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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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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진(MC) . . . . 22회 일치
         1990년대 중반~후반 그의 이름을 내건 빵이 나올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단기 임팩트로는 2000년대 중후반 [[유재석]]의 최전성기 보다 더'''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 되는 폭발적 인기였다고 보면 된다.
         [[2007년]] [[황금어장#s-2|황금어장]] [[무릎팍도사]]와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후 슬럼프를 탈출했으며, 그 이후 [[남자의 자격]]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출연도 시작하면서 제3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김국진의 최 전성기와 인기 하락이 강렬해서 인지, 그 전의 인기와 위기등은 대중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 전성기 ==
         전성기에는 [[테마게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주로 출연하며 "어라~?",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 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유행어를 양산했고, 코미디, MC, CF, 연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다. 그 당시 김국진의 영향력은 숨 쉬는것도 김국진이 쉬면 유행어가 될 정도라고 회자될정도로 컸으며 [[전지현]], [[송혜교]] 등 지금 잘 나가는 스타들도 당시엔 김국진의 CF에 덤으로 나올 정도였다. 이때 당시 김국진의 인기는 단연 원탑이여서 [[이병헌]]과 [[H.O.T.]] 를 기다리게 할 정도였고, 단독 주연의 미니시리즈(MBC '반달곰 내사랑')를 찍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개그감각 같은 건 별로 없다고 평가 받지만, 도시 서민적인 외모와 왜소한 체격, 약간 어눌하면서도 친근한 말투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 히트의 비결로 추측된다. 거기다 그당시 김국진은 좀 어색하긴해도 테마게임을 통해 정극 연기가 되는 개그맨이었기 때문에 드라마등에도 자주 얼굴을 비출수 있었던 것이 플러스요인.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는데 장기적인 커리어가 아닌 단기적인 최정점의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물론 예능계에 있어서 종합적인 인기와 지지도, 커리어까지 본다면 유재석이 훨씬 더 앞선다. 비유하면 '''김국진은 2등과의 점수차가 굉장히 큰 전국 1등을 3~4년 한것과 같고 유재석은 2등과 점수차가 그리 크지는 않은 전국 1등을 15년 가까이 차지한것과 같은 느낌이다.''' 전성기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지만 그 절반 정도의 기간을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공존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개그계에서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가수나 배우들을 통틀어서 인지도와 인기로 그를 넘볼 대상이 없던, 그야말로 연예계 혼자 1등이라 할만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정말 몇 안되는 희귀 사례로 꼽힌다.[* 개그맨, 예능인이 가요계, 연기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 걸쳐 최고의 위상을 지닌 톱스타가 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다.현재 예능계 최고의 MC들인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도 연예계 종합 최고 스타의 위상을 가져본적은 없으며 역대로 꼽으면 80년대의 이주일과 심형래, 전성기 김국진, 현시대 유재석 정도만이 달성한 매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국진은 '''코메디 30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한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대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2위가 대중가요의 황제이자 전설 [[조용필]]'''.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가왕 조용필을 이겼다는 건 그야말로 당시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의 인기마저도 지배했다는 이야기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코미디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 최강의 포스를 보여준 코미디언은 1980년도에 말 그대로 2주일만에 원톱이 되어 80년대 초중반 내내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했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화로도 전국 300만 관중을 돌파할 수 있었던 전성기 [[심형래]] 정도 밖에 없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 [* 실제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한다.]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4년 하반기#s-24|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가수)|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소개했다~~ 실제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일 양국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국민적 코미디언들이었고 화려한 전성기가 끝나고 적지않은 시간동안 몰락해 있었다는 점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시무라 켄은 1970년대 후반~80년대에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인 [[이주일]], [[심형래]]의 위치와 더 가깝고 김국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인에 가까웠다. --여기서 [[이경규]]는???-- --당시 이경규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김국진은 MBC의 미니시리즈 "반달곰 내 사랑"에서 주인공인 체육교사 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당시 전성기였던 [[송윤아]]가 상대역이자 여주인공인 한정은 역을 맡았다.] 코미디 활동보다는 연기자로 활동했다. 실제로 김국진은 정극과 희극의 경계에 있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테마게임에 출연했을 때도 당시 출연하던 개그맨 중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가 출연했던 콩트의 대다수도 극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것이 상당히 많았다. 또한 김국진은 자신의 '혀짧은 국진이' 캐릭터에 별로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최전성기이던 [[1999년]]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 휴식기를 가지기 직전, [[에디 머피]] 주연의 영화 [[닥터 두리틀]]에서 에디 머피를 연기하며 성우로도 활약을 잠깐 했는데 평은 극악이었다. 결국 나중에 MBC에서 더빙 방영할때 에디 머피 전문 성우인 [[이인성(성우)|이인성]]이 재더빙을 맡았다.] 이후 김국진은 휴식 기간 중 접한 [[골프]]에 빠져서 [[프로]]골퍼에 도전했지만[* 1990년대에도 골프를 취미로 했었다는 말을 [[박수홍]]이 라스에서 언급하긴 했었다.] 프로 등단 시험마다 탈락하면서 막대한 돈을 잃었다.[* 그나마 골퍼로서 입지가 안정된 후에는 [[http://youtu.be/e2CLgocjSco|집중력 향상 드링크제 광고]]를 찍기는 했다.] 사실 턱걸이로 계속 프로 골퍼 시험에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이었으면 될 성적인데 올해는 합격이 어려운 성적이었다던지... 이후 [[2000년]] MBC 시트콤 <연인들>에 출연, 같이 호흡을 맞춘 [[이윤성(배우)|이윤성]]과 2002년 10월 17일 결혼했다.[* 여담으로 이 시트콤에 [[이선균]]이 이윤성의 동생으로 분했다.] . 이윤성과 김국진은 [[2003년]] [[7월]]부터 돌연 별거를 시작하다가, [[2004년]] [[3월 15일]]에 이혼했고 이윤성 측에 막대한 위자료까지 지불하게 된다.[* 이윤성의 외도설이 있지만, 사실이라면 과연 김국진이 위자료를 지불했을까? 아마 결혼 후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는 등의 사연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으나, 이혼 후 김국진은 가급적 그 당시 일을 언급하기 꺼리고 조용히 혼자 외롭게 산다는 이미지면(물론 가끔씩 개그소재로 쓰긴 한다), 이윤성은 기다렸다는듯이 재혼한데다가(더구나 남편 홍모 의사 또한 이혼 경력이 있는 돌싱이었다) 방송에서 잊을만하면 김국진과 결혼 생활고,이혼 경력을 끄집어낸 것을 보면 여자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이 때 시도한 골프의류 사업과 주식투자 모두 망했다. 또한 후배든 친구든 돈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돈을 내줘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물론 그에게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 돈을 제대로 갚은 사람은 몇 없다고 한다. 거기다 절친했던 인물에게 사기도 당했다고...
         인생 망가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 뭘 하면 그 위치에서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가에 경악하게 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방송 복귀 초기의 모습인데,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도, 어느정도 안정된 현재에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이 기간중에 [[범죄]]를 저질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어, 재기의 기회까지 박탈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도박질하는 유명 연예인보다]] [[자본주의의 돼지|굶주린 무명 연예인이 낫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김국진이 재기 직전 김국진의 지인들이 혼자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를 위해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김국진과 생면부지였던 배우 박정수와 가수 [[은지원]]이 찾아가 셋이 서로 친해지는 내용이였다. 당시 김국진은 전보다 더 수척해 있었고 집에 혼자 있으면 주로 뭐하고 계시냐는 질문에 '소파 구석에 들어가 쭈그려 앉아있는다' 고 안습한 대답을 했다.] 게다가 김국진은 전술했듯 워낙 사람이 좋고 주변인들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연예계 동료나 그당시 무명이었던 희극인이나 예능인들을 많이 도와줬고, 그렇게 쌓인 인복이 후일 복귀할때 큰 도움이 되었다.
         [[2005년]] 토요일 밤 6-8시대 버라이어티 꼭지에서 고전하고 있던 MBC에서 회심의 카드로 제작된 [[토요일]]이라는 버라이어티[* 이 프로그램에서 [[무한도전]]의 전신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로 복귀를 선언하고, 당시 [[김용만]], [[박경림]] 등과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우며 여행하는 "커이 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간만에 주말 버라이어티에 출연했다.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특대형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기획이 된 프로인데다가, 유학 후 복귀하는 [[박경림]]과 함께 다시 전성기를 맞이 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참신한 기획보다는, 유명 MC의 복귀라는 회제성에만 치우친 분위기였고,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코너가 없어졌고 프로그램명도 [[토요일]]에서 강력추천 토요일로 바뀌었다. 이후 그는 다시 방송활동이 스톱된다.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회가 갈수록 조금씩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레전드 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자신감을 얻어 라디오 스타 MC로써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체제에서는 조용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라디오 스타가 특정 매니아 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위기탈출 넘버원]][* 2010년 5월 10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고정 MC로 출연.] 등에도 출연했다. 이와 동시에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유일하게 견제하는 역할로 나름의 영역을 보여주며 활약을 선보였고, 공중파 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MC를 하는 등 단순한 재기를 넘어서 제 8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강원대학교 영문과 출신인데, 김국진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던 전성기에 어느 프로그램에서 김국진의 출신교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김국진이 '경~대요.'라고 일부러 발음을 얼버무려 사회자가 '아 [[경희대학교|경희대]]요?'라고 묻자 긍정해버려 경기대 학생들에게 크게 외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유부단함의 결과지만 김국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에피소드. 그래도 입학식이나 축제의 MC로 --왕고모님-- [[박슬기]]와 함께 종종 얼굴을 비추신다.
         [[김구라]]같이 영문과 출신인데도 불구, 정작 [[영어]]에는 능통하지가 않다. 전성기에는 김국진에게 영어를 잘 한다고 얘기하면 김국진이 특유의 혀짧은 소리로 어설픈 짧은 영어 몇 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된 개그였다. 데뷔 시절 감자골 4인방(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몇년 뒤 김용만과 함께 [[미국]] 어학 연수를 갔건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진]]을 겪었을 뿐[* 그래도 [[남자의 자격]]에서 [[영어마을]]로 가는 에피소드에서 [[김성민(1973)|김성민]], [[이정진]], [[이윤석]] 등과 함께 그럭저럭 준수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당시에 밥과 고추장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로 궁핍했는데, [[1994 FIFA 월드컵 미국]] 때 [[미국]]을 찾은 [[고정운]], [[황선홍]] 등이 놀러와서 넌지시 용돈을 줬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부모님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 [[십일조]]를 했었는데, 김국진의 최전성기 시절 1달 수익에 정확하게 10프로를 [[성당]]에 기부했다고 한다. 참고로 김국진의 최전성기에 김국진이 말한 바에 따르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1억을 벌 수도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전성기 때의 [[인기]]에 비해서 [[연예대상]](당시 코미디대상) 수상은 2번밖에 없다. [[김용만]], [[이경규]], 김국진 이렇게 돌아가면서 받았다는 게 김국진의 기억이다.[* 부연하자면, 김국진은 전성기가 1996년~1999년 초 정도로 길지 않았고, 그 중간인 1997년에는 [[양심냉장고]]로 초대박을 터뜨린 이경규가 받았기 때문.] 대신 MBC 다큐멘터리 '21세기 대중문화 대장정'에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A%B5%AD%EC%A7%84|'''20세기를 빛낸 한국 코미디언 1위''']]에도 올라 있을 정도로 영향력은 컸다.
  • 조성모(가수) . . . . 14회 일치
         '''대한민국 최후의 음반 황제이자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압도적 인기를 누린 솔로 가수.'''[* 당시 괴물 같던 1세대 아이돌들의 팬덤과 인기를 단독으로 상대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솔로 가수이자 심지어 음반 판매량, 수상 경력 등 커리어로는 그 당시 가요계를 통틀어 압도적이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발라드 가수로서 아이돌을 제치고 대상을 탄 원톱 가수이다. (아래 수상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을 모두 휩쓴 것뿐만 아니라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전신인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도 대상 부문인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도 수상했으니 MAMA에서도 사실상 대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받지 못한 건 [[멜론 뮤직 어워드]] 뿐이다. 근데 멜론 뮤직 어워드는 조성모의 전성기가 지난 2005년에 온라인 형태로 시작해서 2009년이 되어서야 오프라인 시상식이 되었다.--][* 조성모가 최전성기 때 대상을 받은 1999년과 2000년을 기준으로 보면 먼저 1999년 같은 경우 그 전 해인 1998년에는 [[H.O.T.]]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서울가요대상]]도 같은 아이돌 그룹인 [[젝스키스]]와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고, KMTV 가요대전도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 다음해인 1999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은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서울가요대상]]은 [[핑클]]과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였고, [[SBS 가요대전]] 대상은 [[핑클]]이 조성모를 제치고 수상할 정도였다. 이후 2000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SBS 가요대전]],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KBS 가요대상]]은 [[god]]가 조성모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인 2001년에는 [[god]]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골든디스크 시상식]],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는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만큼 1세대 아이돌의 팬덤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1998년 9월 4일 첫 앨범 《To Heaven》[* 그런데 본래 조성모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를 예정이었던 노래|다른 가수에게 가려고 했던 곡]]이었다고 한다. 원래 주인공은 현 [[FNC엔터테인먼트]] 사장인 한성호 대표이다.]으로 데뷔 후 줄곧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했는데 [[이병헌]]과 [[김하늘]]이 주연한 뮤직 비디오만 공개[* 조성모의 말에 따르면 방송국에 홍보용으로 미리 돌린 것이 의도치 않게 송출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그것이 예상치 못하게 반응을 끌면서 본의 아니게 얼굴 없는 가수가 된 것이지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한 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1998년 10월 17일 [[이소라(가수)|이소라]]의 프로포즈(99회)로 [[https://www.youtube.com/watch?v=doW-NQXoWgY|방송에 첫 출연하면서 얼굴을 공개했다.]] [* 이 장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도 나온다. 방성재와 도학찬은 조성모의 외모를 가지고 내기를 걸었고 예상 외로 조성모의 얼굴이 매우 멀쩡하자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후 [[이수영(가수)|이수영]]과 함께 유명 발라드 가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둘을 동시대 가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데뷔 초부터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성모와는 달리 이수영은 2집의 실패 이후 3집 그리고 사랑해로 슬슬 뜨다가 2003~2006년을 전성기로 보낸 탓이다. 대신 조성모의 전성기를 2005년 6집 Mr.Flower까지로 보면, 이수영이 7집 Grace와 8집 단발머리까지 히트시키며 그만큼 더 롱런하기는 했다.]
         전성기 당시에는 '''아름다운 미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으며 그 목소리에 맞는 애절한(또는 처절하기까지 한) 발라드 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처절한 곡의 대표격으로 2집 화살기도를 들어보시라.] 대표 발라드 곡들로는 1집의 To Heaven, 불멸의 사랑, 2집의 For your soul(슬픈 영혼식), 2.5집 가시나무, 3집의 아시나요, 다음 사람에게는, 4집의 잘가요 내사랑 등이 있다.
         전성기로 평가되는 전반기에 구사된 그의 창법은 미성이 특성이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으나, 전성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과 자신 스스로 창법을 바꾸고 싶단 생각으로 5집 때부터 '''창법이 바뀌게 된다.''' 후반기의 무대 영상이나 음원을 찾아 창법을 비교해 보면 전반기 시절에 보여주었던 1집의 '불멸의 사랑'이나 3집의 '아시나요'와 같은 폭발적인 미성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노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히든 싱어]]에서도 원조 가수 최초로 2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무한도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도 출연 자격을 얻게 되는 노래방 기기 95점을 넘기기 위해 몇 차례나 재도전한 끝에 겨우 출연을 확정짓기도 했다. 윤종신과 더불어 예전 목소리가 그리운 가수. 아마도 창법이 변화된 후부터 팬의 이탈이 많았던 듯 싶다. 남아있는 팬 중에도 과거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늘상 선곡이 비슷하다는 비평도 함께 받았었다. 특히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 덕에 독자적인 팬층을 확보했지만 그로 인해 자가복제라고 팬층 외에서 비판을 계속 받아야 했다. 이건 사실 전성기였던 전반기 시절의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에서 지시한 것이지 당시 신인에서 막 벗어나며 대스타로 거듭나던 상황인 조성모로서는 돈도 그렇게는 많이 못 받고 앨범 작업에 있어서도 별 힘이 없었다. 조성모도 이 당시가 가수로서 자신의 리즈 시절이긴 했지만 소속사의 굴레에 갇혀 활동하는 등 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더구나 그 당시에 조성모 부모님이 빚도 많이 있어서, 빚 탕감하는데 치중하며 가수 활동을 하다보니 더더욱 그런 듯하다.]
         [[히든 싱어]] 2부 3회인 조성모편에서는 2라운드에서 총 100표 중 81표를 얻어 '''원조가수 최초로 바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유는 모창가수들은 조성모 전성기 시절을 토대로 모창을 했지만, 조성모는 전성기 때의 혹사로 성대 결절을 겪게 되어 창법이 변하게 되어버린 것. 조성모의 앨범들을 시간순대로 들어보면 이미 4집때부터 조금씩 허스키한 톤으로 살짝 변했고 창법도 살짝 바뀌기 시작했다. 다만 4집때 까지는 그 전까지의 여리여리한 미성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고 조성모 특유의 창법이 거의 그대로 구사 됐었다. 그 후 공백 후 5집때부터는 톤도 많이 허스키하게 변했고 창법도 시원하게 질러 부르는 창법으로 많이 변해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성모 전성기 시절의 목소리는 1-3집까지의 특유의 미성과 실크위를 거닐듯 부드럽게 밀어부르는 창법. 그래서 패널들이 전성기 시절의 조성모 목소리만 기억했기 때문에 그를 찍어줄 리가 없었다.
         팬클럽 특전으로 반지가 있었는데 기수마다 디자인이 상이했다. 일종의 커플링이라고 봐도 무방했던 이 반지의 디자인은 가수 본인이 직접 했다고 전해지는데 정작 본인은 알레르기 탓에 미착용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복권에 당첨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마리아 반지를 다이아몬드로 바꿔주는 것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본인 또한 이 반지와 팬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그래서인지 전성기가 지난 때에도 그의 집앞은 팬들로 가득했다. 지금도 방송 일정을 다닐 때, 자신을 보러와 준 이들에게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는 등 팬사랑은 여전하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12회 일치
          * 하우저는 드레퓌스와 핸드릭슨이 자격이 없다고 사양한 성기사장 자리를 승계받는다. 하지만 아직 대리 꼬리표가 붙는다.
          * 리오네스 왕국의 민가. 아버지가 늦잠자는 아들을 깨우고 있다. 어느 가정이나 비슷할 법한 아침풍경. 부지런한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겨우 아침잠을 쫓으며 세수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칠칠맞고 여자한테 인기도 없다고 디스하는데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 아들은 바로 성기사 하우저. 평민출신 답게 서민적인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우저는 출근하기 전에 앞으로 수도 복구 때문에 늦게 올 거라고 말하는데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런거보다 왕궁에서 사자가 와서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고 전한 일을 말한다. 하우저는 "마신족 놈들 때문에 나라가 반붕괴했는데 그런거라니"하고 반발하는데 아버지는 하우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출근이나 하라고 내보낸다.
          * 성에서 목욕을 즐기는 멀린. 에스카노르는 하인처럼 목욕시중을 들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마에 열중하는 중. 멀린도 대만족. 멀린은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왕국이 원상복구된 일에 대해 질문을 들은 모양인데 "원래대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녀가 복원한건 어디까지나 "건물"이라는 것. 사실 애초에 반 정도는 멀린이 부순 셈이니 고쳐주는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물이 돌아왔다고 해서 마신족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까지 낫는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계금에 걸린 성기사들와 백성들이 카멜롯으로 달아났는데 그 말은 카멜롯이 잔존한 십계의 근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 말하는 멀린. 그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일단 일곱개의 대죄임에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멜리오다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
          * 한편 왕궁에서는 국왕 바토라가 성기사들을 소집한 상태. 바토라는 일곱개의 대죄의 활약으로 십계의 위협은 벗어났지만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성기사들을 통솔할 성기사장 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새로히 임명한다고 선언한다.
          * 성기사들이 수군대기 시작한다. 분명 필요하긴 하지만 맡을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것. 표암의 포효의 슬레이더도 추천을 받지만 그림자라고 자칭하며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우저는 당연히 핸드릭슨이나 드레퓌스가 맡을 거라고 생각하고 불평하는 녀석들은 자기가 날려버리겠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럴 자격도 마음도 없다며 고사한다. 덴젤도 사망하고 길선더는 행방불명. 더욱더 맡을 사람이 없어진다.
          * 국왕 바토라가 드디어 누구를 성기사장으로 삼을지 발표하는데.
          * 하우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믿지 못한다. 스스로 평민이고 머리도 나쁜데 괜찮냐고 묻는데 바토라는 그게 어쨌다는 거냐고 되묻는다. 바토라는 절망적인 싸움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동료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타인의 방패가 되길 마다하지 않았다. 바토라는 그런 점을 높이 사서 그를 임명한 것. 그러나 미숙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아직은 "성기사장 대리"라는 꼬리표를 단다.
          * 성기사들은 야유섞인 격려에 헤어스타일에 대한 디스를 섞어 보내고 하우서는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사명을 받든다.
         하우저 인생역전. 상위 성기사에서 성기사장으로 클래스업. 하지만 대리라는 단서가 붙은 걸 보면 길선더의 복귀와 함께 원상복귀할 듯.
  • 마재윤 . . . . 8회 일치
         '''마재윤'''([[1987년]] [[11월 23일]] ~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전 [[CJ 엔투스]] 소속의 [[저그]] 유저였다. 초창기 'ipxzerg'이라는 아이디를 쓰다가 'sAviOr'이란 아이디로 바꾸었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전성기 시절 별명은 '마본좌', '마신', '마에스트로'였다.
         3 해처리 운용을 기반으로 한 '운영형 저그'의 완성을 이끌어냈으며, 단순히 전성기 기량과 커리어를 바탕으로만 본다면 '최고의 저그'로 평가받을 수 있으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하여 이 평가는 적절치 않게 되었다.
         2007년 3월 3일 [[김택용]]과의 MSL 결승전에서 0:3으로 완패한 이후 극심한 슬럼프 끝에 2008년 6월 2군으로 강등당했다가 다시 1군으로 복귀되기까지 했다. 2009년 이후 위너스리그 등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개인리그에서도 조금씩 과거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찾아가는 듯하였으나, 2009년말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10년에는 프로리그의 로스터에서 말소되었다. 이 가운데 불거진 승부조작 의혹을 받았는데, 5월에는 승부조작 혐의에 연루되었음이 검찰수사를 통해 발표되었고, 결국 CJ 엔투스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꾸준히 팀별 리그, 개인 리그에서 조금은 활약하던 마재윤은, 2005년 4월부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2010년 3월 프로리그 로스터에서 말소되며 사실상 팀 전력에서 배제되었던 마재윤은 4월 프로게이머 승부조작 의혹이 일면서 선수 생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많은 네티즌은 그가 유난히 전성기 이후인 2007년부터 빠른 추락을 거듭했다는 점, 또한 비슷한 시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작스런 졸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무엇보다 포모스 측에서 승부조작 의혹 기사에 올린 흑색 처리된 사진이 마재윤의 사진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의심하였다. 이에 마재윤은 자신의 승부조작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고, CJ 엔투스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승부조작을 의심하지 말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5월 검찰의 수사 결과 마 모 프로게이머가 원 모 프로게이머와 함께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을 공식 선언했는데, 프로게이머 중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 하나 뿐인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승부조작 혐의가 있음이 확실시되었다. CJ 엔투스는 검찰 발표 하루 전 마재윤을 선수 명단에서 제명했고, 마재윤을 임의 탈퇴 처리했음을 기사를 통해 밝혔다. 마재윤은 승부조작에 연루된 다른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공판이 진행 되었고, 6월 7일 케스파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영구제명을 당하여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ref>[http://esports.dailygame.co.kr/news/view.daily?idx=27900 불법 베팅 가담 프로게이머 11명 영구제명]</ref>
         뛰어난 경기력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최연성]]은 당대 유명한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경력과 전적에서 앞서 있었다. 하지만 [[2005년]] 마재윤의 등장으로 '괴물 테란' 최연성의 상승세도 한풀 꺾이게 된다.
         2010년 4월 몇몇 팬들로부터 [[2010년 스타크래프트 불법 베팅과 승부 조작 사건|승부 조작]]에 마재윤이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되면서 '마재윤 vs 이신형'전의 배팅 사건 등등이 제기되었지만, e스포츠 팬들의 반응은 마재윤이 맞다고 주장하는 쪽과 확실하진 않으니 검찰 조사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나뉘면서 서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검찰은 마 모 프로게이머가 연루되었다고 발표하였는데, 실제 케스파에 등록된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이 유일한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마재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이 밝혀졌다. CJ 엔투스는 검찰 수사 공식 확인 하루 전 마재윤을 팀 선수 명단에서 제명하였고, 한국 e스포츠 협회는 그를 다른 승부조작을 꾸민 [[진영수]], [[원종서]], [[최가람]],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 [[신희승]], [[김성기 (프로게이머)|김성기]], [[문성진]], [[박찬수]],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 [[정진현]]을 모두 영구제명 조치하였다. 검찰 수사 발표 이후 MBC게임 해설진은 경기 중계 도중 과거 경기를 언급하며 마재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마재윤은 승부 조작 혐의로 인하여 벌어진 재판 당시 재판장이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마재윤은 프로게이머라고 답하여 무직이라고 대답했던 [[원종서]]와 대조를 보였다. 마재윤은 e스포츠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승부조작에 개입하여 고의적으로 경기를 패배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배영수 . . . . 8회 일치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 이는 플레이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 [*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리그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167949|#]]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1997488|#]]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6&aid=0000011149|#]]]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 하지만 과거 스터프에 의존하던 선수였던 만큼 제구파 투수로 플레이스타일이 변경되었어도 과거 플레이스타일에 영향이 있는지 경기당 기복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 배영수가 컨디션 기복이 있는 것이 이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볼넷도 적게 내주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쉽다는 것.]
         배영수의 최대 전성기 시절. 당시 최대 150km/h대 중반의 광속구와 140km/h를 넘나드는 슬라이더 두 구질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다.무엇보다 경기내내 평균 140키로후반대의 공을 꾸준히 던졌는데, 이는 당시 다른 선발들중 구속하나론 비교할만한 상대가 없었으며 최근 리그 수준을봐도 평균구속 최상위권에 랭크될만한 구속과 강인함을 지녔었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입단 첫 해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임창용]]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13승을 거두고,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던 2002년에는 소모포어 징크스가 심하게 보이며 주춤했으나, 2003년 13승, 2004년 17승, 2005년 11승을 올리며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4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전성기 시절보다는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을 치룰수록 구속이 시속 140km대를 넘기 시작했고 구위 역시 회복하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아직 나이도 만 서른이 안됐으니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08, 09 시즌과 비교해봤을 때 피홈런 개수가 준 것이 부활의 가능성을 보인 요소 중 하나이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일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스코어 8:7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⅓이닝 17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 을 기록했고, 한 점차를 지키는 퍼펙트한 피칭을 보여준 배영수는 시리즈 전적 2승 2패를 만드는 중요한 세이브를 따냈다, 이 경기에서 거의 전성기급 구속인 최고 구속 '''147km/h''', 포크볼은 '''140km/h'''까지 찍어서 삼성 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그가 등판했던 4월 23일 넥센전의 선발투수는 그와 동갑이자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김성태(1982)|김성태]]였는데,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이젠 데뷔 18년차, 나이도 36세라 노장 맞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일곱개의 대죄/186화 . . . . 7회 일치
          * 세뇌된 주민들이 성기사들을 공격하고 단숨에 궁지에 몰리는데, 덴젤이 나타난다.
          * 성에서는 성기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 대세는 하우저 쪽. 슬레이더와 효암의 표효는 자신들이 마을로 파견된 성기사들을 유도할 테니 먼저 성으로 퇴각하라 권한다.
          * 그때 마을로 나갔던 성기사들이 주민들을 이끌고 성으로 오는게 보인다.
          * 그런데 이들은 성기사들을 공격한다.
          * 마을에 있던 이들은 모두 젤드리스의 "경신"의 계금에 걸려있는 상태. 마신왕을 칭송하며 성기사들을 죽이려 든다.
          * 성기사들은 주민들 손에 하나둘 쓰러진다.
  • 최홍만 . . . . 7회 일치
         전성기의 크로캅, 효도르, 세미슐츠, 바다하리 같은 세계적인 파이터들과 겨뤄 본 유일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론은 2007년 12월 8일 월드 그랑프리에서 벤너에게 또 다시 패하면서 가속화된다. 그 와중에 연예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까이기도 했다. 12월 30일 야렌노카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보여준 선전[* 전직 씨름선수답게 표도르를 테이크다운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후 파운딩을 엄청나게 날렸다. 정타는 없었지만. 파운딩을 열심히 날리다가 암바로 패.]으로 잠시 가라앉았으나 2008년 9월 바다 하리전과 2008년 12월 레이 세포전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다. 특히 2008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하락세가 뚜렷한 세포를 상대로 졸전을 벌인 끝에 스피드에서 농락당하며 세포의 [[굴욕기]]인 노가드[* 세포가 한창 전성기였을 무렵 사용하던 전술로, 당시에는 기량의 하락으로 거의 봉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홍만에게 다시 썼다'''.]에 관광당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냈다.
         그리고 2016년 9월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샤오미 로드FC 033 무제한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과거에 맞붙었던 코리안 킬러 [[마이티 모]]와 다시 겨루게 된다. 전성기 때 몸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도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한 전적이 있고, 승리를 한번 하긴 했지만 석연찮은 판정승이었기에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다 빠져버린 최홍만이 아무리 나이가 불혹이지만 베테랑 헤비급인 [[최무배]], [[명현만]]마저 잡아낸 마이티 모의 펀치를 버텨내기 힘들거란 관측이 많다.
         경기에 대한 평이 좀 갈리는게 우치다가 전성기 땐 제법 잘나가는 킥복서였다지만, 이제는 너무 나이가 많아 적절한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우치다전에서 보여준 안면가드가 K-1 시절보다 나아져, 킥복싱으로 재 전향한 것이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평도 있다.
         전성기 기준 217cm에 165kg의 신체 자체가 무기. 리치가 224cm(88인치)나 되는데 이는 현존하는 모든 MMA 선수들을 통틀어 가장 긴 것이다. 크기만큼은 최고 레벨 수준.
         격투기 선수로서는 엄청난 무기라고 볼 수 있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긴 리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리치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데, 이는 위에 서술된 스피드의 문제도 있지만 최홍만 본인의 격투 스타일이 그다지 리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도 있다. 격투기 데뷔 시절부터 최홍만은 [[아웃복서|거리를 유지하며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스타일]]보다는 [[인파이터|적극적으로 들어가서 큰 스윙을 날리는 스타일]]을 썼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본인의 리치를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물론 격투기 선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격투 스타일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의 리치가 상대보다 길면 인파이팅보다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상대는 때릴 수 없는데 자신만 때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은 격투기 선수로선 매우 큰 무기나 다름없다.] 전성기 시절에는 맷집이라도 강해서 얼굴 몇 대 맞아도 그냥 씹고 달려드는 게 가능했지만, 안면 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관중 및 시청자들이 볼 때 최홍만의 문제는 안면 타격을 받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저돌적인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 반격을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있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는,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엔젤스파이팅에서 적극적으로 펀치를 뻗으며 러쉬를 하든 등 전성기시절의 모습을 어느정도 보여줬다.]
  • 이보희(배우) . . . . 6회 일치
         2014년 기준으로는 주로 공주병 아줌마나 푼수데기 조연, 혹은 사극에서 조연으로 많이 등장하는 배우지만, 1990년대부터 텔레비전 드라마에 주력해서다. 전성기인 1980년대엔 [[원미경]], [[이미숙]]과 더불어 80년대 3대 트로이카로 유명했다.[* 영화 한정. 드라마의 경우에는 이보희 대신 [[정애리(배우)|정애리]]가 들어갔다.] 한국의 대표적 섹시스타로 유명해서 유명 에로영화였던 '[[무릎과 무릎 사이]]'라든지, ''''[[어우동]]''''하면 바로 떠오르는 배우였다. 특히 다리가 예쁜 걸로 유명해서, 서양권 여배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다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참고로 '[[무릎과 무릎사이]]'는 단순 에로영화가 아닌 여성이 性을 극복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 수작이다.]
         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전성기가 짧은 편.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뒤 88년 초반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러나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등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 박경림(MC) . . . . 5회 일치
         박경림 이후 박경림처럼 예쁘지 않지만 매력있는 컨셉의 여자연예인들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전성기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녀같은 스타일로 광고계까지 접수하는 여성 대스타가 전혀 나오지 않은만큼,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 연예사에서 절대적인 역사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시대 이후로는 국민여동생 붐으로 [[문근영]], [[김연아]], [[손연재]], [[아이유]] 등 미모가 되는 10대후반 ~ 20대초반 여자스타들만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배우, 가수, 스포츠 등 자기분야에서의 인기를 업고 올라간 것이지, 박경림처럼 순수히 예능 MC와 출연자로써만 인기를 얻어 광고계 블루칩이 된 것이 아니다.]
          * 전성기에 엄청나게 많은 광고에 나왔었는데, '잇츠'라는 크래커 광고에 나온 적이 있다. 당시 대사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변비약 광고에서는 "나 천사 맞잖아 아유 이씨"라며 천사[* 변비 때문에 몸이 무거워, 하늘을 날지 못하다가 변비 해결 후 날았다는 설정.]연기도 했었다.
          * 전성기 시절의 위업을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대 여성이 연예대상 최연소 수상'''으로 설명 할 수 있다. 20대 연예대상은 최초이자 최후이고, 여자 연예대상은 이효리의 공동대상을 빼면 단독수상으론 박경림이 유일. 다만 과거 연예대상이아닌 방송대상 코미디 부분이나 코미디대상에선 여성으로는 김미화와 이경실, 20대로는 이경실, 서경석, 박준형이 수상을 한 적은 있었다. 다만 최연소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경림의 수상 당시 나이는 만22세. 지금 잘 나가는 여자MC들 전부를 합쳐도 박경림 인기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로[* 시상식 수상자로 나와 꺅꺅 소리지르는 소녀팬들을 몰고다닐 정도였으니..그것도 여자 예능인이..더 웃긴 건 그 소녀팬들한테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센스까지..] 2000년대 초반 당시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녀 이후 당시 그녀의 예능계 포스에 조금이라도 비교할만큼 잘 나가 봤던 연예인은 그나마 [[이효리]] 한명뿐이다.[* 배우와 예능 MC를 병행하며 박경림보다 더 오래 예능계 몸담은 [[김원희]]도 있지만, 그녀는 미모의 여배우치고 코믹연기가 능해 이미지가 재미있고, 남자MC와 호흡맞추며 하는 진행을 잘하여 롱런한게 훌륭한 것이지 박경림처럼 3년 정도 장기간 예능계 여성 원탑이었던 적은 없었고, 잘 나갈때의 이효리조차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 [[유재석]]이라는 대스타 MC의 받쳐주기 후광으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예능만으로는 2000~2002년 박경림이라는 여성 예능인의 파괴적 인기점유율에 미치지 못한다. 전성기 박경림은 박수홍 같은 남자MC들과 출연하더라도 그녀가 웃음과 진행을 이끌어가는 메인이었지 남자MC의 보조만으로 끝났던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당시 잘나가던 남자 MC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또한 다른 여자연예인들은 다른 분야 활동에서의 인기가 예능에도 미쳤던 영향이 있지만 박경림은 자신이 혼자 진행하는 인기프로그램까지 있었을만큼, 예능만으로 절대적 블루칩이 되었던 인물이다.]
          * 결혼 후 예능에서의 활동은 잘 안 보이는 상태. 애엄마가 돼서 그런 듯하다. 케이블에 간혹 드문드문 보이는 경우도 있다. 과거 코미디 얘기만 얘기하던 시절의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코갤]]에선 8대 [[신]] 다음으로 여신 라인의 수장을 차지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방송에서의 인맥 자랑 + 같은 이야기 여러 번 울궈먹기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 전성기 시절에는 자기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에 서슴이 없었고 과감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으나 복귀 이후에는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여자MC와 차별점을 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송병구 . . . . 5회 일치
         === 전성기와 결승에서의 잇따른 좌절 ===
         둘의 첫 만남은 2007년 5월 14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이지만, 실질적인 라이벌 관계는 두 번째로 만난 [[곰TV MSL 시즌2]] 결승전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까지 동일한 종족 간의 결승은 왠만해선 흥행이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두 선수는 5경기까지 가는 모든 경기를 명승부로 만들며 우승자 [[김택용]]도, 준우승자 송병구도 박수를 받는다. 이후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이루면서 역대 [[스타크래프트]] 리그 판도에 전혀 없던 [[프로토스]]의 전성기를 만들고, [[김택용]]과 송병구의 '택뱅시대'를 만들게 된다.
         대한항공 스타리그 Season 2 2010에서 16강 2승 1패 8강 2:0으로 4강에 진출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송병구는 비록 이제동에게 탈락했으나 2:3으로 선전을 펼쳤다.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는 제 2의 전성기라 불릴 정도의 기량을 맞이하며 단숨에 결승까지 진출하였고 스타리그 테란전 10연승이라는 기록도 작성하였으며 10-11시즌에서는 2라운드부터 회복세를 보여 3라운드 위너스리그에서 첫 역올킬을 달성하였다. 피디팝 MSL에서는 8강까지 진출하며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피디팝 MSL 8강에서 김명운에게 0:3 셧아웃을 당하며 탈락하였고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에서도 정명훈에게 0:3으로 패배하며 여전히 큰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를 보여주며 부진에 빠지고 말았다.
  • 윤종신 . . . . 5회 일치
         연세대 원주캠퍼스 가요제에서 금상으로 입상한 이후, 과 동기로부터 [[정석원(음악인)|정석원]]을 소개받았다. 정석원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듣고 [[015B]]의 객원보컬로 픽업했다. 이 때 [[장호일]]이 반대했다고 한다. 이유는 비주얼. 그래도 보컬이 밴드의 얼굴인데... 가창력만으로 승부한 데뷔였던 셈이다. 그리하여 '''[[1990년]] [[7월 15일]]''', [[015B]]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면서 그도 데뷔하게 된다. 심지어 같은 해에 데뷔한 [[신승훈]](11월 1일), [[윤상(가수)|윤상]](11월 30일)보다도 데뷔 날짜가 빨랐다. 종종 "나 [[노태우]] 대통령 때 데뷔했어! 심지어 [[걸프전]]보다도 전이야!"라고 하기도 했다.[* 종전에도 윤종신이 윤상의 전성기에 대해서도 드립을 쳤을 정도로 미는 개그 중 하나였다. 노태우 대통령 취임은 1988년 2월 25일, 윤종신 데뷔는 1990년 7월 15일, 걸프전 발발 1990년 8월 2일이다.]
         이후 [[015B]]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015B]] 2집 '두 번째 에피소드'의 수록곡 '친구와 연인', 'H에게", 3집 '제3의 물결'의 수록곡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박선주]]와의 듀엣곡), '1월부터 6월까지' 등 간간히 [[피처링]]으로 [[015B]]를 돕고 있다.], 솔로 앨범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2집 '[[Sorrow]]'(TITLE : 너의 결혼식)[* 원래는 작곡가 박강영에게 편곡을 맡기려고 아는 사람한테 번호를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실수로 작사가 박주연의 번호를 알려 줬다고 한다. 차마 잘못 걸었다고 할 순 없어서 작사를 부탁드렸는데, 그 잘못 걸린 전화로 인해 윤종신의 초기 양대 명곡으로 꼽히는 너의 결혼식과 [[오래전 그날]]이 탄생하게 되었다.] 때가 윤종신의 전성기로, 개그맨 [[박휘순]]이 윤종신의 팬이었다고 한다. 판매량 38만 장.
         [[2007년]] 5월부터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2008년부터는 SBS 패밀리가 떴다와 MBC [[명랑히어로]]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2009년]]이 그 전성기로, [[문화방송|MBC]]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SBS]] [[패밀리가 떴다]], [[예능선수촌]][* [[야심만만]] 시즌2] 에 고정출연하여 시청률 60%를 책임졌으면 좋았겠지만 모두 프로그램의 중심 캐릭터가 되지 못했다. 대신 깐족거리는 서브MC 이미지를 굳혔다.
         2014년 7월 31일부터 [[M.net]] 블랙드라마 엔터테이너스에 출연했다. [[UV|UV신드롬]], 음악의 신, 방송의 적을 연출한 박준수 PD의 작품인데, [[페이크 다큐멘터리]]였던 전작과는 달리 드라마 혹은 시트콤의 성격이 강하다. 윤종신이 [[틴탑]]의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음악의 신에서 한 몸 불살라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던 [[이상민(룰라)|이상민]]처럼 자기 비하도 서슴지 않으며 분투하고 있지만 영 반응이 시원찮은 편.
          *올드 팬에게는 내가 좋아했던 가수가 맞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예능에서 이미지 변신을 했다. '텅 빈 거리에서, 애니, 모처럼, 바다이야기'등의 헤어진 다음에 찢어지는 남자의 감정(혹은 청승)을 가장 잘 표현했던 그이기에 예능 활동을 보고 있자면 눈물만 흐른다. [* 본래 코미디에 욕심이 있어서 시트콤에 종종 출연해 기존 팬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사실은 [[거침없이 하이킥]]에까지 섭외되었으나 테니스 선수 출신 부인과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거절을 했다고 한다.] 다만, 라디오에서는 전성기 때부터 이렇게 깐족거렸다.
  • 이경영(1960) . . . . 5회 일치
         || [[유인촌]][br](1992) || → ||<#FFFFA1> '''이경영[br](1993)''' || → || [[안성기]][br](1994) ||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영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상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상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영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이 배우 저 배우 돌려쓰기 현상이 심하여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관객들이 외면할 정도로 충무로 배우 연령폭이 얇았다. 이경영 본인도 "그나마 [[안성기]]나 [[박중훈]]은 충무로나 언론에서 보호해주는 패턴이 강했다면 나는 그저 잡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며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안성기나 박중훈이 어느 정도 자기 이미지와 고유의 연기색을 바탕으로 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코믹연기나 진지한 연기를 구축했다면, 이경영은 (최소한 영화작품 기준으로는) 자기만의 연기톤을 고집하려 들지 않고 당시 기준에서 극도로 19금적인 코믹연기도 하고 완벽하게 정석적으로 진지한 연기도 소화하는 등 팔색조처럼 넓은 연기폭을 시도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인 사례가 많아서 흥행은 거의 망하곤 했다 [[안습]]-- 1994년에 [[문성근]]과 같이 출연했던 '세상 밖으로'라는 영화는 주인공들이 탈옥수라는 설정답게 쌍욕이 들어간 대사가 영화 내내 나오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 영화였다. (그전까지는 불량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라 할 지라도 욕설의 정도가 심한 대사들이 주연들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일부 중요한 폭력적인 장면 한둘에서 나오는 정도) 그런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연기변신에 대해 그렇게 힘든 요구를 항상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력 부분에서 점수를 깎이지 않고 합격점을 항상 받아왔다는 데서 이경영의 그 뛰어난 연기력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194화 . . . . 5회 일치
          * 성기사들은 멜리오다스의 부활과 재회에 기뻐하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를 의심하게 된다.
          * 산처럼 거대해진 프라우드린. 그 거대한 몸으로 성기사 일행을 내리치는데 핸드릭슨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드레퓌스는 그리아몰을 피신시키느라 구하지 못한다.
          * 멀린은 성기사 일행 전원과 움직이고 있는데 퍼펙트 큐브로 모두를 감싸 프라우드린의 공격도 견뎌낸다.
          * 드레퓌스는 자신들이 무사하다고 소리쳐서 알리는데 성기사들은 드디어 성기사장이 돌아왔다고 환호한다.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5회 일치
          * 다른 일행이 인근에 있는데도 멜리오다스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성기사들은 멜리오다스의 태도에 의문을 품는다.
          * 그 위력에 보고 있던 성기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 성기사들은 멜리오다스의 태도가 악당같다고 야유하고 핸드릭슨은 큐브 바깥에 있는 드레퓌스와 그리아몰을 걱정한다.
          * 성기사들은 그 잔인함에 경악하고 반과 멀린은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프라우드린의 죽음. 이로써 리오네스를 침공했던 십계는 전원 재기불능이나 생사불명에 처했다. 특히 프라우드린은 완전히 소멸된 것 같고 멀린에게 포획된 그레이로드도 해방될 일은 없을 듯. 현재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건 그로키시니아와 드롤 정도다. 당초 십계 측의 총전력이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론 십계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한 수준. 아군측 주전력이라 할 수 있는 십계나 성기사 측에선 대단히 경미한 희생만 치렀을 뿐이다. 특히 실질적으로 십계는 멜리오다스와 에스카노르 두 사람에게 철저하게 당한 셈인데 십계 중 누구도 1대1로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멜리오다스가 한 번 죽은 것 조차 2대1로 멜리오다스에게 지다가 십계 전원이 모여서 다구리를 놓은 것이니...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5회 일치
          * 고서와 재회하고 그가 정말 전설적인 성기사인 일곱 개의 대죄였음을 확인한 페리오는 감격하고 떠나는 고서를 마지막까지 배웅한다.
          * 페리오는 어린애가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당하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작은 막대기에 의지해 몸을 가누며 아버지를,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신족의 악행을 꾸짖었다. 그는 언제나 성기사가 되길 꿈꿨다. 그런 자신이 괴물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고,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저급한 존재에겐 고결한 신념이 영향을 줄 수 없었다. 하급 마신이 꼬리로 페리오의 목을 졸라 들어올렸다. 이젠 질렸으니 죽이겠다면서 말이다. 이런 족속에게는 보다 직접적이고 무자비한 방식으로만 행동을 고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저들이 자기들을 구한게 맞는 건지, 상황이 어떻게 변해가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마신족은 하나도 남김 없이 일곱 개의 대죄가 처리했지만,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을 언덕 위에서 굽어 보며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멜리오다스]]에게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원래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로 가야했다. 멜리오다스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고서가 강력하게 희망하기도 했지만, 마신족의 위협에서 백성을 구하고 피폐해진 그들의 삶을 되돌리는 것도 성기사가 해야 할 일이다.
          고서는 옛일을 떠올리며 아직도 성기사가 되어 자기를 잡고 싶냐고 페리오에게 물었다. 소년의 꿈을 달라져 있었다.
          >나는 너 같은 성기사가 되고 싶어.
  • 박주영 . . . . 4회 일치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 이후, 떨어진 폼을 전성기 시절만큼 끌어올리지 못했고 끝내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모두 승선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대표팀 은퇴나 다름 없다.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황선홍]] 이후 최고의 포스트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선수.'''[* 제대로 된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했던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이 시대가 겹쳤고 [[조재진]]은 부상으로 전성기가 짧았다. 그 이후를 이어갈 재능이었던 박주영이 2011년 아스날 이적으로 급격하며 몰락하면서 이 문제는 2010년 내내 한국의 발목을 잡혀 [[김신욱]] 같이 포스트 플레이 이해도가 전무한 선수에 계속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나마 2018년에 들어서는 [[황의조]]가 포스트 플레이어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 때에는 뛰어난 순간 속도와 예측력을 기반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 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반대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볼 키핑력과 순간속도,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무릎 부상을 포함한 피지컬 하락과 폼이 죽으면서 이런 스타일의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예측력은 유효한 강점으로 상대 수비의 움직임이나 공의 흐름 같은 것을 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흐르는 볼에도 강점이 있다.
          * 위닝일레븐에서는 데뷔 때부터 20살 주제에 80대에서 70대 중반 능력치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데다 마스터리그에서 키우면 괴물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모나코 이적 후로는 피지컬에다 헤딩능력도 80대로 설정되어 대표팀과 팀내 에이스급 선수로 설정되었다. 너프를 잘안시키는 위닝 특성상 브라질 때까지도 손흥민에 이어 넘버2의 한국인 능력치를 받았으나 다음해부터 현실을 반영해 70대 초반으로 엄청난 너프를 받았다. 2017에서 약간 상승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한 능력치다. 그러나 피파시리즈와는 달리 이동국에 비해 언제나 높은 능력치를 자랑한다.[* K리그만 놓고보면 이동국의 스탯은 박주영이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피파시리즈에서는 이동국의 능력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 국대 레벨에서도 쓸만하고][* 그러나 위닝에서는 얘기가 달라지는데 상당히 능력치가 편중되어 있다. 헤딩이나 몸싸움은 그럭저럭인데 연계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되었는지 슈팅력과 헤딩은 뛰어나나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반대로 박주영은 디펜스 골기퍼 스킬 빼고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70대 이상이다.]
  • 일곱개의 대죄/182화 . . . . 4회 일치
          * 바트라는 예언에 따라 엘리자베스를 양녀로 들이고 멜리오다스는 "자신을 성기사로 써주는 조건"으로 승락한다.
          * 자라트라스는 "보모라면 따로 구한다"고 하는데, 멜리오다스는 "성기사로 고용해달라"고 한다.
          * 그의 추천으로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직속 성기사로 배속된다. 지금의 엘리자베스는 기억을 못하지만 그녀도 멜리오다스를 잘 따랐다.
          * 성기사들도 그녀는 초면인데 멜리오다스만이 그녀와 잘 아는 듯하다.
  • 일곱개의 대죄/183화 . . . . 4회 일치
          * 일곱개의 대죄와 리오네스 왕국의 성기사들은 십계의 공세에 대항해 최선을 다하지만 검을 들 수조차 없게 된다.
          * 마신족과 전투 중인 성기사들은 힘을 잃고 칼을 들고 있지 조차 못한다.
          * 그는 죽인줄 알았던 반이 살아있는걸 보고 의아해하지만 어쨌든 성기사 모두를 "그 고통에서 구해주마"라고 말한다.
          * 그때 한 성기사가 아무렇지 않게 십계에게 다가선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4회 일치
          * 성기사들을 가로막은 드레퓌스(프라우드린)는 이들의 기척이 사라짐을 느낀다.
          * 프라우드린은 그들로는 역부족이라고 비웃는데, 그때 또다른 성기사가 나타난다.
          * 성기사들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알을 떨어뜨리는데.
          * 제리코는 이번에도 마신족화될 위험에 처한다. 팔자사나운 걸로는 작중 최고의 성기사.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4회 일치
          * 이 참담한 처사엔 성기사들도 할 말을 잊는다.
          * 하지만 성기사들 중에선 그런 이름을 아는 사람도, 들어본 사람도 없다.
          * 지상의 성기사들도 어떻게든 바람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 쓴다.
          * 여기에 각성이 유력한 아서왕, 요정왕으로서 강해진 여지가 남은 할리퀸, 역시 자신의 정체를 깨달아야 하는 고우서 등 성기사 측에 강한 카드가 너무 많이 남아있다.
  • 고대 그리스 . . . . 3회 일치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라고 하면, 고전기 그리스에서 폴리스 전성기, 헬레니즘 시대를 뜻한다. 이후 [[로마 제국]]에 정복되어 그리스가 정치적 주체성을 상실할 때까지를 고대 그리스로 묶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 폴리스 전성기 ===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무렵이다. 찬란한 발전을 이룩했으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거치면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서로 싸워대면서 쇠퇴하게 된다.
  • 김갑수(배우) . . . . 3회 일치
         ||<:> [[안성기]], [[박중훈]][br]([[투캅스#s-2|투캅스]]) ||<:> {{{+1 → }}} ||<:> '''김갑수[br]([[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 {{{+1 → }}} ||<:> [[최민수]][br]([[테러리스트(영화)|테러리스트]]) ||
         || [[안성기]][br](1994) || → ||<#FFFFA1> '''김갑수[br](1995)''' || → || [[이경영(1960)|이경영]][br](1996) ||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 박명수(MC) . . . . 3회 일치
         그러다가 방송의 시류가 리얼버라이어티 및 예능으로 바뀌게 되었고, 강렬하면서도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를 갖고 있었던 박명수는 유재석과의 인연을 통해서 [[놀러와]] [[X맨을 찾아라]]와 무한도전을 통해 비로소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리얼버라이어티 초창기 박명수가 제창했던 '제8의 전성기'라는 표현은 평소 꾸준히 잘 나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어떻게든 개그계에서 끈질기게 버텨왔다는 자괴감을 개그 소재로 승화시킨 기믹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꾸준히 잘 나갔으면 전성기가 8번 오는게 아니라 1번의 전성기가 쭉 계속 되는거니까...
  • 박진성(시인) . . . . 3회 일치
         >고En 시인의 추행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그 여성이 저항을 하자 무안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였습니다. 그러더니 지퍼를 열고 성기를 꺼냈습니다. 흔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건 그냥 당시 동석자였던 여성 3명에 대한 ‘희롱’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성기를 3분 넘게 흔들던 고En 시인은 자리에 다시 앉더니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 그렇게 말했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안 되겠는지 K교수는 고En 시인에게 “이만 일어나시죠, 자리가 별로 안 좋네요”하고는 둘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남은 여성 두 명과 처참한 심정을 나눴습니다. 고En 시인의 성기를 봤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요?
  • 서영춘(코미디언) . . . . 3회 일치
         다만 전성기 시절에 관한 부분은 더욱이 자세히 봐야 하는것이 서영춘이 구봉서, 배삼룡보다 데뷔 시기나 주목받은 시기가 확실히 눈에 띄게 늦은 편이다. TV 방송 이전 악극단, 영화 시절 그리고 웃으면 복이와요 초창기 시절만 보더라도 메인은 서영춘이 아닌 구봉서, 배삼룡이었다. 실제로 웃으면 복이와요 초기 오프닝을 보면 배삼룡, 구봉서의 이름이 맨 처음에 등장하고 이 두 명을 중심으로 오프닝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https://youtu.be/CxMGWjLKOYA|1969년 당시 웃으면 복이와요 오프닝 링크]]
         사실상 말이 트로이카지 사실상 구봉서, 배삼룡의 인기가 조금 식어갈 시기에 서영춘이 원톱급으로 발돋움한 시기가 맞물렸으며 사실상 당시를 보면 완전한 트로이카 체제보다는 구봉서, 배삼룡 - 서영춘으로 이어진 세대교체로 봐도 좋을 정도였다.[* 정확히는 악극단 시절부터 70년대 초까진 구봉서, 배삼룡이 우위였고 70년대 중후반 경부터 서영춘의 우위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다만 서영춘 역시 악극단 시절부터 최고의 톱스타였으며 구봉서, 배삼룡 역시 70년대 중후반에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렇듯 전성기 시절 3명이 팽팽하게 인기를 가져갔으며 트로이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다.] 즉, 시대적으로 약간의 개인차가 있었을 뿐 누구 한 명이 어느 특정 시대에 완전히 압도했던 상황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이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던 시기가 한동안 지속되던 때에 [[이주일|다들 알다시피 어느 얼굴천재가 홀연히 나타나 모든것을 뒤바꿔 버렸으니....]]
  • 이경실 . . . . 3회 일치
         과거 MBC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도루묵 여사' 코너로 대인기를 끄는 등 전성기를 보내면서 '''1994 MBC 방송대상 코미디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코미디계에서 일컫기를 '''여성의 몸으로 정상을 차지해본 3명'''중 하나. 1대가 [[김미화]], 2대가 이경실, 3대가 [[이영자]]다. 이 시기의 영광 덕에 [[응답하라 1994]]에 성동일의 첫사랑이자 당대 최고의 톱스타로 특별출연을 하기도 한다.
         [[시트콤]] 전성기의 서막을 열었던 인기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는 [[노처녀]] 여교수 역할을 맡아 연기력도 보여주었다.
         현재 이미 전성기를 지난 나이임에도 순간적인 애드립을 치는 능력은 동나이대의 개그우먼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젊은 개그맨들을 능가한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3회 일치
         '''[[성기|자신의]] [[노출|큰 잘못]]으로 인해 [[금지어]]로 전락한 스트리머'''
         === 트위치 방송 내 성기 노출 사건 ===
         [[푸워]] 방송에서 성기를 노출함으로 인해 푸워는 [[2월 28일]] 트위치에서 '''즉시 영구정지 처분'''을 받은 이례적인 사례가 탄생했다. 결국 뉴스에 보도되는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사과는 했으나...
  • 이재황(배우) . . . . 3회 일치
         1999년 3월 28일 SBS 일요드라마《[[카이스트(드라마)|카이스트]]》로 데뷔했으며 시트콤 단역으로 활동하며 루키로 주목을 받다가 2000년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바람둥이 '권재황' 역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아직도 권재황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유행어가 '''나 권재황이야'''이다 -- 그렇게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 2002년 10월 31일에 군입대, 연예병사로 꾸준히 군 홍보드라마를 찍다가 2004년 11월 23일에 제대했다.
         2008년에는 막장드라마의 신바람을 이르킨 《[[아내의 유혹]]》에서 [[민건우]] 역을 맡아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광고도 찍었다. 이젠 권재황보다 민건우로 더 많이 불린다.-- 끝까지 자기 이름으로는 안 불린다.-- 하지만 착한 역할인데도 여주인공 방해한다고 욕먹고, 여주인공 버리고 결혼했다고 욕먹고,
  • 이정재(영화배우) . . . . 3회 일치
         === 이른 전성기 ===
         이후 본인 인생에 [[모래시계]]와 더불어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 될 《[[도둑들]]》, 《[[신세계(영화)|신세계]]》로 연기, 인기, 흥행 면에서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퇴물급으로 전락하며 CF나 근근히 찍어가던 한물간 청춘 스타에서 압도적인 분위기와 중후한 매력을 지닌 폭발력있는 중년 연기자로 정착했다.
          * 배우 생활이 길고 역대급 인기를 얻어 본 만큼 안찍어 본 CF가 없을 정도로 다수의 CF를 찍었다. 특히 2013년 관상 이후 수많은 CF를 촬영하여 제2의 전성기가 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해진 것은 아무래도 [[버거킹]] 15 CF 먹방인데, 표정과 음미하는 모습이 마치 [[고독한 미식가]]를 떠오르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MDZGIuKG-A|광고 영상]] 관상과 엮여 "내가 왕이 될 상인가?" / "버거킹이 되실 상입니다" 같은 드립이 나돌기도 했다.
  • 일곱개의 대죄/179화 . . . . 3회 일치
          * 백몽의 숲 남동쪽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성기사를 사냥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 쫓기던 성기사는 벌써 백몽의 숲까지 달아나서 추적이 불가능해졌다. 숲에는 "엄청난 괴물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주민들이 꺼려하는 곳.
          * 성기사 고르기우스는 새벽에 주민들이 작당하는 것을 엿듣고 운 좋게 몸을 빼낼 수 있었다.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3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81화. '''성기사장 자라트라스'''
          * 속세에 미련이 있거나 강한 증오가 있는 자를 살려내는 주술인데, 호크가 "혹시 2대 성기사장에게 복수할 셈이냐"고 묻자 "그래"하고 호러블한 얼굴로 대답한다.
          * 은근히 얼빠지고 장난기가 많은 성미인데 특히 성기사장 살인사건의 진실이 "피쉬파이에 낚인" 한심한 것이었다는건 충격적이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3회 일치
          * 젤드리스와 드레퓌스(프라우드린)는 다른 곳에서 리오네스 왕국의 성기사들을 상대하고 있다.
          * 성기사들은 열세라고 판단해서 후퇴하는데, 어쩐지 등을 돌리는 순간 홀린 것처럼 젤드리스를 경애하기 시작한다.
          * 일곱개의 대죄와 성기사들은 그 조차도 십계엔 안 되는 거냐고 우려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3회 일치
          * 성기사 일행을 압박하는 드레퓌스. 제리코가 지키고 있던 대피공간에도 마신족이 침투한다
          * 성기사들의 퇴로를 막은 드레퓌스.
          * 호크 엄마가 엄청난 전투력을 과시. 보통 성기사들이 마신족 하나를 치우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데, 호크 엄마는 그냥 쓸어버린다.
  • 임수정(탤런트) . . . . 3회 일치
         역시 오디션을 통해서[* 이 [[영화]]의 감독이 [[DVD]]에서 당시 오디션이 경쟁이 치열했고 로비까지 있었지만 공정하게 심사를 했다고 말한다.] [[2002년]] 《피아노 치는 대통령》 으로 영화에 대통령([[안성기]] 분)의 딸 역으로 첫 데뷔를 하였으나 영화 자체가 평가가 안좋았다. 대통령으로 나온 [[안성기]]의 안정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겨울연가]]》로 당시 잘 나가던 [[최지우]]의 연기 문제와 비현실적인 내용이 문제였다. 임수정의 역할은 반항아인데, 얼굴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얼굴과 코디가 《학교4》의 범생역할 그대로...] 연기력도 부족해서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최지우]]의 연기가 워낙 가관이라 연기 못 한다는 말은 안 들었다는 건 자랑~~ 여담으로 여기서 첫 흡연 장면이 나온다.[* 임수정은 작품의 대부분에서 흡연을 하고, 본인이 죽거나 상대배우가 죽는다. 이건 동물도 예외없다.;;]
         그녀가 운이 좋은건지 파트너가 운이 좋은건지 남자 파트너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공유(배우)|공유]](학교4,김종욱 찾기), [[주진모(1974)|주진모]](카페라떼 cf), [[안성기]](피아노 치는 대통령), [[김래원]](...ing), [[소지섭]]([[미안하다 사랑한다]]), [[정우성]](새드무비,맥심 cf), [[비(연예인)|정지훈]](싸이보그지만 괜찮아), [[황정민]](행복), [[강동원(배우)|강동원]], [[김윤석]](둘 다 전우치), [[현빈]](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심지어 잘생긴 [[말(동물)|말]][* 영화 《각설탕》에 나온 말 천둥을 이른다. 이 말은 2007년에 산통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실은 암컷.]까지도.(...)
  • 최지우(영화배우) . . . . 3회 일치
         [[올가미(영화)|올가미]]가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1996년에 개봉하여 똥폼만 잡고 끝난 '귀천도'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기로 하였으나, 건강문제로 인하여 도중 하차한다. ] 흥행은 못했지만 나름 호연과 더불어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문제는 1997년 <올가미> 출연 이후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였으나, '''흥행작이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출연했지만, 일단 이 영화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비중이 워낙 큰 데다 [[장동건]]이 조연으로 출연했기 때문에 아무도 최지우가 나온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2002년 [[안성기]]와 함께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 출연하였으나 흥행 면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4년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 출연, 파격적인 노출신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지만 영화 흥행은 또다시 실패. 2006년 <연리지>에 출연하였지만 영화 자체도 기억되지 못한다. 2009년 <[[여배우들]]>에서 본인의 역으로 출연하였지만, 뭐 이런 영화가 그렇듯 흥행은 그다지...(...) 이쯤 되면 영화는 '부도수표'라는 말이 어울릴 듯.
         그 외에도 [[안성기]], [[류시원]], [[권상우]], [[유지태]], [[안재욱]] 등과 투탑으로 출연하였고, 에어시티에서 같이 출연했던 [[이진욱]]과는 연인관계로도 발전하였으나 결별하였다. <지고는 못살아>에서는 [[윤상현(배우)|윤상현]]과 호흡을 맞추었다. 역시 히로인 of 히로인.
  • 하정우(영화감독) . . . . 3회 일치
         || 하정우[br](2010) || → ||<#FFFFA1> '''하정우[br](2011)''' || → || [[안성기]][br](2012) ||
         || [[안성기]][br](2012) || → ||<#FFFFA1> '''하정우[br](2013)''' || → || [[설경구]][br](2014) ||
         ||<#878787> '''{{{#EEE156 신체}}}''' ||<(> 184cm[* 누구나 다 아는 상당한 머리 크기 때문에 키가 작아보여 논란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장신으로 유명한 [[강동원(배우)|강동원]], [[조인성]]하고 비슷하며 심지어 이들보다 크다는 소문도 있다.][* 하정우의 아버지인 김용건이 70대임에도 178이다. 유전자의 위대함일지도...그리고 사람이 나이를먹으면 키가준다는논리까지합하면.. 전성기시절 김용건의 키는 180초중반이었을지도 모른다.], 75kg, [[A형]], 295~300mm ||
  • 황정민(남자배우) . . . . 3회 일치
         ||<width=30%><#E0FFFF><:> ''' 제25회 [br] ([[2004년]]) ''' ||<#E0FFFF><:> {{{+1 → }}} ||<width=30%><#E0FFFF><:> ''' 제26회 [br] ([[2005년]]) ''' ||<#E0FFFF><:> {{{+1 → }}} ||<width=30%><#E0FFFF><:> ''' 제27회 ''' [* 하나의 작품을 한 두 배우가 공동수상을 한 유일한 경우. [[박중훈|두]] [[안성기|사람]]은 1994년 대종상에서도 투캅스로 함께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이 있다.] [br] ''' ([[2006년]]) ''' ||
         ||<:> [[장동건]] [br] ([[태극기 휘날리며]]) ||<:> {{{+1 → }}} ||<:> '''황정민[br]([[너는 내 운명(영화)|너는 내 운명]])'''||<:> {{{+1 → }}} ||<:> [[안성기]], [[박중훈]][* 둘 다 2회차.][br]([[라디오 스타(영화)|라디오 스타]]) ||
         [[송강호]]에 앞서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성기노출을 감행한 [[용자]]이며, [[아수라(영화)|아수라]]에서도 노출을 감행하면서 연기를 위해서 어떠한 장면이라도 연기할 수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들을 낳으면서 영화 시나리오에 아동 학대나, 베드신 등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도 거절한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내 문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고성국 . . . . 2회 일치
         당시 검찰의 중간수사발표에 따르면, 고성국 등 4명의 이회창 비선참모조직은 1997년 11월 초에 서울 평창동의 한 사무실에서의 회의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전달할 보고서에 대해 논의하다가, 총풍 사건 3인방 중 하나인 한성기로부터 이회창의 친동생 [[이회성]]을 통해 이 보고서를 이회창에게 직보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이후 한성기는 비선참모조직이 작성한 총 18건의 보고서를 이회창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고성국과 총풍 사건 사이에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중간수사발표를 내놓았다.
  • 김동욱(배우) . . . . 2회 일치
         사실 신과함께 이전까진 작품이 들어오질 않아 집에서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481887|전전긍긍했고]]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4076074|배우의 길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김용화 감독에게 제의를 받았다. 물론 제작자들, 투자자들의 반대가 있는 듯 했으나 김용화 감독은 이미 일찌감치 수홍 역으로 낙점한 상태라서 김동욱을 투입시키기 위해 오로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본인도 마지막 기회하고 생각하고 승낙했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는 대성공했다. --[[말년병장]] 포스 뿜뿜-- 김동욱에게는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3006805|새로운 전성기가 왔고]] 김용화 감독도 재기에 성공한 동시에 본인의 [[덱스터 스튜디오|회사]]의 기술력을 더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서로 윈윈하게 된 셈.
          * 아들과 친구처럼 영화를 보러 다니는 차태현이 부럽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나의 바람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 [[안성기]]를 존경했다고.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 과정이 매우 즐거웠기 때문에 이 때 출연했던 배우들과 함께 다시 한번 작품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그 바람을 이뤘다~~ [* [[손 the guest]] [[김재욱(배우)]] ]
  • 김영철(배우) . . . . 2회 일치
         2000년대에 들어서 맞이한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할은 [[태조 왕건]]의 [[궁예(태조 왕건)|궁예]]와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이 두 역할은 김영철의 대명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연기에서 엄청난 포스를 뿜어냈다.[* 물론 최고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했던 궁예와는 다르게 김두한 역을 맡았을때는 기존의 인기요소였던 격투, 활극에서 정치드라마로 바뀌는 바람에 1부보다 떨어지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였는데 몇년 후 [[고자라니]]가 발굴되어 현재는 이쪽 김두한이 안재모 김두한보다 더 인기가 좋다.]
         || 2015년 || [[드라마시티|KBS 드라마 스페셜]] [br]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 KBS2 || 조성기 역 ||
  • 로베르 기스카르 . . . . 2회 일치
         ''' 중세 성기 노르만족들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두명의 정복자중 하나'''[* 또다른 한명은 노르망디의 '정복왕'윌리엄]
  • 마~앙 . . . . 2회 일치
         이 치~잉은 남성기(칭코,ちんこ)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므로, 여기에서 대비하여 여성기(망코,まんこ )에서 따와서 만들어진 말이 마~앙(웃음)이 된다. 대략 2014년 쯤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앙(웃음) . . . . 2회 일치
         이 치~잉은 남성기(칭코,ちんこ)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므로, 여기에서 대비하여 여성기(망코,まんこ )에서 따와서 만들어진 말이 마~앙(웃음)이 된다. 대략 2014년 쯤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서수민 . . . . 2회 일치
         하지만 [[시청률]] 추이로만 보면 서수민이 PD를 맡은 기간의 순위가 개콘의 최전성기인 2003~2004년을 제외한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고,[* 실제 시청률은 조금 높아진 수준이지만 그 동안 [[지상파]] 시청률이 하락하다 보니 시청률 순위만으로는 전성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CP를 맡은 이후 [[해피 선데이]]도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명한]] PD처럼 매니악한 팬들 성향에 맞지 않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실, 서수민이 2012년 11월에 승진할 수 있었던 근원이 개그 콘서트 덕분이기도 했고.--그리고 말아먹은 근원까지 제공해버렸지..--
  • 승리(빅뱅) . . . . 2회 일치
         데뷔 초부터 형들과 예능에 동반출연하면서 "철없는 막내", "왈가닥 말썽꾸러기" 느낌의 얄미운 막내 이미지가 강하였으나 성인이 되고부터는 조금 더 성숙하고 섹시한 느낌을 득템, 최근에는 형들의 부재에 활발한 단독예능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으며 승츠비(승리 + 개츠비)라는 별명이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유명할 정도로 젊고 돈 많은, 유쾌하고 씀씀이 좋은 사업가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영앤리치 큐트앤핸썸~~ 가요계에서 단연 독보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로, 초반의 비호감 이미지를 완전히 극복하고 성실한 호감형 이미지로 탈바꿈한 성공적인 케이스이다.
         그러나 다른 형들에 묻혀서 그렇지 승리의 보컬도 꽤 뛰어나다.--두각을 보이는 노래의 스타일 자체가 형들과 많이 다르다-- '눈물뿐인 바보' 에서 고음도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TqUF3Hco0|영상]] [[태양(빅뱅)|태양]]과 [[대성(빅뱅)|대성]]의 진하고 바디감 있는 보이스가 노래의 중심을 잡아주고 킬링파트를 담당한다면 승리는 주로 화음이나 백코러스[* [[https://www.youtube.com/watch?v=uFtM4m_D_bY|영상]]]를 담당해 노래에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변성기 전이나 후 둘 다 타고난 [[미성]]으로 팝발라드가 어울리는 편이다. 태양은 R&B / Soul, 대성은 Pop / Rock이 잘 맞는다면 승리는 어쿠스틱한 부드러운 장르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이다. 미성이므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강렬한-- 빅뱅 곡들에서는 승리가 주로 브릿지 부분을 부르면서 승리 특유의 맑으면서도 섹시한 음색을 세련되게 살린다.--그래서 파트가...--
  • 심현섭(코미디언) . . . . 2회 일치
         === 전성기 ===
         그러다가 그 화려한 전성기 시절, [[2002년]] [[16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으나 이회창 후보와 함깨 고배를 마셨고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던 코미디 대상에서도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에게 대상을 넘겨줘야 했다.[* 그 자신의 주장으로는 12월 17일 이미 수상이 통보되었으나 정작 발표 때는 결과가 뒤집혔다고 한다. 이 당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매니저와 담당자간의 오해로 밝혀져 심현섭이 사과했다.][* 그 전에도 모 프로그램에서 말실수를 심하게 하여 공영방송에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 안기효 . . . . 2회 일치
         투신 [[박성준]]에게 천적 관계[* 사실 [[박성준]]에게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프로토스]]는 '''아무도 없다.''' [[박성준]]은 '''대 [[프로토스]]전 5전 3선승제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걸 넘어서, 5전제를 치를 때 2패째를 허용한 적도 없다.''' 전성기가 한참이나 지났다고 평가 받던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도 당시에 잘나갔던 [[도재욱]]을 상대로 3:0 떡실신을 먹였을 정도. 전무후무한 저그전 최강이라던 [[김택용]]에게도 3대3의 상대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박성준을 상대로 전적이 앞서는 프로토스는 비공식 포함 7승6패의 [[송병구]] '''뿐.''' 이도 호각세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공식 전적만 볼 때는 오히려 2승 5패로 송병구가 [[김준영]]만큼 고배를 마신 저그가 박성준이다. 안기효가 유난히 자주 만났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즉, '''그냥 재수없는 거다.'''(...)]이며, 두 번의 16강, 두 번의 8강, 그리고 [[WCG]] 대표선발전에서 에서 고배를 마셨으며,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유명한 미니맵 [[관광]]을 당한다. 실은 안기효가 첫 온겜 [[스타리그]] 데뷔전 당시 꺾었던 상대가 다름아닌 전대회 우승자였던 [[박성준]]이었다. 리버+캐논으로 인한 조이기 라인으로 체면이 팍 깎인 [[박성준]]이 그 후 안기효만 보면 잡아먹으려 든다는 이야기.(...) 아무튼 안기효의 개인리그 상위 라운드 진출은 번번이 [[박성준]]에게 막혔다. 전략성을 감안하면 개인리그에서도 4강 한 번쯤은 노려볼 수 있는 선수였기에 매우 아쉬운 일.
         중반부 소수질럿, 드라군, 리버 올인이라는 전성기 시절 자주 보여줬다고 [[강민]]과 [[박용욱]]이 얘기해주는 깜짝 전략으로 [[김성대]]를 훅가게 할 줄 알았으나... OME급 컨트롤로 커세어와 리버를 헌납. 자신이 훅 갔다. ~~'''리버 : "아 ㅅㅂ 김씨 아니고 찹씨잖아 그런데 왜?!"'''~~
  • 야리만 . . . . 2회 일치
         만(まん)은 여성기를 뜻하는 만코(まんこ)의 준말이다.
         남성을 뜻하는 파생어로 야리친(ヤリチン)이 있다. 이쪽은 남성기를 뜻하는 친포(チンポ)나 친친(ちんちん), 오친친(おちんちん) 등의 결합으로 보인다.
  • 오승근 (가수) . . . . 2회 일치
         오승근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1968년]]에 17세의 나이로 홍순백과 함께 음악 그룹《투에이스(=금과 은)》를 결성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4곡을 발표했는데 《빗속에서 울리라》, 《그 얼굴》, 《비둘기집》, 《두 마음》이다. 그 중에서 《비둘기집》(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은 발표 당시 인기를 얻으며 [[1970년]]에 KBS 가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1971년]] 약 3년 간 같이 활동한 홍순백과 결별하고 잠시〈영에이스〉라는 그룹사운드에서 최이철과 활동하다 입대를 하였으며 [[1974년]]에 복귀하면서 임용재와 함께 그룹 《금과 은》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조금씩 [[트로트]] 느낌이 나는 《빗속을 둘이서》(김정호 작사/ 김정호 작곡)를 히트시키며 다시 인기가수로 등극하였다. 또한 옛노래 모음(Remake)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처녀 뱃사공》(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이 히트하여 MBC 10대 가수상, KBS 최우수 남자 가수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볐다. [[1979년]]에 해체될 때까지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중창부문을 독식하기도 하였다.
         사업에 전념하던 오승근은 지난 [[2001년]], 《있을 때 잘해》(이건우, 김정혜 작사/ 박현진 작곡)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복직하였다. 《있을 때 잘해》는 아이넷TV 성인가요 7주 연속 1위란 기록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오승근은 두번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곡은 모든 연령층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노래방 애창곡, 성인가요 애창곡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3년]]에 발표한 《장미꽃 한 송이》(하지영 작사/ 이호준 작곡)는 쉬운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중, 장년층들이 즐겨 부르는 곡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잘 될 거야》, 《사랑하지만》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다 최근 [[2012년]]에 발표한 《내 나이가 어때서》(박무부 작사/ 정기수 작곡)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곡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트로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12 상반기 트로트계 최대 히트곡으로 주목받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 대표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KBS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 많이 불렸던 참가곡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근 성인가요 메들리의 메인 타이틀로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2014년]]에는 [[홍진영]]이 리메이크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유동근(배우) . . . . 2회 일치
         특히 용의 눈물에서 유동근이 맡은 태종은 '''한국 사극 역사상 최고의 연기이자 최고의 캐릭터로 뽑힌다.''' 이때 유동근의 나이 한국 나이로 이제 막 40이 넘은 나이, 배우로서 전성기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인 나이에 '''한국 사극 역사에 나아가 연기 역사에 길이 남을 연기'''를 한 것이다. 당연히 연기대상은 Get Ya. 참고로 90년도에 출연한 사극 "파천무" 에서도 카리스마있는 수양대군(후에 세조)으로 분해 당해년도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키도.
         그리고 2002년에 그에게 다시 연기대상의 영광을 준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 [[흥선 대원군]] 역할을 맡았을 때 최고의 장면은 대신들에게 [[경복궁]] 증축의 필요를 역설했던 장면. 매우 조용조용 낮은 톤으로 영국 공사의 자금성 입성기를 들려주다가, [[조두순(문신)|조두순]]이 끼어들자 순간 "걸어서 가겠네, 걸어서 가겠네!"[* 당시 대본엔 '(큰 소리로)'라는 지문과 "걸어서 가겠네..."가 전부였다.]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 다시 조용한 톤으로 돌아가는데 면전이었으면 오줌이라도 찔끔 지릴 것 같다. [[정도전(드라마)|정도전]] 37회에서도 [[정몽주]]와 논쟁 중 '''"야 정몽주!!!"'''라고 내지르는 장면도 압권으로 [[네이버]] 추천검색에 올라올 정도였다. 유동근이란 배우의 힘을 알 수 있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이성계 계통, 간성, 유동근의 특징이 잘 어우러진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유승민(정치인) . . . . 2회 일치
         2015년 북한 목함지뢰도발 당시, 국방부의 '확성기 강화' 지침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해 놓고, 이제까지 한 게 확성기 재개한 것이냐"''' 며 미온적인 태도를 질타하였고, 사고 후 통일부에서 북한에 회담을 제안한 사태를 보고 '''"좀 정신 나간 짓 아니냐"'''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 은지원 . . . . 2회 일치
         대표적인 장기 현역 남자 아이돌[* 최연장자는 [[god]]의 [[박준형(god)|박준형]]이고, 여자 아이돌 최고참은 [[S.E.S.]]의 [[바다(가수)|바다]]이다.][* 활동 기간보다 해체 이후 재결합 이전까지의 공백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던 젝스키스를 장수 그룹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은지원 개인의 개별 연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이자 1세대 보이그룹 출신들 가운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 1997년 초에 데뷔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로, 맏형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서도 영향력과 비중이 높아 팀의 중심적인 멤버이다. 포지션은 [[Rap|랩]](메인래퍼)과 서브보컬을 맡고 있으며 노래/춤[* 고난이도 안무를 보여주진 않지만 춤선이 상당히 이쁘며 스타일리쉬한 춤실력을 갖고 있다.]/랩 삼박자가 평균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고, 멤버들중 가장 먼저 자작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에선 후렴구나 킬링파트 독창을 잘 소화하기에 젝스키스의 남성적인 이미지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세대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팀 내 인기 역시 수위를 다투었다.[* 팬들 사이에서 은지원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로는 '''까리함'''과 '''양아미(양아치+美)'''가 있다.] 리더 포지션 & 높은 인지도 & 걸출한 실력 그 이상으로 [[강성훈]]과 더불어 젝스키스의 핵심과도 같은 멤버. 해체 후에도 꾸준한 방송과 음반 활동으로 젝스키스를 회자시키며, 세월이 지나 재결합 후의 활동에도 멤버들과 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멤버이다. 그리고 젝스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1세대 아이돌 내에서도 '''정상급의 대중성과 인지도의 소유자'''로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 시절에도 은초딩의 모습은 있었지만, 신비주의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시키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해체 후 1박 2일 등의 예능을 통해 은초딩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젝키 해체 후에는 은각하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지만 젝키 재결합 후 예능에서 은초딩보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한 은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섭섭한 바보 어벤저스로 전락하곤 한다.]
          * 2003년 당시 은지원은 신촌에 실내 포장마차 점을 개업했다. 보통 개업을 하면 여기저기 동료 연예인들을 불러 포장마차를 꽉 채워야 홍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은지원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탓에 동료 연예인들이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다른 곳에서 전해 듣고 달려왔다. 그 중 [[이효리]]가 새벽에 제발로 찾아왔는데, 은지원은 이효리를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으니 가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종업원들이 "남들은 이효리 못 불러서 안달인데 그냥 보내면 어떡하냐"며 은지원을 혼냈다고 한다. "자리는 여분의 탁자로 만들면 된다"며 흥분하는 종업원들의 말에 은지원은 '왜 난리지'하는 표정으로 대답 없이 눈만 껌벅거렸다고 한다.[[http://news.joins.com/article/1804295|기사]][* 2003년 당시 이효리의 인기는 엄청났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엄청 대접해서 가게를 홍보하려 했을 것이다. 젝키 핑클의 대성기획 시절부터 친했으니 저랬을 수도 있겠다.]
  • 이선희 . . . . 2회 일치
         === 데뷔와 전성기 ===
         1990년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발매하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그리운 나라>, <왜 나만> 등이 히트했다. 5집《한바탕 웃음으로》의 수록곡 <한바탕 웃음으로>가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으로는 KBS 방송가요대상 6년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을 했다. 전성기 시절 이선희는 발매되는 앨범마다 대표곡 뿐만 아니라 앨범의 모든 노래가 히트하는 쾌거를 안았다.
  • 이홍렬(코미디언) . . . . 2회 일치
         1991년 한창 잘 나가던 방송 일을 뒤로 하고 일본으로 2년간 유학을 가서 화제가 되었다. 일본 유학 후 방송계로 복귀하여 전성기를 다시 열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홍렬쇼]]라는 [[토크쇼]]로 나름대로 토크쇼 MC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서세원쇼]]가 토크박스 하나에 의지한 것과 달리 다양한 코너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해 전성기에는 자타공인 최고 인기 토크쇼였지만 이홍렬 본인의 사정으로 100회를 채우고 그만뒀다가 2000년대 초에 다시 부활, 또 200회까지 채우고 막을 내렸다.[* 부활했을 당시에도 인기는 좋았다.] 프로그램 코너들 중에서는 특히 '참참참'이 유명세를 탔는데, 당시 유명 스타가 나와서 [[밤참]]을 만들면서 토크를 하는 방식이었다. 주재료는 [[라면]], [[만두]], [[참치]] 통조림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 맞아 맞아 참참참이라는 제목으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989|책]]까지 발매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이 책을 발견하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인근 도서관을 뒤져보자. 이때 게스트와 같이 했던 놀이 '참참참'을 전국에 유행시켰다. [[롯데월드]]에는 이 코너에서 만들었던 메뉴를 상품화해서 파는 참참참 레스토랑도 있었다. 특히 참참참은 당시 일본 버라이어티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숱하게 시도되었던 [[쿡방]]들이 우리나라 사정에 안 맞아 몽땅 망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장수했던 코너였다는 점도 특색이다.
  • 일곱개의 대죄/180화 . . . . 2회 일치
          * 죽은 걸로 알려졌던 전 성기사단장 자라트라스가 돼지의 모자를 찾아온다.
          * 그의 정체는 바로 전 성기사단장 자라트라스. 죽었다고 알려진 드레퓌스의 형이었다.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2회 일치
          * 다른 성기사들은 모두 따돌리나 핸드릭슨 만은 떨치지 못했다.
          * 전 성기사장 자라트라스 등장.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2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93화. '''각오의 성기사장'''
          * 드디어 부활한 드레퓌스. 프라우드린은 소멸당하는 듯 한데 대죄 이외의 성기사에게 당한 첫 케이스인듯.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2회 일치
          * 한동안 조용했던 리오네스 성에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하녀들이 절절매며 리오네스 왕가의 장녀 [[마가렛 리오네스]]를 쫓아다닌다. 하녀들이 지금 마가렛이 하려는 행동은 "[[바트라 리오네스|폐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고 설득하지만 마가렛은 "아버지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고 대꾸하며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보다 일전에 내린 명령에 대해 확인한다. 납치된 성기사 [[길선더]]의 수색과 구출. 그리고 그를 범인 마녀 [[비비안]]을 토벌하라는 명령이었다. 하녀들이 주저하며 밝힐 바로는 진전이 없다. 리오네스 왕국은 한 차례 위기를 넘겼으나 아직 십계 토벌이 완료되지 않았고 언제 재차 침공당할지 모르는 상황.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의 명령으로 현역 성기사들은 모두 성의 수비로 투입되어 도저히 차출할 병력이 없었다. 마가렛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장철 (1967년) . . . . 2회 일치
         |배우자 = [[성기영 (아나운서)|성기영]]
  • 전태규 . . . . 2회 일치
         [[1999년]] 하반기부터 프로게이머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1년]] 상반기 KOR에 입단하였다.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2002년]] 하반기부터 방송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쳐서는 양대 방송대회에서 4강, 결승까지 진출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프로토스로서 테란전, 저그전에 모두 강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같은 프로토스전에서는 매우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ref>방송경기에서 테란유저 나도현의 프로토스를 상대로 패한 적도 있다.</ref>. 전성기 시절에도 개인리그에서 프로토스에게 져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 전혜빈 . . . . 2회 일치
         === 제 2의 전성기 ===
         정글의 법칙에서 보여준 호감가는 모습으로 여러 드라마에 캐스팅되며 2000년대 후반 긴 암흑기를 보내던 전혜빈에게 '''제2의 전성기'''가 열린 셈. 실제로 2013년에는 [[KBS 2TV]]에서 방영하는 미니시리즈 [[직장의 신]]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 중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인 [[금빛나]]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2회 일치
         고등고시(제10회) 사법과 및 행정과에 합격하여 1962년부터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차관]]을,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사법연수원]] [[원장]] 등을 지냈다.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습 차원에서 [[김성기(1935)|김성기]]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법무부 장관|장관]]이 경질되자 후임 [[장관]]으로 임명되어 1988년 12월까지 역임하였다.
  • 최준석 . . . . 2회 일치
         최준석의 가장 큰 단점은 '''[[똥차(야구)|발이 엄청나게 느리다는 것]].''' 주자로써 평균은 커녕 압도적 꼴찌 수준의 주력을 자랑해서 타격으로 벌어놓은 점수의 반쯤은 베이스 러닝으로 날려먹기 마련이다. 게다가 빠른 타구속도 덕에 넓은 [[잠실 야구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구장에서 '''담장 맞추는 1루타''' 같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마디로 '''주루에서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타자다.''' 2017 시즌 종료 기준 통산 [[병살타]]도 162개로 은퇴선수까지 포함하면 10위, 현역선수 중에서는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통산 1위는 ~~당연히~~ [[홍성흔]]의 230개, 현역 1위는 [[정성훈]]의 211개.] 단순히 주루가 느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 대타 출장시나 경기후반에는 이 느린 발과 수비포지션이 없는 것 때문에 거의 반드시 [[대주자]]나 [[대수비]]를 대동해야 하는데, 보통 대수비를 겸하는 대주자까지 2명, 어쩌다 수틀리면 대주자 대수비 따로 해서 3명까지 한번에 쓰게 된다. 조원우 감독이 최준석의 기용을 꺼리고 결국 FA에서 잡지 않은 데에는 단순히 발이 느려서 점수 덜 먹는다는 것이나 병살 잘 치는 생산성 문제도 있지만 이 로스터 낭비 문제가 더 크다. 알다시피 프로야구 로스터는 매우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최준석 때문에 좌완이나 사이드 원포인트 혹은 패전조급 릴리프를 타팀보다 한명 덜 써야 한다고 하면 확 와 닿을 것이다. 최준석의 타석에서의 생산성이야 전성기 때는 그걸 감안하고도 쓸 만큼 좋았고 노쇠화가 진행된 지금도 꽤 좋은 편이지만 릴리프 한명 덜 쓰는 단점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특급까진 아닌지라.
         스타팅으로 쓰겠다면야 최소한 딱 한 타석을 위해 선수 3명 투입하는 대참사는 피할 수 있고 실제로 여태까지는 주로 스타팅멤버로 썼고, 또한 전성기 최준석의 방망이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최준석은 해가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 노쇠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앞으로는 백업 내지는 대타요원으로서 주로 기용될 것인데, 백업요원에게 이런 로스터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게 다가온다.
  • 츠츠모타세 . . . . 2회 일치
         무로마치 시대의 츠츠모타세(筒持たせ)에서, 츠츠(筒)는 [[통]]이라는 뜻인데, 남성기나 여성기를 뜻하는 은어라는 설도 있으나, 본래는 도박 용어로서 [[주사위]] 도박에 사용되는 통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츠츠모타세(筒持たせ) 역시 도박 용어로서, "속임수를 숨긴, 세공을 가한 통을 쓴다"는 의미였다고 여겨진다.
  • 하현우 . . . . 2회 일치
         상당히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아픈 기억이 많아서인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매우 내성적이어서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통해 가슴에 맺혀있는 아픈 일화를 몇 개 엿볼 수 있는데, 하현우 어머니께서 반에 떡을 돌리시고 며칠 뒤에 같은 반의 부잣집 애가 비꼬면서 [[피자]]를 반에 돌리며 한 조각을 줬다든지, 풍물동아리에서 선생이 하현우의 장구를 빼앗아서 다른 애에게 줬다든지 하는 사건들이다.] 덕분에 목소리를 낼 일이 없어서 변성기를 무사히 넘기고 지금의 카랑카랑한 고음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러니 변성기인 친구들은 우리 콘서트 오지 말라는 말도 농담 삼아 [[https://www.youtube.com/watch?v=uJ5QiNtozmo|인터뷰]]에서 했었다. 그는 자신의 사춘기를 패배감, 무력감, 눈물 투성이의 시절로 기억한다. 이러한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아상은 사실 사춘기를 지나서도 하현우에게 꾸준히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고 자연히 국카스텐의 음악 세계에서, 특히 정규 앨범 1집에서 중요한 테마를 이룬다.
  • 한혜숙(배우) . . . . 2회 일치
         원래는 MBC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1971년]] KBS 주연급 탤런트 모집에 당선되어 [[하명중]]과 공동주연한 드라마 '꿈나무'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5년에 방영된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TBC에는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로 대표되는 2세대 트로이카가, MBC에는 [[양정화(배우)|양정화]]와 [[김자옥]][* 이후 [[김영란(배우)|김영란]].]이 있었다면 [[KBS]]에는 한혜숙이 있다할 정도로 KBS 대표 탤런트로 활동하였으며, 1979년 KBS 대하 드라마 '[[토지#s-7.1|토지]]'에서 제1대 [[최서희]] 역할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그 후 1986년 ~ 1987년 KBS 대하 드라마 '[[노다지#s-6|노다지]]'에서 최실단과 최성희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드라마]] 속에서 일제시대 엘리트 여대생이었으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비극적 인생을 살게 되는 연기를 하였다.]
         [[김영애]], [[김자옥]] 등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비교해 영화 출연이 드문 것은 물론 흥행작이 없는 것도 아쉽다. 물론 한혜숙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영화]]가 사양길에 들고 '호스티스 영화'들이 생기면서 '벗기기 경쟁'이 과열했을 때이니 직선적이고 도도한 성격인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듯.[* 실제로 호스티스 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 한혜숙도 영화에 출연했는데 호스티스물은 단 1편도 없었고, '[[족보(영화)|족보]]', '[[최후의 증인]]'과 같은 작품성이 진한 작품들에 출연했었다. ~~물론 흥행은...~~ 이후 1987년, 곽지균 감독의 '두 여자의 집'에 출연했을 때 [[19금]]이긴 했지만, 노출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2세대 트로이카나 김자옥, [[김영란(배우)|김영란]] 등 당대 톱탤런트들도 호스티스 영화와 같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했지만, 한혜숙과 같이 '벗기기'에 거부감이 들어 전성기 시절 전혀 영화출연을 하지 않은 스타가 있었는데, [[이경진]]이다. 이쪽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은 물론 아예 영화 자체에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김자옥]]의 경우에는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2세대 트로이카]]와 맞먹을 정도로 수많은 흥행작을 내었고, [[김영애]]는 김자옥만큼은 아니더라도 늦게나마 '[[빙점 81]]' 등의 흥행작을 냈지만 한혜숙은 그렇지가 않다.
  • 현이와 덕이 . . . . 2회 일치
         === 1985-87 : 현이와 덕이 재결성, 솔로 복귀와 제 2의 전성기 ===
         1986년 5월 장덕은 훗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또 그녀가 작곡한 가장 훌륭한 곡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는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모습처럼>을 작곡, 동료가수인 [[이은하]]에게 주어 빅히트를 안겨준다. 그리고 6월 오빠 장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달랐던 장덕은 솔로로서의 욕심으로 인해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타이틀곡 <님 떠난 후>를 비롯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사랑해줘요>, <소외> 등이 수록된 솔로 정규 3집 《[[님 떠난 후]]》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포크뮤직]]에 [[디스코]]가 섞인 타이틀곡 <[[님 떠난 후]]>가 [[KBS]] [[가요톱10]]에서 5주(1987년 2월 18일 ~ 1987년 3월 18일) 연속 1위를 차지,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MBC 라디오 인기가요, KBS 2FM 인기가요 광장,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뮤직박스(도서출판), 전국 DJ 연합회 등 각종 인기 순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된다. 1986~87년 장덕은 제 2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인정받았다.
  • 홍경인 . . . . 2회 일치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 홍학표(배우) . . . . 2회 일치
         == 전성기 및 연기활동 ==
         전성기에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최진실]]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가족을 잃은듯한 슬픔을 느꼈고, 5일동안 아무일도 못할 정도로 충격에 빠질 정도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1회 일치
         >전함은 바다의 여왕입니다. 이들은 장거리에서 적 주력함과 전투를 벌여 격침시키기 위해 설계된 초대형 해상 포대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항공기와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취약합니다. 또한 항공모함의 발달은 이들의 전성기를 시한부로 만들었습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영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식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 NEC 코퍼레이션 . . . . 1회 일치
         1995년 10월에 [[NEC]]에서 소프트웨어 관련 부문이 분리되어 NEC인터채널 주식회사로 창립됐다. 2004년 3월에 NEC가 보유하던 주식의 대부분이 양도되어 2004년 7월 1일에 '주식회사 인터채널'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이 회사 전성기는 NEC인터채널 시대로 그냥 '인터채널'로 하면 도무지 적을 정보가 없으니 이걸로 쓰자.
  • 강동우 . . . . 1회 일치
         || 2009 ||<|5> [[한화 이글스|한화]] || 128 || 506 || .302[br][* 전성기를 완전히 넘겼다고 평가받은 시점에 거의 모든 지표에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강동우가 부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직전 시즌 KIA에서의 성적과 비교하면 더욱 놀라울 따름.] || '''153'''[br](5위) || 30 || 2 || 10 || 48 || 88 || 27 || 70 || .429 || .384 ||
  • 거미(가수) . . . . 1회 일치
          * 위에서 말한 것처럼 휘성과 인연이 깊은 편인데, 공교롭게도 목소리의 주파수를 낮추면 '''휘성과 목소리가 같아진다! 역도 성립한다.''' 전성기 시절의 [[스펀지(KBS)|스펀지]]를 통해 증명된 내용.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 전성기 ===
  • 곤조야키 . . . . 1회 일치
          * 트위터에서 실수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남성기에 해버렸다(…)는 사람이 있다.[[https://togetter.com/li/979577 (참조)]]
  • 구승빈 . . . . 1회 일치
         '''하이퍼리스크 하이퍼캐리형 원거리딜러'''[* 세체원 후보들인 프레이, 피글렛, 뱅, 데프트, 우지 등등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독보적인 킬 캐치능력이 강점인 선수다. 물론 임프의 전성기 시절인 2013~14 시즌은 원딜 오브 레전드, 몰왕검 오브 레전드라 불릴 정도로 원딜이 현 메타보다 비교적 쉽게 활약할 수 있던 환경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 권혁 . . . . 1회 일치
         7월 24일 경기에서도 등판하였는데, 2이닝동안 전성기 수준의 피칭을 보여 삼팬들을 설레게 하였다. 유일하게 맞은 안타 하나가 [[전준우]]의 홈런인 것도 고무적, 그리고 7회초, 메가라이온즈포가 터지며 시즌 2승째를 챙겼다. 팬들은 이러한 활약에 후반기 삼성 불펜의 핵으로 재강림하기를 기대하는 중.
  • 길은혜 . . . . 1회 일치
         * [[2015년]] 《[[연애의 맛]]》 ... 성기 옛애인 역
  • 김미숙(1959) . . . . 1회 일치
         그리고 2009년 연기 인생 처음의 악역이라 일컫는 <[[찬란한 유산]]>으로 드라마에서의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족애와 성장드라마를 짬뽕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기며 큰 히트를 기록한다. 여기서 김미숙은 '''"정말 악역을 안 할 것 같은 배우"'''의 얼굴로, 징그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백성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 언제나 선하고 호감가는 역할만 하던 김미숙에게는 처음으로 욕을 먹는 경험(?)을 하게 한 작품이라고.[* 신선한 악역 연기에 찬사를 보내자 김미숙은 인터뷰에서 "다들 내가 이런 역할 못할 줄 알았나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 김민기(가수) . . . . 1회 일치
         ===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다 ===
  • 김민희(1982) . . . . 1회 일치
         '''뛰어난 스타성과 나날이 발전하는 연기력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려는 찰나, [[간통|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국내에서 여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실추된 인물'''[* 해외는 제외. 문화의 특성상 해외 언론에서는 김민희의 간통 사실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적인 상까지 안겨주었다.]
  • 김상엽 (야구인) . . . . 1회 일치
         [[1993년]] 시즌 170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올랐으며, [[김시진]]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2번째로 기록한 탈삼진 1위였다. [[1995년]]에는 17승을 거둬 199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상대적으로 투수진이 열악하였던 소속 팀 [[삼성 라이온즈]]의 특성상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했으며, 어깨 및 허리 부상으로 지속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1998년]] 이후에는 전력에서 이탈했다.
  • 김석훈(탤런트) . . . . 1회 일치
         본격적인 영상영역활동 중 하나인 TV출연은 정세호PD와 국립극단에서의 강력한 권고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국립극단에서는 극단의 인지도 향상과 활력을 위해, 방송국에서는 드라마에서의 국면 전환과 참신한 인재발굴을 위한다는 점이 서로 맞아들어간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명의 극단배우에서 데뷔작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한순간에 스타가 되었다.[* 그것도 홍길동이다. 소재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드라마다. 거기에 무명은 둘째치고 TV 경력이 없는 배우가 주연을 맡은 셈이다. 하지만 홍길동은 당시 신인이었던 김석훈이 맡았던 첫 작품임이었지만, 캐릭터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았다. SBS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에 신선한 배우를 캐스팅한 사례가 또 있었으니 바로 [[임꺽정]].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32세 [[정흥채]]는 브라운관 데뷔작을 타이틀롤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당시 최고의 인기배우 [[김희선]] 주연 드라마 [[토마토(드라마)|토마토]]에서 김희선 상대역인 남자 주연배우가 되었으니... 그리고 둘 다 최고의 시청률(50%를 넘겼다!)을 얻으며 전성기를 구가한다.'''단 1년 만에.''' 엄청난 향상이다. 김희선이나 김석훈이나 당시 비주얼 면에서도 최고를 달렸던 시기.[* 지금도 두 배우는 비주얼이 변함없이 최고다.]
  • 김수용(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마리텔을 이후 많은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하는데 가는 곳마다 불법체류자드립, 강제자숙, 카타르이민포기, 리니지사기, 세관에서 알카에다드립, 밀수범 드립 등 각종 안습한 이야기들을 꺼내 매회 레전드를 만들어 내고있다. 게다가 게임에도 박식하고 채팅에도 능하다보니 마리텔을 기점으로 젊은층에게도 말이 통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수드래곤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얻고있다. 게다가 해피투게더에도 고정이 되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처음 활동한 것은 20세기인데 그 세대에게는 인기가 없고 오히려 10대 20대들에게 인기가 많다. 동덕여대에 촬영을 갔는데 장년층은 김수용을 못 알아봤으나 오히려 대학생들이 '헐 수드래곤' 하면서 엄청나게 환대를 해주었다.
  • 김승대 . . . . 1회 일치
         그나마 징계가 풀리고 나서는 바로 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 시절의 폼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2년 계약이기 때문에 2017 시즌 후 심동운의 입대가 결정되고 양동현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2018 시즌에는 포항 공격진의 한 축을 확실히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복귀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10월 28일 대구전 홈경기에서 룰리냐의 만회골을 돕는 도움을 기록하였고, 11월 18일 광주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아쉬우나 김승대의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확인한 반 년이었고 손준호와의 호흡이 잘 맞음을 과시해 내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손준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면서 김병수의 제자들 중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준호야 가지마~~
  • 김연경(배구선수) . . . . 1회 일치
         어쨌든 이런 사정을 접어두고라도, 김연경은 일본 프리미어리그에서까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으니 일본 리그의 감독들까지 '''일본에서조차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만들었다.[* 물론 당시 일본 여자배구에는 오야마 카나(大山加奈), 구리하라 메구미(栗原惠), 기무라 사오리(木村沙織) 등 대형 거포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야마는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구리하라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이후에 폼이 급격히 무너졌으며, 기무라는 이 둘보다는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기는 했지만, 2010년대 초반 들어서는 예전만도 못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여자 배구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좋은 케이스. 2009-10 시즌 초에 신종 독감으로 고생하더니 2010-11 시즌 초에 역시 독감으로 몇 경기 결장한 바 있다. 그래서 팬들의 가슴을 졸이기도. 하지만 결국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JT 마블러스의 시즌 우승을 또 한 번 이끌어 냈다.[* 2011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 V리그는 잔여경기에 상관없이 시즌을 강제 종료했다. 이로인해 정규 리그 최종 성적이 시즌 통합 성적으로 인정되어 정규 시즌 1위였던 JT 마블러스와 사카이 블레이저스가 2010-11 시즌 우승팀이 됐다.]
  • 김윤아(1974) . . . . 1회 일치
         2001년 9월 영화 <[[봄날은 간다(영화)|봄날은 간다]]> OST인 동명의 곡 '봄날은 간다'로 솔로 데뷔, 11월 1집 <Shadow of Your Smile>을 발매한 이후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당시 3집의 타이틀곡 '매직 카펫 라이드'가 대박을 치며 자우림의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인데, 이를 두고 '김윤아도 성공하더니 자우림 버리고 해체하려나 보다'는 말들이 많았다. 물론 억측이었고, 이후 자우림과 솔로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김재박 . . . . 1회 일치
          *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구광역시]] 토박이이지만 딱 한 번 대구를 떠난 적이 있었다. 경운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경북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구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체가 작았던 김재박은 [[경북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서울에 있는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대광고등학교]] 자체는 건재하지만 야구부는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김준현(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2014년 12월을 끝으로 끝난 [[큰 세계]]를 마지막으로 개콘을 떠난 김준현은[* 다만 그 코너(큰 세계)를 끝으로 바로 떠나지는 않았었다. 한달 뒤(2015년 1월)에 [[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에서 유민상을 돕기 위해 잠시 나왔다. --하지만 유민상의 (김준현과) 닮았다는 말 때문에 (김준현이) 개[[빡]]쳐서 빡친 표정으로 나가 버리면서 끝에 안 좋게 끝난 게 좀 그렇긴 했지만...-- --게다가 [[사족]]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유장프는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소득도 남기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2015년]]이 가히 [[본인]]의 전성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수의 프로그램들에 출연하고 있다. [[SNL 코리아]], [[맛있는 녀석들]] 외에도 2015년 8월, 9월에만 비법, 3대천왕, 내 나이가 어때서 등 세 프로그램의 [[MC]]로 나설 정도. 반면 그가 떠난 개콘은 여러 논란들과 함께 [[시청률]] 두 자리가 무너지며 최악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돌아와요 김준현씨!--
  • 김진(배우) . . . . 1회 일치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에서 [[이제니]]와 엮이는 ~~지나가는~~ 단역으로 나오다가 크게 인기를 끌게 되어 일약 주연급으로 발탁되 전성기를 맞았다. 그렇다고 정말 생각없이 투입한 지나가던 단역이었는데 우연히 인기를 얻은 것은 절대 아니고 피디가 처음부터 레귤러 혹은 준레귤러로 생각해두고 투입했었다. 다만, 안녕맨으로 등장해서 반응이 좋으면 고정을 시킬려고 했던 거였다고. 초반에는 큰 반응이 없어서 레귤러까지 생각했던 배역을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PC통신 MBC게시판이 뒤집어 질 정도로 난리가 나는 바람에 무사히 레귤러로 안착했다. 당시엔 이제니와 마주치면 항상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어서 별명은 안녕맨. 레귤러로 합류하고 나선, 워낙 피부가 하얘서 당시 별명은 '[[밀가루]]'.
  • 김청(1962년 6월) . . . . 1회 일치
         [[1981년]] 미스 MBC 선발대회에서 준미스로 선발[* 당시 미스MBC로 뽑인 사람은 임지영인데, 다음해 캠페인성 드라마에 출연한 것 외에는 활동이 없다. 함께 준미스로 선발된 다른 한명은 바로 [[이휘향]]이다.]된 후, [[1982년]] [[문화방송|MBC]] 14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커리어 최전성기에는 배우 생활과 더불어 MC 활동으로도 유명했는데, 80년대를 주름잡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 대표적이다. 파트너는 [[사랑과 야망]]의 파트너 [[이덕화]].
  • 김효기 . . . . 1회 일치
         '''선수 인생 최대의 전성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1회 일치
          *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는 근래에 화제가 되었던 "히어로 인턴 제도"에 1학년들이 참여하는 방안에 대한 회의 결과를 알려준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우선 교장 [[네즈]]부터가 "하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 애초에 완전 기숙사제로 전환한 이유 자체가 "히어로 학생들을 육성기간 동안 보호"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을 인턴제도에 투입하는건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다.
  • 동군연합 . . . . 1회 일치
         ''' 근세 유럽국가들의 동군연합중 최강의 동군연합 ''' 스페인의 왕위계승자였던 카를로스1세가 오스트리아 대공에 오르면서 생겨난 동군연합. 당시 스페인은 신대륙의 금광+저지대의 미친 생산력에서 나오는 자금과 스페인+보헤미아+오스트리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나오던 국력을 통해 당시 유럽 최강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는 통치면적으로 보자면 '합스부르크 제국'의 최전성기였다. 다만, 당시 스페인의 왕이던 카를로스가 독일 쪽에 영 관심이 없어서(...) 연합은 1대만에 해체.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나뉘어진다.[* 다만, 플랑드르 지방은 스페인에게 갔다. 그리고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로 독립하게 된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1회 일치
          * 롬니아 제국 : 변방 소국 중 하나인 '롬니아 왕국'이 정복활동 끝에 서방 세계의 8할을 차지하면서 성립된 제국. 이름은 물론 지도부터가 로마제국의 전성기 판도를 연상시키는 모양.
  • 마니교 . . . . 1회 일치
         마니교는 일시적으로 위구르-중국에서 흥성하지만, 840년 위구르 인이 키르키즈 인의 공격을 받아 쇠퇴, 당나라에서도 마니교를 공격할 수 있게 되어 [[당무종]] 시기에 회창의 폐불로부터 2년 전인 843년 5월에는 반 마니교 탄압 칙령이 내려와, 마니교도는 머리를 깍고 처형하도록 하였다. 72명의 여성 성직자가 살해되고, 중국의 마니교는 다시 치명타를 받는다. 하지만 천산 지역으로 피한 위구르 인은 여전히 마니교를 숭상하여 서위구르 왕국에서 마니교는 다시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 마철준 . . . . 1회 일치
         발 기술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 사이드 풀백으로 불렸다. 군더더기 없는 크로스 능력과 간결한 드리블로 SK 유나이티드 시절 전성기를 보내왔으며, 팀의 준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다. 수비력에 있어서도 악착같은 수비를 잘 보여주며 평균 이상은 해준다는 평. 그러나 점차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수비력이 떨어지고 공격 가담 상황에서도 크게 힘을 못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1회 일치
         >맥스: 전성기 갱단 연기하는걸 정말 좋아하는구만?
  • 모던 워페어 시리즈 . . . . 1회 일치
         이 시리즈를 시작으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전성기를 찍었다. 그리고 빠르게 쇠퇴.
  • 몽키 D. 루피 . . . . 1회 일치
          * [[패트릭 레드필드]] - 원피스 언리미티드 월드 레드 한정. 처음 봤을 때도 딱 2번의 공격으로 루피, 조로, 상디를 떡실신시키고 죽이려고 하다 그냥 떠난다. 이후에 [[박쥐박쥐 열매]]를 먹어서 파워업하고 루피를 축구공 차듯 발로 뻥뻥 차고 다닌다. 하지만 루피의 수정펀치를 맞고 깨달은 것이 있는지 전성기의 육체를 포기하고 싸운 뒤 노환 때문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패배를 인정한다.
  • 문희(배우) . . . . 1회 일치
         이후 전성기 시절에는 [[윤정희(1944)|윤정희]]와 치열한 경쟁을 했는데 문희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낼 때쯤, 윤정희는 [[내시]]를 흥행시키며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여줬다. 윤정희는 선역에서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역을 소화했고, 남정임은 발랄한 배역을 맡았다. 그러나 문희는 주로 눈물연기를 중심으로 한 선역을 맡았다. 그러나 윤정희가 연기력을 중심으로 평가받은 것과 달리 문희는 외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런 점 때문에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후 이외의 흥행작으로는 내 몫까지 살아 주, 파도, [[벽속의 여자]], 형, 결혼 교실, 춘향전 등이 있다.
  • 바르나바 복음서 . . . . 1회 일치
         일설에는 저자는 이슬람교도 출신으로, 스페인의 종교재판 전성기에 기독교로 강제로 개종하게 되었던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바르나바 복음서는 기독교의 이슬람교 박해에서, 일종의 종교적 '저항문학'으로서 저술되었다는 것이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1회 일치
         이후 그는 건축사업에 착수하는데, 우선은 성 소피아 성당과 성 바울 성당을 보강했고, 이후 '네아 바실리카'라 불리는 그의 걸작품인 성당을 축조한다. 이 성당은 바실레이오스의 성 소피아 성당이라 할 수 있는데, 금을 입힌 돔은 도시밖에서도 보였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돔내부에는 예수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으며, 그외에 천사, 대천사, 순교자, 사도 등등이 묘사된 모자이크가 실내 곳곳을 장식했다. 성상 칸막에는 금은과 보석들이 장식도 있었고, 주제단은 '금보다 더 귀한 금속으로'장식되 있었다고 하며, 은을 입힌 닫집 기둥[* 중간을 오목하게 파서 장식한 기둥]이 성당주위를 둘렀다. 그외에도 그는 금고와 목욕탕, 트리클리니움[* 침상이 구비된 식당]을 많이 지었으며 칼케대문과 도시의 수많은 궁전들을 보수하고 일일이 장식했다. 말그대로 그의 치세에 도시는 전성기를 열었다.
  • 박용우(배우) . . . . 1회 일치
          * [[애정의 조건]] (KBS2, 2004) - 전성기
  • 박윤경(가수) . . . . 1회 일치
         [[1996년]] 3집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후 4집을 거쳐 [[1999년]]에 5집 음반을 발표하였다. 그 음반의 타이틀곡이자 신나는 성향의 트로트곡〈두리두리〉가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박윤경은 또 한번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2002년]], 6집 앨범까지 히트시키며 트로트 가수의 맥을 이어나갔다.
  • 박화요비 . . . . 1회 일치
         4집 활동 도중, 추후 화요비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준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난 예능 프로그램은 [[KBS 2TV]]의 [[상상플러스]]로, 그 전에는 음악 방송에만 출연해왔기 때문에 그녀의 발언과 화제성의 파급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이휘재를 비롯한 출연진들을 빵 터지게 한 '케이블 TV는 한 것을 자꾸 틀어준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비슷한 기믹을 이어 '비디오' 관련 소재를 SBS [[X맨을 찾아라]]에서 사용하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디오 기믹의 유느님과의 콤비네이션이 유려하다!~~
  • 베이지 . . . . 1회 일치
          * [[OCN]] 경성기방 영화관 (낙화)
  • 서정환 . . . . 1회 일치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 성훈(배우) . . . . 1회 일치
         연예계 데뷔 전에는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으로 그만두고 [* 《[[우리동네 예체능]]》에서의 활약상을 보면 실력이 후덜덜한 편이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과 붙어서도 이기고, 은퇴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현역 선수랑 거의 대등한 성적을 내는 걸 보면 사람이 아니라 돌고래 수준(...) 실제로도 현역 시절 대회에서 매우 좋은 기록을 세우는 등 촉망받는 선수였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부상으로 인해 전신마취만 6번, 수술만 약 10번 가까이 했고, 결국 기록이 떨어져 은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체능에서 거의 날아다니고 있어 영 설득력이(...) 워낙 예체능에서 보여준 활약이 인상 깊었던지라, 각종 커뮤니티에선 사람 맞냐는 반응이 많다. ~~수중로보트~~ 최근 인터뷰에 의하면, 허리 통증 때문에 예체능에서 제대로 기량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기량을 못 낸 거라니 그럼 전성기땐 어땠단거냐...~~ ~~인간의 신체능력을 뛰어넘은 듯~~] [* MBC [[나 혼자 산다]]에서 28세까지 실업팀 소속으로 수영 선수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2018년 10월 5일 방영분).]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의 남자주인공 아다모 역으로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 '''처음으로''' 본 오디션에서 합격한 거라 본인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임수향]]이나 한혜린 등은 연기 경험이 어느 정도 있던 신인이었지만, 본인은 연기경력이 하나도 없는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마스크나 신체조건이 상당히 우월한 편이라, 붙을 만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 송원근(배우) . . . . 1회 일치
         오로라 공주의 인기 덕에 빛을 보게 된 후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도 출연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임성한 작가의 후속작 [[압구정 백야]]에도 [[장무엄]]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나타샤와 노다지의 재회--
  • 스틸오션/영국 . . . . 1회 일치
         >A/B-클래스 구축함의 설계는 영국 구축함사(史)의 이정표다. 소해임무에 중점을 둔 A-클래스와 대잠임무에 중점을 둔 B-클래스의 가장 큰 개선점은 파슨즈 기어드 증기 터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A/B-클래스 구축함은 활동적이었다. 1940년, 여섯척의 A/B-클래스가 노르웨이 전역에 참전해 훌룡한 성과를 거뒀다. 코드링턴(Codrington)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에 참가해 네덜란드 왕가를 구출했다. 아카스타(Acasta)와 아던트(Ardent)는 항공모함 글로리어스(Glorious)를 호위하던 중 독일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를 격침시켰지만 독일군 어뢰에 피해를 입었다. 대서양 전역에서 불독(Bulldog)은 독일 잠수함 U-110을 나포해 처음으로 에니그마 암호 작성기를 확보하였다. A/B급에 의해 U-110외에도 7척의 주축군 잠수함이 최후를 맞았다.
  • 식극의 소마/171화 . . . . 1회 일치
          * 마침내 나타난 에리나는 확성기를 들이대고 연설하기 시작한다.
  • 신민아 . . . . 1회 일치
         그리고 시작 전 엄청난 기대를 받았고 그나마 나름 TV커리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으나 그 초반의 압도적인 기대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이 드라마 압도적인 기대를 모은 것은 작가가 홍자매인 점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바로 바로 상대역이 무려 [[이승기]]. [[소문난 칠공주]]로 연기 데뷔하고 [[한효주|동생으로 유명한 그분]]과 함께 한 찬란한 유산이 기대 이상의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고 [[1박2일]] 시즌1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강심장]]으로 인기를 끌던 그야말로 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TV를 종횡무진하던 그와 함께 하여 정말 이번에는 안망할 줄 알았다. 사실 2010년 위 이승기라면 마이더스의 손으로 하는 족족 앨범 드라마 예능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16회 중 20%를 넘거나 근접한 것은 막판 4회 뿐이고 거의 나머지 기간동안은 10%초반을 찍었다. 결국 평균 시청률은 15%(TNms기준)였다. AGB 기준으로는 12.6%이다. 시청률 20%는 거의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자매]]와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2014년도와는 거리가 한참 있는 2010년도에 작품을 했음에도 이거밖에 못 거둔거면 사실 망했다고 보는게 맞다. 홍자매의 전작인 [[미남이시네요]]도 사실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이는 홍자매 또한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그닥 높지 않은 시청률을 생각했다고 밝혔으나[* 방송사에서도 시청률이 제일 중요하지만 매번 대박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일선에서 뛰는 모PD의 블로그-[[일지매]]PD-에 따르면 심지어 엄청난 대작이 상대방에서 나올 경우 일부러 시간 떼우기로 폭망할 작품을 넣는 경우까지도 있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편성을 안하진 않는다. 쓸만한 작품이 없어서 방송은 계속 해야 되는 거니까.. --그러니 푸쉬받고 세 번이나 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니깐--] [[쾌도 홍길동]]과 더불어 홍자매가 이건 뜰 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인데도 안됐다. --물론 쾌도 홍길동도 20%은 못넘겼지-- 물론 동시 방영하던 타방송사 작품이 [[제빵왕 김탁구]]였긴 했으나 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것저것 변명대면 남는 게 없다. 홍자매 또한 [[미남이시네요]]로 할 거 다 해보고 여기서는 다시 뜰 줄 알았으나 그냥저냥 했던 홍자매는 바로 이후 작품인 [[최고의 사랑]]이 AGB 기준 20%를 넘기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이더스의 손, 이승기는 이후 [[더킹 투하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다. 영화계를 떠나서 드라마만 봐도 이정도면 흥행 블랙홀이다.
  • 신화용 . . . . 1회 일치
         시즌 총평은 부상과 가끔씩 터지는 대형 실수가 불안요소이긴 했지만 선방들을 보면 충분히 성공적인 영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전성기 만큼은 아니지만 포항에서의 활약을 조금 보여주고 있다.
  • 실업팀 . . . . 1회 일치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서는 [[프로 스포츠]]화가 진행되기 전 까지 기업 실업팀 실업리그가 '최상위 리그'로서 명성을 누렸다. 야구와 축구는 1980년대 프로가 출범하기 전 까지, 농구와 배구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프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실업리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종목에서 프로 리그 출범 이후로 많은 실업팀 선수가 프로선수로 전환했다. 축구의 경우는 [[중공업]],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팀이 많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 나간 중심은 금융팀이 금융단 축구를 박정희의 비호 아래 육성하면서 본격적인 세미프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야구는 한 때 실업리그가 존폐 상태에 놓일 정도로 쇠퇴했으나 2010년대에는 [[프로야구]] 붐을 타고 아마추어 야구단이 새롭게 설립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농구, 배구는 실업팀이 고사 위기에 놓인 상태이다.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1회 일치
         아마쿠사 깃발은 일본에서는 '세계 3대 군기(世界三大軍旗)' 혹은 '세계 3대 성기(世界三大聖旗)'라고 부르고 있다. 나머지 2개는 잔 다르크의 깃발, 십자군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는 일본에서 제시하는 '세계 3대'가 그렇듯이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은데, 이 3대 부류는 특히 그러하다.
  • 오소영 (조각가) . . . . 1회 일치
         1982년 조각가 첫 등단을 하였다. 1985년 영화배우 [[안성기]]와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2남을 두었다.
  • 오지호(배우) . . . . 1회 일치
          * 연애의 맛 - 왕성기
  • 유인촌 . . . . 1회 일치
         || [[안성기]][br](1991) || → ||<#FFFFA1> '''유인촌[br](1992)''' || → || [[이경영(1960)|이경영]][br](1993) ||
  • 유지인(1956) . . . . 1회 일치
         그 당시 닮고 싶은 여성상 1위이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연예인 소득 1위를 고수했다. 또 그 당시 여배우들 중에서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고([[정윤희]]나 [[장미희]]만 해도 스캔들이 큰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마 장미희의 경우 그야말로 카더라만 무성하지만 정윤희는 문제의 그 남성과 결혼까지 했고 나중엔 자식까지 두었다.) 사생활이 깨끗한 배우였다. --근데 결국엔(...)--[* 유지인의 인생에서 스캔들이라 할 만한 건 이 모 배우와의 스캔들인데 2008년에 터진 스캔들이니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생긴 스캔들이고, 인정한 것도 증거도 그 후로 엮인 것도 별로 없으니 루머일 확률이 높다.] 또한 지성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답게 [[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윤덕주 (농구인) . . . . 1회 일치
         ** 오빠 : 윤성기, [[건축사]]
  • 은혼/578화 . . . . 1회 일치
         * 오로치는 "행성기생충"이라 불리며 행성 중추에 뿌리 내리고 용맥을 빨아먹는다. 지표에 108개나 되는 거대한 목을 뽑아서 별에 접근하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
  • 은혼/585화 . . . . 1회 일치
          * 한편으로는 요시와라에서 썩으면서 약해진 호우센을 두고하는 말일 수도 있다. 전성기의 호우센은 우미보즈와 며칠을 싸워도 승패가 안 갈린 수준이니.
  • 은혼/617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규모야 어쨌든 면면은 문제가 상당히 많은데 구체적으로 야규 사천왕이 가장 문제다. [[토죠 아유무]]는 여전히 큐베를 도촬하는데 여념이 없고 [[미나미토 스이]]는 계속 여자타령에 [[키타오오지 이츠키]]는 전신 남성기 드립으로 응수한다. 그나마 [[니시노 츠카무]]는 평범하게 열심히 싸우며 "승패야 어떻듯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게 중요"하다고 바른 말을 한다. 그는 긴토키 일행이 야규 일가에 처들어왔던 일을 회상하며 그때 이후로 가장 즐거운 싸움이라 말한다.
  • 이강돈 . . . . 1회 일치
         이강돈은 1992년의 최후의 전성기를 끝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슬럼프에 빠지고, 여기에 여러 부상이 겹치면서 조금식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벅지, 무릎, 어깨가 아프고 점차 그 자리를 신인들이 메우면서 이강돈의 입지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결국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하기에 이른다.
  • 이민우(배우) . . . . 1회 일치
         유아기 시절인 [[1980년]]부터 CF모델로 활동하다 6살 때 정식으로 드라마 데뷔를 하게 되는데 데뷔작이 MBC의 [[조선왕조 오백년]]([[1981년]])이다. 배우 경력이 벌써 '''30년이 넘는''' 본좌 중에 본좌. [[홍경인]]([[1988년]] 데뷔), [[김정현(1976)|김정현]]([[1994년]] 데뷔) 등 경력이 나름 길다는 동년배 배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유명한 왕 전문 배우(...) '''[[최수종]]'''(1962년생, [[1987년]] 데뷔) 등 1960년대 초반 출생인 연기자들마저 이민우에게는 경력 때문에 어려워한다는 것이 [[라디오 스타]]에서 드러났다. [[http://m.news.nate.com/view/20130425n00128|#]] 이 정도 경력은 5살 때 데뷔했다는 [[안성기]]나 6살 때 데뷔했다는 [[하춘화]]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경력이다.
  • 이상백 (1904년) . . . . 1회 일치
         **** 5촌 조카 : 윤성기
  • 이승현(농구선수) . . . . 1회 일치
         4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이종현과 함께 트윈타워를 형성하며 고려대학교 농구부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고려대의 2013년 농구대잔치, MBC배, 프로-아마 최강전, [[한국대학농구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2014년 MBC배,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 전승 및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런 활약으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농구 예비 엔트리에도 진입하였으며 [[유재학]] 감독이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볼 때 발탁 가능성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최종 엔트리 진입에는 실패했다.
  • 이열희 (1924년) . . . . 1회 일치
         *** 고종사촌형 : 윤성기
  • 이윤열 . . . . 1회 일치
         2001년 데뷔 후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당시 임요환의 뒤를 잇는 새로운 신예 테란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들어 전성기를 맞이한 이윤열은 그 당시 개인리그 중 하나였던 iTV 랭킹전에서 임요환과 변길섭을 꺾고 2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KPGA(MSL의 전신)에서 3연속 우승을 하면서 기염을 토했다. 특히 2003년 초반엔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배스킨라빈스배 2002 KPGA 4차리그는 물론 GhemTV 3차 스타리그까지 동시에 석권하면서 전무후무한 그랜드 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 이인영(정치인) . . . . 1회 일치
         1990년, 제1기 전대협 부의장이었던 우상호 등과 앞으로 10년간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숙성기간'을 갖기로 약속하였다. "학생 운동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후 10년이 지나자 이인영과 우상호 등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론'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됐다.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1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168화. '''전설의 최약성기사'''
  • 일곱개의 대죄/185화 . . . . 1회 일치
          * 에스카노르가 마력을 개방하자 주위에 있던 성기사들과 일곱개의 대죄 일행까지 타들어갈 지경이다.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1회 일치
          * 길선더 등 성기사들이 달려와 승기가 기울었으니 탈출해야 한다고 알린다.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1회 일치
          * 한편 왕국에 있던 일곱 개의 대죄, [[멜리오다스]], [[반(일곱 개의 대죄)|반]],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 [[고서]], [[에스카노르]]는 한 자리에 모여있다. 그 장소는 과거 일곱 개의 대죄가 성기사장 [[자라스트로]]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았던 고성의 꼭데기였다. 이들을 불러모은 장본인은 멀린.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가 본 새로운 예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1회 일치
          그때 멜리오다스가 주위를 환기킨다. 그들이 당면한 목적은 젤드리스의 계금으로 포로가 된 백성들과 성기사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최종적으론 카멜롯의 해방. 젤드리스와 승부를 보는건 그 다음이다. 멀린이 그의 말대로이며 만전을 기한 뒤에야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 말한 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자러 간다. 엘레인은 그녀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만 그걸 바로 짚어내진 못했다. 멀린이 식당을 나서기 전, 에스카노르가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를 건네는데도 멀린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1회 일치
          * 이제 대죄는 온전한 성기사로서 임전태세를 갖췄다. 오랜만에 갑옷차림으로 모인 그들. 멜리오다스가 단장으로써 대원들을 소집해 작전 개요를 설명한다. 그들의 목적은 전날 설명한 대로 십계에 점령 당한 카멜롯의 해방과 인질 구출. 하지만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멀린에게 부가설명을 부탁한다. 멀린은 카멜롯에 특수한 보호수단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한다. 직경 백 마일에 달하는 차원의 뒤틀림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텔레포트도 앱솔루트 캔슬도 불가능해 접근이 몹시 어렵다. 반은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냐고 묻는데 당연한 말이다. 멀린은 리오네스 왕국으로부터 남동으로 250마일 지점에 차원의 뒤틀림을 유발하는 발현지점이라 특정했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할리퀸은 막연히 이스탈보다 남쪽이라는 것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 임백천 . . . . 1회 일치
         [[1990년]]에 '마음에 쓰는 편지'라는 곡을 발표하여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메가 히트곡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도 쏠쏠하게 인기를 얻은 노래였고, 2018년 현재에도 라디오에서 종종 듣게 되는 스테디 셀러.
  • 임효준 . . . . 1회 일치
         '''임효준'''([[1996년]] [[5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평창올림픽에서의 대한민국 첫 금메달로서 더욱더 의미가 크다. 임효준은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뛰어난 기술이 장점으로, 전성기 시절 ‘제2의 [[안현수]]’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ref name="대구일보"/>
  • 전효성 . . . . 1회 일치
         다이어트로 인해 [[가슴]]이 작아져 많은 사람들이 살빨이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search&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umorbest&no=463310&page=1&keyfield=subject&keyword=%C8%BF%BC%BA&mn=&nk=%B3%EB%BD%C3%C6%C8&ouscrap_keyword=&ouscrap_no=&s_no=463310&member_kind=|빈유모에]]-- 단, 여자들의 가슴이 남자들 생각과는 달리 은근히 사이즈가 유동적인 데다가, 수술하지 않았다면 옷이나 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꽤 나 보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 2012년 4월의 사진에서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절대 절벽은 아니다. [[http://news.nate.com/view/20120512n08848&mid=e0403&cid=350114|5월 12일 드림콘서트에서 보여준 사진으로 보면 여전히 훌륭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도 계속 사진마다 모습이 달라보이는 걸로 보아, 남자들이 잘 모르는 [[브래지어]]의 힘이 작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남자]] [[위키러]]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의 브래지어가 가진 무기는 '''[[패드]]만이 아니다.''' 푸시업을 어느 정도 해 주느냐, 혹은 어떤 옷에 맞추느냐 등 활용 폭에 따라서 절벽이 글래머로, 글래머가 슬렌더로 변신하는 마법을 부리는 게 여자 속옷이다. 특히 드림콘서트 당시 사진에서 나온 사이즈는 단순히 패드만으로 나올 수 있는 형태가 아닌지라, 옷발과 컨디션발이 상당히 심하게 영향을 주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슴에 약간 여유를 두고, 즉 푸시업이 좀 덜한 브라를 착용하거나 폭에 여유가 있는 누브라, 혹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어께걸이 등의 지지가 없어져서 유방이 약간 처지는데, 보형물을 넣은 게 아니라면 이때 가슴골이 퍼져서 볼륨이 줄어들어 보인다. [[박로미]]가 가슴이 작아보이게 한 방법이 바로 이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효성은 다이어트 등으로 인해 몸매가 상당히 유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섹시컨셉으로 활동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숱하게 겪는 [[가슴성형]]에 대한 의혹만큼은 확실하게 없어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뭘 집어넣은 거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왔다갔다 할 수가 없으니...
  • 정미남 . . . . 1회 일치
         * 2016년 《[[밀정 (영화)|밀정]]》 ... 확성기경찰 역
  • 정종원 . . . . 1회 일치
         '법시' 창간 이후 1968년 11월 '법륜'이 선을 보였고, 1974년 '불광'이 창간된데 이어 1979년에는 '여성불교'가 탄생했다. 불교 잡지는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불교계의 미디어는 신문 쪽으로 이동한다. 다양한 불교신문들이 등장하면서 불교잡지들이 설 땅이 좁아지며 1990년대 초반 대부분 정간됐다.<ref>불교전문지 월간 '해인', 1992년 12월 130호 '불교잡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ref><ref>[월간 선원 지령 200호] 1980~90년대와 2000년대 불교잡지 비교</ref>
  • 조미령 . . . . 1회 일치
         * '''[[조미령 (1929년)|조미령]]''' (趙美鈴, [[1929년]] ~ )은 1950~6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다.
  • 주현미 . . . . 1회 일치
          * 전성기 시절에는 1년 내내 딱 1일만 빼고 휴일 없이 방송과 지역 행사를 모두 수행한 적도 있었단다. 참고로 그 하루는 [[현충일]]. 현충일에는 유흥업소들이 자체적으로 휴업하는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 줄리아나 도쿄 . . . . 1회 일치
         총 공사비 15억엔, 총면적 1000제곱미터, 댄스플로어 160제곱미터, 천장 높이 8미터, 좌석수 500, 최대 수용 인원 2000명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디스크 홀로서, 첫해 입장객 수는 32만, 이듬해에는 61만으로 증가했다. 전성기에는 일반인은 최대 4시간은 대기해야 했으며, 최대 500명의 손님이 들어가지 못하고 입점을 거절당한 날도 있었다고 한다.
  • 지증왕 . . . . 1회 일치
         [[경주|경주 지역 전설]]과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성기]]는 커서 그 길이가 1자 5촌(약 45 cm) 정도가 되었다고 하며, 궁녀나 왕족, 귀족의 딸 중 적당한 여인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신하들이 왕비가 될 여성을 찾으러 다니던 중 [[경주]] [[남산 (경주)|남산]]의 연못에 큰 똥덩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큰 똥의 주인이 여성이라면 왕을 감당할 것이라 보고 수소문한 끝에 이찬 [[박등혼]]의 딸이라 하였다. 이에 신하들이 등혼의 딸을 간택하여 왕비로 들이니 그가 왕비인 연제부인이라는 것이다.
  • 진동한 . . . . 1회 일치
         전성기는 짧아 통산 성적은 그저그런 수준. 그러나 아직까지 이 선수가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그 유명한 '''[[해태 버스방화 사건]]'''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 창작:티겔 왕국 . . . . 1회 일치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 채이식 . . . . 1회 일치
         *1995년 ~ 1998년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대표
  • 최덕희 . . . . 1회 일치
         1997년 1월 [[SBS]]의 《[[마법소녀 리나]]》에서 주인공 리나 역에 발탁되며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얼마 후인 1997년 4월 [[KBS]]의 《[[미소녀전사 세일러문|달의 요정 세일러문]]》에서 세일러문 역으로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후에도 《[[포켓몬스터]]》, 《[[명탐정 코난]]》, 《[[웨딩피치]]》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인기 만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2003년]] 자녀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떠나며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 최성관 (1925년) . . . . 1회 일치
         [[1925년]] [[9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선화 공주》를 감독하였다. 감독활동은 1959년 《남의 속도 모르고》, 1962년 <태양(太陽)을 등진 사람들>로 이어졌다. 김근자, 박귀희 주연의 <선화공주>는 흑백영화로 일관되다시피한 당시에 16미리이기는 했으나 모처럼 천연색 필름으로 촬영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이는 홍성기 감독이 <여성의 일기>(1949)로 색채 화면을 선보인 이후 두 번째의 시도였다. 그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1999년]] [[7월 19일]] 별세하였다.
  • 최승환 . . . . 1회 일치
         2015 시즌 후 [[kt 위즈]] 배터리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296524 kt, 최승환 배터리·박성기 재활코치 영입] - MK스포츠</ref>
  • 최은희 . . . . 1회 일치
         그 후 5, 60년대 영화계를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나눌 정도로 스타가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후배 [[김지미]]와 경쟁했는데, 흥미롭게도 '춘향전'을 비슷한 시기에 김지미(홍성기 감독)와 최은희(신상옥 감독)가 각자 버전으로 찍고 동시 개봉하면서 라이벌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신상옥 최은희 페어의 승리로 끝났다.) 이 시절 그녀는 정말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전통적 여인상에서 <지옥화>처럼 서구적인 글래머상까지 소화하면서 그녀는 초창기 한국영화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 최태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하지만 [[1997년]] 겨울부터 그는 시련을 맞이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이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의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모기업 [[쌍방울 (기업)|쌍방울]]이 법정 관리를 신청하면서 [[김현욱 (야구인)|김현욱]], [[조규제]], [[박경완]], [[박성기]], [[김실]] 등의 동료들이 현금 트레이드되어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팀의 4번 타자였던 [[외야수]] [[심성보]]는 [[당뇨병]]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장타력을 상실하면서 그는 타선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타 구단 투수들은 그를 타깃으로 두고 [[빈볼]], [[고의 사구]] 작전을 펼쳤고 그는 힘겹게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갔다. [[김원형]], [[오상민]], [[장재중]] 등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의 끝까지 함께하였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1회 일치
          * 갭생성기
  • 태종무열왕 . . . . 1회 일치
         《[[구당서]]》 등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이 서로 말과 풍속이 같았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를 '동류'로 파악하는 의식이 있었을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부여]] 계열인 고구려, 백제<ref group="주">토착세력은 [[삼한]] 중 [[마한]] 계열</ref>와 [[삼한]](三韓) 중 [[진한]] 및 [[변한]]([[가야]]) 계열인 신라는 시조 신화나 제사, 정치 체계 및 혼인풍속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었고, 특히 수백년에 걸쳐 계속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특화된 이질성과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적대감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다. 4세기 백제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는 당시 백제와 대립하고 있던 고구려와 연대했지만,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5세기 후반에는 다시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서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나제동맹 역시 552년 한강 유역을 둘러싼 갈등으로 파탄났으며, [[554년]] 백제의 [[성왕]]이 신라의 매복에 걸려 전사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토리코/359화 . . . . 1회 일치
          * 돈 슬라임은 한때 우주의 왕이라 불렸던 구르메 세포의 악마이다.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고 전성기에는 행성 하나를 복제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1회 일치
          * 확성기: 모든 방문자의 존경심이 10만큼 상승합니다.
  • 판타스틱 포 . . . . 1회 일치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남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순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 페어리 테일/545화 . . . . 1회 일치
          * 다른 길드들은 대체로 전쟁 전과 다를 게 없다. 세이버투스는 매년 하는 푸드 파이터 대회를 또 개최했고 또 [[미네르바 올랜드]]가 석권했다. 최종 경쟁자였던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를 압도적으로 앞지르는 스코어. 블루 페가수스는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IOY 자리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 중. 변동이 심한건 머메이드 힐. 주간 소서러의 전속 모델팀으로 발탁되면서 [[카구라 미카즈치]]가 관심도 없던 모델 일을 시작했다. 어쨌든 다들 잘 지내고 있다.
  • 하이큐!!/등장인물 . . . . 1회 일치
          본명 불명.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 OB로 주전당시 배번은 히나타와 같은 10번이었다. 봄의 고교 배구 전국 대회에서 미야기 현 대표로 활약했으며 해당 경기는 주인공 [[히나타 쇼요]]가 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나카 사에코와는 같은 학년이었고 츠키시마 아키테루보다는 한 학년 아래인 점에서 나이는 1권 기준 21세. 작은 신체(170cm 안팍)에 비해 엄청난 점프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대단한 박력과 카리스마를 가져[* 타나카 사에코의 회상으로는 컨디션 난조로 연습 때 교체 되었는데, 락커룸 관물함을 머리로 들이받으며 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의 눈매와 포스가 엄청나서 좀 놀던 언니로 추정되는 사에코마저 움찔할 정도.] 에이스로서의 자부심과 실력으로 팀과 동료의 사기를 북돋으며 카라스노 배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 다만 현재까지 작중 직접적으로 묘사된 일이 적어서 베일에 싸여 있다.
  • 한교원 . . . . 1회 일치
         ==== 최전성기, 2014 시즌 ====
  • 허준 (1981년) . . . . 1회 일치
         창단 멤버로 입단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2014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ref>[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31357 NC, 창단 첫 주장 허준·품절남 정성기 등 6명 방출] - 경남신문</ref> 이후 [[마산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
  • 현주엽 . . . . 1회 일치
         현주엽은 화려하였던 개인성적에 비하여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0년대 그와 함께 대학농구 전성기를 보냈던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프로에 와서 대부분 한번 이상의 우승을 경험해 본 것에 비해 현주엽은 9년의 프로생활 동안 단 한번도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보지 못하였다. 99-00시즌 SK가 정규리그 1위를 달리며 팀을 우승시키는가 했지만 시즌 도중 트레이드되며 SK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고, 그 이후로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은 06-07시즌 LG에서 활약하고 있을때로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으며 우승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지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LG의 외국인 선수 파스코의 심판 폭행사건이 얽히면서 KTF에게 패하고 만다. 그나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유일한 우승 경력이다.
  • 홍진기 . . . . 1회 일치
         |후임자 = [[권성기]]
  •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얼마나 있는지 명확하게는 나오지는 않았으나 히어로를 양성하는 시설도 있으며 [[유우에이 고등학교]]는 이러한 곳들 중에서도 최고의 양성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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