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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휴
         이어 [[허목]], [[권시]](權諰), [[권준]](權儁), [[이유]](李木劉), [[장중함]](張沖涵), 이해(李澥), [[윤선도]], [[허적]] 등 남인계 인사들과 가깝게 지냈고, [[기해예송]](己亥禮訟) 문제가 비화되기 전까지는 [[송시열]], [[송준길]](宋浚吉), [[이유태 (1607년)|이유태]](李惟泰), [[유계]](兪棨), [[윤선거]](尹宣擧) 등 [[서인]]계 인사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또한 [[송시열]]은 윤휴의 이모의 아들들이던 [[송규정]], [[송규렴]] 형제의 스승이기도 했다. 윤휴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널리 알려졌고, [[허적]]의 조카이자 송시열의 문인이며 같은 [[여주]] 출신인 [[민정중]](閔鼎重), [[민유중]](閔維重) 형제는 그의 집을 자주 찾아왔다.
         이때 [[윤선도]] 등은 [[예송 논쟁]] 때 [[송시열]]과 [[송준길]]이 [[조선 효종|효종]]에게 [[소현세자]]빈 [[민회빈 강씨]]의 명예회복과 복권을 강력하게 주청했다는 점을 걸고 넘어지며, 그들이 [[조선 효종|효종]] 대신 [[소현세자]]를 정통으로 생각했다고 공격했고, 윤휴 역시 이에 동의, 묵인하였다. 그가 이를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태도를 취한 것에 분개한 [[송시열]]은 그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송시열과 교류했는데, 그의 이모의 아들인 송규정, 송규렴 형제가 송시열의 제자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송시열과 대립하면서 송규정, 송규렴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송시열과 결별한 뒤 그는 자신의 지인들로부터도 심한 배척과 절교를 당했다. 함께 [[이민구]]의 문하에서 수학하던 [[윤비경]]이 윤휴와 절교를 선언하고 그를 공격했으며, 이종사촌 동생이자 [[송시열]], [[송준길]]의 문하생인 [[송규렴]], [[송규정]] 형제 역시 윤휴와 연락을 끊고 그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송시열]]의 제자였던 이종 사촌동생들인 송규창(宋奎昌), 송규정(宋奎楨) 형제와의 관계는 악화되어 있었다. [[1660년]] 윤휴는 [[윤선도]]의 상소가 문제가 될 때 이종 사촌동생인 송규정(宋奎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중에 '윤선도가 흉패(兇悖)하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송규창은 윤휴가 친형 송규정에게 보냈던 이 편지를 가져와 유생들에게 폭로하며 윤휴가 [[윤선도]]에게 의정직을 추증해야 된다는 주장을 반박하였다. 이런 저런 논란 끝에 [[윤선도]]의 증직은 [[이조판서]]로 최종 결정되었다. 한편 친족인 윤이건(尹以健) 등도 등용하려 하였으나 역시 [[송시열]]의 문인이었으므로 그의 청을 거절하고 그를 멀리했다.
         후에 송규창은 [[송시열]]의 집안과 관계가 안좋다는 소문을 부인하며 오히려 [[송시열]]과 편지를 주고 받았고, 오히려 윤휴가 송규정에게 보낸 편지를 폭로한 점을 송시열이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 [[송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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