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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중희 (1936년)
         [[김구]]의 《[[백범일지]]》를 읽은 뒤 [[김구]] 암살 사건의 범인으로 판명난 [[안두희]]에 대한 처벌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정부에 탄원을 해 왔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 김완섭
         김구는 자신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일본]] [[군인]]이라고 기술하였으나<ref name="baik01">{{서적 인용
         |제목=백범일지
  • 김윤정 (1869년)
         [[태인군]] 군수를 거쳐 [[1906년]] [[인천]][[부윤]]으로 발령받았다. [[김구]]의 《[[백범일지]]》에 따르면 [[1896년]] 치하포에서의 일본인 살인 사건으로 인천에 압송된 김구가 김윤정에게 심문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ref>김구, 《백범일지》 상권 - [[s:백범일지#기구한 젊은 때|1.2 기구한 젊은 때]]</ref>, [[손세일]]은 김윤정의 나이와 유학 시기, 인천부윤 발령 시점을 고려할 때 연대가 맞지 않는다며 이를 김구의 착각으로 보았다. 그러나 [[김구]]의 [[백범일지]]에 의하면 당시 인천부윤 겸 인천감리사는 [[이재정]](李在正)이었고 [[김윤정]]은 [[경무관]]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 [[백범일지]]
         * 김구, 《백범일지》 (국사원, 1947)
  • 김철호 (1899년)
         김철호(金喆浩)(1899~1946)은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에서 태어났다. 당시의 중요 인사로 활동하고 있던 김철호(金喆浩)와 이지윤(李智倫)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1급 체포대상이었던 김철호는 신상이 잘 알려지지 않아 이름만으로 수배를 당했는데, 그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 이지윤은 당시 아명 '멸치'를 사용하고 있던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의 것과 같은 김철호(金喆浩)로 정하게 되었다. 태어날때부터 아주 마른 체형이었던 탓에 정해진 아명 '멸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곧 별명이 되기도 했다. 또한 김철호라는 이름과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나이부터 경찰서에 자주 불려다니게 되면서 일찍 사회를 접할 수 있었다. [[백범일지]] 2권 3장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상해]](上海)에 다녀와 부산에 들르니, 내가 귀여워하던 멸치가 어느새 철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굳건하고 눈매가 뚜렷한 것이 큰 인물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는 어렸을 때 일제의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꾸려 나갔다.
         그는 아버지를 더 믿어 보겠다는 말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백범일지 3권 1장에서는 '내 오랜 동지였던 김철호(金喆浩)가 조금씩 변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우울하다. 하지만 그의 아들마저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석주에게 철호를
  • 이상숙
         * 1989년 《[[백범일지]]》 (MBC)
  • 허위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는 허위가 순국하자 그곳에 있던 식수로 쓰는 우물이 빨갛게 물들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말이 쓰여있다. [* 출처. 백범일지. 치하포 사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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