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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종무열왕 . . . . 81회 일치
         [[선덕여왕|선덕]](善德) · [[진덕여왕|진덕]](眞德) 두 조정에 걸쳐 국정 전반, 특히 외교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진덕여왕]] 때는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飡)에 이르게 되고 [[진덕여왕]] 사후 [[대리청정]]으로써 국인의 추대를 받은 [[알천]]의 사양으로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며, 그렇게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첫 왕이 된 [[김춘추]]는 아들 [[김문왕|문왕]](文王),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각각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湌)으로 관등을 올려줌으로써 자기의 권력기반을 강화시켰다. 이후 [[660년]] [[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661년]] 재위한지 8년만에 죽으니 나이 59세였다.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를 지냈다. 시호는 무열(武烈)이며, 묘호(廟號)는 태종(太宗)이다.<ref name="김영하">김영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83%9C%EC%A2%85%EB%AC%B4%EC%97%B4%EC%99%95&ridx=0&tot=42 태종무열왕] 《한국민족문화대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선덕여왕 11년([[642년]]) 8월, [[제]](百濟)의 장군 윤충(允忠)이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경상남도]] [[합천군|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대야성의 성주였던 이찬 김품석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의 남편으로 김춘추의 사위였는데, 앞서 그에게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제군과 내통한 부하 검일(黔日)의 배반으로 궁지에 몰린 김품석은 처자를 죽인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삼국사기》는 당시 김춘추는 이찬의 관등에 올라 있었고, 대야성에서 딸과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대야성의 일을 계기로 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원병을 빌리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갈 것을 왕에게 건의한 김춘추는 고구려의 국왕 [[보장왕]]과 실권자 [[연개소문]]을 만나 원병을 청했지만, 원병 파병 조건으로 과거 [[진흥왕]](眞興王) 때에 신라가 획득한 죽령(竹嶺) 이북 땅의 반환을 내세운 고구려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김유신의 무력 시위,<ref name="선덕왕-1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선덕왕 11년(642)</ref> 그리고 고구려 대신 선도해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대로 왕에게 아뢰어 땅을 돌려주게 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ref name="김유신-상">《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상</ref>
         이듬해인 [[648년]] 12월에 김춘추는 드디어 아들 [[김문왕|문왕]](文王)과 함께 직접 [[당나라|당]](唐)에 입조하였고<ref>《자치통감》 권199 唐紀十五太宗文武 貞觀 22년(648)</ref> [[당 태종|태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김춘추는 이곳에서 당의 [[국자감 (중국)|국학]](國學)을 방문하여 [[석전대제|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였으며, 신라의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했다. 당 태종으로부터 특진(特進)의 벼슬을 받고, 당에 체류하던 중에 태종의 호출로 사적으로 불려가 만나게 된 자리에서 김춘추는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조(天朝)를 섬긴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사온데, 제가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해 왔습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폐하께서 천병(天兵)을 빌려주시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주시지 못한다면, 우리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요,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태종에게 원병 파병을 호소해, 태종의 허락을 받아냈다.<ref>《삼국사기》 [[:s:삼국사기/권05/진덕왕|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 “二年... 遣伊湌金春秋及其子文王朝唐 ... 嘗召燕見 賜以金帛尤厚 問曰 “卿有所懷乎” 春秋跪奏曰 “臣之本國 僻在海隅 伏事天朝 積有歲年 而百濟強猾 屢肆侵凌 況往年大擧深入 攻陷數十城 以塞朝宗之路 若陛下不借天兵 翦 除凶惡 則敝邑人民 盡爲所虜 則梯航述職 無復望矣” 太宗深然之 許以出師 春秋又請改其章服 以從中華制 於是 內出珍服 賜春秋及其從者 詔授春秋爲特進 文王爲左武衛將軍 (2년... 이찬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보내 당나라에 조공하였다. ... 어느날 [춘추를] 불러 사사로이 만나 금과 비단을 매우 후하게 주며 물었다. “경(卿)은 무슨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가?” 춘추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자(天子)의 조정을 섬긴 지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는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더욱이 지난 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개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희 나라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 군사의 출동을 허락하였다. 춘추는 또 장복(章服)을 고쳐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니, 이에 내전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 춘추와 그를 따라 온 사람에게 주었다. 조칙으로 춘추에게 관작을 주어 특진(特進)으로 삼고, 문왕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았다.”</ref>
         귀국하는 김춘추에게 당 태종은 3품 이상의 관인들을 불러 송별연을 열었고, 『온탕비(溫湯碑)』 · 『진사비(晉祠碑)』의 글과 《[[진서]](晉書)》 한 질을 김춘추에게 하사하였으며 [[장안|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 밖까지 나아가 전송하였다. 앞의 서적들은 태종 자신이 직접 짓고 글씨도 쓴 것으로, 특히 《진서》는 당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맨 먼저 필사한 두 질 가운데 하나로서 태자(훗날의 [[당 고종]])와 김춘추에게 각각 내린 것이었다. 김춘추도 당으로부터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의 벼슬을 받은 아들 문왕을 숙위(宿衛)로서 당에 남겨두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춘추는 [[서해]]상에서 고구려 순라병에게 포착되어 나포될 위기에 처했으나, 함께 왔던 [[온군해]](溫君解)가 귀인의 관을 쓰고 배에 남아 고구려군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작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f name="신라-64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ref><ref>[[최치원]], 《성주사 낭혜화상 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ref>
         김춘추가 귀국한 태화 3년([[649년]])부터 신라는 관복을 당풍으로 바꾸고,<ref name="신라-64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3년(649)</ref> 태화 4년([[650년]]) 진덕여왕이 직접 당의 왕업을 찬미하는 「[[태평송|오언태평송]](五言太平頌)」을 지어 비단에 수를 놓아 보냈으며, 신라의 고유 연호를 폐지하고 당의 [[영휘]](永徽) 연호를 쓰는 등 친당 정책을 더욱 가속화하였다.<ref name="신라-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진덕여왕 5년([[651년]])에는 중국의 제도를 본뜬 정월 초하루일 관(百官)들이 모여 행하는 하정례(賀正禮)를 처음으로 조원전(朝元殿)에서 치렀으며, [[품주]](稟主)가 [[집사부]](執事部)로 개편되어 왕정의 기밀 사무를 맡았다. 좌이방부(左理方府)가 설치되고, [[파진찬]](波珍湌) [[김인문]](金仁問)이 다시 당에 파견되어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 벼슬을 받고 숙위를 맡았다.<ref name="신라-65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5년(651)</ref>
         당에도 즉위를 알리는 사신을 파견하여, 무열왕 즉위년에 [[당 고종|고종]](高宗)으로부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신라왕의 책봉을 받았으며,<ref name="신라-654"/> 무열왕 2년(655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가 제와 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의 33개 성을 탈취하였음을 전하면서 구원을 요청하였고, 당은 3월, 영주도독(營州都督) [[정명진]](程名振)과 좌우위중랑장(左右衛中郞將)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ref name="신라-655"/> 또한 무열왕 3년([[656년]])에는 {{출처|날짜=2018-06-30|1=신라의 개국 공신인 사로 6촌장을 왕으로 추존하였고,}} 당에서 귀국한 김인문을 [[군주]](軍主)로 삼았으며, 가을 7월에는 김문왕을 다시 당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ref name="신라-656">《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3년(656)</ref> 귀국한 뒤 문왕은 무열왕 5년([[658년]]) 정월에 부왕으로부터 집사부의 [[중시]](中侍)로 임명되고,<ref name="신라-65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5년(658)</ref> 김인문도 무열왕 6년([[659년]]) 여름 4월에 제를 치기 위한 원병 파병을 요청하는 사신으로서 당에 파견되는 등,<ref name="신라-65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6년(659)</ref> 친족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즉위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김유신에 대해서는 무열왕 7년([[660년]]) 정월에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해<ref name="신라-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왕권을 보다 전제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무열왕이 즉위하기 전의 상대등은 귀족들의 모임인 [[화 회의]]의 대표자로서 왕권을 견제하는 존재이거나 왕위계승 경쟁자로서의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무열왕 이후 상대등을 왕이 임명함으로써 화 회의는 혜공왕 이전까지 왕권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출처|날짜=2018-06-30}} 이러한 왕권을 바탕으로 무열왕은 고구려 및 제와 본격적인 전쟁에 참여하였다.
         ==== 제 정벌 ====
         {{본문|제의 멸망}}
         무열왕 7년([[660년]]) 3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당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 소정방과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영(劉伯英) 등이 인솔한 수륙 13만 군사를 파병하였다. 원병을 요청하러 보낸 김인문은 소정방이 이끄는 신구도행군의 부대총관(副大摠管) 자격으로 귀국하였고, 무열왕에게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이라는 지위가 더해졌다.<ref name="신라-660"/> 무열왕은 바다를 건너온 당군을 영접하기 위해 [[5월 26일]], 대장군 [[김유신]]과 [[김진주 (신라)|김진주]](金眞珠){{.cw}}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ref group="주">신라 10정(十停) 중 하나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에 있던 부대</ref>에 이르렀고, 21일에 태자 김법민을 보내 병선(兵船) 1 척을 거느리고 [[덕적도|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아, [[7월 10일]]에 제의 [[사비성]](泗沘城) 앞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당군과 함께 제를 공격할 5만 신라군의 지휘는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 장군 [[김품일|김품일]](金品日)과 [[김흠순|김흠춘]](金欽春) 등이 맡고, 왕은 금돌성(今突城)에서 머물렀다.<ref name="신라-660"/>
         [[7월 9일]]에 김유신 등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 전투|황산벌]]에서 제군을 격파하고, 당군도 제군의 저지를 뚫고 [[기벌포 해전|기벌포]]로 상륙하여, [[7월 13일]]에 사비성이 함락되고, [[7월 18일]]에는 웅진성으로 도망쳤던 [[의자왕]]도 항복하여 제는 멸망하였다.<ref name="신라-660"/> 사비성을 함락했을 때 [[김법민]]은 제의 왕자 [[부여융]](扶餘隆)을 말 앞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예전에 네놈의 아비가 내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었고 그 일 때문에 내가 20년 동안 마음 아프고 골치를 앓았었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구나!”라고 꾸짖었다.<ref name="신라-660"/> 의자왕의 항복 소식을 듣고 29일에 금돌성에서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온 무열왕은 제감(弟監) 천복(天福)을 당에 보내 승리한 사실을 고하였다. 8월 2일에는 앞서 대야성이 제에 함락될 때 신라측에서 내응했던 모척(毛尺)과 검일(黔日)을 잡아 처형하고, 주연(酒宴)을 베풀어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이때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을 마룻바닥에 앉혀 놓고 때로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게 하니, 제의 여러 신하들 중 목메어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ref name="신라-660"/>
         제를 무너뜨린 뒤, 당군 사령관 소정방은 9월 3일에 낭장(郎將) 유인원(劉仁願)이 이끄는 1만 군사만을 사비성에 남아서 지키게 하고, 포로로 잡은 의자왕을 비롯한 제의 왕족과 고위 신료, 1만 2천 명의 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갔다. 신라측 인사로 소정방과 동행한 것은 김인문과 사찬 김유돈(金儒敦), [[대나마]](大奈麻) 중지(中知) 등이었으며, 왕자 김인태(金仁泰)가 [[사찬]](沙湌) 일원(日原) · [[급찬]](級湌) 길나(吉那) 등이 신라군 7천 명을 데리고 유인원을 도와 사비성을 수비했다.<ref name="신라-660"/> 당에서는 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비롯한 5도독부를 설치하고, 웅진도독으로 왕문도(王文度)를 파견하여 9월 28일에 [[삼년산성]](三年山城)에서 무열왕을 만나 고종의 조서(詔書)를 전달하였는데, 예물을 주는 과정에서 왕문도는 급사(急死)하여 다른 사람이 대신 일을 마쳤다고 한다.<ref name="신라-660"/>
         ==== 제 부흥군 진압 ====
         이미 의자왕이 항복한 뒤부터 제 땅에서는 부흥군들이 일어나 신라 · 당군과 전쟁을 벌였으며, 고구려도 11월 1일에 [[칠중성]](七重城,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을 공격해 와서 군주 필부(匹夫)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제 부흥군에 대한 공세에 나선 무열왕은 10월 9일에 태자 법민과 함께 여러 군사들을 인솔해 이례성(尒禮城)을 쳐서 18일에 함락시키고 인접한 제의 20여 성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30일에는 사비성 남쪽 산마루에 있던 제 부흥군을 공격해 1,500명의 목을 베었다.<ref name="신라-660"/> 11월 5일에는 계탄(雞灘)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을 공격해 7일에 함락시키고 7 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리고 22일에 서라벌로 귀환해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앞서 황산벌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좌평]](佐平) 충상(忠常) · 상영(常英)에게 [[일길찬]](一吉湌) 관등을 주어 총관(總管)직을 맡기는 등 포로로 잡거나 항복해온 제의 관료들도 처벌하지 않고 관직을 내리기도 하였다.<ref name="신라-660"/>
         제를 멸망시킨 뒤 무열왕은 변경의 수자리 군사를 폐지하였다.{{출처|날짜=2018-06-30}} 또한 압독주(押督州)를 옮겨 설치하고 도독을 임명하였다.<ref name="신라-66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8년(661)</ref>
         * 굉장한 대식가로, 《삼국유사》에는 한 끼 식사로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으며, 제를 멸망시킨 경신년(660년) 이후로 점심은 먹지 않고 아침과 저녁만 먹게 되었는데, 그러고도 하루에 먹는 양은 쌀 여섯 말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고 한다.<ref name="유사-기이1"/>
         무덤 앞 동북쪽에는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비석의 몸돌 부분은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 부분만 남아있었으며, 이수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어 묘의 주인이 무열왕임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는 무열왕이 사망한 [[661년]]에 건립되었고, 비문의 글씨는 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이 썼다.<ref>이은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C%B4%EC%97%B4%EC%99%95%EB%A6%89&ridx=1&tot=165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한국민족문화대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성덕왕]](聖德王)은 태종 무열왕의 명복을 빌고자 [[봉덕사]](奉德寺)를 지었으며,<ref name="유사-성덕왕">《삼국유사》 권제2 기이 성덕왕</ref> [[혜공왕]](惠恭王)은 오묘(五廟)를 정하면서 김씨로서 처음으로 왕이 된 [[미추왕]](味鄒王)과 더불어, 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을 대대로 헐지 않는 신주(世世不毁之宗)로 삼았고,<ref>《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祭祀)</ref> 이것은 [[애장왕]] 2년([[801년]])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만 따로 떼어 모시는 사당을 지어 신주를 옮길 때까지 계속되었다.<ref>《삼국사기》 권제10 신라본기 제10 애장왕 2년(801)</ref> 9세기 중엽 신라의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은 『[[낭혜화상월보광탑비]](聖住寺郞慧和尙白月普光塔碑)』([[890년]]경 건립)에서 무열왕의 8세 손으로 당에 유학하여 불법을 배우고 돌아온 승려 [[낭혜화상]]의 행적과 무열왕의 업적을 교차대비시켜 "이때(태종 무열왕의 입당 후 귀국)부터 우리는 한 번 변하여 [[노나라]]가 되었다(自玆吾土一變至於魯)", "두 적국(敵國)을 평정하고 문명에 접하게 하여 주셨다(平二敵國俾人變外飭)"고 하여 태종 무열왕이 신라 국내의 제도를 당풍으로 개편하여 '문명화'시키고, 당시 신라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적국으로 여겨지던 고구려와 제를 평정하여 평화를 가져왔다고 찬양하였으며, 또한 [[진성여왕]] 7년([[893년]])에 당의 태사시중에게 보내는 글에서 옛날 고구려와 제의 강성함과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그 직후 무열왕이 당으로 들어가 수교를 맺고 원병을 청하여 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과 이후 고구려의 유민들에 의해 세워진 [[발해]]와 당, 신라의 충돌 등의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3여 년 동안 한쪽 지방은 무사하고 넓은 바다가 편안한 것은 곧 우리 무열대왕의 공로"라고까지 평가하였다. [[고려]]나 [[조선]]의 유학자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고 식민지배하에 놓이면서, 기존의 한국 역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태종 무열왕은 외세를 끌어들어 민족사적 강역을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을사늑약]]을 비판하여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기고하기도 했던 [[장지연]]은 김춘추가 당병을 이끌어 동족(제와 고구려)을 친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국 역사는 천여 년을 외국의 사상에 이끌려 다니며 자국의 위풍을 멸하고 타인의 위세가 늘어나게 되었다고 비판하였고 이것이 한국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 요인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ref>"新羅武烈王及金庾信이 能討滅麗濟고 統合邦土니 其 功烈이 可謂嵬矣나 驅唐兵而狀吾同族이 豈足謂能事哉아 因此而啓千餘年依賴外國之思想야 滅自國之威風고 增他人之勢力니 嗚乎라 此ㅣ 依賴之癮이 所以爲不能團合之第三病根也오." [[1906년]] 11월 25일자 《대한자강회월보》 제5호, 「團體然後民族可保」</ref>
  • 문무왕 . . . . 76회 일치
         [[진덕여왕]] 4년([[650년]])<ref group="주">[[진덕여왕]] 4년부터 [[신라]]의 독자 연호가 아닌 [[당나라|당]]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ref>에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파견돼 [[당 고종|고종]]에게 〈[[한국의 삼국시대 시가#치당태평송|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을 바쳤다. 고종은 이를 가상히 여겨 법민에게 태부경(太府卿)이라는 벼슬을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파진찬]]으로써 [[병부령]]직에 임명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1">《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661)</ref> [[655년]] 태자로 봉해졌다.<ref name="삼국사기-655>《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2년(655)</ref> [[태종무열왕]] 7년([[660년]]) 나·당 연합군이 [[제]]를 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거느리고 [[제]]를 멸망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이어 [[태종무열왕]] 8년([[661년]]) 부왕이 승하하자 곧 즉위하였다.
         ==== 제 부흥운동 진압 ====
         원년([[661년]]) [[6월]] 상중(喪中)이던 문무왕에게 당은 [[고구려]]를 치는 당군과 [[웅진도독부]]에 고립된 당군에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신라]]가 [[제]] 부흥군(復興軍)을 진압하는데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해왔다. 평양으로 먼저 군량을 보내면 웅진으로 통하는 물자 수송로가 끊어질 것이고, 그 수송로가 끊어지면 [[웅진도독부]]의 당군들은 [[제]]군에게 궤멸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왕은 8월에 직접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시이곡정(始飴谷停)으로 향했다. 그 길목에 있는 [[대전 계족산성|옹산성]](甕山城)에 주둔하고 있던 제 부흥군을 9월 25일부터 공격하기 시작해 27일에 함락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1"/> 옹산성을 함락시키고 웅현성(熊峴城)을 쌓아 [[웅진도독부]]로 통하는 군량수송로를 다시 개통시킨 뒤, 상주(上州) 총관(摠管) 품일(品日)과 일모산군(一牟山郡) 태수 대당(大幢)·사시산군(沙尸山郡) 태수 철천(哲川) 등이 이끄는 군사들이 [[우술성]](雨述城)을 쳐서 또 함락시키고, [[10월 29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당의 조문 사절을 맞이했다. 한편 [[평양]]을 포위하고 있던 [[소정방]]이 보낸 함자도(含資道) 총관(摠管) 유덕민(劉德敏)<ref group="주">《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대감(大監) 문천(文泉)이라 표기됨</ref>이 와서 문무왕에게 당군에 대한 군량 지원을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1"/> 왕은 이듬해 1월 [[김유신]]으로 하여금 수레 2천여 대에 쌀 4천 섬과 조(租) 2만 2천여 섬을 싣고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이들 군은 이듬해 2월에 무사히 군량을 전달하고 귀환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2">《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2년(662)</ref>
         2년([[662년]]) 봄 정월에 당은 문무왕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 [[신라]]왕으로 책봉했다. 2월에는 [[탐라국]] 임금 도동음률(徒冬音律)이 항복해 와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2"/> 이때 [[신라]]에서는 [[제]]에 주둔하고 [[고구려]]를 치는 당군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식량을 보내고 옷을 보내고 하느라 창고에 쌓아둔 양식은 고갈되고, 농사 때를 망쳐 성들이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반대로 [[웅진도독부]]에 있는 당군의 군량 창고에는 쌀이 남아돌다 못해 썩어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에서는 그 뒤로도 수시로 [[신라]]에 군량을 요구하였다. 3월에 내린 대사면령은 이러한 가운데서 오는 민심이반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된다.{{출처|날짜=2018-06-27}} 7월 왕은 왕제(王弟) [[김인문|인문]](仁門)을 사신으로 당에 보내는 한편, [[웅진도독부]]의 당군은 지라성(支羅城)과 윤성(尹城), 대산(大山)과 사정(沙井)의 [[제]] 목책을 깨뜨리고 [[신라]]군과 합세해 진현성(眞峴城)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신라]]의 군량수송로를 열었다. 8월<ref group="주">《[[동사강목]]》에는 7월로 표기됨</ref>에는 [[김흠순|흠순]] 등 19장군을 시켜 내사지성(內斯只城)의 [[제]] 부흥군을 깨뜨렸고, 대당(大幢) 총관(摠管) 진주(眞珠)와 남천주(南川州) 총관 진흠(眞欽)이 병을 핑계로 한가로이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를 물어 처형하고 그 일족까지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62"/>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제 부흥운동|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제를 멸망시킨 문무왕이 처음으로 고구려 공략에 나선 것은 문무왕 4년([[664년]]) 가을 7월, 왕제 [[김인문]]과 [[김품일]], [[한산주]](漢山州) [[도독]](都督) [[김군관]], 수약주(首若州) 총관(摠管) [[김문영]] 등에게 [[일선주|일선]](一善)·[[한산주|한산]] 두 주의 군사를 이끌고 웅진도독부 소속 당병과 함께 돌사성(突沙城)을 쳐서 멸하면서부터였다.<ref name="삼국사기-664"/>
         5년([[665년]]) 가을 8월에 왕은 당의 칙사 유인원,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ref group="주">지금의 충남 공주시 연미산(鷰尾山)</ref>에서 모여 다시 맹약을 맺었다. 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고 “서로의 경계를 넘어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맹약의 글은 유인궤가 지은 것으로 제물들은 취리산 제단의 북쪽에 묻고, 맹약문은 신라의 종묘에 보관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5">《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5년(665)</ref> 또한 그 회맹한 지점을 제와 신라의 경계로 삼고 푯말을 세워 제와 신라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71"/> 이는 전쟁이 끝난 뒤 평양 이남의 땅은 신라에 귀속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긴 당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였다. 같은 달, 왕자 정명(훗날의 [[신문왕]])을 태자로 책봉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5"/> 겨울에는 일선·[[거열주|거열]] 두 주의 성들을 시켜 군수물자를 [[명주 (9주)|하서주]]로 운반하게 하면서 고구려와의 전쟁을 준비했다.<ref name="삼국사기-665"/>
         6년([[666년]]) 4월에는 대신 김천존의 아들인 [[나마 (관직)|나마]] 한림과 김유신의 아들인 나마 [[김삼광|삼광]](三光)을 모두 당에 들어가 숙위하게 하였으며, 고구려를 없애고자 당에 군사를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6">《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6년(666)</ref> 12월에부터 당은 [[이세적|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사열소상(司列少常伯) 안륙현(安陸縣) 사람인 학처준(郝處俊)을 부장으로 삼아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는데,<ref name="삼국사기-666"/> 이때 고구려는 실권자였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죽음에 이어 그의 아들들 사이에 형제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마침내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남생]]이 아우 [[연남건|남건]]과 [[연남산|남산]]에게 쫓겨 [[국내성]] 등의 성을 거느리고 당에 항복해버리면서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ref name="고구려-666">《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5년(666)</ref> 이 와중에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정토]]가 24명의 부하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항복해오자, 정토와 그의 부하들에게 옷과 양식, 집을 주어 서울 및 주·부에 안주시키고, 온전한 여덟 성에는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한다.<ref name="삼국사기-666"/>
         7년([[667년]]) 7월에 3일 동안 큰 잔치를 베풀었고, 당에서는 신라의 장군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장군으로 발탁하고 대아찬 일원(日原)은 당의 운휘장군(雲麾將軍)으로 임명되었는데, 문무왕은 지경과 개원에게 각각 파진찬과 [[대아찬]]의 관등을 주고, 일원을 운휘장군으로 명한다는 고종의 칙명은 왕궁 뜰에서 받도록 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7년(667)</ref> 또한, 같은 달 고종은 유인원과 신라의 [[태종무열왕#가계|김인태]](金仁泰)에게 명하여 비열성(卑列城)<ref group="주">지금의 [[강원도]] [[안변군]]</ref>의 길을 따라, 신라 병사를 징발해 다곡(多谷)·해곡(海谷) 두 길을 따라 평양으로 모이도록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 가을 8월에 문무왕은 [[대각간]] 김유신 등 30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해 9월에는 한성정(漢城停)에 도착해 이적(李勣)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렸다.<ref name="삼국사기-667"/> 이때 신라군은 당군을 배제한 단독 작전수행 대신 정탐을 세 번이나 보내면서 배를 계속 띄워 당군의 동정을 살폈고, 당군이 아직 평양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알고 먼저 고구려의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먼저 고구려로 갈 길을 뚫기로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하지만 칠중성을 치기 전, 겨울 10월 2일에 평양성 북쪽 2리 지점에 도착한 이적은 신라측 이동혜(尒同兮) 촌주(村主) 대나마 강심(江深)에게 부쳐, 한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에게 “칠중성을 공격할 필요없이 곧바로 평양으로 와서 당군에 군량을 공급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신라군은 칠중성 공격을 포기하고 수곡성(水谷城)으로 향했지만,<ref name="삼국사기-671"/> [[11월 11일]]에 장새(獐塞)에 이르렀을 때 이적은 어느새 돌아가버렸고, 신라군도 그냥 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7"/> 12월에 당은 다시 웅진도독부의 유진장군(留鎭將軍) 유인원을 보내어 고구려 정벌을 돕게 하면서 문무왕에게 대장군의 정절(旌節)을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7"/>
         이때 대당대총관으로 임명된 대각간 김유신은 풍병(風病) 때문에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하고 수도 서라벌에 남았고,<ref name="김유신-하">《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 하</ref> 일찍이 제를 치는데 선두로 나섰던 여러 장수들이 모두 지도부의 요직을 맡아 고구려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임명된 관직으로 추정한 진격루트는 한성주(한산주)와 비열주(비열홀주) 그리고 하서주(하슬라주) 세 곳으로, 수도 서라벌에서 조직된 군사들은 닷새 후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출처|날짜=2018-06-28}} [[6월 22일]]에 유인원이 신라의 귀간(貴干) 미힐(未肹)을 보내어 고구려의 대곡성(大谷城)과 한성(漢城) 등 2군 12성이 항복해왔음을 알렸고, 신라군 장수인 인문·천존·도유 등은 일선주 등 일곱 군과 한성주의 병마를 이끌고 당의 군영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6월 27일]]에는 드디어 문무왕 자신이 서라벌을 출발했고, 이틀 뒤에는 여러 도의 총관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당군 총사령관 이적을 만난 신라의 김인문은 고구려의 평양 북쪽 20리 되는 지점인 영류산(嬰留山) 아래까지 진군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8"/>
         [[9월 21일]]에 신라군은 당군과 합류해 평양을 에워쌌다. 고구려의 보장왕은 먼저 [[연남산]](淵男産) 등 98명의 수령(首領)을 이끌고 기를 들고 항복했고,<ref name="고구려-668"/> 신라군의 대당총관 김인문이 보장왕을 이적 앞에 데려가 꿇어앉히고 그 죄를 세었다.{{출처|날짜=2018-06-27}} [[남건]]은 성문을 닫고 항거하면서, 병력을 내보내 싸웠으나 모두 패하였다. [[9월 26일]] 승려 신성(信誠)이 성문을 여니 신라의 5 기병을 필두로 한 군사들이 평양으로 들어가 평양을 함락시켰다.<ref name="고구려-668"/><ref name="삼국사기-671">《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1년(671)</ref> 이때 평양성 함락전에서의 신라군의 활약은 기록에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평양을 함락하고 한 달이 지난 뒤에 문무왕이 남한주에서 행한 논공행상 과정이 남아있다. 평양성 외곽에서는 흑악령(黑嶽令) 선극(宣極)이 평양성 대문에서의 싸움에 세운 공으로 일길찬의 관등과 조(租) 1천 섬을 받았고, 군사(軍師)인 남한산(南漢山)의 북거(北渠)는 평양성 북문에서 전공을 세워 술간(述干) 관등과 벼 1천 섬, 부양(斧壤)의 구기(仇杞)는 평양 남쪽 다리 위에서 높은 공을 세워 마찬가지로 술간 관등과 벼 700섬을 받았다. 평양성 내부에서는 임시[假] 군사(軍師)인 비열홀의 세활(世活)이 평양의 소성(小城)에서 전공을 세워 고간(高干) 관등과 벼 500섬을 받았고, 서당당주(誓幢幢主) 김둔산(金遁山)은 평양 군영에서의 전공이 으뜸이라 하여 사찬 관등과 조 700섬을 받았으며, 한산주 소감 박경한(朴京漢)은 평양성 안에서 고구려의 군주(軍主) [[술탈]](述脫)을 죽인 공으로 일길찬 관등과 조 1천 섬을 받았다.<ref name="삼국사기-668"/>
         평양이 함락된 뒤 이적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福男)·덕남(德男) 그리고 대신 등 20여만 명을 이끌고 돌아갔고,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助州)가 이적을 따라 인태·의복·수세·천광·흥원 등과 함께 당으로 들어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문무왕은 한성을 출발해 평양으로 가던 중, 힐차양(肹次壤)에 이르러 당의 여러 장수가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한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8"/> 신라 측은 긴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에게 약속된 은택을 얻을 것이고 공을 세운 장군들도 포상을 받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당나라에 들어갔지만, 당의 총사령관 이적은 “지금 신라는 아무도 공이 없다”며 싸늘한 태도를 보였고, 이적의 태도가 신라 군영에 전해지면서 신라군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로서는 그들의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당군을 도와 주변의 적들을 쓰러뜨렸는데, 막상 신라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당은 제와 고구려에 이어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상훈">이호영·이상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상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순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순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문무왕은 말을 기르는 목장 174곳을 소내(所內)에 22곳, 관청에 10곳을 속하게 하고 김유신을 비롯한 고위 진골 대신들과 여러 관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또한 제의 여자를 아내로 삼은 한성도독 박도유가 웅진도독부와 내통해 신라의 병기를 훔쳐다 한 주(州)의 땅을 습격하는 난을 일으키려다 계획이 발각되어, 도유는 처형당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제의 남은 세력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반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순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제령을 모두 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11년([[671년]])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침공하였다. 당의 지휘를 받던 말갈병이 설구성(舌口城)을 포위했다가 물러가는 것을 후방에서 쳐서 3 명을 죽이고, 당군이 제를 구원하러 올 것에 대비해 대아찬 진공(眞功) 등을 시켜 수군으로 옹포(甕浦)를 지키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또한 6월에 장군인 화랑 죽지 등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제 가림성(加林城)의 벼를 짓밟게 했으며, 당병과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죽이고 제 장군 두 명과 당의 과의(果毅) 여섯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거두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7월에 당은 행군총관 설인귀를 신라에 파견했는데, 왕은 사신을 맞아 위로하는 대신 강가의 풀이 우거진 낮은 언덕에 군사를 숨기고 강 어귀에는 무기를 감춰둔 채, 수풀 사이를 오가며 틈을 노려 기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인귀는 26일에 당이 신라를 도와서 제와 고구려를 멸해주었는데 신라가 그 은혜를 잊고, 고구려를 도와 당을 치고 있다며 항의하는 내용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당이 신라를 집어삼킬 수도 있음을 은근히 협박하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 법사 임윤(琳潤)을 시켜 왕에게 보냈다.<ref name="삼국사기-671"/> 문무왕은 설인귀에게 신라가 선왕 때로부터 당에 협조하고 여러 번 신라의 성이 헐벗고 굶주리는 지경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국고를 내어 번번이 당군을 지원했던 사실과 당이 처음 신라와 했던 약속들을 어기고 신라가 점령하여 지배하던 땅을 무단으로 거둬들인 일을 비난하며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날, 제 수도였던 사비성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고 아찬 진왕(眞王)을 도독으로 삼았다. [[10월 6일]] 당의 조운선(漕運船) 70여 척을 공격하여 낭장(郞將) 겸이대후(鉗耳大侯)와 병사 100여 명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1"/>
         12년([[672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봄 정월에 제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기고, 2월에는 다시 제의 가림성 공격을 시도했다.<ref name="삼국사기-672">《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2년(672)</ref> 7월, 당나라 장수 고간(高侃)의 한병(漢兵) 1만, 말갈족 출신의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 3만이 함께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머물렀다.<ref name="삼국사기-672"/> 이들은 8월부터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馬邑城)을 쳐서 이기고 수성(白水城) 5 보 거리까지 전진해 주둔하는 등 신라 땅을 침식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72"/>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이들을 쳐서 이기고, 추격하는 당병을 석문(石門) 벌판까지 뒤쫓아가 싸웠지만, 군 내부에서의 논공행상 및 전략에 대한 견해차로 분열된 사이에<ref name="김원술">《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전 부록 원술(元述)</ref> 당병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대아찬 효천(曉川), 사찬 의문(義文)·산세(山世), 아찬 능신(能申)·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安那含)·양신(良臣) 등이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72"/> 태대각간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원술]]도 여기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아버지 유신은 자신의 아들을 군법으로 처형해야 한다며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ref name="김원술"/> 한편 각자 맡은 곳을 지키며 방어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자는 유신의 진언에 따라, 한산주에 둘레 4,360보 되는 주장성(晝長城)을 쌓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ref name="삼국사기-672"/> 9월에는 앞서 신라 땅에 억류하고 있던 웅진도독부 소속의 제인 관원들과 앞서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면서 왕이 직접 표문과 많은 물품을 바치는 등 당에 대해 유화책을 폈다.<ref name="삼국사기-672"/>
         13년([[673년]]) 2월부터 9월까지, 문무왕은 당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서형산성(西兄山城)과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비롯해, 국원성(國原城)<ref group="주">옛 완장성(薍長城)</ref>, 북형산성(北兄山城), 소문성(召文城), 이산성(耳山城), 수약주(首若州)의 주양성(走壤城)<ref group="주">질암성(迭巖城)이라고도 한다.</ref>, 달함군의 주잠성(主岑城), 거열주(居烈州)의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 삽량주(歃良州)의 골쟁현성(骨爭峴城) 등 여러 성을 쌓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3">《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3년(673)</ref> 한편 이 사이에 국가의 원로이자 재상이었던 태대각간 김유신이 죽고, 아찬 대토(大吐)가 모반하여 당에 붙으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났다.<ref name="삼국사기-673"/> 거듭되는 전쟁에서 신라는 말갈·거란의 병사까지 끌어들인 당군과 맞서 아홉 번의 전투를 통해 2천 명을 죽이고, [[임진강|호로하]](瓠瀘河)와 왕봉하(王逢河)에서도 당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3"/> 겨울에 당병은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을 쳐서 함락시키고, 거란·말갈의 병사들은 대양성(大楊城)과 동자성(童子城)을 쳐서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73"/> 한편 신라는 주(州)와 군(郡)에 처음으로 외사정(外司正)을 두고, 제 멸망 뒤 [[무열왕]]에 의해 폐지되었던 수병제(戍兵制)를 부활시키는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갔다.<ref name="삼국사기-673"/>
         14년([[674년]]) 1월 당에서 숙위하다 귀국한 대나마 덕복(德福)이 가져온 신력(新曆)을 반포했다.<ref name="삼국사기-674">《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4년(674)</ref> 같은 달 문무왕이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이고 제령을 지배하에 두는 것을 보고 화가 난 고종은 조서(詔書)로 문무왕의 관작을 깎아 없애려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4"/> 왕의 동생으로 당에 머무르고 있던 우효위원외장군(右驍衛員外大將軍) 임해군공(臨海郡公) 김인문을 신라왕에 봉하면서, 그를 귀국시키는 편에 많은 군사를 딸려보내 대규모로 신라를 치려 했다.<ref name="삼국사기-674"/>{{refn|group=주|인문은 이를 간곡히 사양했으나 고종이 들어주지 않았다.<ref name="김인문">《삼국사기》 권제44 열전 제4 김인문</ref>}} 문무왕은 8월에 서형산(西兄山) 아래에서 대규모 사열식을 벌이고, 9월에는 영묘사(靈廟寺) 앞길에서 다시 대규모 사열식과 함께 아찬 설수진(薛秀眞)의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관람하는 등의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이 달에 고구려왕 안승을 다시 [[보덕국|보덕왕]]으로 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4"/>
         15년([[675년]]) 봄 정월에 구리로 각 관청 및 주·군의 인장(印章)을 만들어 지급했다.<ref name="삼국사기-675">《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5년(675)</ref> 2월에 당의 장수 유인궤가 칠중성(七重城)에서 우리 군사를 깨뜨린 뒤 돌아가고, 이근행이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임명되었다. 문무왕은 다시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며 유감을 표명했고, 당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앞서 깎아 없앴던 문무왕의 관작을 회복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75"/> 이때에는 대부분의 제령이 신라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고구려 남쪽 경계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주와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에 문무왕은 당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아홉 부대의 병사를 내보내 막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5"/> 과연 가을 9월, 당은 설인귀를 대장으로 하는 군사를 신라에 보내 천성(泉城)을 치게 했는데, 이때 당에 숙위하고 있던 풍훈(風訓)<ref group="주">앞서 문무왕에 의해 처형당한 김진주(金眞珠)의 아들이다.</ref>이 향도(鄕導)로서 당을 도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그러나 신라의 장군 문훈(文訓) 등의 선전으로 당병 1,400명을 죽이고 그 병선 40척을 빼앗았으며,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치면서 내버리고 간 전마 1천 필까지 신라의 손에 들어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9월 29일]]에는 이근행이 20만 군사를 이끌고 매초성(買肖城)에 진을 쳤다. 신라군이 이를 공격하자 당군은 말 30,380필과 무수한 병기를 남겨 놓고 도망갔다.<ref name="삼국사기-675"/>{{refn|group=주|다만 이러한 전쟁 와중에도 신라는 당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있었다.<ref name="삼국사기-675"/>}} 나아가 안북하(安北河)를 따라 관(關)과 성을 설치하고 또 철관성(鐵關城)을 쌓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해에 신라와 당이 벌인 크고 작은 싸움이 18번인데, 모두 신라가 이겨서 당병 6,047명을 죽이고 말 200필을 얻었다고 한다.<ref group="주">하지만 아달성(阿達城)이나 적목성(赤木城)에서는 성을 침공한 말갈병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약탈당했으며, 아달성주 소나(素那)나 적목현령 탈기(脫起)가 이때의 싸움에서 전사했다. 석현성(石峴城)이 당병에게 함락되었을 때는 현령 선(仙伯)과 실모(悉毛) 등이 전사했고, 칠중성은 당과 거란·말갈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간신히 함락은 면했지만 소수(小守) 유동(儒冬)이 전사하는 등, 신라측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듬해에도 당은 다시 도림성(道臨城)을 함락시켰다.</ref>
  • 백정현 . . . . 42회 일치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bgcolor=#074CA1> '''{{{#FFF 정현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
         || [[박세웅(1996)|박세웅]](2006) || → ||<#c0c0c0> '''정현(2007~2008)''' || → || [[김효남]](2009~2012) ||
         || [[이상목]](2008) || → ||<#c0c0c0> '''정현(2009~)''' || → || 현역 ||
         ||||<#c0c0c0> '''{{{#000000 정현(白正鉉 / Jeong-hyeon Paek)}}}''' ||
         '''쇼'''
         별명으로는 '작가'[* [[작가(야구)|마운드 위에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여행 사진의 퀄리티가 사진작가급이라는 것에서 유래. --[[랜디 존슨]]?-- '이야깃거리' 항목 참조. ],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만 잘하는 것에서 따온 '오키나와 에이스', '오키나와 커쇼', 이름에서 따온 '정', 그리고 못할 때는 '[[린탄]]'이라고 불리며 까인다. 팀내 별명은 '말순이'인데, 과거 드라마 [[육남매]]에서 말순이 역할을 맡은 송은혜와 비슷해서 붙은 별명이다. 2017년 지금은 삼성 선발진에서 에이스나 다름 없는 활약을 하며 '쇼'(정현+커쇼)라는 별명이 거의 정착된 상태.
         2012 시즌 초반 2군에서 5경기에 등판해 1.6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5월 8일 부진했던 [[정인욱]]을 대신 1군에 올라왔다. 허리통증으로 이미 2군으로 내려갔던 [[권혁]]을 대신해 좌완 계투요원으로 활약을 기대했으나, 볼질만 일삼으로 5일만에 다시 2군행. 그러나 불과 1년 전 팔꿈치 수술을 받고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당시엔 [[양일환]] 2군 투수코치도 정현의 콜업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비록 1군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9월 11일까지 2군에서 40경기에 등판해 1.69의 평균자책점과 42⅔이닝 동안 5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전에 비해 월등히 성장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동안 정현은 2군에서 1점대는 커녕 3점대 평균자책점도 기록한 적이 없었다. 2007, 2011 시즌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두 시즌 모두 재활로 인해 등판한 건 각각 5경기 뿐.] 9월 12일 팔꿈치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간 [[권오준]]을 대신해 1군으로 올라왔다.
         === [[정현/2013년|2013 시즌]] ===
         === [[정현/2014년|2014 시즌]] ===
         '''전반기 [[클레이튼 커쇼|쇼]], 후반기 린탄'''
         [[차우찬]]과 [[정인욱]]과 더불어 '''[[선발 투수|선발]] 경쟁'''--아이고 또 정현을 [[평균자책점|ERA]] 7점대로 만들려고 작정했나?--을 하고 있으나, 정현은 [[권혁]]의 이적과 [[차우찬]]의 선발 복귀로 인해 좌완 셋업맨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윤안이 빠질 가능성이 높은 2016년, 정현과 김현우의 중요성이 더더욱 높아졌다. 임창용이 방출되고 안지만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정현의 중요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6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2점 지고 있는 8회 2사에 등판하여 박정권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팀이 2점을 더 내서 역전, 9회 심창민이 퍼펙트로 막아냈고 정현은 '''1구'''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7월 14일 롯데전 3번째 투수로 등판해 무려 '''11경기 연속 출전을 달성했다!''' ~~대전 모 팀 감독님도 이런 짓은 안 하시는데...~~ 박근홍이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는데, 이닝 쪼개기와 좌우놀이를 즐겨 하는 코칭스태프의 성향상 팀 내 유일한 좌완 계투인 정현이 휴식일 외에는 계속하며 등판하고 있으며 선수는 선수대로 연투에 지쳐서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 [[정현/2017년|2017 시즌]] ===
         '''전반기 그 어느때보다 완벽했던 쇼'''
         '''전반기 막판/후반기 초반에는 Again 린탄'''
         4월 29일 LG전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해 2⅔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팀이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데 5선발 체제였다면 화요일 선발로 등판했던 정현이 이날 선발 등판하는 게 맞지만 삼성 선발은 6선발 체제라서 뜬금 없는 등판이었는데, 당일 해설위원이었던 [[양준혁]]은 정현이 계투로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3일만에 김한수는 이를 뒤집어 [[김대우(1988)|김대우]]를 대신해 정현이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44&aid=0000550269|선발진에 합류한다고 말했다.]]
         6월 1일[* 원래 로테이션 상으로는 아델만이 나오고 정현은 그 전날 나와야 하지만 정현이 nc전에 강한것과 더불어 아델만이 홈에서 극강이고 kt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기에 순서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전날 아델만 역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nc전에서 7.2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3승을 챙겼다. 또한 nc 킬러다운 면모를 이어나갔다.
  • 마기/339화 . . . . 36회 일치
          * [[연룡]]은 [[알라딘(마기)|알라딘]] 일행을 먼저 보내고 홀로 15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대결한다.
          * 주위에 있는 신드바드의 동료들은 신드바드를 열렬히 응원하고 신드바드는 룡이 "기대가 안 되는 왕의 그릇"이라며 도발한다.
          * 바레포르의 얼음마법으로 룡을 몰아붙이지만 룡은 전신마장 "베리알"을 사용하며 맞선다.
          * 신드바드는 룡에게 그가 지키지 못했던 황제국의 모습을 보여주며 허위와 신망의 신념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
          * 룡은 환상 속의 자신을 여러조각내서 그 힘을 황제국의 동료들에게 나눠준다.
          * 신드바드는 룡이 "공존할 수 없는 왕의 그릇"이라고 하는데.
          * [[연룡]]은 자신의 공언대로 혼자 15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맞선다. [[알라딘(마기)|알라딘]] 일행은 다음 던전으로 출발. 신드바드의 바레포르는 마치 [[구미호]]와 같은 형상으로 여러 꼬리가 룡을 공격한다.
          * [[팔인장]]들은 신드바드를 연호하며 응원하고 있다. 룡은 이들을 의식하는데, 신드바드는 거기에 "왕의 그릇들 중 가장 기대가 되지 않는 자"라며 도발한다.
          * 바레포르는 얼음의 마법을 사용한다. "빙수 결정진"(가르폴 키레스탈)으로 룡의 후방을 막고 꼬리로 때려서 얼음벽에 처박는다. 신드바드는 룡 조차 아니라 그의 진 "자간"의 이름을 부르며 너무 허무했다고 빈정거린다. 환호하는 팔인장들.
          * 그러나 룡을 공격했던 꼬리가 까맣게 썩어들어간다. 신드바드가 다시 확인하니 룡은 쓰러지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 두 번째 전신마장 "베리알"을 사용한 룡. 바레포르의 꼬리를 파괴한 것도 베리알의 힘이었다. 신드바드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여유로운 태도로 돌아간다. 그리고 꼬리의 썩은 부분을 잘라버리더니 순식간에 재생해 버린다. 베리알이 썩힌 꼬리를 간단하게 재생하는걸 보자 룡은 보통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 신드바드는 룡은 "운명에 농락 당하고 패한 왕의 그릇"이라 자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룡의 발 밑으로 어떤 원반이 나타나게 한다. 그 원반엔 "룡이 지키지 못했던 것", 황제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네가 지키지 못했던 황제국의 풍경이야... 룡 황제
          * 신드바드는 그가 많은 희생을 치르고 조국을 되찾았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며 쇠퇴로 이끌다가 끝내 자리에서 끌어내려진 왕이라고 비난한다. 그가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 희생시킨 많은 성과 병사들, 그리고 그가 쓰러뜨린 형제들.
          황제의 자리에서, 비탄에 잠긴 룡은 그렇게 울분을 토로한다.
          * 신드바드의 질문을 받은 룡은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영상 속에서 비탄에 빠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다 씩 웃으며 거리낌없이 그 형상을 난도질한다.
          룡이 단순한 자학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여러 동강 내서 그것들을 풍경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뿌린다.
          풍경 속의 [[연홍옥]]은 룡에게 받은 힘으로 신드바드에 견줄 정도로 거대하게 자라난다. 룡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홍옥은 성들을 독려해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 나라와 긍지를 지키게 한다. 신드바드는 룡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 룡은 자신의 황제로서 힘을 누님 홍옥에게 넘겼다고 말한다. 분명 자신은 패배한 황제지만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재건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실제로 룡은 현실에서도 홍옥에게 황제자리를 넘기고 홍옥은 그 힘을 바탕으로 황제국을 되살렸으니 그다운 선택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룡은 신드바드의 맹점도 꼬집는다. 바로 "주변 사람을 믿지 않는 점".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던전에서 조차 오로지 자신만이 강대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런 신드바드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룡 자신도 누님 [[연영]]은 그저 연약하고 지켜주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다르게 생각한다. 적어도 영에게 만큼은 모든 것을 밝히고 힘과 위험과 책임을 나눠가질 "동료"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이 지금 룡의 답이다.
  • 박근혜 . . . . 34회 일치
         아버지 [[박정희]]는 [[1917년]]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6월 13일]] 오전 신라호텔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학술 회의에 다녀오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대표와 악수 |url =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Photo/YIBW_showArticlePhotoPopup.aspx?contents_id=PYH20050613020400999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승렬 |쪽 = |날짜 = 2005-06-13 |확인날짜 = 2009-07-10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2105546/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Photo/YIBW_showArticlePhotoPopup.aspx?contents_id=PYH20050613020400999 |보존날짜 = 2013-10-02 |깨진링크 = 예 }}</ref>
         [[2006년]] 5월 20일 지방 선거 유세 중 [[지충호]]가 휘두른 문구용 칼에 피습당하여 안면에 깊은 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당원들에게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여 오히려 당 안팎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지충호]]는 이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2006년]] [[5월 20일]] 박근혜가 [[경기도]] [[군포]]와 [[인천]] 지원 유세를 마치고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에 참가하던 중 19시 20분쯤 신촌 현대화점 앞에서 지방선거 지원유세를 벌이다 지충호에게 피습당해 얼굴을 크게 다친 사건이다. 지충호가 휘두른 흉기는 10 cm 가량의 커터칼이다. 당시 지충호는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신촌까지 온 뒤 범행을 위해 4시간을 기다린 후 오세훈 서울시장 지원연설을 위해 단상에 박근혜가 오르는 찰나 지충호는 자신이 가진 커터칼로 11센티미터의 길이에 걸쳐 박근혜의 턱을 그었다.<ref>이상윤, 《안철수 등의 한판승부 - 박근혜 벗기기》, 높은새, 2011, p.19-24</ref> 당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박성효 후보는 열린우리당의 염홍철 후보에게 지지도에서 뒤지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직후 박근혜가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어본 것이 알려지면서 판세가 역전되었고 이후 지방 선거에서 박성효 후보는 염홍철 후보에게 근소하게 승리하였다.
         박근혜는 [[2010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달성군수]]로 출마했던 한나라당의 이석원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지만 이석원 후보는 무소속의 김문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박근혜는 "달성군민이 판단한 것도 존중한다"고만 입장을 밝혔다.<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상처입은`선거의 여왕 박근혜, 침묵 끝 한마디] {{웨이|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date=20100607172404 }} 매일경제 2010년 6월 3일</ref> 차기 대선 후보로써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25.1%를 기록하는 등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ref>(http://www.ccdailynews.com/section/?knum=152755 박근혜 지지율 2.3% 하락) 충청일보 2010년 6월 3일</ref> 박근혜는 2010년 하반기부터 차기 대선 행보에 초점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20일 열린 공청회에서 복지를 화두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박근혜는 인사말을 통해 "서구 선진국들의 전통적 복지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맞춤식 생활 보장형 복지 국가를 제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3860 박근혜 대권 행보 시작‥공청회 '대선출정식' 방불] mbc 2010년 12월 20일</ref> 이후 12월 27일 박근혜의 대선 구상을 내놓을 '국가미래연구원'이 출범했다. 출범식에는 대한민국 내 학자들과 [[이한구 (정치인)|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박근혜, 빨라진 대권 행보‥'싱크탱크' 출범] {{웨이|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date=20130927121326 }} mbc 2010년 12월 27일</ref> 그러나 [[심재철 (1958년)|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 얘기는 감추고 무조건 복지만 잘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4333 한나라당 심재철 "박근혜 복지, 솔직하지 못해"] mbc 2010년 12월 25일</ref>
         취임 후 박근혜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한편 보스턴 마라톤 현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해외순방, 카드 정보유출 사태,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 공약 지화 논란
         [[한나라당]] 친[[이명박]]계는 "박근혜는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폐쇄적 조직 문화가 팽배해 있다"며 "두 차례 대선에서 실패한 [[이회창]] 전 총재의 전철을 되풀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친박계 의원은 "국민들은 박 전 대표를 더 이상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있는 정치인이 아니라 독립적인 지도자로 바라보고 있다"며 "박 전 대표를 흠집내기 위한 어떤 시도도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였다.<ref>(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22573&sid=E&tid=1 {{웨이|url=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22573&sid=E&tid=1# |date=20100203205709 }} 친이, 세종시 공방속 박정희 공격)</ref> 또한 친이계는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인"이라며 비판하였다.<ref>(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09/11/09/43642.html 김용태 "박근혜, 지역주의에 기댄 사익 추구")</ref>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은 "자신은 유신 시절 빈민 운동을 하느라 고생했는데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잘 먹고 잘 지낸 만큼 빚을 갚아야 한다"며 비판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002332421000.htm {{웨이|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002332421000.htm# |date=20110216063347 }} 강명순 의원 '박근혜 호의호식' 논란)</ref>
         2008년 대선 이후 박근혜는 [[미국소 수입 협상]]에 대한 반발이 일던 가운데 이명박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거나, [[미디어법]] 상정시 "반대표를 던질것"이라고 말하거나, 이명박이 내놓은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 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거나, [[대한민국의 동남권 신공항 논란|동남권 신공항]] 지화 당시 이명박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차기 정권에서 계속 추진 할 것을 약속하는 등 중요한 사안에서 짧은 말을 던지는 일명 '한마디 정치'를 해왔다. 2010년까지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지켜온 박근혜의 이런 의견들은 당정에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친이계는 정부에 협조하지도,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는 박근혜의 모호한 행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박근혜를 당대표나, 국무총리로 추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왔지만 박근혜는 이를 모두 거부하였으며 친박계 의원이 당대표를 맡는 것조차 반대하는 등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지지율 1위를 지키기 위해 너무 몸사리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명박과 화해를 하거나, 아예 다른 노선을 선택하여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628010330371750020 박근혜, ‘친박계 해체’ 결단해야) 문화일보 2010년 6월 28일</ref> 이러한 비판들 속에서 이명박 정권 취임 초기에 실시했던 자기 대선 후보들 지지율 조사에서 50%에 육박하던 박근혜의 지지율은 2010년 이후로 30%까지 하락했다.<ref>(http://www.vop.co.kr/A00000301840.html 한나라당 지지율 '급하락'..지방선거 '여파' 여전) 민중의 소리 2010년 6월 15일</ref>
         임기 초반부터 가장 비판을 받아온 것은 인사 실패 문제로,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용한 인사인 [[윤창중]] 전 대변인, '의혹 화점'으로 불리며 국방부 장관 후보에서 낙마한 [[김병관 (1948년)|김병관]], 과거사 관련 교회 강연 논란으로 비판받으며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문창극]] 등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과정을 거친 '수첩인사'의 실패는 비판을 받는다.<ref>‘박근혜 수첩 인사’가 빚은 ‘데스노트 참사’, 한겨레 2013.03.22</ref><ref>새누리 2년 전엔 '극우발언' 공천 취소... 문창극은 어떻게? 2012년 총선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역사인식 논란 국회의원 후보들 공천 취소, 오마이뉴스 2014.06.12</ref><ref>안철수,송광용 사퇴 파동 "박근혜 수첩인사에 따른 참사", 레디앙, 2014년 9월 23일</ref>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의 언론들은 사설을 통하여 재심으로 유신 당시의 대법원 판결은 취소되었으며 "지금 이 순간 인혁당 사건이 무죄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법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102116085&code=990101 <사설>'인혁당 판결이 두 개'라는 박근혜 후보의 법치 인식]경향신문, 2012년 9월 11일</ref><ref>[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551011.html <사설> 박근혜, 인혁당 사건에 대한 분명한 입장 밝혀야]한겨레, 2012년 9월 11일</ref> 특히,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사실상의 헌법중단 상태인 유신 치하의 원판결과 민주화 이후의 재심 판결에 똑같이 '정치 상황'이란 잣대를 들이댄 결과라면 실로 심각하다"면서 그럴 경우 "대한민국의 사법절차, 나아가 헌정질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고 비판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9/h2012091121052376070.htm <사설/9월 12일> 박근혜 후보 언제까지 "역사 판단" 타령인가] {{웨이|url=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9/h2012091121052376070.htm# |date=20121116012015 }}한국일보, 2012년 9월 12일</ref>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발언에 대해 각계 각층으로부터 비판이 잇따르자, 2012년 9월 24일, 박근혜 후보는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9/24/0200000000AKR20120924044400001.HTML?did=1179m 박근혜 "5.16·유신·인혁당 피해자 가족에 사과"(종합)] 연합뉴스, 2012년 9월 24일</ref> 이에 대하여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잘못 말한 것, 사과 후 기자들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은 것 등을 지적하며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반응들이 있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092410300683188&outlink=1 野, 박근혜 후보 사과 진정성에 의문 "질문 왜 안 받나?"] 머니투데이, 2012년 9월 24일</ref><ref>[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397496 민주 "박근혜 인혁당을 민혁당이라 읽어…진정성 의문"] 서울방송, 2012년 9월 24일</ref><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092411562505161&outlink=1 박근혜, 인혁당을 민혁당으로...조국 "그에게 같은 사건일 것"] 머니투데이, 2012년 9월 24일</ref><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209/h2012092502363721000.htm 박근혜 '민혁당'이라 발음한 까닭이…] {{웨이|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209/h2012092502363721000.htm# |date=20121216161351 }} 한국일보, 2012년 9월 25일</ref><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432 박근혜와 언론의 ‘역사 조롱’ <손석춘 칼럼>]미디어오늘, 2012년 10월 10일</ref> 유족들은 진정성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9/24/0200000000AKR20120924072251004.HTML?did=1179m 인혁당 유족 "박근혜, 마지못해 사과하나"(종합)] 연합뉴스, 2012년 9월 24일</ref> 민주당 정성호 대변인은 평가한다고 하면서도,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후속 조치를 요구하였으며, 안철수 후보 등은 필요한 일이었다고 평가하였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924105740 박근혜 과거사 사과에 문재인-안철수 반응 온도차] 프레시안, 2012년 9월 24일</ref>
         박근혜 캠프의 국민대통합위원장인 [[김종인]]은 [[1993년]] 동화은행에서 2억여 원을 뇌물로 받아서 의원직을 상실하고 2년 징역을 산 일이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ref>[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010616455135397&nvr=Y 돌아온 전여옥의 '독설'] 아시아경제, 2012년 1월 6일</ref> [[한광옥]]은 나라종금으로부터 퇴출 무마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2005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비리인사 영입은 당 안팎으로부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전여옥]]은 2011년 영입 당시 김종인의 비리 전력을 지적하며 비판했고, [[안대희]]는 2012년 10월 8일 [[한광옥]]이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임명될 경우 자신이 맡고 있는 정치쇄신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는 기자 회견을 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12/h2011122902350021000.htm "김종인은 수뢰·철새… 이준석은 김종인 들러리"] {{웨이|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12/h2011122902350021000.htm# |date=20111230104015 }} 한국일보, 2011년 12월 29일</ref><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10/08/0200000000AKR20121008127551001.HTML?did=1179m 안대희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임명땐 사퇴"(종합)] 연합뉴스, 2012년 10월 8일</ref>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하여 재벌과 은행의 투명경영을 유도해야 할 청와대 경제수석의 자리에 있으면서 오히려 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은 중대한 일이라면서, 그런 김종인을 공동선대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이게 박근혜의 원칙인가"라고 물었다.<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696499 <김진의 시시각각> 뇌물 망각증]{{깨진 링크|url=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696499 }}중앙일보, 2012년 7월 9일</ref>
         [[2012년]] [[10월 25일]]에 있었던 [[이인제]]의 입당도 이른바 철새 영입 논란을 일으켰다.<ref>[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10/26/9319856.html?cloc=olink|article|default 이인제 "지구 한 바퀴 돌았다"]{{깨진 링크|url=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10/26/9319856.html?cloc=olink%7Carticle%7Cdefault }} 중앙일보, 2012년 10월 26일</ref> [[한국일보]] 사설은,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전력을 따지지 않고 영입하는 것은 새누리당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등의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비판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521044776070.htm <사설/10월 26일> 이인제와 손잡은 박근혜, 득이기만 할까] {{웨이|url=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521044776070.htm# |date=20130127130735 }}한국일보, 2012년 10월 26일</ref>
         * 박근혜의 재산은 2010년 4월 기준 건물 19억 7천 7만원, 자동차 등 8천 1 90만원, 예금 1억 2 59만 6천원, 도합 21억 6천 1 49만 6천원이다.<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91621</ref>
         * [[미디어법]]에 대해서 반대를 표명했고, 일부 수정된 미디어법을 찬성하여 다시 한번 박근혜의 영향력을 확인했다. 하지만 미디어법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로 그의 원칙주의는 깨졌고 지지자들에게도 큰 비판을 받았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269602영향력 입증에는 성공…힘의 원천 '원칙'엔 흠집][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1366942&cp=nv 미디어법 모호처신에 박근혜 이미지 폭삭] {{웨이|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1366942&cp=nv |date=20150426050029 }}</ref>
         *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대생들이 대선 후보들에 대해 평가한 책을 냈다. 서울대생들은 박근혜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밝은 점은 이용하고 어두운 면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아버지의 굴레를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 밖에도 국가와 결혼한 애국자란 이미지가 있지만 서민의 삶은 잘 모르고 국민과 소통 및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며, 수첩공주라는 별명처럼 사전에 계획된 멘트만 하는 등 거부감을 준다고 평가했다. 또한 박근혜 의원의 자기 비전과 위기 대처 능력, 젊은 층과의 소통 능력 등에 의문이 든다는 평가도 있었다.<ref name="su">[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350349 서울대 재학생들 `폭탄발언` "안철수 사실은…"안철수·박근혜·문재인 나름 평가 책으로 출간] {{웨이|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350349 |date=20131217094732 }} 매일경제, 2012년 6월 10일</ref>
         [[2007년]] 대선 직전 그에게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숨겨둔 사생아 딸이 있다는 의혹이 여러 번 제기되었다.<ref name="kuki0719">[http://www.kukinews.com/news/article/print_info.asp?arcid=0920602696.txt <nowiki>[</nowiki>한나라당 검증청문회<nowiki>]</nowiki> 朴 "숨겨둔 자식? DNA검사 해 주겠다"… 관련의혹 부인] {{웨이|url=http://www.kukinews.com/news/article/print_info.asp?arcid=0920602696.txt# |date=20131004220142 }} 쿠키뉴스 2007-07-19</ref><ref name="ytn0719">[http://www.ytn.co.kr/_ln/0101_200707191720086554 '부동산'·'최태민' 집중 추궁] YTN 2007-07-19</ref> 공식적으로는 미혼으로, 이전에도 그의 사생아 의혹이 여러 번 제기되었으나 [[2007년]] 대선을 계기로 공개적으로 공론화되었다.
         한편 인사검증회에 참여한 어느 참관인으로부터 "독신인데 [[저출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사실 저도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사람 운명이 생각하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ref name="exp">[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7/h2007071918320021060.htm 박근혜, 차분하게 각종 의혹 적극 해명] {{웨이|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7/h2007071918320021060.htm# |date=20130928164053 }} 한국일보 2007년 07월 19일자</ref> 숨겨둔 자녀가 아들이라는 설, 딸이라는 설 등의 소문은 무성했으나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2007년]] 당시, 1979년 10.26 사태 직후 [[전두환]]으로부터 6억 원을 받은 사실이 논란거리가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9&aid=0000145400 mbn 24시 주요뉴스] MBN 2006년 06월 27일자</ref> [[1980년]] 박근혜와 그의 형제들 앞으로 6억 원의 돈이 지급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전 합수본부장에게서 9억원을 받은 뒤 김재규 사건 수사 격려금으로 3억 원을 되돌려 주었다는 것에 대한 의혹이 여러 번 제기되었다.<ref name="chung01">[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7/h2007071918312921060.htm 박근혜 "아이 있다는 말 천벌받을 일"] {{웨이|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7/h2007071918312921060.htm# |date=20130928164050 }} 한국일보 2007년 07월 19일자</ref> 이 돈은 박근혜와 그의 두 동생에게만 지불되었다. 그리고 액수도 6억 달러 설, 9억 달러 설 등이 제기되어 왔으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최태민]]과 그 가족들의 비리 행위나 비위 의혹에 대하여 박근혜는 최태민이 모함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2007년의 청문회 당시 '최 목사가 지금도 결하고 모함받고 있다고 생각하나.'<ref name="chung01"/> 라는 질문에 대하여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의혹의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현실이 그러니까. 앞으로 실체가 나온다면 내가 모르던 일이니까 굉장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일이다.<ref name="chung01"/>"라고 말하였다.
  • 백일섭 . . . . 29회 일치
          | 이름 = 일섭
          | 사진설명 = 2013년 드라마 《[[더 이상은 못 참아]]》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일섭
          | 자녀 = [[승호]](아들)
         '''일섭'''(白一燮, [[1944년]] [[6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청와대로 초청받은 연예인 1호로 알려지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일섭이 극 중에서 취중에 독특하게 부르는 옛 노래〈홍도야 우지마라〉가 다시 인기를 끈 일이 유명하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6011010100691636&type=1 박원숙 정혜선 일섭, 맛깔스런 연기에 "역시!"]《머니투데이 스타》</ref> 가수 [[조영남]]과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 [[1981년]] [[KBS2]] 주간연속극 《[[포도대장]]》 ... 포교 역
         * [[2000년]] [[MBC]] 일일시트콤 《[[논스톱 (시트콤)|논스톱]]》 ... 일섭 역
         * [[2011년]] [[KBS2]] 주말연속극 《[[사랑을 믿어요]]》 ... 김수봉의 친구, 일섭 역(특별출연)
         * [[2018년]] [[tvN]] 불금시리즈 《[[톱스타 유이]]》 ... 일섭 역 (특별출연)
         * [[1969년]] 《[[장미 (영화)|장미]]》
         * [[2012년]] [[TV조선]] 《[[일섭의 진미천하]]》
         2021년예능프로 살림하는남녀들 시즌1 며느리 경하 출연
         * [[2014년]] [[채널A]] 《[[일섭의 그때 그 사람]]》
         * [[롯데칠성음료]] 화수복
         * [[1975년]] 제11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1993년]] 제29회 [[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64591|제목=탤런트 일섭 "이회창 뒈지게 맞아야" 발언 파문 - 당 행사에서 규탄사... 이회창 캠프 "선전포고냐"|날짜=2007-11-14|확인날짜=2008-02-01|출판사=오마이뉴스|저자=손병관}}</ref>. 일섭은 추후 이 발언이 단순한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news_uid=202857|제목=일섭 이회창 관련 발언 해명 “농담이 큰 오해가 됐다”|날짜=2008-01-30|확인날짜=2008-02-01|출판사=뉴스엔|저자=김미영 기자}}</ref>.
         * {{KMDb 사람|00003935|일섭}}
         * [https://web.archive.org/web/20060821121936/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person_info.php?id=7013 일섭 씨네21 인물상세]
         * [https://web.archive.org/web/20100516213655/http://people.nate.com/people/info/ba/ek/baekilseob/ 일섭 네이트 인물]
  • 마기/306화 . . . . 28회 일치
         룡은 연영(아르바)에게 패하고...
          * 룡은 혼신의 힘을 다해 아르바에 맞서지만 쥬다르도 절연결계도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당한다.
          * 룡은 무력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한 가지만 가르쳐달라고 한다.
          * 아르바는 "웅, 연" 두 황자를 낳은 뒤라고 밝힌다. 그 뒤 옥염의 육체를 빼앗고 영과 룡을 낳았다.
          * 룡은 경악하며 "신드바드의 정신도 이미 누군가에게 빼앗겼는가"하고 묻는다.
          * 하지만 룡은 분노하는 해야할 그 순간 "분명 나는 복수 밖에 보질 못하고 감정에 휘둘리던 꼬맹이"였다고 인정하며 "복수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 아르바가 방심한 사이 룡은 자간의 힘으로 부유섬으로 합류, 거기엔 먼저 탈출한 알라딘, 모르지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 룡은 아르바의 진의와 신드바드의 진실을 알기 위해 일부러 연극을 했던 것.
          * 결국 룡에게 놀아나 신드바드에게까지 숨기던 사실까지 까발리고 말았다.
          * 덤으로 자신의 전생방식을 알려준 탓에 "지금 영의 육신이 죽으면 부활하지 못한다"는 약점까지 노출해 버리고 만다.
          * 룡은 아르바를 "아르바공"이라 칭하며 "귀중한 정보 고마웠다"며 조롱한다.
          * 모든 것이 룡의 계략이었고 알라딘일행이 귀왜국과 함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음을 알게된 아르바는 룡이 그럴 짓을 할 수 있을리 없다고 분노하는데
         - 연 룡. 패배한척 아르바를 현혹해 정보를 캐낸 뒤.
          * 연룡 등장 이래 최고 사이다 에피소드
          * 룡은 복수심과 증오를 정리해버렸다.
          * 영, 혹은 룡남매의 어머니 "연옥염"의 자아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 아르바가 룡의 성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린 것이 그 증거.
          * 반대로 마지막 페이지의 편집자 멘트가 "복수를 극복한 아들 룡에게 끓어오르는 애증"이라고 되어 있는 점, 영만큼은 자신이 낳은 친자식이라고 인증한 점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모성애"가 발현된 것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아르바의 마지막 대사(그 분만이 소중하다. 그것 뿐이다)의 의미도 자연스러워진다.
          * 설사 2년 후 애를 만들었더라고 갓난애일 것이고 영의 몸으로 죽는다면 갓난애의 몸으로 들어가 봐야 의미가 없으니 결국 아르바가 끝장나는건 마찬가지.
          * 룡이 알라딘 일행과 함께 있을 거라는 추측은 결국 맞았다. 단, 도주한 시점에서는 같이 있었어도 지금 시점에선 다른 목적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탈했을 가능성도 있다.
  • 전효성 . . . . 28회 일치
         소소가 진행 당시의 데뷔 초 전효성~~풋풋하다~~~~애기애기스럽다~~
         데뷔 초에는 [[유키스]]의 신동호와 함께 [[소년소녀가요서]] MC를 맡았지만 얼마 못 가서 프로그램 자체가 종영했다.
         전효성은 [[방용국]]과 [[젤로]]가 [[B.A.P]]로 데뷔하기 전 유닛활동 겸인 Bang&Zelo의 <Never Give Up> [[http://www.youtube.com/watch?v=Sd4s1aVXKpU&list=UULLlKJZVbeUTzwjVM7Lx9kg&index=130|뮤직비디오]]와 [[http://www.youtube.com/watch?v=b4AMbmqn05Q&list=UULLlKJZVbeUTzwjVM7Lx9kg|티져 영상]]에서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원래 Bang&Zelo 컴무대에 특별 게스트로도 무대에 설 예정이었지만 [[http://junglegalaxy.wo.tc/3523|아래에 언급할 부상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안습...
         2015년 4월 10부터 스타캐스트의 <아이엠 효성>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매주 금요일마다 올라올 예정이다. 총 8회로 구성되어있다. [[http://m.star.naver.com/SECRET/special/1037/news/end?id=4875047|1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085|2편]][* 왁스타블렛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전효성이 왁스타블렛을 만든 곳에서 직접 [[http://blog.naver.com/maeryoc/220335786716|후기]]도 써서 올려줬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134|3편]][* 새 솔로앨범 작업 과정이 담겨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142|4편]][* 다른 회와 다르게 수요일에 업로드되었다.] [[http://m.star.naver.com/SECRET/news/end?id=5054150&langCode=ko|5편]][* 새 솔로앨범 판타지아의 수록곡 하이라이트 메들리, 뮤비 촬영 과정 등이 담겨있다.] [[http://m.star.naver.com/SECRET/news/end?id=5075799|6편]][* 컴 당일날 활동 과정이 담겨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193|7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204|8편]]
         연초 <처용> 방송 직후에 가진 인터뷰를 통해 솔로 떡밥을 던지곤 했는데 2014년 4월 17일 [[이단옆차기]]의 곡으로 솔로앨범을 발표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41708135750788&type=1&outlink=1|앨범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가며 큰 변수가 없는 한 5월 12일에 음반과 음원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493077|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음악프로가 결방함에 따라 발매가 연기될 것으로 보였으나]] 5월 2일 소속사가 공식 SNS를 통해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712240712173658&substory_index=0&id=181948985202836|티저 이미지를 공개함에 따라 컴이 확정되었다.]]
         2014년 5월 16일 [[음악중심]] 컴날 하루 전 [[안무영상]]을 올리며 [[Daum|포털사이트]] 1위를 찍었다. [[https://youtu.be/AYAy1YyWfTs|안무영상]] 팬들을 위해 본인이 소속사에 제안했다고...
         2014년 5월 17일 [[쇼! 음악중심]] 무대를 통해 첫 컴무대를 가졌다.
         유튜브에 MPD라는 채널이 있고 이곳에서 찍어서 올려주는 직캠 영상이 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8iDKiRqNqhs|이 무대 직캠]]이 [[https://twitter.com/MnetMV/status/596232717697552385|최초로 만뷰를 넘겼다고 한다.]](...) 최초로 만 뷰를 넘긴 공로를 인정받아(...) <반해> 컴 첫 무대인 엠카에서 엠피디에게 직접 상을 받았다.
         또한 엠카 막방 무대에서 6월 5일자 무대와 색깔만 다른 의상을 입었는데 이것 역시 [[https://www.youtube.com/watch?v=QYZfAA5-ZCk|곧 만뷰 돌파 예정이라고]](...)~~그리고 다음날 바로 만뷰를 넘겼다(...)~~
         2015년 4월 30일 앨범 자켓 이미지와 타이틀곡 '반해'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Dhfup5lx1s|티저영상]] 컴일은 2015년 5월 7일로 확정되었으며, 쇼케이스 개최와 동시에 컴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식 카페에서 쇼케이스 신청을 받고 있다. 트랙 리스트는 01. 날 보러와요[* 작사에 일부 참여하였다] '''02. 반해'''[* 처음으로 랩에 도전해 보았다고 한다. 노래 중간에 4마디정도 짧은 랩이 나온다.] 03. Taxi Driver 04. 꿈이었니[* 전효성 본인이 직접 작사하였다.] 05. 5분만 더
         3월 2일 기사에 의하면 3월 말에 솔로로 컴이 확정적이라 한다. 타이틀곡 작업은 완료했고 수록곡 작업에 매진중이라 한다. [[http://osen.mt.co.kr/article/G1110364657|기사]]
         3월 11일 시크릿 공식 페이스북에 전효성의 솔로앨범 티저 이미지와 자세한 컴 일정이 떴다.[[https://www.facebook.com/SECRET2009/photos/a.185586928172375.49069.181948985202836/1087586711305721/?type=3&theater|#]][[http://www.xportsnews.com/jenter/?ac=article_view&entry_id=701833&_REFERER=http%3A%2F%2Fsearch.naver.com%2Fsearch.naver%3Fwhere%3Dnexearch%26ie%3Dutf8%26sm%3Dtab_etc%26os%3D169117%26pkid%3D1%26mra%3Dbjky%26query%3D%25EC%25A0%2584%25ED%259A%25A8%25EC%2584%25B1%26noq%3D%25EC%258B%259C%25ED%2581%25AC%25EB%25A6%25BF%26url%3Dhttp%253A%252F%252Fwww.xportsnews.com%252F%253Fac%253Darticle_view%2526entry_id%253D701833%26ucs%3DcHpXLxI8tOLE|기사]] ~~그리고 [[물망초]]와 관련된 떡밥도 해소되었다.~~
         여자 [[아이돌]]에겐 보기 드문 '''선홍빛 [[잇몸]]'''을 선보이는데다 각종 방송 활동에서 ~~하라는 예능은 안하고~~내숭 없이 잘 웃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 현재까지 남성팬들이 꽤 많다. 그래서 [[박명수]], [[신봉선]]과 함께 [[http://www.artsnews.co.kr/news/105890|연예계 3대 잇몸으로 꼽히기도 했다.]][* 다만 [[한국방송공사|KBS]] [[점만점(예능)|점만점]]에서 본인이 매력 포인트라며 어필한 그 잇몸 때문에 CF 감독한테 까였고(...) 결국에는 꼴등으로 뽑히고 말았다. [[안습]]. 근데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고정멤버가 된 듯하다. 이제까지 팀내에서 예능을 담당한 선화 빼고는 시크릿 멤버 중 처음으로 예능프로 고정을 획득한 것이다. 오오.~~다만 예능감은 미달수준~~ ~~그래서 별명이 다큐효성(...)~~] 사실 이 잇몸으로 주목받는 것이 유명해지고 나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어릴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인지가 많이 되어 있었던 특징이었는데, 이미 [[오소녀]] 시절에도 팀 내에서 별명이 '잇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2013년 MBC 파일럿 프로그램 화수분에서 [[원더걸스]] [[유빈]]을 대신해서 출연한 [[김신영]]이 전효성에게 잇몸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여담으로 [[http://www.tagstory.com/video/100646262|무대 직전에 확인하는 부위가 잇몸(...)이라고 한다.]][* 여가수들이 웃을때 립스틱이 앞니에 묻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은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2012년 9월 13일에 발표한 <Poison>의 뮤직비디오에서 전효성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붉은색 미니드레스와 '''[[가터벨트]]''' 복장을 선보이면서 [[http://boo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907050016&category=006009000|건재함을 알렸다.]] 또한 전효성은 <Poison>으로 컴하면서 헤어스타일을 단발머리로 바꿨다.
         시크릿이 <I'm in Love>로 컴 후 8월 16일 방영된 KBS [[연예가중계]]에서 자신은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의 외모에 상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밝힌 이상형이 [[강동원(배우)|강동원]](...)~~ 그런데 MC가 [[정우성]]의 이상형이 전효성이라고 밝히니까~~[[유이(배우)|유이]]가 이 글을 싫어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hOVTqm0Cvk|바로 정우성으로 갈아탔다]](...)~~[[장윤정|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2014년 자신의 생일인 10월 13일에 작년부터 자신의 개인 팬카페에서 진행해온 선행 프로젝트인 만원의 기적[* 팬카페 회원들이 만원씩 모아서 365만원을 기부하는 프로젝트. 회원들이 총 모은 금액은 366만원]으로 모인 금액을 푸르메 재단에 기부하였다.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20/2014102001020.html?utm_source=twitterfeed&utm_medium=twitter|기사]] 전효성 본인도 팬카페 회원들의 마음씨에 감동하여 '''365만원을 추가로 기부하여 총 731만원을 기부하게 되었다. 오오 대인배!!!'''[* 참고로 자신의 팬들에게 매우 잘해주며 팬들을 아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아육대 녹화에서는 팬들이 자신을 보려고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자 울상지으며 팬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위에 나오는 20주년 엠카 사전녹화 때에는 추운 날씨에 자신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사비로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직접 사다주기도 하였다. <반해> 활동기간에는 쇼케이스 참여한 팬들에게 바람막이와~~5월달에 받았으니까 입으려면 앞으로 6개월(...)~~ 선글라스를 선물했으며 컴 첫주 공방 참여한 팬들에게는 바나나 우유~~반해유~~와 요구르트~~반해요~~를, 또 5월 14일 로즈데이에 공방 참여한 팬들에게는 직접 장미꽃과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역서포트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7월 22일 [[소나무(아이돌)|소나무]] 컴 무대에 깜짝 응원을 가기도 했다.[* 사실 시크릿과 소나무는 한솥밥을 먹는 친언니와 친여동생의 관계와 같으므로 서로 친분이 매우 깊다. 실제로도 [[소나무의 펫하우스]]에 시크릿 멤버들이 [[한선화]]만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 전원이 출연해줬다.] 처용 촬영날에 가서 그런지 복장은 교복차림(...) 그리고 소나무는 멤버 7명 중 5명이 170cm이상이라 체격들이 장난이 아니다. 그 틈바구니에 전효성이 끼어서 이질감이 좀 있다. [[https://twitter.com/Secretimehs/status/623808326954921984|#1]]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411|#2]]
         11월 28일에 수수한 차림으로 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사진을 찍어도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친절하게 대해줬다는 후문.
         논란이 일어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전효성 본인이 트위터에 [[http://twtkr.olleh.com/view.php?long_id=L1XIci|해명 게시물]]을 올렸다. 전효성과 소속사는 [[http://isplus.joinsmsn.com/article/947/11518947.html?cloc=|뜻을 모르고 사용했다]]고 주장했으나 이 주장은 팬층을 포함해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전효성의 발언은 명히 인터넷 은어로서의 '[[민주화]]'의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발빠르게 사과문을 올렸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설명이었기에 세간의 반응은 싸늘했고, [[5.18]] 기념식으로 인해 전효성의 행동은 꾸준히 회자되었다. 결국 전효성은 [[2013년]] [[5월 20일]]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20406|2차 사과문]]을 올린다. 그런데 이 2차 사과에서는 '[[민주화]]의 의미를 처음에는 몰랐다더니 이제와서 딴 소리냐' 라는 식의 비난을 받게 되며 전효충 등의 별명을 써가며 전효성을 비하하는 반응이 상당히 많았다. 솔직히 20살 넘은 성인이 민주화 뜻 모른다는거 자체가 골 때리는 사실이다(...)
         그러나 저 발언 하나만으로 전효성을 [[일베|모 커뮤니티]] 유저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하다. 전효성 같은 경우 위에 항목에 나와있는거 처럼 과거 디씨에 있는 시크릿 갤러리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글 까지 쓴 적이 있으며 모니터링을 위해 디씨를 꾸준히 눈팅하다가 접하게 된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효성이 해명하고자 했던 바는 민주화가 모 커뮤니티에서 은어의 의미로서 사용되는 줄 몰랐다는 것을 해명하고자 했던 것이며 '''이것을 2차 사과문의 내용과 연결시켜 보면 정확히 일치한다.'''[* 이후 시크릿으로 컴하고 난 후 [[http://m.navercast.naver.com/mobile_magazine_contents.nhn?rid=1096&contents_id=47982|모 인터뷰]] 내용에서도 이와 같이 해명한 바 있다.] 실제로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 무렵 시크릿 갤러리 글을 보면 민주화와 같은 모 커뮤니티 은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간베스트라는 그들만의 공간을 나와 점점 다른 사이트에서 분탕질을 시작한것도 이 무렵으로 아직 일베라는 특정집단을 모르고 단순히 신종 어글러취급을 하는 곳이 많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당시에는 일베 은어를 쓰자 말자 하는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시절이였다. 전효성 민주화 사건을 큰 기점으로 그 은어들의 가진 어원이나 뜻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회공감대를 얻어 쓰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굳어졌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27회 일치
         [[런던]]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배인 프로비던스호에 탄 헤이덤.
         항해 72번 째 날. 프로비던스가 보스턴에 도착한다. 안개 때문에 도착했다는걸 믿지 못한 헤이덤은 돛대에 올라가 보스턴을 확인한다.
         1754년, 보스턴 항구에 발을 디딘 헤이덤을 "찰스 리"라는 남자가 맞이한다. 이들은 잡화점에서 검(일반 검)과 권총(플린트락 권총)을 사고 그린 드래곤 여관으로 향한다.
         1755년 보스턴, 노예로 잡힌 모호크를 해방시킨 헤이덤 일행.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모호크에서 접촉해오지 않았다. 일행들이 따분해 할 무렵, 찰스 리가 전에 만났던 모호크 여인을 목격했다. 헤이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여인을 찾아 나선다.
          * 변경 지역을 배경으로 한 첫 임무. 임무를 받고 나면 맵에 표시가 안 되어서 당황할 수 있는데, 보스턴 최남단이나 최북단의 성문으로 빠져나오면 변경 지역으로 간다.
         둘은 깃털 먼저 찾기로 한다. 라둔하게둔은 새집을 찾기 위해 카니에티오를 데리고 나무 위로 올라간다. 둘은 나무 위에서 보이는 광경에 감탄하지만 라둔하게둔은 일년 내에 명이 넘는 사람이 정착할 거라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몇년 전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거라는 반응을 보인다.
         라둔하게둔은 6개월간 훈련을 받았다. 달리기, 벽타기, 전투, 떨어지기, 언어학, 철학, 논리학, 암살단과 성당기사단의 정보 등등. 그러던 어느날, 아킬레스는 집 공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라둔하게둔과 함께 보스턴에 간다.
         1770년 보스턴, 라둔하게둔은 커다란 도시인 보스턴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아킬레스는 그런 라둔하게둔에게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보낸다. 그러고는 미국 원주민의 이름이 아닌, 활동하기 편한 이름인 "코너"라는 가명을 준다. 라둔하게둔은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킬레스는 '''진실'''과 무엇'''인지'''가 항상 같은건 아니라고 한다.
         코너는 헤이덤의 부하에게 템플기사단의 계략은 실패했다고 선언하지만, 건너편 건물에서 찰스 리가 총을 쏴버린다. 이로인해 공격받고 있다고 착각한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발포, 코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게다가 헤이덤이 병사에게 코너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코너는 [[보스턴 학살]]을 유발한 주범으로 몰려 군인들에게 쫓기게 된다.
         군인들을 따돌린 코너. 그런 코너에게 한 남자가 코너를 알아보고 다가온다. [[새뮤얼 애덤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아킬레스가 코너를 보스턴에서 빼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보스턴 곳곳에 코너의 현상수배 포스터가 걸려있는 상황. 코너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하자 애덤스는 그냥 포스터를 뜯어버린다. 이후 애덤스는 코너를 시켜 포스터 두개를 더 뜯어내게 한다.
         저택의 문을 두드렸던 사람은 카나도곤이었다. 카나도곤은 사람들이 와서 땅이 팔렸다고 주장하며 마을 사람들을 내쫓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템플기사단원인 윌리엄 존슨이 이에 연관되었다는 걸 안 코너는 존슨을 막기로 결심한다. 아킬레스는 템플기사단은 강하다며 보스턴에 있는 새뮤얼 애덤스의 도움을 받으라고 한다.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코너가 부두를 지키던 경비병들을 처리하고 신호를 보내자 애국자들이 배에 올라타 차 상자를 바다로 내던진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영국 정규군이 부두로 들이닥친다. 코너는 애국자들이 차 상자를 모두 내다버리는 동안 영국군과 맞서 싸운다.
         >존슨: 그래. 그래야만 우리가 '''보호할''' 수 있었다! 착한 조지 왕이 원주민 성들을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샐거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도시 사람들이 신경쓸거라고 생각하나? 아, 그래, 식민지인들은 필요한 음식이나, 거주지나, 군대에 필요한 물건을 거래할 때는 좋아해주겠지. 하지만 도시 방벽이 비좁다고 느껴질 때, 작물을 심을 땅이 필요할 때…여기에서…더이상 싸울 상대가 없어졌을 땐, 그놈들이 얼마나 좋은 놈들인지 알게 될거다.
         1775년, 대본포트 농지. 저택으로 편지가 온다. 폴 리비어에게서 온 도움 요청으로, 영국군이 보스턴에서 무언가를 하려 하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코너는 자신은 애국자들이 아니라며 거절하려하지만 존 핏케언이 연관되었다는 아킬레스의 말을 듣고 보스턴에 있는 리비어를 돕기로 한다.
         이후 코너는 애덤스에게서 핏케언이 보스턴에 틀어박혀 천여명의 영국군의 보호를 받는다는 소식과 현재 이즈라엘 퍼트넘이 지휘하는 대륙군 군대가 보스턴을 공격하고 있으니, 벙커힐에 있는 퍼트넘에게 가서 필요한걸 제공 받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후 코너는 핏케언이 위험한 자이니 빨리 제거하는게 좋다고 하는 애덤스에게 찰스 리도 그렇다고 한 후 퍼트넘에게 간다.
         코너가 브리즈힐 야영지에 도착했을 때, 퍼트넘은 브리즈힐이 적 포병대와 가깝다고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이때 영국군의 포탄이 브리즈힐의 애국자들에게 날아오고, 야영지가 아수라장이 되는걸 본 퍼트넘은 할말은 다 했다며 벙커힐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코너가 퍼트넘에게 말을 건다. 퍼트넘이 핏케언을 잡는걸 도와 줄 수 있다고 들었다는 코너의 말에 퍼트넘은 영국군 선박이 공격을 해오는 한 핏케언을 보스턴에서 끌어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코너는 영국군 선박의 사격을 중지시키겠다고 선언한다.
         코너는 퍼트넘에게 다가간다. 그는 진짜 성공하고 돌아왔다며 놀라는 퍼트넘에게 꽤 좋은 연설이었다고 평하지만 퍼트넘은 죄다 거짓말이었다고 말한다. 핏케언은 보스턴을 떠나 몰턴 힐에 야영장를 세웠다. 하지만 방비가 단단했기에, 퍼트넘은 잠시 돌아가거나 적의 병력이 줄어들 때 까지 기다리는걸 제안한다. 코너는 시간이 없다며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이후 코너는 핏케언의 품 안에서 편지를 가지고 퍼트넘에게로 돌아온다. 핏케언이 죽었다는 걸 들은 퍼트넘은 벙커힐 보다 값진 보스턴을 확보하기 위해 전면 철수를 하고있다고 말한다.
         아퀼라는 사슬탄으로 전열함의 돛대를 부러뜨린 후, 호위함대를 전멸시킨다. 이후 코너가 함상 병전을 준비하려고 하자, 헤이덤은 코너에게서 키를 빼앗아 아퀼라를 전열함에 처박아버린 후, 전열함으로 먼저 넘어가버린다. 이후 코너와 선원들은 전열함에 도선해 전투를 벌인다.
  • 하쿠다 켄 . . . . 23회 일치
         '''하쿠다 켄'''({{llang|ja|白田 健}}, はくだ けん, [[1951년]] ~ )은 [[대한민국]] 출생의 [[일본]] 기업인으로서, 비디오 예술가 [[남준]]의 큰조카이자 현재 [[남준]]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의 소유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켄 하쿠타'''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남준]]의 큰형이자 당시 [[대한민국]] 최대의 섬유 기업 태창방직(방림방적의 전신)의 회장이었던 남일의 장남으로 '''건'''(白健)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1960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일가족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태창방직이 [[대한민국]] 정부에 몰수당하게 되자 부모와 일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 귀화하여 이 때 이름을 일본식으로 하쿠다 켄(白田健)으로 개명하고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숙부인 [[남준]]의 도움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하여 경제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고 장난감 판매, [[텔레비전]] 프로덕션 등의 사업을 하던 그는 [[1990년대]] 이후 숙부 [[남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숙부의 작품 활동을 도왔다.
         [[2006년]] 남준이 타계한 후 그는 [[미국]] [[뉴욕]]의 남준 스튜디오와 남준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물려받아, 현재 뉴욕 남준 스튜디오의 이사이자 남준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작품 관리와 기념사업 등을 책임지고 있다.
         [[2006년]] [[남준]]의 사후 추모행사 및 [[남준아트센터]] 건립 문제와 관련하여 하쿠다는 [[경기문화재단]] 및 [[대한민국]] 미술계 인사들과 큰 갈등을 겪은 바 있다. [[2008년]] 경기문화재단과 하쿠다의 합의가 극적으로 이루어져 동년 [[4월 30일]] 남준아트센터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개관하였다.
         * [[남준]]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9218.html ‘남준’ 유분 들고 온 ‘일본 국적 한국인’ 조카 켄 하쿠타], 《[[한겨레]]》 2006년 3월 16일자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248457 기자수첩 : 편히 눈감기 어려운 남준], 《[[연합뉴스]]》 2006년 3월 19일자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79539 남준 대리인측 "정부 기념사업 협의없이 진행"], 《[[경인일보]]》 2011년 5월 4일자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1972277 남준 아트센터 2월 완공...저작권 상속자 하쿠다씨 방문] , 《[[뉴시스]]》, 2008년 2월 22일자
         [[분류: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수원 씨]]
  • 마기/340화 . . . . 21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질문에 "동료를 믿는다"고 답한 [[연룡]]. 그러나 신드바드는 그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 룡은 신드바드를 추궁해 그가 동료 조차 전혀 믿지 않는 인물임을 인정하게 만든다.
          * 룡은 그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힘과 책임을 나눌만한, 자신과 대등한 인간이 전혀 없는 거냐고 묻고 신드바드는 이 싸움이 그걸 가리기 위한 싸움이라 답한다.
          * 이 문답을 통해 룡은 [[알라딘(마기)|알라딘]]이 말했던 "신드바드의 미련"이 무엇인지 깨닫고 던전 공략에 성공한다.
          *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물음. [[연룡]]은 동료를 믿어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건 신드바드에겐 만족할 만한 답이 되지 못했다. 그는 곧 "책임 포기"라고 반박한다. 왕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해 남을 이끌어주는 사람인데 그 자신의 정의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라면 다른 이들이 믿고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자 연룡은 "왕의 정의 자체가 잘못되었다면?"이라고 반문한다. 옳고 그름은 불변하는 가치가 아니다. 룡은 황제국의 예를 들며 한때는 군사력에 의한 세력 확장이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황제이던 시기엔 복수가 대의였지만 대상이 사라지자 한계가 드러났다. 룡은 이제 신드바드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로 그의 정의가 흔들리지 않을 것인지를. 혹시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선건 아닌가 하는 불안은? 신이 된 그는 그런 불안감에서 해방된 것인가? 룡은 오히려 자신이 묻고 싶다며 신드바드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 묵묵부답인 채 고심하던 신드바드는 결국 대답을 회피한다. 그는 "내가 물어보려고 너흴 부른 거다"면서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룡이 불손하다고 탓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단언한다. 근거는 실적이다. 그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목표로 활동했고 이뤄냈다.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걸 해낸다는 자신감과, 누구도 보지 못하는 "운명"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답하자 룡은 "그럼 자신 외엔 동료를 믿지 않는것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신드바드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은 동료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룡은 그의 모순점을 집요하게 짚어낸다.
          다시 신드바드의 말문이 막힌다. 그 사실은 주위에 작고 나약하게 나타난 팔인장을 봐도 명한 사실이다. 그는 침묵 끝에 "그건 동료를 믿지 않는 것과 다름 없다"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 하지만 신드바드도 할 말은 있다. 1던전에서 [[쥬다르]]가 "사람마다 역할이 있다"고 한 말을 들면서 "인간은 그릇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달라 적합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면서 룡이 실패한 것도 그릇과 모양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다한 거라고 말한다. 룡은 쥬다르가 "사람마다 역할이 있다"는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조금 놀란다. 하지만 신드바드가 지적한 사실에 대해선 수긍한다.
          * 룡은 거기에 의문을 표한다. 설사 실패를 최소화하더라도 어째서 힘을 신드바드 개인에게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가? 왜 자신 외의 존재와 힘을 나눌 수 없는가? 룡의 그러한 질문에, 신드바드는 자신이 실패할거 같냐는 반문으로 답한다. 자신이 실패할거 같아 불안한게 이유라면 적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신의 힘을 나눌 대상이 없다고 단언한다. 자신 외에는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란 확증을 주는 인물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럴 확증을 주는 유일한 인물, 신드바드가 신이 되는 것이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의 힘을 아는 룡은 거기에 대해서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힘을 나눌만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인지, 인간 신드바드 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하게 겨룰 만한 인물이 전혀 없다는 건지 묻는다.
          예상과 다른 대답이 나오자 룡이 의아해한다. 하지만 그는 [[알라딘(마기)|알라딘]]이 말했던 "신드바드의 유일한 미련"에 대해서 떠올린다.
          알라딘은 그가 일행과 싸움을 통해 자신이 정말 신이 돼도 좋은지를 확인하려는 거라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가 결벽증일 정도로 성실하다고 말한다. 그때 2던전 바레포르가 무너진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룡이 신드바드를 납득 시킨 거라고 설명하며 쥬다르나 룡이 신드바드를 논파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왜 이리 쉽게 공략이 가능한건지 의아해한다.
  • 이상화 (시인) . . . . 21회 일치
          | 필명 = 호(號)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아(白啞)
          | 친척 = 이일우(부) <br /> [[이상정 (1897년)|이상정]](형) <br /> 한문이(형수) <br /> [[권기옥]](형수) <br /> [[이상 (사학자)|이상]](아우) <br /> [[이상오]](아우) <br /> [[박창암]](조카사위) <br />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조카) <br /> [[최남선]](사돈) <br /> [[박중양]](사돈)
         [[1919년]] 대구에서 [[3·1 운동]] 거사를 모의하다가 모의가 발각되어 피신하였으며, [[1921년]] 잡지 [[조]]의 동인이 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가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이후 시와 소설 등 작품 활동과 평론 활동, 《개벽》, 《문예운동》, 《여명》,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조선문단》, 《[[조선지광]]》 등에 동인 활동을 하였다.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서 [[대륜고등학교|교남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38년]]에는 교남학교 권투부를 창설, 지도하였다.
         이상화는 [[1901년]](광무 4년) [[4월 5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의 양옥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이며, 어머니는 김신자(金愼子)로 [[김해 김씨]]이다. 4형제 중 둘째이다. 형 이상정은 독립 운동가이며, 셋째 아우 [[이상 (사학자)|이상]]은 한국최초의 IOC위원이자 한국 사회학계의 선구자이고 넷째 아우 이상오는 정통 수렵가이자 [[바둑]] 유단자이다. 그의 집안은 [[대구]]의 명문가로 대 부잣집이었으나 아버지 이시우는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자손들은 [[대구광역시|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열아홉 되던 [[1919년]] 대구에서 [[기만]] 등 친구들과 함께 [[3·1 만세 운동]] 거사를 모의하다, 밀정의 추적으로 주요 인물들이 잡혀가자 [[경성부]]로 올라와 [[박태원 (1909년)|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 한동안 은신하였다. [[1921년]]에 [[현진건]]의 소개로 월단 [[박종화]](朴鍾和)와 만나 〈조〉 동인에 참여했고, [[박종화]]의 소개로 홍사용(洪思容), [[나도향]], [[나혜석]], 박영희(朴英熙), [[이광수]], [[최남선]] 등 문인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이 중 육당 [[최남선]]은 그의 큰집과 사돈간이 되면서, 그에게도 사돈이 된다. 훗날 그의 사촌 이상악의 딸이 [[최남선]]의 며느리가 되었다.<ref name="daemyonh"/>
         사촌 매형인 윤홍열은 후일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위원과 [[대구시보사]] 사장을 역임했는데, 사촌 매부 윤홍열의 소개로 바로 [[충청남도]] 공주 규수인 서순애 여사를 상화와 중매시켰다.<ref name="daemyonh"/> 몇 차례 연락이 오고가다가 [[1919년]] [[12월]]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출신과 결혼하였다. 부인 서온순은 독립운동과 유학 등 경제적으로 불우한 환경에도 남편의 탓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다 하며, 남편 사후에도 서온순은 재혼하지 않고 홀로 자녀를 키웠으며 [[1980년]]대에 사망하여 그의 묘소 근처에 안장되었다. [[1922년]] 이상화는 《[[조 (잡지)|조]]》1~2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해 프랑스에 유학할 기회를 얻으려고 일본으로 갸루 짱 예쁘다 같이놀래 예쁜니가 좋아좋아
         독립운동가인 [[이상정 (1897년)|이상정]]은 그의 형이고, 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 (사학자)|이상]]과 수렵가 겸 문필가 [[이상오]]는 그의 동생이었다. 치과의사 겸 성형외과 의사이며 [[경북대학교]] 치대 학장을 지낸 [[이열희 (1924년)|이열희]]는 5촌 조카였다.
         ** 아우: [[이상 (사학자)|이상]](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 사학자 겸 체육행정가. 前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아호(雅號)는 상(想白), 무일재(百無一齋).)
         * [[시인]] [[기만]](白基萬, [[1902년]] [[5월 12일]] 출생 ~ [[1967년]] [[8월 7일]] 사망. 아호는 목우(牧牛).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페이지=451}}</ref> 하여 그의 문단 초기 활동인 <조> 동인 활동, 즉 [[낭만주의]]적 경향에 주목했다.
         * [[조]]
         * [[이상]]
  • 정찬성 . . . . 21회 일치
         2009년 3월 [[센고쿠]] 7진 페더급 토너먼트에서 신성 이시와타리 신타로를 맞아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를 거두며 [[메이저]]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라운드 거친 타격전에서 레프트를 적중시키며 신타로를 주저앉혔으나 신타로는 다시 회복했고 클린치 싸움으로 이어진다. 레프리의 '스탑 돈 무브'가 선언되며 링 중앙에서 재개된 공방에서 다시금 라이트를 안면에 적중시켰고 등을 보인 신타로에게 스탠딩 마운트에서 초크를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꽂았다.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2011년 3월 UFN 24에서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러버매치로 UFC 무대에 데뷔했다. 1라운드 약간 신중한 타격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그라운드에서 마운트까지 잡았으나 공이 울리며 라운드 종료. 2라운드에서도 다시 한 번 상위를 잡고 엘보우와 파운딩을 날려주며 앞서 나갔고, 가르시아가 이스케잎을 시도하는 순간 을 잡고는 트위스터를 작렬시키며 멋진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이 트위스터는 매우 고급기술인데 MMA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찬성은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보면서 익혔고 코리안 탑 팀에서 훈련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본 인터넷 카페에 '한 번 연습해서 써먹어봐야겠다.'고 댓글을 달았고 결국 트위스터로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2013년 8월 4일 브라질에서 열린 'UFC 163' 에서 조제 알도와 페더급 타이틀전을 치뤘다. 3라운드까지는 알도의 아웃파이팅+TD 전략에 약간 밀리는 양상을 보였지만, 그래도 점점 TD를 잘 방어하며 근거리 타격전에서 극강 챔프를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4라운드에서 펀치를 주고 받던 중 팔끼리 엉킨 것을 빼내는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고 말았고, 이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TKO를 당하고 만다. 탈골 이후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맞춰보고 다시 해보려 했으나 어깨에 이상이 있음이 표정과 행동에서 드러났고, 이를 눈치챈 조제 알도가 킥 2방을 부상 부위에 작렬시켰고, 이후 쓰러지면서 파운딩 세례를 받고 아쉽게 패배하였다. 전체적으로 약간 밀리는 분위기 속에서 3라운드 종료 직전부터 부상 직전 상황까지는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경기를 끌고 갔던 지라 아쉬움이 크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하며(스테이지에서 어깨뼈를 맞췄다고 한다.) 정찬성 본인은 리매치를 원하고 있기에 향후 행보는 지켜봐야 알 듯. 결국 어깨 부상과 안와 골절 부상 때문에 1년간 결장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2014년 10월 4일 스웨덴에서 열리는 'UFC Fight Night 53' 에서 아키라 코라싸니를 상대로 복귀전이 확정되었다. 코라싸니가 UFC 랭킹 밖의 선수이고 바로 전 경기에서 [[더스틴 포이리에]]에게 2라운드 KO패를 당하는 등 정찬성의 랭킹과 전적에 비해 다소 아쉬운 상대라는 평가도 있으나 경기장소가 코라싸니의 홈인 스웨덴이고 정찬성의 부상 공이 크기 때문에 쉽게 볼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현지에서는 배당률이나 팬들의 승자예측 모두 정찬성의 압도적 우세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찬성의 어깨부상 회복이 늦어지면서 경기가 취소되었고 코라싸니의 상대는 [[맥스 할로웨이]]로 변경되었다.
         [[2016년]] 10월 19일로 소집해제되었고 복귀전으로 [[BJ 펜]]을 원한다고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09&aid=0000006100|#]] 하지만 2월 5일(한국시간) 미국 휴스턴 도요타 센터에서 열리는 UFN 104의 메인이벤트에서 페더급 랭킹 9위 데니스 버뮤데즈를 상대로 복귀전이 확정됐다. 비록 원하던 BJ 펜은 아니지만, 부상 치료와 군복무 등으로 인한 장기간 공에도 불구하고 복귀전이 메인이벤트로 잡히면서 미국내 정찬성의 인기는 여전함을 볼 수 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3년이 넘는 공기간동안 자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옥타곤을 오랫동안 떠나있었고,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주짓수 및 서브미션은 명히 정찬성의 강점.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MMA 기준으로 창의성 및 응용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트위스터는 기존에도 존재하던 서브미션 기술이지만, 이걸 MMA 에서 처음 보여준 것은 정찬성이다. 비단 트위스터 뿐만이 아니라 포이리에 전에서의 순간적인 포지션 뒤집기, 페이크 후 다스 초크, 알도 전에서의 테이크 다운 직전 역 테이크 다운 등 순간 순간 응용력이 뛰어나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게, 정찬성은 정식 주짓떼로가 아니면서도 MMA 노기 주짓수를 바탕으로 MMA 무대에서 주짓수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센스'''. 위에서 말한 장점들을 보면 알겠지만 정찬성은 명확한 하나의 출신 무술이나 본 무술이 없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의 삼보, [[다니엘 코미어]]의 레슬링처럼 자신이 극한까지 익힌 하나의 무술과 그 무술의 강점을 바탕으로 다른 위험에 대한 대처를 익힌 격투가라기보다, 최대한 자신의 무기 가짓수를 늘리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는 해법을 '''센스'''로 골라내는 격투가에 가깝다.
         조지 루프 전 이전의 정찬성은 그 '''센스'''의 위치를 본능이 대신하고 있었다면, 조지 루프 전 이후의 정찬성은 명히 센스를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합한 해법을 그때마다 내놓고 있다. 정찬성의 센스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떤 방법을 썼을 때 상대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 지 순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 이 뛰어나다. 또는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지 순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 이 뛰어나다. 이는 타격에서도 그래플링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트위스터라는 MMA 역사상 나온 적 없는 서브미션을 활용해서 상대를 끝낼 기회를 포착하고 실행한 점, 포이리에 전에서 테이크 다운을 당하고 이를 순간적으로 스윕한 것, 알도에게 플라잉 니킥이 실패한 후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테이크 다운을 건 것, 버뮤데즈에게 타격으로 밀리다가 레프트 타이밍에 어퍼컷을 정확하게 넣은 것 등 남이라면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 기회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포착해 이기거나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게 뛰어나다. '''다만 그 중에서도 서브미션, 특히 주짓수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현대 MMA 에서 가장 비슷한 존재를 꼽아보라면 그나마 [[토니 퍼거슨]] 정도. 둘 다 좋은 신체조건임에도 인파이팅을 즐기고, 뛰어난 맷집을 가지고 있으며 서브미션 승이 더 많으며 주짓수가 돋보인다. 물론 토니 퍼거슨이 성적이나 완성도나 더 뛰어나다. 정찬성이 3년의 공을 가지는 동안 퍼거슨이 쉼없이 실전을 겪으며 훨씬 발전한 것도 있고, 퍼거슨은 명확한 레슬링 본이 있다는 점도 있고, 타격 기본기도 더 뛰어나다는 점도 있고.
         단점이라면 명확하게 하나의 강한 무기가 없다는 점. 좀 막말하자면 '근본이 없다.' (...) 정찬성은 타격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다. 테이크 다운 디펜스가 뛰어난 다른 스프럴&브롤 선수들과 다르다. 레슬링은 다른 선수들이 명한 약점으로 지목하며, 그나마 강점인 주짓수 쪽에서도 정통 주짓떼로 수준의 깊이가 있지는 않다. 한 마디로 내가 불리할 때 '이거 하나만은 내가 너보다 잘한다' 며 상대를 찍어 누르고 제압하는 내 안마당이 없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는 중~원거리 타격에서는 명히 마이클 존슨에게 밀렸지만, 몇 대 맞아주며 근거리로 붙어 레슬링으로 마이클 존슨을 갈아버렸고 [[코너 맥그리거]]는 페더급 스탠딩 타격전에서는 진 경험이 없으며, 김동현은 [[콜비 코빙턴]]에게 패하기 전 까지는 그라운드/그래플링 싸움에서 져 본 적이 없다.[* [[데미안 마이아]]에게도 그래플링 싸움에서 지진 않았다. 김동현의 TKO패는 클린치 상황에서 당한 갈비뼈 부상으로 인한 것이다.] 다행히 주짓떼로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현대 MMA이며 페더급이지만, [[데미안 마이아]]나 [[호나우도 소우자]]같은 정통 주짓떼로에 타격, 레슬링이 보완된 선수가 페더급에 나타난다면 정찬성은 어느 점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기 힘들 것이다.
         UFN 24 이후 해설자인 [[조 로건]]이 이 서브미션을 보고 트위스터로 유명한 주짓떼로 '에디 브라보'가 기뻐할 거라 이야기 했는데, 정말로 기뻐해 주셨다. 친히 '코리안 좀비' 티셔츠를 입고 유튜브에 10 여분 가까이 되는 트위스터에 대한 교육용 비디오를 올렸다. MMA형 트위스터, 레슬링형, 주짓수 공방용, 스웨덴 스타일 등 온갖 화려한 트위스터를 다 올려 놨다. 정찬성 보라고 올린 것은 아니지만 에디 브라보가 내놓은 컴비네이션들을 보면 트위스터가 을 잡은 상황에서 MMA의 새로운 공격 방도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충격적인 기술이었으나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 트위스터를 잡으려면 하프로 내려와야 하는데 기껏 을 잡아놓고 하프를 타는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다. 00년대 이후로는 점점 섭밋보다도 파운딩이 대세이기도 하고. 에디 브라보의 동영상 역시 MMA 형 트위스터의 경우 트위스터로 기술을 완성시키기 보다 트위스터를 밟아가는 와중 늑골 파운딩이나 안면 파운딩으로 이어지는 컴비네이션을 설명해 준다. 정찬성의 경우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에는 을 잡은 상황에서 RNC와의 한방 이지선다를 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브라보는 트위스터 동영상 말미에 정찬성 보고 '친구들 데리고 술이나 한잔 하자' 라고 발언했다.
  • 백낙청 . . . . 20회 일치
         | 이름 = 낙청
          |부모=부 붕제(1910~?) 친일관료<br/> 모 최귀란(1911~?)}}
         '''낙청'''(白樂晴, [[1938년]] [[1월 10일]] ~ )은 [[한국]]의 대학교수, 영문학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이다. 친일관료 붕제의 아들로 [[대구]] 출신이다.
         친가는 [[평안남도]] [[정주군]]에 있었지만, 외가가 있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붕제|'''붕제''']]는 친일관료로 6.25 때 납북되었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유학을 떠나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아버지 : [[붕제]]([[1910년]] ~ ? ), 친일관료
         ** 이모형 : [[낙환]]([[1926년]] ~ ), 인제대학교 이사장
         ** 누나 : 순영(白純英, [[1936년]] ~ )
         ** 동생 : [[낙돈]](白樂曒, [[1939년]] ~ )
         ** 동생 : [[낙서]](白樂曙, [[1945년]] ~ ), 인제대 석좌교수
         ** 동생 : [[미영]](白美英), 단국대 교수, 피아니스트
         *《[http://www.yes24.com/24/goods/5043455?scode=032&OzSrank=5 관악 초청 강연 낙청 : 주체적 인문학을 위하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년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509&cid=41708&categoryId=41737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낙청] , 권영민 저, 서울대학교출판부, {{ISBN|9788952104618}}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05986&cid=40942&categoryId=33385 두산과사전 - 낙청]
         * [[붕제]]
         * [[낙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01&newsid=20110414201609960&p=khan (김제동의 똑똑똑-27) 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분류:193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브라운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신민당]][[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수원 씨]]
  • 유승민(정치인) . . . . 20회 일치
         유승민 의원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주제이건 질문을 하더라도 기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전달한다고 한다. 또한 기자들의 피드은 물론이고, 어떤 주제이건 전문가다운 답변을 내놓음과 동시에 보좌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끝까지 기자들을 응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기자들에게 내용을 되물으며 내용을 놓치지 않는다.
         1999년부터 시상된 '봉신사상'은 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상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상이며, 사실상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상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상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정의화 국회의장, 2016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봉신사상 대상을 수여받는 유승민'''
         >— 19대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군기]] 의원[* 육군 대장출신의 대표적인 민주당계 군사전문가이다]
         그 외에도 6.25 참전 소년소녀병에 대한 보상 법률안을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발의 했으며, 입대한 병사들에게 예산이 부족하다던 국방부에서 사관생도들에게는 나이키,아디다스 운동화, 심지어는 축구화 테니스화까지 지급한 행태를 보고 국방부 종합감사를 실시하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종합성적 1등의 여생도가 불이익을 받아 남생도로 바뀐 사태를 따져서 결국 그 여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이에 야당 국방위 간사였던 안규 의원은 '''합리적인 대안을 잘 도출하시는 분이고, 남의 억울함을 못보는 정의로운 분'''이라 유승민 국방위원장을 칭찬한 바 있다.
         >저는 이 연설을 쓰면서, 2012년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저희 새누리당의 공약이었습니다. 문제는 134조 5,000억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이 반성합니다. (중략)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 2,000억 원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해야 합니다. 세금과 복지의 문제점을 털어놓고, 국민과 함께 우리 모두가 미래의 선택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 2017 제19회 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봉신사상
          * 2016 제18회 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봉신사상 대상
          * 2015 제17회 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봉신사상 대상
          * 2014 제16회 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봉 신사상
          * 2013 제15회 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봉 신사상
          * 2009 제11회 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봉 신사상
         >'''보수가 무엇입니까?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재벌대기업은 수십조원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4대강에는 22조원이나 쏟아부으면서, 밥을 굶는 결식아동, 수천만원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힌 대학생, 월 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쪽방에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기초생활보호도 못받는 할머니 할아버지,이 분들을 위해서는 “예산이 없다”라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제가 꿈꾸는 보수는 그런 보수가 아닙니다.'''
  • 이열희 (1924년) . . . . 19회 일치
          | 별명 = [[호 (이름)|호(號)]]는 산(白山)
          | 친척 = 이동진(증조할아버지) <br /> 이일우(할아버지) <br /> 이시우(작은할아버지) <br /> 이상악(큰아버지) <br /> 서법경(큰어머니) <br /> 이명득(큰어머니) <br /> [[이상정 (1897년)|이상정]](5촌 숙부)<br /> [[한문이]](5촌 숙모) <br /> [[권기옥]](5촌 숙모) <br /> [[이상화 (시인)|이상화]](5촌 숙부) <br /> [[이상 (사학자)|이상]](5촌 숙부) <br /> [[이상오]](5촌 숙부) <br /> 이겸희(6촌 누이동생) <br /> [[박창암]](6촌 매제) <br /> 이용희(6촌 남동생) <br /> [[박문웅 (1890년)|박문웅]](장인) <br /> [[박중양]](장조부)
         [[1977년]] [[5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에 추대되었고,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 대한치과의학협회 경상북도 지회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치과대 학장, 경북치과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 (사학자)|이상]]의 5촌 조카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도지사를 지낸 [[박중양]]은 그의 처조부가 된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고 호는 산(白山)이다. [[천주교]] 영세명은 '''토마'''이다. [[대구광역시]] 출신.
         [[1924년]] [[12월 18일]] [[대구부]] 성내3동(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가)에서 이상무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소남 [[이일우]]는 사업가였고, 독립운동가 [[이상정]],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 (사학자)|이상]]은 그의 아버지 이상무의 사촌 형제들이었다.
         독립운동가인 [[이상정]], 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 시인 이상화는 그의 작은할아버지 이시우의 아들들이었다. 고모부 [[윤홍열]]은 [[미군정기]] 당시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또한 육군 준장 출신 민족 사학자 [[박창암]]의 처 이겸희는 그의 6촌 누이였다.
         *** 5촌 당숙: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 [[1943년]] [[4월 25일]], 작가, [[독립운동|민족]] [[시인]]. 아호(雅號)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아(白啞).)
         *** 5촌 당숙: [[이상 (사학자)|이상]](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 사학자 겸 체육행정가. 前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아호(雅號)는 상(想白), 무일재(百無一齋).)
         ** 부 : 이상악(李相岳, 호는 긍남(肯南), [[1886년]] [[9월 24일]] - [[1941년]] [[1월 8일]])
         ** 모 : 서법경(徐法卿)
         ** 모 : 이명득(李命得)
         * [[이상 (사학자)|이상]]
  • 김갑수(배우) . . . . 18회 일치
         ||<:> [[안성기]], [[박중훈]][br]([[투캅스#s-2|투캅스]]) ||<:> {{{+1 → }}} ||<:> '''김갑수[br]([[태산맥(영화)|태산맥]])''' ||<:> {{{+1 → }}} ||<:> [[최민수]][br]([[테러리스트(영화)|테러리스트]])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태산맥(영화)|태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그 이전에도 연극계에서 유명세를 떨쳤으나[* '님의 침묵'이라는 연극에서 한용운 선생역을 연기함으로서, 그쪽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다 한다. 관객동원수는 자그마치 약 3만명. 그는 이 작품으로 상 예술대상을 비롯 총 5개의 상을 받았다. 그는 이 수상을 계기로 영화 '태산맥'에 케스팅 되기도 했다.] 이 단 한 편의 드라마로 톱 중년 연기자로 단숨에 발돋움한 그는 그 이후로도 주로 현대극도 꽤 했지만 주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게 된다.
          * 2011년 4월 12일 방영된 [[김승우의 승승장구]]를 끝으로 [[예능]] [[은퇴]] 선언을 했다...~~그러면 [[시트콤]]부터 접어야겠지?~~ 그런데 [[XTM]]에서 2011년 하반기부터 방송하는 [[탑기어 코리아]]의 멤버 중 1인으로 발탁되었다. ~~뭐??? 예능 은퇴한 거 아니었어??~~ 탑기코 시즌1에선 큰 형님 포지션 겸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을 좋아하는 기믹으로 활약. 그럭저럭 무난한 진행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자동차에 관한 식견이 수준급이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폭스바겐 골프]]를 엔진종류 별로 딱1번만 주행해보고 정확하게 차종을 구분하는 미션을 완벽하게 완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1의 미로 꼽히는 슈퍼 카 택시 에피소드에서 [[험비]]의 민수형인 허머(Hummer) 택시를 담당하여 주목 받기도. 그러나 개인사정 상 시즌1에서만 나오곤 하차했다. 그러나 후임들이 워낙 평이 안좋은 지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으로 보인다.
          * 커피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짬이 날때마다 바이크를 몰고 단골 커피집에 가서 한 잔씩 하는 듯.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는 이 사실을 고해서 강호동과 올밴을 쓰러지게 만들었다.
         || 1994년 || [[태산맥(영화)|태산맥]] || 염상구 || 주연 || ||
         || MBC || [[혼(드라마)|혼]] || 도식 || 조연 || 사망 ||
         ||<|6> 2007년 || KBS2 || 착한여자 일홍 || 서준만 || 주연 || ||
         || 1990년 || [[상예술대상]] ||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역사는 흐른다 ||
         || 춘사대상영화제 || 새얼굴 남자연기상 ||<|4> [[태산맥(영화)|태산맥]] ||
         ||<|2> 1995년 ||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
  • 백진희 . . . . 18회 일치
         | 이름 = 진희
         '''진희'''([[1990년]] [[2월 8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90년 2월 8일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김천시) (봉산로) 에서 태어났다. 2008년 독립영화 《사람을 찾습니다》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반두비]]》로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1=윤희성|제목=진희│My name is…|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538|날짜=2013-06-18|확인날짜=2016-01-27|뉴스=텐아시아}}</ref><ref>{{뉴스 인용|저자1=최은화|제목=[쿠키人터뷰]‘어쿠스틱’ 진희, “한국판 아만다 사이프리드? 좋죠~”|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88698003&cp=nv|날짜=2010-11-02|확인날짜=2016-01-27|뉴스=쿠키뉴스}}</ref>
         현재 배우 [[윤현민]]과 열애 중이다. 둘은 2016년 열애를 인정했으며, 현재 3년째 열애를 이어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저자=민경|제목=“같은 카페?”...윤현민♥진희, 여전히 달달한 일상|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8&no=415946|뉴스=스타투데이|출판사= |위치= |날짜=2018-07-02|확인날짜= }}</ref>
         | rowspan="2" | 진희
         | 제46회 [[상예술대상]]
         | 제4회 [[상예술대상]]
         }}</ref> [[송은이]]는 진희 [[박솔미]]와 고교(명덕여고) 동문이다.
         * {{싸이월드|26585274|진희}}
         * {{IMDb 이름|3675628|진희}}
         * {{언어링크|ko}} {{KMDb 사람|00050294|진희}}
         * {{한시네마 인물|Baek_Jin-hee|진희}}
         |title = 진희의 수상 목록
         {{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부산광역시 출신]][[분류:수원 씨]][[분류:상예술대상 수상자]]
  • 고두심 . . . . 17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대상'''}}} ||
         ||<-5><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방송 3사 [[연기대상]] [[트리플 크라운]], 여기에 [[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까지 수상한 유일한 [[그랜드슬램|그랜드 슬래머]]'''
         [[연기대상]] 최다수상자이자 방송 3사에서 모두 대상을 수상한 유일한 배우이다. 데뷔 28년 차이던 2000년도에 [[SBS 연기대상]]까지 수상하며, [[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포함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동하는 배우가 받을 수 모든 대상을 다 받은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상예술대상을 포함하면 총 대상 수상 횟수는 7회로 이는 모든 배우를 통틀어 역대 대상 최다 수상기록이다.
         2004년에는 KBS와 MBC에서 동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2004년 한강수 타령은 인기도 호평도 없어서 역대 최악의 연기대상 시상식 중 하나로 혹평을 받았다. 고두심 본인도 솔직히 꽃보다 아름다워는 기대했지만, 한강수타령은 자신이 탈 줄 몰랐다고 회고하였다.] 여기에 더해 [[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대상까지 수상해 그냥 [[넘사벽]] 수준의 수상경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 [[조선왕조 오년]] [[설중매]] (MBC, 1984) - [[인수대비]]
          * [[조선왕조 오년]] [[인현왕후]] (MBC, 1988) - 숭선군 부인
          * 깍두기 (MBC, 2007~2008) - 금희
          * 1977년 13회 [[상예술대상]] tv 부문 신인상
          * 1985년 21회 상 예술 대상 tv 부문 인기상
          * 1989년 25회 상 예술 대상 tv 부문 인기상
          * 1990년 26회 상 예술 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1991년 27회 상 예술 대상 tv 부문 연기상
          * 1993년 29회 상 예술 대상 tv 부문 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마기/333화 . . . . 17회 일치
          * [[연룡]]는 지금 알라딘의 힘은 솔로몬 왕이나 시바여왕을 능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 누구도 남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에 다섯 번째 동료를 영입하기로 하는데 [[연룡]]은 처음엔 누나 [[연영]]을 추천하나 아직도 깨어나지 않아 보류.
          * 룡은 그밖에도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동, 그 사이 [[쥬다르]]가 다섯 번째 동료 후보라고 새로운 얼굴을 데려온다.
          쥬다르는 그가 너무 자신만만한거 아니냐고 투덜거리는데 [[연룡]]은 알라딘은 구세계(알마트란)과 신세계의 마법을 전부 통달했으니 현재 실력은 그 솔로몬 왕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불만스러운 듯 하지만 한 마디도 반박을 못한다.
          * 알라딘은 성궁에 가기에 앞서 일단 거기에 가면 자신이 [[우고]]와 결판을 내겠다고 말한다. 그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우고는 미쳤다"고 언급한걸 신경쓰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우고가 협조해서 신드바드가 성궁을 주무르고 있을 거라고 보고 꼭 그와 만나겠다고 말한다. 룡도 신드바드의 힘을 반감하는 일이라면 해볼만하다고 맞장구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게이트를 열어서 성궁에 가는 방식은 누군가 게이트로 계속 마고이를 공급해 줘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넷 중 하나는 여기에 남아야 한다는 것. 불편함 침묵이 찾아오고 알라딘은 얼렁뚱땅 쥬다르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성궁에서 날뛰는 편이 재미있을 거라며 절대로 남지 않겠다고 한다. 마고이를 보내는 역할은 금속기 사용자도 가능하기 때문에 연룡이나 알리바바에게 시키려고 해보는데, 이들 역시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국 왕의 그릇 둘과 마기 둘이 답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시간만 낭비한다.
          * 병림픽 끝에 알라딘이 마고이 전송을 담당할 다섯 번째 동료를 영입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신드바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인물이여야 해서 인선이 어려운 문제. 그때 룡과 쥬다르가 동시에 "짚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알리바바가 잠시 자리를 지키고 쥬다르는 혼자, 룡은 알라딘의 전송마법진으로 각자 동료 후보를 데려오기로 한다.
          * 룡이 간 곳은 황제국.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연영]]이었다. 분명 그녀는 알라딘의 연금마법으로 재구축된 채 잠들어 있으니 신드바드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연금마법은 원래 시간이 걸리는 마법이고 언제 깨어나게 될지는 알라딘 자신도 모른다. 룡은 아쉬워하며 가져왔던 영의 금속기는 일단 그녀의 품에 안겨준다.
          룡은 영 말고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추천을 하는데.
         연영은 당장은 깨어나지 않았지만 금속기를 돌려받은 점등을 보면 나중에 동료로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연룡이 또다른 인물이 있다고 언급한 걸로 보아 [[연홍염]]도 가능성이 있다. 그 밖에 아직 암흑대륙에 있는 인물이라면 루프의 간섭을 받지 않아 전력화가 가능할 것이다.
  • 손담비 . . . . 17회 일치
         | 설명 = 2012년 11월 19일 《[[눈물이 주르륵]]》 컴 기념 언론간담회에서
         이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데뷔를 준비했는데, 데뷔 전 바람의 〈사랑하다〉, [[메이비 (가수)|메이비]]의 〈다소〉와 같은 뮤직비디오와 [[삼성전자]], [[SK 텔레콤]]과 같은 대기업 광고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담비가 온다1]MSN 재팬이 주목한 거물 신인|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300&g_serial=260493|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7-05-04|확인날짜=2014-05-15}}</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데뷔전부터 잇달아 대기업 모델 '톱스타 예약'|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507444112344&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5-05|확인날짜=2014-05-15}}</ref> 또한 비보이 대회 'R16 코리아 스파클링 서울'에 출전했다.<ref name="seg1"/> 그리고 2007년 6월 14일, 손담비는 데뷔 싱글 〈[[Cry Eye]]〉를 발매했다. 〈Cry Eye〉는 손담비의 뛰어난 춤실력을 보여주는데는 충분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Cry Eye〉의 안무 중 [[크럼핑]]이라는 장르를 안무로 삼아 이 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렸다.<ref name="seg1">{{뉴스 인용| url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제목 = '여자비' 손담비, 댄스로 뜨고 가창력까지 장착| 날짜 = 2007-07-08| 저자 = 한준호 기자| 확인날짜 = 2007-08-07| 뉴스 = 세계일보|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416/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보존날짜 = 2007-09-30| 깨진링크 = 예}}</ref> 또한 크럼핑은 고난이도 댄스로 꼽혀 아시아에서도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한 뒤, 미국으로 떠나 L.A 밀레니엄 스쿨에서 발레, 재즈, 크럼핑 댄스 등을 배우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등 연습에 매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 여름 컴 환영. 내 인생 최대의 도전”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51917202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현우, 정유진|날짜=2008-05-20}}</ref>
         2008년 2월 29일 게임 [[프리스톤테일2]]의 주제가 "Change the World"를 불렀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36656 네이버 뮤직 - Change The World (프리스톤테일 2) O.S.T] 《[[네이버]]》</ref> 같은 해 4월 29일 손담비는 첫 미니 앨범 ''[[Mini Album Vol.1]]''을 발매하며 컴 했다. 앨범의 타이틀 곡 "Bad Boy"로, 전 에스블러쉬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가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 때 손담비는 주로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활동했다. "Bad Boy"는 발표한지 2주만에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때마다 검색어 순위는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배드 보이', 29일 미니앨범 공개 후 '대박 조짐'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27079|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08년 4월 20일|확인날짜=2011-02-06}}</ref>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에는 조회수가 20만 건이 넘었고, 무대에서 입고나온 코르셋 스타일의 파격적인 의상도 많은 관심을 받아 홈페이지가 폭주하기까지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코르셋패션 "열기"...홈페이지 또 "혼수상태" |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3|출판사= 깜뉴스|저자=신명희 기자|날짜=2008년 5월 25일|확인날짜=}}</ref>
         5달 후인 2008년 9월 17일 두 번째 미니 앨범 ''[[Mini Album Vol.2]]''의 타이틀곡 〈미쳤어〉의 티저 영상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티저 영상은 공개후 각종 동영상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받으며 컴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미쳤어' 티저 영상에 팬들의 반응 뜨겁네~ |url=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11539|출판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연예|저자=스포츠연예팀|날짜=2008-09-19|확인날짜=}}</ref> 이어 18일에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타이틀곡인 〈미쳤어〉 열풍이 한국에 불었는데, 특히 처음 후렴구부분의 의자춤이 인기를 끌었다. 각종 연예인들은 의자춤 패러디를 했는데, 재일 먼저 배우 [[허이재]]가 패러디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 허이재, 손담비 ‘미쳤어’ 의자춤 깜짝공개 눈길 확~|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0191843251001 |출판사= 뉴스엔 연예|저자=이현우|날짜=2008-10-20|확인날짜=}}</ref> 계속해서 김효진, 신봉선, 양정아, 현영, 노홍철 등이 예능에서 따라했으며, 《[[내 사랑 금지옥엽]]》의 유인영, 《[[수상한 삼형제]]》의 오지은 등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를 했다. 또한 일반인들도 UCC를 통해 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올렸다. 너도나도 다 따라한탓에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쳤어〉 금지령까지 내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 방송가, 손담비 '미쳤어' 이제 그만!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80986|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박재덕 기자|날짜=2008년 12월 22일}}</ref> 2008년 11월 17일에는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의 싱글 〈[[Family (Special Edition)|패밀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이티마우스, 이번에는 손담비‥'패밀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372273|출판사=네이버|저자=유상우|날짜=2008-11-11|확인날짜=2012-05-20}}</ref> 가수 활동 이외에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우리결혼했어요]]》에 [[마르코 (배우)|마르코]]와 함께 가상 부부로 나와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베스트커플상 수상했다.<ref name="2008MBC"/> 또한 각종 CF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는데, 1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몸값, 1년만에 3배 이상 높아져 '미쳤어' |url=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0966034|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날짜=2008-11-12|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반 ''[[Type-B]]''의 발매로 컴을 준비했다. 음반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영상, 팬들 반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영상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상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순|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반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순위가 0순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순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에서 수상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상 손담비, 뉴스타상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컴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영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반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상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상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절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영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절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절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2012년 11월 12일 손담비는 네 번째 정규 앨범 《[[눈물이 주르륵]]》을 발매하면서 컴했다. 동명의 타이틀곡 〈눈물이 주르륵〉은 [[용감한 형제]]가 작곡한 노래로, [[가온 디지털 종합 차트]] 10위까지 올랐다. 2013년 1월 26일부터는 [[tvN]]의 드라마 《[[PLAY GUIDE]]》에 손담비 역으로 출연한다.
         또한 데뷔 초부터 [[문지은]], [[선하]], 제이제이와 함께 "포스트 이효리"라는 호칭을 얻으며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선하·제이제이..'제2의 효리' 경쟁 뜨겁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80129090514652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8-01-29|확인날짜=2010-11-05}}</ref> 하지만 2008년 말 〈미쳤어〉로 히트를 치며 앞에 세 여가수중 유일하게 인기를 얻은 가수가 되었다. 특히 〈미쳤어〉의 안무인 의자 춤은 손담비를 스타로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줬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탄생' 손담비의 전략은 바로 이것!|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10523482489834&nvr=y|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환횽희 연애패트롤|날짜=2009-01-21|확인날짜=2010-11-05}}</ref> 연이어 2008년 정규 1집 타이틀곡 〈토요일 밤에〉 역시 크게 히트하며 국내 최고의 여자 가수로 자리매김했다.<ref name="Mini 2"/> 이때부터 본격적인 포스트 이효리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효리]] 역시 "손담비, 서인영, 아이비 까지는 기사에서 자신과 붙여 놔도 괜찮다"며 인터뷰중 손담비의 존재감을 인정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대항마` 손담비-서인영은 언제컴?|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0&no=190546|출판사=스타투데이|저자=이현우 기자|날짜=2010-04-14|확인날짜=2010-11-07}}</ref> 하지만 손담비는 이효리와 라이벌 구도에 대해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이효리의 내공을 따라갈 수 없다"라며 말하기도 했다.<ref name=Bi2>{{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와 라이벌? 내공 따라갈 수 없어”|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출판사=리뷰스타|저자=홍샘 기자|날짜=2010-09-05|확인날짜=2010-10-12}}{{깨진 링크|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 }}</ref>
  • 김영철(배우) . . . . 16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남편 "강세풍"역할을 맡아 부인 역할을 한 [[이미숙]]과 사실적인 코믹함을 바탕으로 한 부부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 이 드라마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부부들이 주인공으로 [[길용우]]-[[양미경]], [[유동근]]-[[이미영]], 김영철-이미숙이 각각 다른 3가지 부부생활을 보여줬다. 당시 김영철은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기가 센 부인에게 그게 잘 먹히지 않아 부인과 매일 부딪히는 남편 '강세풍'연기를 통해 코믹한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당시 [[이영애]]가 조연(길용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이영애의 첫 TV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하다.]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미로 꼽히는데,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S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했고 1회 대상을 이 드라마의 [[이미숙]]이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시청자들(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출연한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는 극 중 [[신현준(배우)|신현준]]과 [[이병헌]]의 친형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집안에 입양된 신현준이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하차한다. 이듬해 방영한 '머나먼 나라'에서는 [[김민종]]의 아버지이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절름발이로 등장하는데 방영한지 20년이 다된 지금도 이 드라마의 팬이라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연기일만큼 일품이다.
         대왕세종이 기존의 대하사극의 느낌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가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 되버렸고 시청률도 부진해서 덩달아 태종 이방원역까지 아쉽게 묻힌데 비해 공주의 남자는 달랐다. 기대치 않았던 젊은 주연배우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이긴 했으나 주연은 아니었으며 애초에 분량이 적고 조용한 캐릭터였다. 당시 공주의 남자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더군다나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아가씨를 부탁해]] 이후 소속사 계약만료로 약 2년간 공기가 있었다가 [[괜찮아, 아빠딸]]로 복귀한 후였다. [[박시후]]도 사극 출연은 2008년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가 전부이며 사극의 메인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일지매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연기여서, 공주의 남자 방영전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 게다가 [[송종호]]는 아예 사극 첫 출연이라 당시 극 초반에 발성이 무척 어색했다. 결국 촬영 중에 이순재로부터 사극 발성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너무 불안한 캐스팅이라 느꼈는지, 서브조연 커플인 경혜공주와 정종 역은 [[왕의 여자]],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에 출연해 나이에 비해 사극 경험이 풍부했던 [[홍수현]]과 동 나이대 사극본좌 [[이민우]]가 캐스팅되었다.] 속에서 이순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예상치 못한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얻게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김종서]] 역을 맡은 [[이순재]] 옹과의 연기 대결은 이 드라마 초반부의 미. [[박시후|드라마 두]] [[문채원|주인공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훌륭하다고도 볼 수는 없었는데[* 실제로 연기대상에서 두 주인공이 남녀 최우수상을 싹쓸이하자 드라마 인기빨로 수상했다는 말이 조금 있었다.] 베테랑 김영철이 중간에서 미칠듯한 연기를 뽐내는 바람에 더 그래보였다(…). 이순재가 극의 1/3 지점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홀로 미친존재감을 선보이며 끝까지 열연했다. 이 작품은 최고시청률 25%까지 기록했는데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수양대군 캐릭터는[* 궁예나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포지션이다. 그냥 '''악역 그자체'''. 아마 김영철이 연기한 배역중 최악이자 최고의 악역이 아닐런지.] 욕을 한사발 얻어먹으며 '''[[천하의 개쌍놈]]'''이라 씹혔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서 나름 반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시청자들의 평가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mNFY4R3IA5A|마지막회영상(스포주의)]] 한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김영철의 열연 덕에 24화동안 쌓아온 욕들 어디로 가고 수양대군을 안쓰러이 여긴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황당했다고.(...)[* 사전제작이었던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 퀄리티가 떨어졌으나 순전히 김영철만의 광기어린 열연으로 극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물론 박시후와 문채원도 제 몫을 다해줬다.] 종영 직후 나온 기사에도 수양대군의 마지막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에 감탄하는 댓글이 많았다.[[http://news.nate.com/view/20111006n35385?mid=n1008|당시기사]]
         아버지가 이상해 이후로는 2017년 7월 말부터 tvN에서 방영될 예정인 [[크리미널 마인드(tvN)|크리미널 마인드]]에 출연한다. 국정원 소속의 국가범죄정보국 산하 행동분석팀의 설립자이자 팀을 지휘하는 책임자인 국장 산 역을 맡았는데 본작의 제작사나, 제작진의 필모그래피를 감안하자면 [[아이리스(드라마)|전작]]을 염두에 둔 캐릭터가 아닌가 싶은 수준.
         || 2009년 || [[아이리스(드라마)|아이리스]] || KBS2 || [[산(아이리스)|산]] 역 ||
         || 2010년 || [[아테나:전쟁의 여신]] || SBS || [[산(아이리스)|산]] 역 ||
         || 2013년 || [[아이리스 2]] || KBS2 || [[산(아이리스)|산]] 역 ||
         || 2017년 || [[크리미널 마인드(tvN)|크리미널 마인드]] || tvN || [[산(아이리스)|산]] 역 ||
          * 1989년 25회 [[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 2001년 37회 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 마기/312화 . . . . 16회 일치
          * 알라딘은 물리법칙을 조작하는 마법을 구사하는데 연영(아르바)는 "제 아비와 같다"고 경악.
          * 알라딘은 아르바를 압도하고 제압, "연금마법"으로 영의 육체를 아르바의 자식이 아닌 새로운 육체로 치환시켜 아르바의 정신을 쫓아낸다.
          * 이제 이세상엔 아르바가 갈아탈 육체가 없고 이세계에 있는 본체만 제거하면 되는데, 아르바는 전갈의 모습이 되어 연룡의 육체를 빼앗으려 한다.
          * 룡은 이 상태의 알라딘은 누구도 건드릴 수 조차 없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알 사멘의 모든 공격이 닿지도 않는다.
          * 알라딘은 영을 돌려받겠다는 말과 함께 아르바의 몸을 붙든다.
          * 현재 영은 겉보기엔 변화가 없지만 실제론 완전히 다른 인체로 치환된 상태. 루프는 그 안에 잠들어 있다.
          * 룡은 시스콤끼가 발동해서,영을 껴안고 있는 알라딘을 견제. 아르바의 정신체의 본체를 처리하고 누님을 맞이하러 가겠다고 다짐한다.
          * 하지만 이제 영의 몸을 치환시켜서 아르바가 갈아탈 몸이 사라진 것.
          * 룡과 알라딘은 이에 안도하지만 알라딘이 영의 가슴을 성추행하려고 하자 제지당한다.
          * 이들이 티격대는 사이 수상한 전갈이 룡에게 접근하는데.
          * 그 정체는 아르바. 아르바는 "아직 네가 있다"며 룡의 몸을 빼앗으려 하는데...
          * 가슴을 만지는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않은듯(..) 영의 가슴을 성추행하려고 하자 룡이 견제한다.
          * 아르바는 룡의 왼손으로 접근하는데, 어차피 그 팔은 홍염이 준 팔이라 찔러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 윤종신 . . . . 16회 일치
         '''"뮤지션은 휴지기(공기)가 필요하다."에 대한 완벽한 안티테제'''
         2009년 [[무한도전]]의 '강변대로 듀엣 가요제'에 '영계숙'을 작사/작곡하기 했다. 그 기세로 또 하나의 푸드송 "막걸리나"를 내놓았다(국순당이 부탁해서 만든 막걸리 로고송) 2013년에는 망고 쉐이크라는 노래도 냈다. [* 다만 팥빙수와는 다르게 영계숙이나 막걸리나, 망고 쉐이크는 레시피를 다루진 않았다.] 2014년에는 '눈송이 빙수', 2015년에는 '쿠바 샌드위치'로 영계숙에 이은 두번째 핫 푸드 송도 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 [[박경림]]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쳤던 곡 '착각의 늪'이 수록된 앨범 '박고테 프로젝트'에 '안녕 핫바'라는 푸드송을 수록하기도 했다. 당시엔 본격적인 예능인이 되기 전 시절이라 방송에서도 진지하게 작사작곡을 하는 모습만 비춰졌다.
          * 요리 및 음식: 윤종신 - 팥빙수, 영계숙, 쿠바 샌드위치, 막걸리나, Home Made, 눈송이 빙수, 망고쉐이크...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창법은 풍부한 성량과 감정을 담아내는 호소력있는 보컬인데, 윤종신의 목소리는 거의 정반대이다. 발음도 발성도 깔끔해서 담하면서도 절절하게 감정이 묻어나는 편이다. 따라서 가사 전달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담하면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감정표현이 뛰어난 보컬.'''
         이 보컬은 윤종신의 가사와 맞물리면 오히려 더 큰 감정 동요를 일으킨다. 이별하고 미쳐 죽을 것 같은데 그걸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하게 부르니 앞에서는 담담하게 얘기해도 속은 썩어들어가는 이별한 남자의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너의 결혼식'에서 절규하듯 부르던 시절의 보컬 스타일과 비교하면 감정을 조금 누르고 절제시킴으로써 더 애절하게 만드는 스타일.
         특히 5집의 경우 [[1996년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스타급 가수들의 컴 경쟁 속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은 앨범으로 가요톱텐에서는 최고 4위,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3주 간 1위 후보에 올랐다. 입대하기 직전에 부랴부랴 냈던 6집(1996. 11)까지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확실히 이 시기는 인기로 보나 히트곡의 중량감으로 보나 명실공히 [[대한민국]] 발라드판에서 거의 [[신승훈]]의 바로 아랫급 정도의 지위는 누렸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여름 콘셉트 앨범인 9집 '그늘'을 내놓았다. [[이규호(음악인)|이규호]]가 작곡한 '''팥빙수'''가 들어간 앨범. [[이한철]] 등의 동료 가수들이 호평했다. 2010년 비트 김봉현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베스트 앨범으로 9집을 [[http://hyunjiwoon.tistory.com/1331|꼽은 바 있다]].[* 윤종신 曰, "9집이(나의 베스트 앨범이)다. 제일 창의적인 작품이었다. 수목원에서 같은 곡은 우리나라에서 나만 할 수 있다. 버릴 곡이 하나도 없었다. ... 음악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팥빙수가 그렇게 만만한 노래가 아니다. [[이규호(음악인)|이규호]]가 곡을 호락호락하게 쓰지 않았다. 어렵게 만들었는데 쉽게 들리는 노래가 멋있는 노래다. 9집은 전곡이 어쿠스틱 모양새가 나온다."]
         앞서 언급한 8~10집은 5집과 함께 윤종신을 대표하는 명반으로 평가된다. 평론가들은 대개 10집과 5집을 윤종신의 디스코그라피 중 으뜸으로 꼽는다. 참고로 한겨레에서 만든 음악웹진 비트에서 선정한 [[200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http://www.soribada.com/#/Music/HotChart/BestAlbumSub.php?articleNo=103|'Behind The Smile'(10집)이 51위,]] [[199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http://www.soribada.com/#/Music/HotChart/BestAlbumSub.php?articleNo=362|'우 (愚)'(5집)가 27위에 선정되었다]]
         [[2008년]], 오랜 공을 깨고 11집 동네 한 바퀴를 내놓았다. 결혼 및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처음이고, 현재까지 마지막 정규앨범이다[* 편의상 월간 윤종신의 연말 행보 앨범도 정규 n집으로 표기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정규 앨범은 아니다.]. '동네 한 바퀴', '내일 할 일', '야경' 등 명곡이 다수 수록돼 있지만... 윤종신의 음방 활동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라디오 스타|라스]] 및 [[명랑 히어로]]에서 김구라의 놀림거리로 전락했었다. 이후 음악과 예능의 병행을 고민하던 윤종신은 특유의 꾸준함을 활용, 몇 년에 한 번 정규앨범을 내놓던 기존 가수활동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게 되는데...
         2010년 윤종신의 음악활동은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로 요약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M.net에서 방영한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이라는 프로그램인데, 당시 윤종신이 아끼는 인물들(하림, 조정치, 정지찬 등)이 많이 나왔었다. 디렉터스 컷에서는 출연진들이 특정 지역을 여행하면서, 윤종신이 미리 만들어둔 멜로디에 함께 가사를 붙였다. 여기서 만들어진 수많은 노래 중에 단 두 곡, '새로고침'과 '빈 고'이 Director's Cut이라는 앨범으로 2010년 1월에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67802|발매]]되었는데...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에서의 [[영계숙]]을 작곡했다. 그런데 작곡 후 [[정준하]]의 보컬이 아쉬웠는지, 본인이 직접 불러 리믹스를 해 유료 음원 시장에 내놓았다. 이에 대한 논란은 후술.
          * 2011년 2월에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정관수술을 했음을 고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aAKYzwbg95c|이미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2012년]] [[2월]] 윤종신은 [[SBS]]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 출연해 [[난치병]]인 [[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다. 크론병은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모든 소화기관에 염증이 생길 수 있는 병으로, [[수술]]로도 완치는 불가능하며 평생 약물치료를 해야하는 병. 윤종신은 2006년에 처음으로 병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한다. 너무 늦게 발견해 소장을 60cm나 잘라야 했고 지금은 약물 치료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윤종신이 지금까지 예능에서 [[치질]]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며 웃으며 했던 얘기가 사실은 이 크론병으로 인한 치루질환을 말한 것이었다고… 난치병을 웃음소재로 바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줘야 했던 윤종신의 안타까운 고이었다. 이 소장수술을 하고서 마취가 풀리면 링거에 연결된 [[모르핀]]이 조금씩 나오도록 장치를 해 놨다고 한다. 간호사가 너무 아플 때마다 버튼을 한번씩 누르라고 했다고. 그런데 마취에 깨면서 "아, 아! 아!!!" 비명 지르며 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 그리고 3일간 기절해 있었다고 조미료 섞인 썰을 예능에서 풀었다... [* 물론 실컷 눌렀다고 해서 모르핀이 쭉 나왔을 리는 없다. 모르핀이 한번에 많이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눌러도 실제로는 한두 번 밖에 안들어가도록 설계되어있다. 대체로 10분 간격으로 자동으로 투입되나, 그 사이에 몇 분 안에 한해서 누를수 있다던가. 방식으로 사용한다. 실제로 수술 후 깨어난 뒤에 모르핀 때문에 다시 기절해서 3일동안 못 깨어난다면 의료사고가 될 수 있어서 병원 뒤집어져 난리난다. 최소한 하루 이상 지난 뒤 '윤종신 수술 후 혼수상태로 위독'으로 연예뉴스에 나왔어야 할 정도..] 아직도 소화기 쪽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모양. [[김구라]]에 따르면 윤종신이 배가 아파 라스 녹화가 지연된 바 있다고. [[http://naver.me/xp0l7q57|링크]]
  • 이상백 (1904년) . . . . 16회 일치
         | 이름 = 이상
         | 필명 = 호(號)는 상(想白), 무일재(百無一齋)
         '''이상'''(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체육인, 작가, 언론인으로, 호는 상(想白), 무일재(百無一齋)이다.
         이상은 [[1904년]](광무 7년) [[8월 6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서문로]] 12번지의 양옥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이며, 어머니는 김신자(金愼子)로 [[김해 김씨]]이다. 4형제 중 셋째이다. 형 [[이상정]]은 독립 운동가이며, [[이상화 (시인)|이상화]]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시인, 작가이며 넷째 아우 이상오는 정통 수렵가이자 [[바둑]] 유단자이다. 그의 집안은 [[대구광역시|대구]]의 명문가로 대 부잣집이었으나 아버지 이시우는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상 형제의 할아버지 이동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구]]에 신식 학교인 우현서루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남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교사를 초빙, 수학, 역사, 국어, 영어, 일본어 등 신식 학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이동진의 뒤를 이어 큰아버지 이일우가 우현학교의 일을 맡아보았다.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했는데, [[2000년]]대 초반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학 학장 3명, 교수 10명, 의사 30명, 장군 2명, 언론·출판분야 11명을 배출하였다.<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또한 사촌 [[이상악]]은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육당 [[최남선]]과 사돈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 중에는 '박작대기' [[박중양]] 집안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하였다.<ref name="daemyonh"/>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에 의해 양육되었다.
         할아버지 이동진, 부 이일우가 세운 우현서루(友絃書樓)에서 한학과 수학, 국어 등을 수학하고, [[1910년]]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만년에는 그는 국학, 동양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서울대학교]]에 동아문화연구소를 설립, 초대 소장으로 재직하며 연구 계획을 수립하고 학술 세미나 개최를 기획, 준비하였다. 그는 장서가로, 젊은 시절부터 헌책방과 각종 서점을 돌며 평소 희귀한 한중고활자본을 비롯한 진귀한 많은 서적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만년에 자신이 수집한 책들 모두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상문고(想白文庫)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 문화사 연구 논고》, 《이조 건국의 연구》 등이 있다. 사후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그의 이름을 딴 이상배 한-일 대학선발농구대회가 개최되고 있고, 아시안게임 최우수선수에게는 이상배(杯)가 특별 수여되고 있다.
         ** 형: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 [[1943년]] [[4월 25일]], 작가, [[독립운동|민족]] [[시인]]. 아호(雅號)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아(白啞).)
         * [http://www.koreastory.co.kr/daegustory/human/leesangbag.htm 이상(李相佰, 1904~1966)]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65&aid=0000041893 OLD SCHOOL 한국 체육사의 巨木 이상]
         * [http://www.mcst.go.kr/web/childCourtNew/storyCourt/peopleView.jsp?pRo=10&pSeq=40 문화인물 이야기:이상]
  • 김희애 . . . . 14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5><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대상'''}}} ||
         1996년 [[이찬진]]과 [[형부]]한 후 슬하에 1998년과 2000년에 기현, 기훈 두 조카를두고있다. 결혼 후 공기를 가지며 [[수원과학대학교]]에서 연기 강의를 하고 육아에 힘쓰다가 2003년 "[[아내(드라마)|아내]]"를 통해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1999년 일일드라마 "하나뿐인 당신"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둘째의 임신으로 도중 하차하였는데 이에 앞서 MBC 세 번째 남자, KBS 2TV 진달래꽃 필때까지 등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그리고 2003년 [[SBS]]에서 '''[[완전한 사랑]]''', 2007년 '''[[내 남자의 여자]]'''를 통해 미시들의 우상으로 등극한다.
          * [[조선왕조 5년]] 대원군(1990, MBC)/명성황후
         || 제23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여심 ||
         ||<|3> 1993년 || 제29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2> [[아들과 딸]] ||
         ||<|2> 1994년 || 제30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3> 2003년 || 제39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아내(드라마)|아내]] ||
         ||<|2> 2004년 || 제40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대상''' ||
         || 2013년 || 제49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아내의 자격]][* 공교롭게도 제목에 '아내'가 들어가는 작품으로 2회나 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
         ||<|5> 2014년 || 제50회 [[상예술대상]] || LF패셔니스타상 || ||
  • 마기/313화 . . . . 14회 일치
          * 아르바는 일행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연룡의 팔을 찌르지만 이미 그의 몸은 연홍염의 루프가 섞여 있어 갈아탈 수가 없다.
          * 그리고 한때 생사를 다투었던 연룡과의 재회. 둘은 복잡한 표정으로 손을 잡는다.
          * 아르바는 일행의 눈을 피해 연룡의 왼손을 찌르는데 성공한다.
          * 룡은 처음에는 별것 아닌것처럼 반응하지만 곧 머리를 감싸고 아르바가 침입하는거 같다고 말한다.
          * 그런데 아르바의 혼을 토해내 버리는 룡.
          * 모든 것이 룡의 연기였다. 속았던 알라딘은 룡의 인성을 탓하며 놀래키지 말라고 한다.--성추행범 놈이 인성을 논하는 시대--
          * 룡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린다고 말한다.
          * 현재 연룡은 순수한 아르바의 아이가 아니다. 연홍염이 피닉스로 팔다리를 이식해주었을 때 루프가 섞여버린 것이다.
          * 룡은 이제 자신은 순수하게 연가의 사내이지 홍염과는 무관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며 "더이상 네가 갈아탈 몸은 없다"고 한다.
          * 그리고 연룡도 만나는데.
          * 알리바바는 그의 다리를 자른 일을 사과하고 룡은 그를 한 번 죽였던 일을 사과한다.
          * 둘은 어색하게 말을 주고 받는데, 알리바바는 연룡의 복잡한 표정을 보고 웃고 만다.
          * 오랜 만에 손을 맞잡으며 인사하는 알리바바와 룡.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14회 일치
          보스턴 중부 힐 요새 북동쪽 상자-병사들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무기 칼날.
          보스턴 남부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은광석.
          보스턴 북부 동쪽 해안 선박의 상자-경비병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납광석
          보스턴 중부 서쪽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금광석.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호밀+나무통+보리.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면모교직물+재봉실+염료.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양모+염료+재봉실.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산토끼 고기+채소.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라일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유리병+캣닙+보리.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라일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유리병+꿀.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3, 빅 데이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곰 발톱+엘크 가죽+금광석.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종이+염료.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랜스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호두나무 목재+소나무 목재+히코리 목재.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랜스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화약+소나무 목재.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14회 일치
          * 해당 지역의 성들을 불교로 개종시킴
          * 해당 지역의 성들을 불교로 개종시킴
          * 주변 지역의 성들을 불교로 개종시킴
          * 해당 지역의 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킴
          * 주변 지역의 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킴
          * 해당 지역의 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킴
          * 주변 지역의 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킴
          * 해당 지역의 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킴
          * 주변 지역의 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킴
          * 해당 지역의 성들을 잇코로 개종시킴
          * 주변 지역의 성들을 잇코로 개종시킴
          * 해당 지역의 성들을 잇코로 개종시킴
          * 해당 지역의 성을 기독교로 개종시킴
          * 해당 지역의 성을 기독교로 개종시킴
  • 마기/334화 . . . . 13회 일치
          * 네르바의 이미지가 너무 약해서 [[알리바바 사르쟈]]는 물론 [[알라딘(마기)|알라딘]], [[연룡]]도 알아보지 못한다.
          * 연룡은 "동료라도 생각이 일치할 수는 없다. 맞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 그를 데려온 [[쥬다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대충 기억이 나는데. [[유난]]이 암흑대륙에서 알리바바를 구해줬을 때 이야기한 세 명의 수배자 중 한 명이다. 귀왜국의 [[야마토 타케루히코]]와 황제국의 [[연룡]]의 뒤를 잇는 뢰엠의 금속기 사용자. 그는 본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등 기존 지도자들을 타도할 목적으로 금속기를 은닉한 채 반란을 도모하고 있었으나 그 거창한 설명과는 달리 철저히 존재감이 없이 살아왔다. 쥬다르의 설명으로는 일단 이 녀석도 타전을 해서 검은 루프를 쓸 수 있다는데.
          * 알리바바가 추궁하자 쥬다르는 간단히 인정한다. 그때는 이런 녀석 말고는 전쟁하겠다고 설치는 놈이 없었고 룡의 행방도 찾지 못해서 대충 '''타협한'' 거였다고. 네르바가 그 말을 듣고 분개하며 털어놓은 말에 따르면 처음엔 좀 치켜세워졌지만, 금방 싫증을 내서 결국 아무 도움도 안 됐다. 갑자기 무관심해지더니 집에 간다고 사라지질 않나, 나중에 나타나서는 "쓸데없는 혁명 놀이 보단 우리 고향에서 농사나 지어라"면서 납치, 부하들과 함께 쥬다르네 고향에서 머슴으로 부려졌다.
          방금 전까지도 한창 일하다가 오느라 행색이 요 모양 요 꼴. 네르바가 피눈물을 흘리는 사이 [[알라딘(마기)|알라딘]]과 룡이 돌아온다. 알아보지 못하는건 이들도 마찬가지고 알라딘도 그저 그의 검은 루프에만 신경 썼다.
          알리바바는 한 번 죽는 경험은 진작 했다고 대답하고 룡은 "우린 이미 서로 파트너가 죽을 때까지 목숨 걸고 싸운 적도 있다"고 맞장구친다.
          * 알라딘은 그 말을 듣고 "그러고 보면 기묘한 인연"이라며 이렇게 네 명이 손을 잡고 싸우러 갈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쥬다르는 "손을 잡았다"는 표현에 딴죽을 걸며 "손 잡은거 아니고 난 아직도 너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그러자 룡이 말한다.
          * 알리바바는 룡과, 그리고 모두와 만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지나간다. 룡과 만나고 죽기 살기로 싸우기까지. 신드바드나 [[연홍염]] 형제들을 비롯한 모든 인연과 만나고 대립하고 화해하기를 거듭한 인연들. 그 결과 곁에 남은 소중한 사람들.
          * 알리바바가 말하자 룡은 "살아서 돌아온다면"이라고 토를 단다. 알리바바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자며 어떻게 될진 몰라도 "근사한 미래를 손에 넣기 위해"라고 다짐한다.
          룡과 알리바바가 전신마장을 마친다. 알리바바의 가자는 말과 함께, 네 사람은 힘차게 성궁으로 가는 게이트에 돌입한다.
         룡이 지난 회에 언급했던 "또다른 동료 후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부에선 찌질이 포지션을 독점했던 룡이 2부 들어서는 폭풍간지만 보여주고 있다.
  • 이정재(영화배우) . . . . 13회 일치
         그 전에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던 청춘스타였지만,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고현정]]에게 일방적인 순애를 바치는 [[보디가드]] '재희'역을 맡아 과묵함과 깊은 눈빛 연기를 보여줘 폭풍 스타가 되었다. 사실 당시의 이정재는 경력이 있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시망]]인지라 그냥 말을 안 시켰던 것인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 났다. 뒤에서 묵묵히 여주인공을 지켜주는 모습이 더 멋졌던 것. 주인공인 [[최민수]]나 [[박상원]]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힐링캠프]]에서 언급하길 당시 극성 팬들은 집까지 찾아오고 사인회를 하면 그 일대가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한다.] 전국 검도장이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보고 온 남자들로 미어터질 정도로...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지키다 목숨까지 바친다는 설정 때문에 한동안 여성들의 이상형 1위가 되었고 방영이 끝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각종 매체에서의 보디가드 역은 재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면서 《젊은 남자》에도 캐스팅이 되고 《[[느낌]]》에도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품은 역시 90년대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당시 [[최민수]]보다 오히려 더 인기를 모으면서 재희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가 SBS에 쇄도하는 등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1995년에 SBS 신인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정우성]]과 공동수상).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 찍고 난 후 20대 초반에 찾아온 쏟아지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입대를 해버린다. 방위로 갔다고 비판받았으나 [[평발]]이라 방위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유재석]]과 군 동기다.[*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이른바 '마지막 방위' 세대다. 같은 날 방위병으로 입대한 다른 동기로 좌회전의 리더였던 [[김진(배우)|김진]](복무를 마친 후 연기자로 전향), [[투투(가수)|투투]]의 멤버였던 유현재 등이 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유재석이 자신을 업어 키웠다고... 당시 유재석은 [[압구정]], 이정재는 [[논현동]]에 살았는데 둘이 [[카풀]]을 했다. 그런데 이정재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차를 끌고 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기다리던 유재석이 자신의 차를 가지고 논현동까지 가서 이정재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고.
         영화 [[하녀]]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도둑들]]에선 비열한 뽀빠이 역을 맡아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필모를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 [[신세계(영화)|신세계]]를 통해 다시한번 배우 이정재를 대중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언더커버 이자성 역을 맡아 특유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내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캐릭터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겉으로 막 내뿜고 딱 봐도 --비주얼부터--강한 캐릭터인 정청에 비해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는 이자성이 밋밋할 수도 있으나 내면 연기가 원래 더 어려운 법이다.] 같이 출연한 최민식이 이자성 역할에 [[정우성]]과 이정재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자성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위태로운 분위기가 이정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결국 이정재가 이자성을 연기하게 되었다. 19세 관람 불가인 조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이자성 때문에 지나간 청춘스타로만 여겨졌던 이정재가 다시 젊은 세대들의 오빠로 컴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사회장 런웨이씬과 반달처럼 휘는 이정재의 눈웃음이 미.[* [[파일:2wr59IK.gif|width=70%]]] 실제로 저 마지막 눈웃음 때문에 신세계를 중복 관람한 여성팬들이 많았다.
         ||1998||SBS||[[야 3.98]]||주연||이영준||
         ||1995||SBS||[[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조연||재희||
         ||2015||제51회 [[상예술대상]] 인스타일 베스트 스타일상|| ||
         ||2014||제50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조연상||관상||
         ||1999||제35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태양은 없다||
         ||1997||제33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불새||
         ||1995||제31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젊은남자||
         ||1995||제31회 [[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모래시계||
  • 전인범 . . . . 13회 일치
         |본관 = [[정선 전씨|정선]]<ref>[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55110 12·12 유혈 전두환, 제 온조왕 개국공신 핏줄], 《스카이데일리》, 2016년 12월 13일</ref>
         1981년 초임지인 30사단 90연대 15중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 중 1군단장 [[이기 (1931년)|이기]] 중장에게 발탁되어 대한민국 육군 최초로 [[중위]] 계급을 달고 3성 장군인 군단장 전속부관을 맡게 되었다. 1983년 10월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 당시 이기 [[4성 장군|대장]]은 [[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합동참모의장]]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을 수행했으며, 전인범 중위 또한 이기 [[장군]]의 전속부관으로서 아웅 산 묘소 참배에 동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2/2012101200231.html "아, 가슴 아픈 이 사진... 거기에 내가 있었다"], 《조선일보》, 2012년 10월 12일</ref> 당시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 된 묘역에서 추가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그는 중상을 입은 이기 장군을 구출해내어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광복장]]을 수훈하였다. 그때 폭발로 온몸에 박힌 파편 제거수술을 받은 이기 대장이 의식이 돌아오자 마자 “각하께선 괜찮으시냐, 지금 몇 시냐, 밥은 먹었냐”라고 묻는 모습에 상관과 부하를 저렇게 챙기고 위하는 게 진짜 군인이란 것을 느끼게 되었다.<ref name="a"/>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6년 7월 28일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3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졌고 같은 달 31일 전역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7227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이천 특전사서 전역], 《연합뉴스》, 2016년 7월 2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99207 [카드뉴스] "국회의원이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라"], 《조선일보》, 2016년 8월 5일</ref> 이날 전역식에는 한미연합사령관 [[:en:Vincent K. Brooks|빈센트 브룩스]] 대장, 미 8군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2사단장 테드 마틴 소장 등 [[주한미군]] 수뇌부와 이기, [[정호용]], [[김동진 (1938년)|김동진]], [[김태영 (1949년)|김태영]] 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 중장의 전역을 축하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heebum-hong/story_b_11295018.html 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허핑턴포스트》, 2016년 8월 2일</ref><ref name="c"/>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의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국선장]]과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각각 받았으며, 특히 보국훈장 국선장은 그가 중위 시절 합참의장으로 모셨던 이기 전 국방장관이 걸어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435078 33년 전 목숨 건 구출… 다시 만난 장군과 중위], 《SBS》, 2016년 7월 28일</ref> 전 중장은 전역사에서 선배 장군들과 미군 장성들, 동기, 후배들을 거론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던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보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728010013908 전인범 중장 전역식 "부하 잘 보살피면 부하들이 알아서 윗사람 보살핀다"],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28일</ref> 그는 “군인들이 진급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약속을 지켰다.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은 베레 영원하라”는 특전 정신을 외치며 전역사를 마쳤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o9JyXV5Hyo 전인범 장군 전역사 영상(discharge speech of LTG. INBUM CHUN)], 《YouTube》, 2016년 7월 28일</ref>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2009년 11월 27사단장 취임식 때 부인 심화진이 총장으로 재임 중인 성신여자대학교의 직원들이 동원됐음이 논란이 되었다. 대법원은 그가 문재인 지지 선언 5일 뒤인 2017년 2월 9일 그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성신여대 조모 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조 교수의 의혹 제기가 일부 사실이라고 본 항소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선 2016년 11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은 고소인(전인범)의 사단장 취임식에 성신여대 ‘학생’이 동원된 사실이 없는 점 및 위 보도에는 ‘강제’로 직원과 학생을 동원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피고인(조 교수)은 어떻게 직원과 학생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것인지 전혀 밝히고 있지 못한 점 등의 이유를 들어 이 부분 제보 내용 및 보도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하였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727066 전인범 예비역 중장 명예훼손한 성신여대 교수 벌금형], 《머니투데이》, 2016년 8월 16일</ref>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 피고인의 제보 내용 및 언론 보도 내용은 그 중요한 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에 합치된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검사 제출 증거들만으로는 위 내용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2025125 [단독] 전인범 '갑질' 논란, 본인 취임 행사에 부인 학교 직원 동원], 《프레시안》, 2017년 2월 9일</ref> 한편 아내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일 때 그는 자신의 SNS에 심 총장의 결을 주장하면서 “우리 집사람이 비리가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라고 자문한 뒤 “권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라고 자답해 일부 누리꾼들에게 비판 받았다. 후일 심 총장에게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자 “무죄를 확신해서 경솔한 표현을 했다”며 해명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17871 전인범 "아내 무죄 확신해 경솔한 표현… 文 계속 돕는다"], 《연합뉴스》, 2017년 2월 8일</ref>
  • 정용화 . . . . 13회 일치
         |url=http://www.todaykorea.co.kr/news/contents.php?idxno=109805|출판사 = 투데이코리아 |날짜 = [[2010년]] [[5월 19일]]}}</ref> [[5월 20일]], [[Mnet]] 《[[엠카운트다운]]》을 통해 컴하였는데,역시 큰 인기를 얻으며 각종 음원차트에서 1위는 물론, 음악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Love’, 포털사이트 점령… ‘올킬’ 시동|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33629§ion=sc4|출판사 = 프레이크뉴스 |날짜 = [[2010년]] [[5월 19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LOVE’ M카운트다운 1위 수상!
         * [[2011년]] [[3월 21일]], 첫 정규 음반 발매 및 게릴라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컴 씨엔블루 오늘(21일) 앨범발매→쇼케이스→게릴라콘서트 3단콤보|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321112618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1년]] [[3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과 함께 게릴라 콘서트…팬들 “역시 실력파 밴드는 달라”|url = 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출판사 = 마이스타뉴스|날짜 = [[2011년]] [[3월 21일]]}}{{깨진 링크|url=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 }}</ref> 선주문 10만장이 넘은 이 앨범은 발매 직 후 실시간차트와 일간차트 등에서 1위를 하였고, 컴 일주일 후 [[3월 31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시작으로 하여 공중파인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 1주 만에 '엠카' 1위··"초심 잃지 않겠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3115421314776|출판사 = 아시아경제 |날짜 = [[2011년]] [[3월 3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직감' 잇따른 1위, 'FIRST STEP'의 놀라운 '직감'|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402140007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날짜 = [[2011년]] [[4월 2일]]}}</ref> 데뷔 후 처음으로 [[Mnet]] 《[[엠카운트다운]]》과 [[KBS]]《[[뮤직뱅크]]》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 [[2012년]] [[3월 16일]] 작사 및 작곡한 <아직 사랑한다>를 선공개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아직 사랑한다’ 16일 선공개|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출판사= 티브이데일리|날짜= [[2012년]] [[3월 15일]]}}{{깨진 링크|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 }}</ref> <아직 사랑한다>는 공개하자마자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새로 나올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신곡 '아직 사랑한다', 실시간 차트 1위…기대 이상 반응|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20316000850&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날짜 = [[2012년]] [[3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아직 사랑한다’ 선공개 반응 폭발…컴 기상은 ‘쾌청’|url=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45015|출판사 = NSP통신 연예|날짜 = [[2012년]] [[3월 16일]]}}</ref>
         * [[2012년]] [[3월 26일]]에 기자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컴 쇼케이스를 왜 아침에?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69721|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3월 23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컴' 씨엔블루 "음반 낼때 마다 부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3261244591132&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음원은 발표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컴' 씨엔블루 '헤이 유' 음원공개 직후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32608080291572&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앨범은 3일만에 4만장이상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3일 만에 4만장 돌파…'3월 전쟁' 최후의 승자 |url=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2년]] [[3월 29일]] }}{{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새 미니앨범 판매량 1위, 최단 시간 4만장 돌파|url=http://interview365.mk.co.kr/news/19427|출판사 = 인터뷰365|날짜 = [[2012년]] [[3월 30일]]}}</ref> 또한, 한터 주간 순위에서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EAR FUN’, 한터 주간차트 1위! '승승장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3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61211/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보존날짜= 2014-09-08 |깨진링크= 예 }}</ref> 컴 무대를 가진 일주일 후 [[4월 5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무세운 상승세로 컴 1주만에 '엠카 1위'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출판사= 엑스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4월 5일]]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ref> 《[[EAR FUN]]》의 타이틀 곡인 '''Hey you'''가 가온차트 4월 1주차에 1위를 등극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가온차트 4월1주차 1위 등극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78505|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4월 8일]]}}</ref> 그리고 [[2012년]] [[4월 10일]]에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EAR FUN Special Limited Editio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미국화보+DVD 수록된 'EAR FUN' 특별한정판 발매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6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925085809/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보존날짜= 2015-09-25 |깨진링크= 예 }}</ref>
         </ref> 또한, 한국방송사 음악프로그램의 특성상 밴드의 라이브는 불가능한 것으로 되었지만, 컴무대를 시작으로 2주간 씨엔블루는 음향설비와 무대장치 설치 비용을 부담하여 밴드 올라이브를 선보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지상파 컴 무대 ‘올 라이브’ 구현 ‘기대 만발’ |url=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30114092106167&ts=130407 |출판사= 경제투데이 |날짜= [[2013년]] [[1월 14일]] |확인날짜= 2013-04-25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91548/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30114092106167&ts=130407 |보존날짜= 2016-03-04 |깨진링크= 예 }}</ref>
  • 조성모(가수) . . . . 13회 일치
         이 중 [[2000년]]에 발매된 2.5집 리메이크 앨범(타이틀곡: 가시나무)은 '''160만 장'''이 팔렸으며 타이틀곡 아시나요가 수록된 정규 3집 앨범은 '''출시 당일 하루 만에 40만 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고 총 '''20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2000년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두 앨범들이 2000년 한 해 앨범 판매량 순위에서 1위와 2위를 석권했다[* 조성모의 두 앨범 외에 2000년 출시 앨범 중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은 god 3집과 서태지 6집 뿐으로 2000년 음반 판매 순위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2000년은 가히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로 [[넘사벽]]급의 '''[[리즈 시절]]'''이었다. 특히 2000년에는 서태지의 전격 컴을 비롯하여 인기 아이돌 그룹과 톱 가수들이 대거 컴하여 경쟁이 치열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정규 4집 '잘 가요 내사랑'부터 한계를 보이더니 기존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과의 불화로 인해 소속사를 바꾸어 출시한 5집 '피아노'를 기점으로 점차 내리막길을 타고 정규 6집 이후로 지금까지 히트곡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필래가 2010년 8월 마지막 주 [[엠 카운트다운]]에서 [[http://www.nocutnews.co.kr/news/748873|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는 했으나]] 조성모 본인은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211/sp2012111915515496010.htm|바람필래를 실패작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사실 4집 이후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지 음악방송 1위는 꾸준히 하였다.]
         병역을 마치고서 컴한 후에 여태까지 발표해오던 슬픈 발라드 곡 대신 갑자기 <바람필래>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사실 조성모는 예전부터 타이틀곡으로는 선정하지 않긴 했어도 댄스곡을 정규앨범에 한 두곡 씩 넣곤 했었다. 반응은 발라드보다는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To Heaven도 댄스 버전이 있다. 이건 그냥 리믹스 버전 정도로 조성모의 변신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였고, 1집 수록곡인 '후회'가 댄스 비트를 가진 첫 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며, 2집 '상처'는 후회를 잇는 댄스곡으로 이 또한 인기를 끌었으며, 인기 절정이었던 3집 당시 후속곡으로 활동했던 '다짐'[* 원래는 비비 1집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다. 리메이크곡이 원곡과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매우 드물기에 이 사실이 한참 지나서야 알려지기도 했다.]이 수록곡 차원이 아닌 3집의 후속곡으로 선정되며 인기를 얻었던 바이다.[* 사실 '다짐'으로 활동했을 때에 조성모가 댄스곡을 잘 소화했기 보다는 당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었기에 그에 따른 후광효과가 컸다고 봐야 하며, 실제 댄스를 소화하는 조성모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사실 이때마저도 일부 팬들로부터 어그로를 끌기도 했었다.]
         '''[[X맨을 찾아라]]에서 [[김종국]]이 최대 수혜자였다면, [[출발 드림팀]]에서는 조성모가 최대 수혜자였다.''' 조성모는 출발 드림팀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도전으로 인기를 얻었다. 뜀틀청년이라는 이명이 생길정도로 [[뜀틀]] 분야에서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맹활약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건강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였으나, 정작 병역의무를 공익으로 이행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유는 선천성 어깨탈골. [* [[김종국]]과 같은 날에 훈련소에 입소를 했는데, 김종국이 별다른 행사없이 바로 입소한데 비해, 훈련소 입구 앞에서 팬클럽과 함께 환송회를 열었으며, 특히 공익으로 군 복무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군생활에 공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 하는 등 지나친 반응을 보인 탓에 비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가수라는 이유로 논산훈련소 천주교 성가대에서 성가복을 입고 찬송가를 부르는걸 목격당하기도 했다. 출발 드림팀은 프로그램 출연자 대부분이 공익으로 빠진 것을 빗대어 '출발 공익팀'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하였다. 참고로 소집해제때 비니를 쓰고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공익으로 복무한 연예인들은 거의 전부가 소집해제 기자회견시 비니를 착용한다. 현역복무자의 짧은 머리와 비교되어 비난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 [[http://youtu.be/7BttP5wx3Cw|다음 사람에게는 (3집)]][* 조성모의 3집 후속곡 뮤직비디오가 맞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던 2000년 말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이미연을 모델로 내세운 발라드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戀歌)'의 홍보 뮤직비디오의 성격이 더 강했다. 청순가련의 대명사인 이미연의 보증수표 이미지에 조성모 뮤직비디오의 날개를 달은 덕분에 홍보효과는 점 만점인데다, 컴필레이션 구성 또한 심심하게 옛날 발라드 명곡들만 넣은게 아니라, 조성모의 '아시나요'를 비롯해 2000년 당시 최신 인기 발라드 곡들까지도 과감히 비중있게 수록한 4CD의 알찬 구성 덕분에 최초라는 수식과 더불어 최다 음반 판매라는 수식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와 다르게 '연가'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조성모의 곡이 아닌 원곡인 정재욱의 곡이 담겨 있다.] : [[이미연(배우)|이미연]], [[류시원]], [[김세아]], [[김채연]], ~~[[황인성]]~~
         3집 타이틀곡인 아시나요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가 파월 상이용사 출신들과 [[대한민국 육군]] [[제9보병사단]](마부대) 측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베트남으로 파병된 조성모의 부대가 9사단의 부대표지(부대마크)을 단 장면이 그대로 노출 된 것이었는데, 하필 이 부대가 [[베트콩]]에게 전멸된다는 내용이었기에 마부대와 해당 부대 출신 참전용사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항의의 주요 원인이었다.[* 부수적으로 극중 허준호가 방탄모를 안쓰고 두건 착용을 하거나, 파병된 신병들을 길들이기 형식으로 얼차려 주는 모습 등에 대해서도 사실이 왜곡되었다며 항의했었다. 심지어 마부대 측에서 GM기획 측으로 공문까지도 보냈다고 한다. 이 부분을 공식 항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송기]]를 타고 파병되는 장면 역시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당시 국군 파월 병력은 [[대한민국 해군]] [[LST]]나 임차한 민간 수송선 등 해상운송수단으로 파병되었지 수송기를 타고 오지 않았다.]
         GM 기획측은 픽션이 가미된 예술작품으로 봐줄 것을 요구했고, 이들의 항의에 대해 부분적으로 의견을 수용하여 뮤직비디오를 재편집 할 때 조성모가 베트콩의 수장을 사살하는 장면을 집어넣고 문제가 됐던 마부대 표지를 CG처리로 깔끔하게 삭제한 다음,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에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전쟁에 참전 전우회의 명예는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 뮤직 비디오를 평화의 전사들에게 헌정한다"는 자막을 추가를 하여 방송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부대와 월남전참전전우회는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판매금지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주 이유는 이 비디오가 월남전에서 마부대가 거둔 혁혁한 전과를 호도했고, 월남참전용사들을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법원은 결국 조성모의 손을 들어줬는데, ~~고증도 틀린~~ 전투복에 부착된 마부대의 표지를 지워내는 등 명예훼손의 염려가 있는 부분을 배제하려 한 노력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뮤비는 결국 공중파에서 내려야 했고 양수리에서 급히 찍은 뮤비로 대체되었다.
         [[히든 싱어]] 2부 3회인 조성모편에서는 2라운드에서 총 100표 중 81표를 얻어 '''원조가수 최초로 바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유는 모창가수들은 조성모 전성기 시절을 토대로 모창을 했지만, 조성모는 전성기 때의 혹사로 성대 결절을 겪게 되어 창법이 변하게 되어버린 것. 조성모의 앨범들을 시간순대로 들어보면 이미 4집때부터 조금씩 허스키한 톤으로 살짝 변했고 창법도 살짝 바뀌기 시작했다. 다만 4집때 까지는 그 전까지의 여리여리한 미성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고 조성모 특유의 창법이 거의 그대로 구사 됐었다. 그 후 공 후 5집때부터는 톤도 많이 허스키하게 변했고 창법도 시원하게 질러 부르는 창법으로 많이 변해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성모 전성기 시절의 목소리는 1-3집까지의 특유의 미성과 실크위를 거닐듯 부드럽게 밀어부르는 창법. 그래서 패널들이 전성기 시절의 조성모 목소리만 기억했기 때문에 그를 찍어줄 리가 없었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13회 일치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5>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처음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춘 건 [[2002년]]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이고, 드라마 데뷔는 [[2003년]]의 [[사극]] 《[[무인시대]]》에서 [[이의민]]의 아들이자 3류 악역인 이지광 역이었다. 이 역할이 스타로 거듭난 지금의 하정우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시청자들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충공깽]]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여기서도 닭숙 먹는 연기가 일품이다. [[무인시대]] 항목 참조. 그리고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과 배우를 연결하면 아주 재미있어진다.] [[영화]]에 처음 출연한 건 [[조인성]]이 주연했던 [[2002년]] 영화 《[[마들렌]]》이다.
         하지만 연이어 개봉한 영화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에서 주연을 맡아 찌질한 [[호스트]]를 연기한 것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추격자》의 촬영기간이 길어지면서 3주 정도 《비스티 보이즈》와 촬영기간이 겹쳤다고 한다). 그 후 개봉한 영화 《[[멋진 하루]]》에서는 넉살 좋고 낙천적인 수 조병운 역을 맡아 발랄함과 능글맞은 특유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2015년 한 인터뷰에서 하정우의 영화 《멋진 하루》를 가장 좋아한다며 이윤기 감독과 하정우가 만든 조병운이라는 캐릭터는 한국 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남성 캐릭터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2014년]] 다시 한 번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정 돌무치로 변신해 머리까지 밀고 열연하였지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2015년]] 1월 하정우의 두 번째 연출작인 《[[허삼관]]》이 개봉했지만 여러가지 평가 속에서 흥행하지 못하였고, 7월 영화 《[[암살(2015)|암살]]》에서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 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으며 데뷔 후 첫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되었다.
         차기작인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영화)|아가씨]]》에서는 작 역을 맡아 2015년 11월 초 크랭크업 되었으며 2016년 6월 1일 개봉.
         >"희수야, 우리 좀 느끼하지 않으면서 담한 거 뭐 없을까?" [* 이후 희수 역을 맡은 전도연과 하정우는 햄버거 집으로 가고 거기서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https://m.youtube.com/watch?v=1eiBWHKLvXA|#]]]
         [[2011년]] 연말,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2011년]] [[5월]]에 열린 제47회 [[상예술대상]]에서 작년도 수상자로서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와서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되면 국토대장정을 떠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황해(영화)|황해]]> 하정우.'''' 라고 발표하며 어색하게 웃었고 '''진짜로 갔다.'''[* 이 당시 그와 함께 시상자로 참가했던 [[하지원]]은 그 이후로 공약에 대해서 묻지 않는단다. ~~하정우처럼 했다 또 그러면?? 그 땐 하지원도 가야지.~~]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국토대장정 하는 소재로 --반쯤 다큐인 영화-- '577 프로젝트'가 [[2012년]] [[8월 30일]]에 개봉했다. 제목이 지어진 배경은 이 프로젝트를 --작당-- 계획한 장소가 압구정의 '577술집'[* [[영화]]에서도 회의 장소로 나온다. 하정우의 단골집이기도 하다.]이기 때문.--577km 아니었어?--
          * 출중한 연기력과 주연작으로만 1억 관객을 돌파했을 정도로 티켓파워가 어마어마한데 비해 의외로 상과 크게 인연이 없다. 물론 [[상예술대상]]에서 남우주연상에 해당하는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3회나 수상했지만, 아직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상 외에 수상한 적이 없다.
         || [[아가씨(영화)|아가씨]] || 주연 || 작 || 4,288,530 || 성공 ||
         || 제49회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베를린 ||
         || 제47회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2> 2010 || 제46회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2> 국가대표 ||
  • 현아 . . . . 13회 일치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영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식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반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남연희|제목=김현아 '골반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2011년 4월 5일 [[포미닛]]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4Minutes Left]]》를 발매해 타이틀 곡 〈거울아 거울아〉로 활동했다.<ref name="아시아경제"/> 또한 비슷한 시기 [[임정희]]의 〈[[Golden Lady]]〉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임정희 ‘골든 레이디’ [[포미닛]] [[김현아]] 랩 피처링 지원사격 |확인날짜=2011-07-24|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030905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1-05-03}}</ref> 2011년 6월부터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6월 솔로컴 동시 '댄싱위드더스타' 출연|확인날짜=2011-06-04|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5220943330511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영웅|날짜=2011-05-22}}</ref>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다섯 번째 탈락자로 결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댄싱 위드 더 스타’ 탈락..심사위원 “심사할 수 없는 지경”|확인날짜=2011-07-24|url=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78679§ion=sc4|출판사=브레이크뉴스|저자=한누리|날짜=2011-07-16}}</ref> 현아는 2011년 7월 5일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다. 이에 앞서 2011년 6월 30일 발라드풍의 수록곡 〈[[A Bitter Day]]〉를 공개했다.<ref name="Pop!">{{뉴스 인용|제목=김현아, 30일 발라드 ‘A Bitter day’ 선공개…‘솔로 출격’ 신호탄|확인날짜=2011-06-29|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629111326420&ts=130703|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곽민구|날짜=2011-06-29}}</ref>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가온 디지털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f name="가온">{{웹 인용|url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Bubble+Pop%21&x=43&y=19|제목 =가온 차트 > Bubble Pop! |출판사 =[[가온 차트]]|확인날짜 =2011-07-19}}</ref> 그러나, 201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Bubble Pop!"의 안무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인다며 안무를 수정할 것을 요정했지만, 소속사측은 안무를 수정하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활동중단 '또 선정성 논란, [[김현아]]가 추면 다 야해' |확인날짜=2011-08-05|url=http://artsnews.mk.co.kr/news/163166|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하얀|날짜=2011-08-05}}</ref> "Bubble Pop!"은 평론가들로부터 혼합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즘》에서 "캔디 팝의 요소가 잘 녹아들었음에도 제대로 방점을 찍지 못해 솜사탕같은 트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ref>황선업.[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3086&bigcateidx=8&subcateidx=10&cTp=4 이즘 - Bubble pop!] 《이즘》. 2011-07 작성. 2011-12-16 확인.</ref> 영국의 《팝저스티스》는 "오늘의 노래"에 선정했고,<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英 팝사이트 '오늘의 노래' 선정… "가장 섹시" 찬사 |확인날짜=2011-07-22|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107/sp2011072010252095510.ht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성한|날짜=2011-07-20}}</ref> 미국의 《스핀 매거진》은 "2011년 올해의 베스트 노래 20" 순위 중 〈Bubble Pop!〉을 9위에 선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美스핀 선정 '2011 베스트송20'|확인날짜=2011-12-16|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121209445192085&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박영웅|날짜=2011-12-12}}</ref> 이후 2011년 8월부터 [[도끼 (가수)|도끼]]가 피처링한 노래 "[[Just Follow]]"로 후속곡 활동을 잠깐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김현아 just follow 무대 공개, 선정성 '제로' 카리스마 '폭발' |확인날짜=2011-08-13|url=http://artsnews.mk.co.kr/news/164401|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풀잎|날짜=2011-08-13}}</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남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남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상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남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현아]]는 [[원더걸스]] 시절부터 [[래퍼]]를 맡았었고, 이후 [[포미닛]]에서도 래퍼를 맡고 있다. 첫 솔로 활동 "[[Change (현아)|Change]]"에서도 보컬 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쳤다. 대개 그룹 출신의 개별 활동을 하는 맴버는 보컬 출신이였지만, [[현아]]는 랩, 댄서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ref name="이즘">{{웹 인용|제목=Neo Music communication IZM |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031&bigcateidx=8&subcateidx=10&mrbs=1&history=1|웹사이트=[[이즘]]|날짜=2010-10|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래퍼로서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있다. [[이즘]]의 이종민은 "Bittersweet"와 포미닛의 ''For musik''에서 보여준 힘 있는 랩은 다른 걸 그룹에선 살펴볼 수 없는 색깔이 있었다"고 평했다.<ref name="이즘"/> 《[[뉴스토마토]]》의 정해욱은 "하이톤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력파 랩퍼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오늘 뭐해〉에선 [[전지윤]]이 이 틈을 채워준다"고 기사를 썼다.<ref>{{웹 인용|제목='컴' 포미닛에게 필요한 건 '반전' |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52575|웹사이트=뉴스토마토|저자=정해욱|날짜=2014-03-17|확인날짜=2014-04-24}}</ref>
         | 《[[스쿨 버라이어티 점만점]]》
  • Crusader Kings 2/궁정 . . . . 12회 일치
          재상을 지목한 작령으로 파견시켜 군주를 선전하게한다. 일정 확률로 지방 귀족과의 우호도가 증가하지만 낮은 확률로 지방 귀족을 분노하게 만든다.
          재상을 지목한 작령으로 파견시켜 명분을 날조하게한다. 성공한 경우에는 군주가 해당 작령에 대한 소유 명분이 생겨 땅을 내놓으라며 전쟁을 걸 수 있다. 해당 군주에게만 명분이 생기지 그 후계자에게는 안 생긴다는 것에 주의. 운이 나쁜 경우에는 명분을 날조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 해당 지역 영주들이 화를 내거나 암살자를 시켜 재상을 죽여버리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공작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으며, 만약 군주가 해당 지역의 왕이 되는 야망을 가졌다면 왕국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다.
          재상을 지목한 작령으로 찌라시를 돌리게한다. 성공할 경우 해당 작령의 가신들과 군주들의 서로에 대한 의견을 감소시킨다. 낮은 확률로 들켜서 해당 지역의 군주들이 분노한다.
          재무관을 지목한 작령으로 파견해 세금을 거두게한다. 해당 작령의 세금 수입이 증가한다. 일정 확률로 짭잘한 특별 소작료를 징수해 보내오지만 낮은 확률로 성난 소작농들에게 폭행당해 부상을 입거나 죽어버린다.
          첩보관을 지목한 작령으로 파견해 해당 지역 귀족들을 사찰하게한다. 해당 작령의 인물에 대한 음모력이 증가한다. 일정 확률로 루머를 캐내 돈을 뜯어내거나 부정 부패를 적발해 벌금을 뜯어낼 수 있다.
          첩보관을 지목한 작령으로 파견해 해당 작령의 기술들을 훔쳐오게 한다. 일정 확률로 랜덤한 분야의 기술 포인트 50을 물어오지만 낮은 확률로 발각될 수 있다.
          * 조 사육사
  • 김국진(MC) . . . . 12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
         이 시기 데뷔한 KBS 개그콘테스트 시대 멤버들은, 당시 SBS의 코미디언 영입전략 덕분에 기회를 빨리 잡았다. 기존의 KBS식 콩트와 맞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이적으로 인해 생긴 공을, 김국진이 [[김용만]],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이른바 '[[감자골]]'이라는 개그팀을 통해 완전히 메워버렸다. KBS의 모든 예능 프로에는 이들이 출연했을 정도로 히트도 쳤고 KBS도 팍팍 밀어줬다. [[1992년]] [[KBS 연예대상|KBS 코미디대상]] 신인상을 탄 것이 그 증거.
         강수지와의 케미 덕분에 2015 SBS 연예대상에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거 수상소감하는 거야 지금? 무슨 만담하고 있는거 같은데?(...)) 본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강수지의 매우 적극적인(...) 수상소감에 당황하며 얼버무리는 모습이 미. 앞선 발언도 한참 쩔쩔매다가 말한거다. (시청자들은 역대급 수상소감이라고 얼른 결혼하라고 난리(...).)
         2016년 3월 22일 [[tvN]]에서 첫 방송을 한 [[집밥 선생]] 시즌2에 출연하게 되었다. 요리실력은 그냥 없다고 보는게 맞을 정도(...). 팔순인 김국진의 어머니가 '내가 너 이렇게 밥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얘기를 한게 출연 계기라고 한다.[* [[집밥 선생]] 시즌2 첫 방송에서 김국진이 말하기를 김국진의 어머니가 얼마전 큰 수술을 하셔서 언제나 차려주시던 밥이 없었고 미안하다라는 메모가 남겨져있었다고...] 방송에선 주부가 가르쳐주는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7년 9월 7일부터 방영하는 [[TV조선]]의 예능방송인 [[시골빵집]]에서는 직접 빵을 만들어 파는 일을 맡게 되었다. 카스텔라를 전담하는 [[김갑수]], 오빠들 챙기며 나머지 빵들을 만드는 [[이수경]]과 함께 추억의 찐빵을 만드려는 중인데, 선생에게 배우던 열정이 식지 않았는지 초보자임에도 나름 열심히 기술을 익혀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걸로 보인다. 김국진이 [[인창고등학교(서울)|인창고등학교]] 시절에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공부를 했고, 2005년 경에 김용만과 같이 중국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점, 공기 기간에도 중국어 공부를 했다는 점에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 [[f(x)]]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당시 [[빅토리아(f(x))|빅토리아]]에게 중국어로 인사하거나 간간히 중국어를 하는 점, [[효연]]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 중국어로 음식 주문을 할 때도 이해하던 모습, [[차오루]]와 라스에서 대화할 때도 중국어가 말끝마다 나온 점을 보면 중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 실력인 것으로 보인다. [[불타는 청춘]]에서도 멤버들과 [[홍콩]]에 갔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중국어 실력을 보여 주었다.
          * 1997 [[상예술대상]] 남자코미디언 연기상
          * 1999 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 2001 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 김형준(배우,가수) . . . . 12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명예 [[프로게이머]].[* 명히 케스파 공인 ''''명예'''' 프로게이머이다.] 같은 그룹 멤버 [[박정민(SS501)|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나왔으며 5인조 [[보이그룹]] [[SS501(아이돌)|SS501]], 3인조 유닛 [[Double S 301]] 멤버다. 동생으로는 [[유키스]] 전 멤버인 [[알렌기범]]이 있다. 친구이자 톰과제리의 톰인 [[박정민(SS501)|박정민]]과는 앙숙이자 절친이다.
          * 똑똑해 보여도 상당한 [[치미]]가 있다.
          * [[사랑은 노래를 타고]]에서 함께 출연했던 [[성현]], [[곽희성]]과 친분을 과시했다.
          * 12월 8일 허영생, 김규종과 함께 [[소년소녀가요서]]에 출연했다.
          * 9월 6일, 15일 [[곡 - 끝까지 간다]]에 출연했다. 6일에는 [[태양(빅뱅)|태양]]의 '나만 바라봐'를 열창해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여 선호단과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5일에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불러 또 한번 감탄을 자아냈다. [[https://vimeo.com/138451045|영상1]][[https://vimeo.com/139138333|영상2]]
          * 2월 22일, 27일 더블에스301 멤버들과 함께 [[쇼 챔피언|쇼 챔피언 스테이지]]에 출연했다.
          * 6월 14일 더블에스301 멤버들과 함께 [[쇼 챔피언|쇼 챔피언 스테이지]]에 출연했다. 평소에 겁이 많아서 허영생이 귀신 이야기를 하던중 제작진의 장난으로 화들짝 놀라 소리지르고 난리가났다.
          * 1월 10일 [[구준엽]], [[김대희]], [[강태오]], [[B.A.P]] [[대현]]과 함께 [[비디오스타]]에 출연했다. 글로버 프린스 특집답게 스페인어로 인사후 해외에서 인기와 다녀온 해외[* 볼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아부다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도 밝혔다. 자신이 찍은 드라마가 일본쪽으로 드라마 판권이 잘 팔려서 2013년 당시 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에 출연했던 [[박서준]], [[진희]]랑 [[사랑은 노래를 타고]]에서 [[씨스타]]의 [[다솜(배우)|다솜]]이가 한류스타를 이끈건 자신 덕분이라고 자랑을 했다.
          * 2011년 3월 16일 [[최호]]의 낭만시대 출연
          * 2015년 7월 3일 서울 중구 롯데화점 영플라자에서 열린 커스텀주얼리 브랜드 ES.DEW 론칭 행사에 김규종과 함께 참석했다.
          * 2011년 4월 13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를 통해 [[김종민]], [[황광희]]를 제치고 [[치미]] 1위에 등극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181243|#]]
  • 마기/304화 . . . . 12회 일치
          * 그리고 연영(아르바)의 목소리가 끼어드는데...
          * 신드바드는 영에게 "우리도 전송마법진을 만들 순 없냐"고 묻는데, 원래 기술담당이 아니던 그녀는 불가능한 일이다.
          * 그 밖에도 영에게 맡긴 일이 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하고, 신드바드는 "솔로몬"의 지혜가 있으면 이럴 필요가 없다고 한탄한다.
          * 그러면서 알라딘을 놓쳤던 일을 후회하는데, 이때 영이 알라딘이 있는 곳을 찾았다고 알려준다.
          * 알라딘은 알리바바와 통신 중에 영이 끼어든걸 느꼈지만 "설사 알더라도 이곳엔 못 온다"고 말한다.
          * 알라딘은 영이라면 언젠가는 이곳에 올 거라고 우려한다.
          * 알라딘과 영은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 알라인은 영에게 밀리는데 영은 "우고가 공들여 기른 너도 솔로몬엔 못 미친다"다며 "한때 나는 솔로몬이 신이라고 믿었다"고 도발한다.
          * 알라딘은 영에게 아르바가 들어갔음을 간파한다.
          * [[마기/299화]]에선 연룡으로 추정되는 실루엣도 알라딘과 함께 있었는데, 이번 화에선 연룡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마기/338화 . . . . 12회 일치
          *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 [[연룡]]은 [[아르바(마기)|아르바]]의 안내로 제 2던전 바레포르로 안내된다.
          * 도중에 룡은 "신드바드 왕의 마지막 미련"에 대해 알라딘에게 물었다가 시비가 생긴다.
          * 룡은 자신이라면 신드바드의 신념을 깰 수 있다며 앞으로 나서는데.
          신드바드는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라며 쥬다르가 말했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한다. 고민하는건 [[연룡]], 운명에 굴복하는건 [[알라딘(마기)|알라딘]]이나 [[알리바바 사르쟈]], 그렇게 말했던 쥬다르. 신드바드는 그 말을 곱씹다가 "부조리한 운명에 굴복하는가 파괴하는가 두 가지 선택지 뿐이라면 다양한 '''역할'''을 동료와 나누어 담당한다"는 말이 아니냐고 의미를 확장한다.
          * 바깥에선 1던전이 굉음과 함께 땅속으로 잠긴다. 일행을 안내하던 [[아르바(마기)|아르바]]는 그게 쥬다르가 신드바드를 납득시킨 거라고 설명한다. 룡은 생각났다는 듯 알리바바와 알라딘에게 "신드바드 왕의 유일한 미련"이 뭔지 묻는다.
          근데 룡은 단호하게 "안 보인다"고 대답하고 알라딘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가 전부터 맘에 안들었다고 돌직구를 날린다. 알라딘은 삐져서 룡과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룡은 다시 그게 애같다고 추가타를 날린다. 알리바바는 화해시키려고 진땀을 흘린다.
          상황을 보던 아르바는 난데없이 "룡도 친구 같은데 생겼다"고 말하는데, 룡은 유독 정색한다. 알라딘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아르바는 말 그대로의 의미라며 뭐가 이상하다는 태도다. 룡은 그런 행동 하나하나를 수상하게 여기며 아르바의 꿍꿍이를 추측한다.
          * 처음보는 마장이라 모두가 놀란다. 알리바바는 어떤 능력을 가졌을지 짐작도 못한다. 그런데 룡은 짚이는 곳이 있는 건지, "의심에 가득찬 왕의 그릇이라"고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알라딘에게, 자신이 이기면 아까 질문에 답을 달라고 하는데.
  • 백승주(정치인) . . . . 12회 일치
         ||<width=30%><:>제19대[br][[심학봉]][* 의원직 사퇴.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보궐선거 미실시.]||<width=5%><:>→||<width=30%><bgcolor=#FFFFA0><:>'''제20대[br]승주'''||<width=5%><:>→||<width=30%><:>''현직''||
         ||<bgcolor=#C9151E> '''{{{#FFFFFF 이름}}}''' ||<(> 승주(白承周) ||
         ||<bgcolor=#C9151E> '''{{{#FFFFFF 소속 정당}}}''' ||<(>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 방송 사고로 소속이 잘못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JTBC]]는 여러번 승주를 [[더불어민주당|민주당]](더민주) 의원으로 표기한 전례가 있다.] ||
         2016년 7월 26일 [[THAAD|사드]]관련 성주 지역주민과의 간담회에서 성주 사드 배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라고 발언하였고, 이에 대해 한 [[성주군]]민이" ( 의원 지역구인) [[구미시]]에 사드를 배치해도 그렇게 말하겠느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하였다. --이분이 연구원으로 일하신 분야가 국방이다.--
         [[최순실 청문회]]의 새로운 X맨으로 등극 중이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우병우 증인 등 변호하는 듯한 답변 유도와 태블릿PC에 집중하고 야당 의원에게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 미는 왜 최순실의 PC를 조사했냐는 것. 그리고 [[노승일]]이 멋대로 문서를 복사해 갔다고 범죄행위로 몰았다. --노승일은 쿨하게 처벌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승일에게 무슨 의도로 문서를 복사했냐는 등 어떻게든 물타기를 시도했다가 의도와 정 반대로 답변이 나와서 모두 실패했다. 박근혜와 친족관계임이 밝혀지면서 '친박 이완용을 넘어서는 친족 승주가 왔다' 는 평이 나왔다.
         1.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0804&yy=2016|불법이지만 단 1달러도 줄 수 없다!]] 국방부 차관 재직당시인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나라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이 MS 소프트웨어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사용료 지급을 요구했다. 윈도 서버 접근 권한인 '사용자 서버 접속 허가'(CAL·Client Access License) 구매 숫자를 훨씬 초과해 윈도 서버에 접속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MS사는 피해 액수가 무려 연 2011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으나, 승주는 '''라이센스 등록 안하고 접속하는 곳 만큼 등록해놓고 접속 안 하는 곳도 많다! 라이센스 관리를 미숙하게해서 그렇지 플러스 마이너스 따져보면 우린 정당하게(?) 돈 내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 1달러도 못 준다! => 우리가 자체 조사해보니 불법 사용자도 없더라![* 말이 자체 조사지, 군부대와 군시설에 공문 보내서 혹시 불법으로 쓰는 곳 있으면 자해라 정도 였을 것이다.] => 못 믿겠으면 니네가 니네 비용으로 전수조사해서 증명해라! => 대신 군사기밀을 건드려서는 안되고 당연히 우리는 조사에 협조도 못해준다!!!'''라는 식의 --어거지--주장을 강력하게 펼쳤다.
         4. 국방연구원 출신이 사석에서 밝힌 카더라에 따르면, 승주가 처음 국방연구원에 입사했을 당시 관상을 좀 본다던 임원급 연구원이 승주를 보고는 '상당한 또라이상'이라 평하며 '옳은 길로 걷거든 최소 국회의원, 잘하면 차관은 찍고 내려올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정작 현지의 표심이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고 한다. 승주가 국방차관 재직 시절에 구미가 국방신뢰성센터 유치에 나섰지만, 결국 대전에 패배하면서 "고향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것.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4702&yy=2015|대구 매일신문의 사설 참고]]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승주, version=81)]
  • 안석환 . . . . 12회 일치
         * 1998년 [[SBS]] 창사 6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야 3.98]]》
         * 2005년 [[SBS]] 대하드라마 《[[서동요 (드라마)|서동요]]》 ... 제 26대왕 [[성왕]] 역
         * 2010년 [[KBS2]] 특별기획드라마 《[[추노]]》 ... 방 화
         * 2011년 [[SBS]] 월화드라마 《[[무사 동수]]》 ... 서유대 역
         * 2013년 [[JTBC]] 일일연속극 《[[가시꽃]]》 ... 두진 역
         * 2013년 [[MBC]] 일일연속사극 《[[제왕의 딸 수향]]》 ... 가 역
         * 2017년 [[MBC]] 월화드라마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노사신 역
         * 2018년 [[tvN]] 월화드라마 《[[일의 낭군님]]》 ... 박선도 영감 역
         * 1994년 《[[태산맥 (영화)|태산맥]]》
         * 1998년 제34회 [[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인기상
  • 한가인 . . . . 12회 일치
         한가인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 광고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애정의 조건]]》, 《[[신입사원 (드라마)|신입사원]]》, 《[[나쁜 남자 (드라마)|나쁜 남자]]》, 《[[해를 품은 달 (드라마)|해를 품은 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건축학개론]]》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였다. 2018년 4월 드라마 《[[미스트리스 (2018년 드라마)|미스트리스]]》로 지난 2012년 《[[해를 품은 달 (드라마)|해를 품은 달]]》 출연 이후 6년 만에 컴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6년 만에 드라마 복귀 "'미스트리스' 출연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33729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정하은 |날짜 = 2018-01-05 |확인날짜 =2018-04-17 }}</ref>
         | rowspan="2"| 동아화점
         | 동아화점
         | 화점
         | 동아화점 상품권
         | 제40회 [[상예술대상]]
         | 제40회 [[상예술대상]]
         | 제40회 [[상예술대상]]
         |<ref>{{웹 인용|url=http://isplus.live.joins.com/award/bs/2013/history/h_history.asp?menuid=1&R=40|제목=제40회 상예술대상 수상작 수상자|출판사=하이원 상예술대상|확인날짜=2014-02-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7214153/http://isplus.live.joins.com/award/bs/2013/history/h_history.asp?menuid=1&R=40|보존날짜=2014-02-27|깨진링크=예}}</ref>
         | 제48회 [[상예술대상]]
         |<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7312 |제목=상예술대상 오늘(26일) 개최 ‘해품달’ 잔치되나?..최다 노미네이트|출판사=뉴스엔미디어|저자=하수정|날짜=2012-04-26|확인날짜=2014-02-24}}</ref>
  • 현진건 . . . . 12회 일치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기만]](白基萬) ·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문학'이었다(다만 본격적인 동인지는 아니고 작문지 정도의 수준이었다고<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成城中學校)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3월에 다시 귀국하였는데<ref>일본 학자 시라카와 유타카에 의해 세이조 중학교 3학년 성적대장 일람표에서 현진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가 1917년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실제 이 학교에 재적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얼마간 대구에 머물다가 집안 몰래 형 정건이 있던 [[중화민국|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 가서 [[후장 대학]](扈江大學)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한다. 조선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여파가 상하이에까지 커져 상하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 다시 귀국하여, 당시 육군 공병 영관을 지낸 당숙 현보운(玄普運)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서울로 상경, 지금의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살았는데, 현보운은 1919년 음력 9월 10일에 사망하고 그가 호주가 되었다. 12월에 첫딸 경숙(慶淑)이 태어났으나 이듬해에 죽고 만다.
         이 전해부터 [[휘문고등학교]] 출신의 젊은 문인인 [[박종화]](朴鍾和) · [[나도향|나빈]](羅彬) · [[홍사용]](洪思容) · 이상화 · 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잡지 『조(白潮)』의 동인이 되어, 『개벽』과 『조』 두 잡지 사이를 오가며 『조』 1호지에 수필 「영춘류(迎春柳)」, 2호지에 단편소설 「유린」을 발표하고, 또 기행문 「몽롱한 기억」을 기고하면서, 7월에 『개벽』에 다시 번안소설 「고향」(치리코프 원작)과 「가을의 하룻밤」(고르키 원작)을 각각 발표하였다.
         [[1923년]] 2월부터 10월까지 현진건은 『개벽』에 중편 「지새는 안개」를 발표하고, 9월에는 그의 동인지 『조』에 단편 「할머니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지새는 안개」는 당시의 문인 [[염상섭]](廉想攝)이 "살아있는 춘화도"라 평하고 있을 정도로 정밀하고 세련된 묘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최남선이 주재한 동인지 『동명(東明)』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여, 번안소설 「나들이」를 기고하는 한편으로 1924년 3월 31일에 창간된 「시대일보」(동명사의 후신)에 입사하였다(이때 그의 부인은 병치레로 대구의 친정으로 가 있었고 현진건만 홀로 서울에 남아 있었다<ref>「文壇風聞」 1923년 1월 1일자 『개벽』 제31호.</ref>). [[1924년]] 1월에는 단편 「까막잡기」를 『개벽』 , 2월에 「그립은 흘긴 눈」을 잡지 『폐허이후』에서 발표하고, 이어 다시 6월에 단편 「[[운수 좋은 날]]」을 『개벽』에 발표한다. 또한 4월 2일부터 5일까지 「시대일보」 지면에 소설 「발(簾)」을 연재했다.
         * [[기만]](白基萬)
         * [[이광수]] - 박종화의 일기에 보면, [[1922년]] 현진건이 홍사용 · 박종화 등의 문인들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문예지 《조》 창간호에 이광수의 시 「악부(樂府)」가 실리게 되었을 때, 상해에서 《조》를 받아보고 현진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한국의 꽃봉오리 같은 젊은 청년들이 발표하는 깨끗한 《조》지에, '귀순장'을 쓰고 항복해 들어간 이광수가 동인이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빨리 동인에서 제거하라"며 항의했고, 결국 《조》 동인에서 이광수는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광수는 이미 당시 춘원은 허윤숙이라는 여인과 동거하면서 일제에 이른바 '귀순장'이라는 것을 써서 독립지사들의 정보를 넘겨주고 변절한 상태였던 것이다.<ref>윤병로 「박종화의 삶과 문학」1998, 신효정「문학산책」2000, 역사문제연구소 편찬「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2003.</ref>
         * 부부생활과 관련해서는, 지인 대부분이 "아내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실 그 시절에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하며 따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었으며, [[김동인]]처럼 아예 자기 아내를 버리고 평양에서 서울로 거처까지 옮겨서 기생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만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내를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을 뿐이요, 다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었다"고 했으며, 방인근은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기생이 옆에 와서 지근덕거리면 미남에다가 신문기자라면 기생들이 홀딱 반해서 덤벼드는 시절이니 그러면 빙허는 좋아하는 체 대꾸를 하면서도 쌀쌀하게 범접치 못할 기상으로 난잡하게 굴지 않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현진건의 아내 이순득도, 남편이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황라 두루마기와 비단 마고자가 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들어와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f>문인들의 이러한 '딴집 살림'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교육을 받은 소위 '구여성'과의 조혼을 괴로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데서 온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8~5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 {{한민족대과|E0063438}}
  • 흥인군 . . . . 12회 일치
         '''이최응'''(李最應, [[1815년]] [[2월 17일]] ~ [[1882년]] [[6월 10일]])은 [[조선]] 후기의 왕족, 정치인으로, 자는 양(良伯), 호는 산향(山響), 군호는 흥인군(興寅君)이다. [[남연군]] 이구와 여흥군부인 여흥 민씨의 셋째 아들이자 [[흥선대원군]]의 바로 윗 형이었다. 자는 양(良伯)이고 호는 산향(山響), 시호는 효헌(孝憲) 또는 충익(忠翼), 문충(文忠)이었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이다.
         [[1866년]] [[3월]]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 전각과 재목이 소실되자 [[흥선대원군]]은 대노하여 흥인군과 [[이경하]]를 투옥, 처형하려고 했으나 중신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당시 마감용 목재에 기름칠을 하는 창고에서 불이 나 800여 칸에 쌓아 둔 목재가 모두 타버려 공사가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공사를 시작한지 1년 만의 일이었다.<ref name="ysys165">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165페이지</ref> [[흥선대원군]]은 공사 책임자인 [[이경하]]와 흥인군을 불러 면전에서 크게 질책하며 극형에 처하도록 했으나 여러 조정 대신들의 간언으로 원상 복구의 책임만 지게 되었다.<ref name="ysys165"/>
         그는 [[흥선대원군]]이 [[당전]]을 발행하자 "일문전(一文錢)이 어찌 문전(百文錢)으로 쓰이겠는가? 다만, 일문의 가치로만 쓰일 뿐이다"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물건값을 치를 때 당전을 일전으로 계산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환전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얻은 상인이 많았다 한다. [[1872년]] [[경복궁 중건]] 공사가 끝나자 [[돈령부]]판사로 전직되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섭정이 되자, 동생의 권력을 빙자하여 뇌물을 받기도 했다. 흥선대원군은 그를 경멸했고, 의정부와 육조에 흥인군에게는 어떠한 우대나 혜택도 해주지 말라고 비밀리에 지시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형을 못마땅히 여겨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10년 동안에도 한 발짝 내딛을 땅조차 빌려준 적이 없어 흥인군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불쾌한 감정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ref name="ysys39">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39페이지</ref> [[민승호]]는 흥인군을 이용하여 흥선대원군의 동정을 엿볼 심사로 친밀감을 표했다. 그리고 [[명성황후]]에게도 그 속 뜻을 설명했다.
         {{인용문2|흥인군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고 못난 사람입니다. 대원군 10년 집정 기간 동안 부뚜막 아래 굶주린 개 같은 푸대접을 받았으니 그 속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ref name="ysys39"/> 그런 위인인 만큼 조금 관대하게 대해주면 분명히 감복하여 시키는 대로 [[운현궁]]의 동태를 낱낱이 살펴 아뢸 것입니다.<ref name="ysys40">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40페이지</ref>}}
         [[1881년]] 흥선대원군의 서자 [[완은군]] [[이재선]]이 흥선대원군의 추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사사되자, 그의 부가 되는 흥인군 이최응은 이재선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1882년]]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부임했다가 같은 해 다시 돈령부영사가 되었다. 그해에 안국동 별궁에서 열린 세자 순종과 순명효황후의 가례 때 종실의 원로로서 참석하였다. [[1882년]] [[6월 10일]] [[임오군란]] 때 난군을 피하여 달아나다가 사로잡혀 살해되었다.
         수 명의 난군이 달려들어 담장 아래 내동댕이쳐진 흥인군의 시신을 난탈하여 누구의 시신인지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짓이겨 놓았다. 그러고는 집안 구석구석을 쌓아 놓았던 쌀과 돈, 금은보화, 포목, 고기며 과일, 생선 등을 내어다 안마당과 대문 앞에 쌓아 놓았다.<ref name="ysys212">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212페이지</ref> 난병들은 이것을 모두 인근 들판으로 실어가 불에 소각하였다. 한편 그의 [[신도비]]에 의하면 왕이 [[어의]]를 보내 약을 쓰고 간호를 해보았으나, 마침내 사망했다 한다.
         흥인군은 자신이 원했던 대로 뇌물이 날마다 창고에 들어와 쌓이는 것을 보며 마치 나라를 위해 땅을 개척한 업적을 이룬 것처럼 흥에 겨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뜰에 있는 제1창고 문 앞에 가서는 청지기에게 자물쇠를 열게 하고, 잔심부름하는 상노 아이에게 곳간 문을 열라고 한 다음, 그곳에 가득 쌓인 물건들을 보녀서 턱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넋 나간 사람처럼 허허 웃어 댔다.<ref name="ysys41">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41페이지</ref>
  • 김굉필 . . . . 11회 일치
         그는 [[1484년]] [[10월]] 스승 [[김종직]]이 [[이조]][[참판]]이 된 뒤에도 [[훈구파]]에 대해 간하지 않자, 이를 계기로 풍자시를 지었다가 [[김종직]]과 결별하게 되었다. 그 자신도 [[조광조]]·[[이장곤]]·[[주계정 이심원]]·[[김안국]]·[[이연경]] 등의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김종직]] 사후 사림의 영수로 추대되었다. 김굉필의 문인들과 이들의 학통은 후대에 가서 [[조광조]], [[인걸]]의 학통과 함께 기호 사림파를 거쳐 [[서인]]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소학》을 행동의 근간으로 삼아 《소학》을 알지 못하고는 사서육경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서흥 김씨|서흥]](瑞興)이며, [[한성부]] 출신이다. [[문묘]]에 종사된 [[동방 18현|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한성]] [[정릉동]] 출신.
         영남의 유학자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하던 중 어느날 《소학》의 어느 글귀를 읽고 깊이 감동한다. 이후 [[소학]]을 읽고 스스로 "소학동자 (小學童子)"라 일컬었고 평소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길재]], [[김숙자 (1389년)|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학문 전통을 이어, 성리학에 능하였으며 실천 궁행을 위주로 하는 학자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 서울 김굉필"> 《[[글로벌 세계대과]]》〈[[:s:글로벌 세계 대과사전/한국지리/중부지방-남부지방/서울특별시/서울의 사회·문화#김굉필|김굉필]]〉 </ref> 그는《소학》을 행동의 근간으로 삼아 《소학》을 알지 못하고는 학문을 할 수 없고, 사서육경을 알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소학]]에 나온대로 실천궁행에 힘썼다.
         죽은 뒤 그의 수급은 효수(梟首)되어 [[순천부]]의 철물시장에 걸려졌다. [[중종 반정]] 뒤 [[연산군]] 때에 피화한 인물들의 신원이 이루어짐에 따라 [[증직|증]] [[승정원]][[도승지]]겸 [[경연]][[침찬관]]에 [[추증]]되었고, 자손은 관직에 등용되는 혜택을 받았다. [[이황]]은 그를 '근세 도학(道學)의 조종(祖宗)'이라 하여 [[성리학]] 도통의 정통으로 규정했고, 그의 제자 중 [[조광조]]와 그의 문인 [[인걸]], [[인걸]]의 문인 [[이이]], [[성혼]] 등을 통해 기호학파를 형성하고, 이들은 다시 [[조선 선조|선조]] 때에 [[서인]] 당을 형성하게 된다.
         평소 육경(六經) 연구에 몰두하여 [[성리학]]에 통달했으며, 문하에서 조광조·이장곤(李長坤)·[[김안국]](金安國)·이연경 등이 배출되었다. [[조광조]]의 학맥은 [[조광조]]-[[성수침]]-[[성혼]]으로 이어지는 한편 [[율곡 이이]]와 [[성혼]]은 [[조광조]]의 문인 [[인걸]]의 문하에서 수학, 사숙함으로써, [[조광조]]의 후계자들은 [[서인]] 학파를 이루게 된다. [[김안국]]의 제자는 [[김인후]]이고 [[김인후]]의 문인이 [[정철]]로, [[정철]] 역시 [[성혼]], [[이이]]와 함께 역시 [[서인]] 학파를 형성하였다.
         학맥상으로는 [[이정]]과 [[안향]]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정]], [[안향]]→[[이제현]]→[[이색]]→[[정몽주]]→[[길재]]→[[김숙자 (1389년)|김숙자]]→[[김종직]]→김굉필로 이어진다. 그의 대에 이르러 [[조광조]] 등을 양성하고 이들은 후일 [[동인]]과 [[서인]]의 연원이 된다.
         {{인용문|[[이정]], [[안향]]→[[이제현]]→[[이색]]→[[정도전]]<br />
                                      →김굉필→[[조광조]]→[[인걸]]→[[이이]](율곡)<br />
         {{글로벌세계대과|제목=양반관료의 대립과 분열}}
  • 김대호(축구선수) . . . . 11회 일치
         || '''포지션''' || [[풀]] ||
         [[수원 FC]] 소속 축구선수로 주 포지션은 [[풀]]이다. 오른발잡이지만 왼발잡이 풀이 워낙 희귀한지라 주로 왼쪽 풀으로 뛰며 오른쪽 풀도 가능하다.
         처음에는 센터이 주 포지션이었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2010시즌 5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측면으로 위치를 옮긴 2011년 후반기부터 [[황선홍]] 감독의 눈에 띄기 시작, 24라운드 광주 FC와의 경기에서 5:1 승리에 기여하며 생애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이 해 리그 13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다음 시즌, 2012년 4월 3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2012 ACL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6월 17일 FC 서울과의 리그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10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로 2012시즌 김대호는 서울, 수원, 전북, 울산 등 강팀만을 상대로 5골을 기록하며 강팀 킬러로서 주목을 받았다. 시즌 기록은 23경기 5골[* 챔피언스리그 제외]. 2013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풀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고 골은 없으나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아디]]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K리그 대상 베스트일레븐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시즌이었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게, 수비적인 능력이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센터으로 실패한 게 이 때문. --공격도 그리 매끄럽진 않잖아-- 풀으로 뛰면서 공격적인 재능이 꽃핀 덕분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수비 쪽에서 단점은 여전. 피지컬로 비벼서 뺏어내는 스타일이라 카드수집이 엄청나다. 사실 2013년도 이런 단점 때문에 박희철과 번갈아가며 나오다가 그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주전이 된 경우. 이전에는 [[황지수]]가 이 부분을 잘 메꾸어줬지만 2014년 초 황지수가 부상으로 빠진 사이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는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 [[손준호]] 등이 주전으로 뛰는 바람에 그의 단점이 극대화, 수비가 좋은 [[박희철]]과 5월부터 급성장한 [[박선주(축구선수)|박선주]]에게 밀렸고 2015년에도 초반에 주전으로 출전하다가 7월 이후에는 여름 이적 시장에 이적한 [[최재수]]가 대신하면서 사실상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2016년에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아챔]] 조별 경기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지르며 포항 팬들의 큰 원성을 샀고 이후로도 자주 나오지 못하는 중... 인데 5월 12일 [[안산 무궁화]]로의 입대가 결정되었다. 사실 김대호가 떠난다 해도 그의 자리에는 다른 풀 자원들이 있기 때문에 공은 크지 않을 듯.
  • 김민희(1982) . . . . 11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table width=100%><#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0f0f3e> '''{{{#white ▲ [[한솔엠닷컴]]의 3부작 CF 모음 (1999)}}}'''[* 세 배우의 데뷔 초 모습을 볼 수 있다. 눈 오는 밤거리와 노래(3편의 원곡은 동명의 [[김장훈]]의 곡이다. 원곡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의 어울림이 미. ^^([[https://youtu.be/fEGQdBfhusg|1부]] [[https://youtu.be/sUYDqUwDHiQ|2부]])^^ 유행어는 이후 시리즈들부터 등장한다.] ||
         결국 매우 안습한 연기력으로 신나게 욕을 먹고, 2년 정도 활동을 중단했다가 [[2004년]]에 《형수님은 열아홉》으로 컴하여 악역으로 나왔으나, 이마저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또 2년을 쉬었다. 본인도 훗날 인터뷰에서 이 당시 부족한 연기력에 대해 인정하기도 했다. 방송 활동을 쉬면서 계속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듯.
         이후 [[2008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로 2008년 제44회 [[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김민희는 과거 배우 [[이정재]], 모델 출신 배우 [[이수혁(배우)|이수혁]]과 공개연애를 했다. 그런 뒤 2013년 4월, 한 [[디스패치|인터넷 매체]]에서 [[조인성]]과의 [[파파라치]] 사진을 공개하면서 열애를 인정했다. 2014년 9월 24일 조인성과의 결별을 공식 발표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sid1=106&oid=109&aid=0002886201|관련기사]] 그리고 [[2016년]] [[6월]], [[홍상수]] 감독과의 스캔들이 터지고 말았다. 문제는, 홍상수 감독은 기혼자라서 명한 [[간통]]이라는 점이다.
         [[청룡영화상]] 이후로 항간에 김민희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절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김민희 측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받았으나 부상으로 딸려오는 수만 원의 상금을 받는 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하여 유니세프를 통한 기부와 단편영화제 지원 등의 방식으로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http://m.news.nate.com/view/20161215n08068|관련기사]]
         만약 김민희와의 불륜 때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로 이혼을 원하는 것이며, 부인이 이혼 사유를 불륜이라고 추측하는 상황이라면, 본인들의 커리어나 이미지는 물론 이혼 소송에도 지극히 불리한 불륜 혐의부터 벗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불륜남녀라고 지목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긴 시간 내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거기다 침묵을 고수하여 팬들조차도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고, 잠수를 탄 기간 동안 둘이서 영화 촬영을 준비해왔다고 하면 이를 좋게 받아줄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국내는 당연지사고 간통을 개인의 사생활이라면서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본다고 하는 서구권의 간통 사례와 비교해도 홍상수와 김민희의 현재 태도는 대담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뻔뻔하다. 기자회견을 열고 눈물까지 그렁이면서 명히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대상이 되는 간통을 아름다운 사랑이라며 미화를 하거나 아예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서 출품까지 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덕분에 대중들은 "이 둘에 비하면 [[이병헌]]은 차라리 양반이다." 수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민희의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한 이후에 똑같은 간통 논란을 의식한 기자가 이병헌에게 누가 봐도 대놓고 노린(...) 인터뷰까지 한 적도 있다.
         || 제49회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 제44회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 김재규 . . . . 11회 일치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과는 악연이 좀 있었다. 윤필용이 [[1.21사태]] 때 [[김신조]]의 모가지 발언을 여과없이 보내는 바람에 윤필용이 방첩부대(현 [[국군기무사령부]])장에서 경질되고 김재규가 후임 방첩부대장이 되었다. 이후 김재규는 방첩부대를 육군보안사령부로 개편하고 자신은 육군보안사령관이 되었다.[* 이 시절 [[재일교포]] 서승 형제 간첩단 사건에 관여한 흑역사가 있다. 이 형제는 방한 전 [[재일교포]] 신분으로 [[북한]]에 방문하고 선물까지 받아온 전력이 문제가 되어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고문을 동반한 고강도의 조사를 받았는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간첩 혐의를 인정하게 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는 훗날 고문에 의한 강제자이었음이 밝혀졌다. 김재규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이 건에 대해서는 옹호하지 않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889025|기사]] ] 육군보안사령관이던 1971년 8월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의 전화를 도청하다가 발각되어 [[제3군단]]장으로 전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적인 이유이고 박정희에게 3선까지만 하라는 직언을 해서 좌천됬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군 내부에서 도청하는것이 당시 보안사령부의 일이었다.]
         >'''[[최태민|최 같은 자]]는 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재규를 비판하는 재야/민주운동가들은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동기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의한 기여도 및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시도 “박정희 정권은 당시 [[부마항쟁]]을 비롯한 일련의 민중저항을 통해 어차피 붕괴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며 “김재규의 행위가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홍구는 하단의 긍정론에 서술되어 있듯 2013년을 기점으로 김재규에 대한 견해가 바뀌었다.] 진보적 사회운동가 기완도 “당시는 박정희 유신독재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항쟁이 거셌고, 박정희 내부 권력의 모순이 더 격화되어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조그마한 사건일 뿐이며 민주화운동의 본체, 기본적인 흐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라고 주장하였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1784.html|출처]]
         자유총연맹 회장이자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닌 [[김경재]]는 저서 '쓰러지는 역사, 일어나는 역사'를 통해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하여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씻었다면서 민주인사들이 김재규의 거사를 폄훼하거나 냉소적으로 보는 분위기를 비판하였다. 소위 진보 및 민주인사들은 박정희 정권 말기 민중혁명의 성공이 눈 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갑자기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해버려 당시 끓어오르던 혁명의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어 버렸다고 주장하는데, 김경재는 이들의 주장이 화려한 응접실에 앉아서 입으로 노동계급의 승리를 외치는 '안락의자 속의 급진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를바 없다고 비판하였다. 설사 그들의 주장대로 민중혁명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살상당할 수 , 수 천의 무고한 희생자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반문하였다.
         >끝으로 나의 부하들은 착하고 순한 양 같은 사람들입니다. 무조건 복종했고 선택의 여유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저 하나가, 중앙정보부장 지낸 사람이 총책임 지고 희생됨으로써 충분합니다. 저에게 극형을 주고, 나머지는 극형만 면해 주도록 부탁합니다. 특히 박 대령은 단심이라 가슴 아픕니다. 매우 착실하고 결하며 가정적인 사람입니다. 청운의 꿈이 있던 사람입니다. 군에서 곤란하더라도 여생을 사회에서 봉사 할 수 있도록 극형을 면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재규의 최후 진술)
         다만 현재 김재규의 유족은 수억대의 재산을 가지고 유복하게 살아가고 있다.[[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28057|기사]] 김충식이 쓴 남산의 부장들에 따르면 제주지역에서 수렵장을 건설하겠다는 청탁을 김재규가 받아들였는데, 이를 김정렴 실장이 제지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에 따르면 장충동에있는 자신의 30억짜리 집을 1억 주고 뺏어가서 10.26 이후에 전두환에게 돌려받은 일이 있다.
          [[정한용]]이 [[정주영]] 회장이 연상되는 거대 재벌총수로 나오는 [[드라마]].[* 여담이지만 정한용은 [[영웅시대]]에서는 [[정몽구]] 역할을 맡았었는데, 외모가 정몽구와 정말 많이 닮았다.] 여기서는 실명 대신 정보부 부장이라는 호칭 아래 찬기가 열연했다. 사진상의 김재규와 상당히 비슷했고 원래 정치자금 문제로 [[박정희]]와 같이 회장님에게 충고하는 1회성 출연이었으나 의외로 인기를 끌어 고정 게스트화 되었다. 여기서 박정희로 나온 사람은 연극인 이진수. 박정희와 정보부 부장 2명은 실제 인물과 꽤 비슷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인기가 있었다.
          KBS에서 방영된 12.12 사건 세미 다큐 드라마. 여기서는 김재규라는 이름으로 초기부터 나온다. 역시 찬기가 김재규를 맡았고, 드라마 진행상 10.26 사건 이후 [[전두환]]에게 체포되면서 [[리타이어]]된다. 이 다큐 드라마에서 [[박정희]]는 [[이창환]], [[최규하]]는 [[김성겸]], [[전두환]]은 [[박용식]]으로 이후 정치드라마의 고정 배역의 시초가 된 작품.
          [[유인촌]]이 주연을 맡은 당시 건설회사 대표였던 [[이명박]]의 전기 드라마. [[이휘향]]에게 정치공작을 지시하는 부장님으로 찬기가 나왔다. 김재규라는 이름은 언급되지 않으나, 몇 번의 출연 후 작중에서 대사로 각하를 저격했다는 언급이 나와 그가 김재규임이 확정되었다.
          [[윤식]]이 열연했다. 김재규와 [[박정희]] 살해 사건을 주제로 한 블랙 코미디 영화. 이런 류의 풍자 코미디가 드문 한국에서는 괜찮은 수작이다. 다만 조롱에 중점을 둔 나머지 영화 속 청와대 사람들에 대한 묘사의 리얼리티는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 김취경전 . . . . 11회 일치
         [[조선시대]]의 군담소설, [[계모]]형 가정소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군담소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매우 드물게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구려와 제가 등장하고 단군이 나타나는 등 민족문화적 요소가 있다.--그리고 이때부터 고구려는 선역, 제는 악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황하던 취경은 어느 수수께끼의 발노인의 인도를 받아, [[흉가]]에 갔는데 그곳에서 괴물을 물리치고 미인 목소저를 구해준다. 목소저는 제국 태부상서의 딸이었다. 취경은 목소저에게 의지하여 병서와 무술을 공부하게 된다. 한편 집을 나온 선애와 설애는 [[남장]]을 하고 다니다가 함흥부의 소년 양화춘과 의형제를 맺고, 함께 오빠 취경을 찾아다니다 취경과 재회한다.
         그런데 이 때, 제국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고구려왕은 제군에 패배하고 위기에 바진다. 취경과 양공자는 함께 병법과 무술을 고웁하다가, 양공자가 천문을 보고 왕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고, 취경이 전장에 나가서 왕을 구하기로 한다. 취경은 장인의 영혼[* 제국 태부상서인데 어지간히 제왕이 싫었나보다(…).]으로부터 삼척보검을 얻고, 도적 천철웅에게 군량미를 지원받으며, 단군에게 갑주와 용마를 받는다.
         취경은 --[[템빨]]로-- 적군을 격파하고 고구려왕을 구출한다. 고구려왕은 기뻐하며 김취경을 도원수로 임명하여 제군과 싸우게 하고, 취경의 지휘 하에 고구려군은 제군을 격퇴한다. 마침내 취경의 활약으로 고구려와 제의 전쟁 끝에 고구려군이 승리하고, 고구려왕은 취경을 영의정으로 삼는다.
  • 마기/310화 . . . . 11회 일치
         수행의 성과로 여유롭게 연영(아르바)을 상대하는 알라딘 일행
          * 하지만 알라딘은 가볍게 괜찮다고 대꾸하며 연룡은 그 사실을 신드바드에게 알려줘야겠고 할 뿐 동요하지 않는다.
          * 알라딘은 자신이 유난을 치료하는 동안 모르지아나와 연룡에게 아르바를 상대해달라고 한다.
          * 연룡, 모르지아나 Vs 아르바
          * 아르바가 그녀를 쳐날리지만 룡이 받아내고 이때부터 둘이 협공을 가한다.
          * 연룡의 마법 "자우라 아르아즈라"
          * 결국 지팡이까지 놓치고 룡에게 안면을 두들겨맞는 아르바.
          * 룡은 "검을 못 들면 너 같은건 문제도 아니다"고 도발한다.
          * 룡은 이곳이 암흑대륙이기 때문이며 이곳은 "붉은 사자"(파나리스)보다 빠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 유난은 그 서슬에 "화나니까 무섭다"고 중얼거리고 알라딘은 "그치? 모르지아나와 룡 모두 강하지?"라고 동문서답한다.
          * 연룡은 여전히 검술로는 아르바에 미치지 못하나 마법과 병행하면 아르바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 된다.
  • 박명수(MC) . . . . 11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예능상'''}}} ||
         하여튼 조연으로서의 입지는 확실히 다져놓아 당시 가장 잘 나가던 꽁트 코미디 프로였던 <오늘은 좋은 날>의 '풍운의 별' 코너에도 등장하였다. '''프로메토 칸투라스 히드라 리바이탄 블리자드 자스카리투스 해저드 디아블로 레피쿠리우스 마젠드 하인리히 4세'''라는 이름의 악마 기믹 역할[* 여담으로, 이 악마 기믹이 [[성검전설 3]]에 등장하는 호크아이의 숙적 사안의 작과 매우 닮았다. 그래서 성검전설 3을 하는 사람들은 사안의 작을 그냥 박명수라고 부르기도 했다.]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소환자인 이경실이 그의 이름을 쉽게 외우는 것과 달리 정작 본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해 갈굼 당하는 역할이었다.
         이렇게 무한도전 대박까지 캐릭터에 큰 변경이 없는 박명수의 흥망성쇠는 2000년대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 트렌드의 변화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본인에게 한계가 있는 콩트라는 장르는 명히 몰락하고 있었고, 인지도는 어느 정도 있지만 방송사를 대표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개그맨들은 소속 방송사라는 둥지를 떠나 활동하기 시작한다. 박명수 역시 그러한 개그맨의 하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만의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던 박명수는 무한도전과 X맨에서 출연과 하차, 재투입을 거듭하여 리얼버라이어티에 적응해냈고 이윽고 대표 예능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리얼버라이어티의 선봉장에 위치한 것이 무한도전인 점을 생각해보면, 오늘 날 박명수를 논함에 있어 무한도전 전후는 커다란 기점임에는 분명하다. ~~하하 曰 : 형수님이 무한도전 보고 결혼한 건데 하차한다고 하니까 난리가 난 거야~~
         일단 기본적으로는 [[유재석]] 빼고는 동생들 모두에게 무신경한 편이다(...).[* 그러나 [[유재석]]도 별반 다르지 않은게 [[무한도전/방영 목록(2012년)|쉼표 특집]] 중 유재석의 마니또가 되었는데 소울푸드라고 가져온 게 그냥 반찬가게 반찬이었다(멸치볶음 등). 더불어 무도 맴버중 가장 성의없게 준비했다. 유재석은 해물찜 포장, 하하는 해산물 들어간 궁중 라면, 형돈은 치킨과 사과, 홍철은 짜장 떡볶이를 포함한 분식과 쥐포, 바나나 우유, 길은 와사비 과자등 간식거리, 준하는 팥죽등 성의가 있었는데 명수옹꺼는 밥이 추위에 얼어 돌밥이 되었다.] 방송상 컨셉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유재석]]과 제일 친한 건 또 맞는 말이라 대기실에서 모습만 봐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 유재석 옆에 착 붙어있고 음식같은 것도 유재석에게만 먹어보라고 살뜰하게 챙겨서 멤버들이 종종 서운해할 때도 있다. [[무한도전/방영 목록(2012년)|쉼표 특집]]에선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평상시에 따뜻한 말을 안 해주는 편인데다, 할 말 안할 말을 가리지 않고 마구 해버리는 안좋은 버릇이 있어 멤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동생들에게 얄미운 짓을 했던 적이 좀 많아서(...)[* 대표적인 경우가 [[정준하]]의 바지를 벗긴 일이다.] 따뜻한 말 좀 해주라고 원성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노홍철]]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형수님과 함께 방으로 알아보거나 [[길(리쌍)|길]]에게 조언을 건네고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하는 등 유재석처럼 동생들을 보듬어주거나 살갑게 대해주는 그런 게 서툴 뿐이지 본심은 멤버들 생각을 많이 해주는 편인듯 하다. ~~[[츤데레]]~~ --아니지 [[욕데레]]지--
         흔히 어린시절 공병 줍고 다녔던 시절, 동급생들에게 눌려지내던 쭈구리 시절 등 본인의 주장에서 비롯된 가난한 가정사가 언급되는데, 사실 군산에서 살때는 엄청 잘 살았다. 방마다 화장실을 따로 썼고, 집 안에 [[유치원]] 앞에 있는 그런 [[놀이터]]가 있었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말하길, 학창시절 당시 기만원 하던 컴퓨터(MSX급)를 아버지가 사주셔서 집에서 프로그램도 직접 짜며 놀고, PC용 게임도 많이 알고 있었다. PC통신도 즐겨한 듯한 언급이 있었다. 박명수의 어린 시절이 1970 ~ 1980년대라는 걸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중동으로 가서 달러를 벌어오시기도 했고 귀국 후 아버지가 운수업을, 어머니가 [[만화방]], 그것도 컬러 TV[* 지금이야 훨씬 더 선명하고 깔끔한 컬러 TV가 집마다 한 대씩 있고, 이젠 컬러냐 아니냐가 아닌 HD냐 LCD냐 등을 따지는 시대이니 별로 대단하지 않지만, 70년대 초반에는 흑TV도 부의 상징이었고 컬러방송이 늦게 시작되어서 그때쯤 되어서야 컬러TV의 보급이 시작된지라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컬러TV를 가진사람이 아직은 적었을때였다. 그래서 어쩌다 컬러 TV를 들여놓은 영업장에서는 컬러 TV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대가로 시간당 요금을 받는 식으로 굴려먹기도 했다.]가 있는 만화방까지 운영한 적도 있었다. 다만 사업이 뒤집어지면서 그 많던 재산을 죄다 날리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200만원 융자 받아서 사글세 방에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연대보증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공병 줍는 시절과 쭈구리 시절은 아마 이 시절을 기점으로 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2014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이 박명수의 고을 대신 전달했다. 그 내용이란게 "사랑하는데 SNS는 그만해줘..."라서 당시 참석자들이 단체로 뿜었다. 이에 한수민 씨가 바로 인스타그램으로 답변을 보냈는데 '''2014 MBC 연예대상, 박명수 서래 마을 휴 그랜트, SNS 계속할거야. 나도 사랑해'''라면서 박명수의 손하트 사진을 올려서 또 화제가 되었다.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23010524209884|관련기사]]
          * [[점만점]](KBS)
          * 2008년 제44회 [[상예술대상]] TV예능상
  • 박진성(시인) . . . . 11회 일치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http://www.gqkorea.co.kr/2017/09/29/%EC%A0%95%EC%A0%95%ED%95%A9%EB%8B%88%EB%8B%A4/?_C_=18|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남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남의 최후' 라던가 하는 식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 도의적 사과 및 성폭력 의혹 결 주장 ====
         2016년 11월 11일, 박진성 시인은 해당 사안에 대하여 자신의 결을 주장하며 그것을 입증할 증거가 있음을 밝힌다.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37|해당 기사 링크]]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로 결론이 난 내용을 주장한 2명을 각각 무고 및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두 명 다 그 죄가 인정되었으나 초범에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기소유예, 벌금 30만원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483930&plink=ORI&cooper=|해당 기사 링크]] [[https://imgur.com/pmqT0ao|뒤늦게 거짓임을 고하는 고발자의 카톡 내용]]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965482632808026112|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 이 때 그녀는 '좋은 소식'이라고 웃었는데 이 반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https://blog.naver.com/poetone/221212096465|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이들은 "무혐의 ≠ 결"이라는 식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아전인수]]와 [[내로남불]] 그 자체인 상황.
          그 와중에도 페미니스트들과 박진성 시인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하면 죄가 없어지냐' 같은 소리를 하거나 '박진성이 자살하기 전에 여성 습작생들에게 집적거렸다', '과거에도 자살을 빌미로 여자들을 꼬시고 동정심을 유발했다(본인의 고 내용)' 같은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2017년 12월 7일 기준으로, 트위터를 이용해 마녀사냥한 주요 오프라인 가해자들은 비판을 받아 재판에 불리해질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계정을 폭파시키기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편을 드는 SNS에서의 옹호자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9276420290576384|#]][[http://archive.is/meecs|@]][* 이 사례는 Holden 🔻Weatherfield라는 닉네임과 psychokinesis23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페미니즘]] 계정이다. 성향은 [[메갈리아]] 옹호자이자 가해자 [[이준행]]에게 [[재기#s-6|재기]]라는 [[남성혐오]] [[고인드립]]을 들은 피해자 [[전우용]]이 [[전우용#s-4.3|고소하다 용서한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https://twitter.com/psychokinesis23/status/772794350883315713|#옹호증거1]][[http://archive.is/gGvKe|@1]][[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772787036306546688|#옹호증거2]][[http://archive.is/QG3O0|@2]]). 특히 박진성의 자살시도가 성공해야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라는 조롱을 일삼은 점을 자신의 취향으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염동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면 저 시인을 자살로 몰고갈 수 있을 텐데''''라는 입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진영논리]]에 휩싸인 나머지 [[사이코패스|자기 진영 일원의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소시오패스|공감을 잃은]]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은 아예 사건에 입을 다물거나 익명의 계정에 숨거나 검색을 막기 위한 부계정과 스팸계정을 아직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https://twitter.com/No_JS_OK|해당 트위터 링크]] 이들은 어쨌든 관계를 맺고, 인정한 사실을 발설하더라도 [[지랄 옆차기 하네|해당 상황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보호 조치라고 설명한다.]]
         >뒤풀이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고En 시인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방이 따로 있는 그런 음식점이 아니었습니다. 고기와 맥주 그리고 소주. 그리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성을 위한 음료수. 명하게 ‘오픈’된 공간이었습니다. 오후 5시 경이었습니다. 술 기운에 취해서였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고En 시인이 당시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에게 “손을 좀 보자”고 했습니다. 고En 시인은 그 여성의 손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만지다가 팔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습니다. 그 여성은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당시 20대였던 여성은, 단지 고En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고En 시인에게 그런 ‘추행’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자리는 도대체 어떤 자리지? 저는 그 당시 그 자리로 저를 오게 한 K교수에게 항의했습니다. 도대체 안 말리고 뭐하는 거냐.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저와 그 당시 여성들만 당한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문단에서 굴러먹은 지 17년째, 고En 시인의 그런 만행들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2018년. “30년 전 격려 차원에서 그랬다”는 고En 시인의 변명을 보고 또 한번 경악했습니다. 30년 전이면 1988년인데, 그 이후에 제가 들은 똑같은 패턴의 희롱과 추행들은 유령이 한 짓입니까? 어제 "부끄러울 일 안 했다, 집필을 계속하겠다", 고En 시인의 입장 표명을 보고 다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정말 궁색한 변명입니다. 그의 추행과 희롱을 보고 겪은 시인만 적게 잡아 수명이 넘습니다. 수십년 간 고En 시인이 행해온 범죄입니다. 문단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왜 노 시인은 부정하는 것입니까.
         >고합니다. 밉보일까 봐 당시 동석했던 여성분들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범죄 현장에 있었습니다 저 역시 방관자였음을 시인합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고En 시인의 시를 보고, 고En 시인의 ‘기록된’ 행적만 보고, 고En 시인처럼 되고자 했던 저 자신을 먼저 반성합니다. 최영미 시인을 응원합니다. 제가 보고 듣고 겪은 바로는 최영미 시인의 증언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 [[반려동물]]로 개 사랑이를 키우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2018년 1월 [[내장]]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737097|#]] 박진성 시인은 사랑이의 죽음을 알린 뒤 힘든 시간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다는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 송주훈 . . . . 11회 일치
         || '''포지션''' || [[센터]][* 본래 [[풀]]이었으나 故 [[이광종]] 감독의 요청을 받고 센터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
         광명공고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입학해 주전 센터으로 활약했다. 이후 [[J리그]]로 진출하여 2014년 [[J1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 최초로 입단했으나, 한국 대표팀 소집 훈련 중 턱 부상을 당해 큰 수술을 했고 이후 재활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2경기 출장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에는 [[http://cafe.naver.com/jliga/24009|다리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으면서 전치 3개월 판정을 받았고,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팀의 배려로 재활과 출전 기회 획득을 위해 [[J2리그]]의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되었다.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된 송주훈은 재활을 거쳐 2016년부터 주전 센터으로 뛰게 되었으며, 시즌이 개막한 후 올림픽 직전까지 모든 경기 (19경기) 풀 타임을 소화하며 1골을 넣는 등 핵심 자원으로 거듭났고, 2016년 [[J2리그]] 선수들 중 공중볼 점유율 1위 선수로 뽑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출국을 앞두고 FC 기후와 가졌던 7월 16일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의 경합 도중 새끼발가락 골절상[* 발가락이 완전히 부러져서 수술이 급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송주훈 본인도 올림픽 직전에 당한 부상이라 충격이 상당했다고.]을 입어 다시 재활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니가타에서의, 실질적인 데뷔 시즌. 니가타에서도 송주훈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는지 [[등번호]]로 팀의 핵심 [[센터]]들이 주로 받는 4번을 받았으며, 시즌 초에는 부상 완치에 집중하느라 출장하지 못하다가 완치된 후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자신이 상위 리그에서도 실력이 통하는 선수임을 보여주었다. 다만 본인의 활약과는 별개로 소속팀인 니가타가 시즌 내내 꼴찌를 차지하다가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31795869929652224|강등이 확정되면서]] [[J1리그]] 경험은 1년만에 끝났고, 이전 소속팀이었던 미토와 대표팀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다음 시즌은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니가타와 재계약을 맺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51257265041887232?s=17|#]] [[아시아 쿼터제]] 폐지로 인해 이적해봤자 [[벤치워머]] 신세일 것이 뻔한 [[중국 슈퍼 리그]]로 가느니 일본에서 주전으로 뛰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2018년에도 시즌 초반부터 주전 센터으로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가 장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소속팀인 니가타마저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어 이적 가능성 또한 점쳐지고 있는 상황.
         2010년 [[나이키]] U-16 친선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2012년 [[발렌시아]] U-20 친선 대회 때 故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은 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왔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했고,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하차한 후 출범한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2015년 [[킹스컵]],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꾸준히 주전 센터으로 발탁되어 [[뿌뿌뿡|팀의 수비를 책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있던 4개국 초청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올림픽 직전 입은 발가락 부상으로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의 대체자로는 [[김민태]] 선수가 발탁되었다.
         한편 성인 대표팀 경험은 없었는데, 前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으로 [[김기희]], [[김영권]], [[김주영(1988)|김주영]], [[장현수]] 등의 [[중국 슈퍼 리그]] 소속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인지 [[J리그]]에서 뛰는 송주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같이 J리그에서 뛰는 센터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이 몇 차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긴 했으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슈틸리케가 떠난 후에 새로 출범한 [[신태용호]] 체제에서 커리어 최초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http://m.sportsseoul.com/news/read/554778?refer=facebook|#]] 이후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U-23 대표팀에서도 중용했던 송주훈이 올림픽 직전의 부상으로 안타깝게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 겸, 성인 대표팀에서의 기량도 확인해볼 목적으로 이번 대표팀에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KoreaFootballTeam/photos/pcb.10155941753318836/10155941751838836/?type=3&theater|#]] 그리고 10월 1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대패를 당하게 되는데 첫번째 실점이 되는 수비에 기여하는둥 데뷔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수비 실력으로 신태용 감독 눈 밖에 나게 되고 다음번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하게 된다.
         >'''“헤딩을 정말 잘해요. 헤딩을 하기 위한 피지컬을 타고난 선수에요. 샤워할 때 맨몸을 보면 몸이 정말 좋아요. 몸싸움도 능하고 공중볼에 대한 확실한 강점이 있는 센터이에요.”''' - [[구성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1회 일치
         그는 국왕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공소를 잃고 보스턴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코너는 숙련된 장인이 필요했다며 그 남자를 대번포트 농지에 정착시킨다.
         강도들에게 습격 당했을 때 모든 도구를 잃어버린 랜스는 보스턴에 있는 자신의 목공소로 가 여분의 재료를 가져오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쫓겨났던 랜스는 코너에게 호위을 부탁한다.
         코너와 랜스는 보스턴에서 만나 랜스가 운영하던 목공소로 찾아간다. 하지만 목공소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3주 전에 도제인 패트릭이 목공소를 팔아치워버린 것. 랜스는 패트릭을 찾아가 따지지만 패트릭은 안 돌아올줄 알아서 도구도 가게도 다 팔아치웠는데 어쩌겠느냐, 라는 반응. 랜스는 목공이 생명선인 도구를 팔리가 없다며 패트릭이 어디다가 꿍쳐뒀을 거라고 추측한다.
         워렌이 보스턴에 수확품을 팔러 나간 사이 프루던스가 코너를 부른다. 풀어놓은 가축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임신한 몸이기에 코너에게 부탁하려던 것이었다.
         코너는 보스턴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남자가 병사들에게 두들겨 맞는걸 본다. 코너는 남자를 도와 병사들을 쓰러뜨린다.
         프랑스어를 쓰는 남자, 노리스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병사들이 자기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퀘벡에서 온 프랑스계 사람이었던 것. 광부일을 하기 위해 보스턴에 왔지만 억양 때문에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노리스. 코너는 대본포트 농지에 있는 광산을 소개해준다.
         워렌과 프루던스가 랜스가 만들어준 요람을 보고있다. 프루던스가 임신한 것. 근처에 의사가 없는걸 걱정하는 워렌을 위해 코너가 의사를 찾아보기로 한다. 워렌은 보스턴에 사는 라일 화이트 박사라면 여기로 이사해줄지도 모른다고 한다.
         보스턴에 도착한 코너는 라일 화이트 박사를 찾지만 화이트 박사는 모두에게 "사신 의사", "살인자"라며 비난받는 사람이었다. 코너는 라일을 린치하려던 사람들을 때려눕히고 화이트 박사에게 말을 건다. 화이트 박사는 자신이 영국군에게 "색 사신"이라고 모략하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프루던스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녀를 돕기로 한다.
         === 북부 보스턴: Gangs of Boston ===
         === 남부 보스턴: Martial Law ===
  • 육미당기 . . . . 11회 일치
         유구국왕(琉球國王) 문현(白文賢)이 중국으로 가다가 소선을 구출하여 당나라로 데려가고, 인품이 뛰어난 걸 보고 자신의 딸 소저와 혼인을 서약한다. 하지만 문현은 간신의 참소를 받아 귀양을 가게 된다. 소선은 집을 나와서 방황하다가 [[퉁소]]를 잘 불어서 임금의 총애를 받고, 옥성공주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그 때 소선이 신라에서 기르던 [[기러기]]가 모후의 편지를 전해와서, 소선은 기뻐서 눈을 뜨게 된다. 신분이 밝혀진 소선은 [[한림학사]]가 되고 옥성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된다.
         한편 소선과 약혼했던 소저는 남장을 하여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하고 한림학사가 된다. [[토번]]이 침략해오자 소선은 초유사가 되어 적진에 갔다가 감금되고 만다. 소저는 원수가 되어 출정하여 토번을 물리치고 소선을 구출한다. 소저는 개선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당나라 황제는 소저를 금성공주로 책봉하고 소선이 제2부인으로 삼도록 한다.--소저에게 별로 이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건 기분탓일까.--
         소선이 나라에 돌아온 뒤 왜국이 신라를 침범하였는데, 소선은 금성공주 소저와 출정하여 왜국의 서울 강호(江戶)까지 진격하여 왜왕에게 항복을 받는다. 소선은 왜국을 토벌하고 돌아와 부왕의 뒤를 이어 신라 왕이 되고 선정을 베풀다가 부인들과 함께 보타산에 가서 승천한다.
          * 소저는 옥루몽의 강남홍처럼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무력만렙 최강 히로인(…)의 계보를 이어가는 캐릭터로서, 줄거리에서 보다시피 김소선은 별 활약상이 없고 소저가 다 때려부수고 다닌다.--다시는 유구국을 무시하지마라--
  • 윤덕주 (농구인) . . . . 11회 일치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체육인 겸 사학자 [[이상 (사학자)|이상]]은 친정어머니 이숙경의 사촌 남동생들이었다. 치과의사 겸 치의학자 [[이열희 (1924년)|이열희]]는 외사촌 동생이었다. 대구 출신.<ref name="dibigo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307032 <nowiki>[</nowiki>부고<nowiki>]</nowiki> 윤덕주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 동아일보 2005.07.09</ref>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윤홍열 (1893년)|윤홍열]]의 딸이자 민족운동가 겸 사학자 [[윤필오]]의 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 이숙경은 민족운동가 이일우의 딸로,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체육인 겸 사학자 [[이상 (사학자)|이상]]의 사촌 누나가 된다.
         *** 외당숙 :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 [[1943년]] [[4월 25일]], 작가, [[독립운동|민족]] [[시인]]. 아호(雅號)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아(白啞).)
         *** 외당숙 : [[이상 (사학자)|이상]](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 사학자 겸 체육행정가. 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아호(雅號)는 상(想白), 무일재(百無一齋).)
         * [[이상 (사학자)|이상]]
  • 최남선 . . . . 11회 일치
         가출옥 후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창립했다. 같은 해 9월 주간지 '동명'을 창간해 [[1923년]] 6월까지 발행했다. [[1925년]]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활동에 참여했고, 동시에 《[[동아일보]]》에 사설을 쓰는 한편, 1926년 옛 제 영토 방문기 '심춘순례'를 근대 최초의 창작 시조집 '팔번뇌'를 출간했다. 이어 〈[[단군론]]〉(1926년), 〈[[불함문화론]]〉(1928년)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불함문화론〉에서 그는 동방 문화의 근원지를 단군 신화의 무대인 두산이라고 주장하였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는 1943년 11월 24일 [[일본]] [[도쿄]] [[메이지 대학]]에서 조선인 전문·대학생들에게 학병에 지원하라는 강연을 했다.<ref name="daedams">[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03/2007030300046.html “화랑 사상 지금 부활해도 좋을듯…”] 조선일보 2007.03.03</ref> 당시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조선화보’(1944년 1월호)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육당과 춘원의 대담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 대담에서 춘원은 강연회에 대해 “일종의 극적 광경이라고나 할까. 황국을 위해 전장에 나가 죽자는 생각이 모두의 얼굴에 드러났더군요”라며 “그때의 압권은 최(남선) 선생님의 강연이 아니었을까요”라고 말했다. 육당은 “적어도 천오 명은 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며 “일찍이 없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지요”라고 화답했다.<ref name="daedams"/>
         최남선은 그는 평생 고전 정리와 주석에 관계된 것 등 다방면에 걸쳐서 국사와 고전 서적의 간행, 복원, 한글 번역 작업을 하였다. 한국 최초의 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창작하는 등 개화기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였다. 시조 부흥 운동을 지도하여 최초의 시조 시화집 《팔번뇌》를 출판하기도 하는 등 신문화와 전통 문화의 과도기를 살았던 인물로서 한국의 신문화 운동에 남긴 업적은 매우 크게 평가되고 있다.
         * 시조집 《팔번뇌》
         1944년 1월의 조선화보에서 육당의 계몽가요 ‘경부철도가’(1908)가 일어로 번역된 영국 시인 바이런의 ‘해적’을 일본의 신체시 형식으로 모방했다는 고을 하기도 했다.<ref name="daedams"/>
         * [http://tiny.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0b1841a&ref=2 「불함문화론」, 에듀넷-브리태니커 학습과]
         *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K&i=293634&v=43 「최남선」], 《한국민족문화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B&i=189207&v=43 「최남선」], 《브리태니커 과》
         {{글로벌세계대과}}
  • 킹덤/516화 . . . . 11회 일치
          난민, 그 말이 호주의 입에서 나오자 이목의 안색이 변한다. 이목이 거기에 대해 자세히 묻고 호주는 그런걸 묻는 의도를 의아해하면서도 "진군이 정복한 성의 성들을 성 바깥으로 쫓고 다른 성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왕도권 남부에는 산더미 같은 난민 무리가 길 위에서 헤매고 있단 말인가? 이목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다.
          진군의 행로를 보니 의도가 명확하다. 그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차례차례 성을 점령해갔고 북쪽은 양단화군을 움직여 틀어막았다. 성들이 갈 곳을 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들이 가는 "동쪽"은 한 곳일 수밖에 없다. 이목이 다시 호주에게 묻는다.
          * 이목의 통찰대로 구름떼 같은 난민 무리가 업성으로 모여들었다. 업성의 각 입구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난민 행렬을 통제하기 위해 병사들이 분주하다. 성을 수용하고 나서도 각 성의 사람들이 뒤섞이고 일행이 헤어지지 않게 통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숫자. 벌써 2곽이 꽉 찼는데 아직도 행렬이 이어진다. 현장 지휘관은 제 3곽도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려 하는데, 부하는 이 3곽도 꽉 찬지 오래라고 보고한다. 이만한 숫자는 먹이는 것도 문제다. 식량도 지니지 않은 채 먼 길을 온 난민들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했다. 우선은 배급을 진행 중이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 업의 성주 [[조이]]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면 업성의 부양능력을 그만큼 믿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이제 난민을 그만 받자는 상소가 올라오는데 그는 일언지하에 각하한다. 아직 진군이 당도하지도 않았는데 나라의 근간인 성을 버릴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진군이 도달하기 전까진 난민을 받아라"란 지시가 내려간다. 자비롭고 관대한 명령이지만, 이 전시에 타당한 것일까? 가신들이 난색을 표하는데다 난민의 수가 늘 수록 식량창고가 비어가는 속도도 빨라진다. 얼마 안 가 제 3 창고가 텅 비었다는 보고가 올라오는데, 조이은 놀라기는 하지만 "창고는 얼마든지 있다"며 제 4, 5 창고까지 개방한다.
          * 지평선이 새까맣게 진군이 몰려들었다. 곧 업성은 농성 체제로 들어간다. 입구에 연결된 잔도에는 아직 건너는 중인 성도 있었지만 황급하게 문을 닫았다. 이것 자체는 이목도 예정했던 작전. 그러나 그가 본 그림에는 업성 내부에 아홉 소도시에서 온 난민이 있지 않았다. 성주 조이은 진군이 당도했다는 보고에 이어 또다른 낭보를 받는다.
          >아니면 아홉 성의 성이 업의 식량을 먼저 다 해치우는가 하는...
          * 적군만 왕전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경악한 건 아니었다. 환의는 병량공세를 받는 군단이 상대 성을 써서 역으로 병량 공세를 거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크게 감탄한다.
  • 혜리(1994) . . . . 11회 일치
         ||<bgcolor=#A9A9F5> '''별명''' ||리혤, 흑구[* 혜리 본인은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닥 반기지는 않는 듯. 그럼 흑묘?, 해시태그에 출연해서 이 별명을 언급하며 멤버들에게 “구”자 돌림 별명을 지어주기도.~~ [[유라(유스걸데이)|빙구]], 흑구, [[민아(걸스데이)|구]], [[소진(유스걸데이)|이십구]](…).~~], 코봉이, 코크다스[* 아는형님에서 인증], 까망이, [br]혤저씨, 혤줌마, 혤머니, 혤장군, 혜리도사,[br]까망혜리, 혜르미온느[[http://youtu.be/oSvi7gih-gw|#]],[br]혜리클레스||
         실제로 <한번만 안아줘>시절 개인기로 밀던 [[https://www.youtube.com/watch?v=DwVjKGx8-lg#t=370|애교 3종 세트]]만 해도, 어린 여자애가 그렇게 못하기도 힘들다. 더군다나 같은 팀에 '''[[민아(걸스데이)|세기말 귀요미 패자]]'''와 '''[[유라(유스걸데이)|치미 종결자]]'''가 있어서 애초에 그 역할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걸스데이가 섹시 컨셉을 지향하면서부터 무대 위에서 혜리의 존재감이 대폭 상승하였다. 특유의 쿨시크한 외모와 섹시 컨셉이 맞아 떨어지면서 '''[[소진(걸스데이)|팀 내 섹시 원탑]]'''의 포스에 버금갈 정도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여자 대통령>의 단발변신과 <Something>으로 컴하면서 금발염색 테크가 [[신의 한수]]인 듯. 공방을 다녀온 몇몇 덕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무대 위에 혜리밖에 안 보인다고 한다.
         <기대해> 컴에 맞춰 공개된 2013년 3월 28일자 TheSTAR 인터뷰. 같은 인터뷰의 Part 1은 [[http://www.youtube.com/watch?v=9vxt0yDxg0A|여기에.]] 전술한 혜리의 진면목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한 때가 이 무렵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잘하지만 혜리의 '''남자다운''' 예능감이 유독 돋보인 인터뷰이다. 진행을 맡은 [[소진(유스걸데이)|리더]]와의 합은 실로 환상적. 이 커플이 8살 차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찰진 만담을 보여준다.
         2016년 2월 27일 2주전 완전체 인터뷰 때 약속했던 대로 [[연예가 중계]] 게릴라 데이트에 [[https://youtu.be/DVa8Rw63kp0|출연했다.]] 명동을 마비시키며 셀카, 허그 등 팬서비스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박보검]]과의 키스신에서 코가 닿아 NG가 났다는 [[신현준(배우)|코 큰 자들]]의 설움을 공개하기도. 2015년에 이은 2016년의 희망뉴스는 '''걸스데이 전분야 장악'''.
         그렇게 퇴소식을 거치며 해당 회차가 마무리 되던 순간, 분대장 조교와의 작별 인사 장면에서 아이돌 경력 5년차의 모든 내공을 끌어모은 그야말로 [[최종보스]]급 [[앙탈]]이 폭발하였다. 문이 불여일견.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JTBC]] 추리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s-2|선암여고 탐정단]]에 캐스팅 [[http://news.nate.com/view/20141105n29509|됐다.]] 2014년 12월 16일 첫방송으로 주 1회 방송. 특이하게도 [[http://www.youtube.com/watch?v=CXPv1ZA1y64|티저영상]]을 같은 방송사의 히트 프로그램 [[마녀사냥(JTBC)|마녀사냥]]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11월 28일 혜리의 마녀사냥 기습출연과 관련이 있는 듯. ~~여고생 드라마 티저를 19금 방송으로?~~ [[http://www.youtube.com/watch?v=87pGYn8V-gw|캐릭터 소개 영상]]을 보면 혜리의 역은 공주병 걸린 [[유라(걸스데이)|치미]] 캐릭터라고 한다. 상술한 연기전력에서 알 수 있듯 이는 혜리의 전문분야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BD00nyEsZ-4|제작발표회]]에서의 코멘트 역시 몸에 꼭 맞는 역할인 것 같다고. 참고로 주인공을 맡은 [[진지희]]와는 이미 한참 전에 [[http://www.youtube.com/watch?v=PzXikbHNz6k|합을 맞춰본 전력]]도 있고 하니 둘의 앙상블 연기 역시 눈여겨 봐야 하겠다.
         || [[SBS]] || 종원의 3대 천왕 || 78회, with 걸스데이 ||
         2014년 1월 3일 새노래 <Something>으로 컴하면서 은발 염색을 감행했다. 이걸 보고 팬들이 혤머니 드립을 치기 시작했는데 [[유라(걸스데이)|유라]]는 이게 또 맘에 들었는지 쇼케이스 현장에서 별명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혜리클레스에 이어 당분간 혤머니 확정. 더쇼 라이브채팅 중에서도 [[유라(걸스데이)|유라]]가 올라온 글을 보고 혤머니라고 외쳤는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정작 본인은 별명이 맘에 안 드는 듯.
         긴 공시간 끝에 이번 링마벨 활동 때 가발을 하여 단발머리에서 긴머리로 변신한다. 일반인에겐 호불호가 갈리지만 혜리의 긴머리를 좋아하는 덕후들에겐 환장할 듯. 알고보니 응팔 촬영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잘라 가발을 쓴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데뷔 때 부터 라이브 실력이 딸린다는 평가를 줄곧 받아왔는데, 2집 타이틀 <Ring My Bell> 부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자기 파트는 소화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2016년 7월 [[보해양조]]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잎새주]]의 모델이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4&aid=0003684782|관련 기사.]] [[잎새주]]는 지난 2012년 가수 [[지영]] 등장 이후로 별도의 모델 없이 마케팅 활동을 지속해오다[* 혹자는 [[홍진영]]이 [[잎새주]] 모델을 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홍진영]]이 모델로 나섰던 제품은 [[잎새주]]보다 도수가 낮은 대중형 제품 [[잎새주 부라더]]다. 사실 호남에서는 [[잎새주]]보다 [[잎새주 부라더]]가 더 많이 팔린다.] 4년 만에 혜리를 모델로 발탁했다. 그만큼 혜리에게 있어선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희빈 장씨 . . . . 11회 일치
         외할머니 변씨는 조선 최고의 갑부 역관으로 유명했던 [[변승업]]의 당고모로, [[변승업]]의 아버지이자 소설 《허생전》에 변부자로 등장했던 변응성의 사촌누이(부의 딸)이다. 외삼촌 윤정석은 조선의 부를 장악했던 [[육의전]]의 면포 상인이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1권,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9일(갑진) 4번째기사</ref><ref group="주">윤정석의 본래 출신이 기록된 《숙종실록》에는 "시인(市人)으로 면포(綿布)를 파는 자"로 기록하고 있다. 17세기 조선의 한성에서 면포를 팔 수 있는 건 오직 [[육의전]] 상인 뿐이다.</ref>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공초되었을 때의 기록에 따르면 1680년 장씨가 출궁되어 은평구 친정에서 머물 당시에 담 하나를 두고 이웃에 살았던 만큼 누이인 윤씨와 관계가 매우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희빈 장씨가 아비의 사후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당부 [[장현 (조선)|장현]]이 [[경신환국]]에 휘말린 후 가세가 기울자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남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였다고 주장하여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졌지만, [[경신환국]]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ref group="주"> 궁녀의 통상 입궁 연령은 4세부터 16세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법적 혼인 연령은 14세~20세이다. 부모가 50세를 넘긴 경우엔 관아의 특별 허가를 받고 12세 이상의 자녀를 혼인시킬 수 있는데 16세기 이후엔 수 차례에 거듭된 외란으로 남성의 숫자가 급감하였고 처녀를 차출하여 청으로 진상하거나 궁녀로 뽑는 분위기로 인해 법금을 어기고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희빈 장씨가 [[경신환국]] 당시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궐하였다는 [[인현왕후]]의 주장으로 불거진 것인데, [[경신환국]]과 같은 해 말에 장씨가 강제 출궁이 되었다가 7년 후인 [[1686년]]에 다시 입궁했던 만큼 이미 궁녀인 신분으로 출궁을 당한 후에 [[남인]]과 연계하여 돌아왔다는 것이 오역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조선 효종|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 (조선)|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조선 현종|현종]] 5년에 대왕대비전의 궁녀로 뽑혔다가 이미 사주가 오간 상대가 있으니 정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출궁된 역관 최우의 딸의 전례<ref>현종실록 5년(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12월 30일(정해) 2번째기사</ref> 도 있는 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에 불과하다.
         대군 성수는 탄생한지 100일이 되지 않은 9월 16일에 돌연 급사하였다.<ref group="주">만일 성수가 정식으로 대군 책봉식을 거친 후에 사망했거나 갑술환국이 발생한 이후에 사망했다면 인현왕후가 복위하여 장씨가 후궁으로 강봉되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법도에 따라 적서 상관없이 자동으로 적처(왕비)에게 입적되는 후계자(왕세자, 원자)와는 달리 그 외 자녀는 생모의 처첩 여부에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장씨를 후궁으로 강봉하려면 성수도 함께 대군에서 군으로 강봉하거나 장씨와 성수를 함께 폐서인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ref> 조정에서 신생대군(新生大君)의 사망에 대한 원인이 논의되었다. 6월부터 산실청이 세워지고 산모인 장씨가 불안한 상태임이 거론되었는데 출산을 하고난 이후에도 장씨의 상태가 불안하다는 기록이 있으며 9월 16일 신생대군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상태가 미완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난산]]이었거나 장씨의 건강이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숙종]]은 조정 관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토로했을 만큼 둘째 아들을 잃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1692년, 전 해(前年)에 조졸한 신생대군방에 절수된 영토와 녹봉을 거둘 것을 주청하는 건의가 반복되어 허가되었다.
         갑술환국이 발발 후 12일 째가 된 1694년 4월 11일, [[조선 숙종|숙종]]은 돌연 [[장희재 (조선)|장희재]]를 긴급구속하고, 훗날 길일을 잡아 서궁([[덕수궁]])으로 입처할 폐비 민씨([[인현왕후]])의 서궁 입처를 길일과 상관없이 당장 다음날로 할 것을 명하며 민씨의 사가에 수직(호위)를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폐비 민씨가 서궁으로 입처했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민씨가 스스로 죄를 간절히 뉘우치고 있으며, 두 자전(慈殿: [[장렬왕후]]와 [[명성왕후]])의 삼년상을 함께 보낸 아내이니 쫓아냈던 것은 지나친 처사<ref group="주">삼불거를 뜻한다. 칠거지악을 범한 아내일 지라도 삼불거에 해당되면 소박할 수 없으며, 이미 소박하여 새로이 혼인을 하였더라도 전처가 국가에 소송하면 이혼이 취소되어 새로운 아내는 첩으로 강등되거나 친정으로 돌아가야 한다.</ref> 였다."며 민씨를 중전으로 복위하고 "성에게 두 임금이 없는 것은 고금을 통하는 의리이다"며 중전 장씨의 왕후새수(王后璽綬)를 거둬 희빈(禧嬪)의 옛 작호를 돌리고 거처를 옛처소인 창경궁 취선당으로 옮기라는 비망기를 내린다. 이에 대해 환국을 위해 투합했던 [[노론]]과 [[소론]]이 강경히 대립하게 되는데, 이는 [[노론]]은 [[인현왕후]]의 복위를 목적했고, [[소론]]은 희빈 장씨를 왕비로 둔 채 [[인현왕후]]를 폐서인인 상태로 별궁에 모셔 편안한 여생을 맞기만을 목적했던 탓이다.
         [[조선 숙종|숙종]]의 복위 명령에 병조판서 [[서문중]]은 이조참판 [[박태상]] 등과 함께 사람을 모아 ‘9년·6년과, 아들이 있고 아들이 없는 것은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경한가?’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인현왕후]]가 비록 희빈 장씨보다 더 오래 왕비로 있었으나 왕세자의 생모인 희빈 장씨가 더 귀하다는 뜻이다. 정원(政院)은 조정관과 신중히 공론을 한 후에 결정지어질 때까지 명을 받들 수 없다는 거부의사를 표명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6권,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4월 13일(경진) 2번째기사</ref> [[인현왕후]]의 복위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노론]]과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소론]]의 격렬한 언쟁이 오가던 가운데<ref>《숙종실록》에는 누락된 내용으로 《승정원일기》 4월 12일 ~ 4월 16일까지의 기사에 수록되어 있다.</ref> 4월 16일에 이르러 우의정 [[윤지완]], 공조판서 [[신익상]], 한성부우윤 [[임상원]], 병조참의 [[이유]] 등의 [[소론]]의 대표 인물들이 단체로 사직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렀는데<ref>《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16일 (계미) 원본356책/탈초본18책</ref> [[조선 숙종|숙종]]이 갑술환국을 일으키며 중앙을 [[소론]] 중심으로 채웠던 만큼 사태가 심각했다. 이 사건은 엿새 후인 4월 17일, 영의정이자 소론 영수였던 [[남구만]]이 '이미 복위하라는 왕명은 내려졌고, 자식이 어미(國母: [[인현왕후]])의 죄를 논하며 도로 쫓아내라 마라 의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소론]]을 중재하여 결국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ref>『숙종 20년 4월 17일 1번째 기사』</ref> 이 사건을 계기로 [[소론]]은 희빈 장씨를, [[노론]]은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는데 [[소론]] 영수인 [[남구만]]은 중립을 지켰다.
         이에 숙종은 먼저 태자방의 가족들을 궁으로 데려와 증언을 받아낸 후<ref group="주">이들은 형신이 시작되자 마자 동일한 증언을 하였으며 그 직후 방송되었다.</ref> 이 증언을 바탕으로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첩 숙정과 선당과 동궁전의 궁인(宮人)·죽은 태자방의 뒤를 이어 굿을 했던 무녀(巫女) 오례를 압송해 수일에 걸쳐 압슬형 등 최고 고문형을 가하며 범죄를 인정하는 자을 받아낸다. 생존한 죄인은 군기시에서 처형되었다.<ref>[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4022&cat_code=0605&start_year=2009&start_month=05&end_year=2010&end_month=08&press_no=&page=6 왕권 강화, 임금에겐 달고 성에겐 쓴 열매]</ref> 이 사건을 무고의 옥(巫蠱-獄, 여기서 무고란 무술 (巫術)이나 방술 따위로 남을 저주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이라 한다.
         이때에 소론은 고문 과정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주장하며 희빈의 결을 주장했지만 이미 희빈을 죽일 결심을 한 숙종의 뜻이 단호하였다. 이에 영의정 [[최석정]]과 소론은 희빈에게 죄가 있다고 치더라도 세자의 어미이니 처우에 관대하게 하자고 주장을 바꿨지만 이 역시 기각되었고 [[최석정]]은 부처되었다.<ref group="주">같은 해 12월부터 숙종은 다시 최석정을 조정으로 부르지만 최석정은 수십 차례 사직을 고집한 후 은거하였다.</ref> 1701년 10월 7일, [[조선 숙종|숙종]]은 빈어(嬪御:임금의 첩)에서 후비(后妃:임금의 정실)로 승격되는 일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고, 다음날 10월 8일에 승정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장씨에게 자진의 명을 내렸다. 10월 10일, [[조선 숙종|숙종]]은 희빈 장씨가 이미 자진하였음을 공표하였다. 향년 43세였다.
         * {{한민족대과|E0066097}}
         * {{두산과|101013000739173}}
         {{글로벌세계대과|제목=제도의 변화}}
  • 김미숙(1959) . . . . 10회 일치
         어린 시절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알고보니 돈만 주면 합격하는 학원이었다고... 눈물이~~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思考)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배우는 포기했다. 그 당시로써는 큰 키와 마른 체구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세터. 그래서 손 힘이 굉장히 센 편인데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 영화 [[말아톤]]의 DVD 메이킹 필름에서 세차게 --강스파이크로--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아웃된 듯한 [[성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드라마)|기분 좋은 날]] 9회 초반에 극중 집 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멀쩡한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마지막엔 결혼에 골인하고 [[내 딸, 금사월]] 44회에서 손창민은 김미숙과 여고 동문인 [[신득예]]에게 낭떠러지에서 위협받는다 뺨에 강스파이크~~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이 대회 대상은 [[원미경]].]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다. 상태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Fail.'''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 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
         그리고 2009년 연기 인생 처음의 악역이라 일컫는 <[[찬란한 유산]]>으로 드라마에서의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족애와 성장드라마를 짬뽕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기며 큰 히트를 기록한다. 여기서 김미숙은 '''"정말 악역을 안 할 것 같은 배우"'''의 얼굴로, 징그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성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 언제나 선하고 호감가는 역할만 하던 김미숙에게는 처음으로 욕을 먹는 경험(?)을 하게 한 작품이라고.[* 신선한 악역 연기에 찬사를 보내자 김미숙은 인터뷰에서 "다들 내가 이런 역할 못할 줄 알았나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 [[1995년]] [[SBS]] 《[[고(1995년 드라마)|고]]
          * [[2009년]] [[SBS]] 《[[찬란한 유산]]》 ... 성희 역
          * [[1990년]] [[롯데화점]]
          * [[1992년]] ~ [[1997년]] [[CJ제일제당]] (설햄 <꼬마 치킨바, 로우로우, 고기완자햄, 비프 인 후랑크, 두루두루, 그린그린 비엔나, 불고기햄, 포캠, 바베큐맛햄, 설햄 비엔나, 델리 비엔나>, 설 닭강정)
          * [[1994년]] [[부산화점]]
  • 김상중(배우) . . . . 10회 일치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으며, 1990년 [[연극]] '아이 러브 빵'으로 데뷔했다. <돈아 돈아 돈아>, <세 자매> 등의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94년 특채로 MBC에 발탁, 드라마 <님이여>에 출연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영한 광복 5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범 [[김구]]에서 '''청년 [[김구]] 역'''으로 출연하였다.[* 중노년 김구 역할은 배우 조상건으로 교체되었으며 최후의 암살 순간까지 맡았다. 후에 그는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독립군 역으로 나왔는데 동료들(김인권, 이범수, 정준호)과 식사하는중 그 식당에 김구가 있다는걸 유일하게 눈치채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배우개그일지도...]
          * 홍아모개 역을 맡았던 [[역적 : 성을 훔친 도적]]의 OST를 불렀다. 제목은 익화리의 봄. 작곡은 본 드라마의 대다수 곡의 작곡을 맡았던 안예은이 했다. 중후한 목소리에 큰 기교없이 담하게 부르는데 노래실력이 상당하다. 향주목에서 왕의 군사들과 대치했을 때 성들이 떼창한 곡이기도 하다.
          * 2017년 10월 제10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에서 역적: 성을 훔친 도적의 홍아모개 배역으로 생애 첫 '''연기대상'''을 수상하였다. 데뷔한지 무려 27년만이다. 그리고 2017년 [[MBC 연기대상]]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면서 2017년 한 해는 연기자로서도 최고의 한 해로 기억하게 되었다.
          * [[조선왕조 오년]] - 대원군(MBC, 1990) - [[김규식]]
          * [[경찰특공대(드라마)|경찰특공대]](SBS, 2000) - 성철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MBC, 2017) - 아모개
          * 2017년 제10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대상'''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2017년 MBC 연기대상 '''대상'''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김준현(코미디언) . . . . 10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예능상'''}}}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서울)|흑석동]][* [[종원의 3대 천왕]] 37회 참조.] ||
         [[2012년]] [[4월 29일]] [[네가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0대까지만 해도 날씬한 체형이었다고 한다.[* [[종원의 3대 천왕]] - '전'편에서 김준현의 과거 사진들이 나왔다. 참고로 날씬했을 땐 체격좋은 훈남이였다.] [[http://dryicess.tistory.com/129|링크]] 그러던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비만|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김준현은 중학교 재학시절까지 검도선수 출신으로 군에서 제대 할 때 까지만 해도 많이 먹는 대신 활동량도 많아서 살이 찌지 않았는데 운동을 그만둔 상태에서 먹는 양은 그대로고 활동량은 없어졌기 때문에 쪘다고 한다. 이 내용은 맛있는 녀석들 포장마차 특집에서 나온 것이며 김준현의 말을 빌리자면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 이미 예정된 비만이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유민상이 툭하면 먹는데 끌고 다녀서 신참이다보니 따라다니며 먹어재껴서 그꼴이 났다고 네가지에서 그러던데 그게 개그용 멘션인지 진짜인지는 미지수.
         tvN의 [[예능 프로그램]]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당뇨병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사실 정확히는 방송이라 그런지 당뇨병이라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의사]] 및 당뇨병 환자들이 그 방송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덕분에 몇몇 사람들은 김준현 정도의 수치가 나와도 정상인줄 알고 있는 케이스도 있었다. 당뇨를 한참 넘어선 김준현의 수치에 비해 자기가 낮으니 당뇨임에도 혹은 당뇨전단계임에도 자기 수치가 지극히 정상인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참고로 방송에 공개된 수치는 당화혈색소 8.2에 공복혈당 196이었는데.. 당화혈색소 6.5, 공복혈당 126이 당뇨 기준임을 생각해보면 아득히 높다.] 직계가족에 당뇨병 가족력이 있고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태어났다고 하는데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냥 가족력과 식습관 때문일뿐. 거기에 초고도 비만[* 다만 BMI 상으로만 초고도 비만이지 [[야구선수]]나 무제한급 [[역도]] 선수, 두급 [[씨름]]선수 등처럼 체지방도 많으면서 근육량이 상당히 많은 [[케이스]]이기 때문에 같은 체중의 일반 비만인보다 관리가 좀 쉬울수는 있으나 이미 당뇨가 나이대 대비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음으로 크게 의미 있는 사실은 아니다.]까지 있으니..... 김준현 본인도 그러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듯 검사결과 내용을 듣는 내내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 [[종원의 3대 천왕]]
          * 2015년 먹방, 쿡방이 대세가 되며 프로 먹방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정 방송인 [[종원의 3대 천왕]]과 [[맛있는 녀석들]] 2개 외에도 각종 쿡방, 먹방 프로그램 게스트 섭외 1순위이며 식품 관련 CF도 꾸준히 들어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수(채소)|고수]], 삭힌 [[홍어]] 등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도 다 잘 먹는 편이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을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지에 대해 연구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남다르기 때문.[* 실제로 [[중학교]] 시절부터 집에 오면 [[라면]]을 끓이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는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다만 라면 끓이는 정도를 제외하면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 게시판을 보면 방송을 보고 다이어트를 포기했다던지, 장 수술후 입맛이 없어서 고생이었는데 방송을 보다가 침이 나와서 깨끗이 나았다던지 하는 반응이 많은데 그걸 보면 그렇게 뿌듯하다고 한다.
          * 다만 근육량에 있어서 이전에도 뒷태가 유민상 등 다른 비만 개그맨들과는 달리 역삼각형 체형에 승모근 등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고 복부보다 가슴쪽이 더 튀어나온듯한 모습들이 인간의 조건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의 상의 탈의에서 공개되었던 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체형은 두급 씨름선수, [[스트롱맨]] 등에서 흔히 볼수 있으며, 실제로 김준현의 경우 [[강호동]] 등과 더불어 연예계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으니 관리를 잘한다면 괜찮아 질수 있다.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확실하며, [[보디빌딩]]식의 트레이닝보다는 [[파워 리프팅]]식의 [[스트렝스 트레이닝]]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의 자격]] 철인 3종 특집에서 [[송일국]]과의 무릎씨름 대결에서 평소 연예계에서 스포츠 매니아로 유명한 [[송일국]]을 가볍게 발라버리기도 했다. 애초에 엘리트 체육인 출신인 사람과 스포츠 애호가인 일반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지만. --체급이 다르잖아 체급이..----물론 김두한하고 싸우면 승부는 알 수 없다...--
          * 면종류의 [[요리]]들을 끊어먹는 걸 대단히 싫어한다. 라면, [[국수]], [[냉면]] 등 소면이나 중면급 면을 쓰는 면요리라면 어지간한 길이라도 그냥 한번에 들이키는 수준.[* [[종원의 3대 천왕]] 21회 '갈라쇼' 편 당시에 제주도의 한 짬뽕집에서 거의 키 길이만 한 짬뽕면을 원샷(...)해서 점주와 손님들이 감탄하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면발이 굵어서 대충 씹고 넘기는게 불가능한 경우(손칼국수나 수타 우동중에 아주 드물게 있다) 엔 드물지만 살짝씩 끊어먹는 경우도 있긴 있다.[* [[종원의 3대 천왕]] '짜장면 2편'때 군산의 고추 짜장을 먹다가 면을 가위로 끊었었다. 이유는 너무 매웠기 때문. 평소처럼 들이키다 짜장에서 나오는 매운맛으로 인하여 사레가 들렸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UlpKfX_M0o|맛있는 녀석들에서 나온 김준현의 면먹는 장면 모음]]
  • 마기/314화 . . . . 10회 일치
          * 연룡은 쥬다르를 찾으러 떠나며 황제국에 그들의 귀환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 알라딘은 떠나는 룡에게 실연당했다고 놀린다.
          * 모르지아나는 룡에게는 술을 주지 말라고 하는데 우는 술버릇이 있다고 한다.
          * 알라딘, 알리바바, 모르지아나는 전에도 그렇게 춤춘 일이 있음을 기억하며 그때부터 서로 좋아했음을 고한다.
          * 연회가 끝나고, 룡은 홀로 길을 나선다. 그는 쥬다르를 찾을 작정이다.
          * 네츠메구사로 쥬다르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룡.
          * 하지만 룡은 황제국에 가서 그들의 귀환을 보고해달라고 부탁한다. 나중엔 자신도 찾아갈 거라고 하는데.
          * 그래도 한 번 더 룡을 붙잡는 알라딘.
          * 마침내 성사된 알리모르 커플링. 룡모르 지지자들이 피눈물 쏟는 소리가 들린다.
          * 룡이 안습.
  • 신화용 . . . . 10회 일치
         포항제철동초등학교 4학년때 단거리 육상선수에서 축구로 전향하여 포철중-포철공고까지 유스 테크트리를 탔으나 골키퍼였음에도 작은 키와 실력 성장 정체가 문제가 되어 프로입단에 실패하게 된다.[* 졸업 당시 179cm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포항 원 클럽 맨이었던 최상국 감독이 청주대로 신화용을 부르게 되고 신화용은 청주대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청주대 축구부는 프로 입단,대학 입학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선수들의 의욕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때 허리 디스크 부상을 당하면서 축구를 그만둘뻔 하기까지 했다.[* 이때 디스크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게 된다.] 신화용이 2학년이 되자 청주대 감독이 유인권 감독으로 바뀌었고 유인권 감독의 지도하에 성장했다. 이때 포항의 업 골키퍼였던 조준호가 이적하면서 팀에 키퍼가 부족해지자 포항은 신화용에게 입단 제의를 했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팀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게 됐지만 주전 자리에는 K리그의 레전드인 '''[[김병지]]'''가 버티고 있었고 포항 유스 출신으로 기대받던 송동진, 1년 전 이미 입단해서 청소년 대표에서 뛰고 있던 '''[[정성룡]]'''까지 있어서 김병지의 업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2005 시즌이 끝나고 송동진은 군 입대, 김병지가 이적하면서 신화용은 정성룡과 주전 경쟁을 하게 된다. 2006년에는 정성룡이, 2007년에는 신화용이 더 많은 기회를 받았으나 2007년 플레이오프부터 정성룡의 독무대가 또다시 펼쳐지며 정성룡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FC 서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FA 컵]]에서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패배하면서 리그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와중 11월, 울산전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김다솔]], [[김진영]] 등 업 키퍼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으나 그 누구도 신화용의 자리를 제대로 메꾸지 못 했다. 이에 팀은 리그 4위까지 떨어져 아챔 출전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다시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포항 팬들은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신화용의 거취에 촉각을 기울이게 됐다.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에서는 '''울산과의 경기에서 인생 최악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수비수와의 호흡 미스를 보이며[* 기존의 주전 수비인 [[김원일]]과 [[김광석(축구선수)|김광석]]이 죄다 부상으로 아웃되고 [[김준수(축구선수)|김준수]]와 [[배슬기(축구선수)|배슬기]]가 --왠 가수들이 센터 서냐 생각할 수 있는데 축구선수다-- 그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첫번째 골은 수비진들과의 호흡 문제, 두번째 골은 [[마스다 치카시|마스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라 넘어갈 수 있다 쳐도, 3,4번째 골은 완벽한 신화용의 실수였다.] 한 골을 내주고, 김신욱의 중거리슛을 잡았다 놓쳐서 자책골과 다름없는 골을 내주며 2:4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김승규와의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했다. 그런데 이 경기가 더욱 뼈아픈 이유가 있었으니 후술 참조.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감독은 바뀌었고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자 미드필더진이 무너졌고 수비진에는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감독은 그냥 3에 수비위주 전술을 썼다 그래서'''신화용에게는 지옥같은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은 5월 현재 0.89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15시즌 초반에도 지옥이었으니까~~] 게다가 15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여파가 남았는지 16시즌 들어서는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후배인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이 무서운 선방을 보이며 신화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부상으로 신화용이 경기에 못 나올 경우 한정이며 컨디션이 좋을때는 여전히 신화용이 No.1이다. 그리고 ACL, FA컵에서 조기 탈락하며 리그에만 집중하면 되는지라 부상만 아니라면 신화용이 시즌 내내 포항의 뒷문을 책임질 것 같았으나...
         8월 29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전북 원정에서 선발출전하여 [[손준호]]의 좌측 골문구석을 파고드는 프리킥을 몸을날려 걷어내고 뒤이은 PK박스바깥에서 날아온 슈팅도 가뿐히 펀칭해내는등 부상공이 무색한 안정적인 활약을 펼쳐 팀의 무실점 대승에 공헌하였다.
         이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국가 대표 팀에 선발될 만도 한데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국대에 뽑히질 못하고 있다. 2012~2013 시즌에는 [[정성룡]]이 잘했고 정성룡이 부진한 2014 시즌에도 업으로 [[김승규]], [[이범영]] 라인이 굳건하여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슈틸리케호]] 체제에선 기존 김승규에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이 부각되면서 역시 뽑히지 못하고 있다.
         김진현이 2015 시즌 중반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기회가 오나 싶었지만 이번엔 역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권순태]]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뽑히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골키퍼 3명 중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한 명을 제외하면 젊은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한 살 아래 권순태도 나이 때문에 김승규, 김진현에게 밀리는 상황이라 신화용의 대표팀 발탁은 요원해보인다. ~~무슨 지옥같은 스페인 국대 골키퍼 경쟁인줄~~[* 김승규, 김진현, 정성룡에 권순태와 이범영. 올림픽 대표팀에서 기대받고 있는 구성윤과 김동준, 이창근에 청대 출신 골키퍼 조현우(구성윤은 2015년 동아시안컵 때 업으로나마 성인 대표팀에 뽑혔고 김동준은 예비 명단에 들었던 바 있다. 조현우도 예비명단에는 올랐었다.)까지 포함하면 유래없는 골키퍼 풍년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 2016년 기준으로 전부 한창 나이다. 거기에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인 이호승과 윤보상, 가장 포텐이 기대가 되는 [[김로만]]과 전종혁 등등 K리그 역사상 최대의 인재풀이 가동되어 있다.] 하지만 ACL 우라와전을 비롯하여 슈틸리케 감독이 꾸준히 포항 경기를 찾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손준호]]와 더불어 국대 발탁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있다고는 말 못한다.~~
         본인이 뛰어난 실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국대 키퍼들 때문에 국대 자리에 못 올리는 것처럼, 포항의 서브 키퍼들도 전부 연령별 대표팀이라던가 한 실력들 하는 후배들임에도(...) 신화용의 벽에 막혀서 전부 빛을 못 보고 있는데 본인은 오히려 이에 대해 미안해하기보다 '''"나는 후배들이라고 긴장을 푼 적이 한 번도 없다. 후배들이 잘해서 넘어야 한다."'''한다고 단칼에 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용 본인이 [[김병지]], [[정성룡]] 밑에서 구르고 구르며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후배들에게도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데 포항의 차세대 수문장으로 손꼽히는 [[김로만]]에 대한 평가도 신화용의 반응은 귀여운 후배가 아닌 10년 아래의 신인 선수임에도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포지션의 경쟁자"''''라고 칭할 정도. 그러다 보니 신화용에 막혀 이미 팀을 떠난 황교충, 김다솔을 비롯하여, 이준희는 결국 경남 FC로 2016 시즌 임대를 가서 주전 자리를 먹고 있고, 포항에 남은 [[김진영]], [[강현무]], [[김로만]]은 말 그대로 속이 타들어가다 신화용이 2017 시즌 이적함으로서 겨우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사실 포항의 키퍼 라인은 지금까지 무혈입성한 선수가 거의 없다. 유일한 예외가 김병지뿐인데 포항 이적 당시 김병지는 이미 국대 주전이었기 때문에 무혈입성이 가능했던 거지 당장 그 후임이었던 정성룡도 신화용과 로테이션을 돌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으며 신화용도 정성룡이 떠난 뒤에 김지혁과 로테이션을 돌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다. 어떻게 보면 신화용은 포항의 팀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그런 이유에서인지 포항은 김병지 이후 정성룡, 신화용, 강현무를 거치는 동안 주전 업 가리지 않고 골키퍼로 문제를 겪은 적이 없을 정도로 K리그 최고의 골리진을 유지하게 되었다. ~~문제는 수비~~] ~~그리고 그 자리를 무혈입성(...)한 것은 [[노동건]]...~~ --노동건이 결장한 사이 [[강현무]]가 인생경기를 펼치며 신화용의 장기집권이 얼마나 어마무시했는지 증명했다.--
  • 은지원 . . . . 10회 일치
         대표적인 장기 현역 남자 아이돌[* 최연장자는 [[god]]의 [[박준형(god)|박준형]]이고, 여자 아이돌 최고참은 [[S.E.S.]]의 [[바다(가수)|바다]]이다.][* 활동 기간보다 해체 이후 재결합 이전까지의 공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던 젝스키스를 장수 그룹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은지원 개인의 개별 연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이자 1세대 보이그룹 출신들 가운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 1997년 초에 데뷔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로, 맏형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서도 영향력과 비중이 높아 팀의 중심적인 멤버이다. 포지션은 [[Rap|랩]](메인래퍼)과 서브보컬을 맡고 있으며 노래/춤[* 고난이도 안무를 보여주진 않지만 춤선이 상당히 이쁘며 스타일리쉬한 춤실력을 갖고 있다.]/랩 삼박자가 평균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고, 멤버들중 가장 먼저 자작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에선 후렴구나 킬링파트 독창을 잘 소화하기에 젝스키스의 남성적인 이미지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세대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팀 내 인기 역시 수위를 다투었다.[* 팬들 사이에서 은지원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로는 '''까리함'''과 '''양아미(양아치+美)'''가 있다.] 리더 포지션 & 높은 인지도 & 걸출한 실력 그 이상으로 [[강성훈]]과 더불어 젝스키스의 핵심과도 같은 멤버. 해체 후에도 꾸준한 방송과 음반 활동으로 젝스키스를 회자시키며, 세월이 지나 재결합 후의 활동에도 멤버들과 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멤버이다. 그리고 젝스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1세대 아이돌 내에서도 '''정상급의 대중성과 인지도의 소유자'''로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 시절에도 은초딩의 모습은 있었지만, 신비주의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시키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해체 후 1박 2일 등의 예능을 통해 은초딩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젝키 해체 후에는 은각하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지만 젝키 재결합 후 예능에서 은초딩보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한 은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섭섭한 바보 어벤저스로 전락하곤 한다.]
         아이돌을 그만두고 힙합으로 전향했을 때 [[타이거 JK]]한테 배움을 받아서인지, 2003년 9월에 발매된 3집을 들어보면 [[드렁큰 타이거]]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3집 이후로는 점차 자기 색깔 찾아가는 듯. 이후 '힙합'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데 2005년 2월 4집에 들어서 자기 색깔이 두드러졌고 4집에서 국보급 플로우를 만들어낸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 힙합 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8톤 트럭'의 원조이다. 흔히들 다듀의 고이 원조라고 알고 있는데, 은지원의 8톤 트럭이 고보다 8개월 더 먼저 나왔다!]2009년 5집에서는 당시 음악적인 트렌드를 반영하여 2002년 2집처럼 댄스에 가까운 힙합으로 선보였지만 이질적인 느낌이라 호불호로 갈라졌다. 대신에 당시 개그 유행어를 소재로 수록된 '''160'''이 힙합 장르를 떠나서 흥겨운 음악 덕분에 반응이 좋은 편. 2013년 11월, [[20세기 미소년]]에 타이거 JK가 "은지원의 부탁으로 출연했다"며 친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아 친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 2에서 젝스키스 멤버들과 조우, 재결합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평소 자주 보여주는 초딩스럽거나 떼쓰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예전의 '은각하'라는 별명에 걸맞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부산 친구에게 스포일러를 터뜨렸다는 이재진의 양심고에 고개를 내젓거나 연습 중에도 각을 맞추라고 계속 지적하고 갑작스럽게 휴게소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 막내인 장수원부터 다른 멤버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어쩌면 좋냐고 쩔쩔 매는데 바로 공연을 시작하자 해서 상황을 타개하거나 오랜만에 만나 어색해하는 [[고지용]]에게 먼저 다가가서 포옹을 하고 고지용을 대신해서 팬들에게 컴소감을 말하며 도와주는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철없는 초딩 이미지로만 각인되다 보니 은각하 이미지가 다소 생소했던 시청자들에게 매우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멤버들 중 가장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무릎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에서도 연습을 강행하고 부상투혼으로라도 무대에 서겠다 하는 데 무한도전 작가가 이번 컴이 어떤 의미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자 평소에 동생들에게 해준게 없었던 못난 형이었는데 기적같은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이번에는 무언가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고하는 모습에서 '''장난기라곤 1%도 포함되지 않은''' 젝키에 대한 그의 진심과 해체 뒤에 알게 모르게 가져온 죄책감이나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져서 은지원을 다시 봤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후에 기자의 스포일러로 콘서트가 무산되어 주꾸미 축제 같은 지방행사를 뛰어야 한다고 하여 다른 멤버들이 매우 실망해서 우울해할때도 주꾸미가 높이 뛰나 우리가 높이 뛰나 붙어보자고 대체로 다독이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2년 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이동국]]과는 남남이 되었다.[* 은지원은 정식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결혼을 아예 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동안 [[카더라]]로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2016년 [[신서유기|신서유기 2]]에서 본인 입으로 '''"저는...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었습니다. 근데 아직도! 게임을 처자빠져 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삭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악행을 고해야 정답을 맞힐 기회를 주었다. 즉, 오답을 내려 하더라도 자신의 악행은 고해야 한다는 것. 이에 [[나영석|나PD]]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멤버들은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포복절도했고, [[이수근]]은 '''"그냥 사오정을 하든 손오공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라며 병뚜껑을 집어던졌다.]라고 발언했으나, 장소가 예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우스갯소리를 섞어서 한 말이다. 게다가 은지원의 전부인이 뉴스킨 이라는 [[다단계]]에 빠져 재산을 많이 탕진하는 이중고도 겪게 된다. 결국 은지원 본인은 가정에 소홀했고 부인 역시 다단계로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점을 보면[* 물론 좋은 뜻으로 은지원에게 잘해줄려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다단계]]의 구조를 보면 서로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 이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부부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지원 본인은 부인의 행적보다도 자신이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에 대해서 자책감을 더욱 느꼈을 것이다.
          * 비행기 공포증과 배 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1박 2일은 어떻게 한 거야?!-- [[QTV]]의 [[20세기 미소년]] 프로그램에서 무거운 비행기가 [[양력|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무거운 배가 [[부력|어떻게 뜨는지]] 이해가 안 되고 무섭다고 고한 적이 있다.--하와이는 어떻게 간 거야-- 후에 신서유기2 1화에서 밝히기로는 이런 공포증이 생긴건 강호동 때문이라고 한다. 강호동의 저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본인도 무섭다고.
  • 이경영(1960) . . . . 10회 일치
         ||<table width=100%><-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2012년 11월 14일, 이경영이 출연한 토크쇼 《tvN 지연의 피플인사이드》가 방송되었다. 여기서 이경영은 과거 원조교제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하였는데, 방송 중 "이경영은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법정공방 끝에 2004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표기된 자막이 나왔다. 그리고 해당 방송 직후 "이경영이 2004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또는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들이 등장하였고, 그 이후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180725|#]]
         또한 [[MBN]]은 "법정공방 끝에 2004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라고 표기한 《tvN 지연의 피플인사이드》의 자막 내용을 소개한 후, 이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는 내용이라고 보도하였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0943789|#]]
         4월 : 프로(교장 역)
         그 외에도 이경영의 마지막 지상파 드라마 출연작인 KBS 2TV 푸른 안개에서 연출자-조연출자로 만났던 표민수 진형욱 곽정환 PD의 연출작('고독' '풀하우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인순이는 예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커피하우스' '넌 내게 반했어' '아이리스 2' '프로듀사'(이상 표민수) '꽃피는 봄이 오면' '착한여자 일홍' '수상한 삼형제' '당신 뿐이야' '왕가네 식구들' '당신만이 내 사랑' '내 남자의 비밀'(이상 진형욱) '한성별곡' '추노' '도망자 플랜B'(이상 곽정환) 등등)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결국 좌절됐다.
         ||1992||치애인||주연|| 17,719 ||
         ||2005||종려나무 숲[* 애초 KBS과 고화질 방송영화 프로젝트 중 하나였으나 KBS 측이 2005년 2월 심의규정을 내세워 이경영의 영화출연 불가 방침을 정하여 이경영은 컴이 무산될 뻔 했지만 영화사 측이 KBS와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영화를 제작하여 해당 영화로 스크린 복귀를 했다]||원양어선 최 선장|| 22,895 ||
         ||2014||프로||교장|| 37,909 ||
         ||2017||[[머니]]||킬러 박|| 주연 ||
  • 이태현(씨름) . . . . 10회 일치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씨름판을 지배했던 천하장사. [[의성고등학교]]를 거쳐 1993년 청구건설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 씨름계에 데뷔했다. 1993년 데뷔부터 2006년 1차 은퇴까지의 전적은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고,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 지역장사 12회, 두장사 20회를 기록했다. 특히 두장사 20회 기록은 [[이만기]]의 두장사 18회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2006년까지 역대 총 상금 역시 5억 9,000여 만원으로 1위. --모래판의 황태자의 위엄. 오오!--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절친이자 라이벌인 [[승일]][* 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태 후 순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승일을 비롯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태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영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태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결국 이태현은 종합격투기를 떠나고 초등학교 때 은사인 [[구미시]]청 김종화 감독의 권유로 씨름판에 복귀했다. 복귀 후 다시 씨름판에 잘 적응하며 두장사 2회를 더 기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장사 최다 기록을 20회로 경신했다.
  • 정주관백 . . . . 10회 일치
         정주관이란, 집 안에서 위세를 부리는 남편을 뜻하는 말이다. 집 안에서는 그 권력이 관이라도 된 것 같다고 하여 쓰는 말.
         전국정주관협회(全国亭主関白協会)라는 단체가 있다. 남편이 폭군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아니며, 정주관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자는 단체이다.(http://www.zenteikyou.com/zwhat.html)
         이 단체가 새롭게 해석한 정주관의 정의는 이러하다. 사실 관은 조정에서 두번째 지위이며 덴노를 보좌하는 지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집 안에서 덴노란 곧 아내이다. 그리고 정주는 차를 내오는 사람을 뜻하므로, ‘정주관’이란 사실 아내를 보좌하고 떠받들어 주는 남편을 뜻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오해하여 집안의 폭군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관(간파쿠)은 일본 헤이안 시대에서 부터 덴노를 대신하여 실권을 행사한 지위이다. [[후지와라 섭관가]]에서 대대로 이어받았으며 덴노가 어릴 때는 섭정(摂政)이 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관(関白)이 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이를 섭관정치(摂関政治)라 부른다. 헤이안 시대 이후로 권력이 쇠퇴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오툐미 가문이 일시적으로 관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토리코/377화 . . . . 10회 일치
          * 하지만 록왕 스카이디어가 만든 특수한 채널에 갇혀 엄청난 시간의 흐름 속에 던져지고 데빌구렁이, 아수라사우르스 등 구르메계의 맹수들이 공격한다.
          * 아톰은 문의 뱃속은 완전한 이차원이라 빨려들어가면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빨리 채널로 탈출하라고 외친다.
          * 네오의 신체가 급속도로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미 주변은 록왕 스카이디어가 친 채널 안이다.
          * 스카이디어가 설치한 채널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하는 일반적인 채널과 달리 "시간을 가속시키는 채널".
          * 아카시아는 신체를 휴면상태로 만들고 스카이디어의 채널에 대항하는 채널을 쳐서 도주하려고 한다.
          * 채널 안에는 배틀울프의 라이벌인 데빌구렁이 원종이 있었던 것이다.
          * 록왕은 어떻게 싸우는지 전혀 정보가 없었는데 궁극의 채널 유저였다. --음? 파편편에서 나왔었는데?--
  • 홍국영 . . . . 10회 일치
          | 친인척 = [[홍낙순]](부)<br/> [[경주 김씨]] 부인(모)<br/>[[원빈 홍씨]](누이동생)<br/> [[상계군|상계군 이담]](양외조카)
         서울 풍산 홍씨들의 비조격인 홍이상의 8대손, 선조의 적녀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6대손으로서, 역시 영안위 후손인 [[혜경궁 홍씨]]와 11촌의 동문이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그의 아버지 [[홍낙춘]]에 대해 "광증이 있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개 홍낙춘이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인물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조부 홍창한은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이고 부인 [[홍낙순]]은 대과에 급제했고 숙부인 홍낙빈도 진사였으나, 홍낙춘은 원빈이 후궁이 되기 전에는 관직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778년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이 된다. 이때 원빈 홍씨의 지위는 유례 없는 것이었다. 후일 이 모든 이례적인 처사는 모두 홍국영의 세도로 인해 일어난 일이란 식으로 설명되게 된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홍국영이 자교(이 경우 후궁 간택령)를 내리게 했다"라고 쓰고 있다. 《한중록》에서는 이어 원빈의 입궁에 대해, 홍국영이 세도를 탐내어 제 누이를 들여보낸 것으로 자신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란 식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정조)어제인숙원빈행장》(정조가 원빈 사후 작성한 원빈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에서는 혜경궁 자신의 진술과는 반대로 혜경궁이 원빈에 대해 각별한 정의(情誼)를 나타냈다고 한다.<ref>[http://yoksa.aks.ac.kr/jsp/aa/HajeView.jsp?aa10up=kh2_je_a_vsu_20664_000 어제인숙원빈행장(御製仁淑元嬪行狀)]</ref> 《순조실록 혜경궁 행장(김조순 저)》에서 혜경궁은 원빈에 대한 각별한 정의를 지녔던 혐의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 강조한 대목이 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wa_11601021_002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 1월 21일 신축 2번째기사]</ref> 홍국영 일가의 인물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고전소설 《숙창궁입궐일기》는 원빈의 입궐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혜경궁은 효의왕후 쪽인 인상을 준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1844|제목=한국민족문화대과사전 숙창궁입궐일기|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1779년]] [[음력 9월 26일]] 홍국영은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조정의 실직(實職)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담은 은퇴 상소를 올렸으며, [[정조]]는 당일 이를 수락한다. 이때 정조는 불과 32세의 홍국영에게 [[봉조하]] 직함을 내려주는데, 일찍이 발의 봉조하는 있어도 흑발의 봉조하는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고 하여 그는 “흑두봉조하”라고 불리게 된다. 《한중록》과 《정종대왕행장》 등 사후적인 기록에서는 공통적으로 홍국영이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난 것 자체가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정설로 통하나, 이와 같이 사퇴시킨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정조는 홍국영을 퇴진시키고 숙위소를 혁파시켰으나 동시에 그의 부 [[홍낙순]](洪樂純)을 정승에 임명했다. 따라서 한동안 그의 세력은 조정에 계속 건재했으며 그 자신도 계속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에 홍국영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반대로 조정에서 축출 당한다. [[1780년]] 1월에는 홍낙순이 파직과 문외출송되고, 다음달 26일 김종수의 탄핵상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다. 김종수의 탄핵 상소를 시작으로 하여 홍국영에 관한 탄핵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중록》은 김종수의 상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원도]] [[횡성]], 그 다음에는 [[강릉]]으로 방출되었던 홍국영은 결국 이듬해인 [[1781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 《[[조선왕조 오년]] - [[한중록 (드라마)|한중록]]》(1989, [[MBC]], 배역: [[김동현 (1950년)|김동현]])
         * 《[[조선왕조 오년]] - [[파문 (드라마)|파문]]》(1989, [[MBC]], 배역: ?)
         * 《[[무사 동수]]》(2011, [[SBS]], 배역: [[최재환]])
         {{글로벌세계대과}} <!-- 〈제도의 변화〉 -->
  • 효령대군 . . . . 10회 일치
         [[조선 세종|세종대왕]]의 형이자 [[조선 세조|세조]]의 부로 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세종|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조선 문종|문종]], [[조선 단종|단종]], [[조선 세조|세조]], [[조선 예종|예종]], [[조선 성종|성종]] 등 6대에 걸쳐서 장수를 누렸다. [[임사홍]]은 그의 손녀 사위였고, [[이량 (조선)|이량]]은 그의 5대손이며, [[조선 명종|명종]]<ref>그의 종6대손이기도 하다. 세종-세조-예종-성종-중종-명종</ref> 의 부인인 [[인순왕후]]와 [[심의겸]], [[심충겸]]은 그의 외6대손이다.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고, 많은 사찰을 순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 자부 : 군부인 천 조씨
         * 부 : [[진안대군]](1354년 ~ 1393년)
         * 부 : [[조선 정종|영안대군]](1357년 ~ 1419년)
         * 부 : [[익안대군]](1360년 ~ 1404년)
         * 부 : [[회안대군]](1364년 ~ 1421년)
         청권(淸權)이란 중국 주(周)나라 때 태왕(太王)이 맏아들 태과 둘째아들 우중을 건너뛰어 셋째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태과 우중 두 형제는 부왕의 뜻을 헤아려 삭발하고 은거하며 왕위를 사양했다. 훗날 공자가 태은 지덕, 우중은 청권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러한 고사를 본떠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지덕사]],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청권사]]라 이름 하였다.<ref name="hrdg"/>
  • 경순왕 . . . . 9회 일치
         그는 [[신라]] 왕족으로 [[경명왕]]과 [[경애왕]]의 친척 동생이다. 제54대 [[경명왕]] 때부터 고려 세력에 의지해 후제를 견제하려는 정책을 펼쳐왔는데, [[924년]] 제55대 왕에 등극한 [[경애왕]]도 형 [[경명왕]]의 친 고려 정책을 이어받아 [[927년]] 음력 정월에 고려가 후제를 공격하자 군사를 보내 도왔다.
         그러자 [[927년]] 음력 11월 후제 견훤이 신라의 수도 금성을 기습하여 [[경애왕]]과 왕비를 죽이고, 그의 친척 동생인 경순왕을 왕으로 세워 왕위에 올라 [[927년]]부터 [[935년]]까지 재위하였다.
         [[927년]] [[신라]]를 침공한 [[견훤]]에 의해 [[경애왕]]이 강제적으로 목숨을 끊게 되고, 그가 신라 56대 왕위에 올랐다. 그는 본래 왕위 계승 위치에 있지 않았으나, [[927년]] [[경애왕]]이 갑작스럽게 피살 당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즉위 배경은 미상이며 왕위에 오를 당시 [[경애왕]]의 자녀들이 있었는지, [[화 회의]] 추대를 받아서 즉위 했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즉위 초 아버지 [[대아찬]](大阿飡)을 신흥왕(神興王)으로, 할아버지 각간(角干) 김실홍을 의흥왕(懿興王)으로 각각 추존하였다. 재위시에 국력이 쇠퇴하고 특히 여러 차례에 걸친 [[후제]]의 침공과 약탈로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따라서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ref name="nate01">[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128 경순왕:네이트 한국학]</ref>
         [[935년]] 11월 [[고려 태조]]는 태상(太相) 왕철(王鐵) 등을 보내 경순왕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경순왕이 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고려에게 가는데 향나무 수레와 구슬로 장식한 말이 30여 리에 이어지니, 길이 막히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장을 친 것과 같았다.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교외에 나와 경순왕을 영접하여 위로하며, 궁궐 동쪽의 제일 좋은 구역(지금의 정승원(正承院))을 내주어 머물도록 하였다.
         [[고려 태조|태조 왕건]]도 경순왕의 부 김억렴(金億廉)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녀가 제5왕후인 [[신성왕후]] 김씨이다. 슬하에 왕욱(王郁)을 두었으며, 왕욱(王郁)의 아들이 고려 제8대 왕 [[고려 현종]]이다.
         * [[후제]]
         {{글로벌세계대과|제목=고려의 통일}}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9회 일치
         ||<:><-5><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c0c000><tablebordercolo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대상'''}}} ||
         특히나 위자료에 대한 루머가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진 썰은 인사동 '''[[스타벅스]]'''의 소유주가 고현정이라는 것. 왜 하필 많은 지점중에 인사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널리 퍼졌다. 다만 스타벅스 코리아는 신세계와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50:50으로 투자한 합작회사[* 하지만 이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설명일 뿐이고 대부분의 자본 및 실질적인 투자는 신세계에서 거의 몰빵하고 있기 때문에 지분이 저렇더라도 이익배분 자체도 다를 것이고 사실상 합작회사라기보다는 좀 더 두둑한 로열티를 주는 형태에 가깝다.]인지라 고현정 본인에게 지점 하나를 내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님으로 근거없는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밝혀진 위자료가 15억원에 불과한데 고현정과 결혼 이후로 [[정용진]] 부회장의 재산이 급증한 점.[* 신세계의 지분과 관계없이 그 시기의 신세계의 주식은 IMF를 지나고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자녀도 둘이나 있는 점[* 아랫쪽에 나와있지만 두 자녀 모두 부모의 좋은 점만 따왔는지 외모가 매우 훤칠하다. 특히, 아들은 정용진, 딸은 고현정을 닮았다. 특히 딸의 경우 사려깊은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엄마와의 사이도 좋은 것 같다. 한 SNS에서 고현정의 딸과 지인이 나눈 대화록이 공개된일이 있는데 친엄마가 보고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고싶은 것은 아니며 그건 양엄마에게(그분이라고 호칭) 예의가 아니라고 답했다. 더구나 양엄마보다 친엄마가 예쁘시지 않냐는 질문에는 양엄마도 예쁘신 분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할 정도.], 사촌인 이건희 회장의 맏딸 [[이부진]]씨와 [[임우재]]씨의 이혼소송에서 이부진 씨가 대단한 변호인단을 이끌고 2심에서 완승을 거두었음에도 86억이라는 돈을 지급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15억의 위자료는 적어도 너무 적고 특히나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어하는 재벌가에서 고현정이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고작 15억이 위자료의 전부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 고현정이 이혼한 직후, 삼성가의 내부에 대해서 책을 쓰자는 제의도 물밀듯이 들어왔는데 물론 고현정 본인이 싫어서 안했을수도 있지만 했다하면 15억은 애들 장난수준으로 벌었을 것이다.] 원래는 신세계 화점 하나를 달라고 했는데 스타벅스로 떼웠다는 얘기들도 있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루머가 많은 부분.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으로 2009년 MBC 연기대상을 수상하였고, 드라마가 끝난 다음 해에도 2010년 [[상예술대상]], 2010년 [[한국방송공사]] 탤런트상, 2010년 서울드라마어워즈 한류스타상 등을 석권하여, 완벽한 일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다른 드라마에서 주인공 또는 조연이 '미실'을 흉내내는 장면이 나오거나 성격을 묘사하면서 언급된 작품이 공중파만 무려 3개로[* '[[역전의 여왕]]' '[[최고의 사랑]]' '[[마이 프린세스]]'.],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어지간히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육룡이 나르샤]]는 작가가 같으니까 제외;; ~~
         2010년 [[SBS 연기대상]] 당시 수상소감에 대해 논란이 일었는데, 혹자는 소신 있는 소감이었다고 평하며 반대로 시청자를 훈계하는 투였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수상 직후 대상후보였던 [[이범수|모 배우]]의 소속사에서 대상 다음날 아침 루머들을 언급하며 공정하지 못한 대상 수상이었다고 비난성명을 썼다가 막내매니저가 실수로 올린 글이며, 그를 해고조치했다고 사과한 해프닝이 있었다.[* 정작 이 배우 트위터에서 배우 본인이 '[[빅딜]]설'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고 있다. 애초에 운전하는 막내매니저가 성명서를 배포했다는게 말도 안되는 얘기고. ] 사실 논란의 뿌리는, [[정보석|누가봐도 명한 대상후보]]에게 ~~공동대상 주면 될 것을~~ '우수상'의 굴욕을 안긴 SBS에게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 당시 돌았던 말 중에 고현정은 본인이 상을 수상하지 않으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다는 말이 돌고 있었던 터라, 수상소감에 대한 논란과 고현정에 대한 비난이 더욱 커졌던 감이 있다.]
          * [[조인성]]은 봄날의 종영 당시 고현정을 '[[고해성사]]를 받아 주는 [[수녀]]님 같은 분'[* 참고로 [[수녀]]는 고해성사를 줄 수 없다. [[미사]]와 [[7성사|성사]] 집전은 [[사제]]서품을 받은 성직자만이 가능하며, [[가톨릭]]에서 성직자(교황>추기경>주교>신부>부제)는 [[남자]]만 될 수 있다. 수녀는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이다. 수도자 중에서도 사제서품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 남성 수도자인 수사만 가능하다(수도사제, 성직수사, 수사신부 등으로 불린다).]이라고 했고, 지금은 각종 매체에 고현정을 스승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연기에 대한 평도 듣고 있다고. 싸이더스를 떠나 고현정의 1인소속사로 들어가는 등, 사제관계는 계속되는 모양이다. 참고로 [[지진희]]의 평은 "한마디로 대장부죠"[* 여담으로 지진희는 봄날 이전에 찍었던 [[대장금]] 종영 후 [[이영애]]에 대해 '60부작을 찍었는데 이렇게 안 친해진 상대 배우는 처음'이라고 고(…)]
          * 대중들에게 자연미인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무릎팍도사]]와 그녀가 직접 진행하는 고쇼에서 눈과 코를 [[성형수술]]했음을 밝혔다. [* 여담이지만, 본 위키니트의 고3때 기억에 따르면 고현정 모교인 동국대 출신 교생 선생님도 같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동국대 축제에 고현정이 왔었는데, 눈을 살짝 찝었다고 털어놨다는 것.--역시 솔직하다--]이 [[무릎팍도사]] 고현정 편은 성형고 외에도 거침없는 자폭개그를 선보이며 ~~"[[이혼]]으로 뜬거죠" "결혼하자고 했어요"~~ [[송혜교]]의 얼굴크기를 의식하면서 그 와중에 끊임없이 코를 푸는… 장면으로 폭소를 유발하여, 무릎팍도사 중에서도 재미있기로 유명한 에피.
         || 1992년 || [[상예술대상]] || TV 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 ||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
         || 상예술대상 || '''TV부문 대상''' ||
  • 김민기(가수) . . . . 9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연극부문 대상'''}}} ||
         ||<#9FC93C> {{{#white '''수상 경력'''}}} ||<#FFFFFF> [[상예술대상]] 음악상 '개똥이' [br] 한국평론가 협회 음악극 부문 연극상 [br] 서울연극제 극본상, 특별상 《[[지하철 1호선]]》 [br] 한국연극협회 '98 우수공연 5' 단체상, 번안상 《의형제》 [br] 제35회 동아 연극상 작품상 《의형제》 [br] 제6회 한국 뮤지컬 대상 특별상 [br] 제37회 [[상예술대상]] 연극부분 대상 및 연출상 《의형제》 [br] 파라다이스상 문화예술부문 [br] [[괴테 메달]] [br] 제5회 [[더 뮤지컬 어워즈]] 공로상 [br]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br] 2018년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 은관 ||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세력들이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게 되자 다시 농사를 지으며 대외 활동을 삼갔는데, 1981년 5월에는 [[국풍81]] 개최를 앞두고 정부에서 자신을 회유하려고 하자 농사일이 바쁘다면서 끝까지 참가를 거절했다.[* 이때 [[허문도]]가 김민기를 회유하기 위해 [[지수표|흰 종이를 한 장 내밀며, "원하는 액수를 쓰라" 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김민기는 거절.] 대신 틈틈이 찾아와 농사를 도와주던 [[전라북도]] 각지의 연극패와 노래패들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시|전주]]에서 근대사 세미나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독일]]의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 각본/비르거 하이만 작곡의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s-2|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담당했는데, 이 뮤지컬은 같은 해 김민기 자신이 사비를 들여 [[대학로(서울)|대학로]]에 개관한 학전 극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해 2008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상설 공연되었다. 심지어 2001년에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순회 공연도 진행했고, 이 공로로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남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더불어 [[6월 항쟁]]의 마지막인 7월 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의 [[이한열]] 열사 노제를 보러 갔다고 한다. 그 당시 만 군중이 다함께 [[아침 이슬]]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아 이 노래는 더이상 나만의 노래가 아니구나'하고 느끼면서 이후 공식석상에서 '아침 이슬'을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윤이상]], [[남준]]과 더불어 국내의 3번째 [[괴테 메달]] 수상자이다. 수상 작품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들국화의 최성원에게도 김민기는 우상이자 존경의 대상이다. 심지어 들국화 1집 이후 매니저 김진성씨와 함께 했던 이유가 바로 김민기의 음반을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더나아가 음악적 사상이나 철학에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의식은 기완 선생과 김민기 형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http://www.weiv.co.kr/archives/10288|관련 기사.]]
  • 마기/325화 . . . . 9회 일치
          * 황제국에선 복귀한 연룡이 연홍옥과 힘을 합쳐 국정을 다루고 있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는 결혼준비로 바쁘다.
          * 그때 지상의 황제국. 수도 낙성에선 연홍옥과 연룡은 머리를 맡대고 정사를 논하고 있다. 룡은 홍옥의 지도 아래 황제국이 다시 일어섰다며 감격하고 홍옥은 함께 힘내자고 답한다.
          * 그 옆에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가 결혼식 준비로 바쁘다. 알리바바는 청첩장 쓰는 일로 정신이 없는데 상회 단골들을 빠짐없이 초대하려고 엄청난 수의 청첩장을 집필 중. 심지어 일일히 수기로 적고 있다. 모르지아나도 마스루드 앞으로 보낼 청첩장을 작성하는데, 청첩장이라기 보단 도전장에 가까운 디자인. 게다가 여전히 글씨가 지저분하다. 알리바바는 콩깍지가 낀 영향인지 "글씨가 예뻐졌다"고 칭찬하고 룡도 진담인지 빈말인지 달필이라고 칭찬. 홍옥만 위화감을 느낀다.
          *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글씨가 더럽다"고 팩트를 던지는데. 행방불명됐던 쥬다르다. 갑자기 돌아왔다 싶었는데 홍옥을 보자마자 할망구라고 부르질 않나 화장이 옅어졌다고 하지 않나 실례되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알리바바가 반가움 반 황당함 반으로 언제 돌아왔냐고 묻는데, 사실 돌아오긴 룡하고 같이 전날밤에 돌아왔다. 그런데도 어디 처박혀있었는지 얼굴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 알리바바는 너무 태연하게 나타난 쥬다르를 빤히 쳐다보는데 이제 전쟁하겠다고 설치지 않냐고 묻는다. 쥬다르는 그런건 벌써 하고 왔다고 하는데. 모르지아나는 쥬다르가 영 협조성없이 굴자 그냥 룡에게 어디서 찾아왔냐고 물어본다. 룡은 그를 그의 고향 산골마을에서 찾아냈다고 하는데. 알리바바는 쥬다르도 고향이 있었다는데 놀라면서도 잘된 일이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귀향이었다고 으스대는데 그꼴이 보기 싫었는지 룡이 고향 마을에서 알아낸 일을 마구 폭로하기 시작한다. 쥬다르의 이름은 알 사멘이 붙인 예명이고 고향에서 불리는 본명은 따로 있는데 그게 "얼굴에 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것. 쥬다르는 룡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더니 알라딘을 찾으며 화제를 필사적으로 화제를 전환한다.
  • 백성현 . . . . 9회 일치
         | 이름 = 성현
         | 사진설명 = 2016년 12월의 성현.
         | 웹사이트 = [https://web.archive.org/web/20140227072440/http://www.sidushq.com/star/bshyun 싸이더스HQ 성현]<br>{{인스타그램|sunghyun0130}}
         '''성현'''([[1989년]] [[1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 정구
         * [[2010년]] [[채널동아]] 《스타도네이션 프로젝트 '성현의 희망 티셔츠'》
         * {{KMDb 사람|00015672|성현}}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수원 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코드 - 비밀의 방 참가자]][[분류:싸이더스HQ 소속]]
  • 백이소 . . . . 9회 일치
         '''이소'''(白以昭, [[1557년]] [[경상북도]] [[경주시]] ~ [[1597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융원(隆遠), 호는 부암(傅巖)이다. 본관은 [[청도 씨|청도]](淸道)이나 옛 지명인 오산(鰲山)으로 쓰기도 한다.
         고려 때 [[박경순]](朴慶純) 일당의 난을 진압한 [[청도]] 호장 [[계영]](白桂英)의 후손인 선략장군(宣略將軍) [[희]](白熹)의 둘째 아들로 [[경주부]] 서면 부산촌(富山村) 출신이다. 풍채가 크고 힘이 출중하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92년]](선조25) 6월 [[경주]]지역 의병장으로 경주부윤 [[윤인함]], 판관 [[박의장]]과 함께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였다. 노모와 아내를 산 속에 피신시킨 후 산에서 내려와 가복들을 이끌고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무찔렀다. [[1594년]]([[선조]] 27)에는 갑오별시 병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봉사에 특제되었다.<ref>《[[부암실기]]》</ref>
         시신을 찾지 못하여 의관으로 초혼장을 지냈다.<ref name="dg"/> 묘는 월성군 산내면 장사리에 있는데, 향인들이 '장군묘'라 부르고 있다.
         * 부 : [[희]](白熹) 선략장군(宣略將軍)
         * 부암실기(傅巖實記), 수장(白受章)
         [[분류:1557년 태어남]][[분류:1597년 죽음]][[분류:조선의 무신]][[분류:의병]][[분류:의병장]][[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임진왜란 의병장]][[분류:정유재란 참전 중 사망자]][[분류:임진왜란 관련자]][[분류:정유재란 관련자]][[분류:16세기 한국 사람]].[[분류:씨]][[분류:청도 씨]][[분류:문천회맹]][[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9회 일치
         1919년 1월 15일에 보스턴의 당밀 저장 탱크가 붕괴하여 당밀 홍수가 보스턴 시내를 덮친 사건. '1919년 보스턴 당밀 대범람'이라고도 불린다.
         보스턴 북부에 위치한 '퓨리티 디스틸링'이라는 당밀 판매 회사에는 수만 톤의 당밀(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할 때 나오는 시럽 같은 부산물)을 저장하는 거대한 저장 탱크가 있었는데, 1919년 1월 15일 오후 12시 40분경에 이 탱크가 갑자기 붕괴하여 약 1만 4천 톤 가량의 당밀이 쏟아져 보스턴 시내를 덮쳤다.
         문제의 회사는 보스턴 주민들에게 소송 폭탄을 맞고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었고, 이후 건축물 전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보스턴 시의회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확대 시행되었다. 한편, 끈적한 당밀 시럽은 물로도 잘 씻어지지 않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 총 10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그 동안 보스턴 시내는 곳곳에 당밀 냄새가 진동하여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았다고 한다.
         [[런던 맥주 홍수 사건]]과 유사한 데가 있지만, 이 쪽은 원인이 뚜렷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국내에서 영국 맥주 홍수 사건을 소개하는 포스팅들 중 상당수가 이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의 자료 사진들을 영국 맥주 홍수 사건의 짤방으로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9회 일치
         벤자민 프랭클린이 잃어버린 연감 페이지. 지도에서 종잇장으로 표시된다. 페이지는 보스턴과 뉴욕 양쪽에 널려있는데 페이지에 접근하면 플레이어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이게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잡지 못하고 사라진 페이지는 얼마 후에 리젠되니 그때 다시 도전하자. 연감은 네장씩 세트로 존재한다. 한 세트를 모두 모으면 해당하는 프랭클린의 발명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보스턴과 뉴욕 두 도시의 지하에는 프리메이슨이 파둔 땅굴이 있다. 땅굴을 탐사해 출입구를 발견하면, 지상에서 해당 지역을 [[빠른이동]]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다.
         === 보스턴 싸움꾼 ===
         === 일반인의 과사전 ===
          * 힐 요새 - 보스턴 중부 동쪽에 위치함.
          * 인디펜던스 요새 - 보스턴 남부 서쪽에 위치함
          * 보스턴 북부: 갱단 - 던컨 리틀
          * 보스턴 중부: 세금징수인 - 스테판 샤페우
          * 보스턴 남부: 징집 - 클리퍼 윌킨슨
  • 우찬양 . . . . 9회 일치
         ||<#ed0000> '''{{{#ffff00 포지션}}}''' || '''[[풀]]''', [[센터]] ||
         > '''희소성 있는 왼발잡이 풀 유망주'''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으로 차세대 풀 자원으로 주목받는 선수다. 곧바로 리그 데뷔전을 치른 2016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같은 팀의 [[이승모]]와 같이 2017 U-2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정도로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는 이미 검증을 마친 기대주다. [[신태용호]]에서는 풀과 센터을 오가며 출전하는 편이었다가 U-20 월드컵에서는 센터은 [[정태욱]], 이상민 주전에 [[이정문(축구선수)|이정문]] 업으로 굳어지고 풀 두 자리를 놓고 [[이유현]], [[윤종규]], 우찬양 세 선수가 경합하는 판도가 되었다.
  • 유인촌 . . . . 9회 일치
         ||<table width=100%><-5><#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의 역할 혹은 대부분 그렇게 하다가 말아먹고 망하는 비운의 지식인 연기를 전문으로 한다. 연극에서 <[[햄릿]]>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군[* 이 연기는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아주 잘 나온다. 유인촌의 연기변신을 보려면 필히 봐야 할 작품. 이 연산군 배역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다.] <역사는 흐른다>에서 이규직, <[[조선왕조 5년]]>[* 사실 조선왕조 5년에서는 배우들을 계속 돌려막기를 했다. [[최수종]]만 해도 철종과 사도세자를 했고 故김무생의 경우 이성계와 이순신을 했으며 신충식이 담당한 사람만 원균과 미우라 고로등을 포함해 총 6명이다.]에서 조광조(풍란), 인조임금(남한산성) 연기가 대표작.
          * 형은 MBC PD를 지낸 연출가 유길촌이다. [[조선왕조 오년]]도 그의 작품. 방송, 연극계에서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다. [[http://m.blog.naver.com/ceotour/50001823240|참조]].
          * [[조선왕조 오년]] [[남한산성]] - [[인조]]
          * [[조선왕조 오년]] 풍란 - 조광조
  • 의상 (신라) . . . . 9회 일치
         기(入法界品鈔記)》<br />《화엄십문간법관(華嚴十門看法觀)》<br />《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br />《제반청문(諸般請文)》<br />《화도장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br />《화엄일승발원문(華巖一乘發願文)》<br />《투사례(投師禮)》외
         '''의상'''(義湘, [[625년]] ~ [[702년]])은 고대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왕족 출신, [[승려|고승]]이다.<ref name="글로벌-의상">[[s:글로벌 세계 대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통일신라와 발해/고대문화의 융성#의상|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통일신라와 발해 > 고대문화의 융성 > 의상]], 《[[글로벌 세계 대과사전]]》<br/>[[s:글로벌 세계 대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귀족사회와 무인정권/귀족문화#의상|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귀족사회와 무인정권 > 귀족문화 > 의상]], 《[[글로벌 세계 대과사전]]》</ref> 또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법통을 받아 중국 화엄종의 제3 세조가 되었다.
         [[당나라]]에 체류 중 그의 설법에 참석하던 여성 중 그를 사모하는 선묘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의상이 신라로 귀국하던 날, 선묘의 집에 찾아갔지만, 선묘가 집을 비워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의상의 귀국 소식을 접한 이 선묘는 자신이 죽어 그를 지켜주겠다며 황해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후에 의상이 [[영주 봉황산]]에 산사를 지을 때, 지역 주민들이 와서 집단으로 들고 일어서자 어느 날 사람 수 명의 머리를 덮고도 남을 크기의 바위가 공중에 떠다니면서 주민들을 따라다녔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해산하였고, 의상은 사찰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의상은 [[670년]]([[문무왕]] 10)에 귀국하여 [[관음굴]](觀音窟: [[낙산사]])에서 일을 기도하고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태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교학]]을 강술하여 [[화엄종]]([[해동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의상"/>
         * {{글로벌세계대과사전|분류=불교}}
  • 이장경 . . . . 9회 일치
         '''이장경'''(李長庚,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호족으로 [[이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이조년]] 5형제의 아버지이자 [[이인기]], [[이승경]]의 할아버지였다. [[이인임]]의 증조부, [[이숭인]]의 고조부였다. 아들 5형제의 출세로 거듭 증직되고 광산부원군(廣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가 손자 [[이승경]]의 출세로 [[원나라]]로부터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되었다. 본관은 [[성주 이씨|성주]]이며 [[성주 이씨]]의 중시조로 본다. [[경상북도]] 출신.
         성주의 호족으로 [[신라]] 말의 재상 이순유(李純由)의 12대손이며<ref>순유(純由)→광연(光演)→정신(正身)→견수(堅壽)→범(凡)→정거(廷居)→중경(仲京)→영(瑩)→효삼(孝參)→돈문(敦文)→득희(得禧)→이장경(李長庚)</ref>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장경의 아버지인 이득희는 태몽에서 문창성(文昌星)이 경산(京山)에 떨어지는 것을 본 후 이장경이 출생한 까닭에 이름을 장경(長庚)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경은 문창, 태성의 다른 칭호였다. 그 뒤 성주군수로 부임한 [[합천이씨]] 이약(李若)은 이장경의 재능을 간파하고 후세에 반드시 창성할 것이라 예상, 자신의 딸과 혼인하게 하였다. 부인 합천이씨에게서 아들 5명이 태어났다.
         생전에 상호장(上戶長)과 안일호장을 지냈고 사후 아들 [[이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이년은 밀직사사(密直司事), 이천년은 참지정사, 이만년은 문하시중, 이조년은 대제학을 지냈으므로 아들들의 출세로 고려조로부터는 삼중대광 문하좌시중(三重大匡 門下左侍中) 흥안부원군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도첨의정승 지전리사사 상호군(都僉議政丞 知典理司事 上濩軍)에 추증된 뒤 원나라 황제로부터는 농서군공에 추봉되었다.
         [[이년]]의 아들이자 손자 [[이인기]]는 평양부 부윤이었고, 고손자(아들 이년의 증손)는 [[포은]] [[정몽주]]의 제자이자 [[고려]] 멸망 이후 두문불출한 절신 [[이숭인]]이었다. 이인립(李仁立)의 아들이자 이장경의 고손자인 이제(李濟)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조선 왕실과도 인척관계가 되었다.
         [[이순자]]와 [[이규광]], [[이규동 (1911년)|이규동]]은 아들 [[이년]]의 후손이었다.
         ** 아들 : 이
         * [[이년]]
  • 임백천 . . . . 9회 일치
         || '''이름''' ||<(> 임천(林白千) ||
         이게 인연이 되었는지 1993년도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 TV 연예]]에서의 서태지와 아이들 컴쇼 코너를 보내주었고, MBC의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 무대에서도 멘트를 맡았고, 몇몇 서태지 관련 이벤트 등에서 나와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특집 방송이나 공연의 MC를 맡기도 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들도 임천에 대해 각별히 생각한다고 한다. 서태지의 40대 이후의 외모가 놀랍게도 임천과 매우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DJ로도 활동 중이며, [[KBS 2FM]]의 오후 2시 프로그램인 "뮤직쇼"[* 김연주와 결혼하면서 그만뒀다가 2001년 4월부터 2003년 봄 개편 전까지 DJ를 맡았다.]등을 진행했다. 현재는 [[KBS 제2라디오]]에서 낮 12시 10분에 시작하는 "임천의 라디오 7080"의 DJ를 맡았다. 하지만 2016년 9월 5일부터 라디오 7080이 수도권 방송으로 전환되어 지역에서는 들을 수 없다.--[[KBS 2FM]] 지방에 허가 안 할래?--[* 왜냐하면 [[한국방송공사|KBS]] 본사가 지역국 음악FM 방송을 [[KBS 1FM]]으로 취급하고 있어서 광고방송이 안 되기 때문이다. [[KBS 2FM]]이 2002년부터 광고방송 중인데, 2001년 10월 개편 때 광고방송을 위한 사전 작업 때문인지 2FM은 굿모닝팝스를 빼고 지방에서 모두 릴레이가 중단됐다. 게다가 굿모닝팝스도 광고가 나가는지라 지방에서 [[DMB]]와 라디오로 잡아 보면 약간 차이가 났으며, 2017년 3월 6일부터 굿모닝팝스가 [[KBS 제2라디오]] 수중계로 변경되면서 KBS의 지역국 음악 FM 방송은 사실상 1FM으로 완전히 전환됐다. 이후 2008년에 지상파 [[DMB]] 채널인 U-KBS 뮤직을 통해 [[키스 더 라디오]]를 제외한 나머지 2FM 프로그램들을 송출 중이며, 2016년에 라디오쇼(일부 지역국만)와 [[가요광장]]을 광고방송이 가능한 지역 [[KBS 제2라디오]]를 통해 릴레이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KBS 본사도 지속적으로 2FM 지역 릴레이를 추진하고 있지만, 주파수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주파수 없다면서 종교방송 허가는 왜 막 하냐고! 특히 [[극동방송]] 왜 허가했냐고!--] 2018년 가을 개편으로 [[KBS 제2라디오]]에서 아침 11시에 방송하는 "골든팝스"를 진행 중.
         2015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다. 참고로 출연 당시 57세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출연자들 중에선 '''3번째로 최고참이었다.''' 첫번째는 출연 당시 만 63세이던 [[부활한 투더퓨처]], 두번째는 출연 당시 만 58세이던 [[윙윙윙 고추잠자리]]. 현재는 [[내 노래에 놀랄지도]]가 2016년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최고령 출연 기록을 경신하면서 5번째 최연장자 출연이다.
         [[스카이 IM-100]]의 별칭이 임천이며 IM Back (SKY)에서 하늘 천 자를 본뜬 모양이다. 사실 임천의 천은 숫자 1,000이다.
  • 전태일 . . . . 9회 일치
         그는 공장 노동자 생활 중에도 고등학교 복학을 꿈꿨고, [[1967년]] [[2월 20일]] 자신의 바지와 하숙방에 있던 곤로를 팔아 연합중고등 통신강의록 <중학 1>권을 150원에 산다. 수중에 남은 15원으로 10원짜리 노트를 산 뒤 전화비 5원을 주머니에 남겨두고 3일간 금식하였다. 당시 한 쪽지에 그는 "내일부터 23일까지 금식이다. 설마 3일 금식에야 죽지 않겠지. 정신수양의 금식이야.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오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내년 3월에는 꼭 대학입시를 보자. 앞으로 376일 남았구나. 하루에 2시간씩 공부하면 내년에는 대학입시를 볼 수 있겠지."라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회사의 [[착취]]와 [[해고]]를 당하면서도 단결하여 투쟁할 생각을 못하던 [[노동자]]들이 [[죽음]]으로써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 열사를 보면서 각성한 것이다. [[1970년]] [[11월 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년]] 9월 한국회관(음식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8월 [[신진자동차]] 노조 조합원과 가족 1900여명의 [[파업]]투쟁, [[한진상사]] 파월 노동자 400여명의 [[대한항공]] 빌딩 옥상 방화 농성 등이 주요한 사건들이었다. [[1971년]]의 노동자의 단결투쟁은 1600여건에 이르렀는데, 이는 전년도 165건에 비해 10배가 넘는 규모였다.<ref>지명관,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98~ 101쪽, 다섯수레, 1996년; 한국정치연구회, 《한국정치사》 352~ 353쪽, 산서당, 1990년; 역사학연구소, 《강좌 한국근현대사》 347쪽, 풀빛, 1995년</ref>
         기본적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고발한 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11월 16일]] [[서울대학교|서울대]] 법대생 1여명은 그의 유해를 인수하여 학생장을 거행하겠다고 주장했고, 상대생 4여명은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였다. [[11월 20일]] 서울대생, 성균관대생, 이화여대생 등과 기타 서울시내 학생운동가들이 모여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전태일 추도식을 거행하고 공동으로 시위를 벌였다가 해산되었으며, 고려대, 연세대생들도 집회를 열었다.
         [[1970년]] 당시 전태일은 봉제 노동자들의 월급 액수를 설문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1970년]]도 당시 전태일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체로 시다가 월 1천8 원에서 3천 원, 미싱사가 7천원에서 2만 5천원, 미싱보조는 3천원에서 1만 5천원, 그리고 재단사가 1만 5천원에서 3만원까지 받고 있었다.
         [[동아일보]]의 [[1983년]] 뉴스에도 그가 조사한 조사자료와 비슷한 기록이 전한다. [[동아일보]] 기자가 [[1983년]] 설문한 자료에도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평화시장 근로자들은 하루평균 14~15시간을 높이 1.5m의 다락방에서 일하고 재단사가 월1만5천원에서 3만원,미싱사가 월7천원에서 1만5천원, 시다 라는 이름의 견습공이 월1천8원에서 3천원정도 받았다.<ref>"서울 단면 청계천상가 <중> 기계공구·의류의 본고장", 동아일보 1983년 11월 30일자 3면, 경제면</ref>"고 한다.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13514/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민족문화대과사전 - 전태일 분신사건]
  • 정웅인 . . . . 9회 일치
         |제목= 정웅인, “대학 시절 후배 안재욱 괴롭히긴 했다” 솔직 고 |url= http://www.fnnews.com/newsview/starnews.jsp?newsid=20121129147136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11-29}}</ref><ref>{{뉴스 인용
         정웅인은 데뷔 이후 여러편의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무명 시절을 거쳐 [[SBS]] 예능 《좋은 친구들》의 인기 코너인 "심리학개론 흑과 "에 [[박수홍]]과 함께 출연했고, 극중 "감 잡았어"의 대사를 유행시켰다.<ref>{{뉴스 인용
         |제목= 첫딸 공개한 정웅인 “코미디는 피같은 존재다” 연기열정 고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7100023121001 |출판사=뉴스엔|날짜= 2008-07-10 }}</ref> 이후, 정웅인이 본격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으로 [[1998년]] 38.5%의 시청률을 기록한 《은실이》에 의리 있는 깡패 춘식 역할에 이어, [[1999년]] 53.1%의 시청률을 기록한 《국희》에서 강하고 신념있는 자본가 김상훈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align="center"| 기범 역
         |align="center"| 월화 드라마 《[[야 3.98]]》
         |align="center"| 장호부대 통신병 승제 역
         * 1999년 [[서울방송|SBS]] 《좋은 친구들 - 심리학개론 흑과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1007277 두산대과사전 - 영화배우 겸 연기자 정웅인]
  • 천호진 . . . . 9회 일치
         | 인수 의원 역
         | 도하 역
         | 서울화점 영업1부 정도일 이사 역
         | [[프로 (영화)|프로]]
         | 승철
         | 제28회 [[상예술대상]]
         | 제54회 [[상예술대상]]
         {{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
  • 추봉 (배우) . . . . 9회 일치
         * 1960년 《사부인》
         * 1964년 《설공주》
         * 1967년 《어느 여배우의 고
         * 1969년 《면검귀》
         * 1973년 《장안명기 오화》
         * 1982년 《구야 훨훨 날지마라》
         * 1991년 《[[예수천당]]》 - 유계 역
         * 1994년 《[[태산맥 (영화)|태산맥]]》
  • 킹덤/514화 . . . . 9회 일치
          * 그런데 왕전은 묘한 지시를 내리는데, 오다의 식량은 모두 징발했지만 성들에겐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다른 도시로 피난하게 한 것이다.
          >왕전 장군은 어째서 엄명을 내리면서까지 이 성 성들을 지켰는가?
          * 왕전은 곧 오다성의 남녀노소를 모두 불러 모은다. 그는 환의 등을 데리고 성들 앞에 직접 선다. 성들은 환의를 알아보고 모아서 몰살시킬 셈인가 싶어 불안에 떤다. 그런데 왕전이 시작한 이야기는 뜻밖의 것이다.
          >민간인인 너희를 다치게 하는 것은 이 군의 총대장인 왕전이 용서치 않겠다. 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너그러운 처우에 깜짝 놀란다. 이신도 그렇게까지 공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왕전은 엄청나게 정의로운 장군인가?"하고 의문스러워 했다. 몽념의 경우 정의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설사 그런 의도라 해도 총대장이 직접 나서서 선언하는 행동은 충분히 이상하다. [[왕분]] 측에서도 과연 왕전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환의 측에서도 이런 "촌극"이 뭐하는 짓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환의만은 "닥치고 보고만 있어라"고 주의시킨다.
          왕전이 계속해서 하는 말은 더더욱 예상 밖의 것이다. 그는 전쟁인 이상 "마음은 괴롭지만" 그들로부터 식량과 성을 뺏을 수밖에 없다며 식량을 잃은 성들은 어떻게든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근처 성까지" 이동하길 바란다며, 자신을 "용서해달라"고까지 말한다.
          모든 것이 파격적이다. 지휘관이 적의 성들에게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모든 걸 다 뺏어놓고 "다른 성으로 가라"고 한다라? 어쨌든 성들은 그저 죽이지 않고 놓아주는 것에 감격해서 왕전의 말에 따른다.
          * 왕전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뒷말이 많다. 놓아준 성들이야 대체로 왕전을 칭송한다. 심지어 그는 무장해제시킨 조나라 병사들까지 피난 행렬에 넣어주었다. 물론 일부는 전사자 가족도 끼어 있으니 왕전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일단 자기들을 죽이지 않은 걸로 충분히 감사하는 모습들이다.
  • 토리코/396화 . . . . 9회 일치
          * 미지의 식재들을 쌓아놓고 청귀, 귀와 둘러앉은 토리코.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우주는 흑(아버지), (어머니), 적(장남), 녹(차남), 청(막내)의 다섯가지 우주가 있으며 각각의 세포 색을 가지고 있다.
          * 이 자이언트 셸은 채널을 써서 빛의 속도를 초월해서 비행하기 때문에 물리법칙 상으론 아무리 오래 여행을 해도 지구로 돌아오면 고작 며칠이 흘렀을 뿐.
          * 모든 것이 끝난 후. 토리코는 식재를 쌓아놓고 청귀, 귀와 둘러앉아 있다. 그는 두 식욕의 악마가 하는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있는데.
          그러나 이 가족들도 빅뱅의 여파에 휩쓸려 뿔뿔히 흩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구루메 에너지가 영향을 미쳐 각자의 취향에 맞춰 흑, , 적, 녹, 청의 다섯 색의 우주를 형성한다. 그렇게 되서도 신들은 각 우주의 풀코스를 지키며 언젠가는 풀코스가 그들을 모아줄 거라고 믿고 있다 한다.
          이 가족들의 색이 각 우주의 색이 된 것으로 아버지가 흑, 어머니가 , 장남이 적, 차남이 녹, 막내가 청색이다. 코마츠는 아카시아의 가족들가 닮았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아버지인 아카시아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 네오는 "검정" 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플로제는 "색"이었을 거라고 추론. 그런 코마츠의 말을 듣자 토리코도 그럼 이치류 회장은 적색이고 지로는 녹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로에게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추측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의 손자인 텟페이의 머리는 녹색인데, 그게 격세유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도라가 청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듯하다고 말하고 참고로 자신의 세 번째 악마는 색이라고 첨언한다.
          미니멈 셸은 채널을 통해 광속을 넘어 시공의 틈새로 비행한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몇 년을 여행하든 지구로 돌아오는건 순식간이며 지구 기준으론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다. 코마츠는 그대로 같이 갈 사람은 없냐 사천왕이나 테리 크로스를 언급하는데 테리는 이미 무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9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512화. '''영룡의 스팅'''
          * [[스팅 유클리프]]는 영룡의 힘으로 [[라케이드 드래그닐]]에게 공세를 펼친다.
          * 스팅은 "영룡의 아시기누"(명주실)로 라케이드를 패배시킨다.
          * [[로그 체니]]의 그림자를 먹고 모드 영룡에 각성한 [[스팅 유클리프]]. 스팅은 자신은 항상 [[나츠 드래그닐]]의 등을 쫓아왔으며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방해물이라고 말한다. 라케이드는 자신이야 말로 직접 나츠의 혼을 정화할 거라며 애초에 스팅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받아친다. 스팅은 자신과 로그의 힘이 합쳐진 세이버투스의 진수를 시험해 보라며 주먹을 날린다.
          * 영룡의 힘은 라케이드에게도 상당한 타격을 준다. 스팅은 룡의 힘과 영룡의 힘을 번갈아 사용하며 라케이드를 몰아붙인다. 라케이드가 사용하는 색 마력은 룡의 힘으로 지우고 그림자의 힘은 어떤 공격도 무시하던 라케이드에게 유효타를 낸다. 두 힘을 합쳐서 내뿜자 라케이드는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멀리 밀려난다.
          * '''영룡의 아시기누'''(명주실)
  • 한규복 (1881년) . . . . 9회 일치
         [[1875년|1881년]](고종 17년) [[7월 7일]] [[한성부]] 평동(平洞) 19번지에서 주사 한만홍(韓晩洪)과 평산 씨(平山白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 한규호는 구한 말 군인으로 활동, [[보병]][[참위]]와 [[보병]][[부장]]을 지냈고 통정대부에 이르렀으며, 퇴역 후 [[1908년]](융희 2년) [[기호흥학회]]의 창립에 참여, 회보인 기호흥학회월보의 후원자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기업인으로도 활동하여 1908년 6월 4일 [[한성]]의 연강목선운륜(沿江木船運輸) 주식회사의 중역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집안은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종조부인 [[개국공신]] [[한상경]]<ref>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의 동생으로, 한명회를 양육하였다.</ref>의 후손으로, 유암 [[한계윤]](柳岩 韓繼胤)의 20대손이다. [[한계윤]]은 [[한명회]]와 6촌 형제간이며, 외할아버지는 [[성달생]]으로 [[성승]]과 [[성삼문]]은 각각 외삼촌과 외사촌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계는 몰락하여 하급 무관을 역임하다가 5대조부터는 증직 벼슬만이 전한다. 한규복의 할아버지 한수익(韓守益)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사후 [[호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증조부 한도흥(韓道興)은 [[호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고조부 한윤기(韓潤琦)는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외할아버지 우혁(白佑赫)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제목=‘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제목=353명 중 256명 명단
         [[1939년]] [[6월 4일]] [[중추원]] 참의로 재선되었다. [[8월 5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주최로 전국 순회강연을 할 때, 순회강사가 되어 국민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억 저축 생활 쇄신'이라는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다. [[9월 26일]]에는 각지의 노무자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사회조사위원회]] 위원에 피임되었다.<ref>"勞務者와 細窮民을 來月中에 綜合調査", 동아일보 1939년 09월 26일자 2면, 사회면</ref> 그해 [[9월 30일]] [[경성]]에서 자본금 만원을 투자하여 [[조선공영회사]](朝鮮工營會社)를 창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5일]]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임시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사퇴했다. [[12월 22일]] [[세제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39년]]부터 그는 [[경성부]], [[충주군]], [[함양군]], [[수원군]], [[용인군]], [[양주군]] 등을 다니며 저축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인용문2|자수 편지<br /><br />천운(天運)이 순환하사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되니 산천(山川)과 초목이 다시 금빛이 나고 잃었던 자유가 우리 몸에 다시 오니 일반의 환희는 무엇으로 형용하리요. 하물며 일제시대에 허다의 압제를 견디면서 관리생활을 계속한 본인으로서는 더욱더욱 감개무량이외다. 본인은 대한제국시대에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조도전 대학早에서 정치경제과를 졸업한 고로 행정관으로 출세하여 민중지도에 노력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관계(官界)에 투신하여 도지부 서기관으로 재임한 채로 병합을 당하여 임시토지조사국 감사관에 임명되었을 때 본인은 자신처리에 대하여 재삼 고려한 결과 나의 지력과 성력의 한도대로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견해로 관리생활을 계속하여 [[도지사]]를 역임하고 正4位 勳3등까지 되었으니 가위 고급관리의 지위까지 점진하였다고 하겠으며 30여 년간 관리생활을 하는 중에 민중의 계발을 여하(如何)한 정도로 하였느냐 하면 구체적으로 진술할 재료는 제공치 못하나 다만 양심적으로 민중을 지도하고 또한 민중의 의지를 대표하여 항거할 점은 어디까지든지 항론도 사양치 아니 하였으며 평범한 정치로 민중에 임하고 공정렴근(公正廉謹)으로서 관계일생(官界一生)의 목표로 삼은 것은 천인(天人)이 공인(共認)하는바 옵니다. 그러하니 민중에 대하여 행복이 되고 이익이 된 점을 일일이 수거치는 못하고 다만 장구한 세월의 관리생활을 하였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며 무엇이라고 변명하오리까. 금일에 지하여는 전일의 양심적으로 민중을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보도, 노력한 점은 무형(無形)으로 돌아가고 다만 관계생활(官界生活)을 하여 일제에 아부한 자로 추인되어 이 점이 기탄불기(慨歎不已)할 뿐더러 관리생활로 일생을 보낸 것이 참회되는 바이며 근신(勤愼)할 뿐이 옵니다. 오직 현명한 당국의 선악을 분별하사 관대한 처분만 바라옵고 감히 소회(所懷)의 일단을 진(陳白)하나이다.<br><Br>단기 4282년 8월 12일<br />위 인 한규복<br><br>반민행위특별조사위원회 귀중|[[1949년]] [[8월 12일]] 자수 직전에 [[반민특위]]에 보낸 편지}}
         * 어머니 : 평산 씨(平山白氏, ? [[8월 12일]] - [[1945년]] [[6월 12일]])
  • 한명회 . . . . 9회 일치
         세자 책봉을 성사시키고 [[1458년]] 봄에 귀국,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여름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의 3도에 흉년이 들어, 그를 특별히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3도 순찰사(巡察使)에 특별히 임명되어 구호물자를 싣고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순시하며 성들을 구휼하고 돌아왔다.
         수와강호(白首臥江湖) / 늙어서 머리가 하얗게 되면 강가에 누워 세상을 관조한다}}
         조정의 문사들이 앞다투어 그의 [[압구정]]에 찾아와서 압구정을 예찬한 시가 수 편이었다. 하지만 이는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이었고, 일반 성들은 이를 비웃었다.<ref name="deok252"/> 포의 이윤종(李尹宗)은 이를 비웃는 시를 짓기도 했다.
         한명회는 노년에 권좌에서 물러나 송나라 정승 한충헌의 정자를 흉내내기 위해 명나라 한림원시강 예겸에게 정자 작명을 청하면서 한가로이 갈매기와 벗하며 지내고 싶다하는 정자를 짓고 여기에 자신의 호를 붙여 '압구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노년에도 부원군의 자격으로 여전히 정사에 참여하여 권좌를 지킨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 성들에게 압구정은 자연과 벗하는 곳이 아닌 권력<ref name="park116"/>과 벗하는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후배 연일 정씨는 통의원사(通議院事) 정종화(鄭宗和)의 딸이며 포은(圃隱) [[정몽주]]의 손녀이니 그가 서북 양도의 관찰(西北兩道 觀察)사로 재직할 때 마음과 몸차림이 단엄한 것을 보고 함께 왔다. [[전주 이씨]] 선천공조의 딸은 아버지의 이름이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 그가 서(西伯)이 되었을 때 이름 미상의 전주 이씨에게 사위 되기를 위협 받았는데 한명회가 승낙하지 않자, 그가 칼을 들고 사생결단하여 부득이 배필로 취하여 데려왔다.
         * 이수광, 《책사 한명회:오년 조선왕조에 가장 뛰어난 지략가》 (작은씨앗, 2006)
         * {{한민족대과|E0061599}}
         * {{글로벌대과|제목=조선 왕조의 통치기구}}
  • 고아성 . . . . 8회 일치
         2015년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한 고아성은 성인 연기자로 변신에 성공했고, [[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등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7년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으로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고아성 “부당한 경험 있어...은호원에게 감정이입했죠” |url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70522010007552|출판사 =브릿지경제 |저자 =조은별|날짜 = 2017-05-24|확인날짜 =2017-09-07}}</ref>
         | 종열
         | 제43회 [[상예술대상]]
         | 제46회 [[상예술대상]]
         | 제50회 [[상예술대상]]
         | 제51회 [[상예술대상]]
         | 제55회 [[상예술대상]]
         {{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
  • 권희동 . . . . 8회 일치
         || '''포지션''' || [[외야수]][* 2013 시즌에는 주로 우익수를 보았고, 2014 시즌부터 대부분 좌익 출장에 가끔 중견수, 우익수를 보았다. 이후부터는 좌익수 고정. 2018 시즌에는 [[김준완]]의 입대로 중견수 자원에 공이 생기면서 다시 중견수 출전이 늘어났다.] ||
         7월 30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시즌 8호 홈런을 쳐냈다. 앞서 홈런을 친 [[이호준]]에 이은 홈런. 이어서 8월 1일에도 [[김광현]]을 상대로 홈런을 쳐내면서 팀의 스윕에 기여했다. SK와의 시리즈에서 12타수 2안타를 기록했는데 그 2개가 다 홈런.
         NC가영입함에 따라, 2014 시즌은 주로 업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나성범 역시 중견수 이외 포지션의 수비는 미숙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택근, 전준우 등 예외적인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중견수의 코너 외야수 전향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었다. 나성범도 이들처럼 외야수 전향 경력이 짧은 피지컬에 의존하는 중견수라는 점 또한 사실이긴 했지만...] 이종욱이나 김종호가 코너 외야로 갈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라... 이후 언론에서 나성범이 우익수로 전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김종호 이종욱 나성범으로 이어지는 외야 라인에서 업으로 뛸 가능성이 커졌다. 2014시즌에 선수 본인의 분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2014년 초반에는 업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의 어깨 부상과 부진으로 5월달부터 좌익수 주전으로 출장하였다. 김종호가 돌아온 뒤에는 좌투수 선발 시 주전 출장중.
         시즌 최종 성적은 101경기 출장 221타수 63안타 0.285 7홈런 36타점 39득점을 기록했다. 13 시즌에 비해 홈런 갯수는 줄었으나 이는 이종욱의 영입으로 주전에서 업으로 밀려나 많이 출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오히려 13 시즌에 지적받았던 선구안이나 타격 면에서는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규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해 합격해 15시즌과 16시즌을 퓨쳐스리그에서 보내게 되었으며 팬들도 크게 성장하여 차기 NC 다이노스의 클린업 트리오를 맡아주길 바라는 상황. 그런데 2015년 2월 24일 NC 다이노스의 연습 경기에서 권희동이 등장했다. 어찌 된 상황인지는 이후 위키러의 [[수정바람]]
         허리 부상의 여파로 인해 시즌 중반까지 최악의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부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후반기부터는 펄펄 날기 시작했고, 9월부터는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김성욱]]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생긴 중견수 공까지 준수하게 메워주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343타수 97안타 8홈런 57타점 타출장 .283/.352/.414.
  • 김륵 . . . . 8회 일치
         '''김륵'''(金玏, [[1540년]] ~ [[1616년]])은 조선 [[조선 선조|선조]]·[[조선 광해군|광해군]] 때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예안 김씨|예안]], 자는 희옥(希玉), 호는 암(栢巖)이다. 시호는 민절(敏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안집사와 체찰부사로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으며, 진주에서 [[이순신]]을 만난 뒤 그가 의 종군할 때 구명 운동을 벌였다. 광해군 때는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추숭을 반대하기도 했다.
         김사명은 창원황씨와의 사이에서 김욱(金勖), 김륵 두 아들을 두었는데, 형인 김사문(金士文)이 아들이 없자 둘째 아들인 김륵을 형의 양자로 입양보냈다. 부이자 양아버지인 김사문은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냈다.
         ** 양 아버지 : 김사문(金士文, [[1502년]] [[6월 27일]] ~ [[1549년]] [[12월 20일]], 그의 부이기도 했다.)
         ** 사위 : 이명(李伯明, 여흥인)
         * 암집(栢巖集)
         * 광해군일기, 암집
         * [http://www.andong.net/news-2007/view.asp?seq=981 암 김륵] - 안동넷 뉴스 기사
  • 김희철(1983) . . . . 8회 일치
         2017년 10월 17일, 11년 전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발목 통증이 심해지는 일이 잦아져 8집 앨범 활동에 정상적으로 임하지 못할 것 같다고 고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968126|기사]] [[https://www.instagram.com/p/BaWd2xznX0B/|인스타]] 그러나 곧바로 슈퍼주니어 측 관계자가 “컴을 앞두고 고질적인 다리 통증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쓴 글이 확대해석 된 것”이라며 정상적으로 활동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2995714|#]]
         자신이 2018년 7월 18일 웨이보 라이브에서 9집 컴 활동에서 녹음도 무대활동도 참여하지 못 한다고 밝혔다. 본인피셜로 '이번은' 이라고 언급하였으니 다음 10집 활동이나 리패키지 활동에는 참여 가능성이 있다.
          * 성장드라마 [[반올림]]2 - 진우 역 (2005.03.06~2006.02.26)[* 슈퍼주니어가 아닌 연기자로 먼저 데뷔했다 ]
         8집 컴 준비로 춤 연습을 하다 다리 통증이 심해져 운 뒤, 눈이 부어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인생술집 녹화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8집 타이틀곡 '[[Black Suit]]' 무대에서는 비록 곡 후반부 브릿지 파트부터 등장하지만 최선을 다해 안무를 잘 소화하는 모습이 많은 네티즌의 응원과 격려를 이끌어낸 바 있다.
          * 입맛이 매우 까다롭다. 어떤 음식에 꽂히면 1주에 4,5번 그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거기에 [[돈가스]] 등 양식을 싫어하며 [[맥주]], [[콜라]], [[사이다]] 등 탄산음료도 안마신다. 거기다 생선, 번데기, 치킨, 삼겹살의 비주얼을 매우 싫어한다고. 싫어하는 내색을 [[주간 아이돌]] 코너 아이돌 is 뭔들에서도 드러낸 바 있다. 슈퍼주니어 8집 컴 콘텐즈 <슈주 리턴즈>에서 치즈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 한때 대중 앞에서 안습한 [[가창력]]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2007년 9월 2일 [[SBS 인기가요]]에서 [[양파(가수)|양파]]와 함께 불렀던 [[임재범]]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U(슈퍼주니어)|U]]'로 활동하던 시절, 플짤이 수도 없이 돌아다녔던 니킥 사건이 그 예이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지만 본인이 많이 언급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은 그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김희철은 'U' 삑사리 이후로 자신감을 잃어 이후 활동에서 자기 파트를 빼달라고 요구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이게 본 실력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김구라]]가 희철은 고음을 잘 한다며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슈퍼주니어]]의 '[[너라고 (It's You)]]'에서 고음을 맡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기교 없는 고음을 잘하는 것으로 통한다. 멤버 [[동해(슈퍼주니어)|동해]]가 희철에 대해 고음을 잘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다가 문제의 2007년도 무대 이전에 라디오에서 감기 걸린 상태로 '말리꽃'을 꽤나 잘 불러 레전드 영상으로 남은 것을 보면 못 부른다고 깔 수는 없을 듯하다. [[규현]]은 그날 희철이 부른 말리꽃 음성을 MP3에 넣어 다녔다고 한다. [[슈퍼주니어]] 7집 앨범에 수록된 'Islands'와 '[[일몽 (Evanesce)]]'에서 후반부 고음에 등장하는데 깔끔한 고음 처리에 팬들이 이거 [[예성(슈퍼주니어)|예성]]이 공익 가기 전에 부른 거 아니냐, 그런데 예성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며 헷갈려 했을 정도. (참고로 예성은 슈퍼주니어 내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고, 솔로곡과 앨범도 여러 번 발표했을 만큼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김정모와 M&D 결성 후 발표한 미니앨범에서는 가성과 고음까지 잘 소화했지만 가창력 논란이 불거질 때부터 시간이 너무 지나 팬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가창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어려울 듯하다. M&D 음악방송 출연을 늘리거나 [[불후의 명곡]]이라도 참가한다면 모를까... 그리고 진짜 참여했다. 김정모와 함께 참가했으며 캔의 '내 생에 봄날은' 을 열창했다. 김정모는 기타 연주를 맡았고, 노래는 희철이 불렀다. 무대 후반부에 캔의 배기성이 등장하며 희철의 미성과 배기성 특유의 긁는 목소리가 화음을 만들어냈다. 그 뒤에 이어진 아는 형님에서도 부활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불러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다. 민경훈과 함께 듀엣곡인 "[[나비잠]]" 을 불렀는데, 이 곡이 히트하면서 대중에게 가창력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희철의 가창력과 고음실력은 희철이 직접 작사한 'M&D'의 '달수정', '수필', '실루엣', '魂(혼)', (마마무의 휘인과 함께 부른) '나르시스', 슈퍼주니어의 멤버 동해가 작사, 작곡에 참여한 슈퍼주니어 8집 앨범 '[[PLAY(슈퍼주니어)|PLAY]]'의 수록곡 '[[비처럼 가지마요 (One More Chance)]]' 등에서 엿볼 수 있다. M&D의 멤버 트랙스의 정모는 희철의 보컬에 대해 정형화되지 않은 보컬이라고 언급했다.
          * 원로배우 [[윤식]]이 예능프로인 [[아는 형님]]에 나와서 희철을 보고 "얼굴 하나 믿고 걸그룹, '''보이그룹'''을 다 후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영화판까지 들렸다는 드립을 날렸다. 물론 그 흔한 연애 스캔들 한번 없었던 희철이니 만큼 가능한 드립.
  • 로어셰크 . . . . 8회 일치
         왓치맨 1권 후반부에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경찰에 붙잡힌다. 이후 [[싱싱 교도소]]에 수감. 본명은 월터 조셉 코스(Walter Joseph Kovacs). 작중 중간중간에 "THE END IS NIGH"[* 종말이 머지 않았다.]라고 써진 팻말을 들고 나타나던 붉은머리 남자다.
         16살이 된 코스는 고아원을 나와 의류공장에서 잡일을 했다. 여자 옷을 만지는 일이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그러던 도중 한 여성이 주문했다가 흉측하다고 받아가지 않은 드레스를 발견한다. 닥터 맨해튼이 만들어낸 흰 바탕에 검은 얼룩 무늬가 끊임없이 바뀌는 드레스였다. 이에 매료된 코스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그 드레스를 가져가 옷감으로 만든다.
         18살 때, 코스는 [[키티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 40여명의 시민들이 제노비스가 소리치는 걸 들었음에도 그녀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걸 방관했다는 소식을 접한 코스는 2년 전 자신이 얻었던 옷감으로 마스크를 만들고 "로어셰크"로써 활동하게 된다. 이때는 범죄자들을 죽이지 않았다.
         1975년, 블레어 로셰라는 이름의 6살 된 여자아이가 납치당한다. 코스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15명의 사람들을 심문해 한 양장점의 위치를 알아낸다. 그곳에 간 코스는 로셰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후 그 양장점에서 길러지는 셰퍼드 두마리의 먹이가 되었다는걸 알아낸다. 그는 셰퍼드 두마리를 죽인 후, 밤 늦게 양장점으로 돌아온 양장점 주인을 묶은 다음에 양장점째로 불태워버린다. 그는 이 일 이후 자신이 "로어셰크 인 척 하는 코스"가 아니라 "로어셰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 마기/305화 . . . . 8회 일치
          * 영(아르바)는 그냥 둬도 되겠냐고 묻는데 "어차피 갈 곳도 없다"며 내버려 둔다.
          * 알라딘은 분명 룡에게 피신했을 거라고 계산했는데, 이들은 한발 앞서 바다로 도망친 뒤였다.
          * 알라딘은 중상을 입고 룡과 모르지아나의 간호를 받는다.
          * 룡은 아르바가 영의 몸을 강탈했음을 알라딘을 통해 알게 된다.
          * 룡은 아르바가 알라딘을 죽여서라도 솔로몬의 지혜를 손에 넣으려 할 것임을 예측하는데, 때맞춰 아르바가 나타나 일행이 탄 배를 공격한다.
          * 룡은 자간의 힘으로 모르지아나와 알라딘을 피신 시키고 홀로 아르바와 맞선다.
          * 지금까지는 룡도 알라딘과 함께 있을 거란 예측이 우세했으나 알라딘 일행을 피신시키고 홀로 아르바와 맞서 싸웠으니 그럴 가능성은 낮다.
  • 마기/311화 . . . . 8회 일치
          * 연영(아르바)는 검을 버리고 마법으로 승부한다.
          * 아르바는 세 개의 마법을 동시에 쓰면서 모르지아나와 연룡을 압도한다.
          * 알라딘은 "연영의 몸을 돌려주고 신드바드에게 수작 부리는 것도 관둬라"고 요청하고 아르바는 대답 대신 "네 얼굴은 그 두사람(솔로몬과 시바)과 닮아서 싫다"고 디스한다.
          * "알라 라케이사로 모르지아나와 연룡의 움직임을 멈추고 "플래시 아죠라", "람즈 알사로스"를 동시에 날린다.
          * 연룡은 자간의 힘으로 두 마법을 막아내지만 무시무시한 위력이다.
          * 룡은 이상한 수준인 아르바의 회복능력을 보고 "알라딘의 짐작대로 본체는 다른 곳에 있다"고 판단한다.
          * 유난의 타전의 저주는 멈췄고 룡이 자간으로 응급처치를 시작한다.
          * 알라딘은 인사와 함께 "영의 몸을 돌려주고 신드바드에게 찝적거리지 마라"고 요청하는데 아르바는 "많이 컸다. 네 얼굴은 솔로몬과 시바를 닮아서 싫다"고 동문서답한다.
  • 박하나(배우) . . . . 8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혼성그룹 [[http://music.naver.com/artist/home.nhn?artistId=87126|가수]] 및 배우.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나왔고 [[2003년]] 혼성그룹 퍼니(FUNNY)1집 타이틀곡 '고'으로 데뷔 이후 '청량음악'으로 활동했다.
         ||<|3> 2013년 ||<|6> MBC || [[년의 유산]] || 술집직원1 || 단역 ||
         || 2014년~2015년 || [[압구정 야]] || [[야(압구정 야)|야]] || 주연 ||
         || 2003년 || 퍼니 || 고, 청량음악 ||
         || [[MBC 연기대상]] || 연속극부문 여자 신인상 || [[압구정 야]] ||
  • 백결 선생 . . . . 8회 일치
         '''결'''(百結, [[414년]]<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1971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ref> ~ ?) 또는 '''결 선생'''(百結 先生)은 [[신라]] 전기의 [[거문고]] 명수이다.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영해 박씨 족보》에 따르면 [[눌지 마립간]]대의 문신 [[박제상]]의 아들이라고 한다. 또한 그의 형 또는 동생인 박효원(朴孝元)은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왕건의 측근인 [[박술희]]의 15대 선조가 된다. 다른 이름은 '''문량'''(文良)이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생애에 대해 별다른 기록이 나와있지 않으며, 몹시 가난하여 옷을 군데나 끼워 입었기 때문에 결 선생(百結 先生)이라 불리었다. 영계기를 존경해 거믐고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자 했다고 한다. [[섣달그믐날]] 아내가 이웃집 떡방아 소리를 부러워하자, 떡방아 대신에 아내에게 들려준 떡방아 소리인 〈대악〉(碓樂)이 유명했다고 한다.
         《영해 박씨 족보》등에만 나와있는 기록으로는 관직을 떠날 때 귀향곡인 〈낙천악〉(樂天樂)이 있다고 한다. 청렴하고 결했으며 궁중으로부터의 일체의 후원을 거절하고 스스로 궁색한 생활을 즐기다가 말년에는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위키문헌|삼국사기/권48/결선생|삼국사기 결선생 열전}}
         * {{글로벌세계대과}}
  • 백기만 . . . . 8회 일치
          | 이름 = 기만
          | 필명 = [[호 (이름)|호(號)]]는 목우(牧牛)· 흰곰 <br /> [[필명|필명(筆名)]]은 '''웅'''(白熊)
          | 자녀 = 용주(장남)
         '''기만'''(白基萬, [[1902년]] [[5월 12일]] ~ [[1966년]] [[8월 7일]])은 [[대한민국]]의 [[시 (문학)|시인]], [[문학 평론|문학평론가]]이다. 본관은 [[수원 씨|수원(水原)]]이고 [[호 (이름)|아호(雅號)]]는 목우(牧牛), 흰곰이며 [[필명|필명(筆名)]]은 '''웅'''(白熊)이다.
         * [[시 (문학)|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아(白啞). [[소설|소설가]], [[수필|수필가]], [[번역|번역문학가]], [[문학 평론|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19280 두산대과사전]
  • 백남순 (1929년) . . . . 8회 일치
         |별명= [[남준 (1929년)|남준]]
         |자녀= 낙천(1957~) 인민군 소장, 기천 인민군 소장, [[룡천]](1962~) 전.조선중앙은행 총재 겸 당 정치국 후보위원
         '''남순'''(白南淳, [[1929년]] [[3월 13일]] ~ [[2007년]] [[1월 3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정치가]]로 [[조선로동당]]원이다.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처음 남한을 방문하였고, 이후 [[남북회담]]에서 수차 모습을 나타내는 등 대남협상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지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103MW200805158998 남순 북한 외무상 사망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폴란드]]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1989년]]에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취임했다.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청도 씨]][[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20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장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사회주의자]][[분류:공산주의자]][[분류:수원시 출신]][[분류:김일성종합대학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폴란드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분류:월북자]][[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
  • 백춘희 . . . . 8회 일치
         '''춘희'''(白春喜 [[1958년]] ~ )는 [[대한민국]]의 사회기관단체인, 정당인, 공무원이다. [[충청북도]] 출신
         * 세우리병원 자문위원장<ref>[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714_0013045216 대전시 정무부시장 춘희 씨 내정] 뉴시스 2014.07.14.</ref>
         * 2012년 선진통일당과 새누리당 합당 후 새누리당으로 이동<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71709223235101 춘희 대전시 정무부시장 내정자, ‘이중행태’ 논란]</ref>
         * [[2014년]] [[7월 14일]] ~ [[2016년]] [[6월 30일]]<ref>[http://news1.kr/articles/?2706804 춘희 "대전 공직자들과 함께한 2년 값지다"]</ref>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251521001&code=620106 춘희 대전시 정무부시장 취임 “여성친화도시 조성에 힘 보태겠다”] 경향신문 2014.07.15.
         *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7/25/0705000000AKR20140725089000063.HTML 춘희 대전시 정무부시장 취임…"시민소통 힘쓸 것"]
         * [http://news.joins.com/article/16316046 춘희 부시장 "이명완 사장 자격있다"]
         * [http://www.cc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87158 대전시 첫 여성 정무부시장 퇴임…1년 11개월 임기마친 '여장부' 춘희]
  • 블랙 클로버/56화 . . . . 8회 일치
         [[야의 마안]]의 포로를 심문한 결과 배신자는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 [[겔도르 포이조트]]였다.
         * 그 결과 겔도르는 여러가지 불법적인 거래를 하고 있었고 그 중에는 장벽마법사를 납치, 야의 마안으로 추정되는 조직에 팔아넘긴 것도 있었다.
         * 사실 야의 마안에 협조한거 외에도 국보급 마도구를 빼돌리고 위험한 마법약을 밀수, 단원을 학대하는 등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 어쨌든 겔도르의 범죄행위가 야의 마안에 기회를 줬고 신상수훈편의 사건도 장벽마도사가 납치 당했기 때문이었다.
         * 마법제는 심문으로 얻은 정보를 둘에게 추가로 알려준다. 야의 마안 아지트에 있던 석비에는 "마석"이 박혀있는데, 야의 마안은 이것을 모두 모으면 "진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강대한 힘을 얻는다고 믿고 있다.
         * 푸에고레온을 공격한 것도 이 힘을 얻기 위해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야의 마안은 남은 세 개의 마석을 노리고 또 음모를 꾸밀 것이다.
         * 마법제는 야의 마안보다 먼저 마석을 손에 넣어야 한다며 이 일은 "가문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검은 폭우]]가 적임이라고 한다. 야미에게 의뢰를 수락하겠냐고 하는데.
  • 울릉군 . . . . 8회 일치
         ||<bgcolor=#01A9DB> {{{#FFFFFF '''군화'''}}} ||<bgcolor=#CEECF5> [[동꽃]] ||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지역이 되면서 남한령이 되었다. [[6.25 전쟁]], 남북 분단에 이르는 격변기에는 매우 드물게 참화를 비껴갔다. 옛부터 주변에서 별로 간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잘 지냈기 때문에 이념 대립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육지와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진지라 6.25 전쟁조차도 바다 건너 불구경이었다.[* 어떤 위키러가 들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자를 실은 배가 들어오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육지에서 전쟁이 났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넓이가 지나치게 넓어 사람도 많이 몰린 [[제주특별자치도]], 남한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령도]], [[연평도]]의 안습한 역사와 비교해보자(…). 마찬가지로 육지와 꽤 멀리 떨어진 가거도도 역시 바다 건너 불구경...그러므로 종속국의 역사와 행보가 떨어진 섬이라는 점에서는 [[대만]], [[오키나와]]와도 비슷하다.
         섬 중에서 기독교 교세가 강한 점은 역시 섬이면서 [[천주교]]가 강세인 [[령도]]와 비슷하다. 이 령도는 실제로 지역 유지에 해병대 6여단 소속 해군 [[군종 신부]]가 들어갈 정도이다. 단, 울릉도의 천주교 교세는 개신교와 불교에 많이 밀린다. 본당도 도동에 있는 도동성당과 북쪽 북면소재지에 있는 천부성당 2개밖에 없다. 신자는 1천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바가지로 받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는 아이스크림을 시가보다 비싸게(천원이 정가라면 천삼~오정도)받았다고 하지만, 현재는 그냥 정가로 판다. 관광업이 주 수입원이다 보니 식당의 가격이 비싼 건 맞지만, 일반 생필품 등의 가격이 육지랑 크게 차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울릉도가 물가가 비싸다라는 말이 유행해, MT나 친목도모회를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류/안주류를 사들고 오는데, 울릉도에서 구매하지는 않고 빈 병들만 투척하고 가는 바람에 입도비를 따로 받지 아니하는 울릉도는 벌이가 시원찮은 편.
         배가 언제 뜰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육지와 왕래할 때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그 자체. --그런데 항공기는 오죽할까-- 심지어 전직원 휴가를 울릉도로 정한 대기업 납품 중소기업이 '''기상악화로 발이 묶여''' 납품 실패, 돈은 돈대로 나가고 아예 회사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설같이 전한다. 사설 헬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높은 파도로 인해 배가 뜨지 않을 때 사설 헬기를 이용할 시 비용은 약 500~700만원정도 든다.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 도달해 어떻게든 나가야할 시 유일한 병원인 보건의료원에서 응급 후송 헬기를 이용할 수 있으나, 그조차 의학적 증거가 명해야 한다.
         항공편이 없다. 다만 군인이라면 군 비행장인 [[강릉공항]]에서 격주로 1대씩 다니는 공군 수송헬기를 이용할 수는 있고, 응급환자 발생시에는 [[포항공항]]에서 UH-60 헬기가 출동한다. 때문에 뭍에서 울릉도로 민간인이 이용할수 있는 이동수단은 사실상 배가 유일하다. 때문에 외국인들이 가장 찾아가기 힘든 [[대한민국]] 땅으로 현지에서 외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2009년 울릉도를 방문한 관광객 272,555명 중 외국인은 838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0.3% 수준이다. 참고로 같은 해 [[제주특별자치도]]에는 6,523,938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이중 9.7%인 634,354명이 외국인이었다. [[미군|지구방위군]] 경계구역의 극서북단 코너에 위치한 현실상 여객선 타면 발에 채이는 게 외국인[* 미 '''해병대''', '''제7함대''' 간부, '''정치안보''' 외신 기자들 등.]인 [[령도|국토 반대편의 섬]]과 대조된다.
  • 유동근(배우) . . . . 8회 일치
         ||<-5><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대중은 '''[[왕]] 전문 배우'''로 기억한다. 군주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특유의 후덜덜한 발성'''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각인시키는 탓도 있다. 비슷하게 카리스마형 배우로 유명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이 야인시대 2부의 그 유명한 '''[[내가 고자라니|공산당 할 거야 안 할거야!!!]]'''로 대표되는 귀청이 떨어질듯 쩌렁쩌렁한 호통으로 유명하다면, 유동근은 마치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다가 포효하는 듯한, 절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초저주파 타입의 호통이다. [[https://youtu.be/DhGlBFPcmCg|이 영상을 보면 그 특유의 성난 음색이 드러난다!]] [[사자후]]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사극의 주요 배역에서도 카리스마가 있고 강력한 권력자 역을 많이 맡았다. [[계]], [[연개소문]]이나 '''[[태조(조선)|태조(이성계)]]''', '''[[태종(조선)|태종(이방원)]]''', [[세조(조선)|세조]], [[연산군]], '''[[흥선대원군]]''' 등.
         정황을 따져보면 '왕과 나' 촬영 당시 쪽대본 & 이런 저런 사유 때문에 그 날따라 몸도 아픈 상태이던 아내 전인화가 너무 힘들어서 눈물까지 흘리는 바람에 유동근씨가 화가 나서 따지러 간 거 같은데...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아내가 걱정되어서 항의하는 와중에도 CP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고. [[http://star.mt.co.kr/stview.php?no=2007122719592056123&type=3|당시 인터뷰]]. 자기 자신도 연기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항의한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완력을 사용한건 아무래도 잘못이 맞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이 터진 후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故 [[김재형]] PD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극 제작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그리고 이걸 보고 온라인 상에선 '''용의 주먹'''이라며 조롱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 바람에 [[SBS]] 드라마는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가, [[SBS]]의 [[아테나:전쟁의 여신]]에 NTS국장 권용관 역으로 출연이 확정되면서 4년만에 SBS 드라마로 컴하게 되었다.(여기서 유동근 외모가 스플린터 셀 컨빅션 샘 병장과 닮았다.)
          * KBS <삼국기>(1990): 계 역. 황산벌 전투에서 김유신에 패배.
         ||<|2> 1997년 || [[상예술대상]] ||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3> 1998년 || 상예술대상 ||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2년 연속수상.] ||
         || 2000년 ||<|2> 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남의 속도 모르고 ||
  • 윤정희(1944) . . . . 8회 일치
         ||<-5><#c0c0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대한민국의 여성 배우. 피아니스트 [[건우]]의 부인이며, 1976년에 결혼했다. [[본명]]은 손미자.[* 배우 [[금보라]]와 본명이 같다.] 1944년 7월 30일에 출생하였고, 서울에서 태어나 강원에서 성장 [[홍천군]]과 우석대(고려대학교로 통합)를 졸업하였다.
         사실 그녀는 단순하게 인기가 많은 데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배역폭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사에 굵직한 기여를 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cr333&logNo=120061757343&isFromSearchAddView=true|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당시 여배우의 맡는 통상적인 역할은 어머니상이나 요부상에 그쳤는데, 윤정희의 경우에는 이 두 역은 물론이고, 치미까지 능숙하게 연기했다고. 단순히 트로이카들과 비교해도 이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하이틴 스타와 같은 통통 튀는 발랄한 역을 연기한 [[남정임]], 우수에 빠진 눈매로 비련의 여인을 연기했던 [[문희]]에 비해 폭넓은 역을 맡았다. 또 그녀의 이미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적인 세련미이다.
         그러나 [[문희]]가 [[미워도 다시한번]]의 흥행 이후 1969년에는 [[벽속의 여자]], [[꼬마신랑]] 등을 대거 흥행시키며 1970년대부터 윤정희를 능가하여 조금 위축된 감을 보여줬지만 1971년 문희, 남정임이 은퇴한 반면 윤정희는 결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1976년]]에 피아니스트 [[건우]]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에는 윤정희를 탐낸 [[박정희]] 대통령의 바람기 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말도 있다. 어찌됐든 부부금슬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1977년에는 야행이 그 해 흥행영화 5위권 안에 들어가며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영화 말고 드라마가 크게 성장했는데 윤정희는 드라마에서도 활약을 한 적이 있다.
         한때 일가족이 북한으로 [[납북]]될 뻔한 큰 위기도 겪었다. 자세한 내용은 [[건우]] 항목 참고.
         [[http://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1219865&qb=67aB7ZWcIOycpOygle2drCDrsJXsoJXtnaw=&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건우와 결혼 과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정희를 총애하자 이에 [[육영수]]가 건우와 서둘러 결혼시켜 프랑스로 쫓아냈다' 류의 소문이 떠돌았다. 위의 지식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도 윤정희와 관련된 뜬소문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 이상정 (1897년) . . . . 8회 일치
          | 친척 = 이동진(조부) <br/> 이일우(부) <br/> 자화(모) <br/> 한정원(장인) <br/> 박학남(장모) <br/> 권문각(장인) <br/> 장문명(장모) <br/> [[이상화 (시인)|이상화]](아우) <br /> 서온순(제수) <br/> 이용희(조카) <br /> [[이상 (사학자)|이상]](아우) <br/> 이학희(조카) <br/> [[이상오]](아우) <br/> 이겸희(조카딸) <br/> [[박창암]](조카사위) <br/> 이준희(조카) <br/> 이상악(사촌 형) <br/> 이상무(사촌 남동생)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종조카) <br /> [[박부남 (1932년)|박부남]](5촌 종질부)
         그는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사학자 [[이상 (사학자)|이상]](李相佰), 수렵가 [[이상오]](李相旿)의 형이다. 호적상에 등재된 부인은 2년 연상의 한문이(韓文伊, 1895년 5월 7일 ~ 1941년) 여사인데, 우리나라 여성 [[비행사]] 1세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 겸 항공비행사였던 4년 연하의 [[권기옥]](權基玉, 1901년 1월 11일 ~ 1988년 4월 19일) 여사와 [[1928년]], [[내몽골 자치구|중화민국 네이멍구 자치구]] [[후허하오터 시|후허하오터]]에서 다시 결혼하였다.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36082 두산대과사전 - 예비역 대한독립군 중장 이상정 前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 이순재(1935년 10월) . . . . 8회 일치
         그렇다고 이순재가 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TBC]] 드라마 남우주연상도 2회 이상 받았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한 배우이며, 당시에도 실력을 인정 받았다.[* 오히려 위에서 거론된 대기만성형의 대표주자는 [[윤식]]이다. 그도 한창 젊은 시절인 70-80년대에는 비중없는 조단역에만 머물렀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드라마 [[서울의 달]]로 주목을 받고 2000년대 들어서 영화판에서 굵직하게 활약하여 노년에 들어 입지를 굳힌 케이스다.] 한 마디로 [[이순재]]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으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은 덕택에 자기보다 인기 있던 스타가 모두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MBC에서 최민수의 노인폭행 누명을 다룬 특집 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작진은 연예인들을 둘러싼 각종 악성루머들을 조명하며 한번도 구설수에 없는 이순재를 찾아가 비결을 물었다. 이순재가 말한 비결은 무조건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것이었다.]
         2013년 [[꽃보다 할배]]에 [[신구(배우)|신구]], [[박근형]], [[일섭]]과 함께 H4로 출연 꽃할배 열풍을 일으켰다. 출연진중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도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며, 빠른 걸음과 멈추지 않는 직진본능으로 '직진순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촬영 내내 엄청난 학구열과 열정을 보여줬고 여행지마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동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동물사랑의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자막으로 뜨는 별명은 '숲속의 친구'.
          * [[아줌마(드라마)|아줌마]](2000, MBC)/장기
          * [[수탈출]](2003, SBS)/왕춘범
          * [[대물(드라마)|대물]](2010, SBS)/성민
          * 1977 제3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2009 제45회 상예술대상 공로상
          * 2011 제20회 금계화장영화제 남우주연상
  • 이준(배우) . . . . 8회 일치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2014년 11월부터 [[미스터 ]]에서 [[최대한]] 역으로 출연했다.
         웃을 때 팔자주름이 생기는 것이 특징. 사막여우를 닮았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듯한 솔직한 발언과 치미스러움, [[정신줄|정줄]] 놓고 망가지는 모습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성격은 매우 소심하다. 막내인 [[미르(엠블랙)|미르]]가 [[천둥(가수)|천둥]]과만 논다고 삐져있다던지... 방송에서는 밝고 명랑한 천연 & 치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면면을 살펴보면 속이 깊고 생각도 많으며 얌전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녔음을 간파할 수 있다. 방송에선 [[비글]]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말이 별로 없는 스타일. 하지만 의외로 애교도 많다 ~~반오십이후로는 애교부리는것이 민망해졌다고 한다~~ 쉴 때면 거의 잠만 자고 조용해서 멤버들 사이에서 별명이 식물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듯하다. ~~멤버들이 예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화폐|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장부를 쓰고 있다. 원까지도 다 받아내려 하지만 팀의 리더인 [[승호]]는 갚는 일이 없다고 전해진다. 돈을 재테크로 불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안쓰고 모아서''' 잠실에 집을 샀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많이 돈을 쓰는 품목은 [[이온음료]]. 부모님께 번 돈을 다 드리고 자신은 [[체크카드]]로 용돈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래들보다 수입이 많다고 자칫 그것이 평생 갈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모님이 편찮으셔서 간병도 하고 치료비 일부를 지원한 바 있는데 그 일이 외제차를 사는 것보다 훨씬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깨달은 이후로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2011년 점만점에서 '이준씨 러블리'라는 애칭을 얻었다
         ||<|4> 2011년 ||<|2> [[SBS]] || [[샐러리맨 초한지]] || 여치 남자친구 || 특별출연 ||
         || MBC || [[미스터 ]] || [[최대한]] || ||
  • 이창동 . . . . 8회 일치
         * 1996년 제32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 1997년 제33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 1997년 제33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상
         * 1997년 제33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 2003년 제39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 2008년 제44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 2011년 제47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
  • 정재학 (1856년) . . . . 8회 일치
         '''정재학''' (鄭在學, 1858~1940)은 [[대한민국]] [[금융업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은행산업의 대부다 .<ref name="ReferenceA">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7</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조선 말기부터 일제 치하에서는 [[은행]] 경영진들이 [[관료]]나 [[왕실]] 지방 토호 가운데에서 배출됐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주먹으로 일군 자금으로 55세 무렵 [[은행장]]에 오른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ref name="ReferenceB">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3</ref><ref>서광운, <<한국금융년 >> (창조사, 1970) p667~670</ref>
         27년 간 이어진 그의 은행경영 노하우는 아들과 손자에게 넘겨졌다. 숱한 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계은행]] 자본의 총집결지였던 [[조흥은행]]에서 같은 가문의 한국인 행장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5대 [[정종원]] 행장과 해방 후 첫 한국인 행장에 오른 2대 [[정운용]] 행장이 각각 그의 3남이고 장손이다. [[정재학]]이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 투입한 민족자본은 정씨 가문 지분으로 상속되면서 고스란히 [[조흥은행]]에 남겨졌다.<ref name="ReferenceC"><<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83~87</ref><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412~431쪽 역대임원</ref><ref>서광운, << 한국금융년>> (창조사, 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
         국내 경제학계의 원로였던 [[고승제]]박사<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03779민족문화대과사전 인명사전 고승제(高承濟)]</ref> 는 1991년 펴낸 저서에서 "정재학의 그림자는 조흥은행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3남 정종원은 1974년 11월 [[조흥은행]] 상무 [[취체역]](상무이사), 1952년에는 전무 취체역 (전무이사)을 거쳐 1956년부터 1961년 4월30일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 [[정재학]]의 그림자가 [[조흥은행]]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흥미로운 지표로 볼 수 있다" " 정재학의 후손 20여명이 아직 조흥은행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방은행 창설했던 정재학의 후손답게 그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큰 잘못이 없겠다" 고 적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69</ref>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물러나던 중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br>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친척관계인 [[정운일]] ( 鄭雲馹 )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언도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과사전 정운일 편
         그는 일본인들의 경영권찬탈 시도가 이어지자 경찰 출신의 일본인 지배인을 선임하는 등 경영권 방어전략으로 맞섰다. 또한 총독부와 일제강점기 중앙 은행이었던 조선은행이 자신을 행장 자리에서 줄기차게 몰아내려 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다. 주주총회에서 한국인 주주들이 정재학 행장에게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15일 9면 경제인록 = 금융계 일제하의 금융인</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7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7편</ref> 31년간 민간은행장 자리를 유지한 사례는 전 세계 어디 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 치하에 설립된 수많은 [[민족계은행]]이 있었지만 일제의 강제합병 과정에서 사라져갔지만 정재학 행장은 생의 마감 직전까지 저항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년>>(창조사, 1970) P.674 "조흥은행 되기까지"</ref>
         임 대기자는 [[대구은행]]의 설립을 주도했던 [[정재학]] 외에도 [[이일우]]란 대구 지주 부호 역시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는 등 민족 의식 고취에 앞장섰다고 강조했다. 이일우 가문은 체육계원로로 IOC (국제올림픽 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이상]], 독립군을 이끈 [[이상정]] 장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경향파애국시인 [[이상화]] 등을 배출하는 등 대구지역에서 명문가이자 [[민족자본세력]]의 한 축을 이뤘다 . 또한 대구은행에 참여한 [[서상돈]] 역시 대구지역 민족경제인들의 결사체인 [[대구시의소]]를 이끈 [[대구]]의 명망가였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ref>
         [[조흥은행]]은 1943년 10월 1일 민족자본에 기반을 둔 9개은행( [[한성은행]] [[대구은행]] [[한일은행]] [[호서은행]] [[호남은행]] [[동래은행]] [[주일은행]] [[구포은행]] [[해동은행]])의 다단계 합병에 의해 탄생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년>> (창조사, 1972) p684쪽 조흥은행계보도</ref> 해방직후 [[조흥은행]]의 지분구성을 보면 일본인 5.1%, 한국인 53.7% 그리고 은행상호보유주 41.0%로 나타났다.<ref><< 조흥은행90년사 >> (조흥은행, 1987) p113~114</ref> 한국인지분 가운데 [[대구은행]]을 설립한 [[정재학]] 가문과 [[한일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한 [[민대식]] 가문 등 두 가문의 비중이 가장 컸다.<ref>경향신문 1955년 10월22일 3면</ref>
         대구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ref>서광운, << 한국금융년>> (창조사, 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
  • 정혜선(배우) . . . . 8회 일치
         ||||||||||||||<#c0c000><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대상'''}}} ||
         ||<width=30%><:>―[br][* 상예술대상 TV부문은 1979년 제15회 시상식부터 수상했다.] ||<:> → ||<width=30%><#FFFFA1><:> '''정혜선'''/[[김혜자]]/[[김영옥(배우)|김영옥]][br]'''(1979)''' ||<:> → ||<width=30%><:>김민자[br](1980) ||
         ||<-5><#c0c000><table width=1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 [[조선왕조 오년]]
          * [[년의 유산]]
          * [[압구정 야]]
  • 최종원(국회의원) . . . . 8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70000B><#FFFFFF><-5><:>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상징.png|width=40]]]] {{{#70000B ''' [[대한민국|{{{#70000B ''' 대한민국 ''' }}}]] [[대한민국 국회|{{{#70000B ''' 국회'''}}}]][[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의원 ''' }}}]] ([[강원도|{{{#70000B ''' 강원도 '''}}}]] [[태시|{{{#70000B ''' 태시 ''' }}}]] {{{#70000B ''' · ''' }}} [[영월군|{{{#70000B ''' 영월군 ''' }}}]] {{{#70000B ''' · ''' }}} [[평창군|{{{#70000B ''' 평창군 ''' }}}]] {{{#70000B ''' · ''' }}} [[정선군|{{{#70000B ''' 정선군 ''' }}}]]) ''' }}} ||
         ||<#878787> '''{{{#EEE156 출생}}}''' ||<(> 1950년 1월 27일([[강원도]] [[태시]]) ||
         [[강원도]] [[태시]]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태공업고등학교 광산과를 졸업하고 함태탄광에서 탄 분석 기사로 일했다. 1974년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정영애와 결혼했다. 서울예술대학교의 전신인 드라마센터 졸업. 1986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 1998년 고려대학교 산업정책대학원 졸업. 경운대학교 학사라고도 한다. 과거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학창시절 하위권 성적이 공개되었는데 공부 안하고 놀기 좋아했던것을 인정하며 웃어 넘겼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과 가까운데 국회의원 경력도 있다. [[2010년 재보궐선거|2010년 7.28 재보궐선거]] 강원도 태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 민주당 후보로 나서 55.01%(35271표)의 득표율을 기록, 44.98%(28841표)의 한나라당 [[염동열]] 후보를 제치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2008년)|민주당]], [[민주통합당]])을 역임하였다. 이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을 맡았던 [[유인촌]]과 마찰을 빚고 대립을 세우곤 했다.[* [[애초에]] 국회 입성을 앞두고 유인촌 장관과 마주치는걸 엄청나게 별렀는데 '''"유인촌 장관은 나랑 만나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라는 막말을 남겼을 정도(...) 실제로 당선 후 두 달 남짓 지난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을 예상대로 거하게 몰아붙였다.] 다만 [[19대 총선]]엔 출마하지 않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 2010 || [[2010년 재보궐선거|상반기 재보궐선거]] (18대 국회 강원 태·영월·평창·정선) || '''[[민주당(2008년)|민주당]]''' || '''32,661 (55.3%)''' || '''당선 (1위)''' || [* 전임자 [[이광재]] 강원도지사 출마] ||
         [[분류:한국 남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50년 출생]][[분류:태시 출신 인물]]
  • 킹덤/515화 . . . . 8회 일치
          * 창평군의 물음이 있었을 무렵, 왕전은 오다를 공략한 직후 곧바로 또다른 소도시를 공략해 함락시켰다. 이번에도 모든 식량을 빼앗고 그곳 성들을 성 바깥으로 내몰았다. 왕전은 언덕 뒤에서 피난가는 성들의 행렬을 보며 뜻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 지금껏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지시만 내렸던 왕전이지만, 이번엔 그가 그리는 전략을 편린이나마 보여준다. 여전히 어떤 목적 때문에 소도시들을 공략하는지 밝히진 않았으나 [[이목(킹덤)|이목]]의 움직임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 그가 왕도권으로 돌아와 통제력을 갖추기 전까지 어떤 "준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왕전이 보기에 이목이 함단까지 돌아오는데 하루, 그가 왕도권 군단의 통제권을 인수하는데 하루, 최종적으로 준비를 마치고 업에 도착하기까지를 하루로 잡아서 총 3일의 시간이 있는 걸로 계산했다. 왕전은 이제부터 군을 셋으로 나누기로 한다. 왕전 자신의 본대와 [[환의(킹덤)|환의]]군, [[비신대]]와 [[낙화대]], [[옥봉대]]를 합친 연합군의 세 갈래로 나눠 업 주위에 남은 일곱 성을 한 꺼번에 공략한다는 것이다. 작전 내용은 같다. 점령지의 식량을 빼앗고 성들을 바깥으로 내몬다. 그들이 갈 곳은 "동쪽"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성들 또한 동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맨 처음 오다성을 떠난 성들은 적성으로 갔으나 왕전군이 거기를 공략하면서 다시 동쪽으로 출발, 다른 성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마치 군대는 양치기 개들이 양을 모는 것처럼 성들을 동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 성들은 이런 사정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개중에는 북쪽 요양 쪽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으나 그쪽에서 15만 규모의 대전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있다. 결국 그들도 진군을 피해 계속 동으로, 동으로 기약없이 가야만 한다.
          * 왕전의 지시대로 산단성까지 도착한 오천인장들. 이신은 일단 그의 지시를 따르고 있지만 아직도 분통이 터진다. 그는 성벽 위에서 떠나가는 성들을 보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대체 뭘하고 있는지 숨김없이 토로한다. 거기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것은, 장수들 모두가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외]]는 남들보다 조금 먼저, 왕전이 그린 그림을 눈치챈다.
  • 몽키 D. 루피 . . . . 7회 일치
         본인 무력부터가 루피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 거물들을, 루피 쪽에서 도와줄 때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어떠한 사건을 겪으면서 루피라는 인물 자체에게 반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징베, 이반코브, '''행콕'''등이 그러한 케이스로[* 행콕의 경우는 함깨 활동한 기간이 짧았지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을 때부터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샤본디 제도에서의 행적 자체가 행콕이 본인 트라우마를 정면에서 깨부수는 영웅담으로 들릴 만한 행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필연적이었다. ~~이후는 전부 콩깍지지만~~], 세 명 모두 2년 전 시점에서 명하게 루피를 뛰어넘는 강자들이었으며[* 이 부분은 루피가 이미 칠무해를 둘셋 꺾은 적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렸다고 동급의 강함이라 볼 수는 없다. 이반코브가 Mr.3의 보조 없이 마젤란과 정면에서 한참을 대치 후 살아돌아왔다는 점이나, 행콕이 파시피스타를 대략학살했다는 점(다만 이때 파시피스타는 행콕을 아군으로 인식하고 공격 자체를 안했다. 로봇이니 행콕이 공격을 받으면서도 반격했을리가 없고), 징베의 수중 전투력 등에서 가늠하자면 강함 자체만 두고 볼 때 당시 루피보다 명히 우위에 있다. 아니, 징베의 육상전투력만 봐고 루피보다 우위이다. 징베는 육상에서 에이스와 싸워 무승부를 이뤘으며, 이때 루피는 에이스보다 약했다. ] 루피가 그들의 은인이라 잘라 말하기도 힘들지만, 결국 전원이 반쯤 목숨을 내놓고 루피를 위해 싸운다.
         특이 케이스로, 만났을 때는 웬만한 양민들보다도 더 약해서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았지만 어느새 육식 몇 개를 익혀오더니 대령이라면서 준장님쯤 되셨나 싶은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 코비나, 명하게 적대관계이지만 내심 루피를 마음에 들어하는 스모커 등이 있다. 루피라는 인간 자체는 마음에 들어하지만 위치상 적대관계이며, 특히 스모커는, 루피가 도와주는데도 그대로 돌려주어서 은원관계를 안 남긴다. 오로지 해군으로써 쫓고 있기 떄문에 코비보다 훨씬 살벌한 관계. ~~참고로 코비는 뒤에서부터 거리를 좁혀오고 있지만 스모커는 처음엔 앞이었는데 이젠 뒤쳐지고 있다.~~
         그리고 임펠다운 탈옥에서부터 예전에 싸웠던 적들이 대거 재출연하면서 꽤 우호적인 관계로 나오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크로커다일, 버기, Mr3 등이 있다. 특이 케이스로 인성 자체가 변한 베라미, 이 경우는 루피가 베라미를 끌어들였다기 보다는 베라미가 스스로 변한 것이지만. 또 같은 초신성으로 명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인물들과도 얽혔다 하면 친분을 만들고 인맥을 쌓고 있다. 예를 들어 트라팔가 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루피를 정상결전에서 피신시키고 치료해주며 현재는 동맹[* 사실 이것도 루피를 이용해 스마일 공장을 박살낼 의도가 컸지만 아무래도 루피는 로를 동료라고 생각하는 듯 하며, 실제로 로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알게모르게 루피를 위해 움직일 때가 많다. ]을 맺은 상태이다. 물론 이들은 엄밀히 말해 징베나 행콕과 비슷할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전, 현직 칠무해이며 적이 될 사람들까지도 어느 새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루피의 [[패기(원피스)|'사람을 이끄는 자질']]을 보여주는 케이스이다.
         당연하다고 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루피는 10살이 채 되기도 전부터 산적들과 함께 산속에서 살다가 최근이 되어서야 속세로 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은둔자처럼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정상결전 종전 이후 루피의 과거회상이 좀 더 디테일하게 나오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루피가 '마을에서 자란 아이'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샹크스에게 모자를 받았을 때의 회상에서는 후샤마을 모습만 비췄고, 옷도 말쑥하게 입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실상은 숲속에서 수렵을 해서 먹고 사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데다가 키우는게 산적들이다보니 엉덩이 붙이고 교육을 받았던 적은 없을게 뻔하다.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아버지가 드래곤이다보니 거프라고 해도 애를 쉽사리 밖에 내놓고 길렀을 터가 없고, 심지어 마을을 나오고 나서는 이렇다 할만한 공기간도 없이 첫 항해에서 그대로 1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태어난 이래 문명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고 봐도 좋다. 오히려 자라온 환경을 생각해보면 '''글을 읽을 줄 안다는게 기적이다.'''(…)
          * 바토라 작 - 극장판 3기 한정. 뿔 박살내고서 고무고무 바주카로 끝.
          * [[인터넷 강의]] 사이트 [[위너스터디]]의 수학 강사 [[나티배]]도 [[원피스(만화)|원피스]] 특강을 내놓고 '''몽키 D. 티배'''란 이름으로 루피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다. --오오 인강왕 오오--, --인강인강 열매 능력자--(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 뒤 근육까지 키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 박노식(1971) . . . . 7회 일치
         1994년 사랑의 묵시록을 통해 영화에 데뷔하였으나 주로 연극판을 전전했고 진짜 영화배우로 유명해지고 소속사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용의자 광호로 출연하면서다. 감독까지 감탄한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당시 코미디언들도 수도없이 패러디[* 개그맨 [[김시덕]]이 개그콘서트 코너에서 많이 했는데, 그 코너에서 [[송강호]] 역할이었던 인물이 [[정형돈]]. --물론 정형돈은 송강호 스타일과 별로 비슷하지 않았다--]했었고 다른 연예인들도 성대모사를 하곤 했었다.
         허나 이게 독이 되어서 식당에만 가도 극중 배역인 광호도 아니고 광호가 자꾸만 찾는 "[[향숙이]]다!"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진짜 두들겨 패고 싶었다고.(...) 나중에 시트콤인 미라클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자꾸만 광호 스타일로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해서 굉장히 상심했다고 한다. 본인의 이름을 모르는 걸 떠나서, [[빵꾸똥꾸|역할명 자체가 향숙이가 아님에도 향숙이라고 불리는 것]]이 한이 된 듯.[* 심지어 박노식을 닮았다고 평가받던 당시 [[SK 와이번스]]의 야구선수 [[김연훈]] 선수(현 [[kt wiz]])의 별명도 광호가 아니라 [[향숙이]]였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야구팬들에게 향숙이라고 불린다. --솩향숙에서 콱향숙으로-- --근데 김연훈이 상당히 싫어하는 별명이다 [[안습]]--] 비슷한 시기 영화 [[시실리 2km]]에서 비슷한 느낌의 --외모로 승부하는-- 신스틸러 역할로 나왔던 [[우현(배우)|우현]]이 똑같이 주목을 받은 뒤, 오히려 계속 잘 나가게 되고 몇년 뒤에 다양한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까지 성공한 것에 비하면 아쉬운 케이스.
         || '''[[살인의 추억]]''' || '''광호''' || ||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 ||
  • 백상원 . . . . 7회 일치
         |선수명 = 상원
         '''상원'''(白相元, [[1988년]] [[1월 2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다.
         시즌 후 곧바로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여<ref>조이 뉴스 24 - 2010년 10월 26일 기사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523983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퓨처스 남부 리그 수위 타자 상원, 삼성 내야의 미래"]</ref> 복무를 마치고 [[2012년]]에 제대했다.
         [[2013년]] [[4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어 그 날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1군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해 2군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김상수 (1990년)|김상수]]의 부상으로 다시 1군에 올라와 [[2013년]] [[10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김성배 (야구 선수)|김성배]]를 상대로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올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29325 '상원을 아시나요' 삼성의 화수분 야구는 계속 된다] - OSEN</ref>
         이름에 '상'이 들어가 '상아리'라고 불린다.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수원 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블랙 클로버/107화 . . . . 7회 일치
          * 국왕은 떨어지는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 "야의 마안을 로열 나이츠로 섬멸한다"는 포퍼먼스 적인 공약을 공표한다.
          >야의 마안의 아지트를 밝혀내었다!
          바보국왕이 하는 말이지만 빅뉴스였다. 청중들이 탄성을 자아내자 국왕이 바쁘게 이어간다. 지금까지 야의 마안의 테러에 당하기만 했지만 이번엔 역공을 취할 기회라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서 마법기사단에서 엄선된 인재를 모아 "최강의 선발대"를 조직하기로 했다. 그것도 국왕 자신이 직접. 그 이름은 "로열 나이츠".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 모든 기사단 단원들을 상대로 시험을 볼 것이다. 시험을 통과하는 자만이 로열 나이츠가 된다.
          야의 마안의 꼬리를 잡았다는 선전효과에 흥밋거리까지 더해지자 민중들도 술렁거리며 기대를 모은다. 국왕이 발언을 마무리할 때 쯤엔 그가 만족할 만큼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짐의 로열 나이츠가 야의 마안을 섬멸한다!
          그는 자기가 기획한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사실 야의 마안의 아지트를 조사하고 작전을 구상한건 마법제였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부분만 홀랑 먹어치운 셈.
          * 마법제의 격려까지 받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아진 아스타. 그는 벌써부터 전부 해치워버리겠다고 방방 뛴다. 유노가 "나만 붙어도 울지마라"고 디스해도 흥분하지 않고 꼭 합격해서 야의 마안을 무찌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전에 경험했던 [[블랙 클로버/97화|그 이상한 힘]], 그것을 꼭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 슈가(방탄소년단) . . . . 7회 일치
         [[LOVE YOURSELF 承 'Her']] 컴 기념 [[엠넷]]의 특집 방송 BTS COMBACK SHOW에서 본인이 천재인 걸 인정하냐는 말에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며 부끄러워했지만, Agust D 믹스테이프로 공개된 슈가의 개인 작업실 이름은 '''Genius Lab'''으로 천재 연구소라는 뜻이다. [[https://youtu.be/7uSf-b9x7N8|4:25~ 작업실 작명 일화]] 솔직히 본인도 천재임을 아는 듯하다. --민슈가, 천재. 뭐 이 두 마디면 될 것 같아요--
         특이하게도 눈매가 세모난데 이 탓에 닮은 꼴로 뷰티 유튜버인 [[라뮤끄]]가 자주 언급된다. 닮은 꼴로 화제가 되어 피 땀 눈물 컴 당시 라뮤끄가 슈가 메이크업을 한 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cNHFQlEBU|라뮤끄의 슈가 메이크업]] 본인은 오른쪽 눈에만 아웃라인의 쌍꺼풀 선이 있어서, 주로 팬아트에서도 세모 눈에 오른쪽에만 있는 쌍꺼풀 선을 특징으로 잡아낸다. 이와 같은 세모 눈과 찹쌀떡스러운 얼굴의 묘한 조화로 생긴 별명으로는 세모라미, 심통난 찹쌀떡 등이 있다.
         해당 가사는 믹스테이프 공개 이전 [[화양연화 pt.2]]에 수록된 INTRO : Never Mind와 대비된다.[* I don’t give a shit I don’t give a fuck 하루 수 번 입버릇처럼 말했던 ‘내게서 신경 꺼’] Never Mind에서 '''I don’t give a shit I don’t give a fuck'''이란 구절은 평소 슈가의 좌우명인 동시에 '누가 뭐래든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해당 곡에서는 사실 이 모든 것은 나약한 자신을 숨기기 위함이었음을 밝혔다.
          * 2015년 기준, 밝은 머리색으로 컨셉을 잡은 것 같다. I NEED U 활동 때는 멤버들에겐 상한 딸기색이라 놀림받는 [*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나온 드립. [[https://youtu.be/PeDYlxJ11MM|링크]]] 연분홍색, 쩔어 활동 때는 금발, 그리고 [[10월 26일]] 기준으로 다시 연분홍색으로 염색했지만 일주일 만에 색이 다 빠졌다. [[화양연화 pt.2]] 컨셉 트레일러에서는 연한 연두색이 되었다. 연두색으로 머리를 하고 V앱 생방송에서 머리색도 네이버의 아들이라는 드립을 쳤다. 이렇듯 하도 탈색을 많이 한 나머지 팬들 사이에선 헤어 에센스를 선물해야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두피가 너무 아파 자신에게 탈모가 생기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한다. 2016년 4월에는 은발과 회색의 어딘가 즈음의 색깔로 컴했다. 이에 화양연화 시리즈 활동 때는 앨범색과 머리색을 [[http://mblogthumb3.phinf.naver.net/20160322_90/okku0331_1458599396122c6SsD_JPEG/Fandom_14585693641861440083797.jpg?type=w420@2x|일부러 맞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모 인터뷰 포함 각종 방송에서 슈가 본인이 직접 아니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화양연화 pt.1]] 때는 노린 게 맞다고. 그리고 8월 16일 공개된 Agust D 뮤직비디오에서는 금발이 되었다. 팬들은 환호하면서도 머리카락이 가루가 되겠다며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2016년 [[WINGS|정규 2집]] 컴 때 검은 머리로 돌아왔다.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본인도 뿌리염색을 계속 하지 않아도 된다며 만족해하는 인터뷰를 남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DDeMRWF1k|#]]
          * DNA 컴 기념 [[엠넷]]에서 진행된 컴쇼에서 Genius Lab의 내부가 공개되었다! 작업실을 가진 멤버들 중 가장 작업실이 넓고, 유일하게 이중보안이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타인이 와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아 작업실 문 밖에 초인종이 있어, 벨을 눌러야만 Genius Lab에 들어갈 수 있다.
  • 우현(배우) . . . . 7회 일치
         물론 논란이 될 사항은 아니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도 [[1987(영화)|1987]]에서 [[전두환]]의 심복이자 [[안기부]]의 수장이었던 [[장세동]] 역으로 출연했는데(...) 정작 문성근 씨는 진보 성향인데다 과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또한 '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단체|시민운동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진보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고, 현재도 [[진보]] 진영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만 영화, 드라마 등 작품에서는 반대 성향의 역할을 맡아왔다([[군부]] 정권 시절의 친 정부 성향 경찰 간부나 [[정보기관]] 수장, 부패한 정치인, 언론인 등등). 본인 스스로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에서 “그 영화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라고 밝혔다.
         2014년 3월부터 [[SBS]] [[자기야 년손님]]에 장모인 소설가 곽의진 씨와 같이 출연을 하였다. 부부 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장모인 곽의진 씨가 타계 이후 하차하게 되었다. 대신 2주간 추모 방송을 하였다.
          * [[황산벌(영화)|황산벌]](2003) - 제 임자 역
          * [[자기야 년손님]](SBS, 2014) - 고정출연. 장모인 곽의진 씨와 출연했으나 곽의진 씨의 타계 이후 하차. 그리고 2년 후에 아내 [[조련(배우)|조련]]과 함께 재출연하였다.
         아버지가 [[의사]]면서 병원 원장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자랐다고 스스로 고했다. 용돈도 현금 300만 원을 가지고 있지만 다 쓰지를 못 했다. 어릴 때부터 쭉 소고기나 장어 등 당시엔 쉽게 먹기 힘든 음식들을 자주 먹었고, 막상 감자탕이나 순대, 삼겹살 같은 음식은 대학에 들어와서 친구나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특히 삼겹살을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있다니"라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식습관 때문인지 [[편식]]이 굉장히 심하다. [[잘 먹는 소녀들]]에 의하면 [[닭발]], [[족발]], [[곱창]]을 못 먹는다고 한다. 후에 [[잘 먹겠습니다]]에서 자신이 먹지 못한 곱창 먹기를 시도하였고, 성공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편식]] 습관은 아들 준서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유자식 상팔자>에서 보면 해산물이나 가지 등을 못 먹는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 먹기는 했다.]
         장모님은 유명 소설가인 故 곽의진 씨로, 년손님에 함께 출연했다.[* 곽의진 씨는 103세의 아버지와 함께 [[인간극장]]-세월이 가면편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었다. 또한 우현 가족도 아주 잠깐 출연했었다.] 또한 장모님이 실제로 워낙 [[동안]]이고 우현이 워낙 노안인 데다가 나이차도 얼마나지 않아, 장모-사위 관계가 아닌 부부 관계로 종종 오해를 받았았었다.[* 사실 처가 자체가 동안인 인물들이 많으며, 아내와 아들도 나이에 비해 어리게 보이는 편] 실제로도 <년손님 자기야>에 출연 당시에도 오해하는 장면이 잠깐 나왔다.
  • 울진군 . . . . 7회 일치
         [[경상북도]] 북동부에 있는 [[군(행정구역)|군]]이다. 인구 5만여 명. [[대게]]와 [[온천]](암, 덕구), 불영계곡, 불영사 성류굴, [[원자력 발전소]]([[한울 원자력 발전소|한울]]) 등으로 유명하다.
         암[[온천]], 덕구[[온천]], 성류[[동굴|굴]], 불영계곡, [[불영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이 가운데 불영계곡을 지나가는 불영계곡로는 매우 구불거려 이곳을 처음 지나가는 초행자는 자칫하면 토할수도 있다.--[[흠좀무]]-- 아예 이곳을 지나가는 [[시외버스]]에는 [[M6724|비닐봉지를 달아놨을 정도다.]]그러나 반대로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계속되는 왕복2차선짜리 곡선도로을 지나가는 스릴또한 있어서 나름 [[버스 동호인]]한테 유명한 코스이며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 암온천
          온정면에 위치한 온천관광지. 온천물 온도는 53℃로 충분히 뜨겁다. 데울 필요가 없을 정도. 약알칼리성을 띄는 방사능 온천인데 방사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인지 울진군 측에서는 실리카 온천으로 홍보한다. 물론 해가 될 정도의 방사능을 함유한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말자. 일제강점기 때부터 온천관광지로 개발이 되었고, 1970년대에 현대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꽤 큰 온천관광지이다. 온천호텔도 여러 곳이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위쪽에 있는 암관광호텔이 원탕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거기서 끌어오는 곳인데, 어차피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다. 취향껏 선택하자.
         실상 잡는곳은 둘다 크게 차이가 없으나 과거 울진이 교통이 너무 안좋아서 잡은 대게들을 대부분 영덕에서 출하를 했다. 이때문에 영덕대게가 유명했으나 요즘은 교통도 괜찮아져서 울진 대게 홍보도 만만치 않게 하는중이다. [[SBS]]의 목요일 심야 예능프로인 [[자기야 - 년손님]]의 남재현과 그의 장인부부의 활약으로 울진 대게의 홍보를 제대로 해서 요즈음 들어서 [[영덕군]] 부럽지 않게 효과를 보고있다고 한다.
         경북 북부 [[동남방언]]과 [[영동 방언]]은 [[방언연속체|행정구역을 따라 칼로 무자르듯 딱 나눠지지 않으며]], 행정구역의 변화(울진의 경북 편입)에 따라, 방언의 분포가 변화하지 않았다. 영동과 경기/영서, 경상과 충청/전라 처럼 산맥을 경계로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는 방언도 있으나, 영동(+강원 남부?) 방언과 [[동남 방언]]은 그렇지 않다. 울진과 영동 지방 사이에는 뚜렷한 산맥이 없기는 하지만, 경북 내륙과 강원 남부는 두대간으로 나뉘는데도 그러하다.
          * ~~[[자기야 - 년손님#s3.1.1|이춘자 여사]]와 [[후타삼]]~~[* 간혹 [[남재현]]이 울진 후포리 출신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후포리는 남재현의 처가일 뿐 남재현은 서울 출신이다.]
  • 이석훈 . . . . 7회 일치
          * 2011년 KBS 《스쿨 버라이어티 점만점》 출연
         || [[2011년]] [[7월 23일]] || 남자 보컬리스트 특집 || 봄날은 간다 (원곡자: 설희) || 1번 || 1승 ||
         || [[2011년]] [[12월 3일]] || 최호 편 || 낭만에 대하여 (원곡자: 최호) || 5번 || 0승 ||
         || [[2011년]] [[12월 31일]] || 슈퍼빅매치 || 봄날은 간다 (원곡자: 설희) || 1라운드 5번 || 0승 ||
         남자 보컬리스트 특집에 2번 참여했으며, 1승 했다. 이 때 타 남자가수들 평이 '첫 무대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거임?' 이후 2011년 11월 말부터 불후의 명곡 2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최호]] 편에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는데...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적이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을 때와 편곡의 방향이 아주 묘하게 비슷하다. 착각이거나 혹은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의 차이 때문일 수도...][* 참고로 이 「낭만에 대하여」 무대는 이석훈 불후의 명곡 무대 탑 중 하나다.] 여러 번 참여했으나 번번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의 특징상 풍부한 중저음보단 높고, 개성있고, 자극적인 무대를 선호하기 때문인듯 하다.
         ~~긴 공기도 신기하지만 장수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신기하다~~
  • 이승엽 . . . . 7회 일치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1995년]]에 2할대 타율, 13홈런, 73타점을 기록해 장거리 타자로서 자질을 보였고, 이후 당시 감독이었던 [[인천]]에게‘인천 부두 타법’을 전수받은 뒤 본격적인 홈런 타자로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ref name="sword">스포츠 춘추 - 2010년 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65 "외다리 타법의 창시자, ‘야구는 도(道)이고, 타격은 검(劍)’"]</ref>
         * [[2002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벌여 47개를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LG 트윈스|LG]] 투수 [[이상훈 (1971년생 좌완 투수)|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쳐 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곧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이어져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게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안겼다.
         방출 후 [[2010년]] [[12월 2일]] 1년간 1억 5,000만엔에 옵션이 포함된 연봉을 계약했다. 이 때 투수 [[박찬호]]와 같은 팀이 됐다. 이로써 [[200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퍼시픽 리그]]로 돌아와 등번호도 3번으로 정해졌다. 그는 연봉을 대폭 낮추는 등의 의종군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로 교체해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을 받아 2할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팀의 꼴찌가 확정된 후반기 들어 맹활약하며 시즌 총 15홈런을 쳐 퍼시픽 리그 홈런 순위 8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모습도 보여줬으나 타율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규정 타석 미달로 인해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 제37회 상체육대상 (2000년)
  • 이애란(가수) . . . . 7회 일치
         그 이후로도 굴곡이 심했다. 특히 '[[못 간다고 전해라]]'로 유명해진 <[[세인생]]>은 원래 1995년 경주 엑스포에서 부른 곡으로, 원래의 이름은 <저 세상이 부르면 이렇게 말하리>이다. 그러나 그 후로 10년간 제대로 된 가수 활동을 못 하였고, 2006년에야 가수로서 첫 음반인 <천년의 사랑>--[[박완규|이 분이랑 상관없다.]]--을 취입하였으나 실패를 맛보았다.[[http://news.joins.com/article/19122364|#]] 트로트계에서 쌓은 인맥덕에 시장 등 불러주는 곳에서 노래하며 버텼다고 한다.
         2013년, 김종완 작곡가가 <저 세상이~>를 새롭게 편곡하여 <세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이 곡은 2년 후인 2015년 뒤늦게 인기를 끌었고, 가사는 인터넷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이 곡은 작곡가 김종완[* [[NELL]]의 멤버 [[김종완]]과는 동명이인. 이 분도 "인생아"라는 노래를 발표한 후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이 1995년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동료의 아버지를 보고 고민을 한 것에서 출발하여 만든 곡이라고 한다.[[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1305566|#]]
         북한이 벌인 [[4차 핵실험]]에 대한 보복으로 재개한 [[대북방송]]에 [[세인생]]이 포함되었다. 노래와 함께 남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북한보다 약 10~15년 정도 길다는 내용의 해설을 담는다(...)
         [[2016년]] [[2월 5일]] [[뮤직뱅크]]에 출연했다. 이날 세인생은 15위였다.
          * 세인생 (2015)
          * '''[[세인생]]'''
          * [[YTN]] 뉴스N이슈[* 출현해서 라이브로 세인생을 불렀는데 YTN 개국 후 최초로 라이브로 대중가요를 부른 가수가 되었다.]
  • 이영 (1494년) . . . . 7회 일치
         '''이영'''(李英, [[1494년]] ~ [[1563년]] [[2월 22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 군인이다. 자는 현보(顯父), 호는 괘편, 본관은 영천이다. 청렴결하였으며, 수령 재직시는 선정을 베풀었으며 무관으로 [[청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무신으로 드물게 청렴하고 근실했다는 평을 들엇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
         [[조선 중종|중종]] 때인 1514년(중종 9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으며, 절도사, 참판 등을 역임했다. 벼슬에 있으면서 염근(廉謹)하기가 무반(武班)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자라는 평을 들었다. 1545년 [[조선 명종|명종]]이 즉위하자 단천 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정평 부사에 부임하여 굶주린 성을 구제하여 명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평부사 재직시 사적으로도 성을 범하지 않아 감사가 포장(褒奬)하고 통정대부로 가자(加資)되었다. 1552년 회령부사로 있으면서 훌륭한 정치를 베풀고 청리에 뽑혔다. 또한 야인을 회유하여 변방을 안정시켰다. 이듬해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군비 확충과 군사훈련에 공을 세워 동지중추 부사가 되었다. 1556년 평안도 절도사가 되었다. 그 후 병조참판과 제주 목사·경상우도 병마절도사·부호군·호군 등을 지냈다.
         * {{글로벌세계대과사전}}
         {{청리}}
  • 정인숙 (1945년) . . . . 7회 일치
         {{인용문2|청와대 모임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2여명의 아가씨들이 차출됐는데, 그 중에서 성적순으로 50명을 뽑고, 다시 신원 조회를 통해 25명을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모 순으로 다섯 명을 뽑았습니다. 5명 중 정인숙이 1등으로 뽑혔지요.<ref name="ilsa01"/>}}
         조윤형 의원은 또 이 사건에 청부살인의 혐의가 없는가, 검찰이 [[3월 22일]] 밤까지 철야 신문하면서 복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변호사]]를 접근조차 못하게 해서 정씨를 범인으로 자케 한 것은 아닌가, 정종욱이 병원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 없고 모 인사를 불러달라고 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ref name="kim101">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1페이지</ref><ref>여영무, <추척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동아일보사, 1983) 171</ref> [[조윤형]] 의원에 이어 [[신민당]]의 [[김상현]]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과 정인숙이 관계했을지도 모른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ref name="kim101"/>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은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하고 난 뒤 "동생과 관계했던 고위층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는 아버지(정도환)의 회유로 거짓 자을 했을 뿐, 집앞에 있던 괴한들이 동생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숱한 의문점 때문에 정인숙 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이라는 수사기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권력기관에 의한 살인’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다.<ref name="jon01"/> [[2010년]] 2월 [[중앙일보]] 측에서 어렵게 만난 오빠 정종욱은 "억울해서가 아니라면 수감생활까지 다 마치고 나와 '내가 쏘지 않았다'고 얘기하겠냐"며 그의 결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장했다. 7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마지막으로 재심청구를 통해서라도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ref name="jon01"/>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선우련]]도 정성일이 정일권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일권씨가 [[1971년]] 봄, 형님인 [[선우휘]] 씨를 찾아와 '이동원 외무장관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정 여인을 알게 되었으며, 내 아들을 낳았으나 공개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ref name="sung71">"정성일이는 내 아들, 정일권씨 71년 고", 경향신문 1993년 2월 20일자, 23면</ref>"고 말했다.<ref name="kum109"/> 그러나 [[선우휘]]가 정일권을 만난 [[1971년]]과 같은 해에 정일권을 만난 재미언론인 문명자는 정일권에게 "문 기자, 나는 정인숙과 딱 한번 같이 잤는데, 그 아이가 내 아들일 니가 없소. 나는 이미 불임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몸이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ref name="kum110">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10페이지</ref>
         {{인용문|그렇다면 초점은 그 아이가 정일권의 아들 정성일이냐, 아니면 박정희의 아들 박성일이냐로 좁아진다. ...(이하 중략)... 자, 문제의 아이 성일군이 정일권의 아들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아이의 정체를 알 수도 있었을 [[최대현]], [[노진환]], [[문학림]]이 정일권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박정희가 상당한 의혹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침묵을 지켰을 것인가? 당시 정일권은 과연 그만한 일을 강행할 만큼의 국정에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가? 그 후 정일권은 국회의원 자격도 없는 노진환을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밀어<ref name="kum108"/> 넣고 일등 공신 최대현을 청와대 사정 보좌관실에서 박정희의 비서로 일하게 할 만큼 정치적으로 강력했던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ref name="kum109">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9페이지</ref> 따라서 이 의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였다. 이렇게 보자면 성일군의 아버지는 누구였는지가 스스로 명해진다. 또 하나 명한 것은 성일군의 아버지가 성일군의 어머니인 정인숙 여인을 살해한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이걸 성일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골육상쟁극이었다.<ref name="kum109"/>}}
  • 정호용 . . . . 7회 일치
         |전임 = [[이기 (1931년)|이기]]
         |후임4 = [[승홍]]
         1996년 [[대한민국 제15대 총선|제15대 총선]]에서 옥중에서 대구 서갑에 출마하였으나 2위로 [[승홍]]에게 석패하였다.
         |전임자 = [[이기 (1931년)|이기]]
         |후임자 = (서구 갑)[[승홍]]<br/>(서구 을)[[강재섭]]
  • 창원시 . . . . 7회 일치
         [[마산]] 및 [[진해]]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 마산은 무학산을 등에 지고 마산만을 맞대고 있으며, 진해는 장복산을 등에 지고 진해만을 맞댄 형태. 특히 마산같은 경우 좀 평평하다 싶은 지역은 죄다 시가지 확장 과정에서 생긴 매립지들.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일제강점기]]부터 실시되고 있으며 '''[[2013년]]''' 현재도 해양신도시 사업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지형 때문에 [[2003년]]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을 때 남마산 일대가 모조리 물바다가 되어버린 적도 있다. ~~혹자는 지하 5층의 대우화점이 없었다면 물탱크 역할을 할 구심점이 없어져 피해가 더 커졌을 거라고 한다.~~
          * 각종 해산물 : 250년간 이어져 온 거대한 어시장이 있기 때문에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의 질이 웬만한 고급 화점 뺨친다. ~~진정한 산지직송~~ ~~그런데 요즘은 베트남산 조기가 더 많이 보이던데~~
         창원향토문화과에 따르면 이외에도 국화, 수박(대산면), 고구마(평촌), 멜론이 있다고 한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마산합포구의 진동면의 진동 [[미더덕]]이 등록되어 있다.
         이 항목들은 무려 [[http://changwon.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angwon&dataType=01&contents_id=GC02201229|'''창원시 향토과 홈페이지''']]에 떡하니 기재되어 있다.(....) 기계공업이 흥한 창원의 특성 때문인 듯.
         1980년대 창원에 공단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시작될 무렵 이 지역의 중심 상업지역은 마산 창동과 오동동 일대였다. 당시 창원의 개발로 인구는 급증한데 비해 문화시설은 확충이 되지 않아서 창원 노동자들이 낮에는 창원공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마산으로 넘어와서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마산아재]]가 탄생했다~~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그런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던지, 창원시 차원에서 이 지역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그렇다고 장사가 잘 되고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지역에서 장사가 그나마 되는 곳은 어시장과 롯데화점 마산점(구 대우화점) 뿐으로, 구 원마산지역의 전통 상권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수준. 30년 전만 해도 추석 전날 부림시장 인파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 못지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없다.
         대형마트의 경우 [[롯데마트]]가 6개, [[이마트]] 2개, [[홈플러스]] 3개. 심지어 창원시청 앞에는 영플라자. 롯데화점, 롯데마트, 이마트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진풍경을 볼수있다. 롯데 영플라자의 개점으로 창원광장에 이어진 대형 상업건물만 4개다. 정작 주민들은 이마트를 더 익숙하게 느끼는데 아마도 서민층이 자주가는 마트라는 특성과 함께 롯데마트, 영플라자는 2010년대 지어서 그런듯.
  • 채형석 . . . . 7회 일치
         |학력 =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학사<br />[[보스턴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보스턴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1985년 애경산업 감사로 애경그룹에 입사한 후 애경유지공업 대표이사, 애경화점 수원점 대표이사, 에이알디홀딩스 대표이사, 애경화점 평택점 대표이사, AK면세점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2002년]] 1월부터 [[애경그룹]] 부회장이 되었고, 2006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다.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의 구조개편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애경화점]]을 세워 유통업에 진출했고, [[애경개발]]을 세워 레저와 부동산개발업을 시작했다.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 파트너 자격을 따내며 [[제주항공]]으로 항공사업을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71|날짜=2016-01-12|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1985년 [[보스턴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평강 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보스턴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킹덤/526화 . . . . 7회 일치
          * [[왕분]]은 [[마남자]]를 상대로도 놀라운 기량을 펼치며 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그의 창술은 이미 위화룡 [[자(킹덤)|자]]에 필적, 그 이상의 경지.
          * 옥봉대의 장교들은 눈 앞의 적도 잊어버리고 왕분의 눈부신 기량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에 한 번 왕분을 사경으로 몰고갔던 위화룡 [[자(킹덤)|자]]. 왕분은 본래 자신의 기교와 속도에 더해 이제 파괴력은 그 자을 연상시키게 했다. 그런 파괴력까지 습득한 지금의 왕분은 분명 자 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장교들이 입을 모은다. 함께 있던 왕분의 부장 [[반양]] 또한 의견을 같이 했다. 자을 꺾고 더욱 성장한 왕분의 창술은 분명 중화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경지다.
  • 토리코/379화 . . . . 7회 일치
          * 아카시아는 채널의 힘을 역이용해서 네오를 극적으로 진화시킨다.
          * 그는 채널을 겹겹히 쌓고 왜곡해서 죠아와 자신 간에 약간의 시간 격차를 만들어 그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 스카이디어의 채널에서 네오는 삐쩍 말라붙는다.
          * 네오는 훨씬 강한 모습으로 되살아나 맹수들을 일소하고 스카이디어의 채널까지 벗어난다.
          * 스카이디어는 그가 채널에 적응해 진화를 했다고 판단한다.
          * 그 말대로 아카시아는 네오의 압도적인 적응력과 끝없는 진화를 설명하며 "수천, 수만년이 걸릴 진화를 시간을 가속하는 채널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 즉 스카이디어의 채널을 역이용해 진화를 촉진한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7회 일치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서양인들을 환대했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무역 관계는 수립되었지만, 화친조약은 서구열강들에게 유리한 협정이었습니다. 경제는 흔들거렸고, 성들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1863년, 덴노는 쇼군의 결정을 뒤엎었습니다. 모든 서구 세력을 축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10년간의 굴욕적인 외교, 그들은 이것을 바다로 내던졌습니다. 서구 세력들은 이러한 행태에 대한 답을 주었습니다. 덴노는 성에게 죽음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성들을 저버리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무역 관계는 수립되었지만, 화친조약은 서구열강들에게 유리한 협정이었습니다. 경제는 흔들거렸고, 성들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1863년, 덴노는 쇼군의 결정을 뒤엎었습니다. 모든 서구 세력을 축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일본은 더이상 서구화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반격할 때가 왔습니다. 서구 세력들은 이러한 반격에 대해 보복을 감행했습니다. 기만적인 서양인은 우리 성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 한지우(배우) . . . . 7회 일치
         통칭 '''리틀 [[송혜교]]'''. 송혜교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외모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중국에서 상당한 인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뜨거운 형제들]] 출연을 통해 유명해졌다. KBS 8부작 청춘드라마 '[[정글피쉬 2]]'의 주연으로 발탁돼 [[엄친딸]] '효안' 역을 연기했다. [[무한걸스]] 시즌 3에 참여하였다.
         2011년, MBC 월화극 '[[계(드라마)|계]]'에서 의자왕의 정비인 제 황후 연태연 역을 맡았으나 [[국어책 읽기|국어책을 읽는 것만 같은]] [[발연기]]로 폭풍처럼 까였다.
         || 2010년 || KBS2 || [[정글피쉬 2]] || 효안 || 주연 ||
         || [[계(드라마)|계]] || 연태연 || 조연 ||
  • 허범욱 . . . . 7회 일치
         2009년 첫 단편 애니메이션 《평범한 식사》를 자력으로 제작하였다. 2010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교육과정에 애니메이션연출 전공으로 입학하였으며 2011년 12월부터 교내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연구과정을 시작하였다. 2015년 《창한 얼굴들》로 제18회 홀랜드 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김민섭 (1983년)|김민섭]]과 유년시절 친구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삽화를 그려주었다.<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필모그래피|url=http://movie.naver.com/movie/bi/pi/filmo.nhn?code=241358&v=i|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7%88%EB%B2%94%EC%9A%B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94376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140&aid=0000028389|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창한 얼굴들’, ‘사이비’ 이어 세계 4대 애니 영화제 대상 쾌거|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130704|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한 얼굴들', HAFF 그랑프리 수상|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46193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창한 얼굴들', 홀랜드애니페스티벌 장편 대상|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482651|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
         *2014년 : 《창한 얼굴들》 - 각본/감독
         *2014년 : 《창한 얼굴들》<ref>부제 : 나는 왜 이 땅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가?</ref><ref>{{뉴스 인용|제목=《창한 얼굴들》 소개|url=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405904|출판사=네이버 책|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
  • 홍순언 (1530년) . . . . 7회 일치
         석성은 [[예부]][[시랑]]으로 있다가 뒤에 [[병부]][[시랑]]을 거쳐 [[예부]][[상서]]로 승진했다. 류씨 소녀는 하루하루 황금 비단을 손수 짰는데, 병부시랑 석성의 후처가 된 뒤에도 류씨부인은 밤마다 직접 비단을 계속해서 짰다. 비단에는 보(報)와 은(恩)이 쓰여 있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석성]]이 류씨 부인에게 사연을 묻자 류씨부인은 아버지 류모의 빚과 장례비 마련이 어려워 기방에 갔던 일과 홍순언을 만난 일을 고하였다. 석성은 동이족 중에도 의인이 있다며 그 기상을 칭찬하였다.
         [[종계변무]]란 조선 건국 때부터 선조 때까지 2여 년간 명(明)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잘못 기록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하였던 사건이다. 태조때부터 시정을 위해 사신을 15회나 파견하였지만 전부 거절당하였다. 지속적으로 거부당하자 조선 14대임금인 선조는 “종계변무를 이번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목을 쳐버릴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역관들은 겁에 질려 선뜻 나서지 못했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대와 같은 의인이 있었다며 후히 대접하였고, 황정욱과 그가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기록된 내용이 잘못이고,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임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대소관리들은 당대에 수정하지 않고 이제 와서 계속 번거롭게 구느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당시 예부상서였던 석성의 적극 건의로 개정되었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사절단은 귀국하였는데, 류씨 부인은 손수 짠, 보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비단 1 필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일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라며 비단을 거절하고 귀국했다.
         홍순언의 일화는 [[조선]] 후기의 소설 《[[이장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그의 행적은 [[정재숭]]과 [[박지원]], [[이익]]의 저서를 통해 일부 알려졌으나,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일화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20년]]대였다.
         ** 부 : 홍신(洪愼)
         그가 [[1588년]] 류씨부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1 필의 비단에서 그가 살던 동리를 고운담동, 미동(美洞), 미장동(美墻洞), 미담동, 미단동 등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의 집 담벼락에는 효,제,충,신이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후일 [[서울특별시]] 청담동의 지명 유래가 되었다.
         * 이용선, 《청리 열전》 (매일경제신문사, 1993) pp226~238
  • 김윤아(1974) . . . . 6회 일치
         2005년 [[10.26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심수봉]]을 모티브로 한 초대 가수 역을 연기했으며 여기서 [[엔카]]인 [[기타노 야도카라]]를 하도 맛깔나게 불러서 역시 김윤아라는 찬사를 받았다.[[https://www.youtube.com/watch?v=GTHtKv4KgF8|극중 즉석에서 부른 기타노 야도카라]] 더 무서운 점은 김윤아는 따로 녹음을 하지 않고 '''촬영 현장에서 그냥 즉석에서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기타노 야도카라를 불렀다는 것은 영화의 창작. 심수봉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엔카인 [[가나시이 사케]](가수 [[미소라 히바리]])를 불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를 듣고 "어디서 일본 애를 데려왔냐"며 크게 화를 냈다고.] 덕분에 영화 OST에선 수록되지 못했다(...). 5집을 발표하던 시기와 맞물려 후속곡 'Truth'의 뮤직 비디오가 [[그때 그 사람들]] 세트에서 진행되었다. 영화 화면을 편집한 것은 아니고 같은 세트에서 따로 촬영했고 [[윤식]]이 출연해주었다.
         곡 제공과 더불어 피처링 역시 정말 드문데, [[김수철(가수)|김수철]], [[이적(가수)|이적]], 현진, 킹조의 앨범에 각각 한 곡씩 피처링을 한 적이 있다. 김수철과 이적이야 말할 것도 없는 대가들인데 킹조는 누군가 하면 김윤아의 남편인 김형규가 결성했던 힙합 그룹이다(…). --[[한조(오버워치)|THE KING☆HANZO]]가 아니다-- 나가수에서 '사랑 밖엔 난 몰라'의 듀엣무대를 함께 한 현진의 '반성의 시간' 앨범의 '어른용 사탕'이라는 곡에서도 피처링을 했다. 그런데 2012년, '''굉장히 놀랍게도''' [[G.DRAGON]]의 2번째 솔로 앨범에서 'Missing You' 라는 곡에 피처링을 했다. 그리고 'Missing You' 는 타이틀곡인 'Crayon' 을 팀킬해버렸다. 9월 4째주 [[뮤직뱅크]] [[케이 차트]]에서 Crayon은 9위에 Missing You는 2위에 랭크된다. 참고로 1위는 [[싸이|월드 스타]]의 [[강남스타일]].
         2008년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KMF]]에서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쥬얼리]]와 합동 공연을 했다. 두 팀의 공연 이후 마무리로 등장, 여왕님 버전으로 '매직 카펫 라이드' 를 불러 무대를 먹어치웠다.[[http://www.youtube.com/watch?v=zBiTAub4K3c|MKMF 브아걸, 쥬얼리, 자우림 합동 공연]] [[브라운 아이드 걸스|브아걸]], [[쥬얼리]] 등 단독으로 놓아도 뛰어난 팀들이 순식간에 들러리로 전락하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연출했다. 사실 브아걸이나 쥬얼리는 연습 시간이 짧았던지 가사를 계속 틀리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리고 사실 브아걸과 쥬얼리의 공연은 립싱크였고. ~~립싱크인데 가사를 틀릴 수 있나?~~ 하지만 이 공연에는 문제가 있었으니... 쓸데없이 많은 댄서들과 김윤아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 3명이 묻히는 등 여러 문제가 많았다.
         자우림이 데뷔하던 9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화장법은 소위 '마녀 화장'으로, 전체적으로 얼굴에 입체감 없이 창하게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을 둥글고 짙게 그린 뒤 색조있는 셰이딩을 넣고, 갈색이나 보라색 계열 립스틱을 바르는 것이었다. (때로는 입술선을 그리기도 한다) 2집 '미안해 널 미워해'의 뮤직비디오에 이 '마녀 화장'을 제대로 한 김윤아가 보인다. 알 수 있겠지만 2010년대 유행하는 것처럼 화장을 안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피부, 부드러운 일자눈썹, 핑크색 립스틱은 [[가을동화]](2000년)의 [[송혜교]] 이후에야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rowbgcolor=white> 반성의 시간[br](Time Of Reflection) || 어른용 사탕 || 현진 || 2008.04.22 || 11 ||
  • 김정혁 . . . . 6회 일치
         손목 부상이 재발해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또 8월 중순에서 9월 하순까지 장기간 결장하면서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못 했다. 김정혁이 장기간 결장한 덕분에, 업으로 시즌을 시작했던 [[정병곤]]과 [[성의준]]이 주전으로 기회를 받을 수 있었고 둘은 1군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6월 19일 1군에 올라왔다. [[박석민]]이 허벅지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대신 3루수로 선발 출장한 [[상원]]이 6월 18일 두산전에서 3타수 무안타 1볼넷 1삼진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못 보여준데다 6월 19일 SK전 선발이 [[김광현]]이었기 때문이었는데, 7번 3루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박석민의 복귀를 앞둔 6월 29일에 [[조현근]]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군 전지훈련에 참가했는데, 시범경기 도중 1군에 합류해 수비가 떨어지는 [[나성용]]을 대신해 업 1루수를 맡았다.
         그러나 조동찬이 ~~유리몸답게~~ 2일 만에 부상으로 빠지며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롬 발디리스]]와 [[구자욱]]이 차례대로 복귀하면서 업으로 밀려났다. 7월 22일 선발로 내정된 [[아놀드 레온]]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9일 전날 얼굴에 공을 맞아 시즌 아웃된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이성규]]가 등록됐다. 10월 3일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2군에 간 [[다린 러프]]를 대신해 1루수로 나와, 4월 27일 KIA전에서 5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으로 팀은 패배했지만 입단 후 처음으로 1경기 4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28일 SK전에서는 안타 없이 삼진만 2개를 당했고, 이후 [[조동찬]]이 1루수로 나오면서 업으로 밀려났다. [[다린 러프]]의 복귀를 앞두고 5월 1일 [[박근홍(야구선수)|박근홍]]과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3주 가량 결장했다가 6월 4일 복귀했다.
          * [[오승환]]의 <순간을 지배하라>에 보면 유독 오승환에게는 강하다고. 청전에서 붙었다가 오승환을 맞춘 일화도 있다.
  • 김지석(배우) . . . . 6회 일치
         ||<#595959><:> {{{#FFFFFF '''출생'''}}} ||<(> [[1981년]] [[4월 21일]] ([age(1981-04-21)]세), [[경상북도]] [[김천시]] 옥동 (영남대로) ||
         KBS 일일극 [[미우나 고우나]]의 남자 주인공 강호 역과 [[추노(드라마)|추노]]의 [[왕손이]]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2010년~2012년 사이에 군복무를 마쳤다.
         || KBS1 || '''[[미우나 고우나]]''' || '''강호''' || [* 남자 주인공 역할이었다. 드라마 시간대가 그렇듯 중장년층에게 많이 어필했을듯.] ||
         ||<|4> 2017년 || MBC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연산군]]'''[* 많은 호평을 받았다.] || ||
         || 제10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남자 최우수상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 [[MBC 연기대상]] || 월화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20세기 소년 소녀 ||
  • 마기/307화 . . . . 6회 일치
          * 연룡은 귀왜국왕 야마토 타케루히코와 특훈에 매진하고 있다.
          * 나나우미는 연영(아르바)에게 알라딘의 신변이 노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려한다.
          * 쥬다르가 지금 어디서 뭘하는지는 연룡도 아는 바가 없다.
          * 룡은 "쥬다르는 전송마법진은 순식간에 됐다"고 말하는데 알라딘이 울컥한다.
          * 신드바드는 이끌어주고 존경을 받는 임금이지만, 알리바바는 정반대로 함께 나아가고 성을 존경하는 임금.
          * 알라딘의 최종 파티는 알라딘, 모르지아나, 연룡, 타케루, 나나우미.
  • 마기/315화 . . . . 6회 일치
          * 연룡은 쥬다르를 찾기 위해 홍옥에게 소식을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출발한다.
          * 사실 룡이 퇴위를 전후로 부자연스러운 사건이 많았는데 너무 정확하게 같은 시기에 반란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 그래서 당시 알라딘과 룡이 신드바드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 알리바바는 그 말을 믿지 못하지만 룡은 황제로 등극할 당시 신드바드에게 "언젠간 모든 국가를 없앨 테니 그때까지 황제국을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다.
          * 룡의 퇴위하면서 이상의 이야기와 알라딘과 신드바드 사이의 대립, 알라딘의 힘이 악용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홍옥에게 전했다.
          * 명히 거절당하자,뻘줌해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하는 알라딘.
  • 마기/332화 . . . . 6회 일치
          * 세계에 작별을 고하는 두 사람 앞에 [[쥬다르]]와 [[연룡]]이 등장.
          * 연룡과 쥬다르가 알라딘 일행에 합류한다.
          >몇 , 몇 천, 몇 억년 후의 세상이 행복한게 신드바드씨의 꿈이라면
          * 그때 하늘에서 "누구 허락받고 풀이 죽었냐"는 말이 들려온다. 하늘에서 전송마법진이 열리더니 [[연룡]]과 [[쥬다르]]가 뛰쳐나온다.
          이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는 두 사람. 하지만 연룡과 쥬다르는 신드바드의 루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룡은 자신들은 완전히 타전한 존재라 루프의 흐름에서 벗어났기에, 신드바드의 루프 조작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쥬다르는 역시 타전하길 잘하지 않았냐고 실없는 소릴 해댄다.
  • 마기/337화 . . . . 6회 일치
          *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 [[연룡]]은 [[쥬다르]]에게 1던전을 맡긴 채 다음 던전으로 향한다.
          * 쥬다르는 고민하는 건 룡이 할 일이고 굴복 어쩌고는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할 일이라고 대꾸하고 신드바드를 쓰러뜨린다.
          *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 [[연룡]]은 제 1던전을 떠나 [[아르바(마기)|아르바]]를 따라 2던전으로 향한다. 알라딘은 [[쥬다르]]혼자 남겨두는걸 마음에 걸려하지만 룡은 오히려 그런걸 기분 나빠할 거라며 쥬다르에게 맡기자고 한다.
          쥬다르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옥염을 짓밟고 다가오자 이제는 신드바드가 당황한다. 전의도 잊고 쥬다르를 진정시키며 "좀 더 신을 설득할 법한 숭고한 답은 없냐"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건 쥬다르 답지 않은 일이다. 쥬다르는 "고민하는건 룡, 굴복 뭐시기는 알라딘이나 알리바바가 할 일"이라고 명쾌하게 일축해 버린다. 신드바드는 이게 아니라는 듯이 어어 하고 당황할 뿐이다.
          >룡이랑 날뛰면서 꽤 즐거웠어.
  • 문근영 . . . . 6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SBS 연기대상]]에서 [[신윤복]] 역으로 정향 역을 맡았던 [[문채원]]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고, 연기대상까지 수상했다. 통상 연기대상은 관례상 시청률이 높은 자사 드라마의 주연 내지는 자사 드라마에 출연해 주길 바라는 거물급 배우에게 수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수상이었다. [[박신양]]의 [[김홍도]]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드라마를 혼자 이끈 문근영의 공을 감안해도 10%대의 드라마 주연에게 연기 대상을 수여하는 일은 파격적이었다. 이로써 문근영은 만 21세에 연기대상을 수상, 방송 3사 통틀어 2번째로 어린 나이에 연기대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역대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는 1998년 [[미스터Q(드라마)|미스터Q]]의 [[김희선]](당시 만 21세). SBS 연기대상은 그 해 12월 31일에 진행되고, 생일이 12월과 가까울수록 어린 나이가 되므로, 만 21세 때 대상을 수상한 두 사람 중 생일이 6월인 김희선이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이날 대상을 수상한 문근영은 수상소감 내내 몸을 바들바들 떨정도로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며 대상 수상을 버거워하기도 했다. 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부문 여자 최우수상(방송)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로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했다. 또 [[남장여자]] 역이라 [[바람의 화원]]을 다시 보는걸로 착각할 정도. 그래도 남장은 초반에 잠깐(...) 나오고 다시 여자로 돌아간다. 본인이 후에 인터뷰에서 "남장여자 씬은 순전히 드라마 재미를 위해 추가로 들어간 씬이고, 원래는 계획에 없던 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얼굴은 다시 갸름해졌다~~ ~~초반에 갸름했다가 뒤로 갈수록 체력이 딸리고 부상을 입어 제대로 부었다(...)~~ [[청담동 앨리스]] 때도 그랬지만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면서 작품 때문에 제대로 까였다. 팬사이트에서도 옹호해주는 팬이 없을 정도... 전작 [[무사 동수]]를 은하계 너머로 보내버린 전적이 있는 작가가 화근이었다. 거의 만화 영화 대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치하고 간단한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했다. 그나마 [[전광렬]]의 연기가 혹평을 피하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줬으나 다른 누구도 작가의 발대본 앞에 살아남지 못했다(...)
         ||<|2> 2009년 || 제45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2> 바람의 화원 ||
         || 제47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인기상 || 신데렐라 언니 ||
  • 문희옥 . . . . 6회 일치
         ||출생지||現 [[강원도]] [[태시]]||
         1969년 7월 27일, [[강원도]] [[태시]]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학업을 위해 상경하였고, [[강원도]] [[태시]]에서 위치한 [[태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인 1986년 당시 학교 장기자랑에서 가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의 반응이 좋자 문희옥은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게 된 이후 둘째 언니의 주선으로 작곡가 안치행 씨를 만나게 된다.[* 안치행 씨는 [[최헌]]의 <오동잎>,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다.] 그 뒤 안 씨의 소속사 안타 프로덕션에서 1년 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87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사투리를 소재로 창작곡을 모은 <8도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메들리 음반은 발표되자 마자 360만 장이 팔리게 된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주최로 학교 강당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것 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하이틴 스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좀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문제는 당시 시대상으로 사투리는 공중파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1987년 그 해에 <빈손>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빈 손 가사도 왠지 그 노래를 부른 10대 여학생과는 맞지 않았다~~ 1988년 문희옥은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였고, 꾸준히 더 많이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슬로우 템포의 <가는 님 가는 정>을 발표하고 1989년 원래 가수 정재은이 1984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를 2집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가수로서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교민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1990년 <강남 멋쟁이>가 히트하여 문희옥이 최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 현철과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잘했군 잘했어는 아는 사람은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하춘화 - 고봉산의 노래다. 그리고 여러 메들리를 발표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문희옥]]의 정통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1995년 회사원 김홍선 씨와 결혼하게 되면서 약 3년 간 공기를 가지게 되었다. 1998년 <정 때문에>를 발표하며 다시 가요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이전까지 고수하던 정통 트로트에서 벗어나 세미 트로트를 시도하였고, 그 후 여러 곡을 발표할 때마다 다양한 장르와 정통 트로트를 융합시키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다. 2011년 [[tvN]] 오락프로그램 <오페라스타>에 출연하여 직접 오페라를 부르며 실력파 가수로 다시 한 번 인정받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분류:한국 여가수]][[분류:1969년 출생]][[분류:1987년 데뷔]][[분류:태시 출신 인물]]
  • 박경림(MC) . . . . 6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코미디연기상'''}}} ||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반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인 남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절, 순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2002년에는 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활동했다. 다만 진지하게 한다기보단 예능 프로그램에서 프로젝트성으로 '''"박남매(박경림, [[박수홍]])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박고테'''로 앨범 발매. 요즘 [[무한도전]]에서 하는 각종 앨범 제작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기예능에서 노래와 앨범 만드는 전과정을 노출시켜줬기 때문에, 꽤 큰 인기를 얻었으며 MBC 음악캠프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랐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공주병 컨셉으로 해서 만들어진 "착각의 늪"이라는 곡이 타이틀곡으로 특유의 안무와 박수홍의 손발이 오그라지는 랩(...)이 특히 유명했다. 당시에는 싱글의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11곡으로 풀앨범을 제작했다. 당시 박경림의 장점인 인맥이 도움이 되어 타이틀곡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주영훈]]이 만들었고 [[김장훈]], [[윤종신]], [[이수영(가수)|이수영]], [[이기찬]], [[유리상자]], [[유희열]], [[김동규#s-1]] 등이 참여했다. ~~라인업 ㅎㄷㄷ~~ 박남매의 '''고속도로 테이프''' 프로젝트지만 인기가 생각보다 많아 CD로도 발매되었다.[* 앨범은 20만장 가까이 팔렸다.] 나중에 유학 이후 국내 복귀 다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망했다'는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목표 판매량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만장이었으니까...] 당시 대단한 인기로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 2010년 말에 들어서 [[세바퀴]] 고정 패널, [[점만점]] 메인 MC로 발탁. 예능계에 본격적으로 복귀하려는 듯 하다. 한편, 박경림이 '박고테' 이후 국내 활동을 잠시 접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3> 2001년 ||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예능상 || [[전파견문록]] ||
  • 박석민 . . . . 6회 일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08년 시즌 초반 [[선동열]] 감독이 구상했던 [[양준혁|양]][[심정수|심]][[제이콥 크루즈|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유난히 1루 악송구를 많이 범해 [[채태인]]의 가랑이를 찢어지게 했으며,(…) [[양준혁]]의 은퇴 선언 및 손가락 부상의 악화로 인해 7월 말부터는 [[지명타자]]로서만 출장하여 시즌 끝까지 수비보다는 타석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그가 지명타자로 출장하면서 생긴 [[3루수]]의 공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면제로이드]]로 인해 각성한 [[조동찬]]이 잘 메워 주었다.
         몸에 맞는 공 때문에 특이한 일화도 있는데 이하는 위키과 박석민 항목의 내용 일부[[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84%9D%EB%AF%BC#.EB.AA.B8.EC.97.90_.EB.A7.9E.EB.8A.94_.EB.B3.BC_.ED.95.B4.ED.94.84.EB.8B.9D|#]] 참고로 위키과에서조차 박석민 항목은 웃기다. ~~역시 개그캐~~
         >출처 : 위키과 박석민 항목
  • 배영수 . . . . 6회 일치
         준수한 5선발로 활약했으나 시즌 후 [[FA 제도|FA]] 협상장에서 삼성으로부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40018|최초 2년, 최종 2+2년을 제시받고 우선협상이 결렬됐다.]] 무옵션에 바로 가치를 보장받은 동갑 윤성환이나 업인 '''[[조동찬]]보다도 못한''' 대우에 실망하고 "기회를 원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FA시장으로 나갔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웠던 팬들은 지역 신문에 배영수를 위한 광고를 걸기도 했다.
         2017년 4월 27일 롯데전 [[https://youtu.be/d4GnOa4lvvg?t=1m35s|일정하지 않은 키킹 동작]]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잠시 멈췄다가 던지는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던진다. 명히 다른 시간차로 던지는 동작은 부정투구이며 부정 투구를 떠나 타자를 농락하는 것에다 명한 룰 위반이다. [[https://youtu.be/OcQCi86XpFI|SBS 주간야구]]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다. 이 사건을 두고 몇몇 소수의 악질팬들이 아니라고 반박~~난리부르스~~하지만 이는 더욱 더 배영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소수 악질 빠들이 해커를 예시로 반박하지만 해커는 꾸준히 같은 패턴으로 던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영수 역시 본인이 사과했지만 이는 배영수 커리어에 두고두고 남을 흑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100km 짜리 직구를 던졌다고 한다.~~
         이는 샤인볼(공의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어 던지는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규정에 의하면 로진을 터는 행위는 스피드업 관련 규정에 따라 1회 경고, 2회부터 볼 판정을 받을 수 있으며, 현장 조사결과 허벅지에 왁스 바셀린 등이 묻어있어 부정투구임이 확인된다면 퇴장될 수 있다.
         배영수 본인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며 부정투구를 하지 않았고, 허벅지 유니폼에 문지른 기억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널들 모두 영상이 증거로 남아있고, 고의성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를 두는 행동을 한 배영수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며 규정상 명한 부정투구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작 유니폼에 공을 문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부정투구에 관한 룰이 생긴 이상 행위의 의도나 경중을 떠나서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이야기.
         이후 KBO측에서 [[http://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140133|부정투구가 맞으며]] 차후 적발시 엄중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배영수는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7월 12일 경기에서 [[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kbo/322960/324897|로진으로 2루심에게 지적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 봉준호 . . . . 6회 일치
         1993년 6mm 단편 영화 《색인》을 연출하여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2번째 단편《지리멸렬》은 큰 화제가 되었다. [[배두나]]가 출연하였던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 (영화)|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으나 이후 [[송강호]]와 김상경이 출연한 《[[살인의 추억]]》을 개봉하였는데 크게 흥행하였고,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6년 7월에 3번째 장편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을 개봉했다. 2008년 그는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감독과 함께 [[도쿄도|도쿄]]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영화 《[[도쿄!]]》에 참여하였다. 3편의 영화 중 "흔들리는 도쿄"에서 [[카가와 테루유키]], [[아오이 유우]]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를 통해 멜로적 감수성 또한 인정 받았다.
         | {{small|*}} 《색인》 ||단편 영화||1993년
         * [[2014년]] 제50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 [[2007년]] 제43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색인(1994년작)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
  • 손전 . . . . 6회 일치
         '''손전'''(孫全, [[1910년]] [[1월 27일]] ~ [[1999년]] [[9월 8일]], 본명: '''손병철''', 孫秉喆)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제작자]], [[영화감독|감독]]이다. 손전, 손일포, 한일호 등의 예명을 사용하였다. [[1925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30년]] [[니혼 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총 1천 5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 [[1989년]] [[상예술대상]] 특별상
         * 《[[나는 고한다 (1976년 영화)|나는 고한다]]》
         * 《[[태산맥 (영화)|태산맥]]》
  • 송원근(배우) . . . . 6회 일치
         그러다 2009년 2월 26일 느닷없이 '사고치고 싶어'라는 댄스곡으로 컴했다. 곡 자체가 9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직설적인 가사'''와 독특한 안무--이리 휙, 저리휙, 굽신굽신--, 예명 때문에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에서 '''이불신'''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참고로 뮤직비디오에는 [[애프터스쿨]]의 [[가희(가수)|가희]]와 [[이주연|주연]]이 출연했다.
         이후 소속사를 제리 엔터테인먼트에서 [[로엔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면서 '런'이라는 예명으로 개명하고 2009년 10월 16일 '강력한 그녀'라는 곡으로 컴했다. ~~이름 바꾸면 모를줄 알았지?~~ 이 시기에 당시 무명이던 '''[[아이유]]'''(!)가 피처링한 곡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반응은 역시나 시원치 않았다는 듯. 배우 [[강소라]]와 [[멜론]]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2년에는 아이유의 노래 '좋은 날'의 일본어 버전인 'Good Day'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오로라 공주의 인기 덕에 빛을 보게 된 후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도 출연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임성한 작가의 후속작 [[압구정 야]]에도 [[장무엄]]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나타샤와 노다지의 재회--
          * [[2014년]] [[압구정 야]] - [[장무엄]] 역
          * [[2017년]] [[하의 신부 2017]] - 민비서 역
          * [[쓰릴 미]]에서는 그(리차드)가 나(네이슨)의 멱살을 잡아 올리는 장면이 있다. 2013년 [[쓰릴 미]] 에서 배우 [[정상윤]]과 본페어였는데, 연습을 하기 전 정상윤 배우에게 "형, 연습이지만 막 해봐도 돼요?" 라고 물었고 정상윤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연습할 때 그는 정상윤의 멱살을 잡아올렸는데 정상윤이 아프다고 했고 ~~그 날 아프다는 소리를 40번을 들었다고.~~ 그는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공연을 하던 [[전성우(배우)|전성우]] 배우가 전에 이렇게 아파한 배우가 있었는데, 병원에 갔더니 연골뼈가 끊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말해주었고 엑스레이로는 안나오고 초음파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정상윤 배우가 병원에 갔고 검사를 해보니 골절이 되었다고(..). 그 길로 화점에 달려가 칼슘제를 사 먹였는데, 정상윤 배우가 약을 잘 챙겨먹는 편이 아니라서 서운했다고 한다(......). 그 후로는 멱살 잡는 동작을 조심해서 했는데, "자세히 보시면 아직도 제가 잡으려고 할 때 상윤이 형이 살짝 피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웃음)"'''.
  • 수애 . . . . 6회 일치
         | 제41회 [[상예술대상]]
         | 제45회 [[상예술대상]]
         | 제47회 [[상예술대상]]
         | 제48회 [[상예술대상]]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99년 데뷔]][[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자]]
  • 연정(우주소녀) . . . . 6회 일치
         ||<#FFA38B><:> '''{{{#white 별명}}}''' ||<(> 에너자이저, 사이다, 사이다 보컬, '''뎡''', '''연뎡''', 곰, 머장, 뎡리오, 금붕어, 장성독사, 꼬밍이, 예삐 ||
         10월 17일 《miss me?》를 통해 I.O.I 완전체로 컴했다. 타이틀곡 너무너무너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주어진 파트가 메인보컬치고 상당히 적다는 것.''' 이는 박진영이 프로듀서를 맡아 생긴 변화이다. JYP는 난이도 있는 박자와 중음역대 위주의 곡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유연정은 깔끔하고 파워풀한 발성과 고음역대의 애드리브로 곡을 이끌어가다보니 '''JYP 스타일과는 상극'''과도 같기 때문이다.[* 또다른 메인보컬인 김세정은 반대로 중저음대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후렴부와 애드리브 파트가 많이 늘었다. 김세정이 녹음할 때 [[박진영]]이 감탄하는 장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I.O.I 활동 최초로 메인 파트를 맡지 못하고 소미와 세정에게 그 역할을 넘기게 되었다.
         2016년 8월 17일 미니앨범 《The Secret》을 통해 본격적으로 컴했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기존의 12성좌에서 연정이 합류해 13성좌로 되는 과정'''이 중심으로 연정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같은 사자자리인 보나가 연정을 처음 마중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뮤비뿐만 아니라 타이틀곡의 분량도 독보적으로 많이 주어졌으며[[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2067965&page=1&search_pos=-2056951&s_type=search_all&s_keyword=%EC%9A%B0%EC%A3%BC%EC%86%8C%EB%85%80+%EB%B9%84%EB%B0%80%EC%9D%B4%EC%95%BC|#]] 무대에서도 메인보컬 겸 '''센터''' 포지션을 맡았다. 한때는 중심에 섰단 이유만으로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으나, 이번 활동에서는 그 직책과 명성에 걸맞은 카리스마를 뽐내며 무대를 이끌어가고 있어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2074650&page=468|#]]
         2016년 10월 29일 불후의 명곡 2 이범희편에 출연해 <독>을 불렀다. [[https://tv.naver.com/v/1205787|#]]
         2016년 12월 25일,2017년 1월 1일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하얀시 눈이군 쌓이면 우리마을]]이라는 가명으로 출연했으며 [[집 나가면 고생 컴홈]]에 이은 우주소녀 멤버 중 두번째 참가자다. 1라운드에서 [[김군 최군 우리 모두 구세군]]을 이긴 뒤 2라운드 상대인 [[지방방위대 디저트맨]]에게 밀렸다. 참고로 2라운드에서 부른 유미의 '별'은 1년동안 활동하다가 해체를 앞둔 본인 그룹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선곡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경연에서는 그 뒤 복면가수로 나온 [[가왕? 별들에게 물어봐~ 첨성대|또다른 멤버]]와 동명이인인 [[주전자부인 펄펄 끓었네|혼성 그룹 여성 가수]]가 2라운드에서 [[사랑은 관람차를 타고|복면가수 출신 여성 판정단]]의 곡인 '멍'을 불렀으며 이들도 같은 성적을 보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2017년]] [[7월 7일]] || || [[연애플레이리스트|연애플레이리스트2]] OST Part.1 || 서툰 고 || ||
  • 영주시 . . . . 6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21610B><bgcolor=#CEF6E3><table width=95%><:> [[파일:철쭉이 만개한 소산.jpg|width=95%]] ||
         ||<bgcolor=#21610B> {{{#FFFFFF △ 철쭉이 만개한 소산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1720번길 76 (수철리 산 86-1))}}} ||
         ||<bgcolor=#21610B> {{{#FFFFFF △ 선비촌 (영주시 순흥면 소로 2796)}}} ||
         북부로 [[소산]]을 끼고 있어서 북쪽은 지형이 험한 편이지만 중부와 남부는 평탄한 침식 구릉지대로 높은 산은 많이 없는 편. 다른 경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밭만큼이나 과수원이 많다. 특히 시골길엔 [[사과]] 농장이 정말 많다. 기후의 온난화로 [[대구광역시]] 등 경북 남부 지역에서 사과 주산지가 경북 북부로 올라온 덕에 이 지역 사과가 유명해지고 있다. ~~이제 이마저도 머지않아 [[강원도]]•[[경기도]]•[[황해도]] 쪽으로도 올라갈 듯.~~. 이미 영주에서 심은 묘목들이 철원이나 영월로 판매되고 있다.
         대부분 [[소산]] 자락인 시의 북부에 위치해 있다. 안동에 다소 묻힌 감이 없잖아 있지만 영주 역시 전통 문화의 향수가 짙게 배인 곳. 순흥면에는 선비촌이라는 한옥마을이 존재하고,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이 이 곳에 위치한다. [[1박 2일]]에서도 촬영한 바 있다.
          * 영주시 동 지역에는 관광명소가 별로 없다. [[소산]], [[부석사]], 소수서원 같은 영주에서 알려진 관광지는 모두 영주시 읍면지역, 즉 옛 영풍군 관내에 있던 것들이다.
  • 오원 (조선) . . . . 6회 일치
         |별명= 자 옥(伯玉)</br> 호 월곡(月谷)</br>[[시호]] 문목(文穆)
         '''오원'''(吳瑗, 1700년 ~ 1740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주 오씨|해주]](海州). 자는 옥(伯玉), 호는 월곡(月谷)이다.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이고, 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부인 [[오태주]](吳泰周)와 조선 제18대 왕 [[조선 현종|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양자가 되었다. 1728년(영조 4)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났고 벼슬은 [[대제학]]에 이르렀다.<ref name="대제학">[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ua_11610010_001 《영조실록》 52권, 16년(1740 경신 / 청 건륭(乾隆) 5년) 10월 10일(정미) 1번째기사]</ref>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월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f>[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va_11712017_002 《정조실록》 38권, 17년(1793 계축 / 청 건륭(乾隆) 58년) 12월 17일(병자) 2번째기사]</ref>
         오원은 [[해주 오씨]]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1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이고, 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부인 [[오태주]](泰周)와 조선 제18대 왕 [[조선 현종|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양자가 되었다.
         **** 양부(부) : [[오태주]](吳泰周, 1668년 ∼ 1716년)
         **** 양모(모) : [[명안공주]](明安公主, [[1667년]] ~ [[1687년]]) - 제18대 [[조선 현종|현종대왕]](顯宗大王, 1641~1674, 재위 1660~1674)의 딸, 제19대 [[조선 숙종|숙종대왕]](肅宗大王, 1661~1720, 재위 1674~1720)의 여동생
  • 유지인(1956) . . . . 6회 일치
         ||<-5><#c0c0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align=center>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정윤희가 [[나는 77번 아가씨]]로 대표되는 [[치미]]를 보여주고 장미희가 [[겨울여자]]로 대표되는 청순미를 보여 줬다면 유지인은 당시 대학 재학생이라는 신분에서 풍겨나오는 도시적신 이미지의 세련미를 보여줬다.
         * [[1975년]] 《[[태산맥 (1975년 영화)|태산맥]]》
         * [[1978년]] 《[[생사의 고]]》
  • 은혼/620화 . . . . 6회 일치
          * 다키니는 지휘관을 잃자 혼란에 빠져 [[츠쿠요]]의 화와 힘을 합친 가부키쵸 주민들의 반격에 격퇴된다.
          *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츠쿠요]]가 화와 함께 착지한다.
          츠쿠요는 화 부대의 대장이란 책무를 져버릴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히노와는 그녀가 이미 할 만큼 했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도 좋다고 설득한다. [[세이타]] 또한 갑옷을 걸치고 화 부대원들과 함께 나타나 자신들이 요시와라를 꼭 지킬 테니 츠쿠요는 바람대로 하라고 거든다. 둘의 설득으로 마음이 움직인 츠쿠요는 자신을 따르는 화 부대원들을 이끌로 가부키쵸로 향한다. 히노와는 세이타에게 "이렇게까지 거창한 핑계를 대주지 않으면 반한 남자를 만나러 가지도 못한다"고 농담한다.
          * 츠쿠요는 그런 독을 하며 전장을 누빈다. 지휘관을 잃은 다키니 부대는 혼란에 빠져 가부키쵸 저항군의 반격에 퇴각하기 시작한다. 츠쿠요는 여자를 얕봐놓고 여자를 피해 달아나는 적들을 빈정거린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큐베도 "여자한테 대장의 목이 따였는데 원수도 갚지 않느냐"고 호통친다. 우연히 같은 소릴하게 된 두 여자는 마주보고 웃는다.
  • 이상오 . . . . 6회 일치
          | 친척 = 이동진(조부) <br/> [[박창암]](사위) <br/> 이일우(부) <br/> [[이상정 (1897년)|이상정]](형) <br/> 한문이(형수) <br/> [[권기옥]](형수) <br/> [[이상화 (시인)|이상화]](형) <br /> 이용희(조카) <br/> [[이상 (1904년)|이상]](형)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조카)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이며 독립운동가 [[이상정 (1897년)|이상정]](李相定),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사학자 [[이상 (사학자)|이상]](李相佰)의 아우인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검찰부장을 지낸 대한민국 육군 준장 출신이자 [[자유월보사]] 사장을 지낸 [[박창암]](朴蒼巖)의 장인이기도 하다.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4601 한국민족문화대과사전]
  • 이유리(배우) . . . . 6회 일치
         학교 4 시즌 후반부였던 [[2002년]] 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 캐스팅되어 허약한 [[순종(대한제국)|순종]]의 첫 번째 아내인 [[순명효황후]] 역할을 맡았다. 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반항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기울어가는 왕조의 가련한 세자빈으로 분해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였다. 여담으로 《명성황후》에 캐스팅됐던 시점이 《학교 4》가 막 끝나던 시점이라 이유리뿐만 아니라 같이 나왔던 몇몇 연기자도 캐스팅이 됐다. 그 중 나름 커플 연기를 펼쳤던 김유민 역의 [[승우]]가 《명성황후》에서 순종으로 캐스팅 되어 연달아 커플 연기를 했다.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로 또 한번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의 대가족 막내딸로 출연한다. 극 중 이유리는 '한자([[김혜자]])와 '일석([[일섭]])'의 막내딸로 대기업 홍보팀에 다니는 야무지고 심성 착한 막내딸로 부모님 속 한번 크게 썩인적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으나 가난한 대학원생인줄 알았던 '정현([[기태영]])'과 결혼을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정현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제력 차이가 큰 집안간의 결혼과정에서 한 번, 결혼 후 우아한체 하나 속물적이고 이중적인 시어머니 '은아([[장미희]])'때문에 또 한번 속앓이 하는 '나영미'역으로 열연했다.
         2016년 KBS 드라마《[[천상의 약속]]》에서 다시 쎈 여자 이미지로 컴하여, 대를 이어 악행을 당해 이를 앙갚음하려는 [[복수귀]] '이나연'과 '도희'로 1인2역을 맡아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일일극임에도 불구하고 그해 KBS 연기대상 대상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으나 일일극 부문 우수상에 그쳤다.
         ||<|3> 2016년 || KBS2 || [[천상의 약속]] || [[이나연(천상의 약속)|이나연]]/[[도희]] || 1인2역 ||
         ||<|2> 2007년 || [[지영]] || [[https://youtu.be/RQtvgvy0toI|사랑 하나면 돼]] ||
  • 이진만 (1675년) . . . . 6회 일치
         이진만(李鎭萬, [[1675년]] ~ [[1752년]])은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로 자(字)는 맹능(孟能)이고, 호는 은(白隱), 본관은 우계이다. [[1699년]](숙종 25) 문과에 합격하였으나 시험 주제에 문제가 있다 하여 파방되었다. 뒤에 [[1702년]](숙종 28) 식년시 생원 3등에 합격하고 그 해의 진사시에 다시 응시하여 식년시 진사 3등으로 합격하여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하였지만 관직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만년에는 고조부 [[이여빈]]이 지어 학문연구와 문하생들을 가르치던 [[인수정]] 바로 앞에 정자 은당(白隱堂)을 짓고, 은거사(白隱居士)라 자처하며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으로 세월을 보냈다. 저서로는 은당문집(白隱堂文集)과 대성집설(大成集設) 등이 전한다.
         * 은당문집(白隱堂文集)
         * [http://waks.aks.ac.kr/subject.aspx?dataID=25087 은집 / 白隱集]
  • 이현보 . . . . 6회 일치
         그는 특히 문장에 뛰어나 자연을 노래한 시조가 많이 있는데, 10장으로 전하던 <어부가>를 그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 <효빈가(效嚬歌)> <농악가> <농암가(聾巖歌)> 등이 그의 저서인 <농암(聾巖)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ref name="이현보"> 《[[글로벌 세계 대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조선 전기 문학/시조 문학#이현보|이현보]]〉</ref>
         중종 때 이현보는 연시조인 어부단가(漁父短歌)를 지었는데, 이는 고려 때부터 전해 오던 어부 단가 10수를 고쳐 지은 것이다. 모두 5장으로 내용은 어부의 생활을 읊은 것이며 본래의 어부 단가 10수는 전하지 않는다. 그 가사가<청구영언><해동가요>에 전해 온다. <ref name="어부사"> 《[[글로벌 세계 대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조선 전기 문학/시조 문학#어부사(漁父詞)|어부사(漁父詞)]]〉</ref>
         * {{글로벌세계대과사전}}
         {{청리}}
  • 이휘향 . . . . 6회 일치
         * 1986년 [[MBC]] 주말연속극 《[[풀잎마다 이슬]]》 ... 상희 역
         * 1989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오년]] - [[파문 (드라마)|파문]]》 ... [[효의왕후]] 역
         * 2015년 [[MBC]] 수목미니시리즈 《[[맨도롱 또똣]]》 ... 세영 역
         * 1995년 화음료 알지오
         | 제27회 [[상예술대상]]
         {{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
  • 정몽근 . . . . 6회 일치
         |경력 = [[현대화점그룹]] 회장
         |소속 = [[현대화점]] (명예회장)
         '''정몽근'''(鄭夢根, [[1942년]] [[4월 11일]] ~ )은 [[현대화점그룹]] 회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 2000.04 ~ 2006.12 [[현대화점그룹]] 회장
         * 2006.12 ~ [[현대화점그룹]] 명예회장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현대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정주영]][[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현대화점그룹]]
  • 진격의 거인/90화 . . . . 6회 일치
          >그렇다면 성을 또 속일 것인가?
          >레이스 왕이 한 것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성들을 이 벽 안에서 키우겠다는 건가?
          >100년 전 레이스 왕이 성들에게서 빼앗아 간 기억을
          >100년 후 성에게 돌려주는 것 뿐입니다.
          엘런을 말리던 미카사가, 그 발언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진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한 사실이었다.
          그리샤는 자신의 정확한 신분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리고 벽의 왕에게 벽을 공격하는 거인들을 죽여달라고, 벽의 성들이 전부 먹히기 전에 수를 써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프리다는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몹시 결연한 눈을 뜨는데...
  • 최지우(영화배우) . . . . 6회 일치
         2007년 4년 만에 <에어시티>로 컴하였으나, 이 드라마는 처참히 실패하였고 커리어 우먼 역으로 출연하였던 최지우에게는 '연기가 발전이 없다',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전남친 [[이진욱]]을 만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올가미(영화)|올가미]]가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1996년에 개봉하여 똥폼만 잡고 끝난 '귀천도'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기로 하였으나, 건강문제로 인하여 도중 하차한다. ] 흥행은 못했지만 나름 호연과 더불어 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문제는 1997년 <올가미> 출연 이후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였으나, '''흥행작이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출연했지만, 일단 이 영화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비중이 워낙 큰 데다 [[장동건]]이 조연으로 출연했기 때문에 아무도 최지우가 나온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2> 1998년 || [[상예술대상]] ||<|2> 신인여우상 ||<|2> [[올가미(영화)|올가미]] ||
         ||<|3> 2002년 || 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겨울연가]] ||
         ||<|2> 2004년 ||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인기상 ||
         || 2005년 || 상예술대상 || 한류특별상 || ||
  • 최효진 (축구선수) . . . . 6회 일치
         |포지션=[[풀]] (오른쪽)
         '''최효진''' (崔孝鎭, [[1983년]] [[8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오른쪽 [[풀]]이다. 현재 [[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고 있다.
         서울연희초등학교,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거쳤다. 빠른 스피드와 힘을 기반으로 공격력이 뛰어난 수비를 펼친다. 대학때까지는 공격수로 뛰었고, 프로 데뷔후에는 오른쪽 미드필더로서 활약하며 공격이나 공미, 윙, 풀 모두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다. 체력이 좋아 마징가에 빗댄 '최징가' 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0년]],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FC 서울]]로 이적한 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이적 첫 해 [[K리그 2010|2010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하였다. 시즌이 끝난 후,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상주 상무 피닉스|상무]]에 입단하였다. 상무에서 주전 라이트 으로 활약하며 [[2012년]] [[9월 10일]] 전역할 때까지 53경기에 출전하였다. 전역 후 FC 서울에 복귀하였으나, [[2013년]] [[차두리]]의 입단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전매특허인 부지런한 몸놀림과 특유의 탱크같이 시원한 돌파로 공수를 오가며 공격을 지원한다. 수비상황에서의 근성 또한 최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넘어지는 순간까지 공을 눈에서 떼지 않는 집중력과 근성은 그를 [[K리그]] 최고의 오른쪽 풀으로 만들었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6회 일치
         >메츠케는 다이묘 직속의 무분별한 집행자이며, 자기 가문에 불만을 품은 장군이나 성을 억제하기 위해 교묘하게 감찰합니다. 또한, 이들은 적군과 아군을 매수할 수 있습니다. 메츠케는 적 요원을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으며, 특히 닌자의 활동을 파악하고 맞서는 것에 효과적입니다.
         >승려는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 열성적인 지지자입니다. 이들은 적군의 사기를 꺾을 수 있고 적 마을에서 불안을 조성할 수 있는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아군 부대의 사기를 증진하고 읍성에 거주하는 성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또한, 승려는 평온과 자성의 삶을 통해 불교를 성을 개종할 수 있고 적 요원이 임무를 단념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들은 특히 메츠케에 맞설 때 효과적입니다.
          * 자신의 성에 배치시 해당 지역의 성들을 신토-불교로 개종시킴.
         >선교사는 기독교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식의 열성적인 전도자입니다. 이들은 적군의 사기를 꺾을 수 있고 적 마을에서 불안을 조성할 수 있는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아군 부대의 사기를 증진하고 읍성에 거주하는 성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또한, 선교사는 경건하게 살아가는 속죄의 삶을 통해 기독교로 성을 개종할 수 있고 적 요원이 임무를 단념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들은 특히 메츠케에 맞설 때 효과적입니다.
  • 피서영 . . . . 6회 일치
         |직업 =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웹사이트 = [http://physics.bu.edu/people/show/soyoung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
         '''피서영'''(皮瑞英, 1946년 ~ )은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수필가 [[피천득]](皮千得)이고, 남편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이며, 아들은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Stefan Pi Jackiw)이다.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피서영은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로 유학을 갔다. 유학 시절에 [[이휘소]]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보스턴 대학교 교수]][[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동문]][[분류: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교원 . . . . 6회 일치
         인천 입단 후 한교원은 성실한 훈련 태도로 [[허정무]]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데뷔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는 행운을 얻는다. 당시 동포지션의 경쟁선수들이 동반 부진, 부상 등에 빠졌던 이유도 있어서 행운이라 한 것. 경기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출전시간을 점점 늘려나가더니 인천 공격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부상한다.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고 [[김봉길]]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후에도 신임은 여전했다. 한교원의 2011 시즌 스탯은 '''29경기 3골 2도움'''. 공격포인트가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체출전 또는 교체아웃된 경기가 많았고 센터으로 뛰는 등 포지션 변경이 많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인천구단 자체가 이해에 빈공에 시달려 한교원이 공격포인트 1위였다.
         2012 시즌에는 잠시 부상으로 주전에서 밀려나며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수렁에 빠지나 싶었지만 [[그런 거 없다|그런 거 없었다.]] 금세 폼을 끌어올리며 데뷔시즌을 능가하는 '''28경기 6골 2도움'''의 스탯을 작성. 특히 홈에서 열린 [[FC 서울|서울]]과의 [[http://www.youtube.com/watch?v=8LrdLr_WxRU|빗속 혈투]]에서 멀티골을 작렬한 경기가 절정이었다.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고 골키퍼가 손쓸 수 없는 구석으로 슈팅을 꽂아넣는 두번째 골 장면이 미. [[홍명보]] 감독도 한교원을 주목해서 올림픽 대표팀 소집훈련에 호출한 바 있으나 공식경기엔 나서지 못했다.
         특유의 근성 넘치는 돌파와, 돌파 이후 이어지는 위협적인 크로스가 전북의 팀 색깔과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보고있다. 또한 공격수로서 공격포인트도 착실히 올리며 닥공축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중. 20라운드 성남과의 대결에서는 1골 1어시로 팀의 3-0 승리를 이끌어 부상으로 결장한 이동국의 빈 자리를 훌륭히 메꿨다. 11월 9일자, 리그 10골 3어시 기록 중. 본래 이동국의 업 선수인 [[카이오]]보다 더 많이 넣었다.
         2016 시즌에 유종의 미를 거둔 이후 한교원은 2017년 1월부터 사회복무를 위해 6개월간 팀을 떠나 [[K3리그]] [[화성 FC]]에서 뛰게 되었다.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인 한교원은 병역법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간 일하면 병역의 의무를 마치게 된다. 6개월간 사회복무를 마친 이후, 2017년 후반기 다시 [[전북 현대]]로 복귀하게 된다. 한교원은 K3리그에서 최종 10경기 2골 3도움을 기록, 나름대로 꾸준히 몸 관리를 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리고 큰 부상 문제 없이 후반기에 전북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에는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었고, 간간히 활동량을 앞세워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거나 아예 풀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2015 아시안 컵 이전에는 [[이청용]], [[손흥민]], [[이근호]]의 업 정도 위상이었으나 오만 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했고 이청용이 실금 진단을 받고 대회에서 빠지면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조금 억울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창수가 반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상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선발되어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까지 출장했다.
         활동량, 체력이 상당히 좋으며 발도 빠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훌륭한 윙어가 될 자질은 타고났다. 그리고 공에 대한 집착과 투지도 상당하여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는 것은 물론, 팀의 수비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선수이다. 라인을 타고 돌파하여 밀고 올라가는 돌파 능력을 지니고 있고, 한 번 분위기를 타면 무서운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 최전방부터 센터까지 온갖 포지션을 경험하면서 얻은 경험이 독이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가 된 듯. 아쉬운 부분은 판단력과 크로스. 그리고 유효 슈팅은 꽤 잘 만들어내지만 정작 만들어내는 기회에 비해 실제 득점으로 연결되는 수도 다소 아쉽다. 입단 당시보다도 훨씬 전북의 스쿼드가 두꺼워지면서 더는 과거처럼 전북의 핵심으로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화되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지닌 선수인지라 최강희 감독의 신임을 계속 받고 있다.
  • 한진희(1949) . . . . 6회 일치
         ||<-5><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동양방송|TBC]] 연기대상을 1975년, 1976년 2회 연속 수상한 1970년대 [[동양방송|TBC]]의 간판 배우이고 [[주말 드라마]] [[애정의 조건]]으로 제13회 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남자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왕꽃 선녀님]], [[보석비빔밥]], [[압구정 야]] [[김순옥]]작가의 [[왔다! 장보리]], [[그래도 좋아]] [[문영남]]작가의 [[조강지처 클럽]] 이것으로 [[막장 드라마]]계의 [[임성한|빅]][[김순옥|3]][[문영남|에]] 작품에 모두 출연하기도 하였다. [[임성한]] 작가의 [[막장 드라마]] 중 [[왕꽃 선녀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두 개의 작품에서 모두 여주인공의 친부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해당 드라마들에서 여주인공의 친모는 모두 [[김혜선(배우)|김혜선]]이 연기하였다.
         2013년 8월 초 손자가 [[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일단 그것을 숨기고 촬영에 임하였다.
          * [[압구정 야]](MBC, 2014~2015) - [[조장훈]] 역
  • 고유민 . . . . 5회 일치
         2차전 흥국생명전에서 정미선이 부상당하고 다음날 도로공사전 준결승 경기에서 김연견이 부상당하자 예상하지도 못한 리베로를 보게 되었다. 이 경기는 난리도 아니였는데 리베로가 없자 2세트는 없이 치루고 3세트는 코치가 딱 5분간 리베로 강습을 한 다음에 내보냈다. '''사람들은 리시브도 안 좋은애가 얼마나 버티겠냐'''며 수비붕괴로 인한 현대건설의 패배를 예상했으나 목적타 집중을 --한유미와 김주하가 같이 온몸으로 받으면서-- 어찌어찌 버텨냈고 4세트에는 리시브 정확을 6번[* 이날 총 8번의 리시브 정확판정을 받았는데 4세트에 6개를 받았다.] 얻어내기 시작하더니 5세트에서는 장기인 디그 능력을 십분 살리며 팀을 결승으로 이끈 주역중 하나가 되었다. 5세트의 퍼포먼스는 웬만한 업 리베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차전 인삼공사 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이날도 현대건설은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컵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연주-양효진-고유민의 삼각편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것보다도 [[이다영]]이 잠시나마 경기감각을 되찾고, [[한유미]]의 정밀서브, [[염혜선]]의 닭장거부서브가 인상적인 경기였지만-- 13득점(팀내 2위, 12공격득점), 공격점유율 17.52%(팀내 3위), 공격성공률 '''50%(팀내 1위)''' 어택(후위공격) 1[* 프로데뷔 첫 어택], 1블로킹, 6디그, 리시브 성공률 28.57%--1차전 보다 3배 더 잘받았는데 그냥 그날그날 로또다--를 기록하면서 컵대회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현대건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주로 황연주와 양효진이 상대 블록커를 몰고 다니면 어디선가 나타나 그 빈틈으로 공격을 성공시켜 상대팀의 블록 포지션을 찢어놓거나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스크린성 플레이로 혼란을 주는 역할이 주효했다.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다만 3차전 도로공사전에서 1세트에 안정적인 리시브를 보여주면서 어택을 성공시키는 등 코보컵 때 모습을 잠시나마 보여준 건 위안거리. -결국 정미선과 자리를 바꾸어 닭장을 달구다 2015년 12월 12일 인삼공사전은 2세트 37:37까지 간 상황에서 연속 2득점으로 2세트를 끝냈다. 이날 경기에서 본인 한 경기 시즌 최다득점인 9점 기록.[* 이 기록은 2016년 2월 1일 인삼공사 전에서 11점으로 갱신했다.]
  • 권혁 . . . . 5회 일치
         6월 4일 허리 통증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는데, 권혁은 5월 20일 이후로는 등판하지를 않았다(...). 대신 [[정현]]이 올라왔다.
         6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 홈런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한 송창식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가 이번엔 김동엽에게 3타자 연속 홈런 기록을 달성하게 하는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역대 27번째 기록이다.] 이날 기록은 1.2이닝 1실점 ERA 2.93.
         기본적으로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지만 빠른 구속과 묵직한 구위로 찍어눌러도 타자들이 맥을 못 췄기에 초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사실 뛰어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성적을 냈다. 허나 2010년 이후부터는[*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2010년 플레이오프의 보크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혹사 누적으로 이전보다 팔스윙이 느려지고 그로 인해 공의 무브먼트나 구위도 저하되며 삼성 철벽 불펜진의 일원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 그나마 삼성 불펜진이 굳이 권혁이 빠지더라도 워낙 막강이라 그냥 묻어가는 모양새였다.[* 특히 2011년에 그런 모습이 확연하였다. 겉보기 성적과 실제 투구내용과의 상당한 갭이 있다.] 그리고 2013년, 불펜진에 균열이 생기면서 본격 까임의 대상으로 등극. 하지만 권혁 이외에는 쓸만한 삼성 왼손 불펜이 1, 2군 통틀어 전무한지라 삼성 불펜진의 아픈 손가락이자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차우찬]]은 원 포인트로 쓰기엔 너무 아깝고, [[정현]], [[조현근]]은 1군으로 올리기도 영 애매하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삼성 시절 권혁은 몸이 늦게 풀리는 편이라 마운드위에서 타자를 상대로 던지면서 감을 잡는 스타일이였다. [[선동렬]] 아래에선 구위가 엄청날때는 감을 잡는 동안 구위로 버텼지만, 혹사와 보크 사건 이후인 [[류중일]] 아래에선 구위가 떨어지며 감을 잡는 동안 팩질을 하거나 두들겨 맞았다.][* 물론 몸이 완전히 풀리면 위력적이지만 그때까지 장작을 쌓을 확률이 꽤 높아서 위험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셋업에는 [[안지만]]이 있는지라 삼성벤치에서는 굳이 권혁을 올리는 위험한 길을 걸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안지만도 불안하면 8회 2사에 [[오승환]]을 올리는 치트키가 있었다(...)~~]
          * [[안지만|힙합보이]]나 [[정현욱|국민노예]]에 비해 임팩트가 있는 별명이 오랫동안 없었다. 데뷔 때는 겉으로 보면 한 성깔 할 것 같은 외모, 항상 짧은 헤어스타일, 큰 키와 덩치까지 겹쳐셔 별명이 '''강호'''였으나 금방 묻혔고(...), 오히려 다른 권씨 성을 가진 선수인 [[권오준]]과 함께 엮여서 '쌍권총'이라고 불리는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허구연|허구라]]가 발음하는 '''궈넥'''이 별명으로 쓰였을 정도. 그러던 와중 2012 시즌에 [[채태인|채르노빌]], [[최형우|최형우라늄]], [[차우찬|차르 봄바]]와 함께 하는 '''원자력 라인'''에서 [[핵]]을 맡았다.[* 사실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삼성의 사실상 유일한 좌완 필승조라는 점에서 권혁을 '불펜의 핵'으로 자주 일컬었기 때문. ~~하지만 팬들에겐 그런 거 없고 핵폭발~~] 팀을 옮긴 첫해인 2015년, [[윤규진]]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필요한 순간마다 삼진을 잡아내며 '''불꽃남자''', 그 인기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대전 구장]] 내 아이돌급이란 의미인 '''대전 아이돌'''이란 별명이 추가되었다.
  • 김무력 . . . . 5회 일치
         553년(진흥왕 14년), 진흥왕은 7월 [[제]]의 동북 변경을 빼앗고 지금의 한강 유역에 신주를 설치하였다. 김무력은 신주(新州)의 군주로 임명되었다.
         554년에 있었던 [[관산성 전투]]에서 원군을 이끌고 제군을 급습하여, 제의 군주 [[성왕]]을 붙잡아 죽이는 공적을 세워, 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556년에 세워진 <창녕진흥왕척경비>,<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에서 '무력지 잡간(武力智迊干)'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잡간은 신라 관등 3위에 해당하는 지위로서, 제 성왕을 죽인 공적으로 크게 승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김부식 . . . . 5회 일치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이 피살됨으로써 그의 전횡은 끝났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궁궐의 소실 등을 이유로 서경파가 득세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승진하여 재추(宰樞)의 반열에 오르는 등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묘청]] 등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천도운동]]은 [[1129년]](인종 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인종도 자주 행차하였다. 서경파의 [[정지상]] 등은 묘청과 [[수한]]이 성인이니 모든 정치를 그들에게 물어서 행하자고 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다. 조정 신료 가운데 오직 평장사 김부식, 참지정사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ref>《고려사》 권127, 열전40, 묘청전.</ref> 그러나 서경의 서기(瑞氣)를 조작한 일이 탄로나고, 행차 때의 악천후 등이 잇따름에 따라 김부식 등의 반대파 의견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부식 일파는 [[1134년]](인종 12년) 인종의 서경 행차를 막는 데 성공하였다.<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
         서경 천도가 불가능해지자 묘청·조광·유담 등은 [[1135년]](인종 13년)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김부식은 토벌군의 원수가 되어 일단 개경에 머물고 있던 서경파 정지상, 김안(金安), 수한을 처형하고 출전하였다. 김부식은 중군장으로서 좌군장으로 [[김부의]](金副儀)<ref>김부식의 동생</ref>, 우군장으로 이주연(李周衍)을 거느리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인들은 묘청·유담들을 죽이고 항복하였으나, 조광(趙匡)이 또 반하므로 서경을 포위하고, 그 이듬해인 [[1136년]]에 잔당을 소탕하였다.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은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 칭호와 검교태보수태위[[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감수국사상주국 겸 태자태보(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監脩國史上柱國兼太子太保)로 임명되었다. 김부식은 이 전공을 이용하여 정적(政敵)인 [[윤언이]](尹彦頥)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반면 한국 사학 1세대로 평가되는 역사학자 [[이기]] 전 이화여대·서강대 교수는 아래와 같이 그의 저술에 대해 호평하였다.
         {{인용문|《삼국사기》는 합리적인 유교사관에 입각하여 씌어진 사서로 이전의 신이적(神異的)인 고대 사학에서 한 단계 발전한 사서|{{서적 인용|저자=[[이기]]|장=문학과 지성 (文學과 知性)|제목=《[[삼국사기론]](三國事記論)》|연도=[[1978년]]}}}}
         {{글로벌세계대과|제목=귀족사회의 동요}}
  • 김선영(1976) . . . . 5회 일치
         || '''출생''' ||<(> [[1976년]] [[4월 10일]] ([age(1976-04-10)]세), [[강원도]] [[태시]] 문곡소도동 ||
         || '''학력''' ||<(> [[태석탄박물관]] ||
          * [[미쓰]] (2018) - 장후남
          * [[빛나거나 미치거나]] (2014, MBC) -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태시 출신 인물]][[분류:1995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 김진우(WINNER) . . . . 5회 일치
         ||<:>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 출생}}}''' ||<(> [[1991년]] [[9월 26일]] ([age(1991-09-26)]세), [[전라남도]] [[신안군]] [* [[OUR TWENTY FOR]] 컴 기념 V앱에서 본인이 언급한바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출생했으며 기억도 안날 정도로 어린시절에 임자도로 이사간 후 7살때 [[전라남도]] [[목포시]]로 이사갔다고 한다.] ||
          * 공허해 활동이 끝나고 1년 반이 넘는 공기 동안에는 외국어, 연기, 드럼레슨을 배우며 지냈다고 한다.
          * 전멤버 탈퇴 후 처음 컴했을때 전멤버의 보컬 빈자리를 메꾸기위해 공기동안 보컬을 열심히 연습을 했다고 한다. 연습의 결과때문인지 4인조로 처음 발매한 앨범 'FATE NUMBER FOR' 활동 당시 보컬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 라디오스타에서 MC들이 공기에 할 일이 없으면 작곡을 해보라고 권했는데 본인은 작곡에는 재능이 없다며 셀프디스를 했다. 하지만 EVERYDAY 활동 때 인터뷰를 보면 작사 작곡을 열심히 하여 꽤 좋은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돌 최초 멤버 전원이 전곡을 작사작곡할 앨범의 탄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 대군 . . . . 5회 일치
         중국 중세에는 '''만''' 정도는 되어야 대군으로 여겨진다. 이름하여 '''만대군'''. 본래는 과장해서 자칭 만대군 정도가 많았지만, 중국의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수나라-당나라 이후로는 진짜 만 규모의 대군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근대에는 국가 총력전 체계가 갖추어지면서 양차대전을 거쳐서 몇만~몇천만 규모의 인구가 전투에 투입될 지경에 도달하였다. 역사상 최대의 대군이 투입된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현대전에서는 첨단 병기가 발전하고 총력전이 없어져 제한전에 국한되면서 군 인원 자체의 규모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 대중흑기 . . . . 5회 일치
         본래 [[세이와 겐지]]의 상징은 기(白旗)였다. [[겐페이 전쟁]] 시기에는 겐지의 기와 헤이케의 적기를 서로 내걸고 싸웠다.([[홍전]]의 기원이다.)
         [[가마쿠라 시대]]에 겐지 일족이 각지에 정착하여 여러 분가로 분할되면서, 기 역시 그대로 쓰이지 않고 분리된다. 대중흑기는 기의 바탕에다가 검은 실선을 그려서 만들어진 닛타 가문의 표식이다.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5회 일치
         라몬 베렝게르 3세 ''대''은 1097년부터 1127년까지 30년간 바르셀로나 국을 다스린 통치자다.
         지금의 프랑스에 있는 로데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두머리의'' 라몬 베렝게르 2세는 자신의 형제인 베렝게르 라몬 2세과 함께 바르셀로나 국의 공동 통치자였는데, 형제와 불화를 겪다가 결국 동생에게 암살당한다.[* 이사건으로 인해 베렝게르 라몬 2세는 ''형제 살해자''칭호를 얻게 된다.] 이후 97년에 베렝게르 라몬 2세가 결투재판에 패해 1차 십자군에 강제로 떠밀려지게 된 이후, 그는 삼촌의 작위를 상속받게 된다.[* 베렝게르 라몬은 2년뒤(1097년에 바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거기서 횡사한다.]
         이후 그는 1112년에 프로방스의 마지막 상속녀인 두세와 혼인해 프로방스 작위를 획득하고, 우르겔과 페랄라다를 제외한 모든 카탈루냐 국가들을 합병한다. 이후 우르겔 국과 동맹을 한 그는 바르바스트로와 발라구에르를 정복해내는데 성공한다.
  • 마기/327화 . . . . 5회 일치
          * 연홍옥과 연홍명은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몰라도 년, 천 년 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며 신드바드야 말로 그 미래에 합당한 지도자라 한다.
          * 그때 문을 박차고 모르지아나가 들이닥친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던 커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과를 꺼낸다. 그 꼬라지에 알라딘도 "못해먹겠다"고 혀를 찬다. 몰래 지켜보고 있던 연룡도 "시시하다"고 혹평, 알리바바의 분노를 유발한다.
          * 국제동맹 탈퇴를 선언했던 홍옥이 불현듯 번복을 결정한다. 이야기를 들은 알라딘과 알라비바는 한참이나 이해를 못하다가 귀를 의심하게 된다. 알라딘은 그렇게 숙고해서 결정했던걸 뒤집어도 되겠냐고 묻는데 홍옥은 모두가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이번엔 연홍명이 나서서 말하는데 동맹을 탈퇴하면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 년 천 년 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자기들 사후의 먼 미래, "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까지 지키기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홍명. 홍옥도 거기에 동의하며 황의 내전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 한 명"이 힘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신드바드냐고 반문한다.
          * 그 뒤로 3일이 지났다. 그런데 충격적인 뉴스가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놀라게 한다. 갑작스럽게 뢰엠이 국제동맹에 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의 동맹 복귀가 공식화된 것이다. 그토록 신드바드를 꺼림직해하던 두 지도자들이 신드바드와 손을 맞잡는다. 심지어 무는 "일국의 독자성 같은건 작은 일"이라며 지금까지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무와 타케루, 홍옥도 "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라고 입을 맞춘 듯이 되풀이한다.
  • 마기/343화 . . . . 5회 일치
          * 알리바바는 [[연룡]]과 싸우고 잠시 죽었을 때 "사후세계"에 해당하는 곳에 갔었으며 거기서 일 일라는 물론 셋타와 와히드, 테스까지 만났다고 밝힌다.
          * 한편 각각 던전 공략에 성공한 [[연룡]]과 [[쥬다르]]는 합류해서 [[알리바바 사르쟈]]와 [[아르바(마기)|아르바]]가 향한 제 4던전 쪽을 바라보고 있다.
          알리바바가 룡과 싸우다 잠시 죽었을 때의 일이다. 알리바바는 잠시 여행 다녀온 것 같은 말투로 말하지만 그 내용이 어마어마하다.
          * 알리바바는 그때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룡과 싸우다 패해서 망연자실했던 그는 정신을 차려보니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기묘한 공간에 있었다. 우두커니 정좌하고 있을 뿐인 그는 이윽고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기록영상처럼 보게 되었다. 그건 거기 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몇 십, 몇 번이나 그 영상을 보면서 "아무 것도 못했다"는 좌절감과, "나는 죽었다"는 자각이 자라났다. 그는 다른 이들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좌절감을 삭히고 있었다.
  • 마기/351화 . . . . 5회 일치
          * [[연룡]]과 [[쥬다르]]도 일행을 쫓아와 합류. 우고는 아무래도 "세상을 루프로 환원시키는 마법"이 작동한 것 같다 하는데.
          * 알라딘, 알리바바, 룡, 쥬다르는 그를 무찌르기 위해 힘을 합친다.
          * [[연룡]]과 [[쥬다르]]가 알라딘 일행을 따라잡았다. 룡은 방금 전 목격한 부자연스러운 하늘의 변화를 말한다. 이들도 신드바드가 사라지고 갑자기 밤이 찾아온 사태에 대해 이런 저런 가설을 세워보는데 딱히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때 우고가 "누군가 성궁의 시스템을 장악했다"는 답을 내놓는다.
          * 절망에 삼켜질 것은 우고. 그러나 좌절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당초 성궁에서 결판을 짓기로 했던 네 명의 젊은이들. 알라딘, 알리바바, 룡, 쥬다르는 다윗을 타도하고 세상을 구할 싸움을 시작한다. 어찌보면 결국 처음부터 이럴 각오로 시작한 싸움이었다.
  • 마니교 . . . . 5회 일치
         1351년, 원나라에 대항하는 [[련교]]의 반란이 일어난다. 련교의 지도자 한산동(韓山童)은 자신을 「명왕(明王)」으로 칭하고, 아들 한림아(韓林兒)는「소명왕(小明王)」을 칭했다. 이들이 [[홍건적]]을 일으키고, 홍건적 출신의 [[주원장]]은 나라를 세워 국호를 명(明)으로 하였다. 과거에는 이것이 명교의 영향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련교와 명교 사이에 교리상의 공통점이 보이지 않아, 명(明)이라는 글자를 내세운건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단지 명칭상으로만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명교는 명나라 시대의 이단 종교 금지령에 언급되는데, 점쟁이나 무녀가 [[강신]]을 받아 [[부적]]을 그리거나 신탁을 내리고, 스스로를 「단공(端公)」「태보(太保)」「사파(師婆)」로 칭하는, 「련사(白蓮社)」, 「운종(白雲宗)」,「미륵불(弥勒佛)」등과 같이, 「명존교(明尊敎)」 역시 금지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비밀결사 종교들은 은밀하게 숨어서 그림을 그리고 야간에 예배를 보았다고 묘사되며,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주모자를 교수형에 처하고, 신도들은 곤장을 쳐서 유배를 보낼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율령은 청나라 시대 까지 계속된다.
  • 마철준 . . . . 5회 일치
         2004 시즌을 앞두고 2004 K리그 자유선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단 첫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 [[풀]]을 가리지않고 주전 선수들의 업용으로 활동하다 투쟁심과 꾸준한 경기 운영 능력 등을 [[정해성]] 감독에게 높이 평가받아 후에 부천 SK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붙박이 사이드 [[풀]]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마철준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과 기복 없는 플레이로 오랜 시간 [[제주 유나이티드]]의 측면을 책임지다 2012년 32살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신인 및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발 기술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 사이드 풀으로 불렸다. 군더더기 없는 크로스 능력과 간결한 드리블로 SK 유나이티드 시절 전성기를 보내왔으며, 팀의 준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다. 수비력에 있어서도 악착같은 수비를 잘 보여주며 평균 이상은 해준다는 평. 그러나 점차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수비력이 떨어지고 공격 가담 상황에서도 크게 힘을 못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명예백인 . . . . 5회 일치
         [[인종차별]]을 벌이는 정권에서 [[인]]이 아닌 인종을 인으로 쳐준다는 의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색인종 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인 국가에 뒤지지 않게 성장하자, 국책상의 이유로 이들 국적의 아시아인에게 인과 같은 대우를 주고 '명예인'으로 취급하였다.
  • 박신혜 . . . . 5회 일치
         박신혜는 2014년 11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에 캐스팅 되어 《[[천국의 나무]]》 PD였던 조수원 감독과 9년만에 재회하게 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피노키오' 박신혜 "작품 기다리는 배우, 취준생의 심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404814|출판사 =엑스포츠뉴스 |저자 =김승현 |날짜 = 2014-11-06 |확인날짜 =2014-11-10 }}</ref> 이 작품은 방송국 사회부 기자들의 삶과 24시간을 함께 하며 전쟁같이 보내는 이들이 설레는 관계로 발전해가는 풋풋한 청춘을 그린 드라마로 박신혜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증후군인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최인하 역을 연기하였고, 실제 사회부 기자들의 실상이나 문화를 현실적으로 잘 반영해 호평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40904000373|title=Park Shin-hye confirmed to star in ‘Pinocchio’|publisher=The Korea Herald|accessdate=2014-09-08}}</ref><ref>{{웹 인용|title=Cultural Exports to Surpass 1 Trillion Won This Year|url=http://www.businesskorea.co.kr/english/news/lifestyle/8231-culture-trade-balance-cultural-exports-surpass-1-trillion-won-year|work=Business Korea|accessdate=2015-10-24|date=2014-12-26}}</ref><ref>{{웹 인용|title=‘Pinocchio’ sells distribution rights to China for record price|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411241750324868840_2|work=Kpop Herald|accessdate=2015-10-24|date=2014-11-24}}</ref> 박신혜는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과 베스트 커플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다. 또한 제51회 [[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인기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5년 연속 인기상 수상…대세 여배우 입증 [51th 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1208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이은지 |날짜 = 2015-05-26 |확인날짜 =2017-09-20 }}</ref> 같은 해 12월, 개봉 된 사극 영화 《[[상의원]]》에 왕비 역을 연기하였다.
         2016년 6월, 첫 방영 된 메디컬 드라마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에 캐스팅 된 박신혜는 학창시절 무기력한 반항아에서 사랑이 충만한 국일병원 신경외과 펠로우 의사로 성장하는 유혜정 역을 맡아<ref>{{뉴스 인용|제목=박신혜·김래원, '닥터스' 본방사수 독려 "오늘 첫방 아시죠?"|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10100156110010947&servicedate=20160620|출판사=스포츠조선|저자=정유나|날짜=2016-06-20|확인날짜=2016-06-20}}</ref> 한층 더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1.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따뜻한 감성 드라마로 호평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이게 바로 인간 승리…'공부의 신' 됐다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2374|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김수현 |날짜 = 2016-06-21 |확인날짜 =2016-06-21 }}</ref> 연출을 맡은 오충환 감독은 제작발표회 당시 박신혜에 대해 “촬영장 공식 명칭이 ‘우리 신혜’다. 오전, 오후로 미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배우를 잘 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도 좋고 인성도 좋다”고 말했다.<ref name="mbn" /> 박신혜는 연말 [[SBS 연기대상]] 장르&판타지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우며, 제53회 [[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는 20대 여배우 중 가장 주목 받는 한류 스타이자 대표하는 ‘흥행배우’로 성장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종영기획②] '3연속 흥행퀸' 박신혜, 믿고 보는 20대 女배우 우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807409|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최지예 |날짜 = 2016-08-24 |확인날짜 =2016-09-01 }}</ref><ref>{{뉴스 인용 |제목 =[SS이슈]'닥터스' 박신혜,안방 흥행여왕+20대 CF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934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조현정 |날짜 = 2016-07-12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11월 개봉 된 코미디 영화 《[[형 (2016년 영화)|형]]》에서 국가대표급 오지랖 유도코치 이수현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만났다하면 케미퀸…이번엔 조정석x도경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23745|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6-11-08 |확인날짜 =2016-11-10 }}</ref>
         박신혜는 또한 2011년부터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결연아동 아반네를 결연후원 해오고 있으며 팬들과 해외 빈곤국에 센터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팬과 함께 봉사활동 나선 별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196660|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김원겸 |날짜 = 2014-04-08 |확인날짜 =2014-04-09}}</ref> 국내외 팬들과 전 세계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호 센터로 서부 아프리카 가나 ‘신혜센터(Shin Hye Center)’가 2013년 11월 완공되어 5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기아대책 홍보대사 박신혜, ‘러브’ 특별행사 참여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5291628173210|출판사 =뉴스엔 |저자 =김찬미 |날짜 = 2014-05-29 |확인날짜 =2014-05-30}}</ref> 2014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189349|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이슈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42515493577725|출판사 =스포츠투데이 |저자 =김은애 |날짜 = 2014-04-25 |확인날짜 =2014-04-26 }}</ref> 또한 자신의 SNS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변경, 노란리본 캠페인에도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기부 이어 노란리본 캠페인 동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242446|출판사 =스포츠경향 |저자 =온라인뉴스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 }}</ref> 2015년, 박신혜는 ‘2015 Dream of Angel’ 타이틀로 아시아투어에 나섰고, 상해 팬미팅 수익을 [[NGO]] 단체 ’기아대책’의 별빛천사마을 만들기와 중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 ‘타소원’에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상해 팬미팅 수익금 전액 기부.."한류스타 이례적 행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217288|출판사 =이데일리 |저자 =강민정 |날짜 = 2015-03-30 |확인날짜 =2013-09-01 }}</ref> 4월, 박신혜는 큰 피해를 입은 [[네팔]] 국민들을 위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를 통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네팔 지진 희생자 위해 3천만원 후원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54697|출판사 =OSEN |저자 =정유진 |날짜 = 2015-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7월, 박신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혜센터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의 건립을 진행했다. 이에 박신혜와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센터건립에 앞서 필리핀 쌈빨록 지역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었고, 지난 3월 박신혜는 필리핀의 결연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아동결연센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센터 건립에 앞서 건축기념식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9585|제목=박신혜가 또… 필리핀에 아동복지시설 ‘신혜센터’ 건립|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홍세영|날짜 = 2016-07-22|확인날짜=2016-12-09}}</ref>
  • 박화요비 . . . . 5회 일치
         2018년, 이름을 다시 [[박화요비]]로 변경하여 신보로 컴 예정.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주로 음악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하였다. 공중파, 케이블, 지역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출연하였다. 당시에는 활동 시기에 긴 공기가 거의 없어서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윤도현의 러브레터'에는 많이 출연한 가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규 6집 앨범 녹음 중, 성대 종양 진단을 받아 성대 수술을 받고 잠시동안 공기를 가졌다. 그 이후로 화요비의 가창 스타일은 최대의 변화를 겪는다. 흔히 ''''성대 수술이 잘못 되어서 기량이 떨어지고 음색이 부드럽고 가는 미성(1~5집)에서 굵고 소울풀한 탁성(7집~현재)으로 변했다''''라고 생각하는데 명한 오해다.
         이렇게 독보적이고 유니크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왜 많냐고 하면, 음악 방송과 음원의 특성상 타이틀 곡에서는 가창력을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요비 본인이 레잇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좋은 평을 얻지 못한 이유도 크다.
  • 붐(연예인) . . . . 5회 일치
         2012년 7월 [[개코(다이나믹 듀오)|개코]]가 프로듀싱한 디지털 싱글 '놀게 냅둬'로 가수로 컴했다.
         아래에 언급된 일들이 생긴 뒤엔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역 후 첫 출연 당시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니, 전역하기 전부터 ~~이제 와서 보면 쓸데없이~~ 그의 전역일 카운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예능 입지를 확실히 정착시킨 상태에서 자리를 비워서 입대 후 그의 공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군에서 예능 아이템을 400개 이상 생각해 왔다.'로 개념 있는 군인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군대 다녀오더니 남성스러워졌고 멋져진 거 같다는 반응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일본인]] 패널 준코와 사귄 적이 있다는 고을 했다가 당사자인 준코가 미니홈피에 "당신이랑 사귄 적이 없는데요..." 라고 딱 잘라 말해서 완전 새가 되기도 했다.[* 일부에선 준코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단 둘이서 어디 놀러가고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붐은 그 정도면 사귄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는 설을 주장하고 있다.] 덕분에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선 연신 '준코! 준코!' 를 외치며 놀려대는 [[김구라]]와 [[신정환]]에게 [[관광]]타고 착잡한 표정으로 ''''제가 경솔했습니다'''' 라는 말을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준코 사건은 이때 개그 소재로 쓰이며 오히려 이미지 세탁에 도움을 준 편.
         참고로, 자기가 직접 이야기 하기전에 한 연예계 관련 기자가 냄새를 맡고 취재를 시작했으나 ''' 전진이 "다 지난 일이고 좋은 동생이니까 그냥 덮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서 기자 [[본인]]도 당사자가 저러니 취재할 수가 없었다고...[* 다만, 정황상 전진이 진짜로 이런 식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이후 논란이 일어나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랬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일로 [[문희준]] 뺨칠 정도로 붐의 안티가 대거 생성되었다.[* 근데 문희준과는 본질이 틀린 것이, [[본인]]의 경솔한 행동도 있지만 당시 "남들이 까니까 나도 깐다"는 식으로 이유없이 까이기도 했다. 또한 문희준은 붐처럼 명한 범법 행위를 저지른 적도 없다. 게다가 문희준은 무엇보다도 [[군대]]에 갔다 온 이후로는 호감남이 되었다. --근데 문희준도 [[결혼]] 과정에서 까발려진 일부 것들 때문에 또다시 엄청난 [[안티]]가...--] 신화창조들 중에서도 [[코스프레]]하는 붐을 본 사람이 있던 것이다. 물론 전진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문제 자체야 없었지만, 정작 모르는 사람들은...
         2016년 7월 10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흑논리 체스맨]]이라는 가명으로 나와서 듀엣 파트너인 [[장기알과 얼굴들]]과 패닉의 '달팽이'를 부른 뒤 다이나믹 듀오의 "죽일 놈"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몇 번 추리 시간에 그가 언급되었으며 김구라가 저렇게 노래 못 한다고 디스했는데 의외의 노래 실력을 보여주자 김구라만 뻘쭘해졌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연예인 판정단 대부분이 아이돌이나 젊은 뮤지컬 배우로 추측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멘붕했다. 이와는 별개로 그가 나온 것에 대해 [[네티즌]]들은 왜 나왔냐고 분노했으며 거기에다 PD들까지 같이 까였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5회 일치
          * 바깥에서 관전하던 이들은 누구도 랜길스의 행동을 수긍하지 못했다. [[네르슈 버밀리온]]도 "보드가는 대체 어찌된 건가"며 개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는 아예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벙벙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만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다. 시합이 있기 얼마 전. 야의 마안의 뒷공작을 감지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마법제는 "무의식의 배신"이라는 추론을 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배신자"는, 사실 자신이 야의 마안에 협조한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마법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역시 마법이 아니겠는가 의견을 냈지만 마법제는 마법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헤맸다. 어쨌든 그는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그걸 확인하려 했다. 전장에서 강한 마력을 상대로 싸우다 보면 무의식 중에 꼬리를 드러낼 거라면서. 마르크스는 마법제의 감은 잘 맞는 편이라며 "무의식의 배신자"에 대해선 납득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확인하는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마법제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지금와서 보니 어쩌면 랜길스가 그 무의식의 배신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의 마안이 심은 스파이는 스스로 자각없이 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무의식의 배신자"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게 마법인지 다른 어떤 수단에 의한 건지는 확신이 없다. 로열 나이츠 시합에서는 뭔가 꼬투리를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던게 마르크스의 회상으로 드러났다.
  • 블랙 클로버/63화 . . . . 5회 일치
         해저신전에 난입한 야의 마안과 싸우는 검은 폭우
          * 라크에 모래사장은 야의 마안이 도륙한 마도사가 즐비하다.
          * 베토와 야의 마안이 모래사장을 습격했다는 제보를 받고 마법기사단이 급파되었다.
          * 야의 마안과 베토가 침입했음을 알리고 자신은 갈 수 없으니 각자 알아서 해보라고 전달한다.
          * 시간은 무제한. 클리어 조건은 "야의 마안을 쓰러뜨릴 것". 클리어에 기여한 자는 무엇이든 들어준다.
  • 상디 . . . . 5회 일치
         상디의 요리 실력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싸움이 한바탕 끝나면 꼭 연회를 즐기는 루피 해적단의 특성상 수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먹어야 할 요리를 거의 단신으로 문제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요리의 퀄리티가 조금도 떨어져 보이지 않는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시 원피스 세계의 초인~~[* 이게 정말로 대단한것이 도우미없이 혼자서 100인분이 넘는 음식을 만드는 묘사가 있었는데 당시 몸상태는 '''늑골골절에 타박상에 실컷 두들겨맞아 죽을정도로 싸우고 나서 말이다!!!''' 물론 바로 하는것이 아니라 좀 회복하고 나서 하지만 그래도 너무 조금 쉰다.주 역할의 노동력에 대해선 [[요리사]]항목을 참조.]
         [[롤로노아 조로]]와는 상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하는 게 다반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영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상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상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상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흔히 2차 창작에서는 [[벽안]]으로 자주 묘사되지만 공식 설정 상으로는 그냥 까만 콩눈. 그런데 애니판에서 등장한 상디의 눈이 벽안이다! 정확히는 상디 in 나미의 눈이 갈색에서 벽안으로 바뀌었는데 눈동자가 워낙 작은 [[삼안]]이라서 벽안이 검은 콩눈으로 보였던 것이다.
         > 숙녀를 울리는 놈들보다는 배 낫지.
         > 여긴 전장이지. 요리가 맛있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식재료가 떨어지는게 가장 곤란하잖아. 일만 베리든 만 베리든 식재료를 조금이라도 낭비해서는 안돼. 어떤 식재료든 통째로 사랑을 쏟아 붇는 것이 요리사의 가짐이다. 숙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처럼. 어느 영감의 가르침이지.[* 나바론 요새에서 취사병들과 100인분 요리대결에서 사용하고 남은 재료들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고 한 말.]
  • 서신애 . . . . 5회 일치
         ||<#E2A6B4> {{{#ffffff '''출생'''}}} ||<(> [[1998년]] [[10월 20일]] ([age(1998-10-20)]세), [[강원도]] [[태시]] ||
         [[1998년]] [[10월 20일]] [[강원도]] [[태시]]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고, 태중학교를 졸업했다. [[2004년]]에 [[서울우유]] 광고에 출연하면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만약에 그녀가 우승했다면 최연소 1인 우승 기록(최연소는 3대 우승자 김준겸 - 당시 28세→방영 기준 '''만 18세 145일''')과 최단 1인 우승 공기 2가지 기록을 깰 수 있었다.(그 이전은 12~13대 우승자 사이-8회→만약 우승했다면 '''6회''')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98년 출생]][[분류:태시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2004년 데뷔]][[분류:아역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서울특별시/인물 . . . . 5회 일치
         * [[민우(퍼센트)|민우]] - 중랑구
         * [[다은]] - 영등포구
         * [[설양]] - 영등포구
         * [[용환]] - 영등포구
         * [[송경]] - 서초구
  • 손지창 . . . . 5회 일치
         * 1998년 MBC 《[[사랑밖엔 난 몰라]]》 ... 봉구 역
         * 1993년 KBS 《[[일요일은 참으세요]]》 ... 현우 역
         * 2012년 [[tvN]] 《지연의 피플인사이드》
         * 1993년 제29회 상예술대상 TV부분 신인연기상
         {{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
  • 승리(빅뱅) . . . . 5회 일치
         그러나 다른 형들에 묻혀서 그렇지 승리의 보컬도 꽤 뛰어나다.--두각을 보이는 노래의 스타일 자체가 형들과 많이 다르다-- '눈물뿐인 바보' 에서 고음도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TqUF3Hco0|영상]] [[태양(빅뱅)|태양]]과 [[대성(빅뱅)|대성]]의 진하고 바디감 있는 보이스가 노래의 중심을 잡아주고 킬링파트를 담당한다면 승리는 주로 화음이나 코러스[* [[https://www.youtube.com/watch?v=uFtM4m_D_bY|영상]]]를 담당해 노래에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변성기 전이나 후 둘 다 타고난 [[미성]]으로 팝발라드가 어울리는 편이다. 태양은 R&B / Soul, 대성은 Pop / Rock이 잘 맞는다면 승리는 어쿠스틱한 부드러운 장르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이다. 미성이므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강렬한-- 빅뱅 곡들에서는 승리가 주로 브릿지 부분을 부르면서 승리 특유의 맑으면서도 섹시한 음색을 세련되게 살린다.--그래서 파트가...--
          * 빅뱅의 화음 담당이다. 코러스를 다른 멤버들보다 확연히 많이 하고 콘서트에서도 아름다운 미성이 귀에서 아른아른하면 승리가 화음을 넣고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coIuMUSq_8|빅뱅 히트곡 매들리]] [[https://www.youtube.com/watch?v=v8vAFUcnELI|171231 고척스카이돔 LAST DANCE 라이브]] (5분 14초 즈음부터 코러스를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tM4m_D_bY|유투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mWr2Orx8vk|사랑먼지 메이킹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6RGVeMw7sRI|도쿄돔 승리 화음모음]] 이것들 말고도 굉장히 많다 --콘서트 영상들 대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승리의 목소리가 빠지면... (허전 그 자체)
          * 2018년에 군입대할거라고 하며 빅뱅의 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https://www.instagram.com/p/BgQgOA8Ax7w/|#]]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사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나올려고 그런거였다.--[* 만약 진짜 빅뱅의 공을 최소화하는게 목적이라면 대성의 입대 다음인 3월 혹은 4월에 입대했을 것이며 설령 솔로 앨범 활동은 못 하더라도 후자는 사실이다. 7월 29일 고슴도치 가면을 쓰고 나왔다.]
  • 식극의 소마/203화 . . . . 5회 일치
          * 센자에몬은 손녀가 즐겁게 홍전을 즐긴 것에 만족하며 상호의 기량을 파악한 거야 말로 홍전 최대의 성과라 평한다.
          >양 팀의 요리를 서로 먹어보는 거다. 그게 이 홍전 초전의 마무리다.
          * 에리나는 겸연쩍어 하며 좀 더 치리멘자코의 맛을 살리는 소스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것으로 충분히 멋진 요리였다고 추켜세운다. 셋은 에리나가 그렇게 즐겁게 요리하는건 처음이었다고 수군대는데 에리나는 자기를 놀린다고 발끈한다. 넷은 서로 싸우는 듯한 말투로 서로의 발상을 칭찬하며 티격태격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승부는 무승부지만 자기들이 의도한 바는 달성했다고 흡족해한다. 게다가 왠지 애초에 다퉜던 주제에 대해선 흐지부지 잊어버린다. 센자에몬은 이 승부의 진정한 의도는 각자의 역량과 기술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며 홍전의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센자에몬은 그런 의외의 발언을 하고 이것으로 이날의 홍전은 끝난다. 에리나는 센자에몬이 한 말에 느끼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 신은정 . . . . 5회 일치
         * [[2004년]] [[KBS2]] 주말연속극 《[[애정의 조건 (2004년 드라마)|애정의 조건]]》 ... 민주 역
         * [[2011년]] [[MBC]] 월화드라마 《[[계 (드라마)|계]]》 ... [[선화황후]] 역
         * [[2014년]] [[TV조선]] 주말연속극 《[[년의 신부]]》 ... 마재란 역
         * [[2017년]] [[MBC]] 월화드라마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금옥 역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5회 일치
          보스턴의 변호사.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인물 중 하나다. 아킬레스와는 아는 사이인 듯. 코너에게 여론을 조작해 악명을 숨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버지니아 출신 사냥꾼 겸 측량사. 보스턴에서 영국군의 악행을 보고는 애국자를 지지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전부 왕당파 지지자라고. 보스턴 남부에서 강제 징집 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면 영입된다.
          영국 군인. [[보스턴]]에 도착한 헤이덤을 항구에서 마중나왔다. 헤이덤의 계획만 믿고 군대 상관인 브래독에게 소똥(아마)를 던지는 충성스러운 부하. 시퀀스3 마지막에 템플 기사단에 입단한다.
          땅투기꾼 겸 대 원주민 협상가로 템플기사단원. 헤이덤이 보스턴에서 만난 두번째 조력자. 헤이덤이 얻은 열쇠가 모호크의 것임을 알려준다.
  • 예천군 . . . . 5회 일치
         지형에서는 대다수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도시들과 같이 [[소산맥]]이 있어서 산악지형을 띄고 있지만, 이 곳은 상대적으로 평지가 많다. 인구로 보자면, 70년대 중반에는 한 때 인구가 16만 명이 넘는 [[리즈시절]]도 있었지만 성장동력 부재와 [[농업]]종사 인구 감소로 인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 크게 감소했고 이후 90년대 중반부터는 6만 명에서 4만 5천여 명으로 더디지만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상북도|경북도청]] 이전으로 안동, 예천 접경지역에 [[경상북도청신도시]]이 조성되어 큰 성장동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드디어 13년만에 인구 50,000명을 넘기게 되었다.
         예천은 북쪽은 두대간(소산맥), 남쪽은 낙동강 본류에 접하며, 군 가운데로 내성천이 굽이굽이 흐른다. 풍양면은 예천군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이남에 위치해있는 면이다. 큰 강인 낙동강이나 내성천 주변에는 정작 제대로된 평야가 없고[* 풍양의 낙동강 연안에는 평야가 좀 있고, 예천읍 고평에는 내성천 옆에 큰 들이 위치한다.], 내성천의 지류인 한천의 하류(예천읍 일원)에 비교적 너른 평야가 있다. 대략, 북쪽일원 (효자, 은풍)이 산악지형, 중앙(예천읍, 유천, 개포, 용궁, 호명)이 평지 혹은 구릉성 지형, 동부(감천, 보문)와 남부(지보)는 산지가 많은 지형이다. 용문은 중앙(예천읍)에서 북쪽(효자, 은풍)이나 서북쪽(문경 동로면)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데, 중앙은 평지이고, 외곽이 산지인 전형적 분지 지형을 이룬다. 풍양은 예천군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이남에 위치한 면으로서, 북쪽과 남쪽은 산지이고, 중간이 평야이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이현준 군수 주도로 1981년 건립된 현 군청 청사 대신 신예천군청을 건립하고 이전하였다. 신부지는 예천읍 대심리 353번지, 구 엽연초생산조합 부지이다.[[http://www.ycg.kr/open.content/ko/administrative/news/headline/?id=986407f875b54364aa54a89bda326e86|#]] 2015년 말 착공, 2018년 2월 5일 준공되었다. 2015년 5월 설계 공모작을 선정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29/0200000000AKR20150529063100053.HTML|당선작 조감도]] 하지만 현 군청 청사가 위치한 노상리와 인근 노하리, 서본리, 동본리, 전리 주민들은 '''군청 이전 후 해당 지역 경제 위축'''을, 그외 지역 주민들은 '''부채 증가, 도청 이전과 연계한 각종 사업의 선행 추진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http://www.kbsm.net/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306&idx=118103|#]] 한편, 현 군청 청사가 위치한 예천읍내는 배산인 흑응산과 임수인 한천 간 폭이 좁은터라 더이상 확장가능한 공간이 없어서 예전부터 쭉 이전의 필요성이 강하게 피력됐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이전하게 되면 으레 [[도심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구 군청 청사 인근 지역 경제가 위축되지 않게끔 정책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 [[승홍]] :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대구 중구)
  • 오시만 . . . . 5회 일치
         1647년(인조 25)에 태어났으며 이조참판 만취 오령(吳百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증오단(吳端)이고 아버지는 호조판서 오정일(吳挺一)이다. 어머니는 나주 정씨로 사인(舍人) 정호선(丁好善)의 딸이며, 삼촌인 예조판서 오정위(吳挺緯)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양어머니는 박씨로 박유경(朴由慶)의 딸이다.
         [[1689년]] [[승지]]에 머물렀다. 그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복귀하자 [[1691년]]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로 전임되었다. [[1692년]] [[좌승지]]가 되었다가 우부승지 이현조가 오정위를 공격하자 피혐으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숙종이 반려시켰다.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되자, 바로 삭탈관직되고 유배당하였다. 지조가 깨끗하고 겸허 담하였으나 [[1694년]] 당화(黨禍)(갑술환국)를 입어 [[전라북도]] [[전주시|전주]], [[전라남도]] [[무안군|무안]] 등지로 10여년간 유배살이를 하였다.
         * 증조부 : 오령(吳百齡)
         * 장인 : 한두상(韓斗相), [[한준겸]](韓浚謙)의 증손, [[한겸]]의 종증손
         * [[한겸]]
  • 윤균상(1987) . . . . 5회 일치
         차기작을 포함한 4개의 작품을 연속으로 SBS와 함께 해 '스브스 직원' 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게다가 그 네편중 세편이 월화드라마이다. 스브스의 월화직원--. --그리고 드디어 [[역적 : 성을 훔친 도적|MBC에도 취직했다.]]--
         2017년에는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의 주인공 홍길동 역으로 열연을 펼쳐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역적 촬영을 하면서 연기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다. SBS 공무원에서 어느정도 해방된건 덤..... 인데 이후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 카메오로 출연하고[* 닥터스에서 같이 출연한 [[이성경]]과 커플 역할(...)로 출연했다.] 의문의 일승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공무원]] 클래스는 어디 안간다는것을 증명하고 있다(...)
         2017년 12월 30일, 2017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팀이 대상 수상자 [[김상중]]을 비롯해 총 8개의 트로피를 쓸어간것과는 대조적으로 온갖 고생을 다한 주연배우에게는 정작 상이 돌아가지 않아 많은 분노를 사고있다. 일각에서는 당시 [[SBS]] 작품에 출연중이어서 상을 주지 않은 것이라는 등 여러 추측이 나돌고 있는데, 연기대상에서도 언급 자체가 금지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으로 보면 윤균상이 MBC 드라마국에 미운 털이 박힌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3> [[2017년]] || [[MBC]]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홍길동#s-2|홍길동]] || 주연 ||
          * 출연작들 중 두 작품을 제외하고 전부 SBS 드라마. 이쯤되면 이미 훌륭한 [[공무원]]이다. 또한 데뷔 이래로 한번도 [[KBS]]에 출연한 적이 없다. --[[배우]] [[본인]]도 조금만 더 하면 SBS에서 [[연금]] 나오겠다는 [[드립]]을 쳤다. 이는 [[MBC]]에서 유독 자주 나오는 [[진희]]와 비슷한 편이다.--
  • 윤상현(배우) . . . . 5회 일치
         ||<bgcolor=#DCE4E9> '''데뷔''' ||<(> [[2005년]] [[이승철]] MV '열을 세어 보아요'[* TV 데뷔는 2005년 [[SBS]] 만장자와 결혼하기] ||
         한국나이로 33살 무렵인 2005년 TV 드라마 '만장자와 결혼하기'의 PD 역으로 처음부터 주연으로 데뷔했다. 연기에 연자도 몰랐던 윤상현의 눈빛이 마음에 든 강신효 감독은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 캐스팅 후 강신효 감독에게 3개월간 연기지도를 받았으나 연기가 심각하게 늘지 않았고, 최후의 조치로 [[박근형]]에게 연기수업을 보냈는데 너는 드라마 하지 말라고 엄청 혼났다고 한다. 자신도 연기자에 대한 꿈이 없었고, 본인의 실력을 잘알기에 강신효 감독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며 못하겠다고 했으나 감독님의 만류로 결국 드라마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기초짜인 윤상현의 --[[발연기]]--때문에 [[프랑스]] 로케이션 촬영분이 방영을 못할 정도로 너무 심각해서 재촬영을 위해 국내에 프랑스를 재현하기 위한 성(城)세트를 짓느라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었다고 한다.]이후 불꽃놀이, 독신천하에서 고만고만한 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2007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겨울새(2007년 드라마)|겨울새]]에서 주경우 역을 맡아 주목받게 되었다. 원래 이 드라마는 [[이태곤]], [[박선영(1976)|박선영]]이 주연이었으며 윤상현은 오히려 주연들보다 더 돋보이는 싸이코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찌질이 연기를 선보인 끝에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제목을 쪼다새, 찌질새 등으로 바꿔 부르게 할 정도였다.[* 원래 이 역할은 어두운 캐릭터였는데 윤상현이 감독과의 회의 끝에 어수룩한 마마보이 역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또 그전까지 가수와 자영업을 꿈꾸며 연기에 별로 관심없이 연기하던 그에게 진심으로 연기에 빠져들게 만든 작품이였다고 한다. 결국 이때의 호연으로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수목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 등에서 중요한 역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 1년여의 공기를 거쳐 [[시크릿 가든(드라마)|시크릿 가든]]의 [[오스카(시크릿 가든(드라마))|오스카]]역으로 재기 성공하였다. 가수 준비를 했었기 때문인지 후에 시크릿가든 OST에 참여하고 앨범도 냈다. 사실은 그 전에 내조의 여왕에서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불러 화제를 부른 바 있다. 이미 내조의 여왕 이후 일본에 가수 데뷔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 시크릿 가든 선택 이유도 이미 주연급이였지만 본인이 먼저 가수 역을 하고 싶어서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본인의 원래 꿈이 가수였던만큼 가수활동에 열정이 있는 것 같다.]
          * 처음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겨울새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중견배우 [[박원숙]]을 연기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다.[* 참고로 [[년의 유산]]에서 극중 박원숙의 아들로 비슷한 --찌질한 마마보이-- 배역을 맡았던 배우 [[최원영]]도 윤상현과 비슷한 이유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박원숙을 기억에 남는 최고의 파트너로 꼽았다.]
         || 2005년 || [[SBS]] || 만장자와 결혼하기 || 유진하 || 드라마 데뷔작 ||
  • 이성희(배구감독) . . . . 5회 일치
         외환위기의 여파로 고려증권이 해체된 [[1998년]]에는 [[독일]] 리그에 진출하여 바이어 04 부퍼탈에서 3년 동안 뛰었다. 그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이 [[김경훈]]의 상무 입대로 인한 공을 메우기 위해 콜을 보내면서 국내로 복귀했으며, [[김경훈]]이 제대한 후 2002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한유미]], [[장소연(배구선수)|장소연]], [[김세영(배구선수)|김세영]] 등 주전이었던 베테랑 선수들도 모자라 김회순[* 장소연과 김세영 대신 원포인트 서버로 썼던 선수.], 오현미[* 윙 리시버로, 이 선수의 여동생이 현대건설에서 리베로로 뛰던 오아영이다. --하지만 [[이호(배구선수)|이호]] 때문에 [[망했어요]]!--], 한은지[* 주전 세터인 [[한수지]]의 언니이자 센터.] 등 조커 역할을 하던 선수들도 대거 [[은퇴]]했다. 거기에 2011 - 12 시즌 엄청난 활약을 했던 외국인 선수 마델레이네 몬타뇨의 공을 전혀 메우지 못해 5승 25패(6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냈다. 팀 최다이자, 리그 역사상 최악의 기록인 '''20연패'''는 [[덤]].
         2014-2015 시즌은... '''말 그대로 2012-13 시즌의 재림'''. 뚜렷한 전력보강도 전무했고[* 다른 팀들이 FA 영입, 보상선수 이적 등으로 정신없이 오프 시즌을 보낸 반면 KGC는 조용한 것도 모자라 은퇴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김세영이 [[한유미]]와 같이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로 이적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겨우 1명([[문명화]])만 지명하는데에 그쳤다. [[안양 KGC인삼공사|농구단]]과 마찬가지로 KGC 고위층의 투자 의지가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떠돌 정도. --농구단은 [[양희종|누구]]한테 [[화폐|돈]]이라도 썼지...--], [[목화]]와 [[이연주(배구)|이연주]]의 기량 하락, 조이스만 바라보는 팀 공격진,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센터 [[이보람]]의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겹치며 --늘어나는 [[흰머리]]처럼--[* 실제로 인삼공사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흰 머리였으나, 2016년 1월 9일, 검게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패만 줄창 쌓이면서 8승 22패를 기록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점에서 2점 모자라 최하위에 그쳤다.
         급기야는 2월 1일, 혹사당한 헤일리가 어깨 부상을 호소하며 6일까지의 3경기에서 출전 명단에서 제외시켰는데, 헤일리가 결장했던 2월 1일 국내 선수들로 똘똘 뭉치자 [[수원 현대건설]]전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1승을 챙겼다. 헤일리가 부상으로 보름동안 휴식을 가진 사이 현대건설에서 이적한 [[김진희(배구선수)|김진희]]와 문명화의 활약이 돋보였고, --그의 양딸-- 이연주와 [[목화]]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나머지 두 경기는 모두 패했다는 게 함정.-- ~~헤일리 팔 돌려놔 [[개새끼]]야!~~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헤일리가 복귀한 2월 16일부터 20일까지 2연승 행진을 하긴 했지만, 나머지 3경기를 모두 내주며 결국 '''7승 23패, 승점 22점'''으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헤일리 복귀 후 여전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성희의 질책은 계속되었고, 문제의 3월 2일 경기에서는 2세트 범실에 [[빡]]쳤는지 3세트에선 헤일리를 아예 빼버리기까지 했다. 그 사이 헤일리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 방송에 포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진정시키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웜업존에 처박아두는 비정함을 보인 이성희는 더 이상 그를 코트에 출전시키지 않았고 팀은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헤일리의 어머니까지 직관을 왔는데도''' 말이다. 진짜 이건 '''사람이 아니라 [[정]]이다'''. 얼마나 감독의 질책이 누적되었으면 저렇게까지 안타까운 모습이 포착되었을까? 평소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성실한 선수에게 저런 되도 않는 [[군기]]를 시전하는 행동은 어떻게 봐도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이에 대한 답례로 자팀팬들에게는 물론이고 타팀 팬들에게까지도 대차게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 이장희 (시인) . . . . 5회 일치
         [[1900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남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남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영진, [[오상순]], 기만, [[이상화 (시인)|이상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 [[시 (문학)|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아(白啞). [[소설|소설가]], [[수필|수필가]], [[번역]][[문학가]], [[문학평론|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 [[시 (문학)|시인]] [[기만]](白基萬, [[1902년]] [[5월 12일]] 출생 ~ [[1967년]] [[8월 7일]] 사망. 아호는 목우(牧牛).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1924년]] 《[[금성 (잡지)|금성]]》 3월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 〈새한마리〉, 〈불놀이〉, 〈무대〉, 〈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의 시 작품과 [[레프 톨스토이|톨스토이]]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신민》,《생장》,《여명》,《신여성》,《조선문단》등 잡지에 〈동경〉, 〈석양구〉, 〈청천의 유방〉, 〈하일소경〉,〈봄철의 바다〉등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요절하였기에 생전에 출간된 시집은 없으며, 사후 [[1951년]] 기만이 청구출판사에서 펴낸 《상화와 고월》에 시 11편만 실려 전해지다가 제해만 편 《이장희전집》(문장사, 1982)과 김재홍 편 《이장희전집평전》(문학세계사, 1983)등 두 권의 전집에 유작이 모두 실렸다.
  • 이효정(남배우) . . . . 5회 일치
          * 2003년 SBS [[수탈출]] (왕만수 역)
          * 2010년 SBS [[제중원(드라마)|제중원]] (규현 역)
          * 2010년 KBS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 (추응 역)
          * 2018년 OCN [[작은 신의 아이들]] (도규 역)
          *1997년 일천사
  • 임채무 . . . . 5회 일치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에 (손불중앙길)는 손불중앙교회를 운영 중이나 빚이 수억 원이다.~~[[채무|이름]]이 씨가 되다~~ 두리랜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대인배]]. 놀이공원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그의 어릴 적 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고 하는데 수년간 계속 적자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으며, 연기 스케줄이 없을때면 항상 두리랜드에서 놀이기구 방송을 하거나, 팬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 주는 일을 지속한다고 한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74&aid=0000092844|관련기사]] ] 놀이기구 임대업자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1심은 원고패소, 2심은 원고의 항소 기각으로 끝났다고 한다.[* [[https://news.v.daum.net/v/20180824090104518|관련기사]]]
          * [[압구정 야]] - 장추장 역
          * [[뻐꾸기 둥지]] - [[철(뻐꾸기 둥지)|철]] 역
          * [[조선왕조 오년]] - [[강항]] 역
  • 장서희(1972) . . . . 5회 일치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데뷔 직후에는 '[[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뽀뽀뽀]]'의 뽀미언니(7대)를 맡는 등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으나, 그 이후로 인기를 얻지 못해 조연이나 단역 생활에 머물러야 했다. 《[[허준(드라마)|허준]]》이나 《[[태조 왕건]]》,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등의 인기 드라마에 조연으로 자주 출연했고, 특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에서는 '''[[폐비 윤씨]]'''역을 맡으며 열연을 펼쳤으나, 이후 작품 출연에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지금이야 조연 배우도 연기를 잘하면 ‘명품 조연’, ‘신 스틸러’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거기다 통보 없이 배역에서 잘리거나 감독에게 화풀이를 당하는 등 무명 배우의 설움도 끊임없이 겪어야 했다. 그래서 [[문화방송|MBC]] 지하에 화장실 하나를 정해두고 서러울 때마다 가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무릎팍도사]]'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
         하지만 《인어 아가씨》 이후의 국내 작품들은 결과가 영 좋지 못해 점점 하락세를 타게 된다.[* 《[[회전목마(드라마)|회전목마]]》는 용두사미 스토리로 큰 비판을 받았고, 영화 《[[귀신이 산다]]》는 [[차승원]] 원맨쇼(...)였던지라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특히 희대의 괴작으로 꼽히는 《[[사랑찬가]]》의 출연은 장서희의 인기에 직격탄을 날렸고, 결국 《사랑찬가》의 조기종영 이후 3년 동안 공기를 가져야 했다. 《사랑찬가》 이후 [[SBS]] 《[[그 여자가 무서워]]》, [[KBS 2TV]] 《[[내 사랑 금지옥엽]]》등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2014년 6월 3일, [[KBS2]] 일일 드라마 《[[뻐꾸기 둥지]]》로 4년 만에 컴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6&sid2=224&oid=079&aid=0002584796|#]]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친오빠를 죽음으로 몬 여자의 대리모가 되어 애를 낳아줬다가 다시 빼앗아온다는 내용(...). 다만 여기서 맡은 역할은 복수와는 거리가 멀고 [[혈연 때문에 개고생]]하는 쪽에 가깝다. ~~이걸로 대상 타면 막드 지상파 3사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다~~ ~~[[막장 드라마]]의 여신~~ 그러나 [[유동근|경쟁]][[조재현|자들]]이 워낙 강력한데다가, 작품 자체도 그닥이었던 탓에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시청률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후반에 동시간대 1위, 시청률 자체도 20%를 넘기며 호조를 보이긴 했지만, 드라마가 초반에 워낙 질질 끄는 전개를 보여줬는지라(...) 시청률이 14%까지 떨어지며 다소 위태스로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20%까지 올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장서희의 덕이었다’'''는 평이 많을 정도이니... --혼자 멱살 끌고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14 || KBS || [[뻐꾸기 둥지]] || [[연희]] || 24.2% ||
         || 1991년 || 제27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그 여자 ||
  • 정성주 . . . . 5회 일치
         | 수상 = 제50회 상예술대상 극본상<br />제36회 상예술대상 극본상
         * 제50회 [[상예술대상]] 극본상 ([[밀회 (드라마)|밀회]])
         * 제36회 [[상예술대상]] 극본상 ([[장미와 콩나물]])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흥채(배우) . . . . 5회 일치
         1987년 연극 '''끝없는 아리아'''를 통해 연극 배우로 데뷔하였다. 주로 연극 분야에서 활동하다 32세이던 1996년, SBS 드라마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서 주연 임꺽정 역을 맡아 무명을 씻고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으로 [[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단발성이긴 하지만 그간 [[일섭]]이 전담하던 [[우루사]] 광고까지 따냈다.] 큰 체구와 부리부리한 눈매 때문인지 사극에 출연할 때는 [[차지철|힘세고 무식한 개그 캐릭터]]나 우직한 장수 역으로 등장할 때가 많다.
          2006년 SBS [[연개소문(드라마)]] [[계]] 역
          2013년 MBC [[제왕의 딸 수향]] 비적 두목 역(특별 출연)
          2004년 [[투 가이즈]] 올
  • 지증왕 . . . . 5회 일치
         한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체구가 커서 배우자가 없었던 지증왕에게는 알맞은 배우자가 없었는데 신하를 보내 신라 국내를 수소문하던 중 [[연제부인]](延帝夫人)을 발견하여 배우자로 삼았다는 전설이 전한다.<span style="font-size:10pt;"><sup class="noprint">[<span class="plainlinks">[[위키과:출처 필요|출처 필요]]</span>]</sup></span>
         * [[제]]
         **[[제 동성왕|동성왕]] ([[479년]] ~ [[501년]])
         **[[제 무령왕|무령왕]] ([[501년]] ~ [[523년]])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진격의 거인/88화 . . . . 5회 일치
          * 마레 측의 연구로는 "유미르의 성"은 거인이든 아니든 "길"로 이어져 있고 그것이 바로 "좌표".
          그리샤는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크루거의 목으로 손을 올린다. 하지만 움켜쥘 손가락도 없다. 손에 감긴 붕대가 피로 물든다. 크루거는 손이 아플 테니 그만두라고 말하지만 그리샤는 "배려 고맙다. 남의 손가락을 싹뚝 자르는건 별 감흥도 없는 녀석일 것 같은데!" 라며 비꼰다. 그는 그가 더 빨리 거인으로 변했더라면 모두 거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체 뭘 위해서, 엘디아 복권파는 뭘 위해서 거인이 된 거냐고 따진다. 그런데 크루거가 털썩 주저 앉는다. 안색도 좋지 않고 숨도 가쁘다. 크루거는 왜 그러냐고 묻는 그리샤에게 "수천명이나 되는 유미르의 성의 손가락을 자르고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거인으로 만들어왔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전부 "엘디아를 위해서"라고 믿는다.
          아홉 거인의 힘은 계승자가 힘을 넘기지 못하고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혈연과 시간과 거리를 초월해서, 사용자가 죽은 이후 시점에 태어난 유미르의 성에게 갑자히 발현된다. 이것으로 볼때 유미르의 성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이어져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어떤 계승자는 "길"을 봤다고 증언했는데 엘런도 같은 것을 본 듯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길로 거인의 신체가 오는 것이다. 전해진 기억이나 의자도 그 길을 통해서 온다. 그리고 그 길은 모두 하나의 "좌표"에서 교차한다.
          기억 속의 크루거는 모든 거인과 유미르의 성이 그 좌표로 이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마레 당국의 "거인화학 연구협회"의 최신 연구결과다. 마레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연구를 쌓아놓고 엘디아인 이상으로 거인의 힘을 잘 알고 있다.
  • 최준석 . . . . 5회 일치
         그러나 2008년에는 주전 1루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225 .318. 361의 슬래시라인에 홈런도 67경기 6홈런에 그치며 대타요원으로 밀려났다. 이 해 두산 1루자리는 팀 타선의 최대 구멍이나 다름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장원진]]은 노쇠화로 이미 지난시즌부터 밀려나 2008년에는 1군 출전 자체가 없었고, [[안경현]] 역시 나이를 감안했을때 노쇠화는 필연적이었다. 결국 최준석이 활약해주고 업을 [[정원석]]이 맡아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최준석이 삽을 들어버렸다...], 최준석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봐도 될 상황.
         한편 [[NC 다이노스]]에서 은퇴한 [[이호준]]의 공을 채우기 위해 두산 시절 [[김경문]] 감독과의 인연도 있고 해서 영입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NC 측에서 영입할 계획이 '''없다'''며 일축했다. [[모창민]]이 2017년 입단 이래 최고성적을 내며 중심타선에 안착하여 굳이 최준석을 데려올 이유가 없고, FA 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 FA 영입은 없다고 공언한 터였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71207053039271|기사]] [[김태군]]의 입대로 포수 문제가 당장 시급한 상황임에도 FA [[강민호]] 영입이나 트레이드를 시도하지 않았다.
         스타팅으로 쓰겠다면야 최소한 딱 한 타석을 위해 선수 3명 투입하는 대참사는 피할 수 있고 실제로 여태까지는 주로 스타팅멤버로 썼고, 또한 전성기 최준석의 방망이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최준석은 해가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 노쇠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앞으로는 업 내지는 대타요원으로서 주로 기용될 것인데, 업요원에게 이런 로스터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게 다가온다.
          * 《[[2015년|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15. 3. 23.)》행사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s-1|주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배지현|사회자]]의 "[[홈런]] 세리머니[* 각 루를 차례로 돌고난 뒤 홈 베이스를 밟을 때 하늘을 향하여 두 번 손짓.]의 의미가 혹시 경기 끝나고 [[족발]] 2인분?"이라는 질문에...[*스포일러 "[[중학교|중]]1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이 [[홈런]]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대답하여 빵터졌던 장내를 일시에 숙연하게 하였다.] [[https://youtu.be/11ez9dbOz94|문이 불여일견(유튜브 링크)]] ...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 세리머니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407001&redirect=false|홍성흔과의 합작품.]] 원래는 홈런친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외부에 드러냄으로서 동료의 사기를 높이고 상대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고... 이후 세리머니 논란을 의식했는지 대외적으로는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2016년부터는 세리머니를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kbotown2&id=2203353|안 하기로 결정했다.]]
  • 츠라츠라 와라지 . . . . 5회 일치
          * 마츠다이라 사다노부 : 막부의 수석 로쥬로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보통 관직명인 '엣츄노카미'로 불린다. 실제 역사에서 전 시대인 '타누마 시대'의 중상주의 정책을 지화하고 검약을 강요하던 '칸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굽힘없는 완고한 성격 때문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어냈으며 급기야는 쇼군에게도 노여움을 샀다. 자신의 정책에 우회적으로 비판을 던져오는 하루타카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 능력은 인정하고 있다.
          * 관 : 후지와라 씨의 혈통을 지닌 다섯 가문 중 하나인 이치죠 가문 출신 공가(公家. 귀족). 형제가 없어서, 종제(從弟)인 이즈미(관의 모친이 이즈미의 모)가 수행 가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고 싶어하여 거짓 칭병(稱病)을 하였다. 조정과도 사이가 소원한 사다노부에게 반감을 갖고 있으며, 반대로 하루타카의 인품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 락 : 호노이케가 하루타카에게 바친 명마로 하루타카가 이름을 지어줬다.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자주 소동을 일으키곤 하지만 기품이 있고 영민하다. 하루타카와 큐사쿠의 보살핌을 받은 뒤부터는 큰 말썽을 부리지 않게 된다.
  • 킹덤/505화 . . . . 5회 일치
          * 사기가 엄청나서 성벽 너머로도 그 기이 전해지며 수시로 커다란 함성이 들여오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게 어려운 점. 둘은 양단화가 공성전을 이해 못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단화는 알겠다며 "우리가 성벽을 오를 테니 문이 열리면 비신대가 돌입해라"고 선심쓰듯 말한다. 사실 이들의 병전 능력은 검증됐지만 공성전 경험에 대해서는 둘 모두 확신이 없었다.
          현재 이 곳에는 수많은 산민족의 일파가 집결해 있다. 그 수는 여 부족에 이르며 수 년에 걸쳐 싸워온 사이가 나쁜 부족들도 참가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산민족이란 이름으로 한데 모이는게 가능한 것은 전적으로 양단화의 능력이다. 그녀는 "산계의 사왕(死王)"이란 이름으로 경외의 대상이며 모든 산민족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그녀가 있어 산민족은 하나로 뭉쳤다고 할 수 있다.
          >평지에 보여줘라 의 산계 전사들아!!
  • 킹덤/517화 . . . . 5회 일치
          * 그는 끝내 한단군을 움직이는데 반대하는데 한단성만 틀어막으면 다른 곳이나 성들이야 어찌되든 자기만은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
          * 이목은 업성이 떨어지면 곧 수도 한단에도 적의 칼끝이 닿을 거라고 진언한다. 그러나 도양왕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설사 그래도 한단성이 함락될 일은 없고 원래는 업도 그 정도 수준의 난공불락의 성이나 자신의 부 [[조계]]이 어리석게도 난민을 수용하다 그리된 거라고 빈정거린다.
          >나라가 어쩌고 성이 어쩌고 뒷일따윈 내가 알게 뭐냐?
          그런 조나라에도 한줄기 희망은 있었다. 이목의 앞에 나타난 조나라 태자 "가". 그는 이목의 발빠른 행보가 이미 수 천의 조나라 성을 구했다고 치하한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되도록 한단군을 움직이지 않는 자기 아버지 도양왕의 실책도 알고 있어 그를 대신에 이목에게 사과한다.
  • 한상덕 . . . . 5회 일치
         *[[샤베르대령]](SBS) - 페로 작([[앙드레 뒤솔리에]])
         * 반포골프화점
         * [[롯데주류]] (베리라인골드,화수복,화선물세트)
         * [[부산화점]]
  • 함인섭 . . . . 5회 일치
         [[1907년]](광무 10년) [[5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함병석과 진주 강씨 강리가(姜利百加)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인이었으나 뒤에 인섭으로 고쳤다. 함병석은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던 [[함태영]]의 본처 밀양 손씨 소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였다. 형제로는 남동생 함의섭이 있었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기독교]] [[장로]]로도 활약하였다. [[1970년]]에는 [[국민훈장]] 동장을 받고 [[197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그는 재산을 마련하지 못해 자기 집이 없었고, 일부 제자들과 교직원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그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1986년]] [[9월 15일]] 오전 10시 [[강원도]] [[춘천시]] [[춘천의료원]]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 [[1970년]] [[대한민국의 훈장#국민훈장|국민훈장 동장]] 수훈
         * 어머니 : 강리가(姜利百加, [[1890년]] [[2월 10일]] ~ ?), 강성흠(姜星欽 또는 강종근(姜種謹))의 딸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942224 두산대과사전 - 농학박사 함인섭 前 강원대학교 명예총장]
  • 허안나 . . . . 5회 일치
         * 곡-끝까지간다 2015.06.30
         * 곡-끝까지간다 2015.07.07
         * 2015 상예술대상참석
  • 현이와 덕이 . . . . 5회 일치
         1983년 10월 이혼을 하게 된 장덕은 가수 생활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 · 오빠 ·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고국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서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모 한장만을 남기고 한국으로 귀국해 한남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ref>[http://www.mbn.co.kr/pages/vod/programContents.php?progCode=613&menuCode=3439 아궁이 65회 - 파란만장 가족사] "MBN 2014년 7월 11일 방송 참조"</ref> 그리고 한달 뒤(11월) 그녀는 어렵게 서라벌레코드와 3년간 1000만원이라는 금액에 전속계약을 맺고(그녀는 오랫동안 공을 가진 스타였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는 계약이 쉽지 않았다.) 타이틀곡 <날 찾지 말아요>를 비롯 <안녕히 계세요>, <가을에 만난 소녀>, <철없는 안녕>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1집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날 찾지 말아요>가 발표한 지 6달 만에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집계 한 달(1984년 5월) 동안 방송을 가장 많이 탄 노래 부문 3까지 오른다. 많은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장덕으로서는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 본인이 당시 방송을 꺼려한 탓인 지는 몰라도 방송을 가장 많이 탄 가수 부문에서는 순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이사이(1984년 2월) 장덕은 새 음반을 내는 자매듀엣 국보자매에게 <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를 작사/작곡하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국보자매는 현이와 덕이, 그리고 장덕에 의해 각각 발표된 바 있는 <끝없는 마음이야>, <첫사랑>까지도 리메이크 하여 자신들의 새 음반에 수록한다.
         1984년 10월 [[이미례]] [[감독]], [[김진아]] · [[남궁원]] [[주연]]의 개봉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장덕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를 비롯 <사랑의 꿈>, <사랑과 인생>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조용한 편이었다. 이에 장덕은 솔로 활동에의 어려움을 느끼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게 된다. 어린 시절 뭣 모르고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그 때와 한 동안 공기를 가졌다가 성인이 되어 복귀, 겪게 되는 지금의 연예계는 너무도 달랐다. 혼자 라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 또한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어요"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현이와 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된다. 장덕의 볼 위에 장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덕은 오빠가 너무 고마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오빠에게 차마 부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남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남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반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남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순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남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치미]] (국보자매) (1985)
  • 현정건 . . . . 5회 일치
          | 총리 = [[이동휘]] <br/> [[이동녕]] <br/> [[신규식]] <br/> [[노린]]
         [[1922년]] 동생 현진건이 [[홍사용]] · [[박종화]] 등의 문인들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문예지 《[[조 (잡지)|조]]》 창간호에 [[이광수]]의 악부(樂府)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현진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한국의 꽃봉오리 같은 젊은 청년들이 발표하는 깨끗한 《조》지에, '귀순장'을 쓰고 항복해 들어간 이광수가 동인이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빨리 동인에서 제거하라"며 항의했고, 결국 《조》 동인에서 이광수는 빠지게 되었다.
  • 홍대광 . . . . 5회 일치
         * 《[[곡 끝까지 간다]]》 ([[JTBC]], 2015년)
         * 《홍대광 단독 콘서트 - 6월의 첫 고》 (올림픽공원 K아트홀, 2014년 6월 14-15일)
         * 《2014 홍대광 콘서트》 (암아트홀, 2014년 12월 24-25일)
         * 《2015 홍대광 콘서트 - 한여름 밤의 고》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2015년 6월 27-28일)
  • 황정민(남자배우) . . . . 5회 일치
         [[샘컴퍼니]]라는 연예 기획사 사장이다. 연예인 육성, 뮤지컬 제작 등을 다 도맡아 하는 듯. 소속 연예인은 [[평양성(영화)|평양성]]에서 [[연개소문]]의 막내아들로 나왔으며 [[미생(드라마)|미생]]의 장기역인 [[강하늘]], 영화 [[파수꾼(영화)|파수꾼]]에 희준으로 나오는 [[박정민(배우)|박정민]][* 뿐만아니라 [[댄싱퀸(영화)|댄싱퀸]], 들개에서도 나왔다.], [[양꼬치엔 칭따오]]의 [[정상훈]], 주희, 최우리, [[한재영(배우)|한재영]][* [[강남1970]]를 보고 황정민이 직접 캐스팅했다고 한다.]이 있다.
         ||<:>2007||<:>[[열한번째 엄마]]||중||조연||33만명||<:>-||
         ||<:>2004||<:>[[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 사장||특별출연|| || ||
         ||2009||[[KBS]]||[[그저 바라보다가]]||구동||주연||15.0%||
  • AFC 회원 랭킹 . . . . 4회 일치
         여기에서 말하는 점수와 순위를 통해 아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축구협회의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서아시아 계열과 동아시아 계열간의 우위를 명히 나타낼 수는 없다.
         여기에 대해 동아시아쪽이 서아시아보다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는게, 2016년 시점에서 바라보면 명히 서아시아는 동아시아보다 ACL 우승횟수가 떨어진다.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ACC)이 ACL로 개편된 이후의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면 서아시아는 2015년까지 4번 우승, 동아시아는 9번 우승이다. 누가봐도 명히 클럽 성과가 동아시아쪽이 더 치열하고 강한데다가 2013시즌부터는 자꾸 서아시아가 우승을 못해 흥행이 저하될 우려가 보이는지 토너먼트전에서 동서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기존 방식을 결승전에서만 동서끼리 교류가 가능한 구조로 바꿔버린다. 이러다보니 2015시즌 AFC 회원 순위를 보면 1위가 대한민국인 건 그간의 성적을 미뤄 봤을 때 논란이 적을 수 있으나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중국이 사우디, 이란, 아랍에미레이트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는 상황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사우디는 번 양보해서 그래도 지난 4년동안(2012~2015) ACL 준우승을 두번 차지한 적이 있으니 그럭저럭 인정할 수 있겠고, 이란은 국가대표가 준수하게 활약하고 있어 국대점수를 최대로 받았으니 이 부분도 충분히 납득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주와 중국이 아랍에미레이트보다 낮게 나오는 점수는 그 누구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2013시즌, 2015시즌 ACL을 우승한 중국과 2014시즌 ACL을 우승한 호주의 2015년 클럽 점수가 각각 46.793에 41.273이다. 반면에 동 기간동안 준우승 1번밖에 없는 아랍 에미레이트는 54.503이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4회 일치
         초반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절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상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상태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장미전쟁이 끝나면 정부체제가 고유 정부체제인 잉글랜드 왕정(English Monachy)으로 바뀐다. 효과는 행정 22렙이후에 뜨는 입헌 군주정이랑 비슷한 편.그외에 영토상황으론 년전쟁도중이란걸 표현하기 위해 프랑스지방에 영토를 들고 있으며, 포르투갈이랑 시작시 동맹상태다. 근데 문제는 잉글랜드가 날 힘을 써봐야 프랑스 육군을 절대 못이긴다는거(...) 플레이방식이 둘로 나뉘는데, 우선은 대륙의 모든 영토를 프랑스에게 팔고(...) 조용히 식민지 개척이나 준비하는 것과 속전속결로 프랑스를 처리해서 유럽 최강으로 나아가는것.
         플레이어가 잡을경우 프랑스는 강하긴 하지만 혼자서 어떻게 하기엔 매매우 힘든 국가가 된다. '''적당한 동맹이 없으면 년전쟁도 혼자서 못끝낸다'''. 그러므로 좋은 동맹이 필요한데, 오스트리아(가끔 라이벌 지정을 할때가 있다.)는 부르고뉴 상속이벤트전 훌룡한 동맹이 되어주며, 그외에 사보이등의 이탈리아 소국 하나정도를 추천. 부르고뉴지방을 상속받고 육각형[*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보고 말하는 말.]을 완성한 프랑스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깡패가 된다. 스페인은 포르투갈까지 합쳐도 육각형 프랑스를 못이기며, 오스만은 너무멀고,[* 오히려 동맹으로 쓰는게 더 낫다.] 오스트리아역시 오스만과 동맹해둬서 견제해두면 된다. 다만 1.17패치로 오스트리아와 역사적 라이벌이 된건 조금 주의. 전에는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게 거의 다 ~~녹색 하트~~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기에 오스트리아와 동맹하고 부르고뉴를 패면서 이베리아반도로 마음편히 나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힘들어졌다.
  • 강동우 . . . . 4회 일치
         2010시즌에 문제가 참 많아졌는데 일단 [[외야수]]로서 생명인 수비범위가 무진장 좁아졌다. 게다가 업 플레이에 소홀하고[* 2010년 9월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김다원]]이 [[우익수]] [[이양기]]쪽으로 안타를 쳤고 [[이양기]]는 이 공을 잡으려다가 실패한 뒤 스텝이 꼬여서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이 황당한 장면에 한화팬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리고 [[김다원]]은 그대로 누를 돌고 돌아 홈으로.''' 이는 [[김다원]]의 '''데뷔 홈런'''이었다.(…) ~~크보 역사상 데뷔 홈런이 인사이드 파크 홈런인 것은 사상 최초.(……)~~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건 [[김다원]]항목 참조][* 그러나 강동우가 업을 게을리 했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강동우는 분명 뛰고 있었고, [[오선진]]이 간 것은 애매한 뜬공을 잡기 위한 것이었으며 [[오선진]]이 가는 게 더 나은 위치여서 간 것이다. 강동우를 깔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 모든 게 작년에 비해 턱없이 좁아진 수비범위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지나친 비난이다.] 텍사스 안타성 타구를 잡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이대로라면 한화표 노장 선수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듯하다는 둥 팬들의 비난을 샀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의 재기를 도운 [[김응용]] 감독을 만나 의지를 불태웠으나, 결국 그 해가 [[한화 이글스]]에서 마지막 해가 되었다. 시범경기 11경기에 출장해 16타수 5안타 타율 .313 2타점 2볼넷 출루율 .389를 기록해 다시금 KBO 최고령 1번 타자의 재림을 노리고 있었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발가락 부상(골절)을 당해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012 시즌 종료 직후 가을 마무리훈련부터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빠짐없이 훈련을 소화했기에 더욱 아쉬운 부상이었다. 다행히 1번 타자의 공은 [[이대수]]가 나름대로 메워주고 있지만 팀이 개막 직후부터 연패 수렁에 빠져있고 마땅한 좌타자 요원도 없는 상황이라 그의 공이 더욱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 강유미(코미디언) . . . . 4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예능상'''}}} ||
         [[안영미]]와 주로 세트로 다녔으며[* 나이도 같고 기수도 같음. 생일은 6개월 정도 빠르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건장한 외모 때문에 주로 [[남자]] 역을 맡았다. [[보이시]]한 이미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있었던 모양으로, 몇 년 전 한겨레 21 특집 '킹콩걸이 뜬다'에서는 "[[여고]]를 다녔는데 몇 번 고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고했다.
  • 고인범 . . . . 4회 일치
         180cm 훤칠한 키에 흔히 등장할때마다 발머리 또는 은발머리이다.[* 단 사극은 제외][* 사실 카리스마 이미지와 부합하여 은발과 발은 트레이드 마크이자 상징이다. 근데 새치염색하면 사람들은 그를 못 알아본다고...]
          * 2011년 MBC 월화드라마 [[계(드라마)|계]] - [[연개소문]]
  • 김경준(축구선수) . . . . 4회 일치
         || 출신학교 || 반야월초등학교(2006~2008) [br] 암중학교 (2009~2011) [br] [[신갈고등학교]](2012~2014) [br] [[영남대학교]] (2015~2016) ||
         [[박주영]]이 졸업한 반야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암중학교를 거쳐서, 축구 명문 [[신갈고등학교]]를 거쳐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이끄는 영남대로 진학했다.
         반야월초등학교 시절에 수비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가끔 공격수를 보기도 했는데, 암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고 조남의 감독이 포지션을 물어보자 공격수라고 대답했고, 공격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2학년은 경기 출전보다는 체격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키가 20cm나 성장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 경기를 출전했고, 18골을 기록했다.
         신갈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처음 진학한 학교는 암고등학교였다. 하지만, 입학 후 1년만에 팀이 해체되었고, 용인축구센터를 떠나기 싫었던 김경준은 신갈고등학교로 전학갔다. 김상진 감독 덕분에 일찍 적응했다고 한다. 신갈고 시절에는 [[http://www.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1|4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신갈고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라고 불리었다. 3경기 7골을 득점하는 등 엄청난 골 결정력을 선보였으며, 고교 무대에서 주목받는 스트라이커였다. 결국 9경기 연속 골 기록을 세웠고, 14골을 넣었다. 이 때,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김경준을 보고 갔었고, 결국 김경준은 영남대로 진학하게 된다.
  • 김규철(배우) . . . . 4회 일치
          * [[2001년]] KBS2 주말연속극 《[[동양극장]]》 - 양명 : [[배우]] [[양택조]]의 아버지인데, 극에선 [[본명]]으로 안 나오고 '양천명'이라는 [[가명]]으로 출연하였다. 마찬가지로 양택조의 어머니인 문정복 역시 본명으로 안 나오고 '문정현'이라는 가명으로 나왔었다.
          * 2010년 말 ~ 2011년 초 [[프레지던트(드라마)|프레지던트]] - '''[[찬기(프레지던트)|찬기]]''' --[[최수종]]과 또 엮였다.--
          * 2016년 MBC 미니시리즈 [[쇼핑왕 루이]] - 선구
  • 김민좌 . . . . 4회 일치
         | 출생지 = [[강원도]] [[태시]] 문곡소도동
         | 학력 = [[태산골식당]]
         * [[태산골식당]]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
  • 김양 (1953년) . . . . 4회 일치
          | 친인척 = [[범 김구|김구]](친조부) <br/> [[임학준|임학규]](외조부) <br/> [[김진 (1949년)|김진]](형) <br/> 김휘(남동생) <br/> 김미(누이동생) <br/> 김윤(남동생)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범 김구]]의 손자이며, [[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공군참모총장]]·[[대한민국 건설교통부|건설교통부]] 장관·[[유신정우회]] [[국회의원]]과 [[중화민국|중화민국 타이완]] 주재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대사]] 등을 지낸 [[김신 (1922년)|김신]]의 둘째 아들이고, [[김진 (1949년)|김진]]의 동생이기도 하다. 본관은 [[구 안동 김씨|안동]](安東)이다.
         ** 부 : [[김인 (1917년)|김인]](金仁, [[1917년]] [[11월 12일]] ~ [[1945년]] [[3월 29일]])
         ** 모: [[안미생]](安美生, [[1914년]] ~ [[2007년]])
  • 김청(1962년 6월) . . . . 4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싱글로 사는 덕분인지, 스텝과 동료 배우들에게 많이 베푸는 배우로 유명하다. 드라마 촬영 때마다 어머니 김도이가 몇 인분의 도시락을 준비한다거나, 스텝들에게 통크게 몇 개의 담요를 쏜다거나 등 아낌없이 베푼다고 본인도 인정한 적이 있다.
  • 김태희 . . . . 4회 일치
         이 드라마를 통해 자리를 확고히 한 김태희는, 2006년 제작비 130억,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 《[[중천 (영화)|중천]]》에서 [[정우성]]과 함께 공연하며 소화 역할로 첫 장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ref name="김태은"/> 이 영화로 [[상예술대상]],<ref>최지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30&aid=0000001410 '국내' '이 상을 <하얀거탑> 폐인 분들께 바칩니다'] 매거진t 2007년 10월 4일</ref> [[대종상영화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3&aid=0000063392 ‘가족의 탄생’최우수작품·시나리오상…대종상 이변] 국민일보 2007년 6월 9일</ref> 그녀는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ref>{{웹 인용|url=http://www.blueaward.co.kr/bbs/board.php?bo_table=awards_news&sca=28|제목=제28회 청룡영화상|출판사=청룡영화상|확인날짜=2014-02-27}}</ref> 하지만 연기력에서 “대사 소화가 부족하고 표정연기가 풍부하지 못했다”, “평면적 연기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ref name="김태은"/> 《[[중천]]》은 관객수 150만 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도 실패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중천' 참패, CJ 주가 폭락|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0319790|출판사=뉴시스|저자=김용호|날짜=2007-02-19|확인날짜=2014-03-05}}</ref> 2007년에는 영화 《[[싸움 (영화)|싸움]]》의 윤진아 역할을 연기했다.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공연하며 연기력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보다 확실히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으나,<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기력과의 싸움에서 '웃다'|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g_serial=299002|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정명화|날짜=2007-12-05|확인날짜=2014-03-05}}</ref> 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ref>{{뉴스 인용 |제목=톱스타 마케팅, 더 이상 안 통한다!|url=http://osen.mt.co.kr/article/G1010070161|출판사=OSEN|저자=이명주|날짜=2010-10-07|확인날짜=2014-03-05}}</ref>
         2004년 김태희는 헤럴드경제 기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6&aid=0000148878 'I Love Companies'`기업사랑 캠페인` 본궤도 올랐다] ''헤럴드경제'' 입력일자 2004-09-21</ref> 2005년에는 남편 [[이완 (1984년)|이완]]과 함께 수호천사로 위촉돼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스위스]]에서 친선문화대사로 선정 돼 "독도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리메이크 앨범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ref name="광주일보"/><ref>[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SWISS FRIENDS 2005] {{웨이|url=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date=20110813103724 }}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ref><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0217085145988&p=yonhap 김태희, 스위스친선문화대사 선정] 연합뉴스 입력일자 2005.02.17</ref> 이후 2007년 유방암의 위험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홍보대사로 활동을 했고, 7월 22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ref>[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419123412761&p=SpoChosun 김태희, 유방암 조심하세요 핑크리본 홍보대사] 스포츠조선 입력일자 2007.04.19</ref> 또한 12월에는 [[BC카드]]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밥차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밥차 배식 봉사활동 펼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0027316|저자=탁진현|출판사=[[네이버]]|날짜=2007-12-05|확인날짜=2011-09-15}}</ref> 김태희는 2005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도 난치병 어린이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계속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난치병 어린이들과 따뜻한 만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6672|저자=김가희|출판사=[[네이버]]|날짜=2006-05-16|확인날짜=2011-09-15}}</ref>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난치병 아동들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앨범에 참여했는데, "Make-A-Wish"를 녹음했다.<ref>조성훈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배우 김태희,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음원 참여] {{웨이|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date=20120316165433 }}, 《[[가온 차트]]》, 2011-09-15 작성. 2011-09-15 확인.</ref>
         김태희는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남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난 적은 거의 없고,<ref>{{뉴스 인용 |제목=장동건·김태희, 스타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이유?|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19696|출판사=[[SBS 뉴스]]|날짜=2008-05-22|확인날짜=2013-09-12}}</ref> 지금까지 연애 경험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애경험 고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104030858401119|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이은지|날짜=2011-04-03|확인날짜=2013-09-12}}</ref> 2003년 인터뷰에서 [[천주교]] 신자여서 보수적이라며 [[혼전 성관계]]와 [[낙태]]는 절대 안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가 생각하는 ‘낙태’와 ‘혼전순결’은…|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3371|출판사= 뉴데일리|날짜=2012-12-28|확인날짜=2013-09-12}}</ref>
  • 날조트랩 -NTR- . . . . 4회 일치
         코다마 나오코(コダマナオコ)가 「코믹 유리히메(コミック百合姫)」에 연재중인 --[[네토라레]] 합만화.
         중1때 [[농구부]]에 들어갔다. 이 때 호타루가 남자 선배의 고을 받고 사귀게 되자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타케다와는 농구 연습을 함께 하며 친해졌다.
         어릴 때 남자들에게 자주 울려졌다. 과거부터 유마 이외의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아서 주변에서는 고립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유마가 농구부에 들어가면서 함께 보내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자, 빈정거리는 듯이 3학년 선배 남자의 고을 받아들이고 사귀게 된 적이 있다. 중1때 남자친구를 만들었고, 이후로도 자주 남자친구를 갈아치워서 주변에서는 [[빗치]]로 여겨지고 있다.
         [[분류:코믹 유리히메]][[분류:합물]]
  • 니세코이/223화 . . . . 4회 일치
          * 루리가 마이코에게 고한다.
          * 원래는 고할 생각도 없었다가 이치죠에게 등을 떠밀려서 하게 됐는데, 지금은 그렇게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루리는 지금이라면 자신도 그 심정을 알거 같다며, 자신도 곧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하겠다고 한다.
          * 의외로 루리가 고. 발암만화에서 항암제 같은 역할을 했다.
  • 대구광역시/인물 . . . . 4회 일치
         * [[김근(프로게이머)|김근]] - 동구(대구)
         * [[정현]] - 서구(대구)
         * [[성현]] - 중구(대구)
  • 로베르 기스카르 . . . . 4회 일치
         기스카르를 유명하게 만든건 1053년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교황청에서 저지하려했던 치비타테 전투에서였다. 치비타테 전투에서 기스카르가 이끄는 좌익은 전투 초반 아베르사 작 리카르도가 이끌던 상대 좌익을 성공적으로 격파했고, 옹프루이가 이끌던 중군이 교황령의 중군을 성공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자 즉각 좌익을 그곳으로 투입시켜, 전투의 승기를 잡는데 크게 공헌했다. 치비타테에서의 이러한 영웅적 활약으로 인해 기스카르는 1057 4월에 옹프루이가 죽자 그의 작위였던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작위를 상속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기스카르는 그해 12월에 콘스탄티노플에 대사로 퐁투아즈 작 라뒬프를 보냈는데, 표면적으로 그가 온 이유는 니케포로스 3세에게 헬레나에게 만족스러운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기위해서였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수도에 있던 노르만 용병들의 세력을 결집시켜 원정에 끌어들이는것과, 당시 내무대신이자 실세로 떠오르던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예상치못하게 알렉시오스가 니케포로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해 알렉시오스 1세로 즉위해버렸고, 노르만족들을 결집시킬 역할을 했어야될 라뒬프 작은 오히려 알렉시오스에게 감화되어서 그와 우호관계를 구축하자는 기스카르의 의도와는 정반대인 답을 해버린다(....) 라뒬프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스카르는 라뒬프를 ~~갈군~~호되게 질책한 뒤, 브란디쉬와 오트란토에 이미 모여있던 그의 원정군들을 아드리아해 너머 비잔티움령에 보내려 했다.[* 이미 아드리아해 너머에는 그의 장남 [[보에몽 1세|보에몽]]이 이끄는 선봉대가 상륙해 있던 상황이었다.]
  • 리그컵(K리그) . . . . 4회 일치
         두번째 대회에 좀 나아졌냐면 또 그것도 아니라서... 리그가 끝난 10월에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상으론 제법 널널했을텐데도 각 팀은 1주일에 2번씩 경기를 치루는 하드코어한 일정을 보낸다. 이쯤되면 운영방식에 대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을 지경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K리그의 상금과 위상이 리그컵을 명히 넘고나서부턴 각 구단이 2군리그와 비슷하게 취급하게 된다.
         KFA가 구단들과의 의견조율이 실패하여 리그컵과 관련한 협조를 구하지 못했던 것도 리그컵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구단들은 10만 달러를 전액 상금화를 생각하였는데, KFA는 이걸 일부만 상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KFA에서 아마추어를 지원할 자금으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어서 1회 아디다스컵은 "상금은 있는데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당초에 이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 이유가 구단들과 제우교역측과의 논의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50363|스폰금액은 전액 상금으로 쓸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KFA가 이를 계약서를 찍을때 "협회에 일임함"으로 이야기를 바꿔버려서 협회와 구단사이에 골이 생기게 만들어버렸다. 해당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아디다스컵의 창설을 주도한 건 협회가 아니라 구단이며, 이는 구단의 수익을 위한 상금배분을 협회가 개입함으로써 제대로 수틀린 것. 제우교역측은 명히 "프로구단을 위해 사용하길 바람"인데 KFA는 프로리그를 위한 돈을 멋대로 아마추어 사업에 쓰겠다고 나섰으니 구단들이 이 대회를 심정적으로나마 보이콧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아디다스컵이 처음 열렸던 시점만 하더라도 K리그와 사실상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과거 한국프로축구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리그컵이 처음 열렸을 당시에는 정규리그보다는 아디다스컵 관련기사를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10만달러 규모의 상금은 당시 국가대표 대회로 간주할 수 있었던 대통령배 대회를 빼면 축구계 최고액이었으니 당연히 화제를 몰고 올 수 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상황. 물론 이건 총 상금규모고 실제로 우승팀은 3000만원, 준우승팀은 1500만원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히 K리그와 차별할 수 있는 위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K리그도 상금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AFC 챔피언스 리그]]의 개편과 함께 FA컵의 위상이 리그컵을 명히 넘어서게 됨은 물론이고, 이 두 대회의 흥행과 함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리그컵을 구태여 운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최초에 리그컵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한국프로축구의 발족과 함께 늘 대두되었던 부족한 경기수를 채우고 흥행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리그컵이 탄생하고 10여년이 지나니 팀 수가 3배가량 늘어나 경기 수가 부족하지도 않고, 상금은 그다지 오르지도 않아 팀이 리그컵에 참가할 때마다 주전선수를 대폭 기용하지도 않아 흥행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오히려 비주전 선수들은 R리그에서 뛰면 되기 때문에 리그컵이 초창기에 갖고 있던 이점들을 하나 둘씩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리그컵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외면받고 있었던 것도 사라지게 된 이유가 되었다.
  • 마기/318화 . . . . 4회 일치
          * 귀왜국 야마토 타케루히코 등장. 연룡도 언급된다.
          * 그리고 "연룡도 이제 왔다"고 말한다.
          * 연룡이 이야기까지 올라오자 동맹국들은 "두 사람은 금속기를 탈취한 범죄자"라며 체포를 건의한다.
          * 그러자 연홍옥이 끼어들어서 "룡은 처벌받지 않을 것이며 뢰엠과 마찬가지로 국제동맹의 규정 밖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 마기/320화 . . . . 4회 일치
          * 눈 앞의 현안보다 년, 천 년 후 미래를 걱정하며 성궁에 가겠다는 신드바드를 "바보 마냥 멀리만 본다"며 그에게도 한계는 있는 거라고 직언한다.
          * 그리고 년, 천 년이 지나면 세상은 다시 전쟁을 시작할 거라고 말한다.
          * 설사 년 후에 국제동맹이 사라지고 전쟁이 일어나도 그건 "우리가 알바가 아니다"
          * 그건 " 년 후의 인간"이 걱정할 일이다.
  • 마기/335화 . . . . 4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 [[알라딘(마기)|알라딘]], [[연룡]], [[쥬다르]]는 게이트를 거쳐 성궁에 다다른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그들을 당황하게 한다.
          * 성궁은 위도 아래도 없는 추상화같은 풍경이다. 룡과 알리바바는 너무 예상 밖의 모습이라 이곳이 성궁인지 의심하고 쥬다르는 악취미라며 5점을 준다.
          그것은 [[아르바(마기)|아르바]]. 우고에게 사로잡혔을 때는 작은 꼬마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성인의 모습을 회복한 채다. 뒤늦게 그녀를 알아챈 일행. 특히 룡과 쥬다르가 경계하지만 그녀는 싸울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 신드바드가 그녀에게 7개의 던전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행에게 경계하지 말라고한다. 그러더니 여행 가이드처럼 앞장서 걸으며 일행을 이끈다. 쥬다르는 끝까지 의심을 풀지 않고 이 여자는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알라비바와 알라딘은 별다른 경계심 없이 따라나선다. 심지어 알라딘은 그녀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까지 하는데.
          * 던전으로 향하며 룡은 신드바드가 말한 "유일한 미련"이란게 뭔지 궁금해한다. 알라딘은 어쩐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고 하하는데 알리바바도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 마기/350화 . . . . 4회 일치
          * 가능성은 미지수이나 적어도 불가능하진 않게 되자 신드바드는 자신이 정체자에 지나지 않았다 고하며 자신의 계획을 중지하기로 한다.
          * 가능성은 미지수, 그 말을 곱씹던 신드바드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인정한다"고 말하고 새로운 길이 열렸는데 낡은 방식에 연연했다며 자신도 정체자였을 따름이라고 고한다. 그 말을 들은 알라딘과 알리바바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의 생각이 변했다는 징후였다. 그 기대대로 신드바드는 새롭게 도출된 방식을 승인했다.
          각기 미궁을 돌파하고 바깥으로 나온 [[연룡]]과 [[쥬다르]]. 그들은 갑자기 성궁 전체가 흔들리고 정오의 태양이 빠르게 저무는걸 목격한다. 모든게 루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 이런데 분명 마법은 멈췄을 터인데, 주변의 루프가 심상치 않다. 이변은 계속되는 건가? 이것은 신드바드도 알 수 없는 반응이다. 바깥에선 먼산에 걸려 있던 해가 그대로 저물어 버린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깜깜한 밤으로 변하는데,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룡과 쥬다르는 그저 아연한 표정으로 성궁이 바뀌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마기/352화 . . . . 4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 [[알라딘(마기)|마기]], [[연룡]], [[쥬다르]]는 힘을 합쳐 다윗을 타도하고 마법을 멈추려 한다.
          * [[알리바바 사르쟈]], [[알라딘(마기)|마기]], [[연룡]], [[쥬다르]]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배신하고 적으로 나타난 [[다윗(마기)|다윗]]을 집중 공격한다. 그러나 어떤 공격으로도 신이 된 다윗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윗은 자신이야 말로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완성해 보다 상위의 신들을 계속 타도해나가겠다 선언한다. 만일 그걸 막고 싶거든 여기서 자신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알리바바 일행은 반드시 그를 타도하겠다고 말한다.
          룡이 가장 먼저 그 의미를 깨닫는다. 아르바가 [[연옥염]]으로써 벌인 짓과 같다. 결국 진짜 적, 진짜 다윗은 성궁을 떠나 지상으로 갔다는 말. 알리바바도 이제야 알라딘을 노렸던 이유를 알았다. 알라딘이 솔로몬의 지혜로 지상으로 돌아오는 걸 막기 위해서. 결국 이곳의 싸움은 일행을 묶어두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았다.
          * 이때를 놓칠 순 없다. 룡과 알리바바도 엄호한다. 셋의 집중 공격을 받자 다윗도 산산히 조각난다. 우고가 빨리 지상으로 가라고 외치고 알라딘이 솔로몬의 지혜를 발동한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4회 일치
          * 청소부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에 죽일 수 있다. 한번에 죽일 경우 "범인의 위장은 날 속이지 못했다. 그는 나를 함정으로 이끌고 있었다,"라는 맥스의 독이 나온다. 이 경우 셔터는 청소부들이 알아서 올려준다.
         === 챕터 7: The Million Dollar Question(만불짜리 질문) ===
         >난 그 만불짜리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왕자는 그녀를 깨우기 위해 키스하지 않았다. 여년간 자고있던 사람을 깨우기에 그건 충분하지 않다.
  • 박상원(배우) . . . . 4회 일치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신의(드라마)|신의]] 등 故 [[김종학]] PD의 작품에 많이 출연해 인연이 깊으며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야 3.98, 태왕사신기 등 [[최민수]]와 많은 작품을 찍었다. 또한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와 여명의 눈동자, 여자의 방 등을 통해 [[고현정]]과도 여러번 호흡을 맞추었다.[* 셋 모두 故 김종학 PD가 아끼던 배우들이라 그의 장례식 때 찾아와 빈소를 지켰다.]
         2013년 [[tvN]] 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2983280|스티브 잡스는 인류의 재앙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었다]].
          * 1998년 야 3.98 (SBS) - 최 소령 역(우정출연)
          * [[상예술대상]] 신인상(1989년)
  • 박철우(배구) . . . . 4회 일치
         데뷔 시절 [[후인정]]의 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 빨리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07년에 [[기흉]]을 3번이나 앓으면서 폼을 잃었다.[* 여담으로 훗날 부인이 되는 [[신혜인]]은 '''[[부정맥]]''' 판정을 받아 심장 수술을 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즉, 운동선수 부부끼리 하나씩 부실한 파트가 있다는 것.....] 국가대표 발탁 기회도 은근 운이 따르지 않아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요한]], [[문성민]]이 [[대한민국]] 배구계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등장하며 금메달 획득으로 일찌감치 군 문제를 해결했으나, 박철우는 그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 박철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가 있으니 바로 '''군 문제'''. [[기흉]]이 [[장동건]] 때는 면제 사유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닌지라 병역 의무를 필해야 한다. 군대 문제 때문에 늦은 나이에 입대한 후 사그라든 선수들의 예를 봤을 때[* [[손석범]]이라든가, [[윤관열]]이라든가, [[승헌]]이라든가... 이들은 모두 공익으로 복무한 후 복귀했지만 결국 은퇴했다. ~~여기에 [[신영수(배구선수)|신영수]], [[김학민]], [[한선수]]도 이 리스트에~~ 다행히 [[신영수(배구선수)|신영수]]는 공익으로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후 예전 감각을 잃지 않았다. 덤으로 팀의 주축으로 2013-14 시즌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한선수]]는 [[일본]]에게 덜미를 잡혀 2015년 전역 확정.]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본인이 건강 문제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태어났으니 [[한선수]]처럼 상근예비역으로 빠질 확률이 높긴 하다.--
         2013-20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올린 점수에 비해 인상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4차전에서 1세트에 팀 동료 [[이선규]]와의 충돌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던 아가메즈와 언쟁을 벌인 다음 아가메즈의 스파이크를 단독 블로킹으로 깨끗하게 막아낸 장면과, 3세트 23:22로 앞서는 상황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두 번 연속 블로킹해 내 결승점을 딴 장면은 미.
         한편 박철우가 입대한 후에도 삼성화재의 2014-2015 시즌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명진, 황동일 등이 돌아가면서 공격 부분을 메워주고는 있다.[* 다만, 김명진은 시즌 중 부상으로, 그리고 황동일은 변칙적인 더블 세터 시스템이란 옵션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OK저축은행]]에게 속절없이 시리즈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박철우의 능력이 재평가되었다. --이제는 벽철우, 사위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ㅠㅠ--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갈거라고 생각하냐?-- 리그 상위권의 사이드 블락 능력에,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좋은 박철우의 공격력은 그가 사라지자 그 공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 백운산 물고기 . . . . 4회 일치
         가장 잘 알려진 종류는 [[중국]] [[운산]]이 원산지인 운산 미락어(白雲山 米諾魚,Tanichthys albonubes)이며, [[베트남]]에 서식하는 Tanichthys micagemmae, Tanichthys thacbaensis 2가지 종류가 있다.
         운산 종은 광둥성 운산, [[홍콩]] 등에 서식하였으나,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어 야생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하이난 섬]]에서 새로운 서식지가 발견되었다.
  • 보스턴 백 . . . . 4회 일치
         여행용 가방의 일종. 보스턴 은 일본에서 부르는 명칭으로 미국에서는 '클럽 '이라고 부른다. 보스턴 대학 학생들이 사용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있다.
  • 블랙 클로버/54화 . . . . 4회 일치
         아스타는 야의 마안 포로가 잡힌 지하실로 인도된다.
          * 아스타는 마법제가 "야의 마안" 포로들을 심문하는 장소로 불려간다
          * 아스타가 반마법의 검으로 보호 마법을 깨자 마법제가 세뇌 마법을 걸어 자을 받는다
          * 야의 마안은 더 강한 전력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 블랙 클로버/66화 . . . . 4회 일치
         야의 마안의 잔챙이를 처리하는 고슈 아들레이
          * 고슈는 야의 마안의 수하와 싸우다 패하고 쫓기고 있다.
          * 또 다른 야의 마안의 수하가 해저 마도사를 제압하고 그들에게 마수를 뻗힌 것이다.
          * 리히트가 고슈를 알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고슈와 야의 마안이 관련이 있을 걸로 추정되었으나 이번에 나온 적들은 고슈를 알아보지 못한다.
  • 서윤아(배우) . . . . 4회 일치
         | 출생지 = [[강원도]] [[태시]] 장성동
         | 학력 = 근로복지공단 태병원
         * 근로복지공단 태병원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6년 태어남]][[분류:2001년 데뷔]][[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태시 출신 인물]]
  • 서효림 . . . . 4회 일치
         | 학력 = 서귀포시상치과의원
         * 서귀포시상치과의원
         * [[KBS 제2TV|KBS2]] 《[[스쿨 버라이어티 점만점]]》 1회 출연
         * 아웃스테이크하우스 (2009년)
  • 송지효 . . . . 4회 일치
         | 《[[계 (드라마)|계]]》
         | [[MBC 연기대상]] || PD상 || [[계 (드라마)|계]] || {{won}}
  • 식극의 소마/212화 . . . . 4회 일치
          * 숨은 비결은 태 참기름에 있는데 가열을 거의 하지 않고 순수하게 참깨를 으깨서 만드는 무미, 무취에 가까운 매우 깔끔하고 점잖은 맛의 참기름이다.
          * 비밀은 그것만이 아니다. 샤름은 뭔가 다른게 더 있을 거라 짐작하지만 그게 뭔지는 감을 잡지 못하는데. 이것도 안은 단서가 있다. 그것은 기름. 네네는 그녀의 추론이 맞다며 자신의 마지막 비결을 공개한다. 벚꽃 새우를 튀길 때 "태 참기름"이란 특수한 참기름을 쓴 것이다.
          "태 참기름"은 저온에서 만든 참기름. 일반적인 참기름은 고온에서 만들어 강한 향과 맛을 가지지만 이쪽은 저온에서 만들어 참깨 특유의 향보다는 무미무취에 가까운 담한 맛이다. 그러나 기품이 있고 점잖은 맛을 내는데, 이 기름을 고온으로 가열해 튀기면 원재료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 부드러운 튀김옷이 완성된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4회 일치
         랩은 전형적인 SM 스타일이며 Ice Cream Cake의 공개 당시 멜론 리뷰창에 랩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Dumb Dumb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곡 제목들[* You need to 'Beat It' / That boy Michael Jackson 'Bad' / 난 너의 'Billie Jean'이 아냐 / Don't you 'Leave Me Alone' / 하지만 애매한 반응 난 원해 'Black Or White' / 포기 못 해 나의 'Man In The Mirror'. Ice Cream Cake와 Dumb Dumb의 랩은 [[XXX(가수)|XXX]]의 [[김심야]]가 작사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RrojDCT9ZIM|#]]을 활용해 인상적인 랩을 보여줬다. 이후로도 레드컨셉의 곡에선 꾸준히 메인래퍼로서 랩 파트를 많이 받고 있다. 대부분의 음악방송에서도 안정적인 랩 실력을 보여주는 편이다. 최근에 컴한 빨간 맛에서는 빠른 랩으로 다시 한번 메인래퍼의 실력을 검증하였다.
         || 2017년 2월 11일 ||<|2> SBS ||<|2> [[종원의 3대 천왕]] || ||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연습생 시절, 연습이 다 끝나고 혼자 보컬룸에 남아 우연히 [[이영현]]과 [[제아(브라운 아이드 걸스)|제아]]의 '하모니'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운 적이 있다고 고했다.[[https://youtu.be/MdfN3a3lOk8|#]]
  • 안내상 . . . . 4회 일치
         * 1994년 《[[색인]]》
         * 2017년 [[MBC]] 월화드라마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송도환 역
         * 2018년 [[KBS1]] 《[[천상의 컬렉션]]》 [[범 김구 회중시계]] 소개
         *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인기상<ref>[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cateid=1032&newsid=20111230002505235&p=Edaily 진희-안내상-조권-정성호 `코미디시트콤 인기상 수상`]</ref>
  • 안축 (고려) . . . . 4회 일치
         <ref name="gwe">글로벌 세계 대과사전(n.d.). [[:s:글로벌 세계 대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고려시대 문학/고려 후기#안축|“안축”]]. 《글로벌 세계 대과사전》. 2017년 11월 26일 확인함. </ref>
         *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연정훈 . . . . 4회 일치
         * 2004년 [[KBS2]] 《[[설공주 (드라마)|설공주]]》 ... 한진우 역
         * 2010년 [[SBS]] 《[[제중원 (드라마)|제중원]]》 ... 도양 역
         | 제40회 [[상예술대상]]
  • 염재욱 . . . . 4회 일치
         * [[2002년]] [[MBC]] 월화드라마 《[[고 (2002년 드라마)|고]]》
         * [[2003년]] [[MBC]] 일일드라마 《[[조의 호수 (드라마)|조의 호수]]》
  • 영창대군 . . . . 4회 일치
         조령(鳥嶺) 길목에서 도적이 행상인을 죽이고 은자(銀子) 수 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수괴인 서얼(庶孽) 박응서(朴應犀) 등이 체포되었다. 박응서는 자신들이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자금을 모아 무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하려 했다고 자하였으며, 이 사건에 연흥부원군 김제남과 영창대군 이의가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지평 조정호(趙廷虎)와 유증(兪伯曾)이 아뢰기를,
         >이시이 아뢰기를,
  • 영천시 . . . . 4회 일치
         고대에는 [[골벌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여담으로 고구려 사람인 석이 김춘추와 김유신을 속여 고구려로 데려가고 있을 때 세 산신이 여인으로 나타나 석의 의도를 알려줘 김춘추와 김유신이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이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영천(당시 이름 골화천)이다.
         위치로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그리고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에 접하고 있다. 또 영천시는 태산맥 줄기의 보현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둥근 형태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보현산(1,124m), 서쪽에는 팔공산(1,192m), 동쪽에는 운주산(806m), 남쪽에는 사룡산(685m)이 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단은 화북면 하송리 산56으로 동경 128도 55분 08초, 북위 36도 10분 54초. 남단은 대창면 용호리 산13으로 동경 128도 56분 57초, 북위 35도 50분 03초로 남북간 38.64km이며, 동단은 임고면 수성리 산96-1로 동경 129도 08분 42초, 북위 36도 03분 08초. 서단은 신녕면 치산리 산141-5로 동경 128도 41분, 북위 41초 36도 00분 48초로 동서간 40.75km이다.
          * [[시열]] : 청년CEO 및 아마추어볼링선수
  • 오정희 (소설가) . . . . 4회 일치
         <ref name="gwe">글로벌 세계 대과사전(n.d.). [[:s:글로벌 세계 대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현대 문학/현대 후기 문학/70년대의 문학#오정희|“오정희”]]. 《글로벌 세계 대과사전》. 2017년 11월 2일 확인함. </ref>
         *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왝더독/줄거리 . . . . 4회 일치
         대통령 선거 2주일 전 밤, 콘래드 브린(로버트 드 니로)이라는 남자가 [[악관]]에 찾아온다. 악관을 방문했던 "반딧불 소녀단"의 단원 중 하나가 대통령과 단 둘이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이후 그 소녀는 대통령이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브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악관을 방문한 것. 그는 시간을 끌기 위해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던 대통령이 희귀병에 걸린걸로 위장해 귀국을 지연시킨다.
         일행은 슈만 상사를 선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조니 딘이 만든 노래는 1930년대 노래로 포장해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노래"라며 퍼뜨리고 악관 앞 나무에 슈만 상사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낡은 운동화를 던진다. 슈만 상사의 귀환을 바라는 물결은 미국 각지에 퍼져나가고, 성희롱 사건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잊혀진다.
  • 원빈(배우) . . . . 4회 일치
         ||<:><#4C4C4C>'''{{{#FFFFFF 학력}}}'''||여량초등학교(졸업)[br]여량중학교(졸업)[br][[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졸업)[br][[제예술대학]][br][[용인대학교]] 연극영화학과(학사)[br][[용인대학교]] 대학원 영화영상학과 예술학 석사과정 ||
         ==== 하염없는 공기 ====
         2015년 10월 [[신과함께(영화)|신과함께]]를 고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공기가 길어지자 팬들 뿐만 아니라 여론들도 점점 회의적인 의견이 많아지는 중. 댓글에서도 보이지만 원빈이 고사한 신과 함께 출연을 확정지은 [[하정우]]와 친한 사이인 [[강동원(배우)|강동원]]이 꾸준히 작품을 촬영하며 필모그래피를 쌓는 것과 비교되고 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785953|#]] (..하지만 후자의 배우는 수많은 졸작 때문에 원빈과 반대의 이유로 비판받는다. )
          * 2001년 제37회 [[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가을동화》
  • 유미(가수) . . . . 4회 일치
         이후 몇 차례 드라마 OST, 동료 가수의 앨범에 참여하지만 여전히 노래에 비해 얼굴 없는 가수로서 또 다시 긴 공기를 갖는다.
          * 2005년 2집 Another Story (타이틀곡 : 추억은 시간이 지운다)[* 01.짧은 사랑..긴 기다림..그대 그리움.., 02.소녀의 고, 03.추억은 시간이 지운다, 04.I Lost My Mind, 05.애가(愛歌), 06.저 하늘도 모자르죠, 07.잘한건가요, 08.마지막 너를 보내며, 09.시계를 돌리면, 10.차라리.]
         가수로서 공 기간 동안에는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배우 [[김아중]],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에 배우 [[김정은(배우)|김정은]]의 노래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특히 2세 아래의 배우 [[김아중]]과는 영화를 통한 보컬 트레이닝을 인연으로 친분이 두텁다. 불후의 명곡 첫 출연 섭외 전화를 받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고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서 김아중이 직접 언급하였으며, 불후의 명곡 [[김민종]]편 녹화날에는 유미의 초대에 [[김아중]]이 기꺼이 응원하러 와 주기도 하였다.
         2016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독을 품은 설공주]]'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1라운드에서 [[슈퍼 히어로(복면가왕)|슈퍼 히어로]]와 듀엣을 한 결과 2라운드에 진출했으며 [[봄처녀 제 오시네]]에게 7표 차로 밀렸다.
  • 은혼/619화 . . . . 4회 일치
          * 요시와라의 [[츠쿠요]]가 화를 이끌고 등장. 힘을 합쳐 오우가이를 몰아붙인다.
          >한, 수는 부족했나?
          [[츠쿠요]]가 화를 이끌고 원군으로 등장한다.
          * 츠쿠요와 화는 상공에서 장마비처럼 수리검을 퍼붓는다. 이들의 공격은 오우가이 휘하 병력들의 발을 묶고 막 일어서려던 오우가이를 고립시킨다. 츠쿠요가 직접 오우가이를 노리고 낙하하며 수리검을 난무하는데 오우가이는 또 한 번 괴력을 발휘해 봉쇄 당한 사지를 풀고 수리검을 막아낸다. 수리검에 벌집 같은 모습이 되지만 치명상은 하나도 없다. 머리에 날아온 수리검도 또 뿔에 걸린다.
  • 이경실 . . . . 4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코미디연기상'''}}} ||
         2015년 8월경 현 남편이 지인의 아내를 차 안에서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처음엔 그저 개그우먼의 남편으로만 알려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경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남편이라고 밝혔다. 처음엔 이경실도 나서서 '남편의 결을 믿는다,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라고 했지만, 남편인 최씨는 1차 공판에서 혐의를 완전히 인정했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선 '범죄 사실을 인정한 게 아니라 만취사실 만을 인정한 것'이라고 교묘한 거짓말로 언플을 했지만... 그리고 2차 공판에서도 공소사실을 고스란히 [[http://news.joins.com/article/19270472|인정했다]].
          * 1994 제30회 상예술대상 TV 여자예능상
  • 이기백(군인) . . . . 4회 일치
         || 18대 [[차규헌]] || → || 19대 이기 || → || 20대 [[김홍한]] ||
         || 18대 [[김윤호]] || → || 19대 이기 || → || 20대 [[정진권]] ||
         ||<width=30%><:> 제23대 [br] [[윤성민]] ||<width=5%><:> → ||<width=30%><:> 제24대 [br] ''' 이기 ''' ||<width=5%><:> → ||<width=30%><:> 25대 [br] [[정호용]]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기, version=29)]
  • 이미연 (배우) . . . . 4회 일치
         1995년에는 배우 [[김승우]]와 결혼했지만, 2000년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김승우-이미연 이혼 속사정은…|url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출판사 = 한국일보|날짜 = 2007-10-11|확인날짜 = 2013-10-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501104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보존날짜 = 2013-10-05|깨진링크 = 예}}</ref> 이미연은 1990년대 중후반에는 영화 《[[넘버 3]]》, 《[[모텔 선인장]]》, 《[[여고괴담]]》,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영화에만 주로 출연하다 1999년 단만극 《[[TV영화 러브스토리]]》로 3년여만에 드라마에 컴했고, 이후 2001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명성황후 (드라마)|명성황후]]》에서 젊은 명성황후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당시 소속사였던 [[김광수 (1961년)|김광수]] 대표의 프로젝트로 《이미연의 연가》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해 166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 PR비 파문 등 여파 가요계 ‘불황의 늪’…2002 한국 음반시장 결산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31324 |출판사= 국민일보|날짜= 2002-12-24 }}</ref>
         2000년에는 영화 《[[물고기자리 (영화)|물고기자리]]》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02년 영화 《[[중독 (2002년 영화)|중독]]》으로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7년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로 6년여만에 안방극장에 컴했지만 흥행에 참패했고, 2010년 드라마 《[[거상 김만덕]]》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후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인터뷰식으로 최근 모습의 성덕선을 연기함과 동시에 호평이 많았다.
         * 1990년 제26회 [[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연기상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
  • 이소선 . . . . 4회 일치
         이소선은 지인의 집에 남편이 다녀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길로 집을 나와버렸다. [[서울중앙시장]]에서 배추 잎을 주워 살며 거지들 틈에서 지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886 중앙시장에서 배추 잎 줍기... 하루 원벌이 인생],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8), 2014.7.8</ref> 이소선은 중앙시장에서 신임을 얻어 노점을 열 수 있게 되었고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월급을 받게 되니 다시 집을 장만하고 함께 살 희망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전태일은 수제비집에서 우연히 동생 순옥이를 만났다. 전순옥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 올 때 따라 왔다.<ref name="오마이뉴스30">[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0 태일이네 가족, 다시 한곳에 모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0), 2014.7.15</ref>
         아들 전태일의 죽음 후 이소선은 아들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였다. 11월 18일 장례를 치르고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하였다. 청계피복노조는 1998년 [[서울의류노동조합]]과 합쳐져 해산할 때까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다.<ref name="민족문화대과">[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8924 청계피복노조], 민족문화대과사전</ref>
         청계피복노조는 1972년에는 새마을노동교실을 열었고 1975년에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벌였으며 1980년 [[전두환]] 정권이 강제 해산 시켰지만 법외 노조로서 버텼다. 1985년 대우어페럴 노조에서 시작된 [[구로동맹파업]]에도 적극 참여하였고, 1986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청계피복노조는 1988년 다시 합법화 되었다.<ref name="민족문화대과" />
  • 이인 . . . . 4회 일치
         [[1917년]] 귀국했다가 [[1919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일본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1923년]] 5월 [[경성부]]에서 [[변호사]]·[[변리사]] 개업을 하여 7월 첫 변론으로 [[의열단]]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다. 이후 계속 민족운동사건의 변론을 맡아 [[6·10 만세 운동]]·[[고려혁명당 사건]]·[[의열단]] 사건·[[원산총파업]]·[[통의부사건]]·[[정의부사건]]·[[신간회]]민중대회사건·[[수양동우회 사건]] 등과 각종 소작쟁의, 필화(筆禍)·설화(舌禍) 사건과 [[친일파]]나 일본관리의 암살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고, 자청하여 [[안창호]](安昌浩)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가 맡은 변호만도 약 1천 5여건에 달한다.
         [[1945년]] 광복이후 [[관수]],[[김병로]]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안재홍]]과 협상을 적극적으로 벌으나, 건준위원장 [[여운형]]이 [[안재홍]]과 이인의 협상결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이 창당되자 창당에 참여, 당무부장이 되었다가 10월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이후 [[미군정]] 특별범죄심사위원회 수석대법관(首席大法官) 겸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군정청 특별범죄심사회 수석대법관이 되면서 그는 [[한민당]]을 탈당하였다.
         * [[1945년]] [[12월 1일]] 임시정부 봉영식에 참석하였다. 서울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영식이 시작되었다.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영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영문은 [[권동진]], [[김성수 (1891년)|김성수]], 이인을 통해 [[김구]]에게 전달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범사상실천운동연합, 1993), 145페이지</ref>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이재학 . . . . 4회 일치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본인은 그러한 의혹에 대해 결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NC 다이노스]] 구단은 관련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7월 30일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8575719|1군 엔트리 제외]]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경찰 수사 결과는 승부조작은 무혐의, 불법스포츠 베팅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 되었다. 따라서 검찰 수사나 더이상의 사실 관계 확인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승부조작은 무혐의로 어떻게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상당 수준의 증거나 정황, 증언 등이 드러난 불법 베팅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 중에 있어 KBO의 징계도 복잡한 관계에 얽혀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계좌 내역이나 스스로 자을 한 진야곱이 이재학과의 공모 관계를 경찰 조사에서도 진술했기에 이재학이 원하는 결은 그리 쉽게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후 2017년 1월 [[창원 LG 세이커스]]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창원실내체육관]]을 찾은 근황[* MBC SPORTS+와의 인터뷰에서는 개인 훈련으로 2017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나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는 것을 봐서는 2017년 시즌에는 정상적으로 시즌을 소화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상적으로 경기에 나서더라도 결이 완벽히 증명되기 전까지는 이 때의 이미지는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듯.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4회 일치
          * 마신족이 브리타니아를 점거한 이후, 성들은 이들의 압제에 시달리며 인간성마저 포기하고 있었다.
          * 일행은 다시 성채도시 코란도로 향하나, [[멜리오다스]]가 고한 자신과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진실이 무겁게 그들을 짓누른다.
          * 마신족이 브리타니아를 점령하고, 그 압제에 시달리는 성들은 그들이 시키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해야했다. 인간의 영혼을 먹고 사는 마신들은 마을 주민들을 살려두는 조건으로 그만큼의 인간 영혼을 요구했고, 각 마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당량을 채우려 들었다. 한때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아만드"란 이름으로 은거했던 마을에서도 그랬다. 이 마을 촌장은 여행객들을 속여 마신족에게 바쳐왔다. 그렇게 생긴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마을 공동묘지는 묘비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촌장의 어린 아들 "페리오"는 그런 아버지의 방식에 반발했다. 촌장으로선 마을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선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며, 아버지나 어른들은 모두 겁쟁이고 자신이 마신족들을 다 물리치고 말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촌장은 자식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그런 말을 틀어막으려 했다. 그 말이 누구 귀에 들어갔다간...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저들이 자기들을 구한게 맞는 건지, 상황이 어떻게 변해가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마신족은 하나도 남김 없이 일곱 개의 대죄가 처리했지만,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을 언덕 위에서 굽어 보며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멜리오다스]]에게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원래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로 가야했다. 멜리오다스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고서가 강력하게 희망하기도 했지만, 마신족의 위협에서 성을 구하고 피폐해진 그들의 삶을 되돌리는 것도 성기사가 해야 할 일이다.
  • 임수정(탤런트) . . . . 4회 일치
         그러다가 2000년 1월 '[[좋은 친구들]]'의 '흑과 ' 코너에 첫 공중파 TV 출연을 하게 된다.[* 참고로 이게 그녀의 유일하게 나온 TV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건 당시 유행하던 [[테마 게임]]류의 미니 드라마라서 예능이라하기엔 미묘하다.] 한 드라마에 캐스팅이 유력했다가(기사로까지 나왔었다.) 출연이 불발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 2012년 || [[NELL]] || 야[* 직전 뮤직비디오 출연작인 미안해 이후 햇수로 11년만의 뮤직비디오 출연.] ||
         영화에 주로 나오고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에는 출연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 끌던 시절을 제외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과 중학생, 초등학생은 잘 모른다. 그 한가지 예로 2008년 3월 사인회 도중 한 초등학생이 "임수정은 필요없고 소시짱 [[태연]]짱"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2007년과 2008년의 공기간에 지친 남자팬들 중에는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소녀시대]]로 갈아탄 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 때 갈아탄 팬 중에 한 팬이 [[소녀시대 팬레터 사건|부적절한 일]]을 겪었다는 것.(...)
         > '장화 홍련’을 찍을 때 촬영장에 찾아가 임수정을 훔쳐봤다. 소녀같이 작고, 맨발에 창한 얼굴, 차갑고 도도하고 자존심 센 분위기가 좋았다. ‘예뻐서 배우 된’ 것과는 달랐다. 그런데 임수정과 대면하니 생각보다 키가 크더라...
  • 장준영 (축구선수) . . . . 4회 일치
         |포지션=[[수비수#센터|센터]]
         '''장준영'''(張竣營, [[1993년]] [[2월 4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며 포지션은 [[수비수#센터|센터]]이다. 현재 [[대한민국]]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활약하고 있다.
  • 장헌식 . . . . 4회 일치
         [[1923년]] [[11월 25일]]에는 [[대성중학교]]에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금 40원을 기탁하였다. [[12월 27일]]에는 [[경성도서관]]에 도서구입비 1 원을 기부하였다.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제목 = 353명 중 256명 명단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4회 일치
          * [[후지우라 요우]]와 [[아카시 카오루]]가 효부를 응급조치하는 동안 [[쿠모이 유리]]가 마기를 확보, [[미나모토 코이치]]가 신을 주사한다.
          * 마기는 세뇌가 잠시 동안 풀렸지만 완전하지 않아 신 접종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마기는 다시 세뇌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벌어준다.
          * 어쨌든 효부는 세뇌가 흔들린 순간을 포착하고 마기를 잡으라고 외친다. [[쿠모이 유리]]가 힙노를 거는데 성공, 제압하고 있는 동안 [[미나모토 코이치]]가 신을 주사한다.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신이 접종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절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남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정인선(탤런트) . . . . 4회 일치
         || [[2018년]] [[8월 3일]]~ || [[SBS]] || [[종원의 골목식당]] || 붐업요원 || ||
         || 2018년 || SBS || [[종원의 골목식당]] || 인천 신포시장 청년몰편 ||
          * [[종원의 골목식당]] 인천 신포국제시장 청년몰 에피소드에서 [[김민교]]와 연예인 식당 지원군으로 나왔다. 요리 자체는 맛있지만 상업성과 회전률, 김치 국물이 줄줄 흐르는 단점 때문에 김민교가 선보인 '팟 파카오 무 쌉'[* 정확히는 '팟 파카오 무 쌉 __랏 카우__'로, 다진 돼지고기와 [[바질]]을 주재료로 하는 태국식 [[제육덮밥]].]에 밀려 접대와 보조를 맡았으나 능숙한 모습을 보이며 김민교와 좋은 호흡을 맞춰 호평을 받았다. [[종원]]이 찾아와 김민교와 태국 요리 내공이 느껴지는 대화를 나누자 살짝 굳어지면서 경탄하는 귀여운 모습도 보인다.
  • 정형돈 . . . . 4회 일치
         * [[KBS]] 《일요일은 101% - 흑과
         * 2012년 1월 7일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10817 《영계숙》] - [[무한도전]] 나름 가수다 (무대연출 - 김동연, 안무 - 김경엽, 편곡 - 원미솔, Feat - 뮤지컬 & 앙상블 13인)<ref>{{뉴스 인용|제목='나름 가수다', '영계숙' 무대 연출 숨겨진 의도 놀라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2254584|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연예뉴스팀|날짜=2012-01-09}}</ref>
         * 2012년 6월 -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21788532 대구화점]
  • 진격의 거인/89화 . . . . 4회 일치
          * 한지가 그리샤의 수기에서 얻은 정보대로 "엘디아 인", 그리고 "유미르의 성"에 대해서 발표하는 동안 엘런은 또다시 그리샤의 기억으로 불려간다. 기억 속의 [[엘런 크루거]]는 마레 당국이 계획대로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는다면 더이상 수용소도 유지하지 않을 거라고 밝힌다. 그는 그로스가 말했던건 전부 사실이라며 엘디아가 무지성의 거인을 병기로 이용했던 사실을 밝힌다. 이들은 시조의 거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단순히 살육을 반복할 뿐인 짐승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자체로 두려움도 멈춤도 모르는 자동살상병기인 것이다. 과거 엘디아에서는 이것을 양산해 값싼 전력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엘디아인들을 팔라디섬에 가두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지금에 와선 마레 측에서도 이 방생한 거인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섬에 접근하는건 제한되고 있다.
          그리샤가 알고 있는건 그저 억지력이 되라고 멋대로 퍼뜨린 말에 지나지 않는다. 벽 안의 왕은 자기 성들과 함께 멸망 당하길 원하고 있을 뿐이다. 크루거도 그들이 시조의 거인과 맺은 "부전의 조약"이 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왕가는 국민의 기억을 빼앗고 지옥을 낙원이라 믿게 만들었으며 성을 지키지도 않는다.
          >더이상 성을 지키지 못하는 왕은 왕이 아니다.
  • 진격의 거인/98화 . . . . 4회 일치
          * 후보생들은 수용구 출입통제소를 지날 때까지 떠들썩하게 파르코의 승리를 축하해준다. 파르코는 각오를 다진 탓인지 가비가 도발을 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할 일을 할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는다. 가비가 "어차피 너희 형이 있어서 명예마레인 확정인 주제에 왜 그렇게 기를 쓰냐"고 안달하자 마침내 "널 위해서"라고 고하지만 가비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낙담한 파르코는 병원으로 향하는데 요즘은 거의 항상 가고 있다고 한다.
          노인은 파르코와 크루거 사이의 거래도 알고 있었고 사실 크루거가 정상이라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살 짓은 그만두고 어서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권하는데. 크루거는 떠보듯이 "혹시 가족일로 후회할 짓을 했냐"고 묻자, 그는 상처를 찔린 표정이 된다. 그가 바로 [[그리샤 예거]]의 아버지이자 지크의 할아버지. [[엘런 예거]]에게도 할아버지가 된다. 그는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했다. 그리샤가 여동생을 데리고 벽을 나서게 놔둔 일이나 아들에게 의사를 강요했던 일 등. 그 모든게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던 그는 마침내 오열하듯이 비명을 지른다. 그때 병원에서 진짜 의사가 달려나오는데, 사실 그도 이 병원의 환자였던 것이다. 크루거는 병실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가족에게서 받은 야구공을 허공 위로 던져 본다.
          크루거의 조언을 받으며 훈련에 매진해 마침내 가비를 이기는 기염을 달성한다. 가비에게 "너를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고 싶다"고 고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파르코가 가비를 좋아하는건 수용구 출입구를 통제하는 병사들 조차 뻔히 알고 있던 사실이라 안습. 크루거를 계속 방문하고 있었으며 그의 편지배달도 계속했다. 축제가 시작되자 즐겁게 즐기다가 빌리의 연설이 시작될 무렵 그를 크루거에게 안내한다.
          파르코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파르코가 "널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려 한다"고 사실상 고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걸로 나를 위한다는 거냐"고 반응하며 전혀 의미를 읽지 못한다. 이후 우도, 조피아와 수용구 안에서 준비 중인 무대 건설 현장을 보는데, 가비는 타이버가의 선전포고 선언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도나 조피아가 회의적인 의견을 어필하자 "그럴 수록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인다. 전야제에선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우도가 히즐국 부인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식겁한다. 가비가 그 부인을 보고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다음날 축제에선 완전 별천지를 본 것처럼 즐거워한다. 요즘엔 "처음 있는 일" 뿐이라며, 앞으론 뭔가가 변할 것 같다는 말을 라이너에게 하고 동감을 받는다.
  • 창작:티겔 왕국 . . . . 4회 일치
         달윤은 죽기전에 자신의 성을 레잉식인 '다르트'로 바꿨는데 그때문에 역사가들은 달윤이후의 왕들을 '다르트'왕조로 묶는다. 다만 다르트 왕조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못한데, 레잉 왕국빠라서 아예 왕국의 주요도시중 하나였던 레잉을 라이엘기스에 공짜로(..) 넘겨주려 한 베르코 1세[* 다만, 그의 동생이 그를 막으려고 정변을 일으켜서 성공하진 못했다.], 형보단 나았다가 중론이지만 어째 하는 원정마다 싹다 말아먹은 에르두른 1세, 하루 일과가 술먹고 여자꼬시는거였던 '시인' 그레두아[* 다만, 그의 시들은 꽤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성들 가축까지 뺏어먹으려들었던 '식탐왕' 세프등등.... 결국 온갖 암군들이 넘쳐났던 다르트 왕조덕에 상티겔 왕국은 패권을 다시 되찾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이후 하이엔 왕국을 제압하고 동부대륙의 중북부패권을 완벽히 장악하려 한 '대제' 샤를 1세[* 라이엘기스 대공으로 따지면 샤를 4세]에 의해 상티겔왕국은 멸망한다.
         그러나 상티겔이 멸망하고 티겔이 불타갈때, 한무리의 군인들이 마지막 왕 에르두른2세의 아내였던 아르든 작부인을 데리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우여곡절끝에 어찌저찌 상티겔왕국이 남쪽에 세웠던 식민지인 '센티겔'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아르든 작부인은 애를 베고 있었고, 당시 센티겔의 지방관이자 아르든 작부인의 보호자였던 계형은 그 아이를 에르두른 2세의 적법한 후계자로 선언하고, 그를 티겔 왕국의 왕으로 선언하면서 섭정직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국가를 하티겔 왕국이라 하며, 대중적으로 그냥 티겔 왕국이라 한다.
  • 최덕희 . . . . 4회 일치
         * [[절대무적라이징오]] ([1993년VIDEO판]) [[강,설선생그의다수]]
         * [[조공주]] - 오데트 공주
         * [[발마녀전]] ([[KBS]])
         * [[라디오 극장 - 가시고]](KBS) - 허지란 2016.03.01~2015.03.31
  • 최원권 . . . . 4회 일치
         |포지션=은퇴 (과거 [[풀]])
         '''최원권''' (崔源權, [[1981년]] [[11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오른쪽 [[풀]]이었다. 현재 [[대구 FC]] 코치로 재직중이다.
         [[2000년]]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 해 [[아디다스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주로 [[미드필더|윙어]]로 활약하였으나 [[수비수|풀]]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하여, [[K리그 2001|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6년]]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자신의 프로 통산 첫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고,<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598 FC 서울 최원권 도움 헤트트릭 기록 ]</ref>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12.22]] 군 복무를 위해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에 입대하여,<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81210091454 최성국·최원권, 상무 입대 확정…22명 선발자 발표]</ref> 주 포지션인 [[수비수|풀]] 역할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며 멀티 플레이어로서 활약하였다.
  • 최재성(배우) . . . . 4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2012년]]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으로 캐스팅 되었으나 무릎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그 배역을 [[동이(드라마)|동이]]에서 [[장희재]]로 악명을 떨쳤던 [[김유석]]에게 넘겨주고 부상이 회복되자 극 중반부터 등장하는 계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 [[2013년]] KBS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 ... [[계]] 역
  • 추창민 . . . . 4회 일치
         | 수상 = 2013년 제49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 [[2013년]] 제49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광해, 왕이 된 남자]]》
         * [[2013년]] 제49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광해, 왕이 된 남자]]》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
  • 콩고(소설) . . . . 4회 일치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유럽 합작 기업의 탐사대가 추격 중이라 바짝 긴장한 연구소는 급히 과학자 카렌 로스를 팀장으로 삼아 소규모 탐사대를 재차 투입한다. [* 이렇게 급하게 탐사대를 다시 꾸린 건 경쟁 기업의 추격도 있었지만 해당 지역이 정부군과 식인종 키가니족이 내전 중이라 어렵게 따낸 탐사 허가를 또다시 따낼 틈이 없어 일단 탐사대의 전멸은 비밀로 한채 새로운 탐사대를 투입하는 걸 들키기 전에 얼른 투입시키기 위해 서둘렀다.] 영상에 집힌 고릴라의 이미지 때문에 영장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카렌은 수화를 할 줄 아는 [[고릴라]] 에이미와 그녀를 돌보는 동물학자 피터 엘리어트, 아프리카의 인 용병 찰스 먼로 등이 이끄는 탐험대가 자이르 정글 깊숙한 곳으로 잃어버린 전설의 다이아몬드 광산도시 진즈(Zinj)를 찾는 모험이 중심 소재이다. 마치 전형적인 모험 소설 같지만, 탐험의 주체가 현대적인 광산 기업이거나, 위성으로 연락,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거나 NASA에서 개발된 탐험 장비를 사용하는 등 상당히 현대적인 가제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아프리카 출신 인 [[용병]]. 일명 캡틴 먼로. 탐험의 무력을 책임진다. 의외로 에이미와 사이가 좋은데 고릴라 취급 안하고 평범한 10대 여자애들처럼 대하기 때문. 인정도 많아서 피그미 마을에 낙오된 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정이 촉박한 와중에도 도와주려 나섰다. 이때 카렌이 시간 없다며 반대하는데 극중 먼로가 유일하게 화낼 때가 이때였다. 이후 그 인이 먼저 투입됐던 탐사대원이라는 걸 알고 카렌도 군말 없어디긴 하지만.
  • 토리코/374화 . . . . 4회 일치
          * 그때 GOD가 채널을 깨버리고 난입한다.
          * 죠아가 채널에서 나타난다.
          * 스타준은 "어느새"라며 경악하는데, 죠아는 채널에서 한 시간이나 싸웠고 그들의 기에는 감탄했지만 안타깝게도 "식운"이 없는 그들에겐 죽음 뿐이었다고 한다.--또 그놈의 운빨이냐--
  • 토리코/380화 . . . . 4회 일치
          * 진화된 네오는 GOD의 혀 공격을 쳐내고 팔왕을 채널로 가두는 수준.
          * 아카시아는 진화된 네오의 힘으로 한층 강력한 채널을 생성한다.
          * 이 채널은 설사 팔왕들이라 해도 한동안 움직임이 멈출 정도로 고도로 압축된 것.
          * 삼키는 것과 동시에 채널이 풀리고 팔왕의 집중공격이 내리꽂힌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4회 일치
          * 해당 지방의 성들을 지지 파벌로 전향 +1
          * 해당 지방의 성들을 지지 파벌로 전향 +2
          * 해당 지방의 성들을 존왕파로 전향 +3
          * 주변 지방의 성들을 존왕파로 전향 +1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4회 일치
          * 다른 번의 성에 침투시 성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음
          * 외골수(Single-mindedness) - "명명하게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는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다른 번의 성에 침투시 성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음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4회 일치
         ===== 호대(White Tiger Force) =====
         실제 역사에서는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호대 병사 20명이 불타는 와카마츠 성을 보고 성이 함락되었다고 판단, 할복하여 19명이 사망한 "호대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 웅대(White Bear Infantry) =====
  • 페어리 테일/533화 . . . . 4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533화. '''마도사 제레프'''
          * "마도사"로 각성한 제레프는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조장할 수 있으며 육체가 별 의미가 없는 초월자에 가까워졌다.
          * [[오거스트]]와 격전 이후 대성당 부근에 있던 [[길다트 클라이브]]와 [[카나 알베로나]]는 방금 전 길드쪽에서 시작돼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골몰한다. 그것은 [[제레프 드래그닐]]이 페어리 하트를 습득, 마도사 제레프로 각성한 여파였지만 둘이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 마도사로 각성한 제레프. 그에 대치하는 나츠. 나츠는 의식이 없는 메이비스의 몸을 수습해 한 쪽으로 치운다. 나츠는 메이비스에게 "이젠 제레프를 없앨 수 밖에 없다"고 사과한다. 제레프는 그 말을 듯고 코웃음을 친다.
  • 풍운 . . . . 4회 일치
         보경운과 간통을 하다가 섭풍에게 들키게 되고, 섭풍은 못본 척 할테니 천하회를 떠나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분노한 보경운은 섭풍을 죽여버리려 하여 공자가 보는 앞에서 보경운과 섭풍은 사투를 벌이게 된다. 보경운은 배운장의 '운래선경' 초식을 사용하여 섭풍을 죽이려고 했으나, 공자가 끼어들어서 섭풍을 대신하여 맞고 치명상을 입게 된다. 거기에서 진상도 등장하여, 공자가 보경운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 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공자는 죽어가면서 섭풍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고하는 수라장(…)을 벌이게 된다.
         공자의 시신은 보경운이 가져가는데, 썩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문파에서 빙이라는 신물을 훔쳐서 보호하고, 본래 황후를 안장하려 했던 후릉을 강탈하여 공자의 무덤으로 삼는다.
         '''성심결''' : 제석천이 만든 무공. 익히면 장수하게 되며, 사람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제석천은 성심결의 힘으로 수년 동안 살았지만, 육체가 서서히 노화되어 자신의 육체를 얼음 속에 가둬야 했다…고 설명 되는데 제석천의 정체를 알고보면 제석천 자체가 사기로 무림인들 골탕먹이고 서로 싸우게 하면서 즐기던 악질 개새끼인데가, 자기 이외의 놈이 용정 먹고 불로불사하면 안된다고 용정을 혼자서 강탈하려는걸 보면 아무래도 초반부에 나온 성심결 설명도 '''사기'''에 가까울 듯 하다. 물론 무이나 제석천의 제자 빙황 등 성심결의 효과를 본 놈이 나오기는 하고, 제석천이 수명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므로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수년씩 사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 하이큐/261화 . . . . 4회 일치
          * [[츠키시마 케이]]의 뒤에서 [[사와무라 다이치]]가 어택으로 마무리하며 25대 24로 세트 포인트에 도달한다.
          * 전위에는 카게야마. 이나리자키 측은 투 어택도 대비했다. 카게야마의 세트업에 맞춰서 모이는 이나리자키 블록. 카게야마도 공격자원 전원이 네트 앞으로 뛰어오르며 블록을 모아놓는다. 츠키시마, 타나카, 아즈마네가 각각 중앙, 좌측, 우측에서 뛴다. 그러나 이들 중에 진짜는 츠키시마 뒤에서 튀어나온 사와무라. 실전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와무라의 어택이다. 그것도 자신이 별로 자신없어 하는 공격.
          * 사와무라는 지금 만큼은 어택이 익숙하지 않은 걸 잊어버리고 때렸다. 블록의 반응이 늦다. 완전히 속였다. 스파이크가 이나리자키 코트를 깊숙히 관통한다. 완벽한 코스. 카라스노가 아츠무의 서브를 단칼에 끊으며 1점을 추가한다. 아츠무도 여기에는 "제법"이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스코어는 24 대 25. 다시 세트포인트. 후쿠로다니의 콤비가 "사와무라가 어택 치는건 처음 봤다"며 눈이 휘둥그래하다.
  • 하현우 . . . . 4회 일치
         || [[여전사 캣츠걸]] || → || '''[[우리 동네 음악대장]]''' || → || [[하면 된다 수탈출]] ||
         [[두산(밴드)|두산]]을 대신해 2012년 6월부터 국카스텐이 합류했다. 다른 멤버들을 제치고 단독샷을 독차지했는데, 이런 현상은 이미 국카스텐이 다른 방송에 출연해서 인터뷰를 할 때도 종종 나타나던 현상이다.
          * 소신 있는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가창력이 딸리는 아이돌들을 디스하는데 [[http://cfile23.uf.tistory.com/original/233DE14156AE7262074BBB|이 짤방이]] 쓰인다. 바로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라는 것. 다만,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등의 프로에서 특출난 실력을 뽐내는 아이돌들이 등장하면서 재발굴되어 까임거리도 되었다가 찬양도 되었다가를 반복하는 중이다. 일단 저 발언 자체는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들이 공장에서 물건이 찍혀나오듯 밀려나오며 아이돌에 대한 여론이 최악이었던 시기에 한 발언이고, 해당 인터뷰를 요청했던 프로그램 자체가 기획사에서 양산되는 아이돌들을 비판하는 취지였다.[* 실제로 이 발언이있고 얼마안되서 김기범과 함께 라디오에 출연해 좋아하는 아이돌로 미쓰에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미쓰에이는 멤버전원이 메인보컬급 이었음을 생각하면 하현우가 왜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알수 있다.] 게다가 해당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국카스텐은 엠카운트다운에서 [[카라(아이돌)|모 아이돌]]과 협연 명목 하에 사실상 밴드 노릇을 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해당 그룹이 노래를 너무나 엉망으로 했고, 이후 인터넷에서도 이 그룹들은 비판을 받았다. 짤방은 바로 그 일을 겪은 직후의 시기에 한 발언이었다. f(x)와의 합동무대에선 노래를 잘한다고 호평했다[[http://dc.news-ade.com/?c=news&m=newsview&idx=3623]]
  • 허준 (1981년) . . . . 4회 일치
         * [[송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5년 ~ 현재)
         오랫동안 2군 생활을 하다가 [[2009년]]부터 [[강귀태]]의 업 포수로서 본격적으로 1군 무대를 밟는다. 그 이후로 많은 기회를 받지만 부상으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2011년]] [[허도환]]의 등장으로 1군 경기 출전 횟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2011년]] [[11월 22일]] [[2012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차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팀 동료 [[조평호]]와 함께 [[NC 다이노스]]로 이적하게 된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45598 NC, 전체 1순위로 넥센 조평호 지명 '총 7명 영입' ] - 스타N뉴스</ref>
         [[2015년]] 7월에 송고 코치로 옮겼다.
         * [[2013년]] [[12월 8일]] [[경상남도]]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신부 수진과 1년 열애 끝에 결혼하였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281067.htm NC 포수 허준, 8일 창원서 결혼 ] - 스포츠서울</ref>
  • 헌경왕후 . . . . 4회 일치
         **** 시부 : 제20대 [[조선 경종|경종대왕]](景宗大王, 1688~1724, 재위 1720~1724)
         **** 시모 :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沈氏, 1686~1718)
         **** 시모 : [[선의왕후 (조선)|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 1705~1730)
         * 1988년 MBC 드라마 《[[한중록 (드라마)|조선왕조 오년 한중록]]》 [[최명길 (배우)|최명길]]
  • 현석문 . . . . 4회 일치
         현석문 가롤로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글로벌세계대과}}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3357 한국민족문화대과사전: 현석문]
  • 현주엽 . . . . 4회 일치
         서울 도성초등학교 6학년 시절 우연히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휘문중학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하였던 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 휘문중학교로 학교를 배정받아 농구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으로 휘문중학교를 입학하고 다시 농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휘문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현주엽은 1학년 동안은 늘 벤치를 지켰으며 2학년이 돼서야 코트에 첫 출전을 하게된다. 현주엽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머니를 현주엽의 농구 코치가 알아보는것이 계기가 되었다.<ref name=sports>SPORTS 2.0 2008년 10월 3호</ref> 운동선수 생활을 하였던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선수가 된 후 항상 주위 사람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주엽은 그 당시 NBA 농구 비디오를 보면서 농구연습을 했고 그의 롤모델 농구선수는 매직 존슨이었다. 매직 존슨을 동경하여 2008년까지 줄곧 넘버 32번을 달았다.
         1998년 3월 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순위로 청주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구슬 뽑기로 1순위 지명권을 받게 되자 ‘우승이야’를 외쳤다고 한다. SK는 그 지명권으로 바로 현주엽을 지명했고 이렇게 해서 현주엽은 SK에 이미 영입돼 있던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SK의 운명은 안준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고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하고 만다.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주엽의 프로 첫해 개인성적은 뛰어났다. 3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94 득점, 6.35 리바운드, 4.65 어시스트를 기록했다.<ref name=sports /> 이듬해 시즌에서 현주엽은 스몰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며 서장훈과 전년보다 나아진 팀웍을 보였다. 이에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트레이드 신청 마감일 하루전인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담한 승부수를 띄웠다.<ref>경향신문 1999년 12월25일 “현주엽=조상현+4억원'빅딜'”</ref><ref>[최창환의 투 더 KBL] [http://news.jumpball.co.kr/news/view/cd/82/seq/4.html ‘X-MAS 빅딜의 추억’ 현주엽-조상현 맞트레이드]</ref> 이는 최인선 감독이 이원재 단장에게 한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인선은 현주엽의 3번자리(스몰 포워드)가 불만이었다. 우승을 위해 3번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보다 기동력 좋고 확실한 슛터를 원했던 그는, 이대로라면 챔피언전에 진출하더라도 현대를 만나면 승산이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SK는 창단 이후 현대에게 12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트레이드 효과를 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챔피언전에서 만나게 된 현대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실패했으면 최악의 자충수로 기록됐을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찾기’로 농구역사에 기록되었다.
         *[[고려대학교]] 시절, ABC대회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보드를 부순 덩크슛을 작렬한 적이 있다.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20315001314407 두산대과사전 - 前 농구 선수 현주엽]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4회 일치
         남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현직업학교[* 현재는 아현산업정보학교로 [[개명]]했다. 특히 [[실용음악과]]가 매우 [[인지도]]가 높고 학생들의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비스트(아이돌)|비스트]]의 [[이기광]], [[양요섭]], [[K팝 스타]]의 지웅, [[K팝 스타 시즌3]]의 [[남영주]], 허니핑거식스의 황예린 등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매우 많다.]라는 위탁고등학교 실용음악과를 다녔다.[* 직업학교라서 본교인 광문고등학교는 일주일에 한번 가는 식으로 가끔씩 방문하고, 나머지 일수에 아현직업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듣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거다. 사실 여느 [[인문계고등학교|인문계고]]의 직업반들도 이런 식으로 운영이 된다.] [[휘성]], [[박효신]], [[UV]]의 [[뮤지]][* 그런데 서로 같은 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잘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등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휘성은 당시 A4라는 그룹으로 이미 가수 활동을 하는 중이었고, 박효신은 워낙에 학교에서 유명하던 터라 어린 마음에 '나보다 잘하나'하는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엔 과와 반이 달라서 그리 친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데뷔 후에 방송에서 자주 만나며 친해졌다고. 휘성의 말에 따르면 당시 환희는 대형 기획사([[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잘생긴데다 노래와 춤이 기가 막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학교에서는 보여주질 않아 더 전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현재의 터프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에 비해서는 말이 없고 조용한 ~~자발적 아싸~~ 모범생 타입이었다고.
         2017년 11월 15일에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로서 '너의 계절'이라는 동명의 타이틀곡을 내세운 미니앨범으로 컴했지만 홍보의 부족 때문인지 차트에선 힘을 쓰지 못 했다.
         7집 활동 당시 성형사실을 스스로 고했다. 사실 6집이나 앨범을 내고 성형 전 얼굴이 이미 다 알려진 마당에 수술을 감행한거라 더 화제가 됐다. 근데 성형한 남자 연예인들 중에 손꼽힐만큼 잘나온 케이스(...)라 하길 잘했다는 사람도 많다. 물론 어떤 것이든 예전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 예전의 수수한(?) 외모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바이크]]매니아였다. 오죽했으면 우결 신혼여행 중 들린 곳이 태 서킷. 집에 바이크 피겨나 본인이 바이크를 타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전시해놓기도 했다. 지인들로부터 위험하다는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근래에는 멀리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개설한 트위터 아이디에 듀카티가 들어가는걸 보면 여전히 바이크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은 듯.
  • 황교충 . . . . 4회 일치
         |청소년 클럽= 문초등학교 <br /> 문일중학교 <br /> [[문일고등학교]] <br /> [[한양대학교]]
         [[2010 김지혁 선수의 군입대로 인한 공을 메꾸기 위해 K리그 드래프트|2010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포항 스틸러스]]에 지명되어 입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황교충·김다솔 등 골키퍼 대폭 보강 |url=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61164&news_area=060&news_divide=06002&news_local=10&effect=4 |출판사=경북일보 |date={{날짜한글화|2009-11-18}} }}</ref> 2010년 10월 9일,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ref>{{뉴스 인용 |제목=‘이진호 결승골’ 포항, 광주 누르고 5경기 만에 승리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01009163719§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0-9}} }}</ref>
         [[2014년]] [[강원 FC]]로 이적하였으며, [[2015년]]에는 [[종환 (축구 선수)|종환]]과 함께 [[강원 FC|강원]]의 공동 [[주장 (축구)|주장]]을 역임했다.
  • 황치열 . . . . 4회 일치
         * 2017년 5월 14일, 5월 21일 문화 방송 [[문화방송|MBC]]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11회 ~ 112회에 '짐승남 강호'로 참가, 1라운드부터 2라운드, 3라운드까지 [[정혜성]], [[Y2K (음악 그룹)|고재근]], [[이예준 (가수)|이예준]] 등을 상대로 이김. 56대 복면가왕 선발전까지 진출하였으나 '노래 9단 흥부자댁'([[소향]])에게 석패.
         * 2015년 11월 11일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Part 4 (박준하/에메랄드 캐슬 편) - 〈너를 처음 만난 그때〉 with [[아연]]
         * 2015년 11월 28일 -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지영 편) - 〈부담〉 '''432점 우승'''
         * [[2017년 ]] [[MBC]] [[복면가왕]] 짐승남 강호 (참가자)
  • HelpOnEditing . . . . 3회 일치
         '''등호(=)'''를 써서 나타냅니다. 단, 제목의 내용과 등호 사이에는 공이 최소 한 칸 들어가야 합니다.
          * 입력) {{{{{{#green 블로그 BPM 120}}} - {{{#orange 위키과 BPM 160}}} - {{{#FF0000 리그베다 위키 BPM 200}}}}}}
          * 출력) {{{#green 블로그 BPM 120}}} - {{{#orange 위키과 BPM 160}}} - {{{#FF0000 리그베다 위키 BPM 200}}}
  • 검은방 시리즈 . . . . 3회 일치
          전 시리즈에 개근한 주인공. 과거 화점 붕괴 사고 당시 어린아이와 여승아 둘 중 하나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여승아를 구했다. 이 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여승아)과 함께 감금당하게 되지만 하무열의 도움과 자신의 추리력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류태현의 애인. 화점 붕괴 사고 당시의 일로 인해 검은방 1편에서 감금당한다. 검은방 1편 이후 실어증에 빠져 병원 신세를 지게된다.
          검은방 1편의 범인. 스포일러 틀까지 쓰면서 스포일러 경고했다. 두명의 동생을 두고 있었으나 한명은 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다른 한명은 그 충격에 빠진 상태로 입대했다가 중대장의 갈굼으로 자살. 두 동생의 죽음에 연관된 이들에게 복수하고자 검은방 1편에서의 사건을 일으켰지만 류태현과 하무열에게 저지당한다.
  • 경주시 . . . . 3회 일치
         경주는 태산맥 또는 두대간의 인근 도시로 경상북도 남동쪽 끝에 위치한다
         |align="center"|[[상승]]
  • 고성국 . . . . 3회 일치
         [[고려대학교]] 정외과 강사 시절인 1986년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270032921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617&publishType=00020</ref> 당시 공안당국은 다산기획 대표이던 고씨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좌익]] 서적 100여 권을 들여와 번역한 뒤, 이를 [[산서당]] 대표 이범(현 [[흥사단]] 일본특별위원장)에 넘겨 대학가와 시중에 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4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4&officeId=00020&pageNo=1&printNo=19855&publishType=00020</ref> [[1988년]] [[2월 27일]]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된 사면복권에서 특별사면복권 대상자가 되어 풀려났다.
         * 《사회과학개론》(공저), 산서당, 1990<ref>http://books.google.com/books?id=xCCHOwAACAAJ&dq=inauthor:%22%EA%B3%A0%EC%84%B1%EA%B5%AD%22&hl=ko&ei=EUDaTsvKCeHJmQXis-H0Cw&sa=X&oi=book_result&ct=result&resnum=5&ved=0CEEQ6AEwBA</ref> (ISBN 2006793000027)
         * 《한국사회운동의 혁신을 위하여》(공저), 산서당, 1993 {{ISBN|8973270877}}
  • 곽희성 . . . . 3회 일치
         * [[2013년]] [[KBS2]] 월화드라마 《[[광고천재 이태]]》 ... 마이찬 역
         * [[2015년]] [[MBC]] 일일연속극 《[[최고의 연인]]》 ... 강호 역
         * 1집 '광고천재 이태 OST part3' (2013년 3월 5일)
  • 권해효 . . . . 3회 일치
          * 2016 [[스플릿(한국 영화)|스플릿]] : 사장 역
          * 2016 [[가려진 시간]] : 기 역
          * 각종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농성 지원, 위안부 일인 시위, 안티 조선 운동 등 여러 방면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2015년 12월 28일의 위안부 협상 국면에서는 아베에게 경고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기도. 또한 [[이승만]]의 어두운 일면을 남김없이 들춘 '''년전쟁 - 두 얼굴의 이승만'''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3회 일치
         무슨 일인지 컴할때마다 타이틀곡 파트가 줄어들고 있다...--안습-- [[DRAMA]] 활동 당시에는 [[경리(나인뮤지스)|경리]]와 함께 파트 독식이었지만 [[9MUSES S/S EDITION|다쳐]] 활동 때는 --파트고자-- [[박민하(1991)|민하]]에게 1절 파트를 주고 2절 맨 끝자락에서야 본인파트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뒷 부분 후렴구 세 파트[* 근데 가끔 마지막 후렴구 일부가 잘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금조의 파트가 있다. 즉 파트 길이로만 따지면 [[9MUSES S/S EDITION|다쳐]]에서도 멤버 중 가장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였는데 잠은 안 오고 배는 고프고에서는...
         통상적으로 [[코러스]]라고 불리는 작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실제 앨범에는 "그라운드 보컬"이라고 표기된다.] 실제로 [[http://www.fkmp.kr/|한국실연자협회]]에 금조가 참여한 곡을 검색하면 실연정보에 '''<부실연 : 금조 [BACKGROUND VOCAL]>''' 이라고 나오는걸 볼 수 있다. 데뷔 전부터 참여해온 활동인데 데뷔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중. --참여한 곡들만 모아도 이미 정규앨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2015년]] [[5월 26일]] 발표 된 [[카라(아이돌)|카라]]의 [[IN LOVE|미니 7집]] 타이틀곡 '[[CUPID]]' 에서 코러스를 맡은 듯 하다. 앨범 크레딧에 본명인 '이금조'가 명시되어 있고, 이 곡의 작곡가가 같은 [[스타제국]] 소속이었던 [[V.O.S]]의 멤버 [[최현준]]이 속한 작곡팀 [[e.one]]인 점 등 여러모로 봐도 확실한 듯. 또 [[은정(티아라)|엘시]]의 '눈물비' 와 [[구하라]]의 [[ALOHARA|미니 1집]] 중 '하라구' 와 '어때?',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의 '[[SNOWFLAKE|사랑별 (Luv Star)]]', [[에이프릴(아이돌)|에이프릴]]의 '[[Spring|미니 2집]] 중 '팅커벨'과 'JELLY'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이후 여자친구 [[LOL(여자친구)|정규 1집]]에 수록되어 있는 e.one 작곡의 노래들인 '나의 일기장' 과 '바람에 날려' 도 마찬가지로 참여했으며, [[우주소녀]]의 미니 2집 타이틀곡인 '비밀이야'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여기서는 금조라 표기하고 있다. 현역 아이돌이 다른 아이돌 노래에 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라 볼 수 있겠다. '[[CUPID]]'와 '눈물비'는 연습생 시절 참여한 곡들이라 특별히 더 애착이 간다고.
  • 길용우 . . . . 3회 일치
         [[나무위키]] 목록에는 이렇게 기본 정보만 있다시피 하--며 더불어서 [[항목]]도 매우 부실한 편이--지만, 이래뵈도 1980년대의 대스타.[* 일례로 1989년부터 1991년까지 2년동안 '''[[대우 르망]]'''의 모델로 활동했었다!] 1981년 데뷔 이래 '[[조선왕조 오년]]', '간난이' 등 [[문화방송|MBC]]의 많은 [[드라마#s-3|드라마]]의 [[주연#s-1|주연]]들을 꿰찼다.
         [[삼국시대]]의 마지막 왕 역을 두 번 연기하였다. 그리하여 [[사극]]에서는 마지막 왕 이미지가 강하다. 1992년 [[KBS 2TV]] [[삼국기]]에서는 [[제]]의 [[의자왕]]을, 2007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는 [[고구려]]의 [[보장왕]]을 연기하였다. [[해신(드라마)|해신]]에서도 [[신무왕]]을 맡았던지라 삼국시대의 왕을 전부 연기해본 경력이 있다. --[[우리들 가운데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삼국 중에 중 웬 스파이가 존재하는 듯 한 기분탓을 그만 넘겨줄까 했었는데(…)]] 역시 [[통일신라|통신 시절 때의]] [[신무왕|그 어떤 누구를]] 이대로 흐지부지 넘겨가줘선 결코 아니될 듯 싶다; 현재와 미래에 아이들의 역사지식을 위해서라도(…)--
          * [[조선왕조 오년]] 설중매 - [[성종(조선)|조선 성종]]
  • 김도연(배우) . . . . 3회 일치
         출생 [[1966년]] [[1월 19일]] [[강원도]] [[태시]]
          * 1985년 MBC 발의 청춘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66년 출생]][[분류:1984년 데뷔]][[분류:태시 출신 인물]]
  • 김민수 (1983년) . . . . 3회 일치
         |2014||MBC||[[압구정 야]]||조나단||
         |2015||MBC||[[여왕의 꽃]]||'압구정 치미' 주인공 치미 오빠||[[특별출연]]
  • 김상조 . . . . 3회 일치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최순실 국정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최순실 특검]]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조금씩 그 이름을 인식시켰다.]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아주 오랫동안 재벌개혁 시민운동을 계속한 인물로 한국 재벌과 관련해서 학문적인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고 언론 기고 또한 활발했으며 독자적인 저술은 한 권밖에[* 제목은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을 읽어보면 통계적 근거와 [[경제학]]적 통찰을 근거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담하게 논하는 대중 서적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인사라고 하면 거리를 둘 법한 주장도 많이 보인다.] 없는 듯하지만 [[알라딘]]에서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1%e8%bb%f3%c1%b6&x=0&y=0&|김상조]]를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경제, 재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저술에 저자로 참여해왔다. 공정위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이전 소장으로 적을 두고 있던 경제개혁연대에서 수많은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6월 12일 결국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었지만, 청와대에서 임명을 진행하여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이 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피링에서 길어진 국정 공을 메우기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며, 각종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이미 국민의 청문회를 통과했다는 발언을 하며, 공정거래의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원래부터 찬성 입장이었던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모두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7/06/20170613327266.html|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투쟁해나가겠다"며 맹렬하게 비난하였으며, 바른정당은 "오만한 문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 비판하였다. 국민의당은 당초 김상조 후보자의 임명 자체에는 반대가 없었던 터라, "국회 청문회 보고서 통과없이 임명되는 것에는 유감스럽지만, 이는 여당의 고집과 야당의 아집이 빗어낸 것이다"며 공동책임론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9334195&date=20170613&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9|대체적으로 야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3741|문 대통령의 연설 중 조는 모습]]이나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8&aid=0003847763&date=20170612&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24|원내대표 회담에 불참]]하는 등 애초에 협치를 바라지 않는 듯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애초에 협치를 바란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많다.
         해당 기간 동안 [[롯데]]가 67개, [[농협]]이 2개, [[현대화점]]이 3개, [[대림]]이 1개 고리를 해소해 기업집단 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버렸으며 [[영풍그룹|영풍]]도 6개 고리를 없앴다. [[삼성]](3개)과 [[현대중공업]](1개)도 합병, 분할 등의 사유로 신규 형성·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공정거래법상 유예기간 내에 해소했다.
  • 김석형 (역사학자) . . . . 3회 일치
         김석형은 1963년에 발표한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에 대하여〉라는 논문과 이 논문을 보완하여 1966년에 발표한 《초기조일관계사》라는 저서에서 칠지도가 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바쳤다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부정하고 오히려 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하사했다고 주장했다. 김석형의 삼국분국설은 현재 많은 부분이 수정되거나 파기되었지만, 제 왕이 칠지도를 하사한 것이라는 학설은 남북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유물의 상감 기법 등으로 제작 연대가 6세기로 추정되며 가지가 실제로는 7개가 아닌 6개라는 등 칠지도를 《[[일본서기]]》의 내용에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 김성곤 . . . . 3회 일치
         박정희의 친위대를 자처하면서 3선개헌에 회의적이던 김종필계와 대다수 공화당 인사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3선 개헌]]을 성사시켰다.[* 3선개헌이 처음 불거졌을때 김종필을 선두로 해서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장기집권한 이승만의 최후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부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회유, 협박해서 결국 모두 찬성으로 돌려놨다. 당내에 막강한 독자계보를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압박하는데 선봉에 선게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남억]], [[길재호]] 4인방][* 한때 60명이 넘던 공화당내 개헌반대파 국회의원은 결국 3명 [[정구영]], [[예춘호]], [[이만섭]]만이 남았고, 결국 정구영-강제 정계은퇴, 예춘호-제명, 이만섭-낙선으로 모두 숙청되었다. 예춘호는 야당으로 넘어가서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만섭은 야인으로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이후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총재로 재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남억]], [[길재호]]와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박정희를 대리해서 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재벌]]에게 해외차관과 정부발주공사의 10%를 무조건 자신을 통해서 상납하게 하면서 ~~[[뇌물]]의 제도화~~ 정권의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재벌,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그가 [[쌍용그룹]] 회장(재벌총수), 동양통신 사장(언론인)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정치인)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한 나머지 1971년 민주공화당의 김진만, 남억, 길재호 등과 함께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가결시킨 '''[[10.2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박정희 분노를 산 김성곤 회장은 [[길재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랑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범죄)|고문]]을 당하고, 정계에서 쫓겨났다. 당시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이 뽑힐 정도로 수모를 당했고, 심지어 시중에는 개처럼 두들겨 맞아서 생으로 변을 지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오죽했으면 신민당에서 문제삼으며 정권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살해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3선 개헌 이후에 소위 4인체제의 힘이 커지자 기회만 보고 있던 박정희가 항명파동을 계기로 싸그리 숙청해버린 것이다. 집권당 국회의원도 박정희한테 반대하면 잡혀가서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본 이후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과 정권내에는 박정희한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완벽한 1인 독주체제가 된다. 이 때문에 노골적인 종신집권 의욕을 보인 [[10월 유신]] 때는 집권세력 내에선 전혀 반대가 없었다.
  • 김승대 . . . . 3회 일치
         신진호와 황진성의 공을 훌륭히 메꾸고 7월 2일 서울전에서는 [[고무열]]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포항 유스는 역시 미드필더 화수분'이라는 찬사를 받게 만들었다.
         상위 스플릿 시작과 동시에 황진성의 이탈로 포항팬들은 "우리 리그 망함"하고 좌절했지만, 황진성의 공을 완벽하게 매꾸면서 [[대한축구협회 FA컵]] 2013 결승에선 전북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고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남은 리그 경기에서도 맹활약하며 2013 K리그 클래식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다.
         [[라자르 베셀리노비치]], [[티아고 알베스 살레스]] 등을 영입하면서 이명주, 강수일의 공을 메꾸기 위해 다시 2선으로 뛸 것으로 예견되었다. 원정 개막전인 [[수원 삼성]]과의 경기는 잘 뛰었으나 [[울산 현대]]와의 홈 개막전을 앞두고 발가락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그 다음 경기가 [[FC 서울]], [[전북 현대]]를 연속으로 만나야 하는데 서울과의 경기에서도 출전하지 못 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 3월 국가대표 소집에 되지 못함도 서러운데 울산과의 경기가 수비진의 폭망으로 4:2로 대패를 당했다. 그리고 못뛴 게 분했는지 다음 홈경기인 서울경기서 특유의 라인브레이킹을 살려내며 2골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끈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3회 일치
         190cm의 장신이지만 단신 공격수들의 주공격 방법인 왼쪽 측면 C속공과 중앙 시간차 공격 등 스피드 배구가 가능하다. 물론 압도적인 신장과 스파이크 높이가 있어 상대편 전위의 블로커가 투 블록 내지는 쓰리 블록을 떠도 상대 블로킹 위를 넘어 코트 먼쪽의 대각으로 넣는 공격도 가능하다. 어택 능력 또한 뛰어난데, 국가대표팀에서 [[정대영]]이 A퀵을, 김희진이 이동B퀵을 뛰는 척 상대편을 속이면 김연경이 어택을 해 주는, 남자부 경기에서나 볼 듯한 파이프(PIPE) 공격과 같은 고난도 플레이도 가능하다.
         한편 이런 캐사기적인 플레이도 가능하다. 장면은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 [[정대영]]이 2단으로 연결하는 상황에서 미처 도움닫기 준비를 못한 김연경이 제자리뛰기로 어택을 성공시켰다. 오오. ~~ 그리고 무진장 배를 아파했다. ~~ ~~코레와스고이키무욘굔노 박쿠아타쿠~~
  • 김원주(가수) . . . . 3회 일치
         [[2013년]] [[5월 13일]] 컴한 음반의 타이틀곡인 '지우고싶다' 에서 주인공으로 열연을 했는데 대사가 없어서 꽤 [[http://osen.mt.co.kr/article/G1109852598/|편했다고 한다.]]
         담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안정적으로 노래하여 추후 곡에선 꽤나 고음파트로 배정을 받는편.--사실 얼굴 마담이라 서 있기만 해도된다--
         신용재와 가창력 면에서 의외로 상반되는게 많다. 김원주는 중저음역대는 안정적이지만 고음역대가 안정적이지 않고, 신용재는 김원주보다는 고음역대가 안정적이며 신용재는 구슬픈 음색이지만 김원주는 구슬프지않고 담한 음색이다. 둘다 노래할땐 기교를 많이 넣는데 신용재는 애드리브를 많이 넣고 김원주는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넣어서 부른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이후 두 시즌의 공기 이후 김준영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로 개인리그에 복귀한다. 김준영은 [[차재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CJ 엔투스]] 코치), [[박태민]](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 [[변형태]](당시 [[CJ 엔투스]], 현 [[공군 ACE]])와 24강 F조에 편성되어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서 1년여만에 만난 오영종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그 다음 대회였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도 김준영은 재경기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힘겹게 16강에 진출했지만, [[이성은]](당시 [[삼성전자 칸]], 현 [[공군 ACE]])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훌륭한 기량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16강을 넘지 못하는 김준영에게 게임팬들은 '16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안겨 주었다.
         이후 김준영은 우승자 징크스에 시달리며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1승 2패로 16강 탈락하였고, 두 시즌의 공과 이적 이후 진출한 [[EVER 스타리그 2008]]에서도 3패로 16강 탈락하였다. 그러나 다음 대회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는 2승 1패로 16강 그룹을 통과했으며, 8강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2:1로 승리하는 당시로서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4강에 올랐다. 4강에선 신예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SK 텔레콤 T1]])의 메카닉 전략에 무너지며 1:3으로 분패했고, 같이 결승 진출이 좌절된 [[도재욱]]([[SK 텔레콤 T1]])보다 대회 승률(인크루트 스타리그 16강부터 4강까지의 승률)이 낮아 4번시드를 획득하였다.
         * 김준영의 별명 '대인배'는 2005년 11월 12일 김준영이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승자전 대 [[김근]](당시 [[삼성전자 칸]], 은퇴) 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해처리 버그(해처리로 변태하다가 취소한 상태의 저그 드론이 소실될 경우 게임 자체가 멈춰 버리는 현상)가 발생하자 재경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인배(大人輩)'라는 용어는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던 [[김성모]]의 만화 중 등장한 '소인배'와 반대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 본래 표준어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소인배', '무뢰배', '폭력배' 등의 단어에서 보이듯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김준영을 '대인'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 김중혁 . . . . 3회 일치
         최후에 허은실에게 고을 받고 은실이 전철을 타고 휙 떠나버리자 어쩔줄 몰라하다가 타이밍 좋게 동진이 박미정에게 들었던 마지막 법칙을 문자로 보내온걸 읽게되는데.....
         허은실에게 다음역에서 무조건 내리라고 하면서 담을 넘어 허은실에게 미친듯이 뛰어가는 걸로 만화가 끝을 맺는데 모르긴 몰라도 본인도 마음이 있었던 듯 하다. 그 전에 짧게나마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마음은 이미 확정. 본인도 '감정을 잘 모르겠다'여서, 테스트를 하기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허은실이 그런 김중혁에게 자신이 그 마음을 확인시켜준다며 고하고 떠난 것이다. 자신이 다치지 않으면 사랑한다는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마지막 법칙을 서로가 알 경우 이건 반대로 강력한 협박이 된다. 김중혁이나 박미정이나 둘 다 심성을 고려하면 본인에게 고한 사람에게서 떨어지려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 죽여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고서야.
  • 니세코이/217화 . . . . 3회 일치
          * 이치죠 어머니는 치토게가 떠난 후, 독으로 "거짓말을 하나 했다"고 고한다.
          * 이치죠는 마음은 정했지만 고은 미뤄두기로 한다.
  • 니세코이/225화 . . . . 3회 일치
         [[니세코이]] 225화. '''고'''
          * 오노데라는 자신의 마음을 고하고 두 사람은 펑펑 울어 버린다.
          * 고하는 오노데라.
  • 니세코이/226화 . . . . 3회 일치
          * 오노데라는 고하지만 이미 이치죠는 마음을 정한 상태.
          * 오노데라의 고에, 이치죠는 자신도 중학생 때부터 쭉 좋아했었다고 말하는 이치죠.
          * 자신은 시간이 지나도 쭉 이치죠를 좋아할 거라는 고과 함께
  • 니세코이/227화 . . . . 3회 일치
          * 많은 할 말이 있지만, 치토게는 먼저 고한다.
          * 그리고 이곳에 와서 자신이 약속의 아이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포기할 마음이 들었다고 고한다.
          * 듣고 있던 이치죠는 오노데라에게 고 받았지만 거절하고 왔다고 말한다.
  • 마~앙 . . . . 3회 일치
         니코니코 대과 항목
         치~잉(웃음) / ち〜ん(笑)의 니코니코 대과 항목
         V야넹! 타이거즈(Vやねん!タイガース )의 니코니코 대과 항목
  • 마~앙(웃음) . . . . 3회 일치
         니코니코 대과 항목
         치~잉(웃음) / ち〜ん(笑)의 니코니코 대과 항목
         V야넹! 타이거즈(Vやねん!タイガース )의 니코니코 대과 항목
  • 마기/300화 . . . . 3회 일치
          * 오르바가 "모르지아나가 있지 않느냐"고 다독이지만 토토가 "모르지아나는 연룡하고..."라고 말해버려서 분위기가 급속히 얼어붙는다
          * 오르바는 연룡에 대한 증오도 정리했다. 오르바 일행은 한동안 황제국에 있었는데 연룡이 나라를 이끄느라 고생하는 걸 보고 왠지 아무래도 좋아졌다고 한다
  • 박술희 . . . . 3회 일치
         '''박술희'''(朴述熙 또는 朴述希, ? ~[[945년]] [[10월 24일]]([[음력 9월 16일]]<ref>『[[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고려 혜종|혜종]](惠宗) 2년(945) 9월 16일(기유)</ref>))는 [[신라]](新羅) 말기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 사람이며, [[고려]](高麗) 초기의 [[무신]](武神)이다. [[고려 태조|태조]](太祖)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다. [[면천 박씨]](沔川朴氏)의 시조로 [[고려]]高麗) 전기의 무신(武神)이자, 개국공신으로 [[호 (이름)|시호]]는 엄의(嚴毅)이다. 대승(大丞) 득의(得宜)의 아들이다.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시대의 문신 [[박제상]](朴堤上)과 [[결 선생]](百結 先生)의 후손이다.
         [[신라박씨선원세보]]에 의하면 그는 [[눌지왕]]시대의 문신 [[박제상]]과 [[결 선생]]의 후손이라 한다. 박제상의 아들 박효원의 후손인데, 박효원이 아들이 없어 삼촌 박지상의 아들 충혼의 아들 등원을 양자로 삼았고, 그로부터 세계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대승 박득의이고 할아버지는 박기원이다.
         혜성(현재의 [[당진시|당진]])의 호족 출신으로 18세 때 [[궁예]]의 호위병이 되고, 뒤에 ([[고려 태조|태조]])의 휘하로 들어와 그를 섬겨 많은 공을 세워 두터운 신임을 얻어 대광(大匡)이 되었다. [[고려 혜종|혜종]]을 정윤(왕태자)로 책봉할 때, [[장화왕후]]가 [[왕건]]의 의중을 박술희에게 전달하게 하여 [[왕무]]가 정윤이 되었으므로, 박술희가 [[왕무]]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935년]]에는 [[견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보이는 나주 탈환 작전에 [[홍유]]와 더불어 지원하였으나 성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왕건]]은 그들 대신 [[유금필]]을 파견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태조]]가 사망하기 직전에 [[고려 태조|태조]]로부터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부탁받고,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전수받았으며, 자신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고려 혜종|혜종]]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 박승임 . . . . 3회 일치
         1558년(명종 13) 풍기 군수에 제수된 박승임은 기쁜 마음으로 풍기에 부임하여 성들의 조세 부담을 경감해 주어 민생을 안정시키고, [[소수서원]]에 자주 들러 유생들과 강학하며 회헌(晦軒) [[안향]]의 영정을 새로 제작하는 등 치적을 남기고 5년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힘쓰며 취향정(翠香亭)과 동리서재(東里書齋)·소고대(嘯皐臺) 등을 짓고 은자(隱者)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 [[이량]] 등이 제거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간 박승임은 이후 병조 참지와 승정원 동부승지를 거쳐 진주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고을의 부로(父老)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향약을 실시하며 성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1568년(선조 1) 병으로 사직,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으나 1568년 특명으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는 사절단의 동지부사(冬至副使)에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1574년(선조 7) 경주 부윤으로 발령되었고 이후 1577년(선조 10) 강화 부사, 1578년(선조 11) 여주 목사 등으로 부임했다. 지방관을 역임하는 동안, 박승임은 세금을 가벼이 하고 진휼을 실시하여 민폐를 제거하였다. 한편 [[김안국|모재 김안국]] 제향한 기천서원(沂川書院)을 건립하는 등 민생의 안정과 교화의 보급에 커다란 공로를 세웠다. 이때 어사(御史)로 파견된 정이주(鄭以周)는 그의 치적을 조사하여 박승임의 치적이 가장 뛰어나다는 ‘치행제일(治行第一)’이라는 보고서를 올렸고, 선조는 박승임의 공로를 치하하여 특별히 옷을 하사하였다. 이듬해 박승임이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려 하자 성들은 그가 가는 길을 막고서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였다고 한다.
  • 백승민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선수명 = 승민
         '''승민'''(白承珉, [[1990년]] [[7월 9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다.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수원 씨]]
  • 보루토/1화 . . . . 3회 일치
          * 두 눈을 모두 뜨는데 마치 "안"과 같다.
          * 이 눈이 안처럼 보이는데, 눈 주위에 나타나는 특유의 혈관은 나타나지 않는다.
          * 만일 안이라면 사라다 못지 않은 괴물 조합의 탄생.
  • 보쿠걸/104화 . . . . 3회 일치
          * 타케루는 "지금 밍기적 댈 순 없다"고 결심하고 미즈키에게 고한다.
          * "여자로 사는 것이 무섭다면 내가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며 사귀어달라고 고한다.
          * 설마했던 타케루의 고 테크.
  • 보쿠걸/105화 . . . . 3회 일치
          * 미즈키는 후지와라에게 고하지 못하고 "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정할 수가 없다"며 혼란스러워한다.
          * 미즈키는 후지와라의 그런 상냥함을 동경했다고 독한다.
          * 미즈키는 후지와라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고한다.
  • 부산광역시/인물 . . . . 3회 일치
         * [[종헌(정치인)|종헌]] - 동래구
         * [[최호]] - 기장군
  • 북한의 역사왜곡 . . . . 3회 일치
         북한 교과서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와 [[제]]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1개 해안포병중대가 단 4문의 해안포로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수척의 함선을 가지고 달려드는 맥아더 5만대군의 인천상륙기도를 3일간이나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우리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맥아더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
         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월미도에서 리대훈 해안포 중대장이 단 4문의 포, 1,000대의 비행기와 수천의 함선의 함선을 이끌고 공격하는 맥아더의 5만 대군을 3일간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위 내용은 1983년에 북한에서 "월미도"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홍보하였으며 북한의 공식적인 역사관으로 보인다.
  • 브와나 비스트 . . . . 3회 일치
         또한 병전에 능하다.
         [[엄친아]]같은 인물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만장자 아버지에게 가업을 이으란 말을 들었지만 거절하고 대학 룸메이트였던 루퍼트 켄보야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잠베시 국의 새로운 동물보존구역 책임자 겸 게임 관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후에 인종차별에 대한 평화적 시위 도중 총에 맞아 브와나 비스트에서 은퇴하고, 도미닉 믄다웨(Dominic Mndawe)에게 헬멧을 물려줬다. 이 도미닉이 바로 [[프리덤 비스트]]. 브와나 비스트란 이름이 인 제국주의 같다며 프리덤 비스트로 바꿨다.
  • 블랙 클로버/101화 . . . . 3회 일치
          아스타는 마석을 챙기면서 이것이 대체 뭔지, 야의 마안이 어째서 이것을 노리는지 질문한다. 마녀왕은 이것이 원래 "엘프"의 마도구이며 장착자의 마력을 높이는 물건이지만 제대로 쓸 수 있는건 엘프들 뿐이라고 가르쳐준다. 엘프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고대에 살았던, 선천적으로 고 마력을 보유했던 종족이다. 기원은 불명이나 수 년 전까진 살아 있었고 현재 "해외계"라 불리고 있는 땅이 그들의 영역이었다.
          옛 마신, 초대 마법제가 쓰러뜨렸다는 그 존재도 엘프족의 족장이 발동한 금술이었다. 마녀왕은 그런 점으로 보면 야의 마안은 엘프족의 잔존세력일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핀랄은 이런 새로운 정보들을 부리나케 필기한다.
  • 블랙 클로버/53화 . . . . 3회 일치
          * 정보 상으론 "그 분"은 곧 야의 마안의 수괴로 추정되는데, 모두 리히트라고 생각했지만 아닐 가능성이 생겼다.
          * 마르크스는 반마법의 힘으로 "어떤 두 사람"의 보호마법을 깨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만 된다면 야의 마안의 정체가 밝혀질 거라고 한다.
          * 그렇다면 야의 마안이 추종하는건 그 악마라는 얘기가 된다.
  • 블랙 클로버/69화 . . . . 3회 일치
          * 먼 옛날 마력을 독점하려는 악마의 성들이 있었고 이들 중 가장 강한 자가 금단의 마법으로 마신이 되어 인간을 멸망시키려했다.
          * 지켜보고 있는 핀랄은 지금도 넝마짝이긴 마찬가지라고 독한다.
          * 하지만 속으론 여전히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아"하면서 쪼잔한 독을 한다.
  • 블랙 클로버/74화 . . . . 3회 일치
          * 야의 마안의 부하들은 챠미의 마법으로 구속했는데 솜마법으로 꽁꽁 싸매서 축소해버리는 마법. 따져보면 엄청나게 고급 마법이다.
          * 마석을 수령한 마법제는 검은 폭우의 노고를 치하하고 해안에서 야의 마안과 격돌해 순직한 마법기사단을 애도한다.
          * 그런 와중에도 검은 폭우는 사상자 없이 임무를 달성하고 야의 마안을 격파하는 공적을 세웠다며 크게 칭찬한다.
  • 블랙 클로버/76화 . . . . 3회 일치
          * 라가스는 성의 신망이 두터워보인다며 "성과 너 자신 모두 지켜봐라"라며 천둥마법을 사용한다.
          * 유노는 바람 마법 "질풍의 궁"을 날린다.
  • 블랙 클로버/84화 . . . . 3회 일치
          * 다이아몬드의 침공군은 마르스와 더불어 "야의 마안"의 삼마안 "증오의 파나"도 섞여있다.
          * 아스타는 그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는데 던전에서 만난 적이 있던 마르스와 "야의 마안"의 삼마안 "증오의 파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스타는 파나 쪽은 절망의 베토처럼 위험하다고 여기지만 마르스는 살아있었다는 것에 묘하게 안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판젤 크루거(젤)도 다이아 출신이라 그런지 마르스를 알아본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삼마안과 대치했을 때를 떠올리며 치를 떤다. 이런 우려들 속에서도 여왕은 침략군이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니 자신의 힘으로 완벽하게 없애준다고 큰소리친다.
          * 아스타는 또 무모한 짓을 되풀이하려 하는데 바네사는 칼을 붙들며 "그렇기에 동료가 있는 것"이라며 사실 여왕을 이용해 저주를 풀고 나면 그 반마법의 검으로 영왕을 따돌리고 도망치려 했다고 고한다. 바네사는 뒤늦게 여왕이 바로 옆에 있는 걸 떠올리고 뜨끔해하는데, 마침 여왕은 그런 말보다는 아스타가 가진 반마법의 검에 흥미를 보이느라 제대로 듣지 않았다.
  • 서거정 . . . . 3회 일치
         여섯 왕을 섬겨 45년간 조정에 봉사하였고, 시문을 비롯한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으며, 시화(詩話)의 미인《[[동문선]](同文選)》과 설화집인 《[[필원잡기]](同文選)》 등을 남겨 [[신라]] 이래 조선 초에 이르는 시문과 산문 문학을 집성했다.
         *** 형수 : 수원
         {{글로벌세계대과}}
  • 서상일 . . . . 3회 일치
         그러나 그후 [[한민당]]을 탈당하고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48년 5월 초대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을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6월 1일]]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되었다.<ref>[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B&i=208337&v=44 '헌법기초위원회' - 네이트 과사전<!-- 봇이 따온 제목 -->]{{깨진 링크|url=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B&i=208337&v=44 }}</ref>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같은 지역구 의원 = 대구부 갑: [[최윤동]]<br /> 대구부 병: [[남채]]
  • 서영춘(코미디언) . . . . 3회 일치
         서영춘은 바보 연기에 특화된 [[배삼룡]], 노래와 신체 조건을 이용한 개그가 장기였던 [[이기동(코미디언)|이기동]], 미남 역을 자주 담당했고 선역과 정극 연기도 능했던 [[구봉서]]와 달리 강한 개성으로 어필하였다. 특히 얼굴 표정 연기에 능하였고 연기도 두루 잘 하는 편이었으며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예외로 미국 물(미군 8군 무대)을 먹은 [[곽규석]]이 미국식 스탠딩 개그와 성대모사, [[남보원]] [[남봉]]은 성대모사를 장기로 한 쪽이다.
         60년대 극장쇼 무대에서 콤비로 활약했던 [[금녀]][* 악극단 출신의 코미디언. 드센 뚱녀 컨셉으로 1960-197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음반도 취입했다. [[이국주]]와 흡사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노래도 매우 잘 해 지금의 이국주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다. 1995년 작고.]와 함께 한 음반. 이런 음반엔 주로 재미있는 가사의 노래가 들어갔는데, 노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꽁트, 개그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서영춘의 대표작 "시골영감 서울 가는 기차..."노래가 이런 판에 들어간 종류.
         그러나 사적으로 [[주당|음주를 자주 하는]] 영향으로 [[간]](肝) 건강이 나빠져 [[간암]] 발병으로 긴 시간 병고(病苦)를 치루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단체로 문병 온 후배 코미디언 중 [[심형래]][* 그런데 이 일화를 얘기하는 사람마다 그 당사자가 다르다. [[이경규]]이기도 하고 [[최병서]]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 당사자만 아는 일일 듯.]의 낯빛이 유독 어둡길래 서영춘이 "형래야, 요새 어떻게 지내냐?" 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심형래가 무심코 "네 선생님,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죽지 못해 사냐? 이놈아! 나는 살지 못해 죽게 생겼다!"'''라며 일갈했고, 이 한마디에 병실에 있던 후배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꺽꺽댔다고 한다... 게다가 서영춘이 세상을 떠난 후 영결식에서 후배 개그맨 [[엄용수]]가 "살살이 고 서영춘 선생님께서는 생전 국민들의 웃음과 즐거움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대표적인 [[유행어]]로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 붑빠라밥빠 붑빱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마십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반...'''" 이라는 내용의 고인 약력을 눈물을 삼키며 읽어 내려가는데, 정작 조문객들은 슬픈 분위기임에도 평소 서영춘의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생각이 났는지 키득키득 거렸다고... ~~죽어서도 사람을 웃기는 역시 뼈그맨~~
  • 슈퍼걸(드라마)/1시즌 1화 . . . . 3회 일치
         카라는 윈을 옥상으로 불러내서 고을 하려고 하는데, 윈은 카라가 [[레즈비언]]이라고 고하는 건 줄 오해했다가 사실을 고해도 믿지 않는다. 카라가 투신했다가 날아올라 보이자 겨우 믿는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9화 . . . . 3회 일치
         레인 장군은 아스트라와 대화를 한다. 레인 장군은 아스트라에게 크립토나이트 자제를 주사하여 기지의 위치를 알아내려 하다. 카라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막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카라와 알렉스는 아스트라에게 자제를 주사하여 얻은 정보로 군부대를 따라서 행크를 찾는 작전에 참가하지만, 넌이 파둔 함정이었으며 폭탄이 터져서 다수의 희생자가 나온다. 카라는 알렉스와 몇몇 군인들만 구하는데 성공한다.
         카라는 그랜트에게 자신이 슈퍼걸임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랜트가 자신에게 여러가지 가르침을 주었다는걸 밝히면서 직장을 포기할 순 없다고 고한다. 카라는 결국 그만두겠다고 밝히고 나온다. 카라는 제임스가 다친 것을 보고 윈과 제임스가 맥스웰 로드에게 접근했다가 다친걸 알게 되어 격노한다. 분노하며 나가려는 카라를 윈이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하면 아스트라와 다를 바가 없다고 설득한다. 카라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좌절감을 드러낸다. 제임스의 위로를 받는다.
  • 식객 . . . . 3회 일치
         맹상군, 신릉군 같은 전국사군자는 수명의 식객을 육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식객들은 이 귀족들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점차 정부에서는 식객들을 위험시 하여 왕족이나 귀족이 식객을 두는 것을 정책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식객이 복수를 한 사례로는 전국시대 초기에 조양자[* 위씨, 한씨와 함께 진(晉)나라를 3등분하여 '조, 위, 한' 중 조나라를 건국한 인물.]에게 패사(敗死)한 지의 식객 '예양'의 사례[* 조양자를 시해하려다 연거푸 실패하고 붙잡히자 조양자의 옷이라도 베길 원한다고 말해 원을 풀고 자결한다. 공교롭게도,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조양자는 병이 들어 죽고 만다.]와, 삼국지에 나오는 [[손책]]이 [[허공]]을 죽이자, 그 식객들 가운데 몇몇이 손책을 암살한 사건이 있다.
          * 허영만 화의 만화 "식객"은 본래 의미와는 달리 '미식가' 쪽에 가깝다.
  • 식극의 소마/200화 . . . . 3회 일치
          * 도지마는 내일부터 이런 연대식극에 대비한 특훈인 2vs2 홍전을 치를 생각을 했고 미리 팀원의 궁합에 따른 조합도 생각해뒀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그런 적성 같은 건 개무시하고 "아무튼 여러번 할 거니까 대충 제비 뽑아서 하자"고 주장한다. 게다가 팀구성 보다는 "졌을 때 받을 벌칙"에 더 연연하는데. 결국 도지마가 격분해서 싸움으로 이어진다. 나잇살 먹을 만큼 먹은 아저씨들이 초딩처럼 유치하게 싸우기 시작한다. 도지마는 죠이치로가 귀국한 직후 짜증났던 점을 들먹이면서 공격한다. 일단 귀국했을 때 연락을 하긴 했었나 본데 딱 한 번했고 게다가 주소도 말하지 않았다. 도지마가 뭔가 메모하려고 했을 땐 멋대로 전화를 끊어서 소용이 없었다. 도지마가 항의하지만 죠이치로는 드립이나 치면서 흘려듣는다. 이렇게 싸운 결과 왠지 요리대결로 결판내자는 흐름이 되었고, 인원이 딱 떨어지질 않아서 원래 부를 예정이 없었던 에리나를 합류시키러 온 것이다.
          *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싸움은 에리나의 방까지 이어졌고 이게 간밤에 3 vs 3 홍전을 치르는 이유였다. 타도코로는 쉬고 있는 에리나에게 미안하게 됐다며 그래도 동료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하자고 한다. 에리나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키리 아자미]]에게 위축되고 있는 사실에 거듭 심란해 한다. 그런 손녀의 심리를 간파한 [[나키리 센자에몬]]은 더이상 인솔자들이 개판을 치고 있으면 안 되겠어서 결단을 내린다. 몸소 심판으로 홍전을 주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3회 일치
          * 홍전이 한창인 조리실. 팀 [[도지마 긴|도지마]]는 정말로 무언인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조리를 이어나간다.
          * 그런데 타쿠미가 막상 나타나자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타쿠미는 찰랑찰랑했던 머리카락도 짧게 깍고 눈빛에 묘한 기이 깃들어 있었다. 타쿠미가 정중하게 가르침을 부탁하자 점장 토모나리는 생각을 바꿔 첫날부터 주방보조로 전격 기용한다.
          * 센자에몬은 타쿠미가 성장했다며 "지금까지 없던 추잡함에 가까운 집념이 느껴진다"고 평한다. 타쿠미는 일찍히 토모나리가 봤던 "활활 타오르는 각오"가 깃든 눈으로 소마를 응시한다. 그는 눈빛으로 뭘 허둥대냐며 동료들을 구해야 하는데 이런데서 무릎꿇을 거냐고 도발한다. 더군다나 홍전이든 무엇이 됐든 여기는 주방이고 "너와 나의 승부처"라고 일갈한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3회 일치
          * 그런데 [[타도코로 메구미]]에겐 "메구먕"이란 별명을 붙여주면서도 명히 적의를 드러내고 있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듯 한데.
          *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이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아라토 히사코]]의 지도를 받으며 때아닌 서예 삼매경이었다. 지에 쓰는 건 사람 인. 이제와서 때아닌 복수전공 지망인가? 하지만 손바닥에 사람 인 자 써서 삼키는 짓을 매번 하던 차였으니 거기서 스케일만 좀 커졌을 뿐 문제는 없었다. 반대로 [[유키히라 소마]]는 풀어야할 긴장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분명했다. 태평하게 설원화 호텔의 아침식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으며 트럼프를 펼치고 있었다. 상대는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소마를 뺀 둘은 제법 본격적인 심리전을 펼치며 역시 복수전공을 고려 중인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반역자의 대장 [[나키리 에리나]]는 이 놀이에 끼지 못한 채 우두커니 구경 중이었다. 이 모든게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 문제는 없었다. 이쿠미는 새삼 어제의 대전카드 추첨 결과를 떠올렸다.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놀라봐야 소용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메구미는 사람 인을 쓰며 연대식극 2일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 3카드. 모든 과자의 스페셜 프로페셔널 아카네가쿠보 모모. 이에 맞서는 반역자의 출전자는 역시 타도코로 메구미. 카와시마는 메구미를 "명히 버리는 카드"라며 평가절하했다. 관중의 여론도 비슷. 메구미 또한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인재건만 매우 평가가 박하다. 그녀에겐 아직도 "만년 낙제생"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사실 지금까지 거명된 라인업 중에선 가장 약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야유가 퍼부어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메구미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레분 섬 결전이 시작되기 전 [[사이바 죠이치로]]와 [[도지마 긴]]이라는 양대 일류 셰프에게 특훈을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훈련이 한 가지 더 있었다.
  • 식극의 소마/239화 . . . . 3회 일치
          * [[시노미야 코지로]]의 가르침을 되세기며 파이팅하는 [[타도코로 메구미]]. 그런데 내놓은 요리는 매우 소박한 도라야끼.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안에 앙금과 함께 깍뚝썰기된 사과가 들어가 있다. 싱싱한 사과의 향기가 강점이지만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선보인 타르트에 비하면 외견도 향기도 미치지 못한다. 샤름은 모모보다 명히 밑이라고 냉정히 평하는데 이스트와르는 도라야끼라는 과자 자체를 꽤 선호하는 모양. 좋아라 맛을 보는데 생각이상으로 강렬한 리액션이 따라온다.
          * 사과 도라야끼는 평범한 외견과 달리 매우 섬세하고 산뜻한 맛을 냈다. 와삼봉 설탕에 벌꿀과 두부를 넣고 만든 빵반죽에 부드러운 앙금의 풍미와 톡톡 튀는 사과의 산미가 더해져 있다. 안은 이것이 "뇌수까지 퍼지는 초노급 촉촉함"이라 표현한다. 이스트와르가 한 가지를 더 발견한다. 그것은 빵 안 쪽에 바른 "사과버터". 간 사과에 레몬즙과 설탕, 버터를 넣고 가열해 녹여서 만드는데 보통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재료다. 그게 가능했던건 시노미야에게 사사한 "몽테 오 뵈르", 프랑스 요리의 기법 덕이다. 시노미야는 이 기술을 가르치면서 몇 번이나 호통을 치고 "굼벵이"라고 다그쳤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서 "굼벵이지만 결코 얼간이는 아니다"며 내심 타도코로를 인정한다.
  • 신동주(야구) . . . . 3회 일치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 신혜진 . . . . 3회 일치
         이후 [[친척]]과 함께 [[일본]]에 [[여행]]간 [[사진]]이 [[SNS]]에 올라와 회복된 모습을 보였으나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 측에서는 아직까지 회복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991553|2017년 4월 컴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마이걸]]의 완전체 컴을 바라던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면서도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바라는 중. 그래도 자필 [[편지]]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403000123|뉴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07803|링크]]
         위의 [[편지]] 이후로는 전혀 소식이 없어 우려가 커지던 와중, 결국 [[2017년]] [[10월 30일]] 결국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와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팀 활동에서 빠지게 되었다. 8명이 다 같이 컴하길 [[기도]]해오던 찰나에 들려온 소식이라 여러모로 많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더구나 진이는 전 [[APRIL]] 멤버인 [[전소민(KARD)|전소민]], [[이현주(배우)|이현주]]처럼 그룹 활동만 관두고 계속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를 나왔다.][* 공교롭게도 진이의 [[탈퇴]] 이후 [[오마이걸]]이 낸 첫 [[앨범]]인 [[비밀정원]]에서 [[오마이걸]]이 [[데뷔]] 후 첫 [[음악 방송]] [[1위]]를 달성하자, 많은 [[미라클|팬들]]은 '진이도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은진|이와 같은]] [[DIA|일이]] 7개월 뒤에 [[Summer Ade|일어났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3회 일치
         이걸로 적을 잡으면 죽지 않고 바닥에 누워 끙끙거린다. 설마 아무것도 모르는 경비병을 붙잡아 보스턴 돌바닥에 [[파일 드라이버]]를 먹여도. 이 때문에 완전 동기화 과제로 살해 제한이 걸린 임무에서 사용된다.
         Smoke. 화약과 린을 섞어 만든 연막탄을 자기 발 밑에 던진다. 이로인해 생긴 연기 범위 안에 들어간 적은 한동안 콜록거리며 무력화된다. 카운터킬에 쓸 수는 있지만 연막탄 던지고 끝이므로 상대 때려잡는건 직접해야한다.
          * 보스턴 의상(Boston Outfit)
  • 에릭 (가수) . . . . 3회 일치
         * 제41회 《[[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제41회 《[[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
  • 오국영 . . . . 3회 일치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제목 = 353명 중 256명 명단
  • 원피스/821화 . . . . 3회 일치
         사무라이들과 조우에 도착한 [[밀집모자 해적단]] 일당은 [[카이도]]의 부하 가뭄의 잭의 수 해적단에게 공격을 받는다.
         * '''가뭄의 잭과 수 해적단은 즈니샤의 앞다리를 집중 포격'''하고 있다. 무릎만 꿇릴 수 있다면 어떻게든 머리를 공격할 생각. 철벽같던 즈니샤도 집중 공격에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 '''즈니샤는 코를 휘둘러 단 한 방에 수의 해적단을 섬멸해 버린다'''
  • 원피스/845화 . . . . 3회 일치
          * 홀케이크 성. 빅맘 샬롯 링링은 빈스모크 일가와 만나기 위해 가는 중이다. 그런데 작은 소녀 "아나나"가 요리장이 식칼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징징댄다. 봉제인형을 찢어야 한다나. 빅맘은 옆에서 풍선을 타고 놀던 뚱뚱한 도르체, 도르제 형제에게 빌려주라고 하지만 도르체는 그러면 아나나가 자기들 풍선을 터뜨려 버릴 거라며 싫어하고 아나나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위협한다. 다른 아이들도 빅맘 주위로 몰려와 도르체와 도르제가 "나쁜 말"을 쓴다고 일러바친다. 빅맘은 껄껄 웃으며 "누구에게나 죽이고 싶은 상대는 이나 이 정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한다. 빅맘은 내일로 다가온 샬롯 푸딩의 결혼식과 사위가족과 만날 일로 들떠 있다.
          * 레이쥬는 그의 상처를 치유해준 것이 아니라 가죽같은 마스크로 덮어 씌워놨던 것이다. 그 밑에는 얻어맞아 퉁퉁 부운 얼굴이 그대로 나타난다. 상디는 피로 이어진 가족이 있어도 이꼴이고 자신의 편은 하나도 없다고 털어놓는다. 푸딩은 그의 처참한 몰골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상디는 이 결혼식을 피하려 하면 자신도 밀집모자 일행도 끝장이고 그의 "대은인"인 제프 또한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고한다. 그래서 그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 대신 루피 일행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여기에 남은 것이다.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3회 일치
          * 공격능력: 린탄(미국, NATO)/파편고폭탄(소련) - 보병에게 치명적인 포탄을 발사한다. 린탄보다는 파편고폭탄이 다루기 더 쉽다.
          * 공격능력: 린탄(미국, 나토)/소이탄(소련) - 보병과 숲에 효과적인 소이성 포탄을 발사한다.
  • 유해진(배우) . . . . 3회 일치
         [[닮은꼴 유명인|축구선수 박지성과 닮았다.]] '''외국 사람들이 착각할 정도다.''' 심지어 [[평발]]이라는 것도 똑같다. 물론, 나이를 생각해보면 박지성이 유해진을 닮은 것이지만...[* 오죽하면 [[못친소|못생긴 사람을 초대하는 축제]]에서도 더 못생긴 사람을 이상형 월드컵 형식으로 뽑을 때 이 두 사람이 함께 나올 정도다.] '이장과 군수' 예고편에서는 이걸 셀프개그로 삼아서 "넌 뭐 잘났냐? '''[[박지성]] 짝퉁''' 같이 생겨가지고"란 대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1박 2일에서도 별명이 '유지성'이다. 축구도 썩 잘 하는 편이라고. 그리고 [[배철수의 음악캠프]] [[2015년]] [[6월 17일]]자 방송에 유해진 본인이 출연해 박지성으로부터 인정받았음을 고했다. 다만 박지성은 자신의 작은 아버지가 유해진과 더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50617192016819|##]]
         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김두수 역으로 출연했을 때 신들린 악역 연기를 보여주면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그가 서울예대 재학시절 단골로 찾았던 반집에서 주인 할머니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 할머니가 하신 말이 압권인데, "불쌍한 서희 좀 그만 괴롭혀!". 유해진이 정승혜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로는 그 말을 하신 다음 하시는 소리가 더 압권이었다. "이거 많이 먹고 그만 좀 못되게 굴어!"
          * 2015 제51회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조연상
  • 윤주희(배우) . . . . 3회 일치
         2004년 말, [[DHC(화장품)|DHC]] 코리아의 제1회 DHC 스베스베퀸 선발대회[* 우승상금으로 5 만원과 DHC 적립금 2만원 외 전속계약금 별도로 김희선과 함께 CF 및 지면 광고모델로 활약하게 되는 특전이 주어졌다.]에서 우승을 차지. 2005년도 초반부터 [[김희선]]과 함께 CF를 찍으며 대중에게 존재를 알리게 된다.
         || [[KBS2]] || [[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등장인물|이태]] || ||
  • 윤휘 . . . . 3회 일치
         *** 이복 부 : [[윤담수]](尹聃壽)
         *** 이복 부 : [[윤춘수]](尹春壽)
         *** 이복 부 : 윤기수(尹期壽)
  • 은혼/588화 . . . . 3회 일치
          * 가구라는 비록 가족이 다 함께 가진 못했지만 그 푸른별에서 찾아냈다고 독한다.
          * 가구라는 완벽한 "바보"(긴토키)와 "얼간이"(신파치), 해결사를 찾았다고 독한다.
         - 가구라. 어머니 코우카에게 독.
  • 이갑성 . . . . 3회 일치
         |후임자 = [[두진]]
         |직책 = 전시 내각의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임시 국무총리]]<br/>([[두진]]과 공동)
         |전임자 = (대구부 갑)[[최윤동]]<br/>(대구부 을)[[서상일]]<br/>(대구부 병)[[남채]]
  • 이경희 (1880년) . . . . 3회 일치
         그뒤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23년]] [[조선총독부]] 폭파를 목적으로 [[김시현]](金始顯) 등과 함께 총기와 폭탄, [[신채호]]의 격문과 [[조선총독부]] 관료들에게 보낼 투항권고문 사본 등을 국내로 반입, 격문 수장을 받아 배포하였고,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미수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 후 [[신간회]](新幹會)의 조직에 참여했고, [[신간회]] 경북지부, 대구지부 등을 조직했으며, [[밀양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무기와 폭탄이 들어오자 그는 [[김시현]], [[유석현]] 등으로부터 〈혁명선언서〉와 투항권고 격문 수 장을 받아 [[경성부]] 시내 곳곳에 살포하고, 전국 각 도의 도지사와 경찰부(警察部)에 발송하였다. [[김시현]], [[유석현]](劉錫鉉) 등 [[의열단]] 단원들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은행]], [[매일신보사]] 등을 폭파하할 것을 계획하고 준비에 들어갈 때 이경희는 [[조선총독부]] 폭파를 맡았다. 그러나 [[1923년]] [[5월]] [[조선총독부]] 폭파 일보 직전에 이들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누군가의 신고로 밀정이 따라붙어, 동지 12명과 [[조선총독부]] 종로 경찰서에 체포되어 테러 미수 혐의로 재판받았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1년 넘게 형을 살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일제의 패망을 예상하여 일제 패망론을 주장하며, 해방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일본인]] 도지사와 부지사 등이 업무를 내려놓고 사퇴를 선언하자 행정공을 피하기 위해 [[8월 16일]] 위촉장을 받고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가 되고, 그날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을 겸직하였다.<ref>당시 경상북도청은 대구시내에 있었으므로 그는 경상북도 부지사와 대구부윤 업무를 보느라 양쪽을 오고 갔다.</ref> 그는 대구부윤 上野彦八에게서 행정권과 치안권 일체를 인수하였다. 그밖에 그는 [[대종교]] 본부 경의원의 참의로도 임명되었다. [[9월 2일]] 미군정이 주둔하자 레이몬드 재노스키(Raymond A.Zanowski) 미육군 대령의 천거로 경상북도 미군정 사령부 민정관으로 위촉되었다.
  • 이보희(배우) . . . . 3회 일치
         ||<-5><#c0c0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전성기가 짧은 편.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뒤 88년 초반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러나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등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 이시영 (1882년) . . . . 3회 일치
         [[1914년]] 다시 출국하여 [[북경]]으로 가 그곳에서 항일운동에 이바지했다. 그가 그때 쓴 일기(손자 이용(李鏞), 원화여고 교장 역임)를 보면 [[남채]](白南採)와 함께 활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name=autogenerated1 />
         [[남채]] 외에도 [[김좌진]](金佐鎭), [[김동삼]](金東三) 등과도 많은 일을 했다. [[1918년]] 귀국했고 [[1919년]] [[2월]], [[지청천]](池靑天), [[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영남]][[유림]]대표 2여 명을 [[경성부|경성]]으로 보냈다. 그때 유림측에서 그에게 민족대표로 서명해 달라고 하자 '내 목적은 오직 왜놈과 싸우는 것'이라며 과격한 활동 노선을 밝혔다. 그 후 임시정부에서 재무부장서리를 맡아 달라는 것도 거절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 이시영(배우) . . . . 3회 일치
         2017년 종원, 김준현과 함께 먹방 프로그램 고정 MC로 출연했었다.
         2011년 3월 16일 전북 완주에서 열린 제7회 전국 여자신인 아마추어 복싱대회 -48kg급 준결승에서 양주 석고의 신소영 선수를 상대로 승리했다.[[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962867|관련기사]] 생활체육을 넘어서서 아마복싱까지 점령중. 이러다 프로 전향할 기세. 그리고, 결국 해당 대회에서 '''우승'''했다.[[http://sports.media.daum.net/general/news/moresports/breaking/view.html?cateid=1076&newsid=20110317111622287|관련기사]] ~~정말로 배우에서 복싱 선수로 전업할 기세.~~ 경기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상대가 가드가 약하다 싶으면 왼쪽 스트레이트, 가드를 단단히 하고 있으면 오른쪽 훅을 사용했다. 판정은 17:0 ~~시작의 일보?~~아닌게 아니라, 이시영의 소속 체육관 관장인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 씨는 잘 키워서 런던 올림픽에 낼 생각이라고 한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317n11999|관련기사]] 여기에, 이시영의 소속사인 GnG프로덕션 관계자는 배우에 집중했음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http://sports.media.daum.net/general/news/moresports/breaking/view.html?cateid=1076&newsid=20110317150916632&p=newsen|관련기사]] ~~복싱계와 연예계가 이시영을 두고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 다만, 실제 저 경기에 출전했던 아마추어 복싱 선수의 말에 의하면 이시영에게 너무 좋게 판정한, 즉 편파적 전북가 진행됐다고 하는 말도 있기 때문에 복싱 실력에 대해서는 의혹이 있다.
          * [[종원의 3대 천왕]]([[SBS]])(2016. 11. 26 ~)
  • 이연희(배우) . . . . 3회 일치
         그런데 2015년 MBC 사극 [[화정]]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tta7-CAXSUY|다시 뒤떨어진 연기력을 선보인다.]] 화정에서의 억지스러운 표정 연기 때문에 '''[[이연걸]]'''을 닮았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심지어 이연걸 드립은 남초 사이트들에서 나왔던 것이라서 여자들이 질투심에 몰아간다는 식([[여자의 적은 여자|여적여]])의 변명도 불가하다...] 상술했듯 연기력이 잘 나아지나 싶더니 도리어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비판을 받았다. 이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2년 가까이 공기간을 가졌다.
         '''문여불여일견, 아래의 영상들을 보고 직접 판단해보자.'''
         || [[2006년]] || 만장자의 첫 사랑 || 은환 || ||
  • 이영아(배우) . . . . 3회 일치
         2014년~2015년 [[SBS]] [[일일 드라마]] [[달려라 장미]]에 주인공 [[장미]] 역으로 출연하여 첫 일일극 연기에 도전했다.
         ||<|2> 2014년 || SBS || [[달려라 장미]] || [[장미]] || ||
         || 제42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황금사과 ||
  • 이재룡(1964)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1963년]]생 배우 [[이재용(배우)|이재용]]과 이름이 유사하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다.[* 게다가 [[본관]], [[한자]], [[항렬]]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 깔끔한 외모로 젊어서는 하이틴 스타로 인기가 많았고, [[결혼]] 이후에는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에 출연중이다. 부인은 탤런트 [[유호정]]. 결혼 전인 [[1993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산다는 것은'''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불멸의 이순신]], [[제왕의 딸 수향]] 등의 사극에 출연하며 호평을 받았다.
         ||<|2> 2013년 || MBC || [[제왕의 딸 수향]] || [[무령왕]] || ||
         || 1990년 || MBC || 조선왕조 오년 - 대원군 || [[경평군]] 이호 || ||
  • 이종혁 (배우) . . . . 3회 일치
         * [[2011년]] 《[[푸른소금]]》 - 경민 역
         * [[2016년]] [[tvN]] 《[[집밥 선생|집밥 선생 2]]》
  • 이주승(영화배우) . . . . 3회 일치
         ||<#20B2AA> {{{#ffffff '''데뷔'''}}} ||<(> [[2008년]][* 위키과 참조] 영화 '청계천의 개' ||
          * 군대까가지 갔다 왔고 잘 보면 딱히 동안은 아닌데, 체격이 작은 편이고 평범한 인상이라 20대 후반까지 고등학생이나 그 나이 대의 수 역을 맡는다. 27세에 17세 역을 맡았는데 별 위화감이 없다.
         || 셔틀콕 || 주연 || 민재 ||
  • 이평 (1572년) . . . . 3회 일치
         유학(儒學)으로 [[1612년]](광해군 4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1612년]](광해군 4년) [[5월 12일]] [[광해군]]의 즉위를 방해한 [[유영경]](柳永慶)을 강경하게 탄핵하였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 광해군일기에 그가 유영경의 죄를 탄핵한 기록이 실려 있다. 유영경(柳永慶) 등을 추형(追刑)하고, [[광해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공신(功臣)을 녹훈하고, 역당(逆黨)의 흉서(兇書)를 중외에 반포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였다.<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일 을미 1번째기사, 이평이 유영경 등의 추형, 존호를 올리는 일, 공신을 녹훈하는 일 등을 상소하다</ref> 이에 그해 [[5월 29일]] 대신이 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리는 일을 아뢰었는데 입계하였다. 광해군은 "임금은 부귀하기는 한 나라를 소유하였고 귀하기는 군왕이니, 그 영화와 높게 드러난 것이 그 이상 더할 수 없다. 저 존호를 올려 찬양하는 일은 하늘 끝의 한 점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명예에 대해 옛날의 지사(志士)들은 얻고 잃고 가고 오는 것을 역시 개의치 않았으니, 임금에게 헛된 칭호를 가하는 것이 무슨 털끝만한 보탬이라도 있겠는가. 도리어 손상만 시키는 것이다. 나는 감히 과장하지 못하겠으며 명예도 원치 않고, 다만 본분을 지키다 자연을 따라 죽고자 할 뿐이다. 더구나 지금 이평(李坪)의 상소 하나로 인하여 경들이 정청(庭請)을 그치지 않으니, 내가 더욱 통탄스럽게 여긴다. 내가 비록 불초하지만 어찌 한 애숭이 유자의 망언으로 인하여 경솔하게 당치도 않은 큰 칭호를 받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이럴 리는 없으니, 번잡하게 하지 말고 빨리 물러가도록 하라.<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9일 임술 3번째기사, 대신이 관을 거느리고 존숭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ref>" 하였다.
         이후 [[이항복]] 등이 신하들을 데리고 입계하여 그에게 존호 올리기를 청하기도 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1일 갑자 4번째기사, 우의정 이항복이 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릴 것을 재차 청하다</ref> 일설에는 [[이이첨]]이 이평을 사주하여 유영경의 추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4일 정묘 5번째기사, 양사에서 시관으로서 시험 출제를 잘못한 김시언을 국문할 것을 청하다</ref>
  • 이혜숙(영화배우) . . . . 3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 [[만송이 장미(드라마)]] - 김순영
  • 이호재(연극배우) . . . . 3회 일치
          * 1994년 《[[태산맥(영화)|태산맥]]》... 전 원장 역
          * 1983년 MBC 《[[조선왕조 오년]] - 추동궁 마마》 ... [[정도전]] 역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3회 일치
          * 일곱 개의 대죄가 당면했던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종결되고 일행이 다시 뭉쳤다. 무너졌던 돼지의 모자정도 리뉴얼을 완료하고 일곱 개의 대죄 재집결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렸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와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도 참석. [[에스카노르]]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떨고 마시기에 바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시낭송이 끝나고 에스카노르가 울적해하지만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만은 좋은 시였다고 호응한다. 하지만 어차피 잔반 처먹느라 제대로 듣진 못해서 "바람에 춤추는 성의 외침"이란 싯구를 "바람에 춤추는 잔반"이라고 들었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주위를 환기킨다. 그들이 당면한 목적은 젤드리스의 계금으로 포로가 된 성들과 성기사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최종적으론 카멜롯의 해방. 젤드리스와 승부를 보는건 그 다음이다. 멀린이 그의 말대로이며 만전을 기한 뒤에야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 말한 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자러 간다. 엘레인은 그녀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만 그걸 바로 짚어내진 못했다. 멀린이 식당을 나서기 전, 에스카노르가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를 건네는데도 멀린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건 방문 앞의 에스카노르에겐 견디기 어려운 고이었다.
  • 임은정(법조인) . . . . 3회 일치
         이제 조용히 대세에 묻어가기만 하면 검찰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몸이었으나, 2012년 9월 6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여 검찰은 물론이고 법조계 전체에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켰다. 당시 검찰 상부에서는 지구형[* 지구형이란, 검찰의 할 일을 포기하고 판사에게 형량을 일임하는 것이다. 즉 판사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의견을 내는 것을 말한다. 관행이라는 말로 합리화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검찰권의 포기이자 검찰 고유 권한의 불이행이다.]을 지시해 놓은 상태였으나,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한 것이다.[* 정권의 바람을 잘 알고 있는 부장 검사는 "무죄 구형을 하는 것은 검찰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되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허나 임 검사는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무죄 구형도 그렇지만, 그때의 논고(최종진술) 또한 화제가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0799|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상당히 의외인 인터뷰인데 검찰 내에서 언론과 대응하는 공식 직책은 차장검사로 차장검사를 제외하고는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언론과의 접촉이 금기시 되는 게 검찰 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윤리강령상 이런 인터뷰는 기관장 승인 사항이다. 또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특정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의 ‘사건’에 대한 인터뷰가 아닌, 검찰 전체에 대한 비판을 SNS에 쏟아냈던 임은정 검사의 평소 견해를 중심으로 이뤄진 인터뷰였기 때문에 훨씬 더 이례적이다. 임은정 검사도 인터뷰에서 “대검찰청에서 (인터뷰) 허락을 해주다니 얼떨떨하다. 정말 세상이 좋아졌나 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천지개벽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도가니 사건, 지구형 사건 등 여러 뒷이야기들과 검찰과 검찰 개혁에 대한 임은정 검사의 얘기와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시라면 역시랄까, 이 인터뷰를 가지고 상부에서 뭐라고 했다고.[[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273053|#]]
  • 장강명 . . . . 3회 일치
         1975년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잡지사 기자이자 문학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4년 PC 통신 하이텔에 SF 소설을 연재하고, 군 복무 중에는 장편소설을 투고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였으나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고 퇴사하였다. 《표》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E%A5%EA%B0%95%EB%AA%85&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14607|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신문기자 관두고 2년만에 소설 6권, 문학賞 휩쓸어… 글만 써 먹고살고 싶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3112580|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조선닷컴 인물검색|url=http://cdb.chosun.com/search/db-people/i_service/manDisAllXml.jsp?uci=G010+1-0214200609200038034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YES24 《한국이 싫어서》 소개|url=http://www.yes24.co.kr/24/goods/1797227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
         * 《표
         * 제16회 한겨레문학상<ref>(표)/2011.6</ref>
  • 장세현 (배우) . . . . 3회 일치
         |학력 = [[석대학교]]
         * [[석대학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석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7년 데뷔]]
  • 장재인 . . . . 3회 일치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은 스테이지에서 대놓고 장재인을 디스했다.--김지수 씨를 데려와야했어!--(대충 너무 튀는 장재인을 데려와서 반사손해를 봤다는 주장인데.. 솔직히 김지수가 장재인 대신 왔었어도 저 셋이 탈락하는 건 변함이 없었을 것 같다. --그냥 실력이 합격한 둘보다 딸리는 거..--)
         두 번째 사전투표 결과도 2위 [[존박]]과도 많은 표차로 2주 연속 사전투표 1위를 달성하게 된다. 두번째 생방미션은 ''' '[[이문세]] 미션' '''. 여기선 이문세의 명곡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을 장재인 특유의 감수성과 양반다리 스킬까지 발동하며 89(승), 88(엄), 98(윤), 95(문)의 첫 방송보다는 약간 저조하였으나(이 방송 다음주에 방영된 스테이지 프로에서 이날 장재인의 몸상태가 저조했다는 게 밝혀졌다.), 고루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탑6으로 진출하게 된다. 이날 윤종신은 '장재인을 누가 잡죠?'라는 약간의 폭탄 발언을 했고, 이문세는 '기타로 서술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라는 평을 했다.
          *2011년 6월 8일 방송된 YTN `뉴스앤이슈-이슈앤피플`에 출연해 위대한 탄생에 대한 질문에 집에 TV가 없어 보지 못했고 청강의 노래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답을 했는데 그 이유가 'TV를 볼 시간에 책을 읽는 등 자기계발에 힘쓰는 게 더 좋다'는 말. 이 때문에 네티즌에게 'TV를 통해 화제를 끌어모았는데 그 말은 모순되지 않냐' 'TV 보는 사람들은 자기계발 안 한다는 소리냐'라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 정규수(배우) . . . . 3회 일치
         * [[2017년]] [[MBC]] 월화드라마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 [[1996년]] 제32회 [[상예술대상]] 인기상
         * [[2000년]] 제36회 [[상예술대상]] 연기상
  • 정명환 . . . . 3회 일치
         * 1988년 MBC 《[[조선왕조 오년]] - [[한중록 (드라마)|한중록]]》
         * 1990년 MBC 《[[조선왕조 오년]] - [[대원군 (1990년 드라마)|대원군]]》 ... [[조선 헌종]] 역
         * 1998년 SBS 《[[야 3.98]]》
  • 정승화(육군) . . . . 3회 일치
         [[경상북도]] 김천군(현 [[김천시]]) [[봉산면]] 출생이다. 상관을 잘못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으로 [[임관]]한 뒤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하필 강태무/표무원 [[소령]]이 [[월북]]해 버리는 사건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3사단 골부대 예하 [[대대장]]으로 보임되어서 참전하였는데 [[군단장]]이 [[유재흥]] 장군이었고 그 전투는 [[현리 전투]]였다. 이 때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일도 있었다. 탈출할 때 한 화전민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후 보답으로 여러 편의를 봐주었다고 한다.
         이후 남한산성에서 형기를 채우다가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여 조용히 지내다가 세간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니 그것이 87년 대선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직선제로 치러지게 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는 야당의 [[김영삼]]-[[김대중]]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거기다가 재야 진보진영에서 [[기완]]까지 출마하면서 야당표의 분산으로 노태우 당선(당시 김영삼과 김대중 등 두명이 하나로 단일화됬어도 노태우가 대선에 당선될일은 없었을것이라고 한다. 노태우는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무혈입성)이 유력하였다. 정승화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김영삼]]의 삼고초려 끝에 1987년 대선 직전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 겸 부총재로 전격 등장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는 MBC 성우 [[정승현]]씨가, [[SBS]]의 드라마 [[코리아게이트(드라마)|코리아게이트]]에서는 MBC 성우 [[최병학]]씨가,[* 이후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12.12 직후 신군부의 지지로 [[국방장관]]이 되어 [[5.17 내란]]에 동조한 [[공군참모총장]] 출신의 [[주영복]] 역할로 출연했다.]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박인환(배우)|박인환]]씨가 정승화 역을 맡았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선 정종준씨가 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종준은 1995년 [[코리아게이트(드라마)|코리아게이트]]에서는 정승화 체포령을 내린 [[전두환]]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 자체가 블랙코미디이다 보니 꽤나 우유부단하고 코믹하게 나오는데 육군본부 앞에서 자신을 못알아보는 초병에게 내가 육군참모총장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씬은 이 영화의 미. 영화 속 설정상 여자에는 사족을 못 쓰는 것은 덤.
  • 정칠성 . . . . 3회 일치
         [[1925년]] [[11월]] [[일본]] 정부에서 가상의 적을 대비하여 각급 중고등학교에 군사훈련 및 각종 군사교육을 실시하자, 정칠성은 군사교육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11월 7일]] [[홋카이도]]의 소준고등학교 강당에서 일본내 시민단체, 여성단체, 사회주의 운동단체 및 조선인 유학생단체, 삼월회, 일월회(남성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군사교육 반대 집회]]에 그는 [[삼월회]]의 대표 자격으로 박경희(朴慶姫)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 2 명이 급히 투입되어 진압하자, 바로 피신하였다.
         [[5월]] 근우회 각 지역순회강연 대표자를 전국에 파견할 때 근우회 중앙상무집행위원으로 경의선 라인 담당을 맡아 순회강연에 나섰다. [[5월 8일]] 그의 강연지는 장단, 개성, 사리원, 해주, 재령, 연, 평양, 진남포, 정주, 의주, 신의주로 정해지고, [[5월 12일]] 경성에서 열차를 타고 황해도, 평안도를 다녔다.
         5월 22일 평양 선행기념관에서, 5월 25일에는 진남포에서 에버트 청년회관에서 '근우회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6월 1일]] 근우회 경성지회 상무위원을 겸하였고, 의주에 도착하여 의주공회당에서 강연하였다. 이후 신의주 강연을 거쳐 [[6월 14일]] 인천 내리에서 조선여성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순회강연을 마쳤다. [[6월 18일]]에는 개성 고려청년회관에서 개최된 근우회개성지회 대회 행사에 사회자로 참석하였다.
  • 주다영 . . . . 3회 일치
         * 《[[야행 (영화)|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2009년) - 이지아 역 ([[손예진]] 아역)
         <!-- 위키과에서는 공식사이트가 아니면 팬사이트나 팬카페를 기재 할 수 없습니다. -->
  • 주영(가수) . . . . 3회 일치
          * 2010년 12월 싱글 '그대와 같아'로 데뷔했으며 2년 동안 공기를 보내다가 2012년 12월 'From Me To You'로 컴했다.
          * 2018년 3월 2일에 새 EP 앨범 Fountain을 발매하면서 컴했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3회 일치
          * 아버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된 라이너는 자신이 "선택받은 전사"라고 여기고 위안 삼으나 팔라디섬에 파견된 이후, 마르셀이 충격적인 사실을 고한다.
          라이너는 꼴찌가 맞았고 마르셀이 평판을 조작해 그를 추켜세우고 동생 포르코를 깎아내렸다. 그러니까 사실 그는 진짜 선택된 전사가 아니다. 라이너도, 나머지 두 아이도 마르셀의 고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최대 떡밥은 이들이 왜 마레에 붙었냐는 것. 타이바 가문이 프리츠 왕가를 타도했다면 새로운 왕족으로 군림하는게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들이 권력을 갖기는 커녕 마레 측에 나라를 팔고 자기 민족과 성을 가축같은 생활로 내몰았다. 현재로서는 전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부분.
  • 진격의 거인/96화 . . . . 3회 일치
          오늘 애니가 가져온 정보는 세간에 알려진 "프리츠 왕"이 가짜라는 이야기. 모든 것이 가짜다. 이 섬을 지배하는 체제는 전부 날조된 것이다. 표면에서 프리츠 왕을 연기하는 작자는 실권도 뭣도 없는 꼭두각시. "유미르의 성" 조차 아니다. 년 전 진짜 프리츠 왕가에 아첨해 특권을 받아낸 타인종계 엘디아인이다. 그들은 시조의 거인의 힘이 미치지 않아 비밀과 충성을 유지하는 대가로 섬 안을 지배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종합하면 그런 그림이 나왔다.
          베르톨트는 현 프리츠 왕가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어쨌든 진짜 왕가와 교류하고 있을 테니 근처에서 기회를 엿보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방법. 애니는 고용인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나 자신이 그 집안의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베르톨트가 정색하며 그런건 안 된다고 외쳤다. 하지만 애니도 처음부터 그런 방법이 통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조사로는 현 프리츠 왕가와 위정자들은 "더럽혀진 피"를 기피했다. 자신들이 유미르의 성들이 아니기 때문에 권력을 유지하는 만큼, 섣부르게 엘디아인과 피를 섞어 그 권리를 잃는 걸 두려워했다. 벽이 파괴된 이후에는 아예 엘디아인은 고용인으로도 두지 않는 등 경계를 강화했다. 결국 사용인이든 유혹이든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 게다가 애니는 자신에겐 그렇게 유혹할 매력도 없다고 자조했다. 베르톨트가 그렇지 않다고 정색했으나 그 의미까지는 파악하지 못했고.
  • 창작:무동군 . . . . 3회 일치
          가장 면적이 넓고 설악산에 가까운 지역으로, '은빛 대나무 동네'라는 뜻이다. 가장 자연적이라서 그런지 인구가 거의 없다. 설악산에 오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산장이나 음식점 등이 몇 군데 있을 뿐이다. 그 외에는 신라 말기에 세워진 걸로 추정되는 선사(百禪寺)가 있다.
          * 선사
          * 소표(蔬瓢) : 선사에 사는 스님들 중 한 명. 법명은 한 줌의 푸성귀와 한 박의 물, 즉 소박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뜻한다고 한다.
  • 창작:바벨 코스트 . . . . 3회 일치
         항구를 바탕으로 성장했으나 공업은 발달하지 않아 도시 성장은 더딘 편이다. 주요 산업은 관광으로, 대공황 시절에 꽃핀 다다이즘과 유사한 성향의 문학과 미술, 연극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했고 이러한 문화 수준에 맞게 교육 수준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 인구 분포는 주로 동유럽계 이민자들과 유색인종의 비중이 많고, 서유럽·영국계 인들과 북미 원주민들은 그에 비해 적은 편이다.
         18세기 경, 제정 러시아가 폴란드를 위협해 오던 상황에서 몇몇 폴란드인이 영국을 거쳐 미대륙으로 건너가 서부 해안의 이름없는 땅에 자리를 잡은 것이 시작이였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모국의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며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성군인 카지미에시 3세를 떠올렸고, 크라쿠프의 바벨(Wavel) 성에서 이름을 따와 'Nowy Wavel'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영국계 인들의 영향이 컸던 탓에 바벨(Babel) 코스트로 이름이 지어지게 되는 굴욕을 겪었다. Wavel을 영어로 읽으면 웨이블에 가까운 발음이 나지만, Babel이라 이름지은 것은 그저 발음나는대로 쓰다보니 이렇게 됐다고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유럽계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와 멸시에서 비롯되어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지었다는 해석도 있다.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바벨 코스트로 유입되며 성장세가 커졌다. 개중에는 아메리카 연합국 지역에 살던 일부 인들이 신분을 속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아 이로 인한 분쟁이나 갈등은 원한 관계로 인한 것 외에는 거의 없었다. 이때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Babel이라는 이름을 Barbell로 바꾸게 되었다.
  • 철인 28호 . . . . 3회 일치
          흑 시절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에 방영되었다.
          2004년,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판이 나왔으며 배경은 초대 철인의 시기다. 이 버전 이후 극장판인 '철인 28호 주의 잔월'이 나왔다.
         흑 시절에 실사화되었다.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철인의 모습이.....
  • 최성관 (1925년) . . . . 3회 일치
         [[1925년]] [[9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선화 공주》를 감독하였다. 감독활동은 1959년 《남의 속도 모르고》, 1962년 <태양(太陽)을 등진 사람들>로 이어졌다. 김근자, 박귀희 주연의 <선화공주>는 흑영화로 일관되다시피한 당시에 16미리이기는 했으나 모처럼 천연색 필름으로 촬영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이는 홍성기 감독이 <여성의 일기>(1949)로 색채 화면을 선보인 이후 두 번째의 시도였다. 그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1999년]] [[7월 19일]] 별세하였다.
         * [[태산맥 (영화)|태산맥]] (1994년)
  • 최원홍 . . . . 3회 일치
         * 2010년 [[MBC]] 《[[장난스런 키스 (드라마)|장난스런 키스]]》 - 은조 역
         * 2011년 [[MBC]] 《[[계 (드라마)|계]]》 - 어린 [[의자왕]] 역
  • 최재웅 (배우) . . . . 3회 일치
         |암아트홀
         |암아트홀
         |암아트홀
  • 최정원(남자배우) . . . . 3회 일치
         || '''출생''' ||[[1981년]] [[5월 1일]] ([age(1981-05-01)]세) [[강원도]] [[태시]] ||
         [[뮤직비디오]]로는 '기웅 - 그립니다(2013)', 40(포티) - Black(블랙) (feat. Swings(스윙스)(2014)'가 있다.
         [[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81년 출생]][[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99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분류:태시 출신 인물]]
  • 최채흥 . . . . 3회 일치
         자체 청전에서의 두번째 등판에서 3이닝 91투구 11피안타(2피홈런) 3볼넷 1탈삼진 11실점하면서 무너지면서 아직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듯 하다.
         6월 2일 1군에 등록돼 당일 [[NC 다이노스]] 원정전에서 5이닝 동안 87개의 공을 던지며, 3탈삼진 2자책(2피홈런)으로 호투를 펼치며 데뷔 승을 거두었다. 시즌 초 포심구속이 나오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날 경기에는 140대 중반에 형성이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상황. 비록 실투가 가운데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2피홈런으로 이어졌지만, 삼성은 [[양창섭]]과 함께 미래를 이끌 좋은 선발 자원을 얻었고, 2018시즌 [[정현]]-[[장원삼]]-[[최채흥]]으로 이어지는 좌완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면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 마운드를 갖출수 있게 되었다. 장원삼이 노쇠화가 오며 10일 로테나 계투 강등이 필요해진만큼 양창섭까지 돌아온다면 선발진은 정말 무적일 듯.
         9월 25일에 7이닝을 소화하며 순식간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18⅓이닝으로 늘어나자 구단측에서 노린것인지, 막판 순위싸움에서 요긴하게 기용하려고 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불펜으로만 등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28이닝으로 30이닝을 넘기지 않아 '''2019시즌 신인왕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는 강호같이 눈에 띄는 특급 신인들이 많지 않아 올해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신인왕이 유력하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3회 일치
         앙쥬 작으로 부터 나폴리 왕국을 정복해[* 당시 아라곤 왕 알폰소 6세가 시칠리아 왕을 겸했으므로, 탈환으로 볼 수도 있다.]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아라곤 왕국은 역시 비잔티움으로부터 도움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들도 초강대국 오스만을 상대로 혼자 나서려 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그들 사이에 있던 [[년전쟁]]의 참화를 회복하느라 바빠 도저히 도와줄 상태가 되지 못했고, 이베리아의 강자인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은 레콩키스타 운동을 아직도 완료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렇게 되자 제국이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국가는 년전쟁의 틈을 타 저지대를 차지하며 프랑스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부르고뉴 공국이었으나, 그곳의 지배자였던 '선량공'필리프는 아버지인 '대담공'장이 니코폴리스 십자군에 참여해서 어떤 치욕을 봤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제국의 문제에 섣부르게 나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건 본토와 저지대의 영토를 연결하는것과 라인강 인근의 아헨 등의 영토를 확보하는것이었다.
  • 킹덤/520화 . . . . 3회 일치
          [[강외]]는 좀 더 전장 전체를 보고 있다. 그녀가 이번 전투는 좌익부터 시작할게 명하다며 좌측에 주의를 하라고 조언한다. 하료초가 그 말에 동감하며 진짜 심각한 상황에 놓인건 비신대가 아닌 좌측의 낙화대라고 말한다.
          * 진군의 포진은 조군 진영에서도 많은 추측을 낳았다. 우선 중앙의 포진. 비신대를 뒤로 빼서 앞뒤로 긴 배치는 중앙의 전체 병력수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약 5만 이상이라는 애매한 수치가 보고됐다. 그리고 역시나 이해불가한 좌측.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 5천이 있을 뿐이다. 장교들은 잘못된 보고가 아닌지 거듭 확인한다. [[요운]]은 별다른 의심없이 첩보를 믿는다. 그러면서 왕전이 신중한 남자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담하다고 평한다. 이목도 같은 의견이다. 지금 왕전은 명히 수작을 부리고 있다. 왕전의 의도는 이렇다. 전쟁에서 각자 싸우기 쉬운 국면을 고르는게 필연. 좌익에 고작 5천을 뒀다는건 도발에 가깝다. 즉 "우익으로 여길 치면 된다"고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 따라서 이목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 도발에 응해 조군 우익 [[기수]]의 3만 병력으로 진 좌익을 칠 것인가, 아니면 뻔한 함정을 피해서 다른 곳부터 시작할 것인가.
          * 기수가 움직인다. 그 소식은 곧 낙화대에도 도달했다. 장교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몽념은 "어쩔 수 없다"고 담하게 반응한 뒤 출진을 결정한다. 압도적인 물량차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덤덤한 반응이다.
  • 킹덤/525화 . . . . 3회 일치
          악영의 부하들은 지시를 어긴 옥봉대가 못 마땅한 듯 했지만 아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부하 장교에게 군을 이끌게 하고 자신은 여기를 이끌고 적장 마남자에게 향했다. 옥봉대와 합류해 적장을 직접 처리할 작정이었다.
          * 마침내 왕분과 마주한 조군 우익 삼장 중 하나 마남자. 열세에 처한 장수라고 볼 수 없는 기이 흘러넘쳤다. 마치 이쪽을 몰아붙이고 있었던 양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마남자. 여전히 적진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진군 병사들은 [[몽무]] 장군에 비견되는 체구에 압도되고 있었다. 반양은 그가 삼장 중 하나면서도 직접 왕분을 치러 왔다는 점에 놀라고 있었다.
          주나라의 천하가 펼쳐진지 500여 년. 한때 에 이르렀던 나라들이 도태와 규합을 거듭해 지금은 고작 일곱이 남았다. "일대국". 분명 대륙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진왕이 품은 꿈은 곧 역사가 바라는 "해답"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조군이 반발했다. 왕분도 그들의 입장은 이해했다. 그러나 이곳은 전장. 그런 말뿐인 대립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킹덤/529화 . . . . 3회 일치
          * 벽은 그녀의 활약을 지켜보며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그것은 산민족의 족장들도 마찬가지였다. 휘고왕은 산민족 말로 "양단화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번이라도 죽겠다"고 이죽거렸다. 아마 벽이 듣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통역으로 팜이 붙어 있어서 그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벽이 얼굴 붉히는 꼴을 보고 휘고왕은 그런 것까지 번역하지 말라고 꾸중했다.
          하지만 곧 팜에게 일거리가 주어진다. 휘고왕은 양단화가 거점을 마련했으니 자신들도 보 후퇴 뒤 전선을 새로 정비할 거라고 "평지의 범장"에게 전하라 했다. 팜은 그 말대로 전했다. 보후퇴 뒤 전선 정비. 팜은 왜 그래야 하는지도 설명하려 했지만 벽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잘라 말했다. 이제 전장이 돌아가는 것쯤은 읽을 수 있었다. 저 거점의 등장으로 견융의 추격세는 눈에 띄게 저하됐다. 그 사이 전열을 다시 세워 양단화의 거점과 평지의 산민족이 적에게 협공을 거는 작전. 결코 실패해선 안 되는 작전이었다.
  • 토리코/373화 . . . . 3회 일치
          * 네오는 "겨우 1초가 지났을 뿐이다"라고 빈정거리며 풀코스의 고기 요리 "뉴스"를 먹긴 한 것 같지만 채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설명을 시작한다.--설명충 네오--
          * 이 세포 분열의 힘을 마스터한 자는 밖에서 보면 마치 시간이 정지된 공간을 형성할 수 있는데 채널이 그것이다.
          * 하지만 거기에도 세포의 능력에 따른 차이가 있어서, 네오는 바깥시간으로 단 1초가 그 안에서는 한 달에 달하는 채널을 만들 수 있다.
  • 토리코/387화 . . . . 3회 일치
          * 플로제는 자신이 임신했을 때 태반째로 적출해 채널에 넣어 바다로 흘려보냈다.
          * 그 채널엔 막대한 식운과 영양분으로 가득차 있었고 거의 정지돼 있던 시간 속에서 약 500년이 흘러가버린다.
          * 적귀는 토리코가 자신의 감정을 동요시켰다며, 그 한순간에 사로잡혀 버렸다고 독한다.
  • 토리코/395화 . . . . 3회 일치
          * 예식의 마지막엔 미도라의 식혼이 등장. 수년 만에 이들 가족이 "모두 둘러앉은 저녁식탁"에 모이게 된다.
          * 일곱 번째는 "디저트", 단맛의 화점 무지개 열매다. 이거야 말로 코마츠와 토리코가 처음으로 포획한 "풀코스". 여기에 깜놀사과 레벨 100짜리, 식림사의 보물 샤봉 플루츠, 냄새 폭탄 두두리안 붐. 두두리안 붐의 악취 때문에 작은 소란이 일지만 토리코는 추억의 냄새고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웃어넘긴다. 존게는 두두리안 붐의 냄새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냥 맛있게 잘 먹는다.
          목석같이 딱딱하던 미도라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리넘친다. 미도라도,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젊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수년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가족은 다시 한 식탁에 모였다. 토리코와 코마츠, 그리고 살아남은 세츠노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3회 일치
          * 성들이 가문이 믿는 종교로 개종하는 속도가 빨라짐
          혼슈 서쪽 끝의 스오, 나가토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제]]가 멸망할 때 일본으로 망명한 제 왕족들에 뿌리를 두고있다. 모리 가문과 동맹중이며 오토모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오우치 요시오키. 실제 역사에서는 모리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 퇴계 이황 . . . . 3회 일치
         이황은 [[서원]]을 공인화 하는데 앞장 섯다. 1541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건립한 운동 서원이 세워졌는데, 이황은 1550년(명종 5년)에 풍기에 후임군수로 부임하여 운동 서원을 공인할 것을 건의한다. 운동 서원은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받고 국가의 공인서원이 되었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3회 일치
          * 로그는 이미 파김치가 된 상태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스팅에게 먹여서 "모드 영룡"으로 만들어주고 리타이어.
          * 스팅의 새로운 힘. "모드 영룡". 로그는 모든 힘을 전달하고 쓰러지면서 스팅을 응원한다.
         스팅이 영룡의 힘을 얻어서 압도할 수도 있지만, 일단 나츠가 라케이드와 만나긴 해야 할 거 같으므로 라케이드의 승리를 점치는 쪽이 많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3회 일치
          * 아이린은 드래곤의 모습으로 수년 동안 숨어 살며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그때 나타난 것이 [[제레프 드래그닐]]
          나름대로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이린에겐 그저 인간의 모습을 잃었다는 절망감만 가득하다. 아이린은 여전히 자신은 인간이고 드래곤의 모습으로 살 수 없다며 몸부림친다. 도움을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는 아이린. 그러나 그 모습으로 수 년이나 흐르고 만다. 엘자는 여전히 뱃속에 있는 채로.
          * 그녀는 산 속에 틀어박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의 천재와 우연히 만난다. 바로 [[제레프 드래그닐]]. 한 눈에 그녀가 인간이었다는 걸 알아본 제레프는 아이린이 수 년이나 연구하고도 실패한 드래곤의 인간화를 한순간에 성공한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3회 일치
          * 결국 제레프는 메이비스의 애원을 무시하고 페어리 하트를 강탈, 무한한 마력을 손에 넣고 "마도사" 제레프로 재탄생한다.
          * 아크놀로기아는 크리스티나 호 안의 [[웬디 마벨]]을 추격하고 있는게 명하다. 웬디는 배의 멸룡마도사용 리크리마가 파괴돼서 멀미에 시달리며 리타이어. 하긴 멀쩡한 상태여도 상황이 이래서는 해볼 일이 없다. [[안나 하트필리아]]는 일행들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도 성령마도사. "문을 억지로 여는 건 특기"라며 시간의 틈새를 다시 열겠다고 장담한다.
          * 그 빛이 지나갔을 때 나츠의 눈 앞에는 "마도사"로 각성한 새로운 제레프가 있었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3회 일치
          그녀의 직감이 맞았다. 흑마도사, 이젠 마도사인 [[제레프 드래그닐]]이 범인이다. 이런 사실을 안나가 알 수는 없었지만.
          * [[나츠 드래그닐]]은 드래곤 포스까지 해방하며 덤볐지만 마도사 제레프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메이비스 버밀리온]]도 페어리 하트를 빼앗긴 채 빈사. 제레프를 저지할 수단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제레프는 지금 이 세계는 곧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고 독한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3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과 [[제레프 드래그닐]]의 혼신의 힘을 다해 격돌한다. 염룡왕의 붕권 vs 암흑폭염진. 두 힘이 충돌한 후폭풍이 페어리 테일 길드를 휩쓸고 퍼져나간다. 중세인 듯 보였던 두 힘은 점차 나츠 쪽이 우세했다. 제레프는 자신의 마법이, 시간이 나츠의 불꽃에 타들어가는 걸 느낀다. 나츠는 자신의 영혼을 불꽃으로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내 4년을 넘은 사명이야!
          * 바로 그때, 나츠와 제레프의 형제 싸움이 끝나고 있었다. 나츠가 뒷심을 발휘해 밀어붙이자 제레프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제레프는 쓰러지면서 자신을 태우는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성스러운 불꽃... 아니, 나츠의 "거센 감정의 불꽃"이었다. 불꽃은 제레프의 몸을 태우고 마도사로 각성하며 얻은 모든 힘도 태워버렸다.
  • 페어리 테일/537화 . . . . 3회 일치
          * 메이비스는 과거 제레프의 "모순의 저주"가 그녀를 죽였을 때, 제레프는 죽지 않았던 것을 들어 자신이 제레프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거라 고한다.
          * 무적인 것 같았던 마도사 [[제레프 드래그닐]]은 동생 [[나츠 드래그닐]]의 불꽃에 패해 쓰러졌다. 나츠는 친구들을 찾아 길드를 나서고 정신을 되찾은 [[메이비스 버밀리온]]에게 제레프의 뒤처리를 맡긴다. 페어리 테일 길드에 단 둘이 남은 옛 인연. 제레프는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며 나츠의 강함에 감탄하나 마무리가 무르다며 이래서는 몇 분 이내로 원상복구될 거라고 조소한다.
          그는 메이비스의 손을 붙잡고 그녀와 더 이야기하고 싶었고, 나츠와도 화해하고 싶었다고 고한다. 메이비스가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말하자 그는 정색하며 그녀는 살아야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진심이기 때문에 메이비스는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조용히 눈물 흘리는 두 사람.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3회 일치
         ECM 피드이라는 특수 기능이 있는데, 이를 발동시키면 주변 경찰들이 일정 시간 동안 마비된다. 끝나는 즉시 신고가 들어가니 스텔스 중에는 하지 말자.
          * Ghost - Shinobi - ECM Overdrive: ECM 피드 지속시간이 25% 늘어난다.
          * Ghost - Shinobi - ECM Specialist Ace: ECM 재머의 지속 시간과 ECM 피드의 지속시간이 25% 늘어난다. ECM 재머로 페이저를 지연시킬 수 있게된다.
  • 하수빈 . . . . 3회 일치
         고
         La Stella 침묵으로 고하기
         고 안개 속 하루의 풍경
  • 하이큐/266화 . . . . 3회 일치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태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상은 명했다.
          * 체육관 사건 이후, 둘은 여전히 한 팀에서 티격태격하며 훈련을 받았다. 여전히 연습에서는 코즈메가 야마모토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시합에서는 달랐다. 홍전을 하면 코즈메의 교묘한 플레이에 야마모토가 속아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이전처럼 "기합이 빠졌다"고 느끼지 않게 됐다. 그가 코즈메를 잘 관찰해본 결과, 그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네코마의 벤치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절묘하게 꺼려지는 곳만 공략한다, 전력을 다하면 넣을 수 있는 곳에도 절묘하게 절제하며 시합을 이어간다, 그걸 꾸준히 시도하는 이유는 명했다. 언뜻 듣기엔 비겁한 전술 같지만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전술을 가지고도 막상 코트에 서면 "화이트 보드에 그리는 것처럼"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네코마타 감독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았다.
  • 한보배 . . . . 3회 일치
         * [[2011년]] [[MBC]] 대하드라마 《[[계 (드라마)|계]]》 ... 어린 초영 ([[효민]] 아역)
         * [[2014년]] 《[[오빠가 돌아왔다]]》 ... 세주 역
  • 한석명 . . . . 3회 일치
         |제목=‘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제목=353명 중 256명 명단
  • 한성호 . . . . 3회 일치
         중문과 재학시절 대학교수를 꿈꾸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명지대 음악 밴드‘화이트홀스(마)’였다. 그는 교내 밴드동아리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 Goodbye Day (슬픈 독)
         ** [[1999년]] [[12월 25일]] [[MBC TV|MBC]] 《[[생방송 음악캠프]]》: 한성호 - Goodbye Day (슬픈 독)
  • 한혜숙(배우) . . . . 3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width=100%><#c0c000><table align=center><:>{{{+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연기로 [[전설의 고향]]에서 방영했던 [[구미호(전설의 고향)|구미호]]에서의 구미호 역할이 있다. 전설의 고향 제 1호 구미호였는데 당시의 흑화면과 함께 약간 독한 인상을 보여주는 한혜숙의 표정 연기가 어우려져 [[내 다리 내놔]]와 함께 진짜 [[레전설]]급 트라우마를 남겨주었다. 당시 전설의 고향 애청자들 중에는 전설의 고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한혜숙이 구미호로 변신하는 마지막 장면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당시 초딩이었던 사람들에게는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 수준으로 무서운 인상이 남아 있었다고.
  • 허위 . . . . 3회 일치
         ||<#ffd700> 가족 ||허윤(조부) 허조(부) [br] 허훈(형) 허신(중형) 허겸(계형) [br]허학(장남) 허영(차남) 허준(삼남) 허국(사남) ||
         [[김구]]의 [[범일지]]에서는 허위가 순국하자 그곳에 있던 식수로 쓰는 우물이 빨갛게 물들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말이 쓰여있다. [* 출처. 범일지. 치하포 사건 후]
  • 홍경인 . . . . 3회 일치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찾지 못하고 공기를 가지던 중,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2007년 뮤지컬 배우로 컴했다. 2008년에는 [[불한당]]에서 주인공 [[장혁]]의 친구이자 장혁을 남몰래 사랑하는 [[동성애자]]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2009년 [[선덕여왕(드라마)|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악역인 석품랑의 배역을 열연하였다. KBS드라마 [[전우]]에도 출연했다. 2011년엔 [[광개토태왕(드라마)|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조연인 연살타로 출연.
         || 1993년 || 제29회 [[상예술대상]] || 특별상 || ||
  • 홍성유 . . . . 3회 일치
         |필명 = 호(號)는 파(伯坡)
         '''홍성유'''(洪性裕, [[1928년]] [[10월 4일]] ~ [[2002년]] [[11월 24일]])는 [[대한민국]]의 [[소설|소설가]]이다. 본관은 [[남양 홍씨|남양]](南陽)이며, 호(號)는 파(伯坡)이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10051804171&code=100100 파 홍성유 추모비 건립행사]
  • 홍인한 . . . . 3회 일치
         아들인 동지돈령부사 [[홍낙윤]](洪樂倫)이 아버지 홍인한의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거절당하였다. [[1809년]] [[1월]]에는 [[조선 순조|순조]]를 찾아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들어 변호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1832년]]에는 손자 홍영(洪百榮)이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격쟁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이때 홍영을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순조가 무마시켰다.
         *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 (휴머니스트, 2007)
  • 홍주찬 . . . . 3회 일치
         * [[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 (재학) <ref>[https://www.youtube.com/watch?v=K66_cnUupYQ 골든차일드 Golden Child _ 인사 멘트 ment _ 전체직캠 _ 석예대 OT _올림픽홀], 유튜브.</ref>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201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골든차일드의 일원]][[분류:서울증산초등학교 동문]][[분류:숭실중학교 동문]][[분류:리라아트고등학교 동문]][[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석예술대학교 동문]][[분류: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황두진 . . . . 3회 일치
         전층이 단일용도로 되어있는 건축물을 시루떡에 비유한다면 층별로 서로 다른 기능을 갖는 건축물은 무지개떡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5층 내외로 상층부에 주거가 들어가는 유형을 황두진건축에서는 특별히 무지개떡건축이라 부른다. 기본적으로 길과 면한 저층부에는 외부계단과 상가가, 중간층에는 사무실이, 상층부의 주거에는 옥상마당 등이 들어간다. 무지개떡건축은 도시의 밀도를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거리의 활력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조망 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탁월한 도시건축의 유형이다. 사회적으로는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서 도시재생에도 유리하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rca/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홈페이지|제목=무지개떡 건축 rainbow cake architecture|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251347501&code=960205 |뉴스=경향신문|제목=무지개떡 건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저자=승찬 기자|날짜=2015-12-25|출판사=|확인날짜=}}</ref>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layered-geometr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중첩된 기하학 layered geometry|성=|이름=|날짜=|출판사=}}</ref><ref>{{서적 인용|url=https://jdlib.sen.go.kr/jdlib/intro/search/detail.do?vCtrl=5304391852&isbn=9791195212804&menu_idx=4|제목=「황두진-다공성 구축술 시스템」, ISBN 9791195212804 p.271|저자=황두진|날짜=2016-03-01}}</ref><ref name=":1">{{웹 인용|ur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8705&cid=58767&categoryId=58771 |제목=한국의 현대 건축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저자=구본준|날짜=2014-10-08|웹사이트=네이버 지식과|출판사=}}</ref>
         2009
 미국 5대 도시 순회강연: 보스턴 하버드건축학대학원 한국연구회,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워싱턴 스미소니안 아시아미술관(프리어갤러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과 유씨엘에이(UCLA) 건축 및 도시디자인 대학원, 시애틀 워싱턴주립대 건축대학
  • 흥친왕 . . . . 3회 일치
         |친척 = [[대한제국 고종|고종]] (동생), [[이재선]](이복 형제), [[흥인군]](부)
         철종 치세기간 중 [[흥선대원군]]은 일부러 어리석음을 가장하여 [[김병기 (1818년)|김병기]]에게 아들 이재면의 관직을 청탁하기도 했다. [[윤효정]]은 [[흥선군]]이 [[김병기 (1818년)|김병기]]에게 그의 과거 합격 청탁을 했다 한다. [[흥선군]]은 일부러 김병기를 찾아가 아들 [[이재면]]의 [[문과]] 합격을 청탁했는데, [[김병기 (1818년)|김병기]]는 마음 속으로는 몰지각함과 비열함을 비웃으며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다.<ref name="riss167">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167페이지</ref> 흥선군은 똑같이 김병기의 외조카 남병철에게도 똑같이 아들의 등과 합격을 청탁하니, 남병철은 몹시 분개했다. 왕실의 금지옥엽인데, 이렇게 초라해진 형편으로 아들의 등과를 청탁하니 이렇게 어리석을 데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었다.<ref name="riss167"/> 그런데 [[박제형]]의 [[근세조선정감]]에는 흥선군을 대놓고 멸시하던 인물의 한 사람으로 남병철을 지목했다.
         * [[이원재 (1958년)|이원재]] - 《[[대원군 (드라마)|조선왕조 오년 - 대원군]]》, [[1990년]] - [[MBC]] 드라마
  • 5분의 3 조항 . . . . 2회 일치
         그리고 이 조항에서는 흑인들의 머릿수를 남부 주의 인구수로 합산함으로서 남부 측이 명하게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남부의 인들이 자신들이 노예로 부리는 흑인들의 투표권을 강탈해와서 자기들이 '대리투표'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이는 남부주에서 '''흑인들의 정치적 권리까지 노예화'''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 Crusader Kings 2 . . . . 2회 일치
         위 이미지는 ~~뉴비들의 친구~~더블린 작 무르하 우어 켄셀라이그의 인물 소개 창이다.
          3. 선택한 인물의 대표 작위 문장. 해당 문장은 더블린 작령의 문장이다. 옆에 보이는 초상화에는 배우자, 군주, 후계자, 섭정[* 모종의 사유로 섭정이 대신 통치중인 경우], 그 외 여러가지의 초상화가 딸려나온다.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2회 일치
         특히 무료티켓을 어느 정도 뿌렸는지 팬들이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팬들이 구단에게 공평함과 내실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2016시즌 기준, 수원 삼성의 경우는 무료티켓을 거의 발행하고 있지 않아 실제 관객수 당 지불비용이 가장 높은 "객단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평균관중이 줄었음에도 입장 수익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신기한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무료티켓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연맹의 요청으로 군경활동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구단은 무료티켓을 발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연고지에서 지원하는 유소년 클럽의 경험 향상차원에서도 매 경기마다 무료티켓을 일정 이상 발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거의 각 구단마다 경기당 최소한 수장 정도 무료티켓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팬들도 이런 구단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수긍하고 가는 편이다.]
         실 관중 집계가 구단의 [http://news.tf.co.kr/read/soccer/1467594.htm|투자를 저하시켰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 관중 공개와는 사실 별 관계가 없는게, 실 관중 수 집계와는 달리 구단은 명하게 각 경기마다 들어오는 관중 수입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입장이라서 설득력이 없다. 되려 각 선수들의 연봉공개가 이적시장을 달궜으면 더 설득력이 있을 정도.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2회 일치
         K리그 클래식에서 챌린지로 떨어지면 천단위 관객이 '''단위'''로 줄어들고, 반대로 승격되면 단위가 '''천단위'''로 늘어나는 마술을 지켜보게 된다. 또한 강등되면 보통은 지원금이 뚝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주축선수를 팔아버리는 상황도 각오해야 하며 '''팀이 언제 올라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 MoniWikiTutorial . . . . 2회 일치
         한 줄의 내용 전체가 같은 개수의 "=" 기호로 둘러쌓여 있는 경우. 이때 "=" 기호와 내용은 공으로 분리되어 있어야 하며 그 줄은 "="기호의 개수만큼의 깊이를 가지는 제목줄이 됩니다.
         공을 보존되는 preformat을 사용하고 싶은 경우는 중괄호`{{{{{{ ... }}}}}}`를 사용합니다.: {{{
  • 강기웅 . . . . 2회 일치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상 등의 이유로 [[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영입] - 연합뉴스</ref>
  • 강원래 . . . . 2회 일치
         부산 출생이고 [[포항시|경상북도 포항]]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산업공예과를 중퇴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클론 강원래, 강릉사 "쿵따리 샤바라|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7&aid=0000011973|저자=|출판사=강원일보|날짜=2004-09-08|확인날짜=2012-06-02}}</ref> 1990년 [[현진영|현진영과 와와]]에서 동갑내기 [[구준엽]]과 함께 댄서 와와로 연예계에 등장하였으며, [[박미경]]의 댄서 등으로 활동하고 1996년 [[구준엽]]과 그룹 [[클론 (가수)|클론]]을 결성하여 국내·외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 갸루 . . . . 2회 일치
          * 야만바(ヤマンバ) : 200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 어원은 [[야마우바]], 야만바 등으로 불리는 일본의 요괴 마귀할멈(山姥). 머리카락은 탈색한 발, 흐트러진 헤어스타일, 태닝하여 아주 검게 된 피부(간구로ガングロ 라고 한다) 등이 특징. 태닝한 검은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립스틱이나 아이라인은 하얀색을 사용한다.
          * 시로갸루(白ギャル) : 2000년대에 나타난 스타일. 서퍼 패션과 LA패션에 영향을 받아 태닝을 좋아하던 이때까지의 갸루 패션과는 반대로, 하얀 피부와 금발에 가까운 염색 등으로 미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 거타지 . . . . 2회 일치
         [[진성 여왕]] 때 왕자인 [[양패]]가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진성 여왕은 제의 해적을 염려하여 활 잘 쏘는 사람 50명을 함께 보냈는데, 거타지도 그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배가 한 섬에 이르렀을 때 풍랑을 만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섬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 날 밤,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 1명을 섬에 남겨두고 가면 풍랑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이에 거타지가 혼자 남아 있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자기 아들을 죽인 중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거타지가 중을 처치하자, 노인은 자기 딸과 결혼해 주기를 바랐다. 노인은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었다. 거타지는 당으로 가서 양패 일행을 만나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는 품고 온 꽃을 여자로 변하게 하여 함께 살았다고 한다.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4화 . . . . 2회 일치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자 우마루는 어차피 배울 필요도 없는 기술이라고 위로한다. 키리에는 생각 끝에 자신의 고민을 고한다. 우마루를 쭉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자신도 의미를 알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제자로 받아달라고 한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자신은 이상하게 오버하게 돼서 민폐를 끼치는 일이 있고, 지금도 스승님에게 민폐가 아닌지 걱정된다고 한다.
          * 우마루는 자신을 스승으로 삼는다면 답은 명하다고 말한다.
  • 경산시 . . . . 2회 일치
         * [[성운]] - 전 국회의원.
         * [[승도]] - 스포츠코치
  • 구승빈 . . . . 2회 일치
         || 솔로 랭크 아이디 || imp8[* 주로 쓰는 계정인듯하다. 레이팅은 챌린저.][br]권이슬팬이다람쥐[br]imp123[br]수 Rain1ng[* 전적 검색 사이트 OP.GG 자유 게시판에서 본인이 임프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정말 본인이 쓴 건지 확실하지 않다] ||
          * 게다가 [[조재환(프로게이머)|H0R0]]에게는 공개적으로 사랑고을 했을 정도. [[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32243&db=issue|링크]] 포모스의 '포모스 잇'코너에서 "SK 1팀 재환이에게. 사랑해 재화나♥ 너도 나 조아하지?" 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호로의 답변이 더 압권인데 "승빈이 형 여기선 그런거 밝히지 않기로 했자나.."
  • 권영해 (1888년) . . . . 2회 일치
         1919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 당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대대적으로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회 집사 이상(李相柏)·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전격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2일이 되자 그와 일행들은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太極旗)와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동리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횃불을 붙였으며 끝끝내 동리 야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들과 일본 헌병들에게 제압이 되며 끝내 강제로 해산되었지만 이후 이곳 민중들의 항일 저항의식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만세 시위 운동 관련 계획을 다시 협의하여 1919년 3월 14일 21시경을 기하여 2 명의 동민과 아울러 동리 야산에서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결국 일경에 피체되었다.
  • 기은세 . . . . 2회 일치
         * [[석대학교]] 회화과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석대학교 동문]]
  • 김광석 . . . . 2회 일치
         #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창우
         ** Story One - 편지 : 서른살, 사랑에 대한 독
  • 김근백(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경기 시작 전 팬들이 외치는 파이팅 콜이 특이했는데, "○○○ 파이팅!" 대신 "김근 관심있어요!"라고 외쳤다. 이는 한 인터뷰에서 김근이 [[여자]]에게 듣고 싶은 말로 "관심 있어요"라는 말을 꼽았기 때문.
  • 김대륙 . . . . 2회 일치
         업으로 간간히 나오고는 있다. 주로 3루나 유격쪽으로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신본기]]가 초반 타격 부진이 심각할 때 잠깐 주전으로 나왔지만 타격을 그 신본기보다 못해서 영원히 업으로 남아있다. 향후 타격 발전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까지 1군에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 김동준(제국의아이들) . . . . 2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92년]] [[2월 11일]] ([age(1992-02-11)]세), [[강원도]] [[태시]] ||
         [[분류:제국의아이들]][[분류:1992년 출생]][[분류:태시 출신 인물]][[분류:아이돌 막내]][[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대 100 역대 1인]]
  • 김민서(배우) . . . . 2회 일치
         중학교 3학년 때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오랜 공기를 가진 후 [[2008년]]부터 연기자로 전업했다. 드라마에서는 주로 악역으로 출연했지만, 사실 악역이라기보다 [[짝사랑]] 전문(?) 배우다. '[[동안미녀]]'에서의 디자인 실장,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의 중전 [[윤보경]], [[성균관 스캔들]]의 기녀 [[초선]], '[[7급 공무원(드라마)|7급 공무원]]'의 요원 [[신선미]] 등 대부분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성에 대한 짝사랑을 하다 맺어지지 못하는 캐릭터다. 주인공과 연적 관계라서 관계도상 악역.
          * MBC [[장미빛 연인들]] [[수련]] 역
  • 김수용(코미디언) . . . . 2회 일치
         참고로 아버지가 상계[[병원]]의 원장[* 3~4대 원장을 지낸 김관엽 내과 교수. [[http://www.paik.ac.kr/sanggye/pds/201212064269352.pdf|인터뷰 기사(3페이지)]] ]까지 지낸 분이라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여의도 고등학교 출신인데, 선천적으로 체격이 큰 것과 더불어 싸움도 잘해서 고등학교 때 '의리의 여의도 용팔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이 별명으로 학창시절 여의도 전체 고교생 주먹세계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연예계 데뷔 후에 여의도 방송국 근처 락카페에서 --진짜 주먹꾼-- [[임재범]]과 시비가 붙었다가 가죽옷을 입고 다가온 임재범이 김수용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눈 깔아"라고 하면서 담배불을 자기 입으로 끄자, 김수용이 당황해서 "제가 제 친구인 줄 알고 사람을 잘못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여의도 출신이라 여의도에 아는 애들이 많아서 헷갈릴 때가 있어요."라고 구구절절 설명해서 째려보던 임재범이 그냥 돌아가면서 겨우 넘어갔다고 한다.] 당시 개그맨 동기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가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자가용을 타고 동기들끼리 [[나이트클럽]]에 놀러다녔던 게 감자골 멤버들이나 [[유재석]]의 토크 레파토리였다. 그런데 후배들은 으레 선배가 술자리에 나오라고 하면 밥을 사줄줄 알았는데 김수용 선배는 딱 밥만 먹고 [[더치페이]]하고 각자 흩어졌다고.
         이후 선배에게 당한 배신감+빚에 대한 압박감으로 방송을 접고 우울증에 걸려 무기력하게 지냈다고 언급되었다. 이 기간 중에 온라인게임 [[리니지(게임)|리니지]]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아이디는 '겸댕이'. 연예인임에도 [[혈맹]] 모임에 대놓고 나가고 PvP관련해서 [[현피]]까지 할 정도였다고[[https://www.youtube.com/watch?v=FCaSUZ9wNwI|김수용 현피드립]]. 리니지를 접은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시가 몇 만 원짜리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지인이 잠깐만 껴보겠다고 해서 김수용이 별 생각없이 아이템을 넘겨주었는데 그 사람이 아이템을 받자마자 '''[[닌자#s-11|그대로 로그아웃을 해서 잠수 타버렸다.]]'''[* 흔히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집 한 채값인 [[진명황의 집행검]]은 아니다. 집행검은 2010년 이후인 비교적 최근에 나온 무기로 김수용이 리니지를 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배성재의 텐]]에 출연했을 때 "+9 무기라서 빛이 나는 검이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빛이 나는 무기는 애초에 축복받은 무기이지 강화 수치와는 무관하다.]
  • 김숙자 (1389년) . . . . 2회 일치
         '''김숙자'''(金叔滋, [[1389년]] [[8월 24일]] ∼ [[1456년]] [[3월 2일]])는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자배(子培), 호는 강호(江湖)·강호산인(江湖散人)으로 불렸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ref name="김숙자">《한국민족문화대과》,김숙자(金叔滋),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선산 출신의 도학자이자 유학자이다. 야은 [[길재]](冶隱 吉再), [[윤상 (조선)|윤상]](別洞 尹祥)의 문인이다.
         가르칠 때에는 처음에 『동몽수지(童蒙須知)』 유학자설정속편(幼學子說正俗篇)을 모두 암송시킨 다음 『소학』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효경]]』·『[[사서오경]]』·『[[자치통감]]』 및 제자가의 순을 밟았다.『소학』을 앞세우면서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자세는 [[고려]]의 유학자 [[길재]]에게서 물려받았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 김재박 . . . . 2회 일치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박도 존재한다. [[김인식]]감독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025078|“기술적으로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하며 대표팀 발탁에 반대한 만큼 [[추신수]]의 대표팀 탈락은 김재박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었으며, 당시 대표팀에 최종선발된 외야수는 [[이병규]], [[이용규]], [[이진영]], [[이택근]], [[박재홍(야구)|박재홍]] 총 5명으로 [[김인식]]감독의 말대로 모두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외야수들로서, [[추신수]] 대신 이들이 대표팀에 선발된것이 대표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못한 반박으로서, 당시 추신수는 AAA에서 OPS .893 메이저리그에서 OPS .812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으로 온 어떤 용병타자보다 좋은 기록이었으며, 리그의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OPS만 비교한다 해도 이택근을 제외한 다른 국가대표 외야수들보다 OPS가 더 높았다. 명히 급이 다른 선수를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뽑지 않은것이 맞다.
          * [[허영만]] 화이 그린 김재박 단편만화도 존재했었다. [[소년중앙]] 별책부록으로 끼워준 단편만화책으로 그야말로 김재박이 그 당시 국딩들한테 어떤 위상이었는지 말해주는 증거 중 하나. ~~그런데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제목이 <천재 야구왕 김재박>이었다.
  • 김태우(god) . . . . 2회 일치
         2013년 이후 세븐과 상추의 사건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어지면서 [[이정(가수)|이정]], [[김흥국]], [[남진]] 같은 다른 비 연예병과 현역 복무자(그것도 해병대)들과 함께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제대로 늘어나는 호재(?)를 맞이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꼼수 안 부리고 제대로 현역 복무는 마쳤으니... --하지만 1년 뒤 그는 [[MC몽|어느 모 발치가수]]를 옹호했다가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카더라]]--[* 실제로 [[MC몽]]이 가요계에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자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김태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하(가수)|하하]], [[조현영]], [[지영]], [[손담비]] 등이 옹호했는데, 그 중에서 [[MC몽]]의 절친인 [[하하(가수)|하하]]가 욕을 가장 많이 먹었다면 가장 어이 없는 사람이 김태우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사람이 병역기피자, 즉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으니...]
         이때에 취할 수 있는 대처법은 성격 안 좋은 동료나 학우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방법과 똑같다. 그냥 뒤에서 욕을 하거나, 생까고 같이 놀지 말거나.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거라면 모를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군대식으로 집합시켜서 군기 잡을 권리는 선배가 아니라 할애비라고 해도 없다. 그리고 김태우 같은 중간의 위치에 있는 가수가 저렇게 나선다면 밑에 있는 후배 가수는 정말 부담 배로 선배를 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저렇게 후배들에게 반 강제로 인사를 시키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 나이 되면 이런 인사를 받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신만이 알겠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면 답이 없다. [* 다만, 김태우 본인의 말로는 오고가는 길에 마주쳤을 때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간단한 인사정도는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 김현정 (1979년) . . . . 2회 일치
         2009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를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활동을 마치고 '가톨릭상담봉사자과정'에서 1년 넘게 심리상담 교육을 받은 후 화가가 되었다. 이를 통해 2014년 6월에는 첫 개인전인 <묘사와 연기>가 열렸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965311 화폭으로 옮긴 심리 치유…배우겸 화가 김현정 개인전],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작성.</ref>, 2014년 11월 9일 부터 11월 19일까지 [[남준]], [[이왈종]]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하나에서 셋으로:한국 예술가 3인전>에 작품전을 열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18578 ‘동양화로 그린 장서희는?’ 화가 김현정, 中진르미술관 초청], 뉴데일리, 2014년 10월 7일 작성.</ref>
         :참여작가 :고 [[남준]] 작가·[[이왈종]]·김현정 작가
  • 김혜선(배우) . . . . 2회 일치
         요즘은 억센 아줌마 캐릭터로 알려진 [[배우]]지만,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과 [[조선왕조오년]]-한중록,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남자 청소년들에게 김혜수, 하희라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기세를 이어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히로인]]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93년의 대히트 드라마였고 그녀의 연인 역할로 나왔던 주인공이 그 유명한 터프가이 [[최민수]]였다.[* 최민수와는 앞서 1991년 [[무동이네 집]]에서 커플로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왔었다. [[무동이네 집]]에서의 최민수가 이후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을 연상케 하는 허당 이미지였다면 [[걸어서 하늘까지]]의 배역은 전형적인 터프가이 반항아였던 것에 비해, 김혜선은 두 작품 모두 청순가련 형 여주인공이었다.] 더불어 김혜선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었다. '김혜선 과거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 그 시절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 1988년 [[MBC]] [[조선왕조 오년]]-[[한중록]]
  • 김혜옥 . . . . 2회 일치
         * [[1988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오년]] - [[한중록 (드라마)|한중록]]》 ... [[선의왕후 (조선)|선의왕후]] 역
         * [[1982년]] [[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연기상
  • 김홍미 . . . . 2회 일치
         역사와 제자가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경연에서 반드시 옛 사례를 인용하여 당시의 일을 정정함으로써 왕의 찬탄을 받았다. 선박 제조 기술이 있어서 [[조선 선조|선조]]는 그에게 [[판옥선]] 설계 제조와 [[거북선]] 설계 제조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1599년]](선조 31) 다시 [[청송군|청송]][[부사]](靑松府使)로 부임했다가 [[1601년]](선조 34년) 봄에 병환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상주군|상주]]로 되돌아갔다. [[1602년]](선조 35) [[여주군|여주]][[목사]]가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 [[강릉시|강릉]][[부사]]로 임명되자 와병중인데도 부임하였다. [[1605년]] 강릉부사로 재직 중 큰 비가 내려 성이 많은 수재(水災) 재난을 당하였다. 당시 그는 병이 들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수재로 죽은 자의 조문과, 수재로 재산을 잃거나 굶주린 자의 진휼(賑恤)과 구제에 힘써 직무에 충실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2회 일치
          * 히어로 위원회는 올마이트의 대체제를 찾기 보단 그의 공을 채울 수 있는 "집단 히어로 체제"를 구상하고 있다.
          * 위원회는 올마이트와 같은 카리스마적인 존재가 다시 나타나 후계를 이어줄 것을 바라기 보단 다수의 히어로가 협력하는 "집단 히어로" 시스템으로 올마이트의 공을 채우려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2회 일치
         >너희들을 분 활용해 보이지.
          * 오버홀이 빌런연합에 접근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금". 지금의 야쿠자들은 큰 자금을 끌어모을 여력이 없다. 그러나 한껏 악명을 떨친 빌런연합을 수중에 넣고 그들을 내세운다면? 오버홀은 자신이 그들의 힘을 분 활용해줄 테니 자기 산하로 들어오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다음 시대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 남창희(연예인) . . . . 2회 일치
          * [[종원의 골목식당]] - Y2K 고재근과 함께 이대 앞 식당 창업에 도전했다.
          * [[건빵선생과 별사탕]](SBS) - 김준 役
  • 노영하 . . . . 2회 일치
         * [[2004년]] 맥심배 입신최강전 본선(정수현 상대로 반집승 이후 상대 박영훈을 패배)
         * [[2011년]] 제13기 맥심커피배 본선(대 성호 패)
  • 니세코이/212화 . . . . 2회 일치
         치토게는 이치죠 라쿠에게 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우연히 오노데라 또한 라쿠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고 고민한다.
         * 오노데라와 경쟁할 수는 없다며 고을 포기할까 하지만 어쨌든 모든걸 털어놓기로 한다
  • 니세코이/221화 . . . . 2회 일치
          * 오노데라는 치토게를 좋아하냐고 묻는데, 이치죠는 치토게를 고르긴 했지만 딱히 그런건 아니라며--아니면 왜 골랐는데?-- 진짜 좋아하는건 오노데라라고 고한다.
          * 오노데라도 자신도 쭉 이치죠를 좋아했다고 고하는데, 이치죠는 "그럼 열쇠는 치토게에게 말해서 받아오겠다"--뭐 임마?--고 말해서 오노데라가 "그러면 치토게가 불쌍하다"고 말린다.
  • 데미안(드라마) . . . . 2회 일치
         [[악관]]의 수석 비서관. 데미안의 아버지 루퍼트 쏜이 죽었을 때 데미안을 맡아서 돌봤던 적이 있다. 데미안의 정신적 [[멘토]]이며, 데미안을 따듯하게 아껴주는 할아버지. 자신의 운명에 다가가면서 고뇌하는 데미안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고, 데미안 자신이 적 그리스도라고 고하자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 도광록 . . . . 2회 일치
         * [[제예술대학]] 방송연예과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제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14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동백기름 . . . . 2회 일치
         [[동]]의 씨앗에서 채취한 [[기름]]. 황색이며 독특한 냄새가 난다. 공업용, 화장품, 식품 등으로 사용된다. [[일본어]]로는 '츠바키 아부라'
          * [[머리카락]]에 바르면 [[탈모]], [[발]], [[비듬]], 가려움 등을 방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디도(성우) . . . . 2회 일치
         2014년 8월 22일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하였다. 정재헌이 처음 시작했던 릴레이 라인과는 별개의 릴레이 라인을 시작했으며, 다음 타자로는 [[이동훈(성우)|이동훈]]과 [[경훈]], 그리고 자신와 이름이 비슷한(...) 영국 팝 가수 [[다이도]]를 지목했는데 경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불참의 뜻을 밝혔다.
  • 라미란 . . . . 2회 일치
         || [[마녀의 연애]] || 나래 ||
         || 제52회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여자 조연상 || 히말라야 ||
  • 마기/326화 . . . . 2회 일치
          * 듣고 있던 쥬다르는 자기는 그런 위화감 못 느꼈다고 빈정거리다 연룡에게 "넌 마법사가 맞긴 하냐"고 디스 당한다. 알리바바는 매그노슈타르 때 같은 이변은 없다는걸 재확인하고 일단 안심한다. 그런데 연홍옥이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알리바바가 말을 걸자 홍옥은 국제동맹을 이탈한 문제로 아직도 고심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파장이 예상한 것 이상이라서 과연 잘한 짓인지, 앞으로 어찌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알리바바는 여러 사람과 토론해서 결정한 일이고 뢰엠과 귀왜국도 동조해준 걸 들어서 자신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쥬다르는 그런 홍옥이 칠칠맞지 못하다며 역시 황제는 룡이 돼야했다고 투덜거리다 나가버린다.
  • 마기/330화 . . . . 2회 일치
          >엘리오합트는 지금 살아가는 국민이 전부가 아냐. 천 년 전 성도, 그리고 천 년 후의 성도 모두 다 엘리오합트지.
  • 마기/331화 . . . . 2회 일치
          * 모르지아나는 새삼 지난 일을 회상하며 감사와 사랑을 고한다. 알리바바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루프로 돌아가자고 하지 말아줘"라고 설득한다.
          알리바바는 그 고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 마기/336화 . . . . 2회 일치
          * [[연룡]], [[쥬다르]], [[알라딘(마기)|알라딘]]은 주위를 주시하며 보통 던젼이 아니라고 짐작한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일행과는 무관하게 모래시계만 들여다 보고 있다. 그때 진 "바알"이 나타나 이 던전 바알은 신드바드가 14살 때 공략한 던전인 동시에 현재 그의 "신념"을 나타낸 것이니 신드바드를 이기고자 한다면 일곱 개의 신념을 넘어보라고 말한다.
          * 알리바바가 위험한 순간이었으나 알라딘이 어느 새 나타나 방어마법을 펼친다. 그의 뒤에서 연룡과 쥬다르가 뛰쳐나온다.
  • 맥스 페인 . . . . 2회 일치
          * 왼쪽 아래의 사람 모양으로 생긴 것은 맥스의 [[체력]]이다. 체력이 붉게 차버리면 맥스는 죽는다. 화염과 접촉하면 체력 상관 없이 불춤을 추며 죽으니 주의. 돌아다니다가 주울 수 있는 [[진통제]][* Tab이나 스페이스로 사용함.]로 체력을 천천히, 약간씩 회복할 수 있다. 진통제의 소지 유무와 수는 체력 옆에 표시된다. 총 8개 까지의 진통제를 소지 가능.
          Punchnello Family. 뉴욕에서 활동하는 마피아 조직. 맥스의 독에 따르면 "뉴욕 최악의 마피아 패밀리"[* the worst mafia family in New York]. 해당 조직의 언더보스인 잭 루피노가 "발키리"를 밀거래하고 있었기에 맥스가 잠입 수사를 하게 되었다.
  • 모리오리 족 . . . . 2회 일치
         1835년 12월, 수년간 평화롭게 살던 모리오리 족은 갑자기 뉴질랜드에서 나타난 [[마오리 족]]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11월 19일, [[총기]]와 [[곤봉]], [[도끼]]로 무장한 500명의 마오리 족이 채텀 제도에 나타났으며, 12월 5일에는 400명이 추가로 나타났다. 채텀 제도를 공격한 약 900명의 마오리 족은 수적으로는 당시 모리오리 족(2000명으로 추정)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으나,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모리오리 족은 단합된 정치 조직이 없었으며, [[무기]]를 비롯한 전쟁 기술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오리 족은 장기간의 전쟁으로 조직화된 전쟁 문화, 정밀하게 만들어진 원주민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서양인들과의 교류로 [[총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마오리 족은 모리오리 족이 자신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반항하는 자는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몇일 만에 수명의 모리오리 족이 살해되었고, 몇년 동안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났다. 모리오리 족의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마오리 족은 [[식인]] 풍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모리오리 족은 문자 그대로 '''잡아먹혔다.'''
  • 문지애 . . . . 2회 일치
         * [[JTBC]] 《[[곡 끝까지 간다]]》
  • 민효린 . . . . 2회 일치
         | 《[[5만불의 사나이]]》
         | 수련
  • 바키도/106화 . . . . 2회 일치
          * 악기 최강의 악력과 전국시대 최강의 악력의 대결.
          * 피클은 악기 시절 무엇이든 움켜쥐는데 익숙했지만, 지금처럼 맞잡을 수 있는 상대와 싸우는건 최초였다.
  • 바키도/139화 . . . . 2회 일치
          * 바깥에 있던 경찰병력들은 현장파. 무사시의 기에도 겁먹지 않고 체포하려 한다.
          * 현장 책임자인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무사시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도 무사시의 기을 느낀 것인지 오랜 세월 형사를 했지만 이런 "거물"은 처음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서도 얼굴색하나 바꾸지 않고 무사시 앞에서 겁을 먹지도 않는다.
  • 박부남 (1931년) . . . . 2회 일치
         * 시종조부 : 이시우(李時雨, ? ~ [[1907년]]), 독립운동가 [[이상정]], 시인 [[이상화]], 체육인 [[이상]]의 아버지
         * [[이상]]
  • 박상면(배우) . . . . 2회 일치
         || 2014년 || 프로 || 병우 아버지 || ||
         || [[반칙왕]] || 태산 || ||
  • 박성우 (정치인) . . . . 2회 일치
         |같은 지역구 의원 = (상주군 을)[[남식 (1901년)|남식]]
  • 박용우(배우) . . . . 2회 일치
         2018년 말 [[OCN]]드라마 [[프리스트(OCN)|프리스트]]로 오랜만에 컴한다.
          * 간이역 (MBC, 1996) - 현기 역
  • 박정민(배우) . . . . 2회 일치
         || [[파수꾼(영화)|파수꾼]] || 주연 || 희준 || 2만 명 || 독립영화 ||
         || 제52회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 박주영 . . . . 2회 일치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호와 동급이다~~)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2011년 6월 12일에 한살 연상의 모교 선배와 결혼.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사회자는 [[이휘재]], 축가는 [[김태우(god)|김태우]]. 가나전 이후에는 선수들이 여러모로 축하(?)해줬다.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6072239332235&ext=na|결혼축하 헹가레 받고]]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6070487|내동댕이 쳐져도 웃는다.]]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6070442|호에게서 음료수 세례도 받았다.]]
  • 박진옥 . . . . 2회 일치
         || 포지션 || [[풀]] ||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수비를 선보이면서도, 파울을 거의 받아내지 않는게 장점인 [[풀|측면 수비수]]으로 코너킥도 키커로 나서는만큼 킥력도 괜찮은 선수이다.
  • 박현정 (배우) . . . . 2회 일치
         * 《[[내사랑 금지옥엽]]》 (KBS2, 2008년) - 화점 점원 역
         * 《[[열애 (1997년 드라마)|열애]]》 (KBS2, 1997년) - 송화 역
  • 배상면 . . . . 2회 일치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농예화학과 졸업하고 1952년부터 대구에서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1960년 기린 소주를 개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03181 연합뉴스, 국순당 창업자 배상면씨 별세]</ref> 1983년 [[국순당]]의 전신이 된 배한산업을 설립하고, 1991년 [[세주]]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배상면 주류연구소 설립했다.
         * 《하주를 통해서 본 전통약주의 문헌적 고찰》
  • 백남억 . . . . 2회 일치
         항명파동으로 박정희의 분노를 사면서 자연스레 4인체제는 무너졌고, 남억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상주시|상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김윤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박정수(정치인)|박정수]] 후보와 정휘동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자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2001년 1월 15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유족으로는 종현(白種玹) 국민대 경상대학장 등 3남 1녀가 있다.
  • 백대현 . . . . 2회 일치
         |이름 = 대현
         '''대현'''(白大鉉, [[1978년]] [[5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이다.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2회 일치
         어찌된 영문인지 브리태니커 과사전에는,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알려지게 된 화염병의 생산을 명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7m4256a 참조]] 일본어 위키과에서는 소련의 KS방화수류탄의 별명이 '몰로토프 수류탄'이라서 혼동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는데, 인용 문헌이 없어서 확실하지 않다.[http://ja.wikipedia.org/wiki/%E3%83%A2%E3%83%AD%E3%83%88%E3%83%95%E7%81%AB%E7%82%8E%E6%89%8B%E6%A6%B4%E5%BC%BE 참조]
  • 보쿠걸/100화 . . . . 2회 일치
          * 후지와라에게 고하는 것도 결국 하지 못한다
          * 미즈키는 발렌타인데이에 후지와라에게 고하기 위해 초콜렛을 사러 들어갔다가 이마이 선배와 마주친다
  • 보쿠걸/101화 . . . . 2회 일치
          * 미즈키는 이마이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겠다"는 말을 하는데, 흥분한 이마이는 고 타이밍인가 싶어서 두근거린다
          * 이마이는 이게 고받은 거라고 생각해 버린다.
  • 보쿠걸/106화 . . . . 2회 일치
         [[보쿠걸]] 106화. '''나의 고'''
          * 미즈키는 자신이 생각한 결과를 말하겠다며 타케루에게 입맞추며 고한다.
  • 보쿠걸/107화 . . . . 2회 일치
         고의 날로부터 1년 후.
          * 이마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미즈키를 잊으려 했는데, 때마침 꽃꽃이부 일동이 커밍아웃&고을 해봐 할렘상태. 가끔 선배 자격으로 학교에 들른다.
  • 블랙 클로버/105화 . . . . 2회 일치
          * 올해 공적 발표는 [[마법제]] 율리우스가 몸소 행차해 거행한다. 마법제는 시민들의 환호를 잠재우며 잠시 기념사를 한다. 올해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만큼 공적발표는 마법제 자신이 직접 맡고 잠시 뒤에는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참석, 간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법제의 발언들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번영하는 듯 보이는 클로버 왕국은 내외 양면에서 많은 악재에 처해있다. 외교적으로는 다이아몬드 왕국과 스페이드 왕국의 침략을 받고 있고 내부에선 "야의 마안"이란 테러조직의 횡행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싸움이 계속되면서 국민들 중에서도 희생자가 생기는 등 민생과 치안, 안보가 악화일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성과제를 개최하는게 바람직한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 문제는 시민들의 반응. 놀라는 건 잠시고 과연 이게 제대로 산정된 건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카호노]], [[키아토]]처럼 순수하게 기뻐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소수. 대부분 여론은 부정을 저질렀다는 쪽이다. 하지만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레베카처럼 검은 폭우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거라고 변호한다. 그 중엔 왕도에 야의 마안이 침입했을 때 구원 받은 꼬마도 있다. 이런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군중들도 쉽게 검은 폭우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때 마법제가 중재를 해서 비록 검은 폭우는 작년엔 마이너스 50이란 전대미문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올해는 분발해서 성과를 낸 거라고 설명한다. 그게 가능했던 건 검은 폭우의 신인 덕인데, 소개를 할라치니 단장은 커녕 관계자 조차 참석하지 않아 난처해졌다. 마법제는 군중을 향해 누구 관계자 없냐고 묻기에 이른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2회 일치
          * 클로버왕국 국왕이 공언한 대로 [[야의 마안]]에 대항할 새로운 마법기사단 "로열 나이츠"를 선발하기 위한 시험의 날이 밝았다. 콜로세움에 [[마법제]] 율리우스가 직접 참석해 선발시험 시작을 알린다.
          한 판 30분 짜리 대결. 팀경기로 진행되며 제한 시간 안의 상대팀의 크리스탈을 파괴하는 쪽의 승리다. 국왕 머리 위에 있는게 그 크리스탈. 각 에리어에 할당된 자군의 크리스탈을 지키며 적의 크리스탈을 많이 파괴해야 한다. 국왕이 여기까지 설명하다 말주변 부족으로 버벅대자 율리우스가 가로채서 시험에서 보는 것은 협조성과 전략성이며, 이는 앞으로 대 야의 마안 전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 때문에 팀도 다른 기사단의 멤버와 짜게 되는데.
  • 블랙 클로버/55화 . . . . 2회 일치
          * 야의 마안은 반 클로버 왕국을 목표로 하는 50여명의 마도사가 모여있는 조직이다. 6년전 리히트가 창설하여 수장이 되었으며 그와 삼마안이 최강의 전력.
          * 마르크스는 자신의 기억마법이 틀렸을 리가 없다고 단언하는데, 야미 스케히로는 "네가 결하다면 너도 기억을 공개해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2회 일치
          * 그 정체는 절망의 베토. 야의 마안이 해저신전에 침입한 것이다.
          * 대신관의 아들은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야의 마안이 사용한 마법에 처박혔다.
  • 블랙 클로버/73화 . . . . 2회 일치
          * 해저신전의 주민들은 야의 마안을 물리쳐준 일행에게 감사를 표하려고 몰려왔다.
          * 아스타는 역시 야의 마안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녀석들도 "뭔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는걸 알게됐다고 한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2회 일치
          * 그 중엔 야의 마안의 삼마안 "증오의 파나"도 보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야의 마안의 삼마안인 증오의 파나가 섞여 있다. 위장 중이기라도 한걸까?
  • 블랙 클로버/86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의 외침은 파나의 오래전 기억을 되살린다. 리히트가 야의 마안을 만들기 이전, 파나는 리히트에게 어떤 자를 가리키며 "인간"이냐고 묻는다. 리히트는 인간이 맞고 자신의 친구라고 말한다. 파나는 그를 신기한 분위기의 사람이라고 여긴다.
         야의 마안은 보통 인간 종족이 아니라 이계의 종족으로 보이는데 인간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걸로 보인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2회 일치
          그녀를 관찰하던 젤은 이마의 마안에 주목한다. 그 자체가 누군가 걸어놓은 마법인데 [[야의 마안]]이 그것으로 파나를 조종하고 있다고 간파한다.
          아스타는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 증오의 파나는 "야의 마안"이란 테러리스트 집단의 간부라고, 잘못 본게 아니냐고 따진다. 마르스는 발끈해서 "소중한 친구를 잘못 봤을리가 있냐"고 멱살을 잡는다. 그 단호한 태도를 보고 아스타는 자신의 고향 친구들, [[유노(블랙 클로버)]]를 떠올린다.
  • 블랙기업 . . . . 2회 일치
         블랙기업은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로 보통 노동환경이 보편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명히 나쁜 기업을 가리키는 신조어다,.--검은 조직--
         이런 야쿠자 기업을 돌려서 표현하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는 노동환경과 관련하여 명하게 노동기준법을 위반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거나 불법은 아닐지라도 보편적인 윤리 및 도덕적 시각으로 볼 때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들이 태연히 일어나고 있는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 블리치/674화 . . . . 2회 일치
          * 결국 유시로도 참도를 꺼내는데 실패. 시호인 가문은 참도를 못 뽑는 저주라도 걸렸나?
  • 블리치/693화 . . . . 2회 일치
          * 츠키시마 등장. 풀브링 능력으로 이치고를 찔러 참도가 부러진 일를 없었던 걸로 해준다. 이것은 긴죠의 지시.
          * 설령 결과가 바뀐건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고 행동한 것에 의미가 있다며 후회는 없다는 독과 함께 숨을 거둔다.
  • 블리치/698화 . . . . 2회 일치
          * 이치카는 카즈이에게 사신 견습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데, 그러자 카즈이는 "사신"이라며 사패장과 참도를 갖춘 모습을 드러낸다.
          * 카즈이도 자신을 소개한다. 사패장과 참도를 소환하면서.
  • 빅터 차 . . . . 2회 일치
         조지 부시 행정부 시기, 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또한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in Washington, DC) 한국 석좌로 있다.
         아버지 차문영은 한국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도자기, 자개, 병풍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 가게를 열었으며, 동양 화병에 미국제 갓을 얹고 중국제 나무로 받침대를 한 --기괴한-- 동양램프라는 상품을 화점에 납품하여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차문영은 2001년까지 40년간 아시아하우스를 운영하고, 2005년 타계했다.
  • 샬롯 링링 . . . . 2회 일치
         ||<:><rowbgcolor=#8CFFE1>'''흰 수염'''||<:>'''빨간 머리'''||<:>'''빅 맘'''||<:>'''수(百獣)'''||
         ||<:>[[흰 수염 해적단]]||<:>[[빨간 머리 해적단]]||<:>[[빅 맘 해적단]]||<:>수 해적단(추정)||
  • 성시경 . . . . 2회 일치
         |<겨울 고>
         | 가수 부문 조상
  • 성훈(배우) . . . . 2회 일치
         || [[MBC]] || 《[[은밀하게 위대하게(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15회 2017년 03월 26일 방송. 성훈의 옆에서 깐죽거리는 [[헨리(가수)|헨리]]의 유혹에도 성훈은 화내지 않고 웃었고 촬영 내내 물 한 모금 안 마시는 성훈..~~뭐든 열심~~ 수중 촬영에서 제작진이 [[헨리(가수)|헨리]]에게 무리한 의상을 입히려고 하자 화를 냈고 이를 지켜본 성훈은 적극적으로 "어떤 그림을 생각하는지 안다"라며 자신이 [[헨리(가수)|헨리]] 대신 인어 의상을 입었다. 성훈은 다시 돌아온 [[헨리(가수)|헨리]]에게 "스태프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라"라고 했다. 수중 촬영 중 [[헨리(가수)|헨리]]가 장난을 치다가 감전 사고로 정신을 잃은척 연기했고 성훈은 "[[헨리(가수)|헨리]]가 물 밖으로 나가야한다"라며 [[헨리(가수)|헨리]]를 부둥켜안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화보 찍는다고 2주나 굶었는데~~ 창해진 얼굴의 성훈은 [[윤종신]]과 [[이국주]]가 나타나도 몰카임을 눈치채지 못했다.~~성훈이 화를 안내서 몰카인거 알고 찍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듯 하다. 성훈이 인터뷰에서 알았으면 2주간 5kg이나 걈량했겠냐고 울컥했다. 진짜로 인격이 훌륭한거 같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성훈은 배신감에 [[헨리(가수)|헨리]]를 물에 빠트리며 "이거 [[트루먼 쇼]]냐"라고 소리쳤다. "몰카 한 번 당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앞으로 입조심 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 목숨을 갖고 몰카를 찍었다고 논란이 있었고 결국 6개월 만에 폐지되었다.~~ ] ||
         || [[MBC]] || 《[[나 혼자 산다]]》 || 무지개 라이브[* 212회 2017년07월07일방송. 신한류스타의 이중생활, 똥밍아웃, 시리얼먹방, [[건어물녀|건어물남]], 수삼촌 등극, 인어왕자, [[올드보이(2003)|올드보이]]->만찢남, 조각몸매 등.. 성훈의 재발견.~~다이어트 위해 수영장에서 50m를 잠영으로(엄청난 폐활량)~~시청률 두자리수 ~~2부 수도권기준10.1%~~달성... 214회 여름 나래 학교1편~~정모~~ 2017년07월21일방송. 남성미~~어깨 깡패, 비율 깡패~~ 풀장착하고 웨이크 보드를 탔다.~~멋짐 풀풀~~ 다른 출연자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이시언]]웨이크 보드 타기 성공..~~을 했고 장비 셋팅도 도와줬다.~~웨이크 보드 강사를 해도 될듯.~~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3%...215회 여름 나래 학교2편 2017년07월28일방송. 1시간씩 전복을 꼼꼼히 씻는가 하면 산낙지를 ~~성난~~팔근육으로 다져 낙지 탕탕이를 만들었다. 식사후 [[박나래]]팀과 [[한혜진(모델)|한혜진]]팀으로 나누어 퀴즈를 푸는데 성훈이 '나 학교 안 다녔어'라고해 미취학 성훈이 됐다.~~헉~~ 벌칙으로 폐교 화장실에서 인증샷을 찍는데 그와중에 얼짱각도 맞춰 꽃미모 셀카를 찍고 나와 등뒤에서 느껴진 인기척때문에 주저앉아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5얼 등극. 헉~~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0.2%... 217회 2017년08월11일방송. 실내서핑장을 찾은 성훈은 두번째 시도만에 중심잡는데 성공..이후 만화방에가서 짜장라면, 김치볶음밥, 라면, 스*마요볶음밥, 핫도그, 미숫가루를 먹다가 관장님께 들켜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9% 전국기준11.0%] ||
  • 송상진 . . . . 2회 일치
         * [[1928년]] [[10월 30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동|공산면]] 악리(현재 대구시 동구 암동) 출생.
  • 송재호(배우) . . . . 2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슈퍼걸(드라마)/1시즌 10화 . . . . 2회 일치
         제임스와 루시는 화해하고 키스를 나눈다. 윈은 일상으로 돌아오고, 카라에게 오랫동안 사랑해왔다고 고한다. 하지만 카라는 윈의 고에 당혹감을 느낀다.
  • 스위스 방공호 . . . . 2회 일치
         2010년대의 기록에 따르면, 스위스는 매년 1억 5천만 달러를 방공호의 유지와 관리에 지출하고 있다. 전국 방공호의 총 건설비는 1억 달러로 추정되며, 주택용 방공호의 건설비는 개당 평균 9400달러이다.
         소넨베르크 방공호는 직경 16미터, 깊이 37미터의 지하건물로서, 2만 1천개의 침대, 병원, 회의실, 오락실, 은행, 감옥, 공동묘지가 갖추어져 있으며, 4개의 입구에는 9기압의 압력을 버틸 수 있는 3 50톤의 석문이 있다. 루세르네 방공호는 2시간 이내에 2만 여명을 피난시킬 수 있으며, 이는 루세르네의 7만 5천명의 시민들 가운데 30%에 해당한다.
  • 스파이 스매셔 . . . . 2회 일치
          흑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서도 등장했다. 단, 웨일링 장군이 나치스의 [[캡틴 나치]]에 관한 서류를 읽으면서 나오는 과거 시점에서였다.[* 과거의 일이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인지 흑으로 처리.]
  • 식극의 소마/198화 . . . . 2회 일치
          [[도지마 긴]]을 포함한 기숙사 학생들은 죠이치로를 찾으려고 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닌다. 그가 자주 다녔던 곳을 중심을 수색하지만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학생들은 정말로 그가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닌지 무서운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 도지마는 그의 고을 들으며 자신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실감한다. 요리인의 삶이란 가혹한 것이다. 폭풍이 이는 황야를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인 삶. 그들은 죠이치로를 "수라"라 불렀지만 그 또한 요리인이기 앞서 평범한 또래의 소년이었다. 그런 그를 그저 추앙하고 떠밀며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도지마는 죠이치로를 망가뜨린건 "우리들"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 식극의 소마/199화 . . . . 2회 일치
          * 그들이 계획한 특훈은 3 vs 3 "홍전". 바로 지금 밤부터 시작한다고 하는데.
          * 어쨋든 도지마는 갑작스럽지만 "오늘 밤부터 특훈을 시작한다"고 전달한다. 연대식극에 대비한 첫 번째 특훈. 3 vs 3 "홍전"이다.
  • 식극의 소마/202화 . . . . 2회 일치
          * 홍전 양측의 조리 종료. 승부의 향방은?
          * 홍전의 대결이 드디어 종료. 센자에몬은 양측의 요리를 제출받는다. 곡절이 있었지만 양측 모두 훌륭하게 아쉬 파르망티에를 완성. 이제 승패만이 남아있다.
  • 식극의 소마/204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회상하고 마침내 아버지에게 결심을 고한다.
          [[도지마 긴]]은 승부에 걸린 배팅을 다시금 강조한다. 쿄쿠세이 측이 승리한다면 그대로 아자미 정권은 퇴진, 아자미가 주창하던 야망도 그대로 지화한다. 반대로 센트럴이 승리하면 반역자 전원이 퇴학, 죠이치로는 아자미의 부하가 되어 야망에 협조한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2회 일치
          * 흑발여성은 일등 집행관이자 삼인 중 리더 "안", 인 남성은 이등 집행관 "샤름", 흑인 남성은 이등 집행관 "이스트와르".
          우측의 여성이 일등 집행관 "안". 일행의 리더다. 가운데의 인 남성이 이등 집행관 "샤름". 좌측의 흑인 남성은 이등 집행관 "이스트와르"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2회 일치
          카와시마가 그 기에 밀려 주춤하나 내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반역자들은 기다리던 희소식에 반색이 된다. 하지만 카와시마 자신은 죽을 맛이다. 여전히 미마사카를 "스토커 자식" 취급하고 있지만 이제는 명히 수준이 달라졌음을 인정했다. 뱀 같은 주도면밀함 속에 루비처럼 빛나는 정렬.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때까지 카와시마는 "리액션만은 피한다"는 신조가 있었으나 피해갈 수 없었다. 이스트와르의 코멘트 때문인지 오이란의 모습. 미마사카의 뱀같은 솜씨에 꽁꽁 묶인 오이란의 모습이었다.
  • 식극의 소마/230화 . . . . 2회 일치
          타쿠미도 풀스포르 훈장 수여자인 그가 도움을 준다는 자체에 경악했다. 소마는 물론 대환영. 자기 가게도 있는데 그들을 위해 헌신해준다고 감동에 겨워한다. 시노미야는 "잠깐의 변덕"이라고 말하지만 소마가 제대로 들을 리 없다. 이렇게 잘 풀려가는 것 같은데, 도지마는 뭔가 걸리는 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마가 "잘 됐다"고 축하하면서 보니, 메구미는 사색이 된 채 오돌오돌 떨고 있다. 합숙 시절 시노미야에게 당했던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플래시하고 있던 것이다. 이래서는 특훈은 커녕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무리 같은데. 과연 이 난관을 메구미와 시노미야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요리를 시작한 모모의 기은 십걸다웠고 메구미는 단숨에 위축될 뻔했다. 실제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메구미는 다시 시노미야 셰프에게 가르침 받았던 그때를 떠올렸다. 고양이와 쥐, 뱀과 개구리, 사자와 토끼 같은 조합의 특훈조. 둘은 개인 주방에 들어섰지만 그저 서로 쳐다보는 채로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옆 방에선 소마와 죠이치로, 타쿠미와 도지마도 개별 훈련을 시작해야 했지만 메구미조가 어떻게 하는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지어 [[나키리 에리나]] 조차도. 전원이 유리창 너머로 메구미 조의 주방만 기웃거리고 있자 도지마가 각자 훈련을 시작하라고 한소리 했지만 죠이치로가 "넌 메구미가 걱정도 안 되냐"고 일갈하자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 신동미 . . . . 2회 일치
         * 2002년 [[MBC]] 월화드라마 《[[고 (2002년 드라마)|고]]》
  • 안영준 . . . . 2회 일치
         원주 DB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신인답지않은 레이업을 하는 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차전 4쿼터 막바지, 버튼의 팔꿈치에 얼굴이 접촉된 후 몸이 뒤로 넘어진 것이 플라핑이라고 지적받으며 성숙하지 못한 플레이라고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슬로우로 봤을 때 버튼의 팔꿈치가 명하게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접촉의 강도가 약했음 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과했다는 지적이 존재했다. 정규리그 동안 안영준이 이러한 플레이를 한 적은 없었고, 플라핑은 본래 근절되어야하는 플레이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 [[서울 SK 나이츠]]에서 지명을 한다면 1년 선배인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인 [[문경은]]이 "[[허훈]], [[양홍석(농구선수)|양홍석]], [[유현준(농구선수)|유현준]]은 어차피 앞에서 뽑힐 것이고, 우리 순번에서는 [[안영준]]과 [[김국찬]]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는 [[김국찬]]보다 [[안영준]]이 더 어울린다"고 애기하였다. 왜냐하면 슈가를 뽑아봤자 변기훈과 화이트와 롤이 겹치는데다, SK의 업 포워드가 [[김우겸]], [[함준후]] 정도라는 걸 감안한다면 포워드인 안영준을 뽑는 것이 선수풀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좋다는 시각. 그리고 이 예상처럼 문경은 감독은 안영준을 뽑았고, 김국찬은 다음 순위로 KCC로 갔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2회 일치
          * 아즈사씨는 마침내 고하기 시작하는데,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은 길어야 3년.
          * 그리고 그런 선생의 학생이라면 모두 자기가 있을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독한다.
  • 야설록 . . . . 2회 일치
         * [[1999년]] 《동풍》{{ISBN|978-89-339-0049-9}}<br />《역천기행》4<br />《북경야》<br />《혈한록》<br />《웅풍진중원》<br />《파천무》<br />《비익조》<br />《광생록》<br />《야고검》<br />《영웅전기》<br />《질풍강호 생사주》<br />《만등칠일》<br />《패륜검》<br />《귀수》<br />《살수전기》
         * [[1982년]] 《강호야우 팔뇌》
  • 양진성(배우) . . . . 2회 일치
         [[2010년]] 영화 웨딩 드레스를 통해 배우 활동을 시작한 양진성은 2011년부터는 주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2014년]] [[TV조선]] [[주말 드라마]] '년의 신부'에서 [[1인 다역|1인 2역]]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9&aid=0002721159|관련 기사]]^^
         ||<|2> [[2014년]] || [[TV조선]] || [[년의 신부]] || 나두림/장이경 || 주연 ||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2회 일치
          * [[보스턴]] - 맨 처음으로 활동하게 되는 도시.
          "대표 없이 조세 없다,"를 외치며 영국에 대항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당시 식민지인의 40~45%가 애국자를 지지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보스턴 한구석에만 자리잡고 있다가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왕당파를 몰아내기 시작, 스토리가 끝난 시점에는 전 지역을 차지한다.
  • 엔자이 . . . . 2회 일치
         수사기관의 편견, 피의자에게 밀실에서 [[자]]을 강요하고, 그러한 자을 과신하는 것이 엔자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 오봉 . . . . 2회 일치
         우란봉에(盂蘭盆会-중맞이)를 줄인 말로, 일본의 중요한 명절이다. 평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얻어서 시골로 귀성하므로 회사가 업무를 쉬는 회사가 많다. 오봉의 시기는 전국 대부분이 양력 8월 15일이지만, 다른 날짜에 행사를 하는 지방도 있다.
         중은 중원(中元)이라고도 하는데, 음력 7월 15일이다. 도교에서 이 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국의 민속신앙에서는 이 날은 저승의 문이 열리고 조상의 영혼이 돌아오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일본에도 비슷한 민속 신앙이 있다. 대개 비슷한 시기에 행사가 모여 있으므로 불교, 도교, 민속 신앙 등이 습합되어 열린다. 서양에서는 할로윈에 대응하는 것으로 본다.
  • 오정태 (희극배우) . . . . 2회 일치
         | 배우자 = 아영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MBC) - 문지기 2 역
  • 원피스/840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상디에게 "넌 형제들과 달리 재능이 없다. 그렇다면 열 배 배로 노력해라. 너희는 제르마 부활 계획의 일부다. 실망시키지 마라."라고 강요한다.
          * 상디는 이후에도 형제들의 샌드 신세.
  • 원피스/853화 . . . . 2회 일치
          * 쓰러진 병아리 자작은 잘려진 몸통 속에서 달걀 같은 내용물이 흘러나오더니 그게 닭의 형태로 변해간다. 이것이 바로 "닭 작". 이 상태가 "진정한 기사"라 불릴 정도로 전투력이 올라간다. 하지만 마지막 변신이라 그런지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데 페드로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다. 변신이 끝나기 전에 타마고 남작의 숨통을 끊으려 하자 부하들이 저지하려 한다.
          * 페드로는 적들에 포위되자 그동안 숨기고 있던 다이너마이트 뭉치를 내보인다. 지금까지 싸움은 그저 위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진짜 목적은 적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저승길 길동무로 삼으려는 것. 적들이 충분히 모이자 페드로는 주저없이 불을 붙인다. 안뜰이 통채로 쓸려나갈 것 같은 폭발이 일어난다. 부하병사들은 물론 진화 중이던 닭 작까지 휩쓸린다. 일대가 쑥대밭이 되고 한켠에 있던 "거울"은 산산조각이 나있는데.
  • 원피스/859화 . . . . 2회 일치
          * 토트랜드 각지의 성들은 다과회에 어떤 음모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 다가올 축제를 기뻐하고 있다. 이들은 [[샬롯 푸딩]]의 결혼을 축하하며 제르마 왕국과 강력한 파이트가 연결되게 되엇다며 기뻐한다. 이번 다과회에 참석할 손님에 대해서도 소문이 돈다. "루펠드 재단"의 일족이 항구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있다.
          * 9층 빅맘의 침실에선 빅맘이 가벼운 발작을 일으킨다. 병사들이 혼비산해서 가보니 브룩이 가짜로 바꿔치기 된 걸 눈치 못채고 "해골이 죽어버렸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오늘은 다과회"라고 달래자 웨딩케이크를 떠올리곤 급빵긋한다. 병사들은 온 김에 "모건즈"란 사람이 손님으로 도착했다는 소식과 다른 내빈들의 도착을 알린다.
  • 원피스/862화 . . . . 2회 일치
          그런데 거기에 대한 푸딩의 반응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는다. 이게 카타쿠리가 본 미래. 상디가 당황해서 "가까이에서 보니 반해버렸다"고 수습하는데 푸딩은 그 말에 또 한 번 감동 받는다.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빅맘은 조바심을 낸다. 하지만 푸딩은 고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푸딩이 제 3의 눈을 가리게 된 이유는 빅맘 때문이었다. 어머니인 그녀 조차도 푸딩의 눈을 기분나빠 해서 이마로 가리라고 성화를 부렸다. 물론 다른 형제 자매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빅맘의 딸인데도 또래 사이에선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눈을 놀리고 혐오했다. 그게 지금의 푸딩을 만들었다. 처음 사람을 찌른 것도 자신의 눈을 가지고 괴롭히던 남자애였다. 잠자코 비웃음 당하느니 전부 없애버리는 걸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혐오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자신은 괴물이라고 독한다.
  • 원피스/876화 . . . . 2회 일치
          * 푸딩은 계쏙 협조적인지 비협조적인지 헷갈리게 굴었지만 루피 일행이 틀린 방향으로 도주하자 "메모리즈 필 플래쉬"이란 능력으로 유혹의 숲을 무력화시킨다.
          푸딩은 다시 일행 곁으로 가서 그 방향은 벽 방향이라고 알려줬다. 일행은 똑바로 달린다고 생각했지만 유혹의 숲이 수작을 부렸던 것이다. 푸딩은 해안 방향을 향해 날며 유혹의 숲 호미즈들을 향해 열매의 능력을 발휘했다. "메모리즈 필 플래쉬 ". 푸딩이 쓸고 지나간 나무들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눈 앞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마치 딴 일을 하던 사람들 처럼 스스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각자 시장을 보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 푸딩은 호미즈에 깃든 "혼의 기억"을 되살렸다. 주마등처럼 기억이 되살아난 동안에는 빅맘의 지배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녀는 지금이라면 숲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고 정말로 숲이 좌우로 갈라지며 해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상디가 고맙다고 말하자 푸딩은 이제야 그가 탄 걸 깨달았는지 허둥지둥대며 츤츤거렸다.
  • 원피스/881화 . . . . 2회 일치
          * 그린룸이란 거대한 파도가 휘감기는 순간 생기는 파도 속 공지대, "파도의 방"이다. 어인족들이 놀이터처럼 이용하는 곳. 징베는 그곳으로 배를 몰고 있었다.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일행은 어리둥절하다. 징베는 멋진 배와 멋진 항해사가 있으니 조타만 좋다면 이 배는 무적이라며 그대로 그린 룸을 타고 파도를 가른다. 나미는 이만한 배를 수족처럼 다루는 징베의 조타 솜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무사히 항해를 계속하는 써니호. 하지만 빅맘 측은 써니호가 완전히 삼켜져 침몰했다고 착각한다. 빅맘이 파도를 일으켰을 땐 당황했던 페로스페로도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그는 그 소식을 전보벌레도 빅맘 해적단 전체에 전달한다.
          거대한 파도가 칠때 생기는 공지대 "그린 룸"을 찾아내서 일행을 구원했다. 이때 한 손으론 키를 잡고 다른 손으론 돛에 연결된 밧줄로 돛까지 컨트롤하는 놀라운 실력을 선보였다. 항해사로 베테랑인 나미 조차도 "그런건 듣도 보도 못했다"며 경탄할 정도. 루피가 일행을 안심시키려고 거짓말을 했을 땐 역시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안도했다.
  • 원한해결사무소/6화 . . . . 2회 일치
         다음날 아줌마는 쓰레기를 뒤져서 우편물 도둑을 잡아내자고 한다. 아줌마는 새댁이 우편물 도둑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수수께끼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도둑맞은 우편물과 접착제, 그리고 부이사 아줌마의 집에서 먹었던 과자 상자가 모두 한 쓰레기 봉투에서 나타난다. 아줌마는 '개똥' 밖에 하지 않았다고 결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모든걸 자한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위키백과 . . . . 2회 일치
         한국어위키과 : [[http://ko.wikipedia.org]]
         위키과 : [[http://wikipedia.org]]
  • 유다인 . . . . 2회 일치
         || [[MBC]] || [[한번 더 해피엔딩]] || [[다정]] || ||
          * 2012년 배리어 프리 영화 《마이 페이지》쿠라타 마코 역 더빙
  • 유병수 . . . . 2회 일치
         유병수는 대구신암초등학교를 다니며 축구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대구 청구중학교에 입학한 후 서울 수서중학교로 전학해 매경기 1골이상을 득점하여 활약을 했고, 서울 [[언남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록기 전국고교 축구대회 득점상과 추계 한국고교축구연맹전 득점상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홍익대로 입학을 결정한 그는 전국 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도움상을 받으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예비 명단에 소집되었고, 연습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1969448 |제목='유병수 해트트릭' 조광래호, 단국대와 연습경기서 8-0 대승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0-12-19}}</ref><ref>{{뉴스 인용|url=http://www.ibest11.com/Country/news_01_view.asp?iBoard=5&iIDX=32713 |제목=유병수, 아쉬움 떨치고 ‘조광래호 병기’로 거듭나나 |출판사=베스트 일레븐 닷컴 |날짜=2010-12-24}}</ref> 또한,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지동원에게 완벽한 찬스를 제공해주는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2302056282239&ext=na |제목=지동원 골-유병수 AS, 박주영 공은 없다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2-30}}</ref>
  • 유지태 . . . . 2회 일치
         * [[2013년]] MBC 스페셜 598회 : 최초공개 북한의 두대간
         * [[SK주식회사]] OK캐쉬 (2003)
  • 유키히라 소마 . . . . 2회 일치
         작중 언급으로는 벌꿀에는 단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가 함유되어 있어, 그것이 단단한 쇠고기에 작용해 단기간에 부드럽게 완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소마가 요리책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으로, 본래는 '파인애플 과즙을 넣으면 고기가 부드럽게 된다'라고 적혀있었으나 파인애플을 살 기회가 없었던 소마는 여러가지 시험을 하다가 벌꿀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 설마 주먹밥 속을 프렌치 기술로 만들어 내다니 국경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이 얼마나 자유로운 요리인가?! 그리고 푸알레는 껍찔이 두툼한 소재에 적합하다. 연어…. 그리고 삼치는 껍질이 적당하게 두툼한, 바로 이 조리법에 딱 맞는 생선! 그는 그걸 삽시간에 간파하고 메뉴를 어레인지한 거야…. 순색으로 빛나는 쌀은 마치 눈과 같고 그 안에서 힘차게 나타나는 삼치는 그야말로 봄의 생명력 그 자체! 그는 봄이 시작되는 그 한순간을 이 요리로 표현한거야─.
  • 윤인조 . . . . 2회 일치
         * [[2015년]] 《[[고 (2015년 영화)|고]]》 - 임윤희 역
  • 윤진이 . . . . 2회 일치
         | 소
         | 제49회 [[상예술대상]]
  • 윤철형 . . . . 2회 일치
          * 1983년 : [[조선왕조 오년|조선 왕조 오년 - 뿌리 깊은 나무]]([[MBC]])
  • 윤흔 . . . . 2회 일치
         [[평안도]][[관찰사]]를 지낸 [[윤훤]], 윤휘(尹暉)의 형이고, [[조선 선조|선조]]의 부마 [[윤신지]]의 부였다. [[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월정 [[윤근수]]는 그의 삼촌이었다. 처음 이름은 양(暘)이었는데 뒤에 흔으로 개명하였다.
         일찍부터 재주가 있어 7세에 책을 읽을 줄 알고 신동이라 불렸으며, 어려서부터 [[율곡 이이]](李珥)와 [[우계 성혼]](成渾), [[송강 정철]](鄭澈)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시문을 배웠다. [[이이]], [[성혼]]으로부터는 [[김종직]]-[[김굉필]], [[정여창 (1450년)|정여창]]-[[조광조]]-[[인걸]]-[[이이]], [[성혼]]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사사받았다.
  • 은혼/586화 . . . . 2회 일치
          * 카무이는 의식이 가물해지면서 "아직도 버리지 못했는가"라고 독하는데
          * 그 자아는 "네가 하지 못하겠다면 내가 해주겠다" 며 "너였던 모든 것도 내가 지워줄게"라고 독하는데...
  • 은혼/587화 . . . . 2회 일치
          * 아부토는 "그때 너를 막지 못한건 너랑 내가 똑같이 때문"이라고 독한다.
          * 그게 잘못이었다면 그걸 막지 못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독한다.
  • 은혼/591화 . . . . 2회 일치
          * 오보로는 "약속을 깨서 면목이 없다"고 독하며 바윗돌에 깔린다.
          * 다카스기와 오보로의 대결은 승부가 갈리고, 오보로는 독한다.
  • 은혼/610화 . . . . 2회 일치
          * 겐카이 영감에게 있어 "기계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란 당연한 원칙이었지만, 설사 그들이 싫다고 했다면 그는 그래도 좋았을 거라고 독한다. 도움이 되지 않고 고철일 뿐이라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같이 망해버릴 각오'''를 했던 것이다. 겐카이 영감은 망가져가는 기계들 앞에 무릎 꿇으며 미안하다 사죄한다.
          * 임무를 마친 타마. 기계가 사멸한 에도로 걸어나온다. 타마는 작별인사 같은건 필요없다는 독을 되풀이한다. 그녀는 과거 긴토키가 사줬던 나사, 비녀처럼 꽂고 다녔던 나사를 뽑는다. 나사를 든 손으로 눈물같은 기름이 흘러내린다. 단지 하나의 정교한 기계, 나사에 불과했던 그녀에게 많고 많은 쓸데없는 데이터를 가득 채워준, 기름 범벅의 나사로 만들어준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말만을 남기고 겐카이의 품 속에서 기능이 정지된다. 사부로들도, 킨토키도 모두 기능이 정지했다. 아직도 달리고 있는 긴토키는 타마의 기능정지를 느끼기라도 한듯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 은혼/611화 . . . . 2회 일치
          * 히라가 겐카이 일행의 희생으로 활로는 뚫렸지만 해방군은 병력이 많고 여전히 압도적인 우세. 3대 용병민족을 중심으로 병전 태세를 갖춘다.
          * 해방군은 기계장비가 고장나자 빠르게 병전 대비태세를 갖춘다. 파일럿들이 쓸 수 있는 거라면 아무거나 잡아들고 보병으로 전환해 편제를 재구성하고 일사분란하게 도열한다.
  • 은혼/614화 . . . . 2회 일치
          * 자작 제독은 무전기 너머로 아우에게 사과하며 자신은 자기 자리에서 도망치고 있던 거라고 고한다. 칭코가 큰 동생과 위대한 형 드라고니아에게서. 그는 이제 도망치지 않고 하타 황태자 옆에서 함께 싸우기를 다짐하며 황태자 바루카스로 돌아온다.
          * 네스를 앞세운 부하들은 오우고우 왕가의 오랜 공기간과 바보황태자(하타황태자)가 망친 국정을 논하며 속히 돌아와 왕위를 이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고사한다.
  • 은혼/616화 . . . . 2회 일치
          긴토키는 자기가 남은 쪽을 맡을 테니 사이고더러 어느 쪽을 택할지 고르라고 말한다. 사이고가 정말 그래도 좋겠냐고 하자, 긴토키는 댁이나 자기나 양이전쟁에서 "훈의 사이고", "야차"라고 부르던 처지가 이 마을에 물들어 하얗지 않게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 은혼/625화 . . . . 2회 일치
          * 또다른 3대 용병부족의 일각 [[신라(은혼)|신라]] 부대 또한 급히 퇴각하고 있다. 건물 위로 뛰어다니던 부대가 호각을 불자 산발적인 퇴각이 시작된다. 지휘관 [[소타츠]]는 [[사카타 긴토키]]의 일격으로 패배, 의식을 잃었다. 집단전술을 자랑하는 신라도 지휘관이 부재하면 오합지졸일 뿐이다. 화와 [[코제니가타 헤이지]] 등과 싸우던 신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을 개시한다.
          [[츠쿠요]]는 화를 이끌고 이들을 추격, 섬멸한다. 오우가이의 눈 앞으로 신라 병사의 시체가 떨어진다.
  • 은혼/628화 . . . . 2회 일치
          * 화의 리더 [[츠쿠요]]도 일단은 신중론파. 그녀는 사실 이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그들의 목적은 더이상의 싸움을 막기 위해 싸운 것. 그런데 그 싸움을 다시 확전시키고 피해를 키운다면 해방군이 하는 짓과 다를게 뭐냐고 지적한다.
          다른 파벌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진선조는 이럭저럭 아직 이르다는 쪽으로 모이고 오니와반슈와 화 쪽은 "가고 싶다면 냅둬라" 정도로, 사천왕도 "에바는 젊은 사람이 알아서"라는 쪽으로 결론. 그외에는 "에바가 아니라 헤바 아니었나" 라던가 "헤바가 아니라 노바 아니었나"하는 둥 여러가지 난색을 표명하다가 결국 하나로 압축된다.
  • 은혼/632화 . . . . 2회 일치
          * 한 번 신스케가 내쳤던 소녀, 마타코는 근시일 안에 신스케와 다시 만난다. 이번엔 죽음이 예정된 "사형수"로서. 때는 양이지사를 탄압하던 시절. 막부는 폐도령을 내리고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던 때였다. 마타코도 검문에 걸렸는데 아버지의 유품을 내놓을 수 없어 저항하다 양이지사로 낙인 찍혀 잡혀왔다. 마타코의 이런 사정은 성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관군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양이지사로 몰아 잡아들이고 있고, 성들이 저항할 방도는 없다.
  • 은혼/644화 . . . . 2회 일치
          * 고에 가까운 짧은 연설은 설득력이 있었고 해방군의 얼마 남지 않은 저항의지를 분쇄했다. 전쟁을 끝낼 만한 고. 엔쇼 황자가 눈을 뜨지 않았다면 그럴 뻔 했다. 해방군 생존자들이 총구를 내렸을 때 엔쇼 왕자가 입을 열었다. 다츠마가 안겨준 총알은 너무 정확하게 맞았다. 엔쇼가 언제나 품고 있던 팬던트. 심장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두었던 아내의 얼굴이 총알을 대신 맞았다. 엔쇼는 어쩌면 이 자리의 누구보다 다츠마의, 양이지사들의 심정을 공감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기꺼이 "나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토로한다.
  • 은혼/648화 . . . . 2회 일치
          >증오도 슬픔도 끌어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거라, 내 성들아.
          >사무라이의 나라. 좋은 성 그리고 좋은 왕을 가진 좋은 나라다.
  • 은혼/654화 . . . . 2회 일치
          * 우주의 전쟁이 끝난 뒤. 그 소식은 하타 황태자의 배에도 전해졌다. [[하타 황태자]]는 전쟁은 혼자 다 해먹은 것같이 폼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전투 중엔 화장실에 처박혀서 압사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황태자가 이만한 군세가 단번에 기를 들 줄은 몰랐고 "전쟁을 결정짓는건 숫자가 아니라 각오"라며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기에 해방군이 패배를 깨달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전직에 실패해 내세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하세가와 다이조]]는 써놓은 유서가 첨부된 그 대로 어디서 기어나와서 그 개드립에 "나도 매일 각오를 다지며 죽음과 마주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영감 [[네스]]는 거기에 일일히 츳코미하며 어차피 이 전쟁에 조력한 것도 억지러 한거 아니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됐건 하타 황태자의 도움이 있어 이길 수 있던게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쓸데없이 훈훈하게 뭉뚱그려지고 있는 찰나, 해방군 모선에 진입했던 부대와 연락선을 잇는 작업 도중 적의 모함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하타 황태자는 전리품을 쓸어담고 도주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접 추격할 것을 명한다.
  • 이규한(배우) . . . . 2회 일치
          * [[애인있어요(드라마)]] -
          * [[집밥 선생]]
  • 이금서 . . . . 2회 일치
         3남<ref>[[평창 이씨]] 측 기록에 의하면 2남. 현재는 이윤장과의 관련성 자체를 부인하는 듯하다.</ref> 이윤장은 고려의 대사마 대장군으로 후제 견훤을 토평하고 개국공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경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윤장의 생모는 신란궁 부인 김씨가 될 수 없다.
         * [[견훤|후제 견훤]]
  • 이기택 . . . . 2회 일치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될 당시 김영삼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결국 [[노무현]], [[김상현(1935)|김상현]]과 함께 잔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당시 잔류파들중에 지명도나 정치경력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이었다.] 이후 1991년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이기택이 김대중에게 시집 갔다"고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상 이때의 결단으로 이기택은 김대중에 이어 야권 제2인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은 '한겨레그림판'에서 '로보트 야권V'라는 제목 하에 김대중과 이기택을 각각 로보트 태권V로 형상화하여 손을 잡은 모습을 그리고, 이에 놀란 김영삼을 괴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김대중과 이기택의 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 소식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야권V'라는 만평은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10년 전에 이미 신민당 부총재였던 사람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이노센트 투어 . . . . 2회 일치
          * [[기사(이노센트 투어)|기사]]
  • 이동흡 . . . . 2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선거 전담 재판부인 형사10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3월 22일에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03년 9월 선거구 아파트 조기축구회 창단식에 참석해 고사상에 현금 20만원을 기부하고 같은해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이장단 단합대회에 두차례 참석해 1100만여원 상당의 음식값과 술값을 후배를 통해 지급하여 기소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이장단 단합대회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여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19344]</ref>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2년이 선고된 정용천 전국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에 대해 징역6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51]</ref> [[열린우리당]]을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시스템클럽]]에 게시하여 1심에서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군사평론가 [[지만원]]에 대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74]</ref> 3월 29일에 [[원우]]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경선 당시 인쇄물을 배부한 대상은 입당 원서가 지구당이나 중앙당에 제출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진정한 의미의 당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21828]</ref>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 집회 금지의 헌법 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에 헌법불합치로 결정할 때 "야간옥외집회 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정당한 입법목적 하에 규정된 것"이라며 합헌이라고 했다.<ref>나리, 차대운,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8473.html 헌재,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연합뉴스]]</ref><ref>{{뉴스 인용 |제목 = 盧 지명한 2인 등 위헌, 검찰출신·한나라 지명자 합헌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41805005&code=940301 |출판사 = 경향신문 |저자 = 조헌철 기자 |쪽 = |날짜 = 2009-09-24 |확인날짜 = }}</ref>
  • 이민호(1987) . . . . 2회 일치
         ||<|3> 2009년 || 제45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3> 꽃보다 남자 ||
         ||<|8> 2015년 ||<|2> 제51회 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인기상 ||<|4> [[강남1970]] ||
  • 이상무(만화가) . . . . 2회 일치
         1946년 김천 출신으로 1963년 고교 재학시절, 대구 [[영남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칸 만화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상경, [[박기준]] 화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월간 "여학생"의 "[[로미오와 줄리엣|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하였다. 이상무라는 예명도 이때 얻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만화를 주로 연재했고, 1980년대 성인 만화 잡지가 탄생하자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골프만화를 연달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 1980년 한국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 한국만화상 아동만화 부문 우수상(유대철 화과 공동수상)
  • 이선희 . . . . 2회 일치
         이후 앨범 활동은 4년의 공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이승기]]라는 가수를 발굴해냈다. 직접 가수 제의를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가수로 데뷔시키고 행사를 같이 다니고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이승기는 가수는 물론이고 예능인으로도 《[[1박 2일]]》, 《[[강심장]]》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배우로서 《[[소문난 칠공주]]》, 《[[찬란한 유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에 출연하였다.
         * [[4월 3일]] [[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 (뮤지컬 부문)
  • 이인성 (화가) . . . . 2회 일치
         [[이인성]] 화은 향토색 짙은 풍경화로 조선의 [[고갱]]이라고도 불린다 풍경과 인물을 결합한 구상화를 최초로 그린 화가로 경주의 산곡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적토가 그대로 드러난 흙바닥, 원색적인 색채가 사용됨과 동시에 하늘의 푸른색과 대비를 이루면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대지의 붉은 색체는 원시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을 준다.
         {{글로벌세계대과}}
  • 이채영(fromis_9) . . . . 2회 일치
          * [[유용근밴드리즈]]의 최장신이다. 두 번째인 [[장규리]], [[지헌]]과는 불과 1cm 차이. 때문에 이 둘이 팀의 양쪽 끝에 서는 경우가 많다.[* 5회차 약속회에서 채영 왈 아버지가 정육점을 하셨는데 그때 고기를 많이 먹어서 키가 많이 큰 것 같다고 한다.]
          * 커뮤니티에 올라간 글 모두 작성자의 입장만 담겨 있다. 그리고 증거라고 제시된 것들 또한 누군가를 4년씩이나 지나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에는 불충분하지 않은가? 예를 들면, 담임 교사 카톡이라고 올라와 있는데 그 카톡을 올린 사람이 실제 담임 교사가 맞다는 것을 명하게 입증할 증빙 자료라도 최소한 첨부해야 하지 않나?
  • 이철희(1964) . . . . 2회 일치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책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김한길(정치인)|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는데, 언제부터 일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대 중반에는 확실히 의원 보좌관이었다. 2008년 전후로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발적 수'''가 되었다....는데, 정작 이후에도 대학 출강을 한다든지,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한다든지, 민주당 당내 정책연구소에서 부원장을 지낸다든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정치 스펙을 쌓았다. 본인의 말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끝내 공천되지 못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http://m.news1.kr/news/category/?detail&593920|서류심사에서 탈락해서]] 면접도 못 봤다. [[http://mnews.joins.com/article/7703750|공천 과정에 대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의 코멘트]]] 2016년 기준으로 보면 전화위복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보인다.
         [[SBS]]에서 2015년 7월 26일 방송된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편의 한 부분에서 토론 및 토의의 사회자로 출연하였다.
  • 이희근 (1929년) . . . . 2회 일치
          | 서훈 내역 = 대한민국 공비토벌기장 <br/> 대한민국 6.25종군기장 <br/> 대한민국 대통령수장 <br/> 대한민국 무성을지무공훈장 <br/> UN종군기장 <br > 대한민국 5등 근무공로훈장 <br/> 대한민국 3등 보국훈장 <br/> 베트남 2등 공군근무훈장 <br/> 대한민국 대통령 공로표창장 <br > 대한민국 보국훈장 국선장 <br/> 스페인 공군 대십자훈장 <br/> 대한민국 충무무공훈장 <br/> 대한민국 보국훈장 통일장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인교진 . . . . 2회 일치
         * 2016년 [[KBS2]] 월화드라마 《[[희가 돌아왔다]]》 ... 홍두식 역
         | [[희가 돌아왔다]]
  • 인천광역시/인물 . . . . 2회 일치
         * [[승도(탤런트)|승도]] - 중구(인천)
  • 일곱개의 대죄/179화 . . . . 2회 일치
          * 몽의 숲 남동쪽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성기사를 사냥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 쫓기던 성기사는 벌써 몽의 숲까지 달아나서 추적이 불가능해졌다. 숲에는 "엄청난 괴물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주민들이 꺼려하는 곳.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2회 일치
          * 돌아온 디안느는 난데없이 할리퀸에게 "많이 좋아해"라 고하며 입을 맞추는데.
          할리퀸의 이성을 강타한 고과 키스. 그의 사고가 날아간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2회 일치
          * 이제 대죄는 온전한 성기사로서 임전태세를 갖췄다. 오랜만에 갑옷차림으로 모인 그들. 멜리오다스가 단장으로써 대원들을 소집해 작전 개요를 설명한다. 그들의 목적은 전날 설명한 대로 십계에 점령 당한 카멜롯의 해방과 인질 구출. 하지만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멀린에게 부가설명을 부탁한다. 멀린은 카멜롯에 특수한 보호수단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한다. 직경 마일에 달하는 차원의 뒤틀림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텔레포트도 앱솔루트 캔슬도 불가능해 접근이 몹시 어렵다. 반은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냐고 묻는데 당연한 말이다. 멀린은 리오네스 왕국으로부터 남동으로 250마일 지점에 차원의 뒤틀림을 유발하는 발현지점이라 특정했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할리퀸은 막연히 이스탈보다 남쪽이라는 것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 멜리오다스가 그곳이 "성새도시 코란도"라고 알려준다. 몇 년 전 대학살이 일어나 멸망한 폐도시다. 에스카노르가 "대학살"이란 말만 듣고 무서워 벌벌 떤다.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코란도 자체 보다는 "남동쪽"이란 단어에 반응을 보인다. 그는 그 방향이라면 "거기"도 통과할 거라면서 조금 옆길로 샐 순 없겠냐고 건의한다. 어차피 하루이틀 거리도 아니니까.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2회 일치
          * 십계 [[프라우드린]]은 무욕의 [[고서]]가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독한다. 그것은 무욕의 계금 탓으로 저주가 그의 기억과 감정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 나자는 낮부터 기력이 없어서 방에 누워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고서는 걱정말고 푹 쉬라면서 다음에는 페네스의 호반까지 가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나자는 화제를 돌려 고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그때 고서는 갓 태어난 산양 같았다고 한다. 지금은 누구도 그를 "인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서는 자신은 인간이 아니며 몸도 마음도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몇 년이든 몇 천년이든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하는데.
  • 임혁주 . . . . 2회 일치
         * 1988년 [[한국방송공사|KBS]] - 《[[조선자 마리아상]]》
         * 2000년 [[한국방송공사|KBS]] - 《[[태조 왕건 (드라마)|태조 왕건]]》 - [[박영규 (후제)|박영규]] 역
  • 임현식(배우) . . . . 2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상예술대상|[[파일: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임효성 . . . . 2회 일치
         그리고 그 시즌 종료 후 다시 [[신선우]] 감독의 유명한 시간차 트레이드의 일원이 되어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며 ~~이적 돌림빵~~ 저니맨 취급을 받다가 06-07시즌 종료 후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다. 전역 후 다시 [[한정원]]과 맞트레이드 되면서 전자랜드로 컴. 전자랜드에서도 역할은 주로 업 가드다. 그것도 [[강혁(농구)|강혁]]이 팀에 합류하고, [[정병국(농구선수)|정병국]]이 제대하면서 제 4의 가드. 2012-2013시즌 도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실상 은퇴했고 시즌 종료 후 공식적으로 은퇴함으로써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 장발 (화가) . . . . 2회 일치
         [[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장면]][[분류:윤보선]][[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인동 장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보스턴 대학교 교수]][[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일제 강점기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55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63년) 당원]][[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인천박문초등학교 동문]][[분류:보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대한민국의 세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이탈리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장선우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성공시대> 각본 감독/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영평상 시나리오상(1988)
         *<우묵배미의 사랑> 각색 감독/상 대상 작품상, 신인 감독상(1990)
  • 장우혁 . . . . 2회 일치
         *[[제예술대학교]] 전통예술과 무용전공 (전문학사)
         [[분류:H.O.T.의 일원]][[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태어남]][[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댄서]][[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제예술대학교 동문]]
  • 장인한 . . . . 2회 일치
         ** 《[[여자가 고할 때]]》
         * 《조선 왕조 오년》([[MBC]])
  • 장현수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 2002년 제38회 상예술대상 영화 시나리오상
         * 1993년 제29회 상예술대상 영화 신인감독상
  • 전경협 . . . . 2회 일치
         전경협 아가타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전장운 . . . . 2회 일치
         전장운 요한은 [[1968년]] [[10월 6일]]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가 집전한 24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전재용 . . . . 2회 일치
         ** 부: 전기환(全基煥, [[1929년]] ~)
         ** 모: 최수자(崔秀子, [[1931년]] ~)
  • 전형필 . . . . 2회 일치
         [[1962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화포장]] 과 [[국민훈장]] 동장,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들을 연구정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로 개편되었고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의 이름으로 봄과 가을 일년에 두차례 일반공개를 하고 있다.
         * 1964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동장 추서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2회 일치
          * 협력자에 정보에 따르면 사카키는 블랙 팬텀의 도어로 이용당하고 있으며 다시 지배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산노미야 시호는 어떤 조사를 위해 타니자키를 두고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려오라고 말하며 현장에 있는 더 하운드와 나오미도 따라달라고 말한다. 협력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카키는 블랙 팬텀에게 "도어"로 이용당해 왔고 그쪽에선 다시 사카키를 지배하려 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 그 말을 들은 미나모토는 사카키를 혼자 두고 온 걸 후회한다. 본래는 ESP 감지기에 사카키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관측소에 두고 온 건데 이런 식으로 악수가 됐다. 나오미는 자신이 먼저 관측소에 가보겠다고 하는데 미나모토는 혼자 움직이는건 위험할 거라 판단해서 전원이 돌아가기로 한다. 미나모토는 이 작전에 대해선 모든 것이 자신의 판단미스라고 후회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 카오루]]가 밝힌 "협력자"의 정체는 바로 [[츠보미 후지코]]의 "유언". 과거 후지코의 업된 인격이었다.
          과거의 후지코는 이제 잘 풀리면 사카키의 진료기록을 토대로 신을 만드는게 가능해질 거라고 말한다. 미나모토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냐고 하는데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모여있는 이 집은 한때 자신이 세들어 살았던 집이라며 과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2회 일치
          * [[히노 카가리]]와 [[타마키 카즈라]]는 와일드 캣 나오미를 상대하고 있다. 카가리가 싸울 이유가 없다며 나오미를 말려보려 하지만 허사. 카즈라는 그들에겐 신도 있고 적이 파고들만한 "마음의 틈" 같은건 없는게 아니었냐고 묻는다. 나오미는 의외로 순순히 모든걸 대답하는데 우선 신이란건 체내에 주입된 입자를 무력화할 뿐이다. 하지만 레어메탈 입자는 매개체일 뿐. "네트워크"에 "통합"시키는 거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 정경호(1972) . . . . 2회 일치
          * [[2006년]] [[무도리]] ... 피디 역
          * [[2013년]] [[문화방송|MBC]] [[년의 유산]] ... 양복집 점원 역(특별출연)
  • 정기성 . . . . 2회 일치
         * 《[[계 (드라마)|계]]》 (2011년, MBC) - 연태견 역
  • 정다혜(1987) . . . . 2회 일치
         '''정다혜'''([[1987년]] [[1월 7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유수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 적이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404&aid=0000030562 정다혜, 유수인으로 개명 후 드라마 컴]. 뉴스24. 2013년 5월 15일.</ref>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69982 정다혜] - 다음 인물
  • 정동현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 [[서울운초등학교]]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운초등학교 동문]][[분류:덕수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
  • 정선 (화가) . . . . 2회 일치
         '''정선'''(鄭歚, [[1676년]] ~ [[1759년]])은 [[조선]]의 화가,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 정씨|광주]], 자는 원(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이다.<ref>[http://people.aks.ac.kr/front/srchservice/viewSearchPPL.jsp?pItemId=PPL&type=L&pType=P&pSearchSetId=1138&pTotalSearchCount=3&pPosition=2&pRecordId=PPL_6JOc_A1676_1_0012083&pName=정선(鄭歚){3} 한국역대인물정보시스템 - 정선]</ref>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관직에 나갔다.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정성왕후 . . . . 2회 일치
         **** 오빠 : 증 이조판서 서명(贈 吏曺判書 徐命伯, 1678~1733)
         * [[MBC]] [[1988년]]~[[1989년]] 《[[한중록 (드라마)|조선왕조 오년 한중록》]] 배우:[[김애경]]
  • 정운용 . . . . 2회 일치
         정운용 조흥은행장은 미 [[군정청]] 골든 재무부장(중령)과 친밀한 관계였다. 해방 후 중앙은행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조흥은행은 강력한 중앙은행 후보로 꼽혔다. 조흥은행은 민족자본비중이 절반을 넘은데다 일본자본의 침투가 가장 적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하지만 1946년 광복1주년을 맞이하여 미 군정청 내각 전원이 한국인으로 채워진다. 골든 재무부장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윤호병이 신임 재무부장으로 선임됐다. 조흥은행 대신 조선은행이 중앙은행으로 선정됐다.<ref>서광운, <<한국금융년 >> (창조사, 1970) p.237</ref> 정운용 행장 역시 1947년 10월 군정장관의 명령에 의거 행장에서 물러났다.<ref>경향신문, 1947년 10월 18일 2면 정운용 행장 해임</ref>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먼 친척관계인 [[정운일]](鄭雲馹)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아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과사전 정운일 편
  • 정은표 . . . . 2회 일치
          * [[톱스타 유이]] - 박국섭 역
          * [[타짜(드라마)|타짜]] - 조화
  • 정정아 . . . . 2회 일치
         * 2004년 [[KBS]] <[[설공주 (드라마)|설공주]]>
  • 정종원 . . . . 2회 일치
         [[조흥은행]]은 [[동일은행]] [[한성은행]]의 통합으로 1943년 출범했고 앞서 1941년 [[경상합동은행]]은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된 바 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6</ref><ref>국가문화유산 포털 조흥은행 역대은행장 사진첩 제1권</ref><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서광운 <<한국금융년>>(창조사,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이병철은 당시 대구에서 서울 장충동1가 110번지 <ref>매일경제 1974년 9월 11일 7면 고액재산세 부과대상자</ref> 로 거처를 옮겼다. 정종원 자택 인근이었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22일 9면 경제인록 22 재벌전횡 부른 귀속주 공매</ref><ref>매일경제 1987년 11월 20일 11면 이병철 그의 생애와 경영반세기</ref> 이웃이 된 이후 정종원과 이병철의 부인들은 친분이 두터워졌고 그로 인해 자손들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정종원의 막내사위인 [[장유상]] KDI정책대학원 교수 (전 보스턴대 교수)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삼성의 미국 진출에 기여했다.<ref>매일경제 2011년 1월 16일</ref>
  • 정종철 . . . . 2회 일치
         * [[2007년]] 제43회 상예술대상 남자예능상
         {{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예능}}
  • 제주특별자치도 . . . . 2회 일치
         한라산 록담
         한라산 록담
  • 조동혁(배우) . . . . 2회 일치
          * [[야차]](2010, OCN) - 이
          * 러브 하우스(2008) - 강일
  • 존 딜린저 . . . . 2회 일치
         1923년, 딜린저는 미 해군에 입대한다. 그는 전함 USS 유타에서 복무하게 되었지만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유타가 보스턴에 정박했을 당시 탈영해버린다. 무어스빌로 돌아온 딜린저는 1924년 베릴 호비어스(Beryl Hovius)라는 3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한다.
         결혼까지 했음에도 딜린저는 에드 싱글턴(Ed Singleton)이라는 남자와 함께 무어스빌의 식료품에서 강도짓을 벌인다. 그리고 빠르게 체포ㅋ. 싱글턴은 법정에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해 징역 2년을 받았지만 딜린저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죄를 고했다가 징역 2~14년+징역 10~20년[* 미국은 범죄를 여러개 저지르면 형량이 따로 붙는다.]이라는 선고를 받고 큰집에 처박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해리 피어폰트(Harry Pierpont)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 지석진 . . . . 2회 일치
         공기를 잠시 겪고 컴하는 과정에서 피디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한동안 일기도 했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2회 일치
         [[진격의 거인]] 84화. '''야'''
          * 자신에게도 되살리고 싶은 사람은 몇 이나 있다고 말하는 한지.
  • 진격의 거인/93화 . . . . 2회 일치
          단숨에 질책하는 시선이 쏟아졌다. 마가트는 "지금까지 뭘 들었냐"고 무안을 준다. 지크는 그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레는 이제 신병기 개발에 전력을 다해야 하지만, 그걸 다른 나라들이 기다려 줄 것인가? 따라서 지금 마레에게 필요한건 "신병기를 개발할 시간", 좀 더 정확히 말해 "군부 재편까지의 공을 메꿀 시간"이다. 거기에 "마레가 팔라디섬을 점거하고 모든 거인의 힘을 손에 넣었다"는 신문기사가 매우 적합할 것이다.
          일행은 인근에서 포로들이 배로 옮겨지는 장면을 본다. 하나같이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몰골이다. 모두 "무구의 거인"을 상대하고 살아남은 포로들로 본국에 돌아가서는 거인병기의 공포와 비인도성을 설파하고 다닐 것이다. 그건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을 더 악화시킬 것이며 전세계에서 유미르의 성들을 죽여버리자고 떠들 것이다. 우도는 분한 듯이 물건을 걷어찬다. 그때 누군가가 우도의 행동을 나무라며 그런데 화풀이하지 말라고 한다. 라이너였다. 침울해졌던 소년 소녀들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지며 그에게 뛰어간다. 라이너는 그들의 무사를 확인하며 한 사람씩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가비가 특히 라이너를 좋아하는데, 파르코는 대조적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고 쓰다듬도 받지 않았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2회 일치
         우선 내가 찾아낸 작은 물건들에 감사부터 해야겠다. 꽃삽이다. 아마 어머니가 화단을 정리하면서 썼던 물건이리라. 앞으로 시작될 농사에 혁혁한 기여를 기대한다. 본격적인 농사용구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그러면 어때. '''맨손'''보단 배는 낫지. 벌써부터 파헤칠 수 있는 면적이 배로 늘어난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또 뭘 찾아냈을까? 바로 비료 푸대다. 솔직히 농업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어떻게 뿌려줘야 할런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우리 어머니는 분명 영어 까막눈일 텐데 어째서 포장지에 영어만 잔뜩 써져 있는 비료를 샀을까? 그 사정을 물어볼 날이 올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다. 좌우간 지금은 도움되는 물건이 발견된 것 자체가 기뻐하자.
         다시 내가 찾아낸 물건 얘기로 돌아가자. 우리 집에는 생각보다 정원 용품이 많다. 날이 좀 나갔지만 전지가위도 하나 찾았고 어디에나 써먹을 수 있는 목공장갑도 몇 벌 찾았다. 그리고 두툼하고 투명한 비닐 시트도 발견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겨울에 방한 목적으로 창문에 치던게 기억이 났다. 이게 또 요긴할 것이다. 같이 쓸 수 있는 굵은 철사도 있다. 녹 하나 나지 않은 새것이다. 나는 지를 받아든 어린애처럼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분명 재료가 부족할게 뻔하지만 작은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서 겨울에 대비하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래 지금은 부족하지만 나에게 제일 풍족한건 시간이 아닌가? 시간이 많다는 것,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만으로 근거도 없이 낙관적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생존이란 거겠지.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블랙리스트 . . . . 2회 일치
          얼핏 보면 노망난 것 같은 발 수염투성이 늙은이지만 폭주족 대장으로서 노익장을 과시한다. 본인은 폭주족과 고속도로의 질서를 위해서라고 주장하며 싸움판에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특히 젊은) 폭주족들은 오지랖 넓은 노인네라며 싫어한다. 일설에는 자신의 어리석은 젊은 나날에 대한 후회라고 하는데 정확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다.
          교도소 내에서 갱단을 만들어 죄수동 하나를 장악한 미치광이. 인 우월주의자이며, 유색인종이라면 국적이나 피부색이 뭐가 됐든 무조건 혐오한다. 최근에 탈옥했으며 본거지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채우성 . . . . 2회 일치
         * [[제예술대학]] 뮤지컬학과(중퇴)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4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제예술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청송군 . . . . 2회 일치
         '''[[주왕산]] [[국립공원]]''', 주산지, 송소고택, 청송문화관광재단의 청송자 전시관과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있으며, 청송문화관광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민예촌에서 한옥숙박체험도 가능하다. 또한 인근의 청송 달기약수탕 부근에 장난끼공화국 달빛예술학교에서 각종 체험 및 플리마켓등을 체험 할 수 있다.또한 지역의 전통문화유물인 청송자,소설가 김주영선생의 소설 객주를 모티브로 한 객주문학관, 야송이원좌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군림청송야송미술관과 위장병과 관절에 좋은 약수가 나오고 있는 달기약수, 신촌약수터 등이 있다.
  • 최다빈 . . . . 2회 일치
         2015-2016 시즌에 마지막으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은 생애 처음으로 모두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보였다. 처음 출전한 라트비아 리가 그랑프리에서 3위, 이어 출전한 오스트리아 린츠 그랑프리에서 역시 3위를 차지했다. 특히 4차 대회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선수가 많아 메달 입성이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무너지지 않는 멘탈과 정신력, 안정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시니어 첫 데뷔 무대에선 극심한 긴장감으로 8위(탈린 트로피)를 차지했으나 회장배 랭킹전에서 다시 1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높였고 2016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8위, 그리고 2016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보스턴)에서 14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 2016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미국, 보스턴)
  • 최영이 (종교인) . . . . 2회 일치
         최영이 바르바라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최용민(연극배우) . . . . 2회 일치
         * 2018년 tvN 《[[일의 낭군님]]》
         * 2017년 MBC 《[[역적: 성을 훔친 도적]]》 ... 윤필상 역
  • 최창흡 . . . . 2회 일치
         최창흡 베드로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최태영 . . . . 2회 일치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년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동창회, 2004.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학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법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세인]][[분류:상법학자]][[분류:부산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
  • 최학봉 . . . . 2회 일치
         서울 출생으로, 1871년 [[장악원]] 악공에 임명되고, 1913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에 임명되었다. [[함제홍]], [[정약대]], 함재영과 더불어 조선 말기의 손꼽히는 대금의 명인이고, 특히 대금 연주자 김계선(金桂善)을 길러낸 스승이다.<ref name="글로벌_1">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음악가/정악의 명인/최학봉, 《글로벌 세계 대과》</ref>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최희서 . . . . 2회 일치
         | rowspan=2| 제54회 [[상예술대상]]
         {{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
  • 추미애 . . . . 2회 일치
          * [[2009년]] 봉신사상 수상 <봉 나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 충완 . . . . 2회 일치
         | 학력 = [[석예술대학]] [[실용음악과]]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석예술대학 동문]]
  • 코미디언(왓치맨) . . . . 2회 일치
         만화 [[왓치맨]]의 등장인물. 코미디언은 히어로로써의 이름이고 본명은 에드워드 모건 블레이크(Edward Morgan Blake). 작중에선 이미 살해된 상태이다. 왓치맨의 도입부는 코미디언 살해범을 찾으려는 [[로어셰크]]의 독과 블레이크 살해현장을 조사하는 두 [[형사]]의 대화로 시작된다.
         사실 그가 해왔던 망나니짓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미러링~~패러디였다. 이는 로어셰크와 닥터 맨해튼의 독에서 암시된다.
  • 킹덤/501화 . . . . 2회 일치
          * 진군은 적련성 근처를 지난다. 적련성의 성들은 조 서부 지대를 공략하러 가는 군대라 여기며 열렬히 환호한다. [[하료초]]는 [[이신(킹덤)|이신]]과 함께 그 모습을 보며 금안이 이틀 거리 앞이라고 새삼 생각한다. 하료초에게 전달된 사실은 아니었지만 금안이 진로변경지점이 될 거라 예측하고 있었으며 거기가 [[이목(킹덤)|이목]]이 진짜 작전을 인지하는 시점이 될 거라고 여긴다.
          * 한편 조 서부의 십화에선 [[순수수]]가 [[이목(킹덤)|이목]]의 지시대로 최대한 첩보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미 진군의 목표는 흑양이고 금안에서 군령을 수령할 거라는 줄거리가 만들어진 상황. 순수수는 무으로 복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령들을 모아놓고 달리 더 보고할건 없냐고 점검한다. 달리 보고는 없는데 한 명이 약간 미심쩍은 이야기를 한다.
  • 킹덤/510화 . . . . 2회 일치
          * [[송좌]] 인장이 창대로 간두의 머리통을 치며 나타난다. [[숭원]] 보병장, [[미평]] 십장 등 고참들이 신병들을 위무하러 왔다. 송좌는 간두가 날뛰는걸 진정시키고 첫 출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라고 타이른다.
          * 그를 잘 아는 미평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은 첫 출진부터 대단한 공을 세웠다. 사감 평원에서 미평과 동료들이 포위되었을 땐 혼자 적진에 돌격, 20명을 베어넘기면서 활로를 뚫었다. 그 직후엔 어디서 말을 구해다 타고 적 대군 사이로 달려가 아군을 구해냈고 곧이어 처음 본 장갑전차를 날려버렸다. 마지막엔 [[표공]] 장군의 돌격으로 생긴 틈으로 파고들어 적장의 목을 취해, 이 첫 출진의 전공으로 단숨에 인장 자리를 받았다.
  • 킹덤/530화 . . . . 2회 일치
          기수는 후방의 진을 풀고 최종방진까지 후퇴하도록 지시했다. 부장들은 난색을 표했다. 퇴로를 버리는 결정이었다. 차라리 후방을 그대로 두고 전방의 [[마정]]을 불러들여 본진을 방어함이 시급했다. 하지만 기수는 단호했다. 지금 국면에서 어떤 곳을 다른 곳보다 우선할 순 없다. 정면도 바늘 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명이 무너지면 그거야말로 끝. 부장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현실의 다급함을 지적했다. 지금 최종방진으로 물러난다 해도 채비를 다하기 전에 비신대가 들이닥친다. 기수도 반박할 수 없는 명한 사실. 그때 유동장군의 친위대 200기가 기수의 고민을 덜어줬다. 그들이 비신대를 저지하기를 자청했다. 아니, 반드시 비신대 대장 이신과 부장 [[강외]]의 목을 따오겠다고 자청했다. 기수는 그 결의를 만류하지 못했다.
          * 정면에서 섣부른 싸움을 벌였던 마정은 톡톡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마광군과 대치한 언덕의 싸움은 갈 수록 치열했다. 마정 자신의 부대는 중세로 막아내고 있었으나 후방이 어지러지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에겐 본대의 어려움이 시시각각 보고되고 있었다. 마침내 비신대의 등장까지. 하다못해 기수로부터 다른 지시라도 내려오길 바랐지만 그쪽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물론 이쪽도 본진을 도우러갈 여유가 없었고. 그가 새삼 마광이라는 적장을 용병술에 탄식하고 있을 때, 그의 시야로 유동의 기마대가 비신대 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부하들이 유동의 기마대라도 한 발 늦게 보고하자 자신도 안다고 꾸중했다. 그는 이제는 없는 유동을 떠올리며 그가 저들을 지켜봐주길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 태영호 . . . . 2회 일치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50세) 역시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며,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룡(19984년 사망)의 친척이다. 오룡의 아들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져 있다. 오혜선 역시 대외무역, 외자유치, 경제특구 업무를 담당하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에서 근무하다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 토리코/367화 . . . . 2회 일치
          * 수년에 걸쳐 축적된 데미지 노킹이 일순간에 풀린다면 어떻게 될 거 같냐고 하는데...
          * 지로의 단말마는 전지구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채널 안에 있는 죠아와 미도라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 토리코/370화 . . . . 2회 일치
          * GOD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태양의 열과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주변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다.
          * 아카시아, 죠아의 등장으로 수년전 플로제가 GOD를 조리할 때의 정황이 밝혀질 것이다.
  • 토리코/372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아는 토리코가 말한 꿈을 개소리라고 비웃고 "승리의 함성과 절망의 비명은 냄새가 나는 곳이 다르다"는 말과 함께 그를 채널 하드로 끌어 들인다.
          * 왠지 토리코가 싱겁게 이겨있는 상태이다 싶었더니 토리코를 채널로 끌어들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 토리코/386화 . . . . 2회 일치
          * 스카이디어의 채널 공격에서 부활한 시점에선 8천 보단 낮겠지만 스카이디어 조차 간섭 못하는 채널을 전개했으므로, 팔왕보단 높은 레벨일 것으로 추측이 가능.
  • 토리코/391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아는 스카이디어의 채널과 데로우스의 이차원 레이저, 기네스의 기네스 서치와 페어, 사천왕들과 남은 팔왕들의 분노의 집중공격에 당한다.
          * 아카시아는 어차피 차지에 시간이 걸리는 기술이라며 코웃음을 치는데 록왕 스카이디어의 채널로 순식간에 차지가 끝난다.
  • 토리코/394화 . . . . 2회 일치
         청귀와 제 3의 악마는 결국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끝나게 됐으며 특히 제 3의 악마에 대해선 정확한 명칭 조차도 밝혀진게 없다. 팬덤에서는 최초에 "흑귀"라 불렀으나 "귀"로 명칭이 바뀌었고 구현화됐을 때 몸체가 흰색으로 보여서 대체로 귀란 명칭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세 번째 악마가 어떻게 네오를 흡수할 수 있었는지, 어디서 온 존재인지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2회 일치
         >성과 성의 주인은 의지가 강한 사람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
  • 페어리 테일/482화 . . . . 2회 일치
         [[페어리 테일]] 482화. '''기'''
          * 쿄우카가 더 거세게 매질하지만 엘자는 아랑곳 않고 "망령은 다시 베이기 전에 사라져라"고 기으로 압도한다.
  • 페어리 테일/501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루시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나의 브랜디쉬를 망가뜨렸다"고 원망한다.--합이네--
          * "나의 랜디"라고 말하는걸 보면 브랜디쉬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게 분명하다.--합 돋네--
  • 페어리 테일/508화 . . . . 2회 일치
          * 라케이드가 밝히는 자신의 마법은 바로 "쾌락". 쾌락을 깨우친 자는 그의 마법을 거역할 수 없다. 쾌락을 계속 부여해서 결국 승천시켜 죽이는 어찌보면 행복한 마법. 영향을 받지 않았던 유키노는 성령마법을 발동하며 라케이드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가 한 발 빨랐다. 라케이드의 손짓에 따라 촉수 같은 것이 나타나 유키노를 휘감는데, 강제로 쾌락을 주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향을 받지 않던 유키노도 쾌락에 빠져 상태가 안 좋아진다. 함께 묶인 프록시, 렉터도 마찬가지. 라케이드는 지와 무지는 "과 흑"이라며 "쾌락과 고통"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 그때 카구라가 나타나 라케이드의 촉수를 베어내고 유키노를 구한다. 그녀는 라케이드가 말한 것을 듣고 "빛과 이 쾌락이라고? 흑마도사(제레프)의 동료 답지 않구나"라고 빈정거린다. 라케이드는 덤덤한 표정으로 "동료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충격적인 발언을 하는데.
  • 페어리 테일/535화 . . . . 2회 일치
          * 나츠와 재대결하는 마도사 [[제레프 드래그닐]]. 그는 "내가 너희를 구해준다"는 논리를 대지만 나츠는 "이 세계를 부정할 뿐"이라 지적한다.
          * 루시와 친구들의 희생으로 다시 일어선 나츠. 그의 앞에는 마도사로 각성해 네오 이클립스를 눈 앞에 둔 [[제레프 드래그닐]]이 있다. 제레프가 나츠의 배에 뚫은 구멍이 사라져 있다. 그걸 본 제레프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게 뭔지 되짚어 본다. END의 서, 그것은 어디있을까?
  • 페어리 테일/545화 . . . . 2회 일치
          * 루시는 새삼 지난 여정들이 떠오르고 감격, 나츠와 해피가 있어서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고한다.
          * 그러던 루시가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뜬다. 마치 시간이 잘려나간 것처럼, 아니면 그 모든게 꿈이었던 것처럼. 일어난 루시가 서둘러 주위를 둘러본다. 틀림없이 자기 방인데... 나츠가 인사를 건네고 있다. 또 그녀의 방을 맘대로 점거 중. 이젠 놀라지 않을 때도 됐건만 루시는 여전히 적응을 못하고 있다. 어제 트로피를 받은 것도 분명히 현실. 해피가 닦는답시고 건드려서 온통 스크레치를 내놨다. 여기까지 보면 평소와 같은 폭거로 보이지만, 사실 루시가 어제 파티 중에 너무 마시고 쓰러져서 나츠와 해피가 데려다 준거였다. 돌아가지 못한 것도 루시의 책임. 주사가 엄청났다. 계속 나츠나 해피한테 달라붙는 데다 엎어달라질 않나 옷을 갈아입혀달라질 않나 끝끝내 둘을 잘 때 안는 인형마냥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해피가 이같은 일들을 들려주자 기억이 플래시 하면서 "이제 시집가긴 틀렸다"고 자괴감에 빠진다. 하지만 지금가지 여정 중에 이정도 일이 비일비재했던 걸 보면 새삼스러운 생각이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2회 일치
         최대 네명까지의 경비원을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으며, 그 후에는 관제실에서 해당 경비원을 호출하는 것에 응답해야 한다. 관제실에서 이상을 감지하고 상황을 물어보는걸 경비원인 척 하며 속여넘긴다는 설정. 일정시간 내에 페이저 응답을 하지 않거나 페이저 응답을 하던 중 중단하면 바로 신고가 들어간다. 이후 다른 사람들이 시체를 볼 만한 위치인가 아닌가 판단한 다음, 볼 만한 위치라면 바디에 넣어서 못 볼만한 위치(쓰레기통, 숲 속, 방구석 어딘가 등등)로 옮기자.
          맵에 바디을 재보급 받을 수 있는 가방 하나를 배치한다.
  • 표창원 . . . . 2회 일치
         2016년 2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용인시]]에 신설된 [[용인시 정]] 선거구[* 구성동, 청덕동, 마북동, 동동, 보정동, 죽전1동, 죽전2동]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경찰대학]]이 있던 지역이었고,[* 그가 공천을 받기 직전인 2016년 2월에 경찰대가 충남 아산시로 이전해갔다.] 그가 원래 거주하던 지역이다.[* 선거 기간 중 지역구 내에서 [[어린이집]] 차량사고가 났는데, 이때 자기 딸들도 그 어린이집을 다녔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전부터 살던 곳이 맞는 듯 하다.] 그리고 [[2016년]] [[3월 7일]] 당에서 표 전 교수를 [[전략공천]]하기로 확정 발표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7080865|#]]
          *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도 있다. 2013년 1월에 [[경향신문]]에 올린 한 칼럼에서 표창원은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어버렸고 무능하고 무력하다고 지적하면서 국정원이 위기라고 썼는데, 이 내용이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 --4년 뒤의 실상을 보면 팩트폭행이었다-- 이 건은 1년이 지나서 '''무혐의가 명하기 때문에''' 각하되었다. 애초에 판례 상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헌법에 나와있는 내용인데?!~~[* 해당 판례가 밝히는 정의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기관은 당연히 국민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며, 비판으로 인해 더 나은 발전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욕한다고 [[고소미]]를 먹진 않으니까-- ~~하지만 [[대한민국 제1공화국|옛]][[대한민국 제4공화국|날]][[대한민국 제5공화국|에]]는 [[코렁탕|어떻게]] 했더라?~~]
  • 프로 스포츠 . . . . 2회 일치
         현대에는 [[스포츠 마케팅]]의 발전으로,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에도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이 경계가 상당히 애매해졌다. 준프로라는 개념도 잘 살펴보면 프로선수와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 가령 [[K리그]]에 뛰는 선수들은 명히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구단으로부터 급여를 받음은 물론이고 성적에 따라 연맹에서 추가적인 상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용품 회사로부터 스폰받는 돈도 있다. 하지만 세미프로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만 봐도 이런 면에서 K리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통적인 분류는 상당히 무의미해 진 상황이다.
         이런 사례를 생각해보면 종목을 불문하고 "명히 최고의 경기를 제공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상업적인 이득을 추구"하며, "최고의 수준을 경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증명된 선수와 팀"이 보여주는 스포츠가 프로스포츠로 규정할 수 있다.
  • 피수영 . . . . 2회 일치
         피수영은 1995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면서 국내의 수많은 미숙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2000년엔 국내 의료진과 함께 468g 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미국 의사들이 "너희들은 이런 아이들까지 살리느냐"고 할 만치 위험한 상태의 미숙아를 살려내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도 내장에 걸려 치료도 못 받는데 아기를 살려서 뭐하냐"는 아기 할아버지의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땐 피 교수가 "미숙아도 생명이다"라며 자기 돈을 들여 아이를 살려냈다고 한다. 피수영 교수는 '더 이상 경제적 이유로 미숙아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바람으로 유명 탤런트 등 몇몇 지인들과 몇 만원씩 모아서 1억5000만원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71222083196938 피수영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머니투데이》, 2008년 7월 25일</ref>
  • 피우진 . . . . 2회 일치
         매우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피우진과 같이 군 생활을 한 장병들은 모두 그녀를 '''"매우 훌륭하고 인성도 상당히 좋은 참 군인"'''이라며 칭송했을 정도. 그런데 피우진이 군 생활을 할 당시 [[소령]]이었는데, 하필 자신은 [[소대장]]이 되었다.[* 보통 [[소대장]]은 [[소위]]~[[중위]]가 배치된다.] 게다가 [[중대장]]이라는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남군 [[대위]]였는데 '''이는 명한 [[성차별]]이다!''' 그나마 해당 남군 대위가 개념이 있어서, 자기보다 직급은 낮아도 계급이 높기 때문에 피우진을 존중해주고 서로 상호존대를 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했다만.
         2017년에 [[양승숙]] 준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을 지지하였고,[* [[여군]]들은 보통 진보적인 친 [[더불어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반대로 [[남군]]들은 보통 보수적인 친 [[자유한국당]] 성향이 강하다. (다만 남군의 경우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민주당 성향이 강한 경우도 있는데, 보통 장병 복지 및 처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민주당 쪽으로 지지하게 된다. [[군기]] (예)대장이 그 예시.) 하필 피우진이 [[여군]] 인권 이슈를 내놓을 수 있던 자리에서 [[문재인/2017년#s-4.1|동성애자 난입]]이 일어나, 피우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실패하는 씁쓸한 일화가 있다.] 대선이 끝난 후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가보훈처]] 처장에 임명되었다. 그 이전까지 전임 국가보훈처장은 모두 예비역 중장이었지만 [[문재인]]이 주요직위자의 문민화를 위해 여군 출신의 피우진을 이 자리에 보직시켰다.
  • 하이큐/223화 . . . . 2회 일치
          * "방해된다"는 의미는 "어택의 도움닫기에 방해된다"는 것.
          * 다테공고의 공격. 츠키시마는 속공이라고 생각해서 뛰어오르는데 시간차를 이용한 어택이었다.
  • 하이큐/246화 . . . . 2회 일치
          * 엔노시타의 추측대로 카노카는 전부터 타나카를 좋아하던 상태. 조만간 고하려는 참이었다.
          고타임 같은 분위기. 그러나 이런 부분으로 내성이 전무한 타나카는 머리가 폭발할 것처럼 복잡해진다. 그런 영향일까? 타나카는 무슨 근자감인지 일단 거절하고 보기로 하는데... 불청객이 끼어든다.
  • 하이큐/263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츠키시마는 냉철하게 판단했다. 그가 택한건 아즈마네. 어택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았다.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도, 다이쇼와 미카, 그리고 적측인 린타로도. 벤치에서 타나카의 건재를 자신하던 2학년들도. [[우카이 케이신]] 코치,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었다.
          * 아즈마네의 어택은 정석을 무시했지만 한 점을 벌어들인다. 이번에도 오사무, 린타로, 긴지마의 3중 블록. 스파이크는 오사무의 팔에 맞으면서 그대로 뚝 떨어졌다. 블록과 네트 사이로 떨어지는 공. 카라스노의 득점, 26 대 25로 카라스노가 달아난다. 타나카는 이 공격에서 들러리 밖에 서지 못했다. 그래도 아즈마네의 득점을 기뻐하며 적어도 팀원들 앞에서 실망을 내색하진 않는다.
  • 한국진 . . . . 2회 일치
         * 《[[야행 (영화)|야행]]》 (2009년) - 오 형사 역
  • 한동욱 . . . . 2회 일치
         * [[2006년]] [[10월 28일]] vs [[서기수]] (신두대간)
         * [[2007년]] [[11월 14일]] vs [[송병구]] (마고지)
  • 한영이 . . . . 2회 일치
         한영이 막달레나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허협 . . . . 2회 일치
         허협 바오로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현경련 . . . . 2회 일치
         현경련 베네딕타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혜정(1993년 8월) . . . . 2회 일치
         2014년 7월 25일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 출연하여 남자 게스트들의 뭇사랑(?)을 받으며 등장 연애 횟수와 첫 키스를 고. 핸드폰이 없어서 썸톡고시 코너에 스케치북에 답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WAcA_rY9MIE|#]][[https://www.youtube.com/watch?v=rYf79m5n8t8|#2]]
         3회- 혜정의 분량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디지털 쇼트 <[[윤식당|윤식당]]>에서 손님일행으로 등장, 수제 모히또를 주문했지만 공산품 술을 받는다(…). [[http://3m.tv.naver.com/v/1584088/list/121804|#]] <걸그룹 구조조정>에서 구조조정으로 3명만 남은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추가 맴버로 등장. SNL에 출연했다고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에서 구조조정 되어 오게되었다고(…). 일명 'A4용지'라는 그룹으로 재탄생…. [[http://m.tv.naver.com/v/1583914/list/121804|#]] <3분 후배>에서는 복학생의 후배로 등장하여 복학생과 같이 밥먹는걸 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국결혼 vs 한국결혼>에서는 전 아내 [[수영(소녀시대)|수잔]]대신 재혼했다는 설정으로 미국엄마 역할을 맡았다. 아이들을 존중한답시고 불건전한 것들을 모두 하게 해주는~~ 막장~~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호환성 . . . . 2회 일치
         어떤 장치나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기계, 데이터를 다른 장치나 시스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사례. 흑 텔레비젼에서 컬러 텔레비젼 용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것, 스테레오 방송을 스테레오가 아닌 기기로도 수신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흑 텔레비젼에서 컬러 텔레비젼용 방송을 수신한다고 컬러로 나오지는 않고, 스테레오 방송을 스테레오 지원이 안되는 기기로 해도 스테레오 들리는건 아니다.--좀 슬프다.-- 이 경우는 '일단 쓸 수 있기만 하면' 호환성이 있는 걸로 본다. 수신은 할 수 있어도 쓸 수 없으면 호환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 홍금주 . . . . 2회 일치
         홍금주 페르페투아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홍병주 . . . . 2회 일치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형제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홍서범 . . . . 2회 일치
         * [[2010년]] [[MBC]] 《아이돌스타 트로트 청전》
         * 〈나 어떡해〉는 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대, 대학 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던 곡이었다고 한다.<ref>[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39036 불후의 명곡2 홍서범, "'나 어떡해'는 당시 사회적 편견을 깬 곡"] {{웨이|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39036# |date=20131227041836 }}《한국일보》</ref> 홍서범은 "당시 부모님들은 공부를 안 하고 기타치고 노래하면 혼을 내서, 대학생들이 몰래 노래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거다. 그래서 놀란 부모님들이 노래를 부르라 허락했다"고 하였다.
  • 홍세화 . . . . 2회 일치
         그 해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체류 중 [[망명]]하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망명자로 인정받았고,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망명생활을 하며 집필, 기고활동에 종사하였다. [[1995년]] 자서적 고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하고, [[1997년]] 《[[르 몽드]]》에 실린 기사 묶음인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를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1999년]]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펴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PLr3lCCFfMc (강문화특강)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2010년 5월 26일.
  • 황상경 . . . . 2회 일치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2017년, MBC)
         * 《[[하의 신부 2017]]》 (2017년, tvN)
  • 황석두 . . . . 2회 일치
         황석두 루카는 [[1968년]] [[10월 6일]]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가 집전한 24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과사전 인용
         |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휴먼 토치 . . . . 2회 일치
         570호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잦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져 팬들의 불안을 야기했으며 결국 587호에서 스터 빌딩 안에 [[네거티브 존]]이 어나이얼레이션으로부터 강제로 열려지자 [[인간]]으로 돌아온 [[씽(마블 코믹스)|씽]]과 스터 빌딩에 거주하는 학생들과 식객 그리고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네거티브 존에 남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 만화 특성상 결국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1회 일치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히 다른 형태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컵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상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1회 일치
          * 나메리카와는 그의 자기를 "올곧은 장기"라고 표현하면서 끌려가 버릴 것 같다고 독한다.
  • 3월의 라이온/126화 . . . . 1회 일치
          * 하야시다는 명하게 카와모토 아카리를 노리고 있다.
  • AC-130 . . . . 1회 일치
         미국 영화 [[악관 최후의 날]]에서는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조종하는 AC-130이 [[F-22 랩터]] 두대를 박살내고 [[워싱턴 D.C.]]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 Crusader Kings 2/특성 . . . . 1회 일치
          * 치(Imbecile)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1회 일치
          현대 독일 국기와 같은 바이마르 국기를 파기하고 흑황 독일 제국 국기와 나치당 깃발을 사용한다. 불만도가 1% 감소하며 정치 슬라이더가 닫힌 사회로 한 칸 이동한다. 게임내 국기 역시 1936년의 국기로 변경된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1회 일치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성들이 뜻을 이루고자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내 이를 가엽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쓰기 편하게 하고자 할 뿐이니라. -훈민정음'''
  • FastSearchMacro . . . . 1회 일치
         5천여개의 파일이 있을 경우 FullSearch는 5~10초 정도 걸린다. http://wiki.kldp.org 의 경우 현재 2천3여 페이지가 있는데 이 경우는 2~3초 걸렸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회 일치
         양 팀은 단 한번도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기에 클래식에서 쌓은 내공이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었다. 게다가 수원 FC는 후반 6분경에 수비수 임하람이 거친 태클로 경고 없이 레드카드를 받아 나가는 상황까지 겹쳤지만 경기는 단 1골로 승패가 가려졌고, 수원 FC가 선승을 가져가면서 2차전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게 된다.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1회 일치
          1. 만23세이하 선수의 출전의무규정이 강화되었다. 2015시즌은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 중 U23선수가 교체명단을 포함하여 2명 이상이 포함되어야 교체카드를 3장 활용할 수 있었던 반면에 2016시즌부터는 여기에 더하여 1명 이상은 선발출전이 의무화되었다. 단, 해당 선수가 연령별 국가대표팀이나 성인국가대표팀에 호출되어 공이 발생한 경우에는 호출된 인원만큼 규정을 완화하여 적용한다.[* 수원 삼성을 예로 들면, 2016년 기준 23세 이하 선수인 권창훈이 국가대표팀에 호출될 경우엔 교체선수 명단에 23세이하 선수를 하나만 둬도 교체카드를 모두 활용할 수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1명이 더 차출되면 출전명단을 연령제한 없이 꾸릴 수 있다.]
  • MC메타 . . . . 1회 일치
         [[리쌍]] - 아절현(伯牙絶絃)/ In The Beginning (feat. Meta, Sean2Slow, 바비킴, 명호, [[DJ Wreckx]])
  • MoniWikiOptions . . . . 1회 일치
          * 모니위키 블로그에서 트랙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 RecentChanges . . . . 1회 일치
         |||| [[Icon(diff)]] || 업이 여러개 있는 페이지 (클릭하면 바뀐점)||
  • That 70's show . . . . 1회 일치
         에릭의 베프. 반항하에 시니컬한 성격으로서 아프로와 선글래스가 특징. --왠지 [[도우너]]가 연상된다.-- 가정사가 매우 복잡한데, 어머니만 있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나마 어머니도 도망가서 에릭네 집 지하실에서 집세를 지불하며 얹혀 살게 된다. 실종됐던 아버지 버드가 돌아오면서 잠시 아버지네 집에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또 실종되면서 다시 지하실에 돌아온다. 6시즌에서 버드는 생부가 아니었고 윌리엄 바넷이란 사람이 생부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흑인]]으로 레코드 체인점을 소유한 [[부자]]였다. 흑혼혈이었던 것, 하이드 본인은 자신의 반항적인 혈통의 기원을 찾았다며 아주 기뻐한다. 또 배다른 여동생 엔지 바넷이 생기게 된다.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1회 일치
          [[공화당]] 정치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막고 악관에 사람을 만들기 위해 록펠러-카네기-모건이 후원한 정치인. 친 기업적인 성향의 인물이었다. 결국 대선에서 브라이언을 이기고 [[대통령]]이 된다.
  • USS 뷰캐넌 . . . . 1회 일치
         미국 메인 주에 위치한 배스 철공소(Bath Iron Works)에서 건조. 1919년 1월 20일,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찰스타운 해군기지에서 취역하였다. 함명의 유래는 미 해군 제독 프랭클린 뷰캐넌(Franklin Buchanan)으로, [[미국-멕시코 전쟁]]에 참가했으며, [[남북전쟁]]에서 남부 소속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 USS 피닉스 (CL-46) . . . . 1회 일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5040032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5-04&officeId=00032&pageNo=1&printNo=11260&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경향신문 - 피격 아르헨순양함 침몰 승무원 오여명 사망(한국어)]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1회 일치
          * Edison Light Bulb(에디슨 열전구)
  • Victoria II/디시전 . . . . 1회 일치
         ==== Manifest Destiny(명한 운명) ====
  • World Of Guns: Gun Disassembly . . . . 1회 일치
          * [[AMT 업]]
  • 강구열 . . . . 1회 일치
         * [[2004년]] 대구 롯데화점 스타크래프트 대회 1위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2016년 5월 17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날 새벽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을 이용하던 23세 여성이 34세 남성 피의자 김모씨에 의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남자친구에 의해 발견되어 오전 1시 25분 경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같은 날 오전 10시 김모씨는 긴급 체포되었으며 자을 받아냈다.
  • 강상재 . . . . 1회 일치
         * 2016년 제 39회 이상배 한*일 대학선발농구대회 국가대표
  • 강원 FC . . . . 1회 일치
         실제 창단의 시발점은 2008년 4월 28일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2064010|"강원도민프로축구단 창단추진"]을 발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몽준 前 축협회장이 참가하여 "창단을 축하한다"는 발언을 생각하면 이 시기를 구단 역사의 첫 페이지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33646|참고기사]]] 당시 도지사였던 김진선 이외에도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이광재(태, 영월, 평창, 정선), 최욱철(강릉)도 여기에 대해서는 당선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여야를 막론한 창단의 동의는 사실상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강은탁 . . . . 1회 일치
          * 2014년 MBC [[압구정 야]]
  • 강타 . . . . 1회 일치
         * 2012년 [[tvN]] 《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 거미(가수) . . . . 1회 일치
         ||[[이미자(가수)|이미자]]||동 아가씨||381||2승 1패||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6화 . . . . 1회 일치
          * 실핀은 비가 오면 어렸을 적 비오는 날 혼자 유치원에 남아 있던 일이 생각난다고 고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1회 일치
          * 수영만이 인생이 아니라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용기를 내서 고하려 하는데, 어머니가 생각한 수영 외의 자유란 "멋진 캠퍼스 라이프"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8화 . . . . 1회 일치
          * 키리에는 사실 엄청나게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고하고 끝없는 덕심을 어필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특별편 8화 . . . . 1회 일치
          * 동생 히카리는 조금 이상하다는 카나우의 독으로 시작.
  • 계력 . . . . 1회 일치
         [[고공단보]](古公亶父)의 3남. 계력의 아들 창(昌)[* 후의 주문왕]이 태어나자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 고공단보가 창이 후에 주나라를 번창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장남 태(太伯)과 차남 중용(仲雍)은 계력에게 뒤를 잇게 하고 남쪽으로 떠나 오(吳)의 왕이 되었다. 계력은 고공단보를 이어 정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 고경표(배우) . . . . 1회 일치
         ||<|2> 2012년 || [[5만불의 사나이]] || 형철 || 주연 ||
  • 고독의 요새 . . . . 1회 일치
         여기에 설정이 덧붙여지면서 무한 지구 위기 이벤트에서 미치광이 컴퓨터가 지구를 제 2의 [[크립톤]]으로 만들기 위해 전초기지로 만든 것이 고독의 요새이고 슈퍼맨이 [[크립톤]]의 과학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 관리한다는 설정이 만들어졌다. 요새는 슈퍼맨의 아버지 조 엘이 아들을 걱정해서 업으로 준비해 놓아다는 설정으로 보인다. 슈퍼맨 영화 시리즈도 이렇게 설정을 잡아놓았고 조 엘의 정신을 본딴 AI가 존재해 슈퍼맨에게 조언과 힘을 준다. 또 그 안에 외계무기나 맹수들을 보관하는 케이지도 존재한다. 물론 긴 세월 동안 이런저런 고독의 요새 뒷배경이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에피소드마다 고독의 요새 위치가 시시때때로 바뀌었는데 현재는 북극에 위치해 있다.
  • 고수희 . . . . 1회 일치
         * [[2007년]] : 《무동에서》 - 여 역
  • 고종(조선) . . . . 1회 일치
         그럴 때 운요호 사건이 터지는데 사실 이 과정에서 신미양요 때 멀쩡했던 영종도가 맥없이 당했다고 고종을 까는 건 조금 부당하다. 이미 대원군이 당전이나 청전으로 재정상태가 개판이라 사기가 말이 아니었던 것(...). 아무튼 박규수같은 개화파들은 개방을 할 좋은 기회라 여겼고 이에 고종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다.
  • 고준희 . . . . 1회 일치
         ||2016||(주)제이에스티나||제이에스티나 (가방,악세사리) ||
  • 곽성문 . . . . 1회 일치
         |전임자 = [[승홍]](대구 중구)<br/>[[현승일]](대구 남구)
  • 권수현(배우) . . . . 1회 일치
         * 《[[달려라 장미 (드라마)|달려라 장미]]》 (2014년, SBS) - 장수 역
  • 권오현(배우) . . . . 1회 일치
         * 《어머니, 당신의 아들》 (1991년) - 골단 역.
  • 권재진 . . . . 1회 일치
         2011년 8월 8일 오전 청문회에서 큰아들이 경기도 포천의 국제나이론이라는 공장에서 실제로 일했다는 명한 증거라며 지난 2003년 8월 12일부터 2004년 12월 29일까지 포천 농협에서 이뤄진 38번의 입출금 내역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들의 산업기능요원 근무 시기가 2002년 9월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좌 내역은 2003년 8월부터 제출한 것을 두고도 의혹이 증폭됐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1회 일치
         >오 년 전, Carl Johnson은 갱단 간의 마찰과 마약, 부패로 얼룩진 San Andreas의 Los Santos에서 삶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San Andreas. 그곳은 영화 스타나 만장자들이 마약 거래상이나 폭력 패거리와 얽히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곳입니다.
  • 김가은(1989년 5월) . . . . 1회 일치
         [include(틀:표절, version=1~50, source=한국어 위키과)]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 ''Legal education and legal profession changes and challenges'' (법학교육과 법률가 : 변화와 도전), 세계화 시대의 법과 한국법의 발전, 고려대학교 개교 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2005.11.19
  • 김남조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김대환 (법조인) . . . . 1회 일치
          1993년 2월 27일자</ref> 4월 2일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치안본부장 강민창(60세)에 대해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하면서 직권남용에 대해 "부검의가 직책상 피고인의 지시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판결했다.<ref>한겨레 1993년 4월 3일자</ref> 8월 23일에 [[김근태]]에 대한 고문한 혐의로 법원에서 재정신청을 인용하여 공판에 회부된 치안본부 대공수사국 소속 김수현 경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불법체포,감금, 형법 독직 폭행죄를 적용해 징역3년 자격정지2년, 그외 남은 경정과 김영두, 최상남 경위에 대해 징역2년~1년6월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8240028910100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8-24&officeId=00028&pageNo=1&printNo=1655&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3년 8월
  • 김덕현 (변호사) . . . . 1회 일치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했을 때 변호인단의 일원이었다.<ref>기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28&aid=0000051186 노무현 - 변호인단 첫 상견례]. 한겨레. 2004년 3월 22일.</ref> 배우 [[최진실]]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을 때 그 변호인단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였다.<ref>김태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69022 최진실씨 변호인단 매머드급]. 세계일보. 2004년 12월 14일.</ref>
  • 김보름 . . . . 1회 일치
         11월 11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팀추월에 출전한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 노선영(콜핑팀)은 3분2초66으로 5위에 올랐다. 다카기 미호, 다카기 나나, 사토 아야노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은 2분55초77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105384|제목=日 빙속 女추월팀, 평창 앞두고 '무서운 질주'…ISU 월드컵서 '세계新' 우승|날짜=2017-11-11|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에서 김보름은 넘어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2/0200000000AKR20171112002800007.HTML|제목=빙속 이승훈, 월드컵 매스스타트 금메달…대회 2관왕(종합)|성=김경윤|날짜=2017-11-1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노르웨이에서 개최되는 2차대회에 김보름은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보름은 1차대회 1일차 매스스타트 준결승 경기 도중 다른 선수의 스키이트 날에 걸려 넘어 졌으며, 경기 후 허리에 통증을 느껴 1차대회 다른 경기 출전도 포기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xn--q20b51t9le1sh.com/sub_read.html?uid=19371§ion=sc51|제목=[전남방송] 스피드 김보름 선수, 월드컵 2차대회 출전 포기|뉴스=전남방송|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3차대회 여자 3,000m 디비전A(1부리그)에서 김보름은 4분06초4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4위를 차지했다. 3,000m에서는 다카기 미호(일본)가 3분57초09의 일본 신기록으로 우승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2/0200000000AKR20171202034500007.HTML|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3,000m 14위|성=이영호|날짜=2017-12-0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4일 열린 여자부 매스스타트에 나선 김보름은 11위에 그치면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김보름은 경기 초반 후미 그룹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6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끌어올렸지만 먼저 치고 나간 선두 그룹을 다라잡지 못했다. 하위권에서 막판 스퍼트를 노렸지만 이미 선두권과 격차가 너무 벌여져 결국 11위의 성적표를 받았다. 하편, 독일의 전노장인 45세의 플라우디아 페히슈타인(독일)은 매스스타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49929a51806c4912ad5ee75e37e3b0d5|제목=이승훈ㆍ김보름, 월드컵 매스스타트에서 동반 부진|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1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4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9분00초72의 기록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일치감치 선두그룹을 만들어 질주한 프란테스카 롤로브리지다(이탈리아)가 8분 53초49로 금메달, 중국의 궈단이 8분57초54로 은베달을 목에 걸었다.<ref>{{웹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712110100073520005174&ServiceDate=20171210|제목='컨디션 회복'김보름 월드컵 4차 대회 매스스타트 동메달: 스포츠조선|확인날짜=2017-12-12}}</ref>
  • 김보미(1958) . . . . 1회 일치
         |align="center"|[[착한여자 일홍]]
  • 김새해 . . . . 1회 일치
         * 맹수대과 60
  • 김석훈(탤런트) . . . . 1회 일치
         드라마나 사극에서 주연 외에도 내레이션과 공연관련 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궁금한 이야기 Y]]의 MC로도 활동중이며, [[징비록(드라마)|징비록]]의 [[이순신(징비록)|이순신]]으로 캐스팅되었다. 일례로 들자면 징비록에서 얼마나 연기를 진지하게 했는지, 보고있던 주위의 제작진을 몰입시켜 현장을 다 숙연하게 했다는 전언이다. 카리스마 있고 군율에 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이순신을 탁월히 조화하며 잘 표현했다. --그것이 알고싶은 궁금한 이야기 Y--
  • 김선재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종원의 3대 천왕]]》
  • 김성곤 (1913년) . . . . 1회 일치
         [[1967년]] 김성곤은 [[길재호]], [[남억]], [[김진만]]과 함께 [[민주공화당]] 내의 핵심인물이 된다. 그 이후 [[1971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1년]] [[10월 2일]]에 야당과 동조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10.2 항명 파동]]이라 한다. 그 이후 김성곤은 [[10.2 항명 파동]]의 주동인물로 지목받아 경위조사를 받고,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뒤 [[1973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을 지냈으며, [[1974년]]에는 대한양회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 취임을 했다. 그 뒤 [[1975년]] [[2월 25일]] 사망하였으며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 김성민 (1994년) . . . . 1회 일치
         이후 [[5월 18일]]에 당시 [[넥센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김택형]]과의 1:1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다. 이에 관해 [[고형욱]] 단장은 이전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고 밝히면서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컨디션과 실전 감각이 대학 시절만큼 회복된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01214 <nowiki>[배지헌의 브러시]</nowiki> 넥센은 왜 김택형 대신 김성민을 택했나], 《엠스플뉴스》, 2017년 5월 18일.</ref> [[2017년]] [[5월 2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7년]] [[7월 2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고, 6회에도 올라왔으나 경기가 강우 콜드로 끝나면서 완투승으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1.kr/articles/?3036995 '김성민 데뷔 첫 승' 넥센, kt에 6회 강우콜드 승리] 《뉴스1》, 2017년 7월 2일.</ref>
  • 김시진 . . . . 1회 일치
         [[2010년 한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에는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 [[이택근]], [[황재균]] 등의 이적 공으로 인해 팀 전력에 큰 손상을 입으면서 하위권으로 쳐졌지만 어려운 팀 상황 속에서도 [[손승락]], [[고원준]], [[김성현 (1989년)|김성현]], [[김성태 (1982년)|김성태]], [[금민철]] 등 뛰어난 새 투수들을 키워 내 "투수 조련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때 갓 제대하고 마무리로 전향한 [[손승락]]이 [[이용찬 (야구 선수)|이용찬]]을 제치고 세이브왕을 차지하였다. 한편, 경북 포항 운영 면에 대해서 일부 팬들에게 "작전 능력이 미숙하다", "선수 교체 타이밍이 좋지 못하다"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 김영인(탤런트) . . . . 1회 일치
         출연작은 2002년작 '''[[야인시대]]''', 2005년작 [[남기남]] 감독의 '바리바리 짱'과 2006년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 '자이언트'(이상 [[SBS]]), [[조선왕조 오년]], [[영웅시대]](이상 [[MBC]]) 등이 있으나...
  • 김유미(1979) . . . . 1회 일치
         || 2013 || [[붉은 가족]] || 승혜 ||
  • 김윤환 . . . . 1회 일치
         이렇게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김윤환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내 자신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이회창]]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면서 다시 '킹 메이커'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당내 민정계와 영남세력을 대거 규합해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김윤환은 3회 연속으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정작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이때부터 김윤환의 정치적 생명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이 밀었던 이회창 총재에게조차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토사구팽|팽]]당해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 당시 이회창의 참모가 [[윤여준]]이었는데, 그간 총선의 화두는 공천이었음을 상기시키며, 김윤환을 위시한 민정계, 구시대 인물들을 쳐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회창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윤여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윤여준의 전략대로 중진급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 수십여명을 날리고 정치 신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운 개혁 공천은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순(1928)|조순]],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3김 정치 + 이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허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상당히 그럴싸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체성이 불문명한 정당으론 명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양당 구도에 밀려 지역구에선 [[춘천시]]의 [[한승수]] 前 경제부총리, 전국구에선 후보 1번이던 [[강숙자]] 등 총 2명 당선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본인 역시 자기 지역구인 구미시에서 한나라당 [[김성조]] 후보를 상대로 10% 차의 패배를 당했다.(41.7%:32.1%)
  • 김일엽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김일엽'''(金一燁<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과 |판=제4판 |쪽=321 |날짜=2009-03-10 }}</ref>, [[1979년]] [[11월 15일]] ~ )은 [[KBO 리그]] 전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다.
  • 김제철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김주승 . . . . 1회 일치
          * [[1986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오년]] - [[남한산성#s-2.7|남한산성]]》 ... 한윤 역
  • 김지수(배우) . . . . 1회 일치
          * 가녀린 외모와 달리 좋아하는 스포츠는 [[스노보드]]. [[제트스키]], [[수상스키]]까지 즐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탔기 때문에 연예인 중에서는 보드를 잘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족으로, 배우 [[김혜리(배우)|김혜리]]는 김지수가 그랬던 것처럼 가녀린 외모와 달리 스포츠광이면서 두 번 이상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전과[* 김지수는 [[KBS 1TV]] [[태조 왕건]]에서 김혜리가 맡았던 강비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가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혈병]]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선행을 베풀었으며, 이 과정에서 어린이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지 2013년, 소아암 환자 진료비를 위한 자선행사에도 기부했다.[[http://www.humanmp.co.kr/news/news_index.php?vDown=news_read&vKey=14910&vBid=02&vTable=BBS|#]] 이로 인해 이미지는 어느 정도 개선된 듯(...)
  • 김지훈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 2013년 제22회 금계화영화제 최우수외국감독상
  • 김진환(iKON) . . . . 1회 일치
         ||<:><#FF0000> '''{{{#FFFFFF 별명}}}''' ||<(> 뿌요[* 뿌리부터 요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뿌랄 요정이다, WIN 참고.--], 지난, 지나니, 나니[* 일본 인터뷰에서 이렇게 불러달라고 했다. 가족들도 부르는 별명이다.], 거난영[* [[B.I]]가 '얼굴이 너무 하얀 지난형'을 이상한 글씨체로 써서 거난영처럼 보여서 생긴 별명], 13센치 요정[* 어느 팬이 사진을 자로 쟀는데 13센치여서 붙여진 별명... 트리비아 문서의 세번째 트리비아 참고], 맏내, 귀염뽀짝감귤[* [[NEW KIDS : CONTINUE]] 컴 카운트다운 V APP에서 팬이 보내준 별명. 나머지 멤버들이 1분동안 이 별명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진환이 그 그림이 자신의 무슨 별명인지 맞추는 거였는데 결국 못 맞췄다. ~~귀엽고 뽀샤버리고 싶은 뭐 그런 거 아닌가요?~~]||
  • 김초향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
  • 김하은(1984) . . . . 1회 일치
         * [[2017년]] [[MBC]] 《[[역적: 성을 훔친 도적]]》: 적선아 역
  • 김형기 (법조인) . . . . 1회 일치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반공법]]위반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된 영화배우 [[박노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반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순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반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 김효원 . . . . 1회 일치
         '''김효원'''(金孝元, [[1542년]] ~ [[159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퇴계 이황|이황]]과 [[남명 조식|조식]]의 문인이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611/wk2006111416012337070.htm 주간한국 : [종가기행 24] 善山金氏 省庵 金孝元 - 부친 여윈 뒤 家勢 기울어 "가문의 전통 범절 잘 몰라요"<!-- 봇이 붙인 제목 -->] </ref> 본관은 [[선산 김씨|선산(善山, 일선)]]으로, 자는 인(仁伯)이고 호는 성암(省庵)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웅영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1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04. '''열! 각자의 실력'''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1회 일치
          * 신장비인 아이언솔은 다리로 강한 충격을 준 순간 블로우 같은 작용을 해 부담을 덜어주고 위력을 배가시키는 서포트 장비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1회 일치
          * 미네타가 머리카락을 뿌려서 적들을 묶고 오지로가 병전으로 마무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1회 일치
          * 추레해 보이는 아저씨의 독으로 시작. 이마에 깊은 흉터가 있는 아저씨다. 그는 창가에서 아메리칸 스피릿을 피워물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이것이 늘하는 일과일 뿐이라 여기는 한편 "특별한 일"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의 거주지는 카나가와현 카미노구. 그 싸움 이후 올마이트가 은퇴한지 반달이 지난 시점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1회 일치
          >샌드이 될 생각은 없어!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1회 일치
          * [[올마이트]]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쿠고 카츠키]]에게 전부 고한다. 이제 바쿠고는 올마이트의 이력과 원 포 올의 정체, [[미도리야 이즈쿠]]가 그 계승자라는 것까지 모두 알게 됐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회 일치
          올마이트는 오랜만에 머슬폼의 모습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인다. 그는 미도리야에게, 그리고 숙적 올 포 원에게 "이런 마무리"라는 것을 고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1회 일치
          꽤나 한심한 꼴이지만 키리시마는 나름대로 동정하는 듯 하다. 말로는 "그렇게 무섭다고 울 정도면 빌런짓을 하지 마라"고 질타하지만 빌런을 부축해서 일으켜주기도 한다. 빌런은 부축을 받아 일어나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넋두리 같은 고이 계속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1회 일치
          마치 기분 나쁜 괴담 같은 이야기. 분위기가 단숨에 흉흉해진다. 하지만 미도리야와 밀리오는 다른 것 때문에 창한 얼굴이 된다. [[류큐]]는 패트검의 말에서 탄환의 정체가 "인간의 개성"이라는 걸 짐작해낸다. 즉 이 약물은 "인간"에게서 추출한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1회 일치
          나이트아이가 내놓은 의외의 대답. 그는 말이 나온 김에 예지의 성능에 대해서 설명한다. 일단 발동하면 쿨타임은 24시간. 즉 하루에 한 시간, 한 사람 분량 밖에 볼 수 없다. 또 예지가 구체적인 상황 전체를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플래시 처럼 보려는 사람의 상황이 한 장씩 떠오른다. 발동 시점에서 한 시간 동안 앞으로 그 사람이 겪을 운명을, 기록 필름을 넘겨보는 것처럼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보이는건 해당 인물의 아주 가까운 시점. 개인의 행동과 약간의 환경 정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1회 일치
          흥분한 히어로들이 목청을 높였다. 그렇다면 요 이틀동안 돌아다닌게 다 허사란 이야기. 나이트아이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 경위를 설명하며 그들을 달랜다. 그가 내놓은 정보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시에핫사이카이의 하수인이 며칠 전 화점에서 여아용 완구를 샀다는 것. [[패트껌]]이나 레게풍 히어로는 고작 그런 걸로 특정이 되는 거냐고 따진다. 패트껌이 "단지 그런 취미를 가진 인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하자 나이트아이는 "그런 취미가 있는 거라면 하지 않을 대사"를 했다고 밝힌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1회 일치
          * 지금도 책상 한켠에는 그 시절 읽던 히어로 과가 보관되어 있었다. 키리시마는 그 책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다 견디기 어려운 듯 책장으로 집어 던진다. 책과 함께 진열했던 히어로 굿즈들이 떨어진다. 그 중엔 언젠가 생일선물로 받았던 히어로 위인전의 부록도 있었다. 물론 크림슨 라이오트가 나오는 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홀로그램을 투사하는 부록이 멋대로 작동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1회 일치
          * 류큐 팀은 오버홀을 저지해보려고 하지만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그때 [[서 나이트아이]]는 류큐팀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고 이 다음 오버홀은 다른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곧바로 미도리야를 쫓아가 그를 죽일 거라고, 그런 미래를 "봤다"고 고한다. 류큐팀은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나 나이트아이는 어차피 그녀들 몸으로는 무리라고 잠자코 있으라 말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크게 반발하며 "미래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일갈하고 나이트아이는 그녀의 대답에서 "미래를 비틀겠어"라던 [[올마이트]]의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 [[아스이 츠유]]에겐 근처에 있을 밀리오의 구조를 요청하고 류큐, 우라라카에겐 자신을 데리고 위로 올라가 달라 부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1회 일치
          * 마침 [[올마이트]]도 도착해 있는데, 나이트아이의 상태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다. 나이트아이는 상태가 너무 나빠 리버커리걸의 치료도 먹히지 않는다. 나이트아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병상에서 올마이트와 재회, 올마이트가 "네게 끔찍한 짓을 했다"고 사과하자 그저 올마이트가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가 저항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올마이트는 그도 저항하라며,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남에게 폐를 끼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며 그동안 올마이트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고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오늘 미래를 바꾸는걸 보여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미래를 바라는 힘이 "에너지"의 형태로 모여서 미도리야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추측한다. 원 포 올 100%가 해방된건 그 덕. 그렇게 미래가 바뀌는 걸 봤으니 만족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1회 일치
          * 그는 올마이트가 "일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평화의 상징, No.1 히어로로서 최후의..."이라고 독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미도리야에게 정식으로 "은퇴다. 정상적으로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다."고 고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1회 일치
          * 네즈는 그런 문제는 어쨌든 지금의 학생들에겐 "밝은 미래"를 제공해야 한다고 독하는데
  • 나폴레옹 빠 . . . . 1회 일치
          * [[알렉산드르 뒤마]] - [[몽테크리스토 작]]에서 나폴레옹 빠심을 보여준다.
  • 남보라(배우) . . . . 1회 일치
         || [[2018년]] || [[종원의 골목식당]]('이태원 해방촌 신흥시장' 편)[* [[황치열]]과 함께 식당 영업에 도전하였다.] || SBS ||
  • 남유진 . . . . 1회 일치
         극렬 [[친박]] 성향의 정치인 중 하나로, '''[[박정희]] [[반인반신]] 발언의 당사자'''라고 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시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그게 논란이 됐다.[* 남유진 재임기간 중 구미시 1년 예산은 1조 가량 되는데 매년 수억을 박정희 관련해서 낭비했고 임기 말에는 1400억짜리 박정희 타운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석해서 비판을 받았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인용([[파면]]) 판결에는 존중한다고 하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15500010|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신격화 논란]] [[http://www.idaegu.com/?c=4&uid=357752|남유진 구미시장, 기초 지자체장 중 첫 탄핵반대 집회 참석 논란]]
  • 남치근 . . . . 1회 일치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을 실행하여, 임꺽정 일당에 협력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면서 임꺽정을 포위한다. 임꺽정이 구월산으로 도주하자 포위망은 더욱 좁혀들어갔으며, [[서림]]을 이용하여 임꺽정 일당을 회유하고 참수하였다. 결국 임꺽정은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과사전 등에서는 임꺽정이 체포되어 효수당했다고 소개되지만, 실록에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고, 다만 "도적의 괴수를 처단했다"는 짤막한 기사만 있다.]
  • 뇌파 . . . . 1회 일치
         인간의 뇌파는 한스 베르거(Hans Berger)가 처음으로 기록했다. 머리에 외상을 입은 환자의 두개골 결손부에 있는 피하에 2개의 [[금]]으로 된 [[전극]]을 삽입하였다. 나중에는 굳이 피하에 삽입하지 않고 두피에 전극을 얹기만 해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환자:잠깐 그럼 나는 괜히...--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1. [[오딘(이노센트 투어)|오딘]] - 신들의 왕...인데, 전투능력은 명하게 니나보다 아래인 것으로 묘사될 뿐더러 니나는 오딘을 '''[[호구]]'''로 본다. 이래저래 [[높으신 분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불쌍한 캐릭터
  • 니세코이/215화 . . . . 1회 일치
          * 오노데라는 또 도망치는 치토게에게 "나는 이치죠를 좋아해"라고 고한다.
  • 니세코이/216화 . . . . 1회 일치
         오노데라에겐 고 같은 말이었다.
  • 니세코이/219화 . . . . 1회 일치
          * 마리카는 사실 10년 전의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고했다.
  • 니세코이/224화 . . . . 1회 일치
          * 혼자 남은 마리카는 씁쓸하게 독한다.
  • . . . . 1회 일치
         [[소]], [[돼지]]와 함께 대표적인 [[가축]] 중 하나다. [[알]]은 [[달걀프라이]]나 [[삶은 달걀]]이 될 수 있고. 몸뚱아리는 [[치킨]]이나 [[숙]]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새끼인 [[병아리]] 까지도 [[초등학생]]의 [[노리개]]로 바치는 갸륵한 새다. 닭털은 쓸모가 없는 줄 알았더니 [[http://www.sciencetimes.co.kr/?news=%EB%8B%AD%ED%84%B8%EC%9D%80-%EA%B3%A0%ED%9A%A8%EC%9C%A8-%EC%97%B0%EB%A3%8C-%ED%83%B1%ED%81%AC|수소 저장고]]나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96762|플라스틱의 재료]]로 써먹을 가능성이 보인다.
  • 대전광역시 . . . . 1회 일치
         제와 신라의 경계였던 계족산성
  • 대한민국 FA컵 . . . . 1회 일치
         FA컵은 KFA에 등록된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자격을 갖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이 명하기에 토너먼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라운드를 차별 배정받는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 당시 일본은 [[GHQ]]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망명을 시도했다면 망명정부 설치 지시는 이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십만명 정도 규모의 망명정부는 결국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와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제 시즌 2--
  • 데드맨 . . . . 1회 일치
         본명은 보스턴 브랜드(Boston Brand). 본래 [[서커스]]의 곡예사였으나 [[공중그네]] 공연 도중 저격당해 죽었다. 하지만 [[유령]]으로 남은 상태.
  • 동군연합 . . . . 1회 일치
         이후 리차드의 동생인 '실지왕'존이 프랑스의 필리프 2세한테 탈탈털리고 기스코뉴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랑스령을 빼앗기고, 이후 년전쟁때 프랑스령을 전부 빼앗기면서[* 칼레는 메리 1세까지 보유했다.] 사실상 해체.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1회 일치
          * 중온동물(mesothermic) : 항온동물과 변온동물의 중간. 주변 환경에 따라 체온이 달라지지만, 체내에서 열을 생성하는 기능 또한 갖추고 있다. [[공룡]]이 [http://jjy0501.blogspot.kr/2014/06/Is-Dinosaur-a-mesotherms.html 중온동물이었다]는 학설이 있다. 현존하는 동물 가운데서는 가시두더쥐, 상아리 등이 이로 분류된다.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1회 일치
         1959년 개봉된 영화임에도 흑 영화이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여장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함이다.
  • 랑그릿사(검) . . . . 1회 일치
         루시리스의 분신격인 [[제시카]]는 지크하르트와 대면하면서 "성검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당신"이라는 고을 하게 되며, 지크하르트는 스스로를 희생함을 결정하고 아들인 [[루인]]에게 신생 왕국 엘스리드를 맡기며 파사의 검과 융합하여 랑그릿사가 된다.
  • 런던 맥주 홍수 사건 . . . . 1회 일치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이 있는데, 이 런던 맥주 홍수를 소개하는 글 대부분이 당밀 사건과 혼동해서 당밀 사건 관련 사진을 맥주 홍수 사건 현장으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던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현장에 보인다.)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1회 일치
         * [[KBS1]]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 2.0 - 스포츠 대과》
  • 레킹 크루 . . . . 1회 일치
          목과 어깨를 보호하는 특수 헬멧을 착용. 그래서 불도저처럼 돌진한다. 병전 기술도 익혔다.
  • 로라 로라 . . . . 1회 일치
         지구의 에이스였기에 당연히 지구인이라 여겨졌지만, 사실은 달에서 진행하고 있던 귀환계획 당시 파견되었던 문레이스였다. 이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고 나서 그녀는 지구와 달 모두에게 안시 당하는데, 지구인-문레이스 양측에게 배신감을 주기 충분했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행동원칙은 "지구와 달이 싸우지 않는" 미래를 도출하기 위해 지구인을 위해 싸우는 것 뿐이었다. 또한 이미 그녀에게 콩깍지가 겹겹히 씌인 구엔은 배신감은 고사하고 어찌되든 '''"로라와 함께있다"'''는 사실에 만족함은 물론이고 에이스 파일럿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현실적 상황과 맞물려 그녀는 구엔의 지지하에 밀리샤에 남게 된다.
  • 로리타 패션 . . . . 1회 일치
         아마(甘)는 달콤하다는 의미. 색이나 핑크색을 기본으로 하여, 프릴이나 리본 같은 장식을 많이 사용한다. 동화책 속의 공주님을 이미지 한 듯한 의상이다.
  • 로켓레드 . . . . 1회 일치
         버전에 따라 갑옷 색상이 레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색이 주력인 것도 있다.
  • 로힝야 . . . . 1회 일치
         하라카 알-야킨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 등장하는 지도자는, 파키스탄 카라치의 로힝야족 이주자 집단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주한 '아타 울라'라고 분석되었다. 이 단체는 로힝야 남성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에서 활약시켜 게릴라전 경험을 쌓게 했고, 이렇게 20여명 내외의 '교관'이 2년 이상 수 명에게 무기 사용법과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 류중일 . . . . 1회 일치
         [[한양대학교]] 체육학과(1983학번) 졸업 후 [[1987년]]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계약금 2천만 원, 연봉 1천 2만 원)하여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 성적에 기여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 [[유격수]]로 주로 출장했고 골든 글러브([[유격수]] 부문)를 2번 받았다. 현역 시절에는 [[2루수]] [[강기웅]]과 함께하였던 키스톤 콤비가 막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고, 코치로 활동하면서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 마기/294화 . . . . 1회 일치
          * 홍염은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었는데, "룡에게 줘버렸다"고 하는 걸로 보아 이식시켜 준 듯.
  • 마기/295화 . . . . 1회 일치
          * 연영(연옥염, 아르바)은 신드바드와 연락하며 흥분한 듯한 신드바드에게 "왜 그런 녀석을 상대로 안절부절 못하냐"고 묻는다.
  • 마기/296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알리바바는 자신은 왕자로서 대의를 논하는 것에 지쳤다며 개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하겠다고 솔직히 고한다. 또한 이젠 이 나라엔 왕자는 더이상 필요없다며 현재의 바르바드를 긍정한다
  • 마기/299화 . . . . 1회 일치
          * 그 곁에는 연룡, 모르지아나로 추정되는 그림자도 있다.
  • 마기/302화 . . . . 1회 일치
         * 한때 황제국의 무자비한 침략에 고통 받았던 성들이 황제국이 군대를 다시 만들어서 전송마법진을 통해 침략하지 않을까 하는 여론이 퍼진 것이다.
  • 마기/308화 . . . . 1회 일치
          * 이렇게 상회는 대성황을 이루고 있는데 알리바바는 알라딘과 접촉했을 때 개입했던 연영(아르바)의 일을 걱정하고 있다.
  • 마기/309화 . . . . 1회 일치
          * 유난은 푸른 번개의 마법을 쓰기 시작하는데, 연영(아르바)는 "그런건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비웃는다.
  • 마기/319화 . . . . 1회 일치
          * 홍옥은 요즘 성들의 표정이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며 확신을 내비친다.
  • 마기/328화 . . . . 1회 일치
          * 너무나 뻔뻔하게 자하는 신드바드.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신드바드는 간단한 사무업무를 처리한 투로 처리할 일이 있으니 그 얘긴 기다려 달라고 한다.
  • 마기/342화 . . . . 1회 일치
          * 3던전에서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어느 덧 해가 정오를 지나 지기 시작했다. [[쥬다르]], [[연룡]], [[알리바바 사르쟈]]는 제각기 위치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알리바바는 빨리 다음 던전으로 가자고 성화를 부리는데 아르바는 느긋하다.
  • 마기/344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아르바(마기)|아르바]]에게 자신이 사후세계,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겪었던 일을 알려준다. [[연룡]]과 싸우다 패한 것만이 기억에 있는 그는 갑작스럽게 아무 것도 없고 시간 조차 흐르지 않는 곳으로 날려져 당황하지만 곧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던 삼인조와 말문을 트는데 이들은 [[알마트란]] 시대 솔로몬 대왕의 동료였던 [[와히드]]와 [[셋타]], 그리고 와히드의 자식 [[테스]]였다.
  • 마기/345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는 이 돌을 모으면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판단, 자신으 [[모태솔로]]로 죽은 걸 고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 마기/347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런 부류가 되었다는 것과,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그는 할 말을 잃는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자한다. 처음 성궁으로 향할 땐 대의 따위는 다 포기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인정하자 알리바바는 "그럼 다시 생각해라"고 권한다.
  • 마운팅 . . . . 1회 일치
         괴롭힘 처럼 명하게 드러나는 형태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척, 상대를 걱정하는 척, 혹은 자학하는 척 하면서 연애, 외모, 인간관계 등에서 자신을 어필하고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행동을 뜻한다.
  • 막부 . . . . 1회 일치
         결국 [[오닌의 난]]과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 개막 후에는 권위가 실추되어 다른 실력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가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폐쇄된다. 노부나가는 이후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잡아가다가 [[혼노지의 변]]으로 변사하여 어떤 형태의 정권을 만들려고 했는지 제설만 분분하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후에 일본 전역을 제압하여 천하통일을 이뤘으나,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막부를 열 수는 없었고, 이 때문에 그 대신 '후지와라' 등 귀족 성을 받아 귀족이 되는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도요토미' 씨를 창씨하며, 조정의 최고 관위인 '[[관]]'과 '태정대신'을 수여받는 등 조정의 권위를 빌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 맥닐의 법칙 . . . . 1회 일치
         천연두에 감염된 원주민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름]]으로 덮히고, 움직일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갔으며, 생존해도 [[곰보]]가 되거나 [[장님]]이 되었다. 천연두는 10~14일의 [[잠복기]]까지 있어서, 겉으로는 건강해보이는 피난민들도 수킬로미터 씩 이동하면서 천연두를 퍼트릴 수 있었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회 일치
          Valerie Winterson. 발레리라는 이름은 엔딩 크레딧에만 나온다. 처음부터 시체로 등장하며, 맥스는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고 독한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1회 일치
         경비실에 들어간 맥스는 CCTV를 통해 이너 서클 멤버들이 있던 방을 보게된다. 우든은 죽지 않았었다. 단지 죽은 척을 하고 있었던 우든은 이너 서클 멤버들의 시체를 둘러보며 웃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맥스는 "장님들의 나라에서는 외눈박이가 왕이다"라고 독하며 우든은 믿을만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메탈멘 . . . . 1회 일치
          * 플래티넘 (금)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1회 일치
         메탈슬러그 6 부터는 선택한 캐릭터마다 특수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죽어도 무기를 잃지 않는다던가, 처음 맞은 공격은 무기를 잃어버리는걸로 대신한다던가, 적 보병에게 [[아르헨틴 브레이커]]를 쓸 수 있다던가 등등.
  • 모나 색스 . . . . 1회 일치
         이후 맥스와는 에이저 플라자에 쳐들어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회한다. 이때 모나는 니콜 혼에게 맥스를 죽이기 위해 니콜 혼에게 고용된 상태였지만 맥스에게 호감을 느껴 그를 죽이지 않고 동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습격해온 혼의 경호원들에 의해 사망한다. 맥스는 엘레베이터 안에 쓰러진 그녀의 시체를 보며 "솔직히 그녀는 차디찬 킬러가 아니라 좋은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차디찬 시체였다,"[* She was a nice girl, not a stone-cold killer, and now she was stone-cold dead.]라고 독한다.
  • 모죠 . . . . 1회 일치
         남성에게 고받은 적이 없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회 일치
         자야에서 [[하늘섬]]에 흥미를 느끼고 [몽블랑 크리켓]의 도움을 받아 [[스카이피아]]로 간다. 스카이피아 신으로 군림하는 [[갓 에넬]]과 대결하게 되며, [[번개번개 열매]]의 능력을 고무고무 열매의 특성으로 씹어버린다. 그리고 4년 전 카르가라와 [[몽블랑 노랜드]]의 약속의 징표인 황금종을 울린다. 마지막에 스카이피아의 거대한 뱀 노라의 뱃속에서 보물을 들고 튄다.
  • 무신 . . . . 1회 일치
         물론 좀 미묘하게 낮은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무신 역시 국가의 지배층이므로 일반 성들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잘 나가는 신분이다.
  • 무협/용어 . . . . 1회 일치
          * 관용적인 조어 : 정파, 사파, 흑도, 도, 내공, 검기, 강기, 본좌 등이 장르 공통의 클리셰적으로 쓰이는 관용 조어이다.
  • 문호월 . . . . 1회 일치
         1933년 [[윤단]]의 〈장한가〉, [[서상석]]의 〈귀향〉, [[이난영]]의 〈고적〉 등을 발표한 데 이어, [[1934년]] 초에 [[박부용]]이 노래한 〈노들강변〉이 크게 히트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같은 해 사촌 동생인 손목인도 [[고복수]] 노래의 〈타향〉으로 단숨에 인기 작곡가가 되었다.
  • 물에 흘려보내다 . . . . 1회 일치
         이 같은 관념 때문에 개인 간의 시시비비나 사회적 정의보다 집단의 화합을 과도하게 중시하여, 명한 피해자에게 "물에 흘려보내라"는 식으로 합의를 강요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비판이 있다.
  • 미스터 마인드 . . . . 1회 일치
         [[미스터 아톰]]을 부하로 쓰기도 했으며 사지 스틸을 조종해 악관을 차지하려고도 했다.
  • 바키도/127화 . . . . 1회 일치
          * 난데없는 폭발에 혼비산하는 투기장.
  • 바키도/131화 . . . . 1회 일치
          * 한마 바키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승부는 낫어어어! 멈춰어어!" 그러나 모토베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그랬다간 지킬 수가 없다"고 독하고 있다.
  • 바키도/135화 . . . . 1회 일치
          * 전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악관에 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그는 "오거"라는 이름을 전해듣지만 아는 바는 커녕 관심도 없다. 하지만 그와 불가침선언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이없어하는데.
  • 박강현 . . . . 1회 일치
         * 2016년 《유메토모 한국 특별콘서트》- 암아트홀
  • 박경석(1933) . . . . 1회 일치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박광정 . . . . 1회 일치
         연극 연출가로 한창 활동하던 [[2008년]] [[4월]], 대중 매체를 통해 [[폐암]]에 걸렸음을 고했으며[* 실제로도 [[골초]]였다고 한다.], 결국 그 해 [[12월 15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47세.
  • 박상규(가수)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 겸 [[MC]]. [[종교]]는 [[장로회]]다. 1963년 가수로 데뷔한 것을 시작으로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MC로 맹활약했다. 토요일토요일밤에를 [[이덕화]]보다 먼저 MC를 했으며 12시 올스타쇼와 일요큰잔치 등 굵직한 쇼프로그램의 MC를 전담해왔다. 특유의 발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요즘으로 따지면 연예계에서의 그의 입지는 [[손범수]] + [[이승기]] 정도. 국민MC의 계보를 이었다고해도 딱히 문제되지 않을 정도의 유명도가 있었던 분이었다.
  • 박상돈(정치인) . . . . 1회 일치
         2016년에는 자신의 보령 머드축제 등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인 '한걸음'을 집필했다.
  • 박성원 (소설가) . . . . 1회 일치
         * 소설집《고
  • 박수영(연극배우) . . . . 1회 일치
         * 《[[역적 : 성을 훔친 도적]]》 (MBC, 2017년) - 김자원 역
  • 박승호 (야구인)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인천]] 감독, [[박흥식 (야구인)|박흥식]]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ref>[[매거진 t]] - 2008년 9월 기사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4000&article_id=48717 "t MAP - 이승엽"]</ref>
  • 박옥수 . . . . 1회 일치
         딕 욕은 2010년 9월 30일 사당 청소년 문화의 집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교회에는 성직제도가 없어야 된다고 그들(故[[유병언]], [[이요한]], [[박옥수]])에게도 가르쳤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6월 2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진○○(박씨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측 변호사는 박씨가 딕욕 선교사에게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박씨는 4월 20일 수억 원의 주식을 사기로 판매했다는 혐의로 전주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현재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다.) 진○○ 측 변호사는 미국의 딕욕 선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딕욕 선교사가 박씨에게 목사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답해왔다며 박씨는 가짜 목사라고 밝혔다. [[http://hdjongkyo.co.kr/news/view.html?section=22&category=1007&no=14622|기사 전문]].
  • 박윤경(가수) . . . . 1회 일치
         끊임없이 꾸준히 활동해오다가 지난 [[2006년]] [[7월 21일]]에 [[위암]] 수술을 받았다. 당시 박윤경은 암이 많이 전이돼 4시간에 걸쳐 위의 80%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약 3개월 간 휴식을 갖게 되었다. [[2008년]] [[3월 3일]]에 8집 앨범을 발표하고 다시 가수로 복직하였다. 8집 타이틀곡〈1,2,3,4〉는 [[추가열]]이 작곡, 작사한 곡으로 한 여성이 일생에 단 한번 만난 사랑에서 느낀 행복을 노래한 내용이다. 최근에는 5년 3개월 만에 9집 앨범《도도한 여자》로 컴하였다.
  • 박재홍(1941) . . . . 1회 일치
         1941년 2월 28일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큰형 [[박동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수]]로 있다가 [[박태준]]의 도움으로 [[포스코|포항종합제철]]의 중간간부를 역임하다가, 동양철관(주)의 사장, 회장을 역임하였다.
  • 박정근 (법조인) . . . . 1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형사부에서 배석판사로 있던 1968년 12월 5일에 [[동림 사건]] 항소심에서 정규명 정하용에 대해 대법원이 파기환송하기 전의 서울고등법원 판결대로 반공법 잠입,탈출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12050020920101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12-05&officeId=00020&pageNo=1&printNo=14509&publishType=00020]</ref>
  • 박정수(정치인) . . . . 1회 일치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남억]] 후보를 누르는 한편 무소속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참고로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은 1973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되어 남편 박정수보다 일찍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변정일]], [[김수(정치인)|김수]], [[박용기]], [[함종빈]], [[윤재명]], [[정휘동]], [[임호(정치인)|임호]], [[임영득]], [[한갑수(정치인)|한갑수]], [[홍성우(1941)|홍성우]], [[권오태]] 등과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 박준규(1925)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송산(松山)이다. 본관 [[순천 박씨|순천]]. [[남억]]씨가 그의 자형이고 [[삼성그룹]]창업주 [[이병철]]회장의 처조카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육신]] [[박팽년]]의 직계후손이다.
  • 박진석 (가수) . . . . 1회 일치
         박진석 최신 트롯과 정규 앨범
  • 박진주 . . . . 1회 일치
         | 《[[년의 신부]]》
  • 박태준 (작곡가)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박희광 . . . . 1회 일치
         2016년 8월15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뤼순감옥 박물관과 다롄외국어대 김월배 교수의 도움으로 안중근, 신채호, 박희광, 여범, 채세윤 등 이분들의 수감생활을 짐작할수 있는 역사적 자료를 전시하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 배성룡 . . . . 1회 일치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 배슬기(배우) . . . . 1회 일치
         [[2014년]], 중국에서 제작한 [[젓가락형제]]의 '[[작은 사과]]'라는 뮤비에 주인공 여성 댄서로 등장했다. 헌데 이 동영상이 중국에서 10억 뷰를 돌파하며 중국의 [[강남스타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대히트를 치며 중국에서 한류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다. 해당 뮤직비디오 감독은 [[조성모]]의 '[[아시나요]]', [[김범수]]의 '[[보고싶다]]'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김세훈]] 감독이다. 뮤비속의 병원은 인천병원이며, 뮤비속의 배경은 대부분 한국이라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5&aid=0000131710|#]]
  • 벌교 백여우 . . . . 1회 일치
          * "년 묵은 하얀 여우가 어린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면 그 어린이는 죽는다."는 내용이다.
  • 베스타 . . . . 1회 일치
         아이밀리아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의심을 받았다. 자신의 결함을 증명하겠다고 한 다음, [[티베르 강]]까지 걸어가서 여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한 다음, [[체]]로 물을 떠서 한 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고 여신의 옥좌까지 가지고 갔다. 혹은 로마 광장까지 가지고 갔다.
  • 변요한 . . . . 1회 일치
         2015년 5월 열린 [[상예술대상]]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는데, 멋지게 차려입고도 누가 쫓아오는 듯한 빠른 워킹을 보여주는 바람에 일부에서는 동공지진 뿐만이 아니라 손바닥, 발바닥 지진까지 같이 왔다며 놀려댔다.
  • 보루토/2화 . . . . 1회 일치
          * 사스케는 나루토가 "우린 시대에 뒤처진 건지도 모르겠다"고 한탄한 걸 생각하며 "아까 전 승부, 아직 모른다"고 독한다.
  • 보루토/4화 . . . . 1회 일치
          * 병전은 보루토와 막상막하지만 풍선껌을 사용한 인술을 쓰면서 우세해진다.
  • 보루토/7화 . . . . 1회 일치
          * 모모츠키는 킨츠키가 구속된 것도 확인한다. 사스케는 동료도 저 모양이라며 단념하라 하지만 모모츠키는 쉽게 포기할 셈이 아닌 듯 하다. 그는 나루토 부자를 바라보더니 나루토에게 "네 자식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안으로 보루토를 훑어 보더니 "재미있는 운명을 지녔다"는 뜻모를 말을 한다.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1회 일치
         >올림픽에 몇억엔 쓸데없이 쓰지마.
  • 보쿠걸/102화 . . . . 1회 일치
          * 지금은 여자애인 채로 있어주면 좋겠다고 고한다.
  • 보쿠걸/97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용기를 내어 "타케루를 동경해왔다"고 고하는데 마침 그때 토르가 나타나 타케루를 기절시킨다
  • 봉석주 . . . . 1회 일치
         그가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세조는 당일로 관직을 박탈하였다. 이후 [[사헌부]]가 그를 거듭 탄핵했으나 [[조선 세조|세조]]가 이를 무마시켰다. 그러나 세조로부터 심하게 질책당하자 [[1465년]] 김처의(金處義)·최윤(崔潤) 등과 같이 역모를 꾀하였다가 탄로날 것이 두려워 자하였으나 훈작과 관직이 삭탈당하고 [[4월 19일]] 처형되었다.
  • 부산광역시 . . . . 1회 일치
         롯데화점 광복점
  •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태시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119화 . . . . 1회 일치
          * 이제 6회전 시합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난타전이었다. 양팀 모두 필드 중앙에 진출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육박전에 돌입했다. 클라우스 류넷은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돌적인 싸움에 나섰다. 적 마법기사가 공격을 가하자 자신의 강철 마법으로 방벽을 세워 막았다. 하지만 부정형의 액체를 다루는 적의 마법은 방벽을 돌아서 크리스탈을 덮쳤다. 이때 잽싸게 움직인 것이 락 볼티어. 크리스탈을 옆구리에 끼고 적을 뛰어넘었다. 아스타는 그의 마법 형태가 바뀐 걸 눈치챘다. [[매그너 스윙]]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모어에 추가 페이지를 채워넣어서 모습을 강화한 거라고 한다. 그 위력은 보는 그대로였다. 락은 크리스탈을 가진 채로 필드 중앙을 안마당처럼 누볐다. 거의 활공에 가까운 점프를 거듭하며 건물 뒤에 숨은 적 크리스탈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의 장기인 벼락 마법 "진뢰의 붕옥". 병전 타입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위력과 탄속을 자랑하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근, 원거리를 가리지 않는 공격력. 필드 바깥의 선수들이 "하급 기사의 실력이 아니다"고 하나같이 감탄하는 가운데 매그너는 자신도 락도 [[야미 스케히로]]에게 몇 달에 걸쳐 지겹게 부려먹힘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한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1회 일치
          * 그렇게 일방적이었던 싸움이 마침내 끝났다. 아스타가 사라지는 마구를 쳐냈다. 마구가 사라지는 순간 나타날 위치를 고려해 따라잡은 것이다. 이제 싸움은 중세. 매그너는 역시나 한 방 먹여주는게 있는 녀석이라 생각하며 공세를 높였다. 아스타는 거의 막아내고 있었지만 5발 중에 1발 꼴로 실패했다. 검을 더 빠르게 휘둘렀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1회 일치
          * 같은 금색의 여명단인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나 [[클라우스 류넷]]은 부단장이 명히 선을 넘는걸 보고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다. 마르크스가 마법제에게 이걸 제지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데 마법제는 매우 노한 표정이긴 했지만 둘의 대결을 말리려 들지 않았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두 번에 걸친 블랙 상태 발동과 부상 덕에 [[미모사 버밀리온]]의 업을 감안해도 오래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랜길스 보드]]의 맹공이 끝날 줄을 모르고 크리스탈도 점점 파괴되면서 패색이 짙어진다. 항상 아스타를 신뢰하던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우려를 금하지 못한다. 아스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 번째 블랙 모드를 쓰려했다. 원래 하루에 발동할 수 있는 한계는 두 번. 세 번째는 유노와 결승전에서 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마저도 한숨 돌릴 타이밍이 필요해 지금처럼 숨도 쉴 수없는 상황에선 도저히 기회가 없다. 그때 아스타는 다름 아닌 [[잭스 류그너]]에게 도움을 청하며 발동 자세로 들어간다. 아스타의 요청이라면 들은 척도 안 하던 잭스였으나 "저 자식(랜길스)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해준다"며 아스타의 앞을 막아준다. 하지만 그가 도와준다는걸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아스타의 태도를 보며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입맛이 쓰다.
  • 블랙 클로버/51화 . . . . 1회 일치
          * 그 정체는 삼마안(서드아이)라 불리는, 전투만으로는 리히트도 능가하는 야의 마안 최강자들이다.
  • 블랙 클로버/52화 . . . . 1회 일치
          * 푸른 들장미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 야미에게 독설을 퍼붓지만 사실 츤데레. 야미에게 반했지만 기사단 내의 입장 때문에 고을 못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1회 일치
          * 챠미가 야의 마안의 마도사도 순식간에 리타이어 시켰던걸 생각하면, 챠미를 쓰러뜨린 해저의 마도사는 굉장히 수준이 높다.--더러운 수면기--
  • 블랙 클로버/75화 . . . . 1회 일치
          * 야의 마안의 공격으로 국경지대가 약해졌다는 첩보를 접수한 것.
  • 블랙 클로버/78화 . . . . 1회 일치
          * 덤으로 윌리엄 벤전스를 리히트나, 야의 마안 측 인물로 생각하는 듯하다.
  • 블랙 클로버/79화 . . . . 1회 일치
          * "야의 마안의 수괴가 내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지?"
  • 블랙 클로버/87화 . . . . 1회 일치
          * 압도적인 위력을 과시했던 파나가 이 마법에는 경악한다. 전방에 거대한 얼음벽을 만들어서 공격을 흘려보내며 가까스로 회피. 노엘은 잠시 의지가 약해질 뻔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룡의 포효를 조작한다. 빗나갔던 마법이 급격히 방향을 틀어 샐러맨더의 등뒤로 떨어진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한 파나는 기세가 꺾이고 노엘은 지팡이를 바라보며 "브루스, 내가 해냈어"라고 독한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1회 일치
          그들의 왕이 위독한 지경인데 소문에 따르면 마녀의 숲의 여왕은 수년 동안 살아서 숲을 통치하고 있다. 그 비결을 빼앗기 위해서라면 마녀의 숲을 몰살해도 괜찮다, 그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 블랙 클로버/94화 . . . . 1회 일치
          * 바네사는 야의 마안이 마녀의 숲을 침공한 이유를 묻는다. 파나는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마석을 찾아와라"는 지령이 심어진 걸 떠올린다. 숲에 마석이 있다는걸 알게 된 노엘은 서둘러 마녀의 숲의 여왕에게 가보자고 한다. 젤은 그 전에 부상당한 마녀들을 돕는게 먼저고, 또 "그 아이"를 확인해 둬야 한다는데.
  • 블랙 클로버/에피소드 . . . . 1회 일치
         == 야의 마안편 ==
  • 블리치/675화 . . . . 1회 일치
          * 사실 만해이거니 생각했는데 순홍의 바레에이션이었다.--얜 참도가 없는 건가?--
  • 블리치/680화 . . . . 1회 일치
          * 떡밥만 무성했던 야치루의 정체는 켄파치의 참도 자체였던 것 같다.--스타크랑 리리넷 때랑 똑같은거 아닌가 이거--
  • 블리치/687화 . . . . 1회 일치
          * 그러는 사이 이치고의 참도가 하얗게 변해간다.
  • 블리치/689화 . . . . 1회 일치
          * 참도가 두 자루고 호로화와 만해가 따로 각성했듯 "퀸시로서의 힘"인 두 번째 만해 또한 따로 해방한다는 설이 나왔다.
  • 삼감의 난 . . . . 1회 일치
         상나라의 옛 영토와 성들은 주공단의 동생 강숙봉(康叔封)이 봉해지고, 이를 위나라(衛)라고 하였다.
  • 서림 . . . . 1회 일치
         '간사한 배신자' 서림은 임꺽정 이야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서림은 원초적인 완력을 강조하는 '[[정]]' 임꺽정과 대비되어, 몰락양반이나 아전 등 [[지식인]] 계층의 인물로 등장한다.
  • 서명선 . . . . 1회 일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47180 두산대과사전]
  • 서부개척시대 . . . . 1회 일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는 미국-멕시코 전쟁 등을 전후하여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서부로 이주하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 멕시코인 등과 충돌하며 미국의 영토로 확정해 나갔던 시기를 뜻한다. 현재의 초강대국 미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미국인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시대지만, 원주민에게는 인들의 대침략이 벌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 서상기 (1946년) . . . . 1회 일치
         * [[1983년]] [[국민훈장]] [[동장]]
  • 서정윤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서정환 . . . . 1회 일치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 성격 . . . . 1회 일치
         ||<:>과사전||<:>성인군자||<:>잔다르크||<:>아이디어뱅크||
  • 소벌도리 . . . . 1회 일치
         한편 [[진주 소씨]] 족보는 소벌도리의 생애에 대해 다른 기록을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진한의 왕족으로 자(字)는 당운(當雲)이다. 진한의 초대 군주 소손의 4대손이며 돌산고허촌의 촌장을 지냈다고 한다. 사후 [[신라]]의 개국공신에 녹훈되었고 사량부대인(沙梁部大人)이 되었다. [[516년]](법흥왕 3년) 충선(忠宣)의 [[시호]]가 추서되었는데, 뒷날 [[태종무열왕]]에 의해 왕으로 추존되어 문열왕(文烈王)이라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최씨와 소씨는 그를 시조로 하고, 각각 [[최치원]], [[최언위]], [[최준옹]], [[알천]](소경) 등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세대 수를 기세(起世)하고 있다.
  • 손광업 . . . . 1회 일치
         * 《[[일의 낭군님]]》 (2018년, tvN) - 장문석 역
  • 손정혜 . . . . 1회 일치
         [[1982년]], [[충청북도]] [[충주시]] 출생. 30대의 젊은 여성 변호사로 현재 [[이혼]], [[가정]][[법률]]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속은 비엔아이 법률사무소.[* 임방글, 성문 변호사도 이 소속이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해 47회 사법고시를 1차와 2차를 한꺼번에 합격할 정도로 수재이다.(2차는 재수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 [* http://yurajun.tistory.com/3740 ] 근거 링크 혹은 확인 요망). 37회 사법연수원 출신이며, <청년변호사협회>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 손철주 (1954년) . . . . 1회 일치
         '''손철주'''(孫哲柱<ref name="김달진">{{웹 인용|제목=인명사전 - 손철주|url=http://www.daljin.com/author/4783|웹사이트=김달진 미술연구소|확인날짜=2017-12-15}}</ref>, 1954년<ref name="다음">[https://search.daum.net/search?w=tot&DA=YZR&t__nil_searchbox=btn&sug=&sugo=&q=%EC%86%90%EC%B2%A0%EC%A3%BC 다음 인물과-손철주]</ref>~ )는 [[대한민국]]의 미술평론가이다.<ref name="네이버">{{네이버 인물|248289|손철주}}</ref><ref name="중부뉴스">{{뉴스 인용|저자=김석희|제목=‘옛 그림에 나타난 사람의 속마음’ 손철주 평론가를 만나다|url=http://www.jungb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271|날짜=2017-11-07|확인날짜=2017-12-15|뉴스=중부뉴스통신}}</ref> 대구 출신이며,<ref name="김달진"/> 2017년 현재 출판사 학고재의 주간이다.<ref name="네이버"/><ref name="중부뉴스"/>
  • 송진현 . . . . 1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송창현 . . . . 1회 일치
         어쨌든 [[장성호]]와 1:1로 트레이드 할만큼 [[김응용|코끼리 감독]]의 기대를 받고 전지훈련 명단에 들어갔으나, 이후 드러나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자체 청전을 제외하고 2월 21일 기준 연습경기에 나와 2이닝 동안 12실점, 볼넷 5개, 사구 1개, 폭투 1개, 삼진 1개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한화팬들로서는 미치기 딱 좋을 수준이었다. 이후 2군에서도 방어율 7점대의 성적을 찍으면서 한화 팬들이 [[김응용|코감독]]을 씹을 때나 쓰는 안주거리화가 되나 했는데 1군 콜업 이후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 송하윤 . . . . 1회 일치
         ||<|2> [[2017년]] || [[KBS2]] || [[쌈, 마이웨이]] || 설희 || ||
  • 송호창 (1967년) . . . . 1회 일치
         '''송호창'''(宋皓彰, [[1967년]] [[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국회의원이자 인권 변호사이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8110317 민주당, 송호창·이학영·혜련 전략공천] 프레시안 2012-02-28</ref>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TV토론에 출연해 촛불 정국으로 대변되는 촛불민심을 지지하여, '촛불 변호사' 로 활약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0662 '촛불 변호사' 송호창, 안상수 16년 아성 '탈환'] 오마이뉴스 2012.04.12</ref>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로 나선 [[박원순]]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65 ‘박원순 대변인’ 송호창, ‘보온병’ 안상수에 도전장] 미디어오늘 2012-02-06</ref>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의왕·과천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ref>[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깨진 링크|url=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ref>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1회 일치
         파티에서 제임스는 자신이 카라를 잃게 될까 두려워서 슈퍼맨을 불렀다고 고한다. 카라는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준다. 그 때 리액트론이 파티장에 난입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회 일치
         맥스웰의 부모는 정부에서 생화학무기에 대항하는 신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시설의 순환기계의 고장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이 녹아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 이를 은폐하였고 맥스웰은 정부에 불신감을 가지게 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제임스를 추수감사절에 초대하려 하지만, 제임스는 루시와 함께 오하이오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알렉스는 엄마가 슈퍼걸 때문에 화가 났는데 안 하는 걸 거라고 생각하며 걱정하는데, 카라는 알렉스에게 DEO에이전트라는걸 고하라고 조언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회 일치
         카라와 제임스는 창고에서 각각 샌드과 폐차를 달아놓고 두드리면서 화풀이를 한다. 계속 말을 내뱉다가 카라는 자신에게 잠재된 분노가 있었다는걸 깨닫는다. 카라는 자신에게 가장 큰 분노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라는 알렉스의 호출을 받고 DEO로 간다.
  • 슈퍼머슬봄버 . . . . 1회 일치
         그러나 레슬링게임이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해보면 나름대로 꽤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대쉬와 로프 반동을 이용한 스피디한 공방은 이 게임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미.
  • 슈퍼히어로 . . . . 1회 일치
         슈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실사영상물은 상당히 역사가 깊다. 캡틴 아메리카의 경우 1944년에 최초의 영화가 나왔으며 소위 말하는 펄프 히어로들도 흑영상 시절에 영화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의 영화화는 1930년대.
  • 스파이더 . . . . 1회 일치
         두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제목은 <The Spider's Web>(1938년), <The Spider Returns>(1941년)다.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흑 영화. 영화에서는 거미줄 문양같은 복면을 쓰고 있다. [[스파이더맨]]과 비슷. 다른 복장은 복면 대신 아이 마스크스러운 가면을 쓴 이미지도 있다.
  • 스파이더 슬레이어 . . . . 1회 일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비제이 노이 연기했던 일렉트로의 상사의 성이 바로 스마이스. 행동거지로 보아하니 앨리테이서 스마이스로 추측된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회 일치
         이 일은 크나큰 파장을 불러온다. 정부는 혼수상태에 빠진 알렉스의 루드비코 요법을 치료한다. 그러고는 깨어난 알렉스에게 정부의 편을 들 것을 권하며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오디오를 선물한다. 기자들이 병실로 몰려들어와 정부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 알렉스의 사진을 찍는 와중, 알렉스는 섹스를 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독한다.
  • 식극의 소마/165화 . . . . 1회 일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슴고기의 풍미를 잘 이끌어낸 쪽"은 "명히 이쪽"이라며, 에리나가 손을 뻗는데...
  • 식극의 소마/166화 . . . . 1회 일치
          * 그러면서 "이번 1학년들은 이상하다"고 독하는데...
  • 식극의 소마/171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속으로는 "한 걸음 내딛기 위해 소중한 것을 너희들에게서 배웠다"고 독하는데, 그러면서 "그리고 유키히라 소마에게도..."라고 덧붙인다.
  • 식극의 소마/173화 . . . . 1회 일치
          * 명한 부정시험이므로 소송 걸면 간단히 이길 수 있는 수준.
  • 식극의 소마/187화 . . . . 1회 일치
          * 참고로 쌍둥이는 레오놀라 등 명히 윗사람은 "씨"로 호칭, 쿠로키바 료는 "군"으로 칭하고 쿠가 테루노리는 만만해서 "쨩"이라 부른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1회 일치
          * 하야마의 프라이드 베어는 유키히라 소마의 곰고기 멘치까스를 명히 뛰어넘는다는 극찬을 받는다.
  • 식극의 소마/205화 . . . . 1회 일치
          * [[도지마 긴]]은 [[나키리 센자에몬]]에게, 이런 긍정적인 상승효과까지 노리고 홍전 팀을 짠 거냐고 묻는다. 센자에몬은 그런 신통력까진 없었다며 단지 에리나가 저 부자를 통해 뭔가 배우길 원했다고 말한다. 도지마는 그 말에 유키히라 부자를 다시금 돌아본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1회 일치
          >우리들 "의 3인조"의 유대는 절대적이야!
  • 식극의 소마/216화 . . . . 1회 일치
          뜻밖의 호평과 잇시키의 기에 당혹하는 쥬리오.
  • 식극의 소마/227화 . . . . 1회 일치
          맛의 일제사격에 지격 당한 샤름과 이스트와르. 심사위원들이 쓰러지는 걸 보면서 반역자들이 환호를 질렀다. 샤름은 모든 초밥이 맛있지만 그 중에서도 미는 "정수리살 스시"를 꼽았다. 짚과 목초로 향을 입힌 참치 정수리살. 본래 참치에서도 가장 희소성 높은 특수 부위다. 깊으로 구운 덕에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없고 순수한 기름의 향기만이 남아서 날뛰고 있다. 이 평을 들은 [[하야마 아키라]]는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그만큼 완벽했다고 평하고 승부의 향방은 어레인지를 가한 마지막 초밥, "군함말이"에 있다고 단언했다. [[나키리 아리스]]도 의견을 같이하며 과연 어떤 맛으로 완성시켰을지 주목했다.
  • 식극의 소마/232화 . . . . 1회 일치
          소마가 비슷한 타이밍에 버터를 팬에 넣는 걸 봤지만 아직 설명하지 않은 재료 하나가 준비 중인걸 보고 소마가 진짜 승부에 나서는건 그 재료가 준비될 때라고 짐작한다. 여전히 소마를 재미있는 후배로 여기고 있으며 어디서부터 베어올 지 기대하고 있지만 자기가 일도양단하기 전에 하는게 좋을 거라고 독한다.
  • 식극의 소마/234화 . . . . 1회 일치
          시작부터 에이잔이 "미마사카에게 진 그 식극은 내 책임이 없다"는 둥 도발을 늘어놓는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사이토는 명하게 분노한 티가 난다고 한다. 순조롭게 조리를 마치고 최종공정에 들어갔을 때 에이잔이 아티초크를 이용한 함정을 공개하는데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이후에 에이잔이 "미마사카와 첫 승부 때 소마가 상대였으면 너와는 달리 극복했을 것"이라 모욕을 퍼붓지만 역시 무반응. 돌부처가 다 됐다.
  • 식극의 소마/235화 . . . . 1회 일치
          * 아자미가 갓 신임 총수가 됐을 무렵이었다. 에이잔은 어느 화점에 입점한 케이크 가게를 프로듀스했다. 본래 경쟁에서 패할 위기에 처해있던 가게는 그와 손을 잡자마자 매출이 수직상승, 위기를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경쟁업체를 말려죽이고 있었다. 이때도 에이잔은 시음용 주스에 경쟁업체 주력상품의 맛을 지우는 성분을 대량으로 함유시켰다. 그렇게 상대방을 몰락시킨 뒤에는 다시 그쪽에 접촉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한다는 빌미로 자신의 고객으로 삼았다. 아자미는 이런 면모를 만족해 그를 포섭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 식극의 소마/236화 . . . . 1회 일치
          * 타쿠미의 피자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절제된 단맛이 느껴지는 품위있는 맛. 이게 타쿠미의 자신감이었다. 비결은 유자된장소스. 사전에 피자반죽에 유자된장소스를 발라 시나린의 효과를 억제한 것이다. 본래 양념에 쓰는 된장, 설탕, 미림의 양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유자과즙의 양을 대폭 늘려 신맛을 보충. 유자의 껍질을 갈아넣어 쓴맛과 떪은 맛을 첨가한다. 이것은 심사위원들이 에이잔의 로스트비프를 먼저 맛본다는 걸 전제로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심사위원 안은 알디니가 자신의 피자를 메인디쉬로 만들기 위해 에이잔의 음식을 전체로 취급해버린 거라 극찬한다.
  • 식극의 소마/에피소드 . . . . 1회 일치
         ==== 3 vs 3 홍전 ====
  • 신경림(대학교수) . . . . 1회 일치
         이전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일화나 문단에서 사귀었던 여러 문학가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오늘날의 시점으로 봐도 심히 기이한 각종 [[기행]](...) 등을 재미난 입담으로 다룬 수필집을 내어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수필집과 회고록을 종합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자신의 시 중 하나인 <파장>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하였는데 신경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기행에 있어서는 당대 문단의 1,2위를 다투던 천상병이나 김관식의 일화는 배꼽을 잡게 할정도로 웃기고도 기이하다(...). 한편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학창시절을 다룬 파트에서는 당시의 어수선한 사회상은 물론이고, 자신이 저질렀던 비행이나 창피스러운 일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역시 재미있다. 중학생때는 [[석]]의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 신고은(가수) . . . . 1회 일치
         그 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41~50회 #s-4|2016년 2월 21일]]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4차 경연에서 [[만나면 좋은 친구 엠빅]]이라는 가명으로 나와 파트너인 [[부활한 투더퓨처]]와 3표 차 접전을 벌였다. 이 때 연예인 판정단 대부분은 가수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나중에 리포터로서의 모습만 알고 있는 판정단은 "리포터가 저렇게 노래를 잘 하다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88명의 일반인 판정단에선 동점이었고 연예인 판정단에서 승부가 갈렸다.]
  • 신기준 . . . . 1회 일치
         * 《[[그저 바라보다가]]》 (KBS2, 2009년) - 어린 구동
  • 신민아 . . . . 1회 일치
         ||<|4> 2015년 || 상예술대상 || 여자 InStyle 베스트 스타일상 || ||
  • 신성왕후 . . . . 1회 일치
         935년 11월 신라의 마지막 군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뜻을 표시하자, 고려 태조는 이에 대한 답례로 사신을 보냈다. 왕건은 “지금 왕이 나라를 과인(寡人)에게 주니 그 선물이 크도다. 바라건대 신라의 종실(宗室)과 결혼하여 생구(甥舅)의 친밀함이 오래 가고자 하노라.”라고 하여, 고려의 사신은 경순왕에게 태조가 신라 종실과의 혼사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이에 경순왕은 “우리 부(伯父) 김억렴(金億廉)에게 딸이 있어 덕(德)과 용모가 쌍미(雙美)한지라 이가 아니면 내정(內政)을 구비(具備)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사촌누이 김씨를 고려로 시집보냈다.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부모를 따라 일찍 [[만주]]로 이주하여 [[하얼빈]]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이 [[만주]]에 세운 봉천군관학교에 [[1936년]] 4월 [[입학]]하였다. [[졸업]]한 후에는 [[만주군]] [[대위]]로 근무했으며, 이때 [[박정희]]보다 상관으로 같은 부대에 있었다. 그는 [[박정희]]를 비롯하여, [[정일권]], [[선엽]], [[이한림]], [[김석범]], [[원용덕]], [[김창룡]] 등과 함께 국군 내의 대표적인 만주군 인맥이었다.
  • 신현탁(영화배우) . . . . 1회 일치
         * 2003년 《[[동해물과 두산이]]》- 진만 역
  • 신혜성 . . . . 1회 일치
         * [[석대학교]] 영문학과 (학사)
  • 씽(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 판타스틱 4 이슈 중에서는, 리드의 아버지 너새니얼 리처즈가 리드를 데리고 먼 미래로 데려가면서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나온 바로는 씽은 위의 언급된 능력 이외에도, [[노화]]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져서 수 년이 지나도 살아있고, 판타스틱 4의 다른 멤버가 죽은 이후에도 판타스틱 4로 프랭클린과 같이 싸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느린 노화속도[* 대략 1,000년당 보통사람이 19살 먹는 속도이다.]가 결국에는 씽을 오랜 고독 속에 버려지게 했고, 4천년 후에는 그저 노망든 노인 취급 받다가 프랭클린이 보는 앞에서 노환으로 사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후 리드가 현실로 돌아와서 씽을 쳐다보자, 리드가 [[리모컨]] 뺏는 줄 알고 경계하는 모습이랑 대비가(...)
  • 아데랑스 . . . . 1회 일치
         [[일본]]의 종합모발기업. 1968년 설립, 2007년 무렵 13개국 2 50여 곳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규모 종합모발기업이다. 가발 상품 이외에 증모, 육모 분야에서도 다각도로 탈모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남성용 브랜드 아데랑스 이외에, 여성용 맞춤가발 레디스 아데랑스, 여성용 레디메이드 가발 브랜드 폰티누(FONTAINE), 해외에서 모발이식클리닉을 전문으로 하는 보즈레(BOSLEY), 해외용 판매 브랜드 헤어클럽(HAIRCLUB)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1회 일치
         세일룬의 왕녀 답게 [[마술]]에 능통. 고급 회복마법인 [[레저렉션]]을 쓸 수 있어서 [[리커버리]] 밖에 못 쓰는 리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공격면에서도 [[라틸트]] 같은 고급 정령마법을 쓸 수 있어 매우 좋은 전투원.
  • 아워맨 . . . . 1회 일치
          렉스의 DNA로 설계되어서 릭은 그를 싫어했지만 그가 릭의 혈병을 치유해준 것을 계기로 친해졌다.
  • 안숙선 . . . . 1회 일치
         '''안숙선'''(安淑善, AHN Sook Sun, [[1949년]] [[9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중요 무형 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이다.<ref name="doopedia">{{웹 인용|url=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72871|title=안숙선|publisher=[[두산세계대과사전]]|accessdate=2015-05-15|language=한국어}}</ref> [[종교]]는 [[불교]]다.
  • 안효민 . . . . 1회 일치
         * [[수전전대 쿄류저|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 면신관 카오스 / 라미레스 (싸이언 다이노)
  • 앙주 제국 . . . . 1회 일치
         앙주 제국은 잉글랜드 왕령과 프랑스 내의 여러 공작령, 작령이 상속과 혼인을 통하여 [[동군연합]]을 이룬 것으로서, 각 지역의 통치체계는 상당히 달랐고 한 명의 군주 아래 동군연합일 뿐, 실제로 하나의 '제국'이라는 명칭을 쓰지는 않았고 '제국'이기는 커녕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지도 않았다.
  • 애니 일본어 . . . . 1회 일치
          * 오타쿠 대상 애니의 경우, 애니를 보는 사람은 오타쿠이므로, 그들에게 명한 '오타쿠 용어'를 일상회화에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오타쿠 용어는 일상회화에 침투한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막 써대면 말이 안 통할 수도 있다. 가끔 한국 일상용어에 침투한 오타쿠 용어가 있다. [[신의 한 수]] 같은 것.
  • 애로우 . . . . 1회 일치
         1시즌 최종보스. 올리버의 친구 토미의 아버지이며 올리버의 여동생 티아의 친부(…). 리그 오브 어쌔신 출신으로서, 재력과 무술, 책략을 겸비한 무서운 적수. 1시즌에서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한 우범구역 글레이즈를 증오하여, 지진발생장치로 글레이즈를 파괴하여 무너뜨리는 만행을 저질러 수명을 죽였으며 아들 토미도 여기에 휘말려 사망한다. 본인은 올리버에게 쫓겨나지만, 나중에 다시 등장.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티아에게 집착하여 다양한 기행을 저지른다. 최종보스였으나 이후 시즌에서는 카리스마가 마구 날아가는 여러모로 해괴한 인간.
  • 야마우바 . . . . 1회 일치
         노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흔히 키가 크고, 피부는 투명한 색이며 눈빛이 날카롭고 귀까지 찟어진 입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잡아 먹거나 만난 사람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다고 하는데, 복을 주는 온화한 산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 양예나 . . . . 1회 일치
          * 쇼 챔피언 스테이지에서는 건방진 기자가 되어 채원 옆에서 깐죽거리기도 했다.
  • 엉클 샘 . . . . 1회 일치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포스터에서 보는 이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발에 흰 수염이 있고,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와 같은 컬러링의 의복을 입은 노인을 봤다면 그 캐릭터가 엉클 샘이다.
  • 엥겔 지수 . . . . 1회 일치
         [[독일]]의 [[통계학|통계학자]] C.L.E.Engel〔1821-1896〕이 당시 [[노동자]]의 소득 수준과 가계 지출을 조사하여 발견한 수치. 가계의 총 소비 지출 가운데서 식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분율]]로 나타낸다.
  • 연경흠 . . . . 1회 일치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주로 업요원으로 출전했다. 4경기에 출전했으나 안타 없이 1득점만을 기록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타격 능력에서 컨택 능력이 늘어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힘들어 보였고,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좌익수 자리에는 이미 [[최진행]]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 오대석 . . . . 1회 일치
         1982년 삼성의 원년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도 [[김재박]] 다음 가는 유격수 2인자 [[함학수]], 상업은행의 주전 유격수 [[장태수(1957)|장태수]], 포철의 주전 유격수 [[서정환]]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함학수]]는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기용되었고, 장태수는 빠른 발을 살려 외야수로 전향해 주전 중견수로 기용되었고, [[서정환]]은 경쟁에 밀려 업 내야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1년 뒤 해태로 트레이드되며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史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준 국가대표 수준이던 삼성의 위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삼성의 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다. 1982년 6월 12일에는 구덕 삼미전에서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그 해 유격수 부분 [[KBO 골든글러브]]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몇 년간 유격수를 거의 혼자서 도맡다시피 해서 였는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서정환|아무래도 괜히 보낸 거 아닌가 싶다.]]~~
  • 오마모리 . . . . 1회 일치
         주머니는 보통 비단으로 만들며, 이 안에는 종이, 나무, 천, 혹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내부(内符)를 집어넣는다. 내부로서는 신체(神体) 혹은 경문(経文)을 저술한 지를 집어넣는다.
  • 오방낭 . . . . 1회 일치
         오방낭은 오방색, 청(靑:동), (白:서), 적(赤:남), 흑(黑:북)의 4가지 색을 동서남북 방위에 맞추고, 중앙에는 황색을 배치한다. 만들어진 주머니에는 콩이나 부적을 넣는다.
  • 오석산 . . . . 1회 일치
         부작용으로는 피부병, 감정 혼란, 피해망상, 최악의 경우에는 중독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설로는 자수정, 석영, 적석지, 종유석, 유황 등의 광물을 성분으로 썻다고 하며, [[중금속 중독]] 증세를 일으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 오수미 . . . . 1회 일치
         [[1970년]], 영화 [[어느 소녀의 고]]으로 데뷔하였다. 그러다 [[1973년]] [[신성일]]과 함께 출연한 [[이별(영화)|이별]]이 흥행하며 스타가 되었지만, 동시에 감독이었던 [[신상옥]]과 사랑에 빠지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오수미는 신상옥의 아이를 낳지만, 돌연 신상옥이 [[이북]]으로 납치되며 자연스레 신상옥과 이별하게 되었고, 김중만과 사실혼 관계를 맺는다.
  • 오승희 . . . . 1회 일치
         '''오승희'''(吳承姬<ref name="hanja">[https://www.facebook.com/Umusic.JKPOP/photos/a.260040747449.141783.251736272449/10154571559607450/?type=3 모닝구 무스메 한자 자필]</ref><ref>[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1/2017082102498.html [더스타프로필] 오승희 "모닝구 무스메만의 리얼리티 찍고 싶다…빅재미 드릴 것"] {{웨이|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1/2017082102498.html |date=20170912003602 }} 2017-08-25</ref>, [[1995년]] [[10월 10일]] ~ )는 일본의 가수로, [[모닝구 무스메]]의 서브보컬이다.<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aWRTsHtA9zY|title=Debut Greeting at 모닝구 무스메 SHOWCASE|first=|last=보따리 bottari|date=2015-03-25|publisher=|accessdate=2017-08-12|via=YouTube}}</ref><ref>{{웹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now/read?oid=311&aid=0000587211|title=[XP★SHOT] 모닝구 무스메가 궁금해? 안전담당부터 보호본능까지③|publisher=xportsnews|date=2016-03-15|accessdate=2017-08-12}}</ref><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y0Rau6SssxE|title=칯트키 Live - “PRODUSORN” EP02: LIFE AS A GIRL GROUP|first=|last=Cube Ent|date=2017-04-25|publisher=|accessdate=2015-03-18|via=YouTube}}</ref><ref>{{웹 인용|url=https://m.facebook.com/모닝구 무스메.UnitedCube/photos/a.1511382879116331.1073741828.1489401217981164/1558678227720129/?type=3&source=54|title=CLC Facebook:Seunghee|date=2017-03-14}}</ref><ref name=supertv>2018-04-06,XtvN,SUPER TV EP11,「메인래퍼、은지」「센터、은지」「리드보컬、모닝구 무스메」「리더、모닝구 무스메」。</ref>
  • 오와콘 . . . . 1회 일치
         [[니코니코 대과]]에서는 오와콘을 [[빠]]와 [[까]]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찌질한 유저들이나 말하는 단어 정도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오지철 . . . . 1회 일치
         * 1986년 : 체육훈장 마장
  • 오지호(배우) . . . . 1회 일치
          * 2012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한국 영화)]] - 동수 役
  • 오현근 . . . . 1회 일치
         퓨처스리그에서 29서울 91타석 동안 타율 0.418에 9도루 17타점을 기록하였다. 때마침 부진했던 외야수 [[조홍석]]이 시즌 중 현역으로 입대하자, 정식 선수로 전환됨과 동시에 1군으로 등록되었다. 등번호도 조홍석의 번호를 갖고 왔다.<ref>롯데는 [[민기]], [[임종혁]], 조홍석을 2015 시즌 중 현역으로 입대시켰다. 롯데 구단에서 선수들의 병역관리 취지로 시즌 중 입대를 희망하는 선수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들은 모두 외야수인데, 롯데에 외야 자원들이 어느 정도 모였다고 판단하여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미필자인 이들을 군에 보내서 유망주들의 유출을 차단했다.</ref>
  • 왓치맨 . . . . 1회 일치
          * 월터 조셉 코스/[[로어셰크]]
  • 왕당파 . . . . 1회 일치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혁명]]을 시발점으로 하여 공화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왕당파는 [[부르봉 왕조]]의 복권을 주장하였으며, 혁명을 일으킨 공화파와 피를 피로 씻는 혈투를 벌였다. [[부르봉 왕조]]는 군주의 지위를 상실했지만, 수년간 프랑스를 다스린 왕조였기 때문에 부르봉 왕조의 권위는 여전히 상당히 높아서 주로 보수적인 농촌을 중심으로 막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 왝더독 . . . . 1회 일치
         대통령 선거 2주 전, 재선에 도전하던 [[대통령]]이 [[악관]]을 방문한 "반딧불 소녀단"의 단원 중 하나를 [[성희롱]]했다는 소문이 터진다. 이에 대통령은 정치 문제 해결사 콘래드 브린을 시켜 이 스캔들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 외척 . . . . 1회 일치
          * 제 : 몇몇 귀족들이 외척 가문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 우츠미 사토루 . . . . 1회 일치
          * '''[[신]]은 전혀 효과가 없다. 오히려 질병이 늘어난다.'''
  • 원피스/818화 . . . . 1회 일치
         * '''로드 포네그리프는 총 네 개'''가 있으며 '''사황 수의 카이도와 빅맘 샬롯 링링이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다.'''
  • 원피스/819화 . . . . 1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카이도 일당에게 살해 당했다고 고하고 복수를 하고 싶으나 자신은 아직 어려 무리라고 솔직하게 답한다.
  • 원피스/828화 . . . . 1회 일치
          * 국왕으로 보이는 남자는 "악마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을 빌렸다"고 중얼거리며 병사들과 성들은 제르마의 이름을 연호하며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 원피스/833화 . . . . 1회 일치
          * 쓰러진 상디는 독인듯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 원피스/848화 . . . . 1회 일치
          푸딩은 기뻤지만 어차피 그는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 한 일일 것이고 자신이 있음으로 여러 사람이 괴로워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결혼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놀라는 두 사람에게, 푸딩은 들어달라며 "어떤 고"을 귓가에 속삭였다.
  • 원피스/854화 . . . . 1회 일치
          회의실에서는 침입자들에 대해서 최종적인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페콤즈]]의 인도로 밀집모자 일당이 토트랜드에 도착한 시점부터 브룩이 잡히고 페드로가 [[타마고 남작]] 앞에서 자폭하기까지. 브룩이 빅맘에게 잡힌거 말고는 사실과 다른 정보가 유포돼 있다. 쵸파와 캐럿은 브륄레가 잡은 걸로 되어 있는데, 이후에 역으로 당해서 잡혀 있는건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타마고 남작은 의외로 무사히 회의에 참석 중. "작"으로 파워업해서 완전히 닭의 모습이 되었다. 페드로가 "자폭"했다고 확인해주지만, 사실 그가 도망친 것은 그도 알지 못했다.
  • 원피스/856화 . . . . 1회 일치
          * 상디는 쓰레기같은 가족이라도 구해주고 싶다고 고하고 루피는 그거야말로 상디다운 일이라며 그들이 식을 엉망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 원피스/861화 . . . . 1회 일치
          * 다과회 분위기가 무르익고 신랑신부가 입장한다. 벳지는 그저 행해 보이기만 하는 상디를 보고 대단한 "연기파"라고 생각한다.
  • 원피스/864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샬롯 카타쿠리]]의 안색이 창해지는 걸 보고 "빅맘 진영에 크게 불리해지는 예지"를 본 걸로 짐작, 더이상 숨기지 않고 반역을 일으킨다.
  • 원피스/865화 . . . . 1회 일치
          * [[샬롯 다이후쿠]]와 대치 중이던 [[상디]]는 가족의 목숨이 풍전등화가 되자 그 자리를 이탈했다. 당장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빈스모크 일가의 테이블로 달려오지만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은 그 조차도 "허둥지둥 뭐하는 짓이냐"고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빈스모크 레이쥬]]도 그의 모습을 보았다. 상디는 정신없이 달려오자 다이후쿠의 마인에게 붙잡혀 넘어졌다. 레이쥬 또한 그의 구조를 바라지도, 살고자 바라지도 않았지만 느끼는 감정은 형제들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가족들도 놔두고 도망치지 않는 상디에게 "너의 상냥함을 얕봤다"고 독한다. 그녀는 평생을 빈스모크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다.
  • 원피스/875화 . . . . 1회 일치
          * 써니호가 정박한 남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상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순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상까지 남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상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 원피스/877화 . . . . 1회 일치
          * 징베가 나미를 옆구리에 끼고 선상으로 뛰어 올랐다. 페드로와 캐럿은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페드로는 캐럿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루피 일행이야 말로 자신들이 기다려온 자들이라 말했다. 밍크족과 "코즈키 가"가 수 년간 기다려온 "세계를 여명으로 이끌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페드로는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캐럿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원피스/879화 . . . . 1회 일치
          그의 호통 덕에 침울해진 일행이 다시 탈출작전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빅맘 [[샬롯 링링]]이 그의 예상보다도 훨신 빠르게 추격해 오자 혼비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 원한해결사무소/3화 . . . . 1회 일치
         원한해결사는 5만으로 동생을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려 주겠다는 의뢰를 받는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1회 일치
         수치심을 견디다 못한 히토미는 자살. 토사쿠라 마나부를 죽여달라는 유서와 3만엔을 남긴다. 이것을 히토미의 오빠가 '정보원'을 통하여 원한해결사에게 의뢰하게 된다. 원한해결사는 살해 의뢰비로서는 싸다고 하지만 정보원이 자신의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하여 결국 의뢰를 받아들인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1회 일치
         컷신이 끝나고 난 후 노이즈가 낀 흑 화면을 배경으로 임무 완료가 뜨며 미션이 종료된다.
  • 위의공 . . . . 1회 일치
         위(衛)는 [[삼감의 난]] 이후 구 상나라 영토를 반분하여, 송(宋)과 함께 은의 유민을 나눠서 지배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본래 상나라의 수도였던 조가(朝歌)를 수도로 하였으며, 주 무왕의 동생 당숙(康叔)이 (伯)으로 봉해져 유력 희성 제후국[* 주 왕실의 인물이 분봉된 국가. 주왕실의 성이 희(姬)였기 때문에 희성(姬性)의 제후국이라 한다.]으로 출발하였다.
  • 윌밍턴 . . . . 1회 일치
         1793년 건설되었다. 이름은 [[조지 2세]] 당시 영국 총리를 지냈던 윌밍턴 작 스펜서 콤튼 경에서 따왔다. 도시 수준으로 승격된건 1866년 경.
  • 유승옥 . . . . 1회 일치
          * 2014년 [[MBC]] [[압구정 야]] --[[임성한]]만 [[시청률]] 덕 보고 [[본인]]은 [[발연기]]로 망했다.--
  • 유지연(탤런트) . . . . 1회 일치
         * [[1996년]] [[KBS1]] TV문학관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 - 화점 직원 역
  • 유태웅(탤런트) . . . . 1회 일치
         || [[2014년]] || [[프로]] || 강프로 || ||
  • 윤민수 (가수) . . . . 1회 일치
         [[1998년]] [[R&B]] [[보컬]] 그룹 [[포맨]](1기)으로 데뷔했으며, [[포맨]] 1기 해체 이후 [[2002년]] [[류재현]], [[노블레스 (가수)|유성규]]([[노블레스 (가수)|노블레스]])와 함께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를 결성했다. 1집 〈미워도 다시 한 번〉, 〈Promise U〉([[2006년]] [[씨야]] 1집에서 리메이크) 등의 곡으로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후<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0498 '브라운 아이드 소울' , '바이브' 전성 시대] 《뉴시스》, 2003년 12월 5일</ref>, [[2003년]] 2집 〈오래 오래〉, 〈사진을 보다가〉에 이어 [[2006년]]에 발표한 3집 〈술이야〉와 〈그 남자 그 여자〉는 방송 활동 없이 1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와 각종 음반 차트에서 1위 및 각종 수상을 받는 등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3집 활동을 끝내고 [[2006년]] 말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시작하여 [[2009년]]에 끝내고 잠시 공 기간을 가졌으며, 가수 활동을 하며 경험할 수 없었던 ‘직장 생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곡을 만들어 복무를 끝낸 후 발표한 4집 수록곡에 싣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61570 바이브 "예능에서 망가질 자신 없다"] 《노컷뉴스》, 2010년 6월 16일</ref> [[2010년]] 4집 《Vibe in Praha》를 발매해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재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의 멤버이면서 그룹 [[포맨]]([[신용재]], [[김원주 (가수)|김원주]])이 소속된 와이후엔터프라이즈의 대표이자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2011년]] [[MBC TV|MBC]]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명예 졸업했으며, [[2013년]] 1월부터 장남 윤후와 함께 [[MBCTV|MBC]]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아빠! 어디가?]]에 출연했었다. 그가 출연한 [[2011년]]의 "[[나는 가수다]]" 코너가 대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아빠! 어디가?]]" 코너가 대상을 받아 가수로는 드물게 방송연예대상을 2회 수상하였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12300054041210 MBC연예대상 진짜 승자는 윤민수 ‘3년간 대상 2연패’] - 뉴스엔</ref>
  • 윤선우 . . . . 1회 일치
         | 영수
  • 윤진영(코미디언) . . . . 1회 일치
         개그맨의 꿈을 안고 상경해서 대학로에서 공연하다가 2003년 말 [[김필수]], [[김재우]], [[엄승]], [[심진화]]와 한 팀으로 SBS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으며 SBS 7기 희극인으로 방송계에 입문한다.[* 이 멤버 중에서 김필수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 사이. 둘이 함께 상경해서 반지하 생활을 하며 얼음 배달, 김밥 만들기, 공사장 노가다 등 온갖 잡일을 하며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다. 이때 이 둘과 같은 반지하에 살았던 사람은 [[김병달]].] 팀의 수상작 '''병아리 유치원'''으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데뷔하는데, 선생님만 없으면 본색을 드러내는 조폭 유치원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너로 인기를 얻게 된다.[* 선생님은 심진화, 두목은 김재우, 나머지 셋은 똘마니 유치원생들이었다.]
  • 윤철종 . . . . 1회 일치
         2017년 7월 4일 소속사 측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전속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던 6월 말, 멤버 윤철종이 개인적인 건강상의 이유로 탈퇴 의사를 밝혔고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후부턴 권정열의 1인 체제로 10cm가 유지된다고 한다. 이후 윤철종은 19일 소속사와의 연락에서 본인이 대마초를 흡연했던 문제로 인해 권정열과 소속사에 해가 갈 것을 염려하여 급하게 탈퇴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http://m.huffpost.com/kr/entry/17520376#cb|링크]] 이후 소속사는 10cm를 권정열 1인 팀으로 변경하여 9월 1일 4집 앨범으로 컴했다.
  • 윤태진(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에 화요일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지만 배성재 아나운서와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틈이 조금만 나면 시청자들의 각종 드립이 올라올 정도.[* 다른 여자 게스트인 [[소혜]]도 가끔 배성재에게 드립을 날린다. 윤태진과 자기 중에 고르라는 둥, 고은 하는 게 맞다고 하는 둥, 짝사랑 중이지 않냐는 둥.][* 윤태진 본인은 2018년 3월에 bnt와의 인터뷰에서 배성재와의 러브라인에 대한 질문에, 좋은 여자 만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게다가 케미와는 별개로 윤태진 본인이 가진 끼가 여기서 막힘없이(...) 발산되는 경우가 매우 자주 나오는 편이라 사실상 베텐의 마스코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 은혼/574화 . . . . 1회 일치
         * 가츠라의 진솔한 독이 큰 감동을 주었다.
  • 은혼/575화 . . . . 1회 일치
         * [[사카모토 다츠마]]는 "저 녀석들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이런 전쟁의 승패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독한다.
  • 은혼/576화 . . . . 1회 일치
         * 카무이는 오로지 아버지를 목표로 살아왔다고 독하면서 우미보즈가 다시 한 번 짐승으로 돌아와 남자 대 남자로 겨룰 수 있기를 바란다
  • 은혼/578화 . . . . 1회 일치
         * 오로치 때문에 거의 수년이나 버려져 있던 모성을 탈환한 것이 우미보즈
  • 은혼/583화 . . . . 1회 일치
          * 퇴각하기 전, 우츠로는 우미보즈에게 "몇 년 만에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종말 전의 여흥"이라며 조만간 "그쪽"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 은혼/589화 . . . . 1회 일치
          * 그것을 보고 있던 아부토는 "몇 천 번을 얻어맞아도 쓰러지는 일이 없던 우리들의 단장은 단 한 방울의 여동생의 눈물에 졌다"고 독한다.
  • 은혼/590화 . . . . 1회 일치
          * 그는 그때 이미 죽었다고 독한다. 그때 죽어서 "알지 못하는 물건"이 된 자들과 같다며, 단지 "그 사람"의 물건이 되기로 한 것이다.
  • 은혼/594화 . . . . 1회 일치
          * 폭주 직전 터미널이 습격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던 것. 명히 천도중에 반역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다.
  • 은혼/596화 . . . . 1회 일치
          * 마다오는 "두 눈을 감지 않는한 빛은 보인다"는 독과 함께 끈질기게 손을 뻗는데.
  • 은혼/599화 . . . . 1회 일치
          * 용무를 묻는 그들에게 노부노부는 장군으로서, 성들을 대표해서 말한다.
  • 은혼/600화 . . . . 1회 일치
          * 가츠라와 다츠마는 일일히 "똥이잖수"라고 독하지만 결코 진실을 입에 담지 않는다.
  • 은혼/615화 . . . . 1회 일치
         오우가이가 가부키쵸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가부키쵸 주민들도 병전을 준비해야 할 듯. 한편 오우가이는 가부키쵸 측 다키니인 [[헤도로]]가 상대한다는 예측이 지배적.
  • 은혼/617화 . . . . 1회 일치
          * 큐베는 스마일 아가씨들과 타에를 데리고 다키니의 추격에서 도망친다. 타에는 큐베에게 반드시 와줄 거라 믿었다고 말한다. 큐베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한때는 그저 타에를 데리고 지구를 떠날 생각까지 했지만 "너만이 아니라 너의 미소도 다른 모두도 데려갈 수 있는 강한 남자, 상냥한 여자가 되자고" 다짐했고 고한다.
  • 은혼/623화 . . . . 1회 일치
          * 길었던 오토세의 독.
  • 은혼/629화 . . . . 1회 일치
          공주는 그런 고에 질책도 무엇도 하지 않는다. 단지 오늘밤은 정말로 편히 잠들 수 있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노부메가 그녀를 여러번 경호하고 구해주었던 것만을 기억한다. 그녀의 마음 속의 노부메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남매를 몇 번이나 구해준 은인이다.
  • 은혼/635화 . . . . 1회 일치
          >할배, 당신 안에 흐르는 야토의 피가 몇 년된 "빈티지"인지는 모르겠지만
  • 은혼/637화 . . . . 1회 일치
          * 특수한 기공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노사. 그에겐 "진짜 야토의 피"를 보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와 [[쿄우카]]의 자식 [[가구라]]와 [[카무이(은혼)|카무이]]가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쓰러진 채로 자신의 혈통을 가지고도 저 둘만큼은 보이지 않았다고 고한다. 그리고 이 남매의 눈에는 자신 따위는 들지도 못했으며 눈 앞의 적이 아닌, 더 먼 곳의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 은혼/638화 . . . . 1회 일치
          *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은 에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각지에서 흩어져 싸우던 가부키쵸 연합군이 퇴각한다. [[츠쿠요]], [[사루토비 아야메]]가 화와 오니와반슈를 수습하고 [[도로미즈 지로쵸]], [[도로미즈 피라코]] 부녀와 [[사이고 다카모리]]도 병력과 함께 퇴각하나 어디로 가야할까? 폭발은 빠른 속도로 뒤따라온다. 가부키쵸의 고지대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오토세]] 여사. 그녀와 함께 전황을 지켜보던 가부키쵸 주민들 사이에서 [[시무라 타에]]가 조심스럽게 걸어나온다. 그녀의 눈은 믿기지 않는 광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 은혼/640화 . . . . 1회 일치
          * 이또한 오래된 이야기다. 그가 아직 막부에 몸 담았던 시절이다. 동료들과 막부의 적을 급습했으나 단 한 사람을 어쩌지 못해 모두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헨페이타. 적의 칼끝이 미간을 겨눈다. 헨페이타는 검에 손도 대지 않은 채였고, 적은 그점을 궁금해한다. 헨페이타가 원래 자신이 잡아야 했던 자, 신스케를 향해 "하늘과 땅이 뒤집혀도 내가 신스케를 쓰러뜨릴 수 없는걸 알기 때문"이라 대답한다. 신스케는 이미 죽은 녀석들 보단 말이 통한다면서, 질 걸 알아서 그렇다면 여기엔 왜 왔냐고 물었다. 헨페이타는 그 이상도 알았다. 동료들은 사람을 심판할 권리를 잃었고 오히려 직권의 이름으로 성을 괴롭힌 저들은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이용 당한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도 죽이라고 청했다.
  • 은혼/647화 . . . . 1회 일치
          사루가쿠의 뇌리 속에서 그녀의 외침과 자신의 독이 교차했다.
  • 이경영(1958) . . . . 1회 일치
         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연극부문)(1985년)|}}
  • 이덕건 . . . . 1회 일치
         | 제목 = 향응받은 PD/벌금 2만원/서울지법 선고
  • 이득윤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2년]] [[4월 8일]] [[성남 FC|성남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시즌 초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 이민호(1969) . . . . 1회 일치
         1993년 빙그레 이글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3년에는 [[강석천]]의 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한화 타선에 [[박지상]]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식]]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고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이방원 . . . . 1회 일치
         고려 시절에 과거에도 급제한 등 문재(文材)도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훗날 전노장이던 부친의 군대를 친정하여 제압할 정도로 군사적 재능도 있던 나름 먼치킨으로, 정치적으로 노회한 운영을 보여준다. 원경왕후 민씨의 일족이나 세종의 왕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일족을 멸족시키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진력하였으나, 숙청 대상을 확실하게 선을 그어 지나친 옥사는 자제하였으며 또한 사관이나 대간의 역할을 긍정하여 균형추를 맞추는 부분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민생 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여 개국 초부터 피바람 불었던 조선 왕조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 이병규 (1983년) . . . . 1회 일치
         '''이병규'''(李柄奎<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과 |판=제4판 |쪽=759 |날짜=2009-03-10 }}</ref>, [[1983년]] [[10월 9일]] ~ )는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1회 일치
         11월 (추가바람)일 트위치에서 경민이 느금마 엔터에 들어온 시기에 영구정지 상태인 [[김윤태]]의 스카이프 모습을 그대로 송출했다. 하지만 해당 녹화본이 없는 상황.
  • 이사강 . . . . 1회 일치
         * 2009년 [[2AM]] - 친구의 고
  • 이상호 (1989년) . . . . 1회 일치
         * '서우' (2018년 ~ 현재)
  • 이선미 (소설가) . . . . 1회 일치
         경성스캔들의 원작소설 경성애사가 [[조정래]]의 소설 [[태산맥]]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성애사의 이선미는 한국 로맨스 소설 작가협회 사이트 게시판에서 사과글을 게재하였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0712270005&md=20100404183309_AN ‘경성스캔들’ 원작자의 표절, 인터넷 퍼오기 문화의 폐해] 헤럴드경제 10-04-04</ref>
  • 이선아 . . . . 1회 일치
         * [[2010년]] [[드라마]] 《[[사랑의 기적]]》 - 장미 역
  • 이수민(야구선수) . . . . 1회 일치
         [[한국프로야구/2014년/신인드래프트|2014년 신인 2차지명 회의]] 후 열린 신인 인터뷰에서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열심히 해서 '''왼손 투수가 없으니까''' 빨리 자리잡겠습니다."라고 말해, 본의 아니게 [[장원삼|팀]] [[권혁|선배]] [[차우찬|좌완]][[조현근|투수]][[정현|들을]] [[박근홍(야구선수)|모조리]] 디스해 버렸다(…).
  • 이숭인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 <!-- 〈고려 후기의 문화〉 -->
  • 이승경 (1290년) . . . . 1회 일치
         * 큰아버지 : 이
  • 이승현(농구선수) . . . . 1회 일치
         대학 말년에 장착한 3점슛이 큰 효과를 보이며 높은 성공률을 기록,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덤으로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좋은 패스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압권은 접전상황에서 결승 득점을 만들어주는 도어 컷인 패스를 건네준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ketball&category=kbl&listType=game&date=20141023&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101921&page=1|바로 이 장면이다]]. 이게 신인의 플레이가 맞냐는 평가.
  • 이승효(탤런트) . . . . 1회 일치
          * [[화정]] - 이시
  • 이우석(배우) . . . . 1회 일치
         * 《[[근초고왕 (드라마)|근초고왕]]》 [[KBS]] ([[2010년]] [[11월 6일]] ~ [[2011년]] [[5월 29일]]) ... 제 왕궁 내시 역
  • 이원석(1981년) . . . . 1회 일치
         * 《[[가시꽃]]》 (2012년, JTBC) - 서원 역
  • 이인영(정치인) . . . . 1회 일치
         · 2007 제9회 봉신사상
  • 이재용(배우) . . . . 1회 일치
          * [[극비수사]](2015년) - 도사(특별출연)
  • 이재황(배우) . . . . 1회 일치
         || [[문화방송|MBC]] || [[남자 셋 여자 셋]] || 왕우[* 자세한 역할 정보는 [[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C%9E%90_%EC%85%8B_%EC%97%AC%EC%9E%90_%EC%85%8B#%EA%B7%B8_%EC%99%B8_%EC%9D%B8%EB%AC%BC|남자셋 여자셋 위키과]] 참고] || 특별 출연 ||
  • 이정무 . . . . 1회 일치
         194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선산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1978년부터 [[대구화점]]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경상북도 군위군-선산군-칠곡군-성주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다가 [[신현확]]에 밀려 탈락하였다.
  • 이정호 (독립운동가) . . . . 1회 일치
         '''이정호'''([[1913년]] [[3월 1일]] ~ [[1990년]] [[7월 10일]])는 [[조선민족혁명당]] 조직부장과 화남지부장으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ref>[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gd=&cd=&d=&k=&inqr=&indme=&p=1&q=%C0%CC%C1%A4%C8%A3&masterno=783623&contentno=783623 이정호] 엔사이버 두산과사전</ref>
  • 이종배(국회의원)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며 [[이시종]]이 도지사가 된 이후 공이 된 충주 정치권의 최종적 승리자.
  • 이주현(배우) . . . . 1회 일치
          * [[압구정 야]] - [[육선중]]
  • 이준승 . . . . 1회 일치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에는 [[동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상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상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반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 이지아(배우) . . . . 1회 일치
         ||<|4> [[2007년]] || 제44회 [[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4> [[태왕사신기]] ||
  • 이철우(1955) . . . . 1회 일치
         ~~원래는 [[발]]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염색을 하고 있다.~~
  • 이현우 (가수) . . . . 1회 일치
         * [[2013년]] [[문화방송|MBC]]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년의 유산]]》 - 강봉수 역
  • 이홍렬(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뺑코"라는 별명으로 유명한데 이는 이경실의 콩트 '도루묵 여사'에서 이경실의 권유로 콧구멍에 [[오원 주화|500원짜리 동전]]을 성공적으로 넣었다 뺐던 것에서 유래한다(돈 트라이 디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넓은 콧구멍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코에 뭔가를 넣는 행위를 대단히 불쾌해 한다고 한다. 대신 별명이 "촉새" --> "뺑코"로 바뀐 것은 만족해 하는 듯. 그러다가 [[MBC every1]]의 프로그램 [[가족이 필요해]] 시즌 2에서 15년 만에 코에 뭔가를 넣는 개그를 시도했다.[* 물론, 동전이 아니라 고무줄이었지만...]
  • 이효상 . . . . 1회 일치
         |후임자= [[두진]]
  • 일곱개의 대죄/182화 . . . . 1회 일치
          * 현재의 엘리자베스는 "언젠가 돌아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라고 독한다.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멀린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그레이로드는 혼비산, 그때까지 통일돼 있던 자아가 분열한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1회 일치
          * 성에서 목욕을 즐기는 멀린. 에스카노르는 하인처럼 목욕시중을 들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마에 열중하는 중. 멀린도 대만족. 멀린은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왕국이 원상복구된 일에 대해 질문을 들은 모양인데 "원래대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녀가 복원한건 어디까지나 "건물"이라는 것. 사실 애초에 반 정도는 멀린이 부순 셈이니 고쳐주는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물이 돌아왔다고 해서 마신족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까지 낫는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계금에 걸린 성기사들와 성들이 카멜롯으로 달아났는데 그 말은 카멜롯이 잔존한 십계의 근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 말하는 멀린. 그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일단 일곱개의 대죄임에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멜리오다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1회 일치
          게라이드는 자신이 했던 설명이 거짓임을 고한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회 일치
          * 뤼드셀은 명히 열세에 처했지만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있다. 십계들처럼 비장의 수를 남겨놓은 것일까?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1회 일치
          지금까지 용기를 내지 못했던 할리퀸은 무언가 끌린 것처럼 다가가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새삼 그녀에게 했던 고이 떠올랐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1회 일치
          * 멀린이 올론디를 지켜보던 수정이 깨졌다. 젤드리스가 공격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했다. 멀린이 피를 토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서있다. 그녀가 이런 위험을 무릎쓰고 찾던 이는 바로 카멜롯의 젊은 왕 [[아서 펜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 펜드래곤]]이었는데.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모르는 척 얼버무리기만 하고 엘리자베스는 의기소침해진 채 돌아간다. 멜리오다스는 사실 아직은 그걸 고할 각오가 안 됐다고 씁쓸해한다.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1회 일치
          * [[디안느]]가 어쩌면 좋겠냐고 묻자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마력감지로 적이 멀리까지 가지 못했고 코란도 중심부에서 마력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때 [[헬브람]]이 할리퀸에게 주위를 보라고 귀띔한다. 근처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시체, 다 썩어서 골만 남은 시체가 가득했다. [[에스카노르]]와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놀라 자빠진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일어난 대학살의 희생장일지 모른다. 고서가 조용히 수를 헤아려 보니 족히 천에 이르렀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1회 일치
          * 모두가 경악에 빠져 있을 때, 에스카노르는 조용히 신부 "릿타"를 불렀다. 그는 한걸음에 뛰어올라 단숨에 멜리오다스의 앞에 내려앉았다. 어느새 신부 릿타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의 의도는 명했다. 멀린이 그만 두라고 소리쳤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1회 일치
          * 저쪽의 승부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이쪽의 상황은 그보다 심각했다. 퍼펙트 큐브에 갇힌 두 남자의 신경전이 불꽃 튀었다. 마신왕의 힘을 끌어낸 멜리오다스를 눈 앞에 두고도 에스카노르는 "재미있는 변화"라고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의 단장과 명히 다른 모습. 그것만은 에스카노르도 인정했다. 그렇게 말하며 그 말이 이해가 되느냐고 묻자, 평소와 다른 단장이 위협적으로 대꾸했다.
  • 임대윤 . . . . 1회 일치
         * 1996.08 ~ 1998 주식회사 한테크노 대표이사
  • 임성은(가수) . . . . 1회 일치
         그리고 2018년 1월 슈가맨 시즌2에서는 자신이 직접 멤버들과 소속사 사이의 정산 문제를 해결해 보려다, 돈을 밝힌다는 악성 루머가 생겨서 자진 하차했다고 고했으며 1집 활동 시기 때도 데뷔를 위해 연습 중인 다른 멤버들이 투투 2집 활동 후 맏언니 겸 메인 보컬로 들어온 임성은을 '다된 밥에 숟가락 얹는다'며 은근히 싫어했다고 한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다른 멤버들과의 춤 실력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열심히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 임윤선(법조인) . . . . 1회 일치
          * [[2013년]] [[JTBC]] [[뉴스콘서트|임천 임윤선의 뉴스콘서트]]
  • 장문규 . . . . 1회 일치
         * 《[[년의 유산]]》 (2013년, MBC) - 약사 역
  • 장성환 . . . . 1회 일치
         |전임자 = [[선엽]]
  • 장세용 . . . . 1회 일치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 장소팔 . . . . 1회 일치
         *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은 [[서영춘]]-[[금녀]] 콤비의 만담에 영향을 줬다.
  • 장연주 . . . . 1회 일치
         * [[일째 만남]] (Single) (2008.06.17)
  • 장윤희 (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 경력: [[2006년]] 연세대학교 학생홍보대사 I.N.延, [[2009년]] 안면도국제꽃박람회 홍보대사, [[2010년]] 대제전 홍보대사
  • 장은숙 (가수) . . . . 1회 일치
         * 3집 《회심곡/인간세》([[1979년]])
  • 장익 (1933년) . . . . 1회 일치
         ** 동생 : [[장순]] (張純, [[1935년]] [[10월 17일]] ~ , [[미국]] 보스턴 리지스대학교 정치학 교수, [[미국]] 거주)
  • 장준휘 . . . . 1회 일치
         * 《천》 (2017년) - 메리야스남 역
  • 장진용 . . . . 1회 일치
         '''장진용'''(張盡榕<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과 |판=제4판 |쪽=448 |날짜=2009-03-10 }}</ref>, [[1986년]] [[1월 28일]] ~ )은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질롱 코리아]]의 [[투수]]이다. 2군에서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1군에서는 부진한 모습만 보이기로 유명했다.
  • 장태영(야구선수) . . . . 1회 일치
         1957년에는 제5회 군-실업야구쟁패전[* 훗날 대학팀과 실업팀 토너먼트인 호기의 전신인 대회.]에서 11타수 9안타, 타율 .818을 기록하며 타격왕을 수상했는데 이 기록은 1993년 [[홍익대학교]]의 문희성이 대학선수권대회에서 7타수 7안타 1.000을 기록하기 전까지 단일대회 최고 타율이었다.
  • 장호 (1920년) . . . . 1회 일치
         |제목=끝내 문닫고 만 `장기수 할아버지' 헌책방 (1) - 과천 <한라에서 두> 문닫다
  • 장후영 . . . . 1회 일치
         |출판사=엠파스 과사전
  • 재신 (배우) . . . . 1회 일치
         * 2013년 [[KBS2]] 《[[광고천재 이태]]》
  • 저스디스 . . . . 1회 일치
         '''저스디스''' ('''JUSTHIS''', {{본명|허승}}, 1991년 5월 7일 ~ )는 [[대한민국]]의 [[래퍼]]이다. 2010년, '''[[시로스카이]]'''의 EP "The Orbit"에 당시 활동명 '''TiMeWiNe'''으로 피쳐링하여 활동을 시작했다.<ref>[http://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3030666 곡 정보>멜론]. 멜론.</ref> 2011년, 같은 이름으로 [[믹스테이프]] "A Little Bird Told Me"를 무료로 배포하고,<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7890&keyfield=&key=%ED%8B%B0%EB%AF%B8%EC%9C%84%EB%8B%88 'A Little Bird Told Me' 무료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오케이션]]'''의 믹스테이프 "Preseason #2"에 비트와 랩 피쳐링으로 참여했으며,<ref>[http://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2&sort=&num=7305&keyfield=&key=okasian 오케이샨(Okasian), 하이라이트 레코즈 입단 및 믹스테이프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2년, 이름을 저스디스(JUSTHIS)로 바꾸고 믹스테이프 "QUAL N TITY : True Up"을 무료로 배포 후,<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9627&keyfield=&key=%EC%A0%80%EC%8A%A4%EB%94%94%EC%8A%A4 'QUAL N TITY : True Up'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3년, '''[[매드 클라운]]'''과 '''커먼콜드'''라는 팀을 결성하였다.<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0421&keyfield=&key=%EC%BB%A4%EB%A8%BC%EC%BD%9C%EB%93%9C 매드클라운과 저스디스, 커먼콜드 결성]. 힙합플레이야.</ref> 믹스테이프 "_ u c k!"를 준비중에 있다가<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0482&keyfield=&key=%EC%BB%A4%EB%A8%BC%EC%BD%9C%EB%93%9C 커먼콜드(Mad Clown & justhis) '_ u c k!' 수록곡 선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4년 5월 7일, 본인의 텀블러를 통해 믹스테이프 "[[Money Vs. Love: Dream (MVLD)]]"를 공개했다.<ref>[http://justhiseung.tumblr.com/post/85002465677 {{웨이|url=http://justhiseung.tumblr.com/post/85002465677 |date=20140508113407 }} JUSTHIS - Money Vs. Love: Dream (MVLD) [Mixtape]]. Tumblr.</ref> 그 이후에는 크루 '''불한당'''의 프로젝트 앨범 "A Tribe Called Next"와<ref>[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5768 앨범 정보>멜론]. 멜론.</ref> '''매드 클라운'''의 미니 앨범 "Piece Of Mind" 등에서의 피쳐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ref>[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8221 앨범 정보>멜론]. 멜론.</ref> 현재 프로듀서 [[디프라이]](Deepfry), 자코(Jaqo)와 함께 준비 중인<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6028&keyfield=&key=justhis 저스디스(JUSTHIS) | 그런 말장난들론 여기 시스템 못 바꿔]. 힙합플레이야.</ref> 본인의 첫 번째 앨범 [[2 Many Homes 4 1 Kid]]<ref>[https://twitter.com/JUSTHISeung/status/596326033197924352 저스디스의 트윗]. 트위터.</ref>
  • 전기안전관리법 . . . . 1회 일치
         이전까지는 전기제품만 받던 KC인증(국가통합인증)을 의류나 잡화 등 신체와 접촉하는 모든 품목으로 확대되었는데, KC인증비가 수십만원에서 수만원까지 들고 위반시 과태료가 500만원이다. KC인증을 받지 않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은 제조, 수입, 판매, 구매대행, 판매중개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서 영세상인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 전덕기 . . . . 1회 일치
         * {{한국민족문화대과사전|E0049340}}
  • 전동휠 . . . . 1회 일치
          * 갓웨이: 락휠의 엔지니어가 나와서 새로 만들었다는 회사. [[https://www.youtube.com/watch?v=iWWNdmB03UU|산중턱에서 냅다 집어던지는 테스트]]를 하고도 굴러가는 등 내구성은 괜찮은 듯. 차기작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QRUatyguFrY|5인치 휠]]을 연구중인데 엄청 작다. 거의 핸드에도 들어갈 수준.
  • 전민제 . . . . 1회 일치
          | 수상 = 서울특별시 문화상 <br/> 국민훈장 동장 <br/> 석탑산업훈장 <br/> 2006년 서울대 공대.한국공학한림원 공동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정(화학분야)
  • 전상렬 . . . . 1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 전성군 (1488년) . . . . 1회 일치
         ** 아들 : 이(李栢, 1504년 ~ ?)
  • 전수지 . . . . 1회 일치
         * 《[[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 (2012년)
  • 전숙희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
  • 전여옥 . . . . 1회 일치
         김영주 등이 주장한 그의 위법사항은 학력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선거공보물의 위법, 허위경력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등이며 '학력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들었다.<ref name="허위"/><ref name="허2">[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32857 김영주 "전여옥 당선 무효다"] 뷰스앤뉴스 2008-04-11</ref> 이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은 5학기 이상을 등록하고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최소 수료가 되는 과정”이라며<ref name="허위"/><ref name="허2"/> “전 의원은 예비후보자 홍보물과 후보자 공보물을 비롯 홈페이지에 자신의 학력사항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 4학기 마침’으로 표기했다”며 “선관위의 유권해석, 법원 판례로 볼 때 이는 명한 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ref name="허위"/><ref name="허2"/> 또한 인터넷 홈페이지와 예비후보자 홍보물, 후보자 공보물, 명함 등 홍보물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일본특사’라고 표기한 것 역시 김영주는 허위사실이라 하며 외교통상부가 국회에 제출한 ‘대통령 당선인 특사관련 자료’ 문서에는 전 당선인은 분명히 이상득 일본 특사의 수행원으로 기재되어 있다며 허위사실 공표한 것으로 공직선거법 제250조 위반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ref name="허2"/>
  • 절대가련 칠드런/432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이들을 수갑을 채워버리는데 사카키, 미나모토가 항의하자 "나만은 결하다"고 믿느냐 묻는다.
  • 절대가련 칠드런/433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이 타이밍이 "우연이 아니다"고 생각하는데 마츠카제 본인은 "마려운게 죄는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그건 네가 결할 때 얘기"라고 응수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1회 일치
          * 일련의 부자연스러운 상황들을 놓고 봤을 때 흑막은 츠보미 관리관이며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좌천시키는 거 자체가 목표임은 명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네가 너인 채로 우리의 적이 될리 없다"고 독하며 마기의 정신에 진입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1회 일치
          * 만일 그 날을 잊고 앞을 향하게 된다면 "자신이 아니게 돼버린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구하려하지 말라고 독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1회 일치
          * 후지코의 방에서 나타난건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 일행은 이들을 제압하고 신을 주입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1회 일치
          또다른 자신의 설득에 후지코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가 빛을 위해 살고자 했던 이유, "그들". 육군초능특무부대의 죽어간 동료들이 떠오른다. 효부와는 다른 형태지만 그녀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마음 속의 틈이었다. 그녀가 흔들리자 미나모토는 사카키에게 신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한다. 후지코는 가까이 오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지만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1회 일치
          * 뼈아픈 패배를 겪은 칠드런 일행은 PANDRA의 본거지인 여객선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호로 피신한다. 주전력인 [[효부 쿄스케]]와 칠드런 일행은 모두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었지만, [[미나모토 코이치]], [[사카키 슈지]]와 신을 투여한 [[츠보미 후지코]], [[키리츠보 타이조]],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 등은 적의 손에 떨어졌다.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1회 일치
          * 모미지, [[머슬 오오카마]], [[후지우라 요우]] 등이 업팀으로 구성. 모미지는 여기까지 온 이상 반드시 일행을 무사히 데려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정겨운 . . . . 1회 일치
         * [[2009년]] [[SBS]] 주말극장 《[[천만번 사랑해]]》 ... 강호 역
  • 정기선 . . . . 1회 일치
         * 2011년 ~ 2013년 : 보스턴컨설팅그룹
  • 정난정 . . . . 1회 일치
         * [[임령]]
  • 정득만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
  • 정봉수(역사) . . . . 1회 일치
         군대를 전역한 후 1987년 코오롱 마라톤 팀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선수들에게 소식(小食)과 풍부한 단질 식단을 집중 공급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과학적인 선수 관리로 1990년과 1992년에 김완기가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1992년 황영조가 2시간 10분벽을 넘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와 김이용, 권은주를 발굴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키우면서 한국 마라톤을 육성, 발전시켜 세계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 정사인 . . . . 1회 일치
         {{글로벌세계대과사전}}
  • 정상희(정치인) . . . . 1회 일치
         정상희의 차남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삼성그룹 초대회장 [[이병철]]의 4녀 [[이명희(기업인)|이명희]]와 결혼 했다. 이병철과 사돈관계이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시아버지 그리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화점 부문 총괄사장의 할아버지다.
  • 정성곤 . . . . 1회 일치
         그러던 중 [[2016년]] [[8월 25일]] 토종 선발투수진이 부진해 공이 생기자 다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으로 희망을 보이는 듯했으나 그 다음 경기부터는 다시 부진했다.
  • 정성룡(야구선수) . . . . 1회 일치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절 김성범[* 1982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태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결국 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 정소담 . . . . 1회 일치
         #[http://brunch.co.kr/@sodamjjj/28 <칼럼> '김영란 법' 마 탄 초인, 헬조선으로 오다]
  • 정영기(배우) . . . . 1회 일치
          * 2018년 JTBC 《[[미스티(드라마)|미스티]]》 ...동현 역
  • 정정용 . . . . 1회 일치
         |포지션= 은퇴 (과거 [[센터]])
  • 정진영(배우) . . . . 1회 일치
         ||<|2> 2011년 ||<|2> KBS || 영도다리를 건너다 || 익덕 || ||
  • 정진호(1956)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절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상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 제2편성제도 . . . . 1회 일치
         1930년대 적내전 당시 볼셰비키 적군(赤軍)에서 개발되었다.
  • 제너럴 우 . . . . 1회 일치
         미군 헬기 조종사인 짐 베이커 중위를 구하려는 캡틴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일단 캡틴은 교섭을 위해 왔으나 공격해오니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약점을 발견할수 없어서 고전한 캡틴은 베이커를 풀어준 뒤, 탈출했다. 몇년 후, AIM의 보카 칼리엔테(Boca Caliente) 섬기지에서 그들의 무기전시회가 열렸는데 바트록(Batfoc)에게 매드독(Mad Dog), 램로드II(Ramrod II), 레이저 피스트III(Razor-Fist III)를 포함한 병전 전문가로 선정되었고, 이후 캡틴과 재전투를 하게 되었다. 이때 캡틴은 잠입을 위해 세르시의 도움으로 모습을 크로스본즈로 바꾼 상태였고, 의심을 피하려고 바트록의 결투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때 우는 램로드에 의해 위기에 처한 캡틴을 공격했는데 캡틴에 의해 기관지가 압박되어 그를 내던졌다. 그러나 그에게 패배.
  • 조긍하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를 졸업하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8383&mobile&categoryId=1639 조긍하 - 네이버 지식과]</ref>. 그 후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사진가|사진]] 촬영과 [[영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사진작가의 관록으로 조감독 수련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었는데, [[1952년]]에 《베일부인》을 감독한 것을 시작으로 《황진이》([[1956년]]), 《곰》, 《육체의 길》([[1959년]]), 《인간만세》, 《과부》([[1960년]])등의 영화를 감독하였고, 시나리오도 직접 집필해왔다. 또한, 1960년대 말에는 《상해임시정부》,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300032921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30&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181&publishType=00020 故(고) 趙肯夏(조긍하)감독의 人間(인간)과 作品(작품)세계 고지식하면서도 유머풍부 - 1982년 1월 30일 경향신문]</ref>.
  • 조안(배우) . . . . 1회 일치
         || [[2010년]] || 제46회 [[상예술대상]] || 영화 여자신인연기상 || [[킹콩을 들다]] ||
  • 조원진 . . . . 1회 일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친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1955)|최경환]], [[윤상현(정치인)|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정치인)|홍문종]], [[유기준(1959)|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http://h21.hani.co.kr/arti/politics/42751.html|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 조응천 . . . . 1회 일치
         해임된 후, [[양복]]을 입고 근무하는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억울한 해임과 기소에 홧병이 나서 본인과 부인 모두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가슴이 답답해서 [[자전거]]를 타고 [[남양주시]]까지 자주 다녔다"고, 출마한 후에 고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가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조응천을 국기문란사범으로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종편에 의한 후속보도까지 이어졌을 땐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생각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인 2017년 1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나와서는 그때 썰을 푸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xWq4Bmffjg|정청래 : 근데 본인은 지금 행복하잖아 / 조응천 : 땡큐.]]라고 큐트하게 받아쳐 주신다. ~~막 특검 왔다갔다 거리고~~ 정청래는 옆에서 "진짜 큰일 날 뻔했어~엉, 안 짤렸음 어떡할 뻔했어~엉", 김어준은 "그렇겠지, 청문회 나가서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거 하고 계셨겠죠."라면서 깐족깐족대는데... 전화위복도 이런 전화위복이 없다.] ~~[[자덕|자전거 덕후]] 입장에서는 주말 소풍 수준인데...~~ 다시는 공직이나 법조인 생활을 하기 싫은 생각에 [[마포구]]에 '''[[http://dmaps.kr/23r6b|별주부짱]]'''이라는 해물 요리 전문점을 개업하였다.
  • 존 웨스트 . . . . 1회 일치
         흑 TV를 사용하던 1950년대부터 TV 광고를 했는데 1998년 쯤 부터 광고 노선을 코미디로 잡았다. 그 최대의 결과물은 2000년에 나온 [[https://youtu.be/CVS1UfCfxlU|곰이랑 맞짱까서 연어 훔쳐오는 광고]].
  • 주나라 . . . . 1회 일치
         약 기원전 1100년 전후, 상(商)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이 패망하고, 서(西伯) 희창(姬昌)의 차남 무왕(武王) 희발(姬發)은 호경(鎬京)을 도읍으로 하여 왕으로 즉위한다.
  • 주현미 . . . . 1회 일치
          * 2011년 주현미의 러브레터 프로젝트 음반 <내일 가면 안되나요/ 여>
  • 지수원 . . . . 1회 일치
          * [[2000년]] [[SBS]] [[경찰특공대(드라마)|경찰특공대]] ... 성철의 아내 역
  • 지훈(TRCNG) . . . . 1회 일치
         ||<#262626> {{{#FFFFFF '''학력'''}}} ||<#ffffff><(> 일산낙민초등학교, 일산석중학교 (졸업)[br][[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
  • 진격의 거인/81화 . . . . 1회 일치
          * 친구들을 떠나보낸 아르민은 "이 작전이 성공하면 내가 바다를 보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독한다.
  • 진격의 거인/82화 . . . . 1회 일치
          * 열풍에 날아가면서 아르민은 자기가 버릴 수 있는 것은 "꿈" 밖에 없고, 그걸 엘렌에게 맡기겠다고 독한다.
  • 진격의 거인/86화 . . . . 1회 일치
          * 결국 왕이 성을 버린 결과라는 것으로, 엘디아 제국이야 말로 이상향이었던 이들에겐 암담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 진격의 거인/94화 . . . . 1회 일치
          * 병전시험은 더 형편 없었다. 상대인 [[애니 레온하트]]는 "아주 좋다"는 격찬을 받으며 합격했다. 그녀는 그때이미 완성된 투사였고 그녀의 실력에 라이너가 공중에서 완벽하게 한 바퀴 굴렀다. 그리고 다른 시험에서도 그건 마찬가지. 뭐하나 쉬운게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는 언제나 "제길"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필기시험에서도, 옆자리의 [[포르코 갤리어드]]가 여유로운 얼굴로 답안지를 채워가는데 자신은 사색이다.
  • 진격의 거인/97화 . . . . 1회 일치
          * 놀랍게도 빌리는 타이버가가 "흑막"이라 인정하며 그들이 실제 마레를 지배하고 있지만 "속죄"를 위해 권력과 자유를 나눠준 것이라 고한다.
  • 진창현(음악인) . . . . 1회 일치
         이후에도 계속 초후의 센가와 공방에서 현악기 제작을 계속 했고, 2000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의 제작 참고 악기로 선정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 바이올린 '광주호'를 시작으로 이듬해 바이올린 '대구호', 비올라 '한라호', 첼로 '두호'까지 네 점의 악기를 무상 기증하면서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 차승재 . . . . 1회 일치
         | 수상 = 2006년 [[상예술대상]] 작품상
  • 차오루 . . . . 1회 일치
         | 《[[종원의 푸드트럭]]》
  • 차준환 . . . . 1회 일치
         ||조의 호수 블랙스완
  • 창작:레스터 리 . . . . 1회 일치
         ~~가방끈이 길어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또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평화적이지만 성과가 별로 없는' 합법적 운동에 내심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불법적인 행동을 적극 지지하지도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딱히 수단과 방법에 개의치 않는, '자칭' 흑묘묘론자. 물론 그렇기 때문에 잠재적으로는 범죄자 기질이 있다는 얘기를 자신이나 남들에게 자주 듣는다. 혹자는 지식과 인간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억눌러두고 있는 게 아니냐고 평가했다.
  • 창작:리넷 블랙번 . . . . 1회 일치
         10대 중후반의 인 여성. [[창작:존 휘태커|존 휘태커]]와 [[창작:레스터 리|레스터 리]]의 지인들 중 가장 나이가 적은 편에 속한다. 그마저도 어리다며 장난으로 개무시하는 존과 달리 실질적으로 상대해 주는 건 레스터 뿐이라 사실상 레스터의 지인들 중 하나. ~~그래서 툭하면 만만하다며 까인다. 위에 인용된 대사를 보자.~~
  • 창작:블랙리스트 . . . . 1회 일치
         [[창작:코스모폴리턴|코스모폴리턴]]의 설정집. 코스모폴리턴 세계관에서 규모에 상관없이 명히 악당인 범죄자들을 정리한 문서.[* 단, 캐릭터의 배경이나 에피소드의 전개 방향에 따라 선역이 되거나 비교적 좋은 결말을 맞는 경우도 있다.] 각 하위문서는 가나다 순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순위와는 관계가 없다.
  • 창작:제러마이어 쿨리지 . . . . 1회 일치
         중년 미국인 남성. 작은 키와 발이 인상적인 미중년이다. 목에 돋보기용 안경을 걸고 있는데 신문이나 컴퓨터 등을 다룰 때 낀다.
  • 창작:존 휘태커 . . . . 1회 일치
         20대 인 남성. [[창작:레스터 리|레스터 리]]보다 나이가 2살 정도 더 많다. 장신에 언뜻 말라 보이지만 근육이 붙은 체질이며, 머리카락은 짧게 자른 갈색이다.
  • 창작:좀비탈출/4-1-2-1 . . . . 1회 일치
         하긴 생각해 보면 놈들에게 "소리"가 감지되는지는 알 수 없다. 관찰에 따르면 놈들은 개인차가 상당하다. 그야 부패 정도나 생전의 몸 상태가 영향을 줄 거란건 명하다. 하지만 고막은 어떨까? 안구나 피부는 썩어 버린다. 고막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야 호되게 싸다귀라도 맞으면 터지겠지만 놈들이 그럴 일이 있을까? 설사 고막이 있더라도 자극을 느낄 뇌가 녹아 버린 놈들이 소리를 들을 수는 있을까?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1회 일치
         이제 얼마 안 되는 정신으로 냉정을 흉내내 보자. 아무 일도 없는데 병이 났을 리는 없다. 물론 내 몸이 약해지긴 했겠지만 추위하고는 만년은 거리가 먼 이런 계절에 감기가 걸렸을 리는 없다. 갑작스런 과로로 인한 몸살은?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발열까지 설명이 될까?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1회 일치
         생김새는 긴 붉은색 머리카락과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금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 창작:치킨교 . . . . 1회 일치
         치킨 이외의 닭고기 요리, [[숙]], [[삼계탕]], [[닭도리탕]], [[닭갈비]] 등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통칭 한다..
  • 창작:코스모폴리턴 . . . . 1회 일치
         주인공 [[창작:레스터 리|레스터 리]]는 [[창작:존 휘태커|존 휘태커]]를 통해 뒷세계에 대해 깨달아 가면서, '악'이 사회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 공헌한다는 순기능(?!)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레스터도 서서히 악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명한 '악'이었고, 그것 때문에 레스터를 비롯한 지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냉대받고 추적을 당한다. 하지만 '합법적인 악'에 대항할 방법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존을 비롯한 사람들은 '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렇게 악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상황에서, 레스터는 필요악을 저지르더라도 그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 창작:클린트 블랙번 . . . . 1회 일치
         20대 후반의 인 남성. 존과 레스터보다 나이가 많지만 [[창작:앨프레드 박|앨프레드 박]]보다는 적다. 중간 정도의 키에 근육질이며, 짧게 자른 금발이다. 덧붙여 벽안. ~~그리고 금발벽안의 법칙을 따라 멍청하다 카더라. 믿으면 골룸.~~
  • 채상병 . . . . 1회 일치
         [[199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인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한화에서는 [[심광호]] 등의 경쟁에서 밀려 몇 경기만 출전했다. 입단 후 1년 뒤인 [[2003년]]에 투수 [[문동환 (야구인)|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때 [[문동환 (야구인)|문동환]]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는데, [[정수근]]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왔다가, 불과 3시간 후에 채상병과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594734&cp=nv 채상병, 두산 40승 숨은 주역… 주전 홍성흔 부상 공 완벽히 메꿔] - 쿠키뉴스</ref> 그러나 [[두산 베어스]]에서 채 자리잡기도 전에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05714 난처한 채상병, 그러나 놓칠 수 없는 기회] - 데일리안</ref> [[2007년]] 주전 포수였던 [[홍성흔]]이 허벅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홍성흔]]이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등 잡음<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271719545&code=980101 두산 홍성흔“작년 부진 잊지 말고 나만의 스윙을 하자”] - 경향신문</ref> 이 일자, [[홍성흔]]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하였다.
  • 청년 튀르크 당 . . . . 1회 일치
         [http://dlegongbuwarac.edupia.com/xmlView.aspx?sixid=036366 대교 학습 과]
  • 초한전쟁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 초한전쟁은 진시황 말기에서 시작하여, 진승 오광의 난을 프룰로그로 묘사하고, 항우의 죽음으로 일단 마무리 된다. 일단 초한전쟁 자체는 여기서 끝나지만 여기서 끝내는건 조금 짧은 느낌이이 있어, 좀 더 가기도 하는데 유방의 [[토사구팽]]을 묘사하여 공신들의 최후를 그리거나, 좀 더 나가면 [[등산 전투]]와 흉노 정벌 좌절과 유방의 죽음으로 마무리 한다. 유방 사후 여후까지 묘사하면 [[여씨의 난]]까지 가서 마무리 되며, 좀 더 길게 끌면 초한전쟁 시대의 자식 세대들까지 마지막 활약을 하는 [[오초칠국의 난]]까지 간다.
  • 최공웅 . . . . 1회 일치
         * 2009년 ~ 현재: 대한변협 서간행특별위원회 위원
  • 최두선 . . . . 1회 일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05992 두산대과사전]
  • 최란(배우) . . . . 1회 일치
          *계 (영묘 역)
  • 최만린 . . . . 1회 일치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조각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 최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영삼]][[분류:이회창]][[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선엽]][[분류:심대평]][[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프랫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최문식 . . . . 1회 일치
         그 뒤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새로 선임된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선임되였으며<ref>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3/11/15/1003000000AKR20131115070900007.HTML/ 최문식, AG 축구대표팀 코치로 합류] </ref>, [[2013년 AFC U-22 축구 선수권 대회]]는 4위에 그쳤지만,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의 28년만의 금메달 획득에 큰 기여하였다. 이후 [[2016년 하계 올림픽]]까지 이광종과 코칭스테프를 맡을 예정이였으나 [[2015년 킹스컵]] 출전을 앞두고 이광종 감독이 급성 [[혈병]]으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으로 대표팀을 지휘하였다. 대행으로서 2승 1무로 대회의 우승을 이끈 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316559/ 9일 킹스컵 우승 ‘감독 교체-우즈벡 폭력-편파 판정, 악재 딛고 쾌거’] </ref> [[신태용]]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다시 수석 코치로 신태용을 보좌하였다.
  • 최성국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1년 5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후 최성국은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K리그]] 전 구단 전 선수가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솔직히 웃어 넘길 수 있었으나 계속 들으니 지치기도 했다"라며 또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라고 하면서 승부 조작을 극구 부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유병수, “통장, 통화 내역 공개할 수 있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gisa_uniq=20110531171825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5월 31일 }}</ref> 그러나 [[2011년]] [[6월 28일]]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소속 시절 승부조작에 참여했다고 자진 신고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결 주장하던 최성국, 승부조작 자진신고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629102140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6월 29일 }}</ref> 게다가 브로커 역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 |제목='혐의 없다던' 최성국, 400만원 수수에 선수 섭외까지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28785 |출판사=OSEN |저자=허종호 |날짜=2011년 7월 7일 }}</ref> 더 이상 축구계에 발을 딛을 수 없게 영구 제명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054535 승부조작 가담 선수 모두 “선수자격 영구박탈”] 일간 스포츠 김민규 기자 2011-08-25</ref> [[마케도니아]]의 [[FK 라보트니치키]]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2년]] [[3월 16일]](한국시간), [[국제 축구 연맹|FIFA]]가 최성국의 모든 선수 활동을 세계적으로 정지시키는 영구제명을 결정함으로써<ref>{{뉴스 인용 |제목=FIFA, 최성국에 '선수 활동 정지' 징계 |출판사=OSEN |날짜=2012년 3월 16일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a_match/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20316073304526&p=poctan }}</ref> 축구 선수로서의 삶은 끝나게 된다.
  • 최성환 . . . . 1회 일치
         ||포지션= 과거 [[수비수#센터|중앙 수비수]]
  • 최우석 (화가) . . . . 1회 일치
         1954년 6월 7일부터 6월 17일(당초 6월 13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지만 6월 17일로 연기됨<ref>{{뉴스 인용 | 제목=「鼎齋(정재)」 畵展(화전) 延期(연기)|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150032920202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15&officeId=00032&pageNo=2&printNo=2548&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2 | 날짜=1954-06-15 | 확인날짜=2011-08-14}}</ref>)까지 개인전을 열었으며<ref>{{뉴스 인용 | 제목=崔禹錫 畵伯 個人展(최우석 화 개인전)|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0600329203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06&officeId=00032&pageNo=3&printNo=2539&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4-06-06 | 확인날짜=2011-08-14}}</ref><ref>{{뉴스 인용 | 제목=崔禹錫 個人展 盛況(최우석 개인전 성황)|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130032920301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13&officeId=00032&pageNo=3&printNo=2546&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4-06-13 | 확인날짜=2011-08-14}}</ref> 1956년<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11月(월) 10日(일) 開催(개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102600329203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10-26&officeId=00032&pageNo=3&printNo=3410&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6-10-26 | 확인날짜=2011-08-14}}</ref><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來(래) 10日(일) 開幕(개막) 紛糾 解決(분규 해결)|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102600209203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10-26&officeId=00020&pageNo=3&printNo=10433&publishType=00020 | 출판사=동아일보 | 저자= | 쪽=5 | 날짜=1956-10-26 | 확인날짜=2011-08-14}}</ref> 과 1958년<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審査委員(심사위원) 26名(명) 藝術院 臨時總會(예술원 임시총회)서 決定(결정)|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091000329102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8-09-10&officeId=00032&pageNo=2&printNo=4092&publishType=0001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2 | 날짜=1958-09-10 | 확인날짜=2011-08-14}}</ref>, 1959년<ref>{{뉴스 인용 | 제목=藝術院 臨時總會(예술원 임시총회) 하루 앞서 任命(임명)|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9091600209203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9-09-16&officeId=00020&pageNo=3&printNo=11485&publishType=00020 | 출판사=동아일보 | 저자= | 쪽=3 | 날짜=1959-09-16 | 확인날짜=2011-08-14}}</ref>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동양화부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전가풍미(田家風味, 1959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 있다.
  • 최웅 . . . . 1회 일치
         |《[[일의 낭군님]]》
  • 최원태 . . . . 1회 일치
         [[2016년]] [[5월 27일]] 선발 투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이 다실점을 한 뒤 두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3.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6년]] [[6월 14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의 공을 메꾸는데 [[금민철]]이 실패하여 빈 자리를 메꿀 두 번째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분수|4|2|3}}이닝 동안 5실점을 기록하였다. [[2016년]] [[7월 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타선의 지원에 힙입어 {{분수|5|2|3}}이닝 2실점으로 데뷔 이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607012208003&sec_id=510201&pt=nv ‘첫승’ 넥센 최원태 “초심 잃지 않겠다] - 스포츠경향 </ref> 2017 시즌부터는 선발진에 합류하였는데, 지난 시즌에 비해 등판하는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불펜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2017년]] [[4월 9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1군 경기 첫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09/0200000000AKR20170409045000007.HTML?input=1195m '7이닝 2실점' 넥센 최원태 "데뷔 후 가장 만족한 투구"] -연합뉴스</ref> [[2017년]] [[4월 27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개인 최다 이닝인 8이닝을 소화하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7&no=287720 ‘시즌 3승’ 최원태, 값졌던 최다 이닝-투구수 경신] -MK스포츠</ref> [[2017년]] [[8월 13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09388 ‘7이닝 1실점’ 최원태, 생애 첫 10승 요건] -OSEN</ref>
  • 최윤동 . . . . 1회 일치
         |같은 지역구 의원 = (대구시 을)[[서상일]]<br />(대구시 병)[[남채]]
  • 최재환(배우) . . . . 1회 일치
         || [[무사 동수]] || 양초립 || ||
  • 최정호 (성우) . . . . 1회 일치
         * 2004.11.07 윤정환 <짬뽕> (만식)
  • 최진희(가수) . . . . 1회 일치
         경기도 의왕 운호수에서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며 식당 이름은 그녀의 히트곡 제목에서 따 온 '사랑의 미로'.
  • 최충연 . . . . 1회 일치
         [[2017년]] [[6월 2일]] [[KIA 타이거즈|KIA]]전에 [[정현]]이 타구에 맞아 5회를 다 막지 못하고 강판되자 그가 구원 등판해서 3.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602000278 ‘최충연 프로 데뷔 첫승’ 삼성 라이온즈 3연승 질주... 김상수 3안타2타점] - 뉴스핌</ref>
  • 최태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최태원'''(崔泰元<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과 |판=제4판 |쪽=869 |날짜=2009-03-10 }}</ref>, [[1970년]] [[8월 19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kt 위즈]]의 작전/벤치코치이다. 그의 아들은 휘문고등학교 야구부의 내야수인 최준서이다.
  • 최항석 . . . . 1회 일치
         * 《[[대원군 (드라마)|조선 왕조 오년 - 대원군]]》 ... [[이갑 (1877년)|이갑]] 역
  • 최홍만 . . . . 1회 일치
         씨름 선수였을 때도 최상위권의 강자로 [[천하장사]] 1회, 두장사 3회를 기록하는 등 우승경력이 좀 되는 프로씨름의 [[레전드]] 중 한 선수였다. 하지만 [[강호동]] 이후부터 시작된 기술을 배제한 '''힘씨름'''빨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굉장히 루즈한 진행으로 특히 같은 [[거인]]인 [[선배]] [[김영현]]하고 붙으면 경기 시간이 씨름인지 [[축구]]인지 구별이 안 갔을 정도.
  • 추경호 . . . . 1회 일치
         * 2019년 3월 ~ 2019년 5월 : 자유한국당 文정권 경제실정서특별위원회 위원
  • 추자현 . . . . 1회 일치
         * [[2003년]] [[SBS]] 일일시트콤 《[[압구정 종갓집]]》 ... 첫째 딸, 자현 역
  • 켄카양성패 . . . . 1회 일치
         싸움을 억제할 이유가 있었던 데는 사무라이들의 호전성도 있었다. [[무로마치 시대]]에서 [[일본 전국시대]]에 걸쳐서, 사무라이들은 불합리할 정도로 복수심이 강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피해자가 명하게 자업자득인 경우조차도 집요하게 복수를 했다. 켄카양성패는 이러한 문화에서 전국 다이묘들이 불합리하더라도 질서를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법이다.
  • 코토부키 퇴사 . . . . 1회 일치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결혼퇴직이라는 말이 있으나,일본과는 달리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써 받아들여진다. 아예 "결혼하면 정당한 권고해직사유"가 될 수 있는 결혼퇴직제가 존재하는 회사도 때때로 언론에 보도될 정도. 당연히 이는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명한 불법이다.
  • 콘도 마코토 . . . . 1회 일치
         1992년 「암검진, 가지 해가 있어 하나의 이득 없음(がん検診・百害あって一利なし)」이란 논문을 문예춘추에 기고.
  • 크림 전쟁 . . . . 1회 일치
         [[흑해]] 연안이 아닌 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영국과 프랑스의 함대가 [[발트해]]의 [[크론슈타트]]를 봉쇄하고 [[해]]의 [[콜라(도시)|콜라]]를 포격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캄차카 반도]]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롭스크]]를 공격했지만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철수한 이후에야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점령할 수 있었다.
  • 키드르 . . . . 1회 일치
         중앙아시아 이슬람교에 따르면, [[독소전쟁|대조국전쟁]] 전야 키드르가 [[스탈린]](!)의 꿈에 나타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모스크를 다시 열게 하면 이기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스탈린은 부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몇개의 모스크를 다시 열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독일의 침공에 국내의 이슬람이 동조할 것을 우려하여 이슬람 탄압을 완화시켰다.]
  • 킹덤/500화 . . . . 1회 일치
          * 이 소식은 이목이 있는 무성까지 전해진다. 게다가 그 수가 20만에 이른다는 보고에 [[카이네]]와 [[부저]]가 경악한다. 이목은 침착한 태도로 보고를 접수한다.
  • 킹덤/502화 . . . . 1회 일치
          * 무에서는 이목이 [[오르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벌서 간위성, 영현성이 함락되었으며 거침없이 치고들어오고 있다. 한단으로 향한 [[호섭]] 장군을 동쪽으로 보내자는 안건이 나온다. 이대로 오르도를 막지 못하면 동쪽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목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호섭이 거기까지 가버리면 서부 전선의 전략이 크게 수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쪽 방어선의 붕괴도 좌시할 수는 없는 일. 이목은 할 수 없다치며 [[카이네]]에게 호섭의 이동을 명령하려 한다.
  • 킹덤/508화 . . . . 1회 일치
          * 바지오 한 사람이 이미 성벽을 도륙내고 있을 무렵 [[이신(킹덤)|이신]]과 [[하료초]]는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단 한 사람의 전공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당의 전투였다. 바지오의 뒤를 따라 산민족 군대가 들이닥치고, 한 번 뚫린 자리에는 사다리가 잇달아 모이면서 더 많은 병력으 성벽으로 오른다.
  • 킹덤/512화 . . . . 1회 일치
          기가 찰 정도로 담한 패배선언. 그렇게 밖에 들리지 않았다. 부하 장수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방금 왕전이 한 말은 이번 원정이 실패했다는 자평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 킹덤/513화 . . . . 1회 일치
          * 부하들 간의 설전이 지겨워졌는지 환의가 마론에게 자기가 아는건 한 가지 뿐이니 그걸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그는 사실 로 밑에서 부장 생활을 할 때부터 왕전과 알던 사이다. 그래서 딱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 킹덤/524화 . . . . 1회 일치
          * 진군의 우익과 조군의 좌익이 격돌하는 첫 싸움. [[악영]]이 이끄는 조군과 [[아광]]이 이끄는 아광군이 격돌한다. 아광은 잔재주를 모르는 강직한 무인이고 그를 본받은 부하들인 만큼 정면에서 달려오는 적을 상대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 해 부딪혔다. 그 기세는 중세.
  • 킹덤/527화 . . . . 1회 일치
          * 순수수의 의도는 명했다. 그는 손을 들었다. 그 끝은 언덕 위, 양단화를 지목하고 있었다. 그 도발을 목격한 산민족의 가면 속 얼굴은 벽의 드러나 있는 얼굴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경악과 분노. 그리고 당혹감.
  • 킹덤/531화 . . . . 1회 일치
          * 진군에 마침내 마광이 죽었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조군은 현실을 인정하는 환호성이 퍼져나갔다. 기수는 이쪽을 향해 포권을 하고 말을 돌리는 이목을, 조나라의 삼대천을 보며 그 역량에 감탄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을 할 차례다. 기수가 기름처럼 끓기 시작한 병력에 불을 질렀다. 전부대, 전병력을 향해 조군 총대장 삼대천 이목이 직접 적장의 목을 쳤음을 선언했다. 그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전령을 통해 모든 하급부대에 급파했다. 마광의 목이 떨어졌다. 그 이상의 지시는 필요가 없었다. 위축을 거듭하던 군대가 단숨에 살아났다. 반면 진군은 대혼란. 마광이 죽었다는 말과 거짓선동이란 말이 뒤섞였다. 최전방은 마광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배 기세로 돌격하는 조군을 상대하면서 후방의 진위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럴 수록 조군이 외치는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는 구호는 섬뜩했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1회 일치
         서기 935년 2월, 히타치군(常陸郡)[* 현재의 이바라키 현]에서 부 타이라노 쿠니카(平国香)를 토벌하였다. 타이라노 쿠니카는 히타치군을 다스리는 쿠니시(国司)의 사위였다.
  • 태보 . . . . 1회 일치
         2011년 5월에 있었던 [[테크노마트]] 진동사건의 원인(…). 공교롭게도 12층 체육관에서 하던 태보 레슨의 [[고유진동수]]가 빌딩과 일치하여 건물을 뒤흔들고 수명이 대피하는 소동을 일으켰다.[[http://www.afpbb.com/articles/-/2814345?pid=7523220 (참조)]]
  • 토니 고 . . . . 1회 일치
         브랜드 출시 첫 해, 4 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ref name="포브스 프로필"/> 2000년대 초반 닉스는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였다. 또 2008 금융 위기 시절, 저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오히려 불황은 기회가 되었다.<ref name="헤럴드"/> 또 토니는 사람들이 [[미셸 판]] 등 뷰티 유튜버에 영향 받는 모습을 보며,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SNS]]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ref name="헤럴드"/> 이후 15년 동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간 후, 2014년 [[로레알]]에 닉스를 5억 달러에 매각했다.
  • 토리코/369화 . . . . 1회 일치
          * 따라서 GOD의 실체란 "수년 만에 한 번 지구의 생명을 수확하러 올라오는 괴물"이었다.
  • 토리코/371화 . . . . 1회 일치
          * 죠아는 그저 GOD를 조리하기 위한 채널을 준비하는 중.
  • 토리코/384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수년 전 플로제가 죽던 그 날의 일을 거론한다.
  • 토리코/393화 . . . . 1회 일치
          * 괴멸해가는 네오 안에서 아카시아의 얼굴이 나타나 자신은 어리석은 자라 말하며 토리코에게 진실을 고한다.
  • 토시코 막스 . . . . 1회 일치
         1936년 태생, 1971년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졸업, 1976년 영국 귀족 블로톤 남작 마이클 막스(Baron Marks of Broughton)와 결혼하여 블로톤 작 부인 마크스 토시코(Honourable Toshiko Marks, Baroness Marks of Broughton)가 되었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1회 일치
         1585년에 [[관]], 그 다음해 [[태정대신]]이 되며, 이때부터 토요토미(豊臣)라는 성씨를 쓰게 된다.
  • 토죠 노조미 . . . . 1회 일치
         요즘에는 아야세 에리랑 엮는 노조에리가 우세하지만 '''정통성은 노조니코에 있다. 이것은 명한 사실이다.''' ~~노조에리는 쥿키가 애니화하면서 만든 커플링이다~~
  • 토탈워 시리즈 . . . . 1회 일치
         전투 장면은 엄청난 장관을 보여준다. 전략 화면에서 훈련하게 되는 유닛 하나는 몇십~몇명으로 이루어진 부대이기 때문. 그걸 또 세세히 볼 수 있다. 물론 사양을 많이 탄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1회 일치
         ||가엾은 만장자들은 돈이 너무나도 넘쳐나는 나머지 그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킬만한 주거지를 못 찾는군요. 콘도를 건설하신다면 그들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다시금 밝은 얼굴로 되돌려주실 수 있습니다.||
  • 특이한 세금 . . . . 1회 일치
          * 벽지세 : 1712년 도입. 무늬가 인쇄된 벽지에 과세했다. 건축가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지로 도배를 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서 대응했다.
  • 판타스틱 포 . . . . 1회 일치
         2011년 3월 연재분에서 [[휴먼 토치]]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자리를 영구 결번으로 하고 그의 유언에 따라 [[스파이더맨]]을 정규 멤버로 영입했다. 명칭도 '퓨처 파운데이션(Future Foundation, FF)'으로 변경하였고 유니폼 색도 흑으로 변경하였다.하지만 휴먼 토치의 생존&복귀로 다시 이전의 판타스틱 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퓨처 파운데이션은 판타스틱 포와 별개로 분리되었다. 새로운 구성원은 2대 앤트맨인 스콧 랭, 메두사, 미스 씽, 쉬헐크.
  • 페어리 테일/488화 . . . . 1회 일치
          * 가질은 레비와 만난 덕에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법을 배웠다고 고한다.
  • 페어리 테일/493화 . . . . 1회 일치
          * 자매의 눈물겨운 상봉을 보며 엘프먼은 미라젠, 리사나에게 살아있어달라고 독한다.
  • 페어리 테일/498화 . . . . 1회 일치
          * 잉벨은 END를 쓰러뜨리는건 제레프가 아니라 그레이라고 독한다.
  • 페어리 테일/510화 . . . . 1회 일치
         || 나는 룡의 멸룡마법사니까. ||
  • 페어리 테일/518화 . . . . 1회 일치
          그 기에 놀란 아이린은 자기 딸은 대체 뭐냐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 페어리 테일/519화 . . . . 1회 일치
          * 수 년 전 그날처럼 아이린은 엘자를 향해 웃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아이린이 동요하면서 겨누고 있던 칼끝이 엘자의 어깨죽지를 찌른다. 하지만 엘자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칼날이 몸을 뚫고 들어오는 데도 개의치 않고 몸을 일으킨다.
  • 페어리 테일/522화 . . . . 1회 일치
          * 오거스트는 이미지와 달리 병전으로 도전하는 길다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순간에 배후를 잡은 길다트가 결정타를 날려 오거스트를 산산조각낸다. 그렇게 승부는 싱겁게 끝나는 것 같았는데.
  • 페어리 테일/530화 . . . . 1회 일치
          * 그들이 찾는 국왕 [[토마 E. 피오레]]는 성 안에 감춰져 있는 이클립스의 문 앞에 있었다. 당시의 토마 왕은 이클립스가 단지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문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나타나 수년 만에 이 문을 열었다. [[루시 하트필리아]]의 어머니 [[레이라 하트필리아]]였다. 문은 정말로 열렸다. 지쳐있는 레이라의 눈 앞으로 문을 통해 한 명의 여성이 나타난다. 토마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놀라워한다. 그에겐 문이 열린 것이나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온 것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1회 일치
          * 나츠, 루시, 그레이는 길드로 돌아가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하는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도 전에 싸움이 끝나면 하려던 일을 고하려고 한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1회 일치
          수년에 걸쳐 용왕으로 군림하고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아크놀로기아가, 그렇게 사라졌다. 그가 남긴 유언은 나츠가 쓴웃음일 짓게 했다.
  • 페이데이 2 . . . . 1회 일치
          * 네번째 다운은 바로 구속으로 이어진다. 세번째로 다운되었을 때 화면이 흑이 된다. 구급 상자를 사용하던가 하자.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1회 일치
          * 양철 소년 장난감 - 장난감 가게: 두가지 경우가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장난감 가게 내 상자들을 열어 확보하면 되지만, 일정 확률이 모든 장난감이 팔린 경우가 나온다. 이 경우에는 쇼핑몰 곳곳에 쇼핑을 열고 장난감 상자를 꺼내야 한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1회 일치
         >우리가 부패한 세무서 직원 에이드리언 스터를 체포하려고 했을 때, 페이데이 갱이 나타나 요원들에게 발포하였다. 요원들은 스터가 숨은 리무진이 크레인에 의해 들어올려져 길 건너 폐건물에 떨어지는 광경을 볼 수 밖에 없었다. SWAT을 호출해 빌딩을 습격하게 했지만, 페이데이 갱은 목표를 이룰 때 까지 버티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 요원들이 빌딩을 겨우 확보했을 때, 스터는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서버는 사라졌으며, 방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에는 2천 5만에 달하는 거금이 추적할 수 없는 계좌로 보내졌다는 내용이 남겨져있었다.
  • 폐비 윤씨 . . . . 1회 일치
         일부 현대극이나 야사 등에서 그녀의 아버지 [[윤기견]]의 죽음으로 인해 집안의 생계가 어려워지자 궁녀로 입궁했다고 하지만<ref>[[2011년]] 방영된 [[JTBC]]의 드라마 《[[인수대비 (드라마)|인수대비]]》 등에서는 폐비 윤씨가 궁녀로 입궁한 것으로 그렸다.</ref>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희왕후]](자성대왕대비)가 그녀를 훗날의 [[정현왕후]]가 되는 [[윤호]]의 딸과 함께 입궁시켜 숙의(淑儀)의 첩지를 내린 사실이 명히 표기되어 있다.
  • 표민수 . . . . 1회 일치
         * [[1998년]] 제35회 [[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 《[[거짓말 (드라마)|거짓말]]》
  • 풍진 . . . . 1회 일치
         발열, 발진, 림프선 종양 등이 발생하는 바이러스 성 질환. 임신 20주 이내에 풍진에 감염되면 신생아가 태아 풍진 증후군에 걸릴 우려가 있다. 신이 존재하며, 치료에는 해열제 등으로 대증요법을 쓴다.
  • 퓨어킴 . . . . 1회 일치
          *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슴사이즈를 언급했는데, "어려서는 글래머 몸매가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타고난 것을 어쩌겠느냐", "노래보다 몸매만 회자되면 당연히 속상하겠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슴 사이즈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미국 속옷 가게에서도 찾기 힘든 사이즈다"라고 고했다. 그리고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는 "가슴이 좀 많이 큰데, 예쁘게 큰 게 아니라 좀 특별하게 커요.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거 보면 ‘아유, 웃기네’, ‘음, 별 거 아니네?’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발언들로 미뤄 보아 최소 J컵 이상은 확정이고[* 화성인 바이러스 기준으로 가장 큰 컵사이즈가 I컵녀였다. 다만 해당 인물은 이후 축소수술을 통해 풀B컵 정도로 확 줄였다.] 통상적으로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사이즈 최대치를 한국 기준으로 환산한 [[초유|K~L컵 사이]]일 것으로 추측된다.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1회 일치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절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상가상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절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반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 하성란 . . . . 1회 일치
         *《강의 일몽》(삶과꿈,2004): 2004년 제11회 이수문학상 수상작품집
  • 하이큐!! . . . . 1회 일치
          * 2014년 9월 22일부터 소년 점프+에서 れっつ!ハイキュー!?(렛츠! 하이큐!?)가 연재되고 있다. [http://plus.shonenjump.com/rensai_detail.html?item_cd=SHSA_JP01PLUS00000087_57 소년 점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카게야마가 대놓고 왕관을 쓰고 마를 끌고 다니고 킨다이치는 진짜 머리에 락교를 쓰고 있는 등, 본편 내용을 개그로 바꾼 내용이다. 때문에 [[캐붕]]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정상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사실 그것보다는 본편과 개그 코드가 상당히 달라서 안 맞는 사람들은 정말 안 맞다. --그러나 고양이인간 쿠로오와 켄마가 정말 귀여운 데는 이견이 없을 듯--
  • 하이큐/213화 . . . . 1회 일치
          * 아미노산이 첨가된 드링크나 단질, 혹은 프로틴. 당분은 바나나나 100% 오렌지 주스로 충당한다.
  • 하이큐/228화 . . . . 1회 일치
         키노시타는 자신 때문에 카라스노가 전력 공을 겪고 있다고 자책하지만 사실 고등학교 스포츠에서 특정 포지션이 부족한건 흔한 일. 게다가 카라스노 정도면 선수층이 두껍지는 않아도 갖출 건 다 갖춘 팀이다.
  • 하이큐/233화 . . . . 1회 일치
          * 평소같지 않은 실수를 해버린 카게야마. 그러나 크게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다. 히나타에게 사과하며 "수정할게"라고 단하게 코멘트한다. 썩소를 짓는 히나타.
  • 하이큐/234화 . . . . 1회 일치
          * 야마구치는 전국대회 레벨이 되면, 자신은 서버 이외에는 활용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 서버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는 그걸 위해서 이 "첫공"을 수 번도 넘게 시뮬레이션했다.
  • 하이큐/237화 . . . . 1회 일치
          * 히나타의 서브 2회차로 공격이 재개된다. 츠바키하라는 에치고가 세트를 올리는데 아테마에게 올릴 것 같다. 그러나 눈치 빠른 [[츠키시마 케이]]는 속지 않고 마루야마의 어택을 정확히 예측한다. 하지만 마루야마도 순순히 막히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블록을 피해 공을 떨어뜨린다.
  • 하이큐/238화 . . . . 1회 일치
          공은 정확히 노리던 자리로 향하지만 아깝게도 아웃이 된다. 다시 츠키시마와 교대해 벤치로 가면서 "4번 쪽으로 보내긴 했고 나치곤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그의 표정엔 명하게 분한 기색이 나타났고 우카이 코치가 노리는 것도 이런 효과였다. "욕심을 내게" 만드는 것.
  • 하이큐/240화 . . . . 1회 일치
          * 이제 네 번째 서브를 준비하는 히메카와. 그는 아직 "흐름"이란건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자기들 쪽으로 왔다는건 자각하고 있다. 그런데 코트에 들어서자 명하게 분위기가 다른 한 명이 있다. 카라스노의 [[니시노야 유]]. 히메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섬찟한 기분이 든다.
  • 하이큐/251화 . . . . 1회 일치
          >''' 명 vs 나!'''
  • 하이큐/253화 . . . . 1회 일치
          * 카라스노를 혼비산 시키며 코트 위로 내리꽂히는 스파이크. 관중들은 아직 이 플레이의 의미를 모르는 듯 하다.
  • 하이큐/258화 . . . . 1회 일치
          * 스코어는 20 대 19. 1점 차를 유지했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두 번째 TO를 전후로 명히 기세가 꺾였다. 이런데다 이나리자키의 사령탑은 채찍질을 그치지 않았다. 아츠무가 오사무의 플레이에 트집을 잡았다. "꾀를 부린다"는 것. 방금 전 아츠무의 눈에 걸린게 그거였다. 오사무가 "일단 미끼할게요" 식의 불성실하게 들어왔다. 오사무도 그걸 부정하진 못하고 "전력으로 뛰면 어떻게 끝까지 뛰냐"고 투덜댄다. 그러다 아츠무는 "치면 들어간다"며 일단 전력을 다하라고 질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작은 블록"이 두렵냐는 것.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오사무. 그런데 이 논쟁은 뜻밖의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 하이큐/259화 . . . . 1회 일치
          * 아즈마네가 달려나온다. 이나자키는 기다렸다는 듯 블록 세 장이 올라온다. 그런데 아즈마네가 유독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 차이는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 정도가 눈치챈다. 아즈마네가 노리는건 명했다. 블록 위에서 치는 스파이크. 하지만 그 의욕이 독이 됐을까? 타점이 빗나갔다. 공에 겨우겨우 스친 손. 공은 공중에서 튀어올라서 간신히 블록을 넘기고 떨어진다. 스파이크라고만 생각했던 이나자키의 후위가 황당해하며 달려온다. 하지만 공이 코트에 닿는게 먼저다. 어이없지만 득점 성공. 공격에 성공한 카라스노 측 조차 헛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즈마네는 속으로 왠지 미안하다고 씁슬해한다. 어이없어하는 이나리자키 진영.
  • 하이큐/260화 . . . . 1회 일치
          * 그때 야마구치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온다. 3층 비상등. 시마다였다. 카라스노 고교 응원석에서 완전 반대편인 [[이나리자키 고교]] 응원석까지 한 걸음에 달려갔다. 그는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무언가를 흔들고 있다. 야마구치는 그걸 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집중했다. 그건 시마다 마트의 비닐 봉투. 마스코트인 돼지 캐릭터가 선명하게 보였다. 시마다가 처음 리셋포인트를 전수할 때 표지로 삼았던 그 봉투였다.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그 묘한 꼴을 보고 수근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마다의 의도는 명했다.
  • 하이큐/264화 . . . . 1회 일치
          * 하루 전. 봄고 1일차를 마친 [[카라스노 고교]]의 숙소에선 타나카의 소꿉친구인 [[아마나이 카노카]]가 화제에 올랐다. 2학년 [[엔노시타 치카라]], [[나리타 카즈히토]],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린 라이트"라며 이대로 타나카에게 여친이 생기겠다고 수다를 떨었다. 정작 당사자인 타나카는 왜 그렇게 되냐며 "이기지도 못할 상대에겐 덤비지 말아야 하냐"고 항변한다. 자신에겐 [[시미즈 키요코]]라는 반한 상대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동기들은 하나같이 회의적이다. 그보단 애초에 타나카가 진심으로 키요코를 좋아하는 건지도 처음 알았다는 반응. 타나카는 카노카가 그린라이트라고 갑자기 그쪽으로 갈아타냐는 말이냐고 따진다. 그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동기들의 여론은 대체로 그런 편. 나리타는 "고 받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인다. 잠자코 있던 [[니시노야 유]] 조차 "차려진 밥상을 안 먹으면 남자도 아니다"고 드립을 치며 타나카를 압박한다. 타나카로서도 그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도 착하고 예쁜 누님들이 놀자고 하면 얼씨구나 따라나서겠지만, 이건 문제가 좀 다르다, 그렇게 절규했다.
  • 하이큐/267화 . . . . 1회 일치
          * 이어지는 경기. 랠리와 랠리가 이어지며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2점의 점수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 스코어는 22 대 20. 사루카와의 작전은 순조롭게 계속됐다. 그건 코즈메가 쏟아내는 땀을 봐도 명했다. 아직까지는 위태로운대로 잘 따라오고 있었지만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그때 리에프의 득점. 스코어 22 대 21로 한 점 따라잡는다. 서브는 네코마 측. 동점을 노릴 기회였다.
  • 하이큐/273화 . . . . 1회 일치
          * 키타를 누구보다 경계하는건 코트 위의 선수들이었다. 카라스노 선수들의 이목이 키타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당사자는 자신은 "대역"일 뿐이니 경계할 필요도 없다고 독했다.
  • 하춘화 . . . . 1회 일치
          * 평양길 육리 (1985)
  • 한말숙 . . . . 1회 일치
         *** 부 : 한길명(韓吉命)
  • 한명진 (1426년) . . . . 1회 일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1597 한국민족문화대과사전]
  • 한상대 (검사) . . . . 1회 일치
         김학재 의원은 한 후보자가 서울 행당동 대지를 2006년 공시지가의 4분의 1 수준으로 매각한 것을 두고 ‘다운 계약서’ 의혹을 제기했다. 한 후보자는 “모친이 관리한 땅이라 계약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고교 동창이 운영하는 벤처회사의 비상장주식 1000주를 500만원에 매입했다가 2000만원에 팔아 수익을 냈다는 주장에 대해선 “실제론 주식을 2000만원에 구입했다. 500만원에 산 것으로 돼 있는 것은 해당 회사에서 회계편의상 액면가로 세무신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땅 매도 당시 부동산 매매계약서, 토지측량 도면, 토지 매수자의 사실확인서를 공개했다.<ref>[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55222 인사청문회 앞둔 한상대·권재진 '의혹 화점']《SBS》2011년 7월 22일 정혜진 기자</ref>
  • 한상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한상훈'''(韓尙勳<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과 |판=제4판 |쪽=878 |날짜=2009-03-10 }}</ref>, [[1980년]] [[6월 3일]] ~ )은 [[KBO 리그]] 전 [[한화 이글스]]의 [[내야수]]이다.
  • 한주완 . . . . 1회 일치
         * [[2019년]] 《[[돈 (2019년 영화)|돈]]》 ... 종필 역
  • 한호문 . . . . 1회 일치
         [[1637년]]에는 도정(都正)으로 그 해에 열리는 무과 정시(武科 庭試)에 좌참찬(左參贊) 이덕형(李德泂), 지사(知事) 변흡(邊潝), 동지(同知) 한명욱(韓明勖) 등과 함께 무과 정시(武科 庭試)의 명관(命官)으로 선발되었다. [[10월 13일]] 그 해의 무과 정시 합격자가 5천 수명이라서, 본업무와 함께 합격자를 정하느라 보고가 40일이 지체된 것을 대죄하였으나 인조가 이를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13일(정미)자 16번째기사, "출방할 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잘못이 있으므로 대죄한다는 무과 정시 명관인 좌참찬 이덕형 등의 계"</ref> 이후 부총관(副摠管)으로 전직되었다. [[10월 21일]] 전시의 시관으로 논박을 나갔는데, 즉시 왔어야 하는데 궐문이 닫힌뒤 천천히 왔다 하여 추고를 청하는 승지 김휼의 계에 의해, 추고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21일(을묘)자 18번째기사, "전시의 시관인 부총관 한호문을 추고할 것을 청하는 김휼의 계</ref> 그해 [[12월]] [[도총부]] 부총관과 [[훈련원]]도정으로서 [[예조]]의 인사 포폄을 마감하는 좌기(坐起)에 참석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2월 14일(무신)자 2번째기사, "부호관 한호문이 예조의 포폄 좌기에 나아가므로 표신을 내줄 것을 청하는 도총부의 계"</ref> [[12월 16일]] 이를 두고 [[사헌부]]에서 그가 위인이 용렬하다며 반대했지만, [[인조]]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하여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6일(갑진)자 6번째기사, "사헌부의 계에 대해, 정시웅은 체차하고 엄종남은 추고하라는 비답"</ref>
  • 한확 . . . . 1회 일치
         [[1427년]]에는 그를 공격했던 좌군 도사(左軍都事) 최징(崔澄)이 역으로 무고죄로 처벌을 받았다.<ref>세종실록 38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12월 5일(무오) 2번째기사 "한확과 홍인을 무고한 죄로 좌군 도사 최징을 의금부에 가두라 명하다"</ref> [[142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는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진 내관 언(白彦)이 그의 어머니에게 주는 단초(段綃)와 성(成)·차(車)·정(鄭)·노(盧)·안(安)·오(吳)·최(崔)씨 등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여인들이 쓴 편지를 고국의 가족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는 [[중국어]]와 [[한자]]에 능통했는데, 이후 명나라 사신이 입국할 때마다 선위사(宣慰使)로 파견되어 접대하였다.
  • 함병춘 . . . . 1회 일치
         * 아버지 : [[함태영]](咸台永, [[1872년]] [[10월 22일]]<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250 함태영] - 한국민족문화대과사전</ref> ~ [[1964년]] [[10월 24일]])
  • 해원군 . . . . 1회 일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984505 두산대과사전 - 해원군 이건]
  • 허근욱 . . . . 1회 일치
         * 《공지대》, 문학춘추사, 《문학춘추 1965년 6월호》 (문학춘추사, 1965)
  • 허만하 . . . . 1회 일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21871 다음 인물과]
  • 허준호(배우) . . . . 1회 일치
          * 1994년 《해적》... 흥
  • 헤이즈 (가수) . . . . 1회 일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1611197 {{PAGENAMEBASE}}] - 다음 인물
  • 현동완 . . . . 1회 일치
         일제강점기 YMCA 산악회원을 이끌고 두산 정상에 등정했다. 1949 ~ 1954년 [[한국산악회]] 회장을 역임했다.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 각국을 순방하면서 이민 사업을 추진했다.
  • 현민 . . . . 1회 일치
          * 친동생이 [[2017년 FIFA U-20 월드컵|U-20 월드컵]]대표팀에서 주전풀으로도 활약했던 [[포항 스틸러스]] 소속 축구선수 [[우찬양]]이다.
  • 현소환 . . . . 1회 일치
         [[분류:1937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 해병 중위]][[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선엽]][[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현재윤 . . . . 1회 일치
         [[2012년]]에는 업 경쟁자인 [[이지영 (야구 선수)|이지영]]에게 완벽히 밀리며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그 해 [[12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 간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하였다. 이는 양 구단 간 최초의 트레이드이다.
  • 홍아름 . . . . 1회 일치
         | 제45회 [[상예술대상]]
  • 홍예서 . . . . 1회 일치
         * 《[[한중록 (드라마)|조선 왕조 오년 - 한중록]]》 (1988년, MBC)
  • 홍윤기 (1933년) . . . . 1회 일치
         『내가 처음 너에게 던진 것은』은 제 24회 한국문학상 시부문을 수상하였다. 『수수한 꽃이여』 등 다수의 시집과 『한국현대시 해설』 『시창작법』 『일본속의 제, 구다라』 등 다수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자연이나 일상세계의 초점을 잘 포착하여 빈틈없는 구성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발한 시 창작과 아울러 현대시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힘썼는데, 시 해설집 『한국현대시 이해와 감상』(1987) 및 『시 창작법』(1993) 등은 그 결실이다.
  • 홍진기 . . . . 1회 일치
         '''홍진기'''(洪璡基, [[1917년]] [[3월 13일]] ~ [[1986년]] [[7월 13일]])는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언론인이다. 아호는 '''유민'''(維民)<ref>{{한국민족문화대과|E0064442}}</ref> 배우자는 [[김윤남]](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딸)이다. 당시 천재라 불리었으며 일제 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이 일본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선인 차별정책에 의해 그의 꿈인 교수가 될 수 없게되었고 이후 법을 공부하여 전주에서 판사를 역임하였다.
  • 홍해성 . . . . 1회 일치
         [[1930년]]에 귀국하여 [[윤남]], [[박승희 (1901년)|박승희]], [[김을한]] 등이 동인으로 포함된 극단 경성소극장을 창립했으나, 재정 문제 때문에 무산되어 이번에는 최승일, [[홍노작]], [[박희수]] 등과 함께 신흥극장을 창립했다. 신흥극장의 창립작은 경향파적인 작품인 《목단등기》였는데, 이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고 신흥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홍해성의 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
  • 화완옹주 . . . . 1회 일치
         * 《[[조선왕조 오년]] - [[한중록 (드라마)|한중록]]》 ([[MBC]], [[1988년]] ~ [[1989년]]), 배우 : [[이상숙]]
  • 화이트워싱 . . . . 1회 일치
         원작을 영상화 하는 영화나 미디어에서. 원작에서 '유색인종'이나 그로 볼 수 있는 캐릭터에 [[인]]을 캐스팅 하는 것을 뜻한다.
  • 화표 . . . . 1회 일치
         [[명나라]] [[영락제]] 시기에 세워졌다. 한옥(漢白玉,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9.57미터, 직경 98cm, 무게 20여톤에 달하는 거대한 기둥이다.
  • 황가히 . . . . 1회 일치
         * [[국순당]] [[세주]] CF 촬영
  • 황병일(1960) . . . . 1회 일치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고 정평났으나,[*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이다. 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
  • 황부인전 . . . . 1회 일치
         제갈량은 [[삼고초려]]를 받고 뜻을 꺽어 유비 휘하에 들어간다. 조조가 십만 대군을 보내서 신야에 주둔한 유비를 공격하자, 제갈량이 군사로서 계책을 세워 이를 막는다. 조조가 직접 신야를 공격하자, 유비가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옮기는데 십수만의 성이 유비를 따른다.
  • 황선희 . . . . 1회 일치
         | [[년의 유산]]
  • 황연대 . . . . 1회 일치
         * 1981년 국민훈장 동장 수여
  • 황옥 (1885년) . . . . 1회 일치
         * {{한국민족문화대과사전|E0065249}}
  • 황인숙 . . . . 1회 일치
         * 2018년 제63회 [[현대문학상]]<ref>{{뉴스 인용|성1=승찬 |제목=김성중 소설가·황인숙 시인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1202144025 |날짜=2017-11-20 |확인날짜=2018-08-09 |뉴스=경향신문}}</ref>
  • 황제성(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2020년 <플레이어2, 쇼미더플레이 - 고>
  • 황태연 . . . . 1회 일치
         필명 황태연과 황연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한국의 소설가이자, 외국인 번역가나 대리인 없이 영문 소설을 처녀작으로 직접 집필, 퇴고, 편찬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현재 [[Lotus]](ISBN-10: 1980979170, ISBN-13: 978-1980979173)라는 소설 작품으로 해외 [[아마존닷컴]]에 등단하여 종이책, [[아마존 킨들]] 전자책으로 판매 중이며 왕성한 활동 중인 작가는 연이어 한국 수영 이론서인 [[수영 바이블]]을 BOOKK란 출판사와 교보문고 퍼플 출판사, 유페이퍼 출판사를 통해 종이책 컬러본과 흑본, 그리고 전자책으로 출간하였다.
  • 히나타 쇼요 . . . . 1회 일치
          * 여타 다른 소년만화의 열혈계 주인공들과 다르게 의외로 겁이 많다. 특히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키 큰 사람 앞에만 서면 잔뜩 위축되서 겁을 집어먹고 다른 키 큰 사람 뒤에 숨는다.~~모에~~ 그랬던 놈이 시합에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서 자신이 겁먹었었던 그 큰 놈들을 상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 눈 희번뜩이고 달려드는 것이 포인트. 이 때의 기과 기세가 굉장해서 상대팀의 강자들조차 살짝 움찔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런 그를 보고 '워밍업 존에서 갈망을 가득 쌓고 올라 온 작은 짐승'이라 표현하며 잔뜩 의식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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