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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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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59회 일치
          * 긍정적인 효과: 평화시 호전도가 한달에 0.4씩 감소, 민주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15%
          >자애로운 신사는 매력적이며, 선거에서 이기는데 도가 텄지만,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끄기에는 조금 부족한 인물이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미소를 지으며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릴 뿐이다.
          * 긍정적인 효과: 평화시 호전도가 한달에 0.5씩 감소, 독재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25%
          * 부정적인 효과: 소비재 필요량 +12%, 영향력 행사 성공률 -20%
          * 긍정적인 효과: 불만율 증가량 -10%, 비방 정책 성공률 +1%, 산업 연구 시간 -10%, 비밀 병기 연구 시간 -10%, 자원 비축량 +50%
          * 긍정적인 효과: 불만율 증가량 -5%, 공업력 +5%, 자원 생산량 +5%, 공장 생산 시간 -5%, 산업기반 생산 시간 -10%, 소비재 필요량 -5%, 영향력 행사 성공률 +10%, 동맹 성공률 +10%, 협상 성공률 +10%, 영향력 행사 비용 -5, 동맹 제안 비용 -20, 동맹 초대 비용 -20, 동맹 참가 비용 -6,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5%
          * 긍정적인 효과: 인력 증가량 +25%,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20%, 유닛 생산 비용 및 시간 -20%, 공업력 +5%, 에너지 생산량 +5%, 금속 생산량 +5%, 희귀 자원 생산량 +5%, 불만율 증가량 -5%, 독재 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25%, 영향력 행사 성공률 +10%, 평화시 호전도가 한달에 0.2씩 감소, 자원 비축량 +10%
          * 부정적인 효과: 모든 병력 조직력 -10%, 점령지 공업력 -20%, 민주 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10%, 육군 첩보 정확도 -2, 지휘관 능력치 효율 -1%, 전쟁시 호전도가 한달에 0.1씩 증가
          * 긍정적인 효과: 인력 증가량 +10%,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20%, 지상군 속도 +10%, 불만율 증가량 -10%, 독재 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25%, 영향력 행사 성공률 +10%, 평화시 호전도가 한달에 0.4씩 감소, 자원 비축량 +10%
          * 부정적인 효과: 점령지 공업력 -10%, 민주 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15%, 지휘관 능력치 효율 -5%, 전쟁시 호전도가 한달에 0.2씩 증가
          * 긍정적인 효과: 불만율 증가량 -10%, 인력 증가량 +5%, 지휘관 능력치 효율 +5%,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10%, 민병 사단 생산 시간 -15%, 닫힌 사회 상대로 동맹 성공률 +25%, 육군의 방어 능력 +5%
          * 부정적인 효과: 기병 사단의 전투 능력 -10%, 선전포고에 필요한 적국 호전도 +10%, 독재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15%
          * 긍정적인 효과: 닫힌 사회 상대로 동맹 성공률 +25%,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3%
          * 부정적인 효과: 동맹 성공률 -10%
          * 긍정적인 효과: 모든 병력 조직력 +5%,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5%, 불만율 증가량 -10%, 민주 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25%, 소비재 필요량 -10%, 자원 비축량 +10%
          * 긍정적인 효과: 동맹 성공률 +15%
          * 부정적인 효과: 불만율 증가량 +10%, 모든 병력 조직력 -10%,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5%, 쿠데타 성공률 -1%
          * 긍정적인 효과: 자금 생산량 +20%, 모든 병력 조직력 +5%, 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기갑 & 화포 연구 시간 -5%, 보급품 소모량 -15%, 영향력 행사 성공률 +10%, 협상 성공률 +10%, 외교 비용 -10%
          * 긍정적인 효과: 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산악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5%, 선전포고에 필요한 적국 호전도 -20%, 독재 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25%, 석유와 보급품 비축량 +5%, 불만율 증가량 -5%
          * 부정적인 효과: 민주 국가 상대로 동맹 성공률 -15%, 소비재 필요량 +5%
  • 고유민 . . . . 38회 일치
         첫 시즌 최종 개인기록은 19경기 출장 40세트 14득점 공격성공률 28.21% 블로킹 24번 시도 2번 성공 디그 27번 시도 20번 성공 리시브 성공률 23.19% 딱 '신인인데 그만하면 수고했다.' 라는 말을 받을 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키는 공격수로서 어중간하지만 같은 키를 가진 보통 선수에 비해 팔 다리가 길어 배구선수로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탄력이 뛰어난 편이며, 수비에서는 리시브는 별로 신통치 않지만 디그 능력이 괜찮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GS 칼텍스 와의 결승전에는 선발출장을 하여 --물론 후위에 [[한유미]]와 같이 있으면 안믿던 예수님 찾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긴 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잘버텼고 3세트 듀스상태에서 마지막 끝내기 오픈을 성공시키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13득점 공격점유율 35.17%, 경기 최다블로킹 (3개),디그 14번 시도 중 10번 성공, 리시브 성공률 37%를 기록하며 정미선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내 팀의 8년만에 컵대회 우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작년 기업은행에게 학살당한 결승전엔 최다득점자가 8점인가 그랬지...--
         교체선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2014년 10월 30일 시즌 두번째 경기에 시즌 첫 출장을 했다. [[황연주]]의 공격성공률이 떨어지자 교체로 3,4,5세트를 뛰고 4득점을 하면서 64.29%의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하며 팀의 풀세트 승리에 기여,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의 전위에서 원포인트 블로커로 교체되거나 [[황연주]]가 부진할때 간간히 교체되어 나왔다. 다만 전자의 역할은 선배 [[한유미]]가 주로 맡게 되었고 후자의 역할은 코칭스테프가 황연주를 교체하는 것에 별로 마뜩치 않아 했기 때문에[* 경기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때에도 코트에 황연주를 남겨놓을때가 많았다. --차라리 폴리를 뺀다는 마음가짐--] 출장시간이 점점 뜸해졌다. --그것보다는 보통 지는 경기에 교체출장하는데 리시브 범실, 공격범실로 감독 화돋구고 나가는 때가 많았다.-- 19경기, 39세트 출장 13득점 공격성공률 28.26% 리시브 성공률 22.5%을 기록했다. 좋게말하면 작년과 비슷한 기록을 냈고 나쁘게 말하면 성장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러나 더 웃긴건 [[고예림|전 시즌 신인왕]]은 폭망했고 나머지들도 그닥이었다.--
         2차전에도 1세트를 제외하고 2세트 부터 선발출장을 하여 괜찮은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폴리 몰빵 상태여서-- 큰 활약이 없었다. 다만 교체되어 나온 세트에 팀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 앞에서 까다로운 서브를 '''갑자기''' 구사해 경기를 반전시킬 뻔 했으나 팀은 3-1로 패배. --팬들은 이럴거면 스타팅으로 넣지 왜 세트 헌납질 하냐고 감독을 깠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상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영)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상태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상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컵대회 초반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상태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2차전 인삼공사 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이날도 현대건설은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컵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연주-양효진-고유민의 삼각편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것보다도 [[이다영]]이 잠시나마 경기감각을 되찾고, [[한유미]]의 정밀서브, [[염혜선]]의 닭장거부서브가 인상적인 경기였지만-- 13득점(팀내 2위, 12공격득점), 공격점유율 17.52%(팀내 3위), 공격성공률 '''50%(팀내 1위)''' 백어택(후위공격) 1[* 프로데뷔 첫 백어택], 1블로킹, 6디그, 리시브 성공률 28.57%--1차전 보다 3배 더 잘받았는데 그냥 그날그날 로또다--를 기록하면서 컵대회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현대건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주로 황연주와 양효진이 상대 블록커를 몰고 다니면 어디선가 나타나 그 빈틈으로 공격을 성공시켜 상대팀의 블록 포지션을 찢어놓거나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스크린성 플레이로 혼란을 주는 역할이 주효했다.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결승전에서도 선발 출장하였으나 기업은행의 높은 블로킹과 까다로운 서브에 고전하며 교체되었다가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던 5세트 6-7상황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때 블로킹득점과 절묘한 앵글샷으로 연속 3공격득점을 하면서 10-7까지 벌려놓았으나[* 재밌는 점은 이때 기업은횅 이정철 감독은 9-7상황까지는 기업은행 선수들에게 화를 내다가 10-7이 되자 잠깐 벙쩌서 선수를 가리키며 '쟤 뭐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국가대표도 아주 꿈은 아니다.-- --꿈 깨고 내년 U23 국가대표에는 나갈수 있을듯--] 이후 부진하던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가 폭발하고 공격이 블록당했으며[* 5세트 이정철 감독은 고유민의 담당 블로커로 박정아(188cm)를 세워두는 초강수를 뒀다.], [[이정철]] 감독의 적시 비디오 판독이 나오면서 그대로 기업은행 기세에 팀이 밀리며 패배하게 되었다. 기록은 8득점, 공격점유율 14.36%, 성공율 25%, 디그 9, 블록 1, --리시브성공률 0%을 빼면 쓰나-- --그날은 꽝--.
         '''리시브 성공률, 공격성공률 30%-30% 달성, 절반의 성공'''
         주전선수가 목표라고 시즌 전 인터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volleyball&ctg=news&mod=read&office_id=451&article_id=0000000573|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대로 기회를 얻는 데 성공하여 개막 이후 3경기 선발 출장을 하였으나 고질적인 문제인 리시브 불안으로 1, 2세트만 채우고 교체되었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는 현대건설이 풀세트 경기를 자주하는 주요원인으로 꼽힐 정도.[* 컵대회부터 고유민의 리시브가 그런대로 되는 경기는 현대건설이 별 문제없이 이기는 패턴이지만, 되지 않을 경우 컵대회 결승전 때나 시즌 경기처럼 풀세트로 가서 패하거나 간신히 이기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다만 3차전 도로공사전에서 1세트에 안정적인 리시브를 보여주면서 백어택을 성공시키는 등 코보컵 때 모습을 잠시나마 보여준 건 위안거리. -결국 정미선과 자리를 바꾸어 닭장을 달구다 2015년 12월 12일 인삼공사전은 2세트 37:37까지 간 상황에서 연속 2득점으로 2세트를 끝냈다. 이날 경기에서 본인 한 경기 시즌 최다득점인 9점 기록.[* 이 기록은 2016년 2월 1일 인삼공사 전에서 11점으로 갱신했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컵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15-16시즌 끝나고 필생의 사업이던 쌍커풀 및 앞트임 시술을 했다. 현대건설 팬들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29회 일치
         중학교([[전라북도]] [[임실군]]에 소재한 [[예원예술대학교]] 출신)때 전교 선도부장을 맡으며 학교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더욱 멋진 것은 하정우는 남자 후배들에게도 흔히들 선배가 잡는 허세나 똥군기를 하나도 안 잡고 살갑고 따뜻하게 대해줌으로써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학생으로 기억된다는 것. 그래서 동문들 사이에서는 하정우의 성공을 두고, "성훈이 형이 잘 되어서 정말 좋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분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시절 성적이 안 나오자 담임이 '[[김용건|너희 아버지]]가 [[패드립|그러니 니가 그 모양이지 않느냐]]' [* 당시 [[김용건]]은 에로 영화에도 간간히 출였했었고,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빨간 양말을 신고 다니며 춤을 가르치는 [[제비족]]으로 출연 중이었다.] 라는 식으로 혼을 내 충격을 먹고 성적을 올려 모범생이 되었다고 한다.
         [[2006년]]에는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김기덕 스타일이 대중에게는 크게 먹히는 스타일이 아니라 호연을 보여 줬다는 본전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김기덕과는 《[[숨]]》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같은 해의 영화 《구미호 가족》에서는 구미호 4가족의 똘끼 넘치는 장남으로 출연했지만 나머지 셋보다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다. [[2007년]] 한미 합작영화 《두 번째 사랑》(Never Forever)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영화의 작품성과 하정우의 내면 연기로 주목받았다.
         하정우가 비로소 이슈몰이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MBC 드라마 《[[히트(2007)|히트]]》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이 드라마의 성공 덕에 하정우는 드디어 메이저 연기자 반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라하의 연인》에서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여성 팬층을 확보했다.
         다음 해인 [[2008년]] 영화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드라마 《히트》와 영화 《추격자》는 둘 다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하정우는 《히트》에서는 검사 역을, 《추격자》에선 반대로 살인마 역을 맡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실제 사건에 대한 분위기가 흡사하게 조성된 《추격자》와 달리 《히트》는 경찰, 검찰과 범죄자의 심리 싸움 등이 주된 서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그냥 유영철 사건에서의 모티브만 따온 것이고 내용이나 분위기나 인물들 자체가 실제 사건과는 차이가 많이 있어 그렇게 유영철 사건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은 아니다.] 《추격자》는 하정우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엄중호 역할이었던 [[김윤석]]도 살벌한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연기인지 실제인지도 모를 무아지경의 장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지영민이 중호에게 쫓기며 한밤중 골목길 추격전을 벌이다 코너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장면은 원래는 NG였는데 너무 리얼했던 나머지 [[나홍진]] 감독이 그 장면을 버리지 않고 그냥 썼다는 일화는 상당히 유명하다. 이렇게 영화는 성공했지만, 그 덕(?)에 험악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돼 고생 좀 했다고 한다...[* 실제 살인마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사실 브라운관의 악역 역할을 맡는 배우들이 시장에서 험한(?) 꼴 당한다더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세계 어디서나 다반사다.] 주변에서 연쇄살인마 역할을 맡는 것을 말렸으나 전작 《프라하의 연인》에서의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싫어서 이 역할을 선택했다고 한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최민식]]의 항렬상 조카뻘 되는 [[조직폭력배]] 두목 역으로 나와 유들유들하면서도 가족마저 내칠 수 있는 비정한 역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흥행에 성공하였다. 영화 막판 클라이맥스신을 보면 정말 사람 잡을 듯한 눈빛을 하고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 개봉작 《러브픽션》에서도 [[공효진]]과 함께 주인공을 맡아 --찌질한 먹물-- B급 글쟁이 역으로 호연, 이제는 로맨스 코미디로도 연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2013년]]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영화)|베를린]]》에서 주인공 [[표종성]]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가 관객 수 700만 명을 넘기면서 당대 최고의 흥행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 또한 같은 해 7월에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는 하정우의 단독 주연작에 같이 개봉하는 《[[설국열차]]》가 있어서 흥행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550만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소재원]]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터널(영화)|터널]]》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터널 속에 갇힌 38세 자동차 딜러 [[이정수(터널)|이정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2016년 8월 10일 개봉되어, 개봉 12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여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최종관객은 712만 명으로 흥행 대성공.
         2017년 12월 20일에 개봉한 《[[신과함께(영화)]]》에서는 저승사자 강림 역을 맡았다. 주호민 만화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함께(영화)]]》는 그의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되었다. 2017년 12월 27일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1987(영화)|1987]]》에서 검사 역할도 맡았다. 황해 이후 오랜만에 [[김윤석]]과 호흡을 맞추고, [[유해진]], [[강동원]], [[김태리]]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영화 《[[신과함께(영화)|신과함께]]》와 개봉 시기가 비슷하여, 그의 영화 두 편이 동시에 영화관에 걸리게 되었다. --하정우 대 하정우-- 이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연기력 부분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중견배우의 아들이면서 배우로서 하정우만큼 아버지를 뛰어넘어 크게 성공한 다른 연기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제는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가 아니라, 하정우의 아버지 김용건으로 그 인지도가 바뀐지도 오래다. [[영화는 수다다]] 의뢰인편에서 [[이동진(평론가)|이동진]] 평론가가 "하정우 씨는 동세대 최강인 것같다"라고 칭찬했을 정도.
         || [[신과함께-인과 연]] || 주연 || [[강림도령(신과함께)/영화|강림도령]] || 12,270,489 || 성공 ||
         ||<|2> 2017 || [[1987(영화)|1987]] || 주연 || [[최환]] || 7,231,177 || 성공 ||
         || [[신과함께-죄와 벌]] || 주연 || [[강림도령(신과함께)/영화|강림도령]] || 14,410,466 || 성공 ||
         ||<|2> 2016 || [[터널(영화)|터널]] || 주연 || [[이정수(터널)|이정수]] || 7,120,780 || 성공 ||
         || [[아가씨(영화)|아가씨]] || 주연 || 백작 || 4,288,530 || 성공 ||
         ||<|2> 2015 || [[암살(2015)|암살]] || 주연 || 하와이 피스톨 || 12,705,700[* 하정우의 데뷔 이후로 최초의 1,000만 관객 영화이다.] || 성공 ||
         ||<|3> 2013 || [[더 테러 라이브]] || 주연 || 윤영화 || 5,584,139 || 성공 ||
         || [[베를린(영화)|베를린]] || 주연 || [[표종성]] || 7,166,521 || 성공 ||
         || 577 프로젝트 || 기획, 주연 || 하정우 || 96,080 || 성공[* 총 제작비는 9억 원이지만 상당 부분이 기업의 후원이 있었고 그 밖에 극장 수익으로 7억 원을 벌어들였음.] ||
         || 러브픽션 || 주연 || 구주월/마형사 || 1,726,227 || 성공 ||
         ||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 주연 || 최형배 || 4,720,050 || 성공 ||
  • 유해진(배우) . . . . 24회 일치
         2016년 [[럭키(영화)]]를 통해 드디어 첫 단독주연을 맡게 되었다! 영화는 대략 유해진이 맡은 주인공 형욱은 원래 냉혹한 킬러였으나,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후 무명배우로서 활동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킬러 부분은 소름끼치는 스릴러 영화 속 인물이지만 사고 후 갑자기 코믹해지는 부분에서 유해진과 정말 어울리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관객수 또한 손익분기점의 2배를 넘기면서 흥행도 크게 성공했다!
         영화 [[럭키(영화)|럭키]]의 성공으로 누적 관객수 1억 명을 돌파하였다. 이는 [[오달수]], [[송강호]]에 이어 역대 세 번 째 1억 관객 돌파 기록이다. ~~하지만 1년 후 찍은 [[레슬러(영화)|영화]]에서 폭망을 맛보게 되는데...~~
         ||<|2> 2001년 ||[[무사]]||도충||857,148||성공||
         ||[[신라의 달밤]]||넙치||4,800,000||성공||
         ||<|4>2002년||[[공공의 적]]||용만||1,161,500||성공||
         ||[[광복절 특사]]||짭새||3,101,900||성공||
         ||[[왕의 남자]]||육갑||12,302,831||성공||
         ||[[혈의 누]]||독기||2,274,995||성공||
         ||[[타짜(영화)|타짜]]||고광렬||6,847,777||성공||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문근영||1,619,190||성공||
         ||[[공공의 적 1-1]]||용만||4,313,102||성공||
         ||2009년||[[전우치(영화)|전우치]]||초랭이||6,136,928||성공||
         ||[[이끼(영화)|이끼]]||김덕천||3,350,311||성공||
         ||[[부당거래]]||장석구||2,766,436||성공||
         ||[[가디언즈(영화)|가디언즈]]||버니 목소리||1,075,584||성공||
         ||2013년||[[감기(영화)|감기]]||경업||3,119,023||성공||
         ||[[해적: 바다로 간 산적]]||철봉||8,666,208||성공||
         ||[[타짜: 신의 손]]||고광렬||4,015,361||성공||
         ||<|4>2015년||[[극비수사]]||김중산||2,860,786||성공||
         ||[[베테랑(영화)|베테랑]]||최상무||13,414,009||성공||
  • 황정민(남자배우) . . . . 17회 일치
         영화 배우로서는 주로 《너는 내 운명》의 남자 주인공과 같은 순박한 청년 역을 맡아 왔으나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에서 잔인하고 비열한 조폭 두목, 《[[사생결단#s-3|사생결단]]》에서 건들거리는 형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사생결단》 이후부턴 몇몇 영화에서 흥행 부진을 맛보았으나 《[[부당거래]]》, 《[[댄싱퀸(영화)|댄싱퀸]]》, 《[[신세계(영화)|신세계]]》 등이 흥행하면서 입지를 키워가더니,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베테랑(영화)|베테랑]]》 두 편 모두 천만 명 돌파라는 연타석 홈런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충무로 에이스로 탈바꿈하였다. 게다가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에서 750만 명 정도를 추가로 끌어모아 2015년 한해만 해도 3천만 관객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본인은 사람들이 천만배우라고 말할 때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말한다. 천만이라는 숫자가 자기에게는 의미없고 단지 감사할 뿐이라고... 평소에 심각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씨네21 인터뷰- ] 연타석 홈런을 치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믿고보는 황정민'''이라는 뜻으로 '''믿보황'''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2018||<:>[[공작(영화)|공작]] || 흑금성[* 스파이의 암호명이다.]/박석영[* 극중에서의 본명.] ||주연||497만명||성공[* 손익분기점은 약 470만이고 간신히 넘었으나 500만 도달에는 실패했다.]||
         ||<:>2016||<:>[[곡성(영화)|곡성]]||일광||주연||687만명||성공||
         ||<:>2016||<:>[[검사외전]]||변재욱||주연||970만명||성공||
         ||<:>2015||<:>[[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엄홍길]]||주연||772만명||성공||
         ||<:>2015||<:>[[베테랑(영화)|베테랑]]||서도철||주연||1,341만명||성공[* 손익분기점은 전국 관객 기준으로 280만 관객이라고 한다. 이에 류승완 감독은 속편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속편으로 나온 영화가 바로 [[군함도(영화)|군함도]].]||
         ||<:>2014||<:>[[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윤덕수||주연||1,426만명||성공[* 필모그래피상 첫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되는 영광을 가져다 준 작품]||
         ||<:>2014||<:>[[남자가 사랑할 때(영화)|남자가 사랑할 때]]||한태일||주연||197만명||성공||
         ||<:>2013||<:>[[신세계(영화)|신세계]]||'''[[정청]]'''||주연||468만명||성공||
         ||<:>2011||<:>[[댄싱퀸(영화)|댄싱 퀸]]||황정민||주연||405만명||성공||
         ||<:>2010||<:>[[부당거래#s-2|부당거래]]||최철기||주연||276만명||성공||
         ||<:>2007||<:>[[행복(한국 영화)|행복]]||영수||주연||129만명||성공||
         ||<:>2007||<:>[[검은 집#s-4|검은 집]]||전준오||주연||140만명||성공||
         ||<:>2006||<:>[[사생결단#s-3|사생결단]]||도 경장||주연||210만명||성공||
         ||<:>2005||<:>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나두철||주연||253만명||성공||
         ||<:>2005||<:>[[너는 내 운명(영화)|너는 내 운명]]||김석중||주연||305만명||성공||
         ||<:>2003||<:>[[바람난 가족]]||주영작||주연||174만명||성공||
  • 이정재(영화배우) . . . . 16회 일치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 선역으로 나오면 해당 영화의 흥행이 실패하거나 평이 낮아지는 징크스가 있다. 대표작이라 불릴만한 [[도둑들]], [[신세계(영화)|신세계]], [[암살(영화)|암살]] 등에서 모두 악역으로 나왔으며 흥행도 평도 상당히 좋았으나 선역으로 나온 경우 [[시월애]]같이 흥행에 실패하거나 [[인천상륙작전(영화)|인천상륙작전]]이나 [[신과함께-죄와 벌]]처럼 평이 좋지 않거나 미묘하다. 그나마 전편에 이어 선역으로 나온 [[신과함께-인과 연]]이 나름 준수한 평가와 함께 좋은 흥행 스타트를 끊으면서 징크스를 약간이나마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2017||[[신과함께-죄와 벌]]||특별출연[* 세번째 천만 영화][* 특별출연이라고 되어 있으나 촬영 중 예상외로 염라대왕의 분량이 늘어났다고 한다. 실제로 30회 정도 촬영하였으며, 대부분 촬영 막바지에 촬영된 장면이라고 한다.]||14,410,931명|| 성공 ||
         ||2016||인천상륙작전 : 익스텐디드 에디션||주연||27,070명||성공||
         ||2016||[[인천상륙작전(영화)|인천상륙작전]]||주연||7,049,643명||성공||
         ||2015||[[암살(2015)|암살]][* 두번째 천만 영화]||주연||12,705,700명||성공||
         ||2013||[[관상(영화)|관상]]||주연||9,134,586명||성공||
         ||2013||[[신세계(영화)|신세계]]||주연||4,682,492명||성공||
         ||2012||[[도둑들]][* 첫번째 천만 영화]||주연||12,983,330명||성공||
         ||2010||[[하녀]]||주연||2,304,487명||성공||
         ||2003||[[오! 브라더스]]||주연||3,148,748명||성공||
         ||2002||오버 더 레인보우||주연||240,110명||성공||
         ||2001||흑수선||주연||409,399명||성공||
         ||2001||선물||주연||479,679명||성공||
         ||1998||정사||주연||304,666명||성공||
         ||1998||[[태양은 없다]]||주연||329,778명||성공||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16회 일치
          * 아군 병력에 배속시 이동력을 늘리고 상대 승려/선교사의 사기 꺾기 성공률을 줄임
          * 다른 가문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성공하지 못했을 때 탐지를 피할 확률 +5%
          암살 시 속임수 +1, 행동 스킬 실패 시 성공할 확률 +5%
          * 자신의 성에 배치시 수익을 늘리고 상대 닌자의 공작 성공률을 줄임
          * 아군 병력에 배속시 군대를 감찰해 충성도를 늘리고 상대 닌자의 공작 성공률을 줄임
          * 다른 가문 요원에 대한 체포를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처형되거나 일정 시간 수감됨.
          이 요원의 결정적인 성공확률 +10%
          이 요원의 결정적인 성공확률 +20%
          * 아군 병력에 배속시 군대를 고무시켜 사기를 올리고 상대 메츠케의 매수 성공률을 줄임
          * 다른 가문 요원을 개종시키려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속세를 떠나거나 일정 시간 잠적함.
          * 자신의 성에 배치시 신앙활동을 통해 읍성 내 행복도를 증가시키고 다른 가문의 성공 확률을 감소시킴.
          * 아군 병력에 배속시 군대를 고무시켜 사기를 올리고 상대 메츠케의 매수 성공률을 줄임
          * 다른 가문 요원을 개종시키려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속세를 떠나거나 일정 시간 잠적함.
          * 아군 병력에 배속시 군대를 고무시켜 사기를 올리고 상대 메츠케의 매수 성공률을 줄임
          * 다른 가문 요원을 개종시키려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속세를 떠나거나 일정 시간 잠적함.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13회 일치
          * 아군 병력에 배속시 부대를 고무해 사기를 올리고 다른 번 요원의 공작 성공률을 감소시킴
          * 다른 번 요원에 대한 매혹을 시도할 수 있음. 매혹에 성공하면 해당 요원이 아군으로 전향하게 됨.
          시녀 스킬 요구. 적 매혹 시 매력 +1, 이 요원의 성공확률 +5%
          위안, 가희 스킬 요구. 군대 혼란 시 매력 +1, 부대 고무 시 매력 +1, 공연 시 매력 +1, 이 요원의 성공확률 +5%, 모든 게이샤의 행동스킬 비용 -5%
          * 다른 번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활동가 스킬 요구. 지방 전향 시 열의 +1, 이 요원의 성공확률 +5%
          과격파, 선동자 스킬 요구. 암살 시 열의 +1, 반란 선동 시 열의 +1, 열정 주입 시 열의 +1, 이 요원의 성공확률 +5%, 모든 유신지사의 행동스킬 비용 -15%, 이 요원이 배속된 군대의 캠페인 이동력 +10%
          이 요원의 성공확률 +5%
          * 다른 번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 다른 번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 게이샤를 제외한 다른 번 요원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장교 스킬 요구. 이 요원의 성공확률 +1%, 모병 감독 시 능력 +1
          이 요원의 성공확률 +5%
  • 박근혜 . . . . 12회 일치
         당시 정몽준과 이재오가 당내 경선에 불만을 품으며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박근혜는 [[2012년]] [[8월 20일]] [[새누리당]] 전당 대회에서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의 득표율은 전체 유효투표의 83.97%인 8만 6천 589표로 지난 2002년 경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얻은 68%인 기존의 최고 기록을 갱신하였으나 경선 투표율이 41%로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유력 정당의 첫 여성 후보이자 전직 대통령의 자녀가 대선 후보가 되는 첫 사례이기도 했다.<ref>[http://media.daum.net/society/nation/seoul/view.html?cateid=100004&newsid=20120820162306691&p=yonhap] 심인성 기자, 박근혜, 84% 최고득표율로 與대선후보 확정(종합), 연합뉴스, 2012.8.20.</ref> 한편 박근혜는 2002년 한나라당 제16대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 10년 후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데 성공하였다. 박근혜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모토로 내걸었다.
         개성공단에 관해서도 문제는 계속되었다. 결국 4월 26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내의 잔류인원에 대한 철수를 결정하였다.<ref>{{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74161_5780.html|제목 = 정부 "개성공단 남측인원 전원철수"…폐쇄 위기|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13-04-26|확인날짜 = 2013-04-27|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531115855/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74161_5780.html#|보존날짜 = 2013-05-31|깨진링크 = 예}}</ref> 이에 따라 27일,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126명이 철수했고, 29일에 나머지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1.kr/articles/1109709|제목 = 개성공단 126명 1차귀환 완료..29일 전원철수(종합)|저자 = 조영빈|날짜 = 2013-04-27|확인날짜 = 2013-04-27}}</ref> 그러나 남은 잔류인원 50명 중 43명만 귀환 허가를 받았다(물론 나머지 7명도 훗날 귀환하였다).<ref>{{웹 인용 |url =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479593|제목 = 北 개성공단 마지막 체류 50명 중 일부만 귀환 허가(1보)|저자 = 박지환|날짜 = 2013-04-29|확인날짜 = 2013-04-29}}</ref>
         |세제개편안 원점 재검토 지시, 개성공단 합의 소식
         |대북 강경대응 국회 안보연설, ‘北 개성공단 자금전용’ 논란, 中 ‘한미 사드 배치’ 강력 반발
         [[한나라당]] 친[[이명박]]계는 "박근혜는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폐쇄적 조직 문화가 팽배해 있다"며 "두 차례 대선에서 실패한 [[이회창]] 전 총재의 전철을 되풀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친박계 의원은 "국민들은 박 전 대표를 더 이상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있는 정치인이 아니라 독립적인 지도자로 바라보고 있다"며 "박 전 대표를 흠집내기 위한 어떤 시도도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였다.<ref>(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22573&sid=E&tid=1 {{웨이백|url=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22573&sid=E&tid=1# |date=20100203205709 }} 친이, 세종시 공방속 박정희 공격)</ref> 또한 친이계는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인"이라며 비판하였다.<ref>(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09/11/09/43642.html 김용태 "박근혜, 지역주의에 기댄 사익 추구")</ref>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은 "자신은 유신 시절 빈민 운동을 하느라 고생했는데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잘 먹고 잘 지낸 만큼 빚을 갚아야 한다"며 비판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002332421000.htm {{웨이백|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002332421000.htm# |date=20110216063347 }} 강명순 의원 '박근혜 호의호식' 논란)</ref>
         * [[미디어법]]에 대해서 반대를 표명했고, 일부 수정된 미디어법을 찬성하여 다시 한번 박근혜의 영향력을 확인했다. 하지만 미디어법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로 그의 원칙주의는 깨졌고 지지자들에게도 큰 비판을 받았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269602영향력 입증에는 성공…힘의 원천 '원칙'엔 흠집][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1366942&cp=nv 미디어법 모호처신에 박근혜 이미지 폭삭] {{웨이백|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1366942&cp=nv |date=20150426050029 }}</ref>
         [[전두환]]의 자금을 받았다는 주장은 [[2002년]] 무렵하고 그가 당 대표로 있을 때에도 누군가에 의해 유포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박근혜는 언급을 회피해 왔다. [[2007년]]의 인사 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다시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는 '9억 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6억 원을 받았다. 유자녀 생계비 명목으로 받았고 돌려준 것은 없다. 전 합수본부장의 심부름으로 왔다는 사람이 만나자고 해서 청와대 비서실에 갔더니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다 남은 돈이다. 생계비로 쓰라'고 전해 줘서 감사하게 받아 나왔다.<ref name="chung01"/>'며 생계유지비로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전두환]]에게서 9억을 받았다, 6억을 받았다는 등의 의혹으로만 제기되어 오던 것이 2007년의 인사검증회에서 그가 시인함에 따라 사실로 확인되었다.<ref name="syegye11">[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070719000293&ctg1=01&ctg2=&subctg1=01&subctg2=&cid=0101100100000&dataid=200707191725000261 (사설) '절반의 성공 그친 '李·朴 검증청문회'] 세계일보</ref>
  • 김재규 . . . . 11회 일치
         거기다가 김재규의 말이 아예 사실이라면, 박정희는 김재규를 불러 최태민을 대질시켜놓고 친국을 벌였다는 말이 된다. 당시 김재규는 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장으로 의전상 부총리였다. 대통령의 왼팔이 '''일개 사이비 종교인을 고자질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엄청나게 체면을 구긴 일이다. 2017년 기준으로 보자면 [[검찰총장]]이 사이비 교주 하나 기소했다고 대통령에게 친국을 당하는 것보다 더 심한 꼴이다. 거기다가 김재규가 최태민이 저지른 온갖 부정의 입증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오히려 최태민(정확히는 박근혜)을 신뢰하는 꼴을 보였다. 이는 김재규 입장에서 자신이 끝까지 모신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부장인 자신보다 어디서 굴러와 영애를 홀린 사이비 종교인을 더 신뢰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 있던 충성심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인맥]]의 영향력이 더 컸다. [[박정희]]와 고향 후배이며 육사 동기라는 2중의 인맥인 김재규는 그야말로 심복이었다. 하지만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을 [[발터 PPK]] [[권총]]으로 저격하여 [[암살]]했다.[* 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박정희 암살에 성공한 총기는 [[M36 치프 스페셜]]이다.] 이것이 이른바 [[10.26 사건]]이다.
         어쨌든 거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김재규가 이동한 곳은, 엉뚱하게도 중정이 아닌 [[육군본부]]였다. 만약 김재규가 거사 후 중앙정보부로 향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도 중론이다. 암살장소인 안가는 중앙정보부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었으므로, 부장인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이 박정희를 죽인 사실을 은폐하고 불순세력의 소행으로 몰아가 국무위원과 장성들을 깨끗하게 속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사태 수습을 빌미로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써갈 수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재규를 비판하는 재야/민주운동가들은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동기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의한 기여도 및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시도 “박정희 정권은 당시 [[부마항쟁]]을 비롯한 일련의 민중저항을 통해 어차피 붕괴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며 “김재규의 행위가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홍구는 하단의 긍정론에 서술되어 있듯 2013년을 기점으로 김재규에 대한 견해가 바뀌었다.] 진보적 사회운동가 백기완도 “당시는 박정희 유신독재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항쟁이 거셌고, 박정희 내부 권력의 모순이 더 격화되어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조그마한 사건일 뿐이며 민주화운동의 본체, 기본적인 흐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라고 주장하였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1784.html|출처]]
         자유총연맹 회장이자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닌 [[김경재]]는 저서 '쓰러지는 역사, 일어나는 역사'를 통해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하여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씻었다면서 민주인사들이 김재규의 거사를 폄훼하거나 냉소적으로 보는 분위기를 비판하였다. 소위 진보 및 민주인사들은 박정희 정권 말기 민중혁명의 성공이 눈 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갑자기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해버려 당시 끓어오르던 혁명의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어 버렸다고 주장하는데, 김경재는 이들의 주장이 화려한 응접실에 앉아서 입으로 노동계급의 승리를 외치는 '안락의자 속의 급진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를바 없다고 비판하였다. 설사 그들의 주장대로 민중혁명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살상당할 수 백, 수 천의 무고한 희생자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반문하였다.
         국가원수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서 급진적 권력 교체를 시도한다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치밀한 계획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10.26이 역사에 긍정적 영향을 주려고 한 계획이었다면, 단순히 [[박정희]]를 암살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박정희를 암살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이와 관계된 사람들과 철저하게 입을 맞추었어야 했다. 그리고 난 이후 정권교체 및 민주화까지 질서있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진정으로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중대한 일을 저지르는 입장에서 그는 너무나도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의 삼성공원묘지에 있다. 묘비에는 '의사 김재규 장군 추모비(義士 金載圭 將軍 追慕碑)'라고 적혀 있었다. 당초 그는 유언으로 묘비에 '의사 김재규 장군 묘'를 쓰라고 했지만 신군부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89년에 1월에야 광주/전남 송죽회가 세웠다. 그러나 수십년 전에 박정희 지지자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의사' 와 '장군' 이라는 글씨를 훼손시켰고, 추모비를 굴러 떨어뜨려 금이 가게 만들었다.
         인터뷰에 응한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과거 발언내용인 2004년 8월 11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5863|한겨레21 기사]]와 최근 발언 내용을 비교하면 그의 김재규에 대한 평가가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는 김재규에 매우 비판적이었으나, 2013년 5월 17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7948.html|한겨레 기사]]를 통해 재평가 여지가 있음을 밝혔고 2016년 12월 17일 경향신문 기사에서도 마찬가지 입장임을 알 수 있다. 경향신문 기사를 참고하면 한 교수는 지금이 '''[[박정희]]와 유신의 망령을 떨쳐내는 시기'''라고 규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과거 한 교수는 '대한민국이 박정희와 유신의 망령을 떨치고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게 될 때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아래 기사 참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김재규가 살아나는 것은 [[박정희]] 신드롬에 치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규는 10·26의 주범일 뿐만 아니라, 중앙정보부장 시절 박 전 대통령에게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의 비위사실을 알린 당사자다. 한 교수를 김재규를 ‘박정희의 충신’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며 “유신시대의 자료를 꼼꼼히 읽으면서 김재규란 사람이 자기가 잘릴 수도 있는데 박정희의 충신으로서 자기 몸을 던져서 최태민을 막으려 했던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최태민을 막았다면 오늘의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런 내막이 최근 들어 다시 알려지면서 집회에 김재규 얼굴이 들어간 깃발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시|광주시]] 오포면 삼성공원 묘지에 위치한 김재규의 묘소[* [[http://www.ddanzi.com/index.php?mid=free&bm=hot&document_srl=170935390|묘소 위치를 자세히 설명한 글 링크]]]는 [[10.26 사건]] 당시 김재규를 변호했던 변호인단이나[* 당시 변호인단들은 김재규의 인품에 반해 37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김재규를 장군이라 칭하며 추모하고 있다.] 몇몇 민주화 운동가들, 그의 생전 부하들만 찾는 쓸쓸한 묘소였다. 박정희 신드롬이 한창이였을땐 박정희의 추종자들이 찾아와 김재규의 묘비나 제단의 글자를 훼손하거나 심지어 추모비를 산 밑으로 굴려 떨어뜨리기까지 하였다.[* 추모비 하단에 금이 가있는 것은 이 때의 흔적이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5531|#]]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 여론이 높아진 이후 그를 추모하는 젊은이들이 묘소에 김재규의 영정을 갖다놓거나 주변을 꽃다발이나 헌정시 등으로 장식하여 현재는 제법 묘소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평가 받은 것과는 별개로 유족들이 왜 훼손된 상태로 묘비를 놔뒀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2013년 당시 김재규 유족과의 인터뷰에서 '훼손된 것도 역사의 일부'라는 취지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60|#]] 그리고 덧붙인 "훗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라는 부분에서 무언가 의미심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1회 일치
         헤이덤과 찰스 리는 존슨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용병단 소굴앞에서 히키와 조우한다. 히키는 용병단이 자료를 훔쳐갔다는건 확인했지만 도적단 소굴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상황. 이에 헤이덤은 자신이 후방에서 습격하는 동시에 찰스 리와 히키가 정면에서 공격하는 작전을 짠다. 이 작전에 큰 피해를 입은 용병단은 성채 안으로 도망쳐 문을 걸어잠그지만 헤이덤의 화약통 쏘기에 몰살. 헤이덤은 자료가 든 상자를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아킬레스는 라둔하게둔에게 템플기사단원들의 초상화를 보여준다. 템플기사단이 성공하면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라둔하게둔은 이들이 모두 죽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인 헤이덤이라도. 그러자 아킬레스는 헤이덤은 모든 걸 쥐고 있으니 더더욱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 공격 받았을 때 성공적인 버티기 3회
         윌리엄 존슨은 죽고, 코너의 마을을 빼앗으려던 템플기사단의 계획도 저지되었다. 하지만 윌리엄 존슨의 시체에서 발견된 편지는 또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존 핏케언에게 보내려고 했던 그 편지는 애국자들의 무기와 보급품을 싹 제거하라는 내용이었다. 핏케언이 성공한다면 애국자들은 패배할 것이고, 템플기사단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장악하기 쉬워질 것이다. 코너는 핏케언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1775년 4월 18일, 코너와 리비어는 강을 건너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말이 한 필 밖에 없으므로 코너가 말을 몰고 함께 탄 리비어가 방향을 알려주기로 한다. 둘은 첫번째, 두번째 민병대에게 소식을 알리는데 성공하지만 세번째 마을은 영국군이 이미 와 있어서 들키고 만다. 코너와 리비어는 영국군에게서 도망쳐 새뮤얼 프레스콧의 집에 도착해 소식을 알린다. 이후 둘은 애덤스와 핸콕이 숨어있는 렉싱턴으로 간다. 도스보다 빨리 도착한 코너와 리비어는 둘에게 영국군이 오고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둘은 영국군이 수색해봤자 아무것도 못 찾을거라고 하지만 핏케언이 그들을 죽이려는 소리를 듣자 도망치기로 한다.
         코너는 퍼트넘에게 다가간다. 그는 진짜 성공하고 돌아왔다며 놀라는 퍼트넘에게 꽤 좋은 연설이었다고 평하지만 퍼트넘은 죄다 거짓말이었다고 말한다. 핏케언은 보스턴을 떠나 몰턴 힐에 야영장를 세웠다. 하지만 방비가 단단했기에, 퍼트넘은 잠시 돌아가거나 적의 병력이 줄어들 때 까지 기다리는걸 제안한다. 코너는 시간이 없다며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핏케언: 영국인들에게는 같은 요구를 안했을것 같아?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어. 내가 내 역할을 맡게 해주었다면 성공했을거다.
          * 멈춘 사람들의 도청을 성공적으로 끝냄
          * 이동하는 사람들의 도청을 성공적으로 끝냄
         헤이덤은 코너에게 올라탄다. 그러고는 템플기사단은 깨달음에서 태어나기 때문에서 절대 파괴되지 않을거라고 선언하며 코너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코너는 목졸려 죽어가면서도 암살검을 뽑는데 성공, 암살검으로 헤이덤의 목을 찔러 죽인다.
  • 이승현(농구선수) . . . . 11회 일치
         대학 말년에 장착한 3점슛이 큰 효과를 보이며 높은 성공률을 기록,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덤으로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좋은 패스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압권은 접전상황에서 결승 득점을 만들어주는 백도어 컷인 패스를 건네준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ketball&category=kbl&listType=game&date=20141023&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101921&page=1|바로 이 장면이다]]. 이게 신인의 플레이가 맞냐는 평가.
         장점 중 타고난 체력이 꼽히기도 하는데, 대학리그를 마치고 휴식기 없이 바로 프로 데뷔 시즌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팀내 평균출장시간 1위(2014-15 시즌) 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시에 대학 말년에 장착한 3점슛이 일취월장하여 허일영(50%)에 이은 시즌 3점슛 성공률 2위(42.9%)를 기록하였다.
         비시즌 국대에 다녀온 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마드 니카 바라미를 막다가 발목이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잘나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골밑에서 궂은일을 해줌과 동시에 외곽포 지원까지 해주었다. 하지만 헤인즈 전력 이탈 이후 수비부담이 심해짐에 따라 스탯도 미세하게 흔들리는 모습. 특히 6라운드 시작 현재 3점슛 성공률이 시즌 25%가 채 되지 않는데, 상대팀에서 무시해도 될 만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수비부담을 강조하는 옹호글 때문에 용병수비의 준말인 용수라는 멸칭도 획득(...). 그러나 출장시간 및 전체적인 성적을 보면 팀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들을 잘 해주고 있는 편이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최진수, 장재석과 함께 동부 공격의 중심인 로드 벤슨과 웬델 맥키네스의 멘탈을 뒤흔드는 압박을 선보였고, 시즌 중 매우 떨어졌던 외곽 성공률 때문에 수비를 등한시했던 동부 수비수들에게 빅엿을 날리는 3점슛을 1,2차전 합계 5개나 성공시키면서 홈 2연승의 주축으로 평가받았다. 3차전에서는 2쿼터 중반 무릎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가서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지만, 승부에 쐐기를 박는 4쿼터 3점슛 2방으로 동부를 스윕하고 울산행 티켓을 거머쥐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3차전 기록은 3점슛 4개 포함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인 20점을 득점하였다. ~~이승현 3점 갯수의 절반밖에 못 넣은 동부 선수들은 반성해야된다. 25개 던져서 2개가 뭐냐?~~
         11월 23일에 어웨이 경기로 치뤄진 2019 FIBA 농월 예선에서도 뉴질랜드를 상대로 3점슛 2개 포함 총 14득점을 기록하였다. FG 성공률이 83.3%를 기록했고 미친 존재감을 보인 전준범(23)에 이어 팀내 효율성 지수 2위인 19를 기록했다.
         세 번째 장점은 발전속도이다. 14년 아겜 국대에서 낙마하게 된 원인이 신체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공격툴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외곽슛을 연마하기 시작해 신인 시즌에 3점 성공률 2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현재 시점인 2017년말에는 동포지션 대비 상급의 슛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슛 뿐만 아니라 포스트업 기술이나 대인수비나 박스아웃 등 공수 전반적으로 꾸준하게 발전을 보이고 있어 [[전준범]]과 함께 국대에서도 핵심 멤버로 등극하게 되었다. 상무 복무자의 경우 훈련하는 공인구가 달라 국대 경기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오히려 시즌때보다 정교한 필드골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는것도 고무적이다.
         다만 슈팅 모션이 느리기 때문에 오픈찬스가 아니면 득점하기 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체력 저하가 시작되는 3쿼터 막판부터 야투 성공률이 급감한다는 단점이 있다.[* 70점 이하의 득점으로 패배하는 경기를 보면 이 단점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지샷도 놓치는 모습이 4라운드 이후 점차 늘어나는 추세.] 문제는 1대1 능력이 부족하다는점. 본인이 공을 잡고 득점하는 기술이 거의 없으며, 라이벌이자 동기인 김준일에 비해 밀린다고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KBL이 용병이 에이스롤을 맡아 국내선수는 롤플레이어 역할로 그쳐도 크게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대학때 모습에 비하면 아쉽다. 물론 워낙 BQ가 좋고 볼 없는 움직임도 좋은 선수라 매경기 10점 정도는 가능하다. 그 외에는 속공 가담 후 받아 먹기나, 포스트업 이후 페이드 어웨이 점퍼. 조 잭슨이 살아나면서 볼 없는 움직임이 좋은 이승현도 덩달아 득점력이 상승하기도 했다. 16-17시즌 이후에는 포지션의 구분없이 피지컬에서 미스매치가 나면 곧장 인사이드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이에따라 포스트업이나 훅슛 등 공격스킬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여 페인트존 공격기술이 없다는 비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자신이 소속했던 초(대구 칠곡초), 중(서울 용산중), 고(서울 용산고), 대(고려대), 프로(고양 오리온)팀 모두를 우승시켰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KBL총재배 초등부 농구대잔치 우승을 시작으로 중학교에선 춘계연맹전, 협회장기, 전국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오랜시간 무관에 그치던 용산고를 우승시켰다.[* 이승현은 꽤 어린 나이부터 용산고 OB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용산고 출신인 양동근이 "넌 여기 와도 돼. 우승시켰으니까" 라고 이승현에게 이야기 해줬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재학 중 단 한번도 지지않았으며, 김종규/두경민/김민구가 버티던 경희대를 꺾고 MBC배와 대학농구리그를 모두 제패해버렸다. 특히 4학년에 재학중이던 2014년 가을 MBC배 대학농구 결승전에선 종료 1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동점 3점슛을 작렬시키고, 종료 1초를 남기고 역전 2점슛을 성공시키는 원맨쇼까지 보여줬다.
          * KBL에서는 덩크를 하는 모습이 안 나와서 [[함지훈]]처럼 덩크를 못 한다는 소리가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시절에 연습 영상을 보면 덩크는 할 수 있는 듯하다. 2015 플레이오프에서 파울콜 상황에서 파워풀한 원핸드 슬램을 시도하기도 했고, 경기전 몸풀기때 이따금씩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것만 봐도.. 만약 경기 중에 혹시라도 덩크했을 때 실패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팀을 우선시하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닌이상 덩크를 경기 중에 하지는 않을 듯하다. 본인 말로는 덩크를 할 수 없을 나이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했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0회 일치
         친구를 감싸는 모습에 감동한 오카마 왕 [[엠폴리오 이반코프]]는 빠른 치료를 원하는 루피에게 '10년 분의 수명을 깎아' 자기치유력을 급격히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시술한다. 본래 사형 시간을 넘겨서야 회복될 몸이었지만, 봉쿠레의 응원과 근성으로 20시간만에 회복에 성공하고 LEVEL 6로 향하지만 에이스는 이미 사형장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여기서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위해 크로커다일과 [[징베]]를 파티에 합류시킨다.
         모두의 도움 속에, 처형대로 향한 루피를 [[몽키 D. 가프|할아버지]]가 가로막고, 루피는 잠시 망설이다 호쾌하게 할아버지를 때린다.[* 가프는 이 때 망설이다가 주먹을 늦추었다. 덕분에 루피는 ''''패륜 손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할아버질 쓰러뜨린 뒤 사형대에 올라 Mr.3를 만나고, [[센고쿠(원피스)|센고쿠]]의 공격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에이스 구출 성공'''
         탈출 직전에 아오키지에게 바다가 얼려 잡힐뻔하고 [[볼사리노]]에게 무차별 레이저 난사를 당했으나 천운으로 잠수함은 무사했고, [[보아 행콕]]도 자신의 뱀 살로메를 이용해 추적에 성공해서 뒤따라온다. 루피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 숨을 곳이 필요함을 안 행콕은 쿠쟈 해적단을 불러 로 일행과 루피를 여인섬으로 데려간다.
         마젤란과의 전투 이후 독에 항체가 생겨 [[가스가스 열매]]의 능력자 [[시저 클라운]]의 [[독가스]]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후 압도하는 듯했으나, 가스가스 열매는 '''공기 자체를 조종하는 열매'''였기에 산소부족으로 기절, 이후 트라팔가 로, 스모커와 같이 감금되었다. 그래도 로 덕분에 탈출해서 다시 시저와 맞붙게 되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잘 싸웠다. 그러나 하피 모네가 시저를 도주시키는 데 성공하고 모네의 능력도 시저처럼 순수 전투력만으로는 불리한 터라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래도 어떻게든 벗어나긴 했지만 하필 쓰레기장에 떨어진 터라 그곳에 발이 묶인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작은 용과 만났다. 그런데 루피는 그 용을 장어라 불렀다.
         ~~[[장어]]~~ 모모노스케를 몸에 두른채 C동 1층으로 탈출 성공. 시저의 부하한테서 시저가 R동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위기에 처한 갈색수염을 구하고 시저를 후드려패기 시작.
         조로가 피카를 상대하며 뒤를 맡아준 덕분에 바이올렛과 함께 왕성으로 돌입했고 그 와중에 [[글라디우스(원피스)|글라디우스]]의 공격을 받아 터지기 직전이던 외다리 장난감 병정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라디우스와 맞붙으려는 찰나, 바이올렛의 제지로 도주해 도플라밍고가 있는 방 바로 옆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로 도플라밍고와 맞붙으려고 하지만, 바이올렛이 필사적으로 말리고 있는 상황.
         743화에서 ~~루피는 모르는 작전이지만~~ SOP 작전이 성공하자마자 장난감 병정이었던 퀴로스가 눈깜짝할 새 도플라밍고의 목을 베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놀랍다는 듯 우와!!! 밍고가 죽었어!!! 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 744화에선 쫓아오는 글라디우스를 피해 바이올렛과 함께 모양의 방에 뛰어들어간다. 동맹이 끝났다며 가버리라고 화를 내는 로의 말을 ~~당연히~~ 그대로 무시하고 해루석을 만지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그의 수갑을 풀려고 하는데, 그 순간 '''잘린 도플라밍고의 머리가 말을 했다!!''' 루피는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우와!!! 밍고가 살아있어!!!"''' 라고 ~~이마저도 태연하게~~ 말한다. (...)
         그리고 쓰러져있는 베라미와 자신의 실인형을 이용해서 공격할 뿐, 자신은 꼼짝도 하지 않는 도플라밍고에게 한방 먹이기 위해서 로의 능력을 이용, 도플라밍고에게 거하게 한방 제대로 먹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로와 원래 계획했던 작전은 물건너간듯. 하지만 도플라밍고는 별 다른 큰 타격을 입지도 않았다. 그리고 도플라밍고에게 조종당하는 베라미와 실실 열매의 능력, 그리고 무장색 패기에 열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781화에서 새장의 크기를 줄이며 시민 모두를 죽이려 하는 도플라밍고에게 격노하여 문답무용으로 정면 돌진...하는가 했더니 사실은 거기까지가 이미 죽은 줄 알았던 로의 작전이었다. 공격하려던 순간 샴블즈로 뒤쪽에 있던 로와 위치를 교체, 방심하고 있던 도플라밍고에게 로가 능력으로 치명상을 입히는 데에 성공한다. 도플라밍고는 깡으로 버티며 로를 공격하려 하지만 이어서 루피가 도플라밍고를 공격하고, 그로기 상태가 된 도플라밍고에게 로가 혼신의 카운터 쇼크를 날린다. 그 동안 로를 막으려던 트레볼은 루피가 발차기 한 방으로 날려버린다. 하지만 정작 치명상을 입었던 도플라밍고가 자신의 실실 능력으로 부상을 치료하고 로를 짓밟으려 하는 순간 루피가 뻗은 발이 도플라밍고의 발을 받아내고, 서로 발을 맞댄 채로 노려보는 장면으로 781화 종료.
         기어4로 전세를 역전시켜 도플라밍고를 순식간에 궁지로 밀어넣는데 성공하나 기어4는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심해서 약 10분 간 지쳐 쓰러지고 만다. 한편 도플라밍고는 "능력자에게는 각성이란 경지가 있다"면서 주위 사물을 실로 만들면서 반격을 시작, 다시 위기에 처한다. 새장도 해제되지 않고 시시각각 조여오는데, 이때 나머지 간부들을 정리한 밀집모자 일당과 콜로세움 일행이 합류해 시간을 벌고 있다.
  • 박정민(배우) . . . . 9회 일치
         이후,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합격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례가 없는 영화과 -> 연기과로의 전과가 성공한 것.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한예종 연기과는 그 경쟁률이 매해 상상을 초월하는데, 신입학보다 전과가 까다롭다고 한다. 20대가 될 때까지 거의 공부만 하던 학생이라 필모그래피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연기자로의 전과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3> 2018년 || [[그것만이 내 세상(영화)|그것만이 내 세상]] || 주연 || 오진태 || 341만 명 || 성공 ||
         || [[더 킹(영화)|더 킹]] || 조연 || 허기훈 || 531만 명 || 성공 ||
         ||<|4> 2016년 || '''[[동주(영화)|동주]]''' || 주연 || [[송몽규]] || 116만 명 || 성공 ||
         ||<|3> 2014년 || [[피끓는 청춘]] || 조연 || 황규 || 167만 명 || 성공 ||
         ||<|2> 2013년 || [[감기(영화)|감기]] || 조연 || 차철교 || 311만 명 || 성공 ||
         ||<|2> 2012년 || [[댄싱퀸(영화)|댄싱퀸]] || 조연 || 뽀글이 || 405만 명 || 성공 ||
          * [[한화 이글스]] 팬으로 유명하다. 박정민의 언희에서도 "내 몸엔 주황피가 흐른다."~~신화창조~~고 말할 정도로 골수팬이며, 같이 영화를 찍은 [[박보영]]에게 가을 점퍼를 사주기도 했다.[* 박보영은 받으며 "오빠, 아직 이른 것 같아요..." 했다고... ~~칰레발은 금물임을 잘 아는 뽀느님~~] 한예종 재학 시절에는 고정닉까지 파서 야갤과 칰갤을 오가며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30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영화)|변산]] 홍보 기념으로 시구를 하며 성공한 한화팬이 되었다. [[한화 이글스/2018년/6월|그리고 이 날 경기는...]]
  • 원빈(배우) . . . . 9회 일치
         신인 시절엔 90년대 청춘 스타들이 그렇듯 예능, 드라마 가릴 것 없이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2000년대로 넘어와선 주로 영화 쪽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출연 영화 편수가 적기는 하지만 출연한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 2010 || [[아저씨(영화)|아저씨]] || 주연 || [[차태식]] || 6,282,774명 || 성공 ||
         || 2009 || [[마더(영화)|마더]] || 주연 || 윤도준 || 3,013,523명 || 성공 ||
         || 2004 || [[우리형]] || 주연 || 김종현 || 2,479,585명 || 성공[* [[신하균]]과 공동 주연. 이 관객수를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장르도 장르이지만 2004년 당시 '태극기 휘날리며'나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제외하면 별다른 흥행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2위인 [[어린 신부]]가 315만으로 우리 형은 그 해 흥행 6위로 나쁘지 않은 성적인 것은 분명했다.] ||
         || 2004 || [[태극기 휘날리며]] || 주연 || [[이진석(태극기 휘날리며)|이진석]] || 11,746,135명 || 성공 ||
         || 2001 || [[킬러들의 수다]] || 주연 || 하연 || 871,125명[* 서울 관객 기준이다. 전국 관객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 성공 ||
         2010년엔 영화 [[아저씨(영화)|아저씨]]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했으며 그와 덩달아 모든 여성 관객의 남친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중간에 '''상의를 탈의하고''' 삭발하는 장면에서는 매 상영 때마다 객석이 술렁거리거나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여성 관객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원빈 보러 갑니다'''라는 농담이 '''진리로 들린다'''.
          * [[아저씨(영화)|아저씨]]의 대성공 이후 [[미국]] 진출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가 맡았던 역할이 원래에는 원빈을 염두에 둔 역할이었다고 한다. 왜 성사가 안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2년에는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가 맡았던 역할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거절하였고[* 다만 이 경우에는 원빈이 이재규 PD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깨지고 언론에 원빈의 [[더킹 투하츠]] 출연설이 나돌면서 하차하게 된 것이다.] 2013년에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거부하면서 차기작 선정은 2018년까지 미정이다.
  • 최홍만 . . . . 9회 일치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절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반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초반과 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만큼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2007년 4월과 8월 각각 마이크 말론과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홍만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한다. 요코하마에서의 패배를 의식한 듯 가드를 굳히고 로우킥을 내는 전법을 들고 나온 최홍만은 결국 우세한 경기를 펼쳐내며 판정승을 거둔다.[* 1차전에서와 같은 오버 핸드가 수차례 적중했지만 이때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홍만이 모에게서 빼앗은 다운이 실은 [[로블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모는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반면 최홍만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친 지나친 어드밴티지와 데뷔 때부터 제자리걸음인 기량 등을 이유로 안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http://www.mfight.co.kr/serial/viewbody.php?code=mfight_board_serial2&number=203|당시 인터뷰. 마이티 모의 표정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마이티 모가 너무 빡친 나머지 판정 결과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요구를 했으나 K-1측의 답변은 '''다운이 로블로인 건 인정하는데 니가 진 건 맞음 ㅋ'''이었기 때문에 K-1도 상당히 많이 까였다. 2006년 밴너와 레미의 대결 당시 판정 논란이 일자 비디오 판독을 통해 결과를 정정한 것과는 반대되는 부분.
         이러한 여론은 2007년 12월 8일 월드 그랑프리에서 벤너에게 또 다시 패하면서 가속화된다. 그 와중에 연예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까이기도 했다. 12월 30일 야렌노카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보여준 선전[* 전직 씨름선수답게 표도르를 테이크다운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후 파운딩을 엄청나게 날렸다. 정타는 없었지만. 파운딩을 열심히 날리다가 암바로 패.]으로 잠시 가라앉았으나 2008년 9월 바다 하리전과 2008년 12월 레이 세포전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다. 특히 2008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하락세가 뚜렷한 세포를 상대로 졸전을 벌인 끝에 스피드에서 농락당하며 세포의 [[굴욕기]]인 노가드[* 세포가 한창 전성기였을 무렵 사용하던 전술로, 당시에는 기량의 하락으로 거의 봉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홍만에게 다시 썼다'''.]에 관광당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냈다.
         2007년 12월 야렌노카에서는 '[[마지막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경기를 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효도르의 스피드에 밀리면서도 클린치 싸움에서 2번이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상위에서 파운딩을 날리는 등 선전했으나 결국 리버스 암바에 걸려 서브미션으로 패하고 말았다. 패배하긴 했으나 확실히 레슬링에 있어서 강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마이티 모전 패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이 경기는 K-1의 농간으로 인해 경기 5일 전에 오퍼를 받아서 거절했다가 결국 3일 전에 오퍼를 수락하고 이틀 훈련해서 경기에 출전하게게 되었다고 [[무릎팍도사]] 출연을 통해 본인은 주장했지만 대회 18일 전인 2007년 12월 13일에 대전 확정 기사가 뜬 걸로 봐서 별로 신빙성은 없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0085857|#]]]
         그러나 12월 26일 벌어진 로드 FC 27 중국대회에서 루오췐차오를 펀치 TKO로 화끈한(?) ~~떠먹여준~~ 승리를 거두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물음표가 많아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일단 TKO이긴 한데... 상대가 쓰러지지도, 심각한 대미지를 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자진 포기했다. 추후 밝혀진 바로는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었다고 한다.~~이때 최홍만이 '아 뭐야~'하는 것도 들린다.~~] 이 경기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상대가 신장 193㎝에 체중 110㎏에 육박하는 나름대로 거구였다곤 하나, 그 거구란 것도 최홍만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정도고 MMA 전적도 아예 없는 걸 감안하면 최홍만이 전혀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력에서도, 체격 조건에서도 월등히 앞서는데도 수세에 몰린 모습만 보여주다가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https://m.youtube.com/watch?v=HiNa8nVTFQs|영상]].
         근육이 빠진 상태에서 이전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눈에 보일 만큼 벌크업에 성공했으나[* 특히 팔 근육은 아오르꺼러 전에 비하면 확실히 근육이 드러날 만큼 불어있었다.] 맞추질 못했으니... 이 날 마이티 모는 챔피언이 됐음에도 환호성은커녕, 박수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젠 관중들도 별 기대를 안했다는 뜻이다.[*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지에 상당히 기대를 했는데도 이 모양이기에 실망의 부분도 있고.]
         왼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잡이처럼 왼팔을 앞으로 향하는 오소독스 자세를 썼는데,[* 보통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반대로 [[사우스 포]]자세를 취한다.] 이는 타격 베이스가 없는 최홍만에게 빠르게 타격 기술을 연마시키기 위해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B급 선수들은 정확하고 강력한 왼손 잽만으로도 갖고 노는 수준이었으니 성공적인 전략이었던 셈.
         가장 큰 의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에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K-1의 로컬라이징 전략이 크게 성공한 케이스로, 떡밥과 빅매치를 적절히 섞은 후 언론으로 잘 포장하여 어필한 케이스다. 데뷔 초기 한국에서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어서 K-1이 방송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등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가 메이저 컨텐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는 2000년대 중반을 계기로 국내 프로 격투단체들이 창설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 마재윤 . . . . 8회 일치
         이후에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 이어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도 예선전에서 떨어졌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는 [[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신예 [[임원기]]를 잡고 복귀했지만, 32강 최종전에서 이윤열에게 또다시 패배하면서 16강 진출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다시 32강에 진출, 사상 유례없는 MSL 11연속 진출을 달성했다<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90893&db=news [[포모스]], 2008년 12월 18일]</ref>(KPGA시절까지 포함하면 이윤열, 조용호등이 있으나 순수 MSL만 따질 경우 마재윤이 최초이다). 2008년 10월 11일에 펼쳐진 블리즈컨 2008에서는 [[박지수]]와 [[허영무]]를 잡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12일에 치러진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만나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블리즈컨 2연속 제패에 성공했다.
         로스트사가 MSL 2009 8강에서 김명운에게 3:1로 패하며 이후의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시즌 중 이성은과 김택용을 잡아내면서 천적 이미지는 어느정도 불식시키는데 성공한다.
         [[송병구]]와의 첫만남은 비공식전인 [[CYON MSL 2005]] 3차 챌린지 예선 D조 결승으로 이때 1:2로 패배, [[WCG 2005]] 1차예선 9조 4강에서도 0:2 셧아웃, 이어 공식전에서의 첫만남은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플레이오프 삼성전자전 7세트였는데 여기선 송병구에게 패했다. 하지만,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삼성전자전 5세트에선 승리했다. 이어 이듬해 [[곰TV MSL 시즌2]] 16강 D조 경기에서 다시 만났는데, 마재윤이 2:0으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올스타전 열정팀전 7세트에서 다시 마재윤 승리, [[곰TV MSL 시즌3]] 16강 D조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때는 두 번째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끝내 마재윤이 2:1로 승리하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듬해 여름 비공식전인 2008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1:2 패배, 그해 겨울 역시 비공식전인 [[IEF 2008]] 8강 A조에서는 0:3 셧아웃 패배, 역시 비공식전인 올스타 종족 최강전 프로토스전 6세트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5:2로 우세,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2:8로 더 강세.
         이전 팀 동료였던 [[변형태]]와는 8차례나 만났었는데, 모두 팽팽했다. 개인리그와 비공식전에서만 만난 기록들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4강 B조 경기에서 마재윤이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스타리그 2007]] 8강 A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서 2:1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2007년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2:1 승리.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4:4로 무승부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6:5로 앞선다.
         [[STX 소울]]의 저그 [[김윤환 (1989년)|김윤환]]과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STX전 5세트에서 패했으며, 14차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L조 승자전에서도 패했다. 그러나 2008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시즌3 7조 최종전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하며 MSL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2라운드 STX전 1세트에서 또 패했다. 상대전적은 1:3로 마재윤이 열세였다.
         [[안상원]]과는 비공식전에서 먼저 만났었는데, 다음 다이렉트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0:2 완패, 2006 2차 듀얼토너먼트 1조 결승에서 1:2 패배, 공식전에서의 만남들인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온게임넷전 4세트에서 마재윤이 승리했으며, [[곰TV MSL 시즌2]] 32강 B조 최종전에서도 안상원에 승리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며, 14차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L조 최종전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하며 MSL 진출에 성공했다. 공식전만으로는 0:3 열세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4:4 동률이다.
  • 이유리(배우) . . . . 8회 일치
         이 후 KBS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왔다. 사실 《학교 4》 출연 배우들은 KBS와 2년 전속계약을 맺어 이유리는 이후로도 계속 출연했는데 그것이 거의 공무원 수준이었다. 또 이 시점에는 《학교 4》 출신이었던 [[공유(배우)|공유]], [[임수정]] 등이 굵직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며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에 비해 자신은 조연에 머무르는 처지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줌마1, 학생1, 학생2가 아닌 내 역할의 이름이 있다는 것, 단역 연기자들에겐 그 마저도 꿈이다. 내게 주어진 것만을 더 항상 감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매 순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05년 MBC 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영재([[김규리]])'의 여동생이자 성공한 억대 연봉의 애널리스트 '주은재'로 분했다. 극 중 성공한 당당한 커리어우먼 역이라 매회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미모를 뽐냈다.
         2010년 SBS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 타이틀롤 '지순영'역을 맡아 기존의 지고지순한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쾌활한 역으로 또 한번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줌마가 여러 어려움과 역경을 거쳐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고 사랑도 잡는다는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공식을 따른 드라마. 이유리는 극 중 톡톡튀고 당찬 연기로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드라마는 아침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지키며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2011년 MBC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란'으로 본격적으로 독보적인 악녀연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사실 깍쟁이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는 종종 맡은 적이 있어도 본격적인 악녀 연기는 2002년 《러빙유》이후 9년만이었다. 극 중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산부인과에서 부모가 뒤바뀌는 바람에 가난하기 그지 없는 집안의 둘째딸로 살아가던 중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과 운명이 뒤바뀐 '정원([[김현주]])'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정원을 향해 열등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로 열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출생의 밝혀지기 전 초라한 모습과 정반대로 부잣집에 입성하면서 매 회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유리도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다.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이유리는 복수극이나 대립물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들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2012년 [[tvN]] 아침드라마 《[[노란복수초]]》에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복수의 화신으로 재탄생하는 '설연화'역을 맡았다. 드라마는 당초 10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반응이 좋아 케이블에서는 이례적으로 8회가 연장됐고 23주간 케이블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선보이며 2012년 《[[응답하라 1997]]》과 함께 tvN 드라마의 부흥을 이끌었다.
         2017년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시크하고 도도하지만 허당끼도 매우 심한 변호사 '변혜영' 역을 맡아, 연인 '정환([[류수영]])'과 치고 받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등 할말은 하고 자신이 가지려는 것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대가족의 장녀 역할을 유쾌하게 연기하여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매력있고 귀여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결국 예전의 악녀 이미지에서 사이다녀, 대세녀 이미지로 탈바꿈하여 독보적인 캐릭터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여러 광고를 찍는 수확을 거두며 아버지가 이상해의 최대 수혜자로 거듭났다. 열연을 인정받아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한 단계 도약했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8회 일치
          * 승려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10%
          * 선교자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10%
          * 잇코 승려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5%
          * 승려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10%
          * 선교사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10%
          * 잇코 승려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5%
          * 닌자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10%
          * 메츠케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10%
  • 김성주(축구선수) . . . . 7회 일치
         4월 18일 [[아산 무궁화|안산 경찰청]]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해서 전반 7분 프리킥 상황에서 높이 찬 공이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발 앞으로 뚝 떨어지면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침착하게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도움을 기록하고 75분에 라이언 존슨과 교체되어 나가며 팀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일명 Z+D 슛이 키퍼가 닿지않게 감기는 궤적을 그리며 득점에 성공하며 팀은 5대1 큰점수차로 리그 첫 승리를 달성했다.
         5월 10일 [[경남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93분 타라바이와 교체되며 투입되지만 공 한번 못잡아보고 경기가 종료.. 팀은 3:2 역전승을 거두고 2연승에 성공했다.
         5월 13일 [[강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51분 이재안 선수와 교체되며 투입되었다. 후반 종료직전에 보비와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 사이로 패스를 보냈고 이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받은 후 드리블로 수비를 속이고 오른발 슛으로 득점에 성공하지만 팀은 결국 2:4로 패하고 만다.
         5월 30일 [[수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경기종료 직전 김창욱이 뺏어낸 공을 받아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에게 쓰루패스 이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받은후 개인기로 수비를 살짝 제치며 왼발슛, 김한원 선수가 따라갔지만 결국 득점에 성공하며 도움을 기록했고 팀은 2:0으로 승리하며 리그 3연승, 리그 3위를 달성했다.
         6월 10일 [[충주 험멜]]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하고 팀은 보비의 동점골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후반 종료직전 극적인 역전 결승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고 5연승에 성공했다. 7승 4무 2패, 리그 2위 유지.
         6월 13일 [[FC 안양]]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몇번의 슈팅만 시도하고 팀은 후반 종료직전 타라바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0으로 승리, 6연승을 달린다. 8승 4무 2패, 리그 2위 유지.
  • 로베르 기스카르 . . . . 7회 일치
         기스카르를 유명하게 만든건 1053년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교황청에서 저지하려했던 치비타테 전투에서였다. 치비타테 전투에서 기스카르가 이끄는 좌익은 전투 초반 아베르사 백작 리카르도가 이끌던 상대 좌익을 성공적으로 격파했고, 옹프루이가 이끌던 중군이 교황령의 중군을 성공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자 즉각 좌익을 그곳으로 투입시켜, 전투의 승기를 잡는데 크게 공헌했다. 치비타테에서의 이러한 영웅적 활약으로 인해 기스카르는 1057 4월에 옹프루이가 죽자 그의 작위였던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백작위를 상속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당시 소렌토의 공작으로써 살레르노 공작과 대립중이던 그의 동생인 기욤[* 앞에서 설명된 '강철팔' 기욤과는 다른 인물이다.]을 격파하는데 힘을 보태주는 대신, 살레르노 공작의 땅을 잠식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멜피 공의회 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더더욱 치고 올라, 그해 겨울이 끝나기전 레조를 제외한 칼리브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타란토와 브란덴시에 있던 비잔티움 요새들도 모두 박살냈다. 이후 동생인 로제르와 함께 레조까지 힘락한 기스카르는 콘스탄티노스 10세가 남이탈리아를 되찾기 위해 보낸 군대까지 격파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우세를 확실히 한다. 이후 그는 1061년에 로제르와 함께 메시나를 정복하면서 시칠리아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고, 1071년에는 바리를 함락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 비잔티움 세력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듬해 초에는 팔레르모를 함락하면서 시칠리아섬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1075년에 살레르노 공국을 정복하면서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그의 야심은 남이탈리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원한건 동방제국의 제위를 차지 하는것이었다.
         답은 바로 비잔티움 전통의 외교술이던 이이제이였다. 예전부터 비잔티움은 외국의 이민족들이 자국을 위협하면 천혜의 무역입지를 통해 쌓인 돈과 보물로 경쟁이민족을 끌어들여 견제하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외교술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것이다. 우선 그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피신해있던 기스카르의 조카인 아벨라르를 끌어들여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쥐여 이탈리아로 비밀리에 보내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한편으로는 하인리히 4세에게 사절을 보내 아풀리아 공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장차 위험해질거라고 충고하면서 금괴 36만개와 진주가 박힌 황금 가슴장식, 그외 수많은 귀중한 보물들을 선물해 그를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1084년 가을에 그는 보에몽과 로제르 보르사, 기, 이렇게 삼형제가 이끄는 병력들과 함께 150척의 새함대를 꾸리고 비잔티움을 다시 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스카르는 불운을 겪는다. 부르린토에서는 날씨때문에 두 달이나 함대의 발이 묶였고, 가까스로 코르푸 해협을 건너고 난뒤에는 함대가 베네치아 해군의 습격을 받아 두번이나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그상황에서도 기스카르는 베네치아 해군이 연락선을 그들의 본거지인 베네치아 섬에 보내자마자 남은 함대로 기습을 가해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겨울에 그들은 그 어떤 적보다 가장 무서운 적들을 만나야 했다. 바로 역병이었다.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이병에 의해 노르만군들 상당수가 쓰러지고 만것이다. 그의 장남인 보에몽도 병에 걸려 바리로 이송되었을 정도였다.
  • 손예진 . . . . 7회 일치
         손예진은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영화 《[[비밀 (2000년 영화)|비밀]]》에서 홍미조 역을 맡아 출연(목소리 출연)한 후, 오디션을 통해 이듬 해 2001년에 방영 된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여주인공 장희애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885703|title=Young, Charming and Innocent ? What More Could You Want?|date=12 March 2001|work=Korea JoongAng Daily}}</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00807 '방송'손예진 MBC 최고 루키 선정], 《한국일보》. 2001년 9월 25일 작성.</ref> 첫 드라마 작품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특유의 청순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이어 《[[선희 진희]]》에 출연하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손예진은 픽션사극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되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2002)는 233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클래식 (영화)|클래식]]》(2003)은 154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회자되며, 손예진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인해 단숨에 청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f>{{웹 인용|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606101410484008937_2|title=Korean stars dubbed ‘Nation’s first love’|website=The Korea Herald|date=10 June 2016}}</ref> 이 작품들을 통해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제4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396132|출판사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저자 =김병규 |날짜 = 2003-06-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3년 TV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여주인공 심혜원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한류 (문화)|한류 문화]]의 주역인 [[윤석호 (연출가)|윤석호]] PD의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잇는 계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 2004-2006: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연애시대'' 차세대 여배우로 주목 및 성공 ====
         손예진의 다음 작품으로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외출 (영화)|외출]]》(2005)로 두 편의 영화 모두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였으며,<ref>{{웹 인용|title=The Best Selling Films of 2004|url=http://www.koreanfilm.org/kfilm04.html|work=Koreanfilm.org|accessdate=2013-08-08}}</ref><ref>{{웹 인용|title=A Moment to Remember breaks Japanese record|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326|work=Korean Film Council|date=14 December 2005}}</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to Star Alongside Bae Yong-joon in New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163|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4 December 2004}}</ref>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국내에서도 25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각각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본에서 개봉 된 역대 [[대한민국]] 영화중에서 흥행 기록 1, 2위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예진, ‘日 2005 외국영화 흥행 톱10’서 2관왕|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32332|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5-12-16}}</ref><ref>{{웹 인용|title=Films Starring Sohn Ye-jin Attract 10 Mil. Viewers in Korea, Japan|url=http://english.kbs.co.kr/hallyu/entertainment_news_view.html?No=147|work=KBS Global|date=28 December 2005}}</ref> 특히 《외출》에서 손예진은 20대 중반 주부이면서 남편과 불륜 관계였던 여자의 남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자 서영의 감정을 잔잔하면서 깊이 있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알고, 이 영화로 제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은 최고의 선수, 작업계의 고수 한지원 역을 맡아 이 작품에서 과감한 섹시 댄스를 선보이는 등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고, 23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오싹한 연애> 손예진, <작업의 정석> 뛰어넘을까?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9139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하성태 |날짜 = 2011-12-17 |확인날짜 =2017-09-16 }}</ref>
         2010년, 손예진은 이새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TV 드라마 《[[개인의 취향]]》로 1년 9개월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고, 개인 날 태어났다고 개인이란 이름을 얻은, 이름처럼 밝고 털털하고 유쾌한 캐릭터이자 무늬만 여자인 덜렁이 아가씨 박개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개인의 취향' 손예진 "나이에 맞는 역 하고싶었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023820|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김현록 |날짜 = 2010-03-25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듬 해, 2011년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 (드라마)|시크릿 가든]]》의 최종회에서 톱스타 역할으로 특별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시크릿가든' 카메오…'숨길 수 없는 폭풍 미모'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11619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강선애 기자|날짜 = 2011-01-17}}</ref> 같은 해 손예진은 호러 로맨스 코미디 영화 《[[오싹한 연애]]》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고, 기를 쓰고 쫓아다니는 귀신 때문에 연애는 커녕 가족과 친구로부터 버림받은 여자 강여리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오싹한 연애’로 컴백…그녀, 인생을 말하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245920|출판사 =서울신문 |저자 =임일영 |날짜 = 2011-11-29 |확인날짜 =2017-09-16 }}</ref> 영화는 300만 관객수를 기록해 자신이 출연한 모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흥행시키며 '로맨틱 코미디의 퀸'임을 입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역시 손예진, '오싹한 연애' 300만 개인 최고 흥행기록 달성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005946|출판사 =스포츠월드 |저자 =김용호 |날짜 = 2012-01-17 |확인날짜 =2017-09-16 }}</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94703987|제목=<오싹한 연애> 최근 6년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중 최고 성적 |출판사=맥스무비|날짜=2012-01-03|확인날짜 =2017-09-16}}</ref> 2012년에는 재난 영화 《[[타워 (영화)|타워]]》에 출연하였고, 영화는 518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ref>{{웹 인용|title=Queen of romance returns in disaster flick|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21217000947|work=The Korea Herald|date=17 December 2012}}</ref>
         2013년, 손예진은 5월부터 7월까지 방영한 TV 드라마 《[[상어 (드라마)|상어]]》로 3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또한 10월 개봉한 스릴러 영화 《[[공범 (영화)|공범]]》에서 정다은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유괴살인사건 공소시효 15일 전,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사랑하는 아빠를 떠올리게 되면서 잔인한 의심을 갖게 되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본 영화에서 공동 주연을 맡게 된 [[김갑수 (배우)|김갑수]]와는 ‘연애시대’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며, 김갑수의 부녀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스투매거진] 공범, 손예진 당신을 스릴러의 여왕으로 임명합니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140577|출판사 =아시아경제 |저자 =장영준 |날짜 = 2013-11-28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작품으로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020088|제목=손예진, '해적'·'공범' 2관왕 후보가 의미하는 것|출판사=OSEN|날짜=2014-11-29}}</ref> 그리고 손예진은 2014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해적단 대단주 여월 억을 연기했다. 영화는 조선의 옥새를 삼켜버린 귀신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산적 장사정이 여자 해적 여월과 함께 바다를 누비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해적' 손예진 "女해적 여월, '으리으리'한 캐릭터"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84846|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4-07-02 |확인날짜 =2017-09-16 }}</ref> 86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으며, 역대 출연작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수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해적' 손예진, 알고보면 변신의 여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42336|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보란 |날짜 = 2014-08-25 |확인날짜 =2017-09-16 }}</ref> 작품의 성공으로 3000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3000만 배우' 손예진이 충무로서 갖는 의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532716|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4-08-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이 작품으로 제51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014441|제목='대종상' 손예진, 연기·흥행 갖춘 유일무이 女우 탄생|출판사=OSEN|날짜=2014-11-22}}</ref> 2015년에는 한중합작 코미디 액션 영화 《[[나쁜놈은 죽는다]]》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나쁜 놈은 죽는다' 손예진, 카리스마+살벌한 분위기 풍기는 액션배우로 변신 |url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70216.99002115403|출판사 =국제신문 |저자 =디지털뉴스부 |날짜 = 2017-02-16 |확인날짜 =2017-09-16 }}</ref>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7회 일치
         로마노프는 T-80 중대를 지휘해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 구역을 확보한 후, 말라셴코와 협동해 교차로 하나를 확보한다. 하지만 몰트케 다리 확보를 맡은 중대는 미군 공격헬기의 공격으로 괴멸당하기 직전이었다. 오를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대공차량을 지원해 주며 몰트케 다리 확보를 지시한다. 로마노프는 그의 명령대로 몰트게 다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핸슨은 킹돔[* King Dome. 시애틀에 있던 종합경기장. 안전 문제로 2000년에 철거되었다.]으로 대피한 민간인들의 구조를 주장한다. 배넌은 후퇴하는 것도 바쁘다며 이를 거부하지만 민간인을 죽게 놔둘 수 없다는 핸슨의 반발에 파커에게 구조를 맡긴다. 파커는 부대를 이끌고 킹 돔으로 향한다. 킹 돔 앞 주차장에서 다수의 소련군을 발견하지만 파커의 부대는 킹 돔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헬리콥터로 도착한 증원군이 포격으로 킹 돔이 무너지기 직전에 민간인들을 구출해낸다.
         파커와 배넌은 소여가 올 때까지 소련군을 막기 시작한다. 파커는 소련군을 막는 동시에 소련군에게 붙잡힌 민간인과 레빈슨 준장의 일가족을 구조했다. 배넌은 파커를 도와 소련군을 막고, 파커가 처리할 수 없는 소련군의 위치를 소여에게 알렸다. 소여는 배넌이 알려준 소련군의 위치에 화력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파커에게 M60 패튼 전차를 지원했다. 소련군은 BTR 장갑차로 강을 건너 방어선을 뚫으려고까지 했지만 미군은 민간인들이 다리 너머 후방으로 이송될 때 까지 다리를 방어하는데 성공한다.
         소여는 다리를 무너뜨려 소련군의 진군을 지연시키기 위해 공군의 폭격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다리는 소련군 부대에 의해 양쪽에서 공격받고 있었고, 미군은 폭격기가 도착할 때 까지 다리를 지켜야 했다. 파커는 다리를 공격해오는 소련군을 막는 동시에, 소련군이 점령한 근처 병원의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는데 성공한다. 폭격 시간이 가까워지고, 소련군의 공세가 거세지자 전방 쪽에 위치한 배넌은 파커의 지원을 받으며 후방으로 후퇴한다. 그 뒤 얼마되지 않아 미군 폭격기가 다리를 폭격해 무너뜨린다.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서쪽에서 벌어지는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동쪽의 얕은 부분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로마노프와 말라셴코 둘 다 양쪽의 얕은 부분을 방어하던 미군 부대를 몰아내고 그곳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강을 건너가서 농장을 점거하고 있는 미군 부대를 쓸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투 도중 농장으로 대량의 미군이 몰리는 걸 발견한 올로프스키는 육군 항공대에게 요청해 농장 자체를 기화폭탄으로 날려버린다.
         파커는 오리건 주방위군 소속 공중기병대의 M551 셰리던 전차 지원을 받으면서 주유소를 점령한다. 이후 배넌 중대도 슈퍼마켓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자 소여는 파커에게 마을 중앙의 소련군 거점들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웹이 소련군 증원군이 마을 근처에 접근했다는 보고를 하자 소여는 최대한 빨리 거점을 처리할 것을 지시한다. 파커는 배넌과 웹이 북쪽 방어선을 돌파하는 동안 중앙의 소련군들을 쓸어낸다.
         몇번의 전투 후에 연합군은 남프랑스 소련군 사령부의 위치를 알아냈다. 소여 대위는 소련군 사령부를 괴멸시키기 위해 사령부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진격해 들어갔다. 성공한다면 남프랑스 소련군을 와해시킬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그대로 포위당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대대원들은 끊임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배넌 대위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지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 창작:티겔 왕국 . . . . 7회 일치
         삼촌인 달준의 사망이후 실권자가 된 달건의 맏아들인 달제는 황폐화된 국토의 재개발에 힘쓰면서 한편으론 남쪽에 여전히 자릴 잡고 있던 사냥꾼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달구의 악행때문에 그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접촉을 성공하고 그들에게서부터 남부쪽에 개척자들을 보낼때 어느정도의 개간을 허용한다는 허락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위와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용 사냥꾼들까지 보내오겠단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달유는 상티겔 왕국의 멸망을 30년은 늦춘 왕으로 평가 받는데, 하이엔왕국 계승전쟁에 개입해 적자인 선왕의 손자를 왕위에 올려서 하이엔왕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딸을 츄프왕에게 시집보내 동맹관계를 두텁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북쪽 국경을 위협하던 라이엘기스 대공국쪽으로 안심하고 전력을 집중할 수 있게하는데 도움을 줬고, 최종적으로 나트렘 평원에서 벌어진 회전에서 라이엘기스 대공과 대공의 세아들을 모두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둬, 라이엘기스대공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얻어냈으나..... 기세를 몰아 라이엘기스로 공성을 곧장가는 도중에 병으로 달유가 급사하면서 급히 병력을 돌릴수 밖에 없었고, 이는 티겔 왕국이 마지막으로 라이엘기스대공국과 후신 레이먼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기회로 평가받는다.
         달윤은 죽기전에 자신의 성을 레잉식인 '다르트'로 바꿨는데 그때문에 역사가들은 달윤이후의 왕들을 '다르트'왕조로 묶는다. 다만 다르트 왕조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못한데, 레잉 왕국빠라서 아예 왕국의 주요도시중 하나였던 레잉을 라이엘기스에 공짜로(..) 넘겨주려 한 베르코 1세[* 다만, 그의 동생이 그를 막으려고 정변을 일으켜서 성공하진 못했다.], 형보단 나았다가 중론이지만 어째 하는 원정마다 싹다 말아먹은 에르두른 1세, 하루 일과가 술먹고 여자꼬시는거였던 '시인' 그레두아[* 다만, 그의 시들은 꽤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백성들 가축까지 뺏어먹으려들었던 '식탐왕' 세프등등.... 결국 온갖 암군들이 넘쳐났던 다르트 왕조덕에 상티겔 왕국은 패권을 다시 되찾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이후 하이엔 왕국을 제압하고 동부대륙의 중북부패권을 완벽히 장악하려 한 '대제' 샤를 1세[* 라이엘기스 대공으로 따지면 샤를 4세]에 의해 상티겔왕국은 멸망한다.
         그러나 상티겔이 멸망하고 티겔이 불타갈때, 한무리의 군인들이 마지막 왕 에르두른2세의 아내였던 아르든 백작부인을 데리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우여곡절끝에 어찌저찌 상티겔왕국이 남쪽에 세웠던 식민지인 '센티겔'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아르든 백작부인은 애를 베고 있었고, 당시 센티겔의 지방관이자 아르든 백작부인의 보호자였던 계형은 그 아이를 에르두른 2세의 적법한 후계자로 선언하고, 그를 티겔 왕국의 왕으로 선언하면서 섭정직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국가를 하티겔 왕국이라 하며, 대중적으로 그냥 티겔 왕국이라 한다.
         처음에 이문제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북부파의 세는 미약했으며 왕국의 섭정이던 계형이 '사람을 협박하고 회유하는데 아주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문제는 다른데서 터지는데, 계형의 주도로 열린 레이먼제국과의 전쟁에서 상인연합과 츄프왕국, 사냥꾼들과 연합해 구 상티겔의 영역을 상당수 회복하는데 성공하는데,[* 이곳을 탈환지라 부른다.] 이과정에서 북부파가 가지고 있었던 영지들 대부분이 전부 남부파로 간것이다. 거기다가 계형은 상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인물이라서, 영지를 되돌려받고 싶으면 이름을 옛방식으로 바꾸고 레잉의 풍습을 완전히 버리라는 말까지 했다는게 문제였다.
         이에 계로는 태겡이 티겔을 정복하면 단순히 숲을 개간해 정착지를 늘리는 수준이 아닌, 숲을 통채로 태워 농경지로 개간할것이라고 사냥꾼들에게 겁을 주어 끌어들였고, 결국 흑군과 사냥꾼들을 적재적소에 이용해 태겡군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계로는 레이먼제국과 태겡에 대항하기 위해 긴 장벽을 세우는데, 이를 '계 장벽'이라 한다. 계 장벽을 세워둔뒤, 계로는 적극적인 확장에 나서는데, 탈환지 북부에 대한 공세로 계형시기에 탈환했다가 빼앗긴 땅을 전부 되찾았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북부 원정을 감행해 한때는 태겡을 멸망직전에 몰아넣기도 했다. 라이엘기스대공이 직접 군대를 몰고 회전에서 그를 패배시키면서 그것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 문근영 . . . . 6회 일치
         || [[2002년]] || 연애소설 || 이지윤 || 58만 명 || 성공 ||
         || [[2003년]] || [[장화, 홍련]] || 배수연 || 314만 명 || 성공 ||
         || [[2004년]] || [[어린 신부]] || 서보은 || 314만 명 || 성공 ||
         || [[2005년]] || 댄서의 순정 || 장채린 || 220만 명 || 성공 ||
         || [[2015년]] || [[사도(영화)|사도]][* 아들 정조 역의 [[소지섭]]보다 되려 10살이나 연하이다.] || [[혜경궁 홍씨]] || 624만 명 || 성공 ||
          * 어릴 때부터 귀요미에 몰빵한 외모가 역변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지겹도록 달고 살았다. 나아가 성인배우로서도 전망이 좋지 않을거라는 걱정도 많았던지라 조금만 살이 찐 사진만 올라와도 쟤는 배우 생활 끝났다라는 식의 평이 많았다. 그러나 이를 불식시키고 성인 배우로도 성공했으니 생명력이 있는 배우이다.
  • 세정(구구단) . . . . 6회 일치
          출연자는 [[김수로(배우)|김수로]], [[이수근]],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 [[이기광]], [[김신영]], [[박하나]], [[ASTRO|아스트로]] [[차은우]], 비보이 [[하휘동]]이 출연했다. 결승전에 진출해 [[이기광]]과 맞붙었으나, [[이기광]]에게 패해 준우승했다.[* 최종 결과 30곡 중 세정이 23곡을 성공했고 [[이기광]]이 세정보다 1곡 더 성공했다. [[이기광]]이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에서 메인댄서고 아이돌 중에서도 춤으로 인정받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것이다.] 세정의 숨은 댄스 본능을 알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 [[황세준]] 대표가 똥고집(?)을 부렸던 [[구구단]]이라는 팀명에 관한 이야기와 어서옵쇼에서 선보인 등근육 얘기가 이어졌고 세정이 선보인 등근육에 관한 얘기가 나온 끝에 조충현 아나운서와의 즉석 팔씨름 대결이 이뤄졌다. 두 손가락, 세 손가락, 전체 손가락으로 대결이 이어졌고 조충현 아나운서의 샌드백 예능감이 발휘되는 가운데 세정의 전승으로 팔씨름 대결이 끝났다. S본부 [[배성재]]에 이어 K본부 도장깨기에 성공했다며 엄살을 부리는 조충현 아나운서의 예능감과 세정 특유의 털털함이 잘 어울려 여느 예능프로그램 못지 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파파야, 아보카도, 두리안 셋 중 한 과일을 고르는 문제를 맞춘 뒤에는 노래방 성우, 외화 더빙, 최화정, 해바라기 김래원 성대모사를 연이어 선보였다. 달팽이, 지렁이, 나비 셋 중 하나를 맞추는 문제를 푼 뒤의 토크에선 어려서부터 시쓰기를 자주 했다는 얘기를 했으며 1대100 삼행시를 선보였다.[* 1 - 1대100 나온다고 해서 제가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대 - 대략 20편 정도를 챙겨봤는데 100 - '''100인으로 나올 걸...''']
          * 2017년 3월 4일 [[KBS 2TV]]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2번째로 출연했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15주년 특집으로 실시하는 쟁반노래방편에 출연을 결정지었으며, 같은 [[I.O.I]] 출신인 [[소미]], [[걸스데이]] [[유라(걸스데이)|유라]], [[혜리]], [[EXID]] [[하니(EXID)|하니]]와 함께 녹화를 진행했고 3월 23/30일에 방영. 마지막 시도 끝에 성공했다.
          * 7월 8일 방송 뒷부분부터 7월 22일까지 방영된 여수편에서는 같은 색깔의 의자에 앉은 [[김병만]]과 2인 1조가 되었다. 오후 5시까지 낭만포차에 해산물을 납품하는 미션-- 생선 구이용 생선 100마리, 모둠 해산물 5망, 갯장어 10마리-- 미션에 앞서 여수 3경을 즐기라는 제작진의 말에 팀명 정하기 등 --(병)만세(정) 팀-- 유독 여행에 들떠하며 신난 모습을 보였는데 자연 경관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후 조업배를 선택하는 미션에서 이들이 선택한 어선은 모둠 해산물을 잡는 잠수기 어선이었다. 수중 조업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잠시, 김병만과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촬영 간 김병만은 세정에 대해 멘탈도 강하고 운동신경도 있고 모든 일을 쉽게 터득 하는 것이 전천후 같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18킬로에 달하는 납 착용과 뒤엉킨 호스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불구 침착함을 유지했고, 이에 김병만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웬만하면 진짜 인정 안 하는데... 너는 인정해 진짜!-- 5망을 채워오지 못해 미션은 실패했고, 조업 후 크루즈에 탑승해 미션 성공팀의 식사를 바라봐야만 했다. 과일 깎기 대회에서 [[경수진]]에게 패해 김병만, [[이상민(룰라)|이상민]]과 함께 갈치잡이 조업에 가게 되었다. 처음해보는 낚시에 기대를 품었는데, 갈치의 모습을 보며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Act.1 The Little Mermaid|데뷔 활동 당시]]의 의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낚시에 난항을 겪던 와중 차차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보여 선장에게 '남자도 하기 힘든 건데, 기가 막히다. 선수가 다 됐다.', 이상민에게 '머리가 좋다, 스마트하다', 병만에게 '요령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터득한다. 유연성이 대단한 친구.'라는 칭찬을 들었다. 갈치 100마리 잡기 미션에 성공한데 이어 추가로 81마리의 갈치를 획득했다. 조업 후 먹은 갈치회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갓 110킬로 뽑아 오기 미션인 '지인 전화 스피드 퀴즈'에서 같은 [[I.O.I]] 멤버였던 [[김도연(위키미키)|김도연]]과 퀴즈를 진행했지만 결국 육중완, 김병만과 함께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갓'세정의 '갓'수확-- 지친 조업 끝에 얻은 재료들로 만든 밥상에 감탄하기도 했다. 역대 게스트 중 가장 많은 조업에 참여했다는 말에 '모든 경험이 즐거웠다. 지금 나에겐 재밌을지라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겐 엄청난 일이겠다. 힘든 일을 마치고 먹는 밥상에 힘이 난다.' 라며 소감을 남기며 방송이 마무리되었다.
  • 슈가(방탄소년단) . . . . 6회 일치
         예명은 Sugar(설탕)가 아니라 '''SUGA'''가 맞다. 이 예명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피부가 무척 하얀 데다 웃을 때[* 웃을 때 본인 특유의 입동굴을 보인다. 이 입동굴 때문에 팬들이 팬사인회에서 아랫니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예쁘고 달콤해서 슈가라는 예명을 지었다는 것. 하지만 힙합이 너무 달콤하면 안 된다는 소리에, 'SUGAR'에서 R이 없는 그냥 'SUGA'를 선택했다 한다. 힙합 용어에서 '슈가'는 '중독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학창 시절에 농구부에서 [[슈팅 가드]]를 맡았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줄임말인 '''슈가'''를 선택했다는 것. 모 인터뷰에서는 복싱이 터프하지만 정교한 기술이 필요해 'sweet science'로 불리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에는 스윗해 보이지만 음악적으로 시니컬한 면이 있어 이런 이중적인 면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슈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한 믹스테이프인 'Agust D' 뮤직비디오를 볼 때,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려 준 영어 자막을 틀고 보면 '성공'을 'sugar'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성공'''과 거리가 먼 형들 사이 눈엣가시네 -> I'm a pain in yo' ass too far from the '''sugar'''. 성공을 통해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예명의 본래 뜻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반해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매번 예명의 뜻을 설명할 때마다 이유가 달라진다. 때문에 최근에는 뭐 이젠 그런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요... 하고 답하기도 하였다.
         ||성공이 궁해? no 난 그냥 돈이 궁해
          * [[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9/18/11/be1484b12993a180322807c7015586f4.jpg|피부가 하얗고]] 말을 너무 잘해서 팬들 사이에서는 이빨까기 인형으로 불린다. [[RM]]과 [[정국(방탄소년단)|정국]], 그리고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만장일치로 꼽는 사업을 하면 성공할 것 같은 멤버. 언변이 너무나도 화려한 탓인 듯. 좋게 말하면 설득, 나쁘게 말하면 공갈이라고 한다. 실제로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은 설득 당해 슈가에게서 맞지도 않는 사이즈의 바지를 샀다고 한다.
          * 요리를 잘한다. Run BTS! ep.20에서 슈가를 주축으로 팀이 꾸려지기도 했으며 꽤나 까다로운 요리인 해물찜을 성공적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Run BTS! ep.36에서는 돈가스 김치 나베[* 정작 본인은 돈가스 김치 나베라는 요리를 살다살다 처음 들어 봤다고 한다.]를 맡아 요리하여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RM]]에 의하면 연남동 나베집의 맛이 났다고.
  • 승리(빅뱅) . . . . 6회 일치
         데뷔 초부터 형들과 예능에 동반출연하면서 "철없는 막내", "왈가닥 말썽꾸러기" 느낌의 얄미운 막내 이미지가 강하였으나 성인이 되고부터는 조금 더 성숙하고 섹시한 느낌을 득템, 최근에는 형들의 부재에 활발한 단독예능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으며 승츠비(승리 + 개츠비)라는 별명이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유명할 정도로 젊고 돈 많은, 유쾌하고 씀씀이 좋은 사업가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영앤리치 큐트앤핸썸~~ 가요계에서 단연 독보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로, 초반의 비호감 이미지를 완전히 극복하고 성실한 호감형 이미지로 탈바꿈한 성공적인 케이스이다.
         물론 빅뱅의 성공에는 어디 한 명 빠짐없이 실력있는 멤버 구성도 한 몫 하였지만, 상대적으로 형들에게 가려진 승리의 배려와 피땀이 일군 값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어린 나이와 부족한 실력 탓에 (물론 빅뱅 내에서의 실력) 형들에게 가려진 것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형들이 돋보이게끔 밀어줬던 것이 지금의 빅뱅을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막내가 사고 치는 경우가 많은 타그룹들과 달리 어른스럽고 사려 깊은 막내 역시 빅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원더걸스]]의 [[유빈]],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같은 광주 출신이라 종종 묶이곤 하는데 특히 유노윤호과는 공통점이 크다. 아직까지도 광주에서 이름 날리고 있는 댄서팀 '일화' 에서 활동했던 것. 데뷔 전 아무래도 노래보다 춤을 곧잘 해내곤 했던지라 YG ent에서는 우린 가수를 뽑는 것이지 댄서를 뽑는 게 아니라며 탈락의 위기를 맞기도 하나, 재도전의 자리에서 [[양현석]] 사장으로부터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빅뱅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는 데 성공한다.
         음악 만큼이나 사업에 관심이 많다. 본인 말로는 접었지만 댄스 아카데미(조이 댄스 플러그인뮤직아카데미)도 했었고[* 주간 아이돌에 따르면 선생님과 학생이 눈이 맞아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멤버들의 말에 따르면 와플 라이센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한국 매니지먼트 권리[* 호날두가 내한할 경우 일정 및 관련 매니지먼트에 대한 권리. 일견 거창해 보이는 권리긴 한데, 실은 대단한건 아니고 호날두의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싱가폴 지인이 "한국 담당은 네가 해라."하고 던져준 것. 정작 호날두는 한번도 한국에 온적이 없으며 관계자에 의하면 방한 의향도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469&aid=0000313277|그런데 써먹을 날이 오고야 말았다.--는 방한취소--]]]도 승리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18년에 11년만에 호날두가 방한할 예정이라 존버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호날두가 하도 오지 않아서 라이센스는 폐업하여 이번 방한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밝혔다.[[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83110|그리고 호날두도 방한 취소를 했기 때문에 라이센스가 있었어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 일본에서 꽤 인기가 있다.[* 일본계의 대도서관이라 불리는 [[히카킨|HIKAKIN]]의 게릴라 라이브에서도 얼굴을 비췄다.]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화를 정확히 알고 오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승리가 그런 케이스. 일본은 개그코드가 한국과 많이 달라 한류열풍으로 간 사람들이 일본 방송에서 크게 성공을 못할 때가 많다. 바닥부터 겪어봐야 일본 현지인의 말투나 문화, 개그코드를 이해하기 쉽다. 승리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처절하고 비참한 예능현실을 많이 맛봤다. 일본 현지 예능인들도 잘 나가고 싶지 않아하는, 한국에 비유하자만 케이블 방송보다 못한 수준의 예능프로에 나가 열심히 했고, 이를 토대로 일본 방송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승리는 그나라의 문화도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리는 일본의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의 문화를 비하하는 것은 참지 않는다. 사실 당연하지만 분위기상 그렇게 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 외에도 한국요리만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MC로써 다양한 요리를 소개하고 잡지에 코너를 만들어 한국음식 소개함] 스태프에게 잘하고 방송을 열심히 해서 일본 방송에서는 MC나 고정게스트로 자리잡았다. 또한 첫 일본 CF를 승리가 따냈다. 승리만 보고 빅뱅에게 CF를 줄만큼 신임을 얻고 있다는 증거.
  • 신민아 . . . . 6회 일치
         아래 항목에서 볼 수 있는 절친들인 [[공효진]]과 [[임수정]]은 패셔니스타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력 또한 선보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연기력 및 연기의 폭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듯 보인다. 더구나 두 절친 못지않게 드라마나 영화 출연도 많았음에도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건 확실히 아쉬운 부분. 물론 신민아 뿐 아니라 영화 쪽에서 이렇다할 대표작이 없는 [[김태희]]나, [[엽기적인 그녀]] 이후 [[도둑들]]이 성공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연기에서 좋지 못한 평을 들었던 [[전지현]]도 CF만 찍는다고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었다.
         처음에는 [[발연기|연기를 못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조정석과 합을 맞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하자 연기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많이 사라졌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멜로 연기에 능숙한 편. MBC 수목 드라마 [[아랑 사또전]]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또한 비교적 최근작인 [오마이 비너스], [내일 그대와]에서는 그나마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은 선보여 주었다. 근데 폭망했다. 부족한 작품성 때문인 듯...--못 해도 망 잘해도 망-- 국내에서는 비록 망했을지라도 해외에서는 [오마이비너스],[내여자친구는구미호]의 팬층이 상당히 두터웠다. 특히 내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중국에서도 1등을 차지했을 정도...
         ||2014||[[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나의 사랑 나의 신부]]||주연||미영 役||임찬상||214만명||~~최초의~~성공||
         여담으로 [[마왕(드라마)|마왕]]과 동시에 방영했던 MBC의 [[고맙습니다]]가 시청률 대박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화제성을 끌며 인기몰이를 했는데 이 작품의 작가가 [[이죽사]]의 작가인 이경희였고 여자 주연배우는 신민아가 [[이죽사]]에서 함께했던 [[비(연예인)|비]]를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연기자로 성공적 데뷔를 시켜주고 나중에 후술될 [[홍자매]]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후속작인 [[최고의 사랑]]을 히트쳐내서 홍자매의 명성을 다시 부활시킨 공효진. --공효진의 쩌는 선구안. 절친이라는데 좀 배웠으면--
         그리고 시작 전 엄청난 기대를 받았고 그나마 나름 TV커리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으나 그 초반의 압도적인 기대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이 드라마 압도적인 기대를 모은 것은 작가가 홍자매인 점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바로 바로 상대역이 무려 [[이승기]]. [[소문난 칠공주]]로 연기 데뷔하고 [[한효주|동생으로 유명한 그분]]과 함께 한 찬란한 유산이 기대 이상의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고 [[1박2일]] 시즌1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강심장]]으로 인기를 끌던 그야말로 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TV를 종횡무진하던 그와 함께 하여 정말 이번에는 안망할 줄 알았다. 사실 2010년 위 이승기라면 마이더스의 손으로 하는 족족 앨범 드라마 예능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16회 중 20%를 넘거나 근접한 것은 막판 4회 뿐이고 거의 나머지 기간동안은 10%초반을 찍었다. 결국 평균 시청률은 15%(TNms기준)였다. AGB 기준으로는 12.6%이다. 시청률 20%는 거의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자매]]와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2014년도와는 거리가 한참 있는 2010년도에 작품을 했음에도 이거밖에 못 거둔거면 사실 망했다고 보는게 맞다. 홍자매의 전작인 [[미남이시네요]]도 사실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이는 홍자매 또한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그닥 높지 않은 시청률을 생각했다고 밝혔으나[* 방송사에서도 시청률이 제일 중요하지만 매번 대박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일선에서 뛰는 모PD의 블로그-[[일지매]]PD-에 따르면 심지어 엄청난 대작이 상대방에서 나올 경우 일부러 시간 떼우기로 폭망할 작품을 넣는 경우까지도 있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편성을 안하진 않는다. 쓸만한 작품이 없어서 방송은 계속 해야 되는 거니까.. --그러니 푸쉬받고 세 번이나 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니깐--] [[쾌도 홍길동]]과 더불어 홍자매가 이건 뜰 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인데도 안됐다. --물론 쾌도 홍길동도 20%은 못넘겼지-- 물론 동시 방영하던 타방송사 작품이 [[제빵왕 김탁구]]였긴 했으나 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것저것 변명대면 남는 게 없다. 홍자매 또한 [[미남이시네요]]로 할 거 다 해보고 여기서는 다시 뜰 줄 알았으나 그냥저냥 했던 홍자매는 바로 이후 작품인 [[최고의 사랑]]이 AGB 기준 20%를 넘기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이더스의 손, 이승기는 이후 [[더킹 투하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다. 영화계를 떠나서 드라마만 봐도 이정도면 흥행 블랙홀이다.
  • 이노센트 투어 . . . . 6회 일치
         세부적인 정령 능력치는 각 정령의 속성과 마법성공확률에 대응되며 다음과 같다.
          1. 방해마법성공율 - 바람을 제외한 정령마법들의 성공율이 높아진다.
          1. 방해마법저지율 - 적 캐릭터의 방해마법에 대응할 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회복마법은 HP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마법이며, 서로 다른 정령력을 섞어서 쓸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이다. 또한 성공율도 정령마법 중에서 유일한 100% 성공율을 보장하는 특징이 있다. 어느 속성을 사용하든 1 정령력 당 HP5가 채워진다.
  • 정찬성 . . . . 6회 일치
         2009년 3월 [[센고쿠]] 7진 페더급 토너먼트에서 신성 이시와타리 신타로를 맞아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를 거두며 [[메이저]]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라운드 거친 타격전에서 레프트를 적중시키며 신타로를 주저앉혔으나 신타로는 다시 회복했고 클린치 싸움으로 이어진다. 레프리의 '스탑 돈 무브'가 선언되며 링 중앙에서 재개된 공방에서 다시금 라이트를 안면에 적중시켰고 등을 보인 신타로에게 스탠딩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꽂았다.
         2011년 3월 UFN 24에서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러버매치로 UFC 무대에 데뷔했다. 1라운드 약간 신중한 타격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그라운드에서 마운트까지 잡았으나 공이 울리며 라운드 종료. 2라운드에서도 다시 한 번 상위를 잡고 엘보우와 파운딩을 날려주며 앞서 나갔고, 가르시아가 이스케잎을 시도하는 순간 백을 잡고는 트위스터를 작렬시키며 멋진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이 트위스터는 매우 고급기술인데 MMA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찬성은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보면서 익혔고 코리안 탑 팀에서 훈련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본 인터넷 카페에 '한 번 연습해서 써먹어봐야겠다.'고 댓글을 달았고 결국 트위스터로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간혹 '레프리 스탑이 너무 일렀다' 라며 까는 여론도 있는데 위의 짤방을 보면 알겠지만 호미닉은 다운 된 뒤 턱에 정타를 대 여섯대나 맞았다. 의식이 혼미해 가드도 제대로 올리고 있지 못하던 상황. 저 때 스탑 안 걸면 '''진짜 죽는다.''' 호미닉도 인정했듯이 레프리 스탑의 타이밍은 전혀 문제가 없다. '정찬성이 잘한 게 아니라 호미닉이 바보짓을 했다' 라는 의견도 있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페더급 뿐만이 아니라 MMA 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복싱 테크닉을 바탕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호미닉이 본인의 특기를 버리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붕붕훅을 날린 것은 확실히 변명할 수 없는 바보짓. 하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것이고, 무엇보다 그 짧은 타이밍을 잡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또 호미닉이 한 행동부터가 매너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호미닉은 경기가 시작하고 글러브 터치를 하자마자 공격했는데 그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고 확실한 반격에 성공한 것은 정찬성의 실력이다. 그리고 사실 이 경기 승리는 정찬성에게 의미가 큰데, 흔히들 말하는 인생에 한 번 올까말까하는 기회를 움켜잡은 셈이다. 그 때문인지 경기에 이긴 뒤 눈물을 흘리며 호미닉을 포옹했다.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상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상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영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반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반 상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반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식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버뮤데즈의 레슬링을 의식했는지 가드를 꽤 아래로 내리는 스타일로 경기를 시작했고 초반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경기를 괜찮게 풀어갔다. 하지만 펀치가 대부분 빗나가면서 확실히 경기감각을 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버뮤데즈의 큰 라이트 펀치를 맞으면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뮤데즈의 왼손 셋업을 피하고 날린 어퍼가 그대로 턱에 꽂히면서 1R 2분 30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말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 상태에서 안말릴 경우 맞던 사람은 후유장애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찬성을 언더독으로 평가했지만 코리안 좀비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을 말하면서 연습했던 대로 잘 안됐다고 밝히거나 질문 내용을 못알아들으면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걱정하는 발언을 남기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vod/index.nhn?category=fight&listType=total&date=&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272392&page=1|영상링크]]
         조지 루프 전 이후, 정찬성을 제압하는 데에 성공한 파이터는 [[조제 알도]] 뿐이다.
  • 현주엽 . . . . 6회 일치
         그는 [[휘문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학사]] 및 [[고려대학교|동 대학원]] [[석사]] [[졸업]]하였다. [[1998년]] [[서울 SK 나이츠|청주 SK 나이츠]]에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되어 프로농구에 데뷔하였다. 그의 현역 [[대한민국 프로 농구|프로 농]][[농구|구 선수 시절]] [[닉네임]]은 '''매직히포''', '''포인트포워드'''이며 역대 대한민국 프로 농구 선수 중에는 가장 NBA급에 근접했던 선수였다. [[2002년 아시안 게임|부산 아시안 게임]]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결승전에서 4쿼터 4초를 남기고 돌파 및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면서(이른바 까마귀 작전)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으며, 연장전에서 6득점을 기록하여 [[대한민국]]을 [[1982년 아시안 게임|뉴델리 아시안 게임]]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는데 기여하였다.
         현주엽이 대학진학후 첫 출전한 대회인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대는 연대를 맞아 28점차로 대패하게 된다. 이 경기후 고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라와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다시 최종결승전에서 고대는 연대에 시종일관 리드를 당했으나 시합종료 1분을 남기고 고대 양희승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동점상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하였고 연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고대의 우승을 이끌었다.<ref>경향신문 1994년 4월3일 “안암골 호랑이 "大(대)역전쇼””</ref> 대학무대 첫 대회에서 세간의 기대만큼의 활약을 벌이지 못한 현주엽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면에서 선배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ref>스포츠서울 1994년 4월 2일 [http://kids.olivercho.com/SportsLeisure/148 “현주엽,고려 우승의 "일등공신",인터뷰”]</ref> 그러나 이 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의 팀내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고, 고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무대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1998년 3월 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순위로 청주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구슬 뽑기로 1순위 지명권을 받게 되자 ‘우승이야’를 외쳤다고 한다. SK는 그 지명권으로 바로 현주엽을 지명했고 이렇게 해서 현주엽은 SK에 이미 영입돼 있던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SK의 운명은 안준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고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하고 만다.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주엽의 프로 첫해 개인성적은 뛰어났다. 3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94 득점, 6.35 리바운드, 4.65 어시스트를 기록했다.<ref name=sports /> 이듬해 시즌에서 현주엽은 스몰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며 서장훈과 전년보다 나아진 팀웍을 보였다. 이에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트레이드 신청 마감일 하루전인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담한 승부수를 띄웠다.<ref>경향신문 1999년 12월25일 “현주엽=조상현+4억원'빅딜'”</ref><ref>[최창환의 백 투 더 KBL] [http://news.jumpball.co.kr/news/view/cd/82/seq/4.html ‘X-MAS 빅딜의 추억’ 현주엽-조상현 맞트레이드]</ref> 이는 최인선 감독이 이원재 단장에게 한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인선은 현주엽의 3번자리(스몰 포워드)가 불만이었다. 우승을 위해 3번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보다 기동력 좋고 확실한 슛터를 원했던 그는, 이대로라면 챔피언전에 진출하더라도 현대를 만나면 승산이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SK는 창단 이후 현대에게 12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트레이드 효과를 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챔피언전에서 만나게 된 현대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실패했으면 최악의 자충수로 기록됐을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찾기’로 농구역사에 기록되었다.
         현주엽은 상무 복무중 출전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에 극적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ref>연합뉴스 2002년 10월14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255351 “아시안게임-<농구> 한국, 20년만의 금메달(종합)”]</ref> 당시 중국은 NBA 지명 1순위에 빛나는 야오밍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국은 시종일관 중국에 리드를 당해 종료 3분 17초를 남기고 71-84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이때 김진 대표팀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른후 현주엽과 김승현을 교체 투입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현주엽의 미들슛과 골밑돌파, 그리고 김승현의 가로채기와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며 한국팀은 무더기 득점을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4쿼터 종료 4.7초를 남기고 현주엽이 드리블에 이은 대담한 골밑돌파로 레이업슛을 성공,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서도 김승현과 현주엽의 활약은 이어졌고 102-100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20년만에 남자농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 발은 느리지만 70cm에 달하는 서전트점프 능력으로 골밑을 장악하고, 센터출신치고는 보기 드물게 드리블 능력과 아웃렛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고교 시절부터 한 경기 평균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학시절부터 종종 멋진 덩크슛을 성공시켜 팬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기도 했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5회 일치
         [[미스코리아]] 출신인 만큼 출중한 미모에 연기력도 좋고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성공해서 배우로서는 손색이 없다[* 미스코리아 입상 후 연예계로 진출한 인물들은 많다. 그러나 연기자로 입문해서 연기력 하나로 대성공을 거둔 인물들은 드물었다는 점을 보면 고현정의 케이스는 그야말로 눈여겨 볼만하다.]. 탑여배우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예능에서도 거침 없는 언행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고느님'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혹평을 받기도한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 사생활이나 성격, 인성 뭐로 까이든 간에 작품에서 연기로는 까는 사람이 없는 배우[* 과거 잡지에서 한 인터뷰만 보더라도 연예인이라면 거기에 맞는 생활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연기 경력이나 파란만장한 개인사 모두 통틀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배우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연기라는 자신의 최고의 재능으로 정상으로 향하던 와중에 재벌 2세와의 혼인으로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연기자로 복귀해 재기에 성공, 성공의 환희와 어둠을 다 겪은 인물의 표본이다.]
         김수현 드라마 주연 출신이어서, 정확하고 약간 빠른 발음을 구사한다. 연기력은 엄마의 바다나 두려움없는 사랑이 인기였던 모래시계 이전에도 주연을 맡을 만하다는 평이었는데,(우는 장면에서 근성의 노메이크업으로 펑펑 울거나) 모래시계 때 레전설 소리를 들었다.~~그리고 총알은퇴. 관광지 [[정동진역]]을 남기고.~~ [* 김종학 감독은 연기력이 아까워 결혼을 말렸다고 이후에 인터뷰한 바 있다.] 김종학 감독은 20대 초반의 고현정을 두고 한 줄의 대사로도 파급력을 갖는 배우라고 이야기했으며 복귀 후의 고현정은 봄날의 실어증 여주인공, 여우야 뭐하니의 음란 잡지 기자, 히트의 강력반 형사 등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를 펼쳤다. 트레이드마크인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디테일한 연기[* '무언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미덕(단순히 매력이 아닌)을 지니고서도 나쁜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미실을 얼굴의 오른쪽과 왼쪽, 입과 눈과 눈썹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며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로 강렬하게 소화해낸 고현정은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이자 일등공신이다.' -이영미(문화 평론가). 시사IN 기사 중] 는 선덕여왕 때 처음 화제가 되었다. 비결에 대해, '사극이라 몸이 안움직이니 얼굴이라도 움직여야 시청자들을 잡겠다 싶어서...'라고 코멘트. 같이 촬영했던 [[이순재]]도 인상적이었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이순재]]는 헐리우드로 지금 당장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김명민]], [[김희애]], 고현정을 꼽았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주인공에 비해 많지 않았던 분량임에도[* 어느 팬의 편집 결과에 의하면 62부작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나온 시간은 1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주요 시상식을 휩쓸고 그해 실시된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38%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51965|#]] 차기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대물은 방영 내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작가, 감독이 바뀌는 등 내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드라마 내용은 산으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의 연기는 호연이었다는 반응과 함께 2년 연속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때 2위와의 격차가 무려 23%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156691|#]] 여왕의 교실은 시청률 면에서는 고현정 필모그래피에서 최하를 기록했지만 무표정에서 종종 보여지는 미세한 표정 연기(일명 나노 연기)는 미실을 능가했다는 반응도 얻어 원작과 다른 마여진을 만들어냈다며 호평을 받았다.
  • 김진향 . . . . 5회 일치
         '''김진향'''([[대구광역시]] [[달성군]], [[1969년]] [[3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전문가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77&aid=0003684523 개성공단 4년 실무담당 김진향 교수 "우리 기업들만 죽이는 행위"]. 아시아경제. 2016년 2월 11일.</ref>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정치인)|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ref>원희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2094 (원희복의 인물탐구)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주간경향. 2016년 1월 16일.</ref>
         * 2008년 2월 ~ [[2011년]] 7월:[[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 부장
         * 2017년 12월 ~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관리위원장
         * [http://www.infinitelooper.com/?v=4b2WOGPKezY&p=n 유치원외교 그리고 개성공단]. 김어준의 파파이스(Papa is). 2016년 2월 19일.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5회 일치
          뿔이 달린 수컷과 뿔이 없는 암컷이 있다. 둘 다 플레이어를 보면 도망가지만 수컷은 공격을 받으면 달려든다. 화살 세방에 죽으며, QTE로 쓰러뜨리려면 두번을 성공해야 한다. 고로 암컷은 잡기 꽤 어렵다.
          플레이어를 보면 달려든다. QTE로 쓰러뜨리려먼 세번을 성공해야한다. 가죽이 제일 비싸다.
         무언가를 시켰을 때 이를 성공하고 귀환한 암살단원은 경험치를 얻는다. 이로 인해 레벨업도 하는데, 레벨이 높으면 더 잘 싸우며, 밑에 있는 계약을 더 잘 수행한다.
         영입한 암살단원들을 식민지 각지로 보내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기능. 성공하면 여러가지 보상을 받고 임무를 보냈던 암살단원의 경험치도 오른다. 실패하면 임무를 보낸 암살단원들이 부상당해 한동안 뭔가를 시킬 수 없게된다.
         참여한 암살단원들의 레벨이 높을 수록 임무 성공률이 높아진다.
  • 윤채경(가수) . . . . 5회 일치
         '''[[I.B.I]]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멤버'''[* 실제로 [[I.B.I]]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눈물날 정도로 안 끝나는 불운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해인(1994)|이해인]]은 새로운 소속사를 찾았으나 공황장애 때문에 스스로 나와야 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마지막 걸그룹 도전이라고 했던 [[아이돌학교]]에 도전했으나 끝내 최종 문턱에서 탈락한 후 서바이벌 은퇴를 선언하고 근황이 묘연하다. [[한혜리]]의 경우 [[스타제국]] 자체가 이미 망해 가고 있는 기획사인 데다가 [[올망졸망]] 데뷔가 무산되어 2017년 7월 25일 스타제국과 결별한 후 재기를 노리며 [[믹스나인]]에 출전했지만, [[빅뱅(아이돌)|빅뱅]] [[승리(빅뱅)|승리]]에게 큰 혹평만 받고 [[광탈]]의 수모를 당함과 동시에 실력 문제가 제대로 까발려지면서 [[프로듀스 48]]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사실상 끝났다. [[이수현(1996년 9월)|이수현]]은 소속사가 공중분해되어 예정되었던 걸그룹 데뷔가 무산됐고, 더군다나 [[펜타곤(아이돌)|펜타곤]] [[홍석|양홍석]]과의 열애설 해프닝까지 불거지면서 본인의 이미지도 급추락한 후 역시 근황이 묘연하다. [[김소희(1995)|김소희]]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긴 했으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여성 솔로 가수가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고, 더불어 동 시기에 '''[[레드벨벳|너무]] [[EXID|강한]] [[TWICE|상대]]'''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차라리 [[THE iDOLM@STER.KR|아이돌마스터]] [[리얼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실제로 김소희 외에 [[프로듀스 101]] 출전자들 중 [[김주나]], [[황인선]], [[강시라]]가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나 뚜렷하게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으며, [[NCT]] / [[세븐틴(아이돌)|세븐틴]] / [[마마무]] / [[에이핑크]] / [[레드벨벳]]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오마이걸]]과 엠카 및 쇼챔에서 맞짱뜬 '''[[청하(가수)|청하]]'''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단, 절대적으로 보면 [[I.B.I]] 출신 중에서 가장 성공한 멤버가 채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I.B.I 출신 중 상대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아진 멤버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려서 [[김소희(1995)|김소희]]라는 의견도 많다. 윤채경의 경우 퓨리티 - 카프 등을 이어오면서 얻어온 인지도 및 팬층이 적지 않게 있고 나름 중요성을 인정해 DSP에서도 계약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이나 I.B.I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데뷔했거나, 예능출연 등 방송인으로 나갔을, 즉 지금만은 못해도 나름 연예인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소희의 경우 프듀 출연이 아니였다면 영원히 일반인으로 남았을(즉 대중들이 전혀 몰랐을) 확률이 높다. 잘해 봐야 타인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던가 타인의 뮤비에 단역으로 나오던가.]
         [[2016년]] [[8월 18일]] [[I.B.I]]로 프로젝트 걸그룹으로 나오는 것이 확정되었다! ~~구설수 담당답게 삼중계약 성공~~ 이제 윤채경은 I.B.I 에서의 활약에 따라 DSP미디어를 확실하게 먹여살릴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11월 11일]]에 [[APRIL]]로 합류하게 되면서 DSP도 윤채경을 확실하게 사용하려는듯. ~~구설수 담당 윤채경 대망의 사중계약 달성~~
          * [[I.O.I]] 탈락자들 중 최초로 음방 1위 후보에 올라간 사람이다.[* 2번째는 [[모모랜드]]의 [[태하(모모랜드)|김태하]], 3번째는 [[(여자)아이들]]의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 4번째는 [[공원소녀]]의 [[서경(공원소녀)|김서경]]이다. 그 중 [[태하(모모랜드)|김태하]]와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은 음방 1위를 먹었다.] [[APRIL]] 합류 후 [[SHOW CHAMPION|쇼챔]]과 [[THE SHOW|더 쇼]]에서 몇 차례 1위 후보에 들었다. 그러나 만난 상대가 하필이면 [[APRIL]]에는 '''너무 강한 상대'''인 '''[[레드벨벳]]'''[* [[APRIL]]은 [[레드벨벳]] 상대 '''3전 3패'''로, [[레드벨벳]]에 [[천적]] 수준으로 굉장히 약하다. 그런데 실제로 두 그룹은 꽤 친한 사이다. [[I.B.I]]에도 [[레드벨벳]]은 가장 큰 [[천적]]이나 다름없는데, 전술한 윤채경은 말할 것도 없고 [[김소희(1995)|김소희]]는 정식 솔로 데뷔 때 [[아이돌 드라마 공작단]]으로 안면이 있는 [[슬기(레드벨벳)|강슬기]]의 [[레드벨벳]] 바로 정면에서 데뷔했다가 한 방 얻어맞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덤으로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 [[태하(모모랜드)|김태하]]는 윤채경과 달리 [[레드벨벳]] 상대 1승도 있다.], '''[[방탄소년단]]''', '''[[볼빨간사춘기]]''', '''[[마마무]]''', '''[[NCT]]([[NCT DREAM|DREAM]], [[NCT 127|127]])'''인지라 [[청하(가수)|김청하]] 뺨치게 전혀 대진운이 안 따른다. [[eternity]] 때는 컴백 첫 주에 [[THE SHOW|더 쇼]] 1위 맞대결을 하며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의 [[위키미키]]를 만나 [[프로듀스 101]] 이후 첫 리턴 매치를 벌였으나, 결과는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의 근소한 판정승.--[[지못미]]--[* 그런데 의외로 [[I.O.I]] 멤버들이 프듀 리턴 매치에서 이긴 게임이 적다. 그 이유는 바로 [[프로듀스 101/8회|8회]] 탈락자인 [[태하(모모랜드)|김태하]]인데, [[태하(모모랜드)|김태하]]는 '''[[청하(가수)|김청하]],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 [[연정(우주소녀)|유연정]], [[세정(구구단)|김세정]], [[미나(구구단)|강미나]]'''까지 이겼다!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은 [[프로듀스 101]] 파이널에서 고배를 마신 후 2년 만에 다시 만난 [[나영(프리스틴)|돌]][[결경|결]]에게 제대로 복수의 '''[[핵펀치]]'''를 먹여 버렸다.] 하지만 2018년 10월 21일에 다시 만난 도댕에게 복수에 성공했다.
  • 이민우(배우) . . . . 5회 일치
         [[한명회]]에서 [[연산군]]을 맡았다. 주인공 한명회가 죽은 이후를 다루는 후반 4회분에서 극을 사실상 주도하는 역할이며, 연산군 연기로 호평받으면서 이를 기점으로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이 '''19세'''에 이런 연기를 한다(...)[* 상술하였듯, 이 연기로 아역상을 받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r7eVSaqU59Q|# 기생씬]] 특히 [[폐비 윤씨]]([[장서희]])가 사사된 사실을 알고 오열하며 눈물콧물 흘리고 할머니인 [[인수대비]]에게 가서 한맺힌 절규를 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http://flvs.daum.net/flvPlayerIn.swf?vid=bYfGnkJ3L-U$&ref=bbs.movie.daum.net|# 절규신]] --배우들 다 굶어 죽으라고--
         사극 경력이 세손 -> 세자 -> 왕 -> 세자 -> 권력가 아들 -> 종친으로, 폐위(?)가 된 다음엔 복위를 못하다가 2014년 [[조선 총잡이]]의 [[고종(대한제국)|고종]]으로 복위 성공. 즉위에 성공한 왕 연기가 둘로 늘었다. 그러나 고종도 일본에 의한 폐위가 기다리고 있다(...)
         1999년 윤석호 PD가 연출한 '초대'에서 이영애, 추상미, 김민, 김상경, 이창훈과 함께 나와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주목받으며 성인 연기자로 순조롭게 안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http://m.isplu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474652&cloc=|관련기사]]
         그러다가 2013년작인 [[홍상수]] 감독 영화 《우리 선희》에 오랜만에 나왔는데 전국 40개 극장에서 개봉한 저예산 영화임을 생각하면 전국 관객 68,770명으로 꽤 성공했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5회 일치
          * 마레 지상군은 턱의 거인 "갤리어드"와 차력의 거인의 힘으로 적의 참호를 돌파하는데 성공한다.
          * 라이너는 게라이드의 원호를 받으며 스라바 요새 초토화에 성공, 지크는 해상의 연합함대를 향해 투석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 작전 지역이 가까워지면서 공수부대 지휘관은 강하를 앞두고 간략히 상황을 전달한다. 방금 전 보고로는 지상군이 장갑열차 파괴에 성공했다. 그러나 요새 내부엔 위협적인 야전포가 있을게 뻔하다. 지휘관은 그 점을 강조하며 브리핑을 마친다.
          * 전사 후보생 파르코는 낙오된 적의 병사를 자군 참호로 끌어들인다. 총에 맞아서 전투능력을 상실한 병사다. 옷을 입던 가비는 그 짓을 보고 뭔 짓이냐고 묻는다. 파르코는 "보는대로 전투능력이 없는 포로를 잡았다"고 대답한다. 그의 지혈이 성공했을 때의 얘기지만. 그들 바로 옆에선 마레인 장교가 총상을 입고 투덜거린다. 원래 최전선은 엘디아인의 몫인데, 왜 마레인인 자신이 다쳐야 하냐는 얘기였다.
          * 지크를 향해 집중된 포격을 라이너가 대신 맞는 동안, 연합함대가 괴멸한다. 함대의 괴멸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갑옷 거인의 반신이 날아가는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마레의 병사들은 작전의 성공도 전쟁도 끝도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은 패배를 당한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서진 갑옷 거인이 쓰러지는 걸 바라본다. 가비는 망연자실하게 "이럴 수가"라고 중얼거린다.
  • 최지우(영화배우) . . . . 5회 일치
         그리고 최지우는 2002년 '''<[[겨울 연가]]>'''에 출연하였고 배용준과 함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당시 겨울연가의 당시 시청률은 20프로 초중반으로 2002년 기준으론 그냥저냥한 중박쯤의 작품이었다. SBS의 [[여인천하]]가 워낙 대세였고 MBC의 [[상도]]도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실제 겨울연가의 감독인 윤석호 또한 20~30대 여성들을 공략하는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지우의 숏커트 머리는 하나의 유행이 될 정도로 <겨울연가>는 적당한 성공을 거두었었는데... 이 <겨울연가>는 일본에 수출되며 최지우는 그 유명한 '''욘사마'''와 더불어 '지우히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기 몰이를 하였다.[* [[이나가키 고로]]가 [[혼코와 클럽]] 진행 당시 최지우를 처음 실물로 본 경험을 얘기하며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도. 서브남주인 박용하의 인기 또한 폭발적이었으니 말다했다]
         2015년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 주인공 '하노라' 역으로 대중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극 초반 수동적인 캐릭터에서 후반부 적극적이고 활달한 이미지까지 잘 소화해 내면서 좋은 시청률과 연기력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제작진 역시 '하노라 캐릭터는 최지우 씨 말고는 할 수 없다'라고 하는 등, 여러 모로 의미깊은 작품을 찍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368424|최지우의 <두번째 스무살> 성공기]]
         <겨울연가>의 대박으로 멜로 여주인공 이미지로 먹고 살 수 있었던 드라마판에 비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판에서조차 연약하고 약간은 엉뚱한 이미지를 고수하여 연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본인이 영화판에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이미지 변신이 시급한 문제일 듯하다.
  • 하이큐/257화 . . . . 5회 일치
          * 가까스로 히나타가 블록에 성공하나 이번엔 오사무가 힘으로 찍어눌러서 득점에 성공, 히나타를 도발하기까지 한다.
          * 그리고 이 작전의 첫 시험대. 아츠무는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괴짜 속공으로 나온다. 카라스노 진영의 수상한 움직임. 오사무가 뒤에서 달려나오자 마자 히나타도 뛴다. 커밋 블록.[* 블로커가 스파이커의 움직임에 맞춰서 뛰는 블록을 뜻한다.] 이 예상 외의 움직임이 먹힌다. 정확하게 괴짜 속공을 셧아웃. 공을 이나리자키 진영으로 돌려보낸다. 그대로 카라스노의 득점 인정. 의외의 실적에 카게야마, 츠키시마, 우카이 코치의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가장 놀란건 성공한 히나타 자신.
          이 블록으로 18 대 18. 개시 이래 최초로 동률을 이룬다. 히나타는 곧장 카게야마에게 과시하나 카게야마는 담담하게 "니가 제일 놀라워하는 우연"이라며 외면한다. 한편 한 방 먹은 미야 형제는 새삼 히나타의 점프에 놀라워한다. 이렇게 작전은 대성공 같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응원석의 시마다가 우카이 코치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쓴 전술이라 평하면서도 "연습시합도 아닌데 잘 될지" 의심스러워 한다. 타키노우에는 오히려 그래서 써먹는 거고 머뭇거리가 2, 3점 더 잃으면 돌이킬 방법이 없다. 하는 수밖에 없는 것. 우카이 코치의 입장도 딱히 다른건 아니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그저 해냈다고 즐거워하지만 그는 썩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방금 전 성공은 기습이나 다를게 없고 계속 통할지는 지켜봐야 하기 때문. 그저 히나타에게 끈질기게 버텨주길 만을 기원할 뿐이다.
  • Crusader Kings 2/궁정 . . . . 4회 일치
          재상을 지목한 백작령으로 파견시켜 명분을 날조하게한다. 성공한 경우에는 군주가 해당 백작령에 대한 소유 명분이 생겨 땅을 내놓으라며 전쟁을 걸 수 있다. 해당 군주에게만 명분이 생기지 그 후계자에게는 안 생긴다는 것에 주의. 운이 나쁜 경우에는 명분을 날조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 해당 지역 영주들이 화를 내거나 암살자를 시켜 재상을 죽여버리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공작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으며, 만약 군주가 해당 지역의 왕이 되는 야망을 가졌다면 왕국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다.
          재상을 지목한 백작령으로 찌라시를 돌리게한다. 성공할 경우 해당 백작령의 가신들과 군주들의 서로에 대한 의견을 감소시킨다. 낮은 확률로 들켜서 해당 지역의 군주들이 분노한다.
  • 구승빈 . . . . 4회 일치
         중국의 LGD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미드정글의 부진과 상대팀의 임프 집중공략 속에 끊기는 빈도가 화이트 시절에 비해 급격히 높아진 것이 문제. 결국 데프트의 EDG에 밀려 4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시즌 후반에 들어 미드가 닉변을 하고 심기일전하더니 폼이 확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폭풍 연승 행보를 보여주면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에서 3:2로 졌으나 일단 LGD 입장에선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봐도 좋을듯
          * 2013년 10월 30일 프로게이머 정기소양교육에서, 격투기 해설자인 김남훈에게 "다시 태어나면 잘생길 것이다"라는 발언을 해[[http://esports.dailygame.co.kr/view.php?ud=2013103017235703189|김남훈을 강단아래로 소환하는데 성공했다.]] ~~소환 성공하고 좋아 죽는 임프~~ [[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36491&db=issue|들어올 때는 맘대로 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응징 당하면서 좋아 죽는 임프~~
          * 2014 시즌 월드 챔피언십 16강 2일차 터키팀 Dark Passage와의 경기에서 펜타킬을 기록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게 '''롤드컵 최초 펜타킬'''이라고 한다. 그 뒤 인터뷰에서 깨알같이 피글렛을 언급하였다.
  • 김국진(MC) . . . . 4회 일치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 [* 실제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한다.]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4년 하반기#s-24|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가수)|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소개했다~~ 실제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일 양국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국민적 코미디언들이었고 화려한 전성기가 끝나고 적지않은 시간동안 몰락해 있었다는 점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시무라 켄은 1970년대 후반~80년대에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인 [[이주일]], [[심형래]]의 위치와 더 가깝고 김국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인에 가까웠다. --여기서 [[이경규]]는???-- --당시 이경규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회가 갈수록 조금씩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레전드 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자신감을 얻어 라디오 스타 MC로써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체제에서는 조용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라디오 스타가 특정 매니아 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위기탈출 넘버원]][* 2010년 5월 10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고정 MC로 출연.] 등에도 출연했다. 이와 동시에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유일하게 견제하는 역할로 나름의 영역을 보여주며 활약을 선보였고, 공중파 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MC를 하는 등 단순한 재기를 넘어서 제 8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라디오스타]] 추신수편과 이대호편에서는 스윙으로 촛불끄기에 도전했다가 초를 날려버리는 레전드 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http://naver.me/56oLMTEJ|#]] 이후 [[불타는 청춘]]에서 다시 한번 도전했는데 여기서는 시원하게 성공했다.[[http://naver.me/xYianF1W|#]]~~다만 여기서는 [[구본승]]이 라스의 아성을 재현한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4회 일치
         JT 마블러스의 흑취기 우승에도 큰 공을 세운 뒤 JT 마블러스와의 임대계약이 종료된 결국 2011년 5월 [[터키]] 명문 [[페네르바흐체 SK]]에 입단하게 된다. 역시 JT 때와 같은 임대계약. 여자배구에 있어서 터키 아로마 리그는 유럽 최대의 빅리그 중 하나인지라 얼마나 적응에 성공할 지는 미지수였던지라 페네르바흐체와도 1+1 계약을 맺었다. 그래도 일본에서도 ''''100년에 나올까 말까한 거포''''라고 칭송했으니.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리우 올림픽]] 조별예선 A조 1경기 운명의 [[한일전]]에서 30득점을 기록하며 3-1로 승리, 4년 전의 아픔을 일본에 설욕했다. 점유율은 37.5%로 무난한 수준이었지만 ~~[[헤일리 스펠만|이 선수]]에 비하면~~ 성공률이 워낙 [[넘사벽]]이어서 일본 배구에 '알고도 못 막는다'를 다시 한번 시전했다. 게다가 토요일 황금시간대에, 그것도 한일전이라 [[KBS]], [[MBC]], [[SBS]] 공중파 3사에서 동시 생중계한 덕분에 경기하는 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걸크러쉬]], ~~착한 제빵사~~ 등의 별명은 덤.
         한편 이런 캐사기적인 플레이도 가능하다. 장면은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 [[정대영]]이 2단으로 연결하는 상황에서 미처 도움닫기 준비를 못한 김연경이 제자리뛰기로 백어택을 성공시켰다. 오오. ~~ 그리고 무진장 배를 아파했다. ~~ ~~코레와스고이키무욘굔노 박쿠아타쿠~~
          * 이전 문서에서는 [[개신교]] 신자라고 되어 있으나 영상을 찾아보면 [[https://www.youtube.com/watch?v=-pHMig1AqXE|성호를 긋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개신교 신자라기보단 [[가톨릭]] 신자일 가능성이 높다.[* [[https://www.instagram.com/p/aCrfx9qxpr/?hl=ko&taken-by=kimyk10]] 또한 비록 스치듯이 나왔지만 나 혼자 산다 출연 당시 성경의 글귀가 새겨진 액자가 보이기도 했다.] ~~[[성공회]] 신자일 수도 있겠다.~~
  • 김태우(god) . . . . 4회 일치
         한국의 [[가수]] 5인조 보이 그룹 [[god]]의 멤버 '''메인보컬'''을 말고 있으며 아이돌 메인보컬 출신들 중에서 최장신이자 가장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가수이자 탈아이돌을 넘어 한국 가수계에서도 인정받는 성공한 사람이자 가장 모범적인 첫 사례다.
         1인으로 3차 도전을 한 490회 방송에선 상금을 타면 후배의 뮤직비디오 제작비에 보탠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간 인터뷰 때 중학교 시절 당시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던 [[김제동]]에게 "가수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었더니 그가 "넌 안돼!"라고 말하는 것에 상처를 받아서 독기를 품어 노력을 한 끝에 가수에 데뷔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데뷔 이후 김제동이 "태우야,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는 김제동에 "형은 안돼요!"라고 받아쳐 [[역관광|제대로 복수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재판부는 “김태우의 체중이 다시 증가하면서 쥬비스의 체중 관리 프로그램 효과를 의심하며 환불 신청을 요청하거나 상담을 취소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며 “체중 감량에 성공해 쥬비스가 얻은 광고 효과도 있는 만큼 광고 모델료의 50%를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 김태희 . . . . 4회 일치
         그러던 중 2003년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SBS 드라마]] 《[[스크린 (드라마)|스크린]]》에 출연했는데, 연기력으로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ref name="MBC"/> 같은 해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에 수진 역할로 출연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14&aid=0000092055|제목=권선징악 주제 현대판 흥부놀부전, SBS새 일일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웹사이트=[[파이낸셜뉴스]]|저자=정명진|날짜=2003-10-23 |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출연한 [[SBS 수목미니시리즈|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처음으로 악역인 한유리 역할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38.4%, 최고 시청률 43.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1031246131001|제목=‘천국의계단’ 권상우 “아베마리아 음악 나오면 달려야 할 것 같다”|뉴스=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0-11-03 |확인날짜=2014-02-25}}</ref> 김태희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ref name="MBC"/>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ref name="SBS연기대상">{{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7311|제목=이병헌, SBS '연기대상 수상'|출판사=뉴시스|저자=민성진|날짜=2004-01-01 |확인날짜=2014-02-25}}</ref> 하지만 일부는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도 소화하지 못했다며 연기력 비판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드디어 연기인생 한판승 거두나?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1141557551110&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배국남|날짜=2011-01-14 |확인날짜=2012-03-08}}</ref>
         김태희는 2011년 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했다.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수아|제목='마이 프린세스', 종영…여심 흔든 달콤한 '황실로맨스'|url=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11/02/25/65491.html|출판사=프런티어타임스|날짜=2011-02-25 |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송승헌]]과 함께 공연해 대학생 이설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미지의 변화와 이전보다 향상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김민호|제목=김태희 푼수연기 호평 "이제야 딱 맞는 캐릭터!"|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출판사=투데이코리아|날짜=2011-01-06|확인날짜=2011-01-06}}{{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 }}</ref> 4월 1일에는 《[[MBC 다큐스페셜]]》에서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MBC 스페셜 방영 목록#2011년|태희의 재발견]]이 방영되었고, 방송에서 김태희의 일상, 연기력 논란, 학창 시절 등에 대해서 다뤘다.<ref name="미디어스">{{뉴스 인용|저자=곽상아|제목=MBC스페셜 '태희의 재발견'…"황당·실망"|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0|출판사=미디어스|날짜=2011-04-03|확인날짜=2014-04-07}}</ref> 시청률은 지난 편에 비해 2배 가량 상승한 9.3%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저자=문완식|제목=궁금했던 김태희..'태희의 재발견' 시청률 9.3%|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4020912530683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1-04-02 |확인날짜=2014-04-07}}</ref> 하지만 일부에서는 “뭘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태희 홍보프로”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ref name="미디어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MBC스페셜]]이 김태희도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라고 말했다.<ref name="미디어스"/> 《[[마이 프린세스]]》가 종영되고 나서 김태희는 [[일본]] 기획사 [[스위트 파워]]와 계약을 맺고 [[일본]] 진출을 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진출…"일본서 적극적으로 활동 펼칠 것"|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출판사=SSTV|저자=신영은|날짜=2011-03-03|확인날짜=2014-04-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408214713/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보존날짜=2014-04-08|깨진링크=예}}</ref> 이후 [[일본]]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에 여주인공 한유나 역할로 출연해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드라마 주연…니시지마 히데토시와 호흡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9575|출판사=아시투데이|저자=정희영|날짜=2011-08-25 |확인날짜=2011-09-10}}</ref> 첫 [[일본]]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끝냈고, 많은 CF 촬영도 진행 할 예정이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日 드라마 성공 데뷔 후 해외 CF 러브콜 쇄도|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출판사=일간스포츠|저자=김인구|날짜=2012-02-21|확인날짜=2012-02-2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 }}</ref> 그러나 2005년 이완과 함께 스위스에서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빌미로 각종 CF 방영 계획이 취소되었고, 드라마 촬영 중단까지 요구되었다.<ref name="광주일보">{{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日 CF행사 취소..독도발언 때문|url=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9898239461109010|출판사=[[광주일보]]|날짜=2012-02-22 |확인날짜=2012-02-25}}</ref>
  • 박명수(MC) . . . . 4회 일치
         표현을 정확히 해야 하는 문제로, 무한도전 이전에는 S급, 하다못해 A급의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B급으로 대중들에게 존재감은 확실한 편이었던 나름대로 어느정도 성공한 연예인에 속해있었다. 유재석이 오랜 무명기간을 끝내고 대형스타가 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지금처럼 A급 이상으로 대박난 연예인이라는 의미에서는 "과거에는 인기있는 연예인이 아니었다"라고 말할 수 있고, 상당히 인지도 있는 연예인이라는 의미에서는 초창기부터 "예전부터 인기가 있던 연예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방송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현실에선 매우 친절하고 마음 따뜻한 사람이다. 대학을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자기 치킨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이 등록금이 없어 한 학기 더 휴학해야겠다고 하자 선뜻 등록금을 대주고는 "나중에 돈 벌면 갚으라고" 한 미담도 있다.[* 이 학생은 그 후 취업해서 결혼 축의금으로 박명수에게 진 빚을 갚았다고 한다. [[http://news.nate.com/view/20100423n07691|기사 참조]]. 그리고 그 학생이 취업에 성공하여 돈을 갚으려고 하자 "까불지 말고 열심히 모아" 라고 했으며 학생의 결혼식에 참석해 "밥 먹고 갈테니 돈 빌렸던거 퉁치자"라고 하며 축의금으로 100만원을 낸 뒤 방명록에 "잘 살아"라고 썼다고.] 이 외에도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가사 도우미의 남편의 암 수술비를 매니저도 모르게 지원해준 사실이 한 네티즌의 글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증언을 한 네티즌에 따르면 박명수가 아침 출근 전 빵을 굽거나 과일을 갈아서 가사 도우미에게 오히려 대접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수술비 지원에 관해서는 가사 도우미가 박명수에게 직접 밝히지는 않았으나, 박명수의 아내가 그 처지를 전했을 것이고 부부가 함께 수술비 지원 문제를 상의했을 것이라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2&aid=0002078065|#]]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가사 도우미의 남편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또한, 일부 무개념빠나 무개념까는 박명수가 무슨 [[이수만]]이라도 되는 것처럼(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말하기도 하는데, 이 회사 자체가 투자를 받지 않고 '''박명수의 사비만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유망한 후배를 끌어주겠다는 목적으로 쩌리멤버를 받는 것 말고는 사실상 1인 기획사나 다름없다. 라디오스타에서도 "소속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윤종신]]의 말에 긍정했다.[* 물론 여기 소속된 레벨의 연예인들 대부분이 당장 섭외 자체가 거의 안들어오는 사람들이란 걸 생각하면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도움이다. 사회, 특히 연예계에서 인맥이란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면 거물 코미디언인 박명수가 빽으로 있는 것 자체가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큰 도움이 된다. 당장 잘나가는 연예인들 상당수가 TV에서 누가 누구를 "꽂아준" 얘기를 하지 않는가. 위의 이승철 케이스에서도 나오지만 방송에 아예 안 나오는 연예인들은 인지도가 있는 동료가 방송에서 언급하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 '기획사'라기보다는 박명수가 후배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라인'이나 '크루'와 비슷한 형태인 듯하다. ~~이 때문에 유느님을 영입하고 싶어도 돈이 안돼서 못하고 있다[* 유재석의 현 소속은 [[FNC엔터테인먼트]]이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올라갔다.[* 실제로 성향이 진보적인지는 알수없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김종필]]을 존경한다는 투의 애드립을 쳤다가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으며 2017년 북한의 ICBM 개발을 두고 [[개성공단]]으로 들어간 자금이 핵개발에 쓰였을 것이라는 발언을 라디오에서 한 적이 있었다.]
  • 박주영 . . . . 4회 일치
          * 도주영 : 이 별명은 도주영 30년 축구 인생의 모토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행위의 결과는 이미 주체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일부 철학 학파의 시선으로 볼 때 도주영 별명 석 자는 포항에서 서울로 달아날 때부터 예고되었다, 이후 모나코에서 릴로 이적하려다 벵거의 전화를 받고 아스날로 이적하며 도주영 3글자는 거의 수면 가까이까지 부상하였으나, 축구선수의 전격적 이적은 왕왕 있어온 일이라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충분치 못하였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의 부름은 시종 무시하면서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은 덜컥 받아들여 병역에서마저 성공적으로 도주하는 기이한 솜씨가 아니고서야 도주영 세 글자 별명은 성공적으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박주영은 표홀히 아스날, 왓포드, 알 샤밥 등지를 방랑하며 주급만은 쏙쏙 챙겨먹는 솜씨로 도주영 세 글자 이름을 드높였다.
          * 박힐러, 프리스트 박 : 박주영이 아스날을 떠난 이후 몇몇 선수가 박주영 아스날 재직시에는 건강했으나 그 전후에는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인 것이 발견, 박주영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팬들이 환호하며 찬양하기 위해 붙인 별명. 사실 박주영은 벤치에서 힐과 버프를 주며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역할로 기용한 벵거의 혜안이었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박주영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종교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며 성공한 별명.
          * 승부사 : 2010년 국가대표 훈련시 한 동영상에서 "야 형 승부사야 임마" 하면서 코너킥 위치에서 골대 안으로 공을 집어넣은 것에서 유래. [[http://tvpot.daum.net/v/-eIjWeuKyho%24|#]] 이후 인생의 분수령이나 갈림길마다 귀신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면서 재조명. 골결정력과는 전혀 관계 없음. 이따금 박주영의 경기력이 좋았을 떄 신문 기사에서도 박주영을 승부사라고 호칭하며 이 별명의 영향인지 그 빈도가 다른 선수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처럼 보이긴 하나 그 날 경기 폼이 좋으면 종목 불문하고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크게 구별될 정도의 의미는 없다. 결국 기막힌 승부수를 던지고 연이어 성공한 그의 인생역정과 관계가 깊은 별명이다.
  • 박철우(배구) . . . . 4회 일치
         2008-2009 시즌에 기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폼을 잠시 잃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소속 팀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로서는 박철우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맡겨서 현대캐피탈을 '철우캐피탈'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시즌 정규리그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55.32%를 기록하며 공격상과 함께 정규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2라운드에서 다시 LIG를 만났는데 이 때 그가 얻은 점수는 '''1점'''! 3억 연봉을 받는 선수가 한 경기에서 이런 점수를 낸다면 이건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니다. 한 마디로 배구 FA 최초의 먹튀 사례를 만들었다는 것 말고 할 말이 없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나마 얻은 1점도 '''다이렉트 킬'''이기 때문에 공격 성공률은 0%이었다는 것! 2010년 1월 25일 열린 [[아산 우리카드 한새|우리캐피탈]]전에서도 또 한 번 1경기 1점을 올렸다. 정규 시즌에 1점을 기록한 경기가 두 번이 되었다. --이거 해결사 맞아?--
         2015-2016 시즌, 세계 최고 소리를 듣던 [[괴르기 그로저]]가 라이트 자리에서 뛰면서 폼이 빠르게 올라오지 않자 역시 다시 박철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다. 단 주의할 점은, 세계 최고의 아포짓이라는 그로저의 명성에 비해 기대치가 안 나오는 것이지 객관적인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몇경기만에 득점 1위를 할 정도로 점유율도 높고, 공격 성공률또한 용병 중 3위정도를 할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서브는 현재 1위를 기록중.
         우리나라에 몇 없는 왼손잡이 라이트다. 공격시 직선이나 블로커 사이를 통과하는 경우가 잦다. 국내 선수중 손꼽히는 득점력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그 분이 오신날엔 아무도 못 막는다고 할 정도. 임팩트 있는 [[벽치기]]덕에 벽철우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기록상으로 크게 차이 날 정도는 아니다. 오픈과 퀵오픈, 후위공격에서 모두 준수한 성공률을 보이는 윙스파이커다. 심지어 최근에는 시간차 공격도 보여주고 있다. 왼손잡이 세터와 궁합이 잘맞는다는 말이 있다. 199의 우월한 신장을 바탕으로 사이드 블로킹도 단단히 세워준다. 스파이크 서브도 좋은 편이지만 서브 토스가 불안해 범실이 '''매우''' 많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4회 일치
         웃찾사는 개콘을 이탈한 개그맨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든 프로지만, 정작 개콘 출신 개그맨들은 형님뉴스로 성공한 강성범, 난다김으로 성공한 김숙을 제외하면 성공한 경우가 없었고, 대부분이 소리소문 없이 하차한 다음 개콘으로 복귀했다.
         브라운관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았지만 몇 년째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념하며 활동 자체는 계속하고 있다. 2010년 [[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과 함께 KBS 라디오에서 '신나는 오후4시'를 진행하였으며,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EBS라디오에서 '대한민국 성공시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 4월부턴 TBN한국교통방송에서 평일 오후 2시에 [[아나운서]] 선우경과 함께 '심현섭 선우경의 신나는 운전석'을 진행하고 있다.
  • 안영준 . . . . 4회 일치
         기사가 나온 하루 뒤인 3월 10일 모비스전에서 보란 듯이 인유어페이스덩크를 성공시키고 DB전에서는 20득점을 올리면서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유재학 감독의 발언이 자극이 된 듯 하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해 활약이 절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SK나이츠가 18년만에 우승하면서 신인왕+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성공한 역대 6번째 선수가 되었다. 소속팀이 워낙 오랫동안 무관으로 고생했던지라 너는 축복받은 선수다라고 선배들이 말하는 듯. 안영준 본인도 대학 우승 이후 곧바로 프로에서 우승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SK 나이츠 국내 선수들 중에서 챔피언결정전 평균출장시간이 28.1분으로 팀내 최장출장시간을 기록했다. 첫 시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대활약. 신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면서 성장시키는 스타일의 문경은 감독 체제하에서 발전이 기대되는 선수다.
         좋은 피지컬 능력을 이용한 돌파, 적극적인 수비가담, 그리고 리바운드에 강점이 있다. 이 부분은 프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야투 기복이 존재하며 대학 4학년 기준 3점슛 성공률은 26.19%(22/84) 로 다소 떨어졌다. 드래프트 전 평가는 외곽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슬래셔에 가깝다는 평가였고, 프로에서는 대학무대에서의 활약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많이 존재했다. 하지만 프로 진출 후 문경은 감독에게 슈팅폼 수정을 받은 후 3점슛 정확도가 매우 상승한 케이스이다. 팀 선배 [[최부경]]과 함께 경기 2시간 전부터 슈팅연습을 할 정도로 노력을 보인 끝에 데뷔시즌부터 본인의 약점이였던 3점슛을 크게 개선시켰다.
  • 원피스/855화 . . . . 4회 일치
          * 작전은 실패한 것 같았지만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가 간발의 차이로 브룩을 빼오는데 성공.
          * 브룩은 사실 자신의 두개골 속에 탁본을 숨겨오는데 성공했다. 빅맘이 들이닥친 시점은 그가 막 탁본을 숨긴 직후.
          * 브룩이 떨어지자 이번엔 [[나미(원피스)|나미]]가 시도한다. 나미는 브룩을 깨워서 데려가려 하는데 막 깨어난 브룩은 나미가 짊어진 가짜 브룩을 보고 놀라 귀신이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깬 빅맘. 아직도 파리인 줄 알지만 정말로 짜증이 한계에 달해서 프로메테우스를 집어서 휘두른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징베는 거울 밖으로 몸을 날려 빅맘의 "헤븐리 파이어"에서 나미와 브룩을 구한다. 겉옷에 불이 붙지만 몸을 굴리면서 거울 속으로 도주, 가짜 브룩도 무사히 현장에 놔두고 왔다. 작전은 결국 성공.
          브룩은 아무렇지 않게 "사본"을 꺼내놓는다. 쵸파와 나미, 캐럿의 눈이 휘둥그래하게 튀어나온다. 브룩은 아무것도 아닌 양 페드로가 무사해서 다행이란 이야기나 늘어놓는다. 나미가 이게 정말 포네그리프냐고 묻자 그제서야 "맞다"며 마침 딱 세 장을 다 배끼고 났더니 빅맘이 나타나 위험했다고 투덜거린다. 페드로는 장성도 끼어있는 호위대를 따돌리고 성공한 거냐고 놀란다.
  • 원피스/864화 . . . . 4회 일치
          * [[브룩]]은 마더 카르멜의 액자를 깨는데 성공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서 빅맘 [[샬롯 링링]]을 패닉으로 몰아간다.
          빅맘은 누군가가 "저걸 봐!"라고 경악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사진에 생긴 이변을 깨닫는다. [[카포네 갱 벳지]]의 예상대로 그녀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간다. [[몽키 D.루피]]와 징베, 벳지는 작전이 성공했다고 확신하며 앞으로 3초 후 터질 괴성만을 기다린다.
          * 빅맘 해적단은 가짜 루피들은 모두 동물이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있었다. 브룩은 그 점에 착안해서 루피 변장을 하고 사진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가 뒤집어 쓰고 있던 루피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래 얼굴을 드러내는데, 사람들은 "스스로 얼굴 가죽을 찢어버렸다"고 오해해 소름끼쳐 한다.
          * 벳지가 말한 "좋지 않은 상황"이란게 바로 이것이었다. 빅맘은 쇼크가 너무 겹치고 겹친 나머지 대혼란상황. 패닉을 일으킬 정신 조차 없는 것이다. 브룩은 빅맘의 상태가 저러니 "깨어진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고 제안한다. 벳지는 이제와서 효과가 있을지 미심쩍어하다가,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접근하는걸 발견하더니 대번에 태도를 바꿔서 "작전은 성공할 거다"고 확신한다. 지금 카타쿠리는 새파랗게 질린 낯짝이다. 벳지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을 경우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원피스/865화 . . . . 4회 일치
          * 방해를 재낀 카타쿠리가 루피를 붙잡으나, 루피가 팔을 늘려서 빅맘의 시야에 마더 카르멜의 깨진 사진을 보여주는데 성공, 마침내 빅맘이 패닉을 일으킨다.
          * [[나미(원피스)|나미]] 일행의 뒷처릴 마친 [[시저 크라운]]은 [[샬롯 브륄레]]를 데리고 거울 밖, 다과회장 정문 앞으로 나온다. 이제 작전이 성공하면 탈출용 거울로 일행을 탈출시키는 것만 남았다. 시저는 심장을 되찾고 "연합군"에 복수할 꿈에 부풀어 반드시 이 임무를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그런데 기다리던 "괴성"이 들리지 않았다. 시저는 문 위로 고개를 내밀고 안쪽 상황을 살핀다. 난장판.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된 증거였다. 웨딩 케이크가 엉망이 됐고 밀집모자일당이 준비한 가짜 루피들이 날뛰는 통에 혼란이 가중된다. 게다가 [[몽키 D. 루피]]가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깨뜨린 것도 보였다. 여기까지는 작전 성공. 하지만 정작 터져야 할 빅맘 [[샬롯 링링]]의 괴성이 아직이다.
  • 유키히라 소마 . . . . 4회 일치
         그러나 그렇다면 사람들을 끌어모아 나오는 족족 가져가게 하자는 전략으로 무려 8개의 가스렌지를 돌려가며 요리를 초고속으로 만드는 쇼맨십을 발휘, 아슬아슬하게 200그릇 달성에 성공. 이로서 합숙에서 살아남는다.
         모색한 끝에 타코스와 유사한 가라아게 롤을 개발하면서 불황 탈출 성공. 그러나 그 가게는 십걸 제9석 유우잔 에츠야가 관리하고 있던 가게였기에 악연을 쌓게 된다.
         무수한 미식 경험으로 엄청나게 깐깐한 심사위원[* 이들 중 대표는 센다와라 쌍둥이 자매로 각각 A,B블록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이 자매는 작중 대기업인 카레를 주로 생산하는 하우비 식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언니인 나츠메는 CEO, 동생인 오리에는 COO를 맡고 있다. 둘 다 '''고금동서의 카레를 전부 다 알고 있어서''' 예선 주제인 '''카레'''로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도 전세계의 요리들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일류 미식가들이다.]에 좌절하는 사람[* 심사위원들의 기준이 어찌나 높은지 자신들의 말로는 '''50점 이상''' 받으면 훌륭한 요리라고 하는 데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40점도 못 넘었다.(...)''' 특히 A블록 심사위원장인 나츠메는 [쿠로키바 료|료]의 프렌치 왕새우 카레를 먹기 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단 1점도 주지 않았다.''' [흠좀무].]과 그럼에도 감탄사를 끌어내는 실력자들[* 앞서 얘기한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으로 전부 이 까다로운 심사위원들한테서 '''80점 이상'''을 받았다.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A블록은 '''아키라''', '''소마''', '''료''', '''스바루''', 슌, 젠지, 니쿠미, 료코 / B블록은 '''아리스''', '''히사코''', '''타쿠미''', '''메구미''', 미요코, 이사미, 유우키, 나오이다. 강조처리한 애들은 본선 진출자들.]이 등장하는 예선에서 후반부에 드디어 요리를 완성. 직접 만든 망고 처트니를 숨김 맛으로 쓴 카레 리조또 오므라이스로 심사위원의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성공, 하야마가 날카로운 창이라면 소마는 맛의 파상공격이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아키라의 홀리 바질 카레에 1점 못미치는[* 단 하야마보다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이 심사위원 5인 중 3명이었다. 즉 이게 점수 합산 방식이 아닌 식극처럼 다수결 방식이라면 오히려 소마가 이겼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93점으로 [쿠로키바 료|료]와 함께 공동 2위로 본선 진출 성공.
  • 육미당기 . . . . 4회 일치
         유구국왕(琉球國王) 백문현(白文賢)이 중국으로 가다가 소선을 구출하여 당나라로 데려가고, 인품이 뛰어난 걸 보고 자신의 딸 백소저와 혼인을 서약한다. 하지만 백문현은 간신의 참소를 받아 귀양을 가게 된다. 소선은 집을 나와서 방황하다가 [[퉁소]]를 잘 불어서 임금의 총애를 받고, 옥성공주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그 때 소선이 신라에서 기르던 [[기러기]]가 모후의 편지를 전해와서, 소선은 기뻐서 눈을 뜨게 된다. 신분이 밝혀진 소선은 [[한림학사]]가 되고 옥성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된다.
         한편 소선과 약혼했던 백소저는 남장을 하여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하고 한림학사가 된다. [[토번]]이 침략해오자 소선은 초유사가 되어 적진에 갔다가 감금되고 만다. 백소저는 원수가 되어 출정하여 토번을 물리치고 소선을 구출한다. 백소저는 개선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당나라 황제는 백소저를 금성공주로 책봉하고 소선이 제2부인으로 삼도록 한다.--백소저에게 별로 이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건 기분탓일까.--
         소선이 나라에 돌아온 뒤 왜국이 신라를 침범하였는데, 소선은 금성공주 백소저와 출정하여 왜국의 서울 강호(江戶)까지 진격하여 왜왕에게 항복을 받는다. 소선은 왜국을 토벌하고 돌아와 부왕의 뒤를 이어 신라 왕이 되고 선정을 베풀다가 부인들과 함께 보타산에 가서 승천한다.
  • 임수정(탤런트) . . . . 4회 일치
         2003년에는 《...ing》에 출연하여 [[불치병]]에 걸렸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여고생[* 커플로 나온 [[김래원]]은 대학생 역을 맡았는데 사실 그녀보다 어리다.(...)] 민아 역을 맡아 과장되지 않은 감성연기를 보여주었다. 비록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나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전설 아닌 레전드로 기억되는 OST인 [[이승열]]의 기다림이 화제가 된다.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비(연예인)|정지훈]]과 함께 출연하며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대중들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 활약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아시아 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았다.
         당대 최고의 인기시리즈이던 [[학교 4|학교]]에 신인으로 주인공 자리를 잡으며 화려한 데뷔를 한다. 그런데[[http://sports.chosun.com/news/entertainment/20011105/1be16005.htm|#]] 이 사건으로 제작진의 미움을 사서 단역으로 강등되고 단독에피소드나 진행되던 스토리도 모두 ~~임~~수정된다. 초반의 도도하고 까칠하던 [[아야나미 레이]]같은 분위기의 배역은 이유리에 흡수되고, 스토리텔링의 핵심인 수다부분에서는 뒤통수만 나오던가 아예 안나온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는 이유리, 공유로 남게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방송될 때 [[크리스마스]]를 맞아 스탭 전원에게 일일이 양말을 골라서 돌렸다고 하고 드라마의 대박성공 이후 소속사에서 해외여행을 권유했으나 나라 경제상황이 안좋다며 가지 않았다고 한다. 오오 [[대인배]].
  • 장태영(야구선수) . . . . 4회 일치
         그의 활약으로 경남고등학교는 1947년 제2회 청룡기 부터 이듬해인 1948년 제2회 황금사자기 때까지 4개의 전국대회에서 파죽의 12연승을 기록했으며 1948년 제 4회 청룡기에서도 전주공업중, 춘천농업중,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연달아 꺾으며 연승을 15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김양중이 버티고 있던 광주서중과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때 김양중과의 연장 11회에 걸친 대결은 고교야구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로 꼽힌다.
         8회말까지 장태영은 광주서중의 타선을 단 1안타로 꽁꽁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양중도 경남고의 타선을 철저히 틀어막으며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 스코어링에 0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것은 9회초,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의 1번타자 허종만과 2번타자 정상규가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2사후 1점을 기록하면서였다.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영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태영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남중학교 2루수 정상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정상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상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상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 정재안 . . . . 4회 일치
         |학력 =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학사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전공을 하였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직능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또한 한국재활용산업 발전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성공회대학교]] 졸업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성공회대학교 동문]]
  • 콩고(소설) . . . . 4회 일치
         어찌됐든 앞서게 된 일행은 잃어버린 도시 진즈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즈의 원주민들이 경비를 위해서 남겨놓은 회색 고릴라 집단이 살고 있었고, 곧이어 회색고릴라 무리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된다. 첫교전에선 전기철조망과 자동사격기관포로 막아내지만 탄약이 절반이상 소모된데다 고릴라들의 전기철조망에 한번 당하자 나무 막대로 철조망을 젖혀놓고 들어와 대원 하나 살해할 정도로 높은 지능과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이후로 영장류가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사용해[* 에이미도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급류를 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야하자 피터에게 똥 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도 파고 보유량이 넉넉한 최루탄으로 밀어내는 등 선전을 펼치고 고릴라 무리를 선제 공격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방법도 찾지만 고릴라 수가 너무 많이 총으로 무장했어도 십여명 수준으로는 대책이 없었고 퇴로도 다 매복한 상태라 오도 가도 못하며 탐험대는 희생을 내며 궁지에 몰린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탄약도 떨어지고 비까지 내려 최루탄도 무력화되고 도랑은 고릴라가 나무를 걸쳐 통과해버리면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는데 에이미의 도움으로 엘리엇은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여 그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그러나, 카렌 로스가 지질 조사를 위하여 화약을 설치하고 폭파시키도록 지시한 탓에 화산 폭발이 일어나 버린다. 탐험대는 필사적으로 진즈에서 도망치지만 진즈와 회색 고릴라들은 용암에 묻혀 사라져 버린다. 생존자들은 겨우 목숨만 건진 채로 일단 충분한 물자가 있고 거처로도 쓸 수 있는 합작사업의 추락한 수송기로 가지만 하필 식인종 무리와 마주쳐 전투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고릴라와 싸울 때와 달리 수송기 동체라는 방호벽에 화물칸에 쌓인 무기 덕으로 식인종을 닥치는대로 쓸어버리고(...) 주술사까지 죽여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다음 공격이 있기 전 준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물자를 뒤지던 일행은 합작기업이 준비했던 [[열기구]]를 타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먼로의 오른팔격인 현지인 청년. 꽤 유머러스하고 성격에 붙임성도 좋다. 다른 대원들은 마구 죽어나가는 와중에 본인은 끝까지 살아남는데 성공. 다만 이런 식의 탐사는 해본 적이 없는지 피터와 카렌을 보고 학자로 위장한 밀수업자로 생각했다. 본인은 먼로가 무기밀매 아니면 이렇게 나설 일이 없다고 믿는 듯.
  • 킹덤/522화 . . . . 4회 일치
          *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가 기수군을 방심시키고 [[마광]]군이 좌익을 찔러들어가는 양동작전. 병력차이를 압도할 정도로 성공을 거둔다.
          * 왕전이 마광과 몽념을 불려놓고 작전을 하달하던 자리에서 몽념은 반드시 작전을 성공시킬 것이고 마광이 어정거리면 자신들이 주역을 뺏겠다고 호언한다.
          * 마광군의 공격은 대성공이었다. 부관이 그 명성 높은 기수군 치고는 너무 쉽게 처리됐다며 오히려 실망한 기색이다. 마광은 그게 "양동의 공"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수군의 이목을 끌어준 낙화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설마 기수군을 이렇게까지 희롱할 줄은 몰랐다며 그 지휘관인 몽념 또한 입만 산 녀석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 자신의 뜻대로 굴러가는 전황을 보고받은 왕전. 그런데 그는 작전성공을 기뻐하기 보단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4회 일치
         실제 역사에서는 전국 통일에 거의 성공할 뻔했으나, 오다 가문의 가신이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다이묘인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하는 [[혼노지의 변]]을 일으키며 좆ㅋ망ㅋ. 이후 오다 가문의 또다른 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츠히데와 다른 경쟁자들을 진압하고 오다 가문을 계승(?)하게 된다.
          * 메츠케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2%
          * 승려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2%
          * 닌자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2%
  • 하이큐/237화 . . . . 4회 일치
          * 츠바키하라의 저항이 거센 가운데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한 카라스노.
          * [[츠키시마 케이]]는 합숙의 영향으로 약점이었던 약한 토스를 극복, 아즈마네의 강 스파이크로 연결해 역전에 성공한다.
          * 스파이크를 받아낸 [[히나타 쇼요]]. 하지만 자세가 어설퍼서 공이 애매하게 떠버린다. [[니시노야 유]]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가 제대로 리시브 위치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놀라는 것 같지만, 히나타는 너무 앞으로 갔다며 자책한다. 공은 도로 코트로 떨어지려고 하는데 [[타나카 류노스케]]가 몸을 날리다시피 하며 살린다. 공은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넘어가 침착하게 마무리. 밀어넣기 성공으로 드디어 18:18로 동점을 만든다.
          * 아즈마네는 파워풀한 스파이크로 블록을 날리고 득점에 성공한다. 스코어는 19대 18. 카라스노의 역전.
  • 하이큐/241화 . . . . 4회 일치
          츠바키하라의 서브. 테라도마리가 서브한다. 테라도마리에는 서브도 깨끗하게 꽂아넣으며 서브 에이스를 딴다. 20 대 20으로 따라잡은 츠바키하라. 하지만 다음 서브에서는 니시노야가 리시브, [[사와무라 다이치]]가 공격에 성공하며 다시 스코어는 21 대 20으로 한 점 차 리드.
          * 경기는 계속되어 다시 21 대 21 동점. 츠바키하라 측의 선수 교체로 아테마가 내려가고 미카와가 들어온다. 교체된 미카와가 서브에 성공하며 이 시점의 스코어는 21 대 22로 츠바키하라 1점 리드. 그러나 벌어지기 무섭게 [[츠키시마 케이]]가 되갚아주며 다시 동점. 스코어가 정신없이 올라간다.
          * 이번엔 아즈마네의 서브. 아즈마네는 80%의 힘을 누누히 되새기며 서브를 친다. 결과는 성공. 코트 구석을 정확하게 찍는다. 스코어는 23 대 22로, 근소하게 카라스노의 우세가 보이기 시작한다.
          * 아즈마네의 2회차 서브. 마루야마는 큰소리쳤던 만큼 묵직하게 내리찍는 서브를 받아낸다. 공은 어떻게든 네트 쪽으로 올라가고 그때 에치고가 마무리한다. 에치고는 능숙한 밀어넣기로 츠키시마가 반응할 새도 없이 득점에 성공, 벼랑 끝에 몰렸던 스코어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 한명회 . . . . 4회 일치
         {{인용문2|주군께서는 종실의 버금으로서 사직(社稷)을 위하여 난적(亂賊)을 치는 것이니 이는 명분도 바르고 말도 사리에 맞는 말인바, 성공하지 못할 리가 만무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결단해야 할 때 바로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그 앙화(殃禍)를 입는다.' 하였으니, 바라건대 주군께서는 익히 생각해보소서.}}
         [[1453년]] [[계유정난]] 때 자신이 끌어들인 [[홍달손]] 등의 무사로 하여금 [[김종서 (1383년)|김종서]]를 살해하게 했고, 이른바 '[[살생부]]'를 작성해 조정 대신들의 생과 사를 갈라놓기도 했다.<ref name="park115"/> 정난 성공 후 그는 1등 공신에 올랐다. [[계유정난]]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신하들의 성향과 능력,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지지, 설득의 가능성 여부 등을 파악하여 [[살생부]]를 작성했다. 이후 [[살생부]]는 숙청과 제거, 인사의 대명사로 널리 통용되었다.
         [[조선 성종|성종]]이 다시 군신회의를 소집하자 재상들은 모두 추위와 어려움을 이유로 파병이 불가하다고 하였으나 한명회는 그래도 파병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의논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안녕만 도모하기 때문이고, 노신(老臣)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국가의 대체(大體)입니다. 군왕의 적개(敵愾)에도 의당 급히 서둘러야지 늦출 수는 없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라며 굽히지 않았다. 결국 논의가 계속되다가 그의 듯이 관철되어 [[조선 성종|성종]]은 [[의정부]][[좌의정]] [[윤필상]](尹弼商)에게 가서 정벌하라고 명하여 다시 군사를 파병,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성종은 '경의 강한 계책 덕에 거병하여 성공하니, 내가 매우 가상히 여긴다,'며 그를 칭찬하였다.
         * [http://www.cheongjuhan.net/htmls/5/d19-3.htm 충성공 한명회]
  • 홍학표(배우) . . . . 4회 일치
         순한 외모때문에 데뷔 후에 늘 착한 역할만 맡았던 홍학표는 연기자로서 이미지 변신시도를 해보고자 MBC '10대 사건 시리즈'에서 흉악범으로 출연한적도 있지만 '우리들의 천국'이 성공하면서 결국 원래의 이미지로 되돌아갔다. 후에 MBC에서 KBS로 둥지를 옮겨 KBS 일일극 '좋은걸 어떡해'(2000), '사랑은 이런거야'(2002)로 시청자 사랑을 받으며 조연상도 거머쥔다.
         이후 방산업체와 건설업체 등을 경영했던 그는 2006년에 족발, 보쌈, 순대 등 토속적인 먹을거리들을 주메뉴로 하는 음식체인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좀 벌었고, 2008년에 씨푸드 레스토랑을 [[부산]] [[해운대]]에 열어 성공하고 서울에 입성하여 나름 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린다.
         홍학표의 친구 중에 미술학원 원장이 있었는데, 그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홍익대 미대 1학년인 '''9살 연하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홍학표는 아내의 모습에 첫 눈에 반했으나 당시에 최고의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내 때문에 8개월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이 차이도 많은데다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마음에 안들었던 장인, 장모의 반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너무 나이차가 많다 보니 심지어는 장모가 "애 데리고 그러지마"라는 충고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중간에 헤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중간에 홍학표의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졌고 아내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다시 마음이 돌아섰다고 한다. 결국 대학 1학년때 처음 만나 졸업하고나서까지 5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한 믿음과 성실한 모습을 통해 결국 장인, 장모로부터 결혼승낙을 받아내고, 1994년 아내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다고 한다.
  • 황효진(기업인) . . . . 4회 일치
         2013년 들어 [[소닉 스타리그]]가 성공하며 오프라인 경기를 시작했고, 기세를 몰아 '''소닉 프로리그'''까지 개최하기로 했다. --스폰서가 [[스베누]]라는 게 함정-- 스타리그의 성공으로 인해 원래 신발팜 사무실이 입주해있던 서울시 [[강서구(서울)|강서구]]의 한 빌딩에 스타 중계를 위한 스튜디오도 따로 팠다.
         '''성공한 청년 사업가 행세를 했으나 게임 팬들과 소비자 및 동업자들을 엿먹인 악질 사기꾼'''.
         2016년 상반기에[* 자세한 날짜는 [[추가바람]].] [[조선일보]]에서 "성공한 '''강소기업''' 대표"로 황효진을 취재한 적이 있다.[* 본지의 별도 부록으로 나왔으며, 기사 1면을 차지했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이미 스베누에 관련된 진실들이 차츰 드러나면서 한창 좋지 않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던 때였다. 인터뷰 당시에 황효진은 "사업이 어렵고 빚이 조금 있긴 하지만, 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런 거 없다|신발은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인 만큼 금방 성장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말로 비판을 무마하듯 답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시궁창이었고, 이 인터뷰는 그의 마지막 변명이 되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3회 일치
          돈을 부어서 호감을 사려 해본다. 성공적이지 못해도 대상 국가와의 호감도가 살짝 오르며,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 해당 국가의 정치 슬라이더 한칸을 자국과 흡사하게 바꿀 수 있다.
         당연하지만 첩보 활동을 하다가 대상 국가에게 들키면 관계도가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성공 확률이 낮지만 꾸준히 시도하다보면 가끔씩 좋은 효과가 나올거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3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카나우는 필사의 의지로 위기를 넘기고 카레도 성공적으로 만든다.
          * 카나우는 가까스로 탄산을 삼키는데 성공한다.
          * 이번에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위기를 넘기는데 성공한 카나우.
  • 김민희(1982) . . . . 3회 일치
         그리고, 다수의 잡지와 CF 등을 통해 활동하다 1999년 드라마 <[[학교 2]]>의 반항아 신혜원 역을 맡으면서 배우로도 자리잡게 된다. 여러모로 [[배두나]]와 닮은 경로다. [[1998년]] 길거리 캐스팅 → 1년간 [[모델]]로 성공 → [[학교 시리즈]]에 반항아 포지션으로 성공 → 이후 승승장구 테크를 탔다.[* 한 가지 차이라면 [[배두나]]의 이미지가 개성 있는 외모, 이단아 등이었던 것에 비해 김민희는 CF스타로서 어필이 가능한 비주얼적인 면 역시 가지고 있었다. 포지션에 있어 배두나와 좀 더 유사한 쪽은 [[공효진]], 양미라 등.]
         이렇듯 데뷔 직후의 행보는 파죽지세였다. 이미 만 20세가 되기 전 CF 모델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고, 만 20세이던 2002년 드라마 <[[순수의 시대]]>에서 주인공을 맡아 정통 멜로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꽤 이른 나이의 성공이라는 요소, 실력 논란 등이 (주로 또래의) 수많은 [[어그로]]를 끌었으며 동시에 엄청난 [[안티]]를 양산하게 된다.
  • 김보름 . . . . 3회 일치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7년 2월 9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4분03초85를 기록했다. 순위는 6위에 그쳤지만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4분04초62)을 0.77초 앞당겼다. 우승은 3분59초05를 기록한 네덜란드의 이레인 뷔스트(31)가 차지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김보름의 뒷심이 발휘됐다. 첫 200m 구간을 20초45(9위)로 통과한 김보름은 레이스 중후반인 1800m 이후에도 랩타임을 줄곧 32초대로 유지하며 순위를 끌어올렷다. 메달 획득은 하지 못했지만 아시아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70210/82801694/1|제목=매스스타트 간판 김보름, 3000m서 ‘한국신 스퍼트’|날짜=2017-02-10|뉴스=동아닷컴|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가 3분02초95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2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출전해 8분00초97를 기록해 60점을 획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tv.co.kr/MYH20170213003000038/|제목=김보름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금메달 획득|날짜=2017-03-31|뉴스=연합뉴스TV: : 대한민국 뉴스의 시작. 채널 23|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레이스 동안 5위 안팎에서 벗어나지 못해 곡선 코스마다 선두 진입을 노리던 김보름은 마지막 바퀴에서 앞에서 달리던 네덜란드 선수가 일본 선수와 충돌해 넘어진 틈을 타 역전에 성공했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 코너워크가 장점인 김보름의 장점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자칫하면 김보름까지 휩쓸려 넘어질 수 있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인코스 진입을 시도해 선수들을 차례대로 제쳤다. 마지막 직전코스에서 1위를 달리던 일본 다카기 나나까지 따돌리며 태극기를 드높였다. 다키기는 8분00초90의 기록으로 2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3위는 8분01초36을 기록한 미국 헤더 베르그스마가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3070|제목=뉴스포스트|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2017년 2월 20일 오후 일본 오비히로의 오비히로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7초80으로 2위를 기록했다. 김보름의 기록은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카자흐스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호즈미 마사코(일본)가 세웠던 4분7초82보다 0.02초 빨랐다. 하지만 4분05초76을 기록한 다카기 미호(일본)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다카기의 기록은 아시아 기록으로 올라갔다. 3위는 4분10초07를 찍은 일본의 사토 아야노가 차지했다. 이로써 김보름은 2011년 대회에 이어 2연속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게 됐다. 5조의 인코스에 자리한 김보름은 타카바 마키(일본)와 레이스를 펼쳤다. 초반 400m 랩타임을 31초대로 찍으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속도가 떨어졌고 마지막 800m를 남겨두고는 400m 랩타임을 32초 후반대로 찍으면서 아쉽게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한 박도영(24-동두천시청)은 4분17초76로 6위. 박지우는(19-의정부여고)는 4분21초02로 7위를 마크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fnnews.com/news/201702201641040417|제목=[동계AG] 김보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0m 은메달 획득|날짜=2017-02-20|확인날짜=2017-03-31}}</ref> 22일 열린 5000m 경기에서는 김보름이 7분 12초 58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3조에 출전한 김보름은 한 메이(중국)와 레이스를 펼쳤다. 김보름은 레이스 초반 33초 대로 달리다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33초와 34초의 랩타임을 번갈아가며 호흡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3바퀴를 남기고 스퍼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7분12초58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확정 지었다. 이 날 경기에서 김보름을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로 꼽힌 다바카 마키(일본)는 레이스 후반에 접어들면서 크게 처져 결국 메달조차 따지 못했다. 김보름에 이어 은메달은 한 메이, 동메달은 키야마 마이가 차지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했던 박도영(동두천시청)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보름은 20일 열렸던 3000m와 21일에 열렸던 팀추월 경기에서 모두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자신의 세 번째 종목이었던 5000m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다.<ref>{{웹 인용|url=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01052|제목=빙속 김보름, 동계 아시안게임 5000m 금메달|날짜=2017-02-22|확인날짜=2017-03-29}}</ref>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일본 선수들의 작전에 말려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이날 다카기 미호와 사토 아야노가 먼저 치고 나섰고, 뒤에 있던 다카기 나나가 상대 선수들을 견제했다. 김보름은 선두를 따라 잡기위해 기회를 노렸지만 추월하지 못했다. 이후 김보름이 속한 2위그룹과 선두그룹은 12바퀴이후 한 바퀴까지 벌어졌다. 결국 김보름은 8분47초46을 기록 3위에 그쳤고, 다카기 미호는 8분21초81로 금메달, 사토 아야노는 8분21초88로 은메달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pim.com/news/view/20170223000380?category_cd=0116|제목=김보름 “일본 작전에 알면서 당했다”... 매스스타트 1인자, 아쉬운 동메달(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뉴스=뉴스핌|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 김봉수(1953)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업인]]. [[키움증권]] 창립자. 키움닷컴 성공신화의 주인공.
         키움닷컴증권이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영업점이 없어서 저비용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 있다. 물론 이러한 저비용 구조는 수수료를 국내 최저수준으로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온라인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주문의 편리성, 신속한 주문과 체결,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6개월마다 대대적인 시스템 보완을 해온 것도 성공의 원인으로 꼽혔다.
         [[2016년]] [[1월 19일]] [[안철수]] 의원을 주축으로 한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안 의원은 "김 전 부회장이 증권업을 시작했을 땐 이미 증권업계가 강고한 기득권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며 "(김 전 부회장은)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홀로 증권업을 시작해 큰 성공을 이루고 업계를 바꿨다"고 평했다.[* 관련기사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6992789|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6992789]] 참조.]
  • 김승대 . . . . 3회 일치
         초기에는 슈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골은 많지만 거의 모든 골이 가볍게 밀어넣은 골이고 강력한 슈팅으로 넣은 골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데뷔 시즌 한정으로, 그 이후 시즌에는 슈팅 성공률 66.6%를 전반기 넘어서까지 유지했을 정도로 일취월장해서 [[감아차기]], 툭 밀어넣기 등 다양한 슛을 구사했다. 그리고 위의 부정적인 평가는 좀 억울할 법 하기도 한 것이, 플레이 스타일 상 골키퍼와의 1대1 경합이 주로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경우에는 [[손흥민|손세이셔널]]같은 강슛보다 정확하게 차 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옳은 평가가 아니라는 것. -- [[풋볼매니저|선호 플레이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침투' , '패스하듯 정확한 슛팅을 구사'가 달려있다 하더라]]--
         그러나 별 기대하지 않았던 김승대의 포처 원톱화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간 '''이명주와 원투펀치를 이루면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경기당 1골에 가까운 득점이고 슛팅당 70%라는 높은 확률로 득점을 성공시켰다. 이명주와 호흡이 환상적이고 김승대 자신도 [[필리포 인자기|인자기]]가 떠오를 만큼 수비 라인을 타는 솜씨며 골 결정력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는 김승대가 라인을 정말 잘 타는 것도 있지만 포항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공간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탁월하고 그 와중에 이명주, 손준호, 김태수 등이 패스를 뿌려대니 상대 수비 라인을 학살하며 1:1 찬스를 만들어내는 것.
         개막전에서 대구 FC를 상대로 특유의 라인 깨기를 보여주며 득점에 성공했고, 이후 2라운드 전남전에서는 도움을 기록했다. 손준호가 이적하고 전방에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중미 자원이 부족해지자 지난 시즌과 달리 2선보다 밑으로 조금 내려와서 패스 공급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본인 인터뷰에서도 득점보다는 도움에 치중하며 팀 플레이에 맞출 것이라고 역할 변화를 시사했다.
  • 김재박 . . . . 3회 일치
          * [[추신수]]에 대한 검증 드립 또한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상. 도하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추신수를 빼버리면서 '''"추신수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는 드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추신수가 아무리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타국에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에게 덕담이나 위로는 커녕(당시 추신수는 군면제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런 말로 후배 기나 꺾는다며 대차게 까였다. 그 이후 추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거 봐,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했잖아."''' 라며 '''"추신수를 왜 안뽑았냐 하는 말은 야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욕을 사서 먹는게 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마지막에 '추신수 출신 고교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이 유독 유난을 떠는 것 같다' 라고 하며 지역감정 탓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인 말대로 검증된 선수들을 뽑아 치른 아시안게임은 대만전 뿐 아니라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전까지 패배를 당하며 [[도하 참사]]를 야기했다.~~
          * 1998년 8월 26일, [[이승엽]]과 [[타이론 우즈]]가 치열하게 홈런경쟁을 펼칠 때[* 8월 26일 당시에는 이승엽 36홈런, 우즈 29홈런이었다. 이후 우즈는 9월에만 11홈런을 치며 역전하게 된다.] 현대가 삼성에 크게 이기고 있음에도 이승엽 타석에서 [[고의사구]] 지시. 수많은 삼성 관중들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승엽의 홈런을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이승엽을 고의4구로 걸렀고 경기장에는 빈병이 날아들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19대 4로 점수차가 크게 난 상황에서 [[안병원(야구선수)|안병원]]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때 1루주자였던 [[양준혁]]이 도루를 성공하자 보복성으로 고의사구를 던진 것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82800329126008&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8-28&officeId=00032&pageNo=26&printNo=16524&publishType=00010|<스포츠 기자석> 팬들을 죽이는 프로야구]]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09&aid=0002580212|[한국프로야구 난투사](29) 대구 관중들, 현대의 ‘이승엽 고의 볼넷’에 분노 폭발]] 당시 [[허구연]]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9020020912601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9-02&officeId=00020&pageNo=26&printNo=23976&publishType=00010|신문 기고]]를 통해 '우리 프로야구는 이승엽이란 슈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들의 지나친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이외에도 2000년 시즌은 특히 기록 밀어주기로 인해 시끄러웠다. [[임선동]], [[김수경]], [[정민태]]의 등판을 조정해가며 결국은 3명 공동 다승왕을 만들어냈으며, 다승왕 나눠먹기라고 크게 비판받았다. [[박종호]] 타격왕 밀어주려고 한 거야 위에 써져 있고, [[박재홍(야구)|박재홍]]의 타점왕 수성을 위해 10월에 들어서면서 득점 찬스 때마다 대타로 내보내 경쟁자였던 [[타이론 우즈]]와 [[훌리오 프랑코]]를 각각 4, 5점 차로 따돌리며 타점왕 수성에 성공시키는 등의 추태를 보여주었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다시 16강 체제로 회귀한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준영은 [[한동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은퇴), [[신희승]](당시 [[eSTRO]], 영구제명), [[송병구]]([[삼성전자 칸]])와 함께 D조에 편성되었다. 줄곧 16강에 머물렀던 김준영은 3승을 거두며 드디어 조 1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많은 이들의 예상을 무너뜨렸다. 김준영의 8강 이후 토너먼트 대진은 최고의 테란들과 연거푸 부딪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김준영은 8강에서 당시 [[마재윤]](당시 [[CJ 엔투스]], 영구제명)의 몇 안 되는 대항마이자 저그전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던 [[진영수]](당시 [[STX SouL]], 영구제명)를 2:1로 물리쳤고, 4강에서는 데뷔 직후 바로 4강에 진출하면서 최고의 실력과 기세를 뽐내던 [[이영호 (1992년)|이영호]](당시 [[KTF 매직엔스]], 현 [[KT 롤스터]])를 상대로 3:2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선 변형태와 맞붙어, 2:0 상황에서 세 경기를 연이어 따내며 스타리그 도전 다섯 번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진영수와 이영호와 펼쳤던 경기들도 한 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명승부였지만, 결승전에선 2:0으로 밀리고 있다가 3, 4, 5경기를 연이어 승리하면서 전용준 캐스터의 표현대로 "천재도 못하고, 본좌도 못하고, 누구도 못하고, 황제도 못했던" 리버스 스윕을 역상성 종족으로 달성하며 최고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특히 파이썬에서 펼쳐진 5경기는 종료 직전까지 승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던 명경기로, 김준영은 변형태의 바이오닉 병력에 중원을 빼앗기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연이은 멀티 견제를 극적으로 막아내며 신들린 스콜지의 활용으로 사이언스 베슬을 지속적으로 줄여 주며 항전했고, 종국에는 가까스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해 내는 데에 성공하며 생애 최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경기 종료 후 김준영은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려 승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변형태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스타리그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김준영과 변형태의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은 그 스코어로나 경기 내용으로나 그 안에 얽힌 드라마로나 역대 최고의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김준영은 데뷔 이래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예선 13번,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본선에서 5번 도전했으나 결국에는 [[MBC게임 스타리그|MSL]] 진출에 성공하지 못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김희철(1983) . . . . 3회 일치
          * 데뷔 일화가 제법 빵 터진다. [[SM엔터테인먼트|SM]] 토요 오디션 시간에 지각을 해서[*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 처음 온 날이라서 헤맸다고 한다.] 관계자가 '늦었어요 안받아요' 하길래 '죄송합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담당자가 얼굴을 보곤 "....어라?" 하시더니 기회를 한번 주겠다고 하더니 붙었다고 한다.[* 오디션 영상도 주옥같은데, 막춤 추고 애국가 불렀는데 망가지지 않는 외모덕에 합격했다.] 그리고 계약서를 쓸 때 부모님께서 "널 받아주시다니 좋으신 분들이구나." 하면서 30년 계약을 권유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얼굴이 아닌 노래, 춤 실력이 없었다면 데뷔하고 인기를 얻는 것이 불가능했을 터이니 그의 성공이 모두 그의 외모 덕이라고 속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현재는 많이 잊혀진 사실이지만 [[각트]]의 팬으로 유명하다. 데뷔 전 2004년에 SM 연습생들의 쇼케이스 때에는 [[말리스 미제르]]의 Au Revoir를 선보이는 등, 각트와 말리스 미제르의 곡들을 종종 선보이기도 했다. 2007년 각트의 MKMF 특별공연 당시에는 소녀팬(...) 모드 그 자체였을 정도.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각트의 국내 활동이 뜸해지면서 서로간의 접점이 없어지다, 2017년 1월 일본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Au Revoir를 다시 열창해 일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각트가 김희철을 팔로우 하기도 하는 등, 김희철은 성덕이 되는데 성공했다.
          * 소집해제 이후 [[썰전]]의 당시 2부 코너인 '예능심판자'에 10개월간 출연한 바 있다. 다만 라디오 스타 진행 당시와는 달리 알지도 못하면서 말한다고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추석예능을 다루면서 [[아육대]]에 대해서 출연진 측에서 출연을 강요하고 출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발언했다. 아육대 측에선 김희철의 발언에 개의치 않는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일부에서는 속 시원한 발언이라고 평했지만 한편에서는 김희철 정도면 모를까 신인 아이돌이나 중소 소속사 아이돌의 앞길을 막으려 드느냐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송포유]]에 대해서도 평하면서 정규편성을 반대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으나 "저 피디 누나 착한데..."라는 되도 않는 드립은 좀 까였다. 그리고 자신은 [[SM엔터테인먼트|SM]]이 제작하는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는다며 "[[SM엔터테인먼트|SM]]은 가수든 연기자든 우리 애가 존나 킹왕짱이다란 경향이 심해서 너무 폐쇄적인 거 같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The Boys]]>가 [[소녀시대]]니까 성공할 수 있었던 거라고 발언하며 테디 라일리를 까거나, 슈퍼주니어의 곡이 나오자 '우리 이제 어떡하지?'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http://cafe.daum.net/dotax/Elgq/627900?q=%B1%E8%C8%F1%C3%B6|게임 중독 법]]을 디스해 게이머들에게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3회 일치
          * 상식적인 접근법이긴 하지만 너무 신중한 움직임이다. [[패트껌]]은 "[[올마이트]]의 사이드킥 칙곤 답답하다"고 힐난한다. 다혈질인 그는 이미 소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너무도 지지부진한 방법이라고 성토한다. 나이트아이는 거기에 "우린 올마이트가 아니다"고 받아치며 그러므로 분석과 예측을 거듭해 성공률을 10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항변한다.
          그는 올마이트의 죽음을 봤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것이다.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만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다시 자신의 예지는 그 자체로 쓰기 보단 작전의 성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린 후,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거라고 마무리한다. 이정도면 나름대로 대답이 됐겠지만, 레게풍 히어로는 납득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도 정보이며 그걸 피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나이트아이의 예지는 점이 아니다. 100% 실현되는 예지. 계획으로 회피할 수 있는게 아니다. 레게풍 히어로는 그럼에도 "얼마든지 회피해줄 테니 날 봐봐라"고 허세를 부린다. 나이트아이는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숙인다.
  • 마철준 . . . . 3회 일치
         2003년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에 입단하였지만 당시 김포 할렐루야는 2003년 K2리그 전기 리그에만 참가하고, 후기 리그는 불참하는 등 안정적인 팀이 아니었던터라 마철준은 6개월만에 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모색하다 부천 SK의 이동근 선수의 제의로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되었고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정식으로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2004 시즌을 앞두고 2004 K리그 자유선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단 첫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풀백]]을 가리지않고 주전 선수들의 백업용으로 활동하다 투쟁심과 꾸준한 경기 운영 능력 등을 [[정해성]] 감독에게 높이 평가받아 후에 부천 SK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붙박이 사이드 [[풀백]]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마철준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과 기복 없는 플레이로 오랜 시간 [[제주 유나이티드]]의 측면을 책임지다 2012년 32살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신인 및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를 탈단 후 방황하다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이때 마철준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이는 당시 부천 SK 소속의 이동근 선수였다. 이동근은 포항제철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철준과 한솥밥을 먹으며 [[경희대학교]]까지 나란히 진학했던 동기였기에, 마철준에게 자신의 소속 팀인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고 이에 마철준은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3회 일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맥스는 범죄현장에서 도망치려는 청소부들을 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몇몇 청소부들이 카우프만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는데 성공한다. 맥스가 출구를 도망치기 위해 질주하는 차에 치일 뻔한 그 때, 맥스의 동료 형사인 윈터슨 형사가 그를 구해준다.
         둘은 1층으로 내려가는데는 성공했지만, 아파트에서 나가는 문은 잠겨있었다. 먼저 와있던 바이올렛이라는 여자는 3층에 난 불을 끌수만 있다면 창문을 통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맥스는 노숙자, 바이올렛과 함께 지하실로 내려가 가스 밸브를 잠근다.
         둘은 비니의 집 발코니에서 상자더미로 뛰어내린 후, 차고로 간다. 비니는 자신의 밴 짐칸에 몸을 우겨넣고 페인에게 운전할 것을 지시한다. 청소부들이 밴의 출발을 막기 위해 총을 쏴댔지만 둘은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 테마곡과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3회 일치
         로스코 거리 역에서 내린 맥스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진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곳에는 교통경찰 하나가 죽어 널부러져 있었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맥스는 권총을 뽑아 든 후 수색을 계속한다. 역 안에는 정체모를 일당들이 들이닥쳐 교통경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맥스는 교통경찰관 한명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교통경찰관은 자신을 지하철 통제실로 데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후 맥스는 은행 금고를 뒤져 강도들이 쓰던 기폭장치를 찾아낸다. 그 와중에 이들이 에이저 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의 채권을 노리고 은행강도를 벌인 것이라는 것도 알아낸다. 에이저 코퍼레이션은 최근에 성공한 기업으로, 에이저에 대해 논하지 않는 방송과 잡지는 없었을 정도였다.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정문은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지하실로 통하는 뒷문을 통해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마피아들을 해치우며 루피노의 사무실로 올라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앙 홀에 있는 공중전화서 [[알프레드 우든]]이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 우든은 맥스에게 경찰들이 오고 있고, 맥스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린다. 그로부터 몇분 뒤, [[짐 브라부라]] 반장이 이끄는 경찰들이 루피노의 본거지를 포위하고 SWAT을 진입시킨다. 맥스는 SWAT과 벽 하나를 놓고 대치하는 상황까지 가지만 결국 경찰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한다.
  • 몽키 D. 루피 . . . . 3회 일치
         이것은 딱히 도플라밍고처럼 해적이 일개 국가를 소유한다거나 산하에 두는 것은 아니기에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무력을 행사하여 적개심을 사지 않아도 루피 본인 의향만으로 여러 국가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으로, 국가마다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워터세븐 시장이 손수 해적선을 조선해준 일이 있고[* 얘가 해적왕이 되기라도 하는 '''순간 불법행위로써 인정'''된다. 그렇게 되기 전이라 해도 루피가 에니에스 로비를 개작살내고 온 직후이니 세계정부에게는 미움받고도 남을 일이다. [[톰(원피스)|톰]]역시도 그저 해적왕의 '''배를 건조했다는 죄로 사형'''당한 상황을 보면 아이스버그도 스승과 똑같이 끝장날 수 있다. 다만 나서서 도와줄 이가 없었던 톰과는 달리 아이스버그는 그를 열렬하게 존경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있다. 물론 밀짚모자 일행들도 아이스 버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만큼 이들이 아이스버그의 사형을 순순히 묵인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톰의 경우에는 스팬담의 온갖 방해공작이 있었다. 더군다나 워터세븐 마무리에서 아이스버그가 설계하고 있던 '워터세븐 전체를 바다에 띄우는 일'이 성공한다면 그의 위상이 과거의 톰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밀짚모자 일당의 새 해적선 [[사우전드 써니 호]]에 대한 건조는 밀짚모자 일당과 소수의 관계자만이 아는 일인 만큼 죄를 묻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톰의 경우, 본디 조선공은 해군이건 해적이건 일반인이건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한 배를 건조하는 행위 자체는 죄를 묻지 않으나 톰의 경우는 그가 건조한 배가 다름아닌 '''해적왕 골 D. 로저의 기함, 오로 잭슨 호''' 였던만큼, 해적왕과 관계된 이들을 전부 숙청하려는 해군 본부의 표적이 된 것이다. 또한 스팬담의 음모로 [프랑키|커티 프람]이 만들었던 전투함들이 사법선을 습격했을 당시, 오로 잭슨 호의 건조 건은 바다열차 퍼핑톰의 제작으로 사면받는다 쳐도 사법선 습격 건이 그대로 죄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바다열차 건으로 사면받고 [아이스버그|자신의] [프랑키|제자]들을 위해 오로 잭슨 호 건조에 대한 죄를 받아들여 처형된 것이었다.][* 다만 문맥상 중요한 것은 일개 도시의 시장, 세계관 상으로는 국왕하고도 맞먹을 정도의 권력자가 세계정부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르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 주었을 정도로 밀짚모자 일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처벌 받는다 안 받는다 여부가 중요한 점은 아닌 것(…)~~병림픽~~]어인섬의 경우는 언젠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국왕이 못을 박아두는 장면이 나왔고[* 밀짚모자 일당에게 감사인사란 감사인사는 죄다 퍼부은 뒤였기 때문에 단순히 엄청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출은 아니다. 어인섬에는 루피에게 붕괴당한다는 플래그도 서 있기 때문에 차후 재등장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알라바스타 왕녀는 비공식적이나마 밀짚모자 일당에 소속되어 있는 등 그 정도가 '''여차하면 특정 세력에게 적대 성향을 가지게 할 여지도 충분히 있기에''' 이미 심상치 않다고 말할 수준을 몇 단계 뛰어넘었다.
          * [[보아 썬더소니아]] & [[보아 마리골드]] - 기어 2를 걸고 두 고르곤 자매가 견문색으로 눈치채기도 전에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 추가로 썬더소니아의 등(천룡인 노예 표식이 있다)을 가려 행콕의 마음을 열기도 했다.
          * [[와이퍼(원피스)|와이퍼]] - 전쟁 중 마주쳐서 바주카-고무고무 풍선의 패턴을 반복하다가 제대로 싸운다. 서로에게 바주카를 한 발씩 맞추는 것은 성공하나 이무기가 잡아먹어 승부가 나지 않게 되었다.
  • 문희(배우) . . . . 3회 일치
         [[1965년]] 서라벌예대 재학시절 친구를 따라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카메라 테스트를 참관한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영화 흑맥으로 데뷔했다. 유명 여배우 [[엄앵란]]이 흑맥의 촬영 현장에서 문희를 보았다고 하는데, 같이 촬영하던 남자배우들이 문희의 눈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이후 1966년 [[초우]], 1967년 [[원점]]을 찍으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그렇지만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데뷔 초부터 화려하게 성공한 거랑 비교하면 문희의 성장은 더딘 편이었다.[* [[윤정희]]는 [[청춘극장]]으로, [[남정임]]은 [[유정]]으로 데뷔작부터 대박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들은 데뷔하자마자 승승장구했지만, 문희는 이들에 비해 데뷔작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68년 여름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이들에게도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흥행작을 내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당시 서울 시내 한개 영화관에서 37만 관객을 동원하여 이전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윤정희도 남정임도 못했던 기록 갱신에 성공한다. 비련의 여주인공역을 맡았는데, 이러한 비련의 여성 이미지는 문희의 상징이 되었다. 이 때 문희에게 붙은 수식어가 '''눈물의 여왕'''. 미워도 다시 한번의 성공으로 남정임과 윤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 여배우가 되었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3회 일치
         이후 루트비히가 브레시아에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어 해당문제는 끝이 났으며, 이후 제국은 서진과 동진을 꾸준히 시도해서 아나톨리아에 진출한 바울파를 쳐부수고 그들의 지도자인 크리소케이루스를 살해했으며, 유프라테스 연안을 거의다 수복하고 달마티아를 수복했으며, 남이탈리아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비록 크레타 수복은 실패하고 시라쿠사가 함락되면서 시칠리아섬을 완전히 사라센에게 내주었지만, 이로써 서방과 교황이 제국의 우월을 거의 완전히 인정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는 비록 달마티아를 제외한 크로아티아 지방과 판노니아(헝가리), 모라비아에서 교황의 우위를 인정해야 했으나,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달마티아에서 정교회를 퍼뜨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늘어난 교세는 더많은 신학적 문제와 논쟁을 야기했고, 이에 그는 포티우스를 다시 불러들여 이그나티우스를 보좌하도록 한다. 이후 이그나티우스가 노환으로 죽자 다시 포티우스를 복직시켰으며, 그가 법전의 초안을 짜는것을 후원한다.
  • 박경석(1933) . . . . 3회 일치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 박상원(배우) . . . . 3회 일치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첫사랑(KBS)|첫사랑]] 등 굵직한 작품을 맡으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를 내세워 성공 가도를 달렸으며 당시 가장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영화 쪽은 1991년 영화 <서울 에비타>로 데뷔했으나 이렇다 할 성공작은 없으며, 1997년 이후 드라마 출연에만 전념하고 있다.
          * 1999년 사랑과 성공 (MBC)
  • 박석민 . . . . 3회 일치
         2008년 시즌 초반 [[선동열]] 감독이 구상했던 [[양준혁|양]][[심정수|심]][[제이콥 크루즈|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이적 후 첫 시즌에서 3할-30홈런-100타점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또한 플레이오프에서도 결정적인 홈런 두 방으로 팀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13타수 무안타'''의 눈이 썩는 타격을 보여주며 팀의 '''[[2016년 한국시리즈|4대떡]]''' 스윕패에 큰 기여를 했다.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의 손을 잡고 난 날 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대화 감독은 박석민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단다. 그런데 뛰는 한대화 위에 박석민이 있다고, 어느 날은 박석민이 안보여서 안심하고 대구구장 원정 감독실로 쓰는 임원회의실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박석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박석민은 얼른 한대화 감독의 손을 잡고 도망갔고, 그 날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 때가 2012년 6월 13일. 이 날 박석민은 1회 좌전안타와 2번의 사구를 기록, 4타수에서 3번 출루했다. 이 징크스 일화가 실린 기사가 난 6월 14일에도 손을 잡는데 성공했는지 그날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 성세현 . . . . 3회 일치
         ||<:><#87CEEB>'''{{{#white 학력}}}'''||<:><#ffffff> 의성공업고등학교[br]경북과학대학교 사회체육과[br]안동대학교 체육학과 ||
         고등학교 때 컬링을 시작했다. [[의성군]]에 [[경북컬링훈련원]]이 생겼을 당시 의성공고에 부임했던 김양식 교사는 의욕이 없는 학생들에게 자신들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기 위해 컬링 동아리를 만들었다.[[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47&aid=0001951039|#]]
         의성공고 컬링부의 스킵이었던 성세현도 원래는 고교 졸업 후 군대나 가려고 했었다고 말할 정도로 장래에 대한 생각이 없었지만 컬링을 하게 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경북팀 소속으로 출전해 [[2009 하얼빈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으로 선발되면서 이후 [[경북체육회 컬링팀]]에 입단해 전문 컬링선수가 됐다.
  • 성훈(배우) . . . . 3회 일치
         [[아이돌 마스터]] 역사상 최초의 실사 프로듀서 역으로서 출연하게 되어서 국내,외 프로듀서들에게 눈길을 끌게 되었다. 프로듀서의 이름은 '''강신혁'''이며,[* 공식적으로 프로듀서의 이름이 나온 케이스다.] 본래는 당대 최고의 아이돌들을 여럿 키워낸 가요계의 ‘미다스의 손‘이지만 어느 날 부터 시작된 루머에 돌연 잠적을 택했으나 어느 날, 데뷔를 위해 구성된 ‘리얼걸프로젝트’를 만나게 되고, 다시 한 번 프로듀싱에 나서며 아이돌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캐릭터로 나온다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08395|관련기사]] --안경 안쓴게 아깝다-- --그래도 잘생겼잖아--
         || [[MBC]] || 《[[나 혼자 산다]]》 || 무지개 라이브[* 212회 2017년07월07일방송. 신한류스타의 이중생활, 똥밍아웃, 시리얼먹방, [[건어물녀|건어물남]], 백수삼촌 등극, 인어왕자, [[올드보이(2003)|올드보이]]->만찢남, 조각몸매 등.. 성훈의 재발견.~~다이어트 위해 수영장에서 50m를 잠영으로(엄청난 폐활량)~~시청률 두자리수 ~~2부 수도권기준10.1%~~달성... 214회 여름 나래 학교1편~~정모~~ 2017년07월21일방송. 남성미~~어깨 깡패, 비율 깡패~~ 풀장착하고 웨이크 보드를 탔다.~~멋짐 풀풀~~ 다른 출연자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이시언]]웨이크 보드 타기 성공..~~을 했고 장비 셋팅도 도와줬다.~~웨이크 보드 강사를 해도 될듯.~~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3%...215회 여름 나래 학교2편 2017년07월28일방송. 1시간씩 전복을 꼼꼼히 씻는가 하면 산낙지를 ~~성난~~팔근육으로 다져 낙지 탕탕이를 만들었다. 식사후 [[박나래]]팀과 [[한혜진(모델)|한혜진]]팀으로 나누어 퀴즈를 푸는데 성훈이 '나 학교 안 다녔어'라고해 미취학 성훈이 됐다.~~헉~~ 벌칙으로 폐교 화장실에서 인증샷을 찍는데 그와중에 얼짱각도 맞춰 꽃미모 셀카를 찍고 나와 등뒤에서 느껴진 인기척때문에 주저앉아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5얼 등극. 헉~~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0.2%... 217회 2017년08월11일방송. 실내서핑장을 찾은 성훈은 두번째 시도만에 중심잡는데 성공..이후 만화방에가서 짜장라면, 김치볶음밥, 라면, 스*마요볶음밥, 핫도그, 미숫가루를 먹다가 관장님께 들켜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9% 전국기준11.0%] ||
  • 식극의 소마/187화 . . . . 3회 일치
          * 도지마 긴은 그의 "도박"이 성공했을지 기대하고 베르타와 실라는 악취가 나지 않을까 망설이며 쉽게 시식하지 못한다.
          * 이제 시식에 들어가는데 도지마는 과연 그의 도박이 성공했을지 흥미로워한다.
          * 소마는 등심이나 뱃살, 허벅지살 등 다양한 부위를 혼합해 맛에 그라데이션을 주는데 성공했다.
  • 연정(우주소녀) . . . . 3회 일치
         인터넷상에서의 별명은 닮은꼴로 자주 언급되는 연기자 라미란. 부모님도 라미란을 닮은 걸 인정했고, 이젠 이름만 들어도 몸이 반응한다고 한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194322&page=1230&exception_mode=recommend|어린 시절 사진]]. 그래서 모녀관계 의혹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TV에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 본인도 이 별명에 대해 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장의 야민정음을 합친 '라머장', '머장님'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배성재의 텐에서 이 별명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쪽은 야민정음인지라 방송에서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제작진이 이를 사용해 버렸다.[* [[http://oi63.tinypic.com/mljq83.jpg|#]]] 그러나, '''다이어트를 한 후에는 라미란과 닮지 않았다'''(???) 다이어트 성공후 새로운 리즈를 갱신했다. 라미란 외에는 같은 팀 멤버인 수빈과도 닮았는데, 수빈이 <비밀이야> 활동부터 스타일을 단발로 바꾼 게 둘의 캐릭터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있다.
         '''개별 활동의 가장 큰 수혜자.'''[* 세정과 미나, 채연은 아이오아이의 첫 완전체 활동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원 소속사들의 무리한 욕심으로 개별활동을 시작했기에 I.O.I 팬들의 불안감과 배신감이 상당히 컸고, 그렇게 좋지 않은 여론을 뒤로 하고 무리하게 개별 활동을 시작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못했기에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반면 연정은 유닛 활동이 성과를 거두면서 팬들이 어느 정도는 개별 활동을 너그럽게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고, 무엇보다 스타쉽에서 작정하고 연정을 메인으로 팍팍 밀어주면서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완전체 활동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개별활동 및 여타 방송 출연 등으로 아쉬움을 달랜 경우. 특히 스타쉽에서 연정에게 많은 지원과 푸쉬를 해주었고, 같은 시기 I.O.I 유닛 활동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면서 팬들이 연정의 개별 활동을 어느 정도는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도 개별활동이 성공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본인의 장기인 가창력을 수록곡 및 방송 활동을 통해 선보임으로서 기존의 호불호가 갈리던 시선들을 좋은 쪽으로 잘 바꿔놓았다. 그 후 우주소녀에 완전히 합류한 이후에도 I.O.I 활동을 바탕으로 높은 인지도와 뛰어난 가창력을 바탕으로 우주소녀에서 가장 주목받는 멤버 중 한 명이다.[* 우주소녀 합류후를 보면 연정을 데뷔조에서 탈락시켰던 스타쉽이 맞나 할정도로 연정에게 매우 푸쉬를 해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우주소녀 합류 후 첫 엘범 타이틀곡인 '비밀이야' 멤버별 파트를 보면 기존 보컬라인인 다영, 설아, 수빈은 물론 기존 메인보컬인 다원의 파트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파트를 맡게 되었으며, 연정의 합류 후 우주소녀의 보컬라인이 더욱더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각종 예능에서도 성소, 다영 다음으로 가장 분량을 많이 챙기는 멤버 중 한명이다.]
  • 우현(배우) . . . . 3회 일치
         아버지가 [[의사]]면서 병원 원장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자랐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용돈도 현금 300만 원을 가지고 있지만 다 쓰지를 못 했다. 어릴 때부터 쭉 소고기나 장어 등 당시엔 쉽게 먹기 힘든 음식들을 자주 먹었고, 막상 감자탕이나 순대, 삼겹살 같은 음식은 대학에 들어와서 친구나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특히 삼겹살을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있다니"라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식습관 때문인지 [[편식]]이 굉장히 심하다. [[잘 먹는 소녀들]]에 의하면 [[닭발]], [[족발]], [[곱창]]을 못 먹는다고 한다. 후에 [[잘 먹겠습니다]]에서 자신이 먹지 못한 곱창 먹기를 시도하였고, 성공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편식]] 습관은 아들 준서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유자식 상팔자>에서 보면 해산물이나 가지 등을 못 먹는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 먹기는 했다.]
         아내는 배우 [[조련(배우)|조련]]으로, 남편과 다르게 상당한 미인이다.[* 아들 준서도 ~~다행히도~~ 엄마를 닮아 상당히 훈남이다.] 또한 배우로서는 아내가 훨씬 선배다. 첫 만남은 연극 제작자와[* 사실은 당시 우현도 배우가 아닐 뿐 연극 제작자로 참여했었다.] 배우의 관계로 만났고, 우현이 연극 연기를 시작한 뒤 본격 대쉬,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내상]]이 그런 얘기를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현이 아내를 잠시 포기하다가 오히려 아내 쪽에서 마음을 바꾸게 되어 사귀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되자 우현의 진심이 통해 아내가 마음을 열게 된 것을 안내상 역시 진심으로 기뻐하며 관계가 깊어질 수 있게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위 내용은 안내상 중심에서의 이야기며 부부 중심의 러브 스토리는 라디오스타나 유자식 상팔자에서 나오니 알아서 찾으시길.]
  • 유병수 . . . . 3회 일치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K리그 2010|2010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7라운드까지 무득점으로 일관하다가 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네 골을 터뜨린 것부터<ref>{{웹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13432 |제목=유병수 4골 '펄펄' 6년 만에 진기록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인일보}}</ref> 시작해, 강원전까지 네 경기에서 아홉 골을 몰아쳤다. 비슷한 시기에 [[김영후]] 또한 득점포를 터뜨려 언론은 이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재조명했다.<ref>{{웹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080011 |제목=유병수-김영후는 전생에 부부?...득점 사이클 '비슷'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OSEN}}</ref><ref>{{웹 인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508870 |제목='찰떡궁합(?)' 김영후-유병수, 올해도 경쟁은 계속된다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아이뉴스24}}</ref> 이후 유병수는 대전전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리그 20골을 기록, K리그 최연소 한국인 득점왕과 최연소 20골을 달성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22골을 기록하며 17골을 기록한 [[호세 오르티고사]]를 5골로 따돌리고 [[K리그 2010|2010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1071805472239&ext=na |제목=유병수, 올시즌 정규리그 득점왕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1-07}}</ref> 2011년 2월 22일 유병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2013년 12월까지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2230096 |제목=유병수, 인천과 2013년까지 계약 연장 |출판사=OSEN |날짜=2011-02-23}}</ref>
  • 유지인(1956) . . . . 3회 일치
         [[1956년]]생. [[경기도]] [[가평군]]에서 출생한 유지인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데뷔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이었다. 1973년 TBC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지만 정식 데뷔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시절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하게된다. 인기 작가였던 강신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유지인이라는 예명도 유치원 보모였던 주인공 ‘지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남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 윤종신 . . . . 3회 일치
         특히 5집의 경우 [[1996년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스타급 가수들의 컴백 경쟁 속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은 앨범으로 가요톱텐에서는 최고 4위,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3주 간 1위 후보에 올랐다. 입대하기 직전에 부랴부랴 냈던 6집(1996. 11)까지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확실히 이 시기는 인기로 보나 히트곡의 중량감으로 보나 명실공히 [[대한민국]] 발라드판에서 거의 [[신승훈]]의 바로 아랫급 정도의 지위는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군 복무 중 [[하림(가수)|하림]]이라는 인물을 찾아 내기도 했으나, 정작 [[전역]]한 후에는 음악 시장이 완전히 재편되어 있었다. 1999년 1월 17일에 발표한 복귀 앨범인 7집 '[[後半|후반]]'(TITLE : [[배웅(윤종신)|배웅]])은 평가가 괜찮았으나 이전에 거두었던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만만해하며 거액을 투자하여 만들었는데, 흥행에 실패했다. 베스트앨범 격인 6집이 29만 장 팔렸는데 7집이 12만 장 팔렸으니 판매량이 거의 '''3분의 1'''로 준 것.
         윤종신 본인도 거듭되는 성공에 취해 있다가 한 번 말아먹자 충격이 컸다고 한다. 게다가 판권 문제까지 걸렸다. 하지만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8집]], [[그늘|9집]]을 1년 주기로 계속 낸 것으로 보아 충격은 곧 가신 듯하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3회 일치
         2013년 3월 13일 [[AFC 챔피언스리그 2013]]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데뷔하였고, 후반 22분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비록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였으나, 당시 팀은 어린 선수 위주로 출전 명단이 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주목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데뷔골’ 이광훈, 측면 공격수 경쟁 점화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61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3-14}} }}</ref>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년 만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이란과의 8강전에서는 결승골을 성공시켜 한국의 4:1 승리에 기여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FC U-19챔피언십)한국, 이란 꺾고 4강 진출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4822065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12-11-12}} }}</ref>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는 후반 5분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왔으나 실축해 한국의 4강 진출이 실패되었다 .<ref>{{뉴스 인용 |제목=(U-20 월드컵) 빛나는 용병술, 이광훈 천금 동점골...현재 2-2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2001848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3-07-08}} }}</ref>
  • 이보림 . . . . 3회 일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3~24회|음원 발매 미션]]에서는 노랑팀에서 'Cherry On Top'을 공연하게 되었다. [[의진(소나무)|의진]]과는 3번째 같은 팀인데 의진은 개인 인터뷰에서 언니가 하면 하더라며, 이번에도 함께하면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데리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포인트 안무를 배울 때는 이보림이 계속해서 김화영에게 지적을 받았고, 의진에게 그만 의존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이보림은 개인 인터뷰에서 요즘 화영 선생님 그림자만 봐도 떨린다며, 그래서 화영 선생님한테 칭찬 들을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점검에서는 김화영이 이보림에게 다리를 들어 쭉 뻗는 동작을 추가하자고 했고, 본 경연에서도 이를 멋지게 성공시켰다. 현장 투표에서는 팀 내 3위를 기록했지만, 팀은 아쉽게 2위에 그쳤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7~28회|파이널]]의 [[킬링파트]]를 위한 안무 오디션 시작 전에는 항상 지적만 해왔던 김화영이 이보림에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솔직한 말로 너무 잘해 줬다'고 이야기했다. 안무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김화영이 '이제 [[의진(소나무)|의진]]이 없어도 돼?'라고 물었고 이보림은 '서서히 독립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의진도 '좋아, 얼른 가!'라고 이야기했다. 제작진이 예고 없이 보여준 가족들의 영상에서는 따로 이보림의 가족 영상은 방송에 안 나왔지만, 합숙소를 찾아와 준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은 나왔다. 마지막을 앞두고 참가자들에게 남기는 말에서는 '같이 하는 협동심을 너무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본 경연에서는 'You&I'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는데 맡은 파트가 적어서 무대에서 모습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남녀 합동곡인 'PRESENT'에서는 엔딩 파트를 맡았다. 최종 유닛 발표식에서는 17위를 기록하면서 데뷔조 합류에는 실패했지만, [[연습생]] 경력도 없고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비 가수 출신 참가자가 그 많은 전현직 걸그룹 멤버 및 연습생 및 솔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온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 이승엽 . . . . 3회 일치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성공시대]] - 홈런왕 이승엽 (1999년 10월 23일)
  • 이윤열 . . . . 3회 일치
         Sony Ericsson STARCRAFT 2 OPEN Season 2에서 4강진출에 성공하고, Sony Ericsson STARCRAFT 2 OPEN Season 3에서 본선진출에 성공하면서 32강진출에 성공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Sony Ericsson GSL Jan.에서 8강, 2세대 인텔 코어 GSL Mar. 8강, LG 시네마 3D GSL May. 4강, LG 시네마 3D 슈퍼 토너먼트 16강, 펩시 GSL July. 16강, 펩시 GSL Aug. 8강, Sony Ericsson GSL Oct. 32강, Sony Ericsson GSL Nov. 32강, HOT6 GSL Season 1 32강까지 9연속으로 임재덕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장기간 코드S 진출 기록을 세웠다.
  • 전효성 . . . . 3회 일치
         첫 솔로 활동 성적은 공중파 음방 성적이 다소 아쉬울 수 있겠지만 각종 음원차트에서 좋은 순위를 유지하였고 앨범도 만장 이상 판매하면서 첫 솔로 활동 치고는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듯 하다. 이번 솔로 앨범으로 행사 등에도 많이 초청되었는데, 여솔로 혼자서 행사를 도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이번 솔로 앨범은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11월 19일 초청된 <상명대 지하방송제>에서는 팬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인해 앵콜 무대를 하기도 했다. "원래 저 이러면 혼나는데..."라고 하면서도 앵콜 무대를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워서 팬들은 이 무대가 가장 신났다는 평을 할 정도.]
         2015년 3월 17일자 기사에 의하면 4월쯤에 두번째 솔로앨범 발매 예정이라고 한다. 본인이 직접 가사에 참여도 하는 등 이전 앨범보다 참여도가 좀 더 높아질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솔로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기에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3180100204420013330&servicedate=20150317|기사]]
         첫번째 활동이 생각 이상으로 성공하였고 그로 인해 기대를 불러모았으며 랩과 가사에도 참여하며 야심찬 포부를 담은 활동이었지만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음악적으로의 분야를 더 넓히는 데는 실패한 활동으로 남고 말았다.
  • 조진호 (축구인) . . . . 3회 일치
         [[10월 10일]] 당일 [[스위스]] 베른 주 빌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시작 전 선수들이 묵념의 시간을 가졌으며, 10월 14일부터 15일까지 모든 K리그 경기에서도 추모 묵념을 진행했으며, [[10월 14일]] [[수원 FC]]와 [[부산 아이파크]]의 경기에서는 부산 측 원정 서포터석에 조진호 감독의 사진을 걸었며, 이 날 [[이정협 (축구 선수)|이정협]]은 패널티킥으로 골을 성공시킨 뒤 조진호 감독의 사진 앞에 달려가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10월 15일]] [[대전 시티즌]]과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서 대전 홈팬들이 조진호 감독이 대전을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시켰던 2014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경기 시작 후 14분 동안 응원을 하지 않으며 조진호 감독을 추모했다.
         조진호는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무릎을 꿇고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등의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격하게 기쁨을 표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에는 친정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평소와는 다르게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자제하면서 친정팀인 대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도 하였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3회 일치
          참호에 정적이 감돈다. 마가트 대장은 "너흰 훈련시키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아냐"며 각하한다. 그래도 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처럼 유능하고 예쁜 전사는 두 번 다시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이 성공하면 800명의 전사대를 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마가트는 콜트에게 한 것처럼 "실패하면?"이라고 반문해본다. 가비는 콜트와 달리 거기에 대한 답도 가지고 있었다.
          파르코는 말리기엔 너무 늦었다는걸 깨닫는다. 허락을 받은 가비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녀는 작전 성공을 위해 잠시 완장을 벗는걸 허가해달라고 말한다. 마가트가 거부할리 없다. 그녀는 속옷 바람으로 수류탄 다발만 챙겨서 참호를 뛰쳐나간다. 파르코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득의양양한 얼굴로 돌아볼 뿐이다. 한순간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가비는 작전성공의 쾌감 때문인지 폭소를 터뜨리며 마구 달린다. 하지만 적의 기관총 진지는 완전히 무너진게 아니었다. 살아남은 소총수가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한다. 미처 참호에 다다르지 못한 가비는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참호 연장에 실패한, 유탄이 떨어져 깊게 패인 자리를 향해 무작정 달리지만 총알을 피할 것 같지 않다. 지켜보고 있던 파르코가 뛰쳐나간다. 콜트가 말려볼 틈도 없었다. 그는 가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3회 일치
          * 명령은 명령이다. 마가트는 시조 거인 탈환 작전의 상세 개요를 전달한다. 실제 투입되는 인원은 턱, 갑옷, 여성형, 초대형의 네 명. 짐승과 차력은 본토방위를 위해 참전하지 않는다. 마가트가 설명 막바지에 라이너, 애니, 베르톨트, 마르셀을 거명하며 작전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유일하게 한 사람, 포르코만 소외된다. 그는 아무 거인도 받지 못한 것이다.
          >분명 아빠도 네가 성공하길 기도하고 계실테니까.
          * "낙원"에 도착하자 네 사람만 남겨졌다. 마가트는 "낙원이 경계선"에 이들을 내려주고 일몰 후 북쪽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이후는 작전대로. 마레 군은 보름날 정박하러 올 테니 그 일정에 맞춰 작전을 진행하란 지시를 남겼다. 이걸 제정신이 아닌 결정이라 했던 그가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는진 모르겠으나, 아무튼 성공을 빌어주긴 했다.
  • 진격의 거인/96화 . . . . 3회 일치
          * 성공적으로 잠입하고 벽 안 생활을 시작한 라이너 일행은 결속을 다지고 반드시 임무를 완수호 돌아갈 것을 함께 다짐한다.
          * 애니는 임시로 마련된 난민 캠프에서 눈을 떴다. 어느 건물의 로비부분인 것 같았다. 오와 열이 맞춰져 있는 침구 위였다. 윌 마리아는 파괴됐다. 거인의 점심부페가 된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도망쳤고 일행은 성공적으로 그 틈에 끼었다. 세 아이는 부모 잃은 불쌍한 고아들이 되어 캠프에 자리를 받았다. 애니의 곁을 베르톨트와 라이너가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깨어나자 라이너가 윌 로제 안이라고 알렸다. 작전의 1단계가 성공했다. 자축은 없었다. 대신 라이너는 두 사람, 아니 세 사람과 함께 새로운 결의를 다졌다.
  • 최정호 (성우) . . . . 3회 일치
         '''엄길청의 성공시대 ([[KBS 2라디오]])'''
         * [http://www.kbs.co.kr/radio/radio_drama/rd_last/con/aod/index.html 엄길청의 성공시대]{{깨진 링크|url=http://www.kbs.co.kr/radio/radio_drama/rd_last/con/aod/index.html }} - '''[[엄길청의 성공시대]] ([[KBS 제2라디오]])'''
  • 카치구미 . . . . 3회 일치
          * 카치구미(勝ち組)는 '승자조'라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는 "어떠한 분야,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을 뜻한다. 반댓말은 마케구미(負け組)로서 '패자조'라는 의미이다. 21세기에는 [[연애]]나 [[인생]] 같은 분야에서도 흔히 쓰이게 되었으며, 특히 [[중산층]]이 '격차사회'가 되면서 '카치구미'에는 '인생의 승자', '성공한 1%' 같은 의미가 따라붙게 되었다. 한편, 또 다른 의미의 '카치구미'가 있는데.
         일본어로 출판이나 언론 활동을 할 수 없고, 일본인끼리 모이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일본어 학교는 폐쇄되었다. 1942년에는 브라질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 외교관들도 [[포로 교환]]으로 일본으로 귀국하여, 완전히 본국과 연결이 단절되었다. 또 이 당시 [[포르투갈어]]를 읽을 수 있는 일본인은 숫자가 적었으며, 지식인과 브라질 사회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에 국한되었고 대부분은 오지에서 농장에 종사하고 있었다.
  • 판타스틱 포 . . . . 3회 일치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남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순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판타스틱 포》가 나오기 전부터 여러 작품의 스토리를 다루었지만 리는 이게 마음에 안들어서 만화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고 《판타스틱 포》의 제작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리의 아내가 "그럼 당신이 쓰고 싶은 얘기를 써보세요"라고 얘기했고 리는 아내의 말에 따라 《판타스틱 포》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썼는데 그게 대성공했다. 이때 처음 사용한 방식이 바로 리가 대략적인 개요와 플롯을 작화 담당에게 주면 작화 담당이 여기에 따라 원고를 완성하고 리가 대사를 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작화 담당들의 끼가 폭발할 수 있었으며 리 본인도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동시에 더 편하게 작업할수 있었다.
          * 연재 시작할 때만 해도 마블의 슈퍼히어로물이 성공할지 회의적이었기에 [[스탠 리]]는 [[잭 커비]]에게 부탁해서 판타스틱 포를 슈퍼히어로물처럼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판타스틱 포 1, 2화의 표지를 보면 주인공들은 다 평상복을 입고 있으며 표지의 중심은 괴물들이기에 슈퍼 히어로보단 호러/괴수물처럼 보이게 디자인되어 있다. 3화쯤 돼서 판타스틱 포가 인기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제서야 코스튬을 입히게 된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3회 일치
          * 이들을 미래로 보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사고가 발생해 안나와 다섯 멸룡마도사들은 흩어지고 5년이나 걸려서 그들의 소재가 확인된다.
          안나는 분명 이 시대로 오는 "문"을 만드는건 성공이었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이 문은 제레프가 만든 것이다. 그 문을 여는 역할은 안나 자신의 몫. 제랄은 제레프가 이 일에 관여했다는 것에 놀라지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제레프는 당시에도 "시간"을 연구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원하는 "과거"로 거슬러가는건 불가능했지만 그가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절이다. 안나는 "출구"에 있을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직 어린 멸룡마도사들을 키우는 역할로 선택되어 함께 미래로 오게 된다.
          * 이클립스를 이용한 시간 이동은 언뜻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나면서 다섯 멸룡마도사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리고 만다. 이들의 위치를 찾아내는데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막상 찾아냈을 땐 이미 나름대로 현대의 삶에 적응한 뒤였기 때문에 안나는 갑작스럽게 접촉하기 보단 그들을 지켜보는 길을 택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으니까.
  • 페어리 테일/542화 . . . . 3회 일치
          *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이 하르지온 항구에서 적당한 배를 섭외하는데 성공한하고 [[엘자 스칼렛]]이 반드시 마룡을 추락시켜 배에 떨구겠다고 결의한다.
          *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태운다는 계획을 위해 하루지온으로 급파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 등 항구에서 휴식하던 아군의 도움으로 배를 수배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본래 알바레스 제국이 타고온 군선. 거대한 갤리온 함선이다. 그동안 [[엘자 스칼렛]]과 [[카나 알베로나]]를 비롯한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도 도착. 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 하나가 끝났다. 이제 문제는 이 배에 어떻게 아크놀로기아를 태우냐는 것. 엘자가 그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다. 어떻게든 상공에서 아크놀로기아를 떨어뜨리겠다고 하는데.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마법도 물리공격도 안 통하는 상대에게 그게 가능할지 의심했다. 엘자는 반드시 해보이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그 부분을 재쳐놔도 두 가지 문제는 아직도 요원하다. 미네르바 일행의 유인작전이 성공할지 여부와 페어리 스피어의 발동법을 제때 찾아낼 지 여부. 어느 쪽도 장담하기 어렵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3회 일치
          * 페어리 스피어는 마침내 마룡의 육체를 봉하는데 성공하고 그것이 시간의 틈새에 있는 정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쳐 움직임을 막는다.
          * 현세를 파괴하고 있는 마룡의 육신. 그 육신을 봉하기 위한 작전이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리온 바스티아]]가 합작하고 [[쥬비아 록서]]가 조종하는 얼음의 배에 [[엘자 스칼렛]]과 [[미라젠 스트라우스]]가 아크놀로기아를 유인, 기습을 걸어 태우는데 성공시킨다. 때를 노려 [[루시 하트필리아]]가 하루지온에 모인 모든 마도사의 힘을 합친 페어리 스피어로 마룡을 잡는다.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걸까?
  • 하이큐/234화 . . . . 3회 일치
          다음 플레이에서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배분할 것처럼 하다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공을 돌린다. 아테마는 히나타의 말 때문에 대응이 늦었고 공격은 깔끔하게 성공. 하지만 카게야마는 이번에도 공이 조금 짧게 들어갔다고 투덜댄다. 그리고 히나타는 낚으려고 한게 아니라 진짜 자기가 치려고 하던 참이어서 황당해한다.
          * 경기는 계속된다. 카게야마는 이번에도 히나타와 속공을 시도하지만 공은 히나타의 손끝을 지나친다. 하지만 히나타는 헤딩으로 공을 넘기는 기예를 시전, 공격은 성공하나 츠바키하라 측과 관객석 양쪽의 비웃음을 산다.
          * 카라스노가 따라붙으면서 점수차는 더 벌어지지는 않지만 좁혀지지도 않는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그 점을 우려한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에게 세트를 올려 공격에 성공, 이제 그럭저럭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때 히나타가 코트 인. 들어오자마자 치고 싶어 안달난 눈빛을 보낸다. 사와무라는 그들을 보며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겐 "실수하는게 무섭다는 감각 자체가 없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 하이큐/259화 . . . . 3회 일치
          * 아즈마네가 달려나온다. 이나자키는 기다렸다는 듯 블록 세 장이 올라온다. 그런데 아즈마네가 유독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 차이는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 정도가 눈치챈다. 아즈마네가 노리는건 명백했다. 블록 위에서 치는 스파이크. 하지만 그 의욕이 독이 됐을까? 타점이 빗나갔다. 공에 겨우겨우 스친 손. 공은 공중에서 튀어올라서 간신히 블록을 넘기고 떨어진다. 스파이크라고만 생각했던 이나자키의 후위가 황당해하며 달려온다. 하지만 공이 코트에 닿는게 먼저다. 어이없지만 득점 성공. 공격에 성공한 카라스노 측 조차 헛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즈마네는 속으로 왠지 미안하다고 씁슬해한다. 어이없어하는 이나리자키 진영.
          * 로테이션이 돌아 다시 [[츠키시마 케이]]가 들어오고 니시노야가 나간다. 히나타의 서브 차례. 지금 히나타는 의욕이 최고일 뿐 아니라 묘한 자신감이 넘친다. 사실 블록이나 리시브에 비해서 서브는 훨씬 별로다. [[스가와라 코시]]는 그저 서브를 치려고 기합이 들어간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딱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1학년 선발 합숙 이후 히나타의 리시브는 뭔가 변했다. 거기에 방금 전 블록과 리시브 성공이 히나타의 기세를 올린 원동력일 것이다.
  • 하이큐/273화 . . . . 3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온화 모드" 발동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스코어는 20 대 12. 카게야마의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을 기점으로 [[이나리자키 고교]]가 첫 번째 TO를 쓴다. 중계진은 경기가 서브 경쟁으로 흐름이 바뀌는 걸로 보고 있고 과연 카게야마의 서브로 [[카라스모 고교]]의 반격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완벽한 서브. [[미야 오사무]]가 손을 뻗었지만 리시브 실패. 연속 서브 에이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세 번째 서브에 임한다. 이번엔 긴지마 쪽. 리시브에는 성공했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공은 [[오지로 아란]]에게 연결. 2세트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오지로.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의도도 그것이다. 아주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 피로감이 평소 플레이를 조금씩 뒤흔든다. 그리고 지금 미스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오지로의 스파이크엔 블록 세 장이 따라붙었다. [[사와무라 다이치]], [[히나타 쇼요]], [[타나카 류노스케]]. 오지로는 우카이 코치가 노린대로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블록을 의식하게 됐고 우측으로 길게 찌른 스파이크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0 대 14. 우카이 코치는 이것이 전환의 1점임을 단언한다. 관중석의 [[다이쇼 스그루]]와 여친 미카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그 아웃은 오지로에겐 "꺼림직한 아웃"이다.
          무려 2연속 서브 에이스에 3연속 득점을 이끌며 2세트를 뒤집어놓았다. 4회차 서브도 득점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서브 직후 바로 세트업을 올리는 묘기를 보여주면서 이나리자키를 압박했다. 미야 아츠무의 저지로 득점행진은 끊어졌지만 아츠무가 심하게 의식하게 된 건 분명하다.
          비록 2세트에서 크게 뒤쳐진 상태지만 상대편 에이스 오지로 아란에게 스트레스를 누적시키고 경기 흐름을 뒤집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오지로를 교체하자 조금 더 흔들어 놔야 했다며 아쉬워한다. "대역"으로 들어온 키타 신스케를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 현이와 덕이 . . . . 3회 일치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반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1986년 5월 장덕은 훗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또 그녀가 작곡한 가장 훌륭한 곡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는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모습처럼>을 작곡, 동료가수인 [[이은하]]에게 주어 빅히트를 안겨준다. 그리고 6월 오빠 장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달랐던 장덕은 솔로로서의 욕심으로 인해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타이틀곡 <님 떠난 후>를 비롯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사랑해줘요>, <소외> 등이 수록된 솔로 정규 3집 《[[님 떠난 후]]》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포크뮤직]]에 [[디스코]]가 섞인 타이틀곡 <[[님 떠난 후]]>가 [[KBS]] [[가요톱10]]에서 5주(1987년 2월 18일 ~ 1987년 3월 18일) 연속 1위를 차지,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MBC 라디오 인기가요, KBS 2FM 인기가요 광장,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뮤직박스(도서출판), 전국 DJ 연합회 등 각종 인기 순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된다. 1986~87년 장덕은 제 2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인정받았다.
  • That 70's show . . . . 2회 일치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단 지구 반대편이고, 영국과 네덜란드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외국인 유학생. 뜨거운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여자에게 열심히 들이대지만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5시즌에서 추방 위기에 놓이지만 로리와 결혼하여 회피에 성공,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걸 위탁부모 가정에 알리지 않고 그냥 살다가 들켜서 쫓겨나고, 에릭네 집에서 몰래 얹혀살다가 들킨다. 이후 켈소와 룸메이트가 된다. 미용실에서 샴푸보이를 하게 되는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게 된다.
         본래 마을에서 전자제품 상점 '바겐 밥'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지만, 프라이스 마트가 들어서면서 폐업하게 된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발명품과 몇가지 사업에 성공하면서 다시 부자가 된다. 8시즌에서는 [[플로리다]]로 이주하고 낙시용품점을 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 강동우 . . . . 2회 일치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상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상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를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097584|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이 부상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 어쨌거나 이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 강영식 . . . . 2회 일치
         수술과 재활에 성공적이었는지 시즌 초에는 거의 2008 시즌 때만큼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5월 이후로 난조를 보였다. 피홈런이 많아 피안타율이나 [[WHIP]]에 비하면 [[평균자책점]]은 높았다. 롯데 불펜진 중 [[임경완]](4개) 다음 가는 블론세이브(3개)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에 [[허준혁(1990)|허준혁]](좌완)이 불펜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좌완투수가 없는 관계로 상당히 자주 등판했다.
         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하였다. 11월 16일 4년 17억원에 롯데에 잔류하였다. 계약금 4억, 연봉 '''3억''', 옵션 1억으로 대체적으로 좀 많이 준 것 같긴 해도 나름 깔끔하다는 평가. 그래도 어쨌든 쓸만한 좌완투수이긴 하다. 연봉이 3억이라 억삼이란 별명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도 포인트(...)[* 3년전 FA권리를 획득했으나 권리를 포기하면서 얻은 3년 9억과 FA총액 17억을 합산하면 7년간 26억에 쓰는 격이다. 나이대도 30~37세로 불펜투수치고는 저렴한 편이다. 성적차이는 나지만 [[정현욱]]이 4년간 28억6천만에 계약한것과 비교하면 FA이후 금액은 상당히 저렴하다.] 계약 자체는 마지막 날에 했지만, 강영식은 그동안 쭉 사직야구장에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팬들 사이에서는 맛난 호텔 밥 더 먹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개드립이 나돌고있다. 애초에 딱히 떠날 마음도 보이지 않았던 선수니만큼. 어쨌든 이로써 롯데는 삼성의 뒤를 이어 집단속에 성공한 두번째 구단이 되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9화 . . . . 2회 일치
          * 거짓말처럼 한 번의 성공도 없는 실패.
          * 사투 끝에 염원하던 울트라 레어 캐릭터를 뽑는데 성공한다.
  • 권혁 . . . . 2회 일치
         복귀 후 모습은 비교적 성공적.
         스프링캠프 승선에는 성공했으나 연습경기에는 등판하지 않았다. 아직 컨디션이 덜 올라온 듯.
  • 김동욱(배우) . . . . 2회 일치
         사실 신과함께 이전까진 작품이 들어오질 않아 집에서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481887|전전긍긍했고]]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4076074|배우의 길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김용화 감독에게 제의를 받았다. 물론 제작자들, 투자자들의 반대가 있는 듯 했으나 김용화 감독은 이미 일찌감치 수홍 역으로 낙점한 상태라서 김동욱을 투입시키기 위해 오로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본인도 마지막 기회하고 생각하고 승낙했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는 대성공했다. --[[말년병장]] 포스 뿜뿜-- 김동욱에게는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3006805|새로운 전성기가 왔고]] 김용화 감독도 재기에 성공한 동시에 본인의 [[덱스터 스튜디오|회사]]의 기술력을 더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서로 윈윈하게 된 셈.
  • 김미숙(1959) . . . . 2회 일치
         1998년 [[장동건]]과 <[[사랑]]>에서 8살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설정의 멜로 연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청률이 저조하자 연출이 다짜고짜 '''주연 여배우를 갈아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에 따라 극중 김미숙은 갑작스레 암에 걸림 -> 그 회에 바로 사망이라는 역대급 퇴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최지우]]로 변경. ~~이쯤되면 데스노트~~ 김미숙은 이 때를 회고하며 당시 '''라디오 진행을 위해 마이크 앞에서 입만 떼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배우 인생에 가장 힘든 때였으나 역으로 배우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시기였다고. 이 때 주말극 [[사랑해 사랑해]]에서 푼수끼 넘치지만 대인배적인 인물 '조봉자' 역할로 연기 변신에 성공한다. ~~말이 그렇지 사실상 고소감~~
         많은 또래 탑 여배우들이 그렇듯 중견급이 되며 어머니 역할로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항상 또래 여배우들 가운데 좋은 역할을 맡았지만 그다지 강렬한 인상은 주지 못하던 시기. 그러나 김미숙 연기 인생 또 하나의 큰 터닝 포인트인 <[[말아톤]]>과 <[[세븐데이즈]]>에 출연, 성공적으로 재기한다. 각각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선방하는데 특히 세븐데이즈에서의 서늘한 연기가 압권.
  • 김병옥(배우) . . . . 2회 일치
         홀어머니가 시장에서 청과 가게를 하시면서 하루하루 온가족이 연명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연극 배우 생활을 이어가면서 15년 동안 짜장면, 짬뽕만 먹었다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장례비가 없어 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 장례 물품을 대고 친구들도 돈을 갹출해 도와줬다고. 44세 때 출연한 올드보이 전까지 정말 빈곤했단다. 성공한 후에도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에 보증도 많이 서줘 돈을 많이 못 모았단다.
         2013년 신세계 성공 이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동치미, 해피투게더 등 예능에도 곧잘 출연했는데 상당한 예능감을 보여줬다. 악한 그동안의 인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착하고 순박한 면모를 많이 보여주었다.
  • 김상중(배우) . . . . 2회 일치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배우로 악역을 맡았을 경우 특유의 카리스마가 특징적으로 잘 나타나 추적자에서 손현주와 대립하는 강동윤 역 등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으로 잘 소화해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찌질하고''' 코믹한 연기도 잘 소화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투사부일체]]에서 오상중역으로 대표적인 찌질+코믹연기를 보여줬고[* 지금도 인터넷에 하하와 호흡했던 연기장면이 잘 알려졌는데 정말 찌질하게(...) 나온다.[[티비플|--미안해요 보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에서의 홍준표 역으로, 두 여자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찌질한 모습을 보여 많은 욕을 먹었다. 김희애와 동급에서 연기하는 본인의 커리어 정점을 장식한 작품인데, 여기서 희대의 표정연기는 유명한 대사인 "감자 좀 쪄줄래?"와 함께 짤방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인 [[엄마가 뿔났다]] 에서도 짧은 특별출연에 불과했으나 홍준표를 생각나게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 아줌마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에서는 능력있는 차도남이지만 가족에게는 다정한 삼촌역을 맡아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다.
         그리고 김상중의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테지만 그는 [[정신지체]] 연기도 잘 어울리기도 했다. 1997년 [[신현준(배우)|신현준]], [[심혜진]]과 출연한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에서 여인숙을 소유한 정신지체 형 '기태'역할을 소화하여 그 해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아쉽게도 [[넘버 3]]에 출연한 [[송강호]]가 수상하긴 했지만 만약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수상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 김성주 (기업인) . . . . 2회 일치
         2005년에는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에서 탄생한 가방 브랜드인 [[모드 크리에이션 뮌헨|MCM]]을 전격적으로 인수하여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MCM은 2008년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이래 클래식한 유명 명품 브랜드들에 못지 않는 유니크한 브랜딩을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 시장에 역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3년 5월 김성주는 [[권상우]], [[피오나 헤프티]] 등과 함께 [[스위스]] [[취리히]]의 매장 오픈을 하거나 <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357509</ref>, CNBC, 르 피가로, 가디언 지 등에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MCM의 인기로 대서특필 되는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중이다. 개성있고 트렌디한 마케팅으로 유명한 주력 브랜드 MCM은 중국인들의 큰 사랑에 기인하는 글로벌 성장세에 힘입어 전 세계 35개국에 300여개의 매장을 운영중이다.
  • 김수용(코미디언) . . . . 2회 일치
         주변 연예인들에 의하면 사석에서 이만큼 웃긴 개그맨이 없었다고, 그리고 꽤나 범상치 않은 독특한 마인드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똥군기]]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는 사항이지만 그 살벌했던 코미디언 세계에서 선배가 내리갈굼하는데도 하는 척만하다가 얻어터졌으면 터졌지 후배에게 똥군기를 부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숙]] 등의 후배들과도 절친했다고 한다. 김수용의 토크 레파토리를 보면 동기들과 놀러다닌 것과 후배들과 놀러다닌 에피소드가 꽤 많다. 하술할 슬픈 사기도 인성이 너무 좋아서 당한것이나 그래도 동기나 후배를 잘 챙겨준 덕에 2010년도 부터 방송에 재기했을때 자리잡고 있던 후배들이 여러 곳에서 불러 주었고 성공적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 김우중 . . . . 2회 일치
         [[1960년]] 25세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32세에 [[서울특별시|서울]]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여 [[1970년대]] 초반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1974년]]에 1억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며 신흥 재벌이 되었다. [[1981년]]에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1982년]] [[1월]]에는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4위에 올랐다.
  • 김윤아(1974) . . . . 2회 일치
         2001년 9월 영화 <[[봄날은 간다(영화)|봄날은 간다]]> OST인 동명의 곡 '봄날은 간다'로 솔로 데뷔, 11월 1집 <Shadow of Your Smile>을 발매한 이후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당시 3집의 타이틀곡 '매직 카펫 라이드'가 대박을 치며 자우림의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인데, 이를 두고 '김윤아도 성공하더니 자우림 버리고 해체하려나 보다'는 말들이 많았다. 물론 억측이었고, 이후 자우림과 솔로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때까지도 안티는 "인디출신" 자우림과 김윤아의 오버그라운드에서의 성공을 못마땅해하거나, 김윤아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식의 남성 안티가 많았으나, 2006년 김형규와의 결혼 이후 여성 안티도 급증하게 된다.
  • 김윤환 . . . . 2회 일치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퇴임한 뒤 민주정의당으로 복귀했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군위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개원한 뒤 민주정의당 원내총무에 임명되었고, 평화민주당 원내총무 [[김원기(1937)|김원기]], [[통일민주당]] 원내총무 [[최형우(정치인)|최형우]], [[신민주공화당]] 원내총무 [[김용채]]와 함께 4당 체제를 이끌어가는 원내 사령탑으로 화려한 활약을 펼쳤다. [[3당 합당]] 이후에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무제1장관을 맡으며 정계의 중심에서 활약했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지역구에서 4선에 성공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윤환은 당대의 '''[[킹 메이커]]'''(King Maker)로서 정치적 영향력이 절정에 올랐다. [[김영삼]]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던 舊민정당(군사독재정권) 출신 민정계 인사들을 설득해서 강력한 [[김영삼]]의 지지세력, 일명 신민주계를 규합하여 결국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다. 당시 김윤환은 민정계 인물들에게 '국민들이 군부 출신 민정당 인물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일단 [[김영삼]]을 세워서 정권을 이어가고, 그 다음에 우리(TK+민정계)가 주도하는 보수 정권을 창출하면 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김윤환은 [[전두환]] 밑에서는 친구인 [[노태우]]를 후계자로 옹립해 대선에서 승리했고, [[노태우]] 밑에선 [[김영삼]]을 후계자로 지원해서 역시 대선에서 승리했다.
  • 김형준(배우,가수) . . . . 2회 일치
          * 1월 27일 게임 전문 공중파 방송인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 됐다. 제목이 곧내용으로서 김형준이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때 김형준이 들어가는 팀은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MBC GAME HERO]]. 처음에는 다소 무개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갤러]]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식없는 모습이 어필 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고 결국 3월 4일에 감독 추천으로 공인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뮤탈 짤짤이의 창시자인 [[서경종]]과 매우 친해졌고 서경종은 이를 계기로 해설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하게 되었다.[* 훗날 서경종은 트윗 인터뷰[[http://esports.dailygame.co.kr/news/read.php?id=57529|#]]에서 김형준과의 친분은 100% 설정이었으며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방송 이후엔 연락도 안 했다고 밝혔다.][* 서경종의 트윗문답때문에 김형준의 빠순이들은 서경종한테 악플을 날리고 [[스갤러]]들은 [[빠가 까를 만든다]]면서 [[병림픽]]을 했다. ~~트리플S도 [[카시오페아(동방신기)|카시오페아]]나 [[엘프]]와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함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라..~~] 그리고 유독 [[러커]]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임할때 말버릇이 암요 까시까시맨~이라든지 자기를 가시저그라고 불러달라는 모습도 나왔다. 스갤에서는 주로 까시맨이라고 불린다. 결국 3월 31일을 마지막 방송으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스타 팬들에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2회 일치
          *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단독으로 [[오버홀]]을 뒤쫓는 밀리오. 그리고 그런 그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은 타마키. 홀로 오버홀의 부하들을 상대하겠다고 나선다.
          밀리오는 타마키와 정반대였다. 당시 밀리오는 벽을 통과하는 것도 무리였고 손은 겨우 빼내도 얼굴이 걸려버리는 등 엉망이었다. 그런 추태를 보일 땐 그저 놀림감으로 전락했지만 밀리오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놀려대는 친구들에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고 항변하면서 "그래도 다음번에는 성공한다!"고 꺾이지 않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2회 일치
          * 도발에 격분한 이리나카가 괴성을 지르자 [[미도리야 이즈쿠]]와 [[아이자와 쇼타]]가 놓치지 않고 그를 요격,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다.
          * 한편 단독으로 [[오버홀]]을 추격했던 [[토오가타 밀리오]]는 단 2분 만에 오버홀을 따라잡는데 성공했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0화 . . . . 2회 일치
          * [[토오가타 밀리오]]는 [[오버홀]]의 예상마저 뒤엎고 빠른 시점에 그를 추격하는데 성공한다.
          * 다시 오버홀을 따라잡은 밀리오. 오버홀을 공격하는 척하며 쿠로노가 데리고 있던 에리짱을 빼내는데 성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2화 . . . . 2회 일치
          * 성공적으로 탈환에 성공한 미도리야, [[키리시마 에이지로|키리시마]],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이이다 텐야|이이다]] 팀은 역으로 향하고 있다.
  • 나폴레옹 빠 . . . . 2회 일치
         그런데 나폴레옹 빠들은 대개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두더라도, 나중에는 [[패가망신]](…) 했다. 애초에 나폴레옹 자신도 패가망신 했는데, 나폴레옹 빠들은 왠지 자기는 똑같은 짓을 해도 늙어죽도록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한 [[근자감]]도 나폴레옹과 비슷하다.
  • 랑그릿사 . . . . 2회 일치
         어쨌든 시리즈는 2의 엄청난 성공으로 각종 기기로 컨버전되며 여러가지 요소들을 투입시켰는데, 이는 당시 [[드래곤 나이트]]와 같은 야겜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연애성 [[롤플레잉]] 요소가 가미되며 연인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빛의 용사로만 볼 수 있던 원본 엔딩 이외에 어둠엔딩이나 패왕 엔딩 등, 다양한 스토리가 존재하여 여러 차례 클리어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각종 요소들의 추가로 매우 성공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는 단순한 턴제 시뮬에서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 마기/320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성공확률은 100분의 1. 신드바드는 아르바가 초조해졌다고 비웃으면서도 결국 그 제안을 수락한다.
          * 성공할 확률은 낮고 그도 죽을지도 모른다며 쟈파르에게 뒷일을 맡긴다.
  • 마기/324화 . . . . 2회 일치
          * 신드바드와 다윗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데, 우고는 다윗과 일 일라는 저기에 있다며 웬 수조를 보여준다.
          * 그의 성궁 시스템은 완전한데도 신드바드는 약간이나마 그 방어를 깨는데 성공했다.
  • 마기/333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 일행은 천관산맥의 국제동맹 본부에 잠입한다. 전송마법진으로 간단하게 잠입에 성공, 금속기를 탈취하는데까지 성공한다. 알리바바는 암흑대륙에서도 [[쥬다르]]가 이걸 써줬으면 좋았다고 투덜대는데 쥬다르는 "닥쳐 찰흑인형"이라고 폭언한다.
  • 마기/343화 . . . . 2회 일치
          * 자신의 생존과 성공이야 말로 선택받은 증거라고 믿는 신드바드는 그렇기 때문에 알라딘 일행의 단순한 설득으로는 물러서지 않을 거라 말한다. 알라딘은 다윗이나 아르바가 "그런 동료"인 거냐고 재차 묻고 신드바드는 다윗이 호시탐탐 자기 목을 노리는, 대등에 가까운 동료라고 둘러댄다.
          * 한편 각각 던전 공략에 성공한 [[연백룡]]과 [[쥬다르]]는 합류해서 [[알리바바 사르쟈]]와 [[아르바(마기)|아르바]]가 향한 제 4던전 쪽을 바라보고 있다.
  • 마니교 . . . . 2회 일치
         파티크, 앗다, 아브자카야는 로마 영토였던 시리아 지역으로 선교하게 된다. 이 무렵 제노비아 여왕의 지도 아래 [[팔미라 왕국]]이 독립하고 있었는데, 앗다는 마니가 전해준 "거대한 복음"이라는 저작을 바탕으로 하여 제노비아 여왕의 여동생에게 포교하는데 성공하였다. 아브자카야는 시리아 에데사 지역에서 포교에 성공하고, 마니는 시리아에서 기독교 사도를 이어받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앗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포교를 하며, 마니의 저작을 정리하여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모디우스"라는 저서를 출판한다. 그리고 이집트에도 마니교가 퍼지게 된다. 마니는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있던 로마 병사들에게 선교를 하였고, 이들이 귀환하면서 마니교는 로마 제국 동부로 널리 퍼져 나가게 된다. 또한 [[아라비아]]에도 마니교 선교가 행해졌다고 한다.
  • 맥스 페인 . . . . 2회 일치
          Aesir Corporation. 성공한 회사. 얼마나 성공했는지 해당 회사의 채권을 노린 은행강도가 일어날 지경이다.
  • 미저리 . . . . 2회 일치
          [[소설가]]. "미저리"라는 소설 시리즈로 성공을 거둔 작가지만 본인은 미저리를 극도로 싫어한다. 결국 미저리의 주인공인 미저리를 죽여버려 미저리를 끝내고 새로운 소설을 쓰지만 그 소설 원고를 가져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소설가 폴 셸던은 자신이 새로 쓴 소설을 출판사에게 전해주기 위해 차를 운전한다. 그는 "미저리"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시리즈 "미저리"[* 작중 묘사에 의하면 근세 배경의 신데렐라 스토리 소설인 것 같다.]로 성공을 거둔 작가지만 폴은 그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새로 낸 미저리 시리즈인 "미저리의 아이"의 최후반부에 아이를 낳던 미저리가 사망하는 내용을 넣어 시리즈를 끝내버린 후, 차도둑을 소재로 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한다. 소설을 완성한 폴은 자신이 쓴 소설의 작품성에 흥분하며 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빙판길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한다.
  • 박신혜 . . . . 2회 일치
         박신혜는 이후, 2013년 10월부터 방영 된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가난하지만 당당한 여고생 차은상 역을 맡아 성인 연기자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kdramastars.com/articles/13557/20131228/2013-kdramas-that-got-the-best-ratings.htm |title=2013 Kdramas That Got The Best Ratings : Drama Stories |publisher=KDramaStars |date= |accessdate=2016-12-29}}</ref> 이 작품을 통해 국내를 넘어 아시아권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여배우 최초로 ‘Dream of Angel’라는 타이틀의 아시아투어를 하는 등 부동의 인기를 누리는 한류스타로서 입지를 다졌다.<ref>{{뉴스 인용|title=Park Shin Hye First Female Actress to Tour Asia|url=http://www.kdramastars.com/articles/8567/20130315/park-shin-hye-first-female-actress-tour-asia.htm|accessdate=31 January 2014|newspaper=kdramastars|date=15 March 2013}}</ref>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우수연기상, 베스트 커플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 박화요비 . . . . 2회 일치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한 테크닉 중심적인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상태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리즈 시절로 보는 2~3집 활동 당시에도 1집 때와 창법과 음색이 바뀌었다고 성토하는 팬들도 많았다.]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중심적이고 감성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의 그것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거의 모든 앨범을 명반으로 추천하고 있고, 간간히 내는 싱글이나 OST들 역시도 팬들의 호감이 굉장히 높은 편.
         싱어송라이터의 본격적인 시작의 앨범인 7집 앨범의 성공 후,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 백정현 . . . . 2회 일치
         장원삼이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박근홍이 좌완 불펜 No.1을 하고 있는 삼성인지라 큰 기대를 걸고 육성하는데 당최 안터져서 안타까운 선수. 동갑내기 차우찬은 부침이 있었지만 결국 리그 수위급 선발투수로 정착하는데 성공했기에 더더욱 아쉬운 상황.
         6월 1일[* 원래 로테이션 상으로는 아델만이 나오고 백정현은 그 전날 나와야 하지만 백정현이 nc전에 강한것과 더불어 아델만이 홈에서 극강이고 kt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기에 순서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전날 아델만 역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nc전에서 7.2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3승을 챙겼다. 또한 nc 킬러다운 면모를 이어나갔다.
  • 보루토/2화 . . . . 2회 일치
          * 보루토는 이러니저러니해도 진득하게 수행하기 시작해서 겨우 하루만에 성공한다.
          * 술법에 성공한 보루토는 우치하의 비석 앞에서 사스케에게 기술을 선보이는데, 사스케는 기술이 너무 작아서 나선환이라 부를 정도도 아니라고 평가절하한다.
  • 보루토/4화 . . . . 2회 일치
          * 보루토는 그림자 분신을 쓰며 회피, 접근에 성공하지만 시카다이는 그림자를 방원 형태로 늘려 분신까지 전부 포착하는데 성공한다.
  • 보에몽 1세 . . . . 2회 일치
         이후 1084년에 아버지가 다시 비잔티움을 침략할때 따라가서 아버지와 함께 디라키움 등 그리스 서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지만, 진지내에 역병이 들어 이듬해에 케팔로니아섬에서 아버지인 로베르가 죽게된다.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많은 군사적 공적을 세웠으며, 특히 안티오크 공방전에서 안티오크를 영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반년에 걸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안티오크 점령에 성공, 안티오크 공작 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안티오크 시내의 이슬람이나 시리아계 기독교인 다수를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현대까지도''' 지속되는 악명을 쌓았다(…). 안티오크를 획득한 보에몽은 예루살렘 원정에서 이탈하여 안티오크 공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전념한다.
  • 블랙 클로버/110화 . . . . 2회 일치
          * 결국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근소한 차이로 정상에 도착하는데 성공하나, 컨트롤이 안 돼서 마그마에 처박힐 뻔한다.
          * 결과 대성공. 기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록 반마법의 기는 뚜렷한 형상이 되어갔다. 마침내 라드로스전에서 나타났던 반마법을 두른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상태가 된 것은 좋은데, 마법의 흐름을 타고 날아가는 특성 때문인지 아스타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의 몸은 유트림 화산의 마나의 흐름을 따라서 무작정 날아가기 시작했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2회 일치
          랜길스를 상대로 마법진을 펼치나 랜길스는 간단하게 우회, 잭스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나 그것 자체가 페이크. 진짜 함정마법진은 자기 몸에 설치해놨다. 마르크스는 그런 짓을 하는건 자신을 공격하는 거나 다름 없다고 경악해 하는데 이런 독한 짓을 하는건 그 말고는 없었는지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악한다. 함정마법은 반사 마법이었고 랜길스의 공간마법들이 몇 배로 커져서 반사된다. 랜길스의 공간마법에 맞았을 땐 "오늘 처음 나에게 공격을 성공시켰다"며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확실히 2회전에서 구덩이 파느라 개고생하긴 했지만 공격에 맞은건 처음.
          조라 이데아레의 아버지. 이름은 "자라 이데아레". 사용하는 마법은 조라와 비슷한 함정계통이었던 걸로 보인다. 이걸로 곧잘 아들에게 장난을 걸곤 했는데 기본적으론 상냥하고 명랑한 아버지였던 듯. 마법기사를 나라를 지키는 영웅들이라고 생각해서 자신도 마법기사를 목표로 노력했다. 입단에 여러번 탈락했으나 결국 성공, 마법기사가 되어 전장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전사하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귀족인 동료들이 그를 아니꼽게 여겨 살해한 것이었다. 자라는 남을 돕는걸 중요하게 여겨 전장에서도 민간인을 구조하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이게 귀족들 성미를 자극했던 듯. 애초에 하층민이 마법기사가 된 것 자체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2회 일치
          * 도미넌트 코드의 안내로 여왕의 거처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하나, 그들 앞엔 여왕이 바네사 에노테이커를 짓밟고 있는 모습이 펼쳐진다.
          * 이럭저럭 침입에 성공. 마녀들의 나라에 입성한다.
  • 블랙 클로버/93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는 파나가 폭주시킨 마력을 베어내는데 성공하지만 파나 자신이 증오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폭주는 계속된다.
          * 두 사람의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폭 마법이 시작될 시점까지 오고 말았다. 젤은 나머지 인원들이라도 대피시키려 하지만 검은 폭우의 동료들은 두 사람의 도전을 믿고 지켜본다. 그들의 결연한 자세를 보고 젤도 생각을 바꿔서 두 사람의 성공을 믿으며 기다리기로 한다.
  • 서강준 . . . . 2회 일치
         서강준은 몇 편의 드라마 단역을 거친 이후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ref name="네이버"/> 오디션 기회를 얻어 현재의 소속사인 [[판타지오]]의 신인 배우 개발 프로젝트인 '액터스리그'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ref name="tvreport" /> 합격하게 되면서 [[유일 (배우)|유일]], [[공명 (배우)|공명]], [[강태오]], [[이태환]]과 함께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 (그룹)|서프라이즈]]의 일원이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이후에는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함께 숙소에서 합숙을 하면서 연기를 비롯한 춤, 노래 트레이닝을 받았다.<ref name="머니투데이"/> 현재는 숙소 생활을 정리하고 독립해서 살고 있다. 현재 예명으로 쓰고 있는 '''서강준'''이라는 이름은 가수 [[이승환 (가수)|이승환]]과 이름이 같아 소속사 [[판타지오]]의 부대표가 직접 지어줬는데, 당시 같은 소속사의 선배였던 배우 [[하정우]]의 매니저 이름으로 '매니저의 이름을 연예인이 빌려쓰면 성공한다'는 속설에 의해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뉴스 인용|제목 =My Name is, 서프라이즈 (1)|url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74209|출판사=10 아시아|저자=배선영|날짜 = 2013-10-10|확인날짜=2014-05-17}}</ref>
         2015년 서강준은 [[MBC]] 대하 드라마 《[[화정 (드라마)|화정]]》에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어 소신과 명석함을 지닌 꽃도령 홍주원 역을 맡아 6개월여동안 최종회까지 대장정을 소화해내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2016년에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드라마)|치즈 인 더 트랩]]》에서 ‘츤데레’ 매력남 백인호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때는 촉망받던 피아노 천재로 까칠한 겉모습과 달리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백인호 캐릭터를 극대화 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서강준, 물오른 4년차 '치인트'로 폭발|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123528|출판사=한국일보|저자=황지영|날짜=2016-01-20|확인날짜 =2017-09-07}}</ref> 그는 실제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데뷔 이후 드라마와 예능, 해외 팬미팅 등에서도 간간히 연주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치인트’ 서강준, 여심저격 피아노 신 진실 밝혀…“그 정도 실력 안돼”|url=http://m.hankooki.com/m_sp_view.php?WM=sp&FILE_NO=c3AyMDE2MDEyODEwMzQyMzEzNjY3MC5odG0=&ref=m.search.naver.co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수민|날짜=2016-01-28|확인날짜 =2017-09-07}}</ref> 2016년 11월, 서강준은 대한민국 차세대 스타와 그를 둘러싼 연예계 일상을 그린 100% 사전제작으로 제작 된 [[tvN]] 드라마 《[[안투라지 (2016년 드라마)|안투라지]]》에서 연예인들의 연예인, 가장 핫한 배우 차영빈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개연성 부족한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불협화음으로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미드 리메이크' <안투라지>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36516|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윤현|날짜 = 2016-12-26|확인날짜 =2017-09-07}}</ref>
  • 송병구 . . . . 2회 일치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2007]] 그랜드 파이널 8강에선 진영수를 꺾고 결승에선 마재윤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던 중국의 [[샤쥔춘]]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으며, WCG 2008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2회 연속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도 건재를 알리며 삼성전자 칸의 2연속 광안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WCG 2009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부분 WCG를 최초로 3회연속 진출에 성공한 후 이제동과의 결승에서 안타깝게 패배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IEF2008에서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준우승을 기록하였으며 IEF2009에서는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대회에서 '송순신'등으로 불리며 대활약을 벌였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8화 . . . . 2회 일치
         그러던 때 아스트라가 도시에 나타나서 카라를 불러내고, 카라는 아스트라와 대결을 벌인다. 카라는 격전 끝에 아스트라를 제압하는데 성공하지만,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다. 카라는 제압한 아스트라를 DEO로 끌고오고 아스트라는 감금당한다.
         그랜트는 물러나려는 기자 회견을 준비하는데, 아슬아슬하게 윈과 제임스, 루시가 더크가 해킹을 주도했던 자료를 준비해온다. 모든 것이 탄로난 더크는 체포되어 가버리고 그랜트는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제임스는 윈에게 그가 카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다며 사과한다.
  • 스쿼키 청소회사 . . . . 2회 일치
         경찰에 체포된 모나가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자 모나를 죽이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한다. 폭약으로 유치장 벽을 무너뜨리고 유치장을 지키던 경찰관들을 죽이는 것은 성공적이었나, 침대 밑에 숨은 모나를 발견하지 못해 죽이는데는 실패한다.
         맥스가 발레리 윈터슨의 총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자 병원을 습격한다. 이들은 비무장 상태의 맥스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데까지 성공했지만, 맥스가 병원 경비가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탈출해버려 실패한다.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2회 일치
          국가 특성: 적 지역에서 불시착에 성공했을 시 포로로 잡히지 않음
          사령부에서 시험중인 신무기를 촬영하려는 적 정찰기를 격퇴하는 임무. 적 정찰기가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도망가기 전에 격추하면 성공으로 처리된다.
  • 식극의 소마/174화 . . . . 2회 일치
          * 시험관은 성공적으로 반역자팀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데 시험종료 30분을 남기고 소마 일행이 돌아온다.
          * 종료까지 30분 밖에 남지 않자 시험관은 반역자 떨구기가 성공했다고 희희낙락하다.
  • 신지애 . . . . 2회 일치
         그리고 부상을 털고 일어난 2012년 1박 2일에 걸친 9차 연장 끝에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재기를 알리더니,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에서 -9를 기록하면서 2위와 9타 차, 혼자 언더파 기록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면서 우승에 성공했다.
         '''파이널 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멘탈이 좋고 한번 리드를 잡으면 절대 역전당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KLPGA 시절에는 그야말로 끝판왕이었고 2011년에는 이상하리만치 역전을 당하는 모습이었지만, 2012년에 다시 부활에 성공했다.
  • 신화용 . . . . 2회 일치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시즌 총평은 부상과 가끔씩 터지는 대형 실수가 불안요소이긴 했지만 선방들을 보면 충분히 성공적인 영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전성기 만큼은 아니지만 포항에서의 활약을 조금 보여주고 있다.
  • 아이언맨(영화) . . . . 2회 일치
         천재이자 재수없는 부자인 토니 스타크는 텐 링즈라는 조직에 의해 큰 부상을 입은 체, 납치되었다가 의사 호 인센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아직 납치된 상황인데다 자길 납치한 텐 링즈측에서 토니에게 무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고, 이에 토니는 인센의 도움을 받아 기계 수트를 만들어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구조되어 생환한 토니는 비서인 페퍼 포츠, 친구인 제임스 로즈, 아버지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오베다이아 스테인과 재회하게 되며 피랍 사건을 계기로 자기 인생을 반성하고, 무기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
         아이언맨의 함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성공적인 데뷔.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 영주시 . . . . 2회 일치
          * 삼정승고택([[정도전]] 생가 복원 건물)과 구 도립도서관 사이 강둑에 [[박정희]] 기념식수가 있다. 대통령 취임 전에 와서 심은 거라 "장군" 기념식수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과거 1961년 영주에 집중[[호우]]로 인한 대[[홍수]]가 나서 피해복구를 위해 군인들이 동원되었을 때 함께 참가했기 때문. 현재의 제민루가 있는 언덕과 시립도서관이 있는 산 사이(그리고 구성공원까지)는 원래 연결되어 있었으며, 서천 물길을 돌리는 직강공사를 하면서 절개 및 발파되었다. 그 때의 흔적으로 강바닥에 다른 곳에는 없는 바위가 드러나 있다. 현재의 나무는 처음 심었던 나무가 말라죽자 1979년에 다시 심은 것이다. 관련글: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931|#1]][[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226.010140730260001|#2]][[http://blog.daum.net/shgh1225/8762740|#3]]
          * [[권미진]] : 개그우먼. 개그콘서트 [[헬스걸]]에서 이희경과 함께 다이어트에 성공한 인물로 한동안 유명했었다.
  • 원피스/849화 . . . . 2회 일치
          * [[브룩]]은 보물전의 열쇠를 입수하는게 성공하지만 빅맘 [[샬롯 링링]]이 직접 행차, 대치하게 된다.
          * 브룩은 보물전을 제압하는데 성공. [[포네그리프]]에 접근하기 위한 열쇠를 손에 넣는다. 그는 파트너에게 죽음을 각오하라고 부탁한 이상 가져갈 건 다 가져가야 한다며 보물전의 병사들을 쓸어버리고 포네그리프를 찾아 전진한다.
  • 원피스/857화 . . . . 2회 일치
          * 루피는 상디와 합류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한다. 쵸파 쪽에서는 흩어진 일행이 모두 모였고 [[포네그리프]] 탁본을 뜨는데도 성공했다고 응답한다. 루피가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자 쵸파, [[캐럿(원피스)|캐럿]], [[브룩]]은 엄청 쑥쓰러워하며 오버한다. 그때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끼어들어 상디와 이야기는 끝난 거냐고 묻는다. 루피가 "상디는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답하자 일행은 크게 놀란다.
  • 원피스/870화 . . . . 2회 일치
          * 선원들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지만 당장 벳지가 죽어가는 판국. 루피가 자기들 몫까지 벳지가 공격 받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벳지가 고통 속에서 간신히 입을 연다. 그는 자기 쪽 결과는 이 지경인데 밀집모자 일당만 대성공을 거뒀다며 씁쓸하게 말한다. 브룩이나 [[시저 클라운]]은 그가 행여 길동무 삼는 짓을 하지 않나 떨지만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패거리의 안전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여기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도 걸려있었다.
          * 이윽고 저지는 돌아서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다시는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이스트 블루"의 발라티에도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로써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됐다. 레이쥬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었는지 작게 미소짓는다. 그러는 동안 탈출방법에 대한 논쟁은 답도 없이 치열해졌다. 무조건 성공확률 0%라고 주장하는 시저, 어차피 이대로도 죽는다는 벳지의 의견이 평행선이었다.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저지. 그는 제르마가 호위가 될 테니 작전을 실행하자고 한다. 시저는 왜 너희 맘대로 하냐고 반발하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벳지는 듣고 보니 제르마도 하늘을 날 수 있었다며, 다만 그럴 경우 제르마를 두고 가게 될 텐데 괜찮겠냐고 반문한다.
  • 원피스/874화 . . . . 2회 일치
          * 나미의 기지로 대폭 시간을 번 덕에 발이 묶인 빅맘이 저만치 멀어진다. 이대로 탈출 성공?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빅맘에겐 아직도 카드가 있었다. 일행을 따라올 수는 없었지만 유혹의 숲의 진짜 보스는 빅맘이 아닌가?
          * 탱크모드로 변형해 도주하던 벳지의 파이어 탱크 해적단도 추격대에게 따라잡혔다. "타르트 탱크"였다. 정말로 파이 같이 생긴 전차들이 포격을 가하며 벳지의 꽁무니를 따라왔다. 하지만 벳지는 곧 해안가가 나올 테니 탈출은 성공할 거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도 마법의 양탄자에 탄 [[샬롯 푸딩]]이 갑자기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벳지는 설사 "아가씨", [[샬롯 시폰]]의 여동생이라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며 총을 들이댄다. 푸딩은 거기에 대해선 상대도 않고 "시폰 언니를 만나게 해달라, 당장 꺼내라"고 청했다.
  • 원피스/875화 . . . . 2회 일치
          * 쵸파와 브룩은 써니호에 도달하는건 성공했으나 매복하던 [[샬롯 페로스페로]]와 [[샬롯 카타쿠리]]와 마주쳐 진퇴양난.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빅맘은 미쳐있는 중에도 제우스가 없는게 불편해 죽겠는지 제우스에게 돌아오라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하지만 나미의 구름 맛에 홀린 제우스는 눈치만 보지 결코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보다못한 "프로메테우스"가 쫓아와서 왜 마마의 명령을 거역하냐고 제우스를 다그쳤다. 그럴 수록 나미는 더욱 맛있는, "쥬시한 먹구름"으로 제우스의 환심을 샀다. 결과는 대성공. 역시 제우스는 빅맘의 부하가 맞았고 식탐에 눈이 머는 것도 똑같았다.
  • 윤태진(아나운서) . . . . 2회 일치
         [[2010년]] [[남원춘향제#s-2.3|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서 선이 된 뒤 진([[효영]])과 함께 [[아침마당]]에 출연했었는데 [[이금희(방송인)|이금희]]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고. '아나운서는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단다. 계약직이긴 해도 단 5개월만에 공채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당시 부모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서 무용을 포기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있던 차에 이금희에게 권유를 받으며 방송이라는 새로운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붙으니까 좋아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계속 무용을 할 걸하는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안 경제 상황의 변화가 없었다면 계속 무용을 하고 성공해서 나중에 교수까지 되는 걸 목표로 노력했을 거라고.]
          * KBS joy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 재연 배우로 6회, 11회 2번 참여했다. 6회에서는 권태기인 남자친구를 잡기 위해 다이어트와 성형을 감행하고 남자친구를 사로잡는데 성공했으나 자신이 권태기에 빠진 미녀의 모습으로 나왔으며, 11회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차였다가 남자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매달리자 다시 만날까 고민하는 학교 선생님 역할로 나왔다.
  • 은지원 . . . . 2회 일치
         2014년 8월, 타이거JK가 주축이 된 '더 크레이지 코리아 힙합콘서트'에 은지원이 함께 공연하였다. 2011년 미스터 타이푼, 길미와 '클로버'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한 바 있다. 젝스키스의 해체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면서 그럭저럭 성공가도를 걷게 된 멤버.
         '''[[김종민]]과 더불어 성공한 가수 출신 예능인이자 자타공인 예능의 귀공자'''
  • 은혼/581화 . . . . 2회 일치
         attachment:반격성공.png
         * 이후 카무이는 매일 같이 나타나 호우센에게 덤비고 반죽임당하길 반복한다. 어느날인가 드디어 호우센에게 한 번 반격하는데 성공한다
  • 은혼/629화 . . . . 2회 일치
          * 같은 시각 해방군도 통신을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분석 결과로는 나노머신 병기는 정말로 모든 기계를 파괴하는게 아니라 중추 시스템을 장악해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 따라서 장악된 시스템을 우회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서 통신을 복구할 수 있었다. 부하들이 기쁘게 이 사실을 보고하지만 원상 황자는 전혀 만족한 모습이 아니다.
          * 사냥에 성공한 야토족은 사냥감을 자기들 두목에게 내보이고 있다. 원상 황자는 야토 용병부대의 수장을 "손노사"라는 칭호로 부른다. 손노사가 통신으로 겐가이의 포획을 알리자 다키니와 신라, 3대 용병부족을 전부 모았는데 결국 살아남은게 야토 뿐이라며 씁쓸해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 남자. 겐가이 영감이다.
  • 이경영(1960) . . . . 2회 일치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영창]]은 이경영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영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영 신상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10년 만에 주인공에서 악당으로 이미지 변신 성공--
  • 이광수(배우) . . . . 2회 일치
         그렇다고 코믹 연기를 아예 버린 건 아니고 특유의 예능 캐릭터를 업그레이드한 연기로 [[탐정: 리턴즈]]에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하면서 이광수 덕이라는 평가를 받는 등 여태까지의 이광수 주연 영화 중 가장 성공작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http://cafe.daum.net/dotax/Elgq/1412001?q=%C7%CF%C0%CC%C5%B1+%BC%BA%B0%F8|하이킥 시리즈 출연진 중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 중 한 명이다.]]
  • 이문식(배우)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본디 [[대학로(서울)|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연극 배우였다. 대학 졸업 후 극단 '한양 레퍼토리'를 통해 전문 연극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유해진]]과 같이 대한민국 조연배우의 양대산맥이며 주로 조연 위주로 활약을 하는 배우이다. 영화계 대표적 [[단신]]배우로 찌질하거나 소심한 개그캐릭터에서 악랄한 악당역할도 잘 소화하다보니 그가 조연으로 출연하는 작품들은 전부다 성공하는데[* 다만 유해진처럼 메가히트하거나 화제가 된 작품은 없다. 유해진보다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이유.] 그것 때문에 주연을 시켜보면 어떨까 해서 주연을 시켜봤다. 그게 '''[[플라이, 대디, 플라이#s-3|플라이 대디]]'''와 [[형사 공필두]]라는 영화였는데 결과는 흥행 대실패.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이문식은 조연으로서나 어울리지 주연은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케이스로는 대표적으로 [[김수로]]가 있다. 또한 이문식의 경우 [[SNL 코리아]] 시즌 4 2화에서 이문식이 호스트로 나왔는데 이와 관련한 자학개그가 나왔다.]
         주연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조연으로 등장한 영화는 대부분 성공했다.
  • 이보희(배우) . . . . 2회 일치
         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전성기가 짧은 편.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뒤 88년 초반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러나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등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함께 8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소리를 들은 원미경이나 이미숙[* 단 이미숙은 결혼으로 1987년부터 1990년대까지 잠시 은퇴했다.]이 80년대 후반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3-40대 들어서도 주연 작품을 흥행시킨데 비해, 이보희는 잠정은퇴 뒤 복귀 후 주연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중장년 조연급으로 밀려났다.
  • 이연희(배우) . . . . 2회 일치
         2015년 설 연휴에 개봉한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서도 연기력은 지적받지 않았고 300만 이상의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명민과 오달수의 연기를 보기 위해 조선명탐정을 보러 갔기 때문에 이연희 덕분에 영화가 흥행한 것은 아니다. 다만 2013년 작인 [[결혼전야]]에 경우 주연 롤을 맡은 배우들이 단체로 나오는 옴니버스식 영화였던 것에 비해 조선명탐정 같은 경우 김명민, 오달수와 함께 메인 주역이였으므로 300만 이상의 흥행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동안 부진했던 연기력이 다시 돌아왔다는 의견이 많아졌을 정도였고, 고질적인 별명이었던 [[발연기]] 배우라는 오명도 점점 씻어내는 중이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981568|#]] 그리고, 두 주연의 활약 속에 [[더 패키지]] 시즌 2를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나왔을 정도로 윤소소 역은 사실상 성공적인 인생캐릭터라는 평도 나온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1319219|#]][[https://www.youtube.com/watch?v=DWnK-W_gtIE|#]]
  • 이재율 (1993년) . . . . 2회 일치
         [[2016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손시헌]]의 안타 후 대주자로 교체되면서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이 도루는 2016년의 팀 내 첫 도루였다.<ref>{{뉴스 인용 |저자= 권태영|제목= NC 구창모·박준영·이재율 성공적인 데뷔전|url=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76362 |뉴스= 경남신문|출판사= |위치= |날짜= 2016-04-02|확인날짜= 2016-04-09}}</ref>
  • 이재학 . . . . 2회 일치
         하지만 8월달에 4승 1패로 승수를 끌어올리더니, 이후에 9월 28일 마산 한화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2피안타 1사사구 '''10K''' 무실점의 호투를 펼치며 3년 연속 10승에 성공했다. 거기다 이 승리로 [[NC 다이노스]]는 최소 창단 첫 PO 직행을 확정지으며 NC의 토종 에이스임을 증명하였다.
         2018 시즌에는 확실한 투구폼 교정에 이어, 드디어 보여주기 식에 그쳤던 슬라이더를 서드 피치로써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폼의 안정화로 인해 BB/9가 예년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만큼 제구가 안정되기도 했고, 슬라이더의 구사율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 우타자 상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되면서 우타자 상대 약점을 극복한 모습.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2회 일치
          * 호크가 잔반 브레스를 발사해 프라우드린이 악취 때문에 방심하는데, 그 틈에 자라트라스가 접근에 성공한다.
          * 자라트라스가 끊는다던 목숨은 자기 자신의 것. 그는 "죽음의 정화"(데스퍼지)라는 기술로 프라우드린과 드레퓌스를 분리시키는데 성공한다.
  • 임채무 . . . . 2회 일치
         해병대 228기로 군 복무를 했으며, 진짜사나이 해병대편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황금어장]] 출연 당시, 본인의 해병대 생활에 대해 스스로 방송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똥군기가 심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선임한테 그렇게 많이 맞았다고 하는데, 하루는 가장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선임이 휴가를 가게 되자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밤 해병대 전통대로 본인이 선임 군복을 빨고 각잡는 다림질을 할때, 일부러 군복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얇아지도록 미리 준비한 돌로 몰래 그 부분을 열심히 갈았다고 한다. 다음날, 선임이 부대에서 나가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고향가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빡''' 소리와 함께 엉덩이 부분이 완전히 터졌고 결국 민간인들 많은 곳에서 --헉 빤쓰 다 보임--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ㅇㅋ 복수 성공!! [[PROFIT]]--, 분노에 가득차 씩씩대며 바지를 갈아입기 위해 부대로 돌아온 선임한테 평소보다 더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어?-- 맞는 중에도 임채무 본인은 복수에 성공한 게 좋았다고..
  • 장세용 . . . . 2회 일치
         하지만 ‘[[박정희]] 기념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 자체로는 인정한다”라고 발언하고 또한 전임 시장인 [[남유진]]이 '박정희 타운'을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붇고도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에 성공해서 당선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임 [[구미시]] 시장인 [[남유진]] 문서에는 남유진에 대해서 대부분 구미 시민들이 악평을 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엄연히 남유진은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과반 득표로 모두 당선'''된 인물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4~6회 지선 광역비례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표가 76.5%, 48.7%, 71.5%로, 이 표가 남유진 전 시장표(75.9%, 53.1%, 52.6%)로 이어졌다.(단, 6회는 새누리당 표가 분열되었다.) 그래서 3선.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50.4%로 하락했고, 2018년 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41.3%로 더불어민주당 43.3%에 졌고, 이에따라 시장직도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주게 되었다. 만약, 1:1로 대결하였더라면 기초의회 비례득표를 기준으로 계산하였을 때, 진보vs보수 구도에서는 48.2%vs51.8%로 보수측이 승, 반자유한국당vs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구도였다면 57.5%vs47.5%로 반자유한국당측이 승리하였을 것이다. 바른미래당 지지층이 어느쪽을 선택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보(더불어민주당+정의당)가 48.2%로, 보수(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42.5%)보다 좀 더 유리했을 것이다.] 여전히 구미시에서 [[박정희]]의 존재감과 위치란 [[목포시]]에서의 [[김대중]] 이상의 위치이고 또한 '[[박정희]] 기념사업' 축소에 대한 보수파들의 반발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과연 '[[박정희]] 기념사업'들을 어디까지 축소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시장에 당선은 성공했으나 도지사, 국회의원 2명, 시의회의장 · 부의장 · 상임위원장 모두 자한당 소속으로 홀로 더민주당인 장시장으로 대립시 시정에 많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치단체장-기초의회의장 소속이 [[수성구|어디]]하고 대비된다.-- [[http://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307|야당 의원에게 포위된 장세용 구미시장 고민 깊어지나]]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459|구미시의회, 8대 원구성 한국당 일당체제로 완료]]
  • 장순왕후 . . . . 2회 일치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조선 예종|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이며,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절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 '''아버지''' : 영의정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領議政 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 1415~1487)
  • 전순옥 . . . . 2회 일치
         | 경력 =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
         * 2001 ~ 2002 : 성공회대학교 교수
  • 전인범 . . . . 2회 일치
         2004년 12월에는 [[:en:Multi-National Force – Iraq|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공정한 선거업무의 주역으로 외국군(미국, 영국, 호주, 루마니아)을 지휘·감독,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이 [[이라크 전쟁|이라크전]] 때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냈는데 다국적군사령부 참모 중에 한국군이 그 외에는 없어 처음에는 직속 부하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낀 그였다. 그래서 바쁘다는 외국군 장군들 대신 브리핑을 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자 노력해 점차 조직을 장악하였다고 밝혔다.<ref name="a"/> 그는 [[:en:United States Armed Forces|미군]]과 [[:en:British Armed Forces|영국군]], [[:en:Australian Defence Force|호주군]] 장교 10여 명을 지휘해 5400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이라크 유권자 1400만 명의 투표를 지원 및 감독하였으며, 3500t에 이르는 선거 관련 물자를 각 투표소에 공급하고 치안 유지를 지원하는 일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30323 이라크 총선지원 전인범 대령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 기여에 자부심”], 《서울신문》, 2005년 1월 31일</ref> 선거가 무사히 끝난 뒤 이라크 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대한민국 국군|한국 군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정부]]로부터 [[:en:Bronze Star Medal|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046950 노 대통령 전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 《연합뉴스》, 2005년 7월 11일</ref><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50706&parent_no=7&bbs_id=BBSMSTR_000000000004 이라크 총선 성공지원 공로, 전인범 육군 대령 美 동성무공훈장 받아], 《국방일보》, 2005년 7월 6일</ref>
         2016년 5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USSOCOM medal|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USSOCOM Medal)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4&ntt_writ_date=20160615 “전인범 장군, 미 특수전 발전에 혁혁한 공로”], 《국방일보》, 2016년 6월 15일</ref> 미 특수전 발전에 공로가 있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이 훈장은 1994년 제정된 이후 한국군이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미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의 특수전사령부를 지휘하는 3군 통합사령부로, 전 중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국 특전사령관 겸 연합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연합작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훈장 수여 증서를 통해 “연합특전사령관으로서 미 최정예 특수부대와 [[:en:United States Navy SEALs|네이비 실]](SEAL), 특수전 항공자산 등 1000여 명 이상의 미군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뛰어난 전문지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으로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615010007077 [단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최초 미군 통합특전사 훈장], 《아시아투데이》, 2016년 6월 15일</ref> 더불어 전 장군의 추진력과 창의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함께 장기 비전이 대한민국 방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 장군의 남다른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개인의 추진력은 대한민국과 한미연합사에 큰 기여가 됐다고 전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2회 일치
          * 밤새워 혈청을 만든 [[사카키 슈지]]가 본인 몸에 혈청을 주입해 결국 정신오염물질(레어메탈)을 해독해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잠잠한 것 같았지만 정신오염물질(레어메탈)이 잠복하고 있던 사카키의 팔에서 뛰쳐나온다. 분출된 레어 메탈은 마치 블랙팬텀의 망령 같은 모습으로 괴로워하다 흩어져 버린다. 혈청은 성공. 사카키는 기뻐하며 "블랙 팬텀에 의한 정신오염물질 해독 혈청"을 줄여서 STAP라 명명한다.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사실 진짜 의미는 "스팟하고 해결"에서 따온 것. 그 밖에도 "사카키"나 "사이코", "안티도핑"같은 이름도 제시했지만 모두 구리다가 거절. 그냥 "혈청"으로 끝난다.
  • 정용화 . . . . 2회 일치
         * [[2011년]] [[10월 19일]]에 2년여 시간의 인디즈 생활을 마감하고 《[[In My Head]]》로 메이저 데뷔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워너 뮤직 재팬과 계약 체결…日 메이저 사냥 나선다|url =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출판사 = 티브이데일리|날짜 = [[2011년]] [[9월 1일]]|확인날짜 = 2012년 8월 19일|보존url = https://archive.today/20120720005549/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보존날짜 = 2012년 7월 20일|깨진링크 = 예}}</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10월19일 'In my head' 발매 日정식데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90609394071723&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 |날짜 = [[2011년]] [[9월 6일]]}}</ref>《[[In My Head]]》의 타이틀 "In My Head" 를 작곡 하였고 "Mr.K.I.A(Know It All)" 작사 및 작곡, "In My Head(Inst.)"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첫 날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3위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메이저 데뷔곡 '인 마이 헤드' 오리콘 3위 '쾌거'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1020094523113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1년]] [[10월 20일]]}}</ref> 메이저 음반 발매 기념으로 한 이벤트에 1만4000여명이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이벤트 1만4000명 동원 ‘日 메이저 데뷔 성공적’|url= 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출판사= 스포츠동아|날짜= [[2011년]] [[10월 25일]]}}{{깨진 링크|url=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 }}</ref>
         * 성공적인 4번째 미니앨범 활동을 마무리하고<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활동 마무리 "미련없이 잘 놀았다"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302/sp2013022507005295510.htm |출판사 = 스포츠한국 |날짜 = [[2013년]] [[2월 25일]] }}</ref> 한국밴드 최초로 월드투어를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
  • 정재학 (1856년) . . . . 2회 일치
         국내 경제학계의 대부로 꼽히는 고승제 박사는 정재학에 대하여 국내 은행업의 개척자로 규정하는 한편 이색인간이라 평가했다. 그는 '이색인간'에 대해 "어떠한 직업이던 불문하고 개인으로서 노력하고 고생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싶다"며 "양반출신의 부호와 버금가는 재력을 쌓은 정재학은 하층인 소인층 출신으로서 스스로 재산을 모으고 스스로 면학을 거듭하면서 끈질긴 신분의 제약이란 장벽을 뚫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72</ref>
  • 차선우 . . . . 2회 일치
         ||<:> 드라마 ||<:> [[tvN]] ||<:> [[응답하라 1994]] ||<:> 빙그레 (김동준) 역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뜰 연예인은 뜬다]]''' [* '빙그레' 역할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연기도전치고는 나쁘지 않은 평이였고, 다만 극중 충청도 사투리는 어색하다는 평이 있다. 또한 아무리 봐도 호평을 주긴 힘들었고 여러 명장면일 수 있던 장면들이 있었으나 잘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 또한 강하다. ~~그래서인지 극중 후반부로 갈수록 사투리 없이 표준어를 쓰며 연기를 하였다.~~ 바로의 말로 중반부터는 빙그레의 고향인 충북 괴산면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연기를 했다고 한다. 드라마도 상당한 수작이였으니 귀중한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응답하라 1994]] 항목 참조.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B1A4의 대중성을 높였다. 하지만 광고는 못찍었다. 대신 응사 덕을 톡톡히 봐서 정규 2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여담이지만 B1A4 멤버들이 자신의 연기를 신경 써주기보다는 남편 찾기에 혈안이 되있어서 씁쓸하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
  • 창작:IDF . . . . 2회 일치
         장비 채용 측면에서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며, 서방 국가 장비 가운데 성공적인 운용 기록이 있고 신뢰성이 높은 장비를 위주로 채용하고 있다. 다만 특수작전 부대는 예외이며, 특수작전에 필요한 최신 특수장비를 도입하는 사례가 많다.
         소국에서는 자국이 타국의 침략을 받아 점령 등을 당했을 때의 대비책으로 IDF에 가맹하고 있으며, 군사정권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성공한 몇몇 정부에서는 기존에 독재 정권과 협력하거나 군정을 하던 군부에 대한 경계 의식이 강한 탓에 IDF에 가맹하는 경우도 있다. 내전을 겪었던 나라나, 침략을 받았던 나라에서도 치안유지 병력확보나 보다 나은 안전 보장을 위하여 가맹하는 경우가 많다.
  • 채현국 . . . . 2회 일치
         그룹으로서 성장을 시켜 사업가로 크게 성공을 하게 된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뒤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자금을 지원했다. 1988년부터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뒤에서 돌보고 있다. <ref>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557825 ‘꼰대’ 거부하는 채현국·신영복·호세 무히카 이런 ‘단호박 할배’들은 처음이다</ref>
  • 최민호(유도선수) . . . . 2회 일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영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순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최석기 . . . . 2회 일치
         최석기는 블로킹을 성공시키면 처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세레모니를 펼쳤다. 이날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와 [[수원]] 홈경기에서 최석기가 [[로베르틀란디 시몬]] 한테 블로킹을 무려 8개나 잡아내며 시몬 킬러로 등극했다. 득점을 올릴 때마다 자진방아타령이 울려퍼진다. 여기다 그가 세레모니하는 장면은 [[KBS N sports]]의 배구 프로그램 [[스페셜 V]]에서 선정한 주간 베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에 공격 성공후 자신이 개발한 세레모니를 펼치면서 팬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 최정원(남자배우) . . . . 2회 일치
         1999년 고3 시절 남성 5인조 그룹 브론즈의 리드보컬로 데뷔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1년 후인 2000년 [[김정훈(UN)|김정훈]]과 UN이라는 그룹으로 다시 데뷔하게 된다. --결국 성공하여-- 총 6장의 앨범을 냈으며, 해체 이후 2008년에 'Sunshine On Summer Time' 싱글을 냈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2회 일치
         오스만에 대한 반격도 한편으론 시행되었는데, [[헝가리]] 위주로 시행된 세번의 [[십자군]]이 그것이다. 특히 1444년에 마지막 십자군에서 십자군은 카라만의 족장인 이브라힘 베이가 반란을 일으킨 틈을 타, [[모레아 전제국]][* 현재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친왕 콘스탄티노스[* 후의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연합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체사리니 추기경의 무리한 휴전협정 파기덕에 멋대로 나아갔던 헝가리-폴란드 연합군[* 당시 헝가리와 폴란드는 [[동군연합]]이었다.]은 패배. 왕이었던 울라슬로도 전사하면서 참혹하게 끝난다. 홀로남은 콘스탄티노스는 외로이 튀르크의 공세를 [[헥사밀리온]] 장벽에서 막았으나 결국 헥사밀리온은 무너지고, 친왕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오히려 국가적인 지원보단 개인적인 지원이 더 줄을 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카스티야의 귀족인 톨레도의 돈 프란시스코[* 자신을 콤네소스 황가의 자손이라 칭하며 황제를 사촌이라 칭하기도 했다. 사실 이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콤네노스가 아닌 팔레올로고스 왕조였고, 오히려 [[트레비존드 제국]]이 콤네노스 왕조의 후손이다. 팔레올로고스 왕조도 콤네노스 왕조와 인척관계이긴 하지만.]와 제노바의 군인 주스티니아니 롱고였는데, 특히 주스티니아니는 공성전전문가로 상당히 이름난 군인이었기에 황제가 직접 방어를 성공해낸다면 림노스 섬의 통치권을 나눠준다고 하기도 했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2회 일치
         죽음의 감각은 플레이어의 체력이 없어 최후의 한발로 죽을 상황일 때 강제적으로 발동된다. 죽음의 감각이 발동 되면 시간이 느려지는 동시에 몸을 좌우로 움직여 총알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총알을 피하는데 성공하면 모든 체력이 회복된다.
         총을 뽑는데 성공했다면 상대를 쏘아 승리하는 일이 남았다. 이때, 몸을 좌우로 움직여 상대의 총알을 피할 수 있다. 상대는 피하는 일이 없으므로 안심하자.
  • 킹덤/497화 . . . . 2회 일치
          * 진왕 정은 친히 이 자리에 나타나 독려하며 "이 작전에 성공해 장군으로 승격할 것"을 당부한다.
          * 이신은 성공을 호언장담하며 기세를 올리는데 하료초는 이 작전의 총대장을 맡을 장군이 누구냐고 묻는다.
  • 토리코/393화 . . . . 2회 일치
          * 그 혼신의 연구가 설득력을 얻은 것인지 페어는 드디어 "정말로 동포들을 구할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아카시아는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고 성공만 한다면 모두를 구하는데다 "푸른 식재" 또한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페어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블루 니트로에게 "울음"이란 문화가 없었기 때문인지 그것을 "눈에서 군침이 흘러나온다"고 표현한다. 아카시아는 그것은 "눈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준다.
          * 지로의 기술과 용기를 전수받은 텟페이는 지구 노킹에 성공, 지구의 붕괴를 막는다. 완전히 끝이라고 생각했던 토리코는 어찌된 일인지 어리둥절해하지만 아카시아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은 한 사람 뿐이라며 지로가 돌아왔음을 짐작한다. 미도라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인 듯 하다.
  • 토리코/396화 . . . . 2회 일치
          * 토리코와 린의 결혼으로부터 수년이 지났다. 오오타케는 꿈에 그리던 "과자의 성"을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GOD를 먹을 수 있는 고아원"으로 부활. 오랜 꿈을 이룬다. 코마츠는 이곳에 방문해 오오타케에게 축하를 건넨다. 모든 것은 IGO와 재생가들이 노력해준 덕에 GOD의 양식과 품종개량이 가능해진 덕이었다. 아동보호 목적으로도 인기가 높지만 다른 목적으로 입원을 희망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GOD를 먹을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인 듯. 코마츠는 이 고아원 출신자들이 사회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 토리코는 괴물이 태양을 집어삼킨다는 동화의 내용을 언급하며 그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구루메 천문연구팀이 연구해본 결과 구르메 빅뱅 직후의 에너지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분석해 보니 놀라운 영상이 드러난다. 직경 10광년짜리 "은하"를 밥상처럼 놓고 둘러앉아 있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 토탈워: 쇼군 2 . . . . 2회 일치
         전투는 어느 한편의 모든 부대가 전투가 불가능해지면 끝난다. 전투가 벌어지고나서 한 시간이 지나도 전투가 끝나는데 이 경우는 방어측이 공격측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으로 취급해 방어측이 승리한다.
         성을 성공적으로 점령한다면 평화롭게 점령할 것인지, 약탈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약탈할 경우 그냥 점령하는 것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해당 지방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고 민심이 악화되며 다이묘의 명예가 추락한다. 본래 그 지방을 본거지로 했던 가문이 멸망한 상태라면 다시 재건시켜 봉신으로 삼을 수도 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2회 일치
          * 여흥: 게이샤의 행동 스킬 성공률 +5%
         >쇼군은 더 이상 존경이나 충성을 받지 못합니다. 우린 덴노 중심의 왕정복고를 성공시켜야만 합니다. 덴노는 현 상황을 좀 더 개선하고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영국과 화해했습니다.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필 것이고 알지 못했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쇼군을 무너뜨리고 일본에 대한 명예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덴노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2회 일치
          길다트의 설명을 들은 카나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다. 카나는 방금 전에 길다트가 "길동무" 운운했던 걸로 성을 내며 카드를 날린다. 잠시 무방비 상태였던 오거스트를 맞추는데 성공하지만 큰 타격은 주지 못한다. 그런데 카드 중 하나가 길다트의 왼쪽 어깨에 꽂힌다. "LOVE"라고 적혀진 카드. 이 카드는 공격용이 아니다.
          * 카드에 부여된 홀더 마법이 의수로 전이, 길다트는 의수로 "파사현정 절천"을 시전, 오거스트에게 최초로 유효타를 꽂는데 성공한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2회 일치
          문에서 나온 여성은 루시와 레이라의 먼 선조 [[안나 하트필리아]]. 그녀는 레이라에게 지금의 연도를 확인한다. 지금이 400년 뒤라는 걸 알고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자신과 함께 와야 했던 다섯 명의 멸룡마도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안나가 당황하며 자신과 함께 다섯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냐고 묻는데, 레이라 대신 토마가 대답한다. 아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열자마자 다섯 개의 빛이 천장을 뚫고 밖으로 날아갔다고. 토마가 천장에 남은 흔적을 보여주자 안나는 할 말을 잊는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다시 복도로 나와서 일행에게 작전개요를 전달한다. 크리스티나호는 시간의 틈새를 우회한 뒤 그 앞에서 아크놀로기아를 기다린다. 아크놀로기아는 시간의 틈새가 있는 줄 모르므로 그대로 직진, 자기도 모르개 틈새에 접촉한다. 그러면 소멸. 바보같이 간단한 작전이다. 엘자는 정말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웬디와 제랄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하지만 안나는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2회 일치
          * 안나의 작전대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접촉시키는데 성공하나, 어찌된 일인지 아크놀로기아는 그 틈으로 삼켜지지 않았다.
          * 작전을 모르는 아크놀로기아는 그대로 전진, 시간의 틈새가 있는 좌표에 접촉한다. 강렬한 빛이 흑룡을 삼키는 걸 본 일행은 이걸로 작전은 성공했다고 확신하는데.
  • 페어리 테일/541화 . . . . 2회 일치
          * 페어리 테일을 중심으로 각 마법사 길드의 마법사들이 역할을 분담해 작전 성공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 이제 시간이 없다. [[카나 알베로나]]가 루시가 말한 방법에 대해 묻는다. 루시는 먼저 몇 명이서 할지온 항구로 가서 큰 배를 준비해달라고 한다. 그건 멸룡마도사 공통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탈 것에 약하다", 그 멀미 체질을 이용하는 거다. 하지만 [[엔젤(페어리 테일)|엔젤]]은 실효성을 의심한다. 기껏 성공한들 잠깐 주춤하게 하는 정도 아니겠는가?
  • 페어리 테일/543화 . . . . 2회 일치
          * 그레이와 리온이 힘을 합친 범선 조형은 대성공했다. 알바레스 제국이 끌고온 함선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얼음의 배가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리온은 이것이 자기의 최대 걸작이라 자신했다. 그레이가 엘자와 미라젠에게 준비가 끝났다 신호한다.
          엘자는 마룡의 머리 위에서 자신이 소유한 모든 무장을 개방한다. 한도 없이 쏟아지는 검에 떠밀려 아크놀로기아가 균형을 잃는다. 마룡이 추락하는 위치에 쥬비아가 정확하게 배를 가져다 댄다. 그대로 배 위로 떨어지는 마룡. 작전의 1단계 성공. 예상대로 아무리 마룡이라도 배에 올라갔을 땐 멀미를 일으켰다. 지금이 기회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2회 일치
         3일에 한번 등장하는 하이스트. 안전가옥을 습격한 경찰들이 안전가옥 어딘가에 쌓아둔 돈더미를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하이스트이다. 경찰들이 일정량 이상 현금 가방을 가져가면 실패. 일정량의 수준은 선택한 난이도 마다 달라진다. 반면 현금을 뺏기지 않고 경찰의 어썰트를 세번 막아내면 성공한다.
         성공할 때 마다 안전가옥 업그레이드 및 부품 구매, 봇 강화에 쓸 수 있는 컨티넨탈 코인 6개가 주어진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2회 일치
          C4가 폭발해 벽에 구멍을 내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 카운트다운 내에 탈출 구역까지 가야한다. 구멍으로 들어가 화장실, 사무실을 거쳐 계단으로 내려가자. 노말 난이도부터 사무실에 특수 경찰이 있으니 조심하자. 이후 지하실 통로를 통해 주차장까지 가는데 테이저나 불도저가 양 옆에 있는 문을 박차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후 주차장에 온 쓰레기차에 올라타면 하이스트 성공.
          맷에게 명령을 해 탈출 지역에 가게 한 후 플레이어들도 탈출 지역에 간다. 하이스트 성공.
  • 풍운 . . . . 2회 일치
         두 주인공, 보경운과 섭풍, 그리고 웅패와의 대립이 주된 줄거리. 였다가 중간에 중원 정복을 노리는 동영 무사들이 끼어들면서 동영과의 대결이 중심이 된다. 절무신, 천황 등을 쓰러뜨리고 동영세력은 궤멸된다. 그러나 섭풍은 마도(魔刀)를 익혔다가 그만 마인(魔人)이 되어버려서 마도에 빠진 섭풍 때문에 천하가 멸망할 위기가 오고, 이를 막기 위해서 보경운이 나서게 된다. 치열한 싸움 끝에 보경운은 섭풍의 마인 상태를 풀어주는데 성공하지만, 절벽에 떨어져서 실종되면서 마무리 된다.
         회공과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은 개가 아닌 인간이라는 자존감을 자각하게 되고, 회공에게 자질이 있다고 전수받은 검법을 기초로 하여 무공을 익혔으며, 어떤 방파를 습격하여 장문인을 쓰러뜨리고 지배하는데 성공하여 '독일문'의 장문인이 된다.--그렇게 간단히 장문인이 될 수 있냐-- 하지만 무공은 익혔지만 인성은 오히려 나빠져서 사람을 마구 죽이는 잔혹한 성품이 되었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이마에 개 구(狗)자를 새겨서 괴롭힌다.
  • 하이큐/212화 . . . . 2회 일치
          * 그러던 중 노야 선배의 리시브를 보고 중학시절의 경험과 합쳐 "스플릿 스탭"이란 새로운 스킬을 익히는데 성공한다.
          * 결과는 성공. 발이 멈추지 않고 움직이게 된다.
  • 하이큐/223화 . . . . 2회 일치
          * 다테의 공격이 성공, 점수차는 더욱 벌어진다.
          * "그럼 성공하세요."
  • 하이큐/225화 . . . . 2회 일치
          * 이번엔 타나카 류노스케가 공격에 성공. 기세가 오르며 팍팍 올려달라고 주문한다.
          * 공격이 성공한 후쿠타치는 아오네 타카노부와 갑빠를 부딪히다 그 튼튼함 때문에 데미지를 입는다.
  • 하이큐/227화 . . . . 2회 일치
          * 그런 것과는 달리 서브는 깔끔하게 성공. 서브권을 이어간다.
          * 카게야마는 공격 성공 이후 히나타가 의도적으로 코가네가와를 교란한게 아닌가 생각한다.
  • 하이큐/228화 . . . . 2회 일치
          * 키노시타는 니시노야에게 "오버로 받는게 약하면 언더로 받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는데, 니시노야도 그런 생각은 하지만 더 수준 높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이상 선택지가 늘어나는데 안 할 수가 없다고 답한다. 키노시타는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실패할 바엔 성공을 포기한다"는 소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서브 때문에 카라스노는 고전하고 있다고 자각한다. 키노시타는 "니시노야가 못 잡을 서브를 치겠다"는 각오로 다시 연습에 임한다.
          * 히나타가 하는 연습은 혼자하는 리시브 연습법인데 우선 높이 튕긴 공을 받아 위로 패스하고 공이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지면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면 여러 동작을 중첩해야 해서 만만치 않은 훈련. 당연히 나츠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지만 히나타는 능숙하게 반복한다. 여동생에게 자랑하는데 지나던 어머니는 "허무하지 않냐"고 딴죽을 걸어서 김을 빼버린다.
  • 하이큐/250화 . . . . 2회 일치
          아츠무는 퍼스트 터치와 동시에 그대로 새트업, 약속이라 한 것 처럼 [[오지로 아란]]이 총알같은 스파이크로 점수를 벌어간다. 카게야마가 블록을 뛰어 보지만 무리. 그외 카라스노의 다른 선수들은 반응하지도 못했다. 오지로는 성공해 놓고도 아츠무에게 "놀라게 한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응원단은 선수들 이상으로 기세가 오른다. 중계석은 이나리자키에 칭찬 일색.
          * 경기를 보러왔던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 보쿠토 쪽은 "아란 제법이다" 정도의 짧고 단순한 반응. 아카아시는 사뭇 냉정하게 분석을 내린다. 방금 퍼포먼스는 쇼맨쉽만은 아니다. 시작부터 이런 공격을 성공시켜서 "우린 첫경기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여유롭다"는 걸 과시하는 것이다. 지금은 바깥에 있는 입장이라 이렇게 냉정하게 분석하는 거지만, 코트에서 마주치면 싫을 거라고 생각한다.
  • 하이큐/253화 . . . . 2회 일치
          * 그것은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의 "괴짜속공"을 완벽하게 흉내낸 "기습". 깨끗하게 성공시켜 괴짜콤비를 도발한다.
          생각이 복잡한건 코트 바깥의 세터도 그랬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아카아시 케이지]]가 그랬다. 옆의 [[보쿠토 코타로]]는 완전히 히나타한테 올리는 건 줄 알았다며 카게야마를 칭찬하지만, 아카아시는 차라리 소름이 돋았다. 단순한 미끼를 던져 봐야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방금 전 세트업은 퍼스트 터치가 코트 중앙으로 올라가서 각도상으로 보면 완전히 히나타한테 가는 흐름이었다. 그걸 교묘하게 라이트로 보낸게 성공의 이유. 이는 카게야마가 시야가 넓기만 한게 아니라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까지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은 요소는...
  • 하이큐/255화 . . . . 2회 일치
          * 카게야마가 다시금 괴짜속공을 시도하고 이번에도 리드 블록 당하지만, 히나타가 높은 집중력으로 블록을 비집고 공격을 성공시킨다.
          * [[카라스노 고교]]의 간판이자 필살기라 할 만한 괴짜 속공.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아츠무]]는 즉흥적으로 그 기술을 카피해서 [[미야 오사무]]와 성공시킨다. 거기에 반격하러 온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원조. 이또한 아츠무의 천부적인 센스로 철통같이 리드 블록, 철저하게 봉쇄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스코어는 13 대 10으로 이나리자키의 3점 리드.
  • 하이큐/260화 . . . . 2회 일치
          * 야마구치의 서브가 성공해 [[카라스노 고교]]가 23 대 22로 처음으로 역전. 그러나 [[이나리자키 고교]]의 역습이 무섭다.
          * 지금 플레이가 봄고 참가 이래 최고의 서브다. 야마구치의 폼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공이 깨끗한 반원을 그리며 [[마지로 알렝]]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리시브 실패. 바로 옆을 스쳐가는 공에 손을 뻗어보지만 닿는게 어설펐다. 빗맞은 공이 그대로 코트에 닿는다. 야마구치의 서브 에이스. 카라스노 득점 성공. 22 대 23. 경기 시작 후 최초의 역전. 더불어 끈질기게 이어졌던 추격전이 뒤집혔다. 동료들의 환호. 지금은 카라스노냐 이나리자키냐를 놓고 티격태격했던 바보 커플도 대동단결해서 환호한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투토 코타로]]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 서브의 일등공신이었던 시마다는 적진 한가운데인 것도 잊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쏟아지는 눈총에 곧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 하이큐/267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깨닫는게 늦어 코즈메는 사루카와의 블록을 농락하며 득점을 성공. 사루카와 측은 어쩌면 네코마의 실책까지 함정일 가능성이 제시되며 동요한다.
          중계진의 평은 썩 정확한 것 같았다. 그러나 네콰는 악착같이 달려들었고 코즈메도 그랬다. 공은 중앙으로 떠오르고 코즈메의 세트업, 사루카와의 블록은 중앙에서 함께 뛴 쿠로오에게 집중됐다. 그러나 이번엔 쿠로오가 아니었다. 우측의 카이에게 날아가는 패스. 카이가 블록을 따돌리고 득점에 성공한다. 드디어 동점. 마침내 따라잡았다.
  • 하이큐/272화 . . . . 2회 일치
          * 비록 자신이 코트에 있는건 10초, 혹은 20초 남짓이겠지만 단 5초라도 이나리자키를 열받게 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각오로 스가와라의 1회차 서브. 역시 아슬아슬한 코스로 오지로를 노렸다. 네트에 가깝게 떨어지는 공. 오지로가 달려와서 받는다.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리시브하는 오지로. 리시브는 성공했지만 일어서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공은 [[미야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미야 오사무]]에게 세트업. 우측의 스파이크를 히나타가 블록. 손에 받고 뒤로 튕겨나온 공을 스가와라가 잡아낸다. 공은 산 채로 카라스노 진영으로. [[아즈마네 아사히]]가 이어서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돌린다. 카게야마는 우측 네트 앞에서 공을 받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오지로 쪽으로 밀어넣는다. 오지로는 이것도 받아내긴 했지만 역시 성가셔하는 느낌. 공은 이나리자키 좌측에서 높이 뜬다. 오지로가 신경질적으로 "레프트"라고 외치자 아츠무가 허겁지겁 달려오는데, 세트업이 조금 낮다. 그대로 오지로 뛰어올라 스파이크, 하지만 낮은 만큼 블록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손에 맞은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서 아웃. 오지로나 아츠무에겐 가슴이 철렁한 플레이였다. 스코어는 20 대 9. 스가와라와 츠키시마가 다시 교대한다.
          * 모두가 깜짝 놀란 가운데, 히나타만은 조금 다르게 놀랬다. 서브 보다는 지금 카게야마의 상태. "카게야마 온화 모드" 발동이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히나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카게야마는 문자 그대로 온화한 상태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눈을 안 감는 속공에 성공했을 때, 츠키시마가 타점을 올렸을 때가 지금과 같은 온화 모드였다. 설명할게 많지만 히나타의 열등한 어휘력 때문인지 매우 애매한 설명이 되고 말았다.
  • 하춘화 . . . . 2회 일치
         하춘화의 재능을 알아본 하춘화의 아버지는 그녀를 서울 동아예술학원에 다니게 했고 거기서 8개월 동안 노래를 배우게 한 뒤 가수로 데뷔시켰다. 이후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를 발표해 크게 성공하면서 하춘화의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음반은 [[1971년]]에 처음으로 냈는데 이 음반의 노래인 '물새 한마리'가 히트하면서 꽤 많이 팔렸고 [[1971년]] 고봉산과 '잘했군 잘했어'를 듀엣으로 불러서 이걸로 TBC에서 4년 연속 여자가수상을 수상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배 가수였던 [[이미자]], [[패티김]], [[김상희]], 문주란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정상급 여가수로 성장했다.
         하춘화는 성격이 굉장히 [[대인배]]였는데, 보통 어린 나이에 이 정도로 성공하면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았지만 하춘화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못 생겼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소외받고 있던 당시 무명 [[코미디언]]이었던 [[이주일]]을 보더니 자신의 공연에 '''"이 사람이 아니면 내 공연의 사회자를 시킬 수가 없다. 꼭 이주일 이어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이주일을 자신과 같이 일하게 했다. 훗날 이주일은 이런 하춘화를 대단히 고마워하며 "길거리에 나앉을 수 밖에 없었던 내가 하춘화 덕분에 우리집을 샀다"고 말하며 하춘화를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며 존경했다.
  • 한교원 . . . . 2회 일치
         2013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4년 1월 5일, K리그 최고의 윙덕후로 불리는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군대에 입대한 서상민의 뒤를 이어 7번을 달면서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인천 팬들은 전년도 [[정인환]]+[[정혁]]+[[이규로]] 세트 이적에 이어서 이번에는 [[김남일]]과 한교원을 동시에 전북에 넘겨 허탈한 감정을 갖기도 했다. 1년 후에는 [[문상윤]]마저 전북으로 넘어갔지만, 그 뒤에는 전북으로 이적하는 인천 선수가 많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김인성]], [[박세직(축구선수)|박세직]] 등이 반대로 인천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이승기(축구선수)|이승기]]의 어시스트를 받고 선제골을 집어넣으며 11골 3어시로 2014 시즌을 마쳤다. 이동국 다음으로 팀에서 가장 많이 골을 기록하며 매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을 인정받아 '''2014 K리그 베스트11 오른쪽 미드필더 부문을 수상'''하였다.
  • 한확 . . . . 2회 일치
         [[1453년]](단종 원년)에 [[계유정난]]이 성공하면서 [[정난공신]]으로 책록된 뒤 [[우의정|우의정부사]]로 발탁되어 서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이어 [[계유정난]] 당시 [[명나라]]에서 외교적인 문제를 제기할 때 [[명나라]] 사신을 설득하여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정치적 입지를 탄탄히 하였다. [[계유정난]]의 성공 이후 수양대군을 도와 그해 11월 좌찬성이 되었다가 다시 수충위사협찬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의정부 우의정 서원 부원군(西城府院君)에 봉작되었다.
  • 현아 . . . . 2회 일치
         이후 2009년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포미닛]]의 멤버로 합류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 1월에는 첫 솔로 싱글 〈[[Change (현아)|Change]]〉를 발매했고, 골반춤이라는 안무를 유행시키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했다. 이어 2011년 7월에는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차트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장현승]]과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해 2014년까지 활동하였다. 2012년 10월 두 번째 EP 음반 《[[MELTING]]》을 발매해 타이틀곡 〈Ice Cream〉으로 활동했고, 2014년 7월 세 번째 EP 음반 《[[A Talk]]》를 발매해 타이틀곡 〈빨개요〉로 활동했다. 2015년 8월 네 번째 EP 음반 《[[A+]]》을 발매했다. 2016년 그룹 [[포미닛]] 해체 후 8월 1일 다섯 번째 EP 음반 《[[A`wesome]]》을 발매했다. 2017년 5월 [[펜타곤 (음악 그룹)|펜타곤]] 멤버 후이, 이던과 함께 [[트리플 H (음악 그룹)|트리플 H]]로 활동 하였다. 8월 29일 여섯 번째 EP 음반 《[[Following]]》을 발매했다. 12월 4일 두 번째 싱글 앨범 《[[Lip & Hip]]》을 발매했다.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 홍양호 (1955년) . . . . 2회 일치
         *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
  • 황보관 . . . . 2회 일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에서 데뷔하여, 그 해 [[K리그 영플레이어상|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1994년]] [[8월 6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버팔로]]와의 경기에서 [[K리그 클래식|K리그]] 통산 7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 [[1995년]]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하여 [[1996년]] 팀의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는 등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였다. [[1998년]] 시즌 중 은퇴하였다.
         은퇴 후 그는 지도자보다는 구단 경영자, 행정가로 더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은퇴한 후,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주관하는 'C,B,A 코스' 및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였다. [[199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은 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1년]] [[오이타 트리니타]] 유스 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4년]] [[오이타 트리니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5년]] [[요한 베르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으로 승격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4120600017 황보관 J리그 오이타 감독 승격]</ref> 감독 취임 뒤,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열린 [[통영컵]]에 참가하여 데뷔전을 치러 우승을 차지하여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으나,<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5022700011 황보관의 오이타, 2005 통영컵 패권]</ref> 성적 부진으로 9개월 만에 해임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20&g_serial=167328 황보관 오이타 감독, 전격 해임 '성적 부진 탓']</ref>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육성부장을 거쳐, [[오이타 트리니타]] 부사장 및 이사에 올랐다. [[2008년]] 팀이 [[J리그 컵]]에서 우승하자, 우승컵을 갖고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또한 [[일본문리대학]] 축구부의 테크니컬 디렉터도 맡았다. 오이타가 [[2009년]] 경영난 속에 [[J리그 디비전 2|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이듬해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2부 리그에서도 15위에 그치자 사임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황보관, J2 오이타 사령탑에서 퇴임|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300164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0-11-30}} }}</ref>
  • Crusader Kings 2/DLC . . . . 1회 일치
         궁정의사를 고용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시 궁정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성공적인 치료를 받았을 경우에는 능력치와 체력 수치에 버프를 받아 생존 확률이 증가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역으로 페널티가 붙는다. 이놈들은 "실험적인 치료"로 몸 한구석을 잘라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실험적인 치료는 사실상 로또라는게 문제지만. 신비주의자 의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거나 자신을 제물로 바쳐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또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혀주는 건물인 병원을 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역병에 죽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을 위해 성문에 못질하고 가신들과 함께 [[히키코모리|히키짓]]하는 디시전도 생겼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1회 일치
          성공적인 폴란드 침공을 위해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폴란드 동쪽, 발트삼국, 핀란드를 소련에게 넘겨주는 "역사적인 합의" 선택지와 폴란드 분할만 동의하는 "폴란드 분할에만 동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이후 소련의 응답에 따라 이야기가 결정된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1회 일치
         후자의 경우가 조금 어려운데, 우선은 적절히 프랑스와 사이가 안좋으면서 잉글랜드의 부족한 육군을 보충해줄수 있는 나라가 필요하다. 아라곤, 오스트리아, 카스티야정도가 물망에 오르는데 문제는 얘들이 잉글랜드를 라이벌지정하는 경우가 있다는것(...) 스코틀랜드는 얼마 안가 프랑스와 동맹하면서 귀찮게 할 가능성이 높으니 초반에 공격해서 속국화 시키고, 이베리안 웨딩이 뜨길 기대하며(...)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랑 동맹하기전에 미리 오스트리아와 동맹해서 막는것도 좋다. 프랑스보다 프로빈수 수가 많고, 병력이 더많을경우에 왕위주장 미션이 뜨는데, 이것만 성공시키면 그때부터 두려울게 없다. 오스트리아고 스페인이고 다 날려버리자.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2013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승강 플레이오프가 3번 열렸지만 '''단 한번도 K리그 클래식 팀이 승자가 되어 잔류에 성공한 이력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팝콘을 뜯게 만드는 동인이 되며 챌린지 진출팀에게는 희망을, 클래식 진출팀에게는 절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 Victoria II/개혁 . . . . 1회 일치
         개혁을 계속 하다보면 서구화에 반대하는 반동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만약 이 반동주의자들이 수도를 점령해 반란을 성공시킨다면 몇몇 개혁이 취소된다.
  • 검은방 시리즈 . . . . 1회 일치
          전 시리즈에 개근한 주인공. 과거 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어린아이와 여승아 둘 중 하나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여승아를 구했다. 이 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여승아)과 함께 감금당하게 되지만 하무열의 도움과 자신의 추리력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 고다이고 덴노 . . . . 1회 일치
         여러 차례 음모를 저지른 끝에 한 때 폐위되었으나, 유배되었던 낙도에서 탈출하고 전국의 [[사무라이]]들을 선동하는데 성공하여 [[가마쿠라 막부]]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덴노가 직접 지배하는 [[겐무 신정]]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본인도 귀족들도 무능하였기 때문에 정치가 완전히 개판으로 돌아갔고 보다못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막부]]를 다시 열어서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되었고 본인은 다시 폐위된다. 하지만 또 탈출했으며 나라를 말아먹은 주제에 끝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일본 남조|남조]] 정권을 세워서 끈질기게 발악하며 국가를 혼란에 몰아넣었다.
  • 고아성 . . . . 1회 일치
         2015년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한 고아성은 성인 연기자로 변신에 성공했고,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등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7년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으로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고아성 “부당한 경험 있어...은호원에게 감정이입했죠” |url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70522010007552|출판사 =브릿지경제 |저자 =조은별|날짜 = 2017-05-24|확인날짜 =2017-09-07}}</ref>
  • 골든 위크 . . . . 1회 일치
         골든 위크라는 이름은 이 시기에 "자유학교"라는 영화를 개봉하고 흥행이 정월, 오봉 연휴 이상으로 대성공한 것을 기념하여, 다수의 관객 동원을 목적으로 영화사 다이에이(大映)가 1952년 무렵에 만든 선전 용어였다. 이 용어가 각계에 퍼지게 되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선전 용어라는 이유로 골든 위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 광해군 . . . . 1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순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순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상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영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영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영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영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영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 권해효 . . . . 1회 일치
          * 2002 [[명랑소녀 성공기]]
  • 길용우 . . . . 1회 일치
         2014년에는 [[사랑만 할래]]에서 [[최동준(사랑만 할래)|최동준]]을 연기하면서 [[악역]]으로 변신에 성공, 악의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작품인 [[딱 너같은 딸]]에서는 [[무능]]한 가장 역할로 다시 연기 변신을 하였다(...).
  • 김기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2015년부터는 Kisoo라는 예명으로 DJ로 활동하며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그러다가 화장을 좋아했기에 뷰티 유튜버에 도전해서 구독자 10만을 넘는 등 성공했다.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 영국의 수습변호사제도 -로스쿨 개혁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제안-, 人權과 正義 382號, 2008.06
  • 김대륙 . . . . 1회 일치
         5월 15일 올해 첫 안타를 신고했다! 큼지막한 타구였는데 본인도 얼떨떨했는지 우익수 키를 넘기는 1루타행(…) 이어 폭투가 나와 첫 도루까지 성공.
  • 김만수(정치인) . . . . 1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역시 경기도 부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부천 토박이 출신인 전 경기도의원 [[새누리당]]의 이재진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 김미경(강사) . . . . 1회 일치
         양장점을 하는 어머니와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부모에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음대를 나와서 광고 음악 등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으나 적성이 맞지 않아 월급을 타는게 미안했다고 한다. 후에 대출금을 받아 피아노 학원을 개설하여 운영하였고 여기서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29살 때부터 강연을 하고 싶어 강사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공부하는 생활을 7년 동안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보여준 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김민희(1972) . . . . 1회 일치
         이 인기를 모아서 [[캐럴]] 송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응답하라 1988/삽입곡|크리스마스 폴카]]가 BGM으로 나오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역]] 시절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게 되어서 그랬는지 성인 연기자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간간이 [[드라마]]에 [[조연]]으로나 출연하는 편이며, [[살림 9단의 만물상]] 같은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 푼수 스타일의 [[아줌마]]로도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2003년~2004년 MBC 사극 [[대장금]]에 내의녀 비선역으로 출연하였다. 장금이 의녀로 입궁했을때 내의녀로 들어왔지만, 8년후에 어의녀로 승진하였다.
  • 김부식 . . . . 1회 일치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이 피살됨으로써 그의 전횡은 끝났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궁궐의 소실 등을 이유로 서경파가 득세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승진하여 재추(宰樞)의 반열에 오르는 등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묘청]] 등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천도운동]]은 [[1129년]](인종 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인종도 자주 행차하였다. 서경파의 [[정지상]] 등은 묘청과 [[백수한]]이 성인이니 모든 정치를 그들에게 물어서 행하자고 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다. 조정 신료 가운데 오직 평장사 김부식, 참지정사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ref>《고려사》 권127, 열전40, 묘청전.</ref> 그러나 서경의 서기(瑞氣)를 조작한 일이 탄로나고, 행차 때의 악천후 등이 잇따름에 따라 김부식 등의 반대파 의견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부식 일파는 [[1134년]](인종 12년) 인종의 서경 행차를 막는 데 성공하였다.<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
  • 김성곤 (1913년) . . . . 1회 일치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년]]에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뒤 대두유 비축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이후 [[1948년]] 금성방직을 인수한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에 화재가 난다. 그 뒤 [[1952년]]에 [[동양통신]]을 창간하였으며, [[1953년]]에는 연합신문을 인수, [[1956년]]에는 태평방직, 아주방직을 인수하는 등 기업가로서 성공을 이어갔다.
  • 김성현 (1989년) . . . . 1회 일치
         2011년에는 넥센의 4선발로 낙점받았다. 4월 20일 기준으로 1점재 후반이라는 무시무시한 방어율 및 예전보다 현저히 줄어든 볼질로 성공적인 [[선발 투수]]로서의 모습을 보였지만 2패를 기록하였다.
  • 김승관 . . . . 1회 일치
         항상 [[이승엽]]을 따라다니다가 본인이 스스로 무덤을 파 버린 비운의 천재. 당시 고교 코치들 말에 따르면, 이승엽은 부드러운 스윙을 휘두르는 반면, 김승관은 뻗어나오는 거친 스윙이라서 절대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 김영환(1955) . . . . 1회 일치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 김윤동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 투구폼은 좋으나 특유의 새가슴기질을 고치치 않는 한 야구로 성공하기 힘들듯 한 예로 기아의 김희걸과 비슷한 유형임
  • 김지훈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1998년 단편영화 《온실》로 제2회 [[세계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되었으며, 제46회 [[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를 제작하였다.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는 [[전라도]] 사투리 연구에 많은 공을 들였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0227432 김지훈 감독 "대구출신이라 3년 간 전라도 사투리 연구"] 세계일보. 2007년 05월 17일</ref> [[2011년]] [[8월]] 개봉한 한국 최초 3D 블록버스터인 《[[7광구]]》를 제작하였다. <ref>{{뉴스 인용|제목 = 김지훈: 영화정보-씨네21|url =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person_info.php?id=6724|출판사 = 씨네21|확인날짜=2011-05-19}}</ref>
  • 김현철(교수) . . . . 1회 일치
         2015년 1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최고위 경제분석과정 강의에서 “수출 부진과 가계부채 증가로 한국 경제는 파국에 접어들고 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경제]]가 1990년대 중반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일본경제와 닮았다고 평가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소니가 삼성 때문에 쓰러졌다고 생각하지만 소니는 삼성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무너뜨린 것"[* 소니가 안 무너졌다는 반론은 있다. 오히려 반등에 성공했다는 지표도 있다. [[http://it.chosun.com/news/article.html?no=2819018|링크참조]] 그러나 맥락상 포인트는 소니가 무너졌다 안무너졌다의 단순 팩트 체크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법인세율 인상 정책 때문에 소니가 피해를 입었다는 맥락이다.]이라며,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을 망가뜨리게 되고 나아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형일(배우) . . . . 1회 일치
         울림이 깊은 중후한 ~~목욕탕~~목소리로 유명하다. 20대 시절에는 [[CBS 성우극회]] 15기 공채 성우로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때 동기가 [[최덕희]]다. 세일러 문, 리나를 비롯한 여주인공 전문 성우인 그 사람이다.], 에로 영화의 후시 녹음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한다. 목소리 탓인지 정극물에서는 주로 무게감 있고 듬직한 역할을 맡았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건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 역할을 맡으면서부터. [[태조 왕건]] 이전에는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에서 [[신마적]] 엄동욱 역할로 얼굴을 알렸고, 청춘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이병헌]]과 친구들이 단골인 카페 사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후 [[문화방송|MBC]] 개그 프로 <오늘은 좋은날>의 꼭지 [[큰 형님]]에 나와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시트콤 [[세 친구]]에서는 옆집에 이사온 신혼 부부로 아내([[노현희]])를 끔찍히 생각하다 못해 의처증 증세가 있는 [[개그 캐릭터]] 연기도 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김재규]] 역을 맡았는데, 목소리와 풍채를 제외하면 실제 인물과 매우 비슷했다.[* 김형일은 키가 180을 넘고, 목소리도 무겁다. 그러나 김재규는 키가 170도 안됐고,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도 김재규는 말이 빨랐다. 김재규와 김형일은 [[김녕 김씨]]로 본관이 같은데, 재미있는 건 김형일이 김재규보다 항렬이 한 항렬 위다.] KBS [[무인시대]]에선 [[최충헌]] ([[김갑수]])을 도와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하지만 욕심 때문에 [[최충헌]]에게 역관광을 당하는 찌질한 동생 [[최충수]] 역을 맡기도 했다.
  • 김효기 . . . . 1회 일치
         2010년 드래프트에서 울산 현대에 4순위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드래프트를 1년 미루었다.] 대학 시절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에도 불구, 좋은 집중력으로 골을 뽑아냈던 선수라 울산에서도 활약할 것을 기대받았는데, 데뷔 시즌은 주로 2군에서 시간을 보내며 1경기 교체 출장에 그쳤으며, 이후 2011년에도 역시 2군을 벗어나지 못하자 [[울산 현대미포조선]]의 [[조민국]] 감독이 [[김호곤]] 당시 울산 감독을 설득해 김효기를 6개월동안 미포조선에 임대시키는데 성공한다.
  • 나가 . . . . 1회 일치
         냉혈동물이란 한계로 인해 자신들이 한계선 이북으로 활동할 수 없는것에 상당히 거부감을 보이며, 이때문에 작중 시도떄도 없이 북쪽으로 확장하려는 야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야욕으로 인해 멸종된 생물이 흑사자. 작중에서 털을 보온용으로 쓰기 위해 멸종에 이르기까지 사냥했다고...] 결국 작중 시간대에서 상당히 지난 시점에서 [[전령자]]를 이용해서 반쯤은 성공한듯.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0화 . . . . 1회 일치
          * 폭발의 원인이고 파워 로더가 투덜댄 대상인 누군가가 연기속을 걸어나오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1화 . . . . 1회 일치
          * 바쿠고는 폭발을 손바닥 전체에서 한 점으로 모으는데 성공, 관통성을 높인 "철갑탄"(AP샷)을 개발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1회 일치
          * 학생들의 코스튬 개량&필살기 개발은 성공적으로 진행 중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1회 일치
          * 이후 우라라카가 잔해를 띄워서 치우면서 전진, 피해자를 구조하는데 성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1회 일치
          * 이것으로 잠시 시간을 버는데,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도 죽을 힘을 짜내 즉석 연계 공격에 성공, 갱 오르카를 저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1회 일치
          * 케미인줄 알았던 학생의 정체는 빌런연합의 토가 히미코. 자신의 변신개성을 이용해 미도리야의 혈액을 훔치는데 성공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성장한 만큼 자신도 성장했음을 자각하고 원 포 올을 8%까지 끌어올려 반격에 성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1회 일치
          그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맹렬 프리유어 10"의 완구를 권한다. 남자가 띠꺼워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자연스럽게 "저도 좋아한다"라며 "그런 취미"를 가진 척한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그가 이 완구를 누구에게 전할지 미래를 "예지"했다. 그가 권한 완구는 그대로 에리쨩에게 전해졌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1회 일치
          * 뭐든 먹는 타베도 "친구"는 먹을 수 없다는 점을 노리고 호죠를 방패로 돌진, 타베까지 쓰러뜨리는데 성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패트껌은 그 사이 랏파가 준 충격을 흡착해 응축, 지방을 태운 에너지까지 더해 하나의 "창"으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1회 일치
          * 키리시마가 지켜낸 [[패트껌]]. 그는 키리시마가 지켜준 덕에 성공적으로 "최강의 창"을 만들었다. 그는 왼팔로 쓰러지는 키리시마를 붙들고 에너지가 모인 오른팔을 내지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1회 일치
          에리의 회상을 통해서 단순히 에리가 한계에 달할 때도 분해오 수복을 거듭해왔음이 밝혀졌다. 원 포 올 20%의 미도리야를 상대로 여전히 우위를 점하나 생각보다 타격을 받고 밀리오처럼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상대와 싸우는데 질력이 나서 에리를 협박하는 걸로 전략을 바꾼다. 오랜 시간의 세뇌와 학대로 간단하게 성공. 에리가 "돌아갈 테니 모두를 되돌려달라"고 애원하게 만든다. 자신만만하게 미도리야에게 "에리는 너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선언하나 미도리야는 굴하지 않았고 그때마침 류큐 팀이 현장에 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1회 일치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상"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상태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상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반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1회 일치
          * 처음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깨달은 "에리". 에리의 도움으로 마침내 [[미도리야 이즈쿠]]는 에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접촉하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관통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인지할 틈도 없이 [[오버홀]] 치사키가 다시 한 번 흉수를 뻗쳐온다. 미도리야는 아직 공중이라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그 순간 [[토오가타 밀리오]]가 물었던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던 물음이 떠오르고 "반드시 이기고 반드시 구하는 히어로"라는 대답이 떠올랐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1회 일치
          * [[아스이 츠유]]는 만신창이의 아이자와를 부축하고 있었다. 아이자와가 때마침 정신을 찾는다. 아이자와는 곧바로 무효화 개성으로 에리의 폭주를 제압, 긴장의 끈이 끊어진 탓인지 미도리야와 함께 에리도 쓰러지고 만다. 이로써 시에핫사이카이 급습 작전은 완전히 종료. 피해자의 확인과 뒷수습으로 이행한다. 우선 본래 목표였던 에리의 구출은 무사히 완료.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무실에 있던 [[키리시마 에지로]], [[패트껌]]도 구조된다. 랏파도 이때 같이 있다가 어이없이 제압. 오버홀이 감추고 있던 두목도 발견된다. 미도리야는 먼저 정신을 수습해 에리를 구급반에게 넘기는데 마침 들것에 실려가던 [[서 나이트아이]]와 마주친다. 그는 호흡기를 단 와중에도 미도리야를 불러세우고 그가 자신이 예지한 것과 다른 미래를 만드는데 성공했음을 인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다비]]라는 빌런이 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전이 성공한 걸 안 다비가 뇌무를 회수해서 위기를 넘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의 작전이 성공해 바쿠고를 탈환한다.
  • 남유진 . . . . 1회 일치
         그렇게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구미시장 재선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구미에 암운이 드리웠다.''' 이 즈음부터 대기업들이 하나둘 씩 구미를 떠나기 시작했고,[* 2005년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파주 같은 과세율이 낮은 지역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기감은 인식했고, 그 당시 구미시장 김관용도 어느 정도 이 현상을 감지는 하고 있었다. 다만 두 시장 모두 제대로 대처하지는 못했다.] 2010~11년을 전후해서 구미 1공단이 급격히 몰락한데다 2012년 즈음에는 2, 3, 4공단도 완벽하게 터져버렸다. 구미시민들은 안 그래도 물가도 비싸고 생활 환경은 최악의 수준임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불황 속에서 정말로 경제를 살려줄 수 있는 다른 후보가 혹여나 나설 수 있는지를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 노 오디너리 패밀리 . . . . 1회 일치
          파웰 가족의 어머니. 짐과 달리 성공적인 직장에서 근무한다. 능력은 초스피드.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그러나 만약 적이 실수로라도 니나에게 공격을 성공하게 되는 순간 입장을 180도 바꿔서 갑자기 적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니나의 특성을 이용해서 배틀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 니세코이/216화 . . . . 1회 일치
          * 그걸 본 이치죠 어머니는 행복한 결말이 나는 이애기를 주로 쓰게 됐고 큰 성공을 거둔다.
  • 니엘(가수) . . . . 1회 일치
         [[2월 27일]], [[KBS2]]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달성했다. [[2월 28일]], [[MBC]] [[쇼! 음악중심]]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마쳤다.
  • 데모데모닷데 . . . . 1회 일치
         비슷한 것으로 「하지만(でも,데모)」「그래도(だって,닷테)」「어차피(どうせ,도우세)」이 3가지를 묶어서 3D라고 칭하며,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의 말버릇으로 잡기도 한다.
  • 도영(1996) . . . . 1회 일치
          * 고등학교 시절 교내 반별 팝송 합창대회에서 [[레이디가가]]의 poker face를 [[https://www.youtube.com/watch?v=xMWPmz5ROIY|불렀다.]] 도영은 지휘자와 인트로부분 독창을 맡아 성공적으로 발표하였고, 해당 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다. 1위가 발표된 뒤 도영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디오에서 밝힌 [[https://www.youtube.com/watch?v=JqQp9a3ED1A|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당시 도영의 반에 예체능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모두 '이거는 진짜 우리가 무조건 1등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 공연이 레전드로 남아서 학교 측으로부터 졸업식 날 공연으로 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 시점엔 이미 도영이 자퇴한 이후여서 친구들도 거절했다고 한다.
  • 독이 든 성배 . . . . 1회 일치
          * 대한민국 축구감독(…) 등 성공하면 엄청난 찬사를 받지만 실패하면 엄청난 욕설을 얻어먹는 자리에 주로 사용된다. 막장을 달리는 [[프로 스포츠]] 팀의 감독 자리에 오르는 것에도 이런 표현이 사용된다.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1회 일치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의 시카고, 갱단이 운영하던 비밀 술집에서 연주자로 일하던 조와 제리는 경찰이 습격한 술집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다. 체포는 면했지만 실업자가 된 이들은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갱단 보스 스패츠가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을 밀고한 다른 갱단을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조와 제리 또한 스패츠 일당에게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1회 일치
         이후 그는 1112년에 프로방스의 마지막 상속녀인 두세와 혼인해 프로방스 백작위를 획득하고, 우르겔과 페랄라다를 제외한 모든 카탈루냐 국가들을 합병한다. 이후 우르겔 백국과 동맹을 한 그는 바르바스트로와 발라구에르를 정복해내는데 성공한다.
  • 런던 맥주 홍수 사건 . . . . 1회 일치
         사건 직후 해당 양조장은 의회에 청원하여 앞서 납부한 세금을 환급받는 데 성공했고, 그 후 1922년까지 운영하다가 해체되었다.
  • 릭 존스 . . . . 1회 일치
         두번 감마선에 노출된 적이 있다. 한번은 직접, 한번은 실수. 전자는 실패해서 암에 걸렸지만 비욘더 덕분에 살았고, 후자에는 실수였지만 성공해서 헐크가 되었다.
  • 마기/297화 . . . . 1회 일치
          * 바그다르에서 성공적으로 계약을 채결한 알리바바 사르쟈는 마그노슈타르로 향한다
  • 마기/299화 . . . . 1회 일치
          * 노예제를 없애자는 얘기는 셰헤라자드 시절부터 나오던 얘기지만, 워낙에 뿌리깊은 제도나 수십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없애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티토스의 열정적인 웅변으로 노예제도 폐지에 성공한다.
  • 마기/305화 . . . . 1회 일치
         - 알라딘. 자신이 겪은 모든 괴로움은 "성공을 위한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는 신드바드에게. 달편으로 일관하던 신드바드도 여기에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 마기/313화 . . . . 1회 일치
          * 아르바는 일행의 눈을 피해 연백룡의 왼손을 찌르는데 성공한다.
  • 마기/321화 . . . . 1회 일치
          * 아르바는 의식의 성공 확률은 100분의 1도 안 된다며 실패하면 죽는다고 경고한다.
  • 마기/322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쓰러지는 적들을 보며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 마기/338화 . . . . 1회 일치
          * 쥬다르는 던전 공략에 성공하지만 신드바드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 마기/340화 . . . . 1회 일치
          * 이 문답을 통해 백룡은 [[알라딘(마기)|알라딘]]이 말했던 "신드바드의 미련"이 무엇인지 깨닫고 던전 공략에 성공한다.
  • 마기/342화 . . . . 1회 일치
          * 팔인장들은 그의 가장 절친하고 가까운 동료였다. 그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함께 분노했고 세상을 바꾸고자 힘을 합쳤다. 나라를 만들고 동맹을 만들고 분쟁을 없애길 바랬던 그들은 분명 혁신가였다. 그리고 혁신은 성공했다. 그들이 바라던 분쟁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었을 때, 동료들은 더이상 혁신가이기를 거부했다.
  • 마기/348화 . . . . 1회 일치
          자기 개인의 힘만이라면 신드바드는 커녕 아르바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대단한 일을 달성하는 것, 이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르바는 그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하면 결국 네 힘이 아니다"고 하는데, 그의 말은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고 보통을 능가하는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드바드와 아르바 조차 알리바바에게 휘말린 인간이다. FANFAN상회 때도 그렇다. 신드바드는 그때 왜 알리바바를 도왔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끌어냈고 "운명" 조차 초월하는 성공을 거뒀다. 신드바드 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운명을 초월하는 알리바바. 그렇기에 그는 "나도 대단한 인간"이라 자부한다.
  • 마기/350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완전히 정지시키고 알리바바 일행은 세상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회 일치
         과거 맥스 페인은 "V"라는 마약에 중독된 자들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고,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그는 진범을 찾아 헤매며 여러가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비니 고그니티, 모나 색스, 블라디미르 렘, 알프레드 우든. 맥스는 진범을 찾아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끝난것은 없었다. 맥스의 가족이 이미 죽어버렸지만, 맥스는 아직 살아있었다.
  • 머슬봄버 . . . . 1회 일치
         게임 자체는 나름 잘 만들어진 완성도의 게임이나 테크노스 재팬의 WWF 레슬페스트보다는 성공하지 못했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1회 일치
          일본 히로시마 출신으로 정부군 소위이다. 어렸을 때 교회 계단에 버려졌으며 성장한 후 교회에서 도망쳐 부랑아의 리더가 되었다. 이후 그녀의 전투기술을 눈여겨본 정부군에게 영입, 1등급 공작원으로 수많은 임무를 성공했다. 이후 암살같은 임무나 양심에 걸리는 계획에 싫증을 느껴 특수분대 S.P.A.R.R.O.W.S.로 전속하였다.
  • 문희옥 . . . . 1회 일치
         1969년 7월 27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학업을 위해 상경하였고, [[강원도]] [[태백시]]에서 위치한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인 1986년 당시 학교 장기자랑에서 가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의 반응이 좋자 문희옥은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게 된 이후 둘째 언니의 주선으로 작곡가 안치행 씨를 만나게 된다.[* 안치행 씨는 [[최헌]]의 <오동잎>,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다.] 그 뒤 안 씨의 소속사 안타 프로덕션에서 1년 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87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사투리를 소재로 창작곡을 모은 <8도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메들리 음반은 발표되자 마자 360만 장이 팔리게 된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주최로 학교 강당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것 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하이틴 스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좀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문제는 당시 시대상으로 사투리는 공중파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1987년 그 해에 <빈손>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빈 손 가사도 왠지 그 노래를 부른 10대 여학생과는 맞지 않았다~~ 1988년 문희옥은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였고, 꾸준히 더 많이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슬로우 템포의 <가는 님 가는 정>을 발표하고 1989년 원래 가수 정재은이 1984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를 2집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가수로서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교민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1990년 <강남 멋쟁이>가 히트하여 문희옥이 최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 현철과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잘했군 잘했어는 아는 사람은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하춘화 - 고봉산의 노래다. 그리고 여러 메들리를 발표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문희옥]]의 정통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1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에서 침몰한 여객선을 인양하는 데 사용하는 선박. 현대의 동종선박과는 달리 자력항해가 불가능하다. 선박에는 크레인과 각종 작업도구가 있으며, [[잠수복]]은 외부에서 인력펌프로 공기를 넣어주는 공기 호스가 달린 구식 물건이다. 작품상에서는 간신히 여객선을 인양하는 데 성공했으며, 해당 여객선은 인더스트리아 주민들의 피난선으로 사용되었다.
  • 미스터 하이드 . . . . 1회 일치
         원래 뛰어난 의학자였으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실제 이야기라 믿으면서 일이 꼬였다. 재보는 [[인간]] 본성의 짐승 같은 면을 해방시키는 화학 공식을 발견하는 연구에 몰두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고용주들에게서 갈취했고, 이걸 안 도널드 블레이크는 그의 고용을 거절했다. 그리고 분노한 그는 도널드 블레이크에게 복수를 다짐하여 연구에 몰두해 몇 달 뒤, 연구에 성공했다. 특수약품을 만든 재보는 이 약품을 써서 사악함과 괴력을 지닌 미스터 하이드가 되었고 자신을 진정한 악의 의인화라 믿으며 도널드 블레이크를 자신의 첫 번재 희생자로 점찍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도널드 블레이크는 [[토르]]의 인간 모습.(...)
  • 바키도/125화 . . . . 1회 일치
          * 관중 일동은 깨끗하게 기습이 성공하자 감탄한다.
  • 바키도/127화 . . . . 1회 일치
          * 모토베는 폭발을 틈타 무사시의 애도를 빼앗는데 성공한다.
  • 바키도/128화 . . . . 1회 일치
          * 그 조차도 무사시의 몸에는 닿지 못했는데, 모토베는 거기에 성공했다.
  • 박노식(1971) . . . . 1회 일치
         허나 이게 독이 되어서 식당에만 가도 극중 배역인 백광호도 아니고 백광호가 자꾸만 찾는 "[[향숙이]]다!"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진짜 두들겨 패고 싶었다고.(...) 나중에 시트콤인 미라클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자꾸만 백광호 스타일로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해서 굉장히 상심했다고 한다. 본인의 이름을 모르는 걸 떠나서, [[빵꾸똥꾸|역할명 자체가 향숙이가 아님에도 향숙이라고 불리는 것]]이 한이 된 듯.[* 심지어 박노식을 닮았다고 평가받던 당시 [[SK 와이번스]]의 야구선수 [[김연훈]] 선수(현 [[kt wiz]])의 별명도 백광호가 아니라 [[향숙이]]였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야구팬들에게 향숙이라고 불린다. --솩향숙에서 콱향숙으로-- --근데 김연훈이 상당히 싫어하는 별명이다 [[안습]]--] 비슷한 시기 영화 [[시실리 2km]]에서 비슷한 느낌의 --외모로 승부하는-- 신스틸러 역할로 나왔던 [[우현(배우)|우현]]이 똑같이 주목을 받은 뒤, 오히려 계속 잘 나가게 되고 몇년 뒤에 다양한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까지 성공한 것에 비하면 아쉬운 케이스.
  • 박세웅(1996) . . . . 1회 일치
         어쨌든 자질은 있다고 평가를 받은 선수이기 때문에 4라운드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계약금 7천만원에 입단했다.
  • 박세직 . . . . 1회 일치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후부터, 민주정의당 내에서는 대권주자로 발돋움 할 뻔 했으나 조직을 모으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3당 합당]] 이후에는 더이상 정치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 박영진(코미디언) . . . . 1회 일치
         그리고 성공한 대박 코너론 저 위의 대사로 히트친 [[집중토론(개그 콘서트)|집중토론]]과 본격적으로 날리기 시작한 [[박대박]], [[춘배야]] 등이 있으며 [[봉숭아 학당(개그 콘서트)|봉숭아 학당]]에서의 [[이수근]]의 궤변론자 은사역과 [[뿌레땅뿌르국]]으로 한창 주가를 날렸다.
  • 박윤경(가수) . . . . 1회 일치
         데뷔 당시 트로트곡〈부초〉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아버지〉도 함께 인기를 얻었다. 데뷔와 동시에 톱 가수로 성장하게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국에 박윤경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95년]] 박윤경은 본격적으로〈알리바이〉라는 경쾌한 리듬의 곡으로 두 번째 음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대표적인 음악프로그램《[[열린음악회]]》에 출연하여 가창력을 인정받고 대중들에게 각광받았다.
  • 박진성(시인) . . . . 1회 일치
          그 와중에도 페미니스트들과 박진성 시인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하면 죄가 없어지냐' 같은 소리를 하거나 '박진성이 자살하기 전에 여성 습작생들에게 집적거렸다', '과거에도 자살을 빌미로 여자들을 꼬시고 동정심을 유발했다(본인의 고백 내용)' 같은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2017년 12월 7일 기준으로, 트위터를 이용해 마녀사냥한 주요 오프라인 가해자들은 비판을 받아 재판에 불리해질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계정을 폭파시키기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편을 드는 SNS에서의 옹호자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9276420290576384|#]][[http://archive.is/meecs|@]][* 이 사례는 Holden 🔻Weatherfield라는 닉네임과 psychokinesis23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페미니즘]] 계정이다. 성향은 [[메갈리아]] 옹호자이자 가해자 [[이준행]]에게 [[재기#s-6|재기]]라는 [[남성혐오]] [[고인드립]]을 들은 피해자 [[전우용]]이 [[전우용#s-4.3|고소하다 용서한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https://twitter.com/psychokinesis23/status/772794350883315713|#옹호증거1]][[http://archive.is/gGvKe|@1]][[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772787036306546688|#옹호증거2]][[http://archive.is/QG3O0|@2]]). 특히 박진성의 자살시도가 성공해야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라는 조롱을 일삼은 점을 자신의 취향으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염동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면 저 시인을 자살로 몰고갈 수 있을 텐데''''라는 입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진영논리]]에 휩싸인 나머지 [[사이코패스|자기 진영 일원의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소시오패스|공감을 잃은]]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은 아예 사건에 입을 다물거나 익명의 계정에 숨거나 검색을 막기 위한 부계정과 스팸계정을 아직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https://twitter.com/No_JS_OK|해당 트위터 링크]] 이들은 어쨌든 관계를 맺고, 인정한 사실을 발설하더라도 [[지랄 옆차기 하네|해당 상황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보호 조치라고 설명한다.]]
  • 박창달 . . . . 1회 일치
         [[박근혜]] 대통령을 1998년 대구 달성군 지역구로 이끌어 정계 진출을 성공시킨 주역이다.
  • 배영수 . . . . 1회 일치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 이는 플레이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 [*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리그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167949|#]]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1997488|#]]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6&aid=0000011149|#]]]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 하지만 과거 스터프에 의존하던 선수였던 만큼 제구파 투수로 플레이스타일이 변경되었어도 과거 플레이스타일에 영향이 있는지 경기당 기복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 배영수가 컨디션 기복이 있는 것이 이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볼넷도 적게 내주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쉽다는 것.]
  • 배천석 . . . . 1회 일치
         [[K리그 클래식 2013|2013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하여 3월 2일 [[FC 서울]]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며, 3월 30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4월 13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18분 교체투입된 뒤 6분 만에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AFC 챔피언스리그 2013]]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데에 이어 3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뒤 결승골을 넣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 보루토/3화 . . . . 1회 일치
          * 수비 성공.
  • 보루토/5화 . . . . 1회 일치
          * 사스케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까지 해독에 성공했는데, 이들이 미수를 모아 "단"이라는 약을 연성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 보쿠걸/107화 . . . . 1회 일치
          * 메이는 성공적으로 수험을 치러 다이쥬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 붐(연예인) . . . . 1회 일치
         아래에 언급된 일들이 생긴 뒤엔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역 후 첫 출연 당시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니, 전역하기 전부터 ~~이제 와서 보면 쓸데없이~~ 그의 전역일 카운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예능 입지를 확실히 정착시킨 상태에서 자리를 비워서 입대 후 그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군에서 예능 아이템을 400개 이상 생각해 왔다.'로 개념 있는 군인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군대 다녀오더니 남성스러워졌고 멋져진 거 같다는 반응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 블랙 클로버/105화 . . . . 1회 일치
          그때까지 오로지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챠미 퍼밋슨]]은 유노의 이름이 거명되자 정신을 차린다. [[클라우스 류넷]]과 [[미모사 버밀리온]]은 그를 축하해주지만, 그의 성공이 고까운 자들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무대 뒤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분을 삭힌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1회 일치
          * 성공적인 공적 발표가 끝났다. 절정으로 달한 분위기를 클로버 왕국의 국왕 등장으로 몰아간다. 그러고 보니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왕도에 온지 꽤 됐지만 국왕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마찬가지. [[마법제]] 율리우스의 소개와 함께 마침내 국왕이 민중 앞으로 걸어나온다.
  • 블랙 클로버/121화 . . . . 1회 일치
          * 노엘은 적진의 크리스탈에 도달하는데 성공하나 그 앞은 오빠 [[솔리드 실버]]가 막고 있는 상황. 링가드는 마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해 노엘을 격려한다.
  • 블랙 클로버/53화 . . . . 1회 일치
          * 리히트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한 아스타.
  • 블랙 클로버/58화 . . . . 1회 일치
          * 노엘은 자신을 인정해준 동료들을 생각하며 마력을 컨트롤하고 마침내 물 창성 마법 "해룡의 요람"을 성공시킨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1회 일치
          * 노엘은 침착하게 마력을 다뤄 해저신전 앞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 블랙 클로버/86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아스타는 강화마법이 걸린 덕인지 공격의 빈틈을 파고 든다. 어느새 잘려나간 나무 줄기를 타고 접근하더니 샐러맨더에게 일격을 먹이는데 성공한다. 가볍게 베인 정도지만 샐러맨더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힌다. 바네사는 정령은 본래 마나의 결정체인 만큼 아스타의 반마법 검이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아스타도 스피드나 탐지능력이라면 절망의 베토 쪽이 위였다며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호언한다.
  • 블랙 클로버/90화 . . . . 1회 일치
          젤은 가까스로 도미나를 구하는데 성공했지만 치명상을 입었다. 그의 바람마법이 지켜줬지만 도미나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라드로스가 젤을 발견하고 내려와 그를 걷어차며 "소중한 사람이 정말 있었는데 당신은 여기 자빠져서 뭘하는 거냐"고 조롱한다. 그리고 젤을 괴롭히기 위해 그의 소중한 사람, 도미나를 잡아 올린다. 라드로스는 도미나의 얼굴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과 같이 도망쳤던 애인" 이라고 알아본다.
  • 블랙 클로버/94화 . . . . 1회 일치
          * [[증오의 파나]]의 자폭도 막고 "파나"의 인격도 되살리는데 성공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 마르스는 아스타에게 "너의 덕"이라며 악수를 청한다. 아스타는 던전에선 그토록 무감정하고 차가웠던 인물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아스타도 그의 힘이었다며 소꿉친구를 구한걸 축하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1회 일치
          * 자신의 혈액마법으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 [[마녀왕]]. 그녀는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의식을 빼앗긴 아스타는 마녀왕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 블리치/694화 . . . . 1회 일치
          * 어떻게 된 만화가 뒷치기가 한 번도 성공을 못한다.
  • 블리치/695화 . . . . 1회 일치
          * --뒷치기가 사상 최초로 성공한 느낌.--
  • 빈스 맥마흔 . . . . 1회 일치
         이러한 광적인 퍼포먼스에 일반 팬들은 그냥 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설마 공개적으로 방송되는 WWE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미친 놈이 있을 리가 없다는 선입견 때문에 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던 숨은 게이들은 이에 열광하였고, WWE의 매상은 급상승, WCW를 물리치고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 산킨고타이 . . . . 1회 일치
         다이묘들은 서로 체면치례를 하려고 경쟁적으로 행렬을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에도 막부에서는 규제를 정해서 다이묘들의 [[석고]]에 맞춰서 일정한 수의 인력만을 동원하도록 했다. 당초에는 각 번의 번사(번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이 실제로 행렬에 참가했으나, 후기에 가면 경제적 문제로 다이묘 행렬에만 전문으로 참가하는 일용직을 동원하게 됐다. 이러한 일용직들은 겉치레는 사무라이였지만, 실상 단순한 아르바이트 코스플레이어(…)에 가까웠다. 일설에는 사쿠라다문의 변(桜田門外の変)이 단 10인으로 성공했던 것도 이러한 저질 일용직 행렬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자 다들 도주했기 때문이라고.
  • 상디 . . . . 1회 일치
          * [[깅]] - 상디와 거의 호각으로 싸웠으나 상디가 바로 직전 파알에게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상태인지라 결국 자기 공격으로 인한 충격도 버티지 못한 틈에 제압하는데 성공. 다만 깅도 결국 상디에게 피니시를 먹이지 못한 채 승부 포기. 상디가 상당히 데미지를 입은 상태이긴 했지만 상당히 강하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 서수민 . . . . 1회 일치
         물론 단발적으로 호응이 좋은 코너를 가지고 성공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호응을 얻기 힘든 것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시청자들이 질리게 만들었으니 매니악한 팬들만 질리게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PD로서의 역량은 높지만 개그를 보는 눈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개그는 본디 "개그맨이 짜고 개그맨이 연기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개그를 선별하여 방송에 내보내는 개그 프로그램 감독으로서의 [[무능력한 상사|역량은 무능하다 보는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 서훈 (1942년) . . . . 1회 일치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제15대 총선|15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2000년]]의 [[대한민국 제16대 총선|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신청했으나 [[1997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15대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의 비토론자였다는 이유로 낙천되었고, 이 후 [[김윤환 (1932년)|김윤환]]을 따라 [[민주국민당 (2000년)|민주국민당]]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 성시경 . . . . 1회 일치
         대입 입시생 시절이던 1999년 4월에 MBC 문화방송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엑스트라 단역급으로 첫 출연한 적이 있고 이듬해 [[2000년]] [[2000년 9월|9월]]에 열린 제1회 드림뮤직 신인가수 선발대회 "뜨악 페스티벌" 인터넷 오디션 "발악"을 통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첫 번째 싱글은 2000년 [[2000년 11월|11월]]에 발매된 "내게 오는 길"이었다. [[2001년]] [[2001년 4월|4월]]에는 데뷔 앨범인 "처음처럼"이 발매되었고, 신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7개의 정규 앨범, 3개의 리메이크 및 스페셜 앨범, 1개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최근 [[일본]]에서 [[정규앨범]][[DRAMA]]발매 전 일본 4개도시 투어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현재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왕성히 활동 중이다.<ref>{{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stview.php?no=2018030715133349170&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제목=성시경, NHK 한국어 강좌 프로 출연 "일본어도 능통"|출판사=스타뉴스|날짜=2018-03-07}}</ref><ref>{{뉴스 인용|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40901032939179001|제목=성시경 ‘일본 본격 진출’ 7개 도시 투어|출판사=문화일보|날짜=2018-04-09}}</ref>
  • 성인 . . . . 1회 일치
         [[기독교]]에서는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에서 성인을 인정하고 있다.
  • 성현아 . . . . 1회 일치
         [[2002년]]에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되었고,<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2/1887524_13454.html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성현아 마약복용 구속] (2002년 3월 7일, MBC 뉴스데스크)</ref> 2003년에 [[나체|누드]] 화보를 발표한 후 2004년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출연해 [[칸 영화제]]에 진출해 재기에 성공했으며 [[2006년]] SBS [[어느날 갑자기 (2006년 드라마)|어느날 갑자기]]로 정극 복귀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MD포토] 성현아, '4년만의 TV복귀 떨려요' |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0038591| 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곽경훈| 쪽= | 날짜= 2006-02-21| 확인날짜= 2018-09-25}}</ref>
  • 소말리 족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각각 영국령 소말리랜드와 이탈리아 령 소말리아로 식민지가 세워져 나누어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소말리 족 통일국가를 열망하는 '대 소말리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소말리랜드와 소말리아는 협력하여 통일-독립에 성공한다.
  • 손담비 . . . . 1회 일치
         이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데뷔를 준비했는데, 데뷔 전 바람의 〈사랑하다〉, [[메이비 (가수)|메이비]]의 〈다소〉와 같은 뮤직비디오와 [[삼성전자]], [[SK 텔레콤]]과 같은 대기업 광고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담비가 온다1]MSN 재팬이 주목한 거물 신인|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300&g_serial=260493|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7-05-04|확인날짜=2014-05-15}}</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데뷔전부터 잇달아 대기업 모델 '톱스타 예약'|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507444112344&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5-05|확인날짜=2014-05-15}}</ref> 또한 비보이 대회 'R16 코리아 스파클링 서울'에 출전했다.<ref name="seg1"/> 그리고 2007년 6월 14일, 손담비는 데뷔 싱글 〈[[Cry Eye]]〉를 발매했다. 〈Cry Eye〉는 손담비의 뛰어난 춤실력을 보여주는데는 충분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Cry Eye〉의 안무 중 [[크럼핑]]이라는 장르를 안무로 삼아 이 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렸다.<ref name="seg1">{{뉴스 인용| url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제목 = '여자비' 손담비, 댄스로 뜨고 가창력까지 장착| 날짜 = 2007-07-08| 저자 = 한준호 기자| 확인날짜 = 2007-08-07| 뉴스 = 세계일보|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416/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보존날짜 = 2007-09-30| 깨진링크 = 예}}</ref> 또한 크럼핑은 고난이도 댄스로 꼽혀 아시아에서도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한 뒤, 미국으로 떠나 L.A 밀레니엄 스쿨에서 발레, 재즈, 크럼핑 댄스 등을 배우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등 연습에 매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 여름 컴백 환영. 내 인생 최대의 도전”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51917202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현우, 정유진|날짜=2008-05-20}}</ref>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와 대결을 벌인다.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를 제압하는데 성공하지만,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인지 과도하게 타격을 입힌다. 레드 토네이도는 긴급 생존 모드가 발동하여 통제에서 벗어나고 만다. 레인 장군는 슈퍼걸이 과도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9화 . . . . 1회 일치
         카라와 알렉스는 아스트라에게 자백제를 주사하여 얻은 정보로 군부대를 따라서 행크를 찾는 작전에 참가하지만, 넌이 파둔 함정이었으며 폭탄이 터져서 다수의 희생자가 나온다. 카라는 알렉스와 몇몇 군인들만 구하는데 성공한다.
  •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 . . . . 1회 일치
          원래 과학자였는데 아들을 성공시키려는 아버지로부터 압박을 받아 혼자서는 무리라고 판단해 삼촌인 할의 상대변환 장치로 자신의 복제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면서 표면을 통과할 수 있고, 복제 과정에서 초인 유전자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계 없이 스스로 복제를 만들수 있게 되었으나 얼굴이 해골처럼 되고, 한 사람이 아니게 되면서 잠을 잘수 없게 되어 미쳐버렸다. 결국 아버지에게 쫓겨나고 범죄자 라이엇이 되었다.
  • 슈퍼히어로 팀 . . . . 1회 일치
         슈퍼히어로 한 명이 등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슈퍼히어로 팀으로서는 실사[[영화화]]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단 등장 캐릭터가 많고[* 히어로가 한 명이라 해도 그 히어로와 싸울 빌런과 히어로의 주변인물 등이 있다. 그런데 팀이라면 더 많아진다.], 각 캐릭터의 비중[*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캐릭터가 인기파인데 비중이 약하면 욕먹기 딱 좋다. 그리고 인기는 둘째 치고 등장했으면서 별 비중 없으면 왜 등장시켰냐는 비난을 듣기 쉽다.]과 액션[* 주역이 초능력자라면 그 초능력을 잘 묘사해야 하고 비능력자라도 뛰어난 격투신같이 좋은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주역이라면.]을 신경써야 하기에 그 난이도가 정말 높아진다. 90년대에 먼저 나온 닌자 거북이 실사판 3부작의 성공이 팀 무비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고, [[어벤져스]]의 대박으로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알렸다.
  • 스파이더 슬레이어 . . . . 1회 일치
         슈피리어 스파이더맨에서 슈피리어 스파이더맨/[[닥터 옥토퍼스]]는 스파이더 슬레이어의 사형일 날 그의 탈옥 계획을 알고 자신의 스파이더봇들을 이용해 탈옥을 막았다. 스파이더 슬레이어는 [[벌처]]와 [[스콜피온]] 등을 감옥에서 빼내 스파이더맨과 제임슨 시장, 감옥 안의 민간인들을 죽이려 보냈지만 각각 실패하고, 오토에게 죽기 직전 마지막 수단으로 서로의 정신교환을 시전하지만(...) 이미 시전을 성공했던 옥박사는 그를 비웃고 사실을 알려준다. 결국 오토가 전에 날렸던 일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오토가 사용한 무기는 난투 때 앨리스터의 몸에서 뽑아낸 쇠갈고리 송곳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름과는 달리 마지막으로 싸운 적도 진짜가 아니었다고 평하는 오토의 대사가 걸작.[* 어색하지 않은 것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자칭한 자가 스파이더맨이라 해도 알맹이는 타인인 자에게 끝났으니..]
  • 식극의 소마/185화 . . . . 1회 일치
          * 쿠가는 성공만 하면 곰고기의 감칠맛을 튀김옷에 응축한 최고급 요리가 되겠지만 냄새 빼는데 실패한다면 튀김옷에 냄새가 배는 참사가 일어날 거라 분석한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1회 일치
          * 원래 이들은 패배한 시점에서 강제송환이 확정돼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 자신이 고집을 부려서 훗카이도에 남는데 성공했다. 에리나 일행에게 연대식극의 정보를 입수한 후로는 다른 루트로 그들을 따라서 북상 이 특설무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리스는 당당하게 결전의 장소로 가자고 일행을 다독인다.
  • 식극의 소마/219화 . . . . 1회 일치
          * [[쿠가 테루노리]]는 스스로 "모든 걸 다 갖췄다"고 말하는 재수없는 부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집은 부자고 요리도 잘하고 생긴 것도 이럭저럭. 키는 못 받았지만 당사자가 애써 상관없다고 부정하는 부분이니 재쳐놓고. 어쨌든 부모의 애정도 듬뿍 받고 그만큼 여자애들의 애정도 듬뿍 받으며 무탈하게 성공가도를 걸어온 쿠가. 식극에 있어서도 다를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다"는 말의 주인공은 자신이라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도 키는 별도 문제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자신감을 전부 태워먹을 정도로 역사적은 대패배"에 대한 것이었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1회 일치
          * 아직 심사가 시작된 것 조차 아니건만 반역자 팀은 벌써 축제 분위기.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성공적인건 사실이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그것은 미마사카가 어레인지한 마지막 한 조각의 초밥에 달렸다. [[나키리 에리나]]와 소마는 친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말없이 승부를 주시한다. 소마는 항상하던 대로 까불거릴 만도 하건만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데.
  • 식극의 소마/236화 . . . . 1회 일치
          * 타쿠미의 피자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절제된 단맛이 느껴지는 품위있는 맛. 이게 타쿠미의 자신감이었다. 비결은 유자된장소스. 사전에 피자반죽에 유자된장소스를 발라 시나린의 효과를 억제한 것이다. 본래 양념에 쓰는 백된장, 설탕, 미림의 양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유자과즙의 양을 대폭 늘려 신맛을 보충. 유자의 껍질을 갈아넣어 쓴맛과 떪은 맛을 첨가한다. 이것은 심사위원들이 에이잔의 로스트비프를 먼저 맛본다는 걸 전제로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심사위원 안은 알디니가 자신의 피자를 메인디쉬로 만들기 위해 에이잔의 음식을 전체로 취급해버린 거라 극찬한다.
  • 신동주(야구) . . . . 1회 일치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태(1969)|김기태]](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상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태(1969)|김기태]]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러나 [[김기태(1969)|김기태]]와 [[마해영]] 등 거포영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상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초 [[강영식]]과의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해태-KIA에서도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후 KIA로 이적한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친정팀인 삼성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오고 이듬해인 2006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 십자군 전쟁 . . . . 1회 일치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망할 두카스 놈들때문에~~[[셀주크 술탄국]]한테 박살난 이후에 폰토스일대의 거점 일부를 제외한 '''아나톨리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상황에서 남이탈리아의 노르만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가 아들인 [[보에몽]]을 데리고 비잔티움을 두번이나 침략하기도 했다. 당시 황제였던 [[알렉시오스 1세]]가 아풀리아지방에 지방귀족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해 기스카르의 병력을 둘로 나뉜뒤 둘로 나뉜 병력중 비잔티움 원정군을 지휘하던 보에몽의 군대를 라리사에서 격파해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기스카르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다시한번 보에몽을 데리고 원정을 나서게 된다. 알렉시오스에게는 다행히도, 악천후를 뜷고 그리스에 도달한 기스카르는 역병으로 인해서 케팔로니아 섬에 사망하고, 그의 장남이자 그리스일대 기스카르의 정복지를 상속받은 보에몽도 역병으로 인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어렵지않게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1회 일치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아타리야 . . . . 1회 일치
          * 당첨이란 말에서 성공이라는 의미가 나와서, 재수좋게 뭔가 운이 좋아서 인기를 얻은 가게나 상인, 예능인을 뜻하기도 한다.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1회 일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정부시장 후보로 단수공천이 확정되었고 3선에 성공하였다.
  • 안숙선 . . . . 1회 일치
         현재까지 안숙선의 주요 공연 이력은 판소리에 더 가깝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 이후 음악적 능력은 물론,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작품에 주역으로 섰으며, 특히 춘향역은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영원한 춘향'이라는 수식어를 받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창극 수궁가에서의 토끼 역 또한 작은 체구를 십분 활용한 익살스러운 연기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또 86년, 적벽가 완창으로 다섯 바탕 소리를 완창함으로써 전통 판소리의 연창과 전승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타 장르의 협업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재즈 뮤지션들과 자주 협연을 펼쳤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와 독일의 재즈그룹 [[레드 선]](Red Sun)과 함께해 [[1995년]] 발표한 〈토끼 이야기〉는 한국 퓨전음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 안재욱(배우,가수) . . . . 1회 일치
         1997년 1집 Forever를 발매한 그는 탤런트 겸 가수로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으며, 2000년대 초엔 [[중국]], [[대만]]에서 <[[별은 내 가슴에]]>가 방영되면서 중화권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우즈베키스탄과 중남미에서도 수출된 덕택에 거기서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생겼다. 사실 상 1세대 한류스타 중 한 명이 된 시기에 안재욱은 중국을 무대로 배우보단 가수로서 활동에 더욱 집중했다.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1회 일치
         * 살생님 암살에 실패한 시카가 살생님의 아지트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1회 일치
          * 성공적으로 종양이 치유되어 아즈사씨의 눈이 보인다.
  • 애로우 . . . . 1회 일치
         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팔머 테크의 사장. 뛰어난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천재 미남 사업가. 가볍고 밝으며 허당스러운 성격이다. 3시즌에서 팰리시티를 사이에 두고 올리버와 삼각관계를 연출하지만, 이미 올리버는 팰리시티에게 마음이 있어서 성공하지 못한다. 라스 알 굴의 음모 때문에 애로우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여 적대시 하며, 자신이 개발한 아톰 아머를 입고 애로우와 대결하지만 팰리시티의 설득으로 올리버가 누명을 썻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합류하여 아톰으로서 올리버를 돕게 된다. 팰리시티와 잠시 연인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팰리시티는 올리버와 맺어지게 되면서 차인다.
  • 여태조 . . . . 1회 일치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고 산악지대에서 유격전으로 일관한 결과 명으로 부터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대월을 다시 건국하고 여왕조를 열어 초대 황제 태조로 등극하게 된다.
  • 영창대군 . . . . 1회 일치
         if 시나리오로, 만일 영창대군이 인조반정이 성공할 때까지 살아 남았다고 해도 역시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창대군은 '선조의 적장자'이며, '왕실의 큰어른인 인목대비의 아들'이다. 이러한 영창대군의 지위는 고작 '선조의 서자 정원군의 손자 능양군'에 불과한 인조보다 훨씬 정통성이 강하다.
  • 예천군 . . . . 1회 일치
         2014년 재선에 성공한 이현준 군수 주도로 1981년 건립된 현 군청 청사 대신 신예천군청을 건립하고 이전하였다. 신부지는 예천읍 대심리 353번지, 구 엽연초생산조합 부지이다.[[http://www.ycg.kr/open.content/ko/administrative/news/headline/?id=986407f875b54364aa54a89bda326e86|#]] 2015년 말 착공, 2018년 2월 5일 준공되었다. 2015년 5월 설계 공모작을 선정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29/0200000000AKR20150529063100053.HTML|당선작 조감도]] 하지만 현 군청 청사가 위치한 노상리와 인근 노하리, 서본리, 동본리, 백전리 주민들은 '''군청 이전 후 해당 지역 경제 위축'''을, 그외 지역 주민들은 '''부채 증가, 도청 이전과 연계한 각종 사업의 선행 추진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http://www.kbsm.net/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306&idx=118103|#]] 한편, 현 군청 청사가 위치한 예천읍내는 배산인 흑응산과 임수인 한천 간 폭이 좁은터라 더이상 확장가능한 공간이 없어서 예전부터 쭉 이전의 필요성이 강하게 피력됐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이전하게 되면 으레 [[도심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구 군청 청사 인근 지역 경제가 위축되지 않게끔 정책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 오병희 . . . . 1회 일치
         1994년 3월 국내 첫 원거리 심장이식에 성공했다. 이후 서울대병원 심장이식 프로그램 책임자로 심장이식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고혈압·심부전 관련 200여 편 이상의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급 논문을 발표했다.
  • 오중기 . . . . 1회 일치
         당내 선거와는 달리 본선에서는 계속해서 고배를 마셨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를 위해 불출마한 것을 제외하고,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낙선을 겪었다.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100% 환급받은 적이 아직 없는데, 특히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15%에 겨우 0.07%포인트가 모자랐다.[* 선거 비용 100% 환급 기준은 15% 이상의 득표율이다.] --안습--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새누리당]]출신 무소속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에 표가 몰려 12.71% 득표에 그쳤다. 이후 2013년엔 [[제18대 대선]] 패배 이후 혼란스러웠던 [[민주통합당]]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 경북도당위원장 선거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인 [[김현권]] 의원을 누르고 도당위원장 4선에 성공했다.
  • 오지호(배우) . . . . 1회 일치
         1999년 CF 모델로 데뷔했지만 [[듣보잡]]에 가까운 처지로 있었다. 1998년 [[까(영화)|까]]의 [[단역]]으로 데뷔했고 2000년, 다채롭고 [[절륜]]한 [[검열삭제]]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영화 '[[미인(2000)|미인]]'에서 주연을 맡아 아마도 이름은 [[이지현(1978)|이지현]]과 함께 알렸지만 영화 내용 자체는 그닥... ~~미인은 스토리가 필요 없는 영화지 몸매만으로도 그 가치가 훌륭하다~~.[* 다만 이 부분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흥행 실적에서는 절대로 망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이익을 봤다. 10만 명 정도의 관객이 관람했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많다고 할 관객 수는 아니었지만 작은 수치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저예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무릎팍에서 오지호 본인도 흥행은 성공이었다고 말했다.]
  • 울릉군 . . . . 1회 일치
         포항시-영일군 통합 전에는 영일군과 같은 선거구에 소속하였다. 꽤 오랫동안 이상득 의원이 의원직을 6번이나 했다가 불출마했는데, 후임 김형태 의원은 성추행 논란을 일으키며 그 당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물론 재선 결과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박명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후보[* 당시 [[민중연합당]] 후보가 출마했다.]와 무소속 후보는 '''울릉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새누리당 텃밭이라 하지만 다른 후보들의 무관심으로 박명재[* 행정고시를 합격한 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기에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다가 2013년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였다.] 의원이 여유있게 몰표를 가져갔다.
  • 원피스/838화 . . . . 1회 일치
          * 도시에 잠입해 있던 페드로와 브룩은 마을을 순찰하던 비스킷병 안에 숨어드는데 성공한다.
  • 원피스/840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상디는 "실패". 분명 혈통인자의 조작은 성공했으나 상디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 원피스/841화 . . . . 1회 일치
          * 레이쥬는 자신이 몸의 "개조"는 성공했지만 감정이 있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는데.
  • 원피스/853화 . . . . 1회 일치
          * 빅맘에겐 [[포네그리프]]의 사본을 도난 당한 적이 또 있었다. 과거 해적왕 [[골 D. 로저]]가 장본인. 해적왕이 되기 전 로저는 그녀의 수중에서 포네그리프의 사본을 도둑질하는데 성공했다. 로저는 그걸 사본을 "만물의 소리를 듣는 능력"으로 해석했고 그걸 바탕으로 라프텔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빅맘은 지극히 유쾌해하는 중에도 같은 일을 또 당할 수는 없다고 못박는다.
  • 원피스/863화 . . . . 1회 일치
          * 분노한 빅맘이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징베에게 덤벼드는 등 혼란의 와중에 변장한 [[브룩]]이 사진을 파괴하는데 성공한다.
  • 원피스/872화 . . . . 1회 일치
          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둘이다. 그 둘,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스튜시와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건즈는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스튜시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로 옥갑이 이 사태를 일으킨 거 같다고 말하자 모건즈가 달리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성의 붕괴는 다과회장의 구도를 많이 바꿨다. [[샬롯 카타쿠리]]에 제압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빈스모크 이치디]]가 해방됐다. 역시 포위됐던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 루피도 탈출 성공. 레이쥬는 급변한 상황의 원인을 궁금해하지만 상디는 그딴건 됐으니 우선 도망치자고 다그친다. 가장 경황이 없는 건 빅맘.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처형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그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온통 쓰러지고 뒤엎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 사이 사로잡혔던 [[빈스모크 니디]], [[빈스모크 욘디]]가 무사히 빠져나와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무사히 구출했다. 의식을 잃은 채지만 목숨까지 잃진 않았다. 물론 최종적으론 이 무너지는 성에서 벗어나야 그렇겠지만.
  • 원피스/873화 . . . . 1회 일치
          결과적으론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 생각지도 못한 제약이 걸렸다. 하지만 페로스페로가 다른 걸 시도할 시간도 없이, 빅맘은 제우스를 타고 루피를 쫓기 시작했다.
  • 원피스/878화 . . . . 1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가 쿠 드 버스트를 발동해 써니호는 하늘을 날아 해상포위를 뚫고 도주에 성공. 그러나 루피와 카타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원피스/879화 . . . . 1회 일치
          * [[밀집모자 일당]]은 해안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희생 때문에 침통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 원피스/884화 . . . . 1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의 무장색 패기로도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무적의 회피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몽키 D. 루피]]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리가 없었다. 그 실체는 "견문색 패기". 패기로 미래를 예지하고 거기에 맞춰 효율적으로 신체를 변형해 회피하고 있던 것이다. 루피는 그 원리를 간파함과 동시에 "카타쿠리가 냉정을 잃으면 유효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성공시킨다. 자신의 본색을 들켜 당황하던 카타쿠리는 루피가 기어4를 앞세워 퍼붓는 공격에 얻어맞으며 밀리는 듯 보였지만 금새 냉정을 되찾고 반격, 루피는 기어4 상태에서도 나가떨어진다. 다만 카타쿠리 또한 체력소모가 상당한 듯 보이는데.
  • 원피스/885화 . . . . 1회 일치
          * 카카오섬의 쇼콜라 타운에선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이다. [[상디]]가 만든 참깨 휘핑 크림이 특히 대성공. 그 맛을 본 부하 요리사가 기절해 버릴 만큼 맛있다. [[샬롯 푸딩]]도 그 맛을 보고 싶어하지만 상디가 직접 "너만한 전력을 잃을 순 없다"고 만류할 지경이다. 일부 요리사들은 이 맛있는 크림을 케이크에 데코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승천해버린다. 때를 맞춰 [[샬롯 시폰]]의 특제 스펀지 케이크도 완성. 푸딩도 상디의 생크림을 듬뿍 넣은 생초콜릿을 막 완성했다. 시간은 18시 5분 전. 최종 공정에 들어간다. 그런데 상디는 모든 재료를 배에 싣도록 한다. 완성은 배 위에서 한다. 써니호를 향해 나아가면서.
  • 유다인 . . . . 1회 일치
         KBS 드라마스페셜 연작 시리즈인 '보통의 연애'와 SBS 주말연속극인 '[[맛있는 인생]]'에 잇달아 출연하며, 성공적으로 공중파에 안착하였다. ~~문제는 드라마가 망했다는 거..~~ 그래도 보통의 연애 같은 경우는 방영 당시에는 단막극이란 한계와 동시간대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에 묻혀 시청률 경쟁에서는 뒤쳐졌지만, 방영 후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유명해졌다. 이 작품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유다인이라는 배우를 확실히 알릴 수 있게 되었고, 결국 2012년 [[KBS 연기대상]]에서 연작/단막극부문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게 된다.
  • 유동근(배우) . . . . 1회 일치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역이 주력이지만, 재미있는 사람도 잘 연기한다.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개그 캐릭터 연기를 보고 있으면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이성계(정도전)]] 역할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드라마에서는 엄숙하거나 카리스마있는 역할을 자주 하는 편인데, 반대로 영화에서는 주로 [[코미디]] 영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성공한 코믹 영화로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가문의 영광(영화)|첫번째 작품이 있다.]]
  • 유미(가수) . . . . 1회 일치
         2001년 '가라'라는 타이틀곡으로 데뷔를 한 적이 있다. [[생방송 음악캠프]], [[열린음악회]] 등 공중파 무대에도 몇 번 올랐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앨범 활동을 접었다.
  • 유민상(개그맨) . . . . 1회 일치
          * [[성공시대]]
  • 유승민(정치인) . . . . 1회 일치
         2000년 2월에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한나라당]]의 정책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정치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초선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20대 총선]]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다. 20대 국회 기준으로 지역구는 [[대구광역시|대구]] [[동구(대구)|동구]](을)이다.
  • 윤상현(배우) . . . . 1회 일치
         그러다 1년여의 공백기를 거쳐 [[시크릿 가든(드라마)|시크릿 가든]]의 [[오스카(시크릿 가든(드라마))|오스카]]역으로 재기 성공하였다. 가수 준비를 했었기 때문인지 후에 시크릿가든 OST에 참여하고 앨범도 냈다. 사실은 그 전에 내조의 여왕에서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불러 화제를 부른 바 있다. 이미 내조의 여왕 이후 일본에 가수 데뷔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 시크릿 가든 선택 이유도 이미 주연급이였지만 본인이 먼저 가수 역을 하고 싶어서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본인의 원래 꿈이 가수였던만큼 가수활동에 열정이 있는 것 같다.]
  • 윤용현(1969) . . . . 1회 일치
         연기 외에도 2002년에 경기도 일산에서 "도끼와 뻘"이라는 조개구이 전문점을 차려서 나름 성공한 맛집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식당경영은 친형에게 맡기고 2018년부터 세종시에서 "오티움"이라는 이름의 웨딩홀을 운영하고 있다.
  • 윤진식(국회의원) . . . . 1회 일치
         그러나 결과는 친구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시종 후보에 밀려 또 낙선하였다.~~친구하고 선거에 붙으면 운이 없다~~ 충주권 맞불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충주에서 오히려 4,473표차로 앞섰으나[* 충주는 원래 매우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다. 이시종 지사의 개인기로 민주당이 가져왔던 것일 뿐인데, 윤진식 후보도 같은 충주 출신이라 이번에는 새누리당 이긴 것. 참고로 윤진식 후보가 충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벌어진 재보궐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의 [[이종배]] 후보가 당선되었다.] 충북 최대 인구밀집지인 청주권에서 17,262표차로 패했다. 참고로 양 후보간 표 차이는 14,963표.~~충북지사 선거는 원래 청주만 이기면 90%는 먹고 들어간다~~
  • 은혼/577화 . . . . 1회 일치
         attachment:뒤치기.png attachment:뒷치기2.png attachment:뒤치기성공.png
  • 은혼/583화 . . . . 1회 일치
         천신만고 끝에 우미보즈(바다돌이)는 우츠로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하는데...
  • 은혼/602화 . . . . 1회 일치
          * 우츠로는 천도중의 몸을 소재로 불사신 부대를 만드는데 성공. 하지만 상태로 보아하니 오보로처럼 자아가 유지되는 것 같진 않고, 그저 우츠로의 명령에 따르는 좀비 같은 상태다.
  • 은혼/615화 . . . . 1회 일치
          * 양단 작전의 성공으로 해방군의 지상군이 허리가 잘린다. [[진선조]]의 [[곤도 이사오]], [[히지카타 토시로]], [[오키타 소고]]가 일제히 부대를 이끌고 돌진, 해방군의 후방을 공격한다. 해방군 내에선 후방으로 돌아가 원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지휘관 [[오우가이]]는 일언지하에 각하한다. 기책 정도로 뒤집을 전력차가 아니며 그대로 냅둬도 후방 부대가 그정도는 알아서 할 거란 논리.
  • 은혼/617화 . . . . 1회 일치
          * 마을 중심부로 향하던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은 맞은 편에 나타난 반가운 얼굴과 마주친다. 타에 일행을 성공적으로 구조한 큐베가 사천왕과 토쿠모리와 함께 긴토키와 합류한다. 긴토키는 기다리다 지쳤다고 농담을 던진다.
  • 은혼/625화 . . . . 1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는 여전히 열세에 처한 입장이지만 대범한 도박으로 전세를 뒤집는데 성공한다.
  • 은혼/628화 . . . . 1회 일치
          신파치가 그저 말도 안 되는 몬스터 아니냐고 신랄하게 까자 긴토키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헤도로와 헤도라의 힘을 나누는데 성공했다고 밝힌다. 헤바의 머리에 있는 한 쌍의 꽃이 그것이다. 이 꽃 형태의 레버로 헤바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데 이미 능숙하게 츳코미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신파치에게 시험 삼아 보케질을 해보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츳코미역이라며 캐릭터성을 따지고 있다.
  • 은혼/639화 . . . . 1회 일치
          * 귀병대가 끈질긴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하루사메의 증원군도 해방군 모함에 돌입했다. 삼흉성 [[사루가쿠]]의 전달이었다. [[바토우]]도 돌입 성공. "악당 총집결"이라고 들떠있는 사루가쿠에게 "악당이 아니라 원숭이를 잘못 말한 거겠지"라고 디스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해적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수행할 "임무"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런데 관심이 없는 사루가쿠는 전부 "삼흉성 제일의 일벌레"에게 떠맡긴 뒤 부하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향한다.
  • 은혼/641화 . . . . 1회 일치
          * 해방대 함대의 총공세는 수위를 높여가고 귀병대 함대는 점차 밀려난다. 아군함이 급격히 줄어들자 귀병대 대원들은 사력을 다해 전선을 지키며 [[다케치 헨페이타]]가 어떻게든 작전을 성공시킬 거라고 믿는다.
  • 은혼/642화 . . . . 1회 일치
          * 시간이 걸렸지만 [[한카이]]가 제 몫을 다했다. 그는 최후의 임무를 실행하러 가는 [[다케치 헨페이타]]에게 성공 보고를 한다. 이제 헨페이타가 외부에서 에너지 공급 장치를 파괴하면 한동안 히노카구츠치가 멈출 것이다. 그들이 거기까지 도착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 은혼/644화 . . . . 1회 일치
          * 보고는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의 귀에도 들렸다. 신스케의 성공을 뜻하는 낭보. 그러나 동시에 비보이기도 했다. 다츠마는 아무리 악운이 강한 그들이라도 무사히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런 각오가 없인 베지 못할 상대였기에, 신스케는 자진해서 그 역할을 맡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의성군 . . . . 1회 일치
         || 2 || 의성공업고등학교 || 의성읍 문소1길 164 ||
  • 이갑성 . . . . 1회 일치
         [[1926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 이사로 선출되었다. [[1931년]] 주식회사 경성공업(京城工業)의 [[경성]]공장 지배인이 되었다.
  • 이강덕 . . . . 1회 일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5% 안팎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고, 실제로도 불과 7.7%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 이경실 . . . . 1회 일치
         전 남편과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전 남편 손모씨에게 [[2003년]]도에 야구 방망이로 복부를 마구 난타당해 이경실은 입원했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 때 [[결혼]]을 앞두고 있던 [[후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이 병문안을 갔는데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너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이 하고 싶니?"라고 했다. 다행히 김지선은 --애를 쑴풍쑴풍 낳으며-- 잘 살고 있지만... 前 남편과 함께 방송과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잉꼬부부로 알려지기도 했었던 터라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이경실을 브라운관에서 못 본 적도 있었다. 이 당시에 모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경실에게 의사를 사칭한 다음 몰래 접근하여 인터뷰를 시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취재윤리를 무시한 행동에 문제의 신문사의 주주였던 모 조간신문에서 이를 비판하는 만평을 보냈을정도. 다만, 지금은 재기에 성공했고, 사업가--단란주점 사장--인 최모씨와 재혼하여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으나... 후술할 내용 중 [[JTBC]] '[[유자식 상팔자]]' 등에 자녀들과 활발히 출연하고 있으며, 남편이 주말마다 점심을 해준다는 등(!) 과거의 시끄러운 사건과는 별개로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었다...
  • 이경희 (1880년) . . . . 1회 일치
         [[1923년]] [[의열단]] 단원으로 비밀거사를 준비하여 5월의거를 계획, 국내에 잠입하였다. [[1923년]] [[김원봉]] 의 지령아래 [[김지섭]], [[김시현]](金時顯), 유시태(柳時泰), 홍종우(洪鍾佑), 황옥(黃鈺) 등과 모의하여 [[중국]]과 [[만주]]로부터 무역 목적으로 [[안둥현]]에서 [[쌀가마]]에 숨겨서 국내로 반입해온 폭탄 36개, 권총 13정, 폭탄장치용시계 6개와 뇌관 여러정, 수류탄 10발,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서]](革命宣言書)의 인쇄 사본 및 [[조선총독부]] 관공리에 대한 투항권고 격문 사본 2,000매 등을 반입, [[1923년]] [[3월 15일]] 이를 국내에 반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 이국철 . . . . 1회 일치
         1981년부터 10여 년간 공무원으로서 생활하였다. [[해태중공업]] 창원 공장 인수, 2005년 [[신아조선]] 인수에 성공하였고 [[SLS중공업]]과 [[SLS조선]]을 운영하였다.
  • 이규한(배우) . . . . 1회 일치
         ||<#1B5695> {{{#ffffff '''데뷔'''}}} ||<(> [[1998년]] [[MBC]] [[드라마]] '사랑과 성공' ||
  • 이덕건 . . . . 1회 일치
         처음 <[[유머 일번지]]>, <[[전국노래자랑]]>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드라마 <[[애정의 조건 (1987년 드라마)|애정의 조건]]>, <[[토지 (1987년 드라마)|토지]]>, <[[달빛가족]]>, <[[서울 뚝배기]]> 등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93년 [[KBS 드라마게임|드라마 게임]] <쌀>로 입봉하여 이후 <[[아름다운 유혹]]>, <[[별난여자 별난남자]]>, <[[미우나 고우나]]>, <[[바람 불어 좋은 날 (드라마)|바람 불어 좋은 날]]>, <[[사랑은 노래를 타고]]> 등 일일극 연출을 맡아 성공시키며 KBS 일일극의 상징인 감독으로 각인됐다.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4년]] [[6월 9일]], 포항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주의 [[알아인 FC|알아인]] 이적을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총 95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총액 95억원' 이명주 알아인 이적, K리그 이적사 다시 썼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406100100083460005726&servicedate=20140609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4-06-9}} }}</ref> 7월 '알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9월 30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 (리야드)|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반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CL) ‘이명주 선제골’ 불구 알아인 결승 좌절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1108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4-10-1}} }}</ref> 한편 정규리그에서는 12월에 열린 10, 11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13라운드 [[샤르자 스포츠 클럽|샤르자]]와의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15년 AFC 아시안컵|아시안컵]] 이후 복귀한 14라운드 [[알샤바브 (두바이)|알샤바브]]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알아인 FC|알아인]]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2014-15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 이민호(1987) . . . . 1회 일치
         그리고 그런 그가 선택한 작품은 [[SBS]] 드라마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 이민호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는 처음부터 원작과 다르게 기획되었고 프리퀄을 표방하여 제작되었으며, 원작자가 주인공으로 이민호가 캐스팅된 것에 대해 대단히 만족감을 표시하고 싸인까지 보내 제작발표회에 공개하기도 했다. 오히려 원작과 차별화된 시나리오로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되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민호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매력이 돋보였고 특히 눈빛, 액션 연기는 굉장히 호평을 받아 "이민호의, 이민호에 의한, 이민호를 위한 드라마"라는 평가들이 나왔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로 이민호는 [[중국]]에서 거의 신드롬급으로 인기를 끌었다. 거기다 해외 팬덤이 강력해서 드라마 수출 계약도 호조를 보이는 엄청난 한류 배우.
  • 이상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6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 15경기에 등판해 5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 [[6월 15일]]에 1군에 올라왔다. 이 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56327 '아기공룡' 이상민의 성공적인 1군 데뷔전] - OSEN</ref>
  • 이상호 (1989년) . . . . 1회 일치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2013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안타를 친 후 근육통을 호소하자 [[대주자]]로 출장하며 첫 1군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5065708 이상호, '운이 따르네~'] - 뉴시스</ref> 이후에는 주로 대주자로 나왔으며 [[지석훈]]과 [[노진혁]]의 부진으로 종종 선발출전도 했다.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노진혁]]의 땅볼 때 [[서동욱]]의 태그를 절묘하게 피하며 병살을 피하였고<ref>[http://osen.mt.co.kr/article/G1109668015 이상호, '태그를 피하는 방법' ] - OSEN</ref>, 타격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결승타) 2도루로 경기의 MVP가 되었다.
  • 이성희(배구감독) . . . . 1회 일치
         절친이자 후임으로 들어온 [[서남원]] 감독이 [[한수지]]를 센터로 이동시키는 극약처방 등을 한 끝에 매우 성공적으로 팀을 일으켜 세우면서, KGC 관련 기사가 뜰 때마다 심심찮게 까이고 있다. 그리고 [[서남원]]이 3년만에 인삼공사를 봄배구에 진출시키면서 더 까였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1회 일치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강윤이]]를 3위 자리에서 몰아냈고, 본격적인 3대 여신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위에 서술했다시피 방송에도 여러번 나오며 성공한 치어리더라고 평가받는다.
  • 이순재(1935년 10월) . . . . 1회 일치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 이 시절의 철학계는 [[독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독일어가 필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전공책들을 '''[[독일어]] 원서'''로 읽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독일어]] 실력이 동년배에 비해 썩 나은 편임을 [[꽃보다 할배]] 스위스편에서 독일어로 쓴 지명을 부드럽게 읽음으로써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 팬들과 일본어로 문제 없이 소통 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명문대 출신들은 비록 회화는 어렵더라도 왠만한 일본어 원서는 그냥 읽을만큼 일본어가 능통하다. 애당초 대학교 교재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거나 국내에서 쓸만한 교재들이 쓰이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도 [[박정희]] 군부독재시절이라 마땅히 읽을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자본론을 일본어로 읽었다.]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연극부 부원 중에는 --요즘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채현국 이사장을 건너 [[고건]] 전 국무총리와도 아는 사이. 사실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 박사가 이순재를 가르쳤던 주임교수였다. 한 번은 4학년 때 연극 합숙 연습 때문에 수업을 두 차례 빠져야 해서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라며 흔쾌히 봐주었다고.]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 이시영(배우) . . . . 1회 일치
         2011년 3월 31일에 개봉한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해 여배우로서도 상승세를 탔다.
  • 이영아(배우) . . . . 1회 일치
         2010년 [[KBS 2TV]]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양미순]] 역으로 출연하여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 이요원 . . . . 1회 일치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반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순정 (드라마)|순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 이재룡(1964) . . . . 1회 일치
         || MBC || 사랑과 성공 || 김장수 || ||
  • 이준(배우) . . . . 1회 일치
         '''연기력을 인정받아 배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중인 아이돌에서 배우가 된 케이스중 모범적인 사례.'''[* 하지만 애초에 제이튠에서 오디션을 봤던 것도 그렇고 원래는 배우지망이었다.]
  • 이태현(씨름) . . . . 1회 일치
         그러나 2006년 한국씨름연맹[* 흔히 (프로)씨름을 관장하는 단체가 대한씨름협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됐다. 쉽게 말하자면, 야구로 치면 대한씨름협회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국씨름연맹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같은 위치의 단체들이다.]의 막장 행정, 세력간 정치다툼으로 흑화가 되고 [[최홍만]]이 [[K-1]]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자, 이태현은 소속팀 현대삼호중공업과 2012년까지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며 [[종합격투기]]에 뛰어든다.[* 이 때 소속 팀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이태현에게 계약파기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가 취하했을 정도로 이태현은 종합격투기 진출 선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이태현은 국내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저 관중이 있는 곳에서 시합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종합격투기의 화려한 조명과 관중들의 환호, 매스컴의 관심 등을 보면서 엄청난 유혹에 시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이혜숙(영화배우) . . . . 1회 일치
          * [[명랑소녀 성공기]]
  • 이홍렬(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뺑코"라는 별명으로 유명한데 이는 이경실의 콩트 '도루묵 여사'에서 이경실의 권유로 콧구멍에 [[오백원 주화|500원짜리 동전]]을 성공적으로 넣었다 뺐던 것에서 유래한다(돈 트라이 디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넓은 콧구멍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코에 뭔가를 넣는 행위를 대단히 불쾌해 한다고 한다. 대신 별명이 "촉새" --> "뺑코"로 바뀐 것은 만족해 하는 듯. 그러다가 [[MBC every1]]의 프로그램 [[가족이 필요해]] 시즌 2에서 15년 만에 코에 뭔가를 넣는 개그를 시도했다.[* 물론, 동전이 아니라 고무줄이었지만...]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1회 일치
          * 주술이 성공하고 그들은 멸망 직후의 다나폴로 이동됐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영구빙결 마법에다 십계를 모르모트로 쓰겠다는 패기로운 선언까지 하는걸 보면 극적인 파워업에 성공한 모양.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1회 일치
          * 입구를 봉쇄하고 그대로 도주에 성공.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1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데리엘을 설득해 교섭이 거의 성공했지만 이것 조차 [[뤼드셀]]은 이용한다.
  • 일곱개의 대죄/205화 . . . . 1회 일치
          그는 자신의 내기를 꼭 성공시킬 작정인가 보다. 몬스피드는 "5분이면 충분하다"고 응수한다.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1회 일치
          * 데리엘은 사리엘을 공격한다. 하지만 사리엘이 두르고 있는 미지의 장막에 가로막혀 데리엘의 몸이 갈려나간다. 그럼에도 데리엘은 뜯어져 나간 팔을 그대로 내지른다. 상완의 일부 뼈밖에 남지 않은 왼팔이 기어이 장벽을 뚫고 사리엘에게 최초의 상처를 입히는데 성공한다.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1회 일치
          * 두 사대천사의 힘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그 힘으로 두 십계를 지배하고 있던 어둠의 힘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를 안고 드롤과 그로키시니아 옆으로 날아온다. 그는 둘에게 감사를 표한 뒤 상공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리엘]]과 [[타르미엘]]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한다. 두 사대천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리엘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며 선을 긋는다. 타르미엘은 그저 엘리자베스님의 편을 든 것이라며 그 말을 거든다. 여전히 멜리오다스를 적대하는 건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더이상의 살생은 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1회 일치
          * 고서가 주춤하며 공격을 멈추자 디안느도 춤추기를 멈추고 "계속 춤을 추면 전투력은 더욱 올라간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싸우는게 아니라 대화. 그녀는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다가서지만 고서에겐 대화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이 시점에서 고서의 승률은 4%. 그러나 도주 성공 확률이 36%로 나오자 그는 주저없이 도주한다. 그러면서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갈 수록 디안느가 공격을 주저할 테니 도주확률은 더 높아진다는 계산을 해대는데... 그의 도주확률을 한 번에 2%까지 떨구는 존재가 나타난다.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1회 일치
          * 디안느는 재미있는 장난이 성공해서 흡족했다. 깔깔거리는 여유를 보였지만 [[에스카노르]]의 접근을 허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디안느의 상태를 보고 "다소 난폭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작렬하는 "다소 난폭한" 치료. 거인족의 허리가 꺾이는 강렬한 보디 블로우. 그렇지만 "여성인 점을 고려해 얼굴만은 피하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위력 자체는 디안느의 갑옷이 터져나갈 정도였지만, 지금의 디안느에겐 정말로 "다정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한 채 주먹으로 되갚아주는 디안느. 에스카노르 또한 아무 상처도 입진 않았지만 자신의 다정함이 무시 당한게 아쉬운 모양이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주먹으로 대화를 하려고 드는 에스카노르.
  • 일곱개의 대죄/번외편 . . . . 1회 일치
          * 사실 크라켄과 거대화 생물들이 날뛰는걸 처리하는 임무였다. 성공수당을 혼자 챙기려다 걸리는 멜리오다스.
  • 임백천 . . . . 1회 일치
         [[1958년]] [[5월 30일]], [[전라남도]] [[순천시|순천]]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순천시|순천]] 소재의 [[초등학교]]를 입학했으나, [[서울특별시|서울]]로 상경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해 [[1978년]] 고영선과 함께 참가한 [[MBC 대학가요제|대학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고 곧바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가수 활동보다 [[MC]]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말에 [[TBC 젊은이의 가요제|해변가요제]] 출신의 [[왕영은]]과 함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더블 DJ/MC로 방송에 데뷔해 큰 인기를 얻은 게 MC로 진출한 계기였다.
  • 임성은(가수) . . . . 1회 일치
         팀 탈퇴 이후에는 1997년 10월에 본인이 작사한 '미련'이라는 타이틀곡으로 활동했다. 작곡가 윤일상이 참여했으며 영턱스 시절의 음악과 연장선인 트로트를 차용한 곡으로 활동한 결과 가요 프로그램에서 10위 권에 안에 드는 등 제법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 장남석 . . . . 1회 일치
         [[2009년]]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해 정규리그 14경기에 출전하는 동안 한 골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 장서희(1972) . . . . 1회 일치
         2017년에는 《[[언니는 살아있다!]]》에 출연, [[김순옥]] 작가와 약 9년만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중 1화부터 《[[아내의 유혹]]》의 셀프디스가 대놓고 나온다(...). ~~그 대사를 하는게 하필 또 장서희인 게 매우 절묘하다~~] [[아내의 유혹|작가와 협업했던 전작]]에서의 캐릭터와는 달리 다소 코믹하고 유쾌한 캐릭터지만, 그런 역할에서 나오는 사이다성 활약과[* 확실히 장서희가 분한 [[민들레(언니는 살아있다!)|민들레]]가 세 주인공 중 가장 비중이 높고 활약성 또한 대단한지라, 시청자들에게도 사실상 유일한 진주인공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강하리|이분]]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가끔 [[구은재]] 표정이 나올 때는 소름이...-- 드라마 자체도 크게 성공했으며[*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인터넷상에서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이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장우혁 . . . . 1회 일치
         장우혁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그룹 [[H.O.T.]]의 맴버로써 활동하다가, 해체 이후 [[jtL]]을 거쳐 [[2005년]]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댄스계의 전설이라 불릴 만큼 최고의 춤꾼으로 각광받던 그가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탈피, 강한 남자로의 변신을 꾀한 솔로 1집 《No More Drama》은 '''''지지 않는 태양''''', '''''Flip Reverse''''', '''''Red Sun''''' 등 다수의 곡을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홀로서기라는 평가를 얻어냈다.2018년 2월 15일 hot완전체가 재결합을 했다.
  • 장원준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5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데뷔 첫 등판이었던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 KS]] 3차전에서 7.2이닝 동안 1점만을 내주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그 경기의 MVP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팀으로서는 14년만의 우승, 그로서는 데뷔 첫 우승팀 소속이자, 이적하자마자 우승을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두산 베어스]]에 이적할 당시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는 그의 보상 선수로 투수 [[정재훈]]을 지명했는데, 1년 뒤 [[두산 베어스]]가 2차 드래프트에서 마지막 순위에 [[정재훈]]을 지명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 FA 계약 선수와 보상 선수가 1년만에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 장준영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10월 9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홈경기서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고, 이날 경기의 MOM에 선정되었다.
  • 장현수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85년]] 조감독에서 경험을 쌓았다. [[1992년]]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로맨스 영화로 감독 데뷔를 시작하였다. [[1994년]] 《[[게임의 법칙]]》으로 그 액션 영화로 성공을 이어갔다. 이후 영화 《[[엑스트라 (1998년 영화)|엑스트라]]》로 카메오 출연으로 그 화제작을 선보였다.
  • 장후영 . . . . 1회 일치
         [[4·19 혁명]]이 성공한 뒤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에서 특별검찰부장으로 내정되었다가 반대가 심해 낙마하였다.<ref>{{뉴스 인용
  • 전소민(배우) . . . . 1회 일치
          *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살다가 [[런닝맨]] 출연 후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광고를 많이 찍게되었고, 덕분에 원룸이긴 하지만 줄곧 꿈꾸던 독립을 이루었다고 하며[* 집들이 때 런닝맨 멤버들과 스탭들이 참여한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원룸 계약이 끝나는 2019년엔 투룸으로 이사갈 예정이라고 한다. 말그대로 [[명랑소녀 성공기]]. 이사갈 때 [[유재석]]이 벽걸이 TV를 선물해줬다는 듯 한데 방에 비해 사이즈가 너무 커서(...) 외려 보기 힘들었을텐데 다행이란 말이 나오기도[* 이 말을 꺼낸 유재석은 그냥 선물받은 TV라고만 했는데 자막에선 유재석이 선물했다고 나온다].
  • 절대가련 칠드런/433화 . . . . 1회 일치
          * 한편 바벨 본부에서는 팬텀의 오염물질이 조용히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는데 성공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3화 . . . . 1회 일치
          * 아오이는 쉽게 발화점을 제거하는데 성공하는데, 등뒤에서 무언가가 덮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1회 일치
         전세역전에 성공한 칠드런팀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1회 일치
          * 마기는 자신없어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니 간단하게 성공.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카오루가 태어난 병원까지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소년이 그에게 친절을 배푸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였다. 사카키는 효부에게 마실 물을 주고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이미 힙노에 각성한 상태라 효부의 정체와 상황을 간파한다. 사카키는 자기도 나중에 당신 조직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못 본척 해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진다. 효부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사카키를 마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안심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1회 일치
          * 모호츠쿠 연구소로 보내졌던 미나모토 코이치 일행은 각고의 노력 끝에 감시시스템을 따돌리는데 성공한다. 본부에서는 정상적으로 감시 영상을 받아보고 있으나 그건 미나모토 일행이 만든 대체 영상. 그들의 진짜 행적은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유리는 역시 전 팬텀 도터의 명성대로 더블 페이스의 심리 헛점을 파고든다. 노처녀의 아픔을 공략, 칠드런 일행은 무사하지만 씁쓸하게 입성에 성공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1회 일치
          * 어쨌든 효부는 세뇌가 흔들린 순간을 포착하고 마기를 잡으라고 외친다. [[쿠모이 유리]]가 힙노를 거는데 성공, 제압하고 있는 동안 [[미나모토 코이치]]가 백신을 주사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이렇게 된 마당에도 "결과적으론 계획대로"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하지만 모미지나 요우 조차 그런 말에는 납득하지 못한다. 효부의 말에 따르면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은 레어메탈 버그로 효부의 감각과 감정을 중계, 효부의 절망감을 맛보려 했지만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다 오히려 효부는 그 링크를 이용해 길리엄 측을 엿보는데까지 성공했다.
  • 정다정 . . . . 1회 일치
         이광낙(<small>인터넷 아이디:</small> Lv7.벌레)은 2012년 9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24인용 군용 텐트 혼자 치기(T24 소셜 페스티벌 또는 T24 행사)를 성공시켜 화제가 된 인물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혼자서 24인용 군용텐트 칠수 있을까|url = http://news.donga.com/3/all/20120910/49262459/1|출판사 = 동아일보|저자1 = 박상훈 | 저자2 = 김진우 | 저자3 = 윤상호|쪽 = |날짜 = 2012-09-10|확인날짜 = 2012-10-27}}</ref> 그는 당시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SLR클럽]]에서 24인용 군용 텐트를 혼자 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자 “되는데요”라고 답글을 단 바 있는데, 이 말은 그가 텐트를 실제로 혼자 칠 수 있음을 보이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ref>{{뉴스 인용 |제목 = 유행어가 되리 시즌 2 - 제 14장│되는데요. .|url =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a_id=2012091021072828319|출판사 = 10asia|저자 = 최지은|쪽 = |날짜 = 2012-09-11|확인날짜 = 2012-10-27}}</ref>
  • 정몽규 . . . . 1회 일치
         2011년 제9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선출돼 당시 선수들의 승부조작 사건 등을 단호하게 처리한 바 있으며 2013년에는 52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선출됐고, 2016년 제53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FIFA 클럽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2013-2016), AFC 집행위원회 위원(2015-2017), AFC 아시안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2015~현재), 발전위원회 위원(2015~현재), FIFA 20세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2016~현재), [[2016리우올림픽]] 선수단 단장(2016), [[AFC심판위원회]] 위원장(2016~현재), [[AFC]] 부회장(2016~현재), [[대한체육회]] 부회장(2017~현재), [[FIFA 평의회]] 위원(2017~현재), [[동아시아축구연맹]] 회장(2018~현재)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FIFA평의회]] 위원으로 선출된 후 중국, 일본, 북한과의 ‘2030 월드컵 공동개최’ 프로젝트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 정승화(육군) . . . . 1회 일치
         결국 정승화는 노태우가 당선되자 조용히 정치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이어 전두환 정부에서 강등 조치된 장교들의 계급 환원 처리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예비역 장군들의 계급 복권 대상에 포함되어 [[이규광]], [[강문봉]] 등과 함께 정승화도 '''예비역 육군대장의 자격'''을 되찾았고 몰수된 돈과 군인연금 수급권도 돌려 받았다. 1988년 시작된 5공 청문회에서는 12.12사태 당시의 피해자로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하여 사태의 전말을 직접증언 했다. 1993년에는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육본 헌병감), 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 등 12.12 사태 당시 육본 진압군 측 장군들과 함께 전두환, 노태우 등 당시 신군부(하나회) 출신 인사들을 검찰에 군사반란 혐의로 고발 했으나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좆논리|모종의 이유를 들어]] 고발된 인사들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이것으로 기세등등해진 신군부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을 검찰에 고발한 정승화를 포함한 육군본부 측 장군들을 외려 군사반란, [[무고]] 혐의 등으로 역고소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이 무고 혐의 역시 기각됐다.
  • 정진(1976) . . . . 1회 일치
         * 《선무당 공도사의 창업성공기》 (네이버 TV캐스트, 2016년) - 강백중 역
  • 주현미 . . . . 1회 일치
         솔로 데뷔 전인 [[1984년]] 무렵에 김준규랑 같이 부른 메들리 앨범 '쌍쌍파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같이 듀엣으로 녹음한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녹음한 걸 편집에서 합친 앨범이지만 편집한 둘의 호흡이 워낙에 대단했기에 80년대 중반 돌풍을 일으켰고, 이때의 흥행을 발판으로 솔로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 기세를 타 [[1985년]] 1집 앨범 ≪비내리는 [[영동대교|영동교]]≫로 데뷔하여 단번에 트로트 탑 그룹에 올랐으며, 그 후에도 연이은 성공으로 히트곡이 상당히 많다. [[1988년]]에는 '신사동 그 사람'의 대 히트에 힘입어 MBC, KBS 연말 가요대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9년]]에도 '짝사랑'으로 MBC 연말 가요 대상을 2년 연속 제패하기도 했다.
  • 지석진 . . . . 1회 일치
         [[런닝맨]]의 인기를 발판으로 중국, 대만 등에 성공리에 진출한 한류스타다. [[http://tvcast.naver.com/v/259041|해피투게더에서 인증]]. 대만 팬미팅이 10분 만에 매진됐고 현장 반응도 뜨거웠다. [[웨이보]]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5020411394144327&type=1&outlink=1|팔로워가 100만]]에 '좋아요' 누른 팬도 최대 14만.[*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0587296|참조]].]
  • 진격의 거인/81화 . . . . 1회 일치
          * 친구들을 떠나보낸 아르민은 "이 작전이 성공하면 내가 바다를 보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독백한다.
  • 진격의 거인/82화 . . . . 1회 일치
          * 비록 뇌창은 세 개 밖에 없지만 작전의 성공을 위해, 일행은 갑옷거인을 처치하기로 계획을 바꾼다.
  • 진격의 거인/86화 . . . . 1회 일치
          * 그 과정에서 마레는 "아홉 거인" 중 7명을 수하로 부리는데 성공, 이른바 "거인대전"에서 승리하여 지금에 이른다. 그것이 80년 전.
  • 진격의 거인/93화 . . . . 1회 일치
          그에겐 지크를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지크는 이번에도 "과대평가"라며 웃어 넘긴다. 마가트는 거기서 좀 더 파고들어 "작전을 1년 만에 성공시킬 수 있다던데"하고 따진다. 지크는 그건 그저 자기 "임기"가 1년 남았다는 말이었다고 둘러댄다.
  • 진창현(음악인) . . . . 1회 일치
          * 일본인임에도 조선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아이카와는 교편을 잡으면서 병역을 피할 수 있었지만, 불과 2년 뒤 현역병으로 소집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편지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창현은 이후 일본에서 현악기 제작자로 성공한 뒤 아이카와의 친족들을 수소문해 만나기도 했고, 죽기 직전까지 [[사이타마]]의 혼조 시에 있는 아이카와의 묘지를 정기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후지테레비의 드라마에서도 꽤 비중있는 인물로 나온다.
  • 질렸다 . . . . 1회 일치
         >다 쓴 종이를 가지고 자고, 다음날에 종이가 없어지며, 지금까지와는 분위기에 차이가 나거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성공입니다.
  • 창작:좀비탈출/2-1 . . . . 1회 일치
         비틀거리는 공격을 피하면서, 주로 머리를 노리면서 공격했다. 양팔을 부러뜨리는데 성공하고, 5,6번 정도 때렸을 때 썩은 뇌골수가 터져나왔다. 옆집 아저씨 좀비는 겨우 움직임을 멈췄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1회 일치
         작은 성공을 자축할 겨를도 없이 내가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깨달았다. '''어쩌면 모험'''. 금방도 까먹었네! 등 뒤에서 그르릉 소리가 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 최문식 . . . . 1회 일치
         한국의 역대 테크니션들 중 가장 성공한 테크니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 최영미 (시인) . . . . 1회 일치
         '''최영미'''([[1961년]] [[9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섬세하면서 대담한 언어,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직시하는 신선한 [[리얼리즘]]으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에 따르면 "최영미는 첫 시집이 너무 성공한 탓에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행한 시인이다”. 1992년 등단 이후 시와 소설, 에세이를 넘나들며 5권의 시집을 펴내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을 출간하고 미술과 축구에 대한 산문을 많이 썼지만, 한국에서 그녀는 여전히 시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1회 일치
         '''최윤정'''(1974년~)은 [[미누파탈]]의 설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이다. [[1974년]] [[대한민국]]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97년]] [[MBC]] 2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여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사랑과 성공, 진실, 마지막 전쟁, 가을에 만난 남자, 베스트 극장, 인어아가씨, 앞집여자 등에 출연하였다. 또한 [[영화]] [[선생 김봉두]]에도 출연하였고, LG텔레콤, [[P&G]], PCCW, 여성가족부 등의 [[CF]] 모델로도 활동하였다. [[2013년]] [[최정아]]와 함께 20~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미누파탈]]을 설립하였다.
  • 최은희 . . . . 1회 일치
         그 후 북한에서도 영화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1985년에는 영화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1986년 3월 13일, [[신상옥]]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오스트리아)|빈]]에 있던 도중,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해 10년 넘는 망명생활을 하다가 1999년에 영구 귀국했다.
  • 최채흥 . . . . 1회 일치
         4월 14일 역시 [[kt wiz]]를 상대로 홈경기에 출전, '''7이닝 104투구 (S:71,B:33) 6피안타 1피홈런 (1회 유한준 3점) 1볼넷 7삼진 3실점 3자책'''을 기록해 [[QS+]]를 기록했다. 타선이 간만에 터지며 3:14까지 점수를 벌렸으나 이후 올라온 [[이승현(야구선수)|이승현]], [[김대우(1988)|김대우]], 최충연을 상대로 [[kt 위즈]] 타선이 9점씩이나 뽑아내며 12:14까지 좁혀져 승을 날려 먹을 위기에 놓였었다. 역전 주자까지 내보낸 상황에서 [[장필준]]이 두 명을 삼진으로 잡으며 어찌어찌 2승에 성공. 이때 덕아웃을 비춘 카메라에 잡혔는데, 볼 카운트 하나하나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여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 최호중 . . . . 1회 일치
         *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북방(北方) 장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 최희암 . . . . 1회 일치
         그는 [[전라북도]] [[무주군|무주]] 출생이며 졸업을 거쳐 [[연세대학교]]를 학사 학위하고 실업 팀 [[전주 KCC 이지스|현대전자]]에서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에는 동기생인 [[박수교]], [[신선우]] 등에 가려 출장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고 실업 농구에서도 빛을 보지 못해 선수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추경호 . . . . 1회 일치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시절 국제경제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추미애 . . . . 1회 일치
          *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 5선의 여성 국회의원은 추미애 말고도 여럿 있으나, 이는 '[[비례대표]] 의원' 시절을 포함해서 선수를 계산한 경우이고, 순수히 '지역구 의원'으로만 5선에 성공한 것은 추미애가 최초이다.]
  • 추자현 . . . . 1회 일치
         * [[2002년]] [[SBS]] 미니시리즈 《[[명랑소녀 성공기]]》 ... 송보배 역
  • 카라스노 고교 . . . . 1회 일치
         인터하이 미야기현 예선에서는 현내 베스트4인 [[다테 공업 고교]]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노장의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이어진 [[아오바죠사이 고교]]와의 시합에서는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퇴. 봄고 미야기 대표결정전에서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다시 한번 맞붙은 결과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1회 일치
         서기 2513년 미국 동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환경 오염 등의 문제로 지구에서 생존이 불가능해진 인류는 지하 주거시설을 만들고 600여년 동안 틀어박혀 지냈었다. 그 후 600여년의 세월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인간이 없어진 지상은 자정 능력 덕분에 예전처럼 맑고 건강해져 있었다. ~~본격 인류 해충설 인증 성공~~
  • 캡콤 스포츠 클럽 . . . . 1회 일치
         또한 [[타임릴리즈]] 방식을 채용해[*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임릴리즈가 아니다. 코인이 1997개 들어가면 해금되는 방식. 성공하면 타이틀 화면에 멜로디와 강아지가 등장한다.] 나중에 보스[* 스타(축구), 골든 USA(농구), 멜로디(테니스).]들도 선택이 가능해진다. 보스들의 성능은 그야말로 최강.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1회 일치
          * 캡틴은 교도소에 잡혀있던 인원을 구출하는데 성공, 그대로 도망자가 된다.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 . . 1회 일치
         [[액티비전]]에서 발매하는 [[FPS]] [[게임]] 시리즈.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FPS로 시작했다가 현대전을 다룬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가 성공하며 배경 시간대가 미래로 가고있다. 결국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에서는 [[우주]] 진출.
  • 킹덤/503화 . . . . 1회 일치
          호주는 더러운 꼴을 보았으나 왕명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공손룡 장군의 부축을 받아 욕탕을 나서려 하는데, 도양왕은 또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 킹덤/505화 . . . . 1회 일치
          몽념은 내심 열미 성의 최대 무기는 성이나 병력이 아닌 저 높은 "사기"라고 생각한다. 진나라도 함곡관이 돌파됐을 때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오합지졸의 민병으로 어떻게든 수성에 성공한건 진왕 [[진시황(킹덤)|정]]이 직접 전선에 나서야 사기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이 이번엔 진군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그는 비신대 지휘관 [[이신(킹덤)|이신]]에게 큰 짐이 지워졌다고 본다.
  • 킹덤/506화 . . . . 1회 일치
          * [[환의(킹덤)|환의]]군, [[왕분]]대에 파발이 온다. 이들은 도중에 마주쳤던 조군을 성공적으로 격멸하고 막 휴식에 들어가던 참이다. 파발은 열미성 공략이 시작되었고 산민족과 [[비신대]]만이 투입되었다고 알린다. 왕분은 예상과 다른 인선에 움찔한다. 부하 장수들은 자기들이 맡은 역할 때문에 비신대에게 선수를 뺏겼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 사이에 왕분은 조용히 자리를 뜬다. 관상이 어딜 가시냐고 묻자 중요한 전투에서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이 이같은 지시를 내린 의도를 물으러 간다며 본대는 부상자 조치를 마친 뒤에 따라 오라고 지시한다. 한모대가 호위를 자청. 관상은 왕분의 핑계가 솔직하지 못하다며 그냥 비신대가 신경쓰여서 간다고 하시면 된다고 하지만 왕분은 대답없이 그대로 출발한다.
  • 킹덤/507화 . . . . 1회 일치
          * 이러는 사이 마침내 [[바지오]]는 열미성 성벽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 킹덤/508화 . . . . 1회 일치
          * [[바지오]]는 열미성 입성에 성공. 파죽지세로 성벽의 열미병을 격파하고 성문의 개폐장치로 향한다.
  • 킹덤/509화 . . . . 1회 일치
          왕분은 무표정한 얼굴로 열미성 중앙에 내걸린 비신대의 깃발을 바라본다. 결국 직성대로 성 중앙을 점거하는게 성공한 신이 지붕 위로 올라가 깃발을 꽂고 있었다.
  • 킹덤/516화 . . . . 1회 일치
          * 수도 한단에 도착한 [[이목(킹덤)|이목]]. [[왕전(킹덤)|왕전]]의 의중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진군을 성공적으로 포위하고 "병량공세"를 펼칠 채비를 한다.
  • 킹덤/523화 . . . . 1회 일치
          * [[몽념(킹덤)|몽념]]이 "주역을 뺏을지도 모른다"고 발언을 했을 때, [[왕전(킹덤)|왕전]] 또한 "임무에 성공하면 측근 장교로 삼겠다"고 대담한 제안을 했다.
  • 킹덤/525화 . . . . 1회 일치
          * [[악영]]의 조군 1진을 성공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던 [[아광]]군은 [[마남자]]군에게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위기에 처한다. 마남자가 선두를 이끌고 아광에게 쇄도하자 전방의 악영군과 교전에 힘쓰고 있던 아광으로선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는데, 그때 대기를 지시했던 [[왕분]]의 옥봉대가 전장에 난입해 마남자군을 요격하면서 전황은 다시 바뀐다.
  • 킹덤/526화 . . . . 1회 일치
          * 여전히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전장을 관망하던 [[조아룡]]은 그 흐름을 짐작하고 있었다. 마남자는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아광과 왕분에게 "지나치게 뭉쳤다"고 훈수하며 조군에 장수가 자신만 있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조군이 다시 힘을 받고 있었다. 마남자를 잡자고 아광과 왕분이라는 두 지휘관이 모두 집중된 게 틈이 됐다. 시간을 번 [[악영]]이 성공적으로 자군을 수습, 다시 대형을 갖춰 아광군에 들이쳤다. 그런데 정작 아광은 일선에 있지 않았으니 힘의 균형이 맞을 리 없었다. 전열이 위태로운 와중에 뒤에서는 마남자 2진까지 몰려오는 상황. 위기는 진군 쪽이었다.
  • 킹덤/531화 . . . . 1회 일치
          마남자의 말이 맞았다. 이목은 안심하지 못하는 카이네의 의중을 정확히 읽었다. 그녀에게 상대가 "그런 수"를 쓴다는걸 모르는 이상 반드시 성공할 거라 장담했다.
  • 킹덤/533화 . . . . 1회 일치
          * [[마광]]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진군 좌익의 사기는 크게 꺾인다. 그러나 낙화대의 [[몽념(킹덤)|몽념]]은 상황을 타개하고 조장 [[기수(킹덤)|기수]]를 확실히 제거할 묘안을 들고 나오는데. 그 핵심 역할은 [[비신대]]의 [[이신(킹덤)|이신]]과 자신의 부하 "육주"에게 맡기는데. 몽념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자 주인을 잃은 마광군은 몽념을 중심으로 군세를 정돈해 협조에 나선다.
  • 토리코/371화 . . . . 1회 일치
          * '''사실 지지는 GOD의 조리법을 전하는데 성공했다!'''
  • 토리코/372화 . . . . 1회 일치
         * 그 틈에 코코가 몰드 스피어를 맞추는데 성공한다. 이 몰드스피어는 독이 아닌 균.
  • 토리코/377화 . . . . 1회 일치
          * 현재의 상황과 토리코의 모습을 보고 도박은 성공했다고 만족한다.
  • 토리코/383화 . . . . 1회 일치
          * 네오를 포식하는데 성공한 아카시아는 마침내 자신의 식욕을 손에 넣었다며 흥분에 떤다.
  • 토리코/390화 . . . . 1회 일치
          * 그는 분노를 공격에 응축시키는 방식으로 타격을 주는데 성공한다.
  • 토리코/391화 . . . . 1회 일치
          * 데로우스는 순순히 당하지 않고 최강의 송곳니를 아카시아의 목에 꽂는데 성공한다.
  • 토리코/395화 . . . . 1회 일치
          * 예식은 금방 끝나고 곧바로 피로연의 시작이다. 하객이 무려 5천명. 한 번이라도 토리코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축하해주러 왔다. 구르메 계의 주민들은 물론 스타준을 위시한 미식회의 인물들까지 얼굴을 보인다. 코마츠는 조리장으로서 꼭 성공적인 피로연으로 만들자고 기합을 넣는다. 오오타케, 나카우메도 조력하러 온다. GOD를 요리한 전설의 요리사들이 모두 모이자 주방은 한 순간에 달아오른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1회 일치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1598년 8월 18일, 62세 나이로 사망한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1회 일치
         냉병기를 사용하는 부대. 적 전열보병에게 성공적으로 접근한다면 죄다 찌르고 베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전열보병의 일제 사격에 의해 쓸려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1회 일치
         ||각하, 성공의 냄새가 납니다. 폐가 부식될 가능성이 좀 있긴 한데, 그것도 다 필요한 과정이겠죠 뭐. 화학 공장은 어딘가에 쓰일 화학 약품들이 생산됩니다. 어디에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돈은 된답니다.
  • 페어리 테일/484화 . . . . 1회 일치
          * 하르지온 탈환은 성공하고 생존자들은 전원 무사하다.
  • 페어리 테일/489화 . . . . 1회 일치
          * 길드 지하에서 카나는 페어리 글리터를 난사한 결과 메이비스의 봉인을 깨는데 성공한다.
  • 페어리 테일/494화 . . . . 1회 일치
          * 메이비스는 그런게 가능할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제레프는 그녀가 하이 인첸트 마법의 천재라며 성공을 장담한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1회 일치
          * [[카구라 미카즈치]]가 중력 마법으로 조력해서 스팅은 그림자로 들어가는데 성공한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1회 일치
          * 아이린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멸룡마법은 대성공을 거둬 많은 멸룡마도사가 탄생했고 전황은 단숨에 역전된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건 아니었다. 드래곤의 강대한 힘을 이식한 탓에 부작용에 시달리는 멸룡마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강대한 힘에 휘둘려 흉포화하거나 드래곤의 감각과 인간의 감각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망가져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부작용. 멸룡마법을 받은 인간은 그 체내에서 성장하는 '''용의 싹'''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곧 '''사람을 용으로 바뀌는 것.''' 이것이야 말로 멸룡마도사의 최후였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1회 일치
          * 그녀는 산 속에 틀어박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의 천재와 우연히 만난다. 바로 [[제레프 드래그닐]]. 한 눈에 그녀가 인간이었다는 걸 알아본 제레프는 아이린이 수백 년이나 연구하고도 실패한 드래곤의 인간화를 한순간에 성공한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1회 일치
         아이린이 평생 걸쳐 인챈트 마법을 연구한 결과가 전 인격 인챈트인데, 웬디는 아이린이 하는걸 보고 바로 따라해 버렸으니 경악할 만도 하다. 그러고 보면 [[제레프 드래그닐]]도 그녀가 연구한 마법을 한순간에 이해해서 육체를 인간으로 돌리는데 성공하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안습한 부분.
  • 페어리 테일/521화 . . . . 1회 일치
          * 매그놀리아로 돌아오는데 성공한 [[페어리 테일]] 일행.
  • 페어리 테일/522화 . . . . 1회 일치
          * 그레이는 오히려 나츠가 도착하기 전에 없어지는건 제레프라고 받아친다. 제레프는 불사자인 자신을 죽일 자는 없고, 설사 그런게 성공해도 자신이 죽으면 나츠도 죽을 거라고 말한다. 그레이가 순순히 그럴 거라고 수긍하자 그가 나츠의 정체, END에 대해 알고 있는걸 보고 흥미로워한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1회 일치
          * END의 서를 수정하는 건 성공했지만 글자를 고쳐 쓴 루시의 몸에 이변이 일어난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1회 일치
          * 시간의 틈새가 있는 바다 위. 추락한 크리스티나호가 침몰해가고 있다.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을 비롯한 탑승자들은 모두 탈출에 성공. 생존자들은 크리스티나의 폭발을 우려해 배에서 최대한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이 안전할 수 있었던 건 [[제라르 페르난데스]]가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지만, 마룡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으려던 그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아크놀로기아의 손에 잡혀 으스러지는 제랄.
  • 페어리 테일/538화 . . . . 1회 일치
          * [[루시 하트필리아]]는 악마의 힘에 고통 받으면서도 END의 서를 고쳐쓰는데 성공하고 [[그레이 풀버스터]]는 멸악마법의 힘으로 루시 안의 악마를 뽑아낸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1회 일치
         >우리가 부패한 세무서 직원 에이드리언 스터를 체포하려고 했을 때, 페이데이 갱이 나타나 요원들에게 발포하였다. 요원들은 스터가 숨은 리무진이 크레인에 의해 들어올려져 길 건너 폐건물에 떨어지는 광경을 볼 수 밖에 없었다. SWAT을 호출해 빌딩을 습격하게 했지만, 페이데이 갱은 목표를 이룰 때 까지 버티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 요원들이 빌딩을 겨우 확보했을 때, 스터는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서버는 사라졌으며, 방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에는 2천 5백만에 달하는 거금이 추적할 수 없는 계좌로 보내졌다는 내용이 남겨져있었다.
  • 피수영 . . . . 1회 일치
         피수영은 1995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면서 국내의 수많은 미숙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2000년엔 국내 의료진과 함께 468g 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미국 의사들이 "너희들은 이런 아이들까지 살리느냐"고 할 만치 위험한 상태의 미숙아를 살려내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도 백내장에 걸려 치료도 못 받는데 아기를 살려서 뭐하냐"는 아기 할아버지의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땐 피 교수가 "미숙아도 생명이다"라며 자기 돈을 들여 아이를 살려냈다고 한다. 피수영 교수는 '더 이상 경제적 이유로 미숙아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바람으로 유명 탤런트 등 몇몇 지인들과 몇백 만원씩 모아서 1억5000만원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71222083196938 피수영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머니투데이》, 2008년 7월 25일</ref>
  • 하이큐/214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정작 서브 성공률 쪽은 안습. 거의 안 들어가는 수준.
  • 하이큐/222화 . . . . 1회 일치
          * 카라스노는 공격에 성공하고도 압박을 느낀다.
  • 하이큐/224화 . . . . 1회 일치
          * 다시 자신을 얻은 카게야마는 맞춰주는 토스에서 리드하는 토스로 전환해 새로운 공격루트를 뚫는데 성공한다.
  • 하이큐/226화 . . . . 1회 일치
          * 사와무라의 공격 성공.
  • 하이큐/233화 . . . . 1회 일치
          * 드디어 시합개시. 첫 공격은 카라스노 측의 서브. 카게야마가 서브를 넣지만 아웃이 된다. 서브권은 츠바키하라에게. 이와무로가 서버다. 타나카가 받아내지만 어설펐다. 우카이 코치는 취약지점을 당연하다는 듯 노리는 서브라고 평한다. 타나카가 흘린 공을 어떻게든 커버, [[사와무라 다이치]]의 스파이크로 이어진다. 츠바키하라는 리시브에 성공, 에이스인 4번 테라도마리로 이어간다.
  • 하이큐/235화 . . . . 1회 일치
          *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세트 동작으로 이어지는 카게야마의 플레이. 공은 히나타에게 넘어가 득점 성공. 츠바키하라는 보면서도 대응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한 플레이였다.
  • 하이큐/239화 . . . . 1회 일치
          * 2세트 들어 긴장이 누그러진 히메카와는 자신의 특기인 "천장 서브"를 사용해 카라스노의 허를 찌르는데 성공한다.
  • 하이큐/240화 . . . . 1회 일치
          히메카와가 살린 공을 테라도마리가 이어서 스파이크, 득점에 성공한다. 스코어는 15 대 17.
  • 하이큐/244화 . . . . 1회 일치
          * 에이와의 TO 종료. 경기가 재개된다. 에이와의 서브를 코미가 리시브. 아카아시가 보쿠토에게 올린다. 블록이 세 명이나 따라 붙지만 보쿠토는 절묘하게 라인에 걸치는 스파이크로 블록을 농락, 역전을 성공시킨다.
  • 하이큐/246화 . . . . 1회 일치
          * 봄고 1일차. 살아남는데 성공한 [[카라스노 고교]]는 역시 1회전을 돌파한 [[네코마 고교]]와 조우, 악담 섞인 격려를 나누고 헤어진다.
  • 하이큐/249화 . . . . 1회 일치
          * 서브는 성공. 니시노야와 타나카 사이를 깔끔하게 가르며 정확히 라인 앞에 떨어진다. 그러자 응원단은 방금 전 정적이 없었던 일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우카이 코치는 선수들에게 "칼날 날라오는거 아니니 굳어있지 마라"고 격려한다.
  • 하이큐/252화 . . . . 1회 일치
          * 히나타가 매우 쪽팔렸지만 결과적으론 카라스노가 점수차를 좁히며 분위기를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 하이큐/254화 . . . . 1회 일치
          * 아츠무의 3회차 서브. 점프 플로터였다. 이번엔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공은 [[니시노야 유]]에게, 니시노야가 띄워서 [[아즈마네 아사히]]가 막바로 스파이크. 득점에 성공하면서 스코어는 11 대 8. 3점차. 간신히 아츠무의 연속 서브 에이스를 끊었다.
  • 하이큐/256화 . . . . 1회 일치
          * 츠키시마가 공수를 가리지 않고 날뛴다. 벤치의 야마구치와 히나타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활약. 중계진의 말처럼 그야말로 "빛을 발한다". 그런데 이런 파인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그걸 성공시킨 세터와 스파이커는 그 흔한 하이 파이브 조차 하지 않았다. [[스가와라 코시]]도 그걸 지적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언제라도 후려칠 것 같은 썩은 눈빛 교환. 이 눈빛에 관해서는 엔노시타가 해설한다. 츠키시마는 "잘 되고 있는건 인정하지만 거슬린다"는 눈빛, 카게야마는 "니가 노려보니까 나도 노려보겠다"는 눈빛.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걸 읽어내는 엔노시타가 더 신기한 모양이다.
  • 하이큐/258화 . . . . 1회 일치
          히나타의 성공을 알리는 니시노야의 기합. 히나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반면 오사무의 표정이 흐려진다. 방금 전은 직선으로 "유도" 당했다.
  • 하이큐/264화 . . . . 1회 일치
          * 부단히 쓴맛을 보았던 [[이나리자키]]전에서도 타나카는 다시 기운을 차려서 공격에 나선다. 그는 [[스나 린타로]]의 블록도 따돌리고 마침내 득점에 성공한다.
  • 하이큐/268화 . . . . 1회 일치
          * 작전은 성공하고 사루카와 진영은 혼란에 빠지지만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금방 선수들을 다잡으며 쉽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 하이큐/271화 . . . . 1회 일치
          * [[미야 아츠무]]는 여전히 [[니시노야 유]]를 노리고 서브. 하지만 그것도 4회차에서 미스를 범하며 아웃된다. 그런데 완전히 승부욕에 불타던 니시노야는 오히려 그걸 아까워한다. 스코어 17 대 8. 이번엔 [[카라스노 고교]]의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가 서브한다. 서브는 [[마지로 아란]]에게, 마지로가 리시브에 실패하며 득점으로 이어진다. 아즈마네의 서브 에이스. 곧바로 이어지는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마지로를 정확히 노렸다. 이번엔 마지로의 리시브 성공. 공은 아츠무에게. 좌측에서 [[미야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그러나 이는 연막. [[츠키시마 케이]]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중앙에서 한 박자 늦게 달려나오는 린타로를 놓치지 않았다.
  • 하일권 . . . . 1회 일치
         2010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윤아이, 오직 성공하는 삶을 위해 악착같이 1등을 유지하는 소년 나일등,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로 남고 싶어하는 철없는 마술사의 마술 같은 성장 스토리를 담은 만화이다.
  • 하현우 . . . . 1회 일치
         하현우의 송라이팅은 한국에서 대중음악의 성공 요건이나 다름없는 로맨틱한 감성과는 거리가 멀다. 가사의 난해함과 더불어 부드럽고 편안한 정서 대신 불편한 정서를 파헤치기 때문에, 국카스텐의 음악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카스텐 음악의 독특한 점이자 매력은 패배주의적인 모티브가 짙게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이기보다는 희망적인 에너지가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나'의 '허상'과 '위선', '뒤틀림', '무기력'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지만, 이 우울한 이미지들은 어떻게든 결국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차 있는 '나'의 모습을 엮어낸다.
  • 함신익 . . . . 1회 일치
         함신익은 EU (유럽연맹)가 후원하는 세계 40 개국으로부터 모인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Philharmonia of the Nations 의 지휘자로서 이들의 유럽 순회연주를 성공적으로 지휘하였다.
  • 핫라인 마이애미 . . . . 1회 일치
          특정 무기로 시작하는 가면이 아닌 이상 이걸로 시작한다. 말 그대로 주먹질을 한다. 맞은 적은 잠시 기절한다. 기절한 적을 처형할 때는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서있는 상대의 정면에서 처형 버튼을 누르면 목 핏줄을 잡아 뜯어 죽여버리지만 성공률이 희박하다.
  • 허건엽 . . . . 1회 일치
         시즌 최종 13경기에 등판해 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9.17을 기록했다. 17.2이닝동안 탈삼진 19개를 잡아내는 등 탈삼진 능력은 입증했으나 무너지는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등 기복이 심했다. [* 4실점 경기 4번, 2실점 경기 2번] 다만 세이브 성공률이 100%로 세이브 찬스나 타이트한 상황에서는 귀신같이 호투하며 경기를 날린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질롱에서 가장 접전인 상황에 많이 올라온 투수였다. 참고로 2018시즌 본인의 퓨처스리그 기록과 놀랍도록 비슷한 성적을 냈다. [* 12경기 평균자책점 9.28 10.2이닝 8탈삼진. 퓨처스에서는 6실점 경기가 두 번 있었다.]
  • 허위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 [[달성공원]] 안에 왕산 허위 선생 순국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헌터X헌터/369화 . . . . 1회 일치
          * BW가 이틀째 새벽을 맞이할 무렵 왕비의 수색이 재개됐다. 바퀴벌레는 통풍구를 따라 1004호실로 향했다. 왕비는 설계도를 짚어가며 신중히 진행했다. 길을 헤매서도 지체가 돼서도 안 됐다. 그만큼 크라피카에게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행히 아무 문제도 없이 목적지가 가까웠다. 이제 모퉁이 하나만 돌면 체리드니히의 거실. 그렇게 순조롭게 잠입이 성공하는 것 같았는데, 암초에 부딪혔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여자의 얼굴. 아니다 그것이 여자일리 없다. 통풍구 속의 여자라니. 그 여자가 입을 멀리자 그 안에서 또다른 얼굴이, 그리고 달팽이 같은 촉수가 꿈틀거렸다. 모든 게 한 순간. 왕비에겐 바퀴벌레를 회수할 겨를도 없었다. 그 무언가가 바퀴벌레를, 그녀를 통채로 집어삼켰다.
  • 헤이즈 (가수) . . . . 1회 일치
         어린 시절 [[첼로]]를 배웠고 [[클래식]]과 [[발라드]]를 좋아했던 그녀는 미니홈피를 통해 랩을 듣게 된 이후 직접 랩 가사를 쓰고 랩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부경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하였으나 공부를 멀리하고 랩 가사를 써왔다.<ref name="s">{{뉴스 인용|제목=[인터뷰] 대구소녀 헤이즈의 파란만장 랩퍼 성공기|url=http://sports.donga.com/3/02/20160204/76324120/2|날짜=2016-02-04|뉴스=스포츠동아}}</ref>
  • 현재현 . . . . 1회 일치
         * 2005년 APEC CEO Summit 의장. 현재현 회장은 2005년 개최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의체(APEC)회의의 CEO Summit 의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 홍경인 . . . . 1회 일치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 홍명희 . . . . 1회 일치
         이후 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 내각 부수상 등으로 주요정치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전쟁에 반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북한 부총리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부분 월북 인사들이 숙청당한 것에 비해 홍명희는 성공한 삶을 누렸다고 볼 수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와도 개인적으로 친하였다. 실제로 김일성은 벽초를 극진히 존경하고 예우했다. 홍명희의 계모는 홍명희를 따라가지 않고 괴산의 집을 지키다가 6.25 전쟁 중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는데 북한군이 후퇴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그 시신의 수습을 명령했을 정도였다.
  • 홍상수 . . . . 1회 일치
         귀국 후 텔레비전 연출을 하다가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 홍정욱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성공회대학교 교수]][[분류:서울압구정초등학교 동문]][[분류:압구정중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홍준표]][[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홍해성 . . . . 1회 일치
         [[1935년]]에 상업연극 전문 극장인 [[동양극장]]이 개관하자, 동양극장 연출부로 이동했다. [[1943년]]에 지병으로 사임할 때까지 동양극장에서 총 400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승방비곡》, 《검사와 사형수》, 《어머니의 힘》 등이 대표적인 흥행작이다. 본격적인 전문 연출가로서 한국에 근대극을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데 이어, 동양극장 이적 후에는 세련된 상업 연극으로 대중극의 수준을 격상시켰다는 평이 있다.
  • 황두성 . . . . 1회 일치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를 중퇴하고 [[1997년]] [[포수]]로 [[삼성 라이온즈|삼성]]에 입단했다가 시력이 좋지 않아 당시 [[장호연]] 코치의 제안으로 [[투수]]로 전향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712347 황두성, "장례식장에서 받은 방출 통보 서러웠다"] - 아시아경제</ref> 그러나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1999년]]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에 3:1 현금 트레이드([[양준혁]]·[[곽채진]]·황두성↔[[임창용]])되었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300034 황두성-이재우, '늦깎이의 성공시대' 열 것인가] 《Osen》 2008년 12월 30일</ref>
  • 황두진 . . . . 1회 일치
         2017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과 건축의 동행’ 콘서트 기획 및 진행(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천도교 중앙대교당)
  • 황지웅 . . . . 1회 일치
         [[2012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여 리그 20경기에 출전하였으나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고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개막전 출전 후 시즌 말미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 다시 기회를 잡기 시작하여 11월 3일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한데 이어 6일 뒤 [[강원 FC]]를 상대로도 골을 성공시키며<ref>{{뉴스 인용 |제목 = 무명 황지웅, 대전 구세주로 |url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20029003 |출판사 = 서울신문 |저자 = 강신 |날짜 = 2013-11-20 }}</ref> 활약하였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하였다. 다만 [[K리그 챌린지 2014|2014 시즌]]부터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팀의 승격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5년]] 팀내 최장수잔류자로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팀의 재강등을 막지 못했고, 2015 시즌을 끝으로 군 복무를 위해 [[안산 무궁화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 회고록 . . . . 1회 일치
         정치,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들이 말년에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물들의 회고록은 사료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회고록에도 개인의 주관이 반영되어 있어서 [[자서전]]만큼이나 회고록의 기록은 검토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 희빈 장씨 . . . . 1회 일치
         1720년, 그녀의 아들인 [[조선 경종|경종]]이 즉위하자 장씨를 추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이에 노론이 노골적으로 극심한 반발을 하자 [[조선 경종|경종]]은 [[조선 숙종|숙종]]이 승하한 지 한 달만에 이러한 화제를 올리는 것이 해괴하다며 상소를 올린 유학 조중우를 유배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하였지만 노론은 조중우에게 대역죄를 물어 사형에 처했다. 이 사건 직후, 성균관 장의 윤지술이 [[조선 숙종|숙종]]이 장씨를 죽인 것은 빛나는 업적이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경종과 소론이 이에 대해 분노하여 윤지술에게 유배형을 내리고 곧 처형하려 하였지만 노론은 윤지술의 의기를 높이 사야 한다며 윤지술에게 죄를 주어선 안 된다고 방면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와 동시에 노론은 [[조선 경종|경종]]에게 왕세제 책봉을 종용하여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는데 성공하였고, 그 직후 왕세제 대리청정을 주장해 [[조선 경종|경종]]이 정치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신임사화]]가 발발하여 노론이 숙청되었다. 1721년 12월, [[조선 경종|경종]]은 비로소 1년 전에 그의 생모를 모욕한 윤지술에게 사형을 내릴 수 있었다.
  • 히나타 쇼요 . . . . 1회 일치
         이후 꾸준한 연습으로 신 속공의 성공률도 점점 높아져가고, [후쿠로다니 학원]의 에이스 보쿠토 코타로에게 페인트와 리바운드 플레이를 전수받아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해져, 차차 최강의 미끼가 아닌 차기 에이스(작은거인)의 길을 밟게 될듯 하다. ~~허나 아직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기싸움에서 밀린다.~~ ~~한 번은 아사히가 쫄았고, 한 번은 히나타가 쫄았으니 1대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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