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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석(1933)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이종구(군인)
         그런데, 부임 중 [[윤필용]] 사건이 터지고 보안사령부의 수사 중에 하나회가 윤필용에 연루되어 적발된다. [* 하나의 설이지만 윤필용 사건은 평소 윤필용과 이후락을 질시하던 경호실장 [[박종규]]와 윤필용의 심복이자 하나회 최고의 실력자였던 손영길(박정희의 부관 출신이라 전두환보다도 더 박정희에게 총애받았다. 하나회의 회장은 전두환이었으나 이 때까지만해도 전두환이 손영길에 뒤쳐지고 있었다.)을 질시하던 전두환이 짜고 윤필용을 모함한 음모였다고 한다. 전두환은 손영길을 제거할 목적에서 윤필용의 실언을 박정희에게 알렸으나, 웃기게도 그 와중에 하나회가 적발되어버려서 본인도 군생활 최대 위기에 몰리게 된다.] 당연히 사조직은 제거해야할 대상이었고, [[강창성]] 보안사령관은 하나회를 제거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조직을 발본색원하기 시작한다. 총무인 이종구는 당연히 보안사령부 조사실로 끌려갔고, 윤필용 사건에 격노한 박정희가 관련자는 철저하게 숙청하라는 명을 내렸기에 이종구는 군복을 벗고 죄수복을 입을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회에게는 다행히,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안타깝게도 박종규 경호실장[* 음모의 배후로 여겨지는 박종규는 이를 기반으로 이후락을 윤필용과 묶어 날리고 본인이 정보부장이 되려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육영수]] 저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나 [[서종철]], [[진종채]] 같은 영남 출신 장성[* 강창성의 의도를 '영남 장교 파벌 숙청'으로 간주하였고 박정희에게 달려가 영남 장교들 다 죽는다고 이를 말렸다. 이 때문에 강창성은 윤필용 사건 후에 오히려 보안사령관에서 쫓겨난다.]들의 쉴드를 받아 박정희는 윤필용 라인의 하나회[* 대표적으로 이 때 숙청된 하나회 멤버는 윤필용과 친했던 [[손영길]], [[권익현]], [[안교덕]], [[배명국]], [[신재기]] 등이 있다.]들만 숙청하는 선에서 끝내도록 한다. 나머지 하나회 멤버들은 오히려 박정희의 암묵적인 묵인을 받으며 성장해 나갔고 이종구는 최대 위기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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