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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병철(야구인)
         2006년~2007년에 또 롯데 감독을 맡았다. 전임인 양상문에 대한 롯데팬들의 여론이 썩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임이 강병철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기 때문에 강병철의 재부임 소식에 대해 대부분의 롯데팬들이 통수를 맞은 듯한 분위기였다. '''KBO 리그 역사상 한 팀에서 세 번이나 감독직을 맡은 것은 지금 현재까지도 강병철이 전무후무한 사례이다.''' 그러나 계약기간인 2년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며 결국 자신의 감독경력의 마지막을 좋지 못하게 끝내고 말았다. 이 당시 팬들이 납득할 수 없는 작전을 남발했는데 안타 치면 닥치고 번트, [[플래툰(야구)|좌완투수엔 닥치고 우타자]], 좌타자엔 닥치고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라는 너무나 뻔한 작전 때문에 사토라레를 패러디한 '강토라레'라 불리며 '[[이순철|강병Fe]][* 팀의 병폐(病弊)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강노망', '강노인' 등 수도 없이 많은 별명으로 까인다. 특별히 강병철의 플래툰 작전은 '병페툰'이라고 불리며 작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낮은 성공률로 까인다. 불필요한 작전의 남발로 07시즌을 망쳤다고는 하지만 [[제리 로이스터|로이스터]] 감독의 08시즌에서도 가끔에야 나오는 작전마저도 선수들이 수행을 못해내는 걸 보면 비단 감독만의 탓은 아닌 걸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병철 감독의 07시즌을 옹호하기는 힘들다. 프로는 성적이니까. 하지만 이 당시에 감독이 구단내 정치싸움에서 밀렸으며[* 부산상고 출신으로 롯데를 휘어잡고 있는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고]],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고]], [[용마고등학교 야구부|용마고]] 학벌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언론플레이나 줄타기에 목숨건 보신주의자도 아니다.] 선수단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돌고있다. [[정수근|모 선수]] ~~한때 1년간 놀았던 그 분~~는 대놓고 감독을 욕하고 다녔을 정도라고 한다.[* 07시즌에 덕아웃에 걸린 칠판에 "강감독, 야구 대범하게 합시다"라고 [[정수근]]이 적어놓은 일이 있으며 [[손민한]]은 팬미팅에 나가서 감독 욕을 하고 돌아다녔다. 참고로 정수근은 강병철을 계속 욕하다가 은사인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에게 지적받은 적도 있다.] 전임 양상문이 재계약에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가 고참 선수들을 무리하게 내치는 과정에서 팀 케미의 붕괴와 더불어 선수단 장악에 실패했다는 것이었는데, 구단에서는 이를 감안해 강병철을 후임으로 낙점했으나 이전까지 해왔던 방식이 먹히지 않아 역시나 선수단 장악에 실패한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자신과 스타일이 안맞는 선수를 홀대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김응용이나 김성근처럼 선수를 대놓고 구타했다거나[* 이 두 감독은 2000년대 초까지 구타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성근의 경우 [[이진영]]이 맞은 이야기를 방송에서 대놓고 하기도 했고, 심지어 [[니시오카 츠요시]]도 맞았다.] 눈밖에 난 선수를 노골적으로 팽해버린 경우는 없다.[* 김응용 눈밖에 나서 팽당한 선수야 위키 김응용 항목만 뒤져도 여러명이다. 일례로 [[이호준]]은 김응용 눈밖에나 인생이 꼬일뻔 하다 강병철에게 구제받았다. 김성근은 간염을 앓고 있는 [[한대화]]를 불성실하다며 선수 생활 내내 박대했다.] [[정수근]][* 당시 해설인 [[이순철]]도 방송에서 대놓고 깠고 이에 롯데팬이 좋아할 정도로 롯데시절 야구계 전반에서 불성실한 선수로 낙인찍힌 상황이었다. 더욱이 덕아웃 화이트 보드에다가 '''"강감독. 우리 야구 대범하게 합시다."'''라고 적은적이 있지만 강병철 감독은 그걸 보고도 아무말없이 넘어갔다 ~~대인배~~]이나 [[손민한]][* 07시즌 정치놀음한 바로 그 선수로 꼽힌다.]과의 마찰은 선수 본인의 성격탓이 컸고 그럼에도 선수 자체를 홀대한 적은 없었다. 정수근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FA옵션까지 챙겨먹었고 한화 시절부터 죽어라 속을 썩인 [[노장진]][* 노장진은 김영덕 시기에 입단했지만, 강병철 시기에 군 입대를 마치고 1997년에 복귀했다만, 1998시즌중 강 감독의 해임 때 까지 여전히 강병철 감독의 속을 썩였다. 그리고 강 감독의 임기가 시작되던 2006년 개막전에서 부터 무단이탈을 저질렀으니...]을 끝까지 안고가려 하는 등 뒤끝이 심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 대신 혹사를 시켰지~~
  • 김상수 (1990년)
         [[8월 27일]]에는 [[NC 다이노스|NC]]전에서 [[손민한]]을 상대로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 이렇게 절정의 타격감으로 3할 언저리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9월 30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경기 도중 손목 통증으로 교체되며 시즌 아웃됐고 2할대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 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엔트리에 승선을 하지 못했다. 이적한 [[정병곤]]과 [[정현 (야구 선수)|정현]]이 한국시리즈에서 유격수를 담당했고 그는 팀의 통합 3연패를 함께하지 못했다. 데뷔 이후 최고 타율, 최다 홈런을 기록한 해였으나 정작 다리 문제로 14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 김연경(배구선수)
         2005-06시즌 신인왕 수상. 그것도 모자라 정규 리그 MVP, 챔피언 결정전 MVP까지 모두 싹쓸이하는 괴력을 보였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신인왕-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은 김연경 포함, KBL 2001-02 시즌의 [[김승현(농구선수)|김승현]]과 프로야구 2006 시즌의 [[류현진]]이 있다. 그런데 둘 다 KBL 파이널/한국시리즈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 김승현은 2001-02 시즌 파이널에서 맹활약했긴 했지만 MVP는 [[마르커스 힉스]]가 탔다. 류현진은 [[2006년 한국시리즈|팀이 삼성에게 패퇴]]하며 코시 MVP는 커녕 우승도 하지 못했다. 신인왕-한국시리즈 MVP는 프로야구 2005 시즌의 [[오승환]]이 있으나 이 해 정규시즌 MVP는 [[롯데 자이언츠]] [[손민한]]이 수상했다. 따라서 신인왕-정규시즌 MVP-파이널 MVP를 데뷔 시즌에 모두 쓸어간 사례는 김연경이 유일하다.] 덤으로 서브상, 득점상, 공격상, 보너스로 트리플 크라운 1회 달성하였다. [* 데뷔시즌 6관왕]
  • 박지철 (야구선수)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롯데 자이언츠]]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1997년]] 14승 5패 7세이브, 2.45의 방어율을 기록했으나, 이듬해에 단 2승에 그치면서 부진에 빠졌고 1999년에는 재활군에 머물렀다. [[2001년]] 13승 7패로 데뷔 후 두 번째로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면서 [[손민한]]과 함께 팀의 원투펀치를 이루었다. [[2002년]]에는 부상으로 5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3년]] [[4월 6일]] [[수원야구장|수원]] [[현대 유니콘스|현대]]전에서는 [[심정수]]의 얼굴을 맞혀 [[KBO (단체)|KBO]]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심정수]]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당시 프런트를 맡고 있었던 [[염경엽]]의 제안을 받아 이 때부터 얼굴보호 헬멧(일명 검투사 헬멧)을 사용하게 된다. [[4월 20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6회 2사까지 무실점 호투로 팀을 개막 12연패 뒤 첫 승을 선사했으며, 이후 그는 [[롯데 자이언츠]]가 연패에 빠질 때마다 호투하면서 팀을 연패에서 구해 냈다. 하지만 어깨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 배영수
         '''2000년대 우완 [[박명환|트로]][[손민한|이카]] 중 한 명'''
         2004년 35경기 동안 4완투(2완봉) 하면서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로 다승과 승률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990년 [[선동열]] 이후 14년 만에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전체 투수로는 선동열 이후 배영수가 받기 전까지 1996년 [[구대성]]이 구원 투수로 정규리그 MVP에 오른적 있다.][* 이후로 2008년까지 매년 투수가 MVP를 수상하게 된다. 순서대로 [[손민한]](롯데)-[[류현진]](한화)-[[다니엘 리오스]](두산)-[[김광현]](SK)] 특히 [[2004년 한국시리즈#s-3.4|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으나, 팀 타선 또한 한점도 못내는 바람에 0대0 상황에서 연장 11회초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며 해당 경기의 개인 노히트 노런 기록은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서 시간 제한[* 2004년 당시에는 경기 시작 후 4시간을 넘기면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고 바로 무승부로 처리되는 ~~병맛같은~~ 규정이 있었다. 결국 [[2004년 한국시리즈]]는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무려 '''9차전'''까지 가는 등 역대 한국시리즈 중 제일 길게 간 시리즈였고, 무승부가 제일 많은 시리즈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경기 후 4시간을 넘기면 무승부로 처리되는 규정은 2004년 한 해에만 시행되고 사라졌다.]에 걸려 0:0 무승부로 끝났는데, 경기 중 권오준이 안타를 맞아 팀 노히트 노런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안습]].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그가 등판했던 4월 23일 넥센전의 선발투수는 그와 동갑이자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김성태(1982)|김성태]]였는데,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이젠 데뷔 18년차, 나이도 36세라 노장 맞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이민호 (1993년 8월)
         [[8월 1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팀의 첫 두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308012154102222&ext=na '10세이브' NC 이민호, "수비가 도와줘서 세이브"] - 마이데일리</ref> [[8월 8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 이 후 [[손민한]]에게 마무리를 넘겨주고, [[8월 2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왔던 [[노성호]]가 0.1이닝만 소화하고 조기 강판당하자 롱릴리프로 등판해 5.1이닝을 소화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13289 노성호 무너졌어도 김경문이 웃은 이유 ‘이민호’]</ref>
  • 이종범
         |[[손민한]]
  • 장원준 (야구선수)
         2004년에 1차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고교에서 꾸준한 성실함을 인정받아 프로에 입단했으나, 당시 선발진은 [[손민한]], [[염종석]] 등 출중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로 이뤄져 있어 입지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 조정훈(야구선수)
         09시즌에는 처음으로 보내는 풀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손민한]]의 부상, 송승준과 [[장원준]]의 기복으로 인해 사실상 롯데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다.
         하늘이 내린 내구성이었던 [[선동열]]도 꼼짝 없이 쉬게 만든 어깨 건초염인데, 구단 측에서 발표한 기사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지만, 기사대로 정말 아무 이상이 없을까 하는 팬들의 우려가 많았고 결국 이후는 다들 알다시피... ~~[[염종석]], [[주형광]], [[손민한]]을 어떻게 잃어버렸더라? 역시 롯데 프런트~~[* 이들의 공통점은 부상 or 혹사 후 반드시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구단의 욕심으로 인한 조기 복귀에 따른 부상 심화를 겪었다는 점. 쉽게 말해 정상적인 운용을 벗어난 혹사. 물론 성적에 급급해 선수를 굴려먹은 당사자인 감독과 코치의 문제도 크다.]
         갑작스런 어깨 부상으로 한 달간 로스터를 이탈했으나, [[손민한]]의 부상과 [[이용훈(야구)|이용훈]]의 부진으로 조기 복귀하였다. 구위가 떨어졌지만 오히려 직구 구속의 저하가 직구와 포크볼을 더 헷갈리게 만든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뛰어난 제구력으로 이를 보완했는데, 특히 포크볼과 스플리터는 리그 최상급. 포크볼의 경우 손민한이 던지는 것을 보고 혼자서 익혔다고 한다. 마치 [[류현진]]이 [[구대성]]이 던지는 서클 체인지업을 보고 그냥 익힌 것과 같은 이치. 다른 점이 있다면 조정훈의 경우에는 기간이 좀 길었다는 점. 슬라이더도 제법 잘 구사하는데, 종으로 떨어지는 구질(포크)과 횡으로 빠지는 구질(슬라이더)이 공존하는 투수가 드물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이점이다. 횡으로 빼다가 종으로 떨어뜨려 타자들을 혼란시킬 수 있기 때문.
         [[배장호]] 선수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남긴 일촌평에서 유래한 ''''조핑크'''', 소문에는 핑크색 글러브를 소지하고 있다는데,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근데 이걸 본 [[아로요]] 코치가 "저 색휘 게이임?"이래서 안 꼈다고도 한다). 그리고 [[손민한]] 선수와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해서 '리틀 손민한'. 조정훈 선수를 스카웃한 스카우터의 말로는 그곳이 대물이라고 '조대물'이라고도 한다. 가슴이 풍만해서 '조젖', '조찌찌'라는 별명도 있으나 두 별명 다 성적인 것이 연상되어 잘 쓰이지 않는다. ~~아니던데~~ 그리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힌 별명은 '[[마산]] [[효도르]]'라고 했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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