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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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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수(배우) . . . . 55회 일치
         [[대한민국]]의 --[[사망전대|단명 전문]]-- [[배우]].
         이상하게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사망전대|극중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단명]] [[전문]] [[배우]]라는 평을 얻고 있다. 특히 [[2010년]] 들어 출연작에서 맡은 배역들이 연이어 사망해서[* 아이리스, 거상 김만덕, 제중원, 신데렐라 언니, '''즐거운 나의 집'''.] [[사망전대]]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의견이 있다.[* 연륜이 많아 비교적 비싼 준주연을 일찍 극에서 하차시킬 수록 제작비는 세이브된다는 원리도...] 이게 본인에게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해서 달갑지 않은지 아예 [[무릎팍도사]]에 한 번 나와서 '이 신세를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겠느냐'고 고민 상담을 했을 정도.[* 물론 프로그램 특성상 진지한 질문일 리는 없다.] 떠오르는 [[사망 플래그]]시다.
         이번엔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드라마)|즐거운 나의 집]]에 출연, 출연 1분 20초[* 그것도 1회 방송의 2분 54초부터], 극 시작 3분만에 죽음을 맞이하여 6번째 사망 및 최단기간 사망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ㅎㄷㄷ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김갑수씨 본인은 "죽음이란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화면 상에서는 금방 사라져 버리지만 중요한 역할이어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극 중 [[회상]]신을 통해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나왔던 장면을 다시 트는 회상 씬에 나와도 출연료는 지급된다. 심지어 [[영정]] 사진으로 나와도 준다. 물론 직접 나오는 것에 비하면 일정 비율로 깎고 주지만. ~~안 찍고도 돈은 받으니 배우 입장에선 좋다고 해야 하나?~~]
         시트콤 [[몽땅 내 사랑]] 기자회견 당시 한 기자가 '혹시 금방 죽는 작품이 아니라서 출연하신 건 아닌가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잠깐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려는 듯 했으나 포기하고 금방 인정.[* 물론 질문을 한 기자나 대답을 한 김갑수나 농담.] 지못미 갑수옹……. 그래도 2010년 맡은 작품 중에선 간만에 밝은 분위기에 장수할 것 같은 역을 맡게 됐다. ~~대신 작중에서 똥 싸셨다.~~[* 작 중에도 잦은 사망과 관련된 개그가 나온다. 딸 금지(손가인 분)를 놀리기 위해 바닥에 쓰러진 연기를 하는데 계획을 짜면서 하는 말 "내가 딴 건 몰라도 죽는 연기 하나는 대한민국 최고야."]
         2009년 [[KBS2]] [[아이리스(드라마)|아이리스]]에서 핵물리학자 [[유정훈]]으로 출연해서 사망하고, 후속작 2013년 [[아이리스 2]]에서 그 형이자 핵물리학자 [[미스터 블랙]]으로 출연해서 사망. ''''1인 2역' 사망'''(...).
         [[SBS]] [[월화 드라마]] [[귓속말(드라마)|귓속말]] 9회에서는[* [[2017년]] [[4월 24일]] 방영분.] [[강유택(귓속말)|강유택]]([[김홍파]])을 청자를 내리쳐 죽이면서 본격적으로 사망 전문 배우 타이틀을 떼어냈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rowbgcolor=#c0c0c0> '''개봉 연도''' || '''제목''' || '''배역''' || '''활동''' || 사망여부[* 출연작의 경우 죽은 역할의 옆엔 ☆ 표시][[추가바람]][* 특별, 우정출연이 많아서 그런지 그닥 많지 않다...] ||
         ||<rowbgcolor=#c0c0c0> '''방영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활동''' || 사망여부 ||
         || 2018년 || tvN || [[미스터 션샤인]] || 황은산 || 조연 || 사망 ||
         ||<|3> 2016년 || tvN || [[THE K2]] || 박관수 || 조연 || 사망[*스포일러2 마지막회의 마지막즈음 '''자살 당한다.'''(올가미가 있는 나무로 안내 받는 간접적묘사. 이때 대사가 '내가 자살당할줄은...')] ||
         || KBS2 || [[부탁해요, 엄마]] || 이동출 || 조연 || [* 해당 작품에선 [[본인]]이 아닌 아내가 사망한다.] ||
         || KBS2 || [[블러드(드라마)|블러드]] || 유석주 || 조연 || 사망 ||
         || SBS || [[미세스 캅]] || 박동일 || 조연 || 사망 ||
         ||<|4> 2014년 || JTBC || [[하녀들(드라마)|하녀들]] || 김치권 || 조연 || 사망 ||
         || KBS2 ||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 [[덴카이]] || 조연 || 사망 ||
         || KBS2 || [[아이리스 2]] || [[미스터 블랙]] || 조연 || 사망[* 아이리스 1에서 [[유정훈]]으로 사망, 그 형으로 출연해서 '''1인 2역''' 사망(...)] ||
         || 2012년 || KBS2 || [[전우치(드라마)|전우치]] || 마숙 || 주연 || 사망 ||
         || MBC || [[즐거운 나의 집(드라마)|즐거운 나의 집]] || 성은필 || 조연 || 사망 ||
         || KBS2 || [[신데렐라 언니]] || 구대성 || 조연 || 사망[* 스타팅하자마자 죽는 것도 죽는거지만 [[제중원(드라마)|제중원]] 이후 줄초상이 났다! [[안습]].] ||
         || KBS1 || [[거상 김만덕]] || 강계만 || 조연 || 사망 ||
  • 희빈 장씨 . . . . 24회 일치
         |사망일 = 숙종 27년(1701) 음력 10월 8일 ~ 10일<!--사망 발표가 10일 오전이었음-->
         |사망지 = [[창경궁]] [[취선당]](就善堂)
         |사망원인 = 사사
         산림숭용과 국혼물실을 당의 제1강령으로 추구했던 [[서인]], 특히 [[인현왕후]] 민씨의 배경 세력이었던 노론의 강력한 적으로 규정되었다. [[1701년]](숙종 36년) [[숙빈 최씨]]의 발고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의를 받고 [[조선 숙종|숙종]]에게 자진을 명받았다.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 등의 소설 야사에서는 사약을 마시고 사사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숙종실록 등 정사기록은 주례의 규정에 따라 사사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목을 메어 자결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녀의 아들인 [[조선 경종|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조선 영조|영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 [[인현왕후|인현왕후]]의 폐위와 죽음의 범인이자 3대 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의 원흉으로 정의하여 비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어 민간으로 보급된 [[인현왕후전]], 수문록 등의 언문 소설과 야사집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 서적과 드라마 등에 중요 사료로 활용되었다.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은 [[사역원]] 봉사를 재직하였지만 일찍 은퇴하고 집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음률을 즐기다가 장씨가 막 11세가 된 1669년 1월 12일에 사망했다. 그녀보다 19세 연상인 이복 오빠 장희식은 18세의 나이로 1657년 식년시 역과에 장원을 하여 사역원 직장(종7품)이 되었지만 곧 사망하였다. 장희식의 아내 이씨는 절충장군 이천연의 딸이다. 할아버지 장응인은 《통문관지》에 행적이 기록된 [[조선 선조|선조]] 때의 명역관으로, 생전 최고 관직이 정3품 [[첨지중추부사]](무관직)에 이르렀고, 전쟁 중에 무관으로 참전한 바 있으며 시재(詩才)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선(善)을 가훈으로 삼아 이 단어를 쓴 종이를 항상 품에 넣고 다녔다고 전한다. 할머니 남포 박씨는 산학 별제 박심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윤성립(尹誠立, 1689년 정경으로 추증)은 일본어 전공의 사역원 첨정(종4품)<ref group="주">사역원 역관의 품작은 정3품 정(正) 1명으로 시작하여 아래로는 종3품 부정(副正) 1명, 종4품 첨정(僉正) 1명으로 내려간다.</ref> 이었으며, 1653년에도 생존했던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있다.
         희빈 장씨의 입궁 시기는 불분명하다. 그가 11세의 어린 나이에 아비 [[장형 (조선)|장형]]을 잃고 생계가 어려웠던 탓에 궁녀가 되었다는 주장과 [[장형 (조선)|장형]]이 사망하기 전에 역시 궁녀였던 딸이 있는 [[장형 (조선)|장형]]의 사촌형 [[장현 (조선)|장현]]의 권고를 받아 막내 딸인 장씨를 입궁시켰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생부 [[장형 (조선)|장형]](張炯)의 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에 따르면 희빈 장씨가 어린 나이에 간택되어 입궁해 성장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숙종 실록에도 머리를 스스로 땋아 올리기 전에 입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숙종실록 15년 5월 6일 2번째 기사</ref>
         [[1683년]] 10월, [[조선 숙종|숙종]]이 두질(豆疾: 두창, 마마, [[천연두]])을 앓았다.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왕대비(王大妃)]] 김씨는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함께 [[조선 숙종|숙종]]의 쾌차를 기원하기 위해 무당의 권고대로 절식을 하고 매일 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치성을 올리다가 감질(感疾: 감기)에 걸렸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와병 중이라 쉬쉬하며 치유치 않다가 점점 위중해졌고, [[조선 숙종|숙종]]이 온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12월 5일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ref group="주">이 사실을 발고한 [[박세채]]의 상소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명성왕후|대행왕대비(사망한 왕과 왕후에겐 대행을 붙인다)]] 김씨가 무속을 싫어하였다며 강력히 부정했다. 『숙종실록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12월 15일(임자) 2번째기사』 하지만 다음해 2월 박세채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어 무녀 막례가 유배되었다.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2월 21일(정사) 3번째기사』 실제로 [[명성왕후 김씨]]는 전속 무당을 두었을 만큼 무속을 신봉했고, [[조선 숙종|숙종]]도 무속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ref>
         5월 2일, [[조선 숙종|숙종]]은 당시 사대부 여성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던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언사를 낱낱이 폭로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킨 후 폐서인하여 강제로 출궁시켰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폐출은 폐비 윤씨와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녀의 인성이 여후<ref group="주">한고조([[유방]])의 아내 [[여태후]]를 의미한다. 여태후는 중국 3대 악녀(여태후, 측천무후, 서태후)로 꼽히는데, 투기와 잔혹성은 여태후가 단연 으뜸이다. 여태후는 남편 한고조가 사망하자 그녀의 정적이었던 척부인의 혀와 팔다리를 자르고 인간돼지라고 명명하여 변소에 장식하였으며 척부인의 소생을 살해하였다.</ref> 와 흡사하다고 비교하였다. [[인현왕후]] 민씨에게 물어진 죄는 죽은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여 왕에게 거짓을 고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를 말한다</ref>, 왕의 육체를 조롱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주상이 노고(勞苦)하셔도 공이 없을 것'''의 부분을 말한다.</ref>, 투기로 내전(內殿)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켜 국정을 어지럽힌 죄<ref group="주">서인이 장씨를 출궁시키도록 종용한 것과 옥교 사건,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삼은 것에 대한 서인의 반대를 의미한다.</ref>, 내전에서 궁인의 당파를 나누어 붕당을 일으킨 죄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폐서인]] 민씨의 남겨진 물건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명하였으며 그녀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장복은 대내에서 공개적으로 태우도록 했다.<ref group="주">이후 노론은 숙종이 옳은 주장을 한 [[송시열]]을 처벌하고 정권을 갈아치운 목적이 왕비 민씨를 내쫓고 후궁 장씨를 왕비로 올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왕비 민씨의 폐출은 장씨의 모략이었다고 기록한다.</ref>
         숙종실록에는 장씨 소생의 왕자가 9월 16일에 사망하였는데 태어난지 열흘이 지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6월에 이미 [[산실청]]이 설치되었으며 7월 19일 중궁전(장씨)이 해만(解娩: 해산)한 후 약방(藥房)과 정원(政院), 옥당(玉堂)이 대전과 중궁전의 안부를 물었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19일 (무신) 원본342책/탈초본18책 (10/14)</ref> 다음 날인 7월 20일, 중전 장씨의 해만 상태와 산후 기후가 편안하다는 보고가 있으며 2품 이상 관원들이 문안을 올렸다. 22일에는 장씨의 유즙(乳汁: 젖)이 나오지 않아 약을 의논하는 기사가 있다. 7월 26일에는 산실청 의관이 입진하여 중궁전(장씨를 말한다)이 해만(解娩: 해산)한 지 제7일이 되었으니 산실을 철파(撤罷)하겠다는 계를 올렸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26일 (을묘) 원본342책/탈초본18책 (8/13)</ref> 같은 날 [[조선 숙종|숙종]]은 산실청 전(前) [[도제조]]와 [[우의정]] 및 여러 관원과 의관들에게 각 [[말]] 한 필과 안장을 하사하였다. 다음 날 27일에는 산실청 담당 의관이었던 [[김유현]] 등에게 숭록(崇祿: 종1품 문무관 관직)을 제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대로 수령(守令)<ref group="주">고려ㆍ조선 시대에,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절도사]], [[관찰사]],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감]], [[현령]] 따위를 이른다.</ref> 직을 제수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숙종]]이 의관에게 종1품 숭록의 위를 제수할 만큼 대군의 탄생을 각별히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ref group="주">이 기록 역시 숙종실록에는 누락되어 있는데 반면에 [[숙빈 최씨]]가 [[조선 영조|영조]]를 출산하자 [[조선 숙종|숙종]]이 [[호산청]] 담당 내시와 [[의관]]에게 말을 하사한 것은 강조하여 기록하였다.</ref> 이러한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장씨가 출산한 왕자가 9월 10일 경에 탄생된 것으로 기록한 숙종실록의 기사가 허위임을 증명한다.
         대군 성수는 탄생한지 100일이 되지 않은 9월 16일에 돌연 급사하였다.<ref group="주">만일 성수가 정식으로 대군 책봉식을 거친 후에 사망했거나 갑술환국이 발생한 이후에 사망했다면 인현왕후가 복위하여 장씨가 후궁으로 강봉되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법도에 따라 적서 상관없이 자동으로 적처(왕비)에게 입적되는 후계자(왕세자, 원자)와는 달리 그 외 자녀는 생모의 처첩 여부에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장씨를 후궁으로 강봉하려면 성수도 함께 대군에서 군으로 강봉하거나 장씨와 성수를 함께 폐서인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ref> 조정에서 신생대군(新生大君)의 사망에 대한 원인이 논의되었다. 6월부터 산실청이 세워지고 산모인 장씨가 불안한 상태임이 거론되었는데 출산을 하고난 이후에도 장씨의 상태가 불안하다는 기록이 있으며 9월 16일 신생대군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상태가 미완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난산]]이었거나 장씨의 건강이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숙종]]은 조정 백관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토로했을 만큼 둘째 아들을 잃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1692년, 전 해(前年)에 조졸한 신생대군방에 절수된 영토와 녹봉을 거둘 것을 주청하는 건의가 반복되어 허가되었다.
         둘째 왕자가 사망한 다음 달인 1690년 10월 22일에 책봉식을 올려 정식으로 왕비가 되었다.
         1693년 2월, 중전 장씨의 머리 부위<ref group="주">승정원일기 본문에는 뇌후(䐉後)로 기록되어 있다.</ref> 의 절환(癤患: 부스럼증)과 창증(瘡症: 종기)이 감소하였다는 기록과 의녀의 시침 기록이 승정원일기 중에 다수 존재하며, 숙환(=오랜 병, 고질병)으로 담화(痰火)<ref group="주">효종의 비(妃) [[인선왕후]]가 담화로 사망했다.</ref> 가 있어(宿患痰火之症) 1694년, 후궁으로 강봉되기 직전까지 치료법에 대한 논의와 뜸을 받은 기록이 존재한다.<ref group="주">왕후와 세자빈의 중병은 국사(國事)로 간주되어 조정에서 논의되기에 기록으로 남지만 후궁의 병은 논의되지 않는다. 따라서 장씨의 병이 후궁으로 강봉된 후에도 지속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1701년 무고의 옥으로 궁녀들이 국문을 받을 당시에 장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언급이 있다.</ref>
         [[1701년]] [[음력 8월 14일]], 오랜 지병을 앓던 [[인현왕후]]가 사망하였다. 조정은 [[인현왕후]]를 위한 국상이 준비함과 동시에 조정 한 편에선 희빈 장씨를 다시 왕비로 복위시키는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노론]]과 [[숙빈 최씨]]에게 치명적인 상황이었으며 [[조선 숙종|숙종]]에게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장씨의 상례부터 장례까지의 모든 절차는 궁에서 주관하고 치루어졌으며 종친부 1품의 예로 받들어졌다.<ref group="주">숙종의 다른 후궁인 명빈 박씨와 숙빈 최씨의 상장례는 법도대로 궁 밖 사가에서 이루어졌다.</ref> 그녀의 무덤 역시 여느 후궁들<ref group="주">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무덤은 아들인 연잉군과 환관 장세상, 풍수에 밝은 노비 목호룡이 구하였다.</ref> 과는 달리 친정 식구나 궁속 환관이 구한 것이 아니라 왕실 종친인 금천군 이지와 예조참판 이돈이 지관들을 거느리고 여러 곳을 다니며 구하였다. 경기도 양주 인장리로 결정된 장씨의 묘는 숙종의 명으로 종친부 1품의 예<ref group="주">사방 100보의 규모로 경내에 농사와 목축을 금한다. 품계가 한 등씩 내려갈 수록 10보씩 감소된다. 문무관은 종친부와 비교해 10품씩 감하여 정1품은 90보, 6품은 40보로 한정되었으며 7품 이하는 6품과 같다. 왕실의 여인을 제외한 외명부 여성은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ref> 로 단장되었다. 장씨의 장례 역시 여느 후궁의 장례처럼 3월장<ref group="주">세상을 떠날 달을 포함한 세 번째 달에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 짧게는 30일, 길게는 80여일이 장례기간이 되는데 숫자가 클 수록 상급이다. 4품 이상의 품계를 가진 이들의 장례이며 후궁, 왕자녀는 물론 왕세자 부부의 장례 또한 3월장으로 치루어진다. 1718년 3월 9일에 사망한 숙빈 최씨는 5월 12일에 장사됨으로써 정상적인 후궁의 장례인 3월장을 치렀다.</ref> 으로 치루어지지 않고 4월장으로 치루어졌는데, 왕과 왕후의 장례인 5월장보다 단지 하루가 부족한 1702년 1월 30일에 치루어졌다.<ref group="주">이 또한 후궁의 위, 왕후의 아래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왕세자의 생모인 탓에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도 해석되기도 하지만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와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도 3월장을 치렀던 점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ref> 장례식 전날에 세자가 친림하였고, 수일 전부터 입관 당일까지 궁에서 식을 거행하였다.
         다음 해인 1722년, [[조선 경종|경종]]은 생모 장씨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에 추존하였다. 숙종이 후궁 출신은 왕비가 될 수 없다는 어명을 내렸기에 즉시 왕후로 추존할 수 없었다. 옥산부대빈에 대한 예우는 [[조선 선조|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과 일치하였다. [[조선 경종|경종]]은 희빈 장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였으나 재위 4년만인 1724년에 사망하여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 경종|경종]]이 죽고 [[조선 영조|영조]]가 즉위함으로써 노론의 천하가 되자 옥산부대빈 장씨의 위치는 대역죄인으로 격하되었으며, [[민진원]]은 장씨를 [[인현왕후]]가 폐서인되었던 원흉으로 지목하였으며 그 죄가 발각되어 [[조선 숙종|숙종]]에게 폐출되었다가 [[인현왕후]]의 사후에 사사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숙종실록 숙종13년 6월 16일 3번째 기사에 "당초에 후궁(後宮) 장씨(張氏)의 어미는 곧 조사석(趙師錫)의 처갓집 종이었는데 조사석이 젊었을 때에 사사로이 통했었고, 장가(張家)의 아내가 된 뒤에도 오히려 때때로 조사석의 집에 오갔었다."는 문장으로 인해 현대에는 장씨가 얼녀로 해석되기에 이르렀지만 이 기사의 내용은 숙종실록의 개정보수판인 숙종실록보궐정오 같은 날 기사에 "장(張: 희빈 장씨) 의 어미가 조사석의 처갓집 종이란 것은 전연 허황한 말이고, 사통(私通)했다는 말은 더욱 무리(無理)한 말이다."로 명확히 정정되어 있는 만큼 진실로 신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숙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당시에 실제로 공론된 내용이 아니라 [[조선 숙종|숙종]]이 사망한 후에 숙종실록이 편찬되면서 더해진 것으로, [[조선 숙종|숙종]]실록을 완성한 [[조선 영조|영조]] 때의 실록청 총재관이 [[민진원]]이었다는 사실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ref group="주">[[민진원]]은 [[인현왕후]]의 둘째 오빠로 희빈 장씨와 [[조선 경종|경종]]에 대한 원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과격한 발언 및 과장과 거짓말도 서슴치 않아 [[조선 영조|영조]] 초기에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숙종실록보궐정오는 [[민진원]]이 완성한 숙종실록의 내용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전면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개정판이다.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의 감시를 받으며 지극히 짧은 시간 내에 완성된 만큼 분량과 내용이 미진한게 한계이다.</ref> 승정원일기에도 장씨의 어미와 조사석의 통간 사이를 언급하거나 상징하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후궁(희빈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의 집과 친분이 있어서 그 연줄로 조사석이 정승에 제배된 것"이라는 김만중의 발언이었는데, 숙종 15년(1689년) 2월, 김만중의 아들 김진화의 공초 내용인 "후궁(後宮)의 어미는 예전에 조 정승의 집과 같은 방(坊: 동네)에서 살았는데, 근일(近日)에는 발걸음을 끊고 왕래하지 않는다."<ref>숙종실록 숙종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2월 28일(병인) 3번째기사</ref> 는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 처갓집의 여종이었기에 조사석과 친분이 있었던게 아니라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친분이 있었던 것을 시사하며, 동시에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 처갓집의 여종이었다는 사실이 이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더욱이 조사석이 정승에 제배된 것이 장씨와의 연줄 덕이라는 소문을 배포한 자가 [[홍치상]]이었다는 점은 순수성에도 의혹을 제기하는데, [[홍치상]]은 장씨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영빈 김씨]](당시 귀인)의 이모부이기 때문이다.<ref group="주">[[홍치상]]의 첫아내는 [[영빈 김씨]]의 이모이다. [[홍치상]]의 아들인 [[홍태유]]는 아비를 구명하며 [[홍치상]]이 이모인 [[숙명공주]]에게서 소문을 얻은 것이라 주장하였는데, [[숙명공주]]의 아들인 [[심정보]] 또한 [[영빈 김씨]]의 이모부이다. [[영빈 김씨]]의 폐서인 사유는 궁내의 사정을 친정에 전달한 것과 주가(主家: 공·옹주를 의미)와 내통하여 분란을 일으킨 죄목이었으며, [[영빈 김씨]]는 [[인현왕후]]의 복위로 특별히 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2차례나 홀로 승급에서 제외되는 등 [[조선 숙종|숙종]]의 외면을 받았다. [[기사환국]]때 교형을 당한 [[홍치상]] 또한 [[인현왕후]]의 복위로 특별히 복관되었지만 어머니인 [[숙안공주]]와 [[인현왕후]]가 모두 사망한 1702년에 다시 복관이 취소되고 국가 죄인으로 강등되었으며 [[조선 숙종|숙종]]은 이후에도 [[홍치상]]이 복관되지 않도록 다시금 엄명을 내릴 만큼 반감을 표명했다.</ref> [[홍치상]]이 계실의 지친인 [[이사명]]에게 소문을 전달했고, [[이사명]]이 사돈인 [[김만중]]에게 전달해 [[김만중]]이 [[조선 숙종|숙종]]에게 따진 것이 숙종실록 숙종 13년 6월 16일 기사에 기록된 사건의 배경이다.
         기록의 진실성은 차치하더라도 조선 시대의 신분법 상 희빈 장씨를 얼녀 출신 천민으로 계산하기에는 오차가 있다. 희빈 장씨의 생모인 윤씨는 첩이 아닌 엄연한 정실 부인인 계실이었으며, 남의 집 여종을 첩도 아닌 정처로 삼기엔 [[장형 (조선)|장형]]의 사회적 위치 및 조건이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ref group="주">남의 집 여종을 아내로 삼은 자를 비부(婢夫)라 하는데, 비부는 아내의 주인 집에 종속되어 그 집안의 대소사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식은 탄생한 즉시 주인집의 사유재산이 된다. 이러한 한계때문에 자신의 남종이 남의 집 여종과 혼인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여 노인이 되도록 혼인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지극히 가난하여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하지 못한 양인 남성이 생계를 유지하고 대를 이을 목적으로 비부를 자청한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실록 등에 기록된 강력 범죄 사건에 비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비부가 법적으로는 그 가문의 종이 아니기에 사례를 조건으로 주인의 범죄를 대리시켰거나 덮어씌운 결과인데 이는 비부의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f> 첩을 처로 만들 수 없는 조선의 국법<ref group="주">[[윤원형]]이 첩 [[정난정]]을 처로 만든 전례가 있어 첩을 처로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인 양 오해되고 있지만 [[윤원형]]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사후에 관직을 잃고 유배되었던 공식적인 이유는 국법을 어기고 첩을 처로 만들었다는 죄목때문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첩실을 정실로 격상할 수 있는건 왕과 왕세자 뿐으로, 이 또한 1701년 이후로 금지되었다.</ref> 과 윤씨 소생 아들인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무과(武科)로 등용<ref>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ref> 되어 [[1680년]]에 내금위에 재직<ref>숙종실록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 中 동평군 이항의 공초내용</ref> 하였고 [[1683년]]에 좌포도청 부장에 재직<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하였던 점<ref group="주">선조16년 병조판서였던 [[이율곡|이이]]의 주청으로 납속을 낸 서얼을 허통하여 무과에 입시하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숙종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청요직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무과에 합격한 서얼은 관직은 받지 못한채 무기 발령대기 상태로 남거나 지방 군졸로 발령, 혹은 외적의 침입이 잦은 국경으로 발령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중인 역관의 얼자가 [[내금위]]에 재직하고 경내 좌포도청에 부장으로 재직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희빈 장씨가 숙종의 후궁이 된 건 1686년 12월이니 누이의 후광을 입었다고 볼 수 없다.</ref>, [[1689년]] 11월 13일 윤씨를 당하관인 역관의 처로 언급한 윤덕준(尹德駿)의 상소내용<ref group="주">조선시대에는 처와 첩, 적서의 구분을 명확히 구분하여 언급하거나 기록하였다.</ref>, [[1698년]]에 사망한 윤씨가 남편 [[장형 (조선)|장형]]과 전처 제주 고씨의 옆에 나란히 매장된 것<ref group="주">첩은 가문의 묘산에 매장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별히 매장되더라도 남편 부부의 무덤에서 떨어진 음지나 발치 아래에 묻어 정처와 확고한 차별을 두었다. 희빈 장씨는 1694년에 강봉되었으며 오빠 장희재가 [[노론]]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데다가 왕세자인 아들 [[조선 경종|경종]]은 [[인현왕후]]에게 입적되어 [[노론]]이 이미 모자의 연이 끊겼다고 주장했던 만큼 만약 윤씨가 첩으로서 처와 동등하게 매장되었다면 당시 탄핵이 되지 않았을 리 없으며 희빈 장씨의 사후나 경종의 사후에도 반드시 탄핵이 있었어야 정상이다.</ref> 은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이 원자가 되어서나 그녀가 왕비가 되어 [[조선 숙종|숙종]]이 특별히 장씨의 생모를 첩에서 처로 승격해주었을 가능성조차 극히 희박함을 증명한다. 이는 윤씨가 설사 여종 출신이었더라도 이미 면천한 후에 [[장형 (조선)|장형]]의 계실이 되어 장씨 남매를 낳았음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장씨 남매에게는 노비 종모법이 적용되지 않아 이들의 신분은 아비를 따라 중인이 된다. 물론 윤씨가 애초에 종 출신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f group="주">종(奴婢)의 정의에는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조사석의 처인 권씨는 권문세가의 딸이고 윤씨는 역관의 딸이었던 만큼 두 사람이 교류하였던 것을 신분의 위계 상 윤씨를 종으로 비유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식의 말장난은 [[민진원]]의 특기이기도 했다는 점이 유의사항이다.</ref>
  • 흥친왕 . . . . 12회 일치
         |사망일 = [[1912년]] [[9월 9일]] (68세)
         |사망지 = {{국기나라|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 안국정 운현궁
         |사망원인 = 병사 (노환)
         흥친왕 이재면은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한성부]] 사동(寺洞) 사저에서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이었다가 뒤에 재면으로 고쳤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이희공실록]]에 의하면 그가 태어나자마자 지어진 이름은 재록이었다 한다. [[조선]] [[조선 헌종|헌종]]과 [[조선 철종|철종]]이 연이어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이재면 역시 유력 왕위계승권자로 지목되었으나, [[조선 철종|철종]]이 사망할 무렵 그는 성인이었기에 왕위계승권 서열에서 밀리게 되었다.
         이는 [[조선 철종|철종]] 사망 당시 12세의 미성년자였던 [[대한제국 고종|이명복]]([[흥선대원군]]의 차남)이 성인인 흥친왕보다 조종하기 쉬울 것이라는 [[흥선대원군]]의 계략과 [[신정왕후 조씨|조대비]]의 묵인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일부를 포섭할 때, [[김병학]](金炳鶴)의 딸, 혹은 [[김병문 (조선후기)|김병문]]의 딸 중에서 둘째 아들인 [[대한제국 고종|명복]]의 배필로 맞이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것 역시 재면 보다는 명복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한때 그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큰아버지 [[흥완군]] 이정응의 양자로 보내지는 것이 고려되기도 했다. 그의 흥완군 양자 지정 논란은 [[1864년]] 고종에 의해 취소되어 최종 종결되었다.
         이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임명되었다. [[1898년]] [[1월]] 어머니 [[여흥부대부인]]에 이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임종을 지켰다. [[흥선대원군]]은 죽기 직전 어가가 대궐을 떠났느냐며 고종의 행차 여부를 물었으나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흥선대원군]]이 사망한 직후에도 고종에게 아버지의 임종을 알렸다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침묵하였다.
         ==== 사망 ====
         운현궁의 이로당에서 거주하다가 [[1912년]] [[9월]] 병세가 위독해졌고 순종은 전의(典醫)를 그의 집에 보내 왕진(往診)을 시켰다.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이태왕 고종은 자신의 어의(御醫)를 보내 흥친왕을 진료하게 했다. 그러나 병세는 심해져 [[1912년]] 양력 [[9월 9일]]에 67세를 일기로 [[운현궁]] 정침에서 병으로 병사하였다. 어느 병환으로 사망했는가 여부는 알려져있지 않다. 그가 죽으면서 그의 [[공작 (작위)|공작]]의 지위는 아들 [[이준용]]이 상속하였다. 소생으로 영선군 [[이준용]], [[이문용 (왕족)|이문용]]과 딸 1명을 두었다. 흥친왕이 죽자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친히 그의 빈소에 가서 상복을 입고 곡을 하였다.
         이재면의 거처는 운현궁의 영로당이었다. 그가 거처하던 [[운현궁]]의 영로당은 [[1917년]] 그의 아들 [[영선군]] [[이준용]]이 오랜 병치레 끝에 사망하자, 이준용의 계실 광산 김씨가 그의 주치의에게 사례로 주었다 한다. 이 주치의는 김장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김영무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아버지이다. 두 번째 부인 여주이씨는 29세에 남편을 잃고 종친회의 도움으로 혼자 살아가다 [[1978년]] [[1월 8일]]에 운현궁에서 사망했다.
         한편 그의 아들 [[이준용 (1870년)|영선군 이준용]]은 아버지 흥친왕 이재면이 사망한 뒤에도 그는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아저씨뻘 되는 [[이재완]] 등에게 호된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이는 [[국왕]]의 친형인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신원을 요청하지 못하고 자객들의 [[일본]]행도 막지 못한 점, [[일본]] 망명 중에 아버지이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못했고 집안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ref name="p342">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42쪽.</ref>
  • 이소선 . . . . 11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1|09|03|1929|12|30}}
         |사망지 ={{KOR}} [[서울특별시]]
         어머니 김분이는 이미 열넷이었던 장녀는 친정으로 보내고 아홉살 아들과 이소선을 데리고 이웃 마을인 [[박서면]]으로 후처 살이 재가를 하였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어머니는 해어진 이후로 큰 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소선의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재가했다는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리하였다고 한다. 이소선의 언니는 1남 3녀를 낳고 살다 1964년에 사망하였고, 이소선은 언니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언니가 있었다는 것은 전태일의 동상 재막식 이후에 조카들이 찾아와 알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917591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1) - 목걸이로 부활한 ‘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29일</ref>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 늦봄 열다섯살 이소선은 정신대에 끌려간다며 결혼을 재촉받았지만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면사무소 직원이 명령서를 가져왔고 대구에 있는 방직공장으로 끌려갔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9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안 그러면 정신대에서..."],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0), 2014.06.12</ref> 방직공장은 대마로 베를 짜서 군복을 만드는 곳이었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1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90 한밤 중 토마토 몰래 따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1),2014.06.12</ref> 이소선은 콩깻묵과 옥수수에 밀가루를 섞은 주먹밥을 먹으며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일은 방적기가 쉼 없이 돌아가도록 실을 이어주는 것이었고, 공장 안은 먼지가 뿌옇고 햇빛도 들지 않아 불결하였다. 함께 작업하던 여성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22173503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1) - ‘근로 정신대’의 슬픈 기억], 경향신문, 2009년 2월 22일 </ref>
         전쟁이 끝나고 남편 전상수는 사업 기회를 보려 서울로 상경하였고 그 사이 시아버지가 사망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218300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3) - ‘버팀목’ 시아버지 별세], 경향신문, 2009년 3월 23일</ref> 아이들을 끌고 무작정 상경한 이소선은 [[염천교]] 근처에서 가족과 노숙하였다. 남편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이소선은 고등어의 배를 따는 일을 하고 얻은 품삯으로 시래기를 사서 국을 끓이고 아이들을 먹였다. 집이 없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잤고, 일을 구하지 못할 때에는 걸식을 했다.<ref name="오마이뉴스18" />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친구들과 자신의 집에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여러 사람이 앉아야 해서 전태일은 단속반 때문에 집을 헐었다 지을 때 마다 방을 조금씩 넓혀 지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 /> 쌍문동 판잣집은 1980년 재개발 때 철거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9184720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8)], 2009년 4월 29일</ref> 1969년 6월 남편 전상수는 지병으로 사망하였다.<ref name="연표">[http://www.chuntaeil.org/?r=home&c=1/12/18 이소선 어머니 걸어오신 길], 전태일재단</ref>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아들 [[전태일]]이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엔 쉬게 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0 전태일 분신 순간 오갔던 긴박한 대화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 2014년 6월 12일</ref> 이소선은 구역 예배를 돌고 있다 동네 주민이 건내준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고 이 사실을 알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23 아들이 죽었는데... 버스 타고 간 이 여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 2014년 6월 12일</ref> 전태일은 메디컬 병원에서 성모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미 가망이 없었다. 전태일은 달려온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한 일을 다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태일은 이소선에게 거듭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 간청하였고 큰 소리로 대답하게 하였다. 이소선은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고 크게 대답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752042&code=210100&s_code=af077#csidxf48d2d357d2bfa4844d69c179a524c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9) - 문학 보수화, 예술적 성취 다양한 분석], 경향신문, 2009년 5월 21일</ref> 그날 오후 10시 전태일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전태일의 사망 후 경찰과 노동청 등 관계 당국은 서둘러 장례를 치를 것을 요구하며 회유하였다. 그러나 이소선은 아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버텼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6 "다시는 안 부른다"... 목사들 쫓아낸 이소선],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5), 2014년 6월 12일</ref> 갖은 협박과 회유를 거부하고 기어코 요구 사항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준비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장례를 치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52 전태일의 마지막 가는 길, 평화시장이 아니었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7), 2014년 6월 12일</ref>
         이소선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수 많은 사람들의 장례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2003년 두산중공업의 노동자 [[배달호]]가 분신 사망하였을 때에도 장례위원을 지냈고<ref>[http://news.hankyung.com/article/2003031462508 분신 고 배달호씨 전국노동자葬 거행], 한국경제, 2003년 3월 13일</ref>,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에도 장례위원을 지냈다. 이소선은 [[원진레이온]] 사태 때부터 노무현과 인연을 맺었고, [[이석규 장례투쟁]]에서는 함께 장례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71756105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61) -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 경향신문, 2009년 5월 27일 </ref>
         * 1969년 6월 남편 전상수씨 사망.
  • 전태일 . . . . 11회 일치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1970|11|13|1948|9|28}}
         |사망원인= [[분신|분신 자살]]
         그는 재단회사 시다들과 인근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을 듣고 집에 와서 말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나중에는 노동 운동에 본격 투신하게 되었다. 어머니 이소선은 처음에는 그를 말렸지만, [[1969년]] [[6월]] 아버지 전상수가 [[고혈압]]으로 사망하면서 아들이 하는 일을 막지 말라고 하여 이때부터는 말리지 않게 되었다.
         오후 4시경 그는 그는 구급차에 실려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로 다시 후송되었지만, [[11월 13일]] 오후 10시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그는 한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그날 저녁 눈을 떠서 힘없는 목소리로 "배고프다……" 라고 하였다.<ref name="chock289"/> [[11월 13일]] 혼수상태에 있었던 그는 그날 오후 10시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시신은 마석 [[모란공원]]([[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 산)에 안장되었다.
         === 사망 직후 ===
         [[1972년]] 기독청년 전태일 1주기 추도식으로 시작된 이래 1980년대에 와서 노동운동가 전태일 추도식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의 유언에 따라 사망직전까지 청계천 노조 지원과 노동 운동 지원에 헌신하여 노동자들의 어머니 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84년]] [[서울]]에서 노동운동가들 중심으로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조직되었고, [[1985년]] 전태일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이후 전태일재단이 조직되어 '전태일문학상'과 '전태일노동상'을 제정하여 수여하기 시작하였다. [[1987년]] [[6.10 항쟁]] 이후 노동단체들이 모여 그해 [[7월]]부터 [[8월]]까지 노동자 대회를 열었으며 7월 15일에는 그의 어록, 초안 등을 참고하여 '87 노동자계급 해방선언'이 개최되었다. [[1988년]] [[11월]] 전태일의 분신 자살을 기념하기 위한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어 매년 [[11월]] 전국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전태일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승인하였다. [[1996년]] 9월 19일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서 '전태일 거리'를 선포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민예총 회원들이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고 있는 모습을담은 걸개그림 앞에서 추모공연을 하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92000289120003&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6-09-20&officeId=00028&pageNo=20&printNo=2680&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6,09.20]</ref> 이 '전태일 거리'에서는 전태일을 추모하기 위한 '전태일 거리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다. 1999년부터는 민주열사를 비롯해 의롭게 숨진 시민의 기념표석을 세우는 서울시'유적지 사업'에 포함되어 평화시장 분신장소에 기념표석이 세워졌다. 하지만 2003년 청계천 복원공사로 철거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43117 전태일 동판 철거 ‘물의’ 경향신문, 2003.12.01]</ref>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에 후송되었으나, 그는 3~4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그는 치료다운 치료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채 응급실 한 구석에 방치되었다.<ref>대구사학회 편, 《영남을 알면 한국사가 보인다》 (푸른역사, 2005) 430페이지</ref> 그는 병원 도착 직전까지 사망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전태일은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후송되었다가 다시 서울 성모병원으로 후송된 뒤에도 3~4시간 정도 방치되었다고 한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의사는 전태일에게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3~4시간 가량 그를 진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성이 다른 이모와 외삼촌이 있는데, 이는 그의 외할아버지 이성조는 어머니 [[이소선]]이 4살 때 사망, 외할머니는 정씨 남자와 재혼하였다.
  • 로힝야 . . . . 10회 일치
         유엔난민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범은 로힝야나 방글라데시인을 상대로 1인당 90~370달러의 적은 돈을 받고 밀입국선에 태워준 다음, 배가 타이에 상륙하면 본색을 드러내서 타이-말레이시아 국경에 있는 타이 남부의 밀림 캠프에 가둬버리고, 가족에게 연락하여 몸값을 1인당 200달러까지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난민들은 몸값을 낼 때까지 밀림 캠프에 감금당하는데, 병사하거나 구타를 당해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타이 경찰이 움직여서 인신매매 조직을 단속했는데, 2015년 5월 1일, 타이 경찰은 말레이시아 국경에 가까운 타이 남부 송클라 지역의 밀림에서 인신매매 캠프에 억류되어 있다 숨진 로힝야의 시신 26구를 발견, 그리고 며칠 뒤 해골 몇 개를 더 발견했다. 타이 경찰의 추적에 따르면 인신매매 조직은 타이 남부 지역의 유력자들과 유착되어 있으며, 타이 언론에서는 군 장성이 연류되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5월 24일에 말레이시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타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 북부에서도 로힝야 감금 캠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타이 정부가 인신매매 단속을 강화하자, 인신매매범들은 이번에는 로힝야를 태운 난민선을 그냥 버리고 도망가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정부는 서로 난민선을 쫓아내다가 일단 구조하기로 하고 3천명 가량의 난민이 구조되었으나, 많은 로힝야 난민들이 사망하거나 바다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측된다.
         버마무슬림협회와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이 폭동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동원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미얀마 정부가 밝힌 공식 사망자는 43명, 모스크 37곳과 건물 1300여채가 불탔고, 1만 3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버마무슬림협회는 사망자가 70~100여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 10월 9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마웅토 등의 국경 검문소가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아 경찰관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를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반격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100여명의 사망자가 있었고, [[성폭행]] 사건과, 다수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위성사진을 분석하여 진압과정에서 1,200채의 민가가 불에 탄 것으로 분석하였고, 유엔은 난민의 수가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 모함메드 소하옛 사망사건 ===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족 남성 자포르 알람이 자신, 부인과 함께 난민선에 탓던 아들 모함메드 소하옛이 보트가 침몰하면서 사망했다며, 지인이 찍어준 아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CNN 에서는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전 세계에 시리아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3세 소년 아일란 쿠르디와 비슷하다며, '제2의 쿠르디'라는 표제를 달았다.
         불교 승려들로 이루어진 '마 바 타'(Ma Ba Tha, 민족종교 보호를 위한 애국연합)라는 단체가 로힝야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로힝야 보트피플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 미국 대사관이 논평을 내며 '로힝야'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로힝야 같은 종족은 없고 그런 말을 할거면 이들을 다 데려가라고 주장했다.
  • 백남순 (1929년) . . . . 10회 일치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2007|1|3|1929|3|13}}
         |사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서울특별시|서울]]
         |사망원인= 만성 신부전증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처음 남한을 방문하였고, 이후 [[남북회담]]에서 수차 모습을 나타내는 등 대남협상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지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103MW200805158998 백남순 북한 외무상 사망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폴란드]]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1989년]]에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취임했다.
         [[2006년]]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지역포럼에서도 회의에 출석하면서 사적으로는 요양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3일]]에 사망하였으며, 사인은 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상으로 재임하던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상사에 해당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헌화를 받았다. 사망 당시 실질적인 외교 책임자는 [[강석주]] 제1 외무차관이었으므로, 사망 후의 외교 정책에 영향은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직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외무상]]<br />(임기 중 사망)
  • 이상화 (시인) . . . . 10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43|4|25|1901|5|9}}
          | 사망지 = {{국기|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위암으로 사망
         사촌 매형인 윤홍열은 후일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위원과 [[대구시보사]] 사장을 역임했는데, 사촌 매부 윤홍열의 소개로 바로 [[충청남도]] 공주 규수인 서순애 여사를 상화와 중매시켰다.<ref name="daemyonh"/> 몇 차례 연락이 오고가다가 [[1919년]] [[12월]]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출신과 결혼하였다. 부인 서온순은 독립운동과 유학 등 경제적으로 불우한 환경에도 남편의 탓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다 하며, 남편 사후에도 서온순은 재혼하지 않고 홀로 자녀를 키웠으며 [[1980년]]대에 사망하여 그의 묘소 근처에 안장되었다. [[1922년]] 이상화는 《[[백조 (잡지)|백조]]》1~2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해 프랑스에 유학할 기회를 얻으려고 일본으로 갸루 짱 예쁘다 같이놀래 예쁜니가 좋아좋아
         ** 첫째 아들 : 이용희, 사망
         ** 딸 : 이성희, 사망
         * [[시인]] [[이장희 (시인)|이장희]](李章熙, [[1900년]] [[1월 1일]] 출생 ~ [[1929년]] [[11월 3일]] 사망. 아호는 고월(古月). [[번역]][[문학가]]로도 활동하였다.)
         * [[소설|소설가]] [[현진건]](玄鎭健, [[1900년]] [[8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빙허(憑虛). [[저널리스트|언론인]]으로도 활동하였다.)
         * [[시인]] [[백기만]](白基萬, [[1902년]] [[5월 12일]] 출생 ~ [[1967년]] [[8월 7일]] 사망. 아호는 목우(牧牛).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 김재규 . . . . 9회 일치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 해방 후 안동농림고등학교,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후, 그 해, 대구농업전문학교 중등교원양성소[* 이 당시에는 2년제 전문학교였다. 해방 후 대구농과대학을 거쳐 1951년 대구사범학교 등과 통합하여 경북대학교로 개교한다.]에 입학하여 1945년 수료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중등교원의 수가 부족한데 반해, 조선 내에는 고등사범학교가 없었다. 문과의 경우 [[경성제국대학]] 졸업자 등으로 수요를 채울 수 있었지만, 이공계 쪽의 교사가 부족하여 일제는 각종 전문학교에 2년제 '교원양성소' 과정을 도입하여 교사인력을 충원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이 징집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군 해군]]의 [[카미카제]] 양성을 위한 예과 후보생으로 차출되었으며 카미카제의 생존률이 0%라는것을 감안해보았을때 만약 일본이 빨리 몰락하지 않았다면 김재규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군단장]] 시절 [[한계령]] 도로 건설을 지휘했으며, 이 때문에 한계령에 건설 중 사망한 장병 위령비에 이름이 들어가 있었으나 현재 위령비에는 그 부분이 삭제당했다 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안동댐 건축 기념탑에도 원래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지만 [[10.26 사건]] 직후 그 이름 부분이 뜯겨나가 있다. 여담이지만 인트라넷 3군단 역대 군단장과 그가 복무했던 모든 부대에도 김재규 [[장군]]은 삭제되어 있다. 한편 이때 그의 [[전속부관]]이었던 [[박흥주]] [[포병]][[대령]]은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재규의 가장 충실한 심복이 되고, [[10.26 사건]] 당시에도 중앙정보부 부장 수행비서 자리에 있었고, 결국 박정희 암살에도 가담한다. 정말로 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 장교였다.
          * ① 대통령의 그늘 밑에서만 권력을 휘두를 뿐 대통령 사망 후에는 특별한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특권을 휘두르는 군부의 협조가 절실하므로 이를 얻기 위해 육군본부로 갔을 거라는 설. 특히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는 김재규와 원만한 관계였으므로, 그에게 자신의 [[박정희]] 저격을 알리고도 그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으리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이었고 박정희 암살자에게 협조하여 그의 정권 획득을 도울 장성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김재규는 당시 군에 자기 인맥이라고 볼 수 있는 장군을 거의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소수의견으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내란목적이 아니라 자연인 박정희를 살해한 단순살인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형사3부 판사인 양병호와 서윤홍은 '''[[내란]] 목적이라기에는 암살후 김재규의 움직임이 너무나 어설펐기 때문에 내란을 목적하고 박정희를 죽인 게 아니고 그저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본 것'''이며 최종판결 당시 민윤기 등 6명의 판사들이 내란죄 불성립 의견을 냈다. 이로 인해 소수 의견을 낸 판사 6명은 신군부의 보복으로 전부 법복을 벗어야 했으며 특히 양병호는 보안사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였다. 훗날 양병호는 김재규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박정희를 사살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당시 판결문은 비공개 처리되어 묻혀버렸으나[* 80도306 판결 참조. 내란죄에 있어서 목적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미필적 인식, 즉 자신의 행위가 범죄발생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만 되도 행위자가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인해 구성요건이 충족된다. 즉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일 때 국헌문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목적은 없었으나, 대통령의 사망이 국헌문란을 가져올 것을 미필적이나마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으로도 국헌문란에 대한 목적의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소리다.], 훗날 공개되면서 당시 몇몇 재판관들의 용기있는 소수의견들이 밝혀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11034|한홍구,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 참조]].
         또한 당시 [[한국]]과 [[미국]]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박정희]]가 미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경진압을 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37787|서울에도 계엄을 내리고 군을 투입할 계획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유혈사태로 번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재규 역시 박정희 사망 이후 비상계엄령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5개월 한정이라는 전재를 달았으며 부마민주항쟁 때도 유혈 진압을 비판했던 입장이기 때문에 강경한 방식으로 막가파 운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군부의 시각을 돌리기 위해 그럴싸한 핑계를 대려고 했다가 뽀록이 났다는 견해다.
         또한 체포되기 전까지 김재규는 [[박정희]] 암살 사실을 숨기려고 했고, 박정희 사망 이후 국민들의 박정희에 대한 동정과 추모 분위기 등을 감안해본다면 김재규가 암살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지 않는 한 저항에 직면했을 공산이 크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박근혜정부]]가 집권한 이후 김재규 재평가론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하는데, [[박근혜]]의 실책에 대한 반발, 조롱으로 "의사 김재규"라는 유머 컨텐츠가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김재규 드립을 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어디까지나 드립이었고, 그가 진짜 의사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헌데 이러한 유머 소재로써의 흥행을 통해 대중들에게 언급되는 일이 많아지며 김재규 본인과 당시 사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된 것은 어찌보면 행운이었다. 김재규가 인지도를 얻으면서 그가 살아생전 남긴 글과 행적들 역시 진지하게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 이로 인해 김재규는 평소에도 민주주의와 민주개혁세력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이들을 알게 모르게 도와왔다는 사실, [[부마민주항쟁]] 당시 학살극이 벌어질 뻔한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사실 등이 알려지며 김재규 지인들이 밝힌 미담 등과 함께 자연스럽게 "진지한 재평가"에 대한 정보들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최소한 2015년 전후부턴 이런 평가가 인터넷상에선 베플 등으로 진지하게 퍼져가던 시기. 덕분인지 10.26에 대한 평가 자체도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데, 이전까진 박정희 사망일이라는 것이 좀 더 부각되었다면, 이때쯤부턴 김재규 의거일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SNS 등을 중심으로 더 활발해진다.
         김재규와 장정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김재규 사후 어렵고 빈곤하게 살고 있다. 김재규는 [[10.26]]을 일으키기 전에 자신의 아들에게 "나 없이도 잘 살아야 한다"라고 했다고 하며, 김재규의 아들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버지를 말렸을거라고 털어놓았다. [[http://news.donga.com/People/3/06/20120331/45184338/1|관련 링크]] 그의 어머니인 장정이는 김재규 사후, 80년대에 부동산 사기로 구속되기도 하였으며 2008년 12월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26년 출생]][[분류:1980년 사망]]
  • 김광석 . . . . 8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96|1|6|1964|1|22}}
         | 사망지 =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 가족 = 누나 2명(김광나,김광득) <br /> 형 2명(김광동(김광석 군입대중 1985년 작고),김광복) <br/> 슬하1녀(딸 김서연,1991년 출생, 2007년 사망 확인)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나 [[부산광역시|부산]]로 상경하여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 (1951년)|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 (밴드)|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6년 1월 6일 사망하였으나 사인 관련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입대하였으나 군 생활 중 큰형(김광동)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 (밴드)|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밴드)|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金光石 숨져|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0700209130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07&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07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쪽=30|날짜=1996-01-07|확인날짜=2013-08-20}}</ref> 향년 31세. 자살로 알려졌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40020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08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쪽=22|날짜=1996-01-14|확인날짜=2011-02-13}}(PC 버전)</ref>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 있는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2017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이 김광석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딸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되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사인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김광석의 딸인 김서연이 어머니에게 피살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다만 김광석 본인의 의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이에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김광석의 처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 중이다.<ref>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228</ref>
  • 박근혜 . . . . 8회 일치
         |사망일 = 윤석열 이명박
         |사망지 =
         최태민은 [[1994년]] 사망하였으며, 이후 박근혜는 [[언론]]에서 최태민에 대하여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라며 두둔하였다. 이에 논객인 [[조갑제]]는 '박대표는 한번 믿어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안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라고 말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최태민 목사, 저에게 고마운 분 네거티브하려면 뭘 못지어 내나"|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6402|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7-06-14}}</ref>
         2014년 4월 16일 진도 해상에서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인하여 세월호에 침몰하고 있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일반인 등 300여명이 사망하였다. 사고 발생 이후 해양경찰의 미숙한 대처와 미흡한 구조로 인하여 다수의 사망, 실종자가 발생한 것으로 인식되어 해경 및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여론이 발생했다. 일부에서는 세월호를 의도적 계획적으로 침몰 시켰다는 의견을 제시하시도 했다.(출처: 김어준의 파파이스)<ref>https://www.youtube.com/watch?v=EXpccBhD_lU&t=242s</ref>
         김영오는 8월 말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김영오의 뜬금없는 면담 요구에 대하여 박근혜는 별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서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김영오의 단식이 30여일을 넘어가였을 때 처남 윤모 씨, 장모 등이 김영오에 대한 사실을 폭로하였다. 처남 등은 ‘김영오는 사망한 딸에 대하여 그동안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자신에게 양육을 맏길 경우 딸을 고아원에 보내겠다는 말을 하였으며, 또한 양육비도 매년 약 10만원 정도만 보내는 등 매우 소액을 지급하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김영오에 대하여 극도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폭로 이후 김영오의 단식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이후 김영오는 단식을 중단하였고, 동조하여 단식하였던 문재인 역시 단식을 중단하였다.
         |메르스 첫 사망자 보도, 3차 감염 보도, 메르스 정보 공개와 대응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서울시 간의 갈등
         [[전태일]]의 남동생 전태삼도 박근혜는 22명의 쌍용차 사망 노동자들의 분향소부터 방문하였어야 한다면서 새누리당사 앞에서 20일 넘게 대책을 요구하는 쌍용차 해고 노조원들의 요구엔 묵묵부답이면서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ref name="noc">[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240402 '아수라장' 된 박근혜의 '국민대통합'…문제는 진정성] 노컷뉴스, 2012년 8월 29일</ref>
  • 조진호 (축구인) . . . . 8회 일치
         |사망일={{사망일과 나이|2017|10|10|1973|8|2}}
         |사망지=[[대한민국]]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 사망 ==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조진호 감독 사망 이후 [[K리그]]에 소속된 각 구단들 또한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는 메세지를 올렸으며, 특히 [[경남 FC]]는 추모에 더해 '그동안 멋진 경쟁에 감사했다'는 메세지를 추가로 남겼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한편 이번 조진호 감독의 사망을 통해 감독의 고충과 스트레스가 재조명받으며 감독이라는 자리가 선수들보다 더 힘든 직업인지를 깨우쳐 주고 선수들과는 달리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만한 방법이 없는 현실에 대한 개선과, 건강검진 의무화 및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K리그는 2018년부터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의 건강검진을 의무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 흥인군 . . . . 8회 일치
         |사망지= [[조선]] [[한성부]]에서 암살(고환외상(매천야록의 기록))됨.
         |사망일= 1882년 (68세)
         [[1815년]] [[2월 17일]] [[한성부]]에서 숙종 때의 정승 [[남연군]] 이구와 [[민정중]]의 4대손 [[선공감]]가[[감역]] 민경혁의 딸 군부인 여흥민씨의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성품은 신도비명에 의하면 말수 적고, 좋고 싫음을 내색하지 않는 성품이라 한다. [[홍순목]]이 쓴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의 성격은 '사람의 허물을 보면 반드시 덮어주고 또한 사랑하고 미워함을 말하지 않'는 성격이라 한다. 그는 [[흥녕군]]과 [[흥완군]]의 동생이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친형이었으나, 그는 일찍부터 바로 아랫 동생 이하응에게 번번히 무시당했고,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머니 여흥민씨와 아버지 남연군, 두 형이 일찍 사망했지만 동생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매천 [[황현]]에 의하면 그가 무식하면서 욕심이 많아서 그랬다 한다.
         [[1881년]] [[1월 23일]] 아들 [[이재긍]]이 자녀 없이 사망하자 고종의 특별 배려로 이희하(李熙夏)의 아들 용구(龍駒)를 [[이재긍]]의 양자로 입양하였다.
         이때 난병이 흥인군 저택 을 포위하자 이최응은 담장을 넘으려다 떨어져 고환이 터져 결국 사망한다.<ref>노용필, 《개화기 서울사람들:우리 역사속의 사람들 2》 (어진이, 2004) 97 페이지</ref> 6월 9일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그는 밤새 잠을 못 자고, 6월 10일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러나 집 밖에서 별안간 떠들썩하는 바람에 급히 일어나 뒷담을 뛰어 넘으려 하였다.<ref name="yiyi">이현희, 《한국의 역사 16권. 개혁·개방과 외세의 침투》(청아출판사, 2014)</ref> 담에서 떨어진 그는 고환이 터져 신음하다가 난병의 창에 찔렸다.<ref name="yiyi"/> 그는 대원군의 형으로써 민씨 일파를 도와주었다고 하여 대원군이 일으킨 난병에게 무참하게 참살당하였다.<ref name="yiyi"/>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그가 난병을 피해 도망쳐 담을 넘다가 고환이 터져 죽었다 하였고, 이는 [[유주현]]의 [[대원군]] 등의 작품에 인용되었다.
         수백 명의 난군이 달려들어 담장 아래 내동댕이쳐진 흥인군의 시신을 난탈하여 누구의 시신인지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짓이겨 놓았다. 그러고는 집안 구석구석을 쌓아 놓았던 쌀과 돈, 금은보화, 포목, 고기며 과일, 생선 등을 내어다 안마당과 대문 앞에 쌓아 놓았다.<ref name="ysys212">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백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212페이지</ref> 난병들은 이것을 모두 인근 들판으로 실어가 불에 소각하였다. 한편 그의 [[신도비]]에 의하면 왕이 [[어의]]를 보내 약을 쓰고 간호를 해보았으나, 마침내 사망했다 한다.
         사망 1개월 뒤 일단 [[한성부]] [[용산방]]에 가매장 후 난이 진압되길 기다렸다가 [[충청남도]] [[대흥면|대흥군]](현 예산군 대흥면) 우정리 신좌원에 안치됐다. 그 후 [[예산군]] [[덕산면 (예산군)|덕산면]] 상가리의 아버지 [[남연군]] 묘소 아래로 이장됐는데 신도비문은 [[영의정]] [[홍순목]]이 짓고 글씨는 흥인군의 조카인 판종정경부사 [[이재원 (1831년)|이재원]]이 썼다. 현재는 후손들이 다른 곳으로 이장한 상태다.
         부인 두 명은 [[1868년]] [[10월]] 이전에 사망했다.
  • 안병근 . . . . 7회 일치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62|2|23}}<!-- {{출생일|출생년도|출생월|출생일}} (사망시)
         |사망일 = <!-- {{사망일과 나이|사망년도|사망월|사망일|출생년도|출생월|출생일}} -->
         |사망지 =
  • 애로우 . . . . 7회 일치
         티아 퀸의 남자친구. 이러니 저러니 해서 올리버와 팀을 이루게 된다. 과묵한 편이며, 젊고 혈기왕성한 성격이다. 티아의 잠자리 반응을 보면 정력도 출중한듯(…). 올리버와 같은 디자인에 붉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악당들에게 플래시와 혼동당하는(…) 장면도 있었다. 3시즌에서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당하게 된 올리버를 대신해서 자신이 애로우라고 하면서 자수, 구치소에 갇혔다가 디글이 동료 인맥을 이용해서 죽음을 가장하여 빼낸다. 이로서 '애로우'는 사망한 것이 되고, 다음 시즌부터 올리버는 그린 애로우로서 활동하게 된다.
         블랙 카나리로서 한 번 돌아왔던 사라가 사망한 뒤, 사라를 대신하여 자신이 블랙 카나리가 된다.
         3시즌에서는 폭발 사고로 사망한 줄 알았으나, 4시즌에서 연구하던 기술의 부작용으로 몸이 축소되어 악당들에게 납치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올리버 일행에게 구출된다. 자신이 사망하고 돌아왔으나 별로 세상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 때문에 자신의 이제까지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영웅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뭔가 큰 일을 해보고자 결심하고 타임마스터 립 헌터를 따라 시간여행에 나서면서, 레전드 오브 토모로우로 전출되었다.
         레전드 오브 토모로우에서도 어째 고난의 연속이다. 미래 세계에서 아톰 기술이 반달 새비지가 후원하는 독재자에게 접수되어 아톰형 로봇이 독재자의 경찰로봇으로 쓰이질 않나, 자신의 업적이 몽땅 자신의 형편없는 동생이 이룬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질 않나(…), 호크맨이 사망한 뒤 과거 세상에서 고립되었을 때 호크걸과 연인이 되지만 호크맨이 부활[* 엄밀히 말하면 미래에 환생한 호크맨]하면서 좌절(…)하질 않나.
         1시즌 최종보스. 올리버의 친구 토미의 아버지이며 올리버의 여동생 티아의 친부(…). 리그 오브 어쌔신 출신으로서, 재력과 무술, 책략을 겸비한 무서운 적수. 1시즌에서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한 우범구역 글레이즈를 증오하여, 지진발생장치로 글레이즈를 파괴하여 무너뜨리는 만행을 저질러 수백명을 죽였으며 아들 토미도 여기에 휘말려 사망한다. 본인은 올리버에게 쫓겨나지만, 나중에 다시 등장.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티아에게 집착하여 다양한 기행을 저지른다. 최종보스였으나 이후 시즌에서는 카리스마가 마구 날아가는 여러모로 해괴한 인간.
         말콤의 아들. 올리버의 베프. 1시즌에서 사망. 그러나 이후로도 가끔 과거회상 등에서 나온다.
  • 이장희 (시인) . . . . 7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29|11|3|1900|1|1}}
          | 사망지 = {{국기|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음독 자살
         *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李柄學, [[1866년]] [[10월 17일]] 출생 ~ [[1942년]] [[11월 9일]] 사망.)
         * [[소설|소설가]] [[현진건]](玄鎭健, [[1900년]] [[8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빙허(憑虛). [[저널리스트|언론인]]으로도 활동하였다.)
         * [[시 (문학)|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백아(白啞). [[소설|소설가]], [[수필|수필가]], [[번역]][[문학가]], [[문학평론|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 [[시 (문학)|시인]] [[백기만]](白基萬, [[1902년]] [[5월 12일]] 출생 ~ [[1967년]] [[8월 7일]] 사망. 아호는 목우(牧牛).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 태종무열왕 . . . . 7회 일치
         |사망일 = [[661년]] 음력 6월 향년 59세
         《삼국유사》 태종춘추공조는 [[661년]]에 무열왕이 사망할 당시에 향년 59세였다고 기록했는데, 이를 토대로 역산하면 [[무열왕]]은 [[진평왕]] [[건복 (신라)|건복]] 20년([[603년]])에 태어난 것이 된다.
         고구려 뿐만 아니라 《일본서기》에는 [[고토쿠 천황]](孝德天皇) [[다이카]](大化) 3년([[647년]])에 김춘추가 왜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김춘추의 관등은 상신(上臣) [[대아찬]](大阿湌)으로 표기되어 있다.<ref name="일본서기-647">《일본서기》 권25 天萬豐日天皇 孝德天皇 大化 3년(647)</ref> 한편 신라에서는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 김유신에 의해 진압되고, 선덕여왕의 사망으로 진덕여왕이 옹립되었다. 춘추와 유신은 진덕여왕을 보위하여 정권을 완벽하게 장악하였다.<ref name="신라-647">《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1년(647)</ref>
         무열왕 8년([[661년]]) 음력 6월 59세로 사망하였다. 시호(諡號)를 무열(武烈)이라 하고, 영경사(永敬寺)의 북쪽에 장사를 지냈으며, 묘호(廟號)를 올려서 태종(太宗)이라고 하였다. [[당 고종]]은 무열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성문(洛城門)에서 애도식을 거행하였다.<ref name="신라-661"/>
         무덤 앞 동북쪽에는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비석의 몸돌 부분은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 부분만 남아있었으며, 이수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어 묘의 주인이 무열왕임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는 무열왕이 사망한 [[661년]]에 건립되었고, 비문의 글씨는 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이 썼다.<ref>이은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C%B4%EC%97%B4%EC%99%95%EB%A6%89&ridx=1&tot=165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삼국사기》를 비롯한 전통적인 사료의 기록 및 해석에서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의 다른 이름이 용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용춘과 용수는 서로 다른 인물이자 진지왕을 아버지로 둔 형제이며, 동생인 용춘이 천명공주와 혼인하여 춘추를 낳았으나 용춘이 먼저 사망하자 다시 용수와 재혼하여 춘추는 용수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나온다.<ref name="multiple">{{서적 인용 | 제목 = 화랑세기 | 저자 = 김대문 |역주 = 이종욱 | 출판사 = 소나무 | 발행년도 = 2005 | 관련쪽 = 225 | id = {{ISBN|89-7139-546-X}} 93910 }}</ref> 다만 『황룡사중수기』에는 용춘이 《화랑세기》의 기록과 달리 후대에도 생존해 있는 상태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화랑세기》 위서론의 중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화랑세기#용수 문제]] 참조).
         ** 장녀 : [[고타소랑|고타소공주]](古陀炤公主) - [[대야성]] 성주 이찬 [[김품석]]에게 시집갔으며, 《[[삼국사기]]》에서는 [[문명왕후 김씨]]의 딸이라고 설명하고,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양명공주의 딸 보라궁주 설씨의 소생이라고 설명한다. [[대야성]] 전투에서 사망.
  • 함인섭 . . . . 7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86|9|15|1907|3|6}}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강원도 (남)|강원도]] [[춘천시]] 효자3동 17-1 [[춘천의료원]] 병실에서 만성 폐렴으로 병사
         [[1907년]](광무 10년) [[5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함병석과 진주 강씨 강리백가(姜利百加)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인이었으나 뒤에 인섭으로 고쳤다. 함병석은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던 [[함태영]]의 본처 밀양 손씨 소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였다. 형제로는 남동생 함의섭이 있었다.
         [[1964년]] 할아버지 [[함태영]]이 사망했을 때 [[국민장]]이 거행되었는데, 그는 일찍 죽은 아버지와 삼촌들, 그밖에 나이 어린 이복 삼촌들을 대신해서 그가 상주 노릇을 하였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기독교]] [[장로]]로도 활약하였다. [[1970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고 [[197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그는 재산을 마련하지 못해 자기 집이 없었고, 일부 제자들과 교직원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그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1986년]] [[9월 15일]] 오전 10시 [[강원도]] [[춘천시]] [[춘천의료원]]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 [[1986년]] [[9월 15일]] [[춘천의료원]]에서 병으로 사망
  • 현이와 덕이 . . . . 7회 일치
         그러던 중 1990년 1월 [[장덕]]은 [[신년]][[드라마]] 《[[구리반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였으나, 어릴때부터 앓아 오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과다복용 하게 되어 [[1990년]] [[2월 4일]]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5동 1008호 자신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해 8월 [[장현]] 역시 설암으로 사망했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90|2|4|1961|4|21}}
         | 사망지 = {{KOR}} [[서울특별시]] [[마포구]]
         === 1990년 2월 4일 : 사망 ===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남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남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반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남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순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남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현진건 . . . . 7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43|4|25|1900|8|9}}
         | 사망지 = {{국기|일제 강점기}} [[경성부]]에서 장결핵으로 병사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백기만]](白基萬) ·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문학'이었다(다만 본격적인 동인지는 아니고 작문지 정도의 수준이었다고<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成城中學校)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3월에 다시 귀국하였는데<ref>일본 학자 시라카와 유타카에 의해 세이조 중학교 3학년 성적대장 일람표에서 현진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가 1917년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실제 이 학교에 재적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얼마간 대구에 머물다가 집안 몰래 형 정건이 있던 [[중화민국|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 가서 [[후장 대학]](扈江大學)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한다. 조선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여파가 상하이에까지 커져 상하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 다시 귀국하여, 당시 육군 공병 영관을 지낸 당숙 현보운(玄普運)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서울로 상경, 지금의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살았는데, 현보운은 1919년 음력 9월 10일에 사망하고 그가 호주가 되었다. 12월에 첫딸 경숙(慶淑)이 태어났으나 이듬해에 죽고 만다.
         현진건이 사망한 뒤에 그의 친아버지 현경운도 대구에서 사망하였고, 부인 이순득도 대구의 친정에서 사망하였다.
  • 돌턴 갱 . . . . 6회 일치
         이 사건으로 돌턴 갱 네명과 커피빌 주민 네명이 사망하였다. 강도에 참가한 돌턴 갱의 유일한 생존자는 에밋 돌턴으로, 감옥에서 14년간 복역하게 된다. 현재 이 사건은 돌턴갱이 벌인 강도 중 가장 유명한 강도가 되어있다.
          * 그래턴 "그랫" 돌턴(Gratton "Grat" Dalton) - 돌턴 가족의 7번째 자식.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사망.
          * 로버트 "밥" 돌턴(Robert "Bob" Dalton) - 돌턴 가족의 10번째 자식.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사망.
          * 에밋 돌턴(Emmett Dalton) - 돌턴 가족의 11번째 자식.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체포됨. 1937년 사망.
          * 딕 브로드웰(Dick Broadwell) -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사망.
          * 빌 파워(Bill Power) -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사망.
  • 문무왕 . . . . 6회 일치
         |사망일=[[681년]] (향년 56세)
         |사망지= [[경상북도]] [[경주시]] [[감은사]] [[대왕암]]
         《[[삼국사기]]》는 왕이 [[681년]]에 승하했다고만 했을 뿐 왕이 언제 태어났는지, 사망 당시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문무대왕비』에 따르면 왕이 승하할 당시의 나이가 56세였다고 하는데, 이를 토대로 추산하면 문무왕의 생년은 [[진평왕]] [[건복 (신라)|건복]] 43년([[626년]])에 해당한다.
         ** 여동생 : [[고타소랑|고타소]](古陀炤, ?~[[642년]]) - [[보라궁주]]의 소생으로 [[대야성]] 성주 [[김품석]](金品釋, ? ~[[642년]])에게 하가(下嫁), [[윤충]]에 의해 남편과 같이 사망함.
         ** 장남 : [[신라 소명태자|소명태자]](昭明太子, ?~[[665년]]) - [[신라 문무왕|문무왕]] 재위 중인 [[665년]]에 사망하였다.
         ** 차남 : [[정명태자]](政明太子) - 형인 [[소명태자]]가 사망한 바람에 태자가 되었으며 훗날 [[신라 신문왕|신문왕]]이다.
  • 백기만 . . . . 6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66|8|7|1902|5|12}}
          |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 [[시 (문학)|시인]] [[이장희 (시인)|이장희]](李章熙, [[1900년]] [[1월 1일]] 출생 ~ [[1929년]] [[11월 3일]] 사망. 아호는 고월(古月). [[번역|번역문학가]]로도 활동하였다.)
         * [[소설|소설가]] [[현진건]](玄鎭健, [[1900년]] [[8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빙허(憑虛). [[언론|언론인]]으로도 활동하였다.)
         * [[시 (문학)|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백아(白啞). [[소설|소설가]], [[수필|수필가]], [[번역|번역문학가]], [[문학 평론|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 이동춘 . . . . 6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95|9|9|1963|3|8}}
         |사망지 = {{국기나라|일본}} [[도쿄도]]
         통산 전적은 57전 45승(26KO) 2무 10패이며, [[1995년]] [[9월 5일]] [[도쿄도]] [[고라쿠엔 경기장]]에서 벌어진 [[세가와 세쓰오]]와의 경기에서 판정패한 뒤 급성 [[경막하혈종]]으로 쓰러져 4일 후인 [[9월 9일]] 사망했다.<ref>{{뉴스 인용|제목=韓國프로복싱선수,日링서 쓰러져 사망서|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925974|출판사=연합뉴스|저자=|날짜=1995-09-10}}</ref>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199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권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 중 사망한 권투 선수]]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6회 일치
         지상전이 벌어지면 다른 요원들과 달리 장군은 호위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다. 만약 장군이 전투 중 사망하면 전투 이후 해당 호위대는 그대로 해체되며 장군 또한 사망처리되므로 주의.
          * 다른 번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 다른 번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 다른 번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 게이샤를 제외한 다른 번 요원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 톰 최 . . . . 6회 일치
         |사망일 = <!-- {{사망일과 나이|사망년도|사망월|사망일|출생년도|출생월|출생일}} -->
         |사망지 =
  • 김성곤 (1913년) . . . . 5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75|2|25|1913|7|14}}
         |사망지 =
         |사망원인 =
         [[1967년]] 김성곤은 [[길재호]], [[백남억]], [[김진만]]과 함께 [[민주공화당]] 내의 핵심인물이 된다. 그 이후 [[1971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1년]] [[10월 2일]]에 야당과 동조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10.2 항명 파동]]이라 한다. 그 이후 김성곤은 [[10.2 항명 파동]]의 주동인물로 지목받아 경위조사를 받고,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뒤 [[1973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을 지냈으며, [[1974년]]에는 대한양회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 취임을 했다. 그 뒤 [[1975년]] [[2월 25일]] 사망하였으며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 김형철 (가수) . . . . 5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07|4|2|1961|2|18}}
         |사망지 = {{KOR}} [[서울특별시]]
         === 사망 ===
         2007년 4월 2일 오전 7시, 급성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 둠 패트롤 . . . . 5회 일치
          래리 트레이너. 전 공군 대위. 비행중 바다에 추락해 미지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이후 그를 구하려던 의사들은 그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미지의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망. 치프가 그를 구했다. 그래서인지 치프의 지시를 잘 따른다. 평소에 방사능 노출을 막기 위해 납을 댄 붕대를 몸에 감고 다닌다. 붕대를 풀고서 네거티브맨으로서 행동하면 매우 고통스러운 듯.
          본명 스캇 피셔. 피부에서 초고온 복사열이 발생하는 인간 화산. 카르마가 콜더를 내켜하지않는 것과 달리 그를 좋게 평가한다. 저스티스리그 #27에서 아토미카에게 혈관 파열로 사망.
          투명해지는 능력이 있어보이는 여자. 둠 패트롤중 가장 먼저 저스티스리그 #27에서 사망. 쟈니 퀵이 이미 사망한 시체를 스코티와 카르마 앞에 던져놓아 이들을 분개시켰다.
          방어적인 텔레파시 신경 교란 능력자. 이 능력은 상대가 열심히 근접 공격을 날려도 자연적으로 회피 할 수 있다. 스코티와 달리 치프인 콜드가 소름끼친다고 생각 중. 모히칸 머리 양아치 스타일 복장. 쟈니 퀵에게 폭탄으로 사망.
  • 마니교 . . . . 5회 일치
         272년, 마니의 포교를 용인하던 사푸르 1세가 사망, 마니와 인연이 있던 아르메니아 왕 오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가 페르시아 왕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사푸르 1세의 차남, 바흐람 1세가 즉위하였다. 이와 함께 우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 때부터 조로아스터교의 대신관 킬데르가 대두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 국교화 정책이 더욱 강경하게 밀어붙여졌다. 마니는 궁정의사에서 해임되어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종속국 코라살의 시의로 좌천되는데, 몇몇 문헌에서는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를 실패한 것을 질책받았다는 언급이 있어 이 역시 신망을 잃은 원인으로 추측된다.
         마니는 옥중에서도 포교를 멈추지 않았는데, 중앙아시아에서 찾아온 제자 마르 앙모에게 봉서를 맡기고 떠나도록 했다. 그리고 감금된 지 26일째의 277년 2월, 사망하게 된다. 옥중에서 사망했다고도 하고, 처형당했다고도 한다. 사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참수되어 성문에 노출되었다거나, 야수에게 먹이로 줬다거나, 두동강이로 잘려서 두 개의 문에 못박혔다거나 --고어-- 가죽을 벗겨서 지을 채운 뒤 책형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웃즈라는 제자가 남긴 중세 페르시아어 단편 자료에서는, 주 마니는 육체라는 옷을 벗고 빛의 세계로 귀환했다고 한다.
         명나라 시기에 명교는 오히려 박해를 받게 되는데, 이는 왕조의 국명과 같은 명(明)을 사용하는 탓에 불경죄로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명나라 시대에는 어느 정도 명교의 가르침은 기록으로 남게 된다. 명 말의 기록에는 마니에 대한 기록이 어느 정도 정확하게 기록되었는데, 하교원(何喬遠)의 기록에 따르면 208년 3월 12일 발제(抜帝, 파티크)의 처 만염(満艶, 마르얌)이 청정한 채로 가슴으로 낳은 것이 마니(摩尼)이며, 마니는 대식(大食,아라비아), 불림(佛林, 로마), 토화라(吐火羅, 이란 동부), 파사(波斯)에서 선교하여, 266년에 파사에서 사망했다. 저서는 7권이며, 가르침은 대모도(大慕闍)에게 맡겨졌다고 기록되었다. 모도란 모자크로 마니교에서 제2의 위계에 해당한다.
  • 문호근 . . . . 5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01|5|17|1946|11|17}}
         | 사망지 = {{국기|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1967년]] [[피아노 연주자|피아니스트]] 첫 데뷔를 한 그는 이후 피아니스트 활동을 접고 1970년대 이래 각종 오페라를 연출하였으며, 진보적인 예술인단체인 민예총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97년]]부터 [[예술의 전당|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관으로 재직하던 중, [[2001년]] [[5월 17일]] 5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성1=연합뉴스 |제목=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씨 타계 |url=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1/05/009000000200105171428773.html |날짜=2001-05-17 |확인날짜=2018-09-05 |뉴스=한겨레신문}}</ref>
  • 이상백 (1904년) . . . . 5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66|4|14|1904|8|8}}
         |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1946년]]에 [[서울대학교|경성대학]](京城大學, [[서울대학교]]의 전신) 문리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를 창설, 이후 사회학과 주임교수에 임명되어 사망 직전까지 재임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부속 박물관장과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소장을 겸임하였다. [[1955년]] 서울대학교로부터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966년]] [[4월 1일]] 갑자기 쓰러져 [[서울대학교]]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 병세는 [[심근 경색|심장경색증]]을 비롯한 [[심장병|심장질환]]이었고, 결국 [[4월 18일]] 아침 8시경 [[서울대학교]] 대학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이인 . . . . 5회 일치
         |사망지=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산28의 22번지에서 16시 15분, 숙환으로 별세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1979|4|5|1896|10|26}}
         1963년 [[민정당]](民政黨) 창당에 참여하고 최고위원이 되었으나 범국민단일야당운동 추진에 실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1965년]] 이인은 [[안재홍]] 사망 소식을 접하고, [[서울특별시|서울]] 정의여고 강당에서 그의 장례식을 집행, 주관하였다. 당시 [[안재홍]]은 자진월북자라는 오해와 편견으로 금기시되었고, 꺼려했다. 그러나 이인은 [[이범석 (1900년)|이범석]] 등과 함께 [[안재홍]]의 시신없는 장례식을 진행하였다. 군사정권은 그의 의도가 불순함을 의심하여 내사하였으나 혐의점을 찾지는 못하였다.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를 결성했으며 [[국토통일원]] 고문에 선임되었다. [[1974년]]에는 [[국토통일원|통일원]] 고문에 재선임되었다.
         * [[1965년]] [[안재홍]] 사망 소식을 접하고, [[서울특별시|서울]] 정의여고 강당에서 그의 장례식을 집행, 주관하였다.
  • 정인숙 (1945년) . . . . 5회 일치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에 의해 살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2829&mcode= 믿을 수 있는 인터넷 언론 CNBNEWS<!--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3>[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70314114210288&p=hankooki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정인숙은 현장에서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에 의해 살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2829&mcode= 믿을 수 있는 인터넷 언론 CNBNEWS<!--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3>[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70314114210288&p=hankooki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정인숙은 현장에서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정성일은 정인숙의 사망 이후 외가에서 살다가 고등학생 때인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0년]]에 귀국했다.<ref name="hp107">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7페이지</ref> 정인숙을 죽이고 희생양으로 오빠 정종욱을 내세워 이 사건의 수사를 졸속으로 처리하게 한 배경, 배후는 오리무중이다.
         사망 사건 당시 경찰 발표에 의하면 “정인숙이 요정에 나가면서 많은 남자와 사귀었고, 심지어 아들까지 낳아 기르는 등 사생활이 좋지 않아 운전을 하던 오빠(정종욱씨)가 권총으로 살해했다.<ref name="han01"/>” 이것이 사건의 개요였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은 오빠인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해 누이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동생의 문란한 행실을 보다 못한 오빠 정종욱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 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다.<ref name="jon0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070585&ctg=-1 정인숙 피살 사건 미스터리 의혹 ‘누가 정인숙을 죽였나?’] 중앙일보 2010년 03월 20일자</ref> 사건에 대한 의혹은 지난 40년간 계속됐다. 당시 사건 수사가 정인숙 여인 주변에 대해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빠의 범행동기가 석연치 않았으며 중요한 범행현장인 사고차량은 사건발생 몇시간만에 다른 곳으로 치워버렸다. 무엇보다 범행도구인 권총조차 발견하지 못했다.<ref name="jon01"/>
         [[1991년]] [[6월 5일]] 그의 아들 정성일은 [[서울가정법원]]에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6월 27일]] 외삼촌 정종구의 권유로 소송을 취하하고 다음날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러나 [[1993년]] 다시 [[정일권]]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친자확인소송을 냈으나, 소송 진행 중 정일권의 사망으로 무효화되었다.
  • 최두선 . . . . 5회 일치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1974|9|9|1894|11|1}}
         |사망지= {{국기|대한민국}} [[서울특별시]]
         [[1955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사망하자 [[신익희]], [[함태영]] 등과 함께 그의 국민장 장의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성수의 사망 직후 [[인촌 김성수 기념사업회]]의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60년]] [[김포공항|인천비행장]]으로 환국하는 [[조병옥]]의 시신을 맞이하기도 했다.
  • 풍운 . . . . 5회 일치
         제석천에게 낚여서(…) 천문에 들어가지만, 천문의 문도로서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과 회공과의 우정에 갈등을 느낀다. 결국 회공을 돕기로 하고 천문을 배신한다. 최후의 순간에는 제석천의 공격에 받아 얼음에 갇힌 회공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부딪쳐서 얼음을 부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장렬하게 사망. 그러나 그의 피가 얼음의 틈새로 뚫고 들어가 회공의 몸에 닿는 순간, 무이의 죽음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 회공은 연철수의 공력이 극한을 넘어서 얼음을 뚫고 나와 제석천에게 타격을 입힐 정도의 활약을 하게 된다.
         본래 독고일방을 살해한 섭풍을 원수로 보고 있어서, 섭풍을 공격한 것을 계기로 대립한다. 하지만 섭풍이 천하회에서 물러나자 일단 웅패에 대항하는 협력자 관계가 되고, 나중에는 섭풍에게 복수를 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웅패와 천하회가 멸망한 뒤, 동영편에서는 특별히 끼어들지 않고 무쌍성을 재건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영편 막바지에 천황의 첫째 아들의 사다리에 걸려서 어처구니 없이 사망. 무쌍성을 재건하려는 야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여동생 독고몽은 딱히 무쌍성 재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웅패의 제자. 특기 무공은 천상권. 보경운, 섭풍의 대사형. 웅패에게 충성심이 강했지만, 보경운과 섭풍을 숙청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두 사제를 지키려는 편에 서게 된다. 그러나 웅패를 당해내지 못하고 참패하여 두 팔을 잃고, 인질이 되는 등이 고초를 겪다가 사망. 아내인 공자를 몸과 마음으로 [[네토라레]] 당했는데도 보경운과 섭풍을 이렇게 생각해주는걸 보면 정말 좋은 대사형이었지만, 대사형 캐릭터의 클리셰를 깨지 못했다.
         '''항룡신퇴''' : 무쌍성의 소군주 독고명이 사용하는 무공. [[사조영웅전]]의 [[항룡십팔장]]의 퇴법 버전 같으며, 상당수의 초식명이 겹친다. 이래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마영성이 김용 만화를 그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특별히 문제는 없는듯. 여래신장처럼 독고명의 사망과 함께 작중에서 사라진다.
          *아동학살주의 : 대중문화에 흔한 '아동불살주의'가 도무지 통용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야말로 마구마구 죽어가는데(…), 니보살의 손녀, 섭풍을 따르던 아이들, 섭풍의 딸 등 다른 문화권 작품이라면 어지간하면 억지를 써서라도 살릴 것 같은 아동 캐릭터들이 마구마구 죽는다. 도리어 이 만화에 어린아이가 나오는건 '사망 플래그'에 가깝다.
  • 함병춘 . . . . 5회 일치
         '''함병춘'''(咸秉春, [[1932년]] [[2월 26일]] ~ [[1983년]] [[10월 9일]])은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이자 외교관, 법학자이다. 한국의 법사회학을 전문으로 연구하였다. 제3대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의 아들이고, 25년 연상으로 농림부장관, 강원대학 학장을 지낸 [[함인섭]]의 이복 삼촌이다.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피폭되어 사망하였다. 본관은 [[강릉 함씨|강릉]](江陵), 아호는 창은(滄隱) 또는 고송(苦松)이다.
         미국 유학 후 귀국, 1959년부터 70년, 1979년 10월부터 1983년 6월까지 [[연세대학교]] 법학 교수로 재직, 강의하였으며, 한국 사회의 법사회학, 한국인의 법에 대한 태도 등을 전문으로 연구하였다. [[1970년]] 대통령 [[박정희]]의 요청으로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외무부 본부대사, 대통령 외교담당 특보를 역임했다. [[1973년]] [[12월]]부터 [[1977년]] [[6월]]까지는 [[주미한국대사]]로 부임하였다. 다시 교단에 섰다가 [[1983년]] 대통령 [[전두환]]의 부름을 받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으며, 그 해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5개국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10월 9일]] [[버마]] [[아웅산 국립 묘지]] 방문행사 예행연습 중 피폭되어 사망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연동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고, 이후로도 계속 교회를 다녀 집사로 활동했다. [[1943년]] 어머니 고숙원이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셋방에서 사망하고 아버지 [[함태영]]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머니 사후 아버지 [[함태영]]이 직접 도시락을 챙겨주었다 한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944004 아웅산 테러 30년,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의 思父曲]</ref>
         [[1983년]] [[6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고 그해 [[10월]]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5개국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10월 9일]] [[미얀마|버마]]에서 일어난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으로 순직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도착하기 전, 80여명의 각료, 기자단과 함께 예행연습을 하던 중, 음악 소리를 들은 [[북한 인민군]] 공작원들이 버튼을 눌러 80여 명의 수행원, 기자들과 함께 사망했다.
         20년 연상인 [[함인섭]], 함의섭은 이복 형 함병철의 아들들로, 그에게는 조카에 해당된다. 아버지 [[함태영]]은 세번 상처하였고 14남매를 두었으나 대부분 일찍 사망했다.
  • 홍국영 . . . . 5회 일치
          | 사망지 = [[조선]] [[강릉시|강원도 강릉]]에서 병사
          | 사망일 = [[1781년]] [[4월 28일]] (34세)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元嬪 洪氏)는 가례를 올린 지 1년이 되지 않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한중록》에는 홍국영이 원빈의 죽음을 독살로 여기고 그 배후로 [[효의왕후]]를 의심하여 왕비의 나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는 내용을 전하며 그 죄를 성토하는 대목이 있다<ref>순조실록에서 같은 건으로 탄핵당하는 대상자는 [[정민시]]이다.</ref>.
         원빈 사망 당일 정조는 자신의 서제 은언군 아들 완풍군을 원빈의 수원관으로 삼았다. 후일 홍국영이 이 완풍군을 "내 조카"라고 부르며 그를 통해 대계를 저지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기록에 일관성이 없어 완전히 신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 완풍군(完豊君) 준(濬)은 홍국영의 몰락 후, 상계군(常溪君) 담(湛)으로 개명(改名) 개봉(改封)되며 왕실 세력들의 견제를 받았으며, 결국 5년 후인 정조10년([[1786년]])에 생을 마감했다.
         정조는 홍국영을 퇴진시키고 숙위소를 혁파시켰으나 동시에 그의 백부 [[홍낙순]](洪樂純)을 정승에 임명했다. 따라서 한동안 그의 세력은 조정에 계속 건재했으며 그 자신도 계속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에 홍국영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반대로 조정에서 축출 당한다. [[1780년]] 1월에는 홍낙순이 파직과 문외출송되고, 다음달 26일 김종수의 탄핵상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다. 김종수의 탄핵 상소를 시작으로 하여 홍국영에 관한 탄핵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중록》은 김종수의 상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원도]] [[횡성]], 그 다음에는 [[강릉]]으로 방출되었던 홍국영은 결국 이듬해인 [[1781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 홍기(영부인) . . . . 5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영부인]] [[분류:1916년 출생]] [[분류:2004년 사망]][[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최규하]] 대통령의 사저인 서교동 집은 홍기 여사가 “살 만하면 그만”이라며 못 고치게 해 남루한 편이라고 한다. 실제 홍 여사가 사망할 당시 홍 여사가 10년 이상 사용하던 그릇장, [[외교관]] 시절 사용하던 유리잔들, 생전에 사용하던 돌절구와 오이지 누르는 돌, 연탄보일러, 빨래 물을 긷는 펌프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 알츠하이머 병을 앓았으며 2004년 사망하여 고향에 안장되었다가, 2006년 남편인 [[최규하]]가 사망하자 남편과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 합장되었다.[* 남편과 더불어 21세기에 사망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 부부가 되었다. 후임대통령들의 영부인들은 2018년 현재 모두 생존.]
  • 고독사 . . . . 4회 일치
         누구에게도 간호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사망하고, 사망한지 몇일 이상의 시일이 지나서 발견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고립사(孤立死)라고도 한다.
         인간관계가 고립된 사람이 [[의사]]나 [[가족]], 이웃 등 주변 사람들에게 간호를 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사망하는 경우를 뜻한다. 주로 [[독거노인]]에 많으며, 지역사회에서도 고립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사망을 면할 수 있었을 사람도 많다.
  • 귀적에 들어간다 . . . . 4회 일치
         귀적(鬼籍)은 죽은 자의 성명과 사망일시를 기록해두는 장부를 뜻한다. 여기에 이름이 기입되었다는 것은 곧 사망하였다는 뜻이므로, "귀적에 들어간다."를 "사망했다."를 돌려서 표현하는 것으로 쓰인다.
          * 귀적(鬼籍)은 [[불교]] [[사원]]에서 사망한 시주자의 이름과 날짜를 기록해두는 장부이다. 이를 과거첩(過去帳)이라고도 부른다.
  • 몽키 D. 루피 . . . . 4회 일치
          * 오마츠리 남작 - 극장판 6기 한정.[* 극장판 5기에서는 루피가 쓰러뜨린 적이 없기 때문.] 꽃~~이라 쓰고 괴물이라 읽는다~~을 폭파시키고 주먹 한 방으로 K.O.[* 이 인물이 루피를 가장 참혹하게 만들었는데, 다른 적들이 루피를 바를 때, 빈사 혹은 사망 직전까지 몰고가나 [[주인공 보정]] 및 막강해진 기술로 본인 스스로 이겨버리는게 대부분이나, 이 인물은 화살로 바위에 두 팔 두 다리를 모두 고정시켜놓고 거대 꽃~~괴물~~이 거대 뿌리를 통해 하나하나 동료를 섭취하는(!!!) 모습을 보게 했으며 루피가 목을 통해~~화살따위는 입으로 씹고~~ 마지막 남은 조로를 구하려 했으나 결국 구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있었고 주변의 조연이 화살 빼주고(확실한지 [[확인바람]]) 거대뿌리를 공격하나 그게다 화살로 바뀌어 등에 고슴도치처럼 박히고 다른 조연이 화살로 거대 꽃을 제거하고, 마지막에 펀치하나 날려 동료를 구해주는 그런 전개라서 제일 참혹하다.~~보는게 이해가 쉽다.~~]
          *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그로기 상태에서 신 기술인 기어 4를 두 번이나~~몇 달의 연재분도~~ 사용한 혈투 끝에 최강기술 킹콩건으로 끝내 버렸다~~부서진 선글라스는 덤~~ 보면 알겠지만 주인공 보정과 주변인물들의 도움이 굉장히 많이 작용되어 이긴 전투다.[* 일단 도플라밍고는 로우의 '감마 나이프'로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고 , 전투 내내 로우의 능력인 '샴블즈'의 도움을 수차례받는다. 기어4의 휴우증으로 10분간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 쳐했을때 콜로세움 아나운서 '가츠'와 여러 콜로세움 자코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10분을 때운다. 원피스에서 루피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 최종보스를 이긴 흔치않은 사례. 루치와 싸울당시엔 우솝이 시간을 끌어주고 크로커다일과 싸울 당시엔 로빈이 해독제를 주는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은 많지만 이들과의 싸움은 결국 루피 개인의 무력으로 1:1로 겨뤄내서 승리라는 점에서 도플라밍고와의 결전과는 사례가 다르다.] 둘다 풀피 상태에서 1:1 클린 매치로 붙었다면 '''루피는 질, 아니 사망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칠무해를 주인공 보정으로 겨우 이기는데 다음 적인 '''사황'''은 우째 이길라나.--
          * [[아론(원피스)|아론]](!!!) - 루피를 콘크리트 덩어리째 바다에 던져서 기절시켰다. 만약 이때 [[노지코]]와 [[겐조(원피스)|겐조]]가 돕지 않았다면 높은 확률로 [[익사]].[* 3분을 기점으로 생존율이 급격히 감소해서 6분이 지나면 보통 사망. 그래봐야 만화라서 현실의 잣대가 뭔 소용이겠냐만은...]
          * [[포트거스 D. 에이스]] - 루피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고[* 이 당시의 에이스는 그것도 [[이글이글 열매]]를 먹기 전이었다. 다만 감안해야 하는 게 에이스나 사보는 어려도 산전수전을 겪은 아이들이었고 루피는 고무고무열매를 사용하는 것도 미숙한 아이였다. 그렇기에 진 건 당연한 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걸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사보의 경우 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게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으나 루피와 에이스가 처음 만났을때는 각각 7세, 10세였으며 헤어진 것은 각각 14세, 17세 였다는 사실, 즉 그들은 7년의 세월을 함께 하였고 그만큼 매일같이 대결을 하였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해군본부에서 사망해서 다시 붙을 수 없는, '''영원한 승자가 되어버렸다.'''
  • 박경석 (1960년) . . . . 4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2001년]] [[1월 21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하여 이를 이용하던 장애인 부부가 사망 및 중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는 5개 관련 단체들과 공동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 해 4월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 [[2012년]] [[10월 26일]] 장애인 당사자 인권운동가 김주영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광화문에서 장례식 노제를 치르다 폴리스라인을 넘어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은 장애인 활동가 18명에게 총 1500여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였고, 박경석은 이를 대신하여 스스로 노역형을 자처, [[서울구치소]]에서 5일간 노역형을 복역하고 출소하였다.<ref name=park /><ref name=pressian />
  • 박두을 . . . . 4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00|1|3|1907|11|8}}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사망원인 =
  • 이기택 . . . . 4회 일치
         ||<#6e7edd> '''사망일''' ||<#c5cae8>[[2016년]] [[2월 20일]] (향년 78세)||
         평통 수석부의장에서 물러난 뒤 조용히 지내다가 2016년 2월 20일 별세했다. 사망하기 전날 여의도 사무실에서 6년 간 준비해온 [[자서전]] 원고 작업을 끝냈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 큰일을 마쳤네’라 말할 정도로 흡족해 했다고 한다.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는데, 그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사망했다고.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37년 출생]][[분류:2016년 사망]]
  • 이상정 (1897년) . . . . 4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47|10|27|1897|6|10}}
          | 사망지 = [[대한민국|미 군정 남조선 과도정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에서 뇌일혈로 사망
  • 이설주 . . . . 4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01|4|20|1908|4|12}}
         | 사망지 =
         | 사망 원인 =
  • 이효상 . . . . 4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89|6|18|1906|1|14}}
         | 사망지 = {{KOR}} [[서울특별시]]
         [[1981년]] [[4월 23일]] [[국정자문회의]]위원에 위촉되었다. [[1989년]] [[6월 18일]]에 사망했다.
  • 장남교 . . . . 4회 일치
         또 호주의 사망 만이 아니라, 남성의 경우 60세, 여성의 경우 자신이 바라는 언제든지 호주가 '은거'를 결정하고 상속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사망, 은거 이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거나, 호주가 국적을 상실하는 상황에도 가독승계가 발생한다.
         정처 입장에서는 가독상속을 최우선적으로 받을 권리를 가지고 호주 사망시에 가독을 확실하게 상속해줄 '적출자 장남'이 없으면 한 순간에 거의 인생 게임오버(…)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호주 사망시에 비적출자이 나타나면 한 순간에 모든 가산이 그쪽으로 넘어가고, 호주의 각종 처분권까지 비적출자에게 가게 되므로 매우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한없이 높아진다.
  • 장인한 . . . . 4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07|8|21|1918|10|2}}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2007년]] [[8월 21일]] 새벽 2시경 사망했다.
  • 전명운 . . . . 4회 일치
         |사망지= {{국기나라|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1947|11|19|1884|6|25}}
         |사망원인= 병사([[심장병]])
  • 정운용 . . . . 4회 일치
         |사망일 = [[1963년]] [[10월24일]]
         |사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사망원인 =
         정운용은 1921년 여름 서귀조와 결혼하여 1923년에 장녀 연수(蓮洙)를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1930년 그의 아내는 7세의 여야를 두고 사망했다. 정운용은 다음 해인 1931년 김분조와 결혼했다.<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 정재학 (1856년) . . . . 4회 일치
         |사망일 = [[1940년]] [[3월12일]]
         |사망지 = {{국기|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 [[남일동]]
         |사망원인 =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1921년 결혼, 여아를 뒀지만 1930년 아내가 사망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대구 남산동 거주 김분조와 재혼했다. 그런데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정인택 수기 겨자씨한알 =2</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 조긍하 . . . . 4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82|1|28|1919|8|16}}
          | 사망지 = {{KOR}} [[서울특별시]]
         [[1982년]] [[1월 28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2800209207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28&officeId=00020&pageNo=7&printNo=18559&publishType=00020 영화감독 趙肯夏(조긍하)씨 - 1982년 1월 28일 동아일보]</ref>.
  • 최고은 (영화감독) . . . . 4회 일치
         | 사망일 = [[2011년]] [[1월 29일]] (33세)
         | 사망지 = [[경기도]] [[안양시]]
         | 사망원인 =
         '''최고은'''([[1979년]] ~ [[2011년]] [[1월 29일]])은 [[대한민국]]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 감독]]이다. [[2002년]]에 개봉된 [[영화|단편 영화]] 《연애의 기초》로 데뷔했다. [[빈곤]] 속에서 [[갑상선암|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암|췌장염]]을 앓다가 2011년 [[1월]]에 사망했다 향년 33세<ref>{{뉴스 인용
  • 하동부대부인 . . . . 4회 일치
         |사망지 = {{국기나라|조선}} [[조선]] [[도정궁]]
         |사망일 = [[1567년]] [[음력]] [[5월 18일]]
         |사망원인 = 병사
         '''하동부대부인 정씨'''(河東府大夫人 鄭氏, [[1522년]] [[9월 23일]] - [[1567년]] [[6월 24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정인지]]의 후손이며 [[조선]] 제14대 [[선조]]의 사친이자 [[덕흥대원군]]의 부인이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자 [[덕흥군]]과 가례를 올려 군부인이 되었으며, [[1567년]] 셋째 아들 [[조선 선조|선조]] 즉위 직전에 사망하였다. 사후 임금의 사가 생모로서 '''하동부부인'''으로 추증됐으나 정의상의 오류로 인해 '''하동부대부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본관은 [[하동 정씨|하동]](河東)이다.
  • 한필수 . . . . 4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1986년]] [[4월 10일]] 양력
         |사망원인=
         제2대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 입당하여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4월 10일]] 87세로 사망하였다. 사후 [[1996년]]에는 [[제천고등학교]] 개교50주년을 맞아 교정에 흉상이 세워졌다.
  • 현정건 . . . . 4회 일치
          | 사망지 = [[중화민국의 역사|중화민국]] [[장쑤 성 (중화민국)|장쑤 성]] [[상하이 시|상하이]] 의전병원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32|12|30|1887|6|29}}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을 하나로 집결시키려 애썼으나 [[1928년]] 봄에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 패륵로(貝勒路) 항경리(恒慶里)에서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 11월 9일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변동화(邊東華)ㆍ황의춘(黃義春) 등과 함께 공판이 열렸다. 이때 변호를 맡은 것은 최창조(崔昌朝)ㆍ이희적(李熙迪)ㆍ탁창하(卓昌河) 등 신의주 변호사 세 명과 손홍팔(孫洪八)ㆍ현석건(玄奭健)<ref group="설명">현정건의 친형이다.</ref> 등 진주 변호사 두 사람이었다. 현정건은 자신은 회합에 참여한 적도 없고 관련도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으나, 12월 12일에 신의주 지방법원은 [[치안유지법]]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언도하였다. 이에 불복하였으나 [[1929년]] 1월 19일에 평양으로 압송, 6월 10일에 열린 민사 제1호 법정 복심에서 원심의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0일에 만기출옥하였으나,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얻은 [[복막염]]으로 12월 30일 의전병원에서 향년 45세로 사망하였다.
  • 홍성유 . . . . 4회 일치
         |사망지= {{KOR}} [[서울특별시]]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2002|11|24|1928|10|4}}
         [[2002년]] [[11월 24일]] 0시 11분, [[뇌출혈]]후유증으로 사망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장군의 아들》 홍성유 작가 별세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259316|출판사=[[매일경제]]|저자=|날짜=2004-11-25|확인날짜=2009-05-12}}</ref>
  • 홍진기 . . . . 4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86|7|13|1917|3|13}}
         | 사망지 =
         ! 관계 !! 이름 !! 출생일 !! 사망일 !! 활동사항
  • USS 피닉스 (CL-46) . . . . 3회 일치
         USS Phoenix. [[제2차 세계 대전]]과 [[포클랜드 전쟁]]에서 활동했던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해군 함정으로 활동하였으며 전후 [[아르헨티나]]에 넘겨져 ARA 헤네랄 벨그라노(ARA General Belgrano)라는 이름으로 취역하였다. 1982년 5월 2일, 영국 원자력 잠수함 [[HMS 컨쿼러]]의 뇌격으로 격침. 323명의 사망자를 내며 가라앉았다.
         1982년 5월 2일, 영국 해군 원자력 잠수함 HMS 컨쿼러가 헤네랄 벨그라노에게 [[어뢰]]를 발사, 명중시킨다. 영국 국방부는 이에 대해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발표하였다. 벨그라노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 수준을 넘어서 가라앉았고, 이로인해 1,042명 중 323명의 승무원이 사망한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5040032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5-04&officeId=00032&pageNo=1&printNo=11260&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경향신문 - 피격 아르헨순양함 침몰 승무원 오백여명 사망(한국어)]
  • 강성호 (1966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권성욱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권영해 (1888년) . . . . 3회 일치
          | 사망지 = {{KOR}} [[서울특별시]]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49|6|23|1888|8|12}}
  • 길은정 . . . . 3회 일치
         [[분류:한국 여가수]][[분류:1961년 출생]][[분류:1984년 데뷔]][[분류:2005년 사망]][[분류:화천군 출신 인물]]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종교]]는 [[불교]]이다. 1984년 가수로 데뷔하고 얼마 안 되어 [[뽀뽀뽀]] 제2대 뽀미 언니가 되어 [[인기]]를 끌었다. 가수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뽀뽀뽀에서 하차하였으나 92년 EBS의 프로그램 '만들어 볼까요'의 진행을 맡으며 어린이 프로그램에 복귀하였다.[* [[암]] 판정을 받은 뒤 방송에서 하차한 이후로는 [[여운계]]가 진행을 맡았다. 여운계도 4년후 신장암으로 사망.] 이후 가수활동과 만들어 볼까요의 진행을 병행하다가 직장암 선고를 받은 뒤 [[은퇴]]하였다. 암이 완치된 뒤 다시 방송에 복귀하였으며 당시 <찬찬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가수 [[편승엽]]과 [[결혼]]하나 곧 파경을 맞는다. 2002년 결혼생활에 대해 올린 글이 문제가 되어 전남편으로부터 고소당해 2004년 유죄 판결을 받고 같은해 직장암이 재발하여 이듬해 초 숨을 거둔다. 사망 전날까지 [[원음방송]]에서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안타까움을 샀다. 전재산을 원음방송에 기증하였다. 2002년 각막기증신청을 했지만 암세포가 너무 퍼졌다는 판단으로 실제 기증되지는 못하였다.
  • 김굉필 . . . . 3회 일치
         |사망지= [[조선]] [[전라도]] 순천군 철물시
         |사망일= [[1504년]] [[10월 7일]]
         |사망원인= [[사형]]([[사약]])
  • 김수진(배우)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3|3|29|1975|6|28}}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자살]]
  • 김우중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김운용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7|10|3|1931|3|19}}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 병원]]
  • 김주승 . . . . 3회 일치
          * 사망 [[2007년]] [[8월 14일]]
         [[대한민국]]의 [[배우]]. 1980년에 연극배우로 먼저 데뷔하였으며, 그 이후 [[1983년]], [[MBC]] [[공채]] 16기 탤런트가 되었다. [[1990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5공비리]]의 큰 손 [[장영자]]의 [[사위]]가 되면서 화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2007년]] 초에 [[이혼]]하면서 그 이후로는 장영자와는 남남이 되었다. [[딸]]이 한명 있었으며, 딸은 전 부인이 데려갔다. 그리고 동년 [[여름]], 지병이던 [[췌장암]]이 악화되면서 결국 [[사망]]하였다.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61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분류:장성군 출신 인물]][[분류:1980년 데뷔]]
  • 김충공 . . . . 3회 일치
         [[헌덕왕]]과 [[흥덕왕]] 때의 실권자였고, [[823년]] [[김헌창의 난]] 진압에 참여하였다. [[흥덕왕]]의 아들이 [[당나라]]를 다녀오다가 사고로 죽자 그가 [[태자]]로 임명되었지만 그도 [[흥덕왕]]보다 앞서 사망하였다. 아들 [[김명]]은 [[838년]](희강왕 3) [[1월]] 정변을 일으켜 [[희강왕]]을 죽이고 자립하여 민애왕이 되었다. 딸 정교(貞矯)는 희강왕비 문목부인(文穆夫人)이 되었다. 아들인 민애왕이 즉위하면서 선강대왕(宣康大王) 또는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되었다. 일설에는 [[흥덕왕]]의 비 정목왕후가 그의 딸과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다.
         [[831년]] [[흥덕왕]]의 왕자 김능유(金能儒)가 흥덕왕의 명을 받들어 9명의 승려와 함께 [[당나라]]에 진봉사로 갔다가, 이 해 7월 돌아오던 도중 바다에 빠져 익사하였다. 흥덕왕은 후사가 없었고 그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835년]] 여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출생년대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사망 원인도 역시 미상이다.
  • 낙마 . . . . 3회 일치
         낙마는 상당히 위험한 사고이다. 특히 빠른 속도로 달리던 말에서 떨어지면 그 충격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 2006년 카타르 아시안 게임에서 승마 종목에 출전한 한국의 김형칠 선수가 낙마로 사망했다.
          * [[캔디캔디]] - 앤소니가 낙마로 사망한다.
  • 남동훈 . . . . 3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일과 나이|YYYY|MM|DD|YYYY|MM|DD}} -->
         | 사망지 =
  • 남윤정(탤런트)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2|8|1|1954|5|4}}
         |사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 노영하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국가 =
         |사망지 =
  • 랄프 알거 배그놀드 . . . . 3회 일치
         [[잉글랜드]]의 군인, 탐험가, 지질학자. 1896년에 태어나 1990년 사망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그의 전문 분야인 모래 이동에 대한 연구로 돌아간다. 그는 1990년 5월 31일 [[런던]]에서 사망한다.
         [[http://www.nytimes.com/1990/06/01/obituaries/ralph-bagnold-94-expert-on-physics-of-sand-in-the-desert.html|(영문)뉴욕타임즈의 랄프 배그놀드 사망 기사]]
  • 런던 맥주 홍수 사건 . . . . 3회 일치
         약 147만 리터 가량의 맥주가 일제히 폭발하여 해일처럼 주변을 덮친 이 사건으로 9명이 사망하고 2채의 가옥이 파손되었는데, 사망자 유형을 살펴 보면 1명은 무너진 건물에 압사, 유아 2명을 비롯한 7명은 지하실에 유입된 맥주 때문에 [[익사]](당시 지하실엔 양조장 직원의 가족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맥주에 휩쓸린 사람들 중 1명이 급성 알콜 중독으로 사망했다.
  • 레스터 길리스 . . . . 3회 일치
         11월 27일, 길리스 일당은 시카고에서 차를 훔쳐 위스콘신 주로 향하던 도중 FBI 차량에게 발각된다. 곧이어 FBI와 길리스 일당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길리스 일당은 FBI를 피해 도망쳤지만 또다른 FBI 차량을 만나게 된다. 새뮤얼 P. 코울리(Samuel P. Cowley) 감찰관과 허먼 E. 홀리스(Herman E. Hollis) 특별 수사관이었다. 첫번째 차량과의 총격전으로 라디에이터가 파손되어 제대로 도망칠 수 없던 길리스 일당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일리노이 주 배링턴(Barrington)에서 차를 세운다. 그러고는 뒤쫓아 오는 FBI 차량에 자동화기를 난사한다. 배링턴 전투라고 불리는 이 총격전으로 홀리스 특별 수사관은 사망하고, 코울리 감찰관 역시 치명상을 입어 다음날 사망한다. 하지만 길리스 역시 치명상을 입는다. 체이스와 헬렌 길리스는 FBI 요원들이 타고있던 차를 훔쳐 길리스와 무기들을 옮겨 싣은 다음 그 차를 몰고 도망친다.
         [[http://news.donga.com/3/all/20081127/8663385/1|동아일보 - 책갈피 속의 오늘 - 1934년 美은행강도 넬슨 총격 사망(한글)]]
  • 맥스 페인 . . . . 3회 일치
          Max Payne. 뉴욕시경 형사. 아내와 갓난아기 딸이 마약 "발키리"의 중독자들에게 살해당한 후 마약단속국에 들어간다. 가족의 몰살에 연루된 마약 "발키리"의 제조원을 찾아 갱단에 잠입해 잠복 수사를 벌지만 동료 형사인 알렉스 볼더와 접촉하던 중 의문의 총격으로 볼더가 사망. 경찰에 의해 범인으로 몰린다. 설상가상으로, 잠입하고 있던 갱단에게도 형사라는걸 들켜 모두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이 와중에서도 볼더를 죽이고 발키리를 유통한 범인을 찾아 족치기 이해 이곳 저곳을 누빈다.
          Michelle Payne. 맥스 페인의 아내. 지방 검사의 사무실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집에 쳐들어 온 발키리 중독자들에 의해 사망. 나중에 니콜 혼이 중독자들을 고의적으로 풀어놓았음이 밝혀진다. 지방 검사의 사무실에서 발키리에 대한 자료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한 것.
          Nicole Horne. 이 작품의 최종보스.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회장으로 미군이 진행하던 계획인 "발할라 계획"의 주요 인물이었다. 발할라 계획이 취소된 후에도 발키리를 계속해 만들었다. 펀치넬로 저택에서 탈출하던 맥스를 붙잡아 발키리를 주입해 기절시키고 저택에 불을 지른게 첫 등장. 하지만 맥스는 살아남아 에이저 코퍼레이션 건물을 습격하였고, 니콜 혼은 헬기를 타고 도망치려 했지만 맥스가 무너뜨린 첨탑에 의해 헬기가 폭발, 사망한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3회 일치
         플레이어는 특정한 적이 드롭하거나 특정한 순간에 드롭되는 무기 아이템을 통해 무기를 바꿀 수 있다. 무기는 현재 상황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무기는 정해진 장탄수가 있으며, 해당 무기의 장탄수가 전부 소진될 경우 사라진다. 플레이어가 사망할 시, 모든 무기를 잃게 되고 기본 무기인 권총과 수류탄으로 돌아온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포로를 구출할 수 있다. 보통 구출된 포로는 아이템을 주고 도망가지만, 함께 싸워주는 포로도 있다. 구출한 포로의 수는 임무를 클리어 할 때 추가 점수로 합산된다. 만일 플레이어가 사망하게 될 경우, 함께 싸워주던 포로는 도망가며, 모든 구출 포로를 잃게된다.
         대다수 슬러그는 별도의 내구력을 가지고 있어 적의 공격을 몇발은 버텨낼 수 있지만, 플레이어가 노출되어 있는 슬러그도 존재한다. 대다수의 슬러그는 내구력이 다 되면 폭발하기 전에 탈출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임무 진행에 필수적인 일부 슬러그는 내구력이 그대로 폭발해 플레이어가 사망한다.
  • 문호월 . . . . 3회 일치
         |사망일 = [[1953년]]? (49세?)
         |사망지 = {{KOR}}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문호월은 3박자 대중가요와 트로트, 신민요에 고루 능하여 다양한 음악을 구사했으나, 신민요 히트작이 많아 초기 신민요의 대표적 작곡가로 꼽힌다. [[1940년]]에 발표한 〈반달 뜨는 밤〉 이후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작품 활동이 드물어졌고, 사망 시기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3회 일치
         그의 레온에 대한 혐오는 그의 장남인 콘스탄티노스가 갑자기 요절하면서 더더욱 심해지는데, 아마도 이는 자신이 암살했던 미카엘의 아들이 자신의 후사를 잇는다는 두려움과, 자신이 그 누구보다 아꼈고 자신보다 더 위대한 황제가 될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던 콘스탄티노스의 사망으로 인한 우울증때문이었을것이다. 특히나, 한번은 레온은 황제에 의해 구금되어 눈을 뽑힐뻔하기까지 한다.[* 직전에 황제가 왜인지는 몰라도 마음을 바꾸어 그런일은 겪지 않았지만.] 거기다가, 레온이 명예를 회복하자 거리에서 시민들에게서 받은 갈채는 그를 더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 갑작스러운 사고, 그리고 위대한 황제의 사망 ====
         이후 황제는 정신을 차린뒤 자신의 몸에 칼을 댔다고 허리띠를 자른 경호병을 죽이고(....) 황궁으로 갔다가 거기서 복부 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향년 74세.
  • 박윤경(가수) . . . . 3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사망원인 =
  • 박정호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박주아(1942년)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1|5|16|1942|9|20}}
         | 사망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 박홍 (신부) . . . . 3회 일치
         |사망지 =
         |사망일 =
         |사망원인 =
  • 박희광 . . . . 3회 일치
         || 사망 ||<(> 1970년 1월 22일 ||
         || 사망지 ||<(> 서울시 보훈병원 ||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01년 출생]][[분류:1970년 사망]]
  • 방우정 (방송인)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서영춘(코미디언) . . . . 3회 일치
         [[분류:한국 남성 코미디언]][[분류:1928년 출생]][[분류:1961년 데뷔]][[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1986년 사망]]
         || '''사망''' ||<(> [[1986년]] [[11월 1일]](만 58세) ||
         한번은 구봉서가 서영춘의 건강을 걱정하며 술을 끊으라고 충고하자, 서영춘은 '형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라 대들었다. 구봉서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뒤돌아 울었다고. 참고로 서영춘이 사망한 다음날(1986년 11월 2일)은 하필이면 구봉서의 [[환갑]] 날이었다. 구봉서는 이를 회고하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식들이 마련해준 환갑 잔치인데도 도무지 웃음이 나질 않았다'라고 회고하였다.
  • 손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99|9|8|1910|1|27|}}
         |사망지 = {{KOR}} [[서울특별시]]
  • 송진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신동일 (언어학자)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3회 일치
         2011년, 일본에서 있었던,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주려던 아내의 장난이 그만 부부가 모두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진 비극적인 사고.
         카나자와 지검은 12년 1월 아내를 피의자 사망으로 불기소, 친구 6명은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불행한 사망자 데무라 유우키의 부모는, 아내 리사의 부모와 구멍을 파는걸 도왔던 친구들 총 8인에게 약 9100만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여 민사소송을 했다. 2014년 카나자와 지방재판소가 청구의 일부를 인정하여 8명에게 4133만엔의 지불을 명령했다.
  • 오병희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오석락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년과 나이|2014|3|25|1934|1|1}}
         2002년쯤 수혈을 받다가 C형간염의 보균자가 되었고 이후 간경화가 진행되어 1년정도 투병하다 2014년 3월 25일 사망했다.<ref>[http://news.korean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11191]</ref>
  • 오수미 . . . . 3회 일치
         || 사망 || [[1992년]] [[6월 30일]] (41세) ||
         그러나 신상옥이 돌아오자 김중만과도 [[이혼]]하고, 그녀는 그녀의 아이들을 신상옥에게 돌려주고 그 이후로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살다가 [[19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분류:1950년 출생]][[분류:1992년 사망]][[분류:한국 여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70년 데뷔]]
  • 오원 (조선)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1740년]]
         |사망원인=
  • 오은석 . . . . 3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사망원인 =
  • 오정태 (희극배우) . . . . 3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사망원인 =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윤석용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율리우스 네포스 . . . . 3회 일치
         480년, 네포스는 궁전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당시 사료에서 이 사건은 네포스의 장군 오비다가 배신했거나, 네포스의 신하가 되어 있던 글리케리우스(Glycerius)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아무튼 이 사건은 오도아케르에게는 희소식으로서,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주군인 네포스가 '다른 부하'에게 시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오도아케르는 이를 명분으로 하여 달마티아를 공격하고, 달마티아를 지배하던 오비다는 패배하고 사망했다. 달마티아 지역은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당한다. 여담으로 글리케리우스는 이후로도 오도아케르의 신하로서 살아서 음모론의 소재가 됐다.
         네포스의 사망 이후 동로마는 서로마 제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고 폐지하였다.
         다만 로물루스는 일단 --난장판이긴 해도-- 즉위가 로마 원로원에서 인정을 받았으며, 네포스는 결국 이탈리아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사망했다는 점[* 다만 말기에는 로마 황제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탈리아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즉위하고 활동한 사례도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에서 감점. 이런 관점에서 보면 474년 이후의 네포스는 서로마 황제의 지위를 명목상으로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 은혼/592화 . . . . 3회 일치
          * 가구라는 환자한테 무슨 짓이냐고 따지고, 긴토키는 해결사한텐 유급휴가신청서는 사망신청서랑 같은 의미라서 제대로 처리해준 거라고 한다.
          * 사망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던 우미보즈는 결국 생존. 뿐만 아니라 결국 오보로 외에는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 이갑상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7|1|29|1924|3|16}}
         | 사망지 =
  • 이갑성 . . . . 3회 일치
         }}</ref> 하지만 밀정 혐의의 특성상 세월이 흐른 뒤 근거를 찾기 힘들었고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상태가 되어 버린데다,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의혹만 남았을 뿐 명확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1980년]] 다시 그의 밀정설이 제기되었다. 80년 임정 국무위원 출신 [[조경한]](曺擎韓)이 [[박창암]]을 불러 이갑성이 일제의 밀정이라 주장 '내가 이걸 밝혀야 되겠는데 자네 용기 있나'라고 했고, [[박창암]]은 [[조경한]]의 부탁을 수락했다. [[박창암]]은 [[조경한]]의 진술을 토대로 월간 <자유>에 발표했고 이갑성은 병석에서 [[박창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진행 중 소송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 소송은 취소되었다. 뒤에 [[윤치영]]이 [[박창암]]을 찾아가 몇이 달라붙어도 해결못할 일을 해결했다며 치하하였다. 이갑성은 그해 [[3월 25일]]에 사망했다.
  • 이경희 (1880년) . . . . 3회 일치
         [[1909년]](융희 3) [[윤치호]],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결성하고, [[청년학우회]] 경성부지회의 회원이 되었다. [[1910년]] [[5월 13일]] 독립운동가 [[구찬회]]가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구찬회와 같은 고향 출신이던 그는 한국통감부와 일본의 눈을 피해 [[구찬회]]의 시신을 [[미역]] 속에 숨겨서 경성에서 대구 무태로 운반하여 [[구찬회]]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전달하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1910년]](융희 4) [[10월]]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청년학우회 한성지회의 일원으로 [[이동녕]](李東寧), [[윤치호]], [[안창호]], [[윤치소]], [[이회영]](李會榮), [[윤기섭]](尹琦燮), [[이승훈]], [[김좌진]](金佐鎭),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고 회원이 되었다. 이후 [[신민회]]의 비밀회의에 참여, 독립군 기지창건을 목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동참했고, [[105인 사건]]을 피해 바로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여 무관학교(훗날의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장사와 노동에 종사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돈을 모았다.
         [[1949년]] [[12월 4일]] [[대구]]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향년 69세였다.
  • 이관섭 (1961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이국철 . . . . 3회 일치
         |사망지 =
         |사망일 =
         |사망원인 =
  • 이근택(1865) . . . . 3회 일치
         || '''사망''' ||<(> 1919년 12월 7일 ||
         === 사망 ===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한제국의 군인]][[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을사오적]] [[분류:1865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 [[분류:조선의 반란자]]
  • 이덕건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이만섭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5|12|14|1932|2|25}}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서울)|신촌동]] [[세브란스병원]]<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14/0200000000AKR20151214171000001.HTML?input=1195m '한국정치 산 증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 별세...향년 83세]</ref>
  • 이상오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69|12|15|1905|11|6}}
          |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 이종화 (1949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이주호 (1961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3회 일치
         2001년 6월 8일,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大阪教育大学附属池田小学校)에 37세 남성 타쿠마 마모루(宅間守)가 난입하고 칼을 휘둘러, 아동 8명이 사망하고 [[교사]]를 포함한 15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단 5분~10분 정도 사이의 짧은 시간에, 타쿠마 마모루는 8명의 아이들을 살해하고, 13명의 아이와 2명의 교사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피해자는 처음 들어간 2학년 남쪽반에서 5명, 그 옆의 2학년 서쪽반에서 2명 사망 6명 부상, 2학년 동쪽반에서 4명 부상, 붙잡힌 1학년 남쪽반에서는 1명 사망 3명 부상이다.
  • 이헌일 . . . . 3회 일치
          | 사망지 = {{KOR}} [[경기도]] [[용인시|용인]]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79|4|17|1917|3|25}}
  • 임진숙 . . . . 3회 일치
         |사망일=
         |사망지=
         |사망원인=
  • 임현식(배우) . . . . 3회 일치
         스스로 "[[이몽룡]]과 [[방자]]" 가운데 방자형 연기자라고 파악하고, 오직 사망하지 않는 전 화 출연을 목표로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앞서 말한 허준의 임오근. 하지만 [[대물(드라마)|대물]] 등에서 결국 사망하는 장면이 나왔다.. --안 그러면 이야기가 성립이 안되니까.-- [* 사실 예전 작품인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서도 사망한 적이 있다.]
  • 장발 (화가)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01|4|8|1901|4|3}}
          | 사망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 장순왕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세조 7년(1461) 12월 5일
         |사망지 = 안기(安耆) 사저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저주의 첫 대상자로 알려진 [[조선 덕종|덕종]]의 경우 [[조선 단종|단종]]보다도 먼저 사망했으며, 따라서 [[조선 세조|세조]]가 [[조선 덕종|덕종]]의 죽음에 분노해 [[현덕왕후]]의 능묘를 파헤치고 폐서인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장윤희 (미스코리아)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장혁주 . . . . 3회 일치
         | 사망일 = [[1998년]] 2월
         | 사망지 = {{국기나라|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 시]]
         광복 후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에 귀화했다. [[사이타마현]] [[히다카 시]]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했다.<ref>{{뉴스 인용
  • 전국 BASARA(애니메이션) . . . . 3회 일치
          오쟈거리는 놈. 유키무라와 다테 양쪽의 목표가 되어 도망치다 오다에게 사망.
          신겐에 의해 사망.
          오다군에 의해 사망. 시체만 나왔다.
  • 전정희 (배우) . . . . 3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일과 나이|YYYY|MM|DD|YYYY|MM|DD}} -->
         | 사망지 =
  • 전종환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전형필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62|1|26|1906|7|29}}
         | 사망지 = {{국기|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정명훈 (지휘자) . . . . 3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5. 정명철 (클라리넷)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 정몽원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정몽헌 . . . . 3회 일치
         |사망일 = 2003년 8월 4일 (54세)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날짜=2003-08-04}}</ref><ref>[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1&cid=389123&iid=157543&oid=001&aid=0002957649&ptype=011 재벌총수만 두 번째…유력인사 왜 자살할까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재계 인사들은 '부친의 숙원 사업이었던 대북 사업 등 가업을 제대로 잇지 못한 것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동기'로 추측했다.<ref>[http://www.ilyoseoul.co.kr/show.php?idx=88364&table=news_economy&table_name=news_economy&news_sec=003 삼성家 아픈 역사… ‘비운의 황태자’ 만들었나?]</ref> 정몽헌의 사망 후 부인 [[현정은 (1955년)|현정은]]이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 정승우 (1973년)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정재안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정정아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정종원 . . . . 3회 일치
         |사망일 = [[1977년]] [[3월12일]]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장충동]]
         |사망원인 = 노환
  • 조소혜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06|5|24|1956|12|28|}}
         | 사망지 =
  • 주주장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죽는다 죽는다 사기 . . . . 3회 일치
          * 창작물에서 특정 캐릭터에게 [[사망 플래그]]가 있었지만, 죽지 않았던 경우에 하는 말이다.
          * 창작물에서 확실하게 캐릭터가 사망하는 연출이나 언급이 있었지만 보였지만, 죽지 않았던 경우. 특히 이런 것이 반복되는 캐릭터.
         === 사망 연출 분쇄 ===
  • 진격의 거인/84화 . . . . 3회 일치
          * 한지는 엘빈이 이미 사망했음을 확인해준다.
          * 초대형 거인의 완전한 사망, 아군측 두 번째 거인화 확보로 인해 거의 망한 것 같았던 조사병단은 극적으로 성과를 거뒀다. 병력이 거의 전멸하고 지휘관 엘빈까지 사망했기 때문에 그대로 돌아갔다면 턱없는 패전으로 취급됐겠지만, 이로써 적어도 무승부라고 주장할 근거가 생겼다.
  • 차명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차희식 . . . . 3회 일치
         |사망지 =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석포리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39|10|18|1870|11|10}}
  • 채동욱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채윤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채형석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최남선 . . . . 3회 일치
         |사망지=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1957|10|10|1890|4|26}}
  • 최동석 . . . . 3회 일치
         |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78|4|5 사망자 2018 09 24}}
         | 사망일 =
         | 사망지 =
  • 최동익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최석민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15|12|20|1858|8|6}}
         | 사망지 =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최호중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5|2|19|1930|9|22}}
         | 사망지 =
  • 최희준 (가수)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8|8|24|1936|5|30}}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 탁석산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태영호 . . . . 3회 일치
         빨치산 가문에서 태어난 태영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인민무력부장 등 빨치산 1세대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태영호는 평양 국제관계대학(5년제)를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태영호의 아버지 태병렬은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로서, 빨치산 시기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했다. 1913년 생 태병렬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서 1997년에 사망했다.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50세) 역시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며,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984년 사망)의 친척이다.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져 있다. 오혜선 역시 대외무역, 외자유치, 경제특구 업무를 담당하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에서 근무하다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 태의경 . . . . 3회 일치
         |사망지 =
         |사망일 =
         |사망원인 =
  • 토니 고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토츠카 요트 스쿨 . . . . 3회 일치
         국제 레이스 우승 경험이 있는 요트 선수 토츠카 히로시(戸塚宏)가 1976년 아이치현에 세운 요트 학원. [[스파르타 교육]]을 내세우며 [[부등교]], [[히키코모리]] 등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강력한 교육으로 '갱생'을 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입소자를 받았다. 그리고 [[체벌]]을 명목으로 한 폭행 사건으로 여러 학생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고를 일으켰다.
         과격한 훈련으로 2명의 사망자, 2명의 행방불명자를 일으켰으며, 토츠카 교장 및 코치 15인이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79년에서 82년 까지 훈련생의 사망, 행방불명 사건이 잇다라 교장 이하 15명이 체포, 형사 재판이 벌어지며 이를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이라고 한다. 토츠카 교장은 6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으며, 2006년에 출소하여 학교에 복귀하고 운영을 여전히 담당하고 있으며,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3회 일치
         지상전이 벌어지면 다른 요원들과 달리 장군은 호위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다. 만약 장군이 전투 중 사망하면 전투 이후 해당 호위대는 그대로 해체되며 장군 또한 사망처리되므로 주의. 해상전의 경우에는 기함에 탑승해 전투를 지휘한다.
          * 다른 가문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상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 하현정 . . . . 3회 일치
         | 사망지 =
         | 사망일 =
         | 사망원인 =
  • 한명회 . . . . 3회 일치
         |사망지= [[조선]] [[경기도]] [[광주목]] 언주면 압구정리
         |사망일= [[1487년]] [[음력 11월 14일]] (73세)
         [[1487년]](성종 17년) 그가 병석에 눕게 되자 [[조선 성종|성종]]은 특별히 [[내의]]를 보내어 치료하게 하고 날마다 내관과 신하들을 보내 문병하게 하였다. 병세가 악화되자 [[승지]]를 보내어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임종 직전 남긴 유언에서 그는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나중에는 게으른 것이 사람의 상정이니 원컨대 나중을 삼가기를 처음처럼 하소서"라 하였다. 그해 [[음력 11월 14일]] 갑자기 사망하였다. 당시 향년 73세였다.
  • 한무숙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93|1|30|1918|10|25}}
         |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한병주 . . . . 3회 일치
          | 사망일 = [[1950년]] [[7월 26일]] (72세)
          | 사망지 = {{KOR}} [[경기도]] [[수원시|수원]]
         === 사망 ===
  • 한성우 . . . . 3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사망원인 =
  • 한송이 (방송인)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한현준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한확 . . . . 3회 일치
         |사망지= [[조선]] [[한성부]]에서 노환으로 병사
         |사망일= [[1456년]] [[음력 9월 11일]]
         귀국길에 올라 세조의 책봉 고명을 받아 돌아오던 중, 칠가령(七家嶺)에 이르러 병을 얻어, 귀환하는 도중에 [[음력 9월 11일]] 사하포(沙河浦)에서 갑작스럽게 객사하였다. 당시 향년 56세였다.<ref>1400년생 설을 따를 경우</ref> 사망 당시 가사에 대한 말은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둘째 딸은 [[세종]]의 서자 [[계양군]] 증에게 출가했고, 여섯째 딸은 [[소혜왕후|인수대비]]로 [[조선 덕종|덕종]]의 비이며 [[월산대군]]· [[조선 성종|성종]]의 어머니였다.
  • 함신익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함영준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사망원인 =
  • 해양군 . . . . 3회 일치
          | 사망일 = [[1682년]] (63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흥안군 이제|흥안군 가통]] 사저
          | 사망원인 = 병사
  • 해원군 . . . . 3회 일치
          | 사망일 = [[1662년]] (49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사저
          | 사망원인 = 병사
  • 허지애 . . . . 3회 일치
         | 사망지 =
         | 사망일 =
         | 사망원인 =
  • 헌경왕후 . . . . 3회 일치
         |사망일 = 순조 15년(1815) [[음력 12월 15일]] (80세)
         |사망지 = [[조선]] [[한성부]] 창경궁 경춘전(景春殿)
         ******* 손주 : (1786년 9월 14일) - 복중 사망
  • 호준석 . . . . 3회 일치
         |사망지 =
         |사망일 =
         |사망원인 =
  • 홍석형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황문수 (장기 기사)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국가 =
         |사망지 =
  • 황병기 . . . . 3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8|1|31|1936|5|31}}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황연대 . . . . 3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사망원인=
  • 황은진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97|6|1|1934|11|3}}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황찬호 . . . . 3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8|4|26|1986|2|24}}
         | 사망지 =
  • 황태연 . . . . 3회 일치
         |사망일 = <!-- {{사망일과 나이|YYYY|MM|DD|YYYY|MM|DD}} -->
         |사망지 =
  • 효령대군 . . . . 3회 일치
         |사망지 = [[조선]] [[한성부]]에서 노환으로 병사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486|6|12|1396|1|6}}
  • 2016년 남양주 폭발사고 . . . . 2회 일치
         현장에서는 부상자와 사망자를 포함하여 모두 17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3명은 다치지 않았다. 작업은 오전 7시에 시작되었는데, 30분도 되지 않아서 참변이 일어났다.
         폭발 충격으로 상부에 있던 사망자 1명이 바깥으로 튕견가ㅏ 숨졌으며, 3명은 15미터 아래의 지하에 고립되었다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 Crusader Kings 2/DLC . . . . 2회 일치
         이외에 고양이 키우기 이벤트, __여러가지 사형 방법__, __사망 요인에 따른 다양한 사망 효과음__, 특별한 관계의 인물이 죽었을 때의 이벤트 등이 추가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2회 일치
         대부분의 연구진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일부 연구진은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일정 년도가 되면 그대로 사라진다. 이는 실제 역사상에서 해당 연구진이 사망/해체/파산된 것을 구현한 것이다. 반대로 새로 생겨나는 연구진도 있다. 그런데 이거 좀 어거지로 되어있어서 1950년대 일본 제국은 겨우겨우 살아서 제국주의짓 해도 일본군 관련 연구진들은 싹 쓸려나가고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가 그 자리를 메꾼다.
          1933년 시나리오부터 시작하면 사용 가능. 1934년 사망해 쓸 수 없게된다.
  • OK 본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강연재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강화종실 . . . . 2회 일치
         [[정조]] 시기에 권세가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였는데, 그녀를 원빈이라 하였다. 1980년 원빈이 사망하자, 홍국영은 은언군의 장남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서 장차 정조의 왕위를 이어받게 하려 했으나, 1786년(정조 10년) 담은 모반죄로 유폐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은언군은 강화도에 유배된다.
         [[조선 헌종|헌종]]이 자식이 없이 사망하자, 은언군의 아들 전계군(全溪君)의 아들 덕완군(德完君)이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철종이다. 하지만 철종은 후사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강화종실은 대가 끊어졌다.
  • 경주시 . . . . 2회 일치
         ! 이름 !! 출생 !! 사망 !! 소속 또는 직업 !! 비고
         ! 이름 !! 출생 !! 사망 !! 소속 또는 직업 !! 비고
  • 고세원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고수희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고원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곽희성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구광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권수현(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기은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길은혜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경태 (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관용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대휘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륵 . . . . 2회 일치
         그러나 사마시 합격 이후 생부 김사명과 스승인 퇴계 이황이 연이어 사망, 그는 고향 영주시에 머무르며 퇴계 이황의 위패를 영주시 이산서원(伊山書院)에 배향하는 일을 추진하였으며 이후 영천(영주시) 지역 사림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그는 흑석사(黑石寺)와 [[소수서원]] 등에서 수학하다 [[1576년]](선조 9)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오리 [[이원익]], 학봉등이 그의 동방이었다.
         이후 영주시내에 귀학정과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천운정을 짓고 시문으로 소일하며 이수광·한석봉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했는데, 이때 석봉 한호로부터 친필 글씨로 귀학정 현판을 선물로 받았다. 1616년(광해군 8) 병으로 사망했다. 묘소는 경북 봉화군 상운면에 있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광해군]] 시절의 행동이 참작되어 1653년에 이조 판서로 증직되었다.
  • 김문집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 사망지 =
  • 김미숙(1959) . . . . 2회 일치
         1998년 [[장동건]]과 <[[사랑]]>에서 8살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설정의 멜로 연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청률이 저조하자 연출이 다짜고짜 '''주연 여배우를 갈아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에 따라 극중 김미숙은 갑작스레 암에 걸림 -> 그 회에 바로 사망이라는 역대급 퇴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최지우]]로 변경. ~~이쯤되면 데스노트~~ 김미숙은 이 때를 회고하며 당시 '''라디오 진행을 위해 마이크 앞에서 입만 떼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배우 인생에 가장 힘든 때였으나 역으로 배우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시기였다고. 이 때 주말극 [[사랑해 사랑해]]에서 푼수끼 넘치지만 대인배적인 인물 '조봉자' 역할로 연기 변신에 성공한다. ~~말이 그렇지 사실상 고소감~~
          * 연하남들과 연기를 많이 했다. [[장동건]], 故 [[안재환]], --안 그래 보이지만-- [[최재성(배우)|최재성]], [[손창민]] 등 많은 연하남들과의 연기가 많았던 편. 특히 <[[바람불어 좋은 날]]>의 [[이현진(배우)|이현진]]과는 26살 차이로, 이현진의 실제 어머니와 동갑(...)임에도 꽤 괜찮은 케미를 보여줬다. 후에 두 배우는 황금의 제국에서 모자 연기를 해서 다른 의미의 케미를 보여준다. ~~몰입이 안 된다고 거...~~ 그리고 2016년작인 [[우리 집에 사는 남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남자]]에서는 28살 연하인 아들 뻘인 [[김영광]]과 혼인신고 후 사망하는 설정이 나온다. 이쯤 되면 연하 킬러라고 해도 될 듯. 참고로 김미숙의 '''실제 남편도 5살 연하'''.
  • 김민수 (1983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민아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민좌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민호 (희극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병준 (희극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보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장소 =
  • 김보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보정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부식 . . . . 2회 일치
         |사망일= [[1151년]] (77세)
         |사망지= [[고려]] [[개성특급시|개경]]
  • 김상훈 (1963년)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김새해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김선재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성곤 . . . . 2회 일치
         ||<#796E65> {{{#white 사망}}} ||[[1975년]] [[2월 25일]]||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분류:1913년 출생]] [[분류:1975년 사망]]
  • 김성훈(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소희 (2000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수학 (법조인)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영철(배우) . . . . 2회 일치
         [[야인시대]]에서도 후반기에 명연기를 보였으나, 해방 당시의 김두한은 20대 후반이었는데 김영철은 당시 50에 근접한 나이라 [[미스캐스팅]] 논란도 있었고[* 광복을 기점으로 김두한 배역이 김영철로 교체되는데, 이 때 김두한의 나이는 28세지만 당시 김영철 배우의 나이는 만 50세, 연나이 51세였다. 김두한이 사망한 나이보다 겨우 3살 적었다. 그래서 김두한과 동년배 혹은 친구 역으로 나오는 김무옥-문영철이나 이정재 등은 훨씬 젊어보여서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었다. 김영철 배우의 외모를 젊게 잡아 40세라고 쳤어도 김두한 역으로의 교체는 김두한이 약 40세 정도인 4대 총선 도전때 정도가 적절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DTs3S_44w|이 자가 바로 20대입니다 어머니! 뭐,뭐라고?]]-- 후반기 줄거리 자체의 논란과 더불어 방영 당시에는 [[안재모]]가 맡은 청년기 시절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주목은 태조 왕건만 못했다. 야인시대의 후반기 방송분은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이 주 시청자였다. 하지만 종영후에는 청년기가 잊혀진반면 후반기는 [[심영물|명언도 더 발굴되고 넷상에서 언급도 더 많이된다.]] 방영된지 10년도 넘게 지났음에도 김영철의 인생 연기 중 하나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2011년 여름에 방영한 KBS [[수목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수양대군 역을 맡아 [[충공깽]]급 연기를 선보였다.[* 다만 연령 고증은 조금 아쉬운데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당시에 36세이고 사망 당시에 52세였는데 김영철은 이 당시 이미 6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물론 연기력이 두말할 나위 없이 뛰어났기에 이 문제가 상쇄되기는 하지만.] 미화없는 실제 세조의 정체성에 가장 가까운 연기를 펼쳐, 2017년까지 제작된 영화 및 드라마 등 세조관련 모든 영상매체에서 '''역사상 최고의 세조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정적에 대한 처단에 망설이는 모습이 없고, 왕좌를 갖기 위해 또한 지키기 위해 냉혹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가히 괴물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궁예나 이방원 역과는 묘하게 다른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인생배역이다.
  • 김윤환 . . . . 2회 일치
         이후 신장암 치료를 위해 [[국립암센터]]에 입원했고 미국까지 가서 투병했지만, 결국 회생불가 판정을 받고 귀국한 뒤 [[2003년]] [[12월 15일]]에 사망했다. 향년 71세.
         [[분류:동명이인/ㄱ]][[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기자]][[분류:언론인]][[분류:시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32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
  • 김장섭 . . . . 2회 일치
         사망 1993년 12월 21일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19년 출생]][[분류:1993년 사망]]
  • 김종훈 (1952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찬돈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필곤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하은(1984)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형기 (법조인)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호근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김효원 . . . . 2회 일치
         [[안악군수]], [[영흥부사]]로 승진하여 재직 중 사망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주을천 옆 묘소 입구에 신도비가 세워졌으며 이준(李埈)이 짓고 [[김세렴]](金世濂)이 글씨를, [[허목]](許穆)이 전액하여 [[1743년]]에 설립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2 /> [[안악군수]], [[영흥부사]]로 승진하여 재직 중 사망하여<ref name=autogenerated1 /> 묘갈명은 갈암 [[이현일]]이 썼으며 '(조정에 있을 때 정색(正色)과 직언(直言)으로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일시의 권간들이 모두 다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2 /> 저서로는 《성암집》 등이 있다.
  • 김효진 (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김희정 (펜싱선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장소 =
  • 남일해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노행하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노현정 . . . . 2회 일치
         | 사망지 =
         | 사망일 =
  • 도광록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도균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도모세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디펜더 2 . . . . 2회 일치
         스테이지 모드(단일)와 대결 모드로 나뉘는데, 특이하게도 대결 모드가 플레이어가 사망할때까지 끝나지 않는 무한 전투다. 상대방은 랜덤으로 매치되며 1:1이다. 오래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데, 상대방이 죽는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진 않으며 자신이 사망할때까지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 있다. 우측 상단의 화면으로 상대방의 현황을 볼 수 있으며 몬스터의 출현패턴은 양쪽 다 동일하다. 승리시 살아남은 시간에 비례하는 골드와 경험치를 받을 수 있으며 패배해도 경험치나 골드는 받을 수 있지만(죽인 몬스터 수당 1씩 받는다.) 보석은 받지 못하므로 주의.
  • 라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2회 일치
         피격당하면 출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승무원이 대전차 소총에 피격당해 사망할 경우, 자리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해당 승무원이 맡았던 일도 해야한다.
  • 로켓레드 . . . . 2회 일치
          본명 조세프 데니소비치. 첫번째 로켓레드로 [[그린 랜턴]] 군단의 [[킬로웍]]과 친구였다. 그러나 정부에 의해 킬로웍을 배신하고, 그를 상대로 싸우다 사망했다.
          본명 드미트리 푸쉬킨. [[저스티스 리그]]에 가입한 로켓레드이며 오막 사건에서 사망했다.
  • 류원정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류종원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류지혜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류한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장소 =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2회 일치
         1751년 12월 9일 [[파르마]]에서 출생,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왕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사실상 스페인의 국정을 통솔하였으나, 하급귀족 출신의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25살 청년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등 정치적 실책을 여러 차례 저질러, 결국 폭동이 일어나 카를로스 4세와 망명하는 신세가 됐다.
         이후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한다.
  • 맥닐의 법칙 . . . . 2회 일치
         1518년, 스페인 이주민이 퍼트린 [[천연두]]가 에스파뇰라 섬의 아라와크 원주민의 절반을 살해한다. 천연두는 아메리카 본토에도 상륙하여 1530년대부터 팜파스에서 [[오대호]]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초토화시킨다. 16세기 멕시코에서는 천연두로만 1800만명이 사망, 의학사가들은 이 시기에 천연두 사망자를 8천만명에서 1억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무렵 1999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1500년대의 인구는 약 5억명으로 추산되므로, 천연두가 세계 인구의 1/5을 죽인 것이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2회 일치
         맥스는 30층으로 올라가 코커런의 집에 도착했지만 현관문은 잠겨있었다. 맥스는 모나의 지시에 따라 그 옆집 발코니를 통해 코커런의 집으로 가기로 한다. 코크런의 옆집은 청소부들의 습격을 받아 집주인이 사망한 상태였다. 모나의 말에 따르면 이 곳은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도 살고 있다고.
          * 23층 창문으로 들어가기 전 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타고 왼쪽으로 가면 2003년 사망한 Mikka Forssell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다.
  • 무언의 귀가 . . . . 2회 일치
         바깥에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 [[관]]에 넣어져서 집에 돌아가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해외에서 사망하여 시신이 [[공항]]으로 운반되는 경우는 '무언의 귀국(無言の帰国)'이라고도 한다.
  • 문석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문연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2회 일치
          샐비지선에서 일하는 노동자. 2등 시민이 되려하며 자기 등급 점수를 10점 깍은 샐비지선 리더인 파치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품성에 문제가 있는 인물인 것이 실수를 저질러서 큰 피해가 났는데 파치는 등급 점수를 깍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관대한 처분에 적반하장격으로 굴어서 루카가 한마디 할 정도. 이후 몬스리에게 파치가 라오 박사라는 것을 밀고하나 이외에는 딱히 이용가치가 없다보니 몬스리가 정보만 듣고 가버리면서 무시되었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루카에 의해 사고로 크레인에 깔려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왔다.
          코난을 키워온 노인. 이름이 안나와서 본명은 불명이다. 과거 지구에서 탈출하려다 실패한 일행의 일원이며 코난의 부모와는 동료였다. 라나가 떠내려오고, 그런 라나를 쫓아 몬스리 일행이 나타난 것이 계기가 되어 치명상을 입어 사망했다. 나이는 64세.
  • 박강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박광정 . . . . 2회 일치
         연극 연출가로 한창 활동하던 [[2008년]] [[4월]], 대중 매체를 통해 [[폐암]]에 걸렸음을 고백했으며[* 실제로도 [[골초]]였다고 한다.], 결국 그 해 [[12월 15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47세.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62년 출생]][[분류:2008년 사망]][[분류:양양군 출신 인물]][[분류:1992년 데뷔]]
  • 박석민 . . . . 2회 일치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상호(1989)|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태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 박수영(연극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박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박현정 (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박홍우 . . . . 2회 일치
         대전고등법원으로 재직하던 2015년 2월 대전고등법원 제3행정부 재판장으로서 행정본안재판의 일부를 직접 맡았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 시절인 1995년 시위 진압과정에서 최루탄에 도망가다가 넘어져 질식사 사망한 성균관대 학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망인의 위자료를 5000만원 인정한 것과 2004년 [[세녹스]]의 석유사업법 위반 사건에서 1심에서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을 들었다.<ref>[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509100056]</ref>
         * 헌법심판절차진행중 청구인 등의 사망과 관련되는 문제점 검토, 법과 인간의 존엄: 청암 정경식 박사 화갑기념논문집, 박영사 (1997)
  • 배소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백낙청 . . . . 2회 일치
         | 사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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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현 . . . . 2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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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2회 일치
         [[소련]]의 정치가, 외교관. --[[바텐더]].-- 1890년 3월 9일 생, [[러시아]] 쿠카르카(지금의 소베츠크) 출생. 1886년 11월 8일 [[모스크바]]에서 사망.
         1949년 3월, 외무장관직을 사임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하자 다시 복귀, 1956년 6월, [[니키타 흐루쇼프]]와의 정치적 불화로 해임되었다. 11월에 흐루쇼프 제거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모든 고위 관직을 잃었다.--[[숙청]]!--
  • 베이식 (가수)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봉준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블리치/697화 . . . . 2회 일치
          * 쥬시로는 사망. 호정 13대 총대장이 된 쿄라쿠가 그의 무덤에서 술을 마신다.
          * 생존할 듯한 인물은 사망하고 죽은 것 같았던 인물 몇몇은 부활.
  • 서명선 . . . . 2회 일치
          | 사망일 = [[1791년]] (64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 서상일 . . . . 2회 일치
         이때 서상일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놓고 [[조봉암]]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좋은 결론을 심사숙고하려 했다. [[조봉암]], 서상일 등은 원래는 선거가 종반전에 들어갈 때 정부통령 후보를 모두 민주당측에 양보하는 것에 합의했으나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조봉암이 사실상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자 선거말미에 가서 부통령 후보 박기출만을 사퇴시켰던것이다. <ref name="서158"/> 대선이후 서상일은 겉으로는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결성 운동을 추진했으나 이미 대선후보 결정당시 [[조봉암]]과 감정이 상했기 때문인지 [[진보당]] 결성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사실상 1인정당인 민주혁신당을 창당했으나 이 당이 사실상 힘을 쓰지 못하자 서상일 또한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지게 되어 정계은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1962년]]에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간장염]]으로 사망했다.
  • 서윤아(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서정돈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서정제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서지훈 (1997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서효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성현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손광업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손지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송가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신기준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신선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신성왕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신은정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신종령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신형철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안지만 . . . . 2회 일치
         |사망일 =
         * 힙지만 - 그는 시합에 나갈 때마다 [[모자]] 챙을 세우면서 나가는데, 이로 인해 '힙지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 챙을 세우게 된 이유로는 예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강영식 (야구 선수)|강영식]](현재 [[롯데 자이언츠]])과의 내기로 모자 챙을 세웠다고 한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는 이유는 예전에 같은 팀 선배였던 [[양준혁]]이 "너는 인상이 선해서, 모자로 포인트를 줘봐라" 라고 한 후 쭉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던 [[장효조]]가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무렵에는 경기에 나갔을 때 추모를 위해 모자 챙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힙합모자를 쓰지 않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42945 삼성 안지만, 힙합 스타일을 버린 까닭은?] - 스포츠조선</ref>
  • 안효민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야설록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양윤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양희승 (작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2회 일치
          * 간수 사망자 수 2명 미만
          주먹으로 쥐어패도 사망 처리된다.
  • 여고생 콘크리트 매장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1988년 11월 25일, [[사이타마 현]]에 거주하는 고3 여고생이 납치, 강간, 집단강간, 폭행 등 처참한 학대를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다. 흔히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女子高生コンクリ事件)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피해자는 40여일 동안 감금되어 처참한 학대를 당했으며, 피해자가 사망하자 범인들은 시신을 드럼통에 담고 콘크리트로 덮어서 유기하려 했다.
  • 연분홍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연초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염재욱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예재형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오경훈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오유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오재희 . . . . 2회 일치
         |사망지 =
         |사망일 =
  • 오정희 (소설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오준영 (1955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오창경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와일드 독 . . . . 2회 일치
         상당히 안쓰러운 인생 끝에 자경단원으로 거듭난 인물. 원래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운동선수였으나 부상을 입으면서 팀을 나온데다 학교도 떠났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동료 대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제대, 이후 주립대학에서 야간수업을 받다 클레어 스미스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었으나 사실 그녀는 최근 살해된 시카고 갱단 두목의 딸인 클레어 카몬티였으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와일드독이 되어 범죄와 싸우기 시작했다.
  • 요코타 메구미 . . . . 2회 일치
         === 동아일보의 사망설 보도 ===
         2014년 11월 07일, 동아일보는 1994년 4월 10일 요코타 메구미가 약물투여로 사망했다는 보도를 했다.[[http://news.donga.com/3/02/20141107/67719661/1 (참조)]] 일본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http://sp.m.reuters.co.jp/news/newsBodyPI.php?url=http://jp.reuters.com/article/topNews/idJPKBN0IR05920141107 (참조)]]
  • 우의형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유승민(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윤선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윤인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은혼/632화 . . . . 2회 일치
          * 어느 달 밝은 밤. 한 소녀가 [[다카스기 신스케]]에게 거둬주길 청하고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키지마 마타코]]. 신스케의 이력과 그가 세상을 부수려함을 알고 자신도 동행시켜 달라고 청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양이지사였으나 막부에 탄압 당해 사망, 어머니는 죄인의 부인이란 오명 속에서 박해를 받다 사망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의 유품인 한 정의 리볼버. 이것으로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털어놓는다.
  • 이경영(1960) . . . . 2회 일치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2011년]] 이후 영화 등장이 늘었다. 여자문제로 출연금지당했으나 영화로 재기한 선배 [[송영창]]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셈. 《[[부러진 화살]]》에서 악역으로 판사역을 맡았고, 2012년엔 같은 감독의 《[[남영동1985]]》에서 [[이근안]]을 모티브로 한 고문경찰 이두한을 연기했다. 같은 시즌에 함께 개봉한 《[[26년(영화)|26년]]》, 《[[베를린(영화)|베를린]]》에도 모두 출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일본 영화인 《외사경찰》(外事警察 その男に騙されるな)에서 까메오이면서 악역인 북한군 장교로 등장한다. 주로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사망~~[* 악역, 최종보스 역도 많이 맡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죽는다. 당당 [[사망전대]].] 혹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맡아 이경영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013년에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그 이후에도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도 화이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으로 출연하면서 악역이 아닌 무고하고 불쌍한 피해자도 연기했다. 이렇듯 자신만이 가진 유니크함으로 여러 영화에 캐스팅되며 (비록 공중파는 못 나오지만)완벽히 재기한 상태.
  • 이광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규환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 사망일 = [[1982년]]
         | 사망지 =
  • 이금서 . . . . 2회 일치
         |사망일=
         |사망지= [[고려]] [[개성시|개경]]?
  • 이기광 (법조인)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이나경(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미라 . . . . 2회 일치
         |사망 연도 =
         |사망 장소 =
  • 이미연 (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선민 (1988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선아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이숭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1392년]]
         | 사망지 =
  • 이시종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이열희 (1924년) . . . . 2회 일치
          | 사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만년에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에 살다가 [[2012년]] [[8월 9일]] 새벽 4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의 장성 건영아파트 304동 304호 자택에서 사망했다.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장례식장 5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지난 11일 진행됐다. 장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산9번지에 안장되었다.<ref name="pisots">[http://www.kda.or.kr/kda/modules/kdaNews/news/NewsView2.aspx?NewsID=75541 이열희 경북치대 명예교수 별세] 치의신보 제2058호(2012년 08월호)</ref>
  • 이우석(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원석(1981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은수(육군) . . . . 2회 일치
         가족관계로는 남편과 딸 하나가 있었으나 남편은 07년에 지병(암)으로 사망하였고, 부친도 이 장군의 전역 3개월 전에 별세하였다.[* 이은수 장군은 자신의 장군 취임식 때 연평도사건으로 인하여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부친을 모시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의 전역식 때는 부친을 꼭 모시고자 마음먹었으나 전역 3개월을 앞두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모친의 병간호로 무리했는지 사망했다.]
  • 이은혜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이장훈(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재성(희극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정명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지우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평 (1572년) . . . . 2회 일치
         [[1612년]](광해군 4) 증광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그 해 [[9월 9일]]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발령되기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
         [[1612년]](광해군 4) 임자(壬子) 증광시(增廣試) 생원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져 그해의 [[9월 9일]]의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발령되기 전에 병으로 사망한다. [[선교랑]] [[홍문관 부수찬]]이 증직으로 추서된다.
  • 이하율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이한응 (1849년) . . . . 2회 일치
         이한응(李漢應, [[1849년]] [[2월 24일]] ~ [[1905년]] [[4월 23일]])은 [[조선]] 후기의 무신, 군인이다. 자는 공모(公模),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다른 이름은 이한경(李漢景)이다. 비슷한 시기에 [[과거 제도|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나 그 해에 사망한 동명이인 이한응(李漢應), 외교관 [[이한응]](李漢應) 등의 동명이인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였다.
         [[1879년]](고종 16년) [[6월 23일]] 부사정을 지냈다.<ref>승정원일기 고종 16년 기묘(1879) 6월 23일(을축)자 11번째기사, "병비의 관원 현황"</ref> [[1905년]](광무 8년) [[4월 23일]]에 사망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가장리 장현(長峴) 고개 자좌(子坐)에 있다.
  • 이현욱(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2회 일치
          * 성기사들이 수군대기 시작한다. 분명 필요하긴 하지만 맡을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것. 표암의 포효의 슬레이더도 추천을 받지만 그림자라고 자칭하며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우저는 당연히 핸드릭슨이나 드레퓌스가 맡을 거라고 생각하고 불평하는 녀석들은 자기가 날려버리겠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럴 자격도 마음도 없다며 고사한다. 덴젤도 사망하고 길선더는 행방불명. 더욱더 맡을 사람이 없어진다.
         멀린은 십계가 전멸한게 아니라고 강조하는데 에스타롯사 등 확실하게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십계는 대부분 복귀할 걸로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2회 일치
          * 양대 최강자에게 도전했다 패배하고 멜리오다스는 저주받고 엘리자베스는 사망,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
          * 멜리오다스는 오랜 여행 끝에 처음으로 엘리자베스의 환생을 발견하지만 불과 3일 만에 불행한 사고로 사망하고 멜리오다스는 다시 여정에 오른다.
  • 임대윤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임혁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임효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장소 =
  • 자타라 . . . . 2회 일치
         현재 시간대에서는 이미 사망했으며 재커리 자타라(Zachary Zatara)가 히어로 자타라가 되었다. 사망했기에 [[블래키스트 나이트]]에서 블랙랜턴으로 등장.
  • 장계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장다경 (영화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동국 (1972년 9월)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문규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석조 (판사)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장성집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39년]] [[5월 26일]]
         |사망지 = [[서울]]
  • 장솜이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슬기 (희극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신애 (연극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우석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우수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장유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윤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장은숙 (가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은아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장의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준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지우(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장진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장항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재신 (배우)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저스디스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전경협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39년]] [[9월 26일]]
         |사망지 = [[서울]] [[서소문]]
  • 전덕기 . . . . 2회 일치
         |사망일 = 1914년 7월 23일(40세)
         |사망지 = [[한성부]](지금의 [[서울]])
  • 전락원 . . . . 2회 일치
         워커힐 카지노 사업을 맡고 있는 [[파라다이스 (기업)|파라다이스]]는 지난 2002년 11월 코스닥에 등록했으며 파라다이스 호텔체인은 파라다이스호텔 제주, 케냐의 파라다이스 사파라파크호텔,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도고, 파라다이스호텔 인천 등 국내 토종 호텔 브랜드로 유명하게 되었다. 이후 계열사별로 전문 CEO체제를 구축, 그룹 경영에서 한발 물러섰으며 2004년 계원학원 이사장을 맡으면서 그룹경영에서 물러난 후 같은해 11월 3일 향년 78세로 사망했다.
         생존시 수년간에 걸쳐 주요 지분을 아들인 전필립 [[파라다이스 (기업)|파라다이스]] 부회장과 비영리법인에 넘기는 등 후계 체제를 준비해 왔다.<ref name="카지노"/> 전 회장은 사망당시 그룹 주력사인 [[파라다이스 (기업)|파라다이스]]에 대해 6%정도의 지분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카지노"/>
  • 전민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전성우 (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전수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전수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전유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전인범 . . . . 2회 일치
         2014년 9월 특전사 13공수여단에서 포로체험 훈련 도중 부사관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훈련의 도입을 지시한 사람이 그였던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었다. 2017년 2월 [[국민의당]] [[김영환 (1955년)|김영환]] 최고위원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그에 대해 “이분은 취임 후인 2014년 9월 공수여단에 포로처럼 고문훈련을 시켜 두 명의 군인을 사망시킨 전력이 있다”며 “문재인 전 대표는 왜 ‘특전사 코스프레’를 포기하지 않고 집착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52597 김영환 "文캠프 전인범, 고문훈련으로 군인 두 명 죽었는데…"], 《뉴시스》, 2017년 2월 6일</ref>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가 전역 직후인 2016년 9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포로체험 훈련 중 사망한) 조용준·이유성 하사. 나는 당시 부대 지휘관으로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죽을 때까지 새기고 가야 한다는 벌을 받았다”며 지휘관으로서 도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ref name="a"/> 문재인 지지 선언 직후인 2017년 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당시 사고의 핵심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지와 부주의, 그리고 감독 부실이다. 그리고 당시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보도됐는데, 군 생활 당시 매뉴얼이란 표현을 쓰던가. 에프엠([[FM]], filed manual, 야전교범)이란 표현을 쓴다. 사고 직후 장교가 기자에게 ‘매뉴얼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받고 ‘못 봤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만약 ‘에프엠이 있었나’라고 물어봤으면 그렇게 답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가 책 만들 때 초고가 있잖나. 그때 (엄지와 검지를 4cm 정도 떨어뜨린 손을 내보이며) 이렇게 두꺼운 초고가 있었다.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고 답했다. 이어 “이런 사고가 나선 절대로 안 되지만, 어처구니 없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책임만큼의 처벌만 받도록 이해해줬으면 한다. 2017년 1월에 제가 특전동지회 총재로 취임했는데, 취임식 때 희생된 두 부하의 아버지가 축하해주러 오셨더라. 그러면서 ‘사령관님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일반순직이 아닌 특수직무순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잘 처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더라. 제 마음이 어땠겠나”라고 덧붙였다.<ref name="b"/> 이에 대하여 특전사 관계자는 “그들은 아들들이 비록 희생됐지만 포로체험 훈련의 취지에는 공감했기 때문에 사고 당시 사령관이었던 전인범 전 중장의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식에 참석이 가능했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763911 [단독] “포로체험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특전사 비밀리에 계속 실시], 《경향신문》, 2017년 2월 12일</ref>
  • 전장운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66년]] [[3월 9일]]
         |사망지 = [[서울]] [[서소문]]
  • 전지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전희숙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장소 =
  • 정겨운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광용 . . . . 2회 일치
         2017년 5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던 3월 10일 폭력 집회를 주최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9289767&date=20170524&type=1&rankingSeq=3&rankingSectionId=102|#]] 당시 그 폭력집회로 인해 총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탄핵반대 집회 관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박사모 집회에서 계엄령 선포요구, 폭력집회 선동, 내란 선동, 경찰관 폭행, 기자, 시민 폭행 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불법행동을 많이 저질러졌다. 심지어 3월 10일 박근혜 파면이 결정된 날에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폭동이 격화되는 바람에 사망자가 3명이나 나왔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의 주동자 정광용은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지만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책임지지 않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7885974|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결국 2017년 5월 25일 같이 폭력 시위를 선동한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와 함께 구속되었고 2017년 12월 1일 1심 재판에서 손상대와 함께 실형 2년을 선고 받았으나 2018년 5월 31일,2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http://naver.me/GGVzj1Wi|#]]
  • 정구양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기성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다정 . . . . 2회 일치
         |사망 연도 =
         |사망 장소 =
  • 정다혜(1987)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정동현 (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정몽근 . . . . 2회 일치
         |사망지 =
         |사망일 =
  • 정문성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미남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민아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범균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병오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복수 . . . . 2회 일치
         1940년 프로로 전향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페더급에서 28전 28승을 거두고 1943년 귀국하였다. 광복 후 김명석(金明錫)·박용만(朴容萬) 등과 함께 조선아마추어권투연맹을 조직하였으며, 신한권투구락부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현역 직업선수로 다시 전향하여 한국 프로권투를 석권하였다. 이후 [[1953년]] 은퇴한 뒤 [[1962년]] 사망했다.<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4260032910401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62-04-26&officeId=00032&pageNo=4&printNo=5056&publishType=00010 鄭福壽氏(정복수씨) 死亡(사망)] [[경향신문]] 1962년 4월 26일 작성 </ref><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4260020920302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2-04-26&officeId=00020&pageNo=3&printNo=12438&publishType=00020 鄭福壽氏別世(정복수씨별세)] [[동아일보]] 1962년 4월 26일 작성</ref>
  • 정서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성왕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영조 33년(1757) 2월 15일
         |사망지 = 창덕궁(昌德宮) 관리각
  • 정세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정세협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소담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수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승빈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승우 (골프선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승화(육군)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29년 출생]][[분류:2002년 사망]]
         === 1987년 제13대 대선 이후~ 사망까지 ===
  • 정영삼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정재민(2001)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정종철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창영 (공무원)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정호용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조재윤 (체조선수)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조훈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존 루터 존스 . . . . 2회 일치
         1900년 4월 30일 오전 3시, 존스는 [[미시시피]] 본에서 열차 충돌로 사망한다. 그는 열차가 충돌하기 전까지 경적을 울리며 제동기를 작동시켰다고 전해진다. 이로인해 기관차의 속도가 최대한 감속되었고, 이 사고의 사망자는 존 루터 존스 한 명 뿐이었다.
  • 주상욱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주서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죽으면 부처님 . . . . 2회 일치
         이 격언은 아미타불을 숭배하는 정토교의 가르침을 간단하게 요약한 것으로서, 정토신앙을 믿는 자는 사망하면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극락정토]]에 [[환생]]하여 불법을 수행하여 해탈에 이르게 되므로 '죽으면 부처님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에 따라서 정토교에서는 사망자를 장례지낼 때 '계명'을 부여한다. 정토교 신자는 교리적으로 사후에 내세에서 아미타불의 제자가 되므로, 그를 위한 계명인 것이다.
  • 지증왕 . . . . 2회 일치
         |사망일 = [[514년]] (향년 78세)
         |사망지 =
  • 진유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차선화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차성훈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차용학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차정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창작:티겔 왕국 . . . . 2회 일치
         삼촌인 달준의 사망이후 실권자가 된 달건의 맏아들인 달제는 황폐화된 국토의 재개발에 힘쓰면서 한편으론 남쪽에 여전히 자릴 잡고 있던 사냥꾼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달구의 악행때문에 그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접촉을 성공하고 그들에게서부터 남부쪽에 개척자들을 보낼때 어느정도의 개간을 허용한다는 허락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위와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용 사냥꾼들까지 보내오겠단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 채우성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채이식 . . . . 2회 일치
         |사망지 =
         |사망일 =
  • 채현국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채호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천보영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천세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공웅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규하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5|9|30|1970|10|10}}
  • 최기영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다빈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단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덕희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최두호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별이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병철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장소 =
  • 최선영 (희극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성관 (1925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25|9|5|1999|7|19}}
  • 최성원 (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성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수진 (무용가)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수진 (성우)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최승욱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연제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최영미 (시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영이 (종교인)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40년]] [[2월 1일]]
         |사망지 = [[서울]] [[당고개역|당고개]]
  • 최영철 (기자)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우제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운정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장소 =
  • 최웅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유정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윤 (소설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은석 (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재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장소 =
  • 최재웅 (배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최재호 (희극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재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정호 (성우)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최창흡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39년]] [[12월 29일]]
         |사망지 = [[서울]] [[서소문]]
  • 최태수(가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현진 (드러머)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최호중 (배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최희령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추일승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추자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추창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충완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캐리 피셔 . . . . 2회 일치
         2016년 12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2월 23일 [[런던]]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비행하던 도중에 발작을 일으켰으며, UCLA 메디컬 센터에 입원했다.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으나 27일 사망했다.
  • 캡틴 아톰 . . . . 2회 일치
         와일드스톰 세계관을 여행중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타락]하고 [[슈퍼맨 프라임]]과 싸우다가 에너지를 감당 못하고 폭발해서 차원 하나를 날려버리며 사망. 그러나 돌아왔다.
         여담이지만 대체 방사능 슈트의 설정이 어떻게 된건지 몰라도 무언가 폭탄이 터지려 함->캡틴 아톰이 폭발 자체를 몸으로 흡수해 막음->캡틴 아톰 사망한 듯?->하지만 그 폭발 에너지로 인한 다른 차원, 시간 여행중->현실 세계에서 또 폭탄 큰게 하나 터짐->그 속에서 캡틴 아톰이 돌아옴.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2회 일치
          * 사수 사망
          기관총 사수가 차량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는 차량에 발생한다. 사수가 사망해 기관총을 사용할 수 없게된다. 개별 업그레이드로 기관총 사수를 올린 차량이라도 수리를 통해 기관총 사수를 소생(?)시켜야 한다.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2회 일치
         || 격침 날짜 || 함명 || 분류 || 국적 || 배수량(단위 통일 안됨) || 사망자 수 || 비고 ||
         || 1942년 5월 31일 || 딘스데일(Dinsdlae) || 유조선 || [[영국]] || 8,214t || 13명 || [[http://www.wrecksite.eu/wreck.aspx?137277|배수량 및 사망자 출처]] ||
  • 타루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탁민제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태종학 . . . . 2회 일치
         |사망일 = [[1997년]] [[9월 7일]] (76세)
         |사망지 = {{KOR}} [[서울특별시]]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2회 일치
         1558년 부터 [[오다 노부나가]]를 모시고, 전공을 쌓아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하자, [[아케치 미츠히데]]를 공격하여 쓰러뜨리고 오다 세력을 승계하였으며, 차례차례 정벌하여 일본 전국을 제패한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1598년 8월 18일, 62세 나이로 사망한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2회 일치
          * 의약품 생산 - $7,500, 10MW 소모. 트로피코산 약은 만병통치약입니다. 부작용은 보통 돌연사, 서서히 고통스럽게 사망, 갑작스럽게 점점 고통스러워하며 사망 등이 있습니다. 진료소와 병원, 요양원의 서비스 질이 20 상승합니다.
  • 티나 (1980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판타스틱 포 . . . . 2회 일치
         557호에서 휴먼 토치가 사망하고 2월 23일[* 이 날짜는 이슈 558의 발표일. 실제로 발매된 건 4월이다.] 588호로 시리즈가 마감되고 후속작인 FF(퓨처 파운데이션)이라는 이름으로 3월부터 새롭게 시작하였다가, 휴먼 토치가 다시 복귀하고 2013년 마블 나우부터 다시 판타스픽 포 시리즈의 연재가 시작됬다.
         2011년 3월 연재분에서 [[휴먼 토치]]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자리를 영구 결번으로 하고 그의 유언에 따라 [[스파이더맨]]을 정규 멤버로 영입했다. 명칭도 '퓨처 파운데이션(Future Foundation, FF)'으로 변경하였고 유니폼 색도 흑백으로 변경하였다.하지만 휴먼 토치의 생존&복귀로 다시 이전의 판타스틱 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퓨처 파운데이션은 판타스틱 포와 별개로 분리되었다. 새로운 구성원은 2대 앤트맨인 스콧 랭, 메두사, 미스 씽, 쉬헐크.
  • 페어리 테일/520화 . . . . 2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은 죽은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웬디 마벨]]에게 [[마카로프 드레아]]의 사망을 전한다.
          * 한편 심상세계의 [[나츠 드래그닐]]은 아버지 [[이그닐]]에게 자신의 사망 선고를 듣는다. 그의 안에 있는 END의 싹과 용의 싹이 뒤섞이면 더이상 "인간"으로 있을 수도 없게 된다. 나츠는 [[아크놀로기아]]나 [[제레프 드래그닐]]도 쓰러뜨리지 못했다며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고 시무룩해한다. 그러자 이그닐이 한 대 쥐어박으며 "말을 끝까지 들으라"고 다그친다.
  • 편혜영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폐비 윤씨 . . . . 2회 일치
         |사망일 = 성종 13년(1482) 음력 8월 16일
         |사망지 = 사저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피서영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핑커톤 . . . . 2회 일치
         1872년, [[제시 영거 갱]]의 핵심인물이었던 [[제시 제임스]]와 프랭크 제임스를 잡는답시고 그들의 가족이 사는 집에 폭탄을 던져버렸다. 이로 인해 제임스의 9살 먹은 이부동생 아치 사무엘(Archie Samuel)이 사망했으며 제임스의 모친인 제렐다 새뮤얼(Zerelda Samuel)[* 재혼해서 성이 바뀌었다.]은 한쪽 팔을 잃게되었다. 핑커톤측은 집을 불태워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앨런 핑커톤이 "집을 불태워버려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이 있다.
         1892년, [[카네기 철강]] 소유 제철소인 홈스티드 제철소의 노조가 [[파업]]하자 진압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10여명의 노동자와 3명의 핑커톤 직원이 사망하였다. 핑커톤은 홈스티드 파업을 진압하는데 실패하였으며, [[주방위군]]이 동원되고나서야 홈스티드 파업을 진압할 수 있었다. 핑커톤은 홈스티드 파업 외에도 여러 파업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였다.
  • 하규원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하석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하성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하수빈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하시영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하일권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하태웅(가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가빈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한가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국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한길로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다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동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말숙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한병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보배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비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상권 (방송인)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한상덕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한상원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한서진 (1989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성식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한송이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승원 (만화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승주 (공무원) . . . . 2회 일치
         |사망지=
         |사망일=
  • 한영이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39년]] [[12월 29일]]
         |사망지 = [[서울]] [[서소문]]
  • 한요한 . . . . 2회 일치
         | 사망 =
         | 사망지 =
  • 한유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이서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주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준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지유 (모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지은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한채이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함가연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함신영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함화진 . . . . 2회 일치
         |사망 = [[1948년]]
         |사망지 = {{국기그림|대한민국}}
  • 해쉬스완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허가윤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허근욱 . . . . 2회 일치
         아버지 허헌은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 변호사로 활동했고, 독립운동가의 변호를 서던 중 [[신간회]], [[근우회]]에서 활동하던 [[황해남도]] [[신천]] 출신 유덕희를 만나 그를 낳았다. 그 뒤 [[허헌]]의 본부인 정긍자가 사망하자 허헌은 유덕희와 재혼하였다.
         == 사망 ==
  • 허남성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허미영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허민행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허범욱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허윤희 (방송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허준 (음악가)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허협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40년]] [[1월 31일]]
         |사망지 = [[서울]]
  • 현경련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39년]] [[12월 29일]]
         |사망지 = [[서울]] [[서소문]]
  • 현석문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46년]] [[9월 19일]]
         |사망지 = [[서울]] [[새남터]]
  • 현재덕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안회남]]이 친구인 [[김유정 (소설가)|김유정]]에 대해 적은 글에는 김유정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날 때 현덕, 현재덕 형제와 함께 세 사람이 배웅했다는 내용이 나오며, [[임화]]가 [[서정주]]에게 보낸 편지에 현덕, 현재덕의 작가 형제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이웃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 언급<ref>{{뉴스 인용
  • 형키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혜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가람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광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금주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39년]] [[9월 26일]]
         |사망지 = [[서울]] [[서소문]]
  • 홍나영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명희 . . . . 2회 일치
         [[1968년]] [[3월 5일]] 사망하였다. 사후 북한의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현재 그의 생가는 [[충북]] [[괴산]]군에서 보전하고 있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 [[분류:소설가]][[분류:북한의 정치인]] [[분류:1888년 출생]] [[분류:1968년 사망]] [[분류:괴산군 출신 인물]]
  • 홍병주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40년]] [[1월 31일]]
         |사망지 = [[서울]] [[당고개역|당고개]]
  • 홍상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예서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홍예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예은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이주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인한 . . . . 2회 일치
         |사망일= [[1776년]] [[7월 5일]]
         |사망지= [[조선]]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
  • 홍준표 (마술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홍해성 . . . . 2회 일치
         | 사망 = [[1957년]] [[12월 6일]]
         | 사망지 =
  • 홍혜경 . . . . 2회 일치
         |사망 =
         |사망지 =
  • 화완옹주 . . . . 2회 일치
         순조실록에는 1808년 5월 17일 삼사에서 올린 글에서 정치달의 처가 죽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즉 옹주의 사망일은 그 이전으로 사료되나 정확한 몰일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왕가의 전통상 졸기가 없고 무덤이 경기도 파주 유배지 인근이었던 것으로 보아 죽을 당시 죄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완옹주 및 정치달 묘]]》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있다. 2001년 12월 21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종손주 : (1786) - 복중사망
  • 황가히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리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병승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병하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황보예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상경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석두 . . . . 2회 일치
         |사망일 = [[1866년]] [[3월 30일]]
         |사망지 = [[충청도]] [[갈매못]]
  • 황석하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선필(1939년)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선희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용식 . . . . 2회 일치
         |사망일 =
         |사망지 =
  • 황인숙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정미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황정혜 . . . . 2회 일치
         | 사망일 =
         | 사망지 =
  • 1986년 에드먼드 우체국 총기난사 . . . . 1회 일치
         패트릭 셰릴은 자신이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1986년 8월 20일 아침, 그는 우편 가방에 자동권총 3정을 숨기고 직장에 나타난다. 셰릴은 관리자였던 리차드 에서 주니어(Richard Esser Jr.)를 쏴죽인 후 다른 직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로인해 14명이 사망하였다. 이후 출동한 [[SWAT]]과 [[FBI]]가 우체국을 포위하자 셰릴은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다.
  • AC-130 . . . . 1회 일치
         [[http://www.thedailybeast.com/articles/2015/10/05/how-a-u-s-gunship-slaughtered-doctors.html|2015년 10월 3일,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국경없는 의사회 병원을 공격했다.]] 이로인해 22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 GLA . . . . 1회 일치
          돌, 권총, 화염병으로 무장한 군중들. 떼로 몰려다녀서 차량이나 건물에 쑤셔박을 수 없지만 모든 지상유닛에 강하다. AK 소총을 나눠줘 공격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사망한 군중은 시간이 지나면 보충된다.
  • USS 뷰캐넌 . . . . 1회 일치
         1942년 3월 28일 새벽, 캠벨타운은 영국군 어뢰정의 호위를 받으며 생나제르 앞바다에 도착한다. 독일군에게 발각된 캠벨타운은 수문에 돌진, 들이박는다. 10시간 후, 캠벨타운에 탑재된 폭뢰가 폭발, 약 300명의 사망자를 내며 수문을 파괴한다. 이로인해 노르망디 독은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 강기웅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강동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강정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강흠덕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검은방 시리즈 . . . . 1회 일치
          검은방 1편의 범인. 스포일러 틀까지 쓰면서 스포일러 경고했다. 두명의 동생을 두고 있었으나 한명은 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다른 한명은 그 충격에 빠진 상태로 입대했다가 중대장의 갈굼으로 자살. 두 동생의 죽음에 연관된 이들에게 복수하고자 검은방 1편에서의 사건을 일으켰지만 류태현과 하무열에게 저지당한다.
  • 경순왕 . . . . 1회 일치
         |사망일 = [[978년]] 4월 4일 ([[고려 경종]] 3년)
  • 고도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고릴라 보스 . . . . 1회 일치
         갱스터. 가스실에서 사망했으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려 뒀는데 그 내용은 자기 뇌를 [[고릴라]]에게 이식하는 것. 이렇게 해서 고릴라의 몸을 얻었다.
  • 고스트 패트롤 . . . . 1회 일치
         [[프랑스]] 외인부터 시절 상관으로부터 프랑스가 통제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기술자 헨리로부터 임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일단은 참여했는데 주민들을 죽이길 원치 않았던 셋은 안전한 곳에 투하했다. 문제는 헨리가 주민들을 지키려고 셋의 전투기에 시한폭탄을 장치했다는 것으로 결국 셋은 사망해버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3인은 [[유령]]이 되어 있었고, 이를 나치와 싸울 두번째 기회라 생각했다. 이후 고스트 패트롤이 된 삼인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대항했다.
  • 고종(조선) . . . . 1회 일치
         [[철종]]이 사망한 뒤 조대비에게 옹립되었고, 생부인 [[흥선대원군]]가 [[섭정]]을 보았다. 그러나 대원군은 고종이 20살을 넘어 22살이 될때까지도 친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고종의 왕권에 대한 집착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그러나 고종이 성인이 된지 한참된 상태에서 대원군이 계속 섭정을 할 수는 없었고 결국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친정을 하게 된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제작진 전원에게 천만원 상당의 [[닌텐도 DS]][* 고현정은 [[닌텐도 DS]]의 리듬게임 타이틀 '리듬세상'([[리듬천국골드]]의 한국어판)의 광고에 출연하였다.]를 쏘거나,[* 사실 연예인이 스탭들에게 자기가 모델인 제품을 쏘는 것은 기사화로 인한 일종의 광고 효과를 노리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것이라서 본인 부담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 악조건하에서도 8회 분량(출연료 총 2억 상당)에 대해 개런티 없는 연장에 동의하거나,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야외촬영으로 극도로 열악했던 선덕여왕 배우 스태프의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하는 등, [[대인배]]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의 비효율적 촬영시스템은 유명해서, 박홍균 감독은 28회 일식신 촬영 중 비담 역을 맡은 [[김남길]]이 탈진할 정도로 다시 찍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무술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촬영 중 무술감독 중 한명이 [[보조출연자]]들을 마구 굴려대자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쉬지 않고 촬영을 감행) 이걸 목격한 고현정이 조목조목 따졌다고. 이 무술감독은 공동연출 김근홍 감독으로부터도 '''"무술감독님, 필름을 낭비하지 마세요. 이거 영화 촬영용 필름이라서 한장 한장이 비싼 겁니다."'''라고 디스를 당했다.] 50회의 마지막 촬영장면에서는 스태프 전원이 ~~어째 어감은 묘하다만~~ '고미실 사망 축하연'을 벌여 주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06889|#]]
  • 곽상도 . . . . 1회 일치
         *[[노회찬]] 의원 사망과 관련하여 페이스북에 "진보정치의 이중성을 본 것 같다"는 취지의 글을 일어 논란이 일자 이후 페이스북 글을 삭제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80725/91217511/2|제목=곽상도 “진보 정치인의 이중성 애잔” 노회찬 비난 글 슬그머니 삭제, 왜?|날짜=2018-07-25|뉴스=news.donga.com|언어=ko|확인날짜=2018-07-26}}</ref>
  • 구명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구본욱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구자욱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구자춘 . . . . 1회 일치
         1996년 2월 10일 심장수술을 받던 중 사망하였다.
  • 구재서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구천서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권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1회 일치
          이 게임의 주인공. 줄여서 CJ라고 부른다. 로스 산토스에서 활동하는 흑인 갱단 "그로브 스트리트 패밀리즈"의 단원. 5년 전 로스 산토스를 떠나 리버티 시티로 도망쳤으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로스 산토스로 돌아온다.
  • 기동전사 건담 실루엣 포뮬러 91 . . . . 1회 일치
         네오 사이코뮤 시스템으로 네오 건담 1호기를 조종. 최종전에서는 토키오와 레이라의 협공에 패배하여 사망한다.
  • 김건우 (1990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근석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대진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동재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동한 (1919년) . . . . 1회 일치
          | 사망지 = [[대한민국]] [[부산광역시|부산]]
  • 김동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명신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민수 (1991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민수 (1992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상엽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상중(배우) . . . . 1회 일치
          * [[해병대 수색대]] 출신이고 [[병장]] 출신이다.[* 참고로 자신의 먼 친척인 [[김광규]]는 해병대 병 출신이 아니라 육군 부사관([[중사]] 만기전역) 출신이다. 김수로는 1990년대 중반까지 아버지가 없는 외아들에게 주어졌다는 병역(부사망 독자)인 6개월 방위 출신이다.]
  • 김상훈 (1990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성민 (1994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성윤 (1991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성현 (1989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세윤 (1999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김숙자 (1389년) . . . . 1회 일치
         [[1422년]](세종 4) [[5월]] 종사랑으로 승진, 성균관학록이 되었다. 아들 김종직에 의하면 [[1423년]] 김주가 한성으로 간 뒤, 장인 한변(韓變)을 불러서 [[사헌부]]에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사헌부]]에 소환된 그는 대질심문을 받았으며 낙직(落職)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한다.<ref name="ginyon"/> 고령현감을 거쳐, [[1423년]](세종 5) [[7월]] 성균 직학(成均直學)이 되었을때, [[사헌부]]가 [[세종대왕]]에게 그가 자식이 있는 조강지처를 망령되이 서얼(庶孽)이라 일컬어 아무 까닭도 없이 버려 이별하였으니, 형률에 의거하면 곤장 80대를 치라는 계를 올렸다.<ref>세종실록 21권, 1423년(세종 5년, 명 영락 21년) 7월 4일 임오 3번째기사, "성균 직학 김숙자를 처벌하다"</ref> [[1431년]] [[7월]] 모친 유씨가 죽어 밀양에서 분상했는데, 8월 아버지도 사망하였다. 그는 할머니 김씨부인 묘소 하에 빈소를 마련하였다. 이후 3년간 복상하였다. [[1433년]] 가을 상복을 벗고 [[밀양]]으로 돌아왔다.<ref name="ginyon"/>
  • 김승목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29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
  • 김양 (1953년) . . . . 1회 일치
         * 어머니 : 임윤연(林胤嬿, <small>아명(兒名): 林胤燕</small>, [[1929년]] ~ [[1971년]] [[12월 11일]], [[위암]]으로 사망)
  • 김용국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원태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괴산군 출신 인물]][[분류:1909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
  • 김윤동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일엽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정수 (1991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종덕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준희 (1960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진선(군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괴산군 출신 인물]][[분류:1939년 출생]][[분류:2014년 사망]]
  • 김처선 . . . . 1회 일치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인물]][[분류:1505년 사망]]
  • 김태한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태훈 (1987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현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김홍미 . . . . 1회 일치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사망하여 부인 류씨가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 근처에 매장하였다.
  • 김희철(1983) . . . . 1회 일치
         데뷔 초에는 시트콤이나 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배우들과도 인맥을 쌓았는데 대표적으로 [[김명민]]과 [[여운계]]. 특히 여운계가 별세했을 때 김희철이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또한 예능 멤버인 만큼 [[신동엽]], [[유재석]], [[정선희]] 등과도 친분이 있어서 [[정선희]]의 남편 [[안재환]]이 사망했을 때 2번씩 조문을 온 적도 있다. [[신정환]]과도 친하다. 신정환과 첫 방송을 같이 한 인연 때문에 친분을 유지했고 2018년 신정환이 복귀 방송으로 [[아는 형님]]에 출연하자 필리핀 뎅귀 드립으로 철저히 농락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1회 일치
          * [[마그네]]가 반발해서 덤볐지만 오버홀의 "개성"에 당해 순식간에 사망, [[Mr. 컴프레스]]가 보복하려 하지만 역시 팔을 당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1회 일치
          * 올마이트는 아무리 봐도 사망 플래그
  • 남치근 . . . . 1회 일치
         포도대장으로서 남치근은 한 차례 임꺽정에게 크게 얻어맞았는데, 명종 15년 좌포도대장으로 있던 남치근은, 서울에 기습공격해온 임꺽정 패거리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서울 내에서 시가전을 벌였으며, 포도부장이 활을 맞고 사망하는 참패를 겪었다. 임꺽정은 유유히 달아났으며, 남치근은 임꺽정의 처 3명을 체포하였으며 임꺽정 일당을 계속 추적하려 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는다. 이에 명종은 남치근을 파면하지는 않고 체직(벼슬을 깍는 것)하는 처분을 내렸다.(우포도대장 이몽린은 이 때 와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참조 : 조선의 포도대장]
  • 더 선 . . . . 1회 일치
         축구 경기 도중 96명의 관중이 압사한 [[힐즈버러 참사]] 당시 리버풀 팬 일부가 사망자의 주머니를 털고, 경찰에게 오줌을 쌌으며 인공호흡을 시도하던 경찰관을 구타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https://www.thesun.co.uk/archives/news/919113/we-are-sorry-for-our-gravest-error/|그리고 23년후 사과 기사를 냈다.]]
  • 데미안(드라마) . . . . 1회 일치
         데미안의 애인으로, 2화에서 사망(…)하는 캘리 밥티스트의 [[언니]]. 캘리의 죽음과 그 이후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자꾸 새가 날아든다)에 위화감을 느끼고, 데미안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 독고성 . . . . 1회 일치
         사망 2004년 4월 10일
  • 라이징 스톰 . . . . 1회 일치
         피격당하면 출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 레이나 검랑전설 . . . . 1회 일치
         롬 일행은 크로노스 행성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악의 마도사가 롬과 레이나를 습격. 롬은 레이나를 구하려다가 사망해버리고, 레이나는 켄로의 힘으로 어둠의 바이캄프와 대결하게 된다.
  • 류영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류중일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마기/317화 . . . . 1회 일치
          *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세렌디네도 이때 사망한 걸로 보인다. 제파르가 현재 신드바드 소유인 것도 이때문으로 보인다.
  • 마기/323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의 완전한 사망. 유력한 최종보스 후보였고, 설사 다윗이 부활해도 신드바드의 육체로 부활할 거란 예측이 우세했기 때문에 상당히 충격적.
  • 마기/346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첫 번째 신드리아 왕국의 멸망때 사망한 국민들의 검은 루프가 그에게 깃들었고 다윗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말로 한다.
  • 메디나 . . . . 1회 일치
         2016년 7월 4일 저녁(한국 시간 5일 새벽) 한 남성이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모스크]] 부근에서 자폭하여, 보안요원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우디에서는 같은 날 동부 카디프, 서부 제다 항구도시의 미국 총영사관 부근에서도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이는 이슬람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가 [[라마단]] 기간 동안에 테러를 무슬림들에게 호소한 것에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예언자 사원을 향하던 남성을 수상하게 여긴 치안 당국자가 제지를 했는데 몸에 두르고 있던 폭발물을 터트려서 테러를 일으켰다고 한다.[[http://www.47news.jp/korean/international_diplomacy/2016/07/141460.html (참조)]]
  • 모나 색스 . . . . 1회 일치
         이후 맥스와는 에이저 플라자에 쳐들어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회한다. 이때 모나는 니콜 혼에게 맥스를 죽이기 위해 니콜 혼에게 고용된 상태였지만 맥스에게 호감을 느껴 그를 죽이지 않고 동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습격해온 혼의 경호원들에 의해 사망한다. 맥스는 엘레베이터 안에 쓰러진 그녀의 시체를 보며 "솔직히 그녀는 차디찬 킬러가 아니라 좋은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차디찬 시체였다,"[* She was a nice girl, not a stone-cold killer, and now she was stone-cold dead.]라고 독백한다.
  • 모레아 전제국 . . . . 1회 일치
         1446 년 11월, [[무라트 2세]]의 침공으로 [[헥사밀리온]]이 파괴되어, 모레아는 오스만에 유린되었다. 제국 말기에 반짝했던 모레아의 발전과 팔레올로고스 르네상스는 여기서 한계를 보이고 만다. 1448년 10월 황제 요하네스 8세 파레올로고스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전제공은 비잔티움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로 선출되어, 1449년 1월 모레아의 수도 미스토라스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콘스탄티노플로 떠난다.
  • 몰맨 . . . . 1회 일치
         [[하우스 오브 엠]]에서는 닥터 둠의 [[피어섬 포]]에 의해 사망.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회 일치
         에이스를 구출해내고, 함께 놀라운 호흡으로 해군을 쓰러뜨리며 퇴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망 도중 추격해 온 [[사카즈키]]의 도발하자, 에이스는 방향을 돌려 사카즈키와 싸우기 시작한다. 이 때 루피가 흘린 비브르 카드를 주우려 할 때 그 틈을 노린 아카이누의 공격을 에이스가 대신 맞아 죽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red 에이스 구출실패.}}}'''에이스의 사망을 목격한 루피는 정신을 놔버린다.[* 여담으로 PS3으로 나온 원피스 해적무쌍에선 이 장면에서 루피가 패기를 사용, 사카즈키를 두들겨 패버린 후 기절한 것으로 나왔다.왜?] 에이스가 죽자 전황은 해군전체의 타겟이 된 루피를 흰 수염 해적단과 임펠 다운의 탈주자들이 어찌해서든 지키는 형태로 바뀌었고, [[징베]]가 루피를 업고 탈출을 시작한다.
  • 문문 . . . . 1회 일치
         [[샤이니]] [[종현]]이 사망한 다음날(자신의 신곡 발매일)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논란이 일었다. 자의식 과잉이라는 비난부터, 고인을 신곡홍보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일자 이내 글을 삭제했다.
  • 문희옥 . . . . 1회 일치
         화병이 한 때 심각했었다고 한다. 너무 어릴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살고, 심지어 큰언니의 암투병과 남동생의 군복무 중 사망으로 더 화병이 심각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심각해지자 노래 부르는 것도 기술과 요령으로 간신히 버텼고 당시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한다. 2011년 오페라스타 출연 제의를 받으면서 화병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차츰 화병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고, 종교 활동과 해외봉사 활동을 통해 화병을 더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화병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 미스터 피어 . . . . 1회 일치
         본명 스타 색슨. 자신의 로봇으로 데어데블을 죽이려 했지만 역으로 데어데블이 로봇들을 죄다 쓰러뜨렸고, 이에 자신이 직접 데어데블을 쓰러뜨리기로 했다. 그것을 위해 1대 미스터 피어를 죽이고 공포가스를 비롯한 장비를 빼앗았다. 현재는 사망.
  • 미저리 . . . . 1회 일치
         소설가 폴 셸던은 자신이 새로 쓴 소설을 출판사에게 전해주기 위해 차를 운전한다. 그는 "미저리"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시리즈 "미저리"[* 작중 묘사에 의하면 근세 배경의 신데렐라 스토리 소설인 것 같다.]로 성공을 거둔 작가지만 폴은 그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새로 낸 미저리 시리즈인 "미저리의 아이"의 최후반부에 아이를 낳던 미저리가 사망하는 내용을 넣어 시리즈를 끝내버린 후, 차도둑을 소재로 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한다. 소설을 완성한 폴은 자신이 쓴 소설의 작품성에 흥분하며 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빙판길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한다.
  • 미즈코 . . . . 1회 일치
         낙태된 아이들에 대한 공양 자체는 에도 시대부터 존재하였는데,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빨간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 석상이 바로 이러한 낙태된 아이나 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한 아이들을 공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석상이다.
  • 박경석(1933) . . . . 1회 일치
         북한군 포로 생활 중에 국군에서는 박경석 중위가 전사한 줄 알고 가족에게 전사통지서 전달과 전쟁이 끝난 후, 국립묘지에 박경석 중위의 묘지를 안장하였다. 나중에 자신의 묘지가 안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파묘하지 않고, 자신의 생애가 다해 현충원에 안장되는 날 폐쇄한다고 한다. 軍 현역 중 불의에 맞써 마음이 흔들릴때마다 자신의 안장 무덤을 찾아 마음을 다잡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http://www.snmb.mil.kr/cop/tombSearch/selectTombSearchList.do|서울 현충원 안장자 검색에 9사단 소속 강원도 정선에서 사망한 이가 바로 박경석 장군 자신이다.]]
  • 박근영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기혁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노식(1930) . . . . 1회 일치
         [[분류:한국 남배우]][[분류:여수시 출신 인물]][[분류:1930년 출생]][[분류:1995년 사망]]
  • 박상규(가수) . . . . 1회 일치
         [[분류:한국 남가수]][[분류:1942년 출생]][[분류:1963년 데뷔]][[분류:2013년 사망]][[분류:병사한 인물]][[분류:진도군 출신 인물]]
  • 박성배 . . . . 1회 일치
         |사망일=
  • 박성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세직 . . . . 1회 일치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1933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
  • 박수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박술희 . . . . 1회 일치
         혜성(현재의 [[당진시|당진]])의 호족 출신으로 18세 때 [[궁예]]의 호위병이 되고, 뒤에 ([[고려 태조|태조]])의 휘하로 들어와 그를 섬겨 많은 공을 세워 두터운 신임을 얻어 대광(大匡)이 되었다. [[고려 혜종|혜종]]을 정윤(왕태자)로 책봉할 때, [[장화왕후]]가 [[왕건]]의 의중을 박술희에게 전달하게 하여 [[왕무]]가 정윤이 되었으므로, 박술희가 [[왕무]]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935년]]에는 [[견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보이는 나주 탈환 작전에 [[홍유]]와 더불어 지원하였으나 백성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왕건]]은 그들 대신 [[유금필]]을 파견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태조]]가 사망하기 직전에 [[고려 태조|태조]]로부터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부탁받고,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전수받았으며, 자신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고려 혜종|혜종]]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 박승욱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승호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신혜 . . . . 1회 일치
         | 사망지 =
  • 박옥수 . . . . 1회 일치
         결국 암치료를 받지 않고 또별만 먹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문제가 되었다. [[http://christian.nocutnews.co.kr/show.asp?idx=1850923|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4777|또 다른 기사.]] 또한 [[한국방송공사|KBS]] 추적 60분 2012년 3월 21일자 방영분에서도 또별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추적 60분 보도 이후 KBS와 신동아에서 반론 보도를 냈다. [[http://m.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1450|기사 전문]] [[https://youtu.be/hNhIUwPlWKk|반론 보도 영상]] 결국 박옥수는 식품위생법 위반으로만 벌금을 받았다고 한다.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52944|기사]]
  • 박은수 (1956년) . . . . 1회 일치
         | 사망 =
  • 박재현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정수(정치인) . . . . 1회 일치
         2003년 3월 24일에 사망했다.
  • 박종윤 (1993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준홍 . . . . 1회 일치
         1947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상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박상희는 딸만 다섯을 두고 아이를 아내 뱃속에 남겨두고 대구 10.1 사건 당시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었다가 아들이 태어나면서 대를 잇게되었다.
  • 박지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진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태호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박화랑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배장원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배재준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배지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백남억 . . . . 1회 일치
         2001년 1월 15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유족으로는 백종현(白種玹) 국민대 경상대학장 등 3남 1녀가 있다.
  • 백승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백이소 . . . . 1회 일치
         [[분류:1557년 태어남]][[분류:1597년 죽음]][[분류:조선의 무신]][[분류:의병]][[분류:의병장]][[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임진왜란 의병장]][[분류:정유재란 참전 중 사망자]][[분류:임진왜란 관련자]][[분류:정유재란 관련자]][[분류:16세기 한국 사람]].[[분류:백씨]][[분류:청도 백씨]][[분류:문천회맹]][[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 변정수(배우) . . . . 1회 일치
         2003년에 뜬금없이 교통사고 사망설이 돌았다. 한 여대생의 자작극에 따른 것으로, 범인은 자수했다고 한다. 이후 소위 '찌라시'나 연예인에 대한 악성 루머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멀쩡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1회 일치
         1만 4천 톤의 시럽 파도라고 하면 마치 만화 속 코믹한 장면이 연상되겠지만, 이 때 발생한 당밀 파도는 해일처럼 인근 주택가와 전철 교량 등을 덮쳐 목조 가옥 14채와 전철 교량이 파손되고 21명의 사망자와 150여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달달한 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시가지는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됐고, 당밀이 만들어낸 웅덩이들은 늪처럼 변해 인명 구조에 어려움을 주었다.
  • 브로포스 . . . . 1회 일치
          지역을 해방시키기 위해 확보해야할 곳. 깃대의 모양을 하고있으며 확보시키면 성조기가 계양된다. 브로가 사망할 시 새로 투입되는 브로는 마지막으로 확보한 체크포인트에 투하된다. 무전탑 모양을 한 체크포인트도 있는데, 이 체크포인트는 임무 실패후 다시 시작할 때 사용되는 체크포인트다.
  • 블라디미르 렘 . . . . 1회 일치
         이후 옥상 구조물이 밑으로 추락, 그대로 사망한다.
  • 사혈 . . . . 1회 일치
          * 사혈요법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말 그대로 '''잡았으며''', 그냥 내버려둬도 자연치유될 사람이 과도하게 사혈하는 바람에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유명인들 가운데도 사혈 때문에 죽은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사람은 무척 많다. 사실 사망 직전 기록에 나타나는 미친 사혈질(…)을 보면 병이나 부상보다도 오히려 사혈 때문에 죽은 걸로 보이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 살바도르 달리 . . . . 1회 일치
         달리는 부인 갈라가 죽고 7년 뒤에 사망했는데, 자식이 없어서 달리의 작품들은 스페인 정부에 유산으로 남겨졌다. 달리의 시신은 피게레스에 있는 극장의 지하실에 묻혔다.
  • 서동민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서영무 . . . . 1회 일치
         그러나 [[두산 베어스|OB]]의 이사로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돼 [[1984년]] [[5월 11일]] OB와 삼성의 대구 경기를 앞두고 원정 숙소였던 [[수성관광호텔]]에서 선수들의 방을 정하던 도중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경북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식물인간이 되었고, 긴 투병 끝에 [[1987년]] [[5월 26일]] 오전 7시 5분,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 서정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손형준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송남헌 . . . . 1회 일치
         이후에 송남헌은 근현대사 연구가로 일생을 보낸다. [[2001년]] 2월 20일에 사망했다.
  • 송재호(배우) . . . . 1회 일치
         4남1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2000년 막내아들이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장남 송영춘은 대학생 시절, 아버지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의 속편(1982년) 주인공으로 배우 데뷔를 한 적 있다. 부자가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 주연을 맡은 이례적인 케이스였으나 이후 배우를 그만두고 현재 용인아멘교회 목사로 재직중이다.
  • 송정현 . . . . 1회 일치
         |사망일=
  • 송종익 . . . . 1회 일치
         [[1936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하와이 주|하와이]]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 때 북미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석하여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설립했고 집행부 위원 겸 재무를 맡았다. 1941년 12월에 열린 대한인국민회 총회에서 [[로스앤젤레스]] 대표로 참가하여 대한인국민회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44년]]에는 주미외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다. [[1945년]] 11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귀국했지만 몇 달 뒤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다. [[1956년]] [[1월 7일]] 사망했으며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회 일치
         맥스웰의 부모는 정부에서 생화학무기에 대항하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시설의 순환기계의 고장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이 녹아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 이를 은폐하였고 맥스웰은 정부에 불신감을 가지게 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1회 일치
         행크와 두 요원이 추적을 하는데, 행크가 모습을 감추고 두 요원이 젬이 사방에 있다면서 서로 총질을 하다가 사망한다.
  • 스트라테고스 . . . . 1회 일치
         결국 제국 말기에는 마기스테르 밀리툼과 황제의 권력관계가 역전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리키메르는 거꾸로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마음대로 죽이고 폐위를 반복하며 농락하였다. 서로마 최후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은 [[훈 족]]의 [[왕]] [[아틸라]]를 따르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로서, 그는 자신을 마기스테르 밀리툼으로 임명한 [[율리우스 네포스]] 황제를 몰아내고 자신의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삼았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게르만 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패배하여 사망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면서 서로마 제국은 소멸한다. 이로서 서로마의 마기스테르 밀레툼 역시 사라지게 된다.
  • 스틸오션/미국 . . . . 1회 일치
         >애틀랜타급 순양함은 원래 선도구축함으로 설계된 경순양함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효과적인 대공구축함이라는걸 증명해냈다. 애틀랜타급 순양함 총 네척과 개선형인 오클랜드급 순양함(Oakland-class) 네척이 발주되었다. 애틀랜타는 1942년 11월 13일에 일어난 과달카날 해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격침되었다. 주노(Juneau)는 인디스펜서블 해협에서 후퇴하던 도중 일본 잠수함 I-19에게 격침되었다. 이때 사망자에는 설리반 오형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설리반 오형제의 죽음으로 미 전쟁성은 솔서바이버 정책[* Sole Survivor Policy. 형제들 중 전사자가 있을 경우 병역이나 전투병과에서 제외되는 정책.]을 채택한다.
  • 스틸오션/사령관 . . . . 1회 일치
          * 와후(Wahoo)[* USS 와후. 미해군이 가토급 잠수함으로 더들리 모튼이 함장을 맡은 배였다. 665명을 태운 [[부관연락선]] 콘론마루(곤륜환)를 격침시킨 전과로 유명하다. 콜론마루 격침 이후 일본군 해군에 의해 격침, 모튼 함장을 포함한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다.] - 잠수함에 배치한 상황에서 적에게 공격당할 시 발동. 어뢰 데미지 5% 증가. 고장 확률 10% 감소.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고,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왕위에 오르고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 1977년에 공화국 망명정부는 왕정복고를 받아들이고 해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화해의 뜻을 보이는 제스쳐로서 망명정부 인사들을 마드리드에서 환영해주었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회 일치
          반정부적인 성항을 가진 작가와 그 아내. 집에 쳐들어온 알렉스 일당에게 남편이 구타당해 쓰러지고 아내는 윤간당한다. 이로인해 아내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남편은 보호자가 필요한 몸이 되었다.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
  • 신혜진 . . . . 1회 일치
         [[2016년]] [[8월 25일]],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식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식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식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식증]]의 기본 증상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식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식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식단 조절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상태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반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식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상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 십자군 전쟁 . . . . 1회 일치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망할 두카스 놈들때문에~~[[셀주크 술탄국]]한테 박살난 이후에 폰토스일대의 거점 일부를 제외한 '''아나톨리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상황에서 남이탈리아의 노르만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가 아들인 [[보에몽]]을 데리고 비잔티움을 두번이나 침략하기도 했다. 당시 황제였던 [[알렉시오스 1세]]가 아풀리아지방에 지방귀족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해 기스카르의 병력을 둘로 나뉜뒤 둘로 나뉜 병력중 비잔티움 원정군을 지휘하던 보에몽의 군대를 라리사에서 격파해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기스카르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다시한번 보에몽을 데리고 원정을 나서게 된다. 알렉시오스에게는 다행히도, 악천후를 뜷고 그리스에 도달한 기스카르는 역병으로 인해서 케팔로니아 섬에 사망하고, 그의 장남이자 그리스일대 기스카르의 정복지를 상속받은 보에몽도 역병으로 인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어렵지않게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 씽(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 판타스틱 4 이슈 중에서는, 리드의 아버지 너새니얼 리처즈가 리드를 데리고 먼 미래로 데려가면서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나온 바로는 씽은 위의 언급된 능력 이외에도, [[노화]]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져서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있고, 판타스틱 4의 다른 멤버가 죽은 이후에도 판타스틱 4로 프랭클린과 같이 싸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느린 노화속도[* 대략 1,000년당 보통사람이 19살 먹는 속도이다.]가 결국에는 씽을 오랜 고독 속에 버려지게 했고, 4천년 후에는 그저 노망든 노인 취급 받다가 프랭클린이 보는 앞에서 노환으로 사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후 리드가 현실로 돌아와서 씽을 쳐다보자, 리드가 [[리모컨]] 뺏는 줄 알고 경계하는 모습이랑 대비가(...)
  • 아돌프 히틀러 . . . . 1회 일치
         감옥에서 나온 히틀러는 또다시 나치당 활동을 시작했고, 1933년에는 총리가 되었다. 1934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며 대통령과 총리의 혼종인 총통이 되었다.
  • 아워맨 . . . . 1회 일치
          [[제로 아워]]에서 사망.
  • 안갑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괴산군 출신 인물]][[분류:1926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
  • 안동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괴산군 출신 인물]][[분류:1919년 출생]][[분류:2010년 사망]]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1회 일치
         하지만 지무사와 아푸루는 우주선 내에서 사망, 캡슐에서 눈을 뜨지 못한다. 아크와 베스도 기능을 정지하여 바다 깊이 가라앉아 썩어간다. 하지만 지무사와 아푸루의 몸을 통하여 지구에서 생명은 다시 태어나게 된다.
  • 알 카에다 . . . . 1회 일치
         알 카에다는 [[시아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 않으며, 수뇌부는 시아파 역시 같은 무슬림이므로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지시하고 있다. 이는 알 카에다가 [[이슬람 국가]]와 결별하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인데, 2003년에 이라크 알 카에다(AQI)[* 후일 이슬람 국가의 모태가 된다.]의 수괴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2006년 사망]가 시아파를 노리고 [[자살폭탄 테러]]를 저질렀을 때, 빈 라덴은 '불량한 두목'이라고 부르며 자르카위를 비판한 사례가 있으며 결국 알 카에다와 이슬람 국가가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04/0200000000AKR20160704184600111.HTML (참조)]]
  • 알프레드 우든 . . . . 1회 일치
         이후 블라드에게 저택을 습격당한다. 블라드는 이미 우든의 경호원을 매수해두었다. 그는 자신의 저택에 쳐들어온 블라드를 목졸라 죽이려 하지만, 결국 블라드의 반격에 사망한다.
  • 양일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1회 일치
          헤이덤이 아메리카로 가는 배의 선원. 다른 선원들과 시비가 붙어 치고박은 헤이덤을 감싸주었다. 항해 33일째 날, 헤이덤이 탄 선박이 암살단 선박에게 따라잡히자 자신이 암살단원임을 밝히며 헤이덤에게 항복을 제안한다. 헤이덤이 항복을 거부하자 결투를 벌이지만 패배해 사망한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회 일치
         코너는 교회로 가 티모시 신부에게 아킬레스가 사망했다는걸 알린다. 티모시 신부가 마을 사람들을 모으는 동안, 코너는 아킬레스의 무덤을 판다.
  • 영생 . . . . 1회 일치
         이 단어에서 이름을 따온 [[사이비 종교]]로서 [[영생교]]가 있다. 그러나, 교주가 사망(…)하면서 거의 와해되고 말았다.
  • 영창대군 . . . . 1회 일치
         흔히 야사에서는 구들장에 쪄죽였다고 알려져있으나, 실제로 실록에서도 정항이 영창대군을 쪄죽였다고 하는데, 나중에 인조실록에 가면 이정표가 양잿물을 먹여 죽였다고 나온다(...)~~사망전대~~
  • 영천시 . . . . 1회 일치
         인구밀도는 1㎢당 117명, 가구원은 1가구당 2.4명 사업체수 7,354 , 상수도 1인당 417톤, 출생/사망 1일당 2.1명/2.7명, 혼인/이혼 1일 1.6쌍/0.6쌍 전입/전출 1일 45명/43명, 시직원 시민 114명당 1명, 1일 전력사용 2,808Mwh, 교원 학생15명당 1명, 화재 1일당 0.5건 지방세 1명당 771.826원, 교통사고발생 1일 2건, 의료인 시민 163명당 1명, 자동차 시민 2.5명당 1대이다.(2008년 통계- 최신자료로 갱신 바람)
  • 오기노 쿄우사쿠 . . . . 1회 일치
         1975년, 니가타현에서 1월 1일 사망. 향년 92세.
  • 오다 노부나가 . . . . 1회 일치
         그 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격파하고 미노 지역을 흡수한 뒤 상락을 단행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일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에치젠 지역을 공격하다 매제 [[아자이 나가마사]]의 모반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포위망'을 펼쳐 견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치 및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차례차례 타개해 나가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후에 서쪽의 [[모리]] 가를 공략하던 도중에 혼노지에서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에서 사망하고 만다.
  • 오정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오태곤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오태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오현근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왓치맨 . . . . 1회 일치
         1985년 10월 12일, 에드워드 블레이크라는 남자가 고층 아파트에서 내던져져 사망한다. 그는 "코미디언"이라는 히어로로 활동해오던 사람이었다. 히어로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을 죽인 자를 찾기위해 과거에 활동하던 히어로와 빌런을 찾아다닌다.
  • 왝더독/줄거리 . . . . 1회 일치
         며칠이 지난 후, 영화 프로듀서 스탠리 모스가 자택에서 일광욕 중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이후 알바니아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뉴스와 함께 영화가 끝난다.
  • 요시다 세이지 . . . . 1회 일치
         2000년 사망.
  • 용융금속형 . . . . 1회 일치
          * [[크라수스]] : [[파르티아]]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사망 후에 시신의 목에 당하였다.[[https://jmagazine.joins.com/forbes/view/313410 (참조)]]
  • 우동균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우현(배우) . . . . 1회 일치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를 졸업했다. 이로 인하여 2016년 우현이 1:100에 출연할 때 100인 중에 김천대화오일뱅크주유소 학생들이 초청되었고, 그 중 한 학생은 우승까지 했다! 재학 중 학생운동을, 그것도 운동 최전선에서 움직이던 간부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행했다. 그래서 옥살이만 2번을 해서 소집제외되어 군[[면제]].[[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2078/read?articleId=20656465&nil_id=14&objCate1=497&bbsId=G005&t__nil_ruliweb=best&itemId=143&t__nil_ruliweb=best&nil_id=14|#]] 학번상 [[6월 항쟁]]의 선봉에 섰는데,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이한열]] 열사 최루탄 사망사건 항의 집회에서 최선봉에 섰기 때문에 [[타임지|미국 시사잡지]]의 1면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회장이 이미 그전에 잡혀간 뒤라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여, 다른 간부였던 우현이 선두에서 지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1987년]] [[6월 항쟁]]에 최선봉에 섰던 우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영화 [[1987(영화)|1987]]에서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 역할로 등장했다.
  • 울릉군 . . . . 1회 일치
         [[국회의원]] 선거구는 엉뚱하게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와 묶여있다. 그런데 정작 포항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포항 구항은 북구에 있다.--신나는 [[월경지]]-- 이는 포항 남구보다 포항 북구 인구가 미묘하게(2~3만 명 정도) 많아서 그렇게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비례를 생각하면 경상북도의 농촌 선거구에 옮기는게 맞겠지만, 선거운동하기가 힘들어지는 문제가 있다. 배편이 있는 울진군에 엮으면 될 것 같지만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만으로도 벅차다. 네 군 모두 벽지 중의 벽지긴 한데 울진은 그나마 낫다. 다시 [[강원도]]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로 행정구역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쉽진 않다. 행정적으로 경상북도에 속한 이후로 말투도 경상북도 사투리가 발달했다. 거기다 원래 울릉도에 살던 강원도 사람들은 대다수 이미 사망하였거나 외지로 떠났고 현재 울릉군 주민들은 경북 출신들이 대다수. 경계가 애매한 지역들은 양쪽 사이에서 소속감이 애매한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면적도 좁은데다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경북쪽 정서로 비슷해진 느낌이다.
  • 원피스/829화 . . . . 1회 일치
          * 빅맘은 아예 정신줄을 놔서 말도 통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파괴한다. 그녀가 지나간 곳에는 사망자도 속출.
  • 원피스/872화 . . . . 1회 일치
          * 놀랍게도 사망자는 전혀 없었다. [[샬롯 다이후쿠]] 등 샬롯가 형제들 전원 무사. 주민들도 생크림 범벅이 되는 걸로 끝났다. 빅맘은 애초에 제우스가 태워줘서 추락을 면했다. 그녀는 사방에 널린 케이크 잔해를 먹어치우고 있었지만 조금도 만족하지 않았다. 우선 슈트로이젠이 능력으로 만드는 식재는 별로 맛이 없는데다, 그녀의 성도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세삼스럽게 기대해 마지 않던 "웨딩 케이크"를 못 먹게 되었단 것이 떠오르고 말았다.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1회 일치
         그리고 어제는 목욕탕, 오늘은 자동차라면서, 마치 죽은 3명의 아내들 같다고 아지야마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에는 '투신자살'을 언급. 미노리카와의 위협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 아지야마는 다가오는 미노리카와를 복도 쪽으로 밀치는데, 미노리카와는 그 순간 복도에서 뛰어내리면서 자신은 '죽어주는 역할'이라는 말을 남기고 떨어져 사망한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1회 일치
         토사쿠라는 저녁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다가 원한해결사와 만나고, 철도길에서 갑자기 쓰러진다. 원한해결사는 스코볼라민 용약을 넣어뒀는데, [[알콜]]과 섞이면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약물[* 과거에는 안약이 [[데이트 강간 약물]]로 쓰였다고 언급된다.]이었다. 결국 토사쿠라는 전철에 치어서 사망하고 만다.
  • 원한해결사무소/6화 . . . . 1회 일치
         의뢰인은 신혼 새댁 여성 마츠자와. 의뢰 대상은 맨션 관리조합의 '부이사'라는 아줌마. 결혼과 동시에 맨션을 사서 살기 시작한 마츠자와는 지어진지 6년이 된 맨션을, 리폼을 끝내고 2,200만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옆집 아줌마는 6년 전에 새로 지은 맨션을 6천만에 구입했기 때문에, 40이 되서 겨우 가지게 된 '내 집'을 땅값 하락 때문에 젊은 것들이 쉽게 삿다고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주택융자를 메꿀 수 있었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1회 일치
         그날 오후 1시, 민병대가 이튼빌 근교를 지나던 말라셴코의 중대를 습격해 14명의 사망자와 9명의 부상자를 낸다. 올로프스키에 이 사실을 보고하던 말라셴코는 민간인 처형을 다시 한번 제안하지만 올로프스키는 사전에 세워 둔 계획대로 민병대를 진압할 것이라면서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이에 말라셴코가 자기 부하들이 저기 널부러져있다면서 화를 내자, 올로프스키는 자기 부하들이기도 하다면서 받아치고는 말라셴코를 쫓아내버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레베데예프는 말라셴코의 제안이 일리는 있지 않냐고 말하지만 올로프스키는 말라셴코는 단지 복수의 대상이 필요한 것 뿐이라면서 이를 부정한다.
  • 유병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유승민(정치인) . . . . 1회 일치
          * 아버지는 [[판사]] 출신으로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정치인)|유수호]] 의원이다. 2015년 11월 7일 아버지 [[유수호(정치인)|유수호]] 의원의 사망 때 상주를 지내며 정계 각종 인사들을 맞았다.
  • 유언/게임 . . . . 1회 일치
         게임의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적으며, 시리즈물일 경우에는 작품 순서대로 적는다. 등장인물의 순서는 사망 장면이 등장한 순서대로 적는다.
  • 유언/만화 . . . . 1회 일치
         만화의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등장인물의 순서는 사망 장면이 등장한 순으로 적는다.
  • 유언/영화 . . . . 1회 일치
         영화의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적으며, 시리즈물일 경우에는 작품 순서대로 적는다. 등장인물의 순서는 사망 장면이 등장한 순서대로 적는다.
  • 유재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유지인(1956) . . . . 1회 일치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남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 윤덕주 (농구인) . . . . 1회 일치
         * [[2005년]] [[7월 8일]] 사망
  • 윤문영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윤종신 . . . . 1회 일치
         [[2014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는 [[종편]]인 [[JTBC]]의 [[속사정쌀롱]]의 진행도 맡으면서 생애 처음으로 종편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호평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의 [[사망]] 여파로 프로그램은 [[조기종영]] 크리...
  • 윤진이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윤찬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윤휘 . . . . 1회 일치
         [[1639년]] [[의정부]][[우찬성]](右贊成)이 되었다. [[1640년]] 원접사가 되어 [[청나라]]의 사신들을 맞이하였고, [[1641년]]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공조판서]]로 운향사(運餉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1642년]] [[지의금부사]], 글씨를 잘 썼으며, 저서로 《장주집》이 있다. [[1644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 윤흔 . . . . 1회 일치
         저서로는 《계음만필 溪陰漫筆》, 《도재수필》, 《도재집》, 편저서에 《십묘한람도동편(十畝閒覽道東編)》 등이 있으며, [[여주시|여주]]의 향토지인 《황려지 (黃驪志)》를 편찬하였다. 그밖에 [[창랑정]](滄浪亭) 등 약간의 [[시조]] 몇 수가 전한다. [[1638년]](인조 16년) 초겨울에 가벼운 병을 앓다가 [[감기]]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그해 겨울 [[12월 17일]] [[감기]]와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죽자 [[조선 인조|인조]]는 애도를 표하여 정사를 파하고 바로 좌의정에 증직하였다.
  • 은혼/585화 . . . . 1회 일치
          * 몇 화 동안 명대사를 숨쉬듯 토해내던 우미보즈의 바톤을 이어받아 긴토키가 명대사를 숨쉬듯 토해낸다.--그거 사망플래그잖아--
  • 은혼/590화 . . . . 1회 일치
          * 불사신이긴 하지만 이미 한계에 달한데다 우츠로와는 달리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아마 이번에 당한 상처로 사망할 듯.
  • 은혼/594화 . . . . 1회 일치
          * 열쇠를 입수하기 위해서는 천도중의 총의가 필요하며 일단 부여된 열쇠는 회수도 불가능. 동시에 심장에 회로를 연결하기 때문에 억지로 떼어내면 목숨을 잃으며 주인이 사망하면 각인도 소멸한다.
  • 은혼/605화 . . . . 1회 일치
          * 소요 공주는 에도성이 폭격 당할 때 그 안에 있었는데 사망여부는 불확실. 핫토리 젠조가 한 말도 있어서 어떻게든 구해낸거 아닌가 생각된다.
  • 은혼/610화 . . . . 1회 일치
          * 이것을 사용한다는건 타마와 킨토키를 포함한 에도 전역의 기계가 정지(사망)한다는 이야기지만 히라가 겐카이는 눈물을 머금고 감행한다.
  • 은혼/644화 . . . . 1회 일치
          * 해방군의 사령부를 겸했던 통제실은 이제 양이지사 일행의 수중에 떨어졌다. 히노카구츠치는 파괴, 해방군을 조종하던 맹주 [[엔쇼]] 황자는 사망. 그들이 졌다. 이제 모선마저 온전하지 못하게 됐으니 해방군의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항복인가 죽음인가. 다츠마는 최후의 선택을 종용하면서 무엇을 택하든 이해한다고 말했다. 설사 그들이 무익하게 죽어나가기를 택해도, 동지들의 뒤를 따르기를 택해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신들도 똑같은 기분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다츠마에게선 승리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체를 쌓고 올라온 것은 신스케 만이 아니었다. 말이 없는 가츠라나 [[도쿠가와 노부노부]]도 다를바 없었다.
  • 은혼/654화 . . . . 1회 일치
          아네 모네 자매를 제거하기 위해 등장. 그런 것과 별개로 사명을 다하는 자매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문이 붕괴하도록 한 것도 원래는 우츠로의 복안인 듯. 현장에서 조작하던 부하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의 붕괴와 함께 이들도 깨긋하게 사망. 우츠로는 우주를 향해 솟구치는 아르타나를 "용"이라 부르고, 실제로 우주의 자작 제독도 그 모습을 용에 비유했다.
  • 의상 (신라) . . . . 1회 일치
         [[692년]]([[효소왕]] 1)에 [[법장 (당나라)|현수]]는 [[승전]](勝詮)이 귀국할 때 그의 저술 《[[화엄경탐현기]]》와 그 비판을 구하는 서신을 의상에게 보냈는데, 그 친필 서신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의상"/> 의상은 문하에게 이것을 나누어 강술하면서 전교(傳敎)에 전심하다 죽었다.<ref name="글로벌-의상"/> 사망 당시 향년 78세였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이동찬(기업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분류:1922년 출생]] [[분류:2014년 사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이동훈 (1996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동흡 . . . . 1회 일치
         *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태아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합병증 및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임신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여지가 크다"면서 위헌으로 판단했으나 위헌 정족수인 6명이 미치지 못하는 4명만이 동의하여 합헌 결정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6522]</ref>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이민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병규 (1983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상목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상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상호 (1989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상훈 (1987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순재(1935년 10월) . . . . 1회 일치
         [[전라북도]] [[전주시]][* 그 유명한 [[김종서]]의 [[6진 개척]]에 나오는 6곳 중 하나.] 출생,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 전쟁]]을 모두 경험했다. 출생지는 전주이지만, 4살 때([[1938년]])에 조부모님이 계신([[전라북도|전북]])로 왔고, 해방 후 부모님도 전북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어릴 때 힘들게 살아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 장사를 했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고 나서 [[등록금]]을 안 내도 아무 말 없었다고 한다. 전주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0년]], [[6.25 전쟁|6월 25일]] 동생[* 이명재(1994년 사망). 남동생의 아내 이름은 중견 탤런트 [[정혜선(배우)|정혜선]]과 동명이인이다.] [[수영복]]을 사러갔다가 군인들의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즉,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673|#]]
  • 이승엽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승현 (1985년 7월) . . . . 1회 일치
         |사망일=
  • 이시영 (1882년) . . . . 1회 일치
         그러나 [[1919년]] [[7월 9일]] 피로와 식중독으로 병을 얻어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안창호]]는'문무 겸전한 우재가 갔으니 또하나 큰 별을 잃었구나'땅을 치며 통곡했고 성재 [[이시영 (1868년)|이시영]](省薺 李始榮)도 "나라의 큰 별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이영 (1492년) . . . . 1회 일치
         [[1572년]](선조 5) 임신년에 수계(壽階)로 통정(通政)에 제수되었고, [[1582년]](선조 15) 임오년 승 가선대부에 제수되었다. [[1583년]](선조 16) [[10월 20일]]에 사망하였다.
  • 이영수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인성 (화가) . . . . 1회 일치
         [[1945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1946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으며 [[1949년]]에 열린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으나 [[한국 전쟁|6.25 전쟁]] 중이던 [[1950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 이재율 (1993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재황(배우) . . . . 1회 일치
          * 2011년엔 《일밤- 뜨거운 형제들 아바타》에 출연해 《[[선덕여왕]]》에 나왔던 사람이냐며 굴욕을 당했다. 이재황은 《선덕여왕》 방송될 때 그 높은 시청률로 인해 동시간대 시청률 사망을 경험했었던 작품[* 《공주가 돌아왔다》]의 출연자였다.
  • 이정호 (1982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정훈 (1963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종근(1923)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1923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
  • 이종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중환(법조인) . . . . 1회 일치
         ||<-6><#000> {{{#fff __{{{#fff 밑줄}}}__은 혐의를 주도한 __핵심인물__이고, ''기울기''는 ''내부고발자 및 피해자''이며, 윗첨자 ^^故^^는 게이트 사건이 드러난 시점에 사망한 사람을 뜻합니다.}}} ||
  • 이지우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지찬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이진주 (1678년) . . . . 1회 일치
         [[1726년]](영조 2) [[12월 28일]] [[성균관]]박사, 1727년 3월 양현고직장, 8월 7일 전적,1728년(영조 4) [[2월 3일]] [[양현고]]주부, [[6월]] 직강, [[1729년]] [[11월 25일]] 병조좌랑이 되었으며 겸춘추(兼春秋)직을 겸하여 입직하였다. [[1730년]] [[2월 10일]] 성균관직강, 3월 25일 사예 등을 역임했다. [[1730년]] [[3월]] 진보현감(眞寶縣監)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조선 영조|영조]] 조정에서 입시한 신하가 아뢰기를, '이진주는 조용히 자신을 지켜 성균관에서 공부한 10여 년 동안 재신(宰臣)과 명사(名士)가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영조가 수령을 선발할 때는 마땅히 조용히 자신을 지키는 자를 취해야 한다 하고, 곧이어 다시 진보현감에 재임명되었으나 얼마 뒤에 사망하였다. 1737년
  • 이철희(1964) . . . . 1회 일치
         [[2018년]] [[8월 13일]], [[노회찬]]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공석이 된 진보 패널로 복귀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3133209|기사]]
  • 이택희(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출생]][[분류:2017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 이희근 (1929년) . . . . 1회 일치
          | 사망지 =
  • 이희성 (1988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일곱개의 대죄/177화 . . . . 1회 일치
          * 메라스큐라 사망 확정. 에스타롯사가 반이 안 죽였으면 자기가 죽였을 거라고 인증까지 해준다.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1회 일치
          * 그러자 졸렬하게 교섭을 시도하다 데리엘에게 단 한 방으로 사망,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그 대가로 자라트라스는 사망, 드레퓌스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 일곱개의 대죄/196화 . . . . 1회 일치
          * 리오네스 왕국에선 마루마스, 도게드, 구스타프, 덴젤이 사망. 청천의 육연성의 델드레는 이들이 죽고 드레퓌스, 핸드릭슨이 살아있다고 원망한다.
  • 임기영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임현준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장가용 . . . . 1회 일치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장남석 . . . . 1회 일치
         |사망일=
  • 장민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장범준 . . . . 1회 일치
         | 사망지 =
  • 장성원 (배우)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장세용 . . . . 1회 일치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 장원준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장재인 . . . . 1회 일치
         감성적이고 슬픈 곡이다. 덕분에 '''사망씬'''에 나올 거라는 추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jji&no=98229|#]] 발매 초기엔 차트에서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현재 각종 차트 중상위권을 차지하는중. 다만 아이유의 강세--3단 꺾기--가 너무 강한 탓인지, 1위를 하는 모습은 몇번 보여주지 못했다. --근데 드라마 자체가 시망직전 아니, 거의 시망했다.--
  • 장재훈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장종덕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장준영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장진용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장태영(야구선수) . . . . 1회 일치
          * 일본 야구서적인 "스포츠맨의 몸 관리", "일본 스포츠맨 의학"등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이 친필 원고지는 그가 사망한 이후 [[KBO]]에 기증되었다.[[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79|출처]]
  • 장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전근표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전상렬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전성군 (1488년) . . . . 1회 일치
         [[1542년]](중종 37) 자신의 외손녀딸 [[인순왕후]]가 삼간택을 거쳐서 [[조선 중종|중종]]의 명으로 [[경원대군]]의 부인으로 간택되는 것을 생전에 보았다. [[경원대군]]은 그가 처가의 가장(家長)이라는 이유로 건의하여 그는 곧 [[돈녕부]]주부에 제수되었다. 그는 곧 병이 들었고 중종은 특별히 [[내의원]]을 보내서 입진하게 했으나 효험이 없었다.<ref name="heomyong"/> [[1543년]](중종 38) [[10월 29일]]에 사망했다.
  • 전인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전일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전종화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전형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전호영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전효성 . . . . 1회 일치
         2011년 SBS 토크쇼 [[강심장]]에 출연하여 이때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이 시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효성의 부친은 딸의 꿈을 위해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계속 숨겨왔었고,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효성은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의 효성은 데뷔가 무산되고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는 등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효성이 시크릿으로 데뷔 후 <샤이보이>로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했을 때 통곡을 해서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서였다고 한다.
  • 정광운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난정 . . . . 1회 일치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은 정난정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여 그 후원자인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 (조선)|보우]]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다.
  • 정다흰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대석 . . . . 1회 일치
         | 사망일 =
  • 정대선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몽규 . . . . 1회 일치
         | 사망일 =
  • 정병희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봉수(역사) . . . . 1회 일치
         정봉수는 2001년 7월 5일 말기 신부전으로 사망하여 7월 9일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금릉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 정상교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상희(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1907년 출생]][[분류:1981년 사망]]
  • 정선 (화가) . . . . 1회 일치
         |사망일= [[1759년]]
  • 정성곤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성주 . . . . 1회 일치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작곡가 [[이승희 (1954년)|이승희]]와 결혼을 하였고 이승희는 [[2000년]] 3월 사망하였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194850 이승희 작곡가 별세]. 한국경제. 2000년 3월 11일.</ref>
  • 정수성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승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정정용 . . . . 1회 일치
         |사망일=
  • 정충원 . . . . 1회 일치
         '''정충원'''(鄭忠源, <small>일본식 이름:</small> 烏川忠源, [[1896년]] [[5월 22일]] ~ [[1977년]] [[3월 12일]]<ref>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는 정충원의 출생일이 [[1893년]] [[5월 22일]]로 표기되어 있으며 사망일은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다.</ref>)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금융인으로 본관은 연일이며 다른 이름으로 '''정종원'''(鄭宗源, 1949년 10월 개명한 이후부터 사용한 이름)이 있다.
  • 정칠성 . . . . 1회 일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제2기 대의원으로 재직 중, [[1958년]]에 [[남조선로동당]] 계열이 숙청될 때 밀려나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 정홍준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조무근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조성모(가수) . . . . 1회 일치
         이 흑역사는 결국 2014년 [[SNL 코리아]]의 조성모 편에서 다시 등장했다. 광고에서 조성모가 했던 멘트들이 다시 재현될 때 이 대사를 듣고 '''사람들이 [[손발이 오그라든다|너무 오그라든]] 나머지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건 드라마로 재현. 이 날 마지막 순서로 유희열과 토크쇼에서 그문제의 초록매실 광고주 [[웅진그룹|웅진식품]]에서 보낸 화환이 공개됐는데, 그 화환에 적힌 문구는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838804|우리도 이럴줄 몰랐어요...ㅠㅠ]]'''[* 이 날 웅진식품에서 초록매실의 PPL을 하기도 했으며, 관객들에게도 초록매실이 1병씩 증정되었다.]
  • 조지 마이클 . . . . 1회 일치
         2016년 사망.
  • 조청희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조현근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존 딜린저 . . . . 1회 일치
         밤 10시 30분. 영화를 보고 난 딜린저는 두 여자를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선다. 극장 문 앞에 서있던 멜빈 퍼비스(Melvin Purvis) 특별 수사관이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을 신호로, FBI 요원들과 경찰들이 딜린저에게 접근했다.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달은 딜린저는 바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골목길로 도망갔지만 그곳에는 FBI 요원들이 매복해 있었다. 세 발의 총알을 몸에 맞은 딜린저는 그대로 쓰러졌다. 20분 후, "공공의 적" 존 딜린저가 알렉시안 브라더즈 병원(Aliexian Brothers Hospital)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 존 헨리 . . . . 1회 일치
         유명한 버전은 망치를 들고 증기 해머와 말뚝 박기 대결을 벌여 승리했지만 그 직후 과로사했다는 버전. 국내에서는 증기 드릴과 터널 뚫기 대결을 벌여 승리, 그 직후 사망했다는 버전이 잘 알려져있다.
  • 주현미 . . . . 1회 일치
          *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에이즈]] 루머였다. 에이즈는 지금도 치료가 무지하게 어려운 질병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병 걸리면 무조건 사망하는 악질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던 시절이라 이 때문에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티가 생겨나기도 했다. 걸리지도 않은 질병에 걸렸다는 허위사실인 데다가 그 병이 역대 최악의 전염병이다 보니 마음고생이 정말 엄청났다고 한다.
  • 지석진 . . . . 1회 일치
         ||<#FFA500> {{{#FFFFFF ''' 가족 ''' }}} ||<#ffffff><(> 부: 지창균[* 2018년 6월 21일 사망,], 모, 형[* 런닝맨 364회에서 형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생, 배우자: 류수정[* 러블리즈 류수정과 동명이인이다.], 아들: 지현우[*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다. 2002년 생.] ||
  • 진격의 거인/81화 . . . . 1회 일치
          * 갑자기 늘어난 아르민 사망 플래그
  • 진선유 . . . . 1회 일치
         | 사망일 =
  • 진창현(음악인) . . . . 1회 일치
         [[분류:1929년 출생]][[분류:2012년 사망]][[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짐 브라부라 . . . . 1회 일치
         맥스 페인 3가 시작되기 몇달 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 차일목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회 일치
         B는 오른쪽 얼굴에 정타를 맞고 길거리에 쓰러져, [[두개골]] 골절 등의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8일 뒤 뇌출혈 및 뇌좌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안습--
  • 창작:IDF . . . . 1회 일치
         파병을 결의하는 이사국 측에서는 IDF는 파병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권이 짊어지게 될 정치적 부담과 책임을 일종의 공동분담과 국제기구라는 틀을 사용함으로서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성이 있는 조직이다. 특히, 자국군=자국 국민의 사망으로 인한 부담이 비교적 덜하다는 점에서 강대국들은 IDF를 타국의 군사개입을 쉽게 할 수 있고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유효하게 활용하고 있다.
  • 창작:세정종합병원 . . . . 1회 일치
         그러나 해당 문건에서 언급된 사람들 중 4명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요절하거나 사고로 사망하여 다시금 여론이 들끓어올랐다. 이 논란은 세정병원의 몰락에도 기여했지만 의도치 않게 근무자들의 뿌리 찾기 운동에도 기여함에 따라 병원이 망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 창작:좀비도시 . . . . 1회 일치
          * 대규모 화력을 동원한 도시 파괴는 내부의 생존자들이 사망할 우려가 너무 크며, 반대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치적 관점에서 어렵다.
  • 채기영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채동선 . . . . 1회 일치
         [[분류:보성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음악가]][[분류:1901년 출생]][[분류:1953년 사망]]
  • 채상병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채상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천운영 . . . . 1회 일치
         | 사망일 =
  • 천제훈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청산콜라 무차별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시안화나트륨(청산 소다)를 넣은 코카 콜라를 마신 회사원들이 사망한 사건이다.
  • 최경훈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계훈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광식 . . . . 1회 일치
         | 사망지 =
  • 최길성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동수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동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동희 . . . . 1회 일치
         [[1926년]] [[중국]]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을 조직하고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1927년]] [[상하이]]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했다.
  • 최문식 . . . . 1회 일치
         |사망일=
  • 최민창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서일 . . . . 1회 일치
         190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ref>통천최씨 족보에는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 관산리에서 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도쿄 대학|동경제국대]] 수산대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이후 [[조선총독부]] 산업기사를 지냈다. 해방 이후 (주)조선수산개발 사장으로 사업을 펼치다 공직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상공부|상공부]] 수산국장과 초대 해무국장을 지냈다. [[1960년]] 해무청 청장에 임명되었다. 1963년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완도군]]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제 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민주공화당 중앙상임위원을 지냈다. 1970년에 사망하였고, 묘는 양주군 모란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 최성국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 사망일 =
  • 최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성환 . . . . 1회 일치
         |사망일=
  • 최성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승민 (1991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승민 (1996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승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연오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우석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원권 . . . . 1회 일치
         |사망일=
  • 최원제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원태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윤철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인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준석 . . . . 1회 일치
          * 원래는 대구 출신이며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하나뿐인 남동생과 함께 소년가장이 되면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께선 2005년에 돌아가셨다고. 절친인 [[이대호]]와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231910|성장 과정이 상당히 유사하다.]]
  • 최충연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태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혁 (1992년 3월)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혁권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최홍만 . . . . 1회 일치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반달이 있기도 했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완벽히 말렸지만 피지컬 자체는 본야스키를 훨씬 능가하는 괴물이었기에 시합 도중에 본야스키의 로우킥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께를 들썩이기도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본야스키의 로우킥에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리를 절뚝이며 퇴장해서 허세라는 지적도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최홍만은 "너무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로우킥 관련해선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왼쪽 허벅지가 부상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8&aid=0000307310|#]] 사실 이때 최홍만이 판정에 불만을 표한 것도 좀 에러였던 게, 워낙 상대 선수보다 훨씬 크고 강하니 버텨낸 거지 유효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허용한 반면 본야스키는 최홍만의 타격을 대부분 막아냈다.(물론 워낙 타격이 세서 막아도 대미지가 들어갔지만) 애초에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라 (KO가 안 나온다면) 기술적으로 점수를 따내서 비교하는 격투기이기 때문에 확실한 본야스키의 승리가 맞다.
  • 최효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최훈재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추성건 . . . . 1회 일치
         |사망일 =
  • 카치구미 . . . . 1회 일치
         >일본군이 발사한 구형의 불을 쏘는 무기(球状の火を出す兵器)로, 미국민 3,650만명이 사망.
  • 캡틴 코만도 . . . . 1회 일치
          * 특이하게도 캐릭터들이 지닌 특수기나 무장에 의해 기괴한 사망 모션이 나온다. 캡틴 코만도의 캡틴 파이어에 맞아서 에너지를 전부 잃어버린 적은 불에 타서 재가 되고(...), 닌자도를 쓰는 쇼우의 공격은 적을 절단낸다.(...) 제네티의 경우 상대를 부패(?)시켜 해골만 남긴다.(...) 이러한 모션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서도 나오며 자유로운 것은 적측 여전투원인 캐롤과 브렌다 정도.
  • 코미디언(왓치맨) . . . . 1회 일치
         == 사망 전 행적 ==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1회 일치
          실존인물. 풀네임은 뉴먼 헤인즈 클랜턴. 갱단 "카우보이즈"의 리더로 멕시코에서 가축을 훔쳐 미국에서 파는 일을 했다. 이로인해 멕시코 루랄레스[* 가르디아 루랄(Guardia Rural). 1861년부터 1914년 까지 멕시코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했던 기마부대.]의 추격 및 기습으로 사망했다.
  • 콩고릴라 . . . . 1회 일치
         황금 고릴라의 몸에서 뛰어난 신체능력, 힐링팩터를 발휘한다. 이전에는 마법 반지를 문질러서 황금 고릴라와 정신을 교대하는 방식이라 이 당시에는 몸을 교대하면 원래 몸에는 고릴라의 정신이 들어갔다. 이후 그의 인간 몸은 사망했으며 그는 고릴라의 몸에 남게 되었다.
  • 크립토나이트 . . . . 1회 일치
         가장 흔하고 유명한 녹색의 크립토나이트. 녹색 방사능이 뿜어져 나온다. 슈퍼맨의 힘을 약화시키고 1시간 이상 노출되면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다만 이 방사능은 납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납으로 된 용기에 넣으면 안전해진다.
  • 킹덤/498화 . . . . 1회 일치
         조나라와의 대결이란 부분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환의의 패배, 또는 사망 플래그를 점치는 독자들도 많다.
  • 킹덤/533화 . . . . 1회 일치
          * [[마광]]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진군 좌익의 사기는 크게 꺾인다. 그러나 낙화대의 [[몽념(킹덤)|몽념]]은 상황을 타개하고 조장 [[기수(킹덤)|기수]]를 확실히 제거할 묘안을 들고 나오는데. 그 핵심 역할은 [[비신대]]의 [[이신(킹덤)|이신]]과 자신의 부하 "육주"에게 맡기는데. 몽념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자 주인을 잃은 마광군은 몽념을 중심으로 군세를 정돈해 협조에 나선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1회 일치
         마사카도는 삼남 요시마사의 아들로서, 소년 시절에는 교토에서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 [[후지와라 요시후사]]의 손자)를 가신으로 모셨다. 그러다가 요시마사가 사망하자 시모우사로 귀환하였는데, 귀향한 마사카도는 쿠니카와 요시카네가 요시마사가 남긴 장원을 마음대로 분배해서 나눠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니카의 동생 타이라노 요시마사(平良正)는 마사카도를 토벌하려 했으나 마사카도에게 격파당하여 패배, 타카모치의 차남 타이라노 요시카네가 마사카도를 공격했으나 역시 마사카도에게 패배한다. 요시카네 토벌은 조정에서 허가를 얻었으며, 934년에 요시카네는 결국 병사하고 만다.
  • 탁준석 . . . . 1회 일치
         |사망일=
  • 토리코/378화 . . . . 1회 일치
          * 사천왕은 죽지는 않았을지라도 거의 사망 수준. 이들은 분명 주인공일텐데...
  • 토리코/387화 . . . . 1회 일치
          * 스타준의 사망. 예상대로 스타준과 토리코는 형제였으나 플로제와 아카시아의 자식이었다.
  • 토리코/391화 . . . . 1회 일치
         다른 팔왕들은 변변한 활약도 없이 그대로 리타이어. 사천왕은 그 팔왕 만큼의 기여도 못해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뭔 일이 생겨도 절대 위험하지 않던 코마츠도 하반신이 사라지는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대로는 사망 확정?
  • 토리코/392화 . . . . 1회 일치
         지난 회에서 팔왕들은 확실히 사망한 것 같지만 코마츠 일행은 식운의 가호로 무사했던 걸로 밝혀졌다. 브란치도 옆에 있었으니 아마도 무사할 듯. 하지만 사천왕들도 식운의 보호를 받은 건지는 미지수.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1회 일치
         실제 역사에서는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백호대 병사 20명이 불타는 와카마츠 성을 보고 성이 함락되었다고 판단, 할복하여 19명이 사망한 "백호대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 퇴계 이황 . . . . 1회 일치
         이황은 1545년([[명종]] 즉위시기)에 [[을사사화]]를 겪었으며, 이 때 형 이해(1495~1550)는 양주로 유배가던 도중에 사망하였다. 이황은 [[김안로]], [[이기]] 등 당대 권세가에게 위협을 받았으나, 신중한 처신으로 이 같은 사화(士禍)를 겪지 않았다. [[우찬성]], [[대제학]] 등의 고위직에 올랐다.
  • 트로피코 4 . . . . 1회 일치
          땅이 흔들려 건물을 손상입히고 파괴한다. 그에 따른 사망자는 덤.
  • 트로피코 4/칙령 . . . . 1회 일치
         병사, 장교, 특수 기동대의 숙련도가 빠르게 발생하지만 오인 사격으로 사망자도 발생한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1회 일치
         원조 방식의 벨트스크롤 액션 시리즈들은 [[게임 오버]]시에 [[컨티뉴]] 화면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묶인 채로 여러 가지 장치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며, 시간이 지날 때까지 발버둥치다 컨티뉴를 안 하면 결국 사망하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조금 잔인한 연출이 들어있는 전통의(...) 특징이 있다.
  • 파일 드라이버 . . . . 1회 일치
         전일본 프로레슬링 출신으로서, 프로레슬링 NOA를 개양하여 사장 겸 레슬러로 활동하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경기중 파일 드라이버를 맞아 척추단열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
  • 페어리 테일/494화 . . . . 1회 일치
          * 스프리건12 집결. 갓세레나, 월, 블러드맨은 사망해서 나인하르트가 히스토리아로 부활시킨다.
  • 페어리 테일/499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쥬비아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그레이에게 수혈해주고 희생한다. 쥬비아는 사망?
  • 페어리 테일/529화 . . . . 1회 일치
          그리고 문이 이어진 현대에서 "출구"를 여는 것이 [[레이라 하트필리아]]였다. 그녀가 777년에 사망한 것도 이 사건과 관련된 모양이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1회 일치
          * 레이라는 자신의 사명이 딸에게 계승되는걸 피하기 위해 이클립스를 연 것인데 얼마 뒤 사망하고 만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1회 일치
          전쟁의 끝, 제레프의 사망을 알린 나츠는 또다른 소식도 전한다.
  • 하주석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하준영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하지호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하춘화 . . . . 1회 일치
          *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하춘화를 구했던 [[이주일]]은 오히려 무명일 수 밖에 없던 자신을 거둬들여 고정적으로 일하게 해줬다면서 살아생전 하춘화를 마음 속 깊이 존경했다. 하춘화 역시 이주일을 평생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으며 2002년 이주일이 사망했을 때도 당연히 빈소를 찾았다.
  • 한국영 . . . . 1회 일치
         |사망일=
  • 한규복 (1881년) . . . . 1회 일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대구로 갔다. 한동안 한국곡자 운영과 종친회 일 이외에는 사양하며 칩거하였다. [[1960년]] [[7월 2일]]에는 주간종합잡지 [[주간대중]](週刊大衆) 지의 동인이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ref>"週刊大衆" 創刊, 동아일보 1960년07월 02일자 4면, 생활/문화면</ref> [[1967년]] [[9월 13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 한규식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한덕수 (1907년) . . . . 1회 일치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1927년]] 성악가가 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니혼 대학]] 중퇴후 노동운동에 참가했다. [[1934년]] 조선인 노동자의 파업을 이끌었다가 체포됐다. [[1945년]] [[10월 15일]]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에 참가해 총무부 담당 위원에 선출됐다. [[1955년]] [[5월 25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결성후 의장단 6명에 포함됐다. [[1958년]] 5월 제4회 전체대회에서 의장단이 해체되고 단일 의장, 부의장제가 도입되자 의장에 선출됐다.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있었다. [[196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됐다. [[1972년]]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당시 기준으로 서열 4위였다.
  • 한상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한승택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한승혁 (1993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한신 아와지 대지진 . . . . 1회 일치
         1995년 1월 17일오전 5시 46 분,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 직하형 지진으로서, [[고베]], [[한신]], [[아와지시마]]를 중심으로 하여 피해가 있었다. 6434명이 사망, 24만 9천 채의 주택이 무너지는 거대한 피해가 있었다.
  • 한용덕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한운사 . . . . 1회 일치
         [[분류:각본가]][[분류:1923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괴산군 출신 인물]]
  • 한지호 . . . . 1회 일치
         |사망일=
  • 한창수 . . . . 1회 일치
         한창수는 거침 없이 친일적 언행에 더하여, 이왕직 장관을 지내면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를 어린 나이에 일본에 유학 보내고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하게 하여 결국 정신병을 앓게 한 일로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한창수가 이왕직 장시국장 재직 중 고종이 사망했는데, [[고종 독살설]]에 [[이완용]], [[이기용]], [[윤덕영]], [[한상학]], 그리고 어의 [[안상호]] 등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 한태균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한혁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한혜숙(배우) . . . . 1회 일치
         1970년대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들 모두 1951년 생 동갑내기들인데, 이들 중에서 [[현재]]까지 유일한 생존자이다. 김자옥은 [[2014년]]에, 김영애는 [[2017년]]에 각각 [[사망]]했다.
  • 한호문 . . . . 1회 일치
         할아버지는 [[배천군|배천]][[군수]](白川郡守)를 지냈고 [[증직|증]] 가선대부 [[병조]][[참판]](嘉善大夫 兵曹參判)과 서림군(西林君)에 증직된 한창서(韓昌緖)이고, 아버지는 어모장군 [[충의위]](禦侮將軍 忠義衛)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형판(刑判)을 지내고 사후 [[증직|증]]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贈正憲大夫 議政府左參贊)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과 서원군(西原君)에 추증된 한강(韓綱)이고, 어머니는 우계이씨(羽溪李氏)로 지중추부사 이전(李晉+戈)의 딸이다. 형제로는 한선문, 한의문, 한사문 등과 칠계군 헌민공 [[윤탁연]]의 아들 윤길원에게 출가한 누이가 1명 있다. 그의 형제들은 그의 아버지 한강보다 앞서 사망하였다.<ref>경기도, 《경기금석대관 2》, (경기도 편역, 1987) 한양위 묘갈편</ref>
  • 함석원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핫라인 마이애미/등장인물 . . . . 1회 일치
         이후 자켓과 가까운 사이가 되지만 리히터에 의해 사망한다.
  • 허규옥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허범산 . . . . 1회 일치
         |사망일=
  • 허위 . . . . 1회 일치
         ||<#ffd700> 사망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역사관|경성 감옥]] ||
  • 허일상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허준 (1981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현덕 . . . . 1회 일치
         | 사망일 = ?
  • 현재윤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현제명 . . . . 1회 일치
         [[분류:성악가]] [[분류:작곡가]]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 [[분류:중구(대구) 출신 인물]] [[분류:1902년 출생]] [[분류:1960년 사망]]
  • 혜정(1993년 8월) . . . . 1회 일치
         20회 - <위기탈출 [[워너원]]>에서 TV로 워너원을 보다가 사망한다(…). [[http://m.tv.naver.com/v/1949633/list/146565|#]] <살남자4>에서 수영장에 친구들과 놀러왔다가 살남자에게 또 매료된다. [[http://m.tv.naver.com/v/1949692|#]]~~ 비키니 몸매를 볼 수 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박물갑이 살아있다]]>에선 견학나온 유치원생으로 등장한다. <위켄드 업데이트>에서 북한 특파원 [[리설주|라설쭈]]로 등장해 현재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꺼리는 이유가 [[워너원]] 때문이라고 밝혔다.
  • 홍명찬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홍승규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홍승목 . . . . 1회 일치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회장 [[신기선 (1851년)|신기선]]이 사망하자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대동학회 후신인 [[공자교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1908년]]에는 [[민원식]]이 주도한 [[제국실업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 역시 일본인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친일 성향의 보부상 등을 끌어모아 합방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벌인 친일 단체였다. 이 무렵 [[윤덕영]], [[민영기 (1858년)|민영기]]가 [[박제순]]을 회장으로 내세워 조직한 [[관진방회]]에 가담했고, [[1909년]] 이완용이 [[일진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민연설회]] 기초위원도 지냈다.
  • 홍영현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홍은빈 . . . . 1회 일치
         | 사망일 =
  • 홍정우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홍지운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홍헌표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다. 광복 후 [[미군정]]에서 관료로 발탁되어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과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에서 내무부 차관, 체신부 장관 등을 지냈다. 체신부 장관으로 재임했을 때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입건되었으나,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
  • 화염병 . . . . 1회 일치
         불을 사용한 무기인지라 사람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힌다. 이는 제작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미국에서는 이란인 대학생이 화염병을 만들다가 몸 90%에 화상을 입고 사망한 사례가 있다.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575346/Iranian-student-burns-death-Molotov-cocktail-Georgia-Tech-University.html|데일리메일 링크]].
  • 황경태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황교충 . . . . 1회 일치
         |사망일=
  • 황덕균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황두성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황보관 . . . . 1회 일치
         |사망일=
  • 황성관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황세하 . . . . 1회 일치
         |사망일=
  • 황수범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황수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황연석 . . . . 1회 일치
         |사망일=
  • 황재규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황정립 . . . . 1회 일치
         |사망일 =
  • 황종률 (정치인) . . . . 1회 일치
         [[태평양 전쟁]] 종전으로 만주국이 소멸하자 [[미군정]] 지역으로 들어왔다. [[연희대학교]] 교수를 잠시 지내다가, 다시 경제 관료로 복귀했다. 제3공화국에서 [[대한민국 재무부]]와 [[대한민국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71년]]에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비례대표로 제8대 국회의원에 선출되었으나, 국회의원 임기 중 사망하였다.
  • 황지웅 . . . . 1회 일치
         |사망일=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얼굴, 목, 머리 등 20곳 이상을 찔렸으며, 병원으로 옮겨지고 사망이 확인됐다. 현장에는 흉기로 보이는 대형 나이프 2개와 작은 [[도끼]]가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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