 배정한다고 한다. 7월 7일 활동 시기에는 웬디, 예리와 함께 썼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놀라는 모습이 포착된다. 또한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계단 같은 걸 내려갈 때 멤버들이 손을 잡아주며--이게 약간..?--[* 최근 리얼리티에서는 손잡이를 잡으면서 혼자 내려오긴 했다.] SM 유리 엘리베이터를 올라갈 때도 밑을 내려다보지 못하고 구석에 있는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롤러코스터]]는 잘 탄다는 것. 간 무서운 것만 넘기면 스릴을 느껴서 좋다고 한다.
         멤버들에게 위계질서를 강요하기보단 동생들과 거의 친구같이 지내며 리더답게 팀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동생들도 허물없이 지내지만 중요한 간엔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듯. 웬디는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와서 등을 쓰다듬어주는데 그게 남다르다고 한다.
         비주얼이 우수하기로 유명한 [[레드벨벳]]에서도 메인 비주얼로 꼽힌다. 단히 얼굴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http://theqoo.net/square/461793167|옆선]]도 예쁘다. 또한 피부가 굉장히 하얀 편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확 띄며,[* [[레드벨벳]]이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에는 머리색뿐만 아니라 피부톤으로 멤버들을 구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분위기 차이가 크다. 게다가 얼굴이 '''[[황금비율]]'''.[[https://www.instiz.net/pt/2455125|#]] '[[Mnet]] '[[문희준의 결한 15+]]' 방송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뽑은 마스크 비율 깡패로 아이린이 여자 아이돌 2위로 뽑혔다.[* 1위는 소속사 선배 [[윤아(소녀시대)|윤아]]. ~~[[SM엔터테인먼트|SM]]은 꽃밭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04&aid=0000080352|기사]]
         [[가사노동|집안일]]을 좋아하고 능력이 특출해 런드리데이의 MC로 활약하기도 했다. 취미는 '''다리미질과 빨래, 찍고 싶은 광고는 [[섬유유연제]] 광고다.'''[* 채널소시 [[태연]] 편에서도 해당 내용을 밝혔다. 두 사람 다 집이답게 섬유 유연제 뭐가 좋은지 한참을 이야기했다고...]
          * 멤버들 중 유일하게 UFO타운의 프로필 사진으로 스냅샷이 아닌 Be Natural의 공식사진을 사용한다. 이는 [[셀카]]를 잘 찍지 않는 아이린이 셀카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기계를 잘 다룰 줄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015년 정규 1집 사인회에서 어떤 팬의 질문에 사진을 꼭 바꾸겠다고 대답했다. {{{#!html <a href="/w/파일:ZshrPkL.png">}}}트윗{{{#!html </a>}}} --그러나 바꾸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웬디(레드벨벳)|웬디]]가 2015년 연말까지 프로필 사진을 바꾸라고 설득했다지만,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웬디(레드벨벳)|웬디]]의 위력으로--역시 정 웬디맘-- 2016년 1월 1일. 새해가 되어서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다!! --만세! 드디어 해냈다 해냈어-- 근데 아이린이 사진을 바꿀 줄 몰라서 웬디가 바꿔 줬다.
          * 몸이 굉장히 유연하다. [[주간 아이돌]]에서 체전굴로 유연성을 측정했는데 1차 시도에서 35cm로 2위였던 [[AOA(아이돌)|AOA]] [[초아(AOA)|박초아]]의 기록(34cm)을 깨고 2차 시도에서는 40cm로 1위였던 [[원더걸스]] [[혜림]](37cm)까지 제쳐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박초아, 혜림과 마찬가지로 [[정형돈]]이 신기록을 위해 억지로 한 손만 당겨서 나온 것이다. 위와 상관없이 아이린의 정확한 체전굴 기록은 원칙대로 측정한 1차 시도의 35cm 정도이며 이는 현 체대입시 실기에서 만점을 받는 기록이다.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생각하면 굉장한 유연성이다.
          우선 이제까지 아이린을 가까이서 많이 보아 온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라디오 스타 MC인 규현이 [[http://i.imgur.com/WkOZlpk.jpg|녹화 당시 한 말]]처럼 최대한 말을 많이 하려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남자쇼에서의 모습과 대비된 이유는 양남자쇼는 레드벨벳 멤버들이 함께 출연했던 만큼 아이린이 어울릴 사람이 있었지만 라디오 스타에서는 레드벨벳 멤버 중 혼자서 게스트로 출연한 첫 토크쇼였고, 아이린이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둘째치더라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직속이자 아이돌 가수 세계에서 하늘같은 대선배였고 SM 서열 위 1위 강타와 친하고 같은 동료였던 문희준과 토니안, 그리고 SM 선배인 규현과 대선배가수 윤종신과 김구라, 김국진[* 더군나나 김국진은 아이린이 어렸을 때인 1990년대 중후반에 인기대스타였다! 위축되는게 당연한것이다!!!] 그리고 배우로 오래 활동했던 서지혜 사이에서 있었던 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서지혜와 서유리는 80년대 중반 생으로 방송에서 '초등학생 때 토니 부인, 칠현 부인이라고 자칭했다.'고 할 정도로 과거 H.O.T.의 열렬한 팬이었고, 문희준과 토니는 H.O.T. 멤버였던 만큼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되는 네 사람 사이에서 91년생인 아이린이 할 수 있었던 행동이나 토크에 참여할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의견 또한 있다. 아이린이 신인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해도 데뷔한 지 2년은 된 상황이었고,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해도 연예활동을 하는데 문제가 있을 정도라면 SM이라는 국내 최대 대형 기획사를 통해 연예인이 되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라디오스타 논란은, 아이린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린을 제외한 다른 라디오스타 출연 게스트들을 알았다는 전제하에서) 스케줄을 잡은 사람의 잘못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말만 적었을 뿐 아이린은 방송 내내 [[http://cfile23.uf.tistory.com/image/2645454E584906A32885C5|90도로 허리를 펴고 앉은 채로 박수를 치거나 잘 웃는 등 리액션을 계속하였고]] 다른 게스트의 과거 사진에 놀라고 비웃는 와중에도 동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타팬들의 의견마저도 말주변이 없었을 뿐 오히려 태도가 좋았다는 의견도 있다.
         '''특정 성향의 서적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특정 성향으로 단정짓고 비난하는 행동은 매우 잘못되었다.''' 또한 어떤 책을 한 집단에서 많이 사용하거나 상징으로 삼는다고 해서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반드시' 그 집단의 일원인 것도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페미니스트라고 단정짓는다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은 사람은 공산주의자고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은 사람은 메갈이 된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일베가 되진 않는 것과 같다. 또 '이 책을 읽었다=무조건 페미'라는 그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서 혹평한 사람들, 처음부터 심층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탐독한 독자들도 '''전부 다'''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된다. 왜냐? 그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단히 어떤 문화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한 사람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명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 [[http://www.yonhapnews.co.kr/digital/2018/03/26/4904000000AKR20180326018200797.HTML|연합뉴스]]에서는 이상적이라 여기는 상냥하고 종적인 여성과 자신을 위협하는 도전적인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여성관이 원인이며,[* [[https://www.fmkorea.com/986132907|"너랑 결혼까지 생각한 나를 후회한다"]]와 같은 반응은 이러한 이분법적 여성관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며,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익명성을 통해 분노와 혐오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안상수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장의 견해를 인용했다.
  • 안종범 . . . . 10회 일치
         |본관 = [[흥 안씨|흥]]
         |자산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 분야 공약을 만들었다.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에 지명되면서 의원직을 사직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용되어 일하다가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대통령]]이 '[[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하면서 2016년 10월 30일 사임하였고 제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강석훈]]이 그 직을 임시 대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69333 靑 수석비서관들 일괄 사표제출…朴대통령 인적쇄신 가능할까]. 서울신문. 2016년 10월 30일.</ref>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28904 민정수석·청와대 비서관… 도대체 뭐 하는 자린고?]. 조선일보. 2016년 11월 16일.</ref> <ref>이상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74512 靑 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이 대행]. 머니투데이. 2016년 11월 16일.</ref>
         2016년 11월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안종범을 직권남용, 강요,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ref>{{보고서 인용|저자=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pdfdownload.jsp?attach_no=175537|제목=피고인 최실, 안종범, 정호성 수사결과발표|출판사=검찰 특별수사본부|날짜=2016년 11월 20일}}</ref>
         박근혜 대통령 등과 공모해 삼성 등 15개 전경련 회원사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 조력한 혐의로 2018년 2월 13일 1심에서 징역 6년, 벌금 1억원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국정농단 연루' 안종범, 1심에서 징역 6년·벌금 1억원|url=http://news.joins.com/article/22369620|날짜=2018-02-13|출판사=중앙일보}}</ref> 이후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는 징역 5년, 벌금 6000만원을 선고받아, 징역 1년, 벌금 4000만원이 줄어들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4/2018082401286.html|제목=[속보] 국정농단 2심 최실 징역 20년, 안종범 5년…崔 벌금 늘고, 安은 감형|성=|이름=|날짜=2018-08-24|뉴스=|출판사=}}</ref>
         {{최실 게이트}}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흥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박근혜 정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박근혜-최실 게이트 관련자]]
  • 이승현(농구선수) . . . . 10회 일치
         ||<:> '''프로입단''' || [[201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2014 드래프트]] 전체 1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오리온스]]) ||
         그리고 2014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위로 [[고양 오리온스]]의 지명을 받았다. 팀 역사상 최초의 1위 지명이다.(신인왕과 MVP를 석권했던 김승현은 3위로 지명) ~~[[장재석|이로써 오리온스는 1위 --빅맨--만 2명이 되었다]]~~
         > '''"제 별명이 두목 [[고려대학교|호랑이]]인데, 앞으로 KBL의 두목이 되어 보겠습니다."''' - 2014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1위로 오리온에 지명된 직후[* 여담으로 2년뒤 드래프트에서 같은 학교 후배가 "KBL의 두목 호랑이를 잡으러 가겠습니다."란 말을 남겼다.]
         1라운드 1위로 프로에 지명된 이후, 첫해엔 신인상만 타고 우승엔 인연이 없었지만 2년차엔 팀의 주축으로 도약하면서 팀을 14년만의 챔피언을 이끌고 본인은 챔결 MVP까지 수상했다.
          * 이승현에 이어 2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한 [[김준일]]과는 선의의 라이벌 관계이자 오랜 친구사이이다. 1년차때는 실제 신인왕 경쟁을 치열하게 다퉜는데 마지막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한 이승현이 신인왕을 차지했다. 팀 성적 역시 이승현이 더 좋은것도 컸다. 다만 김준일이 끝까지 경쟁력이 있었던건 용병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공격해 득점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신인왕 평가 기준이 전에 비해 팀 성적을 덜 보는 풍토가 시작된 점도 컸다. 둘 다 상당히 힘이 좋은 선수들인데 이승현의 말로는 수 힘에서는 [[김준일]]이 본인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2년차 이후 완전히 변하게 되었는데, 1년차에는 비교적 비교가 가능했다면 2년차에는 김준일이 PO에서 보여준 삽질과 비교되어 이승현에게 미안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 유도선수 경력도 있고 힘세기로는 정평이 나있지만 그것에 비해선 온화한 성격.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의 [[천기범]]이 대학농구시절 이승현에게만 3년 내내 집중적으로 거친 플레이를 하고 대놓고 시비를 트기도 했다. 천기범은 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한성깔 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 창작:치킨교 . . . . 10회 일치
         === 살 치킨교 ===
         반면에 이 살 치킨교는 기존의 교리를 거의 완전히 뒤엎으며 "치느님은 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보다 수하도록 노력하시며 뼈 없는 형상이야말로 극진한 모습으로 화하신 것이다"는 아예 새로운 교리를 들고 온 종파였다. 이들은 무기를 거의 들지 않는 후라이드든, 양념이란 무기를 든 양념 치느님이든 상관없이 치느님의 가장 수한 형태는 "뼈 없는 형상"으로 규정지었으며, 이는 치킨교도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오게 되었다.
          1. 치느님은 스스로 양식이 되시기 위해 처음으로 식탁위에 오르사, 그 형태는 뼈가 있었다는 점을 보면 살교도들의 주장과는 달리 결코 수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
          1. 수한 치느님을 영접한다는 미명하에 보다 너무나도 많은 헌금을 내야 한다는 점은 애당초 수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
         그럼에도 유아들에게 부담없이 치느님을 쉽게, 그리고 많이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임을 내세우며 수한 인간인 유아들을 위한 홍보가 제대로 먹혀들어 가 엄청난 세력을 꾸준히 불리게 된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후라이드 교황과 양념 총대주교 모두 이들도 치킨교도임을 인정함으로써 치킨교 내부의 종교전쟁이 종식된다.
  • 킹덤/501화 . . . . 10회 일치
          * 조의 [[수수]]는 밀정이 금안에서 집중적으로 검거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적의 진짜 목적은 흑양이 아니라고 눈치챈다.
          * 한편 조 서부의 십화에선 [[수수]]가 [[이목(킹덤)|이목]]의 지시대로 최대한 첩보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미 진군의 목표는 흑양이고 금안에서 군령을 수령할 거라는 줄거리가 만들어진 상황. 수수는 무백으로 복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령들을 모아놓고 달리 더 보고할건 없냐고 점검한다. 달리 보고는 없는데 한 명이 약간 미심쩍은 이야기를 한다.
          확인한 결과 금안 외에 다른 곳의 밀정들은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수는 이는 금안이 유독 경비가 엄중하단 의미로 받아들인다. 허나 단한 중계지인 금안이 그토록 경비가 삼엄한가? 수수가 정답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건 금안에 단한 중계지가 아니며 뭔가 숨기는게 있기 때문. 그건 바로 20만 대군이 먹을 군량. 흑양으로 간 군량은 모두 가짜일 것으로 추측한다.
          진군의 진짜 목적을 어렴풋이 감지한 수수. 그는 이목에게 급보를 보내고 자신은 십화에 남아 계속 첩보를 수집한다. 단한 기우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며 만에 하나라도 추측이 사실이라면 진군에 크게 뒤쳐지게 된다.
          * 왕전이 받은 것과 같은 첩보가 이목 진영에도 도착한다. 수수가 보낸 급보보다 한 발 앞서서다. 이 새로운 첩보는 이목 진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언제나 침착하기 이를데 없던 이목이 이번만큼 주먹을 불끈 쥐며 분통을 터뜨린다.
  • 타루 . . . . 10회 일치
         !align="left"|
         !align="left"|
         # 내일이 오면 (Duet with [[노리플라이]]의 권관)
         !align="left"|
         !align="left"|
         !align="left"|
         !align="left"|
         !align="left"|
         !align="left"|
         !align="left"|
  • 하이큐/250화 . . . . 10회 일치
          * 경기를 보러왔던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 보쿠토 쪽은 "아란 제법이다" 정도의 짧고 단한 반응. 아카아시는 사뭇 냉정하게 분석을 내린다. 방금 퍼포먼스는 쇼맨쉽만은 아니다. 시작부터 이런 공격을 성공시켜서 "우린 첫경기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여유롭다"는 걸 과시하는 것이다. 지금은 바깥에 있는 입장이라 이렇게 냉정하게 분석하는 거지만, 코트에서 마주치면 싫을 거라고 생각한다.
          * 카라스노가 식간에 밀려나는 상황. 문득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시작 직전에 언급했던 [[하이큐/248화|최강의 도전자]]라는 별명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 스나의 2회차 서브. 스나는 의도적으로 주심이 호각을 부는 타이밍을 잰다. 그리고 호각이 떨어지는 간에 맞춰 곧바로 서브. 카라스노 측에 서브를 예측할 여유도 주지 않을 속셈이다. 이번에도 사와무라를 노리고 오는 서브. 또다시 리시브가 흔들린다. 공은 네트 쪽으로. 살리는건 카게야마. 중계석은 카라스노 측이 "휘말린다"고 표현한다. 그 말대로 카라스노는 페이스를 잃은 상황.
          하지만 카게야마가 능숙하게 대처한다. 간적으로 몸을 돌려서 공을 블록에 맞춰 리바운드를 노린다. 오사무는 간적으로 이런 플레이를 하는 것에 감탄한다.
          * 되돌아온 공은 [[니시노야 유]]에게. 안정적으로 리시브한다. 공은 다시 카게야마의 세트업으로. 그런데 곧바로 뛰어 오를 줄 알았던 히나타가 "앗"하고 움찔한다. 정면에 있던 이나리자키의 오미미가 거기에 주의를 뺏긴다. 그리고 간. 히나타는 폭발적인 가속으로 코트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도약. 아츠무가 그랬던 것처럼 한간 체육관의 모든 이목이 히나타에게 쏠린다. 카라스노를 얕봤던 미야 형제는 똑같은 타이밍에 "우와"하고 탄성을 뱉는다.
          * 그들이 대등한 "도전자"임을 입증하듯, 이나리자키의 좌현을 관통하는 스파이크. 코트 위의 선수들은 반응하지도 못했고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얼어붙은 듯이 서서 야유하는 것도 잊었다. 관객들은 물론 관중석 조차 한간 정적. 마치 시간을 멈추로 때린 것 같은 스파이크였다. 단숨에 기세를 되찾는 카라스노 고교.
          * 아츠무가 보여준 묘시를 그대로 갚아준 셈. 그런데 호시우미는 딱 한 번 봤을 뿐인데도 히나타의 점프를 보고 불편함을 어필한다. 히나타가 그의 점프를 표절한 걸 눈치챘기 때문일까? 그 밖의 강호교들도 방금 전 플레이에 후한 평가를 내린다. 보쿠토는 당연히 호들갑을 떠는데, 아카아시는 아츠무의 플레이 때와는 상반되게 단명쾌하게 정의한다.
          >초면
  • 하현우 . . . . 10회 일치
          * 그렇다고 저음은 못하느냐 하면 아니다.[* 2집 타이틀곡인 오이디푸스를 들어봐라.] 복면가왕만 봐도 0옥타브 초반대의 저음을 상당한 실력으로 구사하는 데다가, 현재 기준으로 한국 대중음악 라이브 상으로 가장 낮은 음을 보여준 것이 바로 하현우다. 하현우의 '''현재 음역대는 저음 -1옥타브 파(F1)에서 고음 3옥타브 시(B5).'''[* 저음 '''-1옥타브 파(F1)'''는 복면가왕 기준이 아니라 요즘 콘서트에서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곡을 키를 낮춰서 부르는데 '''일상으로의 초대'''를 키 낮춰 부르면서 낸 음이고 고음 '''4옥타브 도(C6)'''는 [[섹션TV 연예통신]]에서 나와 확실히 음역대 측정을 해서 나온 수치라고 밝혔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출연했을 때의 발언으로는 예전에는 '''4옥타브 도(C6)'''까지 올라갔는데 지금은 안된다고 한다. 저음도 측정한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물론, '극저음을 낼 수 있는 것'과 '저음을 잘 부르는 것'에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당장 국내에서 중저음이 매력적인 가수를 이야기할때 항상 거론되는 김동률, 이적, 박효신 같은 가수들이 단히 음이 많이 내려간다고 언급된다 보기는 힘들다. 중요한 것은 저음이 얼마나 많이 내려가든 간에 '더 원숙한 표현이 가능하고 깔끔하게 가창 스킬을 구사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음역대가 넓은 것은 충분한 장점이고, 표현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 현재 방송 중에 나온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 2018 인생술집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 콘서트 중에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에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를 보여준 적 있다. 가성으로는 '''3옥타브 라♯(A♯5)''' [[https://www.youtube.com/watch?v=f2JhDE6__6E|#]], '''3옥타브 시(B5)''' [[https://www.youtube.com/watch?v=ffl9JCKSPDs|#]], '''4옥타브 라(A6)''' [[https://www.youtube.com/watch?v=tDby__0o4Sg|푸에고(2012 Live.ver)]] 를 보여준 적이 있다.[* 다만 샤우팅을 하다 삑사리처럼 찢어지는 비명으로 터져나온 것이라 가창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긴 하다..] 또한 [[두성]]으로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 [[2018년]] [[7월 12일]] [[인생술집]] 방송때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까지 발성할 정도로 음역대가 무지막지하다. [[http://www.10years.co.jp/guckkasten/|국카스텐 일본 사이트]]에서는 '''3옥타브 시(B5)'''까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한 곡 안에서 최저음과 최고음이 3옥타브 이상 차이가 나면 저음이나 고음 둘 중 한 쪽은 흔들리는 것이 보통인데, 하현우는 초저음역대와 초고음역대를 짧은 간 안으로도 자유자재로 오간다. 일반적인 고음, 저음으로 유명한 보컬들의 음역대가 비교적 하이톤의 고음 특화거나, 로우 톤의 비교적 저음 특화로 생성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양쪽이 모두 가능한 하현우의 음역대는 숙고할 만하다. 오죽하면 음역대로 광고를 찍었을까.
          * 무엇보다도 파사지오 구간에서 이만큼 자유로운 보컬은 찾아보기 힘들다. 파사지오의 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수준으로 [[두성]]과 [[흉성(발성)|흉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 초고음에서도 성대접촉의 질감을 그만큼 유지할 수 있는 보컬은 하현우가 거의 유일하다. 특히 스크래치의 경우 성대가 벌어지면서 호흡이 성대를 긁고 지나가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현우는 이와는 정반대로, 성대의 접촉을 최대압력으로 유지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스크래치'''[* 하현우와 비슷한 목을 긁는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들 중에는 김신의([[몽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등이 있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머라이어 캐리/창법#s-2.6|그로울링(?)]]을 참고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를 사용한다. 이런 방식의 '''스크래치'''를 전 음역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하현우가 거의 유일하며, 대중음악 역사를 통틀어서 봐도 하현우 외의 다른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높은 성대 접촉률으로 전음역에서 진성의 발성이 나오는데, 이런 성대 접촉률은 전문가들이 하현우의 보컬에서 가장 감탄해하고 높이 평가하는 부분 중 하나이며,[* 이게 뭐 별거인가 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의 가수들이 [[두성]] 음역으로 접어들 때 성대 접촉이 줄어들거나 후두가 올라간다.] 이런 성대 접촉률 때문에 초고음역대의 노래들을 그렇게 많이 부름에도 불구하고 성대가 상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에 무거운 사람이나 물건들을 올려놓고 대화를 하는 등 복부 단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 위에 100kg의 사람까지 올려놓고 연습했다고.]. 서양 록/메탈 가수 중에서도 단히 상연만 살짝 붙는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로 강한 수준의 성대접촉을 통해서 고음을 내는 가수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굳이 따지면 [[로스트 호라이즌]] 보컬이었던 다니엘 헤이먼 같은 스타일 정도?[* 특히 [[메이플스토리]] OST 중 DARKNESS(다크니스)를 능숙히 부른 것을 보아도 이 점이 두드러진다.]
          * 하현우의 보컬을 논할 때 잘 회자되지 않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데, 하현우의 음색은 상당히 특별한 축에 속한다. 말할 때의 목소리는 의외로 낮고 부드러운 편인 반면 노래할 때의 기본적인 음색은 중성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높고 맑은 것이 특징. 낮고 굵직한 남성적인 목소리, 소년 같은 맑은 미성 등 다양한 음색을 자유자재로 오가기 때문에 표현의 폭이 아주 넓다. 대표적인 예로 [[복면가왕]]에서 부른 '[[FANTASTIC BABY]]'를 들어보면 이 노래를 한 사람이 불렀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느낌과 음색을 식간에 넘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래 시작 부분의 굵은 저음과 노래 끝부분의 아이 같은 목소리만 비교해 봐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한 곡 안에서 음색을 다양하게 바꾸면서도 발성이 유지된다는 것 또한 엄청난 부분. 저음부의 [[흉성(발성)|흉성]], 고음역의 [[두성]], 거친 [[샤우팅]]까지 소화하면서 자신만의 소년 같은 미성을 유지하는 보컬은 그리 많지 않으며, 더불어 자신의 기본 색깔과 정반대의 성질인 탁성까지도 훌륭하게 소화한다.
          * 창법의 개성에 대한 비판은 어쩔 수 없는게, 위에 작성되었듯이 성대를 붙이는 발성은 가수의 창법적 개성을 줄일수 밖에 없는 발성이다. 성대를 안전하고 강하게 접촉시키기 위해서는 후두를 어느 정도 내리고, 성대가 아닌 목이 조여지지 않게 신경써야 하고, 가사를 발음 할 때 모음도 화해야 하는 등 개성이 들어 갈 여지가 적어진다. 개성적인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들도 이러한 요소들을 신경쓰긴 하지만 본인들의 개성을 위해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완벽한 발성을 요구하는 성악에 비해 실용음악은 발성적 요소들을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프로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성대결절이 오는 경우들도 빈번한 것이다. 이에 비해 건강한 발성은 성대결절의 위험에서 좀 더 벗어나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가수 본인의 필요에 의해 개성적 창법을 가질 수 는 있으나, 이런 개성적인 창법이 가수 개개인에게 강요되어질 필요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창법 외에도 가수만의 음악 스타일이나 음색으로도 개성은 충분히 표현 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성대&구강 구조나 몸 구조가 사람마다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는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당장에 성악가들조차도 잘 들으면 서로 노래 부르는 목소리나 방식이 100% 같지는 않다.
          * 개구리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거침 없는 태도에 비해 외모는 의외로 하고 귀여운 편이다. 그런데 [[윤도현]]과 사진을 찍을 때 안경을 벗은 모습이 은근히 배우 [[류혜영]]을 닮았다.[* 하현우의 초등학생 때 사진과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안경을 쓰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찍었는지 원시인지는 불명. 본인 말에 의하면 집에서 안경을 벗을 때도 누가 있나 확인한 다음 벗는다고 한다.] 안경 벗은 모습이 은근히 [[박해진]]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개구리상이라 웃겨보이게 생겨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절대 못생긴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이목구비가 또렷해 잘생겨 보인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눈이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더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는 점. 갑상선 투병 설에 대해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이라고 해명까지 했다.]
          * 가수 브랜드 평판 2016년 6월 조사 결과에서 2위로 랭크 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2위를 제외한 1위부터 10위까지의 위가 모두 아이돌 가수들임을 생각하면, [[복면가왕]] 출연을 통해 얻게 된 인기를 실감할 수가 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619926|기사]].
          * 군 시절 괴상한 선임이었던 듯하다. 라디오 스타 방송에 따르면 부대 안에서 연이은 도난 사건으로 모든 중대원이 내무반에 모인 최악의 분위기에서 옆에 있던 새파란 후임에게 뺨 때리기 가위바위보를 요청하고, 후임이 이겨서 우물쭈물하고 있자 후임 손을 잡고 직접 자기 뺨을 강제로 때리고 엄청 좋아했다든가,[* 후임과 빨리 친해지려고 그랬다고 한다.] 배식 받을 때 전원이 식판에 받은 밥을 하트 모양으로 만든 걸 확인하기 전까지 식사를 못하게 했다든가, 어느날은 후임에게 故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라고 시켜서 부르는데 '집 떠나와 열차 타고' 라는 구절에서 하현우 왈 "너 여기 입대할 때 열차 탔어? 자동차 탔을 거 아냐~"라고 하자, 후임 왈 "레조 탔습니다", 하현우 왈 "''''집 떠나와 [[GM대우 레조|레조]] 타고'''' 라고 불러야지!"라고 다그쳤다든가, 당직사관이 없는 점호 시간에 '''본인을 포함해''' 꼭 한 명씩 춤을 시킨다든가, [[http://mblogthumb1.phinf.naver.net/20160623_192/sen0209_1466669953537k4IHB_GIF/89.gif?type=w420|군대에서 췄다는 춤]] 보초 서다가 밖에서 힙합을 사랑하다 왔다는 후임에게 [[비트박스]]를 해줄 테니 군 생활에 대한 프리스타일 랩을 하라고 시킨다든가[* 와중에 "그지같은 군생활 UH 이상한 선임을 만났네"라고 디스 먹었다고 한다.] 하는 일화를 보면 얌전하게 군 생활을 한 것은 아닌 거 같다. 본인도 설명한 기행들을 히 인정했다.
         >현우: 취미로 하겠다는 간, 그거밖에 안 돼요. 모든 걸 걸겠다고 해도 힘든데, 취미로 하겠다고 하면 더 이상 볼 것도 없죠. 자기만족도 안 돼요. 취미로 만든 곡에서 절실함이 묻어나겠어요? 절대 불가능하죠. 그리고 어떤 끝을 보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진 정말 우유부단하게 살았어요. 움켜쥔 게 하나도 없었죠. 개인적으로 목숨을 다해서, 모든 걸 다 바쳐서 이뤄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어요.
  • AFC 회원 랭킹 . . . . 9회 일치
         [[아시아축구연맹]]에 소속된 협회에서 일정기간동안 거둔 업적을 평가하여 산정한 위자료다. AFC에서는 AFC MA Ranking이라 표기하고 있으며, 한국 언론에선 보통 AFC 랭킹으로 표기하고 있다. AFC 회원 위는 AFC에서 주관하는 각종 클럽대항전 참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말하는 회원이란 특정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축구협회를 가리키며, AFC에서는 특정한 상황이 아닌 한 1국가 1회원이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다소 정치적인 문제와 역사 때문에 중국 본토와 마카오, 홍콩에 있는 축구협회는 중국이라는 하나로 보지 않고 별개로 인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회원위를 산정할 때는 해당 회원이 운영하는 클럽과 리그에서 거둔 "클럽 점수"와 국가대표팀이 거둔 "국가대표팀 점수"(=National Team points, 이하 국대 점수)를 구해 이 둘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한다. 클럽 점수와 국대 점수를 합산하면 최대 100점을 부여받을 수 있다. 2016년 기준, 클럽과 국대간의 가중치는 7:3으로 클럽 점수는 70점 만점에 국대 점수는 30점 만점으로 책정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점수와 위를 통해 아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축구협회의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서아시아 계열과 동아시아 계열간의 우위를 명백히 나타낼 수는 없다.
         이는 AFC 챔피언스 리그와 AFC 컵의 대회진행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점 때문으로 해당 대회들은 이 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결승전을 제외하면 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맞붙을 일은 전혀 없다. 동아시아든 서아시아든 획득하는 클럽점수의 상당부분은 같은 지역끼리의 대결을 통해 얻으므로 아시아 지역 전체를 총평하는 설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
         여기에 대해 동아시아쪽이 서아시아보다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는게, 2016년 시점에서 바라보면 명백히 서아시아는 동아시아보다 ACL 우승횟수가 떨어진다.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ACC)이 ACL로 개편된 이후의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면 서아시아는 2015년까지 4번 우승, 동아시아는 9번 우승이다. 누가봐도 명백히 클럽 성과가 동아시아쪽이 더 치열하고 강한데다가 2013시즌부터는 자꾸 서아시아가 우승을 못해 흥행이 저하될 우려가 보이는지 토너먼트전에서 동서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기존 방식을 결승전에서만 동서끼리 교류가 가능한 구조로 바꿔버린다. 이러다보니 2015시즌 AFC 회원 위를 보면 1위가 대한민국인 건 그간의 성적을 미뤄 봤을 때 논란이 적을 수 있으나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중국이 사우디, 이란, 아랍에미레이트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는 상황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UEFA에서는 클럽의 성과를 측정하여 협회의 성과를 측정하고, 또 이로 인해 위에 변동이 생기면 협회가 획득한 위에 맞는 티켓을 다음 시즌에 부여함이 명료하게 적시되어 있다. 만약 잉글랜드가 뻘짓을 해서 UEFA 계수가 10위에 떨어지면 차기 시즌은 10위에 해당하는 UCL 티켓과 UL티켓을 받게 된다. 만약 리히텐슈타인이 갑자기 엄청 잘해서 UEFA 계수 1위에 올라오면 UL에만 참가가능한 대우가 UCL 4장, UL 3장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엔 별도의 의결이 필요없다.
         하지만 AFC 회원 위는 그 정도로 강력한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다. 차기 시즌에 부여할 수 있는 티켓은 모두 의결에 의해 판단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별도로 성적이 딱히 뚜렷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AFC의 의결에 의해 ACL로 올라올 수 있다. 즉, 객관적인 수준판단에 대한 신뢰성을 AFC 스스로가 버리고 있는 셈.
  • 거미(가수) . . . . 9회 일치
         ||<bgcolor=#874D0D> {{{#FFFFFF '''별명'''}}} ||~~[[김흥국|친구]],~~ '''소녀의 정 코스모스'''[* [[복면가왕]] 출연 당시의 가명. 바리에이션으로 거스모스, 갓스모스 등으로 불린다.]||
         [[나는 가수다]]에 합류하여 2011년 11월 6일 방영분에서 2위를 기록하며 조로운 출발을 했다. 동시기에 [[불후의 명곡 2]]에 출연하기 시작한 [[휘성]]에 비해 좋은 결과가 된 셈이다.
         2014년 2월 7일에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주현미]]편에 출연하여 다섯번째 서로 나와서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열창하여 우승을 거머쥐었다. 점수는 무려 '''445점'''으로 바로 앞 서로 나온 [[김종서(가수)|김종서]]가 '''442점'''으로 종전 [[정동하]]가 세웠던 최고기록 439점을 깨자마자 다시 기록을 경신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 어릴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려다가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집안이 어려워져서 유학을 포기했고 꿈을 잃어버린 느낌 때문에 크게 좌절했을 때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으며,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레 좌절했던 간이 극복됐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66851|#]]
         ||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 → || '''소녀의 정 코스모스''' || → || [[여전사 캣츠걸]] ||
         || 경연 || 가수 || 매니저 || 노래 || 위 ||
         || 9라운드 2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또 - [[인이]] || 7위 ||
         평균 위 '''3.7위'''
  • 김광석 . . . . 9회 일치
         | 배우자 = 서해<ref>본명은 서애. 1965년 9월 14일생. With33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김광석이 생존했던 그 해 나이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서해과 처남이 2002년에 세웠다고. 김광석 4집 리마스터링 앨범과 김광석:다시 앨범이 여기에서 나왔다.</ref>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金光石 숨져|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0700209130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07&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07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쪽=30|날짜=1996-01-07|확인날짜=2013-08-20}}</ref> 향년 31세. 자살로 알려졌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40020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08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쪽=22|날짜=1996-01-14|확인날짜=2011-02-13}}(PC 버전)</ref>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 있는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부인 [[서해]]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상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역시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다.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착하고 남한테 해코지할 사람도 아니다" 라며 아들의 자살을 믿지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 김광석 타살의혹 재점화… 가족들 입 모아 “자살 아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2269614|출판사=한국일보|저자=최인경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또,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개인적으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문점들이 지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밝혀져 김광석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 김광석 자택은 현재 내부 공사가 이루어져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2번 의문은 고 김광석씨는 메모광으로 유명하였는데, 아무런 유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3번째 이유가 된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씨가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 할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걸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김광석 타살의혹 제기 이유 3가지 들어보니..|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6191535352210|출판사=뉴스엔|저자=허설희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또한, 부인 서해의 말의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첫번째. 사후 얼마 안되어 딸과 미국으로 간 점 두번째. 고 김광석씨 가족과 재산 다툼을 한 점, 세번째. 고 김광석씨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이다.<ref>{{뉴스 인용|제목=고 김광석씨 부인 ‘저작인접권 침해’ 7,800여만원 배상 판결
         2017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이 김광석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딸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되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사인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김광석의 딸인 김서연이 어머니에게 피살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다만 김광석 본인의 의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이에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김광석의 처 서해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 중이다.<ref>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228</ref>
         #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장필+윤종신
  • 김민기(가수) . . . . 9회 일치
         하지만 이 초기 시절부터 음악 활동은 그리 탄치 않았는데, 1972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신입생 환영회 때 자작곡을 포함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반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 탄치 못했던 생활 ===
         [[1989년]]에는 농촌 운동 경험을 살려 장일, 박재일, 김지하, 최해성 등과 함께 생태운동 단체인 '한살림 모임'이라는 [[NGO]]를 만들어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한살림은 2014년 현재 원주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조합원만 '''41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활협동조합]]이다. 조합원들이 친환경-유기농산물를 생산해서 전국에 있는 직영매장에서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나, 해외 언론과 NGO에선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협동조합 운동에선 최고의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듬해에는 [[한겨레]]에서 발족시킨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서 그 동안 군사정권의 탄압 등으로 가창이 금지되어 있던 [[대한민국]]과 해외 동포들의 노래를 엮은 음반 '겨레의 노래'를 제작했고, 음반 발매 기념으로 회 공연을 하면서 오랜만에 [[아침 이슬]]을 공개적으로 불러 화제가 되었다.
         1991년에는 [[독일]]의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 각본/비르거 하이만 작곡의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s-2|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담당했는데, 이 뮤지컬은 같은 해 김민기 자신이 사비를 들여 [[대학로(서울)|대학로]]에 개관한 학전 극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해 2008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상설 공연되었다. 심지어 2001년에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회 공연도 진행했고, 이 공로로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남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1991년 이후에는 공식 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극단 학전의 연출자로만 묵묵히 일할뿐, 언론사의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이나 각종 공연 섭외도 모두 거절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아침 이슬의 김민기로만 나를 기억하는걸 원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즉 자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세상은 여전히 과거의 한간만을 기억하면서 화석화된 김민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나 음악극 외에도 수한 서정미가 돋보이는 노래들도 많이 작곡해 운동권이 아닌 일반 애호가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회적 소외자에 대한 시각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람에 대한 연민을 그린 곡인 [[아름다운 사람]]외에 친구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듯 털털한 어조로 부르는 '봉우리', 수한 동경과 열정을 담담하게 표현한 '날개만 있다면'등의 노래도 유명하다.
         요즘은 김민기가 무명 가수 취급을 받곤 하는데, 그런 사람은 '''1970~1980년대를 살아보지 못했거나 국내 가요의 역사를 수박겉핥기 식으로만 알고있는 사람'''이다.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형식적인 면(연주, 편곡)에서 혁명을 가져온게 록과 흑인음악을 도입한 [[신중현]]이라면, 내용적인 면(노랫말, 감성, 메세지)에서 혁명을 가져온 것이 김민기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흐름이 다시 만나는 지점이 바로 1985년 나온 [[들국화(밴드)|들국화]] 1집이다. 대중음악평론가들이 괜히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같은 위에서 들국화 1집을 처음에 꼽는게 아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9회 일치
          * 그의 진심을 이해한 토가와 트와이스트는 히 시에핫사키아에 협조하는 듯 보이나 진심은 여전히 빌런연합만을 위해, 자신들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나이트아이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랏파의 주먹을 피하며 허술한 하체를 공략했다. 그 거체가 나이트아이의 발에 걸려 붕 떠올랐다. 이 시점에서 나이트아이의 예상은 한 가지만 빼곤 전부 들어맞았다. 랏파의 주먹이 옷깃을 스친 것. 나이트아이는 그것을 담담히 인정하며 랏파가 강하다고 했지만, 그게 그가 예측한 미래를 바꿀 없었다.
          * 트와이스는 랏파가 눈 앞에서 쓰러지는 걸 보았지만 다음 간 랏파가 자신을 지나쳐 뒤쪽 벽에 처박히고 있었다힌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랏파를 거기까지 밀어낸 "무언가"는 눈으로 볼 수도 없었다. 트와이스는 그것이 허공에 남긴 궤적을 쫓고 있었다. 멍하니 있던 경찰관 하나가 트와이스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했다.
          방금 그의 설명은 도장사이즈로 고밀도 압축된 5kg의 쇳덩이를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투사했다는 말이었다. 수한 자기 힘만으로. 외견으론 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근접전의 강자였다. 많은 사건, 많은 사람의 미래를 보아온 탓에 그는 "예측하고 선수친다"는 당연한 요령에 매우 능했다. 그는 겸손하게 "보통사람보다 조금 빠른 정도"라고 표현했지만 그 빠른 예측이 빗나갓다는 점에는 놀라워하고 있었다.
          * 그가 도로 마스크를 쓰며 토가에게도 한 마디 하라고 부추겼다. 그녀가 웬일인지 히 그 말에 따랐다.
          그때 시가라키가 뿜어냈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단히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 그런 신뢰감을 만들어냈던 걸까? 시가라키는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걸 헤아렸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트와이스는 시가라키가 그때 무슨 생각을 한건지 모르겠다고 깨끗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시가라키가 그들을 믿는 다는 것. 토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은 처부다. 어차피 찾아가도 거부당해. 그렇다면
  • 성시경 . . . . 9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북도]] [[창군]]
         성시경은 [[1979년]] [[4월 17일]]에 [[대한민국]] [[전라북도]] [[창군]]에서 1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홍콩]]에서 산 적도 있었고, [[미국]]의 유명한 [[연예인]]인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별 어려움 없이 구사한다.
         |<너의 모든 간>
         * 원곡 : [[장필]], [[김현철 (가수)|김현철]]
         * 작사 : [[장필]]<br>
         * 작사 : 권관([[노리플라이]])
         * 작곡 : 권관([[노리플라이]])
         |[https://www.youtube.com/watch?v=Dbxzh078jr4 성시경 <너의 모든 간>]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일본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창군 출신]][[분류:토이]][[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1박 2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음악가]]
  • 안지만 . . . . 9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6차 5라운드([[삼성 라이온즈]])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5위(전체 40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5년]]에 [[오승환]]과 함께 불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며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권혁]], [[정현욱]]과 함께 불펜의 '안정권' 트리오라는 별칭이 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200005 오치아이 코치가 바라보는 안정권 트리오] - OSEN</ref>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4홀드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8월 17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우완 [[투수]]로써 최초의 100홀드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77859 삼성 안지만, 우완 투수 최초 100홀드 대기록] - 스포츠조선</ref> 그리고 [[2014년]] 프로 데뷔 12년 만에 FA 자격을 획득하여 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원으로 총액 4년 65억에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재계약하였다. 그 뒤 [[2015년]] [[6월 5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 개인 통산 150홀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해외원정 불법도박 혐의로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년 한국시리즈]]에 승선하지 못했고 [[2015년 WBSC 프리미어 12|2015년 프리미어 12]]에도 탈락하였다. [[2016년]] [[7월 20일]]에 검찰로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자금 투자와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다음날 계약 해지를 발표함에 따라서 유니폼을 완전히 벗게 되었고, 구단에서 퇴출되었다. 퇴출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중화 타이베이]]([[중화민국]])와의 결승전에서 1점차로 뒤진 7회말 [[양현종]]으로부터 무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삼진 1개를 잡아낸 후 뒤따른 두 타자를 모두 외야 플라이로 처리하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냈고, 8회에도 등판하여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이때 위기 상황에서 등판할 시 자주 나오는 기합소리가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고, 이 경기를 통해 팬들로부터 '안신'이라는 별명을 받았으며, 결승전 MVP로 선정되었다.
         * 안신 -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결승전 [[중화민국]]과의 경기에서 7회말 무사 1, 3루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우승에 기여하자 나라를 구했다며 [[이신]] 장군에게 빗대어 지어진 별명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10월 15일]]에 팀의 [[스타]]급 플레이어로 평가받는 간판투수 3명이 마카오에서 바카라 도박을 즐겼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며칠 뒤 [[삼성 라이온즈]]는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팀은 [[두산 베어스]]에게 1승 4패로 패배하여 통합 5연패가 좌절되었다. 검찰 조사가 늦어지면서 같이 거론된 [[윤성환]]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 전지훈련에 참가하였다. [[2016년]] [[4월 3일]] 1군에 재합류했다. 경찰은 "도박 혐의로 수사 중인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려면 중요 참고인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들이) 외국에서 아직 안 들어오고 있으니 현재 상황이 계속될 경우 수사는 '참고인 중지' 결정으로 끝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들의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수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러나 6월 초에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 확인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8&aid=0002510793 '원정도박 혐의' 안지만-윤성환, 수사보류 가능성↑.. 복귀?] - 스타뉴스</ref> 이후 7월 중에도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16년]] [[7월 21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그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에 [[삼성 라이온즈]]는 [[KBO (야구)|KBO]]에 계약 해지 승인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실상 퇴출됨으로써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0401 삼성라이온즈 안지만, 보류선수 명단 ‘제외’… ‘사실상 은퇴 수’] -이뉴스투데이</ref>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홀드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흥 안씨]][[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
  • 울릉군 . . . . 9회 일치
         [[러일전쟁]] 때는 울릉도 역사 상 드물게 주변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함대는 울릉도를 병참기지로 활용하여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물론 대한제국 정부의 승인 따윈 없고, 일본이 자의적으로 울릉도를 사용했다. 그리고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제국 해군의 [[방호양함]]인 [[드미트리 돈스코이함]]은 군자금으로 실린 막대한 금괴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765525|관련기사]]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앞으로 울릉도에는 소방서가 신설[* [[http://biz.heraldcorp.com/village/view.php?ud=201608182228226328368_10|2020년까지 울릉소방서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인구가 적다보니 정치적 파워도 그만큼 떨어지므로 우선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1년에 울릉경찰서장이 경정에서 총경(4급 상당)으로 격상되었고, 동해해양경비안전서 울릉해양경비안전센터장도 경감(6급 갑 상당)이 맡고 있기 때문에 기관장 회의라도 하려면 울릉안전센터장이 지방소방경(6급 갑 상당) 정도로 계급~~짬밥~~이 밀리는 느낌도 있다.]되고, 공항이 개설되고 일주도로까지 완공되면 독도 수호, 안전, 교통 흐름 모두 다 개선될 것으로 예측된다.
         2018년부터 울릉도에 1개 중대 규모의 해병대 전투병력이 환배치될 예정이라 한다. 2017년 7월 6일, 울릉도에 거주하는 주민에 의하면 폐교된 모 초등학교에 해병대원 20여 명이 6월에 며칠 동안 깨끗이 청소하고 갔다며 주둔지로 쓸 것 같다고 한다. [[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179567&part_idx=288|#]]
          * [[홍칠]] : 군인
         특산품으로는 [[오징어]]와 호박엿, 명이(나물), [[더덕]]이 있다. 더덕은 딱딱하지 않지만 특유의 향긋한 향이 없다고 한다. 사실 그래서 더덕의 맛은 약간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울릉도 하면 호박엿이 유명하지만 호박엿은 원래 울릉도의 명물이 아니다. 원래 시작은 울릉군의 군목인 후박나무로 만든 엿이었는데, 어느 간부터 울릉도는 호박엿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서 주민들이 고심끝에 후박엿 대신 호박엿을 팔게 되었다. 일설에는 육지에 딸 시집 보내고 사위 온다고 해서 호박죽을 해놨는데, 하도 기상이 변덕스러워 계속 도착하는 날이 늦어지다보니 계속 끓이다가 엿이 되었다는 속설이 전해지는데, 실제 엿 만드는 법을 생각해 보면 그냥 우스갯소리. [[호박]] 항목(2번)을 참조하자.
         울릉도 공항 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울릉공항]]의 건설이 최근 급격히 대두된 것은 일본의 독도 침입 때문이었다. 해상자위대의 함선이나 해상보안청 시선, 항공자위대의 군용기가 독도에 출몰했을 때, 본토의 [[F-15]], [[F-16]]등이 발진해 독도로 오더라도 연료 공급문제상 체공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독도에 대한 실효지배를 강화하려는 의미에서 공항 건설이 추진되었던 것. 규모가 [[대한민국 공군]]의 각종 항공기가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계획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공군이 체공시간 문제를 연료탱크 장착 및 [[공중급유기]] 도입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어 공항 건설이 불투명해지는 듯 했으나, IATA, ICAO 등의 각종코드가 이미 부여된 것을 보면 공항 건설은 예정대로 진행할 듯하다. 국토해양부는 2020년까지 [[Let L-410]] 정도의 소형 여객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울릉공항]]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울릉도에서 굴러다니는 차는 딱 2종류라고 봐도 좋다. [[경차]] 아니면 [[현대 싼타페|싼타페]]같은 [[SUV]]. 우선 도동이나 저동 등 대부분의 마을길 폭이 좁기 때문에 [[경차]]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경차]]로도 울릉도의 가파른 산길을 타는 데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일본]]식 경차처럼 배기량 0.66리터 엔진을 달면 상대적으로 산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퍼지기 쉽다고 하여 [[대한민국]]에서 티코가 나올 때부터 0.8리터로 내놓았고 [[2008년]]부터는 정부에서 배기량 1.0리터로 규정을 변경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퍼질 듯... 그래도 산길이 많고 해안도로에 절벽에서 떨어지는 돌들이 많기 때문에 차량 하체도 긁히기 쉬워서 경차보다 튼튼한 차를 산다면 같은 급의 중형 세단보다는 SUV를 사게 된다고. 심지어 '''이 동네의 경찰 [[찰차]]와 [[택시]]도 전량 SUV다.''' 거기에 울릉도는 눈이 꽤 오는 곳이니 '''SUV가 아니면 [[답이 없다]].''' 거기에 군 내에 [[LPG]] 충전소가 없다는 점을 유의하자. 따라서 택시가 다니더라도 LPG 차량이 없고 100% 디젤차다. 그리고 세단을 대여해 오는 관광객들을 보다못한 택시나 관광차량이 중앙선침범을 빈번하게 하니 아예 택시를 이용하자. 요금은 기본 2,800원으로 포항 시내와 동일하다.
         군내 버스 회사로는 [[무릉교통]]이 유일하며, 버스 노선도 해당 항목에 모두 기술되어 있다. [[교통카드]]는 [[2013년]] [[11월 28일]]에 서비스를 개시한 '''[[탑패스]]'''만 사용되었는데 어느 간부터 '''[[캐시비]]'''가 통하기 시작했다. 울릉도 지형의 특성상 사이즈가 가장 큰 버스는 BS090/BH090/[[현대 에어로타운|에어로타운]]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고 [[현대 카운티|카운티]]같은 마이크로버스(라이트버스)도 많은 편. 원박스카같은 미니버스도 여객용으로 쓴다고 한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9회 일치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나서 4개월 뒤. 아무런 표시가 없는 컨테이너선이 시애틀 항구에 나타난다. 신고를 받은 찰차가 시애틀 항구에 도착하자 컨테이너선에서 소련군 Mi-24 공격헬기가 이륙, 찰차를 공격해 쫓아낸다. 이후 소련군 부대와 장비가 시애틀에 상륙하기 시작한다. 소련군 사령관은 침공부대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방송국 헬기를 내버려두었다가 보여줄만큼 보여줬다고 생각되자 ZSU-23-4 자주대공포로 방송국 헬기를 격추시킨다.
         전투 도중 눈보라가 치기 시작해 공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된다. 그럼에도 소여 대대는 소련군 선발대를 막으며 배넌과 C 중대를 기다린다.하지만 배넌은 어느 간부터 무전을 받지도 않게 된다. 결국 소련군 대규모 전차 부대가 접근하자 소여는 C 중대가 전멸되었다고 판단해 다리를 폭파하고 후퇴하려 한다. 이때 배넌이 C 중대를 이끌고 소련군 전차 부대 바로 뒤에서 나타난다. 파커의 중대와 C 중대는 소련군 전차 부대를 격파한다. 소여는 딱 좋은 간에 왔다며 배넌을 칭찬하고는 부대를 데리고 후퇴한다.
         헬리콥터가 떠날 준비를 시작할 무렵, 올로프스키는 말라셴코를 부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말라셴코가 민병대로 추정되는 인물을 심문하러 근처 농장으로 갔다는 이야기 뿐. 한편, 말라셴코는 병사들에게 무기를 숨긴 민간인들을 처형할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말라셴코가 우물쭈물하는 병사들에게 짜증을 내며 자기 손으로 민간인들을 처형하려 할 때, 올로프스키가 난입해 이를 저지한다. 올로프스키는 병사들에게 민간인들을 데리고 나가게 한 후 말라셴코를 추궁한다. 말라셴코는 민간인들이 민병대를 위해 무기와 음식을 숨기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올로프스키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말하자 말라셴코는 명령이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해야하냐며 화를 낸다. 이에 올로프스키도 다시 한번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군사재판에 회부해서 소련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받아친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나가버리는 말라셴코. 올로프스키는 이를 보고있던 레베데예프에게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레베데예프는 맞건 틀리건 올로프스키는 자신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대답을 한다. 올로프스키는 레베데예프가 자신의 선택을 했는지 되묻고는, 조만간 선택할 간이 오게 될 것이라면서 농장을 떠난다.
         >소여가 송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지평선 너머에서 항미사일이 빛을 내며 날아온다. 항미사일은 전장을 떠나는 험비를 지나쳐 아직 전투가 벌어지는 캐스케이드폴스로 향한다. 미사일은 마을 중심부에서 폭발한다. 캐스케이드폴스에 있던 가정집, 전차, 트럭이 불길에 휩싸인다. 숲 위로 검은 버섯구름이 피어오른다.
         파커 중대가 등대 주변을 완전히 점거하자 소여는 파커에게 소련군이 점거하고 있는 마을을 탈환하라고 지시한다. 소련군이 자기 부하들에게 자비를 배풀지 않았으니 똑같이 자비를 배풀지 말라는 사바티에의 말은 덤. 마을을 탈환하던 도중, 소여는 파커에게 시가전은 위험한 전투이니 적을 존경하라고 조언한다. 이에 배넌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자 소여는 "이런 상황에서 적을 더이상 존경하지 않는 간이 죽게되는 간이다"라고 추가적인 설명을 한다.
  • 이민우(배우) . . . . 9회 일치
          * 연산군의 맏아들 세자 - [[설중매]]에서 연산군의 맏아들인 세자 역을 맡았다. 극 중에서 연산군의 큰어머니인 승평부부인 천 박씨(엄유신 역) 집에서 양육된다. (84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 [[설중매]] 편)
          * [[종(조선)|종]] - 역시 [[명성황후]]가 죽을 때의 세자 역을 맡았다. (90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 [[대원군]] 편)
         이후에도 청소년 드라마인 공룡선생, 사랑이 꽃피는 교실, 스타트 등에 출연하였다. 아역 부문 연기자 상을 휩쓴 것이 수하게 사극빨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1999년 윤석호 PD가 연출한 '초대'에서 이영애, 추상미, 김민, 김상경, 이창훈과 함께 나와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주목받으며 성인 연기자로 조롭게 안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http://m.isplu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474652&cloc=|관련기사]]
         대신 아쉬운 대로 [[메리대구 공방전]], [[열아홉 정]], [[살맛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등에서 30대 초반 직장인 역할, 다소 찌질하고 철없는 남편 역할, 강력반에서 형사들을 괴롭히는 지독한 범죄자 악역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조용히 연기 커리어를 쌓았다. 이런 연기도 잘 소화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연기에서는 도가 텄다고 할 지경.[* 특히나 [[살맛납니다]]에서의 그 찌질하면서 사악한 김기욱 역은 장인식(임채무 분)과 더불어 극을 지탱하는 2대 악역으로 꼽혔을 정도..]
         || 1990년 ||<|2> MBC || [[조선왕조 오백년]] - 대원군 || [[종(대한제국)|종]] || ||
         || 2006년~2007년 || [[열아홉 정]] || 홍우경 || ||
  • 임백천 . . . . 9회 일치
         || '''출생''' ||<(> [[1958년]] [[5월 30일]] ([age(1958-05-30)]세), [[전라남도|전남]] [[천시|천]] ||
         || '''학력''' ||<(> 천고등학교[br][[국민대학교]] 건축학과 ||
         [[1958년]] [[5월 30일]], [[전라남도]] [[천시|천]]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천시|천]] 소재의 [[초등학교]]를 입학했으나, [[서울특별시|서울]]로 상경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해 [[1978년]] 고영선과 함께 참가한 [[MBC 대학가요제|대학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고 곧바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가수 활동보다 [[MC]]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말에 [[TBC 젊은이의 가요제|해변가요제]] 출신의 [[왕영은]]과 함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더블 DJ/MC로 방송에 데뷔해 큰 인기를 얻은 게 MC로 진출한 계기였다.
         특유의 뛰어난 말솜씨 때문에 데뷔 초창기 때부터 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MC도 자주 맡았는데, 아나운서들보다도 진행을 더 잘 해서 그 뒤 MC 섭외 1위로 등극했다. 그래서 그를 [[가수]]보다 [[아나운서]] 및 전문MC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마치 [[임성훈]]처럼.
         [[분류:대한민국의 남성 방송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한국 남가수]][[분류:천시 출신 인물]][[분류:1958년 출생]][[분류:1978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장재인 . . . . 9회 일치
         장재인은 서울 예선 2차(심사위원 : 싸이, 아이비, 이승철)에 지원했다. 거기서 장재인은 '''[[앨라니스 모리셋]]의 Head Over Feet'''과 '''자작곡인 그곳'''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승철은 '뮤지션의 모습이 보여서 좋다', 싸이는 '고비의 간, 행복했던 간에서 울컥했는데, 많이 좋은 음악 하셨으면 좋겠다. 고맙다는 인사 많이 받으실 것 같다.'라고 평했다. 무난하게 합격.
         그룹미션에서는 '''원더걸스의 2 different tears'''를 불렀다. 장재인과 홍남화가 합격했는데, 전체적으로 다들 아쉬운 모습을 보인 상태에서의 합격이였는지 아니면 단히 자신이 합격한 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합격 후 나와서 서글프게 울었다.
         시작부터 불안했다. 주중 내내 1,2위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더니 사전투표 1위를 존박에게 뺏겼다. 그리고 미션곡도, 팬카페 등지에서 민 곡들이 아니고(그곡들은 2~5위에 전부 포진해 있다.), 안티들이 '장재인 망해랔ㅋㅋ'라는 심정으로 민 아웃사이더의 스피드레이서(...)도 아닌 뜬금없이 '''박혜경의 레몬트리'''가 미션곡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엠넷의 병맛력이 한층 더 느껴진 게 무대서.
         이날은 화제의 출연진들에게 --쇼--시상하는 슈퍼시상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슈퍼시상식의 서가 이상하게도 존박과 허각의 무대가 끝나고, 장재인의 무대는 뒤로 제끼고 그 사이에 슈퍼시상식과 '''[[힙통령]]'''의 축하공연을 넣어놨다. 즉 중요한 메인 이벤트인 탑3중 한 명인 장재인의 무대의 흐름을 무대서로 끊어 버린 것. 약 20여분간의 슈퍼시상식이 끝나고, 장재인의 무대가 시작되었으나 이미 그 사이에 투표할 만한 사람들은 다 한 상황이라... 그래도 밋밋하고 임팩트가 별로 없어보이는 레몬트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그러나 문자투표와 사전투표 1위를 놓친 것이 탈락으로 이어졌다.
         2011년 3월 22일 밤 8시(홍콩 시간)부터 2시간 반 동안 홍콩 aTV 주최 하에 열릴 예정인 아시아 레인보우 TV 어워드(亞洲彩虹獎電視頒獎禮)에 게스트로 참가할 예정. [[http://www.hkatv.com/v3/11/infoprogram/rainbowtvaward2011/list1.html|맨 하단에 張才人이라 씌여져 있다.]] 식전 행사에서 레드 카펫을 밟고 나왔는데 하필 그 전 서가 진교은(陳喬恩)[* 명중주정아애니(命中注定我愛你)로 유명한 대만 배우.]이 나온 바람에 고작 10~20초밖에 안 잡혔...아니 이전에 인터뷰도 얼마 안 하고 사인만 하고 갔다. 무대에서는 레몬트리와 풍경을 불렀다. 그런데 진행자가 영어로 소개를 했는데 발음이 "저진 인"(…)으로 들린다. [[이뭐병]]...
         발을 멈추는
          *2011년 6월 8일 방송된 YTN `뉴스앤이슈-이슈앤피플`에 출연해 위대한 탄생에 대한 질문에 집에 TV가 없어 보지 못했고 백청강의 노래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답을 했는데 그 이유가 'TV를 볼 시간에 책을 읽는 등 자기계발에 힘쓰는 게 더 좋다'는 말. 이 때문에 네티즌에게 'TV를 통해 화제를 끌어모았는데 그 말은 모되지 않냐' 'TV 보는 사람들은 자기계발 안 한다는 소리냐'라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 장평도정 . . . . 9회 일치
         '''장평도정'''(長平都正, ? - ?)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족이다. 조선 [[조선 태종|태종]]의 손자이자 [[양녕대군]]의 다섯 번째 서자이며, 이름은 이흔(李訢)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15대조로, 이승만은 그의 장남 부림령(富林令) 이(李順)의 14대손이다.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이신 (1554년)|무의공 이신]]은 그의 6대손이다.
         [[파평 윤씨]]와 [[진주 강씨]] [[강위]](姜偉)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파평 윤씨는 딸 둘을 두었고, 진주 강씨에게는 3녀를 두었다. 서자로 부림령(富林令) 이(李順) · 우성령(牛城令) 이석(李碩) 등의 2남이 있다. 부림령의 시호는 정숙공(靖肅公)이며, [[원주 변씨]] 변처관(邉處寬)의 딸과 혼인하여 수주정(樹州正) 이윤인(李允仁)<ref>이윤인은 이승만의 13대조 할아버지이다.</ref> · 유제도정(楡梯都正) 이윤의(李允義) · 덕풍부령(德豊副令) 이윤례(李允禮) 등의 3남을 두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rfo.co.kr/html/pachong_view.php?No=39&mode3=history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사후 [[경기도]] [[양주군]] [[송산면]] 추동(후일 [[의정부시]] [[신곡2동]] 추동부락)에 안장되었다. 현재 묘소는 [[신곡2동]] 추동부락 [[추동공원]] 내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무의공 이신]]은 그의 5대손 완원군(完原君) 이진(李眞)의 다섯째 아들이다.
         **서자 : 부림령(富林令) [[이]](李順, [[1489년]] - [[1540년]]), [[이승만]]의 13대조
         * [[성군]]
         * [[이신 (1554년)|이신]]
  • 정재학 (1856년) . . . . 9회 일치
         [[정재학]]은 1905년 [[군수]]자리에 오른다. 고급관료와 친분을 맺어 흥군수에 이어 개령군수를 맡게 됐다. 전임 군수와 달리 세금도 낮춰주고 밥 굶는 이들이 없게했다. 장사꾼들에게는 밑천도 대줬다. 그는 군수 직책에 있으면서 은행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1906 년 8월 [[대구상공은행]]이 설립 될 당시 이병학, 이종면 등의 부호들과 힘을 합쳐 대주주로 등극하면서 감사역도 맡았다.<ref name="ReferenceA"/><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0일 7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 -12</ref>
         정재학은 26살 연하인 사카모토 지(板本俊資 1884~?) 란 일본인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사카모토는 20살이던 1904년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와 상점 점원으로 일하다 대구에서 잡화상을 차렸다. 사업이 번창해 대구역 앞에서 창고사업도 병행했다 . 이 때 [[경상농공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정재학과 안면을 트게 됐다. 정재학은 일본 젊은이로부터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는 [[자본주의]]경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다. 나아가 사카모토는 후일 [[대구은행]]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된다.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물러나던 중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br>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친척관계인 [[정운일]] ( 鄭雲馹 )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언도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정재학]]은 [[항일투쟁]] 경력의 대기자도 '대구지역 일제 대항 세력 중심'으로 인정 한 바 있는 민족자본의 수호자였다. [[정재학]]의 [[대구은행]]은 출발부터 일제에 대한 대항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경일은행]]은 일제에 응하는 경영방식을 택했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ref>
         반면 민씨 가문은 1957년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면서 주요주주 자리를 내놓게 된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ref><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ref>경향신문 956년 4월 22일 1면</ref> 조흥은행은 1995년 2월 확대이사회 결의를 통해 은행장의 서를 조정하는 결정을 내린다.
         국내 언론계에서는 해방 이후 역사에만 주목, 현재 최장수 은행장을 [[하영구]] 씨티은행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 행장은 2001년 행장에 오른 뒤 2013년 상반기 2015년까지 연임이 확정됐다. 그러나 한국 금융사학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은행 은행장까지 포함시킬 경우 서가 달라진다. 현재 신한은행으로 합병된 조흥은행은 민족자본은행 100년사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보이면서 1997년 발행된 '조흥은행 100년사'에서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은행의 계보를 상세하게 다뤘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재계에서도 신세계 두산 LG 등이 100년 역사를 내세우는 것도 일제강점기 활동을 포함시키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견제 속에서도 기업을 설립하고 막대한 부를 창출한 역사가 현재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897년]] [[탁지부]] 참서관을 지내고 [[1905년]]과 [[1908년]]에는 경북 [[흥군]]과 [[개령군]] 군수에 임명되는 등 [[대한제국]]에서 관리를 맡기도 했으나, 이후 [[대구광역시|대구]]와 [[경상북도]]를 대표하는 대자본가로서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진다.
         * [[1995년]] 경북 흥군수
  • 추봉 (배우) . . . . 9회 일치
         * 1965년 《교자》
         * 1967년 《구인의 귀병》
         * 1968년 《애보》
         * 1972년 《[[갑돌이와 갑이]]》
         * 1973년 《또이와 갑이》
         * 1973년 《여대생 또이》
         * 1974년 《유관
         * 1982년 《[[화이]]》
  • 태종무열왕 . . . . 9회 일치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에 대해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어느 날 서악(西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 일이 있고 열흘 뒤인 정월 오기일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끊은 뒤 자신의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며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문희가 대신 나서서 옷을 꿰매 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서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김춘추가 문희와 정식으로 혼인하려 하지 않자 김유신은 "남편도 없는 것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다"며 곧 문희를 자신이 불태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고,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남산(南山)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서 뜰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발견한 여왕이 "저것은 무슨 연기인가?" 하고 묻자 옆에서 "아마도 유신이 제 누이를 불태우려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까닭을 묻는 여왕에게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고 묻는 옆에서, 마침 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여왕은 "너의 짓이구나. 당장 가서 구하라." 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ref group="주">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제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문희의 소생으로 무열왕의 장자인 [[문무왕]] 법민(法敏)이 태어난 것이 626년이라는 『문무대왕비』 기록에서 유추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이전의 일로 보인다. 이 경우 《삼국유사》가 전하는 김춘추의 혼인 에피소드가 있었을 당시 선덕여왕은 아직 즉위하기 전이었음에도 '왕'으로 표기한 《삼국유사》 기록은 모이 생기게 된다.</ref><ref name="유사-기이1">《삼국유사》 권제1 기이 태종춘추공</ref>
         귀국하는 김춘추에게 당 태종은 3품 이상의 관인들을 불러 송별연을 열었고, 『온탕비(溫湯碑)』 · 『진사비(晉祠碑)』의 글과 《[[진서]](晉書)》 한 질을 김춘추에게 하사하였으며 [[장안|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 밖까지 나아가 전송하였다. 앞의 서적들은 태종 자신이 직접 짓고 글씨도 쓴 것으로, 특히 《진서》는 당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맨 먼저 필사한 두 질 가운데 하나로서 태자(훗날의 [[당 고종]])와 김춘추에게 각각 내린 것이었다. 김춘추도 당으로부터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의 벼슬을 받은 아들 문왕을 숙위(宿衛)로서 당에 남겨두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춘추는 [[서해]]상에서 고구려 라병에게 포착되어 나포될 위기에 처했으나, 함께 왔던 [[온군해]](溫君解)가 귀인의 관을 쓰고 배에 남아 고구려군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작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f name="신라-64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ref><ref>[[최치원]],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ref>
         진덕여왕 8년([[654년]]) 3월에 진덕여왕이 승하하고, 진골 세력은 상대등 [[알천]](閼川)에게 섭정을 청하였으나 알천은 이를 사양하고 춘추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춘추는 사양하다가 마침내 국인의 천거를 받아들여 임금으로 즉위하였다.<ref name="신라-654">《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1년(654)</ref> 《삼국사기》는 신라의 시조(始祖) [[박혁거세|혁거세]](赫居世)부터 진덕여왕까지의 28명의 임금을 성골, 무열왕부터 마지막 [[경왕]](敬順王)까지를 진골이라고 하였으며, 무열왕부터 [[혜공왕]]에 이르는 8명의 임금이 재위한 시기를 중대(中代)로 분류하였다.<ref>《삼국사기》 권제12 신라본기 제12 경왕</ref> 한편 《삼국유사》는 진덕여왕 이후 무열왕부터의 왕계를 하고(下古)로 분류하고 있다.<ref>《삼국유사》권제1 왕력(王曆)</ref>
         무열왕 7년([[660년]]) 3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당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 소정방과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백영(劉伯英) 등이 인솔한 수륙 13만 군사를 파병하였다. 원병을 요청하러 보낸 김인문은 소정방이 이끄는 신구도행군의 부대총관(副大摠管) 자격으로 귀국하였고, 무열왕에게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이라는 지위가 더해졌다.<ref name="신라-660"/> 무열왕은 바다를 건너온 당군을 영접하기 위해 [[5월 26일]], 대장군 [[김유신]]과 [[김진주 (신라)|김진주]](金眞珠){{.cw}}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ref group="주">신라 10정(十停) 중 하나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에 있던 부대</ref>에 이르렀고, 21일에 태자 김법민을 보내 병선(兵船) 1백 척을 거느리고 [[덕적도|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아, [[7월 10일]]에 백제의 [[사비성]](泗沘城) 앞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당군과 함께 백제를 공격할 5만 신라군의 지휘는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 장군 [[김품일|김품일]](金品日)과 [[김흠|김흠춘]](金欽春) 등이 맡고, 왕은 금돌성(今突城)에서 머물렀다.<ref name="신라-660"/>
         태종 무열왕에 대한 당대 신라인들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 이는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올린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라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다.<ref group="주">그러나 고구려의 [[태조왕]]의 경우에는 묘호로 봐야 되는가, 시호로 봐야 되는가에 대한 이견이 있다. 그 밖에 태조의 묘호를 받은 [[태조 성한왕]]이나, 국조의 묘호를 받은 [[박혁거세]]도 존재한다.</ref> 이에 대해 [[당 고종]]<ref group="주">《삼국사기》에는 [[당 중종]]이라 표기됨</ref>이 “당 태종이 위징(魏徵)·이풍(李淳風) 등을 얻어 천하를 평정하는 대업을 이루었기에 태종이라 하였지만, 너희 신라는 바다 밖에 있는 조그만 나라임에도 태종의 호를 사용하여 천자의 칭호를 참칭하니 그 뜻이 불충하므로” 이를 고칠 것을 요구하자, 신라의 [[신문왕]](神文王)은 “(당 태종처럼) 무열왕도 김유신이라는 성신(聖臣)을 얻어서 삼한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며 완곡하게 거절하는 답서를 보냈다. 이 답서를 받은 고종은 그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이르기를 “33천(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내려가 유신이 되었다.”고 한 일이 있어서 이를 기록한 바가 있는데, 이 기록을 찾아 확인해보고서는 놀랍고 두려워서, 태종의 묘호를 허락했다고 한다.<ref name="유사-기이1"/> 훗날 [[조선]](朝鮮)의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고려]](高麗)의 [[왕건|태조]](太祖) 이래 역대 군주들의 묘호를 시호로 대체하고자 하는 [[조선 성종|성종]](成宗)에게 태종 무열왕의 선례를 들며 굳이 기록된 묘호를 뺄 필요는 없음을 주장하였다.<ref>《성종실록》 성종 18년 정미(1487년) 2월 경진(10일)조</ref>
         * 처남 : [[김흠]]
         * 박교, 《김춘추 외교의 승부사》 (푸른역사, 2006)
         |후임자=[[흠공]]
  • 현주엽 . . . . 9회 일치
          | KBL 지명위 = 1
         그는 [[휘문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학사]] 및 [[고려대학교|동 대학원]] [[석사]] [[졸업]]하였다. [[1998년]] [[서울 SK 나이츠|청주 SK 나이츠]]에 드래프트 1위로 지명되어 프로농구에 데뷔하였다. 그의 현역 [[대한민국 프로 농구|프로 농]][[농구|구 선수 시절]] [[닉네임]]은 '''매직히포''', '''포인트포워드'''이며 역대 대한민국 프로 농구 선수 중에는 가장 NBA급에 근접했던 선수였다. [[2002년 아시안 게임|부산 아시안 게임]]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결승전에서 4쿼터 4초를 남기고 돌파 및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면서(이른바 까마귀 작전)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으며, 연장전에서 6득점을 기록하여 [[대한민국]]을 [[1982년 아시안 게임|뉴델리 아시안 게임]]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는데 기여하였다.
         1998년 3월 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위로 청주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구슬 뽑기로 1위 지명권을 받게 되자 ‘우승이야’를 외쳤다고 한다. SK는 그 지명권으로 바로 현주엽을 지명했고 이렇게 해서 현주엽은 SK에 이미 영입돼 있던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SK의 운명은 안준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고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하고 만다.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주엽의 프로 첫해 개인성적은 뛰어났다. 3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94 득점, 6.35 리바운드, 4.65 어시스트를 기록했다.<ref name=sports /> 이듬해 시즌에서 현주엽은 스몰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며 서장훈과 전년보다 나아진 팀웍을 보였다. 이에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트레이드 신청 마감일 하루전인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담한 승부수를 띄웠다.<ref>경향신문 1999년 12월25일 “현주엽=조상현+4억원'빅딜'”</ref><ref>[최창환의 백 투 더 KBL] [http://news.jumpball.co.kr/news/view/cd/82/seq/4.html ‘X-MAS 빅딜의 추억’ 현주엽-조상현 맞트레이드]</ref> 이는 최인선 감독이 이원재 단장에게 한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인선은 현주엽의 3번자리(스몰 포워드)가 불만이었다. 우승을 위해 3번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보다 기동력 좋고 확실한 슛터를 원했던 그는, 이대로라면 챔피언전에 진출하더라도 현대를 만나면 승산이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SK는 창단 이후 현대에게 12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트레이드 효과를 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챔피언전에서 만나게 된 현대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실패했으면 최악의 자충수로 기록됐을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찾기’로 농구역사에 기록되었다.
         현주엽은 상무 복무중 출전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에 극적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ref>연합뉴스 2002년 10월14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255351 “아시안게임-<농구> 한국, 20년만의 금메달(종합)”]</ref> 당시 중국은 NBA 지명 1위에 빛나는 야오밍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국은 시종일관 중국에 리드를 당해 종료 3분 17초를 남기고 71-84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이때 김진 대표팀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른후 현주엽과 김승현을 교체 투입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현주엽의 미들슛과 골밑돌파, 그리고 김승현의 가로채기와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며 한국팀은 무더기 득점을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4쿼터 종료 4.7초를 남기고 현주엽이 드리블에 이은 대담한 골밑돌파로 레이업슛을 성공,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서도 김승현과 현주엽의 활약은 이어졌고 102-100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20년만에 남자농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2009년 6월 24일, 현주엽은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그 다음날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장에는 무릎수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들어섰다. 선수생활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간을 묻는 질문에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를 꼽았고 아쉬운 것으로는 우승을 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 소감으로는 팬들에게 농구를 좀 잘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현주엽은 화려하였던 개인성적에 비하여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0년대 그와 함께 대학농구 전성기를 보냈던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프로에 와서 대부분 한번 이상의 우승을 경험해 본 것에 비해 현주엽은 9년의 프로생활 동안 단 한번도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보지 못하였다. 99-00시즌 SK가 정규리그 1위를 달리며 팀을 우승시키는가 했지만 시즌 도중 트레이드되며 SK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고, 그 이후로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간은 06-07시즌 LG에서 활약하고 있을때로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으며 우승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지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LG의 외국인 선수 파스코의 심판 폭행사건이 얽히면서 KTF에게 패하고 만다. 그나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유일한 우승 경력이다.
         *[[고려대학교]] 시절, ABC대회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백보드를 부 덩크슛을 작렬한 적이 있다.
  • 희빈 장씨 . . . . 9회 일치
         김씨의 간택을 전후로 [[서인]]은 천재지변의 원인으로 장씨를 지목<ref group="주">[[인현왕후]]의 가례일에는 지진이 있었으며 [[인현왕후]]가 복위하자 초여름에 서리와 눈이 내린 것, 장씨에게 자진의 명이 내린 후부터 여러 달 심각한 천재지변이 계속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ref> 하거나 제왕은 여색을 멀리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장씨를 궁 밖으로 쫓아낼 것을 수차례 종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김창협]]은 "후궁으로서 가까이 사랑할 사람이 간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진실로 관어(貫魚: 궁인들의 서)를 서대로 할 수 있게 하여 종사(螽斯)의 경사가 있게 하고 미색(美色)에 마음이 현혹될 근심과 치우치게 사랑에 빠져 은총을 열어 준다는 비난을 없게 한다. (중략)"<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9월 13일(갑오) 1번째 기사</ref> 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는데, 이는 장씨의 미색에 현혹되지 말고 궁인의 지위 서로 성총을 내려 후사를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서 승은궁녀인 장씨보다 정궁인 [[인현왕후]]와 당시 유일하게 후궁의 지위를 갖고 있던 [[영빈 김씨|숙의 김씨]]([[김창협]]의 5촌 당질녀이다)에게 사랑을 주어 그들에게서 후사를 보아야 비난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ref group="주">1689년 2월에 [[김창협]]의 아비 [[김수항]]이 [[송시열]]의 상소를 막지 못했다는 죄로 삭탈관직이 된 것에 대해 사관은 [[김창협]]이 장씨를 지목하여 간한 이 발언으로 [[조선 숙종|숙종]]의 노여움을 얻어 보복받은 것이라고 기록했다.</ref>
         [[인현왕후]]는 직접적으로 숙종에게 숙원 장씨를 쫓아낼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숙종에게 [[명성왕후]] 김씨가 꿈에서 계시를 내리길 장씨가 원한을 품고 환생한 짐승의 화신이며 불한 무리(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궁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발언했던 기록이 숙종실록에 실려 있다.<ref>숙종실록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2일(정유) 2번째기사</ref> 또한, '장씨 팔자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노고하셔도 공이 없을 것이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는 모두 훗날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되어 폐출되는 이유가 된다. [[조선 숙종|숙종]]은 원자([[조선 경종|경종]])가 탄생하자 [[인현왕후]]가 매우 노여워했으며, 급작스레 주가(主家: 공주의 처소.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 혹은 [[명안공주]] 등을 의미한다)와 더욱 친밀해지고 [[1688년]] 2월, '[[조사석]]이 장씨 친정의 청촉으로 상신에 제배되었다'는 소문을 유포했던 것이 발각되어 유적에서 삭제되고 위리안치된 [[홍치상]]의 방면을 종용했던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ref group="주">[[1688년]] 4월에 발발한 [[기사환국]]의 여파로 [[노론]] 과격파였던 [[김만중]]이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문되었는데 소문의 근원지가 [[조선 숙종|숙종]]의 고모인 [[숙안공주]] 들에게서라는 자복이 있자 [[홍치상]]에게 교형이 내려졌다. [[갑술환국]]으로 [[홍치상]]은 다시 복관되었지만 [[조선 숙종|숙종]]은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높은 연세인 공주가 집에 있으니, 내가 차라리 떳떳하지 않은 데에 빠지겠다. 특별히 복관(復官)하라'하며 불쾌함을 드러냈으며, 1702년 [[홍치상]]의 아들이 [[홍치상]]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하자 '[[홍치상]]의 지은 죄는 만번 통분할 일인데 아들이 감히 격고하였다'며 분노를 터트렸고 곧 '지은 죄가 낭자한데도 관작이 그대로인 탓이다'하여 복관한 관작을 다시 거두었다.</ref>
         [[1701년]] [[음력 8월 14일]], 오랜 지병을 앓던 [[인현왕후]]가 사망하였다. 조정은 [[인현왕후]]를 위한 국상이 준비함과 동시에 조정 한 편에선 희빈 장씨를 다시 왕비로 복위시키는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이는 당연한 수이었지만 [[노론]]과 [[숙빈 최씨]]에게 치명적인 상황이었으며 [[조선 숙종|숙종]]에게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건 조사 당시의 편파성, 증거의 부족, 고문으로 인한 증언의 신빙성 문제 등으로 인해 희빈 장씨가 신당을 차려 굿을 한 것이 정말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히 세자의 쾌유를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혹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1701년 10월 10일, [[조선 숙종|숙종]]은 이미 장씨가 자진하였음을 통보하며 아들인 [[조선 경종|세자 윤]] 부부에게 상주로서 거애식에 참여하여 망곡례를 행할 것을 명한다. 다음 날인 10월 11일에는 [[조선 경종|세자 윤]] 부부의 상복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서자(庶子)로서 아버지의 후사가 된 자는 그 어머니를 위해서 시마복(緦麻服)3개월복)을 입는다.'는 예조의 말에 따라 그대로 시행하라 명을 했지만 이후 숙종은 이를 번복하여 장씨를 위해 3년복을 입도록 한다.<ref group="주">정확히는 3년복이 아닌, 3년이 되기 며칠 전에 상복을 벗게하라고 명한다. 이는 왕후와 차별을 두기 위함임을 알 수 있는데 왕비 아래 후궁 이상이었던 장씨의 신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 영조|영조]]는 생모 숙빈 최씨를 위해 시마복을 입었으며 장례를 마친지 닷새 후에 이마저 벗으라는 어명을 받아야 했다. 덧붙여 영빈이씨(사도세자 사친)와 수빈박씨(조 사친)의 성복은 시마복이었다.</ref>
         장씨의 상례부터 장례까지의 모든 절차는 궁에서 주관하고 치루어졌으며 종친부 1품의 예로 받들어졌다.<ref group="주">숙종의 다른 후궁인 명빈 박씨와 숙빈 최씨의 상장례는 법도대로 궁 밖 사가에서 이루어졌다.</ref> 그녀의 무덤 역시 여느 후궁들<ref group="주">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무덤은 아들인 연잉군과 환관 장세상, 풍수에 밝은 노비 목호룡이 구하였다.</ref> 과는 달리 친정 식구나 궁속 환관이 구한 것이 아니라 왕실 종친인 금천군 이지와 예조참판 이돈이 지관들을 거느리고 여러 곳을 다니며 구하였다. 경기도 양주 인장리로 결정된 장씨의 묘는 숙종의 명으로 종친부 1품의 예<ref group="주">사방 100보의 규모로 경내에 농사와 목축을 금한다. 품계가 한 등씩 내려갈 수록 10보씩 감소된다. 문무관은 종친부와 비교해 10품씩 감하여 정1품은 90보, 6품은 40보로 한정되었으며 7품 이하는 6품과 같다. 왕실의 여인을 제외한 외명부 여성은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ref> 로 단장되었다. 장씨의 장례 역시 여느 후궁의 장례처럼 3월장<ref group="주">세상을 떠날 달을 포함한 세 번째 달에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 짧게는 30일, 길게는 80여일이 장례기간이 되는데 숫자가 클 수록 상급이다. 4품 이상의 품계를 가진 이들의 장례이며 후궁, 왕자녀는 물론 왕세자 부부의 장례 또한 3월장으로 치루어진다. 1718년 3월 9일에 사망한 숙빈 최씨는 5월 12일에 장사됨으로써 정상적인 후궁의 장례인 3월장을 치렀다.</ref> 으로 치루어지지 않고 4월장으로 치루어졌는데, 왕과 왕후의 장례인 5월장보다 단지 하루가 부족한 1702년 1월 30일에 치루어졌다.<ref group="주">이 또한 후궁의 위, 왕후의 아래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왕세자의 생모인 탓에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도 해석되기도 하지만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와 조의 생모 수빈 박씨도 3월장을 치렀던 점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ref> 장례식 전날에 세자가 친림하였고, 수일 전부터 입관 당일까지 궁에서 식을 거행하였다.
         애초,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후궁(희빈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의 집과 친분이 있어서 그 연줄로 조사석이 정승에 제배된 것"이라는 김만중의 발언이었는데, 숙종 15년(1689년) 2월, 김만중의 아들 김진화의 공초 내용인 "후궁(後宮)의 어미는 예전에 조 정승의 집과 같은 방(坊: 동네)에서 살았는데, 근일(近日)에는 발걸음을 끊고 왕래하지 않는다."<ref>숙종실록 숙종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2월 28일(병인) 3번째기사</ref> 는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 처갓집의 여종이었기에 조사석과 친분이 있었던게 아니라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친분이 있었던 것을 시사하며, 동시에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 처갓집의 여종이었다는 사실이 이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더욱이 조사석이 정승에 제배된 것이 장씨와의 연줄 덕이라는 소문을 배포한 자가 [[홍치상]]이었다는 점은 수성에도 의혹을 제기하는데, [[홍치상]]은 장씨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영빈 김씨]](당시 귀인)의 이모부이기 때문이다.<ref group="주">[[홍치상]]의 첫아내는 [[영빈 김씨]]의 이모이다. [[홍치상]]의 아들인 [[홍태유]]는 아비를 구명하며 [[홍치상]]이 이모인 [[숙명공주]]에게서 소문을 얻은 것이라 주장하였는데, [[숙명공주]]의 아들인 [[심정보]] 또한 [[영빈 김씨]]의 이모부이다. [[영빈 김씨]]의 폐서인 사유는 궁내의 사정을 친정에 전달한 것과 주가(主家: 공·옹주를 의미)와 내통하여 분란을 일으킨 죄목이었으며, [[영빈 김씨]]는 [[인현왕후]]의 복위로 특별히 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2차례나 홀로 승급에서 제외되는 등 [[조선 숙종|숙종]]의 외면을 받았다. [[기사환국]]때 교형을 당한 [[홍치상]] 또한 [[인현왕후]]의 복위로 특별히 복관되었지만 어머니인 [[숙안공주]]와 [[인현왕후]]가 모두 사망한 1702년에 다시 복관이 취소되고 국가 죄인으로 강등되었으며 [[조선 숙종|숙종]]은 이후에도 [[홍치상]]이 복관되지 않도록 다시금 엄명을 내릴 만큼 반감을 표명했다.</ref> [[홍치상]]이 계실의 지친인 [[이사명]]에게 소문을 전달했고, [[이사명]]이 사돈인 [[김만중]]에게 전달해 [[김만중]]이 [[조선 숙종|숙종]]에게 따진 것이 숙종실록 숙종 13년 6월 16일 기사에 기록된 사건의 배경이다.
  • 김민희(1982) . . . . 8회 일치
         이렇듯 데뷔 직후의 행보는 파죽지세였다. 이미 만 20세가 되기 전 CF 모델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고, 만 20세이던 2002년 드라마 <[[수의 시대]]>에서 주인공을 맡아 정통 멜로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꽤 이른 나이의 성공이라는 요소, 실력 논란 등이 (주로 또래의) 수많은 [[어그로]]를 끌었으며 동시에 엄청난 [[안티]]를 양산하게 된다.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상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영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수의 시대]]가 방영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상 거의 김민희--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 2002년 || SBS || [[수의 시대]] || 지윤 ||
         || 2000년 || 애보 || 주연 || 미아 ||
         [[홍상수]] 감독은 결별설이 보도될 당시 귀국 후 직접 해명하겠다고 했으나, 그 이후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으며 11월 중 경 [[이혼]] 신청을 넣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김민희의 경우 이 사태의 여파로 활동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며 청룡영화상 시상식도 불참했다.
         만약 영화 촬영이 연애의 일환이 아니라 단하게 비즈니스일 뿐이라면, 더더욱 해명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이런 일이 터지고 나서 둘이 또 영화를 찍으면 간통설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두 사람이 위 결별설 기사 당시 한 주장대로 "단 우정이지만 서로의 미래를 위해 동료로서도 인연을 끊겠다"고 했든, 아니면 진짜 바람이 났으나 여론을 의식해 해어졌건 간에, 여지껏 영화 준비를 해온 게 밝혀진 이상 간통이 사실이든 아니든 '''위의 헤어졌다던 해명은 거짓이 된다.''' 둘이 진작에 헤어졌다고 주장하며 모든 일이 스캔들이라 믿었던 김민희 팬들은 [[멘붕]] 중이며,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환장하겠네" 정도.
         || 2002년 || SBS 연기대상 || 여자 인기상 || 수의 시대 ||
  • 김형준(배우,가수) . . . . 8회 일치
         ||<#00BFFF> '''신체''' ||181cm[* 그룹에서 키 으로 세번째다.], 66kg, [[O형]]||
         ||<#00BFFF> '''별명''' ||자라, 거북[* 목이 길어서 붙었다.], 김오피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성씨를 합친 별명, 데뷔 초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여 붙여졌다.], [br]인형준[* 인형+형준의 합성어. 말 그대로 인형처럼 예뻐서 붙여졌다. 비슷한 별명으로 프랑스 인형이 있다.] ,아카짱[* 아카(애기)+짱(친애를 뜻하는 일본의 경칭) 일본 활동 때 일본 현지 스텝이 붙여준 게 시초로 멤버들과 팬들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별명. 행동이나 얼굴, 성격이 애기같아서 붙였다고 한다.], 김자라[* 성+자라. 목이 길어서 자라 같다고 붙여졌다.], [br]기명준, 막내온바닥[* 막내온탑의 반대말, 동시대 아이돌들이 다 막내온탑, 실세를 맡고 있을 때 --심지어 그룹 내 동갑 멤버는 서열 1위-- 거의 혼자 막내둥이 취급을 받았다. 서열위 꼴지. 형준에게 하극상은 없다. 그저 막내일 뿐...], 깐준[* 앞머리를 깐 형준], [br]쪼꼬쭌[* 럽라디 때 베이비펌을 하고 나오자 팬들이 본인이 키우는 푸들인 쪼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쭌디제이[* 쭌+DJ. SBS 라디오 김형준의 뮤직하이에서 디제이를 맡으면서 본인이 직접 붙인 별명], [br]쭌[* 멤버들이 부르는 애칭이다.], 스에꼬[* 일본어로 막내라는 의미. 이름이 비슷한 김현중과 구분하기위해 쓰였다. 반대로 김현중은 리다], --인왕--[* 인자한왕자 줄임말로 본인은 시키면 무조건 다한다고 그래서 인왕]||
          * 성격이 진해서 남의 말에 잘 넘어 가는 편이다. 멤버들이랑 마트에 물건을 사려가면 옆에서 은근슬쩍 이것 맛있데 몸에 좋데 란 말에 무조건 그냥 장바구니에 막 담는다.
          * [[소녀시대]] [[써니(소녀시대)|써니]]의 본명인 규라고 부른 사이로 친하다.
          * 1월 27일 게임 전문 공중파 방송인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 됐다. 제목이 곧내용으로서 김형준이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때 김형준이 들어가는 팀은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MBC GAME HERO]]. 처음에는 다소 무개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갤러]]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식없는 모습이 어필 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고 결국 3월 4일에 감독 추천으로 공인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뮤탈 짤짤이의 창시자인 [[서경종]]과 매우 친해졌고 서경종은 이를 계기로 해설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하게 되었다.[* 훗날 서경종은 트윗 인터뷰[[http://esports.dailygame.co.kr/news/read.php?id=57529|#]]에서 김형준과의 친분은 100% 설정이었으며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방송 이후엔 연락도 안 했다고 밝혔다.][* 서경종의 트윗문답때문에 김형준의 빠이들은 서경종한테 악플을 날리고 [[스갤러]]들은 [[빠가 까를 만든다]]면서 [[병림픽]]을 했다. ~~트리플S도 [[카시오페아(동방신기)|카시오페아]]나 [[엘프]]와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함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라..~~] 그리고 유독 [[러커]]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임할때 말버릇이 암요 까시까시맨~이라든지 자기를 가시저그라고 불러달라는 모습도 나왔다. 스갤에서는 주로 까시맨이라고 불린다. 결국 3월 31일을 마지막 방송으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스타 팬들에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다.
          * 12월 12일 더블에스301 멤버들과 함께 해요TV K-COOK STAR에 출연했다. 삼행시도 짓고 철가방속에 있는 글씨를 맞춰야 요리을 먹을수 있는데 철가방을 식간에 열고 닫아서 맞추기도 어러웠는데 찜닭 이라고 외쳐 정답을 맞춰서 맛있는 찜닭을 먹었다. 닭 CF도 찍고 김규종이랑 막춤까지 추며 요리 대회에서 [[모일봉]]이랑 닭갈비랑 치즈 과일꼬치 요리를 했는데 팬들은 김형준의 [[요리치|요리실력]]을 잘 알기 때문에 당연하듯 허영생, 김규종 팀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주었고 김형준은 요리 대회에서 져서 벌을 받았는데 허영생이 싸이팬으로 김형준 얼굴에 그림(...)을 그렸고 김형준은 해요TV 시청자 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다.
          * 2012년 3월 29일 ~ 4월 7일까지 일본 오사카, 나고야, 도쿄 으로 총 6회에 걸쳐 ‘KIMHYUNGJUN 2012 1st Story in Japan’이란 타이틀로 일본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 푸들 쪼꼬를 키우고 있는데 토이푸들 인줄 알고 구입했다가 식간에 폭풍성장한 바람에 알고보니 토이푸들이 아닌 스탠다드 푸들 이었단걸 뒤늦게 개사기를 당했단걸 알게된다. 비록 개사기를 당했지만 쪼꼬를 사랑해주며 키우고 있다.
  • 라미란 . . . . 8회 일치
         [[KBS 드라마 스페셜]]의 정마담 역으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에 출연했으며, 2017년 많은 단편작들 중, 제일 높은 시청률을 달성하여 시청률 위 1위를 차지했다. 그 기세를 이어 다음 웹툰원작의 tvN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케이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들과 경쟁하여 2위를 기록하였다.
         2017국내 빅5 투자 배급사가 선정한 충무로 티켓파워 위에서 [[오달수]]와 함께 최고점, 최다 득표율을 받으며 만장일치로 남녀 조연부문 공동1위를 차지했다.
         || 두 개의 달 || 연 || 426,706 ||
         ||<|4> [[2015년]] || 워킹 걸 || 음옥 || 151,550 ||
         || [[덕혜옹주(영화)|덕혜옹주]] || 복 || 5,599,665 ||
         || [[JTBC]] || [[맏이(JTBC)|맏이]] || 나미 ||
         || [[KBS]] || [[드라마 스페셜]] - 예쁘다, 오만복! || 남미 ||
         || JTBC || [[유나의 거리]] || 깡 ||
  • 박두을 . . . . 8회 일치
         |본관 = [[천 박씨|천]]
         |자산 =
         '''박두을'''(朴杜乙, [[1907년]] [[11월 8일]] ~ [[2000년]] [[1월 3일]])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배우자이다.<ref>[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0/04/06/201004060500007/201004060500007_2.html 박두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 <신동아></ref> 본관은 [[천 박씨|천]].
         고향에서 쉬면서 곧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번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병철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들과 노름에 빠졌다. 노름은 늘 한밤중까지 계속되었고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곤 하여 이 무렵 호암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날도 골패노름을 하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26세였던 [[이병철]]은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는 간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허송세월을 했다는 자책이 컸다. '뜻을 세워야 한다. 독립운동도 좋고 관리가 되어도 좋고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을 빈곤에서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병철]]은 사업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결심하였고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 3녀 : 이희 (1939 ~ )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2000년 죽음]][[분류:이병철]][[분류:삼성가]][[분류:천 박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박석민 . . . . 8회 일치
         [[최형우]]가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4월 한달동안 0.344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이승엽]]과 함께 삼성의 중심타선을 지탱했다. 1번 [[배영섭]]과 4번 [[최형우]]가 슬럼프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류중일]] 감독은 9번 김상수를 1번으로, 5번에서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던 박석민을 2번으로 전진배치한다. 박석민은 2번 타에서도 맹타를 휘둘렀지만 박한이가 부상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임시직이라고 한다. 박석민 본인도 5번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최형우의 슬럼프가 길어지자 최형우가 5번으로 내려가고 박석민이 4번을 치게 되었다. 결국 최형우가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이승엽이 4번으로 가고 박석민은 3번을 치게 되었다. 최형우가 1군으로 복귀한 이후는 최형우를 이승엽 뒤에 세우지 않겠다는 류중일 감독의 뜻에 따라 박석민 - 이승엽 - [[강봉규]] - 최형우 또는 최형우 - 이승엽 - 박석민의 타을 따라 3번 또는 5번 타자로 나서다가... 최종적으로는 4번으로 고정되면서 삼성의 중심 타선은 '''3번 이승엽 - 4번 박석민 - 5번 최형우'''가 되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번 타자로 출장했지만, 5차전까지 14타수 1안타(타율 0.071)로 지독한 부진을 겪었다. 더군다나 5차전부터는 6번 타으로 밀려나는 굴욕까지 겪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박석민의 타격이 부진했던 이유는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하다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타격 밸런스가 깨져 타격감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서 압박 수비로 2루 주자를 3루에서 잡는 활약을 하는 등 수비에서만큼은 정말 제몫을 다했다.
         [[팩트폭력|펑퍼짐한 몸 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만]] 젊었을 땐 민첩한 수비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해설위원 [[이철]]과 [[허구연]]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히 공수를 가리지 않고 삼성 라이온즈 내야의 코어라고 부를 만 했으나 NC 이적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부상과 노쇠화가 겹치며 수비는 크게 망가져, 2018년 기준으로는 더이상 수비를 잘 한다고 불러주긴 힘들고 소속팀에서도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게 되었다.
         타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주원|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박기혁|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데릭 지터|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강정호|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황재균|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롯데 자이언츠|이 팀]] 팬들한테는 [[이대호|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양준혁|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구자욱|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풀스윙을 할 때 배트를 놓쳐 배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잦다. 카메라맨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고 상대 투수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위험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http://cfile287.uf.daum.net/image/184C3B194C2DD67D70ABC2|팀킬도 한다.]] 2011년 6월 21일 경기에서 [[오넬리 페레즈|오넬리]]의 투구에 삼진당하면서 놓친 배트가 오넬리에게 날아가는 바람에 오넬리는 당황, 박석민은 헉, [[신경현]]은 알밤 + 예끼~~[[한대화|니미 X발]]~~를 시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다행히 배트가 오넬리 정면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험했던 상황.[[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category=kbo&id=3478&gameId=20110621HHSS0&listType=game&date=20110621&page=1|영상]]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다행히 빗나갔기에 '역시 브콜돼' 소리를 듣는데 그쳤다. '''__하지만 박석민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왼쪽 중지 부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__''' 2010 시즌부터 수비할 때 중지에 테이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격할 때 중지와 약지를 테이프로 감아 하나로 묶어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격할 때 간적으로 왼손에 힘이 빠지면서 배트를 놓치는 것. 중지를 총 두 번 수술해야 한다는데 2010 시즌 끝나고 한 번 했었고 2011 시즌이 끝나고 두번째 수술을 했다. 그 결과 100% 정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 2013 시즌까지도 휴식일을 잡아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SNS에 올라온 글로 보아 히쓰마부시(장어모듬덮밥) 팬인 것 같다. ~~갈 때마다 먹는다~~
          * 퇘가놈, [[정현욱|박그분]] : 주장인데도 팀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는 이유. 박석민이 당연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삼팬들이 많았으나 FA이적으로 차세대 [[이호준|엔전드]]의 길을 걷자 바로 금지어로 등극했으며 박석민 팬은 [[노리타(야구)|퇘리타]]로 격하되었다. ~~두산팬 : [[홍성흔|우리가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 더불어 브콜돼 이놈 대구로 오기만 해 봐라고 잔뜩 벼르는 중. 하지만 예상이 무색하게 첫 대구 원정에서 삼성팬들이 기립박수로 반겼다.[* 물론 여전히 온라인 반응은 안 좋은편. 일부는 박수친 팬들을 비난했는데, 이유는 우리 팀 투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 다만 이 경기에서 1회 말이 끝났을 때 삼성은 '''7대1'''로 이기고 있었다! 직관 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난 경기인데 예전에 삼성에서 뛰던 선수가 왔으니 반갑다고 박수나 쳐 준 것.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거 한 방에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점수차였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이날 삼성 선발이었던 [[윤성환]]은 상대 타자가 자팀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두 번이나(한 번은 자신의 피홈런으로!) 받는 것을 마운드에서 지켜봐야 했다.] 꽤나 오랜 시간 이후 당시 삼성 스포츠단의 지원금이 [[박근혜-최실 게이트|정유라]] 지원으로 인한 지원금 축소 의혹으로 계약금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과 친정 팀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재평가되고 있다. 혹자는 괜히 오버해서 안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고도 하는 편.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한화 이글스|한화]]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브래드 토머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한화 이글스]]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머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KIA 타이거즈|KIA]]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스포츠플러스]]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 박주영 . . . . 8회 일치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 때에는 뛰어난 간 속도와 예측력을 기반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 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반대 방향으로 간적으로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볼 키핑력과 간속도,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무릎 부상을 포함한 피지컬 하락과 폼이 죽으면서 이런 스타일의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예측력은 유효한 강점으로 상대 수비의 움직임이나 공의 흐름 같은 것을 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흐르는 볼에도 강점이 있다.
         인지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엄청 까이는 인물이다 보니 별명이 무식하게 많다. 가나다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추가시 유의 바람. 야구의 김별명 같은 항목에서 명확하게 영향을 받아 생겼으며, 김별명 등 이 위키의 별명 항목은 까는 별명 좋은 별명 무차별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위키 전체적으로 볼 때 박주영만 이상한 항목이 아니다.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축구)|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A매치 전대륙 상대 득점자이다. 득점 서대로 보면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아시아), 2006년 1월 21일 그리스(유럽), 2006년 3월 1일 앙골라(아프리카),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남미), 2009년 9월 5일 호주(오세아니아),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북중미) 이다. 다만 호주의 경우 OFC 소속이 아닌 AFC 소속일 때 기록한 득점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2018년 현재까지 이 기록은 [[황선홍]], [[박주영]], [[이동국]], [[손흥민]]만 보유하고 있다.
          * 2000년대 중반 박주영을 주인공으로한 [[육성 시뮬레이션]] [[플래시 게임]]인 '축구왕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을 키워 프로선수로 만드는 게 목적이고 중간 중간 '[[불멸의 이신]]' 플래시 게임이 들어가있었지만 축구협회측에서 합의한 초상권 협의 종료로 결국 사라졌다. [[http://upload.inven.co.kr/upload/2014/06/26/bbs/i2943558749.jpg|관련 사진]]
  • 블랙 클로버/106화 . . . . 8회 일치
          * 유노는 잡다한 반론보다는 단한 해결책을 생객해 낸다. 그는 바람의 정령 벨에게 최대한 힘을 끌어내라고 한다. 그 간 같은 단상의 단장들이 놀랄 만큼 강대한 마력이 방출된다. 마법덕후인 율리우스는 정령마법이 발동하자 눈을 빛낸다.
          * 아스타가 반사적으로 마법을 베어버린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작은 격돌의 여파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그 위력을 실감하는 간이다. 아스타가 "왜 맨날 느닷없이 이런 짓을 하냐"고 발끈한다. 유노는 살아있으니 됐고 죽으면 그것 뿐인 녀석인게 아니냐고 얼버무린다. 둘에겐 일상같은 장난이지만 그걸 지켜 본 시민들은 인식이 바뀐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이고 그걸 또 간단하게 막아내는 걸 보고 더이상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사라졌다. 셋케 또한 자신이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른 둘을 보고 경악한다.
          *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은 실적 위도 발표된다. 3위는 [[노젤 실버]]의 은익의 참수리. 별은 95개. 4위는 [[샬롯 로즈레이]]의 푸른 들장미. 별 83개. 작년보다 한 계단 위가 올라갔지만 단장이 술에 꼴아서 현장에 없다. 5위는 새로운 여성단장이 취임한 홍련의 사자단. 별 76개. 6위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의 취록의 당랑. 별 69개. 작년과 같은 위이며 잭은 [[야미 스케히로]]의 검은 폭우만 위가 올랐다고 분통해한다. 7위 [[도로시 앤즈워스]]의 산호의 공작. 별 67개. 8위는 역시 새 단장이 취임한 [[자줏빛 범고래]]. 별 51개. 최하위는 [[릴 부아모르티에]]의 물빛의 환록. 별은 49개다.
          안 그래도 최연소 단장이라 눈칫밥 먹던 릴은 위까지 최하위로 떨어지자 체통이고 뭐고 집어던진다. 거기에 잭이 "맨날 멍청한 그림만 그려서 그렇다"고 놀리기까지 하자 아예 아스타한테 매달려서 "어떻게 해야 별을 모을 수 있냐"고 하소연하기까지 한다. 유노는 정말 이런 사람이 단장인지 의심한다.
  • 스틸오션/사령관 . . . . 8회 일치
          * 은밀한 항(Stealth Cruiser) - 액티브. 2CP 소모. 30초간 위장 10% 상승. 교신 범위 10% 감소. 쿨타임 90초.
          * 대양함대(Ocean Fleet) - 양함이나 전함에 배치해야만 발동. 주포 관통력과 장갑을 5% 증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장교. 당시 독일군 경양함 엠덴의 함장으로 있었다.
          * 크루프의 기술력(Krupp Craft) - 양함이나 전함에 배치했을 때만 발생. 조타가 주포 정확도에 주는 영향 5% 감소. 정확도 5% 증가.
          * 조용한 항(Silent Cruiser) - 잠수시 80% 확률로 발동. 30초간 위장 5% 증가. 속도 1노트 증가.
          * 도쿄급행(Tokyo Express) - 구축함이나 경양함에 배치시 발동. 가속 10% 증가.
          * 크로스샷 조정기(Cross-shot Calibrator) - 중양함이나 전함에 배치시 발동. 주포 조준 정확도 0.5% 증가. 포탑 회전이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 5% 감소.
          * 명사수(Deadshot) - 액티브. 3CP 소모. 양함 배치시에만 발동 가능. 15초간 함포의 데미지 10% 상승. 사정거리 5% 상승.
  • 신성왕후 . . . . 8회 일치
         '''신성왕태후 김씨'''(神成王太后 金氏) 또는 '''신성왕후'''(神成王后)는 [[신라]]의 왕족 출신 [[고려]]의 왕후로 [[고려 태조]] 왕건의 제5왕후이다. [[신라]] [[신라 문성왕|문성왕]]의 후손으로 [[신라 경왕]]은 그의 사촌 오라비였다. 그녀는 [[고려 안종|안종 왕욱]]의 생모이기도 하다. 본래는 왕후가 아니었으나, [[1010년]] [[고려 현종|현종]]에 의해 왕후로 추존되었다. 성은 김씨,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이다.
         신성왕후 김씨는 [[신라]] 왕족이며, [[신라 문성왕|문성왕]]의 5대손이며, [[신라 경왕|경왕]]의 큰아버지 김억렴의 딸이다. 그녀가 태조의 다섯 번째 왕후가 된 것은 신라 [[경왕]]이 [[고려]]에 항복한 935년 11월 직후부터 936년 초기가 될 것이다.
         935년 11월 신라의 마지막 군주 [[경왕]]이 고려에 항복할 뜻을 표시하자, 고려 태조는 이에 대한 답례로 사신을 보냈다. 왕건은 “지금 왕이 나라를 과인(寡人)에게 주니 그 선물이 크도다. 바라건대 신라의 종실(宗室)과 결혼하여 생구(甥舅)의 친밀함이 오래 가고자 하노라.”라고 하여, 고려의 사신은 경왕에게 태조가 신라 종실과의 혼사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이에 경왕은 “우리 백부(伯父) 김억렴(金億廉)에게 딸이 있어 덕(德)과 용모가 쌍미(雙美)한지라 이가 아니면 내정(內政)을 구비(具備)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사촌누이 김씨를 고려로 시집보냈다.
         * [[신라 경왕]]
  • 유동근(배우) . . . . 8회 일치
         연기력은 한국 배우 중에서도 위권이고, [[김명민]]을 제치고 '한국의 멜 깁슨'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남자. [[사극]] 연기(성우로 비유하면 [[이정구]], [[신성호(성우)|신성호]]를 연상시키는 배역), '아내'에서의 기억을 잃은 박한 이중 결혼한 남편 역 등을 보면 정말로 연기를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 있으며 미중년이 뭔지 보여준다.
         그리고 2002년에 그에게 다시 연기대상의 영광을 준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 [[흥선 대원군]] 역할을 맡았을 때 최고의 장면은 대신들에게 [[경복궁]] 증축의 필요를 역설했던 장면. 매우 조용조용 낮은 톤으로 영국 공사의 자금성 입성기를 들려주다가, [[조두(문신)|조두]]이 끼어들자 간 "걸어서 가겠네, 걸어서 가겠네!"[* 당시 대본엔 '(큰 소리로)'라는 지문과 "걸어서 가겠네..."가 전부였다.]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 다시 조용한 톤으로 돌아가는데 면전이었으면 오줌이라도 찔끔 지릴 것 같다. [[정도전(드라마)|정도전]] 37회에서도 [[정몽주]]와 논쟁 중 '''"야 정몽주!!!"'''라고 내지르는 장면도 압권으로 [[네이버]] 추천검색에 올라올 정도였다. 유동근이란 배우의 힘을 알 수 있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이성계 계통, 간성, 유동근의 특징이 잘 어우러진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쌍꺼풀 수술을 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생기더니 드라마에서 맡는 역할도 좋은 쪽으로 바뀌었고 그러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로맨틱한 역할의 포텐셜이 폭발한 것은 1996년 방영한 드라마 [[애인(드라마)|애인]]으로,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부드럽고 낭만적인 모습을 통해 기혼 여성들의 수퍼스타로 식간에 자리매김했다. '''잉크블루''' 컬러 셔츠의 유행은 덤. [[불륜]]을 메인 소재로 삼은 이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가정윤리를 파괴하는 저질 드라마'''라는 비난도 쇄도했지만[* 심지어 국회 문화체육상임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공영방송 [[문화방송|MBC]]가 이런 막장드라마를 방영해서 되겠냐면서 논란이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막장 드라마|그보다 더 자극적인 소재로 방영시간을 가득 채운 드라마들]]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도전이 종방한 후 정말 짧은 휴식기를 가지고 바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하였었다. 바로 전작에서 박력 넘치는 무골 이성계를 연기했던 것과 정 반대로 여기서는 나이들어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자식 걱정에 마음을 쏟는 박한 아버지 [[차봉]] 역할로 나와서 정도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보면 엄청난 괴리감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유동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과 그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야말로 1년 내내 KBS 드라마의 주역으로 미칠듯한 활약을 했고 그 열연의 결과로 2014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 3번째 대상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이번 대상을 수상한 당시 나이 만 58세로 [[김혜자]]의 뒤를 잇는 최고령 연기대상 수상자로 남자 배우 중에선 두번째로 최고령 수상자.[* 2014년 수상 당시에는 남자배우 중 최고령 수상자였으나, 2017년에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열연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의 대상 수상으로 그 기록이 깨졌다.(수상 당시 만 64세.)]
  • 이광수(배우) . . . . 8회 일치
         '''아시아 프린스, [[런닝맨]]의 최대 수혜자[* 런닝맨 고정 7인 중 프로그램 시작 당시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으나, 현재는 런닝맨의 실세가 되었다. 특히 해외 팬들의 인기는 가히 압도적. 그에 걸맞게 중국 최대의 SNS인 [[웨이보]] 팔로워 수만 봐도 약 830만 명인데, 웨이보 한류 스타 위 TOP 100명 중에 12등이다. 런닝맨 내에서도 팔로워가 두 번째로 많은 송지효와 200만 이상 차이가 난다.][* 런닝맨이 시작하던 2010년 7월 기준, [[유재석]]-[[지석진]]은 이미 십수년간 대중에게 인정받은 톱 개그맨이자 MC였고, [[김종국]]은 가수로서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X맨을 찾아라]]과 [[패밀리가 떴다]] 등 예능에서도 맹활약한 스타였다. [[하하(가수)|하하]] 역시 X맨,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 잔뼈가 굵었고, [[송지효]]는 배우 경력이 꽤 길고 패밀리가 떴다 등의 예능 출연 경험 등이 있었다. 이들에 비해 [[개리(리쌍)|개리]]와 이광수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었다. 개리의 경우 그룹 [[리쌍]]은 많은 히트곡과 힙합계에서 오랫동안 쌓아올린 명성, [[길(리쌍)|길]]의 무한도전 출연 등으로 그룹 자체는 유명했지만 개리 개인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이광수는 시청률 20%를 넘겼던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주요 조연으로 나와 갓 이름을 알렸던 때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화제성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이광수도 적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는 덜 알려진 상태였던 것.]'''
         || 덕수리 5형제 || 주연 || 박경 ||
          한편 방송에서 이광수의 '꽃뱀' 발언을 자막으로는 '사기꾼'으로 화한 것을 근거로 제작진 역시 방송에 부적절하다 생각하고 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새끼'나 '돌아이'같은 발언 역시 자막으로 화하여 내보내며, '''정말로 방송에 나가면 안되겠다 싶은 수위의 욕설은 애초에 [[소음 검열]]을 해버린다'''. 즉 제작진이 해당 발언을 화시켰다해도 결국 자막에서 화시키는 정도면 충분할 정도의 수위[* 상기한 '새끼'나 '돌아이', '등신'같은 욕설.]라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으며, 갖은 과격한 발언을 내버려두고 '꽃뱀' 발언만 핀포인트로 문제삼는 것은 모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 장서희(1972) . . . . 8회 일치
         2017년에는 《[[언니는 살아있다!]]》에 출연, [[김옥]] 작가와 약 9년만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중 1화부터 《[[아내의 유혹]]》의 셀프디스가 대놓고 나온다(...). ~~그 대사를 하는게 하필 또 장서희인 게 매우 절묘하다~~] [[아내의 유혹|작가와 협업했던 전작]]에서의 캐릭터와는 달리 다소 코믹하고 유쾌한 캐릭터지만, 그런 역할에서 나오는 사이다성 활약과[* 확실히 장서희가 분한 [[민들레(언니는 살아있다!)|민들레]]가 세 주인공 중 가장 비중이 높고 활약성 또한 대단한지라, 시청자들에게도 사실상 유일한 진주인공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강하리|이분]]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가끔 [[구은재]] 표정이 나올 때는 소름이...-- 드라마 자체도 크게 성공했으며[*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인터넷상에서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이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든 작품운을 [[인어 아가씨|양대]] [[아내의 유혹|대표작]]에 몰빵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으나, 최근 《[[언니는 살아있다!]]》가 여러가지 의미로 대박이 나서 작품운이 쇠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SBS]] [[주말 드라마]] 중 전작 《[[우리 갑이]]》와 더불어, '''근 5년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SBS에겐 가뭄의 단비같은 작품인 셈. --참고로 전작의 [[문영남|작가님]]도 [[막장 드라마]]론 한 끗 날리신 분이다(...)--]~~근데 이것도 막장 드라마~~
          * 자신을 과감히 주연으로 기용한 [[임성한]], 재기를 도와준 [[김옥]] 작가를 자신의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임성한 또한 장서희를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배우들과 교류가 없기로 유명한데도 본인의 결혼식에 장서희를 초대했다고 한다.[* “호텔에서 밥을 사줄 테니 차려입고 오라”고 임성한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갔더니, 그녀의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옥과는 1살 차이라서 자매 내지는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 막장 드라마 3대장 중 임성한, 김옥 작가와 이미 작업했으므로, [[문영남]] 작가와 작업한다면 '''막장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때문에 장서희와 문영남의 만남은 드라마 커뮤니티에서 종종 등장하는 떡밥이다. 만약 그 합작품이 복수극이라면?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영된다면? --진정한 그랜드슬램(...)--.
          * 왼쪽부터 [[이채영]], 장서희, 김옥 작가, [[우희진]]이다. [[우희진]]과는 같은 [[문화방송|MBC]] 아역배우 출신이다.[* 장서희는 89년에 [[문화방송|MBC]] 공채로, 우희진은 87년에 MBC 특채로 데뷔했다.] 《인어 아가씨》에서도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사석에서도 꽤나 친한 사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에서는 위 사진을 보며 ‘막장계 정모’(...)라고 평가했다.
         || 2005 || [[사랑찬가]] || 오진 || 16.4% ||
         《인어 아가씨》, 《아내의 유혹》, 《언니는 살아있다!》를 통틀어 ‘장서희 [[박찬욱|복수 3부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뻐꾸기 둥지》가 3부작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복수와는 거리가 먼 배역인 데다 재미나 파급력이 비참할 정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3부작으로 엮기는 다소 민망한 위치에 있었다. 나중에 장서희가 《아내의 유혹》 김옥 작가와 다시 호흡을 맞춘 《언니는 살아있다!》가 복수극으로 상당한 히트를 치면서, 《뻐꾸기 둥지》는 3부작 자리에서 바로 밀려나 《언니는 살아있다!》가 복수 3부작 자리를 꿰찼다.
  • 정형돈 . . . . 8회 일치
         | 가족 = 정운봉(부), 박경(모), 슬하 2녀 <br/> 정유주, 정유하 (쌍둥이 자매)
         * [[MBC]] 《설 특집 - 스타 댄스 파티 : 댄서의 정 (1월 30일) : 게스트》
         * [[MBC]] 《제38회 한국방송대상 (9월 2일) : 오프닝무대 보컬 및 시상자》<ref>{{뉴스 인용|제목=파리돼지앵 정형돈-정재형 ‘정마초’ 생방송 공연, ‘무도’ 이후 처음 방송(한국방송대상)|url=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cateid=1032&newsid=20110902151739420&p=newsen|출판사=뉴스엔|저자=최신애 기자|날짜=2011-09-02}}</ref><ref>{{뉴스 인용|제목=한국방송대상 시상맡은 정재형-정형돈 ‘손잡고 입장~’|url=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cateid=1032&newsid=20110902152349207&p=newsen|출판사=뉴스엔|저자=정유진 기자|날짜=2011-09-02}}</ref>
         * 2011년 7월 2일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200515 《정마초》] -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 파리돼지앵 - with [[정재형]]<ref>{{뉴스 인용|제목=정형돈-정재형 ‘정마초’ 웃음싹~ 한편의 오페라 감미로운 무대(무한도전)|url=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cateid=1032&newsid=20110702191512573&p=newsen|출판사=뉴스엔|저자=박정현 기자|날짜=2011-07-02}}</ref>
         *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이재]], [[무한도전]] 팀과 공동 수상)<ref>{{뉴스 인용|제목=이재-'무한도전'팀, MBC 방송연예대상 공동수상(종합)|url=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1230004007191&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고재완 기자|날짜=2007-12-30}}</ref>
         | 현재명 = [[이재]], [[무한도전]]
  • 최영이 (종교인) . . . . 8회 일치
         |직업 = 교자
         '''최영이'''(崔榮伊, [[1818년]] ~ [[1840년]] [[2월 1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바르바라'''(Barbara)이다.
         그녀는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한국의 103위 성인]]에 속한 [[교자]] [[최창흡 베드로]]와 [[손소벽 막달레나]] 부부의 딸이다.
         {{인용문2|[[교]]로 제 부모를 잃었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하지만, 제가 [[천국]]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위로가 되며 [[교]]의 특권을 주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840년]] [[2월 1일]], 최영이는 [[한양]] 근교의 [[당고개역|당고개]]로 압송되어 [[이문우 요한]]과 [[홍영주 바오로]]와 함께 [[참수형]]을 받았다. 그렇게 그녀가 [[교]]하던 때의 나이는 23세였다. 그 전날에는 최영이의 어머니가 처형 받아 교하였는데, 모녀가 같이 교하지 못한 까닭은 당시 [[조선]]의 [[형법]]에 따르면 친족을 같은 날에 처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최준석 . . . . 8회 일치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6위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입단시 포지션은 [[포수]]였다.
         타격은 좀 한다지만 나이도 있고, 수비도 기대할 수 없고, 발도 느리고, 늘 지적받는 체중 관리 문제도 그렇고 다른 구단에서 딱히 메리트를 느낄 요소가 적다는 점이 문제다. 롯데에서 잡거나 강제 은퇴 수을 밟지 않을까 예상하는 팬들이 많다.
         컨택이 약간 아쉽지만 좋은 [[선구안]]과 강력한 장타율로 만회를 하고 있다. 실제로 15년 프로 생활 동안 타율이 3할을 넘었던 적이 3시즌밖에 없다. 하지만 워낙 공에 배트가 잘 안나가기 때문에 삼진도 많이 당하지만 볼넷의 비율이 높고, 덩치에 맞게 장타율 역시 타율에 비하면 높아 출루율이 1할을 넘나들고, 장타율 역시 2할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쉽다는 컨택도 보통 최준석이 위치하는 클린업 타 기준으로 리그최상급 클린업들에 비해 아쉬운 것이지 보통 타자들에 비하면 월등히 뛰어나다. 3할은 몰라도 2할 8푼은 기대할 수 있는 좋은 타자.
         최준석의 가장 큰 단점은 '''[[똥차(야구)|발이 엄청나게 느리다는 것]].''' 주자로써 평균은 커녕 압도적 꼴찌 수준의 주력을 자랑해서 타격으로 벌어놓은 점수의 반쯤은 베이스 러닝으로 날려먹기 마련이다. 게다가 빠른 타구속도 덕에 넓은 [[잠실 야구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구장에서 '''담장 맞추는 1루타''' 같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마디로 '''주루에서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타자다.''' 2017 시즌 종료 기준 통산 [[병살타]]도 162개로 은퇴선수까지 포함하면 10위, 현역선수 중에서는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통산 1위는 ~~당연히~~ [[홍성흔]]의 230개, 현역 1위는 [[정성훈]]의 211개.] 단히 주루가 느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 대타 출장시나 경기후반에는 이 느린 발과 수비포지션이 없는 것 때문에 거의 반드시 [[대주자]]나 [[대수비]]를 대동해야 하는데, 보통 대수비를 겸하는 대주자까지 2명, 어쩌다 수틀리면 대주자 대수비 따로 해서 3명까지 한번에 쓰게 된다. 조원우 감독이 최준석의 기용을 꺼리고 결국 FA에서 잡지 않은 데에는 단히 발이 느려서 점수 덜 먹는다는 것이나 병살 잘 치는 생산성 문제도 있지만 이 로스터 낭비 문제가 더 크다. 알다시피 프로야구 로스터는 매우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최준석 때문에 좌완이나 사이드 원포인트 혹은 패전조급 릴리프를 타팀보다 한명 덜 써야 한다고 하면 확 와 닿을 것이다. 최준석의 타석에서의 생산성이야 전성기 때는 그걸 감안하고도 쓸 만큼 좋았고 노쇠화가 진행된 지금도 꽤 좋은 편이지만 릴리프 한명 덜 쓰는 단점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특급까진 아닌지라.
          * 단 체격을 보면 4번 타자 같지만 지금까지 기록을 보면 거의 5번 타자 같다는 느낌을 받게한다.[* 두산에서는 김동주의 우산효과, 롯데에서는 이대호의 우산효과가 그 예이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8회 일치
          * 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식.
          * 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식.
          * 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식.
          * 차 사격(Fire by Rank): 토글. 해당 부대가 차적으로 사격하게 된다. 제일 앞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으면 그 뒷열이 사격 후 무릎을 꿇고…. 이하생략 하는 방식.
  • 홍병주 . . . . 8회 일치
         |직업 = 교자
         '''홍병주'''(洪秉周, [[1798년]] ~ [[1840년]] [[1월 31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베드로'''(Petrus)이다.
         그의 동생 [[홍영주 바오로]] 역시 [[교자]]이다. 그들은 [[1801년]] [[신유박해]]로 교한 [[홍낙민 루카]]의 손자들이며, [[1839년]] 말에 교한 [[홍재영 프로타시오]]의 조카들이다. 그들은 모두 명문 [[양반]]의 후손이며, 그 가문 사람들 중 여럿이 [[한국 천주교]]에 기여한 바가 크다.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는 [[한양]]의 한 명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홍낙민]]이 [[교]]하자,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의 [[여사울]]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이어온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자로서 살았다.
         홍병주와 [[홍영주]]는 [[당고개역|당고개]]에 있는 사형장으로 압송되어 [[참수]]되었다. 홍병주는 [[1840년]] [[1월 31일]]에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고, 홍영주는 다음날인 [[2월 1일]]에 두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다. 그렇게 홍병주가 [[교]]하던 때의 나이는 43세였고, 홍영주가 교하던 때의 나이는 40세였다.
  • 화완옹주 . . . . 8회 일치
         [[1799년]] [[3월]] 이후 화완옹주는 석방되어 궁에 들어와 살았으며, 조대에도 화완옹주에 대한 탄핵이 있었으나 조가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조실록에는 1808년 5월 17일 삼사에서 올린 글에서 정치달의 처가 죽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즉 옹주의 사망일은 그 이전으로 사료되나 정확한 몰일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왕가의 전통상 졸기가 없고 무덤이 경기도 파주 유배지 인근이었던 것으로 보아 죽을 당시 죄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완옹주 및 정치달 묘]]》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있다. 2001년 12월 21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어머니''' : [[정왕후 (조선 영조)|정왕후 김씨]] (貞純王后 金氏, 1745년 - 1805년)
         *** <sup>이복</sup> 올케 : [[효왕후|효소황후 조씨]] (孝純王后 趙氏)
         *** <sup>이복</sup> 언니 : [[화옹주]](和順翁主, 1720년 3월 8일~1758년 1월 17일) -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에게 하가
  • 흥친왕 . . . . 8회 일치
         편지를 쓸때 그는 [[한글]]체로 썼는데, 이는 한자나 영어로 썼다가는 발각되었을 때 청나라의 군인들이 해석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명성황후]]의 국장 때 그는 종척 집사(宗戚執事)로 임명되었고, 빈전에서 왕과 왕자들이 곡을 할때 왕의 가까운 친척으로써 상복을 입고 곡하는 반열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2월]] 초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을 사퇴한 뒤, 총호사(總護使)에 임명됐다가 2월 중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퇴거,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파면되었다.
         운현궁의 이로당에서 거주하다가 [[1912년]] [[9월]] 병세가 위독해졌고 종은 전의(典醫)를 그의 집에 보내 왕진(往診)을 시켰다.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이태왕 고종은 자신의 어의(御醫)를 보내 흥친왕을 진료하게 했다. 그러나 병세는 심해져 [[1912년]] 양력 [[9월 9일]]에 67세를 일기로 [[운현궁]] 정침에서 병으로 병사하였다. 어느 병환으로 사망했는가 여부는 알려져있지 않다. 그가 죽으면서 그의 [[공작 (작위)|공작]]의 지위는 아들 [[이준용]]이 상속하였다. 소생으로 영선군 [[이준용]], [[이문용 (왕족)|이문용]]과 딸 1명을 두었다. 흥친왕이 죽자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친히 그의 빈소에 가서 상복을 입고 곡을 하였다.
         ** 첩며느리 : [[전혁]]
         * [[대한제국 종|종]]
         * 종실록
         [[분류:유교 신자|이희]][[분류:과거 급제자|이희]][[분류:대한제국의 황족]][[분류:대한제국의 부장]][[분류:대한제국의 친왕]][[분류:일본의 왕공족]][[분류:육군 장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한국의 귀족]][[분류:테러 피해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전주 이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일 병합 조약 관련자]][[분류:운현궁]][[분류:대한제국 고종]][[분류:대한제국 종]][[분류:영선군|영선군]][[분류:금척대훈장 수훈자]][[분류:서성대훈장 수훈자]][[분류:이화대훈장 수훈자]][[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19세기 한국의 군주]]
  • Crusader Kings 2/특성 . . . . 7회 일치
          * 진한 타협가(Naive Appeaser)
          * 결(Chaste) 특성과 상극
          * 결(Chaste)
          ''"결"은 일곱가지 미덕의 첫 번째입니다. 결한 이들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혼외정사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 례자(Pilgrim)
          ''이 인물은 위대한 성지 례를 마쳤습니다.''
  • 김륵 . . . . 7회 일치
         '''김륵'''(金玏, [[1540년]] ~ [[1616년]])은 조선 [[조선 선조|선조]]·[[조선 광해군|광해군]] 때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예안 김씨|예안]],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시호는 민절(敏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안집사와 체찰부사로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으며, 진주에서 [[이신]]을 만난 뒤 그가 백의 종군할 때 구명 운동을 벌였다. 광해군 때는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추숭을 반대하기도 했다.
         1594년(선조 27)에는 사헌부 대사헌·이조 참판·홍문관 부제학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1595년(선조 28) 부체찰사(副體察使)에 올라 수원·전주·남원·거창·진주·대구·창녕 등지를 시하며 군졸들을 위무하고 전황을 살폈다. 이때 [[한산도]]와 [[거제도]]에 파견되어 [[이신]]을 비롯한 수군의 활약상을 조사, 조정에 보고하고 이들의 전공을 위무하였다. 이후 진주에 가서 이신을 만나 찾아가 대책과 전략을 상의하고 숨져간 병사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그 뒤 이신이 투옥됐을때는 [[유성룡]] 등과 함께 구명운동을 벌였다. [[정유재란]]이 종결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물러났다. 다시 관직에 올라 대사헌으로 시무16조를 올려 민심수습책을 제시한 뒤 1599년(선조 32)에는 형조 참판과 예조 참판을 거쳐 충청도 관찰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이때 이신의 공로를 조정에 아뢰며 그 집안의 조세 부담을 감면해 줄 것을 청하였다.
         * 부인 : 인동장씨([[1541년]] ~ [[1586년]] [[6월 27일]]),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 장희(張順禧)의 딸
  • 김미숙(1959) . . . . 7회 일치
         || '''출생''' ||<(> [[1959년]] [[5월 3일]] ([age(1959-05-03)]세), [[전라북도]] [[창군]] ||
         || '''학력''' ||<(> 창고등학교 (졸업)[br][[한국방송통신대학교]] 유아교육과 (전문학사)[br][[경운대학교]] 경영학과 (학사)[br][[동신대학교|동신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문화산업학과 (석사) ||
          * [[목소리]]가 '''정말''' 좋다! 그로 인해 일찍이 DJ로 활약했다. 라디오 진행 경력만 20년이 넘는다. 대본을 직접 쓰기도 하고, 방송할 때는 DJ 인기 투표 위에도 항상 위권. 우아한 목소리와 뛰어난 딕션, 그리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포인트. 연극에도 여러 번 출연했고, 연륜으로 인해 더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목소리는 정말 타고난 듯. 떡잎부터 달랐던 건지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본인도 놀랐다는 썰. ~~자랑인데 반박할 수가 없다...~~ 시 낭송 앨범을 여러 번 내기도 했다. [[감성애니 하루]] 내레이션.
          * [[2001년]] [[SBS]] 《[[소문난 여자]]》 ... 한영
          * [[2004년]] [[문화방송|MBC]] 《[[사랑을 할거야]]》 ... 보라의 엄마, 김옥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59년 출생]][[분류:창군 출신 인물]][[분류:1979년 데뷔]]
  • 마기/349화 . . . . 7회 일치
          * 그런데 하늘에서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우고(마기)|우고]]가 나타난다. 맛이 간 눈이다. 그는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을 적은 마고이로 쓰는건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우고가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더 놀랐다. 우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과 [[솔로몬(마기)|솔로몬]] 대왕이 한 계층의 차원에 간섭하기 위해 일 일라의 모든 마고이를 총동원했던 사례를 들면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단히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은 자신도 예전에 고안했지만 신 하나 분량의 마고이가 필요한 무지막지한 마법이다. 그러니 차원끼리 연결시키려면 솔로몬이 만든 세상을 루프로 환원시켜 동력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다.
          * 너무 격렬한 태도의 우고 때문에 얼이 빠진 알라딘과 알리바바. 알리바바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그 솔로몬 왕이 만든 세상이 루프로 환원돼 사라지는건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우고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더니 "그건 슬프다"고 울 것 같은 얼굴이 된다. 알라딘이 그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자 신드바드가 "다윗의 마법으로 머릿속이 혼탁해져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성 자체는 알마트란 최고의 마법사인 그대로다. 결국 그가 한 말이 단한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
          * 여기서 알라딘은 과거 솔로몬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해 본다. 혹시 그는 "운명"을 "산산조각" 냈던건 아닐까? 말하자면 신에게 대항하는게 아니라 세상을 신에게서 완전히 독립, 분리 시켜서 간섭을 막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럴 듯한 해석이지만 알리바바가 부정한다. 세상을 완전히 독립시키는 건 무리다. 우선은 솔로몬 그 자신이 실패했고 다윗이 이용한 "암흑점"처럼 바깥 세상의 신들이 간섭할 수도 있다. 이걸 내버려 둘 없다. 그러니 신드바드의 생각대로 벽은 부숴야 한다고 말한다.
          * 이들이 내놓은 의견은 저마자 근거도 있고 어느 정도 타당했지만 분명히 어느 의견이 옳다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알라딘은 벽을 부다면 대체 어디까지 부술 것인지를 지적했다. 아르바는 일 일라 같은 존재들을 단한 에너지체로 취급한 알라딘이나 우고 등을 "거만하다"고 까며 그분에겐 의지가 있고 자신에겐 그게 들린다고 주장했다. 우고는 "같은 인격체"일 뿐이라는 아르바의 주장에 반박해 "상위의 존재들은 하위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못박고 신드바드의 말대로 세로의 벽을 부숴 그들을 타도해야 한다 주장한다. 아르바는 여기에 반박, 계속 솔로몬이 한 것처럼 상위의 신을 쓰러뜨리고 그 힘으로 새 세상을 만든자면 자기도 세상을 계속해서 멸망시킨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 분명 합리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알라딘은 본래 루프를 환원시켜 세로의 벽을 다 파괴하자던 그가 너무나 다른 의견을 내놔서 의아해한다. 신드바드도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다 여기지만, 그들의 논쟁을 보다보니 너무 극단적인 의견만 있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한다. 아르바도 "모든걸 뒤집으려면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고 했지 않냐고 따지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시점에서 낸 미숙한 답"이었다며 히 실수를 인정한다. 아르바는 툴툴거리며 "이렇게 쉽게 의견을 바꿀지 몰랐다"고 빈정거리고 우고는 거기에 수긍하며 "왜 이렇게 됐었지?"하고 어리둥절해한다. 확실히 신드바드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극적인 변화였다.
  • 박철우(배구) . . . . 7회 일치
         || 응원가 || 이전 : [[DJ DOC]] - 나 이런사람이야[* 나 이런사람이야~ 삼성의 철우~ 난 박철우야~ 최!강!삼!성!박!철!우!(x 2)] [br] 현재 :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워워워워~ 워워워~ 워워워~ 워워워~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SK 와이번스]] 소속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 선수와 현 [[SK 와이번스]] 소속 [[이홍구(야구선수)|이홍구]] 선수의 KIA시절 응원가가 동일하다.][* 원래 응원단장들이 응원가를 만들 때 여러 종목을 겸업하는 단장들은 주로 야구선수의 응원가들 중 호평을 받은 응원가들을 편곡해서 만드는 편인데 이 응원가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박철우 응원가가 원조이고 이후에 이홍구, 이재원 으로 만들어졌다.] [br] [[굿 럭!!]] OST 'Departure'[* 삼성 삼성 삼성 박철우 오오오오오 승리를 위해~*2][* 현 [[KT 위즈]] 소속 외야수 [[이대형]]의 KIA시절 응원가와 같다.] ||
         국가대표 선배인 [[김세진]]에 비하면 세세한 테크닉이 부족하고 건강문제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점이 조금 아쉽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토종 공격수중 1명이다. 특히 국내 공격수중 최고수준의 사이드블로킹 높이덕에 중요한 간 블로킹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점은 보너스.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 슈미트|가빈]]이 레프트[* 명목상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몰빵에서 라이트가 레프트에게 밀리다니!!-- [[안습]] 중요한 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단히 4일 개막전 경기만 보면 오로지 가빈에게만 공격이 가면서 리그 후반에 체력부족에 시달렸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박철우가 있기 때문에 초반 1,2세트에는 박철우와 가빈이 공동으로 공격을 맡고 중요한 간에는 박철우를 빼고 수비에 능한 레프트를 투입, 가빈을 라이트로 전환시켜 닥치고 가빈 모드로 돌릴지도 모른다. --박철우는 단히 가빈 체력보조??--
  • 배영수 . . . . 7회 일치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 왠지 모르게 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참교육|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04년 35경기 동안 4완투(2완봉) 하면서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로 다승과 승률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990년 [[선동열]] 이후 14년 만에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전체 투수로는 선동열 이후 배영수가 받기 전까지 1996년 [[구대성]]이 구원 투수로 정규리그 MVP에 오른적 있다.][* 이후로 2008년까지 매년 투수가 MVP를 수상하게 된다. 서대로 [[손민한]](롯데)-[[류현진]](한화)-[[다니엘 리오스]](두산)-[[김광현]](SK)] 특히 [[2004년 한국시리즈#s-3.4|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으나, 팀 타선 또한 한점도 못내는 바람에 0대0 상황에서 연장 11회초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며 해당 경기의 개인 노히트 노런 기록은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서 시간 제한[* 2004년 당시에는 경기 시작 후 4시간을 넘기면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고 바로 무승부로 처리되는 ~~병맛같은~~ 규정이 있었다. 결국 [[2004년 한국시리즈]]는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무려 '''9차전'''까지 가는 등 역대 한국시리즈 중 제일 길게 간 시리즈였고, 무승부가 제일 많은 시리즈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경기 후 4시간을 넘기면 무승부로 처리되는 규정은 2004년 한 해에만 시행되고 사라졌다.]에 걸려 0:0 무승부로 끝났는데, 경기 중 권오준이 안타를 맞아 팀 노히트 노런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안습]].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3월 31일 무등에서 펼쳐진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첫 선발등판을 한 배영수는 5이닝동안 1실점만 하며 무난한 출발을 알렸다. 당시 무등구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경기가 모두 우천연 되었으며, 무등구장 역시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가 이어졌으나 1회와 4회를 제외하면 큰 위기 없이 첫 등판을 치룬 모습에서 팬들에게 이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다소 높이게 했다.
         이 후 5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동안 1실점하며 다시 승리투수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찾는가 했는데, 이 후 SK와 두산을 상대로 연속 5이닝 미만 투구로 조기강판되면서 강타선을 보유한 상위팀을 상대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5월 중까지의 투구 내용을 보면 위의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절반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 문서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속구위주의 투구를 더 이상 보여주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으나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에서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심지어 5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⅓이닝 동안 5실점(4자책)으로 통타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결국 계투진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결국 한화로 확정. 3년 21.5억의 값으로 결정됐다. 그 과정에서 직원이 [[안지만]], 윤성환 등의 계약을 하는데 배영수를 1시간 동안 멍하니 기다리게 했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3131452|배영수 '길었던 1시간' 그리고 한화행]]. 하지만 작성한 [[정철우#s-2|기자]]가 기자인 만큼 걸러서 볼 필요가 있는 기사다. 그리고 이런 수법은 필요없어진 직원을 모멸감을 줘서 제발로 나가게 할 때 쓰이는 흔한 수법이라 온전히 실수라고 보는 것은 진한 시각이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저녁에 경산볼파크에 왔다가 허탕치고 10시에 불러서 다시 나갔다고 하니, 1시간이 아니라 몇시간씩 방치되었다고 주장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87923&date=20141204&page=1|'한화행' 배영수 "광야에서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안현호 단장은 '전부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마지막 협상이고 시간이 촉박해 개별적으로 약속을 잡을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295773&date=20141204&page=1|배영수가 삼성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리된 바에 의하면, '''연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과 한화가 제시한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의 루머와 달리 배영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661070|내가 구단 측에 선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760892|배영수 CBS 인터뷰 전문]] 참조. 팬들이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너무 감사하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은 이틀 전 그가 한 "누구도 원망 안한다.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라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를 통해 "30경기"도 못나왔으니 홀대받았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삼성 프론트의 삽질여부와 별개로 11년, 13년, 14년 4점대 평자를 찍었는데도 묵묵히 기다려 준 코칭스태프와 팬들을 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렸고 사이영수상까지 만들었던 삼갤은 배영수의 이름이 언급되면 반드시 30경기 이야기를 추가로 붙히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이 후 정철우는 본인이 경솔한 기사를 썼던 것을 사과한다며 애플 베이스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네이버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 애플이 아무리 봐도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그 [[애플(기업)|애플]]을 떠올리게 해서 사과는 커녕 의도적으로 비꼬는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 백일섭 . . . . 7회 일치
         * [[2002년]] [[MBC]] 아침드라마 《[[황금마차]]》 ... 정 부 역
         * [[1972년]] 《[[갑돌이와 갑이]]》 ... 갑돌이 역
         * [[1973년]] 《[[또이와 갑이]]》
         * [[1982년]] 《[[화이]]》 ... 만석 역
         * [[2004년]] 《[[그녀를 모르면 간첩]]》 ... 박무
         *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64591|제목=탤런트 백일섭 "이회창 뒈지게 맞아야" 발언 파문 - 당 행사에서 규탄사... 이회창 캠프 "선전포고냐"|날짜=2007-11-14|확인날짜=2008-02-01|출판사=오마이뉴스|저자=손병관}}</ref>. 백일섭은 추후 이 발언이 단한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news_uid=202857|제목=백일섭 이회창 관련 발언 해명 “농담이 큰 오해가 됐다”|날짜=2008-01-30|확인날짜=2008-02-01|출판사=뉴스엔|저자=김미영 기자}}</ref>.
  • 블랙 클로버/126화 . . . . 7회 일치
          저 시시한 여자가 나를 형보다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랜길스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그때까지 경쟁 상대 조차 못 된다고 생각했던 돼먹지 못한 형이, 우등생 동생이 확실히 짓밟아야할 상대로 재인식되는 간이었다. 그것은 핀랄이 끝내 가문을 등지고 나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 이제 작전 2단계. [[하몬 카세우스]]가 시합장 전역에 유리마법 "벨 디텍션"을 펼쳤다. 시합장 구석구석에 거울이 깔리고 거기 맺힌 상들이 반사를 거듭해 하몬에게까지 전해졌다. 시합장을 손바닥 보듯 할 수 있는 탐색 마법. G팀의 세 번째 멤버 [[프라길 토르멘타]]가 탑 안에 숨어있는게 보였다. 크리스탈을 지키고 있었다. 핀랄이 공간마법으로 탑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핀랄이 랜길스의 공격을 막는 동안 레오폴드와 하몬이 공격, 이것이 작전이다. 지금까지는 매우 조롭다. 하지만 레오폴드와 하몬이 탑 안으로 들이닥치는 간 함정이 발동했다. 프라길 또한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는 성미는 아니었다. 그녀는 방 전체에 눈 마법 "환설의 정원"을 발동시켰다. 일종의 환각마법으로 대상의 감각을 조종해 강제적으로 잠들게 하는 마법이다. 그녀는 이 마법의 사정거리 안에서 자신을 공격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장담했다.
          * 셋케가 "시시하고 시원찮은 마법"이라며 그런게 물이 오른 자신에게 맞겠냐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탈것의 궤도를 살짝 비틀어 가볍게 회피,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에 탄 랜길스는 비켜나간 마법이 반원을 그리고 뒤따라 오는걸 볼 수 있었다. 호밍 기능.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랜길스가 셋케를 버리고 뛰어내렸다. 셋케는 조금 늦게 눈치챘지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방어마법 "셋케매그넘 캐논볼"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럴 거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마법이 닿는 간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건 랜길스 조차 예상치 못했던 공격. 하지만 이걸 시전한 핀랄은 스스로를 안스럽다고 자조했다.
          * 공간마법 "타천사의 날개짓". 핀랄이 머리 모양이 바뀔 만큼 특훈을 해서 얻은 신 마법. 닿은 상대를 강제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마법이다. 후배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헌팅한 하고 다닌게 아니었다"며 환호했다. 핀랄은 또 한 번 타천사의 날개짓을 준비했다. 그의 상냥한 성격은 동생을 다치게 할 "공격 마법"을 쓸 없었지만 단지 멀리 옮겨 버리는 거라면 못할 리 없었다.
          돼먹지 못한 형이 우등생 동생을 따라잡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간에도 랜길스는 웃고 있었다.
          즐겁게 관람하던 마법제는 그 마법이 나오는 간 진자하게 경계하는 빛을 띄었다. 아스타는 그 흉흉한 느낌이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
  • 스틸오션/영국 . . . . 7회 일치
         >A/B-클래스 구축함의 설계는 영국 구축함사(史)의 이정표다. 소해임무에 중점을 둔 A-클래스와 대잠임무에 중점을 둔 B-클래스의 가장 큰 개선점은 파슨즈 기어드 증기 터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A/B-클래스 구축함은 활동적이었다. 1940년, 여섯척의 A/B-클래스가 노르웨이 전역에 참전해 훌룡한 성과를 거뒀다. 코드링턴(Codrington)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에 참가해 네덜란드 왕가를 구출했다. 아카스타(Acasta)와 아던트(Ardent)는 항공모함 글로리어스(Glorious)를 호위하던 중 독일 양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를 격침시켰지만 독일군 어뢰에 피해를 입었다. 대서양 전역에서 불독(Bulldog)은 독일 잠수함 U-110을 나포해 처음으로 에니그마 암호 작성기를 확보하였다. A/B급에 의해 U-110외에도 7척의 주축군 잠수함이 최후를 맞았다.
         >Q-클래스는 전시비상계획 구축함의 한 함급이다. Q-클래스와 R-클래스는 보다 큰 선체와 사각형 함미를 채용하였다. 이 함급의 대공포에는 4연장 2파운드 대공포 "폼폼포"와 오렐리콘 대공포가 포함되어 있었다. Q-클래스와 R-클래스의 항거리는 약 6,000해리였다.
         >HMS 허미즈는 원래 장갑양함으로 건조되었으나, 1942년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적은 배수량과 지나친 무장으로 내항성은 보잘것 없었으며 대형기를 탑재하지도 못했다. 1939년, HMS 허미즈는 영국해안에 배치되었다. 프랑스가 항복한 후, 허미즈는 다카르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전함 리슐리외(Richelieu)를 공격했다. 1942년, HMS 허미즈는 아시아의 일본 육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동양함대에 배치되었다. 1942년 4월 9일, 실론 섬의 트링코말리 항 근처에서 일본군에게 발견된 허미즈는 함재기 85대의 공격을 받았다. 15분 만에 37발의 직격탄을 맞고 격침된 허미즈는 함재기에 의해 격침된 최초의 항공모함이 되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이후, 영국은 두척의 대형 경양함 HMS 뱅가드(HMS Vanguard)와 HMS 커레이져스(HMS Courageous)를 항공모함으로 개장시켰다. 이는 1920년대 있었던 HMS 퓨리어스(HMS Furious)의 개장에 기반을 두고있었다. 우현에 연돌을 추가한 두 선박은 당시에는 최신 항공모함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한 후, HMS 커레이져스는 아일랜드 해안 초계 중 독일 U-보트 U-29에게 공격받았다. 어뢰 두개가 좌현에 명중했고, 커레이져스는 침몰했다. 글로리어스(Glorious)는 그라프슈페(Graf Spee) 수색을 위해 지중해에 파견되었다. 1940년 4월에는 노르웨이 해전을 도왔다. 1940년 6월 8일, 나르비크에서 귀환하던 중 독일 양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에게 격침되었다.
         >리벤지급 전함은 R급이나 로열 소버린급(Royal Sovereign class)으로도 알려져 있다. 예산 한계로 인해 그 전에 건조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보다 느리고 작았다. 총 여덟척이 계획되었지만 두척은 리나운급(Renown-class) 양전함으로 변경되었고, 한척은 취소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퀸 엘리자베스급이 받았던 대규모 개장을 받지 못하고 장갑과 대공포가 소량 추가되었을 뿐이다. 전시에도 대단한 활약은 하지 못했다. 로열 오크(Royal Oak)는 1939년 10월 스캐퍼플로(Scapa Flow)에서 독일 잠수함 U-47에게 격침되었고, 로열 소버린(Royal Sovereign)은 소련 해군에 공여되어 아르항겔스크(Arkhangelsk)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8.62.4 패치로 추가된 전함 트리. 양전함으로 이루어져있다. R-클래스의 최종포를 연구하면 탈 수 있다.
  • 승리(빅뱅) . . . . 7회 일치
         2008년 창작 뮤지컬 [[소나기#s-2|소나기]]에서 주연을 맡아 유료 객석 점유율 86.2%를 기록하며 서울시 뮤지컬 단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으며,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의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유희성 서울시 뮤지컬 단장은 특히 “승리는 뮤지컬에 대한 열망이 다른 이의 10배 이상이었다”, “뮤지컬 속 사춘기 소년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황원 원작 소설 속 소년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놨다” 등등 폭풍칭찬을 쏟아냈다. --승리의 리즈 시절?--
         두 편을 소화하고 뮤지컬 욕심이 생겼는지 2011년엔 인터뷰를 통해 최연소 지킬과 오페라의 유령을 해보고 싶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일부 팬들은 승리가 결혼식 축하연에서 부른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간]]'을 보고 당장 해도 되겠다는 반응이지만, --과도한 팬심의 예-- 한국 뮤지컬 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따내기 어려운 배역이므로 사실상 힘들다.
         승리는 음반발매 후 [[멜론]]차트에서 실시간 진입위 13위를 달성하였다. 아이튠즈에서는 앨범차트 기준으로 아르메니아, 브루나이, 캄보디아,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마카오, 말레이시아, 멕시코, 페루,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등 15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중국차트에서는 발매 당일 주간 1위를 차지 하는 글로벌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또 보이그룹 개인 브랜드평판 2위에 올랐다
         그 덕분인지 현재 음원 위에서 선방하고 있다. 가온 차트 기준 최고 위는 13위로 그리 높지 않지만 곡이 나온지 10주가 넘어서도 30위권 안에서 놀고 있다.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연간 차트 진입도 가능할 듯하다.
          ||<#fde100> '''서''' ||<#fde100> '''곡명''' ||<#fde100> '''기타''' ||
          * 반론: 정상적인 기획사라면 소속 가수들에게 정기적으로 앨범을 내주는 것은 당연하다. 큰 수익을 내지 않는다고 음악 활동을 시키지 않는다면, 음악 시장은 현저히 작아질 것이고 나오는 사람만 계속 나오게 될 것이다. 애초에 그렇다면 멜론 위에도 진입하지 못하는 가수들은 왜 앨범을 꾸준히 내는 것인가? 그들이 바보라서, 자선 사업가라서 일 것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승리의 솔로 앨범이 적자를 내는 것도 아니고 항시 평타 이상을 치고 있는데, 이윤의 논리로만 따져봐도 소속사가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안재욱(배우,가수) . . . . 7회 일치
         || '''본관''' ||<(> [[흥 안씨]] ||
         2004년 [[문화방송|MBC]] 천생연분에서 능청스러운 연하남 김석구 역할을 맡아 상대작이 천국의 계단이었음에도 불구,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그해 [[KBS 2TV]] 오 필승 봉영에 출연해 그해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게된다.
         2012년 mbc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열연을 펼치며, 시청률과 인기를 동시에 잡아 많은 사람들이 안재욱이 연말 [[MBC 연기대상]]을 가져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기대상 마지막까지 아무 상도 안 타고 이전 수상자들처럼 대상의 수을 밟아가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하반기 드라마 [[마의(드라마)|마의]]로 나타난 [[조승우]]에게 거의 강탈수준으로 상을 내줘버린다'''. 심지어 조승우는 그 직전에 최우수상을 받은 뒤라 누구도 조승우의 대상을 예상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당연히 안재욱이 대상을 받아야 할 상황. 그런데 MBC는 '''대상 후보를 최우수상 수상자들로 한정'''지어버렸다. 즉 안재욱이 최우수상을 못받은 간부터 대상도 날라간 셈.
         || KBS || [[오! 필승 봉영]] || 오필승 || ||
          * 2004년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 시상식 최우수남자연기상 《오필승 봉영》
          * 2004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with [[박선영(1976)|박선영]]) 《오필승 봉영》
  • 오병희 . . . . 7회 일치
         |자산 =
         1953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1977년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환기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병원]] 환기내과 교수
         *2001년 : 대한환기학회 평의원
         *2002년 ~ 2004년 : 제12대 대한환기학회 학술이사
         *2004년 ~ 2007년 : 서울대학교병원 환기내과 분과장
         *2004년 : 대한환기학회 대외협력이사
  • 이재학 . . . . 7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0년/신인드래프트|2010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10위]] ([[두산 베어스|두산]]) ||
         두산 시절에도 박한 얼굴과 특유의 빨간 볼[* [[http://youtu.be/8iTg4pqyDDQ|XTM 담벼락토크]]에서 투구수가 많이 늘어날수록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온 영상이 2013년 시즌 8월 7일 LG전에서 9실점했을 때(...)]로 신인 중 귀요미 소리를 들었다. 빨간 볼과 여드름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능금', '[[딸기]]'. NC 이적 후부터는 아예 딸기가 공식 별명이 되었고, 활약하는 날이면 Strong+Strawberry='''STRONGBERRY'''가 된다. 이 문구는 이재학의 개인 첫 완봉승 기념 티셔츠에 적혀있다. 한때 [[마산 야구장]]에 있는 다이노스 카페에서는 아예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88568|딸기주스 '''이재학''']]을 판매했을 정도.[* 2017년 현재는 그 자리엔 '더리터'로 입주 업체가 바뀌었다. 이재학을 팔지 않는 대신 [[박민우(야구선수)|민우에게 바나나]]를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2340520109998&id=241899065820824|팔고 있다.]]]
         사이드암 투수로서 140km의 패스트볼과 수준급의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구사하며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드래프트를 앞둔 2009년에는 53.1이닝 동안 67개의 탈삼진을 잡아냈고, 볼넷 허용은 단 11개에 불과했다. K/9는 무려 11.38이었으며 ERA는 1.53에 불과했다. 빼어난 성적을 기록한 이재학은 [[한국프로야구/2010년/신인드래프트|201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0위라는 빠른 번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계약금 1억에 입단 도장을 찍었다.
         결국 10경기(선발 6경기) 31⅔이닝 1승 2패 1홀드 3.69를 기록하고 5월 27일 [[고양 다이노스|2군]]으로 내려갔다. 얼핏 보면 스탯이 좋아 보이지만 BABIP가 .226으로 상당히 좋은 편임에도 FIP(수비무관평균자책점)은 이전 시즌보다 1.0이나 올라갔다. 쉽게 말하면 수비 등 외부요소를 제외한 수 기량 자체가 멸망한 수준이라는 것. WAR이 0.08이다.
         11월 7일 승부조작 수사 발표에서 이재학의 승부조작건은 무혐의로 발표가 났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바로 2011년 [[두산 베어스]] 시절에 불법스포츠 베팅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민체육진흥법에 규정된 도박 처별 규정이 신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반 형법상 단도박죄 혐의가 적용되었고, 이 법에 대한 공소시효 5년이 지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일단 불법 스포츠도박은 KBO 조항상 제명까지 가능한 상황. 정확히는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진야곱]]에게 160만원을 건네 대리 베팅을 한 것. 진야곱은 이미 베팅 사실을 시인한 상황이나 이재학은 단히 돈을 빌려준 것 일뿐 도박에 쓰일 줄은 몰랐다며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 이재황(배우) . . . . 7회 일치
         제대 후인 2005년엔 군 제대작이자 극중 故[[정다빈(1980)|정다빈]][* 생전 정다빈님과 친했기에 2007년에 그녀가 떠난 후 엄청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일마다 그녀의 납골당을 찾았다. 기사까지 났다.] 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태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영]]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 이때 故 [[김성민(1973)|김성민]]과 연인을 맺게 되고 그 친분으로 <남자의 자격>에 절친으로도 출연했었다] 로 그 해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상이라니.--
         || 2006년 || [[SBS]] || 돌아와요 애씨 || 장현우 || ||
         || [[2006년]] || 돌아와요 애씨 OST || goodbye || ||
          * 드라마 《돌아와요 애씨》 때 생애 처음으로 귀를 뚫었다. 샤프한 이미지를 위해 1주일만에 7kg 감량.
          * 막장의 대모 [[김옥]] 작가와는 카메오까지 합쳐서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 《웃어요 엄마》 세 작품을 함께했다.
          * [[노주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오남매》,《그 여름의 태풍》],[[박정수(배우)|박정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다이아몬드의 눈물》,《내 손을 잡아》],[[양금석]][* 《오남매》,《다이아몬드의 눈물》,《이브의 사랑》],[[금보라]][* 《아내의 유혹》,《내 손을 잡아》,《이브의 사랑》] 배우들과는 각각 세 작품씩 호흡을 맞췄고, [[채림]][* 《카이스트》, 《지금은 연애중》],[[김민정(1982)|김민정]][* 《카이스트 시즌2》,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홍수현]][* 《카이스트 시즌2》,《천사의 유혹》], [[권오중]][*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녹번동 삼형제》],[[최윤영(1975)|최윤영]][*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지금은 연애중》],[[정찬]][* 《그 여름의 태풍》,《웃어요 엄마》],[[윤해영]][* 《다이아몬드의 눈물》,《너라서 좋아》],이선진[*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애씨》],[[김형범(배우)|김형범]][*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애씨》], [[정애리(배우)|정애리]][* 《아내의 유혹》,《역류》], [[오영실]][* 《아내의 유혹》,《공주가 돌아왔다》], [[김용건]][* 《아내의 유혹》,《웃어요 엄마》], [[진태현]][* 《천사의 유혹》,《내 손을 잡아》], [[배그린]][* 《웃어요 엄마》,《내 손을 잡아》],[[안석환]][* 《너라서 좋아》,《내 손을 잡아》], 임도윤[* 《이브의 사랑》,《역류》]등 배우들과는 각각 두 작품씩 호흡을 맞췄다.
  • 전성군 (1488년) . . . . 7회 일치
         '''전성군'''(全城君) 이대(李對, [[1488년]] [[7월 21일]] ∼ [[1543년]] [[10월 29일]])는 [[조선]]시대 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 자(字)는 성중(盛仲)이다. [[효령대군]] 이보의 고손으로 아버지는 여양군(呂陽君), 조부는 율원군(栗元君), 증조부는 보성군(寶城君). [[인왕후|인왕후 심씨]], [[심의겸]], [[심충겸]] 등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다른 이름은 이대(李薱)이다.
         [[1542년]](중종 37) 자신의 외손녀딸 [[인왕후]]가 삼간택을 거쳐서 [[조선 중종|중종]]의 명으로 [[경원대군]]의 부인으로 간택되는 것을 생전에 보았다. [[경원대군]]은 그가 처가의 가장(家長)이라는 이유로 건의하여 그는 곧 [[돈녕부]]주부에 제수되었다. 그는 곧 병이 들었고 중종은 특별히 [[내의원]]을 보내서 입진하게 했으나 효험이 없었다.<ref name="heomyong"/> [[1543년]](중종 38) [[10월 29일]]에 사망했다.
         *** 외손녀 : [[인왕후|인왕후 심씨]], [[조선 명종|명종]]비
         * [[인왕후]]
         * [[회세자]]
  • 전소민(배우) . . . . 7회 일치
         ||<#FFB1BC> '''{{{#white 별명}}}''' ||<#ffffff><(> [[개구리]], [[앵무새]][* 쉴 새 없이 수다를 떤다고 해서 부모님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쏘미닝, 전소똥[* 초등학생 시절 별명이라고 한다. 원래 젖소똥이었는데 화해서 전소똥이라고 한다.] '''돌소민[* 돌아이+전소민이라는 뜻으로, 주로 [[런닝맨]]에서 많이 쓰이는 별명이다.]''', [[불나방]][* [[런닝맨]]에서 물불 안 가리고 게임에 무작정 달려들거나, 더티 플레이를 즐기는 [[유재석]], [[이광수(배우)]], [[전소민]], [[양세찬]] 등을 일컫는 별명], 전어리[* [[런닝맨]] 372회 방영분에서 최약체 [[전소민]]과 [[지석진]]이 한 팀이 되자 [[유재석]]이 붙여준 별명. 전어리와 지석바리.], 쉽사빠, 여자[[이광수(배우)|광수]], 토크지옥[* [[유재석]], [[하하(가수)]]도 감당 못하는 엄청난 수다쟁이], 자석인간[* 숟가락, 국자, 동전 등이 이마에 자석처럼 탁 붙어서 생긴 별명. 심지어 동전을 붙이고, New Face까지 췄다.], 연애검찰, 돌블리, 전소바리, 두릅소녀, 콸라여신, 명랑소녀, 뻥개구리 ||
         '''애드리브와 발력의 귀재'''
         2017년 4월 16일 [[런닝맨]]에 고정멤버로 합류했다. 런닝맨에 고정 합류 이후 반응이 상당히 좋다. 특히 전소민에게는 그동안 이광수가 가지고있었던 각종 롤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청한 이미지가 아닌 엉뚱한 매력에 19금 개그 등 --돌+아이--가 따로 없다는 평가.
         || MBC || [[에덴의 동쪽(2008)|에덴의 동쪽]] || 이기 || 아역 [[진지희]] ||
         ||<|5> 2011년 || MBC || [[로열패밀리(2011)|로열패밀리]] || 젊은시절 서애 || [[김혜옥]] 아역 ||
         || tvN || [[톱스타 유백이]] || 오강 || ||
          * 2015년 천만동물영화제 홍보대사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7회 일치
          * 어쨌든 효부는 세뇌가 흔들린 간을 포착하고 마기를 잡으라고 외친다. [[쿠모이 유리]]가 힙노를 거는데 성공, 제압하고 있는 동안 [[미나모토 코이치]]가 백신을 주사한다.
          * [[사카키 슈지]]는 [[츠보미 후지코]]의 처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다. 그는 [[산노미야 시호]]에게 대신 효부를 진찰하라고 하는데 시호는 사카키에게 지시 받는 것이 불만이지만 위급 간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확인해본 효부의 상태는 '''심장이 망가져서 정상기능을 하지 않는 상황'''. 효부는 시로를 동요시키기 위한 좋은 구실일 뿐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시호가 바보멍청이 취급한다.
          * 미나모토는 그 지경이면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고 경악한다. 효부는 심장은 혈액환용 펌프일 뿐이고 자신은 천재 에스퍼라 염동력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데, 그의 몸 상태는 태도만큼 태연하지 못하다. 그 자신은 혈류를 확보하고 출혈도 최소한으로 막았다고 여기지만 곧 빈혈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 미나모토는 사카키에게 효부를 조치할 수 없겠냐고 묻지만 여전히 후지코의 상태가 좋지 않아 무리다. 대신 카오루에게 효부가 하던 염동 펌프 역할을 대신 하라고 지시한다. 효부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원래 초능력은 뇌 작용의 섬세한 밸런스가 영향을 주는데 혈액환이 끊어져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초능력의 출력도 유지를 못한다. 그걸 효부가 모를리도 없는데 굳이 그런 길을 택했다는건, 그에게 다른 계획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카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카오루에게 조치를 맡긴다.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백신이 접종되려는 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절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남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특수부대가 문을 부수며 돌입을 개시한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들은 이미 칠드런 일행에 대해 "처분"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미나모토는 다급하게 마츠카제를 떠밀며 명령이라고 못박는다. 짧은 간 마기와 요우는 눈빛을 교환하고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카오루는 탈출하는 간까지 미나모토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 정승환(가수) . . . . 7회 일치
         >목소리를 들어보면 작곡가들이 사랑할수 밖에 없는 1위의 목소리에요. 왜냐하면 저 나이때는 자신이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간부터 노래를 앞서가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뒤로 빠짐으로서 노래를 앞에 두잖아요. 저것은 가수로서의 최대의 장점인거 같아요.
         본선 2라운드인 '랭킹오디션'에서 김조한의 '사랑에 빠지고 싶다'를 놀라운 가창력과 감정으로 열창했다. 심사평으로 유희열은 "가요로, 특히 남자 참가자가 심사위원 셋의 마음을 뺏어간 건 정승환이 처음이다. 바로 음반을 내도 된다"고 극찬했다. 이어 "내가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발라드 남자 가수 특집을 하면 정승환을 가장 마지막에 넣어서 스페셜 무대를 꾸미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3주에 걸쳐 음원차트 1위를 했는데, 이는 오디션계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또한 '사랑에 빠지고 싶다' 네이버TV의 조회수도 680만을 돌파했는데 이는 2014년 전체동영상 조회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고 아직도 조회수는 올라가고 있으며 역대 조회수 위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 유희열이 7집 <Da Capo>를 발표했었는데 '사랑에 빠지고 싶다'에 자신의 앨범이 음원차트에서 밀렸다. --그 사실에 박장대소하는 박진영--] 한편 작곡가 윤일상 역시 정승환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선물을 전하는 등 고마움을 표했다.
         제목은 '너였다면'이고 실시간 최고위를 기록하자면 멜론 6위,엠넷 1위,올레뮤직 1위,네이버뮤직 1위,소리바다1위,카카오 1위,몽키3 1위, 벅스 2위, 지니 3위 를 기록하고있다. 6달이 넘게 지난 지금도 페이스북 같은 곳으로 인해 역주행을 거듭해서 모든 음원차트의 20~40위권에서 OST 중 가장 길게 롱런하고 있다.[* 새로운 곡들이 나오면 잠시 위가 밀려났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위가 더 높은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OST계의 우아하게?--]
         2016년 11월 29일 0시 "이 바보야" 라는 곡으로 데뷔, 약 세시간만에 멜론 차트 실시간 위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앨범 초고가 하루만에 매진되었고 8개 음원사 1위를 모두 석권하였다. 멜론차트 12월 첫째주 주간 1위를 기록했다. 정승환의 실제 만취 연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소주 4병을 마신 상태에서 뮤비를 촬영했다고 한다. 참고로 주량은 1병이라고..](...) 때문인지 뮤비가 [[19금]]이 되었다.
         2018년 2월 6일, 첫 정규 앨범 '그리고 봄'의 선공개곡인 '눈사람'이 공개되었다. 2월 7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5개 음원 사이트에서 실시간 음원 위 1위를 기록했다. [[http://www.ezday.co.kr/bbs/view_board.html?q_sq_board=8323670|#]]
  • 창원시 . . . . 7회 일치
         {{{#FFFFFF '''한국'''}}}}}}]] ⑧ 박옥 ||
         {{{#FFFFFF '''민주'''}}}}}}]] ⑨ 송호 ||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수원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 전반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을 돌파했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영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영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주는 정도다.]
         물론 통합 창원시청은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을 원상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모|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런 모된 결의안들이 통과된 이유는 구 마산, 진해 측과 구 창원 측에서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통합시청사 소재지를 결정하기 위한 힘겨루기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다'''.[* 이는 연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개씩 통과하는 해는 연 강수량이 2000mm 가까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장마가 짧게 끝나고 태풍이 통과하지 않는 해는 1000mm도 채 안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2016년만 하더라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776mm(9월 20일 기준)로 평년의 66% 수주밖에 되지 않는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에는 6월 중부터 8월 말까지 거의 100일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일기예보에서만 윗 지방의 홍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고.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단,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가지만 창원도 정말 만만찮게 덥다. 게다가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후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전반적인 생활문화시설이 확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다. 마산, 진해 지역도 여러 가지 개발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직 구 창원에 비하면 모자란다. 그 구 창원도 북면, 대산, 동읍을 아우르는 북쪽 농업 지대의 불균형 발전 때문에 통합을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통합이 성사되면 안그래도 지금까지 지지부진하던 농업 지대 개발에 쓰이던 자본이 마산이나 진해 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 다행히 통합을 하고 나서도 농업 지대의 개발 또한 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 최창흡 . . . . 7회 일치
         |직업 = 교자
         '''최창흡'''(崔昌洽, [[1786년]] ~ [[1839년]] [[12월 29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베드로'''(Petrus)이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교]]한 [[복자]] [[최창현 요한]]의 이복 동생이며 [[1839년]]의 [[기해박해]]로 인해 [[1840년]]에 교한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의 남편이며, 같은 해에 교한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의 아버지이다.
         그는 [[1839년]] [[6월]]에 체포되었는데, 그때 그의 사위 [[조신철]]이 [[베이징]]에서 가져온 [[성물]]들이 발견되어, 극심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그는 일곱 차례의 극심한 [[주뢰형]]과 주장질을 받고 [[태형]] 150대를 맞으면서도 결코 배교하지도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하지도 않았다. 그는 [[형조]]에서도 세 차례를 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신심으로써 견뎌냈다. 그는 사형장으로 압송되기 직전에, 한 형졸을 불러 수감되어 있는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울지 말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교]]로서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청했다.
         최창흡은 [[1839년]] [[12월 29일]]에 [[서소문]] 밖에서 여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다. 그렇게 그가 교하던 때 그의 나이 53세였다.
  • 킹덤/500화 . . . . 7회 일치
          * 그러나 만약을 위해 [[수수]]에게 지시해 군량의 흐름을 파악해 정확한 결론을 내려고 하는데.
          이목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조치라고 평한다. 부저는 그 남의 일 말하는 듯한 태도에 "적을 칭찬하고 있을 때냐"고 지적한다. 특히 부저는 양단화가 이끄는 산민족이 개입한 것을 의식하고 있다. [[수수]]는 이목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태도로 "반대로 이긴다면 큰 타격을 주는 셈"이라고 말한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목은 카이네에게 지시를 내려 수도 한단에 있는 호첩 장군을 움직이게 한다. 호첩은 "왕도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장수로 적이 총력전으로 나오는 이상 이쪽도 최선의 인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수도 회성으로 간 전 이안성주 기수도 불러들여야 한다고 의견을 낸다. 이목이 이를 받아들여 카이네에게 기수에게도 소식을 넣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부저는 곽성에서 1만을 차출해 오도록 한다.
          수수는 스스로 최전선의 정보를 모아오겠다고 나서는데 이목은 뭔가 짚이는게 있었던지 그를 불러 세운다.
          * 조롭게 행군하는 진군. [[이신]]은 [[왕의(킹덤)|왕의]] 장군의 창을 든 기분에 흠뻑 취해있는데 [[연(킹덤)|연]]씨가 [[하료초]]를 찾는다며 호들갑을 떤다. 신은 기분을 망친다며 투덜거리고 하료초는 후방에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파악한 정보는 속속 수수에게 전달된다. 약 50만석의 군량이 금양을 통해 흑양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보고. 수수는 그만하면 흑양 침공은 사실이라고 파악한다.
  • 페어리 테일/522화 . . . . 7회 일치
          * 그레이는 그런데 비하면, 자신들은 정말로 제레프에 대해 아는게 없다며 그의 진짜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 제레프는 그런 걸 알 필요가 있냐면서도 "목적은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마력"이라고 히 대답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이미 불사에 저만한 군대와 권력까지 가진 그가 그런게 왜 필요하냐고 재차 묻고, 이번에도 제레프는 히 대답한다.
          * 오거스트는 이미지와 달리 백병전으로 도전하는 길다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간에 배후를 잡은 길다트가 결정타를 날려 오거스트를 산산조각낸다. 그렇게 승부는 싱겁게 끝나는 것 같았는데.
          * 그레이는 오히려 나츠가 도착하기 전에 없어지는건 제레프라고 받아친다. 제레프는 불사자인 자신을 죽일 자는 없고, 설사 그런게 성공해도 자신이 죽으면 나츠도 죽을 거라고 말한다. 그레이가 히 그럴 거라고 수긍하자 그가 나츠의 정체, END에 대해 알고 있는걸 보고 흥미로워한다.
  • 페어리 테일/537화 . . . . 7회 일치
          * 메이비스는 과거 제레프의 "모의 저주"가 그녀를 죽였을 때, 제레프는 죽지 않았던 것을 들어 자신이 제레프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거라 고백한다.
          * 그런 끝에 입을 맞추자 비로소 두 사람은 완전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같은 모의 저주가 발동, 길고 길었던 인연을 함께 마무리한다.
          제레프에게도 완전히 의외의 말이었다. 그의 모의 저주가 메이비스를 죽이고 말았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제레프는 메이비스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메이비스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녀도 같은 저주가 걸리지 않았던가? 메이비스도 제레프를 사랑했는데 어째서 제레프는 죽지 않았는가? 메이비스는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한 끝에 결론에 도달했다.
          잠자코 있던 제레프가 오히려 그녀에게 "마음 쓸 것 없다"고 위로한다. 자신은 어차피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이 없으며 메이비스의 감정은 사랑보다는 "정"이라는걸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메이비스는 그 말을 부정한다. 그것은 정이 아니라 "모"이었다. 제레프와 만났기에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와 만났기에 이 마을을 구했다. 그리고 그가 있었기에 페어리 테일이 탄생했다. 메이비스가 제레프에게 가지는 감정은 숭배에 가까웠다.
          * 하지만 제레프는 고난도 함께 주었다. 그는 죽음을 옮기고 다녔고 메이비스에게도 같은 운명을 부여했다. 그녀의 동료를 상처 입혔으며 그녀를 이용해 페어리테일을 파괴하려했다. 그래서 제레프가 밉다. 미운 동시에 사랑스럽다. 제레프가 가진 고독과 딜레마는 같은 저주를 받은 메이비스만 공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비스는 사고가 모된다고 토로한다. 그에 대해서만은 아무 것도 계산할 수 없다.
          * 제레프가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안, 메이비스는 감정의 절제를 놔버린다. 그녀는 제레프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를 밉다고, 동료를 상처입히고 길드를 부 그에게 죽어버리라고 욕한다. 메이비스가 원망하고 때리며 눈물흘리면서 쓰러져간다. 역설적이지만 제레프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빛으로 화하는 간은 부드러게 미소짓고 있었다. 제레프는 빛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메이비스는 여기가 페어리 테일 안이니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제레프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게 되었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그의 유언이 들렸다.
  • 하이큐/266화 . . . . 7회 일치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태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상은 명백했다.
          뜬금없는 물세례에 어이없는 개그. 한간 야마모토의 게슈탈트가 붕괴했다. 어디서부터 뭐부터 지적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게 됐다. 하지만 야쿠에겐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코미디 피날레였다. 그리고 의외로 코즈메도 "후쿠나가 군은 재밌다"며 열이 올랐던 머리를 식혔다.
          하지만 역시 "근성"은 없었다. 플레이 중 오버로 받아낼 수 있는 공이었음에도 어설프게 리시브를 하다 쿠로오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머리로는 그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간적으로 "한 걸음 더 내딛는게 귀찮다"는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부분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 상대를 달리보기 시작한건 야마모토 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마모토가 투자한 근성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국대회 예선이 시작될 쯤에는 스파이커로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세터인 코즈메와 함께 "네코마의 1학년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코즈메는 단한 세터가 아니라 팀의 사령탑, 네코마의 뇌로써 소질을 보였다. 둘의 개인적인 감정은 딱히 해소된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피차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여길 정도로 실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 쿠로오의 서브. 받아낸 사루카와가 좌측에서 속공으로 나선다. 사루카와의 전략은 네코마의 벤치도 코트 위의 선수들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을 들여서 켄마를 부다. 정말이지 네코마에게는 가장 타당한 대응책이다.
  • 현경련 . . . . 7회 일치
         |직업 = 교자
         '''현경련'''(玄敬連, [[1794년]] ~ [[1839년]] [[12월 29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베네딕타'''(Benedicta)이다.
         그녀는 [[1801년]] [[신유박해]] 때 교한 [[현계흠 바오로]]의 딸이며, 같은 때 [[교]]한 [[최창현 요한]]의 [[며느리]]이며, [[1846년]] [[병오박해]] 때 교한 《[[기해일기]]》의 주저자 [[현석문 카롤로]]의 누나이다.
         현경련은 [[한양]]의 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주문모]] [[사제|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1811년]]에 [[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평온한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그녀는 또한 사람들의 성화와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기, [[냉담자|냉담교우]]를 격려하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병자]]들을 돌보기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등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선교사]]들이 방문한 동안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현경련은 동생 [[현석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많은 [[천주교]]인들이 그 편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처형 전에 수 시간을 단잠에 빠져 있었다. [[1839년]] [[12월 29일]]에 그녀는 [[서소문]] 밖의 사형장으로 끌려나가게 되어 행복해 했으며, 거기서 여섯 명의 교우와 [[참수]]를 받아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그녀가 [[교]]하던 때의 나이 46세였다.
  • 홍은희(배우) . . . . 7회 일치
         ||<#C69770> {{{#FFFFFF '''가족'''}}} ||<(><#FBFAFB> 남편 [[강호|강호]], 자녀 슬하 2남[* 장남 강동우 (2003년 출생), 차남 강민재 (2009년 출생)] ||
         [[대한민국]]의 여배우.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출신으로 1998년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MBC 베스트극장에서 [[강호]]과 함께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무려 1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였다. 결혼식을 [[3.1절]]에 하여 식장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남편 강호은 만세삼창을 하였으며, [[신혼여행]]도 [[상해임시정부]]로 갔다고 한다. 결혼 후 한동안 [[육아]]에 힘쓰며 연예계에서 물러나 있다가 복귀하여 드라마, 예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2005년 || KBS || TV소설 바람꽃 || 김영실/신님 || ||
          * 9살에 부모님이 이혼하여 24살에 결혼 전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방학 때만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었는데 그 기간이 1년에 10-20일 정도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19살 때 대학 등록금을 아버지께 요구하였는데 아버지께서 이를 들어 주시지 않아 마음이 닫히게 되었고 사이도 멀어졌다. 결혼식에도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고, 결혼 후 5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아버지가 계신 정읍 내장산을 지나가다가 남편 [[강호]]의 권유로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만나게 되었다.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출연해 과거에 [[수영장]]을 [[나체]]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그 때 수영장 안에 수경을 놓고 와서 급히 가지러 간다는 게 간 발가벗고 있다는 걸 깜빡하고 그 상태 그대로 수영장 안에 들어가버렸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제야 나체 상태인 걸 알아차린 홍은희는 몸을 가리자니 손이 3개가 있어야 될 것 같아 얼굴만 가리고 급히 뛰어 나갔다고 한다.
  • 홍학표(배우) . . . . 7회 일치
         1990년부터 1994년까지 2개의 시즌을 걸치며 방영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은 그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작품'''이다. 당시 서른을 넘기는 나이였지만 유난히 어려보이는 얼굴에다 '''풋풋한 개성과 선량한 이미지로 어필'''하며 [[최진실]]과 함께 시즌1[* '우리들의 천국'은 공식적으로는 시즌제작품이 아니지만 편의적으로 시즌1과 시즌2로 나눌때 홍학표가 주연을 맡았던 시즌1은 단히 대학생들의 삶과 연애를 다룬 내용이라기보다는 어머니,아버지,대학생 큰형(홍학표),쌍둥이 고교생 형제로 된 다섯 가족의 삶을 다룬 홈드라마의 성격이 강했다. 각각의 가족들도 비중이 있어 어떤 회에서는 홍학표 관련 내용은 별로 없이 쌍둥이의 학교 생활,아버지의 직장생활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던 경우도 있다.홍학표가 중심이 된 대학생활과 연애가 아무래도 중심이긴 했고,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생들의 연애 드라마로 완전히 변화한다. 시즌2부터 등장한 배우들이 [[박철]],[[음정희]],[[염정아]],[[김명수(배우)|김명수]]등. 홍학표가 빠지고 실질적인 시즌2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청춘연애물이자 대학생 로망스 겸 젊은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막내 아들 역할을 비롯 이전작들을 통해 청스타로 각광받던 [[김찬우]]가 주인공이었고,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재수까지 하여 같은 대학에 입학한 절친으로 [[장동건]]이 나왔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박철]]은 훗날 안좋은 이미지가 된데다 최근의 살집있고 우스꽝스러운 아저씨 이미지가 전혀 아닌 당시 특A급 꽃미남스타였다. 여자배우로는 장동건의 파트너로 [[이승연]]이 나왔고 이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배출한 스타가 [[전도연]]이다 .]에서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추며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한다. 큰 키도 아니고, 확 눈에 띄는 얼굴도 아닌 그가 청춘스타로 등극한 것은 사실 한국 연예계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한 외모때문에 데뷔 후에 늘 착한 역할만 맡았던 홍학표는 연기자로서 이미지 변신시도를 해보고자 MBC '10대 사건 시리즈'에서 흉악범으로 출연한적도 있지만 '우리들의 천국'이 성공하면서 결국 원래의 이미지로 되돌아갔다. 후에 MBC에서 KBS로 둥지를 옮겨 KBS 일일극 '좋은걸 어떡해'(2000), '사랑은 이런거야'(2002)로 시청자 사랑을 받으며 조연상도 거머쥔다.
         심지어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던 2005년 8월 골프를 치러 갔다가 골프장에서 홍학표가 앞 팀에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전두환이 비서를 통해 만나자고 제안한 것이다. 전두환은 홍학표에게 “(5공 인사들이) 욕을 좀 덜 먹게 연기해달라”고 특별주문을 했다고 한다.~~그건 작가 마음이지 배우가 뭔 힘이 있나...~~ 그리고 드라마 잘 보고 있다며, 극중에서처럼 실제 [[장세동]]이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른 적은 한번도 없다는 세세한 지적까지 했다고 한다. 이자도 자신이 드라마에서 장영자와 잘 아는 사이처럼 나오는데 실제로 본인은 장영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5년 만인 2010년에 MBC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에 출연하기도 했다. 홍학표는 이 드라마에서 재경([[오영실]] 분)의 남편인 공병구 역을 맡았다. 장인의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공병구는 하고 착해서 재경에게 꽉 잡혀 사는 그야말로 [[공처가]] 남편이다.
         돈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배역을 하는 건 싫어할 정도로 홍학표는 배우로서 자존심이 세다. 덕분에 다작을 하지 않아서 '''몇년에 한 번씩 드라마에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하지만 가족들이 있으니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배우가 아닌 사업으로 부족한 벌이를 하려고 시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업가로서의 운은 배우처럼 탄치만은 않았다.
         이후 방산업체와 건설업체 등을 경영했던 그는 2006년에 족발, 보쌈, 대 등 토속적인 먹을거리들을 주메뉴로 하는 음식체인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좀 벌었고, 2008년에 씨푸드 레스토랑을 [[부산]] [[해운대]]에 열어 성공하고 서울에 입성하여 나름 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린다.
  • 강영식 . . . . 6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2000년 2차지명 2라운드]] [br] (전체 10위, [[해태 타이거즈|해태]]) ||
         다른 팀 팬들이 그렇듯이 롯팬들 사이에서도 선수 개개인의 버릇이라던가 하는 일종의 징크스(?)들이 여럿 회자되지만 강영식에게는 개중에서도 각별히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바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타자에게 던지는 초구의 로케이션이 어디로 가서 찍히는지를 확인하면 그 날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구가 우타자의 발등을 노리는 매처럼 날아들어 볼이 된다면(...) 불영식, 초구가 인하이든 아웃로든 일단 스트존 안에만 꽂히면 랜디영식 단하지만 의외로 상당히 정확한 확인법이었는데, 2014년 스캠 인터뷰 기사에서 선수 본인에 의해 '''정말로 그렇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173596|확인된 바 있다.]]
         6월에 이르도록 불안불안한 투구내용을 이어갔는데, 팬들은 3억 연봉을 잘하는 다른 선수에게 나눠주라고 조롱하였다. 그리고 6월 중이 넘어가자 불안하긴 해도 꾸역꾸역 막는 쪽으로 상태가 좋아졌다.6월 SK전에서는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한 [[용덕한]][* 박기혁, 강영식, 용덕한은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다. 이날 경기 전 강영식은 용덕한에게 '내 공을 받으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잘 던져 용덕한이 경기 후 공이 나무랄 데 없이 좋아져 놀랐다고 대답했다.] 과 호흡을 맞추어 2이닝동안 깔끔하게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름이 오기는 온 모양.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남과 동시에 부상으로(왼 어깨 건초염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추가바람) 2군에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동안 짐은 고스란히 [[이명우]]가 떠안아야 했다. 다행히도 8월 중 2군 경기에 등판해서 멀쩡히 던지는 모습이 포착, 다음 텀에 올라오지 않을까 하던 팬들의 예상대로 돌아와서는 안정적인 피칭을 보였다.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후반기로 갈수록 투구 내용이 좋아졌다(…).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인해 전력을 이탈했으나 5월 중부터 복귀를 했다. 그놈의 불안한 불펜덕분에 매일매일 롯데시네마가 개봉되자 '''억삼이형 어딨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나 진짜 롯데시네마 회장님이 돌아오실줄은 몰랐다는 평. 평균자책점 9점대의 사나이라는 ~~애칭~~ 별명이 붙어버렸다. [[KBO 올스타전/2015년|2015 올스타전]]이 지난다음 랜디영식모드로 전환할뻔 하다가 또 X랄병이 도져서 볼질을 시전하는 중.
         6월 중 부상으로 인해 말소되었다.
  • 고경표(배우) . . . . 6회 일치
         || '''출생''' ||<(> [[1990년]] [[6월 11일]] ([age(1990-06-11)]세), [[전라북도]] [[창군]] ||
         || '''학력''' ||<(> 창초등학교[br]창중학교[br]창고등학교[br][[건국대학교]] 영화과 (재학중) ||
         || 옥수수 ||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간 || 이민우 || 특별출연 ||
         [[분류:한국 남배우]] [[분류:1990년 출생]] [[분류:창군 출신 인물]] [[분류:2010년 데뷔]]
  • 김동한 (1919년) . . . . 6회 일치
          | 친척 = 김필수(형) <br/> [[김수환]](아우) <br/> 김보현(친조부) <br/> 강말(친조모) <br/> 서용서(외조부) <br/> 김병호(조카) <br/> 김병기(조카) <br/> 김병무(조카) <br/> 김정자(조카딸)
         그의 가계는 천주교 교자 집안이었다. 할아버지 김보현 요한은 조선 후기였던 1868년 무진박해 때 체포되어 [[한성부]]에서 교하였다.<ref name="한경1">[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21957741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분이었나 ] 한국경제 2009-02-20 </ref> 옹기장수인 아버지를 여의고 포목행상으로 살림을 꾸리는 어머니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ref name="한경1"/> 이후 [[대구가톨릭대학교|경상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 후 사제가 된다. 이후 그의 동생 [[김수환]]도 그의 영향을 받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로 진학하게 된다.<ref name="한경1"/>
         선종 당시 동생 [[김수환]]은 1983년 9월 말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체류하여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형 김동한 신부의 선종 소식은 당시 로마에 체류중이던 [[장익 (성직자)|장익]] 주교가 직접 전했다.<ref>[http://www.kwnews.co.kr/view.asp?aid=209021900127&s=601 장익·지학 주교 일화·사북 탄광체험 등 소개 강원일보]</ref> 형의 임종에 참석하지 못하였던 [[김수환]]은 귀국 후 김동한이 임종한 곳에서 며칠을 보냈다고 한다.
         * 할아버지 : 김보현 요한(1848 - 1868), [[1866년]] [[병인사옥]] 때
         * 할머니 : 강말(1850 - 1915)
  • 김시진 . . . . 6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1차 2위]]([[삼성 라이온즈]])
         }}</ref> 수신인 최초 2완봉승 도달 투수가 됐고 결국 그 해 5완봉승으로 마감했는데(당시 전구단 상대 완봉승) 이 기록은 아직까지 수신인 최다 완봉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프로 데뷔 이후 5년 만에 [[KBO 리그]]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올렸다. [[1985년]] 25승(21선발승으로 최다 선발승이었는데 전년도(15선발승)에 이어 2년 연속 최다 선발승 1위) 5패, 10세이브, 201탈삼진으로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끄는 등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111승을 올렸다.<ref name="ohmynews" />
         부임 첫 해에 감독 커리어 최고 위인 5위와 동시에 최고승률 .532를 달성했으나 가을 야구에는 실패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승률 포스트시즌 탈락이다.[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180100150040009307]
         !연<br/>도 !!팀 !!<br/>위 !!경<br/>기 !!승 !!무 !!패 !!승<br/>률 !!타<br/>율 !!안<br/>타 !!홈<br/>런 !!도<br/>루 !!득<br/>점 !!실<br/>점 !!평<br/>균<br/>자<br/>책 !!비<br/>고
  • 김정혁 . . . . 6회 일치
         손목 부상이 재발해 4월 중에서 6월 중까지, 또 8월 중에서 9월 하까지 장기간 결장하면서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못 했다. 김정혁이 장기간 결장한 덕분에,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했던 [[정병곤]]과 [[성의준]]이 주전으로 기회를 받을 수 있었고 둘은 1군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2군에 간 [[다린 러프]]를 대신해 1루수로 나와, 4월 27일 KIA전에서 5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으로 팀은 패배했지만 입단 후 처음으로 1경기 4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28일 SK전에서는 안타 없이 삼진만 2개를 당했고, 이후 [[조동찬]]이 1루수로 나오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다린 러프]]의 복귀를 앞두고 5월 1일 [[박근홍(야구선수)|박근홍]]과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중부터 6월 초까지 3주 가량 결장했다가 6월 4일 복귀했다.
          * [[오승환]]의 <간을 지배하라>에 보면 유독 오승환에게는 강하다고. 청백전에서 붙었다가 오승환을 맞춘 일화도 있다.
  • 김효원 . . . . 6회 일치
         김효원은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이조]][[전랑]]직에 천거되자 외척이 인사권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였다. [[심의겸]]과 [[심충겸]]은 [[조선 명종|명종]]비 [[인왕후]]의 동생들로, [[선조]]가 [[조선 명종|명종]]의 양자 자격으로 임금이 되었으므로 그의 주장이 인정되었다. 사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이조판서]]로 [[추증]](追贈)되었다. 교산 [[허균]]과 [[허난설헌]]의 인척으로, [[허균]]은 그의 사위이며 [[허균]]의 형 [[허봉]]의 딸이 그의 맏며느리였다. [[동인]]과 [[서인]]의 붕당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지만, 생전에는 청렴한 선비로서 신진 인사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친구 중 [[조선 명종|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尹元衡)의 사위로, 장인 [[윤원형]]의 집에 처가살이하던 [[이조민]](李肇敏)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일찍이 [[윤원형]]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의 다른 친구들은 [[이조민]]을 멀리할 것을 권고했으나 그는 [[이조민]]의 사람됨됨이를 보고 [[윤원형]]의 집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인왕후]]의 친정 남동생으로 역시 왕실의 인척이던 [[심의겸]]이 집안 어른들과 함께 [[윤원형]]의 집에 출입하다가 그를 보게 된다.
         이후 그는 이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심의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 뒤 김효원의 후임으로 [[이조]]에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전랑 후보로 천거되자, 그는 [[심충겸]]이 [[조선 명종|명종]]비 [[인왕후]](仁順王后)의 남동생인 척신이라는 이유로 극력 반대하였으며 이조전랑직이 외척집안의 물건이냐며 [[심의겸]]과 [[심충겸]]을 공격하였다.
         사후 [[증직|증]]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뒤에 다시 [[증직|증]] [[이조판서]]에 가증(加贈)되고 [[삼척]]의 [[경행서원]](景行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묘갈은 미수 [[허목]]이 찬하였으나 후에 [[1803년]](조 3) 다시 세워졌다.
         * [[이신]]
         * [[박]]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6회 일치
          * 처음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깨달은 "에리". 에리의 도움으로 마침내 [[미도리야 이즈쿠]]는 에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접촉하는 간 이상한 느낌이 관통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인지할 틈도 없이 [[오버홀]] 치사키가 다시 한 번 흉수를 뻗쳐온다. 미도리야는 아직 공중이라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그 간 [[토오가타 밀리오]]가 물었던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던 물음이 떠오르고 "반드시 이기고 반드시 구하는 히어로"라는 대답이 떠올랐다.
          * 오버홀이 변화시킨 지면이 손가락처럼 뻗어오는 간, 미도리야는 그것들을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 간 그의 모습은 사라진다. 어리둥절해하는 오버홀 위로, 천장이 폭발하듯이 무너지고 미도리야는 어느새 지상으로,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있었다. 자신은 그저 오버홀의 공격을 차내려 했을 뿐인데, 힘 조절이 안 돼 여기까지 날아온 것. 그런 거라면 자신의 다리가 멀쩡할리 없다고 서둘러 확인해보는데.
          * 미도리야는 멀쩡한 다리로 착지한다. 에리도 무사히 품에 안고 있다. 원 포 올의 힘을 100% 끌어냈는데도 그의 몸은 골절은 커녕 기존에 입었던 상처까지 나았다. 막연히 에리의 힘, 그녀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 아닌가 추측하는 간 몸 속에서 잡아 당기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오버홀이 지상으로 몸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오버홀은 에리의 개성이 어쩌다 발동하긴 했지만 여전히 컨트롤은 못하는 거라고 지적한다.
          오버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원 포 올 100%의 여파가 몸에 미치는 간, 에리가 개성으로 "되돌려"준게 분명하다.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미도리야는 에리의 개성은 "매우 상냥한 개성"이라며 반대로 "돌아가는 이상의 속도로 몸이 상처입는 상태를 유지"하기로 한다. 원 포 올 풀 카울 100%. 미도리야는 힘을 개방하며 에리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 바키도/108화 . . . . 6회 일치
          * 이에 오로치는 다시 "진지하지 않으면 안 되나? 수하지 않으면 안 되나?"라고 투쟁의 수성에 대해서 묻는다.
          * 오로치는 그런 부분에 놀라면서도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더니, "혼돈이라 해도 끝까지 관철한다면 투명함"이라며 그게 무사시 나름의 수성이란 의견을 낸다.
          * 그러면서 "정신은 아기같은 피클"과 "수한 출세욕 덩어리인 무사시"의 싸움은 "도의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 따지고 보면 무사시의 과시욕, 공명심은 바키 월드의 "수한 투쟁심"이란 테마하고는 전혀 이질적이다.
  • 박경림(MC) . . . . 6회 일치
         [[분류:1998년 데뷔]][[분류:한국 여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여성 방송인]] [[분류:1979년 출생]][[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창군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출생''' ||<(> [[1979년]] [[3월 30일]][*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78년 12월 8일생이다. 라디오 DJ 하던 시절 본인이 어릴 때 약하게 태어나 출생신고가 늦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고, 2002년 말띠해, 2014년 말띠해 당시에 본인을 [[https://entertain.v.daum.net/v/20140102191109515|말띠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2001년 1월 9일 뉴논스톱에서 생일로 사주를 보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때 극중 박경림 스스로가 언급한 자기 생일이 12월 8일이었다. 물론, 학교는 1979년생들과 다녔다.] ([age(1979-03-30)]세), [[전라북도]] [[창군]] 적성면 (관평길) ||
         || '''학력''' ||<(> 창농협하나로마트 적성점[br][[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 (학사)[br][[http://gsic.ssu.ac.kr|숭실대학교 국제통상대학원]] 프라이빗뱅킹(PB)학과 (석사) ||
         박경림 이후 박경림처럼 예쁘지 않지만 매력있는 컨셉의 여자연예인들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전성기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녀같은 스타일로 광고계까지 접수하는 여성 대스타가 전혀 나오지 않은만큼,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 연예사에서 절대적인 역사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시대 이후로는 국민여동생 붐으로 [[문근영]], [[김연아]], [[손연재]], [[아이유]] 등 미모가 되는 10대후반 ~ 20대초반 여자스타들만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배우, 가수, 스포츠 등 자기분야에서의 인기를 업고 올라간 것이지, 박경림처럼 수히 예능 MC와 출연자로써만 인기를 얻어 광고계 블루칩이 된 것이 아니다.]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반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백인 남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절, 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박준규(1925) . . . . 6회 일치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수 지역구 9선의원.'''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송산(松山)이다. 본관 [[천 박씨|천]]. [[백남억]]씨가 그의 자형이고 [[삼성그룹]]창업주 [[이병철]]회장의 처조카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육신]] [[박팽년]]의 직계후손이다.
         [[1925년]] 9월 12일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 묘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출생하였다[* 일명 '묘골마을' 이라하는 천박씨 집성촌. 현재 묘골에 있는 [[박팽년]] 등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 앞에 그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경북고등학교|경북중학교]] 및 구제 마쓰야마[[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구마모토 [[의과대학]] 재학 중에 [[8.15 광복]]을 맞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로 편입하였으나, 동 대학 법문학부 정치학과로 전과하였고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철언]]과 함께 자민련 내 대구경북세력을 대표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이는 박준규가 1공화국과 2공화국 시절 [[김대중]]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몸을 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기인한다.~~하지만 김대중은 신파, 박준규는 구파~~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준규는 여당으로, 김대중은 야당으로 진로를 달리 했지만 인간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박준규의 활약은 대구경북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이 상승하는 데(8.7%에서 13.1%로 상승)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에다 김대중과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국회의장 단일후보로 지명되었고, [[경선]]에서 무려 3차 투표까지 간끝에 당시 [[한나라당]]의 반란표가 쏟아져 나오며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준규는 이로써 의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 3선의 고지에 올랐다. 반면 [[한나라당]]은 [[오세응]]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패배하고 [[조(1928)|조]] 총재 이하 지도부 전원이 국회의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 소진은 . . . . 6회 일치
         [[1921년]] 조선총독부 경상북도 경부에 임명되었으며, 왜관경찰서 경부로 발령받은 뒤부터 경찰 간부로 이동했다. 상주경찰서(1922년 ~ 1923년), 포항경찰서(1925년 ~ 1929년)를 거쳐 경상북도 경찰부 보안과 경부(1930년 ~ 1931년)로 근무하면서 정치범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경상북도 경찰관교습소 교관으로 활동했고, [[1933년]] [[5월 12일]]에는 도경시로 승진하면서 전라북도 경무과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때부터 전라북도 사교습소장, 사징계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1934년]] [[11월 27일]] [[평안남도]] 경찰부 보안과장으로 이동한 뒤부터 도사징계위원회 예비위원, 사부장 시험위원으로 활동했고, 1935년 8월 23일 평안남도 농촌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35년]] 10월에는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표창과 은배를 받았으며, [[1936년]] 10월 16일 조선총독부 경무국 통역관으로 임명되었다. 1936년 10월 21일에는 평안남도 보안과장, 도사부장 시험위원, 도사징계위원회 예비위원, 농촌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 손담비 . . . . 6회 일치
         2008년 2월 29일 게임 [[프리스톤테일2]]의 주제가 "Change the World"를 불렀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36656 네이버 뮤직 - Change The World (프리스톤테일 2) O.S.T] 《[[네이버]]》</ref> 같은 해 4월 29일 손담비는 첫 미니 앨범 ''[[Mini Album Vol.1]]''을 발매하며 컴백 했다. 앨범의 타이틀 곡 "Bad Boy"로, 전 에스블러쉬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가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 때 손담비는 주로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활동했다. "Bad Boy"는 발표한지 2주만에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때마다 검색어 위는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배드 보이', 29일 미니앨범 공개 후 '대박 조짐'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27079|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08년 4월 20일|확인날짜=2011-02-06}}</ref>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에는 조회수가 20만 건이 넘었고, 무대에서 입고나온 코르셋 스타일의 파격적인 의상도 많은 관심을 받아 홈페이지가 폭주하기까지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코르셋패션 "열기"...홈페이지 또 "혼수상태" |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3|출판사= 깜뉴스|저자=신명희 기자|날짜=2008년 5월 25일|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반 ''[[Type-B]]''의 발매로 컴백을 준비했다. 음반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영상, 팬들 반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백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백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영상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상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백,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반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위가 0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에서 수상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상 손담비, 뉴스타상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 《[[일말의 정]]》
  • 스틸오션 . . . . 6회 일치
          * 경양함
          * 중양함
          구축함과 경양함에 주포로 달리는 평범한 포.
          중양함과 전함에 주포로 달리는 포. 시점을 버드뷰로 바꾸는 "호크아이 모드"를 이용해 곡사가 가능하다.
          구축함과 경양함의 보조 무장. [[네이비필드]]와 달리 사용자가 폭발 범위 내에 있어도 데미지를 받지는 않는다. 깊이 잠항한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항공기가 시야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사격하는 무기. 플레이어가 직접 쓸 없다.
  • 식극의 소마/217화 . . . . 6회 일치
          * 살. 카와시마가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카부라기의 살. [[메기시마 토스케]]가 방금 전 잇시키의 압승이 무색할 정도로 살시켜 버렸다. 요리장면은 커녕 대사 조차 없는 안습한 패배.
          * 반역자들로선 꿈도 꾸지 않았던 반전. 1st BOUT 반역자팀의 전승 선언이 울려퍼진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키리 아자미]]는 식간에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보람이 없다"는 허세를 작렬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역자와 센트럴 측. 사이토가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현재 남은 인원은 반역자 8에 십걸 5.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3라운드에서 십걸의 전멸이다. 괜한 호들갑이나 떨던 린도지만 "그건 곤란하다"며 조금은 진지하게 듣는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네네에게 "너무 책임감 느끼지 마라"며 위로인지 부담을 주는 건지 알 수도 없게 격려한다.
          *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 소마는 아직도 꽁한 상태. 그런데 막 모퉁이를 돌려는데 복도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쿠가였다. 그가 대화하는 상대는 적의 대장 츠카사 에이시. 쿠가가 츠카사에게 "다음 라운드에 나올 생각 아니냐"고 떠보는 중이다. 츠카사는 애매하게 "그렇다면?"이라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다. 쿠가가 그런 태도가 심술궂다며 자기는 쭉 이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찌된 일인지 츠카사는 푼수같은 평소 모습이 간데 없이 진지하고 말이 적다. 쿠가의 드립에도 "확실히 그랬지"라고 짧게 대꾸하는데. 쿠가는 여전히 까불거리는 태도로 "귀여운 후배의 부탁"이라며 두 손을 모은다. 하지만 다음 간, 쿠가는 손을 주머니에 꽂아넣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소마는 얼핏 그의 팔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걸 발견하는데.
  • 식극의 소마/227화 . . . . 6회 일치
          >입에 넣은 간 소재의 에너지가 노도의 기세로 연속사출!
          맛의 일제사격에 지격 당한 샤름과 이스트와르. 심사위원들이 쓰러지는 걸 보면서 반역자들이 환호를 질렀다. 샤름은 모든 초밥이 맛있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정수리살 스시"를 꼽았다. 짚과 목초로 향을 입힌 참치 정수리살. 본래 참치에서도 가장 희소성 높은 특수 부위다. 깊으로 구운 덕에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없고 수한 기름의 향기만이 남아서 날뛰고 있다. 이 평을 들은 [[하야마 아키라]]는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그만큼 완벽했다고 평하고 승부의 향방은 어레인지를 가한 마지막 초밥, "군함말이"에 있다고 단언했다. [[나키리 아리스]]도 의견을 같이하며 과연 어떤 맛으로 완성시켰을지 주목했다.
          그런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안은 그렇게 주장했다. 좌우간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격찬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흑초 탕수육"이었다. 흑초 소스가 발라져 장식물처럼 반짝이는 탕수육. 그걸 먹는 간 숨겨져 있던 녹차의 강렬한 향이 시야를 신록으로 물들이는 극상의 맛. 관건은 흑초 소스다. 발사믹 소스에 미마사카가 준 훈제 간장을 함께 졸여 향을 극대화했다. 쿠가는 기존 탕수육의 틀을 철저히 파괴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텁텁한 뒷막과 기름기를 신맛과 감칠맛으로 잡았다. 그 자리를 녹차의 향으로 채우면서 돋보이게 만들어 단연 요리의 주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이 요리가 수한 중화요리가 아니라는 점. 여기엔 수준 높은 프랑스 요리의 기술이 접목됐다. 사천요리 전문을 자부하는 쿠가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목. 쿠가는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 소스를 활용했다고 인정했다.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은 발사믹 소스에 육수를 조려 응축한 "글라스 드 비앙드"를 함께 조리는 프랑스의 소스다. 쿠가의 말을 들은 이르트와르는 그 소스라면 가벼운 신맛과 육중한 중량감을 겸비해 탕수육의 포텐셜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거라고 평했다.
          >중화나 사천이라는... 자기가 만든 껍질을 깨부 것 뿐.
          * 심사의원들이 막 센트럴의 요리로 넘어간 시점이었다. 안은 아직도 흑초 탕수육의 여운에 잠기고 싶어하며 츠카사의 네 가지 요리 중 하나를 맛봤다. 그리고 그 간, 모든게 뒤집혔다. 안이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리액션과는 확연이 다르다. 쿠가와 소마가 그것을 직감했다. 압도적인 맛의 폭풍이 그녀를 휩쓸고 간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치, 그녀가 빠져나가지 못할 무언가에 휩싸인 듯한 모습. 방금 전 심사와 다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그들이 보았던 어떠한 리액션과다 다른 성질이었다.
  • 신지애 . . . . 6회 일치
         2017년 전반기에는 아직 JLPGA 승전보가 없었다. 꾸준한 경기력으로 상금 위 TOP 10급의 경기력을 보여 주고 있으나 본인의 목표 중 하나인 JLPGA 상금왕은 올해도 쉽지 않을 전망.
         == 상금 및 위 ==
         ||<tablebordercolor=#8e2313><rowbgcolor=#8e2313> '''{{{#aecf4e 년도}}}''' || '''{{{#acef4e 위}}}''' || '''{{{#aecf4e 상금}}}''' ||
         || '''2009''' ||<|7> - || 19,500,000원 [* 09 시즌부터는 타 투어 프로이므로 상금 위에서 배제.] ||
         ||<tablebordercolor=#8e2313><rowbgcolor=#8e2313> '''{{{#aecf4e 년도}}}''' || '''{{{#acef4e 위}}}''' || '''{{{#aecf4e 상금}}}''' ||
         ||<tablebordercolor=#8e2313><rowbgcolor=#8e2313> '''{{{#aecf4e 년도}}}''' || '''{{{#acef4e 위}}}''' || '''{{{#aecf4e 상금}}}''' ||
  • 안숙선 . . . . 6회 일치
         전북 [[남원시|남원]] 출신. 9살때 이모인 강영의 주선으로 주광덕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 10대 때는 외당숙인 강도근에게서 판소리 다섯 바탕의 토막소리들을 두루 배웠다. 이후 20대에는 상경하여 만정 [[김소희 (국악인)|김소희]](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사사하였으며, 31세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양암 정광수(수궁가), 춘전 성우향(심청가), 박봉술(적벽가), 운초 [[오정숙]](흥보가) 등에게 사사하였다.
         이 외에도 친이모 강영 명인에게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와 약간의 가야금 병창을 배웠고, 함동정월(최옥삼류), 원옥화(강태홍류), 김죽파(김죽파류)에게 가야금 산조를 사사했으며, 20대에 상경한 이후에는 향사 [[박귀희]](박귀희류 가야금병창)에게 가야금 병창을 사사하여, [[판소리]], [[가야금 병창]], [[가야금 산조]]에서 모두 일가를 이룬 명인이 되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스승격인 인당 박동진, 운초 오정숙 명창의 뒤를 이어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완창하였으며 이후 [[1988년]] 유럽 8개국 회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카네기 홀]] 공연, [[링컨 센터]] 여름축제 공연,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초청 공연, 제1회 윤이상 범민족 통일 음악회 평양 모란봉극장 공연 등 프랑스, 미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중국, 일본, 몽골, 터키, 폴란드, 러시아, 홍콩, 브라질 등 세계 40여개국의 초청 공연을 통해 우리의 소리를 알리는 동시에 세계적인 명창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 1981 동남아 12개국 회 공연.
         *1988 유럽 8개국 12도시 38일 회 완창 공연
         *2005 MBC 대한민국음악축제 우리시대의 명창 안숙선/국민성악가 임웅균/대한민국 최고의 대중가수 인이 3色 콘서트.
  • 안영준 . . . . 6회 일치
         || '''프로입단''' || [[201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2017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4위([[서울 SK 나이츠]]) ||
         드래프티 동기인 허훈과 양홍석도 소속팀 kt에서 활약 중이고 안영준은 팀 성적에서, 허훈은 개인 성적에서 상대방보다 앞서 있었기에 신인왕에 어느 선수가 적합한지 여러 의견이 오가는 중 뜬금없이 3월 9일 [[유재학]] 감독이 기자들의 신인왕 관련 질문에“자질만 놓고 보면 양홍석이 안영준보다 훨씬 낫다”, “양홍석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지만, 안영준은 지금처럼 하면 국가대표에 뽑히기 힘들다. 가지고 있는 기본 자질이 다르다”라고 평가한 보도가 나왔다. [[http://www.basket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063|기사]] 유재학 감독이 국가대표 선발 주무 부처라고 할 수 있는 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선수에 대한 평가를 내릴 있겠지만 동시에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두고 경쟁하던 팀의 감독이니만큼 언론에 대고 한 본 발언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 이후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위한 고비였던 DB, KCC전에서 중요한 간마다 활약했으며 팀을 정규시즌 2위로 올린 활약을 바탕으로 2017-18시즌 신인왕을 수상했다. 유효 투표 108표 중 59표를 득표하며 각각 39표, 18표를 얻은 허훈과 양홍석을 제쳤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해 활약이 절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 [[서울 SK 나이츠]]에서 지명을 한다면 1년 선배인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인 [[문경은]]이 "[[허훈]], [[양홍석(농구선수)|양홍석]], [[유현준(농구선수)|유현준]]은 어차피 앞에서 뽑힐 것이고, 우리 번에서는 [[안영준]]과 [[김국찬]]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는 [[김국찬]]보다 [[안영준]]이 더 어울린다"고 애기하였다. 왜냐하면 슈가를 뽑아봤자 변기훈과 화이트와 롤이 겹치는데다, SK의 백업 포워드가 [[김우겸]], [[함준후]] 정도라는 걸 감안한다면 포워드인 안영준을 뽑는 것이 선수풀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좋다는 시각. 그리고 이 예상처럼 문경은 감독은 안영준을 뽑았고, 김국찬은 다음 위로 KCC로 갔다.
  • 영창대군 . . . . 6회 일치
         조령(鳥嶺) 길목에서 도적이 행상인을 죽이고 은자(銀子) 수백 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수괴인 서얼(庶孽) 박응서(朴應犀) 등이 체포되었다. 박응서는 자신들이 단한 도적이 아니라 자금을 모아 무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하려 했다고 자백하였으며, 이 사건에 연흥부원군 김제남과 영창대군 이의가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크게 보자면 (1) 정항에 의한 아사설, (2) 정항에 의한 증살설, (3) 이정표에 의한 독살설이다. 상세를 보면 알지만 2번과 3번은 완전히 모인데, 인조반정 당시에는 어찌됐든 정항과 이정표가 모두 벌을 받아 파직을 당했다. 이후 이정표는 효종 때 손자 이후선이 파직되었다가 일단 무죄가 입증된다.
         >효종 6권, 2년(1651 신묘 / 청 치(順治) 8년) 5월 16일(임진) 1번째기사
         >효종 11권, 4년(1653 계사 / 청 치(順治) 10년) 8월 8일(경오) 2번째기사
         그렇다고 인조가 히 어리고 세력도 없는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줄 사람도 아니고, 인조 역시 선조, 광해군처럼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인간이다. --그러니까 쿠데타 했지.--[* 인조가 쿠데타에 가담한 데에는, 동생인 능창군이 도참 때문에 사사당하여 본인 또한 생명의 위협을 겪고 있던 부분도 한몫했다.] 인조는 '죽은 영창대군'을 광해군의 잔혹함과 패륜성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로서 편리하게 이용해 먹을 수 있지만, 정통성이 부족한 인조에게 강력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영창대군'은 매우 귀찮은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거기에다 인조 시기의 대신들 간의 권력 다툼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정국 불안을 증대시킬 우려 또한 높았다. (예를 들어 이괄의 난 때, 이괄이 흥안군 따위가 아닌 영창대군을 옹립하기라도 했다면...)
  • 영천시 . . . . 6회 일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분지에 위치하여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심한편이며, 연평균 기온은 12.5℃, 최저기온은 영하 18℃이다. 연중 강수량 평균은 1,052.7㎜로 다른 지역보다 적게 내리는 편이며, 6,7,8월에 1년 강수량의 반 이상 내린다. 최고기온은 2004년 37.2℃, 2005년 37℃, 2006년 37.2℃ 2007년 36.5℃이며 최저기온은 2004년 -13.6℃ 2005년 -14.5℃ 2006년 -13.3℃ 2007년 -10.8℃ 이다. 평균 해면기압 1,016.7hPa, 이슬점 온도 6.7℃ 일조 시간 2,168.4h, 평균 풍속 1.6m/s 최대풍속 10.6m/s, 최대간풍속 20.7m/s 상대습도는 평균 69.1, 최소 10.0이다.
         ||번||<:>학교명||<:>주소||
         ||번||<:>설립구분||<:>학교명 ||<:>주소||
         ||번||<:>설립구분||<:>학교명||<:>주소||
         ||번||<:>설립구분||<:>학교명||<:>주소||
         이런 일이 있었어서인지, 아니면 단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밀리터리 소설가--를 가장한 국군 찬양 [[국뽕]] [[양판소]]-- 소설가인 [[김경진(소설가)|김경진]]의 처녀작 [[데프콘(소설)]] 한미 전쟁편에서는 '''대구로 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진짜 '''개박살이라는 말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박살난다.'''--여기 주민들 지못미....-- 심지어 여기를 지키던 인민군 6군단 때문에 미군이 '''[[기화폭탄]]마저 쓴다(!!!).'''[* 당연히 국군도 여기 전역('전투지역'의 줄임말.)에 보복으로 기화탄을 포격으로 날려 버렸다. 보고에 의하면 ''''보복 기화탄 공격'''으로 생긴 '''화상 환자들 때문'''에 '''미군 병원선이 미어터질 지경' '''이라나 뭐라나... 근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기화탄을 무슨 소형 핵 취급한다(실제로도 '[[기화폭탄]]은 소형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라고대놓고 표현할 지경이니...).''' '''기화폭탄 따위는 핵에 비교하면 폭발 규모나 후유증에서 비교가 안될정도로 넘사벽이다!!''' 다만 '''인류가 만든 화약무기 중'''에서 '''그나마 핵에 제일 근접'''해서 그렇지...] 물론 ''''경상북도의 중심지' '''이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부산을 제외한)첫 번째 대도시'라는 이유'''로 '''통일한국군과 미군 쌍방이 정말 박 터지게 싸운 [[대구광역시]]'''가 입은 피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물론 여기에는 ''''대구 비행장의 존재감'도 컸다.''' 아무래도 '''(경상남북도를 다 합쳤을 때) 제 1의 비행장'''이니...(''''대한민국에서의 제1 비행장'이라고 하면...''' 뭐 다 '''[[인천국제공항|알지]]?''')]
  • 우현(배우) . . . . 6회 일치
         [[1964년]]생으로 대표 [[노안]]배우다.[* 이 노안 얼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아내를 딸로, 아들을 손자로 본다"고 자주 언급한다.]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로는 [[안내상]][* 과 동기인 데다가 30년지기 절친한 친구이다. 그야말로 평생가는 친구. 다만 유난히 둘 사이가 튀었는지, 안내상의 아버지는 둘이 [[동성애]]를 한 줄 알고 헤어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현의 말로는 함께 젊을 적부터 학생운동도 하고 어울리고 했으나, 안내상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에 튀기에 좀 '그랬다고'(?) 한다.]과 [[이대연]]이 있고, 다른 동갑 연예인은 [[한석규]]와 [[이선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노안 문제는 한국을 벗어나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이 분이 '''[[키아누 리브스]]'''와 동갑이라는 점이다!! ~~뭐?~~ 키아누 리브스가 미치도록 동안인 것도 맞다. 저 둘을 누가 동갑내기 친구라 믿겠는가?] 닮은 꼴로 [[골룸]], [[요다]][* 실제로 <유자식 상팔자>에서 우현의 얼굴에 요다 CG를 붙인 적이 있다.], 통아저씨 [[이양승]], 전 국회의원 [[조형]]이 거론된다.
         또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참가자 자격으로 참여했다. 등장만으로도 많은 참가자들이 경의를 표하며 엄청난 [[노안]] 캐릭터를 보여줬다. [[이봉주]] 등장 전까지 많은 참가자들이 못생긴 위 1위로 찍었으며[* [[이천수]]는 우현을 '''레전드급이라고 평했다'''.] 이봉주가 등장하기만을 고대했다. 시즌1의 [[고창석]][* 배우, 노안, 참가자들의 경의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과 유사한 역할일 듯. 등장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결국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의 최고의 매력남으로 뽑혔다.[* 정작 우현과 절친한 사이인 우상호 의원은 그가 못친소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외였다고 한다. 그는 한번도 우현이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무한도전]]에 출연 직후 식간에 대세 스타로 되었다. 무한도전 출연 직후에 MBC FM4U <굿모닝 FM [[전현무]]입니다>에 출연했고, <라디오스타>에서도 게스트로 출연했다.
          * [[또 오해영]](2016, tvN) - 우현 역 (박택의 선배 역)(특별출연)[* 카메오라고 하지만 15~18화 모두 다 나와서 다소 애매해졌다.]
         아버지가 [[의사]]면서 병원 원장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자랐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용돈도 현금 300만 원을 가지고 있지만 다 쓰지를 못 했다. 어릴 때부터 쭉 소고기나 장어 등 당시엔 쉽게 먹기 힘든 음식들을 자주 먹었고, 막상 감자탕이나 대, 삼겹살 같은 음식은 대학에 들어와서 친구나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특히 삼겹살을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있다니"라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식습관 때문인지 [[편식]]이 굉장히 심하다. [[잘 먹는 소녀들]]에 의하면 [[닭발]], [[족발]], [[곱창]]을 못 먹는다고 한다. 후에 [[잘 먹겠습니다]]에서 자신이 먹지 못한 곱창 먹기를 시도하였고, 성공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편식]] 습관은 아들 준서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유자식 상팔자>에서 보면 해산물이나 가지 등을 못 먹는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 먹기는 했다.]
          * 엄청난 마성의 매력 소유자다. 본인 말로는 "처음 볼 때는 엄청 싫어하다가, 몇 번 보고 나면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도 이런 매력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배우 [[조민희]]나 박남정 딸 [[박시은(2001)|박시은]]도 잠시 동안에 빠졌었다. 그래서 못친소에 나온 것이 싫었다고.[* 못친소에서 밝히길 아들 준서도 처음엔 엄청 싫어했지만 5살 즈음에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우현의 아들은 못친소 특집에 우현이 나간다고 하자, "아빠가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고 우현이 왜냐고 반발하자, "아빠가 잘생긴 걸로 1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못생긴거)로라도 꼭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과 본인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사실 단히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의 마성이라기보다, 실제로 인성이 훌륭하고 부드러우며 심지도 곧은데다가 포용력과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쉽게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즉 [[진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청춘을 던진 것만 봐도 정신이 올바른 것이 보인다. 본인도 삶의 목표가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온다고 하면 기분 좋아지고 환영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단지 본인의 외모와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 표독스럽거나 독특한 성격의 느낌을 준 적이 많아, 사적으로 보면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친소에서도 결국 그 대인친화적인 인성으로 우승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노홍철]]이 1등을 했던 못친소 1과 다르게 우현이 나온 못친소 2는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남자' 컨셉으로 출연자들이 정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을 뽑았던 사실상의 인기투표였다.]
  • 원빈(배우) . . . . 6회 일치
         ||<:><#4C4C4C>'''{{{#FFFFFF 가족}}}'''||[[아버지]] 김석산, [[어머니]] 이월[* 한때 우리아들 ~~ 인데 그쪽 아들은 뭐해라고 하면 김석산, 이월: ''원빈"이라는 드립이 흥하곤 했다.][br]2남 3녀 중 다섯째[br]배우자 [[이나영]], 슬하 1남 ||
         이러다 보니, 상술한 박근형을 넘는 대선배들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가 과거에 한 발언인 "광고만 찍는 배우, 연기나 먼저 해라."의 주된 대상으로 오르고 있다. 그나마 커버를 치자면, 요즘 활동을 안 하는 이나영처럼 조용히 칩거를 하고 있기에 뭐라 하기는 그렇고 애초에 우선 위를 CF에 두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그닥 없다. 오히려, 이창동을 끝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나름 의리도 있어 보인다. 허나, [[강동원]]의 연기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을 보여주는 다작행보와도 상당히 비교가 아니 될 수도 없고, 실제로 소위 재기를 노려야 할 연기자라는 위치도 아닌 것을 보면 까여도 딱히 할 말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7사단에서 근무하는 모든 장병들이 무릎이 나가거나 하지는 않는다.--하지만 높은 확률로 부상당하기 쉬운 곳 중 하나고 웬만한 사람도 크고 작은 부상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곳이다.-- 문제는 '''원빈이 입대 전부터 무릎이 좋질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사병이 아닌 '''최전방 근무를 자원'''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론 본의 아니게 객기부리다가 [[의도는 좋았다|양쪽 다 피해를 보게 된]] 모양새가 되었으나, 사실 당시 원빈의 입장에서는 단한 객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원빈은 [[강원도]] [[정선군]] 출신인데 항목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저 동네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메산골 중 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유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으니 당연히 산에 매우 익숙할 것이며, 건강에도 나름 자신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본인 스스로 최전방 지형 정도는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중간에 뭔가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원빈이 연대장과 면담 때[* 국방부에서 이미지 향상을 위해 연예인들은 상부에서부터 신경을 꽤 써줬다고. 후에 [[문보살]]도 그렇고...] GOP만큼은 빼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이것이 묵살되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고 결국 위의 사단이 벌어진 것. 사회의 억압만 없었더라면 더 나은 길을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연예인 잡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게 웃기지만.
         하지만 원빈이 다친 후에 육군에선 가능한 한 배려해줬다. 민간병원에서 수술 이후 [* 군 복무중 중대한 부상이나 수술을 해야 될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부상당한 군장병은 사비로 민간병원에 치료할 것인지, 국비지원으로 국군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통상 국비지원 민간병원 위탁치료는 지방소재 국군병원 군의관의 진단에 의해 결정된다. 원빈은 국군수도병원 후송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비로 민간병원에서 수술받은 것으로 보이나, 실제 민간병원 수술이 이례적으로 국비지원 하에 이루어졌는지, 사비 부담인지는 당시 기사에서 정확히 다룬 것이 없어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요양은 군병원이 아니라 병가를 얻어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다만 재활치료는 춘천병원에서 받았다. 의병제대 판정도 여기서 받았고.] 군복무 중 중대한 부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하였더라도 요양이 필요한 군장병은 수술이 끝나고 나면 군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자택에서 장기간 요양하거나 장기 병가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례적이다.--쉽게 말해 수술을 위해 병가 10일 정도 혹은 가지고 있는 휴가를 합쳐도 20일을 넘기기 힘들고 그 안에 수술을 마치고 복귀해야 한다.-- 게다가 걸을 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 단히 다리를 절고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의 후유증이면 의병제대를 받지 못하고, 요양은 커녕 자대에서 군복무기간을 마저 채우고 만기전역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2010년 이후나 되어서야 후자(걸을 수 있으나 후유증과 통증)와 같은 유형을 [[복무 부적격자]]로 판명하여, 아예 군병원에서 환자에게 한 달짜리 휴가증을 줘서 집에 보내고 전역일까지 계속해서 휴가증을 연장 발급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제대시키는 편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공식적인 의병제대와의 차이점은 전역일까지는 군인 신분이라 만약 휴가 기간에 사고를 치면 헌병대에 끌려간다는 것과, 전역 전에는 여권 발급이 제한된다는 점, 그리고 '''예비군이 면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원빈의 경우는 그러한 경우에 비해서는 이례적으로 혜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 유지인(1956) . . . . 6회 일치
         정윤희가 [[나는 77번 아가씨]]로 대표되는 [[백치미]]를 보여주고 장미희가 [[겨울여자]]로 대표되는 청미를 보여 줬다면 유지인은 당시 대학 재학생이라는 신분에서 풍겨나오는 도시적신 이미지의 세련미를 보여줬다.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위나 수입 위에서 절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태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태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태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 [[2010년]] [[SBS]] 월화 미니시리즈 《[[별을 따다줘]]》 ... 나주
         * [[2010년]] [[MBC]] 월화드라마 《[[역전의 여왕]]》 ... 오미
         * [[2011년]] [[KBS2]] 월화 미니시리즈 《[[스파이 명월]]》 ... 리옥
  • 이연희(배우) . . . . 6회 일치
         청한 이미지를 가진 빼어난 미모와 모델같은 큰 키에다 뛰어난 [[각선미]]를 가졌으며 날씬한 몸매로도 유명하다. 신장(키)도 같은 배우로서 한 때 [[SM엔터테인먼트]]의 상징적인 비주얼로 같이 유명했던 [[고아라]]보다 더 크다.
         2008년에 개봉한 영화 [[강풀의 정만화|정만화]]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다. 독특한 성격의 여고생 역할이었는데, 어눌한 발음이 앳된 학생의 이미지에 녹아들어서 평이 괜찮았다. 다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였다.
         데뷔 초 앳되고 청한 이미지의 캐릭터로 굳어져 약간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평을 받던 중 드라마 [[에덴의 동쪽(2008)|에덴의 동쪽]]에 출연하며 연기 변신을 시도했지만, 완전히 실패하고 오히려 [[발연기]] 배우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발연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생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0G1LflbuPbA|심지어 물에 빠지는 연기는 "들고 있는 유리병보다도 부자연스럽다"라는 악평도 나온다.]]
         2013년 MBC의 연말을 책임지는 드라마 [[미스코리아(드라마)|미스코리아]]에서 얼굴은 예쁘지만 속물인 캔디 캐릭터 오지영으로 출연했는데 [[파스타(드라마)|파스타]] 제작진 특유의 캐릭터가 강한 로코라서 이연희 캐스팅에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는데 의외로 소싯적에 좀 놀아본 껄렁한 캔디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호평을 조금씩 받기 시작했다. 청한 이연희가 [[이선균]]에게 담배 맛있게 피우는 법 설명을 하는 장면을 보면 본인의 캐릭터에 대한 노력이 보이는 걸 알 수가 있다. 상대역이 로코의 제왕 [[이선균]]이고 개성 넘치고 연기력 탁월한 조연들이 포진해 있어서, 본인만 잘 하면 드라마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좋은 여건이 갖추어졌다.
         ||<|2> [[2008년]] || [[정만화]] || 수영 || ||
  • 이정재(영화배우) . . . . 6회 일치
         ||<:><#4C4C4C>'''{{{#FFFFFF 본관}}}'''||[[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전주 이씨 [[효령대군]] 20세손, 시조 43세손 宰자 항렬이다. 동일 항렬 유명인으로는 [[이휘재|이영재]], [[이혁재]], [[이학재]] 등이 있으며, [[이경규]]와 [[써니(소녀시대)|이규]]는 손자, 손녀 뻘이 된다.] ||
         그 전에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던 청춘스타였지만,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고현정]]에게 일방적인 애를 바치는 [[보디가드]] '백재희'역을 맡아 과묵함과 깊은 눈빛 연기를 보여줘 폭풍 스타가 되었다. 사실 당시의 이정재는 경력이 있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시망]]인지라 그냥 말을 안 시켰던 것인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 났다. 뒤에서 묵묵히 여주인공을 지켜주는 모습이 더 멋졌던 것. 주인공인 [[최민수]]나 [[박상원]]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힐링캠프]]에서 언급하길 당시 극성 팬들은 집까지 찾아오고 사인회를 하면 그 일대가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한다.] 전국 검도장이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보고 온 남자들로 미어터질 정도로...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지키다 목숨까지 바친다는 설정 때문에 한동안 여성들의 이상형 1위가 되었고 방영이 끝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각종 매체에서의 보디가드 역은 백재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 영화 [[암살(2015)|암살]] 개봉 당시 관객 수 815만명이 넘으면 프리허그를 하겠다고 공약을 내 건 것. 8월 7일 관객수 815만명을 돌파하며 100여명이 넘는 팬들과 프리허그 행사를 가졌다.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팬들과 포옹해 준 결과 또다시 수트 상의가 화장품 범벅이 된 것은 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선착에 들기 위해 행사가 저녁 8시에 시작됨에도 새벽부터 줄을 선 팬들이 많았다. 이런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애당초 약속한 100명이 아닌 120여명과 프리허그를 해주고, 엄청난 팬서비스도 보여준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eejungjae&no=56694&page=1&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ED%95%98%ED%8A%B8|하트 춤 추는 이정재는 그야말로]] [[충공깽]]
          * 많은 이들이 그의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인상에서 놓치는것이지만 '''사극'''연기를 굉장히 잘한다. 다른 영화에선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사극, 혹은 고어체를 쓰는 캐릭터를 정말 잘 소화해낸다. 그래서인지 신과함께에서 단히 카메오로 그칠 예정이었던 비중이 2부작을 통틀어 중심내용을 관통하는 큰 역할로 확장되었고 관상의 수양대군 역이 펻론가와 대중들의 극찬을 이끌어내며[* 필모그래피의 정점이라는 평이 대다수다. 극중 수양대군의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음에도] 배우 인생 2부를 화려하게 부활시켰을 정도(...)
         ||2000||애보||주연||46,148명||실패||
  • 이지아(배우) . . . . 6회 일치
         || '''본명''' ||<(> 김지아,[* 여러 번의 개명을 거친 이름이라고 한다.] 개명 전 이름 김상은[* 조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흥이다.][* 미국에서 Shea Lee(시아 리, 셰이 리,[* 외래어 발음규칙에 따른 정확한 발음] 세아 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
         || '''가족''' ||<(> 조부: [[김흥]][br]형제자매: 1남 3녀 중 [[3녀|셋째]][* 남동생은 본인과 성이 같으며, 위로 두 언니는 성이 다르다고 한다. 즉 [[이부형제]].][br]前 배우자: [[서태지]](1997년 ~ 2006년)[[http://www.youtube.com/watch?v=opEBfpCcdtM|#]] ||
         스캔들 5개월 후 [[201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나도 꽃]]의 여주인공 경 차봉선 역을 맡았다. 아래 후술된 스캔들의 여파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빨리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이때까지 드라마에서 이지아와 함께 출연한 배우는 배용준-김명민-김혜수-정우성으로 죄다 연기대상 수상자이고 정우성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남 배우로 이름을 알렸었다. [* 다만 정우성과 출연할 당시엔 드라마의 메인 히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역은 [[윤시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쟁작인 [[뿌리깊은 나무]]의 임팩트가 워낙 독보적이라서 예상보다 그렇게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배우의 연기나 드라마 자체는 그럭저럭 입소문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영광의 재인]]과 [[뿌리깊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시청률 참패를 당하면서 조기 종영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이지아의 할아버지인 [[김흥]]이 친일파라는 의혹이 네티즌으로부터 제기, 확인되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어 빼도박도 못할 처지.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상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 '정리된 것'을 클릭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김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을 지적하는 글이 대형 카페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삭제되기도 했고,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해 게시 중단된 사실이 있다. [[http://nila.tistory.com/133|*]]
  • 임수정(탤런트) . . . . 6회 일치
         2007년 잠시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이걸 한 기자가 과대해석하여 '임수정 연예계 은퇴선언'으로 기사를 올렸다.] 2007년 12월경부터 [[미국]] [[뉴욕]]에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2008년]] 1월 중에서야 뉴욕대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게 보도가 되었다. 유학생들의 목격담으로는 스타의식을 티내지 않고 ~~옷을 불쌍하게 입었다는 말도 있었다.(...)~~ 평범하게 [[도서관]] 같은 곳에서 돌아다녔다고. 심지어 중국인 유학생의 목격담도 있었다. 그런데 찍힌 [[사진]]이 없다.
         >연기 경험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장화, 홍련>을 촬영하면서, 시작하는 자세로 많이 배우고 있다. 매컷 새로운 걸 깨달아가는 기쁨, 한계에 부딪히는 데서 오는 절망감, 이 모든 게 내가 좋은 연기자가 되는 데 중요한‘밑거름’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아직 이렇다 할 반응도 없고 인정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혹여 그런 간이 찾아오더라도, 모르는 척 외면할 생각이다. 인기나 평가를 의식하고, 방심하고, 무너지는, 그런 과오는 저지르지 않겠다. 지금은 그냥, 이런 배우도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바란다. ([[씨네21]] 임수정 자기소개서 중에서)
         >성인이 된 직후 기억이 있지만 내 경험이나 느낌은 달콤하지 않았다. 행복했지만 아파하기도 했고 결국엔 슬픈 기억이 됐다. 임수정의 경험엔 슬픈 느낌이 그대로지만 민아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고, 마지막 간에도 행복했다. ([[첫사랑]]에 대해 묻는 질문에)
         >무척 슬픈 영화지만 관객들에게 펑펑 우는 영화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울음으로 토해내고 나면 영화를 보던 간의 감정을 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이 찡한 상태에서 극장을 나서면 계속 여운이 남아 사랑에 대해 오래도록 되새기게 될 것 같다.(...ing에 대해서)
         > 가장 컸던 건 임수정의 분위기 자체가, 동생에게 집착이 지나쳐서 삶의 일부를 망가트리는 수미 역에 적합해 보였다. 처음 촬영 땐 자꾸 자기를 가둬놓는 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어느 간부터 그런 자신을 깨고 나오는 듯했다.
         > 임수정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처음 만나봤을 때는 굉장히 맑고 투명하고 수하고 그러실 줄만 알았는데 다섯마디(?) 대사를 더 해보니깐 정말로, 굉장히 여성스러우시구요. 그리고 연기도 잘하시고.. 임수정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제가 많이 괴롭혔어요. 많이 물어보고... 그럴 때마다 친누나처럼 잘해주세요.
  • 임현식(배우) . . . . 6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지}}}''' ||<(> [[전라북도]] [[창군]] ||
         [[전라북도]] [[창군]] 출신.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최근 보도에 의하면 푸근한 인상의 외모와는 다르게 의외로 양갓집의 [[음대]]지망생인 [[엄친아]] 출신이었다고 한다.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는데 이게 거리의 악사 연기에서 빛을 발했다고. <한 지붕 세 가족>에서도 연주를 보인 바 있다. 뭐든 잘 하지 못 한다고 슬퍼하는 아들 돌이를 위해 “아빠도 처음에는 잘 못 했지만 연습을 하다보니 이렇게 연주를 잘 할 수 있잖니?”하며 바이올린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마무리 짓는 장면이 일품.
         [[애처가]]였으나 연하의 아내(서동자씨)가 [[2004년]] 대장금 촬영 도중 [[늑막염]]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54세. 주변인들에게 알리지 않아 병세가 위중해지고 나서야 기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싱글이 된 이후로는 MBC 일요 [[아침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부부(각각 돌이 아버지, 돌이 어머니)로 같이 호흡을 맞춘 [[박원숙]]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어서 [[JTBC]]에서 재혼 미리보기;; 프로그램인 [[님과 함께]]에서 중년의 로맨스를 연출. ~~은근슬쩍 같은 방에서 자려고 수작을~~ 또한 한편으로는 아내와 사별한 후 [[천주교]]에 귀의했으며, [[세례명]]은 [[바오로]]다.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45년 출생]][[분류:창군 출신 인물]]
  • 장남교 . . . . 6회 일치
         가독 상속 위는 '법정추정가독상속인'이 최우선이다.
         그 다음 위는 '지정가독상속인'이라 하여 호주가 생전, 또는 유언에 의하여 지정한 사람, 1위와 2위가 없으면 호주의 부모나 친족회 등이 같은 호적 내의 가족 가운데 지정을 한 사람이 승계한다. 대충 이렇게 된다.
         정처 입장에서는 가독상속을 최우선적으로 받을 권리를 가지고 호주 사망시에 가독을 확실하게 상속해줄 '적출자 장남'이 없으면 한 간에 거의 인생 게임오버(…)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호주 사망시에 비적출자이 나타나면 한 간에 모든 가산이 그쪽으로 넘어가고, 호주의 각종 처분권까지 비적출자에게 가게 되므로 매우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한없이 높아진다.
  • 전경협 . . . . 6회 일치
         |직업 = 교자
         '''전경협'''(全敬俠, [[1790년]] ~ [[1839년]] [[9월 26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아가타'''(Agatha)이다.
         전경협은 [[한양]]의 한 이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래로, 그녀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안형광]]이라는 이름의 [[궁녀]]의 도움으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서 전경협의 친오빠가 그녀를 결혼시키려 했지만, 궁녀 안형광은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는데, 그녀도 이미 궁녀 명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박희 루치아]]를 비롯한 [[천주교]]인 궁녀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다. 박희이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출궁한 후에, 전경협도 꽤병을 부려 궁궐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궁궐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전경협은 박희과 함께 살며 [[기도]]와 종교서적의 독서 그리고 선행에 전념했다. 그녀 주위 사람들이 그녀에게 감복했고, 그녀는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데 일조했다. 그녀는 극도의 가난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번 없었다. 그녀는 그저 [[체포]]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경협은 [[1839년]] [[9월 26일]]에 [[서소문]] 바깥에서 여덟 명의 교우와 함께 그녀가 원한데로 [[참수]]로써 [[교]]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53세였다.
  • 전인범 . . . . 6회 일치
         |종교 = [[개신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70851 “하나님이 곁에… 두려움 없어져”… 전인범 준장 사절 간증], 《국민일보》, 2007년 2월 20일</ref>
         1년 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그는 케네소 주립 대학교, 템플 대학교, [[:en: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외교정책연구소]] 등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로펌을 찾아 한반도 갈등이 미국 국민들의 일상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강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025928 한국전쟁 미국에도 도움안돼… 참화 막을 외교적 노력 필요],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2017년 10월 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을 하기 전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그는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는 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갈등이 미국에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 또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025816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상도 심각"],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한 달 후인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 총격 사건|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 총격 사건]] 당시 귀한 오청성 하사가 국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던 것은 북한 신속대응군 추격조가 오 하사를 급히 쫓느라 호흡 조절에 실패해 급소를 가격하는 소위 ‘킬 샷(kill shot)’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34661 <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뛰어온 北추격조 숨 헐떡여 급소 못 맞혀… 천운”], 《문화일보》, 2017년 11월 24일</ref> 전 전 사령관은 “CCTV 영상을 보면 전력 질주하는 오 하사를 쫓느라 AK 소총을 든 두 북한 경비병은 300m 이상, 권총을 든 두 경비병 추격조는 200m 이상 전력 질주했다”며 “추격조는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되지만 오래 뛰다 보니 총을 쏠 때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 하사가 추격조의 사격에 노출된 시간은 10초가 채 안 돼 정확한 조준 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덕에 심장, 대동맥, 정동맥 등 출혈을 많이 일으키는 곳이나 신경계인 머리 척추와 같은 급소를 맞지 않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총탄은 몸에 박히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간이나 비장,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주도록 설계된다”며 “그런데 오 하사와 추격조 간 거리가 살상 효과가 높은 50m보다 짧아 관통한 총알이 많아서 살상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탄이 몸을 관통할 경우 출혈을 빨리 멈추게 하고 패혈증만 막으면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급소만 피하면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보다 관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2014년 9월 특전사 13공수여단에서 포로체험 훈련 도중 부사관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훈련의 도입을 지시한 사람이 그였던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었다. 2017년 2월 [[국민의당]] [[김영환 (1955년)|김영환]] 최고위원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그에 대해 “이분은 취임 후인 2014년 9월 공수여단에 포로처럼 고문훈련을 시켜 두 명의 군인을 사망시킨 전력이 있다”며 “문재인 전 대표는 왜 ‘특전사 코스프레’를 포기하지 않고 집착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52597 김영환 "文캠프 전인범, 고문훈련으로 군인 두 명 죽었는데…"], 《뉴시스》, 2017년 2월 6일</ref>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가 전역 직후인 2016년 9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포로체험 훈련 중 사망한) 조용준·이유성 하사. 나는 당시 부대 지휘관으로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죽을 때까지 새기고 가야 한다는 벌을 받았다”며 지휘관으로서 도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ref name="a"/> 문재인 지지 선언 직후인 2017년 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당시 사고의 핵심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지와 부주의, 그리고 감독 부실이다. 그리고 당시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보도됐는데, 군 생활 당시 매뉴얼이란 표현을 쓰던가. 에프엠([[FM]], filed manual, 야전교범)이란 표현을 쓴다. 사고 직후 장교가 기자에게 ‘매뉴얼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받고 ‘못 봤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만약 ‘에프엠이 있었나’라고 물어봤으면 그렇게 답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가 책 만들 때 초고가 있잖나. 그때 (엄지와 검지를 4cm 정도 떨어뜨린 손을 내보이며) 이렇게 두꺼운 초고가 있었다.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고 답했다. 이어 “이런 사고가 나선 절대로 안 되지만, 어처구니 없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책임만큼의 처벌만 받도록 이해해줬으면 한다. 2017년 1월에 제가 특전동지회 총재로 취임했는데, 취임식 때 희생된 두 부하의 아버지가 축하해주러 오셨더라. 그러면서 ‘사령관님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일반직이 아닌 특수직무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잘 처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더라. 제 마음이 어땠겠나”라고 덧붙였다.<ref name="b"/> 이에 대하여 특전사 관계자는 “그들은 아들들이 비록 희생됐지만 포로체험 훈련의 취지에는 공감했기 때문에 사고 당시 사령관이었던 전인범 전 중장의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식에 참석이 가능했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763911 [단독] “포로체험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특전사 비밀리에 계속 실시], 《경향신문》, 2017년 2월 12일</ref>
  • 전효성 . . . . 6회 일치
         드라마 캐스팅으로 MC에서 하차한 [[차오루]]와 바통터치하여 [[비디오 스타]]에 합류했다. TS와의 법정 공방 중인 2018년 4월에 MC를 [[써니(소녀시대)|규]]에게 넘겼다.
         첫 솔로 활동 성적은 공중파 음방 성적이 다소 아쉬울 수 있겠지만 각종 음원차트에서 좋은 위를 유지하였고 앨범도 만장 이상 판매하면서 첫 솔로 활동 치고는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듯 하다. 이번 솔로 앨범으로 행사 등에도 많이 초청되었는데, 여솔로 혼자서 행사를 도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이번 솔로 앨범은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11월 19일 초청된 <상명대 지하방송제>에서는 팬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인해 앵콜 무대를 하기도 했다. "원래 저 이러면 혼나는데..."라고 하면서도 앵콜 무대를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워서 팬들은 이 무대가 가장 신났다는 평을 할 정도.]
         다이어트로 인해 [[가슴]]이 작아져 많은 사람들이 살빨이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search&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umorbest&no=463310&page=1&keyfield=subject&keyword=%C8%BF%BC%BA&mn=&nk=%B3%EB%BD%C3%C6%C8&ouscrap_keyword=&ouscrap_no=&s_no=463310&member_kind=|빈유모에]]-- 단, 여자들의 가슴이 남자들 생각과는 달리 은근히 사이즈가 유동적인 데다가, 수술하지 않았다면 옷이나 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꽤 나 보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 2012년 4월의 사진에서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절대 절벽은 아니다. [[http://news.nate.com/view/20120512n08848&mid=e0403&cid=350114|5월 12일 드림콘서트에서 보여준 사진으로 보면 여전히 훌륭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도 계속 사진마다 모습이 달라보이는 걸로 보아, 남자들이 잘 모르는 [[브래지어]]의 힘이 작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남자]] [[위키러]]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의 브래지어가 가진 무기는 '''[[패드]]만이 아니다.''' 푸시업을 어느 정도 해 주느냐, 혹은 어떤 옷에 맞추느냐 등 활용 폭에 따라서 절벽이 글래머로, 글래머가 슬렌더로 변신하는 마법을 부리는 게 여자 속옷이다. 특히 드림콘서트 당시 사진에서 나온 사이즈는 단히 패드만으로 나올 수 있는 형태가 아닌지라, 옷발과 컨디션발이 상당히 심하게 영향을 주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슴에 약간 여유를 두고, 즉 푸시업이 좀 덜한 브라를 착용하거나 폭에 여유가 있는 누브라, 혹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어께걸이 등의 지지가 없어져서 유방이 약간 처지는데, 보형물을 넣은 게 아니라면 이때 가슴골이 퍼져서 볼륨이 줄어들어 보인다. [[박로미]]가 가슴이 작아보이게 한 방법이 바로 이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효성은 다이어트 등으로 인해 몸매가 상당히 유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섹시컨셉으로 활동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숱하게 겪는 [[가슴성형]]에 대한 의혹만큼은 확실하게 없어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뭘 집어넣은 거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왔다갔다 할 수가 없으니...
         그러나 저 발언 하나만으로 전효성을 [[일베|모 커뮤니티]] 유저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하다. 전효성 같은 경우 위에 항목에 나와있는거 처럼 과거 디씨에 있는 시크릿 갤러리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글 까지 쓴 적이 있으며 모니터링을 위해 디씨를 꾸준히 눈팅하다가 접하게 된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효성이 해명하고자 했던 바는 민주화가 모 커뮤니티에서 은어의 의미로서 사용되는 줄 몰랐다는 것을 해명하고자 했던 것이며 '''이것을 2차 사과문의 내용과 연결시켜 보면 정확히 일치한다.'''[* 이후 시크릿으로 컴백하고 난 후 [[http://m.navercast.naver.com/mobile_magazine_contents.nhn?rid=1096&contents_id=47982|모 인터뷰]] 내용에서도 이와 같이 해명한 바 있다.] 실제로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 무렵 시크릿 갤러리 글을 보면 민주화와 같은 모 커뮤니티 은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간베스트라는 그들만의 공간을 나와 점점 다른 사이트에서 분탕질을 시작한것도 이 무렵으로 아직 일베라는 특정집단을 모르고 단히 신종 어글러취급을 하는 곳이 많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당시에는 일베 은어를 쓰자 말자 하는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시절이였다. 전효성 민주화 사건을 큰 기점으로 그 은어들의 가진 어원이나 뜻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회공감대를 얻어 쓰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굳어졌다.]
         전효성이 잘못을 사과하고 일단은 반성하고 있는 듯 해도 여러 커뮤니티에서 하도 까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기까지면 그러려니 하는데 반대로 비슷한 처지인 홍진호는 까이지 않는 모에 왜 이렇게 전효성에게만 엄격하냐는 반발이 생겨 이 논란에 대한 비난은 비교적 줄어들고 있었다.
         다만 전효성 입장에서는 늦게 도착하여 그 자리에서 먹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두고 가기에는 여론과 팬의 시선도 생각해야 하니 최선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납득은 가는 대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해당 팬 역시 폭설로 인한 변수로 전효성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 정병오 . . . . 6회 일치
         '''정병오'''(鄭炳五, [[1950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 경제학과 졸업, 한국수문학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2002년]] 《월간수문학》에 신인상 수상으로 〈례하는 바람〉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례하는 바람》([[영하]], 2002) | ISBN 10-0004447131
         *《바람의 노래》([[수시선]], 2006) ISBN 10-8991695221
         *《례하는 바람》아름다운 산천을 보고 즐기며 내일의 꿈을 가꾸고, 나날이 살아가는 인생 속의 아픔과 그리움 속에 옛날의 젊음을 회상하고 오늘을 투시하며 삶의 길을 가다듬는 시이다.
  • 조응천 . . . . 6회 일치
         [[대경권|TK]] 출신 엘리트 검사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요직을 맡아 성장했고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는 등 [[대경권|TK]] 성골 엘리트급의 보수 인재 루트를 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적당히 끊고 청와대에서 나왔다면 지금쯤 구 새누리당에서 요직을 맡아 보수층의 중심에 올랐을테고, 계속 해서 청와대에서 자리를 맡았다면 최실 게이트로 인해 축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인하여 축출돼 '''별주부짱'''이라는 이름의 [[횟집]]을 운영하며 중앙 정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는, 드라마틱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1년 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사건]]은 [[박근혜 게이트|박근혜-최실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로 기소를 당했던 조응천 의원 본인도 나중에 1,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근혜-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전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반정부 성향이 강해진 인터넷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이러한 조응천의 드립은 다시금 주목받았고, [[주갤]]에서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1&no=4508912|통쾌하고 호감간다는 말들이 나왔다.]] 애초에 더민주에서 이 사람을 영입한 가장 큰 이유가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다는 이유에 [[박근혜-최실 게이트]]의 실상을 수년 전부터 접했던 사람이라는 이유인데, 공직상 기밀 누설 혐의로 형사소추 당하지 않는 선에서 청와대, 검찰의 대응 플랜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분석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어서[* 특히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에 대한 반감이 글에서 드러난다. 아무래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사건 때문이다.]]] 현재 정국에서 관심도가 매우 높은 의원 중 하나.
          * [[박근혜-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운 와중에, 10월 26일 "조응천 의원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던 시절 [[최실]]이 주[[이탈리아]] [[대사]]에 [[통일교]] [[유럽]] 총책이자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S씨를 밀었지만, 조응천 당시 비서관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대사 취임을 무산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 비서관 시절의 경험에 대해서 발설하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저촉될 수 있다"며 사실여부에 대해 함구하는 중이다. ~~사실 논란거리는 아니긴 한데~~
  • 최다빈 . . . . 6회 일치
         | 최고 위 =
         '''최다빈'''([[2000년]] [[1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다섯 번의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 은메달 세 개와 동메달 두 개를 차지했다. 2015-2016 주니어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모두 동메달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시니어 데뷔 무대인 2016 4대륙 선수권에선 8위, 2017년 대회에선 5위, 2018년 대회에선 4위를 차지하며 꾸준히 위를 높혔다. 본격적으로 시니어에 데뷔한 2016-2017 시즌엔 초반 부진을 딛고 2017 [[동계 아시안게임]](일본, 삿포로)에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우승했고, 이어 열린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선 10위(Top10)에 오르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티켓 2장을 확보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김연아]] 이후 역대 최고 성적인 7위에 올랐다.
         이어 [[김나현]]의 부상이 심해져 또 한번 대체 출전하게 된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헬싱키)에선 쇼트에서 클린 연기를 선보여 62.66을 받았고 또 한번 쇼트 개인 최고를 경신했다. 쇼트 11위로 한 위만 끌어올리면 올림픽 티켓 2장을 확보하는 상황에서 프리 클린으로 128.45를 받아 프리 역시 개인 최고를 경신하였으며 종합 191.11을 기록해 종합 점수도 갈아치움과 동시에 [[김연아]] 이후 프리, 종합 점수 최고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했던 종합 위에서 당당히 10위를 차지해 올림픽 여자싱글 티켓 2장을 가져오는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상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8월 1일, 소속사를 통해 쇼트프로그램은 영화 [[에비타]]의 OST <Don't cry for me Argentina>로, 프리스케이팅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으로 선곡했음을 밝혔다. 9월 중 온드레이 네펠라 트로피에 출전할 예정이고, 전후 사정에 따라 다른 한 개의 챌린저 대회도 나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올 시즌 그랑프리 두 개 대회에 초청 받았다. 첫 대회는 2차 <스케이트 캐나다>이며, 두 번째 대회는 4차 <NHK 트로피>이다. 두 대회는 시니어 첫 데뷔 시즌에 나간 적이 있었으며 각각 7위와 9위를 한 경험이 있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6회 일치
          지정한 지역의 차량 유닛을 다른 지역으로 간이동시키는 슈퍼무기. 보병한테 쓰면 즉사한다.
          크로노 기술을 적용한 보병. 이동을 간이동으로 한다. 간이동한 후에는 간이동한 거리만큼 딜레이가 있다. 공격 방식이 특이한데, 적을 죽이거나 파괴하는 방식으로 싸우는게 아니라 적을 시간대에서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싸운다. 지워지고 있는 유닛이나 건물은 그대로 굳어버린다.
          연합군이 사용하는 자원 채취 유닛. 자원을 채취해 광물정제소에 밀어넣는다. 광물정제소로 돌아올 때는 간이동으로 돌아온다. 광물정제소를 건설할 때 하나 주지만 필요하면 군수공장에서 더 생산할 수 있다.
          * 이지스양함
  • 킹덤/505화 . . . . 6회 일치
          * 양단화는 그저 "성벽을 넘어서 성문을 열고 성 안을 도륙낸다"는 정도의 단한 정공법만 구상한다.
          몽념은 2년 쯤 전에 이들이 위나라의 대도시를 정복했던 일을 떠올리지만, 그때의 정확한 정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단히 공격하는 진군이 없다고 믿게 하고 기습을 걸었다는 소문만 전해질 뿐이다. 결국 몽념도 이들의 공성 능력은 완전히 미지수로 치고 비신대의 움직임이 가장 중요할 거라고 점친다.
          * 한편 공성을 맞은 지휘관 이신, [[하료초]], 양단화를 만나고 있다. 양단화는 [[바지오]]와 [[타지후]]를 대동. 하료초는 왕전의 의중이 어떻든 진짜 자기들만으로 열미를 따낼 각오를 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이견은 없다. 하지만 하료초가 이틀안에 공성을 마치자고 하자 양단화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이신과 하료초를 놀라게 한다. 이신은 좋은 책략이라도 있는 거냐고 묻는데 그녀의 대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하다.
          >공성은 단하다.
          하지만 그 단한게 어려운 점. 둘은 양단화가 공성전을 이해 못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단화는 알겠다며 "우리가 성벽을 오를 테니 문이 열리면 비신대가 돌입해라"고 선심쓰듯 말한다. 사실 이들의 백병전 능력은 검증됐지만 공성전 경험에 대해서는 둘 모두 확신이 없었다.
          * 양단화의 연설은 단하고 단호하지만 모든 산민족을 끝없이 고조시켰다. 그녀의 등장 전까진 헤이한 상태로 사다리나 만들고 있던 그들이 갑자기 용맹하고 무자비한 전사로 각성한 것이다. 이들이 사왕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적들은 물론 아군들 조차도 기가 질리게 만든다.
  • 킹덤/518화 . . . . 6회 일치
          * 이목은 산민족군이 가진 높은 잠재력을 경계해 신중할 것을 주문하고 장차 [[수수]]가 도착하면 대장 자리를 이임하라는 것.
          둘째, 곧 [[수수]]가 도착할 테니 대장직을 이임하라는 것이다. 이 지시는 공손룡의 부관들 사이에선 이견이 나오는데, 그가 장군이긴 하지만 내세울법한 전공을 세웠다고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대장직을 내놓게 된 공손룡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수수를 "그 북쪽의 고아"라고 부르는데 무언가 아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셋째, 필요하다면 요양에 "틀어박힌" 주력 부대를 끌어다 쓰라는 것. 이 또한 부관들은 의문을 표시한다. "틀어박혔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지금도 공손룡군은 9만, 양단화군이 5만으로 숫적으로 우세하다. 그런데 증원을 부르라는건 숫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쪽이 불리할 거라 봤다는 것인데. 공손룡은 이목을 대신해 "이목님은 식간에 최를 해방시켰던 산민족 군세의 실제 역량을 가늠하려 하시는 것"이라 설명해 부하들을 납득시킨다.
          공손룡은 수수가 언제 도착하는지를 확인한다. 그는 1천 정예병을 데리고 반나절 안에 도착할 것이다. 공손룡은 이목의 지시를 전부 따르기로 하고 공격 대형으로 전환한 채 새로운 총대장이 오는 즉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라 명령한다.
          이 무모해보이는 진격에 참가한 것은 "인족"과 "웅족" 두 군단. 큰 규모라 할 없었으나 조군 전열은 이들을 조금도 저지하지 못한 채 박살난다.
  • 킹덤/529화 . . . . 6회 일치
          * [[수수]]는 견융족이 시원치 않다면 자신이 양단화를 참할 것이며 이곳 요양과 주해 평원 양쪽에서 압승해 진을 완전히 끝장내려고 한다.
          * 견융왕 [[로조]]는 상황을 아주 쉽게 봤다. 산민족 진영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그의 병사들은 거침없이 그들을 분쇄했다. 견융의 영역을 침범한 벌, 로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조군 지휘관 [[수수]]를 향해 이제부터 산민족군 후미를 쳐서 절반을 몰살시키겠다고 장담했다.
          수수도 같은 의향이었다.
          로조의 예측대로 진행됐다. 양단화는 퇴각하기 위해 산등성이를 따낸게 아니었다. 이곳은 반격의 거점이었다. 양단화는 직접 콘 족의 군기병을 통솔해 산 아래를 향해 일제오사를 명령했다. 궁사들이 한 번에 화살을 다섯 개씩 죄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밑에서 한창 열을 올리던 견융족은 불현듯이 쏟아지는 궁시로 쓸려나갔다. 당황한 견융족 기마대가 고지를 탈환하고자 달려들었지만 이는 기다렸던 바. 양단화는 다시 선두에 서서 이번엔 산 아래로 들이쳐갔다. 한간도 버티지 못하는
          수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로조가 까불지 말라며 양단화는 자신의 먹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수수는 상관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승리. 조군은 요양에서도 이기고 주해평원에서도 이겨야 한다. 자신과 [[이목(킹덤)|이목]]이 모두 이기면 역사는 바뀔 것이다.
  • 토리코/367화 . . . . 6회 일치
          * 지로는 "이게 얼마만이냐"며 반가운듯 다가가지만 식간에 노킹을 건다.
          * 지로는 아카시아에게 딱 하나만 대답해 달라며 "플로제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보인 눈물은, 그때 그 시절 함께했던 간들은 진짜였냐"고 묻는다.
          * 데미지 노킹은 데미지 자체를 없애는게 아니라 몸 어딘가에 환하는 채로 살려두는 것.
          * 수백년에 걸쳐 축적된 데미지 노킹이 일간에 풀린다면 어떻게 될 거 같냐고 하는데...
          * 지구를 몇 번이나 멸망시킬 수준의 데미지가 일간 해방되는 거라 지로도 어찌할 수 없다.
         그 때 그 시절 함께했던 그 간들은 진짜였나? ||
  • 토리코/391화 . . . . 6회 일치
          * 아카시아는 어차피 차지에 시간이 걸리는 기술이라며 코웃음을 치는데 록왕 스카이디어의 백채널로 식간에 차지가 끝난다.
          * 그래도 아카시아에겐 느려터진 거나 다름 없는데, 움직이려던 아카시아가 한간 틈을 보인다.
          * 데로우스는 히 당하지 않고 최강의 송곳니를 아카시아의 목에 꽂는데 성공한다.
          * 그러나 아카시아의 힘을 막을 없어서 그대로 머리를 뜯어먹힌다.
         다른 팔왕들은 변변한 활약도 없이 그대로 리타이어. 사천왕은 그 팔왕 만큼의 기여도 못해보고 식간에 사라졌다. 뭔 일이 생겨도 절대 위험하지 않던 코마츠도 하반신이 사라지는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대로는 사망 확정?
  • 하정우(영화감독) . . . . 6회 일치
         하정우 라이트 팬이 신분을 속이고 친구 대신 다녀온 캠프 인증글이 디시인사이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에 올라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각종 사이트로 배달되며 화제가 된 사건. 하정우가 더 테러 라이브, 군도 촬영 전 팬미팅 성격의 캠프를 주최하였다. 하정우와 정경호를 비롯한 후배들 대거 참여(전날 롤러코스터 크랭크업을 했다고) 피의 선착 댓글을 뚫고 캠프에 당첨된 하정우 팬 80명은 경기도 모처 살얼음이 낀 논두렁 위에서 팀을 나누어 단체 티셔츠를 입은 후 각종 게임을 하였다. 퀴즈 1등 상품은 하정우 그림액자(하정우가 직접 시상). 참가 후기에 따르면 하정우는 동네 형과 싱크로율이 100%라는 이야기가.. 본인이 질식할 만큼 말보로 화이트를 석션했다카더라.. 80명의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털털하게 소맥을 마는데 이 때 머리 크기가 배우치고가 아니라 일반인 치고도 크고 아름다운 사이즈라 카더라. 마지막날 1대1 딥포옹 셀카 촬영 등 지옥의 팬서비스. (하정우에겐 호된 경험이었는지.. 그후 2차 캠프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없는 실정이라고) 이후 하정우 캠프에 대타로 참가한 글쓴이는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마다, 하정우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하정우 앞에서 단체 줄넘기 하던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캠프 이후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썰이 있다.
          * [[LG 트윈스|LG]] 팬이어서 [[두산 베어스|두산]]을 싫어한다는 루머가 있다. 러브픽션 시사회 당시 두산 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했는데 하정우가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 팀'''만 시구할 겁니다." 라고 디스했다 [[카더라]]. 이유인 즉슨 두산과 LG의 오랜 연고지 다툼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당시 [[MBC 청룡|MBC]]가 서울, 두산(당시 [[OB 베어스|OB]])이 대전을 연고지로 했었는데, 두산은 3년 뒤 서울 이전을 조건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터라 1985년부터 연고지를 공유했었다.[* 프로야구 출범 준비 시점 이전에 이미 [[문화방송|MBC]]는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1981년 6월 자체 프로야구단 창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프로야구 창립 계획 준비시점에 MBC가 전북 연고 기업 1안으로 선정되고 두산은 구단주의 연고지가 전북인데도 2안으로 밀려 경남 연고지를 부여받는다. 이에 두산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3년 뒤 [[연고지 이전]]을 약소하는 조건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하게 된 것. [[http://blog.naver.com/soonil39/|출처 : '홍일(서울신문 주간스포츠 기자, 주간야구 창간편집장)의 야구이야기/프로야구 탄생비화']]] 비록 1990년 MBC가 [[LG그룹|럭키금성그룹]]에 구단을 매각했으나, LG 팬들은 원년부터 전북 연고였으므로 진짜 서울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두산 베어스도 원래는 서울로 팀을 하겠다 하고 안 된다니까 3년 뒤에 하겠다라고 했으니까, 실제로는 전북 연고지가 맞다. 어디까지나 진정한 주인이라는 거지 그렇다고 두산 보고 나가라고 하는 LG 팬들이 말하듯이 두산이 진짜 서울 밖으로 나갈 이유는 없는 것.]실제로 청룡의 역사를 계승한 팀이 맞고. 하지만 [[이범수]] 주연의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OB 베어스]]의 외야수 [[김우열]] 역을 맡은 적이 있다(...) --LG 팬의 [[흑역사]]-- 그래서 그런지 출연 내내 못마땅힌 얼굴을 하고 있다.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영화)|아가씨]]에서도 이 먹방 연기는 여전히 탁월했다. 하녀에게 복숭아를 받아서 대충 한입 깨물고는 건성으로 '잘 익은 것 같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가 복숭아를 한 입 깨문 간, 그 과즙이 사방으로 폭발하는데 카메라까지 튈 정도. 그리고 하정우 특유의 먹방으로 복숭아를 너무나도 맛있고 감칠나게 먹어버린다. 이 때문에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아가씨 배우들과 촬영진들을 모조리 폭소하게 만들었다. 하녀 역을 맡은 김태리는 이 때문에 웃겨서 연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스테프의 조언을 듣고 이 연기가 더럽다고 생각하며 감정을 조절했다고.
         || 2014 || [[군도: 민란의 시대]] || 주연 || 돌무치/도치 || 4,775,811 || 손익분기[* 수 국내 관객수만 하면 550만 명이지만,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611449|해외 흥행 등의 성적이 반영되어 약 470만으로 손익분기점이 내려갔다고.]]] ||
         || [[우리 생애 최고의 간]] || 단역 || 맞선남 || || ||
         ||<|2> 2005 ||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 || 주연 || 유태정 || 10,790 || 성공[* 제작비 2,000만원에 수익 7,000만원을 올렸다. [[독립영화]]라서 가능한 수치.] ||
  • 한수연(배우) . . . . 6회 일치
         2018년 8월 14일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된 tvN 예능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여 외증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출신이라고 밝혔다.[* [[문제적 남자]]에서 김오라고 밝혔다.][[http://www.nocutnews.co.kr/news/4681861#csidx7e5eabd14e99dc0bb1abe81b7d22670|기사]]
         || 2008 || MBC 에브리원 || [[별검|조선 과학수사대 별검]] || 유이 || 시즌2 ||
         || 2013 || KBS2 || [[일말의 정]] || 하소연 || ||
         || 2017 || MBC || [[훈장 오남]] || 황세희 || ||
          * [[훈장 오남]]이 [[4월 24일|한수연의 생일]]에 첫방송했다.
  • 한승택 . . . . 6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3라운드]]([[한화 이글스]])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조지훈 (야구 선수)|조지훈]], 2라운드 [[김강래]]에 이어 [[한화 이글스]]의 3라운드(전체 23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스프링캠프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눈에 들어와 좋은 전력으로 평가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3628 김응용 감독의 이례적 칭찬…“한승택, 물건이네”] - 경향신문</ref>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출장하는 등 유망주로 꼽혔지만 시즌 중 왼쪽 무릎 인대 부분 파열상을 당해 1군과 2군을 오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65331 KIA, 이용규 보상선수로 한승택 지명 이유는?] - OSEN</ref> 시즌 중반 이후에는 [[엄태용]] 등에 밀려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고, 데뷔 첫 시즌 후 일찌감치 군 복무를 결정하여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28015 한화 한승택, '포수 양성학교' 경찰청 지원, 제 2의 최재훈 되나?] - 스포츠서울</ref> 2013 시즌 24경기에 출전해 1안타, 0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2016년]]에 합류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401660 'KIA행' 한승택, "2년 뒤 안방 주전 경쟁하겠다"] - 마이데일리</ref> 비슷한 시기에 [[정근우]]도 [[한화 이글스]]에 이적했고 야구규약 163조 '한 구단이 계약서상 동일한 날짜에 2명 이상의 타 구단 선수와 계약하는 경우 보상 선수를 선택하는 구단의 서는 직전 시즌 성적의 역으로 하고, 계약 선위 구단의 보상이 종료된 후 후위 구단이 보상을 개시한다'는 내용에 따라 8위에 그친 [[KIA 타이거즈]]가 6위를 기록한 [[SK 와이번스]]보다 먼저 그를 FA 보상 선수로 지명할 수 있었다. [[SK 와이번스]]에서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으나, [[KIA 타이거즈]]가 먼저 지명하게 되어 결국 [[정근우]]의 보상 선수를 지명하지 못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38&article_id=0002447722 한승택으로 재조명 되는 한화 안방 싸움] - 한국일보</ref>
  • 홍인한 . . . . 6회 일치
         음서로 관직에 올라 [[통덕랑]]이 되었다. 통덕랑으로 재직 중 [[1753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조선의 대표적 명문 가문인 [[풍산 홍씨]] 가문의 일원이며, 혜경궁 홍씨의 친정 숙부라는 점도 작용해 [[영조]]의 신임을 받으며 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53년 가주서와 [[정언]]을 지내고 1754년 [[교리]]로 있을 때 [[조영]](趙榮順)을 변호하려다 파직되었다.
         그 후 승지, 한성부우윤, 대사헌 등을 지내고, 1762년 호남안집사(湖南安集使)로 무하고 돌아왔다. 호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자헌대부로 승진, 공조판서와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6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774년]] [[의정부]][[우의정]]으로 특진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아들인 동지돈령부사 [[홍낙윤]](洪樂倫)이 아버지 홍인한의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거절당하였다. [[1809년]] [[1월]]에는 [[조선 조|조]]를 찾아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들어 변호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1832년]]에는 손자 홍백영(洪百榮)이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격쟁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이때 홍백영을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조가 무마시켰다.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5회 일치
         2016시즌 [[K리그]]를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위산정방식의 변경을 알리면서 발생한 논란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은 여타 스포츠 종목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던 대회운영방식과 동일하였기에 딱히 큰 문제는 되지 않았으나[* 가령 전/후반기 통합우승결정전이나 플레이오프는 미국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에서도 그대로 적용하여 행하고 있을 정도.] 문제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행하고 있지 않는 '''다득점을 승점 다음가는 위결정 요인'''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2015시즌까지 K리그는 클래식과 챌린지를 막론하고 다음과 같은 위결정방식을 따랐다.
         이는 승점이 같을 경우에는 골득실 차이를 통해 동점간 위를 결정하며, 이것마저 똑같을 경우에는 다득점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데 2016시즌부터는 다음과 같이 변경된다.
         K리그 역사를 살펴보면 승점이 같아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례가 매우 드물 뿐더러 결국에는 매 경기 승점 3점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비를 신경쓰지 않고 경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K리그 말고 유럽의 리그만 봐도 리그 1위팀은 승점을 잘 쌓기 위해 공격도 공격이지만 승리를 굳히기 위해 수비를 신경쓰고, 이에 따라 대량실점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무의미한 조항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만약 이로 인해 위가 갈리더라도 스플릿 라운드의 A/B여부를 가른다거나 승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큼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
  • MC메타 . . . . 5회 일치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라이브에서 박자를 약간씩 저는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2집 이후 곡들중엔 목에 힘주고 숨쉴 틈도 없이 몇마디를 불러야 하는 곡들이 좀 있어서 그런 듯 하다(특히, 2집 최고의 인기곡이던 [[영위]]가 그렇다). 힘빼고 부르는 곡들은 굉장히 라이브를 잘한다.
         2016년 11월 17일, 최실-박근혜 게이트와 박근혜정권을 비판하는 벙개곡을 냈다.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7340&m=view&s=news|MC 메타 - 퇴진의 영위와 도둑놈패]][* 영위와 '불한당가' mc 메타 파트의 비트를 썼다.]
         명곡으론 가리온 1집의 '나이테'나 엄청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가리온 2집의 '12월 16일', [[영위]] 등이 있다. 명가사에는 '소문의 거리'에서 '그저 우리는 우리를 부리는 무리라 불리는 돌부리를 뚫을 뿌리를 내리는 것 뿐임을' 라인. [[에픽하이]] 4집 참여곡 Still Life에서 '너는 날 수 없는 것이 아닌 날지 않는 것뿐/ 너가 날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오직 너뿐' 수많은 [[레퍼런스]]를 낳은 '옛이야기'에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 리듬' 등이 있다.
  • USS 피닉스 (CL-46) . . . . 5회 일치
         USS Phoenix. [[제2차 세계 대전]]과 [[포클랜드 전쟁]]에서 활동했던 [[브루클린급 경양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해군 함정으로 활동하였으며 전후 [[아르헨티나]]에 넘겨져 ARA 헤네랄 벨그라노(ARA General Belgrano)라는 이름으로 취역하였다. 1982년 5월 2일, 영국 원자력 잠수함 [[HMS 컨쿼러]]의 뇌격으로 격침. 323명의 사망자를 내며 가라앉았다.
         취역 이후 시운전 삼아 중남미 회공연을 돈 후 1939년 1월에 필라델피아에 도착, 이후 서해안의 진주만에 배치된다.
         1943년 7월,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을 [[카사블랑카]]까지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한 피닉스는 다시 태평양 전역으로 돌아온다. 같은 해 12월에는 글로스터 곶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으며, 1944년 1월에는 [[뉴기니]] 섬의 해안시설을 포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2월에는 [[로스니그로스]] 섬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3월에는 다른 연합군 양함과 함께 일본군의 해안 포대를 깨부쉈다. 4월 22일에는 홀란디아[* 現 [[자야푸라]].]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그로부터 1주일 후에는 근처 지역의 일본군 비행장을 포격, 연합군을 위협할 수 없게 하였다. 5월에는 또다른 상륙작전들을 지원하여 일본군의 초소를 초토화시켰다. 6월에는 해당 지역에 증원군을 수송하던 일본군 구축함들을 발견, 쫓아내었다. 7월에는 Numfoor[* Neumfoor라고 읽기도 하는 듯. 갓-구글님께서 한국어 표기를 말씀하시지 않으신다.]의 해안을 포격했다. 9월에는 말루쿠 제도의 [[모로타이]] 섬 상륙작전을 지원하였다.
         영국의 ~~찌라시~~황색 언론 [[더 선]]은 헤네랄 벨그라노의 피격 사실을 전할때 1면 헤드라인에 "'''잡았다!''': 우리 친구들이 포함을 격침시키고 양함을 구멍냄"[* GOTCHA!: Our lads sink gunboat and hole cruiser]라고 쓰는 패기를 보였다. 이외에도 더 선은 포클랜드 전쟁 동안 "'''뒈져라 군사정부놈들'''"[* STICK IT UP YOUR JUNTA] 등의 부적절한 헤드라인을 내걸기도 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5040032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5-04&officeId=00032&pageNo=1&printNo=11260&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경향신문 - 피격 아르헨양함 침몰 승무원 오백여명 사망(한국어)]
  • 권희동 . . . . 5회 일치
         대학 4년 동안 타율은 0.292로 3할이 안 되었지만 출루율 0.411, 장타율 0.624에 8홈런 58타점을 기록한 슬러거 타자다. 다만,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명번이 낮은 것은 타격에 비해 처지는 외야 수비 능력때문이다. 원래 경주고 시절까지 3루수였다가 대학 진학 후에 외야로 전향한 터라 수비가 많이 미숙했다.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 팀 [[NC 다이노스]]에 9라운드 전체 86위로 입단하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13|2012년 인터뷰]]][* 여기에 썰이 하나 있는데 권희동이 그날 당시 지명이 안 될 줄 알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 잤다는(.....)썰이 있다.] NC에서 2군 시절 모교인 경남대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박으뜸|찍은 선수 2명 중 하나]]이다. 사실 권희동의 경우 스카우터 사이에선 타격은 좋으나 수비력은 물음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포의 1할 타자, SK만 만나면 수비요정~~
         팀 내에 똑딱이 좌타자는 많고 우타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이호준]]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입단하고 나서 바로 팀의 전지훈련에 합류해서 훈련을 뛰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거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9회말 동점 솔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고, WBC 대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타도 어느새 5번까지 상승했다. 더불어 원래 김경문 감독은 1루수인 [[조영훈]], [[조평호]]를 번갈아 쓰기 위해 둘 중 한명은 좌익수로 출장시킬 생각도 있었지만 권희동이 활약하자 좌익수를 권희동으로 박았다.
         이런 활약 덕분에 시즌 첫 홈 개막전에도 선발 출전했다. 이날 안타는 기록 못 했지만 볼넷 2개를 얻어 출루. 이후에도 꾸준히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출장을 하고 있다. 타격도 좋고 선구안도 괜찮은 편으로 은근히 볼넷도 얻어낸다. 선발 야수 라인업 중 [[노진혁]]과 더불어 둘 뿐인 수 신인. [[박정준]]과 번갈아 플래툰으로 출전하고 있다.
          * 본인의 응원가를 매우 싫어했다. [[http://youtu.be/ofid9L1pI6k|이게 충격과 공포의 권희동 응원가]].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장했지만 2경기 동안 안타 하나 치지 못했다. 그런데 본인 부탁으로 응원가를 끄고 나서는 2루타 폭발!! 참고로 이 안타는 NC의 수 신인이 친 첫 안타다. 이후 다른 응원가로 바꿨으나 인기가 워낙 좋아서 결국 원래 응원가를 쓰게 되었다. 급기야 해설자들도 따라할 정도.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그러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2017년 들어서 쓰지 않는다]]. 현재는 미국으로 떠난 [[에릭 테임즈]]의 응원가를 받아 쓰고 있다.
  • 김국진(MC) . . . . 5회 일치
         ~~개그맨 부문 1위와 2위의 득표율 차이를 보라~~ ~~다른 항목의 1위와 그 아래 위와의 격차가 많이 안나는 상황에서 독보적인 1위를 한것만 보더라도....~~ ~~솔직히 은퇴 후에, 그것도 H.O.T를 내려앉히고 1위를 찍고 있는 서태지가 더 대단한데?~~ ~~근데 배우랑 탤런트 차이가 뭐지...[* 90년 대까지만 하더라도 배우는 충무로에서 주로 활동하는 영화 출연 연기자, 탤런트는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로 구분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영화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며, 현재는 배우와 탤런트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인생 망가지는 건 정말 식간이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 뭘 하면 그 위치에서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가에 경악하게 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방송 복귀 초기의 모습인데,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도, 어느정도 안정된 현재에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이 기간중에 [[범죄]]를 저질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어, 재기의 기회까지 박탈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도박질하는 유명 연예인보다]] [[자본주의의 돼지|굶주린 무명 연예인이 낫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김국진이 재기 직전 김국진의 지인들이 혼자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를 위해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김국진과 생면부지였던 배우 박정수와 가수 [[은지원]]이 찾아가 셋이 서로 친해지는 내용이였다. 당시 김국진은 전보다 더 수척해 있었고 집에 혼자 있으면 주로 뭐하고 계시냐는 질문에 '소파 구석에 들어가 쭈그려 앉아있는다' 고 안습한 대답을 했다.] 게다가 김국진은 전술했듯 워낙 사람이 좋고 주변인들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연예계 동료나 그당시 무명이었던 희극인이나 예능인들을 많이 도와줬고, 그렇게 쌓인 인복이 후일 복귀할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회가 갈수록 조금씩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레전드 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자신감을 얻어 라디오 스타 MC로써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체제에서는 조용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라디오 스타가 특정 매니아 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위기탈출 넘버원]][* 2010년 5월 10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고정 MC로 출연.] 등에도 출연했다. 이와 동시에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유일하게 견제하는 역할로 나름의 영역을 보여주며 활약을 선보였고, 공중파 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MC를 하는 등 단한 재기를 넘어서 제 8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2016년 3월 22일 [[tvN]]에서 첫 방송을 한 [[집밥 백선생]] 시즌2에 출연하게 되었다. 요리실력은 그냥 없다고 보는게 맞을 정도(...). 팔인 김국진의 어머니가 '내가 너 이렇게 밥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얘기를 한게 출연 계기라고 한다.[* [[집밥 백선생]] 시즌2 첫 방송에서 김국진이 말하기를 김국진의 어머니가 얼마전 큰 수술을 하셔서 언제나 차려주시던 밥이 없었고 미안하다라는 메모가 남겨져있었다고...] 방송에선 백주부가 가르쳐주는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선후배간의 강압적인 악습[* 알다시피 개그/코미디계는 선후배 관계가 [[군대]] 삐까치게 엄격하다.]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또 한 일화로는 [[커피]] 심부름하러 온 [[개그우먼]] 후배 [[김숙]]이 뒤에 김국진이 있던 것을 모르고 오랫동안 [[자판기]]를 혼자 사용하자 그저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자기 서를 계속해서 기다렸다고 한다. 뒤늦게 자기 뒤에 김국진~~대선배님~~이 있자 당황한 김숙이 미리 뽑은 커피를 건네자 "음~ 나는 후배들에게 커피 심부름 안 시켜"하며 먼저 뽑아야 할만큼 뽑으라며 계속 기다렸다고... 결국 자기 커피를 직접 뽑아서 갔다고 한다. 이 외에도 김숙이 [[신인]] 시절 동기들과 함께 김국진과 같은 지방 행사를 갔던 시절 김국진은 김숙에게 “돈 받고 행사 오느냐”고 물었고, 김숙이 자기들은 신인이라서 무대 경험을 쌓으라해서 온거라며 행사비를 못 받았다고 말하자 “그런 게 어디 있어”라며 “개그맨의 자긍심을 가져라. 똑같이 나눠 써”라며 자신의 행사비 전부를 후배들에게 주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김국진 [[클래스]]다! --
  • 김규철(배우) . . . . 5회 일치
         데뷔 초에는 일일연속극 《[[당신이 그리워질 때]]》가 인기를 끌면서 한 인상의 소시민 이미지였다. 그런데 의외로 이 시기에 왕 역할도 많이 맡았다. 그러다가 서궁에서 [[광해군]] 역[* 그 [[이영애]]가 그를 모시는 상궁 [[김개시]] 역이었다.]을 맡으면서 [[악역]] 연기를 개척하여[[http://blutom.tistory.com/536|#]] 선악을 오가는 수많은 배역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서궁은 영 망했다-- [[드라마]] [[소설 목민심서(드라마)|소설 목민심서]]의 고뇌하는 지식인이자 외곬수 개혁가인 [[정약전]] 역을 맡기도 했다.
         극중 배역은 대체로 두 부류로 갈린다. 선역일 경우 평범한 소시민 샐러리맨이나 둥이 부모역, 악역일 경우는 더러운 짓을 도맡아 하는 잔머리 모사꾼 등. 공통점이 있다면 대체로 '''찌질하거나 --소심하다는 것--.''' 겉으로 많이 오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별로 튀진 않지만, 연기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으로 자기 배역에 잘 녹아든다. 특히 2005년 미니시리즈 [[부활(드라마)|부활]] 의 최동찬과 06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의 신홍은 훌륭한 악역 연기로 호평받았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중요시하는 지금에 와서 다시보면 과한 표정연기가 어색해보인다.)
         [[불멸의 이신]]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역에 내정되어 있었으나 악역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때문에 사양하고 이신의 친구인 [[임천수]][* 참고로 단역이지만 임천수의 아버지 역할은 배우 [[정진]]이 맡았고, 이 분은 [[조선왕조 500년]]에서 히데요시를 맡기도 했다.] 역을 맡았으나... 임천수가 [[흑화|악역으로 훌륭히 각성하여]] 돈이라면 매국도 서슴지 않은 캐릭터가 되었다. --속았다!-- 그 후에도 [[바람의 나라(드라마)|바람의 나라]], [[프레지던트(드라마)|프레지던트]] 등에서 지략이 뛰어난 악역을 연기하여 호평받았다.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의 [[노갑수]] 역시 전형적인 털리는 악역(...) --체념하고 악역에 투신,-- 마침내 2015년에는 징비록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으로 캐스팅 확정! ~~악역을 넘어서 원숭이까지...~~
          * [[2004년]] KBS1 [[불멸의 이신]] - 임천수 : 상인으로 극 중 가공인물이다([[KBS 대하드라마]] 2연속 출연).
  • 김상중(배우) . . . . 5회 일치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으며, 1990년 [[연극]] '아이 러브 빵'으로 데뷔했다. <돈아 돈아 돈아>, <세 자매> 등의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94년 특채로 MBC에 발탁, 드라마 <님이여>에 출연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영한 광복 5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백범 [[김구]]에서 '''청년 [[김구]] 역'''으로 출연하였다.[* 중노년 김구 역할은 배우 조상건으로 교체되었으며 최후의 암살 간까지 맡았다. 후에 그는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독립군 역으로 나왔는데 동료들(김인권, 이범수, 정준호)과 식사하는중 그 식당에 김구가 있다는걸 유일하게 눈치채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배우개그일지도...]
          * 2012년 8월 19일 런닝맨에 [[장신영]]과 함께 출연했다. 이 때 중고차 시장에서 [[이광수(배우)|이광수]]를 낚아채는데 이광수보다 작은 키임에도 몸을 날려 식간에 멋지게 압도했다.
          * 손해보험 광고출연을 위해 연예인 최초로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는 보험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이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하지 않으면 보험광고에 출연하더라도 보험상품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할 수 없고 단히 추천만 가능하도록 금융감독원에서 규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2889599|관련 기사]][* 2013년 기준으로 최고령 연예인 보험설계사는 [[이재]], 마찬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2731646|기사]]]
          * [[취미]]는 온로드 바이크 운전인데,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바이크 마니아로 통한다. 젊은 시절엔 레플리카 바이크를 다수 [[소유]]했을 만큼 푹 빠졌고, [[현재]]는 방송 활동 등의 이유 덕에 자주 타지는 못하지만 꽤나 즐긴다고 한다. 실제로도 [[영화]] [[투사부일체]]에서도 [[스턴트맨]]도 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바이크]]를 몰며 촬영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2014년 중부터 [[XTM]]에서 론칭한 바이크 관련 프로그램인 [[슈퍼바이크]]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어쩌다 어른]]에서 밝힌 일화로, 바이크를 타던 도중 불량 고교생으로 보이는 무리를 만나서 헬멧도 안쓰고 위험하다며 훈계했는데, 하필 그 때 조작 실수로 바이크의 시동을 꺼트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고.
  • 김숙자 (1389년) . . . . 5회 일치
         [[1440년]](세종 22) [[선교랑]], 1441년(세종 23) [[1월]] 김해교수관 노호(盧浩)와 보직상환 변경되어 [[김해]]로 내려갔다. 이듬해 2월 남부령(南部令)이 되었다가 특별히 동반직을 받아 승의교위(承義校尉)에 제수되고,중군섭부사직 겸 성균관주부(中軍攝副司直兼成均注簿),남학교수관(南學校授官)이 되었다가 그해 11월 승훈랑(承訓郞)이 되어 고령현감(高靈縣監)으로 나갔다. [[1445년]] [[2월]] 승의랑이 되었다가, 지방의 수령들의 직급을 1계급씩 강하한다는 명에 따라 강임되었다. [[1447년]](세종 29) 10월 다시 승의랑으로 환급되고, 11월에 [[성균관]]주부 겸 남학교수관, [[1448년]] [[7월]] [[교서관]]교리가 되었다가 한달만에 전제경차관(田制敬差官)에 임명되어 [[전라도]] [[남원]], [[옥과]], [[장흥]], [[천]], [[장흥]] 등을 시하고 그해 [[10월]]에 봉훈랑으로 승진한 뒤, 12월에 도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ginyon"/> [[1450년]](문종 즉위) [[8월 13일]] 지풍기군사(知豊基郡事)로 발령, 부임하였다.
         가르칠 때에는 처음에 『동몽수지(童蒙須知)』 유학자설정속편(幼學子說正俗篇)을 모두 암송시킨 다음 『소학』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효경]]』·『[[사서오경]]』·『[[자치통감]]』 및 제자백가의 을 밟았다.『소학』을 앞세우면서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자세는 [[고려]]의 유학자 [[길재]]에게서 물려받았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김숙자는 스승 길재의 가르침에 확신했고,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의 이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지켰다. 어릴 때부터 책 목록을 정해 놓고, 그 서대로 읽는 습관을 따랐다고 한다. ‘소학’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실천 강조 학풍은 김숙자-[[김종직]]을 거쳐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될 정도로 큰 설득력을 발휘했다. 뒤에 영남사림파의 큰 학자로 드러난 [[김굉필]]은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지칭하면서 30세까지 ‘소학’에만 천착했을 정도였다. [[길재]]에서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에 이르는 [[정주학]](程朱學)의 학통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 「한국의 명문 종가」, 사림의 학맥형성과 그 특성, 이형 저, 서울대학교출판부(2000년, 17~33p)
  • 김현정 (1979년) . . . . 5회 일치
         |align="center"| 이 역
         |align="center"| [[내 이름은 김삼]]
         * 2006-2008년 나비 /진아, 하나꼬 역/ 회 공연/(김정미 작, 방은미 연출)
         * 2008년 나비 /캐나다 토론토, 밴쿠버 회 공연
         :장소 : 중국 [[베이징]] 주중한국문화원 / 파주 민족화해센터 례자 갤러리
  • 김홍미 . . . . 5회 일치
         [[1597년]](선조 30년)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승진하였다. [[1597년]] [[승정원]][[동부승지]]로 있을 때, [[삼도수군통제사]] [[이신]](李舜臣)을 탄핵하는데 참여하여 [[이신]]을 파면하게 하고, [[원균]](元均)을 통제사로 삼게 하는 데 가담하였다. 한편 선조는 그에게 명을 내려 [[이신]]을 잡아오도록 지시했다. 이때 [[이신]]이 [[원균]]의 성인인 아들을 어린아들인데 없는 공을 만들었다는 거짓 장계를 내린 것을 선조가 그에게 지적하기도 했다.
         [[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성리학]][[분류:조선의 작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직한 사람]][[분류:조선 선조]][[분류:임진왜란 관련자]]
  • 김희철(1983) . . . . 5회 일치
          * tvN "[[SNL 코리아]]"[* 희철은 스케줄상 3분 시리즈만 출연했다. 그러나 역대급 18금 연기와 신들린 애드립으로 짧고 굵은 레전드 영상을 남기고 갔다는 평이다. 참고로 네이버 TV 35위 진입으로 역주행해 2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날 방송된 SNL 코리아 영상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와 조횟수, 좋아요 수를 기록했다.] (2017)
         싸이월드에서 서버를 따로 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본인도 자주 사용했지만 투데이수도 엄청나다. 근데 트위터가 생긴 이후로는 거의 버려두고 있는 중. 트위터 팔로워 수 역시 국내에서 TOP10안에 들 정도. 2011년 11월 기준으로 국내 팔로워 위 TOP10에서 슈주 멤버만 6명이다. 슈주 내에서 위는 계속 바뀌는 편. 페이스북도 있었으나 삭제되었는 데, 후에 해킹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 다른 [[가수]]들의 춤을 많이 따라한다. [[원더걸스]]가 '[[Tell Me]]'로 활동하던 시절에 예능에서 Tell Me 춤을 따라 추거나 샤이니 태민의 독무를 따라 추기도 했다. [[아는 형님]] 항목에도 나오지만 춤을 단히 따라 하는 수준을 넘어 거의 꿰고 있는 수준이다. 걸그룹이 나와 대표곡 춤을 추면 대부분 따라 출 수 있고, 포인트까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 라디오 DJ 경력이 있어서 말 빨이 좋다. 2014년 만우절 날 [[려욱]] 대신 [[슈키라]] 1부를 진행하고 2부를 함께하는데 [[김영희(개그우먼)|김영희]]가 '김희철만 이기면 라디오 끝판왕인거야'와 같은 말을 했다. 발력도 좋은 편이라 도박 크리로 하차한 신정환 대신 라디오 스타의 MC 자리를 꿰찼다. 연말 시상식 MC로도 자주 활약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5회 일치
          오버홀은 화제를 바꿔 둘이 신인 히어로냐고 묻는다. 밀리오는 그쯤에서 얼버무리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오버홀이 한간 정색한다.
          * 미도리야도 그의 의도를 눈치챈다. 물론 밀리오의 의향에 따를 생각이다. 그리고 그건 그에게 안겨있는 소녀 에리에게도 전달된다. 에리는 미도리야를 붙잡으며 "가지 마"라고 작게 속삭인다. 그 간 미도리야의 눈빛이 달라진다.
          * 혼낸 직후라서도, 오버홀은 틈도 주지않고 곧바로 대답한다. 밀리오는 다시 한 번 미도리야에게 쓸데없이 떠보려 하지 말라고 작게 말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버홀이 "놀다가 다쳤다"고 말한 붕대에 대해서도 "놀다가 다친 수준이 아니다"고 걸고 넘어진다. 오버홀은 그것도 자주 넘어진다고 다시 억지를 쓴다. 미도리야는 히 소녀를 보내줄 생각이 사라졌다. 에리는 분명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오버홀이 그렇게 말하며 왼손의 장갑을 벗으려는 간, 알 수 없는 소름이 일행을 꿰뚫는다. 에리도, 미도리야도, 밀리오도 변화된 공기를 감지한다. 눈빛이 변한 오버홀이 막 돌아서려는 찰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5회 일치
          * 단한 사격으론 밀리오를 못 맞춘다는 걸 아는 네모토는 일부러 에리에게 총을 쏴서 밀리오가 대신 맞도록 유도한다.
          지금도, 우물쭈물 거릴 시간은 없었다. 한 발을 투자해서 겨우 다섯 발 나온 시제품이라도 아끼지 말아야 할 간이었다.
          * [[네모토 신]]이 아직 싸울 수 있다. 시야에 움직이는 네모토가 나타난 간 오버홀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토오가타 밀리오]]의 공세를 가까스로 견디며 "개성파괴탄"을 네모토에게 던졌다.
          그의 손이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리와 눈이 마주친 간 밀리오는 힘껏 미소지었다.
          * 오버홀은 비참하게 무릎 꿇은 밀리오를 볼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든 간 날아온 쿠로노가 시야를 가렸다. 밀리오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전황은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그는 쿠로노를 걷어차서 오버홀에게 날리고 동시에 빠르게 접근했다. 쿠로노의 몸에 떠밀리면서 오버홀은 방어할 기회를 놓쳤다. 묵직한 주먹이 몸통으로 들어왔다. 오버홀은 오른팔을 갖다대서 가까스로 클린 히트를 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몸이 후둘거리는 충격이었다. 그러고도 밀리오가 멈출 기색은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잘 보고 예측하는 것. 그리고 대응하는 것. 언제나 해오던 일이었다. 아무 것도 바뀐 건 없었다.
  • 네드 켈리 . . . . 5회 일치
         1878년 4월, 피츠패트릭 경(Constable Fitzpatrick)이라는 [[경찰]]이 켈리 가족에게 찾아온다. 피츠패트릭은 네드의 동생인 댄 켈리(Dan Kelly)를 말도둑 혐의로 체포하려고 했다. 피츠패트릭은 총에 맞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후 피츠패트릭의 주장이 있는걸로 보아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켈리 가족의 어머니인 엘렌 켈리(Ellen Kelly)는 이 일을 사주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네드와 댄은 도주했다. 훗날 네드의 친구인 조 번(Joe Byrne)과 댄의 친구인 스티브 하트(Steve Hart)가 합류, 켈리 갱(Kelly Gang)이라고 불리는 범죄 조직을 만들었다.
         1887년 10월, 경찰은 켈리 갱을 체포하기 위해 무장한 경찰관 네명을 보냈다. 하지만 캘리 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경찰 팀이 야영지를 차린 스트링이바크 크리크(Stringybark Creek)를 습격했다. 이들은 경찰관들을 습격해 세명[* 로니건 경(Constable Lonigan), 스캔론 경(Constable Scanlon), 케네디 경사(Sergeant Kennedy).]을 살해하고 한명[* 매킨타이어 경(Constabel McIntyre).]을 붙잡았다. 이후 켈리 갱은 호주의 [[은행강도|은행을 털었다]]. 1889년 2월에 네드 켈리에게 걸린 현상금은 8,000 파운드로 올라갔지만 켈리 갱은 잡히지 않았다. 켈리 갱이 최후를 맞은건 1880년 6월이 되어서였다.
         네드 켈리는 스트링이바크 크리크에서 로니건 경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80년 11월 11일 아침, 멜버른 교도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유언은 "사는게 다 그런거지,"[* Such is life.]로 알려져 있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5회 일치
         코르푸를 얻어낸 기스카르가 발칸침략의 첫 교두보로 삼은 곳은 일리리아[* 지금의 알바니아]의 중심지이자 주요항구였던 디라키온[* 현재의 두러스]였다. 이곳을 통해 에그나티아 가도를 타고 동쪽으로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지나면 곧바로 콘스탄티노플로 갈 수 있기에, 이곳을 차지하는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냈어야하는 기스카르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약간의 불운이 있었는데, 북쪽으로 가서 아크로케라우니아 곶을 도는 간 갑작스러운 폭풍으로 인해 일부함선과 거기타고 있던 병력이 물고기밥이 되버리고, 간신히 그곳연해에 병력을 상륙시키고 나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두고볼 수 없었던 베네치아 도제가 직접 함대를 이끌고 기스카르의 해군을 공격한것이다. 노르만 해군은 대응하려 했지만 해전경험에서 베네치아 해군에 비해 한참 밀린데다가 '그리스의 불'까지 사용하던 베네치아 해군을 이길 수는 없었고 결국 베네치아 해군은 디라키온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디라키온 함락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꺾일줄을 몰랐다. 그의 군세는 식간에 일리리아 전역을 장악했고, 카스토리아를 지키던 수비대는 기스카르에게 항복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마 비잔티움의 멸망은 약 400년정도 앞당겨질 상황이었지만...''' 그때 ''' 이탈리아에서 사절이 왔다.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캄파니아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사절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서신을 가져왔는데, 주교서임권 문제로 그와 다투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공성중이니 한시바삐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한편 기스카르는 즉각 이탈리아로 돌아와 1083년 한여름 안에 아벨라르와 그의 형제인 에르망의 난을 진압하고, 산탄젤로성에서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교황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군대를 모집했고, 이듬해 초여름에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는 기스카르와 직접 싸움을 걸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로마성문으로 들이닥치기 사흘전에 군대의 대부분을 거느리고 롬바르디아로 숨어버린것이다. 한편, 기스카르는 5월 27일 밤에 병력을 거느리고 조용히 도시의 북쪽으로 돌아가,섀벽에 공격을 개시했고, 식간에 돌격대의 선봉이 플라미니우스 성문을 뜷고 도시로 진입했다. 로마 시민들은 노르만군에게게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마르티우스 광장 전역이 불타는 지역으로 변했다. 이후 노르만 병사들은 로마를 약탈하고, 말그대로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한때 군중들이 기스카르를 포위해 그대로 끔살시킬뻔하기까지 했다(...) ~~아깝게도~~ 그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차남인 로제르 보르사가 병력 1천명을 이끌고 그를 구원해 겨우 목숨을 건진 기스카르는 노르만군들에게 도시를 모조리 불태우라고 명령한뒤, 교황을 데리고 남이탈리아로 돌아가 비잔티움에 대한 후속 원정을 준비한다.[* 참고로 이때 기스카르의 나이는 예 여덟이었다!! 그것도 서양식이니 한국식이면 칠(....) 대단한 집념이라 할 수 밖에 없다.]
  • 마니교 . . . . 5회 일치
         마니는 사푸르 1세로부터 제국 내에서 포교 허가를 얻게 된다. 마니교 문헌에서는 사푸르 1세로부터 3번에 걸친 초빙을 받고, 황제는 마니의 [[후광]]에 압도되어 존경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병든 딸이 있고 마니가 의술로 완쾌시켰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다만 시대배경으로 보면 사푸르 1세는 이 무렵 여러 종교가 번창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종교 관용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보이며, 니시비스의 유대교 공동체의 지도자 사무엘을 불러들여 알현을 허락했다는 일화도 있는 것으로 보아 마니는 단히 포교 허가를 얻었을 뿐. 특권적인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사푸르 1세는 조로아스터 교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이고.
         [[보고밀파]], [[카타리파]] 같은, 이원론적 성향을 가진 이단 종파 역시 마니교의 재래로 보고 탄압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종파가 실제로 마니교의 계승인지, 단히 공통점이 있을 뿐인지는 불확실하다.
         1351년, 원나라에 대항하는 [[백련교]]의 반란이 일어난다. 백련교의 지도자 한산동(韓山童)은 자신을 「명왕(明王)」으로 칭하고, 아들 한림아(韓林兒)는「소명왕(小明王)」을 칭했다. 이들이 [[홍건적]]을 일으키고, 홍건적 출신의 [[주원장]]은 나라를 세워 국호를 명(明)으로 하였다. 과거에는 이것이 명교의 영향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백련교와 명교 사이에 교리상의 공통점이 보이지 않아, 명(明)이라는 글자를 내세운건 단히 우연의 일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단지 명칭상으로만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경주궁은 수한 마니교 사원은 아니며 도교와 불교와 습합화된 사원인데, 마니광불 이외에도 도교의 신인 십팔진인(十八眞人)과 본래 마을의 성황신에 해당하는 경주공(境主公), 불교의 관음보살과 도교의 복덕정신(福德正神) 등도 함께 모셔지고 있어, 총 7명의 신을 모시며 그 가운데 셋은 마니교, 셋은 도교, 하나는 불교라는 복잡한 구성이 되어 있다. 이는 과거에 명사를 모시는 사원과 영상을 모시는 사원이 별도로 있었으나, 명나라 시기에 폐쇄당하여 여러 신들을 경주궁에 옮겨서 합사한 것이 계기가 된 듯 하다.
         마니교의 방대한 가르침과 복잡한 우주론이 극도로 단, 간략화 되었으며 다른 종교들과 뒤섞였으나, 핵심적인 교리(이원론적 세계관, 빛과 어둠의 싸움, 채식주의 등)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5회 일치
         2호선으로 간 맥스는 멈춰있던 교통경찰용 차량을 운전, 공사로 인해 설치된 나무 방벽을 들이받아 부다. 방벽 너머에는 괴한들이 있었다. 맥스는 그들을 해치운 후 선로 옆에 있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정문이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매표소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살인과 폭풍의 세대"라는 책이 놓여져 있었다. 바이킹 세계의 종말과 지구가 얼음으로 뒤덮인 끔찍한 겨울, 비도적적인 범죄가 만연하며 모든 인간성이 사라진 간을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맥스는 책 표지의 설명을 보고나서 라그나록이 어떤 곳이며, 그 소유자들이 어떤 작자들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절한 맥스는 가족들이 몰살당한 날의 악몽을 꾼다. 언제나 그렇듯이. 맥스는 뉴저지에 있던 집에 들어왔다. 딸의 울음과 아내의 애원이 들리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복잡한 미로로 되어있었다. 맥스가 2층으로 올라가 아기 방 문을 열었을 때, 오르골 소리와 울음 소리만 들릴 뿐 아기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뻗어나간 핏줄기가 있을 뿐이었다. 맥스는 핏줄기를 타고 아기한테 갔을때, 아기는 핏투성이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식간에 아기는 사라지고, 옆에 놓인 알파벳 블록 장난감이 스스로 움직여 D3AD(죽었음)라는 글자를 만들어낸다. 맥스는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한다. 침실 문을 열고 권총을 쏜다.
         간, 맥스는 정신을 차린다. 그는 의자에 묶여있었다.
         그 간, 혼의 부하들이 이너 서클 멤버들이 있던 방을 습격한다. 이너 서클 멤버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와중에 맥스는 창문을 깨고 탈출한다. 맥스는 혼이 보낸 암살자들을 피해 아스가르드 빌딩에서 탈출하기로 한다.
  • 박노식(1930) . . . . 5회 일치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본관 [[밀양시|밀양]](密陽).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이냐시오이다. 1930년, [[전라남도]] [[여수시]] 에서 태어났으며[* 그런데 정작 [[응답하라 1994]]에서 [[천시]] 출신인 [[해태(응답하라 1994)|해태]]가 여수 아줌마와 고향 대결을 할 때 박노식을 천 사람이라고 내세운다. --해태 [[의문의 1패]].--],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여수 수산중학교]]를 거쳐 천사범학교[* 1946년 11월에 설립되었다가 1962년 2월에 폐교되었는데, 뒤이어 천실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67년에 지금의 천공업고등학교로 재개편되었다.] 체육과를 졸업했다. 1950년에 지금의 여수 소라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도사단]] 선무공작대에 입대·종군했다.
  • 배상면 . . . . 5회 일치
         '''배상면'''(裵商冕, [[1924년]] [[9월 22일]] ~ [[2013년]] [[6월 7일]])은 [[대한민국]]의 기업가이다. 호는 우곡(又麯, 또 누룩을 생각한다는 의미).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대한민국 전통주 시장을 개척했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7/2013060703105.html 전통주 외길 '배상면' 국당 창업자 별세] 조선비즈, 2013년 6월 7일</ref> 본관은 [[달성 배씨|달성]].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농예화학과 졸업하고 1952년부터 대구에서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1960년 기린 소주를 개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03181 연합뉴스, 국당 창업자 배상면씨 별세]</ref> 1983년 [[국당]]의 전신이 된 배한산업을 설립하고, 1991년 [[백세주]]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배상면 주류연구소 설립했다.
         * [[배중호]](장남): [[국당]] 운영
         * 《도전 없는 삶은 향기 없는 술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5194161 뉴시스, 60년 전통주 외길 '배상면' 국당 창업자 별세]</ref>
  • 송병구 . . . . 5회 일치
         | 별명 = (무결점의) 총사령관, 공룡토스, 송신,연승 브레이커,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2007]] 그랜드 파이널 8강에선 진영수를 꺾고 결승에선 마재윤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던 중국의 [[샤쥔춘]]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으며, WCG 2008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2회 연속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도 건재를 알리며 삼성전자 칸의 2연속 광안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WCG 2009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부분 WCG를 최초로 3회연속 진출에 성공한 후 이제동과의 결승에서 안타깝게 패배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IEF2008에서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준우승을 기록하였으며 IEF2009에서는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대회에서 '송신'등으로 불리며 대활약을 벌였다.
         *송신: WCG를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여 지어진 별명이다. 2007 wcg에서 마재윤을 탈락시킨 샤쥔춘을 이기고 우승을 하고,IEF 2009에서 한국 선수들이 대거 탈락한 가운데(김택용,임요환,김정우) 우승하며 더욱 굳어진 별명이 됐다.
         *송좌진: 송신과 같은 맥락의 별명
         *구국 토스: 송신, 송좌진과 비슷한 맥락의 별명
  • 식극의 소마/228화 . . . . 5회 일치
          * 이때 [[나키리 에리나]]는 "단한 패배는 개죽음"이라고까지 하나 어떤 조건하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는 말을 하는데.
          * [[쿠가 테루노리]]는 [[안(식극의 소마)|안]]이 먹는 간 승리를 확신할 정도로 뛰어난 요리를 했으나 [[츠카사 에이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단한 패배는 개죽음과 같아.
          * 2rd Bout종료. 그 결과는 3 대 0. 전패라는 충격적인 결말. 최종스코어는 물론 세부평에서 조차 단 한 점도 따내지 못한 완패였다. [[미마사카 스바루]]가 반발하고 있었다. 어째서 완벽한 트레이스에 어레인지까지 가미한 자신이 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심사한 샤름은 담담한 어투로 패인은 "칼집 넣기"라고 단정했다. 더욱 모를 말이었다. 칼집이라면 미마사카도 철저하게 트레이스했다. 초밥에서 칼집은 먹는 간 밥과 재료가 녹아 섞이는 것 같은 식감을 주며 참치의 맛을 입안 전체로 퍼뜨린다.
          안은 [[쿠가 테루노리]]의 흑초 탕수육을 맛봤을 때만 해도 쿠가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츠카사의 퓌레를 먹은 간 생각이 바뀌었다. 이 요리는 쿠가의 요리를 능가하는 임팩트가 담겨 있었다. 주제가 결정되고 조리 시작까지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깊고 다층적인 맛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안은 츠카사 쪽이 쿠가보다 녹차라는 소재를 다루는 격이 훨씬 높다고 평했다.
  • 원피스/853화 . . . . 5회 일치
          * 쵸파는 폭발하는 간 페드로를 빼내서 함께 루피 일행을 찾으러 간다.
          그는 "달걀달걀 열매"(타마타마 열매) 능력자. 문자 그대로 달걀이 되는 열매. 달걀->병아리->닭 으로 강해지는 능력으로 달걀 상태에서 페드로에게 당하다 곧 "병아리 자작"으로 부활했던 것이다. 작위도 오르고 전투력도 오른 상태라 페드로를 애먹인다. 그러나 결국 페드로에게 또 한 번 베이고 만다.
          * 페드로는 자폭한게 아니었다.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거울을 통해 그를 구해낸 것이다. 사실 자폭하려고 했던건 진심이었지만 그 직전에 쵸파 일행이 미러월드를 통해 그를 발견했고 폭발이 일어나는 간 그를 빼돌릴 수 있었다. 쵸파와 캐럿이 "무리 좀 하지 마라"고 타박하자 페드로는 "거울에서 나타나다니, 놀란 건 이쪽"이라 받아친다. 한 번 빅맘의 영역을 침범했던 그도 [[샬롯 브륄레]]의 능력에 대해선 몰랐던 모양이다.
          >이제와서 되돌릴 없단 말이다, 루피.
          상디는 그 모든 것들을 이제와서 돌이킬 없다며 루피를 떠올린다.
  • 유언/게임 . . . . 5회 일치
         게임의 서는 가나다으로 적으며, 시리즈물일 경우에는 작품 서대로 적는다. 등장인물의 서는 사망 장면이 등장한 서대로 적는다.
  • 유언/영화 . . . . 5회 일치
         영화의 서는 가나다으로 적으며, 시리즈물일 경우에는 작품 서대로 적는다. 등장인물의 서는 사망 장면이 등장한 서대로 적는다.
  • 유키히라 소마 . . . . 5회 일치
         무수한 미식 경험으로 엄청나게 깐깐한 심사위원[* 이들 중 대표는 센다와라 쌍둥이 자매로 각각 A,B블록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이 자매는 작중 대기업인 카레를 주로 생산하는 하우비 식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언니인 나츠메는 CEO, 동생인 오리에는 COO를 맡고 있다. 둘 다 '''고금동서의 카레를 전부 다 알고 있어서''' 예선 주제인 '''카레'''로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도 전세계의 요리들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일류 미식가들이다.]에 좌절하는 사람[* 심사위원들의 기준이 어찌나 높은지 자신들의 말로는 '''50점 이상''' 받으면 훌륭한 요리라고 하는 데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40점도 못 넘었다.(...)''' 특히 A블록 심사위원장인 나츠메는 [쿠로키바 료|료]의 프렌치 왕새우 카레를 먹기 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단 1점도 주지 않았다.''' [흠좀무].]과 그럼에도 감탄사를 끌어내는 실력자들[* 앞서 얘기한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으로 전부 이 까다로운 심사위원들한테서 '''80점 이상'''을 받았다. 점수가 높은 서대로 A블록은 '''아키라''', '''소마''', '''료''', '''스바루''', 슌, 젠지, 니쿠미, 료코 / B블록은 '''아리스''', '''히사코''', '''타쿠미''', '''메구미''', 미요코, 이사미, 유우키, 나오이다. 강조처리한 애들은 본선 진출자들.]이 등장하는 예선에서 후반부에 드디어 요리를 완성. 직접 만든 망고 처트니를 숨김 맛으로 쓴 카레 리조또 오므라이스로 심사위원의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성공, 하야마가 날카로운 창이라면 소마는 맛의 파상공격이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아키라의 홀리 바질 카레에 1점 못미치는[* 단 하야마보다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이 심사위원 5인 중 3명이었다. 즉 이게 점수 합산 방식이 아닌 식극처럼 다수결 방식이라면 오히려 소마가 이겼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93점으로 [쿠로키바 료|료]와 함께 공동 2위로 본선 진출 성공.
         > 설마 주먹밥 속을 프렌치 기술로 만들어 내다니 국경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이 얼마나 자유로운 요리인가?! 그리고 푸알레는 껍찔이 두툼한 소재에 적합하다. 연어…. 그리고 삼치는 껍질이 적당하게 두툼한, 바로 이 조리법에 딱 맞는 생선! 그는 그걸 삽시간에 간파하고 메뉴를 어레인지한 거야…. 백색으로 빛나는 쌀은 마치 눈과 같고 그 안에서 힘차게 나타나는 삼치는 그야말로 봄의 생명력 그 자체! 그는 봄이 시작되는 그 한간을 이 요리로 표현한거야─.
         덮연 레시피를 연구해서 계란과 메추리알을 섞어 뿌려 맛이 깊어졌지만, 입에 딱 넣는 간의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
         파일럿 단편에서는 지금과 모습이 많이 달랐는데 머리는 적발이 아닌 흑발이며 짧게 깎은 스포츠형이였고, 성격도 열혈한이라기보다는 아버지 조이치로와 비슷하게 느긋했다. 제1회 인기투표 위는 주인공답게 1위.
  • 은혼/586화 . . . . 5회 일치
          *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달려들지만 그 간 가구라가 사이에 끼어든다.
          * 긴토키는 그 간을 놓치지 않고 일어나 "그게 너의 한계다 바보오빠님아"라며 반격한다.
          * 카무이를 날려 버린 긴토키는 "한 간 너의 텅빈 밑 바닥이 보였다"며 "그게 너의 이름"이라고 쏘아붙인다.
          * 그 간 카무이가 귀신같은 얼굴로 일어선다.
         - 사카타 긴토키. 앞을 가로막은 가구라를 보고 한 간 망설이는 카무이에게.
  • 이보희(배우) . . . . 5회 일치
         2014년 기준으로는 주로 공주병 아줌마나 푼수데기 조연, 혹은 사극에서 조연으로 많이 등장하는 배우지만, 1990년대부터 텔레비전 드라마에 주력해서다. 전성기인 1980년대엔 [[원미경]], [[이미숙]]과 더불어 80년대 3대 트로이카로 유명했다.[* 영화 한정. 드라마의 경우에는 이보희 대신 [[정애리(배우)|정애리]]가 들어갔다.] 한국의 대표적 섹시스타로 유명해서 유명 에로영화였던 '[[무릎과 무릎 사이]]'라든지, ''''[[어우동]]''''하면 바로 떠오르는 배우였다. 특히 다리가 예쁜 걸로 유명해서, 서양권 여배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다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참고로 '[[무릎과 무릎사이]]'는 단 에로영화가 아닌 여성이 性을 극복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 수작이다.]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유방이 풍만하다. 그런 데다가 허리는 가냘프고 다리는 날씬하며 아래로 곧게 뻗었다. 물론 피부도 매우 곱다. 아쉬운 것은 힙이 좀 작다는 것 정도...]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영화)|공포의 외인구단]]'을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 하자 항상 그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맏던 이보희가 자동적으로 [[최엄지|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배우)|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 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태종(조선)|태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배우)|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조선)|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KBO 리그]]와 얽힌 흑역사가 하나 있다. [[김재박]]이 선수 시절인 1986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시상자인 이보희가 '''김재박을 유격수 수상자 김재전이라고 부른 해프닝이 것.'''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안습-- [[김재박]] 항목 참조. 1959년생인 이보희는 박정희정권의 한글전용정책의 일환으로 학교교육에서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초반까지 신문 등의 활자매체는 한자단어는 한자로 표기하고 조사나 우리말 정도만 한글로 썼으므로 몰랐다는게 조금 무식하다는 평을 들을 수는 있겠으나 이보희처럼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은게 아닌, 한자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 세대에게 김재박의 이름을 한자로 써주고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전성기가 짧은 편.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뒤 88년 초반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식간에 꺾였다. 그러나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등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 이수민(야구선수) . . . . 5회 일치
         2014년 BB아크에 선발돼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고, BB아크에 선발된 다른 선수들과 달리 4월 중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다. 주로 선발로 등판하다가 6월 15일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장원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6월 17일 [[SK 와이번스]]전에서 9회에 등판해 1군에 데뷔했다. 1이닝 동안 피안타 3개를 맞으면서 실점을 했지만 정타는 1개 뿐이었고, 볼질도 안 하면서 1군 첫 경기치고는 잘 던졌다.
         4월 16일 삼성전에서 원래 선발로 등판이 예정된 [[노성호]]가 등판 전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이미 4월 14일 계투로 2이닝을 던진 이수민이 하루만 휴식하고 선발로 나온데다 16일 등판 후로 1달을 쉬면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혹사 논란이 나왔다. 6월 중 이후 1달을 쉬었고, 7월 중 복귀 후 등판이 없다가 9월 1일 등판하는 등 사실상 안식년을 보냈다. 9월 1일 롯데 2군과의 경기에서 사실상 전역 전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해 6이닝 96구 2실점 1자책 5피안타 3볼넷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동안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았었던 문제인 고교야구 혹사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했던 선수다. 2013년 동안 프로야구의 하향 평준화와 수 신인 육성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면서 이수민의 179개 투구수는 모든 야구팬들의 분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고교를 졸업한 투수들 80%가 어깨, 팔꿈치 부상을 안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나오면서 이에 2014년부터 고교 야구에도 투구수 제한이 도입되었다.[* 한 경기에서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대 투구 수를 130개로 제한했다. 원래 130개를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휴식일을 주도록 했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129개쯤 되면 바로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휴식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상태.]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 이시영(배우) . . . . 5회 일치
         [[네이버]] 뉴스 댓글 등의 포탈 댓글란에서는 전진 [[빠]] 파워가 더해져 자신의 취미를 강요하는 안 좋은 아내의 표본이라며 대차게 까이고 있지만 [[루리웹]] [[프라모델]] 게시판이나 [[이글루스]] 등에서는 상대인 전진이 아내 취미 하나 이해해주지 못하고, 억지로 자기 소원을 강요하며 주도권이나 잡으려하는 못된 남편이라고 욕을 먹고 있다(…).
         그러나 2010년 맨즈헬스 인터뷰에 따르면 프라모델 수집은 상당히 오래된 취미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프라모델 모두 본인 소장품인 듯 하며[* 30여 개 이상 모았단다.], 배우 데뷔 초에 일거리가 없어 취미 삼아 시작했다고 한다. 홍석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베어브릭이 장식된 걸 보고는 반가웠다고. 일반적인 [[서브컬쳐]]의 매니아들처럼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프라모델을 접한 게 아니라, 프라모델을 먼저 접한 케이스. 때문에 우결의 경우 이시영의 취미를 오타쿠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제작진측의 캐릭터 만들기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하는 거지 서브컬쳐를 즐기는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인데 프라모델을 다루는게 오타쿠가 아니냐고 하면 사실 미묘한 부분이다. 일반 밀리터리물이나 자동차 프라모델러에서 건프라로 넘어온 사람들이 특히 자신은 '''건프라는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는 거나 남이 만든 완성품을 모으는 게 아니고 만드는 과정도 즐기는 쪽이다. 일본에서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좋아하면 훌륭한 오타쿠이기 때문이다. 단지, '서브컬쳐 -> 피규어' 으로 빠져든 매니아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피규어 모으기가 취미"라고 하면 이쪽인 경우도 적지만 있다.[* YG의 [[양현석]]이나 MBK의 [[김광수(음반기획자)|김광수]], 드림팩토리의 [[이승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아톰인형 매니아로 알려진 [[조민기]]도 아톰의 스토리 자체를 파고들기 보다는 '아톰 인형(피규어)'에 꽂혀사는 경우이다. 베어브릭 같은 류의 캐쥬얼한 피규어쪽으로 빠지자면 그 수는 더 많다. [[이승연]]도 남편의 취미를 따라 베어브릭을 모으고 빅뱅의 [[탑]] 역시 베어브릭 수집매니아. [[원피스(만화)]]같은 경우에도 피규어 퀄리티가 좋은 편이라 만화책은 제대로 안 읽고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건담과 일반 인형 매니아를 동일시 하면 곤란하다. 여자아이들의 인형 취미와 건프라가 똑같겠는가? 어찌 부정해도 건프라를 좋아하는 이상 일단 오타쿠라 봐야 할 점은 사실이겠다. [*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3/read/31977670|여기서도 그렇지만]] 건프라를 좋아하면 충분히 오타쿠로 여겨진다.]
         2013년 7월 중경에는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 이시영편에 출연해 여러 토크를 풀어놓았다. 그중 우결 촬영당시 프라모델에 관한 언급이 있었는데 전부 본인 소장품에 본인 집에서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프라모델을 다른 집으로 옮겨 촬영해야 한다는 말에 그냥 자기네 집에서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덕분에 출연료 외에 장소사용료도 쏠쏠하게 받았다고 한다. 이때 성형과 복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주변에서는 성형한 얼굴인데 복싱을 해도 괜찮냐고 많이 물어보지만 정작 본인은 성형한 얼굴로 10년을 살아서 자기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도 까먹고 살고 있었단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딸이라서인지 복싱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패배했을 때 '이제는 그만 두겠지'하는 마음에 부모님이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 "이 상을 내가 받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일 주일도 안 되게 군대 다녀와서]] 상을 받는다는 게 죄송하다. 지금 이 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계시는 국군 장병 분들께 드리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다. 제일 예쁜 나이에 청춘을 바쳐서 나라 지킨다는 게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의무라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는지, 많은 희생을 하고 계시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가 안전하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군 생활 하시는 동안 건강하시고, 다치지 말고 건강히 제대하셨으면 좋겠다."
         || 2010년 || 내 남자의 이 || 조연 || 특별출연 ||
  • 이열희 (1924년) . . . . 5회 일치
         [[1961년]] [[6월 6일]] 전임강사에서 조교수로 승진하여 [[경북대학교]]로 정식 발령<ref>"정부인사", 경향신문 1961년 06월 06일자 1면 정치면</ref>, 경북대 치의학과 조교수에 임명되었다. [[1962년]] [[11월]] 오재인(吳在仁), 정경(鄭淳慶), [[국군통합병원]] 의무과장 최형곤 [[대령]] 등과 함께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1972년]]부터 [[1976년]] [[11월]]까지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제3대 회장을 역임했다. 동시에 그는 무의촌대책위원회 치과분과 회장을 맡으며, 병원, 의료시설이 없는 무의촌의 치과 진료 봉사에도 참여하였다.
         *** 당숙모: 서온(徐溫順)
         * 장모 : 남원양씨 이(南原梁氏, [[1907년]] [[8월 11일]] - ?), 양재형(梁在亨)의 딸
         ** 처형 : 박혜
         그의 고모부는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과 대구시보사 사장을 지낸 윤홍열로, 바로 [[충청남도]] [[공주]] 규수인 서애 여사를 상화와 중매한 장본인이다. 윤홍열의 딸 윤덕주는 [[서정귀]] 전 호남정유사장과 결혼,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지냈다.<ref name="daemyonh"/>
  • 이준(배우) . . . . 5회 일치
         엠블랙이 데뷔했을 때 가장 인지도가 높은 멤버였다. 예능이나 드라마에 주로 출연한다. 인지도 뿐 아니라 팬덤내에서도 코어가 가장 많다. 수하고 감성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팬들사이에서 '창선소녀'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2012년 하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태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상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태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상황.
         [[화폐|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장부를 쓰고 있다. 백원까지도 다 받아내려 하지만 팀의 리더인 [[승호]]는 갚는 일이 없다고 전해진다. 돈을 재테크로 불린 것이 아니라 단히 '''안쓰고 모아서''' 잠실에 집을 샀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많이 돈을 쓰는 품목은 [[이온음료]]. 부모님께 번 돈을 다 드리고 자신은 [[체크카드]]로 용돈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래들보다 수입이 많다고 자칫 그것이 평생 갈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모님이 편찮으셔서 간병도 하고 치료비 일부를 지원한 바 있는데 그 일이 외제차를 사는 것보다 훨씬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깨달은 이후로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비주얼도 훈훈하고 몸도 좋아서인지 여러 여초커뮤니티 내 에서 섹시하다고 평을 받는다. 단히 잘생기고 몸 좋아서 정도가 아닌 퇴폐스럽고 야한 느낌이라고(...).
  • 이혜숙(영화배우) . . . . 5회 일치
          * [[호박꽃 정]] - 필
          * [[열아홉 정]] - 최혜숙
          * [[백만송이 장미(드라마)]] - 김
          * [[무방비도시]](2008) - 송애(특별출연)
  • 장세용 . . . . 5회 일치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20년만에 탄생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TK 기초자치단체장'''[* 당시 경북 울진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신정]] 후보가 [[한나라당]]의 전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포항시]]장으로 당선된 [[박기환(정치인)|박기환]] 전 시장을 포함하면 3번째 사례이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어찌되었든 장세용 구미 신임 시장은 구미에서 박정희의 흔적을 아예 지울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나, 건설 중인 '박정희 유물전시관(역사 자료관)'은 공사 취소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으며, 이미 완공된 새마을테마공원은 민족운동전시관으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드러내는 등 그동안 지나치게 [[박정희]]에게 집중돼 있던 구미시정을 바로잡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http://v.media.daum.net/v/20180621100915142?rcmd=rn|*]]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반,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에서는 구미 공단 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이 먼저라고 하였으며, 대구는 당연히 폐수 무방류라도 결국 방류되기에 폐수가 완전히 처리되지 않는다고 취수원 이전을 고집한다. 하지만, 대구시의 주장에서 모되는 점이 하나는 대구 성서 공단에서도 폐수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며,[* 당연히 대구가 낙동강 삼각주 주변에 위치한 도시가 아니기에, 대구보다 하류인 부울경도 같은 논리로 취수원 이전을 시도할 수 있다.] 둘은 대구의 차세대 산업 중 하나가 물 산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공단에서 방류된 폐수의 유해물질 농도가 구미공단에서 방류된 폐수보다 높다는 조사가 나오면서 결정타를 먹었다.
  • 지증왕 . . . . 5회 일치
         '''지증왕'''(智證王, [[437년]]~[[514년]], <small>재위:</small> [[500년]]~[[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내물왕]]의 증손이며 [[복호 갈문왕]]의 손자이자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이다. 전임 [[소지 마립간]]과는 6촌 형제간이었다. [[법흥왕]]의 아버지로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502년]] [[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이듬해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군주의 칭호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ref>그러나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는 칭호는 지증왕의 장남 법흥왕의 때까지도 비공식적으로나마 잔존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울진 봉평신라비와 울산천전리각석에 기록되어 있다.</ref>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504년]] 상복법을 제정하였으며, [[505년]]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었다. [[509년]]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고, 512년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였다. 또한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던 [[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한 군주이기도 하다. 시호는 지증인데, 신라 최초의 [[시호]]이기도 하다.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智度路)이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ref> 그는 6촌 형제간인 [[소지 마립간]]과 사돈이었고 즉위 전 [[갈문왕]]에 봉해진 것이 [[영일냉수리신라비]]를 통해 확인되었다.
         [[502년]] [[장]]을 금하고, 신궁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 음력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親祀神宮 三月 分命州郡主勸農 始用牛耕(3년(502) 봄 2월에 영(令)을 내려 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장했는데, 이때 이르러 금한 것이다. 왕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 )}}</ref> [[503년]]에 국호를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야(徐耶)·서라(徐羅)·서벌(徐伐) 등에서 “신라”(新羅)로 통일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四年 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또 살펴 보건대 예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만을 칭하고 높이는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뭇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이에 따랐다. )}}</ref>
  • 진격의 거인/90화 . . . . 5회 일치
          왜 그 간이었을까? 엘런은 말을 잇지 못한다. 자유라는 말을 입에 담는 간, 너무나 선명하게 어떤 장면이 보였다. [[엘런 크루거]]의 시점에서 본, [[그리샤 예거]]의 여동생. 그 여동생이 개먹이가 되는 간을.
          * 대화가 단절된 사이 리바이가 다가와서 의전이 시작될 시간이라고 알려온다.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왕 앞으로 나가 의식을 거행한다. 히스토리아는 여왕으로서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훈장을 걸어준다. 처음으로 한지에게 목에 훈장을 걸어주고 한지가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춘다. 다음은 리바이, 엘런의 서다.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엘런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다.
          그 간이었다. 엘런은 그 기억이 살아나는 것과 함께, 의식이 진행 중인 것도 잊어버렸다. 동료들과 히스토리아는 정지한 것같은 그가, 무서운 표정으로 분노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 최진순 . . . . 5회 일치
         '''최진'''(崔軫淳, [[1969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기자 (직업)|기자]]이다.<ref>김달아·최승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127&aid=0000024679 중앙, 기어 바꾼 디지털 혁신…구성원 힘 모아 속도 낼까]. 기자협회보. 2017년 4월 5일.</ref>
         최진은 [[1990년]]대 중반 PC통신 천리안에서 정기간행물을 표방한 [[보테저널]]을 발행하며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과 1세대 PC통신 논객 대열에 올랐다. [[1999년]] 7월 인터넷 최초의 독립 일간지인 <온라인 뉴스> '뉴스24' 창간을 주도했다. 여기서 최초의 유급기자를 둔 웹진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2005년]]부터 [[중앙대학교]] 미디어공연영상대학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를 맡기 시작한 최진은 저서 《한국 신문의 뉴 미디어 혁신》(2006)을 비롯 《온라인 신문, 경쟁과 생존》, 《신문도 TV도 죽었다》, 《뉴스의 혁명, NewsML》, 《혁신 저널리즘》 등의 책을 잇따라 펴냈다. [[2008년]]에는 방송·통신 융합 시대 [[인터넷]] 정책현황분석 및 주요 이슈 (한국인터넷진흥원) 연구보고서(공저)를 냈다.
         [[2005년]] [[한국경제신문]]으로 이직해 [[2016년]] 9월 현재 편집국 기자로 재직 중이며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신문협회]] 기조협의회 포털팀(TFT) 등 신문업계 기구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2005년]]부터 블로그 [[최진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을 운영 중이다. [[2013년]]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강의 과목은 온라인저널리즘, 디지털스토리텔링, 블로그저널리즘 등이다.
         대학 출강 외에도 법무부, 보건복지가족부 등 정부부처는 물론 국내 대다수 언론사에서 특강과 자문을 맡고 있다. 또 [[MBC]] TV속의TV, 다큐멘터리 [[KBS]] 미디어인사이드 등에 출연하였다. 2013년 [[연합뉴스]]는 뉴미디어를 이끄는 사람들 연재물에서 최진을 소개했다.
  • 킹덤/502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금안에서 보고된 진군의 수상한 동향과 [[수수]]가 복귀하지 않는걸 보고 진군의 진의를 파악한다.
          * 다시 문제는 서부가 됐다. 그는 진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 앞서 어째서 [[수수]]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전령은 수수가 명한 대로 "진군 측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고한다. 진군이 금안에서 진로를 변경할지 모른다는 보고가, 드디어 이목에게 전달된다. 이목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지도를 펼치고 다시 한 번 진군의 진로를 확인해 본다. 수수의 직감이 맞았다면 그가 속은 것이 된다. 지금 흑양까지 이어지는 병량의 흐름이 가짜라면, 진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진짜 병량이 금안까지 간 것은 맞으므로 거기에 축적됐을 것으로 보는게 맞다. 진군이 여기에 도착했으니 이 병량을 들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인데. 진군이 흑양으로 오지 않는다면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다.
          이날의 새벽. 수수는 금안에 있던 진군 20만이 모습을 감췄다는 급보를 받는다.
  • 킹덤/508화 . . . . 5회 일치
          * 열미가 기마대를 앞세워 아군에 반격하자 한간 동요가 심해지나 곧 [[이신(킹덤)|이신]]이 [[왕의(킹덤)|왕의]]의 창을 휘두르며 위엄을 떨친다.
          * [[창인]]의 엄호 아래 산민족을 이끌고 열미성 성벽에 선 [[바지오]]. 열미군의 움직임이 일 멈춘다. 숨 막힐 것 같은 간, 사다리를 올라온 산민족들이 서서히 무기에 손을 올린다. 열미군 지휘관의 공격 지시를 시작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공기가 열기를 토해낸다.
          * 성벽 위를 식간에 정리한 산민족들은 파죽지세로 성벽 아래로 치닫는다. 바지오는 "지다족"에게 지시해서 성문의 개폐장치를 찾게 한다. 지다족은 후각이 매우 발달한 민족으로 후각을 동원해 숨겨져 있던 개폐장치를 찾아낸다. 성벽 아래 지하실에 있었다. 평범한 바닥으로 위장돼 있었지만 지다족의 후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입구가 열리자 열미병들이 뒤늦게 막으려 들었지만 이미 주위를 산민족이 호위하고 있었다. 지다족은 곧바로 개폐장치를 확보한다. 양단화는 이 개폐장치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는지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두었고 지다족은 어려움 없이 성문을 연다.
          * 지휘부의 감탄이야 어쨌든 전장에서는 치열한 난전으로 전개된다. 열미군은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여차하는 간 역전 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기세가 강했다. 비신대의 신병들은 지나친 긴장과 첫전투의 흥분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간두]]는 노평 등과 함께 황오장 밑에 있었다. 다들 숨쉬기도 버거워할 정도로 첫 전투의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간두는 그들 중에선 오를 유지하라고 강조하며 훈련받은 대로 하자고 부대원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흥분한 노평이 실수를 저지른다.
  • 하이큐/253화 . . . . 5회 일치
          생각이 복잡한건 코트 바깥의 세터도 그랬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아카아시 케이지]]가 그랬다. 옆의 [[보쿠토 코타로]]는 완전히 히나타한테 올리는 건 줄 알았다며 카게야마를 칭찬하지만, 아카아시는 차라리 소름이 돋았다. 단한 미끼를 던져 봐야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방금 전 세트업은 퍼스트 터치가 코트 중앙으로 올라가서 각도상으로 보면 완전히 히나타한테 가는 흐름이었다. 그걸 교묘하게 라이트로 보낸게 성공의 이유. 이는 카게야마가 시야가 넓기만 한게 아니라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까지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은 요소는...
          * 전날 밤, 비디오를 보며 아츠무의 이도류가 얼마나 무서운지 강조했던 우카이 코치. 그렇다면 정말로 서브 토스 간까지 뭐가 올지 전혀 알 수 없단 말인가?
          >그건 단한 스타트라인에 지나지 않거든.
          아츠무의 서브. 방향은 정가운데, 니시노야. 정확히 위치를 포착했다. 하지만 니시노야가 밀렸다. 카라스노의 서버인 야마구지와 [[키노시타 히사시]] 니시노야 조차 받지 못하는, 눈 앞을 식간에 스쳐가는 아츠무의 서브에 경악한다.
          * 스코어는 10 대 7. 아츠무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네 걸음. 점프 플로터다. 카라스노의 리시버들이 한층 긴장한다. 이번에도 서브는 니시노야에게. 그렇지만 니시노야는 두 번 실패하지 않았다. 상당히 버거운 공이었지만 잘 받아낸 니시노야. 공은 카게야마에게. 카게야마가 아즈마네에게 올려서 스파이크, 하지만 아카기가 받는다. 그 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달려나가는 오사무. 그리고 이어지는 플레이에서, 카게야마는 눈을 의심한다.
  • 하이큐/267화 . . . . 5회 일치
          * 사루카와 주장 "시라미네"는 승부를 낙관하며 짐작하게 플레이에 나서나 어느 간 코즈메가 블록을 유도하고 있는걸 직감한다.
          * 세트업와 발맞춰 뛰어오른 [[하이바 리에프]]는 페이크. 진짜는 레프트에서 이동한 [[후쿠나가 쇼헤이]]였다. 후쿠나가가 스파이크로 득점. 스코어 19 대 18로 한 점 따라붙는다. 그러나 후쿠나가는 세트업 높이가 살짝 낮았다며 귀띔했고 하이바도 "선배가 너덜너덜하다"고 하는 걸 보면 코즈메의 체력 문제를 없는 셈칠 없었다.
          * 이어지는 경기. 랠리와 랠리가 이어지며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2점의 점수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 스코어는 22 대 20. 사루카와의 작전은 조롭게 계속됐다. 그건 코즈메가 쏟아내는 땀을 봐도 명백했다. 아직까지는 위태로운대로 잘 따라오고 있었지만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그때 리에프의 득점. 스코어 22 대 21로 한 점 따라잡는다. 서브는 네코마 측. 동점을 노릴 기회였다.
          * 사루카와의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은 코즈메가 쓰러지는 모습에 주목했다. 자신의 가르침이, 스승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간이었다. 그가 현역 선수였던 시절 네코마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 "후카타니"의 서브. 사루카와 측은 이 여세를 몰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브가 좌측으로 너무 빠지면서 아웃라인을 벗어났다. 네코마의 득점.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한숨 돌린 네코마.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여전히 흐름은 사루카와 측에 있었고 이번 세트를 확실하게 받아갈 작정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공방. 사루카와어ㅢ "시라미네"가 때린 스파이크가 블록을 뚫는다. 후방에서 야쿠가 정면에서 받는다. 높이 뜨는 공. 시시오 감독은 그 간에 무슨 불안을 느낀 걸까? 문득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 한진희(1949) . . . . 5회 일치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왕꽃 선녀님]], [[보석비빔밥]], [[압구정 백야]] [[김옥]]작가의 [[왔다! 장보리]], [[그래도 좋아]] [[문영남]]작가의 [[조강지처 클럽]] 이것으로 [[막장 드라마]]계의 [[임성한|빅]][[김옥|3]][[문영남|에]] 작품에 모두 출연하기도 하였다. [[임성한]] 작가의 [[막장 드라마]] 중 [[왕꽃 선녀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두 개의 작품에서 모두 여주인공의 친부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해당 드라마들에서 여주인공의 친모는 모두 [[김혜선(배우)|김혜선]]이 연기하였다.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남일호]]라는 [[범죄자]] 블랙기업인을, [[문화방송|옆 동네]]의 내일도 승리에서는 천사 그 자체인 자상한 아버지 [[서동천]] 회장님을 연기하는데 이중인격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전 두 캐릭터가 성격이 반대이다. 분명 동일인물이 연기를 하는데도 소름끼칠 정도로 [[서동천|절대 선]]과 [[남일호|절대 악]]으로 분리되어 있다. [[남일호]]가 한 짓을 [[서동천]] 회장님이 알면 참 볼만해질 것이다. 또한 [[남일호]]가 한 짓을, [[금 나와라, 뚝딱!]]의 [[박상]]이나, [[왔다 장보리]]의 [[이동후]]가 봐도 볼 만해지실 것이다. 참고로 한진희보다 선배급 탤런트인 [[이정길]]도 2015년 즈음에 동시 방영된 내일도 승리의 전작인 이브의 사랑에서는 [[남일호]]처럼 악하게 생긴 악덕 블랙기업인 [[구인수(이브의 사랑)|구인수]] 회장을, 9월 쯤 방영된 [[내 딸 금사월]]에서는 [[서동천]] 회장처럼 인자하게 생기시고, 자상하고, 도덕관이 투철하고 투명한 생각을 가진 [[신지상]] 회장님을 연기한 적이 있다.
          * [[금 나와라, 뚝딱!]](MBC, 2013) - [[박상]] 역
          * [[열아홉 정]](KBS,2006) - 박동국 역
  • 헌터X헌터/369화 . . . . 5회 일치
          * 다소 무례한 일이 될지 모르지만, 크라피카는 왕비에게 곧바로 다음 수색을 부탁했다. 왕비는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크라피카 못지 않게 초췌해 보였으나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가 12왕자 모모제의 거처부터 재개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크라피카는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스틸 체인은 무리를 해서는 안 되는 능력이었고 이번 실신도 분명 그것 때문이었다. 따라서 수색 서를 바꾼다. 이번엔 제 4왕자의 거처부터 시작한다.
          왕비의 안에서, 뭔가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빌과 시마노도 크라피카와 같은 걸 생각했다. 크라피카는 왕비에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체리드니히를 우선한건 수하게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상위 왕자를 우선시 한 건 물론 시간의 제약 때문. 그리고 상위 왕자 중에선 체리드니히가 가장 적격한 대상이다.
          * BW가 이틀째 새벽을 맞이할 무렵 왕비의 수색이 재개됐다. 바퀴벌레는 통풍구를 따라 1004호실로 향했다. 왕비는 설계도를 짚어가며 신중히 진행했다. 길을 헤매서도 지체가 돼서도 안 됐다. 그만큼 크라피카에게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행히 아무 문제도 없이 목적지가 가까웠다. 이제 모퉁이 하나만 돌면 체리드니히의 거실. 그렇게 조롭게 잠입이 성공하는 것 같았는데, 암초에 부딪혔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여자의 얼굴. 아니다 그것이 여자일리 없다. 통풍구 속의 여자라니. 그 여자가 입을 멀리자 그 안에서 또다른 얼굴이, 그리고 달팽이 같은 촉수가 꿈틀거렸다. 모든 게 한 간. 왕비에겐 바퀴벌레를 회수할 겨를도 없었다. 그 무언가가 바퀴벌레를, 그녀를 통채로 집어삼켰다.
          오이토 왕비의 비명이 세어나갔다. [[바비마이나]]를 포함해 경호원 전원이 달려온 걸 보면 꽤 먼 곳까지 들린게 틀림없었다. 바비마이나가 설명을 요구하자 크라피카는 "왕비님이 악몽을 꾸셨다"고 둘러댔다. 마침 그녀는 침대에 있었으니까. 바비마이나는 납득한 것같진 않았지만 트집을 잡을 구실도 없었다. 결국 경호원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왕비는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상황을 설명했다. 통풍구에 나타난 여자. 아마도 바퀴벌레는 먹혔을 것이다. 마침 왕비 곁의 돌핀이 "리틀아이가 강제 해제됐습니다"라고 알렸다. 오이토가 그 사실도 전달하자 크라피카는 이제 해제명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으로 엠퍼러 타임은 종료. 장장 12시간, 그 중 9시간이나 허비한 결과 아무 수확도 없는 헛수고를 했다. 왕비가 발견한 통풍구 속의 여자가 수확이라면 수확일까? 보안상 통풍구에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넨수, 체리드니히의 넨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크라피카는 갑자기 밀려드는 피로감에 몸이 휘청거렸다. 아무리 제약을 둔 넨이라도 몸에 아무런 반동도 없을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라지만, 정말 성가신 능력이다.
  • 홍아름 . . . . 5회 일치
         [[고등학교]] 2학년 때 게임회사 광고 모델로 발탁된 것이 계기가 돼 [[FT 아일랜드]]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게 됐고 다시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인이는 예쁘다]]》에 출연하여 연기자 데뷔를 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5&aid=0000010871 인기드라마 ‘삼생이’ 의 주역, 경쾌한 스물다섯 홍아름] 레이디경향. 2013년 05월 06일</ref>
         * 2014년 [[TV조선]] 특별기획 드라마 《[[불꽃 속으로]]》 ... 하처
         * 2017년 [[KBS2]] TV소설 《[[꽃 피어라 달아!]]》 ... 고달 / 이은솔 역
         | [[꽃 피어라 달아!]]
  • 황두진 . . . . 5회 일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하여 유럽을 회한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건축전>에 참여했고 동 전시회의 전시디자인을 맡아 새로운 개념의 건축 전시를 보여준 바 있다.<ref>{{웹 인용|url=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30000000&exhId=200912140002813|제목=메가시티 네트워크ː 한국현대건축 서울|성=|이름=|날짜=|웹사이트=국립현대미술관|출판사=}}</ref>
         2007-2009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건축', 프랑크푸르트 독일건축박물관, 베를린 독일건축센터, 에스토니아 건축박물관, 스페인 바르셀로나카탈로니아건축사협회 에스파이피카소,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회<ref>{{서적 인용|url=https://www.jovis.de/en/books/product/megacity-network.html|제목=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Megacity Network, ISBN 978-3-939633-37-2|성=Sung Hong Kim / Peter Cachola Schmal (eds.) in cooperation with KAI (Korea) / DAM (Germany)|이름=|날짜=|출판사=jovis|확인날짜=}}</ref>
         2016 환태평양 지역 4개 대학 회강연(외교부 ‘국민 모두가 공공 외교관’ 프로그램): 싱가포르 국립대학(싱가포르), 말라야대학(쿠알라룸푸르), 출랄롱콘대학(방콕), 뉴사우스웨일즈대학(시드니)
         2014
 미국 4개 대학 회강연: 네브라스카대학(UNL), 아이오와대학(ISU), 켄트주립대학(KSU), 로드아일랜드디자인대학(RISD)
         2009
 미국 5대 도시 회강연: 보스턴 하버드건축학대학원 한국연구회,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워싱턴 스미소니안 아시아미술관(프리어갤러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과 유씨엘에이(UCLA) 건축 및 도시디자인 대학원, 시애틀 워싱턴주립대 건축대학
  • 황석두 . . . . 5회 일치
         |직업 = 교자
         |매장지 = [[절두산 교성지]]<ref name=jeoldusan>[http://www.jeoldusan.or.kr/renew/introduce5.php?ptype=&page=2&code=contents09 한국 천주교 절두산 교성지 성인유해실]</ref>
         '''황석두'''(黃錫斗, [[1813년]] ~ [[1866년]] [[3월 30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루카'''(Lucas)이다.
         [[1866년]] [[3월]] [[충청도]] [[홍주군|홍주]] 거더리에서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었는 데, 그는 황석두의 지식과 능변을 아까워하여 포졸들에게 황석두만은 체포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황석두는 [[한양]]으로 압송되는 주교를 수 십[[리]] 동안 뒤따라가 [[체포]]되어 [[주교]]와 함께 함께 압송되었다. [[1866년]] [[3월 30일]] 황석두는 [[사형]]을 선고받고 [[보령시|보령]]의 [[갈매못]]([[충청도]]에 있던 [[해군]] 기지)에서 [[다블뤼]] [[주교]]와 [[위앵]] [[사제|신부]], [[오메트르]] [[사제|신부]] 그리고 [[장주기]] 등과 함께 [[참수]]되고 [[군문효수]]되었다. 그렇게 그가 [[교]]하던 때의 나이는 54세였다.
  • Crusader Kings 2/DLC . . . . 4회 일치
         기독교의 경우 이슬람만 가능했던 성지 례를 할 수 있게되었다. 가톨릭의 경우 추기경단을 통해 교황청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교황에게서 돈과 같은 이익을 부탁할 수 있게되었다. 마음에 안 드는 가신을 수도승/수녀로 만들어서 속계에서 내쫓아버릴수도 있게 되었고, 기사단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슬람교의 경우 한맛 무타질리파와 진한맛 아샤리파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 성지례도 할 수 있고 사원의 봉신들과 친목친목을 할 수 있는 신학(Theology)
         또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시스템도 바뀌게 된다. 전에는 후견인과의 이벤트로 성격 특성이 붙었다면 콘클레이브 DLC에서는 교육자와의 이벤트로 아이들 전용 성격 특성이 붙고 이 특성들은 성인이 되는 간 성격 특성으로 변이되는 시스템이 된다. 또한 아이의 유년기 교육 중점과 청소년기에 무엇을 교육시킬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4회 일치
         게임의 최종적 목표는 HOI2와 같다. 플레이어는 승리 점수가 있는 지역을 최대한 확보해 자신이 속한 동맹이 제일 많은 승리 점수를 얻게 해야한다. 제한시간[* 기본적으로 1964년]이 되면 게임이 끝나고, 그 간 제일 많은 승리 점수를 확보한 동맹이 승리한다.
         그런데 이렇게 끝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플레이어의 동맹이 다른 동맹들을 완전히 찍어누르는 간 게임의 재미가 급하락하기 때문.
         "디시전"이라는 기능이 생겼다. 정부 정책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인데, 이 때문에 침략전쟁을 벌이는 국가(독일, 일본 등등)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간에 전쟁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이벤트에서 전쟁을 시작할 수 있던 HOI2에서는 등을 떠민다는 느낌이 강했다.
          1914년 6월 27일 시작하는 시나리오. 약 한 달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주요 동맹도 동맹국, 삼국 협상, 코민테른으로 다르다. 1920년이 끝나는 간 게임도 끝나므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 할 수는 없다.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4회 일치
         == 득점 위 ==
         == 도움 위 ==
         == 공격포인트 위 ==
          1. 위결정방식이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에서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으로 다득점이 득실차(=골득실)보다 우선적용되는 변경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다소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에서 다룬다.
  • 고아성 . . . . 4회 일치
         |
         | [[항거: 유관 이야기]]
         | 유관
         | [[항거: 유관 이야기]]
  • 규성 진씨 . . . . 4회 일치
         규성 전씨는 (舜) 임금을 조상으로 삼는다. 임금의 성씨는 요씨(姚氏)였으나, 임금의 후손이 규예(嬀汭)로 이주하면서 규(嬀)를 성으로 삼았다. 상나라 말기에 의 후예 알보가 주나라에 의탁하였고, 주나라 무왕은 알보의 아들 규만을 완구(宛丘)에 봉하였으며 이 나라는 진(陳)으로 불리게 된다. 규만은 사후 호공(胡公)이라는 시호를 받는다. '호공 규만' 이들의 조상이 된다.
  • 김민희(1972) . . . . 4회 일치
         1980년 ~ 1981년 [[KBS 2TV]](처음에는 [[동양방송]])에서 방영된 [[일일 드라마]] '달동네'에서 똑이 역으로 출연하여 많은 인기를 누렸던 [[아역배우]] 출신이다.
         [[서세원]]과 같이 출연했던 영화 '연분홍 치마'에서는 대놓고, '''서세원, 똑이의'''라고 적혀 있는 홍보물도 있었다.
         가장 최근 드라마 출연은 2011년 [[KBS 1TV]] 일일연속극 [[당신뿐이야]]다. 2013년 ~ 2014년 [[왕가네 식구들]]에 특별출연으로 잠시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의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는 조연급 배우일 뿐이지만, 50대 이상 어르신들의 중에는 [[1982년|82년]] 생 [[김민희(1982)|김민희]]는 모르면서도[* [[김민희(1982)|김민희]]는 중년층 이상을 겨냥한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출연한 경력이 거의 없다. --하지만 [[홍상수|거하게]] [[불륜|일을 저질러서]]...--] 이 김민희는 [[1980년대]] 초반의 똑이 하면 아 하면서 기억하시는 분도 꽤 된다. ~~다만 예명 김민희보다는 똑이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하실 뿐이란 게 또 문제지만(...)...~~
  • 김재박 . . . . 4회 일치
          * 역대 [[LG 트윈스]]의 감독 중에서도 매우 나쁜 성적~~[[666858766|587]]~~을 거뒀지만 나름대로 [[프랜차이즈]] 스타라서 그런지 경질론과 재계약론이 비등비등했던 뭔가 희한한 감독이다. ~~사실 재임 기간 동안 승률은 이철보다 낮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이철이 말아먹어서 그렇다고 이유를 대면 된다. 지금까지도.~~ 결국 2009년 9월 26일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만료되어 감독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엘지 팬...아니, 대한민국 야구 팬들한테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까이고 또 까이고 있다.'''
         ||||극적으로 기회가 온 한화 장종훈(37)의 마지막 타석이었다. 올스타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장종훈은 16일 올스타전 6회부터 계속 헬멧을 쓴 채 덕아웃에 앉아있었다. 서군 김재박 감독으로부터 6회에 “9회에 나갈 준비를 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최근 몇년동안 언제 나갈지 모르는 대타 습관 때문에 헬멧을 벗지 않았다. 그러나 9회 투아웃까지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서군이 6-5로 뒤진 9회 2사 1·2루에서 조인성이 그대로 출장했다. 조인성이 아웃이 되면 장종훈에게는 더이상 기회가 없는 상황. 그런데 그 간 덕아웃에서 의사결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또 다른 서군 포수 한화 신경현은 이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하고 조인성이 1회부터 8회까지 포수 마스크를 썼다. 조인성 타석에서 대타를 내면 동점이 됐을 경우 9회말에 뛸 포수가 없다는 것과 경기가 여기서 끝나면 장종훈에게 타석이 돌아오지 않는 것 사이에 고심하던 김 감독은 신경현에게 “뛸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신경현이 'OK'를 하자 볼카운트 1-0에서 재빨리 대타 장종훈을 외쳤다.(후략)||
          * 2005년, [[롯데 자이언츠|모 팀]]을 겨냥하여 '5월이 되면 내려가는 팀이 나온다'는 명언을 시전.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데, 김재박의 명언은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가 아니고 "5월이 되면 내려가는 팀이 나온다"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9098|기사]] 하여간 당시 2위던 모 팀은 5위로 시즌 마무리. 최근 나온 증언에 따르면 이 말은 그 [[롯데 자이언츠|모 팀]]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라, 현 시점에서 소속팀 현대가 최하위에 쳐져 있긴 하지만 일정 간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어떤 팀이 미끄러지는 간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의 발언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재평가를 하기엔 김재박 감독 본인의 인증이 너무나도 커서...
  • 김태희 . . . . 4회 일치
         2014년 5월 29일, 김태희는 중국 사극 드라마 《[[서성왕희지]]》 제작발표회에 참석하며 중국 데뷔를 알렸다. 그녀는 극중 왕희지의 아내 씨루이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중국 드라마 출연..'서성왕희지' 제작발표회 참석|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453046606094168&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저자=고규대|날짜=2014-05-30|확인날짜=2015-08-05}}</ref> 김태희는 자신의 역할 씨루이에 대해 "뻔한 여성상이 아닌, 수하고 정의로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中드라마 '서성 왕희지', 유학 동경해 선택한 작품"[TD포토]|url=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26553404869440017|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고규대|날짜=2015-03-17|확인날짜=2015-08-05}}</ref> 이듬해 2015년에는 한국 브라운관으로 복귀해, [[SBS TV|SBS]]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에 한여진 역할로 출연했다. 김태희에게는 2년만에 안방극장으로 복귀작으로 최고 시청률 20.4%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최우수연기상,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SAF 연기대상] 김태희, 최우수연기상 수상 "'용팔이' 덕에 행복한 한 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16&aid=0000174514|출판사 =SBS funE |저자 =김재윤|날짜 = 2016-01-01|확인날짜 =2017-09-09}}</ref>
         김태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자연미인으로도 꼽힌다.<ref>{{뉴스 인용 |제목=한국 최고미녀 왜 김태희인가|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101131845363&sec_id=540101&pt=nv|저자=윤대헌|출판사=스포츠 칸 |날짜=2011-01-13 |확인날짜=2011-01-20}}</ref> [[중국]]에서 뽑은 [[한국]] [[여배우]] 위 1위에도 뽑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중국인, 김태희가 최고…송혜교 이다해 |url=http://morningnews.co.kr/article.php?aid=129319437931191006|출판사=모닝뉴스 |날짜=2010-12-24 |확인날짜=2011-01-20}}</ref> 또, [[전지현]]·[[송혜교]]·[[손예진]]·[[한가인]]·[[이나영]]·[[한지민]]·[[한예슬]] 등과 200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미인]]으로 불린다.
         김태희는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남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난 적은 거의 없고,<ref>{{뉴스 인용 |제목=장동건·김태희, 스타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이유?|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19696|출판사=[[SBS 뉴스]]|날짜=2008-05-22|확인날짜=2013-09-12}}</ref> 지금까지 연애 경험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애경험 고백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104030858401119|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이은지|날짜=2011-04-03|확인날짜=2013-09-12}}</ref> 2003년 인터뷰에서 [[천주교]] 신자여서 보수적이라며 [[혼전 성관계]]와 [[낙태]]는 절대 안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가 생각하는 ‘낙태’와 ‘혼전결’은…|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3371|출판사= 뉴데일리|날짜=2012-12-28|확인날짜=2013-09-12}}</ref>
  • 김혜선(배우) . . . . 4회 일치
         요즘은 억센 아줌마 캐릭터로 알려진 [[배우]]지만,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과 [[조선왕조오백년]]-한중록,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남자 청소년들에게 김혜수, 하희라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기세를 이어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히로인]]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93년의 대히트 드라마였고 그녀의 연인 역할로 나왔던 주인공이 그 유명한 터프가이 [[최민수]]였다.[* 최민수와는 앞서 1991년 [[무동이네 집]]에서 커플로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왔었다. [[무동이네 집]]에서의 최민수가 이후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을 연상케 하는 허당 이미지였다면 [[걸어서 하늘까지]]의 배역은 전형적인 터프가이 반항아였던 것에 비해, 김혜선은 두 작품 모두 청가련 형 여주인공이었다.] 더불어 김혜선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었다. '김혜선 과거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 그 시절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 2016년 [[SBS]] [[우리 갑이]]
          * 2017년 [[MBC]] [[훈장 오남]]
          * 2011년 금나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4회 일치
          * 간적으로 "사라지는 개성"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 이것은 단한 "기술". 상대의 감각이 딴데로 돌리는 것이다. 요령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물에 섞이는 것"
          * 신장비인 아이언솔은 다리로 강한 충격을 준 간 블로우 백 같은 작용을 해 부담을 덜어주고 위력을 배가시키는 서포트 장비이다.
          * 그런데 여기있는 우라라카는 떨어질 뻔한 간에도 능력을 발동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무 대책도 없이" 적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4회 일치
          한편 아랫층으로 떨어뜨린 선두그룹은 서둘러 오버홀과 단독으로 그를 추격하러 간 밀리오를 따라나서려 하나, 사전에 버림말로 동원된 "철포옥 핫사이슈"에 발목이 잡힌다. 이때 혼자서 이들을 처리하겠다며 나서는 타마키. 더이상 밀리오의 발목을 잡을 없다고 다짐한다.
          * 구속이 풀린 호죠가 육탄돌격을 감행한다. 타마키는 대합조개 껍질을 생성해 막으려 한다. 그런데 어느 틈에 그것이 사라진다. 세츠노의 개성 "절도". 남이 가진 물건을 자기 손으로 간이동시키는 묘한 개성이다. 타마키가 생성한 껍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다시 생성할 틈도 없이 호죠가 엄습한다.
          * 호죠의 공격을 받는 간, 그리고 "기대 받으면 부응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간 타마키도 떠오른 것이 있었다. 중학교 때 "개성 교육" 시간. 이때도 타마키의 성격이 문제였다. 교사들에게는 "좀 더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 받았지만 쉽게 긴장하는 탓에 제대로 개성을 쓰지 못했다. 결국 교사도 포기하고 빠져있으라는 상황.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4회 일치
          * 쿠로노의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를 시계바늘처럼 늘여서 공격하는 능력인데 여기에 당한 대상은 움직임이 둔화된다. 공격하는 간 자기 자신은 정지된 상태여야 한다는 패널티가 존재. 여기에 당한 아이자와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달팽이 같은 움직임 밖에는 취할 수 없다. 그를 포획한 쿠로노는 그 몸을 제압한 채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리는 사실 "두목"의 딸이며 오버홀은 목적을 위해 뭐든 쓸 수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 [[네모토 신]]을 먹고 파워업한 오버홀은 원 포 올 풀카울 20%로도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 [[미도리야 이즈쿠]]는 파편이 되어 오버홀이 접촉되지 않은 지면을 벽으로 삼아서 돌진한다. 그래도 오버홀은 자기 근처의 지면을 촉수처럼 뻗어서 공격을 가하는데 매우 빠르고 정교해서 피하기 쉽지 않다. 오버홀이 죽어도 공격을 머뭋지도, 에리를 포기하지도 않을 인물이라고 직감한 미도리야는 단기결전으로 치명상을 주는 걸 노린다. 미도리야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천장을 박차고 떨어지며 정수리를 노려서 공격을 가하나 오버홀은 몸을 비틀어 피해서 오른팔을 다치는데 그쳤다. 오버홀은 지금 미도리야가 빠르고 강하긴 해도 루밀리온 [[토오가타 밀리오]]나 [[서 나이트아이]]에 비하면 너무 움직임이 단해 오히려 쉬운 상대라 평하며 반격을 가한다.
          에리의 회상을 통해서 단히 에리가 한계에 달할 때도 분해오 수복을 거듭해왔음이 밝혀졌다. 원 포 올 20%의 미도리야를 상대로 여전히 우위를 점하나 생각보다 타격을 받고 밀리오처럼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상대와 싸우는데 질력이 나서 에리를 협박하는 걸로 전략을 바꾼다. 오랜 시간의 세뇌와 학대로 간단하게 성공. 에리가 "돌아갈 테니 모두를 되돌려달라"고 애원하게 만든다. 자신만만하게 미도리야에게 "에리는 너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선언하나 미도리야는 굴하지 않았고 그때마침 류큐 팀이 현장에 착한다.
          마침내 얼굴이 드러났다.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카락을 시계바늘 모양으로 늘려서 공격하는 묘한 개성이다. 당한 상대는 움직임이 극도로 느려진다고 하는데 이름으로 보면 몸에 조작을 가하는게 아니라 대상의 시간을 조작하는 걸지도 모른다. 지속시간은 약 1시간. 공격하는 간에 자기 자신은 정지해 있어야 한다는
  • 남경민(배우) . . . . 4회 일치
         *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2011년]]) ... [[김명길 (1894년)|김명길 상궁]] 역(조연)
         * 《마지막 어린 상궁 성옥염》([[2011년]]) ... 홍정
         * 《대한제국 조선 융희양제 이왕 종》([[2011년]]) ... [[정효황후]] 역(주연)
  • 남보라(배우) . . . . 4회 일치
         어릴 때 방송 출연을 한 탓도 있지만, 데뷔한지 오래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연 미인이다. 숱한 여배우들이 휴식기 지나면 '몰라보게 예뻐졌네(고쳤네)'소리 듣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 여성의 광고 모델 중에서 미모 인정이라 할수 있는 화장품 광고에 (회사는 바뀌지만) 끊임없이 캐스팅되고 있다. [[부르조아]]화장품 모델로는 동양 최초였다. 동안에 하게 생긴 덕에 섹시한 이미지는 없다. 섹시를 표방한 화보가 없지는 않은데, 전혀 안 어울린다. 그래도 비율도 좋고, 날씬하고 예뻐서 화보나 해외 관고아지에서 수영복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 배우답긴 하다.
         2017년 4월, 여성조선 잡지에서 쉬는 대부분의 시간을 본인은 혼자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한마디로 [[집이]]로 불릴만큼 집을 굉장히 편안해한다고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그냥 종이에 쓴다고(...)... 화나는 일, 답답한 일, 힘든 일. 그 간 차오르는 여러 뒤섞인 감정에 이름표를 붙인다고.
         ||<|3> [[2015년]] || [[내 마음 반짝반짝]] || 이정 || ||
  • 남윤정(탤런트) . . . . 4회 일치
         * [[1995년]] [[MBC]] 특별기획드라마 《[[제4공화국 (드라마)|제4공화국]]》 ... [[윤필용]]의 부인 허필
         * [[1998년]] [[SBS]] 일일시트콤 《[[풍산부인과]]》
         * [[2006년]] [[KBS]] 아침드라마 《[[옥이]]》 ... 윤정혜 역
         * [[1974년]] 《유관
  • 드래곤볼 . . . . 4회 일치
         나메크 별에서 전투력 이상 반응이 나타나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프리더가 드디어 죽었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 발언을 하자마자 광선 총에 무수히 맞아서 시체도 안 남기고 소멸한다. 숙청을 한 것은 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망토 장비).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이 캐릭터가 "우리가 우주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건 프리더 님 덕분, 언젠가는 우리 종족을 부흥시켜 주신다고 약속했다. 프리더 님이야 말로 전 우주의 구세주다!"라면서 열렬한 프리더 빠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초사이어인 오공의 전투력을 계측한 간 계측기가 폭발하여 기지채로 전멸.
         나메크별 사람들이 모두 살아나고, 덴데가 오공과 프리더를 제외한 모두를 지구로 간이동시키는 소원을 비는 장면.
          * 소원이 불발한 프리더가 덴데에게 공격을 날리지만 아슬아슬하게 간이동해서 피한다.
          * 부활한 베지터가 날아와서 프리더에게 한 방 먹이려 하지만 역시 아슬아슬하게 간이동 당한다.
  • 랑그릿사 . . . . 4회 일치
         이렇게 각종 요소들의 추가로 매우 성공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는 단한 턴제 시뮬에서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랑그릿사가 암흑룡과 빛의 검에 대항하는 게임이라는 점은, 판타지 세계관을 소재로 한 시뮬레이션 RPG라는 점만이 아니라, 줄거리 역시 단히 '빛과 어둠의 대결'이라는 판타지적 선악대결의 관점 만이 아니라, '제국에 대항하는 저항군'이라는 요소를 더해서 국가간의 전쟁이 복합된 전개가 들어가는 등. 양자 간의 유사성이 많다.(물론 넓게 보면 '스타워즈'의 영향이겠지만.)
         단한 유사성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서로 다른 경쟁 게임기에서 비슷한 장르로, 이렇게 많이 비슷한 게임이 나왔다는 점에서 보면, 랑그릿사는 파이어 엠블렘을 굉장히 많이 의식하여 대항하는 관점에서 만든 게임으로 보는 것도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파이어 엠블렘 역시 랑그릿사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전의 계보(1996)에서는 먼저 나온 랑그릿사 2[* 정확히는 멀티엔딩 요소와 더불어 분기에 따른 연애까지 갈라지게 만드는 [[슈퍼패미컴]] 이식작 데어 랑그릿사를 가리킨다. 메가드라이브판 랑그릿사 2는 빛의 후예 엔딩 하나만 있는 리아나 일직선이다.]를 연상케 하는 '연애 요소'를 도입한데 더해서, 단히 엔딩에서 맺어지는 상대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2대에 걸치는 싸움을 묘사하는 등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 마기/324화 . . . . 4회 일치
          * "성궁은 일 일라의 세상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환시키는 시스템이자 나도 이 세상의 일부, 인간이 신을 내다볼 없다."
          * "신의 다중구조. 그 서를 뒤바꾸는 법도."
          * 하지만 우고는 전혀 그럴 생각은 없었다는 듯 "신의 서를 뒤바꾼 것 뿐"이라고 답한다.
  • 마기/336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단히 공격해봐야 금새 재생해버리기 때문에 신드바드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념"을 꺾어야 한다.
          * 14세의 신드바드는 "불합리한 운명에 응하는 것과 파괴하는 것 어느 것이 옳은가"를 묻는다.
          * 알리바바가 위험한 간이었으나 알라딘이 어느 새 나타나 방어마법을 펼친다. 그의 뒤에서 연백룡과 쥬다르가 뛰쳐나온다.
          * 신드바드는 자신의 고향이 전쟁을 일삼는 지옥도였고 그걸 바꾸기 위해 던전 공략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솔로몬 왕의 세상은 인간의 선의만으론 바꿀 수 없는 부조리함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부조리한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힘으로 파괴하는게 옳은지 묻는다. 이것이 바알이 신드바드에게서 본 "분노와 영걸의 신념"이다. 바알은 이것이 단한 살육전이 아니라 "신을 결정하는 시련"이므로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는 이상 결판이 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 마기/352화 . . . . 4회 일치
          * 신드바드는 다윗이 한 행동의 모을 지적하고 아르바는 여기 있는건 진짜가 아닌 분신체임을 간파한다.
          * 다윗이 직접 알라딘을 내리친다. 알라딘이 공간을 비틀어 튕겨내지만 계속 이어지는 공격에 틈이 생긴다. 다윗이 알라딘의 빈틈으로 공격을 날리며 자신의 확신은 실현되며 운명을 볼 수 있는 자신이야 말로 진정한 특이점이라고 외치는데, 그 간 다윗의 신체가 갈라지면서 신드바드가 나타난다.
          다윗은 그렇게 둘 없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이쪽에서 할 말이라며 이제야 "사치스러운 미래"가 손에 들어올 것 같다고 한다. 알라딘의 뜻도 같다. 그들이 원했던 모든 것이 실현가능한 미래가 눈 앞에 있다.
          * 이때를 놓칠 없다. 백룡과 알리바바도 엄호한다. 셋의 집중 공격을 받자 다윗도 산산히 조각난다. 우고가 빨리 지상으로 가라고 외치고 알라딘이 솔로몬의 지혜를 발동한다.
  • 백승주(정치인) . . . . 4회 일치
         [[1961년]] [[3월 20일]]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에서 태어났다. 구미 오로초, 대구 성광중,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3월]]에 국방차관으로 선임되었다. 보통 국방차관은 예비역 [[중장]]이나 드물게 재정 전문가가 보임되는데 비해서 수하게 안보 연구(북한군사 전문)를 해온 [[민간인]]이 선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역대 최연소 차관이며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거의 독점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몇 안 되는 민간인[* 여기서 민간인은 비장성 출신.] 출신이다. 참고로 병역은 [[중위]]로 마쳤다.[* 아무래도 보직이 보직이다 보니 예비역 병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이 파격적이다.]
         [[최실 청문회]]의 새로운 X맨으로 등극 중이다.[* 최실, 박근혜 게이트의 우병우 증인 등 변호하는 듯한 답변 유도와 태블릿PC에 집중하고 야당 의원에게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 백미는 왜 최실의 PC를 조사했냐는 것. 그리고 [[노승일]]이 멋대로 문서를 복사해 갔다고 범죄행위로 몰았다. --노승일은 쿨하게 처벌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승일에게 무슨 의도로 문서를 복사했냐는 등 어떻게든 물타기를 시도했다가 의도와 정 반대로 답변이 나와서 모두 실패했다. 박근혜와 친족관계임이 밝혀지면서 '친박 이완용을 넘어서는 친족 백승주가 왔다' 는 평이 나왔다.
  • 백이소 . . . . 4회 일치
         고려 때 [[박경]](朴慶純) 일당의 난을 진압한 [[청도]] 호장 [[백계영]](白桂英)의 후손인 선략장군(宣略將軍) [[백희]](白熹)의 둘째 아들로 [[경주부]] 서면 부산촌(富山村) 출신이다. 풍채가 크고 힘이 출중하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92년]](선조25) 6월 [[경주]]지역 의병장으로 경주부윤 [[윤인함]], 판관 [[박의장]]과 함께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였다. 노모와 아내를 산 속에 피신시킨 후 산에서 내려와 가복들을 이끌고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무찔렀다. [[1594년]]([[선조]] 27)에는 갑오별시 병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봉사에 특제되었다.<ref>《[[부암실기]]》</ref>
         [[1597년]](선조 30)에 왜적이 재차 침입해오자 적을 공격하던 중 탄환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부상당한 몸으로 고통을 무릅쓰고 다시 출전하자 경주 판관이 만류했으나 '신하된 도리로 죽을 뿐'이라 말하며 [[영천]] [[창암]]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장 [[최봉천]](崔奉天) 등과 함께 절하였다.<ref name="dg">《[[동경잡기]]》</ref>
         [[1814년]](조 14년)에 병조참의에 증직되었으며, [[광산사]](光山祠)에 배향되었다.<ref> 《경주읍지》 </ref> 광산사는 훼철되었다가 [[광산정사]](光山精舍)로 복건되었다.
         **계배 : 숙부인 [[천 김씨]](順天金氏), [[김언광]](金彦光)의 녀
  • 부산광역시/인물 . . . . 4회 일치
         * [[권찬]] - 동래구
         * [[박천(배우)|박천]] - 동래구
         * [[박철]] - 중구(부산)
  • 붐(연예인) . . . . 4회 일치
         '''하지만 각종 사건 사고들이 터지면서 점점 비호감 이미지로 변해갔다'''. 처음 몇 번이야 어찌 넘길 수 있었지만, 온갖 악명들이 다 누적되면서 안 그래도 [[비호감]]이었는데, 사고가 터지자 예전애 있던 논란들까지 다시 튀어나오며 더 밉상으로 보이게 되--면서 밑바닥까지 뚫게 되--는 악환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결국 [[연예병사]] 논란과 [[도박]] 사건으로 치명타를 먹고 제대로 몰락했다.
         그런데 2010년 12월 뜬금없이 유소영과 이켠의 결별기사, 그리고 당연한 수으로 사귄 적도 없다는 기사까지 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2350285|#]]
         결국 DJ를 맡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영스트리트에서도 퇴출되었으며[* 11월 중부터 [[희철]]이 임시 DJ로 투입되었고, 이후 [[제국의아이들]]의 [[황광희]]를 거쳐 마지막 임시 DJ였던 [[K.WILL]]이 12월 말부터 정식으로 자리를 이어받았다.], [[놀라운 대회 스타킹|스타킹]]에서도 대부분의 장면들이 최대한 편집되고 목소리만 나갔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6&sid2=224&oid=109&aid=0002659131|#]]
         복귀 이후에 라디오 진행도 하고 있는데 러브FM에서 2016년부터 2017년 3월 중까진 붐의 드라이빙 클럽을 진행했다가 2017년 3월 20일부로 붐붐파워로 파워FM에 복귀했다. 의외로 라디오에선 복귀 이후에 논란이 없고 청취자들에게 붐을 응원하는 문자들이 오는 걸 보면 라디오에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4회 일치
          * 아스타, 매그너 스윙, 고슈 아들레이, 락 볼티어의 활약으로 스코어는 식간에 9:5로 벌어진다.
          * 그런데 돌고래 가면은 노래마법 "어머니의 자장가"를 사용, 챠미를 한 간에 재워버린다.
          * 아스타는 보이는 족족 베어가며 단무식하게 돌진하고 있다.
          * 챠미가 백야의 마안의 마도사도 식간에 리타이어 시켰던걸 생각하면, 챠미를 쓰러뜨린 해저의 마도사는 굉장히 수준이 높다.--더러운 수면기--
  • 블리치/675화 . . . . 4회 일치
          * 시호인 요루이치의 변신은 "홍 뇌수전형 륭흑묘전희". 고양이와 같은 형태로 변한다
          * 사실 만해이거니 생각했는데 홍의 바레에이션이었다.--얜 참백도가 없는 건가?--
          * 홍으로 전신을 감싼 상태기 때문에 '''올누드'''
  • 상디 . . . . 4회 일치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태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나미(원피스)|나미]]나 [[니코 로빈]]과는 다르게 지식량이나 정보 수집 능력 면에선 떨어지지만 '''주어진 상황 자체를 바꿔 버리는 전략안'''이 특출해 해적단 내에서 비공식적인 참모 역을 맡고 있다.[http://blog.naver.com/zt777/20175605172 일단 밀짚모자 멤버 중 조커 겸 히든카드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는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러나 해당 링크의 인터뷰 내용은 루머일 가능성이 있다. 상디가 조커 포지션인건 사실이지만 결말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활약이 있을거라고 보장할수는 없다는 것.] 루피와 조로와 함께 해적단의 주 전투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면서도 완력에 의존하는 [몽키 D 루피|이] [롤로노아 조로|둘]과는 달리[* 그런데 조로는 무조건 완력에 의존하는게 아니고 적어도 전투에 관한한 머리만큼은 밀짚모자 일당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더구나 루피 부재시 자신이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전략이나 작전을 지시하는 등 상디와는 다른 방향의 두뇌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히려 루피야말로 수하게 완력과 본능에 의존하는 스타일에 더 가깝다.] 일행의 식단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전황 자체를 유리하게 바꿔버리는 능력을 보여주는 등, 밀짚모자 해적단에서는 전술전략 양쪽을 모두 갖춘 유일한 멤버이다. 쉽게 말하자면 루피와 조로가 [[람보]]같은 케릭터라면 상디는 [[007]] 같은 스파이 스타일. 예를 들면 [[바로크 워크스]]의 꼬리를 잡거나, [[갓 에넬]]의 비행선을 망가뜨리거나, 정의의 문을 닫아 해류를 만들어 탈출을 쉽게 만들어 낸 장면들은 그의 임기응변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한 최고의 두뇌플레이. 말하자면 지략과 완력을 모두 겸비한 밀짚모자 해적단의 '''조커'''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그의 또 하나의 염원은 [[투명투명 열매]]를 얻어 여탕을 실컷 엿보는 것 이었는데, [[압살롬(원피스)|압살롬]]이 이미 그것을 먹어버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꿈이 깨지자]] 여러 가지 의미로 분노해 압살롬을 끔살낸다. 참고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상상해왔던 덕분에 투명투명 열매와 관련된 모든 전술을 파악하고 있어서 꽤 선전했는데, 위에 서술한 밀짚모자 일당 내 '히든카드'로서 첩보원 포지션에 덧대어 생각해보면 투명해진다는 능력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열매일지도. ~~당사자는 전히 음흉한 마음에서 원했던 것 뿐이지만(...)~~ --두번째로 먹길 원했던 열매는 [[또록또록 열매]]이다.이유는....알 것이라고 믿겠다.(드레드로자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왠지 적들에게 모습이 알려지지 않는 징크스가 있는데 [[바로크 워크스]]와 싸우게 되었을 때 위스키 파크에서 초상화가 그려지지 않거나 Mr.3일당과 전투에서도 열외되었고, [[Mr.2 봉쿠레]]가 왔다 갈 때 일당중 유일하게 그 자리에 없어 본의 아니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게 되어 [[크로커다일]]을 두 차례나 낚았고, [CP9]와 싸울 때도 혼자 해상 열차에 숨어들어 화려하게 깽판을 쳐주는 등 의도치 않게 중요한 간마다 히든카드가 되어 대활약. [[에니에스 로비]]에서 깽판쳐서 수배서가 배부 될 때에도 상디만 렌즈 커버를 안 벗겼는지 사진이 새까맣게 나와서 거의 추상화급 몽타주로 현상 수배서 사진이 대체된 상황이라[* 그리고 상디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에서는 그 수배서를 받아보고는 주인인 [[제프(원피스)|제프]](그만 쿡쿡거리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긴 했다)를 제외한'''요리사들 모두가 눈물나도록 배터지게 웃어가며 그 수배서를 손님들에게 광고지 뿌리듯 쫙 돌리기까지 했다.'''] 상디가 계속 '''히든카드'''로서 활동해 나갈 가능성에 힘이 더해져가는 중. 하지만 이렇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이 후 [[엠폴리오 이반코프]]에게 자신이 루피의 동료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무진장 고생했다.[* 이반코프는 이게 어디가 닮았냐고 믿지 않았지만 반대로 [[오즈(원피스)|오즈]]는 이걸 보고 상디를 바라보곤 "판박이네."라고 공격했었다. ~~오즈는 [[바보]]니까~~]
  • 샬롯 링링 . . . . 4회 일치
         흰 수염 [[에드워드 뉴게이트]] 사후에 [[어인섬]]에 자기 이름을 내걸고 그곳을 다른 해적들로부터 지켜주고 있으며 그 대가로 매달마다 10톤의 과자를 조공받고 있다. 어인섬처럼 특정한 곳을 보호해주는 대신 과자를 매달 조공받는 거래를 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러나 과자를 주기로 해놓고서 주지 않는다면 나라마저도 박살내버리는 듯하다. '''[wiki:"샤를로테(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과자에 무지막지하게] [wiki:"쿠키 몬스터"집착한다.]''' --[wiki:"간디(문명 시리즈)"히 과자를 내놓지 않으면 유혈사태는 없을것 입니다]--
         분노한 샬롯을 달래기 위해 [[타마고 남작]] 이 제안한 거래도 거절하고[* [[유스타스 키드]]가 빅 맘 해적단의 산하 해적선 2척을 박살내 버리는 바람에 손해가 막대하여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루피 일행이 가진 보물을 전부 넘겨주는 대신에 사탕 공급은 2주 기다리자고 한 것. 허나 '''"원하는걸 타협하는 해적이 어딨냐!"'''며 단칼에 거절했다. 파파구는 빅 맘이 거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으나 딱히 나쁘지않은 거래를 거절한 건 상대방의 뜻대로 되는 거래를 샬롯 링링이 싫어하기 때문인 듯.] 결국 수틀린 [[몽키 D 루피]]에게 어인섬의 지배권을 놓고 도전을 받았다.[* 루피 曰 '''"너는 이 섬을 지배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원문은「危なっかしい」단히 위험하다는 뜻 보다는 위태스럽다거나 아슬아슬하다는 뜻에 가까운 의미로, 단히 샬롯 링링이 위험인물이라는 의미보다는 '''"너같이 기분따라 섬 하나 작살낸다 만다 하는 인간한테 맡겨두자니 안심이 안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 서울특별시/인물 . . . . 4회 일치
         * [[종(대한제국)|종]] - 종로구
         * [[이신]] - 중구(서울)
         * [[최실]] - 마포구
  • 서지석(배우) . . . . 4회 일치
         그간 드라마 ‘[[열아홉 정]]’이나 ‘[[글로리아(드라마)|글로리아]]’, ‘[[산부인과]]' 등으로 중년층에 인기를 끌었으며 본격적으로 전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얻은것은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이다.
         [[뜨거운 형제들]]에서 예능감을 과시했으며, 진무구 시키는대로 다하는 캐릭터였다.
          * '''[[열아홉 정]]''' (2006 - 2007) - '''박윤후''' 역
          * 2006 [[KBS 연기대상]] 신인연기상 (열아홉 정)
  • 선조 . . . . 4회 일치
         조선의 인재풀의 포텐이 폭발할 때 재위에 올랐으며[* 이신, 권율, 류성룡, 이이, 정인홍, 이덕형, 이항복, 이원익 등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라고 칭송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 모두 이 시기 사람들이다!'''] 본인의 인재 보는 안목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왠 하급 군관을 10계급 특진시키냐면서 말이 많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 군관 이름이 이신'''.] ~~그러나 본인의 인성이 문제여서...~~ '기축옥사' 같은 경우에는 다소 수단이 음습했으나, 이 때만 해도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이라고 실드칠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천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 한 몸 살겠다고 요동 너머로 도망치려 들고[* 결국 명나라가 우회적으로 거절하여 무산됐지만... ~~스탈린도 그런 짓은 안 했다!~~], 조정으로부터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 분조를 이끌면서 왕조의 권위를 어떻게든 살리려한 세자에게 격려를 못할 망정 양위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다만 이건 당시 선조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왕권이 최약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밀어주지 않나(...)...
         왜란 이후에도 그의 삽질은 계속되어, 당시 세자인 '''광해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인목왕후를 들이지 않나[* 사실 이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충공깽이지만, 관례적으로 중전의 지위를 공석으로 놔둘 수 없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중전은 궁녀들의 모임인 내명부를 통솔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은 단히 사적인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업무를 통솔하는 직책이기도 하므로 중전이 부재하면 궁궐의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전은 정치적으로 왕권과 후계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문종 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단종이 '수렴청정'을 통한 왕권 수호를 받지 못한 것이 세조의 쿠데타를 쉽게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인목왕후는 오히려 불안정만 불러왔지만--],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인 [[영창대군]]을 [[유영경]]등과 영합해 나중에 영창대군이 좀더 장성할 때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것때문에 광해군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왕위에 집착하게 되고, 영창대군의 최후와 [[인조반정]]의 원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 송금식 . . . . 4회 일치
         * 2004년 KBS1 《[[불멸의 이신]]》 ... [[황세득]](1537년 ~ 1598년) 역
         * 1999년 SBS 《[[풍산부인과]]》 ... 조폭 역(까메오)
         * 1999년 KBS1 《[[왕과 비]]》 ... [[강|신천부원군 태초 강]](1390년 ~ 1468년) 역
  • 송지효 . . . . 4회 일치
         | 《[[수의 시대 (드라마)|수의 시대]]》
         |오을
         * 보해 파스퇴르 막걸리
  • 송호창 (1967년) . . . . 4회 일치
         '''송호창'''(宋皓彰, [[1967년]] [[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국회의원이자 인권 변호사이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8110317 민주당, 송호창·이학영·백혜련 전략공천] 프레시안 2012-02-28</ref>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TV토론에 출연해 촛불 정국으로 대변되는 촛불민심을 지지하여, '촛불 변호사' 로 활약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0662 '촛불 변호사' 송호창, 안상수 16년 아성 '탈환'] 오마이뉴스 2012.04.12</ref>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로 나선 [[박원]]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65 ‘박원 대변인’ 송호창, ‘보온병’ 안상수에 도전장] 미디어오늘 2012-02-06</ref>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의왕·과천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ref>[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깨진 링크|url=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ref>
         * [[박원]] 서울시장 후보 대변인
         [[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7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친문]][[분류:문재인]][[분류:박원]][[분류:안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196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산 송씨]]
  • 슈퍼히어로 . . . . 4회 일치
         초기에는 단한 이야기가 많아서 관점에 따라선 유치하고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슈퍼히어로 물은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였는데, 갈수록 단한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아니라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지거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이야기들을 내놓았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슈퍼히어로의 존재의의, 슈퍼히어로의 갱니적인 내면 갈등 등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리하여 역으로 독자에게 다양한 생각할 점을 던지는 깊이있는 작품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권선징악을 주소재로 잡고 진행되는 단한 스토리의 작품도 있지만 이것 역시 나름대로의 개성이나 재미를 표출하기도 한다.
         특성상 작품이 [[능력자 배틀]]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히 '[[초능력]]'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지혜]], [[용기]] 같은 정신적인 측면의 역할도 많이 나타난다. 특히 자신의 능력을 약간 활용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나 전술로서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
  • 식극의 소마/208화 . . . . 4회 일치
          * 키노쿠니가 힘을 더해 반죽을 치대기 시작하자 낱알처럼 흩어져 있던 반죽들이 커다란 덩어리로 모이기 시작한다.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반죽에 식간에 점성이 더해지는 것과, 가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힘으로 반죽을 해나가는 것에 놀란다. [[나키리 에리나]]는 완벽한 자세를 이룬 그녀의 하체가 비결이라고 간파한다. 다리와 허리의 힘을 충분히 실어서 반죽하기 때문에 힘이 낭비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자미는 여기에 아주 섬세한 반죽 실력 덕분에 쓸데없는 물을 더할 필요도 없어서 필요최저한의 윤기를 머금은 "진짜 소바"가 되는 거라고 설명한다.
          발력과 발상력, 아이디어, 허세. 이번에는 그런 것들이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소바는 들여온 시간과 역사만이 맛을 낼 수 있는 비법이라며 소마에겐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소바로는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고 일찌감치 승리선언을 한다.
          항상 건성건성하는 것 같던 죠이치로가 그때의 패배를 냉정하게 분석해준다. 패인은 하야마의 "향기의 일점돌파"를 이기지 못한 것. 앞으로 상대한 십걸들은 이렇게 각기 특기 분야에 특화된 인재들이다. 그러니 임기응변으로 떠오른 레시피만으론 이기기 어렵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라 소마도 히 인정한다. 죠이치로는 지적에 그치지 않고 그들에 대항할, 소마만의 무기를 일러준다.
  • 식극의 소마/230화 . . . . 4회 일치
          * 3rd Bout 제 3카드 대결의 주제는 "사과". [[타도코로 메구미]]에게 생소한 소재라고 할 없지만 파티셰인 [[아카네가쿠보 모모]]에게 너무 유리한 주제다.
          * 시노미야는 "근성론"을 펼쳐서 메구미의 소극적인 태도를 질타하는데, 우연히 메구미가 좋아하는 정만화 속 캐릭터인 "코치"의 가르침과 맞아떨어진다.
          모모는 주제가 결정된 간부터 임전태세였다. 자신의 인영 "붓치"를 상대로 말을 걸며 무엇을 만들지 구상에 들어갔다.
          초등학생 메구미는 한때 정만화에 푹 빠진 소녀였다. 특히 좋아했던 건 어떤 스포츠 근성 탁구만화. 거기 나오는 "코치"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녀가 중학생 때까지 탁구계에 몸담았던 것도 이 만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시노미야의 근성론이, 그 만화 속의 가르침을 일깨운 것이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4회 일치
         이와 같은 행보는 그가 드라마제작사 [[스타맥스]]의 기획이사로 재직하면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 '[[가문의 영광#s-2|가문의 영광]]', '압록강은 흐른다', '결한 당신' 등의 홍보와 마케팅 업무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까메오]] 출연자로 종종 작품에 얼굴을 비춘 적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인 '택시(TvN)',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당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s-1|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까지도 보수파 계열에서 정치적 지지 의사를 꾸준히 표명했는데, 이러한 행보는 사실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나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심현섭 본인의) [[아버지]]가 [[북한]]이 벌인 [[테러]]로 직하게 된 특수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참여정부 시절의 탄압 주장도 사실 그의 정치적 지지 행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공작원이 2008년 [[미얀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공작원도 아버지와 함께 남북 분단 시대의 희생자"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상태에 놓이고 후에 정치적 논란도 겪게 되는 심현섭 본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2009년]]에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광화문에 방한했을 때 환영행사의 사회를 본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심현섭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난 40년 동안 이 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했다.[[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111912124399784&type=1&outlink=1|#]]
         == 개그콘서트 출연작 목록 (가나다) ==
  • 안내상 . . . . 4회 일치
         * 2004년 [[KBS1]]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신]]》 ... 정여립 역
         * 2007년 [[MBC every1]] 《[[조선 과학수사대 별검]]》 ... 배복근 역
         * 2011년 [[문화방송|MBC]] 미니시리즈 《[[마이 프린세스]]》 ... [[종]] 역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흥 안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199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
  • 온주완 . . . . 4회 일치
         || '''출생''' ||<(> [[1983년]] [[12월 11일]]([age(1983-12-11)]세), [[전라남도]] [[천시]] ||
         || '''학력''' ||<(> 천고등학교[br][[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
         || 2007년 || [[MBC]] || [[별검]] 시즌1 || 김강우 || ||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83년 출생]][[분류:천시 출신 인물]][[분류:2002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원피스/838화 . . . . 4회 일치
          * 그는 "늘어나는 비스킷"이야 말로 자신의 꿈이며, 그래서 "갑옷"도 늘어난다는 것. 그는 루피가 필사적으로 부 갑옷도 "무한히 만들어내는 비스킷병 중 하나"일 뿐이라며 루피를 조롱한다.
          * 도시에 잠입해 있던 페드로와 브룩은 마을을 찰하던 비스킷병 안에 숨어드는데 성공한다.
          * 페드로는 비스킷병이 빅맘의 능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찰이 끝나면 성으로 돌아갈 거라며, 잠입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 크래커는 단 비교상으론 칠무해급의 강자. 물론 빅맘은 이보다 강할 것이다.
  • 원피스/846화 . . . . 4회 일치
          * 같은 시각 상디는 빅맘 샬롯 링링을 상대로 교섭을 벌인다. 그가 히 결혼하는 대가로 섬에 있는 밀집모자 일당을 무사히 돌려보내주는 것. 의외로 빅맘은 흔쾌히 승락한다. 자신은 "사리에 맞으면 말이 통하는 여자"라며 상디만 협조해주면 그런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상디가 고맙다고 답하며 꼭 샬롯 푸딩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하자 빅맘은 만족스럽게 웃는다. 하지만 "원래 밀집모자 일행이 한 짓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무단침입은 물론 크래커를 쓰러뜨리고 어인섬에서 과자를 가로챈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빅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게 없다. 하지만 이 정략결혼이 성사돼 제르마의 군사력만 손에 넣는다면 별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상디는 그저 동료들이 무사하다는 생각만으로 도망도 치지 않고 히 결혼하겠노라 약속한다.
  • 원피스/854화 . . . . 4회 일치
          * 빅맘은 다과회에서 [[상디]]가 푸딩의 베일을 벗기는 간 총에 맞아 죽고 나머지 빈스모크 일가도 학살 당할 것을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 [[샬롯 몬도르]]는 오페라의 증언을 의심해서 독자적으로 찰 병력을 차출한다.
          브룩은 계속되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파악한다. 빅맘이 짜놓은 "결혼식"의 전모는 이렇다. 모두가 주목하는 "맹세의 키스"를 하는 간, 상디가 푸딩의 베일을 벗기면 그 아래 있는 "제 3의 눈"을 발견하고 당황할 것이다. 그때 푸딩이 상디의 "미간"에 총알을 박으면 이것이 신호가 돼서 빈스모크 일가의 배후에서 무수한 총알이 쏟아질 것이다.
          이들의 피가 뿌려지고 나서부터가 "진정한 축제". 그녀가 그토록 케이크에 공을 들인 것도 이 간에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지휘관을 잃은 제르마가 통채로 자신 손에 들어올 것을 기대하며 흥겨워한다.
  • 원피스/863화 . . . . 4회 일치
          그것은 단한 질문이 아니라 "소울 보커스". 소울소울 열매의 기술이다. 모간즈는 누구더러 들어라는 건지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시작한다. 그 기술은 생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집착"에 말을 건다. 조금이라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대로 목숨을 빼앗기는 흉악한 질문. 요리사들은 말도 안 된다고 억울해하면서도 속절없이 영혼을 빼앗긴다.
          * 미러 월드의 밀집모자 일당은 작전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신이 났다. [[징베]]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거울 입구에서 브륄레가 루피 모습으로 변신시킨 동물들을 바깥으로 내던진다. 뒤에선 [[나미(원피스)|나미]], [[쵸파]], [[캐럿(원피스)|캐럿]], [[시저 크라운]]가 거들고 있다. 브륄레는 빅맘이 두려워 징징대고 있지만 시키는대로 히 따른다. 동물들을 모두 내보내자 페드로와 징베도 다과회장으로 뛰어내린다.
          * 카타쿠리는 자식 주제에 끼어들지 말라며 야단치지만 그가 루피의 진짜 목적이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라고 밝히자 얼굴 색이 바뀐다. 카타쿠리는 루피에게 "그런 기밀을 아는 건 우리 쪽 인간 뿐일 텐데 누구에게 들은 거냐"고 루피를 심문한다. 벳지는 그 간 작전이 꼬여버린 걸 직감한다. 어찌됐든 사진을 깨긴 해야겠는데...
  • 유민상(개그맨) . . . . 4회 일치
         당연하지만 똥군기가 갈수록 젊은층들의 심각한 문제가 되어가는 마당에서 이런 건 적절치 않은 행동이다. 단히 피자박스가 발견됐다고 혼내는거면...그리고 개콘 초창기 후배들 집합시켜 갈구다가 퇴출된 선배들도 있었고, 당시 유민상도 피해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진심으로 유민상이 갈굴 리는 사실 없긴하다. 다만 개그맨들의 에피소드는 MSG가 많이 과다한 게 사실.
         [[민상토론 2]]에서 '''[[박근혜-최실 게이트|"요즘 정치가 너무 웃기기 때문에 코미디가 재미없는거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 [[개그 콘서트]] 출연작 목록 (가나다) ===
         === 폭소클럽 출연작 목록 (가나다) ===
  • 유언/만화 . . . . 4회 일치
         만화의 서는 가나다으로, 등장인물의 서는 사망 장면이 등장한 으로 적는다.
  • 은혼/616화 . . . . 4회 일치
          * 위기의 간에 나타난 [[야규 큐베]]. 오랜만에 진지모드다.
          * 철통 같았던 가부키쵸의 문을 열어젖힌 [[오우가이]]. 그의 뒤를 따라 해방군이 물밀듯이 밀어닥친다. 다키니족이 선봉에 서서 전진. 식간에 가부키쵸 측이 수세에 몰린다.
          힘겹게 하나씩 처치하고 있지만 다키니의 병사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보통 천인 병사는 무쌍하듯 처부수던 양이전쟁의 경험자들도 이들을 상대하는건 목숨을 걸어야할 판이다. 긴토키와 사이고는 이런 놈들이 마을로 몇 명이나 들어갔을지 셀 수도 없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무서진 문을 사수하며 더이상 마을로 진입되는 병력이 없도록 저지할 생각이다.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 [[턱이]]등도 최선을 다하지만 적들의 수가 줄지 않는다.
          * 사이고의 의지와 달리 스마이루 일행은 생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타에가 척후를 맡아 뒤를 방비하며 피신 중. 그러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정면에서 덮쳤다. 앞서 가던 남자 주민이 식간에 피떡이 되면서 진로가 막힌다. 설상가상 뒤에서 추격하던 다키니들도 목전까지 도달.
  • 은혼/627화 . . . . 4회 일치
          >그리고 꽃이 만개한 그 간, 지구는 평화의 화원이...
          게도마루와 식신들은 판데모니엄으로 차린 다채로운 급식과 배식자들의 호러블한 비쥬얼로 배식을 익사이팅하게 해주며,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찰대를 빙자해 서로 식신이 더 흉악하고 무섭다고 싸우며 소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은 기도로 싸움하게 좋은 날씨를 만들며 싸움을 조장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 타에는 세상이 망할 판이 돼서야 돌아온 경들도 여전하다고 대꾸한다. 히지카타는 경은 지구가 망하는걸 구할 의무는 없지만 이것저것 바빴다고 변명한다. 거기에 맞장구치며 허공에서 내려앉는 두 사람.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도 무사히 귀환했다.
  • 은혼/634화 . . . . 4회 일치
          * 위기의 간, 가구라를 구해낸 것은 오빠 [[카무이(은혼)|카무이]]와 7사단이었다.
          >기계 발명가란게 모을 만드는 일이거든.
          * 이제 지구의 봉쇄도 끝이다, 노사는 그렇게 말했다. 겐가이가 제공한 실린더에는 나노머신 "벌"을 멈출 물건이 들어있다. 이것은 "벌"을 파괴하는 나노머신. 겐가이의 말대로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부수는 유일한 창"이다. 이 녀석을 뿌리면 에도를 장악한 나노머신이 멈추지만, 이걸 뿌릴 기계를 사용할 수 없는 모된 상황. 그래서 필요한 것이 대량의 폭약이다. 폭발을 이용해 이 안티나노머신을 연쇄적으로 확산시켜서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 거기를 기반으로 에도에서 벌을 지워버린다. 시간이 들더라도 이 방법이 최선이다.
          * 폭발은 현장에 있던 야토족 부대를 집어삼킨다. 하지만 겐가이는 아니었다. 가구라가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폭발 속에서 겐가이 영감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겐가이는 구했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정도 대폭발로도 야토족 부대를 일소하지는 못했다.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야토족들이 추적해온다. 가구라가 그들을 의식하고 고개를 돌린 간, 역시 건재한 노사가 가구라의 정면에서 나타나 공격을 가한다. 가구라가 쓰러지면서 겐가이도 멀리 밀려나간다.
  • 이갑성 . . . . 4회 일치
         [[3·1 운동]]이 일어날 때는 병원 제약부 담당으로 재직 중 [[민족대표 33인]]에 [[기독교]]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원로격인 33인과 학생들과의 매개 역할을 맡아 학생 시위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0일]] 밤 [[서울]] [[남대문로]]5가의 함태영 집에서 [[함태영]], [[현]](玄楯), [[안세환]], 오상근(吳尙根) 등과 만나, 3월 1일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2월 22일]] 학생들이 따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이를 중지하고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여 성사시켰다. [[2월 27일]] [[박희도 (1889년)|박희도]], [[함태영]](咸臺永), [[김창준]](金昌俊), [[신석구]](申錫九), [[오화영]](吳華英), 이인한(李寅煥), 최성모(崔聖模), 이필주(李弼柱), 박동완(朴東完) 등과 함께 이필주의 집에 모여, [[함태영]]이 [[최남선]](崔南善)이 기초한 여러 가지 문서의 초안을 [[천도교]]계 인사 [[최린]](崔隣)으로부터 받아와, 그 취지에 찬성하여 [[기독교]]측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석방 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에 가입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재단 이사, 세브란스의약(醫藥) 지배인이 되었다. [[1925년]] [[2월]] 이창제(李昶齊), 현신덕(玄信德), 조철호(趙喆鎬), 배집(裵執), 변성옥(邊成玉) 외 5인과 함께 [[공산주의]] 계열의 [[반기독교 운동]]에 저항하기 위해 [[시사구락부]](時事俱樂部)를 조직하여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 주장에 저항하였다.<ref>김준엽, 김창 공저,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9)</ref>
         |제목="'친일파 세상'이 싫어 고국을 떠났습니다" - <nowiki>[이메일 대담]</nowiki> 국선열 왕산 허위선생 후손 재미동포 허도성씨
         당시 조선에는 여러 정당, 사회단체가 생겼다. 이갑성은 [[1971년]] [[12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이 되니까 왜 그리 많은 정당이 생기는지 한심한 상태였다. 그때가 언젠지 모르나하지 중장을 만나 등록된 정당이 몇개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74개라고 대답합디다"라는 것이다. [[한민당]]의 창립 발기인이었던 그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정부가 선후에라야 정당이 있는 법이지 독립도 정부도 아직 안섰는데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1945년]] [[10월]] 우후죽 생겨난 정당, 단체들을 하나로 모을 목적으로 정당통일기성회를 조직했고, 수십개의 단체들 중 뜻이 맞거나 성격이 비슷한 단체들은 통합되었다.
  • 이경실 . . . . 4회 일치
         현재 이미 전성기를 지난 나이임에도 간적인 애드립을 치는 능력은 동나이대의 개그우먼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젊은 개그맨들을 능가한다.
         [[이성미]], [[박미선]], [[조영남]] 등과 가깝다. 거센 성격으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꺼리거나 두려워한다. 무서운 [[군기반장]]으로 유명한데다 선배인 이성미조차도 예전에는 이경실을 피했다가 [[이홍렬]]의 중재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역시 군기반장인데다 선배인 [[이경규]]조차도 유독 그녀에겐 한 수 접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이경실보다 연상에 [[선배]]들이다. [[박명수]] 역시 그녀를 두려워한다. 박명수는 자신보다 선배인 사람들 앞에서는 특유의 사나운 캐릭터를 못 살려서 얼어붙는다. [[http://youtu.be/GNautvauUcA?t=4m52s|요즘은 호통 컨셉 믿고 떨면서도 들이댈 때도 있다]]. 예전에 이경실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명수는 웬만해서는 이경실과 방송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세바퀴]]에서 상황극도 해봤지만, 박명수가 시작부터 굳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동갑이지만 5년 후배인 [[지석진]]도 이경실을 굉장히 어려워 한다.[* 사실상 남자들은 [[군대]] 문제 때문에라도 동갑내기 여자들보다 [[기수]]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김구라]]조차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거의 최초로 기를 못 편 게스트다.[* 다만, 일상생활까지 포함하면 이재의 큰아들에게도 독설하다 맞을 뻔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이경실도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군기반장계의 히든보스이자 원로배우인 [[이재]]와 중견배우들인 [[김갑수]], [[김병기]] 등이다.
          * 2013년 [[원더풀 마마]] - 재갈점
  • 이경영(1960) . . . . 4회 일치
         이때 이경영은 당대 최고 젠틀맨 이미지를 가진 스타답게 연륜있는 유머로 넘겼었다. 첫 번째 사건 때는 유정현은 당황한 감정에 --시킨다고 욕을 하냐-- 살짝 화가 겹쳐 나있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소라도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김민종 본인도 자꾸 시키니까 욱하는 마음에 실제 대사를 질렀다가 "시키시니까 했는데요.. 아 [[방송사고]]다, 어떡하지.."이러면서 제대로 수습을 못 했는데, 이경영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웃으며 "제가 앞으로 김민종 씨 언어화 교육까지 책임지며 살겠습니다."라며 적절하게 마무리시키고 넘어갔었다.
         이에 대해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유죄판결 받았던 부분은 숨겼고]] [[언론플레이|단히 무죄판결'''만'''을 받은 듯이 말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적잖은 기사에는 잘못된 정보(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실려 있는 상황이다.
         >기자: 어느 간부터 미디어와 방송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어요
         그 외에도 이경영의 마지막 지상파 드라마 출연작인 KBS 2TV 푸른 안개에서 연출자-조연출자로 만났던 표민수 진형욱 곽정환 PD의 연출작('고독' '풀하우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인이는 예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커피하우스' '넌 내게 반했어' '아이리스 2' '프로듀사'(이상 표민수) '꽃피는 봄이 오면' '착한여자 백일홍' '수상한 삼형제' '당신 뿐이야' '왕가네 식구들' '당신만이 내 사랑' '내 남자의 비밀'(이상 진형욱) '한성별곡' '추노' '도망자 플랜B'(이상 곽정환) 등등)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결국 좌절됐다.
  • 이계순 (1927년) . . . . 4회 일치
         '''이계'''(李季順, [[1927년]] [[3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 교육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1953년]] [[경남중학교]] 영어교사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교수와 명예교수, 정무제2장관을 역임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개설하였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43092 이계 정무2장관 프로필]
         |후임자 = 이계
         |전임자 = 이계
  • 이대근 (조선) . . . . 4회 일치
         아버지는 도촌 [[이수형]]이고 어머니는 문절공 무송헌 [[김담]](金淡)의 딸 예안김씨이다. 연산 2년(1496)에 진사하고 음직으로 감찰과 홍천현감을 역임하였다. 그가 선영길에 흥 청다리를 지날 때마다 말이 피해가기에 살펴보니 금성대군이 화를 당한 곳이었다. 그날 밤 [[금성대군]]이 그의 꿈에 현몽하여 봉축하고 단을 쌓았다.
         《흥읍지(順興邑誌)》에 의하면 그는 선영을 다녀오던 중 흥 청달리를 지날 때 그가 탄 말이 길을 피하여 비껴가는 곳이 있으므로 이를 이상하게 여겨 하마 후 살펴본 뒤 이곳이 금성대군이 피흘린 곳이라 생각하여 의심을 품은 채 지나갔다. 그날 밤 이대근의 꿈에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나타나 그 곳은 자신이 피흘린 곳임을 말함으로써 곧 府事와 함께 사람을 시켜 조사한 후 이 곳을 봉축하고 단을 쌓았다. 이를 [[금성단]](錦城壇)이라 부른다.
         * 흥읍지{{쪽|날짜=2012-3-31}}
  • 이미연 (배우) . . . . 4회 일치
         그녀는 1988년 드라마 《[[사랑의 기쁨]]》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하며 연기자로 데뷔하였고 이후 가족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2기》에서 청하고 소박한 여학생의 이미지를 연기해 대중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로 어필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영화 1989년 《[[행복은 성적이 아니잖아요]]》,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히트작에 연이어 출연하며 1980년대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끌었다. 1991년 드라마 《[[하늬바람]]》으로 첫 성인 연기를 선보였다.
         || [[행복은 성적이 아니잖아요]]
         || 오정 역
  • 이승엽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5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방출 후 [[2010년]] [[12월 2일]] 1년간 1억 5,000만엔에 옵션이 포함된 연봉을 계약했다. 이 때 투수 [[박찬호]]와 같은 팀이 됐다. 이로써 [[200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퍼시픽 리그]]로 돌아와 등번호도 3번으로 정해졌다. 그는 연봉을 대폭 낮추는 등의 백의종군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로 교체해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을 받아 2할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팀의 꼴찌가 확정된 후반기 들어 맹활약하며 시즌 총 15홈런을 쳐 퍼시픽 리그 홈런 위 8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모습도 보여줬으나 타율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규정 타석 미달로 인해 위권에 들지 못했다.
  • 이영아(배우) . . . . 4회 일치
         2010년 [[KBS 2TV]]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양미]] 역으로 출연하여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2> 2007년 || 캬라멜 || 강 || 제작비 문제로 촬영중단 ||
         || 2010년 || KBS2 || [[제빵왕 김탁구]] || [[양미]] || ||
         || 2008년 || SBS ||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 || 봉 || ||
  • 이요원 . . . . 4회 일치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반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정 (드라마)|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 《[[정 (드라마)|정]]》
  • 이인 . . . . 4회 일치
         이인은 [[1896년]] [[10월 26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사일동(射一洞)에서 아버지 이종영(李宗榮)과 어머니 연일 정씨 정복희(鄭福姬)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 이관준은 영남의 명망가이자 [[성리학]]자였고, 삼촌 [[이시영 (1882년)|이시영]]은 독립운동가로 국하였다. 아버지 이종영은 [[대한제국]] 당시 애국 계몽운동단체인 [[자강회]](自彊會)와 [[대한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계몽운동가였다.
         1963년 [[민정당]](民政黨) 창당에 참여하고 최고위원이 되었으나 범국민단일야당운동 추진에 실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1965년]] 이인은 [[안재홍]] 사망 소식을 접하고, [[서울특별시|서울]] 정의여고 강당에서 그의 장례식을 집행, 주관하였다. 당시 [[안재홍]]은 자진월북자라는 오해와 편견으로 금기시되었고, 꺼려했다. 그러나 이인은 [[이범석 (1900년)|이범석]] 등과 함께 [[안재홍]]의 시신없는 장례식을 진행하였다. 군사정권은 그의 의도가 불함을 의심하여 내사하였으나 혐의점을 찾지는 못하였다.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를 결성했으며 [[국토통일원]] 고문에 선임되었다. [[1974년]]에는 [[국토통일원|통일원]] 고문에 재선임되었다.
         *** 손녀 : 이
         |후임자 = (종로구 갑)[[박천]]<br/>(종로구 을)[[오화영]]
  • 이재룡(1964)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1963년]]생 배우 [[이재용(배우)|이재용]]과 이름이 유사하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다.[* 게다가 [[본관]], [[한자]], [[항렬]]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 깔끔한 외모로 젊어서는 하이틴 스타로 인기가 많았고, [[결혼]] 이후에는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에 출연중이다. 부인은 탤런트 [[유호정]]. 결혼 전인 [[1993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산다는 것은'''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불멸의 이신]], [[제왕의 딸 수백향]] 등의 사극에 출연하며 호평을 받았다.
         || 2016년 || KBS || [[뷰티풀 마인드(드라마)|뷰티풀 마인드]] || 채호 || ||
         || KBS || [[일말의 정]] || 최민수 || ||
         || 2004년 || KBS || [[불멸의 이신]] || [[류성룡]] || ||
  • 이진주 (1678년) . . . . 4회 일치
         [[흥향교]] 활동으로는 1703년 8월 4일 [[흥향교]] 서무찬인(西廡賛引), 봉작(奉爵), 1705년 2월 3일 봉작(奉爵), 제물유사(祭物有司), 1706년 2월 8일 서종사찬인(西從祀賛引), 8월 2일 봉로(奉爐), 1710년 8월 대축, 1711년 2월 서무헌관(西廡獻官), 8월 찬자(贊者), 1712년 2월 축(祝), 1716년 2월 6일 대축, 1717년 2월 2일 대축 등을 맡았다.<ref>執事案 地:癸未二月春享時, 丁酉八月告由時</ref>
         1718년 2월 8일 [[흥향교]] 대축(大祝) 8월 1일 대축, 1719년 8월 7일 종헌관(終獻官), 1720년 2월 10일 대축, 1721년 8월 9일 아헌관(亞獻官), 1722년 2월 2일과 8월 4일 초헌관(初獻官) 등으로 활동했다.<ref>흥향교 집사안:自丁酉八月 行祭時, 至甲辰八月 釋奠時</ref>
  • 이홍렬(코미디언) . . . . 4회 일치
         2014년 4월 중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의 길]]로 복귀하여 MBC 19기 개그맨 김용재와 콤비로 [[모큐멘터리]] 형식의 코너를 하고 있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아이디어를 짜고 어린이 분장으로 PD 앞에서 코너 검사를 받는 등 분투하는 중. 김용재는 이상민 주연의 음악의 신에 등장한 개념없는 매니저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2014년 7월 6일에는 환갑 기념 출판기념회가 방송되었다. [[전유성]], [[최불암]], [[이경실]], [[전영록]], [[황기]] 등 많은 스타들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 자신에게 일어났던 여러 소사(小事)들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기로도 유명하다. 그냥 단히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쓰는게 아니라 날짜를 정확히 쓰고 중요한 사건을 간단히 소회하는 형식으로 기록해 뒀다. 인터넷 초창기 이홍렬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이러한 내용들이 남겨져 있었다. 또한 이홍렬의 두 아들이 태어난 날에 신문 1면을 스크랩 해 놓은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 [[주병진]](1977년 데뷔) - [[강석(코미디언)|강석]](1978년 데뷔) - 이홍렬(1979년 데뷔) 으로 선후배 사이다. 이 시점 이후로 MBC의 개그맨은 [[공채]]를 하기 시작하여 기수대로 표시하고 있다. 즉, 이 세 사람은 특기수에 해당. 알다시피 개그맨계는 선후배 사이를 철저히 따지는 쪽이라....
  • 이효린 . . . . 4회 일치
         [[이수형]](李秀亨)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혜민서 참봉 은이고 어머니는 공주이씨 이성의 딸이다.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의 문하생으로 수학하였다. 흥 재향지에 의하면 음사로 관직에 나갔다 한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사촌형 [[이흥문]] 등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김개국]] 의병장 휘하에서 왜적에 대항하였다. 그 공로로 [[내자감]] 주부(內資監主簿)와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지냈고, 80세에 수계(壽階)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흥 재향지에 의하면 수식(水息) 석람(石嵐) 동쪽 산 아래 두 시냇물 사이에 정자 아양루(峨洋樓)를 지었으나 뒷날 소실되었다 한다. 묘소는 [[경상북도]] 에서 매장되었다.
         ** 고모부 이귀(李貴, 덕수 이씨, [[충무공]] [[이신]]의 숙부)
         * 재향지(흥지역 향토지)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4회 일치
          * 결의 데리엘이 추격하자 여신족의 마법 "아크"로 가두나, 데리엘에겐 통하지 않았고 다른 공격도 먹히지 않는다.
          * 그때 십계의 일원, 결의 데리엘이 나타나는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 마신들을 식간에 갈아버리는 걸로 봐서 약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 데리엘의 계금은 "결". 하지만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는 묘사되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4회 일치
          * 과거 핸디가 지배당하고 있을 때 한 실험과 비슷하지만 전혀 실패하지 않고 도 높은 "진짜 마신족"을 만드는 차이가 있다.
          * 비비안은 길선더만 데리고 간이동으로 도망친다.
          * 얼음마법은 부화를 앞둔 알은 물론 그레이로드의 몸에 달린 알까지 한간에 얼려버린다.
          * 시전자는 "단한 얼음"마법이지만 자기가 거둘 때까지 영원히 얼어있는 마법이라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4회 일치
          그가 오랜 세월 바쳐온 것들이 지금 간 하나로 이어졌다.
          그로키시니아는 오열하는 여동생을 안은 채 "용서받을 없지만 사과하게 해달라"고 속삭인다.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에 대해서나, 그녀의 생사도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나. 게라이드는 다 지나간 과거이며 자신도 로우도 각오했던 일이라 의연하게 말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 그런데 게라이드의 눈물이 온했던 오슬로를 자극했다. 오슬로는 그로키시니아가 그녀를 괴롭힌 줄 알고 적개심을 드러낸다. 게라이드가 황급히 그를 진정시키지만 그로키시니아는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며 씁쓸해한다. 이 기회에 게라이드는 오빠에게 오슬로를 소개한다. 오슬로는 그로키시니아가 사라진 직후에 나타나 혼자 된 게라이드를 지켜줬다. 지금은 게라이드를 대신해 현 요정왕 할리퀸을 지키고 있다.
          그 말을 들은 게라이드는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3천년 전, 로우를 죽이려던 자신을 한간 멈칫하게 했던 목소리가 떠오른 것이다.
  • 장성집 . . . . 4회 일치
         |직업 = [[교자]]
         '''장성집'''(張--, [[1786년]] ~ [[1839년]] [[5월 26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요셉'''(Joseph)이다.
         그가 용감한 [[교자]]들의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그는 조정에 직접 항거하려 하였으나, 그의 [[대부모|대부]]는 그의 결단을 말렸다. 마침내 그는 [[5월 18일]]에 체포되었고, 이웃들과 그를 잡아가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의 종교를 부정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기 신앙을 거듭 확고히 다졌다. 그는 "나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한 사람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좋은 사람은 [[천당]]으로, 나쁜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신다."고 말했다.
         포도대장은 그를 상급 [[재판소]]로 이송했다. 장성집은 관청의 아치들이 왜 자신을 아무런 [[심문]]이나 [[고문]]도 없이 내버려 두는지 알려달라고 외쳤다. 이미 그는 정신병자로 오해받고 있었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포장은 끊임없이 배교하라고 충고하였으나, 그는 포장의 충고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곤봉으로 수차례 맞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결국 그는 [[1839년]] [[5월 26일]], 54세의 나이로 [[한양]]에 있는 감옥에서 [[교]]하였다.
  • 전라남도 . . . . 4회 일치
         [[천시 (전라남도)|천시]]''' || 順天市 || 107,282 || 281,297 || 907.45
         [[화군]]''' || 和順郡 || 29,309 || 65,925 || 786.84
         천 송광사 입구
  • 전순옥 . . . . 4회 일치
         |이름 = 전
         '''전옥'''([[1953년]] [[6월 15일]]([[음력 5월 5일]]) ~ )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제19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여동생이다.
         * 여동생: 전태리 (본명: 전덕)
         * [http://blog.naver.com/sparksoon 전옥 블로그]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4회 일치
          * 이대로 걸린 척 하고 있다간 정말 달마가 될 판이라 "정말로 힘을 못 쓰니 히 연행되겠다"며 항복선언을 한다.
          * 하지만 후지코는 "너무 한게 오히려 수상하다"며 달려든다.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4회 일치
          * [[마기 시로]]의 공격으로 칠드런 일행은 식간에 제압된다.
          * 듣고 있던 요우는 이제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의 능력을 발동한다. 요우는 자신의 진동제어를 이용하면 레어메탈과 탄소섬유를 한 간에 일소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렇지만 그건 마기도 알고 있었다. 요우에게 대처하기 위해 탄소섬유를 다중구조로 만들어서 주파수를 찾기 어렵게 만드러놓았다. 요우의 능력은 통하지 않고 오히려 당하게 생겼다. 마기는 능력의 발동 트리거인 목을 부수면 능력을 잃게 될 거라며 정말로 요우를 처리하려 한다.
          * 카오루는 자신이 어떻게든 할 테니 쏘라고 소리친다. 미나모토는 더이상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블래스터를 들어올린다. 하지만 그때 효부가 제지한다. 그는 마기가 정신을 잃긴 했지만 로봇이 된 건 아니라며 어떤 행동을 저지른다. 그가 저지른 행동에 일행은 물론 마기 조차 한간 얼어붙는다.
          >이걸로 너희들이 시로를 잡을 간을 만들 수 있을 거다.
  • 정문성 . . . . 4회 일치
         '''정문성'''([[1981년]] [[1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천향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2007년]]에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대한민국의 뮤지컬)|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하였다.
         * [[천향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 [[2018년]] [[tvN]] 《[[멈추고 싶은 간 : 어바웃 타임]]》 - 윤도산 역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천향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인숙 (1945년) . . . . 4회 일치
         {{인용문2|청와대 모임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2백여명의 아가씨들이 차출됐는데, 그 중에서 성적으로 50명을 뽑고, 다시 신원 조회를 통해 25명을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모 으로 다섯 명을 뽑았습니다. 5명 중 정인숙이 1등으로 뽑혔지요.<ref name="ilsa01"/>}}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은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하고 난 뒤 "동생과 관계했던 고위층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는 아버지(정도환)의 회유로 거짓 자백을 했을 뿐, 집앞에 있던 괴한들이 동생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숱한 의문점 때문에 정인숙 사건은 단 살인사건이라는 수사기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권력기관에 의한 살인’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다.<ref name="jon01"/> [[2010년]] 2월 [[중앙일보]] 측에서 어렵게 만난 오빠 정종욱은 "억울해서가 아니라면 수감생활까지 다 마치고 나와 '내가 쏘지 않았다'고 얘기하겠냐"며 그의 결백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장했다. 7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마지막으로 재심청구를 통해서라도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ref name="jon01"/>
         [[1989년]] 가석방된 [[정종욱]]은 정성일이 정일권의 아들이 틀림없다고 말한다.<ref name="kum109">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9페이지</ref> 그에 의하면 '정일권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서교동 집으로 찾아왔지요. 그리고 동생이 '그이가 아들 하나만 낳아달라고 한다'며 상의를 해 처음엔 가족들이 극구 반대를 했지요. 출산 후에는 일 주일에 한번 꼴로 찾아와 성일이를 안고 즐거워했으며, 늘그막에 아들을 얻어 소원을 이뤘다는 뜻에서 성일이란 이름까지 직접 지어왔어요. 성일이도 자기 아빠가 TV에 비치면 '아빠'라고 소리치며 좋아했지요.<ref>임은, <오빠 정종욱 씨가 밝힌 '정인숙 사건'의 진상>, 경향신문 1991년 01월 16일, 14면</ref>'라는 것이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4회 일치
          파르코는 말리기엔 너무 늦었다는걸 깨닫는다. 허락을 받은 가비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녀는 작전 성공을 위해 잠시 완장을 벗는걸 허가해달라고 말한다. 마가트가 거부할리 없다. 그녀는 속옷 바람으로 수류탄 다발만 챙겨서 참호를 뛰쳐나간다. 파르코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득의양양한 얼굴로 돌아볼 뿐이다. 한간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 가비가 몸을 날리는 간, 기관총은 정확히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 파르코도 그녀에게 손을 뻗지만 한발 늦었다. 그때 거대한 팔이 가비를 감싼다. 가비가 유탄으로 패인 자리에 떨어지는 간 파르코도 그녀를 감싸며 떨어진다.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진격의 거인/98화 . . . . 4회 일치
          * [[빌리 타이버]]의 방문으로부터 한 달 뒤. 타이버가의 연설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라이너 브라운]]을 포함한 마레의 전사들은 마레군 수뇌부에 팔라디섬의 정보와 공략법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라이너의 의견을 자세히 검토도 하지 않고 "엘디아인에게 괜히 물어봤다"며 쓸모없는 취급을 한다. [[포르코 갤리어드]]는 이에 불만을 품고 "팔라디섬 계획은 참 조롭다"고 빈정거린다. 라이너는 의견이 묵살된 것 보다는 대장인 [[테오 마가트]]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쪽을 의식한다.
          노인은 파르코와 크루거 사이의 거래도 알고 있었고 사실 크루거가 정상이라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살 짓은 그만두고 어서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권하는데. 크루거는 떠보듯이 "혹시 가족일로 후회할 짓을 했냐"고 묻자, 그는 상처를 찔린 표정이 된다. 그가 바로 [[그리샤 예거]]의 아버지이자 지크의 할아버지. [[엘런 예거]]에게도 할아버지가 된다. 그는 한간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리샤가 여동생을 데리고 벽을 나서게 놔둔 일이나 아들에게 의사를 강요했던 일 등. 그 모든게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던 그는 마침내 오열하듯이 비명을 지른다. 그때 병원에서 진짜 의사가 달려나오는데, 사실 그도 이 병원의 환자였던 것이다. 크루거는 병실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가족에게서 받은 야구공을 허공 위로 던져 본다.
          축제 준비 현장에 나타나서 무대 건설 상황 등을 체크. 이때 마가트가 나타나 무대는 조롭냐고 묻자 조롭고 "나에게 연출가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너스레를 떤다. 마가트와 협력관계를 구축했으며 그가 군의 개혁 방안을 보고하자 만족하며 원수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마가트가 "이 나라는 당신의 것"이라 말하는데에는 난색을 표한다. 의외로 그는 나라는 누구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은 단지 조타수인데 그것도 우연히 그 역할을 계승하게 된 남자라며 부담감을 피로한다. 은연중에 "선대 중 누구도 이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고 말하는데 타이버가에는 아직도 비밀이 많은 듯.
  • 최은주(배우) . . . . 4회 일치
          * [[2006년]] [[KBS1]] TV소설 옥이 - 남기
          * 2007년 SBS [[아침 드라마]] 미워도 좋아 - 옥 역
          * 2006년 방과 후 옥상 - 매이 역
  • 최재원(배우) . . . . 4회 일치
         [[1969년]] [[12월 15일]], [[전라남도]] [[천시]]에서 출생. [[종교]]는 [[가톨릭|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요셉이다.
         [[천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하였다.
          * [[불멸의 이신]] - [[이덕형]]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69년 출생]][[분류:천시 출신 인물]]
  • 최정호 (성우) . . . . 4회 일치
         * [[세상의 모든 다큐]] ([[KBS]]) 록 유목민의 북극 횡단기
         * 2000.11.19 이원 <첫사랑>
         * 2002.06.23 문태 <정읍사, 그 천년의 기다림> (해장)
         * 2014.03.23 편혜영 <몬> (관장)
  • 최채흥 . . . . 4회 일치
         이후 부상 때문에 2군에서도 7월 중부터 8월 중까지 1달 가량을 결장했고 이후로도 띄엄띄엄 등판하면서 사실상 그대로 시즌 아웃되는가 싶었는데, [[윤성환]]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9월 25일 한화전 선발로 내정됐다. 그리고 '''7이닝''' 5피안타 1피홈런[* vs이성열] 2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데뷔 첫 [[퀄리티 스타트]]와 함께 시즌 2승을 기록하였다.
         9월 25일에 7이닝을 소화하며 식간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18⅓이닝으로 늘어나자 구단측에서 노린것인지, 막판 위싸움에서 요긴하게 기용하려고 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불펜으로만 등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28이닝으로 30이닝을 넘기지 않아 '''2019시즌 신인왕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는 강백호같이 눈에 띄는 특급 신인들이 많지 않아 올해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신인왕이 유력하다.]
  • 최태원 (야구인)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3년]] 2차 1위([[쌍방울 레이더스]])
         [[서울미성초등학교|서울미성초]], [[성남중학교|성남중]]을 거쳐 그는 [[성남고등학교 (서울)|성남고]]-[[경희대학교|경희대]] 체육대학 시절 내내 국가대표 [[2루수]]로 활동하며 연고 팀 [[OB 베어스]]의 1차 지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OB 베어스]]는 [[건국대학교|건국대]] 출신의 [[내야수]] [[추성건]]을 지명했고, 그는 당시 꼴찌 팀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위로 밀렸다.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 2차 1위를 받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입단하였다.
  • 킹덤/516화 . . . . 4회 일치
          * 무려 아홉 성에 달하는 소도시의 난민들이 업성으로 몰리는데 업의 성주는 좋은 사람이라 모든 난민을 수용해 식간에 병량이 거덜난다.
          * 쾌속진격한 [[이목(킹덤)|이목]]은 조롭게 수도 한단에 도착했다. 전 삼대천 [[인상여]]의 부하들이 그를 맞이한다. 이들은 이목이 처음 지시했던 한단군 출병을 이루지 못했으나 자신들과 사병의 출병은 허가를 받아냈다. 그 병력은 북쪽 염 성에서 1만, 문 성에서 1만씩 총 2만이다. 이목으로선 뜻밖의 희소식이었다.
          * 업성의 서쪽 대망루. 서벽장인 [[진리간]] 장군은 어째서 상소를 올렸는데도 성문을 닫지 않느냐고 울화통을 터뜨린다. 그가 보기엔 업성의 수용능력으로도 난민을 전부 감당할 없다. 그는 모든 난민을 수용하라는 성주의 판단을 "멍청한 판단"이라 불평한다. 그리고 발디딜틈도 없이 들어찬 성 내의 상황을 성주가 보고 있긴 하냐고 투덜댄다.
          * 한단의 이목 진영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고 고심 중이다. [[수수]]는 지금이라도 업성에 전서구를 보내자고 하지만 이목은 벌써 늦었을 걸로 본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카이네]]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묻는데 이목은 지금이라면 [[왕전(킹덤)|왕전]]이 그린 그림을 알아볼 것 같았다. 분명 그는 열미성의 실체를 파악하고 나서 업성에 갔다. 곧 업성은 난공불락의 성임을 깨닫고 곧장 업을 치기 보다는 업성을 무너뜨린 "함락의 무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아홉 소도시를 공격한 것이다. 이제 카이네도 왕전의 속셈을 눈치챘다.
  • 킹덤/521화 . . . . 4회 일치
          * 유인에 걸려 몽념을 잡으러 왔던 [[황각]]은 자신이 잡히게 될 판이 되자 당황해서 퇴각을 결정한다. 그들의 퇴각은 몽념의 눈에도 보였다. 그는 이 싸움을 사냥이라고 표현했고 사냥감이 히 달아나게 둘 생각이 없었다. 철저한 추격을 지시한다.
          * 기수의 본진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유인책에 걸려 황각의 기마대가 괴멸할 판이 되자 속이 터진다. 심지어 퇴각 중에도 뒤를 잡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하자 다혈질인 [[마정]]이 더이상 참지 못한다. 기수도 답답하고 분통 터지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성급한 짓을 허용할 없었다. 하지만 마정은 말릴 틈도 없이 기병 500기를 데리고 몽념에게 달려든다.
          * 병력의 정체는 진군 본진, [[왕전(킹덤)|왕전]]의 오른팔 [[마광]]의 부대였다. 마광군 5천이 급격한 선회로 무방비하게 드러난 좌익을 빠르게 찔러들어왔다. 기수가 오판한데는 중앙과 이곳의 거리차가 큰 점도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빠르게 진군할 줄이야. 하지만 놀랄 일은 지금부터다. 마정의 뒤로 새로운 병력이 다가왔다. 기병 약 5천. 기수가 2파의 도착에 대비해 좌측으로 방어진형 구축을 명령한다. 또 급보. 2파는 기마 5천이 끝이 아니다. 5천에서 1만까지 추정되는 보병 병력까지 따라온다. 최대 2만 병력. 이대로라면 단 병력 차이로는 여전히 유리하지만 정황상 기수 측이 수세에 몰리기에 기수는 당황하고 만다.
  • 킹덤/534화 . . . . 4회 일치
          * 기수는 진군 좌측이 무섭게 치고나오는 간 몽념의 속셈을 직감한다. 그 생각대로 진군의 좌측이 살아남아 싸움이 내일로 이어진다면 조군으로선 큰 피해다. 한시라도 승부를 내고 업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선 [[이목(킹덤)|이목]]이 위험을 무릎쓴 의미도 없어지므로 기수는 서둘러 중앙군을 움직여 낙화대를 요격하러 나선다.
          마광군을 하드캐리해 전선을 지켜냈다. 중앙에서 회복을 마친 마정군을 비신대를 미끼로 삼아 끌어내고 육선이 점거한 좌측을 기점으로 군을 재정비했다. 하료초는 전장 전체를 꿰뚫어 보고 이 같은 전략을 수립한 것도 대단하지만 한간에 마광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점이야 말로 진짜 대단한 점이라고 감탄한다. 몽념도 자신의 구상을 간파한 하료초의 재능에 감탄.
          별 활약은 없었지만 몽념이 지시한 것도 까먹고 마정하고 맞짱을 까려고 하던 이신을 타일러서 물러나게 했다. 따지고 보면 몽념이 단무식한 이신에게 제대로 설명도 없이 우측으로 보냈는데, 그녀가 없었다면 작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의 숨은 공신.
          마정이 중앙을 방치했을 때 미심쩍어 했지만 결국 다른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 마정보단 낫지만 결국 손을 쓰지 않았으니 유명무실하다. 낙화대 본진이 합류하고 우측에서 강한 저항이 일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조금 늦었다. 물론 전세가 기울어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기수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승기를 내줬다고 볼 없었지만, 결국 진군을 섬멸하지 못한 채 이틀째를 맞이했다.
  • 토리코/368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그런 상황조차 미도라에겐 타격이 되지 않았고, 식간에 재생하며 이번엔 이치류의 기술이던 마이너리티 월드를 발동한다.
          * 소수파를 이용해서 죠아는 한간에 소멸한 듯 보였다.
          * 이때 GOD의 기척이 나타나고 미도라는 한간 정신이 팔린다.
          * 미도라는 단 0.1초 방심하는데, 죠아는 오로지 이 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토리코/385화 . . . . 4회 일치
          * 그는 플로제의 얼굴로 "그 꿈은 아직 이루어질 수 있다"며 힌간이나마 미도라를 현혹한다.
          * 그 간을 놓치지 않는 아카시아.
          * 그것은 "플로제의 꿈"처럼 불가능할 정도로 수하고 평범한 꿈이기에.
          * 죠아는 최후의 간 목숨을 구걸한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4회 일치
         >단함은 무기에서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재미나게 하는 바로 그 간에 비극, 웃음, 영웅적 자질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완벽한 간은 사람의 의연한 평온 상태에서 나타난다.
         >비록 날을 잡을 없을지라도, 황금은 사람의 영혼을 자를 수 있다.
  • 페어리 테일/501화 . . . . 4회 일치
          * 그 간 나츠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한다.
          * 루시는 그 간을 이용해 브랜디쉬의 머리 위로 이동, 보병궁의 아쿠에리아스 폼으로 변신.
          * 한 간에 브랜디쉬를 척살하는 디마리아.
          * 또 한 간에 루시를 제압한다.
  • 페어리 테일/503화 . . . . 4회 일치
          * 단히 의자에 묶어놓은게 아니라 마봉석까지 사용했는데, 범인은 디마리아.
          * "딱"소리가 나고 디마리아가 식간에 나츠 옆으로 이동하는데 그녀의 마법을 모르는 루시는 간이동이라고 생각한다.
          * 그 간 "딱"소리가 나고 시간이 정지한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4회 일치
          * 아이린은 엘자를 완전히 끝장내려 하지만 그 간 사라진 줄 알았던 웬디의 자아가 아이린의 몸에서 각성한다.
          * [[아이린 베르세리온]]은 [[웬디 마벨]]의 몸을 장악하고 새로운 몸을 얻었다고 환호한다. 부상도 입었고 본래 몸에 비하면 마력도 부족하지만 새로운 몸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해한다. 심지어 본래보다 빈약한 가슴도 귀엽다고 나름대로 마음에 들어한다. 본래 아이린의 몸은 힘없이 쓰러진다. 아이린은 "이제 그건 단한 고깃덩어리"라고 잘라말한다.
          엘자는 지금까지 웬디에 맺었던 인연과 추억이 한 간에 눈 앞을 지나간다. 처음 만났을 때, 혼자 된 웬디를 페어리 테일로 불러들일 때부터 함께 모험을 하고 생활하던 모든 장면들이.
         아이린이 평생 걸쳐 인챈트 마법을 연구한 결과가 전 인격 인챈트인데, 웬디는 아이린이 하는걸 보고 바로 따라해 버렸으니 경악할 만도 하다. 그러고 보면 [[제레프 드래그닐]]도 그녀가 연구한 마법을 한간에 이해해서 육체를 인간으로 돌리는데 성공하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안습한 부분.
  • 표창원 . . . . 4회 일치
         ||<:>'''본적'''||<(>[[평안남도]] [[천시(평안남도)|천]] ||
         경찰관 퇴직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으로 활동[* 일선 "범죄심리분석관"은 아니고 경찰관 시절에는 수사관으로, 교수 시절에는 범죄심리분석 지원을 위하여 파견된 형식으로 활동한 것이다.]하면서 본격적으로 [[강호]] 사건, [[발바리]] 사건 등 많은 유명 주요 범죄사건 해결에 기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무한도전]] [[무도탐정사무소]]에 출연하여 멤버들에게 프로파일링을 짧게 강의하였으며, [[유재석]]을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는 등 중년의 폭풍간지를 보여주었다. 다른 멤버들은 '드디어 유재석도 혼나는구나' 하고 좋아 죽는 중이었다고.
         >'매스미디아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오랜 관심과 우려는 흥미거리만을 �는 매스미디아의 '선택적 특성'과 이러한 보도가 사회의 범죄문제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그간의 숱한 미디아 프로그램 분석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미디아에 나타난 범죄가 특정한 범죄 - 강력사건 -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문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판적 범죄학자들은 매스미디아가 범죄문제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규정지으며 사회일반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범죄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매체上의 폭력'은 오랫동안 학계와 일반대중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엽기적인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거나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처럼 생겨난 1980년대 이후에는 '미디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84년 BBC 방송국이 경찰의 도움을 얻어 미해결된 강력사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며 목격자나 제보자를 찾는 'Crimewatch UK'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자 기타 민방들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의 原型은 1960년대에 시작된 독일 ZDF 방송국의 "미해결사건 XTZ..."이며 영국 BBC에서 도입한 이후 미국,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세계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대한 대중적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내용,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경찰이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들에 범죄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찰관 및 경찰장비를 제공해 준다.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들은 사건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홍보매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재구성' 프로의 범람에 대해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을 조장하며 독거노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시청률 올리기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방송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그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방송사들은 이에 대해 "범죄퇴치에 협력한다는 공익에 이바지할 뿐"이란 논리로 대응해 왔다.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신고가 주요범죄를 해결했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집행의 대명사인 경찰의 걍력한 지지가 이러한 '공익논리'를 받쳐주는 주요요소이다. 본 논문은 영국전역에 산재한 28개 지방경찰청, 내무성 경찰국, BBC Crimewatch UK 제작팀, 민간기구인 Crimestoppers Trust 등 30여 관련기관을 방문, 60여명에 이르는 관계자와의 심도깊은 면담 및 관련자료 분석결과와 13편의 Crimewatch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종합분석하여 '범죄 재구성'프로그램인 Crimewatch UK를 통해서 본 영국경찰의 매스미디아관련 정책과 실행, BBC방송국의 다큐멘타리 제작 지침과 실태상의 불일치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 하이큐!! . . . . 4회 일치
         연재 초반에는 '''호러배구'''란 이명이 있었다. 스포츠물 답지 않은 연출과 그림체가 한몫해서, 섬뜩한(...)장면들이 간간이 나왔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는 평소엔 겁이 많지만 결정적인 간에 패기를 내뿜는다는 설정인데, 이 때 짓는 표정이 심히 [[얀데레]]스러워 ~~도저히 소년만화 주인공이 할만한 표정이 아니다~~ 식간에 장르를 호러로 만들어버린다.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작가의 전작]]이 본격 [[괴담]]만화였다는 걸 알고 납득한 사람도 있다[[카더라]]. 애니메이션도 이 점을 잘 살려서, 애니메이션 11화는 어떤 씬을 작정하고 호러로 연출했는데 [[원작초월]]급이 나와버렸다.
         1회전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약체팀들에도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을 단히 주인공 학교의 1승 제물로 등장시키지 않고, 그들 역시 배구와 함께 고교시절을 보내는 청춘임을 묘사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부분의 팬들이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꼽을 때 꼭 언급되는 40화 '승자와 패자' 편(애니메이션에서는 16화). 인터하이 1차전이 끝난 후 1회전에서 탈락한 23개 팀 모두를 '''한 컷씩 다 그려냈다''' .[* 애니메이션에서는 분량 문제인지 23개교가 전부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 "우리들도 했어 배구" ''' 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무대화가 결정되었다.2015년 11월 중부터 12월 초까지 도쿄,오사카,미야기에서 공연예정.
  • 하이큐/261화 . . . . 4회 일치
          * [[타키노우에 유스케]]는 [[시마다 마코토]]가 자리를 비웠다 좋은 장면이 다 지나가고 돌아오자 대차게 깐다. 아까 [[야마구치 타다시]]가 대활약했는데, 그 선생님인 시마다가 왜 자리를 비웠냐는 이유다. 물론 그는 시마다가 경기장 반대편까지 열심히 뛰다 온 걸 모른다. 그리고 그가 자기 태블릿을 무단으로 빌려갔던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마다는 그 짧은 간에 "봉투 안에 타블릿을 끼워서 켜면 더 잘 보일 거다"는 계산까지 염두했던 것이다.
          * 코사쿠가 벤치로 돌아오면서 원래는 5번 타나카를 노리고 있었는데 1번 사와무라 쪽으로 잘못 갔다고 한탄한다. 이나리자키가 분위기를 정돈한다. 비록 첫 세트 포인트를 내줬어도 한 번만 버티면 서브 서는 다시 [[미야 아츠무]]에게 돌아간다. 해설자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카라스노로서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여기서 1점을 따서 끝내고 싶을 거라고 분석한다. 그 말이 사실이다.
          식은 땀이 흐른다. 그러나 주눅들 없다.
          * 여지없이 공은 타나카에게... 하지만 타나카에게 간 공을 타나카만 받으란 법이 어딨는가? 아츠무가 손맛 좋게 날린 공은 그 옆의 니시노야가 리시브한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 미끼 역할. 남들이 알아주지야 않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간 타나카는 오늘 자기 플레이가 너무 꼴사납지 않은가 자괴감이 들었다. 아니 그럴 뻔했다. 그는 곧 주먹을 불끈쥐며 누구보다 환호했다.
  • 함인섭 . . . . 4회 일치
         |배우자 = 유희(사별), 유명숙(재혼)
         천안 출신인 그는 경성으로 올라와 [[1923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중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중동고보 재학 중인 1924년 3월 26일 유기환(柳基桓)의 딸 유희(柳順嬉)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6남매를 두고 [[1949년]] 사별하였다. [[1927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0년]] [[3월]] [[동경농업대학]] 예과를 수료하고 동경농대 본과 농학부에 입학, [[1933년]] [[3월 24일]] [[동경농업대학]] 농학부를 졸업하였다.
         * 부인 : 유희(柳順嬉, [[1907년]] [[12월 16일]] ~ [[1949년]] [[1월 23일]]), 문화 유기환(柳基桓)의 딸
         본처 유희의 묘는 [[경기도]] [[의정부시]] 자일동 선영 내에 있다. 할아버지 [[함태영]]의 묘소는 후일 동작동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 허위 . . . . 4회 일치
         1907년 [[고종(조선)|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정미 7조약]]으로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 선봉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였으나[* 허위가 이끌던 13도 창의군이 최종적으로 머물었던 길을 그의 호를 따 명명하게 됐는데, 그게 현재의 [[왕산로]]이다.]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격퇴당하고, 총대장인 [[이인영]]이 부친상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 총대장이 되어 2차 진격을 계획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국하였다.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는 허위가 국하자 그곳에 있던 식수로 쓰는 우물이 빨갛게 물들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말이 쓰여있다. [* 출처. 백범일지. 치하포 사건 후]
         여담으로 그의 증조카가 [[일제강점기]] 시기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 무장 투쟁 활동을 했던 [[허형식]]이다.[[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local=gumi&dataType=01&contents_id=GC01201509|#]] 또한 당조카인 허길의 아들이 바로 시인 [[이육사]]이다. 직계 제자로는 대한 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이 있다. 박상진은 허위가 국한 후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루기도 했다.
         [[대구광역시]] [[달성공원]] 안에 왕산 허위 선생 국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허협 . . . . 4회 일치
         |직업 = 교자
         '''허협'''(許-, [[1796년]] ~ [[1840년]] [[1월 31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바오로'''(Paulus)이다.
         허협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가 45세의 나이로 [[교]]했다는 것과 등이 전부이다. 그는 [[훈련도감]]의 [[병사 (군인)|병사]]였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그는 [[1840년]] [[1월 31일]] 또는 [[2월 1일]]에 [[형벌]]의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었는데, 관찬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는 [[곤장]] 130 여대를 맞았던 것으로 전해지며, 옥사로써 [[교]]하던 때의 나이는 45세였다.
  • 현정건 . . . . 4회 일치
          | 군주 = [[대한제국 종|종 이척]] (前 [[대한제국]] 군주)
         [[1922년]] 동생 현진건이 [[홍사용]] · [[박종화]] 등의 문인들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문예지 《[[백조 (잡지)|백조]]》 창간호에 [[이광수]]의 악부(樂府)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현진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한국의 꽃봉오리 같은 젊은 청년들이 발표하는 깨끗한 《백조》지에, '귀장'을 쓰고 항복해 들어간 이광수가 동인이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빨리 동인에서 제거하라"며 항의했고, 결국 《백조》 동인에서 이광수는 빠지게 되었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고려공산당]][[분류:윤치호]][[분류:한국독립당]][[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대한제국 종]][[분류:이승만]][[분류:김구]][[분류:의친왕]][[분류:윤치영]][[분류:윤보선]][[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금주 . . . . 4회 일치
         |직업 = 교자
         '''홍금주'''(洪今珠, [[1804년]] ~ [[1839년]] [[9월 26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페르페투아'''(Perpetua)이다.
         홍금주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제가 입을 빨간색 옷이 한 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교자]]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녀는 [[최 필립보]]의 집에서 그의 제수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녀는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으며 배교할 것과 [[천주교]]인들이 숨은 곳들을 누설하기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형리는 그녀의 주뢰를 틀고난 뒤,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녀를 감방의 천장에 매달아 놓고서 그녀에게 매질을 가했지만, 그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사흘 후 그녀는 [[형조]]로 이송되었고 세 차례를 다리에 격심한 매질을 당했지만, 형조 [[판서]]에게도 굴복치 않았다. 그녀는 감옥에서 심한 열병을 앓아 거의 죽을 뻔 하였지만, 매우 빨리 회복되었다. 그녀는 [[사형]]이 집행 때까지 근 6개월을 형조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오직 사랑과 봉사로써 다른 수감자들을 돌보았다. 감옥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큰누이처럼 존경했다.
         그녀는 [[1839년]]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여덟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36세의 나이로 [[교]]하였다.
  • 황효진(기업인) . . . . 4회 일치
         쇼핑몰 신발팜은 2014년에 스베누로 이름을 바꾸고 사업을 크게 확장하였고[* 이때 이익으로만 10억정도 벌었으나 무리한 사업으로 그대로 날려 먹었다고... 그리고 인터넷 방송으로 사업 투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이를 발판으로 소닉 리그도 계속 개최하고 있다. 좀 많이 별로인 인성이나 더더욱 별로인 제품은 둘째치더라도 20대 때 자신의 사업을 크게 성장시킨 수완과 동시에 자신의 꿈이자 자신의 시작이었던 스타판을 공식리그가 종료된 후에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e스포츠가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스타 1을 넘어 스타 2,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를 후원하고, 여러 게임과 콜라보 이벤트를 여는 등 게임/e스포츠에 애착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애증의 존재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렇게 대금 지불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작 황효진 자신은 법인 명의로 [[페라리 458 이탈리아|페라리 458 스페치알레]], [[벤틀리 컨티넨탈]],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메르세데스-벤츠 CLS]] 등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외제차들을 마구 뽑았으며 심지어 피소 직전까지도 [[여자친구]]에게 2,000만 원 정도의 [[피아트 500]]을 선물하고[* 2,000만 원 정도의 소형차라 고가의 차량이라고는 볼수 없지만 [[결혼]]이나 [[약혼]]한 사이도 아닌 [[여자친구]]에게 주는 선물로는 상당히 과하다고 볼 수 있다.] 4억 원을 훌쩍 넘기는 [[롤스로이스 레이스]] 등 다른 고급차들을 뽑고 있었다.[* 황효진이 사용한 방법은 법인리스로 [[스베누]] 명의로 자동차를 리스 구입한 것이다. 차는 황효진이 타지만 소유주와 대금 지불은 [[스베누]] 회사 몫이다(아닌 경우도 있으니 자세한건 추가바람). 일반적인 경영자라면 회사가 큰 이익을 보지 않는 이상 리스차량을 마구 지르지 않는다. 회사가 리스금액을 낸다는 것은 곧 회사 이익이 그만큼 줄어듦을 말하기 때문.][* 중소규모 사업자가 법인리스로 비싼 차를 사는 경우는 대체로 버는 금액에 비해 쓰는 돈이 적을 경우 세금이 왕창 나오기 때문에 그 세금 낼 돈으로 리스값을 비용 처리 하는 경우이다. 그래봤자 보통은 EQ900, 더 쓴다면 S클래스 한 대 뽑는 정도지, 어지간히 장사가 잘 된다 해도 저 차량 모두 비용처리를 해야 할 만큼 버는 게 많았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황효진이 [[코무로 테츠야|이 인간]]을 몹시 따라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똑같이 사기꾼으로 전락한 것도 함정~~[* 하필 이 둘은 자신이 얻은 돈을 툭하면 흥청망청 써버리기 일쑤고 평소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매우 나빴다는 점도 똑같다.]
         생색내기를 상당히 좋아하는듯. 스베누 이전 평소에도 자신의 신발팜을 중간 중간에 광고하면서 게임리그를 진행하면서도 수히 자신은 이득도 없이 스타크래프트를 사랑하기 때문에 리그를 여는 거라고 말했다. 애당초 무슨 불법도 아니고 그냥 자기 사업도 광고도 하려고 한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는데 광고 넣을 건 다 넣고 본인에게는 이득이 없다느니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로 자신의 수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며 포장하자 본인이 할 수 있는 게임 컨텐츠는 죄다 노잼이라 어쩔 수 없이 리그 진행하는 주제에 이전 웰치스 사건이나 인성 문제를 덮으려고 이미지 세탁 쇼한다는 소리가 많았다.
  • 황희두 . . . . 4회 일치
         역대《컬쳐쇼》에는 [[박원]] 서울시장, 가수 [[김장훈]], [[표창원]] 의원, [[곽노현]] 전 교육감, [[김태동 (1947년)]] 전 경제수석,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래퍼 [[정상수]] 등이 참가하였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mhj21.com/sub_read.html?uid=100657§ion=sc243|제목=청년문화포럼 제9회 ‘컬쳐쇼’ 성황리 종료|뉴스=문화저널21|확인날짜=2016-11-26}}</ref>
         2016년 7월, 서울시가 주최한 [['광장은 시장실']]에 참석하여 [[박원]] 서울시장에게 [[e스포츠]]의 발전과 게임 문화의 인식 개선을 제안하였고 체택되었다. 학부모들과 청소년들에게 게임 문화가 마냥 안좋은게 아니란걸 알리기 위한 목적과 또한 중국 시장에 밀려 뒤쳐진 대한민국 e스포츠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실제 2014년도 기준으로 중국은 약 4조원대의 금액을 [[e스포츠]]에 투자하며 세계 e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였으며, 정작 e스포츠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점차 중국에 밀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현직 프로게이머, 게임단 관계자, 지자체, 정부 등과 협력하여 '대한민국 e스포츠 시장 살리기'를 추진중이다. <ref>http://www.sportsseoul.com/news/read/417966|턱 밑까지 쫓아온 중국...한국 e스포츠는 어디로?
         * "우리 시민들과 박원 시장님께서 계신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시민시대 창립식 中》
         <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25552|'박원 근위병' 시민시대 출범...더민주 의원들 참석 축사</ref>
  • 효령대군 . . . . 4회 일치
         [[조선 세종|세종대왕]]의 형이자 [[조선 세조|세조]]의 백부로 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세종|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조선 문종|문종]], [[조선 단종|단종]], [[조선 세조|세조]], [[조선 예종|예종]], [[조선 성종|성종]] 등 6대에 걸쳐서 장수를 누렸다. [[임사홍]]은 그의 손녀 사위였고, [[이량 (조선)|이량]]은 그의 5대손이며, [[조선 명종|명종]]<ref>그의 종6대손이기도 하다. 세종-세조-예종-성종-중종-명종</ref> 의 부인인 [[인왕후]]와 [[심의겸]], [[심충겸]]은 그의 외6대손이다.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고, 많은 사찰을 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보성군]]의 증손 [[전성군 (1488년)|전성군 이대]]는 생전에 용강현령, 병마동첨절제사에 이르렀지만 다시 후손들의 출세로 [[증직|증]](贈) [[호조]][[참판]], [[호조]][[판서]]를 거쳐 [[의정부]][[영의정]]으로 여러 번 증직을 받았다. [[전성군 (1488년)|전성군 이대]]의 아들이 [[이량 (조선)|이량]]이고, 딸 부부인 이씨는 청송 심씨 [[심연원]]의 아들 [[심강]]과 혼인하여 자녀를 두었는데, 딸이 [[인왕후]]로 [[조선 명종|명종]]의 비가 된다. 아들은 [[심의겸]]과 [[심충겸]]으로, [[심의겸]]은 [[서인]](西人)의 초대 당수가 된다.
         * [[인왕후]]
  • 3월의 라이온/122화 . . . . 3회 일치
          * 센다가야에서 B급 2조 위전 제 2국이 시작된다.
          * 그런데 공원에서 까마귀들에게 콩을 주며 시간을 때우던 나메리카와와 마주치는데, 맑디 맑던 날씨가 한 간에 흐려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 키리야마는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해왔지만 나메리카와는 실전에선 쓰지 않던 수까지 꺼내며 예상을 깨부다.
  • K리그 챌린지 . . . . 3회 일치
         본래는 기존의 K리그가 1부리그로써 [[K리그 클래식]]이란 명칭을 부여받고, 새로 만들어질 2부리그가 K리그라 불릴 예정이었다. 이는 다른 리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기존 1부리그가 갖고 있던 명칭을 2부리그가 부여받는게 당연한 수으로 받여들여지는 축구계의 풍조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쉽의 관계처럼 새로 1부리그에 부여하는 이름이 명확하게 다른게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의 명칭이 상당히 헛갈릴 우려가 있었던 점이 지적되었다. 이런 이유로 2부리그도 단히 K리그의 이름을 물려받는게 아니라 K리그 클래식처럼 충분히 구분가능한 명칭을 짓는 것이 공론화되었고, K리그 챌린지란 이름이 공식화된다.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2위부터 4위팀들끼리 벌어지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 획득을 위한 경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규정한 바에 따라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정규시즌의 연장선이 아니므로 별개의 대회로 취급했었으나,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PO도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인정함으로써 챌린지 PO의 승자는 챌린지의 최종위 2위로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챌린지와 플레이오프 사이에서는 기록이 호환되지 않았다가 통산기록으로는 인정하게 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항목 참고.
  • 가상 메모리 . . . . 3회 일치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은행 번표 같은 형식[* 이를 페이징(Paging)이라고 한다.]으로 각 메모리 공간마다 번을 할당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돌려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 메모리 공간을 초과한 프로그램을 올려도 '일단은'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또한, 메모리 단편화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이는 메모리를 일정한 단위로 쪼개어 쓰기 때문이다.
         가상 메모리 기능이 없는 DOS는 이런 상황에서 그냥 그림판과 계산기를 올려주지 않거나, 그림판은 어떻게 돌아갔는데 계산기를 돌리려는 간 최악의 경우 프로그램과 OS자체가 다운되는 암울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작업한 모든 작업물은 사요나라--
  • 강정길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5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5년]] 1차 1위([[삼성 라이온즈]])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1위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양도로 [[이강돈]]과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였고, 정교한 타격을 선보이는 중거리형 타자였다. [[이정훈 (1963년)|이정훈]], [[이강돈]] 선수와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565 강정길, "삼성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Osen》, 2008년 12월 10일</ref>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지냈다.
  • 고유민 . . . . 3회 일치
         || '''프로 입단''' || 2013-2014 V리그 1라운드 4위(현대건설) ||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오래달리기 3등을 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국 선발은 되지 못하고 [[김주하]]-[[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한유미]]-김진희에 이은 5옵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낙심했으나 간간히 전위에 정미선[* 키는 현대건설 레프트 중에 제일 크지만 키에 비해 점프력이 좋질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신에 수비나 공격이 밸런스 하니까. 이런 레프트가 전체 5위까지 밀려?--]이 올때 원포인트 블로커로 기용되거나 한유미의 리시브가 불안할때 대체요원으로 기용되었다.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 구승빈 . . . . 3회 일치
         || [[나진 e-mFire]][* 1회 때는 제닉스와 나진을 초청팀으로 불러서 한 단한 이벤트성 친선경기였다.] || → || '''MVP Ozone''' || → || '''미정''' ||
         다만 국내에서는 세체원에 가깝다고 평가하지만 해외에서는 생각보다 평가가 낮은 편인데, 화이트에서 승기를 잡았을 경우 공격적으로 나가다가 죽는 장면이 여러번 잡혀서 잘 던진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로얄 클럽의 우지와 같은 과라는 평가를 갖고 있는데, 우지의 경우 잘 던지기는 하지만 자신이 캐리를 해서 이긴다는 이미지라면, 임프의 경우 화이트의 다른 멤버들이 다 잘하고 있을때 갑자기 트리스타나 앞 점프나 포지셔닝 문제로 죽는다는 이미지로 해외에서는 임프의 결점이 더 눈에 띈다고 말하고 있다. 우지에 비해서 덜 던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화이트의 경우 흔히 말하는 탈수기 운영으로 애초에 임프가 몇 번 포지셔닝 문제로 죽어도 우세한 상황인 경우가 많아서 단하게 우지와 임프를 비교하기는 힘들다는 말이 많은 편. 사실 애초에 불리한 상황엔 마타가 목줄을 꽉 잡아당겨서 불리할 때 던지지는 않는다.~~???:뒤진다~~ ~~임뿌우:네~~
          * 강한 승부욕 탓인지 다른 원딜러들과 비교당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 그래서 본인은 그냥 '내가 더 잘함'이라고 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게 원인이 되어 좀 더 비교를 당하게 되고……악환(…).
  • 금조(나인뮤지스) . . . . 3회 일치
         4인조 완전체 활동 '기억해'에서 하이라이트 최고음을 조롭게 소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닛 활동에 이어서 가장 많은 파트를 배분 받기도 했다.
         서는 발매, '타이틀' 곡일 경우에만 '''굵은 글씨'''로 표시
  • 김가은(1989년 5월) . . . . 3회 일치
         || '''출생''' || [[1989년]] [[5월 30일]], [[전라남도]] [[천시]] 삼산동 ||
         || '''최종학력''' || 천더코이비단잉어 ||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89년 출생]][[분류:천시 출신 인물]][[분류:트위치 스트리머]]
  • 김갑수(배우) . . . . 3회 일치
         ||<|2> 2013년 || [[공범(영화)|공범]] || 정만 || 주연 || ☆ ||
         || KBS2 || [[최고다 이신]] || 신동혁 || 조연 || ||
         || KBS2 || [[드라마시티]] - 결한 그녀 || 명진환 || 출연 || ||
  • 김다솜(배우) . . . . 3회 일치
         ||<#A6ACAF> '''{{{#000000 본명}}}''' ||<(> [[김다솜]](Kim Dasom)[* [[우리말 이름]]이며 '사랑'이라는 뜻이다..][* 중국어로는 金多順이라 한다.] ||
         2015년 6월 20일과 27일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출연하였다. [[노잼]]이란 이미지를 벗고 싶었지만 결국 노잼 확정. 방송 분량도 별로 없고 [[시청률]] 위도 꼴찌. 대다수의 아이돌 출연자처럼 특정 컨텐츠보다는 자기 어필식으로 여러 가지를 보여주어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없었고 보여준 컨텐츠도 다음팟 시청자들의 관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게 추가되는 데만 해도 근 한 달이나 걸렸다. 7월 16일에야 추가되다니...~~
         2017년 4월부터 방영하는 [[김옥]] 작가의 신작~~이자 '''희대의 개[[막장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 [[양달희]]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생애 첫 [[SBS]] 드라마인데, 이번에는 [[신애리]], [[연민정]], [[오혜상]] 계열을 잇는 '''[[악녀]]''' 배역을 맡게 되었다. 초반에 [[발연기]]라고 꽤나 까였고 [[영고라인|영구히 고통받았다]]. ~~참고로, [[고양이]]가 병을 떨어뜨려 사람을 죽이는 참으로 [[엽기]]적인 [[드라마]]다.~~ 그러나 갈수록 연기가 자연스러워지고 [[악역]]을 상당히 잘 살리는 모습을 모이며 다른 [[주연]] [[배우]]들이나 [[선배]] 악역 배우들에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방출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마지막에는 명연기라고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2017 [[SBS 연기대상]]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김동욱(배우) . . . . 3회 일치
         ||<bgcolor=#6482b9> '''{{{#white 데뷔}}}''' ||<(> [[2004년]] 영화 '흔' ||
         흔히 신인배우들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퀴어영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퀴어영화는 보통 중단편이거나 장편이라도 아주 저예산으로 독립영화인 경우가 많으므로 유명한 배우보다는 신인들을 캐스팅하며, 당연하지만 퀴어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비주얼이 출중해야 하고, 또 (소위 '게이 감성'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단히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보통 퀴어영화에 출연하는 신인 남자배우는 비주얼과 연기력이 둘다 받쳐줘야 한다. 한편 배우들 입장에서도 퀴어영화라 하면 소위 매니아층이 탄탄하기 때문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인 흔을 통해 데뷔하였다. 그 후 후회하지 않아, TV영화인 램프의 요정 등에 출연하다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진하림 역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2> 2004년 || 흔 || 왕 || 데뷔작 ||
  • 김병기(배우) . . . . 3회 일치
         ~~ 6공화국 드라마 만들면 홍준표로 섭외1위~~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레드준표]] [[정이랑|이올시다]]~~
         * [[2001년]] [[SBS]] 드라마스페셜 《[[자 (드라마)|자]]》 ... 피엘 장 역
  • 김상희 (가수) . . . . 3회 일치
         | 본명 = 최
         '''김상희'''(金相姬, 본명 : 최강(崔順江), [[1943년]] [[3월 29일]]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ref>김상희는 예명이고, 본명은 최강이다.</ref>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1년]] 가수로 데뷔, [[1965년]]부터 활동하였다.<ref>처음 리사이틀 갖는 金相姬, 《경향신문》, 1970.1.17.</ref> [[1971년]] [[동양방송|TBC]] 가요대상, 1973년 제1회 대한민국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부문, [[1977년]]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동경 국제 가요제에서 "즐거운 아리랑"을 부르며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방송예술진흥원]]의 학장 및 [[한국교통방송]]의 DJ로 활동 중이다.
  • 김성겸(탤런트) . . . . 3회 일치
         [[현빈]]과는 [[아일랜드(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 [[시크릿 가든(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었다.
          * [[내 이름은 김삼]] - 현진헌의 외삼촌
          * [[깡이]] - 강대풍
  • 김성민 (1994년)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1라운드([[SK 와이번스]])
         2016년에 대학교 4학년 때 [[KBO (야구)|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8월 2일]]에 실시한 트라이 아웃에 참여하였다. 트라이 아웃에서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6위라는 높은 위에 지명되었고 1억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 김연수(작가) . . . . 3회 일치
         ||||||||||||||<#FF5E00><:>'''{{{#white 제7회 [[황원문학상]] 수상 }}}'''||
          * 우리가 보낸 간 - 시 / 소설 (2010)[* 김연수 본인이 감명깊게 읽었던 시와 소설들을 소개하고 짧은 단상들을 적어놓은 책이다.]
         [[2013년]] 7월 기준, 최근작은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다.[* 다만 해당 책이 출간된 출판사에서 자사의 여러 책들을 사재기하여 베스트셀러 위를 조작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이와 관련하여 김연수 작가는 해당 책의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발매된 지 9개월 만에 본 책을 절판시켜 버렸다. 그리고 [[2015년]], 자신의 단편집 <스무살> 재판과 함께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다.]
  • 김영환(1955) . . . . 3회 일치
         2016년 11월 10일 [[박근혜-최실 게이트]]에 대해 야 3당이 촛불 집회 참여를 밝히자 창당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6/11/10/0505000000AKR20161110156000001.HTML?template=8275|사무총장 사의를 밝혔다.]]
         같은 날 김영환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불어 네이버 실검 위에 "이재명은 사퇴하라"가 1위를 기록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재명과 악연을 가진 친 문재인 성향의 맘카페 [[레몬테라스]]에서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826819|게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현재는 북한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그 [[김영환(1963)|김영환]]과는 단한 동명이인인 것을 넘어서서 상당히 깊은 인연이 있다. [[http://blog.naver.com/opi21/130141298542|참조]]
  • 김윤환 . . . . 3회 일치
         이렇게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김윤환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내 자신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이회창]]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면서 다시 '킹 메이커'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당내 민정계와 영남세력을 대거 규합해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김윤환은 3회 연속으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정작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이때부터 김윤환의 정치적 생명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이 밀었던 이회창 총재에게조차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토사구팽|팽]]당해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 당시 이회창의 참모가 [[윤여준]]이었는데, 그간 총선의 화두는 공천이었음을 상기시키며, 김윤환을 위시한 민정계, 구시대 인물들을 쳐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회창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윤여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윤여준의 전략대로 중진급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 수십여명을 날리고 정치 신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운 개혁 공천은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1928)|조]],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3김 정치 + 이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허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상당히 그럴싸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체성이 불문명한 정당으론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양당 구도에 밀려 지역구에선 [[춘천시]]의 [[한승수]] 前 경제부총리, 전국구에선 후보 1번이던 [[강숙자]] 등 총 2명 당선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본인 역시 자기 지역구인 구미시에서 한나라당 [[김성조]] 후보를 상대로 10% 차의 패배를 당했다.(41.7%:32.1%)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영남후보를 세워서 영남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 없이 세상을 떴다.
  • 김준현(코미디언) . . . . 3회 일치
         '''[[유민상(개그맨)|유민상]], [[문세윤]] 등과 함께 먹방 대표 덩치 캐릭터 개그맨의 선두주자.'''[* 다만, 김준현의 경우 [[근육돼지|근육이 많으면서 체지방도 많은 케이스]]에 속하기 때문에 유민상 등 수 비만인과는 엄연히 '''다르다'''. 오히려 [[강호동]], [[마동석]], [[양준혁]] 등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져 기본적으로 근육 덩어리인데 살이 붙은 경우들이 김준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김준현 역시 중학교 재학시절까지 [[검도]]를 했는데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99058|검도 국가대표 경력도 있다]].]
         코너에서 2인자급 캐릭터나 보조역을 담당한 경우는 많지만, 메인 원탑을 한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럼에도 코너 안에서 어느 위치에 있어도 가장 [[미친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재 고갈로 사실상 종영 위기에 처했던 [[생활의 발견(개그 콘서트)|생활의 발견]] 코너에 [[신보라]], [[송준근]]을 받쳐주는 역으로 투입되자마자 코너의 [[인기]]를 다시 되살리는 일등공신이 된 것이 좋은 예. 그리고 [[네가지]]에서 마침내 실질적 원탑이 되었다.[* 물론, 각 출연자가 각자 나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구성이라 딱히 누군가가 주역이라고 볼 수 있는 코너는 아니지만, 김준현의 서가 맨 마지막에 자리 했고 비중도 많은 편이라 사실상 네가지의 메인이라고 볼 수 있다.]
          * 2015년 먹방, 쿡방이 대세가 되며 프로 먹방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정 방송인 [[백종원의 3대 천왕]]과 [[맛있는 녀석들]] 2개 외에도 각종 쿡방, 먹방 프로그램 게스트 섭외 1위이며 식품 관련 CF도 꾸준히 들어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수(채소)|고수]], 삭힌 [[홍어]] 등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도 다 잘 먹는 편이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을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지에 대해 연구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남다르기 때문.[* 실제로 [[중학교]] 시절부터 집에 오면 [[라면]]을 끓이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는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다만 라면 끓이는 정도를 제외하면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 게시판을 보면 방송을 보고 다이어트를 포기했다던지, 장 수술후 입맛이 없어서 고생이었는데 방송을 보다가 침이 나와서 깨끗이 나았다던지 하는 반응이 많은데 그걸 보면 그렇게 뿌듯하다고 한다.
  • 김창숙(배우) . . . . 3회 일치
          * [[다시 시작해]](2016, MBC) - 황현
          * [[산 너머 남촌에는(드라마)|산 너머 남촌에는 2]](2012~, [[KBS 2TV]]) - 이덕 역
          * [[불꽃놀이]](2006, MBC) - 최영 역
  • 김처선 . . . . 3회 일치
         김처선이 내뱉은 이 말에 참고 참던 분노가 폭발한 연산군은 직접 김처선에게 활을 쏘아 쓰러뜨린 다음 [[다리]]와 [[혀]]를 잘라 참혹하게 살해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칼에 맞아 숨을 거두는 간 까지도 직언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대중 매체에서 이렇듯 제법 자주 나온 이유인지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의 전체 누적(실록 홈페이지 '''개설 때'''부터 누적된 것이라고 한다) 인기 검색어 검색 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다. 참고로 실록 홈페이지의 전체 누적 인기 검색어 1위는 [[이신]].
  • 김하은(1984) . . . . 3회 일치
         * [[2006년]] [[KBS1]] 《[[열아홉 정 (드라마)|열아홉 정]]》
         * [[2004년]] [[KBS2]] 《[[오!필승 봉영]]》
  • 김희애 . . . . 3회 일치
         1966년 4월 23일 생.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사와서 자랐으며, 혜화여고 1학년 때 의류CF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일 년 뒤인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로 데뷔했다. 10대 시절 하이틴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85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알수없는 일들"로 브라운관에 데뷔했고, 이후로는 TV 쪽에 주력했다. 1986년에 KBS 일일드라마 "여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고 스무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10대부터 60대를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며 하이틴급 청가련형은 아니지만 대학 동창 [[전인화]]와 신세대 스타로 급부상한다.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본좌 연기자들 중 한 명으로, 원로배우 [[이재]]가 연기 잘하는 후배로 김희애를 언급했었고[* [[이재]]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헐리우드 진출이 가능할 정도의 후배 연기자로 [[남자]]는 [[김명민]], [[여자]]는 김희애를 꼽았다.] "완전한 사랑"같은 경우에는 그 절절한 연기로 대본 리딩 때 김수현 작가를 비롯해 중견 연기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일이 많았다고.--하지만 [[올인(드라마)|올인]] [[이병헌]]의 포스에 밀려 연기대상에는 실패했다는 것[* 이때문에 김수현 작가가 대놓고 SBS 시상식을 쓰레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많은 후배 여배우들(특히 1970-1980년대생)들이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3회 일치
          * 키리시마가 한 발 늦게 약의 존재를 눈치챘지만 대는 늦었다. 빌런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이 뒤집히고 몸을 비튼다. 키리시마가 무슨 약을 놓은 거냐고 묻지만 대답이 없다. 비명이 이어지더니 한간 반응이 멈춘다. 정상으로 돌아온 걸까?
          그 짧은 간이 지나며 빌런은 전신에서 무수한 칼날을 뽑아낸다. "10cm 이하의 칼날"만 뽑아낼 수 있다던 그의 개성이, 갑자기 폭주해버렸다. 칼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 키리시마의 경화된 피부에 상처를 낸다.
          * 칼끝이 코끝까지 몰린 간, 키리시마는 각오를 마친다. 믿어야 할 건 자기 자신. 그리고 개성.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3회 일치
          * 이들은 각자 인생 최악의 간을 맞이하고 완전히 절망했으나 [[오버홀]] 치사키가 내민 손길로 완전히 세뇌된 상태.
          * 타베의 개성은 예상 밖이었고 그가 먹어치운 문어다리도 아팠다. 이레이저 헤드가 이 녀석을 쓰러뜨린 것도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다. 움직임을 상회하는 걸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간 세츠노의 "절도"가 방해한다. 얼굴을 감싸고 잇던 조개껍질을 뜯겼다.
          * 타마키는 짧은 간이었지만 그들의 장점도 약점도 모두 파악했다. 그들의 전술은 서로의 신뢰가 돋보이는 좋은 연계였다. 비록 자신은 그들의 슬픔도 분노도 사연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게 그들의 "굳건한 유대"를 만든다는 건 잘 알았다. 그게 이들이 패착이다. 타마키는 허벅지 아래를 문어다리로 바꿔 그대로 뻗었다. 달려들던 타베, 눈을 못 뜨는 세츠노, 손아귀의 호쇼. 전원이 일직선이다. 타베는 밀고들어오는 발을 먹어치우지 못했다. 그러기엔 호쇼가 방해였다. 그들은 반대편 벽까지 무서운 힘으로 떠밀려 처박혔다. 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3회 일치
          * 트와이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열심히 설명해서 그런지 "이건 진짜 내가 아니다"고 자괴감에 떤다. 기껏 거절했던 토가는 자기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궁시렁 거렸다.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토가도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히 개성을 설명하는 토가. 피를 섭취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때 섭취한 피는 곧 에너지. 섭취량이 변신을 유지하는 시간과 비례한다. 대략 컵 한 잔 분량이라면 하루종일 변신하는 것도 가능. 한 번에 여러 사람의 피를 마시면 그만큼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변신에는 옷도 포함되는데, 문제는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부끄럽다는 여고생 틱한 설명까지 붙여서 PR 완료. 트와이스 못지 않은 성실한 자기소개였다.
          * 그렇게 잘난 척한지 얼마지 않아, 이 꼴이다. 분노조절이 고장난 이리나카.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자랑하던 신중함은 온데 간데 없이 날뛰고 있다. 이유는 매우 단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3회 일치
          * 공기를 밀어낸다+근골의 용수철화+발력 네 배, 여력증강 세 배를 건 합성물.
          * 현 시점에서 구사할 수 있는 건 아주 짧은 거리만 가능하고 자기 곁으로 데려오거나 보내거나 하는 정도의 단한 것 밖에 안 된다.
          * 추진력으로 몸을 경화한 키리시마를 앞세워 벽을 뚫는 간 [[토도로키 쇼토|토도로키]]가 빙결로 높은 점프대를 만든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3회 일치
          * 그는 서가 틀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무릎을 꿇는다.
          * "이즈쿠 소년에게 제 모든 것을 쏟을 수 있게 해주실 없으신가요! 이 목숨과 바꿔서라도 지키고 키우겠습니다."
         || 이즈쿠 소년에게 제 모든 것을 쏟을 수 있게 해주실 없으신가요
  • 남봉진 . . . . 3회 일치
         *아들 : 남철 (시그마지오 대표)
         *아들 : 남호 (연세대 의대 교수)
         *아들 : 남성 (이제이텍 대표)
  • 노경주 . . . . 3회 일치
         '''노경주'''(盧敬柱, [[1965년]] [[3월 14일]])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84년]] [[문화방송|MBC]] 1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으며 [[1984년]]부터 [[1989년]]까지 [[수사반장]]에 여경으로 출연하였다.
         * [[수사반장]] 여경 역 (1984년 - 1989년 [[문화방송|MBC]])
         * [[참 좋은 시절]] 이명 역 (2014년, [[KBS2]])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3회 일치
         문제는 이 능력을 지닌 것과는 달리 실제 전투는 니나가 하는게 아니라 그녀의 시녀 페가수스(리젤)가 싸워야 한다는 점. 배틀에 돌입하면 니나는 플레이어가 명령을 내릴 수 없다. 단히 '지켜본다'라는 입장을 취하며 전투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페가수스는 능력치가 흑기사나 엘프에 비해 별달리 특별할 게 없는 수준.
         그러나 만약 적이 실수로라도 니나에게 공격을 성공하게 되는 간 입장을 180도 바꿔서 갑자기 적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니나의 특성을 이용해서 배틀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1. [[아니에스(이노센트 투어)|아니에스]] - 관계는 최악. 상성 자체가 맞지 않는다. 아니에스는 엄청나게 진해서 니나가 놀려먹어도 반응을 하지 않아 니나 입장에선 최악의 상대.
  • 류중일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1차 2위([[삼성 라이온즈]])
         [[한양대학교]] 체육학과(1983학번) 졸업 후 [[1987년]] 1차 2위 지명을 받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계약금 2천만 원, 연봉 1천 2백만 원)하여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 성적에 기여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 [[유격수]]로 주로 출장했고 골든 글러브([[유격수]] 부문)를 2번 받았다. 현역 시절에는 [[2루수]] [[강기웅]]과 함께하였던 키스톤 콤비가 막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고, 코치로 활동하면서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 리그컵(K리그) . . . . 3회 일치
         첫 대회부터 10만 달러라는 거액을 유치한 것 까지는 좋은데, 일정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여 리그가 진행되고 있던 6월부터 수요일에만 경기가 열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중경기는 주말경기보다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흥행을 위해 진행한다는 취지는 처음부터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었던데다가 상금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단히 주중경기 편성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거의 모든 팀이 이 대회를 처음에 엄청 싫어했다. 그리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댓가로 리그컵에 대한 위상이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구단들의 반감을 사는 요소만 한가득 얻었다.
         2009년 AFC의 ACL 참가기준 발표에 따라 첫 승강제가 이루어졌던 2012시즌은 정규 라운드만 치룬게 아니라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16개팀 44라운드라는 살인적인 일정이 잡혀있었다. 이 밖에도 A매치기간에 리그를 운영할 수 없는 기간, ACL, FA컵 등과 겹치는 일정을 고려하면 도무지 리그컵을 넣을 수 있는 여력이 안 되었던 것. 단히 16개팀이 1판씩 토너먼트를 치뤄도 최대 4라운드에 해당하는 일정을 치뤄야 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AFC에서는 리그컵에 대해 "ACL 참가티켓과는 관련없는 대회"라고 못박으면서 가장 중요하지 않는 대회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다보니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종이컵 취급을 받던 리그컵 폐지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이었다.
  • 마기/313화 . . . . 3회 일치
          * 현재 연백룡은 수한 아르바의 아이가 아니다. 연홍염이 피닉스로 팔다리를 이식해주었을 때 루프가 섞여버린 것이다.
          * 백룡은 이제 자신은 수하게 연가의 사내이지 홍염과는 무관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며 "더이상 네가 갈아탈 몸은 없다"고 한다.
          * 아르바 광탈. 최종보스로 거론되던 인물이 식간에 쩌리가 되고 말았다.
  • 마기/329화 . . . . 3회 일치
          그는 자신이 성궁에서 본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엔 여러 개의 세상과 제각각의 신이 있다. 우고는 그 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손에 넣으며 그걸 사용하면 알라딘을 이 세계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간단하다. 그런 그가 일 일라의 힘을 빼앗고 배제하는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의 손"으로 일 일라와 알 사멘을 없애고자 했다. 그건 바로 그 자신이 "욕망"이 없기 때문. 그런 존재는 단지 주어진 역할에 묶여 있을 뿐, 단지 남이 부여한 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 "신드바드"는 다르다.
          * 그는 잘못됐다. 알라딘이 그렇게 소리친다. 신드바드는 일간 평정을 잃는다. 그 광기를 숨기지 않는지, 그러지 못하는지 어둡게 변한 표정으로 자신은 잘못되지 않았고 오히려 알라딘에게 눈을 뜨라고 다그친다. 신이 무수히 있다면 정의도 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책상을 내려친다. 그런데 그 팔이 인형의 팔처럼 떨어진다. 표정에 웃음이 돌아온다. 무엇이 재미있는 걸까? 그는 웃으며 바닥에서 팔을 되돌린다. "아직 이 모체에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알리바바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알라딘과 신드바드를 화해시키려고 나름대로 설득했으나 신드바드가 너무 글러먹어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알리바바가 신에게 "신이 돼버린 거냐"고 하는 장면에선 알리바바가 부모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도 어정쩡한 관계 밖에 가져보지 못한 그에게 신드바드는 친구이자 아버지인 존재이며 그 점은 상단을 꾸릴 당시 "신드바드씨는 나의 아버지 같은 입장"이라 한 데서도 드러난다. 결국 이번 에피소드에서 알리바바가 한 말은 설득하기 위해서 짜낸 말이 아니라 수하게 그의 속내를 드러낸 걸로 보이는데, 이미 정신이 나간 신드바드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마기/347화 . . . . 3회 일치
          신드바드는 단히 "언젠가 전쟁으로 세상이 망할지도 몰라서" 이런 짓을 하려는게 아니다. 인류가 언젠가 "운명"을 이해하고 그 허무감에 사로잡히는건 필연이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운명을 관장하는 자를 무찌르자, 이게 신드바드의 결론이다. 결국 그또한 "모두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연장이며 "대의명분"이라 할 만하다. 단지 누가 이해하지 못할 뿐인데, 다름아닌 알리바바가 그것을 이해한 것이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그런 점, 대의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들이 지겹고 진심으로 싫어졌다. 신드바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간적으로 따라가지 못했다. 알리바바의 말은 이랬다.
          신드바드는 그것만은 거절한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솔로몬이 만든 세상의 모은 여전히 그대로다. 언젠가 인류는 운명을 이해하고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 뻔한 결말을 보고도 모른척해야 한단 말인가?
  • 마기/350화 . . . . 3회 일치
          알리바바는 그렇게 말했었다. 이제 그 뜻을 알 듯하다. 이제 그걸 인정하고 그에게 히 이끌려지는게 맞는가?
          * 이런데 분명 마법은 멈췄을 터인데, 주변의 루프가 심상치 않다. 이변은 계속되는 건가? 이것은 신드바드도 알 수 없는 반응이다. 바깥에선 먼산에 걸려 있던 해가 그대로 저물어 버린다. 그러더니 식간에 깜깜한 밤으로 변하는데,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백룡과 쥬다르는 그저 아연한 표정으로 성궁이 바뀌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문호월 . . . . 3회 일치
         |저자=[[이동]]
         |제목=<nowiki>[이동의 가요이야기 .27] 신민요 '노들강변'을 부른 가수 박부용</nowiki>
         |저자=강옥희,이영미,이진,이승희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3회 일치
         2015년 1월 24일, 오사카부 사장(大阪府警巡査長) 미즈우치 타카시(水内貴士, 당시 27세)가 내연 관계에 있었던 여성 시라타 히카루(白田 光, 당시 23세. 야마가타 출신)를 살해한 사건이다.
         몸집이 크고 젊은 남자라는 점에서 미즈우치 타카시와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미즈우치 타카시가 범행 시간대에 어딘가에 외출을 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결국 단 용의자에서 중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게 된 미즈우치 타카시는 25일 진술을 뒤집어 "내가 했습니다. 벨트로 목을 졸라죽였습니다."라고 밝혔다.
          * 오사카 부경 현직 경찰관이 살인 혐의로 체포된 것은 이것이 통산 4번째. 이전의 사건은 1983년 사부장이 교제 상대를 [[사살]]한 사건이다.
  • 박근영 (야구인)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6년]] 2차 18위 ([[삼성 라이온즈]])
         [[1996년]]에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8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지만 고작 1군 3경기에 그쳐 거의 2군에서만 머무르다가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1998년]]부터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 박녹주 . . . . 3회 일치
         제자로는 김소희, 박송희, 조애, 장영찬, 박초선, 성창, 성우향, 한농선, 이일주, 조상현, 이옥천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박송희와 한농선이 그의 뒤를 이어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김소희, 성창, 성우향, 조상현 등은 중요무형문화재 춘향가 및 심청가의 예능보유자로, 이일주, 이옥천 등은 각기 시도지정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는 등 굵직한 명창들을 길러냈다.
  • 박영진(코미디언) . . . . 3회 일치
         허경환이 봉숭아 학당에서 '있는데가이' 역할에서 퇴출당하자 조금씩 주춤했다. 게다가 PD는 재미도 없는 [[박휘]]과 박영진을 연결시켜 재미를 보았다[* 처음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최근은 그나마 좀 나아진 상태인 듯.][* 박휘과 박영진의 개그코드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허경환이 [[두캅스]]의 기믹으로 화려하게(?) 귀환해서 이때까지 허경환을 괴롭힌 업보를 톡톡히 받고 있는 상태이며 2010년 2월 18일 자 해피 투게더에서는 박성광과는 달리 크게까지는 활약하지 못했다.
         == 역대 출연작 목록 (가나다) ==
  • 박용우(배우) . . . . 3회 일치
         그러다가 [[2003년]] [[한국방송공사|KBS]]의 [[KBS 대하드라마|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경대승]] 역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더욱이 이 캐스팅은 초기 미스캐스팅이라는 여론[* 심지어 그 친하다는 정우성까지 '''형이 장군이라곸ㅋㅋㅋㅋㅋ'''이라며 --비--웃었다 한다.]을 불식시킬 만큼 호연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명성을 가져다 준 역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사극에서의 호연으로 [[무명]] 시절을 벗게 된 [[케이스]]로는 [[김명민]]이 맡았던 [[이신]] 역,[* 박용우와 김명민은 2002년 '스턴트맨' 이란 영화의 투톱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촬영까지 진행했었다. 그러나 김명민의 부상과, 치료 후에도 흥행 전망에 비관적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포기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 후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침체기를 겪은 두 배우가 나란히 대하사극 주인공들로 인상 깊은 연기로 재기했다.] [[김남길]]이 맡았던 [[비담]] 역 등이 있겠다.
          * [[정(영화)|정]] (2016) - 형준 역
  • 배성룡 . . . . 3회 일치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반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절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과 계급모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으로 상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 백정현 . . . . 3회 일치
         별명으로는 '백작가'[* [[작가(야구)|마운드 위에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여행 사진의 퀄리티가 사진작가급이라는 것에서 유래. --[[랜디 존슨]]?-- '이야깃거리' 항목 참조. ],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만 잘하는 것에서 따온 '오키나와 에이스', '오키나와 커쇼', 이름에서 따온 '백정', 그리고 못할 때는 '[[백린탄]]'이라고 불리며 까인다. 팀내 별명은 '말이'인데, 과거 드라마 [[육남매]]에서 말이 역할을 맡은 송은혜와 비슷해서 붙은 별명이다. 2017년 지금은 삼성 선발진에서 에이스나 다름 없는 활약을 하며 '백쇼'(백정현+커쇼)라는 별명이 거의 정착된 상태.
         6월 1일[* 원래 로테이션 상으로는 아델만이 나오고 백정현은 그 전날 나와야 하지만 백정현이 nc전에 강한것과 더불어 아델만이 홈에서 극강이고 kt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기에 서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전날 아델만 역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nc전에서 7.2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3승을 챙겼다. 또한 nc 킬러다운 면모를 이어나갔다.
  • 블랙 클로버/110화 . . . . 3회 일치
          그런데, "기". 이것이 돌파구다. 아스타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가는 기의 흐름에 주목했다. 그의 몸에는 본래 자신이 가진 기만 있는게 아니었다. 반마법의 검에서 흘러나와 조금씩 몸 안으로 들어오는 기도 있었다. 아스타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렇게 흘러오는 반마법의 검의 기를 전신으로 환하도록 해봤다.
          * 바로 그 간 그저 날아가던 아스타가 마법생물을 뺑소니치고 지나간다. 아스타가 다시금 그 상태를 하자 노엘이 경악한다. 레오폴드는 아스타가 익힌 신필살기라고 생각하고 "블랙 아스타"라는 센스없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아스타는 폭주자동차 같은 상태가 돼서 날아가는 중이라 듣지도 못한다.
          * 거의 간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아스타의 배후로 돌아온 메레오레오나는 우격다짐으로 안면 훅을 꽂아넣어서 아스타를 벽에 꽂아버린다. 이걸로 아스타가 마그마에 처박힐 일도, 그녀가 반마법 검에 찔리는 일도 없긴 하지만...
  • 블랙 클로버/118화 . . . . 3회 일치
          * 모든 이가 물빛의 환록 단장의 실력에 주목했던 제 5시합은 시작과 동시에 어이없는 헤프닝으로 끝날 위기였다. 쓸데없이 적진에 얼쩡거리던 릴이 덩쿨마법에 단숨에 잡혔다. 오히려 잡은 상대팀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한심하긴 해도 단장은 단장. 그를 재빨리 해치우는게 승리의 열쇠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이 그를 잡고 있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이 각자의 최강 마법으로 릴을 공격한다. 불과 얼음의 속성 마법들. 강한 마법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걸 본 간, 릴은 잠들어 있던 영감이 깨어났다.
          * 발터는 그가 처음 그리모어를 얻었을 시절에도 그의 집사였다. 정확히는 그의 집안의 집사였다. 부아모르티에 가문의 저택은 릴이 일으키는 마법사고로 성할 날이 없었다. 그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뭔가가 망가졌다. 자기 방이 박살나는 것도 예사였다. 언제 인명사고가 나더라도 그건 예정된 수으로 보였다. 릴은 본래 조금 이상한 아이라는 평가였지만 그리모어를 얻으면서 평가가 곤두박질쳤다. 방에 틀어박힌 채 날뛰는 아이, 집안의 고용인들조차 그렇게 수군거렸다. 그의 아버지 도 릴을 억누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어머니는 "어쩌다 저런 아이가 되었을까"라고 한탄하며 정신이 병들고 있었다.
          릴의 붓이 허공을 누빈다. 그의 그림은 좁은 사각틀이 필요가 없었다. 최고의 마법을 본 간이라면 어디든 그의 캔버스였다. 그가 풀어놓은 물감은 저마다 부여된 힘을 그대로 구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의 회화마법 "불꽃과 얼음의 드 탕펫드"(폭풍우). 살아난 불과 얼음이 각자 상극의 속성마법을 제압한다.
  • 블랙 클로버/122화 . . . . 3회 일치
          * [[챠미 퍼밋슨]]도 유노의 귀환을 반겼다. 전투 후의 디저트를 받치는 최고의 예후였다. 그녀로서는 먹을 걸 양보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지만 충분한 보상이 주어졌다. 에너지 보급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유노는 "소중히 받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 간 심정지를 일으킨 챠미는 불가사의한 각도로 약 1미터 후방으로 날아가 움직이지 않게 됐다. 여한이 없는 최후였다.
          * [[마법제]] 율리우스는 다양한 마법의 각축전을 보며 대만족했다. 더 만족스러운건 아직도 2회전이 남아있다는 것.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2회전 시작을 선언하려 했으나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실행요원들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시합 스테이지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중앙의 폐허 지역에서 융기가 시작되더니 어느새 상당한 높이의 언덕 지형이 새로 생겼다. 양팀 크리스탈의 위치는 평원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거리가 줄었고 전체적으로 스테이지가 좁아졌다. 이같은 변화는 다양한 지형에서 싸우는 편이 모든 역량을 살펴볼 수 있다는 마법제의 방침 탓이었다. 이렇게 조롭게 2회전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클로버 국왕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좀 더 짐을 즐겁게"해라는 기분 나쁜 말이나 궁시렁대고 있었다. 아스타는 스테이지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지만 [[잭스 류그너]]가 작은 동요를 보이는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건 다른 함정도 설치했었다는 것. 정확한 추론이었다. 잭스는 새삼 아스타가 "기"를 읽을 수 있다는 걸 상기하며 성가셔했다. 하지만 여기서 숨기거나 얼버무리는 건 무리수. 그는 깔끔하게 그렇다고 인정했다. 사전에 정보를 긁어모아서 이 장소를 찾아냈고 어제 미리 함정을 설치해놨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미모사는 거기서 또다른 의문점을 찾아냈다. 로얄 나이츠 시합 장소는 극비 중의 극비. 어떻게 잭스가 그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걸 추궁할 기회를 놓쳤다. 아스타가 "그건 반칙"이라며 반발했던 것이다. 잭스는 정보전도 실력의 일부라 우기며 비난을 일축했다. 애초에 그런게 안 된다는 룰이 있지도 않고 실제로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는 논리. 궤변이지만 아스타에게 반박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미모사는 식간에 논파되고 분개하는 아스타가 귀여웠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서수민 . . . . 3회 일치
         || '''가족''' ||<(> 조카: [[장왕후]][* 드라마 제작국의 프로듀서로 [[넝쿨째 굴러온 당신]], [[전우치]] 등에서 활동했다.], 딸 2명 ||
         하지만 [[시청률]] 추이로만 보면 서수민이 PD를 맡은 기간의 위가 개콘의 최전성기인 2003~2004년을 제외한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고,[* 실제 시청률은 조금 높아진 수준이지만 그 동안 [[지상파]] 시청률이 하락하다 보니 시청률 위만으로는 전성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CP를 맡은 이후 [[해피 선데이]]도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명한]] PD처럼 매니악한 팬들 성향에 맞지 않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실, 서수민이 2012년 11월에 승진할 수 있었던 근원이 개그 콘서트 덕분이기도 했고.--그리고 말아먹은 근원까지 제공해버렸지..--
  • 소냐(가수) . . . . 3회 일치
         || [[네가 가라 하와이]] || → ||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 → || [[소녀의 정 코스모스]] ||
         그 뒤 13차 경연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소녀의 정 코스모스]]에게 가왕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번 출연을 통해서 혼혈이라면 이런 음악을 해야한다는 편견을 깰 수 있었고 또 다른 혼혈계 사람들에게 혼혈이라는 장벽을 깨는 희망을 주어서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 3조 엔트리인 [[딸랑딸랑 종달새]]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60표 이상 득표를 한 번 씩 했으며, 이들 모두 [[황금락카 두통썼네|4번 엔트리에서 2연승한 여자]] [[네가 가라 하와이|가수]]들을 이긴 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4연승을 한]] [[소녀의 정 코스모스|나는 가수다]] 출신에게 완패했다는 점이며 새 가왕 모두 예명을 사용했다.
  • 손예진 . . . . 3회 일치
         손예진은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영화 《[[비밀 (2000년 영화)|비밀]]》에서 홍미조 역을 맡아 출연(목소리 출연)한 후, 오디션을 통해 이듬 해 2001년에 방영 된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여주인공 장희애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885703|title=Young, Charming and Innocent ? What More Could You Want?|date=12 March 2001|work=Korea JoongAng Daily}}</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00807 '방송'손예진 MBC 최고 루키 선정], 《한국일보》. 2001년 9월 25일 작성.</ref> 첫 드라마 작품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특유의 청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이어 《[[선희 진희]]》에 출연하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손예진은 픽션사극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되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2002)는 233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클래식 (영화)|클래식]]》(2003)은 154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회자되며, 손예진의 맑고 수한 이미지로 인해 단숨에 청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f>{{웹 인용|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606101410484008937_2|title=Korean stars dubbed ‘Nation’s first love’|website=The Korea Herald|date=10 June 2016}}</ref> 이 작품들을 통해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제4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396132|출판사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저자 =김병규 |날짜 = 2003-06-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3년 TV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여주인공 심혜원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한류 (문화)|한류 문화]]의 주역인 [[윤석호 (연출가)|윤석호]] PD의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잇는 계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 송창현 . . . . 3회 일치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27위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으나, 2012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야인 시절 직접 점찍어 두었던 송창현을 곧바로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이 때 트레이드로 롯데로 넘어간 선수가 다름 아닌 '''[[장성호]]'''였기에, 졸지에 화제의 신인으로 급부상한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니라(…).
         2014 시즌 이후 마무리 훈련에 참가했지만 부상으로 도중에 낙마했다. 이후 11월 19일 요코하마의 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좌측 어깨 전관절 와 부분 파열로 접합 수술을 받았다. 26일에 퇴원해서 귀국한 이후 서산에서 재활훈련에 들어간다고 한다. 단계적으로 내년 2월쯤에 캐치볼을, 5월달쯤에 실전 피칭에 들어간다고 한다.
          * 트레이드 초기에 [[류현진]]의 [[등번호]]인 99번을 요구했다는 소리가 있어 ~~안 그래도 트레이드로 호구잡힌 기분에~~ 언짢아 있던 한화팬들의 심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는 단한 루머로 밝혀졌다.[[http://www.sportsworldi.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130124022341&subctg1=25&subctg2=00&OutUrl=naver|#]] 롯데에 지명되었을 때는 [[이대호]]의 등번호였던 10번을 요구하였다는 소리도 있었다.[[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122637.htm|#]] 물론, 한화로 트레이드 되면서 이 번호는 [[스캇 리치몬드]]에게로 넘어갔으나 리치몬드도 무릎 부상으로 인해 퇴출. 이 영향인지 네이버에서 송창현을 치면 처음으로 뜨는 연관 검색어가 '송창현 무개념'이었다(…).
  • 식극의 소마/189화 . . . . 3회 일치
          * 이어서 소마의 멘치까스를 재시식한다. 소마 또한 곰고기 육수를 쓴 소스를 제출했는데 자세한건 아직도 불명. 베르타와 실라는 거기서 청주에 절인 오미자, 액센트로 추가된 마늘향을 간파하지만 어떤 "한향"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쿠가 테루노리는 그것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데.
          * 베르타와 실라가 다시 소스를 찍은 멘치까스를 시식하는 간, 소스를 더했을 뿐인데 맛의 표정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소마의 소스 또한 요리의 맛을 끌어 올리는데 단히 완성도를 더한다기 보단 전혀 다른,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듯한 향상이다. 매우 복잡미묘하면서도 곰고기의 달콤한 풍미를 배가시키는 신기한 소스다. 베르타와 실라는 소스를 다루는 것만큼은 소마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식을 마치는데
  • 식극의 소마/190화 . . . . 3회 일치
          * 승부의 간. 하야마 아키라는 유키히라 소마가 자신의 프라이드 베어를 능가할리 없다고 자만한다.
          * 간 떠오르는 자신의 원점. 시작은 수하게 시오미를 위한 것이었다. 소년시절부터 시오미의 조리실에 들락거렸는데 어린 그의 요리를 시오미는 진지하게 시식해주고 칭찬도 해주었다. 하야마는 자연스럽게 토오츠키 학원의 정점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식극을 위해 준비하던 요 며칠 간. 그는 요리에 쓸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 무심코 시오미의 의견을 구한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던 시오미는 없다. 그는 그것 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 신은정 . . . . 3회 일치
         [[199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5년 후 [[1997년]] [[서울방송|SBS]] 7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다. 이에 앞서 1994년 [[SBS]] 추석특집 신파극 《이수일과 심애》에서 주인공 심애 역을 맡았으며, 그 외에도 [[SBS]] 《[[기쁜 우리 토요일]]》, [[KBS2]] 《토요일 전원출발》 객원 MC, HBS 드라마 《작은 영웅들》, 시트콤 《둘 곱하기 하나》 등에 일찍부터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 [[2010년]] [[SBS]] 일일연속극 《[[호박꽃 정]]》 ... 오경복 역
  • 심양홍 . . . . 3회 일치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따라서 [[이재]], [[신영균(배우)|신영균]] 등과 같이 고학력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재[* 이재는 심양홍의 서울고 선배며 서울고 출신 탤런트로는 [[박용식]]이 있다.], 신영균, 심양홍 등은 서울대학교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 역사 . . . . 3회 일치
         [[과거]]에 대한 기록이며 단히 입소문 등의 수준이 아니라 큰 규모의 사건 등 영향력이 많은 일들이 기록된다.[* 단, 현대에는 기존의 정부나 단체, 공인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역사 연구에서 벗어나 이러한 단한 특정 시기의 '소문'이나 소소한 일상사, 사물 등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검토하는 '미시사'란 개념도 생겨났다.] 이를 다루는 학문을 역사학이라 한다.
         그냥 옛날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것이 그만큼 문명과 사회, 개인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왜곡이 단히 거짓말을 했다고 비판받는게 아니다.
  • 연경흠 . . . . 3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한화 이글스 2차 12라운드]](전체 90위) 지명[* 대학 진학으로 인해 실제 입단은 2006년.] ||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2위(전체 90번)에 지명되었으나 [[송광민]], [[김태완(1984)|김태완]]과 마찬가지로 대학행을 선택했고[* 당시 신인드래프트는 지금처럼 지명권 2년 유효 제도가 아니어서 하위픽은 지명만 해놓고 대학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대학입학에 필요한 전국대회 8강 경력이 없어 진학이 어려울 뻔 했으나 봉황대기 우승으로 극적으로 인하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하대에서 4번타자를 맡았다. 위의 둘과는 달리 외야수를 봤기 때문에 미래의 외야자원감으로 꼽혔으며 졸업 후 2006년에 입단했다. 장타력이야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차세대 거포 외야자원으로 촉망받았다.
         결국 선수로서 은퇴 수에 들어가서 한화 이글스 3군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가 2013년 6월 19일자로 정식 은퇴했다. 만 29세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무릎 통증과 팔꿈치 부상 때문이었다고... 계속해서 재활에 매달렸지만 회복이 힘들다는 판단 하에 은퇴를 결심했고, 구단에서도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한화의 좌타 외야수 요원 가운데에서는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젊고 가능성이 있던 그였기에 적지 않은 팬들이 그의 이른 은퇴 선언에 아쉬움을 표했다.
  • 연정(우주소녀) . . . . 3회 일치
          * 비글미가 넘치는 I.O.I 내에서도 최고의 비글이라는 멤버들의 증언이 있다. 약간 조증이 있어 차분할 때와 신날 때의 갭이 큰 편인데, 체력적으로는 최유정, 소미에 밀릴지는 몰라도 한번 신나고 흥이 넘치는 간부터 아무도 말릴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그 활발한 소미조차 업된 유연정이 옆에 앉자 '벌써 기를 다 빨린 느낌이다' 고 할 정도니(...)[* 160518자 뮤비뱅크 스타더스 참고] 그래도 그런 유연정의 에너지에 멤버들이 기운을 얻기도 한다고.
          * 쉬는 날이면 집에만 있고, 특히 침대 위에서만 보내는 듯하다. 즉, 집이인 듯. 같은 방을 쓰는 [[은서(우주소녀)|은서]]가 하도 안 일어나길래 아픈가 싶어서 다리를 주물러줄 정도...
          * 유독 [[소녀시대]]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와 인연이 깊다. 데뷔 전 [[프로듀스 101]] 때 이 곡을 부르고 뜬 것부터 시작해서 데뷔 후에 I.O.I 멤버들이랑도 부르고 이 곡으로 2016 KBS 가요대축제 때 [[I.O.I]], [[레드벨벳]], [[TWICE|트와이스]],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합동무대를 했으며, 2018 DMC페스티벌에서는 [[우주소녀]] 멤버들과 같이 불렀다.[* 파트가 없었던 가요대축제 때를 빼고 시간 으로 보면 점차 실력이 늘어남을 알 수있다.]--부를 때 마다 기분이 묘할거 같다-- 게다가 유연정 본인은 SM에서 [[연습생]]으로 있었고.
  • 염재욱 . . . . 3회 일치
         * [[2005년]]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아 (드라마)|굳세어라 금아]]》
         * 해외 포르투칼 홍신자선생님 작품"례'공연-00년
  • 오승근 (가수) . . . . 3회 일치
         오승근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1968년]]에 17세의 나이로 홍백과 함께 음악 그룹《투에이스(=금과 은)》를 결성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4곡을 발표했는데 《빗속에서 울리라》, 《그 얼굴》, 《비둘기집》, 《두 마음》이다. 그 중에서 《비둘기집》(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은 발표 당시 인기를 얻으며 [[1970년]]에 KBS 가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1971년]] 약 3년 간 같이 활동한 홍백과 결별하고 잠시〈영에이스〉라는 그룹사운드에서 최이철과 활동하다 입대를 하였으며 [[1974년]]에 복귀하면서 임용재와 함께 그룹 《금과 은》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조금씩 [[트로트]] 느낌이 나는 《빗속을 둘이서》(김정호 작사/ 김정호 작곡)를 히트시키며 다시 인기가수로 등극하였다. 또한 옛노래 모음(Remake)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처녀 뱃사공》(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이 히트하여 MBC 10대 가수상, KBS 최우수 남자 가수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볐다. [[1979년]]에 해체될 때까지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중창부문을 독식하기도 하였다.
         * 2015년 [[KBS1]] 《[[인이의 토크 드라마 그대가 꽃]]》 - [[김광영]]
  • 오현근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4차 7라운드 ([[두산 베어스]])<br>[[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3차 6라운드 전체 45위([[SK 와이번스]])
         2008년 SK 와이번스의 2차 6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 원피스/840화 . . . . 3회 일치
          * 강하고 온한데다 배신하지 못하게 프로그램된 이 병사들 여러 나라에서 탐내고 있다.
          * 그리고 식간에 상디의 등뒤에서 나타나 목을 휘감는다.
          *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불붙은 허들을 뛰어넘는 등 다양한 훈련을 거치는데, 형제들은 조롭게 돌파하지만 상디는 언제나 뒤떨어진다.
  • 원피스/848화 . . . . 3회 일치
          * 브룩은 보물전 안에 남은 체스병들을 연주와 노래로 식간에 제압한다.
          * 한편 죄수도서실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푸딩이다. 푸딩은 루피의 감옥을 지키고 있던 형제들에게 루피와 이야기할 수 없겠냐고 청한다. 의외로 형제들은 히 루피의 감옥을 열어준다. "책갈피"를 감옥 사이에 끼우자 엿가락처럼 옆으로 휘어져 버린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푸딩. 루피는 푸딩을 반가워하며 해안에 갔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미는 다른 녀석들이 들으면 푸딩이 곤란해지니 그만하라고 진정시킨다.
  • 원피스/852화 . . . . 3회 일치
          * 의료실에선 상디가 레이쥬에게 모든 걸 전한다. 레이쥬는 상디의 말을 히 믿는다. 본래 그녀도 푸딩이 너무 착해서 수상했기 때문에 조사를 한 것이고, 그러다 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설마 그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상디는 빅맘이 결혼하지 않고 제르마를 몰살시킬 작정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이 희생해 밀집모자 일행을 살리는건 택도 없는 일이었다고 자책한다. 그런데 레이쥬는 태연한 태도로 말한다.
          * 레이쥬는 자신의 고향이자 가문이자 가족들을 그렇게 한 마디로 평가했다. 다행히 빅맘이 원하는건 제르마의 "과학력". 상디가 도망친대도 구태여 이스트 블루의 발라티에까지 관심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인질취급했던 제르마의 인간들은 죽어 마땅하다. 단한 "살인자 집단"이니까. 상디는 다른 가족들에겐 일말의 정도 없지만, 어째서 레이쥬까지 죽음을 자청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원피스/859화 . . . . 3회 일치
          * 결혼식 준비는 조롭게 진행 중. 아무것도 모르는 빈스모크 일가는 참석할 채비를 하는데 [[빈스모크 레이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그 말에 동감한다. 암살이라면 식간에 처리할 필요가 있고 그게 실패하면 포위 당해 죽을 뿐이다. [[몽키 D. 루피]]는 역시 사황은 그정도로 대단한 거냐고 묻는데 [[브룩]]을 구할 때 직접 대면했던 [[나미(원피스)|나미]]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치를 떤다.
          좌우간 본인이 승락한 이상 벳지로선 나쁠게 없다. 그는 타이밍은 아냐고 묻는데 루피는 [[샬롯 푸딩]]이 상디에게 맹세의 키스를 하는 간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자 상디가 "못한다고!"라고 태클건다. 푸딩은 키스하는게 아니라 총을 쏠 거다. 상디는 그 점을 강조하며 총은 어떻게든 피할 테니 총성을 신호 삼아서 등장하라고 못박는다.
  • 원피스/865화 . . . . 3회 일치
          * [[브룩]]의 조언에 빅맘에게 다시 깨진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루피는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회수했다. 하지만 그가 달리기 시작한 간 삼장성 중 하나인 [[샬롯 카타쿠리]]가 그를 저지하려고 다가오고 있었다. [[카포네 갱 벳지]]가 [[징베]],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함께 그 앞을 가로막자 카타쿠리는 그 역시 배신했음을 직감하며 달려간다.
          * 벳지가 카타쿠리를 저지하기 위해 총을 난사했다. 자연계인 카타쿠리에게 별 타격은 주지 못했지만 그의 배신은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카타쿠리는 이에 분노하지만 그보다 루피가 먼저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다리를 떡으로 변화시켜 루피에게 뻗는다. 루피가 엉겁결에 받아치려 하는데 그래선 붙잡힌다. 페드로가 접촉하지 말라며 몸을 날린다. 이어서 징베가 "오천 기와 정권"으로 달라붙는 떡을 흐트러뜨린다. 그 간 카타쿠리가 징베를 지나쳐 루피를 직접 노린다. 카타쿠리의 떡뭉치가 루피를 덮쳐 붙들지만, 루피는 마지막 간 팔을 늘려서 빅맘의 시야로 파고든다.
  • 원피스/874화 . . . . 3회 일치
          [[몽키 D. 루피]]는 좋지 않은 낌새를 차리고 일행에게 경고하고 킹밤에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빅맘이 자신의 모자 "나폴레옹"을 검형태로 바꿔서 쓰는 기술 "위국". "엘바프의 창"이란 명칭대로 빅맘이 팔을 휘두른 방향으로 직선의 충격파가 꿰뚫고 지나간다. 충격파는 킹밤의 좌반신을 깨끗하게 삭제하고 계속 나아가 홀 케이크 아일랜드 외곽의 절벽에 구멍을 냈다. 터무니 없는 위력. 일행은 직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위력을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루피는 그 간에도 엘바프 거인족의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을 간파한다.
          하지만 킹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빅맘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없었다. 루피는 역시 자신이 나서야 겠다며 혼자서라도 뛰쳐나가 대적할 작정이었다. 이번에도 나미가 작전이 있다며 루피를 말렸다.
          * 나미는 유혹의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쪽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맞는 판단이었다. 유혹의 숲의 나무들, 지형들은 그들의 주인인 킹밤이 나타나자 경례를 붙이며 길을 텄다. 그들이 열어준 길 끝에 해안에 정박 중인 사우전드 써니호가 보였다. 이제 해안까지 일직선. [[캐럿(원피스)|캐럿]]이 역시 나미는 대단하다며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상디]]도 눈이 하트가 돼서 나미를 찬양하는데 여념없다. [[징베]]는 달리 칭찬하진 않았지만 "빅맘이 제우스를 타지 못하면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나미의 작전에 감탄한 듯 하다. 나미는 징베의 말에서 방금 자신이 농락한 구름이 "제우스"란 이름인 걸 알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려서일까? 제우스가 일행을 쫓아왔다. 징베는 벅찬 상대라며 경계했지만 이 구름에겐 싸울 의사가 없었다. 먹을 걸 구걸하러 왔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자기가 먹은 "작은 먹구름"에 극찬을 늘어놨다. 그런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며 더 달라고 청했다. 아주 농후하고 목넘김이 훌륭한 구름이라나. 루피는 대뜸 "그런것 보단 태워달라"고 요구하는데 제우스도 썩 싫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한테 혼을 준 마마 밖에 못 태우니까 무리"라고 대답한다. 루피는 "단한 구름"이라고 실망. 하지만 쭉 듣고 있던 나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인다.
  • 원피스/876화 . . . . 3회 일치
          * "제우스 브리즈 템포"가 유혹의 숲 한복판을 꿰뚫었다. 추격에 열을 올리던 빅맘 해적단이 한 간에 증발. [[밀집모자 일당]]은 간발 차이로 폭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무사했다. [[몽키 D. 루피]]와 그 일행은 도망치던 것도 잊고 폭뢰가 만든 거대한 구멍을 바라봤다. 누구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술을 시전한 [[나미(원피스)|나미]] 조차 통상적으로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라고 경악에 경악을 거듭했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추격대가 전멸했을 거라는 추측을 내놨다. 그렇다면 관건은 빅맘 [[샬롯 링링]]. 그녀의 생사였다. 분명 그녀는 폭심지 한 가운데 있었다. 직격.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저 시커먼 구멍에 삼켜진 건 분명하다. 과연 그녀는 그 충격을 견뎌낸 걸까?
          오로지 전진. 토사든 대지든 무엇이든 빅맘의 먹부림을 막을 없다. 그녀는 단지 걸었다. 밀집모자 일당을 향해. 가로막히는 모든 걸 씹어삼켰다. 우적거리는 소리와 빅맘의 목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나미가 어느 지점부터 지면이 갈라지고 무언가 솟아 오르는 걸 보았다. 빅맘이 기어이 땅 위로 올라왔다. 이제 다시 발이 바빠질 시간이다.
          사악한 얼굴에 묘한 홍조를 띄운 푸딩. 이제 상황이 단해졌다. 둔감한 루피는 물론 [[캐럿(원피스)|캐럿]]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 원피스/886화 . . . . 3회 일치
          * 오븐은 진심으로 시폰을 처단하려 드는데 보다못한 "파운드"가 달려들어 오븐을 막으려 든다. 시폰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간 어리둥절하는데. 모두의 이목이 파운드에게 몰린 사이, 상디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동, 마치 파운드가 후려친 것처럼 꾸며 오븐을 날려버리고 시폰을 구한다. 오븐은 잠시 어리둥절해하지만 "파운드 이외 누군가가 공격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인식한다.
          * 마차도 마침 항구 근처에 있어서 벳지의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벳지가 해안으로 들어오자 빅맘의 선단이 해안을 봉쇄해 벳지는 독 안에 든 쥐신세. 벳지는 그렇게 히 잡히는가 싶었지만, 배 위에서 마차의 오븐을 저격해 버리고 아들과 아내 앞에서 "이게 내가 살아가는 법"이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이 저격 덕에 오븐이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시폰은 놓여나지만, 결국 항구는 봉쇄되고 일행이 달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데.
  • 유인촌 . . . . 3회 일치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의 역할 혹은 대부분 그렇게 하다가 말아먹고 망하는 비운의 지식인 연기를 전문으로 한다. 연극에서 <[[햄릿]]>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군[* 이 연기는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아주 잘 나온다. 유인촌의 연기변신을 보려면 필히 봐야 할 작품. 이 연산군 배역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다.] <역사는 흐른다>에서 이규직, <[[조선왕조 5백년]]>[* 사실 조선왕조 5백년에서는 배우들을 계속 돌려막기를 했다. [[최수종]]만 해도 철종과 사도세자를 했고 故김무생의 경우 이성계와 이신을 했으며 신충식이 담당한 사람만 원균과 미우라 고로등을 포함해 총 6명이다.]에서 조광조(풍란), 인조임금(남한산성) 연기가 대표작.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 [[대우전자]] - '탱크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밀던 시절 배훈 당시 대우전자 사장과 광고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 유지태 . . . . 3회 일치
         * [[2008년]] 《[[정만화 (영화)|정만화]]》 - 김연우 역
         * [[2013년]] MBC 스페셜 605~605회 : 달의 정원, 천만 1부~2부
  • 윤정희(1944) . . . . 3회 일치
         사실 그녀는 단하게 인기가 많은 데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배역폭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사에 굵직한 기여를 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cr333&logNo=120061757343&isFromSearchAddView=true|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당시 여배우의 맡는 통상적인 역할은 어머니상이나 요부상에 그쳤는데, 윤정희의 경우에는 이 두 역은 물론이고, 백치미까지 능숙하게 연기했다고. 단히 트로이카들과 비교해도 이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하이틴 스타와 같은 통통 튀는 발랄한 역을 연기한 [[남정임]], 우수에 빠진 눈매로 비련의 여인을 연기했던 [[문희]]에 비해 폭넓은 역을 맡았다. 또 그녀의 이미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적인 세련미이다.
         국내외의 각종 영화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만 무려 24번이나 수상한 대배우이다.[* 최근 언론에 언급되는 원로배우 그 누구도 윤정희의 발끝에 못 미친다. 그도 그럴것이 윤정희는 젊은 시절에 무명이었던 이들과 달리 젊은 시절에도 연기력, 흥행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사실 원로배우들 중에서는 단히 상 몇번 타거나 광고 몇번 출연한 것 가지고 연기의 화신처럼 대접받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원로배우들 상당수가 젊은 시절에 무명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젊은 시절에 정점을 찍은 배우들 상당수는 말년에 잘 활동을 하지 않거나 아예 은퇴를 해서 대중에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미 인기에서 정점을 찍어 더 이상 연예계에 미련이 없기 때문.]
  • 은혼/609화 . . . . 3회 일치
         그 답은 너와 네가 만나게 해준 동료들이 가르쳐 주었어. 내 기계는 지금 이 간을 위해서 있던 거야.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가 에도성을 때려부건 눈축제 에피소드에서 나왔던 내용인데 지나가는 드립이 아니라 정말로 은혼 세계관의 정사. 그래서 그런지 적들도 겐가이포가 나타나자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라고 생각해서 긴장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긴토키는 실제로 완성도 높게 눈조각을 만들었던게 증명됐다.--완성도 높은데 어이!--
         결국 다음 에피소드인 [[은혼/610화]]에선 단한 EMP가 아니라 나노머신 기반의 기계말살 병기임이 밝혀졌다.
  • 은혼/617화 . . . . 3회 일치
          *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 하지만 [[야규 빈보쿠사이]]가 이들을 식간에 베어버린다.
          >칼날을 벼르고 힘을 길러서 이 검에 은이 깃들 이 간을
          빈보쿠사이는 적진을 누비면서 한탄한다. 야규가가 쇼군가의 검술사범으로 번영한 듯 보이지만 평화의 시대가 오고 심지어 이젠 배가 하늘을 나는 시대가 되면서 검은 필요가 없어졌다고 자조한다. 그렇지만 하늘은 검의 마지막 간에 빛이 들게 해줬다며, 이기든 지든 이게 검의 마지막 전장일 테지만 곧 이 별을 구할 수 있는건 검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검에 목숨을 바쳐왔던 젊은 검사들에게 "지금까지 단련해온 건 지금을 위해서"라고 격려한다.
  • 은혼/619화 . . . . 3회 일치
          * 오우가이는 그 상황에서도 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머리로 뿔로 큐베의 공격을 받아낸다.
          쓰러뜨렸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 오우가이는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그는 간적으로 머리를 틀어 뿔로 큐베의 검을 받아냈다. 이번엔 검이 붙들려 무방비해진 큐베를 노리는데 긴토키가 그가 쳐든 손을 쳐낸다.
          큐베의 말과 함께 가구라와 신파치가 과감히 뛰어내리며 각자 왼팔과 오른다리를 친다. 왼다리가 통나무더미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는 식간에 사지가 봉쇄된다. 짐승처럼 포효하는 오우가이.
  • 은혼/630화 . . . . 3회 일치
          해방군 모함 아메노토리후네는 함 전체의 구조를 변화시켜 파괴병기 "히노카구츠나"로 변신한다. 해방군 모함은 단한 우주전함이 아니다. 우주의 정수가 집결된 파괴병기 히노카구츠나를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안치대인 것이다. 그 포격 한 방으로 행성을 파괴하는 위력 때문에 오랜시간 봉인되어 있었으나 해방군이 봉기하며 봉인을 풀었다. 위력이 큰 만큼 사용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이미 충전이 끝났다. 히노카구츠나는 곧바로 발사 준비에 들어갔으녀 지금으로부터 6시간 뒤, 지구를 우주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엔죠가 팬던트를 닫는 간 숨겨져 있던 화기가 불을 뿜는다. 사령실의 각 벽면마다 설치된 비상장치였다. 반란을 도모했던 자들은 방아쇠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쓰러진다. 엔죠는 죽어버린 반역자와 살아남은 방관자들, 그리고 화면 속의 겐가이 영감에게 말한다. 증오와 슬픔을 치유할 길도 없어진 자신들은 전쟁이란 불길로 그걸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증오도 슬픔도 전부 타서 재만 남을 때까지. 그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설령 1초 후에 마지막 간이 찾아올지라도
  • 은혼/635화 . . . . 3회 일치
          * [[히라가 겐가이]]를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야토족 용병 부대 사이로 뛰어들었던 [[가구라]].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위기에 처하고 위험한 간 [[카무이(은혼)|카무이]]가 나타난다. 용병부대의 지휘관 "노사"는 가구라가 지구인을 위해 헌신하는 걸 보고 "바보"라 비하하자 카무이는 적들을 날려보내고 "바보는 혼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노사의 진정한 야토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자기 몸에는 야토가 야토였을 때 흐르던 오래된 피가 있고 그 수한 피를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심하며 목숨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노사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어느새 근육질의 거한으로 바뀐다. 이게 노사의 진짜 모습. 비록 사용하면 수명이 줄지만 이젠 어쩔 수가 없다며 본래의 힘을 드러낸 것이다.
          * 카무이의 힘은 오히려 노사를 밀어낼 정도였다. 그때, 노사의 후방에서 또 한 명의 쿄쿠카의 자식, 가구라가 날아든다. 아까까지 티격거리던 남매는 이 간 의견 일치를 본다.
  • 은혼/638화 . . . . 3회 일치
          그런 생각을 하던 간 곤도의 발 밑으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의 빛이 솓아 오른다. 대원들이 구해볼 틈도 없이 폭발이 곤도를 집어삼킨다.
          * 해방군 본대는 [[천도중]]이 해방군을 전멸시키고자 본진인 지구 조차 버리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추측한다. 틀린 말이다. 엔죠 황자는 안다. 이미 천도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부하들에게 그걸 묻고 있을 없다. 천도중의 죽음을 숨기고 이 전쟁을 아득바득 고집한 이유가 사라지니까. 엔죠 황자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자신들의 모성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는지 자문하길 되풀이했다. 한 가지가 걸린다. 저 현상은 모성에서 일어난 것과 완전히 같은건 아니라는 것. 단 번에 대폭발을 일으켰던 모성과 지표 전역이 들끓듯이 연쇄폭발하는 저 현상은 다르다. 애초에 천도중은 죽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천도중이 아니었던 건가? 그들의 모성을 파괴하고 지금 지구를 파괴하려는 자. 그리고 천도중을 죽인 자. 이 전쟁을 계속하는 자.
          천만에 말씀. 우츠로는 그런 단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 시각 터미널의 지하에선 열쇠를 넘겨받은 우츠로의 부하가 용혈을 조작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연쇄 폭주가 지상의 거추장스러운 군대를 밀어버렸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용도다. 지구의 전 아르타나가 터미널로 몰렸다. 이윽고 터미널은 우주로 향해진 거대한 아르타나 캐논이 되었다. 이게 진짜 계획.
  • 이석훈 . . . . 3회 일치
         ||<tablebordercolor=#87C1E7><rowbgcolor=#87C1E7> '''{{{#07A37B 방송 날짜}}}''' || '''{{{#07A37B 특집}}}''' || '''{{{#07A37B 곡명}}}''' || '''{{{#07A37B 경연 서}}}''' || '''{{{#07A37B 결과, 득표수}}}'''[* 이석훈이 고정출연하던 2011년은 득표수가 공개되지 않았다.] ||
         복면가왕에 [[십오야 밝은 둥근 달]]이라는 닉네임으로 참여해서 준우승했으며 묘하게도 [[노래덕후 능력자|그 후에 참여한 멤버]]와 마찬가지로 예선 1차전에서 첫경연했으며 [[소녀의 정 코스모스|장기 집권]] [[우리 동네 음악대장|가왕]]의 첫 경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tablebordercolor=#87C1E7><rowbgcolor=#87C1E7> '''{{{#07A37B 방송 날짜}}}''' || '''{{{#07A37B 경연 서}}}''' || '''{{{#07A37B 곡명}}}''' || '''{{{#07A37B 파트너}}}''' || '''{{{#07A37B 결과, 득표수}}}'''[* 괄호 안은 1,2라운드 합산] ||
  • 이성희(배구감독) . . . . 3회 일치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한유미]], [[장소연(배구선수)|장소연]], [[김세영(배구선수)|김세영]] 등 주전이었던 베테랑 선수들도 모자라 김회[* 장소연과 김세영 대신 원포인트 서버로 썼던 선수.], 오현미[* 윙 리시버로, 이 선수의 여동생이 현대건설에서 리베로로 뛰던 오아영이다. --하지만 [[이호(배구선수)|이호]] 때문에 [[망했어요]]!--], 한은지[* 주전 세터인 [[한수지]]의 언니이자 센터.] 등 조커 역할을 하던 선수들도 대거 [[은퇴]]했다. 거기에 2011 - 12 시즌 엄청난 활약을 했던 외국인 선수 마델레이네 몬타뇨의 공백을 전혀 메우지 못해 5승 25패(6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냈다. 팀 최다이자, 리그 역사상 최악의 기록인 '''20연패'''는 [[덤]].
         이 때문에 배구 팬들 사이에선 감독보다 경기감독관이 더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 돌고 있으며, 2017년 KOVO컵 대회부터 경기감독관을 맡는다고 하였다. 다만, 정작 경기장에 안 나오는 걸로 봐선 사후판독관으로 있는 걸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이는 2017년 KOVO컵 대회때 잠깐 경기감독관으로 나온 심옥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사후판독관으로 있던 [[강성형]]이 현 배구 국가대표 후보 선수 팀 감독으로 가면서, 심옥이 사후판독관으로 바뀐 듯 하다.][* 다만, 기존 경기감독관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생길 경우, 일정기간 사후판독관이 대타로 경기장에 오기는 한다.]
  • 이장경 . . . . 3회 일치
         성주의 호족으로 [[신라]] 말의 재상 이유(李純由)의 12대손이며<ref>유(純由)→광연(光演)→정신(正身)→견수(堅壽)→범(凡)→정거(廷居)→중경(仲京)→영(瑩)→효삼(孝參)→돈문(敦文)→득희(得禧)→이장경(李長庚)</ref>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장경의 아버지인 이득희는 태몽에서 문창성(文昌星)이 경산(京山)에 떨어지는 것을 본 후 이장경이 출생한 까닭에 이름을 장경(長庚)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경은 문창, 태백성의 다른 칭호였다. 그 뒤 성주군수로 부임한 [[합천이씨]] 이약(李若)은 이장경의 재능을 간파하고 후세에 반드시 창성할 것이라 예상, 자신의 딸과 혼인하게 하였다. 부인 합천이씨에게서 아들 5명이 태어났다.
         [[이자]]와 [[이규광]], [[이규동 (1911년)|이규동]]은 아들 [[이백년]]의 후손이었다.
  • 이재용(배우) . . . . 3회 일치
         || [[해운대 연인들]] || 이신 || ||
          * [[수의 시대(2015년 영화)|수의 시대]](2015년) - [[정도전]]
  • 이정훈 (1963년)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2차 1위([[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198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7년 신인 지명]]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내야수]] [[강기웅]]과 [[류중일]]을 1차 지명해, 연고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2차 1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신인 첫 해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냈고,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다.
  • 이철희(1964) . . . . 3회 일치
         하지만 본인이 속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최실 게이트]]로 인하여 청산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크게 경시한 것이기에 이후 자신이 지지하던 안희정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물론 이철희 본인이 이기는 곳에 가는 것에 연연했다기 보다 본인에게 맞는 쪽으로 간 것이기에 이철희 본인도 이후 경선결과에 토를 달지 않고 승복, 이후 문재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적 표현에서 대통령다운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국민의당의 김경진 의원과 설전을 벌인 것이 대표 사례.
          * 썰전 출연 당시 [[강용석]]을 확실하게 압도한 적이 몇몇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메르스]] 사태 관련해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적절히 들어가며 메르스 발병 당시 공직자들의 행적을 시간 으로 조목조목 반박한 것. 이때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말을 아주 후련하게 잘 했다 하여 '사이다'라는 칭송을 받았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10580|관련글 참조]]
          * [[맥심(잡지)|맥심]] 2016년 2월호에 (뒤)표지모델로 나왔다. [[http://i63.tinypic.com/2evdy07.png|사진 참조]] 그 후 맥심 2016년 2월호가 완판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이건 이철희 사진이 멋있게 잘 나와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전히 [[시노자키 아이|(앞)표지모델로 나온 사람]]덕분이었다는 게 정설이다.[[http://i67.tinypic.com/24yp6qg.jpg|사진 참조]] ~~의문의 완판남~~
  • 이하윤(배우) . . . . 3회 일치
         |rowspan=3|2012||KBS2||[[각시탈 (드라마)|각시탈]]||심이 역||
         |2013||KBS2||[[최고다 이신]]||박찬미 역||
         |2011||[[적과의 동침]]||희 역||
  • 이휘향 . . . . 3회 일치
         * 1982년 [[MBC]] 주간드라마 《[[수사반장]]》 ... 여경 역
         * 2008년 [[SBS]] 아침연속극 《[[결한 당신]]》 ... 윤희 역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3회 일치
         attachment:모.jpg
         * 고서가 마음을 얻기 위해 동료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말하자 제리코는 모되고 어리석은 말이라고 지적한다.
         * 악몽 속의 멀린은 "내일이 없는 자와 함께 길을 걸을 없어. 왜냐면 네 저주는 절대 풀 수 없으니까. 강대한 저주는 이윽고 그 몸을 전부 침식하겠지. 너는 결국 내 실험 재료일 뿐인 존재.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일 없이 고독하게 죽어라 에스카노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3회 일치
          * [[네로바스타]]를 세뇌한 [[고서]]는 조롭게 천계로 통하는 "문"에 접촉한다.
          * 갈란이 마법탄에 짓뭉개지고 있을 때 [[몬스피드]]는 옥염조로 타르미엘의 세 머리를 한 번에 꿰뚫는다. 어떤 상처든 식간에 복구하던 타르미엘이지만 이 공격에는 한동안 회복을 못한다. 타르미엘을 처리한 간 몬스피드도 사리엘의 공격을 맞고 몸 여기저기가 잘려나간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3회 일치
          * 고서의 계획은 그것도 준비해놨다. 그는 곧 인형 고서의 자아를 되돌린다. "오토 어웨이크"다. 지금까지 무욕의 고서처럼 검고 속 모를 눈동자였던 인형 고서의 눈이 맑고 진한 빛을 띈다. 무욕의 고서가 안녕하고 인사하자 인형 쪽도 안녕하고 답례한다. 고서는 막 일어났을 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모습에 놀란 디안느가 무심코 "인형인데도 운다"고 말하고 아차한다. 인형 고서는 자신이 인형이기 때문에 두고가는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고서는 그런게 아니며, 무엇보다 그는 단한 인형이 아니라고 가르쳐준다. 인형 고서의 가슴엔 무욕의 고서가 혼심의 힘을 담아 만든 "마음의 마법"이 깃든 심장이 있다. 이 마법의 심장이 인형 고서를, "진짜 고서"로 살게 한다. 고서는 인형 고서의 가슴은 짚는다.
          이건 할리퀸 자신이 들은 말. 그 두 가지가 뒤섞인다. 할리퀸은 이번에야 말로 늦지 않겠다고 이를 악문다. 그 간 그로키시니아가 말한 시련이란게 게라이드를 지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초대 요정왕은 자신의 여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게 된다. 그렇지만 게라이드는 3000년 뒤에도 멀쩡히 존재하지 않는가? 그럼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비록 모습과 심성이 바뀌긴 했지만...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3회 일치
          * 이래저래 빈정 상한 호크가 "돼지에 치어 죽어라!"고 욕한다. 반이 오늘 저녁 연회 때 최고의 잔반을 먹게 해주겠다고 달래자 "반만 용서한다"는 걸로 완화된다. 반과 멜리오다스에겐 호크의 분노 같은것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안방을 차지하는 거였다. 치고 받으며 스위트룸으로 달려가는 두 남자. 거의 동시에 방문을 열어재낀다. 서로 "우리방"이라며 자신과 연인의 침실로 삼으려고 성화인데 일단 승기를 잡은건 반. 사이즈의 차이로 딱 한 발 먼저 방에 밀어넣었다. 멜리오다스는 "개축비를 낸게 누군거 같냐"고 떡밥을 던지는데 반은 [[바트라 리오네스]] 국왕이 낸걸 뻔히 알았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히 물러나지 않는 멜리오다스가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내자고 하는데.
          디안느는 엘레인의 몸을 걱정한다. 그녀는 금술로 혼을 묶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이라고 할 없지만 엘리자베스의 마력 지원으로 한결 편안한 상태다. 이번엔 엘레인이 요정왕의 숲 근황을 묻는데 디안느는 이럭저럭 잘들 있다고 대답한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3회 일치
          * 뱀의 아가리에 걸린 반은 위아래로 닥쳐온 턱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입을 잘못 놀린 덕에 화를 자초한 셈일까? 반이 아무 말 안 했더라도 메라스큐라는 그부터 손볼 작정이었다. 자신이 심장 여섯 개를 잃은 건 전히 반 때문이라고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라스큐라는 원하는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고개를 돌린 간 엘레인은 바람 보다도 빠르게 그녀의 입 속에서 반을 낚아채갔다. 동료들은 그녀의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크가 측정한 엘레인의 현재 전투력은 마력 18000, 무력 50, 기력 3000, 총합 21050.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힘으로 바뀌어 나타났다,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엘레인은 아름다운 나비의 날개를 드리우고 있었다.
          * 사냥감을 어이없이 빼앗긴 메라스큐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는 건 이제부터다. 코란도 중심부에 있던 거대한 건물이 알 수 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아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메라스큐라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멜리오다스를 암담의 고치에 가둬 숨겨놓은 곳. 거기서 이변이 생겼다는 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거대하고도 사악한 파동. 그 기는 분명 그 사람의 힘이었다. 이젠 일곱 개의 대죄 일행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멜리오다스. 그가 결국 자력으로 암담의 고치를 파괴했다. 메라스큐라만이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한 암담의 고치는 십계 중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는 술법이었다. [[젤드리스]] 조차도 마신왕의 마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멜리오다스는 흉흉한 기운을 날개의 형상으로 뻗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마신왕의 마력 없이는 젤드리스도 깨뜨릴 수 없다. 그렇다면 멜리오다스에 내뿜은 사악한 힘의 정체는 분명했다. 마신왕의 힘. 그는 그 힘에 잠식된 듯 보였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3회 일치
          * 고서는 자신의 심장을 줘서라도 그녀를 살리려고 했지만 결코 그녀의 생명을 되돌릴 없었다.
          >마지막 간을
          >당신이 함께 한 마지막 간까지... 행복했어요.
  • 임현준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2011년]] [[4월 16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8회 초 타석에 들어선 [[정수빈]]이 기습 [[번트]]를 시도하고 그가 1루 베이스를 커버하려고 가는 간 갑자기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에 정전이 발생하며 식간에 모든 조명들이 꺼지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었고,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어 다음 날([[4월 17일]]) [[정수빈]] 타석부터 경기가 재개됐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4180307382224&ext=na 대구구장 정전 사태는 민폐의 결정판] 《마이데일리》 2011년 4월 1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099786 '정전 등판' 임현준, "선발 등판하는 느낌"] 《스포츠조선》 2011년 4월 17일</ref>
  • 전장운 . . . . 3회 일치
         |직업 = 교자
         '''전장운'''(全長雲, [[1811년]] ~ [[1866년]] [[3월 9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요한'''(Ioannes)이다.
         [[1866년]] [[3월 1일]]에 포졸들이 그 [[인쇄소]]를 급습하여, 전장운은 [[체포]]되었고, [[목판 인쇄|목판]]들은 몰수되었다. 그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예수]]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모든 [[고통]]을 견뎌냈다. 그는 [[포도청]]에서 1회의 [[심문]]을 받은 후, [[의금부]]에서 9회의 [[심문]]과 2회의 형문을 받고 [[장형]] 32 대를 맞았고, [[1866년]] [[3월 6일]]에 [[형조]]로 이송되어, [[3월 9일]] [[사형]]을 선고받아 그날에 [[서소문]] 밖에서 [[최형]]과 함께 [[참수]]되었다. 그는 사형장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목]]을 자르는 [[망나니]]가 과거에 자신과 면식이 있는 전(前) 천주교우였음을 알아보았다. [[망나니]]는 전장운의 [[목]]을 자르기를 주저했는데, 남종삼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왕|임금님]]을 따르십시오. 저는 [[하느님]]을 따르겠습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전장운은 [[참수]]되었고, 사흘 후에 [[장례]]가 치루어졌다. 그가 자신의 신앙에 따라 [[교]]했들 때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 전재용 . . . . 3회 일치
         |부모 = [[전두환]](부), [[이자]](모)
         ** 모: [[이자]](李順子, [[1939년]] ~)
         ** 오촌 당숙부 : 전환(全淳煥, [[1922년]] ~)
  • 정규수(배우) . . . . 3회 일치
         * [[2007년]] [[MBC every1]] 《[[조선 과학수사대 별검]]》
         * [[2014년]]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 ... 양만 역
         * [[2007년]] 《[[권분 여사 납치사건]]》 ... 김 국장 역
  • 정웅인 . . . . 3회 일치
         |제목= 인기절정의 간 떠나는 '세친구'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42263 |출판사=국민일보|날짜= 2001-02-07 }}</ref> 이후 영화 《반칙왕》(2000년), 《두사부일체》(2001년), 《돈 텔 파파》(2004년), 《투사부일체》, 《마법사들》(2006년), 《유감스러운 도시》(2009년) 등과 드라마 《홍국영》(2001년), 《발칙한 여자들》(2005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선덕여왕》(2009년), 《커피하우스》(2010년), 《오작교 형제들》(2011년) 등에 사극과 여러 장르의 현대극을 넘나들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align="center"| 일일시트콤 《[[풍 산부인과]]》
         * 2000년 9월 9일 [[MBC]] 《추석특집 전파견문록 - 퀴즈 수의 시대》 ... 세 친구 팀 vs 전파 팀 대결
  • 정인선(탤런트) . . . . 3회 일치
         아역 출신 배우로 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와 같은 반 친구로 등장했다. 의찬이, 정배 다음으로 비중있는 아역배우였다.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에서 한세은 역으로 출연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 [[1998년]] || [[SBS]] || [[풍산부인과]] || 이세미나 || ||
          * 한공주에서 주인공의 상황과 대비되는 수함 그 자체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연기하여 호평 받았다. 특유의 밝은 표정이 인물의 상징성을 잘 드러냈다는 평.
  • 정정아 . . . . 3회 일치
         |부모= 정대근(부), 이인(모)
         * 2008년~2009년 [[KBS]] <[[청춘예찬]]> - 주애
         * 2002년 [[SBS]] <[[야인시대]]> - 이 역
  • 정종원 . . . . 3회 일치
         |주요경력 = [[조흥은행]] 5대 행장 <br /> 평안남도 성천[[군수]] <br /> 평안남도 천 [[군수]]
         정종원은 잠시 부친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관직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1922년부터 1941년까지 19년간 경상도 일대와 평안남도에서 경찰 요직을 거쳤다. 이어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평안남도에서 성천군수, 천군수를 역임하고 해방을 맞이했다.
         1945년 815해방 당시 정종원은 평안남도 천군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러나 좌익세력은 그를 처단하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홀몸으로 밤을 틈타 구사일생으로 월남했다. 그러나 부인과 2남 4녀가 남겨졌다.
  • 정종철 . . . . 3회 일치
         2009년 10월 11일에 방송된 [[MBC]]의 새 개그 프로그램인 [[하땅사]]에 출연하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코너에서 '물을 아끼자'라는 주제로 정종철이 [[이신#이신과 관련된 것|이신 동상]] 앞 분수대에서 머리를 감는 모습을 미리 촬영한 동영상이 방송되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이러는 건 방송 횡포다" ,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라"라며 시청 후 불쾌함을 호소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하땅사' 개그맨은 웃고, 시청자는 뿔났다?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11/2009101100645.html |출판사 = 조선일보 |저자 = 박현민 기자 |날짜 = 2009-10-11 |확인날짜 = 2009-10-12}}</ref>
  • 조원진 . . . . 3회 일치
         2017년 4월 24일 열린 [[19대 대선]] 비초청 후보 토론회에서는 [[김선동(1967)|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에게 [[종북몰이]]와 [[색깔론]]을 들이대다가 '철 지난 메뚜기'란 조롱을 들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70423&ref=A|기사 1]] [[http://v.media.daum.net/v/20170425013917707|기사 2]] 오해를 막기 위해 기술하자면, 김선동 후보도 [[최루탄|잘한]] [[코스트코|건 없다.]][* 애당초 김선동은 [[서갑원]], [[이정현(정치인)|이정현]]과 함께 '''[[천시]] 국회의원의 수치 3총사'''에 나란히 꼽히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민중당 자체도 舊 통합진보당 NL계가 뿌리인지라 종북몰이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여서(...).] 나머지 후보들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 비초청후보 토론의 최대 승자는 '''[[이재오]] 후보'''라는 게 중론.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낙선이 확정되었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 이탈하여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남, 호남, 충남,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위는 6위]
         [[김진태(정치인)|김진태]]와 [[김태흠]]이 친박의 돌격대장이라면 조원진은 [[광신도]]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실 광신도인 척을 하면서 박근혜를 동정하는 국민들의 표를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해나가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른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81608|#]] 탄핵까지는 아니지만, 4월 30일 퇴진을 주장했고, 최실 특검법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게다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넷 중 4위라는 처참한(...) 경선 결과로 인해 다음 지선에서 대구시장 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직접 신당을 만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참고로 정당 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이 무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보다 적다.
  • 지석진 . . . . 3회 일치
         네이버 지식in에서 '조동아리' 멤버(김수용 박수홍 김용만 지석진)들 중 누가 가장 기대되냐는 설문조사에서 35.9%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 으로는 박수홍, 김수용, 김용만.]
         2000년에 스타일리스트 출신 류수정씨와 결혼하였다. 원래 [[정선희]]의 스타일리스트로 오빠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던 유재석이 소개해줬다고 한다. 첫만남 당시 소개팅을 주선한 유재석이 집에 데려다 주는 간까지 동석해서 어이가 없었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지석진을 첫만남에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한 류수정씨가 유재석에게 계속 있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석진 역시 류수정씨가 자신을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유재석에게 중개를 부탁한 끝에 연애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모양. 결혼식 사회까지 유재석이 봤으니 결혼의 시작과 끝을 유재석이 다 챙겨준 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때문인지 유재석은 지석진이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류수정씨 개인과도 꽤 친한 모양. 방송에서 지석진과 대화 중에 "형수 저번에~" "형수 요새~"하는 식의 말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인지 지석진은 후에 "그 때 왜 그랬냐"는 식으로 유재석을 맹폭하는 컨셉을 세우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 중 하나로, 김용만과 함께 '''팔랑귀'''로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유재석이 '임팔라'란 별명을 붙인 것도 여기저기 온갖 소리에 나서서 반응하는 모습이 초원에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임팔라와 꼭 닮았다는 이유. 유명한 사건으로, 김용만과 해외여행 가서[* 황당한 것은 날짜 맞추다 보니 이게 '''허니문 코스'''였다고 한다(...).] 잠시 휴식하던 사이, 가이드가 사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도 현지 장사꾼들한테 속아서 ~~호구 왔는가~~ 가짜 악어 지갑 수십 개를 그 자리에서 샀다고 한다. 사실 압축 종이로 만들어진 지갑이라 물에 젖더니 식간에 찢어졌다고... 유재석한테도 선물로 줬는데 모르고 썼던 유재석은 뒷주머니에 넣어 뒀더니 땀 때문에 퉁퉁 불어서 돈이랑 엉겨붙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모양. 이 방면에서 워낙 유명하다보니 세일즈맨들 사이에선 "김용만이나 지석진한테 물건 못 팔면 이 바닥 떠나라"는 말까지 돌았다고...이 때문에 주식이나 사업도 여러번 날려먹은 뒤로는 사업은 안하고 주식도 안전한 주식만 한다고 한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3회 일치
          다시 시선은 그에게. 마가트는 자신의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가 싶어 좀 더 직설적인 말을 하려 하지만 원수는 넋두리를 했을 뿐이다. 사실 그는 마가트보다 더 뼈져리게 현실을 직시했다. 마레는 전쟁의 주도권을 잃었다. 아예 뒤쳐져 버렸다. 원수는 한때 악마 엘디아인을 쳐부 "영웅의 나라" 마레가 지금 이 꼴이 된 것을 씁쓸하게 여긴다.
          >당신을 사모하는 소녀가 이대로 조롭게 갑옷을 계승하면
          일 라이너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그는 보통의 마레인 어른처럼 파르코를 무섭게 다그친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3회 일치
          지크가 내놓은 간단한 결론. 자리의 분위기가 식간에 무거워진다. 콜트가 침묵을 깨뜨리고 해결책은 없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없지는 않다. 결국은 또 팔라디섬이다. 시조거인을 탈환한다. 그렇게 해서 팔라디섬의 자원과 완전한 거인의 힘을 되찾고 마레의 국력을 안정시킴과 동시에 세계의 위협을 엘디아인의 손으로 해결했다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들이 나선다면, 피크가 보기에도 괜찮은 그림이다. 우선 그들은 단 한 번도 거인의 힘을 타국에 휘두른 바가 없다. 게다가 거인대전에서 프리츠 왕가를 타도한 가문으로 유명해 단히 특별대우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해외에 영향력을 가질 정도로 권력을 가졌다. 만일 그들이 선전작업에 동원된다면 세계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 명쾌한 해석에 지크는 다시 한 번 "과연 피크쨩"이라며 감탄한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기 전 군의 시설에서 일했다. 거기서 아버지와 만났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간, 처음보는 얼굴임에도 직감했다. 자신과 닮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남자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라이너는 더욱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달랐다.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그래도 그는 처음 만난 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완장을 보였다. 마레의 전사, 명예마레인의 완장을. 그와 어머니가 성취한 신분이다. 이제 신고만 하면 수용구 바깥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사는 것도 가능하다. 아버지가 바라기만 한다면...
  • 진격의 거인/96화 . . . . 3회 일치
          * 리더를 잃은 이상 작전은 시작도 못 해본 채로 실패, 애니가 귀환을 결정하나 라이너는 어머니 [[카리나 브라운]]의 당부를 떠올리며 그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놔둘 없었다. 어머니가 버림 받은 채로 둘 수도 없고 동료들이 떠나가게 둘 수도 없었다. 라이너 자신도. 라이너가 동료들에게 팔을 뻗었다. 돌아가선 안 된다. 그렇게 할 수 없다. 작전을 속행해야 한다.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돌아왔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애니는 돌아갈 수 없는 건 라이너라고 꼬집었다. 마레로 돌아간 라이너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갑옷을 박탈 당하고 바로 다음 전사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 높은 확률로 포르코겠지. 애니가 냉담하게 "내 알 바 아니다"고 쏘아붙이자 라이너도 지지않고 말했다.
          정말 애니와 베르톨트는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런 확신에 근거가 있냐고 라이너가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현실은 아팠다. 라이너는 거길 계속 파고들었다. 턱을 회수한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 넓은 섬을 헤매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녀석이 턱을 손에 넣었다면 더 빠르고 잽쌀 것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있을까? 속도에서 턱에 비할 수 있는건 피크의 차력의 거인 뿐. 베르톨트가 설사 힘을 얻었다 해도 바로 거인을 쓸 없을 거라 지적했다. 라이너는 다시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그 말을 한 베르톨트 자신은 처음부터 초대형 거인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같은 케이스가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턱의 거인을 회수하지 못한 채 탈진하기라도 하면, 그래서 또다시 무지성 거인에게 누군가 먹힌다면 그 실책은 몇 배로 불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미래는 뻔하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뭔가 "실적"이 필요하다. "시조의 거인"의 획득 말이다.
  • 진격의 거인/97화 . . . . 3회 일치
          회심의 돌려차기는 남자의 관자노리를 정확히 노렸다. 애니가 아는 한 그런 일격이 빗아갈 일은 드물었다. 그게 하필 미행이 실패하고 뒤를 잡힌 간에 일어날 가능성은 더더욱. 케니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고 발차기는 벽에 박히며 벽돌을 박살냈다. 케니로선 그녀가 늘어놓은 드라마보다 이 발차기 쪽이 훨씬 감동적이었다. 케니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진 간 애니는 몸을 날렸다. 지나온 골목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케니가 뒤쫓아오며 "벌써 아빠가 싫어지는 시기냐고"고 도발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애니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케니는 뚜껑이 열린 배수구를 발견했지만 그의 몸집으로는 통과할 수 없었다. 그가 혀를 찼다.
          * 라이너의 당연한 걸 수도 있었다. 그는 장전된 라이플의 총구가 입천장에 붙였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턱 위에 있는 것들이 한간에 흩어지면서 편해질 것이다. 독방에서 자세를 잡은 라이너에겐 망설이는 기색도 별로 없었다. 편해지고 싶었다.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자 둔탁한 굉음이 들렸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파르코 그라이스]]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 안에서 누가 무엇을 겨누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겠지. 파르코는 분통이 터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무 벽이나 후려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이대로는 안 돼,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라이너는 라이플을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봤다. 우울하게 돌아서는 파르코의 뒷모습이 보였다. 새삼 깨달았다. 아직 기회가 있었다.
  • 진구 . . . . 3회 일치
         | 이
         | [[정에 반하다]]
         |
  • 차선우 . . . . 3회 일치
         ||<:> '''SNS''' ||<(> [[https://twitter.com/BARO920905|트위터]][* 11월 중, 드디어 '''팔로워 70만을 넘겼다!!''' ~~근데 [[공찬]]이 더 많다 71만~~ 깨플때 팔로워 수를 높이려고 고군분투 했던 짓을 떠올리면... 2015년 3월 기준으로 72만을 넘겼다. ~~[[공찬]] 역전?!~~ [[공찬]]을 역전하고 트위터 팔로워 수 1인자로 거듭나나 싶더니 [[공찬]]은 '''74만(...)''' ~~[[바로]] [[지못미]]~~][br][[http://instagram.com/baroganatanatda#|인스타그램]][* 어느 날, 계정이 멀쩡히 있는데 새로운 계정을 파고는 그 계정만 사용했던 이유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2015년 4월 부로 비밀번호를 다시 찾았다.][br][[http://instagram.com/baroganatanatda2#|인스타그램 2]] ||
         ||<:> '''03''' ||<:> 너에게 한 번 더 반하는 간 ||
          출연 영역이나 배역이 매우 독특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케이블 드라마와 지상파 드라마는 물론 단편영화, 웹무비, 웹드라마, 장애 인식 개선 드라마 등에서 연기했으며 여지껏 맡은 배역으로는 수한 '''의대생''', '''지적장애인'''[* 그것도 두 차례나 맡았다.], '''싸이코패스''', '''시각장애인'''[* 정확히는 시각장애인인 척 하고 살아가는 남자] 등 다양하다.[* 축구 마니아, 연예인, 일진짱, 조금 어눌한 친구 같은건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하게 되었다... ]
  • 채상병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8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2차 5라운드 34위([[한화 이글스]])
         [[199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5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인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한화에서는 [[심광호]] 등의 경쟁에서 밀려 몇 경기만 출전했다. 입단 후 1년 뒤인 [[2003년]]에 투수 [[문동환 (야구인)|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때 [[문동환 (야구인)|문동환]]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는데, [[정수근]]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왔다가, 불과 3시간 후에 채상병과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594734&cp=nv 채상병, 두산 40승 숨은 주역… 주전 홍성흔 부상 공백 완벽히 메꿔] - 쿠키뉴스</ref> 그러나 [[두산 베어스]]에서 채 자리잡기도 전에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05714 난처한 채상병, 그러나 놓칠 수 없는 기회] - 데일리안</ref> [[2007년]] 주전 포수였던 [[홍성흔]]이 허벅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홍성흔]]이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등 잡음<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271719545&code=980101 두산 홍성흔“작년 부진 잊지 말고 나만의 스윙을 하자”] - 경향신문</ref> 이 일자, [[홍성흔]]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하였다.
  • 천호진 . . . . 3회 일치
         | [[깡이]]
         | [[정 (드라마)|정]]
  • 최광식 . . . . 3회 일치
         민주당은 고려대 교수 재직 중 쓴 일부 논문의 자기표절 및 중복게재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한나라당 [[심재철 (1958년)|심재철]] 의원 역시 “중복게재가 맞다”, “인정하라”고 말했다.<ref>[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667 야당, 최광식 문화부 장관 후보자는 “부적격”]《미디어스》2011년 9월 16일 권택 기자</ref><ref>[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87849 최광식·임채민 장관 후보자 자질·도덕성 검증]《SBS뉴스》2011년 9월 15일 김지성 기자</ref>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은 “야당에선 낙하산 인사라고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장에서 문화재청, 문화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으로 말 그대로 승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ref>[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2598 “최광식, ‘묻지마 청장’ 이어 ‘낙하산 장관’”]《PD저널》2011년 9월 15일 김세옥 기자</ref>
         2011년 9월 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전재희]])는 인사청문회를 마친 최광식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최 후보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의 “부적격하다”고 의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수적 우위로 장관자리에 앉게 됐다.<ref>[http://media.paran.com/hotissue/view.kth?dirnews=3088095&year=2011&titlekey=PARAN_2011_3089993&clusterid=IiQmMjszUV5DVCtARVhTVktUK0NH&kind=0&pg=1&t=0&date=20110916&tq=%C0%CE%BB%E7%C3%BB%B9%AE+%C0%E5%B0%FC+%C3%A4%C5%C3+%C3%BB%B9%AE 최광식 인사청문보고서, 야 반대에도 ‘채택’]《미디어스》2011년 9월 16일 권택 기자</ref><ref>[http://m.pdjournal.com/articleView.html?idxno=32615&menu=1 최광식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야당은 ‘부적격’]《PD저널》2011년 9월 16일 김세옥 기자</ref>
  • 최남선 . . . . 3회 일치
         가출옥 후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창립했다. 같은 해 9월 주간지 '동명'을 창간해 [[1923년]] 6월까지 발행했다. [[1925년]]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활동에 참여했고, 동시에 《[[동아일보]]》에 사설을 쓰는 한편, 1926년 옛 백제 영토 방문기 '심춘례'를 근대 최초의 창작 시조집 '백팔번뇌'를 출간했다. 이어 〈[[단군론]]〉(1926년), 〈[[불함문화론]]〉(1928년)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불함문화론〉에서 그는 동방 문화의 근원지를 단군 신화의 무대인 백두산이라고 주장하였다.
         1938년 《[[만몽일보]]사 (滿蒙日報社)》 고문과 일본 관동군이 만주에 세운 [[건국대학]](建國大學)의 한국사, 한국학 교수직에 임명되어 교수로 부임해 1943년 2월까지 역임했다. 1940년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무장 세력을 상대로 귀 및 투항공작을 전개한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東南地區特別工作後援會) 고문으로 활동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매일신보를 비롯해 경성일보등에 학도병 권유 유세문을 기고했고, 각종 시국강연에 나서면서 활동했다.
         1943년 귀국 직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고하는 강연을 하기 위하여 도쿄로 건너가 강연활동을 한 후 그해 중 귀국하였다. 1943년 11월 다시 [[이광수]]와 함께 학병 독려의 목적으로 출국했다.
  • 최동 . . . . 3회 일치
         본관은 [[해주 최씨|해주]]이며 [[한성부]] 출신이다. [[전라남도]] [[천시 (전라남도)|천군]] 군수를 지낸 아버지 [[최정익]]을 따라 [[천]]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최동수 (야구인) . . . . 3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4년]] 2차 4위 ([[LG 트윈스]])
         [[1994년]] 2차 4위 지명을 받아 [[포수]]로 입단했으나, 이후 [[내야수]]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전 자리를 잡지 못했고, 데뷔 첫 해에는 1군에서 1경기에 그쳤다. 방위 복무를 마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서용빈]], [[유지현 (야구인)|유지현]] 등의 걸출한 [[내야수]]들에 밀려서 주목받지 못하였다. [[2001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뒤늦게 중용되기 시작하였고, 2군에서 훈련하였을 때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옥 훈련을 많이 소화한 결과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549603 야구, 야구,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바보'… "동네 게임도 작전 짤 사람"] - 조선일보</ref> 당시 그가 훈련이 끝나고 손이 펴지지 않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그의 손을 펴 주었다고 할 정도였고,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훈련을 멈추도록 했던 유일한 선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2855814 12년 전, 잊혀질 뻔했던 한 선수의 은퇴식] - 이데일리</ref> [[2002년]] 시즌 중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서용빈]]의 자리를 이어받아 주전 [[1루수]]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준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2007년]]에는 최초로 풀 타임 출장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여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그리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29경기에 출전해 1할대 타율에 그쳤다.
  • 최란(배우) . . . . 3회 일치
          *[[깡이]] (허풍자 역)
          *망설이지마 (엄미 역)
          *선희진희 (금 역)
  • 최만린 . . . . 3회 일치
          | 부모 = 최춘빈(부), 지명(모)
         [[1935년]] 아버지 최춘빈(崔春彬)과 지석모(池錫模)의 외동딸인 어머니 지명(池明淳) 사이에 2대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 최씨|수원]]. 부친은 [[동아일보]] 만주 지국장이었고 어머니는 모더니스트였다. 양친 모두 [[본적]]이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종로]]이며 모두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골수 서울 토박이였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외가에서 외조부의 사랑을 받으면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경기중학교 3학년 때인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 어머니 : 지명(池明淳)
  • 최승욱 . . . . 3회 일치
         | KBL 지명위 = 2
         2016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2위로 [[전주 KCC 이지스]]에 지명되었다. 데뷔후 팀에서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 최승자 . . . . 3회 일치
         저이들이 마시는 한 술은
         새 같은 아이들의 손가락을 싹 틔우리라.
  • 최재성(배우) . . . . 3회 일치
         젊은 시절 간지나는 잘생긴 외모로 각광을 받으며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연을 잡아 스타덤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미모는 죽지 않아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 역으로 호평받았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야인시대에서 마루오카 역으로 다시 슬럼프를 씻어냈다. 이후 [[MBC]] "개와 늑대의 시간"의 마오[* 드라마 자체도 큰 호평을 받았고, [[악역]]이면서도 사연이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연기력과 카리스마도 제대로 드러나서 호평을 받았다.], [[KBS]] 불멸의 이신에서는 [[원균]], [[SBS]] 연개소문에서는 이밀 역을 맡았다. 연개소문부터는 나잇살이 부쩍 많이 붙었다. 2010년 이후에는 재력가, 정치인, 특히 가족의 출생의 비밀을 가진 비운의 아버지 등의 역을 잘 한다.
          * [[2004년]]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신]]》 ... [[원균]] 역
          * [[2017년]] KBS TV소설 《[[꽃 피어라 달아]]》 ... 정선기 역
  • 최홍만 . . . . 3회 일치
         || 신체 ||<(> 217cm[* 입식 격투기 데뷔 당시 [[거인]] [[기믹]]을 위해 7피트 2인치(218cm)로 표기하고 다녔지만 꾸준히 [[본인]]은 216cm라고 밝혔고,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엔 [[본인]]의 키를 216.5cm라고 밝혔다(본인의 키를 부각시키는 걸 몹시 싫어하는 듯 하며, 의도적으로 조금이나마 더 줄이려는 모습이다.). SBS 스타킹에 출연 당시에는 본인 입으로 217cm로 밝혔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서 재본 건 사람이 재는 거고, 단히 책으로 머리를 눌러보는 거라 다분히 오차도 있어 보이는 데다 워낙 커서 일반인이 이런 식으로 재서 정확하게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의미 없고 또한 기계식으로든 앉은키 측정하는 것과 같은 수동식 기계로든 공식적으로 재본 적은 없다.] 161.5kg[* [[2016년]] [[9월 23일]] 기준 측정.], [[B형]] ||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604/sp20160416221832136560.htm|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https://m.youtube.com/watch?v=aA08N65pMks|영상]]. 워낙 찰나의 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3회 일치
         공룡과 인간이 서로 건드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시대. 그런데 어느 간 공룡들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꽤 드물어서 다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1인이나 2인 플레이 시에는 캐딜락 내 좌석에 탑승하는데, 3인 플레이 시에는 한 명은 캐딜락의 트렁크 위에 탑승한다(!) 그리고 보통 차량을 호출하면 잭이 몰고 오는 편이지만, 이미 플레이어가 잭을 선택했다면 무스타파 -> 한나 -> 메스 으로 몰고 온다.
         불타는 마을에서 모건이 공룡으로 변해버린 걸 본 주인공 일행은 그 바로 윗동네인 광산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페센덴 박사가 개발한 3단변신 괴물을 보고, 이에 따라 단한 껄렁이 조직인줄 알았던 블랙 마켓은 알고보니 천재 과학자 시몬 페센덴이 거느린 거대 조직임이 드러났고 페센덴의 진짜 목적인 '모든 이들에게 공룡 바이러스를 주입하여 공룡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이 시작된 해상 도시로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치며 지하의 기지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박사가 없었고 거기에는 슬라이스를 개조한 슬라이사우르스 2마리(혹은 3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주인공 일행은 더욱 깊숙이 내려가서 동굴 끝에 있는 페센덴 박사의 숨겨진 연구실에서 공룡으로 변한 페센덴 박사와 대결해 이기게 되었으나 박사는 자기 몸에 공룡 머리 두 개가 붙은 무려 삼두룡으로 진화하며, "세계는 내 것이다!"라며 공격해온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의 다구리(…)를 못 이기고 패배한다. 이 때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있다고 외치며 저항하지만 결국 쓰러지고 연구실과 자폭하여 온 몸이 터진다. ~~수류탄과 바주카 맞아서 흩어진 애들은?~~.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3회 일치
         사일러스는 빌리가 숨어사는 스팅키스프링스 근처 버려진 농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편에 속해있었던 보안관, 팻 가렛의 추격대가 빌리의 은신처를 습격한 것이었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를 들은 사일러스는 서둘러 빌리의 은신처로 달려간다. 팻 가렛의 수많은 부하들이 빌리가 있는 농가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포위망을 정면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사일러스는 농가 뒷쪽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적들을 기습한다. 실력이 형편 없었던 적들은 기습을 당하자 마자 식간에 무너진다. 사일러스는 빌리 일당의 엄호를 받으며 농가 뒷문으로 들어간다. 그는 계단에서 소총을 쏘던 [[https://en.wikipedia.org/wiki/Dave_Rudabaugh|더티 데이브]]를 지나 빌리와 [[https://en.wikipedia.org/wiki/Charlie_Bowdre|찰리 보우드레]]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마구간 앞에 있던 간부터 다시 시작. 사일러스가 마구간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간 가렛이 튀어나와 소총으로 후려친다. 사일러스는 가렛의 "빌리가 아니잖아?"라는 말을 들으면서 기절한다.
  • 킹덤/503화 . . . . 3회 일치
          * 진군이 업으로 향한다는 걸 알게 된 이목은 급히 진군 중. [[수수]]가 합류한다.
          * 진군 중에 십화에 있던 [[수수]]가 합류한다. 그 먼 거리에서 여기까지 합류했다고 이목의 부하들 사이에서도 놀라워한다. 수수는 자기가 전방에 있으면서도 눈치채는게 늦었다며 용서를 구하는데 이목은 오히려 빨리 눈치채 전서구를 날릴 수 있었고 이 차이가 승패를 가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 킹덤/526화 . . . . 3회 일치
          * 마침내 왕분이 크게 지르자 마남자의 거구가 휘청이며 크게 물러난다. 진군 진영을 무인지경으로 휘저어왔던 마남자의 무예가 무색해지는 간이다.
          * 왕분이 그정도로 당황할 장수는 아니었다. 침착하게 창을 쳐내는 간, 마남자가 그때를 노렸다. 그의 손이 왕분의 팔을 낚아챘다. 예상 밖의 실책. 반양이 경악하고 왕분 또한 당황한 기색이다.
          * 소수 기마를 이끌고 마남자를 요격하러 왔던 아광이었다. 짧은 간 두 장군의 눈빛이 부딪힌다. 창도 부딪힌다. 힘과 힘의 격돌. 말에 탄 아광의 창에도 마남자는 밀려나지 않았다. 마남자를 스쳐가는 아광. 짧은 교전이었지만 마남자의 창에, 그 손에 짜릿한 손맛이 남아있다.
  • 태종학 . . . . 3회 일치
         |본관 = [[영 태씨|영]]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1997년 죽음]][[분류:영 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구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토리코/370화 . . . . 3회 일치
          * 우주에 구르메 세포가 생겨난 이래 "맛"은 줄곧 성장하고 커져왔다. 증가된 맛이 생명력과 식욕을 증대시키며 환했고 이러한 환 끝에 팔왕과 같은 강력한 존재들이 탄생했다.
          * 죽음의 간에도 지지는 마지막 책무, GOD의 조리법을 전하는 걸 완수하고자 했으나 네오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삼켜지고 만다.
  • 토리코/374화 . . . . 3회 일치
          * 원래 구르메 세포의 악마는 100% 수한 식욕의 구현화이기 때문에, 서로 잡아먹거나 하기 힘들다.
          * 토리코가 공격받는 간 그 안에서 적귀가 튀어나와 방어한다.
          * 그 간 적귀와 청귀, 두 오니가 토리코로부터 분리되어 블루니트로들과 싸운다.
  • 토리코/382화 . . . . 3회 일치
          * 풀코스를 다 먹은 아카시아는 현재의 네오 조차 "강하다"고 인정하고 히 잡아먹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단히 전투력 자체는 현재의 네오보다 위로 보인다.
  • 토리코/383화 . . . . 3회 일치
          * 그 비란 아카시아가 완전체가 되는 간 뿜어져 나간 식욕의 비.
          * 사실 페어가 너무 멍청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결국 통조림 시켜버릴 거라는 말을 해준 건데 히 동조해줄리가 없다.
  • 토리코/387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토리코완 셀 수 없이 싸웠지만 그는 한 번도 스타준을 증오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수한 마음으로 싸움에 임해주었다.
          * 스타준의 숨이 끊어지는 간 식혼으로 보이는 영혼들이 토리코를 끌어낸다.
          * 적귀는 토리코가 자신의 감정을 동요시켰다며, 그 한간에 사로잡혀 버렸다고 독백한다.
  • 토리코/388화 . . . . 3회 일치
          * 그 간 토리코의 주위를 돌았던 식혼들이 아카시아의 눈에도 보인다.
          * 아카시아에게 노킹 당한 짧은 간에 그 기술을 복사한 것.
          * 그는 애정도 증오도 언젠가는 사라지며 식욕 앞에선 덧없는 일이다. 미도라에겐 "너의 분노도 내 식욕을 막을 없다"고 덧붙인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3회 일치
          * 소주츠 달인 - "창은 보기에 단해 보이지만, 훌륭하고 정확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수련과 열정이 필요하다."
          * 칸시 시인 - "정적인 간의 시"
          * 례자(Pilgrim) - "빛을 찾으려면 대지를 걸어라."
  • 트로피코 4 . . . . 3회 일치
         >Tropico 4는 새로운 정치 요소를 통해 전작에 비해 게임플레이 요소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외교를 진행할 새로운 초강대국이 등장할 뿐더러, 논란 많은 정책을 쉽게 통과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장관을 임명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십시오! 모두의 의견을 신중히 파악하십시오! 자연이 가져오는 새로운 재해가 나라를 휩쓸고 지나가면 국민들은 사후복구를 위해 국고를 열 것을 소리높여 요청해올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간, 당신의 정치적 결단력이 샅샅히 시험될 것입니다.
         >Tropico 4는 Facebook과 트위터 기능을 내장해 새로운 단계의 소셜 네트워크를 선보입니다. 게임 내에서 즉시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임무 및 도전 과제 완수 내역을 바로 알리십시오. 번성하는 섬의 풍경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여러분만의 꿈의 도시를 Tropico 4의 Facebook 페이지에 올릴 수도 있으며, 온라인 위표를 통해 독재자 위를 겨룰 수도 있습니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3회 일치
         ||"우리가 사랑하는 지도자가 자라났던 곳이라!" 이곳은 가장 총명하며 위대하신 지도자인 각하의 참된 집이랍니다. 관광객들은 독재의 모든 것이 담긴 이곳을 즐겨 찾으며, 시민들은 이곳을 숭배와 성지 례의 장소로서 이용합니다.||
         ||코쟁이들과 불곰 놈들은 트로피코를 경외하며 이 핵 무기 프로그램을 탐합니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선 자력으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수밖엔 없지요. 뭔가 모이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15킬로톤짜리 핵 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건 적들뿐만이 아니라는 이 사실은, 우리가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해줍니다.
         ||기름덩어리 음식, 맛 없는 음식, 혹은 건강식품. 모두 슈퍼마켓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트로피코의 진한 시민들만을 위한 음식이랍니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3회 일치
          * 엘자가 제랄을 구하러 가려 할 때 침몰하던 크리스티나호가 다시금 부상한다. 누군가 배를 움직이고 있다. [[안나 하트필리아]]였다. 무슨 수를 썼는지 폭발 직전이었던 배가 다시 날아오른다. 안나는 이 배를 만든 텐마에게 미안하다고 혼잣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일에는 서가 있는 법". 그녀는 이 배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을 작정이다. 자기 자신과 함께. 웬디는 물론 배를 몰았던 [[히비키 레이티스]], [[렌 아카츠키]]도 무리한 일이라며 그만두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런 말로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이렇게 멋진 향기의 여성을 혼자 둘 없거든.
          * 그리고 마룡에게 부딪히는 크리스티나호. 아크놀로기아도 수 물리력은 흡수할 수 없다. 배에 떠밀린 아크놀리아가 시간의 틈새에 접촉한다.
  • 하수빈 . . . . 3회 일치
         '''하수빈'''(河琇彬, '''Lisa Ha''', [[1973년]] [[5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해외[[건축]]디자인, [[경영]]인이다.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계성여자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를 나왔다. 1992년, ''Lisa in Love''( 리사 인 러브 )로 19세에 데뷔하여 청 가련형의 대명사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은 음악 프로듀서, 조형미술, 해외건축 디자인, 패션 컬렉션, 문학 등 다채로운 예술 장르에서 그 역량을 표현하고 있었으나, 천부적으로 섬세한 감성은 그녀를 다시 음악으로 선회하게 만들었고, 다시 음악적 창작의 세계로 그녀를 이끌었다. 무에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음악가에게도 가장 수한 세계어는 바로 음악이라는 사실이다. 어느덧 그녀는 음악, 문학, 건축, 디자인, 사진 등 종합예술의 세계로 좀 더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고있다.
         자아는 이미 만들어진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발견의 선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지나온 90년대를 돌아보자면, 마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비너스처럼 청가련형의 아름다움이 대중문화의 한 시기를 풍미, 많은 여성들의 하나의 상징적 이데올로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대중예술 분야에서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성상을 그 어느 때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했던 시기였다. 노스텔지어... 원대한 바다...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별, 태양, 바람, 구름, 비, 중력... 우주의 경외감을 표현함으로 자연 생태에 근접한 아름다운 영상미를 추구했다.
  • 하이큐/237화 . . . . 3회 일치
          * 히나타의 서브 2회차로 공격이 재개된다. 츠바키하라는 에치고가 세트를 올리는데 아테마에게 올릴 것 같다. 그러나 눈치 빠른 [[츠키시마 케이]]는 속지 않고 마루야마의 백어택을 정확히 예측한다. 하지만 마루야마도 히 막히지 않는다. 간적으로 블록을 피해 공을 떨어뜨린다.
  • 하이큐/241화 . . . . 3회 일치
          * 타나카의 3회차 서브. 잘 치는 것 같더니 3회차에서 사고를 친다. 공을 너무 앞에 띄운 바람에 급한 대로 주먹으로 펀칭 서브, 공이 넘어가긴 했지만 간 비웃음거리가 된다.
          * 아테마는 에치고와 함께 블록하려 하는데 간 라이트 측에서 뛰어오르는 히나타를 보고 망설인다. 하지만 그게 함정. 진짜는 레프트에서 뛰어오르던 아즈마네였다. 깨끗하게 꽂히는 아즈마네의 스파이크. 히나타를 너무 의식한 결과였다. 이 시점에서 츠바키하라는 두 번째 TO. [[오오사토 타츠미]] 감독은 다음 로테이션에 10번(히나타)가 내려가고 상대측 블록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으니 눈 딱 감고 강하게 치라고 지시한다.
          * 다시 주고받는 랠리가 이어지고 카라스노의 결정적인 득점 찬스. 그런데 여기서 실수가 일어난다. 카게야마가 올린 공이 츠키시마의 타점을 빗나간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가 지쳤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츠키시마는 카게야마가 잘못 올렸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타점이 빗나간 것은 사실. 이대로 실점한다면 2세트는 끝난다. 바로 그 간.
  • 하이큐/251화 . . . . 3회 일치
          * 스코어는 4 대 3. 이나리자키의 1점 리드. 그러나 경기 초반부터 이나리자키로 기울던 분위기가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이동공격으로 뒤집힌다. 그동안 이나리자키의 플레이에 관심이 집중됐던 관객들은 새삼 카라스노 고교와 1학년 콤비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경기 시작전 카라스노 고교를 형편없이 얕봤던 [[미야 아츠무]]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멋지다고 감탄한다. 놀라운 발력과 민첩성, 그러면서도 점프 높이는 전혀 줄지 않는 탄력 등. "직접 보니 더 멋지다"고 감탄하고 있으려니 동생 [[미야 오사무]]가 옆에서 "너는 시합만 하면 정신연령이 5살 이하"라고 빈축한다.
          히나타는 거의 경련을 일으킬 것처럼 흥분한다. 그런데 주심이 팔을 들어올리는 간 이나리자키의 야유가 뚝 그친다. 그리고 타악기를 이용한 빠르고 짧은 박자의 연타로 바뀐다. 탄탄탄, 마치 축제에서 치는 북소리 같다. 이러한 변화에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뭔가 낌새를 차린다.
          * 북소리를 들으며 카게야마가 서브 시도. 하지만 북소리 때문일까, 카게야마는 뭔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가 서브가 평균 이하라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서브는 네트에 걸리면서 상대 코트로 넘어간다. 네트 인. 코스가 빗나간 탓에 상대편 리시브도 흔들린다. 악재가 호재로. 하지만 아츠무가 악재를 다시 호재로 바꾼다. 그가 흔들린 리시브를 커버하려고 "첫 디딤"을 하는 간, 같은 세터인 카게야마는 "완벽한 첫 디딤"이라고 느낀다.
  • 하이큐/264화 . . . . 3회 일치
          좋게 말하면 정남이지만 엔노시타가 보기에는 그저 요령부득에 개그소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키요코 선배를 좋아하는게 맞다면 "좋아한단 오오라"를 좀 자제하는게 어떻냐고 충고한다. 타나카는 "사귀어달라", "결혼해달라"는 말을 인사 대신으로 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칼 같이 거절 당하는게 언제나 패턴.
          언제나처럼 체육관으로 달려오던 키요코. 교복에 실내화 차림으로, 운동화는 두 손에 들고 있었다. 항상 제일 먼저 체육관에 도착하는게 그녀의 일과였고 그날도 그런 줄로만 알고 멋지게 체육관으로 뛰어들었다. 그때가 타나카와 처음 마주친 간이었다. 약간 민망해하는 키요코에게, 타나카는 인상적인 첫마디를 던졌다.
          >단하달지, 일변도인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
  • 한영이 . . . . 3회 일치
         |직업 = 교자
         '''한영이'''(韓榮伊, [[1784년]] ~ [[1839년]] [[12월 29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막달레나'''(Magdalena)이다.
         한편, 한영이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녀는 [[주뢰형]]과 [[장형 (형벌)|장형]]을 받았지만, 그녀의 신앙과 용기는 꺾일 줄 몰랐다. 그녀는 침착하고 평온하게 [[교]]의 영관을 쓸 때만을 기다렸다.
  • 한재석(1973) . . . . 3회 일치
         부친은 [[기아자동차]]에서 부회장을 역임했던 한승준이다. 1995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인 째즈가 그의 데뷔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의 정식 데뷔작은 1994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마지막 연인이다. 첫 주연 작품인 째즈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여세를 몰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라는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영화가 흥행과 비평에서 크게 실패하게 되고 연기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하락세 테크를 탔다. 식간에 주연급에서 서브 조연급으로 확 떨어지고 만다.
         1998년 KBS2 미니시리즈 《[[수#s-4]]》 ... 강현석
         1999년 MBC 주말연속극 《[[장미와 콩나물]]》 ... 최
  • 한호문 . . . . 3회 일치
         이후 좌우포장 등 여러 벼슬을 거쳐 [[1637년]](인조 15) 정축 정시무과(丁丑庭試武科)의 시험관을 맡아보았고<ref>정축정시문무과방목 (丁丑庭試文武科榜目, 1637)</ref>, [[1638년]] [[12월 17일]] 장령 안시현(安時賢), 이여익(李汝翊), 지평 박수문(朴守文) 등이 훈련 도정은 무관의 극선(極選)인데 도정 한호문은 평소 이렇다 할 명성도 없고 나이도 늙어 기력이 쇠한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지 이미 오래이므로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손가락질 받는 것과, 일을 처리할 때 거칠고 비루한 행동을 많이하여 위인이 용렬하다며, [[훈련원]]의 장(長) 자리를 결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가 거부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7일(을사)자 7번째기사, "훈련 도정 한호문을 파직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2월 19일]] 장령 안시현(安時賢)ㆍ이여익(李汝翊), 지평 이운재(李雲栽) 등이 다시 그의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는 유시를 내렸다며 돌려보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9일(정미)자 14번째기사, "예장하라는 명을 속히 정지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644년]] 무렵 자헌대부(資憲大夫) 서원군(西原君)이 되고, [[1645년]] 포도대장이 되었다. [[1645년]] [[12월 25일]] [[사간원]]이 그의 추고를 청하여 논계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3년 을유(1645) 12월 25일(계묘)자 3번째기사, "사간원이 포도대장 한호문의 일을 청하였다"</ref> 추고를 청한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다. [[1646년]] [[1월]] [[소현세자]]빈 [[강빈]]이 인조 등을 저주했다는 [[강빈 옥사]]가 발생, 좌포장으로 궐내에 대기하였다. [[1월 5일]] 인조는 좌우포장 한호문(韓好問)ㆍ신경진(申景珍)을 명하여 불러서 전교하기를“지금은 기밀(機密)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으니 야금(夜禁)을 십분 더욱 엄하게 단속하고, 경도 또한 옛 전례에 따라 친히 찰하여 흉한 무리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왕래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ref>연려실기술 제27권 /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강빈(姜嬪)의 옥사"</ref> [[1646년]] [[2월 5일]] 좌변포도대장으로 패초를 받았으나, 도착이 늦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때 출발하였다는 승지 여이재의 보고로 그는 문제되지 않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4년 병술(1646) 2월 5일(임오)자 7번째기사, "우변포도대장 신경진은 집이 멀어 조금 늦는 것이라는 여이재의 계"</ref> [[1648년]](인조 26년) [[10월]] 무과(武科)의 일소(一所)의 시관(試官)이었으나 병을 이유로 패초에 나오지 않았다가 그해 [[10월 14일]] [[승정원]]의 탄핵을 받고 추고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6년 무자(1648) 10월 14일(을사)자 13번째기사, "무과 일소 시관인 서원군 한호문이 칭병하며 패초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추고할 것을 청하는 본원의 계"</ref> 최종 관직은 정헌(正憲)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에 이르렀다.
         그의 동생 한의문의 부인이 도적에게 살해당한 일이 인조실록에 등장한다.<ref>인조실록 47권, 1646년(인조 24년, 청 치 3년) 7월 3일 정미 2번째기사, 대신 및 비국 당상과 양사 장관을 인견하다</ref>
         ** 제수 : ?(? ~ [[1646년]] [[7월 3일]]<ref>인조실록 47권, 1646년(인조 24년, 청 치 3년) 7월 3일 정미 2번째기사, 대신 및 비국 당상과 양사 장관을 인견하다</ref>)
  • 한확 . . . . 3회 일치
         간이재 한확은 [[1400년]](정종 2년) 녹사를 지내고 [[증직|증]] [[병조판서]]에 추증된 [[한녕]](韓寧)의 손자이며, 지창군사(知淳昌郡事)를 지내고 [[증직|증]] [[의정부]][[영의정]] 서성부원군에 추증된 [[한영정]](韓永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증 정경부인 의성 김씨는 의성군 양소공 [[김영렬]](金英烈)의 딸이다.
         [[1420년]] [[1월]] [[조선]]의 흉년기에 공물면제를 위한 사절단의 대표로 예조참판 하연(河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명나라]]의 광록시소경으로서 태종 이래 추진하였던 금과 은의 공물면제를 주청하여 황제의 허락을 받고 귀국하였다. [[1424년]] 명나라 성조가 북정(北征) 중 유목천(楡木川)에서 죽자 여비는 [[영락제]] 사후 장당하였다.<ref>목을 매고 죽었다.</ref> 그뒤 장군 절제사(掌軍節制使)가 되었다.
         [[1452년]] 원접사(遠接使)로 [[명나라]]의 사신을 맞이하였고, 그해 [[9월]] [[개성부]] 선위사가 되어 개성 지역을 위문하고 돌아왔다. [[12월]]초 다시 개성부 선위사가 되어 개성을 찰하고 되돌아온 뒤 [[의정부]]좌찬성(左贊成)에 임명되었다.
  • 허안나 . . . . 3회 일치
         * 캔디TV 1초의간 2016
         * 20110212 개그드림콘서트 IN
         * 20111225 개그판타지쇼 IN
  • 홍해성 . . . . 3회 일치
         [[1921년]]에는 회연극단을 조직하여 [[부산부]]를 시작으로 조선 전역을 회하면서 연극과 음악회, 연설 등을 묶어 공연을 벌였다. 이 과정을 통해 홍해성은 연극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니혼 대학]] 예술과로 편입하여 과정을 수료했다. [[1924년]]에는 스키지소극장에 입단하여 배우 수업을 받았다.
         |저자=강옥희,이영미,이진,이승희
  • 황동주(배우) . . . . 3회 일치
         박현주 작가, 황영 작가, 김흥동 PD 등과 [[인연]]이 깊은 편이다.
         || 황영 작가 작품(☆) ||
          * 2006년 KBS1 옥이 - 서인호 역 ☆
  • 황병기 . . . . 3회 일치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배출한 제자로 동국대학교 교수 윤소희, 단국대학교 교수 서원숙, 숙명여대 교수 김일륜, 이화여대 교수 곽은아, 서울대학교 교수 이지영, 서울대학교 강사 지애리,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이정자, 이화여대 강사 조윤정, 정희, 대구예술대학 강사 이미경, 숙명여대 강사 이영신, 수원여대 강사 박지영 등이 있다. 이화여대 재직시 개인적으로 지도한 제자로는 준인간문화재 양승희, 이화여대 교수 문재숙, 서원대학교 교수 박현숙, 추계예술대학 교수 이효분, 전남대학교 교수 성애 등이 있다.
         1964년 국립국악원 최초의 해외공연이었던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 초청 일본 회공연에 가야금 독주자로 참가하고 공연 후 NHK에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3회 일치
         광주예대 연극과에 재학 중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로 데뷔하였는데, 조연도 아니고 단역으로 잠깐 나온다. (1편에서 술집 종업원 역할)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임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영화 배우로서는 주로 《너는 내 운명》의 남자 주인공과 같은 박한 청년 역을 맡아 왔으나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에서 잔인하고 비열한 조폭 두목, 《[[사생결단#s-3|사생결단]]》에서 건들거리는 형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사생결단》 이후부턴 몇몇 영화에서 흥행 부진을 맛보았으나 《[[부당거래]]》, 《[[댄싱퀸(영화)|댄싱퀸]]》, 《[[신세계(영화)|신세계]]》 등이 흥행하면서 입지를 키워가더니,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베테랑(영화)|베테랑]]》 두 편 모두 천만 명 돌파라는 연타석 홈런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충무로 에이스로 탈바꿈하였다. 게다가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에서 750만 명 정도를 추가로 끌어모아 2015년 한해만 해도 3천만 관객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본인은 사람들이 천만배우라고 말할 때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말한다. 천만이라는 숫자가 자기에게는 의미없고 단지 감사할 뿐이라고... 평소에 심각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씨네21 인터뷰- ] 연타석 홈런을 치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믿고보는 황정민'''이라는 뜻으로 '''믿보황'''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 [[마산]]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강호동]]과 같은 반이었는데 강호동을 "얼굴이 하얗고 귀여웠던 아이"로 기억한다고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 있다. [[덤]]으로 [[김창렬]]을 착하고 진한 아이라고 말했다.
  • 황제성(코미디언) . . . . 3회 일치
         || 출생 ||<(> [[1982년]] [[9월 25일]], [[전라남도]] [[천시]] ||
         [[1982년]] [[9월 25일]]생 전라남도 천 출신 [[대한민국]]의 [[개그맨]]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했고, 군복무는 [[제7보병사단]]에서 했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한국 남성 코미디언]][[분류:1982년 출생]][[분류:2007년 데뷔]][[분류:천시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2회 일치
         실 집계를 시작하고 나서 가져온 파장이 엄청났는데, 2012시즌 348경기가 종료되자 2011시즌 246경기동안 300만명이 넘었다는 관중이 250만명으로 50만명이나 줄었다. 단계산만으로도 평균관중이 1만 1천~2천여명 정도였던 2011시즌 성과와는 달리 2012시즌은 7천여명으로 경기당 근 4~5천명이나 차이가 나는 것.[*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382&aid=0000079171|스포츠동아, "-33.2%…거품 빠진 관중수 각 팀 마케팅 강화 긍정효과"]]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인구 수를 매년 잘못 파악한다고 치면 해당 도시의 인구가 왜 늘어났는지, 혹은 반대로 왜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초현상이 발생했으면 왜 여초현상이 발생했는지, 여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이다. 헌데 2011시즌까지의 K리그는 사실 이게 불가능한 정도를 넘어 구단들이 알아서 뻥튀기를 했고, 또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걸 공식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K리그가 지금 흥행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대대적인 실패를 하고 있는건지 진단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 Victoria II . . . . 2회 일치
         이들 중 1~8위는 주요 열강(Great Power)으로 분류되며, 식민지를 피거나 다른 나라를 자신의 영향권 내로 편입시킬 수 있는 등 사실상 세계를 마음대로 쪼개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다른 주요 열강의 견제만 어떻게 한다면야 말이다. 만약 기존의 주요 열강이 아닌 국가가 8위권 내로 들어오면 1년간의 유예 기간 이후 제일 위가 낮은 주요 열강을 탈락시키고 주요 열강에 올라서게 된다.
         서구화되지 않은 국가들. 그랜드 캠페인이 시작되는 1836년 시점에는 보어인들이 다스리는 오라녜와 트랜스발을 제외한 모든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이 비문명국이다. 비문명국은 기술을 연구할 수도 없고, 자력으로 공장을 지을수도 없다. 또한 아무리 부강하더라도 문명국보다 낮은 위로 처리된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 . . . . 2회 일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s-6.3.1|서 계획]]''' 발명 발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s-6.3.1|서 계획]]''' 발명 발견시 '''{{{#green +1%}}}'''
  • 강기웅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7년]] 1차 3위 ([[삼성 라이온즈]])
  • 강대식 . . . . 2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박근혜-최실 게이트]]로 인하여 2017년 2월 [[윤영]]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청장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입당하였다.
  • 강동우 . . . . 2회 일치
         후반기에 타율을 많이 끌어올린 덕분에 타율 0.288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 내 '''타자 고과 1위(!!)'''에 홈런 개수로 커리어 하이고, 타점도 도높은 타점들이 상당히 많아 38살 나이임에도 차기 시즌에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한편 [[FA 제도|FA]] 대상자였지만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봉은 고작 5천만원이 올랐는데, 강동우의 생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인상액이 너무 적다는 인상이 짙다. 물론 노장선수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은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시기 한화 프런트진의 연봉 인상 정책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강동우는 물론이고 [[이대수]], [[박정진]] 등 A+급 활약을 보인 선수들의 연봉 인상폭이 똑같이 5천이었다. 이는 선수들의 동기부여 실패로 이어졌고, 2012년 한화가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는데 적지 않은 일조를 한다.
         선수시절 등번호는 20-1-24-31-2-3번 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1번 라인인 [[황규봉]]-[[류중일]]-강동우-[[윤성환]] 중 한 명. '''불사조같은 선수시절을 보낸 선수.'''
  • 강상재 . . . . 2회 일치
         | KBL 지명위 = 3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지명된 동기 이종현과 함께 고려대 3연패를 이끌었다. 201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3위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지명되었다.
  • 강타 . . . . 2회 일치
         * 1998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일일시트콤 《[[풍산부인과]]》 (특별출연)
         [[분류:강타]][[분류:H.O.T.의 일원]][[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흥 안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
  • 개표방송 . . . . 2회 일치
         과거에는 단히 숫자만 올라가는 단한 형식의 개표방송을 했지만, 2010년 들어서는 방송사들끼리 경쟁이 격화되면서 개표방송에도 다양한 컨텐츠가 나타났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3화 . . . . 2회 일치
          * 그날 저녁. 둘 모두 도마가에서 저녁을 먹는다. 메뉴는 돈가스. 타이헤이가 어땠냐고 묻는데 "묻지 않는게 좋은 위"를 기록했다 한다. 하지만 타이헤이는 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둘은 거의 학년 꼴찌로 골인하지만 끝까지 달렸다. 우마루와 에비나는 그래도 "창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 건포인트 . . . . 2회 일치
         만약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경비원의 총에 맞아 죽으면 죽기 얼마 전에 자동저장된 간들 중 하나를 골라 그 간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만약 임무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수도 있다.
  • 고독의 요새 . . . . 2회 일치
         초창기에는 거창한 [[설정]]은 없고 단히 슈퍼맨이 내가 이렇게 큰 건물도 만들 수 있다는 일종의 [[자뻑]]으로 만든 기지였다. 그래서 진지한 비밀기지 연구소 같은 [[배트 케이브]]와는 반대로 그냥 슈퍼맨의 신비로운 비밀 요새같은 이미지였다. 요새 안에 표창장 트로피 방도 존재했을 정도.
         이런 SF틱한 설정과는 반대로 보안은 굉장히 심플한데 그냥 열쇠구멍에 열쇠 넣고 돌리면 들어갈 수 있다. 열쇠도 그냥 문 근처에 존재해서 구하기도 쉽다. 문제는 이 열쇠가 '''슈퍼맨을 제외한 존재는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초창기에는 사이즈도 더럽게 커서 구멍에 넣기도 힘들었다가 근래에 들어서 단한 열쇠 사이즈가 되었지만 무게가 몇 조(!) 톤이나 되어서 문앞 매트 밑에 넣어놨다.[* 보통 가정집 열쇠 보관하는 그 방식으로.] 슈퍼맨의 인간다움을 부각시키려는 장치의 일종이었는데 아무래도 고독의 요새라는 간지나는 네이밍과는 안 어울려선지 지금은 완전 SF틱한 분위기가 되어 열쇠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NEW 52 이후 부터는 슈퍼맨의 목소리와 DNA 검사로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고수희 . . . . 2회 일치
         * [[2008년]] : 《야끼니꾸 드래곤》 - 고영
         * [[2005년]] : 《[[너는 내 운명 (영화)|너는 내 운명]]》 - 황유
  • 고인범 . . . . 2회 일치
          * 2011년 KBS 2TV 수목드라마 [[로맨스 타운]] - 노금 아버지 친구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정에 반하다]] (특별출연)
  • 고종(조선) . . . . 2회 일치
         25대 [[철종]] 이변→26대 고종 이형→27대 [[종]] 이척
         초대 [[고종]] 이형→2대 [[종]] 이척
  • 광주 FC . . . . 2회 일치
         2010년 12월 16일에 창단한 구단[* 창단식 기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승인은 10월에 이미 나 있던 상태였다.]으로 2011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K리그의 16번째 구단이며, 서상 6번째 [[시민구단]]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두고 활동한다. 정식명칭은 "광주시민프로축구단".
         || 리그 구분 || 리그 참가팀 || 최종위 ||
  • 광해군 . . . . 2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상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영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영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영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영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영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 권민중 . . . . 2회 일치
         || 2004년 || SBS || 개밥그릇 || 여경 || ||
          * [[2013년]] [[QTV]] 신동엽과 위 정하는 여자
  • 권오현(배우) . . . . 2회 일치
         * 《[[스파이 파파]]》 (2011년) - 지 아빠 역.
         * 《[[금의 땅]]》 (KBS2, 2014년) - 정수복 역
  • 권해효 . . . . 2회 일치
          * 2005 [[내 이름은 김삼]]
          * 2006 [[돌아와요 애씨]]
  • 김대륙 . . . . 2회 일치
         || '''프로입단''' || [[2015년]] [[롯데 자이언츠]] 2차 5라운드 48위 ||
         10월 중에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음이 밝혀졌다. 이제 2020 시즌을 기약해야 할 듯.
  • 김대진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2차 1위 ([[삼미 슈퍼스타즈]])
  • 김동재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3년]] 1차 1위([[삼성 라이온즈]])
  • 김문순 (언론인) . . . . 2회 일치
         '''김문'''([[1944년]] [[3월 3일]]<ref>{{웹 인용
         |제목 = 네이트 리뷰 - 김문
  • 김병옥(배우) . . . . 2회 일치
         2013년 신세계 성공 이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동치미, 해피투게더 등 예능에도 곧잘 출연했는데 상당한 예능감을 보여줬다. 악한 그동안의 인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착하고 박한 면모를 많이 보여주었다.
         || SBS || [[엽기적인 그녀(드라마)|엽기적인 그녀]] || 박재 || ||
  • 김보미(1958) . . . . 2회 일치
         |align="center"|김말
         |align="center"|칠 처
  • 김성민 (1991년) . . . . 2회 일치
         [[199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짝 (드라마)|짝]]》의 단역으로 아역 [[배우|연기자]] 첫 데뷔하였다. 이후 [[1996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슈팅 (드라마)|슈팅]]》에서 유년기 김영웅 역으로 출연하였고 [[1998년]]에는 여성 아역 연기자 [[김성은 (1991년)|김성은]]이 출연한 [[서울방송|SBS 서울방송]] [[시트콤]] 《[[풍산부인과]]》에서 김의찬 역을 맡았으며, [[2001년]]에는 여성 아역 연기자 [[전성초]]가 출연한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요정 컴미]]》에 출연하였고, [[2002년]] 《[[태양인 이제마]]》에 아역 출연하였다. 1994년 데뷔한 이후 최근까지 간간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풍산부인과]]
  • 김승대 . . . . 2회 일치
         2017년에는 재차 부진에 빠지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정리될 [[외국인 선수]]로 거론되는 등 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2017년 6월 13일 '''포항이 김승대 임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5693|단독 기사]]가 떴다. [[K리그]] 여름 이적시장 최대어인 [[이명주]]가 [[포항 스틸러스|친정]]과 [[FC 서울|마음 급한 황새]]를 사이에 두고 K리그로 복귀한다는 소식으로 시끌벅적한 와중에 김승대까지 포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포항 팬덤은 간 들끓어 올랐다.
         [[김병수(축구인)|김병수]]감독에 의하면 [[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_interview.php?gisa_uniq=2014052613515581|고등학교 때 측면에서 뛰었는데 대학교에서 가운데로 이동을 시켰다.]] 희한하게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가운데에서 프리롤을 주면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간 스피드가 좋으며 체력도 굉장히 좋아서 지구력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라는 평가를 했다.
  • 김용국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5년]] 1차 5위([[삼성 라이온즈]])
  • 김우중 . . . . 2회 일치
         |자산 =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금융사건|IMF 구제금융]]으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400% 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쌍용을 인수하는등 확장정책을 이어나갔지만 [[일본]] 노무라 증권이 [[1998년]] [[10월 25일]]에 발표한 '[[대우인터내셔널|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 1장으로 사실상 [[대우그룹]]이 위기를 맞게 된다. 후에 계열사를 41개에서 4개업종 10개 회사로 구조조정 단행과 [[삼성그룹]]과의 빅딜도 추진하나 둘다 실패했다. [[1999년]] [[8월 26일]] 이미 구조조정으로 회사 41개중 16개가 매각되었고 남은 25개 회사중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하였다. 당시 부채는 500억 달러였다. 당시 [[대우그룹]]은 금융부문을 중점으로두고 사업확장을 하여 내부적으로 부채가 많았다. 사실상의 그룹 해체였다. [[1999년]] [[11월 1일]] 김우중은 13명의 [[대우그룹]] 사장단들과 함께 경영포기 및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는 주장과, 반대로 [[유럽]] 등지의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대우그룹]]은 당시 [[김대중 정부]]가 정치적으로 탄압했다는 설과 단한 [[구조조정]] 실패라는 의혹이 있다.
  • 김정태(영화배우) . . . . 2회 일치
         아내와는 19년간의 연애 끝에 [[2009년]]에 결혼했으며, 2011년에 아들 지후를 얻게 되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장현성]]의 지인으로 방송에 등장 시 아들 지후군의 관심에 힘입어 2014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명 야꿍이로 알려진 지후군과 함께 아빠는 슈퍼맨 티셔츠를 입고 새누리당 [[나동연]] 양산시장 유세를 하여 논란이 되었다. 당초에는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하였지만 후보 홍보물에 이미 방문 계획이 나와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과 함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하차하게 되었다. 다만 거짓말 논란 이전에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특정 성향 네티즌들의 비난 및 하차요구로 뭇매를 맞고 있었다. 즉, 단히 거짓말 -> 비난 -> 하차 수이 아니라 선행된 부당한 비난에 대한 자구적 해명이었다는 걸 참작할 여지가 있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김준영의 스타리그 도전은 탄치 않았다. EVER 스타리그 2005에선 [[박용욱]](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과 [[전상욱]](당시 [[SK 텔레콤 T1]], 현 [[위메이드 폭스]])을 꺾고 2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3자 재경기에서 전패하며 16강 탈락했다. 다음 대회인 [[So1 스타리그 2005|So1 스타리그]]에서는 당대 최강의 테란 [[최연성]](당시 [[SK 텔레콤 T1]], 현 SK 텔레콤 T1 코치)을 이겼지만 [[홍진호]](당시 [[KTF 매직엔스]],은퇴)와 [[오영종]](당시 [[화승 OZ|Plus]], 현 [[화승 오즈]])에게 패배하며 역시 16강 탈락했다.
         온게임넷 대회인 스타리그에서는 10회나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고 우승도 한 번 기록하기도 한 김준영이었지만 유독 MBC게임의 MSL에서는 인연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수 스타리그 우승자 선수들 중에서는 [[한동욱]]과 함께 MSL 진출 기록이 전무하다. (서바이버 리그 및 서바이버 토너먼트 진출 기록이 최고 기록)
  • 김진(배우) . . . . 2회 일치
         1973년 8월 23일 [[경기도]] [[안산시|단원구]] 출생의 탤런트이다. 본명은 [[김경진]]. 90년대 중반 [[좌회전]]이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으나 뜨지 못하고[* 그래도 [[가요톱10]]에서는 10위권 안에 들었다. 대표적인 타이틀 곡은 '예행연습' [[김홍]]과 [[이승철]]이 작사 작곡했다.] 이후 방위 복무[*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마지막 방위' 세대로 같은 날 [[유재석]]과 [[이정재]]가 입대했다.]를 마친 뒤 연기자로 ~~좌회전~~전향. 좌회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동안은 놀림거리 비슷하게 됐다.
         당시 한국에선 보기 드문 형태의 [[미남]]으로 상당히 큰키에 엄청 호리호리한데다 하얗고 중성적인 미소년 타입(동인녀들의 손에 걸리면 '수'가 될듯한)으로 정만화에나 어울릴 듯한 외모로 90년대 후반에 인기를 끌었다.
  • 김진환(iKON) . . . . 2회 일치
          * 바비, 비아이와 함께 원년 3인방으로 불리며 진지한(진환, 지원, 한빈) 으로 불린다. 2011년 1월 3일 비아이와 함께 입사했다. 비아이는 진환을 처음 본 간 "우리는 같은 팀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일주일 뒤 입사한 바비와는 서로 진심으로 싫어하며 싸웠다고 한다.
          * 아이콘 정규 1집 발표 후 가진 iKoncert 투어에서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커버댄스를 선보였다. 세라복 원피스를 입고 가발을 쓰고 나오며, 이름은 진상(한국콘서트), 지니(일본콘서트)로 부른다. (이 다음 서인 EXID의 위아래는 멤버 전원이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참여한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마인드라 걸그룹 표정을 열심히 연구했다는데 그 이후로 아이돌력이 눈에 띄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걸그룹 연기를 하는 도중 불쑥불쑥 거난영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억누르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 김현성(가수) . . . . 2회 일치
          * '행복' - UN의 [[김정훈]]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하며 당시 공중파에서 3위까지 갈 정도로 흥행을 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음악위 집계방송이 그렇게 많이 있지 않아 이 정도면 상당한 열풍을 일으킨 것.[* 행복 활동 당시 2003년에 뮤직뱅크는 위제를 운영하지 않았고, 인기가요는 뮤티즌 송을 뽑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2회 일치
          * 현장에서는 착실하게 구조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까다로운 채점기준에도 불구하고 매우 조로운 흐름.
          * 이것이 바로 "복합적인 움직임". 주최측은 단 구조활동이 아니라 "구조활동 중에 일어난 테러에 대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3화 . . . . 2회 일치
          * 갱 오르카는 토도로키와 요아라시가 만든 열풍의 벽을 뚫고 나오는데 미도리야가 저지하러 오는 간 시험이 종료된다.
          * 그 간을 노리고 미도리야 이즈쿠가 달려온다. 미도리야는 부하들을 쓰러뜨리며 선전. 피난 작업을 마친 오지로 마사라오도 가세한다. 이미 구조현장에선 조치가 거의 끝나가고 있고 HUC의 수는 약 세 명 정도 남은 상황. 2회전도 막바지에 들어가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2회 일치
          * 그는 미야기 캐스터가 말하는 부분은 파워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또 파워를 말하는 거라고 모되게 생각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상반된 두 개의 생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저씨는 신경질적으로 닥치고 있으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올마이트의 존재가 성실한 사람들에겐 든든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에겐 저주에 불과하고 그 저주가 풀린 지금은 폭주하게 된다고 본다. 그의 말처럼 그가 외출하자마자 한 무리의 빌런이 상가를 약탈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스크를 벗으면 다중인격 성향이 드러나는데 상당히 중증. 평소에도 또다른 자아가 생각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마스크를 쓰는 걸로 자아를 확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임간학교편 당시에도 모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등, 본인이 괜찮다고 여길 뿐 전혀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원래 캐릭터 모델이 데드풀로 추정되는데 실제 데드풀도 다중인격 성향이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2회 일치
          * 바쿠고는 폭발로 직접 데미지를 주는 전술을 버리고 폭발의 추진력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가속하고 급선회, 급감속을 거는 등 놀라운 응용력을 선보인다. 미도리야가 가드한 후 튕겨지는데 착지하기도 전에 급격히 거리를 좁히고 폭발을 이용해 점프 궤도를 변경, 식간에 미도리야의 후방을 잡는다.
          * 미도리야는 감정이 고조되고 있음을 느낀다. 평소보다 더욱 빠르고, 컨트롤이 틀어진다. 하지만 좋은 감각이다. 지금까지 그는 풀 카울 상태를 5%로 제한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단련되었는지 그 자신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전신 상시 신체 허용 상한 8%. 그 간 미도리야가 한계를 넘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2회 일치
          * 풀 카울 8%는 단한 수치 이상의 향상을 보인다.
          돌격하던 미도리야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바쿠고는 공중전으로 가면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며 첫 킥을 막고 카운터를 넣을 작정으로 함께 뛰어오른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이 간에도 작전을 짜고 있었다. 방금 전 부딪힘으로 바쿠고는 풀카울 8%의 킥을 강하게 의식하게 됐다. 도약도 전부 이 점을 노린 계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2회 일치
          * [[토도로키 쇼토]]는 "No.1에 가장 가까운 남자" [[토오가타 밀리오]]의 위력에 경악한다. 그런데 경쟁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 수하게 놀라워하는 모습이라 옆에 있던 [[아이자와 쇼타]]가 이상하게 여긴다. 아이자와가 "너도 No.1에 관심있는거 아니었냐"고 묻는데 토도로키는 "전 아직 임시면허가 없습니다"라고 태평한 대답을 한다. 아이자와는 토도로키가 둥글어졌다고 생각한다.
          * 어쨌든 밀리오는 원거리 타입 개성보유자들을 식간에 제압하고 근접전 개성 보유자들만 남겨놓고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가 뭘한건지, 어떤 개성을 가진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절규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2회 일치
          * [[마그네]]가 반발해서 덤볐지만 오버홀의 "개성"에 당해 식간에 사망, [[Mr. 컴프레스]]가 보복하려 하지만 역시 팔을 당한다.
          * 그런데 그 간, 오버홀은 마그네의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마그네도 그걸 느끼는데 어떻게 된다고 자각하기도 전에, 마그네의 상반신이 거품처럼 터져버린다. 경악하는 빌런연합. 오버홀은 "너희가 먼저 손을 댔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2회 일치
          미도리야는 의아해하지만 올마이트는 그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다시 한 번 미도리야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을 할 수 있을지 묻는 올마이트. 밀리오는 이번엔 미도리야에게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 미도리야는 항상 대답하던 대로, 올마이트가 추구하던 대로 "아무리 곤란한 사람이라도 웃으면서 구하는 히어로"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 말을 입에 담는 간 지금 자신이 추구해야 할 히어로상이 정확하게 정리된다. 어머니, 올마이트, 그리고 바쿠고를 거쳐서 얻어낸 해답.
          * 들어서자마자 사이드킥 여성이 아헤가오를 지으며 자지러지는 모습에 미도리야는 경악과 충격으로 혼란에 빠진다. 물론 밀리오는 대략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고 또 버블걸이 유머를 잊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짐작한다. 어쨌든 한창 즐거운 간을 방해받았기 때문인지, 나이트아이가 유독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본다. 미도리야는 그 박력에 쫄지만 밀리오의 조언을 참고해서 "한 번은 웃기는" 걸 시도한다. 이미 강해지겠다고 다짐한 그는 유머에서도 그렇게 돼주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의 인턴 첫 업무는 찰 겸 감시. 특히 [[오버홀]] "치사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 그런데 찰 중이던 미도리야에게 "에리"라는 소녀가 부딪히고, 소녀를 뒤쫓아 오버홀이 나타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2회 일치
          * 그렇게 해서 "에리쨩을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1학년들은 분발했다. 그렇지만 미도리야 만은 수하게 그 임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나이트아이와 [[올마이트]] 간의 문제에 대해서, 나이트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도 용기도 없었다. 달리 누군가에게 상담할 수도 없었다. 작전에 함구령이 내려졌으니 올마이트와 상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문제를 키리시마나 우라라카와 공유할 수도 없다.
          * 나이트아이는 그 남자가 완구를 사는 간을 포착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점원이 "프리유어말인가요?"라고 대답하자 남자가 말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2회 일치
          * 그렇게 뜻대로 두진 않는다. 패트껌이 몸을 던졌다. 타마키가 만들어준 시간을 쓸모없게 할 없고 아이자와가 이리나카의 개성을 확실하게 지워주길 바라고 한 행동이다. 아이자와가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패트껌이 대신 구멍으로 빠진다. 제법 긴 터널을 굴러 어두운 방으로 빠져나온 패트껌. 그런데 언제 따라붙었는지 키리시마가 패트껌 밑에 깔렸다. 사실 키리시마도 아이자와를 구하려고 왔던 건데 타이밍이 안 좋아 패트껌하고 겹쳐버린 것이다. 패트껌이 어쩔 수 없다면서 우선은 긴장하라고 말한다. 분명 뭔가가 있을 텐데... 경고가 떨어지자마자 어둠을 뚫고 뭔가가 나타난다.
          * 키리시마가 먼저 반응했다. 그가 본 것은 주먹. 키리시마는 곧바로 "레드 라이오트 언브레이커블"을 발동한다. 적의 주먹 따윈 맞아서 부러뜨릴 각오였다. 패트껌과 키리시마에게 폭풍처럼 떨어지는 러쉬. 패트껌은 문제 없다. 두터운 지방층 덕이다. 그렇지만 상당한 충격. 일 움직이지 못한다. 새로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그렇게 놀라워하지도 않는다. 주먹을 거둔 그는 상당한 무투파로 보인다. 패트껌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덩치다. 무투파답게 총이나 칼을 쓰는 싸움은 "멋모르는 짓"이라고 입을 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2회 일치
          * 키리시마는 왜 이런 간에 히어로가 찰하고 있지 않은지 원망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도와줄 누군가를 찾았지만 하나같이 경악하는 얼굴들 뿐. 그리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2회 일치
          * 그때 무슨 우연인지 루밀리오의 망토가 날아다니다 낙석에 휘감겨 스쳐 지나간다. 오버홀은 단지 기분 나빠하고 마는데, 에리가 문득 망토를 붙잡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오버홀은 에리의 뿔에서 기이한 빛이 나는 간 섬뜩한 기분과 함께 에리에 내력에 대해서 떠올랐다. 에리는 두목의 딸이 낳은 딸. 즉 두목의 손녀였다. 두목의 딸은 "남편이 저주받은 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딸을 버리고 잠적해버렸다. 어느날 남편이 에리를 만지려고 하는 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 조사 결과 에리는 양측 가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돌연변이. 저주도 뭣도 아닌,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에리는 너무 어렸던 관계로 자신의 개성을 자각하지도 컨트롤하지도 못했다. 두목은 "접촉한 상대가 소멸했다"는 점이 오버홀의 개성과 닮았다고 여겨 에리를 보살피고 그 개성의 실체에 대해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그게 오버홀의 "사업"의 시작이었다. 조사에 착수한 오버홀은 곧 해답을 찾아냈다. 에리의 개성은 "되감는 것". 두목은 오버홀과 에리의 개성이 닮았다고 했지만, 오버홀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고 두려워하게 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2회 일치
         프로 히어로들이 포박한 [[빌런 연합]]을 한 간에 빼앗긴다.
          * 이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베스트 지니스트]]가 간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사용, 직격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반했기 때문.
  • 남명렬 . . . . 2회 일치
         * [[2009년]] [[KBS 2TV|KBS2]] TV문학관 《언니의 폐경》 - 길 역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정에 반하다]]》 - 이정구 역
  • 남유진 . . . . 2회 일치
         정작 당연히 기본으로 공공장소에 깔려야 하는 [[휴지]], 고작 한 롤에 '''500원'''이면 충분히 매입 가능한 이런 단한 것들도 '''예산이 없다면서''' 제대로 지급 자체를 못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기념 사업,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 같은, 후위로 미뤄도 되는 일에는 [[구미시]] 한 해 예산(1조 1,000억 원 내외)의 25%에 가까운 2,600여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3년 동안 써댔으면서 말이다.
  • 노행하 . . . . 2회 일치
         * 《[[수의 시대 (2015년 영화)|수의 시대]]》 (2015년) - 취항루 기녀 역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2회 일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다는 일본에서 흔히 쓰이는 관용구로서, 어떤 계기로 [[각성]]을 얻는 것을 뜻한다. 유래는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이다. 단히 줄여서 "눈에서 비늘"(目からウロコ,目から鱗,메카라우로코)라고 쓰기도 한다.
         이 사울이 눈을 뜨는 간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다.'는 묘사가 있어서, 여기에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나타났다.
  • 대한민국 FA컵 . . . . 2회 일치
         3라운드는 2라운드를 돌파한 팀에 K리그 챌린지, 내셔널리그, K3 최상위 위에 있는 팀이 단판승부를 겨룬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 올라가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국제 무대에서 팀의 이름을 알려서 팀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별히 보상을 줄 수 없었던 리그컵 대회는 점차 인기가 떨어지다가 폐지되는 수을 밟으면서 FA컵과 명암이 교차하였다.
  • 랑그릿사(검) . . . . 2회 일치
         본래 랑그릿사는 처음부터 성검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 진 무기가 아니라 [[루시리스]]가 가지고 있던 "파사의 검"에 수하고 정의로운 용사였던 레이몬드 자작, 지크하르트의 혼을 결합시켜 만든 성물이다.
         성검이라 알려져 있지만 랑그릿사의 모태가 되는 파사의 검부터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4~5의 시대에서 알려진 사실로는 파사의 검은 알하자드 원본의 예비로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며 랑그릿사가 가진 성스러움은 따지고보면 수하고도 정의로운 용사라 불린 지크하르트의 혼에 의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 로힝야 . . . . 2회 일치
         미얀마에서는 '벵갈리'라고 부르며 방글라데시 출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를 꺼려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유엔난민기구가 인정하는 로힝야 난민이 3만명 가량 있으며, 유엔 난민촌 주위에는 미등록 난민 20만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2012년 방글라데시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국제 구호단체의 활동이 난민 유입을 증가시킨다는 이유로 사업 중단을 요구했으며, 국경 찰을 강화하고 있다.
         미얀마 승려 위라투는 이 음모론에 대응하는 '969 운동'을 시작했는데, 9는 붓다, 6은 법륜, 9는 붓다의 제자, 승려를 뜻한다. 969 운동은 무슬림의 '786 음모'에 맞서는 운동임을 주장한다. 위라투는 2003년 버마 중부 만달레이주 카욱세의 반 무슬림 폭동에서 배후를 자처했다. 이 때 위라투를 비롯한 5명의 승려가 경찰에 '증오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 그는 민간 정부 출범을 기념한 대사면으로 석방됐으며, 이후로 미얀마 전역의 불교 사원을 례하며 반무슬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운영하는 회사나 무슬림 상점에 보이콧을 선동하고, 신심있는 불교도라면 969 운동의 [[스티커]]가 붙은 가게에서만 물건을 사야 한다는 식이다.
  • 류현경 . . . . 2회 일치
         * [[SBS]] 설날특집극 《[[곰탕 (드라마)|곰탕]]》 (1996) - 어린 녀 역
         * [[tvN]] 금토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2015) - 강원영 경 역
  • 마기/316화 . . . . 2회 일치
          * 신드바드는 알라딘에게 히 "패배선언"을 한다.
  • 마기/323화 . . . . 2회 일치
          * 그는 알마트란 시절, 솔로몬이 그를 물리치던 시절부터 이 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럴 없어. 이건 솔로몬의 의지에 벗어나."
  • 마기/332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단호한 태도로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를 설득하고 모르지아나의 동요를 끌어낸다. 그러나 루프에 속박을 벗어날 없다.
          * 알리바바는 공감하면서도 성궁이 무너지면 세상의 환체계가 망가져 새로운 생명도 태어나지 않는거 아니냐고 질문한다. 하지만 알라딘은 그럴 우려가 없다며, 전세계가 "암흑대륙"처럼되는 거라고 말한다.
  • 마기/339화 . . . . 2회 일치
          * 두 번째 전신마장 "베리알"을 사용한 백룡. 바레포르의 꼬리를 파괴한 것도 베리알의 힘이었다. 신드바드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여유로운 태도로 돌아간다. 그리고 꼬리의 썩은 부분을 잘라버리더니 식간에 재생해 버린다. 베리알이 썩힌 꼬리를 간단하게 재생하는걸 보자 백룡은 보통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백룡이 단한 자학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여러 동강 내서 그것들을 풍경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뿌린다.
  • 마기/340화 . . . . 2회 일치
          그렇게 답하자 백룡은 "그럼 자신 외엔 동료를 믿지 않는것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신드바드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은 동료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룡은 그의 모점을 집요하게 짚어낸다.
          그 간 알라딘이 말했던 대로 모든 의문이 풀린다.
  • 마기/342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은 신드바드의 말을 듣고 그가 세상에 절망한 진짜 이유를 깨닫는데, 그건 사회적 모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모" 때문이었다.
  • 마기/348화 . . . . 2회 일치
          * 신드바드와 알라딘이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그 개혁안은 어떤 것일까? 알리바바는 둘의 차이부터 지목한다. 우선 신드바드는 세상을 수직 구조로 보고 "세로로 연결하는 작전"이다. 계속 천장을 뚫고 올라가 거기서 운명을 쥐고 있는 신을 쳐부다, 더이상 쳐부술 신이 없을 때까지 그걸 반복한다. 결과적으론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가 사라지지만 모든 생명이 루프로 환원된다. 알라딘이 맞장구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데, 알리바바는 일단 제지하고 자신의 설명을 이어간다.
          * 그의 "대마법"은 차원과 차원을 간적으로 연결하는 마법이었다. 이론적으론 일 일라가 있는 차원 조차 현세로 연결할 수 있고, 알리바바 자신이 실증했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말한다. 그의 주장은 마치 파르테비아의 고층건물처럼 높은 건물을 1층부터 꼭대기까지 주파하는 식이다. 대마법을 사용한다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층 그 자체"를 없앨 수 있으니까. 각 층의 천장이 없어지면 맨 꼭대기에 있던 존재 조차 "같은 층"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모두 같은 층에 있게 되면 누가 누구의 운명을 쥐고 있는건 불가능하다. 신드바드의 방법은 "거대한 힘"이 필요한 반면, 알리바바의 방법은 적은 힘으로도 가능성이 있다.
  • 마재윤 . . . . 2회 일치
         3 해처리 운용을 기반으로 한 '운영형 저그'의 완성을 이끌어냈으며, 단히 전성기 기량과 커리어를 바탕으로만 본다면 '최고의 저그'로 평가받을 수 있으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하여 이 평가는 적절치 않게 되었다.
         이후에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 이어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도 예선전에서 떨어졌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는 [[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신예 [[임원기]]를 잡고 복귀했지만, 32강 최종전에서 이윤열에게 또다시 패배하면서 16강 진출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다시 32강에 진출, 사상 유례없는 MSL 11연속 진출을 달성했다<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90893&db=news [[포모스]], 2008년 12월 18일]</ref>(KPGA시절까지 포함하면 이윤열, 조용호등이 있으나 수 MSL만 따질 경우 마재윤이 최초이다). 2008년 10월 11일에 펼쳐진 블리즈컨 2008에서는 [[박지수]]와 [[허영무]]를 잡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12일에 치러진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만나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블리즈컨 2연속 제패에 성공했다.
  • 문문 . . . . 2회 일치
         '''한때 '비행운', 'Mom', '결혼' 등 여러 명곡과 매력적인 음색으로 촉망 받으며 미래가 기대되던 싱어송라이터 중 하나였으나 [[디스패치|한 언론의 기사]]에 의해 과거 성범죄 사실이 드러나며 한간에 몰락하게 된 인물.'''
         ||<rowbgcolor=white> 04 || 복씨 || 4분 27초 ||<|2> 문문, 모은 ||
  • 문희옥 . . . . 2회 일치
         1991년 엔카 풍의 정통 트로트 <성은 김이요>를 발표했는데 때마침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김씨 후보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당시 선거 유세장에서는 가사 바꿔부르기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OO 알파벳 약자로 OO이지요.~~ 1990년대 문희옥은 <정>, <해변의 첫 사랑> 등을 히트시키며 다시 한 번 트로트 여제로 군림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락]], [[댄스]] 음악이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의 세를 확장해 나가자 포크, 트로트 음악은 점차 슬럼에 빠졌고 그 중 문희옥의 방송 비중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 1993년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2회 일치
         그러나 이후 바실레이오스는 미카엘과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데, 미카엘이 국정에 흥미를 읽고 전차 경주나 술에 열중해 있었고, 에우도키아 문제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건 바실레이오스의 야망이 단한 공동황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을것이다. 결국 867년에 바실레이오스는 미카엘을 암살하고 단독 황위에 오른다
         이후 그는 건축사업에 착수하는데, 우선은 성 소피아 성당과 성 바울 성당을 보강했고, 이후 '네아 바실리카'라 불리는 그의 걸작품인 성당을 축조한다. 이 성당은 바실레이오스의 성 소피아 성당이라 할 수 있는데, 금을 입힌 돔은 도시밖에서도 보였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돔내부에는 예수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으며, 그외에 천사, 대천사, 교자, 사도 등등이 묘사된 모자이크가 실내 곳곳을 장식했다. 성상 칸막에는 금은과 보석들이 장식도 있었고, 주제단은 '금보다 더 귀한 금속으로'장식되 있었다고 하며, 은을 입힌 닫집 기둥[* 중간을 오목하게 파서 장식한 기둥]이 성당주위를 둘렀다. 그외에도 그는 금고와 목욕탕, 트리클리니움[* 침상이 구비된 식당]을 많이 지었으며 칼케대문과 도시의 수많은 궁전들을 보수하고 일일이 장식했다. 말그대로 그의 치세에 도시는 전성기를 열었다.
  • 바키도/129화 . . . . 2회 일치
          *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다가가는데 한 간의 방심으로 무사시의 일섬을 허용하고 마는데.
          * 무사시는 식간에 창을 잘라버리면서 "50점도 아깝다"고 생각한다.
  • 바키도/135화 . . . . 2회 일치
          격한 흥분 속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이 "개똥같은 관례"를 종결지을 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텔 최상층에 당도한 간, "그"를 목격한 간 확신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바키도/136화 . . . . 2회 일치
          * 무사시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아나운서는 화들짝 놀라며 "맞는 말이긴 하다"고 당황한다. 하지만 거기서 자중하지 않고 경망스런 말투로 "보통은 400년 전 검호라 하면 의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그 간이다. 아나운서의 왼팔이 떨어진다. 무사시의 에어참격이다. 바키와 같은 격투가는 물론이고 문외한인 아나운서조차 "베여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는다.
          * 무사시는 이걸로 "실물"을 받아들였냐고 묻는다. 아나운서는 자신이 당한 참격을 시청자에게 설명하는데 그 간 또 에어참격이 날아온다. 이번엔 목이다. 아나운서는 식은 땀을 흘린다.
  • 박고은 . . . . 2회 일치
         '''박고은'''(박채경, [[1988년]] [[1월 1일]] ~ [[전라북도]] [[창군]])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모델이다.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창군 출신]]
  • 박동진 (1922년) . . . . 2회 일치
         |전임자 = [[김재 (정치인)|김재]](10대 정무차관)<br/>[[이수영 (1921년)|이수영]](10대 사무차관)
  • 박성환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프로 입단 연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10차 10라운드 (전체 100위)([[두산 베어스]])
         '''박성환'''(朴成桓, [[1998년]] [[5월 18일]] ~ )은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며 좌완 투수로 2017년에 2차 10라운드(전체 100위)로 입단하여 현재 육성선수이다.
  • 박승임 . . . . 2회 일치
         대사간 재직 중 [[서인]]의 영수이던 [[이이]]와 [[박 (조선)|박]]의 당론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창원 부사(昌原府使)로 좌천당하였다.
  • 박승호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1차 2위]]([[삼성 라이온즈]])
  • 박인태 . . . . 2회 일치
         | KBL 지명위 = 5
         201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5위로 창원 LG 세이커스에 지명되었다.
  • 박재현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6년]] 2차 4위([[쌍방울 레이더스]])
  • 박정민(배우) . . . . 2회 일치
         || [[정(영화)|정]] || 조연 || 용수 || 23만 명 || 실패 ||
  • 박정철(배우) . . . . 2회 일치
          * 2002년 SBS [[수의 시대#s-3|수의 시대]] - 동화
  • 박준홍 . . . . 2회 일치
         || [[김윤하]](35대~37대) || → || '''박준홍'''(38대) || → || [[최영(기업인)|최영]](39대~44대) ||
  • 박진영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5차 3라운드([[KIA 타이거즈]])
         2008년 2차 3위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2008년 포스트시즌 탈락 이후 후반 신예들을 주로 기용한다는 [[조범현]] KIA 감독의 방침에 의해 9월부터 김종국과 함께 주로 2루수로 기용되어, 26타수 8안타 0.308 타율를 기록하였다.<ref>[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layer.asp?player_id=78606 박진영 기록 페이지, 한국야구위원회]</ref>. 상무에서 퓨처스리그 등 2군 리그에서 주로 활약하다 2012년 시즌 이후 팀에서 방출당한다.
  • 박화요비 . . . . 2회 일치
         본명은 박미영[* [[마망|마골피]]와 본명이 같다.]이었다가 박레아로 개명했다. 예명 역시 (박효신 1집 등에 피처링하던 시절에는) 박노미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은 '이름을 지은 날(화요일)과 R&B의 B'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와 '화요일에 내리는 비'의 줄임말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비란 말이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 1982년 2월 11일은 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었다. ~~목요비~~] 2000년 8월 19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본인 얘기로는 화요일에 이름을 지은 것에서 '화요'를 따왔고, R&B를 부르기 때문에 '비'를 따왔다고 한다. ~~힙합이었으면 화요합~~ (출처: [[https://youtu.be/vvcat903c44]], 박효신과 함께 나온다.)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2017년 11월 중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을 바꾸어 활동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도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이 바뀌어있다.
         이전의 예능 출연에 비해 더더욱 대중적인 알림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2008년 한가위 특집부터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지고지(?)한 여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특유의 말투와 캐릭터성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로, 무뚝뚝한 남자인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상블은 팬들 입장에서보면 거의 환상 그 자체였다. 환희의 다소 마초적인 모습까지 화요비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상승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이래저래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던 셈. 이후 [[언터쳐블(가수)|언터쳐블]]의 [[슬리피]]와 연애 사실이 알려지며 '가상결혼'에 대한 진실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 백낙청 . . . . 2회 일치
         * 큰어머니 : 안숙온( ? ~ [[1927년]]), 흥안씨(順興安氏) 안병탁(安炳卓)의 딸
         ** 누나 : 백영(白純英, [[1936년]] ~ )
  • 백남순 (1929년) . . . . 2회 일치
         '''백남'''(白南淳, [[1929년]] [[3월 13일]] ~ [[2007년]] [[1월 3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정치가]]로 [[조선로동당]]원이다.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처음 남한을 방문하였고, 이후 [[남북회담]]에서 수차 모습을 나타내는 등 대남협상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지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103MW200805158998 백남 북한 외무상 사망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폴란드]]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1989년]]에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취임했다.
  • 백상원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0년]]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단국대학교]] 졸업 후 [[2010년]]에 4라운드(전체 28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2010년]] 퓨처스 리그 개막 때부터 4월 말까지 56타수 3안타로 매우 부진해 그 해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력한 끝에 남부 리그 [[수위 타자]]가 되었다.
  • 변정수(배우) . . . . 2회 일치
          * SBS [[불량 커플]](2007) - 나돌
          * SBS [[언니는 살아있다!]](2017) - [[구필]]
  • 부모교실 . . . . 2회 일치
         교육으로는 출산의 서, 임신 체조나 호흡법을 실기 교육, 영양이나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법에 대한 지도 등이 있다. 아버지의 경우, [[임산부]]의 배와 같은 무게의 덩어리를 배에 매달고 활동하여 임산부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교육 등이 실시되기도 한다.
         본래 과거에 이 같은 교육은 윗 세대에서 아래 세대로 가정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현대 사회에서 핵가족화, 개인주의화를 거치면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을 꺼리거나 할 수 없는 경우가 늘었으며, 단히 부모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 만이 아니라 올바르고 과학적인 정보를 장래 부모가 될 사람들에게 교육할 수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초엽 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북유럽 신화 . . . . 2회 일치
          * 에인헤야르 : 오딘이 모은 전사. 오딘은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지만, 어느 간 때가 되었다 싶으면 [[발키리]]를 보내서 강제로 [[전사]]시켜 버리고 영혼을 끌고 오는데 이것이 에인헤야르이다. 발할라라는 [[무간지옥]]에서 매일매일 싸우다 죽고 싸우다 죽는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라그나로크가 오면 삭당할 운명이지만 자신들은 싸움을 실컷 하고 저녁에 술과 고기와 여자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으며 '[[오늘만 산다|오늘만 사는]]' 가치관의 사람들.
  • 분류:전라남도 출신 인물 . . . . 2회 일치
         [[분류:천시 출신 인물]]
         [[분류:화군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100화 . . . . 2회 일치
          자신이 그 말을 했었다는걸 알고 있다. 그 간 아스타는 아까와는 달리 십자가의 밑둥을 잘라서 노엘을 해방시킨다. 마녀왕은 뭔가 잘못됐다는걸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스타는 여전히 조종당하는 상태.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노엘을 다시금 공격한다. 그때 또 한 번 고양이가 달려와 아스타에게 닿는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아스타의 검은 노엘의 가슴을 관통하고, 마녀왕은 이번에야 말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 그녀의 우위는 한 간도 지속되지 못했다. 고양이가 여왕의 이마를 건드린다. 그러자 꼭두각시의 혈조는 물론 그녀가 전개하고 있던 모든 마법이 해체되어 버린다. 그건 저항할 수 있는 성질의 힘이 아니다. 마녀왕은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의 완벽한 마법이 조종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여기지만, 결과는 분명하다.
  • 블랙 클로버/104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를 적당히 던져좋은 솔은 원래 목적대로 자신이 구해온 드레스를 샬롯에게 입힌다. 샬롯은 남자한테는 과격하지만 여자끼리는 약한지 히 그 옷을 갈아입어준다. 솔과 아스타를 비롯해 구경꾼들이 그녀의 드레스 차림을 칭송한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레오폴트는 이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비결을 파악했다. 단장들은 마력을 상시 몸에 두르고 있었다. 강마지대라 마나가 안정되지 않는 곳임에도 일사분란하게 마력을 방출하고 있다. 사실 마법기사들에겐 기본기와 같은 마법이다. 이른바 "마나 스킨". 어떤 타입이든 간에 조금씩은 마나를 방출, 몸에 둘러서 여러가지로 응용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시적으로 쓰는 것이며 이런 험난한 환경에서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원들은 레오폴트의 분석에 감탄하면서도 그렇게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레오폴트는 "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조금씩 감각을 익혀가면서 마나를 응시킨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레오폴트가 먼저 마나스킨을 방출하며 의욕을 표출한다. 그의를 따라서 단원들도 의욕을 보이며 각자 마나스킨을 펼친다.
          * 통찰력에선 조금 늦었지만 유노도 레오폴트의 방법을 따른다. 곧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바람의 마나로 마나스킨을 전개, 심지어 시원하고 쾌적하게 등반할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식간에 일행을 앞질러 가며 아스타에게 "내가 온천에서 뻗기 전에 올라와라"고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레오폴트도 아스타에게 먼저간다며 유노의 뒤를 쫓고 마론도 "샬롯과 온천에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마나스킨을 유지하며 아득바득 발을 옮긴다.
  • 블랙 클로버/111화 . . . . 2회 일치
          그런데 한 군데서 온수가 샘솟더니 곧 거대한 천연 온천욕장이 생긴다. [[솔 마론]]은 "[[샬롯 로즈레이|언니]]의 알몸을 더러운 남자들에게 보일 없다"는 일념으로 기력을 짜내 흙마법으로 온천욕장을 가로지르는 칸막이를 생성한다. 이후 전원 온천 입장.
          * 남탕 쪽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를 상대로 시시한 경쟁심을 발동했다. 그의 쿨한 태도를 무너뜨려 주겠다고 물온도를 올려대기 시작한 것. 레오폴트가 나름대로 용을 쓰는데 유노는 빰을 뻘뻘 흘리면서도 "완전 괜찮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끼어들어서 그 허세를 폭로한다. 쿨한게 아니라 단히 지는게 싫은 성격. 그렇게 까발린 주제에 자기도 지고 싶지 않다며 참기 대결에 끼어든다. 정작 유노는 바람 마법으로 물을 식히다가 적발, 자기도 마법의 힘을 쓰는 건데 뭐가 잘못됐냐고 뻔뻔하게 나온다.
  • 블랙 클로버/119화 . . . . 2회 일치
          * K팀을 공격하서 나섰던 로브는 놀라운 기동성으로 한간에 크리스탈을 지키러 오지만 격투전에선 락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패배, 크리스탈도 파괴된다.
          * 이제 6회전 시합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난타전이었다. 양팀 모두 필드 중앙에 진출해 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육박전에 돌입했다. 클라우스 류넷은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돌적인 싸움에 나섰다. 적 마법기사가 공격을 가하자 자신의 강철 마법으로 방벽을 세워 막았다. 하지만 부정형의 액체를 다루는 적의 마법은 방벽을 돌아서 크리스탈을 덮쳤다. 이때 잽싸게 움직인 것이 락 볼티어. 크리스탈을 옆구리에 끼고 적을 뛰어넘었다. 아스타는 그의 마법 형태가 바뀐 걸 눈치챘다. [[매그너 스윙]]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모어에 추가 페이지를 채워넣어서 모습을 강화한 거라고 한다. 그 위력은 보는 그대로였다. 락은 크리스탈을 가진 채로 필드 중앙을 안마당처럼 누볐다. 거의 활공에 가까운 점프를 거듭하며 건물 뒤에 숨은 적 크리스탈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의 장기인 벼락 마법 "진뢰의 붕옥". 백병전 타입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위력과 탄속을 자랑하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근, 원거리를 가리지 않는 공격력. 필드 바깥의 선수들이 "하급 기사의 실력이 아니다"고 하나같이 감탄하는 가운데 매그너는 자신도 락도 [[야미 스케히로]]에게 몇 달에 걸쳐 지겹게 부려먹힘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한다.
  • 블랙 클로버/130화 . . . . 2회 일치
          * [[잭스 류그너]]는 자해를 감수하며 감행한 작전으로 [[랜길스 보드]]의 공간마법이 반사된다. 반사된 마법은 위력이 배가되어 시전자인 랜길스를 향해 날아가고. 궁지에 몰린 랜길스는 마법제 율리우스 조차 예상치 못한 저력을 발휘한다. 튕겨나온 마법을 모조리 공간마법으로 요격해 버린 것. 마력을 지금까지보다 두 배 이상 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말이었다. [[클라우스 류넷]]은 그 저력에 경악하는 한편 그의 마력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데.
          아스타는 그대로 공격을 뚫고 랜길스를 강타했다. 랜길스는 공격에 당하는 간 더이상 마력이 나오지 않는 걸 알고 당황했지만 늦었다. 아스타는 그대로 뻗어나가 크리스탈에 랜길스를 처박으며 양단, 승리를 거머쥔다.
  • 블랙 클로버/54화 . . . . 2회 일치
          * 야미는 그런 벤전스를 감싸다 "그치만 빛마법은 힘들지?"라고 묻는데, 벤전스는 히 "그렇다"고 답한다
  • 블랙 클로버/63화 . . . . 2회 일치
          * 같은 방식으로 락과 매그너도 식간에 박살내 버린다.
          * 베토의 짐승마법은 단한 신체강화 마법이 아니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가 간적으로 일어나 역습을 가하는데 베토는 가볍게 쳐낸다.
          * 베토는 이들의 마법을 장난수준이라 격하하며 "유대라면 우리에게도 있다. 너희가 부 피의 유대와 황금의 꿈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뱉는다.
  • 블랙 클로버/74화 . . . . 2회 일치
          * 마석을 수령한 마법제는 검은 폭우의 노고를 치하하고 해안에서 백야의 마안과 격돌해 직한 마법기사단을 애도한다.
          * 키탄은 요충지이므로 함락되는 간 다이아몬드 왕국의 침공은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 블랙 클로버/75화 . . . . 2회 일치
          * 키텐의 수비 병력은 손쉽게 격파 당하고 위기의 간 금색의 여명이 도착한다.
          * 이때를 기회로 삼아 다이아몬드 왕국의 병력이 진격. 도시는 식간에 위기에 처한다.
  • 블랙 클로버/84화 . . . . 2회 일치
          * 노엘 실버는 우두커니 있는 여왕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다이아몬드의 침략군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것. 그녀는 아스타는 강하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니 저주를 풀어달라고 말한다. 게다가 아스타가 침략군과 싸운다면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도 힘을 빌려줄 테니 전력보강이 될 거라고 설득한다. "여왕이라면 이 숲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해." 여왕은 그것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히 아스타의 저주를 풀어주고 전보다 튼튼하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 블랙 클로버/90화 . . . . 2회 일치
          * 젤은 라드로스를 바람 마법으로 구속한다. 그러나 그의 기억상으론 라드로스는 육체 강화 마법이 전문. 오래 묶어둘 없었다. 그대로 전력을 다 한 큰 기술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데.
          하지만 라드로스에게 타격을 입힐 없었고 그는 젤에게 과시하듯 도미나를 죽이려 한다. 그가 도미나를 높이 던지더니 강력한 마력을 방출한다.
  • 블랙 클로버/97화 . . . . 2회 일치
          * 지금 아스타는 반마법의 힘 자체가 빙의한 상태로 마력이 없는 "단한 결함품"으로 태어난 아스타만이 가능하다.
          * 여왕은 사실 그가 "녀석"의 혈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게 아니었다. 아스타는 "돌연변이". 몸에 마나가 깃들지 않은 "단한 결함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마의 검을 쥐고 그 힘을 끌어내는게 가능했다.
  • 블리치/676화 . . . . 2회 일치
          * 아스킨은 기프트 링이랑 기술로 우라하라를 공격한다. 날아오던 고리가 일 사라지더니 우라하라의 안구에서 나타난다
          * 눈을 잃고 궁지에 몰리지만 그 간 우라하라는 만해 "관음개홍희 개"를 해방한다
  • 블리치/677화 . . . . 2회 일치
          * 우라하라 키스케의 만해는 "고쳐 만드는 능력". 일정한 영역 안에서 무엇이든 고치거나 갈라진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아스킨의 몸을 식간에 갈라버렸고 자신의 상처는 식간에 고쳤다. 마치 실로 봉합한 듯한 모양.
  • 블리치/679화 . . . . 2회 일치
          * 켄파치는 호프눙의 일격을 받아쳐내는데, 그 간 호프눙의 날이 빠지고 갑자기 켄파치의 배가 갈라진다.
          * 여전히 무슨 능력인지 알 수가 없다. 단히 베어버리는 것 같은데...--그럼 해방 하나 안 하나 아무 차이도 없잖아--
  • 블리치/696화 . . . . 2회 일치
          * 그 간 천쇄참월이 깨지고 시해 "참월"이 등장, 유하바하는 이것이야 말로 자신이 봤던 "미래"임을 깨닫는다.
          * 마지막 간 하쉬발트를 떠올리는 유하바하.
  • 서림 . . . . 2회 일치
         황해도 경사(黃海道巡警使) 이사증(李思曾)이 임꺽정의 형 가도치(加都致)를 허위로 임꺽정이라고 속여서, 임꺽정을 체포하였다고 조정에 알렸다. 그런데 서림이 체포당한 가도치와 대질하여 그의 정체를 알렸기 때문에 이사증은 오히려 벌을 받게 된다.
          * 서림산 서림장군 전설 : 충남 천안에 서림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은 '서림장군'이라는 장군이 있었다는 곳이라 한다. 이를 서림의 이름과 연관하여 보기도 하는데, 단히 이름의 일치에 불과한 전설이라 그리 확실한 건 아니다.[[http://www.oneclick.or.kr/bbs/boardView.do?id=81&bIdx=60757&page=1&menuId=134&bc=0 (참조)]]
  • 서상일 . . . . 2회 일치
          결국 1954년 이승만의 3선저지를 위해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던 서상일은 [[박기출]], [[장택상]] 등과 함께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반대하는 [[조병옥]], [[김준연]], [[장면]], [[박천]] 등에게 항의하고[[호헌동지회]]를 탈퇴했다.그런데 그후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조봉암이 원래 서상일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기로 했던 두 사람간의 밀약을 깨고 조봉암 자신이 대통령후보로 나서려하자 이때문에 심기가 상한 서상일은 조봉암과 사실상 결별의 수에 들어가 후일자신을 당 대표로 한 민주혁신당을 창당하였다
  • 서유정(배우) . . . . 2회 일치
          * 2017년 SBS 주말극장 [[우리 갑이]]
          * [[위 정하는 여자]]
  • 서윤아(배우) . . . . 2회 일치
         |2004||MBC||한 간||||
         |2012||KBS2||[[각시탈 (드라마)|각시탈]]||계||
  • 소지섭 . . . . 2회 일치
         * 소지섭은 연예계 데뷔 전에 [[수영]] 선수였다. 실제 그는 수영으로 전국소년체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경험이 있으며, 개인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경력이 있다.<ref>[http://wstar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7&c1=07&c2=07&c3=00&nkey=201206181512311&mode=sub_view 소지섭 졸업사진, 수한 소년이! “내성적이었을 때 만났어야 했는데…”- 한경닷컴<!-- 봇이 따온 제목 -->]</ref>
         ! 최고 차트 <br>
  • 손치은 . . . . 2회 일치
         [[1932년]]에 [[경상북도]] 안동경찰서에서 사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일본인 경찰관이 살해되고 조선인 청년 5명이 용의자로 체포된 일이 발생했다. 이때 손치은이 무료로 변호를 맡아 이들이 무죄임을 밝혀냈다.<ref>{{저널 인용
         |제목=[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⑫] 안동 가와카미(川上) 사 살해사건
  • 송원근(배우) . . . . 2회 일치
          * [[2017년]] [[힘쎈여자 도봉]] - 연극배우 송원근 역(특별출연)
          * [[블랙 메리 포핀스]]에서 ~~치명적인~~ 대사 실수를 했다. 원래 "형의 치명적인 모이 뭔지 알아?" 라는 대사를 "형의 치명적인 매력이 뭔지 알아?" 라 쳐버린 것. 홈커밍데이에서 이에 대한 해명을 했는데 연습을 할 때 대사 실수를 한 게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한다.
  • 송재호(배우) . . . . 2회 일치
          * [[그때 그 사람들]] - [[박정희|각하]] 역[* [[박정희]]를 대놓고 풍자한 역할이라는 점에서 후에 보인 정치색과는 다소 상반된 연기를 한 것이다. (물론 [[박정희]]는 싫어하고 [[박근혜]]를 좋아하는 것은 가능하다.) --2016년 이후로 좋아하긴 [[최실 게이트|어려워졌다]]...--]
          * [[상도(드라마)|상도]] - 임봉핵[* 임상옥([[이재룡]])의 아버지. 역관(통역사)이 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들을 위해 장사에 뛰어들었으나, 송상 대방 박주명([[이재]] 분)의 음모에 휘말려 참수당한다.]
  • 송정현 . . . . 2회 일치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상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진 영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남, 9년 만에 FA컵 품었다…송정현·김태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컵 2연패 가능케 한 전남의 영웅 ]</ref>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반기 단발 계약]</ref>
         [[2008년]]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역대 최고령 [[A매치]] 데뷔 위 4위에 올랐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general/2008/1012/20081012101020300000000_6108091842.html 허정무호 12경기 연속 무패…송정현 역대 최고령 데뷔 4위 ]</ref>
  • 송진현 . . . . 2회 일치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항소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0월 24일에 [[인천역]]에서 다른 승객이 놓고 간 35000원 상당의 공구함을 들고가다 붙잡힌 피고인에 대해 "지하철이 종착역에 도착한 간부터 점유권이 지하철공사에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징역10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f> 1998년 1월 10일에 일반음식점 영업 허가없이 통조림, 캔류 등 안주류를 파는 24시간 편의방을 운영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1월 11일자</ref> 1999년 1월 10일에 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줘 공문서 부정행사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정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운전면허증을신분증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9년 1월 11일</ref> 4월 24일에 서울대 캠퍼스에서 집단 농성을 주도한 한국통신 서울본부 위원장에 대해 "서울대 총장이 한국통신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학내 출입을 금지했음에도 무단 진입했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4월 26일자</ref> 5월 17일에 [[한총련]] 범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위반과 건조물 침입죄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1년이 선고된 노래패 '희망새에 대해 단장 조모씨(31세)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라고 하더라도 공연의 목적으로 참석했고 구호를 외치거나 연설을 하는 등 집회,시위를 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집시법]]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5월 18일자</ref> 10월 7일에 폭력배를 동원해 채무 해결사 노릇을 했던 [[홍수환]]에 대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부탁으로 후배를 연결해준 점은 인정되지만 채권을 회수하기로 후배와 공모한 일은 그 뒤에 이뤄져 피고인이 개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10월 8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수애 . . . . 2회 일치
         영화에서는 2004년 영화 《[[가족 (2004년 영화)|가족]]》으로 스크린에 데뷔하였고, 2008년 영화 《[[님은 먼 곳에 (영화)|님은 먼 곳에]]》에서 [[베트남 전쟁]]에 파병 간 남편([[엄태웅]] 분)을 찾으러 간 이 역을 연기하여 대종상, 영평상, 부일영화상, 황금촬영상 여우주연상을, 2010년 작품 [[심야의 FM]]으로 청룡영화상, 대한민국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이/써니
  • 식극의 소마/174화 . . . . 2회 일치
          * 시험은 단히 아자미의 조리법을 재현하는 걸로 진행되고 학생들은 의미도 모르면서 조리법을 답습하는데 급급하다.
          * 비결은 브라인 냉동법. 아리스가 설명하길 "브라인 용액"이라는 0도 이하에서도 얼지 않는 용액으로 간 급랭하여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는 "시간을 멈추는 냉동법"
  • 식극의 소마/176화 . . . . 2회 일치
          * 이번 시험도 조별로 치뤄지는데 학교측은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조부터 차적으로 출발시킨다.
          *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번이 밀리는 반역자 그룹.
  • 식극의 소마/202화 . . . . 2회 일치
          * 한편 아자미는 양측의 열차가 교체하는 간 접촉해 연대식극의 세부 룰을 정리하자고 계획을 잡는다.
          * 에리나는 이 모양이면 제대로된 요리가 나올리가 없다며 번뇌한다. 이젠 소마의 생각도 전혀 읽을 수가 없어서 에리나는 반쯤 포기 상태에 이른다. 그 간 에리나는 발상을 전환한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2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의 상대 [[키노쿠니 네네]]는 주전공은 일식. 하지만 메뉴가 뭐든 소마를 쳐부다고 소마에게 메뉴를 선택하게 한다.
          * [[나키리 에리나]]는 네네에 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복기한다. 주력 요리는 일식 전반이며 특히 "소바"에 관해선 적수가 없는 달인이다. 본가는 칸다에서 소바가게를 하고 있으며 "에도 소바"의 전통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초일류 가게. 그런 본가에서 어려서부터 일식의 정수를 교육받은 그녀는 일식계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타쿠미 알디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거라 짐작하며 십걸로서 6석에 있었으니 단 비교로는 잇시키보다 위가 아닐까 추측한다.
  • 식극의 소마/212화 . . . . 2회 일치
          * 숨은 비결은 태백 참기름에 있는데 가열을 거의 하지 않고 수하게 참깨를 으깨서 만드는 무미, 무취에 가까운 매우 깔끔하고 점잖은 맛의 참기름이다.
          * 그런데 나란히 앉은 심사의원들 뒤에 용도불명의 책 무더기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유키히라 소마]]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왜 저런게 있냐"고 묻는다. [[안(식극의 소마)|안]]은 "지금까지 발행한 모든 교전"일 뿐이지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이 교전은 동서고금의 모든 미식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어 오늘 심사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가져왔다는데, 소마는 "저렇게 쌓아놓으면 찾기 힘들지 않냐"고 왠 일로 상식적인 지적을 한다. 여기에 대한 안의 답은 매우 모적이다.
  • 식극의 소마/218화 . . . . 2회 일치
          * 2라운드 대전자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 반역자의 대기실이 떠들썩하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건 [[나키리 아리스]]. 그녀는 [[사토시 잇시키]], [[메기시마 토스케]], [[쿠가 테루노리]]로 현재 낼 수 있는 최강 전력을 구성해 "최대 전력을 단번에 투입해 적을 빠르게 제압한다"는 이론을 주창한다. 그녀는 이 이론을 강조하기 위해 별 상관없는 수식까지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는 열성을 보였다. 여기에 대항해 [[마루이 젠지]]는 강한 카드를 식간에 소모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고했다. 상황을 보면서 전력을 온존하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 그 옆의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별 의견이 없다.
          * 동료들이 수읽기로 골몰하는 동안 쿠가는 돌발행동을 취했다. [[유키히라 소마]]는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그의 행동을 목격한다. 쿠가는 적측에 개인적으로 식극 신청을 하고 있었다. 다음 라운드에서 자신과 싸우자고. 그 상대는 [[츠카사 에이시]]. 십걸의 제 1석. 상대방은 물론 현재 연대식극 참가자 중 최강자다. 쿠가는 방금 전까지 촐랑거리고 있더니 승부를 신청하는 이 간, 전에 없이 진지하다. 그걸 받은 츠카사 또한 푼수떼기같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을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 소마는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모퉁이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본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마지막 멤버로 연락했던 메기시마는 단칼에 거절, 조롭게 멤버를 모으던 소마팀에 걸림돌이 된다.
          단칼에 거절하는 메기시마. 소마와 메구미의 분위기가 식간에 썰렁해진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2회 일치
          * [[나키리 에리나]]는 방금 전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한 말을 쌩뚱맞게 여긴다. 연대식극 참가자를 조롭게 모집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멤버 [[메기시마 토시케]]에게 거절 당하고 말았다. 그를 꼭 동료오 넣고 싶었던 소마가 전화로 거절 당하는건 납득할 수 없다며 그를 방문해서 다시금 동료권유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메구미도 같은 생각. [[잇시키 사토시]]가 전해준 정보로는 메기시마도 홋카이도에 와있다. 진급시험 때문은 아닌 듯 하지만 무슨 사정이 있다고 한다. 마침 거리도 가깝다.
          하지만 거기서 승부는 끝이었다. 소마는 한 번 더 승부하자는 의미로 손가락 하나를 펼쳤지만, 방전된 것처럼 쓰러져 잠들고 만다. 그런 간에도 의지가 담긴 손가락 만큼은 꽂꽂하게 펼치고 있다. 그 손가락이 소마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 식극의 소마/224화 . . . . 2회 일치
          * [[쿠가 테루노리]]는 이 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마사카 스바루]]가 검은 액체가 든 병을 넘기자 대결의 주제 "녹차"에 손대기 시작한다.
          미마사카의 회심의 수.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는 카메라의 스트로보(플래쉬)가 번쩍이듯 간적으로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똑같은 장면을 재현한다. 복사 속도와 품질은 지금 본 대로. 이스트와르는 방금 설명으로 왜 미마사카가 쿠가의 서포트에 전력했는지 깨달았다. 이 방식을 사용한다면 조리를 구상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게 가능하다. 그건 사이토가 대신 해준 셈이니까. 그 남는 시간을 쿠가의 서포트에 전부 투자한 것이다.
  • 식극의 소마/225화 . . . . 2회 일치
          * 이사나키리를 쥔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그랬든 한 번의 기합으로 남은 참치해체를 단숨에 끝마친다. 사이토는 거기에 만족스러워하며 진짜 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따라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미마사카도 지지않고 그 태도에 대항한다. 둘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됐건 간에, 지금 둘은 깨끗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반역자들은 저 미마사카가 군소리없이 사이토의 권유를 받은 것에 놀란다. 그도 자기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렬한 요리사가 아닌가? 하지만 타쿠미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쿠가 테루노리]]처럼 체면 따위는 내던져놓은 것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필사의 노력. 그 말대로 사이토의 조리 간마다 미마사카의 눈이 빛을 내뿜었다. 끊임없는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 훈련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열차를 통제하는 진행요원이 소등시간을 한참 지났는데도 조리실에 불이 들어와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안에 있는 사람을 서둘러 객실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문을 여는 간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십걸 전원 분의 코스프레를 시도하고 있는 미마사카가. 린도나 츠카사, [[에이잔 에츠야]]와 키노쿠니, [[아카네가쿠보 모모]] 조차 재현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기가죽은 진행요원은 차마 아무 말도 못한 채 동상같이 굳었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2회 일치
          * 상황이 놀자판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없자 이쿠미가 에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에리나는 긴장해서 굳어 있는 것 보단 낫다고 했지만 트럼프에 끼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히 생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쿠미한테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아리스의 카드패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끼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사건건 훈수를 두다가 면박을 당했다. 아리스는 에리나를 떨궈낸 후 애꿎은 히사코를 건드렸다. 트럼프를 하고 싶지 않냐고 운을 띄우자 역시 이쪽도 과민반응이었다. 몹시 끼고 싶어했던 듯 하지만 "에리나 님의 특훈을 받고도 진 주제에 그럴 없다"는 네거티브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리스는 그런 생각을 하는건 이제 히사코 뿐이고 에리나도 아무 생각 없으니 잊어버리라고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 사이 대충 치던 것 같은 소마가 쿠로키바를 상대로 패가 나면서 판돈을 쓸어갔다. 따고 보니 제정신이 들었는지 소마가 슬슬 출발할 때라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직 십걸 멤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언급해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현
          * 메구미도 이 별명 놀이에서 빠져나갈 없었다. 모모는 그녀를 직접 거명해 "메구먕"으로 명명했다. "먕". 특히 좋아하는 별명. 모모는 그 별명을 붙여주며 "잘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차이는 메구미도, 소마나 타쿠미나 에리나도 알 수 있었다.
  • 식극의 소마/234화 . . . . 2회 일치
          * 타쿠미는 모두의 예상대로 시구레니를 얹은 피자를 만든다. 펼친 반죽 표면에 가볍게 소스를 바르고 시구레니와 흰파, 모짜렐라 치즈를 뿌린다. [[이사미 알디니]]가 보기에도 완벽한 작업. 이제 오븐에서 240도로 12분 간 구우면 끝이다. 그리고 조롭게 오븐에 투입. 이제 시간 문제다. 이렇게 상대가 완벽한 마무리에 돌입했으나 에이잔은 시종 여유롭다. 그는 문득 타쿠미에게 "네 피자는 아주 섬세한 요리 아니냐"고 물었다. 특히 오븐에서 꺼낸 뒤엔 맛을 조정하는게 어렵지 않냐고. 타쿠미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에이잔이 대뜸 말했다.
          시작부터 에이잔이 "미마사카에게 진 그 식극은 내 책임이 없다"는 둥 도발을 늘어놓는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사이토는 명백하게 분노한 티가 난다고 한다. 조롭게 조리를 마치고 최종공정에 들어갔을 때 에이잔이 아티초크를 이용한 함정을 공개하는데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이후에 에이잔이 "미마사카와 첫 승부 때 소마가 상대였으면 너와는 달리 극복했을 것"이라 모욕을 퍼붓지만 역시 무반응. 돌부처가 다 됐다.
  • 신귀식 . . . . 2회 일치
         * [[2001년]] [[KBS 1TV|KBS1]] 《[[태조 왕건 (드라마)|태조 왕건]]》... [[신라 경왕|신라 경왕 김부]] 역
  • 신동미 . . . . 2회 일치
         * 2016년 [[tvN]] 불금불토스페셜 《[[신데렐라와 네명의 기사]]》 ... 은하원의 엄마 한정
         * 2011년 《파라다이스 티켓》 ... 호
  • 신민아 . . . . 2회 일치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각종 패션잡지가 창간되고 '패션잡지 전성시대'였고, 10대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달별로 패션잡지를 사서 학교에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배두나]], [[김민희]], [[김효진]] 등 잡지 모델들의 인기도 상당했으며, cf모델등을 거쳐 연예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잡지 부록 경쟁도 한창 치열하여 다이어리, 화장품, 가방등 다양한 부록이 선보였다.] '키키'(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상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잡지(쎄씨, 신디더퍼키, 유행통신, 피가로 등)에 인기있는 모델로 얼굴을 도배했고, 촉촉한 초코칩, 네스카페, 코오롱 샴푸, 위스퍼, 매직 스테이션 등 tv광고도 수없이 많이 찍을 정도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대중에게는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 이 '당부' 뮤직비디오는 1999년에는 [[엠넷]]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영상음악대상]]에서 당시의 대세였던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쳐버리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다.] 로 "저 처자는 누구냐"는 반응을 끌어내며 얼굴을 널리 알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위를 알려주는 VJ로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되었다.
         ||2008||무림여대생||주연||소휘/옥 役||[[곽재용]]||3만 명||실패||
  • 신성우(가수) . . . . 2회 일치
         당시 활동에서 특이한 점은 타이틀곡으로 두 곡을 밀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카세트 테이프 기준 A면 첫번째 곡인 <기쁨이 될것을>,다른 하나는 B면 첫 번째 곡인 <'''서시'''>. 업템포에 경쾌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면서도 실험적인 성격이 있어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익히 알려진 서정성으로 금새 많은 인기를 끌었고, 결국 그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 (역대 가요 중에 좋은 가사를 뽑는 위에선 늘 상위에 랭크된다.) 그런데 묘하게 유명세를 잘 못타는 성격이 반영 되었는지 노래를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고 아는 사람들도 제목이나 가수는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참고로 <서시>도 신성우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는데 [[감자탕]]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기타리스트 이근상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친 멜로디를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 '''[[서시#s-3|서시]]''' : 2016년 현재에도 [[노래방]] 애창곡에서 최상위권 위를 자랑한다.
  • 아이유 . . . . 2회 일치
         ! scope="row" | [[최고다 이신]]
         | 이
  • 안기효 . . . . 2회 일치
         중반까지 위기를 잘 넘기는 듯 했으나, 역시나 부족한 멀티태스킹 능력과 판단미스, 발전투 등 미숙한 점을 드러내면서 식간에 게임이 말리고 결국 패배하면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8년 7월 트위치에서 리액션으로 인기가 대박나면서 트위치 방송 비율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트위치 유저들이 갑작스럽게 늘어나자 7월 17일 방송에서 트위치 유저들과 소통하던 중 영상 도네를 시도해보았고, 2017년도에 유행했던 자신의 클립을 보며 재밌다, 신세계를 발견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영상 도네에 적극적으로 리액션해주며 첫 날부터 수 많은 클립을 만들어냈다. 영상 도네 두 번째 날인 7월 18일에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트게더 핫클립 위를 싹쓸이하는 등 반응이 뜨겁다. 7월 20일에는 트위치 단독 송출을 하였고, 앞으로 플랫폼에 대해 고민이 많은거 같다.
  • 안병근 . . . . 2회 일치
         |코치 = 박진<ref>{{뉴스 인용|제목=「金」딴 LA현장 선수·코치·응원단 울음바다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0700209211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8-07&officeId=00020&pageNo=11&printNo=19337&publishType=00020|출판사=동아일보|저자=|쪽=|날짜=1984-08-07|확인날짜=2016-12-15}}</ref>
         |최고위 =
  • 안석환 . . . . 2회 일치
         * 2006년 [[KBS1]] TV소설 《[[옥이]]》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정에 반하다]]》 ... 마태석 역
  • 양예나 . . . . 2회 일치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은 나서는 일없이 말수가 적고 침착하며 조용한 편이고 감정 표현 또한 크지 않다. 하지만 발력과 체력을 담당하는 게임감만큼은 출중해 팀내에서 멤버 간 상대 승률이 가장 높은 편이다.
         oh no "이파트에서 역대급 청하고 아련하고 여리여리한 목소리를 냈다. 그 가냘프고 여리여리하고 포근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소속사 내에서도 인정 받았는지 도입부에서 후렴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파트를 하나씩 배정받아 어색함 없이 잘 소화해내고 있다. --그게 다인게 함정-- 때문에 보컬 파트에서의 활약도 팬들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있는 중. '동요구출작전'에서도 레이첼과 정반대의 음색으로 노래한다.
  • 양일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3년]] 1차 3위([[삼성 라이온즈]])
  • 오시만 . . . . 2회 일치
         1666년(현종 7) [[천시 (전라남도)|천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생원, 진사가 되었으며 그 뒤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그 뒤 [[음서 제도|음보]]로 관직에 올라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통덕랑으로 재직 중 1676년(숙종 2)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과 지평을 지내고, [[1679년]] 헌납(獻納)으로 있을 때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통훈대부]]로 승진하여 행[[홍문관]]수찬(修撰), 교리, 헌납 등을 역임하였으며 1680년 이조좌랑이 되었다가 [[경신대출척]]으포 파면되었다.
  • 오영식 (1967년) . . . . 2회 일치
         |전임자 = (강북구 갑)[[김원길]]<br />(강북구 을)[[조형]]
         |전임자 = [[홍만]]<br/>[[유재영]](사장 직무대행)
  • 오영실 . . . . 2회 일치
          * [[어머님은 내 며느리]] - 김염
          * [[모던파머]] - 김분 역
  • 오원 (조선) . . . . 2회 일치
         |자녀= [[오재]](吳載純)
         ****** 아들 : [[오재]](吳載純)
  • 오창경 . . . . 2회 일치
         * 《[[우리 생애 최고의 간]]》 (2008년) - 상열 역
         * 《[[역전의 명수]]》 (2005년) - 이 경 역
  • 오토메 . . . . 2회 일치
         소녀나 처녀. 다만 젊을 뿐만이 아니라, 더러운걸 모르게 진, 청하고, 고상하고 감수성이 높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사랑을 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연애 감수성 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 요괴:선풍기 . . . . 2회 일치
         나는 피해자들의 마지막 표시를 보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세 사람 분의 하얀 선들. 막상 그렇게 들어앉아 있다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더군요. 뭘 기대한 거야? 당연히 아무 것도 없지, 뭐하러 이런데 왔어...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시간은 벌써 3시가 가까웠고 침대에서 자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더군요. 그런데 마침 있더란 말입니다. 피해자가 쓰던 거지만. 그건 더운 바람을 토해내면서 돌아가고 있고 저는 멍청하게 방 가운데 앉아 있었죠. 아무 변화도 없는 방에서 아무 생각도 행동도 안 하면서. 졸린건 억지로 참으면서 말이죠. 미친 짓 같지만 이건 수사활동이다, 수사활동이다 하면서 어느 정도 버텼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자야 돼. 자면 어때 이런 생각으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언제라고 할 것도 없이 몸은 침대 위로 올라갔고 그대로 한동안 푹 잤습니다. 그건 찰차에서 자는 쪽잠 같은 거하곤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죠.
         그때까지도 나는 그게 문제를 일으킨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그저 이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침대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문까지 불과 한 평도 안 되는 거리를 기어가는데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그 바람. 뜨거운 바람이 계속 얼굴에 닿고 있는 거에요. 나는 침대에서 반대방향으로 기어가고 있었는데. 그리고 번쩍 생각이 났어요. 잠들기 전까지는 회전시켜 놨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침대를 향해 고정돼 있었다. 그 생각이 드는 간 벼락에 맞은 것 같았어요. 탈출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들었죠. 그래요 그놈은 또 거기에 있었어요. 마치 지키고 있는 것처럼 문 앞에요. 시야에는 돌아가는 날개만 보였지만, 나는 그걸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어요. 이쪽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게 가물거리는 시야에서는 마치 커다란 눈알처럼 보이더군요. 숨이 점점 막혀오는 데도 눈을 뗄 수 없더군요. 못으로 박아놓은 것처럼 멈춰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짜맞춰보려고 별별 가정을 다해봤어요. 하지만 침대 앞에 있던 선풍기가 문으로 가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저렇게 노려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이 될 리가 없었죠.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놈이 "행동"을 보여준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산통 다 깨졌다"고 본게 아니었을지 모르겠네요. 내가 깨어났다는걸 좀 늦게 알아차린 거에요. 그러고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범한 기계로 돌아간 척 했던 거죠.
  • 웃음 주머니 . . . . 2회 일치
         [[일본]]에서는 쇼와 45년(1970년) 무렵에 대유행 했다고 한다. 단한 장난감이지만 왠지 유행해서 1년 정도 일본 각지에서 널리 팔렸으나, 단한 장난감이었기 때문에 곧 유행은 사라졌다고 한다.「아오키 상회(青木商会)」라는 완구 제조업체에서 만든 것으로, 현재에는 법인명을 「아이코(アイコ)」로 변경하였으나 이후에도 발매했다고 한다.
  • 원 포 올 . . . . 2회 일치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상태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상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식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올마이트는 공격을 날릴 때마다 '''"SMASH!!"'''라고 외치며 단히 펀치 공격만이 아니라 어퍼컷, 로우 펀치, 손날치기, --[[오라오라]]--주먹 연발 러쉬까지 바리에이션이 다양하다. 바리에이션마다 미주리, 델라웨어 등 미국 주의 이름을 붙이는게 특징. 이즈쿠도 따라서 이런 명칭을 붙이는걸 보면 '''외웠나 보다.'''--역시 행동파 오타쿠--
  • 원피스/830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정작 빅맘이 히 놔줄지는 미지수.
  • 원피스/841화 . . . . 2회 일치
          * 상디는 오직 식사할 때만 가면을 벗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입주위만 느슨하게 하는 것이고 완전히 벗을 없다.
          * 정황으로 보면 기어4가 되는 동안 비스킷 병사를 부다->기어4가 끝나면 먹어서 체력회복->쿨타임되면 다시 기어4, 이런 식으로 싸운 듯.
  • 원피스/845화 . . . . 2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와 샬롯가의 다과회는 조롭게 진행. 샬롯 푸딩은 상디를 따로 불러내 사정을 전달한다.
          * 상디가 푸딩의 프로포즈를 들은 그 간, 루피는 빅맘의 군단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병사들은 쓰러뜨리고 있지만 군단의 이름있는 자들은 여유로워 보인다.
  • 원피스/855화 . . . . 2회 일치
          * 거울을 들여다 보며 발만 구르는데, 빅맘이 갑자기 눈을 뜬다. 하지만 단한 잠꼬대. 그때 마침 파리가 날아가고 빅맘이 잠결에 때려잡는다. 그 충격에 바닥이 박살나고 잠자던 프로메테우스, 제우스, 나폴레옹이 짜증을 부리며 소리가 난 곳을 공격한다. 정작 깨줬으면 하는 브룩은 잠깐 일어났다가 "뭐야 파리냐"하고 도로 잠들어 버린다. 속 터지는 상황에 빅맘의 엄청난 위력까지 목격한 일행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정작 브룩은 당연한걸 뭘 묻냐는 듯이 단하게 대답한다.
  • 원피스/860화 . . . . 2회 일치
          징베의 각오를 엿본 알라딘은 히 물러나며 징베 자신의 목숨도 소중히 지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인섬"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알라딘은 징베가 용궁 왕국을 지킬 사람을 필요로 하는걸 눈치챈 것이다. 뜻을 알아주는 오랜 친구에게, 징베는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알라딘은 그들 사이엔 그런건 필요없다며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다짐한다.
  • 원피스/861화 . . . . 2회 일치
          * 빅맘의 맞은 편, 다과회 테이블 위에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놓인다. 벳지의 정보대로다. 잔뜩 들떠 있던 빅맘이 이 간 만큼은 경건한 태도로 맞이한다.
          * 이윽고 빵빠레가 울리며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된다. 사회자의 선언에 따라 프로메테우스가 신랑신부를 태운 거대한 찻잔을 이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사회자는 이걸로 제르마와 빅맘 해적단이라는 악의 양가가 이어져 "세계에 악의 꽃이 미친듯이 피어나게 하리라"고 선언한다.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갈채와 환호가 어지럽게 폭발한다. 저지는 자신의 야망이 이루어지는 간을 바라보며 웃고, 빅맘은 남몰래 그런 저지를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본다.
  • 원피스/867화 . . . . 2회 일치
          양의 집 아이들은 카르멜이 불꽃을 향해 이름을 지어주고 "사라져라"고 명령하는 모습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봤다. 거인족들이 링링에게 셈라를 먹여서 진정시키는 동안, 카르멜은 자신의 영혼을 부여한 불꽃을 끌어모아 한 간에 소멸시킨다. 마치 빅맘의 "소울소울 열매" 능력자처럼.
          카르멜은 사라졌다. 양의 집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은퇴작인 링링을 남기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링링이 먹다 남긴 탁자와, 잔해들 뿐. 카르멜의 옷자락만 잔해들 사이에 섞여 남겨져 있다. 어리둥절한 링링은 주위를 둘러보다 혹시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간건가 싶어 양의 집으로 가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링링이 모르는 사이에. 크로캉붓슈를 신나게 먹어치우던 그 간에.
  • 원피스/869화 . . . . 2회 일치
          * 빅 파더는 단한 방어요새가 아니었다. 전신의 화기를 이용해 화력전을 펼칠 수 있고 이동도 가능한 기동요새. 벳지는 일행이 대피를 마치자 빅맘을 향해 포격을 날린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사탕벽, "캔디 월"이 빅맘을 방어한다. 페로스페로였다. 이치디에게 한 방 먹긴 했지만 그대로 쓰러질 인물이 아니었다. 빈스모크 일가도 빅 파더로 들어가는 걸 확인했고 이젠 모두 한 통속이라고 생각한다.
          * 이제 해적동맹은 빅맘 해적단에 둘러싸인 채 괴로운 "농성전" 상태로 돌입했다. 빅맘 측은 느긋해졌다. 어차피 퇴로의 퇴로까지 차단해버린 마당이니 서두를게 없다. 한숨 돌리며 상황을 정비한다 페로스페로는 나오는 서대로 처리할 생각으로 즐거워한다. 카타쿠리는 브륄레를 풀어주며 이제껏 이용당한 부분을 질책한다. 브륄레는 억울하다고 항변. 스무디는 레이쥬에게 당한 독을 짜낸다. 잠깐 교전했지만 성가신 상대라 생각한다.
  • 원피스/875화 . . . . 2회 일치
          * 써니호가 정박한 남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상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상까지 남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상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백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자리에는 빅맘 해적단만 있는게 아니었다. 잠수정으로 일행을 앞질러온 브룩과 쵸파도 그 광경을 보았다. 잠수정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써니호 앞에서 부상했다가 매복한 페로스페로 일당과 딱 마주쳤던 참이었다. 그런 간에 유혹의 숲에서 일어난 이변. 둘은 숲에 있을 일행을 걱정했다. 빅맘이 한 짓이기 아니긴 했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범위의 벼락이라 과연 일행이 무사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페로스페로는 아예 그들이 들으란 듯이 "일행이 죽은 모야이다"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둘에게 이제 어쩔 테냐고 물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배를 탈취하게 되더라도, 그 배에 태울 일행은 이제 없다. 페로스페로는 큰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지금 그 잠수정으로 달아난다면 둘은 봐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휘하의 체스병사들은 활로 브룩과 쵸파를 겨누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원피스/879화 . . . . 2회 일치
          * [[징베]]는 일행을 질타해 "앞으로 나아가라"던 페드로의 말을 상기시키고 토트랜드를 벗어나는 간까지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절체절명의 간이었다.
  • 원피스/881화 . . . . 2회 일치
          *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징베]]가 방법을 찾아낸다. 징베는 돛 하나를 밧줄로 연결해 조타수 노릇을 하면서 돛까지 조종한다. 징베의 목적은 "그린룸". 나미는 그게 뭔지 아는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 하고 나머지 일행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 징베는 설명보단 과감하게 행동에 돌입, 파도가 들이치는 간 그 속으로 돌진한다.
          * 그린룸이란 거대한 파도가 휘감기는 간 생기는 파도 속 공백지대, "파도의 방"이다. 어인족들이 놀이터처럼 이용하는 곳. 징베는 그곳으로 배를 몰고 있었다.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일행은 어리둥절하다. 징베는 멋진 배와 멋진 항해사가 있으니 조타만 좋다면 이 배는 무적이라며 그대로 그린 룸을 타고 파도를 가른다. 나미는 이만한 배를 수족처럼 다루는 징베의 조타 솜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무사히 항해를 계속하는 써니호. 하지만 빅맘 측은 써니호가 완전히 삼켜져 침몰했다고 착각한다. 빅맘이 파도를 일으켰을 땐 당황했던 페로스페로도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그는 그 소식을 전보벌레도 빅맘 해적단 전체에 전달한다.
  • 유다인 . . . . 2회 일치
         || [[2011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기쁜 우리 젊은 날 || 남 || ||
         || [[2009년]] || [[KBS1]] || 청춘예찬 || 이영 || ||
  • 유승민(정치인) . . . . 2회 일치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여 당내에서 꾸준히 당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당의 진로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가 최실 게이트를 계기로 2017년초 탈당하고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현재는 대선주자로도 뛰는 등 바른정당의 간판으로 활동 중이며, [[2017년]] [[11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제3대 바른정당 대표'''가 되었다.
         이러한 국방과 안보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시절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시절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반란 사태 당시 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공약으로 군 의문사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 유승옥 . . . . 2회 일치
         2015년 1월경 [[정아름]]이 유승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비판을 올렸던 일이 조명된 바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95170|링크]] 정아름은 뒤늦게 논란이 되자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18991|이는 디스나 폄하가 아니며]] 유승옥에 대해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기 비판에 인용하게 되었을 뿐이란 입장을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77514.htm|밝혔으나,]] 나중에 [[박근혜-최실 게이트]]과 연관되게 되자 다시금 안 좋은 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태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유승옥 디스 건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부터도 정아름이 골프 선수 시절 '''누드 화보를 찍었던 당사자가 남 말하듯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일단 [[정아름]] 본인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찍었더고는 하지만[[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19901]] 그 사진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유통된 것이라(...) 논란이 좀 있다[[http://www.koreatimes.com/article/199436.]] ]
         2017년 [[소사이어티 게임 2]]에 플레이어로써 참가했다.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수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 유해진(배우) . . . . 2회 일치
         ||<|6>2005년||이대로, 죽을 없다||한칼||838,419||실패||
         ||권분 여사 납치사건||문근영||1,619,190||성공||
  • 육미당기 . . . . 2회 일치
         신라국 태자 김소선(金簫仙)은 부왕의 병을 고치려고 남해의 [[보타산]](普陀山)으로 가서 [[죽]]을 구해 오다가, 이복형 세징(世徵)에게 습격당해 죽을 빼앗기고 [[실명]]하여 섬에 떠내려간다.
  • 윤다훈 . . . . 2회 일치
          * 2006년 SBS [[돌아와요 애씨]] - 윤일석 역
          * 2013년 KBS [[최고다 이신]] - 황일도 역
  • 윤보라 . . . . 2회 일치
         ||<#B26724> {{{#ffffff '''별명'''}}} ||<(> 석이[* 초등학생 시절 별명이었다고 한다.(출처: [[아는형님]])] ||
         2011년 라디오 스타에서 효린과 함께 출연. 천진난만하고 수한 모습으로 본의 아니게 MC 김국진을 멘붕시키며 라디오 스타 레전드 장면을 만들었다. --보라曰:결혼하면 이별 안하잖아용-- --김구라曰: 국진이 형 앞에서 뭐하는 얘기야-- 자신이 무슨말을 했는지 깨닫고 덩달아 멘붕해 얼굴이 토마토가 되어 버린 보라의 모습은 덤.
  • 윤용현(1969) . . . . 2회 일치
         하지만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라는 [[어린이 드라마]]에서는 '''박한 시골 청년'''을 그야말로 맛깔나게 잘 표현하는 등, 다른 연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배우 본인은 "코믹한 배역이 원래 성격과 맞다. 사람을 웃기는게 좋다"라고.
          * 불멸의이신 - 우을기내
  • 윤주희(배우) . . . . 2회 일치
         ||<#FF91AF> {{{#ffffff '''소속'''}}} ||<(> [[http://curoent.com/index.php|큐로홀딩스 매니지먼트 사업부]][* PI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2016년 7월 PI와 열음엔터테인먼트의 합병이 이루어짐,(열음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큐로홀딩스에 인수된 기획사) 합병이후 열음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서 PI출신배우들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어느간 큐로홀딩스 매니지먼트사업부의 홈페이지가 따로 개설되었음. 내부사정을 알 수 없지만 아마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듯.] ||
         ||<|3> QTV ||<|3> [[위 정하는 여자]] || 4월 15일 || ||
  • 윤채경(가수) . . . . 2회 일치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돌계의 [[명불허전]] 프로데뷔러'''[* 이게 농담이 아닌 게, 자국도 아닌 [[일본|외국]]에서 첫 데뷔해서 ~~일본어까지 배워 가며~~ 현지 [[https://www.youtube.com/watch?v=FcNIk35AVfc|예능]]에 '''출연'''하는 등 활약했으나 팀은 해체되었고, 같이 [[안소진|한솥밥을 먹던 동료]]가 [[자살|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것을 겪어야 했으며, 자신보다 더 어리고 연습 기간이 짧은 후배 연습생이 먼저 데뷔하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성인이라도 멘탈이 몇 번은 나갔을 상황인데, 채경은 이 모든 것을 '''20세가 되기 전에 겪었다.''' 20세가 된 후에도 [[프로듀스 101|101명이나 참가하는 걸그룹 서바이벌]]에 참가해 [[윤채경/프로듀스 101#s-2.1|실력에 대한 혹평]]과 ~~결국에는 득이 된 몰래카메라와~~ [[프로듀스 101/6회#s-5.3|왕따 논란]]까지 견뎌낸 인물이다. 프로듀스 101에 참가한 많은 연습생들이 증언했다시피 프로듀스 101은 엄청난 멘탈과 실력으로 정신적, 신체적 노고를 이겨내야 하는 방송인데, 이 모든 것을 겪은 후 드디어 데뷔하여 인지도를 얻고 그룹에 안착했으니 진정한 인간 승리자~~또는 아이돌계의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데뷔러~~라 할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rk83tDl7U|매 간이 힘들었어요]]]
         4월 5일, [[네이버]] [[V LIVE]] 생방송에서 [[조시윤]]과 함께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것을 공지하였다. 이후 식간에 팔로워가 늘었다. 참고로 [[허영지]], [[조시윤]]을 제외하고 [[DSP미디어|DSP]]에서 인스타그램을 가장 빨리 팔로우한 사람은 --후배사랑 대명사--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김지숙]]이다.
  • 은혼/602화 . . . . 2회 일치
          * 한간에 괴멸해 버린 군사대국 부레이. 원상은 생전 처음으로 전장을 팽개치고 귀환했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 처참한 몰골로 실험체로 전락한 천도중들. 단한 육편에 지나지 않게 됐다.
  • 은혼/603화 . . . . 2회 일치
          * 단히 해방군이 진정된 이후 민중이 봉기했다고만 알고 있으니 상황을 타개할 계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
          * 젠조는 자기 친구는 점프 뿐이라고 드립을 치자 랏파도 "내 친구는 별책 마가렛[* 슈에이사의 정만화잡지] 뿐"이라 응수한다.
  • 은혼/604화 . . . . 2회 일치
          * 최후의 간, 노부메는 긴토키를 구하고 폭격에 휘말린다.
          * 히츠기는 기껏 비중있게 등장하나 했는데 식간에 리타이어... 하긴 했지만 불사신 보정을 받고 부활. 긴토키를 정말로 집요하게 물고늘어진다.
  • 은혼/606화 . . . . 2회 일치
          * 곤도는 이길 없어도 전쟁을 막는 계기 쯤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에도를 지키기 위해 새롭게 태어난 신 진선조의 힘을 잘 보라고 말한다.
          * 아무튼 봉인을 해제한 곤도는 식간에 건물 위로 뛰어오르고 해방군의 공격을 요리조리 나비처럼 피해 다니는 등 엄청나게 강하다.
  • 은혼/607화 . . . . 2회 일치
          * 어느 간 진선조 대장진 조차 재치고 중심인물이 되어버린 야마자키 사가루.
          * 도 높은 고릴라로 다시 태어난 곤도. 그때 새로운 적이 나타나 포격을 가한다.
  • 은혼/615화 . . . . 2회 일치
          * 신파치가 테츠코에 의해 사경을 헤매는 사이 긴토키는 아직도 알이나 주우러 다니고 있다. 이번엔 아고미(턱이)가 자신이 지키는 문으로 긴토키를 부른다. 곧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는데 막상 긴토키가 접근하자 '''굴러들어온 알만 회수하고 긴토키는 그대로 둔다.''
          [[사이고 토쿠모리]]의 자비없는 징수. 식간에 아들을 잃어버린 병사들. 긴토키와 같은 신세가 되어 사이좋게 누워버린다.
  • 은혼/618화 . . . . 2회 일치
          * [[미나모토 스이]]가 격분해서 뛰쳐나간다. 미나모토는 흥분한 와중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데 제아무리 괴력을 지녔더라도 야규류의 쾌검을 받아칠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이었다. 오우가이는 정교한 움직임은 없지만 속도 또한 힘 못지 않았다. 사각을 파고 들던 공격도 오우가이의 주먹 한 방에 막힐 뿐더러 미나모토의 팔이 부러지고 만다.
          무방비하게 공격에 노출된 미나모토. 아슬아슬한 간에 [[키타오오지 이츠키]]가 구출한다.
  • 은혼/621화 . . . . 2회 일치
          * [[오토세]] 여사는 항복하는 듯 히 [[히라가 겐가이]] 영감을 내놓는다.
  • 은혼/624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사카타 긴토키]]와 협력해 식간에 상황을 반전, 신라 부대를 뿌리치고 역으로 베어버린다. 그와동시에 긴토키는 소타츠를 처리.
          * 지로쵸가 한 간 쓰러지자 그 위를 흙더미 쌓듯 달려들어 누른다. 소타츠는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전술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지로쵸와 그 위를 누르고 있는 아군까지 한꺼번에 꿰뚫는다. 신라의 집단 전술이란 바로 이것. 집단의 승리를 위해서 개개인이 거리낌없이 희생하고, 희생시킬 수 있는 풍조다. 소타츠는 완전히 승리를 자신한다.
  • 은혼/629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위기의 간 우리의 주인공 [[사카타 긴토키]] 및 주요병력은 전시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자판을 벌이며 곤드레 만드레 상태.
          단한 야생 고릴라였다. 똥쟁이 고릴라. 이곳에 인간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곤도 이사오]]는 출발할 때는 분명 일행 중에 있었는데 갑자기 제일 먼저 달려나가 버렸다. 그는 한 마리 야생 고릴라로 돌아간 거였나 보다.
  • 은혼/632화 . . . . 2회 일치
          >세계를 부다는 거창한 허풍을 떤다고 하던데
          >썩어빠진 놈들을 쳐부
  • 은혼/637화 . . . . 2회 일치
          * 킨타마 꼬치가 되게 생긴 마나카가 "걍 한 번 싸웠을 뿐인데 진지하게 군다"면서 죄다 엉덩이 가볍게 생겨가지고 의외로 청파였다고 대꾸한다. 가구라는 이것도 불편해하면서 프로불편러 츳코미역으로 각성한다.
          그것은 지구에 대한 정일까? 아니면 단한 변덕일까? 우츠로는 모두 아니라고 대답한다.
  • 은혼/642화 . . . . 2회 일치
          * 무수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은 조롭게 계속되어 어느덧 충전율 85%. 완충까지 5분 남짓이 남았다. [[엔죠]] 황자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날 거라 확신했다. 그들의 전쟁도 천도중의 시대도, 그리고 지구도. 그러나 마지막까지 앉아서 기다리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누군가에게 해킹 당했다. 이제 엔죠 황자 측에서 충전을 조종할 수가 없다.
          >다케치님 당신을, 아니 다카스기님을 따르겠다고 결정한 간부터
  • 은혼/643화 . . . . 2회 일치
          엔죠 황자는 그 많은 인원이 목숨을 버려서 고작 15분을 벌었다고 비웃었다. "가느다란 실". 그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받을 이도 없다. 그는 부하들의 호들갑을 진정시키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곧 모니터가 복구됐다. 조로웠다. 모니터는 선내의 각 구역을 비췄고 거기엔 아무 깨끗하게 비어있는 통로나 괴멸한 적들의 시체가 쌓여 있어야 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았다. 대신 통신이 끊어진 몇 분 만에 각 구역에 있던 방어부대가 도륙난 모습이 비췄다. 대체 무슨 일인가? 상황이 채 파악되지도 않았는데, 통제실의 출입구에서 폭발이 일었다. 거기에 대답이 도착해 있었다.
          * 다츠마의 총구가 불을 뿜고 총알이 통제실을 가로질렀다. 총알은 정확하게 겨눠진 곳을 찾아갔다. 엔죠 황자의 심장. 황자는 총에 맞는 간에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가 쓰러지자 다츠마의 총구가 다시 불을 뿜는다. 통제실의 잔당을 향해.
  • 은혼/645화 . . . . 2회 일치
          다츠마는 부상, 가츠라는 무기가 없다. 엔쇼는 라이트세이버를 오른손에 바꿔들고 광탄의 형태로 전환했다. 그는 무기를 높이 치켜들었다. 쓰러져 있는 가츠라와 다츠마는 더이상 저항의지가 없는 듯 했다. 하긴 그럴 수단도 없었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라이트 세이버의 출력이 떨어지더니 이윽고 고장을 일으킨다. 엔쇼는 그제서야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츠마가 쏜 총알. 그건 라이트 세이버를 노리던 거였고 정확하게 명중했다. 거기에 생각이 닿은 간, 가츠라가 마침내 마무리를 지었다. 떨어뜨렸던 라이트 세이버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 빛의 끝은 엔쇼의 복부를 지르고 있었다.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를 향해 돌격했던 헨페이타의 소형정. 소형정이 목표를 들이받은 간, 헨페이타의 예상은 빗나갔다. 원인은 모선의 외벽이 생각보다 날림이었거나, 소형정이 너무 튼튼했기 때문이다. 장치를 박살낸 소형정은 계속 돌진해서 외벽을 뚫고 내부까지 진입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헨페이타와 부하들은 자신들도 뻘쭘해하며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가운데 자신들만큼 뻘쭘하게 살아남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삼흉성의 생존자 [[사루가쿠]]. [[바토우]]와 함께 폭발에 휩쓸려 죽은 줄 알았던 그들은 무사히 몸을 피해있었다.
  • 은혼/649화 . . . . 2회 일치
          *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마지막 간에는 노부노부를 진정한 쇼군으로 인정하고 노부노부는 감사하며 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 마지막 간, 노부노부는 이제 한 명의 왕이 아닌 "무수의 왕"들에게 맡긴다고 말하며 [[도쿠가와 시게시게]]를 비롯한 역대 쇼군들의 마중을 받는다.
  • 은혼/654화 . . . . 2회 일치
          * 아네는 줄어든 동생의 두뇌를 탓하다가 한 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미처 정리할 틈도 없이 살기를 느낀다. 위쪽. 아네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사다하루와 모네를 밀어냈다. 하늘로부터 장대비처럼 석장이 내린다. 모네와 사다하루는 무사했지만, 아네는 그렇지 못했다. 석장이 아네의 옆구리를 찢어놨다. 아네는 뒤늦게 실수를 깨닫는다. 용맥을 진정시키는데 정신이 팔려 진정한 적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츠로(은혼)|우츠로]]가 시생인 부대를 이끌고 자매를 처리하러 왔던 것이다. 건물 위로부터 시생인 부대가 쏟아지는 간, 아네는 모네의 부축으로 일어나며 "뛰어"라고 소리쳤다.
          아네 모네 자매와 합류해 용맥의 폭주를 죄다 정리해버려 식간에 해결사 일행 중 최고의 공을 세웠다. 하지만 너무 검력을 소진한 바람에 같은 이누카미인 코마코와 함께 형편없이 작아졌다. 코끼리 만하던 덩치가 이젠 소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아네는 이누카미들은 영성으로 육체를 유지하는데 검력을 너무 써서 영성이 약해진 탓에 육체마저 사라지고 있는 거라 진단, 더이상 무리를 하면 둘이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 의상 (신라) . . . . 2회 일치
         * 의상의 귀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당나라]]는 [[삼국 통일]]을 원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여제(麗濟) 양국을 공취한 것에 노하여 신라 승상 [[김흠]](金欽純)을 잡아 가두었다.<ref name="글로벌-의상"/> [[당 고종]](高宗)이 [[신라]]에 대거 출병코자 한 기미를 [[김흠]] 등에게 들은 의상은 급히 귀국하여 왕께 고하고 [[명랑]](明朗)이 [[문두루법회|밀단법]](密壇法)을 베풀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ref name="글로벌-의상"/>
  • 이강돈 . . . . 2회 일치
         || [[이광은]]([[MBC 청룡]]) [br]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br]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 → || [[이철]]([[해태 타이거즈]])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 → || [[김일권]]([[태평양 돌핀스]])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고원부]]([[빙그레 이글스]]) || → ||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이호성]]([[해태 타이거즈]]) || → || [[이철]]([[해태 타이거즈]]) [br]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br] [[이호성]]([[해태 타이거즈]]) ||
  • 이규환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1932년]]에 귀국하여 제작한 작품이 《임자 없는 나룻배》이다. [[나운규]]와 [[문예봉]]이 출연한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고 문예봉을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제작비 문제 등으로 탄치 않은 영화 작업을 계속했다. [[1937년]]에는 [[성봉영화원]]을 설립하고 로컬리즘 색채가 강한 《나그네》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성봉영화원이 [[조선영화주식회사]]로 통합된 뒤 이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만주]]로 떠나, 일제 강점기 말기의 [[군국주의]] 영화 제작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저자=강옥희,이영미,이진,이승희
  • 이근택(1865) . . . . 2회 일치
         의병장 [[고광]]의 사위인 기산도
         [[광산]] [[담양]] [[화]] [[나주]]땅 떠돌며 연명하다가
  • 이노센트 투어 . . . . 2회 일치
         한때 [[무인도 이야기]]로 유명세를 떨쳤던 [[KSS]]에서 제작한 [[보드 게임]]이다.[* T-RPG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다이스 때문에 운이라는 특성이 반 이상 작용하는 걸 고려하면 수한 전략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1996년]]작.
          1. 턴을 종료하고 서를 다음 캐릭터에게 넘긴다.
  • 이민호(1969) . . . . 2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3년/신인드래프트|1993년]] 2차 3위 지명 ||
         1993년 빙그레 이글스의 2차 3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3년에는 [[강석천]]의 백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한화 타선에 [[박지상]]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식]]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고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2회 일치
          * 그의 방송을 한번쯤 본 적이 있었다면 알겠지만 상당히 마초적인 기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느금마 엔터 패밀리들과 스카이프 통화를 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날거냐 남자로 태어날거냐는 주제가 나왔었는데 이병욱만 다시 태어나도 남자로 태어나겠다고 말했다. 재밌는건 이때 [[로봉]]도 있었는데 로봉은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겠다고 했다.
  • 이상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7라운드]]([[NC 다이노스]])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60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 15경기에 등판해 5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 [[6월 15일]]에 1군에 올라왔다. 이 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56327 '아기공룡' 이상민의 성공적인 1군 데뷔전] - OSEN</ref>
  • 이시종 . . . . 2회 일치
         |전임자 = [[박맹우 (1951년)|박맹우]]<br/>[[최문]](권한대행)
         |후임자 = [[박원]]
  • 이영욱 (1980년)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9년 2차 8라운드]]([[쌍방울 레이더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8라운드 59위로 지명을 받은 후 [[홍익대학교]] (1999학번) 진학 후 재학 시절 [[차일목]]과 배터리를 이루었다.
  • 이장희 (시인) . . . . 2회 일치
         [[1900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남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남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영진, [[오상]], 백기만, [[이상화 (시인)|이상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백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정우택은 비속한 현실에 맞서 절대 자유, 절대 자아의 전함을 추구했던 이장희의 삶은 곧 그의 시라면서 그의 미적 태도를 '미적 근대성의 자기 파괴적인 양상'으로 명명하였다. 또,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이장희는 근대적 주체의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을 절대적인 지점까지 추구했던 시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ref>정우택, 〈고월 이장희 시 연구〉, 《민족문학사연구》21권, 민족문학사학회, 2002, 216쪽</ref>
  • 이정호 (1982년)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1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 이종남(배우) . . . . 2회 일치
         * [[2008년]] [[KBS2]] 일일연속극 《[[돌아온 뚝배기]]》 ... 염길
         * [[2018년]] [[KBS1]] 일일연속극 《[[비켜라 운명아]]》 ... 양자 역
  • 이주승(영화배우) . . . . 2회 일치
          * 태권도 선수출신이다. 겨루기 선수였던듯. 9살때부터 9년동안 태권도를 했다고. 태권도 관장이 꿈이였을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어느 간부터 때리고 맞는 게 싫어서 그만 두게 되었다. --나중에 태권도 관장도 생각하고 있다고-- 심심할때 혼자 발차기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메이킹필름에 발차기하는 모습이 종종 잡히곤 한다.
         || 2012년 || [[U.F.O.]] || 주연 || 정규 ||
  • 이지우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4년 2차 3라운드]]([[NC 다이노스]])
         율하초등학교를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좋은 타격성적을 보여주었다. 고교 통산 58경기 타율 0.357 출루율 0.441 장타율 0.464 74안타 1홈런 48타점 25볼넷 21삼진을 기록하였다. [[2013년]] [[8월 26일]]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에서 NC 다이노스에 2차 3라운드 26위로 지명되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421 왼손 거포의 계보를 이어갈 NC 이지우] - NC 다이노스</ref>
  • 이지현(1983) . . . . 2회 일치
         초기에는 [[박정아]]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데뷔는 이지현이 [[박정아]]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는데[* [[1998년]]. 데뷔할 때 이지현은 중학생이었다. [[쥬얼리]] 데뷔는 [[2001년]].] 나이 으로 [[박정아]]가 [[리더]]가 되어 버렸기 때문.~~내가 더 고참이야!!~~ 그러나 이후 1집에서 2집으로 사이의 [[쥬얼리]] 암흑기에 [[박정아]]가 홀로 [[박정아#s-2.1.1|동남아시아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인정하게 됐다고.
         [[2006년]] 2월 [[쥬얼리]]를 탈퇴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 만료 후 [[스타제국]]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훗날 방송에서 얘기하길,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MC와 연기자 활동을 하며 방송 활동을 이어가나 싶었으나, 어느 간 이후로는 뜸하다. 가장 최근의 방송 활동이 [[2008년]] 이후 3년 만에 2011년 [[박정아]]가 출연한 [[달고나]]에 출연한 것 정도.
  • 이태현(씨름) . . . . 2회 일치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절친이자 라이벌인 [[백승일]][* 백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태 후 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백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백승일을 비롯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태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영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태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어쨌든 [[대한민국]] 최고의 천하장사가 종합격투기에서 엄청난 굴욕을 겪자, 씨름팬들은 비록 이태현이 씨름을 저버리고 종합격투기로 전향해서 비난했을지언정 이태현의 고전 앞에서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씨름계의 전설인 [[이만기]]는 이 장면을 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KBS가 2011년 추석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던 '천하장사 만만세'에서 이같이 술회했다. 당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씨름이 얻어터지는 기분이었다."'''] 씨름계의 흑화와 더불어 씁쓸하면서도 슬픈 장면이 오버랩되는 간.
  • 이하율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남도]] [[화군]] 능주면 (원지길)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2011년 데뷔]][[분류:화군 출신 인물]]
  • 이효정(남배우) . . . . 2회 일치
         1981년 영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둘째아들 역으로 데뷔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당시 같은 과에는 [[이경규]], [[최민식]], [[홍학표]]를 비롯한 새싹들이 있었다.]에 다니다가, KBS 10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각종 단막극과 단막 드라마를 거치면서 연기내공을 쌓았고 현재까지 [[문화방송|MBC]] [[아파트(동음이의어)#s-4|아파트]], [[여명의 눈동자]], [[영웅시대]], [[한국방송공사|KBS]] [[야망의 전설]], [[불멸의 이신]], [[SBS]] [[야인시대]],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 각종 드라마에서 명품조연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 2004년 KBS [[불멸의 이신]]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
  • 인순이 . . . . 2회 일치
         인이 가수 김인
  • 인천광역시/인물 . . . . 2회 일치
         * [[이상]] - 남동구
         * [[정경]] - 계양구
  • 일곱개의 대죄/175화 . . . . 2회 일치
          * 길선더는 자신을 멜리오다스 곁으로 간이동 시켜달라고 길프로스트를 닥달한다.
          * 프라우드린은 그걸 비웃는데, 한간이나마 얼굴의 문신이 사라지며 드래퓌스 본래의 인격이 돌아오는 듯 했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2회 일치
          * 성기사들은 열세라고 판단해서 후퇴하는데, 어쩐지 등을 돌리는 간 홀린 것처럼 젤드리스를 경애하기 시작한다.
          * 에스타롯사도 풀카운트를 쓰는데 멜리오다스와는 정확히 반대. 수한 물리력만을 튕겨낸다.
  • 일곱개의 대죄/185화 . . . . 2회 일치
          * 페이네스 호반이 한간에 증발해 버릴 정도로 강렬한 열기와 폭발.
          * 둘의 물리 공격이 격돌하려는 간, 풀 카운터가 작렬한다.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2회 일치
          * 하우저가 멀린을 원호하다 당한다. 하지만 멀린은 식간에 완치시킨다.
          * 한간에 성이 통채로 날아간 바토라 왕은 망연자실해한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2회 일치
          * 뤼드셀과 사대천사는 정화의 힘(아크)로 구속하고 있던 마신족 포로들을 한간에 증발시켜 버린다.
          * 뤼드셀이 손을 꽉 쥐자 아크가 폭발하며 그 안에 있던 마신족들이 한 간에 증발한다. 그 안에 있다가 데리엘을 발견했던 그녀의 언니도 사라졌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2회 일치
          그는 거인족 병사의 목을 벤다. 거인이 쓰러지자 요정족 병사가 보복하려든다. 그러나 요정족의 자잘한 마법따윈 검으로 튕겨버리고 그대로 가슴을 찔러버린다. 식간에 병사 둘을 처리한 로우.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그가 평범한 인간도, 스티그마에 협력하는 것도 아니라는걸 직감한다.
          악당처럼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그는 일 표변해서 "어때? 방금 건 꽤 악당 같았지?"라며 연기였다고 한다. 어처구니없어하는 디안느와 할리퀸. 두 사람의 황당해하는 표정에 만족한 고서. 두 사람에게 좋은 반응 고맙다며 박수까지 쳐준다. 이런 "덧없는 대화"가 유쾌하다고 하는데. 그리고 악의는 없었다며 용서를 구한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그의 눈 앞에는 자신과 분리된 [[그로키시니아]]와 그가 죽인 로우의 모습이 보인다. 그 간 "시련"이 끝나고 현세로 돌아가는 할리퀸.
          할리퀸은 간적으로 어떤 위화감을 떠올린다. 뭔가 이상하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2회 일치
          * 돼지의 모자정은 조롭게 목적지로 향한다. 가끔 마신족이 접근하기도 했지만 강해진 호크 엄마가 콧방귀만으로 날려버린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저주가 나은 이후론 식당 구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에스카노르]]가 바를 지키고 있다. 멀린의 정신은 온통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의 안녕에 쏠려있다. 그는 음료를 마시면서도 아서가 무사하기만을 기원한다. 자연 울쩍한 모습인데,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에스카노르]]의 마음도 무겁다.
          반은 고통에 가득차서 이제 엘레인은 이제 한계라 말한다. 설사 메라스큐라를 죽이지 않더라도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하다못해 최후의 간까지 함께해주고 싶은 것이다. 멜리오다스는 그런 반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반은 그 말을 가로채 가시돋친 말투로 내뱉었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2회 일치
          마신족을 다스리는 "마신왕", 그리고 여신족을 이끄는자 "최고신". 성전을 통해 반목과 학살을 주고 받던 두 존재가 한 연인을 처벌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들의 무서운 힘 앞에서는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의 저항도 보잘 것 없었다. 그는 벼락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불려가 싸웠으나 식간에 목숨을 빼앗긴다. 죽어가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
          * 마신왕과 최고신은 힘을 합쳐 무서운 저주를 내렸다. 영원의 삶과 영겁의 윤회. 멜리오다스는 죽음 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는 더는 자라지도 않게 된 그 육신으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인간으로 되살아나 극히 짧은 삶을 반복하며 그때마다 모든 기억을 잃는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는 간 그 누가 어떻게 보호해도 그녀는 3일 후 반드시 죽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저주가 정말 잔인한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2회 일치
          일행이 뒤로 넓게 흩어지며 공격을 피했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발빠르게 분석에 들어갔다. 디안느의 상태는 통상의 세뇌나 최면과 달랐다. 할리퀸이 보기에 디안느를 조종하는 것은 단히 메라스큐라의 마력이 아니라 성채도시 코란도에서 학살 당한 사람들의 원혼이었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그런걸 어떻게 쓰러뜨리내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헬브람]]이 이상했다. 이 모든 상황은 자기 책임이라며 할리퀸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 멀린은 "다소 죽일 생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반은 거부감을 느꼈지만 디안느의 힘이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도 결국 "나쁘게 생각마라 디안느"라며 멀린의 지시에 따른다. 할리퀸 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디안느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일행과 디안느 사이를 가로막았다. 헬브람은 원념에겐 물리적 공격은 물론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그 말대로라면 설사 디안느를 다치게 해도 원념을 쓰러뜨릴 없다. 킹은 그런 말을 하며 일행을 말리고 디안느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원념에게 삼켜지지 말라고. 그러나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측정해 보니 디안느의 전투력은 점점 올라 4만 8천에 육박했다. 킹이 위험했다. 고서의 경고는 애타는 할리퀸에겐 들리지 않았다. 헬브람의 경고도 마찬가지. 그러나 디안느는 아랑곳 없이 무자비한 발길질을 보냈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2회 일치
          언령에 따라 메라스큐라가 자랑하던 맹독이 식간이 정화되어 간다. 뼈 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가던 반이 빠르게 회복했다. 메라스큐라가 엘리자베스를 "더러운 여신족"이라 욕했지만 그녀에게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단한 유인이었다.
  • 임효준 . . . . 2회 일치
         | 최고위 =
         '''임효준'''([[1996년]] [[5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평창올림픽에서의 대한민국 첫 금메달로서 더욱더 의미가 크다. 임효준은 발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뛰어난 기술이 장점으로, 전성기 시절 ‘제2의 [[안현수]]’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ref name="대구일보"/>
  • 장가용 . . . . 2회 일치
          | 배우자 = 윤
         그는 부인 윤자 여사와의 사이에 슬하 1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장여구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육군]] [[군의관]] [[대위]]도 조부 [[장기려]]와 부친 장가용의 뒤를 이어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 장발 (화가) . . . . 2회 일치
          | 배우자 = 안옥(安順玉)
         * 배우자 : 안옥(安順玉)
  • 장원준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1차 지명([[롯데 자이언츠]])
         [[2015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데뷔 첫 등판이었던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 KS]] 3차전에서 7.2이닝 동안 1점만을 내주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그 경기의 MVP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팀으로서는 14년만의 우승, 그로서는 데뷔 첫 우승팀 소속이자, 이적하자마자 우승을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두산 베어스]]에 이적할 당시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는 그의 보상 선수로 투수 [[정재훈]]을 지명했는데, 1년 뒤 [[두산 베어스]]가 2차 드래프트에서 마지막 위에 [[정재훈]]을 지명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 FA 계약 선수와 보상 선수가 1년만에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 장익 (1933년) . . . . 2회 일치
         [[1963년]] 3월에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신부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는 사목보다는 학자로서 많은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많은 성직자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1967년]]에 서울대교구장 비서로써 교구장을 보좌했으며 [[1968년]]에는 [[김수환]] [[대주교]]가 서울교구장으로 부임하여 그의 비서신부가 되었다.<ref name="회화1">[http://www.kwnews.co.kr/view.asp?aid=209021900127&s=601 장익·지학 주교 일화·사북 탄광체험 등 소개] 《강원일보》</ref> [[1968년]]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에 선출되자 당시 비서였던 장익 신부에게 소식을 처음 전하였다 한다.<ref name="회화1"/> [[1970년]]에 서울대교구 정릉성당 주임신부로 활동하였다.
         ** 동생 : [[장]] (張純, [[1935년]] [[10월 17일]] ~ , [[미국]] 보스턴 리지스대학교 정치학 교수, [[미국]] 거주)
  • 장헌식 . . . . 2회 일치
         [[1949년]] [[1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령이 떨어지자 자수하였으며, [[반민특위]] 조사관들이 오자 담담하게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며, 손자며느리에게 뒷일을 부탁한다 하고 출두하였다. 이후 조사에 히 응하여 구속 수사를 받았으며 [[치질]](痔疾)로 고생하였으나 병보석은 거절하였다. 이후 그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1949년]] [[2월 22일]] [[치질]]로 인해 석방된 뒤 불구속 문초를 받아 반민특위에 다녀가며 방문조사를 받았다. [[3월 9일]] 반민특위로부터 보석이 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보석을 거절했다. 같은 날 반민특위로부터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았다.
  • 전근표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6년]] 2차 5라운드 35위([[현대 유니콘스]])
  • 전명운 . . . . 2회 일치
         |배우자= 조
         * 부인 : 조희(?~ 1981)
  • 전성우 (배우) . . . . 2회 일치
         *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삼연 (2014년) - 류
         * 《여신님이 보고 계셔》 초연 (2013년) - 류
  • 전수지 . . . . 2회 일치
         * 《[[사랑해, 말씨]]》 (2005년) - 은행 여직원 역
         * 《[[달콤한 나의 도시 (드라마)|달콤한 나의 도시]]》 (2008년, SBS) - 영 역
  • 전재국 . . . . 2회 일치
         |부모 = [[전두환]](부), [[이자]](모)
         * [[이자]]
  • 전종화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2차 2위([[롯데 자이언츠]])
  • 전형도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4년]] 2차 3위 ([[한화 이글스]])
  • 전형필 . . . . 2회 일치
         [[1934년]]에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매입하여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했으며, 33세가 되던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세웠다. [[1940년]] 보성고보를 인수하였으며, [[1945년]]에는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상기, 김원룡, 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考古美術)》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의 전신인 고고미술동인회는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이다.
         존 개츠비로부터 사들인 [[국보]]급 [[고려청자]] 20점은 모두 사십만원에 사들였는데 원래 제시한 가격은 오십만원 이상이었으나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 사랑에 감동하여 판매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중 인민군들이 전형필의 소장품들을 모두 가져가려하자 포장을 맡아하던 소전 [[손재형]]과 혜곡 [[최우]]가 이 핑계 저 핑계로 못가져가도록 하였고 뜻대로 되지 않자 일부러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부러뜨리기 까지 하였다고 한다. 전형필 또한 피난을 가지 않고 보화각 근처 빈 집에 숨어 소장품이 훼손될까 노심초사하였다 한다.
  • 전혜빈 . . . . 2회 일치
         정글의 법칙 이후 또 다른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심장이 뛴다]]에 홍일점으로 출연했다. 방화복을 현직 [[소방공무원]]보다도 빨리 착용하는가 하면--[[트란잠]]-- [[말벌]]집을 제거하는 훈련도 가뿐하게 해냈을 뿐더러 실제로 말벌집을 제거하러 출동했을 때도 처음치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전사 캐릭터가 어디 가진 않는 모양이다. --말벌 종류를 잘못 외우긴 했지만-- 전혜빈의 정신력에는 함께 출연한 [[박기웅]]도 감탄했다. "방화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면 15~20㎏이 된다. 착용서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입어야 한다. 틀릴 때마다 멘토에게 얼차려를 받는다. 혜빈 누나는 여자니 무릎을 꿇고 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똑같이 벌을 받더라. 남자도 힘든 건데 정말 대단하다"라는 [[박기웅]]의 증언처럼 전 훈련과정을 소화해 내었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것이 육체적인 한계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 겨드랑이 노출 사진[* 의상 자체가 소매가 없는 옷이라 팔을 들면 자연히 겨드랑이가 보일 수 밖에 없는 옷이었다.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56361|바로 이것]]]에 이어 절묘한 표정으로 간캡쳐된 짤방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겨드랑이에 놀란 전혜빈 등의 제목으로 널리 퍼졌었으나, 천생연분 출연 및 솔로활동으로 인지도는 있으나 별다른 인기는 없었을 때 크게 유행했고 연기자로서 생명력을 갖게된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든 짤. 다만 지금도 일부 기레기들이 이 사진을 가지고 전혜빈의 충격 과거, 암내 운운하는 기사를 쓰기도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2회 일치
          * 한간의 방심으로 유리까지 잡혀가자 칠드런 일행은 한층 경계한다.
          * 마츠카제는 인근 시선에 연락해 일반사양의 ECM이라도 좋으니 작동해 달라 요청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2회 일치
          * 효부는 마기를 히 풀어주며 조직원이 되길 회유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2회 일치
          * 이렇게 된 거 체력이나 회복하자고 미나모토가 간단한 요리를 하려 한다. 추운 지방이므로 일단 따뜻한 음식을 먹고 체력과 체온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타니자키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이정도면 움직이면 아무렇지 않다"며 팔다리를 휘젓는다. 미나모토는 만류하는데 그런 식으로 팔다리를 휘두르면 혈액환에 나쁘도 체온이 너무 올라가 버린다. 타니자키는 너무 열이 올라서 무조건 벗어 재낀다. 그렇게 식간에 체온을 다시 떨어뜨리면 결국 체력만 소모하고 생명에 위협만 늘게 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2회 일치
          이렇게 해서 유리가 위장최면을 거는데 대단히 난감한 모습으로 바뀐다. 유리 자신은 OL틱해서 그나마 낫지만 다른 둘은 완전히 아키하바라 피플 분위기. 계획은 전철로 이동하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날아가는 건데, 사카키는 이꼴로 전철에 탈 수 있겠냐고 질색한다. 그러나 시호의 눈총 한 방에 꼬리를 말고 히 출발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2회 일치
          * [[히노 카가리]]와 [[타마키 카즈라]]는 와일드 캣 나오미를 상대하고 있다. 카가리가 싸울 이유가 없다며 나오미를 말려보려 하지만 허사. 카즈라는 그들에겐 백신도 있고 적이 파고들만한 "마음의 틈" 같은건 없는게 아니었냐고 묻는다. 나오미는 의외로 히 모든걸 대답하는데 우선 백신이란건 체내에 주입된 입자를 무력화할 뿐이다. 하지만 레어메탈 입자는 매개체일 뿐. "네트워크"에 "통합"시키는 거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 정광용 . . . . 2회 일치
         [Include(틀:박근혜-최실 게이트)]
         [[분류:박근혜-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1958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정명환 . . . . 2회 일치
         * 1993년 MBC 《[[제3공화국 (드라마)|제3공화국]]》 ...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김재 (정치인)|김재]] 역
  • 정명훈 (지휘자) . . . . 2회 일치
         정명훈은 19세 때부터 누나 [[정명화]]의 시누이로 다섯 살 연상의 구열을 짝사랑했고, [[가족]]에게 숨긴 채 교제를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 3000루블로 비행기 티켓을 사서 [[카리브 해]]로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79년]]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식에는 어머니 이원숙 여사만이 참석했으나 나중에는 [[부모]]에게도 인정받았다.<ref>황호택, 《신동아》 [[2004년 2월]]호</ref>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 정진, 정선, 정민을 두고 있다.
          배우자 구열 (구삼열 여동생)
  • 정병희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2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85963 한화, 정병희와 입단 계약] 《한국일보》, 2001년 7월 13일</ref> [[2005년]] 시즌 후 [[내야수]] [[김민재 (1973년)|김민재]]의 보상 선수로 이적했다. 이후 입대하여 [[2010년]]에 제대하자마자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었다.
  • 정수성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7년]] 2차 12위([[현대 유니콘스]])
  • 정영삼 . . . . 2회 일치
         | KBL 지명위 = 4
  • 정용화 . . . . 2회 일치
         * [[2012년]] [[3월 26일]]에 기자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컴백 쇼케이스를 왜 아침에?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69721|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3월 23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음반 낼때 마다 부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3261244591132&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음원은 발표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헤이 유' 음원공개 직후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32608080291572&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앨범은 3일만에 4만장이상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3일 만에 4만장 돌파…'3월 전쟁' 최후의 승자 |url=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2년]] [[3월 29일]] }}{{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새 미니앨범 판매량 1위, 최단 시간 4만장 돌파|url=http://interview365.mk.co.kr/news/19427|출판사 = 인터뷰365|날짜 = [[2012년]] [[3월 30일]]}}</ref> 또한, 한터 주간 위에서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EAR FUN’, 한터 주간차트 1위! '승승장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3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61211/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보존날짜= 2014-09-08 |깨진링크= 예 }}</ref> 컴백 무대를 가진 일주일 후 [[4월 5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무세운 상승세로 컴백 1주만에 '엠카 1위'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출판사= 엑스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4월 5일]]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ref> 《[[EAR FUN]]》의 타이틀 곡인 '''Hey you'''가 가온차트 4월 1주차에 1위를 등극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가온차트 4월1주차 1위 등극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78505|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4월 8일]]}}</ref> 그리고 [[2012년]] [[4월 10일]]에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EAR FUN Special Limited Editio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미국화보+DVD 수록된 'EAR FUN' 특별한정판 발매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6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925085809/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보존날짜= 2015-09-25 |깨진링크= 예 }}</ref>
         * [[2012년]] [[11월 2일]]에 KBS에서 진행된 《MUSIC BANK IN CHILE》에서 본인의 솔로로 무대에 올라 기타 연주와 함께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불러 스페셜 무대를 꾸몄는데, 이 곡 편곡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전 출연자가 무대에서 부른 ‘아리랑’의 편곡도 맡아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편곡자로 실어 눈길을 끌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소식에 네티즌 호평 "진정한 싱어송라이터"|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239010§ion=sc4|출판사 = 브레이크뉴스|날짜 = [[2012년]] [[11월 18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전 출연진 열창 서에 자막 ‘편곡:정용화’ |url=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년]] [[10월 23일]] }}{{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ref>
  • 정욱(1973) . . . . 2회 일치
         * 2002년 《[[제국의 아침]]》 (KBS1) - 함
         * 2004년 《[[불멸의 이신]]》 (KBS1)
  • 정운용 . . . . 2회 일치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첫 아내와 사별한 뒤 김분조와 재혼했다.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7면</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도피하다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먼 친척관계인 [[정운일]](鄭雲馹)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아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 정은표 . . . . 2회 일치
         1999년작 영화 '유령'에서 미사일 발사키를 부함장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삼켰다가 [[끔살]][* 삼긴 미사일 키를 찾으려고 즉시 살아 있는 채로 개복수술을 하려는데 마취할 시간도 아깝다며 부함장이 그냥 꺼내라고 시켜서 그만... ]당하는 조리장역[* 그전에 함내 규칙상 금지되어 있는 가족사진을 보다가 주인공인 431에게 들켰으나 처벌없이 자기 방에 라면이나 두 그릇 끓여서 가져다 달라는 것으로 넘어간다. ~~방에 라면을 끓여 들고 오면서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일단은 꼬들하게 끓여왔습니다." 라고 해주는 센스...는 한 "같이 먹지. 한 그릇은 자네꺼야."라는 정우성의 인자함에 바로 묻힌다.~~ 그렇게 자신을 봐주며 인간적 친분이 쌓인 431을 돕기 위해 미사일 발사키를 삼켰다가 그만...][* 박한 인상으로 가족을 그리워 하다가 결국엔 그야말로 끔살당하며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계속 힘없이 눈치보며 살 수 없다.'며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부함장 202의 행동를 그저 대의를 앞세운 광기로 보일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역할을 훌륭한 연기로 소화해냈다보니 상대적으로 당시에 무명이던 손병호, 설경구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함께 출연했음에도 조연중 가장 주목 받을 만한 역할이었다.]을 맡으면서 영화 관객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나, 아무래도 전체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얻은건 역시나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품달]]. ~~"전하~~~~ 좋아서 입이 안 다물어지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특별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막내 아들의 이름을 지'''훤'''이라고 지었다고 한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2317203|##]]
          * [[불멸의 이신]] - 정대만 역
  • 정재용(1973) . . . . 2회 일치
         == [[재용이의 결한 1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재용이의 결한 19)]
  • 정충원 . . . . 2회 일치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정재학 (1856년)|정재학]]의 셋째 아들이며 [[경상북도]] [[대구부]](현재의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1918년]] [[일본]] [[니혼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경상북도 경무과 경시(1922년), 경상북도 경무과 경부(1923년 ~ 1928년), 경상북도 고등경찰과 경부(1928년), 경상북도 위생과 경부(1929년), 경상북도 포항경찰서 경부(1930년 ~ 1936년), 경상남도 사교습소 경시(1937년)를 역임했으며 [[1937년]] [[8월 6일]]부터 [[1941년]] [[3월 31일]]까지 평안남도 보안과 경시로 근무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공로 을(功勞 乙)과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1년 3월 31일 평안남도 성천군수, [[1943년]] [[3월 29일]] 평안남도 천군수로 각각 임명되었고 [[1942년]] [[4월 8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광복 이후인 [[1947년]] [[조흥은행]] 취체역을 역임했으며 [[1956년]] 10월부터 [[1961년]] 4월까지 조흥은행 은행장, [[1958년]] [[금융통화위원회]] 정위원을 역임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과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조안(배우) . . . . 2회 일치
         ||<|4> [[2005년]] || [[MBC]] || [[별검#s-2|추리다큐 별검]] || 서은 || 추석특집 ||
  • 조재윤 . . . . 2회 일치
         * 2017년 [[KBS2]] 《[[매드 독]]》 - 박정 (치타) 역
         * 2008년 《[[스토리 오브 와인]]》 ... 데렐라 역
  • 주다영 . . . . 2회 일치
         * 《[[정 (2016년 영화)|정]]》 (2016년) - 길자 역
  • 주현미 . . . . 2회 일치
         [[화교]] 출신이라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주현미가 상을 타면 왜 외국 가수에게 국내 가수상을 주냐고 비아냥대는 기자도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차별받던 흑인 혼혈인 [[인이]]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중고를 모두 [[화교]] 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어]]도 잘 하며 방송에서 중국어 노래도 곧잘 부른다.
          *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간이 [[에이즈]] 루머였다. 에이즈는 지금도 치료가 무지하게 어려운 질병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병 걸리면 무조건 사망하는 악질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던 시절이라 이 때문에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티가 생겨나기도 했다. 걸리지도 않은 질병에 걸렸다는 허위사실인 데다가 그 병이 역대 최악의 전염병이다 보니 마음고생이 정말 엄청났다고 한다.
  • 진격의 거인/80화 . . . . 2회 일치
         * 쟝은 이대로는 자신들의 목숨도 인류의 목숨도 모든게 끝이라고 말하면서도, 히 전멸 당할 수는 없다고 일갈한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2회 일치
          * 선택의 간. 리바이, 엘렌과 미카사는 누구에게 거인화 약물을 사용할지를 놓고 대립한다.
          * 베르톨트가 거인화하는 간 한지를 구한건 모블릿이었다.
  • 진격의 거인/86화 . . . . 2회 일치
         그리샤 예거가 어째서 시조 거인 능력을 훔쳤는지도 설명이 되는데, 마레 측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레이스 왕가의 계승자들은 벽 바깥으로 진출하거나 저항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응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마레 측에서 접촉하면 쉽게 능력을 내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빼앗은 능력을 왜 엘런에게 계승시킨 건지, 스스로 복수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는 새로운 의문으로 남는다.
         거인화 능력이 어떻게 아홉개로 나눠질 수 있었냐는 것도 관심거리. 작중 밝혀진 방식대로라면 거인화 능력은 1대1로 계승되는 것만 가능하다. 단히 거인화 약물을 가진 것 뿐이라면 지성을 갖추고 거인화를 컨트롤하는 거인은 될 수 없으므로, 어찌됐든 유미르 혼자서 여덟명의 거인을 추가로 만드는건 불가능해 보인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2회 일치
          그리샤는 모래언덕을 바라본다. 그곳엔 거인에게 잡아먹힌 글로스가, 아니 글로스였던 잔해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분명 여동생을 개먹이로 준 남자에겐 더할나위 없는 보복이다. 평생 그 복수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리샤에겐 최고의 간이 아닌가?
         단히 거인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알려졌던 "좌표"가 실제론 거대한 네트워크와 유사한 핵심적인 떡밥으로 부상했다.
  • 진격의 거인/89화 . . . . 2회 일치
          * 한 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세상은 그저 고깃덩어리들이 떠들거나 걸어다니는 의미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던 유미르. 그러나 그녀가 다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땐, 그건 전혀 다른 의미였다.
          * 한지가 그리샤의 수기에서 얻은 정보대로 "엘디아 인", 그리고 "유미르의 백성"에 대해서 발표하는 동안 엘런은 또다시 그리샤의 기억으로 불려간다. 기억 속의 [[엘런 크루거]]는 마레 당국이 계획대로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는다면 더이상 수용소도 유지하지 않을 거라고 밝힌다. 그는 그로스가 말했던건 전부 사실이라며 엘디아가 무지성의 거인을 병기로 이용했던 사실을 밝힌다. 이들은 시조의 거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단히 살육을 반복할 뿐인 짐승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자체로 두려움도 멈춤도 모르는 자동살상병기인 것이다. 과거 엘디아에서는 이것을 양산해 값싼 전력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엘디아인들을 팔라디섬에 가두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지금에 와선 마레 측에서도 이 방생한 거인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섬에 접근하는건 제한되고 있다.
  • 차르 . . . . 2회 일치
         [[비잔티움 제국]]에서 카이사르 칭호는 점차 위상이 하락하였다. 이는 고대세계의 가부장제에 따른 상속 계승보다, 종교적 권위가 중요하게 된 비잔티움 시대의 사회상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렉시오스 1세가 황제의 부칭으로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kratōr)를 제정하면서 제3위격의 칭호가 되었고, 데스포테스(Despotēs,[[전제공]])가 지정되면서 제4위격까지 떨어졌다. 황제가 보유하는 칭호의 위격은 바실레우스->데스포테스->세바스토크라토르->카이사르 서가 된 것이다. 이렇게 격식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고위의 칭호로 여겨졌다.
  • 차명진 . . . . 2회 일치
         * 2011년 [[10월 1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서울시장 박원 후보를 "양아치", "삥" 등의 적절한을 총동원해 원색적이 비난해서 논란이 됐다. "박씨는 한 손으로 채찍을 들어 재벌들의 썩은 상처를 내리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삥을 뜯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이는 악어와 악어새의 동거"라며 "시민운동이 아니라 저잣거리 양아치의 사업방식"이라고 박원 후보를 양아치로 규다했에 대해 투명하게 재정상태를 공개해온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을 양아치로 묘사한 것에 많은 공가이 어다
  • 차희식 . . . . 2회 일치
         이러한 상황으로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점점 높아가는 때에 서울의 3·1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한 지역의 지도자들은 구장회의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구체화했다. 차희식은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인근 주민들에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우정면 주곡리와 석포리 주민들의 선봉에 서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4월 3일 군중은 점차 늘어나 1천여 명에 이르렀고 시위 행렬은 인근의 쌍봉산으로 이동하여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선생은 차병혁, 차인범과 함께 군중들을 인솔하여 우정면사무소, 화수주재소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일본 사가 쏜 총에 주민이 피살되자 차희식을 비롯한 군중들은 격분하여 도망가는 일본 사 가와바다를 추격하여 처단했으며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 착취용 애완용 아이 . . . . 2회 일치
         기본적으로 착취용 아이는 학대당하는 대상이다. 독부모는 아이에 대해서 돈을 벌어오게 할 생각이나, 노후는 개호를 시키면서 부려먹을 생각 밖에 하지 않는다. 단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착취용을 지정하여 학대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자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노예라고 생각하며, 대우는 극히 나빠서 매도, 방치, 학대 등을 당하게 된다. '용도'에 어긋나거나 단히 돈이 아깝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개 부모가 교유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한 탓으로 친구 한 명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 창작:맹수인 . . . . 2회 일치
         각 맹수인은 서로의 생김새에 따라 호랑이족,사자족,곰족,하이에나족,늑대족으로 나뉘며, 서로간의 교배는 가능한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서로의 혼혈들은 대개 배척받으며, 혼혈들은 보통 고산지등 '혈'들에게 핍박받기 힘든 곳에서 자기들끼리의 소규모 마을을 이루고 산다. [* 단, 사자족과 호랑이족간의 혼혈인 '라이거일족'은 상티겔의 레잉정복과 적극적인 혼합,동화정책으로 인해 상당한 규모를 이루고 있었고, 이들은 이후 상티겔을 멸망시키고 그곳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레이먼의 탄압정책과, (하)티겔 왕국의 새로운 정착지를 줄테니 대신 복속해 달라는 제유에 의해 '라이겐프름 대공국'이라는, 하티겔의 새로운 봉신국이 된다.]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 창작:좀비탈출/4-1-1 . . . . 2회 일치
         녀석이 나를 덮친다. 무거운 걸 들고 있는 참이라 엉거주춤한 상태로 녀석의 썩은내나는 손아귀가 덮치는 걸 피했다. 그 간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뚝하고 나만 들리는 소리로 이변을 알렸다. 젠장, 허리가…….
         그 간 목젖에 '''녀석의 이빨이 닿는게 느껴진다.''' 아주 짧은 아픔이 지나가고 후욱- 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 틀렸다. 다 틀렸어.
  • 창작:좀비탈출/4-1-2-2 . . . . 2회 일치
         녀석이 나를 덮친다. 무거운 걸 들고 있는 참이라 엉거주춤한 상태로 녀석의 썩은내나는 손아귀가 덮치는 걸 피했다. 그 간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뚝하고 나만 들리는 소리로 이변을 알렸다. 젠장, 허리가…….
         그 간 목젖에 '''녀석의 이빨이 닿는게 느껴진다.''' 아주 짧은 아픔이 지나가고 후욱- 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 틀렸다. 다 틀렸어.
  • 창작:좀비탈출/5-1 . . . . 2회 일치
         토트넘이 다가오는 간 그 속도와 무기의 위치와 내가 손을 뻗는 속도의 차이에 대해서 계산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 머리를 괴롭히는 사이 몸은 직관적인 행동을 취했다. 자세를 낮추고 팔을 뻗어 손아귀에 싸늘한 손잡이가 잡히는 동안, 토트넘은 '''정확히 2m 앞'''에 있었다.
         토트넘은 죽었다. 이미 죽어있었지만 '''거듭 죽은 것이다'''. 거무죽죽한 살갗에 주둥이부터 꿰어들어간 꼬챙이. 분장에 실패한 프랑켄슈타인 같은 꼴이다. 전히 행운이다. 찌른 부위가 좋지 않았던게 틀림없다. 약간만 각도가 틀어졌어도 녀석은 죽었지만 죽지 않은 채로 호박처럼 굴러들어오는 먹이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무려 30초나 멍청히 누워있는 먹잇감을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와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녀석은 죽은 채로 죽었다.'''
  • 창작:좀비탈출/5-1-1-1 . . . . 2회 일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허무맹랑한 말에 설득 당했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멸망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산더미 같은 보증과 떠안은 옥장판 때문에 동맥을 긋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보다 단명쾌한 전개로 이어졌겠지.
         이 모든 문제가 차의 존재로 달라진다. 단한 망상이 매우 현실적인 탈출 플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나는 차창으로 운전석을 확인했다. 아날로그식 계기판은 분명 휘발유가 만땅으로 차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좋았어! 정말 좋은 징조다.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2회 일치
         혁우(赫羽) : 제 1각성 상태가 되었을때 등장하게 되는 보구이면서 각성 한정으로 장착되는 유일한 보구, 능력은 천경원양포의 부족한 공중 비행 능력을 완벽하게 이끌어내는 장착형 보구이며 2쌍의 날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속성은 염화(炎火) 속성이며, 단한 비행 능력 증가 뿐만 아니라 공격시 깃털을 불꽃 조각으로 바꿔 적한테 쏘아낸다.
         타치바나 이즈미(橘 和泉) : 츠키노 아스카의 라이벌이며, 타치바나 가문의 당주이자 그녀 자신은 혈 선녀이다, 하지만 과거 기억을 잃기 전의 아스카한테 짝사랑하고 있던 사람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그것 때문에 흑화를 하게 되었고, 아스카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공격을 하게 된다.
  • 창작:헤이즈 . . . . 2회 일치
         무동고등학교의 영화동아리인 RECORD의 일원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식 영화 촬영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처음에는 단히 전원일기처럼 동네 소개 영상에 불과했지만, 시나리오에 살이 점점 붙어가자 아예 스릴러 영화를 찍자는 쪽으로 계획을 고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의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창작:세정종합병원|세정종합병원]]의 별관에 숨어들어 촬영을 하기로 한다. 촬영은 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계획이 이상해진다...
  • 총기 . . . . 2회 일치
         총기의 개량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났는데, 따로 불을 붙이는 대신에 불씨를 미리 줄에 달아놓는 [[화승총]]이 나타났으며, [[부싯돌]]을 사용해서 불을 붙이는 타입이 나타났다. [[화약]]의 경우도 [[흑색화약]]을 사용하다가 [[무연화약]]을 사용하여 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바뀌었으며 [[화학]]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화약 조합이 연구되고 있다. 그리고 화약과 탄환을 별도로 휴대하여 장전하는 초창기 형태에서 편리성을 추구하여 한꺼번에 묶어서 패키지로 장전하는 [[탄피]]가 발명되어 널리 쓰이게 된다. 총신의 경우도 단한 파이프 형태에서 [[강선]]을 파서 탄환에 회전을 줘서 명중률을 높이는 형태로 발전. 탄환의 경우에도 단한 [[납]] [[구슬]]에서 다양한 금속과 형태를 고안하게 된다.
  • 최계훈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4년]] 1차 3위([[삼미 슈퍼스타즈]])
  • 최길성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6년]] 2차 7위 ([[해태 타이거즈]])
  • 최동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4차 2라운드([[LG 트윈스]])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2차 2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후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4210253 “신인왕 누가 전세냈냐…여기 최동환도 있다”] 《동아일보》, 2009년 4월 21일 작성</ref>
  • 최민호(유도선수) . . . . 2회 일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영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박해 보이는 인상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남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반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상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최웅 . . . . 2회 일치
         | 종로 경찰서 사 카카와
         |《[[드라마 스테이지]] - 파이터 최강
  • 최은석 (배우) . . . . 2회 일치
         * 《[[불멸의 이신]]》 (2005년, KBS1) - [[선거이]] 역
         * 《[[깡이]]》 (2004년, EBS)
  • 최은희 . . . . 2회 일치
         ||<:> [[황정]][br](혈맥) ||<:> {{{+1 → }}} ||<:> '''최은희[br](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 {{{+1 → }}} ||<:> 최은희[br](민며느리) ||
         || '''본명''' ||최경||
  • 최훈재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9년]] 1차 2위([[MBC 청룡]])
  • 추자현 . . . . 2회 일치
         * [[2004년]] [[KBS2]] 월화드라마 《[[오!필승 봉영]]》 ... 허송자 역
         * [[2005년]] 《[[이대로, 죽을 없다]]》 ... 양정애 역
  • 츠츠모타세 . . . . 2회 일치
         1768년에 간행된 소화본(笑話本)[* 소화(笑話)는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유머 이야기 책이다.] 「카루구치하루노야마(軽口はるの山)」[* 카루구치는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의 제4권에 「츠츠모타세(筒もたせ)」라는 농담이 있다. 이는 짧은 이야기로서, 돈이 쪼들리는 남자가 친구들에게 잘 되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츠츠모타세를 해보라는 말을 듣고, 아내를 설득하여 근처에 사는 젊은이를 유혹하게 하여 마침내 결정적인 간을 잡아 「간통남 봤다(間男見つけた)」고 외치며 벽장에서 뒤쳐나오려고 했으나, 그만 [[말실수]]를 하여 「츠츠모타세, 봤다(筒もたせ、見つけた)」고 소리쳐버렸다는 농담이다.
         쵸하치는 오코마를 시켜, 타케하치에게 연애편지를 쓰게 한다. 편지를 본 타케하치가 집에 오자, 쵸하치는 오코마와 부부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타케하치를 몇 대 때린 다음 이런 여자는 너에게 준다고 큰 소리를 치고 집을 떠난다. 그 다음에 오코마가 타케하치를 유혹하게 하여, 결정적인 간에 들어와서 [[부엌칼]]을 들이대고 현장을 잡은 다음, 빚을 무효로 하고 오히려 타케하치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계획이었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2회 일치
         하프타르는 내전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보였는데, 2016년 2월에 리비아 국군은 이슬람주의 민병대를 대부분 벵가지에서 축출했으며, 2016년 4월 중에는 이슬람주의 민병대는 벵가지 동족 250km나 떨어진 데르나 까지 축출되었다. 하프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국군은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리비아 돈, 미스라탄 부대, 벵가지의 혁명 세력 슈라위원회, 시르테 지역을 장악한 [[이슬람 국가]]와 대결하고 있다.
         2016년 5월에 세라즈는 미스라탄 부대를 중심으로 반-IS 센터를 트리폴리에 창설하였으며, 5월 중에 미스라탄 부대는 하프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국군과 시르테 남부 질라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 킹덤/512화 . . . . 2회 일치
          * 경비병 둘은 식간에 치웠지만 위기가 끝난건 아니다. 소란을 감지한 경계부대가 이쪽으로 오고있다. 부하들은 서둘러 철수할 채비를 하려고 하나 왕전은 가만히 아광을 부른다. 아광은 곧 접근하는 부대가 자신들의 배는 됨직하다고 보고한다. 잠시 생각하던 왕전은 "괜찮겠나?"라고 한 마디만 던진다.
          이신, [[하료초]], 왕전, 몽념은 자신들의 예측을 뛰넘는 결정이 나오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리고 이 연합군이 꾸려진 이래 최초로 모든 장교, 모든 병사에게 진정한 목표 "업 공략"이 명시되는 간이다. 열미에 주둔하던 진군은 전병력이 열미를 지나 조의 왕도권으로, 업으로 진격한다.
  • 킹덤/517화 . . . . 2회 일치
          * 이목 또한 왕전이 알여에 전력을 다할 것을 예측하고 [[수수]]만을 요양으로 보내 공손룡과 함께 싸우게 하고 나머지 부하들은 모두 알여로 데려간다.
          * 한단에서 출격을 준비하던 이목 진영에 "진군이 군단을 나눠 알여와 요양을 요격하러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진군이 이목의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말이지만 이목은 당황하지 않고 [[수수]]에게 요양군에 가 공손룡의 부장이 되라고 지시한다. 또한 요양성주는 괴짜지만 잘 조율해 보라 당부한다. 이 인사는 이목진영의 인물들에겐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는데, 무명이나 다름없는데다 다른 인물들과 친분도 없는 그를 단번에 십만 대군의 부장으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 킹덤/524화 . . . . 2회 일치
          * 조군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아광군이 난데없이 측면을 요격당했다. 선두는 마남자. 그의 창이 번뜩일 때마다 주인 잃은 목이 나뒹굴었다. 오직 정면의 적에 집중하던 아광군이 식간에 위기에 처한다.
          * 적을 몰아붙이는데 골몰하고 있던 아광군은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약화되고 있엇다. 1진은 이미 악영군과 한참 교전 중이라 측면을 강화하러 보낼 병력이 없었고 2진도 마남자가 세운 벽에 걸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싸움은 식간에 난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이때 1진과 2진 사이를 소속 불명의 기마대가 가로질러갔다. 양군 모두 전투의 도중인데도 저 기마대가 어디서 온 건지, 누구의 편인지 어리둥절해했다.
  • 토리코/369화 . . . . 2회 일치
          * 달도 식간에 먹어채운 GOD는 다시 토리코 일행을 공격한다.
          * 간적으로 제브라가 사운드 아머를 걸고 써니가 원격헤어를 감는다.
  • 토리코/371화 . . . . 2회 일치
          * 단 0.1초에 불과한 짧은 간에도 지지는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 토리코에겐 후각으로 제브라에겐 청격으로 코코에겐 전자파, 써니에겐 진동으로 필사의 메시지를 정한 것.
          * 원무를 수련한 사천왕은 그 짧은 간의 메시지도 효과적으로 습득, 조리법을 전달 받은 것이었다.
  • 토리코/373화 . . . . 2회 일치
          * 그러자 토리코는 의외로 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얼마가 걸리든 널 쓰러뜨린다"고 선언한다.
  • 토리코/380화 . . . . 2회 일치
          * 지구가 부서질 것 같은 엄청난 충격량. 그러나 그것이 한 간에 "먹어" 치워져 버린다.
          * 예정된 수이지만 결국 팔왕도 전투력 측정기로 전락했다.
  • 토리코/390화 . . . . 2회 일치
          * 공격을 당하던 아카시아는 한 간에 머리를 늘려서 미도라의 혀를 끊어먹는다.
          * 미도라의 공포나 절망이 섞이지 않은, 수한 분노로 가득한 공격만은 네오가 질색해서 강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 토리코/395화 . . . . 2회 일치
          * 예식은 금방 끝나고 곧바로 피로연의 시작이다. 하객이 무려 5천명. 한 번이라도 토리코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축하해주러 왔다. 구르메 계의 주민들은 물론 스타준을 위시한 미식회의 인물들까지 얼굴을 보인다. 코마츠는 조리장으로서 꼭 성공적인 피로연으로 만들자고 기합을 넣는다. 오오타케, 나카우메도 조력하러 온다. GOD를 요리한 전설의 요리사들이 모두 모이자 주방은 한 간에 달아오른다.
          * 토리코는 빌리언 버드의 알을 이치류를 향해 건배한다. 빌리언 버드는 바로 이치류가 남겨준 식재였다. 이치류가 만족스럽게 잔을 들어올리는 간,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그 인물이 나타난다. 미도라의 식혼. 이치류와 토리코가 먼저 알아차리고 코마츠도 그가 나타난걸 알고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2회 일치
         >위풍당당한 힘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단한 성벽과 망루 그 이상이다.
         >벚꽃 잎처럼, 완벽함은 한간일 뿐이다.
  • 퇴계 이황 . . . . 2회 일치
         이황은 [[경연]]에서 명종과 선조에게 사화(士禍)가 재발되어서는 안된다는걸 간곡하게 다짐하고, 이준경 등에게는 사림을 포용하라고 부탁했다. 또한 사림 내부 단속에도 신경을 썻는데, 기대승, 박, [[율곡 이이]] 등에게는 [[조광조]]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퇴계전서 ‘기명언에 답하다’ ‘박에 답하다’] 특히 이황은 [[기묘사회]]의 중심이 된 [[조광조]]에 대하여, ‘학력미충(學力未充)’[* 배움이 부족함]임에도 함부로 나서서 화를 자초다고 비판하였다.[* 퇴계선생 언행록 중 ‘인물을 논하다(論人物)’,]
  • 페어리 테일/493화 . . . . 2회 일치
          * 오거스트는 심장을 꿰뚫었다고 하고 아이린도 불만은 없는지 히 소집에 응한다.
  • 페어리 테일/498화 . . . . 2회 일치
          * 잉벨은 수 "얼음" 마법사라 얼리는 것, "동결" 전문. 그레이의 얼음조형도 얼려버린다.
          * 잉벨은 "수 얼음" 마도사. 얼음을 만들거나 하는게 아니라 "뭐든 동결"시켜 버리는 마법이다.
  • 페어리 테일/504화 . . . . 2회 일치
          * 브랜디쉬는 자신에게 힘이 있는데도 그 간 망설였다고 자책한다.
          * 하지만 루시 하트필리아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며 "중요한 간에 망설여도 괜찮다.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위로한다.
  • 페어리 테일/519화 . . . . 2회 일치
          * 엘자의 검으로도 드래곤에게 상처입힐 없었지만 [[웬디 마벨]]이 최후의 힘으로 멸룡마법 속성을 부여해 아이린을 베어버린다.
          아이린은 승리를 예감하지만 그 간 엘자는 뜻 모를 미소를 짓는다. 그 표정을 보고 아이린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 페어리 테일/526화 . . . . 2회 일치
          * 오거스트는 마법의 간 복사와 무력화. 하지만 홀더계 마법은 "도구" 없이는 카피할 수 없어 카나의 카드를 피해야 했던 것이다.
          * 맹렬한 기세로 오거스트를 떠미는 오거스트. 오거스트는 어떤 마법이든 자신에겐 통하지 않으므로 소용없는 짓이라고 도발한다. 하지만 길다트는 이미 그의 마법의 정체를 간파했다. 오거스트의 마법은 "간 복사"다. 동시에 눈 앞의 마도사의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길다트가 짧은 시간 만에 자신의 비술을 간파하자 오거스트는 적지 않게 놀란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2회 일치
          그녀는 [[나츠 드래그닐]]의 [[페어리 테일/512화|심상 세계]]에서 모습을 보였던 그 인물이었다. 안나는 자신을 엘자의 동료 [[루시 하트필리아]]의 선조라고 소개한다. 물론 엘자가 갑자기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랄은 그런 것보다 정말로 아크놀로기아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안나는 그에게 모든 일에는 서가 있는 법이라며 조급해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 이클립스를 이용한 시간 이동은 언뜻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나면서 다섯 멸룡마도사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리고 만다. 이들의 위치를 찾아내는데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막상 찾아냈을 땐 이미 나름대로 현대의 삶에 적응한 뒤였기 때문에 안나는 갑작스럽게 접촉하기 보단 그들을 지켜보는 길을 택한다. 모든 일에는 서가 있으니까.
  • 페어리 테일/539화 . . . . 2회 일치
          * 엘자는 제랄과도 떨어져 바다로 처박힌다. 강한 의지의 소유자인 그녀도 이번만큼은 정말로 세상이 멸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대로 침몰할 없었다. 엘자는 그렇게 둘 없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 페어리 테일/542화 . . . . 2회 일치
          코브라의 소중한 동료들, 오라시온 세이스도 지상의 아크놀로기아를 무찌르기 위한 작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추론대로였다.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은 마력을 숨긴 채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차례로 마력을 해방했다. 차적으로 해방되는 마력을 따라서 아크놀로기아가 반응, 그들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스팅과 로그도 같은 의견이었다. 마룡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동료들을 볼 낯이 없다, 그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쓰러질 없다. 세이버투스 길드원들은 오라시온 세이스의 바톤을 받아서 같은 방식으로 하루지온까지 마룡을 유도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거리는 프록시와 렉터의 도움을 받은 미네르바와 유키노가 하늘을 날아서 단숨에 끌어들인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2회 일치
          * 위기의 간, [[웬디 마벨]]이 자신의 인챈트 마법을 나츠에게 부여하고 그가 아크놀로기아의 공격을 흡수하게 한다.
          * 엘자, [[미라젠 스트라우스]] 등이 기습을 걸어 아크놀로기아를 배 위로 떨구는 간 루시가 모든 동료들의 힘을 모아 페어리 스피어를 발동시킨다.
  • 페어리 테일/545화 . . . . 2회 일치
          * 페어리 테일 길드 전원, 루시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바깥이든 수상식장이든 새기 마련. 자기네 길드에서 하던 대로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흥청망청 마시고 있다. 루시는 파티에 부르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지나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런 건 무리"라며 시원스럽게 약속을 어긴다. 사실 떠드는 정도로 그치면 별 일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기행이 문제. [[가질 레드폭스]]는 파티장의 식기를 "고급철"이라며 뜯어먹는데 사실 [[팬서 리리]]의 말에 따르면 이건 철 조차 아니다. 나츠는 정장을 갖춰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혼자 일상복으로 와있고, 그걸 지적하는 [[그레이 풀버스터]]는 또 어느 간에 탈의를 자행하고 팬티바람이다. 이 문제로 또 시비가 붙자 [[엘자 스칼렛]]이 두들겨 패서 얌전히 만들고 [[쥬비아 록서]]는 취해서 그레이 대신 벗겠다고 탈의쇼에 돌입. 루시를 위한 파티가 개판으로 치닫는다.
          * 가질과 [[레비 맥거딘]]은 옆에서 보기에 괴로울 정도로 꽁냥꽁냥해졌는데 파티가 한창이던 도중 레비가 잠시 가질을 불러내 뭔가 귀띔을 한다. 그걸 들은 가질이 세상 끝장난 표정을 짓는데. 루시는 간적으로 "아기"란 단어를 들었지만 기분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 옆에, 좀 더 귀가 좋은 [[웬디 마벨]]이 얼굴을 붉히고 있는 걸 보면 임신이 틀림 없는 모양이다. 오늘 밤에 밝혀진 또다른 경사.
  • 페이데이 2/적 . . . . 2회 일치
         신고가 들어왔을 때 찰차를 타고 나타나는 적들.
         기본 체력이 겁나 높아서 헤드샷을 노려야 하는데, 안면을 몇겹의 장갑으로 보호받고 있다. 안면의 장갑판에 공격을 가해 떼어낸 후, 바이저를 깨부 다음에야 면상에 총알을 박을 수 있다.
  • 폐비 윤씨 . . . . 2회 일치
         고조부 [[윤희]](尹禧)는 [[고려]]조에서 정대부(正順大夫)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지낸바 있다.
         친정오빠 [[윤구]]의 손녀사위는 [[조선 명종|명종]]비 [[인왕후]]의 외삼촌이자 권신인 [[이량 (조선)|이량]]이다.
  • 폴리스 . . . . 2회 일치
         16세기 프랑스에서는 폴리스를 도시(cite)로 번역했다. 1765년 독일의 헤르더(Herder)는 폴리스를 슈타트슈타아트(Stadtstaat)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도시국가'라는 의미로서 단한 정주지로서 '슈타트(stadt, 도시)'와는 구분되었다. 이러한 표현은 [[독일제국]] 내에 국가로서 주권을 인정받는 도시(소위 말하는 [[자유도시]])가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전기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는 정치적 주권을 가지고 자치와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대부분의 폴리스는 자치권을 상실하여 단한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 피수영 . . . . 2회 일치
         피수영은 부친 [[피천득]] 선생에 대해 '간의 배부름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 강인한 기상을 자식들에게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또 "꼿꼿함과 선비다움을 가풍으로 물려줬다"고 말했다.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천향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울산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하동부대부인 . . . . 2회 일치
         |자녀 = 아들 [[하원군]],[[하릉군]], 하성군([[선조]]), 딸 [[이명]]
         **** 장녀 : [[이명]](李明順, 1548~?)
  • 하이큐/222화 . . . . 2회 일치
          * 공은 아슬아슬하게 넘기지만 식간에 둘이나 따라붙은 데다 확실히 블록의 손에 닿는다.
          * 우카이 코치는 세터와 블로커의 공방은 공격 간 외에도 계속된다고 말하다.
  • 하이큐/232화 . . . . 2회 일치
          패배도 승리도 확신할 없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곤 못배긴다". 그것이 그녀의 기질이다.
          * 공식 워밍업 타임이 끝나는 휘슬이 들린다. 아슬아슬한 간에 도착했다. 키요코는 관중석에서 코트 위의 히토카에게 짐을 넘긴다. 짐은 확실히,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키요코는 코트 위의 3학년들과 승리의 제스쳐를 교환한다.
  • 하이큐/234화 . . . . 2회 일치
          바보같이 솔직한 대답. 아테마가 간 혹한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츠키시마의 서브. 테라도마리가 받아서 마루야마가 스파이크. 사와무라가 리시브한다. 카게야마가 좋은 리스브라고 생각하며 세트 포지션으로 들어가는 간.
  • 하이큐/249화 . . . . 2회 일치
          이나리자키 고교 정도는 아니지만 [[카라스노 고교]]도 관중의 시선을 모으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괴짜 콤비는 카라스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주목할 정도로 별나 보인다. 특히 히나타의 점프력은 이나리자키도 체크하는 요소. 이나리자키의 [[오지로 알랭]]은 특히 눈여겨 본다. [[스나 린타로]]도 표현은 하지 않지만 눈을 돌리지 않는다. 사실 히나타의 점프는 어제를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간에도 [[호시우미 코라이]]의 점프를 연상하며 자세를 바꿔보고 있다. 히나타는 방금 전 점프는 괜찮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흘러가는 느낌"이 난다고 아쉬워한다. 다시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하지만 팀이 서브 연습으로 바꾸면서 기회를 놓친다.
          * 아츠무가 위치에 서자 이나리자키의 "음악단"이 사기를 고양하는 박자를 연주한다. 그런데 아츠무가 주먹을 쥐는 간, 지휘자의 지시처럼 일제히 연주가 멈춘다. 커다란 체육관이 정적에 휩쌓인다. 카게야마나 [[츠키시마 케이]]는 그것을 썩 달갑지 않게 바라보지만 히나타는 "저거 멋있다"고 생각하며 구경하는 기분이다.
  • 하이큐/262화 . . . . 2회 일치
          >간단하진 않지만 단하지.
          * 날아오는 공이 보인 간 타나카는 해선 안 될 생각을 했다.
  • 하일권 . . . . 2회 일치
         === 보스의정 ===
         {{본문|보스의 정}}
  • 하재숙 . . . . 2회 일치
          * [[MBC]] [[별검]] 시즌1(2007) - 능금
          * [[tvN]] [[노란복수초]](2012) - 김영
  • 하주석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12년]] 1라운드([[한화 이글스]])
         [[덕수중학교]]를 졸업하고 [[신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신일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 재능을 보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제64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소속 팀을 12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고, 16타수 11안타, 타율 0.688을 기록하여 타격상을 수상했다.<ref>[http://news.donga.com/3//20090527/8736794/1 신일고, 12년 만에 청룡기 야구 우승] 《동아일보》, 2009년 9월 22일</ref> 그 해 참가한 전국 대회에서 총 58타수 25안타, 타율 0.431을 기록하면서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다.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1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라운드 1위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었다.
  • 한교원 . . . . 2회 일치
         ||<:><-12> GK [br] [[권태]] ||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축구명문 축에 드는 [[조선대학교]]의 스카웃망에 잡히기는 했으나, 조선대에서도 우선위로 선발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선대 축구부 쿼터가 꽉 차는 바람에 조선대 입학이 무산되었고 [[조선이공대학]]으로 입학하게 된다. 조선대와 조선이공대는 같은 재단 소속. 이를테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입단했는데 팀에 자리가 없어서 바로 위성구단인 엑셀시오르로 임대 간 [[김남일]]과 비슷한 케이스. 갓 창단한 조선이공대 축구부에서 한교원은 [[메시]]놀이를 시작한다. 2010년 [[U리그]]에서 한교원이 찍은 스탯은 20경기 출전 18골 (...)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이름을 날리게 되고 그 결과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지명된다. 조선이공대가 배출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K리거이다.
  • 한규식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9년]] 2차 2위([[롯데 자이언츠]])
  • 한상훈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9년]] 2차 6라운드([[한화 이글스]])
         [[1980년]] [[6월 3일]] [[서울특별시|서울]] 출신으로 [[서울화곡초등학교]]와 [[신일중학교]]를 거쳐 [[신일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신일고등학교]] 시절 투수로도 활동하였고,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로 [[한화 이글스]]의 2차 6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99학번)에 진학하였다.
  • 한창수 . . . . 2회 일치
         외교 관계 쪽 관직을 맡으며 [[일본]]에 드나들면서 친일 세력과 가까워진 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후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었다. 일제의 신임을 받아 [[대한제국 고종|고종]]과 [[대한제국 종|종]] 등 왕실을 전담하는 [[이왕직 장관]]도 역임했다.
  • 한혁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3년]] 2차 4위([[쌍방울 레이더스]])
  • 한혜숙(배우) . . . . 2회 일치
         실제 성격이 직선적이고 도도한 편으로, 드라마에 반영되어 주로 꼿꼿하고 도도하고 고집이 있는 여자주인공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70년대에 '브라운관의 [[김지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자랑했다. 올곧은 성격으로 인해 [[PD(방송)|PD]]들하고 트러블도 있었는데, 그로 인해 하차하거나 방송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1970 ~ [[1980년대|80년대]] 미모 위하면 항상 위권에 들었다.
  • 함신익 . . . . 2회 일치
         미국 Seattle Times 는 "함신익은 생동감 있으면서도 감동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수한 기쁨, 충격적인 음색으로 함신익의 오케스트라는 풍부한 음감, 따뜻한 소리로 웅장하면서도 편한 다양한 소리를 전달하였다" 라고 호평하였다.
         함신익은 EU (유럽연맹)가 후원하는 세계 40 개국으로부터 모인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Philharmonia of the Nations 의 지휘자로서 이들의 유럽 회연주를 성공적으로 지휘하였다.
  • 함화진 . . . . 2회 일치
         [[대한제국 고종|고종]] 21년인 1884년에 대대로 왕실의 악사를 지낸 [[양근 함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함화진(咸華鎭)이었다. 함화진의 집안은 세습적인 악사 가문으로 증조부 함윤옥은 [[조선 조|조]]와 [[조선 헌종|헌종]] 때 악사였고, 할아버지 함제홍은 헌종 때 [[단소]]와 [[젓대]]의 명수로 불렸다. 큰아버지 함재홍은 젓대, 아버지 [[함재운]]은 [[거문고]]의 대가였다.
  • 허건엽 . . . . 2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2차 4라운드 전체 34위]] ([[SK 와이번스]])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절 65회 [[청룡기]]에서 [[천 효천고등학교 야구부|효천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다. 또, 63회 황금사자기에서 임찬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SK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 허용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8위 ([[LG 트윈스]])
  • 허종 (1939년) . . . . 2회 일치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이 되어 각국 회대사, UN 주재 [[북조선]] 대표단 부대사, 외교부 대변인, 다시 [[1994년]] 북조선과 미국 간 북미회담 시 외교단 대표, 그해 UN 주재 [[북조선]] 대표단 부대사, 외교부 회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 허준 (1981년)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1년]] 7차 6라운드([[현대 유니콘스]])
         오랫동안 2군 생활을 하다가 [[2009년]]부터 [[강귀태]]의 백업 포수로서 본격적으로 1군 무대를 밟는다. 그 이후로 많은 기회를 받지만 부상으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2011년]] [[허도환]]의 등장으로 1군 경기 출전 횟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2011년]] [[11월 22일]] [[2012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차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팀 동료 [[조평호]]와 함께 [[NC 다이노스]]로 이적하게 된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45598 NC, 전체 1위로 넥센 조평호 지명 '총 7명 영입' ] - 스타N뉴스</ref>
  • 허화평 . . . . 2회 일치
         2016년 [[박근혜-최실 게이트]]로 정국이 요동치는 판에 허화평은 TV조선의 단독인터뷰에 응했다. 이 자리에서 허화평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의 정신적 포로라고 증언하면서, 이 같은 사건으로 한국의 정치적 후진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http://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00&cid=1051768&iid=1139394&oid=448&aid=0000186191|#]]
         '''그렇다면 왜 최태민을 잡아넣거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의 반문에, 허화평은 [[박정희]] 대통령과 [[10월 유신]]의 결과물인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산하는 일이었다는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51768&iid=1140067&oid=449&aid=0000114843&ptype=052|#]]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대로 수사해서 청산하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와 비리의 온상이 [[새마음봉사단]]이라고 보았으며, 그 결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서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 달라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묻어버린 것.
  • 현덕 . . . . 2회 일치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남]],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 김영, [http://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hyundek&wr_id=4&page= 아동문학 선구자 현덕 - 생애와 업적] (동심넷 - 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 현아 . . . . 2회 일치
         2011년 4월 5일 [[포미닛]]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4Minutes Left]]》를 발매해 타이틀 곡 〈거울아 거울아〉로 활동했다.<ref name="아시아경제"/> 또한 비슷한 시기 [[임정희]]의 〈[[Golden Lady]]〉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임정희 ‘골든 레이디’ [[포미닛]] [[김현아]] 랩 피처링 지원사격 |확인날짜=2011-07-24|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030905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1-05-03}}</ref> 2011년 6월부터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6월 솔로컴백 동시 '댄싱위드더스타' 출연|확인날짜=2011-06-04|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5220943330511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영웅|날짜=2011-05-22}}</ref>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다섯 번째 탈락자로 결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댄싱 위드 더 스타’ 탈락..심사위원 “심사할 수 없는 지경”|확인날짜=2011-07-24|url=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78679§ion=sc4|출판사=브레이크뉴스|저자=한누리|날짜=2011-07-16}}</ref> 현아는 2011년 7월 5일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다. 이에 앞서 2011년 6월 30일 발라드풍의 수록곡 〈[[A Bitter Day]]〉를 공개했다.<ref name="Pop!">{{뉴스 인용|제목=김현아, 30일 발라드 ‘A Bitter day’ 선공개…‘솔로 출격’ 신호탄|확인날짜=2011-06-29|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629111326420&ts=130703|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곽민구|날짜=2011-06-29}}</ref>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가온 디지털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f name="가온">{{웹 인용|url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Bubble+Pop%21&x=43&y=19|제목 =가온 차트 > Bubble Pop! |출판사 =[[가온 차트]]|확인날짜 =2011-07-19}}</ref> 그러나, 201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Bubble Pop!"의 안무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인다며 안무를 수정할 것을 요정했지만, 소속사측은 안무를 수정하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활동중단 '또 선정성 논란, [[김현아]]가 추면 다 야해' |확인날짜=2011-08-05|url=http://artsnews.mk.co.kr/news/163166|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하얀|날짜=2011-08-05}}</ref> "Bubble Pop!"은 평론가들로부터 혼합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즘》에서 "캔디 팝의 요소가 잘 녹아들었음에도 제대로 방점을 찍지 못해 솜사탕같은 트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ref>황선업.[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3086&bigcateidx=8&subcateidx=10&cTp=4 이즘 - Bubble pop!] 《이즘》. 2011-07 작성. 2011-12-16 확인.</ref> 영국의 《팝저스티스》는 "오늘의 노래"에 선정했고,<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英 팝사이트 '오늘의 노래' 선정… "가장 섹시" 찬사 |확인날짜=2011-07-22|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107/sp2011072010252095510.ht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성한|날짜=2011-07-20}}</ref> 미국의 《스핀 매거진》은 "2011년 올해의 베스트 노래 20" 위 중 〈Bubble Pop!〉을 9위에 선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美스핀 선정 '2011 베스트송20'|확인날짜=2011-12-16|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121209445192085&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박영웅|날짜=2011-12-12}}</ref> 이후 2011년 8월부터 [[도끼 (가수)|도끼]]가 피처링한 노래 "[[Just Follow]]"로 후속곡 활동을 잠깐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김현아 just follow 무대 공개, 선정성 '제로' 카리스마 '폭발' |확인날짜=2011-08-13|url=http://artsnews.mk.co.kr/news/164401|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풀잎|날짜=2011-08-13}}</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백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남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남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상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남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한국 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 현재윤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5차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신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4위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 입단 대신 [[성균관대학교]](1998학번)에 입학한다.
  • 홍명찬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6년]] 4차 2라운드 12위([[SK 와이번스]])
  • 홍승규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1차 5위([[삼성 라이온즈]])
  • 황덕균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2차 4라운드([[두산 베어스]])
         [[2002년]] 2차 4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나,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004 시즌을 앞두고 방출되었다.
  • 황두성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2차 3위 ([[삼성 라이온즈]])
  • 황재규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6차 5라운드([[한화 이글스]])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한화 이글스]]의 2차 5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ref>
  • 황종률 (정치인) . . . . 2회 일치
         |후임자 = [[이용]]
         |후임자 = [[이용]]
  • 2013 K리그 심판매수 . . . . 1회 일치
         이 사실을 접한 전북팬들은 2015년 경남팬들이 겪었던 멘붕을 그대로 겪게 되었으며, K리그 팬들은 약팀이었던 경남부터 강팀인 전북에 이르기까지 심판 매수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전북의 스카우터 C모씨는 직위로만 보면 일개 직원처럼 보여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611035|전북의 발표처럼 개인의 잘못으로만 비춰질 수 있으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고 있는 저 C모씨는 전북 프론트 유일 15년 경력 최고참으로 전북 내부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경남과 마찬가지로 전북도 고위급 인사가 저지른 범죄인데다가 전북 역시 "단한 도의적 책임"만이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3월의 라이온/121화 . . . . 1회 일치
          * 한편 키리야마는 위전을 앞두고 집에서 만전을 기하고 있다.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1회 일치
          * 그 뒤 고기, 갖은 야채 으로 볶는다.
  • 3월의 라이온/127화 . . . . 1회 일치
          * 하야시다는 왜 하필 이런 간에 이렇게 강한 말이 옆에 놓이는지 하늘을 원망한다.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1회 일치
          * 가게는 식간에 그때 일로 이야기꽃이 핀다.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1회 일치
          >꿈은 이뤄질지 모르는 간에
  • 5분의 3 조항 . . . . 1회 일치
         이 조항은 중대한 모을 가지고 있다. 평소 남부 사회에서는 흑인 노예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경우에는 흑인 노예를 '재산'이라고 주장했지만 여기에서는 예외로 (5분의 3이긴 하지만)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다.
  • DV . . . . 1회 일치
         DV라는 말은 단히 [[폭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내에서의 다양한 괴롭힘에 폭넓게 적용된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1회 일치
         ''' 오늘이 여러분에게 영광의 날임을 기억하시오. 여러분은 피를 단한방울만 흘리더라도 여러분 스스로를 위해 교자의 보관과 영원한 영광을 준비하게 되는것이오. -콘스탄티누스 11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 K리그 . . . . 1회 일치
         K리그의 승강제는 2012시즌부터 도입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2012시즌은 2부리그가 창설되지 않았기에 승격은 없고, 강등만 있어 수한 승강제와는 거리가 약간 있지만 K리그 역사에서는 2012시즌부터 승강제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아직 대회가 2회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징크스라 불릴 사례가 쌓이고 있다. 룰을 보면 알겠지만 리그에서 높은 위를 기록한 팀에게 유리한 조건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2위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례만 생기고 있는게 원인.
  • K리그 클래식 . . . . 1회 일치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의 평가에서 K리그는 세계적으로 30위 내에는 꾸준히 들어가는 리그다. [[http://iffhs.de/the-strongest-league-in-the-world-2015/|2015년 발표만 봐도]] [[그리스]], [[네덜란드]]와 비슷한 점수를 받는 상황. 그리고 [[스코틀랜드]]보다 위가 더 높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봐도 결코 무시할 리그는 아니다.
  • MoniWikiACL . . . . 1회 일치
         wildcard를 쓴 것 보다 explicit하게 지정된 것이 먼저 적용된다. (서에 상관 없다)
  • MoniWikiOptions . . . . 1회 일치
          * 모니위키 1.2.0부터는 단히 $javascripts=array("folding.js",... 추가하여 사용하며, 모바일을 함께 지원합니다.
  • PageListMacro . . . . 1회 일치
          FullSearch -> LikePages -> LikePages with MetaWiki의 서로 찾을 수 있는 어포던스를 더 분명히 제공하도록 해야겠습니다. --WkPark
  • That 70's show . . . . 1회 일치
         아버지가 곤혹해하는 표정을 본 간 에릭은 [[닉슨]] 가면을 뒤집어 쓰고 벌거벗고 뛰쳐나와서 유세장에서 날려나간다. 에릭이 시위하는걸 보고 배짱을 되찾은 레드는 당당한 태도로 "어떻게 닉슨을 사면할 수 있냐?"고 포드에게 [[돌직구]]를 던진다.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1회 일치
          [[민주당]] 정치인. 대선에 나와 반(反)기업을 외치며 기업가들에게 위협이 된다. 처음으로 전국 회를 한 대선 후보라고.
  • UR임대 . . . . 1회 일치
         주택이 부족했던 고도성장기에는 공단주택의 건설의미가 있었지만, 임대주택이 많은 현대에는 미분양도 많아 단히 '적자산업'에 불과하며, 민간 아파트 경영자가 분양하는 소규모 아파트와 경쟁이 붙어 아파트 경영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또 UR임대로 난개발이 이루어져서 환경을 파괴하는 사례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다. 현대에는 주민들의 노령화 문제와, 유럽마냥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으로 슬럼화 문제를 겪고 있는 단지들이 많다.
  • Victoria II/군사와 전투 . . . . 1회 일치
          * 양함(Cruiser)
  • くぁwせdrftgyふじこlp . . . . 1회 일치
         일본어 키보드에서 키보드의 자판을 qawsdeftgyhujikolp 서로 치면 나타나는 문장.
  • 감정없는 존재 . . . . 1회 일치
         "지적 생명체"의 존재성에 있어 감성이 없다는 특성은 수한 이성만 존재하므로, 철저한 합리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보통 SF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로 나뉘어 설명한다.
  • 강구열 . . . . 1회 일치
         그러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말았다. 김창희가 전대회 4강에 올랐던 [[진영수]](당시 [[STX 소울]] 현 영구제명)에게 "만만하다"며 도발하자, 진영수가 "나와 승부하려면 강구열부터 꺾고 오라"며 응수한 것. 결국 별다른 친분도, 사연도 없던 강구열과 김창희는 진영수에 의해 같은 C조에 편성되었고, 김창희는 강구열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종 진영수만 자극하기에 바빴다. 가만히 지켜보던 강구열이 "나는 버그 쓴 테란에게는 지지 않는다"며 김창희를 공격했고, 이에 김창희가 "버그가 아니라 스킬인데 자꾸 버그버그 하니까 좀 그렇다"라며, 한편으로는 "강구열 선수 물론 별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하면서 식간에 두 선수 사이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또한 이 장면은 각 커뮤니티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그러나 이들은 단히 추모행사를 주도한 것만이 아니라 이것을 자신들의 남혐활동을 합리화하는데 이용하였으며 한국사회를 여혐사회로 단정하고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는데 총력을 다했다.
  • 강동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강예빈 . . . . 1회 일치
         * 《[[위 정하는 여자]]》 (2011년, QTV)
  • 강원 FC . . . . 1회 일치
         || 리그 구분 || 리그 참가팀 || 최종위 ||
  • 강은탁 . . . . 1회 일치
          * 2014년 [[KBS2]] [[금의 땅]]
  • 강중인 . . . . 1회 일치
         《[[삼천리 (일제 강점기의 잡지)|삼천리]]》에 〈최근의 반도의 경제사범 ­국민의 신경제 윤리의 파악을 위하여­〉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경제사범을 "미증유의 국난"을 돌파해 "대동아를 건설하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간에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집단으로 묘사하고, 이들은 국민의 일대수치이므로 엄벌주의로 대처할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관민이 일체가 되어 "일사보국의 성을 다함"으로써 성업을 어서 완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 강화종실 . . . . 1회 일치
         [[정왕후]]의 수렴청정 시기에, [[가톨릭]] 탄압인 신유교난(辛酉敎難)이 일어났는데, 은언군의 처 송씨(宋氏)와 며느리 신씨(申氏)가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드러나서, 1801년 은언군, 송씨, 신씨가 모두 사사되었다.(이들은 손자인 철종이 즉위한 뒤에 신원되었다.)
  • 강흠덕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거대로봇 . . . . 1회 일치
         당연한 말이나 거대로봇은 만들 수 있나, 없나를 떠나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단골요소인 거대한 인간형 2족 보행 로봇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다보니 거대로봇물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단 취향 차이도 있으나 거대로봇물에 대한 과한 추종심이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가상매체에서의 일인데 뭐 어떻냐는 사람들도 있고, 이러한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지 꽤 된 시점에서도 양질의 작품이 나오니 팬이라면 과하게 생각지 말고, 즐기길 권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8화 . . . . 1회 일치
          * 키리에는 그 간 시간이 멈췄다고 술회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1회 일치
          * 타이헤이는 아무렇지 않게 우마루의 건어물 모드의 실상을 말해주려고 하는데 간 멈칫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1회 일치
          실제 플레이에서도 히카리는 마을을 꼼꼼하게 돌아보자고 하지만 우마루는 일단 밖에 나가서 보이는대로 몬스터를 잡아댄다. 그러면서 식간에 레벨이 20대로 성장. 히카리를 크게 앞지른다. 이것만 봐서는 게이머로서는 우마루가 한 수 위... 라는 것 같았지만.
  • 건포인트/도전과제 . . . . 1회 일치
         나열 서는 2017년 1월 10일 기준 전체 달성률.
  • 경기도 . . . . 1회 일치
         [[2017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경기도의 각 시와 인구와 면적은 다음과 같다. 인구는 12,783,741명이고 남여비율은 1.01로 전반적인 [[성비|남초]] 지역이다. 시군별로는 [[포천시]] (1.11)와 [[연천군]] (1.11)가 가장 높고, [[시흥시]] (1.10), [[화성시]] (1.07),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1.06), [[오산시]] (1.06), [[안산시]] (1.05), [[안성시]] (1.05), [[가평군]] (1.05), [[이천시]] (1.04), [[안성시]] (1.04), [[양주시]] (1.03), [[파주시]] (1.03), [[양평군]] (1.02), [[여주시]] (1.02), [[수원시]] (1.01), [[하남시]] (1.01), [[김포시]] (1.01), [[남양주시]] (1.00), [[부천시]] (1.00), [[의왕시]] (1.00), [[구리시]] (0.99), [[군포시]] (0.99), [[동두천시]] (0.99), [[안양시]] (0.99), [[용인시]] (0.99), [[광명시]] (0.98), [[성남시]] (0.98), [[고양시]] (0.97), [[의정부시]] (0.97), [[과천시]] (0.95) 으로 높다.
  • 경대수 . . . . 1회 일치
         새누리당에서는 비박으로 분류되었다. [[2016년]]말 [[박근혜-최실 게이트]] 당시 [[새누리당/비상시국위원회|비상시국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다만 [[바른정당]] 창당에는 합류하지 않은 상태.
  • 경비원 . . . . 1회 일치
         경비원에게 제압당할 정도면 영웅이나 수사관이 등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만, 도입부나 중간 전개에서 위기감을 강조하려고 애꿏은 경비원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매우 많다. 경비원이 등장하면 '''일단 죽는다'''고 보면 될 정도. 미국 수사물에서는 대개 경비원을 쓰러드리고 [[경찰]], [[SWAT]], [[FBI]] 서로 테크가 올라간다.
  • 계한보신찬 . . . . 1회 일치
         [[유비]], [[제갈량]], [[관우]]-[[장비]], [[마초]], [[법정]], [[방통]], [[황충]], [[조운]]-[[진도]], [[위연]] 등의 서로 비평을 내린다.
  • 고도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7라운드]] ([[롯데 자이언츠]])
  • 고주원(배우) . . . . 1회 일치
          * [[최고다 이신]] - 박찬우 역
  • 공명(배우) . . . . 1회 일치
         웃을 때 아이처럼 수하게 웃는다.
  • 구명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4차 5라운드([[두산 베어스]])
  • 구본욱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3년]] 신고선수
  • 구자욱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2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구자춘 . . . . 1회 일치
         1974년 9월 2일부터 1978년 12월 21일까지 제16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원래는 영등포-왕십리로 계획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거대 환선으로 만든 사람이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만에 만들었다는 레전설이 나름 유명. 웃긴건 그렇게 날림처럼 노선이 정해졌음에도 정작 공사할 때 [[영등포역]] 경유 예정 구간이 [[신도림역]] 경유로 바뀐 것, 딱 한 곳만을 제외하면 딱히 난공사라 할만한 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자춘 시장이 포병 출신이어서 지도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레전설 일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근데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손정목]] 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다만 이는 좋게 봐줘도 2호선 한 노선 한정이고, 바로 다음 노선인 3호선부터 서울 지하철 노선의 선형은 '''온갖 병크'''가 터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서울/강남|강남]]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 이외에도 [[강남8학군|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의 명문고 이전]],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다만 본인이 기안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고속터미널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지하철 3호선|3호선]]을 무리해서 끌어오느라 3호선의 선형에 '''지랄맞은 ㄷ자 드리프트'''가 생기는 원흉이 된다.], 금화터널 건설 과정에서의 [[독립문]] 이전, [[한양도성]] 일부 복원, 도심부 주차장 확충--당시 도시계획국장 [[손정목]]의 말을 안 듣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등을 추진하였다. 이런 그의 별명은 대표적으로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0110020920202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0-11&officeId=00020&pageNo=2&printNo=17237&publishType=00020|황야의 무법자]]'''였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별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1190032920600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1-19&officeId=00032&pageNo=6&printNo=9891&publishType=00020|붙었다]].~~관료계의 [[김태균(1982)|김별명]] [[박용택|별명택]]~~
  • 구천서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원년 멤버
  • 권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1회 일치
         투척무기를 제외한 원거리 무기는 무언가를 쏠수록 스킬이 오른다. 스킬은 낮음(Poor)-갱스터(Gangster)-히트맨(Hitman) 으로 오르며 스킬이 올라갈수록 사정거리나 재장전 속도 같은게 늘어난다.
  • 길용우 . . . . 1회 일치
          * [[달자의 봄(KBS 2TV)|달자의 봄]] - 강홍 역
  • 김건우 (1990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3년]] 신고선수
  • 김근석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김기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2017년 10월 26일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과 형법상 모욕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앞서 지난 4월 중 전(前) 팬클럽 회장 A씨[* 김기수를 10년째 좋아하던 사람인데 김기수가 그 팬을 [[스토커]]라 지칭하였다.]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하였다. SNS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중 A씨를 비방하고 그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였으나 결론은 무혐의. [[http://m.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421&aid=0003014237&rankingType=default&rankingDate=|링크]]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 물권행위 탄생사, 아듀, 물권행위(명구·김제완·김기창·박경신 공저),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6.12
  • 김대휘 . . . . 1회 일치
         |배우자 = 정
  • 김도연(배우) . . . . 1회 일치
          * 2014년 KBS 2TV 금의 땅
  • 김동준(제국의아이들) . . . . 1회 일치
          * [[멈추고 싶은 간 : 어바웃 타임]](tvN, 2018) - 조재유 역[* 원래는 [[이서원]]이 맡기로 했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하면서 대신 맡게 되었다.]
  • 김동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육성선수 입단)
  • 김명신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 김무력 . . . . 1회 일치
         556년에 세워진 <창녕진흥왕척경비>,<북한산신라진흥왕수비>에서 '무력지 잡간(武力智迊干)'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잡간은 신라 관등 3위에 해당하는 지위로서, 백제 성왕을 죽인 공적으로 크게 승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김민수 (1991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 김민수 (1992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특별 우선 지명([[kt 위즈]])
  • 김범룡 . . . . 1회 일치
         |1 집||[[1985년]]|| 《바람 바람 바람》, 《그간》, 《별빛속의 님》
  • 김봉근(배우) . . . . 1회 일치
         * 《[[사랑해, 말씨]]》
  • 김봉환(1921)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관료, 법조인([[변호사]]), [[정치인]]이다. 호는 선주(善洲)이다. [[신광]] 전 국회의원이 그의 손아랫동서이다. 또한 [[손경식]]의 장인어른이다.
  • 김부식 . . . . 1회 일치
         [[고려 인종|인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인 [[이자겸]]은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이자겸의 전횡에 비례(非禮)를 이유로 반대한 일<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고려사》 권98, 열전11, 김부식전.</ref> 이 있으나 직접적으로 대항하지는 않고 묵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자겸 집권기에 탄하게 승진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Ⅰ)》, 집문당, 1999년.</ref> 또한 [[1126년]]과 [[1127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하여 송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박승중(朴昇中)·정극영(鄭克永)과 함께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 어사대인(御史大人)·호부상서(戶部尙書)·한림원학사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승진하였고, 수사공(守司空)을 더하였다.
  • 김상엽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8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9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 김상훈 (1990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4라운드([[두산 베어스]])
  • 김새해 . . . . 1회 일치
         * [[놓지마 정신줄]] - 대박
  • 김선영(1976) . . . . 1회 일치
          * [[파수꾼(드라마)|파수꾼]] (2017, MBC) - 이
  • 김성윤 (1991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3라운드([[kt 위즈]])
  • 김성주 (기업인) . . . . 1회 일치
         개인의 신념이자 경영철학인 “Succeed to Serve", 사회환원기업 (Social Enterprise)으로써의 책임의식으로 2009년 ㈜성주재단을 설립, 기업의 수익 10%를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 환원하며,
  • 김성현 (1989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8년]] 6차 1라운드([[현대 유니콘스]])
  • 김성훈(배우) . . . . 1회 일치
         * 《뉴보잉보잉》 (2009년) - 성 역
  • 김소혜(1992) . . . . 1회 일치
          * 청소년기에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자신에게 일기형식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서 고민을 해결하였다. 어느 간 창작을 해보고 싶어서 20~23살까지 판타지 소설을 지었는데 자신이 배우 [[지성(배우)|지성]]의 오랜 팬이다 보니 그를 모델로 삼아서 썼다고 한다. 제목은 '더 플레이스'이다. 고등학교 때 내용을 구상하고 20살 때부터 썼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08307|OSEN]]
  • 김수진(배우) . . . . 1회 일치
         * [[풍산부인과]] (1998-2000년, [[SBS]])
  • 김승목 . . . . 1회 일치
         1959년 [[민주당(1955년)|민주당]] [[박천]]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기출]]의 뒤를 이어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 [[동구(부산)|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 김양 (1953년) . . . . 1회 일치
         * 증조부 : 김영 (金淳永, [[1848년]]~ [[1901년]] [[2월]])
  • 김유미(1979) . . . . 1회 일치
         || 2005 || 종려나무 숲 || 화연/정 ||
  • 김유현 . . . . 1회 일치
         '''김유현'''([[1987년]] [[1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배우 김유현은 2015년 6월 7일 대구에서 9살연상 일반인 사업가(건설회사 부사장)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당분간은 신혼생활에 충실할 예정이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7050100050700003393&servicedate=20150704 김유현 결혼, 9살 연상 건설회사 부사장과…'전우치' 등서 청연기]]</ref>
  • 김윤동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4라운드]]([[KIA 타이거즈]])
  • 김인철 . . . . 1회 일치
          * 2017년 7월 청주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장정은 상습 폭행건으로, 경질되고, 심정진이 새로 부임했는데, 과거 폭력전과가 있어서 해임되었다.]나온 기사에 따르면 은퇴 후 한화의 전력분석원, 스카우트를 맡을 때도 틈틈이 공부를 하는 '공부하는 야구인'이었으며, 현재 대학원 입학을 위해 공부 중이라고 한다. 나중에 꿈은 대학 강단에 올라서 제대로 된 야구인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또한 심판, 기록원, 스카우트 등 야구계 전반에서 활동할 이들에게 체계적인 야구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일엽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 김정난 . . . . 1회 일치
         || 2000년 || MBC || [[세 친구]] || 김정난[* [[정웅인]]을 짝사랑하는 정녀, 윤다훈을 뒤쫓는 꽃집주인역 으로 출현] || 단역 ||
  • 김정수 (1991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김종덕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육성선수 입단)
  • 김종호(1935) . . . . 1회 일치
         1998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00년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탄핵 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에 반대하였고[* [[이낙연]]과 함께 탄핵안에 반대한 2명 중 1명이다. 이낙연은 노무현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 당연히 탄핵에 반대할만했지만 김종호는 매우 의외인데 이는 단히 자민련 의원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출신 자체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민정당 계열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하면 했지 도저히 반대할만한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 김주승 . . . . 1회 일치
          * [[1988년]] [[KBS]] 주말연속극 《심이》 ... 진호 역
  • 김준희 (1960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김지혜(1980) . . . . 1회 일치
         * 1998 [[풍산부인과]]
  • 김지훈(배우) . . . . 1회 일치
         || [[JTBC]] || [[크라임씬2]] || [[크라임씬2/갤러리 살인사건#s-2.2.5|김경비]], [[크라임씬2/통닭집 살인사건#s-2.2.3|김일꾼]], [[크라임씬2/산장 살인사건#s-2.2.4|김진]] ||
  • 김진우(WINNER) . . . . 1회 일치
          * [[전라남도]] [[신안군]] 천사의 섬 임자도 출신이다.[* 시골 출신답게 좋은 구름 나쁜 구름을 구분할 줄 알며, 어르신 용어를 쓸 때가 있다. 장롱을 농장으로 발음한다던가..] 왕자님처럼 자랐을 것 같다는 얼굴과 다르게, 섬소년으로 박하게 자란 탓인지 [[천연]] 속성을 가지고 있다.[* 김구워더도 이런 성격에서 나온 것. 송민호의 진우형은 그냥 말하는데 빵빵 터져요도 같은 맥락][*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할 줄 안다. 잘생긴 얼굴에 사투리는 일종의 갭모에?] 말할 때 자세히 들어보면 [[전라도 사투리]]가 들린다! 상당히 귀엽다.
  • 김창규 (작가) . . . . 1회 일치
         '시국회의' 공식 제안 이후 후속, "1월 중께 시국회의 개최"</nowiki>
  • 김태룡(정치인) . . . . 1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서구(대전)|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박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참여하였다.
  • 김태한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2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 김태훈 (1987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3차 6라운드([[KIA 타이거즈]])
  • 김현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김현철(교수) . . . . 1회 일치
         2015년 1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최고위 경제분석과정 강의에서 “수출 부진과 가계부채 증가로 한국 경제는 파국에 접어들고 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경제]]가 1990년대 중반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일본경제와 닮았다고 평가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소니가 삼성 때문에 쓰러졌다고 생각하지만 소니는 삼성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무너뜨린 것"[* 소니가 안 무너졌다는 반론은 있다. 오히려 반등에 성공했다는 지표도 있다. [[http://it.chosun.com/news/article.html?no=2819018|링크참조]] 그러나 맥락상 포인트는 소니가 무너졌다 안무너졌다의 단 팩트 체크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법인세율 인상 정책 때문에 소니가 피해를 입었다는 맥락이다.]이라며,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을 망가뜨리게 되고 나아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형기 (법조인) . . . . 1회 일치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반공법]]위반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된 영화배우 [[박노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반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반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 김형일(배우) . . . . 1회 일치
         대하 드라마에 나왔을 때는 연기를 맡는 캐릭터의 특성 상 '''높은 확률로 사망'''한다(…). 덕분에 [[사망전대/사극|사극에 한정할 경우 사망전대]]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극중극 [[난중일기]]에서 [[이신]] 역을 맡았다.
  • 김혜은(탤런트) . . . . 1회 일치
         ||<|2> 2016년 || [[그래, 가족]] || 임 || ||
  • 김효기 . . . . 1회 일치
         2010년 드래프트에서 울산 현대에 4위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드래프트를 1년 미루었다.] 대학 시절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에도 불구, 좋은 집중력으로 골을 뽑아냈던 선수라 울산에서도 활약할 것을 기대받았는데, 데뷔 시즌은 주로 2군에서 시간을 보내며 1경기 교체 출장에 그쳤으며, 이후 2011년에도 역시 2군을 벗어나지 못하자 [[울산 현대미포조선]]의 [[조민국]] 감독이 [[김호곤]] 당시 울산 감독을 설득해 김효기를 6개월동안 미포조선에 임대시키는데 성공한다.
  • 김희정 (펜싱선수) . . . . 1회 일치
         | 최고위 =
  • 나가 . . . . 1회 일치
         철저한 모계사회이며, 남자 나가는 성인이 되기전엔 그의 가문에 머물며 성장하며, 성인이 되고 난뒤에는 가문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도시를 방문해 가임기의 여성 나가들이 있는 가문에 씨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외에 미성년 남자 나가들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작중에서는 이러한 경호역할로 외출한 남자 나가가 다른 가문으로 내빼는경우도 서술하고 있다(...)] 일부 남성 나가들은 '수호자'라 불리며 여신의 '신랑'이 되는데, 원시종교에서 여사제들이 결을 지키는것과 비슷하게 결혼을 하지 않으며, 심장을 적출하는 역할을 한다. 사제로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기에 어지간한 여자 나가들도 이들을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0화 . . . . 1회 일치
          * 그 간 폭발. 미도리야가 날아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1회 일치
          * Ms.조크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거듭 결혼을 권하는데 그때마다 아이자와는 칼 같이 거절한다. 그리고 폭소를 터뜨리는 무한 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1회 일치
          * 현장에 있던 전원이 식간에 탈락. 요아라시가 혼자 120명을 탈락시키고 최초 합격자가 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1회 일치
          * 대화가 한창이지만 형무소 측에선 3분 남았다고 통보한다. 올 포 원은 정말로 즐거운 듯 조금만 더 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올마이트의 은퇴로 세상이 동요하고 있을 거라며 세상의 동향을 묻는다. 그는 세상과 교류가 단절돼 있고 이 간 조차 올마이트에게 바깥 일에 대해선 함구하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올 포 원은 바깥의 사정을 매우 정확하게 추정하고 있다. 올마이트의 은퇴가 야기한 혼란들. [[엔데버]]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하지만 세상은 불안해지기만 하고 억지력이 사라진 그늘 속의 인생들이 할거한다. 시가라키는 잠시 동안 잠복할 것이며 대두하는 세력들을 파악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빌런들 간의 경쟁, 대립도 심화.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1회 일치
          미도리야는 임시면허는 꼭 실력 으로 딴게 아니라고 위로하려 하지만 바쿠고는 닥치고 들으라며 폭언한다. 아무튼 그는 계속 기분이 나쁜 상태였고 짜증스러웠는데 얼마 전 "대사건"을 통해서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1회 일치
          * 빌런은 등으로 칼날을 집중시켜서 지면을 박찬다. 늘어나는 반동의 속도로 키리시마를 지나쳐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또다시 빌런에게 속은 키리시마는 "난 바보인가!"라고 자학하며 빌런이 지면에 꽂은 칼날을 부러뜨린다. 그러나 한 발 늦은 대응이었다. 빌런은 키리시마를 진하다 비웃으며 막 골목을 벗어나는 참이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1회 일치
          키리시마가 이제와서 그러기냐고 따진다. [[빌런 연합]]이 개입해 있다면 그래야 마땅하다. 이레이저 헤드가 그 점을 지적한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레이저 헤드는 미도리야를 걸고 넘어진다. 그가 아직 자신의 신뢰를 되찾지 못했다면서. 미도리야는 그가 [[바쿠고 카즈키]] 탈환전 직후 "정규 수을 밟아 정규 활약으로 신뢰를 회복해 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반명 아이자와는 방금 전 회의에서, 밀리오와 함께 "반드시 에리쨩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던 미도리야를 떠올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1회 일치
          내부에서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부에도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직원들이 일행을 방해했다. 가면을 쓰지는 않았지만 수색영장을 들이대는 경찰을 향해 개성을 사용한 공격을 가한다. 히어로들은 식간에 이들을 제압하며 진격을 제촉한다. 나이트아이와 패트껌이 선두에서 이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1회 일치
          * 나이트아이가 예지로 확인한 진로에 따라 일행은 숨겨진 통로 앞까지 이른다. 평범한 장식공간 같지만 마루의 특정 공간을 일정한 서로 누르면 비밀 공간으로 이어진다. 마치 닌자저택같은 구조. 예지에서 본대로 조작하자 마침내 통로가 열리는데, 거기서도 여지없이 조직원이 배치돼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1회 일치
          * 텐가이가 "공포에 물들었다"고 했던 것은 참 보는 눈 없는 말이었다. 키리시마는 마침내 답을 내놨다. 그는 이제 러쉬에 밀려 날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씩 내딛었다. 랏파가 크게 당황했다. 아까와는 다르다. 해답은 결국 경화. 경화가 깨지는 간 다시 경화시켰다. 그런 방법으로 키리시마는 한 발씩 다가오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1회 일치
          더 옛날의 얘기지만, 개성이 막 발현했을 무렵은 더 한심했다. 개성이 처음 발현했을 때 눈을 비비다 눈을 베어버릴 뻔한 일이 있었다. 지금 눈 위에 있는 흉터가 그때 생긴 것이다. 거기에 겁을 먹은 어린 키리시마는 한동안 자기 개성이 싫다며 울었다고 한다. 그가 크림슨 라이오트를 동경하게 된 것도 그때 일이 영향을 준 걸지 모른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개성을 가진 히어로였다. 키리시마가 히어로를 지망했던건 단한 도피행위, 대리만족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1회 일치
          그런 생각이 랏파에게도 있느냐는 별개 문제. 랏파는 그를 가볍게 즈려밟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텐가이가 회복한 여력은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가벼운 한 발로 의식이 다시 날아갔다. 랏파가 배리어를 칠 여력도 없는 주제라고 빈정댔다. 하지만 그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다. 여기저기 뼈가 부러져 도저히 싸울 상태가 아니다. 패트껌은 그 묘한 대화를 보고 있다가 대체 뭘하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정말로 함정이 아닌 건가? 랏파의 답은 이번에도 단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0화 . . . . 1회 일치
          * 둘은 개성을 조합해 밀리오를 물심양면에서 농락하나 밀리오는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각오를 새롭게 하고 식간에 둘을 쓰러뜨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9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토코야미가 빌런을 식간에 박살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1회 일치
          * 이들이 집결한 간 미도리야 일행이 Mr컴프레스를 깔아뭉게며 도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1회 일치
          * 현대사회는 목숨을 지키는 것을 돈이나 자기현시욕으로 변환하는 기형적인 것이며 패배자를 격려하긴 커녕 질책하기만 한다며 모을 꼬집는다. 또 자기들의 싸움은 "질문"이라며 이런 사회가 옳은 것인지 물을 것이며 승리할 거라 단언한다. 시가라키는 "너도 이기는 편이 좋지 않냐"며 바쿠고를 회유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1회 일치
          * [[시가라키 토무라|시가라키]]는 떨어진 손을 쳐다보며 폭주할 조짐을 보이는데, 의외로 한간에 진정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돌아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1회 일치
          * 올마이트는 "스승님이 내게 해주신 것처럼 나도 그(미도리야)가 성장할 때까지 아직 죽을 없다"며 왼팔로 머슬폼을 옮겨 카운터 펀치를 먹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웅영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비록 평화의 상징으로 있을 없다 하더라도 "올마이트는 아직 살아있다"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1회 일치
          * 현역 히어로의 위글 집계하는 "히어로 빌보드 차트 JP"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1회 일치
          * 어쩐지 일본풍. 다다미가 깔려 있다.
  • 나체의 마하 . . . . 1회 일치
          * '''[[음모]]를 그렸다'''. 중세의 윤리관으로 체모 등은 남성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보아 금기시 되었고, 여성의 음모는 나체라고 해도 수한 미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나체의 마하에서 음모를 그린 것은 매우 파격적인 사례였다.
  • 날조트랩 -NTR- . . . . 1회 일치
         어릴 때 괴롭힘 당하던 호타루를 감싸주며 괴롭히던 애들을 격퇴하곤 했다. 운동을 잘 한다. 다케다와 사귀면서도 호타루에게 휘둘리고 있다. 수한 편으로 보이지만 호타루에게 독점욕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 남기애 . . . . 1회 일치
         | rowspan=2 | 제
  • 남능미 . . . . 1회 일치
         출생지 [[전라북도]] [[군산시]][*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모]]가 있는 [[전라남도]] [[천시]]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후 쭉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 남성진 . . . . 1회 일치
         * 2003년 [[KBS2]] 단막극 《[[드라마시티]] - 결한 그녀》 ... 명진섭 역
  • 노 오디너리 패밀리 . . . . 1회 일치
         의도치않게 [[초능력]]을 얻은 [[가족]]의 [[모험]]이라는 내용으로 단히 [[빌런]]과의 싸움만이 아닌 가족의 생활과 그 주변인물들과의 일도 묘사되었다.
  • 노영하 . . . . 1회 일치
         * [[1967년]] 프로 입단(전길)과 입단 동기. (스승 정창현)
  • 노포 . . . . 1회 일치
         조상 대대로 같은 [[가업]]에 종사하면서 열어온 가게를 뜻한다. 단히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만큼 격식이 있고 신용이 있는 가게를 의미한다.
  • 니세코이/216화 . . . . 1회 일치
          * 즉 단한 번역상의 오류였다.
  • 니세코이/222화 . . . . 1회 일치
          * 이런것까진 가르친 적이 없다는 클로드에게 "그래서 클로드님이 보는게 언제나 옳다고 할 없다"고 말해준다.
  • 니세코이/225화 . . . . 1회 일치
          * 어쨌든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걸 내버려 둘 없다고 말한다.
  • 니엘(가수) . . . . 1회 일치
         본명이 [[다니엘]]인데 왜 애칭이 [[대니]]가 아닌 니엘이 되었냐면, 단히 어릴 적부터 니엘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라고... 이는 아마 이름 마지막 글자로 애칭을 부르는 한국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 다키스트 아워 . . . . 1회 일치
         가장 어두운 간은 해 뜨기 직전이라 카더라.
  • 대마신 . . . . 1회 일치
         [[괴수물]]에 시대극적 요소가 융합된 특이한 [[특촬물]]인데 주역 괴수 대마신의 행동도 다른 괴수가 단무식한 파괴인 것에 비해 악인에게서 사람들을 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보니 가메라처럼 수호자의 캐릭터성이 있는 편.
  • 대한민국 . . . . 1회 일치
         2016년 10월, 대통령과 [[최실|모 무속인]] 간의 커넥션이 발견되었다.
  • 데미안(드라마) . . . . 1회 일치
          * 포스 초크 : 간적으로 분노해서 시몬에게 사용.
  • 도균 . . . . 1회 일치
         * 《[[결한 당신]]》 (2008년, SBS)
  • 돈가스 . . . . 1회 일치
         국립국어원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밥", "돼지고기 튀김"으로 화하자고 한다.
  • 동군연합 . . . . 1회 일치
         본래 튜튼기사단이란 신정국가가 지배하던 프로이센 지방은 [* 정확히는 폴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의 이교도때문에 통치를 못할 수준이 되자 튜튼기사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이후 튜튼기사단의 단장 알브레이트가 프로이센 공국을 선언하고 세속화되어 호엔촐레른 왕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계가 단절되자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였던 브란덴부르크와 동군연합이 된 것이다. 이게 왜 추가될 사례인지 모를 사람이 있을텐데, 쉽게 말해 '''독일제국의 전신이다.''' 이로써 단 발트지방 소국에 불과했던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 지방을 삼키며 본격적으로 열강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 두부 . . . . 1회 일치
          * 두부
  • 둠 패트롤 . . . . 1회 일치
          리타 파. 별명은 리타 스타. 전 할리우드 영화배우. 이상한 가스에 노출되어 세포 구조가 변경되었다. 감정이 항상 기분 좋음에 고정되어 있어야 신체 형태가 유지 된다. 그래서 웃는 표정으로 지낸다. 하지만 집중이 풀리고 감정이 안 좋아지면 몸이 식간에 젤라틴으로 바뀌면서 녹아 내린다. 신체 크기를 변경해서 거인이 될수 있다.
  • 디도(성우) . . . . 1회 일치
          * [[SD건담 삼국전]] - [[곽가 버사고]], [[황개 구프]], 이유 샷코, 고 바이에이트, 문추 가즈엘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1회 일치
          * 케이 카네슈 하인드라 : 신체의 피부를 경화시켜 금속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단, 신체 내부까지 강화시킬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붙임성 있는 성격.
  • 라나(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검은 생머리에 하얀 피부의 청하고 연약해 보이는 소녀지만, [[레프카]] 같은 악역들이 총을 들거나 고층 [[빌딩]]의 외다리에 세워 협박해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말대답하고 엄청 굵은 밧줄을 물어뜯어서 끊거나 하는 것으로 볼 때 외모와는 다른 대단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
  • 라데츠 . . . . 1회 일치
         작중에서 등장할 시점에서는 매우 강했다. 작중 최강자였던 손오공과 피콜로를 2:1로도 쉽게 싸울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내용이 진행되면서 라데츠는 단히 하급전사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베지터]]와 [[내퍼]], 그리고 우주최강자 [[프리더]]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파워인플레]]가 가속된다.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1회 일치
          Machinegunner의 주무장. 그냥 들고 쏠수도 있지만 명중률이 병신이 되기에 거치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계속해서 쏘다 보면 총열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계속 갈겼다가는 총열이 박살나 쓸 수 없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적당한 간에 총열을 교체해야 한다. 총열은 두개가 주어지므로 하나라도 박살냈다가는 게임이 힘들어진다.
  • 레오(워저드) . . . . 1회 일치
         풀 업 상태의 패스워드는 4146644463로 커맨드 입력은 Lk Lp Lk Sk Sk Lk Lk Lk Sk Sp 이다.
  • 레킹 크루 . . . . 1회 일치
         [[디스크 워즈: 어벤저스]]에서도 등장해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만화인지라 캐릭터가 화되었다.
  • 로버트 켈리 . . . . 1회 일치
         "그날 딸이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를 해 무척 신이 났다. 아들까지 방으로 들어오는 간 이제 다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들어온 것은) 전적으로 문을 잠그지 않은 내 책임"이라고 방송사고에 자신의 책임을 밝혔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수습을 해줬다"고 아내 김정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방송 사고 후) 다시는 출연 요청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했지만 아이들을 혼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심경에 대해서는 "영상을 보면 내가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놀랍고, 당황했고, 즐거웠으며 사랑스러웠다"고 밝혔다.[[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703150203 (참조)]] 또 하의실종 의혹(…)에 대해서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5/2017031501076.html (참조)]]
  • 류명선(야구선수) . . . . 1회 일치
         || 김철(1985) || → || '''류명선(1989~1995)''' || → || [[최익성]](1996~1998) ||
  • 류영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류한수 . . . . 1회 일치
         | 최고위 =
  • 마기/296화 . . . . 1회 일치
          * 홍명이 도입한 새로운 수송수단은 "전송마법진" 즉 간이동 장치다. 수송의 일대 혁신을 일으킬 거라고 홍보하자 포도주 상인 부델이 황제국에 포도밭을 만들기로 전격 합의한다
  • 마기/304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백영에게 "우리도 전송마법진을 만들 없냐"고 묻는데, 원래 기술담당이 아니던 그녀는 불가능한 일이다.
  • 마기/306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백룡은 분노하는 해야할 그 간 "분명 나는 복수 밖에 보질 못하고 감정에 휘둘리던 꼬맹이"였다고 인정하며 "복수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 마기/307화 . . . . 1회 일치
          * 백룡은 "쥬다르는 전송마법진은 식간에 됐다"고 말하는데 알라딘이 울컥한다.
  • 마기/309화 . . . . 1회 일치
          * 핏덩이가 된 몸을 식간에 재생해서 "이정도 상처는 금방 낫는다"며 비웃기까지 한다.
  • 마기/310화 . . . . 1회 일치
          * 유난은 아무리 둘이 공격해도 죽지 않는 몸에 무적의 검술까지 겸한 아르바를 이길 없다고 하고, 아르바 또한 "알마트란 최강의 검사"는 자신이었다며 둘을 수세로 몰아넣는다.
  • 마기/312화 . . . . 1회 일치
          * 위기의 간마다 저쪽 차원으로 돌아갔다가 돌아와 몸을 갈아타왔다.
  • 마기/321화 . . . . 1회 일치
          * 그걸 깨달은 간 신드바드는 미소 짓는다.
  • 마기/328화 . . . . 1회 일치
         타전을 단한 배제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그가 아르바와 대화하며 "약자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했던 말의 의도도 파악할 수 있다. 결국 그가 구상하는 세계는 자기가 설정한 한도 안에서 애초에 벗어날 수 없는 조작된 세상인 것.
  • 마기/331화 . . . . 1회 일치
          >'''절대 그럴 없어!'''
  • 마기/337화 . . . . 1회 일치
          * 그러자 쥬다르는 너무 시원스럽게 연옥염을 때려죽이고 "당연히 때려부다!"고 일갈한다. 그때까지 부수는게 옳지 않냐던 신드바드가 오히려 당황한다.
  • 마기/341화 . . . . 1회 일치
          >너는 모의 산물이지 알라딘
  • 마기/343화 . . . . 1회 일치
          * 자신의 생존과 성공이야 말로 선택받은 증거라고 믿는 신드바드는 그렇기 때문에 알라딘 일행의 단한 설득으로는 물러서지 않을 거라 말한다. 알라딘은 다윗이나 아르바가 "그런 동료"인 거냐고 재차 묻고 신드바드는 다윗이 호시탐탐 자기 목을 노리는, 대등에 가까운 동료라고 둘러댄다.
  • 마기/344화 . . . . 1회 일치
          * 그들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고 말한다. 흉악할 뿐 그저 쾌락 범죄자, 광신자라고 무시했던 다윗은 보통사람과 전혀 다른 인종이었다. 알리바바가 어떻게 다른 거냐고 묻는다. 와히드는 그를 "더 거대한 사명을 짊어진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 무한한 시간과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야망을 간직하는 것은 보통 정신력으론 불가능하다. 실제로 셋타와 와히드 같은 인물도 여기서는 식간에 삶을 포기했다. 셋타는 그가 무시무시한 인물이라며 이렇게 평한다.
  • 마기/345화 . . . . 1회 일치
          * 마법식 연구도 특훈도, 그리고 수인족들의 또 다른 작업도 조롭게 진행된다. 마침내 마법진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수인들이 작업하던 것은 돌을 사용한 인공신체다. 거대한 석상 형태. 알리바바가 현세로 돌아가려면 몸이 필요한데 이게 그걸 대신해줄 것이다.
  • 마기/351화 . . . . 1회 일치
          그 불길한 말에 대답하듯 성궁이 진동하고 하늘이 무너진다. 무너진 하늘 너머에서 또다른 우주가 엿보인다. 우고는 이 현상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서를 뒤바꾸었을 때" 모습이다.
  • 마더콘 . . . . 1회 일치
         1화에서 길에 넘어져서 손가락을 다친 후유히코를 보고 (시)어머니 역인 에츠코(悦子, 배역 노기와 요우코野際陽子)가 '다친 손가락을 간적으로 입에 물고 빨아주는 애드립'을 실행. 그것이 반응이 좋아서 계속 마더콘 전개가 증폭되었다고 하는 뒷 이야기가 있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1회 일치
          * 이벤트 보상은 랭킹보상과 절대점수 보상이 있다. 랭킹보상은 말 그대로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간의 점수 위로 차등 보상이 이루어지며 이벤트 종료시점의 점수를 토대로 산정한다. 상위권은 3,4성캐릭, 중위권은 2성캐릭, 하위권은 은카드 보상으로 이루어져있다. 절대점수 보상은 랭킹과 무관하게 이벤트에 참가하여 획득한 포인트에 따라 주어지며, 최종점수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점수를 올려 일단 획득하고 나면 차후 패배하여 점수가 차감되더라도 무관하다. 낮은점수에서는 참가상 정도의 은카드와 소량의 ISO지만 보통 300점정도만 획득해도 금카드를 한장 주고, 그 이상부터는 히어로포인트나 3,4성캐릭, 상당량의 ISO를 제공한다.
  • 마약 . . . . 1회 일치
         [[약물]]의 한 분류. 간적인 쾌락을 느끼게 해주지만 인생을 말아먹게 해주는 약물이다.
  • 마이사카 코우 . . . . 1회 일치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투희' 속성 캐릭터를 다수 투입하여 서비스신 가득한 연출을 할 때가 많은데, 그렇다고 단한 뽕빨만이 아닌 나름 진지한 설정과 배경이 깔린 전쟁물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 마주 . . . . 1회 일치
          * [[경마]] 업계에서는 '경주마'의 소유주를 뜻한다. 경마에서 말이 우승하면 수익을 배당 받는다. [[유럽]]에서는 고대로부터 경마의 마주는 [[왕]]이나 [[귀족]]이 맡았는데, 이는 경마가 단히 [[도박]]이 아니라 소유한 말의 능력을 비교해보고 우수한 말을 육성하여 군사력[* 근대까지 군대에서는 말을 타는 [[기병]]은 주요한 전력이었기 때문이다.]에도 기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회고위층이 마주가 되었고, 마주는 명예로운 일로 여겨졌다.
  • 마철준 . . . . 1회 일치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의 [[상주 상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영입은 적절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상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반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 마치콘 . . . . 1회 일치
         마치콘(街コン)이란 콘파에서 이름을 따온 이벤트로서, 지역 진흥과 만남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이벤트이다. 마치콘의 형식은 동성 2인 이상 1조가 되어, 개최 지역의 정해진 음식점을 회하는 것이다. 각 점포에서 팔찌 등의 참가증을 제시하면, 이벤트 시간 이내에 동일한 가격으로 식사와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참가자는 100명 이상, 3000명 가량이 되는 경우도 있다.
  • 맥스 페인 . . . . 1회 일치
          펌프를 당기지 않기에 펌프액션 산탄총보다 연사력이 좋다. 다만 2라는 조루 장탄수가 문제. 불릿타임을 사용하는 간 자동으로 장전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펌프액션보다 좋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회 일치
          2발 장전 가능. 펌프를 당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펌프액션 산탄총보다 월등한 연사력을 보여준다. 장탄수야 불릿타임중에 총알 다 떨어지면 식간에 채우니 논외.
  • 메시마즈 . . . . 1회 일치
         요리치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런 표현을 주도한 스레드는 가정판의 아내의 밥이 맛이 없다(嫁のメシがまずい) 스레드이다. 이 스레드에서는 단히 요리를 잘 하거나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상천외한 엽기적인 음식의 이야기가 투고되고 있다.
  • 메탈멘 . . . . 1회 일치
         매그너스 박사는 아파트로 돌아가나, 메탈멘은 사실 갈 곳이 없어 그 곳에 숨어있었다. 그 간 케모가 매그너스의 집에 들이 닥치지만, 메탈멘이 자신들의 육체를 희생해 케모를 박살낸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인 리스폰스미터는 무사한 상태.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1회 일치
         플레이어는 특정한 적이 드롭하거나 특정한 간에 드롭되는 무기 아이템을 통해 무기를 바꿀 수 있다. 무기는 현재 상황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무기는 정해진 장탄수가 있으며, 해당 무기의 장탄수가 전부 소진될 경우 사라진다. 플레이어가 사망할 시, 모든 무기를 잃게 되고 기본 무기인 권총과 수류탄으로 돌아온다.
  • 모죠 . . . . 1회 일치
         결하다
  • 무라하치부 . . . . 1회 일치
         6월 24일 자 아사히 신문을 시작으로 전국의 신문과 잡지가 따돌림 문제를 보도하여 우에노 마을은 전국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시카와는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마을을 사랑하는 길입니까?"라고 신문 지상에서 주장하였고, 이시카와가 다니던 후지노미야 고등학교(富士宮高等学校)의 학생회는 만장일치로 이시카와의 행동에 지지를 선언, 교직원들도 이시카와를 지지하여 7월 상에는 교직원 조합의 후지노미야 고등학교 분회, 시즈오카 현 교직원 조합에서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 문경시 . . . . 1회 일치
         영면''' || 永順面 || 1,342 || 2,976 ||38.54
  • 문맹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으나, 단히 읽고 쓰는 게 아닌 어떠한 문장 내용을 읽고 뜻을 파악하는 '실질문맹률'이 OECD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OECD와 캐나다 통계청에서 만든 IALS(국제성인문해능력조사)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번역하여 2001년에 조사한 결과. (다른 OECD 국가는 1994년 ~ 1998년 사이에 조사.)]
  • 문희(배우) . . . . 1회 일치
         || 본명 ||<(> 이임(李順任) ||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1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지도층인 [[과학자]]들. 이름이 확인된 사람들은 모우(モウ), 케이(ケイ), 에이(エイ), 준(ジュン). 이중 모우는 위원회에서도 중심 인물이다. 안경을 착용한 으로 검은 안경을 착용한 자가 에이. 정책 등에서 중요 사항을 결정하며 레프카와는 그다지 맞지 않는 인물들이며 라나에 대한 것은 중립적이다. 일단 레프카는 주요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인물들이라 놔두고는 있으나 결국 레프카의 횡포를 저지하지는 못하는 무력한 자들이다. 최후에는 라오 박사와 인사를 끝내고, 지각 변동 탓에 무너지는 인더스트리아에 남는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1회 일치
          현대의 시각에서 본다면, 무장을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저속으로 항행(航行)하는 연안 시선 정도에 불과하지만, 작품상 시기에서는 사실상 [[전함]] 취급을 받는 당당한 1급 전력이다. 당장 인더스트리아에서도 운항 시 다량의 석유가 필요한 이유 등으로 인해, 원로위원회의 허가가 없으면 출격할 수 없는 물건이며, 이 배의 침공을 받은 하이하버에서는 코난이 결사적으로 폭탄을 설치하는 개고생을 한 끝에야 격침이 가능했다.
  • 미안기 . . . . 1회 일치
         미용상품의 하나. [[초음파]]를 사용해서 피부를 마사지 하는 [[기계]]. 피부 진동이 세포까지 전달되어 혈액과 림프액의 환을 촉진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서 노폐물을 배출하게 되어 피부가 건강해진다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민도 . . . . 1회 일치
         >민도 (民度) 「명사」 국민의 생활이나 문화 수준의 정도. ‘문화 수준’으로 화.
  • 바키도/111화 . . . . 1회 일치
          * 완전히 들통났으나 눈치 챈 간엔 이미 늦었다며, 나이프의 발사 속도를 믿고 공격을 가하는 가이아.
  • 바키도/112화 . . . . 1회 일치
          * 자신이 식간에 4등분 되는걸 보고 전의를 상실한다.
  • 바키도/117화 . . . . 1회 일치
          * 피클은 안면근육과 상반신 근육 전체를 집중해 날이 닿는 간 잡아버린 것이다.
  • 바키도/126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가 칼을 뽑으려는 간 술병이 머리를 강타, 날카로운 유리가 무사시의 뺨을 긋는다.
  • 바키도/131화 . . . . 1회 일치
          * 가이아는 이것을 보는 간 속으로 더는 무리라고 외친다. 아무리 방검복을 입고 있어도 상대가 곡괭이로 내리 찍는다면 어떨까? 설사 방검복은 뚫리지 않더라도 그걸 입은 사람은 확실히 목숨을 잃을 것이다. 가이아는 "상대는 칼이나 든 폭한이 아니다"며 모토베의 결정적 실책을 직감한다.
  • 바키도/132화 . . . . 1회 일치
          *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한 간, 모토베 이조가 혼신의 태클로 무사시에게 마운트 포지션을 잡는다.
  • 바키도/138화 . . . . 1회 일치
          * 이 문제를 놓고 수사팀은 비디오를 돌려보며 회의를 하고 있다. [[미나모토 무사시(그래플러 바키)|무사시]]가 아나운서를 베어버리는 그 간. 세간의 말과는 달리 "투명한 칼" 같은건 찍히지 않았고 무사시는 아나운서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았다.
  • 바키도/139화 . . . . 1회 일치
          무사시는 완전히 임전태세에 들어간다.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오오츠카는 "뽑는게 아니라 움직인 간에 쏴라"고 명령을 수정한다.
  • 박기혁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2라운드([[롯데 자이언츠]])
  • 박노식(1971) . . . . 1회 일치
         || [[최종병기 활]] || 장 || ||
  • 박상면(배우) . . . . 1회 일치
         ||<|3> 2007년 || 권분 여사 납치사건 || 안재도 || ||
  • 박상원(배우) . . . . 1회 일치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 박소희 (만화가)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출생인 그녀는 2000년에 만화가 첫 등단하였고 특히 2002년에서 2012년까지 [[정만화]] 잡지 《[[윙크 (잡지)|윙크]]》에 10년간 연재한 《[[궁 (만화)|궁]]》은 [[2006년]]에 MBC [[문화방송]] TV 시리즈 《[[궁 (드라마)|궁]]》으로도 만들어져 방영되었다.
  • 박승욱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3라운드]]([[SK 와이번스]])
  • 박신혜 . . . . 1회 일치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 박연우 . . . . 1회 일치
         | 자산 =
  • 박정수(정치인) . . . . 1회 일치
         ||<width=30%> 제26대 [br] [[유종하]] ||<width=5%><:> → ||<width=30%> 제27대 [br] ''' 박정수''' ||<width=5%><:> → ||<width=30%><:> 제28대 [br] [[홍영]]||
  • 박정호 . . . . 1회 일치
         |자산 =
  • 박종윤 (1993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2라운드]] ([[넥센 히어로즈]])
  • 박지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1라운드]] ([[KIA 타이거즈]])
  • 박진성(시인) . . . . 1회 일치
          2월 19~20일에 그는 이 상황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트위터리안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대다수는 그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린 거였지만, 비난하는 게 아닌 경우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그에게 트위터를 잠깐 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멘션을 보낸 트위터리안도 있다. 당시 위에서 설명한 무혐의 처분 결정을 탁수정이 공개하고 박진성 시인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한 탓에, 트위터 내에서 이 설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마녀사냥을 그만하라는 의미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5692582637453312|자신의 손목에 남아 있는 흉터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박진성 시인이 카톡 대화 전문 공개 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탁수정]]이 이에 대해 자살 시도까지 비꼬는 투로 그러면 병원 영수증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공격하자 2월 28일엔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했다(저 공격을 하기 전에 탁수정과 탁수정을 지지하는 측이 그의 자살 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히 공개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해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로 굳이 공개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최후의 카드였던 셈.). 이후 그녀는 자신은 떳떳하니까 전문 공개하려면 하라고는 했으나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2018년 4월 11일에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3915291196342273|다시 자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중으로 [[리스트컷 증후군]]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 이 일 때문에 입원하게 된다면 자신이 진행 중인 싸움이 전부 중지되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지만, 며칠 뒤에 [[당뇨병]] 악화라는 다른 이유로 한동안 입원했었다.[* 탁수정이 또 영수증을 요구할까봐 미리 공개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796927143927808|#]]]
  • 박창달 . . . . 1회 일치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26번으로 출마하였지만 너무 번이 뒤쪽에 있어서 당연히 낙선...했는데 임기 다 끝나가는 2000년 3월에 현역 [[윤원중]] 전국구 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승계, 3달짜리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다. 물론 15대 국회 막바지여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문제는 16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2004년 5월'''에 사퇴하여 '''임기가 1달도 안되는 의원'''이 탄생하여 다시 문제제기되었고, 이후 잔여임기가 얼마 안남은 비례대표 의원이 자격을 상실 혹은 사퇴할 경우에는 승계하지 않도록 법이 바뀐다.] 대신 16대 총선에서 안정권인 15번을 받고 당선되었다.
  • 박칠용 . . . . 1회 일치
         * [[2015년]] [[KBS1]] 《[[인이의 토크 드라마 그대가 꽃]]》... [[송해]] 역
  • 박태호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박현정 (배우) . . . . 1회 일치
         * 《[[꽃 피어라 달아!]]》 (KBS2, 2017년) - 송연화 역
  • 박화랑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방실이 . . . . 1회 일치
         ||<#00AAB5> '''{{{#FFFFFF 본명}}}''' || 방영(方英順) ||
  • 배슬기(배우) . . . . 1회 일치
         해체 이후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말괄량이' 등의 곡이 그나마 유명하지만, 대부분 곡과 컨셉이 신통치않아[* 배슬기의 목소리는 여자 가수치고 굉장히 허스키하고 낮은 편이라 발랄하고 귀여운 컨셉의 곡과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노래 실력이 아주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발라드곡을 부르기도 애매했다.] 위 프로 등에서는 중하위를 맴돌다 사라진다. 꾸준히 앨범을 내놓긴 했지만 방송 출연보다는 행사를 더 많이 돌았다. 가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긴 했지만 원래 토크보단 복고댄스로 뜬 것이다보니 예능감의 한계로 결국 이마저도 잘 안 나오게 된다. 이외에 여러 가수들의 [[피처링]]을 도맡았는데, 피처링 해준 노래 중에서도 크게 뜬 노래는 없다.
  • 배장원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배재준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2라운드([[LG 트윈스]])
  • 배지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아마추어 FA
  • 백남억 . . . . 1회 일치
         [[5.16 군사정변]] 이후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준규, [[김재]], [[민관식]] 등과 함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내리 당선되었다. 이때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당무의원을 지냈다.
  • 백성현 . . . . 1회 일치
         * [[2013년]] 《[[이삼촌]]》
  • 백승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10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버리는 대사 . . . . 1회 일치
          *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말. 단히 잘 가라는 인사 같은 것.
  • 법요 . . . . 1회 일치
         법요를 올림으로서 고인이 극락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고인을 공양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의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외적으로, 정토진종(浄土真宗)에서는 임종하는 간에 극락왕생 한다고 생각하며 법요의 의미는 고인을 그리워하며, 불법에 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벨트스크롤 게임 . . . . 1회 일치
          * 다인 플레이를 지원하지만 그 만큼 플레이어 간의 견제가 치밀해지기 쉬운 것이 특징. 단히 회복 아이템만 먼저 먹어버려도 견제가 되기 때문. 또한 [[캐딜락과 공룡들]]처럼 피아식별이 없어서 아군에게도 공격이 들어갈 수 있는 게임도 있다. 혹은 [[황금도끼]]에서 벨트스크롤을 일부러 땡기지 않아 추락사하게 만드는 방법 등, 여러모로 [[우정파괴]]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 벼랑개 링링 . . . . 1회 일치
          * 단히 추첨을 통해서 사육주를 결정한 것이 정당했는지, 동물보호센터에서 신청한 사육주에 대해서 제대로 검토를 거쳤는지 하는 점이 의문시 되었다.
  • 변신합체로봇 . . . . 1회 일치
         변신과 합체를 통하여 2번, 3번 즐길 수 있다. 변신과 합체만 반복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흥미가 있으며, 단한 로봇 장난감 보다 오랫동안 흥미를 가지고 놀 수 있게 된다.
  • 보루토/3화 . . . . 1회 일치
          * 보루토는 떨어지는 간엔 카타스케의 도구를 쓸까말까 망설이다 포기해버리는데 미즈키와 사라다가 콤비 플레이로 살려준다.
  • 보루토/5화 . . . . 1회 일치
          * 식간에 대회장을 뒤덮을 정도로 커지는 미수옥.
  • 보루토/6화 . . . . 1회 일치
          * 나루토는 잠시 뒤돌아 보루토를 바라보는데, 보루토가 아버지를 부르는 간 기억이 끊긴다.
  • 보루토/7화 . . . . 1회 일치
          쵸쥬로는 킨츠키가 "덩치가 큰 주제에 잽싸다"고 하는데 확실히 속도 면에서 킨츠키의 우위. 재빠른 검술로 식간에 쵸쥬로를 궁지에 빠뜨린다. 도끼로 히라메카레이를 쳐내고 왼쪽 어깨를 베어내는데, 킨츠키는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유인책에 지나지 않았다. 땅 속에서 쿠로츠치가 등장, 회심의 붕권을 먹인다.
  • 보스 트롤 . . . . 1회 일치
         드래곤 퀘스트 3에서는 변화의 지팡이(へんげのつえ)로 [[사만오사의 왕]]으로 변신하여 폭정을 펼치다가, 용사 일행이 [[라의 거울]]로 정체를 폭로하여 보스전을 벌이게 된다. HP가 320으로 높으며, 트롤 답게 자동 회복이 있어서 100의 HP를 재생한다. 공격력이 높으며, 공격->공격->[[통한의 일격]] 서로 로테이션 공격을 가하기 때문에 상당히 강적이다. 통상 공격이 오는 타이밍에는 버프를 주로 하고, [[아스트론]]으로 통한의 일격이 올 타이밍에 막아내면서 싸우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
  • 보쿠걸/104화 . . . . 1회 일치
          * 타케루는 "지금 밍기적 댈 없다"고 결심하고 미즈키에게 고백한다.
  • 분류:전라북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창군 출신 인물]]
  • 불릿 타임 . . . . 1회 일치
         Bullet Time. [[게임]]이나 [[영화]] 등에서 사용되는 기법. 간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도록 하는 기법을 뜻한다. 이 기법을 사용하면 날아가는 총알마저 보이게 되기에 "불릿 타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브로포스 . . . . 1회 일치
          덤불 등지에서 숨어있다가 브로가 접근하면 튀어나오는 브로. 튀어나온 간부터는 그냥 평범한 무크다.
  • 브로포스/브로 . . . . 1회 일치
          서대로 사용된다. 마티니는 그냥 잉여. 제트팩은 즉시 브로켓티어의 점프를 한번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레이저 시계는 전방 넓은 범위를 레이저로 지지며, 복면은 테러리스트들에게 가까이 접근해도 테러리스트들이 더블 브로 세븐을 인식하지 못하게 해준다.
  • 블라디미르 렘 . . . . 1회 일치
         맥스와 처음 만난 간은 맥스가 프랭키 나이아가라를 죽이고 난 후였다. 블라드는 맥스의 차 앞을 자신의 벤츠로 가로막은 후 "[[대부|거부할 수 없는 제안]]"[* an offer you can't refuse]을 한다. 자신의 무기를 운송하다가 펀치넬로 쪽에 붙은 화물선 선장 보리스 다임을 죽이고 화물선을 탈환하면 운송하던 무기를 필요한 대로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제안이었다.
  • 블랙 클로버/102화 . . . . 1회 일치
          * 사실 아스타가 굳이 이들을 부른 것은 선물이 있어서였다. 그는 키아토에게 잘린 다리를 잘 가져오라고 했는데 키아토는 그 말대로 물마법으로 보존해 잘 간수하고 있었다. 아스타는 [[마녀왕]]의 마법 "멸주의 피고치"를 병에 담아 왔다. 마법을 풀어놓자 식간에 키아토와 카호노의 상처를 치료해 버린다.
  • 블랙 클로버/103화 . . . . 1회 일치
          폭탄선언일 수도 있는 얘기는 아무렇게 던지자 반응이 즉각적으로 돌아온다. 식간에 열이 달아오른 노엘이 당황하며 물마법으로 아스타를 날려버린다. 카호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며 날아간 아스타는 내버려두고 "이번엔 노엘과 데이트"라며 여자들끼리 놀러 간다.
  • 블랙 클로버/105화 . . . . 1회 일치
          * 문제는 시민들의 반응. 놀라는 건 잠시고 과연 이게 제대로 산정된 건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카호노]], [[키아토]]처럼 수하게 기뻐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소수. 대부분 여론은 부정을 저질렀다는 쪽이다. 하지만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레베카처럼 검은 폭우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거라고 변호한다. 그 중엔 왕도에 백야의 마안이 침입했을 때 구원 받은 꼬마도 있다. 이런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군중들도 쉽게 검은 폭우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때 마법제가 중재를 해서 비록 검은 폭우는 작년엔 마이너스 50이란 전대미문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올해는 분발해서 성과를 낸 거라고 설명한다. 그게 가능했던 건 검은 폭우의 신인 덕인데, 소개를 할라치니 단장은 커녕 관계자 조차 참석하지 않아 난처해졌다. 마법제는 군중을 향해 누구 관계자 없냐고 묻기에 이른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1회 일치
          * 이같은 임기응변은 갤러리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전술적인 조예가 없어서인지 별 생각없이 아스타가 첫시합에서 지지나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노엘 실버]]는 미모사와 아스타의 호흡이 잘 들어맞자 신경쓴다. 이 팀에서 수하게 B팀의 선전을 응원하는건 [[클라우스 류넷]] 뿐이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1회 일치
          * [[미모사 버밀리온]]이 부끄러워 마지 않는 오라버니 [[키르슈 버밀리온]] 등장. 산호의 공작 소속 일등 상급 마법기사다.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만연한 세상에 아름답게 태어나고 말아서 괴롭다는 인물이다. 미모사는 가족에 대한 변호를 포기했고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경악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간 가장 미치고 팔짝 뛰는 사람들은 이 인물과 한 팀을 이룬 [[매그너 스윙]]과 [[솔 마론]]이었다.
  • 블랙 클로버/123화 . . . . 1회 일치
          * 잭스의 마법은 "재"의 마법. 재를 이용한 함정 설치가 특기다. 그러나 복잡한 걸 만들기 위해선 시간과 마력이 많이 소모돼서 지금은 단한 것만 가능한데.
  • 블랙 클로버/124화 . . . . 1회 일치
          * 그렇게 일방적이었던 싸움이 마침내 끝났다. 아스타가 사라지는 마구를 쳐냈다. 마구가 사라지는 간 나타날 위치를 고려해 따라잡은 것이다. 이제 싸움은 백중세. 매그너는 역시나 한 방 먹여주는게 있는 녀석이라 생각하며 공세를 높였다. 아스타는 거의 막아내고 있었지만 5발 중에 1발 꼴로 실패했다. 검을 더 빠르게 휘둘렀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1회 일치
          * 형 대 동생. 공간마법과 공간마법의 격돌. 같은 타입의 기술이 부딪히며 강렬한 후폭풍이 지나간다. 그러나 승부는 한 간. 승자는 랜길스였다. 크리스탈이 무너지고 핀랄은 벌집처럼 구멍이 나서 쓰러진다. 경기 끝. 랜길스의 G팀이 승리했다. 형을 그런 꼴로 만들어 놓고도 랜길스는 "당신이 날 이길리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선두에서 서서 날아오는 공간마법을 베어냈다. 그 공격 자체는 단해서 [[매그너 스윙]]의 마구에 비하면 간단했지만 숫자가 압도적이라 조금씩 상처를 입었다. 그때마다 미모사가 식물 치유마법 "희유의 꽃옷"으로 회복. 일단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랜길스는 아무리 회복마법을 걸어도 한계는 올 거라고 단언한다. 그러니 비참한 꼴을 당하기 전에 아스타가 발언을 정정하라고 강요한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1회 일치
          >나는 단한, 하층민 마을의 더러운 꼬맹이한테서 태어난
  • 블랙 클로버/51화 . . . . 1회 일치
          * 리히트는 쓰러졌지만 고슈를 보고 "너를 다치게 할 없었다"는 말을 한다.
  • 블랙 클로버/52화 . . . . 1회 일치
         위기의 간 마법기사단 단장들이 증원 온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1회 일치
          * 경악하는 노엘, 아스타와 달리 매그너, 고슈, 락은 식간에 괴물을 작살낸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주인공 보정인지 물같은 움직임을 한 간에 따라해낸다.--얘는 마법이라도 못 써야 밸런스가 맞는다.-- --신의 너프--
  • 블랙 클로버/64화 . . . . 1회 일치
          * 둘은 평범하게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는 상대임을 인정하고 2인분의 마력을 한 간에 합쳐서 공격을 가한다.
  • 블랙 클로버/69화 . . . . 1회 일치
          * 결정적인 간 핀랄은 아스타를 공간전이시켜 베토의 후방으로 보낸다.
  • 블랙 클로버/71화 . . . . 1회 일치
          * 검은 폭우 일행은 한 간이나마 승기를 예감한다.
  • 블랙 클로버/72화 . . . . 1회 일치
          * 핀랄은 약해지는 것 같다가 "여기까지 온 마당에" 포기할 없다고 전의를 되살린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1회 일치
          * 이들은 얼마 전 다이아몬드 왕국에서 귀한 인물들.
  • 블랙 클로버/83화 . . . . 1회 일치
          * 그 간 아스타의 시야를 까마귀 떼가 가득 메운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탄을 베어버리며 적들에게 날아간다. 이미 아스타는 절망의 베토를 쓰러뜨린 걸로 적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있다. 적들이 경계하지만 아스타는 적들을 밟고 날아다니며 식간에 쓸어버린다. 부관은 어떻게든 아스타를 저지해 보려 하지만 거침없이 달려드는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단 한 방에 박살이 나고 만다. 바네사는 그 실력을 칭찬하며 일단 저렇게 기세를 타면 막을 수 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1회 일치
          * 젤은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라드로스는 해치웠지만 다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폭주하는 샐러맨더, [[증오의 파나]]다. 마안을 개안해서인지 지쳤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마력이다. 마르스는 말로만 듣던 샐러맨더를 처음 보고 경탄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더니 그 불꽃이 자신이 사용하는 불꽃과 닮았다고 여기는데. 그리고 그 사용자, 증오의 파나를 보는 간.
  • 블랙 클로버/93화 . . . . 1회 일치
          * 타들어가는 것과 회복되는 것을 반복하며 마침내 한 발 앞까지 다가온 마르스와 아스타. 마르스는 파나를 향해 손을 뻗지만 그 간 자폭 마법이 완성된다.
  • 블랙 클로버/95화 . . . . 1회 일치
          * 이미 승리한 것처럼 폭소를 터뜨리던 라드로스에게, 폭연 속을 꿰뚫으며 반마법의 검이 날아와 꽂힌다. 단마의 검은 식간에 라드로스의 마력을 무효화 시킨다. 라드로스는 자신이 무슨 공격에 당한건지 파악을 못한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1회 일치
          * 강화된 라드로스의 마법은 아스타가 기를 감지해도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식간에 전세가 역전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1회 일치
          * 과거에도 마녀왕은 그녀를 새장에 가둬서 키웠는데 어느날 그녀의 새장을 부 것이 [[야미 스케히로]]. 마녀왕에게 도전하러 왔다 도망치던 중이다.
  • 블랙기업 . . . . 1회 일치
         용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는 [[야쿠자]]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세탁기업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일본에서 폭력단 대책법이 1992년 제정된 이후 경찰들이 야쿠자를 잡아들이기가 쉬워지자 야쿠자들이 명목상으로는 "나 야쿠자 아니요"라고 하기 위해 야쿠자들이 차린 회사들이 우후죽 생겨났다.[* 기존의 야쿠자 조직은 '기업' 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결사'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다나카 요시키]]가 지은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에 등장하는 가상의 기업 '케이텐 흥업'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케이스. 이를 '프런트 기업'이라고도 부른다.
  • 블리치/673화 . . . . 1회 일치
          * 바로 그 간 석상들이 움직여서 일행을 공격한다.
  • 블리치/674화 . . . . 1회 일치
          * 그래서 그냥 홍 뇌신전형으로 아스킨과 싸우려 하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저하된 상태라 움직이게 된 것만으론 상대가 되지 않았다.
  • 블리치/688화 . . . . 1회 일치
          * 이 두 힘은 원래 서로 견재하다가 균형이 깨지는 간 호로화가 나오는 거였는데, 지금의 이치고는 제어하고 있다.
  • 블리치/689화 . . . . 1회 일치
          * "자신의 힘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방심한 지금 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이치고의 마음을 떠들어대며 "그 간은 지금 끝났다"고 선언한다.
  • 블리치/690화 . . . . 1회 일치
          * 그 간 유하바하의 손에 이치고의 뿔이 들려져 있다.
  • 블리치/692화 . . . . 1회 일치
          * 그는 화려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겠다며 "너희가 가장 행복했던 간을 골라 죽여주마"라고 한다.
  • 블리치/693화 . . . . 1회 일치
          * 오리히메가 다시 쌍천귀을 시전하자 천쇄참월이 수복된다.
  • 블리치/694화 . . . . 1회 일치
          * 유하바하는 자신과 싸우는데 아이젠에게 득이 될게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득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려는 것들을 쳐부다"고 대꾸한다.
  • 블리치/698화 . . . . 1회 일치
          * 그 간 현세에서 카즈이가 구멍을 손을 집어넣는데 어찌된 일인지 유하바하의 힘이 허무하게 사라진다.
  • 빅맥 . . . . 1회 일치
         빵+100% 쇠고기 패티+양상추+빅맥 소스+치즈+피클+양파로 구성되어 있다. 빵은 위아래 뿐만 아니라 중간에도 끼어있고 패티, 양상추, 양파도 2개 층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히 큰 크기와 512kcal이라는 열량을 가지고 있다.
  • 빗치 . . . . 1회 일치
         페미니즘 문화에서는 bitch를 재정의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에서는 bitch라고 불리는 여성은 남성에게 종적이지 않으며 그 때문에 남성에게 반발을 사지만, 그러나 강인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으로 정의한다.
  • 사이마 . . . . 1회 일치
         [[빚]]을 지고 있는 사람 채무자(債務者)를 뜻한다. 단히 채무나 대출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불건전하게 빚을 짊어지는 사람으로, 특히 빚을 제대로 갚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사람이다. 대개 욕설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 산킨고타이 . . . . 1회 일치
         다이묘들은 서로 체면치례를 하려고 경쟁적으로 행렬을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에도 막부에서는 규제를 정해서 다이묘들의 [[석고]]에 맞춰서 일정한 수의 인력만을 동원하도록 했다. 당초에는 각 번의 번사(번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이 실제로 행렬에 참가했으나, 후기에 가면 경제적 문제로 다이묘 행렬에만 전문으로 참가하는 일용직을 동원하게 됐다. 이러한 일용직들은 겉치레는 사무라이였지만, 실상 단한 아르바이트 코스플레이어(…)에 가까웠다. 일설에는 사쿠라다문의 변(桜田門外の変)이 단 10인으로 성공했던 것도 이러한 저질 일용직 행렬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자 다들 도주했기 때문이라고.
  • 생리적으로 무리 . . . . 1회 일치
         단히 "싫다"는 [[감정]]을 넘어서, [[본능]]적인 레벨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 서동민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6라운드]]([[SK 와이번스]])
  • 서신애 . . . . 1회 일치
         || [[2009년]] || [[KBS1]] || 청춘예찬 || 이자 || ||
  • 서영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사실 70년대까지는 우리 나라 문화 예술에서 6.25 동란 이후 일찌기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의 그림자가 짙던 시절이라, [[웃으면 복이와요]]나 [[고전 유모어극장]] 같은 공중파 프로그램까지 일본 방송의 내용을 대놓고 똑같이 베껴 쓰던 때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세운 극장에서 공연을 하던 배우들이 TV시대가 되면서 TV에 등장한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영춘을 비롯한 당시 코미디언들이 독창성 면에서 부족한 개그를 하였더라도 폄하할 수만은 없다. 일단 악극도 연주와 노래 개그가 들어가는 뮤지컬 비슷한 형식이지만 분명히 발력과 암기력이 필요한 연극이었기 때문에 연기력은 필수였고, 노래와 춤도 대충 해서는 안 되었던 분야였다.
  • 서정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프로 원년 멤버
  • 서효림 . . . . 1회 일치
         | [[인이는 예쁘다]]
  • 성격 . . . . 1회 일치
          7. 신뢰 + 공포 =
  • 성재(가수) . . . . 1회 일치
         '''성재'''([[1980년]] [[1월 30일]] ~ )는 [[대한민국]]의 하드코어 밴드 [[비셔스글레어|비셔스글레어(Vicious Glare)]]와 언리시드앵거의 가수, 기타리스트이다. 본명은 '''박해진'''이며,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출신이다. 2008년 부터 ankind-Design'이라는 자신의 개인 디자인 브랜드를 운영, 음악 레코딩 [[프로듀서]] 및 [[작곡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하드코어 메탈 전문 레이블 [[GMC 레코드]]의 [[웹마스터]] /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다가 2014년 중부터 레이블을 인수 받아서 CEO가 되어 운영중이다.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https://en.wikipedia.org/wiki/Straight_edge Straight Edge]라는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 성현아 . . . . 1회 일치
         2010년에 여섯 살 연상의 사업가와 재혼하여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재혼한 남편의 사업이 탄치 않아 별거에 들어갔고, 이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2013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으나 [[2016년]]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인정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MBC로부터 출연금지를 받아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언론에 부담느꼈나? 성현아 끝내 제작발표회 불참| url=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276165| 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강은영| 쪽= | 날짜= 2018-02-06| 확인날짜= 2018-09-25}}</ref>
  • 성훈(배우) . . . . 1회 일치
         || [[SBS]] || 《[[런닝맨]]》[* 317회 런닝맨 VS 예능 어벤져스 편 2016년 09월 18일 방송. [[이경규]], [[한혜진(배우)|한혜진]], [[김동현(종합격투기)|김동현]], [[성훈(배우)|성훈]], [[문희준]], [[윤형빈]], [[Key(샤이니)|Key]]동반 출연. 1R 링위에서 이름표 뜯기 : 어벤져스팀 승리~~지석진은 나오자마자 성훈의 공격으로 간삭제~~. 2R 육감대결 : 보지 못한상태에서 돼지껍질을 맛본 성훈이 기권~~돼지껍질 탭아웃~~으로런닝맨팀 승리. 최종미션 복불복레이스 : 성훈이 능력자 [[김종국/런닝맨|김종국]]의 이름표를 뜯어 최종승리했다.] ||
  • 센티멘탈 그래피티 . . . . 1회 일치
         당시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대히트로 연애 시뮬레이션이 엄청난 인기를 모으던 시절이었으며, 센티멘탈 그래피티는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서 미디어믹스 전략의 선구를 달렸다. 그 때문에 발매전에 이미 엄청난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나온 게임은 거지같아서 식간에 버블이 꺼져버렸다.
  • 손광업 . . . . 1회 일치
         * 《영웅을 기다리며》 (2012년) - 이신 역
  • 손전 . . . . 1회 일치
         * 《[[정해협]]》
  • 손지현(배우) . . . . 1회 일치
         ||<|2> 2014년 || 네이버TV || 러브포텐 - 정의 시대 || 윤민아 || 웹드라마 ||
  • 손형준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10라운드]] ([[삼성 라이온즈]])
  • 송하윤 . . . . 1회 일치
         || [[2005년]] || 댄서의 정 || 영수 || ||
  • 슈퍼걸(드라마)/1시즌 10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윈이 알아낸 정보 대로 토이맨의 은신처로 향한다. 하지만 함정에 빠져서 놓치고 만다. 윈은 자신도 토이맨처럼 악당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카라는 윈을 위로하고, 윈은 간적으로 카라에게 키스를 하고 만다. 그런데 방에서 나오자 마자 토이맨에게 납치당하고 만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1회 일치
         DEO기지에서 행크는 인터뷰를 저지른 카라에게 화를 낸다. 카라는 연쇄 충돌 현장으로 날아가서 차 안에 갇혀 있던 피해자를 구해주는데, 그 간 공격을 받고 날려간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회 일치
         맥스웰의 부모는 정부에서 생화학무기에 대항하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시설의 환기계의 고장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이 녹아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 이를 은폐하였고 맥스웰은 정부에 불신감을 가지게 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회 일치
         비행찰하던 카라는 서로 싸워대며 과속 운전하던 운전수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들을 칠 뻔한걸 막아낸다. 운전수는 자기 차가 망가졌다며 [[적반하장]]으로 카라를 때리려다가 제압당한다. 그런데 그것이 뉴스에 뜨게 되어서 카라는 폭행을 휘둘렀다는 악성 보도에 시달리게 되고, 맥스웰 로드도 거기에 한몫 끼게 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1회 일치
         제임스는 승강기 통로를 통해서 윗층으로 올라가고, 승강기 통로의 사다리로 사람들을 아랫 층으로 내려보낸다. 하지만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나서 발을 헛디뎌서 엘리베이터 줄에 매달려서 궁지에 처한다. 결국 제임스가 떨어지는 간, 카라는 파워가 다시 치솟아서 제임스를 구출한다. 힘을 되찾은 카라는 지진으로 위험에 처한 도시를 날아다니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9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그랜트에게 자신이 슈퍼걸임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랜트가 자신에게 여러가지 가르침을 주었다는걸 밝히면서 직장을 포기할 없다고 고백한다. 카라는 결국 그만두겠다고 밝히고 나온다. 카라는 제임스가 다친 것을 보고 윈과 제임스가 맥스웰 로드에게 접근했다가 다친걸 알게 되어 격노한다. 분노하며 나가려는 카라를 윈이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하면 아스트라와 다를 바가 없다고 설득한다. 카라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좌절감을 드러낸다. 제임스의 위로를 받는다.
  • 슈퍼맨 . . . . 1회 일치
         다양한 능력자들이 판을 치는 현대 배틀물에서도 슈퍼맨은 수위권을 다투는 강자다.[* 이는 단히 빠심 등 문제있는 편파적 시선이 아니라 중립적 시선에 근거하고도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약점 등을 쓰지 않고도 슈퍼맨과 싸움이 되거나, 최소한 유효타를 내는 캐릭터는 그만큼 강하다고 볼 수 있다.
  • 슈퍼머슬봄버 . . . . 1회 일치
         레슬링게임이었던 전작과는 달리 링아웃, 핀, 4인대전을 없애고 1라인에서 상대방이 쓰러질때까지 1 VS 1로 싸우는 [[대전액션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을 훌륭하게 재현한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게임성으로 수많은 악평을 받으며 식간에 게임센터에서 철수하고 그 이후로 후속작도 나오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 스위스 방공호 . . . . 1회 일치
         현재는 개조되어 단한 벙커가 아닌 금융 데이터 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15년 동안 10km 떨어진 2개의 벙커를 연결하여 데이터 센터를 구축했다.
  • 스쿼키 청소회사 . . . . 1회 일치
         맥스와 모나가 사랑을 나누는 현장을 급습한다. 하지만 오히려 격퇴당하고, 후퇴하는 청소회사 밴에 맥스가 기어들어가 본거지를 습격당한다. 이 과정에서 맥스는 수많은 무기들과 폭발물, 수많은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는걸 보고 이들이 일반적인 떨거지들이 아니라는걸 알아낸다. 이 간부터 청소 회사 위장을 그만두고 검은 복장으로 나오는 놈들이 생긴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회 일치
          Alex DeLarge. 베토벤을 좋아하는 불량소년. 솔직히 불량소년은 화된 표현이고, 린치, 패싸움, 난폭운전, 윤간 등을 벌이는 범죄자다. 패거리의 리더격 자리를 맡고 있으며, 자신에게 반항한다는 낌새가 보이는 동료는 봐주지 않는다.
  • 식극의 소마/157화 . . . . 1회 일치
          * 쿠스노키쪽으로 기운 듯 보였던 여론이 단에 원점으로 돌아온다.
  • 식극의 소마/165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식간에 조리를 마쳐서 오히려 츠카사보다 먼저 요리를 내놓는다.
  • 식극의 소마/184화 . . . . 1회 일치
          * 축제기간 중에도 시오미 세미나의 프로젝트는 조롭게 진행 중이었으며 시오미는 새로운 예산을 따내서 기뻐한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하야마는 이런 것들을 쓸데없는 간섭으로 봤고 시설의 향신료를 식간에 파악하고 조합해서 자신만의 스파이시를 만들어낸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1회 일치
          * 이 단무식한 제안에 에리나는 말을 잊는다. 타도고로 메구미는 자기들이 어떻게 십걸을 쓰러뜨리냐며 우는 소릴하지만 소마는 타도고로 정도면 충분하다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불언허는다. 타쿠미 알디니는 그러자면 식극을 해야 하는데 그쪽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지 않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그 부분은 소마도 "어떻게든 될 거다" 정도로 대충 구상하고 있다. 게다가 왠지 타쿠미도 "우리가 이길 수 있지만 저쪽에서 안 받아줄 거다"라고 근자감이 하늘을 찌르는 상태다.
  • 식극의 소마/196화 . . . . 1회 일치
          * 다이미도 여사는 화제를 전환해 젊은 요리사들의 콩쿠르 THE BLUE에 대해 이야기한다. 죠이치로가 거기에 참석하기로 결정됐는데 매우 조로워 보인다는 것. 이는 학원 내부에서 결정된 일이라 도지마나 아자미도 알지 못했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1회 일치
          * 팀 [[도지마 긴|도지마]]는 급조된 팀이라곤 볼 수 없는 팀워크을 과시하며 조롭게 조리에 임하고 있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1회 일치
          * 미마사카를 형편없이 깎아내린 카와시마는 곧 그 말을 번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욕지거리가 치밀지만 일단 맛 본 음식에 대해 거짓말을 할 없었다. 센트럴일 지언정 토오츠키 학원의 학생이니까.
  • 신년선물연하장엽서 . . . . 1회 일치
         연하장의 상품은 매년 조금씩 바뀌었는데, 제1회 신년선물연하장엽서의 상품은 특등상으로 [[재봉틀]], 1등으로는 모옷감, 2등으로는 학생용 장갑, 3등으로는 학생용 우산이었다. 1966년에 특등상이 폐지되고 1등이 최고상으로 바뀌었으며, 1956년에는 전기세탁기, 1960년에는 발포 고무 매트리스, 1965년 이후로는 휴대용TV나 8밀리 촬영기, 영사기 세트, 1984년에는 전자레인지, 1986년에는 비디오테이프레코더 같이 서민들이 손에 넣기에 약간 어려운 상품들이 주류였다. [[헤이세이]] 이후로는 해외여행, 최신식 TV, PC 등 몇가지 가운데 1가지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 신동호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자산 =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해병대 창설의 계기도 신현준의 건의에서 시작됐는데, 1948년 여 제14연대 반란사건 직후 신현준은 해군본부에 "육전대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진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 신현준의 보고내용에 주목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해군본부가 해병대 창설을 결심하게 되었다.
  • 신혜진 . . . . 1회 일치
         '[[러블리]] [[보컬]]'이라는 이명처럼 [[목소리]]가 [[여성]]스럽고 예쁘다. [[https://m.youtube.com/watch?v=rsD2wbbvhNo|#1]][[https://m.youtube.com/watch?v=xZ2RyG1EaxA|#2]] [[비니(오마이걸)|비니]] 다음으로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음역대도 비교적 좁아 주로 낮은 음의 파트를 [[소화]]하는 편. 팀 내에선 [[보컬]] 면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데, [[본인]]이 못한다기보단 다른 멤버들이 지금까지의 곡 [[콘셉트]]에 더 잘 맞는 편이라 우선위에서 밀렸다고 보는 게 맞을 듯.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 올라오고 어째 [[안습]]~~ 다만 [[오마이걸]]은 멤버 수가 8명이나 되는 만큼 [[서브보컬]] 또한 3명으로 많기에 파트의 배분이 그만큼 세분화된다. 때문에 진이는 여타 [[걸그룹]]의 [[서브보컬]]들처럼 주로 [[포인트]]가 되는 파트를 맡음으로써 [[오마이걸]] 내에서 '[[서브보컬]]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듯.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1회 일치
         잔 다르크의 군기는 실물은 현존하지 않으며, 현대 프랑스에서는 '표준 도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도안은 차적으로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잔 다르크의 군기는 개념은 있지만 특정한 실물은 아니고 유물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http://saint-joan-of-arc.com/banner.htm (참조)]] [[http://www.stjoan-center.com/j-cc/ (참조)]]
  • 아워맨 . . . . 1회 일치
          히어로가 되기 전엔 화학자였으며 소박, 소심, 한 성격에 시간에 강박관념을 가진 그는 동료들로부터 "똑딱(영어로 Tick-Tock)"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 악평등 . . . . 1회 일치
          * 2016시즌부터 적용된 [[K리그 다득점 우선위 적용]]은 연맹의 의도와는 달리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사례로 기록될 전망으로 보인다. 공평하게 적용되었지만 찬성한 쪽이 지금 손해를 보고 있는 이상한 상황. 게다가 세계추세와도 별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았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1회 일치
          * 가게에 들어갔을 때 암살자들의 살의를 느꼈는데, 그 사이엔 한 간이지만 아즈사씨의 강렬한 살의도 섞여 있었던 것.
  • 압박면접 . . . . 1회 일치
         압박 면접은 압박을 당했을 때 지원자의 반응을 보고, [[정신력]]과 발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업무는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상사에게 혼나거나 고객의 클레임을 받는 등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압박면접을 실시한다.
  • 야마노테선 . . . . 1회 일치
         일본의 [[철도]]회사. JR동일본에서 영업하는 환선이다.
  • 야마토 나데시코 . . . . 1회 일치
         수수하게 보이지만 강인하면서도 청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쓸데없이 복잡한 의미가 있다.
  • 야차원숭이 . . . . 1회 일치
         멸종 위기에 달한 크립티드 급 생물. 본래 [[칼]]든 [[사무라이]]도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이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특징으로, 마치 [[야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을 초월한 괴력과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단히 흉폭한 짐승은 아니고, 상당히 지능이 높아서 가족이나 친구의 개념, 원수를 갚는 의식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감정적 교류도 나눌 수 있는 알고보면 좋은 생물.
  • 양윤재 . . . . 1회 일치
         | 자산 =
  • 양진성(배우) . . . . 1회 일치
         || [[2013년]] || [[소원(영화)|소원]] || 이도경 경 || 조연 ||
  • 양희승 (작가) . . . . 1회 일치
         * [[1998]] [[SBS]] 시트콤 《[[풍산부인과]]》(順風婦産科)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1회 일치
          * 회전포를 발사할 수 있다. 회전포는 회전포 키(PC 기본 설정: RMB)를 꾹 누른채로 조준하다가 조준 표시가 붉게 빛나는 간 떼서 발사하면 된다. 붉게 빛나지 않을 때 떼면 안 맞으니 주의. 회전포는 포함과 스쿠너, 대포를 맞아 약점이 드러난 프리깃과 전열함에 효과적이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1회 일치
          20 파운드. 수 흑단나무로 만든 튼튼한 망치 손잡이. 완벽한 그립감을 자랑한다고 한다. 대번포트 농지 임무인 The Proper Tools 임무 때 사게 된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회 일치
         >코너, 네가 이걸 읽고 있다면 내가 바라던대로 작별인사 할 간을 찾지 못한걸거다. 이 땅과 자원 모두를 너에게 남긴다.
  • 엔자이 . . . . 1회 일치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벌을 받게 된 것. [[누명]]과 같은 의미지만, 단히 억울하게 하지 않은 죄를 덮어쓴 것만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형사 판결을 받아 실형을 당하게 된 경우에 사용한다. 원(冤)은 원통할 원(寃)을 쓴다.
  • 역행 . . . . 1회 일치
         대개 미래의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최적의 행동을 취하게 되며, 이러한 어드벤티지로 주인공은 대활약을 하거나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구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게 된다. 하지만 역행의 결과가 언제나 풍만범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작품에서는 역행 탓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 연규진 . . . . 1회 일치
          극 중 둘째아들 최인욱으로 나오는 [[배우]] [[최준용(배우)|최준용]]도 [[야인시대]]에서 [[임화수(야인시대)|임화수]]를 연기하였다(...). --다만 작중 [[캐릭터]]는 법 없이도 살 박한 [[농민]]이다.--
  • 연정훈 . . . . 1회 일치
         * 2014년 [[TVB]] 《사랑의 간》 ... 김동성 역
  • 영국 요리 . . . . 1회 일치
         넷상에서 영국 요리에 대한 악평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영국 요리에 대한 여러 유럽 나라들의 잘못된 험담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정작 영국에서 여행한 사람들은 영국 요리에 극찬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을 여행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편견에 영향을 받아 이를 반박하여, 영국 요리의 평가는 넷 상에서 점점 나빠지는 악환을 보이고 있다.
  • 영덕군 . . . . 1회 일치
         최근 새누리 계열 정당에서 여러 악재와 논란이 터지며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있는 와중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꿋꿋이 새누리당 계열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성격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깃발만 꽂아도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된다는 수준, 민주계열 정당에 있어서는 완전한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박근혜-최실 게이트]]로 나라가 파탄에 이른 뒤 치뤄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62.96%'''를 득표해 군위, 의성에 이은 전국 3위를 기록했다. 2위 [[문재인]]과는 무려 '''48.35% 차이'''가 날 만큼 압도적인 1위를 수성했다. 2012년 대선에 비해 득표율이 다소 깎였다고는 하지만, 깎인 득표율이 60% 이상으로 5자대결 + 보수정당의 국가적 재앙 사태라는 전례없는 대선이었음에도 꿋꿋한 민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대선은 5자대결 구도 속에 치뤄졌기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득표율 전국 1위 문재인 후보조차 4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할 만큼 표 분산이 많이 되었던 선거였다.]. 여러모로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도 '''군위, 의성과 묶어 보수정당 최고의 텃밭 중 텃밭'''이라 하겠다.
  • 영양군 . . . . 1회 일치
          * [[김도현]] - [[독립운동가]]. 도해국.
  • 오경훈 . . . . 1회 일치
         |후임자 = (양천구 갑)[[원희룡]]<br />(양천구 을)[[김낙]]
  • 오세창 . . . . 1회 일치
         [[1879년]] [[과거 제도|역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는데, [[1885년]] [[박문국]]에 발령받아 [[박문국]][[주사]]시보로 주간 관보인 《[[한성주보]]》 기자가 되면서 언론인으로 입문했다. [[1886년]](고종 23년)에는 [[박문국]][[주사]]가 되어 《[[한성보]]》 기자를 겸했다. 이후 [[군국기무처]], [[농상공부]], [[우정국]] 등을 거쳤고, [[1894년]](고종 31년) [[군국기무처]] 낭청총재 비서관(軍國機務處郎廳總栽秘書官)이 되었다가 관제 개정 이후 [[농상공부]] [[참의]](農商工部參議), [[우정국]] 통신국장(郵政國通信局長) 등을 역임했다.
  • 오이다시베야 . . . . 1회 일치
         기업 측에서 직원을 정당한 이유 없이 지명하여 해고하면 고소당하여 패소당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해고하고 싶은 직원을 특정 부서로 이동시켜서, 잡일이나 단 작업 같은 의욕이 나지 않는 일을 명령하여 사실상 자진 퇴직을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오정태 (희극배우) . . . . 1회 일치
         * 《[[KBS 드라마시티]] - 건달 언어화대작전》 (KBS)
  • 오정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8년]] 2차 4라운드([[KIA 타이거즈]])
  • 오준 . . . . 1회 일치
         아버지는 독립 유공자로서 외교부의 창설 멤버인 [[오우홍]] 미국 초대영사이며, 어머니는 건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한 [[진인숙]] 여사다. 어머니의 고향이 [[개성시|개성]]이고 장인도 함경도에서 월남한 실향민이라 평소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저자=정희|제목=오준 유엔대사 특별 인터뷰|날짜=2015년 2월|출판사=우먼센스|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89&contents_id=82676}}</ref>
  • 오중기 . . . . 1회 일치
         [[영남대학교]] 철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인생 망친다'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집회 현장에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책자를 보고 우리 사회의 모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 철학과 학생회장, 문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구경북지역대장까지 맡았다. 결국 탄압이 심하던 당시,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고 7개월 가량 도망다녔으나 붙잡혀 구속되었다.--잡히지 않기 위해 여장까지 했다고 한다.-- 몇달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3년에 특별복권되었으나 전과가 남았다.
  • 오태곤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3라운드([[롯데 자이언츠]])
  • 오태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신고 선수([[LG 트윈스]])
  • 올마이트 . . . . 1회 일치
         단히 전투력만 뛰어난게 아니라 능수능란한 화술 등 매스컴 대책도 빈틈이 없다. 이러한 그에 대한 지지는 최고 수준. [[미도리야 이즈쿠]]도 어려서부터 팬이다.
  • 외척 . . . . 1회 일치
         외척(外戚)은 본래 단히 '[[외가집]]'. 그러니까 당사자에서 보기에 어머니 쪽 집안의 친척들을 뜻한다.
  • 요괴:냉장고 . . . . 1회 일치
         그래도 냉장고에 관해서는 엄마 잔소리가 옳았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꼭 그런 이유였다고는 지금도 그때도 인정한 적이 없어요. 엄마도 좀 미신 같은걸 잘 믿는 편이거든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돈벼락 맞는 꿈 얘기를 딴 사람한테 하면 행운이 날아가 버린다고 믿는 사람들. 횡재하는 꿈은 아니지만 우리한테 하는 그 잔소리의 진짜 이유를 밝혀 버리면 액땜이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엄마의 잔소리... 아니 경고와 그 사건이 연관된 거라고 생각하는건 전히 추측이에요. 아주 신빙성 높은 추측.
  • 요괴:조카몬 . . . . 1회 일치
         명절에 쉬고 있으면 집에 갑자기 나타난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괴성을 지르고 뛰어다니거나 욕설을 퍼붓고 사람을 때린다. 사람의 광을 뒤져서 귀중한 물건이나 도서를 찾고, 찾아낸 물건을 제 것으로 삼아 가져가려 한다. 조카몬이 물건을 부수거나 훔쳐가도, 집안 어른들은 허허 웃으면서 허락한다. 물건의 주인이 화를 내면 오히려 조카몬을 소중히 섬기지 않는 불경죄를 묻는다. 그리하여 조카몬이 나타나면 모든 보물을 한 간에 잃어버리게 되고 크게 후회하게 된다.
  • 요시다 세이지 . . . . 1회 일치
         사실, 요시다 증언의 영향은 한정적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증거는 요시다 증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을 참조하지 않았으며, 이는 1991년 1월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일본 정부의 내부 문서를 아사히 신문이 공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자 김학 할머니가 첫 공개 증언을 하면서, 한국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피해자 증언이 잇따르게 되었다.
  • 우동균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08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 우찬양 . . . . 1회 일치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제주전에서 최호 감독이 대대적인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시즌 첫 선발출장을 했다. 팀 자체가 2군급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눈에 띌만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 우천석 . . . . 1회 일치
         * 증조부 - 우잉(禹仍順) : 호장(戶長)
  • 운제부인 . . . . 1회 일치
         '''운제부인'''(雲帝夫人,雲梯夫人, 생몰년 미상) 혹은 '''아루부인'''(阿婁夫人)은 [[신라]] [[남해 차차웅]]의 정비(正妃)이며, 사후 신격화되어 운제산신으로 존숭되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서 발견되어 [[경주 이씨]] 족보에 참고용으로 실린 '35대 실전세계'에 의하면, 운제부인은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의 손자인 계림후(鷄林侯) 이타(李它)의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적 고증의 어려움과 용어의 모 등을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자료이다.
  • 원우(가수) . . . . 1회 일치
         중학생 시절, 막연히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취미 삼아 친구와 실용음악학원을 다녔었다. 그런데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가 그곳에서 우연히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고, 단히 경험 삼아 참가했다가 덜컥 합격해 [[2011년]]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공개 오디션을 보고 입사한 세 멤버 중 한 명으로 약 3년 8개월간의 오랜 연습생 기간을 보냈다. 각종 선배 그룹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거나 백댄서로 무대에 올라 데뷔 전부터 조금씩 얼굴을 비쳐왔다. 자세한 내용은 [[세븐틴TV]] 항목의 [[세븐틴TV#s-3.1.3|원우]] 문단 참조.
  • 원피스/831화 . . . . 1회 일치
          * 루피가 상대하는 복제 루피는 단한 복재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것처럼" 완전히 똑같이 행동한다. 거울거울 열매의 능력자?
  • 원피스/833화 . . . . 1회 일치
          * 제르마1, 욘디가 강철같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단한 사이보그도 열매의 능력도 아닌 걸로 보인다.
  • 원피스/837화 . . . . 1회 일치
          * 유혹의 숲의 사물들은 크래커를 피해 달아나지만 "출구가 있을 없다"며 여전히 포위를 풀지 않는다.
  • 원피스/847화 . . . . 1회 일치
          인간까지 컬렉션으로 책 속에 보관하는 모습에 그 비정한 빈스모크의 형제들 조차도 인상을 찡그린다. 빈스모크 저지는 자신이 이곳에 와서 다양한 종족과 생물을 봤지만 딱 하나 "거인족"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 그러자 한간이지만 빅맘이 발끈해서 인상을 구긴다. 하지만 곧 안색을 바꾸며 "어쩌다 보지 못했을 것"이라 얼버무린다.
  • 원피스/857화 . . . . 1회 일치
          * 루피는 쵸파일행에게 "다과회를 부다"는 방침을 전달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 원피스/858화 . . . . 1회 일치
          >우리로서는 너희는 단한 방해꾼들.
  • 원피스/864화 . . . . 1회 일치
          빅맘은 패닉을 일으키지 일보직전. 벳지와 부하들은 빅맘이 괴성을 지르며 무너지른 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빅맘 해적단은 "그날"의 재림이라며 그녀가 패닉을 일으키기 전에 상황을 정리해야한다고 서두른다. [[샬롯 카타쿠리]]는 "아뿔싸!"라고 내뱉으며 완전히 낭패한 얼굴이다. [[빈스모크 저지]]는 이들이 [[상디]]를 탈환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터무니없는 방해하고 분노한다.
  • 원피스/868화 . . . . 1회 일치
          * 설상가상 [[샬롯 카타쿠리]]가 자신의 떡으로 임시 귀마개를 만들어서 형제들에게 나눠줘 빅맘의 괴성을 극복, 연합군은 식간에 포위된다.
  • 원피스/870화 . . . . 1회 일치
          감격에 겨워하는 벳지의 패밀리. 놀랍게도 벳지는 딱 한 가지 탈출루트를 구상해냈다. 사실 지금 이들이 있는 방은 벳지의 열매 능력. 벳지가 인간으로 돌아가도 아무 영향이 없다. 그래서 벳지는 일행을 넣어둔 채로 "인간" 모드로 돌아가, 시저가 자신을 들고 하늘로 도망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럴듯하지만 시저는 "내 목숨을 희생하는게 전제지 않냐"고 반발, 자살행위라고 치를 떤다. 틀린 말 만은 아니다. 이미 샬롯가의 형제들이 진치고 있으니. 벳지가 인간체로 돌아가는 간 벌집이 되는 미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장색 패기 구사자도 차고 넘치니 가스화한 시저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건 덤.
  • 원피스/873화 . . . . 1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는 밀집모자 해적단의 퇴각을 진두지휘 중이었다. 사실 징베 등에 타고 있으니 "진두"라고 할 없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주도였다. 루피는 나미가 지시를 내리는게 불만이었다. 다들 뛰고 있는데 나미만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징베에 올라탔을 뿐인데 뭘 그리 당당하냐"고 쏘아붙였다. 옆에서 뛰던 상디는 평소상태로 돌아와 "나미씨는 귀여우니 그래도 된다"고 우겼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캐럿(원피스)|캐럿]], [[쵸파]], 징베는 묵묵히 뛰는 중.
  • 원피스/882화 . . . . 1회 일치
          * 카타쿠리와 루피의 결투는 미러월드를 거의 박살내면서 전개된다. 카타쿠리가 시종 공세를 취하고 있으나 루피는 요로조리 피한다. 루피도 피하기 어렵다고 투덜대는데 카타쿠리도 이만큼 공격이 빗나간 적은 없다며 "스트레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는 "흐르는 떡"이란 기술로 지면 그 자체를 떡으로 변환한다. 즉 그도 각성 능력자였던 것. 루피는 흐르는 떡에 휘감기는 간 기어4로 탈출하려 한다. 카타쿠리는 기어4에도 흥미를 보인다.
  • 원피스/885화 . . . . 1회 일치
          * 카카오섬의 쇼콜라 타운에선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이다. [[상디]]가 만든 참깨 휘핑 크림이 특히 대성공. 그 맛을 본 부하 요리사가 기절해 버릴 만큼 맛있다. [[샬롯 푸딩]]도 그 맛을 보고 싶어하지만 상디가 직접 "너만한 전력을 잃을 없다"고 만류할 지경이다. 일부 요리사들은 이 맛있는 크림을 케이크에 데코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승천해버린다. 때를 맞춰 [[샬롯 시폰]]의 특제 스펀지 케이크도 완성. 푸딩도 상디의 생크림을 듬뿍 넣은 생초콜릿을 막 완성했다. 시간은 18시 5분 전. 최종 공정에 들어간다. 그런데 상디는 모든 재료를 배에 싣도록 한다. 완성은 배 위에서 한다. 써니호를 향해 나아가면서.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1회 일치
         그리고 어제는 목욕탕, 오늘은 자동차라면서, 마치 죽은 3명의 아내들 같다고 아지야마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에는 '투신자살'을 언급. 미노리카와의 위협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 아지야마는 다가오는 미노리카와를 복도 쪽으로 밀치는데, 미노리카와는 그 간 복도에서 뛰어내리면서 자신은 '죽어주는 역할'이라는 말을 남기고 떨어져 사망한다.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1회 일치
          * 공격능력: 긴급수리 - 대상 차량의 많은 내구도를 식간에 수리한다.
  • 월드 인 컨플릭트/전술지원 . . . . 1회 일치
         핵탄두가 탑재된 항미사일을 발사한다. 넓은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방사능 구름을 발생시킨다.
  • 위의공 . . . . 1회 일치
         위의공의 죽음과 위나라의 멸망은 단히 암군 때문에 소국이 멸망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기도 한데, 위나라의 패망은 춘추시대 초기에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衛)가 후대에 약소국으로 전락[* 대부분 위의공 탓이긴 한데(…)]한 탓에 가볍게 느껴지는 점도 있다.
  • 유니콘남 . . . . 1회 일치
         유니콘계 남자란, 고학력, 고수익, 높은 사회적 신분, 잘생긴 얼굴, 좋은 성격과 신사적인 태도를 모두 갖춘 '''완벽한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 반면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남자이기 때문에, 오직 수하고 아름다운 처녀만이 만날 수 있다.
  • 유목민 . . . . 1회 일치
         유목민이라고 하면 [[말]]. 유목민들은 승마 기술을 처음으로 익혔으며, 그들의 생업인 유목의 특징상 어린 시절부터 승마를 배워 뛰어난 마술(馬術)을 발휘하였다. 이렇게 평소부터 단련된 유목민들은 거의 모든 부족원이 식간에 위력적인 기마병이 될 수 있었으며, 이는 유목민족의 높은 전투력의 근원이 되었다.
  • 유미(가수) . . . . 1회 일치
         2012년 12월 10일 녹화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엄정화]] 편[* 무대의 방영은 2013년 1월 12일.] 2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당시 함께 출연한 [[손호영]]은 방송에서 "실력이 좋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배반의 장미'를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출전으로 우승은 못 했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몰랐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하루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위 1위에 오르고 불후의 명곡 시청자 게시판이 폭주할 정도로 그녀의 재출연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2월 16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 [[김민종]] 편에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수 활동 영역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불후의 명곡 [[임재범]] 편, [[들국화(밴드)|들국화]] 편, [[설운도]] 편, [[장미화]]&임희숙 편, [[최진희]] 편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종 출연 중이다. 또한 '눈물나는 얘기(나인 OST)', 'Last One([[주군의 태양]] OST)' 그리고 2013년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싸구려 반지'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유병수 . . . . 1회 일치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1회 일치
         |자산 =
  • 유재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1차 7라운드([[LG 트윈스]])
  • 유지연(탤런트) . . . . 1회 일치
         * [[2017년]] [[KBS2]] TV소설 《[[꽃 피어라 달아!]]》 - 고달례 / 고마담 역
  • 유태웅(탤런트) . . . . 1회 일치
         || [[2005년]] || [[KBS1]] || [[불멸의 이신]] || [[이영남]] || ||
  • 육성재 . . . . 1회 일치
         집에서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 히트제조기에서 빅병의 리더를 뽑는 자리에서 토끼의 눈 붙이기 시합(...)이 있었는데 제일 꼼꼼하게 꿰매서 칭찬을 받자 뿌듯하게 '저희 엄마가 퀼트하시거든요'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팬이 준 잠옷 모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가자 가방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서 직접 귀를 꿰매다가 매듭 짓기에 실패하자 "엄마 나 까먹었어 ㅠㅠ!!" 하는 모습을 보면 사춘기 시절에도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듯. ~~바느질도 배우고~~ [[https://youtu.be/jvTZOTeemZg|#]]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먹는 것이 꿀리면 인생이 꿀린다', '일간의 창피함이 영원한 이득이다', '너보다 부족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설령 니가 바보 같이 보일지라도', '오늘 니가 흘린 땀은 먼훗날의 눈물이 나온거다' 등.
  • 윤문영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6라운드]] ([[NC 다이노스]])
  • 윤인조 . . . . 1회 일치
         * [[2015년]] [[MBC]] 수목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 - 향
  • 윤주상 . . . . 1회 일치
         * [[2014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내가 결혼하는 이유》 ... 김구 역
  • 윤지숙(배우) . . . . 1회 일치
         * [[2002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삼강오륜과 핑크 레이디》 ... 옥 역
  • 윤찬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 (신고선수 입단)
  • 윤철종 . . . . 1회 일치
         그 후 2010년 5월 민트 페이퍼 프로젝트 3집 앨범 <Life>의 수록곡인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로 참여. 이 곡이 그럭저럭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다가, 2010년 8월 발매한 디지털 싱글 ''''아메리카노''''가 제대로 대박을 터뜨려서[* 2010년 [[GMF]]에서는 관중들이 이 곡을 [[떼창]]했다.] 여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열광하는 가수로 급부상하게 된다.[* 사실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앨범화가 되지 않은 노래들이 많다. '''녹음하기 귀찮아서.'''] 이때 아메리카노로 [[뮤직뱅크]] 최고 위 7위에 든 적도 있다.
  • 윤철형 . . . . 1회 일치
          * 2003년 : [[KBS 드라마 스페셜|드라마시티]] - 결한 그녀 ... 박남식 역(KBS2)
  • 은혼/574화 . . . . 1회 일치
         "그날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만든 무수한 무덤은 선생님이나 동료들 뿐만이 아닌 우리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요시다 쇼요와 함께 그 제자들은 죽었다. 그 길이 더이상 교차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선생님의 가르침만은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망설이며 굽어진 길을 가자고, 어떤 때는 실수로 꺾어진 길을 가자고. 각자의 무사도를 찾아 방황하고 번민하며 걷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은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들의 길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다. 그것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한 간의 해후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검을 맞대며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겠지. 긴토키, 다카스기. 설령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다시 한 번 요시다 쇼요의 제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 은혼/576화 . . . . 1회 일치
         복귀한 [[카무이]]는 1사단장 시시를 식간에 썰어버리고 [[우미보즈]]와 대결한다.
  • 은혼/578화 . . . . 1회 일치
         * 우츠로는 한 팔이 날아가는 중상을 입지만 식간에 재생한다.
  • 은혼/581화 . . . . 1회 일치
         * 호우센은 아부토에게 "진심을 담아 덤비는 상대라면 진심으로 보답해라"면서 카무이에게 주먹을 날리는데, 너무 강한 펀치라서 아부토가 간적으로 막아줬는데도 멀리 날아갈 지경이었다
  • 은혼/595화 . . . . 1회 일치
          * 그는 최후의 간에 실은 쇼요의 제자들처럼 되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다카스기는 그의 시체를 거둔다.
  • 은혼/596화 . . . . 1회 일치
          * 불려온 동심(경)은 마다오가 혹시 자판기 밑에 끼어버린게 아닌가 의심한다.
  • 은혼/598화 . . . . 1회 일치
          * 긴토키는 이 와중에도 "터미널은 부 주제에 내 가랑이의 터미널은 못 부수냐"고 섹드립을 치며 도발하고 다닌다.
  • 은혼/608화 . . . . 1회 일치
          * 지상군도 새로운 전력이 도착하는데 단한 전차 부대만이 아니다.
  • 은혼/612화 . . . . 1회 일치
          * "즈라가 아니다 수인번호3692번이다." 다츠마는 간 잘못건 전화라고 생각해서 사과한다. 무슨 일이냐는 무츠에게 침착하게 "가츠라라고 생각해서 걸었는데 3691번 씨"였다고 설명하는데 "3692번 아니다 가츠라다"라는 대답이 들린다. 결국 너도 잡혀버린 거냐아아!
  • 은혼/613화 . . . . 1회 일치
          * 잠자코 있던 영감, 네스가 "당신 지시"라고 말하다 "멸종돼도 좋은 종이란 보호해야 하는 종도 구분 못하냐"고 욕을 먹는다. 빈정이 상한 네스는 알겠다며 "거기 흰 돼지랑 상위비비를 함께 없애라"며 답지 않게 하드보일드한 자세로 명령한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며 한간 생긴 권력에 취한다. 그는 지금 황태자의 목숨을 쥐고 있는건 자신이라고 과시한다. 그러면서 "대답 안 하냐 돼지"라고 갈구고 하타 황태자가 "꿀꿀"이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대답하자 "저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돼지를 연기하며 자신과 상위비비를 쏘라는 의미"라고 갖다 붙인다. 이 양반 어떻게든 하타 황태자를 치워버릴 생각이다.
  • 은혼/614화 . . . . 1회 일치
          * 가츠라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드라고니아. 엘리자베스인 부분의 팻말과 귀두에 생긴 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한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머리를 세개 부딪혔던 간. 그 이전의 기억은 사라졌다. 그대로 사지를 떠돌고 있다가 어떤 존재들과 접촉한다.
  • 은혼/622화 . . . . 1회 일치
          * 지로쵸의 검 앞에 신라의 병력이 식간에 쓸려나가고 소타츠가 단독으로 지로쵸와 맞선다.
  • 은혼/623화 . . . . 1회 일치
          * [[소타츠]]의 지시에 따라 신라 부대가 도로미즈 부녀와 해결사 일행을 일제히 덮친다. 그러나 [[도로미즈 지로쵸]]와 등을 맞댄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을 쉽게 꺾을 없었다. 신라 부대를 허수아비처럼 분쇄하는 일행.
  • 은혼/626화 . . . . 1회 일치
          오우가이의 철괴가 헤도로를 내려치며 커다란 굉음과 흙먼지가 휘날린다. 지금껏 무수한 병력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던 철괴. 하지만 헤도로는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선다. 그리고 흙먼지가 걷히는 간. 오우가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휘두르던 철괴에 오른손만 남겨둔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헤도로의 "꿀밤" 한 방이 그를 팔 한짝만 남겨놓고 날려버린 것이다. 오우가이는 고층빌딩 위로 날아가 박혔고 남아있던 마지막 뿔까지 부러지고 만다.
  • 은혼/628화 . . . . 1회 일치
          신파치와 가구라는 유례없이 차가운 눈길로 비행장년기를 맞은 사장을 쳐다봤다. 그러나 긴토키는 싱크로율이 조롭다는 헛소리를 하며 헤바를 출동시키고 싶어서 안달이다. 신파치가 본적도 없는 파벌이 생겼다고 빈정거리고 가구라는 헤바가 뭐냐고 노골적으로 묻는다. 그러나 긴토키는 헤바를 출동시킬지, 대기시킬지, 혹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해결사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주절주절 묻는다. 신파치가 너도 해결사라고 츳코미하는데 헤바 파일럿은 귀가 먹는 직종인지 전혀 듣지 않는다.
  • 은혼/631화 . . . . 1회 일치
          모선에 있는 다츠마 일행도 썩 좋지 않은 상황에 몰렸다. 자작의 안내로 진군하고 있었으나 적이 한 발 빨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엔 미리 적들이 배치돼 있었고 퇴로까지 차단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시스템을 장악한 엔죠 황자 보다 빠를 없다.
  • 은혼/636화 . . . . 1회 일치
          * 공격이 먹히지 않지만 가구라가 지지 않고 난타를 가하는데 노사는 이번에도 어느 간 몸을 줄여서 빠져나가 버린다. 그리고 가구라의 발차기는 뒤에서 접근하던 카무이를 멋지게 명중시키는데. 일단 의도한 공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구라가 미안하다 사과한다. 카무이도 코피가 터졌지만 웃는 얼굴로 "신경쓰지 마"라고 훈훈하게 답해주는가 했는데.
  • 은혼/639화 . . . . 1회 일치
          헨페이타의 다급한 퇴각 선언도 시간에 맞출 없었다. 귀병대가 상황이 급변을 인지하기도 전에 세 번재 폭발음이 모선을 뒤흔든다.
  • 은혼/641화 . . . . 1회 일치
          * 방금 전 바주카로 반사이를 공격했던 해방군 병력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체를 확인하러 접근하는 간 그가 반격을 시작하자 시체가 움직인다고 밖엔 생각하지 못했다. 반사이는 그들의 목을 따져 "아직은 아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의 검은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현의 움직임은 정교했다. 그는 해방군으로부터 뺏은 소총을 현으로 조종해 스스로 엄호사격을 펼친다. 적들을 마치 볏단처럼 썰어넘겼다. 사지에 오고 나서야, 죽음이 다가오고 나서야 그는 옛날의 각오가 잘못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자신 뿐 아니라 저 우주의 헨페이타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은혼/644화 . . . . 1회 일치
          *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에 돌입한 [[귀병데]]가 전멸하고 동지였던 [[다케치 헨페이타]]와 [[카와카미 반사이]] 마저 희생시킨 [[다카스기 신스케]]는 그들의 유지를 받드는 일념으로 [[키지마 마타코]]와 결사의 돌격을 감행, 히노카구츠치의 시스템룸에 진입한다. 신스케가 시스템 유닛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고 있을때, 방어병력들은 발악하는 심정으로 다리를 파괴하고 신스케도 추락한다. 그러나 간적인 기지를 발휘, 적 병사의 바주카를 무너지는 잔해에 쏘고 그 후폭풍으로 중추 시스템에 접근한 신스케. 병사들은 중추 시스템이 파괴되면 해방군만이 아니라 이 배 자체와 귀병대, 양이지사 일행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소리친다.
  • 은혼/646화 . . . . 1회 일치
          * 엔쇼는 다츠마의 사격에 굴하지 않고 라이트 세이버의 찔러들었다. 그 끝이 다츠마의 복부에 박히는 간, 엔쇼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다츠마의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눈은 흔들림없이 표적을 노려보고 있었고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격발. 총알이 엔쇼의 오른팔 상완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엔쇼가 라이트 세이버를 놓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 은혼/648화 . . . . 1회 일치
          >도와주지 않겠는가?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 이상 부하들을 죽일 없거든.
  • 의성군 . . . . 1회 일치
         TK 안에서도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생활권이 비슷한 이웃 [[군위군]], [[영덕군]]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성향이 강한 TOP3''' 지역으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86.1%를 득표하여 군위, 영덕에 이어 전국 3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최실 게이트를 일으키고 결국 탄핵이 된 이후에 치뤄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 후보가 63.3%를 득표하여 군위 다음으로 전국 2위를 기록했다. 또한 대선 한 달전에 있었던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도 의성 출신+강성친박 성향의 김재원 후보 역시 67.13%의 몰표로 가볍게 당선되는 데에 일조했을 정도로,[* 합산 득표율은 47.5%]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외의 다른 정당은 발을 붙이지 못할 수준이었다.
  • 이경영(1958) . . . . 1회 일치
          * KBS [[불멸의 이신]] - [[게이테츠 겐소]] 역 (2004~2005년)
  • 이관섭 (1961년) . . . . 1회 일치
         |자산 =
  • 이규한(배우) . . . . 1회 일치
          * [[내 이름은 김삼]] - 민현우
  • 이기열(배우) . . . . 1회 일치
         * 2004년 [[KBS]] 《[[불멸의 이신]] 》 - 이방 역
  • 이덕건 . . . . 1회 일치
         |자산 =
  • 이동훈 (1996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 이문식(배우) . . . . 1회 일치
          * [[엄마(드라마)|엄마]] - [[허상]] 역
  • 이미라 . . . . 1회 일치
         |장르 = [[정만화]]
  • 이민호(1987) . . . . 1회 일치
         2013년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김은숙]]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상속자들]]에서 주인공 [[김탄]]역을 맡아 최고 시청률 25.6%를 찍으며 연말 수목극 1위를 유지하며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기존의 까칠한 [[김은숙]]표 로코 남주들과 달리 다정하며 직진하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담담하게 연기해 냈다.[*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96854|연애의 발견 정현정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이민호의 연기를 칭찬했다]].] 2013 SBS 연기대상에서 중편드라마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베스트드레서상, 10대 스타상, 시청자 인기상, 베스트커플상의 다섯 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상속자들]]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이민호를 일약 최고의 한류스타로 도약시켰다. 2014년 1월 외국인은 출연이 힘들다는 [[중국]] CCTV의 춘완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하여 이민호가 출연한 간 최고시청률을 기록하였고 7억명의 시청자들이 보았다고 한다.
  • 이병규 (1983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육성선수 입단)
  • 이상목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0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 이상무(만화가) . . . . 1회 일치
         이상무는 데뷔작이 고교생이 주인공인 청춘 개그물이었고 스포츠 만화나 가족 드라마를 주로 그렸지만,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성인 취향의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 형제를 주인공으로 그린 [[현해탄 너머]]에서 동시대 만화가들처럼 단히 일본인들의 재일교포 차별만 넣는 대신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2세대 교포의 모습도 다루었다. 독고 탁이 투수로 나오는 한국인 시리즈가 그 극이라 할수 있다. [[비둘기 합창]]에서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버림 받는 여자를 그렸는가 하면, [[달려라 꼴찌]]에서 일본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한국의 흑인 혼혈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묘사하였다. 밝은 그림에 비해서는 주제가 무거운 편.
  • 이상백 (1904년) . . . . 1회 일치
         ** 형수: 서온(徐溫順)
  • 이상정 (1897년) . . . . 1회 일치
          | 친척 = 이동진(조부) <br/> 이일우(백부) <br/> 백자화(백모) <br/> 한정원(장인) <br/> 박학남(장모) <br/> 권문각(장인) <br/> 장문명(장모) <br/> [[이상화 (시인)|이상화]](아우) <br /> 서온(제수) <br/> 이용희(조카) <br />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아우) <br/> 이학희(조카) <br/> [[이상오]](아우) <br/> 이겸희(조카딸) <br/> [[박창암]](조카사위) <br/> 이준희(조카) <br/> 이상악(사촌 형) <br/> 이상무(사촌 남동생)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종조카) <br /> [[박부남 (1932년)|박부남]](5촌 종질부)
  • 이상호 (1989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육성선수 입단)
  • 이상화(1980) . . . . 1회 일치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KIA 타이거즈 2차 4위 지명]] ||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0년]] 고졸우선지명 ([[삼성 라이온즈]])
  • 이상훈 (1987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4라운드([[한화 이글스]])
  • 이상휘 . . . . 1회 일치
         [[2009년]] 3월에 [[이명박정부]]로부터 [[청와대]] 춘추관 관장 및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친이|친이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포항 북 지역구로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박계]]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후 [[2014년]]에는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아 [[동작구 갑]]으로 출마했지만 국정원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병기(정치인)|김병기]]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에는 [[이정현(정치인)|이정현]] 대표에 의해 새누리당 원외대변인으로 임명되었지만 [[박근혜-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대변인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했다.
  • 이설주 . . . . 1회 일치
         * 시집 《이(順伊)의 가족(家族)》 (1954년)
  • 이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특별우선지명([[NC 다이노스]])
  • 이승효(탤런트) . . . . 1회 일치
         데뷔 2006년 KBS 드라마 [[드라마시티]] - 건달 언어화 대작전
  • 이억년 . . . . 1회 일치
         사위 광평군 이능의 본관은 성주로 기록되었으나, 이억년과는 다른 문중 사람이었다. 이억년의 선조는 신라의 재상 이유였고, 이억년의 사위 이능은 고려 말에 사재감 동정을 지낸 이무재(李茂才)의 증손이었다.<ref>뒤에 이무재를 시조로 하는 이씨는 성산이씨, 광평이씨라 하여 성주이씨와 구별하려 부르고 있다.</ref>
  • 이영 (1492년) . . . . 1회 일치
         할아버지는 도촌 [[이수형 (1435년)|이수형]]이며 아버지는 [[홍천]][[현감]] [[이대근 (조선)|이대근]](李大根)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부호군 증 이조판서 권곤(權琨)의 딸이다. 형 이양은 [[충위]]였으나 일찍 죽었고, 다른 형은 이당인데 정략장군 부호군을 지냈다.
  • 이영수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4라운드([[해태 타이거즈]])
  • 이영은(1982) . . . . 1회 일치
          * [[갑동이]] - 심 역
  • 이인민 . . . . 1회 일치
         도은 [[이숭인]]은 그의 사촌형제인 이원구(李元具)의 아들이다.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딸 [[경공주]]의 부마인 [[이제]]는 그의 형 [[이인립]]의 아들이었다.
  • 이인영(정치인) . . . . 1회 일치
         박원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거대책본부장
  • 이재율 (1993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4라운드([[NC 다이노스]])
  • 이정훈(배우) . . . . 1회 일치
         * [[2013년]] [[KBS2]] 시트콤 《[[일말의 정]]》 ... 김완주 역
  • 이종혁 (배우) . . . . 1회 일치
         * [[2008년]] [[MBC 에브리원]] TV드라마 《[[별검 시즌2]]》 - 진무영 역
  • 이종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2라운드([[kt 위즈]])
  • 이종화 (1949년) . . . . 1회 일치
         |자산 =
  • 이준승 . . . . 1회 일치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6년 11월 24일에 남성전기 주식회사 대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학력을 속여 취업을 했더라도 신뢰관계나 기업질서유지에 영향을 주지않고 특별한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단직일 경우 이를 이유로 해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위장취업을 이유로 노조간부 등에 대해 해고를 하는 것에 제동을 건 최초의 판결이다.<ref>동아일보1986년 11월 25일</ref>
  • 이지찬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8라운드]]([[kt 위즈]])
  • 이철우(1955) . . . . 1회 일치
         [[2017년]] [[6월 20일]] 제주도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타운홀미팅에서 문재인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얼마 못 갈 것"이라는 발언[* 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위해 지지층 결집용으로 격한 말을 던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으로 파문이 일었다. 내년 지선과 총선에서 당이 승리를 결의한 것과 달리, 문재인의 현재 하는 행동이 박근혜처럼 탄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면서 비난을 한 것.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야당의 막말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정부 흔들기를 그만하라고 비판했다. [[http://m.news.naver.com/rankingRead.nhn?oid=001&aid=0009348444&sid1=100&date=20170620&ntype=RANKING|연합뉴스]] 본인은 이 사태를 단히 문재인이 경각심을 가지기 위한 것으로 해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830754|한국당 이철우 '문 대통령 탄핵 암시 발언' 논란에 "경각심 차원의 말"]]
  • 이홍기(군인) . . . . 1회 일치
         || 23대 [[김상기]] || → || 24대 이홍기 || → || 25대 [[권혁]] ||
  • 이황근 . . . . 1회 일치
         * 1990년 《[[돌이와 각시탈 품바]]》
  • 이훈(배우) . . . . 1회 일치
          * [[일말의 정]] - 하정우
  • 이희성 (1988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1년]] 3차 4라운드([[넥센 히어로즈]])
  • 인왕 . . . . 1회 일치
         우리나라의 절에서는 선문-일주문-인왕문-사천왕문의 서로서 배치되며, 금강역사는 사천왕보다 격이 낮은 수호신격으로 여겨진다.
  • 인종개량 . . . . 1회 일치
         인종개량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19세기 말, 일본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서양 문명을 도입하던 시기로써, 우생학도 일본에 전해지게 되어 이것이 인종개량론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인종개량이라는 것이 혼혈을 통한 개량은 매우 극소수의 사람이 주장하던 것이였고, 의식주 같은 환경을 개량하여 혈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우자는게 주류고 이게 인종개량을 주장하던 사람들의 대부분 의견이었다. 근데 그래봤자 인종개량이라는거 자체가 일본에서 주류는 커녕 존재감이 크게 없었다.
  • 일곱개의 대죄/171화 . . . . 1회 일치
          * 그 간 바스키어스가 산산조각난다.
  • 일곱개의 대죄/172화 . . . . 1회 일치
          * 길프로스트는 자신의 힘으로 잡혀있는 전원을 간이동 시킨다.
  • 일곱개의 대죄/174화 . . . . 1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를 간이동시켜 달라고 하지만 그럴 틈을 찾을 수 없다.
  • 일곱개의 대죄/176화 . . . . 1회 일치
          * 엘레인이 "나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다"고 하자 그 길로 길프로스트에게 부탁해 간이동한다.
  • 일곱개의 대죄/177화 . . . . 1회 일치
          * 너무 식간에 일어난 일이나 반은 멜리오다스를 지키지 못한다.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1회 일치
          * 위기의 간, 멜리오다스는 풀카운터로 회신룡을 데리엘에게 넘겨버리는데, 이때 이전과는 다르게 잔인성이 엿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프라우드린은 그들이 드레퓌스를 죽일 없을 거라며 비웃는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1회 일치
          * 성에서 목욕을 즐기는 멀린. 에스카노르는 하인처럼 목욕시중을 들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마에 열중하는 중. 멀린도 대만족. 멀린은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왕국이 원상복구된 일에 대해 질문을 들은 모양인데 "원래대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녀가 복원한건 어디까지나 "건물"이라는 것. 사실 애초에 반 정도는 멀린이 부 셈이니 고쳐주는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물이 돌아왔다고 해서 마신족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까지 낫는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계금에 걸린 성기사들와 백성들이 카멜롯으로 달아났는데 그 말은 카멜롯이 잔존한 십계의 근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 말하는 멀린. 그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일단 일곱개의 대죄임에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멜리오다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1회 일치
          * 그러자 드롤이 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것만 보고 공격이 먹혀들고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 드롤은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그의 춤이 계속되자 어느 간 디안느의 마력이 지워지고 대지를 조종할 수 없게 된다. 어느새 접근한 드롤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혹평하며 다시 한 번 장타를 날린다.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1회 일치
          * 영창 바스키어스 제 7형태 "달의 꽃"(문 로즈). 그로부터 "생명의 물방울"이 흘러나온다. 물방울은 죽어가던 할리퀸과 디안느를 식간에 소생시키고 기력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마지막 생명의 물방울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십계인 그로키시니아가 두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한다.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1회 일치
          뤼드셀의 공손했던 태도가 한간 사라진다. 그는 "모든 종족이 바라던 평화"를 주창해왔지만 그 안에 마신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스티그마인 멜리오다스 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눈을 떠야 한다며 멜리오다스와 갈라지라고 강요한다. 그에게 있어선 멜리오다스는 마신왕의 후계자일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요하면 엘리자베스에게 더 어울리는 사내도 준비할 수 있다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05화 . . . . 1회 일치
          * 콤보를 계속 쌓으며 54콤보까지 얻어맞은 타르미엘은 이미 형채도 제대로 남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간에 모습을 회복하더니 데리엘에게 언제까지 할 거냐고 말까지 건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회 일치
          * 혼자 힘으로 대적이 어렵자 뤼드셀은 [[사리엘]]과 [[타르미엘]]을 가세시키나, 이들은 몬스피드에게 식간에 재생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입는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1회 일치
          * 마침내 감옥을 나서게 된 고서. 그러나 메라스큐라가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녀는 더이상 소리지르고 화낼 수도 없다. 고서의 손이 닿는 간 몸의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고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만나는건 처음일 거라며 다시금 자신을 소개한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다음 간, 디안느는 방어할 틈도 없이 젤드리스의 일격을 허용한다. 젤드리스는 화살처럼 날아와서 드롤의 가슴을 과녘처럼 파고든다. 디안느는 쓰러지면서도 지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일곱개의 대죄/201화|십계의 공격에도 끄떡 없던]] 드롤의 몸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렇게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우선은 방어다. 쓰러진 채로 "가이아폼"을 사용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에서 마력이 발동하지 않는다. 젤드리스가 그를 쓰러뜨리면서 마력까지 봉해서 아무런 기술도 쓸 수 없는 것이다. 디안느는 그가 다른 십계와도 다른, 믿기지 않는 강자라는 걸 실감한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1회 일치
          * 그 간을 포착한 디안느가 다이나믹하게 고서를 저지한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1회 일치
          어느새 고서는 감정이 없다면 흘릴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걸 자각하는 간 그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1회 일치
          * 시가 무시당하는 거야 하루이틀도 아니니 곧 털어버리는 에스카노르. 그런데 이 경사로운 자리에 한 사람이 빠져있다. 연회가 시작한지 꽤 됐는데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자리만 비어있다. [[멜리오다스]]는 "수상한 실험"이라도 하느라 틀어박혔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에스카노르는 걱정된다며 보고오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에스카노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빈 의자로 간이동해 나타나는 멀린.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가 그곳이 "성새도시 코란도"라고 알려준다. 몇 백년 전 대학살이 일어나 멸망한 폐도시다. 에스카노르가 "대학살"이란 말만 듣고 무서워 벌벌 떤다.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코란도 자체 보다는 "남동쪽"이란 단어에 반응을 보인다. 그는 그 방향이라면 "거기"도 통과할 거라면서 조금 옆길로 샐 없겠냐고 건의한다. 어차피 하루이틀 거리도 아니니까.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1회 일치
          * 마력이 담긴 작은 침이 하급 마신의 머리에 박혔다. 마신이 온한 강아지처럼 그 말에 따랐다. 페리오는 자신을 받아든 남자가 누군지 알았다. "아만드". 진짜 이름은 고서. 갑옷을 입고 돌아온 그가 하급 마신에게 다시 명령했다.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1회 일치
          * 일어난 해골병들이 대죄 일행을 공격한다. 그러나 단한 해골일 뿐이라서 지금의 일행에겐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다. 반이 맨 처음 덤벼든 녀석을 깨부수며 딸리 차원의 뒤틀림을 처리하고 단장을 구하러 가자고 목청을 높였다. 단원들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해골병들을 분쇄했다. 그 약해 빠진 호크 조차도 필살 "초지조 스트라이크"라는 필살기로 때려부술 수 있는 수준이었다.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1회 일치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이제 달아나는 신세였고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정면승부를 피하며 조금씩 물러났다. 그대로 해골병들을 유인하며 특기인 신경조작을 걸었다. 하지만 마신족 마저 조종하는 그 기술이 해골병에겐 통하지 않았다. 위기의 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후방지원이 빛을 발했다. 강력한 마법의 힘이 해골병들을 새까맣게 태워버린다.
  • 일곱개의 대죄/번외편 . . . . 1회 일치
          * 그런데 대왕오징어가 나타난다? 식간에 해체해서 구워먹는다.
  • 일본 니카타현 이토이가와시 대화재 . . . . 1회 일치
         이날은 강풍이 불어서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간풍속은 최대 24.2미터로 관측됐다.
  •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 . . . . 1회 일치
         か행, た행, は행이 청음으로 분류되며 그중에서 は행은 원래 그 자체가 /p/소리였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로 음퇴화 현상을 거치면서 현재의 /h/가 되었다. 현재 /p/음가는 '반탁음'으로 분류하며 は행 위에 고리 모양의 기호를 붙여 표기한다.
  • 임기영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2라운드]]([[한화 이글스]])
  • 임신균 . . . . 1회 일치
         임신균 도시전설의 흥미로운 특징은, 이러한 속설이 단히 '흥미거리'가 되는 '도시전설'로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미신적인 속설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널리 퍼진 [[스마트폰]]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인터넷 프리마켓'과 연결되어, 지극히 활발한 '상업활동'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 임은정(법조인) . . . . 1회 일치
         2016년 6월 27일에는 최근 자살한 후배 검사가 "부장검사 폭언에 힘들어했다"고 밝힌 검사 부친의 기사를 링크하며, 자신이 당한 폭언 사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검사와 스폰서, 그런 식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간부를 만나고는 성매매 피의자로 보여 결재를 못받겠으니 부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스폰서달고 질펀하게 놀던 간부가 저를 '부장에게 꼬리치다가 뒤통수를 치는 꽃뱀 같은 여검사'라고 욕하고 다녀 제가 10여년 전에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그러면서 검사적격기간을 단축하는 검찰청법개정안에 대해 인사부터 좀 제대로 하고 적격심사를 강화하는게 서일 거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 임채무 . . . . 1회 일치
         젊은 세대에게 알려진 대표작(?)은 2006년 초 [[돼지바]] 광고. 싱크로 높은 [[비론 모레노|모레노 심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탈리아전의 그 심판 맞다] 코스프레로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를 계기로 그해 중부터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원년 멤버로 출연하며 예능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 사실 그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보다 이전인 90년대에도 종종 심야 예능[* 물론 그때는 예능이라고 안 부르고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불렀지만..] 프로그램에 나와서 꽁트연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당시 나름 유명했던 건 KBS 꽁트에서 카바레 사장님 역할로 나와, 당시 쓰던 닉네임 '채무림'[* 임채무를 미국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임을 림이라고 한 것]으로 불리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 같은 코미디언들과 함께 연기했던 것.
  • 임혁주 . . . . 1회 일치
         * 2004년 [[한국방송공사|KBS]] - 《[[불멸의 이신]]》 - [[정탁 (1526년)|정탁]] 역
  • 임효성 . . . . 1회 일치
         [[충주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 [[서울 SK 나이츠]]에 입단하여 프로에 데뷔했다. 전체 3번이라는 드래프트 번에서 알 수 있듯이 데뷔 당시에는 제법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데뷔 후 SK에서 ~~벤치워머로~~ 한 시즌을 뛰고, 2번째 시즌 도중 [[문경은]]의 맞트레이드 상대로 지목되어 [[김일두]]와 함께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후 2번째 경기에서 23득점을 몰아치는 등 기대를 모았으나 그 이후 활약은 미비했다.
  • 자본통제 . . . . 1회 일치
          *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금처럼 모적인 상황에서는 자본통제가 환율을 관리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에서
  • 장기범(배우) . . . . 1회 일치
         * 《[[깡이]]》 (EBS, 2004년) - 민준희 역
  • 장도 (1876년) . . . . 1회 일치
         [[1899년]] 도쿄법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의 법원을 회하면서 견습까지 마친 뒤 귀국했다. [[1900년]]부터 사립 광흥학교 교사로 법학과 일본어 등을 가르쳤고, 이후 [[한성법학교]] 강사와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일하면서 [[형법]] 전문가로 활동했다.
  • 장민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4년 2차 8라운드]]([[NC 다이노스]])
  • 장범준 . . . . 1회 일치
         ! colspan="2"|
  • 장성원 (배우) . . . . 1회 일치
         {{다른사람:[[장왕후|어머니]]}}
  • 장솜이 . . . . 1회 일치
         | 사진설명 = ‘리턴’ 신예 장솜이, 열정의 막내 형사...청 미모에 액션까지
  • 장우혁 . . . . 1회 일치
         * [[1998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일일시트콤 《[[풍산부인과]]》 (특별출연)
  • 장운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2차 6라운드]] ([[한화 이글스]])
  • 장재훈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5라운드]] ([[한화 이글스]])
  • 장정희(배우) . . . . 1회 일치
          * [[1998년]] [[SBS]] [[풍 산부인과]] - 김간호사 역
  • 장종덕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2차 9라운드([[넥센 히어로즈]])
  • 장진용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1차 지명([[LG 트윈스]])
  • 장태영(야구선수) . . . . 1회 일치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영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태영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남중학교 2루수 정상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간 '''정상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상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상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 장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육성선수 입단)
  • 장희진 (1944년) . . . . 1회 일치
         * [[2008년]] 《[[땀의 교자 탁덕 최양업]]》 ([[평화방송]])
  • 전라북도 . . . . 1회 일치
         [[창군]]''' || 淳昌郡 || 13,657 || 30,275 || 495.76
  • 전라북도/인물 . . . . 1회 일치
         창군 - [[김동진(프로게이머)|김동진]] [[고경표]] [[고소영]] [[성시경]] [[박경림]] [[임현식]]
  • 전민희 . . . . 1회 일치
         또한 '점술'과 '별자리'와 '타로'의 부분이 각각 세월의 돌, 룬의 아이들-데모닉, 태양의 탑에 서대로 나타난다. 세월의 돌에서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던 점술에 대한 막연한 부분이 태양의 탑과 데모닉을 거치며 점점 구체화된다. 이것이 소설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전상렬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1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 전예용 . . . . 1회 일치
         |후임자 = [[유창]]
  • 전인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9년]] 2차 6라운드([[히어로즈]])
  • 전일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1년]] 1차 지명 ([[태평양 돌핀스]])
  • 전정희 (배우) . . . . 1회 일치
         1996 자랑스러운 시민상-미풍양속부문(조 시장상)
  • 전종환 . . . . 1회 일치
         |자산 =
  • 전지수 . . . . 1회 일치
         | 최고위 =
  • 전태규 . . . . 1회 일치
         2014년 8월 중 [[아프리카TV]] 전 BJ헵번과 결혼.
  • 전호영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4라운드]] ([[LG 트윈스]])
  • 전희숙 . . . . 1회 일치
         | 최고위 =
  • 절대가련 칠드런/442화 . . . . 1회 일치
          * 사고의 원인을 찾아 선내를 찰하기 시작하는데, 의문의 그림자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5화 . . . . 1회 일치
          * 한조의 말대로라면 지금 블랙 팬텀의 에이전트들은 다른 사람이 부여한 개성에 따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 된다.--그리고 닌자 취미는 전히 본인 의향이라는 씁슬한 진실이--
  • 절대가련 칠드런/447화 . . . . 1회 일치
          * 효부가 부 것은 카본으로 만든 더미.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조금 적게 모인 편이라고 하면서도 "이것으로 너의 소중한 것을 부 어른들에게 굴복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선언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2화 . . . . 1회 일치
          * 잡히더라도 가끔은 탈옥해서 만나러 올 테지만 항상 그럴 없으니, 자신이 없는 사이 이게 있으면 안심이라고 말해준다.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1회 일치
          * 그는 택시를 타려다가 뒤에서 기다리는 소녀에게 서를 양보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1회 일치
          * 그러는 사이 마기일행은 차량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효부는 헤어지기 전 "네 덕에 내게 집이라 부를 곳이 남아있다"고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 바로 마기 덕에 안심하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됐으니 반대로 마기가 방황하는 간이 되면 언제든 "시로"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다며.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1회 일치
         기존의 레어메탈 감염자들이 단히 마음이 일그러져 폭주하는 것에 그친 데 반해 마기는 대놓고 길리엄 측에 붙는다고 선언하여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지인들을 소중히 여기는 효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인 만큼 더욱 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1회 일치
          * 길리엄의 목적이 단히 '후지코의 죽음'을 통한 일행의 좌절인지, 아니면 이 동작으로 상대의 평정심을 무너뜨려 다른 술책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불명.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1회 일치
          카오루가 왠일로 상식적인 얘기로 마츠카제의 편을 들어준다. 지금 우선해야 할 건 미오일행의 구출이라는 것. 오염된 멤버의 구출은 제 2위다. 최종적으로 승리하면 모두를 되돌릴 수 있지만, 지금은 판도라가 최종 방어선. 미나모토가 뒤를 맡기고 효부가 판도라의 지휘관을 일임한 이상 책임을 다해야 한다.
  • 정겨운 . . . . 1회 일치
         |
  • 정경호(1972) . . . . 1회 일치
          * [[2007년]] [[문화방송|MBC]] [[하얀거탑(2007년 드라마)|하얀거탑]] ... [[권기]] 역
  • 정광운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6라운드([[한화 이글스]])
  • 정광조 (1883년) . . . . 1회 일치
         |제목=<nowiki>[발굴] 주요 친일명단 120명 중 34명 해방후 훈·포장·표창 서훈 - 김성수는 2등급, 유관은 3등급</nowiki>
  • 정기성 . . . . 1회 일치
         * 《[[공공의 적]]》 (2002년) - 정 경 역
  • 정난정 . . . . 1회 일치
         * 《[[불멸의 이신]]》 ([[KBS]], [[2004년]]~[[2005년]], 배우: [[이혜근]])
  • 정다흰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2차 3라운드([[LG 트윈스]])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3라운드 ([[KIA 타이거즈]])
  • 정만조 . . . . 1회 일치
         [[1929년]] 관제 친일 유림 조직인 [[경학원]]의 대제학을 지냈고, 국사 편찬 업무에 발탁되어 일본의 시각에서 역사를 적는 데 일조했다. [[1921년]]부터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일본 측의 시각에서 《조선사》를 집필하였고, 《고종실록》과 《종실록》의 편찬에도 감수위원으로 참여했다.
  • 정몽헌 . . . . 1회 일치
         |자산 =
  • 정미남 . . . . 1회 일치
         * 2005년 《부라보 김봉》(단편) ... 버스 안 남자 역
  • 정범균 . . . . 1회 일치
         * 이거 모르는 간 원숭이 되는거예요!~ (연애능력평가)
  • 정상교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1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1년]] 5라운드([[KIA 타이거즈]])
  • 정상헌 . . . . 1회 일치
         [[2005년]]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위로 [[대구 오리온스]]에 입단했다. 이후 군대를 전역하고 은퇴를 하였다.
  • 정서임 . . . . 1회 일치
         * 1987년 KBS tv소설 《[[애보]]》
  • 정성곤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2차 2라운드([[kt 위즈]])
  • 정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4년 2차 7라운드]]([[NC 다이노스]])
  • 정성현 (배구선수) . . . . 1회 일치
         '''정성현'''([[1991년]] [[5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이며,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선수이다. 2013-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6위로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 입단하였다.
  • 정소담 . . . . 1회 일치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59471&C_CC=BB <리뷰> 영화 <국제시장> '이 시대 모든 금이를 위하여]
  • 정승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정승화(육군) . . . . 1회 일치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때 신군부측에 납치당하고 만다. [[10.26 사건]] 문서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대령]]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대통령이 연회가 있으면서도 정승화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궁정동으로 불러냈다.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정 차장과 저녁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의 치밀한 계략인지, 간적인 기지인지, 본능적인 직감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 피살 현장에서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김재규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다만 뭔가 수상쩍다는 건 느꼈는지 차 안에서 김재규가 "목이 마를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라." 하면서 준 사탕을 바로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사탕 대신 껌을 준다.]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통령이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고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시도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사실은 정승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훗날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현장에서 막지 못한 죄인이니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인데 뻔뻔하게도(?) 자리를 보전하길래 의로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이에 대해 정승화는 청문회 등에서 평소 차지철의 행보와, 당시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이 차지철이라고 오판해서 수경사 병력을 장악해 차지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고 자기 변호하였다.
  • 정영기(배우) . . . . 1회 일치
          * 2013년 KBS2 《[[최고다 이신]]》
  • 정재민(2001) . . . . 1회 일치
         * 《[[금의 땅]]》 (2014년, KBS2) - 어린 윤정수 역
  • 정종 . . . . 1회 일치
         ※ 그런데 사실 왕위 계승은 서자라도 상관없다. 왕실은 사가와는 달리 정실 소생과 측실 소생 사이의 적서 차별이 없기 때문. 애초에 다수의 후궁을 두는 이유는 혈통 단절을 막기 위해 '왕위 계승이 가능한' 많은 자손을 얻기 위해서이다. 계승 서열 자체는 적자>서자이므로, 적자가 따로 있는데 서자가 계승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적자>서자이기 때문에 '적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바로 다음 위인 서자가 계승하는데는 어떤 문제도 없다.
  • 정좌관심 . . . . 1회 일치
         정좌관심은 간화선과 같이 한 간에 얻어지는 깨달음(돈오돈수)가 아니라 독서와 병행한 '점진적'인 깨달음(돈오점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한국 불교에서 주류가 되는 [[간화선]]보다는 이후 불교계에서 쇠퇴하여 사라지는 [[묵조선]]과 유사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 정진(1976) . . . . 1회 일치
         * 《[[한성별곡]]》 (KBS2, 2007년) - 강재
  • 정진호(1956) . . . . 1회 일치
         || '''생년월일''' || [[1956년]] [[6월 23일]][* [[최실]]과 생년월일이 일치한다.] ||
  • 정홍준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2년]] 6차 9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제령 . . . . 1회 일치
         다음과 같은 서로 실행한다.
  • 조청희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조현근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05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 조혜선(탤런트) . . . . 1회 일치
         [[TV소설 금의 땅 2014]]
  • 지수원 . . . . 1회 일치
          * 2014년 KBS2 [[트로트의 연인]] ... 장준현의 엄마 화
  • 진격의 거인/82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라이너는 후방을 버리고 전방의 샤샤와 코니를 공격하고, 샤샤는 부상으로 명중시키지 못하고 코니만 왼쪽 턱을 부다.
  • 진격의 거인/83화 . . . . 1회 일치
          * 엘런 일행 쪽에서는 리바이가 약물을 넘기려는 그 간, 조사병단의 생존자가 엘빈 단장을 구조해 온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1회 일치
          그런데 전쟁은 쉽게 끝나주질 않는다. 투척한 포탄이 날아가는 동안 적 함대가 얌전히 기다리질 않았다. 그들은 짐승 거인, 지크를 향해 함포로 일제 응사한다. 포탄이 함선에 명중했을 땐 이미 첫 응사가 끝난 뒤였다. 양측의 포격이 교차하는 간, 지크는 생각과 다른 전개에 당황한다.
  • 진선유 . . . . 1회 일치
         !
  • 진창현(음악인) . . . . 1회 일치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모습을 못마땅하게 봤고, [[경찰|사]]가 될 것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교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중학교]] 과정을 끝마치기 위해 [[후쿠오카]]로 건너가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는 고학을 했다.
  • 질렸다 . . . . 1회 일치
         다음과 같은 서로 진행한다.
  • 차성훈 . . . . 1회 일치
         * 《[[해피엔드 (1999년 영화)|해피엔드]]》 (1999년) - 경 1 역
  • 차수연 . . . . 1회 일치
         || 결혼식 후에[* 일본의 각본가와 한국의 드라마 PD가 의기투합한 '텔레시네마 7'의 일환. 감독은 [[내 이름은 김삼]]의 연출자였던 김윤철 PD.] || 김정희 || ||
  • 차일목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9년]] 2차 5라운드([[해태 타이거즈]])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회 일치
         피고인은 A를 도와서 일으키고, B쪽으로 손을 내밀면서 접근했다. 피해자 B는 이 모습을 보고 피고인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피고인은 이것을 [[복싱]]의 파이팅 포즈로 오해. B가 자신에게 덤비려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자신과 A를 지키기 위하여 간적으로 왼발 [[돌려차기]]를 날렸다.
  • 창작:IDF . . . . 1회 일치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대전의 흐름상 보병의 높은 기동력이 중요해지고 도시 지역과 근방을 찰하는 일이 많은 만큼 상당수의 보병전투차량을 운용중에 있다. 험비는 미군이 L-ATV 사업을 도입하면서 일부 물량을 IDF에 기증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수가 존재하지만 L-ATV 사업 비용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IDF가 차세대 병력수송장갑차인 L-ATV를 상당수 구매하기로 하였다.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1회 일치
         이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사는 곳''' [* 다만, 단 인간형 종족이라면 다른 대륙에서도 살고 있다.] 안덴산맥을 통해 남부와 북부가 구별되며, 남부 해안가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다. 큰섬들은 대강 하와이 정도의 크기이지만, 예외는 있다. 보통 섬에서는 거상들이 근처 영주와 협업해 그들만의 공화국들을 세우는 편이 흔하다.
  • 창작:좀비도시 . . . . 1회 일치
          * 방벽 : 군에서 건설한 방벽. 철조망과 철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인이 정기적으로 찰을 한다.
  • 창작:좀비위키 . . . . 1회 일치
          * 좀비기관차 : 좀비력 5년 전후에 모 생존자 조직에서 제작. 좀비를 수거하여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 연료(?) 식 [[증기기관]] 차량. 작동방식은 단하여, 기관차 위에 있는 화부들이 기관차에 다가오는 좀비를 갈고리로 낚아서 끌어올린 다음, 토막을 내고 말려서 연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한 연료를 보일러에 투입하여 좀비 시체를 보일러에서 불태워서 그 화력으로 증기기관을 돌려서 작동하는 차량이다.
  • 창작:좀비탈출/0-1-2 . . . . 1회 일치
         차마 인터폰을 켜고 싶진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내 인생에서 그놈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간이 되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
  • 창작:좀비탈출/1-1 . . . . 1회 일치
         대문을 나선 간 나의 냄새를 맡았는지, 골목길에 있던 좀비들이 모여오기 시작했다. 야구방망이로 제일 가까이 있던 놈의 골통을 후려 갈겨 쓰러뜨린 다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 창작:좀비탈출/2-1-3 . . . . 1회 일치
         혹시…? 하고 생각한 간 이불이 젖혀지며 좀비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 창작:좀비탈출/3-2 . . . . 1회 일치
         생각해보면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려왔던 괴소문들은 대부분 좀비들이 원인이 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 역시, 집에 돌아갔다가 얼마 뒤에 '습격'을 시작하면서 동네 곳곳에서 피해가 점점 확대되어 갔던 것이겠지. 경찰들이 이런 사태에 쫓기면서 동네 치안은 급격히 나빠졌다. 그러다가 어느 간 마치 점점 높아지던 댐에서 물꼬가 터지듯이, 늘어나는 좀비들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4-0 . . . . 1회 일치
         병중에 식량이 없다는건 놀라운 일이다. 아무렇지 않은 병도 식간에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 창작:좀비탈출/4-1-2 . . . . 1회 일치
         일단 눈길이 닿는 곳은 안전하다. 모퉁이를 도는 간 습격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귀를 기울여도 그놈들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없는 걸 보니 가능성은 낮다.
  • 창작:좀비탈출/4-1-2-1 . . . . 1회 일치
         혹시 모르니까 닫아야겠다. 할 수 있을 때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일대가 전멸했다면 그만큼 좀비들의 숫자도 넘쳐날 것이고, 그것들이 전부 우리 집으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식량을 손에 넣는데 실패하더라도 마당으로 오는 놈들이 줄어든다면 다음 기회도 생길 수 있으니까. 나는 문 너머에 놈들이 있진 않나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을 닫는 간에 나는 소리가 행여라도 놈들을 깨우게 되진 않을지 주의하며 움직였다.
  • 창작:좀비탈출/5-1-1 . . . . 1회 일치
         짧은 고민은 토트넘의 시체를 그대로 둘 없다는 뜬금없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고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양이 시체를 놓으면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그러나 녀석들이 고양이만큼 판단력이 있진 않겠지. 녀석들 중에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썩어가는 강렬한 냄새에 이끌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후각이 살아있는 놈은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놈보단 많을 거라는 생각도.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1회 일치
         간적으로 마비되어 있던 감각들이 깨어났다. 다리가 굳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하반신이다. 게다가 녀석들 쪽이다. 생존자가 이런 꼴이 됐더라면 필시 피가 흐르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이 방이 빨간 방으로 보일 정도로 화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체액이 튄 흔적은 없다. '''절단면'''에 검은 끈끈이 같은게 엉겨 있는게 전부다.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1회 일치
         기존의 스토리를 약간 수정해야겠다. 딱히 잘라내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훨씬 단한 이유였다.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1회 일치
         아무래도 죽그릇을 엎어놓은 간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시 눈을 떴는데, 발열도 어지러움도 악화됐다. 그래 몸살은 아닌게 입증됐군 하! 하!
  • 창작:좀비탈출/5-1-2 . . . . 1회 일치
         내가 치운 돌은 두 개째까지다. 기억이 맞다면 세 번째 부터는 된장, 고추장, 간장의 서일 것이다. 물론 그것들도 필요하지만 이제 와서야 담아갈 수단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망할 놈의 그릇을 챙겨왔어야 했다. 그래서 세 번째부터 포기하고 쌀과 야채만 가방에 담을 수 있는 만큼 담았다. 이정도만 해도 대략 일주일치는 된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현관을 잠가 버리면 내 목숨은 적어도 일주일 연장되는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1회 일치
         알고 있다. 어느 쪽도 확실한건 없다. 지금 어느 쪽의 가능성이 높은지를 따진다는건 전히 내 심리가 얼마나 낙천성을 회복하고 있는지에 따를 뿐 객관적인 어떤 지표도 반영하고 있지 않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1회 일치
         마당을 나서면서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어쩌면 모험'''. 어쩌면 모퉁이를 돌아서면 녀석들이 있을지도 몰라. …… 좋아. 아니군. 토트넘이 보인다. 간 나도 뭔지 모를 감정이 위장을 들쑤신다. 감정…… 보다는 '''구토감'''이라는게 맞을 것이다. 항상 보던 얼굴도 이렇게 눕혀놓고 보니 터무니없이 혐오감을 자극한다. 나는 아예 그쪽을 외면해 버렸다. 어쩌면 모험 정신엔 위배되지만…… 저게 '''다시 일어날 일'''은 없겠지.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2 . . . . 1회 일치
         둔탁한 소리와 손에서 접시가 깨지는 듯한, 유리창을 부 듯한 섬뜩한 촉감이 괴롭힌다. 정수리 한 복판. 언젠가 Tv에서 명인이 도자기를 깨뜨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갈라진 살갗 사이로 보이는 두개골이 도자기처럼 하얗다. 주의를 기울였지만 도자기 안의 검붉은 내용물이 튀기면서 손과 팔에, 그리고 얼굴까지 더럽혔다. 하나님 저게 입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비록 '''좀비가 득실대는 동네에 처박아 버렸지만'''.
  • 채기영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채동선 . . . . 1회 일치
         채동선은 생애 수 가곡 및 민족음악 제작에 몰두하였다. 대표적으로 그의 작품인 〈고향〉 외에 〈향수〉, 〈망향〉[* 1980년에 출판된 《채동선작곡집》에 수록된 〈망향〉이 가장 애창된다.], 〈모란이 피기까지〉, 〈바다〉 등이 있고, 합창곡 〈또 다른 하늘〉, 교향곡 〈조국〉, 〈한강〉, 〈현악 4중주곡 제1번〉, 〈현악 4중주곡〉,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 모음곡〉 등이 있다.
  • 채상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8라운드 ([[넥센 히어로즈]])
  • 채영인 . . . . 1회 일치
         채영인은 성형을 굳이 안 했어도 될 정도로 괜찮았는데 굳이 성형을 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성형전과 성형후의 갭이 큰 편이다. 2003년 [[다모]] 출연 당시에도 단아한 외모였었는데. 하지만 [[민소희|이 역]]을 맡고 나서 한간에 이미지가 추락하고 만다. 자세한 사항은 [[민소희]] 항목 참조.
  • 채형석 . . . . 1회 일치
         |자산 =
  • 책표지 . . . . 1회 일치
         고전 시대에는 단히 제목만 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현대에 출판이 상업화 되고 나서는 주제를 나타내는 그림을 넣는 등. 공들여서 만들어진 책표지가 많이 나타났다.
  • 철인 28호(로봇) . . . . 1회 일치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으나 점차 고성능 로봇들이 등장하면서 단히 힘만이 아닌 기술과 지혜를 써서 싸운다.
  • 청도군 . . . . 1회 일치
         평소에는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범죄자로 전락하여 경찰 수사를 받게 된 심리적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렀다는 것. 또한, 이들이 자살에 이르게 된 심리적 압박감의 주요한 원인 중 '''자신을 통해 금품을 전달받은 주변 사람들이 물게 된 과태료'''가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으레 선거때면 나눠주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별 죄책감 없이 십만원 상당의 금품을 주고받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나면서 50배의 과태료를 물게 된 것. 10만원의 50배인 500만원은 도시에서도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데, 농가 입장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돈이 된다, 이 때문에 오랜 기간 원만하게 유지되던 지역의 인간관계가 식간에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 청산콜라 무차별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1977년 1월 4일에서 중까지, 도쿄와 오사카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인 사건.
  • 초공동어뢰 . . . . 1회 일치
         독일의 바라쿠다(Barracuda) 어뢰는 시속 800km의 속도로 움직이며, 항미사일 토마호크에 필적한다.
  • 최경훈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7년]] 고졸우선지명 ([[두산 베어스|OB 베어스]])
  • 최광수 (공무원) . . . . 1회 일치
         |후임자 = [[최달]]
  • 최규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최동익 . . . . 1회 일치
         |자산 =
  • 최민창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7차 2라운드([[LG 트윈스]])
  • 최병철 . . . . 1회 일치
         | 최고위 =
  • 최석기 . . . . 1회 일치
         그는 [[NH농협 2008~2009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위로 [[수원 KEPCO 45]]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하였다. 그러나 팀은 단 한 번의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연패를 당하게 되었고, 이는 [[공정배]] 감독(현재[[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단장) 이 경질되는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이 상무를 이기고 기나긴 25연패를 끊으며 첫 승을 기록하였을 때에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2009년]] [[3월 5일]]에 열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의 경기에서 12득점, 5블로킹을 올리는 활약으로 이변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70908 〈프로배구〉KEPCO 45, 현대캐피탈 제압 '대이변'] 《제주투데이》 2009년 3월 5일 23:54, 2009년 3월 19일 1:37 확인</ref>
  • 최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9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9년]] 4차 4라운드([[LG 트윈스]])
  • 최성원(가수) . . . . 1회 일치
         '''전인권과 상반된 소년의 수한 감성으로 들국화 음악의 핵심을 이끈 아티스트.'''
  • 최성준 (법조인) . . . . 1회 일치
         그러다가 2012년 2월에 장인어른인 [[김용철 (1924년)|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1973년부터 2년간 법원장으로 근무한 춘천지방법원에서 제44대 춘천지방법원장 겸 제42대 강원도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도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명심보감 성심 편의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 든 반구저기(反求諸己)니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법관을 단히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고급 간부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국민을 심판하는 권한만 있다"며 "국민으로부터 받은 법관의 권한은 재판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목적이 특정된 만큼 취지에 맞게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취임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2/16/0200000000AKR20120216185000062.HTML]</ref>로 시작한 법원장을 재임하여 임기 2년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돌아와 재판 실무를 담당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2014년 4월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방송통신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양헌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인 최기준과 법무법인 양헌에서 공동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는 최경준이 동생이다.
  • 최승민 (1991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최승민 (1996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최승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6년]] 고졸우선지명([[LG 트윈스]])
  • 최연오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7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 최영미 (시인) . . . . 1회 일치
         세 명의 한국 작곡가- 이건용, 김대성 그리고 안치환이 최영미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서울오페라단]] 단장인 이건용이 작곡하고 전경옥이 노래한 아트 팝 겸 클래식 음반 《혼자사랑》 (1998년)에 최영미의 시 4편을 노랫말로 삼은 〈선운사에서〉,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슬픈 카페의 노래〉, 〈북한산에 첫눈 오는 날〉의 4곡이 포함되었다. 무형문화재인 국악인 강권의 창작 가곡집 《첫마음》(2007년)에 김대성이 작곡한 노래 '선운사에서'가 수록되었고, 안치환의 10집 앨범인 《오늘이 좋다》(2010년)에 안치환이 작곡하고 부른 노래 〈선운사에서〉가 실렸다.
  • 최우석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3라운드]] ([[한화 이글스]])
  • 최원제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2차 1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최원태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1차 지명([[넥센 히어로즈]])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검찰은 최윤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 상황은 [[박근혜-최실 게이트/재판/최윤수]]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 최윤철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6라운드]] ([[SK 와이번스]])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1회 일치
         | 최고위 =
  • 최인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 (신고선수 입단)
  • 최재연 . . . . 1회 일치
         * 건축2002년 천기적의도서관
  • 최재우 . . . . 1회 일치
         | 최고위 =
  • 최재환(배우) . . . . 1회 일치
         ||<|2> [[2007년]] ||<|2> [[KBS2]] || [[마왕(드라마)|마왕]] || 어린 김기 || ||
  • 최종원(국회의원) . . . . 1회 일치
         수상경력은 1995년 〈[[영원한 제국]]〉으로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 밖에 없지만,[* 정조의 정적인 노론의 수장 심환지역을 맡았는데 당시 쉰도 안된 나이로 칠 가까운 노인 심환지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게다가 그릇된 노론사관이 짙은 영화임에도 수구세력이 아닌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나온 극중 심환지의 모습이 시너지를 이루었다.] 1993년 영화 [[투캅스]]의 악당 보스 역을 비롯하여, 사실 수많은 영화에 비중있는 단역이나 조연으로 출연했다. 단 한컷만 잡혀도 강렬한 마스크와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잊을수 없는 인상을 남겼던 그는 한국 영화 최초의 신스틸러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그의 활약 이후 [[이문식]], [[이원종(1966)|이원종]], [[유해진]], [[성지루]], [[김응수]] 등의 굵직한 조연급 배우들이 줄지어 그의 뒤를 이어 한국영화계의 신스틸러 소리를 듣게 된다.]
  • 최지우(영화배우) . . . . 1회 일치
         2014년 삼시세끼에서 게스트로 출연 각종 요리지식으로 이서진의 호감(??)과 삼시세끼 월동 김장게스트로 출연한다. --김장할려고 원조 한류스타를 부르는 나PD의 위엄-- 그리고 김장만 도와주고 가려는데 후속 게스트가 연기자의 대선배 [[이재]]에게 잡혀 하루를 더 묵는 듯하다 --역시 나PD 함정을 파놨던 거야--
  • 최지해 . . . . 1회 일치
         * 2004년 [[KBS2]] 월화드라마 《[[오!필승 봉영]]》
  • 최진희(가수) . . . . 1회 일치
         [[문화방송|MBC]]의 오락 프로그램인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일밤]])의 [[2015년]] [[9월 27일]] 자 방송분에 [[윙윙윙 고추잠자리]]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1라운드에서 동료 가수인 [[어디에서 나타났나 황금박쥐]]에게 승리했으며 2라운드 상대인 [[소녀의 정 코스모스]]에게 밀렸다.
  • 최충연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 최효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전매특허인 부지런한 몸놀림과 특유의 탱크같이 시원한 돌파로 공수를 오가며 공격을 지원한다. 수비상황에서의 근성 또한 최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넘어지는 간까지 공을 눈에서 떼지 않는 집중력과 근성은 그를 [[K리그]] 최고의 오른쪽 풀백으로 만들었다.
  • 최희서 . . . . 1회 일치
         * 《[[킹콩을 들다]]》 (2009년) - 서여
  • 추미애 . . . . 1회 일치
          *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 5선의 여성 국회의원은 추미애 말고도 여럿 있으나, 이는 '[[비례대표]] 의원' 시절을 포함해서 선수를 계산한 경우이고, 수히 '지역구 의원'으로만 5선에 성공한 것은 추미애가 최초이다.]
  • 추성건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3년]] 1차 지명 ([[두산 베어스|OB 베어스]])
  • 츠키시마 케이 . . . . 1회 일치
         중학교 때만 해도 주전으로 활동하던 아키테루는 카라스노고등학교 배구부에 입부하면서 주전에서 떨어졌다. 당시의 카라스노는 우카이 전감독과 [[히나타 쇼요]]가 동경하는 '작은 거인'이 활동하던 시기로(아키테루와 작은 거인은 아키테루쪽이 한 학년 위), 카라스노가 현내 톱의 강호였던 시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츠키시마는 카라스노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도, 벤치도 아닌 응원석에 있는 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의 실력을 '에이스'라고 믿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 그 이후부터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마인드가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고, '목숨 걸 필요도 없는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는 사람'에게 회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간의 목격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
  • 치킨 . . . . 1회 일치
         [[국립국어원]]에서는 "닭고기튀김"이라는 화어가 있다는데 그것보다는 편한 치킨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인다.
  • 카라스노 고교 . . . . 1회 일치
         경기 전적은 본작의 전개 서대로 나열합니다.
  • 카자미노 시 . . . . 1회 일치
         본래 [[TV판]]에는 직접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도시였다. 쿄코는 단히 '다른 마을에서 온 마법소녀' 로만 설명되었고, 어디 출신인지 구체적인 묘사는 없다. 그러다가 드라마 CD에서 도시의 이름이 언급되었고, 극장판에서 공식적으로도 이름이 나오면서 정식 설정으로 올라갔다.
  • 칼렉시트 . . . . 1회 일치
          * 제이슨 칼라카닛 - 유명 투자자. "브렉시트가 그랬고, 트럼프의 승리가 그랬듯 캘리포니아의 캘렉시트도 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캡콤 스포츠 클럽 . . . . 1회 일치
         세가지의 게임 다 룰을 간략화 시키고, 조작도 단하게 만들어서 머리 식히고 즐기기에는 최적이다. 다만 테니스의 경우에는 축구, 농구와는 달리 난이도가 죽여준다. 그런데 스포츠 게임이 잼병인 플레이어라면 답이 없다.(...) 세가지 종목을 전부 클리어하면 엔딩이 나온다.
  • 캡틴 아메리카 . . . . 1회 일치
         캡틴 아메리카의 주요 요소. 그의 주무기이며 단히 [[방패]]만이 아니라 [[부메랑]]처럼 던지는 투척 무기이기도 하다. 이는 게임에서도 구현되었다.
  • 켄시로 . . . . 1회 일치
         [[북두신권]]의 전승자로서, 권법의 달인으로 평범한 불량배나 도적은 한 다스로 몰려와도 한 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 일견 과묵하고 험상궃은 인물로 보이지만 악인에게 무자비하며 약한 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사나이이다.
  • 코난(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대변동 후, 남겨진 섬(残され島)[* 한국판에서는 '홀로 남은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12살 소년. 문명이 멸망할 때에 추락한 로켓의 탑승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과 대변동 끝에 멸망 직전까지 몰린 지구를 보아온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또한 풍성한 자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지혜와 놀라운 강함, 때묻지 않은 수함을 지니고 있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1회 일치
         거기다가 제위과정도 탄치 않아서, 제위를 노리고 동생 데미트리오스가 반통합파의 지지를 얻고[* 정작 그는 피렌체 공의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위를 차지하려하기도 했다. 그에겐 다행히도 이 문제는 태황태후인 엘레나 드라가시가 직접 콘스탄티노스를 황제로 지명해서 끝이 났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1회 일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간부터 총을 뽑을 수 있지만, 명예로운 결투로 기록되려면 상대가 총을 뽑은 직후 총을 뽑아야한다.
  • 콩고(소설) . . . . 1회 일치
         암컷 [[고릴라]]. [[수화]]를 사용할 줄 아는 고릴라로서 지능이 높으며, 성격은 대체로 상냥하고 온하지만 가끔 토라져서 화내기도 하는 [[츤데레]]. 인간으로 치면 사춘기 정도이다. 과거에 진즈 주변에서 살았으며, 진즈에 접근했다가 회색 고릴라에게 모친이 살해당하고 고아가 되었다가 잡혀서 팔려가게 되었다. 피터가 회색 고릴라 무리 앞에 떨어졌을 때 직접 나서서 우호적인 행동을 보여서 피터를 구해내고, 회색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탐험대의 캐리어로 대활약한다. 피터와 먼로 쌍방에서 관심을 받는 이 소설의 메인 히로인(!) 격인 고릴라, 모험이 끝난 뒤에는 야생 고릴라 무리들 사이에 들어가서 아이도 낳고 살게 된다.
  • 크리스마스 . . . . 1회 일치
         [[산타클로스]]라는 남자가 록들이 모는 썰매를 타고 다니며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소문이 있다.
  • 크립토나이트 . . . . 1회 일치
         어떤 의미에선 위에 소개된 크립토나이트보다 더 강력한 능력을 자랑한다. 이것을 크립톤인에게 쓰면 '''동성애자'''가 된다고 한다. 한때 슈퍼맨이 이것을 가졌을때 간 [[게이]]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배트맨이 위험해!!--
  • 킹 오브 드래곤즈 . . . . 1회 일치
         여기서 전사,성직자,드워프 간에는 차이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파이터는 HP 성장이 뛰어나고 성직자는 방어가 조금 더 나은 차이가 있으며 드워프는 D&D TOD,SOM 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창이나 화살을 날리는 적들의 공격을 가만히 있으면 맞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의외로 원거리 공격에 아차 하는 간 맞는 경우가 있어서 드워프가 살짝 좋은 점도 있었던 셈. 게다가 다른 캐릭터는 슬라임이 점프할때만 타격되지만, 드워프는 그냥 쳐도 슬라임을 타격할 수 있다. 하지만 3인용 시 원거리 캐릭 두명+좀더 멋지게 생긴 파이터를 주로 고른다.
  • 킹덤/504화 . . . . 1회 일치
          이후에도 조군의 소규모 부대와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지만 왕전은 그때마다 별동대를 차출해 대응하였고 본대의 행군은 조금도 늦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조로운 행군 소식은 진의 수도 함양에도 전달된다.
  • 킹덤/509화 . . . . 1회 일치
          * 열미성 공략은 단한 공성이 아니었다. 이제 열미성은 진의 영토로서 업공략의 중요한 발판이 된다. 당연히 적들은 열미를 탈환하려고 할 텐데 제대로 수비하지 못한다면 진짜 목적인 업을 노리는건 불가능하고 연합군이 궤멸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따라서 열미성을 빠르게 파악해 "성의 습성"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료초나 왕전이 구상하는게 그것이었다.
  • 킹덤/511화 . . . . 1회 일치
          * 이런 사정을 모르는 성에서는 혼란에 빠져있다. 특히 왕전의 본진은 특별한 전언도 없이 총대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왕전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고를 하러 왔던 [[하료초]]가 무슨 전언이라도 남긴게 없냐고 묻자 왕전의 부하는 왕전 본인이 남긴건 없지만 함께 사라진 1대 대장 [[아광]]의 전언은 있다고 한다. "전군 열미에서 3일 대기". 너무 단하고 급박한 전세에 맞지도 않게 미적거리는 지시다.
  • 킹덤/513화 . . . . 1회 일치
          * 이원은 전쟁에 조예가 없는 탓에 단히 "조가 함락 당하는가?" 라고 묻는데 와린이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럼 진이 실패한다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와린은 그렇다고 답한다. 바뮤는 눈치없이 끼어들어서 "진이 한단을 치지 못한다는 것이냐"고 묻는데 와린은 그의 머리통을 내려치면서 "한단이 아니다!"고 호통친다.
  • 킹덤/514화 . . . . 1회 일치
          * 오다성에 입성한 [[환의(킹덤)|환의]]병사들은 민가를 털어서 병량을 끌어모은다. 약탈행위를 질색하는 이신이 제지하려 하지만 [[몽념]]은 이번만큼은 저들의 "코"가 도움이 됐다며 이신을 자제시킨다. [[마론(킹덤)|마론]]은 환의에게 조롭게 식량징발이 끝났다고 보고한다. 이제 이걸로 오다에 남은 식량은 없다.
  • 킹덤/520화 . . . . 1회 일치
          * 기수가 이끄는 조군 우익은 진격이 딸라서 어느덧 예정의 절반 이상을 왔다. 그런데 진군은 초기 배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된다. 장교들 사이에선 왕전이 멍청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 기세라면 좌익은 고사하고 본진까지 식간에 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수는 신중하게 판단했다. 우선은 현재 위치에서 군을 멈추고 한동안 상태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주]]의 기마대 1천을 내보내 정찰을 맡긴다.
  • 킹덤/522화 . . . . 1회 일치
          * 기수는 부관들을 모아놓고 이게 "미끼"에 불과했던 낙화대가 5천 병력의 "유격대"로 바뀌었음을 설명한다. 좌측에 들이닥친 마광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이상, 낙화대 5천은 이제 유격대가 돼서 언제든 아군의 배후에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다. 게다가 그 지휘관인 몽념은 필시 평범한 장교가 아니다. 이 병력의 존재가 너무 크다. 이제와서 요격하려 해도 병력을 빼면 그만큼 본진이 파상공세에 밀릴 공산이 크다. 생각해보면 단한 미끼로 끝날 거라면 5천은 많았다. 기수는 여기까지는 내다보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도발, 양동을 위한 5천 병력이 끝내 자군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주역"의 위치까지 발돋움했다. 이건 우연도 뭣도 아니다. 철저한 계산에 따른 배치. 왕전히 그린 밑그림이었다. 기수는 새삼 이것이 진군 총대장 왕전이라며 좌절감을 느낀다.
  • 킹덤/525화 . . . . 1회 일치
          * [[아광]]은 교전 직전까진 옥봉대가 대기하고 있을 것을 지시했으나 막상 위기의 간 [[왕분]]과 옥봉대가 나타나자 그들과 힘을 합쳐 적을 막고자 한다.
  • 킹덤/530화 . . . . 1회 일치
          기수는 후방의 진을 풀고 최종방진까지 후퇴하도록 지시했다. 부장들은 난색을 표했다. 퇴로를 버리는 결정이었다. 차라리 후방을 그대로 두고 전방의 [[마정]]을 불러들여 본진을 방어함이 시급했다. 하지만 기수는 단호했다. 지금 국면에서 어떤 곳을 다른 곳보다 우선할 없다. 정면도 바늘 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명이 무너지면 그거야말로 끝. 부장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현실의 다급함을 지적했다. 지금 최종방진으로 물러난다 해도 채비를 다하기 전에 비신대가 들이닥친다. 기수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그때 유동장군의 친위대 200기가 기수의 고민을 덜어줬다. 그들이 비신대를 저지하기를 자청했다. 아니, 반드시 비신대 대장 이신과 부장 [[강외]]의 목을 따오겠다고 자청했다. 기수는 그 결의를 만류하지 못했다.
  • 타베아루키 . . . . 1회 일치
         혹은 특정 지역의 명물 요리, 맛있는 음식, 특이한 음식 같은 것을 돌아다니면서 먹는 취미를 뜻한다. [[식도락]]이나 [[맛집례]]와 같은 뜻이라고 볼 수 있다.
  • 타쿠마 마모루 . . . . 1회 일치
         2000년 10월 14일에, 택시 운전사로 근무하다가 오사카 시내의 호텔에서 벨보이와 말다툼을 벌여서, 폭행으로 체포된다. 11월에는 이케다 시 건축자재 판매회사에 10톤 트럭 운전사로 채용되었고, 이케다 시의 원룸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신호대기를 할 때 나란히 서있던 차에 타고 있던 여성을 "눈이 마주쳤다"고 트집을 잡으며 침을 뱉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서 2001년 2월에 그만둔다. 2001년 5월 하에는 스스로 하룻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 탁석산 . . . . 1회 일치
         |자산 =
  • 태학 . . . . 1회 일치
         [[유교]] 경전에서는 고대에 이미 비슷한 성격의 학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예기]]에는 임금이 상상(上庠)이라는 --상상력이 증진될듯한-- 학교를 만들었다고 하며, [[주나라]] 천자는 벽옹(辟雍)이라는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들을 국학(國學), 태학(太學), 대학(大學)으로 총칭했다.
  • 토니 고 . . . . 1회 일치
         '''토니 고'''(Toni Ko)는 [[대한민국]] 출신 [[미국]]의 사업가로, 화장품 브랜드 닉스(NYX Cosmetics)와 선글라스 브랜드 퍼버스(Perverse)의 창립자이다. 2억 6천 만 달러 이상 수입으로,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자수성가한 미국인 여성 60인' 명단에 들었다.<ref name="포브스">[http://www.forbes.com/self-made-women/#2f767e7f4177 AMERICA'S RICHEST
  • 토리코/357화 . . . . 1회 일치
          * 네오는 성장하면서 생물은 죽음는 간에 가장 맛있어 진다는 걸 깨닫는다
  • 토리코/358화 . . . . 1회 일치
          * 블루 니트로, 레드 니트로라는 것은 단한 계급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우주의 존재임을 뜻하는 거였다.
  • 토리코/359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이치류는 미도라에게 당하는 간까지도 '''돈 슬라임의 힘은 일절 빌리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투쟁'''을 고집했다. 그런 이치류를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며 분노하지만 '''아사루디의 신체는 조금씩 한계가 오고 있다'''
  • 토리코/362화 . . . . 1회 일치
          * 그 밑은 토리코 일행이 풀코스를 먹고 있던 현장. 금관두(통조림)에 봉인돼 있던 식재를 개봉하는 간이다.
  • 토리코/363화 . . . . 1회 일치
          * NEO는 돈슬라임의 비명소리가 가까워졌다고 느끼는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지만 그 간 돈슬라임은 '''"웃기고 자빠졌다"'''며 비명 지르는 방법 따윈 모른다고 쏘아붙인다
  • 토리코/364화 . . . . 1회 일치
          * 네오는 무력해진 돈슬라임을 인정사정 없이 뜯어먹는다. 돈슬라임을 먹히면서도 "너는 대체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묻기를 되풀이한다. 그는 "내 몸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생물이라니"라고 놀라워하면서 그 간 '''네오의 "세포의 색"이 다르다는걸 깨닫는다.'''
  • 토리코/365화 . . . . 1회 일치
          * 아마도 태어나면서도 '''레드 니트로나 도 100%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를 포식'''해왔을 거라 추측한다. '''지로는 "많이 먹었다고 했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 토리코/372화 . . . . 1회 일치
         * 코코도 이런 말을 위해 모아두고 있었다며 도 100%의 데빌 포이즌을 뱉는데, 이 독의 냄새를 맡고 어디선가 그린패치가 날아와 합류한다.[* 지효성 독으로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독이다.--마약이냐-- 그린패치가 쿠킹페스티벌 때 이 독을 먹고 중독되었었다. 이 또한 써니의 사탄 보밋과 함께 설명된 적이 있다.]
  • 토리코/376화 . . . . 1회 일치
          * 레이저는 네오의 반족을 스치며 우주까지 날아가 몇 개나 되는 별을 부다.
  • 토리코/379화 . . . . 1회 일치
          * 식간에 포착 당하고 궁지에 몰린다.
  • 토리코/384화 . . . . 1회 일치
          * 한간 죠아는 완전히 플로제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 토리코/386화 . . . . 1회 일치
          * 기술이 작렬하는 간 오히려 미도라가 두 사람을 구출해 낸다.
  • 토리코/389화 . . . . 1회 일치
          * 그런다 모든걸 막을 없을 거라며 엄청난 숫자의 핸드를 만들어낸다.
  • 토리코/392화 . . . . 1회 일치
          * 비대해진 아카시아가 모든 식운을 먹어치웠다고 믿고 토리코를 공격하나 그 공격은 한간 나타난 세 번째 구르메 세포의 악마에게 가로막힌다.
  • 토리코/396화 . . . . 1회 일치
          미니멈 셸은 백채널을 통해 광속을 넘어 시공의 틈새로 비행한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몇 년을 여행하든 지구로 돌아오는건 식간이며 지구 기준으론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다. 코마츠는 그대로 같이 갈 사람은 없냐 사천왕이나 테리 크로스를 언급하는데 테리는 이미 무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1회 일치
         아시가루 전체에 보너스가 붙는 가문. 아시가루의 가장 큰 약점인 유리멘탈마저 오다 가문에는 통하지 않는다. 남들이 사무라이 슬금슬금 들고 나오는 간에도 오다 가문은 아시가루에 장군만 붙여서 굴려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유지비 개꿀.
  • 통일주체국민회의 . . . . 1회 일치
         그런데 생각해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 선거에서 거수기 이외의 거의 아무런 역할도 없는, 사실상 [[무직]] 명예직이다. 딱히 '''아무것도 안 하는 거나 다름없는 집단'''을 3천명이나 뽑는데 엄청난 선거비를 소모하고, 게다가 이 위원들이 세비는 없지만 소정의 활동비까지 받았다는걸 생각하면, 상당히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 자체가 '''거대한 낭비'''라는게 모.
  • 트로피코 4/인물 . . . . 1회 일치
         대통령 각하를 각하 동지라는 모적인 호칭으로 부른다. 헛소리를 잘 안해서 재미없다.
  • 특별고등경찰 . . . . 1회 일치
          * 1922년 홋카이도, 교토부 외 7현애 차적으로 설치.
  • 티나 (1980년) . . . . 1회 일치
         티나는 해외 팬이 많다. 그녀는 21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과 춤 접하면서 성장했었다. 2004년 한국에서 "설레임"이라는 앨범을 발매하였으나, 이와 관련하여 일절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 한달 만에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위는24위에 올랐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꾸준한 음악활동을 하였고, 그녀의 음악적으로 묘한 매력과 놀라운 춤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도 러브 콜을 여러 번 제의 받았었다. 리키마틴, 켈리클락슨의 프로듀서인 Suren과 함께 2008 C U 2nite 타이틀"Catch me” 앨범을 미국에서 제작 하였고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했었다. C U 2nite 앨범은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 노래 역시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는 도중 티나는 EDM 전설이며 보컬 겸 그래미수상 경험이 있는 유명 프로듀서 Kevin Irving에게서 오디션 제안을 받았고, 케빈은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인 Dr Dre, Beyonce, 50cent. Pink, Janet Jackson과 같은 수많은 뮤지션과 작업을 해왔었다. 케빈 프 로듀서는 티나의 재능을 보고 영어 앨범을 제작 했고, 대표 곡” Come Mr. DJ”를 작업했다. 케빈은 티나에게 마돈나한테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가수라며 극찬하였다. 그녀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면 2014년 귀국했고 트로트 장르로 변경 2016년 7월20일 콩 앨범 발표하고 현재 활동 중이다.
  • 판타스틱 포 . . . . 1회 일치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남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 페어리 테일/482화 . . . . 1회 일치
          * 엘자의 눈빛에 압도된 히스토리아들은 일간에 사라진다.
  • 페어리 테일/488화 . . . . 1회 일치
          * 그녀는 제라르의 목표가 단한 정복이 아닌 학살이라고 강조하며 함께 온 일행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변호한다.
  • 페어리 테일/495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그 위력적인 마법이 한간 깨져버린다.
  • 페어리 테일/500화 . . . . 1회 일치
          * 그레이는 잉벨을 일방적으로 박살내는 중. 잉벨은 얼음의 갑옷을 두르는데 그레이는 계속 두드려 부다.
  • 페어리 테일/502화 . . . . 1회 일치
          * 메스트가 간이동으로 메이비스에게 접근한 것이다.
  • 페어리 테일/505화 . . . . 1회 일치
          * 버서커들은 끝없이 밀러들고 페어리 테일을 식간에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다.
  • 페어리 테일/509화 . . . . 1회 일치
          * 카구라의 공격은 여지없이 막히고 단 한 간에 라케이드의 반격이 날아든다. 라케이드의 손짓만으로 카구라가 베인다. 그 카구라 조차도 이 일격으로 무너진다. 라케이드는 그 고통도 곧 쾌락으로 변할 거라며, 카구라의 "품위없는 마법"이란 말에 수긍한다. 하지만 그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는 거니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 페어리 테일/513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웬디의 부가술이 합쳐져도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면 "뭐라 할 가치도 없다"고 비하하며 검들을 한 간에 녹여버린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1회 일치
          * 당시 이슈갈엔 드래그노프 왕국처럼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하는 나라가 여럿 있었다. 서쪽 드래곤들의 침공, 용왕제가 시작되자 인간들도 전쟁의 향방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에 이미 "인챈트" 마법에 소양이 있었던 아이린은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인챈트 마법을 시범 보인다. 그녀는 단한 나무토막을 강화시켜 강철검은 부러뜨린다. 사람들은 그 위력을 보고 이것만 있으면 전쟁은 이슈갈의 승리일 거라고 장담하지만, 전황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1회 일치
          * 그녀는 산 속에 틀어박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의 천재와 우연히 만난다. 바로 [[제레프 드래그닐]]. 한 눈에 그녀가 인간이었다는 걸 알아본 제레프는 아이린이 수백 년이나 연구하고도 실패한 드래곤의 인간화를 한간에 성공한다.
  • 페어리 테일/520화 . . . . 1회 일치
          * [[아이린 베르세리온]]은 마지막 간 육친의 정을 끊지 못하고 쓰러졌다.
  • 페어리 테일/521화 . . . . 1회 일치
          *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유니버스 원이 해제되면서 매그놀리아는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길드원들은 식간에 익숙한 매그놀리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걸 보고 환호성을 지르지만 아직도 적군의 병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 페어리 테일/525화 . . . . 1회 일치
          >이것도 모의 저주 때문일까...
  • 페어리 테일/528화 . . . . 1회 일치
          * 위기의 간 나타난 [[제라르 페르난데스]]. 엘자를 구하고 반격을 퍼부으나 아크놀로기아는 그 마법 자체를 먹어치우며 비웃는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1회 일치
          * [[안나 하트필리아]]의 설명 후, [[웬디 마벨]]은 그녀와 단둘이 이야기한다. 웬디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데 안나는 그것도 이클립스의 영향으로 추정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웬디는 뭐라도 떠올리려고 애쓰나 안나는 무리하지 말라는 투로 자제시킨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떠올릴 거라면서 입버릇대로 "일에는 서라는게 있으니까"란 말을 반복한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1회 일치
          * 그렇다면 왜 아크놀로기아를 두려워하는가? 메이비스가 그렇게 지적하자 "아무리 불사자라도 그를 이길 없기 때문"이라 답한다.
  • 페어리 테일/540화 . . . . 1회 일치
          * 조화란 어떤 마도사들의 마력을 시간의 틈새에 환시켜 자신의 마력을 안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쓰일 마력은 바로 멸룡마도사들의 마력. 웬디를 데려간 것도 그 목적이다. 분명 지상에 남은 멸룡마도사는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갔을 것이다. 안나의 예측이 맞아서 이미 나츠를 제외한 말룡마도사들은 모두 구속된 상태. 나츠도 시간 문제였다.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그 정신나간 상황에 경악하고 엘자는 그들을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안나에게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안나도 그런 방법은 알지 못했다.
  • 페어리 테일/541화 . . . . 1회 일치
          * 종전을 맞이한 할지온 항구는 생존자들이 부상을 치유하며 휴식하고 있었다.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는 누군가 워프로 접근하자 고개를 돌린다. [[메스트 그라이더]]의 도움을 받은 쥬비아와 그레이였다. 그레이는 한 번에 더 많이 옮길 없냐고 독촉하는데 메스트가 말도 안 되는 요구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쥬비아는 메스트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레이와 단 둘이 워프하는게 딱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1회 일치
          * 나츠의 말은 지금껏 아크놀로기아에게 쏟아졌던 떤 공격보다 뼈아프게 그를 찔렀다. 그 일격은 아크놀로기아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욕심마저 떨궈버렸다. 최후의 간에 이르러서야 아크놀로기아는 자신의 바닥없는 욕심의 해답을 찾아냈다. 나츠의 입을 통해서. 그 집착이 사라진 영향일까? 정신체를 구성해 왔던 마력이 타버린 재처럼 흩어져간다.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1회 일치
         설치한 간부터 20초 동안 주변 전자기기를 방해하는 소모품. 전화를 통한 신고, 감시카메라의 감시 등을 막을 수 있으며, ATM에 설치해 ATM을 털 수도 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1회 일치
         플레이어는 갱단들을 쓸어버리며 3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신고가 들어갔지만 지금 경찰이 오지는 않으므로 여유롭게 메스암페타민과 현금, 거대 칫솔 등을 확보하자. 3층의 붉은 철문을 조사하고 나면 "차베스"라는 갱단원에게서 열쇠를 빼앗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차베스는 아파트 방 어딘가에 다른 갱단원들과 함께 있다. 방탄조끼를 입고 쌍권총을 들고 있는 이가 차베스. 그를 찾아내서 죽이면 열쇠를 드랍한다. 차베스가 죽는 간부터 경찰이 도착한다.
  • 편혜영 . . . . 1회 일치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예술대학|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이슬털기〉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2007년 단편소설 〈사육장 쪽으로〉로 제4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9년 단편소설 〈토끼의 묘〉로 제10회 [[이효석문학상]]을, [[2012년]] 소설집 〈저녁의 구애〉로 제42회 [[동인문학상]]을, 2014년 단편소설 〈몬〉으로 제3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3~)로 재직 중이다.
  • 포리(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주인공들 중 유일한 원거리 물리공격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상당히 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보드 상에 있는 적들과 조우했을 때 반드시 먼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단히 장비만 잘 갖춰줘도 특별한 전략 없이 배틀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초반에는 공격력과 명중률이 낮아 부각되기 어렵다. 하지만 1-1면만 잘 풀어나가면 이후에는 성장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다.
  • 포스탈 리덕스 . . . . 1회 일치
          >좋은 목표가 되기 위해서, 축복 받은 자들은 온하다.
  • 표민수 . . . . 1회 일치
         * [[2007년]] [[KBS2]] 《[[인이는 예쁘다]]》 (극본 : 정유경)
  • 프로 스포츠 . . . . 1회 일치
         권투의 경우도 권투경기를 주관하는 주요 단체에 소속되지 않았다 뿐이지, 올림픽 권투경기를 보기 위해서 올림픽 관람료를 내야함은 물론이고 올림픽 성적에 따라 각 국가의 올림픽 관계 단체로부터 상금이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개중에는 스폰서가 붙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이전과는 달리 단히 '돈을 번다'는 것 만으로는 프로 스포츠와 아마추어 스포츠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 프릭쇼 . . . . 1회 일치
         [[미국]]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성행했다. 주로 카니발(회 서커스) 등에서 흥행이 이루어졌다. 프릭쇼에서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장애인들을 있을 수 없는 '괴물'을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이들이 쇼를 하는 것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 [[학대]] 등의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프릭쇼에 출연해서 많은 명성과 돈을 얻은 장애인도 있다.
  • 하성란 . . . . 1회 일치
         *2013 제13회 [[황원문학상]]
  • 하이큐/212화 . . . . 1회 일치
          * 상대방의 볼 임팩트를 본 간 발을 지면에서 떨어뜨려 움직임을 리셋. 착지 반동으로 한걸음을 내딛는다.
  • 하이큐/217화 . . . . 1회 일치
          * 히나타가 조언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리듬"이다. 속공 플레이가 계속될 때 단히 "공을 높이 띄워서 패스"하라는 것.
  • 하이큐/219화 . . . . 1회 일치
          * 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전일본 유스.
  • 하이큐/220화 . . . . 1회 일치
          * 단히 파인 플래이였다기 보단 "평범하게 기량이 향상된" 움직이었다.
  • 하이큐/224화 . . . . 1회 일치
          * 그 간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고 마는 카게야마. 트라우마 스위치가 켜진다.
  • 하이큐/226화 . . . . 1회 일치
          * 다테 측은 다시 분위기를 다잡으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뜬금없는 타이밍에 초속공을 재활용, 마이너스 템포로 다테의 블록을 깨부다.
  • 하이큐/229화 . . . . 1회 일치
          * 신사를 나서면서, "원래 신사참배할 때는 소원이 아니라 감사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즈마네는 자기는 그걸 몰라서 시합 결과에 옆집 개의 건강가지 빌어버렸다고 "신령님이 뻔뻔하다고 생각하겠다"고 한탄한다. 이런 실없는 얘기나 하던 중에 시미즈가 "신령님한테 빈다고 시합에서 이기는게 아니다"는 독설을 날린다. 일 굳어버린 남자들. 스가는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 하이큐/230화 . . . . 1회 일치
          * 바로 카라스노 멤버들의 파인 플레이 모음집. 선수마다 각각의 테마곡까지 할당된 하이퀄리티 영상이다. 참고로 니시노야는 록키의 테마. 기본적으로 선수별로 선호하는 음악이 배정된 모양이다. 우카이 코치는 영상과 음악의 힘을 빌려 긴장을 잡고 최상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이 영상을 의뢰했다. 그 의도대로 뻣뻣했던 선수들의 분위기가 한간에 풀리고 동영상에 집중한다.
  • 하이큐/231화 . . . . 1회 일치
          * 카라스노는 시합 서 전까지 대여한 체육관에서 워밍업을 한다.
  • 하이큐/235화 . . . . 1회 일치
          * 봄고 첫번째 괴짜 속공. 벼락같이 내리 꽂히는 속공으로 체육관이 일 고요해진다. 적응을 마친 [[카게야마 토비오]]는 기다려준 팀원들에게 말한다.
  • 하이큐/236화 . . . . 1회 일치
          10번을 막을 궁리를 하는 거 자체가 카라스노의 페이스에 말리는 것. 꾹 참고 리드 블록으로 정석적으로 대응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해법이다. 오오사도 감독은 결국 어떻게 되던지 "줍고서 공격"하는 단한 것이 배구라며 늘하던 대로 하라고 격려한다.
  • 하이큐/239화 . . . . 1회 일치
          오오사도 감독은 이게 의외로 먹힌다며 웃는다. 천장 서브는 배구 역사 초기에 등장했지만 현대엔 사장된 기술이다. 딱히 장점이 없기 때문인데, 반대로 이것이 허를 찌르는 수단이 된다. 현대에는 잘 쓰지 않는다는건, 이 서브를 "익숙하게 받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의미. 게다가 이 체육관이라는 낯선 환경까지 합쳐지면 좀처럼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공격이 된다. 따라서 이 1회전에서 히메카와를 기용한건 단한 도박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 하이큐/244화 . . . . 1회 일치
          * 고르게 활약하는 동료들. 그 와중에 미적거리는 보쿠토는 그걸로 보고 다시 네거티브해지는 악환에 빠져있다. 이걸 캐치한 아카아시는 그의 안전부절이 피크에 오를 때가 기회라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15 대 15로 동점. 에이와 고교가 첫 번째 TO를 부르자 아카아시가 움직인다.
  • 하이큐/246화 . . . . 1회 일치
          [[야마구치 타다시]]는 뜬금없이 "저 호텔 밥은 고급 뷔페"였다는 말을 꺼낸다. 조용하던 1학년들이 한간에 술렁인다. 하지만 곧 처지를 직시한다. [[히나타 쇼요]]와 [[니시노야 유]]는 지금 민박집의 바삭바삭한 연어나 달걀말이, 밥 무한 리필도 좋다며 질보단 양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 하이큐/247화 . . . . 1회 일치
          * 이나리자키 고교에서도 특히 요주의는 [[미야 아츠무]]. 그는 단한 세터 이상의 존재로 세터로서도 놀랍지만 서버로서도 대단한 실력자다.
  • 하이큐/248화 . . . . 1회 일치
          카노카는 그렇게 단한 말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했다. 그녀는 타나카를 남겨두고 팀으로 달려간다. 타나카는 "잘하게 됐다"는 그녀의 말을 곱씹는다. 확실히 그녀는 최근 신문 1면에 실릴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하이큐/252화 . . . . 1회 일치
          * 카라스노의 서브. 원래 서브 간에는 아무 소리도 안 내는게 좋지만, 카라스노 응원단은 이때도 연주를 하기로 한다. 아까부터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박자"를 만들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꼭 상대를 묻어버릴 정도로 대음량일 필요는 없다. 이나리자키가 조성하는 갑자를 흐트러뜨릴 정도면 된다. 응원단이 이런 요청을 하자 사에코는 엄지를 들어보이며 맡겨달라고 제스쳐한다.
  • 하이큐/254화 . . . . 1회 일치
          * 스코어가 다시 따라붙으면서 타케다 고문도 한숨 돌린다. 그때 우카이 코치가 "너무 걱정할 거 없다"고 한 마디 한다. 방금 전 미야 형제의 속공은 괴짜 속공과 아주 비슷했지만 현시점에서는 단한 마이너스 템포. 히나타와 카게야마 콤비는 그걸 아무 때나 때려댈 수 있다는게 장점으로 미야 형제가 이것과 같은 것을 구사한다고 보는 것은 아주 경솔한 판단이다.
  • 하이큐/255화 . . . . 1회 일치
          * 3점의 차이를 놓고 치열하게 진행되는 경기. 로테이션이 한 바퀴 돌아서 히나타가 코트를 나가고 다시 아츠무의 서브. 그런데 이 서브가 네트에 걸려서 넘어간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다급하게 몸을 날려서 받는데 공은 그대로 다시 네트를 넘긴다. 공은 다시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또다시 괴짜 속공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르다. 카라스노의 블록엔 [[츠키시마 케이]]가 있었다. 그는 공이 아츠무에게 넘어가고, 그가 공에서 손을 떼는 마지막 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 하이큐/259화 . . . . 1회 일치
          * 로테이션이 돌아 다시 [[츠키시마 케이]]가 들어오고 니시노야가 나간다. 히나타의 서브 차례. 지금 히나타는 의욕이 최고일 뿐 아니라 묘한 자신감이 넘친다. 사실 블록이나 리시브에 비해서 서브는 훨씬 별로다. [[스가와라 코시]]는 그저 서브를 치려고 기합이 들어간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딱부러지게 말할 없지만 1학년 선발 합숙 이후 히나타의 리시브는 뭔가 변했다. 거기에 방금 전 블록과 리시브 성공이 히나타의 기세를 올린 원동력일 것이다.
  • 하이큐/260화 . . . . 1회 일치
          * 한간이지만 야마구치는 피나는 노력을 했던 그 공터로 돌아갔다. 익숙한 조명과 익숙한 풍경. 호흡이 정돈된다. 더는 시선이 흔들리지 않는다. 전에 [[야치 히토카]]가 네트를 아홉개로 나누는 표시를 해준 일이 있었다. 지금은 그녀의 도움 없이도 네트 위에 선명하게 표시가 보였다. 네트를 아홉개가 아니라 열 여덢개로 나눠도 충분할 것 같았다.
  • 하이큐/263화 . . . . 1회 일치
          * 꼭 넣어야 했던 1점. [[타나카 류노스케]]가 혼신을 담은 스파이크는 [[이나리자키 고교]]의 빈틈없는 블록을 넘지 못하고 사이드 라인을 넘긴다. 이나리자키의 득점. 스코어는 25 대 25 듀스. 흐름이 끊기는 듯한 실점. 동료 선수들의 얼굴도 관중들도 타나카를 응원하는 [[아마나이 카노카]]도 낭패한 빛이 떠오른다.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방금 플레이가 단지 동점을 허용한게 아니라 더 위험한게 있다고 봤다. 그것은 "이나리자키의 블록이 조롭게 압박을 쌓고 있다"는 것. 그점이 노출된 것이다. 이는 양팀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준다.
  • 하이큐/268화 . . . . 1회 일치
          >끈기로 질 없지.
  • 하이큐/271화 . . . . 1회 일치
          * 린타로가 날아오르는 간, 츠키시마와 카게야마는 정확한 위치에 블록을 펼쳤다. 일반적인 선수의 경우라면 그랬다. 하지만 린타로의 상체 전반을 쓰는 스파이크는 타점이 보통과 다르다.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카게야마의 우측을 크게 빗겨 떨어진다. 그 위치에서 [[사와무라 다이치]]가 손을 뻗었지만 팔에 맞고 아웃. [[이나리자키 고교]]의 득점. 아츠무는 수준이 높은 블로커일 수록 린타로에게 유도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다시 18 대 9로 더블 스코어.
  • 하이큐/272화 . . . . 1회 일치
          * 긴지마의 2회차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의 리시브로 공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카게야마는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세트업. 타나카는 좌측에서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 [[스나 린타로]]의 블로킹을 따돌리며 우측으로 꽂아넣는다. 네트에 바짝 붙은 스파이크. 한동안의 침채를 씻어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중계진도 1세트 이후부터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호평. [[츠키시마 케이]]의 서브 서에서 선수교체. 츠키시마가 빠지고 [[스가와라 코시]]가 투입된다.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 유]]가 빠지고 히나타가 진입. 스가와라는 실컷 두들겨 맞은 니시노야에게 "원수를 갚아준다"고 농담했지만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라는 신경질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스가와라가 빠르게 투입된 이상 [[키노시타 히사시]]가 나갈 차롄 없겠다며 내심 아쉬워했으나 정작 키노시타는 머릿속으로 25 번째 서브 에이스를 따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멈추지 않는다. 투입 여부와 상관없이 준비는 완료.
  • 하준영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8년]] 2차 2라운드([[KIA 타이거즈]])
  • 하지호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한가인 . . . . 1회 일치
         | 청정원 창고추장
  • 한냐 가면 . . . . 1회 일치
         속어로 단히 한냐(般若)라고 하여, 한냐 가면에 빗대어 [[질투]]와 [[분노]]에 불타는 여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뜻으로도 쓰인다.
  • 한다민 . . . . 1회 일치
         * [[2006년]] [[KBS2]] 수목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 ... 정경 역
  • 한동욱 . . . . 1회 일치
         수 스타리그 우승자 선수들 중에서는 [[김준영 (프로게이머)|김준영]]과 함께 MSL 진출 기록이 전무하다. (마이너리그 진출 기록이 최고 기록)
  • 한병주 . . . . 1회 일치
         [[한성부]] 출생이며 1884년에서 1886년까지 [[충청도]] [[청원군|청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1886년에서 1892년까지 [[청주시|충청도 청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1892년 [[한성부]]로 귀향하였고 줄곧 [[한성부]]에서 성장한 한병주는 1898년에서 1911년까지 경기도 시흥 양천향교에서 유교 성리학 훈도를 지냈으며 1919년 [[경성부]]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하였고 1920년 2월 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성지부 교통국 국장 대리(大韓民國 臨時政府 京城支部 交通局 局長 代理)으로 활동하였다. 이어 같은 해 1920년 2월 25일 자택에서 김태규(金泰奎)로부터 김창의(金昌義)가 보내온 인쇄물 100여 장을 받았다. 김창의는 당시 임시정부 산하 평북 독판부(督辦府)의 내무참사(內務參事)로 국내 [[연통제]] 조직 예하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쇄물은 군무부 포고 제1호라는 제목 아래에 '서로 함께 분기하여 일본 제국의 기반을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한병주는 이것을 받고서 1920년 2월 29일, 김원(金純元), 오정주(吳政柱) 등에게 각 5매씩을 교부하고, 독립 시위 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로 인하여 체포된 한병주는 1920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1년 만기출감하였다. 이후 1922년 3월, 한국독립당 입당하여 이후 조선 광복(1945년)이 지난지가 3년 후인 1948년 3월까지 한국독립당에 당원 직위하였고 1948년 3월, 한국독립당을 탈당하고 낙향을 하였다.
  • 한비야 . . . . 1회 일치
         '''한비야'''(韓飛野, 개명 전 이름 한인, [[1958년]] [[6월 26일]] ~ , [[서울특별시|서울]] 출생)는 [[대한민국]]의 국제구호활동가이자 작가, 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 팀장이다.
  • 한성식 . . . . 1회 일치
         * [[1998년]] 《[[조용한 가족]]》 ... 오 경 역
  • 한소정(1980) . . . . 1회 일치
         연극 강풀의 정만화
  • 한승원 (만화가) . . . . 1회 일치
         | 장르 = [[정 만화]]
  • 한승혁 (1993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1라운드([[KIA 타이거즈]])
  • 한용덕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한재석(1991) . . . . 1회 일치
         [[SNL 코리아]] 시즌 5부터 합류한 남성 크루이다. [[본인]]의 [[인터뷰]]를 통한 바로는 SNL 코리아에서 맡는 포지션은 "어린 성인". [[나이]] 으로 따지면 [[막내]]였다가 시즌6에 '''[[1994년]] 생 [[고원희]]'''가 합류하면서 막내를 벗어났으나 휴식기에 고원희가 하차하면서 다시 막내가 되었다가 시즌7에 '''1995년생 [[김혜준]]'''이 합류하면서 다시 막내를 벗어났다. 초기에는 남친 역, 부하 역 등으로 나왔지만 화를 거듭하면서 망가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대표적으로 뷰티박스.~~
  • 한태균 . . . . 1회 일치
         |프로 입단 연도 =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4년]] 2차 3위([[OB 베어스|두산 베어스]])
  • 한현준 . . . . 1회 일치
         |자산 =
  • 함석원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 함영준 . . . . 1회 일치
         |자산 =
  • 해양군 . . . . 1회 일치
          | 배우자 = 정부인 [[흥 안씨]] <br /> 계부인 [[광산 정씨]] <br /> 제2계부인 [[한산 이씨]] <br /> 제3계부인 [[덕수 이씨]]
  • 허가윤 . . . . 1회 일치
         * 《[[마약왕]]》 (2018년) - 종이 역
  • 허규옥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원년멤버
  • 허근욱 . . . . 1회 일치
         * [[1997년]] 제2회 수문학상 대상
  • 허범욱 . . . . 1회 일치
         | 자산 =
  • 허일상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4차 3라운드([[롯데 자이언츠]])
  • 허준영 . . . . 1회 일치
         |후임자 = [[이택]]
  • 헤이즈 (가수) . . . . 1회 일치
         2015년 [[언프리티 랩스타 2]]를 통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2016년에 발매한 싱글 《돌아오지마》와 《And July》의 음원 차트 위권 진입이후 《저 별》이 주요 음원사이트 차트 1위<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217896|제목=[SS차트] 헤이즈 '저 별', 1위 장기집권 예고…新 음원 강자 등극|언어=ko|확인날짜=2017-06-26}}</ref>를 기록하였다.
  • 현동완 . . . . 1회 일치
         일제강점기 YMCA 산악회원을 이끌고 백두산 정상에 등정했다. 1949 ~ 1954년 [[한국산악회]] 회장을 역임했다.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 각국을 방하면서 이민 사업을 추진했다.
  • 현재덕 . . . . 1회 일치
         * 김영, [http://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hyundek&wr_id=4&page= 아동문학 선구자 현덕 - 생애와 업적] (동심넷 - 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 홍명희 . . . . 1회 일치
         남한에서는 [[김일성]]과 친했던 점,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잘 대우받은 점 때문에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1990년대 중부터에서야 서서히 알려졌는데, 그의 이름을 재발굴하려던 국내 학자들도 홍명희와 더불어 [[이태준(소설가)|이태준]]이라든지 여러 월북 작가와 더불어 꽤 여러가지 골치아픈 문제를 겪은 바 있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 홍성유 . . . . 1회 일치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도박을 좋아한 그는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김종철 (시인)|김종철]] 시인은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인하여 그는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의 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 홍승목 . . . . 1회 일치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회장 [[신기선 (1851년)|신기선]]이 사망하자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대동학회 후신인 [[공자교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1908년]]에는 [[민원식]]이 주도한 [[제국실업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 역시 일본인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친일 성향의 보부상 등을 끌어모아 합방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벌인 친일 단체였다. 이 무렵 [[윤덕영]], [[민영기 (1858년)|민영기]]가 [[박제]]을 회장으로 내세워 조직한 [[관진방회]]에 가담했고, [[1909년]] 이완용이 [[일진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민연설회]] 기초위원도 지냈다.
  • 홍영현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육성선수 입단)
  • 홍유경 . . . . 1회 일치
         '''홍유경'''([[1994년]] [[9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걸그룹 [[에이핑크]]의 전 멤버이다. [[대한민국]]의 중견 철강 제조업체인 [[DSR제강]] 창업주였던 홍모의 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으나<ref name=hongyk>{{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1000억대 재력가의 딸 |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9/2012020902006.html | 저자=한상혁 기자 | 출판사=조선일보 | 날짜=2012-02-09 | 보존url=http://archive.is/CFdQ | 보존날짜=2012-07-23 }}</ref> [[2013년]] 4월 학업 문제로 [[에이핑크]]에서 탈퇴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탈퇴..에이큐브 측 "학업 전념" |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3042315233618713&type=1&outlink=1 | 출판사=스타뉴스 | 저자=윤상근 기자 | 날짜=2013-04-23 | 보존url=http://archive.is/OkU7D | 보존날짜=2013-05-01 }}</ref>
  • 홍이주 . . . . 1회 일치
         * 《[[최고다 이신]]》 (KBS2, 2013년)
  • 홍정우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2차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홍준표(야구선수) . . . . 1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 9라운드 87위]] ([[SK 와이번스]]) ||
  • 홍지운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5라운드]]([[NC 다이노스]])
  • 홍혜경 . . . . 1회 일치
         '''홍혜경'''([[1959년]] 7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소프라노]] [[성악가]]이다.리릭 레제로 소프라노로 경력을 시작해 현재는 리릭-리릭 스핀토 소프라노까지를 아우르는 영역을 개척하였으며,[[조수미]]와 [[신영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로 손꼽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134148 <2006 신년특집-한국이 낳은 글로벌 리더들>“세계로 뻗는 한국문화 내가 이끈다” 기사 내용중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부분 게재되어 있음 《문화일보》2006-01-02 작성 : 김환 기자]</ref>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1회 일치
         [[화요비]]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촬영했었다. [[화요비]]에게 지어준 별명은 다름아닌 개똥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쁜 남자 기믹이었으나 ~~네티즌들이 무서웠는지~~ 점점 온해졌다. 당시 "싸가지 없다"라거나 "차갑다"라는 식의 여론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는지 이후에 방송에서 예능이라 그런 점이 과장됐을 뿐, 실제로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쁜 남자는 아니라며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게다가 후반에 나쁜남자 기믹을 좀 죽였더니 이번엔 전보다 재미없다며 난리~~ 결국 금방 하차했다. 가장 빨리 하차한 커플 중 하나. 현재도 [[화요비]]와는 음악적 동료이자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 중이다. 화요비의 [[화요비/음반 목록|앨범]] 인터뷰 당시, 앨범 공개전에 미리 노래도 들려줘서 환희의 조언도 받고, 다시 우결을 해도 환희와 다시 하고 싶다는 등을 언급했었다.
  • 황가히 . . . . 1회 일치
         * [[국당]] [[백세주]] CF 촬영
  • 황경태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 황광희 . . . . 1회 일치
         스타제국 연습생 시절인 [[2009년]]에 [[Mnet]]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피스 리얼리티 - 제국의 아이들》과 《제국의 아이들 리턴즈》에 출연하여 이동식 무대 차량인 윙카로 전국을 회하는 게릴라 공연을 펼쳤고,<ref>{{뉴스 인용|제목=연예계 뒷얘기 ‘제국의 아이들’… 100% ‘리얼’ 가능할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089654|저자=김보람|출판사=매일경제|날짜=2009-04-06|확인날짜=2012-08-25}}</ref><ref>{{뉴스 인용|제목=제국의 아이들, 거리공연으로 호된 데뷔 준비중|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000932|저자=이수현|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9-10-01|확인날짜=2012-08-25}}</ref> [[2010년]] [[1월 15일]]에 9인조 [[대한민국]]의 남성 그룹 [[ZE:A]]의 멤버로 데뷔하였다.
  • 황교충 . . . . 1회 일치
         [[2010 김지혁 선수의 군입대로 인한 공백을 메꾸기 위해 K리그 드래프트|2010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위로 [[포항 스틸러스]]에 지명되어 입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황교충·김다솔 등 골키퍼 대폭 보강 |url=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61164&news_area=060&news_divide=06002&news_local=10&effect=4 |출판사=경북일보 |date={{날짜한글화|2009-11-18}} }}</ref> 2010년 10월 9일,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ref>{{뉴스 인용 |제목=‘이진호 결승골’ 포항, 광주 누르고 5경기 만에 승리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01009163719§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0-9}} }}</ref>
  • 황부인전 . . . . 1회 일치
         제갈량은 운명에 따라 길에서 황소저가 타고 있는 교자를 만나고, 청혼을 하여 성례하게 된다. 하지만 혼례는 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갈량은 첫날밤에 신부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도망가려 하는데, 황부인이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서 옷이 찢어진다. 황부인이 옷을 꿰매줄 테니 꿰맨 옷을 입고 가라고 하여 옷을 꿰매게 된다. 바느질 하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바느질 한 옷이 [[천의무봉]]하여 감탄한다. 또 요기나 하고 가라고 해서 밥을 먹게 되는데, 밥을 만드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밥을 차린 것을 보니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라 감탄한다.
  • 황성관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 황수범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육성선수 입단)
  • 황수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지명없음(신고선수 입단)
  • 황연대 . . . . 1회 일치
         '''황연대'''(黃年代, [[1938년]] [[12월 12일]] [[서울특별시]] ~ )는 [[대한민국]]의 의사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 출신 의사이기도 하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ua/books?id=UjQEAAAAMBAJ&pg|제목="RX: determination" - The Rotarian, Vol. 139, No. 5|성=Byong Ho|이름=Lee|날짜=1981년 11월|출판사=[[국제 로터리]] (Rotary International)|쪽=42-43|언어=en|isbn=}}</ref><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53&aid=0000029783|제목=패럴림픽 MVP 엔 금 75g ‘황연대 성취상’ 드립니다|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2550152|제목=[초대석]장애인올림픽 ‘황연대 성취상’을 만든 황연대 씨|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 황정립 . . . . 1회 일치
         |드래프트 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8라운드]] ([[KIA 타이거즈]])
  • 황정미 . . . . 1회 일치
         * [[1998년]] [[SBS]] 일일시트콤 《[[풍산부인과]]》
  • 황치열 . . . . 1회 일치
         * 2015년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가족특집에서 [[인이]]의 '아버지'를 불러 첫 우승을 차지함. 이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2015년 슈퍼루키특집'에서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부르며 공식적인 '2015년 슈퍼루키' 타이틀과 함께 우승을 거머 쥠.
  • 히나타 쇼요 . . . . 1회 일치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태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절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반사 신경과 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상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11529의 페이지중에 1610개가 발견되었습니다 (5000개의 페이지가 검색됨)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