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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 . . . 153회 일치
         |혐의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뇌물수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기밀누설 등<br>----<br>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뇌물수수·국고손실)<br>----<br>공직선거법 위(공천개입)
         |죄값 = 2심 징역 25년·벌금 200억 원, 검찰 단독 항소·상고로 상고심 진행중(최순실 및 블랙리스트 관련)<br>----<br>1심 징역 6년, 검찰 단독 항소로 항소심 진행중. (국고손실 유죄. 뇌물수수 무죄.)<br>----<br>징역 2년 확정<ref>https://news.joins.com/article/23164465</ref>(공직선거법 위,공천개입)
         2011년 12월부터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 혁신 작업을 지휘하였고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새누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어 2012년 12월 19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에서 득표율 51.6%로 48.0%를 득표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ref>[18대 대통령 박근혜] 박근혜 득표율 51.6%, 조선일보 2012.12.21</ref>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 과 득표 대통령, 최초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 독신 대통령, 최초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43473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신기록들] 아시아투데이 (2012년 12월 20일)</ref>
         재임 직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라는 위기를 맞으며 국정을 본 박근혜는 임기 중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창조경제]]를 위시한 추진한 정책 다수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미숙한 국정운영과 불통 논란 등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민간인의 국정 개입 사실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2016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ref name="impeachment" />되어 12월 9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주영재·허남설|제목=[속보]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찬성 234·대 56·무효 7·기권 2|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091610001|뉴스=[[경향신문]]|날짜=2016.12.09 16:10:00}}</ref>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ccourt.go.kr/cckhome/kor/event/adjuList.do|제목=선고목록 및 결정문 - 헌법재판소|확인날짜=2018-12-1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429073|제목=[영상]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3-10}}</ref> 탄핵 후에는 곧바로 3월 21일 검찰에 소환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ref>{{뉴스 인용 |title=[박근혜 검찰 출석] 최순실 ‘곰탕’·이재용 ‘자장면’…박근혜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 |url=http://news.donga.com/3/all/20170321/83428508/2 |work=동아일보 |date=2017-03-21 |accessdate=2017-05-18}}</ref> 3월 31일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최순실 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구속…"혐의소명·증거인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30/0200000000AKR20170330171251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3-31}}</ref>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17년 10월 16일 6개월인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으나 검사가 앞선 구속영장에 적시하지 않은 뇌물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기간이 최대 6개월 연장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 측은 발하였고 모든 변호인단이 사임하였다.<ref>[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10171022138598395_1
         === 생애 초 ===
         어머니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재의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동안 봉직한 경력이 있었다. 외조부 육종관은 딸이 과거 혼인 경력이 의심스럽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대하였으나 박정희와의 결혼 결심을 굳힌 육영수가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박정희가 있는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하였다.
         {{인용문|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 목사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이다.<ref>{{뉴스 인용|제목='격의 세월'에 최태민이 있었다.|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0711|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7-07-05}}</ref>}}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이 다수(133석/273석)이던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제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소추]]하였다. 박근혜도 당론에 따라 탄핵안 발의와 가결에 참여하였다. 비슷한 성향의 언론과 학계의 지원이 있었으나 극심한 역풍이 불면서 대다수 국민의 발을 샀고 한나라당은 최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제16대 대선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SK]]그룹 등으로부터 수수했다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유례없이 급락해 [[최병렬 (1938년)|최병렬]] 대표마저 사퇴하게 된다.
         [[2005년]] 12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여 처리하였다. 당시 대표인 박근혜는 곧바로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조차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한나라당이 무슨 장외 투쟁이냐"라는 비아냥도 있었고, 국회 등원에 대한 여론의 압박도 심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는 장외 투쟁을 계속했고, 결국 여야는 한나라당의 장외 투쟁 3개월 만에 사학법 재개정 논의에 합의하게 된다. 박근혜 대표는 주변의 대와 원외 투쟁에 소극적인 한나라당의 체질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재개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었다. 2004년 17대 총선의 '한나라당 천막 당사' 역시 "쇼 아니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상징물로 기억됐다.<ref>[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27709&year=2010 MB·박근혜 '세종시' 문제 왜 타협 못할까]{{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27709&year=2010 }}</ref>
         박근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나와 '줄푸세'라는 정책을 내세웠다. '세금은 '''줄'''이고, 각종 규제는 '''풀'''고, 법기강은 '''세'''운다'는 뜻으로 그의 대통령후보 경선시 주요 정책구호였다. 이 정책은 그녀의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정책이라는 평가가 있다. 자유주의(liberalism)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신분제 등으로부터 억압받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던 '고전적 자유주의자(liberalist)'라기보다는,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하고 각종 규제로부터 억압받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자(neo-liberalist)'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있다.<ref>[http://news.mt.co.kr/view/mtview.php?no=2007052913423936363&type=2 박근혜 바꿔야 산다.]<<[[머니투데이]]>> 2007-05-29 작성</ref> 이는 이후 제17대 이명박정부의 정책에도 많이 영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3280135 李 “김정일은 만만치않은 터프가이” 朴 “줄푸세 운동해야”] <<[[동아일보]]>> 2007-03-28 작성</ref>
         폭로전은 경선 때부터 시작되었다. 전당 대회를 3일 앞둔 2007년 8월 17일, 박근혜 경선후보는 "거짓으로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할 수 있습니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056525|제목 = 되돌아 본 대선|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12-20|확인날짜 = 2013-03-23}}</ref> 이명박 후보측은 도곡동 땅에 대한 검찰 발표가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체 조사와 각 언론사 조사를 종합할 때 10% 이상 차이로 낙승할 거라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제목 =  |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08-17|확인날짜 = 2013-03-2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927121334/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보존날짜 = 2013-09-27|깨진링크 = 예}}</ref> 이와 관련해 진수희 대변인은 "1위 후보가 압승을 해야 경선 후유증이 최소화 된다라는 생각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우리가 15% 격차로 압승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 그러나 박근혜 후보측은 자체 전수 조사 결과 근소하게나마 앞서기 시작했다면서 각종 의혹으로 이 후보에 불안감을 느낀 당심이 옮겨온다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 당시 세대별 지지율을 보자면, 이명박 후보는 3,40대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은 면,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ref name="imnews.imbc.com"/>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일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모두 승리하였지만, 1표를 실제의 5표로 환산한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명박에게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표의 등가성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었으나, 박근혜는 깨끗이 승복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명박,박근혜에 2452표차 승리…경선결과 집계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20/2007082000855.html |출판사 = 조선닷컴 |저자 = |쪽 = |날짜 = 2007-08-20 |확인날짜 = 2009-07-07}}</ref> 하지만, 논란의 연장선상으로 이후에 대선 후보 자리를 박근혜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5336 세상을 보는 다른 눈 "뷰스앤뉴스" - 이동복 "이명박, 박근혜에게 후보 양보하라"<!-- 봇이 따온 제목 -->]</ref>
         박근혜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 의견을 내자 대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새누리당|한나라당]]의 친이계와 친박계의 계파 갈등이 더 확산되었다. 2009년 여론조사 결과 텃밭인 영남 지역, 중장년층, 보수층의 박근혜 지지 비중이 1 ~ 2% 낮아지고 진보층, 충청 지역, 기타 연령대의 지지 비중은 1 ~ 2% 높아진 걸 볼 수 있는데 이 까닭은 여권 주류가 마음먹고 세종시를 지원해 경상북도의 혁신도시가 기업을 유치하지 못하게 된다는 불안감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시]] 논란 이후, 지지율이 다시 회복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0911/e2009111317515896380.htm |제목=親朴 일부의원들 박근혜에 기? |확인날짜=2009-12-07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0928164146/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0911/e2009111317515896380.htm |보존날짜=2013-09-28 |깨진링크=예 }}</ref>
         박근혜는 [[정운찬]] 총리가 "자족기능 강화를 위해 세종시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하자 조목조목 박하였다. 이 같은 비판은 10·28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 추진 행보에 속도를 붙이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였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9103120144229109&outlink=1 박근혜 "세종시 국민과의 약속" 정운찬 비판)</ref>
         미국산 쇠고기 대 촛불 시위가 있었던 2008년 6월 박근혜는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한 차례 한 뒤 줄곧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본격적인 거리 투쟁으로 비화된 5월에도 그는 당을 떠난 친박 측근들의 복당 문제 얘기를 주로 했다. 이후 계속되는 복당 요구에 네티즌들의 의해 '복당녀'라는 별명이 생기며 비판받기도 하였다.
         박근혜는 [[2010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달성군수]]로 출마했던 한나라당의 이석원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지만 이석원 후보는 무소속의 김문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박근혜는 "달성군민이 판단한 것도 존중한다"고만 입장을 밝혔다.<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상처입은`선거의 여왕 박근혜, 침묵 끝 한마디] {{웨이백|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date=20100607172404 }} 매일경제 2010년 6월 3일</ref> 차기 대선 후보로써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25.1%를 기록하는 등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ref>(http://www.ccdailynews.com/section/?knum=152755 박근혜 지지율 2.3% 하락) 충청일보 2010년 6월 3일</ref> 박근혜는 2010년 하기부터 차기 대선 행보에 초점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20일 열린 공청회에서 복지를 화두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박근혜는 인사말을 통해 "서구 선진국들의 전통적 복지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맞춤식 생활 보장형 복지 국가를 제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3860 박근혜 대권 행보 시작‥공청회 '대선출정식' 방불] mbc 2010년 12월 20일</ref> 이후 12월 27일 박근혜의 대선 구상을 내놓을 '국가미래연구원'이 출범했다. 출범식에는 대한민국 내 학자들과 [[이한구 (정치인)|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박근혜, 빨라진 대권 행보‥'싱크탱크' 출범] {{웨이백|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date=20130927121326 }} mbc 2010년 12월 27일</ref> 그러나 [[심재철 (1958년)|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 얘기는 감추고 무조건 복지만 잘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4333 한나라당 심재철 "박근혜 복지, 솔직하지 못해"] mbc 2010년 12월 25일</ref>
         불안한 당내외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획득하여 과 1당을 유지하였으며 그 후 공식적인 당 지도부가 출범하였지만 당내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 문제로 [[김문수 (1951년)|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과 대립하였고, 결국 [[정몽준]] 대표, 이재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 속에 경선을 치렀다. 8월 중순 치뤄진 경선에서 박근혜는 압도적 지지로 승리하였다.
         한편 경선 8일 뒤인 [[2012년]] [[8월 28일]] 박근혜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유족과 노동자들의 거부와 대로 무산되었다. [[전태일]]의 여동생이자 구 [[민주통합당]]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인 [[전순옥]]은 진정으로 [[전태일]] 정신을 생각한다면 쌍용차나 용산참사 희생자 등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먼저 찾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른바 국민대통합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현안이 일어나는 현장을 먼저 찾아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현재의 진실은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거의 삶이 일치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5·16 쿠데타와 유신, 군사 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8/28/0200000000AKR20120828048951001.HTML?did=1179m 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 연합뉴스, 2012년 8월 28일</ref> 그러나 [[이상일]] 대변인은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드시 물리치고 국민대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는 안철수 전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 유세를 함으로써 고비를 맞았지만, 지지층 및 여론의 굳건한 지지를 받으며 대선 기간 중 시행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지속적으로 1위를 기록하였다. 한편 대통령 선거 후에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2012년 12월 11일 [[국가정보원]] 소속 심리정보국 공무원들이 국가정보원의 지시에 따라 인터넷에 게시글을 남겨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공개했다. 이어서 해당 활동에 참여한 국가정보원 직원중 1명을 지목했다. 그러나 해당 직원은 오피스텔에서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고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으나, 국가정보원 요원은 전화를 통해 자신이 항상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대선과 관련한 어떤 글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ref>조혜령,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422919 국정원 직원 "문재인 후보 비방 댓글 단 적 없다"], 노컷뉴스, 2012년 12월 12일</ref>
  • 현이와 덕이 . . . . 62회 일치
         <ref>{{뉴스 인용 |제목 = 듀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1978년 현이와 덕이는 그들의 첫 공식 레코드 모음집인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일기장》, 《순진한 아이》, 《작은소녀의 사랑이야기》등이 담긴 정규1집을 취입, 출하였으며, 이 음은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게 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그러던 중 1990년 1월 [[장덕]]은 [[신년]][[드라마]] 《[[구리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였으나, 어릴때부터 앓아 오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과다복용 하게 되어 [[1990년]] [[2월 4일]]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5동 1008호 자신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해 8월 [[장현]] 역시 설암으로 사망했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 1990년 6월 장덕 추모 [[음]]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발표 : [[이선희]], [[전영록]], [[임종환]], [[진미령]], [[양하영]], [[임지훈 (가수)|임지훈]], [[박혜성]], [[지예]], [[김범룡]], [[최성수 (가수)|최성수]] 등 11명 참여 ([[리메이크]] · 미발표 곡 수록)
         === 현이와 덕이 음 ===
         * 1976년 : 컴필레이션 - [[친구야 친구 (음)|친구야 친구]] (3곡) - 대표곡 :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둥글둥글한 세상
         * 1978년 : 정규 1집 - [[순진한 아이 (음)|순진한 아이]] (12곡) - 대표곡 :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일기장, 순진한 아이, 작은소녀의 사랑이야기 등
         * 1978년 : 캐럴 - [[디스코 크리스마스 (음)|디스코 크리스마스]] (7곡) - 대표곡 : 징글 벨, 루돌프 사슴코, 실버벨, 싼타할아버지 오시네 등
         * 1985년 : 정규 2집 -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음)|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12곡) - 대표곡 :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 잠깐, 해바라기 사랑 등
         | 직업 = [[가수]], [[싱어송라이터]], [[작사가]], [[작곡가]], [[음 프로듀서]], [[배우]]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영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남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절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1975년 4월 만 14세(중학교 2학년)가 된 장덕은 오빠 [[장현]]과 함께 [[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으로 [[통기타]]를 메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To Be A Child Again>라는 곡으로 데뷔한다. <To Be A Child Again>는 장덕 작곡의 첫 발표곡으로 영어가사는 [[미8군]] 관계자이자 [[드래곤 래츠]]를 초청한 엘 클리나드가 붙인 것이다([[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 또한 엘 클리나드가 붙였다.). 장현 · 장덕 남매는 이 공연을 통해 출연료도 제대로 받았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의 쇼 매니저로부터 [[드래곤 래츠]]의 노래와 미모에 했다는 찬사를 들으며 엘 클리나드를 통해 출연계약까지 정식으로 요청받는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장현 · 장덕 남매는 곧바로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 되었고 1개월 뒤(5월) TBC TV의 청소년과 젋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오라오라에 출연해 장덕이 [[작사]] · [[작곡]]한 <꼬마인형>, <일기장>을 부르며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일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이 때부터 장덕은 [[작사]] · [[작곡]]에 능한 [[천재]][[소녀]]로 평가 받게 된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1976년) 장덕은 어머니에게 [[안양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처음엔 1년을 더 다녀야 된다며 말렸지만 하도 졸라대서 안양예술고등학교에 찾아갔고 다행히도 현이와 덕이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라서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입학을 허락받는다. 그 해 4월 장현 · 장덕 남매는 [[드래곤 래츠]]에서 현이와 덕이로 듀엣명을 바꾸고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등 3곡이 수록된 [[옴니버스]] 형식의 [[컴필레이션 음]] 《[[친구야 친구]]》를 발표한다. 그리고 그해 11월 개봉된 [[김응천]] [[감독]], [[임예진]] · [[이덕화]] · [[전영록]] [[주연]]의 [[영화]] [푸른교실]에서 현이와 덕이는 오라오라에 출연해 불렀던 <꼬마인형>, <일기장>을 [[사운드트랙]]으로 싣게 된다.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 《[[첫사랑 (장덕의 음)|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3년 10월 이혼을 하게 된 장덕은 가수 생활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 · 오빠 ·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고국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서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모 한장만을 남기고 한국으로 귀국해 한남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ref>[http://www.mbn.co.kr/pages/vod/programContents.php?progCode=613&menuCode=3439 아궁이 65회 - 파란만장 가족사] "MBN 2014년 7월 11일 방송 참조"</ref> 그리고 한달 뒤(11월) 그녀는 어렵게 서라벌레코드와 3년간 1000만원이라는 금액에 전속계약을 맺고(그녀는 오랫동안 공백을 가진 스타였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는 계약이 쉽지 않았다.) 타이틀곡 <날 찾지 말아요>를 비롯 <안녕히 계세요>, <가을에 만난 소녀>, <철없는 안녕>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1집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날 찾지 말아요>가 발표한 지 6달 만에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집계 한 달(1984년 5월) 동안 방송을 가장 많이 탄 노래 부문 3까지 오른다. 많은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장덕으로서는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 본인이 당시 방송을 꺼려한 탓인 지는 몰라도 방송을 가장 많이 탄 가수 부문에서는 순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이사이(1984년 2월) 장덕은 새 음을 내는 자매듀엣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를 작사/작곡하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국보자매는 현이와 덕이, 그리고 장덕에 의해 각각 발표된 바 있는 <끝없는 마음이야>, <첫사랑>까지도 리메이크 하여 자신들의 새 음에 수록한다.
         1984년 10월 [[이미례]] [[감독]], [[김진아]] · [[남궁원]] [[주연]]의 개봉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장덕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를 비롯 <사랑의 꿈>, <사랑과 인생>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한다. 하지만 대중의 응은 조용한 편이었다. 이에 장덕은 솔로 활동에의 어려움을 느끼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게 된다. 어린 시절 뭣 모르고 음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그 때와 한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가 성인이 되어 복귀, 겪게 되는 지금의 연예계는 너무도 달랐다. 혼자 라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 또한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어요"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현이와 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된다. 장덕의 볼 위에 장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덕은 오빠가 너무 고마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오빠에게 차마 부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1987년 7월 장덕은 타이틀곡 <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비롯 <이별인줄 알았어요>, <이 노래를 들을때면>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4집《[[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두봉엔터프라이즈를 통해 발매되었으며 재킷에 <골든앨범1집>이란 타이틀이 표기되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이별인줄 알았어요>가 가요톱10 등 가요 순위에 오르며 좋은 응을 얻었다. (이 시기 장덕의 오빠 장현도 타이틀곡 <마지막 진실>을 비롯 <연민>, <어느날>, <만날 수 없는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솔로 데뷔 음 《마지막 진실》을 발표하게 된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장덕 작사/작곡의 곡들로 채워져 있어 장덕이 오빠 장현을 위해 만든 앨범으로도 여겨진다.) 9월 장덕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 3회 [[ABU]](아시아 태평양 방송연합) 가요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는데, 당시 불렀던 노래 <너를 기다릴거야>는 1989년 발매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에 재편곡되어 수록되게 된다.
         1989년 2월 오빠 장현은 그동안의 밤무대 일을 모두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장덕의 매니지먼트로서의 일을 하기 위해 여의도 사무실에 코아기획이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한다. 이 때 훈이와 슈퍼스타, [[박혜성]] 등의 가수들도 영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 장현은 혓바닥에 혓바늘 것이 돋아 났지만 피로 때문에 생긴 것으로 여기고 넘어 갔는데, 장덕의 새 앨범《예정된 시간을 위해》의 작업이 막바지 이르고 있었을 때였다(6월 18일). 혓바늘로만 여겼던 것이 자꾸만 커져가고 통증도 심해져 장현은 다니던 작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걸 중단하고 국립의료원에 찾아 갔더니 설암 3기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앨범 작업 중 다가와 사실을 털어놓는 오빠에게 장덕은 곧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병원에서는 지나친 음주와 흡연이 병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장덕은 자신의 일에 신경쓰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병이라고 여기며 자신을 채찍하였다. 당시 장현은 혀의 절을 자르면 5년을 살고 그렇지 않으면 1년 밖에 못 산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을 하면 말을 할 수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수술을 거부하고 자가요법을 택하게 된다. 얼마 후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를 비롯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수 있니>, <슬픈 약속>, <수레>, <나의 공주님> 등의 곡들이 수록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발표된다. 그리고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좋은 응을 얻고 있었지만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게 되자 결국 장덕은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오빠의 병간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1990년 1월) 장덕은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KBS]] 신년 특집극 [[드라마]] <[[구리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장덕은 비중있는 역을 맡아 억척스럽고 발랄한 스무살 여성 역을 연기했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남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남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남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순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남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1990년 6월 장덕 추모 [[음]]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발표 : [[이선희]], [[전영록]], [[임종환]], [[진미령]], [[양하영]], [[임지훈 (가수)|임지훈]], [[박혜성]], [[지예]], [[김범룡]], [[최성수 (가수)|최성수]] 등 11명 참여 ([[리메이크]] · 미발표 곡 수록)
  • 전효성 . . . . 59회 일치
         ||<#00CED1> '''{{{#000000 신체}}}''' ||<(> 158.5cm[* 프로필에는 160cm로 되어있으나 본인은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160cm에 조금 미치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서 측정한 결과 158.5cm가 나와서 확인사살. 그래서인지 [[아는 형님]]에서는 (올림을 한 듯) 본인의 입으로 159라고 하였다.], 49.5kg[* [[http://entertain.naver.com/tvBrand/4show/news/read?oid=109&aid=0003069631&pid=hot.030.106.998217&cid=1002187|4가지쇼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하였으나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서 측정시는 49.5kg이었다 인터뷰에서 비활동기라서 그렇다고 했다가 운동은 하지만 근육 운동위주라서 몸무게는 빠지지 않는다고 하는 등 횡설수설을 해서 웃음을 주었다.]]], [[B형]] ||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광역시|광주]]에서 열리는 오디션[* 당시에 그룹 [[신화(아이돌)|신화]]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었던 회사에서 열린 오디션이었다.]을 보러 갔다. 부모님은 딸이 가수가 되는 것을 대했지만, 효성이 서울로 갈 차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결국에는 허락했다고 한다. 차비까지 직접 벌어서 치른 1차 오디션에서는 합격을 했으나 이어 치른 2차 오디션에서는 탈락을 하고 말았다.
         청춘불패 1화에서 지하 숙소가 공개됐다.
         [[http://osen.mt.co.kr/article/G1110070984|2015년 3월 10일부터 MBC Every1에서 방영되는 <천생연분 리턴즈>에 출연 확정되었다.]] 프로그램 특성 상 팬들은 좋지 않은 응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팬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생연분 리턴즈 프로그램 자체가 연애 프로그램이다보니...
         5월 15일 뮤직뱅크에서 [[지누션]]의 <한번 더 말해줘> 무대의 피쳐링 가수로 참여하였다. 무대 막바지에 지누션과 함께 자신의 솔로곡 <해>의 하이라이트 안무 두가지를 선보이며 깨알같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15년 5월 19일 <해> 활동 기간 중 엠넷 [[4가지쇼]]에 출연하여 자신의 속마음, 개인적인 이야기 등을 털어놓았다.~~저는 '가슴'이 아니라 '가수'입니다.~~ 주변인물로는 시크릿의 멤버 송지은, 오소녀 시절 같은 멤버였던 [[지나]], [[일밤]] [[승부의 신]]에 출연했을 때 프로그램 진행을 보던 김수로가 출연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http://naver.me/xe2lYtzh|4가지쇼 하이라이트 클립]]을 참고하길 바란다.
         8월 26일에는 MBC 추석특집 <듀엣가요제 8>에 섭외되어 일인과 듀엣 무대를 펼쳤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2743099|#]] 100명중에 64표로 성적은 하위권...
         SNL코리아7의 <위캔드 업데이트> 코너에 [[이원석]]과 [[김풍]]을 대신해 고정으로 합류한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597743|기사]] 지난 9일에도 같은 코너에 게스트로 출연한 바 있는데 당시에 응이 괜찮아서 고정이 된듯 하다.
         5월 22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였다. 남성 출연자들이 많았던 탓에 좋은 성적이 예상되었고 전후 통합 2위를 거두었다.
         2018년 10월 29일 토미상회 엔터테인먼트와 새로 계약했음을 알렸으나, [[TS엔터테인먼트]]가 전속계약 위을 주장하고 있다. 이후 11월 14일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TS와의 관계를 일단락했다. 승소로 TS 측에서 전효성에게 1억 3000여만원과 소송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경축 탈 TS!!-- 소송이 끝난 뒤 자신의 SNS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후련한 마음을 표출하기도...[[https://www.instagram.com/p/BqJLhWKgkdx/?utm_source=ig_share_sheet&igshid=10ae4h7tbvsnj|#]][[https://www.instagram.com/p/BqJ-IUlAaVT/?utm_source=ig_share_sheet&igshid=1my9qr2d0tmde|#]]
         연초 <처용> 방송 직후에 가진 인터뷰를 통해 솔로 떡밥을 던지곤 했는데 2014년 4월 17일 [[이단옆차기]]의 곡으로 솔로앨범을 발표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41708135750788&type=1&outlink=1|앨범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가며 큰 변수가 없는 한 5월 12일에 음과 음원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493077|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음악프로가 결방함에 따라 발매가 연기될 것으로 보였으나]] 5월 2일 소속사가 공식 SNS를 통해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712240712173658&substory_index=0&id=181948985202836|티저 이미지를 공개함에 따라 컴백이 확정되었다.]]
         5월 12일 [[https://youtu.be/HbNqVJdHlr8|뮤직비디오]]와 음원이 공개되었고 같은 날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1551|쇼케이스]]가 열렸다. 앨범 공개 당일날 각종 포털사이트에 전효성의 이름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며 뜨거운 응을 받았다.
         유튜브에 MPD라는 채널이 있고 이곳에서 찍어서 올려주는 직캠 영상이 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8iDKiRqNqhs|이 무대 직캠]]이 [[https://twitter.com/MnetMV/status/596232717697552385|최초로 백만뷰를 넘겼다고 한다.]](...) 최초로 백만 뷰를 넘긴 공로를 인정받아(...) <해> 컴백 첫 무대인 엠카에서 엠피디에게 직접 상을 받았다.
         첫 솔로 활동 성적은 공중파 음방 성적이 다소 아쉬울 수 있겠지만 각종 음원차트에서 좋은 순위를 유지하였고 앨범도 만장 이상 판매하면서 첫 솔로 활동 치고는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듯 하다. 이번 솔로 앨범으로 행사 등에도 많이 초청되었는데, 여솔로 혼자서 행사를 도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이번 솔로 앨범은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11월 19일 초청된 <상명대 지하방송제>에서는 팬들의 뜨거운 응으로 인해 앵콜 무대를 하기도 했다. "원래 저 이러면 혼나는데..."라고 하면서도 앵콜 무대를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워서 팬들은 이 무대가 가장 신났다는 평을 할 정도.]
         ==== Fantasia (해) ====
         2015년 4월 23일 미니앨범 티저 이미지가 공개되었다. 앨범 이름은 판타지아, 타이틀곡은 '해'. 작곡은 <Good - night Kiss>를 작곡했던 이단옆차기. 기사에 의하면 ‘판타지아’라는 제목은 총 다섯 곡이 수록된 첫 미니 앨범에 가장 나다운 모습과 그룹 활동을 통해서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함께 담아냈다“며 ”전효성에 대한 ‘판타지’를 채울 수 있는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본인이 말했다고 한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382103|기사1]]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09511|기사2]]
         2015년 4월 30일 앨범 자켓 이미지와 타이틀곡 '해'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Dhfup5lx1s|티저영상]] 컴백일은 2015년 5월 7일로 확정되었으며, 쇼케이스 개최와 동시에 컴백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식 카페에서 쇼케이스 신청을 받고 있다. 트랙 리스트는 01. 날 보러와요[* 작사에 일부 참여하였다] '''02. 해'''[* 처음으로 랩에 도전해 보았다고 한다. 노래 중간에 4마디정도 짧은 랩이 나온다.] 03. Taxi Driver 04. 꿈이었니[* 전효성 본인이 직접 작사하였다.] 05. 5분만 더
         5월 7일 정오에 음원이 공개되었고 당일날 전효성 관련 실시간 검색어가 뜨고 검색어 1위에도 오르면서 뜨거운 응을 얻었으며 다음 날 자정이 넘도록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2위를 계속 유지했다.
         하지만 첫날 뜨거운 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 음원 성적은 썩 좋지 못했는데 타이틀곡 자체가 너무 밋밋하고 대중들에게 무언가를 확 어필할 만한 임팩트가 없었다.[* 첫 솔로앨범 타이틀곡인 굿나잇 키스는 "잘 자요 우리애기"라는 확 꽂히는 가사와 트랩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비트로 인해 상당한 중독성을 유발했지만 이번 타이틀곡인 해는 그런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팬들이나 대중들 중에서는 3번 트랙의 <Taxi Driver>를 더 선호하는 의견들도 많다.
         거기다 타이틀곡 <해>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효민]]의 <Nice Body>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일어나기도 하였다.
  • 박명수(MC) . . . . 54회 일치
         '''[[유재석]]의 평생 동자'''
         어린 시절부터 개그맨의 꿈을 품고 방송가에 데뷔하고 싶어했지만, 정작 그 방법을 몰라 한 동안 3사 방송사를 떠돌면서 무작정 부딪치는 과정을 복했다. 이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국방송공사|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 방청객으로 참가했는데 소개를 받아 KBS FD로 일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때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mc [[손범수]]가 웃기고 재능있다며(...) 방송 데뷔를 권유했고''' 이후 [[MBC]] 4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본격적으로 개그맨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박명수는 데뷔하자 마자 이름을 알리고 무명시절이 거의없던 개그맨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오늘은 좋은 날>, <인생 극장> 개성적인 연기와 개그를 펼쳐보여 인지도를 확보하게 된다.
         90년대 중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MBC]] 방송국 수위 아저씨 역할로 나와서 독특한 표정으로 "우쒸~"와 "국민 여러분, 제발 ***하지 마세요~"라는 시리즈 유행어로 신인시절 인기몰이를 하였고 그 유행어 덕분에 CF도 촬영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CF에서 개그맨이 원톱으로 출연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아직 신인티도 완전히 벗지 못한 개그맨은 더더욱. 대중적으로도 당시 박명수는 상당히 유명했는데 일례로 1990년대 중 한창 인기몰이를 했던 아이큐 점프의 연재만화 [[달숙이]]에서도 박명수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패러디 병맛만화 정도로 볼 수 있는 달숙이에서 언급된 것들은 전부 당대 대중문화에서 유명한 것[* KOF의 캐릭터라거나 터미네이터 등.]들이었는데 그 중에 박명수가 있었다는 점은 당시 이미 인지도가 상당하다 못해 높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당시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연예인이라든가 대중문화는 달숙이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외의 광고에서도 활동했었는데 특히 계속 복장을 바꿔가며 연기했던 아이스크림 광고가 유명하다. 그리고 본인의 이름 덕에 소화제 까스명수의 전속모델로 [[김구]] 선생 전문배우 [[이영후]]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90년대에의 콩트 프로그램에서는 현재의 버라이어티 예능쇼처럼 무작정 한 장면이나 단락적으로 웃기고 그걸 유재석과 같은 중재자가 받아서 잘 정리해주는 게 아니라, 일정한 스토리의 틀이나 흐름 속에서 희노애락 등을 나름대로 표현해 가면서 김국진이나 홍기훈, 김진수처럼 기본적인 연기력+전으로 웃기는 패턴이었기 때문에 대본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박명수는 자연스레 그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순발력이 중요해진 이후 시점의 코미디 하우스 등에서의 무대에서조차 '약방에 감초'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박명수는 콩트에서는 특이한 얼굴이나 말투를 바탕으로 극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이었다. 종종 회자되는 박명수의 대표코너격인 [[코미디 하우스]]의 3자 토론이 대표적인데, 이회창 역으로 출연하며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기에서조차 박명수는 약방의 감초 역할에 불과했다. 코미디 하우스의 대표코너는 [[정준하]]의 출세작 노브레인 서바이버, 조혜련의 골룸 개그, 김현철의 1분 논평 등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대 박명수의 위상을 대략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3자토론은 코미디 하우스 내에서 응이 그렇게까지 좋진 못했던 코너여서 자주 편집되기까지 했으니...
         박명수 본인이 음활동에 집중했던 것도 당대 행사진행에서 개그맨이었던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요소였다. 나이트 행사를 진행하면서 본인은 한시간이나 붙어있어야 비로소 출연료를 지급받는 것과 달리 가수는 잠깐 방문해 한 두곡 부르고 가 버림에도 불구하고 페이가 더 세다는 사실을 알곤 아예 내가 진행하고 내가 노래하겠다는 식으로 나왔던 것.[* 그래서 앨범이 자꾸 망하는데 왜 계속 내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다른 데서 써먹기 때문에 망해도 망한 게 아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히트곡이 되면 좋겠지만, 실패해도 본인 행사에서의 레퍼토리는 늘어나기 때문.] 실제로 박명수의 앨범의 구성을 살펴보면 행사음악용 구성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클럽음악에 진출하게된 현재 시점에서도 마찬가지. 2000년대 중후이나 되어서야 개가수가 비로소 자리를 잡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인상적이다.
         방송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 친한 주변 사람들을 은근히 챙기는 면모도 있다. 박명수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한경호 전무도 <4가지쇼>에서 방송의 모습과는 달리 친절한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사실 방송의 모습과 일상생활이 똑같았다면 매니저가 상당히 자주 바뀌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한 걸 생각하면 분명 사실인 듯. 코디나 매니저와 같은 주변인에게 생일 선물로 고가의 [[맥북 에어]] 등을 사주기도 하며, 자신과 오랫동안 일한 한경호 전무에게는 고깃집을 차려주기도 했다.[* 뮤지컬 [[무한상사]]에서 정준하 과장이 퇴직하고 차린 고깃집 -> 연탄불 후라이집이 바로 한경호 전무의 가게이다.] 그래서 한경호 씨는 자신은 박명수가 아니면 매니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고도 한다. 또한 [[유재환]]에게도 무한도전 방송에 출연할 때에나 SNS에 사진을 올릴 때에는 호통을 치거나, '인기 많은 재환이 나가라' '뭐가 귀엽다는 거지 어이없어' 등의 말을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는 면에 실제로는 너무나 잘 대해 줄 때가 많다고 한다. --츤츤 데레데레--
         그리고 가끔가다 '''무한도전 스태프들이 어떤 주제로 멤버들을 평가할 때 보면 의외로 좋은 평가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 1위다.'''[* 누가봐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은 유재석은 친해서 장난으로 약올리려고 투표를 했을진 몰라도 워낙 FM적인 인생을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는 증언은 종종 있다.] 2009년 세계여행 특집에선 <같이 여행가고 싶은 멤버>투표는 2위[* 총 67명 중 17표, 이유 "방송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자상하다, 개인활동을 좋아해서 나한테 신경안 쓸거 같다."] /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에서 <잘생긴 멤버>투표는 하하와 함께 공동 1위(!)[* 투표를 누가 하든, 이런 외모 투표는 거의 대부분 인기투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누가봐도 잘생겼다고 보기 힘든 박명수가 스태프가 뽑은 외모 순위에서 1위를 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평소에 스태프들 사이에 박명수 이미지가 나빴다면 절때 불가능 했을 거란 소리.] 2012년 300회 특집에서 <멤버 전원 싱글이라면 사귀거나 소개시켜주고 싶은 멤버>투표는 3위[* 젊은 박명수라면 가능... 절때 바람 못 필거 같아서. 참고로 이때 정준하와 길은 0표였다.~~안습~~] 2015년 425화 오프닝에선 <오디오 끄고 싶은 멤버>는 5위[* 이때는 멤버가 5명이었다. 이유는 말을 별로 안해서] <사진 찍고 싶은 멤버>는 2위[* 박명수가 찍지 말라고 해서 거의 못 찍어서 그래서 더 찍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총각이면 이상형 순위>는 1위[* 한 명의 여자작가가 뽑은 순위에서 1위를 했다. 이유는 질리지 않을 거 같아서] 2017년 히든카드 특집에선 '스태프들이 돈을 얼마나 빌려 줄지' 배포를 적었는데 박명수 매니저가 5,000만원을 적음으로써 1위 및 배포킹으로 뽑혔다. 사실 이 스태프 투표가 의외로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은 멤버들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해 스태프들은 사적인 모습도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는 안티의 대부분이 방송 때문에 생긴 것인데[* 보통 욕먹는 타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사생활은 매우 깔끔한 사람인데 오직 방송 모습때문에 안티가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 만약 방송 외적으로도 그랬다면 스태프들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렸을리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대체로 밥값을 잘 쏘는 멤버로 보인다. 멤버들끼리 떠들때도 큰 거는 재석이형과 명수형이 산다고 증언하기도 했고]
         [[유재석]]에게는 말로는 너만 없으면 내가 1인자였다느니 언젠가 내가 널 밟고 올라설거라니 떠들어대지만 속으로는 무명이었던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그를 무척이나 아끼고 유재석 또한 이런 박명수를 못 버린다.[* 이것을 잘 보여준 때가 2012년 [[무한도전]]에서 [[무한도전 말하는대로|말하는대로 추격전]]을 할때인데 추격전이 끝나갈 무렵, 재석의 버스에 '왜'를 붙여주기로 한다. 그런데 말로는 잘되는 네가 '''꼴보기 싫으니까'''라고 했는데 막상 메모지에 적은 말은 잘 되는 네가 '''부러우니까.''' 이것만 봐도 그가 유재석을 질투하고 시샘하는건 그저 컨셉이란걸 알수있다.] 그런데 [[이윤석]]의 증언에 의하면 유재석이 MBC 진출할 때 선봉에 서서 대한 사람이 박명수라고 한다. 그 때 당시에 유재석이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라이벌이라 여겨서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이후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실제로 형제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등 정말로 특별히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듯 하다. 그래서인지 프로그램 내에서도 다른 멤버들이 그럴 때는 별 응이 없다가도 유재석이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면 진심으로 섭섭해하거나 민감한 응을 보일 때도 있다. 한가위 특집을 할 때 유재석이 박명수네 집 앞에 영수증을 두고 왔다는 것을 알자 "어떻게 재석이가 나한테..."라면서 계속 중얼거리는 걸 보면 진짜 가깝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특집에서도 미리 탈락된 멤버를 데려와야 통과할 수 있는 미션에서도 시종일관 유재석만 따라다니다 나중에 유재석이 정준하와 동행하게 되자 진심으로 서운해하여 나머지 둘이 당황하기도 했다. 자유로 가요제때도 유재석이 거머리 팀을 이길 수 있다에 투표하자 "너는 가요제 때 죽여버릴거야! 니네 둘(유재석과 유희열)은 내가 죽여버릴거야!"라며 격하게 응한다. ~~덤으로 낀 유희열 지못미~~ 세븐티 핑거스가 눌러도 별 응없다가 유재석이 눌렀다는게 나오자 격하게 응하는 걸 보면...
         박명수가 종종 써먹는 레파토리인 "유재석 자동차 세차"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쉬는 날 유재석이 전화해서는 "형 뭐해? 할 일 없으면 와서 세차 좀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박명수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 유재석이 당황해했고, 박명수는 "했냐 안 했냐? 했냐 안 했냐?"하면서 공격했다. 유재석은 다시 장난인 걸 다 알면서 왜 그러냐고 넘어가고, 박명수는 PD에게 "이거 방송 꼭 내보내라"면서 마무리지었다. 평소에 저런 농담을 하는걸 보니 진짜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아니면 진짜 [[노예]]거나...~~ 2016년 중엔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아이디라며 '''SOO LOVES YOU'''라고 유재석과의 셀카를 올리며 ~~아부~~ 친분 인증을 한 바 있다. "피만 안섞인 형제"라는 글귀에서 그가 유재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와중에 비교샷으로 조세호와의 셀카에는 '동료^^'라고 적어놓은게 압권(...).
         [[동명이인]]인 전 [[프로게이머]] --[[박명수(1987)|박명수]]--와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스카이라이프에서 런칭하고 있던 채널 '게임 tv'에서 이벤트전 형식으로 '스타 vs 스타'라는 이름의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연예인 박명수가 '연예인 게이머단 단장'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게이머 --박명수--와 경기를 했다. 경기 결과는 다들 예상하는 대로 발렸다. '''깔끔하게 발렸다.''' --당연하지. 프로게이머랑 일인이 붙는데...-- [[디시인사이드]]에 박명수 갤러리가 생겼을 때 [[스갤]]러들에 의해 2~3일간 신명나게 털린 적이 있다. 첫 날은 심지어 '''프로게이머 --박명수-- 프로필이 공지로 올라가기도 했다.''' [[흠좀무]].
         이 이야기는 2015년 [[우리동네 예체능]] 사이클편에 박명수가 [[https://www.youtube.com/watch?v=gXeDvNcMLBs|지나가다 출연하면서]] 한번 더 언급이 되었다. 박명수의 말에 따르면 24년 전 식사를 하고 있던 우리를 괴롭히는 불량배를 보고는 "나가있어요. 나가있어요. 걱정하지마요" 그러더니 아다닥 아다닥 아다닥 하는 소리가 났고, 그 이후 강호동이 "들어와요" 해서 들어가보니 그 세명이 앞만 보고 밥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강호동은 없던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처럼 한다고 또 받아쳤으나, 박명수가 --목숨을 걸고--"'오늘은 좋은날' 하던 시절에 그랬잖아!"라고 시점까지 이야기하며 박. 그러자 강호동은 '''의자를 들었던 기억은 난다'''라고 말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이훈이 20대 초에, 살면서 유일하게 [[헌팅]]을 한 여자가 "나는 연예인이랑 사귀고 있음 ㅈㅅ"라면서 거절하자 그게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박명수"라는 한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박명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어어~ 고척동에 걔~ 잠깐 만나줬던 앤데~" 하면서 자랑을 하더란다.
         일단 기본적으로는 [[유재석]] 빼고는 동생들 모두에게 무신경한 편이다(...).[* 그러나 [[유재석]]도 별 다르지 않은게 [[무한도전/방영 목록(2012년)|쉼표 특집]] 중 유재석의 마니또가 되었는데 소울푸드라고 가져온 게 그냥 찬가게 찬이었다(멸치볶음 등). 더불어 무도 맴버중 가장 성의없게 준비했다. 유재석은 해물찜 포장, 하하는 해산물 들어간 궁중 라면, 형돈은 치킨과 사과, 홍철은 짜장 떡볶이를 포함한 분식과 쥐포, 바나나 우유, 길은 와사비 과자등 간식거리, 준하는 팥죽등 성의가 있었는데 명수옹꺼는 밥이 추위에 얼어 돌밥이 되었다.] 방송상 컨셉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유재석]]과 제일 친한 건 또 맞는 말이라 대기실에서 모습만 봐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 유재석 옆에 착 붙어있고 음식같은 것도 유재석에게만 먹어보라고 살뜰하게 챙겨서 멤버들이 종종 서운해할 때도 있다. [[무한도전/방영 목록(2012년)|쉼표 특집]]에선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평상시에 따뜻한 말을 안 해주는 편인데다, 할 말 안할 말을 가리지 않고 마구 해버리는 안좋은 버릇이 있어 멤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동생들에게 얄미운 짓을 했던 적이 좀 많아서(...)[* 대표적인 경우가 [[정준하]]의 바지를 벗긴 일이다.] 따뜻한 말 좀 해주라고 원성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노홍철]]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형수님과 함께 백방으로 알아보거나 [[길(리쌍)|길]]에게 조언을 건네고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하는 등 유재석처럼 동생들을 보듬어주거나 살갑게 대해주는 그런 게 서툴 뿐이지 본심은 멤버들 생각을 많이 해주는 편인듯 하다. ~~[[츤데레]]~~ --아니지 [[욕데레]]지--
         흔히 어린시절 공병 줍고 다녔던 시절, 동급생들에게 눌려지내던 쭈구리 시절 등 본인의 주장에서 비롯된 가난한 가정사가 언급되는데, 사실 군산에서 살때는 엄청 잘 살았다. 방마다 화장실을 따로 썼고, 집 안에 [[유치원]] 앞에 있는 그런 [[놀이터]]가 있었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말하길, 학창시절 당시 기백만원 하던 컴퓨터(MSX급)를 아버지가 사주셔서 집에서 프로그램도 직접 짜며 놀고, PC용 게임도 많이 알고 있었다. PC통신도 즐겨한 듯한 언급이 있었다. 박명수의 어린 시절이 1970 ~ 1980년대라는 걸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중동으로 가서 달러를 벌어오시기도 했고 귀국 후 아버지가 운수업을, 어머니가 [[만화방]], 그것도 컬러 TV[* 지금이야 훨씬 더 선명하고 깔끔한 컬러 TV가 집마다 한 대씩 있고, 이젠 컬러냐 아니냐가 아닌 HD냐 LCD냐 등을 따지는 시대이니 별로 대단하지 않지만, 70년대 초에는 흑백TV도 부의 상징이었고 컬러방송이 늦게 시작되어서 그때쯤 되어서야 컬러TV의 보급이 시작된지라 1980년대 초 기준으로 컬러TV를 가진사람이 아직은 적었을때였다. 그래서 어쩌다 컬러 TV를 들여놓은 영업장에서는 컬러 TV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대가로 시간당 요금을 받는 식으로 굴려먹기도 했다.]가 있는 만화방까지 운영한 적도 있었다. 다만 사업이 뒤집어지면서 그 많던 재산을 죄다 날리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200만원 융자 받아서 사글세 방에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연대보증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공병 줍는 시절과 쭈구리 시절은 아마 이 시절을 기점으로 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싱글 와이프에서 밝히길 결혼 전까지 장모님이 특히 대가 심하셨다고 한다. --진짜 장모 거세게 대라스는 이쪽이네...-- 장인어른과 장모님 모두 교육자셔서 매우 엄격하시기 때문.[* 싱글 와이프에서 한수민이 밝히길 대학 MT도 못가게 하시고 배낭여행은 꿈도 꾸지 말아야했다고 한다.] 사실 박명수의 방송용 캐릭터가 좋은건 아니었고 그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분 멋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후일 상견례 자리에서 장모님이 명수의 어머니께 제가 너무 대해서 아드님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죄송하다고 하자 명수 어머니 가라사대 "저라도 대했을겁니다." 이 한마디에 장모님이 빵 터지셨고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지금은 장인, 장모가 업고 다닌다고.
         싱글 와이프에서 박명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결혼전에 한수민이 미국에 공부하러 가야하니 헤어지자는 말을 했고 이에 명수는 그래도 여친이 잘되면 좋은거라고 생각해 받아들이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전화가 와서는 하는 말이 "나 미국 안 가. 안 간다고." 알고 보니 어떻게 응할지 궁금해 장난친것. 당연히 짜증이 폭발할뻔했단다. 그리고 결혼후에도 딸과 놀아주는데도 더 재미있게 놀아주라는 아내의 요청에 짜증이 날려다가도 나를 위해 미국행도 포기해줬는데 이정도의 힘듦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아내의 말을 잘 따라준단다.
         그렇게 언급만 되고 지나가기만 했던 아내 한수민이 무한도전 방송 이래 12년 만에 처음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하였고 별과 함께 노래방에 와 있었다. 별이 자기가 밤늦게 놀면 보안관 드립 치며 체포하러 오는 하하에게 뿔나 있던차에 저번에 한번 무도 카메라까지 있는 상황에서 잡으러 온걸 기억하고 한수민을 물귀신 작전으로 함께 나오게 한것. 덕분에 박명수는 방송인 24년, 무도 12년 역사상 가장 크게 당황했다. 아내의 얼굴이 확인되자마자 이어폰을 집어던지고 전화하러 녹화장소를 이탈한다. 피부과 의사답게 피부관리를 아주 잘해서 상당히 동안이다.[* 박명수의 아내가 엄청난 미인이라는 복선이 이날 방송하기 이전에도 조금 있긴 하였다. 2012년 하하의 결혼 축의금 관련 특집을 할 당시 시민들한테 특정 멘트를 들으면 들은 횟수만큼 정해진 축의금에 변화를 주는 미션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때 박명수가 들을 말은 '''"어려보여요"'''였고 그말을 듣기 위해 시민 한 명을 끌어들여 어때보이냐고 하자 부인 분이 아깝다는 소리를 들었다.~~해골 펑!~~] 이 때의 박명수의 모습은 영락없는 [[애처가]].~~박명수랑 같이 있으면 부부가 아니라 딱 삼촌과 조카 같다 하는 네티즌도 있다 카더라~~ 한수민 본인은 방송 출연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다고 하지만 출연한다면 CF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일인이라 섭외가 안되니 방송 데뷔를 해서 인지도를 쌓아 CF에 나오겠다고 한다. 찍고 싶은 CF는 마트 CF. 그리고 처음 방송 출연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털털하고 거침없는 멘트를 날려 웃음을 자아냈다. 심지어 남편보다 더 재미있다. 또한 웃는것도 매우 호탕하고 명랑하다. 직접해보니 녹화가 어렵고 힘든것임을 알았다고 하면서 그간 남편이 날로 먹는줄 알았다고 한다. 자막도 적절하게 '방송인의 나쁜 예 박명수' 라고 뜬다. 방송인 박명수와 남편 박명수의 차이에 대해 묻자 집에서는 재미 있는데 TV에선 재미가 없는걸 보니 방송 울렁증이 있는거 같단 발언으로 측근인 무도 멤버들 포함 좌중을 술렁이게 하고 --경력 24년차가 방송 울렁증?-- --명수 : 대상까지 탔는데 무슨 소리야!-- 박명수가 지방 재배치 한후 어떤거 같냐고 하자 크게 달라진건 없는데 자기가 정말 잘생겨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냅두셨단다. 바로 날아오는 해골은 덤. 박명수 3행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이...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물으며 방송 나가면 좋은 응뿐 아니라 나쁜 응도 부지기수라 힘들거라고 맴버들 모두가 걱정하고 박명수 역시 나쁜 응으로 상처받는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간 대해왔고 못 견딜거 같으면 하지 말라고 하자 이에 "한번 견뎌 볼께요."로 쌍 해골을 날려준다. 해당 분량이 방송되던 날 검색어 순위 목록에 ''''한수민 무한도전''''이라고 뜨기도 했다.
         요새는 가족리얼예능도 유행이기 때문에 방송국 예능팀에서 섭외할 경우에 지목된 연예인인 경우 배우자가 일인 경우엔 당사자의 동의나 혹은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출연을 자제하는게 원칙이다.
  • 몽키 D. 루피 . . . . 52회 일치
         '''~~초엔 천재속성도 있었지만..~~뇌는 슬라임 급이지만 개념은 작중 최고인 자기 해적단 최고의 근육머리 바보(...)겸 개그캐''' 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다, 특히 머리 쓰는 일을 잘 못한다. 독불장군 기질이 심해서,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끌어가는 경우도 많다.정신력과 의지력은 초인적인 수준이며(쉽게 말하자면 그냥 멘탈이 강하다) 동료애도 강하다. 다른 사람의 동료애에도 공감하고(그래서 아론의 동료를 방패로 썼나?)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하며, 대로 동료를 속이는 것을 혐오한다. 동료들이 루피를 따르는 이유 또한 루피가 매사에 솔직하고, [니코 로빈|동료의 ][바로크 워크스|과거가 어떠하든] [프랑키|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동료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프랑키|조선공]이나 [니코 로빈|고고학자]는 첫 만남 당시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일단 동료로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그런 과거는 일절 따지지 않고 대우해준다.--좋게 말하면 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거지만 루피 성격으로 봐선 멍청한 게 더 잘 어울린다.--물론 이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샹크스와 빨간 머리 해적단의 영향을 받은 건지 수직적인 관계보다 허물없이 대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남자의 로망]]에 약하다. 합체, 광선빔, 브레스, 7단 변신 등등을 보면 눈을 빛내며 심하면 울기까지 한다. 일적으로 소년들의 로망으로 통하는 장수풍뎅이도 굉장히 좋아해서, 자야에서는 사우스 버드를 잡느라 한창 바쁜 와중에 쵸파와 같이 곤충을 잡고 있었다(...)[* 사족으로 이 장면에서는 '''그 루피가 무언가를 설명하는 희귀한 장면이 나온다(!!!)'''--그 설명도 엉망인건 넘어가자.--]
         초에는 생각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알라비스타나 [[위대한 항로]] 사건을 겪고, 다소 성장한 듯. 상황을 내던지는 듯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고, 감으로 판단해서 안 될 것 같으면 주저없이 그만둔다. 정상결전 당시 위급한 상황에서도 미호크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샤본디 제도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전원에게 도망치라 명령했다. 굉장히 무모했던 [[골 D. 로저]]나 [[포트거스 D. 에이스|로저의 아들]]('''스포일러''')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물론 '''일적인 루피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냉철한 구석도 있다는 뜻이지, 루피라는 인물 자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다. 물러설 때를 알기는 하지만 당장 동료나 친구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에니에스 로비|상]][[정상결전|황]]이면 몇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달려든다.
         아론 파크를 공격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나미(원피스)|나미]]에게 밀짚모자를 씌워준 뒤 아론 파크로 가는 장면이 있다. 또한 드럼 섬에서는 [[상디]]와 함께 나미를 데리고 의사를 찾기 위해 드럼 록키를 올라가던 중, 라판이 일으킨 눈사태에 의해 상디가 눈 속에 파묻히자 나미에게 잠시 밀짚모자를 맡기고 상디를 찾기 위해 눈으로 뛰어든다. SBS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이므로, 이걸 남에게 맡긴다는 건 '''너는 내 동료이며, 나는 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루피가 처음으로 동료에게 밀짚모자를 씌어준 것도 나미가 처음이다. 아론 파크편에서 나미가 더 서글프게 눈물을 흘렀던 것은 그런 루피의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
         모두가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고, 일단 루피부터가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타입인 만큼 안 친한 멤버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해적단 내에서는 [[우솝]]과 가장 친한 편이다. 우솝이 좀 심한 겁쟁이에 평범한 인체스펙과 힘을 가지고 있는 면에 루피는 무모한 성격과 악마의 열매로 인한 특이체질과 엄청난 힘 정도만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정신세계와 개그코드는 그야말로 [[소울메이트]]급으로 죽이 잘맞는다. [[남자의 로망]]을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둘다 [[빨간 머리 해적단]]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알다시피 [[샹크스(원피스)|샹크스]]는 루피의 '''인생 나침''' 같은 존재이고, 동료인 [[야솝]]은 우솝의 '''아버지'''이다.] 그와 연령까지 똑같다.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참 많은 콤비. 그래서인지 우솝이 루피의 바보짓에 태클을 많이 거는 만큼 루피의 장난에 가장 많이 받아주고 같이 행동하는 것도 우솝이다. 해적단에 별일 없으면 항상 루피 옆에는 우솝이 붙어 있다. [[토니토니 쵸파|쵸파]]가 합류한 이후로는 이 셋이 늘상 붙어다닌다. 일명 '''막내라인.''' 그렇기에 이 둘이 다투는 모습은 [[워터 세븐]]에서 [[고잉 메리호]]를 놓고 싸운 것이 유일했을 정도로,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가장 친했던 멤버와의 처절한 결투를 비극적으로 그려내었다. 물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프랑키|새로운 동료]]와 [[사우전드 써니 호|새로운 배]]가 생겼고, 배에 대한 트러블로 잠시 해적단을 이탈했던 우솝도 다시 돌아왔지만. 추가로 우솝이 루피에게 해적단에 멋대로 나간 점을 사과하고, 자신을 다시 넣어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런 우솝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눈물콧물범벅이 된 루피의 모습은 참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솝의 재합류 이후로는 역시나 쵸파랑 항상 셋이서 붙어다닌다.
         조로 왈, '''"큰일났다! 저녀석은 [[바보]]라서 최면이 보통 사람보다 강하게 걸려!"''' 이 모양이라서 정신계 공격인 캡틴 [[크로]]전에서 [[쟝고(원피스)|쟝고]]의 세뇌부터 시작해서, [[바로크 워크스]]전에서는 [[미스 골든 위크]]의 색깔 조종, 그리고 [[스릴러 바크]]전에서는 [[페로나]]의 [[홀로홀로 열매]], [[브룩(원피스)|브룩]]의 노래 공격 등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극장판중 하나에서는 짐승들을 자극하는 음악소리에 자신이 응하고 으르렁 대기도 했다.다만, 생각이 하나로 좁혀질 때는 통하지 않는 모양. 원래 브록의 노래 소리만 들어도 영향을 받는데 스트롱 월드에서는 시키를 쓰러뜨린다는 일념으로 좁혀진 루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드래곤볼]]의 [[손오공(드래곤볼)|손오공]][* 사실상 거진 오마쥬 캐릭터 같은 느낌에 가깝다. 먹보에 감으로 행동하고 동료를 중요시하며 자유로운 성격에 강한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호승심, 적을 잘 죽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그리고 죽었다가 살아나면 강해지는 사이어인스러운 면까지] 으로 대표되는 먹보 캐릭터로 식사를 하루 다섯 끼로 계산하고[*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 [[크로커다일]]과의 전투 후 의식을 잃고 자신이 3일만에 깨어났다는걸 알자마자 한다는 말이 '15끼를 건너뛰어 버렸어!!(...)'. 하루에 '''5끼'''씩 3일로 계산하면 15끼가 된다. 그런데 원래 뱃사람들은 환경 적응과 육체 활동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서, 보통 식사를 다섯 끼 정도로 계산하여 섭취한다. 그렇지만 원피스의 세계에서는 뱃사람들도 세 끼를 먹고, 다섯 끼를 '유독 많이 먹는' 편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한 끼에 먹는 양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아서 뱃사람도 세 끼만 먹는 걸지도. 작중 식사 씬을 보면 연회가 아니라도 확실히 양이 많다.] 특히 고기라면 환장을 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게 고기일 뿐이지 다른 음식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고, 더불어 고기가 많다고 고기를 우선적으로 먹거나 하지도 않고 있는 대로 다 집어먹기 때문에 사실 영양이 치우쳐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무엇보다 상디가 영양 밸런스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어수룩한 요리사도 아니다. SBS에서 독자가 "루피는 그렇게 많이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나요?" 라고 작가에게 물어봤는데 작가 왈 '''"저렇게 날뛰고도 살이 안 빠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하루 이상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고기라는 발언에 응해 깨어나기도 했다. 다쳐서 의식 없이 드러누워 있으면 굶어야 하는 게 싫어서 그런지 후 들면 자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등 좀 이상한 데로 발전하기도 했다.[* [[CP9]]의 [[로브 루치]]와 싸우고 이틀간 자면서 먹는 스킬을 썼다. [[몽키 D. 가프]]가 사랑을 실은 주먹으로 때려서, 강제로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일어나면 밥 먹은 기억 없다고 또 처먹겠지~~ ~~대표적인 먹보 캐릭터인 손오공도 차라리 잠을 푸욱 자면 잤지, 자면서까지 저리 먹어대지는 않는다.(...)~~ 비명이 나올정도로 맛이 없다는 악마의 열매를 와작와작 잘 씹어 먹은걸 보면 맛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싫어하는 음식은 하나뿐이고 그 하나도 맛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다.
         완력에 있어서는 사실 극초에는 고무의 특성을 위시해 강력한 공격을 가하는 듯한 연출이 많았지만, 알라바스타와 하늘섬을 거치면서 완력이 점점 '''이상할 정도로''' 강해진다. 아론과 싸울 때까지만 해도 피스톨을 아론에게 잡힌 적이 있고 철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오는 장면의 임팩트가 강한 정도였다. 그리고 피날레에서는 고무고무 도끼로 전력을 다해 두들겨서 아론 파크를 내려앉게 한 정도인데, 에니에스 로비 시점에서는 손이나 발 어디든지 대충 뻗으면 '''석조 건물'''들(…)이 스티로폼이라도 된 듯이 우르르 무너질 정도니 초과 위대한 항로 중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전투 스타일은 조로나 상디에 비해 기술 자체의 임팩트가 적어보인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후으로 갈 수록 미친 듯한 완력에 더해 패기와 기어 2,3 까지 더해지면서 실상 하자가 없어졌다. 대표적으로 한 방 임팩트가 강한 엘리펀트 건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버프 두개 걸고 쏘는 단순한 평타'''이다.(…) 그러나 작중 스케일이 공성포나 마찬가지라 위력이나 연출 면에서 한방 필살기로써 하자가 없다.
         주인공이 크는 건지 필살기가 크는 건지 모를 괴이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상인 배틀만화에서 필살기를 부각시키지 않고도 화려한 전투 씬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액션 마니아들에게 작품의 매력의 하나로써 어필된 바가 크다. 보통 이런 스타일의 캐릭터들에게는 [[사카타 긴토키|간판 기술의 부재]]라는 부담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인기가 있는 기술은 굉장히 많고[* 고무고무 바주카나 고무고무 도끼의 경우는 사실 많이 쓰는 편도 아닌데 인기가 좋고 폭풍우도 따지고 보면 두세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인기와 지명도는 굉장히 높다.][* 사실 초의 강력한 필살기가 후에서 인플레를 맞고 쩌리가 되는 상황도 배틀만화에서 많이 보여지는 경향인데, 루피같은 경우는 되려 초에 사용하던 기술이고 후에 사용하던 기술이고 취급이 비슷하기 때문에 되려 잊혀지는 기술이 없다. 정상결전 직전인 에니에스 로비 편에 가서 대미를 장식한 기술이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쓸 줄 알던 고무고무 개틀링인 셈이니 정말로 잊혀지는 기술이 없는 셈.] 실제로 격투 게임 등에서의 취급이 손쉽다는 결과는 그야말로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루피의 어머니는 성전환의혹을 받고 있는 [[크로커다일]]이나 혁명군 간부 [[엠폴리오 이코프]]라는 설도 있다.--
         또한 임펠 다운에서 혁명군인 [[엠폴리오 이코프]]와 인연을 맺고 아버지가 세계급 혁명가란 걸 고려하면 해적행위를 제외하고도 위험 인물인 데다가 '''[[천룡인]]을 폭행한 적도 있다.'''[* 이걸 들은 뇽 할멈 가라사대: "그짓은 신조차도 두려워 않는 자만이 할 수 있다."~~이미 하늘섬에서 신을 때려눕혔다.~~]
         다만 해적의 위험도를 영하는 게 현상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상 최악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현상금이 언급된 적이 없는 사황이나 [[쥬라큘 미호크]]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적 시작한지 3년도 안돼서 4억베리까지 찍었다는 것부터 현시점에서 최악은 확실한 듯.
         가족 인맥 덕을 본 사례는 쿠잔에게 패배하고도 살해당하지 않은 것과 란군의 간부인 쿠마와 이완코브에게 받은 도움. 아오키지의 경우는 첫 싸움에서는 확실히 가프 덕에 살려준 것이 맞지만 최종적으로 에니에스 로비 전이 끝난 이후에 밀짚모자 일당을 내버려두고 떠난 것은 루피가 수틀리면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로빈을 맡겨둬도 될 만한 인물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코프의 경우도 드래곤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도와주기는 했지만 사실상 루피가 보여줄 수 있는 증거는 자신이 이스트블루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밖에 없었으며 나머지는 이완코브가 임펠다운에서 루피가 벌인 행적을 보아 루피가 드래곤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납득한 것이다.[* 게다가 버기와 루피 탓에 서내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마비된 상태에서 징베나 크로커다일 같은 거물까지 섭외했는 데도 똥줄타면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루피와 함께 탈옥한 것은 이코브에게 있어서도 좀처럼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결국 아버지 이름만으로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샤본디 제도에서 쿠마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일밖에 없다.
         초에는 자신보다 강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고는 은인으로써 친해지는 일들이 많았지만, 샤본디 제도 편 언저리부터는 루피 본인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인 인물들과도 관계가 생기고 있다.
         본인 무력부터가 루피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 거물들을, 루피 쪽에서 도와줄 때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어떠한 사건을 겪으면서 루피라는 인물 자체에게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징베, 이코브, '''행콕'''등이 그러한 케이스로[* 행콕의 경우는 함깨 활동한 기간이 짧았지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을 때부터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샤본디 제도에서의 행적 자체가 행콕이 본인 트라우마를 정면에서 깨부수는 영웅담으로 들릴 만한 행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필연적이었다. ~~이후는 전부 콩깍지지만~~], 세 명 모두 2년 전 시점에서 명백하게 루피를 뛰어넘는 강자들이었으며[* 이 부분은 루피가 이미 칠무해를 둘셋 꺾은 적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렸다고 동급의 강함이라 볼 수는 없다. 이코브가 Mr.3의 보조 없이 마젤란과 정면에서 한참을 대치 후 살아돌아왔다는 점이나, 행콕이 파시피스타를 대략학살했다는 점(다만 이때 파시피스타는 행콕을 아군으로 인식하고 공격 자체를 안했다. 로봇이니 행콕이 공격을 받으면서도 격했을리가 없고), 징베의 수중 전투력 등에서 가늠하자면 강함 자체만 두고 볼 때 당시 루피보다 명백히 우위에 있다. 아니, 징베의 육상전투력만 봐고 루피보다 우위이다. 징베는 육상에서 에이스와 싸워 무승부를 이뤘으며, 이때 루피는 에이스보다 약했다. ] 루피가 그들의 은인이라 잘라 말하기도 힘들지만, 결국 전원이 쯤 목숨을 내놓고 루피를 위해 싸운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높으신 분들과 친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나라 전체의 위기를 구한 구국영웅에 가까운 위치이다. 유달리 규모가 크고 해군의 감시가 강했던 알라바스타를 제외하면 일 시민들도 은인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알라바스타의 경우도 루피가 초에는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하다가 막판에는 판을 크게 벌였기 때문에 당시 현장에서 싸우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이것을 목격한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바로크 워크스의 잔당들도 당연히 파악하고 있을 테고 해군들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등, 알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뒷소문으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국가 지도자나 고위 관직들과의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국가 전체가 강하게 지지한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어인섬같은 경우는 전 국민이 전장을 둘러싸고 구원받는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하거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밀짚모자 일당 심볼을 어인섬에 대놓고 걸 정도로 직접적인 유대가 더욱 강했다.
         이것은 딱히 도플라밍고처럼 해적이 일개 국가를 소유한다거나 산하에 두는 것은 아니기에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무력을 행사하여 적개심을 사지 않아도 루피 본인 의향만으로 여러 국가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으로, 국가마다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워터세븐 시장이 손수 해적선을 조선해준 일이 있고[* 얘가 해적왕이 되기라도 하는 '''순간 불법행위로써 인정'''된다. 그렇게 되기 전이라 해도 루피가 에니에스 로비를 개작살내고 온 직후이니 세계정부에게는 미움받고도 남을 일이다. [[톰(원피스)|톰]]역시도 그저 해적왕의 '''배를 건조했다는 죄로 사형'''당한 상황을 보면 아이스버그도 스승과 똑같이 끝장날 수 있다. 다만 나서서 도와줄 이가 없었던 톰과는 달리 아이스버그는 그를 열렬하게 존경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있다. 물론 밀짚모자 일행들도 아이스 버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만큼 이들이 아이스버그의 사형을 순순히 묵인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톰의 경우에는 스팬담의 온갖 방해공작이 있었다. 더군다나 워터세븐 마무리에서 아이스버그가 설계하고 있던 '워터세븐 전체를 바다에 띄우는 일'이 성공한다면 그의 위상이 과거의 톰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밀짚모자 일당의 새 해적선 [[사우전드 써니 호]]에 대한 건조는 밀짚모자 일당과 소수의 관계자만이 아는 일인 만큼 죄를 묻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톰의 경우, 본디 조선공은 해군이건 해적이건 일인이건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한 배를 건조하는 행위 자체는 죄를 묻지 않으나 톰의 경우는 그가 건조한 배가 다름아닌 '''해적왕 골 D. 로저의 기함, 오로 잭슨 호''' 였던만큼, 해적왕과 관계된 이들을 전부 숙청하려는 해군 본부의 표적이 된 것이다. 또한 스팬담의 음모로 [프랑키|커티 프람]이 만들었던 전투함들이 사법선을 습격했을 당시, 오로 잭슨 호의 건조 건은 바다열차 퍼핑톰의 제작으로 사면받는다 쳐도 사법선 습격 건이 그대로 죄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바다열차 건으로 사면받고 [아이스버그|자신의] [프랑키|제자]들을 위해 오로 잭슨 호 건조에 대한 죄를 받아들여 처형된 것이었다.][* 다만 문맥상 중요한 것은 일개 도시의 시장, 세계관 상으로는 국왕하고도 맞먹을 정도의 권력자가 세계정부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르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 주었을 정도로 밀짚모자 일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처벌 받는다 안 받는다 여부가 중요한 점은 아닌 것(…)~~병림픽~~]어인섬의 경우는 언젠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국왕이 못을 박아두는 장면이 나왔고[* 밀짚모자 일당에게 감사인사란 감사인사는 죄다 퍼부은 뒤였기 때문에 단순히 엄청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출은 아니다. 어인섬에는 루피에게 붕괴당한다는 플래그도 서 있기 때문에 차후 재등장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알라바스타 왕녀는 비공식적이나마 밀짚모자 일당에 소속되어 있는 등 그 정도가 '''여차하면 특정 세력에게 적대 성향을 가지게 할 여지도 충분히 있기에''' 이미 심상치 않다고 말할 수준을 몇 단계 뛰어넘었다.
         원피스의 최종보스 세력으로써 점쳐지고 있는 것이 세계정부이며 세계정부에 정면으로 적대하고 있는 세력인 란군의 수장이 루피의 아버지인 데다가 2년간 니코 로빈이 임시적으로 란군과 행동을 함께 한 행적이 있어 밀짚모자 일당과 관계가 나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세계정부 측에서는 간담이 서늘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 어인섬 국왕 넵튠의 무거운 일언 등에서 생각해보면 어느 쪽이 되던간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내용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50회 일치
          * Strength(전력): 육군, 해군, 공군 모두 존재하는 능력치. 부대를 구성하고 있는 병사, 장비 그외 등등. 전투나 보급 부족, 위험 지역에서의 주둔 등으로 떨어지며 증원에 생산량을 투자해 인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조금씩 회복된다. 해당 수치가 0%가 되면 부대가 몰살당한 것으로 처리되어 삭제된다. 동원령을 발동할 경우 예비군 소집 이벤트와 함께 모든 육군 사단의 조직력이 회복된다. 면 동원령을 해제할 경우 모든 육군 사단의 조직력이 30%로 하락한다. 어차피 나중에 동원령 소집하면 예비군 소집 이벤트 뜨며 회복되니 인력과 공업력 부어서 회복시키려고 하지는 말자.
          * Move(이동): 제일 간단한 임무. 해당 프로빈스로 이동한다. 도착 시간은 현재 위치한 지역의 기시설 수준, 지형, 날씨, 부대의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 Attack(공격): 적이 점령한 프로빈스에 이동 명령을 내리면 하는 임무. 해당 프로빈스로 이동해 점령한다. 만약 목표 프로빈스에 적군이 있다면 전투가 벌어진다.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계속 공격을 진행하지만 패배한다면 그대로 정지한다. 도착 시간은 현재 위치한 지역의 기시설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 Anti-Partisan Duty(군 소탕): 현재 위치한 지역의 군 활동을 감소시킨다. 제압력이 높을수록 효율이 좋다.
         제일 많이 뽑게 될 유닛. 일적으로 당신 군대의 빵과 버터가 될 것이다.
         특이 사항은 높은 제압력 수치. 애초에 점령지에 박아넣어 군들의 싹을 잘라버리라고 설계된 유닛이다.
         >산악병은 산악 지역 작전에 특화된 보병의 정예 병과입니다. 이들은 산악 지형에서 일 보병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특수한 장비와 전술을 사용합니다.
         >해병은 해변 강습과 다른 해양 작전에 특화된 보병의 정예 병과입니다. 이들은 해양 지형에서 일 보병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특수한 장비와 전술을 사용합니다.
         기동 사단 중 처음 보게 될 녀석. 처음에는 말을 탄 기병대지만 테크가 올라갈수록 오토바이를 탄 "-차량화 기병", 장갑차에 올라탄 "기갑 기병" 따위가 나오더니 최종 테크에는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는 "공중 기병대"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테크가 올라가면서 연료를 처먹기 시작하는데 그 양도 겁나게 늘어난다. "기갑 기병" 단계에서는 기갑 부대 수준으로 연료를 퍼먹는다. 테크 올리기 겁나 복잡한게 특징.
         >차량화보병은 다른 보병들보다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 트럭과 같은 바퀴달린 이동수단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도로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시설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제 성능을 내지 못합니다.
         >기계화보병은 궤도차량과 같은 전천후 이동수단을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차량화사단처럼 도로에 의존하지 않으며 기갑 부대와 함께 작전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특수한 장비를 사용하기에 가격이 비쌉니다.
         공수부대 전용 포병. 일 포병 여단보다 성능이 딸린다. 대전차포 연구를 풀업하면 대보병 공격력보다 대전차 공격력이 더 좋아진다.
         열차포. 일 포병 여단보다 성능이 딸리고 최고 속도도 2나 깎아먹지만 공격시 방어력을 늘려준다. 요새에 있는 적을 공격할 때 60% 보너스가 붙는다.
         >헌병 여단은 빨치산과 란군을 제압하는데 좋습니다.
         제압력을 높혀 군진압의 효율을 높혀준다.
         >자주포는 당신의 기갑 및 차량화 부대가 적 보병에게 추가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일 포병 여단처럼 속도를 떨어뜨리는 일도 없습니다.
         >구축전차는 일 전차와 비슷합니다. 차이점은 회전 포탑이 없고 장갑의 대부분이 전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당신의 부대가 적 기갑 부대와 같은 하드 타겟을 상대하는 능력을 늘려줍니다.
         주둔한 공군 기지를 중심으로 한 작전경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다. 유일하게 작전경 따지지 않고 날아갈 수 있는 순간이 있긴하다. 다른 공군 기지로 재배치 할 때.
          * Logical Strike(병참 타격): 1916년 연구인 "전술 폭격기 발상"을 연구하면 해금. 목표 지역의 적 산업기을 폭격해 레벨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린다. 공격 대상은 목표 지역 내 제일 적은 적군이 주둔한 프로빈스다.
         자국 영토에 들어온 적 폭격기를 아작내기 위해 만들어진 전투기. 제일 초에 뽑을 수 있는 공군 부대다.
  • 정용화 . . . . 50회 일치
         '''정용화'''([[1989년]] [[6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FNC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남성 4인조 [[음악 그룹|밴드]] [[씨엔블루]]의 리더이며 메인보컬, 랩, 기타, 건을 맡고 있다.
         [[2009년]] [[8월 19일]] [[Now or Never (씨엔블루의 음)|Now or Never]]을 발매하고 일본에서 인디즈활동을 시작하였다. [[2009년]] [[10월 7일]] [[SBS 드라마 스페셜]]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하였고, 당시 '수건남,' '밀크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ref name="milk">[http://artsnews.mk.co.kr/news/43637 '미남' 정용화, 수건남에서 이번엔 밀크남?], 《아츠뉴스》, 2009년 10월 15일 작성.</ref>
         * [[2010년]] [[1월 14일]] 락밴드 씨엔블루(CNBLUE)의 리더로 팀 안에서 보컬과 기타와 랩을 맡아, [[bluetory]]<ref name="album1">[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315286592871176&DCD=A10102 씨엔블루, '씨엔블루토리'서 1집 전곡 첫 라이브 연주]{{깨진 링크|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3DEA31%26newsid%3D01315286592871176%26DCD%3DA10102 }}《이데일리스타in》, 2010년 2월 16일 작성.</ref> 음 발매와 함께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수건남 효과에 힘입어 첫 방송후 각종 차트를 올킬하였으며,<ref name="all">[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17/6857237.htm “블루돌풍” CNBLUE, 첫 방송후 각종 차트 ‘올킬’]《재경일보》2010.01.17 작성.</ref> 한국 가요계에서 신인이 데뷔 후 14일만에 1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ref name="chleks">[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29/7708991.htm 씨엔블루, 최단기간 1위 기록 세우며 정상 등극! ]《재경일보》2010.01.29 작성.</ref> 이는 지상파 데뷔 최단 기간 1위 기록이었지만 위너 이후에 기록이 깨졌다.* [[2010년]] [[5월 19일]], 씨엔블루는 두 번째 미니 앨범 《[[Bluelove]]》를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 [[2011년]] [[3월 21일]], 첫 정규 음 발매 및 게릴라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컴백 씨엔블루 오늘(21일) 앨범발매→쇼케이스→게릴라콘서트 3단콤보|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321112618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1년]] [[3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과 함께 게릴라 콘서트…팬들 “역시 실력파 밴드는 달라”|url = 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출판사 = 마이스타뉴스|날짜 = [[2011년]] [[3월 21일]]}}{{깨진 링크|url=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 }}</ref> 선주문 10만장이 넘은 이 앨범은 발매 직 후 실시간차트와 일간차트 등에서 1위를 하였고, 컴백 일주일 후 [[3월 31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시작으로 하여 공중파인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 1주 만에 '엠카' 1위··"초심 잃지 않겠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3115421314776|출판사 = 아시아경제 |날짜 = [[2011년]] [[3월 3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직감' 잇따른 1위, 'FIRST STEP'의 놀라운 '직감'|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402140007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날짜 = [[2011년]] [[4월 2일]]}}</ref> 데뷔 후 처음으로 [[Mnet]] 《[[엠카운트다운]]》과 [[KBS]]《[[뮤직뱅크]]》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 [[2011년]] [[6월]]부터 [[8월]]까지 [[문화방송 수목 미니시리즈|MBC 수목 미니시리즈]] 《[[넌 내게 했어]]》에서 주인공인 이신 역을 맡았으며 정용화 효과로 《[[넌 내게 했어]]》가 일본 정규방송에 편성되었다.
         * [[2011년]] [[10월 19일]]에 2년여 시간의 인디즈 생활을 마감하고 《[[In My Head]]》로 메이저 데뷔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워너 뮤직 재팬과 계약 체결…日 메이저 사냥 나선다|url =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출판사 = 티브이데일리|날짜 = [[2011년]] [[9월 1일]]|확인날짜 = 2012년 8월 19일|보존url = https://archive.today/20120720005549/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보존날짜 = 2012년 7월 20일|깨진링크 = 예}}</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10월19일 'In my head' 발매 日정식데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90609394071723&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 |날짜 = [[2011년]] [[9월 6일]]}}</ref>《[[In My Head]]》의 타이틀 "In My Head" 를 작곡 하였고 "Mr.K.I.A(Know It All)" 작사 및 작곡, "In My Head(Inst.)"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첫 날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3위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메이저 데뷔곡 '인 마이 헤드' 오리콘 3위 '쾌거'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1020094523113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1년]] [[10월 20일]]}}</ref> 메이저 음 발매 기념으로 한 이벤트에 1만4000여명이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이벤트 1만4000명 동원 ‘日 메이저 데뷔 성공적’|url= 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출판사= 스포츠동아|날짜= [[2011년]] [[10월 25일]]}}{{깨진 링크|url=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 }}</ref>
         * [[2012년]] [[1월 13일]] 《제26회 [[골든디스크]]》에서 음부문 본상, 음원부문 본상, 비비드림상, 아시아최고그룹상을 수상하며 4관왕을 달성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골든디스크 4관왕 달성하며 최다 수상! 아시아 대세로 떠오르다!|url=http://www.stv.or.kr/ez/bbs.php?table=health&query=view&uid=5346&p=1|출판사 = STV24|날짜 = [[2012년]] [[1월 13일]]}}</ref>
         * [[2012년]] [[2월 4일]] 일본 간사이, [[2월 5일]] 도쿄돔 씨티홀에서 두 번째 메이저 음 발매 기념으로 한 이벤트에 1만2000여명이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 앨범 발매 라이브 이벤트서 현지 팬 12,000명 동원 |url=http://wstar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1&c1=01&c2=01&c3=00&nkey=201202072211591&mode=sub_view|출판사 = 더블유스타뉴스|날짜 = [[2012년]] [[2월 7일]]}}</ref>
         * [[2012년]] [[2월 13일]] 일본 전국투어를 시작했다. 오사카를 시작으로 나고야, 도쿄, 요코하마 등지에서 이뤄진 이번 투어는 두 번째 메이저 음 발매 기념으로 팬클럽 회원 한정의 전국 투어 콘서트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지난 2009년부터 일본에서 인디밴드로 활동할 당시 공연했던 클럽에서 이루어졌으며, 인디즈 활동 당시 공연했던 장소에서 다시 공연하는 것을 테마로 이뤄진 이번 공연은 9회에 걸쳐 이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인디밴드 활동 당시 공연했던 日클럽서 라이브공연|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2251028531002|출판사 = 뉴스엔|날짜 = [[2012년]] [[2월 25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 전국투어 1만명 팬 열광…티켓 전쟁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02306|출판사 = 아시아투데이|날짜 = [[2012년]] [[2월 25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초심으로 돌아가 日 전국투어 라이브… 폭발적인 응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50042|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2월 25일]]}}</ref>
         * [[2012년]] [[3월 16일]] 작사 및 작곡한 <아직 사랑한다>를 선공개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아직 사랑한다’ 16일 선공개|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출판사= 티브이데일리|날짜= [[2012년]] [[3월 15일]]}}{{깨진 링크|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 }}</ref> <아직 사랑한다>는 공개하자마자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새로 나올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신곡 '아직 사랑한다', 실시간 차트 1위…기대 이상 응|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20316000850&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날짜 = [[2012년]] [[3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아직 사랑한다’ 선공개 응 폭발…컴백 기상은 ‘쾌청’|url=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45015|출판사 = NSP통신 연예|날짜 = [[2012년]] [[3월 16일]]}}</ref>
         * [[2012년]] [[3월 26일]]에 기자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컴백 쇼케이스를 왜 아침에?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69721|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3월 23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음 낼때 마다 부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3261244591132&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음원은 발표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헤이 유' 음원공개 직후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32608080291572&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앨범은 3일만에 4만장이상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3일 만에 4만장 돌파…'3월 전쟁' 최후의 승자 |url=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2년]] [[3월 29일]] }}{{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새 미니앨범 판매량 1위, 최단 시간 4만장 돌파|url=http://interview365.mk.co.kr/news/19427|출판사 = 인터뷰365|날짜 = [[2012년]] [[3월 30일]]}}</ref> 또한, 한터 주간 순위에서 음 판매량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EAR FUN’, 한터 주간차트 1위! '승승장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3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61211/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보존날짜= 2014-09-08 |깨진링크= 예 }}</ref> 컴백 무대를 가진 일주일 후 [[4월 5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무세운 상승세로 컴백 1주만에 '엠카 1위'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출판사= 엑스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4월 5일]]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ref> 《[[EAR FUN]]》의 타이틀 곡인 '''Hey you'''가 가온차트 4월 1주차에 1위를 등극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가온차트 4월1주차 1위 등극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78505|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4월 8일]]}}</ref> 그리고 [[2012년]] [[4월 10일]]에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EAR FUN Special Limited Editio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미국화보+DVD 수록된 'EAR FUN' 특별한정판 발매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6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925085809/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보존날짜= 2015-09-25 |깨진링크= 예 }}</ref>
         * 공식적인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활동을 [[2012년]] [[4월 22일]]에 마무리하고, [[2012년]] [[5월 5일]]에 드디어 첫 번째 [[씨엔블루]] 팬미팅을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국내팬미팅 헤드뱅잉+제기차기 ‘폭발응’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5090735301002|출판사 = 뉴스엔|날짜 = [[2012년]] [[5월 9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팬들과 오붓한 팬미팅 개최 ‘함박웃음’ |url=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87198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년]] [[5월 9일]] }}{{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87198 }}</ref>
         * [[2012년]] [[7월]]부터 [[2011년]] [[6월]]부터 [[8월]]까지 방영된 [[문화방송 수목 미니시리즈|MBC 수목 미니시리즈]] 《[[넌 내게 했어]]》가 일본 공중파 후지TV에 방영을 시작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일본 인기 파워 실감- ‘넌 내게 했어’ 일본 공중파 입성 |url=http://nanumnews.com/sub_read.html?uid=42246§ion=sc208|출판사 = 나눔뉴스|날짜 = [[2012년]] [[5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출연작 '넌 내게 했어' 日 후지TV 진출 '경사났네' |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26944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TV리포트 |날짜 = [[2012년]] [[5월 16일]]}}</ref> 또한, 공중파 방영 전에 [[2012년]] [[7월 16일]]에 일본에서 공식적인 팬미팅을 개최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박신혜, 日 '넌 내게 했어' 방영 앞두고 팬미팅 개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95980|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6월 13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박신혜, '넌 내게 했어' 日 팬미팅 성료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1006.html |출판사= 조선일보 |날짜= [[2012년]] [[7월 17일]] }}{{깨진 링크|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1006.html }}</ref> 티켓이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박신혜, ′넌 내게 했어′ 日팬미팅 1만석 매진 ″현지 열기 후끈″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67085|출판사 = 아시아투데이|날짜 = [[2012년]] [[7월 11일]]}}</ref>
         * [[2012년]] [[9월 10일]]에 일본 파시피코 요코하마에서 일본 첫 번째 정규 음 ‘코드 네임 블루’ 발매 기념 이벤트를 진행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日 요코하마 이벤트 대성황 |url=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9/h20120911151020111780.htm |출판사= 한국일보 |날짜= [[2012년]] [[9월 11일]] |확인날짜= 2012-11-2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1212114241/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9/h20120911151020111780.htm |보존날짜= 2013-12-12 |깨진링크= 예 }}</ref>
         * [[2012년]] [[12월 5일]] 일본 음원 사이트 드완고(www.dwango.jp)에서 케이팝 OST 부분 휴대 전화 벨소리 차트에서 드라마 ‘넌 내게 했어’ OST가 2012년 연간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넌 내게 했어', 일본 OST 벨소리차트 정상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662558|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12월 5일]]}}</ref>
         * [[2012년]] [[12월 8일]]에 《제1회 K 드라마 스타 어워즈》에서 ([[문화방송|MBC]] 《[[넌 내게 했어]]》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끈 공로를 인정받아 한류스타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한류스타상, 감사합니다'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512277|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12월 8일]]}}</ref>
         == 음 목록 ==
         {{참고|씨엔블루의 음 목록|설명=정용화가 씨엔블루로 발매한 음에 대해서는}}
         ! 음 목록
         《[[Now or Never (씨엔블루의 음)|Now or Never]]》
  • 하현우 . . . . 48회 일치
         특유의 카랑카랑한 보컬과 엄청난 [[발성]], 폭 넓은 음역대로 유명하다. 본인의 음역대가 '''3옥타브 시(B5)'''까지 올라간다고 인터뷰에서 밝혔고,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과거 '''4옥타브 도(C6)'''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2016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매일 매일 기다려]]'의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였고, 예전에는 '''4옥타브 도(C6)'''까지도 부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힘들다고. 콘서트에서 부른 꼬리는 진성으로 '''3옥타브 라♯(A♯5)'''까지 올라갔고 2012년도에 부른 푸에고가 가성으로 '''4옥타브 라(A6)'''까지 올라갔다.[* 물론 깨지는 소리라 실가창에선 써먹을수 없다. 라이브에서 운용 가능한 그의 최고음은 3옥타브 시인걸로 추정된다.] 이렇듯 고음으로 유명한 보컬이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만큼 높이 올라가는지의 문제는 내게 중요하지 않고, 의미 또한 없다' 라는 입장.[* 고음으로 강한 보컬들은 대부분 최고로 올라가는 음보단 기승전결이나 무대에 더 신경쓴다. 그 [[박완규]]조차도 [[임재범]]의 파워에 해 창법과 목을 뒤틀어가며 바꾸기도 했었고.]
         국카스텐 라이브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하현우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노래 뿐만 아니라 모션도 열정적이어서[* 하현우가 정신 놓고 기타 치는 모션을 팬들은 '기타지랄'이라 부른다.], 관객들 혼을 빼는 데 도가 텄다. 자기 말로는 [[담배]]를 피울 뿐[* 구정모 매니저에 의하면 간헐적으로 금연과 흡연을 복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3월 19일 HELLO 콘서트 기준으로 금연 2주차라고 밝혔으며, 계속 금연 중이라고. 그래서 작업 도중 담배를 피우는 대신 초콜릿과 스카치 캔디를 먹는다고 한다.] 등산이나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것도 잘 챙겨 먹는다고 하지만, 인터뷰에서 쯤 농담 섞인 얘기로 '인이어 때문에 공연할 때마다 몸이 망가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한 이후로 많은 이들의 걱정이 커졌다.[* 다만, 이는 모든 가수들의 피할 수 없는 직업병이기도 하다. 한쪽 귀만 인이어를 삽입해서 노래를 불어야 하는 보컬의 특성상, 고막에 문제가 생기는 느낌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상당히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아픈 기억이 많아서인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매우 내성적이어서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통해 가슴에 맺혀있는 아픈 일화를 몇 개 엿볼 수 있는데, 하현우 어머니께서 에 떡을 돌리시고 며칠 뒤에 같은 의 부잣집 애가 비꼬면서 [[피자]]를 에 돌리며 한 조각을 줬다든지, 풍물동아리에서 선생이 하현우의 장구를 빼앗아서 다른 애에게 줬다든지 하는 사건들이다.] 덕분에 목소리를 낼 일이 없어서 변성기를 무사히 넘기고 지금의 카랑카랑한 고음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러니 변성기인 친구들은 우리 콘서트 오지 말라는 말도 농담 삼아 [[https://www.youtube.com/watch?v=uJ5QiNtozmo|인터뷰]]에서 했었다. 그는 자신의 사춘기를 패배감, 무력감, 눈물 투성이의 시절로 기억한다. 이러한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아상은 사실 사춘기를 지나서도 하현우에게 꾸준히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고 자연히 국카스텐의 음악 세계에서, 특히 정규 앨범 1집에서 중요한 테마를 이룬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말 사귀던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 떠나가자 하현우는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고 본격적인 자아성찰에 들어간다. 마침 다니던 미술 학원의 선생님이 그에게 "넌 남자가 제일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나처럼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남자는 제일 멋있는 거야"라는 말을 던지고, 그 말에 한 하현우는 몰입할 대상을 찾다가 노래를 선택한다. 이 후 일주일에 4번 정도 서너 시간씩 노래방을 다니며 피를 토하면서 노래 연습을 하고, 고등학교 축제에 참가해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youtu.be/uWuOcpy2M2g|하현우가 고등학교 시절 노래방에서 부른 'She's gone']].]을 부르게 된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 떠나갔었던 여자 친구가 ''현우야~'' 하며 --뻔뻔스럽게도--찾아왔는데. 하현우는 쿨하게 무시했다고 밝혔으며, '''이것이 자기 인생의 첫 승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전 여자 친구 분은 지금에는 자기 인생의 최고의 실수일거다.--] 처음으로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역시 사람은 미친 듯이 뭔가 하나를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 거구나'라고 느낀 그는 본격적으로 노래에 몰두하지만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음악하는 것을 대하셨기 때문이다.
         한편 하현우는 만화 그리기도 좋아했는데, 화가가 꿈이셨던 어머니가 미술 학원을 보내주신 덕에 고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배울 수 있었다. 보통의 미대 지망생이나 미술가 지망생들에 비해선 꽤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셈. 아버지는 음악 뿐 아니라 미술도 대하셨지만, 하현우는 결국 미대로 진학하였다. 미대 생활은 짧았지만 미술이나 미학에 대한 그의 관심 역시 훗날 국카스텐의 음악에서 큰 축을 형성하여 이미지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동력이 된다. 어쨌든 미대 진학 이후 한동안은 노래를 접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갔고, 하현우는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진아라는 인물을 만나 다시금 밴드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인터넷에 기타리스트 모집 공고를 내어 현재 국카스텐의 기타리스트인 전규호를 만났고, 전규호가 밴드에 합류하여[* 전규호의 말로는 자신감 넘치다 못해 건방져 보일 정도로 쓰여진 모집 공고를 보고 호기심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합주는 커녕 오디션을 봐야할 자신이 멤버들을 코칭해줘야 할 정도로 연주며 뭐며 온통 엉망이고 말 그대로 열정만 넘치는 아이들이었다고. 면 전규호는 다른 밴드에서도 기타를 해왔던 경력파였다. 이정길은 합주 자체가 안 되자 미안했는지 "형, 죄송해요. 밥 사드릴게요."라며 살갑게 굴었는데, 이에 전규호는 "실력은 없어도 사람은 착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참았다는 모양.],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 진아 이렇게 네 사람은 뉴 언발란스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당시 하현우가 뉴발란스 신발을 좋아했는데, 그걸 뉴언발란스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것에서 착안해 지은 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작곡하는 법을 몰라서, 하드코어, 랩, 발라드, [[서태지]] 등 유명 곡의 커버를 하면서 음악을 배워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배고픔은 무시 못 할 위기로 다가왔다. 결국 의지를 상실한 멤버들은 또 다시 악기를 잠시 내려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이스를 치던 진아는 팀을 떠났다.
         허나 남은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는 밴드의 꿈을 놓지 못 했고 세 사람은 밴드명을 'the c.o.m(the compass of music)'으로 바꾸고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여성 멤버를 더해 밴드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형편으로 생계를 위해 음악 학원에서 합주하고,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현장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 무렵 '나침'을 비롯한 자작곡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가사를 쓰게 되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됐다고 한다. 허나 이후로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2004년 쌈지 락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로 뽑혀 참가했던 것을 끝으로 the c.o.m마저 해산. 하현우는 군대[* 군대에서도 하현우는 부모님께 "제대 후에도 정신 안 차리고 계속 음악할 거니까 마음 다잡고 계세요"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로, 이정길은 산업체로, 전규호는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가게 된다.
         2006년 제대 후 하현우는 도자기를 배우려 했지만, 한 음악 학원 원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다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는데, 때마침 기타리스트 전규호가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며 하현우에게 연락해와 전규호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강원도 펜션으로 내려가 방 하나에서 7개월여 간 곡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정길 역시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2007년에 팀에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에서 1년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는 실내 포차 '천둥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강원도와 서울을 오갔다고 한다. 강원도에선 곡 작업과 실내 포차를, 서울에선 라이브를 했던 모양.] [[https://www.youtube.com/watch?v=utNXeburWTM|그 시절 영상]]. 여기에서 밴드 [[국카스텐]]과 그들의 1집 앨범이 탄생한다.
          * 보컬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인 하드웨어'''. 동년배의 보컬리스트 중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다.[* 록 보컬리스트들 중에서도 이만한 폭발력과 하드웨어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인물들은 외인부대와 아시아나 보컬 당시의 [[임재범]], [[김경호]], [[김종서(가수)|김종서]], [[윤도현]], [[김바다]], [[부활(밴드)|부활]] 보컬 당시의 [[박완규]] 정도로 손꼽힌다.][* 현재로써는 동년배 보컬 중 [[이수(가수)|이수]]나 [[김범수]] 정도. 다만 이수는 주 장르가 팝 발라드인 이상 3옥타브 후대의 초고음보다는 2옥타브 후~3옥타브 초의 중고음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김범수의 경우 아직까지 보여준 음역대가 하현우보다 낮다. 즉, 현재 최고의 하드웨어는 하현우가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김범수는 락 가수가 아닌데다, 가창의 정석과 같은 가수라 직접적인 비교는 무의미하다.] 타고난 성량을 바탕으로 [[흉성(발성)|흉성]], [[두성]], [[샤우팅]]을 이용해 [[파사지오]]를 넘나드는 광활한 음역대가 가장 큰 강점이자 특징이다. 현 대한민국 가요계의 보컬들 가운데 최정상급의 발성을 사용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라이브에서 무대를 온통 휘젓고 뛰어다니고 거기에 격한 기타 연주까지 하면서도 노래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하현우의 발성이 아주 탄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그렇다고 저음은 못하느냐 하면 아니다.[* 2집 타이틀곡인 오이디푸스를 들어봐라.] 복면가왕만 봐도 0옥타브 초대의 저음을 상당한 실력으로 구사하는 데다가, 현재 기준으로 한국 대중음악 라이브 상으로 가장 낮은 음을 보여준 것이 바로 하현우다. 하현우의 '''현재 음역대는 저음 -1옥타브 파(F1)에서 고음 3옥타브 시(B5).'''[* 저음 '''-1옥타브 파(F1)'''는 복면가왕 기준이 아니라 요즘 콘서트에서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곡을 키를 낮춰서 부르는데 '''일상으로의 초대'''를 키 낮춰 부르면서 낸 음이고 고음 '''4옥타브 도(C6)'''는 [[섹션TV 연예통신]]에서 나와 확실히 음역대 측정을 해서 나온 수치라고 밝혔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출연했을 때의 발언으로는 예전에는 '''4옥타브 도(C6)'''까지 올라갔는데 지금은 안된다고 한다. 저음도 측정한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물론, '극저음을 낼 수 있는 것'과 '저음을 잘 부르는 것'에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당장 국내에서 중저음이 매력적인 가수를 이야기할때 항상 거론되는 김동률, 이적, 박효신 같은 가수들이 단순히 음이 많이 내려간다고 언급된다 보기는 힘들다. 중요한 것은 저음이 얼마나 많이 내려가든 간에 '더 원숙한 표현이 가능하고 깔끔하게 가창 스킬을 구사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음역대가 넓은 것은 충분한 장점이고, 표현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 현재 방송 중에 나온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 2018 인생술집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 콘서트 중에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에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를 보여준 적 있다. 가성으로는 '''3옥타브 라♯(A♯5)''' [[https://www.youtube.com/watch?v=f2JhDE6__6E|#]], '''3옥타브 시(B5)''' [[https://www.youtube.com/watch?v=ffl9JCKSPDs|#]], '''4옥타브 라(A6)''' [[https://www.youtube.com/watch?v=tDby__0o4Sg|푸에고(2012 Live.ver)]] 를 보여준 적이 있다.[* 다만 샤우팅을 하다 삑사리처럼 찢어지는 비명으로 터져나온 것이라 가창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긴 하다..] 또한 [[두성]]으로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 [[2018년]] [[7월 12일]] [[인생술집]] 방송때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까지 발성할 정도로 음역대가 무지막지하다. [[http://www.10years.co.jp/guckkasten/|국카스텐 일본 사이트]]에서는 '''3옥타브 시(B5)'''까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한 곡 안에서 최저음과 최고음이 3옥타브 이상 차이가 나면 저음이나 고음 둘 중 한 쪽은 흔들리는 것이 보통인데, 하현우는 초저음역대와 초고음역대를 짧은 순간 안으로도 자유자재로 오간다. 일적인 고음, 저음으로 유명한 보컬들의 음역대가 비교적 하이톤의 고음 특화거나, 로우 톤의 비교적 저음 특화로 생성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양쪽이 모두 가능한 하현우의 음역대는 숙고할 만하다. 오죽하면 음역대로 광고를 찍었을까.
          * 상술했듯이 [[록 음악|본진]]에서 하현우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 수준의 보컬이다. 그러나 그 역량이 꼭 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복면가왕]]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러가지 장르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일적인 록 보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샤우팅]] 창법 말고도 성대가 정상적으로 접촉시키는 진성 [* [[흉성(발성)|흉성]], [[중성]], [[두성]]을 모두 포함한다.]의 스탠다드한 창법 역시 사용함으로서 표현의 폭이 굉장히 넓은 편.[* 여성 가수들과 듀엣할 때 이러한 테크닉이 많이 두드러진다. [[나는 가수다 2]]에서 [[이은미]]와의 듀엣이나 [[주현미]]와의 듀엣이 대표적인데 각각 재즈, 트로트라는 판이한 장르의 편곡과 무대였음에도 대단히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 무엇보다도 파사지오 구간에서 이만큼 자유로운 보컬은 찾아보기 힘들다. 파사지오의 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수준으로 [[두성]]과 [[흉성(발성)|흉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 초고음에서도 성대접촉의 질감을 그만큼 유지할 수 있는 보컬은 하현우가 거의 유일하다. 특히 스크래치의 경우 성대가 벌어지면서 호흡이 성대를 긁고 지나가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일적인데 하현우는 이와는 정대로, 성대의 접촉을 최대압력으로 유지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스크래치'''[* 하현우와 비슷한 목을 긁는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들 중에는 김신의([[몽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등이 있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머라이어 캐리/창법#s-2.6|그로울링(?)]]을 참고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를 사용한다. 이런 방식의 '''스크래치'''를 전 음역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하현우가 거의 유일하며, 대중음악 역사를 통틀어서 봐도 하현우 외의 다른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높은 성대 접촉률으로 전음역에서 진성의 발성이 나오는데, 이런 성대 접촉률은 전문가들이 하현우의 보컬에서 가장 감탄해하고 높이 평가하는 부분 중 하나이며,[* 이게 뭐 별거인가 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의 가수들이 [[두성]] 음역으로 접어들 때 성대 접촉이 줄어들거나 후두가 올라간다.] 이런 성대 접촉률 때문에 초고음역대의 노래들을 그렇게 많이 부름에도 불구하고 성대가 상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에 무거운 사람이나 물건들을 올려놓고 대화를 하는 등 복부 단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 위에 100kg의 사람까지 올려놓고 연습했다고.]. 서양 록/메탈 가수 중에서도 단순히 상연만 살짝 붙는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로 강한 수준의 성대접촉을 통해서 고음을 내는 가수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굳이 따지면 [[로스트 호라이즌]] 보컬이었던 다니엘 헤이먼 같은 스타일 정도?[* 특히 [[메이플스토리]] OST 중 DARKNESS(다크니스)를 능숙히 부른 것을 보아도 이 점이 두드러진다.]
          * 하현우의 보컬을 논할 때 잘 회자되지 않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데, 하현우의 음색은 상당히 특별한 축에 속한다. 말할 때의 목소리는 의외로 낮고 부드러운 편인 면 노래할 때의 기본적인 음색은 중성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높고 맑은 것이 특징. 낮고 굵직한 남성적인 목소리, 소년 같은 맑은 미성 등 다양한 음색을 자유자재로 오가기 때문에 표현의 폭이 아주 넓다. 대표적인 예로 [[복면가왕]]에서 부른 '[[FANTASTIC BABY]]'를 들어보면 이 노래를 한 사람이 불렀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느낌과 음색을 순식간에 넘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래 시작 부분의 굵은 저음과 노래 끝부분의 아이 같은 목소리만 비교해 봐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한 곡 안에서 음색을 다양하게 바꾸면서도 발성이 유지된다는 것 또한 엄청난 부분. 저음부의 [[흉성(발성)|흉성]], 고음역의 [[두성]], 거친 [[샤우팅]]까지 소화하면서 자신만의 소년 같은 미성을 유지하는 보컬은 그리 많지 않으며, 더불어 자신의 기본 색깔과 정대의 성질인 탁성까지도 훌륭하게 소화한다.
          * 다만 음색에 한해 비판점이 없지 않은데, 분명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하지만, 음색 자체가 대중들에게 상당히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쪽은 맑고 깨끗한 음색이 매력적이라고 하나, 싫어하는 쪽에서는 째지는 음색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편. 특히 락이라는 장르 상 고음 가창이 잦은 하현우의 경우 '''3옥타브 미(E5)''' 이상의 초고음을 발성하는 경우가 많아 종종 이런 비판을 듣는 중이다. 물론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지, '나쁜' 음색은 아니다. 음색의 기본 미덕인 '희소성'이라는 측면에서, 하현우의 음색은 '''결코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유튜브 등지에서 자주 보이는 하현우를 저평가하는 댓글들의 태이 음색에 대한 비판인데 밑도끝도 없이 흔한 음색이라거나 그냥 음색이 별로라거나 누구보다 별로라는 식으로 비교하는 등, 그냥 자기가 별로라고 생각하는걸 강요하는 스타일의 댓글이 많은 편.
          * 그러나 위의 특징을 제외하고 개성적인 창법이 있느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이유는 하현우의 발성에 기인하는데, 성대를 강하게 접촉하는 발성일 수록 창법적인 개성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성악가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성악가 사이에서도 개성을 가릴 수 있지만, 일적인 사람들이 듣기에는 비슷하게 들리듯이 하현우도 이것과 비슷한 경우다. 김범수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창법적인 개성이 적다고 평가받고, 박효신도 데뷔 이후 점점 성대를 좀 더 붙이는 발성으로 바꾸면서 개성이 좀 줄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 창법의 개성에 대한 비판은 어쩔 수 없는게, 위에 작성되었듯이 성대를 붙이는 발성은 가수의 창법적 개성을 줄일수 밖에 없는 발성이다. 성대를 안전하고 강하게 접촉시키기 위해서는 후두를 어느 정도 내리고, 성대가 아닌 목이 조여지지 않게 신경써야 하고, 가사를 발음 할 때 모음도 순화해야 하는 등 개성이 들어 갈 여지가 적어진다. 개성적인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들도 이러한 요소들을 신경쓰긴 하지만 본인들의 개성을 위해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완벽한 발성을 요구하는 성악에 비해 실용음악은 발성적 요소들을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프로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성대결절이 오는 경우들도 빈번한 것이다. 이에 비해 건강한 발성은 성대결절의 위험에서 좀 더 벗어나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가수 본인의 필요에 의해 개성적 창법을 가질 수 는 있으나, 이런 개성적인 창법이 가수 개개인에게 강요되어질 필요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창법 외에도 가수만의 음악 스타일이나 음색으로도 개성은 충분히 표현 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성대&구강 구조나 몸 구조가 사람마다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는 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당장에 성악가들조차도 잘 들으면 서로 노래 부르는 목소리나 방식이 100% 같지는 않다.
         국카스텐 곡들의 가사를 모두 직접 쓰는데 가사가 난해하다는 대중들의 응이 많다.[* 하현우는 이런 점에 대해 [[랭보]]나 [[보들레르]]의 난해한 시는 직접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왜 노래 가사는 쉽고 직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본]] 음악의 경우 난해한 가사나 시적인 경우가 많은데 한국 음악은 쉽고 간결한 가사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이런 평가를 받는 듯하다.] 자아 탐구를 중심에 두고, 어떤 대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걸 심오한 재해석으로 풀어 쓰거나 본인이 읽은 책, 꾼 꿈, 사상 같은 부류들을 통해 쓰곤 하는데, 이게 또 국카스텐 특유의 취하거나 약 빤 듯한 사운드와 절묘하게 시너지를 이뤄 대체적으로 한 몫 하고 있다. 마치 중세 신비주의나 연금술에 대한 철학 이론 같다는 평.
         파괴적인 에너지, 낯설다가 익숙하다가 다시 방향을 트는 변칙적인 멜로디, 독특한 기타 리프, 풍부한 이펙터 활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국카스텐의 음악은 공식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락을 표방한다. 그러나 사실 장르를 규정한다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국카스텐의 음악은 독특하고 혼종적이다.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메탈, 트로트[* 1집의 '거울'은 [[일본]] 엔카의 멜로디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 국악[* '라플레시아'의 굿거리 장단, '매니큐어'의 꽹과리 간주, '작은 인질'의 장구 장단.] 등이 자유자재로 활용되며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모든 곡을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그 자체가 장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밴드 음악, 혹은 '정말 한국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굉장히 한국적인' 락. 이는 하현우가 성장 과정에서 접한 다양한 음악의[* 특히 [[신중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국카스텐이 사이키델릭이라는 장르를 택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정서와 리듬이 창작 활동에 그대로 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2011년 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광주MBC]]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에 방영하는 라이브 공연 프로그램인 문화콘서트 난장의 MC를 맡았다. PD가 국카스텐의 'Sink Hole'을 들은 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드시 섭외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후문이 있다.
  • 김희철(1983) . . . . 47회 일치
         ||<#00239b> '''{{{#ffffff 데뷔}}}''' ||<(> 2005년 KBS2 드라마 '올림 2' ||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예능인. 공식 이름은 희철이 맞지만 보통 그의 본명인 김희철로 잘 알려져있다. '''아이돌계 돌아이의 대표주자'''[* 아이돌계에서 비글미와 사건사고로는 어느 그룹보다 뒤지지 않는, 덜 미친 자는 있어도 안 미친 자는 없다는 [[슈퍼주니어|그 그룹]]에서도 멤버들과 팬들이 공인하는 가장 미친 놈...--[[유리(소녀시대)|이 분]] 왈 : 싹바가지--]이자 '''아이돌계 미모 종결자.''' 뚜렷한 이목구비와 미소년 이미지로 데뷔 초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한 줄로 설명 가능한데, 천하의 '''[[SM엔터테인먼트]]에 얼굴로 입사한 인물'''이다. 친구들과 서울에 처음 왔다가 오디션 시간에 30분 지각했는데 관계자가 얼굴을 보더니 어라? 하고 기회를 줬다고. 연예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다른 이유 없이, 2002년 어느 날 횡성 집에서 빈둥빈둥 TV를 보다가 마침 [[싸이]]가 3집 챔피언을 들고 가요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른 걸 보게 되었고, 그걸 보며 '어? 나도 연예인이나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가서 지원했다고 한다. 참고로 노래는 [[애국가]]를 불렀다. 그렇게 3년을 연습하다가 [[올림]]2 에 출연하며 먼저 배우로 데뷔를 하고 8개월 후 [[슈퍼주니어]]에 합류하며 가요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팀 내에선 이특과 함께 맏형을 맡고 있다. 이 정도로 서로간의 캐릭터가 완전히 정대인 사람들 두명이서 맏형을 맡은 그룹도 참 드물지 않을까(...) 아이돌 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히 독보적이라 할 정도로 예쁘장한 미모를 가진 대표 [[미소년]] 비주얼의 아이돌. [[여장]] 사진이 진짜 여자보다 훨씬 더 예쁜 남자 연예인으로 정말 유명하다. [* 이 분야의 후임으론 같은 소속사 후배 출신의 [[태민]]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느낌이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특정 각도에서 보면 태민은 희철과 닮은 꼴이다. 덕분에 10년마다 나오는 얼굴이란 짤방도 있다.]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튀어 보이는 예쁜 얼굴과, 그와 정 대로 솔직하고 할 말 다하는 성격과 자유분방하고 아이돌계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개성있는 ~~돌+I~~ 캐릭터 덕에 대중에게나 팬덤에게나 더 쉽게 각인이 되었다. 특히 이런 캐릭터가 소속 연예인 관리에 엄격하다고 알려졌던 [[SM엔터테인먼트|SM]] 출신에서 나왔다는 것에 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활동 초기부터 인지도로 최상을 찍은 멤버 가운데 하나였으며 예능 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멤버들 중 하나가 되었다.
         4season이라는 그룹으로 [[유노윤호]], [[김재중]], [[강인]]과 함께 데뷔하려다가 기획이 취소되고 이후 [[슈퍼주니어]]로 데뷔. [[이특(슈퍼주니어)|이특]]과 함께 [[슈퍼주니어]] 내 최고령. 하지만 희철 쪽이 실질적 팀 내 [[실세]] 이미지가 강하다. 슈퍼주니어 데뷔 당시 [[강인]]과 함께 팀의 인지도 상승에 많은 공헌을 한 멤버이기도 하다. 팀에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할 말은 드시 하는 성격 때문에 멤버들 내에서도 '''무서운 형''' 이미지로 통하는 듯하다. 워낙 솔직하고 거칠 것이 없어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좋아해 '희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명 예의바른 4가지라 [[카더라]].
         2011년 9월 1일 입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동안 복무하고 2013년 8월 30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익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입소 당시 좀 난리였는데 2006년도에 같은 멤버인 [[동해(슈퍼주니어)|동해]]의 부친상에 조문하고서 상경하다 차가 중앙분리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어[* 대퇴부와 발목 부분 골절상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뼈에 철심 7개를 박는 대수술이었다.]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 [[아이돌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든 인터뷰든 저보다 아픈 분도 훨씬 더 많을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다는 얘기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핑계 대기 싫었거든요." 실제로 [[아는 형님]]에서 [[이승기]]의 훈련병 당시 중대장이자 희철의 중대장이었던 분의 제보에 따르면 희철이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군대에서 태만하다는 이미지를 떨치고 싶어서 다리가 죽을 듯이 아파도 훈련에 다 참여했다고 한다.] 다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실제로도 활동을 하면서 과격한 동작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음악방송을 예로 들면 제대 후인 2014~15년에는 약하게라도 무대를 전부 소화할 수 있었으나,([[https://youtu.be/4y1yRNJ9iuk|#]]) 2017년 [[Black Suit]]에서는 후부에만 등장했고,([[https://youtu.be/_PMkWwo6xaw|##]]) 년 뒤 나온 리패키지 [[Lo Siento]]의 무대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수술을 [[2008년]]에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왼다리로 넘어졌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굉장히 아파했고, 아는 형님에서도 닭싸움이나 다리를 심하게 쓰는 코너에서는 제외된다.] 콘서트 무대는 아직까진 잘 소화하는 중이지만, 과격한 안무나 무대 퍼포먼스 후에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익 활동 당시엔 트위터도 없애고 팬들에게 절대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고, 성실히 복무했다.[* 성실히 복무를 한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파일:external/contents.dt.co.kr/2013083002019919794015.jpg]]]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8819&imp=whot|관련기사]] 단, 공익근무시간에 LOL을 한 전적이 있었으며(당시 닉네임: 김기복), 이에 대해 해명하길 친구가 했다고~~대ㄹ..~~ 했다. 아무튼 군 문제에 관해서 대중들의 여론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호(1987)|이민호]]와 같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던 명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범적으로 사회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는 편.
          * [[슈퍼주니어/음 목록]] 참고.
         멤버들과의 잦은 갈등과 2006년 교통사고과 인한 건강 악화로 3집 활동 전체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멤버 [[은혁]]이 '형, 형자리 만들어 놨으니 들어만 와요.'라는 말에 3집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뒤 발표된 8집 [[Black Suit]] 활동에서도 [[은혁]]은 희철을 활동에 참여 할 수있게 붙잡아 줬다.] 이로서 3집을 끝으로 탈퇴를 결심하였으나 이후 [[이수만]] 대표의 만류와 [[한경(배우)|한경]]의 소송을 계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팀 활동에 임하게 된다. '[[Sorry, Sorry]]'와 '[[너라고 (It's You)]]'에서 극후부에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탈퇴를 생각했을 당시에는 잦은 개인 활동으로 인한 멤버들 간의 갈등과 본인의 정체성 때문에 가수보다는 연기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었다고 한다.
         응은 그저 안타깝다는 응.
          * 성장드라마 [[올림]]2 - 백진우 역 (2005.03.06~2006.02.26)[* 슈퍼주니어가 아닌 연기자로 먼저 데뷔했다 ]
          * [[레인보우 로망스]] - 김희철 역 (2005.10.24~2006.11.03)[* 촬영 후부에 교통사고를 당해 나오지 못하다가 막바지에 휠체어를 탄 모습으로 다시 나왔었다]
         기본적으로 의리 있는 성격이라 친해지면 오래 간다고 한다. 데뷔 초부터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방송, 드라마, 라디오등에 출연하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분을 쌓아 나갔고 본인의 의리 있는 성격이 겹쳐져 2018년 현재 어마무지한 인맥 라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사실상 웬만한 메이저 아이돌들은 김희철과 친분이 있으며, 예능에 자주 출연하다보니 예능 MC들과, 데뷔 초 시트콤 출연 경력 등으로 배우들과도 친분이 있는 등, 연예계 다방면으로 인맥을 자랑한다. 가장 자주 만난다는 인맥그룹은 AB형 혈액형을 가진 남자연예인들의 모임인 쪼코볼[* '''쪼'''금 싸이'''코''' 같지만 '''볼'''수록 매력있는 남자들.]로 [[장근석]], [[이홍기(가수)|이홍기]], [[조성모]], [[미쓰라 진]], 낯선, [[쌈디]], 김정모 등이 멤버이다. 자주 술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인 [[BoA]]와도 친분이 두텁다. 게임 전문 아프리카 BJ나 소속사 대표들도 알 정도로 연예계나 비연예계 전방으로 엄청난 친목을 자랑한다. 근데 오히려 슈주 멤버들과 덜 친하다고 절친 노트에 나오기도 했다(...) 슈주에선 [[최시원]]과 [[동해]]와 가장 친하다. [[이특]]과는 성격이 정대라 자주 싸우기도 하는데, 본인은 이 관계를 '''친하지 않은데 안 친하지도 않은 사이(....)''' 라고 표현하기도. [[한경]] 과도 절친한 사이여서 한경이 탈퇴한 이후 우울증에 걸려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미니홈피에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탈퇴 이후에도 만남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방신기]]에서는 [[유노윤호]]와 친분이 있으며, [[동방신기]]를 탈퇴하고 [[JYJ]]로 활동하는 멤버 [[김재중]]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초부터는 [[홍진호]]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홍진호의 라디오 출연 중 전화를 걸어서 말을 까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물론 방송용으로 만들어낸 친분이 아니라 이전부터 같이 밥도 먹고 하던 사이였던 듯. 사실 홍진호와 김희철이 같은 동네의 주민이라는 것이 [[나 혼자 산다]]에서 홍진호가 게스트로 출연한 화에서 밝혀졌다. 또한 [[이두희]]와도 친분이 있는 듯. 인스타그램에는 홍진호 이두희와 찍은 사진과 함께 '여자한테 인기 없는 게임만 하는 오타쿠 셋이 모여'라는 멘트를 남기기도. 근데, 홍진호는 라디오에서 [[태연]]을 소개 받기 위해서 김희철을 더 만난다고 폭로했다.[* 물론 진심은 아닌 것이, 김희철은 과거 서로의 만남 주선을 해달라는 사람과의 인연은 바로 끊는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래서 [[박초아]]의 열애설 당시, 열애설 상대를 희철이 중개해줬다는 추측성 기사 내용에 심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이 시기, 아는 형님에서 서장훈의 재혼 드립이 언급 됐을 때, "그럼 그 소개는 내가 해주는 거네? 이런 젠장~"이라고 한다. 물론, 그 기사 때문에 분노한 거다(...)]
         [[데프콘(가수)|데프콘]], [[심형탁]], [[정준영]]과 함께 대한민국 연예인들중 자타공인 오덕으로 유명하며, 이중에서도 수장이라 할만큼 유명하다.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아스카]]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으며, [[데프콘(가수)|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가수가 또 있다. 재미있게도 둘다 [[주간아이돌]] MC 출신이다.]][* 실제로 김희철 &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아스카]] 관련 게시글이 올라오면 댓글에는 드시 [[데프콘]]이 언급이 된다.] 소집 해제 후 아예 인증을 했다. [[겨울왕국]] 공개 이후 불러도 대답 없는 아스카를 버리고 [[안나(겨울왕국)|안나]]로 갈아타겠다고 선언(...). 차가운 엘사보다 안나가 좋다고 한걸 보니 취향이 확실한 듯하다.[* 본인이 선이 뚜렷하고 쌍커풀이 진해서 여성분은 쌍커풀 없고 화장이 연한 게 좋다고...~~애니캐를 현실 여자처럼...~~] [[http://i.imgur.com/vjMPTi8.jpg|코스프레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까 [[https://twitter.com/HeeZZinPang/status/519142782602989570|다시 아스카로 갈아탔다.]] 2018년 1월 18일 친분이 있는 트위치 스트리머 케인의 방송에 게스트로 나왔을때 드러난바에 따르면 휴대폰 벨소리가 무려 [[잔혹한 천사의 테제]]. [[https://clips.twitch.tv/WittyWanderingPlumageSquadGoals|해당 클립]] 오래 전부터 그 벨소리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게임도 즐긴다. [[리그 오브 레전드]] 랭크 게임에서 다이아 티어에 서식하고 있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 [[이현우(게임 해설가)|이현우]]와 친해서 방송에 시시때때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박정석]]과는 서로 욕설(...)까지 주고받는 동갑내기 친구 관계다. 2016년 롤드컵 당시에는 게임방송국 [[OGN]]에서 객원해설로도 출연하며 적당히 게임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OGN 측이 나름 챙겨준다고 출연료를 챙겨줬지만 원래 희철의 몸값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나가겠다고''' 적극 주장해 출연했으며, 원만한 진행 능력&게임 지식을 발휘해 일적인 객원 해설보다 훨씬 더 퀄리티 높은 해설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dwEu2bY5KI|해설영상]]. 이 해설을 기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견해도 알 수 있다([[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65285&iskin=esports|인터뷰]]). 그 밖에 트위터에 이특과 [[킹 오브 파이터즈]]를 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린 것을 보면 롤 이외의 게임도 즐기는 모양. 이특이 [[야가미 이오리|이오리]] 안 시켜주고 시원이 닮은 [[로버트 가르시아]]로 얍삽이만 쓴다고 폭로했다. 또한 2017년 2월에 있었던 SBS [[게임쇼 유희낙락]] 녹화중 트위치 스트리머 [[케인(스트리머)|케인]]의 킹오브 방송을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다고 언급하였고, 실제로 케인을 해당 방송에 섭외해서 녹화도 했다.[* 이때 섭외 과정에서 5개월 구독을 끊었다가 희철을 사칭으로 오해한 케인에게 생방으로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는데, 이를 계기로 케인과 친구를 먹고 이후로는 케인의 방송에서 시청자들과 채팅도 종종 주고받고 있다.]2018년 1월18일 케인의 방송에 출현했다[* 출연 계기는 다른 연예인들과 술마시던 중에 갑자기 케인이 보고싶어서 전화했더니 왔다고 한다. 그에 고마움을 느껴 합방제의를 했고, 뒤늦게 정신차렸지만 이미 뱉은 거 책임진다는 마인드로 합방을 하게 됐다고]~~케조씨도 희님덕분에 만명찍었다 그와중에 만명이면 적게보네라고한 희님 흠좀무 인스타라이브만 3~4만명보는데~~ 이 방송에서 단 1초도 오디오가 비지 않게 게임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제발 그만..." "차라리 죽여줘..." "야 누가 00게임 얘기 꺼냈냐" "뇌 용량이 얼마인거냐" "박찬호를 능가하는 투머치토커다" "귀에서 피 난다" 등의 응을 보였다. 대단하기도 대단한 것이 게임 캐릭터의 인상착의, 배경음악, 스킬, 줄거리와 엔딩, 감상평까지 자세히 말을 하여 정작 방송의 주인인 케인은 아주 가끔 한 마디씩 끼워넣는 것 말고는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음성 도네로 에미넴 비트를 깔며 랩 드립을 쳤다.
         [[2014년]] [[12월]] [[SUPER SHOW 6]]의 오사카 공연에서 실제로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아스카]] 코스프레를 하고 나왔다! 트위터 등 웹상의 응은 '저게 어울린다는 사실이 어이없다.'(...) 가 대부분.
         일적으로 돈과 명성을 모두 지니는 유명 [[연예인]]이란 직업, 그런 상황에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의 섭리에 비춰 볼 때 '''[[마약|약물]]''', '''[[도박]]''', '''불건전한 이성관계'''라는 세 종류에 탐닉할 위험성이 있지만 그런 스트레스를 [[덕질|건전한 취미]]로 해소하면서 자기 관리를 한 결과다. [[강인|같은 그룹의]] [[시원(슈퍼주니어)|아픈]] [[성민|손가락]][[이특(슈퍼주니어)|들]]이 돌아가며 사고를 쳤던 2017년과 현재 시점에서는 알고 보니, '''[[슈퍼주니어]]의 최종보스'''였다는 찬사까지 들을 정도.
         희철은 웹툰 아이돌 연구소에 출연하여 교통사고 당시 '죽을 수도 있었는데 아깝다는 내용의 악플을 보았다' 며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네티즌들에게 악플을 달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에 독자들은 '살아줘서 고마워요', '다행이네 살아서' 등의 응을 남겼다.
         8집 컴백 준비로 춤 연습을 하다 다리 통증이 심해져 운 뒤, 눈이 부어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인생술집 녹화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8집 타이틀곡 '[[Black Suit]]' 무대에서는 비록 곡 후부 브릿지 파트부터 등장하지만 최선을 다해 안무를 잘 소화하는 모습이 많은 네티즌의 응원과 격려를 이끌어낸 바 있다.
         또한 8집 리패키지 앨범 타이틀곡 '[[Lo Siento]]'는 후부 랩 파트에 한해서만 참여했다. 2018년 7월 18일 웨이보 라이브를 통해 9월 발표 예정인 앨범 활동은 물론 뮤비 및 자켓 촬영에도 참여하지 못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https://www.instagram.com/p/BKyCAQiA7jC/?r=1643526985|이 사건에 대해 해명글을 올렸다.]] 전적인 응은 캐릭터는 돌I인데 이런 대응은 또 어른스럽다고...
  • 윤종신 . . . . 43회 일치
         '''가요계와 예능계 전에서 동시에 활약하고 있는 올라운드 멀티 엔터테이너, 가수, 싱어송라이터'''
         [[1969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장흥군|장흥]]에서 2남 중 [[광주]]으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살다가 5살 무렵 [[대구광역시|대구]] [[중구(대구)|중구]]로 상경, 그 뒤 [[대원 외국어학교]][*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절이다. 일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사람들이 가던 그 시절 맞다. 대원외고 동창으로 현재 [[메르세데스-벤츠|벤츠]]의 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세일즈맨으로 알려진 가수 [[김민우]], 작곡가 [[MGR(음악가)]]이 있다.] [[스페인어]]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88학번으로 입학 후[* 본래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워낙 많아서 어릴 적부터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지만 성적으로 인해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로 입학하게 되었고,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1, 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리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가요제에서 금상으로 입상한 이후, 과 동기로부터 [[정석원(음악인)|정석원]]을 소개받았다. 정석원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듣고 [[015B]]의 객원보컬로 픽업했다. 이 때 [[장호일]]이 대했다고 한다. 이유는 비주얼. 그래도 보컬이 밴드의 얼굴인데... 가창력만으로 승부한 데뷔였던 셈이다. 그리하여 '''[[1990년]] [[7월 15일]]''', [[015B]]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면서 그도 데뷔하게 된다. 심지어 같은 해에 데뷔한 [[신승훈]](11월 1일), [[윤상(가수)|윤상]](11월 30일)보다도 데뷔 날짜가 빨랐다. 종종 "나 [[노태우]] 대통령 때 데뷔했어! 심지어 [[걸프전]]보다도 전이야!"라고 하기도 했다.[* 종전에도 윤종신이 윤상의 전성기에 대해서도 드립을 쳤을 정도로 미는 개그 중 하나였다. 노태우 대통령 취임은 1988년 2월 25일, 윤종신 데뷔는 1990년 7월 15일, 걸프전 발발 1990년 8월 2일이다.]
         2000년대 초, 영화 OST를 프로듀싱하며 [[카메오]]로 출연, 이후 논스톱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도 활동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2000년대 중 이후 [[라디오 스타]], [[패밀리가 떴다]], [[나는 가수다]] 등 굴지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예능 늦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실 윤종신은 90년대 당시부터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입담과 예능감을 길러왔기에 올드팬에게는 윤종신의 활약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2006년, 9세 연하의 前 [[테니스]] 선수인 와 결혼했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한 경력이 있다. 당시 상대는 훗날 1990년대 중후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스위스]]의 [[마르티나 힝기스]]. 전미라는 200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이듬해 윤종신과 결혼했다. 현재는 [[MBC SPORTS+|엠스플]]의 테니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고 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부부 자녀 동으로 출연했으나, 최하위에 그쳤다.] 힐을 안 신어도 가 더 크다[* 윤종신은 (프로필상) 170cm, 가 175cm이다. 각자 프로필 상 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차이날 수도.]...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이름은 의 이름 끝 글자를 돌림자로 썼다고 한다. 를 거의 빼다 박은 수준으로 닮았다.
         대개 편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때문에 작곡 당시에는 본인이 직접 친 통기타 주에 본인 목소리로 가이드를 넣는 것 같다. 다분히 옛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가이드 곡이라도 편곡이 상당부분 완성된 상태로 나가고, 가이드도 실력파 보컬들이 맡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팝송으로 들릴 정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상태로 가수들에게 전달된다. 디렉터스컷에서 전한 일화에 따르면, 한번은 윤종신이 이효리에게 곡을 주려고 기타로 주를 치고 멜로디를 흥얼거려서 녹음한 뒤 메일로 보냈는데 거절당했다고 한다. 헌데 나중에 이효리가 자기한테 굉장히 세련된 팝송을 들려주길래 "야 이거 좋다. 누구 노래야?" 라고 물어봤더니 이효리에게 온 가이드 곡이었다나. 자기는 통기타를 쳐서 흥얼흥얼 녹음한 뒤 "나중에 편곡이 되면 여기에 이런 비트가 들어갈거야, 상상되니?" 하는 식인데 이효리가 받는 가이드 곡들은 이미 완성품 수준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감정을 억누르다 후부의 폭발하는 전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대표적인 곡이 "너에게 간다". 이런 노래들을 '매달' 국수 뽑듯 뽑아내고 있는 괴물.
         윤종신 작사, 이규호 작곡의 '팥빙수'는 가요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요리 [[레시피]]를 가사로 쓴 것이라 개그소재 등으로 자주 애용된다. 어느 방송에서 가사를 어떻게 썼느냐는 질문에 "인터넷에서 [[팥빙수]] 레시피를 검색했다"고 밝혔다.[* 물론 조크다. 실제로는 이 레시피대로 하면 망한다. 음과 박자를 고려해서 세심하게 단어를 배치한 것. 그렇게 쉽지 않다.] 본인 스스로 '대한민국 푸드송의 원조' 라고 주장했으나 별 근거는 없다.[* 1994년에 정광태가 발표한 '''김치 주제가'''가 있다.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의 그 곡. 또 1980년대 후에 [[아기공룡 둘리]]의 삽입곡으로 나온 [[라면과 구공탄]]도 있다.] 요즘은 예능용으로 자주 써먹는다.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 쿨의 "해변의 여인" 등과 함께 오래도록 깨지지 않을 여름의 레전드 곡이다.
         [[2016년]] 이후에는 월간 윤종신 수록곡들을 통해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제외한 다른 주제들도 자주 노래하는 편이다. [[2017년]] 1월호 '세로'에서는 차트 줄세우기 위주의 음계를, [[2016년]] 12월호에서는 촛불정국을 노래했다. 중장년층, 혹은 나이든 뮤지션으로서의 심경도 자주 노래하는 것 같다. [* 마지막 순간, Old school, 나이, Birdman 등...]
         윤종신과 음악노예: [[유희열]], [[조정치]], [[성시경]], [[박정현]], [[하림(가수)|하림]], [[투개월]]([[김예림]], [[도대윤]]) 순.[* 이 순서는 그림 순서이고, 실질적으로 '음악노예'라는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은 유희열, 하림, 조정치 정도까지로 봐야 한다. 가수 활동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나 윤종신과 함께 일한 지 몇 년 정도 밖에 안 된 다른 사람들은 사실 노예 수준 노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에 비해 유-하-조 세사람은 그와 함께 적지 않은 기간 일하면서 가수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작곡과 편곡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림의 경우는 윤종신 관련 음 편곡의 대다수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희열은 독립이라도 했지 하림은 윤종신에게 여전히 속해 있다.][* 이 중 [[김예림]]은 미스틱을 떠났다. 이제는 저 자리에 [[박재정]]이 들어와야 맞다 카더라...]
         2000년대 초 이후로는 군대에서 알게 된 작/편곡가 이근호와 매우 자주 함께 작업한다. [[http://www.yongi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57|인터뷰 참조.]] 거리에서, 넌 감동이었어, 시간, 지친 하루, 오르막길 등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걸쳐 이근호의 손을 거친 명곡이 상당히 많다. 알고보면 하림, 조정치 등에 버금가는 전속 어시스턴트. 이근호는 클래식 작곡에 능하여, 윤종신이 흥얼거리는 멜로디에 코드와 주를 입히고 편곡을 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근호씨는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10/2014031002695.html|2014년 창작동요대회 대상]]을 수상하였다. 동요뿐만 아니라 성가 등도 작곡하는 듯.
         한국인들이 일적으로 좋아하는 창법은 풍부한 성량과 감정을 담아내는 호소력있는 보컬인데, 윤종신의 목소리는 거의 정대이다. 발음도 발성도 깔끔해서 담백하면서도 절절하게 감정이 묻어나는 편이다. 따라서 가사 전달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담백하면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감정표현이 뛰어난 보컬.'''
         데뷔 당시 윤종신은 옥구슬같은 미성을 자랑했으나 솔로 1집(1991년)~3집(1993년) 사이에 맑은 음색이 사라지고, 4집(1995년) 전후로 [* 정확히 말하면 The Natural Live 앨범 (1994)에서부터] 목소리가 급격히 탁해지더니 [[1999년]]~[[2000년]] [[유희열|토이]] <[[A Night In Seoul]]>, 8집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를 마지막으로 '''목소리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당장 1999년에 나온 <[[후]]> 때 목소리와 2001년 9집 <[[그늘(음)|그늘]]>을 연달아 들어보면, 그 2년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다. [* 제대 이후 방황하던 7집의 발성에 비해 오히려 2000년 8집을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창법으로 안정화됐다고 봐야 할 듯.] 때문에 당시 같이 미성으로 이름을 날렸던 [[신승훈]]도 그의 목소리가 너무 변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승환]]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이 아는 가수 중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목소리가 변한 가수라고.
         2010년대 들어 윤종신은 보란듯이 성대를 갈아끼우는데... 2010년 이후 절주, 금연하면서 가창력이 확연히 좋아졌다. 2009년과 2010년의 가창력이 한 해만에 확연히 달라졌다. 2010년대 후 들어서는 고음역대의 발성이 엄청 단단해졌다. 나이가 무색하게 짱짱한 고음을 뽑아내는 중. 2016년 6월 월간 윤종신 '''의미 없다'''에서의 최고음은 3옥타브 레. 물론 저 노래를 라이브 무대에서 부를 가능성은 낮지만 이걸로 리즈 갱신은 확정...
         다만 깔끔한 가성은 이제 더이상 나지 않는 듯. 데뷔 초에는 무려 3옥타브 라까지 올라가던[* 1992년 015B 라이브 앨범, 친구와 연인 후부 애드립] 청명한 가성을 더는 들을 수 없다. 좋니 라이브영상들에서 '''3옥타브 레#(D#5)''' 가성을 거칠게 낸다. 원래 가성이란 게 성대에 상처가 많이 나 있을수록 바람빠진 소리가 나기 때문에... 대신 그때보다는 중저음이 훨씬 탄탄해졌다
         2013 월간 윤종신 Repair 프로젝트 9월호에서 부른 '''굿바이'''[* 원래는 윤종신 4집 공존 테이프 B면의 첫 곡-음 상으로 카운트하면 6번 트랙이다.-으로, 장혜진과 듀엣했으며 가요계 숨은 듀엣 명곡으로 꼽힌다. 박주연과 정석원, 그야말로 윤종신의 사람들-각자 오래전 그날의 작사가와 윤종신이 가수로 데뷔하는데 도움을 준 작곡가.-이 모여서 명곡을 만들어 낸 셈이다.]에서 부드러운 창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음 부분에서 특히 몸을 구부리며 동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실제로 동이 있으면 고음을 낼 때 훨씬 더 강력하게 낼 수 있지만 실용음악적으로 권장되는 것은 아니다.
         [include(틀:윤종신의 음 목록)]
         3집 '[[The Natural]]'(TITLE: [[오래전 그날]], 판매량 70만 장), 4집 '[[共存|공존]]'(TITLE: 부디, 내사랑 못난이, 판매량 91만 장), 5집 '[[愚(음)|우]]'(TITLE : [[환생(윤종신)|환생]], 판매량 97만 장) 등등 윤종신 전기 음악의 대단원이라 할만큼 노래 각각의 완성도로 보나 앨범의 완성도와 짜임새로 보나 걸작이었다.
         다만 음 판매량은 역대 최고인 4집, 5집 모두 밀리언에 약간 못미친다. 밀리언셀러 대열에는 아깝게 합류하지 못했으나, 비공식 합산으로는 100만장을 넘긴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42회 일치
         게임의 초부에는 4,000 딸라에 12가족을 쑤셔박을 수 있는 공동주택이 선호된다.
          * 해충 방역: 건물의 유지비는 절으로 감소하지만 주거 환경의 질은 30% 저하합니다.
          * 해충 방역: 건물의 유지비는 절으로 감소하지만 주거 환경의 질은 30% 저하합니다.
          * 해충 방역: 건물의 유지비는 절으로 감소하지만 주거 환경의 질은 30% 저하합니다.
          * 해충 방역: 건물의 유지비는 절으로 감소하지만 주거 환경의 질은 30% 저하합니다.
         ||"저 구두들 좀 봐! 어머머 이쁘기도 하지! 죄송해요. 예쁜 구두들에 그만 정신이 팔려버렸네요. 어머 저 구두 짝이는것 좀 봐! 내가 살 거야. 내가 먼저 찜 했다고, 이 뚱땡이 아줌마야!"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도 됩니다.
          * 일 상점: 시민들과 관광객들 모두가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증권 거래소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주식 시세 표시기에 쓸 무작위 숫자를 정해야 하는게 너무 귀찮지만, 전문가들은 현대적인 경제를 확립하기 위해선 드시 증권 거래소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 주류 입 금지: 주류의 입이 금지됩니다.
          * 군사정부: 군사정부가 역자가 되려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를 꺾어버립니다.
         ||각하께서 트로피코에 세우신 위대한 이념에 발하는 자들은 실로 눈엣가시지요. 그런 놈들이 두번 다시 각하를 거역할 수 있는지 두고 봅시다!
         ||짝이는 빨간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안심되지요. 화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도 딸려온답니다.
         ||역자 놈들은 어찌 우리의 위대하신 지도자의 가르침에 의심을 품을 수가 있는건지! 문답무용입니다. 경계 초소를 몇 채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놈들의 란 도모도 억제할 수 있고, 군국주의자 진영의 호의도 얻을 수 있겠지요.||
          * 일 교육: 정규 과정인 일 교육을 제공합니다.
          * 일 교육 과정: 일적인 교육을 제공합니다.
         ||과학 연구소는 단 한채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하는 다르지요. 이게 다 우리의 인간 복제 기술 덕택입니다. 이제 각하께선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는 동시에 란군들과 싸우실 수 있습니다! 만일 각하의 복제인간이 불상사를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냥 한 명 더 만들면 되는 일입니다.||
          * 전파 차단: 역자나 해외 라디오 방송국의 통신을 차단하여 파괴공작이 발생할 확률을 낮춰줍니다.
          * 훈연실 - $2,000 소모. 이 건물이 있으면 일 쇠고기 대신 더욱 고가의 훈제 쇠고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 고향 바다로: 내장을 바다에 버립니다. 유지비는 으로 삭감되지만 공해는 50% 증가합니다.
          * 선택적 벌목: 섬의 미관을 위해서 절의 나무는 베지 않습니다. 공해 또한 줄어들지요.
  • 이선희 . . . . 40회 일치
         1985년 첫 음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고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 등의 곡도 히트하여 KBS 가요 톱텐에 자신의 노래 7곡을 진입시키는 등 큰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로 1985년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하였다.
         계속적인 음 발매와 콘서트를 통한 활동으로 2010년 [[SBS]]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OST <여우비>와 <내가 사랑할 사람>, 《[[대물 (드라마)|대물]]》의 OST <떠나지마>를 부르기도 하였다.
         == 음 목록 ==
         ===정규 음===
         * 1989년 5집《[[한바탕 웃음으로 (음)|한바탕 웃음으로]]》
         * 2005년 13집《[[사춘기 (음)|사춘기]]》
         * 1984년 《[[즐거운 우리들의 노래]]》 (건전가요음. 사회정화위원회 발매)
         * 1988년 《[[영 (음)|영]]》
         * 1991년 《[[뮤지컬 피터팬]]》세르자드 원작/이 작사/안길웅 작.편곡
         * 2007년 《[[인연 (음)|인연]]》
         * [[2월 1일]] [1집 앨범] '아! 옛날이여' 출 (지구레코드)
         * [[1월 30일]] [2집 앨범] '갈바람' 출 (지구레코드)
         * [[12월 30일]] [3집 앨범] '알고 싶어요' 출 (지구레코드)
         * [[3월]] ~ [[7월]] '알고 싶어요' TV가이드 뮤직박스, DJ연합회 등 상기 최고 인기가요 선정, MBC RADIO 총 15주 1위
         * [[2월 5일]] [4집 앨범]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출 (서울음)
         * [[4월 10일]] [5집 앨범] '한바탕 웃음으로' 출 (서울음)
         * [[4월 30일]] 옴니버스 음 '이것이 오리지날 송이다' 출 (홍콩BMG레코드)
         * [[6월]] 시낭송 앨범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 꿀 수 있다' 출
         * [[8월 20일]] [6집 앨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출 (서울음)
         * [[7월]] [7집 앨범]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출 (서울음)
  • 슈가(방탄소년단) . . . . 38회 일치
         예명은 Sugar(설탕)가 아니라 '''SUGA'''가 맞다. 이 예명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피부가 무척 하얀 데다 웃을 때[* 웃을 때 본인 특유의 입동굴을 보인다. 이 입동굴 때문에 팬들이 팬사인회에서 아랫니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예쁘고 달콤해서 슈가라는 예명을 지었다는 것. 하지만 힙합이 너무 달콤하면 안 된다는 소리에, 'SUGAR'에서 R이 없는 그냥 'SUGA'를 선택했다 한다. 힙합 용어에서 '슈가'는 '중독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학창 시절에 농구부에서 [[슈팅 가드]]를 맡았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줄임말인 '''슈가'''를 선택했다는 것. 모 인터뷰에서는 복싱이 터프하지만 정교한 기술이 필요해 'sweet science'로 불리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에는 스윗해 보이지만 음악적으로 시니컬한 면이 있어 이런 이중적인 면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슈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한 믹스테이프인 'Agust D' 뮤직비디오를 볼 때,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려 준 영어 자막을 틀고 보면 '성공'을 'sugar'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성공'''과 거리가 먼 형들 사이 눈엣가시네 -> I'm a pain in yo' ass too far from the '''sugar'''. 성공을 통해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예명의 본래 뜻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해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매번 예명의 뜻을 설명할 때마다 이유가 달라진다. 때문에 최근에는 뭐 이젠 그런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요... 하고 답하기도 하였다.
         [[RM]], [[제이홉]]과 함께 [[방탄소년단]] 래퍼라인에 속해있다.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 상되는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목소리를 듣고 생각보다 낮다며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Rap|랩]]을 할 때는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간다. 음색이 날카롭고 강해서 랩을 할 때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되는 스타일. 다만 보컬이나 코러스 부분에서는 음색이 타 멤버들 사이에서 튀는 편이다. 때문에 화양연화 Epilogue의 '불타오르네'의 후렴구 "Fire~" 부분에서는 유일하게 슈가의 목소리만 찾아볼 수 없다. [* 3주년 기념 꿀FM에서 발췌.[[https://youtu.be/JcYjKdZUFJs?t=1m49s|#]] 그 사이를 못 참고 슈가 따라하는 [[오늘만 사는 사람|낼없사]]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이 압권.]
         직설적인 가사로 인해 심의에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명 '''프로 불통러'''. 특히 [[WINGS]] 앨범에 수록된 슈가의 솔로곡 First Love의 경우 [[방탄소년단]] 멤버의 솔로곡 중 유일하게 심의에 통과하지 못했다. 매 앨범마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하는 곡들이 나오는데 팬들의 응은 '''윤기가 또?''', '''역시...'''가 다수이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해 걱정하기보단 이젠 즐기는 수준. 본인도 딱히 심의에 관해 별 상관을 안 하고 자유롭게 가사를 쓰는 것 같다. 필요할 때는 서정적이고 섬세한 가사도 잘 쓰는데, 이 역시도 독특한 어투와 어휘 사용, 특유의 날카로운 래핑 등으로 인해 슈가만의 감성이 느껴진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초등학교 6학년 당시 "넌 안 돼", "넌 랩을 하면 안 될 친구야" 라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고 한다. 욕을 먹었을 때 본인의 응은 '그래? 그럼 안 해' 혹은 '그래, 네가 욕한 만큼 다 보여 줄게' 둘로 나뉘는데, 음악의 경우 후자에 더 가까웠다고. 이후 수많은 노력 끝에 랩을 잘하게 되었다고 한다.
         '''13세 때부터 [[미디]] 작업을 시작했다.'''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곡, 편곡을 익혔고, 그 덕분에 녹음 장비와 음향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39&contents_id=122930|링크]] 고등학생 때는 학교 교가를 편곡하여 용돈벌이를 했다고 한다. 일본의 하루하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한 면에, 학창 시절 음악 과목은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음악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정해져 있어서 그게 싫었다고. 그래서 교과서로는 음악 공부는 하지 않고 방과후에 음악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 실력 또한 본인이 독학으로 공부한 것.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음악을 하던 시절이 녹록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에서 버는 수입으로는 식비와 교통비를 내기에도 벅찼다고 한다. 스튜디오 바로 앞에는 2천 원짜리 짜장면 집이 있었고, 한참을 걸어가면 천 원짜리 국수 집이 있었는데, 대로 국수를 먹으면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고 짜장면을 먹으면 두 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했기에 매일 고민했다고.
         2016년 10월, 정규 2집 "[[WINGS]]" 전에 걸쳐 크래딧을 올렸으며[* 다만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에 대해선 '너무 더럽지 않나요' 라며 은근 대를 했었던 모양. --분비물로 이루어진 제목이라니--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피 땀 눈물"이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이에 대해 [[RM]]은 슈가를 "[[방탄소년단]]의 [[펠레의 저주|펠레]]"라고 평가했다(...)] 솔로곡 "First Love" 또한 수록했다. 믹스테이프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향해 달려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었으며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응이 좋다.[* 해외, 그 중에서도 북미를 비롯한 서구 팬들은 '노래에 가수의 영혼이 얼마나 녹아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편'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20830100|#]] 때문에 다소 어둡고 진지하더라도 자서전적인 내용을 담아낸 슈가와 [[RM]]의 가사가 서구팬들에게 공감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의 응도 호의적이다. 믹스테이프 타이틀 곡 <AGUST D>는 퓨즈TV에서 선정한 '''The 20 Best Mixtapes of 2016'''에 들어갔다. [[http://www.fuse.tv/2016/12/best-mixtapes-of-2016-hip-hop#16|링크]] 참고로 여기서 베스트 20은 [[K-POP]]만이 아니라 자국 내 음악까지 포함한 것이다.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9/2016121900616.html|관련 기사]]
         참고로 모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https://youtu.be/p7w6bveDQik?t=4m7s|#]], 슈가는 처음엔 멤버 전원의 솔로곡을 정규 2집에 올리는 것을 '아직 이르다'며 대했다고 한다.[* 정규 2집 "[[WINGS]]"는 슈가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 멤버 전원의 솔로곡이 수록된 앨범이다. [[WINGS]] 항목 참고.] 그러다 믹스테이프 작업 때문에 한동안 정규 2집 작업 체크를 못했는데, 이후 느즈막히 각 멤버들의 솔로곡을 확인하곤 매우 놀랐다고. "이른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다"며 멤버들의 성장을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메모해 두었다가 곡 작업에 영한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으로서 음악 작업을 할 때는 각자 따로 작업하지만, 서로의 작업물을 한데 모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함께 모여 의논한다고 한다. [[http://www.marieclairekorea.com/2016/08/celebrity/%EA%BF%88%EA%BE%B8%EB%8A%94-%EC%8A%88%EA%B0%80/|인터뷰]] 2018년 [[시즌 그리팅]] DVD 영상에서 하루에 한 곡씩은 만들어낸다고 밝혔다.[* 이는 실로 놀라운 것인데 무언가를 창작해 본 자라면 알겠지만 하루에 하나의 창작물은 커녕 일주일, 한 달에 하나를 만들기에도 빠듯하다.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부분.]
         직설적인 랩 가사와 강렬한 랩 스타일과는 상되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미남이다. 그렇기에 얼굴만 보고 '얘는 당연히 보컬이겠지' 했다가 후에 래퍼임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피부가 하얀데, [[방탄소년단]]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한국인 평균 피부색과 비교해 봤을 때도 매우 하얗다. 슈가의 실물을 접한 사람들 말로는 '너무 하얘서 혼자서 조명을 3개는 더 켜 놓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얀 피부 덕에 화려한 색상의 헤어가 잘 어울린다. 때문에 그룹 안에서 머리색이 가장 자주 바뀌는 멤버이다. --여담으로 너무 염색해서 탈모 오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워낙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탓에 어떤 색의 헤어든 다 소화해내서 팬들 사이에선 퍼스널 컬러 파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슈가의 퍼스널 컬러를 따지자면 데뷔 초의 주황,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보다는 톤 다운된 자몽, 애쉬, 노란끼 섞인 민트, 자연 흑발 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때 가을 뮤트(소프트 or 라이트 그레이시)로 추정된다. 팬들 사이에서도 최애 머리를 고르라 하면 의견이 갈린다.]
         본인도 이들을 닮은 것을 아는지 자화상으로 [[메타몽]]을 똑닮게 그리기도 했다. [[https://cdn.namuwikiusercontent.com/storage/09d0a41a7b844bb53e9ff5c73c1ea010d50bd0094511ac7d18b8a40849ad60090dad9969cf5ca85a6c0c40ec488c24de0fd64e88d25a377ffb22eda2ae516d19f4a1d6f4ff529c64baed8e882690d6c5?e=1514521060&k=Y1bdvZjOPqzI9c4s0dWotw|#]] [[라인]]과 콜라보한 캐릭터인 [[BT21]][*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직접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하였다. 각자 본인들의 모습을 영해 만든 듯하다.]의 [[https://twitter.com/BT21_/status/912503937017589760|슈키]][* 슈가를 영한 캐릭터로 영어로는 SHOOKY라 표기한다. 슈키는 조그만한 쿠키 캐릭터인데, 슈키의 이름은 아마도 슈가쿠키의 줄임말일 것이라고 팬들은 추측 중.] 또한 입동굴과 그로 인해 보이는 아기 같은 이빨이 강조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넓은 어깨라던가, 각진 하악이나 마디마디가 굵은 손가락처럼 얼굴 생김새와는 상되는 전 요소들로 인한 [[갭 모에]]가 팬들을 발리게 하는데 충분하다.
         그리고 멤버들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RM|]]을 '''준이'''라는 [[https://youtu.be/6CHNUAO0eZQ|애칭으로]] [[https://youtu.be/kuxNKfi8_P8|부르거나]], [[정국(방탄소년단)|밥 안 먹는 멤버]]한테 [[https://youtu.be/5M9ruwJIaXs|왜 안 먹냐고 챙겨준다거나(1분 55초부터)]] 등등... 휴대폰에 멤버들을 저장해 놓은 이름도 --예상 외로-- 귀엽다. [[RM|랩몬킴이야]], [[제이홉|호옵]], [[진(방탄소년단)|찐형]] 식이다. 말 그대로 [[갭 모에]]. 툴툴거리면서도 멤버가 해 달라는 걸 다 해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http://www.vlive.tv/video/5999?channelCode=FE619|14분 16초부터]] --[[츤데레]]--[* 충수염에 걸렸을 때 혼자 병실에서 [[SBS 가요대전]]을 보다가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넘어진 것을 보고 TV 채널을 바로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무대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고... --흥! 널 딱히 좋아하는거 아냐!-- --츤츤-- '못 보겠더라고' 라고 말했다. 어투를 보면 놀라고 걱정되는 마음에 사적으로 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츤데레]]보단 [[다루데레]]에 가깝다--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단연 [[제이홉]]에게 치킨을 사다준 사연.[* 제이홉 [[제이홉#s-2|트리비아]] 항목 참고.] 달려라 방탄 ep.9에서 번지점프를 뛰는 [[지민(방탄소년단)|지민]][* 지민은 [[방탄소년단]]에서 겁이 두 번째로 많은 멤버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제이홉.]을 보고 "뛰었어? 뛰었네. 아이고" 라고 말하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면모가 많다. 때문에 슈가를 두고 '''무관심 속 유관심'''이라 일컫기도 한다. 제이홉 왈 그룹에서 슈가만큼 멤버들을 신경쓰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한다.
         유튜브 채널을 잘 보다 보면 슈가의 똘끼가 눈에 띈다. 주로 옛날 영상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대표적인 링크는 [[https://youtu.be/OpKUc8IeUrc|아미들의 성지 방탄밤에서의 슈가의 똘끼]], 좀 더 차분한 응이 필요하다면 [[https://youtu.be/pYd3rqxPG6k|앞으로 못 나가 매우 서러운 슈가형]]을 참고. [[WINGS|정규 2집]] 활동 때는 [[https://youtu.be/aniSCuwXJ7s|제이홉을 향한 샤우팅]]을 비롯해 무대, 방송 등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했다. 이럴 때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흥슈가'. [[https://youtu.be/M3xMTYfVo2E|흥 타신 슈가씨]]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총 두 편이며, 10번 트랙 "so far away" 뮤직비디오도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이는 [[http://blogfiles6.naver.net/20160816_85/dbsrldudwo_14713584110624YQm2_PNG/2016-8-16_23%3B39%3B36.PNG|오보]]에 의한 해프닝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자가 Agust D 뮤직비디오 설명란에 쓰여진 글 "Agust D’s ‘Agust D’, the first mixtape album, featuring ‘Agust D’, ‘give it to me’ and ‘so far away' is out now."를 뮤직비디오를 공개한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so far away" 뮤직비디오에 관한 긴 기다림과 궁금증은 [[http://mblogthumb1.phinf.naver.net/20161017_276/yang020215_1476716271498ISk0H_JPEG/Screenshot_2016-10-17-23-47-53.jpg?type=w2|이 사진]] 한 장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 믹스테이프에서는 예명으로 SUGA가 아닌 위의 '''Agust D'''를 사용한다.[* Cyper pt.3 Killer에서 슈가 본인이 발음한 것에 기준하여 '어거스트 디' 라고 발음된다. 그러나 사실 영미권에서 이렇게 발음하려면 첫 글자 A 다음에 H를 넣어 묵음 처리를 하거나, 아니면 U를 넣어 (영어로 8월을 뜻하는) 'August' 라고 써야 하기 때문에 믹스테이프 공개 후 해외 유튜버들이 줄줄이 멘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결국 슈가의 발음대로 어거스트 디로 통일되는 듯. 하지만 일부 영미권 팬들은 여전히 '에이-거스트 디' 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것이 '역겨움'을 뜻하는 'Disgust(디스-거스트)'라는 단어를 연상시켜 믹스테이프 분위기에 잘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타이틀도 동명의 Agust D이며 트랙은 총 10곡. 아이돌인 래퍼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며, 데뷔 이전부터 음악을 시작했던 13살 이후의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비롯하여[* 특히 7번 트랙 <마지막>]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선 가사가 와닿는다는 응이, 해외 팬들 사이에선 랩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긍정적인 응을 얻었다.
         후에 hey ho 하는 코러스가 들리는데, 몇몇 [[A.R.M.Y|아미]]들이 [[제이홉|제이호오오옵]]이 들린다고 뮤직비디오에 댓글을 달아 놓았다.
         1절에서는 대구에서 서울로의 상경을 다짐하면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빅히트]]에 오디션을 보게 된 과정, 2절에서는 그의 연습생 시절 고충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신감과 패기로 똘똘 뭉친 채 상경했던 그가 서울에서 첫 저녁 식사를 사 먹는 순간 현실을 마주하며 전되는 가사의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So far away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곡으로 믹스테이프를 통틀어 팬들은 물론이고 팬이 아닌 리스너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 가장 응이 좋았던 곡이다. 소주 한 잔 하면서 나눌 법한 진솔한 가사가 두드러진다.
          * 데뷔 전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곡을 프로듀싱한 경력이 있다. 곡의 제목은 [[https://youtu.be/elmH5rBKD-M|518-062]]이며, 이 곡을 프로듀싱하던 당시 슈가는 고등학교 2학년이였다.[[https://youtu.be/uA9I9pE0IbM|#]][* 518은 말 그대로 5.18 민주화운동을, 062는 광주의 지역번호이다. 참고로 슈가는 대구 출신으로, 지역별 정치적 성향과 당시 곡을 작업하던 당시의 나이를 감안하는 사뭇 놀랍다는 응이다. [[방탄소년단]] 멤버 중 실제로 광주에서 나고 자란 멤버는 [[제이홉]]이며, 그 또한 "Ma City"에서 "모두 다 눌러라 062-518"이라는 가사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을 언급한 바 있다.] [[http://m.pann.nate.com/video/213092772|당시 글]] 참고로 당시에는 gloss라는 예명을 썼다.
  • 최홍만 . . . . 36회 일치
         || 신체 ||<(> 217cm[* 입식 격투기 데뷔 당시 [[거인]] [[기믹]]을 위해 7피트 2인치(218cm)로 표기하고 다녔지만 꾸준히 [[본인]]은 216cm라고 밝혔고,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엔 [[본인]]의 키를 216.5cm라고 밝혔다(본인의 키를 부각시키는 걸 몹시 싫어하는 듯 하며, 의도적으로 조금이나마 더 줄이려는 모습이다.). SBS 스타킹에 출연 당시에는 본인 입으로 217cm로 밝혔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서 재본 건 사람이 재는 거고, 단순히 책으로 머리를 눌러보는 거라 다분히 오차도 있어 보이는 데다 워낙 커서 일인이 이런 식으로 재서 정확하게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의미 없고 또한 기계식으로든 앉은키 측정하는 것과 같은 수동식 기계로든 공식적으로 재본 적은 없다.] 161.5kg[* [[2016년]] [[9월 23일]] 기준 측정.], [[B형]] ||
         하여간 그 특유의 상품성 덕택에 프로씨름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대학교]] 시절부터 [[텔레비전]] 등에 나오며 엔터테이너성을 쌓았다. 218㎝에 165㎏이라는 엄청난 체구에 [[파란색]], [[노란색]]으로 눈에 띄게 [[머리]]를 [[염색]]하여 처음 본 사람도 인상에 남는 외모였고, 씨름에서 이기고 나면 세레모니로 춤을 춰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좀 더 먼저 활동한 [[김영현]]이 이미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영현과 비슷한 체격이면서 구분하기 위해 앞에 '테크노'를 붙인 것이다. 일인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가던 씨름에 대한 관심을 간간히 지켜가는 역할을 해냈다. 처음 시작이 이런 것을 보면 본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당시 최홍만과 LG의 팀 메이트들은 프로씨름의 사장화를 크게 우려하면서 길거리로 나가 씨름 팀 해체에 대하는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고, 씨름선수이면서도 [[단식투쟁]]을 하는 등 나름대로 여러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사양길로 접어든 씨름판을 살리지는 못했다. 운동을 더 하고 싶은데도 하기 힘든 상황에 닥쳐 어쩔 수 없이 다른 환경으로 전향했다는 점에서는 [[빅토르 안]]의 사정과 유사하다.
         엄청나게 큰 덩치와 씨름 선수였을 당시의 경력으로 인해서 꽤 주목을 받았으며, 격투기 실력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단 등장과 동시에 2005년 3월 서울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아시아 챔피언이 돼 버렸기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근데 이 토너먼트 출전 선수들과 대진표가 '''막장'''이었다. 당시 출전했던 선수들 중 ('''그나마''')가장 강한 선수가 카오클라이였는데 최홍만과의 체중 차이가 거의 '''80kg''' 가까이...게다가 최홍만이 있는 토너먼트 블럭에서는 그 유명한 [[아케보노 타로|아케보노]]와 당시 '''45세'''였던 ''''심판'''(선수가 아니다!) [[카쿠다 노부아키]], 당시 39세 스모선수 와카쇼요 등의 ~~사실 선수라고 불러주기 좀 민망한 수준의 파이터들만~~있던 면, 카오클라이의 블럭에는 수십 전 이상의 킥복싱 경력이 있는 파이터들인 호리 히라쿠와 이면주 등이 포진해 있었다. 여러 모로 최홍만 띄우기 대회라고 팬들 사이에서 적잖이 까였다. 덕분에 최홍만은 지역 대회 우승이라는 나름대로 대단한 경력을 갖고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밥 샙을 이기기 전까지는 한동안 검증 안 된 서커스 파이터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초창기의 대부분의 시합이 실력이야 어찌됐든 간에, 니킥과 럭키 펀치에 의한 시원한 KO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한국에서 폭발적인 응을 끌어냈다.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절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초과 후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만큼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달이 있기도 했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완벽히 말렸지만 피지컬 자체는 본야스키를 훨씬 능가하는 괴물이었기에 시합 도중에 본야스키의 로우킥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께를 들썩이기도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본야스키의 로우킥에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리를 절뚝이며 퇴장해서 허세라는 지적도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최홍만은 "너무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로우킥 관련해선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왼쪽 허벅지가 부상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8&aid=0000307310|#]] 사실 이때 최홍만이 판정에 불만을 표한 것도 좀 에러였던 게, 워낙 상대 선수보다 훨씬 크고 강하니 버텨낸 거지 유효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허용한 면 본야스키는 최홍만의 타격을 대부분 막아냈다.(물론 워낙 타격이 세서 막아도 대미지가 들어갔지만) 애초에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라 (KO가 안 나온다면) 기술적으로 점수를 따내서 비교하는 격투기이기 때문에 확실한 본야스키의 승리가 맞다.
         2007년 4월과 8월 각각 마이크 말론과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홍만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한다. 요코하마에서의 패배를 의식한 듯 가드를 굳히고 로우킥을 내는 전법을 들고 나온 최홍만은 결국 우세한 경기를 펼쳐내며 판정승을 거둔다.[* 1차전에서와 같은 오버 핸드가 수차례 적중했지만 이때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홍만이 모에게서 빼앗은 다운이 실은 [[로블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모는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면 최홍만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친 지나친 어드밴티지와 데뷔 때부터 제자리걸음인 기량 등을 이유로 안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http://www.mfight.co.kr/serial/viewbody.php?code=mfight_board_serial2&number=203|당시 인터뷰. 마이티 모의 표정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마이티 모가 너무 빡친 나머지 판정 결과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요구를 했으나 K-1측의 답변은 '''다운이 로블로인 건 인정하는데 니가 진 건 맞음 ㅋ'''이었기 때문에 K-1도 상당히 많이 까였다. 2006년 밴너와 레미의 대결 당시 판정 논란이 일자 비디오 판독을 통해 결과를 정정한 것과는 대되는 부분.
         최홍만의 MMA 데뷔는 2006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입식 뿐 아니라 MMA로의 진출도 시도하고 있던 K-1의 의도에 따라 이벤트성 매치에 얼굴마담으로 출전한 것이다. 상대는 [[나이지리아]]의 개그맨 겸 무술가인 바비 올로건이었다.[* 일본에선 꽤 유명한 방송인으로 [[시릴 아비디]]에게 이기기도 했다. 유명세 덕에 비디오게임 호혈사에서 캐릭터로 등장했으며, 일본인들에게 일인 중 최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결과는 11초 초살 KO승으로 데이터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입식에서도 잘나가고 있던 때였고 전직 씨름선수로서 차라리 MMA에서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겹쳐 "최홍만은 MMA로 진출하면 최강자가 될 것이다"라는 떡밥이 한국의 전 격투 커뮤니티를 달구기도 했다.
         2009년 5월의 2회전에서 그는 [[쿠바]]의 전직 [[야구]] 선수인 [[호세 칸세코]]를 상대했다. 올로건과는 달리 이쪽은 진짜 '일인'으로 두말 할 필요가 없는 '''희대의 개그 매치'''였다. 게다가 1964년 생의 호세 칸세코는 이 시점에서 이미 40대 중. 운동선수를 하기 힘든 나이에 도달했다. 프로 격투가인 최홍만으로서는 지면 죽어야 할 정도의 시합. 결과는 1분만에 최홍만의 승리로 끝났다.
         2009년 10월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워크'~~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였다. 자신의 체중의 절밖에 되지 않는 미노와를 상대로 2라운드에 체력 난조를 보이며 힐 훅으로 패배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도 졸전 끝에 패배했기 때문에 '''MMA 파이터로서는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시합 내용'''이었다. 미노와 이쿠히사는 최홍만 이외에도 많은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많은 경기들은 '''미노와 자신이 패배한 경기 조차''' 워크 의혹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력 있는 선수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런데 최홍만과의 시합에서만큼은 의혹이 전혀 없다(...).
         이 시합을 끝으로 최홍만은 잠정적으로 격투계를 떠나 연예활동에 전념한다. 파이터 활동을 그만두고 일본 예능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본인은 인터뷰를 통해 2010년 하기에 격투기에 복귀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동년 12월 모든 격투기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라고 밝혔고, 이후 격투기 경기를 뛰지 않고 있으며, 정치 활동에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4&aid=0002159169|사업]]도 하는 등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격투기계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604/sp20160416221832136560.htm|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https://m.youtube.com/watch?v=aA08N65pMks|영상]].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마이티 모의 펀치에 몇 차례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고, 최홍만도 나름 격한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이티 모의 펀치를 허용한 최홍만이 미소를 보였고, 곧 바로 마이티 모의 오른손 훅이 최홍만의 얼굴에 적중하면서 그대로 KO패 당했다.
         이제라도 격투기에서 10년간의 부진에 대해 성한 건지, ~~아니면 격투기 팬들의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다음 경기를 위해 1년간 운동에만 전념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있다.[[http://news.wowtv.co.kr/NewsCenter/News/Read?menuSeq=863&subMenu=tvtenplus&wowcode=W060&articleId=A201805250303&t=NN|#]]
         11월 10일, 경기 도중 이롱이 스피닝 킥을 차다가 로블로를 맞은 듯 했고, 최홍만이 속행 불가 의사를 밝히자 이롱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에 국내의 팬들은 마스파이트가 대놓고 편파를 한다고 비난했으나, 슬로우모션 캡쳐 결과 타격 위치가 치골이었고 이에 [[심건오|건오]]했다는 비아낭을 받았다. 게다가 경기 내내 최홍만은 유효타 제로에 저우진펑전 때처럼 이롱에게 일방적으로 로킥과 안면 펀치를 허용하며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응은 싸늘함 그 자체.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욕이나 악플조차 달리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 자체에서 멀어진 듯 하다.
         왼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잡이처럼 왼팔을 앞으로 향하는 오소독스 자세를 썼는데,[* 보통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대로 [[사우스 포]]자세를 취한다.] 이는 타격 베이스가 없는 최홍만에게 빠르게 타격 기술을 연마시키기 위해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B급 선수들은 정확하고 강력한 왼손 잽만으로도 갖고 노는 수준이었으니 성공적인 전략이었던 셈.
         격투기 선수로서는 엄청난 무기라고 볼 수 있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긴 리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리치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데, 이는 위에 서술된 스피드의 문제도 있지만 최홍만 본인의 격투 스타일이 그다지 리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도 있다. 격투기 데뷔 시절부터 최홍만은 [[아웃복서|거리를 유지하며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스타일]]보다는 [[인파이터|적극적으로 들어가서 큰 스윙을 날리는 스타일]]을 썼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본인의 리치를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하기도 한다.[* 물론 격투기 선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격투 스타일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의 리치가 상대보다 길면 인파이팅보다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상대는 때릴 수 없는데 자신만 때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은 격투기 선수로선 매우 큰 무기나 다름없다.] 전성기 시절에는 맷집이라도 강해서 얼굴 몇 대 맞아도 그냥 씹고 달려드는 게 가능했지만, 안면 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관중 및 시청자들이 볼 때 최홍만의 문제는 안면 타격을 받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저돌적인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 격을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있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는,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엔젤스파이팅에서 적극적으로 펀치를 뻗으며 러쉬를 하든 등 전성기시절의 모습을 어느정도 보여줬다.]
         데뷔 초부터 최홍만은 예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서 방송 출연이 잦은 것이 격투기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한때는 음까지 낸다고 해서 가수라고 까이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격투 갤러리]]에선 그를 凶物([[흉물]])이라고 부른다(…)~~그 동네는 원래 그렇다~~
         ~~5번 항목의 모든것이 설명된다.~~ [[미국]] 네바다 주에서 [[브록 레스너]]와의 경기를 가지기 위해 신체 검사를 받다가 [[뇌하수체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결과가 나와서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경기 일주일 전까지는 경기를 치루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였지만, 3~4일을 앞두고 최홍만을 포함한 대다수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장하여 큰 돈을 들인 다이나마이트 미국 대회가 망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일본에서 열었던 대회 때처럼 3~4일 전 대회 준비를 하려다가 미국 주 체육위원회의 대회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K-1의 병크다.(PRIDE도 미국 진출 당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미국 주 체육위원회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국내와 일본 격투 언론들은 '''UFC의 K-1 진출을 막기 위한 음모다'''는 음모론 기사를 쏟아내었다.~~UFC만 조금 봤더라도 그런 소리는 못한다~~] 최홍만 측에서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서 검사 결과에 발했다.
         참고로 1999년도에 이미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보충역 판정을 받았는데[* 키가 너무 큰 게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2미터를 훌쩍 넘는 키이므로 규정상 당연하다. 1990년대 중까지였다면 5급이 나왔겠지만 [[이회창|이 분]]의 아들 덕분(?)에 병역 판정 기준이 강화되면서......] 이 [[뇌하수체 종양]]으로 수술 후 아예 면제를 받았다. 여기서도 문제가 되었던 게 그가 면제가 된 시점이 공익근무요원으로 훈련소 입대를 이미 통지받고 나서 언론 주목까지 받은 뒤였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그 전에 수술하고 면제가 되었다면 그렇게 주목을 받지 않았을 텐데 입대가 결정되면서 그에게 맞는 특별 훈련복 제작이라던가 하는 여러 이슈들이 나오고, 최홍만 입대 후 생길 수 있는 문제[* 생활관 침상이 안 맞을 것이다. 화장실이 좁아서 볼일을 어떻게 볼 것이냐 등등]들에 대해서도 연예 정보프로그램 등에 얘기가 나오면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최홍만 측도 이런 관심들에 "재밌고 색다른 경험을 하게 돼 기대된다. 누구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군대 생활을 하고 나오겠다. 오히려 같이 생활할 훈련소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등 응을 보이고 입대 일에도 연예정보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하면서 입대를 하는데, 알고보니 이미 [[뇌하수체 종양]]에 대한 의사 진단서를 가지고 들어가서 제출할 준비가 되어 있던 상태였고 입소 후 사흘만에 그 진단서로 귀가 조치를 받고 귀가하여 한달 뒤 최종 재검으로 면제까지 받게 된다. 차라리 처음부터 훈련소 입소 같은 이슈를 만들지 말고 본인이 먼저 재검 신청을 했으면 훈련소 같은 곳 갈 일 없이 면제를 받을 수 있던 부분인데 관심을 끌고, 훈련소 생활을 할 마음 없이 자신이 가져온 진단서로 귀가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입대할 것처럼 언론에 말한 부분에 대해 비난이 있었다.[* 실제로 나중에 재검에서 면제가 되건 다른 등급이 나오건, 귀가 자체는 이런 신경과 관련 진단서가 있으면 어렵지 않고 그 정도는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의 훈련소 생활에 대해 상상하면서 응원하던 대중들이나 그의 입대를 위해 특별하게 준비하던 훈련소 관계자들은 그가 2박 3일만에 금방 귀가하여 면제 판정 받은 일로 인해 바보가 된 것과 다름없었다.] 아마 본인도 최대한 [[뇌하수체 종양]]으로 수술을 하거나 이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버티다가 군입대 및 면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이슈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적어도 입소 전에 재검 신청으로 해결했다거나 훈련소를 가게 되더라도 진단서도 가져가면서 훈련소 생활을 할 것처럼 인터뷰하지 않고 귀가했다면 별다른 부정적인 응은 없었을 것이라 아쉽다.
  • 서든어택 2/무기 . . . . 35회 일치
         ||1962년에 처음 등장한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돌격소총이다. 소구경 고속탄을 사용하는 컨셉으로는 세계 최초로 실용화된 돌격소총이었으며, 베트남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된 후 높은 성과를 올려 이후 서방 세계 돌격소총의 기본 컨셉이 되었다. 이전까지의 자동소총들에 비해 자동 및 점사 동 제어가 쉬운 편이지만, 연발에서의 제어는 어렵다.||
         || 총기동 || 66% ||
         ||돌격소총으로, 지금까지 2억 정 이상이 생산,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개량형이 등장했음에도 아직 생산이 유지되고 있을 만큼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총이자 서방의 M16과 영원한 라이벌에 속한다. 한발 한발의 위력은 대구경인 만큼 M16에 비해 크게 우세하지만, 그만큼 동 역시 심하다는 결점이 있다.
         하지만 동이 크다 해도 기관총과 별 차이가 없는 과거의 자동소총에 비해서는 다루기 쉬운 편이었으며, 2~3발씩 끊어 쏠 때만큼은 라이벌이 M16 못잖은 높은 명중률을 보인다.||
         || 총기동 || 85% ||
         || 총기동 || 54% ||
         || 총기동 || 65% ||
         ||프랑스군의 제식 돌격소총으로 그 독특한 외모 때문에 군용 불펍식 소총으로는 일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소총이다. 적지 않은 부분에 경화 플라스틱을 적용해서 경량화를 시켰으나 그럼에도 꽤 무거운 편으로, 불펍 특유의 뒤로 치우친 무게중심과 높은 발사속도 때문에 동 통제가 어렵다는 결점이 있다. 그럼에도 신뢰성과 명중률은 상당히 높아 우수한 소총으로 평가받고 있다.
         || 총기동 || 66% ||
         ||AK-103은 AK-47 계열 돌격소총의 최신 버전이다. 구경을 5.45mm로 줄여 동을 줄이고 명중률을 높였던 AK-47의 후속작 AK-74와 달리 AK-103은 다시 고전적인 7.62mm 탄약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만큼 높은 위력을 발휘하지만 고질적인 동 문제도 다시 안게 되었다.||
         || 총기동 || 93% ||
         || 총기동 || 45% ||
         || 총기동 || 85% ||
         || 총기동 || 81% ||
         || 총기동 || 48% ||
         미국은 1950년대부터 착검 기능 등을 부여한 군용 버전을 구입해 사용해 왔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모듈화 개량이 가해진 개량형을 계속 구입, 사용하고 있다. 강력하고 우수한 자동 산탄총이 다수 등장한 지금도 여전히 미군이 가장 애용하는 산탄총 중 하나이다,
         || 총기동 || 98% ||
         || 총기동 || 88% ||
         || 총기동 || 35% ||
         || 총기동 || 56% ||
  • 조성모(가수) . . . . 35회 일치
         ||<table 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D700><#FFD700><-5> [[골든디스크 시상식|[[파일:골든디스크 시상식_로고.png|width=50]]]][br]'''{{{#ffffff 음 대상}}}''' ||
         '''대한민국 최후의 음 황제이자 90년대 말~2000년대 초 압도적 인기를 누린 솔로 가수.'''[* 당시 괴물 같던 1세대 아이돌들의 팬덤과 인기를 단독으로 상대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솔로 가수이자 심지어 음 판매량, 수상 경력 등 커리어로는 그 당시 가요계를 통틀어 압도적이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발라드 가수로서 아이돌을 제치고 대상을 탄 원톱 가수이다. (아래 수상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을 모두 휩쓴 것뿐만 아니라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전신인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도 대상 부문인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도 수상했으니 MAMA에서도 사실상 대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받지 못한 건 [[멜론 뮤직 어워드]] 뿐이다. 근데 멜론 뮤직 어워드는 조성모의 전성기가 지난 2005년에 온라인 형태로 시작해서 2009년이 되어서야 오프라인 시상식이 되었다.--][* 조성모가 최전성기 때 대상을 받은 1999년과 2000년을 기준으로 보면 먼저 1999년 같은 경우 그 전 해인 1998년에는 [[H.O.T.]]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서울가요대상]]도 같은 아이돌 그룹인 [[젝스키스]]와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고, KMTV 가요대전도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 다음해인 1999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은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서울가요대상]]은 [[핑클]]과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였고, [[SBS 가요대전]] 대상은 [[핑클]]이 조성모를 제치고 수상할 정도였다. 이후 2000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SBS 가요대전]],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KBS 가요대상]]은 [[god]]가 조성모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인 2001년에는 [[god]]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골든디스크 시상식]],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는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만큼 1세대 아이돌의 팬덤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원래는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GO003&qid=0DyDI&q=%C8%FC%C7%D5%B4%ED%BD%BA%B1%D7%B7%EC+%BB%E7%C3%B5%BB%E7&srchid=NKS0DyDI|'''사천사''']]라는 혼성(남3, 여1) 힙합댄스그룹의 멤버였으나 공중파 방송 데뷔를 앞두고 해체돼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으며[* 그런데 본인이 밝힌 바로는 (181004 해피투게더) 그 당시는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 트레이너도 존재하지 않아, 댄서였던 다른 멤버에게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춤이 늘지 않자 일 년 만에 팀에서 방출 되었다고. 팀은 조성모가 나간 이후 공중 분해된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부족한 춤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에는 댄스의 피가 끓고 있다고 꾸준히 힘주어 말한다. 이날, 사천사라는 팀명은 본인이 지었다고 덧붙였으며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사천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김광수(음기획자)]] 대표[* 그러나 그 시절의 김광수 대표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성모를 만나 제작자로 정점을 찍었다. [[티아라]]가 [[라디오 스타]]에 나와 밝힌 바로는, 자신들 앞에서 '성모가 보고싶다'며 울었다고 한다. 티아라 자신들은 무서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김광수 대표는 자신의 호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에 의해 발탁되어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1998년 9월 4일 첫 앨범 《To Heaven》[* 그런데 본래 조성모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를 예정이었던 노래|다른 가수에게 가려고 했던 곡]]이었다고 한다. 원래 주인공은 현 [[FNC엔터테인먼트]] 사장인 한성호 대표이다.]으로 데뷔 후 줄곧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했는데 [[이병헌]]과 [[김하늘]]이 주연한 뮤직 비디오만 공개[* 조성모의 말에 따르면 방송국에 홍보용으로 미리 돌린 것이 의도치 않게 송출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그것이 예상치 못하게 응을 끌면서 본의 아니게 얼굴 없는 가수가 된 것이지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한 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1998년 10월 17일 [[이소라(가수)|이소라]]의 프로포즈(99회)로 [[https://www.youtube.com/watch?v=doW-NQXoWgY|방송에 첫 출연하면서 얼굴을 공개했다.]] [* 이 장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도 나온다. 방성재와 도학찬은 조성모의 외모를 가지고 내기를 걸었고 예상 외로 조성모의 얼굴이 매우 멀쩡하자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후 [[이수영(가수)|이수영]]과 함께 유명 발라드 가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둘을 동시대 가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데뷔 초부터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성모와는 달리 이수영은 2집의 실패 이후 3집 그리고 사랑해로 슬슬 뜨다가 2003~2006년을 전성기로 보낸 탓이다. 대신 조성모의 전성기를 2005년 6집 Mr.Flower까지로 보면, 이수영이 7집 Grace와 8집 단발머리까지 히트시키며 그만큼 더 롱런하기는 했다.]
         그 뒤 조성모의 활동 시기[* 김광수 사장의 픽업으로 데뷔했지만 아이돌식 프로모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솔로 가수의 필연적 롱런 방식 중 하나인 싱어송라이터 전업에 실패하면서 솔로 가수로서 입지를 유지하는데 실패했다. 그게 아니면 이문세나 이승철 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가수 역량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만나야 되는데 그것도 실패한 케이스이다.] 이후로 음 시장이 아이돌 위주로 재편되었고 본격적인 CD 시장 붕괴로 인해 MP3 음원 판매가 주를 이루고 가수들의 색깔이 비슷해지면서 '황제', '황태자'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가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음 판매량에 있어서 조성모는 조용필, 신승훈, 김건모의 뒤를 이을 정도로 엄청난 기록을 갖고 있다.]
         이 중 [[2000년]]에 발매된 2.5집 리메이크 앨범(타이틀곡: 가시나무)은 '''160만 장'''이 팔렸으며 타이틀곡 아시나요가 수록된 정규 3집 앨범은 '''출시 당일 하루 만에 40만 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고 총 '''20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2000년 최고 음 판매량을 기록'''하며 두 앨범들이 2000년 한 해 앨범 판매량 순위에서 1위와 2위를 석권했다[* 조성모의 두 앨범 외에 2000년 출시 앨범 중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은 god 3집과 서태지 6집 뿐으로 2000년 음 판매 순위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2000년은 가히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로 [[넘사벽]]급의 '''[[리즈 시절]]'''이었다. 특히 2000년에는 서태지의 전격 컴백을 비롯하여 인기 아이돌 그룹과 톱 가수들이 대거 컴백하여 경쟁이 치열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정규 4집 '잘 가요 내사랑'부터 한계를 보이더니 기존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과의 불화로 인해 소속사를 바꾸어 출시한 5집 '피아노'를 기점으로 점차 내리막길을 타고 정규 6집 이후로 지금까지 히트곡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필래가 2010년 8월 마지막 주 [[엠 카운트다운]]에서 [[http://www.nocutnews.co.kr/news/748873|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는 했으나]] 조성모 본인은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211/sp2012111915515496010.htm|바람필래를 실패작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사실 4집 이후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지 음악방송 1위는 꾸준히 하였다.]
         전성기로 평가되는 전기에 구사된 그의 창법은 미성이 특성이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으나, 전성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과 자신 스스로 창법을 바꾸고 싶단 생각으로 5집 때부터 '''창법이 바뀌게 된다.''' 후기의 무대 영상이나 음원을 찾아 창법을 비교해 보면 전기 시절에 보여주었던 1집의 '불멸의 사랑'이나 3집의 '아시나요'와 같은 폭발적인 미성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노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히든 싱어]]에서도 원조 가수 최초로 2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무한도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도 출연 자격을 얻게 되는 노래방 기기 95점을 넘기기 위해 몇 차례나 재도전한 끝에 겨우 출연을 확정짓기도 했다. 윤종신과 더불어 예전 목소리가 그리운 가수. 아마도 창법이 변화된 후부터 팬의 이탈이 많았던 듯 싶다. 남아있는 팬 중에도 과거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병역을 마치고서 컴백한 후에 여태까지 발표해오던 슬픈 발라드 곡 대신 갑자기 <바람필래>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사실 조성모는 예전부터 타이틀곡으로는 선정하지 않긴 했어도 댄스곡을 정규앨범에 한 두곡 씩 넣곤 했었다. 응은 발라드보다는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To Heaven도 댄스 버전이 있다. 이건 그냥 리믹스 버전 정도로 조성모의 변신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였고, 1집 수록곡인 '후회'가 댄스 비트를 가진 첫 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며, 2집 '상처'는 후회를 잇는 댄스곡으로 이 또한 인기를 끌었으며, 인기 절정이었던 3집 당시 후속곡으로 활동했던 '다짐'[* 원래는 비비 1집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다. 리메이크곡이 원곡과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매우 드물기에 이 사실이 한참 지나서야 알려지기도 했다.]이 수록곡 차원이 아닌 3집의 후속곡으로 선정되며 인기를 얻었던 바이다.[* 사실 '다짐'으로 활동했을 때에 조성모가 댄스곡을 잘 소화했기 보다는 당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었기에 그에 따른 후광효과가 컸다고 봐야 하며, 실제 댄스를 소화하는 조성모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사실 이때마저도 일부 팬들로부터 어그로를 끌기도 했었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늘상 선곡이 비슷하다는 비평도 함께 받았었다. 특히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 덕에 독자적인 팬층을 확보했지만 그로 인해 자가복제라고 팬층 외에서 비판을 계속 받아야 했다. 이건 사실 전성기였던 전기 시절의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에서 지시한 것이지 당시 신인에서 막 벗어나며 대스타로 거듭나던 상황인 조성모로서는 돈도 그렇게는 많이 못 받고 앨범 작업에 있어서도 별 힘이 없었다. 조성모도 이 당시가 가수로서 자신의 리즈 시절이긴 했지만 소속사의 굴레에 갇혀 활동하는 등 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더구나 그 당시에 조성모 부모님이 빚도 많이 있어서, 빚 탕감하는데 치중하며 가수 활동을 하다보니 더더욱 그런 듯하다.]
         === 음 목록 ===
         [[조성모/음 목록]] 문서 참조.
         '''[[X맨을 찾아라]]에서 [[김종국]]이 최대 수혜자였다면, [[출발 드림팀]]에서는 조성모가 최대 수혜자였다.''' 조성모는 출발 드림팀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도전으로 인기를 얻었다. 뜀틀청년이라는 이명이 생길정도로 [[뜀틀]] 분야에서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맹활약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건강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였으나, 정작 병역의무를 공익으로 이행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유는 선천성 어깨탈골. [* [[김종국]]과 같은 날에 훈련소에 입소를 했는데, 김종국이 별다른 행사없이 바로 입소한데 비해, 훈련소 입구 앞에서 팬클럽과 함께 환송회를 열었으며, 특히 공익으로 군 복무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군생활에 공백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 하는 등 지나친 응을 보인 탓에 비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가수라는 이유로 논산훈련소 천주교 성가대에서 성가복을 입고 찬송가를 부르는걸 목격당하기도 했다. 출발 드림팀은 프로그램 출연자 대부분이 공익으로 빠진 것을 빗대어 '출발 공익팀'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하였다. 참고로 소집해제때 비니를 쓰고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공익으로 복무한 연예인들은 거의 전부가 소집해제 기자회견시 비니를 착용한다. 현역복무자의 짧은 머리와 비교되어 비난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이들 역대 인기곡 뮤직비디오들의 캐스팅을 지금 분석해 보면 초호화 캐스팅인데, 이게 신승훈이나 이승환과 같이 가수 자체의 역량 덕분에 신인배우들이 전격적으로 캐스팅되어 뮤직비디오를 통해 주목받은 케이스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보다 초창기에는 조성모가 처음 몸 담았던 대형 기획사인 [[코어 콘텐츠미디어|GM기획]]이 영화/드라마계의 스타급 배우들을 소속 연예인으로 많이 거느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캐스팅이거나, 중/후기에는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명성이 이미 높아진 상태였기에 스타급 배우들도 조성모 뮤직비디오 정도면 격에 맞다고 생각해서 캐스팅을 승낙했던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 [[http://youtu.be/C9CMZ35vTYs|아시나요 (3집)]][* 영화 '플래툰'의 촬영지인 [[필리핀]] [[마닐라]] 올로케로 촬영되었으며 2000년 당시 총 제작비로 15억원이 들어간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사상 전무후무한 대작 스케일을 내뿜는다. 스토리 내용은 주인공 조성모가 월남전쟁에 파병되어 베트남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함께 죽는 슬픈 결말로 구성된다. 극중 파병 부대로 마크까지 등장하는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베트콩에게 전멸당하는 전투장면 및 얼차려 등의 병영생활 등이 나오는 장면들과 관련하여 거센 항의를 받고 법정공방까지 가기도 했다. 한편 [[천국의 눈물|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도 만들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http://www.youtube.com/watch?v=oB4oCDXFXhE|수정판]][*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항의로 인해 부대마크를 모자이크 처리 및 전부 국군이 베트콩에 전멸하는 전투장면을 삭제하고 후부 전투에서도 주인공 조성모가 베트콩 수장을 죽이는 장면을 추가 삽입하는 등의 수정작업을 거쳤다.]) : [[신민아]][* 1999년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로 데뷔하였고, '아시나요'는 그녀가 출연한 두 번째 뮤직비디오 작품이자 실질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알린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조성모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인 베트남 소녀 역할을 맡았으며, 전투를 떠나는 부대원의 지리정보를 주기위해 겁도 없이 총도 안가지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결국 베트공의 총에 맞아 죽는다.], [[허준호]][* 주인공 조성모가 소속된 월남파병 부대의 [[말년병장]] 쯤으로 추정된다. 방탄모도 안쓰고 지멋대로 두건을 하고 다니는 등 군기가 제대로 빠져있는데, 중간에 민간인 구출 작전 과정에서 베트공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되고, 베트공 대장의 살해 협박에 아군의 부대 위치를 알려주는 병크를 저지르고 결국 살해 당한다.], [[정준호]][* 조성모가 있는 파병부대의 소대장으로 계급은 중위.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 구해낸 현지 월남 주민인 신민아가 현지 지리에 밝은 것을 활용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 전투에서 숲속에 [[네이팜탄]]을 뿌리며 불을 지르다가 베트공의 습격에 폭사당한다.], [[신지수]][* 극중에서 신민아의 여동생으로 연기한다.], ~~[[오상훈]]~~[* To Heaven에 출연했던 악역 전문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국군과 대치하는 베트콩의 대머리 수장 역할로 거의 주연급 악역으로 출연한다.], ~~[[김대진]]~~[* '여름아 부탁해'를 부른 그룹 인디고의 멤버 맞다. 그 이전에는 지오에서 활동했다. 조연급 배우로 활동중이며,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서 조성모의 동료 병사로 출연하는데, 극중에서 전투중에 아역배우였던 신지수를 비롯한 월남 민간인들을 구출하려다 총상을 입고 전사한다.]. ~~[[한나나]]~~[* 가을동화에서 송승헌의 약혼자로 나왔던 그 배우 맞다. 뮤직비디오에서 간호장교로 간간히 등장한다.]
          - [[http://youtu.be/7BttP5wx3Cw|다음 사람에게는 (3집)]][* 조성모의 3집 후속곡 뮤직비디오가 맞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던 2000년 말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이미연을 모델로 내세운 발라드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戀歌)'의 홍보 뮤직비디오의 성격이 더 강했다. 청순가련의 대명사인 이미연의 보증수표 이미지에 조성모 뮤직비디오의 날개를 달은 덕분에 홍보효과는 백점 만점인데다, 컴필레이션 구성 또한 심심하게 옛날 발라드 명곡들만 넣은게 아니라, 조성모의 '아시나요'를 비롯해 2000년 당시 최신 인기 발라드 곡들까지도 과감히 비중있게 수록한 4CD의 알찬 구성 덕분에 최초라는 수식과 더불어 최다 음 판매라는 수식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와 다르게 '연가'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조성모의 곡이 아닌 원곡인 정재욱의 곡이 담겨 있다.] : [[이미연(배우)|이미연]], [[류시원]], [[김세아]], [[김채연]], ~~[[황인성]]~~
          - [[http://www.youtube.com/watch?NR=1&v=vChVqrG9xnw|눈물이 나요 & Mr. Flower (6집)]][* 2000년대 들어서 뮤직비디오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장재혁 감독의 작품으로 '아시나요' 이후 별다른 임팩트를 발휘하지 못했던 조성모표 뮤직비디오가 다시금 고개를 들게 한 작품이다. 2005년 2월에 앨범과 함께 발표한 뮤직비디오로서, 2004년 상기와 하기에 각각 최고의 주가를 올린 배우 김정은과 소지섭을 캐스팅한 것만으로도 큰 화제인데다, 뮤직비디오 스토리 전개상 거친 장면이 많은데다 일본 현지 올로케이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많아 7억원의 꽤 많은 제작비보다도, 총 112억원의 두 배우에 대한 보험금이 실질적으로 더 화제이기도 했다. 일본배우 오사와 다카오도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 [[소지섭]], [[김정은(배우)|김정은]], [[오사와 다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마부대와 월남전참전전우회는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판매금지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주 이유는 이 비디오가 월남전에서 백마부대가 거둔 혁혁한 전과를 호도했고, 월남참전용사들을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법원은 결국 조성모의 손을 들어줬는데, ~~고증도 틀린~~ 전투복에 부착된 백마부대의 표지를 지워내는 등 명예훼손의 염려가 있는 부분을 배제하려 한 노력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뮤비는 결국 공중파에서 내려야 했고 양수리에서 급히 찍은 뮤비로 대체되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했는데 초부에 실력자와 음치를 같은 비율로 탈락시켰으나 마지막에 결국 실력자를 탈락시켜 음치와 듀엣했다. 이 때 신인밴드의 보컬을 구할 필요가 있어서 출연했는데.(...)[* 실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연예인 음치 판정단을 너무 믿은 게 문제였다.] 그래도 마지막에 탈락시킨 실력자를 섭외해 보컬을 구하기는 했다.
          * 한국 음 산업 협회 공식 누적 앨범 판매량 역대 1위 가수 (1600만장)
         2010년에 공채 탤런트 출신 구민지와 결혼하여 유부남이 되었다. ~~아아 들린다 여심이 단체로 쪼개지는 소리가~~ 다만 결혼 전에 아내와 관련된 좋지 않은 루머가 돌아 둘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조성모가 직접 나서 결혼식 당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울먹거리며 아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었다. 눈시울까지 붉힌 그의 진심이 전달된 덕인지 이후로는 여론도 안정을 찾아 별다른 소음이 일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상당히 애처가이다. 부인 얘기만 나와도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함박웃음이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결혼 이후, 설거지 탓에 주부습진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이를 들은 다른 남성 출연자들의 어색한 응에, 설거지는 당연히 남자가 하는 것 아니냐는 투로 대응한 바 있다. [* ~~물론 그것 역시도 그 자리 남성 출연자들에게 공감을 사지는 못하였다. 그의 말에 네?? 하고 멍하니 쳐다만 볼 뿐..~~] 결혼 4년만에 임신 소식이 전해졌고, 2015년 10월 득남하여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2018년 8월 26일, KBS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영분에 아들 조봉연 군이 잠깐 등장하였는데 조성모를 쏙 빼닮은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배우 [[봉태규]]의 아들인 봉시하 군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 희빈 장씨 . . . . 35회 일치
         {{인용문|오례가 신사를 행할 때에 숙정 등 여러 사람들이 또 같이 참석하여 축원하기를, ‘기해생(己亥生)【장씨(張氏)가 기해년에 났다.】을 몰래 도와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지난해 6월에 오례가 숙정에게 ‘10월에 마땅히 뇌동(雷動)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원컨대 상사(賞賜)를 받게 해 주소서.’라고 하니, 숙정이 ‘만약 그와 같이 된다면 마땅히 중한 상을 받을 것이니, 드시 세자와 기해생을 몰래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기사}}
         언니는 관상감 관원인 김지중에게 출가하여 1691년 당시 관직이 종7품 직장이었다. 오빠 장희재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희빈 장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후궁이 되기 7년 전인 경신년(1680년)에 키가 크고 외모와 무술이 뛰어난 명문가의 자제만으로 구성된 [[내금위]]에 재직<ref>《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ref> 하였으며 1683년에는 좌포청 부장으로 있었다.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사촌형인 [[장현 (조선)|장현]]은 [[조선 효종|효종]] 8년에 이미 정2품 자헌대부를 제수받고 숙종 1년에는 이미 종1품 숭록대부에 올라 공을 세워도 더이상 품계가 올라갈 수 없어<ref group="주">생전에 정1품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건 [[문관]]에게 한정된다. 《동의보감》의 저자이기도 한 명의관 [[허준]]은 [[광해군]]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제수받았다가 문관의 발에 의해 취소되었고, 사후에야 비로소 추증됐다.</ref> 자식과 조카가 대신 승봉되어야 했던 거물 역관으로 재산은 국중거부의 명성을 얻을 정도였으며, [[장현 (조선)|장현]] 형제의 자식들은 무관 및 역관, 혹은 의관으로 고위직에 있었다. 그녀의 일족이 비록 문신 사대부 가문은 아니었지만 조선에서 손 꼽히는 대부호였으며 사회적 위치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같은 해,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에 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숙종실록이나 인현왕후전 등에는 숙종을 모시기에 장씨의 출신이 천하고 성품이 극악한 이유로 쫓아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경신환국]] 당시 [[장현 (조선)|장현]] 일가가 [[복평군]] 형제와 절친한 사이이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몰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명성왕후]] 김씨의 사촌 오라비 [[김석주]]였던 것으로 비추어 장씨의 보복을 견제한 탓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출궁된 직후인 [[1681년]] 1월 3일에 계비 간택령이 내려졌고, 3월에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대비 김씨]]와 [[송시열]]의 추천으로 민씨([[인현왕후]])가 간택되어 [[1681년]] 5월 14일 [[조선 숙종|숙종]]과 민씨가 가례를 올렸는데 본래 [[명성왕후|대비 김씨]]의 친정 가문과 원한이 있던 [[송시열]]과 [[민유중]]<ref group="주">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우명]]은 당파로선 엄연한 서인이었지만 [[조선 현종|현종]]의 척신으로서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판하고 [[남인]]의 손을 들어주어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민유중]]은 과거 [[김우명]]의 형인 [[김좌명]]과 심하게 다투어 벼슬을 버리고 지방에 은거하였던 경력이 있다.</ref> 의 혈육인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가 된 것은 [[경신환국]] 당시 [[서인]]과 손을 잡았던 명성왕후의 정치적 계약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인경왕후]]의 죽음 직후 계비로 내정된 민씨를 위해 장씨를 [[조선 숙종|숙종]]의 곁에서 치운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ref group="주">본래 정처의 3년상이 마치기 전에 재혼하는 것은 경국대전과 의례의 조항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이는 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 숙종|숙종]]이 [[인경왕후]] 김씨의 사후 3년상은 고사하고 불과 년도 되지 않아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을 한 것은 조선 왕실 역사 상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있어야 할 [[인현왕후]] 민씨와의 재혼에 대해 대하지 않았던 서인은 [[인현왕후]] 민씨의 사후 3년상이 마쳐지기 전에 [[조선 숙종|숙종]]이 계비 간택령을 내리라는 명을 내리자 대를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권, 28년(1702 임오 / 청 강희(康熙) 41년) 8월 27일(병오) 2번째기사</ref>
         궁으로 돌아온 장씨를 향한 숙종의 총애가 지극하자 [[서인]]과 [[인현왕후]] 민씨의 발이 격렬했다. [[인현왕후]]는 장씨를 견제하기 위해 서인과 합세해 1686년 3월, 서인 영수 [[김수항]]의 종손녀인 [[영빈 김씨]]를 간택후궁으로 입궐시켰다. 숙종 12년인 1686년 2월 27일 기사에 [[인현왕후]]가 여러차례 간택후궁을 들일 것을 종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장씨가 재입궁 한 것을 [[인현왕후]]가 후회하였거나 애초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서 1683년에는 [[인현왕후]]의 큰아버지인 좌의정 [[민정중]]이 장씨의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정명공주]]의 생일잔치에서 노래를 부른 첩 안숙정<ref group="주">안숙정은 숭선군저의 가비(歌婢)로서 노래 실력이 장안 최고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인의 응은 싸늘하여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상(喪) 중임을 앞세워 숙종의 득남에 축하연은커녕 하례인사조차 드리지 않았다. 또한, 다음 달인 11월 12일에는 숙종에게서 입궁하여 장씨의 산후조리를 도우라는 어명을 받고 입궁하는 장씨의 생모 윤씨를 지평 [[이익수]]가 명을 내려 사헌부 관원들이 그녀를 가마에서 강제로 끌어내리고 그녀의 하인들을 눈 앞에서 매를 때리고 체포하였다.
         덮개가 달린 가마인 옥교를 탈 수 있는 부녀자는 3품 이상인 동(문관) 당상관의 어미와 처, 딸과 며느리로 국법이 정해져있는데 당하관에 불과한 천한 역관<ref group="주">문관은 역관을 천인으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수치스럽다하여 청국행(淸國行)을 기피한 문관을 대행(代行)해온 역관들의 직위와 부귀가 종내에는 문관을 넘어서기에 이르자 역관을 양민으로 분류되는 사노공상 중 최하층인 상인으로 분류하여 역상(譯商)으로 하칭하기도 하였다.</ref> 의 아내인 윤씨가 옥교를 탄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법은 여인은 얼굴을 공개하고 외출할 수 없다는 조선시대의 사정에 의해 오래전부터 지켜지지 않았고, 이에 서(무관) 가문의 여인이나 당하관의 처첩은 물론 관직이 없는 양가의 부녀자나 중인, 양인에 불과한 아속의 처는 물론 환관의 처부와 궁녀, 하물며 천민인 기녀와 침선비도 타고 다녔다. [[명성왕후]] 김씨의 친신 무당이었던 막례(莫禮)도 옥교를 타고 궁을 출입하며 굿을 했었던 만큼 사실은 아들을 생산한 소의 장씨에 대한 감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서인]]은 장씨의 생모는 앞으로도 옥교를 탈 수 없는 명을 내릴 것을 종용함과 동시에 윤씨의 옥교 사건을 예로 삼아 가마에 대한 법을 개정하여 선포하라는 보복성 주장을 제기하여 [[조선 숙종|숙종]]을 재차 굴욕시켰다. 이 사건의 발발한 지 불과 2개월 후, [[조선 숙종|숙종]]은 격을 가한다.
         [[임해군]]의 동복 동생인 [[광해군]]은 큰 아들이 아니기에 당연히 원자가 아닌 신분으로 세자가 되었다. 후궁 소생이 원자가 될 자격이 없지는 않지만 서른이 되지 않은 [[조선 숙종|숙종]]이 후궁 소생을 원자로 정한 것은 비정상적으로 급한 결정이었다.그러나, 부왕인 [[조선 현종|현종]]이 34세에 죽었고, 왕의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대였던 만큼, 30세가 다 되어가도록 후사가 없는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론이 있기도 하다.</ref> 하고 있던 서인은 숙종의 선언에 당황했지만 제대로 대를 하거나 저지를 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 속에 [[조선 숙종|숙종]]은 불과 닷새 후인 1월 15일에 왕자 윤에게 원자 명호를 내려 종묘 사직에 고했다. 또한, 숙종은 원자 윤의 생모 소의 장씨를 정1품 빈(嬪)으로 책봉하여 귀인 김씨를 제치고 후궁 1위로 만들었다.<ref group="주">숙종실록에는 15일에 빈으로 책봉된 것으로 기록됐지만 승정원일기에는 17일로 기록되어 있다.</ref> 앞서 [[조선 숙종|숙종]]이 원자 정호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관직을 내놓고 떠나라는 선언이 있었으며, 이미 종묘 사직에 고한 일을 무르라는 것은 선대 왕들을 한꺼번에 능멸하는 행위이자 신권이 왕권의 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행위나 다름없기에 [[서인]]은 소극적인 박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밖에 없었고, 숙종은 이 또한 용서하지 않아 그들을 파직하였다.
         [[서인]]이 차지하고 있던 삼사(三事: 삼정승)와 승정원, 사간원의 중앙 최고 요직이 경신년에 조정에서 밀려나 은신 중이었던 [[남인]]으로 교체되자 조정으로 돌아온 [[이현기]](李玄紀)·[[남치훈]](南致薰)·[[윤빈]](尹彬) 등은 먼저 원자 윤의 탄생과 [[조선 숙종|숙종]]의 원자가 정해진 것에 대해 경하와 찬사를 올려 [[서인]]과는 극적으로 상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경신년에 [[남인]]에게 대역죄를 씌워 [[경신환국]]을 일으켰던 [[서인]]을 향한 정치 보복의 시작이었다. [[송시열]]에게 유배령을 내리고 [[김수항]] 및 일부 [[서인]]을 조정에서 내쳐버리긴 했지만 분노가 가시지 않았던 [[조선 숙종|숙종]]은 [[남인]]의 부추김으로 [[송시열]]을 최고 유배지인 제주로 유배할 것을 명하고 [[김수항]] 등에게도 진도 유배령을 내렸다. [[민암]]을 위시한 [[남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6판서·참판·참의 등 남인 경재(卿宰) 수십인과 사헌부·사간원이 합계(合啓)하여 과거의 환국([[경신환국]])을 위해 역모를 날조하여 무고한 남인 영수 [[허적]]과 [[윤휴]] 들을 살해하였고 과격한 처벌로 죄없는 [[남인]] 인사를 학살한 [[김석주]]와 [[김익훈]]의 죄를 묻게 하였으며 이들을 옹호하였던 [[송시열]]과 [[남인]] 옥사의 위관으로서 [[남인]] 재상 [[오시수]] 등을 죽게한 [[김수항]]의 가중처벌을 맹렬히 주장하였다.
         다음날 23일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생일이었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국상기간 등을 이유로 탄일 하례 의식을 생략하라는 어명을 내렸지만 국모의 당연한 권한이라는 이유로 어명이 무시되고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하례가 올려졌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이 분노하여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크게 다투고, 조정 대신들에게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교사스럽고 간특한 부인'''으로 칭하며 평소의 언동<ref group="주">시부모([[조선 현종|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계시를 빙자하여 희빈 장씨가 아들을 낳을 수 없는 팔자라고 거짓을 고한 것, 원자가 탄생하자 노여워하며 주가(主家: 공주의 시가.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를 의미)와 급격히 친밀해지고 [[홍치상]]의 무죄방면을 종용한 것, 궁인들의 당파를 나눠 핍박한 것, 폐출되는 [[귀인 김씨]]에게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가마를 타지 말고 걸어서 빨리 궁에서 나가라고 재촉한 것 등</ref> 을 비난하며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국모로서 군림할 자격이 없으니 고사를 찾아보라는 명을 내렸다. 이는 민씨를 폐서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이에 [[서인]] 대신 뿐만 아니라 [[남인]]조차 당황하여 [[권대운]] [[목래선]] [[김덕원]] [[민암]] 등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올려진 '''탄일 문안은 신자(臣子)들의 상례'''이니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는 죄가 없음을 주장하며 강력히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변호하였고, [[권대운]]은 고사를 찾으라는 [[조선 숙종|숙종]]의 명에 불복하며 사직을 청하였다. 이러한 조정 안팎의 발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서인]]은 처벌하고 [[남인]]은 용서하는 차별을 보임과 동시에, 24일에는 [[인현왕후|중전]]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과 크게 말다툼을 하면서 그녀 자신의 입으로 '진실로 나의 죄이다. 어찌할 것인가? 폐출시키려거든 폐출시키라.'는 과격한 언사들을 입에 담았던 사실을 폭로했다.
         25일 밤, [[오두인]] [[박태보]] 등 [[서인]] 86인이 상소를 올려 전날 국모의 위엄을 훼손한 [[조선 숙종|숙종]]의 발언을 맹렬히 비판하며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명예를 회복할 것을 요구했다. [[남인]]의 강경한 발에 주춤하던 [[조선 숙종|숙종]]은 이 상소에 극노하여 [[오두인]] [[박태보]] 등 86인을 친국하였고,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친오빠 [[민진원]] 형제에게도 국문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서인]]이 대거 연루되기에 이르자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적극 변호해왔던 [[남인]]은 정치보복을 위해 입장을 바꾸어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옹호한 상소의 내용을 적극 비판하며 [[서인]]에게 극형을 내릴 것을 종용한다. 이에 [[서인]]이 정계에서 완전히 축출되고 [[남인]]이 정계를 독점하게 되는 [[기사환국]]이 발발했다.
         5월 2일, [[조선 숙종|숙종]]은 당시 사대부 여성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던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언사를 낱낱이 폭로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킨 후 폐서인하여 강제로 출궁시켰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폐출은 폐비 윤씨와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녀의 인성이 여후<ref group="주">한고조([[유방]])의 아내 [[여태후]]를 의미한다. 여태후는 중국 3대 악녀(여태후, 측천무후, 서태후)로 꼽히는데, 투기와 잔혹성은 여태후가 단연 으뜸이다. 여태후는 남편 한고조가 사망하자 그녀의 정적이었던 척부인의 혀와 팔다리를 자르고 인간돼지라고 명명하여 변소에 장식하였으며 척부인의 소생을 살해하였다.</ref> 와 흡사하다고 비교하였다. [[인현왕후]] 민씨에게 물어진 죄는 죽은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여 왕에게 거짓을 고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를 말한다</ref>, 왕의 육체를 조롱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주상이 노고(勞苦)하셔도 공이 없을 것'''의 부분을 말한다.</ref>, 투기로 내전(內殿)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켜 국정을 어지럽힌 죄<ref group="주">서인이 장씨를 출궁시키도록 종용한 것과 옥교 사건,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삼은 것에 대한 서인의 대를 의미한다.</ref>, 내전에서 궁인의 당파를 나누어 붕당을 일으킨 죄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폐서인]] 민씨의 남겨진 물건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명하였으며 그녀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장복은 대내에서 공개적으로 태우도록 했다.<ref group="주">이후 노론은 숙종이 옳은 주장을 한 [[송시열]]을 처벌하고 정권을 갈아치운 목적이 왕비 민씨를 내쫓고 후궁 장씨를 왕비로 올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왕비 민씨의 폐출은 장씨의 모략이었다고 기록한다.</ref>
         숙종실록에는 장씨 소생의 왕자가 9월 16일에 사망하였는데 태어난지 열흘이 지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6월에 이미 [[산실청]]이 설치되었으며 7월 19일 중궁전(장씨)이 해만(解娩: 해산)한 후 약방(藥房)과 정원(政院), 옥당(玉堂)이 대전과 중궁전의 안부를 물었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19일 (무신) 원본342책/탈초본18책 (10/14)</ref> 다음 날인 7월 20일, 중전 장씨의 해만 상태와 산후 기후가 편안하다는 보고가 있으며 2품 이상 관원들이 문안을 올렸다. 22일에는 장씨의 유즙(乳汁: 젖)이 나오지 않아 약을 의논하는 기사가 있다. 7월 26일에는 산실청 의관이 입진하여 중궁전(장씨를 말한다)이 해만(解娩: 해산)한 지 제7일이 되었으니 산실을 철파(撤罷)하겠다는 계를 올렸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26일 (을묘) 원본342책/탈초본18책 (8/13)</ref> 같은 날 [[조선 숙종|숙종]]은 산실청 전(前) [[도제조]]와 [[우의정]] 및 여러 관원과 의관들에게 각 [[말]] 한 필과 안장을 하사하였다. 다음 날 27일에는 산실청 담당 의관이었던 [[김유현]] 등에게 숭록(崇祿: 종1품 문무관 관직)을 제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로 수령(守令)<ref group="주">고려ㆍ조선 시대에,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절도사]], [[관찰사]],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감]], [[현령]] 따위를 이른다.</ref> 직을 제수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숙종]]이 의관에게 종1품 숭록의 위를 제수할 만큼 대군의 탄생을 각별히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ref group="주">이 기록 역시 숙종실록에는 누락되어 있는데 면에 [[숙빈 최씨]]가 [[조선 영조|영조]]를 출산하자 [[조선 숙종|숙종]]이 [[호산청]] 담당 내시와 [[의관]]에게 말을 하사한 것은 강조하여 기록하였다.</ref> 이러한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장씨가 출산한 왕자가 9월 10일 경에 탄생된 것으로 기록한 숙종실록의 기사가 허위임을 증명한다.
         대군 성수는 탄생한지 100일이 되지 않은 9월 16일에 돌연 급사하였다.<ref group="주">만일 성수가 정식으로 대군 책봉식을 거친 후에 사망했거나 갑술환국이 발생한 이후에 사망했다면 인현왕후가 복위하여 장씨가 후궁으로 강봉되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법도에 따라 적서 상관없이 자동으로 적처(왕비)에게 입적되는 후계자(왕세자, 원자)와는 달리 그 외 자녀는 생모의 처첩 여부에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장씨를 후궁으로 강봉하려면 성수도 함께 대군에서 군으로 강봉하거나 장씨와 성수를 함께 폐서인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ref> 조정에서 신생대군(新生大君)의 사망에 대한 원인이 논의되었다. 6월부터 산실청이 세워지고 산모인 장씨가 불안한 상태임이 거론되었는데 출산을 하고난 이후에도 장씨의 상태가 불안하다는 기록이 있으며 9월 16일 신생대군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상태가 미완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난산]]이었거나 장씨의 건강이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숙종]]은 조정 백관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토로했을 만큼 둘째 아들을 잃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1692년, 전 해(前年)에 조졸한 신생대군방에 절수된 영토와 녹봉을 거둘 것을 주청하는 건의가 복되어 허가되었다.
         [[1694년]](숙종 20)에 서인의 [[김춘택]](金春澤)·[[한중혁]](韓重爀) 등이 폐비의 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고발되었다. 이때에 남인의 영수이자 당시 우상(右相)으로 있던 [[민암]](閔黯) 등이 이 기회에 대당 서인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김춘택 등 수십 명을 하옥하고 범위를 넓히어 일대 옥사를 일으켰다.
         [[1701년]] 9월, 인현왕후와 함께 노론에 있던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는 [[조선 숙종|숙종]]에게 희빈 장씨가 취선당 서쪽에 신당(神堂)을 설치하고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왕에게 발고하였고, [[인현왕후]]는 병이 아닌 희빈 장씨의 저주에 의해 시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인현왕후]]의 동복 오라비인 민진후(閔鎭厚) 형제는 인현왕후가 생전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드시 빌미가 있다'고 한다"고 그들에게 말한 바가 있었음을 숙종에게 발고했다. '빌미'란 장씨의 저주로 병에 걸렸다는 뜻이었다.
         [[조선 숙종|숙종]]은 먼저 제주 유배 중인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처형의 명을 내리고, 그에 이어 희빈에게 자진을 명하는 비망기를 내린다. 이에 대신들이 대하자 숙종은 [[구익부인]]<ref group="주">한무제의 후궁으로서 무제는 그가 죽기 전에 비록 구익부인에겐 죄가 없지만 태자의 어미가 살아있다면 이후에 화가 될 수 있다며 죽였다. 한무제는 즉위 초 생모와 외척에게 시달려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정사를 펼칠 수 없었고 생모가 죽고나서야 꼭두각시 황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는 숙종의 즉위 초기와 흡사하다.</ref> 의 예를 들지만 숙종의 나이가 젊으니 한무제와는 경우가 다르다며 대신들이 대하였다.
         노론의 입장에서 집필된 《수문록》과 《인현왕후전》에는 장씨가 숙종에 의해 강제로 사사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에 해, 정사 기록인 《숙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자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래는 《인현왕후전》에 묘사된 장씨의 최후이다.
         "네 중궁을 모살(謨殺)하고 대역부도함이 천지에 당연하니 드시 네 머리와 수족을 베어 천하에 효시(梟示)할 것이로되 자식의 낯을 보아 특은으로 경벌을 쓰거늘 갈 수록 태만하여 죄 위에 죄를 짓느냐?"<br />
  • 김국진(MC) . . . . 34회 일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강원도]] [[인제군]] 에서 출생했다. 데뷔는 1991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개그맨 7기.[* 물론 이쪽은 제명당하기는 했지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동명이인 성우 [[김국진(성우)|김국진]]과 같은 기수며 거기에 그 동명이인의 성우도 동향 출신이다.] 1990년대 초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한 일명 '감자골 사태' 이후에는 제명당한 상태.[* 이 항목 2번 문단에 자세하게 설명되있지만 결국엔 코미디계 선배들과 윗분들의 괘씸죄라는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항이기 때문에 근래에는 그런거 없이 코미디계 후배들도 꼬박꼬박 선배 대접을 잘 해준다. 당시 동참하진 않았지만 감자골을 제외한 [[유재석]], [[남희석]]을 비롯한 동기들이 평소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 살벌한 그 코미디계에서도 똥군기 없이 성격좋기로 유명한 감자골 멤버들이였기 때문에 그런걸지도. ]
         1990년대 중~후 그의 이름을 내건 빵이 나올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단기 임팩트로는 2000년대 중후 [[유재석]]의 최전성기 보다 더'''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 되는 폭발적 인기였다고 보면 된다.
         [[1995년]], 미국에서 1년만에 귀국해 MBC에 자리잡은[* 귀국 후 처음에는 KBS에서 '오키도키쇼', '토요일 7시가 좋다' 등의 프로그램을 김용만과 진행하다가 1995년 중 MBC의 '도전 추리특급'과 '[[테마게임]]'을 진행하면서 활동영역을 MBC로 옮기게 된다. [[청춘행진곡]] 폐지와 함께 개그계에서 은퇴한 [[박세민]] [[이원승]], '청춘행진곡'이 폐지되어 SBS로 이적했던 [[김창준]] [[김은태]] [[이웅호]] 등의 대안으로 김국진과 김용만을 영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국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 연예인 역사상 최고의 인기'''였다.
         전성기에는 [[테마게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주로 출연하며 "어라~?",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 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유행어를 양산했고, 코미디, MC, CF, 연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다. 그 당시 김국진의 영향력은 숨 쉬는것도 김국진이 쉬면 유행어가 될 정도라고 회자될정도로 컸으며 [[전지현]], [[송혜교]] 등 지금 잘 나가는 스타들도 당시엔 김국진의 CF에 덤으로 나올 정도였다. 이때 당시 김국진의 인기는 단연 원탑이여서 [[이병헌]]과 [[H.O.T.]] 를 기다리게 할 정도였고, 단독 주연의 미니시리즈(MBC '달곰 내사랑')를 찍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개그감각 같은 건 별로 없다고 평가 받지만, 도시 서민적인 외모와 왜소한 체격, 약간 어눌하면서도 친근한 말투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 히트의 비결로 추측된다. 거기다 그당시 김국진은 좀 어색하긴해도 테마게임을 통해 정극 연기가 되는 개그맨이었기 때문에 드라마등에도 자주 얼굴을 비출수 있었던 것이 플러스요인.
         심지어 '''국찌니빵'''이라는 본인의 이름과 본인 캐릭터 [[띠부띠부씰]]을 넣은 빵이 대 히트를 기록해서 도산위기였던 기업을 살려내기도 했다. 당시 월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게 어느 정도 성적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2014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허니버터칩]]도 3개월만에야 매출 50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초대박이 났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을 건 상품이 최초로 나온 사례이자 스타 마케팅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사례로 마케팅 전공수업시간에도 언급될 정도.[* 물론 이전에 [[배삼룡]]의 '삼룡사와'도 있긴 한데, 삼룡사와는 배삼룡 소유의 음료회사에서 출시한 제품이다보니 상황이 좀 다르다. 게다가 삼룡사와는 '파는 곳이 없어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쫄딱 망했다는 점에서, 본인 회사가 아니었으면 출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증이 될 듯.] 사측에서 IMF 당시의 기업 형편이 어려워 많이는 못 드린다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김국진이 개런티 없이 캐릭터 사용을 허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상품은 대박났지만 그가 받은 돈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의 [[대인배]] 인증은 여기서부터-- 당시 국찐이 빵을 먹었던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스티커는 국찐이의 세계여행 등 몇가지 테마를 가지고 만들어졌고 빵 종류는 여러가지였는데 가격은 500원으로 동일했고 은근히 양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한다. ~~[[창렬]]의 대사례~~ 핑클빵도 국찌니빵 같은 히트사례가 없었다면 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는데 장기적인 커리어가 아닌 단기적인 최정점의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물론 예능계에 있어서 종합적인 인기와 지지도, 커리어까지 본다면 유재석이 훨씬 더 앞선다. 비유하면 '''김국진은 2등과의 점수차가 굉장히 큰 전국 1등을 3~4년 한것과 같고 유재석은 2등과 점수차가 그리 크지는 않은 전국 1등을 15년 가까이 차지한것과 같은 느낌이다.''' 전성기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지만 그 절 정도의 기간을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공존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개그계에서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가수나 배우들을 통틀어서 인지도와 인기로 그를 넘볼 대상이 없던, 그야말로 연예계 혼자 1등이라 할만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정말 몇 안되는 희귀 사례로 꼽힌다.[* 개그맨, 예능인이 가요계, 연기계를 넘어 연예계 전에 걸쳐 최고의 위상을 지닌 톱스타가 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다.현재 예능계 최고의 MC들인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도 연예계 종합 최고 스타의 위상을 가져본적은 없으며 역대로 꼽으면 80년대의 이주일과 심형래, 전성기 김국진, 현시대 유재석 정도만이 달성한 매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국진은 '''코메디 30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한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대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2위가 대중가요의 황제이자 전설 [[조용필]]'''.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가왕 조용필을 이겼다는 건 그야말로 당시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의 인기마저도 지배했다는 이야기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코미디계를 넘어 연예계 전 최강의 포스를 보여준 코미디언은 1980년도에 말 그대로 2주일만에 원톱이 되어 80년대 초중 내내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했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화로도 전국 300만 관중을 돌파할 수 있었던 전성기 [[심형래]] 정도 밖에 없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 [* 실제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한다.]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4년 하기#s-24|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가수)|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소개했다~~ 실제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일 양국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국민적 코미디언들이었고 화려한 전성기가 끝나고 적지않은 시간동안 몰락해 있었다는 점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시무라 켄은 1970년대 후~80년대에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인 [[이주일]], [[심형래]]의 위치와 더 가깝고 김국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인에 가까웠다. --여기서 [[이경규]]는???-- --당시 이경규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1990년대 가요계 끝판왕 [[서태지]]와 한국 영화계 원조 흥행보증수표 [[한석규]], 당시 트렌디 드라마를 휩쓰며 최진실의 뒤를 이어 TV 드라마계의 아이콘이었던 [[김희선#s-1|김희선]] 등, 다른 연예인들이 각 부문에서 10~20%대 지지율을 보였던 면, 김국진은 개그맨 부문에서 '''55%'''라는, 말 그대로 [[넘사벽]]의 인기를 구가했다. 게임잡지 V챔프[* [[대원씨아이]]에서 펴내던 [[V점프]]의 한국어판. 말이 한국어판이지 사실상 로컬라이징이다.]에서는 '김국진이 돈 벌려고 마음 제대로 먹고 뛰었다면 지금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대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1990년대 후부터 김국진은 MBC의 미니시리즈 "달곰 내 사랑"에서 주인공인 체육교사 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당시 전성기였던 [[송윤아]]가 상대역이자 여주인공인 한정은 역을 맡았다.] 코미디 활동보다는 연기자로 활동했다. 실제로 김국진은 정극과 희극의 경계에 있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테마게임에 출연했을 때도 당시 출연하던 개그맨 중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가 출연했던 콩트의 대다수도 극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것이 상당히 많았다. 또한 김국진은 자신의 '혀짧은 국진이' 캐릭터에 별로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사족으로, 그는 <달곰 내 사랑>에 앞서 2000년 초 방영될 뻔한 SBS 수목 미니시리즈 [[신화]]를 통해 연속극 데뷔를 할 예정이었다, 당시 또다른 남자 주인공 역에는 [[김승우]], 여주인공은 [[이승연]]이 낙점되었으나 이승연은 당시 출연 중이었던 KBS 2TV 주말극 사랑하세요? 스케줄과 겹쳐 캐스팅 제의를 포기하였고 제작진은 영화 [[거짓말(영화)|거짓말]]로 스타덤에 오른 모델 출신 [[김태연(배우)|김태연]]을 대타로 올리는 한편 2000년 하기로 첫 방송일을 미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작진이 김국진과 갈등을 빚어 편성이 무산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김국진 자리에는 KBS 슈퍼탤런트 출신 [[김태우(배우)|김태우]], 김승우 자리에는 박정철, 김태연 자리에는 [[김지수(배우)|김지수]]가 대신 캐스팅되었고 방영일도 2001년 하기로 변경되었다.
         <달곰 내사랑>에서 김국진이 맡은 배역에는 당초 [[유오성]] [[차승원]]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이들이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하자 김국진이 대신 들어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첫 회(2001년 9월 26일)부터 2001년 10월 11일까지 <신화>와 경쟁했다. <달곰 내사랑>은 삼각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인지 주인공들의 주변 이야기가 없었던 데 이어 극이 너무 잔잔하게 진행됐다는 혹평을 받았고 결국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참고로 <달곰 내사랑> 출연진이었던 이세은, [[박정수(배우)|박정수]] 등은 차승원이 출연한 드라마인 KBS 2TV [[보디가드]] 조연이었는데 이 드라마 출연진 중의 한 명인 [[이원종(1966)|이원종]]은 김국진의 대학 1년 후배다.] 결국, 김국진은 <달곰 내사랑>의 실패 후 2006년 MBC 진짜진짜 좋아해로 연속극 출연을 간신히 할 수 있었다.[* [[이영자]]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정극 드라마 출연을 했다. 그전에는 시트콤이나 특집극 위주로 출연했다.]
         [[2008년]] 중기에는 라스에서 나이를 잊은 골춤(일명 '예~' 춤)에 큰 스퍼트를 받았으며, 모두들 그를 보면서 귀엽다는 평가를 했다. 이후에도 가끔씩 선보이면 좋은 응을 얻는다. 특히 다른 쪽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카라(아이돌)|카라]]의 2집 미니앨범 타이틀곡인 [[Pretty Girl]]의 안무를 보면 예~ 춤을 응용한 비슷한 동작이 있는데, 카라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김국진 선배님의 춤을 응용한 거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결국 2016년 8월 3일 [[http://m.news.nate.com/view/20160804n07681?list=edit&cate=ent|강수지와의 연애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정정보도에 의하면 결혼은 아직이지만 좋은 감정을 갖고 '''연애''' 중이라고 한다. 김국진의 인생사를 아는 사람들과 그동안 라스에서 품남 기믹으로 본인도 은근히 씁쓸해하는 모습에 마음 아파했던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중이며 두 사람의 행복을 응원하는 중. 이후 라스에서 연애 발표까지 했다. 이후에도 대놓고 닭살 커플 티를 내고 있는데 자기들이 더 난리치며 좋아라 하는 [[조규현]], [[윤종신]]과 달리 김국진이 이런 행동을 할때마다 못마땅해하는 [[김구라]]가 포인트. 이후 강수지와 함께 라스 출연하기도 했는데 주변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강수지와 연애를 시작한후 평소엔 과묵하던 김국진이 말도 많아지고 연애 조언도 척척 할 정도로 밝아졌다고 한다.
         [[축구]]도 굉장히 잘 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출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깊은 [[이유]]. [[홍기훈]]의 증언으로는 30대 시절 연예인 축구 동호인끼리의 축구 경기에서 김국진 혼자 5점을 득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이 강냉이 [[드립]][* 김국진이 방송에서 10년 넘게 자주 하는 [[애드리브]]로 본인이 젊을 때 [[권투]]를 배워서 자신한테 덤비는 사람은 주먹을 툭툭 쳐서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지게 했다고 하는 말장난 개그.]처럼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연예계의 파이터들 중에 하나인 [[홍기훈]]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표영호]], [[지석진]], 김용만 등에게도 데뷔 초에 [[형]]이라고 못 불러주겠다고 선언하여 [[말]]을 사용하는 데에 해 김국진에게만은 매우 깍듯하게 모시는 선배 형님이라고 하니 김국진이 의외로 어느 정도의 깡과 운동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싸움]]으로 홍기훈을 이길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예선 전에서 맹활약한 "독수리" [[최용수]]와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공차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핫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김국진이 공을 몰고 나오며 큰소리로 "최용수 나와!" 라고 외치기도 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최용수에게 공을 빼앗긴다.
         사실 둘의 사이는 굉장히 가까운 편이다. 과거 감자골이 방송사를 옮겼을 때도 여론이 안좋게 형성되어 방송사 내부에서 받아주지 말라는 의견이 팽배했는데 이경규가 나서서 감자골 멤버들의 이적을 지지했다고. 물론 이경규 본인의 주장이다.(...)[* 다만, 이때 이경규는 ~~몰래카메라로~~ 일밤의 중축이었기 때문에, 이경규가 대했다면 못갔을 가능성이 크긴 하다.]
         명랑히어로 김국진 편에서 이경규가 했던 말에 따르면, 그가 일본 유학을 가 있을 당시 다른 연예인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지만 김국진이 일본에 온다는 연락을 듣고는 일부러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었을 정도. 그런데 정작 공항에서 마주친 김국진은 '어? 형이 일본에 있었어?' 라고 응하여(...) 이경규를 삐지게 만들었다. 물론 이건 그 당시 대한민국에 이경규가 일본에 유학 가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친 장난이라는 것이 김국진의 설명.
         라디오스타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3년 상기|괜히 바꿨어 특집]]'에 출연한 [[나나(애프터 스쿨)|나나]]가 [[봉춤]]을 선보이자 '''직접''' 해 보기도 했다. 다리 힘만 가지고 봉에 매달리기를 시전할 정도. --[[살아있네]]!-- 이후 2016년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김동현(종합격투기)|김동현]]에게 기습을 해서 김동현의 항복을 받아낸다.
         2010년 남자의자격에서 만난 유기견 덕구를 려견으로 키우고 있다. 2017년 불타는 청춘에도 등장했는데 김국진을 껌딱지처럼 붙어서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수지는 그 모습에 질투했다 카더라--
  • 김윤아(1974) . . . . 34회 일치
         '''이소라와 함께 90년대와 00년대 초을 대표하는 여성 보컬이자, 홍대 인디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수.'''[* 김윤아의 보컬이 워낙 매력적이고 장르 폭이 넓으면서, 카랑카랑한 매력적인 보컬을 가졌기에 많은 후대 여성 보컬을 가진 밴드들이 김윤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응당 당연하다.]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 본래는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극렬한 대에 부딪혀 아동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심리학과에 입학한다.]에 입학한 93년 '풀카운트'라는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밴드활동을 시작하는데, 당시 풀카운트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구태훈과 처음 알게 된다. 이후 여러 밴드들을 거치다가 96년 김진만을 알게되고 97년 이선규와 김진만과 '미운오리'를 결성, 홍대 인근에서 활동한다. 이후 무대 디자인 일을 하고 있던 구태훈이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하면서 최종 4인의 '미운오리'가 결성된다. 97년 4월 홍대클럽 "블루데빌"에서 공연하던 중 영화 관계자에 발탁되어 <꽃을 든 남자> OST 'Hey Hey Hey'로 데뷔했다. 자우림이라는 이름은 이때 지은 것. 별 생각 없이 지은 '미운오리'라는 이름이 막상 CD 자켓에 넣으려니 부끄러워서 하룻밤을 새서 지었다고.
         솔로곡은 왠지 모르게 자우림 이상으로 어둡거나 무시무시한 곡인 경우가 많다. 본인이 말하길 자우림 보컬로서의 김윤아는 자신보다 어리고 더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자 성별도 중성에 가깝다고 한다. 면 솔로 앨범에서의 김윤아는 실제와 가까우며 여성스럽고 어두운 편이다. 창법도 조금 다르다. 자우림에서의 김윤아가 음정이 나가거나 삑사리가 나는 것에 개의치 않고 화끈하게 불러버리는 락커라면 솔로가수 김윤아는 목소리 자체를 섬세하게 컨트롤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기본적으로는 [[두성]]에 [[비음]]을 약간 섞어 사용한다. [[중성]]에서 [[가성]]으로 넘어가는 소위 '꺾기' 창법 역시 자주 사용한다.[* 어렸을 때 [[요들송]]을 배웠던 적이 있다고 하며 그 때문에 이 꺾기를 매우 쉽게 사용한다고 한다.] 벨칸토 식 성악창법과 락 창법도 사용한다. [[비성]]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지지만 비음을 사용하지 않고 진성으로 부르는 곡도 많다. '''곡마다, 아니 곡 안에서도 창법을 계속 바꿀 수 있는[* 곡 중간에 창법을 바꾼다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 프로급 보컬들은 최소한 성대접촉은 조절해 창법을 바꿔가며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해야 노래의 강약조절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일적으로 프로들은 김윤아와 달리 일인들이 직감적으로 느낄 정도로 크게 변화시키지를 않는다. 창법변화를 크게주다가 잘못하면 창법을 변화하는 중간중간에 이질감때문에 곡의 분위기를 깨버리기 때문. 이렇기때문에 김윤아는 서로 이질감이 들 수 있는 창법을 조화시키며 노래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창법을 구사한다고 인정 받는다. 또한 김윤아는 그 창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색깔을 드러내는, 즉 온전한 자기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보컬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창법변화를 주는 것은 일적인 방식은 아니라서 호불호가 있고, 그러다보니 표현이 작위적이라고 말하거나 자의식과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쨋건 저런 김윤아식 보컬스타일은 유니크하며 인정받을만 한 것임이 틀림없다.] 드문 보컬리스트.''' 기본적으로는 락 보컬리스트이지만 리듬감을 강조하는 R&B나 [[블루스]] 기의 노래도 꽤 많다. 예컨대 '나비' 같은 곡들.
         진성의 음역도 점차 넓어졌는데 4~5집에 이르러서는 3옥타브 레(D5)를 원활하게 내고 있다. 드디어 6집의 'Oh Mama!'에서 처음으로 __3옥타브 파(F5)__를 냈다! 여담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중 '죽기 전에~'라는 가사 끝부분에서 지르는 부분이 진성으로 3옥타브 파(F5)이다. 참고로, 가성의 음역은 3옥타브 라(A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1994년 어느 늦은 밤' 후 애드립]~3옥타브 라#(BB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후 애드립]은 원활하게 내며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얘기할 수 없어요' 중 애드립에서는 __4옥타브 레(D6)__까지 냈고 자우림 8집 타이틀곡 'IDOL' 마지막 지르는 고음에서도 4옥타브 레(D6)를 냈다고 한다! 단, 원래 음역대가 넓은 편이 아니고 성량이 엄청난 수준이거나 하진 않은[* 물론 [[일인]]에 비하면 엄청난 성량이지만. 애초에 성량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부족하면 [[록밴드]]에서 악기 소리에 묻히기 십상이다.] 탓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라이브에서 의외로 삑사리가 잦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다 눌러버리지만... 성량의 경우 최근 나온 [[듀엣 가요제]]나 몇년 전 [[나는 가수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상당한 파워를 자랑한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성량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졌다. 콘서트를 가면 훨씬 더 잘 알 수 있는 부분. 예를 들자면 김윤아가 콘서트에서 부른 4집 '타인의 고통' 수록곡 '다 지나간다'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레(D5)를 거뜬히 소화하였고, 듀엣가요제 5연승 명졸 무대를 장식한 빅뱅의 'LAST DANCE' 2절 후부 애드립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미(E5)를 깔끔하게 소화하였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전보다 더 높은 음(3옥타브 미(E5)~3옥타브 파(F5))을 진성으로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보다 확실히 파워라든가 성량이 업그레이드되었다.
         2011년에는 송창식이 "김윤아가 노래를 잘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잘할 줄 몰랐다. 기초가 아주 튼튼하더라"며 칭찬하였다. 물론, 김윤아가 송창식에게 칭찬을 듣는 것이 뭐가 대수냐는 응도 있겠지만 한국 가요계에서 송창식에게 칭찬을 들을 정도면 이미 극찬이 울고 갈 수준이기 때문에 그낭 말 다한 거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424405|송창식 "나가수 통해 김윤아 다시 봤다"]]
         2015년 12월에 3번째 재연을 올리는 뮤지컬 <[[레베카(뮤지컬)|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역으로 출연이 결정되었다. 뮤지컬은 오랫동안 김윤아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분야였고 데뷔 18년만에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일단 팬들의 응은 기대 걱정 으로 나뉘는 듯 하다. 일단 일부 뮤덕들의 외부 가수 주역 캐스팅 불만 및 비난이야 늘 있었던 것이니 차차하더라도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 요구되는 폭발적인 넘버 소화력을 김윤아가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가장 많다.'''
         위의 보컬리스트 항목에 가보면 알겠지만 자유롭게 창법과 음색을 바꾸는 김윤아 특유의 테크닉은 뮤지컬이라는 환경에 어느정도 이득이고 본인이 학생 때 뮤지컬 무대에서도 서본적이 있으니 무대연기에 대해 어느정도 고찰이 되있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폭발적인 성량과 고음을 요하는 넘버들이 1막 중후부를 기점으로 많이 나오는 편인 레베카 특성 상 성량이나 고음 같은 피지컬이 특출날 정도로 큰 편은 아닌 김윤아가 잘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의견도 있다. 댄버스 부인의 경우 진성 3옥 미 이상을 요구하는 배역으로, 특히 가장 유명한 넘버인 <레베카(reprise)>의 경우 대단히 폭발적인 가창력을 요구한다. 최고음이 진성 3옥타브 솔(G5). 참고로 앨범이나 공연 등에서 확인되는 김윤아의 진성 최고음은 아주 불안한 3옥 레 정도에 불과하다.
         곡 제공과 더불어 피처링 역시 정말 드문데, [[김수철(가수)|김수철]], [[이적(가수)|이적]], 백현진, 킹조의 앨범에 각각 한 곡씩 피처링을 한 적이 있다. 김수철과 이적이야 말할 것도 없는 대가들인데 킹조는 누군가 하면 김윤아의 남편인 김형규가 결성했던 힙합 그룹이다(…). --[[한조(오버워치)|THE KING☆HANZO]]가 아니다-- 나가수에서 '사랑 밖엔 난 몰라'의 듀엣무대를 함께 한 백현진의 '성의 시간' 앨범의 '어른용 사탕'이라는 곡에서도 피처링을 했다. 그런데 2012년, '''굉장히 놀랍게도''' [[G.DRAGON]]의 2번째 솔로 앨범에서 'Missing You' 라는 곡에 피처링을 했다. 그리고 'Missing You' 는 타이틀곡인 'Crayon' 을 팀킬해버렸다. 9월 4째주 [[뮤직뱅크]] [[케이 차트]]에서 Crayon은 9위에 Missing You는 2위에 랭크된다. 참고로 1위는 [[싸이|월드 스타]]의 [[강남스타일]].
         김윤아는 [[만화잡지]] [[르네상스]]-댕기 세대이자 [[PC통신]] 초기 세대로 덕력에 있어서 선배뻘이 된다. '자우림으로 데뷔하면서 포기해야 했던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만화' 라는 발언도 한 적이 있다. 2011년에 있었던 자우림 비밀결사모임[* 8집 팬 이벤트로, 발매 당시 정식 CD앨범의 가사집에 있는 힌트를 가지고 공식홈에 접속하면 고난이도의 퀴즈가 나왔다. 앨범 가사집을 이용하여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았으며 기간 내 다섯 관문의 퀴즈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비밀결사단 가면파티의 초대권과 함께 비밀결사단 인증서 및 특별제작된 굿즈로 붉은 수건(일 제작 굿즈는 검은 수건)이 지급되었다.]에서는 메이드 복장을 입고 나타나 [[모리 카오루]]의 [[엠마]]를 언급하며 메이드 덕후 인증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오덕들에 대한 김윤아의 충고는 '결혼하면 오덕질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미리 하세요'(...)[* 하지만 본인은 바로 밑에 서술되어있듯 덕후 남편이랑 여전히 덕질중이다(…). 17년초 냉부 출연시 집안 가득 쌓인 만화책장을 공개.]
         인디씬 태생이었던 자우림이 이름을 얻기 시작하자 (2000년대 이후) '자우림은 김윤아 밴드일 뿐'이며 '상업적이다', '김윤아는 성형한 주제에 [[페미니스트]]인 척 한다'는 식의 비난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네티즌들에게 화가 난 김윤아가 2005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박글을 올린 적이 있다. 홈페이지가 리뉴얼되어 원글은 사라졌지만 관련기사가 남아 있다.[* 글 제목은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2&aid=0000005069|자우림 김윤아, 자신 둘러싼 근거없는 이야기 박글 올려]]
         2000년대 중에는 (특히 2006년 결혼 이후) 김윤아의 진정성, 기존의 인디적 음악과 세계관에서의 변화 (혹은 변절)에 관해 많은 비판이 가해진다.
         이후 '김윤아의 노래는 [[자의식 과잉]]이다', '김윤아의 음악은 [[허세]]다' 는 평이 나왔고, '''특히 '있어보이는' 커뮤니티에서 김윤아는 거의 민족의 죄인 수준 대접을 받는다.''' 김윤아 본인도 이런 평을 알고 있고 본인 홈페이지[* 현재는 리뉴얼되어 없어짐.]에 박글을 올린 적이 있다.
         자우림이 '미쓰코리아', '실리콘벨리'를 부를 당시, "김윤아는 성형했으면서 외모지상주의와 성형 하는 X들 비판하는 노래를 부른다"며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라는 김윤아 안티들의 개소리가 많았는데 사실 무근이다. 그들은 김윤아의 졸업 사진과 90년대 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과거 사진을 들먹이며 "쌍꺼풀이랑 코 성형했다"라든지 "쌍꺼풀 수술하고 붓기 감추려고 선글라스 끼고 방송하는 걸 봤다.", "이마에 뭐 넣은 것 같다", 심지어는 "김윤아가 시달렸던 안면신경마비의 원인은 성형 부작용이다~~라는 말 그대로 헛소리~~."등의 개소리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실어 나르며 김윤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위를 그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하고 있다. 그들이 김윤아 성형설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과거 사진과 현재 사진이 차이가 난다는 것인데, 과거 사진과 현재 사진이 차이가 나는 것은 90년대 후 당시의 화장법이나 헤어스타일이 지금의 화장법이나 헤어스타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헤이헤이헤이 이전에도 홍대 앞에서 미모는 알려져 있었고, 그 때나 지금이나 ~~무려 20년 동안~~얼굴이 똑같다. 눈코입은 예쁘지만 동양인답게 평면적인 편이라 카메라 잘 안 받는 얼굴이라, 직접 보면 화보나 영상에서보다 실물이 더 예쁘다.
         자우림이 데뷔하던 90년대 후에 유행했던 화장법은 소위 '마녀 화장'으로, 전체적으로 얼굴에 입체감 없이 창백하게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을 둥글고 짙게 그린 뒤 색조있는 셰이딩을 넣고, 갈색이나 보라색 계열 립스틱을 바르는 것이었다. (때로는 입술선을 그리기도 한다) 2집 '미안해 널 미워해'의 뮤직비디오에 이 '마녀 화장'을 제대로 한 김윤아가 보인다. 알 수 있겠지만 2010년대 유행하는 것처럼 화장을 안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피부, 부드러운 일자눈썹, 핑크색 립스틱은 [[가을동화]](2000년)의 [[송혜교]] 이후에야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멘토로 출연한다. 초에는 애매모호한 심사를 했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정중한 태도로 무서울 만큼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은미와 방시혁은 자기들 멘티만 감싸고 다른 멘토들의 제자들을 지나치게 견제해서 꼴 보기 싫고 신승훈과 김태원은 따뜻하고 정확한 심사평을 하지만 냉정한 면이 부족하다는 듯. 물론 김윤아라고 안 까이는 건 아니지만(...) '''온화함과 냉정함 사이에서 적정선을 맞춘 멘토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위대한 탄생 후부에는 안면마비가 와서 안대를 쓰고 나오거나 결승전 무대에는 아예 참석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건강상의 이상이 왔었다.
         [[나는 가수다]]의 경연에서의 생각 이상으로 많았던 음이탈 때문에 음이탈에 감을 가진 네티즌들이 김윤아의 음악성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고 지금까지도 김윤아를 깔 때 꼭 등장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삑사리일 정도로 김윤아 안티들이 김윤아를 깔 때 쓰는 가장 좋은 떡밥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가시나무'와 '1994년 어느 늦은 밤' 후부의 애드리브에서의 고음이 삑사리냐 아니냐로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다. 원체 김윤아 본인의 음색이 일정 음 이상의 고음역에서 뒤집어지는 음색이라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 [[자우림/음 목록|디스코그라피]] ==
          자우림 활동은 [[자우림/음 목록]]을 참조.
  • 김재규 . . . . 34회 일치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 해방 후 안동농림고등학교,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후, 그 해, 대구농업전문학교 중등교원양성소[* 이 당시에는 2년제 전문학교였다. 해방 후 대구농과대학을 거쳐 1951년 대구사범학교 등과 통합하여 경북대학교로 개교한다.]에 입학하여 1945년 수료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중등교원의 수가 부족한데 해, 조선 내에는 고등사범학교가 없었다. 문과의 경우 [[경성제국대학]] 졸업자 등으로 수요를 채울 수 있었지만, 이공계 쪽의 교사가 부족하여 일제는 각종 전문학교에 2년제 '교원양성소' 과정을 도입하여 교사인력을 충원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이 징집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군 해군]]의 [[카미카제]] 양성을 위한 예과 후보생으로 차출되었으며 카미카제의 생존률이 0%라는것을 감안해보았을때 만약 일본이 빨리 몰락하지 않았다면 김재규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과는 악연이 좀 있었다. 윤필용이 [[1.21사태]] 때 [[김신조]]의 모가지 발언을 여과없이 보내는 바람에 윤필용이 방첩부대(현 [[국군기무사령부]])장에서 경질되고 김재규가 후임 방첩부대장이 되었다. 이후 김재규는 방첩부대를 육군보안사령부로 개편하고 자신은 육군보안사령관이 되었다.[* 이 시절 [[재일교포]] 서승 형제 간첩단 사건에 관여한 흑역사가 있다. 이 형제는 방한 전 [[재일교포]] 신분으로 [[북한]]에 방문하고 선물까지 받아온 전력이 문제가 되어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고문을 동한 고강도의 조사를 받았는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간첩 혐의를 인정하게 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는 훗날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이었음이 밝혀졌다. 김재규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이 건에 대해서는 옹호하지 않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889025|기사]] ] 육군보안사령관이던 1971년 8월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의 전화를 도청하다가 발각되어 [[제3군단]]장으로 전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적인 이유이고 박정희에게 3선까지만 하라는 직언을 해서 좌천됬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군 내부에서 도청하는것이 당시 보안사령부의 일이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우려해서 [[육군참모총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에는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만 앉혔고, 정말 유능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육군 장군은 [[사단장]], [[군단장]] 수준에서 전역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김종오]], [[박병권]], [[민기식]], [[김용배]], [[김계원]], [[이세호]], [[임충식]] 등은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들이 아니다. 다만, 12.12 군사란 때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노재현]]이 보여준 추태가 워낙 커서 앞의 인물들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까이는 경우가 많다.] 김재규도 이런 케이스로, 월남전의 영웅인 [[채명신]] 장군 또한 [[대장(계급)|대장]]을 못 달고 중장에서 전역해야 했다. 이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 건설부 장관을 거쳐 1976년 12월에 제8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5.16 군사정변]]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총무과장([[준장]])으로 있었는데 다른 국방부 장성들과 마찬가지로 쿠데타에는 가담하지 않았고 혁명군사령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조사에도 불구하고 부정 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석방되었고, 석방 후 현역 장군으로서 호남비료 사장에 파견 임명되었다.[* 이 당시 국군 장성들이 하던 비리들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김재규가 비리가 없었다는 것은 그가 참군인이었다는 것의 증이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사건에 대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두환]]은 알려진 바와 같이 [[12.12 군사란]] 때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긴급체포하여 군을 장악하게 되었고, 김재규는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980년 5월 20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박선호, 유성옥, 김태원과 같이 사형이 확정되어 기각 4일 만인 5월 24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민주화 운동 층에서는 평이 서로 상되게 갈라지는 편이다. 옹호하는 쪽에서는 ''''유신독재라는 암흑기 속에서 독재자를 몰아낸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대변하는 용어로 요즘 인터넷에 빈번히 보이는 단어가 '''김재규 의사'''.[* '''열사'''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만약 칭호를 붙인다면 무력을 사용했으므로 '''열사가 아닌 '의사(義士)'라고''' 해야 맞다. 열사는 보통 자신의 지조를 지키다가 죽은 사람을 의미하는 면 의사는 무력을 통해 의거를 한 사람을 뜻하므로 '김재규 의사'가 의미에는 좀 더 부합한다. 김재규 묘비에도 의사(義士)로 적혀 있다.] 이렇게 영웅으로 치켜 세우진 않더라도 [[10.26 사건]]이 독재를 몰아내는데 [[결과는 좋았다|일정부분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경우도 많다.
         유야무야 하면서 유신이 장기화 되었다면, '''최악의 경우 [[북한]]처럼 대세력이 모두 숙청되거나 [[중국]], [[싱가포르]]처럼 정도는 덜해도 독재가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가 만약 이 상태로 정치에 참여하였다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박씨 일가가 다스리는 독재국가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김재규를 긍정하는 사람들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 강신옥, 장호권, 이해학 등이 있다. 보면 알겠지만 주로 교계 사람들로, 민주혁신계 중에서도 약간 보수적인 사람들 쪽이다. [[http://www.nocutnews.co.kr/news/1153519|함세웅 신부는 "김재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79530|효림 스님은 "여러가지 정황 근거로 봤을때 재평가할 가치는 충분하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좀더 시일을 요구할 뿐 명예 회복은 희망적"이라고 보고 김재규의 행적과 뜻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작업에 매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면 상대적으로 비판[* 옹호든 비판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등은 김재규 부장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당시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와 말년의 박정희는 대한민국은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기에 김재규가 10. 26 사태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박정희 역시도 여타 독재자처럼 말년이 비참했을 것이고 후세의 평가도 좋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쪽에서는, '''그 또한 과거 유신정권하에서 한자리를 해먹던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며, 박정희를 암살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를 국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심판할 기회를 빼앗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 갖은 압제와 고문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해오던 자신들보다, 단순히 박정희 한 명 암살했다고 김재규가 포커스를 더 받는 건, 몇십 년을 민주화 투쟁한 사람들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의해 투쟁해온 이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게 애초 김재규는 박정희와 친형제 같은 사이였고 중정부정이라는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10.26 단행 이전의 행보를 보더라도 정보수집과정에서 유신정권도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박정희도 말년에는 20년 절대 권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10.26 단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는 차지철, 이후락 같은 다른 유신인사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근데 전두환 노태우꼴을 보면 심판도 안받았을 확률이 높다---
         김재규는 정권 내에서 온건파였고, 당시 [[부마항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때 [[박정희]]는 먼저 이승만과 곽영주 운운하며 총기사용을 지시했고 [[차지철]]도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거론하며 아부를 하여 무력사용을 부추겼다. 결국 대통령인 박정희가 직접 유혈진압을 지시한 이상, 김재규가 [[10.26 사건]]으로 박정희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부마항쟁 때 [[5.18 민주화운동]]이나 [[천안문 6.4 항쟁]]처럼 사격명령이 동된 진압이나 심각한 경우 차지철 말대로 킬링필드급 학살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차지철이 킬링필드같은 개소리를 지껄여도 박정희가 저지하지 않은 점은 김재규나 차지철 입장에서는 박정희가 학살을 묵인하겠다는 암시로 해석될 수 있다. [[김재규/항소이유 보충서|김재규의 항소이유 보충서]]를 보면, 김재규는 부마항쟁에 대해서 대단히 진지하게 응하고 있었고 자칫하다간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기라고 판단했다. 또한 박정희의 곽영주&총기 사용과 [[차지철]]의 [[킬링필드]] 운운하는 발언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음이 나타난다.
         김재규는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선 박정희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김재규가 자신의 변호인인 안동일에게 털어놓은 내용에 의하면 이승만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았지만 박정희의 성격은 절대로 물러설 줄 모르기 때문에 드시 국민과 정부 사이에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것이라 생각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박정희를 사살한 것이라 말하였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8/2017052801948.html?Dep0=twitter&d=2017052801948|#]]
         김재규는 [[차지철]]과의 갈등 이전에도 유신의 방향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자주 내비쳤고, [[장준하]] 등의 민주화 운동 인물들을 비밀리에 도우면서 관련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박정희를 '환자'로 비유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고, 법정에서도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보이며 사형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자세를 보았을 때 단순히 차지철과의 갈등으로 인한 우발적인 권력 싸움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결정적으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결단했던 건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대응책 방향이었는데, 박정희와 차지철은 강압적인 진압을 요구했으나 김재규는 대 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이것이 10.26이라는 도화선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이밖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의 구속을 대하는 동시에 [[김대중]]의 가택 연금을 일시적으로 해제시키고 김영삼과 만나게 승인했으며, [[차지철]]과의 갈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승진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발생한 갈등이 아니라 국정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조갑제조차도 김재규가 사욕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칼럼을 개시했을 정도였다. 김영삼의 측근이었던 김봉조의 회고에 의하면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 시절 자신을 방으로 불러 격려하며 김영삼은 한국을 위해 큰 일을 할 인물이고 앞으로 김영삼이 정치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자신있게 잘 모시라며 격려하였다고 한다.[[http://m.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773|#]]
         >김재규의 거사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지만, 여성 연예인들이 저런 식으로 대통령의 술자리에 불려가는 일만큼은 확실히 차단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김재규의 구명을 호소하면서 우리의 민주화가 김재규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민주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그 여성 연예인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에는 또다른 10·26 사건이 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쏜 날이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70년을 두고 2개의 10·26 사건이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군사독재가 왔는데,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이토의 제삿날과 군사독재의 상징인 박정희의 제삿날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중략) [[친일민족행위자]]가 득세한 나라에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구]]로 상징되는 보수우익 의사의 계보는 대가 끊어졌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으면서도 박정희의 명예는 끝까지 지켜주고자 했던 김재규는 대가 끊겼던 한국 보수우익의 계보학에서 돌출한 마지막 대륙형 인간이었다.
         자유총연맹 회장이자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닌 [[김경재]]는 저서 '쓰러지는 역사, 일어나는 역사'를 통해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하여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씻었다면서 민주인사들이 김재규의 거사를 폄훼하거나 냉소적으로 보는 분위기를 비판하였다. 소위 진보 및 민주인사들은 박정희 정권 말기 민중혁명의 성공이 눈 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갑자기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해버려 당시 끓어오르던 혁명의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어 버렸다고 주장하는데, 김경재는 이들의 주장이 화려한 응접실에 앉아서 입으로 노동계급의 승리를 외치는 '안락의자 속의 급진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를바 없다고 비판하였다. 설사 그들의 주장대로 민중혁명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살상당할 수 백, 수 천의 무고한 희생자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문하였다.
         가정이긴 하지만, 박정희가 살아있었다면 3저 호황을 통한 경제발전, [[핵무기]] 개발 등을 통해 [[리콴유]] 처럼 박씨 일가의 세습독재 체제를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다. 육사를 나와 장교가 된 박지만은 군부를 장악하여 [[리셴룽]]처럼 젊은 나이에 장성을 지내고 나서 정계로 들어와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고 박근혜는 최씨 일가의 도움으로 문화, 여성, 종교계를 장악했을 것이다. 면, 박정희의 무리한 국가주도식 경제정책과 국민들에 대한 과도한 통제, 오랜 독재정치로 인한 선진국들과의 외교갈등 등의 요소들을 고려해보면 과연 박정희가 80년대의 격변기를 유연히 대처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당시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미국정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도 아니었으며 영국, 프랑스 같은 강대국도 아니었기에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하였다고 하여 미국 등의 강대국들이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박정희의 오랜 독재체제를 못마땅해하던 카터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봤을때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했을 경우 국제적인 경제제재가 가해져 외교뿐만아니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말 더 간단한 예를 들어 박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북한]]은 주민들이 다 멍청이라 3대 독재가 이루어졌나?''' 박정희는 헌정사상 독재자 중 가장 군을 잘 장악한 인물이었다. 박정희는 공무원, 군인 등을 다룰 때 소위 '금일봉 정치'라는 것을 행하였다. 이는 누군가에게 포상을 줄 때, 훈장이나 공적 상금 등의 공식적 포상을 주지 않고, 지극히 사적인 포상인 '금일봉'을 전달하여 포상을 주는 사람이 바로 '박정희'라는 것을 부각, 충성심을 유도하는 정치행위였다. 이는 조선시대에 국왕이 [[내탕금]]을 가지고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에게 포상을 주는 것과 동일한 중세 수준의 정치행위였지만 효과는 매우 굉장했다. 이런 금일봉 정치는 상당한 비자금을 필요로 해서 박정희 휘하 3,4공 실세들은 정치자금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특히 출처나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중앙정보부]]의 돈이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활용되었고, 관행이 되었다.''' 당장 2010년대에만 해도 대통령이 [[국정원]]의 돈을 개인 쌈짓돈 마냥 써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터졌는데, 이는 박정희 당시,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돈을 갖다 바치던 '관례'가 고스란히 유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노무현]], [[김대중]]의 경우 특수활동비에 대한 사적유용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두 대통령과 달리 박정희 이후의 '''나머지 대통령은 다 받았다.''']
         유신정권의 크게 3개의 권력 축인 대통령 경호실, 중앙정보부[* 강직한 군인 유능한 건설부장관 무능하고 유약한 중정부장을 보면 알듯이 폭주하던 중정을 제어한 것을 보면 이런 비난도 무색하다], 국군보안사령부를 대표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차지철]], [[김재규]], [[전두환]]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서로 간에 치열하게 견제하고 있었다. [[http://www.usjournal.kr/News/6936|출처]] 바로 이러한 구도 속에서 파장이 일어난 것이 10.26이라는 것.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1500209211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08-15&officeId=00020&pageNo=11&printNo=21914&publishType=00020|출처]]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 등 공화국시리즈 등에서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특히 경호실과 중앙정보부의 대립과 목은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 시절에도 이들은 사이가 몹시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무렵에 [[차지철]]계로 분류되고 있던 [[김치열]] 법무부장관이 차기 중앙정보부장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박정희]]가 야당문제와 [[부마항쟁]] 등에 대한 미흡한 대처에 대해서 김재규를 책망하는 일이 잦아지자 김재규 본인도 파워게임에서 밀릴 것이라는 직감을 하게 될 공산이 컸다는 주장이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30906/57493166/1|출처]]
         국가원수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서 급진적 권력 교체를 시도한다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치밀한 계획이 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10.26이 역사에 긍정적 영향을 주려고 한 계획이었다면, 단순히 [[박정희]]를 암살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박정희를 암살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이와 관계된 사람들과 철저하게 입을 맞추었어야 했다. 그리고 난 이후 정권교체 및 민주화까지 질서있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진정으로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중대한 일을 저지르는 입장에서 그는 너무나도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박근혜정부]]가 집권한 이후 김재규 재평가론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하는데, [[박근혜]]의 실책에 대한 발, 조롱으로 "의사 김재규"라는 유머 컨텐츠가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김재규 드립을 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어디까지나 드립이었고, 그가 진짜 의사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헌데 이러한 유머 소재로써의 흥행을 통해 대중들에게 언급되는 일이 많아지며 김재규 본인과 당시 사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된 것은 어찌보면 행운이었다. 김재규가 인지도를 얻으면서 그가 살아생전 남긴 글과 행적들 역시 진지하게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 이로 인해 김재규는 평소에도 민주주의와 민주개혁세력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이들을 알게 모르게 도와왔다는 사실, [[부마민주항쟁]] 당시 학살극이 벌어질 뻔한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사실 등이 알려지며 김재규 지인들이 밝힌 미담 등과 함께 자연스럽게 "진지한 재평가"에 대한 정보들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최소한 2015년 전후부턴 이런 평가가 인터넷상에선 베플 등으로 진지하게 퍼져가던 시기. 덕분인지 10.26에 대한 평가 자체도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데, 이전까진 박정희 사망일이라는 것이 좀 더 부각되었다면, 이때쯤부턴 김재규 의거일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SNS 등을 중심으로 더 활발해진다.
  • 김영철(배우) . . . . 32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얼굴, 목소리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거기서도 '''광기 넘치는 악역 보스, 리더'''[*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서울 1945]]의 문정관, [[대왕 세종과 장영실]]의 [[태종(조선)|이방원]], [[공주의 남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등.] 연기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연배이면서 보스나 리더 역할을 주로 맡는 배우는 [[서인석]], [[이덕화]], [[유동근]] 등이 있는데, 서인석은 노태우 역할 등 겉으로 무른 역할을 맡기도 한 적도 있었으나 서인석과도 포지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덕화는 용모의 특성상 대부분 배역이 악역 보스이거나 안티 히어로이며, 서인석이 2000년대 들어 원톱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유동근과 포지션이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유동근이 드라마나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더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남성적이고 강건한 보스 역할에서는 김영철이 단연 최고다.] 주로 맡는 캐릭터들도 남성미가 돋보인다. 특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태조 왕건)|궁예]] 역할을 맡아 타이틀롤인 [[왕건]]을 제치고 광기와 카리스마의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진 연기로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며,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연기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상 수상자가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으나 드라마 스토리상 실제 드라마를 보면 [[궁예]]가 주인공급이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한 해 내내 전국민의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예상외로 비난이나 논란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실 2000년도 연기대상은 사람들 대부분 KBS는 김영철, MBC는 [[전광렬]]이 탈거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대상 줄 거야! 안 줄거야!--]당연히 젊었을때는 나이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할수는 없었고 그 외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해왔다. 중장년이 된 이후에도 카리스마 보스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남자 시리즈 전문 배우~~[* [[위기의 남자]], [[공주의 남자]], [[적도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출연. 그 중 [[위기의 남자]]를 제외한 3편은 각각 2011년 하기, 2012년 상기, 2012년 하기에 KBS에서 방송되었다.]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남편 "강세풍"역할을 맡아 부인 역할을 한 [[이미숙]]과 사실적인 코믹함을 바탕으로 한 부부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 이 드라마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부부들이 주인공으로 [[길용우]]-[[양미경]], [[유동근]]-[[이미영]], 김영철-이미숙이 각각 다른 3가지 부부생활을 보여줬다. 당시 김영철은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기가 센 부인에게 그게 잘 먹히지 않아 부인과 매일 부딪히는 남편 '강세풍'연기를 통해 코믹한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당시 [[이영애]]가 조연(길용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이영애의 첫 TV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하다.]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백미로 꼽히는데,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S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했고 1회 대상을 이 드라마의 [[이미숙]]이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시청자들(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90년대 중에 출연한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는 극 중 [[신현준(배우)|신현준]]과 [[이병헌]]의 친형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집안에 입양된 신현준이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하차한다. 이듬해 방영한 '머나먼 나라'에서는 [[김민종]]의 아버지이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절름발이로 등장하는데 방영한지 20년이 다된 지금도 이 드라마의 팬이라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연기일만큼 일품이다.
         <태조 왕건>의 궁예는 원래 일찍 하차할 캐릭터였는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120부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태조 왕건은 총 200부작인데 절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다웠고, 궁예가 죽으면서 1기가 끝나고, 견훤이 죽으면서 2기가 끝났다. [[진 주인공]] 맞다. 결국은 연기대상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개소문(드라마)|6년 뒤]]에 [[수양제|한 번 더]] [[김갑수|재현된다.]][* 다음 해에는 주인공인 왕건 역의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받았다. 한 드라마가 2년 연속 연기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1987년부터 1989년에 방영한 [[토지(소설)|토지]]([[임동진]]-[[효정]])와 태조 왕건 둘뿐이다.] 김영철은 장기간 한쪽 눈으로 연기한 탓에 시력에 이상이 와서 드라마가 끝나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력을 회복한 상태. 덧붙여서 궁예 역을 할때 실제로 삭발을 하여 연기에 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스님들이 분장과 가발을 한 것과 달리 한눈에 봐도 진짜로 머리를 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려시절, [[종간]]과 같이 있을 때.]. 어느 사극에서나 나오듯, 궁예 역할 역시 고증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논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김영철의 절등한 연기력에 그런 지적들은 힘을 못 쓰고 묻혀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드라마 1기 후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기를 부리거나 똘기어린 감정표현을 하거나, 주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김영철은 특히나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였기에 시청자들 뇌리에 깊이 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가령 술취한 궁예가 사람을 쳐죽이는 장면에선 취중에 혀가 꼬이는 것에서부터,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진짜 술취한 것처럼 재현하였다.
         '[[옴 마니 메 홈]]', '짐은 미륵이니라' 등 김영철 특유의 몸동작과 말투로 표현된 궁예의 대사들은 수많은 대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전국민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궁예가 자주 썼던 '[[관심법]]'이란 대사는 너무 크게 유행하는 바람에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상대방의 뜻을 아는척하며 넘겨짚는 행위'라는 뜻의 [[신조어]][* 물론 역사기록에 실제로 궁예가 썼던 걸로 기록된 말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신조어라 하기는 애매하지만, 드라마 이전에 역사연구하던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일인들이 그 단어를 알거나 쓰는 경우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수준이 되어 지금까지도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태조 왕건이 방영되던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말 못하는 아기였던 학생들도 쓸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뜻으로 쓰지는 않고, 주로 상대의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쓰인다. 아예 관심법 대신 '궁예질'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어찌보면 궁예질이 진정한 신조어라 볼 수 있다,] '태조 왕건' 방영이 끝나고도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예인들이 궁예의 유행어를 따라하고 궁예 패러디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년이 지난 뒤에도 예능에서 궁예 성대모사(?)[* 아는형님에서 김희철이 하는데 비슷하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깊게 남는 대히트를 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또 나이 지긋한 분들은 김영철을 볼때면 안대 안하고 왔냐고 물을정도. 2017년 현재도 포털에 궁예를 검색하면 김영철이 여전히 함께 뜬다.
         당시 1999년~2000년대 초에 [[개그콘서트]]로 큰 인기를 얻은 동명이인 [[김영철(개그맨)|개그맨 "김영철"]]의 활약으로 중견 배우 "김영철"로서의 이름에 대한 인지도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였는데, [[태조 왕건]]으로 대부분 중년배우에게 큰 관심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김영철이 누구냐?"고 물으면 "궁예!"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태조 왕건' 이후 어떤 새로운 사극이 나와서 다른 배우가 궁예 역할을 한다해도 김영철만큼 할 수 없을 거라는 평가를 받고, 모든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궁예 = 김영철"이라는 확고한 공식을 만든 그야말로 사극계의 [[레전설]].
         [[야인시대]]에서도 후기에 명연기를 보였으나, 해방 당시의 김두한은 20대 후이었는데 김영철은 당시 50에 근접한 나이라 [[미스캐스팅]] 논란도 있었고[* 광복을 기점으로 김두한 배역이 김영철로 교체되는데, 이 때 김두한의 나이는 28세지만 당시 김영철 배우의 나이는 만 50세, 연나이 51세였다. 김두한이 사망한 나이보다 겨우 3살 적었다. 그래서 김두한과 동년배 혹은 친구 역으로 나오는 김무옥-문영철이나 이정재 등은 훨씬 젊어보여서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었다. 김영철 배우의 외모를 젊게 잡아 40세라고 쳤어도 김두한 역으로의 교체는 김두한이 약 40세 정도인 4대 총선 도전때 정도가 적절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DTs3S_44w|이 자가 바로 20대입니다 어머니! 뭐,뭐라고?]]-- 후기 줄거리 자체의 논란과 더불어 방영 당시에는 [[안재모]]가 맡은 청년기 시절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주목은 태조 왕건만 못했다. 야인시대의 후기 방송분은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이 주 시청자였다. 하지만 종영후에는 청년기가 잊혀진면 후기는 [[심영물|명언도 더 발굴되고 넷상에서 언급도 더 많이된다.]] 방영된지 10년도 넘게 지났음에도 김영철의 인생 연기 중 하나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다만 배우 본인은 이렇게 강렬했던 궁예와 김두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태조 왕건의 후부때 휴식을 취하다가 드라마가 종영하자마자 [[위기의 남자]]에 출연한적도 있고... 연기자는 어찌되었든 평생 연기를 해야하니까 이미지가 한쪽으로 고착되는 것은 사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SdOXX3gMU|뉴스 인터뷰 영상 링크]]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궁예 이미지로 굳어지는게 다소 안타깝다는 뉘앙스로 직접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궁예 캐릭터에 애정도 있었는지 태조 왕건 이후 현대사인 [[서울 1945]]를 제외하면 한동안 사극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러다 2008년 [[대왕 세종]]에서 [[태종(조선)|태종 이방원]] 역을 맡았는데 그동안 사극 섭외를 정중히 거절한 이유는 바로 궁예 때문이라고 인터뷰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0086918|#]] 일적으로 대중들이 궁예와 김두한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만으로 김영철이라는 배우를 논하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 본인이 그런 배역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서인석]]도 [[견훤(태조 왕건)|견훤]]으로 인해 이후 드라마에 출연할 때마다 견훤 이미지가 겹치는 일이 많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대왕세종이 기존의 대하사극의 느낌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가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 되버렸고 시청률도 부진해서 덩달아 태종 이방원역까지 아쉽게 묻힌데 비해 공주의 남자는 달랐다. 기대치 않았던 젊은 주연배우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이긴 했으나 주연은 아니었으며 애초에 분량이 적고 조용한 캐릭터였다. 당시 공주의 남자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걱정 기대이었다. 더군다나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아가씨를 부탁해]] 이후 소속사 계약만료로 약 2년간 공백기가 있었다가 [[괜찮아, 아빠딸]]로 복귀한 후였다. [[박시후]]도 사극 출연은 2008년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가 전부이며 사극의 메인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일지매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연기여서, 공주의 남자 방영전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 게다가 [[송종호]]는 아예 사극 첫 출연이라 당시 극 초에 발성이 무척 어색했다. 결국 촬영 중에 이순재로부터 사극 발성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너무 불안한 캐스팅이라 느꼈는지, 서브조연 커플인 경혜공주와 정종 역은 [[왕의 여자]],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에 출연해 나이에 비해 사극 경험이 풍부했던 [[홍수현]]과 동 나이대 사극본좌 [[이민우]]가 캐스팅되었다.] 속에서 이순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예상치 못한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얻게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김종서]] 역을 맡은 [[이순재]] 옹과의 연기 대결은 이 드라마 초부의 백미. [[박시후|드라마 두]] [[문채원|주인공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훌륭하다고도 볼 수는 없었는데[* 실제로 연기대상에서 두 주인공이 남녀 최우수상을 싹쓸이하자 드라마 인기빨로 수상했다는 말이 조금 있었다.] 베테랑 김영철이 중간에서 미칠듯한 연기를 뽐내는 바람에 더 그래보였다(…). 이순재가 극의 1/3 지점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홀로 미친존재감을 선보이며 끝까지 열연했다. 이 작품은 최고시청률 25%까지 기록했는데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수양대군 캐릭터는[* 궁예나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포지션이다. 그냥 '''악역 그자체'''. 아마 김영철이 연기한 배역중 최악이자 최고의 악역이 아닐런지.] 욕을 한사발 얻어먹으며 '''[[천하의 개쌍놈]]'''이라 씹혔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서 나름 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시청자들의 평가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mNFY4R3IA5A|마지막회영상(스포주의)]] 한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김영철의 열연 덕에 24화동안 쌓아온 욕들 어디로 가고 수양대군을 안쓰러이 여긴다는 응이 대다수라 황당했다고.(...)[* 사전제작이었던 초에 비해 중 이후 퀄리티가 떨어졌으나 순전히 김영철만의 광기어린 열연으로 극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물론 박시후와 문채원도 제 몫을 다해줬다.] 종영 직후 나온 기사에도 수양대군의 마지막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에 감탄하는 댓글이 많았다.[[http://news.nate.com/view/20111006n35385?mid=n1008|당시기사]]
         2013년 KBS 2TV의 [[사극]] [[칼과 꽃]]에서 [[영류왕]]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자체는 안습한 [[시청률]]로 종영되었지만, [[연개소문]]을 맡은 [[최민수]]와 함께 연기력 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기존의 나약하고 무능한 이미지가 아닌 강인하면서도, 전쟁의 참상을 겪었기에 그 나름의 확고한 정치 철학을 바탕으로 전쟁을 대하는 합리적인 이미지의 카리스마 넘치는 영류왕을 연기해 사극 팬들에게서도 인기가 있었다.
         2014년에도 KBS 2TV의 [[월화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2014)|태양은 가득히]]에 출연했는데 위에 나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맡은 역할과 비슷한 대기업 회장 '한태오' 역할을 맡았다. 딸과 대립[* 착한남자의 '서정규'처럼 말 안 듣는 딸을 속으로는 사랑하고 걱정하지만 자신이 시한부 환자라 딸을 그대로 남겨두고 가는 것이 답답해서 초부터 구박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포지션의 대립. '한태오'는 자기 사업에 대해서는 냉혈하고 지독하지만, 딸만큼은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사랑하며 길렀는데, 너무 사랑한 나머지 후부가 되어서야 자신의 비리와 딸의 과거 연인을 암살하도록 했던 사실을 딸에게 들킨 뒤에도 바로 막지 못하고 조금씩 공격당하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대립하는 구도.]한다는 점, 부인이 어리다는 점[* [[전미선]]이 재혼한 아내 역할을 했다. 물론 30대인 박시연보다는 덜하지만 전미선과도 20년 가까운 나이차이가 난다. 극중 나이차이는 실제 배우끼리의 나이 차이보다는 적은 듯 묘사된다.], 여주인공인 딸 외에 아들[* 딸의 이복남동생.]이 있다는 점[* '착한 남자'에서의 아들은 늦둥이라 어린이지만,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아들은 성인(후술될 항목에 예능에 같이 출연한 '아들' [[손호준]]이 맡은 역할)이다.], 결국 남자 주인공과 딸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점 등 스토리상 '유사점이 많은 역할'을, '같은 방송국'에서, '같은 배우'가 연기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 보면 다른 점도 많기는 하다. 결국 마지막에 감옥만 갈 뿐 드라마 끝까지 살아있는 채로 끝났다는 점에서, 중간에 죽은 '착한 남자'에서의 역할보다는 행복한 역할인 듯.]
         2016년 상기에 방영하는 드라마 [[장영실(드라마)|장영실]]에 [[태종(조선)|태종]] 역으로 출연한다. [[대왕 세종]]에 이어 또다시 태종 이방원을 연기하게 되었다. 야인시대에서 연기한 배역인 김두한의 실제 외손자 [[송일국]]과 함께 출연하게 되었다. 거기에 비슷한 시기 그 앞 시대를 다룬 사극도 있어 [[유아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유아인]] 문서 참조.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선거 CF에 출연했으며 [[2011년 상기 재보궐선거]] [[분당구]] 을 지역구에 출마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무소속 [[주호영]] 후보(공천탈락 후 무소속)와 새누리당 [[이상일(정치인)|이상일]] 후보(비례대표였으나 지역구 출마)의 지원유세도 했다. 이렇듯 주로 이회창, 정몽준, 주호영, 이상일처럼 중도 성향에 걸쳐지거나 그런 평가를 받았던 이들을 지지한 걸로 보아 성향은 중도우파로 보인다. 실제로 전두환, 박근혜 등에 비판적인 것을 보면 권위주의 우파보단 자유주의 우파 성향인듯.
         2018년 7월 무렵에, 본인이 직접 나레이터 겸 등장인물로 나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란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화까지만 방영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지만 시청자들의 응이 워낙 좋아 곧 정식편성 될 예정이다. 1화에서는 콩나물밥집에서 식사를 하며 어머님이 어렸을때 많이 해주셨던 음식이라고 하며 감상에 젖는 모습이 나온다. 2화에서 김영철이 하교하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학생들이 김영철을 보고 '[[4달러]]'라며 곧장 알아보고,[* 그 것도 김두한이 활약했던 종로구에서! --노린 건가--] 분식집에서 군것질을 하는 어린 아이들과 마주치는데 아이들이 김영철을 알아보더니 '[[궁예(태조 왕건)|그런데 왜 대머리가 아니에요?]]'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김영철은 아이들에게 분식집 음식들을 사줬다.
  • 배영수 . . . . 32회 일치
         ||||||||<tablealign=center><:>'''한국시리즈 우승 지'''||
         '''2000년대 중 KBO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참교육|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 배영수의 성적 자체가 선발 확정시켜 줄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장원삼과 윤성환 둘 다 나이 30을 훌쩍 넘겨 언제 노쇠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5선발 육성이 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선발을 육성하지 못한 것의 부작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주전 투수들이 이탈하자 바로 나타났다.] 지속적으로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영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하게 된다.
         배영수가 토미존 서저리를 받기 전까지의 플레이 스타일은 140km/h 중 후 최고 155km/h 를 기록하는 강력한 속구,[* 특히 속구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테일링이 걸렸을 정도다. 예를 들어 진통제를 맞고 등판했던 06년도 한국시리즈에서도 패스트볼 테일링이 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균속도 130km/h 중후의 슬라이더130km/h 후에서 140km/h 정도의 평속이 나오는 스플리터 [* 잡는걸 보면 스플리터가 맞다. 배영수 본인도 스플리터를 던진다고 한다.] 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스타일로 [[존 스몰츠]] 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평가되었다. 이닝 소화 면에서도 2004년 한국시리즈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비롯해 2005년도 최다이닝 4위, 2006년 팔꿈치 부상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의 연투능력이 있는 투수로서 강점을 보였다. 투구폼도 구속을 짜내기 위한 힘을 모으는 과정이 보이는[* 던지기 전에 힘을 모으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투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터프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투수로 kbo 최정상급의 강속구 투수였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 이는 플레이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 [*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리그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167949|#]]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1997488|#]]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6&aid=0000011149|#]]]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 하지만 과거 스터프에 의존하던 선수였던 만큼 제구파 투수로 플레이스타일이 변경되었어도 과거 플레이스타일에 영향이 있는지 경기당 기복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 배영수가 컨디션 기복이 있는 것이 이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볼넷도 적게 내주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쉽다는 것.]
         배영수의 최대 전성기 시절. 당시 최대 150km/h대 중의 광속구와 140km/h를 넘나드는 슬라이더 두 구질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다.무엇보다 경기내내 평균 140키로후대의 공을 꾸준히 던졌는데, 이는 당시 다른 선발들중 구속하나론 비교할만한 상대가 없었으며 최근 리그 수준을봐도 평균구속 최상위권에 랭크될만한 구속과 강인함을 지녔었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입단 첫 해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임창용]]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13승을 거두고,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던 2002년에는 소모포어 징크스가 심하게 보이며 주춤했으나, 2003년 13승, 2004년 17승, 2005년 11승을 올리며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수술 후 2007 시즌은 재활로 보냈는데, 회복이 빠른데다 팔꿈치 통증이 없어 당초 예상보다 빠른 2008 시즌 전에 복귀했다. 평균구속은 130대 후으로 떨어지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하게 되었지만 9승 8패 평균자책 4.55로 부상당했던 선수의 복귀 시즌 치고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시즌 막판 두 번의 선발등판에서 연이어 시속 140km 초까지 구속을 끌어올리며 좋은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기 때문에 내년 시즌을 더욱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 후 5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동안 1실점하며 다시 승리투수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찾는가 했는데, 이 후 SK와 두산을 상대로 연속 5이닝 미만 투구로 조기강판되면서 강타선을 보유한 상위팀을 상대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5월 중순까지의 투구 내용을 보면 위의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절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 문서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속구위주의 투구를 더 이상 보여주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으나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에서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심지어 5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⅓이닝 동안 5실점(4자책)으로 통타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결국 계투진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계투진에서도 다소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또다시 부진의 늪으로 빠지는게 아닌가 했던 배영수였지만, 여름이 되면서 구속이 오르자 등하기 시작했다. 6월 11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장원삼이 3이닝만에 5실점하며 조기강판되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8회까지 이닝을 책임지며 5이닝 동안 3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당시 등판에서 비록 8피안타(1피홈런)를 허용하기는 했으나, 사사구가 하나도 없으며 어느정도 살아난 구위와 날카로운 변화구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 효율적인 투구수로 5이닝을 책임져 준 것이 위안 삼을만한 부분이었다. 이어 6월 16일 사직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이우선]]이 3이닝만에 6실점으로 무너지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3⅓이닝 동안 3탈삼진 무실점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이 후 삼성으로 경기를 가져오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역시 [[로나쌩 클럽]] 회원-- 이 경기로 인해 배영수는 3일 뒤인 6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하여 등판했는데 5이닝 2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이며 괜찮은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3일만의 등판이었기 때문에 4회, 5회에 피안타가 늘어난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4점대 후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전성기 시절보다는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을 치룰수록 구속이 시속 140km대를 넘기 시작했고 구위 역시 회복하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아직 나이도 만 서른이 안됐으니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08, 09 시즌과 비교해봤을 때 피홈런 개수가 준 것이 부활의 가능성을 보인 요소 중 하나이다.]
         '''시즌 초 짝했으나, 끝이 보이지 않는 부진의 터널'''
         그러나 5월 1일 한화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도[* [[장성호]]에게 맞은 투런홈런도 실투가 아니었을 정도로 좋은 볼을 던졌다.] 팀 타선이 1점 밖에 내지 못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삼성타자들이 부진한데다가, 한화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는지라... [[지못미]]. 본인은 최선을 다해 던졌기 때문에 아쉬움도 후회도 없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204747|#]] 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철저히 투수전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5시에 시작해 7시에 끝나는 기염을 토했다. 타 구장엔 5회말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5월 말까지 벌써 5승이나 올리면서 좋은성적으로 선발진에 큰 힘을 보태주고 있었으나, 6월부터 슬슬 부진하기 시작하더니 7월 말까지 이 기간에만 승리 없이 3패를 떠안게 된다. 평균자책점도 3점대 중에서 5점대 중까지 상승하고 말았다. 사실 이 기간 중에 QS도 2번을 기록 했으나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 된 경기 또한 4번이나 되었기에 본인 입장으로서도 매우 아쉬웠을 듯 하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295773&date=20141204&page=1|배영수가 삼성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리된 바에 의하면, '''연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과 한화가 제시한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의 루머와 달리 배영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661070|내가 구단 측에 선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760892|배영수 CBS 인터뷰 전문]] 참조. 팬들이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너무 감사하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은 이틀 전 그가 한 "누구도 원망 안한다.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라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를 통해 "30경기"도 못나왔으니 홀대받았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삼성 프론트의 삽질여부와 별개로 11년, 13년, 14년 4점대 평자를 찍었는데도 묵묵히 기다려 준 코칭스태프와 팬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렸고 사이영수상까지 만들었던 삼갤은 배영수의 이름이 언급되면 드시 30경기 이야기를 추가로 붙히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이 후 정철우는 본인이 경솔한 기사를 썼던 것을 사과한다며 애플 베이스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네이버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 애플이 아무리 봐도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그 [[애플(기업)|애플]]을 떠올리게 해서 사과는 커녕 의도적으로 비꼬는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올해 배영수의 문제는 잃은 구속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 제구력 위주의 피칭을 해야 하는데 [[유희관]]과 다르게 제구와 구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피홈런이 많은 것은 물론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각각 3할대, 4할대 후인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투수 본인의 자신감을 잃었다. 은퇴 드립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무적인 것은 교육리그에서 구속이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417100|144km]]까지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유임이 점쳐지는 기사가 나오는 중이라 그냥 드러누우라는 (...) 응도 많다.
         당장 일부 한화 팬들의 몸값에 걸맞는 결과냐는 감이 있었고, [[노리타(김성근)|그들]]도 딱히 감싸줄 이유는 없기에 결과로 까서 [[김성근|금지어]]의 보위에만 신경 썼다. 이른 시기 [[김성근|금지어]]보다 먼저 와서 성실히 그의 방침을 따랐던 [[조인성(야구선수)|칰금님]]도 같은 경우였다. 결국 자서전에 쓸 미담은 [[노리타(김성근)|그놈들]]이 금지어에게 챙겨주고 [[토사구팽|비난은 선수들이 받은 것.]]
         6월 5일 LG전에서는 5이닝 7실점 13피안타로 무너지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경기 후 3점을 내며 분전한 타자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팬들은 2군행 보다 은퇴를 종용할 정도로 투구 내용이 매우 부진하였다. 결국 다음날(6/6) 1군에서 말소됐다.
  • 은지원 . . . . 32회 일치
         ||<#000000> '''{{{#FFFFFF 별명}}}''' ||<(> G, '''G1'''[* 실제로 자신의 모든 솔로 앨범표지에 Eun G1이라는 예명을 쓴다. --무한도전에서는 [[김재덕]]에게 [[장수원|장로봇]]이 형은 덕2로 하자...--], =G1, '''은초딩''', '''은각하'''[* 데뷔 초에 멤버들끼리 놀리듯이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과 달리 외모와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여담으로 [[은초딩]]과 [[은각하]]를 쳐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절대자, 은간지,[br]은까리, 은리더[* 방송 자막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은대장, 은리다,[br] 지니어스원, 은둘리, 여의도돌싱[* 신서유기 시즌1에서 이승기가 붙여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여의도 이혼남이 있다.], [[외계인]][*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너무 가진 것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공주편에서 은지원이 공상과학 이야기 중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데 "형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 사람 몸속에 아무 흔적없이 마이크로 칩을 넣는데?"라고 발언 한 것. 이후 은지원이 강호동의 엉덩이를 나무로 때리고 이후 [[박찬호]]가 은지원보고 외계인 아니냐며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팜스테이 편에 등장하는 일심동체 게임에서 김C가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문제에서 은지원을 적은 것. 이후 전국일주에서 UFO 관련해서도 빨리 사진 지우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br]거칠이, 극한직업 젝키리더(...)[* 옛날부터 멤버들과 예능 나오면 마음 졸이며 수습하고 관리하기 바빴다. 최근 나온 방송들을 보면 멤버들이 산만한 편...],[br]젝키 유일 일인[* 밖에선 미친자, 도른자, 돌아이, 외계인 취급받지만 젝키에선 가장 평범한 일인 포지션이다. 그 정도로 동생들--특히 이재진--이 남다르다(...).], 섭섭이(...)[* [[1박 2일]]에서 얻게 됐다. 후에 --[[MC몽]]--이 섭섭이 라인에 합류하면서 은지원은 일섭이, --MC몽--은 이섭이로 불리게 됐다.], 미친者(...)[* 신서유기에서 얻게된 별명이다.], 구美[* [[안재현|이 사람]]이 합류하자마자 그에 못지않은 미친者의 면모를 보여서 신美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은지원은 기존의 미친者를 뜻해서 옛날을 뜻하는 한자 舊(옛 구)를 넣은 셈.], 찌오니[* 본인의 이름을 모에화하여 팬들이 부르는 별명, 본인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은먹금[* 본인의 칭찬이 나오면 황급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외면해서 붙은 별명. 방송생활 20여 년간 본인 칭찬을 한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은요물[* 촉이 좋아서 미션의 흐름을 한번에 이해하고 진행해나가 신서유기 제작진들이 붙여준 별명], 은왜은[* 연예인 중에서 유일한 [[은(성씨)|은씨]]와 흔하지만 세련된 '지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팬들이 은지원은 이름도 잘생겼다며 '은지원은 왜 이름도 은지원인가'를 줄여서 만든 별명.] ||
         대표적인 장기 현역 남자 아이돌[* 최연장자는 [[god]]의 [[박준형(god)|박준형]]이고, 여자 아이돌 최고참은 [[S.E.S.]]의 [[바다(가수)|바다]]이다.][* 활동 기간보다 해체 이후 재결합 이전까지의 공백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던 젝스키스를 장수 그룹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은지원 개인의 개별 연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이자 1세대 보이그룹 출신들 가운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 1997년 초에 데뷔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로, 맏형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서도 영향력과 비중이 높아 팀의 중심적인 멤버이다. 포지션은 [[Rap|랩]](메인래퍼)과 서브보컬을 맡고 있으며 노래/춤[* 고난이도 안무를 보여주진 않지만 춤선이 상당히 이쁘며 스타일리쉬한 춤실력을 갖고 있다.]/랩 삼박자가 평균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고, 멤버들중 가장 먼저 자작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에선 후렴구나 킬링파트 독창을 잘 소화하기에 젝스키스의 남성적인 이미지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세대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팀 내 인기 역시 수위를 다투었다.[* 팬들 사이에서 은지원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로는 '''까리함'''과 '''양아미(양아치+美)'''가 있다.] 리더 포지션 & 높은 인지도 & 걸출한 실력 그 이상으로 [[강성훈]]과 더불어 젝스키스의 핵심과도 같은 멤버. 해체 후에도 꾸준한 방송과 음 활동으로 젝스키스를 회자시키며, 세월이 지나 재결합 후의 활동에도 멤버들과 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멤버이다. 그리고 젝스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1세대 아이돌 내에서도 '''정상급의 대중성과 인지도의 소유자'''로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 시절에도 은초딩의 모습은 있었지만, 신비주의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시키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해체 후 1박 2일 등의 예능을 통해 은초딩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젝키 해체 후에는 은각하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지만 젝키 재결합 후 예능에서 은초딩보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한 은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섭섭한 바보 어벤저스로 전락하곤 한다.]
         젝스키스 1집에만 해도 랩만 했으나 2집부터 보컬도 맡게 되면서 노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힙합으로 전향한 이후 노래를 안 한지 꽤 됐지만 기본적으로 음색이 [[비성]]이 섞인 [[미성]]이다. 1세대 아이돌의 비보컬 멤버가 대개 그렇듯 진지하게 가창력을 논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중에서는 중고음이 가능하고[* 조금 무리하면 2옥 솔 정도는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음감이 있어 라이브에서도 음을 제대로 찍어부를 정도로 중간 이상은 하기때문에 상당히 괜찮은 편. 현대적인 관점에서 메인보컬을 받쳐주는 서브보컬의 역할을 당시에 상당히 충실히 해냈다.[* 이런 서브보컬 라인이 강해야 메인보컬을 적재적소에 꽂아넣는 프로듀싱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물론 1세대 아이돌 당시에는 그런 거 없고 후렴과 어려운 파트는 메인보컬이 몽땅 하고 그나마 몇 없는 쉬운 파트를 나머지 멤버들이 나눠가지는 식이었다. 은지원, [[이효리]], [[손호영]] 정도가 그나마 괜찮은 서브보컬이었다.] 그 예로 3집 활동 후속곡인 '무모한 사랑'에서는 은지원의 파트가 과장해서 노래의 절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 많다. 보통 젝키에서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르는 강성훈이 이 노래에서는 후렴구만 부르는 면, 은지원은 이 노래에서 서브보컬, 랩, 리드보컬까지 웬만한 파트는 거의 다 맡는다. 심지어 고음으로 지르는 부분도 있다.--느낄 수 있어써!!!!-- 또한 4집 후속곡 예감에서도 초부 파트를 통으로 끌고 간다.
         지금이야 예능에서의 모습으로 초딩 소리를 듣지만 젝키 시절에는 과묵한 이미지와 까리한(...) 외모로 '''은각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다.[* [[H.O.T.]]의 리더 [[문희준]]이나, [[신화(아이돌)|신화]]의 리더 [[에릭(신화)|에릭]]과는 달리 그룹에 동갑이 없었다. (이들보다 1살 위인 [[NRG(아이돌)|NRG]]의 리더 [[이성진(NRG)|이성진]]도 같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이 --연습할 때 한정으로--다들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이 까다로웠다고 언급했다. --김재덕에 의하면, 은지원이 너무 독재자여서 이재진이 항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게 받은 대접이 대접이라 그런지 "은지원이 아니었다면 3년도 가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독재자 발언은 예능에서 장난스레 발언한 것이다-- 은각하 자체가 데뷔 당시 멤버들을 갈구던 상황에서 놀리듯이 붙은 별명이다. 당장 [[토토가2 - 젝스키스]] 편이나 예전 예능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은지원은 동생들에게 갈굼당하기 일쑤다. --마이웨이 까칠이 이재진과 은지원 전용 어그로 고지용, 프로일침러 장수원, 방관하는 강성훈과 김재덕.-- --(극한직업 젝키 리더)-- --젝키 내에서는 은지원이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 말로는 자신은 카리스마 있었던 적은 없었고, 말이 없었던 이유는 MC들이 질문한 내용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고...
         젝키 멤버 중 [[강성훈]]과 함께 유학파 출신으로 데뷔 당시 소속사가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배워 온 친구라고 소개했는데 유학 다녀온 곳은 [[하와이]](...).[* 물론 하와이도 엄연히 '''미국의 한 주'''인 만큼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거짓말까지는 아니지만]] 일적인 인식에서 미국 본토라고 보기에는 좀...] 본인 말로는 하와이 가서 얻어온 건 매튜라는 영어 이름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돌 현역 시절에는 랩 파트를 즉석으로 영어로 개사하여 소화하는 등의 센스를 보여준 적이 있다.
         물론 본인도 솔로 데뷔 때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했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인지, 솔로 1집 자켓을 보면 그간의 마음고생을 영하듯 얼굴살이 확 빠져있다. 힙합을 하는 면 작사를 직접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힙합플레이야|힙플]]에서 종종 까이는 듯. 은지원은 젝스키스로 활동 당시에도 자작곡은 젝키 멤버 중 제일 먼저 만들었음에도 가사는 직접 쓰지 않고 곡만 썼는데, 이에 대해 솔로 5집 활동 시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언급하기를, "대강 본인이 가사를 쓰고나면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맡겨 가사를 다듬는데, 100% 자신의 손을 거친 작업물이 아니면 크레딧에는 도와준 사람의 이름으로만 올린다"고 하니 실제로 작사 비중은 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가사들도 보이니.
         아이돌을 그만두고 힙합으로 전향했을 때 [[타이거 JK]]한테 배움을 받아서인지, 2003년 9월에 발매된 3집을 들어보면 [[드렁큰 타이거]]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3집 이후로는 점차 자기 색깔 찾아가는 듯. 이후 '힙합'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데 2005년 2월 4집에 들어서 자기 색깔이 두드러졌고 4집에서 국보급 플로우를 만들어낸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 힙합 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8톤 트럭'의 원조이다. 흔히들 다듀의 고백이 원조라고 알고 있는데, 은지원의 8톤 트럭이 고백보다 8개월 더 먼저 나왔다!]2009년 5집에서는 당시 음악적인 트렌드를 영하여 2002년 2집처럼 댄스에 가까운 힙합으로 선보였지만 이질적인 느낌이라 호불호로 갈라졌다. 대신에 당시 개그 유행어를 소재로 수록된 '''160'''이 힙합 장르를 떠나서 흥겨운 음악 덕분에 응이 좋은 편. 2013년 11월, [[20세기 미소년]]에 타이거 JK가 "은지원의 부탁으로 출연했다"며 친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아 친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음 목록 ===
         하지만 초딩 이미지와는 대로 [[1박 2일]] 복불복 미션에서 거의 [[흑막]] 수준으로 상황을 꿰뚫고 좌지우지 하는 [[천재]] [[기믹]]도 갖추고 있었다. 일명 '''지니어스 원'''.
         다만 이러한 뛰어난 미션 수행 능력과는 대 급부로 복불복 운은 정말 지지리도 없는 편. 대표적으로 전남 벌교 편에서 5000원쓰고도 20만원을 쓴 이수근의 꼬막 2000개를 같이 캤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일명 '꼬막의 저주'라 불리우는 08년도~09년도의 겨울 내내 야외취침과, [[1박 2일/낙오일람|낙오된 횟수]]도 4회로 가장 많은 편.[* 2번째로 많았던 경우는 [[이승기]]의 3회인데 전북 장수편에서는 이수근과 함께 낙오했으며, 녹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짰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면에 은지원은 3회는 복불복으로, 1회는 날씨운 때문에 낙오한 것이며, 4회의 낙오를 모두 '''혼자서 겪어야 했다'''.] 낙오된 것도 굵직 굵직한 것들만 걸렸는데 첫번째 낙오는 '''무인도인''' 사승봉도, 국토대장정 특집에서 대중교통 이용해서 혼자 베이스캠프까지 찾아오기, 복불복 특집에서는 악천후에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복불복에서 단순히 '서해 어촌마을' 정도만 정해졌고 정확한 위치는 가면서 정한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차림을(바보 분장에 등에는 [[지게]]를 멨다.) 하고 혼자 찾아오기, 5대섬 특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호도에 걸려서 운이 좋은 듯 싶었으나 '''풍랑주의보로 인한 결항'''으로 혼자서 다큐 3일을 찍기도 하였다.
         당시 멤버들 중 가장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무릎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에서도 연습을 강행하고 부상투혼으로라도 무대에 서겠다 하는 데 무한도전 작가가 이번 컴백이 어떤 의미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자 평소에 동생들에게 해준게 없었던 못난 형이었는데 기적같은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이번에는 무언가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고백하는 모습에서 '''장난기라곤 1%도 포함되지 않은''' 젝키에 대한 그의 진심과 해체 뒤에 알게 모르게 가져온 죄책감이나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져서 은지원을 다시 봤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후에 기자의 스포일러로 콘서트가 무산되어 주꾸미 축제 같은 지방행사를 뛰어야 한다고 하여 다른 멤버들이 매우 실망해서 우울해할때도 주꾸미가 높이 뛰나 우리가 높이 뛰나 붙어보자고 대체로 다독이는 응을 보였다.
         의외로 연기 활동도 좀 했다. ~~[[흑역사]]지만~~ [[영화]] [[세븐틴]]과 [[여고생 시집가기]]를 통해 영화 2편 주연을 한 영화 배우이며[* 그러나 여고생 시집가기를 함께 찍은 배우 임은경은 이 영화 이후로 더 이상 스크린에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여고생 시집가기가 입봉작이었던 감독도 그 이후로 모습을 볼 수 없다고, QTV 20세기 미소년을 통해 은지원 본인이 직접 밝혔다.], MBC 추석특집 '옥탑방 구렁이'에서도 [[윤은혜]]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그 외에도 MBC [[뉴하트]]에 레지던트 카메오 역으로, 최근에는 tvN [[응답하라 1997]]을 통해 30대 중에 고등학생 역할을 또(...)했다. 응답하라 1997의 [[이우정]] 작가는 '은초딩' 캐릭터를 만들어 낸 KBS 예능 '1박 2일'의 작가로 응답하라 1997의 모티브가 은지원과 (1997년에 데뷔한) 젝키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응답하라 1997'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 된 것은 은지원이었다고 한다. ~~극 중에서 깨알같이 본인 디스도 했다~~
         2000년대 후에 잠시 접었지만, [[판다리아의 안개]]가 론칭되면서 복귀했다. 심지어 [[즐거운공격대]] 멤버들, 개그맨 [[조세호|양배추]]와 같이 판다리아 탐험기까지 찍었다(...) [[http://kr.battle.net/wow/ko/blog/2213015/%EC%9D%80%EC%A7%80%EC%9B%90%EA%B3%BC_%EC%A6%90%EA%B1%B0%EC%9A%B4_%EA%B3%B5%EA%B2%A9%EB%8C%80%EC%9D%98_%ED%8C%90%EB%8B%A4%EB%A6%AC%EC%95%84%EC%9D%98_%EC%95%88%EA%B0%9C_%ED%83%90%ED%97%98%EA%B8%B0-2012_09_13|#]]
         제 3의 베이비 붐 세대라 부르는 79~82년에 태어난 사람이 연간 86만명으로 굉장히 많은 데다가 그들이 20세가 되자 IMF 사태로 인해 자원 입대를 하는 사례가 많아서 98~02년에 육군은 군 병력 과잉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3년동안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는 것이 가능했다. 2000년대 초 이전에는 법적으로(병역법 시행령 제135조 7항) 입영 연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신검]] 이후 3년간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으면 대기 판정으로 현역은 보충역으로, 보충역은 제2 국민역(면제)으로 병역 처분이 한 단계씩 낮아졌었다. 1999~2003년 동안 자원 입대자들이 많아서 보충역에서 제2국민역으로 편입된 사례가 그 당시 꽤 많았다. 이렇게 [[신의 아들|신이 내린 선물을 받은 사람]]은 연평균 약 5,000여 명. 물론 2004년 이후로는 없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위해 선거 활동에 유세 도우미로 참가했다. "친척 하는 일 거드는 것인데 뭐 어때?"라는 응도 있지만, 과거 선거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참고로 2012년 초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박근혜|고모]]가 원하신다면 당연히 도와드릴 생각'''이지만, 내가 [[초딩]] 이미지라(...) 굳이 도와달라고 안 하시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본인의 --딱히 있을 것 같지않은--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친척이라 도와드린 것이라 밝힌 적 있다.
         2010년 초부에 언급한 대로 [[이동국]]의 처형과 결혼하게 되어서 품절남이 되었었다. --하와이에서 만나 젝키때도 문답 등에 꾸준히 언급해왔던 첫사랑과의 결혼!-- 즉 [[이동국]]과는 동서 관계. ~~그래서 [[이승기]]와 [[김종민]]이 그렇게 가까워졌나 보다~~ 결혼 이후 [[아내]]가 싸준 도시락에도 그야말로 애들이 좋아하는 구성으로 꽉 찬 찬들이 공개될 정도인 걸 보면 집안에서도 여전히 초딩인 듯.
          * [[츤데레]]다. 문제는 팬들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츤데레라는 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425001447491|젝키 시절 사생팬들에게 쓴 손편지]] 멤버들 중 유독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과 티격태격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도시락 때문에 싸웠다거나 이재진이 항을 많이 했다는 언급도 몇번 해서 사이가 나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친하다. 애초에 이재진이 코가 크다는 이유로(...) 젝키 멤버가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막 합류한 김재덕이 이재진을 두둔했는데[* 이재진과 김재덕은 부산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재덕에게 처음으로 춤을 가르쳐준 사람이 이재진이고 같은 댄스팀에서 활동했으며 함께 상경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이 때 은지원이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라면서 회사를 설득하여 무사히 젝키 멤버가 되었다. 해체 후 각자 솔로활동을 하던 시절에 이재진이 라디오 출연했을 때 [[https://youtu.be/BZ2QCgkw_pg|은지원이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고, 이재진이 군대 전역 후 인터뷰에서 '입대 전까지 지원이 형, [[강성훈|성훈이]]랑 연락했다. 이제 나왔으니 또 연락할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둘이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서로를 까면서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 순간 죽이 맞거나, 남들이 까면 은근히 편을 들어주거나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잡지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은지원을 꼽기도 했다. 젝스키스 무대나 예능에서도 은지원이 동생들을 계속 모니터링하며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프로 츤데레일 뿐-- 해체 직후에 총알받이가 되어가며 황급히 솔로로 나온 것 자체가 동생들이 최대한 편히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누가 먼저 나오든 엄청난 욕을 먹을 것이라 나서서 총대를 맨 것. 재결합 전까지 젝스키스 언급을 자제하거나 상징색을 노랑이 아닌 은색을 써서 팬들에게 젝스키스를 부끄러워한다, 싫어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오해받을 당시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젝스키스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 당시 현실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발언해 어린 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등 돌린 부분도 크다.-- 젝키가 다시 뭉쳤을 때 일개 추억팔이가 되어 과거의 추억까지 격하당할 것을 염려한 흔적이 많다. 게다가 그동안 리더로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재결합 후 응이 좋자 마치 용서받은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노란색 관련해서는 예능에서 남들이 다 싫다는 샛노란 체육복을 젝키는 노랑이라며 좋아하거나, 우비를 노란 우비 위주로 입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희준이 방송에서 은지원은 오해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문제는 오해받더라도 해명하지 않는다는 것.
          * 데뷔 당시 고지용이 '''[[학원별곡|폼생폼사]]'''로 활동하는 것을 극구 대했으나, 은지원이 이 곡으로 무대에 오르자고 밀어붙여 수록곡으로 묻힐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외 3.5집을 준비할 당시 [[이호연]] 사장은 은지원의 똥고집에 머리를 썩히다 은지원의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는 말에 결국 두손두발 다 들었고, 그렇게 "[[커플(노래)|커플]]"이 3.5집 타이틀곡이 되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은지원의 선견지명-- --괜히 착한 독재라 불리는 게 아니다-- [[커플(노래)|커플]]은 사장이 대했던 탓에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는 소문이 있다.[* 참고로 [[커플(노래)|커플]]의 작곡가 마경식은, 노래 분위기와는 정대의 슬래쉬메탈 그룹 아발란쉬의 보컬이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zSq38-Zn1RA|가창력이 엄청나다.]] [[http://img.maniadb.com/images/artist_t/260/106/106553-k.jpg|커플을 작곡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 만약 그 카더라 통신이 사실이더라도,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소속사와 이호연 사장을 비난하기는 힘들 것이다. 마경식은 작곡가로서 그때까지 제대로 된 히트곡이 없었다.[[http://www.ikaraoke.kr/isong/search_musictitle.asp?sch_sel=5&sch_txt=%B8%B6%B0%E6%BD%C4&c_ctry=|#]] 게다가 기존에 해오던 음악과 정대 느낌의 곡을 작곡해왔다. 우려가 클 수 밖에 없었다. 면 3.5집의 '너를 보내며'를 작곡한 김석찬은, 얼마 전에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로 초대박을 쳤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너를 보내며' 노래 자체도 충분히 타이틀곡으로 지정할만한 퀄리티다.[[https://youtu.be/mEGviByCMnc|#]] 회사 측에서는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하는 것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면 은지원의 선구안이 뛰어났던 것이다. 젝키의 대부분 뮤비가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커플(노래)|커플]] 뮤직비디오는 사무실 문짝을 로케로 촬영하는 등 유독 저퀄리티다. 선술한 바와 같이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채택할 것인가를 두고 사장과 담판을 지은 것이 맞다면, 뮤비 퀄리티가 유독 그런 것이 이해가 간다.
          * 잠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13년 12월 은희상담소 방송을 보면([[https://youtu.be/y30hcXif7GQ|13분부터]]), 젝키 시절 하루에 스케줄 7~8개를 하고 나서 다음날 아침 스케줄이 있었다고 한다. 멤버들을 각자 집에 내려다주고 씻고 챙기게 한 뒤 거의 곧바로 픽업하러 왔는데, 그래야 스케줄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머지 멤버들을 태우고 마지막으로 은지원 집에 1시간만에 다시 갔다. 그때 침대에 누운 은지원이 너무 피곤해서 매니저한테 "너 같으면 일어나겠냐"고 한 다음, 매니저가 멤버인 줄 알고 욕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케줄이 펑크났었다고 밝혔다. 매니저는 황당하면서 자기도 피곤하니까 라이터를 입에다 물고 씹었는데, 입에서 불이 펑 터지는걸 은지원이 봤다고 한다.
          * 위에서 밝힌 바 처럼 숙소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은지원은 제일 마지막에 태우러 갔다. 2009년 6월 15일 MBC 놀러와 방송([[https://youtu.be/ob09scxZhz0|7분부터]])에서 장수원의 증언에 따르면, 젝키 시절 은지원이 독재자여서, 사장님이 두 명있는 셈이었다고 한다. 원래 사장님이랑 은지원 이렇게 2명이었다고.. 지원이 형을 제일 마지막에 데리러 가서 집 앞에 기다리고 있으면, 스케줄이 늦었는데도 2~30분 후에 이쑤시개 물고 나왔다고 밝혔다. 그래서 왜 늦었는지 물어보면 엄마가 아침밥 차려주는 것 먹고 나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은지원은 "리더로서 힘든 것도 많은데 그 정도 권한은 있어야 하지 않냐?"라고 문했다.
  • 한규복 (1881년) . . . . 32회 일치
         해방 후에는 정계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곡자]]의 대표이사 등으로 활동하였고, [[1949년]] [[민특위]]에 자수한 뒤, 조사받고 풀려났다. 이후 기업 활동과 언론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조선인 도지사 경력자 42명 가운데 배경이 되는 엘리트 출신 고위관료 8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서예]]에 능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나 수상하였다.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고 자(字)는 덕중(德仲), 호는 온재(溫齋)이다.
         [[1935년]] [[2월 6일]]에는 [[경성부]]에서 [[윤치호]] 등이 조직한 [[계명구락부]][[재단]](啓明俱樂部財團) 위원의 한 사람에 위촉되었다.<ref>"啓明俱樂部財團組織 十萬圓으로 會館新築", 동아일보 1935년 02월 06일자 2면, 사회면</ref> [[1930년]]대 중 이후 그는 각종 계몽, 강연회를 다니면서 근검 절약의 필요성, 불필요한 사치품과 물건 강매, 사재기 등을 하지 말 것, 저축을 하여 가사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할 것, 도박과 노름, 사행성 복권 등 헛된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고 성실하게 일하여 대가를 취할 것을 강조하였다.
         [[1936년]]에는 그는 [[참정권]]을 얻어낼 계획을 세웠으나, 일제 당국의 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jiji">송건호, 《송건호전집 4: 한국현대사 2》(한길사, 2002) 100페이지</ref> [[이규완]]의 [[조선인]][[참정권]]론, [[자치]]권 획득론에 공감하게 된 그는 [[박중양]]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에 조선인 참정권을 허용해줄 것을 여러 번 건의하였으나 번번히 묵살되었다.
         [[지원병제]]는 [[1930년]]대 중부터 일부 친일 유지층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제기되었다. 먼저 [[박춘금]](朴春琴)이 [[대의사]](代議士)가 된 후 일본국회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고, 그후 친일인사들에 의해 여러 번 건의되었다. [[1936년]] [[11월 24일]] 경성부회의원 조병상(曺秉相), 중추원참의인 한규복 등이 중심이 되어 30여 명의 간담회를 열어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추진키 위해 위원 8명으로 기성회를 구성하고 [[1937년]] 발회식(發會式)을 가질 예정이었다.<ref name="jiji"/> 그러나 [[일본]] 당국은 이 문제가 [[참정권]]하고도 관계가 있다 하여 일단 중지시켰다.<ref name="jiji"/> 이후에도 그는 [[조선총독부]]에 참정권 허용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한다.
         [[1939년]] [[2월 2일]]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각 정(동)지역 연맹 애국 창설에 참여하였으나 [[윤치호]] 등의 불참으로 [[김명준]], [[이승우]], 조병상 등 참여자들 일부와 함께 조직 착수에 나섰다.
         ==== 민특위 자수와 심문 ====
         광복 직후 일체의 공직을 사퇴하고 칩거하였다. [[1945년]] [[9월 2일]] [[미군정청]] 고문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8월 16일]] [[한국곡자주식회사]](韓國穀子株式會社)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후인 [[1949년]]에 [[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자수해 왔으나, 민특위 활동이 방해를 받으면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ref name="neftkin">{{웹 인용
          |출판사 = 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ref> 일설에는 [[1949년]] [[4월 23일]] 한규복이 검거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으나<ref>"한규복 등 검거", 자유신문 1949년 04월 23일자 2면</ref>, 그는 [[8월 12일]] 자수하는 편지를 [[민특위]] 앞으로 부친 뒤 [[서울역]] 광장에서 자수 소감을 발표하였다.
         {{인용문2|자수 편지<br /><br />천운(天運)이 순환하사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되니 산천(山川)과 초목이 다시 금빛이 나고 잃었던 자유가 우리 몸에 다시 오니 일의 환희는 무엇으로 형용하리요. 하물며 일제시대에 허다의 압제를 견디면서 관리생활을 계속한 본인으로서는 더욱더욱 감개무량이외다. 본인은 대한제국시대에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조도전 대학早에서 정치경제과를 졸업한 고로 행정관으로 출세하여 민중지도에 노력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관계(官界)에 투신하여 도지부 서기관으로 재임한 채로 병합을 당하여 임시토지조사국 감사관에 임명되었을 때 본인은 자신처리에 대하여 재삼 고려한 결과 나의 지력과 성력의 한도대로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견해로 관리생활을 계속하여 [[도지사]]를 역임하고 正4位 勳3등까지 되었으니 가위 고급관리의 지위까지 점진하였다고 하겠으며 30여 년간 관리생활을 하는 중에 민중의 계발을 여하(如何)한 정도로 하였느냐 하면 구체적으로 진술할 재료는 제공치 못하나 다만 양심적으로 민중을 지도하고 또한 민중의 의지를 대표하여 항거할 점은 어디까지든지 항론도 사양치 아니 하였으며 평범한 정치로 민중에 임하고 공정렴근(公正廉謹)으로서 관계일생(官界一生)의 목표로 삼은 것은 천인(天人)이 공인(共認)하는바 옵니다. 그러하니 민중에 대하여 행복이 되고 이익이 된 점을 일일이 수거치는 못하고 다만 장구한 세월의 관리생활을 하였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며 무엇이라고 변명하오리까. 금일에 지하여는 전일의 양심적으로 민중을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보도, 노력한 점은 무형(無形)으로 돌아가고 다만 관계생활(官界生活)을 하여 일제에 아부한 자로 추인되어 이 점이 기탄불기(慨歎不已)할 뿐더러 관리생활로 일생을 보낸 것이 참회되는 바이며 근신(勤愼)할 뿐이 옵니다. 오직 현명한 당국의 선악을 분별하사 관대한 처분만 바라옵고 감히 소회(所懷)의 일단을 진백(陳白)하나이다.<br><Br>단기 4282년 8월 12일<br />위 인 한규복<br><br>민행위특별조사위원회 귀중|[[1949년]] [[8월 12일]] 자수 직전에 [[민특위]]에 보낸 편지}}
         [[1949년]] [[8월 12일]] [[민특위]]에 편지를 보낸 뒤 그는 [[서울]]에 있는 [[민특위]] 사무실로 자수, 스스로 찾아갔다. 그는 자수한 점이 감안되어 구속되지 않고, 출두 형식으로 조사를 받았다.
         ==== 민특위 조사와 석방 ====
         [[민특위]]에 체포되었을 당시 한규복은 일제 치하에서 관리를 지냈을 뿐 “양심에 비추어 민족정신을 망각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특위는 관비로 유학을 마치고 대한제국 관리로 일하다가 “한일합병과 동시에 다시 왜인에게 아부하여 조선총독정치에 헌신한 유일한 친일분자”로 평가했다.<ref name="neftkin"/> 당시 그를 심문한 이는 위원장 [[이인]] [[변호사]]였다.
         《[[친일파 군상]]》에서는 한규복과 [[전라북도]][[도지사]]를 지낸 [[손영목]]에 대하여는 "일본인들에게 무조건 친일 또는 아부자가 아니었다 한다"며 그러한 주장을 인정해 주었다.<ref name="parksgi87"/> 그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친일파는 아니라는 의견이 존재하여 그의 처벌에는 대하는 여론도 나타났다.
         [[1949년]] [[8월 31일]]의 [[민특위]] 최종 심리에서 그는 민법(제4조 2항, 3항) 위의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사실及이유 본건은 [[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의 의견서 기재 범죄사실에 관하여 수사한 바, 피의자는 한일합방 전부터 일제시대까지 30여년 간에 亘하여 관리생활을 계속하고 최후에 [[중추원]] [[참의]]까지 임명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으나, 평소 그가 악질적으로 민족에게 해를 끼쳤다는 현저한 증거가 없음으로 주문과 如히 결정함'이라고 결정되었다. 그는 순순히 수사에 협조, 진술하여 정상참작이 되었다. [[1950년]] 초 한규복은 [[김시권]](金時權) 등과 함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서초동([[1973년]] [[서울시]] 영동출장소로 편입되었다가 현 [[서초구]]로 편입)에 부인 평양조씨 조인옥, 김해김씨 김학인과 합장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도지사, 도 참여관 부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중추원, 친일단체 부문에 각각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그가 맹목적인 친일파 민족역자였는지 아닌지 여부에 대해서는 당대에도 이견이 존재하였다. [[민특위]]의 보고서에는 그를“한일합병과 동시에 다시 왜인에게 아부하여 조선총독정치에 헌신한 유일한 친일분자”로 평가했다.<ref name="neftkin"/>
         사회운동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두용]](金斗鎔)은 그가 악성 역자는 아닌 것으로 봤다. 그에 의하면 '고관 전직자, 친일파의 거두 등은 기장지무(巳張之舞<ref>이미 춘 춤</ref>)이니 이러한 기회에 일층 적극 진충보국하면 자기 개인은 물론이요, 우리 민족적으로도 장래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 자<ref>김인덕,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가 연구》 (국학자료원 펴냄, 2002) 67페이지</ref>
          |출판사 = 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기타=민족문제연구소 엮음
  • 박주영 . . . . 30회 일치
         ||<:> '''학력''' ||<:> 야월초등학교 (1992~1998) [br] [[청구중학교]] (1998~2001) [br] [[청구고등학교]] (2001~2004) [br] [[고려대학교]] (2004~2005) ||
         ||<:> 2010년 6월 23일||<:> [[더]]||[[파일:나이지리아 국기.png|width=30]] [[나이지리아]]||<:> 2–2||<:>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백호와 동급이다~~) 180초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 때에는 뛰어난 순간 속도와 예측력을 기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 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대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볼 키핑력과 순간속도,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무릎 부상을 포함한 피지컬 하락과 폼이 죽으면서 이런 스타일의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예측력은 유효한 강점으로 상대 수비의 움직임이나 공의 흐름 같은 것을 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흐르는 볼에도 강점이 있다.
         프리킥도 상당히 뛰어나다. K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프리킥 장인 [[이천수]], [[김형범]], [[염기훈]]보다는 떨어지지만 그 다음 티어는 되었다. 2010년대 중 이후 대표팀에서 프리킥을 전담하는 손흥민보다는 한수 위였다.
         커리어 초기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은 몸싸움. FC서울 시절 당시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골 결정력으로 먹고 사는 선수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데뷔 당시의 전기 시즌뿐으로, 후기 시즌에 들어서면서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말들이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에서 흘러나왔고 실제로 박주영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상대팀이 거친 몸싸움으로 대응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 2006년에도 2005년 후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지만, 데뷔시즌 말고는 스탯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모나코 이적 이후 한동안은 몸싸움에서 너무 밀려서 스피드에만 의존해야 해서 예상보다 저조한 커리어를 찍게 됐지만, 그대로 도태되는 대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몸싸움과 제공권 능력은 아주 크게 보강했다. 모나코 2,3년차 09/10~10/11시즌 사이의 박주영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중앙 공격수 였다. 이 최고의 중앙 공격수라는게 무슨 골을 많이 넣는 선수라는게 아니다. 한국 최고의 스코어러는 아니었지만 현대 축구에서 필수적인 원톱 역할, 수비진과 경합하며 골문 부근에서 공을 따내고 지키는 공성추 역할은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 동으로 청대때의 화려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현대축구에서 중앙 공격수는 무조건 포스트 플레이가 우선이고, 득점력은 다음이다.''' 어정쩡한 올라운드 원톱이나 고전적인 스트라이커는 현대 축구, 특히 세계무대에서 언더둑 입장인 한국같은 팀에겐 효용성이 떨어졌다. 현대 축구는 대체적으로 원톱이 직접 때리는 임무보다 상대 수비수의 집중력과 힘과 어그로를 빼면서 2선 공격수들에게 도움과 공간을 주는게 첫번째 이며 이게 커리어 중기 스코어러론 더 빼어났던 이동국을 제칠 수 있었던 이유다.
          * 밥꼼수: 병역과 관련해서 일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법조항 사이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붙은 비아냥. '밥'은 박주영의 다른 별명인 '밥줘영'에서 유래.
          * 박XX : 일부 입이 거친 사람들이 지나친 비속어를 사용하여 이렇게 잠시잠깐 불렀다. 당연히 평소에는 한국 축구에 관심 없고 앞으로도 없을 월드컵 냄비들이다. 왜냐면 2014년 발효된 별명인데 그 전까지의 행보를 고려해 볼 때 월드컵에서 똥 쌀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병역기피 등등의 행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사실 어찌 보면 일명사에 가까운 비속어들로 특정인물을 호칭하기에는 대한민국에 박씨가 너무 많다.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짝했다.
          * 선례왕(先例王) : 합법적 병역 연기 및 면제는 물론 포항에서 서울로의 도주 등 박주영 인생 전을 걸친 선구자적 면모가 일인들에게는 상상의 영역조차 초월한 바, 박주영에게는 감히 왕의 칭호가 어울리다고 뭇사람들이 기림과 함께 얻은 영예로운 별명. 인간 박주영의 생애 전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 피파에서는 K리그 시절 초기에는 상당히 좋았으나 그 다음부터 부진해 능력치가 유망주 급으로 변화. 모나코 이적후 70대 중의 아시아인 치고는 상당히 쓸만한 능력치로 둔갑했다. 피크시절에는 80까지도 올라가며 아시아 최강 포워드로서 이름을 날렸으나 아스날에서 셀타로 이적할시 약간 능력치가 하향되었다. 전체적으로 뛰어나고 결정력이 좋은 포워드임에도 셀타에서 삽질이 영되어 아스날 재복귀시 70대 초으로 다운되어 버렸다. 월드컵에서 삽질 후 60대 후까지 떨어졌다.15년 FC서울 복귀시엔 능력치가 60대 중까지 너무 다운돼 대표팀에서도 써먹기 힘든 레벨까지 떨어졌다. 16년에 60대 후까지는 복귀했으나 데얀(77) 아드리아노(72)에 비하면 조커 이상으로 쓰기 힘든 능력치가 되었다. [[http://www.futhead.com/players/165889/|능력치로 보는 그의 일대기]]
          * 위닝일레븐에서는 데뷔 때부터 20살 주제에 80대에서 70대 중 능력치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데다 마스터리그에서 키우면 괴물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모나코 이적 후로는 피지컬에다 헤딩능력도 80대로 설정되어 대표팀과 팀내 에이스급 선수로 설정되었다. 너프를 잘안시키는 위닝 특성상 브라질 때까지도 손흥민에 이어 넘버2의 한국인 능력치를 받았으나 다음해부터 현실을 영해 70대 초으로 엄청난 너프를 받았다. 2017에서 약간 상승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한 능력치다. 그러나 피파시리즈와는 달리 이동국에 비해 언제나 높은 능력치를 자랑한다.[* K리그만 놓고보면 이동국의 스탯은 박주영이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피파시리즈에서는 이동국의 능력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 국대 레벨에서도 쓸만하고][* 그러나 위닝에서는 얘기가 달라지는데 상당히 능력치가 편중되어 있다. 헤딩이나 몸싸움은 그럭저럭인데 연계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되었는지 슈팅력과 헤딩은 뛰어나나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대로 박주영은 디펜스 골기퍼 스킬 빼고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70대 이상이다.]
          * 박주영이 병역 논란 당시 귀국 후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제의를 거절하고 최강희 감독은 물론 축협 등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며 잠수 탔을 때 이를 비꼬는 사람들이 [[투명드립|투명하다,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며]] 비꼴 때 사용되는 인터넷 은어 종범 대신 이제 대세는 주영이라며 대체하려고 했다. 은어로 쓰이는 종범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말이라 대체되진 않았지만 그 후에도 이따금씩 사용례가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종범이 지역감정 문제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것도 있고 은퇴하면서 존재감이 낮아진 면 박주영은 아스널서 절정을 찍고 있기에 주영의 점유율이 치솟는 중.
          * 2000년대 중 박주영을 주인공으로한 [[육성 시뮬레이션]] [[플래시 게임]]인 '축구왕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을 키워 프로선수로 만드는 게 목적이고 중간 중간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이 들어가있었지만 축구협회측에서 합의한 초상권 협의 종료로 결국 사라졌다. [[http://upload.inven.co.kr/upload/2014/06/26/bbs/i2943558749.jpg|관련 사진]]
          * SNS는 일절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김진규(축구인)|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태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절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세정(구구단) . . . . 29회 일치
         ||<#66AADD> '''{{{#white 소속 그룹}}}''' ||<#ffffff><(> [[I.O.I]][* 2016.05.05(결성일은 4월 2일이나, 공식 데뷔일은 음 발매일을 기준으로 함.) ~ 2017.01.31.], [[구구단(아이돌)|구구단]], [[구구단 세미나]] ||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소속 8인조 걸그룹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멤버이다. [[2016년]] [[프로듀스 101]]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최종 순위 2위를 기록한 출전자로, 남녀노소 다양한 팬층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I.O.I]]로 정식 데뷔하기도 전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출연자 중 상위권에 속하는 비주얼에 [[아이돌]] 가수로서의 춤과 노래의 기본기가 탄탄하고, 또 털털하고 밝은 성격에 강한 멘탈과 무대 장악력까지 갖추어 [[프로듀스 101]] 방송 초부터 국민 프로듀서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2017년]] 1월 [[I.O.I|]]로써의 마지막 활동인 [[타임슬립 - I.O.I]]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고 현재는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명실공히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에이스[* [[어서옵SHOW]], 붐샤카라카, 걸그룹대첩 - 가문의 영광,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해피투게더 예능행, 1 대 100, [[배틀 트립]](옹동투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말하는대로, 한끼줍쇼, 겟잇뷰티, SNL, 런닝맨, 꽃놀이패, 정글의 법칙, 주먹 쥐고 뱃고동, [[학교 2017]]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방송활동과 각종 CF 출연을 보면, 그냥 에이스가 아니라 '[[강병철|세정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 / [[최동원|네 알았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급의 특급 에이스임을 알 수 있다. [[프로듀스 101]] 당시 춤과 노래가 부족했던 [[김소혜(1999)|김소혜]]를 가르쳐주고 처음으로 나선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촬영에서는 [[H.U.B]]에서 혼자 참석한 [[루이(H.U.B)|와타나베 루이]]를 챙겨 주는가 하면 [[한끼줍쇼]] 첫 게스트로 출연해서 [[강호동]]과 [[이경규]]로부터 고정을 하자는 극찬까지 들었으며, 건장한 남자 연예인들도 힘들어 하는 [[주먹쥐고 뱃고동]] 촬영을 임자도 편에 이어 여수편까지, 그것도 상상 이상의 갖은 노역을 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훈훈한 멘트까지 덧붙이며 [[김병만]]에게 인정받는 모습에서 인성과 근성, 체력과 실력이 동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히 걸그룹 에이스계의 [[최동원]]. 게다가 후술하는 근육 덕분인지 첫 출전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육상에서 메달권까지 근접했다!]로 각종 방송에 출연 중이다.
         당시 [[K팝 스타 시즌2]]에 심사위원으로 나섰던 [[BoA|보아]]는 김세정에 대해, 어떻게 트레이닝해야 할지 애매하다는 응을 보이며 캐스팅을 포기했다. ~~그 몇 년 후 [[프로듀스 101]] 자기 소개 영상에서부터 시작된 김세정의 활약을 보면 그야말로 [[오하아몽]](吳下阿蒙) [[괄목상대]](刮目相對)~~
         그리고 2016년 4월 16일 [[I.O.I]]로서의 첫 활동을 시작했다. 약 오후 1시 무렵 [[I.O.I]]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깜짝 이벤트 관련 영상이 올라왔다. [[I.O.I]]가 총 두 팀으로 나누어져 [[용산]] 아이파크몰, 상암 CJ E&M 센터로 갔는데, 세정은 상암 팀의 멤버였으며 현장에는 커피 차 한 대가 있었고 팬들은 커피 차에서 커피를 주는 역조공이 아닐까 추측했다.[* 당시 응으론 동성로에 비해 별로일 것이다, 커피만 나눠주고 끝이라 별로일 것이다 등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안방충의 패배~~]
         결론적으로, 김세정은 개별 활동의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이게 다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젤리피쉬]] 때문이다'''--. --'''뻘짓'''이 '''[[김광수(음기획자)|광수]]급'''--
          생방송 3시간 동안 초에는 가끔씩 출연하다가, 나중에는 분량이 메인 출연자급으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팬들이 노잼 포맷에 불안해했으나 늘어나는 생방요정의 분량과 MC들의 점점 생방송에 적응해 가며 세정이 감초 역할을 독톡히 해주었다며 만족하는 듯. 어서옵쇼를 보려는 게 아니라 세정을 보기 위해 봤다는 평이 대부분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방송 V앱 하트가 무려 2,200만 개를 찍었다.
          그리고 2번째 생방 분량인 본방 3회차부터 본 방송 내에서의 분량도 매우 늘어났다. [[이서진]]이 적극적으로 세정을 챙겨주는 부분이나 퀴즈 등의 진행과 같이 제작진도 적극적으로 세정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이 날 각 호스트별 방송 중에 참여했다가 시간 종료를 매우 적절하게 활용하여 웃음을 주는 등 활약이 많아졌다. 특히 이 날은 같은 [[I.O.I|아이오아이]] 멤버인 [[소미|전소미]]의 출연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하여서 1~2화 대비 더욱 방송에 활력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박수홍]]과 함께한 웨딩편에서는 [[어서옵SHOW]]에서 레전드로 남은 '''등근육'''을 보였다. 11회부터는 방송 초부터 3MC와 같이 진행하고 [[김준현]]과의 먹방 검증에서도 먹는 모습이 화면에 많이 잡히는 등 [[어서옵SHOW]]에서 아예 MC로서의 지분을 톡톡히 했다. [[어서옵SHOW]] 출연진들 중 가장 많은 이득을 보았으며, 이후 [[어서옵SHOW]]가 종영된 후에도 타 예능 출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2016년 8월 11일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소녀시대]] [[써니(소녀시대)|써니]], [[EXID]] [[솔지]],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예린(여자친구)|예린]], [[멜로디데이]] 차희, [[라붐(아이돌)|라붐]] [[솔빈]]과 함께 "[[부산행|예능행]]"이라는 타이틀로 출연하였다. 띠드버거 애교를 벌이는 과정에서 호탕하게 웃어버리는 전 매력을 보여 폭탄웃음을 선사했다.
          * 1월 3일 [[1대100]] 466회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여해 초등학교 때 [[방송부]] [[아나운서]]였고 [[성우]]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MC 조충현 아나운서와의 팔씨름에서 '''핸디캡 없이''' 완승을 거둔 뒤 애교와 성우 개인기도 보여줬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069492|#]] --[[SBS|S도장]], [[한국방송공사|K도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문화방송|M도장]]만 깨면 된다.[[한국방송공사|K도장]]의 [[송해]]도 할 수 있나-- 그녀는 5, 6단계에서 찬스를 적절히 사용했으며 7단계부터는 이전 방송 모니터링한 결과 본인이 생각한 답이 틀린 경우가 많아 대로 고르는 전략으로 '''849만원을 받는 우승자가 결정된 9단계에서 5명과 접전을 벌였다.'''
          * 2017년 3월 4일 [[KBS 2TV]]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2번째로 출연했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15주년 특집으로 실시하는 쟁노래방편에 출연을 결정지었으며, 같은 [[I.O.I]] 출신인 [[소미]], [[걸스데이]] [[유라(걸스데이)|유라]], [[혜리]], [[EXID]] [[하니(EXID)|하니]]와 함께 녹화를 진행했고 3월 23/30일에 방영. 마지막 시도 끝에 성공했다.
          * 2017년 6월 28일에는 [[미미(구구단)|미미]]와 [[https://www.youtube.com/watch?v=DMWkwQ6xk2U|[어로드] 세정&미미 ①편]]에 출연했다. [[현대 i30|최고급 해치백]]을 타고[* 협찬 차량인 만큼 차량에 대해 종종 언급되었다.] 버킷리스트 항목을 작성한 후에 --무작정 가기 (단 살아있기)-- 홍대에 방문해 인력거 타기, 인형 뽑기, 벽화거리 방문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6월 30일에 방영된 [[https://www.youtube.com/watch?v=f4YhLDyEp38|②편]]에서 연남동에 방문하여 쿠킹 클래스 시간을 가졌고, 태국 요리를 배워 둘 간의 요리 대결을 펼쳐 세정의 승리로 미미가 벌칙을 수행했다. 승패와 상관없이 결과를 예측했던 시민들과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했다. 7월 5일 방영된 [[https://www.youtube.com/watch?v=6xjuXiHZyN8|③편]]에서 구구단 멤버들에게 선물을 사주기로 해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팔찌를 제작했다. 한강 시민 공원 여의도 지구에 방문해 미미를 위해 자신의 노래인 '꽃길'을 불러주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구구단의 꽃길도 기원했다. 모든 버킷리스트를 완료한 뒤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 2017년 10월 31일 [[http://pop.heraldcorp.com/view.php?ud=201710311359242137311_1|기사]]를 통해 [[SBS]] [[판타스틱 듀오 시즌2|판타스틱 듀오]] '라스트 티켓특집'에 게스트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에일리]]의 듀엣 파트너인 '김제 양궁 낭자'로 지원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에일리의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김남주(Apink)|김남주]], [[박재정(가수)|박재정]]과의 3대 1대결에서 '밸런스를 맞춰주는데 힘이 되었다, 떨림과 설렘이 감정으로 표현이 되어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평을 받았고, 이에 최종 파트너로 선택되어 에일리와 [[에일리/음 목록|If you]] 무대를 선보였다. 방송 내내 유독 긴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같이 무대에 설 일이 자주 있지도 않을뿐더러,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 같다'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프로그램 종료 무렵에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2018년 1월 12일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80111165216875?f=m|기사]]를 통해 [[한국방송공사|KBS]]의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파업]]이 잠정 중단된 후 녹화가 재개된 [[KBS 2TV]]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한보름]], [[이수경]], 배해선과 함께 출연을 밝혔다. '예능행 특집', '쟁노래방 특집'에 이어 3번째 출연[* 2016년 12월 10일 해피투게더 녹화가 예정되었다가 12월 8일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출연을 취소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던 적이 있다.] 1월 18일 방영되었으며 2017 KBS 연기대상 당시 뒷이야기 및 [[Wanna One|워너원]] 멤버들에게 남겼던 조언 등이 공개되었다.
          * 2018년 5월 21일부터 30일까지, 세정이 모델로 계약되어 있는 [[알바천국]] 이벤트가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해당 이벤트의 당첨자였던 찬가게, 빵집, 꽃집, 빵집에 일일 아르바이트생 세정이 6월 19일, 20일 양일에 거쳐 매장을 방문, 일손을 도왔다.
          * [[갈릴레오 : 깨어난우주]] 출연자들이 입국을 할 때 세정 혼자 공항에 보이지 않아 팬들 사이에 작게나마 논란이 되었으나 V앱[* 이때의 V앱에서 프로듀스 48 출연자들을 위한 응원과 조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거기서 경쟁하지 마세요. 서로 얘기를 조금만 나눠보면 같은 마음이구나를 알게 되거든요. 멋진 무대 여러 번 만들고 가야지 하고 임하면 최고로 잘 될 수 있을 거에요. 절대 경쟁하지 마세요. 경쟁하려는 순간 너무 경쟁자가 많아져요. 그냥, 좋고 멋지고 예쁜 무대를 이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임했으면 좋겠습니다."]을 통해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LA에서 볼 일[* 엠바고가 걸렸는지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을 보고 귀국했음을 설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출전을 맞이해서 빅스 레오 및 구구단 멤버들과 함께 응원 공연을 몇 차례 가졌다. 독일전 2:0 승리를 끝으로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일정과 그에 동된 응원 행사가 마감된 이후인 6월 29일에는 tvN 짠내투어 촬영을 위해 승리(빅뱅), 조세호 등과 함께 중국 푸젠성 샤먼으로 출국했다.
          * 10월 25일 [[해피투게더]]에 출연한다. 벌써 4번째 출연. 스페셜 MC 역할을 한다고. [[유해진]], [[이서진]], [[조진웅]] 등 세 배우와 동출격. 이서진과는 [[어서옵쇼]] 이후 첫 만남이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 11월 11일 유튜버 [[윰댕]]의 실시간 방송에 하나, 미미와 같이 출연했다. [[유튜브]]와 구구단의 콜래보레이션의 일환이라고. 이 방송에서 김세정은 자기 남편 [[대도서관(방송인)|대도서관]]을 팔씨름으로 이긴다는 윰댕의 도전을 받아 왼팔씨름으로는 근소하게 뒤지는 상황(해녀왈 "손목이 꺽였는데 지지를 않아")이었으나 이어 계속된 오른팔씨름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윰댕"괴물이야 팔에 철심을 박았나?")해서 걸그룹 팔씨름 제왕으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어 댄스에서는 개다리춤으로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여담으로 구구단이 퇴근하고 이루어진 방송에서 윰댕의 스탭에게 "졌대요~ 졌대요~" 팔씨름 패배의 굴욕을 당했고 윰댕 본인도 이렇게 져본 적도 없는데 팔에 심각한 근육통까지 있어 심신이 굴욕적(퇴근하면서 세정이 "괜찮으세요? 팔 안아프세요? 와~ 힘 정말 세세요"했다고 한다...)이라며 나름 유쾌하게 방송종료했다. (참고로 윰댕은 학창 시절 유도를 했다.)
          * 2018년 11월 14일, [[크록스]]의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 Come As You Are 한국 대표 홍보대사로 선정되었음이 공개되었다. 미국의 [[주이 디샤넬]], 영국의 [[나탈리 도머]], 중국의 진천(Gina Jin), 일본의 [[히로세 스즈]]와 함께 Come As You Are 글로벌 홍보대사 활동을 하게 된다. 화성체험 프로그램 갈릴레오 촬영 후 타 출연자들과 다르게 LA로 이동, 스케줄을 소화했던 게 바로 이 광고 촬영 때문이었다고 11월 14일 V앱에서 김세정 본인이 밝혔다. 무려 년 동안의 엠바고였던 셈.
         == 음 활동 ==
  • 김민기(가수) . . . . 27회 일치
         하지만 이 초기 시절부터 음악 활동은 그리 순탄치 않았는데, 1972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신입생 환영회 때 자작곡을 포함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1974년 10월에는 [[카투사]]로 [[입대]]해 군 복무를 시작했으나 1975년 초 [[10월 유신|유신]] 대 운동에서 김민기의 노래들이 불렸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보안사|보안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고, 아침 이슬이 금지곡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솔로 1집도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다. 이 결정은 19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지속되었고, 이후 [[전두환]] 집권기까지 공식적으로 발매된 김민기의 앨범은 전무했다.
         보안대 조사가 끝난 뒤에는 [[영창]] 살이를 한 뒤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되었는데, 경기고등학교 선배였던 소속 [[연대(군대)|연대]] 수색중대장의 부탁을 받고 중대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1977년 5월에 [[전역]]한 뒤에도 공연이나 음 발매 등 공적인 활동에 제재를 받게 되자 당시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이었던 조각가 김세중의 도움으로 학사 학위와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도 미술 활동이나 교편을 잡지 않은 채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양희은]]의 음 '거치른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에 들어갈 노래들을 작곡해 주었다. 하지만 음 발매 때는 가명을 사용했음에도 수록곡 중 '[[늙은 군인의 노래]]'가 [[장교]]들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또 금지곡 판정과 음 판금 조치를 받았다.
         이렇게 되자 다른 민중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제도권 음악계의 도움 없이 비밀리에 작곡과 연주 활동을 진행했는데, 1978년에는 [[개신교]] 계열 시민단체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다. 이 노래극은 당시 대학 노래패들의 노래와 연주로 [[송창식(가수)|송창식]]의 집에서 몰래 녹음되었고, 녹음 직후 [[카세트 테이프]]로 복사되어 보급되었다. 대담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행한 작업이었는데, 당연히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지만 별 처벌 없이 풀려났다.[* 당시 김민기는 분명히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었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 동안 자신들이 독재 민주화 운동을 공개적으로 탄압하다가 국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것 때문인지 김민기만은 활동 금지만 시키고 자멸하도록 방치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세력들이 [[12.12 군사란]]으로 정권을 잡게 되자 다시 농사를 지으며 대외 활동을 삼갔는데, 1981년 5월에는 [[국풍81]] 개최를 앞두고 정부에서 자신을 회유하려고 하자 농사일이 바쁘다면서 끝까지 참가를 거절했다.[* 이때 [[허문도]]가 김민기를 회유하기 위해 [[백지수표|흰 종이를 한 장 내밀며, "원하는 액수를 쓰라" 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김민기는 거절.] 대신 틈틈이 찾아와 농사를 도와주던 [[전라북도]] 각지의 연극패와 노래패들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시|전주]]에서 근대사 세미나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서 김민기가 참가한다는 것을 알아채면서 수포로 돌아갔고, 1984년에는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한 대학들에서 활동하던 노래패들의 노래를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음을 제작했다.[* 이 음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노래패 '노찾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음도 공윤위에서 김민기의 노래를 모두 삭제하라고 지시했고, 발매 뒤에도 [[어른의 사정]]으로 발매는 되었지만 판매가 거의 안되는 [[안습]] 신세를 겪었다.
         1985년에 뮤지컬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던 이미영과 결혼했고, 1987년에는 [[6월 항쟁]]으로 본격적인 [[민주화]] 열풍이 불자 6년 전 [[충청남도]] [[보령시]]의 [[탄광]]에서 잠시 광부 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을 살려 탄광촌 아이들을 다룬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건재하던 공윤위의 꼬장 때문에 여러 대목의 가사를 고쳐서 출해야 했다. 공윤위와의 마찰은 같은 해 12월에 노래일기 '엄마, 우리 엄마'와 훗날 록 오페라로 리메이크하게 되는 노래극 '개똥이'의 노래를 모은 음을 낼 때도 똑같이 벌어졌다.
         [[1989년]]에는 농촌 운동 경험을 살려 장일순, 박재일, 김지하, 최해성 등과 함께 생태운동 단체인 '한살림 모임'이라는 [[NGO]]를 만들어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한살림은 2014년 현재 원주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조합원만 '''41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활협동조합]]이다. 조합원들이 친환경-유기농산물를 생산해서 전국에 있는 직영매장에서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태이나, 해외 언론과 NGO에선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협동조합 운동에선 최고의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듬해에는 [[한겨레]]에서 발족시킨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서 그 동안 군사정권의 탄압 등으로 가창이 금지되어 있던 [[대한민국]]과 해외 동포들의 노래를 엮은 음 '겨레의 노래'를 제작했고, 음 발매 기념으로 순회 공연을 하면서 오랜만에 [[아침 이슬]]을 공개적으로 불러 화제가 되었다.
         2001년에는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작곡된 김민기의 대표곡 아홉 곡을 김동성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앨범이 발매되었고, 발매와 동시에 '클래식 김민기'라는 타이틀로 임헌정 지휘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해 화제가 되었다. 2004년에는 [[공장의 불빛]]이 [[정재일]]과 [[이적(가수)|이적]], [[이소은(가수)|이소은]], [[전인권]], 이지영, [[이승열]] 등 후배 음악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1978년의 오리지널 카세트 테이프 복각본과 합쳐 두 장의 [[CD]]로 재발매되었다. 이 음들은 그와 초기에 듀엣 활동을 했던 이노디자인 대표 김영세가 앨범 디자인을 맡았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나 음악극 외에도 순수한 서정미가 돋보이는 노래들도 많이 작곡해 운동권이 아닌 일 애호가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회적 소외자에 대한 시각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람에 대한 연민을 그린 곡인 [[아름다운 사람]]외에 친구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듯 털털한 어조로 부르는 '봉우리', 순수한 동경과 열정을 담담하게 표현한 '날개만 있다면'등의 노래도 유명하다.
         요즘은 김민기가 무명 가수 취급을 받곤 하는데, 그런 사람은 '''1970~1980년대를 살아보지 못했거나 국내 가요의 역사를 수박겉핥기 식으로만 알고있는 사람'''이다.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형식적인 면(연주, 편곡)에서 혁명을 가져온게 록과 흑인음악을 도입한 [[신중현]]이라면, 내용적인 면(노랫말, 감성, 메세지)에서 혁명을 가져온 것이 김민기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흐름이 다시 만나는 지점이 바로 1985년 나온 [[들국화(밴드)|들국화]] 1집이다. 대중음악평론가들이 괜히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 같은 순위에서 들국화 1집을 처음에 꼽는게 아니다.]
         [[휘파람]]을 잘 부른다(...). 1971년 김민기 첫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 '눈길' 의 휘파람 주도 본인이 직접 불렀고, 22년 뒤 녹음한 [[그사이]]와 천리길의 휘파람 주도 본인이 직접 불렀다.
         김민기와는 절친한 관계. 한대수와 김민기 모두 대한민국 포크 음악을 발전시키는데에 큰 기여를 했으며, 음악이 계몽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실제로 1971년 김민기의 앨범에 한대수의 음악 '바람과 나' 가 실리기도 했고, 한대수도 2013년에 부른 '행복의 나라' 에서 '이제 나이 들어서 (음을) 녹음할 수 없는 사람들' 로 김민기와 [[전인권]]을 뽑았다. 이를 보면 전인권과의 커넥션도 있었을지도?
         [[공장의 불빛]]을 만들 때도 송창식의 집에서 비밀리에 녹음했고, 김민기 앨범 1에 수록된 송창식 작곡의 '내나라내겨레', 송창식이 부른 김민기 작곡의 [[이 세상 어딘가에]] 등, 김민기와 굉장히 많은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둘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뉴스, 기사는 없지만 굉장히 친했던 듯. 사실 자칫 발각되면 함께 연행될 수 있었던 공장의 불빛의 녹음을 도와주었다는 것 자체가 어지간히 믿는 사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양희은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송창식은 김민기에 대해 이야기하길 "아마 김민기가 세상에 나왔다면 나는 없었을 거다"라고 말했다고... 면에 김민기는 송창식을 형님으로 칭하면서 대인이시며 자신에 대한 송창식의 평가에 매우 쑥스러워하는 인터뷰가 있다.(SBS 한수진 아나운서의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링크 추가 바람)
         대통령 박정희 맞다. 70년대 당시 김민기는 제법 유명해서, 유신 정권의 눈에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박정희의 긴급조치에 의하여 김민기의 앨범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악연의 시작이었을 뿐, 1975년, 김민기가 카투사로 군대에 입대했을 때, [[중앙정보부]] 요원이 접촉하여 그로 하여금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강제적'''으로 요청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노래를 만들어주었는데, 이 노래가 바로 '식구생각'.[* 노래를 만들어주긴 했는데, 노동으로 인하여 가족이 흩어진 내용의 노래를 만들어주니, 중정부 요원이 갸우뚱했다고 한다.] 결국 김민기는 영창에 끌려가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의 불온한 행각으로 인해 그는 수없이 취조실에 끌려가 고문당했는데, 사각형 각목으로 '아 내가 이제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날 때까지 맞았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말하길, '이 친구가 나 때문에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렇게나 탄압하던 김민기의 노래가 이후 민주화의 구심력이 된 것은 아이러니. 나중에 김민기는 운동권들에게 '너무 미워하지마라. 그러다 걔(박정희) 닮아간다' 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전인권은 김민기가 프로듀싱한 겨레의 노래 음에 참여해 '이등병의 노래'를 불렀다. 당시 곡 해석을 둘러싸고 김민기와 의견이 달랐다고 한다. 전인권에게 김민기는 우상이자 컴플렉스고 대한민국에 둘도 없는 천재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8113|관련 기사]].
         음악평론가 강헌의 주선으로 조용필과 방배동 근처에서 만나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조용필이 노래방 기기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한다. 당시 만남에 대해 강헌이 과장된 어법으로 흥미진진하게 얘기한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gLSFPYObTs|'김민기와 조용필의 만남' - 강헌]] 조용필이 아무래도 김민기보다 늦은 시기에 활동한데다가 주요 음이 현대가요이기 때문에 김민기보다 젊을 것 같지만, 알고보면 김민기가 조용필보다 1년 후배이다.(...)
         들국화의 최성원에게도 김민기는 우상이자 존경의 대상이다. 심지어 들국화 1집 이후 매니저 김진성씨와 함께 했던 이유가 바로 김민기의 음을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더나아가 음악적 사상이나 철학에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의식은 백기완 선생과 김민기 형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http://www.weiv.co.kr/archives/10288|관련 기사.]]
  • 아이린(레드벨벳) . . . . 27회 일치
         랩은 전형적인 SM 스타일이며 Ice Cream Cake의 공개 당시 멜론 리뷰창에 랩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Dumb Dumb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곡 제목들[* You need to 'Beat It' / That boy Michael Jackson 'Bad' / 난 너의 'Billie Jean'이 아냐 / Don't you 'Leave Me Alone' / 하지만 애매한 응 난 원해 'Black Or White' / 포기 못 해 나의 'Man In The Mirror'. Ice Cream Cake와 Dumb Dumb의 랩은 [[XXX(가수)|XXX]]의 [[김심야]]가 작사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RrojDCT9ZIM|#]]을 활용해 인상적인 랩을 보여줬다. 이후로도 레드컨셉의 곡에선 꾸준히 메인래퍼로서 랩 파트를 많이 받고 있다. 대부분의 음악방송에서도 안정적인 랩 실력을 보여주는 편이다. 최근에 컴백한 빨간 맛에서는 빠른 랩으로 다시 한번 메인래퍼의 실력을 검증하였다.
         2016년 멜론뮤직어워드 TOP10 수상소감 중 전광판에 원샷이 잡히자 객석에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자 아이린이 ''응?''이라고 놀랐는데 환호성이 더 커진 것은 덤. [[https://youtu.be/t0VoN-Ho4pE|관객들의 응에 놀라는 아이린]]
         || 2017년 8월 ~ || [[지: 에이지 오브 링]] || 단독 ||
          * 이미지 컬러는 {{{#hotpink 분홍색}}}이며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 이미지 애니멀은 [[고양이]]라고 한다. 아이린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9F00C5 보라색}}}이라고 한다. 침대 커버, 다이어리 등 보라색 물건은 모두 아이린 거라고...[* 이런 과로 [[소녀시대]]의 [[티파니]]가 있는데 티파니는 모든걸 다 분홍으로 맞춘다.]대로 [[예리]]는 분홍색을 좋아하지만 이미지 컬러가 보라색이다. --잘못된 만남-- 아이린이 좋아하는 색이 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태연]]과 같다. --러시안 룰렛 활동 때에는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 2014년 디지털 싱글 2집 Be Natural 활동을 위해 [[흑발]]을 했다. 그리고 2015년 미니 1집 Ice Cream Cake와 더블 타이틀곡 Automatic 활동에서는 금발로 염색했다. Ice Cream Cake 활동이 중을 넘어갔을 때, 다른 멤버들과 함께 다시 흑발로 돌아왔다.
          * 몸이 굉장히 유연하다. [[주간 아이돌]]에서 체전굴로 유연성을 측정했는데 1차 시도에서 35cm로 2위였던 [[AOA(아이돌)|AOA]] [[초아(AOA)|박초아]]의 기록(34cm)을 깨고 2차 시도에서는 40cm로 1위였던 [[원더걸스]] [[혜림]](37cm)까지 제쳐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박초아, 혜림과 마찬가지로 [[정형돈]]이 신기록을 위해 억지로 한 손만 당겨서 나온 것이다. 순위와 상관없이 아이린의 정확한 체전굴 기록은 원칙대로 측정한 1차 시도의 35cm 정도이며 이는 현 체대입시 실기에서 만점을 받는 기록이다. 20대 중의 나이까지 생각하면 굉장한 유연성이다.
          * [[https://youtu.be/9rUVTAX51cg|2015 SBS 가요대전 홍보영상]]이 12월 19일 공개되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오빠라고 부르는 애교에 덕후뿐만 아니라 일인들도 씹덕사를 당했다 [[카더라]]. 그래서 참고로 페이스북 영상 좋아요는 2,000개 이상으로 [[EXO|엑소]] 다음으로 많다. --그러나 사투리도 표준말도 아닌 제3의 방언 때문에 대구 팬들이 당황했다.--
          * [[아는 형님]] [[아는 형님/방영 목록/2016년 상기#s-2.25|29회]]에서 정수리에 점이 있다고 밝혔다.
          * '''비판 측의 의견'''은 라디오 스타는 재미 위주의 프로그램이자 지상파 예능 중에도 시청률이 높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많은 연예인이 출연을 희망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린은 책임감을 가지고 토크에 참여했어야 한다. 하지만 녹화 당시 [[http://i.imgur.com/Kvhh9Jb.jpg|MC들이 보기에도]] [[http://i.imgur.com/uZ5dvnD.png|과하게]] [[http://i.imgur.com/VNrH0lh.jpg|말이 없었던]] 아이린은 진행을 [[http://i.imgur.com/e7WlGm0.png|답답하게 했고]] 뮤직뱅크에서의 발랄했던 모습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레드벨벳을 모르는 일 시청자들에게는 태도가 매우 좋지 않게 보였다. 또한, 다른 방송에서 개인기를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진구야' 개인기 재활용도 하지 않고 무조건 개인기가 없다 잡아떼는 것도 좋은 모습이라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방영 다음 날인 2016년 12월 8일 [[엠넷]]에서 방영된 [[양남자쇼]]에 출연한 아이린의 [[http://i.imgur.com/CX26ihr.mp4|발랄한]] [[http://i.imgur.com/nSlT3v2.mp4|모습들과]] 대비되어 라디오 스타에 진정성 있게 참여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다.
          우선 이제까지 아이린을 가까이서 많이 보아 온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라디오 스타 MC인 규현이 [[http://i.imgur.com/WkOZlpk.jpg|녹화 당시 한 말]]처럼 최대한 말을 많이 하려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남자쇼에서의 모습과 대비된 이유는 양남자쇼는 레드벨벳 멤버들이 함께 출연했던 만큼 아이린이 어울릴 사람이 있었지만 라디오 스타에서는 레드벨벳 멤버 중 혼자서 게스트로 출연한 첫 토크쇼였고, 아이린이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둘째치더라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직속이자 아이돌 가수 세계에서 하늘같은 대선배였고 SM 서열 순위 1위 강타와 친하고 같은 동료였던 문희준과 토니안, 그리고 SM 선배인 규현과 대선배가수 윤종신과 김구라, 김국진[* 더군나나 김국진은 아이린이 어렸을 때인 1990년대 중후에 인기대스타였다! 위축되는게 당연한것이다!!!] 그리고 배우로 오래 활동했던 서지혜 사이에서 있었던 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서지혜와 서유리는 80년대 중 생으로 방송에서 '초등학생 때 토니 부인, 칠현 부인이라고 자칭했다.'고 할 정도로 과거 H.O.T.의 열렬한 팬이었고, 문희준과 토니는 H.O.T. 멤버였던 만큼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되는 네 사람 사이에서 91년생인 아이린이 할 수 있었던 행동이나 토크에 참여할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의견 또한 있다. 아이린이 신인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해도 데뷔한 지 2년은 된 상황이었고,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해도 연예활동을 하는데 문제가 있을 정도라면 SM이라는 국내 최대 대형 기획사를 통해 연예인이 되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라디오스타 논란은, 아이린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린을 제외한 다른 라디오스타 출연 게스트들을 알았다는 전제하에서) 스케줄을 잡은 사람의 잘못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말만 적었을 뿐 아이린은 방송 내내 [[http://cfile23.uf.tistory.com/image/2645454E584906A32885C5|90도로 허리를 펴고 앉은 채로 박수를 치거나 잘 웃는 등 리액션을 계속하였고]] 다른 게스트의 과거 사진에 놀라고 비웃는 와중에도 동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타팬들의 의견마저도 말주변이 없었을 뿐 오히려 태도가 좋았다는 의견도 있다.
         === [[페미니즘]] 소설 독서에 대한 일부 팬들의 발 ===
         2018년 3월 18일 [[레벨업 프로젝트#s-2|레벨 업 프로젝트 시즌 2]] 1000만 뷰 돌파 기념 팬미팅 현장에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고 말했는데, 이걸 가지고 [[레드벨벳 갤러리]][* 현재 [[레드벨벳 갤러리]]는 사실상 [[국내야구 갤러리]]와 다르지 않은 상태로([[레드벨벳 갤러리#s-3.4|참조]]), 온라인 상에서 포토카드를 불태우는 등의 응은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즉 진짜 팬이라고 하기 어려운 어그로들이 많은 곳.]와 [[일베저장소]],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남혐]]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다'며, 아이린의 굿즈 등을 훼손하는 사진을 올리는 등 비난했다. [[http://naver.me/5MT1aJQV|기사]][[https://youtu.be/2aCMpZhC4tw|영상]].
         [[레드벨벳 갤러리]], [[일베저장소]], [[국내야구 갤러리]]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해서 딱히 별일은 없었다. 분노를 하거나 특정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혐오발언]]을 사용하며 "남자들이 분노했다''라는 식의 응은 보이지 않았다. 팬덤 내에서도 큰 응이 없었고 오히려 '읽을 수도 있지 뭐'라는 응이 대다수였다.
         '''특정 성향의 서적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특정 성향으로 단정짓고 비난하는 행동은 매우 잘못되었다.''' 또한 어떤 책을 한 집단에서 많이 사용하거나 상징으로 삼는다고 해서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드시' 그 집단의 일원인 것도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페미니스트라고 단정짓는다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은 사람은 공산주의자고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은 사람은 메갈이 된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일베가 되진 않는 것과 같다. 또 '이 책을 읽었다=무조건 페미'라는 그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서 혹평한 사람들, 처음부터 심층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탐독한 독자들도 '''전부 다'''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된다. 왜냐? 그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떤 문화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한 사람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명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9/2018031902590.html|스포츠조선]],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836851.html|한겨레]]를 비롯한 다수 언론은 여러 사람이 읽은 베스트셀러를 읽었다는 것만으로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다"라고 주장하는 이러한 응을 비정상적인 것, 황당한 논리 등으로 평가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언론들은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30/2018033001538.html|조선일보]]에서는 "남성 청년층의 페미니즘이 점점 도를 넘는다"라 평가하며, "소비자 지위를 악용해 사실상 사상 검증을 벌이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3/2018041303076.html|오피니언]]에서는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물론이고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가 중요한 홍보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가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노출되는 상황"이라는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며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 일언구하지 못한 채 언제나 방긋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면 '박제된 인형'이나 마찬가지"라 평가했다.
          * [[http://www.yonhapnews.co.kr/digital/2018/03/26/4904000000AKR20180326018200797.HTML|연합뉴스]]에서는 이상적이라 여기는 상냥하고 순종적인 여성과 자신을 위협하는 도전적인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여성관이 원인이며,[* [[https://www.fmkorea.com/986132907|"너랑 결혼까지 생각한 나를 후회한다"]]와 같은 응은 이러한 이분법적 여성관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며,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익명성을 통해 분노와 혐오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안상수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장의 견해를 인용했다.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7433.html|한겨레 칼럼]]에서는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며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 사이버불링을 당한 것"이라고 하였다.[* 남성우월주의자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이 칼럼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문제를 일으킨 쪽은 페미니즘측이며, 언론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건을 보도하는 것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231706015&sat_menu=A075|경향신문 칼럼]]에서는 일부 남성들이 아이린과 [[손나은]]을 공격한 이유를 걸그룹이 성적으로 객체화되고 상품화된 존재여야 한다는 경험적 질서를 이들이 위했다고 보기 때문이라 분석하며, 문제를 일으킨 남성들을 [[절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원시부족]]에 빗대며 비판했다.
          * [[http://www.hankookilbo.com/v/af449985d0444b6db7f2f6a4642c4c26|한국일보]]에서는 "아이돌의 밥줄이 인기라는 걸 간파한 공갈"이라며, "페미니즘에 대하겠다면, 그건 자유다. 그 자유를 누군가의 밥줄을 쥐고 흔드는 식으로 행사하는 건 너무 저열하지 않은가"라 비판했다.
  • 권혁 . . . . 26회 일치
         ||||||<tablealign=center><:>'''한국시리즈 우승 지'''||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오승환]]이 뻗어버려서[* 이는 삼성의 2009년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로 직결된다.] [[정현욱]]과 번갈아가면 마무리로 올라오게 되었으며,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인지 갈수록 성적이 처참해져서 시즌 후에는 심심하면 털리는 야라레 투수가 되어 버렸다. [[지못미]]. 그래도 어찌어찌 21홀드를 기록함으로서 홀드왕 타이틀은 차지하였다.
         2009년의 심각한 혹사의 여파로 2010 시즌에는 속구 구속이 140km/h대를 못 찍을때가 많아졌다. 면 구속이 줄면서 2009년까지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컨트롤이 상당히 개선되어, 예전만큼 끔찍한 강속구를 뿌려대지는 않지만 정교한 제구를 통한 코너웍을 이용해 타자를 처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게 되었다. 오히려 안정감만큼은 지난 시즌 이상이라는 평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스포츠 기사나 선동렬 감독등의 인터뷰를 볼 때 '권혁을 비롯한 불펜의 부진'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좋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이 높게 평가받고 있었고 나쁘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은 이번 포스트시즌 전적으로 좋지 못했다.
         결국 2011년에는 평균자책점 1~2점대를 유지하는 좌완 릴리버라는 점만으로도 이래저래 팀에 유용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선동열|유일무이]]한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평균자책점과 WHIP을 보면 알지만, 본인이 볼질하고 내려갔다가 [[안지만]], [[정현욱]] 같은 흠좀무한 불펜이 전부 막아준 경우가 꽤 많았다. 그렇지만 삼성이 권혁 없던 시즌 초중에 심하게 헤매던 것을 생각하면 어쨌든 삼성에서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릴리버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8월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로나쌩이던 [[정인욱]]이 초 제구 실패로 무너진 후 팀이 스코어 1:6로 뒤진 상황에 패전처리로 등판하였으나, 실책과 본인의 여전한 제구난으로 인해 오히려 5실점하여 팀이 4:11로 대패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삼성팬들은 '삼성 핵심 불펜 중의 핵심이었던 권혁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것도 '''패전처리에서도'''…'라는 응을 보이며 많이 씁쓸해했다. 분명 삼성의 특급좌완계투였던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성의 쓸만한 좌완계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1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정말로 절실했다.
         7월 24일 경기에서도 등판하였는데, 2이닝동안 전성기 수준의 피칭을 보여 삼팬들을 설레게 하였다. 유일하게 맞은 안타 하나가 [[전준우]]의 홈런인 것도 고무적, 그리고 7회초, 메가라이온즈포가 터지며 시즌 2승째를 챙겼다. 팬들은 이러한 활약에 후기 삼성 불펜의 핵으로 재강림하기를 기대하는 중.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하여 [[서건창]]을 초구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고 [[배영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그리고 이 등판이 유일한 한국시리즈 등판이 되면서 공 1개만 던지고 우승지를 획득했다(…). ~~고효율 야구~~
         2014년 11월 26일, 삼성과의 [[FA 제도|FA]] 우선협상이 결렬되었다. 자신과 구단이 제시한 금액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본인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어서 나섰다고 밝혔다. 보통 FA선수가 기회 운운하며 협상이 결렬되면 대부분의 경우 '''기회=돈'''으로 인식되는게 일적인데, 권혁의 경우 좋은 공을 던짐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삼성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권혁과의 협상 결렬에 매우 아쉽다는 응을 보였다.
         6월 11일 삼성전에서 1점 앞선 8회 등판했으나 1아웃을 겨우 잡은 뒤 연속 안타와 볼넷으로 만루를 만든 뒤 강판당했고, 심수창과 장민석이 환장스럽게 모든 주자를 불러들이면서 비야누에바의 선발승을 날린 것은 물론 본인도 패전 투수가 되었다. 지들이 좋아하는 감독 하나 빠졌다고 팀이 지라고 저주를 퍼붓고 비웃어대는 미치광이들이야 "신나게 퍼졌다"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며 비웃고 있지만 재작년과 작년의 혹사를 당하고 수술 후 년도 안 되어 복귀했음을 아는 한화 팬들은 차마 욕하지 못하고 있다. --야갤에서도 송창식, 권혁은 안건드리는데-- 올해는 확실히 쉬어가줘야 하는 느낌. 참고로 경기 종료 시점에서 '''권혁의 FIP는 송은범보다 높다.''' (...)
         7월 29일과 30일 감독대행이 연투를 시키자 보란듯이 연일 홈런을 맞고 말았다. 특히 30일 [[이형종|현 단장과의 다툼 끝에 임의탈퇴 후 복귀한 선수]]에게 맞은 만루홈런은 치명적. 팬들은 이제 그만 던져도 되니 제발 쉬고 오라는 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31일 1군에서 장민석과 함께 말소돠었다. 한화의 성적 부진과 선수들의 부상에 행복해하던 노리타들은 삼성에서도 원포인트로 쓰이던 직구 하나만 무기던 별 볼 일 없던 투수를 금지어가 키워서 그나마 사람답게 썼다며 날조를 시도했지만, 한화 안티들이나 야갤러들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만행이 널리 알려진지라 즉시 이닝 수와 투구 수를 들고 오는 진짜 한화 팬들에게 박당하고 있다.
         4월 후기쯤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2군 로스터에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실전 감각을 조율 중인듯?
         허벅지 근육 파열로 인해 재활군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2군에서 7경기 연속 무실점을 하기도 했으니 아쉽게 되었다. 6월 후까지 재활에만 4주가 걸리니 전기 복귀는 힘들어 보인다. 한화 불펜이 방어율 1점대인 장민재, 박상원을 추격조로 쓰고 있을 정도로 잘 돌아가고 있으니 권혁을 무리하게 복귀시키기보다 회복에 전념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최근 2년의 기록이 잘 실감이 안 나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국민노예]]라는 별명을 가지고있는 [[정현욱]]의 시즌 최다 이닝 기록은 2008년 53경기 7선발 127이닝이며 등판 간격은 불규칙했으나 연투는 2연투만 5번정도로 나름 등판 간격을 조절했었다. 다음 시즌 2009년엔 62경기 79이닝으로 2년간 115경기 206이닝을 던졌다. 게다가 정현욱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현욱은 연투 시 오히려 컨디션이 살아나는 유형이었다. 일 투수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는 유형인 셈. 내성이 잔뜩쌓여있었다는 것이다. 즉, 권혁은 선발없이 국민노예를 뛰어넘는 등판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NC다이노스|NC]]와 [[KT위즈|KT]]의 리그참가로 인한 경기수 확대, 극단적인 [[타고투저]]가 벌어지면서 투수들이 받는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아무리 점수차를 많이 벌려도 금방 따라잡히거나 바로 역전당하는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그나마 믿을 만한 선수라도 자주 나올수밖에 없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굴려지게 되며 결국에는 그 믿을만한 선수도 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10년대 중부터 매년마다 기록적인 폭염과 함께 치열한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5강싸움]]으로 인한 심리 요소 때문에 투수들이 느끼는 피로도는 극심할 수 밖에 없다. 투수들이 이런 피로도를 겪음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5강 싸움을 한다는 이유로 각 팀마다 3연투는 기본이고 4연투, 5연투까지 나오고 있다.[* 8월 셋째주 한 주동안 KIA [[김광수(1981)|김광수]]와 [[박준표]], 롯데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이 4연투, 한화 [[심수창]]이 5연투를 했다.] 그러나 한화의 혹사로 인해서 권혁 정도의 혹사가 아닌 이러한 혹사는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고 있다.
         비록 김성근 감독의 투수기용 방식처럼 투수들을 노예 수준으로 혹사시키는 것보다 덜하지만 지난 해 본인이 개처럼 굴렸던 투수들이 후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도하고서도 전혀 배운 게 없이 또 굴리는 감독도 있다. 한화 팬들이 김성근에게 바랬던 모습은 그의 이미지로 여겨졌던 [[쌍방울 레이더스]][* 그러나 김성근 재임 당시 이 팀의 연봉 총액이 1위였다. 게다가 모기업이 튼튼하지 못해 이는 몰락의 단초가 된다.] 로 대표되는 "약체 팀을 강하게 만드는 감독"이었는데, 정작 김성근은 그 이미지에 집착한 탓인지 성적 조급증에 미쳐서 베테랑 선수 팔을 갈아넣는 감독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구단내에서도 대가 많았다고 하고, "말이 되느냐"며 분개한사람도 있었다고한다. 자비수술을 지시한것에 대해서 구단은 잠시망설였지만 사실상 김성근 감독이 전 권을 쥐고있기에 이에 대해 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공할 만한 공 회전력, 평균 구속 150 km/h를 웃도는 공을 가진 좌완에선 보기 힘든 파이어볼러'''였다'''.[* 사실 지금도 140 중후대의 속구를 던진다. 좌완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빠른편.] [[서승화]]와 함께 한국프로야구 좌완 공인 최고 구속('''156km/h''') 기록의 보유자.[* 2004년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경기에서 기록. 2004년 포스트 시즌에서는 157 km/h를 찍기도 했으나 페넌트레이스 중이 아니라서 시즌 정식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상체 중심의 피칭을 하고, 제구는 상당히 불안한 편. 던지는 구종도 직구-슬라이더로 단조롭다.--구위가 떨어지면 KIA팬한테 욕을 디비 쳐먹는 [[심동섭|바로 그 선수]]하고 다를 게 없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26회 일치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선수였던 큰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 이후 원곡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17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아[* 사실 16살이 160 후대면 꽤 큰 키에 속하지만 배구선수에게는 작아도 정말 작은 키이다.] 벤치 멤버를 전전했다. 출전할 때도 센터나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했다. 본인은 이때 배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로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독하게 훈련을 하기 시작한다.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으며, 11시가 되어서야 운동을 끝내고 귀가하였고, 잘 때조차 공을 안고 잘 정도였다고 한다. [* 이때 익힌 기본기들이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장신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와 토스가 안정적인 이유가 이때 익힌 기본기의 산실이다.] 이후 한일전산여고로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적적으로 키가 20cm나 자라면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고[* 키가 갑자기 자란 이유에 대해서 김연경은 방송에서 [[콩나물]]을 비롯해서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147257|기사]].], 초고교급 선수로 각광을 받게 된다. 처음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것도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5년이었다.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배구선수)|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 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이라 쓰고 [[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개소리]]~~[* 인삼공사 감독 시절 보면 답이 나온다. 주전들이 모두 은퇴하자 갑작스레 구단에서 사퇴하여 이후 인삼공사 망가뜨린 주범이다.]을 남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어쨌든 이런 사정을 접어두고라도, 김연경은 일본 프리미어리그에서까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으니 일본 리그의 감독들까지 '''일본에서조차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만들었다.[* 물론 당시 일본 여자배구에는 오야마 카나(大山加奈), 구리하라 메구미(栗原惠), 기무라 사오리(木村沙織) 등 대형 거포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야마는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구리하라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이후에 폼이 급격히 무너졌으며, 기무라는 이 둘보다는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기는 했지만, 2010년대 초 들어서는 예전만도 못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여자 배구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좋은 케이스. 2009-10 시즌 초에 신종 독감으로 고생하더니 2010-11 시즌 초에 역시 독감으로 몇 경기 결장한 바 있다. 그래서 팬들의 가슴을 졸이기도. 하지만 결국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JT 마블러스의 시즌 우승을 또 한 번 이끌어 냈다.[* 2011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 V리그는 잔여경기에 상관없이 시즌을 강제 종료했다. 이로인해 정규 리그 최종 성적이 시즌 통합 성적으로 인정되어 정규 시즌 1위였던 JT 마블러스와 사카이 블레이저스가 2010-11 시즌 우승팀이 됐다.]
         임대 이적이라는 신분 때문에 2009-10시즌 종료 후 비시즌인 9월 KOVO컵 때 흥국생명 소속으로 뛰기도 했고 2010-11 일본 V리그 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도호쿠 대지진]]이 터져 시즌이 조기 종료되어 한국으로 일찍 귀국했다. 마침 그 시기가 국내 V-리그 포스트시즌과 맞물리는 바람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으로서는 ''''김연경 룰''''[* 김연경이 JT 마블러스로 (임대)이적할 때 생긴 규정. 시즌 전(全) 경기의 25%를 뛰면 한 시즌 뛴 것으로 간주.]을 적용해 김연경을 포스트 시즌에 짝 출장시키고 싶었으나 여론의 뭇매로 김연경은 한 달여 간의 휴식을 취하고 컵대회인 흑취기에 참가하기 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다만 [[류현진]] 포스팅의 경우는 류현진의 소속팀이었던 [[한화 이글스]]도 상당한 포스팅비(이적료)를 챙길 수 있다는 점이 있었던 데 해,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의 입장에서는 김연경이라는 선수를 거의 뺏길 판이었다. 김연경이 엄연히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소속 선수인 건 맞고 [[페네르바체 여자 배구|페네르바체]]에 임대를 간 것이었기 때문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입장에서는 정당한 것이고 KOVO와 FIVB은 그 점을 중히 여긴 건지 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 최종 결정은 터키 구단인 [[페네르바체 여자 배구|페네르바체]]가 끝날 것 같지 않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자문 변호사단을 꾸린 것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스포츠 국제룰을 근거로 들면서 FIVB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김연경 간의 계약서가 없음을 어필했고 보통 판결을 뒤집지 않는 선례에도 불구하고 FIVB는 판결을 바꾸었다. 하지만 김연경의 소유권을 계속 주장하고 싶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FIVB의 결정에 발하면서 재심을 요청했고 [[페네르바체 여자 배구|페네르바체]] 역시 김연경의 계약을 정당하게 인정하고 싶어 재심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20대 후을 거의 보냈던 페네르바흐체와 2017년 5월 30일 결별하고, 중국으로 이적하기로 결정되었다. 중국구단과의 계약은 1시즌으로, 중국구단이 시즌이 짧고 한국과 가까워 국가대표로서 시간을 좀 더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결정한 듯.
         === 남녀 배구 샐러리 캡 발 ===
         우선 남자 프로구단은 한 시즌 동안 정규리그 36경기를 치른다. 여자팀은 이보다 6경기가 적은 30경기를 소화한다. ~~여자배구 구단을 새로 만드는 것을 대해서 그렇다~~ 이는 자연스럽게 시즌을 더 많이 뛰어야 하는 것을 기준으로 연봉 책정에 영됐다. A구단 관계자는 "남자부가 팀 당 경기 수도 많기 때문에 당연히 연봉도 더 높게 책정해야 된다."라면서 "게다가 남자 선수들은 군 입대를 해야 되는 선수들까지 고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샐러리캡이 여자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남자부 신인의 경우는 대부분 대학을 마치고 들어오는 선수들이 많다. 평균 나이도 여자부에 비해서 높고 대학 시절의 경력을 무시하지 못한다."라고 전했다. A구단 관계자는 또 남녀간 연봉 격차가 시장 가치가 오랫동안 쌓여 영된 결과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여자부가 최근 상승세에 있고, 좋은 분위기인 것은 맞지만 한 두해만으로 남녀부가 엇비슷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대표팀을 떠나서 프로만 보면 남자부가 쌓아온 것이 더 많다. 여자부는 더 쌓아가야하는 단계로 본다."라고 대답했다.
         남자부와 여자부 시작이 달랐던 점도 샐러리캡에 영향을 주었다. B구단 관계자는 "프로배구 원년, 남자부는 샐러리캡을 10억 3,500만 원으로 시작한 면 여자부는 6억 원 수준으로 출발했다"면서 "이는 당시 남자부와 여자부 리그 규모를 고려한 책정이었다. 이후 꾸준히 샐러리캡은 증가하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면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경기당 3,300만 원 가량 수익을 올렸다. 단순히 남자부와 여자부 차이로 보긴 어렵지만 여자부 1위 팀 수준이 이와 같다는 사실은 분명 주목할 대목이다. 한 시즌 티켓 수입을 모두 합쳐도 팀내 최고연봉 선수에게 줄 돈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여자 선수 차별이라고 하는 주장이 저런 현실적인 리그 수익 론과 부딪치고 있다.
         현재 사실상 여자배구 국가대표 경기는 김연경 혼자 풀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국제전을 보면 한 경기에 평균 20~30점을 책임지고 늘 공격부문 Top 5에 오른다. 물론 [[한송이(배구)|한송이]], [[황연주]], [[양효진]],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등 여자대표팀 주 공격원이 평균 10점 이상이며 크레이지 모드 때 10점대 후 가까이 찍어주기는 하나 '''김연경은 팀 득점의 거의 절을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베로]]보다 잘하는 서브리시브'''이기도 해서 김연경이 잠깐이라도 쉬러 벤치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눈 앞에 펼쳐질 수도 있는 [[헬게이트]]를 걱정해야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역시 맹활약했다. 조별리그-8강전 6경기 동안 평균 27.5점을 거두며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보였다. 게다가 김연경이 막힐 때마다 [[한송이(배구)|한송이]],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양효진]] 등이 10점 중후 대의 점수를 올려주면서 ''''김연경과 아이들'''' 이나 다름없는 여자배구 국대팀을 밸런스를 갖춘 단단한 팀으로 만들어갔다. 결국 2012년 8월 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전에서 3-1로 이기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여자배구 국대팀을 4강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4강전에서 [[미국]]에게 지고 3, 4위전에서 과거 '김연경과 아이들' 시절의 경기력으로 회귀해 버리는 바람에[* [[양효진]]과 [[한송이(배구)|한송이]]는 체력이 떨어져서,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은 경험이 부족해서 고전했다.] 올림픽 4위로 마감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2위와 40점차'''로 [[http://www.london2012.com/volleyball/event/women/statistics/type=player-scorers/index.html|득점 1위]].
         후에 올림픽 조별리그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의 월성 연골판이 파열되었지만 본인의 수술 때문에 국대가 올림픽 광탈하는 게 싫어 고통을 참고 계속 경기를 치렀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다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월성 연골판에 조금만 손상이 와도 가볍게 발을 디뎌도 통증이 심해 다리를 절어야할 수준이다. 더군다나 배구는 무릎으로 하는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스포츠이다. 올림픽 후에도 수술받지 않고 2013년 3월 현재까지도 계속 터키 리그에서 무릎이 나간 채로 뛰고 있다.] ~~오오 대인배...~~
         그러나 제아무리 강철 체력에 승부욕 강하고 멘탈 강한 김연경이라 할지라도 2012~13년 두 해에 걸친 이적 사태와 국가대표팀에서의 혹사가 겹쳐 앞서 농담처럼 얘기한 '''그 헬게이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3년 9월 아시아선수권대회 3~4위 한중전에서 오른쪽 어깨 탈골 부상을 입은 채로 끝까지 경기를 뛰어 대표팀을 3위에 올려놓고 FIVB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을 확보했지만 열흘이 지나고 벌어진 2014 세계선수권대회 대륙별 예선 초 김연경의 결장과 대표팀의 [[카자흐스탄]]전 패배로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2014년 배구 국제대회 일정 중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의 일정이 겹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제대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놓치고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은 확보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대한배구협회]]가 2014년 일정에 맞춰 여자대표팀을 A·B팀으로 나누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며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의 금메달에 집중하겠다는 뉘앙스로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문이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진출권을 놓고 일본에서 펼쳐진 세계 최종예선에서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패했으나, 네덜란드-일본-카자흐스탄-페루를 연파하며 대한민국은 6경기인 태국전 2세트에서 무난하게 올림픽 진출권 획득. 당연하게도(?) 김연경은 맹활약. 다만 국내용 공격으로 여겨지던 개인 시간차가 국제무대에서 통하기 시작한 [[양효진]], 서브 맹폭 일본 킬러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전의 리시브 실력을 보여준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 등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 고무적인 현상. 그리고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대표적인 것이 박수 세리머니... 이 대회부터 김연경의 주도로 승리 후 3-3-7 박수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데 보면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 ~~응?~~]로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는 걸 보면 주장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듯 하다.
         2017년 아시아선수권 당시 [[http://www.hankookilbo.com/v/df849eed9805420892619f4cf5a57aed|국가대표 차출]]과 관련하여 이른바 [[이재영(배구선수)|이재영]] 거론으로 인하여 논란이 있었다. 김연경의 국가대표팀 운영에 대한 지적은 옳은 부분이 많으며 배구뿐만 아니라 체육계 전의 적폐에도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다. 다만 특정선수 이름이 거론되면서 본래 의도가 희석된 측면이 많다. 이제라도 배구협회의 방만하고 무책임한 협회운영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외모도 운동선수 중에 상당히 미인인 편이고, 굉장히 큰 키와 방송 출연에서의 시원시원한 성격 등으로 인해 배구를 전혀 모르는데도 외모만 보고 팬인 사람들이 제법 있는 편. 보통 '''키가 굉장히 큰 미녀'''라 하면 [[양효진]]과 함께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은근히 예능프로 출연이 상당히 잦은 편. 장신인 모델 [[한혜진(모델)|한혜진]]도 본인보다 덩치가 무려 15cm 큰 김연경 옆에서는 일인으로 [[버로우]]할 정도.
  • 성훈(배우) . . . . 26회 일치
         연예계 데뷔 전에는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으로 그만두고 [* 《[[우리동네 예체능]]》에서의 활약상을 보면 실력이 후덜덜한 편이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과 붙어서도 이기고, 은퇴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현역 선수랑 거의 대등한 성적을 내는 걸 보면 사람이 아니라 돌고래 수준(...) 실제로도 현역 시절 대회에서 매우 좋은 기록을 세우는 등 촉망받는 선수였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부상으로 인해 전신마취만 6번, 수술만 약 10번 가까이 했고, 결국 기록이 떨어져 은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체능에서 거의 날아다니고 있어 영 설득력이(...) 워낙 예체능에서 보여준 활약이 인상 깊었던지라, 각종 커뮤니티에선 사람 맞냐는 응이 많다. ~~수중로보트~~ 최근 인터뷰에 의하면, 허리 통증 때문에 예체능에서 제대로 기량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기량을 못 낸 거라니 그럼 전성기땐 어땠단거냐...~~ ~~인간의 신체능력을 뛰어넘은 듯~~] [* MBC [[나 혼자 산다]]에서 28세까지 실업팀 소속으로 수영 선수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2018년 10월 5일 방영분).]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의 남자주인공 아다모 역으로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 '''처음으로''' 본 오디션에서 합격한 거라 본인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임수향]]이나 한혜린 등은 연기 경험이 어느 정도 있던 신인이었지만, 본인은 연기경력이 하나도 없는 일인이었다. 하지만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마스크나 신체조건이 상당히 우월한 편이라, 붙을 만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첫 작품을 끝낸 뒤 조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 작품인 《[[신의(드라마)|신의]]》에서는 주인공 일행의 적인 천음자로 출연했다. 다음 작품인 《[[가족의 탄생(드라마)|가족의 탄생]]》에서는 드라마 중부에 투입이 됐는데, 여주인공을 두고 남주인공과 대립하는 서브남주의 위치였지만, 마지막엔 주인공을 밀어내고 진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배우 본인이 연기한 작품들에서 거의 다 주연을 맡았다. [*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게 연기력과는 별개로 성훈은 하는 작품마다 배역 운이 좋은 편이다. 대체로 주연이거나 주연이 아닌 작품도 최소 비중 높은 조연을 많이 맡았다. 참고로 촬영 예정이자 데뷔 후 첫 영화에서도 주연으로 캐스팅. 거기다 맡은 캐릭터 운도 좋은 편인데 드라마 내의 등장인물들 전원이 산으로 간 케이스라도 성훈이 맡은 캐릭터만 정상적인 경우가 제법 있다. 심지어 [[가족의 탄생(드라마)|주인공이 아니었는데도 나중에 주인공이 되어버린 작품]]까지 있다. 출연작품의 폭도 상당히 넓은 편으로 장르 안가리고 이곳저곳 많이 나온다. 임성한 드라마 출신의 배우들 대부분이 막장 드라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걸 감안하면 상당히 돋보이는 행보이다.]
          * [[가족의 탄생(드라마)|가족의 탄생]] : [[한지훈(가족의 탄생)|한지훈]] 역. 작품에서 남주가 뒤바뀐 보기 드문 사례이자, 《[[신들의 만찬]]》 시즌 2(…)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네티즌 응은 원래 남주인 [[이규한]]보단 캐릭터에 있어서나 배우에 있어서나 서브남주인 한지훈 역을 맡은 성훈 쪽이 압승이었다는 평. 연기력이야 남주인 이규한이 훨씬 호평을 받았지만 비쥬얼이나 옷걸이나 외적인 조건에 있어선 성훈이 더 대중의 응이 좋았다.~~결국 연기력보단 얼굴이란 얘기~~ 성훈이 수영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입고 나오는 의상마다 웬만한 모델급으로 소화해 성훈이 극 중 입은 수트들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가 성훈의 팬이었는지~~ 캐릭터로 봐도 강윤재보단 한지훈 쪽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결국 한지훈이 히로인과 연결되며 《가족의 탄생》 최대 수혜자 겸 진 주인공은 성훈이 되었다(...)
          * [[아이가 다섯]] : 김상민 역. 극 중에서 프로 골퍼로 나오는데 데뷔 이래 재벌 역만 하다가 예체능 출연 이후 죄다 운동선수 역할만 맡고 있다. ~~정작 전직이었던 수영선수 역은 아직까진 없다.~~ 이 드라마에서 신기생뎐 때 여주인 [[임수향]]과 다시 같은 드라마를 찍게 되었지만 그녀와 엮이는 건 별로 없고,(일단 아주 안엮이는건 아니지만, 스토리상 이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커플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연태 역을 맡고 있는 [[신혜선]]과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 드라마의 메인 커플인 [[안재욱]]-[[소유진]]보다도 응이 좋다. 신혜선과 어색하지만 풋풋하고 달달한 로맨스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인생 배역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오로지 연태만 바라보는 직진남 상민과 눈치가 없어 얼떨결에 단호박녀가 된 연태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임수향과는 시숙-제수의 관계가 되었다(...)
         || 《사랑하고 있습니까?》 || 성훈 || 2017. 10. 04. 크랭크업 후작업 ||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절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태,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남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남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6> 2016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455회 2016년 06월 30일 방송 우리 무슨 사이예요? 편. 주말드라마 [[아이가 다섯]]이 종영되기전 신혜선과 같이 출연 했는데 극 중 너무 몰입이 되어있어서 그런지(...) 열애설이 돌기도 했다.~~극 중 몰입을 위해 촬영 초에는 태민(극 중 동생, 안우연)과는 친하게, 연태(신혜선)와는 쌩(?)했다고 한다~~. [[검사외전]]속 [[강동원]]과 [[아이가 다섯]]속 성훈중 누가 더 키스를 잘하냐고 신혜선에게 물었는데 성훈이라고 답했다.] ||<|5> 게스트 ||
         || 《[[연예가 중계]]》[* 1635회 2016년 07월 30일 방송. 신혜선 동출연. 한달전 출연한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서 성훈이 키스를 더 잘한다는 신혜선의 발언이 사실인지 거짓말탐지기를 했고 거짓인 것으로 판명났다.~~성훈은 지상파 주말드라마라 제약이 있다며 억울해했다~~ ] ||
         || [[SBS]] || 《[[런닝맨]]》[* 317회 런닝맨 VS 예능 어벤져스 편 2016년 09월 18일 방송. [[이경규]], [[한혜진(배우)|한혜진]], [[김동현(종합격투기)|김동현]], [[성훈(배우)|성훈]], [[문희준]], [[윤형빈]], [[Key(샤이니)|Key]]동 출연. 1R 링위에서 이름표 뜯기 : 어벤져스팀 승리~~지석진은 나오자마자 성훈의 공격으로 순간삭제~~. 2R 육감대결 : 보지 못한상태에서 돼지껍질을 맛본 성훈이 기권~~돼지껍질 탭아웃~~으로런닝맨팀 승리. 최종미션 복불복레이스 : 성훈이 능력자 [[김종국/런닝맨|김종국]]의 이름표를 뜯어 최종승리했다.] ||
         || [[tvN]] || 《[[내 귀에 캔디]]》[* 시즌 1. 9회 10회. 2016년 10월 20일, 27일 방송. 태평양급 어깨를 자랑하며 수영을 하는 남성미를 한껏 뽐내다가도 캔디와의 통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 같은 모습들은 성훈의 재발견이었다는 응. 특히 그는 캔디 ‘분홍’을 위해 연을 날려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세심한 사랑꾼의 면모도 보였다. 캔디 '분홍'([[허영지]])이 과거 일인 첫사랑이 '분홍'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고 하자 성훈은 바로 분노하기도 했다(...) ~~역쉬 사랑꾼, 금사빠(헉)~~] ||
         || [[tvN]] || 《[[현장토크쇼 TAXI]]》[* 483회. 2017년 06월 21일(실제로는 00시 30분부터 방송이므로 22일 방송) 방송. 끌리는 대로 특집. [[헨리(가수)|헨리]]동 출연. 성훈은 [[오만석]] 대신 직접 운전했다~~예능에선 진짜 뭐든 열심이다~~ "애타는 로맨스가 국내에서 보다 해외 응이 뜨거워서 7월부터 한달 내내 해외~~13개국투어~~에서 팬미팅을 갖는다"고 했다. 핸드볼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 초5때 수영으로 전향해서 군대가기 전, 27살 쯤까지 수영선수를 했다고, 그만두면 공부시킬까봐 계속 했고~~헉, 이때부터 열심이었던거?~~전국대회 대회신기록까지 세워봤다고 "[[박태환]]이 결정적인 은퇴 결심의 계기가 됐다. 고등학생인데도 너무 급이 다른 기록을 세워서"라고.~~하긴 1등만 금메달이니 쩝~~ 이날 성훈은 자신의 집~~이사간지 얼마안되어서 거실에 정말 아무것도 없고 디제잉 기계만 덜렁 있었는데..약 보름후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 공개된 그의 집은 박나래가 돼지우리를 연상 시킨다고 했다.헉~~을 깜짝 공개하는가 하면, 화려한 DJ 실력을 선보였다. 성훈은 '연애고수일 것 같다'는 말에 "사실 전 연애 고X"라며 "4년간 만난 여친이 있었는데, 2년간 눈도 못 쳐다봤다"고.] ||
         ||<#368AFF> '''{{{#white 연도}}}''' ||<#368AFF> '''{{{#white 제목}}}''' ||<#368AFF> '''{{{#white 수록음}}}''' ||<#368AFF> '''{{{#white 비고}}}''' ||
          * 꾸준히 연기력 논란이 있어 왔다. 중저음의 발성과 자연스러운 시선처리는 괜찮은 편인데, 문제는 발음. 일명 사탕을 물고 말하는 듯한 발음과 대사가 조금만 길어지면 어김없이 국어책 읽기가 나온다. 이건 선배인 [[이태곤]]과도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임성한]]에 의해 발탁됐다는 것도(…)~~ 얼굴이나 체격조건에도 불구하고, 그 놈의 연기력이 발목을 잡는다는 평. [* 아이가 다섯에서의 김상민 역은 성훈이 데뷔 후 사실상 '''처음으로''' 맡은 ~~똘끼 넘치는~~ 밝은 ~~초딩~~ 캐릭터다. 이런 역할에서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는 걸로 미루어 짐작컨대, 성훈 본인이 어두운 역보단 밝은 역이 연기하기가 좀 더 편한 듯 하다. (물론 본인도 이전보다 연기 연습에 노력을 더 기울이거나 해서 긍정적인 응이 많은 것도 있겠지만) 드라마에서 어두운 역을 많이 맡은 것과 별개로 예능에서의 모습을 보면 실제 성격이 잘 웃고 장난기 많고 천진난만한 걸로 보인다. ~~그냥 성훈 자체가 김상민이라서(...)~~ 인터뷰에서 말하길 지인들이 부르는 실제 자신의 별명이 초딩이라고(...)]
          * 맡는 역할마다 어째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캐릭터가 많다. 거기다 입양아 역도 좀 있는 편이다. 가족의 탄생, 오 마이 비너스 둘 다 미국으로 입양된 역할(...) 아이가 다섯은 부모님이 있기는 한데 떨어져 사는 설정이라 절 가량이 지났음에도 부모님의 아직 얼굴조차 안나오다가 드디어 40회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근데 이번에는 엄마가 [[박해미|이 분]]... 게다가 엄마는 상민과 태민을 차별하며 태민을 편애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이번에도.....?-- [[애타는 로맨스]]에서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혼 가정의 재벌 2세. ~~이 쯤 되면 그냥 팔자인 듯~~
          * 배우 자체가 진지한 분위기의 정극이나 사극보다는 밝고 가벼운 로코나 일상물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평이 많다. 특이하게도 이는 역대 임성한이 발탁한 남자배우들과는 확연한 차이점.[* [[김성민(1973)|김성민]], [[이태곤]], [[오창석(배우)|오창석]], [[서하준(배우)|서하준]], [[강은탁]] 등 성훈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배우들이 정극을 위주로 활동하는 중. 이는 신기생뎐에서 상대역이었던 임수향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마찬가지로 임 작가가 발탁한 여배우들도 임수향을 제외하고 [[이다해]], [[윤정희]], [[전소민]], [[박하나]] 등등이 주로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활동한다.~~2017년 4월부터 [[전소민]]이 [[런닝맨]]에 고정이 되면서 임 작가가 발탁한 배우들중 다른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훈과 임수향이 예외적인 케이스. 거기다 위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임성한이 발탁한 남자배우들이 이후 좀처럼 막장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면 성훈만 예외적으로 정극, 사극, 느와르, 로코, 소설 원작 작품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 장재인 . . . . 26회 일치
         슈퍼스타 K2 내내 엄청나게 독특하고 희귀하고 유니크한 개성의 사운드와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의 재능으로 신데렐라로 취급받던 도전자이며 '''페이크 주인공'''.(슈퍼위크가 끝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재인 vs 김지수 or [[존박]]의 결승전을 예상했었고, 장재인이 무난하게 우승한다는 의견도 꽤나 많았었다.) 그만큼 프로그램 초부터 두각을 나타낸 실력자.
         지향하는 음악은 포크 음악이며,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대가 심했다고.. 첫 자작곡은 7살 때 쓴 동요고, 자신이 '노래다운 노래를 만든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의 자작곡은 중3 때 처음 썼다.[[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00915175413774|#]] 실용음악과 중에서도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한 호원대 싱어송라이터과에 합격하면서(교수 [[정원영]] 현재 정원 '''5명'''...) 본가인 광주를 떠나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슈퍼스타K2에 참가하기 전부터 클럽 등에서 '''재인(才人)'''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재인밴드를 결성, 슈퍼스타K2에 참가하기 전까지 활동하게 된다. 이 때문에 후에 '[[이승철]]이 홍대클럽에서 장재인을 봤다.(이승철이 3차예선 시작할 때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한 게 원인)', '사실 제작진이 장재인을 홍대에서 섭외해 왔다.' 라는 --기본--기초적인 루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은 백스테이지에서 대놓고 장재인을 디스했다.--김지수 씨를 데려와야했어!--(대충 너무 튀는 장재인을 데려와서 사손해를 봤다는 주장인데.. 솔직히 김지수가 장재인 대신 왔었어도 저 셋이 탈락하는 건 변함이 없었을 것 같다. --그냥 실력이 합격한 둘보다 딸리는 거..--)
         결과는 '''대박'''. 제대로 대박 맞았다.(그 뒤에 강인수'''--쌈바신--'''조는 동 탈락 이유가 '앞에 떨어진 장재인 씨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 다했다.) 박진영은 '3일 동안 심사를 하면서 관객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너무 재밌고, 신났고, 잘 했다.'라고, 이승철은 '서인영의 신데렐라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심사하던 것중에 가장 어려운 심사를 맡은 것 같다.라고 평했다.
         두 번째 사전투표 결과도 2위 [[존박]]과도 많은 표차로 2주 연속 사전투표 1위를 달성하게 된다. 두번째 생방미션은 ''' '[[이문세]] 미션' '''. 여기선 이문세의 명곡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을 장재인 특유의 감수성과 양다리 스킬까지 발동하며 89(승), 88(엄), 98(윤), 95(문)의 첫 방송보다는 약간 저조하였으나(이 방송 다음주에 방영된 백스테이지 프로에서 이날 장재인의 몸상태가 저조했다는 게 밝혀졌다.), 고루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탑6으로 진출하게 된다. 이날 윤종신은 '장재인을 누가 잡죠?'라는 약간의 폭탄 발언을 했고, 이문세는 '기타로 서술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라는 평을 했다.
         세 번째 사전투표 결과도 1위를 굳건히 지킨 장재인. 숙소미션 중 '작사미션'에서 들어줄래로 자신의 작곡능력을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세 번째 미션은 ''' '[[마이클 잭슨]] 미션' '''. 여기서 그녀는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르면서 깜짝 퍼포먼스로 카주까지 준비했지만 응은 저번보다 못했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 심사점수도 91(승), 90(엄), 93(윤)의 약간 저조한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후 방영된 몰래카메라 영상에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존박,허각,김은비,강승윤에 해 김지수와 장재인은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이 찍혔는데, 여기서 '장재인 성형'이라고 치는 바람에(그리고 치아교정) 당시 성형논란으로 뜨겁던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한동안 했다 안 했다로 많은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저번의 저조한 무대와 그에 해서 포텐셜을 팍 터뜨린 존박에 의해서 전과는 다르게 사전투표는 박빙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최종 결과는 몇천 표의 약소한 차이로 장재인이 4주 연속 1위를 '아슬아슬하게' 지켰다. 용산미션에서는 미군들 앞에서 '''Duffy의 Mercy'''를 불렀다. 그리고 4주차 미션은 ''' '심사위원 미션' '''... 방송 며칠 전부터 장재인이 '''[[엄정화]]의 초대'''를 부른다는 소문과 증거사진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많은 팬들이 안 어울릴까봐 불안해 했는데...
         2011년 3월 22일 밤 8시(홍콩 시간)부터 2시간 동안 홍콩 aTV 주최 하에 열릴 예정인 아시아 레인보우 TV 어워드(亞洲彩虹獎電視頒獎禮)에 게스트로 참가할 예정. [[http://www.hkatv.com/v3/11/infoprogram/rainbowtvaward2011/list1.html|맨 하단에 張才人이라 씌여져 있다.]] 식전 행사에서 레드 카펫을 밟고 나왔는데 하필 그 전 순서가 진교은(陳喬恩)[* 명중주정아애니(命中注定我愛你)로 유명한 대만 배우.]이 나온 바람에 고작 10~20초밖에 안 잡혔...아니 이전에 인터뷰도 얼마 안 하고 사인만 하고 갔다. 무대에서는 레몬트리와 풍경을 불렀다. 그런데 진행자가 영어로 소개를 했는데 발음이 "저진 인"(…)으로 들린다. [[이뭐병]]...
          * '''Losing my way''' : 중3 때 여러가지 이유로 '길을 잃은 것 같다'라는 생각과 세 달간 계속 머리속에서 맴돌았다는 멜로디로(영상 초부에 나온다.) 만든 첫 번째 자작곡. 한때 제목을 Loosing my way로 알고 있는 팬들이 많았으나, 장재인이 정정해주었다.[[http://www.youtube.com/watch?v=4iEYSeUmppA|#]]
         2010년 11월 후기부터 아테나 OST에 참여한다는 설이 기사로 나돌았었다. 그리고 12월 10일엔 그게 확정임이 밝혀졌다. 일각에선 이지아의 테마곡으로 쓰인다는 설도 있는데 아직 확실치는 않다.
         다른 슈스케 출신 가수들이 공중파 음방으로 첫 데뷔를 하는 것이 일적인데,[* 근데 허각은 뉴스로 첫 데뷔를 하긴 했다..] '다큐멘터리로 첫 데뷔'라는 특이한 케이스여서 더 주목받았다. 출연 다큐는 새로 시작한지 얼마 안된 KBS 다큐 '[[세 번의 만남]]'.[* 세 번의 만남은 말 그대로 대상과 세 번 만난다(...). 세 번 만남을 거듭하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가는 심플하면서도 촬영대상에게 모든 게 집중되는 다큐 형식. 첫 회는 영화인 김수로가, 그 다음은 레슬러 김남훈이 촬영대상이었다. 장재인은 '세 번의 만남'의 '세 번째' 타자인 셈.]
         다큐를 찍을 당시 장재인은 키위 뮤직과의 계약 도장 찍기 직전~찍음의 상황이였다. 하지만 방송 당시엔 이미 엠넷의 보도로 기사가 여러개 뜨고 난리난 후의 상황이라 다들 알고 있었다(...) 다큐가 방송된 후 이걸 본 일인들의 응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였다. 그냥 좋았다, 새로운 면을 본 것 같다 등의 평범한 응과 내가 알고있던 장재인이 아닌 것 같다(루머 등으로 오해한 것 같다) 등의 응. 팬들에겐 그저 '''조련질의 연장'''. 하지만 정작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몇개 없었다는 게 중론.
          05.
         실제로 장재인은 천편일률적인 현재 가요계 시장을 비판하고 그 안에 있는 개성이 짓밟히는 현실을 영하기 위해 이런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짝'을 불렀었고 이소라가 크게 감동을 받았었다. ~~저도요~~
         장재인의 두번째 미니앨범이자 가장 명으로 취급되는 앨범이다. 전체적으로 여름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빗소리와 장재인의 미칠듯한 고음, 감성을 터치하는 가사, 곡의 짜임새가 인상적인 rainy day는 선공개곡으로 장재인의 최고 명곡이라 할 수 있고 step은 통통 튀는 멜로디 탓에 팬들 사이에선 숨은 명곡으로 평가 받으며 타이틀인 여름밤이 오히려 묻힌 비운의 앨범이다.
         밥을 먹어요 - love me do에 이은 19금 가사의 완성판이라 할수 있는 곡. 그 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장재인의 색깔이 분명해져 좋지만 과거 rainy day나 짝 같은 감성적인 음악은 더 이상하지 않는 것일까...--
          * [[요리왕 비룡]]의 주제곡이 장재인의 목소리와 창법을 닮았다는 응이 있다. 실제로 주제곡을 부른 가수는 배연희 씨. 높은 싱크로율 덕분에 합성까지 나왔다 [[https://youtu.be/56OBn0T9iWM|#]]
          * 일본 가수 [[YUI]]의 카피설이 돌았었다. 장재인의 과거사나 노래 스타일, 말투, 특히 '''앉아서 기타치면서 노래부르는''' 기믹~~사실 이게 제일 까이는 듯~~이 해당 가수와 닮았다는 것. 그러나 앉아서 기타 치는 자세는 [[포크]]의 세계에선 보편적인 자세로서 '''누구 한 사람 만을 위한 특별한 자세는 아니다'''. [[조안 바에즈]]나 여러 포크 계열 가수들을 구글에서 검색하다 보면 양자세로 노래부르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쪽 세계를 잘 모르고 일본 J-팝만 듣는 사람들이 설레발 치는 것
  • 정재학 (1856년) . . . . 26회 일치
         또한 그의 민족계 은행 경영 노하우는 그의 혈맥을 통해 전해지면서 1950년 중 [[조흥은행]]은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한다. [[대한민국]] [[증권거래소]]가 개장된 1956년 [[조흥은행]]은 국내 기업 중 최초의 [[상장사]]로 등극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4월 10일 9면</ref><ref>서울경제 온라인판 2006년 3월1일 16:55 입력 조흥은 '최초 은행 1호 상장사' 숱한 기록 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603/e2006033116560370100.htm</ref><ref>한겨레 1992년 2월 28일 19면 상장사 12개로 증권시장 첫발</ref>
         [[정재학]]은 [[낙동강]] 뱃길을 이용한 [[어염무역]]에 진출한다. 1886년 여름 콜레라가 전국을 휩쓸었는데 이 괴질에 소금물이 좋다는 소문이 확 퍼졌다. 소금은 불티나게 팔렸고 값도 폭등했다. 정재학은 이를 바탕으로 대구 3대 부호로 급부상하며 1892년 대구 중심가인 남일동에 99칸 기와집을 세웠다. 1921년 간행 된 '대구일'에는 그의 재산규모에 대해 "100만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미 8000~3000석 규모의 연 수입을 거두고 있다. 하녀하남은 각각 30~40명에서 50~60명에 이른다."고 기술하고 있다.<ref name="ReferenceB"/><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1</ref>
         1907년 일본인들이 장악한 구한말 중앙은행은 신 통화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민간은행에 제시한다. 일서민들은 신 통화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에 파격적인 특혜를 줬다. [[대구상공은행]]에 대해 20만원(현 240억 원)을 2년 거치 무이자 무담보로 빌려주겠다고 제시했다. 2년 동안 요즘 돈 240억 원을 이자 없이 쓸 수 있었다.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물러나던 중 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br>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친척관계인 [[정운일]] ( 鄭雲馹 )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언도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은행정책은 시기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1910년대에는 [[일은행]] 신설을 장려했으나 1922년 이후 신설을 불허하고 합병정책으로 [[민족자본은행]]을 일본인소유은행으로 전환시켜갔다. 1910년대 수도권및 지방에 잇따라 신설된 민족자본은행들은 총독부의 관리를 받는 [[조선은행]]과 [[식산은행]]의 주도로 일본인은행에 흡수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 흡수과정의 첫 단추는 1928년 3월 단행된 [[한성은행]]에 대한 정리 작업이었다. 총독부는 한성은행에 조선은행 출신 일본인 임원을 진입시켜 경영권을 장악했다. 일본인 임원의 진입은 조선은행의 일은행에 대한 차입금 지원의 대가란 성격이 짙었다. 일은행이 경영상 어려움으로 중앙은행 격인 조선은행으로 돈을 빌리기 위해 핵심 임원 자리를 일본인에게 내줘야 했다.
         이 같은 일본인 임원의 침투전략이 수차례 복되면서 한국인은행은 일본인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어미새(국가)가 둥지를 틀고 품어줘야 새끼(자본주의)가 알을 깨고 나와 먹을 공급(은행)받아 성장할 수 있지만 남의 둥지를 독점한 뻐꾸기(총독부 산하 특수은행과 일본인은행)는 둥지의 원주인(조선인은행)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죽인다. 식민지자본주의 조선인은행의 모습이었다."고 강조했다.<ref>정태헌, <<한성은행의 경영권 대주주 구성추이와 일본인은행화과정>> 한국사연구 P148~149 2010년</ref>
         [[정재학]]은 [[항일투쟁]] 경력의 대기자도 '대구지역 일제 대항 세력 중심'으로 인정 한 바 있는 민족자본의 수호자였다. [[정재학]]의 [[대구은행]]은 출발부터 일제에 대한 대항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면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경일은행]]은 일제에 순응하는 경영방식을 택했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ref>
         [[대구은행]]의 이 같은 [[민족자본]] 수호 의지는 해방직후 [[조흥은행]]의 자본구성에서도 드러난다. 1948년 [[미군정]]이 우리 정부에게 넘겨준 주요 은행 주식분포를 보면 [[조흥은행]]의 경우 한국인 지분비율이 54%에 달한 면 [[상업은행]] (36%) [[저축은행]](6.3%) [[신탁은행]] (9.4%) [[상호은행]](9.5%) [[조선은행]](3.5%) [[식산은행]](6.7%) 등 나머지 은행들은 대부분은 일본인 소유에서 미군정 관리에 이어 우리 정부로 귀속됐다. 일제 당시 총독부 등이 민족자본 기의 은행들을 수탈, 국유화시키거나 일본인에게 주식을 넘겼기 때문이다.<ref>경향신문 1978년 1월12일 5면</ref>
         특히 [[조흥은행]]의 경우 1948년 현재 일본인소유주(귀속주) 비율이 5%에 그친 면 은행상호보유주 41%, 한국인소유주 54%이었다. 나머지 은행들의 일본인 보유비중은 26~80%에 달했다. [[조흥은행]]이 민족자본의 적통을 이어받았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113</ref> 또한 광복 당시 조흥은행의 인적 구성 역시 총 2000명 행원 가운데 일본인 직원은 139명에 불과해 혼란 없이 은행을 운영할 수 있었다.<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115</ref>
         [[조흥은행]]은 1943년 10월 1일 민족자본에 기을 둔 9개은행( [[한성은행]] [[대구은행]] [[한일은행]] [[호서은행]] [[호남은행]] [[동래은행]] [[주일은행]] [[구포은행]] [[해동은행]])의 다단계 합병에 의해 탄생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창조사, 1972) p684쪽 조흥은행계보도</ref> 해방직후 [[조흥은행]]의 지분구성을 보면 일본인 5.1%, 한국인 53.7% 그리고 은행상호보유주 41.0%로 나타났다.<ref><< 조흥은행90년사 >> (조흥은행, 1987) p113~114</ref> 한국인지분 가운데 [[대구은행]]을 설립한 [[정재학]] 가문과 [[한일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한 [[민대식]] 가문 등 두 가문의 비중이 가장 컸다.<ref>경향신문 1955년 10월22일 3면</ref>
         최대주주 자리를 잃은 [[정재학]]은 1940년 4월2일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f>동아일보 1940년 4월 9일 4면 합은두취사거</ref> [[정재학]]의 장례식은 1940년 4월8일 거행됐다. 당시 20대의 자동차가 영구차를 뒸따랐다고 한다. 전국 각지의 부호들이 대거 영면을 빌기 위해 찾아들었다고 전해진다. [[고승제]] 박사는 " 당시 그의 영구차 행렬 가운데 '고통정대부연일정씨재학공지구 ( 故通政大夫 延日鄭氏在學公之柩 )란 [[영건]](靈巾)이 내걸렸고 이는 상민으로 태어난 정재학이 양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상징"이라고 평가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0</ref>
         그러나 오구라는 행장에 오르지 못한 면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은 1940년 4월 27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표 이사 (대표취체역) 겸 행장에 선임됐다. 이듬해인 1941년 7월 총독부는 전시금융체제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금융기관 정리통합 방침을 밝혔다. 예상과 달리 [[경상합동은행]]은 [[대구상공은행]]과의 합병대신 1941년 8월10일 서울 소재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됐다. 정운용은 한성은행 주식 1220주를 보유하면서 [[상무]] [[취체역]](상무이사)로 발탁됐다. 해방 후 한국인 최초의 은행장이 되는 계기였다. 오구라는 이에 상심한 듯 은행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본업인 전력산업에 집중한다.
         면 민씨 가문은 1957년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면서 주요주주 자리를 내놓게 된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ref><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ref>경향신문 956년 4월 22일 1면</ref> 조흥은행은 1995년 2월 확대이사회 결의를 통해 은행장의 순서를 조정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전에는 1943년 [[취체역]] 회장 (이사회장) [[민규식]](閔奎植)을 1대 행장으로 대우했으나 1897년 한성은행장 [[김종한]] (金宗漢 )을 1대 조흥은행장으로 결정했다. [[민영휘]] 가문은 주요주주였음에도 조흥은행장을 배출하지 못한 격이 된 것이다. 면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은 제5대 조흥은행장, 손자인 [[정운용]]은 제2대 조흥은행장에 이름을 올렸다.<ref>국가문화유산포털 조흥은행 http://www.heritage.go.kr/culture_2008/kor/search/pop_search_view.jsp?pk=PS01004029001422024000DC</ref>
         국내 언론계에서는 해방 이후 역사에만 주목, 현재 최장수 은행장을 [[하영구]] 씨티은행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 행장은 2001년 행장에 오른 뒤 2013년 상기 2015년까지 연임이 확정됐다. 그러나 한국 금융사학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은행 은행장까지 포함시킬 경우 순서가 달라진다. 현재 신한은행으로 합병된 조흥은행은 민족자본은행 100년사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보이면서 1997년 발행된 '조흥은행 100년사'에서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은행의 계보를 상세하게 다뤘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재계에서도 신세계 두산 LG 등이 100년 역사를 내세우는 것도 일제강점기 활동을 포함시키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견제 속에서도 기업을 설립하고 막대한 부를 창출한 역사가 현재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친 아들 손자 등 3대에 걸쳐 은행장을 배출한 사례는 한국근대 금융사에서 유일한 사례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근대적 은행업은 구한말인 1897년부터 시작됐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도 은행업은 유지되면서 비록 일제 금융당국에 의해 통폐합되면서 조흥은행으로 통합됐지만 민족자본은행들의 한국인 지분은 [[조흥은행]]의 지분구성에서 절을 웃돌았다. 해방 이후 조흥은행을 제외한 주요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일본인 지본이 절대 우위였으며 이 지분들은 미군정청에 귀속된 뒤 이승만 정권 당시 재계에 불하됐다. 조흥은행 100년사에 따르면 [[조흥은행]]만이 당시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한게 한국인 지분이 50% 이상이었다. 해방 직후 조흥은행의 총 주식수는 18만5000주로 이 가운데 [[경상합동은행]]은 4만5000주, [[한성은행]]( 경상합동은행 합병전 기준) 6만주, [[동일은행]] 8만주 등으로 구성됐다. 해방이후 민족자본은행의 대표격으로 부상한 조흥은행의 지분 가운데 [[정재학]] 가문이 설립한 경상합동은행의 지분율은 24%에 달했다.
         국내 경제학계의 대부로 꼽히는 고승제 박사는 정재학에 대하여 국내 은행업의 개척자로 규정하는 한편 이색인간이라 평가했다. 그는 '이색인간'에 대해 "어떠한 직업이던 불문하고 개인으로서 노력하고 고생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싶다"며 "양출신의 부호와 버금가는 재력을 쌓은 정재학은 하층인 소인층 출신으로서 스스로 재산을 모으고 스스로 면학을 거듭하면서 끈질긴 신분의 제약이란 장벽을 뚫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72</ref>
         [[2002년]]과 [[2008년]] 각각 공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저자=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25회 일치
          * Invest in National Infrastructures(국가주도 기시설 투자)
          중앙계획 중심의 경제 전용. 30일 후 랜덤한 프로빈스 1-5 곳의 기시설이 10% 오른다. 몇개의 프로빈스에 적용되는지는 발동 당시 돈을 얼마나 붓냐에 따라 다르다. 최대치로 투자할 경우 경제 슬라이드가 중앙 계획으로 돌아가니 주의.
          * 발동 조건: 국가 원수나 정부 수 중 한명이 아돌프 히틀러. 자금 500.
          * 발동 조건: "총선"이벤트 발생. 국가 원수나 정부 수 중 한명이 아돌프 히틀러.
          * 발동 조건: 국가 원수나 정부 수 중 한명이 아돌프 히틀러
          * 발동 조건: 평화, 국가 원수나 정부 수 중 한명이 아돌프 히틀러, 자금 100.
          * 발동 조건: 군수장관이 얄마르 샤흐트, 불만도 7% 미만, 국가 원수나 정부 수 중 한명이 아돌프 히틀러
          오스트리아 측은 정부수인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나치 당원들에게 살해당해 사용할 수 없게 되며, 그 자리를 쿠르트 슈슈니크가 차지하게 된다. 또한 불만도가 10 증가하는 동시에 정치 슬라이더가 독재로 한 칸 이동한다.
          * Anti-Comintern Pact( 코민테른 조약)
          일본과 이탈리아에게 5년간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상호간 정보 교류 및 지원을 제안한다. 당연히 소련과의 관계도가 떨어지며, 정치 슬라이더가 닫힌 사회로 한 칸, 간섭주의로 한 칸 이동한다. 일본의 만주국 승인 및 중국 내 독일 고문관 철수 요구를 들어주면 일본은 자동적으로 코민테른 조약에 가입한다.
          보복병기의 개발에 착수한다. 로켓 계열 기술(ICBM 제외)과 원자력 기 기술 둘 중 하나를 골라 청사진을 얻을 수 있는데, 로켓 기술에는 불만도 -2%가 붙어있다. 보통 AI는 로켓 기술을 고르지만 원자력 기 기술을 고르는 경우도 있다.
          소련을 국가로 인정한다. 소련과의 관계도가 10 상승하며 자금 75를 획득하지만 공산주의 란군을 국가로 인정했기에 불만도 1%가 상승한다.
          일본의 침략 야욕으로부터 알래스카를 지키기 위해 더치 하버에 해군기지를 세운다. 발동 조건 만큼의 자원과 공업력 5를 퍼먹고 350일이 소요되는 대규모 건설과 발동 조건의 정도 자원과 공업력 3을 먹고 250일이 소요되는 소규모 건설이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한 후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건설 완료 이벤트와 함께 더치 하버에 시설들이 생겨난다. 대규모 건설의 경우에는 해안 요새 2, 대공포 4, 공군 기지 4, 해군 기지 5, 레이더 1이 건설되며, 소규모 건설의 경우에는 해안 요새 1, 대공포 2, 공군 기지 2, 해군 기지 3, 레이더 1이 건설된다. 건설에 사용된 공업력은 건설이 끝나면 돌아온다.
          * Intervention against Mexican Rebels(멕시코 군에 대한 간섭)
          군들을 조지기 위한 보급품을 수송하기 위해 멕시코 정부에게 철도망의 이용권을 요구한다.
          아이티의 미 폭력 행동이 미국인의 사업에 위협이 되는데다가, 아이티 산업의 대부분을 독일인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한 대처를 정하는 디시전이다.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마찰을 감수하고 아이티를 괴뢰국화하는 선택지(간섭주의 +1)와 "우린 제국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하고 국민들에게 개까이는 선택지(고립주의 +1)이 있다.
          일본의 만주 지배에 방해가 되는 중국인 게릴라와 마적을 소탕한다. 5 인력과 500 보급품을 가져간 후, 120일 후 후속 이벤트로 일부 지역이 만주국의 국민지역이 되어 란도가 사라진다.
          일본의 만주 지배에 방해가 되는 동북항일연군을 소탕한다. 5 인력과 500 보급품을 가져간 후, 120일 후 후속 이벤트로 일부 지역이 만주국의 국민지역이 되어 란도가 사라진다.
          일본의 만주 지배에 방해가 되는 동북항일연군을 소탕한다. 5 인력과 500 보급품을 가져간 후, 120일 후 후속 이벤트로 일부 지역이 만주국의 국민지역이 되어 란도가 사라진다.
          * 발동 조건: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한다" 디시전에서 "폴란드는 드시 보호받아야 한다" 선택. 폴란드가 영국과 동맹 관계가 아니며 독일 상대로 전쟁 중. 독일이 영국과 전쟁 중이 아님.
  • 김태우(god) . . . . 25회 일치
         라기보다 아이돌답지 않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였다.[* 특히 [[H.O.T.]], [[젝스키스]], [[신화(아이돌)|신화]]의 메인보컬들이었던 [[강타]], [[강성훈]], [[신혜성]]은 미소년들이었는데 해 god의 메인보컬인 이쪽만 유독 튀는(...)외모를 지녔다. 또다른 유명한 [[NRG]]를 봐도 이쪽은 메인보컬이 리더이자 맏형인 [[이성진]]인데 이 쪽도 나이가 당시 아이돌 멤버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지 충분히 잘 생긴 외모다.] 여러 가지로 1세대 아이돌 중 가장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수 있다. 보통 아이돌은 '비주얼'이 우선시되고 보컬 멤버라고 해도 키가 190이 넘어버리면 주변 멤버랑 밸런스가 안 맞아서 뽑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박진영은 김태우를 메인보컬로 선택했다. 심지어 김태우를 집어넣기 전에 다른 네 멤버와 같이 연습하던 두 명의 연습생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중의 한 명이 배우 [[김선아]]다. 초창기에는 김선아의 배우 이미지를 생각해서인지 god 멤버인 데니 안부터 부인했었으나 박준형이 1박2일에 출연해 사실임을 인증했다.]
         god 당시 혼자만 소속사가 달랐다. 나머지 멤버들은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김태우만이 홀로 [[JYP]], 즉 박진영과 계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박진영이 싸이더스에 김태우를 '임대'해 주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일에 알려진 것과 달리 god 해체는 [[윤계상]]의 탈퇴만이 이유가 아니라, 김태우의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기존 회사에 남느냐 박진영과 계약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던 중에 발생하게 됐다. [[윤계상]]의 탈퇴는 이 우왕좌왕한 계약 시기에 염증을 느낀 결과였던 것.]
         한편, 이때의 인연 때문인지 [[진짜 사나이(일밤)|진짜 사나이]]가 [[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서 촬영할 당시 예비 군복을 입고 위문공연을 왔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씨스타]]'''에게 장병들의 관심이 완전히 넘어가면서 공연은 대실패(?). 김태우 본인도 "군대에 남자 가수 따위가 누가 온다고 한들 좋아하겠어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 맴버들을 비롯한 후배 수색대원들에게[* 사실상 진사 전용 생활관 멤버들.] [[PX]]에서 한턱 쐈는데 마음껏 사랬더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닥닥 긁어서 무려 19만원(!!!!)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 했다. 이걸 일적인 편의점의 판매 가격으로 변환하면 대략 30만원 정도 나온 셈이다.[* PX는 [[부가가치세]], 주류세 등의 세금이 안 붙어서 저렴하다. 무엇을 사먹느냐에 다르지만 보통 둘이서 만원만 써도 배가 터지게 먹고도 남는다. 아니, 3봉지에 5000원하는 고향만두를 사면 3명이 먹어도 배부르다. 거기다가 이천원짜리 음료수로 나눠먹으면 7000원으로 3명이 만두와 음료수를 배불리 먹는 [[예수]]에 버금가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런 PX에서 19만원이면...] 자막으로 "PX를 샀냐..."라고 나올 정도다. PX 근무병 왈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이병이던 김형근 군에게 군대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2011년 3월 29일 정규 2집 앨범 'T-School'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메아리'.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2009년에 발매했던 '사랑비'보다는 뭔가 아쉽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랑비'의 응이 상당히 좋아서 기대치가 높았던 데다 이 시기 [[8eight|이현]], [[휘성]], [[케이윌]] 등의 남자 솔로 가수들이 가히 폭발적인 응을 얻었던 탓에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저 세 가수의 경우는 정말로 폭발적인 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들과 비교할 때 부족해 보일 뿐, 타이틀곡 자체는 음원 사이트에서 [[씨엔블루]]나 [[걸스데이]], [[포미닛]] 등 아이돌들 사이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하는 등 꽤나 선전했다. 또 앨범의 수록곡 'Brothers&me'는 [[박진영]]과 [[비(연예인)|비]]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타이틀곡 '메아리'의 뮤직비디오에서 김태우의 1인 2역 연기를 볼 수 있다... ~~곰 두 마리가 한 집에 있어!~~
         그리고 2011년에 '''[[결혼]]했으며''' 그것도 [[속도위]].
         2012년 11월에 출연한 고쇼에서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재직 중인 연구원인 아내를 "서울대 박사"라고 지칭한 부분을 두고, 몇몇 네티즌들의 학력위조 드립이 있었으나 별다른 문제 없이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미국]]에서 대학 졸업, 이대 대학원 생명공학부에 재학하면서 서울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서울대 박사 학위가 아님에도 '서울대 박사'라고 칭한 것을 문제시한 것. 하지만 [[청춘불패]]의 흑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태우 자체가 상식이 뚜렷한 편이 아니서 생긴 불찰. 일적인 [[학력위조]]와 달리 학력을 사칭하여 이득을 꾀한 것도 아니다보니, 딱히 큰 논란은 없었다.
         2013년 2월 20일. 미니앨범 'T-LOVE'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Cosmic Girl'로 활동했다. 크게 나쁜 평은 없고 그럭저럭 응도 있는 편이나, 이번에도 역시 '사랑비' 시절을 그리워하는 응이 많았다.
         [[청춘불패 시즌1]] 초에는 막 전역한 참에 여자 아이돌들과 방송을 하는 것을 상당히 기뻐했으며 [[유리(소녀시대)|유리]]와 러브라인을 엮으려는 시도도 계속 됐으나, 막상 그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던 것은 당시 신인으로서 방송 분량이 아쉬웠던 [[한선화]]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여자 아이돌이다 보니 웬만큼 힘든 일은 전부 김태우의 몫이 되어 제대하고도 여전히 삽질, 망치질, 곡괭이질 등등의 작업이 떠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식이 뚜렷한 편은 아닌데다 이와 관련된 흑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 푸는 실력은 좋은 편이다. 194회 전전에 참가했을 때는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두번째 도전인 287회 후전 방송분에선 [[1대 100/최고 단계 문제 #s-4.4|정규 최종 단계(당시 11단계)에서 6명과 대결을 펼쳤다.]](두 대결 모두 각각 8, 12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불후의 명곡 2]]에는 고정으로 나와 총 7번 우승했으며 2018년 5월 19일부터 [[불후의 명곡 2]] 대기실 고정 mc로 활동하고 있다.
         [[청춘불패 시즌1]]에서 [[구하라]]가 다리찢기를 하고 있는데 "넌 어려서 골이 안 벌이지네"라고 말한 게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신영]]이 잠깐 발끈하기도 했고... 이걸 '어려서 경험이 없어서 안 벌어진다'는 식의 [[성희롱]] 발언으로 해석한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가 있었으나 크게 불거지는 일 없이 금새 묻혔다. 이것을 두고 성실한 군복무로 인한 실드가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애초에 [[여성]]은 2차 성징이 끝나면 추가적으로 골이 성장하지 않으며 골이 벌어지는 문제와 성경험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출산시 고통을 수하며-거의 틀어지는 수준으로- 벌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출산=섹스'라는 개념에 꽂혀있는 게 아니라면, 너무나 먼 이야기라 관련성이 적음을 알 수 있다. 즉, '어려서 골이 안 벌어졌다'는 발언은 '2차 성징도 안 온 어린 애'라는 뉘앙스로 해석하는 게 일적인 해석이라는 것.
         이때에 취할 수 있는 대처법은 성격 안 좋은 동료나 학우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방법과 똑같다. 그냥 뒤에서 욕을 하거나, 생까고 같이 놀지 말거나.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거라면 모를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군대식으로 집합시켜서 군기 잡을 권리는 선배가 아니라 할애비라고 해도 없다. 그리고 김태우 같은 중간의 위치에 있는 가수가 저렇게 나선다면 밑에 있는 후배 가수는 정말 부담 백배로 선배를 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저렇게 후배들에게 강제로 인사를 시키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 나이 되면 이런 인사를 받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신만이 알겠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면 답이 없다. [* 다만, 김태우 본인의 말로는 오고가는 길에 마주쳤을 때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간단한 인사정도는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김종서의 기분은 어땠을까?'라는 점이다. 김종서가 했던 이야기는 ''''너밖에 인사를 안 했어''''인데, 그 말의 뜻은 '인사를 와 줘서 갑다'이지 '후배들이 인사 안 했으니 혼내줘'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태우는 김종서의 입장을 고려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과잉충성|선배를 위한답시고 후배들을 집합시켜 군기를 잡고 강제로 인사시켰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인게, 자칫하면 결과적으로 김종서를 엿먹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2018년 1월 해피투게더3에 나와 이 사건을 다시 언급했으며 이때는 자신이 후배에게 한일이 과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6&no=4092847|#]] 알고보니 김종서 뿐만 아니라 옆에서 김태원도 자고 있었는데, 둘다 왜 이러냐는 응을 보였다고...
         하지만 그는 목표 체중에 도달한 후 스케줄 등의 이유로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고, 4달 만에 다시 체중이 95.4kg까지 불어났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더라도 감량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요요 방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한 번도 관리를 받지 않았던 것. 이에 쥬비스는 “계약 의무를 위해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 도영(1996) . . . . 25회 일치
         == 참여 음 ==
         ||<table align=center><#BBE309><-4><:>'''{{{#white 그룹 음}}}''' ||
         ||<table align=center><#BBE309><-5><:>'''{{{#white 그룹 외 음}}}''' ||
          * 집안에서 막내로 말투나 발음, 행동이 모태애교다. ㄴ받침에 ㄴ을 첨가해서 발음할 때가 많은데 "이천넌" "재현니" "미안내" 등. 팬들이 귀여운 말투에 해 "미안내"를 미안해 대신 사용한다. --십덕 포인트다.-- 라디오 등에서 팬들이 몇번 사연을 보낸적이 있어서 도영 본인도 자신의 말투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스스로 밝히기로는 비염 때문에 그런 발음이 나오는 거라고. 루키즈 시절 ~ 데뷔 초에는 좀 더 심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MC를 볼 때는 의도적으로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거의 그런 발음을 찾아볼수 없으나 아직도 브이앱 등 편안한 방송에서는 귀여운 말투가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_dSpySAVA|ㄴ발음모음]]
          * 유치원 5살 때 다니던 의 이름은 분홍이며, 5살은 도영이 엄마에게 처음 혼났던 나이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장이 된 나이, 처음으로 단어시험 100점 맞은 나이는 9살.[* 이때 단어시험 100점 맞은 상으로 아빠가 닌텐도를 사주셨다고.] 처음 짝사랑을 해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 고등학교 시절 교내 별 팝송 합창대회에서 [[레이디가가]]의 poker face를 [[https://www.youtube.com/watch?v=xMWPmz5ROIY|불렀다.]] 도영은 지휘자와 인트로부분 독창을 맡아 성공적으로 발표하였고, 해당 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다. 1위가 발표된 뒤 도영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디오에서 밝힌 [[https://www.youtube.com/watch?v=JqQp9a3ED1A|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당시 도영의 에 예체능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모두 '이거는 진짜 우리가 무조건 1등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 공연이 레전드로 남아서 학교 측으로부터 졸업식 날 공연으로 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 시점엔 이미 도영이 자퇴한 이후여서 친구들도 거절했다고 한다.
          * 학창시절 친구들의 SNS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도영이 요리를 꽤 잘한다고 한다. SNS에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도영이 직접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찬들이 가득한 밥상이 있다. [* NCT LIFE 한식왕 도전기 1화 자신 있는 한식 만들기 미션에서 닭갈비를 만든 바 있다. --7위--][* 형 공명의 말에 따르면, 엄마 아빠 안 계시면 형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본인 피셜로는 제대로 된 요리는 잘 못하고 금방 해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나 볶음밥 같은 생활요리를 잘한다고 한다. 숙소에서도 태용, 재현, 해찬과 함께 요리를 주로 맡는 멤버 중 한 명인듯.
          * 학창시절 친구들과 [[https://www.youtube.com/watch?v=gL3_RisTRSU|우정지]]를 맞춰본 적이 있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친구들이 맞춰서 준 것. 평가회 무대에 지를 하고 올라갈 수 없어서 멤버 중 한명에게 맡겼는데 사라졌다고. 지금도 가끔 지를 보면 그 때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고 한다.
          * 좋아하는 음식은 [[https://www.youtube.com/watch?v=phLpN6Or48c|치즈가 들어간 음식]][* 치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빵집에 가도 치즈가 들어간 빵을 주로 먹고 좋아하는 케이크도 치즈 케익.]과 팝콘, 화이트 초코, 팥빙수 등 단 음식, 수박과 복숭아, 마라탕, 훠궈 등이며 카라멜 커피를 즐겨마신다고 밝혔다. 또 우도 땅콩크림 프라푸치노[* 제주도 스타벅스 한정메뉴], 명란 바게트[* 스케줄 차 일본에 갔을 때 먹어보고 한 것 같다.]를 추천하기도 했다. 싫어하는 음식은 오이. --재현:오이!!! 도영:나 오이 너무 좋아해-- 사실 오이가 싫은게 아니라 오이 냄새를 싫어하는 것. 피클은 잘 먹는다고 한다. --별명이 토끼임이 무색하게--당근도 싫어하는데 당근 케이크는 또 괜찮다고 한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잘 못 먹는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Dlf2rUo22gM|커피]].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서 카페에 갈 때도 가능하다면 디카페인 주문을 하는 편이라고 한다. 새벽에 잠을 깨려고 억지로 커피를 많이 먹은 날이면 자기 전에 심장이 두근거려서 못 잘 정도.
          * 쟈니, 재현과 함께 대식가인 멤버 중 한 명이다. 쟈니의 표현으로는 We eat a lot 클럽. 단체 식사에서 많이 먹는 테이블의 고정 멤버가 이 셋이고 여기에 가끔 해찬이가 끼기도 한다고.[* 최근에는 [[루카스(NCT)|루카스]]가 대식가 1위로 올라선 것 같다.] 음식 종류는 중요하지 않고 어떤 음식이든 그냥 많이 먹는 타입이라고 한다.[* 다음 날 땀 흘릴 일이 많다 싶으면 그 전날 엄청 많이 먹어둔다고.] 많이 먹고 운동도 안 좋아하고 취미는 침대에 누워있기인데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 미스테리. 그런데 사실 모태 마름이 아니라 SM에 입사하고 나서 견과류만 먹으며 독하게 살을 뺀 것이라고 한다. 재현은 이를 보고 목표한 것은 드시 이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태용이 본 도영의 첫인상:땅콩을 되게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우도 땅콩크림 프라푸치노를 추천하거나 월남쌈에는 땅콩소스지라는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실제로 땅콩을 좋아하는 것도 맞는 듯하다.]
          * 평소에 밥먹을 때 계란 후라이 하나를 해서 밥 위에 얹은 다음 아무 찌개나 국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때 계란 후라이는 꼭 숙을 노른자를 터뜨려 먹어야 한다고.
          * [[https://www.youtube.com/watch?v=GmFJ4fu-BdE|버블티 취향]]은 카라멜밀크티에 펄과 코코넛을 추가하는 것. 음료의 이 토핑일 정도로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 [[향초]]는 좋아하는 면 향수는 즐겨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유는 좋아하는 향이 딱히 없어서라고. 그런데 빨래 냄새는 좋아한다고 한다. 다만 2018년에는 일본에서 사쿠라향 향수를 샀--는데 금방 잃어버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팬싸인회에서 듀엣하고 싶은 멤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해찬]]을 지목했다. 그 이유는 도영 스스로 본인 목소리가 특징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면 해찬이의 목소리는 유니크하기 때문. 이후 둘이 출연한 라디오에서 저스틴 비버의 love yourself를 함께 [[https://www.youtube.com/watch?v=-jBZOXMysaA|짧게]] 불러주기도 했다. 대로 도영과 듀엣하고 싶다고 언급한 적 있는 멤버는 [[쿤(NCT)|쿤]]과 [[태일(NCT)|태일]]
          * 무대 의상이 멤버들 중에서도 유독 긴 편일때가 많다. 민소매나 바지는 거의 볼수 없고[* 사복까지 합쳐도 1년에 한두번 정도]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에 심지어 목폴라를 입는 경우도 다수. 땀이 많고 체력이 약한 편이라 더운 여름에 목폴라를 입은 날이면 팬들의 걱정이 많아진다. 한번은 무대에서 탈수 증세가 올 뻔하기도 했다. --태용:즙을 다 짠 과일 같았어--
          * 2018 평창 SM 워크샵에서 직원과 함께하는 듀엣가요제 코너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탔다. 곡명은 [[이지훈(가수)|이지훈]]&[[신혜성]]의 인형.[* 후에 듀엣이 가능한 버전으로 에브리싱에 영상이 올라왔다.]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NCT 전 멤버가 일어나서 환호하는 것을 무대 위에서 보고는 월드컵인 줄 알았다고 한다. 상금은 직원분의 몫과 합쳐서 1000만원이었는데 NCT 18인이 지금까지 전원 모여서 회식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상금으로 회식을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결국 2018년 7월 NCT가 [[엘리트(교복 브랜드)|엘리트]] 교복 모델이 되어 촬영을 위해 18명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그 날 저녁 회식을 쐈다고. --윈윈:멋있어요 도영형 역시 본부장ㅎㅎ-- [* 엔나나에서 밝혀진 바로는 테이블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인당 3~4인분 정도는 먹었다고 한다.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루카스로 지성의 증언에 의하면 약 10인분 정도 먹은 것 같다고.] 또 동 워크샵에서 EDM 파티도 즐기고 온 것 같다. 원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하는 사람인데 조명이 짝하고 음악이 울려서 그 순간 음악에 취해 처음으로 신남을 느꼈다고 밝혔다.
          * 쇼챔피언, 인기가요 MC 경험 때문인지 하차 이후에도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멤버들 사이에서는 장난식으로 '인기가요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본인이 스스로 아들이 아니라 (전)아들이라고 정정하자 제작진이 아들 맞다고 이야기하였다. 제작진이 인정한 아들답게 유독 인기가요 무대에서 도영의 클로즈업이 많은 편이며 도영에 대한 인기가요의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는 무대가 2018년 2월 25일 boss 무대. 노래가 시작하고 초 30초 가량이 계속 흑백으로 처리되다가 도영의 파트가 시작되는 순간 컬러로 전환되는 효과를 보여준다.
          * 드라마 보기 외에 방에서 혼자 있을 때 자주 하는 취미는 퍼즐 맞추기. 2018년 생일에 [[NCT의 night night!|엔나나]] 제작진에게 월리를 찾아라 1000피스 퍼즐을 받았는데 바빠서 당분간 완성시키기는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데뷔 전 [[쟈니(NCT)|쟈니]]와 같은 방을 쓸때 함께 퍼즐 맞추기를 자주 한 것 같다. 며칠에 걸쳐서 절 넘게 완성해놨는데 숙소를 청소해주시는 이모님께서 실수로 망가뜨리셨다는 에피소드도 이야기했고[* 잠깐 의욕을 잃었으나 결국 다시 도전해서 완성했다고.] 또다른 퍼즐은 다 맞췄는데 마지막 1피스가 부족해서 검은색 마카로 칠했다고. --운좋게도 잃어버린 1피스가 검은색 조각이었다.--
  • 연정(우주소녀) . . . . 25회 일치
         ||<#FFA38B><:> '''{{{#white 소속 그룹}}}''' ||<(> [[유용근밴드리즈15]][* 2016.05.05(결성일은 4월 2일이나, 공식 데뷔일은 음 발매일을 기준으로 함.) ~ 2017.01.31.], [[유용근밴드리즈]] ||
         인터넷상에서의 별명은 닮은꼴로 자주 언급되는 연기자 라미란. 부모님도 라미란을 닮은 걸 인정했고, 이젠 이름만 들어도 몸이 응한다고 한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194322&page=1230&exception_mode=recommend|어린 시절 사진]]. 그래서 모녀관계 의혹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TV에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 본인도 이 별명에 대해 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장의 야민정음을 합친 '라머장', '머장님'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배성재의 텐에서 이 별명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쪽은 야민정음인지라 방송에서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제작진이 이를 사용해 버렸다.[* [[http://oi63.tinypic.com/mljq83.jpg|#]]] 그러나, '''다이어트를 한 후에는 라미란과 닮지 않았다'''(???) 다이어트 성공후 새로운 리즈를 갱신했다. 라미란 외에는 같은 팀 멤버인 수빈과도 닮았는데, 수빈이 <비밀이야> 활동부터 스타일을 단발로 바꾼 게 둘의 캐릭터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있다.
         노래를 부를 때 특별한 기교나 습관을 넣는, 이른바 '자기화' 시키지 않는다는 것 역시 특징으로 꼽힌다. 어떤 노래라도 원곡의 분위기에 맞게 부르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다는 면에서는 정말 뛰어나다고도 볼 수 있다.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을 때는 특정 장르의 노래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간혹 나왔지만 생방송 무대에서 보여준 <Crush> 무대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가 사라진 상태. 어떤 류의 노래를 불러도 거부감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걸그룹에서 메인보컬을하기에 최적화된 보컬'''이란 평. 감성 전달력이 약하지 않느냐는 평은 적지 않지만 전달력이 마냥 약한 건 아닌지라 자기만의 특색과 전달력은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아가면 해결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어린 나이라는 걸 감안하면 오래지나지 않아 자기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뒤로부터 "연정의 특색이 이거였구나."라는 응이 많아져서, 이전까지는 되려 저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데, 방송에서 직접 언급했듯이 '''그 전까지는 방송에서 솔로곡을 완창한 적이 없었다.''' 평가할 만한 솔로 무대가 유튜브 영상 외에 없었으니 솔로로서의 평가가 박했던 것이다.
         가창력이 워낙 빼어나서 많이 가려져 있지만 춤 실력 또한 의외로 출중하다. 프로듀스 101의 지원서에도 댄스가 특기라 적어뒀으며 <다시 만난 세계>나 <같은 곳에서>의 직캠을 보면 '춤선이 은근히 곱다'는 응이 제법 나온다. 애초에 [[SM엔터테인먼트]]에 보컬이 아닌 '''댄스 특기자'''로 지원했는데, SM엔터테인먼트에 노래를 잘하는 인재가 많은 걸 알고는 보컬 연습에 집중해 지금의 실력을 얻었다고 한다.
         '''개별 활동의 가장 큰 수혜자.'''[* 세정과 미나, 채연은 아이오아이의 첫 완전체 활동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원 소속사들의 무리한 욕심으로 개별활동을 시작했기에 I.O.I 팬들의 불안감과 배신감이 상당히 컸고, 그렇게 좋지 않은 여론을 뒤로 하고 무리하게 개별 활동을 시작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못했기에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면 연정은 유닛 활동이 성과를 거두면서 팬들이 어느 정도는 개별 활동을 너그럽게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고, 무엇보다 스타쉽에서 작정하고 연정을 메인으로 팍팍 밀어주면서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10월 17일 《miss me?》를 통해 I.O.I 완전체로 컴백했다. 타이틀곡 너무너무너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주어진 파트가 메인보컬치고 상당히 적다는 것.''' 이는 박진영이 프로듀서를 맡아 생긴 변화이다. JYP는 난이도 있는 박자와 중음역대 위주의 곡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유연정은 깔끔하고 파워풀한 발성과 고음역대의 애드리브로 곡을 이끌어가다보니 '''JYP 스타일과는 상극'''과도 같기 때문이다.[* 또다른 메인보컬인 김세정은 대로 중저음대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후렴부와 애드리브 파트가 많이 늘었다. 김세정이 녹음할 때 [[박진영]]이 감탄하는 장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I.O.I 활동 최초로 메인 파트를 맡지 못하고 소미와 세정에게 그 역할을 넘기게 되었다.
         면 수록곡 <잠깐만>에서는 ''''유연정을 이제야 제대로 활용하는구나''''는 응이 나올 정도로 대호평. 브릿지 파트에서 고음 애드립을 폭발시켜 후부의 아련한 감정을 제대로 고조시켰다. 이 곡의 프로듀서 진영 또한 유연정의 장점과 팬들이 원한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호평을 받았다.
         === 음 외 ===
         I.O.I의 첫 앨범 <Crush> 뮤비에서 세정을 중앙에서 팔로 밀어내거나 아예 중앙을 뚫고 오는 등 지나치게 센터 자리를 의식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992762&page=1&exception_mode=recommend| <Crush> 뮤비 센터 분석글(프로듀스 101 갤러리)]]. 간간히 나오거나 아예 제대로 비춰주지도 않는 다른 멤버에 비해 '''유연정이 압도적으로 분량이 많다.''' 다만 세정을 밀쳤다며 악플이 많은 것에는 론이 있다.~~무슨 론?~~ 이후 새로 편집된 뮤직비디오가 을라왔으며, 다른 멤버들의 원샷이 추가되어 연정의 센터 분량이 줄어들게 되었다. 네티즌들도 대부분 "뮤비를 처음부터 이렇게 제대로 만들지 그랬냐"는 응이다.
         우주소녀는 비교적 최근에 데뷔한 데다 중국과의 합작 걸그룹으로 스타쉽만이 아닌 중국 투자자 측에서도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솔로 데뷔를 하지 않는 이상 연정은 데뷔를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연정을 스타쉽이 놓아줄 리 만무하기에, 현실적으로 연정이 걸그룹으로서 데뷔를 하려면 우주소녀에 합류하는게 적당한 방법이긴 하다. 비록 연정의 인기에 빨대를 꽂아 우주소녀를 띄워보려는 스타쉽의 의도가 뻔히 보이긴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중합작인 그룹 특성상 중국 투자자측이 입김을 작용했을 거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주소녀 본체의 인지도나 인기가 연정 개인에게 못 미치는 상황이기에''' 연정 투입으로 우주소녀는 화제성을, 연정은 빠른 데뷔를 할 수 있어 서로 윈윈'''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대로 CLC, DIA, 구구단의 전철을 밟아 우주소녀와 연정 양쪽에게 해가 될 것이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어느쪽이건 컨셉 개편을 어이없어하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당시에 연정의 팬들은 연정의 우주소녀 합류를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 스타쉽은 6화의 인성 논란과 11위로 데뷔했다는 것으로 인한 타 연습생 팬들로부터의 비난, <Crush> 때 엠넷의 무성의한 편집으로 인한 비난 등 '''아직 어린 연정이 쉽게 감당하기엔 버거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악플과 무분별한 비난'''들이 연정을 향했음에도 그동안 아무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다. 결국 연정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11위 안에 들어야 했다. 이어서 불호의 시선들도 모두 스스로의 실력과 노력으로 잠재웠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주소녀의 컨셉 시스템까지 개편해가며[* 컨셉의 문제는 물론, 합작프로젝트라는 이유 때문이거나, 소속사 내에 적체된 언니라인 연습생들 데뷔 해결 등의 문제로 연정(을 포함한 나머지)을 배제한 채 데뷔해놓고, 첫 앨범 응이 미적지근하다고 판단해 뒤늦게 내놓은 조치라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정을 꼽사리 끼워 이득을 보려 하는 건 연정이 그동안 소속사에게 조금도 보호받지 못하던 걸 지켜봐와야 했던 팬들의 입장에선 다행이지 싶으면서도 복장이 터질 수밖에 없다. 활동에 대한 응이 좋지 않으면 또다시 애먼 연정에게 수많은 비난이 쏟아질 것이 자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2016년 7월 28일 우주 LIKE 소녀을 통해 우주소녀로서 공식적으로 방송에 출연했다. 다만 최종회다보니 방송상의 비중은 없다시피했다. 또한 I.O.I 멤버들과 활동할 때보다 몸을 사리고 있어 우주소녀에 무사히 녹아들어갈지 우려하는 응이 나오기도 했다.
         2016년 9월 23일 배성재의 텐에 리더 엑시와 함께 출연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jsVX0YY8bm8|풀버전]] 배성재와 눈싸움으로 붙어 80초 가량 눈을 떠서 승리했고, 연관검색어 토크에서는 '라미란', '고민 상담' 등에 대해 얘기했으며, 사이다 보컬이라는 별명에 맞게 사이다 광고 컨셉의 연기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eye돌', '[[장성군|장성]] 독사이다', '제갈광명' 등의 별명을 얻었다. 중간에 스타쉽 오디션에서 불렀다는 이선희의 <인연>을 무주로 짧고 굵게 불렀다.[[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8965744&rtes=y&startDuration=26.57|#]] 잊을 때만 되면 배텐에 김소혜나 프로듀스 1077 게스트에 의해 언급되어, 채팅창이 광명독사로 도배되고는 한다. 연정이 출연료 주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
         2016년 SBS 가요대전에서는 모모랜드, 구구단, DIA, CLC, 라붐과 함께 49명이서 콜라보 무대를 선보였다. 본인들의 노래 <비밀이야>를 부를 때는 팀의 대표로서 센터에 섰다. 이 때 미모가 폭발한 레전드 짤이 나왔는데, 엠팍같은 남초 사이트에서도 '''너무 예뻐져서 당황하는''' 진귀한 응이 나왔다.[[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p=1&b=bullpen2&id=6876015&select=title&query=&user=&reply=|#]]
         == 음 목록 ==
         ||<table align=center> 솔로및 단독 참여음 만 기록합니다. [[우주소녀]] 멤버들과 함께 참여한 음은 우주소녀/음 목록 문서에 기록해주세요. ||
         === 참여 음 ===
          * 2018년 4월 4일 비가 세게 오는 날 쇼챔피언 야외 특집으로 실외에서 리허설을 하는 도중 초에 아주 세게 넘어지면서 머리를 박아서 잠시 음악을 중단시켜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본방 때엔 맨발투혼을 선보였다..--
  • 유승민(정치인) . . . . 25회 일치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정치인)|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유시민]]이 나온 중학교다. 즉 유승민이 유시민의 중학교 2년 선배. 심지어 대학도 서울대 경제학과로 과까지 같은 직속 선후배다. 얼핏 학연과 지연(대구)으로 얽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무관하고 정치인생이 정대. 또한 유시민의 유는 柳라 혈연은 확실히 없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차차 사이가 멀어졌고, 이때부터 소위 "탈박"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된다. 저 당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중 대표적인 예로, 박근혜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유승민이 "새누리당은 당명으로 쓰기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종교적인]] [[영세교|색채]]가 너무 짙은 이름이다"라는 이유로 정면으로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80346&news_area=020&news_divide=&news_local=20&effect=4|대했던 일]]이 있다. 그 뒤로는 소위 탈박 내지 [[비박#s-4|비박계]] 인사로 분류되었다.
         1999년부터 시상된 '백봉신사상'은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상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상이며, 사실상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상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상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이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절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혜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태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식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당시 파업 중인 노조대표들과 면담하는 유승민. 심지어 당시는 2012년 총선 직전이였다. 당시 여당이였던 [[한나라당]]의 심장과도 같은 [[대구광역시]]에서 출마하는 한나라당 후보자가 당시 정부에 대되는 소신을 지킨 것.
         >상임위 체제로 가니까, 모든 의원 분을 뵙기는 어려워요. 저희 상임위에서 보자면, 유승민 의원이라고 저희 위원회 위원장님이신데요. 사실 국방위 특성자체가 여야가 구분을 많이 짓지 않거든요. 사안 자체가 특별한 법률이 아닌 이상은 일적으로 국가적 아젠다니까요. 그런 데다 유승민 위원장님이 여야 안배라든가 효율적 운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세요.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인품이 좋으신 게 느껴지세요. 그리고 가장 좋은 건, [[간식]]을 잘 챙겨주세요.
         유승민은 [[경제학]] 박사 출신의 경제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제18~19대 국회에서 8년 연속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특히 19대 국회 전기에는 국방위원장으로도 재직했다. 당시 경선 상대였던 황진하 의원(육군 중장출신)과 맞붙을 당시 '''"병장이 장군을 이겼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국방위원회]]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위원회 같지만, 19대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활동을 했던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첫 번째로 지역구 예산을 챙겨주기 어려우며, 두 번째로 완전하지 못한 민군통제원칙에 인한 제약, 마지막으로 피감기관이 적고 언론 노출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비인기 위원회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후기에는 국회 정보위원도 겸임하였고 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경제학자 출신답게 2013년에는 새누리당 사회적경제특위 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특히나 한나라당의 토론 에이스이자 저격수였던 유승민이 국방위로 자리를 옮기자, 그야말로 국방부와 군 장성들을 압도하는(...) 논리와 날카로운 질의로 화제를 모았다. 예를들어 2009년 1월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제2롯데월드 관련하여 공군참모총장 본인의 주장을 본인의 발언으로 박하게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 유승민 의원 : 이 문제를 지난 15년 동안 대해온 여러분 선배들은 거짓말 하나? 누가 맞는 건가?
         국회 내 대표적인 [[THAAD]] 도입론자이며, "국내 예산으로 [[THAAD]]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따르면, 2013년부터 [[THAAD]]도입을 주장했는데 정작 그땐 [[친박]]계에서 대했다고(...) [[http://defense.na.go.kr/servlet/Download?committeeId=2005110000006&boardId=2006011000274&recordId=2014010040549&fileId=01|2014년 1월에 실시한 북핵방어관련 세미나 자료 -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유승민 당시 국방위원장은, 북핵대응 강화를 위해 기존의 종말단계 하층방어에서 중 고고도를 포함한 다층방어 체계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북핵(미사일) 방어능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우며, 현재 저고도 방공을 담당하는 대한민국의 PAC-2는 독일에서 중고로 들여온 1980년대 연식에 원래는 전투기 요격용(...)으로 개발된 체계이기때문에 효용성이 낮다.
         면 [[대한민국 공군|공군]]력 건설, 특히 [[KFX]]나 [[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KFX 관련 주요 기술의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방사청과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며 여권 소속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대안으로 KFX F-35 도입으로 전환,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력 강화를 선호하는 이상주의적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산 무기의 여러 결함 때문에 검증된 미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현실주의적 [[밀덕]]들에게는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KFX의 경우, 실패하면 그대로 [[대한민국 공군]] 미래전력을 다 말아먹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차라리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접고 검증된 미국제 전투기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이 [[밀덕]]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많다.]
         이러한 국방과 안보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시절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시절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란 사태 당시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공약으로 군 의문사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도 절차상의 하자와 국민동의 미흡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찬성입장을 보이고, 사드 조기배치 및 추가 2~3포대 설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 핵무장은 대하지만, '공포의 균형'을 근거로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미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NATO식 핵공유를 모티브로 삼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NCND(Neither Confirm Nor Denied) 즉 전술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토론에서 밝혔다.
         >"조국은 땅이 아니다. 땅은 그 토대에 불과하다. 조국은 이 토대 위에 건립한 이념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사상이며, 그 땅의 자식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다. 당신의 형제 중 어느 하나라도 투표권이 없어 나라 일에 자신의 의사를 전혀 영할 수 없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교육받은 자들 사이에서 교육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한,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일할 수 있고 또한 일하고자 하는데도 일자리가 없어 가난 속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야 하는 한, 당신에게 당신이 가져야만 하는 그러한 조국은 없다. 모두의, 그리고 모두를 위한 바로 그 조국을 당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저는 이 연설을 쓰면서, 2012년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저희 새누리당의 공약이었습니다. 문제는 134조 5,000억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이 성합니다. (중략)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 2,000억 원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세금과 복지의 문제점을 털어놓고, 국민과 함께 우리 모두가 미래의 선택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을 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중략) [[유승민|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정치는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인 [[김성태(1958)|김성태]] 의원의 원내대표 연설 때마다 꾸준히 재평가받고 있다. 제1 야당의 원내대표가 연설을 하면 여당은 몰라도 다른 야당들이 어느 정도 동조를 해주기 마련인데 오히려 여당(민주당)은 비웃고 다른 야당들은 '저게 뭐냐' 는 응이니 무게감있고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두루 공감받던 유승민 의원의 연설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한나라당]] || '''7,613,660 (35.76%)''' || '''당선 (14번)''' || [* 2005년 9월 의원직 사퇴 / 대구 동 을 지역구 재보궐 출마 - 부연 설명하자면,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당선된 사람이, 같은 17대 국회의 지역구에 공석이 생기자 의원직을 사퇴하고 해당 지역구 재보궐에 출마한 거다(...)--재선 같은 초선-- 이에 대해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던지라 당시에도 말이 많았는데, [[박근혜]] 당시 당 대표와 김무성 당시 사무총장의 의중이었다. 사실 이건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가 워낙에 쎘던 것도 있다. 실제로 두 후보는 후보등록 마감 직전에도 오차 범위내에서 접전을 벌였고, 당일에도 유승민은 정권 레임덕 + 현역 의원 공천 + 텃밭 프리미엄 + 일적으로 민주당계가 열세인 재보선임에도 고작 8% 차로 신승했다.] ||
         || 2005 || [[2005년 재보궐선거|하기 재보궐선거]] (대구 동 을 국회의원) || [[한나라당]] || '''36,316 (52.03%)''' || '''당선 (1위)''' || '''초선'''[* 전임자 [[박창달]] 선거법 위으로 당선무효] ||
         충격이 컸던지 이때부터 유승민은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좌관을 얼마두지 않는, 최소한의 보좌관만 데리고 일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2015년 모 언론사 보도에 의하면, 지역구인 대구 동구의 사무실 직원들까지 합해 유승민은 총 15명가량을 보좌관과 운전기사 등으로 둘 수 있지만, 그 절도 안되는 인원만 고용하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윤채경(가수) . . . . 25회 일치
         >'''안녕하세요, [[APRIL]]의 짝 빛나는 채경입니다!'''
         '''[[I.B.I]]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멤버'''[* 실제로 [[I.B.I]]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눈물날 정도로 안 끝나는 불운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해인(1994)|이해인]]은 새로운 소속사를 찾았으나 공황장애 때문에 스스로 나와야 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마지막 걸그룹 도전이라고 했던 [[아이돌학교]]에 도전했으나 끝내 최종 문턱에서 탈락한 후 서바이벌 은퇴를 선언하고 근황이 묘연하다. [[한혜리]]의 경우 [[스타제국]] 자체가 이미 망해 가고 있는 기획사인 데다가 [[올망졸망]] 데뷔가 무산되어 2017년 7월 25일 스타제국과 결별한 후 재기를 노리며 [[믹스나인]]에 출전했지만, [[빅뱅(아이돌)|빅뱅]] [[승리(빅뱅)|승리]]에게 큰 혹평만 받고 [[광탈]]의 수모를 당함과 동시에 실력 문제가 제대로 까발려지면서 [[프로듀스 48]]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사실상 끝났다. [[이수현(1996년 9월)|이수현]]은 소속사가 공중분해되어 예정되었던 걸그룹 데뷔가 무산됐고, 더군다나 [[펜타곤(아이돌)|펜타곤]] [[홍석|양홍석]]과의 열애설 해프닝까지 불거지면서 본인의 이미지도 급추락한 후 역시 근황이 묘연하다. [[김소희(1995)|김소희]]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긴 했으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여성 솔로 가수가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고, 더불어 동 시기에 '''[[레드벨벳|너무]] [[EXID|강한]] [[TWICE|상대]]'''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차라리 [[THE iDOLM@STER.KR|아이돌마스터]] [[리얼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실제로 김소희 외에 [[프로듀스 101]] 출전자들 중 [[김주나]], [[황인선]], [[강시라]]가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나 뚜렷하게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으며, [[NCT]] / [[세븐틴(아이돌)|세븐틴]] / [[마마무]] / [[에이핑크]] / [[레드벨벳]]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오마이걸]]과 엠카 및 쇼챔에서 맞짱뜬 '''[[청하(가수)|청하]]'''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단, 절대적으로 보면 [[I.B.I]] 출신 중에서 가장 성공한 멤버가 채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I.B.I 출신 중 상대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아진 멤버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려서 [[김소희(1995)|김소희]]라는 의견도 많다. 윤채경의 경우 퓨리티 - 카프 등을 이어오면서 얻어온 인지도 및 팬층이 적지 않게 있고 나름 중요성을 인정해 DSP에서도 계약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이나 I.B.I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데뷔했거나, 예능출연 등 방송인으로 나갔을, 즉 지금만은 못해도 나름 연예인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소희의 경우 프듀 출연이 아니였다면 영원히 일인으로 남았을(즉 대중들이 전혀 몰랐을) 확률이 높다. 잘해 봐야 타인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던가 타인의 뮤비에 단역으로 나오던가.]
         [[퓨리티]] 멤버였다가 2014년에 팀이 해체된 뒤, 서바이벌 프로그램 [[카라 프로젝트]]와 [[프로듀스 101]]에 참가했다. [[프로듀스 101]] 최종회에서 탈락하고 2개월이 꼬박 지난 2016년 6월 1일, [[APRIL]] [[김채원(APRIL)|김채원]]과의 콜라보레이션 싱글인 '[[시계(음)|시계]]'로 국내 정식 데뷔를 했다.
         5월 2일, [[http://www.nailtv.com|네일TV]] 5월호 화보에 나온다고 한다. [[https://www.instagram.com/p/BE56Is3PH58|여신 강림]] 여담으로 네일TV 화보는 원래 비매품으로, [[윤채경 갤러리]] 갤러들을 위해 100권 정도를 특별히 일판매 했는데 나절만에 완판되었다.[* 이 문단은 2017년 3월 한 방송에서 채경이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haekyoung&no=179151|스스로 '''인증'''했다.]] ~~작가가 나무위키러? 나절만에 완판이라는 문구는 여기밖에 없는데?~~] 갤러리 내에서는 굿즈 1호라고. [* 이때 [[퓨리티]] 시절 CD/DVD를 구입하려는 갤러들로 인해 일본 내 인터넷 소핑몰 재고를 단숨에 품절시켰다.]
          LTE에 [[이해인(1994)|핸]], [[이수현(1996년 9월)|푼]]이 합류했다. 실제 절친인 이수현을 만나자 정말로 가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음악의 신 2]]》에 [[http://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16061017534610207|한혜리도 참여한다고 한다.]] 이로써 '''[[김소희(1995)|퀵]][[채경(APRIL)|빛]][[한혜리|짹]][[이수현(1996년 9월)|푼]][[이해인(1994)|핸]]'''이 다시 한 방송에 모이게 됐다.[* 유감스럽게도 다섯이 한 자리에는 모이지 못했다. 한혜리는 8회에 참여했는데 8회에 푼핸이 나오지 않았다. 7회에서 넷은 한자리에 모였다. ~~다섯은 [[I.B.I|나중에]] 모인다.~~] 이날 C.I.V.A 멤버들은 여름 화보를 촬영하였다.
          탁재훈이 가게를 오픈하자 C.I.V.A는 데뷔를 앞둔 상황에서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앞에서 춤을 추게 된다. 그리고 음 녹음 함께 그동안의 출연진이 총출동한 C.I.V.A 뮤직비디오를 촬영한다. 그리고 윤채경의 생일이기도 한 7월 7일 디바의 노래 '왜 불러'를 리메이크한 음원이 발표되었다. [[C.I.V.A]] 문서 참고.
         == 음 목록 ==
         ||<table align=center> 솔로 및 단독 참여음만 기록합니다. [[APRIL]] 멤버들과 함께 참여한 음은 [[APRIL/음 목록]] 문서에 기록해주세요. ||
          * Digital Single 《[[시계(음)|시계]]》는 채경이 APRIL 합류전[* 연습생 신분일때, ~~ 《음악의 신 2》에서도 연습생~~] 2016년 6월 1일 발표한 음이므로 이 문서에 기록합니다.
          * [[I.B.I]]의 음은 [[I.B.I]] 문서 참고.
          * [[C.I.V.A]]의 음은 [[C.I.V.A]] 문서 참고.
          * [[퓨리티]] 시절의 음은 [[퓨리티]] 문서 참고.
         === Digital Single 《[[시계(음)|시계]]》 ===
         2016년 6월 1일 발매. [[시계(음)]] 문서 참조.
          * 작고 가녀린 체구와 다르게 전으로 --상당히-- [[글래머|훌륭한 몸매]]의 소유자다. 멤버들이 꼽은 에이프릴에서 가장 몸매가 예쁜 멤버이기도 하다.
          * 인디 싱어송라이터 [[오지은(가수)|오지은]](a.k.a 홍대마녀)이 웹진 [[ize]]의 기사를 통해 윤채경을 응원했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32713077230581|윤채경, 울면서 달리는 소녀]]에서 '''망국의 공주와도 같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가졌다며 윤채경이 조선의 마지막 공주였다면 왕정제가 부활했을 것이라 하였다. --이건 박할 수 없다... 망국 [[DSP미디어|DSP]]...--
          * 프로듀스 101 방송에서 불쌍한 이미지로 잡혀서 놀랐다고 한다. 모든 장면이 불쌍하다고 나왔다고 웃으면서 인터뷰. 그러한 이미지가 잡히게 된 6화 양화대교 미션에서 방송과 달리 본인은 정말 재미있게 미션에 임했다고 한다.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921780|‘프로듀스101’ DSP 윤채경 조시윤, 연습생 5년차의 란 (인터뷰)]]
          * 2016년 한해 [[소녀온탑|서로]] [[시계(음)|다른]] [[C.I.V.A|4개]] [[I.B.I|그룹]]으로 나와 4번 모두 [[멜론(웹사이트)|멜론]] 100위 안에 차트인했다.[* 한 해 데뷔하는 걸그룹 중 [[멜론(웹사이트)|멜론]] 실시간차트 100위 안에 한시간이라도 차트인한 그룹의 비율이 10%가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성과.]
          * 나이에 비해 이력서에 들어간 게 매우 많다. 퓨리티 - 카라 프로젝트 - [[프로듀스 101]] - 채채 - C.I.V.A - I.B.I - APRIL 등 해 본건 정말 많다. 윤채경이 나중에 음기획사를 차리게 되면, 이 경험들이 엄청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가수 출신 [[연예 기획사]] 사장이 많이 있다. [[연예 기획사]] 사장 [[삼대장]]부터 마삼트리오의 [[이수만]], 비닐바지의 [[박진영]],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다. [[WM엔터테인먼트]]의 이원민 대표도 가수와 매니저를 거친 사람이다.]
  • 은혼/641화 . . . . 25회 일치
          * 해방군 모선 내부의 [[다카스기 신스케]], [[카와카미 사이]], [[키지마 마타코]]는 내부에서 중추시설을 요격하려 하나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 사이는 부상을 입은 몸에도 불구하고 분전하며 신스케와 마타코를와 함께 돌격한다.
          * 전투 중 저격에 당한 사이는 자신도 헨페이타가 하듯 신스케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 결심하고 신스케를 선행시키고 자신은 척후를 맡는다.
          * 몰려드는 적들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사이와 헨페이타. 그들은 영웅을 위해 죽기 보단 친구와 살기 위해 싸운다고 다짐한다.
          >그 무수의 15분 안에 드시 기적을 붙잡을 열쇠가 있을 겁니다.
          지금껏 신스케의 부축을 받았던 [[카와카미 사이]]가 여기서부터는 자기 발로 걷겠다고 일어선다. 이제부터는 하나라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그들의 승리조건이다. 그가 신스케에게 할 말은 이것 뿐이다.
          * 폭연이 길을 매우고 해방군은 거기다 소총을 연사하며 돌진한다. 소수의 적을 고립, 격멸시키고자 펼친 전술이었겠지만 적의 여력을 오판했다. 연기 속에서 걸어나온 한 남자가 묘한 기술을 쓴다. 샤미센, 어느 틈에 적진 가운데로 침투한 사이의 샤미센 현이 그들을 휘감았다. 이제 그가 다루는 악기일 뿐이다.
          * 거침없이 나아가는 신스케와 마타코. 그리고 조금 뒤에서 그들의 뒤를 받치고 있는 사이. 부상의 영향은 느낄 수 없었다. 사이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건 한 가지 확신이다. 넘어설 수 있다, 빠져나갈 수 있다, 제 아무리 많은 적들이 있더라도 그대, 신스케와 함께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사이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런 환상을 품게되는 자신에 놀라워했다.
          신스케는 영웅이기 때문에 동료와 적의 시체를 밟고 가는 유형은 아니었다. 그는 그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얼마나 슬픈지 보통보다 뼈져리게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간건 시대가 그에게 강요한 내용이었다. 사이가 본 신스케란 인간은, 그저 한 사람의 연약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기분 나쁜 총성이 울렸다. 전방을 정리하고 있던 신스케, 마타코그 후방에서 들려온 섬뜩한 소음에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그들이 뒤를 확인하기도 전에 사이의 경고가 들렸다.
          사이는 총상을 입은 복부를 숨겼다. 적의 2파가 몰려오고 있었다. 바주카를 장비한 병력이었다. 적이 막 신스케를 노리려 할 때 사이는 과감하게 칼을 던져 적의 병기를 유폭 시켰다. 거기서 일어난 폭발이 복도를 붕괴시켰다. 벽과 천장이 무너지면서 적 병력과 신스케가 양단됐다. 그리고 사이는 적들과 함께 남았다.
          * 신스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현으로 칼을 회수하는 사이의 모습. 이미 각오를 굳힌 그였다. 그의 각오란 신스케가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하는 것. 신스케가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도, 그게 그가 멈춰도 될 이유가 되진 않았다. 아직 신스케는 아직 뒤돌아 봐선 안 된다. 그저 앞만 보고 나가야 한다.
          사이의 모습이 무너진 잔해 뒤로 사라졌다. 이제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사이가 무전으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수비가 엄중하다면 차라리 적을 이쪽으로 집중시킬 테니 신스케와 마타코가 선행하라고 말한다. 물론 신스케가 납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는 자신도 곧 뒤따라가겠다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비록 복부의 총상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곳이 어디라도 드시 따라잡아 보일 테니.
          * 방금 전 바주카로 사이를 공격했던 해방군 병력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체를 확인하러 접근하는 순간 그가 격을 시작하자 시체가 움직인다고 밖엔 생각하지 못했다. 사이는 그들의 목을 따져 "아직은 아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의 검은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현의 움직임은 정교했다. 그는 해방군으로부터 뺏은 소총을 현으로 조종해 스스로 엄호사격을 펼친다. 적들을 마치 볏단처럼 썰어넘겼다. 사지에 오고 나서야, 죽음이 다가오고 나서야 그는 옛날의 각오가 잘못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자신 뿐 아니라 저 우주의 헨페이타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불사신처럼 보였던 사이. 그러나 해방군의 사격은 한 발 한 발 그의 사지를 관통했다. 에너지 중추로 접근하는 헨페이타의 우주선도 비슷한 신세였다. 사이가 짐작했듯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옛날에 신스케를 위해 죽기로 했던 그 결심이, 이제와서 후회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생을 부여잡고자 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이 전쟁의 끝이 보고 싶다. 이 전쟁이 끝나서 영웅이 아니게 된 한 명의 친구, 신스케의 옆에서 살고 싶다 바라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25회 일치
          * 일곱 개의 대죄 앞에 모습을 드러낸 메라스큐라는 그들을 직접 쓸어버리기 위해 거대한 뱀의 형상을 드러낸다. 맨 처음 노린 것은 [[(일곱 개의 대죄)|]].
          *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이 을 구하기 위해 날아가지만 역부족이었고 과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만류를 받는다.
          [[(일곱 개의 대죄)|]]은 엘리자베스를 따라온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을 질책했다. 그녀가 좋지 않은 몸상태로 무리를 한 게 가슴 아팠다. 엘레인은 과 모두가 걱정돼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은 이제 그 문제를 묻어두고 지금이라도 빨리 돼지의 모자 정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엘레인이 대답을 피했다.
          거기에 대답하기 적당한 사람은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말도 없자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그녀에게 왕녀가 묻지 않느냐고 대답을 부추겼다. 우두커니 있는 그녀에게 엘리자베스가 먼저 다가갔다. 그녀는 새삼스럽게 아주 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굴었다.
          * 형태가 무너지던 그녀의 몸은 팽창을 거듭해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 쌍의 뿔이 달린 사악한 뱀. 그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메라스큐라는 이 형태를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은 지금까지 모습보단 이쪽이 낫다고 빈정거렸다. 그 때문인진 모르지만 메라스큐라가 제일 먼저 노린 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이었다. 메라스큐라의 주둥이가 을 덮쳤다. 멀린은 고서와 엘레인을 퍼펙트 큐브로 보호하며 상공으로 날아올랐고 에스카노르가 호크가 휘날려가지 않게 붙들었다.
          * 뱀의 아가리에 걸린 은 위아래로 닥쳐온 턱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입을 잘못 놀린 덕에 화를 자초한 셈일까? 이 아무 말 안 했더라도 메라스큐라는 그부터 손볼 작정이었다. 자신이 심장 여섯 개를 잃은 건 순전히 때문이라고 원망하고 있었다.
          >너는 위액으로 녹았다 재생하는 걸 평생 복하는 거야!
          뱀의 혀가 의 허리를 휘감았다.
          * 은 입에 문 채로 코란도의 폐허를 휘젓는 메라스큐라. 엘레인은 퍼펙트 큐브를 뛰쳐나와 그 뒤를 쫓았다. 을 구하기 위해서. 이 오지 말라고 외쳤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엘레인이 "추격의 회오리바람"으로 메라스큐라를 공격했다. 하지만 약해지기까지 한 그녀의 힘으론 도저히 메라스큐라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뱀이 귀찮은 듯이 그녀를 꼬리로 쳐냈고 디안느가 아슬아슬하게 받아냈다. 은 제발 무리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오빠 할리퀸도 같은 의견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엘레인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난 언제나 에게 보호받고 에게 응석 부렸어...
          그러나 메라스큐라는 원하는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고개를 돌린 순간 엘레인은 바람 보다도 빠르게 그녀의 입 속에서 을 낚아채갔다. 동료들은 그녀의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크가 측정한 엘레인의 현재 전투력은 마력 18000, 무력 50, 기력 3000, 총합 21050.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힘으로 바뀌어 나타났다,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엘레인은 아름다운 나비의 날개를 드리우고 있었다.
          은 그녀의 각성을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다 웃었다. 그리고 힘껏 연인을 끌어안았다.
  • 정찬성 . . . . 25회 일치
         같은 해 5월에는 역시 일본의 신성인 카네하라 마사노리를 상대로 8강전을 치르지만 아깝게 분패하고 말았다. 카네하라가 상위를 차지하고 정찬성이 하위에서 서브미션을 시도하는 형태로 흘러갔다. 카네하라는 정찬성의 타격을 봉쇄하며 초을 뚜렷한 우세를 보였다. 스탠딩에서는 정찬성의 우세였고 중 이후에는 전체적으로 호각인 양상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카네하라의 만장일치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칙으로 인정되면서''' 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2010년 10월 WEC 51에서 조지 루프와의 대결했다. 정찬성이 미국 입장에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전 경기가 너무나 재밌어서 단 1경기만을 치르고 이 경기부터 메인 매치에 편입되었다([[김동현]] 선수도 2전째인 UFC 88의 VS 맷 브라운 전부터 방송경기이긴 했다. 그러나 이쪽은 원래 메인 매치중 [[카로 파리시안]]의 경기가 있었으나 파리시안이 부상을 당해 해당 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다크매치였던 김동현의 경기가 메인 매치로 격상된 것). 다소 끌려다는 듯한 느낌을 주던 정찬성은 2라운드 초 과감한 공세를 펼쳤으나 루프의 원투-하이킥 콤비네이션을 정통으로 허용하며 생애 첫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제발 가드를~~
         간혹 '레프리 스탑이 너무 일렀다' 라며 까는 여론도 있는데 위의 짤방을 보면 알겠지만 호미닉은 다운 된 뒤 턱에 정타를 대 여섯대나 맞았다. 의식이 혼미해 가드도 제대로 올리고 있지 못하던 상황. 저 때 스탑 안 걸면 '''진짜 죽는다.''' 호미닉도 인정했듯이 레프리 스탑의 타이밍은 전혀 문제가 없다. '정찬성이 잘한 게 아니라 호미닉이 바보짓을 했다' 라는 의견도 있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페더급 뿐만이 아니라 MMA 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복싱 테크닉을 바탕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호미닉이 본인의 특기를 버리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붕붕훅을 날린 것은 확실히 변명할 수 없는 바보짓. 하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것이고, 무엇보다 그 짧은 타이밍을 잡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또 호미닉이 한 행동부터가 매너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호미닉은 경기가 시작하고 글러브 터치를 하자마자 공격했는데 그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고 확실한 격에 성공한 것은 정찬성의 실력이다. 그리고 사실 이 경기 승리는 정찬성에게 의미가 큰데, 흔히들 말하는 인생에 한 번 올까말까하는 기회를 움켜잡은 셈이다. 그 때문인지 경기에 이긴 뒤 눈물을 흘리며 호미닉을 포옹했다.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상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상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영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 상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식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버뮤데즈의 레슬링을 의식했는지 가드를 꽤 아래로 내리는 스타일로 경기를 시작했고 초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경기를 괜찮게 풀어갔다. 하지만 펀치가 대부분 빗나가면서 확실히 경기감각을 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버뮤데즈의 큰 라이트 펀치를 맞으면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뮤데즈의 왼손 셋업을 피하고 날린 어퍼가 그대로 턱에 꽂히면서 1R 2분 30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말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 상태에서 안말릴 경우 맞던 사람은 후유장애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찬성을 언더독으로 평가했지만 코리안 좀비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을 말하면서 연습했던 대로 잘 안됐다고 밝히거나 질문 내용을 못알아들으면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걱정하는 발언을 남기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vod/index.nhn?category=fight&listType=total&date=&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272392&page=1|영상링크]]
         '''정찬성이 6월 2일 오전, 열심히 연습하던 도중에 [[십자인대]]가 심하게 파열되면서, 라마스전이 취소되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 상기까지는 출전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복귀전은 내년 하기나 2019년이 되서야 가능할 전망이다. 라마스전을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무릎 상태까지 악화된다면 정찬성의 맷집이나 기량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더군다나 버뮤데즈 전 이후 어깨 부상이 재발하였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인 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격투기 팬들은 정찬성이 오래 걸리더라도 완치해서 다시 옥타곤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찬성이 생각보다 수술이 매우 잘 되어서 내년 상기 복귀를 목표로 열심히 재활을 한다고 밝혔고, 마찬가지로 부상을 당한 최두호와 같이 "건강해져서 꼭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했을 팬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2018년 7월 중, 정찬성이 원하던 대로 '''프랭키 에드가'''와 경기가 추진 중이라는 뉴스가 각종 해외 격투기 소식에서 나왔다. 게다가 이 소식이 나올 때쯤 정찬성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 ___#기회, #도전, #coming soon___ 해시태그가 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에드가와의 경기에 대한 암시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며, 각종 해외 소식에 의하면 2018년 10월 7일에 열릴 UFC 229에서 이 경기가 있을 것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정찬성의 타격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일단 4KO 의 비중은 결코 적은 게 아니며, [[조지 루프]] 전 이후를 보면 4번의 승리 중 절을 KO가 차지하고 있다. 특유의 맷집을 바탕으로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인파이팅은 상대 선수에게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으며, 긴 리치 덕분에 원거리 전도 가능하다. 189cm에 달하는 정찬성의 윙스팬은 동양인 선수로서는 가히 축복받았다고 할 만하다. 승리 전적에서 타격은 모두 [[펀치]]로 마무리했다.
         장점이라면 상대 입장에서 대처하기가 상당히 곤란한 선수라는 점. 센스와 응용력을 바탕으로 의표를 찌르는 타입의 격투가는 학습한다고 해서, 준비한다고 해서 어떻게 대처하기 쉬운 선수가 아니다. 가르시아는 트위스터를 대비할 수 있었을까? 호미닉은 자신의 초 기습 공격에 정찬성이 그렇게 완벽하게 대처하리라고 생각했을까?
         한국과 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한국의 [[달레이 실바]]라고 불릴 정도로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합기도]]를 배웠고 18세에 [[킥복싱]]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만큼, 타격으로 격투기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런 인기가 영되어 UFC의 CEO [[데이나 화이트]]가 Korean Zombie의 티셔츠를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나기도 했고 UFC 114에서는 게스트로 무대를 찾은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상당한 유명인이 아니면 올 수 없다. UFC 114의 또 다른 게스트들로는 UFC 3대, 5대 웰터급 챔피언 [[맷 휴즈]], [[NBA]]의 슈퍼스타 팀 던컨 등이 있었다.
         팬들 사이에서 걱정하는 것은 역시나 군대 문제. 이미 [[해병대]]로 군 복무를 마친 김동현과 달리 정찬성은 1987년생으로 2012년 한국나이로 26살이니 지금 입대한다고 해도 많은 나이이이지만 본인은 '''"챔피언이 되고서 군에 가겠다."'''고 한 상황이다. 일단 보통 87년생이 정상적으로 대학에 들어간 경우 군대를 가는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1학기만 마치고 갈 경우 2006년 여름 또는 1학년을 완전히 마치고 갈 경우 2007년이다. 육군 기준으로 2009년경이면 전역하기에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군 입대는 너무 늦은 편. 20대 중~후만 되도 소대장, 중대장과 동갑이거나 나이가 많게 된다. 어깨부상으로 인해 공익으로 입대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고, 결국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기로 결정했다. 1번 항목 참고.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25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일적으로 모집에 걸리는 시간은 아시가루는 1턴, 사무라이는 2턴이다. 이는 세력 발전과 같은 요소로 감소시킬 수 있다.
         창을 든 아시가루. 기병에 강한 방어형 유닛이지만 게임 초에는 주력 근접보병으로 운용하게 된다.
         오다 가문의 야리 아시가루는 일 야리 아시가루에 비해 근접전 능력과 사기가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농민 란군이라 사무라이가 없는 잇코 잇키만이 생산 가능. 나머지 세력은 이벤트로만 얻을 수 있다.
          * 불화살(Flaming Arrows) - 궁도(Way of Bow) 기예 연구 요구. 짧은 시간동안 일 화살 대신 불화살을 사용한다. 공격력이 상승하며 선박이나 성문같은 나무로 된 것에 불을 붙일 수 있게된다.
         농민 란군이라 사무라이가 없는 잇코 잇키만이 생산 가능. 나머지 세력은 이벤트로만 얻을 수 있다.
          * 명적화살(Whistling Arrows) - 일 화살 대신 소리를 내는 화살을 적의 머리 위로 쏘아날린다. 해당 화살의 영향범위에 있는 부대는 피아 구분 없이 사기와 전투능력이 감소한다.
          * 명적화살(Whistling Arrows) - 일 화살 대신 소리를 내는 화살을 적의 머리 위로 쏘아날린다. 해당 화살의 영향범위에 있는 부대는 피아 구분 없이 사기와 전투능력이 감소한다.
         농민 란군이라 사무라이가 없는 잇코 잇키만이 생산 가능. 나머지 세력은 이벤트로만 얻을 수 있다.
          * 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난 무역항(Nanban Trade Port) 필요
         농민 란군이라 사무라이가 없는 잇코 잇키만이 생산 가능. 잇코 잇키 전용 유닛이라고는 안 적혀 있지만 잇코 잇키 전용 건물을 요구하니 사실상 잇코 잇키 전용이다.
         일본도로 무장한 기병. 돌격 특화인 야리 기병과는 달리 일적인 근접전 기병이다.
          * 불화살(Flaming Arrows) - 궁도(Way of Bow) 기예 연구 요구. 짧은 시간동안 일 화살 대신 불화살을 사용한다. 공격력이 상승하며 선박이나 성문같은 나무로 된 것에 불을 붙일 수 있게된다.
         ==== 난 대포(European Cannons) ====
          * 난 무역지구(Nanban Quarter) 필요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24회 일치
         항해 둘째 날, 바람을 쐬기 위해 갑판으로 나온 헤이덤은 선원들과 시비가 붙는다. 선원들과 싸우던 헤이덤은 그 광경을 프로비던스호의 선장에게 들키게 된다. 선장은 헤이덤을 디스한 후 선장실로 끌고간다. 둘 밖에 없는 선장실에서, 선장은 함상 란이 일어날 것 같으니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헤이덤은 선장의 부탁을 수락하고는 "다시 한번 나를 모욕했다가는 망설임 없이 목을 잘라버릴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선장실을 나간다.
         항해 28일 째 밤, 선장은 헤이덤에게 선상 란이 머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선원들에게 캐묻고 다니던 헤이덤은 제임스라는 선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1754년, 보스턴 항구에 발을 디딘 헤이덤을 "찰스 리"라는 남자가 맞이한다. 이들은 잡화점에서 검(일 검)과 권총(플린트락 권총)을 사고 그린 드래곤 여관으로 향한다.
          전투 중간 중간 쉴틈이 날때마다 권총을 재장전하고 머스킷을 바꿔잡자. 맨손으로 막은 후 무기 빼앗기-사격-맨손으로 무기 변경을 복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
          여관의 테이블 근처에서 격기를 사용하자. 적 병사가 여덟명이나 되니 두명을 테이블에 처박는건 일도 아니다.
         브래독의 요새 근처에서 만난 두 사람. 헤이덤은 보급품을 운하는 마차에 숨어들어 요새에 잠입한다. 조지 워싱턴과 존 프레이저의 대화를 도청해 브래독이 듀케인 요새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낸 헤이덤은 작전 지도를 훔쳐 요새에서 빠져나온다.
         >(헤이덤이 암살검으로 브래독을 찔러죽인다. 이후 브래독의 손가락에서 지를 빼낸다.)
         둘은 깃털 먼저 찾기로 한다. 라둔하게둔은 새집을 찾기 위해 카니에티오를 데리고 나무 위로 올라간다. 둘은 나무 위에서 보이는 광경에 감탄하지만 라둔하게둔은 일년 내에 백명이 넘는 사람이 정착할 거라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몇년 전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거라는 응을 보인다.
          * 대번포트 농지에서 사람 두명을 만날 수 있다. 코너를 갑게 맞아주며 "원주민 친구구나! 뭐라고 하더라…. 이로쿼이 부족? 그래! 거기서 왔지?"하다가 "이로쿼이 부족"이 맞는지 "이로쿼이 연맹"이 맞는지를 두고 서로 싸운다. 여기에 끼어들면 맞긴 하는데 체력은 닳지 않는다.
         다음날, 마구간에서 자고온 라둔하게둔은 다시 문을 두들긴다. 아킬레스가 아무 응도 보이지 않자 뒷문으로 돌아가 문을 두들기지만 돌아오는건 아킬레스의 "'''내 땅에서 꺼져!'''"뿐. 그러자 라둔하게둔은 발코니로 올라가 들어오려고 한다. 이에 아킬레스는 라둔하게둔의 다리를 지팡이로 걸어 넘어뜨린다. 그러고는 라둔하게둔의 목에 지팡이를 대며 그렇게 영웅을 꿈꾸다간 죽을 거니 세상이 변하는 대로 변하라는 충고를 하곤 들어간다.
          * 고프리와 테리가 낯익을 수도 있는데, 시퀀스 5 초에 대번포트 저택으로 갈때 코너에게 인사하다가 이로쿼이가 부족인가 연맹인가를 두고 치고박던 그 둘 맞다.
         여관 밖으로 나간 코너는 상자를 들고 가던 남자와 부딪힌다. 남자가 운하던 물건은 밀수된 차였다. 코너는 존슨의 부하들이 배달하던 차를 파괴한 후 부두로 가 쌓여있던 차 상자 역시 파괴한다.
         코너는 퍼트넘을 만나러 가는 도중 애국자들 정찰병을 만난다. 정찰병은 애덤스의 편지를 확인한 후 코너를 퍼트넘에게 데려간다. 퍼트넘에게 가는 도중, 코너는 정찰병에게서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애국자들 일부가 벙커힐에서 야영하는 것에 대해 브리즈힐에 야영지를 만들었다. 왕당파는 지금까지 애국자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으며, 핏케언은 때때로 나타나서 애국자들을 도발하거나 안부 인사로 포격을 날리고 있었다.
         코너는 영국군 전열이 사격하는 동안 바위에 엄폐하고, 영국군 전열이 장전하는 동안 전진하는 방식으로 몰튼 힐에 접근, 절벽을 기어오른다. 이후 핏케언의 야영지로 가 식민지인들의 발이 전쟁으로 번진 걸 안타까워 하던 핏케언을 살해한다.
         겨울이 찾아온 1777년, 코너는 워싱턴에게 템플기사단에 대해 알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이에 대하는 아킬레스와 언쟁을 벌인 후, 말을 타고 워싱턴에게 향한다.
         둘은 함께 처치를 쫓기로 한다. 하지만 코너고 헤이덤이고 처치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 상황. 코너는 주변을 조사해 마차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를 알아낸다. 둘이 그 방향으로 가자, 그 곳에는 처치의 마부 하나가 고장난 마차를 두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코너가 그에게 다가가 "벤 처치의 부하이십니까?"라고 공손하게 물어보자 마부는 도망치기 시작한다.[* 헤이덤 曰 "잘했다."] 코너가 마부를 붙잡아 심문해 북쪽의 야영지로 간다는걸 알아내자, 헤이덤이 그거면 충분하다며 마부를 죽여버린다. 헤이덤은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발하는 코너에게 북쪽 야영지에 잠입해 뭔가를 알아내라고 한다.
         코너는 수송대를 미행해 야영지에 숨어들어간다. 그곳에서 용병 대장의 대화를 엿들어 처치가 뉴욕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때, 용병들이 헤이덤을 끌고 온다. 야영지 근처에서 염탐 중이던 헤이덤이 붙잡힌 것. 용병 대장은 처치가 그에 대해 말해줬다는 응을 보이지만 헤이덤은 숨어있는 코너를 보고 당당한 태도를 취한다. 결국 코너는 용병 대장에게 처맞던 헤이덤을 구하기 위해 용병들과 정면으로 맞붙는다. 전투를 벌이던 중, 헤이덤은 뉴욕에서 만나자며 용병들 사이에 코너를 버려둔 채로 가버린다.
         코너가 한달 전 자신을 덮쳤을 때 죽이지 않은 이유를 묻는다. 헤이덤은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대답하며 다른 질문 없냐는 응을 보인다. 코너가 템플기사단이 진짜로 원하는건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헤이덤은 질서, 목적, 방향이라고 말하며 암살단이 말하는 자유는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한다. 암살단이 옛날에 주장했던 목적인 평화가 더 합리적이라고. 코너가 자유가 평화라고 박하자 헤이덤은 자유는 혼돈으로의 초대라고 하며 모두가 자유의 이름으로 쿵쾅거리고 소리지르던 대륙 의회의 모습을 말해준다. 헤이덤은 자기들이 나라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바보들보다는 나라가 되려고 곳에 필요한게 뭔지 아는 리가 더 낫다고 주장한다. 코너가 사람들이 워싱턴을 선택했다고 하자 헤이덤은 배불릴 생각만 하는 특권층 겁쟁이들이 선택한 것이며, 자신과 코너의 유일한 차이점은 자신은 남을 위한 척을 하지 않는 점이라고 말한다.
         1778년, 코너는 아킬레스에게 돌아와 언쟁을 벌인 일을 사과하고, 아킬레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아킬레스는 이제 템플기사단의 세가 약해졌으니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며,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이 연합했을 때 뭘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코너를 보고는 그가 아버지와 만났다는걸 알아낸다. 아킬레스는 헤이덤이 코너를 이해하거나 동의할 것 같냐는 응을 보이지만 코너는 헤이덤을 만나러 뉴욕으로 떠난다.
         둘은 트리니티 교회 앞에 모여있던 왕당파 부대를 습격, 지휘관 세명을 납치한다. 이 과정에서 지휘관 한명이 포박을 풀고 도망가지만 코너가 쫓아가 다시 잡아 조지 요새의 심문실로 끌고간다. 심문실에 먼저 와있던 지휘관 두명은 죽어있었다. 마지막 지휘관은 2일 후에 뉴욕의 병력을 두배로 늘리려는 계획을 말해준다. 헤이덤은 다 말했으니 살려달라는 지휘관을 죽인 후, 다른 두명도 그렇게 말했으니 사실일거라고 한다. 이를 본 코너는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지휘관들을 가둬둘수도 있지 않았냐며 발하지만 헤이덤은 그런데 돈과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후 헤이덤은 밸리포지에서 보자며 심문실을 나가버린다.
  • 은혼/642화 . . . . 24회 일치
          * [[카와카미 사이]]는 홀로 대군을 막아내면서 [[다카스기 신스케]]의 후방을 든든하게 지킨다.
          * 사이와 헨페이타 모두 신스케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 분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점차 한계를 드러낸다.
          * 사이는 마침내 쓰러지나 놀랍게도 자신을 마중온 [[오카다 니조]]의 환영을 보고 일어선다.
          * 남은 시간은 불과 1분. 신스케의 미래를 보고 싶었던 헨페이타와 사이, 둘은 그가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으며 자폭을 감행한다.
          * 지금 헨페이타 일행의 몸을 실은 소형정은 해방군 함대의 집중 공격에 노출되어 언제든 침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메노토리후네 내부에서 분전 중인 [[카와카미 사이]]도 그랬다. 설사 해방군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그는 언제든 쓰러져 죽을 지 모르는 몸이었다. 이제 오른팔 밖에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잘도 움직이고 있다. 이들에게 불굴의 자세는 [[다카스기 신스케]] 때문이다. 그가 아직 아무 것도 포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를 믿듯 그도 동료들의 임무완수와 생환을 믿으며 중추 시스템을 향해 달렸다.
          * 히노카구츠치 발사까지 앞으로 3분. 엔죠 황자는 단신으로 일대의 병력을 묶어두고 있는 사이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을 태세라는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서툰 넘겨짚기였다. 사이의 목표는 달라진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중추 시스템을 향해 한걸음 씩 옮기고 있었고 그때마다 그를 막으려는 병력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이제 벽 하나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적은 셋. 그의 의지가 이겼다.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 남은 셋을 처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고지에 도달했다.
          * 난데없는 폭발과 함께 사이의 몸은 저 멀리까지 튕겨나갔다. 한 걸음씩 걸어온 고지가 다시 멀어졌다. 그는 중추시스템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그 문 뒤엔 쓰러뜨린 것 만큼이나 많은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고 신스케가 얌전히 문을 열개 두지 않았다. 그들은 문 째로 포격을 가했고 사이는 그대로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전과를, 쓰러지는 동료들의 보고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던 최후의 적들은 경계태세를 풀지 않고 철저하게 옭아 매었다.
          * 이제 사이는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이제 적들은 어떻게 나올까 중화기는 아직 이쪽을 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사이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건,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다. 사이가 엎드린 그대로 인사를 건냈다.
          니조가 기억하는 귀병대는 그렇게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는 사이의 안부인삿말에는 관심도 없이 떨어진 그의 샤미센을 주웠다. 그것을 건네며, 자신이 나타난 용건을 밝혔다.
          * 더 많은 이들이 뒤따라 오고 있다. 사이는 편히 누워있지도 못하게 하는 박정한 말을 그대로 따랐다. 시체가 되어서도 짓밟혀서도 거기에 있다, 그런 얘기다. 적들은 다시금 일어서는 사이에게 공포를 느꼈다. 아직도 부족한가? 혼자서 뭘 더 하겠다는 건가?
          어쩌면 사이를 일으켜 세운 것은 그 동료들일지도 모른다. 샤미센이 다시 울린다. 현이 널부러져 있는 해방군의 사체로 뻗는다. 죽은 동료들의 혼이 들어간 듯 일어서는 시체들. 사이가 그들과 함께 행진한다.
          * 적의 화력공세 속으로 무모한 돌진을 감행하는 헨페이타 일행. 먼저 간 동료들과 함께 나아가는 사이.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준 기회를 낭비하지 않는 신스케와 [[키지마 마타코]]. 히노카구츠치 완충까지 2분 여.
          >대표가 응하지 않는다...? 다른 무기들도...?
          * 불사의 사나이가 펼친 시체들의 행진. 해방군의 응은 겁에 질렸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화기가 불을 뿜었다. 이제 전방은 피어오르는 연기로 혼탁하다. 그들은 고작 한 사람을 상대로 이런 화력을 쏟아붓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하고 나서도 폭연 속에서 건재하게 서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더욱 몰랐다. 폭연이 거치면서, 전열에 있던 한 병사가 어떻게 그런게 가능했는지 눈치챘다.
          사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시체에 현을 걸었다. 자기 자신의 시체에까지. 그는 마치 자신이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연출해서 적들의 이목을 끌어왔던 것이다. 해방군은 감탄과 함께 대체 이 남자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무서운 상황이 떠올랐다. 중추 시스템을 수비하던 병력 대부분이 이쪽에 몰려있었다. 사이가 노린 것은 이것. 병력이 빠져서 수비가 약해진 틈에 동료들을 투입 시킬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 여기까지는 똑똑한 병사들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대목. 사이는 거기에 한 가지 고안을 더했다. 그가 죽어서도 놓지 않았던 샤미센이 떨어졌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사이가 계산한 대로였다. 샤미센 뒤에 숨겨놨던, 그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수류탄. 샤미센이 떨어지면서 그 기폭 장치가 작동했다.
  • 이인 . . . . 24회 일치
         '''이인'''(李仁, [[1896년]] [[10월 26일]] ~ [[1979년]] [[4월 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법률가, 정치인이다. 자(字)는 자옥(子玉), 호(號)는 애산(愛山). [[일본]] 유학 후, [[192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개업하고 이후 [[일제 강점기]] 당시 [[김병로]], [[허헌]]과 함께 독립운동가 및 애국자, 사회저명인사들을 상대로 무료변호를 하여 등과 함께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을 거절하였고, 해방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에 가담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국회의원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49년]] 7월에 [[민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어 민특위를 와해, 해체시켰다.<ref>{{서적 인용
         |제목=민특위의 조직과 활동
         이후 언론탄압대연설회 등으로 여러 차례 유치장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조선어학회]]를 비밀리에 지원한다는 혐의로 [[곽상훈]] 등과 함께 요시찰 인물이 되었고, [[1936년]]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소환하기도 했으며, [[조선총독부]]는 그의 변호사 면허를 취소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깨끗한 처신으로 흠을 잡을수 없었다.
         [[1945년]] 광복이후 [[백관수]],[[김병로]]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안재홍]]과 협상을 적극적으로 벌으나, 건준위원장 [[여운형]]이 [[안재홍]]과 이인의 협상결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이 창당되자 창당에 참여, 당무부장이 되었다가 10월 미군의 한도 주둔 이후 [[미군정]] 특별범죄심사위원회 수석대법관(首席大法官) 겸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군정청 특별범죄심사회 수석대법관이 되면서 그는 [[한민당]]을 탈당하였다.
         [[1948년]] 8월 초대 법무부장관이 되었으며, 같은 해 법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어 [[민특위]]법이 제정되었을때, 이인은 다음과 같이 민법에 대를 표명했다.
         * 민족역자 색출에 있어 악질적인 괴수에 그 처벌을 국한시키는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절충안을 작성하였다.<ref>1967년 8월 16일자 [[조선일보]] 기사 발췌</ref>}}
         1949년 3월 [[서울]] [[종로구]]의 국회의원인 [[장면]]이 주미대사 임명 관계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그는 보궐선거에 출마하였다. 3월의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제헌국회의원이 되었고, 6월에 법무부장관직을 사임하였다. [[1949년]] 6월 경찰의 [[민특위]] 특경대 습격사건 이후 [[7월 7일]]에 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인은 [[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고 신변보호를 담당하던 경찰마저도 모두 철수시켜 '더이상 민족 행위자의 체포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ref>1949년 7월 16일자 [[조선일보]] 기사 발췌</ref> 나아가 이인은 민특위 해체를 주요내용으로하는 민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그나마 기소된 [[친일파]]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시켰다.
         유언에 따라 재산은 한글학회에 기증되었고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장지는 [[경기도]] [[화성지|화성군]] 남양면 북양리 산51번지에 안장되었고 2011년 대전현충원(독립지사 제4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저서로는 〈법률과 경제〉·〈법률과 여성〉·〈애산여적 愛山餘滴〉·〈세기의 증언〉 등이 있다.
         * [[1949년]] [[8월 16일]] [[김상덕]], [[곽상훈]], [[송필만]] 등과 [[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민특위조사위원이 되었다.
         * 민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그러나 민특위 강제해산으로 실패하였다.
         * 「세기의 증언」
         * [[민특위]]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공주의자]][[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유학자]][[분류:유교 신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대학 교수]][[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조선어학회 사건]][[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국민당 (1948년) 당원]][[분류:한국독립당]][[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이승만| ]][[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한명회 . . . . 24회 일치
         [[권람]]의 진언을 받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그를 불러들였고, 한명회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였다. 한명회의 진언을 들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상께서는 비록 유충(幼沖)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守成)은 할 수는 있는데, 대신들이 간교하여 [[안평 대군]] 이용(李瑢)에게 포섭되어 선조(先朝)의 충자(冲子)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祖宗)의 선령(先靈)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하고,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자, 한명회는 이에 감격하여 [[쿠데타|정]](反正)의 책략을 남김없이 말하였다.
         수양대군이 머뭇거리자 한명회는 대의명분이 있음을 꾸준히 설득하였고,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국가의 안정을 구가해야 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유년 시절 [[조선 태종]]이 세종의 아들들을 데리고 산책을 갈 때 어느 점쟁이가 둘째 손자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한 말을 복 언급, 주지시켰다. 확신이 선 수양대군은 그를 신뢰하였고, 모든 비밀 계략과와 밀모(密謀)는 그의 지휘에 맡겨졌다.
         한명회의 독려에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의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날 사병들을 동원하여 비밀리에 매복시키고, 그날 저녁 [[한성부]]를 점령하였다. [[홍윤성]]과 [[홍달손]]이 이끌고 온 군사들과 합류, [[김종서]]와 [[황보 인]]의 집을 습격하여 이들 일파를 제거하였다. 당시 [[집현전]] 학사들 중에는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황보인]]의 막강한 권력에 발하는 뜻에서 한명회를 지지하는 여론도 조성되었다.
         ===== 살생부 작성과 세조 정 =====
         그는 세조 집권 초부터 변방의 성곽 수축과 병력 양성을 건의하고, 해안가에도 성곽을 쌓고 병력을 보내 방비를 튼튼히 해야 하며 미구에 있을 왜구와 [[여진족]]의 침략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56년]]부터 [[조선 단종|노산군]]과 [[금성대군]]을 처형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조선 세조|세조]]가 듣지 않았다. [[1457년]](세조 2년) 초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진하고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한 뒤,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었다. 그해 [[금성대군]]과 [[순흥부|순흥]][[부사]] [[이보흠]]의 모의를 적발하여 처형시켰다. 그해 겨울 [[조선 예종|해양대군]]의 [[왕세자]] 책봉을 주청(奏請)을 위한 [[세자]][[책봉]]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의 [[연경]](燕京)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정난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의 기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갔다.<ref name="park115"/> 그는 우선 세조와 사돈을 맺어 딸을 [[장순왕후|예종비]]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다른 딸을 [[공예왕후|성종비]]로 만들어 딸들을 2대에 걸쳐<ref name="park116"/> 왕후로 삼게 했다. 또한 [[권람]]은 일찍 요절한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남이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손자 [[한경침]]을 다시 사위이기도 한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 소생 서녀 [[공신옹주]]와 혼인시켜 3대에 걸쳐 왕실과 겹사돈관계를 형성한다.
         [[1467년]](세조 13년) [[함경북도]] 일대에서 [[이시애]]가 [[이시애의 난|병란]]을 일으켜 명회와 [[신숙주]]가 일찍이 성삼문과 란을 모의하려 했다고 모함하자 투옥되었다. 그는 이시애의 계략에 말려 신숙주와 함께 투옥당한다. 또한 그들이 함길도 절제사 [[강효문]] 등과 함께 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이었다.<ref name="park116">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8) 116페이지</ref> 그는 [[신숙주]]와 함께 역을 꾀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의금부]]에 투옥, 신문을 당했으나 뚜렷한 혐의가 없었다. 즉위 이후 줄곧 왕위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세조는 [[이시애]]의 보고문을 믿고 일단 신숙주와 한명회를 옥에 가두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시작했다.<ref name="park116"/> 한명회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나라 사람들은 모두 통쾌히 여겼다.<ref name="deok252">이덕일,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2005) 252페이지</ref> 그러나 [[이시애]]의 장계가 거짓임이 밝혀지면서 그는 [[신숙주]]와 함께 석방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년) [[조선 세조|세조]]가 죽고 [[조선 예종|예종]]이 즉위하자, [[조선 세조|세조]]의 유언에 따라 [[신숙주]], [[홍윤성]], [[정인지]] 등과 함께 공동 [[원상]](院相)의 한사람으로 [[조선 예종|예종]] 즉위 초, [[승정원]]에서 서정(庶政)을 맡아보았다. 이때 그는 승정원에서 숙직하면서 업무를 처결하였다.
         === 생애 후 ===
         [[1475년]](성종 5년) [[평안남도]] [[병마절도사]]를 혁파하자는 건의가 올라와 성종이 회의를 소집하자, 모두가 혁파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를 듣고 급히 돌아와 이를 강력 대하였다.
         조정에서 [[평안남도]] 병영을 폐지하려는 의견이 강해지자 그는 직접 나서서 이를 강하게 대하여 무산시켰다.
         [[1478년]](성종 9년) [[조선 성종|성종]]은 호학 및 당시의 문운융성과 학문 연구 장려를 위해 연로함과 덕망을 두루 구비하고 명망이 높은 [[유학자]]를 삼로오경(三老五更, 왕사(王師))으로 임명하여 국정을 자문함과 동시에 문풍을 더한층 진작시키자는 제안을 하자 그는 [[정인지]]를 적극 추천하여 삼로로 선정되게 하였다. 그러나 [[정인지]]를 왕사로 추대하기 직전에 대간으로부터 "한미한 가문에서 자수성가하여 기신하였으나 식화(殖貨)에 전념하여 재산을 치부하였으니 존경할만한 인물로는 불가하다."라는 대가 있었다. 그러자 한명회 등의 대신들은 "[[정인지]]의 식화는 장리(長利)에 불과하였으니 큰 흠이 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정인지]]를 [[왕사]]로 추대하는 것을 적극 지지하였으나 결국 [[사림파]]들의 맹렬한 대로 [[정인지]]는 왕사로 추대되지 못하고 그해 [[11월]] 병으로 죽었다.
         [[1480년]](성종 10년) 가을에 부원군직을 사임하려 하였으나 [[조선 성종|성종]]이 승낙치 아니하고 성종이 어찰(御札)을 보내 " 국가의 공적이 여러 세대에 이르고 재주와 식견은 한 세대를 앞서 갈 만큼 밝으며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나라 근심으로 염려하여 논의하면 드시 적중하였다. 원로가 조정에 있음은 나라의 영광이며,믿는 신하가 힘을 다함은 임금에게 힘과 의지가 되는도다. 아무리 오래도록 병에 시달리더라도 많은 약을 내리니 힘써 치료하여 내 뜻에 부응하라. 그러면 경도 노년에 편안함이 있고 나도 옛 것을 버리고 허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사퇴를 만류하였다. [[1483년]] [[경상도]]에 저수지를 만들어가뭄을 대비하였다.
         조정의 문사들이 앞다투어 그의 [[압구정]]에 찾아와서 압구정을 예찬한 시가 수백 편이었다. 하지만 이는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이었고, 일 백성들은 이를 비웃었다.<ref name="deok252"/> 포의 이윤종(李尹宗)은 이를 비웃는 시를 짓기도 했다.
         ==== 생애 후 ====
         야사에는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당했다 한다.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되자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도끼로 자신의 정강이 또는 자신의 집 대들보를 내리찍었다고 한다. 그는 왕실과 이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했는데, 그의 큰딸은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의 아들 윤과 혼인을, 그의 작은딸은 [[신숙주]]의 맏아들 신주와 혼인하였고 셋째 딸은 [[조선 예종|예종]]의 정비([[장순왕후]])가, 막내딸은 [[조선 성종|성종]]의 정비([[공혜왕후]])가 되어 영화를 누렸으나, 이 딸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 정]] 이후 신원되어 복관되고, [[1507년]](중종 1년) [[10월]] 예관을 보내 재장사한 뒤 [[조선 세조|세조]]의 묘정에 다시 배향하였다. [[충청남도]] [[천안군]]의 충성사(忠誠祠) 등에 [[제향]]되었다.
         [[조선 성종|성종]]때 이후 [[사림]]의 정계진출 이후 도학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그가 [[계유정난]]과 [[세조 정]]을 주도한 점이 집중 부각되어 비판과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 차녀: 한씨 - 영천부원군 [[윤사로]]의 장남 영천군 윤(鈴川君 尹磻)의 처. 슬하 2남 5녀.
         지방은 역시 다섯 집을 1통으로 하고 5통을 1리(里)로 해서 약간의 이(里)로써 면(面)을 형성하여 면에 권농관(勸農官)을 두었다. 주로 호구를 밝히고 범죄자의 색출, 세금징수, 부역의 동원, 인보(隣保)의 자치조직을 꾀하여 만들었<ref name="naver01"/>다. 면장인 권농관은 [[조선]]시대 당시에는 명예직으로, 면리제는 군현제보다 실효성은 떨어졌지만 다른 제도가 20세기를 넘기지 못한 면 [[면리제]]는 20세기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 흥친왕 . . . . 24회 일치
         === 생애 초 ===
         [[명성황후]]의 국장 때 그는 종척 집사(宗戚執事)로 임명되었고, 빈전에서 왕과 왕자들이 곡을 할때 왕의 가까운 친척으로써 상복을 입고 곡하는 열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2월]] 초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을 사퇴한 뒤, 총호사(總護使)에 임명됐다가 2월 중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퇴거,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파면되었다.
         === 생애 후 ===
         [[2006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 합병 조약 체결에 관한 회의에서 대한제국 황족 대표로 참석해 조약 체결에 동의하는 데 가담<ref name="nata1">http://news.nate.com/view/20091005n08047</ref><ref name="dd1">http://news.nate.com/view/20091005n08088</ref><ref name="gadam1">http://www.ytn.co.kr/_ln/0103_200910051412251653</ref> 했다는 것이 그가 친일파로 지목된 이유였다. 그러나 흥친왕의 친일 행적이나 은사금 수령이 일제에 의한 회유책이지 흥친왕의 자발적인 행적은 아니라는 이견이 제기되어 왔다.
         [[2007년]] [[1월 18일]] 이재면의 증손 이모씨가 자신의 증ㆍ조부의 행위를 친일행위로 규정한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ref name="연합뉴스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523704</ref> 친일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하 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구한말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의 행적을 친일행위로 규정해 발표하자, 2006년 11월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ref name="dd1"/><ref name="파이1">http://www.fnnews.com/view?ra=Sent1201m_View&corp=fnnews&arcid=00000921782211&cDateYear=2009&cDateMonth=10&cDateDay=05</ref><ref name="mk1">http://news.mk.co.kr/v3/view.php?year=2009&no=517181</ref>
         1월 18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소장에서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증조부와 조부의 행위를 일제 강점기하에서의 친일민족 행위로 결정한 근거법률인 민족특별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이 결정은 효력이 없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f name="연합뉴스1"/>
         이씨는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의 결정이 위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추후 제출할 위헌심판제청신청서에서 자세하게 밝히겠다고 덧붙였다.<ref name="연합뉴스1"/> 그러나 [[2009년]] [[10월 5일]] 그의 증손이 낸 소송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되었다.<ref name="nata1"/>
         [[2009년]] [[10월 5일]] 재판부는 "친일민족행위 결정을 통한 후손의 인격권 침해는 법률조항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따른 결정과 사료의 공개라는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매개로 발생하는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이같이 결정했다.<ref name="nata1"/><ref name="gadam1"/> "사자(死者)인 조사대상자에 대한 친일민족행위 결정이 있으면 사자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인격상을 형성하고 명예를 지켜온 후손의 인격권도 제한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일 행정소송의 방법으로 구제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을 부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f name="dd1"/>
         재판부는 "이 사건 친일민족행위 결정은 해당 법률 조항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른 결정과 이에 수되는 조사보고서 및 사료의 공개라는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매개로 비로소 발생한 것"이라며 "이는 일 행정소송의 방법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이씨의 심판 청구는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ref name="mk1"/>
         이어 "친일민족행위 결정으로 인해 조사대상자 및 그 후손의 인격권이 제한받게 되더라도 이는 부수적 결과에 불과할 뿐 이것을 두고 일종의 형벌로서 수치형이나 명예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청구인의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다.<ref name="mk1"/>"는 것이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수록되었다.
         |저자=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민족행위결정이유서
         [[분류:유교 신자|이희]][[분류:과거 급제자|이희]][[분류:대한제국의 황족]][[분류:대한제국의 부장]][[분류:대한제국의 친왕]][[분류:일본의 왕공족]][[분류:육군 장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한국의 귀족]][[분류:테러 피해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전주 이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일 병합 조약 관련자]][[분류:운현궁]][[분류:대한제국 고종]][[분류:대한제국 순종]][[분류:영선군|영선군]][[분류:금척대훈장 수훈자]][[분류:서성대훈장 수훈자]][[분류:이화대훈장 수훈자]][[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19세기 한국의 군주]]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23회 일치
         본격 자기가 안싸우고 자기 동맹이랑 자기가 동군연합한 국가들만 싸우는 국가. 헝가리랑 보헤미아를 동군연합하는 미션이 있으며, 이둘은 굳이 퍼유미션을 안받아도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1500년이전에 둘다 퍼유해버릴수 있다. 이후에 부르고뉴 분할 상속 이벤트등으로 세를 불릴 수도 있다. [* 단, 최신버전부터는 부르고뉴 상속방식이 결혼국 70퍼, 카스티야 20퍼, 황제국 10퍼형식으로 바뀌었다. 부르고뉴가 오스트리아를 자주 라이벌지정하지 않게 바뀐지는 한참됬으니 왠만해선 결혼은 해두자. 취향에 따라선 초에 부르고뉴랑 동맹해 프랑스를 견제하는 방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최신버전에선 카스티야랑 사이가 좋으면 '''아예 카스티야에 합스부르크가 들어서는 이벤트도 생겼으니!''' 잘알아두도록 하자. 신대륙확장은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고 하기도 어려우니, 프랑스나 오스만등과 치고 받고 해서 구대륙쪽으로 확장하는걸 주력으로 삼자.
         플레이어의 국가의 주문화권이 이탈리아 지방 문화권에 속해있을경우, 필요 프로빈스를 다먹었을때 이탈리아를 형성할 수 있다.[* 단, 교황령은 불가능. 실제 역사에서 이탈리아 독립운동가들이 교황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독립을 추진한 적이 있었으나, 교황청은 세속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거부하여 무산되고 사보이 왕국을 중심으로 독립을 추진한 것을 영했다고 볼 수 있을듯.] 추천되는 국가는 사보이,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나폴리 정도. 본래 나폴리나 교황령등의 비 신롬소속 이탈리아 국가들은 확장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1.12패치이후 그림자 왕국(shadow kingdom)이벤트로 1490년이 지나면 이탈리아지방 국가들은 신롬에서 탈퇴하니 조금 나아졌다.
         은근히 확장하기 어려운 국가. 이탈리아지방은 신롬소속이 대부분이라 그림자왕국 이벤트 뜨기전까지는 어렵고, 그외에 발칸도에 있는 식민지들은 플레이하다보면 알겠지만 짐짝인 경우가 상당하다(...) 거기다가 오스트리아랑 헝가리가 시작지점이든 플레이하다가든간에 적어도 1550년안엔 무조건 공화국을 라이벌지정하게 되있으므로, 충돌은 필연적이다. 아, 그리스지방쪽이랑 로도스노리고 전쟁질해대는 오스만은 덤이다(...)
         우선은 그러므로 오스만과 오스트리아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동맹부터 구해두는게 가장 중요한데, 프랑스와 폴란드, 아라곤등이 여기에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 [* 다만 최신패치부터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을 거절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럴경우 헝가리마냥 초에 사기장수가 없는 폴란드는 박살날 가능성이 높다. 혹시나 이런 경우가 생기면 재시작하자(...)] 구호기사단에 걸어둔 독립보장은 괜히 오스만과의 1대1맞다이를 강요하게 하니 관두면서 본토와 달마티아 지방을 육로로 연결하는데 주력하자. 아, 그리고 상인공화정은 영토가 20개이상이 되면 부패도 (corruptions)가 오르기에 그거 줄인다고 수입이 줄어든다. 1.16이후로 외교력 100을 소모해서 상인공화정도 정부체제를 바꿀 수 있으니, 적당히 확장해뒀다 싶으면 바꿔두자.[* 부패도 감소비용을 없앨수도 있으나, 테크비용이 늘어나기에 최종적으로 국력이 약해진다.]
         초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절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상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백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상태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그 다음 공세는 잉글랜드령 프랑스로 정해두자. 메인 할양 이벤트로 프랑스와 싸우게 되든, 그 할양 이벤트에서 잉글랜드가 메인을 넘기든, 잉글랜드는 결국 프랑스와 싸우게 되어있는데, 그틈에 잉글랜드를 쳐서 칼레와 노르망디일대를 먹어두자.(AE가 남으면 알렝송까지 먹어도 상관없다.) 이후 확장방향은 취향따라 다른데, 브르타뉴를 먹고 북프랑스쪽으로 확장하든, 북프랑스를 장악한뒤 신롬쪽 영역을 먹든, 신롬 영역을 치든, 그건 취향차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다만 위치상 어디로 확장하든 신롬 소국들이 빼액대면서 국가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것에 주의하도록 하자.
         통칭 역설국. 제작사가 스웨덴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히 강력하다. 국가 이념도 전투쪽에 몰려있어서 스웨덴이 모스크바를 뜷고 러시아화가 되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는편. 초에 덴마크한테 동군연합되버린 상태로 시작하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독립하는게 가장 중요한데, 스웨덴이 아무리 북유럽 삼국중 가장 강력해도 덴마크+노르웨이를 1대1로 이기기 힘들다는게 문제다(...) 그러므로 덴마크가 라이벌로 지정한 국가에게 독립지원을 받는게 가장 중요하다. 추천조합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혹은 잉글랜드+모스크바등. 폴란드의 지원을 받는것도 좋지만 마레 노스트럼(1.16)패치이후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가 상당히 뼈아파서 그냥 폴란드가 들고 있는 프로이센지방을 뺏어서 발틱노드나 장악하는게 더낫다.
         행정레벨 20이상이며, 스칸디나비아도를 통일해두었을경우[* 단, 고틀랜드도 먹어둬야한다.] 스칸디나비아를 형성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가 조금 어려운데, 우선은 적절히 프랑스와 사이가 안좋으면서 잉글랜드의 부족한 육군을 보충해줄수 있는 나라가 필요하다. 아라곤, 오스트리아, 카스티야정도가 물망에 오르는데 문제는 얘들이 잉글랜드를 라이벌지정하는 경우가 있다는것(...) 스코틀랜드는 얼마 안가 프랑스와 동맹하면서 귀찮게 할 가능성이 높으니 초에 공격해서 속국화 시키고, 이베리안 웨딩이 뜨길 기대하며(...)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랑 동맹하기전에 미리 오스트리아와 동맹해서 막는것도 좋다. 프랑스보다 프로빈수 수가 많고, 병력이 더많을경우에 왕위주장 미션이 뜨는데, 이것만 성공시키면 그때부터 두려울게 없다. 오스트리아고 스페인이고 다 날려버리자.
         이게임의 주인공 혹은 [* 플레이어가 프랑스가 아닐경우] '''최종보스.''' 오스만 제국은 후부에 가면 갈수록 상대하기 쉬워지지만 프랑스는 그런거 없다. 초부터 넘쳐나는 땅과 맨파워로 플레이어에게 미친듯한 출혈을 각오하게 하고 조금만 지나면 자체 이념으로 군사기 +20%를 들고나오기에(...) 개깡패가 된다. 문제는 이게 전부다 적일경우라는 것(...). [*물론 동맹으로 쓰기엔 이만한 애가 없다.]
         플레이어가 잡을경우 프랑스는 강하긴 하지만 혼자서 어떻게 하기엔 매매우 힘든 국가가 된다. '''적당한 동맹이 없으면 백년전쟁도 혼자서 못끝낸다'''. 그러므로 좋은 동맹이 필요한데, 오스트리아(가끔 라이벌 지정을 할때가 있다.)는 부르고뉴 상속이벤트전 훌룡한 동맹이 되어주며, 그외에 사보이등의 이탈리아 소국 하나정도를 추천. 부르고뉴지방을 상속받고 육각형[*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보고 말하는 말.]을 완성한 프랑스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깡패가 된다. 스페인은 포르투갈까지 합쳐도 육각형 프랑스를 못이기며, 오스만은 너무멀고,[* 오히려 동맹으로 쓰는게 더 낫다.] 오스트리아역시 오스만과 동맹해둬서 견제해두면 된다. 다만 1.17패치로 오스트리아와 역사적 라이벌이 된건 조금 주의. 전에는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게 거의 다 ~~녹색 하트~~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기에 오스트리아와 동맹하고 부르고뉴를 패면서 이베리아도로 마음편히 나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힘들어졌다.
         이게임의 또다른 주인공이자 [* 플레이어가 오스만이 아닐경우] '''중간보스''' 시작시부터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게임 최고의 꿀땅인 콘스탄티노플을 먹을 수 있어서 상당히 강력하다. 또다른 특이점으론 콘스탄티노플노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서 사실상 자금력에서도 최강급. 거기다가 콘스탄티노플이 자동적으로 터키 문화권+ 수니파로 개종하는 이벤트, 예니체리 이벤트 [* 타락 이벤트도 가지고 있다. ~~쓸데없이 고증에 충실.~~]등 자기만의 이벤트나 전용 미션도 더럽게 많이 들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좋다고 초부터 헝가리같은 동유럽쪽으로 확장하려들다간 국가연합걸려서 망할 수 있으니(...) 우선은 유럽쪽은 발칸도정도만 먹어두고 맘루크와 카라 코윤루를 패면서 서아시아+ 이집트지방부터 먹는걸 추천. 아니면 정교회로 개종하는 방법도 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먹어두면 발칸지방은 콘스탄티노플빼면 전부 정교회이므로 개종이야 어려운 편은 아니다. 이경우엔 동군연합을 노릴 수 있으며 결혼이 되어서 외교가 훨씬 편하단게 장점. 몇몇사람들은 라구사까지 먹어둬서 가톨릭 개종후 신롬황제를 노리기도 한다. ~~진정한 카이세리 룸!~~
         프로빈스 3개[* 속국인 아테네 프로빈스까지 합치면 4개] 짜리 제국(...)국가. 이게임에서 초 최강국인 오스만의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것과, 그 오스만한테 상대도 안된다는게 가장 문제인 국가다(...) ~~시기상 당연하긴 한데...~~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건 어떻게든 쓸만한 동맹을 얻는것. 우선 오스만을 라이벌 지정하고 헝가리가 오스만을 라이벌지정하길 빌자(...) 폴란드가 리투개발도 너프이후로 약화된 이후 비잔티움이 살기위해선 헝가리와 헝가리의 초 장군인 ~~갓노슈~~ 야노슈 후냐디에게 모든걸 맡기는 수밖에 없다(...) 다만 헝가리만으론 아무래도 무리가 있으므로 그외에 발칸 소국들이 필요한데, 세르비아나 왈라키아를 끌어들이는걸 추천한다. [* 다만 왈라키아는 가끔 헝가리를 적국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있다. 뭔 깡인지는 불명(...)] 오스만과의 초싸움에서는 어떻게든 그리스지방 코어를 얻어둬야 한다. 그외에 한개 땅정도는 추가로 얻어낼 수 있을텐데, 아나톨리아지방을 먹어서 이후 아나톨리아 탈환에 써먹든, 불가리아 코어가 있는곳을 먹어서 재정복 명분을 얻어내든, 어느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다. 취향따라 뺏어라. 로마나 니코메디아, 알레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탈환 이벤트라던가 비잔티움 전용 이벤트가 상당히 많으므로 고생한 보람이 상당히 있는 국가. 참고로 로마제국 최대판도를 복원하면 로마제국 형성을 할 수 있는데, 이게 크킹 컨버터로 만드는 로마제국을 그냥 복사+붙여넣기 한거라(...) 정작 비잔티움관련 문화권은 전부 수용불가능 문화권이 되버린다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그냥 비잔티움으로 하자. 애초에 비잔틴이 로마다.~~
         초시작할때를 보면 땅덩어리도 넓어보이는데다가 국가전통도 좋은편이고 오스트리아와 역사적 친구보너스가 있기에 괜찮은 국가로 보이지만... '''함정이다'''.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국가. 우선은 동맹으로 선택할 국가의 범위가 좁다. 폴란드는 헝가리를 자주 라이벌로 지정하며 설사 초에 동맹으로 나둬도 얼마안가 적대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오스만이야...확장방향도 그렇고 동맹할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그외에 보헤미아도 높은 확률로 헝가리를 라이벌로 지정한다. 그러므로 무슨일이 있어도 오스트리아와 동맹해두자.
         물론 두번째 선택지를 고를 사람은 없을것이므로(...) 얌전히 역사적인 선택지인 첫번째를 고르자. 마챠시 1세의 능력치로 455로 상당히 좋은편이므로 잘써먹을 수 있을것이다. [* 다만 오스트리아와의 역사적 친구보정이 사라지는게 조금 단점이긴 한데, 어차피 오스만과 폴리투를 제거하면 헝가리의 칼끝은 오스트리아쪽으로 가기때문에...] 만약 섭정이 끝나자마자 마챠시 1세를 선택했다면, 3년간의 섭정기간이 더추가된다. 알아두자. [* 섭정기간동안은 선전포고가 불가능해지기 때문.] 섭정이 끝나면, 모스크바랑 폴-리투랑 싸우는 때가 있을거다. 타이밍봐서 동맹들을 이끌고 폴란드를 치자. 폴란드를 패면서 동유럽의 패왕이 된 이후부터야 크게 문제없다.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면 간단하게 처리가능하고, 오스만은 1600년대 중부터 급격히 약해지기에 상대가 가능하다. [* 굳이 초에 오스만땅을 먹고 싶다면 맘루크와 싸울때를 노리자. 맘루크가 육상에서야 박살나겠지만 해군은 오스만보다 우위이기에 보소포로스 해협이 막히게 되있는데, 이때 오스만 주력이 오기전에 콘스탄티노플과 에디르네를 함락시키면 적절히 오스만의 발칸도쪽 땅을 뜯어낼수 있다.]
  • Victoria II . . . . 23회 일치
          * 코어: 영토의 소유권…비슷한 개념. 만약 다른 나라의 프로빈스에 자국의 코어가 박혀있다면 해당 프로빈스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벌이거나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다른 국가의 코어가 있는 프로빈스에서 민족주의자들이 란을 일으켜 다른 나라의 영토로 만들거나 독립을 벌이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다.
         또한 문명국들은 디시전을 통해 연구 담당 관리들을 변경할 수 있다. 이 디시전에는 약간의 위신 감소와 10여년간의 디버프가 동된다. 선택할 수 있는 담당 관리들은 다음과 같다.
         특정 기술을 연구하고 나면 일정 확률로 발명 이벤트가 떠서 추가적인 효과를 낸다. 좋은 효과도 있지만 란도가 상승하는것처럼 나쁜 효과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좋은 효과다.
          * Absolute Mornachy(전제 군주정) : 국왕이 다 해먹는 체제. 여당을 플레이어가 바꿀 수 있다. 동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만이 여당이 될 수 있다. 자코뱅 란으로 뒤집어지면 입헌군주정이 된다.
          * Prussian Constitutionalism(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정) : 입헌군주제이긴 한데 사실상 국왕이 다 해먹는 유사 민주주의. 전제 군주정 국가에서 투표를 허가하면 이게 된다. 여당을 플레이어가 바꿀 수 있지만 일정 주기마다 치뤄지는 총선에 따라서도 바뀐다. 무정부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스트는 여당이 될 수 없다. 자코뱅 란으로 뒤집어지면 민주정이 된다.
          * HM's Government(입헌군주정) : [[영국]]과 같은 체제. 여당을 플레이어가 바꿀 수 있지만 일정 주기마다 치뤄지는 총선에 따라서도 바뀐다. 자코뱅 란으로 뒤집어지면 민주정이 된다.
          * Presidential Dictatorship(대통령 독재) : 동주의 란으로 뒤집어진 국가들은 이 정부 체제가 된다. 여당은 무정부 자유주의 정당으로 고정되며 란이나 전쟁으로만 정부 체제를 바꿀 수 있다.
          * Bourgeois Dictatorship(부르주아 독재) : 무정부 자유주의 란으로 뒤집어진 국가들은 이 정부 체제가 된다. 여당은 무정부 자유주의 정당으로 고정되며 란이나 전쟁으로만 정부 체제를 바꿀 수 있다.
          * Proletarian Dictatorship(프롤레타리아 독재) : [[소련]]과 같은 체제. 공산주의 란으로 뒤집어진 국가들은 이 정부 체제가 된다. 여당은 공산주의 정당으로 고정되며 란이나 전쟁으로만 정부 체제를 바꿀 수 있다.
          * Fascist Dictatorship(파시스트 독재) : 파시스트 란으로 뒤집어진 국가들은 이 정부 체제가 된다. 여당은 파시스트 정당으로 고정되며 란이나 전쟁으로만 정부 체제를 바꿀 수 있다.
         POP들의 투쟁성이 높아지면 란을 일으킬 수 있다. 란의 원인은 다양하다. 특정 민족의 민족주의자들이 독립 전쟁을 벌인 걸수도 있고, 특정 사상의 지지자들이 정권 정복을 위해 란을 일으킨걸수도 있다. [[태평천국 운동]]이나 [[붉은 셔츠단]] 처럼 이벤트로 발생하는 란도 있다. 이념 란의 경우에는 수도를 점령하면 정부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 이 경우 모든 외교관계가 초기화되니 주의. 당신 땅을 탐내고 있었지만 동맹국 때문에 침략하지 못하던 적국이 전쟁을 벌일 수 있다.
         관계도(Relations)는 해당 국가 정부와 얼마나 사이가 좋은가를 의미한다. 관계도가 높을수록 요청을 들어줄 확률이 쥐꼬리만큼 늘어난다. 만약 관계도가 음수라면 모든 요청에 "ㅗㅇㅅㅇ"라는 응이 날아온다.
          * 군사 통행권 취소(Cancel Military Access) : 1외교 점수를 소모해서 해당 국가 영토 군사통행권을 납한다.
  • 강영식 . . . . 23회 일치
         || '''한국시리즈 우승 지''' ||
         매년 욕은 대차게 먹으나, 꾸준한 경기 출장과 시즌 종료 시 귀신같이 평균 정도의 스탯이 되어 있다(…). [[패스트볼]]-[[슬라이더]]만 구사하는 투 피치 투수로 좌완으로서 143~150km/h의 [[패스트볼]]과 130km/h대 중의 [[슬라이더]]를 보유하였다. 굳은 듯한 폼에서 나오는 각도는 리그 최고 수준. 단 긁혔을 때'''만'''. 아주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좌완 계투가 전통적으로 약한 롯데이기에 오랜 기간동안 팀의 필승조에 속했다. 강영식이 롯데에서 보낸 10년간 불펜에서 수많은 투수들이 등장했다 사라져 갔고 개중에는 강영식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투수도 여럿 있었지만, 1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등판한 선수는 강영식 뿐이었다.
         140km/h 중대의 빠른 공을 던진다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제구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주무기는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인 사실상 투피치 투수. 커브나 체인지업도 장착했지만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못하다. 그래서인지 좌완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좌타자한테 약점'''을 보였다. 덕분에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위장좌완'''이라고까지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선발 투수]]나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왔을 때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탈삼진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끔씩 몰리는 공에 장타를 크게 맞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서두에 상술되어 있듯이 새가슴으로 유명한데, 이는 불펜 투수로서는 결정적인 약점이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비교적 제구 잘 되는 날의 비율이 높으며 구위도 언터처블한 모습을 보이지만 잔부상이 잦고 체력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지 이후 귀신같이 피홈런이 증가. 설명서가 필요한 불펜 투수의 전형적인 사례. 그래서 [[양승호]] 감독 체제에서 아주 잘 써먹은 면, [[김시진]] 체제에서는 한 달만 잘 하다가 나머지 달에는 원 포인트로 기용되어 많이 말아드셨다. [[제리 로이스터]] 前 감독 때는 2008시즌 언터처블이었으나 불펜 붕괴로 이후 시즌에는 다소 불가피하게 혹사당한 감이 있다.
         거의 190cm에 육박하는 장신에 140km/h대 중후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던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그는 ~~덩치 큰 [[왼손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응용 감독은 왼손잡이, 그 중에서도 곰처럼 덩치큰 왼손잡이 선수를 매우 선호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우승을 그렇게 많이 해봤어도 그 라인업에서 투타 막론하고 좌완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꾸준히 활용할 수 있었던 선수가 [[김정수(1962)|김정수]] 말고는 가물가물할 정도니... ]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 [[김응용]]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직접 거둬서 [[햄]] 구워서 [[밥]]을 해 먹일 정도로''' 애정을 보였으며, 김응용 감독이 2001년 삼성 감독으로 가자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던 [[신동주(야구)|신동주]]를 보내면서까지 그를 삼성으로 데려올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김응용]] 감독이 이 정도로 대놓고 애정을 보여준 선수는 거의 없다. 후에 강영식도 롯데로 트레이드될 때 눈물로 [[김응용]]에게 작별인사를 고했고, 여전히 꼬박꼬박 연락을 드린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의 생활이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733693&cpage=&mbsW=&select=&opt=&keyword=|방송 캡쳐]]로 떠도는데, 옆에서 같이 밥 먹던 어린 선수는 당시 전도유망했던 투수 '''[[채태인]]'''이다. ~~역시 좌완성애자 코감독!~~]
         수술과 재활에 성공적이었는지 시즌 초에는 거의 2008 시즌 때만큼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5월 이후로 난조를 보였다. 피홈런이 많아 피안타율이나 [[WHIP]]에 비하면 [[평균자책점]]은 높았다. 롯데 불펜진 중 [[임경완]](4개) 다음 가는 블론세이브(3개)를 기록했다. 시즌 중에 [[허준혁(1990)|허준혁]](좌완)이 불펜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좌완투수가 없는 관계로 상당히 자주 등판했다.
         10월 6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8회 [[장성호]]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 후기 첫 실점을 기록했다. 롯데팬들은 별 응이 없는데 저 홈런 때문에 내년에 또 3번 장성호 보게 생겼다고 한화팬들한테 까였다(…). ~~아아 까임은 운명~~
         평소에도 그랬지만 이 시즌엔 유독 전기와 후기의 성적 차이가 심했다. 전기엔 6.14의 평균 자책점과 18삼진을 잡는 동안 14볼넷, 4홈런을 허용했으나 후기엔 '''0.47'''의 평균자책점과 1할 7푼대의 피안타율, 21삼진을 잡는동안 8볼넷, 1홈런만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기 0.47의 평균자책점은 '''이 해 [[오승환]]과 동급'''!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5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1⅔이닝 2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4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6.2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후기엔 잘 하더니...???~~
         [[이명우]]와 함께 둘 밖에 없는 좌완 불펜이었지만~~[[이승호(1981)|누군가]]가 빠진 건 넘어가자~~ 4월에는 등판할 때마다 주자를 쌓고 위기를 자초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필승 계투조에서 밀려난 느낌이었다. 자책점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장작만 쌓고 교체되는 패턴이 복되었다.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남과 동시에 부상으로(왼 어깨 건초염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추가바람) 2군에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동안 짐은 고스란히 [[이명우]]가 떠안아야 했다. 다행히도 8월 중순 2군 경기에 등판해서 멀쩡히 던지는 모습이 포착, 다음 텀에 올라오지 않을까 하던 팬들의 예상대로 돌아와서는 안정적인 피칭을 보였다.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후기로 갈수록 투구 내용이 좋아졌다(…).
         초에는 홀드를 좀 따내는 등 망한 롯데의 불펜에서 김성배와 함께 일을 하는 몇 안되는 투수였지만, 점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정대현(1978)|정대현]], [[이명우]], [[김승회]]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필승조에서 밀려났다. [[김시진]] 감독의 [[좌우놀이]] 성향상 좌타에 등판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때마다 말아먹으며 아직도 사용법 못 익혔냐고 팬들은 감독을 깠다. 하지만 우타 상대로 나왔을 때도 크리켓을 했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투수이니만큼 어떻게든 종종 등판하지만 까였다. 위기상황에 등판하면 볼넷 내주고 그 뒤치다꺼리는 김승회가 하는 모습이 패턴으로 자리잡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시즌 종료 후 김시진 감독이 좌우놀이 대신 1이닝제를 적용해보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롯데팬들은 1년을 날려먹고서야 강영식의 활용법을 알았냐며 또다시 감독을 까는 중(...).
         허나 4월 19일엔 볼넷과 안타를 헌납, 역전패를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되더니, 4월 22일에는 만루상황에 올라와서 [[박병호]]에게 스트라이크 하나를 못잡고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끝내기 밀어내기를 허용해 성격과 다르게 시즌 초에 입 좀 털더니 결국 나아진건 없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하지만 6윌이 지나자마자 실점하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평균자책점이 4점대 중까지 치솟았다. --정말 딱 한달만 언터쳐블 이었다--
         시즌 초에는 부상으로 인해 전력을 이탈했으나 5월 중순부터 복귀를 했다. 그놈의 불안한 불펜덕분에 매일매일 롯데시네마가 개봉되자 '''억삼이형 어딨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나 진짜 롯데시네마 회장님이 돌아오실줄은 몰랐다는 평. 평균자책점 9점대의 사나이라는 ~~애칭~~ 별명이 붙어버렸다. [[KBO 올스타전/2015년|2015 올스타전]]이 지난다음 랜디영식모드로 전환할뻔 하다가 또 X랄병이 도져서 볼질을 시전하는 중.
         늘 그랬듯이 후기로 갈수록 투구 내용이 좋아지면서 다시 팬들에게 랜디영식이라고 찬양 받는 중이다.
         5월에는 1이닝 무실점도 3번이나 하였다. 그리고 평균자책점을 3점대 초으로 낮추었다. ~~ 랜디 영식 모드 올해는 5월부터 발동 되나요?? ~~
         잘 할 때는 ''''랜디 영식''''[* [[랜디 존슨]]에 빗대어서 만들어진 별명이며, 본인은 이 별명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으로 칭송받고, 못할 때는 ''''불영식'''' ''''위장 좌완'''' 등으로 까인다. 2011 시즌에는 초 부진 때문에 ''''3억 좌완'''' ''''억삼이형''''이라는 달갑지 않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 김보름 . . . . 23회 일치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3년 12월 13일 이탈리아 트렌티노의 바셀가디피네아이스링크경기장에서 열린 제26회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15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2분1초19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경기에 출전한 양신영, 박도영은 각각 5위, 6위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ire.co.kr/newsRead.php?no=728148|제목=제26회 트렌티노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첫 메달 획득|날짜=2013-12-15|뉴스=보도자료 배포, 온라인 보도자료 등록, 홍보 대행 - 뉴스와이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5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은메달을 땄다. 18일 열린 5000m에서도 김보름이 7분17초82만에 결승선을 통과, 마르티나 사브리코바(체코, 7분05초17)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동 출전한 박도영(한국체대)은 7분26초58의 기록으로 3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21810402676378|제목=김보름·박도영, 동계U 빙속 여자 5,000m 은·동메달|날짜=2013-12-18|확인날짜=2017-03-13}}</ref>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과 박도영(20-한국체대), 양신영(23-전북도청)의 여자대표팀이 3분06초53으로 결승선을 통과, 일본(3분11초39)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221024004|제목=소치올림픽 금물결 꿈틀|뉴스=서울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2월 9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3000m 부문에서 김보름(21)은 4분12초08의 기록으로로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조로 경기를 치른 김보름은 21초05로 200m 구간을 통과한 후 2분31초34로 1800m 구간을 지났다. 이후 2200m 구간 통과 순간부터 스피드를 올리며 후 들어 스퍼트를 올렸고, 결국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 기록을 남겼다. 김보름의 순위인 13위는 지난 2006 토리노 올림픽,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노선영(25-강원도청)이 기록한 19위를 넘어 한국 여자 3000m 부문의 가장 높은 순위다. 5조의 노선영은 4분19초02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200m 구간에서 21초32의 기록으로 지난 이후 속도를 올리지 못한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노선영은 전체 26위의 성적을 남기며 경기를 마쳤다. 6조에서 경기를 소화한 양신영(24-전북도청)은 4분23초67을 기록해 이날 대회를 뛴 28명 중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한편 이날 대회는 4분00초34의 이레네 부스트(네덜란드)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가져갔다. 대회 2연패를 노린 2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4분01초95)와 3위 올가 그라프(러시아-4분03초47)에 앞선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41654|제목=(소치올림픽)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13위..금메달 부스트|확인날짜=2017-03-21}}</ref> 16일 열린 1500m에서는 네덜란드의 요리엔 테르모르스가 1분53초51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쓸었다. 은메달은 이레인 뷔스트(1분54초09)에게 돌아갔고 동메달은 하를로터 판바이크(1분54초54)가 주인이 됐다. 심지어 4위도 네덜란드 선수인 마리트 리엔스트라(1분56초40)가 차지했다. 김보름은 1분59초78로 21위에 올랐다. 노선영(25-강원도청)은 2분01초07로 29위, 양신영(24-전북도청)은 2분04초13으로 최하위인 36위에 그쳤다.<ref>{{웹 인용|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3&newsid=01079126605991504&DCD=A20402|제목=[소치올림픽]테르모르스, 전날 쇼트트랙 뛰고 빙속1500m 올림픽新 금|성=포털|이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성2=무단전재|이름2=‘이데일리 스타in’-|날짜=2014-02-17|확인날짜=2017-03-21|성3=금지|이름3=재배포}}</ref> 김보름은 무릎 통증이 있어 5000m를 기권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9/20140219004640.html|제목=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성=세계일보|날짜=2014-02-19|뉴스=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2일 열린 팀추월 파이널D(7-8위 결정전)에서 김보름, 노선영(25, 강원도청), 양신영(24, 전북도청)이 나란히 달린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져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전날 8강전에서 일본에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여자 대표팀은 이날 3분11초54만에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해 3분8초35를 기록한 노르웨이에 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223322278172|제목=김보름·노선영·양신영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위에 그쳐|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3}}</ref>
         2015년 2월 26일 서울 태릉빙상경기장에서 열린 제96회 전국동계체전 대학부 3000m에 출전한 김보름(대구)이 대학부 3000m 4연패를 달성했다. 김보름은 이날 박도영(경기, 한국체대)과 같은 조로 경기를 펼쳤으며 차분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박도영과 거리를 유지해 나갔다가 경기 중에 이뤘을때 치고 나가기 시작해 박도영과 거리를 벌리며 4분18초95로 여유롭게 결승선에 찍었다. 한편 김보름과 같은 조로 출전한 박도영은 4분21초13으로 최종순위 2위로 여자 대학부 3000m를 끝마쳤다.<ref>{{웹 인용|url=http://www.yachtpia.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3|제목='전국 동계체전' 여자 대학부 3,000M 김보름 선수 금메달 획득 - 해양레저전문미디어 요트피아|언어=ko|확인날짜=2017-03-15}}</ref> 27일 열린 1500m에서도 김보름(22)이 2분04초97로 참가선수 7명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내며 4회 연속 2관왕의 대업을 일궜다. 박도영(22-한국체대-2분06초50)과 남지은(20-한국체대-2분07초01)이 각각 은, 동메달을 차지했다.<ref name=":18">{{뉴스 인용|url=http://news.zum.com/articles/20096322?cm=popular|제목=[동계체전] 곽윤기, 쇼트트랙 남자 3관왕[종합]|언어=ko|확인날짜=2017-03-17}}</ref>
         2015년 10월 28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벌어진 제50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대구일)은 4분18초88로 박도영(동두천시청-4분22초97)에 여유있게 앞서 1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720|제목=이상화 빙속여제답지 않은 실수 '실격', 추천으로 구제되나|날짜=2015-10-28|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김보름은 1500m에서도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ref name=":22">{{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234|제목=장거리 에이스 이승훈 1만m 우승, 종목별선수권 5년 연속 2관왕|날짜=2016-10-28|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2016년 2월 11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2016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8초14로 7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4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강원도청)이 8분17초66을 기록, 우승을 차지한 캐나다의 이바니 블롱댕(8분17초53)에 0.13초 차로 뒤져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을 차지했다. 김보름은 레이스 중까지 치고 나가지 않고 기회를 엿봤다. 마지막 1바퀴를 남기고 스피드를 낸 김보름은 5위에 올랐다. 마지막 코너에서 막판 스퍼트에 나선 김보름은 앞선 세 명의 선수를 제치고 블롱댕에 이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은메달을 확정했다. 함께 나선 박도영(동두천시청)은 12위를 기록했다.<ref name=":21" />
         2016년 10월 26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51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4분17초63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김보름은 28일 1500m에서 2분02초76으로 우승했다. 김보름은 지난해 이 대회에서 1500m, 3000m 2관왕에 오른데 이어 2년 연속 2관왕을 차지했다. 여고 졸업 박지우(의정부여고)는 2분04초77로 준우승을 차지했고 노선영(강원도청, 2분05초72)은 3위에 올랐다.<ref name=":22" />
         2016년 12월 29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71회 종합스피트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0m에서 김보름은 1위를 기록하며 3관왕을 차지해 여자부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김보름은 27일 3000m, 28일 1500m 1위를 차지한 뒤 마지막 날 5000m까지 석권했다. 종합 2위는 박지우(의정부여고), 3위는 박도영(동두첮시청)이 차지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윤곽이 나왔다. 중장거리(1500m, 3000m)에서는 김보름, 박도영, 박지우(의정부여고), 노선영(강원도청), 장수지(서울 일)가 선발됐다. 여자 5000m는 김보름이 뽑혔다. 매스스타트는 3000m 1위 김보름과 2위 박도영, 추천선수 1명이 나선다.<ref>{{뉴스 인용|url=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61229185500007&site=1000000000|제목=-빙속- 삿포로AG 대표팀 윤곽…이상화·김보름·이승훈 태극마크|날짜=2016-12-29|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7년 1월 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7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500m 일부 경기에서 김보름은 41초54의 기록으로 윤지원(동두천시청), 김유림(의정부시청)을 따돌리고 정상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winternews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32352|제목=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김보름, 회장배 500m 1위 - Winter News Korea|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임정수, 노선영으로 구성된 강원도청팀이 3분40초63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616&detailClassCd=08&rhCd=19&page=2&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10&kindNm=%EC%97%AC%EC%9E%90%EC%9D%BC%EB%B0%98%EB%B6%80&pcntGbn=T&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2017년 1월 1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일부 매스스타트에 김보름이 출전했지만 선두에 한 바퀴 뒤지면 실격 당하는 규정에 따라 실격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diodeo.com/news/view/2024706|제목=[동계체전] '실격' 김보름|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8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70으로 결승선을 통과, 1위에 올랐다. 17일 열린 3000m에서 대회신기록(4분14초54)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김보름은 이날 1500m에서도 대회기록을 갈아치웠다. 김보름은 이주연이 보유하고 있던 대회기록(2분3초63)을 1.93초 단축했다. 노선영(28-강원도청)도 종전 대회기록보다 빠른 2분02초92의 기록을 냈지만 김보름을 넘지 못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박도영(24-동두천시청)이 2분05초36으로 뒤를 이었다. 김보름은 노선영, 임정수(24)와 함께 강원도청 대표로 여자 일부 팀추월에 나서 금메달을 일궜다. 김보름은 강원도청이 3분23초97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하는데 앞장섰다.<ref>{{뉴스 인용|url=http://m.kgd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3595|제목=김보름, 전국동계 3관왕 등극|날짜=2017-01-19|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2017년 2월 9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4분03초85를 기록했다. 순위는 6위에 그쳤지만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4분04초62)을 0.77초 앞당겼다. 우승은 3분59초05를 기록한 네덜란드의 이레인 뷔스트(31)가 차지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김보름의 뒷심이 발휘됐다. 첫 200m 구간을 20초45(9위)로 통과한 김보름은 레이스 중후인 1800m 이후에도 랩타임을 줄곧 32초대로 유지하며 순위를 끌어올렷다. 메달 획득은 하지 못했지만 아시아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70210/82801694/1|제목=매스스타트 간판 김보름, 3000m서 ‘한국신 스퍼트’|날짜=2017-02-10|뉴스=동아닷컴|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가 3분02초95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2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출전해 8분00초97를 기록해 60점을 획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tv.co.kr/MYH20170213003000038/|제목=김보름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금메달 획득|날짜=2017-03-31|뉴스=연합뉴스TV: : 대한민국 뉴스의 시작. 채널 23|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레이스 동안 5위 안팎에서 벗어나지 못해 곡선 코스마다 선두 진입을 노리던 김보름은 마지막 바퀴에서 앞에서 달리던 네덜란드 선수가 일본 선수와 충돌해 넘어진 틈을 타 역전에 성공했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 코너워크가 장점인 김보름의 장점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자칫하면 김보름까지 휩쓸려 넘어질 수 있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인코스 진입을 시도해 선수들을 차례대로 제쳤다. 마지막 직전코스에서 1위를 달리던 일본 다카기 나나까지 따돌리며 태극기를 드높였다. 다키기는 8분00초90의 기록으로 2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3위는 8분01초36을 기록한 미국 헤더 베르그스마가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3070|제목=뉴스포스트|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2017년 2월 20일 오후 일본 오비히로의 오비히로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7초80으로 2위를 기록했다. 김보름의 기록은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카자흐스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호즈미 마사코(일본)가 세웠던 4분7초82보다 0.02초 빨랐다. 하지만 4분05초76을 기록한 다카기 미호(일본)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다카기의 기록은 아시아 기록으로 올라갔다. 3위는 4분10초07를 찍은 일본의 사토 아야노가 차지했다. 이로써 김보름은 2011년 대회에 이어 2연속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게 됐다. 5조의 인코스에 자리한 김보름은 타카바 마키(일본)와 레이스를 펼쳤다. 초 400m 랩타임을 31초대로 찍으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속도가 떨어졌고 마지막 800m를 남겨두고는 400m 랩타임을 32초 후대로 찍으면서 아쉽게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한 박도영(24-동두천시청)은 4분17초76로 6위. 박지우는(19-의정부여고)는 4분21초02로 7위를 마크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fnnews.com/news/201702201641040417|제목=[동계AG] 김보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0m 은메달 획득|날짜=2017-02-20|확인날짜=2017-03-31}}</ref> 22일 열린 5000m 경기에서는 김보름이 7분 12초 58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3조에 출전한 김보름은 한 메이(중국)와 레이스를 펼쳤다. 김보름은 레이스 초 33초 대로 달리다가, 중에 접어들면서 33초와 34초의 랩타임을 번갈아가며 호흡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3바퀴를 남기고 스퍼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7분12초58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확정 지었다. 이 날 경기에서 김보름을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로 꼽힌 다바카 마키(일본)는 레이스 후에 접어들면서 크게 처져 결국 메달조차 따지 못했다. 김보름에 이어 은메달은 한 메이, 동메달은 키야마 마이가 차지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했던 박도영(동두천시청)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보름은 20일 열렸던 3000m와 21일에 열렸던 팀추월 경기에서 모두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자신의 세 번째 종목이었던 5000m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다.<ref>{{웹 인용|url=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01052|제목=빙속 김보름, 동계 아시안게임 5000m 금메달|날짜=2017-02-22|확인날짜=2017-03-29}}</ref>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일본 선수들의 작전에 말려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이날 다카기 미호와 사토 아야노가 먼저 치고 나섰고, 뒤에 있던 다카기 나나가 상대 선수들을 견제했다. 김보름은 선두를 따라 잡기위해 기회를 노렸지만 추월하지 못했다. 이후 김보름이 속한 2위그룹과 선두그룹은 12바퀴이후 한 바퀴까지 벌어졌다. 결국 김보름은 8분47초46을 기록 3위에 그쳤고, 다카기 미호는 8분21초81로 금메달, 사토 아야노는 8분21초88로 은메달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pim.com/news/view/20170223000380?category_cd=0116|제목=김보름 “일본 작전에 알면서 당했다”... 매스스타트 1인자, 아쉬운 동메달(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뉴스=뉴스핌|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11월 11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팀추월에 출전한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 노선영(콜핑팀)은 3분2초66으로 5위에 올랐다. 다카기 미호, 다카기 나나, 사토 아야노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은 2분55초77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105384|제목=日 빙속 女추월팀, 평창 앞두고 '무서운 질주'…ISU 월드컵서 '세계新' 우승|날짜=2017-11-11|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에서 김보름은 넘어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2/0200000000AKR20171112002800007.HTML|제목=빙속 이승훈, 월드컵 매스스타트 금메달…대회 2관왕(종합)|성=김경윤|날짜=2017-11-1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노르웨이에서 개최되는 2차대회에 김보름은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보름은 1차대회 1일차 매스스타트 준결승 경기 도중 다른 선수의 스키이트 날에 걸려 넘어 졌으며, 경기 후 허리에 통증을 느껴 1차대회 다른 경기 출전도 포기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xn--q20b51t9le1sh.com/sub_read.html?uid=19371§ion=sc51|제목=[전남방송] 스피드 김보름 선수, 월드컵 2차대회 출전 포기|뉴스=전남방송|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3차대회 여자 3,000m 디비전A(1부리그)에서 김보름은 4분06초4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4위를 차지했다. 3,000m에서는 다카기 미호(일본)가 3분57초09의 일본 신기록으로 우승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2/0200000000AKR20171202034500007.HTML|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3,000m 14위|성=이영호|날짜=2017-12-0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4일 열린 여자부 매스스타트에 나선 김보름은 11위에 그치면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김보름은 경기 초 후미 그룹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6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끌어올렸지만 먼저 치고 나간 선두 그룹을 다라잡지 못했다. 하위권에서 막판 스퍼트를 노렸지만 이미 선두권과 격차가 너무 벌여져 결국 11위의 성적표를 받았다. 하편, 독일의 백전노장인 45세의 플라우디아 페히슈타인(독일)은 매스스타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49929a51806c4912ad5ee75e37e3b0d5|제목=이승훈ㆍ김보름, 월드컵 매스스타트에서 동 부진|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1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4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9분00초72의 기록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일치감치 선두그룹을 만들어 질주한 프란테스카 롤로브리지다(이탈리아)가 8분 53초49로 금메달, 중국의 궈단이 8분57초54로 은베달을 목에 걸었다.<ref>{{웹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712110100073520005174&ServiceDate=20171210|제목='컨디션 회복'김보름 월드컵 4차 대회 매스스타트 동메달: 스포츠조선|확인날짜=2017-12-12}}</ref>
         1월13일 서울 태을선수촌 국제빙상장에서 열린 제99회 전국동계체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일부 3000m에서 김보름(강원도청)이 우승했으나 14일 열린 1500m에서는 2분3초86의 기록으로 노선영(콜핑팀-2분2초76)에 이어 2위로 골인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art_id=201801141649003&sec_id=530101|제목=김보름의 불안한 평창리허설|날짜=1999-11-30|언어=ko|확인날짜=2018-01-18}}</ref>
         [[2018년]] [[2월 19일]] [[2018년 동계 올림픽]] [[2018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체 추월|여자 단체 추월]]에 김보름, [[박지우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박지우]], [[노선영]]이 출전하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후부에서 [[노선영]]이 김보름, 박지우에 비해 점점 뒤쳐졌다. 하지만 팀 경기인 만큼 팀워크가 중요시되는 종목이라 세 선수 같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일적인데, 김보름, 박지우는 노선영을 뒤로 한 채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 중 "마지막에 어.. 네.. 그 뒤에 조금 저희랑 격차가 벌어지면서 네.. 기록이 조금 아쉽게 나온 거 같아요."라는 발언을 하여 노선영 선수를 지목한 것 같은 발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ref>{{뉴스 인용 |저자= 박재덕|제목=인터뷰 직후 인스타그램 비공개한 김보름 선수…무슨 일?|url= http://news.joins.com/article/22379572|뉴스= 중앙일보|출판사= |위치= |날짜= 2018-02-19|확인날짜= 2018-02-13}}</ref> 2018년 2월 20일 오후 11시 53분, 그와 관련된 국민청원이 40만명을 돌파했다.<ref>{{웹 인용|url=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42600|제목=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한 처벌을 청원합니다|출판사=청와대 > 국민청원 및 제안|날짜=2018-02-19|확인날짜=2018-02-25}}</ref>
  • 마니교 . . . . 23회 일치
         교리는 엄격하였지만 성직자에 주로 부가되었다. 일 신도는 전부 지킬 필요는 없었고, 일부일처제, 살생을 하지 않는 육식은 허용되었다. 찬가 낭송도 하루 4회로 줄였다. 대신 일 신도들은 성직자가 생활할 수 있도록 시주를 바치는 것이 요구되었다. 시주를 바치면 내세에 공덕이 된다고 여겼다.
         내세에 성직자는 [[천국]]에 올라가게 되며, 일 신도는 영혼은 해방되지 않지만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고, 행실이 좋으면 선행을 쌓기 쉬운 성직자로 태어나 천국에 갈 가능성이 올라간다. 다만 행실이 나쁘면 동식물로 태어나서, 선행을 하는 것이 어려워져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 이교도는 [[지옥]]에 떨어진다.
         종교적으로 서방에서는 마니교는 기독교의 이단으로 여겨졌던 것처럼, 동방에서는 조로아스터교 신들의 이름을 끌어들여 조로아스터 교의 이단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심지어 마니교 교단 조직 역시 "데인 마즈데이슨"이라고 칭하여 조로아스터 교의 신관 조직과 같은 이름을 썻던 것이다. 대로 마니교 측에서는 기존 종교를 이단시 하였는데 기독교에 대해서는 "세미 크리스찬"( 기독교인)이라고 칭하고 자신들을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칭했다.
         서기 240년, 24세의 마니는 독자적인 사상에 따라서 유태교 율법을 중시하는 교단에 발하게 된다. 이 때 마니는 타움[* 천계 동자, 쌍생아. 지상의 육체에 머물러 있는 마니라는 인격과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또 한명의 자신으로서, 일종의 천계판 도플갱어 같은 것이다.]으로부터 계시를 얻었다고 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려 하지만 당연히 구타(…)를 당하게 되었고, 아버지 파티크가 보호하여 살아났지만 교단에서는 추방당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알게 된 친구 아브자크야, 시메온, 아버지 파티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마니는 사산 가문으로 마이선 총독 미프르 샤에게 접근하여, 빛의 천국을 환영으로 보여주고 개종시켰다. 마니는 자크, --어느새 인도에서 돌아온-- 파티크, 시메온과 함께 사푸르 1세를 알현한다. 마니는 자신의 교리를 정리한 사프라간(Shabuhragan)이라는 서적을 사푸르 1세에게 바쳤는데 우주론・종말론・예언자론의 3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요한 신격을 주르, 아흐리만, 아후라 마즈다, 미트라 같은 이란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차용하였다. 마니는 이 책을 [[페르시아어]]로 저술하고, [[아람 문자]]를 변형한 [[마니 문자]]를 사용하였다. 마니 문자의 발명으로 이란어는 모음의 표기가 가능해지고, 이전까지 쓰였던 불편함이 혁신되어 중세 이란어 표기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마르 안모는 파르티아 귀족 출신으로서, 마니의 친척으로 파르티아의 왕족인 아르다과 함께 중앙 아시아의 파르티아계 귀족들을 포교 대상으로 삼았다. 마르 안모는 파르티아어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동방 마니교에서는 파르티아어가 교회어가 된다. 마르 안모는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파르티아어 저작 『항담』 을 저술하고, 찬송가를 만들어서 신도들에게 노래하게 했다. 그는 중국에서 미말(未末)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중앙아시아는 마니교 최대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시리아계 캐러밴을 거쳐서 소그드 족 상인이나 파르티아 귀족에게 주로 퍼지게 된다.
         이처럼 격렬하게 --인간적으로 좀 너무한-- 인신모독을 가하는 한편, 마니교와 교리 논쟁도 활발하게 벌어졌다. 그런데 마니교의 약점은 논쟁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본래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전한 마니교는 헬레니즘 문화의 [[철학]]과 거리가 멀었다. 그 탓에 당시 로마 제국에서 널리 퍼져 있던 [[그리스 철학]]과 궁합이 나빴던 것이다. [[기독교]]는 이교도와, 그리고 내부에서 교리 논쟁을 복하면서 그리스 철학의 개념에 따라서 교리를 고도로 논리적인 수준으로 완성해 나간 면, 마니교는 처음부터 교조가 직접 저술한 성전이 마련되어 있어 교리 논쟁의 필요성이 없었던 것도 교리가 발달하지 못한 원인이었다.
         마니교 최대의 논적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였다. 19세 때 일 신도로서 마니교에 입교했다가 9년 뒤 탈퇴, 33세에 기독교에 입신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대하는 논설을 여럿 집필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유행하던 공개 토론에서도 나서서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여 마니교 설교사 파우스투스를 참패시켰다고 한다. 결정타는 역시 기독교 국교화로, 마니교는 완전히 근절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 뒤로도 기독교는 마니교를 최악의 이단으로서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6세기, 조로아스터교 신관단은 이전까지 쓰이던 팔라비 문자에서 아베스타 문자를 개발하며,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를 확립하게 된다. 성스러운 주문, 찬가, 종교법 등을 정리하여 아베스타를 편찬하며 조로아스터교가 확립된다. 게다가 484년에는 비잔티움 제국에 발하는 동방 시리아 교회가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승인을 얻게 된다. 이 무렵까지 마니교는 제국 내에서 은밀히 지속되었다고 여겨지지만, 내분에 더해서 지적 우위성 역시 무너지게 되어 완전히 쇠퇴의 길로 걸었다고 추측된다.
         7세기 중, [[이슬람교]]가 급격히 대두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한다. [[우마이야 왕조]] 시기에 이슬람교는 타 종교에 비교적 관용적이었기 때문에 마니교 역시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으로 오히려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앙 아시아에서 귀환한 마니교도와 중동 잔존 마니교도 사이에 사소한 대립이 있거나, 데인 서랄이 이라크 총독과 결탁하려 하는 등의 마찰은 있었지만. 오히려 페르시아 문화인들은 왠지 조로아스터교 보다 마니교에 기울면서 마니교의 세력이 회복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븐 알 나딤에 따르면 10세기 중 시점까지는 바그다디에 300명의 마니교도가 있었다고 하지만, 988년에는 5명 까지 격감하였다. 살아남은 마니교도는 메소포타미아의 본산을 방폐하고, 중앙아시아로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이미 중앙아시아에도 마니교가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므로 마니교도가 안주할 땅은 없었다.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나라]]는 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위구르]] 인의 도움을 요청한다. 위구르의 칸 모우가한(牟羽可汗)은 [[낙양]]에서 마니교를 접하고, 762~763년 마니교로 개종. 마니교 승려 4명을 데리고 귀국하여 위구르 제국 내부에서 마니교를 퍼트리게 된다. 마니교는 위구르 제국에서 사실상 [[국교]]의 지위에 오르게 되고, 당나라 역시 위구르에 배려하여 마니교의 포교를 허용하게 된다. 768년 6월, 칙령으로 마니교 사원의 건축이 허락되고 「대운광명(大雲光明)」이라는 사액을 받으며, 771년 1월 형주, 홍주, 월주에 대운광명사를 설치하는 것이 허가된다.
         마니교는 일시적으로 위구르-중국에서 흥성하지만, 840년 위구르 인이 키르키즈 인의 공격을 받아 쇠퇴, 당나라에서도 마니교를 공격할 수 있게 되어 [[당무종]] 시기에 회창의 폐불로부터 2년 전인 843년 5월에는 마니교 탄압 칙령이 내려와, 마니교도는 머리를 깍고 처형하도록 하였다. 72명의 여성 성직자가 살해되고, 중국의 마니교는 다시 치명타를 받는다. 하지만 천산 지역으로 피한 위구르 인은 여전히 마니교를 숭상하여 서위구르 왕국에서 마니교는 다시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마니교도는 석굴식 사원(마니스탄)을 건설하고, 국가로부터 지조를 받으며 장원, 가축 소유, 노예 소유 등을 하게 된다. 서위구르의 투르판에서는 300~400명의 마니교 승려가 위구르 귀족의 저택에 모여서 마니교 찬송을 벌였다고 전해지고 있어, 국교로서의 위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위구르 제국에서도 [[불교]]의 격이 시작되는데, 위구르 어 불경을 만들고 전파를 시작하여 10세기 무렵에 마니교는 국교의 지위를 잃게 된다. 위구르 귀족들은 불교 사원을 세우는 면, 10세기 말~11세기 초에는 마니교 사원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남송 육유(陸游)의 문집 『이남문집(渭南文集)』에 따르면, 강남의 농민 란은 명교가 핵심이 되었다. 명교 등의 체제 종교는 「끽채사마(喫菜事魔)」나「사마식채(事魔食菜)」라고 불리웠다.
         1351년, 원나라에 대항하는 [[백련교]]의 란이 일어난다. 백련교의 지도자 한산동(韓山童)은 자신을 「명왕(明王)」으로 칭하고, 아들 한림아(韓林兒)는「소명왕(小明王)」을 칭했다. 이들이 [[홍건적]]을 일으키고, 홍건적 출신의 [[주원장]]은 나라를 세워 국호를 명(明)으로 하였다. 과거에는 이것이 명교의 영향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백련교와 명교 사이에 교리상의 공통점이 보이지 않아, 명(明)이라는 글자를 내세운건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단지 명칭상으로만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 신화용 . . . . 23회 일치
         K리그 베스트 일레븐 GK에 선정된 2009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박의 여지가 없는 K리그 최고의 골리 중 한 명이었으나 여러 가지 불운으로 인해 시상식과 국가대표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골키퍼이기도 하다.[* 2015년에 '''특별상'''을 받기는 했지만 공로상에 가까운 여론 무마용 상이다.]
         2012 시즌에 온 김형일도 상무에 입대했고, '''또다시 리셋이 되버린 포항 수비진의 문제를 혼자서 다 막고 있다.''' ~~수비 가장 김형일이 떠나고 이젠 골키퍼가 가장~~ 이후 시즌 중에 들어가자 포항 수비진들이 안정이 되면서 다소 부담은 줄어든 상태. 11시즌 까지는 신화용 혼자서 막다가 팀은 지고 본인도 털리고 경우가 많았으나, 수비진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 가끔씩 찾아오는 위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경우가 많아지며 빛을 발하고 있다. 시즌 중에는 김다솔의 로테이션 기용으로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있긴 했지만 결국 주전을 지켜내며 주전 골리로써의 위치를 굳혔다.
         2014 시즌에도 맹활약 중인데, 2014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부리람 원정에서는 신화용 답지 않은 실수로 1골을 내줬으나 팀이 승리하여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시즌 초 [[황지수]]의 부상 결장으로 매 경기 실점을 내주고 있는 포항 수비진의 삽질을 혼자서 다 커버하는 등 이러한 활약 속에 5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는 미친 선방쇼로 4:2의 스코어와 상관없이 이 날 MOM에 선정되었다.
         사실 후기의 포항 경기는 '''어떻게든 득점->신화용 선방쇼''' 구도라서 2015년 FA로 다시 풀리는 신화용이 포항을 떠날까봐 팬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황선홍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미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와 함께 재계약이 완료된 상태라고 한다.[* 신화용 본인도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연봉협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홀가분하게 출발하고싶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FA로 풀린 것을 보면 아직 세부사항을 조율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서브 키퍼인 김다솔이 '''"신화용의 재계약이 확실해지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계약조건으로 [[대전 시티즌]] 이적을 확정하면서 사실상 신화용도 포항과 제계약 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재계약 완료기사가 떴다!!!''' 포항팬들은 신규영입들보다 더 가워 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인지라 2014 시즌에 신화용이 결장한 경기 승률이 바닥이라는 것이 모든걸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이후에도 꾸준히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포항의 수문장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으나, 김태수, 황지수의 노쇠화와 김광석의 초 부상. 김원일의 삽질(...)로 15시즌 포항 수비진 자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지라 신화용으로서도 '''답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경기당 실점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김광석의 복귀 이후 김원일도 어느 정도 정신줄을 잡으면서(...) 수비가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레 클린시트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시즌 클린시트 1위(17경기), 전경기(38경기) 출장, 실점률 2위 0.84에 후기에는 포항을 사실상 먹여살리는 활약을 했음에도 실점률 0.97인 [[권순태]]가 우승팀 GK라는 이유로 베스트11 GK에 선정되었고, 13시즌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더욱 15시즌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13시즌에는 '''신화용이 우승팀 골키퍼였음에도''' 스탯이 더 좋은 김승규가 베스트11에 뽑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K리그 수상식이 명확한 기준없이 시즌마다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 특히 15시즌은 논란이 컸던 것이, 득점4위인 이동국이 우승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시즌 MVP를 받았고. ~~13시즌 이명주는??~~, 득점1위 김신욱은 이동국을 베스트11에 넣느라 아에 베스트 11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신인들 중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와 활약을 보여준 황의조 대신 우승팀 버프를 받은 이재성에게 영플레이어상이 주어지는 등 전북팬을 제외한 모든 국축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나마 특별상 부문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FC서울의 오스마르와 같이 수상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드시 잡고 간다는 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감독은 바뀌었고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자 미드필더진이 무너졌고 수비진에는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감독은 그냥 3백에 수비위주 전술을 썼다 그래서'''신화용에게는 지옥같은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은 5월 현재 0.89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15시즌 초에도 지옥이었으니까~~] 게다가 15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여파가 남았는지 16시즌 들어서는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후배인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이 무서운 선방을 보이며 신화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부상으로 신화용이 경기에 못 나올 경우 한정이며 컨디션이 좋을때는 여전히 신화용이 No.1이다. 그리고 ACL, FA컵에서 조기 탈락하며 리그에만 집중하면 되는지라 부상만 아니라면 신화용이 시즌 내내 포항의 뒷문을 책임질 것 같았으나...
         부상 이후 폼이 하락해 결국 16시즌 후부에는 후임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김진영이 포항의 새로운 수문장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었으나...팀의 운명이 걸린 후부 하위 스플릿에서 김진영이 연달아 실수를 범하며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하자 막판에 주전으로 복귀. 포항의 잔류에 힘을 보태었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살펴보면 요근래 시즌 중에서는 가장 나쁜 시즌을 보내었다.
         하지만 시즌 초 팀이 엄청 부진할때 강원과의 경기에서 PK를 막아내며 첫 승의 이끌었고 이후 포항에서 보인 안정감을 되찾으며 팀의 순위 상승에 기여해 좋은 영입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그러나 15시즌 이후 이어지는 잔부상을 피하지 못해 결국 전열에서 빠지게 되었다.
         9월 19일 전북과의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3실점을 해 다소 아쉬운 모습도 보였다. 다만 이 날 수비가 구멍이었다는 점에서는 참작의 여지가 있었는데[* 특히 두 번째 최보경의 골은 수비진이 아예 골 넣으라고 공간을 내준 셈이었다.] 후 추가 시간 때 아드리아노의 결정적인 PK를 막고 승부차기에서도 김신욱과 이동국의 킥을 방향을 읽어 막아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쳐 팀의 준결승행을 이끌었다. 당연히 경기 MVP는 신화용의 것이었으며, 해설진이나 팬들도 "떨어질 뻔한 수원을 신화용이 멱살 잡고 끌어올렸다"와 같은 찬사를 받았다.
         이런 모습은 5월5일 [[FC서울]]과의 슈퍼매치 에서도 나왔는데 이번엔 상대 공격수 [[에드로]]가 공을 몰고 오는데 공은 안보고 바로 바디체크를 했지만 PK가 선언되지는 않았다. FC 서울이 이겨서 큰 논란은 없었지만 이 장면 역시 문제였다.
         키가 큰 골키퍼를 선호하는 김봉수 코치 때문에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저 소문일 뿐이다. 김봉수 코치는 오히려 김병지, 이운재, 카시야스를 거론하며 골키퍼는 키보다 경기 운영능력,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ttp://www.sportnest.kr/1564|관련 기사]] 정성룡 때문에 덩달아 미운 털이 박혀서 본인이 한 말과 정대의 말이 퍼져 인터넷에서 공연히 욕을 먹고 있다.[* 덧붙여 굳이 김봉수의 양아들을 찾자면 정성룡이 아니라 A매치 달랑 1경기 뛰어본 이범영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가르친 선수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4강 UAE전에서 한국에서 패널티킥 방어가 가장 뛰어난 김승규를 빼고 승부차기 대비용으로 넣을 정도로 신뢰를 보였다. 정성룡은 부진할 때 코치로서 변호해준 게 다인데 어쩌다 보니 양아버지란 낙인이 찍혔다.] 신화용이 뽑히지 못한 건 잘한다고 무한정 돌려 쓸 수 없는 골키퍼 포지션의 특수성 때문이지 다른게 아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 최악의 경기인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 울산과의 경기를 슈틸리케 감독이 보도진 몰래 [[포항 스틸야드]]에 암행정찰을 왔다. --왜 잘 할 때는 안 오고-- 이 날 모습을 생각한다면 국대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신화용 >>>>>> 정성룡을 외치던 K리그 팬들을 입 다물게 한 면에, 오히려 K리그까들로부터 '''정성룡이랑 뭐가 다르냐, 정성룡보다 더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롱받고 있는 중. 기량이 제대로 폭발한 이후로 실수가 상당히 줄어든 키퍼인데 역대급 실수를 엄청나게 보여주면서[* 그것도 공중파 전국 생중계였다. [[KBS]]가 올 시즌부터 K리그 클래식을 전격 중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아니, 왜 잘할 때는 중계를 안 해주고-- 참고로 KBS의 K리그 클래식 전격 중계는 [[이영표]]가 해설위원이 되면서 내건 조건으로 KBS는 이를 받아들였다라고만 서술하면 이영표 해설위원 혼자서 다 한 거 같게 느껴지는데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에서 따낸 계약 조건이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이영표의 기여도 차이가 있는 일이다.] 엄청 평가가 떨어졌다. 다만 이 경기를 관람한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에서는 언제든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실수였고, 선수들은 이런 실수가 나오는 데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7475|관련기사 1]],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8&article_id=0002396186|관련기사 2]]
         김진현이 2015 시즌 중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기회가 오나 싶었지만 이번엔 역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권순태]]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뽑히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골키퍼 3명 중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한 명을 제외하면 젊은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한 살 아래 권순태도 나이 때문에 김승규, 김진현에게 밀리는 상황이라 신화용의 대표팀 발탁은 요원해보인다. ~~무슨 지옥같은 스페인 국대 골키퍼 경쟁인줄~~[* 김승규, 김진현, 정성룡에 권순태와 이범영. 올림픽 대표팀에서 기대받고 있는 구성윤과 김동준, 이창근에 청대 출신 골키퍼 조현우(구성윤은 2015년 동아시안컵 때 백업으로나마 성인 대표팀에 뽑혔고 김동준은 예비 명단에 들었던 바 있다. 조현우도 예비명단에는 올랐었다.)까지 포함하면 유래없는 골키퍼 풍년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 2016년 기준으로 전부 한창 나이다. 거기에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인 이호승과 윤보상, 가장 포텐이 기대가 되는 [[김로만]]과 전종혁 등등 K리그 역사상 최대의 인재풀이 가동되어 있다.] 하지만 ACL 우라와전을 비롯하여 슈틸리케 감독이 꾸준히 포항 경기를 찾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손준호]]와 더불어 국대 발탁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있다고는 말 못한다.~~
         본인이 뛰어난 실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국대 키퍼들 때문에 국대 자리에 못 올리는 것처럼, 포항의 서브 키퍼들도 전부 연령별 대표팀이라던가 한 실력들 하는 후배들임에도(...) 신화용의 벽에 막혀서 전부 빛을 못 보고 있는데 본인은 오히려 이에 대해 미안해하기보다 '''"나는 후배들이라고 긴장을 푼 적이 한 번도 없다. 후배들이 잘해서 넘어야 한다."'''한다고 단칼에 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용 본인이 [[김병지]], [[정성룡]] 밑에서 구르고 구르며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후배들에게도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데 포항의 차세대 수문장으로 손꼽히는 [[김로만]]에 대한 평가도 신화용의 응은 귀여운 후배가 아닌 10년 아래의 신인 선수임에도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포지션의 경쟁자"''''라고 칭할 정도. 그러다 보니 신화용에 막혀 이미 팀을 떠난 황교충, 김다솔을 비롯하여, 이준희는 결국 경남 FC로 2016 시즌 임대를 가서 주전 자리를 먹고 있고, 포항에 남은 [[김진영]], [[강현무]], [[김로만]]은 말 그대로 속이 타들어가다 신화용이 2017 시즌 이적함으로서 겨우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사실 포항의 키퍼 라인은 지금까지 무혈입성한 선수가 거의 없다. 유일한 예외가 김병지뿐인데 포항 이적 당시 김병지는 이미 국대 주전이었기 때문에 무혈입성이 가능했던 거지 당장 그 후임이었던 정성룡도 신화용과 로테이션을 돌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으며 신화용도 정성룡이 떠난 뒤에 김지혁과 로테이션을 돌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다. 어떻게 보면 신화용은 포항의 팀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그런 이유에서인지 포항은 김병지 이후 정성룡, 신화용, 강현무를 거치는 동안 주전 백업 가리지 않고 골키퍼로 문제를 겪은 적이 없을 정도로 K리그 최고의 골리진을 유지하게 되었다. ~~문제는 수비~~] ~~그리고 그 자리를 무혈입성(...)한 것은 [[노동건]]...~~ --노동건이 결장한 사이 [[강현무]]가 인생경기를 펼치며 신화용의 장기집권이 얼마나 어마무시했는지 증명했다.--
         K리그 클래식 주전 골키퍼 중에서도 수준급의 기량을 선보이며, 특히 수비 리딩은 정상급이다.[* 덕분에 2017시즌의 수원 수비가 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사신경, 상황판단력등이 모두 평균이상이라 안정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과감히 수비라인을 전진시키며 전진압박을 유도하는 과감성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신화용이 골리였을 때인 2017년과,정성룡,양형모,노동건이 골키퍼였을때의 수비 라인 유동성이 크게 다르다.] 경기 중 말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를 통해 작전이 쉽게 전달되지만 상대 공격진에게 간파당할수 있는 위험성 역시 갖추고 있다. 거기에 골리치고는 단신에 속하는 신장인지라 공중볼 처리에 약점이 있으며, 역시 프리킥 상황에서도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이 작은 몸 탓인지 날렵한 편이라 사신경과 더불어 슈퍼세이브를 많이 만들어내는 골리이다.
  • Victoria II/개혁 . . . . 22회 일치
         개혁을 계속 하다보면 서구화에 대하는 동주의자들이 란을 일으킨다. 만약 이 동주의자들이 수도를 점령해 란을 성공시킨다면 몇몇 개혁이 취소된다.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2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문명국의 경우 POP들의 의식도가 오르면서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만약 개혁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해당 개혁을 지지하는 POP들의 투쟁성이 증가하다가 결국 란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POP들이 개혁을 원하면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정치 체제, 경우에 따라서는 의회 구성원들의 지지가 있어야 개혁을 할 수 있다.
          * 인구 기: 국민들의 사상에 따라 상원의원이 선출된다.
  • 이유리(배우) . . . . 22회 일치
         독립영화 또는 단막극 등에서 조단역으로 연기경력을 쌓아오다가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자 많은 정상급 배우들을 배출해 낸 [[2001년]] [[학교 시리즈]]의 《[[학교 4]]》에서 미대 입시생 '박서원'으로 정식 데뷔했다. 극 중 이유리는 삐죽삐죽 솟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대변되는 항적이고 강한 이미지와 출연자 중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펼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녀는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발돋움 하면서 당시 23살의 나이로 청소년 연기상을 수상한다.
         학교 4 시즌 후부였던 [[2002년]] 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 캐스팅되어 허약한 [[순종(대한제국)|순종]]의 첫 번째 아내인 [[순명효황후]] 역할을 맡았다. 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항적인 이미지와는 정대로 기울어가는 왕조의 가련한 세자빈으로 분해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였다. 여담으로 《명성황후》에 캐스팅됐던 시점이 《학교 4》가 막 끝나던 시점이라 이유리뿐만 아니라 같이 나왔던 몇몇 연기자도 캐스팅이 됐다. 그 중 나름 커플 연기를 펼쳤던 김유민 역의 [[백승우]]가 《명성황후》에서 순종으로 캐스팅 되어 연달아 커플 연기를 했다.
         2011년 MBC 주말드라마 《[[짝 빛나는]]》 '황금란'으로 본격적으로 독보적인 악녀연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사실 깍쟁이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는 종종 맡은 적이 있어도 본격적인 악녀 연기는 2002년 《러빙유》이후 9년만이었다. 극 중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산부인과에서 부모가 뒤바뀌는 바람에 가난하기 그지 없는 집안의 둘째딸로 살아가던 중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과 운명이 뒤바뀐 '정원([[김현주]])'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정원을 향해 열등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로 열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출생의 밝혀지기 전 초라한 모습과 정대로 부잣집에 입성하면서 매 회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유리도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다.
         드라마 《짝 빛나는》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이유리는 복수극이나 대립물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들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2012년 [[tvN]] 아침드라마 《[[노란복수초]]》에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복수의 화신으로 재탄생하는 '설연화'역을 맡았다. 드라마는 당초 10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응이 좋아 케이블에서는 이례적으로 8회가 연장됐고 23주간 케이블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선보이며 2012년 《[[응답하라 1997]]》과 함께 tvN 드라마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순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영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식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영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같은해부터 다음해인 2017년까지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에서 '장옥자'역을, 뮤지컬 《오! 캐롤》에서는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소녀 감성의 '로이스' 역을 맡아 러블리한 모습으로 친구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랑에 설레여 하는 달달한 로맨스로 180도 달라진 전 매력을 선보이며 꾸준한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 2011년 || MBC || [[짝 빛나는(드라마)|짝 빛나는]] || 황금란 || ||
         === 음 ===
          * 데뷔초부터 활발하게 주조연으로 활동했기에 여러 작품에서 만난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있다. 특히 [[이동욱]]이 대표적이다. 우선 학교 시리즈의 선후배 사이이며 《사랑은 이런거야》, 《러빙유》, 《부모님전상서》 총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이유리와 이동욱이 각각 재수생과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나와 커플연기를 펼쳤는데 그로부터 1년 후, 《러빙유》에서 재회했다. 초에 이동욱이 이유리를 좋아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악녀본색을 내뿜는 이유리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다. 그 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작품이 《부모님전상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게 대가족이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유리는 4남매 중 각각 3호와 4호를 맡았다. 전작들보다 극중 상황이 더 나빠져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현실 남매 연기를 보여주었다.
          * 이유리의 형제관계는 4남매 중 막내로 큰 언니, 오빠, 작은 언니 그리고 이유리가 셋째 딸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은 [[이효리]]가 대표적[* 공교롭게도 이효리의 둘째언니 이름은 이유리 본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 가족의 막내딸이라 곱게만 자랐을 것만 같지만 이유리는 어릴 때부터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랬다며 지나가듯 푸념하면서 식구가 많아 어릴 때 [[짜장면]] 같은 걸 시키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식탐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이러한 형제관계였다. 허나 실제로 이유리는 1남 3녀 중 막내이고, 극중 변혜영은 1남 3녀 중 장녀이며, 둘째이다. 이유리 실제 형제의 맏이는 여자고, 극중 맏이는 남자라는 것이 차이점.] 10년 전 방송 '좋은 아침'을 통해 작은 언니의 얼굴이 잠시 비춰졌는데 막내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당시 언니는 성경책을 보고있는 동생 이유리에게 "지금 니가 대본을 봐도 모자랄 판에 성경책을 보냐"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이유리가 '만원의 행복'에 출연당시 부모님이 등장했는데 부모님과는 씩 얼굴이 닮은 듯하다. 이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2> [[2011년]] || [[MBC 연기대상]] || 연속극 부문 여자 우수상 ||<|2> 짝 빛나는 || ||
  • 전태일 . . . . 22회 일치
         === 생애 초 ===
         [[1968년]]에 우연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ref>[[위기철 (작가)|위기철]]이 쓴 전태일 위인전(산하)에 의하면, [[노동운동]]을 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읽게 되었다고 한다.</ref> 그 뒤 해설서를 구입해 그 내용을 공부하면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의로운 분노를 느끼고,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ref>바보회라는 이름은 전태일의 노동자로서의 성이 담긴 이름이다.노동자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투쟁을 하기보다는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에 순응한 바보라는 뜻이 담긴 것이다.</ref> 를 창립하여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하고 설문을 통해 현재의 근로실태를 조사하였다.
         [[1969년]] [[7월]] 열악한 노동조건과 근로기준법 위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노동청]]에 진정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후 [[노동청]]을 찾아가 근로 환경 개선, 위생 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1969년]] [[9월]]부터 [[1970년]] [[4월]]까지 일용직 건축 노동자로 일하였다. 이때 그는 [[감리교|감리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70년]] [[4월]]부터는 평일에는 자신이 다니던 감리교회의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노동자 동지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는 야학당 교사가 되었다. 주말 낮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매일 일기를 썼다. 한 일기에서 그는 [[북한]]에 대한 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전쟁]]은 [[북한]]이 먼저 도발해서 일으킨 전쟁이라고 기록해 두기도 했다.
         노동운동의 대부로 인식되는 탓에 그를 마치 정부적이고 체제적인 인물로 왜곡된 인식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보낸 탄원서에서도 그는 '대통령은 국부이고, 곧 저희들의 아버지'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대통령에게 노동자들의 극히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해주기를 호소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다.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 생애 후 ===
         [[1970년]] [[9월]] 전태일은 [[한미사]]의 재단사가 되었다가, 같은 [[9월]] [[왕성사]]의 재단사가 되었다. 재봉사보다 지위가 높은 재단사로 일하며 이전의 바보회를 발전시킨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되었다. 그 뒤 다시 노동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려 126장의 설문지와 90명의 서명을 받아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진정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이 내용이 [[경향신문]]에 실려 주목을 받자, 전태일 등 삼동회 회원들은 본격적으로 임금, 노동 시간, 노동환경의 개선과 [[노동 조합]] 결성 등을 위해 사업주 대표들과 협의를 벌였으나, 일을 무마하려는 [[정부]]의 약속 위으로 인해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으며, [[자본가]]들도 삼동회는 [[사회주의]] 조직이라고 헐뜯음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그해 [[10월]]부터 그는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시위를 주관하였다.
         {{인용문|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지<ref>금력(金力)을 뜻함.</ref> 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청계천의 다른 응 ====
         일부 미싱사 등은 냉소적으로 응하였다. 일부 노동자와 미싱사들 중에는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ref name="ganaess"/> 당시 초등학교만 나와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일부 노동자들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귓등으로 흘렸다.<ref name="ganaess"/>
         ==== 정치, 사회계의 응 ====
         기본적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고발한 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향을 일으켜, [[11월 16일]] [[서울대학교|서울대]] 법대생 1백여명은 그의 유해를 인수하여 학생장을 거행하겠다고 주장했고, 상대생 4백여명은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였다. [[11월 20일]] 서울대생, 성균관대생, 이화여대생 등과 기타 서울시내 학생운동가들이 모여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전태일 추도식을 거행하고 공동으로 시위를 벌였다가 해산되었으며, 고려대, 연세대생들도 집회를 열었다.
         이를 두고 환자를 살려야 되는 [[의사]]들이 책임을 방관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 당시 전태일의 담당 의사는 한 개인이 아니었다. [[1970년]] [[11월]]의 [[대한민국]] 의료계 전체가 전태일의 마지막 길을 동한 주치의였다. 그 글(전태일의 입원 과정)을 읽었던 [[1987년]]의 의료계도 사회적 책무라는 면에서는 [[1970년]]의 의료계와 별 달라질 게 없었던 듯 했다.<ref>김선, 《의사가 말하는 의사》 (도서출판 부키, 2004) 104페이지</ref>"는 비판이 있다.
         * 당시 [[노동자]]들의 참혹한 [[노동]] 현장의 상황이 세상에 적나라하게 알려졌고 이로 인해 전체 노동자들이 겪고있는 인간이하의 고통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일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학생]], [[지식인]]등 각계각층을 망라한 연대는 종전에는 보도조차 하지 않던 [[노동문제]]를 사회 이슈화 했다. [[신문]], [[방송]]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되고 이로써 정치계와 정당들도 정부의 노동자 정책에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없게 되었다.
         [[2002년]] [[11월 28일]] 그는 보상금 930만원을 받았다. 19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全泰壹)에 대한 보상금은 930만원에 불과한 면 91년 분신자살한 노동운동가 [[윤용하]]는 2억 3천만원을 받게 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다.<ref name="boboss">[http://www4.hankooki.com//nation/200211/h2002112817562214510.htm 전태일씨 보상금 930만원 지급] 한국일보 2002/11/28</ref> 위원회는 이에 대해 "[[국가배상법]]은 희생 당시 월급액을 기준으로 [[보상금]]을 정하도록 돼 있어 당시 월급이 2만원에 불과한 전태일씨와 90년대 들어 노동자의 월급이 급격히 오른 후의 대상자와 보상금이 수십 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ref name="boboss"/><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128215 민주화 보상금 첫 지급…형평성 논란] 국민일보 2002.11.28</ref>
         그의 어머니 이소선(李少線)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 유가족 8명이 [[12월 31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보상금 지급을 현실화해 줄 것을 요구하며 재심을 청구했다.<ref name="hjaeshims">[http://www4.hankooki.com//nation/200212/h2002123116132714510.htm "민주화운동 보상금 현실화" 전태일씨 유족등 재심청구] 한국일보 2002/12/31</ref> 어머니 이소선은 "태일이가 보상금으로 930만원으로 받는데 비해 [[1991년]] 분신 자살한 [[윤용하]]씨는 2억 3천만원을 받는다"며 "이는 태일이의 보상금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당시 임금만을 단순 영한 [[호프만식 계산법]]으로 산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f name="hjaeshims"/> 재심청구를 주선한 전국민주민족유가족협의회(유가협)도 보상금심의위원회가 당시 전문 기술자였던 전씨를 [[단순일용직 근로자]]로 분류해 [[보상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ref name="hjaeshims"/>
         한편 이후 노동운동과 정부 운동의 상징이 되면서 대단히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인물인 것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졌다<ref name="sangcahm">함규진, 《역사법정:한국사 인물논쟁》 (포럼, 2006) 330페이지</ref> 는 시각도 있다. 역사학자 함규진에 의하면 "노동운동과 정부 운동의 상징이 되면서 대단히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인물인 것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어졌지만, 그가 쓴 글은 아주 소박하고 온건하다. '대통령 전상서'의 내용을 보면 골자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악덕 기업주들을 단속해 달라는 것이다. 마지막은 이렇게 맺고 있다. '각하께서는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이 아버님이십니다. 소자 된 도리로서 아픈 곳을 알려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주십시오. 아픈 것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ref name="sangcahm"/>"라는 것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면, 전태일은 급진적이거나 생각이 편향된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양심으로써 노동인권운동에 헌신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전태일 평전에 전태일이 쓴 일기가 실려있는데, [[십계명]]으로써 하나님이 [[안식일]]을 정하셨으니 [[노동자]]들은 휴식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1970년 죽음]][[분류:정선 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노동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공주의자]][[분류:전태일]][[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분신 자살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고소영 . . . . 21회 일치
         동명이인[[하니]]
         ||<:> [[남소라]][br]([[정주희]]) ||<:> {{{윤체리 }}} ||<:> '''[[유다솜]][br]([[ 고소영 (모델) ]])''' ||<:> {{{소희 }}} ||<:> [[하니]][br]([[천세라]]) ||
         ||<#896AB7> {{{#ffffff '''이름'''}}} ||<(> '''소영(高素榮)''' ||
         ||<#896AB7> {{{#ffffff '''본관'''}}} ||<(> [[|제주 씨]] ||
         작았다(...) 160중정도로 추정된다.], 47kg, [[A형]] ||
         ||<#896AB7> {{{#ffffff '''가족'''}}} ||<(> 부모 '''[[하니]]''', 딸 윤설 ||
         연기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광고 모델이 주업인 배우'''로 손꼽힌다.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전도연이 자타공인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데 해 이쪽은 정말 발전이 없었다. 90년대 [[김희선]]처럼 연기폭이 좁은것도 아니고 그냥 연기를 못한다. [*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녀배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지금도 두사람이 같이 거론되지만 배우로서는 엄연히 김희선이 위다. 김희선은 브라운관안에서의 존재감에 비해 연기력이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은 90년대에도 선하고 청순 발랄한 캐릭터를 맡기면 대박을 터트렸고 원톱 주연을 맡아 완판을 기록했으며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주목을 덜받었을 뿐 《세상 끝까지》나 《안녕 내사랑》같은 90년대 말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기이 있었기에 원숙함과 노력에 더해진 2010년대에는 진지한 역, 억척스러운 역, 우아한 역 다 해내면서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연기 잘 하는 배우 열에 올라섰다.]1990년대에는 워낙 잘나가서 그런 얘기가 드물었지만 2002년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의 흥행 참패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력 논란이 제기 됐으며, 이 논란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앞서 말한 2000년대 들어 활동이 없다시피한 것도 결국 그녀의 연기력이 문제로 작용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출연작 중 그나마 연기평이 좋았던 출연작은 [[강풀]]작가 웹툰 원작의 영화 [[아파트(영화)|아파트]] 정도.
         그런데 [[하정우]]와 영화 출연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기대보다는 걱정된다는 응이 많았었다. 워낙 말아먹은 작품도 많거니와, 발연기를 시전한 작품이 한두 작품이 아닌지라..'''다행히 엎어졌다.'''
         2017년 2월 KBS 드라마 [[완벽한 아내]]를 통해 10년만에 복귀했으며, 주인공 심재복 역을 맡았다. 첫 회 방영 후 크게 성장한 연기력으로 역대급 호평을 받는 중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 도중 점점 막장으로 치닫더니...결국 드라마는 망했어요...가 되고 말았다. 후으로 갈수록 이은희 역의 [[조여정]]의 연기력이 크게 돋보이긴 했지만 고소영의 연기 역시 ~~의외로~~ 괜찮았기 때문에, 연기력에 대하여는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드라마의 인기는 저 멀리... 남편인 [[장동건]]이 간만에 복귀한 [[신사의 품격]]과는 정대로 가버린셈. [* 신사의 품격 내에서 장동건은 연기도, 드라마 인기도 모두 잡았지만, 고소영은 완벽한 아내 내에서 연기력은 나름 인정받았을지라도 인기는 잡지 못했다.]
          * 2015년 9월부터 [[J TRUST]]의 모델이 되어 TV 광고에 출연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떴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277&aid=0003578730|#]]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배우가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논란이 일었으며 이런 논란에 대해 '''그저 이미지 광고에 출연하는 것 뿐'''이란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해명하는 바람에 팬들의 비판이 더욱 들끓었다. 연예계 관계자 중 한명도 고소영 본인뿐만 아니라 남편인 장동건 또한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는 응과 함께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는 평이 나왔다. 더구나 [[상호저축은행|저축은행]] 항목에도 나와있는 광고 규제책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광고로 출연한 탓에 그 또한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중이다. 고소영은 사건이 생긴 지 '''2일 뒤에 사과하였고 광고 계약도 취소'''하였다. 여러모로 한국에서의 대부업체의 이미지를 알 수 있는 대목.
          * 90년대 연기력이 안 좋은 걸로 유명했지만, 스타로서의 쇼맨십이나 예능감 같은 기질도 그다지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 같으면 방송 태도로 논란이 일었을 만한 순간이 꽤 있었다. 첫 드라마 데뷔작인 [[내일은 사랑]]에서도 주인공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으며 비중이 큰 주연으로 출연했었으나, 뻣뻣한 연기로 질타를 받은 것과 제작진과의 불화로 드라마팀 회식에 혼자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드라마 초에 하차하기도 했다. (이 대타로 [[박소현(배우)|박소현]]이 투입됨.) 이 때문에 고소영이 다시 KBS 드라마에 나오는 것은 5년 뒤(1998년) '맨발의 청춘'에 가서야 가능했다. 'PD들이 제일 싫어하는 배우'같은걸로 앙케이트에 뽑혀서 예능에서 본인이 그걸 해명하기도 했을 정도.
          * 고소영이 나온 순창고등학교는 사립학교이다보니 고소영이 과천여고 재학생이었던 시절부터 2016년 현재까지도 현역 근무 중인 선생님들이 적지 않게 계신다. 과천여고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계시는 선생님 몇 분이 가끔씩 고소영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하실 때가 있는데, 주변에 폐를 끼치거나 다른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을 괴롭히거나 했다는 말은 없지만 선생님들은 고소영을 썩 좋게 보진 않으시는 듯하다. 여고 재학 시절에도 연예계 쪽 활동[* 광고 활동이나 오디션 참가 등으로 추측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일이 일 학생보다 많았고, 그 때문에 어른인 선생님들의 눈에 좋게 보이진 않았던 듯. 그래도 앞에 적었다시피 악평을 하신 분은 없었다.
          * SBS 아나운서 [[배성재]]의 형이기도 한 배우 [[배성우]]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짝꿍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 [[내일은 사랑]] (1992, KBS) - 유현경[* 초 13회 분량만 출연하고 하차. 하차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제작진과의 불화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내일은 사랑 27회 말미에 나오는 회상 장면에서 목소리를 성우 더빙으로 처리한 데에서 알 수 있다.]
          * [[숙희]] (1995, MBC) - 김숙희 - 하니
          * [[별]] (1996, MBC) - 장혜미[* 드라마 자체는 SF에 스릴러 느낌을 담았으며, 정확하게는 사고로 지구에 표류한 외계인 과학자다. 극중 장혜미는 드라마 초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으며, 과학자 외계인이 지구에서 지구인들의 눈을 피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려고 죽은 장혜미에게 빙의했다. 같이 주인공으로 나온 모델 이소라는 살아있지만 마찬가지로 외계인 군인에게 빙의당해 행동을 같이한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21회 일치
         친구를 감싸는 모습에 감동한 오카마 왕 [[엠폴리오 이코프]]는 빠른 치료를 원하는 루피에게 '10년 분의 수명을 깎아' 자기치유력을 급격히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시술한다. 본래 사형 시간을 넘겨서야 회복될 몸이었지만, 봉쿠레의 응원과 근성으로 20시간만에 회복에 성공하고 LEVEL 6로 향하지만 에이스는 이미 사형장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여기서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위해 크로커다일과 [[징베]]를 파티에 합류시킨다.
         크로커다일, 징베, 루피, 이코프, [[이나즈마(원피스)|이나즈마]]라는 전 칠무해 2명과 혁명군 간부 2명이 포함된 무지막지한 팀이 결성되자 임펠 다운의 수감자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광대 버기가 이 혼란을 이용, 각 층의 죄수들을 풀어 대혼란을 야기시킨다.
         사형대 바로 앞까지 도착은 했지만, 해군 3대장이 버티고 있었고 [[쿠잔]]에게 죽을 뻔하다가 [[마르코(원피스)|마르코]]의 도움으로 또 목숨을 건졌으나, 직후에 탈진한다. 독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제대로 회복할 틈도 없이 텐션 호르몬을 맞고 임펠 다운을 뚫고 올라와 끝없이 전투를 했기에 당연한 일. 이코프는 이제 더는 무리라며 뒤는 맡기고 쉬라고 하지만, 루피는 오히려 이코프에게 '''"지금 에이스를 구하지 못하면 나중에라도 죽고 싶어질 거야"'''란 말로 우겨대 텐션 호르몬을 한 번 더 받아 강제로 회복하고, 포효하며 전장으로 돌격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상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태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남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상인 몸을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어인섬]]으로 향하면서 만난 [[크라켄(원피스)|크라켄]]과 전투를 벌이는데, 기어 3(서드)를 사용하여 단 한방에 산보다 더 큰 크라켄을 해치웠다![* 그것도 '''바닷속이라 평상시 때보다 힘이 상당히 감된''' 상황에서 말이다. [[흠좀무]] 이로써 4억의 위상을 제대로 세웠다. 먼저 신세계로 간 라이벌들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을 듯. 참고로 이때 기어 3(서드)를 사용했는 데도 불구하고 그 몸이 작아져버리는 부작용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얼마 후에는 그 크라켄을 길들여 버렸다!
         크라켄의 도움으로 어인섬에 도착하게 된다. 어인섬 앞을 가로막는 신어인해적단 전투원 [[하몬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 부하가 되라는 협박을 받지만 당연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어인섬에 어찌어찌 진입한 후 하몬드와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이 때 하몬드와 그 일당들을 박살냈다. 이 때 하몬드와 같이 다니는 [[효조]]라는 독문어 인어에게 공격당했으나 [[독독열매]]의 능력자 [[마젤란(원피스)|마젤란]]에게 당한 것 때문에 독에 면역이 생겨 상처가 좀 생기고 만 수준이었다.[[흠좀무]] 루피도 누가 공격한 건지 대충 알아챘지만 별 신경 안 쓰는 듯. 참고로 이걸로 루피가 모든 극독에 내성이 생긴 것으로 여기는 듯한데 쵸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고 마젤란과 다시 만난다면 죽는다고 이코프가 경고한 것을 보면 일정수준 이상의 독이면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그 일정수준 이상의 독이라는게 마젤란이 쓰는 독 기준이니 실상 마젤란이 상대인 경우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듯. 실제로 자기보다 월등히 강한 적을 상대로 생채기를 낸 것 만으로 효조가 승기를 따냈다 확신했을 정도니, 효조가 칼에 발라둔 독도 굉장히 강한 독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루피는 죽기는 커녕 붓지도 않았다.(…)
         612화에서 어인섬 류구 왕국의 왕 넵튠의 궁궐으로 가서 멋대로 음식 냄새에 일행들에게 이탈하여 먹을 걸 먹으러 가다가, 공주인 [[시라호시]]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공주도 [[거유]]에 미모가 [[보아 행콕]]에 대등할 수준의 [[미소녀]]인데, 또 연애플래그의 느낌이 든다… 일단 613화에서 [[더 덱켄 9세]]가 날린 도끼로부터 시라호시 공주를 구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덱켄의 도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하면서 경각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라호시]]공주에게 산책을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시라호시를 상어 입 안에(…) 숨기고 시라호시가 가고싶은 바다숲으로 향한다.
         시라호시와 바다 숲을 향하던 중에 시라호시가 상어 입 속에서 나오면서 납치범으로 오해를 받고 가뜩이나 예언 때문에 오해 받던 상황이 더 심각해지게 된다. 사람으로 치면 일인이나 다름 없는 어인섬의 일 어인과 인어들에게 힘을 쓰고 싶지는 않은지 저항 없이 그들에 의해 밧줄에 묶인 이후 [[더 덱켄 9세]]이 나타나자 거치적 거리는 주변의 어인들을 패왕색 [[패기(원피스)|패기]]로 기절시킨 뒤에 덱켄을 상대해 가볍게 바닥에 쳐박아 버린 후 떠나려고 하지만, 덱켄의 명령에 의해 부하인 [[와다츠미(원피스)|와다츠미]]가 그걸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와다츠미의 이빨을 가볍게 부러뜨려주며 [[시라호시]]공주와 함께 다시 바다 숲을 향해 나아간다.
         634화에서는 패왕색 패기로 10만명의 [[신 어인 해적단]] 중 5만 명을 단방에 쓰러트려 압도적인 파워를 보여줬다. --역시 패왕색 패기는 [[양민학살]]용-- --드래곤:그러라고준 패기가 아닐텐데--636화에선 [[크라켄(원피스)|크라켄]]에게 형제를 인질로 잡았다며 찌질한 명령을 내리는 호디 존스를 보고 되려 크라켄에게 너도 형제도 지켜준다며 미소를 보여주어 크라켄을 멈춰서게 한 다음, 열불난 얼굴로 묵묵히 호디 존스에게 다가가 폭발한 얼굴로 '''뭔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라면서 발길질을 괜히 [[해적왕]]드립치던 호디 존스 얼굴에 먹여줬다. 그렇게 호디를 압도하던 중 [[더 덱켄 9세]]가 노아를 날려서 어인섬을 파괴하려 하자 공기방울을 타고 노아를 막기 위해 돌입하던 중 이미 덱켄을 처리한 호디와의 수중전에서 방울이 터질 뻔해 위기에 처하지만 공기 주입 후 털어버린다. 그리고 어인섬의 대물림된 증오를 없애기 위해 어인섬을 원점으로 돌려달라는 [[후카보시]] 왕자에게 걱정 말라고 답한다. 그리고 무장색+기어2의 조합으로 신기술 '''고무고무 레드호크([[포트거스 D. 에이스|불주먹]] 총)'''이라는 폭발하는 펀치를 호디에게 선사. --형님 불주먹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JET개틀링까지 합하면 [[아침공작]]완성-- 이어서 기어3+무장색의 엘리펀트 건으로 호디를 작살내고, 엘리펀트 개틀링으로 어인섬에 떨어지기 전에 노아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임에도 어인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루피에게서 어인섬의 한 주민은 '''[[에드워드 뉴게이트|넵튠과 우정의 술잔을 나누고 어인섬을 목숨을 걸고 지켜내 모든 어인들을 감동시킨 위대한 해적]]'''을 떠올린다.] 그러나 시라호시가 불러낸 해왕류 덕분에 노아는 어인섬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고, 루피는 노아를 파괴하는 걸 중단하는 동시에 호디 존스와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로 인한 출혈로 실신.[* 그런데 상처가 커서 출혈이 심했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상처가 나 피가 밖으로 흐르는 상태에서 기어 세컨드나 서드 같은 혈류를 빠르게 하거나 움직이는 기술을 사용했기에 출혈이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루피의 혈액형인 F를 밀짚모자 해적단에게서 구할 수 없는 데다가 어인섬의 규율인 '인간에게 수혈할 수 없다.' 탓에 한 때 피를 못 구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나 [[징베]] 덕에 위기를 넘겼다. 이후 징베에게 동료가 되라고 제의했다.
         어인섬에서 2년 수련해서 패기를 배운 것 치고 위기에 몰리는 묘사가 많아서 의견이 많지만 '''애초에 악마의 열매 능력자'''인 루피가 '''바닷속'''에서 '''어인, 그것도 도핑약의 도움을 받은 적 보스'''와 대등이 아닌 '''일방적 우세'''로 싸운 걸 감안하자. '''아론 파크에서 루피는 물에 닿자마자 고자가 된 면 어인섬에서의 루피는 물 속에서 어인 상대로 잘만 싸웠다.'''
         면 어인은 수중에서는 오히려 이동범위에 있어 부자유가 없어지고 속도와 힘도 더 붙고 기술폭까지 늘어나 전체적인 컨디션이 대폭 상승한다. 이건 '''ES를 과다복용한 호디를 기준으로 해도 압도적인 실력차가 있지 않고서야''' 이기기 힘든 게임이다. 그런데 루피는 이걸 이긴다음에 체력이 남아서 노아를 때려부순다. 사실 따지면 따질수록 이 상황에서 못 이긴 호디가 보스로써 수준미달 이었다는 결론이 난다.(…)
         용과 대화를 나눈 루피는 그 용이 [[킨에몬]]의 아들인 [[모모노스케]]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특유의 머리로 "그 이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정도로 넘어간다. 어쨌건 모모노스케에게서 시저가 아이들을 죽일 것이며 다른 아이들을 대려와 같은 실험을 복할 것이라는 것을 들은 루피는 열받아 탈출하려 한다. 그런 루피의 모습에 모모노스케는 안심하다가 갑자기 도플라밍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겁에 질려 하늘을 날아오르고 덕분에 루피도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선수관람석에서 베라미의 B블록의 경기를 잠시 동행하게 된 캐번디시와 지켜보는 도중 콜로세움에 참가한 [[돈 칭자오]]가 나타나 '''"[[몽키 D. 가프|가프]]는 잘 계시는가? 루피 아우"''' 하고 물어보자 생각없이 바로 아저씨는 어떻게 할아버지를 아냐고 대답하는 바람에 또다시 정체를 발각당한다. 그리고는 옆에서 이를 들은 캐번디시가 루피가 맞냐며 추궁하자 당황하며 루피가 아니고 루시라며 발뺌하고,[* 이 와중에도 돈 칭자오의 계속되는 도발에 꼬박꼬박 응하며 자기가 루피인 것을 계속 [[인증]]한다.~~역시 바보~~ 캐번디시도 그렇고 칭자오도 그렇고 애먼 데다 원한을 품은 인물들 때문에 보통 보케 담당인 루피가 츳코미를 해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캐번디시 曰 "남의 인기나 뺏질 않나 귀신의 손자로 태어나질 않나… 순 원망만 사는 쓰레기 자식." 이에 루피 曰 '''"그거 다 내 알바 아니라니까?"'''] 돈 칭자오는 가프에게 수없이 살해당할 뻔 했다며 루피의 할아버지인 '''악마 가프'''[* 돈 칭자오가 활동하던 당시의 해적들에게 있어 가프는 악마로 통했다고 한다.]에게의 빚을 손자에게 갚겠다며 루피?를 공격하고, 이에 루피는 전력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지만 전혀 통하지 않고 흥분한 돈 칭자오는 계속 루피를 공격하려 하나 주변의 만류로 일단 와해된다. 이후 '''경기고 뭐고 일단 밀짚모자를 잡겠다는 캐번디시를 피해''' 관람석 외벽에 매달려 [[바르톨로메오(원피스)|바르톨로메오]]와 싸우던 [[베라미]]를 응원하지만, 결국 베라미는 엘리자벨로 2세의 왕의 펀치에 휘말려 탈락한다.
         이후 피카에 의해 조로, 로, 리쿠 드루드 3세, 퀴로스, 비올라와 함께 궁전 정원으로 떨어지고 도플라밍고가 새장을 펼치며 시작한 게임[* 도플라밍고를 먼저 죽이느냐, 그가 지목한 12인을 먼저 죽이느냐.]에서 별 3개[* 별 하나당 1억과 동급]를 배정받았다.[* 같은 입장으로 리쿠 드루드 3세와 트라팔가 로, 사보가 있다. 하지만 우솝은 입장을 떠나 도플라밍고를 제일 열받게 해서 별이 5개가 걸렸다.] 그리고 로빈에게 걸려온 전보벌레로 레베카에게 퀴로스의 정체를 알림과 동시에 도플라밍고를 작살내놓겠다 선언한다. 로는 동맹의 본래 목적을 다시 말하며 카이도와의 연전도 각오한 거냐고 물어보지만, 그에 대한 입막음으로 말한 루피의 대사가 실로 압권. 그리고 조로, 로를 끌어안고 도플라밍고의 궁전으로 직행하였고 도플라밍고를 포함한 돈키호테 패밀리앞에 등장하였다. 루피의 발을 잡고 [[마하바이스]]와 [[델린저(원피스)|델린저]]가 그를 막으려 했지만 마하바이스의 무게공격은 피했고 델린저는 조로가 뒤에서 차버려서 델린저와 마하바이스를 쌍방으로 데미지를 입히게 한다. 그리고 돈키호테 패밀리사이에 일인이 끼여있자 그들을 패왕색으로 기절시키려는 찰나에 [[후지토라]]가 나타났고 조로가 그를 막아선다. 그리고 [[피카]]의 고음을 듣고 미친듯이 웃는바람에(...)[[어그로|그것이 피카를 도발한 꼴이 되어]]. 그래서 빡친 피카의 주먹에 의해 조로, 로와 함께 멀리 날아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팬덤에서는 2년 후 시점의 루피가 그렇게 강한 것 같지 않다는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논란이 크다. 도플라밍고와 싸우고 있지만 엇비슷하게 싸우는 것 같아 보여도 당장 지금의 도플라밍고는 로우의 감마 나이프에 맞아서 내장 자체가 파열된 것을 억지로 실로 급히 '''응급조치'''만을 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회복이 천천히 되어가는 중이지 회복이 된 것이 아니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멀쩡한 몸 상태에서는 루피를 여러번이나 간단히 농락하고 제압했던 도플라밍고였기 때문에[* 실인형이 처음 드러났을때도 그렇고, 루피와 로우의 샴블즈 + 레드호크에 당했을때도 맞으면 맞아주면 그만이라며 간단히 루피의 손을 실로 묶어버리고 제압한 등.] 루피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도플라밍고에게 제대로 상대가 안되기에 도플라밍고에게 그만한 너프를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루피도 콜로세움에서부터 계속해서 체력을 소진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루피가 패밀리의 일간부 수준인 돈 친자오 정도와 싸울 때 도플라밍고는 최고간부보다 훨씬 윗줄의 로우와 싸우고 있었다.(...)
         기어4로 전세를 역전시켜 도플라밍고를 순식간에 궁지로 밀어넣는데 성공하나 기어4는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심해서 약 10분 간 지쳐 쓰러지고 만다. 한편 도플라밍고는 "능력자에게는 각성이란 경지가 있다"면서 주위 사물을 실로 만들면서 격을 시작, 다시 위기에 처한다. 새장도 해제되지 않고 시시각각 조여오는데, 이때 나머지 간부들을 정리한 밀집모자 일당과 콜로세움 일행이 합류해 시간을 벌고 있다.
  • 상디 . . . . 21회 일치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게 보이겠다'''는 이유로 무리해서 담배를 피우다 결국 골초가 됐는데도 미각이 전혀 둔해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면 손에 담배 냄새가 흥건히 묻어서 요리에도 냄새가 베일 텐데도 그런 묘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위의 프로필에서 쵸파가 상디에게 느껴진느 향기는 담배와 해산물 냄새라고 되어있는데, 수트에는 담배 냄새가 베어있어도 요리전 손의 위생 관리에는 철저한 모양] 또한 담배는 해상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항상 항해생활을 해야되사 시중에서 구입하기 보단 직접 제작하는듯 하다.[* 클리크와의 전투후 루피를 간호하느라 상디의 방이 나왔는데 담배를 직접 제작한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샤키]처럼 담배를 피는 또 다른 캐릭터들의 담배와 비교해봐도 형태가 좀 다르다. 일 담배와 달리 만드는 담배 특유의 약간 찌그러진 모양이 묘하게 리얼하다.] 더불어 수영의 달인으로서 [[어인]]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의 폐활량까지 갖추고 있으니 필시 원피스의 담배 자체가 현실의 담배와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상디의 과거회상에서 담배를 처음 피우는 상디를 보고 제프가 "관둬. 담배 같을걸 피우면 혀가 돌아버린다."라고 한마디 하는 장면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게...거참. ~~아니면 상디의 미각과 폐활량이 패기를 쓸 줄 알거나~~]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태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롤로노아 조로]]와는 상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하는 게 다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영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상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상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백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상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왠지 적들에게 모습이 알려지지 않는 징크스가 있는데 [[바로크 워크스]]와 싸우게 되었을 때 위스키 파크에서 초상화가 그려지지 않거나 Mr.3일당과 전투에서도 열외되었고, [[Mr.2 봉쿠레]]가 왔다 갈 때 일당중 유일하게 그 자리에 없어 본의 아니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게 되어 [[크로커다일]]을 두 차례나 낚았고, [CP9]와 싸울 때도 혼자 해상 열차에 숨어들어 화려하게 깽판을 쳐주는 등 의도치 않게 중요한 순간마다 히든카드가 되어 대활약. [[에니에스 로비]]에서 깽판쳐서 수배서가 배부 될 때에도 상디만 렌즈 커버를 안 벗겼는지 사진이 새까맣게 나와서 거의 추상화급 몽타주로 현상 수배서 사진이 대체된 상황이라[* 그리고 상디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에서는 그 수배서를 받아보고는 주인인 [[제프(원피스)|제프]](그만 쿡쿡거리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긴 했다)를 제외한'''요리사들 모두가 눈물나도록 배터지게 웃어가며 그 수배서를 손님들에게 광고지 뿌리듯 쫙 돌리기까지 했다.'''] 상디가 계속 '''히든카드'''로서 활동해 나갈 가능성에 힘이 더해져가는 중. 하지만 이렇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이 후 [[엠폴리오 이코프]]에게 자신이 루피의 동료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무진장 고생했다.[* 이코프는 이게 어디가 닮았냐고 믿지 않았지만 대로 [[오즈(원피스)|오즈]]는 이걸 보고 상디를 바라보곤 "판박이네."라고 공격했었다. ~~오즈는 [[바보]]니까~~]
          * 그로키 몬스터즈 (햄버그 & 피클스 & 빅빵) - 폭시의 부하들이다. 그로키 링에서 맞붙어서 본인이 볼 보이를 맡는다.[* 물론 조로가 시켰고 처음에는 발하다 나미가 어울린다고 하니까 바로 수긍.] 그로키 몬스터즈의 '무기 사용 금지' 규칙 위 작렬에 그로기 상태에 몰리다 조로와 10초(...)간 연합해서 먼저 햄버그를 삼등급 불고기 & 야채모듬 슈트로 날려서 빅빵의 무기에 정면으로 깔리게 하고 이어서 조로를 방해하는 피클스를 심판과 함께 날려버린다.[* 이유는 심판의 편파 판정 때문에 상디가 심판을 패고 옐로 카드를 받았기 때문.] 마지막으로 빅빵만 남자 조로와 함께 공군 파워 슈트를 사용, 마무리를 조로에게 맡겼다.
          * [[wiki:"와다츠미(원피스)" 와다츠미]] - 더 데켄 9세의 부하. 크기가 마인 수준이다. [[징베]]와 함께 담당했으며 계속 몸 속에 공기를 주입하는 와다츠미에게 계속 크라켄보다 작다고 도발하면서 끝없이 크게 만든 후에 징베가 먼저 무뢰관으로 공중으로 띄운 후 상디의 헬 메모리즈로 싸그리 태워버린다.
          * [[빈즈]] - 극장판 12기 한정.[* 극장판 11기는 실력자 전무. 그냥 생략한다.] 덩굴덩굴능력을 스카이 워크로 피한뒤 디아블 잠브로 표창과 칼을 받아 쳐내고 역시 나미씨는 섹시한게 좋다며(...) 불타올라라 섹시 파이어!로 온몸을 불로 뒤덮은 뒤 사랑의 메테오 스트라이크로 마무리. 그리고 끝난뒤에 "우리 나미씨, 할만 하지?"라고 한다. ~~나미는 몰라도 여성팬들은 확실히 한 것 같다.~~
          * ~~[[칼리파(원피스)|칼리파]]~~ - 절대로 여자를 때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계속 얻어터지기만 하다가 결국 패배 후 나미와 교체. 실력으로 패한 게 절대 아니다. 전투력은 압도적으로 상디가 우위라, '''떄리지 못한다'''는 핸디캡을 안고도 몇 번이나 칼리파를 제압할 수 있었다. 단지 실력으로 제압은 했으면서도 마지막 일격은 매번 날리지 못한 탓에 오히려 격을 연달아 얻어맞고 결국 악마의 열매 능력에까지 당해버려 리타이어한 것 뿐.
          * [[엠포리오 이코프]] - 배를 내어달라는 조건으로 이코프에게 덤볐으나 패배. 진짜 가볍게 패배했다. 상디가 불쌍할 정도.
          * [[베르고]] - 견문색의 패기로 [[타시기]]의 구조요청을 듣고 갑툭튀하여 승부시작. 초엔 이겨가나 싶더니 뼈에 금이갔다. 그렇게 좀 더 싸우다가 결국엔 살육가스 때문에 둘다 싸움을 중단하고 도망갔다.
         > 사람은 마음이다! - Mr.2 봉쿠레의 복사복사 몽타쥬에 대한 응[* 그런데 그래놓고는 나미로 변신한 봉쿠레에게 쪽도 못쓰고 당할 정도로 고전했다(...) 그래도 복사복사 열매의 맹점을 알고 난 뒤부터는 어느정도 대처했지만.]
         > 최악의 상황에는 항상 최고의 기회가 숨어있는 법, [우솝|네]가 할 수 없는 일은 내가 한다. '''대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네가 하면 돼! 잘 생각해라, 상황을 읽으란 말이다. 너라면 로빈 양을 드시 구할 수 있어!!!'''[* CP9편에서 재브라에게 죽을 뻔한 우솝을 구하고 우솝에게 재브라는 자기가 쓰러뜨릴테니 로빈을 구출하는 임무를 부탁한 대사. 재브라의 꾐에 빠져서 죽다 살아나 굉장히 의기소침해진 우솝에게 사기를 북돋아주는 멋진 대사인 동시에, 상디의 전략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대사라 할 수 있다.]
          * 애니판이 KBS에서 방영되었을 때에는 아이들 정서상 부적절하다는 태클 때문에 '''담배가 츄파츕스로 바뀌는 굴욕'''을 겪었다. 근데 케이블 심의가 강화되어서 극장판을 제외한 TVA판 한정으로 [[투니버스]]에서도 츄파츕스로 바뀌었다.[* 항상 오렌지맛 사탕인 듯? 1기 오프닝과 초부의 장면에서는 딸기맛 사탕을 연상시키는 빨간색 사탕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계속 오렌지맛 사탕으로 고정. 그런데 의외로 사탕이 오리지널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이 많은 듯하다. 원작을 보고서야 담배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고 '상디가 무인도 표류 이후 항상 먹을 걸 가지고 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탕을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도 있다(...)] KBS판에서는 주석에서도 달려있듯이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 등에서 부싯돌 튕기는 소리가 그대로 나온 면에 이후에 방영된 투니버스판에서는 음향쪽도 완벽히 수정하여 완벽하게 사탕으로 만들었다. 북미판의 경우 [4kids] 더빙판에서는 무자비한 편집으로 악명높은 4kids답게 KBS판과 같은 츄파츕스로 만들어버렸다. 다행이게도 이후에 [퍼니메이션]에서 재발매한 DVD판의 경우 무삭제로 나왔다. 대원판은 영상 수정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냥 모자이크 처리로 때운다. 때문에 상디의 입이나 손은 항상 모자이크로 나온다. 음향쪽에서는 라이터 소리가 나는등 옥의 티가 있었지만 최소한 사탕으로 수정을 하려고 했던 KBS만큼의 성의도 보여주지 않는 대원판 원피스의 무성의함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동강동강 열매]도 변역기돌려서 뿔뿔이 열매로 만든 놈들이니까~~ 카툰네트워크에서 방영한 토리코와의 콜라보편에서는 화면을 수정하여 '''아예 삭제됐다.''' 덕분에 손가락 모양은 담배를 쥐고 있는 손가락 모양이지만 정작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끼워져있지 않다.
          * [[정상결전]]이후 바뀐 졸리 로저. 모자가 삐딱해지고 대쪽 눈썹이 그려졌다. 거기에 수염과 담배도 추가되었다.
  • 은혼/633화 . . . . 21회 일치
          * 양이전쟁 시절. [[가츠라 고타로]]는 "이기면 정부군, 지면 란군"이라 말하며 자신들은 여전히 란군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 적이 있다.
          * [[다카스기 신스케]]가 "란군이면 어떠냐"고 해서 동료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가츠라는 "나라가 뒤집혀도 우린 여전히 란군"이란 자조적인 발언을 한다.
          * 노부노부는 동료들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며 이들이야 말로 "정부군"이라 말하는데, 가츠라는 그것을 사양하며 "란군이면 충분하다"고 만족한다.
          * 노부노부는 거기에 "내 그릇이 부족했다"며 자신도 그들을 빠라 "란군"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한다.
         >이기면 정부군, 지면 란군?
          * 양이전쟁 시절, [[가츠라 고타로]]의 말이었다. [[사카타 긴토키]]가 그의 말을 곱씹으며 "우린 적도 아니고 진 적도 없는데 언제까지 란군 취급을 받는 거냐"고 투덜거린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그들 옆에는 [[사카모토 다츠마]]가 길게 누워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카스기 신스케]]가 혼자 앉아 있다. 긴토키는 가츠라가 한 말을 놓고 끊임없이 투덜거린다. 대체 얼마나 더 이겨야 정부군으로 전직이 되냐는 것이다. 현자마냥 "깨달음의 서"라도 얻어야 하는게 아니냐면서.[* [[드래곤 퀘스트 3]]에서 고급 직업인 "현자"로 전직하려면 "깨달음의 서"라는 희소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가츠라는 어쨌든 나라에 적대하고 정부에 하는 자들은 모두 "란군" 취급이며 최종적으론 막부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지 않으면 "정부군"은 될 수 없다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성적인 대답을 한다. 긴토키는 이때나 그때나 드퀘빠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그럴 바엔 차라리 마왕 바라모스로 전직하고 만다"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이때도 뭔가 핀트가 빗나간 놈이라 놀이꾼으로 전직하면 레벨 20에 정부군으로 전직할 수 있다고 헛소릴 한다. 그건 현자라고 얼간아.[* 원래 드퀘3의 현자는 "놀이꾼"이 레벨 20에서 무료로 전직할 수 있는데 놀이꾼이 막장스런 직업이라 레벨 20을 달성하는게 꽤 어려웠다. 그래서 리메이크판에선 "깨달음의 서"를 추가해서 난이도를 낮춘 것.]
          그 말에 긴토키는 "양이전쟁의 절은 상냥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통아"라고 디스한다. 적어도 그는 꽤 나라를 중히 여기고 있어서 인기 많아지고 싶다, 화풀이하고 싶다의 다음 정도로 여길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국 양이전쟁은 잡동사니로 이루어져 있다는 교훈이다.
          신스케가 뭐라 불리든, 이해를 받든 어떻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알고 있으니 된거 아니냐고 정리한다. 그러면서 어차피 우리들은 정부군이 될 주제가 아니며 역적, 국적, 란군 같은 별명이 잘 어울리는 족속들이라 말한다. 긴토기가 발끈해서 그건 중2병인 신스케한테나 괜찮은 거라고 디스한다. 하는 김에 "귀병대"라는 이름도 걸고 넘어지는데 이딴 이름을 잘도 얼굴에 철판깔고 떠벌린다며 차라리 진주단(珍走)이란 이름이 낫겠다고 해서 옥신각신한다.
          >란군은 언제까지나 란군이야.
          * 그 말대로, 수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란군인 양이지사들. 신스케가 해방군 모함 안을 종횡무진 휘저어 놓는다. 그의 호령에 따라 귀병대가 돌격한다.
          * 신스케는 멋대로 지껄이라고 하면서 나라를 빼앗는 거나 우주를 빼앗는거나 별 차이가 없는 거라고 말한다. 뭐가 됐든 "그 녀석"이 막아서고 있을 테니까. 지구의 긴토키가 있는 이상 나라든 우주든 뺏을 수 없다고 말한다.
          노부노부는 그 누구도 이들을 란군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겠다고, 시대에 뒤떨어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하게 할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들이야 말로 정부군이라 선언하기에 이른다. 거기서 가츠라가 대답한다.
          >란군이면 돼.
          노부노부는 "여러분을 거두기엔 내 그릇이 부족했다" 자조한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들을 따라 란군이 되겠다, 그렇게 선언한다.
          >이 나라... 이 지구가 자네들과 함께 온 우주에 항하는
          >란군이다.
  • 이경영(1960) . . . . 21회 일치
         [[1990년대]] 중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영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상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상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영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장르를 연기하는 [[한석규]]가 충무로에 입성한 이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더니 1996년에 본인이 감독으로 데뷔하여[* 원래는 심승보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려 했으나 사정으로 이경영에게 넘어갔다. 여주인공 교체 등 다사다난에 시달렸고 흥행성적도 안습이었다.] 제작한 《귀천도》가 실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1990년대 후~ 2000년대 초까지는 40대의 나이에도 주요시간대 드라마의 멜로 주인공을 잘 소화하며 멜로 전문 = 이경영이라는 공식을 어느 정도 유지할 만큼 잘 나갔었고, 당시 드라마 좋아하던 세대인 30~40대 여성시청자 팬들도 굉장히 많았다.
         90년대 후 이경영이 잘나갔다는 증거로, 당시 잘 나가던 아나운서 [[유정현(방송인)|유정현]][* 후에 프리랜서 생활 후 국회의원도 했었다.]과 모델출신 유명방송인 [[이소라(모델)|이소라]]가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하던 당시 레전드로 남았던 유명한 방송사고 2개가 있다. 바로 '야이 X박 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 당시 절친이던 이경영과 [[김민종]]이 [[강도]] 역할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을 때 유정현이 자꾸 김민종에게 영화 속 거친 연기를 한번 해 달라고 하자 김민종이 실제 쌍욕이 들어간 강도 역할 대사를 질러버려 화제가 되었던 방송사고.]와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후속작인 로맨스.'[* 당시 이경영과 이영애가 출연하던 SBS 드라마 《로맨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가 유정현이 드라마 소개하는 멘트를 '연기리에 방영'으로 하는 바람에 이소라가 웃음이 터져 멈추지 못했던 방송사고였다.] '''모두 이경영이 주연을 한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출연'''했을 때 벌어졌던 사건이다.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영창]]은 이경영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영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영 신상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 2002년 5월 14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 (소위 원조교제) 혐의로 긴급체포
         ||1심 재판결과 이경영이 미성년자인 L모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인정되었는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정확하게 표현하면,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 혐의] 무죄, 두 번째와 세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형량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이었다. 아래는 당시 판결을 보도한 기사다.||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화배우겸 감독인 이경영(41)피고인에게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 합의11부(재판장 이원규 부장판사)는 12일 이 사건 선고 공판에서 "이 피고인이 이모(18)양과의 첫 번째 성관계 시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는 점은 인정되나 두 번째는 성관계 전 이 양이 '나이를 말했다'는 진술이 신빙성이 높아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제작한 영화에 이 양을 출연시켜 줄 것 같은 느낌을 준 점도 인정된다"며 성 관계의 대가성 부분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220298|#]]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성룡ㆍ李性龍 부장판사)는 25일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화배우겸 감독 이경영(41)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대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모(18)양과의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를 맺을 때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인정,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보여 검사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57848|#]]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의 단역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드라마는 외주제작이었는데, MBC가 '이경영은 유죄판결 전력 때문에 출연정지 대상'이라며 출연을 대하여 무산되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1975786|#]] 이후 이경영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항소를 했더라면 부끄러움은 씻지 못하겠지만 범죄자의 오명은 씻지 않았을까"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의 내용을 통해, 적어도 이때(2009년 2월)까지는 엄연히 유죄판결을 받은 전과자 신분이었음을, 즉 (재심청구 등을 통해) 유죄판결이 뒤집혀졌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후에서 설명하겠지만,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소문을 박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197524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6&aid=0001983639|#]]||
         설령 '법정공방 끝에 무혐의 처분 받았다'는 표현을 '법정공방 끝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의미로 이해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사건 형사재판 판결은 2002년에 확정되었다.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을 열어 새로운 판결을 받아내려면 [[재심]]을 청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재심청구는 극히 예외적인 사유[*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극히 예외적 사유에 한함]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 한편 이 사건은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었음을 감안할 때, 만약 이경영이 재심을 청구하였고, 청구가 받아들여져 재심 재판이 열렸으며, 그리하여 결국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면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 제 OO 재판부(재판장 아무개 부장판사)는 청소년성보호법 위 혐의로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배우 이경영씨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등의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의 보도[* 가령 이경영 사건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220298|1심 형사재판 판결 보도]] 같은 수준의 구체적 보도.]가 있었을 텐데, 2004년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런 구체적인 보도는 단 한 줄도 없다. 오히려 2004년에는 L양과 L양의 부모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이경영이 배상해주어야 한다는 민사재판 판결에 대한 보도가 있었을 뿐이다.
         법원은 이경영이 L양(당시 18세)과 가진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는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설령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도, 성매매한 사실만으로 첫 번째 성관계 역시 유죄(일 성매매죄) 아닌가?'라며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죄목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린다. 이를 [[불고불리의 원칙]]이라고 한다. 따라서 검찰이 이경영을 미성년자 성매매죄로 기소했으면 법원은 미성년자 성매매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리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일정한 경우에는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죄목에 대해서도 판결을 내리는데, 이 사건에서 법원이 첫 번째 성관계가 일 성매매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판결을 했는지, 했다면 어떤 판결을 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1990년대 초의 얼굴에 비하면 살도 살이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이 특징이다.
         너무 가볍지 않고 개그 캐릭터가 아닌 격조가 있는 [[중간보스]]급의 위치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주연급이라면 몰라도 조연급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판국이다. 그런데 이경영은 이미 90년대부터 격조 있는 주연으로 다작을 하면서도 연기력이 좋다는 평가를 꾸준히 유지했던, 그야말로 탁월한 실력이 있는 배우라서 그런 상황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연급은 아니어도 조연급으로는 여기저기서 캐스팅되고 있다. 또한, 이경영이 선역부터 악역을 비롯한 개그 캐릭터까지 다양하게 맡을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도 이유이다. 특히 2010년 이후 한국 영화에서는 정계나 재벌의 부정부패를 다룬 느와르, 스릴러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영화에서 드시 나오는 '부패한 높으신 분들' 연기로는 이경영이 연기력이나 이미지 면에서 매우 적합하다.
         위 문단에 서술되어 있지만 정말로 '부패한 높으신 분' 역을 할 만한 연기력과 외형, 목소리 등을 모두 갖춘 중년 배우가 정말 부족하다. 2010년대 들어서 [[건축학개론]](초에 등장하는 건축한개론 교수 역), [[관상]], [[암살]], [[부산행]], [[미스터 선샤인]] 등 이경영 만큼 선과 악역을 넘나드는 배우 [[김의성]] 만이 거의 유일한 배우일 정도. 즉 영화, 드라마에서 넘치는 공급자리이지만 '''필요조건'''을 모두 갖춘 배우가 이경영과 김의성 뿐이니 이 두 배우가 나오는 작품과 안나오는 작품으로 나누어 지는 중 이다.
         다만 감정 표현력과 별개로 대사 전달력은 지적받는다. [[베를린(영화)]]에서는 어색한 북한 사투리 연기까지 겹쳐서 뭐라고 대사를 하는 건지 못 알아듣는 관객들이 속출했고 [[군함도(영화)]]에서도 후부 흥분하는 장면에서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
         그 외에도 이경영의 마지막 지상파 드라마 출연작인 KBS 2TV 푸른 안개에서 연출자-조연출자로 만났던 표민수 진형욱 곽정환 PD의 연출작('고독' '풀하우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인순이는 예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커피하우스' '넌 내게 했어' '아이리스 2' '프로듀사'(이상 표민수) '꽃피는 봄이 오면' '착한여자 백일홍' '수상한 삼형제' '당신 뿐이야' '왕가네 식구들' '당신만이 내 사랑' '내 남자의 비밀'(이상 진형욱) '한성별곡' '추노' '도망자 플랜B'(이상 곽정환) 등등)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결국 좌절됐다.
         ||2012||[[회사원]]||지훈|| 1,110,523 ||
  • 장헌식 . . . . 21회 일치
         |기타=민족문제연구소 엮음
         === 생애 초 ===
         [[1895년]] [[일본]]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그해 [[3월]]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의숙]] 보통과에서 수학했다. 당시 근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뽑아 보낸 관비 일본 유학생들은 일제의 한도 강점 이후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이자 친일파로 활동하게 되는데, 장헌식도 그런 인물들 중 하나였다.
         ==== 일제 강점기 초 ====
         |저자=민족문제연구소
         ==== 일제 강점기 중 ====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설립된 친일 자본가 단체인 [[동민회]]에 가담했으며, 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또다른 친일 단체 [[대화동맹]] 결성을 조종했다는 증언이 있다.<ref>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 민특위 조병상 공판조서 (제1회) 중 조병상의 수기 (1949).</ref> [[1924년]] [[12월 1일]] [[전라남도지사]]로 부임하였다. 전남 지사직에서 물러난 1926년부터 1945년까지 중추원 칙임참의를 7회에 걸쳐 중임하였다.<ref name="실록친일파" />
         ==== 일제 강점기 후 ====
         장헌식은 관직에서 퇴임한 뒤로도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37년에는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만주 사변]] 이후 일본군을 후원한 활동을 인정받아 [[1937년]] 일본 육군대신 명의의 표창을 받은 바 있고,<ref name="실록친일파" /> 37년 8월 21일에는 애국금차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로는 시국강연에 가담하여 전쟁 지원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38년]] 친일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뒤 [[1941년]] [[국민총력 조선연맹]]과 [[조선 임전 보국단]]에도 가담했다. 이때는 이미 70대의 노구였으나, 학병 지원을 독려한다며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38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 칙임관대우 참의에 임명되었다.
         [[1946년]] [[1월 3일]] 이왕직 재산 관련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이때까지도 출국하지 못한 [[일본]]인 이왕직 회계과장 사이토 치로(齋藤治郎)와 함께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ref name="jigga">"전 李王職 장관인 張憲植 수감명령", 자유신문 1946년 01월 03일자, 2면 10단</ref> 그는 성의 기미가 없었고, 과거 일본 정치하에서 있었지만 그래도 고관대작으로 있었는데 어찌하겠느냐고 대응하였다. 검찰관들은 분노했고 방청석을 분노하게 했다.<ref name="jigga"/> [[1월 16일]] [[보석금]]을 내고 보석출감하였다.<ref>"張憲植 보석출감", 자유신문 1946년 01월 16일자, 2면 5단</ref>
         [[1949년]] [[1월]] [[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령이 떨어지자 자수하였으며, [[민특위]] 조사관들이 오자 담담하게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며, 손자며느리에게 뒷일을 부탁한다 하고 출두하였다. 이후 조사에 순순히 응하여 구속 수사를 받았으며 [[치질]](痔疾)로 고생하였으나 병보석은 거절하였다. 이후 그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1949년]] [[2월 22일]] [[치질]]로 인해 석방된 뒤 불구속 문초를 받아 민특위에 다녀가며 방문조사를 받았다. [[3월 9일]] 민특위로부터 보석이 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보석을 거절했다. 같은 날 민특위로부터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았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며 부인인 [[임정재]]도 친일 여성 단체인 [[애국금차회]]에서 활동했다.
         |저자=민족문제연구소
         |기타=민족문제연구소 엮음
         [[분류:1869년 태어남]][[분류:1950년 죽음]][[분류:조선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군정기]][[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동 장씨]]
  • 현아 . . . . 21회 일치
         이후 2009년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포미닛]]의 멤버로 합류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 1월에는 첫 솔로 싱글 〈[[Change (현아)|Change]]〉를 발매했고, 골춤이라는 안무를 유행시키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했다. 이어 2011년 7월에는 첫 번째 EP 음 《[[Bubble Pop!]]》을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차트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장현승]]과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해 2014년까지 활동하였다. 2012년 10월 두 번째 EP 음 《[[MELTING]]》을 발매해 타이틀곡 〈Ice Cream〉으로 활동했고, 2014년 7월 세 번째 EP 음 《[[A Talk]]》를 발매해 타이틀곡 〈빨개요〉로 활동했다. 2015년 8월 네 번째 EP 음 《[[A+]]》을 발매했다. 2016년 그룹 [[포미닛]] 해체 후 8월 1일 다섯 번째 EP 음 《[[A`wesome]]》을 발매했다. 2017년 5월 [[펜타곤 (음악 그룹)|펜타곤]] 멤버 후이, 이던과 함께 [[트리플 H (음악 그룹)|트리플 H]]로 활동 하였다. 8월 29일 여섯 번째 EP 음 《[[Following]]》을 발매했다. 12월 4일 두 번째 싱글 앨범 《[[Lip & Hip]]》을 발매했다.
         [[현아]]는 1992년 6월 6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현아]]의 아빠는 예전에 연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현아]]에게 "아빠 대신 네가 해보는게 어떻겠냐"라는 말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일곱 살때 엑스트라로 활동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웹 인용|저자=ARENA|제목=현아의 시간 - GUILTY PLEASURE|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65194|출판사=네이버 매거진|날짜=2014-08-01|확인날짜=2015-06-16}}</ref> 초등학교 1, 2학년때 대학로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처음 봤고, 이를 계기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 [[현아]]는 춤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컸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댄스 학원을 다녔다.<ref name="rta" /> 같은 시기 TV로 [[싸이]]의 〈새〉 안무인 새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ref>{{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현아 싸이 언급 "초등학교 3학년 때 싸이의 '새춤'보고 꿈을 키웠다"|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531.990010724435354|출판사=영남일보|날짜=2013-05-31|확인날짜=2014-04-24}}</ref> [[동명여자중학교]] 시절 [[현아]]는 춤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지만, 부모님이 대하면서 갈등을 빚었다.<ref name="rta">{{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강심장' 김현아, 머리에 X만 찼냐→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춤사랑 공개'|url=http://www.tvdaily.co.kr/read.php3?aid=128268894982923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날짜=2010-08-25|확인날짜=2010-11-21}}</ref>
         이후 [[현아]]는 [[JYP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원더걸스]]의 두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그룹에서 랩퍼를 맡았다.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 싱글 〈[[The Wonder Begins]]〉를 발매했고, 타이틀 곡은 〈Irony〉였다. 파워풀한 랩과 춤으로 "야생마"라는 별명도 얻었다.<ref name="as">{{뉴스 인용|저자=남안우 기자|제목=‘원더걸스’ 김현아, 건강상의 이유로 팀 탈퇴|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73017515011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7-30|확인날짜=2008-12-31}}</ref> 2007년 5월 24일에는 [[안소희|소희]], [[브라이언]]과 함께 《[[쇼! 음악중심]]》 MC로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소희·현아 ‘쇼!음악중심’ 새MC|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5242109433&sec_id=54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조상인|날짜=2007-05-24|확인날짜=2014-06-29}}</ref> 하지만 MC에서 하차하고 나서 7월 [[원더걸스]]의 광고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탈퇴설이 돌았다.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멤버 교체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며 요양이라고 말했다.<ref name="세계일보">{{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멤버교체 위기 -­ 현아 이탈하나|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7/31/20070731002528.html|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린|날짜=2007-07-31|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원더걸스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현아, 건강상 이유로 팀 탈퇴|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73016565270766&type=1&outlink=1l|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7-30|확인날짜=2014-06-29}}</ref> 실제로 [[현아]]는 [[만성장염]]을 앓고 있었고 세 번이나 탈진으로 쓰러지는 등 부모님의 발을 샀다.<ref name="세계일보"/>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영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식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남연희|제목=김현아 '골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백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2011년 4월 5일 [[포미닛]]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4Minutes Left]]》를 발매해 타이틀 곡 〈거울아 거울아〉로 활동했다.<ref name="아시아경제"/> 또한 비슷한 시기 [[임정희]]의 〈[[Golden Lady]]〉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임정희 ‘골든 레이디’ [[포미닛]] [[김현아]] 랩 피처링 지원사격 |확인날짜=2011-07-24|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030905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1-05-03}}</ref> 2011년 6월부터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6월 솔로컴백 동시 '댄싱위드더스타' 출연|확인날짜=2011-06-04|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5220943330511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영웅|날짜=2011-05-22}}</ref>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다섯 번째 탈락자로 결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댄싱 위드 더 스타’ 탈락..심사위원 “심사할 수 없는 지경”|확인날짜=2011-07-24|url=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78679§ion=sc4|출판사=브레이크뉴스|저자=한누리|날짜=2011-07-16}}</ref> 현아는 2011년 7월 5일 첫 번째 EP 음 《[[Bubble Pop!]]》을 발매했다. 이에 앞서 2011년 6월 30일 발라드풍의 수록곡 〈[[A Bitter Day]]〉를 공개했다.<ref name="Pop!">{{뉴스 인용|제목=김현아, 30일 발라드 ‘A Bitter day’ 선공개…‘솔로 출격’ 신호탄|확인날짜=2011-06-29|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629111326420&ts=130703|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곽민구|날짜=2011-06-29}}</ref>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가온 디지털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f name="가온">{{웹 인용|url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Bubble+Pop%21&x=43&y=19|제목 =가온 차트 > Bubble Pop! |출판사 =[[가온 차트]]|확인날짜 =2011-07-19}}</ref> 그러나, 201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Bubble Pop!"의 안무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인다며 안무를 수정할 것을 요정했지만, 소속사측은 안무를 수정하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활동중단 '또 선정성 논란, [[김현아]]가 추면 다 야해' |확인날짜=2011-08-05|url=http://artsnews.mk.co.kr/news/163166|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하얀|날짜=2011-08-05}}</ref> "Bubble Pop!"은 평론가들로부터 혼합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즘》에서 "캔디 팝의 요소가 잘 녹아들었음에도 제대로 방점을 찍지 못해 솜사탕같은 트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ref>황선업.[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3086&bigcateidx=8&subcateidx=10&cTp=4 이즘 - Bubble pop!] 《이즘》. 2011-07 작성. 2011-12-16 확인.</ref> 영국의 《팝저스티스》는 "오늘의 노래"에 선정했고,<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英 팝사이트 '오늘의 노래' 선정… "가장 섹시" 찬사 |확인날짜=2011-07-22|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107/sp2011072010252095510.ht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성한|날짜=2011-07-20}}</ref> 미국의 《스핀 매거진》은 "2011년 올해의 베스트 노래 20" 순위 중 〈Bubble Pop!〉을 9위에 선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美스핀 선정 '2011 베스트송20'|확인날짜=2011-12-16|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121209445192085&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박영웅|날짜=2011-12-12}}</ref> 이후 2011년 8월부터 [[도끼 (가수)|도끼]]가 피처링한 노래 "[[Just Follow]]"로 후속곡 활동을 잠깐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김현아 just follow 무대 공개, 선정성 '제로' 카리스마 '폭발' |확인날짜=2011-08-13|url=http://artsnews.mk.co.kr/news/164401|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풀잎|날짜=2011-08-13}}</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백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남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남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상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남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2016년 그룹 [[포미닛]] 해체 후 8월 1일 다섯 번째 EP 음 《[[A`wesome]]》을 발매했다.
         2017년 5월 [[펜타곤 (음악 그룹)|펜타곤]] 멤버 후이, 이던과 함께 [[트리플 H (음악 그룹)|트리플 H]]로 활동 하였다. 8월 29일 여섯 번째 EP 음 《[[Following]]》을 발매했다. 12월 4일 두 번째 싱글 앨범 《[[Lip & Hip]]》을 발매했다.
         [[현아]]는 [[원더걸스]] 시절부터 [[래퍼]]를 맡았었고, 이후 [[포미닛]]에서도 래퍼를 맡고 있다. 첫 솔로 활동 "[[Change (현아)|Change]]"에서도 보컬 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쳤다. 대개 그룹 출신의 개별 활동을 하는 맴버는 보컬 출신이였지만, [[현아]]는 랩, 댄서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ref name="이즘">{{웹 인용|제목=Neo Music communication IZM |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031&bigcateidx=8&subcateidx=10&mrbs=1&history=1|웹사이트=[[이즘]]|날짜=2010-10|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래퍼로서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있다. [[이즘]]의 이종민은 "Bittersweet"와 포미닛의 ''For musik''에서 보여준 힘 있는 랩은 다른 걸 그룹에선 살펴볼 수 없는 색깔이 있었다"고 평했다.<ref name="이즘"/> 《[[뉴스토마토]]》의 정해욱은 "하이톤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력파 랩퍼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오늘 뭐해〉에선 [[전지윤]]이 이 틈을 채워준다"고 기사를 썼다.<ref>{{웹 인용|제목='컴백' 포미닛에게 필요한 건 '전' |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52575|웹사이트=뉴스토마토|저자=정해욱|날짜=2014-03-17|확인날짜=2014-04-24}}</ref>
         == 음 목록 ==<!--음 목록 문서가 있으므로 EP, 정규 음만 적습니다.-->
         {{본문|현아의 음 목록}}
  • 김민희(1982) . . . . 20회 일치
         '''뛰어난 스타성과 나날이 발전하는 연기력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려는 찰나, [[간통|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국내에서 여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실추된 인물'''[* 해외는 제외. 문화의 특성상 해외 언론에서는 김민희의 간통 사실에 별 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적인 상까지 안겨주었다.]
         패션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를 했고, 상큼한 얼굴과 큰 키에 극도로 마른 몸매를 가진 옷 잘 입는 소녀는 당시 패션잡지 주 고객층인 10대 소녀들에게 큰 향을 불러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김효진(배우)|김효진]], 양민아(현 [[신민아]]) 등의 사이에서도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 셋은 [[한솔엠닷컴]] CF로 스타덤에 오른 데뷔 동기와도 같다.]
         특히 [[김효진(배우)|김효진]], [[원빈]]과 함께 출연했던 [[한솔엠닷컴]]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주제의 광고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래 동영상) 이어 [[차태현]], [[신민아]]와 출연한 CF에서는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명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2000년대]] 초을 대표하는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는 당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다.[[https://youtu.be/0GsJpuPUEVo|1편]][[https://youtu.be/Ax8EIOyGF34|2편]][[https://youtu.be/ZVxij2AQel0|3편]][[https://youtu.be/Hh74Xv_kq80|4편]]
         그리고, 다수의 잡지와 CF 등을 통해 활동하다 1999년 드라마 <[[학교 2]]>의 항아 신혜원 역을 맡으면서 배우로도 자리잡게 된다. 여러모로 [[배두나]]와 닮은 경로다. [[1998년]] 길거리 캐스팅 → 1년간 [[모델]]로 성공 → [[학교 시리즈]]에 항아 포지션으로 성공 → 이후 승승장구 테크를 탔다.[* 한 가지 차이라면 [[배두나]]의 이미지가 개성 있는 외모, 이단아 등이었던 것에 비해 김민희는 CF스타로서 어필이 가능한 비주얼적인 면 역시 가지고 있었다. 포지션에 있어 배두나와 좀 더 유사한 쪽은 [[공효진]], 양미라 등.]
         === 2000년대 중 이후 ===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상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영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순수의 시대]]가 방영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상 거의 김민희-- 냉담한 응을 얻었다.]
         이 2년 동안 자신을 거부하던 [[노희경]]을 끝까지 설득하여 캐스팅되었던 [[2006년]] 드라마 '''《굿바이 솔로》'''를 통해 한층 성숙해졌을뿐 아니라, 비약적으로 성장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대중이 김민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노희경]] 작가는 빠른 탈고로 인해 배우들이 대본을 숙지할 시간도 많고 자신이 대본을 집필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특히 여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신랄한 지적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노희경의 작품을 거쳤던--혹독하게 조련을 당했던-- 여배우들은 다음 작품에서 연기력 자체가 느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특히 노희경의 페르소나인 [[배종옥]], [[한고은]], 김민희 이 3명의 연기는 정말 많이 늘었다. 많은 여배우들이 자기 캐릭터에 고착화된 작품만 하다가 연기력 부족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과 대.]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례와 같이, 감독과 여배우 사이에 빚어지는 스캔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것이라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너그럽게 보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지만, 애초에 결혼한 기혼남 혹은 기혼녀가 가정을 깨고 다른 누구와 [[간통]]을 저지르는 사건은 여론이 너그럽게 응해주지 않는다.
         현재 [[홍상수]]와 함께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같이 있어?~~ 두 사람이 [[중혼]]이 합법인 [[유타 주]]에서 비밀 결혼을 올릴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으나 이것은 오보로, 당연히 [[미국]] 내 50개주 모두 중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동거]]라면 모를까 결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Sister Wives>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 [[몰몬교]] 일가의 [[일부다처제]] 허용 신청에 대해, 판사가 "법을 위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사실상 중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애초에 이 판결은 이후 뒤집혔다. 어차피 재판 자체가 기각되었어야 할 사안이었고, 해당 사건 담당판사 역시 논란이 많은 인물인지라, 판사는 거의 전방위로 비판을 받았다. [[여담]]으로 [[유타 주]] 내의 중혼 금지 관련 규정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라 한다. 애초에 2013년 [[유타 주]] 연방지법의 [[중혼]]관련 판결은 중혼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그간 [[유타 주]]에서 금지되어 있던 부부+[[사실혼]] 관계 여성의 동거를 금지한 유타주 법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홍상수]]와 김민희가 유타 주에 간들 결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애초에 그들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또한 이 판결이 2016년 항소법원에서 무효판결이 나온 것의 근거는 유타주가 애초에 이런 종류의 동거집단이 범죄행위와 연류되지 않을 경우 기소를 하지 않는다는 유타주 검찰청의 정책으로 인해서 사실상 원고들이 피해를 볼 일이 없다는 근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유타의 중혼관련 법이 강해지기는 힘들 것이다. 애초에 이런 법 자체가 [[몰몬교]]에 시달려온 유타주의 독특한 사례이기도 하고.]
         그런데 헤어졌다는 기사가 떴다! [[http://m.insight.co.kr/newsRead.php?ArtNo=75203|관련 기사]] 기사에 의하면 두 사람은 연인으로 사랑한 게 아닌 영화인들 간의 끈끈한 우정이였으며,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이에 [[네티즌]]들은 어디까지 우정이고 사랑인진 알 수 없으나 [[http://m.dcinside.com/view.php?id=kimminhee&no=77945&page=1|김민희 갤러리]], [[https://twitter.com/arlal1/status/775580103950467072|SNS]] 등 김민희의 팬들은 경사가 났다는 응이다. 그러나 이 기사가 나온 다음 다시 재결합설과 추석을 함께 보낸다는 설이 도는 등 다시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었고, [[홍상수]] 감독이 귀국 후 직접 해명하겠다고 하였으나 이후로는 소식이 없다.
         그러나 김민희와 [[홍상수]] 측의 해명에서 나온,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겨 별거 중인 유부남을 미혼의 젊은 여배우가 챙겨준다는 상황 자체가, 당사자인 배우자 뿐만 아니라 일 대중들의 인식으로도 상당히 의심스러워 보이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또 사건 초기에 기레기들의 악의적인 과장된 보도가 쏟아졌는데, 이것에 대해서 결국 홍상수와 김민희가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간통 논란이 기정사실화된 것에 일조했다.
         [[홍상수]] 감독은 결별설이 보도될 당시 귀국 후 직접 해명하겠다고 했으나, 그 이후 어떤 박도 하지 않았으며 11월 중순 경 [[이혼]] 신청을 넣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김민희의 경우 이 사태의 여파로 활동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며 청룡영화상 시상식도 불참했다.
         거기다 두 사람이 위 결별설 기사 당시 한 주장대로 "단순 우정이지만 서로의 미래를 위해 동료로서도 인연을 끊겠다"고 했든, 아니면 진짜 바람이 났으나 여론을 의식해 해어졌건 간에, 여지껏 영화 준비를 해온 게 밝혀진 이상 간통이 사실이든 아니든 '''위의 헤어졌다던 해명은 거짓이 된다.''' 둘이 진작에 헤어졌다고 주장하며 모든 일이 스캔들이라 믿었던 김민희 팬들은 [[멘붕]] 중이며, 일 대중들의 응은 "환장하겠네" 정도.
         사실 국내는 당연지사고 간통을 개인의 사생활이라면서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본다고 하는 서구권의 간통 사례와 비교해도 홍상수와 김민희의 현재 태도는 대담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뻔뻔하다. 기자회견을 열고 눈물까지 그렁이면서 명백히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대상이 되는 간통을 아름다운 사랑이라며 미화를 하거나 아예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서 출품까지 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덕분에 대중들은 "이 둘에 비하면 [[이병헌]]은 차라리 양이다." 수준의 응을 보이고 있다. 김민희의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한 이후에 똑같은 간통 논란을 의식한 기자가 이병헌에게 누가 봐도 대놓고 노린(...) 인터뷰까지 한 적도 있다.
         2017년 3월 13일,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에서 김민희가 홍상수 감독과 함께 간통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몇몇 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론에게 많은 비난을 받게 되었다. 기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울컥했다는 부분에 대해 홍상수의 본부인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냐는 등의 비난이 대부분이고 이 행동조차도 연기였을 것이라는 응도 있었다.
  • 전지수 . . . . 20회 일치
         * [[2010년]] 제 91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부 500m 2위, 3000m 계주 2위
         * [[2011년]] 제 9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부 500m 4위, 1000m 3위
         * [[2012년]] 제 9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부 500m 2위, 1000m 1위
         * [[2012년]] 제 26회 전국남녀 학생종별종합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여자 일부 500m 1위,1000m 2위, 1500m 1위, 3000m(S.F) 3위
         * [[2012년]] 제 29회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부 500m 1위, 1000m 3위
         * [[2012년]] 제 28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부 500m 1위, 1500m 4위
         * [[2013년]] 제 94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여자 일부 500m, 1000m 2위
         * [[2013년]] 제 27회 전국남녀 종별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일부 1500m 5위,500m 2위
         * [[2013년]] 제 30회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부 500m 1위, 1500m 3위
         * [[2013년]] 제 29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부 500m 1위, 1500m 1위
         * [[2014년]] 제 95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부 500m 2위, 1000m 1위
         * [[2015년]] 제 96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부 500m 1위
         * [[2015년]] 제 32회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부 500m 1위
         * [[2015년]] 제 31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부 500m 2위
         * [[2016년]] 제 97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부 1000m 2위
         * [[2017년]] 제 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부 500m 1위
         * [[2017년]] 제 31회 전국남녀 종별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일부 500m 1위, 1000m 3위
         * [[2017년]] 제 34회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여자 일부 500m 1위, 1000m 1위
         * [[2017년]] 제 33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여자 일부 500m 3위, 1000m 3위, 3000m 계주 1위
         * [[2018년]] 제 99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부 500m 2위
  • 풍운 . . . . 20회 일치
         섭풍과 공동 주인공이지만, 후으로 갈수록 섭풍이 좀 밀리는 감이 나타나서(…) 이 만화의 원탑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주 무공은 배운장, 삼패검. 사용하는 무기는 [[절세호검]]. 그리고 오른팔은 불기린의 피가 들어간 '기린비'(혹은 기린팔)이다.
         보경운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평소에는' 착한 인물로 보이며, 실제로 이 만화에서 독보적인 인성갑이다. 하지만 내면에는 살육충동이 있어서 빙심결을 사용하여 억제하고 있다는 설정도 있으며 1부 막판에는 마도에 빠져서 거하게 폭주하는 등. 여러모로 복잡한 캐릭터. 선풍퇴를 통하여 경공술이 뛰어나다는 것이 부각되어 후부에는 '바람의 신'으로 불리게 된다.
         초부의 보스. 천하무림을 통일한 천하회의 회주. 배운장,선풍퇴,천상권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세가지를 하나로 합친 융합무공까지 사용한다.
         배검산장-절세호검편에 등장. 간사한 외모를 가진 검법가. 자신의 무공에 맞는 검을 찾는데 집착하고 있으며, 좋은 명검을 받는 대신에 마누라를 검마에게 넘겨줄 정도(…)로 검에 극도로 집착한다. 그 만큼 검을 보는 안목은 대단히 높다. 하는 짓을 보면 개그 캐릭터 같지만 상당한 강캐였는데, 배검산장 편이 끝나고 동영편 중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삭제당해서 검마와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무명에 필적할 정도의 고수. 현재 배검산장을 지배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손가락에서 그냥 빔을 쏘는 거지만 검기를 쏘는 거니까 검술이라고 주장하는(…) 단맥검기를 무공으로 사용한다. 배검산장 편의 최종보스로 엄청난 무공을 자랑했으나, 동영편 중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삭제당해서 사형제인 검빈과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변장을 하여 음모를 꾸미는 것이 특기지만, 대체로 독자들은 갈수록 절심 패턴에 익숙해져서 중을 넘어가면 '이새끼 절심이네'라고 직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과 좋은 싸움 친구(…)였던 남림검수 단수의 아들. 나이는 섭풍보다 조금 어리다. 섭풍과 함께 섭인왕,단수가 실종된 뒤에 천하회에 거두어졌지만, 이름이 풍운이 아니라서 그런지 웅패는 단랑을 자신의 직전 제자로 들이지 않고 그냥 일 제자로 만들었으며, 단랑은 열등감에 점점 삐뚤어지게 된다. 결국 천하회를 배신하고 무쌍성 일당과 협력하게 되며, 본래 친구였던 섭풍과 길이 갈려서 대립하는 입장이 된다.
         후부 보스. 부여국의 왕. 일단 동영과 비슷하게 여러모로 왜곡되기는 했으나 한국계를 모델로 하고 있어서 국내에서 인기가 높다. 무공도 뛰어나지만 지략도 인품도 뛰어나서 카리스마가 대단한 인물. 중원정복을 위해서 조상이 봉인해둔 동방창룡의 무공을 얻으려고 했고, 이를 위해서 계략을 써서 무명을 제압하고, 풍운을 납치해온다. 하지만 동방창룡의 무공이라는게 후손을 낚기 위한 페이크(...)였고 허무하게 주화입마에 걸려서 죽고 만다.
         검성이라 불리는 만큼, 본래 검술 뿐만 아니라 인품으로도 존경받던 인물. 하지만 초부터 상당히 깨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냉정하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일은 많이 하고 다녔지만, 실제 인성은 거의 레기(…)에 가깝다.
         무명하고는 처음에는 무명이 19세에 싸웠던 걸로 설정되었는데, 나중에 모응용 편에서는 10대 초이었던 모응용과 무명이 '영웅검'을 발견하자, 영웅검을 가진 자가 자신과 대결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에 집착하여 아직 어린 나이였던 무명에게 시비를 걸고 싸워서 무공을 폐할 정도의 중상을 입혔다는 것이 밝혀진다. 대체 이 인간은 뭐야(…).
         독고일방의 딸, 독고명의 여동생. 초에 섭풍과 로맨스 라인을 타는 여성. 섭풍이 위기에 빠졌을 때 한 여인이 도움을 주었는데, 몽(夢)이라는 이름으로만 부채로 펜팔을 나누면서 교류하고 있었다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섭풍은 아버지의 원수다보니 맺어지지 못하고 갈등하는데, 나중에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제이몽'이라는 여캐가 끼어들면서 얘가 진짜 몽이었다는게 밝혀지고 독고몽은 쩌리로 전락한다(…). 그리고 작품에서 퇴장.
         독고명을 도와주는 승려. 수염이 덮수룩하게 나있으며 달마 대사 같은 인상. 무공으로는 그 유명한 [[여래신장]]을 쓴다. 무공의 고수로서 장문인 급 몇명과도 한꺼번에 대적할 수 있으며, 초부 보경운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강자.
         초에 독고명의 항룡신퇴 vs 섭풍의 풍신퇴처럼, 이쪽은 석무존의 여래신장 vs 보경운의 배운장 같은 구도로 라이벌을 형성한다. 아마도 기존에 이름이 알려진 유명 무공들을 차용하여, 풍신퇴와 배운장이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천상권은?--
         초부 만악의 근원(…). 천기를 읽을 수 있는 뛰어난 예언자로서, 웅패에게 풍운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그로 인해서 잃을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웅패는 이 때문에 당초 자신의 심복으로서 아끼던 보경운과 섭풍을 제거하는데 편집적으로 집착하게 되고, 그 때문에 도리어 풍운에게 패배하여 천하를 잃고 만다. 니보살 자신도 천기를 많이 누설한 탓에 하늘에서 내린 독에 중독이 되고, 가족을 모두 잃었으며, 최후에는 예언을 누설할 것을 염려한 웅패에게 손녀와 함께 살해당하고 만다.
         '''배운장''' : 보경운이 사용하는 무공. 장법. 이름 그대로 '구름'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장법이지만 망토 역시 다양하게 활용한다. 이래서 보경운이 언제나 망토를 두르고 다니는 것. 후까지 보경운의 주력기로 쓰인다.
         '''풍신퇴''' : 섭풍이 사용하는 무공. 퇴법. 회오리바람을 연상케하는 재빠른 발차기가 특징이다. 후까지 섭풍의 주력기로 쓰인다.
         '''성심결''' : 제석천이 만든 무공. 익히면 장수하게 되며, 사람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제석천은 성심결의 힘으로 수백년 동안 살았지만, 육체가 서서히 노화되어 자신의 육체를 얼음 속에 가둬야 했다…고 설명 되는데 제석천의 정체를 알고보면 제석천 자체가 사기로 무림인들 골탕먹이고 서로 싸우게 하면서 즐기던 악질 개새끼인데가, 자기 이외의 놈이 용정 먹고 불로불사하면 안된다고 용정을 혼자서 강탈하려는걸 보면 아무래도 초부에 나온 성심결 설명도 '''사기'''에 가까울 듯 하다. 물론 무이나 제석천의 제자 빙황 등 성심결의 효과를 본 놈이 나오기는 하고, 제석천이 수명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므로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수백년씩 사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여기서 예외가 중부에 등장한 제석천과 용정, 인 줄 알았는데 2천년간 수련한 제석천도 결국 본래부터 무인 체질이 아니라는 이유로 풍운의 재능을 당해내지 못하고 개처럼 처맞으면서(…) 재능만능주의에 정점을 찍었다.--2천년 수련도 재능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 장문인 : 보통 평범한 무협소설에서는 한 문파를 이끄는 스승이자 우두머리로서, 뛰어난 무공을 가진 것으로 설정하여 무림의 주요 인물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무림의 풍운에서는 그냥 '''전투력 측정기'''. 기본적으로 10대에 장문인을 줘팰 정도의 재능이 있어야 고수의 세계에 가까스로 명함을 내밀 수 있으며, '한번에 장문인을 몇명까지 상대할 수 있는가'로 캐릭터의 강함을 측정할 수 있는데 석무존이나 초 보경운의 강함은 3 장문인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절무신 같은 경우는 한번에 자신을 협공하는 장문인 8명을 그냥 쪼개버리는 대참사를 일으켜서 이후로는 장문인을 이용한 측정이 어렵게 되버렸다(…). 대체로 등장하는 장문인이란 장문인은 죄다 주연급에 비하면 쩌리급 무공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일인이나 잡다한 무림인보다는 강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진정한 강자는 장문인 따위는 되지 않는 것 같다(…).
  • Victoria II/정당 . . . . 19회 일치
          * 동(Reactionary)
          상징색은 짙은 파랑색. 개혁을 항상 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란을 일으킬 수 있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보수파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상징색은 파랑색. 현재 상황에 만족하며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이들. 행복할 경우 절대로 개혁을 지지하지 않지만 POP의 투쟁성이 높을 경우 분열되어서 일부는 정치적/사회적 개혁을 지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동과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게임 내에서는 [[장제스]]의 [[국민당]]이 이 성향으로 나온다.
          상징색은 짙은 노랑색. 초부부터 등장한다. 개혁을 항상 대하며 폐지하려 하는 이들. 허구한날 정권을 잡기 위해 란을 일으킨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자유주의자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상징색은 빨강색. 중부부터 등장한다. 사회적 개혁을 항상 지지하지만 정치적 개혁은 POP의 투쟁성이 높지 않은 이상 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공산주의자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상징색은 짙은 빨강색. 사회주의자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등장한다. 사회적 개혁을 항상 지지하지만 정치적 개혁은 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란을 일으킬 수 있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사회주의자와 연대한다.
          상징색은 검은색. 후부에 등장한다. 집권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사회적 개혁을 항상 대하지만 집권할 경우 사회적 개혁을 지지한다. 하지만 정치적 개혁을 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란을 일으킬 수 있다. 연정할 애들도 없는 찐따들이다.
          군대가 나라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 국방예산을 최대치까지 배정할 수 있으며, 부대의 보충 속도와 조직력 회복 속도가 50% 증가한다. 전쟁 명문을 조작하는 속도가 30% 증가한다. 또한 동원령을 내렸을 시 일적으로 모집 가능한 양의 4배의 병력을 징집하게 된다. 다만 군대가 퍼먹는 보급품이 10% 증가한다.
          정부가 군대를 강하게 지원하길 바란다. 국방예산을 최대치까지 배정할 수 있으며, 부대의 보충 속도와 조직력 회복 속도가 25% 증가한다. 전쟁 명문을 조작하는 속도가 20% 증가한다. 또한 동원령을 내렸을 시 일적으로 모집 가능한 양의 3배의 병력을 징집하게 된다.
          * 군사적(Anti Military)
          군대를 돈 먹는 하마로 여기며 다른 곳에 예산을 쓰고싶어한다. 국방예산을 기본치의 175%까지 배정할 수 있으며, 부대의 보충 속도와 조직력 회복 속도가 25% 감소한다. 전쟁 명문을 조작하는 속도가 20% 감소한다. 또한 동원령을 내렸을 시 일적으로 모집 가능한 양의 2배의 병력을 징집하게 된다. 군대가 소모하는 보급품이 25% 감소한다.
  • 김형준(배우,가수) . . . . 19회 일치
         ||<#00BFFF> '''별명''' ||자라, 거북[* 목이 길어서 붙었다.], 김오피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성씨를 합친 별명, 데뷔 초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여 붙여졌다.], [br]인형준[* 인형+형준의 합성어. 말 그대로 인형처럼 예뻐서 붙여졌다. 비슷한 별명으로 프랑스 인형이 있다.] ,아카짱[* 아카(애기)+짱(친애를 뜻하는 일본의 경칭) 일본 활동 때 일본 현지 스텝이 붙여준 게 시초로 멤버들과 팬들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별명. 행동이나 얼굴, 성격이 애기같아서 붙였다고 한다.], 김자라[* 성+자라. 목이 길어서 자라 같다고 붙여졌다.], [br]기명준, 막내온바닥[* 막내온탑의 대말, 동시대 아이돌들이 다 막내온탑, 실세를 맡고 있을 때 --심지어 그룹 내 동갑 멤버는 서열 1위-- 거의 혼자 막내둥이 취급을 받았다. 서열순위 꼴지. 형준에게 하극상은 없다. 그저 막내일 뿐...], 깐준[* 앞머리를 깐 형준], [br]쪼꼬쭌[* 럽라디 때 베이비펌을 하고 나오자 팬들이 본인이 키우는 푸들인 쪼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쭌디제이[* 쭌+DJ. SBS 라디오 김형준의 뮤직하이에서 디제이를 맡으면서 본인이 직접 붙인 별명], [br]쭌[* 멤버들이 부르는 애칭이다.], 스에꼬[* 일본어로 막내라는 의미. 이름이 비슷한 김현중과 구분하기위해 쓰였다. 대로 김현중은 리다], --인왕--[* 인자한왕자 줄임말로 본인은 시키면 무조건 다한다고 그래서 인왕]||
          * 귀신이나 무서운걸 싫어한다. 다른 멤버들은 무서운 이야기나 예능에서 공포체험을 하면 '오! 깜짝이야'... 그냥 이정도 응인데 뭔가 튀어 나왔다하면 혼자 으악악악!!!!!! 소리부터 지른다. --더 하면 울것같다.--
          * 여담으로 'Never again' 활동 때 몸무게가 58kg 이었다고 한다. 181에 58kg... 도 아니었다. '''54 ~ 56kg'''이었다고 본인이 직접 김천경찰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밝혔다. 이 시절엔 '뼈였다'고 표현하기도. 지금(2018년 하기)은 72kg이라고 한다. [[https://youtu.be/wcUIufXF_5c|2018년 7월 20일 방송. 1:33:18부터.]]
          * 2월 3일 허영생과 함께 스타 골든벨에 출연했다. 귀여운 고양이 머리띠를 쓰고 허영생과 함께 [[핑클]]의 '내 남자 친구에게'를 주도 없이 생라이브를 불렀다.
          * 1월 21일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게임단 만들다]]를 방송 시작했다. 스타팬들의 응은 전작보다 흥한 느낌이 들정도. 게다가 이번에는 서경종 대신 [[홍진호|그분]]께서 조언자 역으로 나오는 것 같았지만...정작 뽑은 선수단 애들이 아마추어만도 못한 공방양민 수준이라서 까이고 조기종영했다.(...)
          * 8월 26일 김규종과 함께 [[듀엣가요제]]에 패널로 출연했다. 일인 참가자 장선영이 SS501 팬이라고 하자 김규종 장선영이랑 'Snow Prince'를 짧게 듀엣으로 불렀다.
          * 2015년 [[허영생]]과 함께 뮤지컬 하루에 동 캐스팅 되었고 정의감에 불태우며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는 형사 강영원 역을 연기했다.
          * 2013년 애견잡지 애니멀 매거진 3월호에 자신이 기르고 있는 려견 쪼꼬, 사랑이와 함께 화보를 공개했다.
          * 2017년 3월 11일, 12일 디앤루니스 신세계 강남점 이벤트 존, 영풍문고 종각종로본점 지하 2층 이벤트존에서 세번째 미니앨범 AM to PM 5-11-3 발매기념 팬사인회를 개최했다. 이번 팬사인회는 4월 6일 군입대 전 마지막 팬사인회으로서 국내팬은 물론 수많은 해외 팬들도 찾아와 글로버한 인기를 실감케 했다. 팬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악수를 나누는 등 팬 서비스를 선사해 팬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 음 활동 ===
         ||<table align=center> 솔로 및 단독 참여 음만 기록합니다. [[SS501(아이돌)|SS501]] 멤버들과 함께 참여한 음은 [[SS501(아이돌)/음 목록]] [[Double S 301]] 멤버들과 함께 참여한 음은 [[Double S 301/음 목록]] 문서를 참고해주세요. ||
         자세한 내용은 [[김형준/음 목록]] 참조
          * 2009년 4월 14일부터 [[SBS 파워FM]]에서 매일 새벽 2시에 방송하는 김형준의 뮤직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 활동했으며 2013년 8월 현재 4년을 훌쩍 넘겨 장수 DJ 목록에 합류후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정확히 5년째가 되는 2014년 4월 14일 끝으로 종방했다. 본인도 이 프로그램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듯. 10년 이상 활동하고 싶다고 라디오에서 몇번 밝혔다.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 새벽 2시 마지막 날 선곡표에는 자신의 곡 두 곡, 프로그램을 시작했던 날에 선곡했던 SS501의 '내 머리가 나빠서' 가 올랐다. 2014년 후기 즈음으로 예상되는 군입대도 DJ 하차에 한 몫 하는 듯
          * 초등학생때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가 부도가나서 가정형편이 어러워 졌는데 지하방에 온가족이 월세로 지냈다고 한다. 일년에 서 너번식 이사를 다녔고 이사를 자주다녀 나중에는 집과 학교가 멀어져 동생 [[알렌기범|기범]]이가 지하철을 몇번이나 갈아타며 학교를 다녔는데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 박석민 . . . . 19회 일치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상호(1989)|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태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한국시리즈 우승 지'''||
         [[NC 다이노스]]의 ~~[[개그맨]]~~ ~~[[브로콜리]]~~ [[내야수]]. 주 포지션은 3루수다. 1차 지명을 받은 연고지 출신 유망주였으며, 데뷔 초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상무에 입대한 후 타격 재능이 꽃피기 시작해 2000년대 후 노쇠한 삼성 타선의 리빌딩을 이끄는 젊은 중심 타선의 한 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절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태인]]과 함께 삼성의 새로운 개그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었다.
         2008년 시즌 초 [[선동열]] 감독이 구상했던 [[양준혁|양]][[심정수|심]][[제이콥 크루즈|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잔부상으로 시즌 초 2군에 갔다 오기도 하였지만, 그리도 2008년 이후 다시 규정타석에 들어서면서 데뷔 이후 첫번째로 타율 3할(0.305) 및, '''출루율 0.440'''(2위)을 기록하였다. 한때 출루율 부문 1위를 호시탐탐 노리며 [[이대호]]의 7관왕을 위협하기도. 다만 손가락 부상 때문에 작년에 비해 15개로 줄어든 홈런이 약간 아쉬운 편이지만 그래도 3번과 5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해 주었다.
         [[최형우]]가 시즌 초 극도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4월 한달동안 0.344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이승엽]]과 함께 삼성의 중심타선을 지탱했다. 1번 [[배영섭]]과 4번 [[최형우]]가 슬럼프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류중일]] 감독은 9번 김상수를 1번으로, 5번에서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던 박석민을 2번으로 전진배치한다. 박석민은 2번 타순에서도 맹타를 휘둘렀지만 박한이가 부상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임시직이라고 한다. 박석민 본인도 5번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최형우의 슬럼프가 길어지자 최형우가 5번으로 내려가고 박석민이 4번을 치게 되었다. 결국 최형우가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이승엽이 4번으로 가고 박석민은 3번을 치게 되었다. 최형우가 1군으로 복귀한 이후는 최형우를 이승엽 뒤에 세우지 않겠다는 류중일 감독의 뜻에 따라 박석민 - 이승엽 - [[강봉규]] - 최형우 또는 최형우 - 이승엽 - 박석민의 타순을 따라 3번 또는 5번 타자로 나서다가... 최종적으로는 4번으로 고정되면서 삼성의 중심 타선은 '''3번 이승엽 - 4번 박석민 - 5번 최형우'''가 되었다.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범호]]의 평범한 3루측 땅볼을 잡았는데, 원래 이 상황에선 2루 주자가 진루할 필요가 없으므로 태그아웃 상황이지만 [[포스 아웃]] 상황으로 착각해 3루 베이스만 밟고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본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기록은 3루수 실책. 투수 [[미치 탈보트|탈보트]]와 동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질러 2루 주자가 3루로 가는 선에서 그쳤지만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 2사 1, 3루라는 위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최희섭]]이 플라이아웃 되어 망정이지... 팬들 응은 '역시 개그맨' vs '[[채태인]]이랑 다를게 뭐냐'로 나뉘는 중. ~~다를게 많지~~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선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스코어 1:0으로 앞선 4회초 1사 1루에서 '''투런홈런'''을 날리며 부진에 마침표를 찍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여러모로 2002년의 [[이승엽]]과 비견되었다.[* 면 이 해의 [[이승엽]]은 2002년의 [[마해영]]+[[양준혁]] 포지션.] 이 홈런은 근소하게 앞서던 삼성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삼성은 여세를 몰아 '''볼넷 3개+ 적시타 2방 4타점'''을 묶어 '''시리즈 세 번째 1이닝 6득점'''으로 SK를 완전히 도륙내며 스코어 7:0으로 승리했다. 이날 박석민은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시즌초에는 부진했지만... 후기 대활약으로 OPS 3위 '''
         '''출루율 기의 생산성이 뛰어난 타자'''
         기본적으로는 눈야구를 기으로 한 OPS형 타자이다. 2009년이후 갑자기 OPS 1.0을 기록하며 타격에 소질을 보였다. 통산 출루율이 4할을 넘으며, 풀 시즌을 소화했을 때 20홈런 이상은 보장되는 장타력을 지니고 있다. 컨택 또한 뛰어나 통산 타출장 3-4-5의 아름다운 비율 스텟을 자랑한다.[[WAR]]도 거의 KBO 탑급이여서 공헌도가 가장 높다. 다만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을 비롯해 잔부상이 많기 때문인지 컨디션의 기복이 있고, 이로 인해 누적에서는 비율에 비해 아쉬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방망이를 돌리고 몸을 터는 등 유독 요란한 [[루틴]]동작 역시 몸의 고질적인 부상들 때문에 통증을 털어내는 과정일 정도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진 못한 편. 그럼에도 매시즌 3-4-5를 찍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외에 특이한 타격폼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도 얼핏보기엔 기괴한 폼이지만 오히려 타격의 정석을 충실히 지킨다며 이종열이 극찬한 바가 있다.
         중심타자의 숙명(?) 비슷하게 포스트시즌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 2012 KS 6차전에 2점 홈런, 2013 KS 7차전에 6:2로 도망가는 쐐기 적시타를 제외하고는 별 활약이 없었다. 2014년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은 1할대극초에 머물렀다. (그래서 삼성이 최정 정도로 제시했을지도...) 이러한 점은 팀이 바뀌어도 그대로 였고, 2016년 플레이오프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내긴 했지만[* 9타수 2안타 2홈런], KS에서는 무려 '''1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완전히 말아먹었다.
          * 퇘가놈, [[정현욱|박그분]] : 주장인데도 팀을 버리고 야도주했다는 이유. 박석민이 당연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삼팬들이 많았으나 FA이적으로 차세대 [[이호준|엔전드]]의 길을 걷자 바로 금지어로 등극했으며 박석민 팬은 [[노리타(야구)|퇘리타]]로 격하되었다. ~~두산팬 : [[홍성흔|우리가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 더불어 브콜돼 이놈 대구로 오기만 해 봐라고 잔뜩 벼르는 중. 하지만 예상이 무색하게 첫 대구 원정에서 삼성팬들이 기립박수로 겼다.[* 물론 여전히 온라인 응은 안 좋은편. 일부는 박수친 팬들을 비난했는데, 이유는 우리 팀 투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 다만 이 경기에서 1회 말이 끝났을 때 삼성은 '''7대1'''로 이기고 있었다! 직관 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난 경기인데 예전에 삼성에서 뛰던 선수가 왔으니 갑다고 박수나 쳐 준 것.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거 한 방에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점수차였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이날 삼성 선발이었던 [[윤성환]]은 상대 타자가 자팀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두 번이나(한 번은 자신의 피홈런으로!) 받는 것을 마운드에서 지켜봐야 했다.] 꽤나 오랜 시간 이후 당시 삼성 스포츠단의 지원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정유라]] 지원으로 인한 지원금 축소 의혹으로 계약금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과 친정 팀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재평가되고 있다. 혹자는 괜히 오버해서 안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고도 하는 편.
         [[한화 이글스]]에게 유달리 강하다. 한화 상대 타율이 자신의 통산 타율보다 1할 가까이 높은 3할대 후이다. 2009년에는 9개나 침으로서 한화 마운드 방어율 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실 한화 상대로 어느 타자가 약하겠냐만은~~ 특히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에게는 크보에서 가장 강한 타자이다. 2008~2009 2년간 對 류현진 성적이 '''15타수 5안타 4홈런 6타점 4볼넷'''이다. --박석민을 메이저로!-- 2009년에는 류현진한테 홈런 3개를 빼앗았을뿐만 아니라 그 중 2개는 한 경기에 친 것이었다. 그래서 한화 팬들은 다른 어떤 강타자보다도 박석민을 제일 무서워한다(…) [[디시인사이드]]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한나쌩(한화 나오면 쌩큐) 혹은 칰나쌩 선수로 대부분 박석민을 지목했다. ~~[[김성근|???]]: ㅂㄷㅂㄷ~~
         다수의 움짤이 포함된 상세 내용은 [[박석민/몸개그]] 참조. 야구선수 문서에 몸개그 항목이 분리되어 있다니.... '다수의 움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항목에 들어가고 싶다면 '''드시 와이파이를 켜고 들어가거나 웹으로 접속하자. 데이터가 엄청나다.'''
  • 이정재(영화배우) . . . . 19회 일치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후1994년 12월 23일에 [[입대]]하여 52사단에서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96년 6월에 제대했으며, 개그맨 [[유재석]]과 군대 동기다. 유재석이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으며 힐링캠프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했다.[[https://youtu.be/W31NK0EW17s|#]] 입대 이후에는 군대에서도 여러 국방홍보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외에도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에서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거의 [[대한민국]] 최초로 남자의 '[[몸짱]]'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상신 근육질 몸매가 드러난 영화 포스터가 길거리에 붙어있던게 젊은 여성 팬들에 의해 감상/보관용으로 뜯겨나가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하녀]]》에서도 재현되는 그 근육.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가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쪽은 [[의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soso--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이러면서 《젊은 남자》에도 캐스팅이 되고 《[[느낌]]》에도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품은 역시 90년대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당시 [[최민수]]보다 오히려 더 인기를 모으면서 백재희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가 SBS에 쇄도하는 등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1995년에 SBS 신인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정우성]]과 공동수상).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 찍고 난 후 20대 초에 찾아온 쏟아지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입대를 해버린다. 방위로 갔다고 비판받았으나 [[평발]]이라 방위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유재석]]과 군 동기다.[*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이른바 '마지막 방위' 세대다. 같은 날 방위병으로 입대한 다른 동기로 좌회전의 리더였던 [[김진(배우)|김진]](복무를 마친 후 연기자로 전향), [[투투(가수)|투투]]의 멤버였던 유현재 등이 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유재석이 자신을 업어 키웠다고... 당시 유재석은 [[압구정]], 이정재는 [[논현동]]에 살았는데 둘이 [[카풀]]을 했다. 그런데 이정재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차를 끌고 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기다리던 유재석이 자신의 차를 가지고 논현동까지 가서 이정재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고.
         영화 [[하녀]]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도둑들]]에선 비열한 뽀빠이 역을 맡아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필모를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 [[신세계(영화)|신세계]]를 통해 다시한번 배우 이정재를 대중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언더커버 이자성 역을 맡아 특유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내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캐릭터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겉으로 막 내뿜고 딱 봐도 --비주얼부터--강한 캐릭터인 정청에 비해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는 이자성이 밋밋할 수도 있으나 내면 연기가 원래 더 어려운 법이다.] 같이 출연한 최민식이 이자성 역할에 [[정우성]]과 이정재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자성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위태로운 분위기가 이정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결국 이정재가 이자성을 연기하게 되었다. 19세 관람 불가인 조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이자성 때문에 지나간 청춘스타로만 여겨졌던 이정재가 다시 젊은 세대들의 오빠로 컴백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후부의 이사회장 런웨이씬과 달처럼 휘는 이정재의 눈웃음이 백미.[* [[파일:2wr59IK.gif|width=70%]]] 실제로 저 마지막 눈웃음 때문에 신세계를 중복 관람한 여성팬들이 많았다.
         우습게도 청룡영화상의 저주인양 거의 10년간 암흑기가 지속된다. 물론 이영애랑 작품했던 선물도 잘되고[* 무려 [[김태희]]가 이영애의 아역으로 나온 영화다] 태양은 없다의 홍기역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 브라더스]]는 [[이범수]]와 함께하면서 잘된작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둘다 아주 크게 대박난 작품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동안에도 활동을 활발히 했다. 물론 90년대 중후에 비해서 줄어들긴 했지만 꽤나 많은 일을 했는데 청룡영화상을 받은 해에 개봉했던 [[이재수의 난]]은 배우들 모두가 고생은 고생대로 했음에도 흥행 참패. 당대의 여배우였던 [[심은하]]의 은퇴작 인터뷰도 망했다. 장진영과 함께한 오버더레인보우, 이미연과 함께한 [[흑수선]], 곽경택 감독이 천만을 노리고 [[장동건]], 이정재를 캐스팅해 만들었던 [[태풍]]은 대대적인 홍보 및 밀어주기까지 했으나 500만에 그쳤다. 문제는 제작비가 어마어마한 작품이라 500만도 적자였다는 것. 이 후 [[에어시티]]로 복귀하면서 드라마에서라도 재기를 꿈꿨으나 [[최지우]]-[[이진욱]]만 연결해주고 끝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의 감독이 각잡고 만든 [[트리플]]에 출연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망했다. 1999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사의 이정재는 흥행부도수표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는 거의 퇴물급의 배우가 되어갔다.
         이후 송강호와 함께한 《[[관상(영화)|관상]]》에서 [[수양대군]] [[http://img.theqoo.net/img/kuzzB.gif|역]]을 맡았는데 러닝타임에 만 출연하고도 송강호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갔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수양대군을 연기하였는데 이정재 본인 또한 이 역할을 놓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한 것으로 유명하다.
         총 관객 약 913만을 기록하며 역대 사극영화 중 네 번째 흥행작에 오른 관상은 평이 엇갈리고 지루하다는 평도 있으나,[* 2시간 20분이나 되는 긴 영화가 수양대군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정도로 극중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에 대해선 거의 만장일치로 호평 일색. 많은 기자들은 관상이 이정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일 관객들의 평도 매우 좋다. 관상보러 갔다가 [[수양대군|수양]] 보고 나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첫 등장 장면을 런웨이로 만들어 버리며 영화 시작 후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나오는 첫 등장 장면을 포스로 잠식해 버렸다. 누리꾼들은 이정재의 등장씬을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배우)|강동원]]의 우산씬, [[아저씨]]에서 [[원빈]]의 삭발씬과 함께 한국영화 3대 등장씬이라고 부른다. [[이병우]] 음악감독은 그 장면에 쓰인 음악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돈을 들였다고 했고, [[한재림]] 감독은 슬로모션 촬영 및 큰 개 두마리를 동원하여 시각적, 청각적으로 위협감을 주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2013년 9월 2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데뷔 20주년을 맞아 이정재를 위한 특별전이 열렸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은 여러번 있었지만 4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배우를 대상으로 한 특별전은 이정재가 처음. 주제는 '''"영원한 젊은 남자 이정재"'''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팬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일본에서는 두 번의 팬미팅을 가진 적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팬미팅 류의 행사를 한 적이 없다.] 행사의 공식명은 GV, 즉 관객들과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심도 깊은 자리였으나, 곧 400여명이 함께한 팬미팅으로 변질 되었다. 약 한시간 동안 팬들과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노래도 부르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즉석에서 걸어 달라는 팬들의 요구에 걸어도 주는 등 팬미팅을 방불케 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이정재]]가 직접 준비한 클레이 비누를 일일이 팬들에게 선물해 주면서 포옹을 해 준 것''' 준비한 선물보다 사람들 수가 더 많아서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에게 포옹을 해주었으니,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꿈 같은 1시간 이었다. 관객 절 이상이 여성들이다 보니 400여명과 포옹이 끝난 후 이정재의 수트 상의 한쪽 부분이 온갖 화장품으로 범벅이 되어 하얗게 색이 변해 있었다. 여담으로 당시 [[신세계(영화)|신세계]]와 [[관상(영화)|관상]] 개봉으로 이정재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라 표 구하는 게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전날부터 밤샌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새벽 5시에 나온 사람들도 10등안에 들지 못했을 정도. 12시에 온 사람들은 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으며 한국영상자료원 측도 이런 진풍경은 처음이라며 매우 놀라워 했다. 항간에 들리는 바로는 옆건물인 CJ E&M 사옥의 (엠카 보러 온) 줄보다 길었다고 하니... 본격 40대 아이돌 탄생.
         그리고 똑같은 일이 2년 뒤에 또다시 복 되는데...
          * [[태양은 없다]]에서 만난 [[정우성]]과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절친이며, 같이 패션사업도하고 CF에도 출연하고 술도 마시는 인생의 동자 같은 사이. 일명 청담동 부부로 불린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 세번은 만나며,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술 마시는 사이. 그야말로 절친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이지아 사건으로 위로도 할겸 만났던 자리에서 술먹고 떡이된 정우성을 업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재밌는건 둘은 그렇게 친한데도 아직까지 말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우성은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삼성동에 건축되는 18세대 고급빌라 라테라스 같은 층에 함께 입주했다. (물론 세대는 다르다... ~~이젠 집 밖으로 안나오고 빌라 안에서 놀려고~~)
          * 방위 시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로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탔는데, 대종상을 너무 가고 싶었던 나머지 군 규정을 위하고 시상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언론에 노출되는 시상식은 군에서 참가 허가를 해 주지만, 대종상은 참석이 불가능했다) 군의 높으신 분께서 직접 만나 축하를 해 주려고 대종상 다음날 그를 찾았지만, 실상은 수상 후 부어라 마셔라 놀다가 다음날 무단 결근을 해 버림. 이 때문에 며칠동안 연병장을 몇 바퀴씩 뛰었다고 한다.
          * 차는 [[벤츠 G클래스]]. 영화 <도둑들>에서 이 차가 출연한다. 영화 후부 부산 장면에서 웨이홍일행이 타고 등장하는 차가 있는데 실제 이정재의 차량. 코멘터리에 '어디서 많이 본 차'가 등장한다고. (김윤석이 지나가는 말로 이정재 본인의 차라고 언급)
          * 2013년 영화 관상의 900만 돌파 행사 당시 한 여성 팬의 '''"잘생김"'''드립이 엄청난 응을 몰고 왔다. 이후 연예프로나 기사에 이정재가 나오면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잘생김이 묻은 배우"이며, 이 수식어는 2015년 8월 2일자 섹션 연예tv에 이정재가 나왔는데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역대급 드립을 해준 팬을 위해 실제로 이정재가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 한참 인기있던 90년대 후에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 [[영화]][* 2000년대 초까지는 서울관객만 집계] ===
  • 창원시 . . . . 19회 일치
         [include(틀:창원시의 일구)]
         ||<-2><bgcolor=#00BFFF> {{{#FFFFFF '''행정구역'''}}} || 5[[일구]][br]2[[읍(행정구역)|읍]] 6[[면(행정구역)|면]] 54[[행정동|동]] ||
         [[경상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인구는 약 106만명. 공업을 기으로 한 '''계획도시이자 명실상부한 경남의 중심지'''로 [[경상남도청]] 소재지다. 과거 [[부산광역시|부산]]에 있던 경상남도청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되었다.[* 여담으로 도청 이전 당시 진주와 옛 마산이 유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진주는 부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원래 경상남도청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마산은 당시 경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전국적으로도 대도시 축에 ~~잠깐~~ 들었다는 점에서 도청 소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장소로 확정되었는데, 옛 창원시 권역은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1980년 시로 승격된 같은 생활권인지라 사실상 마산으로 이전한 것에 가깝긴 했다. 비슷한 예론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라남도청이 사실상 [[목포시]] 생활권인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구]]가 설치되어 있고, [[수원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일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 전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을 돌파했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영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영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주는 정도다.]
         면 뚜렷한 지역성과는 대로,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창원시내버스협의회|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상남동(창원 성산)|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 현 창원시 의창구]와 회원현[* 현 마산시 회원구]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왜정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한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단지 물이 얼음이 될 뿐~~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그날 따라 택시요금이 2배나 나왔다 카더라.~~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창원 버스 103|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바다에 바로 접해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와 강풍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 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미터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다'''.[* 이는 연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개씩 통과하는 해는 연 강수량이 2000mm 가까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면에 장마가 짧게 끝나고 태풍이 통과하지 않는 해는 1000mm도 채 안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2016년만 하더라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776mm(9월 20일 기준)로 평년의 66% 수주밖에 되지 않는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에는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거의 100일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일기예보에서만 윗 지방의 홍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고.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단,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가지만 창원도 정말 만만찮게 덥다. 게다가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후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 [[하이트맥주]] : 하이트 제2공장이 천주산(마산역과 창원역 사이)에 있다.[* 원래는 [[한독맥주 사건|한독맥주]] 공장이었으나 1976년에 금융 관련 사건으로 인해 도산하면서 이듬해에 조선맥주가 인수했다.] 창원시의 지질이 화강암이라 물맛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고, 1990년 페놀사태 당시 이 점을 크게 활용하여 광고했다. 그 결과 하이트가 히트상품이 되었고 사명을 아예 조선맥주에서 하이트맥주로 바꿔버렸다.
          * 만날제 : 마산합포구 문화동과 예곡리를 잇는 고개인 만날재에 전해지는 민담을 주제로 20세기 후에 재구성한 축제. 구 마산시의 마스코트인 '만남이'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http://festival.changwon.go.kr/mannal/mannal.jsp|#창원시 홈페이지 참조.]]
         전적인 생활문화시설이 확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다. 마산, 진해 지역도 여러 가지 개발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직 구 창원에 비하면 모자란다. 그 구 창원도 북면, 대산, 동읍을 아우르는 북쪽 농업 지대의 불균형 발전 때문에 통합을 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통합이 성사되면 안그래도 지금까지 지지부진하던 농업 지대 개발에 쓰이던 자본이 마산이나 진해 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 다행히 통합을 하고 나서도 농업 지대의 개발 또한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옛 39사단 터 유니시티 상업지구에 대형 상업시설 입점[* 태영건설에서 자체 개발하는 상업시설 어브릭스와 신세계그룹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07578|복합쇼핑몰]] 진출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계획되어 있어서 일대가 의창구의 새로운 상업지구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며, 창원중앙역 역세권과 마산해양신도시에도 넓은 상업 용지가 있어서 창원시의 상업지구는 더욱 다핵화될 것으로 보인다.
         [[창원시/행정]] 문서 참조. 현재 5개 일구 산하에 읍면동이 있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 . . . 19회 일치
         2011년 발매된 FPS 게임. 일적인 FPS 게임과는 달리 이 FPS 게임은 [[페이데이 갱|4인조 강도단]]을 주인공으로 한다. 후속작으로 [[페이데이 2]]가 있다.
         || 6 || Mark 11 || 동 감소 I ||
         || 11 || Mark 11 || 동 감소 I ||
         || 16 || Crosskill .45 || 동 감소 I ||
         || 21 || Mark 11 || 동 감소 I ||
         || 3 || B9-S || 동 감소 ||
         || 9 || B9-S || 동 감소 ||
         || 21 || B9-S || 동 감소 ||
         || 24 || M308 || 동 감소 ||
          처음 사용하게되는 5.56mm 돌격소총. 중간치의 동을 가지고있다. 샤프슈터 트리의 명중률 강화를 몇번 하면 도트사이트가 달린다. 모델은 [[콜트 M4 카빈|콜트 M4A1]].
          샤프슈터 트리에서 해금되는 7.62mm 자동소총. 높은 데미지와 중간치의 동을 가지고있다. 모델은 M1A SOCOM.
          처음 사용하게 되는 9mm 권총. 동이 낮으며 소음기가 달려있다. 모델은 베레타 92FS.
          서포트 트리에서 해금되는 44구경 리볼버. 똥파워를 자랑한다. 그에 알맞는 고동은 덤. 모델은 토러스 라이징불.
          어설트 트리에서 해금되는 45구경 권총. 중간치의 동을 가지고있다. 모델은 콜트 M1911A1.
          9mm 기관단총. 서포트 트리에서 해금된다. 높은 연사력과 낮은 동을 내세우는 무기. 모델은 H&K MP5A2.
         === 일적인 적 ===
          패닉룸 하이스트 초에 상대하게 되는 적. 패닉룸 하이스트가 실내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놈들은 기관단총을 난사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도살장 하이스트 초에 상대하게 되는 적. 돌격소총으로 무장했다.
  • 한교원 . . . . 19회 일치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의 ~~깡패~~[* 이 계보는 현재 [[조성환(1982)|조성환]]이 잇고 있다. 사건 한번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한교원은 그나마 최근 성하고 고쳐오고 있지만 조성환 쪽은 현재진행형이라...]축구선수. ~~한퀴아오~~
         인천 입단 후 한교원은 성실한 훈련 태도로 [[허정무]]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데뷔시즌 초부터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는 행운을 얻는다. 당시 동포지션의 경쟁선수들이 동 부진, 부상 등에 빠졌던 이유도 있어서 행운이라 한 것. 경기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출전시간을 점점 늘려나가더니 인천 공격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부상한다.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고 [[김봉길]]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후에도 신임은 여전했다. 한교원의 2011 시즌 스탯은 '''29경기 3골 2도움'''. 공격포인트가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체출전 또는 교체아웃된 경기가 많았고 센터백으로 뛰는 등 포지션 변경이 많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인천구단 자체가 이해에 빈공에 시달려 한교원이 공격포인트 1위였다.
         2013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4년 1월 5일, K리그 최고의 윙덕후로 불리는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군대에 입대한 서상민의 뒤를 이어 7번을 달면서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인천 팬들은 전년도 [[정인환]]+[[정혁]]+[[이규로]] 세트 이적에 이어서 이번에는 [[김남일]]과 한교원을 동시에 전북에 넘겨 허탈한 감정을 갖기도 했다. 1년 후에는 [[문상윤]]마저 전북으로 넘어갔지만, 그 뒤에는 전북으로 이적하는 인천 선수가 많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김인성]], [[박세직(축구선수)|박세직]] 등이 대로 인천으로 넘어갔다.
         3월 8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그림같은 시저스 킥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 및 전북 소속으로의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그냥 시저스 킥도 아니고, 등 뒤에서 넘어오는 공을 등진 자세임에도 다리에 정확히 맞춰 넣은 초고난이도의 골. 다만 이러한 활약을 보인 것과 다르게 시즌 전기에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팬들 사이에서는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선수였다. 그러나 월드컵 휴식기를 보낸 이후 폭발적인 적응력을 보여주면서 팀 전술에 녹아들었고, 활약도도 급상승하였다.
         팀메이트인 발리슛의 제왕 [[이동국]]이 특훈이라도 시켜주는지 윙어인데도 불구하고 발리슛을 꽤 능숙하게 한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다이빙 헤딩슛을 보이는 등 공중볼 타이밍을 잘 잡는 편인듯 하다. 하지만 두번째 시즌에 들어서는 [[레오나르도]]보다 못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에게조차 스탯 사기꾼으로 판정받고 있는 와중에... 후술할 [[박대한]] 폭행 사건까지 터져서 징계를 받고 오래도록 징계로 그라운드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후기에는 전북에서 '''[[이근호]]'''를 영입하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지고 말았고, 결국 시즌 내내 리그에서 1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에서 전 2분만에 무릎 인대부상을 당한 [[히카르도 로페즈]]의 교체멤버로 들어왔고, '''[[이재성(1992)|이재성]]의 코너킥을 그대로 갈겨 선취점을 뽑아내고 이 골로 전북 현대를 10년만의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간의 힘든 상황을 털어내는 극적인 득점이었다.
         2016 시즌에 유종의 미를 거둔 이후 한교원은 2017년 1월부터 사회복무를 위해 6개월간 팀을 떠나 [[K3리그]] [[화성 FC]]에서 뛰게 되었다.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인 한교원은 병역법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간 일하면 병역의 의무를 마치게 된다. 6개월간 사회복무를 마친 이후, 2017년 후기 다시 [[전북 현대]]로 복귀하게 된다. 한교원은 K3리그에서 최종 10경기 2골 3도움을 기록, 나름대로 꾸준히 몸 관리를 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리고 큰 부상 문제 없이 후기에 전북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에는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었고, 간간히 활동량을 앞세워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거나 아예 풀백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부상당한 [[구자철]]대신 선발되어 파라과이와의 후전에 투입되었다. 만회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린 파라과이 수비진을 손흥민과 함께 수차례 침투하며 좋은 기회들을 만들고 날카로운 슛을 때렸지만, 아쉽게 골을 넣지는 못했다.
         2015 아시안 컵 이전에는 [[이청용]], [[손흥민]], [[이근호]]의 백업 정도 위상이었으나 오만 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했고 이청용이 실금 진단을 받고 대회에서 빠지면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조금 억울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창수가 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상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선발되어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까지 출장했다.
         2015년 5월 23일 친정팀인 인천전에서 수비수 [[박대한]]을 '''폭행'''하는 [[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kl/126480/127059|칙을 저질렀다.]]--한교원투펀치-- 한번도 아니고 두번 연속으로. 첫 번째 주먹이 빗맞자 쫓아가서 주먹을 다시 날렸다. 그것도 '''중계 화면으로 방송'''되는 도중에... 게다가 겨우 전 5분만에 있던 일이었으며 바로 퇴장을 당했다. 그의 커리어 역사상 첫 퇴장이라 한다. 이게 얼마나 어이 없는 칙이었냐면, 스로인 상황에서 모든 선수들의 시선이 공에 집중되어있던 사이, 갑자기 한교원이 퇴장당하자 전북 선수들이 달려와 이유를 물었는데 주심이 상황을 설명해주자 아무런 항의 없이 그냥 다시 돌아갔다. 이후 카메라가 홈 팬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서포터즈들이 단체로 넋이 나간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타국 선수도 아니고[* 설령 타국과의 경기였다고 해도 용서되지 않는 행동이다. ] 같은 국적에 친정팀과의 경기[* 한교원은 2014년 인천을 떠났는데 박대한은 2014년 [[강원 FC]]에서 프로 데뷔를 했으니 한솥밥을 먹은 적은 없다.]. 그것도 경시 시작 5분만에 저지른 어이없는 칙에 팬들로부터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맞았다. 너무 정신나간 칙이라 전북팬들도 어떻게 변호를 못했다.[[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10&aid=0000243677&|최강희 역시 그의 퇴장이 분위기를 망쳤다며 그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전북구단은 베이징 궈안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명단에서 그를 제외시켰고 자체적으로 벌금 2,0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의 징계를 내렸다. 프로축구연맹은 28일 열린 상벌위에서 6경기 출정정지와 제재금 600만을 부과했다. 다이렉트 퇴장으로 인한 2경기 출장정지까지 합쳐 총 8경기 출장정지에 구단 자체징계까지 합쳐 벌금이 2,6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이다. 팬들은 한방에 1,300만원하는 주먹질이라며 혀를 찼다. 연봉의 거의 절이 날아갔다.
         세계일보에서는 야구계의 민병헌 사건과 함께 들먹이며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5/28/20150528005252.html?OutUrl=naver|솜방망이 처분]]이라고 비난했다. 수아레즈의 4개월 출장 정지에 비하면 징계가 약하다고 볼 수 있으나 수아레즈는 같은 칙을 2번이나 해서 그런거고 경기 중 이단옆차기 날린 이청용에게 아무 징계도 안 주던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나아지긴 했다. 전북 팬들은 옛날 [[서정진]]이 그랬듯이 대표팀 다녀와서 발전할 생각은 안하고 겉멋만 들어왔다고 걱정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교원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겉멋보다는 선수 본인의 압박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성향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교원은 저돌적인 플레이 스타일과는 별개로 실제 성격은 착하지만 굉장히 여리고, 은근히 여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도 초기에 비판을 받을 때는 적응까지 좀 시간이 걸렸었고, 2015 시즌같은 경우 국가대표 승선으로 인해 과거와는 확실히 위상과 주목도가 달라졌는데 본인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다소 아쉬운 활약이 이어지자 큰 부담감을 느낀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친정팀을 만났고, 그래서 무언가를 더 해보려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인천 팬들도 한교원을 바로 비난하는 케이스도 있기는 했지만, 다수는 '어쩌다가 한교원이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간 한교원이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나도 상극인 행위를 했기 때문.[* 지금도 한교원을 한퀴아오라면서 욕으로 도배를 하는 것을 보면, 정작 사건 당사자인 인천팬은 아연실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에서 오랜 시간 뛰면서 보여준 태도와는 상된 행동이었기 때문. 실제로 인천팬들은 한교원 선수를 성실하고 착실한 선수로 인식해왔고, 평소 행동도 거칠지 않았고, 경기장에서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18회 일치
         각 국가의 장관진을 차지하는 인물들은 각자 하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해당 특성은 여러가지 요소에 보너스를 주기도 하지만, 대로 패널티를 주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내각진 중 국가원수와 정부수을 제외한 8명을 자기 입맛대로 갈아치울 수 있지만, 민간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2%, 군사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1% 올라간다.
          * 긍정적인 효과: 불만율 증가량 -10%, 보급품 생산량 +10%, 공장 생산 시간 -5%, 소비재 필요량 -15%, 비방 정책 당할 확률 -20%, 군 지원 당할 확률 -20%, 산업 사보타주 당할 확률 -20%, 산업 스파이 당할 확률 -20%, 연구진 사보타주 당할 확률 -20%, 쿠데타 당할 확률 -50%, 핵무기 사보타주 당할 확률 -50%, 보병 사단 조직력 회복률 +5%, 민병 사단 조직력 회복률 +5%, 기병 사단 조직력 회복률 +5%, 산악병 사단 조직력 회복률 +5%
          * 긍정적인 효과: 불만율 증가량 -5%, 공업력 +5%, 자원 생산량 +5%, 공장 생산 시간 -5%, 산업기 생산 시간 -10%, 소비재 필요량 -5%, 영향력 행사 성공률 +10%, 동맹 성공률 +10%, 협상 성공률 +10%, 영향력 행사 비용 -5, 동맹 제안 비용 -20, 동맹 초대 비용 -20, 동맹 참가 비용 -6,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5%
          * 부정적인 효과: 보급품 생산량 -5%, 공장 생산 가격 +5%, 산업기 생산 가격 +10%, 자금 생산량 -10%
         == Head of Government(정부수) ==
          >늙은 제독이 이 자리에 앉게 된 이유는 세력기 덕일수도 있고, 과거의 영광 덕일수도 있다.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능력이 없는 이 인물은 해군을 최우선적으로 챙긴다.
          >늙은 공군원수가 이 자리에 앉게 된 이유는 세력기 덕일수도 있고, 과거의 영광 덕일수도 있다.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능력이 없는 이 인물은 공군을 최우선적으로 챙긴다.
          >늙은 장군이 이 자리에 앉게 된 이유는 세력기 덕일수도 있고, 과거의 영광 덕일수도 있다.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능력이 없는 이 인물은 군대를 최우선적으로 챙긴다.
          * 긍정적인 효과: 소비재 필요량 -5%, 자금 생산량 +5%, 보급품 생산량 +10%, 육군 첩보 +10%, 육군 첩보 정확도 +1, 산업 첩보 정확도 +1, 산업 스파이 행위 성공률 +1%, 군 지원 성공률 +1%
          >건설왕은 건설 업계의 유명인사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건설 산업의 생산성을 높히고 도로, 공항, 해군기지, 그외 산업기의 건설을 촉진시키는데 사용한다.
          * 긍정적인 효과: 산업기 생산 비용 및 시간 -15%, 공군기지 생산 비용 및 시간 -15%, 해군기지 생산 비용 및 시간 -15%, 레이더 기지 생산 비용 및 시간 -15%
          >혼합경제는 정부와 민간분야 둘 다 경제를 관리하는 경제 체제로,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둘 다 지지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다수의 혼합경제는 강한 규제력을 지닌 감시가 동된 시장 경제로 묘사되며, 여기에 정부가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는 점이 추가된다.
          * 긍정적인 효과: 산업기 생산 비용 및 시간 -15%, 지상 요새 생산 비용 및 시간 -15%, 해안 요새 생산 비용 및 시간 -25%
          >부정직한 도둑 정치가는 범죄율이 높건 낮건 신경쓰지 않으며, 란의 위험에 약간의 관심만을 기울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장관들은 부유해지기 위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 Opposer of the Far Right(극우 대자) - 프랑스의 막스 도모이
          * Staunch Anti-Communist(확고한 공주의자) - 중화민국의 다이춘펑(대춘풍)[* 국내에서는 다이리(戴笠, 대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긍정적인 효과: 영향력 행사 성공률 +20%, 쿠데타 성공률 +2%, 장관 암살 성공률 +2%, 비방 정책 성공률 +2%, 군 지원 성공률 +2%, 국제적 여론 조작 성공률 +2%
  • 문근영 . . . . 18회 일치
         [[2005년]]작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는 순수한 연변 처녀의 역을 맡아서 춤 솜씨, 연변사투리 실력와 함께 120%의 존재감을 선보였다. ~~대신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로 당시 극강의 댄서로서 군림하던 [[박건형]]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 문근영의 아우라에 묻히고 말았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한 '딧불이...' 운운하는 대사의 경우 다른 여배우가 이런 대사를 했으면 관객들의 손발이 오그라들었을텐데, 문근영이 그런 대사를 하니까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나왔다. 진부한 스토리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문근영이 연기한 여주인공 캐릭터의 애잔함이 영화를 완전히 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흥행성적은 220만 관객으로 중박 정도였지만, 영화가 중독성이 있어서 문근영 팬과 상당수 남성 관객들에게는 거의 컬트 수준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30대 유부남은 이 영화 한번 보고 너무 좋아서 아내 눈총 받아가며 무려 1달 동안 매일 저녁 이 영화 비디오를 보고 잠이 들었다 한다.]
         하지만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로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주인공을 연기하여 이미지 체인지.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의 언니의 시각에서 보는 색다른 시도의 드라마이다. 송은조를 연기했다. ~~나중에 구은조로 개명한다~~ 제대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은조가 엄마를 따라 대성도가로 이사하면서, 새 아버지와 새 여동생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대성도가 알바생 기훈([[천정명]])과 그리는 로맨스가 팽팽하고 애절하다. 명대사 또는 명장면으로 기훈의 '은조야!' 은조의 '은조야ㅠ은조야ㅠ'오열씬, 은조의 '아..아버..아..아빠.. 아빠ㅜ 아빠ㅠㅠㅠㅠ'오열씬 등이 있다. 어째 같은 아역 출신 연기자인 [[강혜정]]과는 대조적으로 정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같은 해 연극 클로저에서도 위험한 분위기의 [[팜므파탈]]로 등장했는데, 여기서 '''[[담배]]피우는 연기 모습이 엄청나게 익숙해보여''' 문근영이 진짜 흡연 이력이 있느냐를 놓고 격론을 낳기도 했다. 다만 흡연 여부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다. 설령 사실이라 한들 성인의 흡연이 뭐가 문제랴마는...[* 사실 여배우들의 흡연은 꽤 많은 편이다. 故 [[최진실]]도 소문으로 흡연자라는 설이 꽤 돌았는데 결국 [[조성민]]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임신]] 중 흡연이 확인되어 진실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실 이미 [[2008년]]에도 담배를 피우는 컨셉 화보를 찍어 의혹이 커졌었는데, 비흡연자 중에서도 흡연 묘사 자체를 모방효과로 인해 달갑잖게 취급하는 혐연자들이 있는 것과 대조되는 것을 보면, 문근영이 비록 흡연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흡연행위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거나 감을 갖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물론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아직 가시지 않은 팬들 입장에서는 흡연 연출 자체만으로도 [[충공깽]].
         [[2013년]]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로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했다. 또 [[남장여자]] 역이라 [[바람의 화원]]을 다시 보는걸로 착각할 정도. 그래도 남장은 초에 잠깐(...) 나오고 다시 여자로 돌아간다. 본인이 후에 인터뷰에서 "남장여자 씬은 순전히 드라마 재미를 위해 추가로 들어간 씬이고, 원래는 계획에 없던 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얼굴은 다시 갸름해졌다~~ ~~초에 갸름했다가 뒤로 갈수록 체력이 딸리고 부상을 입어 제대로 부었다(...)~~ [[청담동 앨리스]] 때도 그랬지만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면서 작품 때문에 제대로 까였다. 팬사이트에서도 옹호해주는 팬이 없을 정도... 전작 [[무사 백동수]]를 은하계 너머로 보내버린 전적이 있는 작가가 화근이었다. 거의 만화 영화 대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치하고 간단한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했다. 그나마 [[전광렬]]의 연기가 혹평을 피하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줬으나 다른 누구도 작가의 발대본 앞에 살아남지 못했다(...)
         [[바람의 화원]]을 시작할 때 즈음 갑자기 심하게 야윈 모습을 보여서 [[거식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이 때 그녀의 모습을 보면 [[에게리온]] 수준으로 말라서 뼈만 보이는 등, 대충 보기에도 심각한 저체중이라는 것이 보일 정도. 게다가 아랫턱 침샘부위가 유독 심하게 부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거식증]] 환자들이 폭식한 다음에 손가락을 입에 넣어 죄다 토해내는 행위를 하다보면 침샘이 심하게 부어서 이중턱이 된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심하게 후덕해진 모습을 보이면서 이 논란은 일단 가라앉았다.
         [[2006년]] [[성균관대학교]] 인문학부에 특별전형 지원으로 합격했다. 입학 전 [[수능]] 성적으로 [[대학]] 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고 수능 당일날 교실 하나를 혼자 쓰면서 요란하게 수능까지 봤다. 그런데 막상 원서 쓸 때가 되니까 특별전형, 그것도 연예인들이 으레 가는 '''[[연극영화과]]가 아닌 [[국어국문학과]]에 응시했고''' 간단히(?) 합격해 버려서 당시 [[고3]]들에게 엄청난 [[어그로]]를 끌어버렸다. 아무래도 본인 수능성적이 예상 이하였던 모양이다.[* 문근영이 고3이던 당시, 모교인 [[국제고등학교(광주)|국제고등학교]](일계 고등학교)를 방문한 졸업생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하다. 영화 [[댄서의 순정]] 이후 학업에 열중하겠다는 언플이 있었으나, 영화 개봉과 무대인사가 모두 끝난 5월 말까지도 등교가 아닌 외부활동(교사의 말에 따르면 [[칸 영화제]]를 '구경'갔다고 한다.)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미 특별전형을 고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연예계 활동 때문에 학교 생활을 등한시하기 일쑤인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학창시절부터 성실하게 수업을 듣는 편이었다. 수업마다 편차가 좀 크긴 했지만 대체로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려 하는 등, 일 학생들에 비해 참여도가 크게 뒤지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 2012년 1학기(문근영의 졸업 학기)에는 여러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떠드는 문근영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08년]]까지는 학업에 전념했으나, 이후 연기 활동으로 인해 휴학하고 09년에 복학, 휴학과 복학을 복하면서 최종적으로는 2012년에 현대소설론을 마지막으로 수료했다.[* 모든 대학들이 그렇듯, 수업만 전부 다 듣는다고 해서 [[졸업]]이 되는 것이 아니다.(가장 일적인 것으로는 졸업 [[논문]] 미통과.) 수업을 다 들어도 졸업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졸업이 되지 않고 수료만 된 것으로 처리된다. [[성균관대학교]]는 학점 이수 외에도 영어 공인 점수, [[자격증]] 등의 3품을 따야 졸업 요건이 충족된다. 문근영은 학점도 이수하고 졸업 논문도 제출했으나 3품을 따지 못해 졸업은 하지 못했고, 국어국문학 학부를 수료만 한 상태이다. 그래도 3품 제출 기한이 무기한이기 때문에 문근영의 경우 대학에서 요구하는 영어 점수와 자격증을 취득하는 순간 바로 당해 학기에 졸업 처리가 된다.] 수료상태를 끝내고 2015학년도 전기학위수여식(2016년 2월)에 학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극우 군사평론가 [[지만원]]이 문근영의 선행을 빨치산인 그녀의 외조부와 연관지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쓰면서 논란이 일었다.[[http://www.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4917|#1]] [[http://www.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4926|#2]] [[http://www.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4918|#3]] 여기에 대해 문근영의 선행까지 색깔론으로 보는 것이냐는 비판이 있었고, 지만원은 문근영을 이용하려는 미디어를 비판한 것이라 박한다. 서울지법은 지만원의 패소로 판결했으나 서울고법에서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밝히라는 론보도로 판결을 내리게 된다.
         론보도문([[조선일보]])
         론보도문([[SBS]])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연예활동 수입으로 재테크 못잖게 기부활동을 많이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8년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익명으로 6년간 총 8억 5천만원을 기부했음이 후에 밝혀지기도 했다(물론 기명기부도 적지 않다). 이것도 처음에 익명만 알려졌는데, 그 기부자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고, 이 기부자가 20대 초의 여성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를 밝히기 위해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했고, 결국 기부자의 신원이 문근영으로 좁혀지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소속사에 밝혀도 되는지 물어보고 소속사가 발표를 허락하자 이를 확인해주었다.
          * 작품 초에는 얼굴이 정상인데 후으로 갈수록 심하게 붓는 특징이 있다. 방송이 그만큼 힘들어서 체력이 딸려서, 우는 씬이 많아서, 등등의 추측이 있지만 왜 다른 배우들은 정상인데 문근영만 얼굴이 붓냐는 지적이 있다. 참고로 본인도 이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다. 2008년 [[바람의 화원]]을 찍을 당시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2010년 [[신데렐라 언니]]부터 살짝 힘들때 얼굴이 붓는 징조를 보이더니 2012년, 2013년 제대로 힘든 작품을 만나 그 증상이 도드라졌다. 연기자로서 필히 고쳐야 할 부분이다. ~~개선이 가능하다면.~~
          * [[신데렐라 언니]] 촬영 초 심하게 [[A형 간염]]을 앓은 일이 있다. 개그맨 [[박명수]]가 A형 간염으로 사경을 헤맨 적이 있을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다. 이 일로 처음으로 촬영 펑크를 내고 휴식을 취한 뒤 복귀해서 촬영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탭을 일일이 찾아뵙고 죄송하다고 인사드렸다고 한다.
  • 손담비 . . . . 18회 일치
         5달 후인 2008년 9월 17일 두 번째 미니 앨범 ''[[Mini Album Vol.2]]''의 타이틀곡 〈미쳤어〉의 티저 영상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티저 영상은 공개후 각종 동영상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받으며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미쳤어' 티저 영상에 팬들의 응 뜨겁네~ |url=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11539|출판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연예|저자=스포츠연예팀|날짜=2008-09-19|확인날짜=}}</ref> 이어 18일에는 음을 발매하였다. 타이틀곡인 〈미쳤어〉 열풍이 한국에 불었는데, 특히 처음 후렴구부분의 의자춤이 인기를 끌었다. 각종 연예인들은 의자춤 패러디를 했는데, 재일 먼저 배우 [[허이재]]가 패러디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 허이재, 손담비 ‘미쳤어’ 의자춤 깜짝공개 눈길 확~|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0191843251001 |출판사= 뉴스엔 연예|저자=이현우|날짜=2008-10-20|확인날짜=}}</ref> 계속해서 김효진, 신봉선, 양정아, 현영, 노홍철 등이 예능에서 따라했으며, 《[[내 사랑 금지옥엽]]》의 유인영, 《[[수상한 삼형제]]》의 오지은 등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를 했다. 또한 일인들도 UCC를 통해 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올렸다. 너도나도 다 따라한탓에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쳤어〉 금지령까지 내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 방송가, 손담비 '미쳤어' 이제 그만!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80986|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박재덕 기자|날짜=2008년 12월 22일}}</ref> 2008년 11월 17일에는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의 싱글 〈[[Family (Special Edition)|패밀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이티마우스, 이번에는 손담비‥'패밀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372273|출판사=네이버|저자=유상우|날짜=2008-11-11|확인날짜=2012-05-20}}</ref> 가수 활동 이외에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우리결혼했어요]]》에 [[마르코 (배우)|마르코]]와 함께 가상 부부로 나와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베스트커플상 수상했다.<ref name="2008MBC"/> 또한 각종 CF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는데, 1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몸값, 1년만에 3배 이상 높아져 '미쳤어' |url=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0966034|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날짜=2008-11-12|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 ''[[Type-B]]''의 발매로 컴백을 준비했다. 음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영상, 팬들 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백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백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영상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상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백,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순|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순위가 0순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순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에서 수상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상 손담비, 뉴스타상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백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백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백…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영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백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백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상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상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절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영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절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절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 음 목록 ==
         {{본문|손담비의 음 목록}}
         ; 정규 음
         ; EP 음
         * 《[[배의 장미 (영화)|배의 장미]]》 (2018년) - 이미지 역
  • 식극의 소마/208화 . . . . 18회 일치
          * 이에 대항하는 소마는 태평하게 "컵 야키소바"같은 아이디어나 내고 있는데 한술 더 떠서 제면기로 죽을 시작해 웃음거리가 된다.
          각 진영에서 임의로 선발된 세 명의 요리사가 동시에 대결을 진행. 각 대결에서 승리한 요리사가 흰 별을 얻고 생존한다. 생존한 요리사는 새로운 대결에 나갈 수도 있고 아군의 대결에도 서포트해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결을 복해 상대방을 전멸시키는 쪽이 최종 승리. 카와시마는 이러한 룰은 제대로 전달했지만 소소하게 역자 진영이 지라고 저주를 꽂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감옥에 갖힌 역자들은 어느 틈에 카와시마가 세뇌된 건지 의아해하지만 원래부터 권력에 약한 속성이 있어서 그럴 거라는 가열한 추측이 대세다.
          * 소마는 조리는 제대로 시작했지만 컨셉이 글러먹었다. 역자 동료들은 최악의 카드인 소바를 뽑은 데다 요리는 "컵 야키소바"로 하겠다는 소마의 결정에 아연해한다. 일단은 메밀가루를 체에 치면서 그럴듯하게 조리를 시작하고 있지만, 역시 속을 알 수 없다.
          * [[나키리 아자미]]는 그녀의 뛰어난 손죽 실력에 대해 절찬을 늘어놓는다. 그녀의 손놀림에 의해 부드러운 흐름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메밀가루 입자 하나하나에 수분이 적절하게 묻는다. 이런 식으로 죽이 생기기 시작해 콩알만한 크기가 됐을 때 이것들을 뭉치는 치대기 작업에 들어간다.
          * 키노쿠니가 힘을 더해 죽을 치대기 시작하자 낱알처럼 흩어져 있던 죽들이 커다란 덩어리로 모이기 시작한다.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죽에 순식간에 점성이 더해지는 것과, 가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힘으로 죽을 해나가는 것에 놀란다. [[나키리 에리나]]는 완벽한 자세를 이룬 그녀의 하체가 비결이라고 간파한다. 다리와 허리의 힘을 충분히 실어서 죽하기 때문에 힘이 낭비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자미는 여기에 아주 섬세한 죽 실력 덕분에 쓸데없는 물을 더할 필요도 없어서 필요최저한의 윤기를 머금은 "진짜 소바"가 되는 거라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들을 들은 학생들은 적과 아군을 막론하고 그녀가 어떤 소바 요리를 내놓을지 기대하며 군침을 흘린다. 에리나는 "썰기 3일 밀기 3개월 죽 3년"이란 소바계의 격언을 인용하며 그녀가 소바에 쌓아올린 시간은 3년 정도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 그저 죽만 했을 뿐인데 벌써 그녀의 승리는 확고해 보인다. 아자미는 박수 갈채를 유도하며 그녀를 응원한다. 소마에게 승산은 없어 보인다. 키노쿠니는 죽하면서 소마가 "컵 야키소바"를 고른 것도 지적한다.
          키노쿠니는 그의 죽 비율도 눈여겨 본다. 키노쿠니는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1 대 9로 섞은 "9할 소바"를 만들었다. 하지만 소마는 밀가루가 2, 메밀가루가 8인 "28소바". 세간에는 메밀 비중이 높은 걸 좋다고 여겨 100% 메밀가루 소바도 팔지만, 냉정하게 맛으로 보면 밀가루를 충분히 섞는게 훨씬 맛있다. 물론 100%에 가까울 수록 메밀향은 좋아지지만, 원래 메밀은 특성상 죽이 퍼석해서 면을 뽑아도 밀가루 면처럼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다. 밀가루를 섞으면 향은 좀 덜해도 면으로서 쫄깃하고 맛있는 국수가 되는 것. 실제 메밀 장인들도 "맛의 밸런스는 28소바가 최고"라는 말이 정설이다. 키노쿠니는 소마가 그저 대항심만으로 10할 소바에 도전하지 않고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며 그 점에 대해서는 감탄한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18회 일치
         6월 17일 거리를 빼앗긴 미군은 모든 전력을 동원해 절망적인 격을 시도한다. 로마노프의 부대가 미군의 격을 막는 동안 오를로프스키는 Tu-95 폭격기의 지원을 요청한다. Tu-95 의 융단폭격은 미군의 마지막 저항을 잿더미로 만든다. 오를로프스키는 무전을 통해 소련군 장병들과 이번 전투의 전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미군 장교인 마크 배넌 대위는 소련군의 침공으로 아비규환이 된 시애틀을 험비를 몰며 질주한다. 무전기를 사용하며 험비를 운전하던 배넌은 대편에서 달려오는 스쿨버스를 피하려다가 험비를 전복시킨다. 배넌은 험비에서 기어나와 해당 지역의 미군을 지휘하던 파커 중위를 찾아간다. 둘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자기 부대를 찾아가려던 주방위군 병사 마이클 톰슨과 안톤 로드리게스를 즉석에서 편입시킨 배넌은 시애틀은 사실상 함락되었다며 파커에게 후퇴를 명령한다.
         배넌은 미군 500MD 정찰헬기인 레드아이4에게 항구의 정찰을 지시한다. 레드아이4는 항구에서는 헬리콥터가 네대나 격추당했다며 배넌의 명령을 거부하지만 역행위라는 배넌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항구로 향한다. 레드아이4는 소련군이 항구 전체를 뒤덮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격추당한다.
         핸슨은 킹돔[* King Dome. 시애틀에 있던 종합경기장. 안전 문제로 2000년에 철거되었다.]으로 대피한 민간인들의 구조를 주장한다. 배넌은 후퇴하는 것도 바쁘다며 이를 거부하지만 민간인을 죽게 놔둘 수 없다는 핸슨의 발에 파커에게 구조를 맡긴다. 파커는 부대를 이끌고 킹 돔으로 향한다. 킹 돔 앞 주차장에서 다수의 소련군을 발견하지만 파커의 부대는 킹 돔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헬리콥터로 도착한 증원군이 포격으로 킹 돔이 무너지기 직전에 민간인들을 구출해낸다.
         이제 안전하게 다리를 설치할 수 있다고 판단한 올로프스키는 말라셴코에게 남서쪽에서 오는 미군의 격을 막으라고 지시하고는 로마노프에게 무너진 다리를 확보하고 방어선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곧 미군이 무너진 다리를 탈환하기 위해 대공세를 벌일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 로마노프 중대는 초소를 설치하고 다리를 수리한다.
         >"복한다. USS 미주리가 파인밸리의 미군과의 통신을 요청한다. 정확한 화력 지원을 위해 좌표가 필요하다."
         >병사는 험비의 대편으로 기어가 해안을 바라본다. 먼지 구름 너머로 거대한 전함의 그림자와 포화가 보인다.
         >"복한다. 정확한 화력 지원을 위해 좌표가 필요하다."
         >"여기는 파인밸리의 이글 6. 보게되어서 갑다, 미주리! F6와 E5에 화력 지원이 필요하다, 이상."
         이때 USS 미주리가 파인밸리 해안에 도착해 포격 지원을 시작하고, 윌킨스 대대가 남쪽에서 진입을 시작한다는 무전이 날아들어온다. 소여는 늦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를 가워한다. 파커는 전방관측수 역할을 맡아 USS 미주리에게 포격 좌표를 전송한다. 마침내 소련군이 후퇴하기 시작하고 윌킨스 대대가 파인밸리로 진입한다.
         같은 날, 레베데예프 소령은 사기 관리에게 넘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말라셴코 대위와 인터뷰를 한다. 미국 침공 후 몇주가 지난 시점에서의 감상을 묻는 레베디예프에게 말라셴코는 영광스러운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스럽지만 딱 한가지가 불만스럽다고 한다. 미국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소련군에게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매복 공격을 가해 인명피해를 낸다는 것. 그는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미국인들이 더 대담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베디예프가 생각해본 해결책은 있냐고 물어보자 그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매복을 당할 때 마다 민간인 10명을 무작위로 처형하는 것. 이에 레베디예프가 그래도 매복이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보자 말라셴코는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대답한다.
         선전 방송은 미국에 상륙한 소련군이 북미의 서쪽 절을 해방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소련군은 워싱턴 주의 민병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군은 네개 대대를 캐스케이드폴스라는 마을로 투입하였다. 그곳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소련군 지휘부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올로프스키 대령 마저도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몰랐지만, 소련군 장병들은 그 무언가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대대들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캐스케이드폴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올로프스키 대대는 시골에서 민병대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민병대 기지를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차량 지원과 항공 지원의 힘을 입어 기지를 점령한 로마노프 중대는 기지를 수색하는 동시에 방어전을 준비한다. 대규모의 미국 정규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레베데예프의 보고를 들은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가 중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민병대 지휘관은 미국 정규군이 격을 시작하기 직전 부상을 입은 채로 생포된다. 이후 로마노프의 중대는 헬리콥터가 와서 민병대 지휘관을 싣고갈 때 까지 기지를 사수한다.
         >"T-80, BTR, BMP를 동하고 접근 중이다! 보병이 집과 집 사이로 이동하는 것도 목격했다! 대규모 공세다! 제2소대를 잃었고 제3소대도 잃은 것 같다!"
         파커 중대가 등대 주변을 완전히 점거하자 소여는 파커에게 소련군이 점거하고 있는 마을을 탈환하라고 지시한다. 소련군이 자기 부하들에게 자비를 배풀지 않았으니 똑같이 자비를 배풀지 말라는 사바티에의 말은 덤. 마을을 탈환하던 도중, 소여는 파커에게 시가전은 위험한 전투이니 적을 존경하라고 조언한다. 이에 배넌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응을 보이자 소여는 "이런 상황에서 적을 더이상 존경하지 않는 순간이 죽게되는 순간이다"라고 추가적인 설명을 한다.
         마을을 탈환한 이후, 사바티에가 소련군이 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온다. 소여는 파커에게 방어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다. 또한 막 적 기지를 휩쓴 배넌의 부대를 등대로 재배치시킨다. 배넌이 포로들을 어떻게 할지 묻자 소여는 당연히 제네바 조약을 따라야하지 않겠냐고 대답한다. 결국 소련군 공세를 막아낸 파커는 "덕분에 이들을 프랑스에서 내몰 수 있게되었다"라는 소여의 칭찬과 "능력도 있고 부하들에 대한 존중도 있다"는 사바티에의 칭찬을 한 몸에 받게된다.
  • 은혼/640화 . . . . 18회 일치
          * 그런 신스케를 대신해 [[카와카미 사이]]가 몸을 던져 마타코를 구하나 잔해에 깔리고 만다.
          * 사이가 "다른 이의 시체를 밟더라도 대의를 추구하겠다"는 맹세대로 하라며 자신을 버리라고 하지만 신스케는 결국 그를 구하며 함께 낙오하는 길을 택한다.
          * 해방군의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해방군 모선으로 돌격했던 귀병대. 그러나 해방군 사령관 [[엔죠]] 황자는 모선의 일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을 서둘렀고 그 결과 불필요한 구역을 아군까지 희생시키며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귀병대가 침투했던 구역이 하나둘 파괴되면서 최전선에서 지휘 중이던 [[다카스기 신스케]]와 [[카와카미 사이]], [[키지마 마타코]]도 위험에 처한다. 하나둘 산화하는 부하들. 그러나 그저 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신스케는 과거에 했던 맹세를 떠올린다. [[은혼/632화|사이와 함께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사이를 포섭한다. 어차피 나라의 심판으로 사라질 목숨이라면 자기를 위해 죽지 않겠냐고. 사이가 "그럼 당신은 뭘 위해 죽을 거냐"고 묻자 그는 뻔뻔한 태도로 대답했다.
          신스케를 앞서가고 있던 사이가 어느새 마타코를 위해 몸을 던진다. 폭발이 두 사람을 덮치고 신스케는 그 여파로 내팽개쳐진다. 폭연이 가신다. 다행히 사이의 조치가 늦지 않아서 마타코는 큰 부상이 없다. 그러나...
          * 폭발은 그들이 지나온 구역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떨어진 잔해가 사이를 깔아뭉갰다. 마타코가 그를 꺼내보려고 안간힘 쓴다. 사이는 아직 의식이 있다. 그는 멍청하게 바라보는 신스케를 질책한다.
          폭발은 이제 일행을 앞질러 간다. 사이를 바라보는 신스케의 등 뒤에서 폭발이 일어나 복도가 무너진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하면 나아갈 수 없다. 사이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들의 목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망설일 이유도 없다.
          * 신스케는 침묵 끝에 사이의 말이 맞고 분명 자신은 시체를 디딤돌로 삼겠다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칼을 뽑아 사이의 목을 겨눈다. 고통을 줄여주기라도 하려는 걸까?
          신스케는 사이를 덮은 잔해를 베어내고 그를 끄집어낸다.
          * 신스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많은 시체를 쌓아왔고 그걸 디딤돌로 삼은 건 사실이지만 마지막 시체는 단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이 그 약속을 지켜야하듯 사이도 지켜야할 약속이 있다. 신스케를 위해 살겠다는 약속. 그러니 자신이 시체가 될 때까지 사이는 살아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며 그를 부축한다.
          뭔가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버리면 예상 외의 일이 일어날리가 없지 않냐고 꼬집는다. 헨페이타가 그럼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치면 이 나라를 부술 수 있겠냐고 문한다. 신스케의 대답은 심드렁하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18회 일치
          * [[(일곱 개의 대죄)|]]은 엘레인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걸 직감하고 다음 임무에서 빼달라고 요청한다.
          * 멜리오다스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은 "좋아하는 여자를 두 번이나 죽게 두는걸 이해한다는 거냐"며 날선 응을 보인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전날 [[(일곱 개의 대죄)|]]에게 부탁 받은대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태를 돌본다. 시름시름 앓던 엘레인이 엘리자베스의 힘을 쐬이자 조금 기운을 되찾는다. 여행은 계속되고, 정신을 차린 엘레인과 [[디안느]], 엘리자베스 셋이서 티타임을 가진다. 이날은 엘리자베스가 사실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엘레인은 참 기묘한 이야기라 말하며 디안느는 3천년 전 성전시대에서 목격했던 엘리자베스가 지금 눈 앞의 당사자였을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떤다. 정작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의하는 상태. 디안느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 아니냐고 떠본다.
          *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일행과 떨어져 친구 [[헬브람]]과 떠들고 있다. 돼지의 모자정 옆구리의 손잡이 조형 부분이었다. 작전 회의 도중에 헬브람이 없었던 걸로 그때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데, 그의 친구는 묘하게 말을 돌려버린다. "먼저 축하할게 있다"는 핑계로. 그는 드디어 할리퀸이 디안느와 애인관계가 된 걸 쯤은 축하하고 쯤은 놀린다. 그리고 날개에 대해서도 일단 축하하나 "빈말로도 멋지다고 할 수 없는 날개"라고 덧붙여서 속을 긁어놓는다. 할리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역정을 내자 헬브람이 답했다.
          * 돼지의 모자정 옥상. 과 멜리오다스과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때 이 조금 별난 부탁을 한다. 이번 임무에서 빼달라는 부탁. 의외로 멜리오다스는 "알았다"고 단박에 승락한다. 이 놀라운 눈으로 그를 돌아본다. 멜리오다스는 그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다. 엘레인 때문이다. 그녀를 이 세상에 되돌린 "차원의 비틀림"은 분명 [[메라스큐라]]의 짓이다. 그녀는 마신왕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어찌보면 별종. 그래서 교섭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그녀가 살아있는 이상 드시 다시 싸우게 될 텐데, 메라스큐라를 죽인다는건 곧 엘레인 또한 이 세상에 더 있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은 고통에 가득차서 이제 엘레인은 이제 한계라 말한다. 설사 메라스큐라를 죽이지 않더라도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하다못해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해주고 싶은 것이다. 멜리오다스는 그런 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은 그 말을 가로채 가시돋친 말투로 내뱉었다.
          * 잠시 후 일행이 모두 모여서 엘리자베스를 방에 눕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이 멀린에게 원인을 묻지만 그녀도 막연하기만 하다. 아마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에 접촉한 영향이 아닐까 추정한다. 디안느는 그럼 이번엔 엘리자베스가 저주에 당한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멜리오다스가 그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굳이 말하면 저주가 풀려가고 있는 쪽.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 임수정(탤런트) . . . . 18회 일치
         역시 오디션을 통해서[* 이 [[영화]]의 감독이 [[DVD]]에서 당시 오디션이 경쟁이 치열했고 로비까지 있었지만 공정하게 심사를 했다고 말한다.] [[2002년]] 《피아노 치는 대통령》 으로 영화에 대통령([[안성기]] 분)의 딸 역으로 첫 데뷔를 하였으나 영화 자체가 평가가 안좋았다. 대통령으로 나온 [[안성기]]의 안정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겨울연가]]》로 당시 잘 나가던 [[최지우]]의 연기 문제와 비현실적인 내용이 문제였다. 임수정의 역할은 항아인데, 얼굴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얼굴과 코디가 《학교4》의 범생역할 그대로...] 연기력도 부족해서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최지우]]의 연기가 워낙 가관이라 연기 못 한다는 말은 안 들었다는 건 자랑~~ 여담으로 여기서 첫 흡연 장면이 나온다.[* 임수정은 작품의 대부분에서 흡연을 하고, 본인이 죽거나 상대배우가 죽는다. 이건 동물도 예외없다.;;]
         2004년 상기 동안에는 잡지촬영, 광고 출연 외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가 하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캐스팅된다. 이 캐스팅에 대해 그녀의 팬들이 이후 임수정이 배우, 연기자가 아닌 그저 대중적인 스타로 가는것이 아닌가 우려했고[* 사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전부터의 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경쟁작들이[* 대작드라마 전문 이환경 작가의 [[영웅시대]], 당시 서울대 출신의 미녀 탤런트로서 인기 절정이었던 [[김태희]]의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만만치 않아 흥행도 보장을 못 했었다. 심지어는 KBS 관계자가 제작사 대표에게 임수정은 [[듣보잡]]이라며 빼라고 요청[[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ocial/2009/0202/20090202101050100000000_6541684867.html|#]]까지 했다고 한다. [[2003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던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한 건 '무식 인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2005년 많은 인기를 얻은 그녀는 영화 《새드무비》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높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최고의 주가였던 임수정을 포함 [[정우성]], [[신민아]], [[염정아]], [[차태현]], [[손태영]], [[이기우(배우)|이기우]], [[여진구]]가 나오는데 흥행하지 못한 게 신기할 뿐;; 정우성이 2000년대 중 놈놈놈을 제외하고 '새드무비’ ‘데이지’ ‘[[중천(영화)|중천]]’ ‘호우시절’ ‘검우강호’ ‘아테나: 전쟁의 여신’까지 모조리 망해가던 침체기였고 임수정도 거품이라는 말이 생기던 시점에서 차기작을 흥행필패로 여겨져서 여배우건 남배우건 기피하던 동물영화로 선택했다. 영화 《각설탕》 이 그것이다. 2006년 개봉한 영화는 동시기에 개봉한 《[[괴물(영화)|괴물]]》 강세 속에서도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이 작품의 후속작은 [[김태희]]가 출연하여 16만 관객으로 폭망~~
         2008년에는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공식행사, CF촬영, 그리고 2009년 개봉예정인 영화 《[[전우치(영화)|전우치]]》 촬영에 매진했다. 전우치 촬영은 2009년 상기에서야 끝났다. 그 해 12월 개봉하는 《전우치》 의 개봉 전에 태국 푸껫에서 단편영화 《푸껫》을 촬영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발표했다. 그녀의 [[영어]] 대사를 볼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푸껫행 비행기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전우치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남자배우들과 비교해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 비중이 크지 않은 면에 캐릭터는 여러가지였다. 오히려 [[최동훈]] 감독이 그녀에게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도. 그럼에도 불만 없이 와이어 액션까지 소화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캐스팅 된 작품에서 자신의 비중이 줄어들자 출연을 취소한 배우들이 종종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대조적인 태도다.] 12월 《전우치》 일정 도중 과로로 남은 무대인사를 불참했다.
         예능은 아니지만 2010년 12월 [[라디오]] 방송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좋아 라디오 고정 출연하는게 어떻냐고 했을 정도. ~~이왕에 고정출연 좀 따내지.~~ 그리고 2012년 10월, MBC 라디오 '성시경의 음악도시' 에 일주일간 임시 DJ를 맡기도 했다. 평은 좋은 편이어서 다음 개편 때 프로그램 하나 맡아 보는 게 어떻겠냐는 대화도 오갔다. [* 아쉽게도 내 아내의 모든것의 연정인처럼 통통튀는 목소리나 투덜이가 아닌, 평소의 진중하고 진한 목소리로 1주일간 놀다가 갔다. ;; 초에 신청곡 바이브의 노래를 언급하다가 5번정도 말이 꼬여서 잔실수를 했고, 임수정 갤러리에서는 바이브CD조공으로 화답했다.] 1주일간의 임시 DJ 활동 중 마지막 곡은 본인이 부른 제비꽃 이었고, DJ맛에 푹 빠졌는지 2013년 개인 팬미팅에서도 DJ식으로 본인이 진행하며 라디오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다. 예능보다는 라디오 고정출연이 차라리 빠를 듯.
         당대 최고의 인기시리즈이던 [[학교 4|학교]]에 신인으로 주인공 자리를 잡으며 화려한 데뷔를 한다. 그런데[[http://sports.chosun.com/news/entertainment/20011105/1be16005.htm|#]] 이 사건으로 제작진의 미움을 사서 단역으로 강등되고 단독에피소드나 진행되던 스토리도 모두 ~~임~~수정된다. 초의 도도하고 까칠하던 [[아야나미 레이]]같은 분위기의 배역은 이유리에 흡수되고, 스토리텔링의 핵심인 수다부분에서는 뒤통수만 나오던가 아예 안나온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는 이유리, 공유로 남게된다.
          * 학력위조? : 처음에 그녀는 수원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인터넷에 알려졌으나, 이는 학교4에 나온 다른 출연진의 프로필이 섞여생긴 해프닝이다. 2007년 학력위조 파문으로 연예인들의 학력위조 사례도 알려졌는데 한 언론매체는 그녀가 호서전문대를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프로필상 고졸로 한것은 학력위조라고 주장했다. 종종 그녀가 호서전문대에 다녔다는 주장이 나오긴 했었다. 2000년 기사엔 호서[[전산원]](당시 이름) 1학년 휴학 중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직업전문학교는 교육기관일뿐 대학교와 달리 취급한다.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는 1998년 학점은행제 시범운영 기관지정이 되었다. 현재는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할때 80학점 이상 이수하면 전문학사 학위가 주어져서 전문대 졸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만 졸업했을때의 경우다. 재학 중에는 어떤 학력도 인정이 되자 않는다. 또한 졸업을 한게 아니기 때문에 학력에 기재할 필요가 없었고, 직업전문학교는 '중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치원이 아닌 미술학원을 다녀도 유치원을 다닌것과 같이 취급 받았다. 유치원과 같은 교육 어쩌면 미술에 대해선 더 자세히 교육을 받았다. 또한 똑같이 졸업식도 하고 유치원과 다를바 없다. 하지만 유치원은 졸업이라고 말하고 기재할수 있지만 미술학원 졸업이라고 쓰지 않는, 그와 다를바 없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학교는 대학이 아닌 교육기관이고 만약 그녀가 전문대 중퇴라고 했으면 그것이야말로 학력위조다.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는 2년제 전문대학 과정을 중심으로 4년제 학사과정까지 개설했으며 일정 학점 이상 이수하면 학위를 인정해준다. 호서전산원에 대한 언급이 처음부터 속이고 없었던 것도 아니며 처음엔 호서전산원 1학년 휴학 중이라고 밝혔으나 학력에 표기하기엔 당시 위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 고졸로 표기된게 아닌가 싶다. 물론 현재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는 졸업했을시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사 학위가 주어져서 전문대 졸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결국 학력위조인지 아닌지는 판단에 맡긴다.
         >연기 경험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장화, 홍련>을 촬영하면서, 시작하는 자세로 많이 배우고 있다. 매컷 새로운 걸 깨달아가는 기쁨, 한계에 부딪히는 데서 오는 절망감, 이 모든 게 내가 좋은 연기자가 되는 데 중요한‘밑거름’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아직 이렇다 할 응도 없고 인정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혹여 그런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모르는 척 외면할 생각이다. 인기나 평가를 의식하고, 방심하고, 무너지는, 그런 과오는 저지르지 않겠다. 지금은 그냥, 이런 배우도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바란다. ([[씨네21]] 임수정 자기소개서 중에서)
         > 저는 처음에 언니를 '학교 4'에서 봤어요. 너무 예쁜 언니가 나와서 이름도 외워놓고 한참 예쁘다 그러고 있었는데 '장화 홍련'의 장화 역에 임수정이라는 언니가 됐대요. 리딩하러 가서 처음 봤는데 언니 첫 인상이 좋았어요. 제가 좋아했던 사람이라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이쁘고 언니가 차가운 매력도 있고, 너무 설레여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촬영을 하면서 언니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면서 배울게 많은 언니구나 그런 생각도 많이 들고. 언니가 매력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줘요. 만날때마다 사람을 하게 하는 그런 점이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요만큼 좋다가 다음에는 이만큼 좋고. 촬영할때는 그냥 그랬던 언니가 촬영끝나고 만나면 그렇게 갑고 좋을 수가 없어요.
         > 면 '장화, 홍련' 같은 경우는 인공적인 세트에서 찍혔고, 그 집도 사실 다른 세상이잖아요. 거기서는 어떤 일체감을 느끼면서 묘한 느낌을 주더라구요.
         > 게다가 그 눈빛 속에는 항의 가시가 뾰족하게 돋아 있어서 누구든지 쉽게 다가가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디시인사이드]]의 [[임수정 갤러리]] 등지에서는 말끝을 "~정"으로 끝내는 "임수정체"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임수정 갤러리에선 [[수정]] 버튼이 '''임수정 '''으로 되어 있기도 했다. 임수정 갤러리는 '''디씨내 몇 안되는 청정구역''' 중 하나. 여기서는 임수정을 '임배우','[[크리스탈]]','클스탈','클쓰'로 지칭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서 위에서 말한 동명이인의 태권도 선수 임수정이 금메달을 따자 임수정 갤러리가 털렸는데 정작 별 응도 안하고 고정닉 한 사람이 '''"오셨어요? 갤러리 글 없는데 글 많이 쓰세요"''' 이런 응을 보이자 털리기는 그쳐버렸다.(...)
         장화 홍련 촬영 때 촬영장을 찾아온 이현승 감독이 말을 하자 서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이현승 감독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화보에 참여한걸 봐선 딱히 잘못 보이거나 하지 않는듯. 마찬가지로 장화 홍련 촬영 때 연기가 잘 안되자 속상하며 밤마다 방에서 혼자 울었는데 여자 스탭들이 그걸 모르고 귀신소리라고 오인하여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어그부츠를 신어 국내에 어그부츠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 사실 그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신었지만. 같은 드라마에서 입은 무지개니트도 당시 인기였었다. 문제는 '''누가 입냐'''에 따라 다르지만(...) 이 니트는 1회와 2회 초에만 입었음에도 드라마 캐릭터는 물론 임수정 패션하면 어그부츠와 함께 떠올리는 상징이 되었다.
  • 정칠성 . . . . 18회 일치
         === 생애 초 ===
         정칠성은 정종명, 오수덕 등과 함께 종래의 소극적 여성운동을 극복하고자 여성해방단체조직에 착수하였다.<ref name="dispose"/>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이란 생소한 것이었기에, 정칠성은 일 부인을 대상으로 직접 회원모집에 나섰다.<ref name="dispose"/> 이후 그는 각지의 순회강연과 칼럼, 기고를 통해 여성 계몽운동에 나섰고, 경성에서 다른 여성단체의 일을 보면서도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을 겸직하였다. [[1924년]] [[7월 20일]]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으로, 인천노동총동맹회 상무위원(仁川勞働總同盟會常務委員)에 선출, 겸임하였다. 또한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 일도 겸하였다.
         [[1925년]] [[11월]] [[일본]] 정부에서 가상의 적을 대비하여 각급 중고등학교에 군사훈련 및 각종 군사교육을 실시하자, 정칠성은 군사교육 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11월 7일]] [[홋카이도]]의 소준고등학교 강당에서 일본내 시민단체, 여성단체, 사회주의 운동단체 및 조선인 유학생단체, 삼월회, 일월회(남성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군사교육 대 집회]]에 그는 [[삼월회]]의 대표 자격으로 박경희(朴慶姫)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 2백 명이 급히 투입되어 진압하자, 바로 피신하였다.
         [[9월]]에는 경상남북도 출신으로 구성된 영남친목회(嶺南親睦會)가 구성되자 정칠성은 지방열과 지방 감정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하여 대하였다. [[9월 11일]] 정칠성은 이원혁(李源赫) 등 74명과 공동 명의로 지역 친목회 조직 대에 서명하였다. [[9월 14일]] [[동아일보]]사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사장의 초빙으로 [[동아일보]] 주최 동복편물강습대회의 강사로 참여하였다.
         [[10월 6일]] [[박원희]]와 함께 [[근우회]] 조사위원 겸 전권위원에 임명되어 [[경성]]에서 [[함흥]]으로 파견되었다. 바로 [[근우회]] 함흥지회를 개설하고, 함경도지역 조사 후 [[10월 6일]] [[함흥]] 오로리의 오로여자상조회(五老女子相助會)에서의 강연을 계획하였으나 함흥경찰에 의해 체포, 강연회 자체가 무산되고 되돌아왔다. 정칠성과 박원희가 경성으로 되돌아간 뒤 [[함흥여자청년회]]와 함흥기독청년회 주최, [[동아일보]], [[조선일보]] 후원 하에 부인문제대강연회가 열리자 연사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방해로 집회가 무산되자 오히려 사회단체의 집회를 방해한다 하여 지식인층의 발을 불러오게 됐다. [[10월 16일]] 근우회 집행위원으로 대구에 다녀온 뒤 다시 함흥으로 가서 근우회 함경남도 지부 조직에 착수하였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사랑과 섹스가 무관하다는 관점은 [[1920년]]대 [[1930년]]대 조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정칠성은 사랑과 성이 무관하다는 콜론타이의 이론을 수용, [[조선]]에 소개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사랑과 섹스는 무관하며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성리학]]자들과 남성 문필가들로부터 음란하다는 비난과 발을 초래하였다.
         또한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의 해방과 [[붉은 사랑]]의 여주인공<ref name="seoji193"/> 왓시릿샤(바실리샤)의 해방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칠성은 '노라는 '[[개인주의]]적인 자각'으로서 개성에 눈을 떠 남편의 집을 뛰쳐나갔지만 거리에서 얼어 죽은 '공상적 여성'인 면, 바실리사는 노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해방되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진 여성이라 대답한다.<ref name="seoji194">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4페이지</ref> 이렇게 당시 사회주의 조선 신여성들에게 콜론타이는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성적, 경제적으로 해방된 진정한 자유를 얻은 여성"의 상징으로 수용되었다.<ref name="seoji194"/> [[콜론타이]]의 이론을 적극 수용, 조선에 소개시킨 여성운동가로는 정칠성 외에도 [[허정숙]], [[정종명]] 등이 있었다.
         === 일제 강점기 후 ===
         }}</ref> 1930년 말에 제기된 신간회 해소론에 대하고 계몽운동에 주력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묵살되었고 일부 [[부르주아]]층 여성들의 이탈로 신간회는 붕괴된다.
         [[1931년]] 경성, 평양, 대전, 전주, 대구, 통영의 공회당에 초빙되어 편물과 수자수 강습으로 받는 강사료로 생계를 유지했다. 잠시 광산업 사무원이 되었다가 그만두기도 했다. [[1931년]] [[신간회]]가 유야무야되자 신간회 해소론에 대하였으나 묵살당했다.
         [[1930년]]대 후부터는 편물학당을 개설하여 뜨개질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뒤 [[태평양 전쟁]] 중에는 [[창씨 개명]]을 거절하고 상점 운영에 종사하는 한편, 1931년부터 나가던 경성, 평양 등의 공회당 수자수, 편물 강사일을 계속하였다. 또한 틈틈이 조선지광, 삼천리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고료를 받기도 했다. [[1938년]] [[일본]]에 유학중인 아들 이동수의 학비 조달이 곤란하자 다시 기생이 되려 하였으나, 대동광업회사에서 아들 이동수의 학비를 지원하였다.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고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박헌영]]의 재건파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였다. [[8월 16일]]부터는 [[건국준비위원회]]에도 참여하였다. [[미군정]]이 시작되자 [[서울]]에서 [[좌익]] 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9월]] [[대구]]의 [[조선공산당]] [[경상북도]]지구당 부녀부장이 되고,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에도 선출되었다. 그러나 정칠성은 시중의 조롱과 멸시를 당했다. 당시 [[조선공산당]]은 "봉건유제 타파하여 여남평등 이룩하자!"고 부르짖던 진보적 정당이었고, 그는 공산당의 간부였지만 여전히 기생을 팔천인의 하나로 여기던 시절이었고, 정칠성은 기생 출신이 정치를 한다고 야유를 보냈다.
         [[1945년]] [[9월]]에 좌익계 여성단체인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12월]] [[조선부녀총동맹]] 부위원장에 선출되었고, [[12월]]말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결정되자 정칠성은 [[박헌영]] 등과 함께 처음에는 [[신탁통치]]에 대하였으나, 신탁의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찬탁으로 돌아섰다. 이후 찬탁매국노로 몰리자, 테러를 피해 [[대구]]와 [[경성]]과 각지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다녔다.
         [[1947년]]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밀리에 3.8선을 넘어가 [[해주]]의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고 되돌아왔다. [[1947년]] [[8월]]초, [[서울지방경찰청|서울경찰국]] 지휘하 좌파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때, 8·15폭동 음모사건 배후 선동혐의를 받고 [[서대문]][[경찰서]]에 체포,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위으로 [[서대문]][[경찰서]]에 억류되었다. [[8월 29일]] [[구류]]처분을 받고 다시 1개월간 투옥당했다. [[10월]] 가석방되었으나 곧 지하로 잠적했고, 소재불명으로 기소중지되었다.
         공을 국시로 내건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남한에서의 합법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남로당]]계 인사들과 함께 월북했다.<ref name="propp"/> 기생 출신에다가 월북자라는 이유로 언급이 금기시되다가 [[1992년]] 이후부터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에 참여한 것에 대한 재조명, 평가 여론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정칠성은 여성의 자유를 넘어서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그는 [[입센]]의 소설에 나오는 [[노라]]보다는 [[콜론타이]]가 말하는 남성과 가정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을 높이 평가했다. 정칠성은 '노라는 '[[개인주의]]적인 자각'으로서 개성에 눈을 떠 남편의 집을 뛰쳐나갔지만 거리에서 얼어 죽은 '공상적 여성'인 면, 바실리사는 노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해방되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진 여성<ref name="seoji194"/>'이라 평가 하였다.
  • 최남선 . . . . 18회 일치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복하다가 1907년 [[와세다대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당하고 귀국했다. 1907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당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아이들 보이》,《새별》등의 잡지을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 (잡지)|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ref name="changs">[[장준하]],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 『[[사상계]]』 53호, [[사상계사]], 1957.12.</ref>
         1902년 경성학당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1904년 10월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국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갈 때 국비 유학생 중 중학생의 소년장(少年班長)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 해 11월 [[도쿄]] 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얼마못가 12월에 중퇴하고 배편으로 귀국했다.
         1907년 모의국회 사건으로 발하는 한국인 학생들의 총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와세다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만다. 이후 [[이광수]]와 함께 [[소년회]]를 결성한다. 또한 [[유길준]]이 조직한 [[흥사단]]에도 가입하였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국사 연구에 전념하여 《조선역사통속강화》를 연재했다. 1924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도 부족하였고, 신문의 일적인 논조로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받아 경영난에 처하자 곧 사임하였다.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이 되어 사설과 칼럼을 발표하였다.
         [[장준하]]는 [[사상계]]지 1957년 12월호에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에서 그의 친일 협력이 본심은 아니라고 박하였다. '한때 선생의 지조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요, 항간에 떠도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과는 전면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ref name="changs"/>'라는 것이다. 그의 협력은 어쩔수 없는 것으로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ref name="changs"/>'라는 것이며, 그가 악의를 품고 친일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장준하]]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이라며 일축하였다.
         === 생애 후 ===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경성부]] 우이동(牛耳洞)에 은거, 외부 출입을 삼가고 역사논문 집필에 전념하였다. 그해 9월 [[한민당]]의 영입 제의를 사양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그는 '민족개량주의로 흘러가 친일파로 변절했다.'는 것 때문에 친일 민족 행위자로 비난을 받았다.
         1949년 1월 [[민특위]]에 체포되어 곧 바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투옥되었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5월에 공판을 받았다. 수감 중에 그는 자신은 민족을 위해서, 나의 연구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 협력하였다고 항변하였으며, 특별재판부에 참회의 뜻을 담은 '자열서'(自列書)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를 기소한 [[민특위]]는 [[친일파]] 출신 정치인들이 친일 인사들을 정치적 목적에서 감싸면서 탄압받았고 1949년 2월 병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석방, 그의 친일행각은 사실상 처벌되지 않았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교육, 학술 분야에 수록되었으며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1925년 일본어로 발표된 〈불함문화론〉은 한·일 문화동원론, [[일선동조론]]을 위한 것으로 동이문화권에 [[발칸도]], [[카스피해]], [[일본]], [[오키나와 섬|유구]]를 끌어들여 단군의 [[민족주의]]를 [[세계주의]]로 변질시키고 역사인식을 혼란시켰다는 지적이 있다.<ref>박광용, 「대단군 민족주의의 전개와 양면성」, 1992년.</ref><ref>{{서적 인용
         |저자=민족문제연구소
         |장=최남선 : 민특위 법정에 선 독립선언서 기초자 (박성수)
         [[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동주 최씨]][[분류:철원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표창원 . . . . 18회 일치
         당선된 이후에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방송에도[* 국회의원이 되서 그런지 예전처럼 크라임씬같은 일 예능에는 자주 나오지 못하고 시사가 섞인 시사 예능(썰전,강적들등)이나 뉴스 위주로 출연하는 중이다.] 얼굴을 자주 비추며 범죄 사건이나 경찰 검찰에 관련된 사건에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고있다. 아무래도 현재 경찰 출신 국회의원중에서는 가장 인지도가 있어서 그런지 그쪽 관련 내용이 있을때 자주 부르는 편이다. 검사나 변호사, 판사등 법조인 출신은 많은데 형사나 경찰 출신은 그보다 훨씬 적어서...
         박사학위청구논문의[* 'The police and crimewatch UK : a study of the police use of crime reconstruction and witness appeal programmes in Britain'] 주제만 놓고 보면 봤을 때, 표창원의 원래 전공분야는 미디어 매체[* [[http://www.bbc.co.uk/programmes/b006ppmq|Crimewatch UK]]는 우리나라의 [[경찰청 사람들]], [[공개수배 사건25시]]와 비슷한 TV 프로그램이다.]와 경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위청구논문 이후의 연구 성과에 따라서 전공분야가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표창원 박사의 경우 형사사법분야의 전에 걸쳐서 연구를 하는 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찰에서는 [[경찰대학]] 졸업생 중 유학한 경찰들을 통해서 내부역량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학을 갔다온 경찰대 졸업생들의 논문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대개 집회시위법, 행정법, 형사절차 or 형사법에 관한 논문이 많다. 물론 표창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에는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나 프로파일링(Profiling) 전문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증거는 없고 이에 관한 전문적 연구 또한 미미하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죄심리학(Forensic psychology) 박사학위자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 재직중인 [[박지선(교수)|박지선]] 교수가 있다.]
         일부에선 '흉악범죄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가. 사회에게 있는가'에 대한 시각차이로 이전부터 논쟁의 중점에 있던 인물이란 말이 있는데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데, 모든 형법이론들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에 기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형법학자들은 전부 저것을 기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범죄론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는 행위론, 구성요건론에서 위법성론, 책임론까지 모두 구이론인 객관주의와 신이론인 주관주의를 따라 견해가 나뉘며, 현대 형법은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있는 형법 저서 하나 없는 사람이 저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학계의 관점에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단지 그러한 논쟁을 '''일 대중에게 던져준 사람'''으로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러한 표현이 들어맞을 것이다. 실은 국내에서는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이유를 "그 범죄자 개인의 인성보다 자라온 환경, 못 가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냉혹한 사회 탓이 적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튀는 것이다.
         정계 입문 이후 여러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민주당 변호인을 활약했다. 특히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가 [[일본]]이 숨긴 금괴 1,000톤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맹신했던 어느 60대 남성이 문 대표의 [[사상구]] 사무실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을 두고 [[MBN]]의 [[김형오(1972)|김형오]] 앵커가 '문재인 대표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답정너]]식으로 질문을 하자 "그럼 2006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피습을 당한 건 (그 피습범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가요?"라는 문~~이건 몰랐지?~~으로 앵커를 [[역관광]]시켜--사실 [[마마무|음오아예]]를 부르게 한 거라더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지지층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http://tvcast.naver.com/v/676104|네이버]] [[http://tvpot.daum.net/v/73446472|다음]]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50137|곰TV]])[* 보도 자막이 포함된 인터뷰 전체 영상은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114977|MBN 홈페이지]]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7&aid=0000871698|네이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231111239813|다음]], [[http://news.nate.com/view/20151230n53189|네이트]] 등에 올라와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중적인 범죄학자 표창원을 1호 인재로 영입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영입 초에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807908|#'''오세훈 전 시장'''과 대결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때 본인은 이에 대해 '''"[[오세훈]] 전 시장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붙으라고 해도 하겠다"'''며 당락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으며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807908|#]] [[국민의당|안철수 신당]]과의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 [[종로구]]로, 표 교수는 밑에 서술되어 있듯 경기도 [[용인시 정]] 선거구에 출마하게 되면서 둘의 대결은 없던 일이 됐다.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절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남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남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다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수사의 90%이상은 경찰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검사 한 명 당 하루에 11.4건의 사건을 배당받고 있는데, '''잔업해서 12시간 근무를 해도 거의 한시간에 사건 하나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상 수사의 주체는 경찰이고 경찰이 수사한 그 내용을 바탕으로 검사가 영장 집행시에만 지휘하는게 일적이다. 즉 사실 이미 경찰이 수사 개시해서[* 경찰의 수사개시권은 2011년 때 법안 개정을 통해 이미 법률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증거를 모아서, 용의자를 잡아서, 검사한테 주면 검사가 이를 확인한 뒤 "OK" 외치고 끝나는 상황인데, 이것을 검사가 수사지휘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즉 경찰에게 유리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수사/기소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경찰은 수사에, 검사는 기소와 공소유지에 전념하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수사지휘권이 없어도 검찰의 기소권만으로도 얼마든지 보완수사를 요청하거나 경찰의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도 일선 경찰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장 청구권이 없으면 수사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점에서[* 강제수사의 핵심은 영장이다. [[영장주의]]참조.] 검사의 권한은 해당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막강하다.[* 실제로 표 의원보좌관의 SNS를 보면 해당 개정 내용을 접한 일선 경찰들이 표 의원의 보좌관(보좌관도 경찰출신이다.)에게 연락해서 "영장청구권를 왜 검찰에 남겼냐."라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에 있을 제7회 지방선거 때 같이 치뤄질 개헌 안을 살펴보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폐지에 대해 동의하는 의원들이 있으므로 경찰에게도 영장청구권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개헌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도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할 시 검사는 법리적인 내용만 검토하게 하거나 혹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을 특별검사와 같은 지위를 부여해 이들에게 영장청구권을 허용하게끔 하는 방안, 검사에 의해 영장이 려되었을 때 법원에 항고를 할 수 있는 항고권 부여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의 경우 발의한 법안과의 균형을 고려해 경찰의 항고권 보유에 찬성하고 있다. 이에 관해 2018년 6월 21일 KBS 라디오에 전화로 출연해 다시 한 번 본인의 주장을 내세웠다. 현재는 경할은 수사는 하지만 종결권이 없다. 이는 한 번 한 수사 결과를 검찰이 받아서 다시 검토하는 두 번 일이 되므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피해자/피의자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종결까지 할수 있게 될 경우에는 이를 해소할수 있으며, 문제가 없으면 바로 기소하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검찰이 재수사나 보완을 지시할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경찰 내에서 종결권이 있다면, 경찰이 껄끄러운 사건을 묻어버리면 어쩌냐" 하는 론이 있는데, 이에 대해 표 의원은 "검찰에서 묻어버리면 이미 대민 창구인 경찰의 손을 떠난 후라 사람들이 알수 없지만, 경찰에서 그러면 사건 관련된 사람들이 언론과 온라인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되고, 수사 지휘권이 있는 검찰도 알게 되므로 경찰이 사건을 묻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2018년 6월 22일, [[조국]] 민정수석에 의해 검경 수사권 합의안이 발표되었다. 표 의원이 주장한 내용이 상당 부분 영되었고, 검찰은 금융 비리, 정재계 사건 특검 등 일부만 직접 맡고 다른 것은 모두 경찰에 맡긴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 업무 중에서도 중하지 않은 사건, 즉 민생 관련 건은 자치경찰로 넘기게 되며, 이를 위해 현재 제주도에만 있는 자치경찰을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실시하고, 차후 확대한다고 한다.
          *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범죄심리학은 경찰학(Police science)의 한 분파가 아니다. 정확히는 심리학에서 출발한 심리학의 응용분과이다. 물론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가 학계의 추세이지만 경찰학과 범죄심리학은 엄연히 다른 분야다. 오히려 경찰학은 예방과 인권보호를 중심으로 하기에 형사절차(Criminal procedure), 범죄학(Criminology)과 관계가 깊다. 따라서 법학, 사회학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한편 범죄심리학은 법정공방이나 피의자 및 피해자 증언. 그리고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통한 귀납적 추리를 하는 프로파일링과 연관되며 이들은 모두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등 심리학을 기으로 응용된 분과이다. 물론 이런 분류를 할 수도 있겠지만, 범죄학이라 하여서 심리학 부분이 없는 게 아니다! 즉, 범죄를 다루는 모든 분야가 범죄학 범주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형법의 형벌론이라든가, 사회학의 일탈 이론이라든가, 심리학의 인지, 학습 분야라든가... 다만 현재 범죄학 중심이론들이 사회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학을 사회학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매스미디아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오랜 관심과 우려는 흥미거리만을 �는 매스미디아의 '선택적 특성'과 이러한 보도가 사회의 범죄문제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그간의 숱한 미디아 프로그램 분석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미디아에 나타난 범죄가 특정한 범죄 - 강력사건 -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문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판적 범죄학자들은 매스미디아가 범죄문제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규정지으며 사회일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범죄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매체上의 폭력'은 오랫동안 학계와 일대중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엽기적인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거나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1980년대 이후에는 '미디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84년 BBC 방송국이 경찰의 도움을 얻어 미해결된 강력사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며 목격자나 제보자를 찾는 'Crimewatch UK'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자 기타 민방들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의 原型은 1960년대에 시작된 독일 ZDF 방송국의 "미해결사건 XTZ..."이며 영국 BBC에서 도입한 이후 미국,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세계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대한 대중적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내용,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경찰이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들에 범죄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찰관 및 경찰장비를 제공해 준다.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들은 사건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홍보매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재구성' 프로의 범람에 대해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을 조장하며 독거노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시청률 올리기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방송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그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방송사들은 이에 대해 "범죄퇴치에 협력한다는 공익에 이바지할 뿐"이란 논리로 대응해 왔다.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신고가 주요범죄를 해결했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집행의 대명사인 경찰의 걍력한 지지가 이러한 '공익논리'를 받쳐주는 주요요소이다. 본 논문은 영국전역에 산재한 28개 지방경찰청, 내무성 경찰국, BBC Crimewatch UK 제작팀, 민간기구인 Crimestoppers Trust 등 30여 관련기관을 방문, 60여명에 이르는 관계자와의 심도깊은 면담 및 관련자료 분석결과와 13편의 Crimewatch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종합분석하여 '범죄 재구성'프로그램인 Crimewatch UK를 통해서 본 영국경찰의 매스미디아관련 정책과 실행, BBC방송국의 다큐멘타리 제작 지침과 실태상의 불일치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 김영환(1955) . . . . 17회 일치
         1955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총 2번의 제적을 당하고 [[긴급조치]] 제9호 위 등으로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사이에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는데 발간한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였다. 198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치과의사]]로 개업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장경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에는 [[민주당(2005년)|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려고 하였으나, [[박주선]] 의원이 전략공천되면서 경선을 요구하며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7년에는 [[이인제]] 민주당 대선후보의 충청선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1월 [[민주당(2005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화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열린우리당 계열과의 목이 심했던 터라, 합당에 발하여, 한나라당 입당도 진지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이후 [[민주당(2008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남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상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남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박하자 김영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남불|이재명이 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영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남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태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영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6월 7일 오후, 뜻밖의 [[공지영|원군(?)]]이 [[https://namu.wiki/w/%EA%B3%B5%EC%A7%80%EC%98%81#s-3.3.4|등장한다.]] 그러나 아직까진 어느쪽이 옳다고 판단하긴 이른 단계. 애초부터 공지영은 과거 논란들로 신뢰성을 잃어버린지 오래 되었고[*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보수 일각에서는 현재 이재명에 대한 발로 인해 과거부터 줄곧 공지영에 대해 그렇게 비난해대면서 정작 이재명 의혹에서는 공지영의 말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보수내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공지영의 발언을 섣불리 신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추가적인 증거들이 나와야만"''' 공지영의 말이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공지영 본인이 무슨 새로운 증거들을 거론한 것도 아니다.[* 관련자의 말을 자신이 들었다는 것이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17회 일치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어차피 그도 집결한 대죄의 적은 못 된다고 얕보는데 멀린은 적을 과소평가 말라며 과잉응한다.
          * 일곱 개의 대죄가 당면했던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종결되고 일행이 다시 뭉쳤다. 무너졌던 돼지의 모자정도 리뉴얼을 완료하고 일곱 개의 대죄 재집결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렸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와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도 참석. [[에스카노르]]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떨고 마시기에 바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시낭송이 끝나고 에스카노르가 울적해하지만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만은 좋은 시였다고 호응한다. 하지만 어차피 잔 처먹느라 제대로 듣진 못해서 "바람에 춤추는 백성의 외침"이란 싯구를 "바람에 춤추는 잔"이라고 들었다.
          겉보기에는 평소와 같다. 엘리자베스가 그녀를 기며 술을 따라준다. 이때 방금 전엔 밉쌀맞은 소릴내뱉었던 멜리오다스가 그녀의 안색을 살핀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게 아닐까?
          * 그런 사정가지는 파악하지 못한 에스카노르가 멜리오다스에게 다시금 건배하자고 제의한다. 엘레인을 끼고 있다시피한 [[(일곱 개의 대죄)|]]은 이제 일곱이 다 모여서 1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말한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그 말을 듣고 조금 다르다고 대답하는데, 이제는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진짜 동료"가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기뻐하는 고서. 살짝 취기가 오른 [[디안느]]는 거기에 엘리자베스랑 엘레인도 있다며 둘을 와락 움켜쥔다. 이런 분위기를 정돈하며 멜리오다스가 술잔을 높이 든다.
          이중 고서만은 분명히 진실을 알고 있겠지만 무슨 이유인지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다"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서 "이야기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고 이야기해도 납득해줄지 모르겠다"는 묘한 꼬릿말을 다는데. 어찌됐건 고서의 응이 생각 이상으로 침울해서 디안느가 질문을 철회하고 사과한다. 답변은 나중에 때가 되면 해줘도 좋다면서.
          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건지 "그것대신 여장벽이 어디서 생겼는지나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의외로 이건 또 간단히 답해준다. 예전에 [[바트라 리오네스]]가 고서를 [[나쟈 리오네스]]의 하녀로 위장취업 시킬 때 여장을 강요한게 계기였다. 근데 당시의 뒷사정은 생략한 채 "바트라가 여장을 강요한게 계기였다"는 사실만 전달해서 엄청난 오해를 야기한다.
          리즈의 일은 기막힌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성전 시대의 엘리자베스는? 그녀 또한 멜리오다스의 곁에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득한 시간 동안 복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 에스카노르는 멀린에게 자작시를 들려주려고 기회를 보지만 멀린은 "취한 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려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두 잔 밖에 마시지 않았고 멜리오다스에 필적하는 주당이라 그걸로 취할리가 없다. 그런 점을 들어 이 농담조로 트집을 잡는데 멀린은 "술만 들어가면 트집을 잡는다"고 꽤 날 선 응을 보인다. 그녀는 연회가 못마땅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직 십계를 다 토벌한 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 남은 십계는 "경신"의 [[젤드리스]]. 카멜롯을 비롯한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딱딱한 얘기다.
          * 호크가 평소 성격대로 "그래도 대죄가 다 모였고 이 호크님도 있으니 문제는 없다"고 허세를 떠는데 멀린은 위협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생각없이 손을 대면 확실히 당한다"고 경고한다. 호크가 기겁할 정도로 멀린의 응이 날카롭다. 연회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성전 시대에서 젤드리스의 무서움을 경험한 바 있는 디안느도 멀린의 말에 동조한다. 성전 시대에서 만난 젤드리스는 자신을 "마신왕의 마력을 빌려 행사하는 자"라 표현했다. 직함은 "마신왕의 대리". 멀린의 말대로 무서운 상대다. 디안느까지 이렇게 나오자 다른 멤버들도 겁을 먹는다. 언제나 뺀질거리던 이 "거의 최강의 마신"이라는 소리냐겨 긴장된 모습이다.
          * 분위기가 이상해졌지만 그래도 연회는 다시 이어졌다. 호크는 잔을 먹다지쳐 거기에 처박혀 잠이 들었다. 지금은 카드게임이 진행 중인데 이 또 에스카노르한테 졌다. 술기운에 열까지 받은 이 에스카노르가 사기를 친다고 주사를 부린다. 그러자 엘레인이 "술은 즐겁게 마셔라!"며 야단. 이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해지자 에스카노르가 "엘레인씨는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 장세용 . . . . 17회 일치
         그러나 구미공단으로 인해 청년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세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남유진|그 전 시장]]의 여러 구설수와, [[구미시]]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경제 문제, 즉 [[삼성]], [[LG]]공장의 이탈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치명타를 맞는 동안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곤 하던 [[박정희]] 기념 사업을 강행한데 대한 불만이 폭증하였고, 무엇보다 [[바른미래당]] 후보(7.5% 득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발해서 뛰쳐나온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9.5% 득표)들이 '''총합 17%'''나 득표하면서 --[[홍준표|모 대표]]의 [[트롤링]]으로-- '''보수 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는 역대급 행운과 함께[* 단,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무조건 보수 성향 지지자가 던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나 부동층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너무 노답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장세용 시장의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사실상 무효표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진짜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시절부터 응원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찍어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구미 시민들이 바꿔야 된다는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면서 결국 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 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실제로 장세용 시장이 당선된 직후 [[남유진]] 문서는 구미시민의 분노로 점철되어 가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 남유진이 어떻게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 득표로 당선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하지만 ‘[[박정희]] 기념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 자체로는 인정한다”라고 발언하고 또한 전임 시장인 [[남유진]]이 '박정희 타운'을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붇고도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 득표에 성공해서 당선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임 [[구미시]] 시장인 [[남유진]] 문서에는 남유진에 대해서 대부분 구미 시민들이 악평을 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엄연히 남유진은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과 득표로 모두 당선'''된 인물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4~6회 지선 광역비례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표가 76.5%, 48.7%, 71.5%로, 이 표가 남유진 전 시장표(75.9%, 53.1%, 52.6%)로 이어졌다.(단, 6회는 새누리당 표가 분열되었다.) 그래서 3선.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50.4%로 하락했고, 2018년 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41.3%로 더불어민주당 43.3%에 졌고, 이에따라 시장직도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주게 되었다. 만약, 1:1로 대결하였더라면 기초의회 비례득표를 기준으로 계산하였을 때, 진보vs보수 구도에서는 48.2%vs51.8%로 보수측이 승, 자유한국당vs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구도였다면 57.5%vs47.5%로 자유한국당측이 승리하였을 것이다. 바른미래당 지지층이 어느쪽을 선택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보(더불어민주당+정의당)가 48.2%로, 보수(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42.5%)보다 좀 더 유리했을 것이다.] 여전히 구미시에서 [[박정희]]의 존재감과 위치란 [[목포시]]에서의 [[김대중]] 이상의 위치이고 또한 '[[박정희]] 기념사업' 축소에 대한 보수파들의 발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과연 '[[박정희]] 기념사업'들을 어디까지 축소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71259|'신' 박정희를 모시는 도시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7월 2일, 시정 첫 날부터 친박단체가 구미시청 앞에서 새마을운동 사업 재검토에 대하는 집회를 벌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311116|#]]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8월, 북삼역 신설은 장기적 과제라는 의견을 밝히면서, 구미역에 다시 KTX를 정차하는 것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당연히 김천혁신도시/김천상공회의소에서는 대 의견을 밝혔다.[* 김천구미역을 이용하는 사람은 혁신도시 주민이 아무리 이용하더라도 구미의 인구가 김천의 3배정도 되기에 당연히 수요는 구미에서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혁신도시 인구는 약 2만명이다.][* 그런데, 애초에 김천구미역이 위치가 그렇게 된 이유 생각해보면... 그리고 원래 지어질 위치는 김천 시내 서부였다, 거기에 지었으면 아마도 김천시민만 이용했을 것이다. 지금 위치도 구미역에서 꽤 가야하는데, 더 멀면 안 봐도 뻔하다.]
         9월 20일, [[이철우(1955)|이철우]] 경상북도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테마파크를 경상북도에서 직접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220851&part_idx=274#09HT|“경북, 새마을테마파크 직접 운영”]]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425991|879억 애물단지 ‘새마을공원’ 운영비, 결국 경북도가 부담]] 이로써 연간 20~30억원의 운영비 부담은 덜었지만 역사자료관 명칭 변경에서 보수측은 박정희 지우기라면서 발하고 있다. ~~[[남유진|지난 시장]]이 저러다가 이번 지선에서 뒤집혔는데, 국회의원도 [[더불어민주당|파랗게]] 뒤집고 싶을 듯, 이 동네에서 [[정의당|노란색]]이나 [[바른미래당|민트색]]은 안 뽑힐 듯 하니~~[* 구미 갑은 원도심(원평, 도량, 형곡)vs공단+신시가지(공단/비산+선주원남/오태 등) 싸움이고, 구미을은 읍면vs동지역+공단(인동/진미/양포/산동)의 싸움인데(갑을 모두 앞쪽이 보수 우세 뒤쪽이 진보 우세), 구미 갑은 양쪽 인구 수는 비슷하지만, 자유한국당vs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범보수vs범진보로 본다면, 선주원남동, 비산동, 상모사곡동이 경합으로 넘어간다. 구미을은 동지역+산동면이 읍면 지역 인구의 1.5배 정도 되지만, 범진보가 8~22%p 우세를 보이는 동지역+공단과 달리 읍면지역은 범보수가 19~'''66'''%p 우세를 보여 읍면지역이 투표율이 더 높은 것과 함께 구미을 선거에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영남대]] 재직 시절 육영재단 대 투쟁을 했다가 외압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시절의 아픔을 [[박정희]]의 성지인 [[구미시]]에서 당선되면서 위로 받았다.
          * TK에서, 그것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비록 기초자치단체장이라고 해도 '''민주당 당적으로 한 번만에 당선된 기적을 일으켰다.''' TK 지역 타파의 아이콘인 [[김부겸]] 장관도 두 번의 낙선 이후 세 번째 도전만에 대구에 민주당 당적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놀랄 만할 일이다.[* 물론 상대가 경기도지사에서 도지삽니다 발언을 쏟아낸 김문수였고, 당시 새누리당이 대구를 자기들의 표밭이라고 대충신경쓴 덕분이기도 하지만.] 물론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발해서 무소속으로 뛰쳐나온 보수 성향 김봉재 후보가 9.5% 정도, 범야권인 [[바른미래당]] 유능종 후보가 또다시 7.5%를 들고 나르면서 (비록 TK긴 해도) 1여3야라는 역대급 꿀조건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고려하긴 해야 한다. 참고로 '''[[김해영|본인도 당선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17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가격과 성능 모두 저렴함의 극치를 달리는 창병 150명. 이 게임의 전열보병 대부분은 근접전에 엄청 약하므로 극초에 전열보병 호위를 위해 쓰게된다.
          * 자이!(Banzai!) -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소총을 든 민병 150명. 싸구려 가격에 걸맞는 싸구려 성능을 가지고 있다. 군학교가 없는 극초에는 이녀석을 주력으로 굴려야한다. 군학교를 짓고 전열보병을 양산하게 된 이후에는 치안 유지용으로 쓰게 된다.
         소총을 든 민병 150명. 아이즈 번 전용 유닛으로 징집 민병대를 대체한다. 징집 민병대보다 쪼까 비싸지만 명중률과 재장전 속도가 더 높다. 그래봤자 전열보병 능력치의 절이다.
         소총을 든 병사 150명. 토사 번 전용 유닛이다. 다른 존왕파 번의 비슷한 유닛들의 사관학교 테크의 염가형 보병으로 있는 면, 적웅대는 고급 전열보병으로 사용된다.
         소총을 든 병사 150명. 아이즈번 전용 유닛이다. 성능은 그냥 스킨 전열 보병이다. 일 전열보병보다 조금 비싸고 조금 강하다.
          * 자이!(Banzai!) -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불화살(Flaming Arrows) - 짧은 시간동안 일 화살 대신 불화살을 사용한다. 공격력이 상승하며 성문같은 나무로 된 것에 불을 붙일 수 있게된다.
         소총을 든 경보병 90명. 일 저격병보다 비싸지만 정확도가 높으며, 근접전 능력도 약간 높다.
         소총을 든 경보병 90명. 조자이번 전용 유닛이다. 일 저격병보다 비싸지만 그만큼 성능도 좋다.
         나무로 만든 허접한 대포 4문과 운용병 30명. 정확도도 딸리고 탄약량도 얼마 없고 전투 중 운할 수도 없다. 초기 공성전에서 유미 망루나 성벽, 성문 등을 박살내는데 사용하자.
         말로 운하는 유럽식 대포 4문과 운용병 30명. 폭발탄을 직사로 발사한다.
         말로 운하는 영국제 대포 4문과 운용병 30명. 폭발탄을 직사로 발사한다. 패럿포에 비해 재장전 기술이 매우 높다.
          * 유산탄(Shrapnel Shot) - 일 포탄 대신 공중에서 폭발해 파편을 흩뿌리는 유산탄을 발사한다.
         말로 운하는 기관총 4문과 운용병 30명.
  • 남유진 . . . . 16회 일치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구미시]]의 시장을 지냈으며, 소속 정당은 [[자유한국당]]이다. 그리고 [[박정희]] 기념 사업에 지나친 예산 투입을 복하여 결국 [[구미시]] 경제를 파괴해 '''역사상 최악의 구미시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구미판 니콜라스 마두로--
         그러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또 3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게다가 그 당시 [[박근혜|대통령이 대통령인지라]]. 결국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4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3선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이때 시민단체인 구미참여연대에서 만든 성남시와 비교카드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하는 등 민심 이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0856|*]]
         극렬 [[친박]] 성향의 정치인 중 하나로, '''[[박정희]] [[신]] 발언의 당사자'''라고 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시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그게 논란이 됐다.[* 남유진 재임기간 중 구미시 1년 예산은 1조 가량 되는데 매년 수백억을 박정희 관련해서 낭비했고 임기 말에는 1400억짜리 박정희 타운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 대 집회]]에도 참석해서 비판을 받았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인용([[파면]]) 판결에는 존중한다고 하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15500010|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인” 신격화 논란]] [[http://www.idaegu.com/?c=4&uid=357752|남유진 구미시장, 기초 지자체장 중 첫 탄핵대 집회 참석 논란]]
         [[http://www.nocutnews.co.kr/news/4814611|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인, 우표 무산 자괴감"]] [[http://v.media.daum.net/v/20170712093952584|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 우표' 발행 촉구 1인 시위]]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간을 추진하다 국민들의 거센 발로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박정희]] 기념우표 발간 촉구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그 외에도 시정 능력까지 도마에 올랐다. 사실상 12년간 제대로 구미를 위해 한 일이 없었기 때문. 구미의 몰락을 이끌어간 그의 행보에 경제 발전에 목말라 있었던 시민들의 감도 상당해진 상태였다.
         이렇게 남유진 전 시장이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 찬양에 정신이 팔린 동안 [[구미시]]에 있던 공장들은 줄줄이 도산했으며, 크나큰 오판으로 인한 잘못된 정책 수립으로 주택을 과잉 공급하여 집값이 3년간 무려 30%나 폭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마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상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던 [[북한|한도의 윗 동네]]랑 다를 게 뭔가 싶을 정도이다.
         한 지자체장에 3선을 초과하여 도전할 수 없다는 우리나라 법에 따라 구미시장 4선 도전은 할 수 없기에 2018년 1월 25일에 [[경상북도지사|경북도지사]] 출마를 위해 자진 퇴임을 하였다. 곧바로 박정희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경북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대 집회 참석 이력을 강조하며 공약으로 포항 영일대에 박정희 동상을 설치하겠다고 한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26/0200000000AKR20171226141300053.HTML|연합뉴스]] 하지만 자유한국당 경상북도지사 경선에서 11.0%를 득표함으로써 경선을 꼴찌로 마감했다. 이후 경선에서 선출된 [[이철우(1955)|이철우]] 경상북도지사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시장뿐만 아니라 제 정치 환경까지 새로 바뀌었다. 경북 도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에 비해 앞섰으며, 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공천한 모든 후보가 1위 혹은 2위로 모두 당선되었다. 남유진 시장의 아스트랄한 실정에 지친 구미 시민들이 시장과 시의회를 통째를 바꾸게 된, 즉 위 아 더 월드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쯤 되면 TK에 얼마나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구미 같이 평균 연령이 낮은 TK 지자체에서도 더민주는 각 선거구별로 후보가 아예 없거나 1명 정도만 내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교하면 후보 수 자체(시의회 후보 더민주 7명 VS 한국당 17명, 2.5배 차이다.)가 딸리기도 하고, 그 자유한국당 쪽 의원도 여러 명이 공천이 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더민주 후보(혹은 무소속)를 제끼면 최소 한명은 당선되는 시스템인데다가 그마저도 선산읍, 도개면, 무을면, 옥성면, 해평면처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외 읍면 지역에서 당선된 인물이 5명이다. 나머지 동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휩쓸었다. 사실, 도의원 결과만 봐도 바로 설명 끝난다. 구미시의 도의원 당선자 6명 중 3명이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3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 중 1선거구, 4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52.22%, 50.33%)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당선된 선거구 중 2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3선거구는 (비록 1:1이 아니고 보수표가 갈렸지만) 단 254표(0.8%p) 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6선거구는 읍면 지역. 그만큼 자유한국당이 TK에서 그 동안 견제 세력 없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무기로 남유진이 자신의 사리사욕+덕질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 얼마나 구미 시민들을 만만하게 봤는지를 알 수가 있다.
  • 박경림(MC) . . . . 16회 일치
         '''2000년대 초을 주름잡던 레전드급 방송인 중 1명.'''
         [[대한민국]]의 방송인. 개그맨 [[박수홍]]의 팬클럽 회장으로 시작해 그 인연으로 [[고등학생]] 때 MBC의 심야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 돌발소녀라는 기믹으로 라디오 출연을 시작했고, 차츰 인지도를 높여가다가 좀 다른 의미지만 연예계의 정상에 올랐다. 당시 여고생답지 않은 걸걸한 입담과 특유의 당당함으로 많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첫 등장은 장기자랑 코너였는데 청취자들의 응이 폭발적이어서 결국 고정을 꿰찼다. 물론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
         그 이후 90년대 말부터 MBC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기 시작해, 드세면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사각턱'과 '특이한 목소리'[* 목소리가 꽤 걸걸하고 허스키하다. 본인 말에 의하면 학창 시절에 [[운동회]]를 했을 때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목이 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라고 한다.] 기믹을 앞세워 새로운 예능캐릭터의 트렌드를 이끌면서 상승세를 타다가 결국 2000년대 초에 정점을 찍어 수많은 광고와 방송3사 인기프로그램들에 출연하다 못해 영화나 드라마에까지 출연하는 등 연예계 블루칩이 되었고, 결국 2001년 연예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 후에도 2000년대 중까지 꾸준히 예능계의 인기스타로 활약했다.
         박경림 이후 박경림처럼 예쁘지 않지만 매력있는 컨셉의 여자연예인들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전성기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녀같은 스타일로 광고계까지 접수하는 여성 대스타가 전혀 나오지 않은만큼,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 연예사에서 절대적인 역사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시대 이후로는 국민여동생 붐으로 [[문근영]], [[김연아]], [[손연재]], [[아이유]] 등 미모가 되는 10대후 ~ 20대초 여자스타들만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배우, 가수, 스포츠 등 자기분야에서의 인기를 업고 올라간 것이지, 박경림처럼 순수히 예능 MC와 출연자로써만 인기를 얻어 광고계 블루칩이 된 것이 아니다.]
         그 뒤 [[1대 100]] 498회에서 절친인 [[이수영(가수)|이수영]][* 참고로 [[이수영(가수)|이수영]]은 25회 전전, 412회 전전에서 1인으로 나와 모두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412회 전전 2단계에선 실수로 답을 잘못 누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과 같이 3차 도전을 했다. 이 날 이들은 7단계를 통과하면 100인들에게 커피를 쏜다는 약속을 했으며 8단계 1:23까지 생존하면서 약속을 지켰다.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백인 남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절, 순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전성기 시절의 위업을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대 여성이 연예대상 최연소 수상'''으로 설명 할 수 있다. 20대 연예대상은 최초이자 최후이고, 여자 연예대상은 이효리의 공동대상을 빼면 단독수상으론 박경림이 유일. 다만 과거 연예대상이아닌 방송대상 코미디 부분이나 코미디대상에선 여성으로는 김미화와 이경실, 20대로는 이경실, 서경석, 박준형이 수상을 한 적은 있었다. 다만 최연소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경림의 수상 당시 나이는 만22세. 지금 잘 나가는 여자MC들 전부를 합쳐도 박경림 인기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로[* 시상식 수상자로 나와 꺅꺅 소리지르는 소녀팬들을 몰고다닐 정도였으니..그것도 여자 예능인이..더 웃긴 건 그 소녀팬들한테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센스까지..] 2000년대 초 당시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녀 이후 당시 그녀의 예능계 포스에 조금이라도 비교할만큼 잘 나가 봤던 연예인은 그나마 [[이효리]] 한명뿐이다.[* 배우와 예능 MC를 병행하며 박경림보다 더 오래 예능계 몸담은 [[김원희]]도 있지만, 그녀는 미모의 여배우치고 코믹연기가 능해 이미지가 재미있고, 남자MC와 호흡맞추며 하는 진행을 잘하여 롱런한게 훌륭한 것이지 박경림처럼 3년 정도 장기간 예능계 여성 원탑이었던 적은 없었고, 잘 나갈때의 이효리조차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 [[유재석]]이라는 대스타 MC의 받쳐주기 후광으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예능만으로는 2000~2002년 박경림이라는 여성 예능인의 파괴적 인기점유율에 미치지 못한다. 전성기 박경림은 박수홍 같은 남자MC들과 출연하더라도 그녀가 웃음과 진행을 이끌어가는 메인이었지 남자MC의 보조만으로 끝났던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당시 잘나가던 남자 MC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또한 다른 여자연예인들은 다른 분야 활동에서의 인기가 예능에도 미쳤던 영향이 있지만 박경림은 자신이 혼자 진행하는 인기프로그램까지 있었을만큼, 예능만으로 절대적 블루칩이 되었던 인물이다.]
          * 얼굴이 네모난 게 특징. 이것 때문에 [[인터넷]] 초창기인 2000년대 초에 '숨은 박경림 찾기'라는 놀이가 유행했었다. 얼굴이 동그란 사람([[옷]]) 사이에 숨어있는 한 명의 박경림([[못]])을 찾는 놀이로, 일종의 [[이모티콘]] 놀이라고 보면 될 듯.
          * 2002년에는 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활동했다. 다만 진지하게 한다기보단 예능 프로그램에서 프로젝트성으로 '''"박남매(박경림, [[박수홍]])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박고테'''로 앨범 발매. 요즘 [[무한도전]]에서 하는 각종 앨범 제작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기예능에서 노래와 앨범 만드는 전과정을 노출시켜줬기 때문에, 꽤 큰 인기를 얻었으며 MBC 음악캠프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랐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공주병 컨셉으로 해서 만들어진 "착각의 늪"이라는 곡이 타이틀곡으로 특유의 안무와 박수홍의 손발이 오그라지는 랩(...)이 특히 유명했다. 당시에는 싱글의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11곡으로 풀앨범을 제작했다. 당시 박경림의 장점인 인맥이 도움이 되어 타이틀곡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주영훈]]이 만들었고 [[김장훈]], [[윤종신]], [[이수영(가수)|이수영]], [[이기찬]], [[유리상자]], [[유희열]], [[김동규#s-1]] 등이 참여했다. ~~라인업 ㅎㄷㄷ~~ 박남매의 '''고속도로 테이프''' 프로젝트지만 인기가 생각보다 많아 CD로도 발매되었다.[* 앨범은 20만장 가까이 팔렸다.] 나중에 유학 이후 국내 복귀 다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망했다'는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목표 판매량은 --농담 진담으로-- 백만장이었으니까...] 당시 대단한 인기로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 사각진 얼굴로 예쁘다고 하긴 힘든 얼굴인데[* 그래도 데뷔초와 비교해보면 많이 예뻐지긴 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이 점을 직접 언급했으나 MC들의 응은 별로(...).] 의외로 [[패리스 힐튼]]을 디스할 때 서양 박경림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의외로 곰곰히 따져보면 닮았다. 단 실제 얼굴은 정말 사각졌다. 사진빨이나 카메라빨을 못 받는다고.
          * 2010년대 중들어 각종 영화 제작발표회, 쇼케이스, 시사회의 MC를 자주 맡고 있다. [[신세계(영화)]], [[명량]], [[내부자들(영화)]], [[사도(영화)]], [[검사외전]], [[곡성(영화)]], [[아가씨(영화)]], [[1987(영화)]] 등 근래 화제작들을 싹쓸이하고 있는 수준. --원래 행사진행MC라면 당연히 갖춰야만 하는 소양임에도 다들 잘안하는--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많이 공부해오고[* 영화 곡성 제작발표회에선 대본에 써있지도 않았던 감독의 전작 황해의 개봉일을 정확히 언급하는 등. 사전 준비가 철저하다고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_filter=search&mid=movietalk&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B%B0%95%EA%B2%BD%EB%A6%BC&document_srl=10927091|#]]] 연예계에 인맥들도 많고 진행실력도 무난한 덕분에 업계 관계자들이 꽤 선호하는 듯 하며 [[네이버]] [[V앱]] 무비토크 진행을 맡고 있다.
  • 박진성(시인) . . . . 16회 일치
         3월 26일에 2016년 10월 당시 출판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한 글과 2016년 10월 이후에 대해 쓴 글을 엮은 [[https://www.tumblbug.com/poetone78|산문집 '이후의 삶'을 출간하기 위한 펀딩]]을 시작했는데, 4월 1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0338430587449344|후원금이 목표치를 초과]][* 게다가 트페미들의 조롱과 달리, 후원자들의 성비는 '''여성이 60%를 조금 넘는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487622431653888|#]] 즉 후원자들은 박진성 시인을 헐뜯는 세력과 달리 성별이라는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남녀 모두가 후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했다. 4월 15일,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496403689406464|출간비를 제외한 남은 후원금은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소송을 돕는 작업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펀딩은 5월 4일까지 진행되었고 책은 24일에 나왔다. 그리고 일 서점에선 31일부터 판매 중이다.
         그러나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많다. [[아몰랑|조리돌림해놓고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양이고, 아직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804441760350208|#1]][[https://archive.is/LXMJh|@1]][* 첫번째 예시에 나온 사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을과 시옷이라는 닉네임을 쓴 적 있고 김여선 또는 이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점 레스토랑 Cooper Room(카퍼룸)([[https://twitter.com/Copper_Room_|#트위터 계정]][[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37996846|#네이버 플레이스 정보]])에서 일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지망생[[https://twitter.com/satoy_0045/status/928626634474663936|#]][[https://archive.is/Nhple|@]]인데, 이 사건에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6453624502284288|박 시인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2명 중 한 명]]([[https://archive.is/yofTZ|@]])이다. 무고죄로 기소유예를 받은 뒤에 트위터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가 파란이 사그라들자 다시 계정을 복구하였다. 여러 문학 작품들만 인용하는 식으로 한동안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탁수정]]과 박 시인 간의 설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2월에 갑자기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었는데, 김여선의 전과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다 도리어 대중들이 자신의 죄를 역으로 캐묻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것을 직감했는지 다시 트윗들을 삭제했고, 사태가 다시 잠잠해지자 자신을 비판했던 이들을 고소할 것을 선언했다. 3월에 또 박 시인을 공격했지만 예전에 비해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며칠 후부터는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듯했는데, 4월 16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887446482042883|'이후의 삶' 펀딩을 망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서 거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려는 수작이 들켰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http://web.archive.org/web/20171127054338/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 유진목이라는 1인 영상 제작사 목년사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다.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71395|#]]] 심지어 이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776705218068482|송승언]]([[https://archive.is/HxWyl|@]])이라는 사람은 [[http://moonji.com/bookauth/9173/|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2017년 5월 17일 이후로 주로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만 단정짓고 이야기했으며, 무혐의 처분 후에도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https://twitter.com/search?f=tweets&vertical=default&q=blanknoose%20박진성&src=typd|#]][[https://archive.is/286Iy|@]] 이후 박진성 시인의 무고가 확실해지면서 자신에게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한동안 [[https://twitter.com/blanknoose|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였다가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을 복하고 있다.[* 웃긴 것은 2017년 5월 24일부터 자신의 전 연인이자 후배 문학도에게 '문단창녀'라 성희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진성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송승언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거나 박진성 편을 드는 자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는 정신승리로 침묵하고 있으며 박진성 시인을 모욕했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있다(증거 자체는 예전부터 삭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67579611017658372|#1]][[https://archive.is/z5QTN|@1]][[https://twitter.com/blanknoose/status/936928452875186180|#2]][[https://archive.is/IMg8R|@2]][[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99014088801386496|#3]][[https://archive.is/IdmMq|@3]]]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965482632808026112|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 이 때 그녀는 '좋은 소식'이라고 웃었는데 이 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https://blog.naver.com/poetone/221212096465|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이들은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아전인수]]와 [[내로남불]] 그 자체인 상황.
          * 2018년 2월 7일 [[JTBC 뉴스룸]]에서 [[탁수정]]을 인터뷰하며 [[미투 운동]]을 보도한 것([[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37&aid=0000174513|#]])을 보고 격분,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1266038443659264|그동안 거절해 왔던 무고 관련 인터뷰에 자진해서 나서겠다]]고 밝히고는 그녀를 비난했다. 그리고 탁수정이 이에 대해 박한 것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서 4월까지 설전이 진행되었다.[[http://kingshandle.tistory.com/488|2월 9일 시점에서 정리된 글]][* 이 글은 설전 초의 상황이 정리된 글로, 그 이후 상황까지 정리된 글은 없다.] 실제로 박 시인은 2월 28일에 '''[[MBN]]과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http://naver.me/FdNCVQm4|#]]
          2월 19~20일에 그는 이 상황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응하는 트위터리안들에 대해 민감하게 응했고[* 대다수는 그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린 거였지만, 비난하는 게 아닌 경우에도 민감하게 응했기 때문에 그에게 트위터를 잠깐 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멘션을 보낸 트위터리안도 있다. 당시 위에서 설명한 무혐의 처분 결정을 탁수정이 공개하고 박진성 시인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한 탓에, 트위터 내에서 이 설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마녀사냥을 그만하라는 의미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5692582637453312|자신의 손목에 남아 있는 흉터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박진성 시인이 카톡 대화 전문 공개 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탁수정]]이 이에 대해 자살 시도까지 비꼬는 투로 그러면 병원 영수증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공격하자 2월 28일엔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했다(저 공격을 하기 전에 탁수정과 탁수정을 지지하는 측이 그의 자살 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공개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해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로 굳이 공개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최후의 카드였던 셈.). 이후 그녀는 자신은 떳떳하니까 전문 공개하려면 하라고는 했으나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응을 하지 않았다.] 2018년 4월 11일에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3915291196342273|다시 자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중으로 [[리스트컷 증후군]]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 이 일 때문에 입원하게 된다면 자신이 진행 중인 싸움이 전부 중지되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지만, 며칠 뒤에 [[당뇨병]] 악화라는 다른 이유로 한동안 입원했었다.[* 탁수정이 또 영수증을 요구할까봐 미리 공개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796927143927808|#]]]
         위의 사건들로 인해 일각에서는 박진성 시인이 [[미투 운동]]을 대하고 [[무고죄]]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와전되어 있다. 그러나 박진성 시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며, 다른 문인들의 성범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즉 박 시인은 [[탁수정]]이나 [[위근우]]처럼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비판할 뿐, 미투 운동을 지지함은 물론 '''[[고은(시인)|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등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고백합니다. 밉보일까 봐 당시 동석했던 여성분들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범죄 현장에 있었습니다 저 역시 방관자였음을 시인합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고En 시인의 시를 보고, 고En 시인의 ‘기록된’ 행적만 보고, 고En 시인처럼 되고자 했던 저 자신을 먼저 성합니다. 최영미 시인을 응원합니다. 제가 보고 듣고 겪은 바로는 최영미 시인의 증언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K 교수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401018|#]] 그러나 박진성 시인은 이후 자신에게 고은 시인의 성폭력과 관련된 여러 구체적인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박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2345127|#]]
          * [[려동물]]로 개 사랑이를 키우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2018년 1월 [[백내장]]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737097|#]] 박진성 시인은 사랑이의 죽음을 알린 뒤 힘든 시간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다는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 승리(빅뱅) . . . . 16회 일치
         데뷔 초부터 형들과 예능에 동출연하면서 "철없는 막내", "왈가닥 말썽꾸러기" 느낌의 얄미운 막내 이미지가 강하였으나 성인이 되고부터는 조금 더 성숙하고 섹시한 느낌을 득템, 최근에는 형들의 부재에 활발한 단독예능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으며 승츠비(승리 + 개츠비)라는 별명이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유명할 정도로 젊고 돈 많은, 유쾌하고 씀씀이 좋은 사업가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영앤리치 큐트앤핸썸~~ 가요계에서 단연 독보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로, 초의 비호감 이미지를 완전히 극복하고 성실한 호감형 이미지로 탈바꿈한 성공적인 케이스이다.
         빅뱅 노래의 특성 상 승리의 보컬은 타이틀 곡보다는 수록곡 혹은 솔로곡에서 빛을 발하는 편이다. 그 예로 눈물뿐인 바보[* [[https://www.youtube.com/watch?v=3kmBZx4K7VU|라이브영상]]], Stay--승테이--나 Tell Me Good Bye, Wonderful, Love Box[* [[https://www.youtube.com/watch?v=xSGQD1LGv7g&index=2&list=PLSp0Xfof8XoHr4YYzit_s1VBO0N-YasCm|라이브영상]]], 창문을 열어, White Love[* [[https://www.youtube.com/watch?v=KeUfPe9AzTE|라이브영상]]], I Know(With. [[아이유|IU]])[* [[https://www.youtube.com/watch?v=2Oi1CME3frY|영상]]] 등이 있다. 또한 If You, Last Dance 등의 아카벨라 버전을 들으면 승리 특유의 미성과 애드립, 화음이 더욱 두드러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FS1kAyNk8|승리 무주 루저]] [[https://www.youtube.com/watch?v=RxZ_b6ryzfI|거짓말 어쿠스틱 라이브]]
         두 편을 소화하고 뮤지컬 욕심이 생겼는지 2011년엔 인터뷰를 통해 최연소 지킬과 오페라의 유령을 해보고 싶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일부 팬들은 승리가 결혼식 축하연에서 부른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을 보고 당장 해도 되겠다는 응이지만, --과도한 팬심의 예-- 한국 뮤지컬 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따내기 어려운 배역이므로 사실상 힘들다.
         || [[REMEMBER(빅뱅 음)]] || 5 || Strong Baby || G-DRAGON || G-DRAGON, JR Groove || JR Groove ||
         2013년 8월 2번째 솔로앨범 <Let's Talk About Love>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할 말 있어요'로 활동했다. 수록된 전곡을 작사하고 작곡 및 프로듀싱까지 참여했다. 참고로 이 앨범을 만드는 데 주어진 총 시간은 단 4주라고 과장되어 있지만 승리의 인터뷰에서 5월에 곡작업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3달 이상은 공들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정해진 기간은 매우 짧게 주고 발매는 늦게 해준 케이스-- 그래도 솔로 미니앨범 1집 당시 주어진 '3'주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1집에서는 작곡가 및 프로듀서들이 어느 정도 승리 앨범 제작에 기여한 면 2집 작업 때에는 [[지드래곤]]의 솔로앨범(COUP D'ETAT) 제작을 위해 대부분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달려든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안습]] 양싸 제발!!-- --그리고 홍보 하나 없었다-- --프로듀서없이 혼자 완성한 앨범--
         1번 트랙 'Let's Talk About Love (Feat. G-DRAGON & 태양 from BIGBANG)'에는 [[BIGBANG|동일 그룹]]의 [[지드래곤]]과 [[태양(빅뱅)|태양]]의 피처링이 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곡이지만 이 평가에는 지드래곤과 태양 피쳐링의 비중이 크다. 2번 트랙 '할 말 있어요'는 극적인 훅(hook)의 비트의 변화와 Hustlin' 이라는 복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Hustlin'은 별 의미는 없고 발음이 좋아서 선택한 단어라고. 각각 3번과 4번, 6번 트랙의 'GG BE'와 '그 딴 거 없어', 'LOVE BOX'는 2013년 승리가 진행했던 스타캐스트 속 팬들의 선택에서 승리 솔로곡 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곡이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G_ZnI50c7U|꼭 이어폰으로 들어야 함]] --귀가 녹을뻔해써요-- 7번 트랙 '할 말 있어요 (Hard Remix ver.)'는 보너스 트랙으로, CD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승리는 음발매 후 [[멜론]]차트에서 실시간 진입순위 13위를 달성하였다. 아이튠즈에서는 앨범차트 기준으로 아르메니아, 브루나이, 캄보디아,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마카오, 말레이시아, 멕시코, 페루,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등 15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중국차트에서는 발매 당일 주간 1위를 차지 하는 글로벌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또 보이그룹 개인 브랜드평판 2위에 올랐다
         승리는 이 앨범을 내는 전후에 상당히 많은 예능에 출연하였는데, [[아는 형님]], [[미운 우리 새끼]], [[나혼자산다]].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런닝맨]],[[한끼줍쇼]],[[아이돌룸]],[[냉장고를 부탁해]]등에 출연하였다. 빅뱅 데뷔 초기인 2000년대 후을 방불케할 정도.
          *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 고정 출연
          * 론: 정상적인 기획사라면 소속 가수들에게 정기적으로 앨범을 내주는 것은 당연하다. 큰 수익을 내지 않는다고 음악 활동을 시키지 않는다면, 음악 시장은 현저히 작아질 것이고 나오는 사람만 계속 나오게 될 것이다. 애초에 그렇다면 멜론 순위에도 진입하지 못하는 가수들은 왜 앨범을 꾸준히 내는 것인가? 그들이 바보라서, 자선 사업가라서 일 것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승리의 솔로 앨범이 적자를 내는 것도 아니고 항시 평타 이상을 치고 있는데, 이윤의 논리로만 따져봐도 소속사가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초에 많은 기대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승리에게 실망을 많이 한듯 보인다. 그러니 사업가로서 회사의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승리의 대우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적인 측면이 있다. --제대로 못 써먹은 건 YG란 건 생각 안하는 듯--
          * 승리 인터뷰 中: 멤버들은 왜 그렇게 승리 예기를 그렇게 많이 할까요? 저도 솔직히 멤버들 얘기하고 그러면 밤새울수 있어요. 근데 전 안해요. 저는 저를 깎아내리면서 뭔가를 얘기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제 이미지상 제가 남을 깎아내리며서 얘기하면 "승리가 뒷담화 하네, 승리는 뒷담화를 좋아하는 애구나" 이렇게 되더라고요. 면 멤버들이 저를 얘기했을 때는 "아, 승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게 달라요. 멤버들은 제 얘기를 해도 되고...
          * 승리 인터뷰 中: 전 사실 지금껏 활동하면서 혼자서 울고 그런 적 많았어요. 방송에 데이고 다치고. 대중들은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의 감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방송에서 비춰진 모습이 우울하고 그러면 '쟤 왜 저래, 왜 이렇게 거만해' 그러잖아요. 아무리 어떤 일이 있어도 밝게 웃고 감정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제가 어린 나이에 그런 걸 하는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얘기할까요. 좀 쉬고 싶었어요. 근데 비즈니스라는 게 꼭 그렇게 가는 게 아닌거고. 저희가 생각하는 건 한틈도 대중이 저희로부터 시선을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대중은 빨리 질려요. 핸드폰도 빨리 바꾸고, 빅뱅이 쉬고 있을 때 다른 가수들이 너무 치고 올라오면 우리도 사라질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서 빅뱅은 쉬지만 그때도 두 멤버(대성, 승리)는 뮤지컬도 하고, 엠씨도 보고 다방면에서 활동해야죠. 관객들 보면 눈이 짝 빛나요. 옆에 있는데 저도 벅찬 거에요. 한곳에 집중해 있고, 시선이 마주치고. 저도 무대에 섰을 때 그런 게 희열이 느껴져요.
          * 일본어 실력이 상당하다. 개요에 서술되어 있듯 사키가케, 남자의 요리 등의 프로그램에서 MC를 맡기도 했으며(AKB48 멤버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외국인이 보면 일본인으로 착각할 수준. 한 재일 교포에 따르면 승리는 일본 표준어 뿐만 아니라 사투리[* 일본의 간사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칸사이벤]])다.]도 어색함 없이 잘 해, 정말 원어민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너무 오버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해서 듣기 민망하다는 응도 있다. 승리의 일본 방송을 끝까지 볼 수 있는 팬은 없다 카더라.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지 15년 MAMA에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총 4개국어로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 4개국어 수상 소감은 16년 [[골든디스크 시상식|골든디스크]] 등 각종 시상식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골든디스크 시상식의 경우 분명 한국에서 상을 받으면서도 '''한국에 계신 [[VIP(빅뱅)|VIP]] 여러분''' 이라고 --해 팬들을 [[안습]]하게-- 했다. --얼마나 한국에 안 왔으면-- --한국에 계신 VIP가 습관이 되었을까-- 그리고 데뷔 10주년 '''국내''' 콘서트에서는 가득 찬 팬들을 향해 VIP '''재팬''' 이라고 말했다. 팬들이 '아아~ 승리야~' 라는 식으로 야유하자, ' '''VIP 제 팬''' 이라고요!' 라고 이야기 했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속이 상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와중에 환호하며 소리지른 섬녀...~~ 그러나 빅뱅 내에서 승리가 가장 팬 서비스가 좋고 한국 팬을 가장 아끼기에 최근 일본 스케쥴을 많이 돌며 습관처럼 입에 붙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유행어와 신조어에 민감한 승리가 오죽 해외 스케쥴을 많이 뛰었으면 '히트다 히트'를 모를까...
  • 오지훈 (1973년) . . . . 16회 일치
         | 직업 = [[가수]] <br /> [[작사가]] <br /> [[작곡가]] <br /> [[편곡|편곡가]] <br /> [[음]]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br />
         | 악기 = [[기타]] <br /> [[피아노]] <br /> [[건 악기|전자 키보드]] <br /> [[신시사이저]] <br /> [[하모니카]] <br /> [[색소폰]] <br /> [[타악기|퍼커션]] <br /> [[드럼]]
         '''오지훈'''([[1973년]] [[4월 7일]] ~ )은 [[대한민국]]의 [[남자|남성]] [[가수]], [[작사가]], [[작곡가]], [[편곡|편곡가]], [[음]]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이다.
         그는 2년 후 자신과 동갑내기인 [[명지전문대학|명지실업전문대학]] 실용음악학과 휴학생 [[김지훈 (1973년 5월)|김지훈]]을 [[보컬|보컬리스트]]로 졸업 이후 [[명지전문대학|명지실업전문대학]] 기계설계학과를 중퇴한 [[유현재]]를 [[보컬|보컬리스트]]와 [[드럼]], [[베이스 기타|베이스 기타리스트]]로,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학과 졸업자 [[황혜영 (1973년)|황혜영]]을 객원 [[보컬|보컬리스트]]로, 역할들을 의기상투하여 [[1994년]]에 그가 리더로 내세워진 [[댄스 팝]] [[음악 그룹]] "[[투투 (음악 그룹)|투투]](Two Two)"의 [[건 악기|전자 키보드]] 연주자 겸 [[기타 연주자|기타리스트]] 정식 데뷔하였다.
         당시 그는 "[[투투 (음악 그룹)|투투]]"에서 [[건 악기|전자 키보드]] 연주와 [[기타 연주자|기타리스트]], 리더(leader)를 맡았다. [[1994년]] 《[[일과 이분의 일|투투 1집]]》 음 수록곡 전곡을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하였고 이 시기에 데뷔곡인 동시에 자신의 자작곡인 《[[일과 이분의 일]]》이 일약 큰 히트를 하였다. 투투 1집에 수록된 '재수생'의 경우 김지훈과 함께 보컬을 양분해서 불렀다. 또한 드라마 [[딸부잣집 (드라마)|딸부잣집]]의 [[OST]]인 《딸부잣집》은 《투투 1집》의 수록곡인 《내 인생의 러시 아워》를 그가 직접 드라마의 분위기에 맞게 개사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다. [[94 내일은 늦으리]] 앨범에는 자신의 자작곡인 《용사의 외침》을 실었다.
         [[1995년]]에는 《[[TWO TWO 2|투투 2집]]》 음을 프로듀싱하였고, 《[[TWO TWO 2|투투 2집]]》 음의 타이틀 곡인 '바람난 여자'를 비롯한 《[[TWO TWO 2|투투 2집]]》 음의 일부 수록곡들을 작사, 작곡, 편곡하였다.
         그는 제대 후에 [[1997년]]에는 투투 출신 [[유현재]], 여성 멤버 이삭과 함께 얍(YAB, Young & Alternative Beaux)으로 활동하였다. <ref>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65189 개성시대:네이버 뮤직]</ref> YAB의 1집 음을 프로듀싱하였으며, 전곡을 작곡하였다. <ref> [https://www.komca.or.kr/srch2/srch_01.jsp 한국음악저작권협회 - 저작자명 W0190100, 가수명 얍 참조]</ref>
         [[1999년]]에는 [[핑클]] 2집 음에 작곡가로, [[태사자 (음악 그룹)|태사자]] 3집 음에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듀크 (음악 그룹)|듀크]](Duke)" 2집 [[음]]의 수록곡인 '승수야 미안해'를 작사, 작곡했다. [[가수]] [[춘자|뉴 리안]]의 앨범 작업과 프로듀싱, 혼성 그룹 퍼니의 제작자 겸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였다.
         * 대한민국 영상음대상(골든디스크) 신인상 (1994)
         * [[김지훈 (1973년 5월)|김지훈]] - 오지훈과는 고3시절 부터 같이 밴드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투투 (음악 그룹)|투투]]"에서도 구성원으로 활동하였었고 이후 오지훈은 "[[듀크 (음악 그룹)|듀크]]" 시절에 이르기까지 김지훈과의 [[음악 프로듀서|음 프로듀싱]] 작업을 동하였다.
  • 오타쿠 혐오 . . . . 16회 일치
         [[일인]](=비 오타쿠)가 [[오타쿠]]를 [[혐오]]하는 성향을 뜻한다.
         오타쿠 혐오 계층에서는 오타쿠는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오타쿠들의 상징인 특정한 취미 탐닉, 컬렉션 성향은 곧 사회성 부족의 징후로 여겨진다. 종족 이들의 컬렉션 자체가 사회적 물건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총기]]와 같은 군장류([[밀덕]]), [[로리콘]]이나 [[도촬]] 등의 성적인 물건이 그러하다.
         오타쿠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에게 볼 수 없는) '과도한' 취미 탐닉은, 그들의 수익[* 어떤 형태로든 수익이 있다면]을 자기 발전, 미래 투자, 사회 활동 같은 건전한 분야에 사용하지 않고, 취미에 탐닉하여 '낭비'하게 되며, 그에 따라서 자기 발전, 미래 투자, 사회 활동에서 정체를 가져온다고 여겨진다. 취미 탐닉은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소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대개 [[일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소비 행태'로 보이게 된다.
         ==== 사회적 성향 ====
         특정한 취미는 사회적 성향을 동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 성적인 물건 : 성적인 것에 과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며, 이는 일인들에게 [[성범죄]]의 징후로 여겨진다.
          * 잔혹한 물건 : 잔혹한 물건은 잔혹함에 과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며, 이는 일인들에게 [[살인]] 등 폭력범죄의 징후로 여겨진다.
          * 군사적 물건 : 군사적 물건, 즉 밀리터리 매니아(소위 [[밀덕]])의 군사적 물건에 대한 관심은 곧 [[전쟁]]에 대한 관심이며, 이는 일인들에게 '잠재적 전쟁 범죄자'의 징후로 여겨진다. 이들은 때때로 군사적 저술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일인들과 동떨어진 수준의 [[우익]] 성향을 가지거나, 몇몇 경우 [[학살]]을 옹호하거나, [[독빠]]의 경우 [[나치]]에 대한 옹호로 [[주화입마]]하는 경우도 있다.
          * 철도적 물건 : 철도적 물건, 즉 철도 매니아(소위 [[철덕]])은 철도적 물건에 대한 관심은, 그 자체로 일단 일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며, 이들은 때때로 철도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정상적인 철도 운행을 방해하는 등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오타쿠들의 취미우선주의는 때때로 자신의 '취미'를 [[인권]]이나 사회적 합의 같은 '보편적 가치'보다 높이 놓기도 하며, 이러한 성향은 매우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져서 일인들에게 혐오감을 주게 된다.
          * [[멸치]] : 비만과는 대로 과도하게 마르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섭식장애의 한가지 형태로, 건강하지 못한 인상을 준다.
         예비 범죄자라는 관점에서 오타쿠를 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위의 사회성 부족(=사회적 성격)과 혐오적 외모에서 일인들의 경계를 받기 때문이다. 또한 [[미야자키 츠토무]] 등 몇몇 오타쿠가 저지른 범죄가 오타쿠를 범죄자 예비군으로 낙인찍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 울릉군 . . . . 16회 일치
         포항시-영일군 통합 전에는 영일군과 같은 선거구에 소속하였다. 꽤 오랫동안 이상득 의원이 의원직을 6번이나 했다가 불출마했는데, 후임 김형태 의원은 성추행 논란을 일으키며 그 당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선거법 위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물론 재선 결과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박명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후보[* 당시 [[민중연합당]] 후보가 출마했다.]와 무소속 후보는 '''울릉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새누리당 텃밭이라 하지만 다른 후보들의 무관심으로 박명재[* 행정고시를 합격한 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기에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다가 2013년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였다.] 의원이 여유있게 몰표를 가져갔다.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입에서 연기나는 목각 [[사자]]상'''을 섬에 풀어 놓겠다는 [[야바위]]를 시전하여 울릉도에 있는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는 사실은 유명. 이후 신라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쳤고, [[후삼국시대]]인 930년 완전히 한도에 귀속되어 이 때부터 공고히 한국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1454년 강원도 울진현에 편입되어 1900년 울릉군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그 외에도 세무서는 포항세무서가 2009년 울릉도에 세정 업무를 돕기 위해 포항세무서 울릉지서가 울릉군을 관장하며, 일적인 세정 사무는 포항까지 나가야 하며, 관세 부문은 포항세관이 울릉도를 책임지고 있다. 또한 케이블TV는 [[현대HCN]] 경북방송이 울릉군도 관할하게 된다.
         울릉군의 전화번호는 관용이나 공공기관 등은 790국번을, 일용은 791국번을 주로 쓴다. 이전에는 국번 없이 무국번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네자릿수 일련번호(보기:☎1234 등)를 [[1987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시외전화를 지자체 단위로 쓰던 시절에는 0566으로 배정되었다가 지금은 054가 되었다.
         2017년 8월 20일, 해병대가 최초로 중대급 병력 전개 훈련을 한 것이 확인되었다. 영상 중후부에 초등학교가 나오고 운동장에 군용차량들이 정차된 것으로 보아 그곳을 주둔지로 사용할 계획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TEggXx89JQ4|#]] 그리고 8월 22일 국방TV 보도에 따르면 당초 언론보도에 알려진 중대급이 아니라 대대급의 해병대 병력이 울릉도에 배치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0xtG0uFhE|#]]
         ||<|2> [[이상득]]/초선[br][[민주정의당]] ||<|2> 이상득/재선[br][[민주자유당]] ||<|2> 이상득/3선 [br] 신한국당 ||<|2> 이상득/4선 [br] 한나라당 ||<|2> 이상득/5선 [br] 한나라당 ||<|2> 이상득/6선 [br] 한나라당 || --[[김형태(정치인)|김형태]]/초선--[* 13.7.25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 [br] --새누리당-- ||<|2> [[박명재]]/재선 [br] 새누리당 ||
          * 도동약수공원 일원-도동 위로 올라가다가 약수공원 방향으로 올라가면 독도 박물관과 독도 전망대가 있다. 특히, 독도 전망대는 경치가 좋기에 인기가 많은 관광지. 박물관에서 케이블카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면 왕복 15분 거리의 도동 방향 전망대와 30분 거리의 해안 전망대로 길이 나뉘는데, 어느 쪽이든 생각보다 가까우니 겁먹지 말고 가보도록 하자. 참고로 케이블카는 바람이 거세면 통제되므로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독도 박물관 대편 갈림길에 있는 도동 약수는 쇠맛이 날 정도로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마시기 전에 수질검사표를 확인하자.--
          * [[성인봉]]-울릉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며 해발 984m에 달한다. 울릉읍, 북면, 서면에 걸쳐 있으며, 여러 등산로가 있지만 아무래도 제일 유명한 길은 도동에서 올라가는 루트와 대쪽에서 나리분지를 통해 올라가는 루트로 나뉜다. 도동 쪽은 3시간이면 주파하고 흙산이라서 올라가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나리분지쪽은 나무계단이라서 생각보다 어렵고 6시간 가까이 걸린다고도 한다. 올라가는 길에 아름다운 원시림이 있다. 특히 구름이 껴있으면 원시림과 고사리들이 펼치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장관. 허나, 정상에 올라가면 아무것도 안 보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상에서는 바다와 울릉도 전체가 스펙터클하게 보인다고 한다. 매우 날씨 좋은 날이면 독도도 보인다고. 허나, [[매의 눈]] 같은 시력과 운이 따라야 한다. 보통 일년에 50일 정도 독도를 볼수 있는 날씨가 된다고 한다. 정상이 맑은 날을 노리려면 겨울이 좋다고. 하지만 겨울엔 눈이 퍼부어대는 울릉도 특성 상 쉽지 않을 것이다.
         [[경상북도교육청]] 소속의 울릉교육지원청이 관할하고, [[고등학교]]까지는 있다. 울릉도 유일의 중학교인 [[울릉중학교]]와 울릉도 유일의 고등학교인 [[울릉고등학교]]가 있으며 한 학년에 40여명이 있다. [[전문계]]와 [[일계]]가 통합된 종합고등학교로 진학, 취업, 해양으로 나뉘며, 대학 진학 전이라도 대다수는 [[포항]], [[경주]], [[경산]] 등 육지로 일찌감치 나가고, 울릉도에 남아있는 학생들은 매우 적기 때문에 [[수능]]도 당연히 울릉도에서는 치지 않아 수능 며칠 전부터 포항으로 나가 있어야 한다.[* 여담으로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자 본의아니게 포항에서 일주일간 숙박을 해야만 했다는 일이 있었다.] 울릉도에 사는 토익커들도 관내에 토익 시험장이 없어 시험을 보기 위해 포항 등 외지로 나가야 한다.
         다만 그렇다고 바가지로 받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는 아이스크림을 시가보다 비싸게(천원이 정가라면 천삼백~오백정도)받았다고 하지만, 현재는 그냥 정가로 판다. 관광업이 주 수입원이다 보니 식당의 가격이 비싼 건 맞지만, 일 생필품 등의 가격이 육지랑 크게 차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울릉도가 물가가 비싸다라는 말이 유행해, MT나 친목도모회를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류/안주류를 사들고 오는데, 울릉도에서 구매하지는 않고 빈 병들만 투척하고 가는 바람에 입도비를 따로 받지 아니하는 울릉도는 벌이가 시원찮은 편.
         [[제주특별자치도]]와 마찬가지로 내륙지방과 고립되어 있는 탓에 특산식물이 많이 분포한다. 우리나라만의 특산식물이 328종 정도 인데, 울릉도에만 존재하는 특산식물이 36종으로 전체 특산식물 종의 1/10 이상인 셈. 넓이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편으로 제주도는 2배 정도인 75종이다. 대표적으로는 섬잣나무와 고추냉이, 명이나물 등. 식용은 아니지만 피부미용에 이용하거나 말려서 차로 끓여먹기도 하는 어성초도 있다. 명이나물은 요즘 뭍에서도 유명해지고 있다. 참고로 명이나물은 깊고 기묘한 맛으로 유명한데, 수가 적어져서 현재 울릉도산은 출이 금지되어있다.
         항공편이 없다. 다만 군인이라면 군 비행장인 [[강릉공항]]에서 격주로 1대씩 다니는 공군 수송헬기를 이용할 수는 있고, 응급환자 발생시에는 [[포항공항]]에서 UH-60 헬기가 출동한다. 때문에 뭍에서 울릉도로 민간인이 이용할수 있는 이동수단은 사실상 배가 유일하다. 때문에 외국인들이 가장 찾아가기 힘든 [[대한민국]] 땅으로 현지에서 외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2009년 울릉도를 방문한 관광객 272,555명 중 외국인은 838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0.3% 수준이다. 참고로 같은 해 [[제주특별자치도]]에는 6,523,938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이중 9.7%인 634,354명이 외국인이었다. [[미군|지구방위군]] 경계구역의 극서북단 코너에 위치한 현실상 여객선 타면 발에 채이는 게 외국인[* 미 '''해병대''', '''제7함대''' 간부, '''정치안보''' 외신 기자들 등.]인 [[백령도|국토 대편의 섬]]과 대조된다.
         2017년 7월 28일, [[롯데리아]]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pc방도 몇 군데 위치해있고 게임도 나름 잘 돌아간다. --초딩 때 한 번쯤 들어봤을 "울릉도 PC방 한 시간에 5천원"-- 실제로는 5천원까진 당연히 아니다. 물론 좀 비싼 곳도 있기야 하지만 그래봐야 1000원 중후대다.
  • 유민상(개그맨) . . . . 16회 일치
         [[개그 콘서트]]에서는 최초에는 비중이 별로 없었다가 [[뮤지컬(개그 콘서트)|뮤지컬]] 코너에 출연을 해서 좋은 응을 보였고,[* 팀 - 사랑합니다 편을 보면 쓸쓸한 노년의 아버지 역을 맡아 관객을 울린 적이 있었다. 정극 연기도 꽤 잘하는 편이라 류담처럼 개탤맨 기질이 보였다.] 한 때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에서 [[황현희]]한테 당하는 업자로 나왔고 [[초고속 카메라]]에서 열연했다가, [[파라킹 홈쇼핑]]에 출연했다.
         6월에는 이수지가 자신의 라디오 프로 가요광장에서 '진짜 오빠가 고백한다면 사귀어줄 수도..'라며 여운을 만들긴 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어하다가, 2018년 1월 이수지가 일인과 열애설이 터진다. 교제 기간은 1년으로 이미 첫 녹화 언저리부터 일인과 교제 중이었던 것. 어차피 예능은 예능일 뿐인데 별로 욕하는 사람도 없고 유민상 역시 쿨한 응이었다. 2018년 4월 14일 [[아는 형님]]에서 '이수지 열애설 터지고 심경 인터뷰가 밀려올 줄 알았는데 기자들에게 전화 한 통조차 없었다'며 씁쓸해 했다.
         어쨌든 덕분에 공식적으로 러브라인을 이어주려는 어떤 시도도 아예 없어진 상태이며, 맛있는 녀석들에서 일인 시청자와 썸을 타게 해주려는 기획을 한 두 번 보여주고는 끝이었다. 그리고 그는 [[미연시]]를 하며 흐뭇하게 만족하는 중...
         그 정도는 약과고,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안녕하세요가 아니라고 말해줘(약칭 안아줘)'에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안녕하세요 본편에서 아무도 이기지 못했던 '음료 빨리 마시는 여자'를 '''처음으로 이겼다.''' 그 여자가 다 마시는 데 약 6초가 걸린 면 그는 '''2초나 앞당겨''' 다 마셔버린 것. 결국 이를 계기로 그 음료 빨리 마시는 여자는 음료 마시기 내기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그가 주로 활약하는 코너들이 풍자와 해학을 통해 웃음을 주기보다는 직설적으로 정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이유로 재미를 감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유민상 본인이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러한 코너들에는 유민상이 항상 출연했기 때문.
          * 139회 방영분에서 100인으로 참가했을 때는 각각 4단계(지구과학 문제), 6단계(지리 문제)까지 생존했다. [[1대 100/적립금 문제 #s-5.2|특히 후전 6단계에서는 '''52명 중 최후의 2인'''이 결정되는 최고 난이도 문제가 출제되어 역대 두번째 단일 문제 최다 적립금인 '''1,000만원'''이 쌓였다. 그 뒤 결과는 여기를 참조.]][* [[1대 100/적립금 문제 #s-4.4|참고로 한 문제에서 최대 적립금이 쌓인 경우는 62회 후전 6단계며(1025만원) 여기서 2231만원을 받는 역대 100인 최고 상금 수령자가 나왔다.]]][* 여기서 같은 녹화분인 전전 이성미 편에서 최후의 2인 중 22번 도전자는 1단계에서 광탈했고, 91번 도전자는 7단계까지 생존했다.]
         한 시청자가 "그러면 연예인들도 평가해 달라"고 하자 평가는 이제 그만하겠다며 황급히 화제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가 대상이였던 대다수의 스트리머들은 이 일에 대해서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일부 스트리머들은 유민상 방송에 놀러오거나 팬이라는 응을 보였다.
         8월에는 스트리머 [[풍월량]]의 배틀그라운드 상자깡 방송을 장시간 도방[* 도둑방송 또는 도용방송이라는 뜻으로 아프리카 TV에도 있는 용어. 남의 허가 없이 자기의 라이브 방송에 남의 라이브 방송이나 다시 보기 화면을 띄우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트위치나 BJ의 방송 자체가 고유의 컨텐츠(저작권)이기 때문.]하는 일이 있었다. 트위치에서 허가 없는 도방은 금지[* 대표적인 사례가 하스스톤 카드공개 도방 사건이다. 블리자드의 카드공개 방송을 도방하던 다수의 하스스톤 스트리머들이 단체로 2일 정지 처분을 받았다. 블리자드의 카드공개 방송은 블리자드에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영상 도네이션 중 저작권 보호 요청 영상을 틀면 정지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트위치에서는 단시간 도방이 이미 문제 제기되었던 적이 있다. 영상 도네이션 등으로 '''허가 받지 않은 타 스트리머의 트위치 클립'''이나 '''유튜브 편집본을 송출'''하는 행위는 다시 보기 화면의 일부(도방)일뿐더러 엄연한 저작권 위 행위이기 때문이다. ~~트수의 암살 시도~~]되어 있다는 시청자의 지적에 "그런말 할거면 팔로우나 누르고 가라"는 식으로 다시 한번 트위치 스트리머와 시청자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트게더에 이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자 이를 비꼬는 듯한 댓글을 달아 다시 논란을 가중시켰다.
          * 원할머니 보쌈에서 CF 제의가 들어왔는데, 진행이 잘 되다가 이미지는 딱인데 인지도가 없어서 그냥 값싼 일인으로 대체되었다고 라디오에서 밝힌 바 있다.
          * 그리고 주변 개그맨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본좌|'''유본좌''']] 급이라고. 2012.07.31 방영한 안아줘(KBS joy) [[http://blog.naver.com/edubox123?Redirect=Log&logNo=120166861651|오덕페이트 체험 편]]에서 [[다키마쿠라]]에 응을 보이고 심지어 캐릭터([[유이(Angel Beats!)|엔젤비트 유이]])를 알아 보는 것으로 보아서는 [[오덕후|'''덕이 있는 자''']]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을 때에는 냉장고에 가슴 모양 푸딩이 들어있는 게 방송으로 나가기도 했다. 일본어를 대학 때 전공하다보니 일본문화에도 관심이 많고 일본어도 꽤 하는듯.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업적 점수 9200점으로 라이트 유저 수준은 확실히 넘는데, 하이잘 서버는 얼라이언스 진영에, 아즈샤라 서버는 호드 진영에 주캐가 있다. 연예계 대표 [[와저씨]]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블리자드]]에서도 홍보 겸 감사 겸 소장판을 [[군단(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군단 확장팩]] 때까지는 보내줬다고. 그런데 2018년 8월 [[격전의 아제로스]] 때는 안 보낸 모양. 게임 유튜버 [[김기열]]에게 '블리자드가 나를 버렸다'고 농 언급한 바 있다. 그렇긴 해도 격아 소장판 한국 버전에 문제가 많은 모양. 스토리 소설도 한국어 번역이 안돼있고 OST도 원래 그 전 확장팩까진 DVD였던 것이 다운로드 키만 제공된다. 아울러 북미판에는 들어있는 110레벨 부스트가 빠져있다. 특전 영상, 마우스 패드, 원화집 어느 것도 없다. 소장판 유저들에게 제공되는 '동맹 종족 영입 퀘스트'도 문제가 생겨 진행이 안되는 상태. 유민상에게 특별히 신경을 안쓴 게 아니라 그냥 소장판 자체에 신경을 안 쓴 모양.
  • 은혼/632화 . . . . 16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는 [[카와카미 사이]], [[키지마 마타코]]를 별동 병력으로 편성, 모선에 각기 돌입시켜 혼란을 야기한다.
          * 당시 관군에 있던 헨페이타는 신스케를 끌어내기 위해 마타코를 미끼로 쓰는데, 이때 생각지도 못하게 살인귀 사이까지 엮여든다.
          * 신스케와 사이는 협력해서 마타코를 도주시켰지만 자신들은 구속, 처형을 앞둔다. 이런 와중에도 신스케는 태평하게 사이에게 가담해줄 것을 권유한다.
          >'''살인귀 [[카와카미 사이]]'''
          연주 소리를 듣고 관군들이 다가온다. 무슨 짓이냐고 추궁하자 그는 조용히 듣기나 하라며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무렇게나 둔 칼이 발각된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 양이지사로 모는 시대. 시비가 일어난 동안 관군들도 행인들도 사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느라 정작 사형수에게 일어난 이변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 소녀를 감시하던 병력들을 쓰러뜨렸고 어느 새 소녀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없었던 것이다.
          * 신스케가 진입한 정확한 위치는 해방군 모선의 제 17구획이었다. 그와 대치하는 부대는 501 부대. 열세에 처했는지 다른 병력들에 원군 요청이 쇄도한다. 그러나 그들이 501부대를 원호하러 갈 기회는 없었다. 곧이어 제 7, 제 22 구획에도 돌격정이 진입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귀병대, 카와카미 사이와 키지마 마타코의 병력들.
          * 마타코를 구한 사이와 신스케는 사이좋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아무래도 상황은 그들이 생각한 거 보다 복잡했나 보다. 마타코는 신스케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 그가 마타코와 접촉했던 걸 목격한 정부의 개, 다케치 헨페이타에 의해 꾸며진 함정이었다. 사이는 벽을 사이에 두고 신스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신스케가 부추기긴 사이가 부추긴게 아니었냐고 대꾸하자 그는 단지 살아있는 전설이 어떤 남자인지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본 남자는 이랬다.
          >나를 위해 죽지 않겠나, 살인귀 사이.
          사이는 이런데서 권유하는 것도 바보같다고 말하지만, 그래서 신스케는 무엇을 위해 죽을 거냐고 묻는다.
          사이는 그 허풍이 실현된다면 이 목숨을 그 허풍을 위해 쓰겠다고 말한다.
          그는 마타코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같은 시각 감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양이지사들이 스스로 옥문을 나와 신스케와 사이를 해방시켰다. 어리둥절한 사이에게, 양이지사들이 말한다.
          사이가 구하려던 이들은 모두 신스케에게 포섭된 자들이었으며 관리 조차 포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16회 일치
         >오전 11시 정각, 시 외곽 - 배 상황
         머키워터 용병단이 수송 중인 금괴운차를 습격해 금괴를 컨테이너로 빼돌리는 하이스트.
          공범이 대형 교통사고를 내 운차의 경로를 바꿨다. 운차가 페이데이 갱의 위치를 지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건물 사이를 잇는 다리로 가자.
          머키워터 차량 두대-금괴운차-머키워터 차량 두대로 이루어진 행렬이 나타난다. 이때 금괴운차의 운전석을 공격할수도 냅둘수도 있다. 공격을 하건 하지않건 공범이 탄 포크레인이 등장, 금괴운차를 옆으로 밀어버린다.
          * 운 트럭을 입수한다!
          포크레인이 금괴운차를 도로 옆 낭떠러지로 밀쳐버렸다. 옆건물 비상계단, 포크레인 옆 계단을 타고 내려와 도살장 건물에 들어가자. 머키워터 용병이 강하니 주의. 도살장 안에 있는 경비 두명을 처리하면 천장에 박힌 금괴 운차가 보일 것이다. 기습 때 운차를 쏘지 않았다면 운차의 뒷쪽이 밑으로 가있다. 이 경우 뒷문에 C4를 설치해 금고를 떨어뜨려야 한다. 운차를 쏘았다면 운차의 앞쪽이 밑으로 가있다. 이 경우 전선을 쏴 운차를 떨어뜨린 후, 뒷문에 C4를 설치해 금고를 꺼내야 한다. 전선을 쏘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려도 운차가 떨어지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끔씩 차량 안에 불도저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15회 일치
          국가의 혼란도. 장관을 갈아치우던가, 소비재에 필요한 공업력을 할당하지 못했다던가, 핵을 맞았다던가, 병신같은 이벤트가 떴다던가 하면 생긴다. 높으면 군대의 전투 능력, 공업력 효율 등을 다 깎아먹는다. 일정 수준 이상 불만도가 생기면 자국 영토에서 란군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공업력(IC) 수치를 1 올려주는 건물. 무에서 공업력을 만들어 내는건 아니고 하루에 2 에너지와 1 금속 0.5 희귀금속을 처먹는다. 못 먹으면 공업력을 제공 안하니 주의.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게임 시작에는 이걸 짓는다. 33% 이상의 기시설이 지어져 있는 프로빈스에만 지을 수 있다.
          * Infrastructure(기시설)
          민주↔독재. 민주적일 경우 괴뢰국 해방으로 생기는 불만도가 감소하며, 점령지의 군 활동도 감소한다. 하지만 불만도 증가율이 증가하며, 선전포고시 발생하는 불만도 역시 증가한다. 민주 국가의 경우 아무런 명분 없는 선전포고가 불가능하다.
         정치 슬라이더 중 동원령↔동원 해제 슬라이더는 플레이어가 직접 움직일 수 없다. 면 동원령 관련 지시전을 발동시켜 이동시킬 수 있을 뿐이다. 각 동원령들의 상태는 다음과 같다.
         인력이 엄청 느리게 늘어서 없는 것으로 치는게 낫다. 이 단계에서 생산이 완료된 모든 유닛들은 숙련도 80을 달고 나온다. 1936년 미국이 이 상태로 시작한다. 일적으로는 Prolong Terms of Service(복무 기간 연장)디시전을 통해 징병제를 시행할 수 있다.
         ==== Conscript - Normal Term(징병제 - 일적인 기간) ====
         동원령 4단계. "일적"이라고는 하지만 1년을 복무하는 징병제다.
          선택한 내각진의 암살을 시도한다. 국가수과 정부수은 암살할 수 없지만 해당 인물이 다른 내각도 겸임하고 있다면 암살할 수 있다. 가끔 AI가 저우언라이같은 네임드를 암살해버리면 기분이 묘해진다.
          선택한 지역의 란도를 올린다. 대상 국가의 국민지역에는 먹히지 않는다.
         코민테른의 우두머리. 1936년 기준으로 불만도가 20%쯤 있는데, 이걸 열심히 깎다보면 "대숙청" 이벤트로 불만도가 추가된다. 꽥. 대숙청 이벤트가 발생하면 연구진/장관/장군인 [[미하일 투하체프스키]]를 더이상 쓸 수 없게 되니 주의. 초에 쓸 구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가 독일에게 발리고 강화조약을 맺으면 인도차이나 연방의 소유권을 넘겨 받을 수 있는 디시전이 발동한다. 이러면 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이 해금되는데, 미국은 중일전쟁과 그에 딸린 각종 이벤트 때문에 일본을 싫어할게 뻔하므로 이 디시전을 발동한다.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면 미국의 애완견[* 민주화, 중국 지역을 중화민국에게 환, 모든 괴뢰국 해방, 한도가 대한민국으로 독립, 영미와 군사 통행권&불가침 조약 체결, 불만도 +20%, 미국의 괴뢰국화.]으로 전락한다. 인공지능이 잡을 경우 100% 미국과 네덜란드령 동인도에게 엠바고 처먹기를 선택하고, 이후 "진주만 공습" 디시전을 갈긴다.
         1936년 기준으로 시작하면 불만도가 10%인데, 게임 시작하자마자 "난징십년" 이벤트로 불만도가 20% 증가해 30%가 된다. 야 신난다. 1933년 시나리오에서는 시작부터 불만도 50%을 찍는다. 거기다가 당시 중화민국이 국민당과 군벌들의 연합체에 가까웠던 것을 영해 대다수의 사단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있다.
  • 구승빈 . . . . 15회 일치
         시즌 3 롤드컵 이후로 다데와 댄디가 예전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롤챔스 윈터 2013-2014에서는 각성한 마타와 함께 다시 팀의 확실한 구심점으로 주목받았다. SKT T1 K를 상대하게 된 결승전을 앞두고 거의 모든 이가 "모든 면에서 SKT T1 K가 우세하나, 바텀이 유일한 변수"라고 평가할 정도. 임프 본인도 경기 전 피글렛과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며 보는 이들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임프가 1인분을 간신히 해낼 동안 다른 팀원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한타에서도 말려 팀의 3대0 압도적 패배. 사실 임프도 '그나마' 잘했을 뿐, 라인스왑이 걸린 상황에서 마타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상대 라이너를 압박하려다 크게 손해를 보는 플레이를 두 번이나 보여주었다(1세트에서 임팩트에게 솔킬을 따일 뻔했으며, 3세트에서는 페이커에게 역관광당해 플래시를 낭비했다). 각 세트 중에는 본인이 밀리는 상황을 ~~청년가장으로서~~ 타개해야한다 생각했는지 무리한 포지셔닝,킬욕심을 내다가 먼저 끊기거나 하는 등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을 정의하자면 '''캐리형 원딜류 완전체'''. 데프트가 강점이라 평가받는 부분이 코어템 하나의 격차 정도는 뒤집을 수 있는 끝판왕의 딜링이라면 임프의 강점은 게임을 뒤흔드는 변수 생성능력. 임프가 게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항상 아군도 적도 예측하지 못하는 공격적이고 리스크가 큰 스타일의, 원딜의 정석이라기보단 변칙의 정석을 보는 듯 하다. 마타라는 목줄이 없다면 게임을 끝도없이 던진다고 평가받을 정도. 삼성 화이트의 운영의 핵심이라 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중의 '''원딜이''' 갖게되며[* 본래 중 타이밍에는 미드 라이너나 딜러 챔피언을 고른 탑 라이너가 캐리를 맡고 원딜은 후을 담당하는 것이 EU스타일의 정석이다.], 탑의 끝판왕이라고 평가받는 루퍼와 함께 팀의 전략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건 그 어떤 팀의 어떤 원딜러도 가질 수 없는 최고의 강점인 것이, 아무리 마타의 서포팅을 받는다 하더라도 오더를 넘어서는 전과를 내는 건 데프트 정도의 피지컬과 게임을 보는 눈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데프트는 상대적으로 수비적이고, 오뀨나 애로우는 이런 운영적인 면에서 약세를 보인다. 데프트가 항상 모든 팀이 꿈꾸는 이상적인 원딜의 이미지라면, 임프는 대조적으로 모든 팀원을 자기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타입의 원딜의 이미지. 팀원들이 맞춰줄 경우 가장 기계적이고 정형화된 포지션인 원딜임에도 극한의 변칙플레이를 보여준다.
         중국의 LGD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미드정글의 부진과 상대팀의 임프 집중공략 속에 끊기는 빈도가 화이트 시절에 비해 급격히 높아진 것이 문제. 결국 데프트의 EDG에 밀려 4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시즌 후에 들어 미드가 닉변을 하고 심기일전하더니 폼이 확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폭풍 연승 행보를 보여주면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에서 3:2로 졌으나 일단 LGD 입장에선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봐도 좋을듯
         비시즌에는 더블리프트와 던지기 배틀을 벌이고 년만에 돌아온 VG의 바실리에게 솔킬을 따이는 등 팀의 리빌딩과 함께 폼이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시즌 5 서머 우승 후 커리어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시즌 6, 7, 8을 봐도 라인전 실력과 정글콜 및 소수교전 유도를 통해 초중 캐리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마린이라도 있던 시즌 6을 넘어 로스터가 폐기물 급인 7. 8시즌에도 LGD가 꼴아박다가도 가끔 강팀을 잡는 것을 보면 임프 중심의 난전으로 초중에 상대를 당황시켜 빨아들이는 패턴이 가끔 먹힌다. 그러나 아무리 LPL이 LPL이라도 이 패턴이 매번 먹히면 말이 안 되는 것이고, 정상적인 후 한타로 가서 임프의 포지셔닝은 LCK 말고 LPL에서도 정상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팀 성적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약한 팀의 전력과 본인의 과도한 공격성향으로 인한 미친 듯한 데스누적은 임프의 후 한타 실력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게 만든다. 시즌 4에 미스틱은 NLB 전용 왕자님이었고 우지는 중국 미친개였지만, 우지와 미스틱이 한국식 운영을 모방하는 팀에서 공격적인 라인전 능력에 뒷받침되는 엄청난 한타 안정감을 보여주며 시즌 7 롤드컵 4강을 찍는 시점에서 LPL 바닥을 떠도는 임프와 사실상 신세가 역전되어버렸다. 시즌 5만 해도 임프가 연봉과 커리어를 다 가진 상황이었지만, LPL의 수준이 올라가고 몬테에 의하면 LPL에서 VG보다도 더 부패했다는 LGD(...)에 사로잡힌 임프는 자신이 메타와 트렌드의 발전에 맞게 진화했음을 검증받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연봉과 커리어를 교환한 셈이 되어버렸다.~~루키는 2년을 참으니 재키러브가 떡상하는데 임프는......~~
          * 시즌 3 롤드컵에서 공개된 롤드컵 애니버전 Road to the cup(롤갤 8대 관문)에 등장했는데, 실제와 애니속 작화를 비교해보면 딴사람이다. 머리색도 다르고 심지어 미친고딩은 커녕 판타지 만화 주인공 마냥 진지하다. MVP 마크와 (심지어 이 영상이 올라온 시점은 삼성에 팀이 인수되어 MVP Ozone에서 Samsung Galaxy Ozone이 된 시점이였다) 등 뒤에 달고 있는 베인의 석궁을 확인하고도 임프인지 몰랐다는 응을 보이는 유저들도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PX_IQkeXq9g&feature=youtube_gdata_player|오글거림 주의]]
          * 2013~2014 판도라 tv 롤챔스 윈터 16강 팀다크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MVP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인섹 사건에 버금가는 엄청난 방송사고였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1275300.htm|관련기사]] 원딜이 cs 38개 먹고 MVP를 받은 상황.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로 팀 다크가 맹비난을 받는 동안, MVP 인터뷰에서 임프는 어떻게 이 경기에 임했냐는 조은나래의 질문에 "프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로 임프가 철 좀 들었다, 얌전해졌다 라는 응이 꽤 나왔다.[* 롤드컵 이후로 뭔가 깨달은게 있긴 한 듯. 임프 한명 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 실제로 롤드컵 가서 푸짐하게 똥싸고 오셨던 마타와 다데가 부활했으며 성적도 좋게 나왔다. 그리고 팀 다크와의 2경기에서 같이 던지는게 아니라 일말의 자비도 없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끝냈다. 어쨌거나 정신적으로 성장한 면은 분명히 있는 듯.]
          * 인벤에 개인 채팅화면이 유출되어 많은 논란을 샀다. 문제는 그 화면에서 피글렛 선수를 뒷담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채팅 참여 목록에 나진 소드의 프레이 선수가 있었다는 것도 논란을 더 키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 채팅을 유출한 사람에게 더 큰 잘못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료 선수를 뒤에서 몰래 욕을 한 것이 대중의 감을 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후 피글렛이 신나게 던지며 이 짤방은 수없이 재평가되었다~~
          * 2016년 연말 중국에서 취객과 다툼이 일어나 상해를 당했다. 처음에는 중국인 취객 2명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임프를 때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한국인 2명이 중국에 대해 욕을 하고 있었고, 이를 가까이서 듣던 임프가 "그건 좀 아닌 듯 하다"라고 발하여 다툼이 일어나 취객 2명이 임프를 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술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를 왜..~~
          * 2018년에는 드시 국제대회에 가겠다고 닉네임을 '''imp8'''로 바꾼다고 한다. ~~물론 [[LGD Gaming|팀이 팀인지라]] 갈 지는...~~
  • 박화요비 . . . . 15회 일치
         그녀는 EP 앨범 '쪽'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 '가수가 이 노래 저 노래 똑같이 부르면 곡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멀티 보이스 컬러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고, 5집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는 창법이 바뀐 것에 대해서 자신의 꿈은 '멀티 보이스 컬러'라고 밝힌 바 있다.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한 테크닉 중심적인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상태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리즈 시절로 보는 2~3집 활동 당시에도 1집 때와 창법과 음색이 바뀌었다고 성토하는 팬들도 많았다.]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중심적이고 감성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의 그것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거의 모든 앨범을 명으로 추천하고 있고, 간간히 내는 싱글이나 OST들 역시도 팬들의 호감이 굉장히 높은 편.
         == [[화요비/음 목록|음 목록]] ==
         [[화요비/음 목록]] 참조.
         대학 시절, 부모님의 대가 있었지만 클래식을 접고 실용음악과로 진로를 바꾸었다. 1집 앨범이 나오던 시절부터 집안의 대도 어느 정도 누그러져갔다고. 그녀는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피아노를 치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후 일본 활동, 일부 팬들 사이에서 화요비 최고의 명으로 꼽히는 5집과 리메이크 앨범을 거친다.
         예능의 파급력은 음원에도 미쳐, 그 때를 즈음 하여 냈던 음원인 <쪽>, <나 같은 여자>, <마취> 모두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KISS KISS KISS>는 논외로 친다~~ 정규 7집 타이틀 곡 <BYE BYE BYE>는 당시의 음원 강자였던 [[원더걸스]]의 <2DT>를 위협하는 성적을 냈다.
         2014년 12월 30일, 앨범 발매 전 연말공연 중 실신하여 병원에 후송되어 콘서트가 도중 취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전액 환불 조치를 해주고, 소속사의 대를 무릅쓰고 화요비가 무릎을 꿇고 사과 동영상을 올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 까지했다. 다음날 공연에는 차질 없이 진행하여 잘 마무리 하였다.
          * 성대 수술 후인 2008년도 콘서트에서는 데뷔 초의 음색으로 '어떤가요', '그런 일은' 등 성대 수술 전의 스타일을 완벽히 재현했다.
          * 데뷔 초과 2013년의 '그런 일은'을 비교해보면 데뷔 초 음색이 발라드에 더 적합하긴 하지만, 최고음 부분은 13년 쪽도 손색 없는 고음인 데다 성량은 더 크고 발성은 더 탄탄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재 화요비는 '데뷔 초의 부드러운 음색은 예전만 못하지만, 카랑카랑한 고음은 데뷔 때와 비슷하게 낼 수 있으며 흑인음악적 소울, 음색의 유니크함, 완숙도나 성량은 지금이 발전된 완성형 보컬' 이라는 것이 팬들의 중론. 하지만 예전의 음색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
          * EP앨범 '쪽' 활동 당시 [[카라(아이돌)|카라]]의 [[한승연]], [[다비치]]의 [[강민경]]과 함께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를 커버한 적이 있다. [[흠좀무]]. 포지션은 [[옥주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조합일 수 있는데, 그 당시 화요비는 20대였고 한승연과 강민경이 지금과 같은 위상이 아니었고, 당시 화요비는 우결로 상한가를 달리고 있었으니, 그 중에 나름대로 가장 핫한 스타였다...]
  • 송병구 . . . . 15회 일치
         2004년 삼성전자 칸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고, 첫 진출한 CYON 2004 챌린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리그#EVER 2005 스타리그|EVER 스타리그 2005]] 4번 시드를 따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주목받았던 신예 프로토스 [[오영종]](당시 [[화승 OZ]]), [[박지호]](당시 [[MBC게임 히어로]])가 각각 우승, 4강 진출로 이름을 알리는 동안, 송병구는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1승 2패, [[스타리그#2005 So1 스타리그|So1 스타리그]]에선 전패로 탈락하는 등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또한 삼성전자 칸 소속의 많은 선수들이 개인리그에 진출했던 2006 시즌 중후에도 유독 송병구는 하부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 8강에 진출한 송병구는 이제동에게 1:2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하였다. 면 로스트사가 MSL에서는 4강까지 올랐으나 허영무에게 0:3으로 탈락하였다. 이런 부진은 1년 내내 지속되었다. 박카스 스타리그 2009 16강에서 1승 2패로 탈락하였으며 EVER 스타리그 2009에서도 8강에서 이영한에게 1:2로 탈락하며 부진을 거듭하였다. 하지만 2009 WCG에서 결승에 올라 3연속 결승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WCG 명예의 전당을 노렸으나 이제동에게 1:2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곧이어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16강에서 탈락하며 이 부진은 2010년까지 계속되는 듯 싶었다.
         자유의 날개로 완전 전환된 12 ~ 13시즌 프로리그 전기에서도 분위기를 전시키지 못했고 승보다 패가 많아지게 되면서 그동안 송병구에 가려져서 빛을 보지 못한 정윤종, 김유진, 김준호등의 프로토스 선수들에게 점점 밀리게 됐다.
         프로리그 후기 리그에서 송병구는 군단의 심장으로 바뀐 자신의 첫 경기에 승리를 하면서 동시에 프로리그 200승과 스타리그 100승을 최초로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송병구선수는 정명훈선수와 인연이 깊은 편이다. 송병구가 만년2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우승했을때의 상대는 정명훈이였으며 대로 정명훈도 2인자의 꼬리표를 떼고 우승했을때의 상대는 송병구였다. 공식전 10승 8패로 조금 앞서있다.
         * 2012년 7월 10일 SK플래닛 프로리그 11-12 시즌2 2라운드 삼성전자 vs CJ 후전 1세트 송병구 승
         * 2012년 5월 26일 SK플래닛 프로리그 11-12 시즌2 1라운드 삼성전자 vs 웅진 후 2세트 김명운 승
         * 2012년 7월 1일 SK플래닛 프로리그 11-12 시즌2 2라운드 웅진 vs 삼성전자 후전 4세트 김명운 승
         * 2012년 5월 27일 SK플래닛 프로리그 11-12 시즌2 1라운드 STX vs 삼성전자 전 2세트 송병구 승
         * 2012년 7월 31일 SK플래닛 프로리그 11-12 시즌2 3라운드 삼성전자 vs SKT 전전 1세트 송병구 승
         * 2012년 8월 25일 SK플래닛 프로리그 11-12 시즌2 3라운드 삼성전자 vs 제8게임단 전전 2세트 송병구 승
         * 2012년 8월 7일 SK플래닛 프로리그 11-12 시즌2 3라운드 CJ vs 삼성전자 전전 3세트 이경민 승
         **'''스타리그 100승 달성''' - [[임요환]], [[홍진호]] 다음 역대 세번째이며 프로토스 유일<ref>{{뉴스 인용|title='사령관' 송병구, 역대 3번째 스타리그 100승 대기록 달성|url=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259548&ctg=1601|newspaper=중앙일보|date=2012-05-22}}{{깨진 링크|url=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259548&ctg=1601 }}</ref><ref>{{뉴스 인용|title=삼성전자 송병구, 레전드의 열에 오르다. 임요환-홍진호에 이어 세 번째 온게임넷 개인리그 100승 점령|url=http://esports.dailygame.co.kr/view.php?ud=201205222119450060784|newspaper=데일리e스포츠|date=2012-05-22}}</ref>
         *공룡토스 : e스포츠 주간 잡지인 esFORCE에 실린 공룡 분장에서 유래되었으며, 규모가 큰 송병구의 경기 스타일과도 조화를 이룬다. 공변뱅(공룡으로 변신한 뱅구)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해변김(해설로 변신한 [[김정민 (프로게이머)|김정민]]), 코변김(코치로 변신한 [[김현진]]) 등의 축약형 별명과 유사하다. 2008 시즌 중부터 프로토스의 ‘육룡’이라는 표현이 유행하면서 더욱 굳어진 별명
  • 이석훈 . . . . 15회 일치
         초기에 그의 목소리가 SG워너비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쉰 떡밥~~시간이 약이라고 이젠 팬이든 안티든 일 음악 애호가들이든 별 말하지 않는 편이다. 훈훈한 외모와 중저음 목소리도 한 몫한 듯.
         물론 기존 채동하 파트를 김용준과 나눠 부르긴 하지만, [[https://youtu.be/OYcx8blRyj0?t=7m4s|2008년]]과 [[https://youtu.be/qvhttEgA-K8?t=2m19s|2009년]]의 「내 사람」 라이브 영상만 비교해봐도 훨씬 깔끔해졌고 바이브레이션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SG워너비 5집 《My Friend》부터 합류 했으며, 전 멤버 [[채동하]]가 가창력도 뛰어나고 이뤄놓은 것이 많았기에 합류 초 안티들의 공격을 무지하게 받았다.(...) 'MC몽의 동고동락'이라는 라디오에 출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다들 알다시피 「내 사람」같은 경우는 애초에 채동하에게 맞춰서 작곡된 노래다.[* 원래는 김진호, 채동하가 후렴을 나눠서 부르기로 하고 녹음을 했는데, 김광수 사장이 듣더니 '진호가 다 부르는게 낫겠다.'라고 해서 발매 연기 후 재녹음. 이 사건으로 채동하가 '내 목소리의 힘이 이것밖에 안됐나'하고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 현재 음원은 1절과 2절은 모두 김진호가 부르고, 3절에서만 나눠서 부른다. 라이브는 재녹음 전 파트 그대로...][* 이석훈이 합류한 이후에는 기존 라이브에서의 채동하 파트를 이석훈과 김용준이 나눠서 부른다. 아주 맨 처음에는 이석훈이 혼자 ~~힘들게~~불렀지만 김용준이 나눠부른 이후에는 연습도 많이 해서 고음이 꽤나 깔끔해졌다.~~덕분에 김용준은 파트가 늘었다~~]
         == [[SG워너비/음 목록#s-6|음 목록]] ==
         [[SG워너비/음 목록#s-6|문서 참고]].
         남자 보컬리스트 특집에 2번 참여했으며, 1승 했다. 이 때 타 남자가수들 평이 '첫 무대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거임?' 이후 2011년 11월 말부터 불후의 명곡 2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최백호]] 편에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는데...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적이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을 때와 편곡의 방향이 아주 묘하게 비슷하다. 착각이거나 혹은 [[아코디언]]과 [[도네온]]의 차이 때문일 수도...][* 참고로 이 「낭만에 대하여」 무대는 이석훈 불후의 명곡 무대 탑 중 하나다.] 여러 번 참여했으나 번번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의 특징상 풍부한 중저음보단 높고, 개성있고, 자극적인 무대를 선호하기 때문인듯 하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15회 일치
          * 메라스큐라는 저 둘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두려울게 없다고 으스대나 [[(일곱 개의 대죄)|]]이 그 방심을 노려 폭스 헌트로 심장을 노린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간단히 독을 정화해 을 구하고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압도적인 힘으로 메라스큐라를 박살낸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난건 코란도의 중심부였으나, 그 힘이 내뿜는 여파는 외곽에 있는 일행에게까지 날아왔다. 멀린은 일찌감치 퍼팩트 큐브로 엘리자베스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를 보호했다. 엘리자베스가 멜리오다스의 상태를 보고 폭주했다고 생각하나 멀린의 말에 따르면 통상적인 폭주와는 전혀 다르다. 그를 감싼 검은 기운이 주체할 수 없이 용솟음쳐서 걸치고 있던 갑옷 조차 하나씩 터져나간다. 엘레인과 상공에 있던 [[(일곱 개의 대죄)|]]이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적인 메라스큐라 조차도 일곱 개의 대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그녀는 저 상태의 멜리오다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에스카노르와 멜리오다스가 격리되자 메라스큐라는 금방 색했다. 일행 중에 가장 무서웠던 둘이 제외됐으니 나머지는 "먹이"에 불과하다고 교만을 떨었다. 은 그 꼴을 봐주기 힘들었다. 엘레인을 뿌리치고 뛰어내린 이 장기를 발휘했다. "폭스 헌트". 목표는 메라스큐라의 심장.
          메라스큐라가 비웃음과 함께 "데들리 포이즌"을 선사했다. 물대포 처럼 독액이 뿜어나왔다.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수가 없었던 은 그 독을 뒤집어 쓴 채 추락했다.
          * 엘레인이 서둘러 다가오려 했지만 이 막았다. 그가 당한 이 독, 보통 독이 아니다. 데들리 포이즌은 메라스큐라의 소화액이다. 무시무시한 강산인데다 피어오르는 증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의 불사신 육체도 이 독 앞에서는 무력했다. 독액이 그의 몸을 녹였고 증기가 남아서 재생하는 것 보다 빠르게 그의 몸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엘레인은 그가 한 줌의 핏덩이와 해골로 변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때 그녀를 대신해 엘리자베스가 나섰다. 그녀는 독기가 자욱한 의 곁으로 주저없이 다가갔다. 메라스큐라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독기가 그녀에겐 통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을 향해 손을 뻗고 여신족의 힘을 발휘했다. 그건 마법이나 주술이라기 보단, 마치 명령. 언령이라고 부를 만했다.
          언령에 따라 메라스큐라가 자랑하던 맹독이 순식간이 정화되어 간다. 뼈 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가던 이 빠르게 회복했다. 메라스큐라가 엘리자베스를 "더러운 여신족"이라 욕했지만 그녀에게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멀린을 앞세운 일곱 개의 대죄가 마지막 처분을 내리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멀린은 그녀를 "어리석은 메라스큐라"라고 지칭했다. 대죄를 얕보고 뱀의 형태를 드러낸게 메라스큐라의 패착. 차라리 통상의 모습으로 마력을 발휘했다면 골치 아픈 상황으로 전개시킬 수 있었을 거라고 멀린은 혹평을 내렸다. 박할 말은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라스큐라는 분함을 억누르고 달아날 방법을 모색했다.
  • 최준석 . . . . 15회 일치
         대단히 몸집이 크고 느린 선수.[* 사직구장 펜스 직격타에도 2루에 못갈 정도다.] [[KBO]] 프로필 상 187cm/130kg 라고 나와있지만, 최소 150kg~~[[김정은]]~~은 넘었다는게 중론이다. [[이대호]]와 옆에 있으면 이대호가 날씬해보일 정도. 이대호가 더 키가 크긴 하지만(194cm) 비슷한 키에 이대호가 125kg라는걸 생각하면 190cm 가까운 장신에 비대한 체격을 가진 최준석은 일 체중계로 잴수있는 체중(150kg)은 훨씬 넘었을 확률이 높다. 야구선수 특성상 기본적인 체중만 해도 100kg에 가까울 테니...[* 삐쩍 마른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조차 키가 192cm이다 보니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간다. 최준석과 비슷한 신장에 같은 [[1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병호]], [[오재일]], [[채태인]]등도 100kg 전후의 거구. 최준석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로 2017년 kt에 입단한 1루수 한기원이 있다. (지금은 살을 뺀 상태) 프로필 상으로는 182cm/130kg이지만 실제로는 141kg라는게 기사에 나온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성적 편차가 큰 것도 있었지만.)]
         주루 플레이나 수비가 안되는 [[지명타자]]를 35억원이나 주고 영입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는 응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관리 실패로 인해 체중이 점점 불어나서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안고 있다는 점이 염려스런 부분이다. 최준석이 두산으로 트레이드되기 전이었던 2005년 말 [[이대호]]가 체중 감량을 목표로 통도사로 들어갔을 때 일각에서 '최준석은 왜 안 가냐'라고 응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롯데 구단이나 감독은 최준석 영입으로 인한 우산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기존의 1루수인 [[박종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굴욕인 것이, 누적 스탯을 보고 따질 것이 아니라 출루율을 비교하면 최준석은 커리어 .351, 13시즌 .376을 기록했다. 박종윤은 커리어 .294, 13시즌 .298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NC의 대졸신인 [[권희동]]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이다. 거포라고는 불릴 수 없지만 [[대타]]로서는 확실한 일발장타력을 갖춘 박종윤이 1루수로는 노답이라고 평가되는 이유가 선구안임을 감안하면 둘의 타격은 레벨이 다르다. 한편 [[1루수]], [[좌익수]], [[지명타자]] 자리에 구멍이 뻥뻥 뚫린 롯데의 상황상 지명타자 자리 고정이 큰 문제는 아니므로 수비능력 또한 무조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최준석의 통산 스탯이 거포라고 하기에 부족한 것은 최준석이 파워툴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늘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건강한 최준석이 [[잠실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거포임을 부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론적으로 최준석 영입이 상당히 비판받는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체중관리와 부상이다. '''분명히 건강하면 팀에 도움이 될 선수이지만 부상 위험이 정말로 큰 선수'''를 '''포스트시즌 짝 성적'''과 '''FA시장의 과열'''로 인해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어야 할 것이다.
         시즌 초에는 연이은 부진으로 35억은 오버페이라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시즌 중 이후 타격감이 살아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이자 이전의 비난은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시즌 후들어 페이스가 떨어지는 바람에 시즌 종료 후의 성적은 극심한 타고투저였음을 감안하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지만 타율 0.286, 23홈런, 90타점으로 꽤 괜찮은 편. 4년간 35억이라는 가격에 관해서도 괜찮게 나온 시즌 성적과 더불어 계속되는 FA시장의 과열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 가격이면 납득할 수 있다는 식의 재평가도 이뤄지는 중. ~~그리고 도루 쿠폰도 채웠다~~
         '''전기 병살 1위, 후기 진격의 자이언츠의 장본인'''
         결국 2018년 2월 11일, 이전에 했던 말을 번복하고 조건없는 사인 앤 트레이드로 NC행이 결정되었다. 연봉은 본인이 말했던 5천만에 근접한 5,500만 원.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11&aid=0000821910&redirect=false|김경문 감독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2014년 두산의 FA [[최준석|3]][[이종욱(야구선수)|인]][[손시헌|방]]이 모두 NC에서 김경문 감독과 재회하게 되었다. 허나 NC 팬덤은, [[리빌딩]]을 천명하면서 이종욱, 손시헌과 저렴한 금액에 재계약하고 [[조영훈]],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를 내쳐놓고는 최준석 영입이 말이 되느냐는 응.
         최준석의 가장 큰 단점은 '''[[똥차(야구)|발이 엄청나게 느리다는 것]].''' 주자로써 평균은 커녕 압도적 꼴찌 수준의 주력을 자랑해서 타격으로 벌어놓은 점수의 쯤은 베이스 러닝으로 날려먹기 마련이다. 게다가 빠른 타구속도 덕에 넓은 [[잠실 야구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구장에서 '''담장 맞추는 1루타''' 같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마디로 '''주루에서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타자다.''' 2017 시즌 종료 기준 통산 [[병살타]]도 162개로 은퇴선수까지 포함하면 10위, 현역선수 중에서는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통산 1위는 ~~당연히~~ [[홍성흔]]의 230개, 현역 1위는 [[정성훈]]의 211개.] 단순히 주루가 느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 대타 출장시나 경기후에는 이 느린 발과 수비포지션이 없는 것 때문에 거의 드시 [[대주자]]나 [[대수비]]를 대동해야 하는데, 보통 대수비를 겸하는 대주자까지 2명, 어쩌다 수틀리면 대주자 대수비 따로 해서 3명까지 한번에 쓰게 된다. 조원우 감독이 최준석의 기용을 꺼리고 결국 FA에서 잡지 않은 데에는 단순히 발이 느려서 점수 덜 먹는다는 것이나 병살 잘 치는 생산성 문제도 있지만 이 로스터 낭비 문제가 더 크다. 알다시피 프로야구 로스터는 매우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최준석 때문에 좌완이나 사이드 원포인트 혹은 패전조급 릴리프를 타팀보다 한명 덜 써야 한다고 하면 확 와 닿을 것이다. 최준석의 타석에서의 생산성이야 전성기 때는 그걸 감안하고도 쓸 만큼 좋았고 노쇠화가 진행된 지금도 꽤 좋은 편이지만 릴리프 한명 덜 쓰는 단점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특급까진 아닌지라.
         절친인 이대호와 플레이 스타일까지 정말 똑같다. 물론 클래스는 차이가 나지만. 또한 이대호는 최준석에 비해 유연성과 내구성이 월등해 주전으로 1루 수비를 소화할 수 있는 면 최준석은 풀타임 1루 수비도 힘들다. 1루 수비가 가능한 것은 의외로 가치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여기에 최소한의 주루 플레이조차 안되니 최준석을 영입한 팀은 최준석 하나 쓰려고 대주자, 대수비까지 3명을 기용해야 한다.
          * 2000년대 후부부터 군대 언제 가느냐는 게 두산 팬들의 만년 떡밥이던 시기가 있었다. 2010년을 기점으로 나이가 꽉 차 상무 입대 시기는 지났고 공익요원으로 가야 하는데,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거듭된 수술 때문에 면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리고 2012 시즌 후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920907|기사가 떴다.]]
          * 생김새만 보면 한 성질할 것 같지만 실제론 정대이며 목소리도 나긋나긋하다. 인터뷰한 것을 보면 덩치와 목소리가 매치가 안 될 정도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15회 일치
         전통적인 중세 유럽의 제국 관념에서 '동쪽의 제국'[* 서쪽은 신성로마제국]을 차지하던 비잔티움제국은 11세기부터 이어진 튀르크의 지속적 공세앞에 아나톨리아[* 지금의 소아시아도] 내륙을 영구상실했고, 그 이후 내륙지방을 지배해온 룸 술탄국의 멸망이후 부상한 오스만의 공세에 아나톨리아 최후의 거점인 니코메디아까지 함락당하며 아나톨리아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는 중세까지 비잔티움을 지탱하던 아나톨리아의 풍부한 생산력[* 지금도 터키는 유수한 농업국이다.]과 그에 따른 인적 자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대로 오스만은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은 꾸준히 확장하여 트라키아와 발칸의 패권까지 장악하기에 이른다.
         오스만에 대한 격도 한편으론 시행되었는데, [[헝가리]] 위주로 시행된 세번의 [[십자군]]이 그것이다. 특히 1444년에 마지막 십자군에서 십자군은 카라만의 족장인 이브라힘 베이가 란을 일으킨 틈을 타, [[모레아 전제국]][* 현재의 펠로폰네소스 도] 친왕 콘스탄티노스[* 후의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연합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체사리니 추기경의 무리한 휴전협정 파기덕에 멋대로 나아갔던 헝가리-폴란드 연합군[* 당시 헝가리와 폴란드는 [[동군연합]]이었다.]은 패배. 왕이었던 울라슬로도 전사하면서 참혹하게 끝난다. 홀로남은 콘스탄티노스는 외로이 튀르크의 공세를 [[헥사밀리온]] 장벽에서 막았으나 결국 헥사밀리온은 무너지고, 친왕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거기다가 제위과정도 순탄치 않아서, 제위를 노리고 동생 데미트리오스가 통합파의 지지를 얻고[* 정작 그는 피렌체 공의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위를 차지하려하기도 했다. 그에겐 다행히도 이 문제는 태황태후인 엘레나 드라가시가 직접 콘스탄티노스를 황제로 지명해서 끝이 났다.
         1451년 무라트 2세가 죽고 새로이 술탄으로 오른 이는 메흐메트 2세였다. 사실, 그는 1444년에 이미 즉위한바가 있으나 동쪽에서 카라만이 란을 일으키고, 발칸에선 비잔티움의 사주를 받은 무라트의 동생 오르한이 폭동을 일으키고, 헝가리가 십자군을 선포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자 재상 할랄 파샤의 주도로 무라트 2세가 복위돼 퇴위되버린(..) 굴욕을 간직한 이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유럽군주들은 그를 애송이취급하면서 무시해버렸고, 이때문에 오스만이 실제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때도 느릿느릿 관망만 하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사실 실제론 자기들 이권다툼이나 나라 내실다지기가 더중요했던게 크다. 바로옆에서 초거대세력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하던 제국을 무시한 이탈리아 중견국들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러나 그는 로저 크롤리의 표현대로 '동방의 알렉산드로스'를 노린 이였고, 이는 말년의 나폴리 침공에서도 잘 드러나는 일면이다. 아무튼, 그의 두번째 즉위당시 아무도 그의 야망을 모르거나 무시했고, 이는 유럽군주들의 가장 큰 실수로 남는다.
         우선 서유럽 국가와 비잔티움 사이에 묵혀뒀던 감정이 4차 십자군때 콘스탄티노플 약탈과 라틴 제국 성립으로 폭발한게 컸다. 이 때문에 정교회를 믿는 제국민들은 서유럽의 가톨릭 교회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고,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내세우는 동서대통합은 종교계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제국에서도 종교적 보수성이 매우 강한 지역[* [[모레아 전제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이라 발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서대통합이 '확실하게' 정교회 전통을 단절시키는 면 별다른 군사적 보호는 제공하지 않고, 이슬람의 정복은 아직 술탄의 관용에 호소하여 정교회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가망이 더 크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교황의 삼중관보다 차라리 터키인의 터번을 택하겠다."는 말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강성한 정교회국가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은 자신들의 라이벌이었던 노보고로드 공화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과 싸우느라 바빴고, 타타르의 멍에를 벗은지 얼마안되서 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스크바 대공국과 비잔티움 사이에는 아직 몽골계 칸국이 가로막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요안네스 8세때 잠시 진행된 동서교회 통합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동유럽에서 정교회와 가톨릭의 감정적 대립은 매우 심각했다. 예를 들어, 이 무렵 노보고로드는 [[한자동맹]]의 독일계 상인들과 교역을 했으나, 이들이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도시 내에 게토를 설치하고 독일계 상인들을 거의 격리수용(…) 하다시피 할 정도로 일 시민들과 철저하게 분리했다.]는게 문제였다.
         그리고 외벽과 내벽중 어느쪽에 방어를 집중할것이냐를 놓고 논쟁이 펼쳐졌는데, 황제와 주스티니아니 모두 1422년에 무라트 2세가 도시를 공격했을때 외벽방어에 집중해 막아낸것처럼 이번에도 외벽에 방어하기로 결정하려 했으나, [* 내벽에도 병력을 배치하는게 좋긴 하겠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를 '전략가'라 자칭했던 교황청의 사절 레오나르도 대주교가 내벽을 방어하라고 우겨 잠깐동안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는 1422년 무라트 2세의 공격으로 인해 수리된 외벽이 제대로 수리되지 않았다면서, 이게 모두 수리비를 두명의 그리스인인 자가루스와 수도사 네이피토스가 횡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부당한 주장으로, 자가루스는 마누엘 팔레올로고스가 본명인 황제의 친족으로, 수리된 성벽에 이름까지 적힌, 당시에 굉장히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또다른 횡령범으로 지목된 네오피토스는 통합대파였다만, 황제와 친한 수도사중 한명으로 공적인 일에 일체관여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던 중이었다. 레오나르도 대주교의 주장은 가톨릭교도들의 전형적인 통합파와 그리스인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된 편견이었다.
         각부대는 그리스인,제노바인,베네치아인들이 모두 섞여있었는데 이는 황제가 서로 국민감정이 좋지못했던 [* 라틴인들과 그리스인들의 목이야 말할것도 없고(...) 제노바와 베네치아역시 대대로 앙숙이었던 국가였다.]세 민족을 서로 부대끼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게 만들생각으로 배치한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튀르크군은 자가노스 파샤[* 그리스인 배교자로, 대표적인 주전파였다.]를 지휘관으로 한 부대를 금각만 근처에 배치했고, 보소포로스 해협건너 언덕에 병력을 산개시켜 페라의 제노바인들이 도시를 돕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성벽 맞은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금각만에서 언덕위에 카리시오스 문까지는 카라쟈 파샤를 지휘관으로 한 유럽 정규군들이 배치되었다. 이들은 중포도 상당수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포들은 블라케르나에 성벽에서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이어지는 귀퉁이 공격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리쿠스 계곡 남쪽 경사면에서 마르마라 해안까지는 이샤크 파샤의 지휘하에 아나톨리아 정규군이 저라접었는데, 그는 황제의 신임을 받지못했기에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리스인 배교자 마무드 파샤가 지휘를 맡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앙겔로스가 출신이었다.] 술탄은 메소테이키온 성벽 맞은편 리쿠스 계곡에 자리잡았는데, 그의 앞에는 그의 최정예 부대인 예니체리 부대와 헝가리인 대포 기술자 우르의 대포들이 있었다.[* 이 우르이란 자는 본래 황제에게 고용된 자였는데, 황제가 그의 신작품들을 만들어줄 자금이 충분치 않다는걸 알자, 몰래 도시를 빠져나와 술탄에게 간 자였다.]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14회 일치
         김모씨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6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복할 정도로 불안정한 정신상태였다. 그의 병력은 조현증, 즉 정신분열증이었으며 평소 여성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대체로 수사관과 범죄심리학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기존 묻지마 범죄의 전례와 완전히 일치하며 특정한 편견에 의한 범죄가 아니므로 묻지마 범죄로 봐야한다는 여론이 강세이나 대로 사회학자, 페미니즘 학자들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여성혐오범죄이며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며 강력 범죄에 취약함을 주지시키는 사건이라는 여론이 강세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극명하여 때아닌 성대결 양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경찰은 우선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적으로 묻지마 범죄는 그 어감 탓에 무차별 살인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다르다. 정신이상자가 비정상적인 동기에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정상인일지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묻지마 범죄로 부른다.
         대로 혐오범죄는 일종의 정치성을 띈다고 할 수 있는데 특정 대상에 대한 편견이나 비하에서 비롯된다는 차이가 있다. 김모씨는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 형태가 "여성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나 "여성의 음해로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다 같이 편견보다는 전형적인 망상의 형태이므로 혐오범죄의 유형과 다르다는 것이다.
         대로 여권운동가 및 사회학자들 사이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경찰측에서 분류하는 혐오범죄의 범주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이미 여성을 범죄의 대상으로 특정하고 있으며 피의자에 증언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혐오 또한 분명히 확인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걸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이 격화되면서 나타난 의견으로 사건 자체가 여혐사건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입장도 있다. 사건 자체는 여혐으로 보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 전이 여혐적인 사회인가, 혹은 여성범죄에 취약한 사회인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실제로 일부 통계에서는 강력범죄의 피해자 90%가 여성이라는 결과도 있는 면, 통계를 왜곡했고 실질적으로는 의미있는 성차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 인터넷의 응 ===
         여초사이트가 주도한 만큼 이 사건은 웹상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데 주로 SNS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됐다. 처음에는 시민사회 전의 애도가 모였으나 워마드를 비롯한 여초사이트의 공세가 강화되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한국사회를 답이 없는 여혐사회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이에 발하는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났다. 워마드를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을 모두 "여혐"과 "성을 모르는 남성"으로 규정, 철저히 비하하면서 이 사건은 여혐 대 남혐의 구도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때 정도를 지켜야할 언론에서는 사건을 원색적이고 편파적으로 다루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특히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에서는 워마드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면서 극도의 페미나치스러운 기사를 쏟아내어 진보 진영 안에서도 성토를 당했다. 일부 유명인들도 이 사건과 관련해서 워마드에 편승하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특히 진보논객이자 미학자로 유명한 진중권은 한국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면서 "x잡고 성이나 해라"는 폭언을 늘어놓고 욕을 먹었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일시민 사회에서는 이러한 남혐 대 여혐 논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 성별과 무관하게 해당 사건을 추모하고 취약해진 치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이 페이지는 2016년 중부에 잠깐 시행된 "집중토론" 제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결과물이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14회 일치
         [[미스코리아]] 출신인 만큼 출중한 미모에 연기력도 좋고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성공해서 배우로서는 손색이 없다[* 미스코리아 입상 후 연예계로 진출한 인물들은 많다. 그러나 연기자로 입문해서 연기력 하나로 대성공을 거둔 인물들은 드물었다는 점을 보면 고현정의 케이스는 그야말로 눈여겨 볼만하다.]. 탑여배우에 대한 일적인 선입견과 달리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예능에서도 거침 없는 언행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고느님'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혹평을 받기도한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 사생활이나 성격, 인성 뭐로 까이든 간에 작품에서 연기로는 까는 사람이 없는 배우[* 과거 잡지에서 한 인터뷰만 보더라도 연예인이라면 거기에 맞는 생활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연기 경력이나 파란만장한 개인사 모두 통틀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배우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연기라는 자신의 최고의 재능으로 정상으로 향하던 와중에 재벌 2세와의 혼인으로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연기자로 복귀해 재기에 성공, 성공의 환희와 어둠을 다 겪은 인물의 표본이다.]
         1남 1녀를 두고 잘 사는 듯 했으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4222|2003년 11월 19일 이혼]]하였다. [[이혼]]시 엄청난 루머가 쏟아졌다. 주로 "따돌린다"는 루머.[* 가족들끼리 고현정을 [[왕따]]시키기 위해 영어로만 대화했다가 고현정이 왕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어를 배우자 프랑스어로만 대화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하지만, [[무릎팍도사]]에서 그런 유치한 짓 하실 분들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는데 뉘앙스가 묘하다. 단, 재벌일가 중에서 [[조현아|이런]] [[김동선|사례]]가 쏟아지는만큼 '''루머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다른 것은 고현정과 [[정용진]]이 여행 중 만나게 되어 연애 결혼을 했지만 정용진의 어머니인 [[신세계(기업)|신세계그룹]] [[이명희(기업인)|이명희]] 회장이 결사 대를 했고[* 참고로 한국의 재벌가는 거의 유럽의 왕족과 같은 분위기를 지녔고([[현대그룹]] 집안 분위기는 명문 양가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한다)학벌이나 집안은 거의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곳이다(어느 정도냐고? [[아이비 리그]] 대학 졸업이면 일단 합격선으로 들어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캠브리지 대학교]]나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이라면 더더욱 환영, 참고로 [[정용진]]이 [[브라운 대학교]] 출신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적인 이목을 한몸에 받는 인기 연예인과 자신의 자녀를 혼인시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다. 결혼은 현실이란 것을 강하게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이 재벌가의 혼인이다.] 훗날 온갖 스캔들을[* 1억 5천만원짜리 다이아 지, [[포르쉐 카이엔]] 도난 신고사건 등.] 유발하여 불리한 조건(친자 포기)으로 이혼을 유도하려고 했다는 루머 등.
         고현정 또한 무릎팍도사에서 정용진에 관한 부분에서는 진정성이 있는 태도로 말한 걸 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정용진에 대한 세간의 평판[* 정용진 부회장은 일인들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는 다르게 싹싹하고 정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SNS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신비주의에서 탈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사실이라면 당사자들은 죽고 못 살 정도로 금슬이 좋았지만 전형적인 시집살이[* 고부갈등+시누이 간의 갈등]가 두 사람의 파경 원인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퇴한 지 딱 10년 후, 일드 '별의 금화'를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봄날"을 통해 실어증에 걸린 인물의 역할을 소화해내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조인성]]과 호연하여, 원래 [[지진희]]와 이어져야 했는데 시청자 응으로 [[NTR]] 발생. 공교롭게도 모래시계를 찍고 떠난 [[SBS]] 드라마를 통해 복귀하였다.] 2006년에는 충격의 후속작 "여우야 뭐하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쓴 김도우 작가의 후속작으로, 여주인공 고병희는 3류 에로잡지 기자 겸 편집부 겸 영업부 겸... 이 드라마에서 고현정의 동생으로 출연한 김은주는 드라마가 끝난 후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이름을 본뜬 [[고준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현재도 둘은 친하다고.~~립서비스 같지만 넘어가자~~], [[홍상수]] 감독 최초의 15금 영화(...나머지는 물론 19금) "해변의 여인",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 콤비의 [[히트(2007)|히트]]를 찍으면서 두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봄날" 빼고는 다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고현정의 시대는 갔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 단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을 캐스팅한 것이 예산의 대부분일 정도로 저예산일뿐 아니라 원래 대충 찍어도 졸라 좋은데 대중성은 엿바꿔 먹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제외해도 좋다.] 히트로 인연을 맺었던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의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아 카리스마로 신드롬을 터뜨리며 [* 삼성경제연구소 올해의 10대 히트상품에 [[소녀시대]]와 같이 실려버림.~~본진을 털었다!~~] "역시 고현정이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제작진 전원에게 천만원 상당의 [[닌텐도 DS]][* 고현정은 [[닌텐도 DS]]의 리듬게임 타이틀 '리듬세상'([[리듬천국골드]]의 한국어판)의 광고에 출연하였다.]를 쏘거나,[* 사실 연예인이 스탭들에게 자기가 모델인 제품을 쏘는 것은 기사화로 인한 일종의 광고 효과를 노리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것이라서 본인 부담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 악조건하에서도 8회 분량(출연료 총 2억 상당)에 대해 개런티 없는 연장에 동의하거나,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야외촬영으로 극도로 열악했던 선덕여왕 배우 스태프의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하는 등, [[대인배]]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의 비효율적 촬영시스템은 유명해서, 박홍균 감독은 28회 일식신 촬영 중 비담 역을 맡은 [[김남길]]이 탈진할 정도로 다시 찍기를 복하기도 했고, 무술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촬영 중 무술감독 중 한명이 [[보조출연자]]들을 마구 굴려대자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쉬지 않고 촬영을 감행) 이걸 목격한 고현정이 조목조목 따졌다고. 이 무술감독은 공동연출 김근홍 감독으로부터도 '''"무술감독님, 필름을 낭비하지 마세요. 이거 영화 촬영용 필름이라서 한장 한장이 비싼 겁니다."'''라고 디스를 당했다.] 50회의 마지막 촬영장면에서는 스태프 전원이 ~~어째 어감은 묘하다만~~ '고미실 사망 축하연'을 벌여 주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06889|#]]
         2016년에는 3년 만의 후속작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에 출연했다. 그런데 고현정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들이 엄청나게 후덜덜하다.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주현]], [[김영옥(배우)|김영옥]], [[신구(배우)|신구]]''' 등 고현정보다 연기를 먼저 시작한 대선배들이 줄줄이 출연한다. 그래서, 특별출연을 제외하고 고현정이 막내(...)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인지라 우스갯소리로 '''고현정이 막내라서 커피심부름 하는 드라마'''(...)라는 드립이 나오고 있다. ~~위 라인업 보면 실제로 그럴것 같다. 데뷔 28년차가 막내라니~~ 이 작품은 워낙에 고현정 본인뿐만 아니라 나머지 배우들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연기력 + 뛰어난 작가의 스토리 + 감각적인 연출이라는 3박자가 절묘하게 떨어진 작품이라 전작의 시청률 만회는 물론이고 다시 한 번 고현정의 주가를 상승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 특히 14회 마지막 장면에서 이기적인 자신을 성하며 자학--셀프 싸대기--하는 장면은 압권.
         2010년 [[SBS 연기대상]] 당시 수상소감에 대해 논란이 일었는데, 혹자는 소신 있는 소감이었다고 평하며 대로 시청자를 훈계하는 투였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수상 직후 대상후보였던 [[이범수|모 배우]]의 소속사에서 대상 다음날 아침 루머들을 언급하며 공정하지 못한 대상 수상이었다고 비난성명을 썼다가 막내매니저가 실수로 올린 글이며, 그를 해고조치했다고 사과한 해프닝이 있었다.[* 정작 이 배우 트위터에서 배우 본인이 '[[빅딜]]설'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고 있다. 애초에 운전하는 막내매니저가 성명서를 배포했다는게 말도 안되는 얘기고. ] 사실 논란의 뿌리는, [[정보석|누가봐도 명백한 대상후보]]에게 ~~공동대상 주면 될 것을~~ '우수상'의 굴욕을 안긴 SBS에게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 당시 돌았던 말 중에 고현정은 본인이 상을 수상하지 않으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다는 말이 돌고 있었던 터라, 수상소감에 대한 논란과 고현정에 대한 비난이 더욱 커졌던 감이 있다.]
         김수현 드라마 주연 출신이어서, 정확하고 약간 빠른 발음을 구사한다. 연기력은 엄마의 바다나 두려움없는 사랑이 인기였던 모래시계 이전에도 주연을 맡을 만하다는 평이었는데,(우는 장면에서 근성의 노메이크업으로 펑펑 울거나) 모래시계 때 레전설 소리를 들었다.~~그리고 총알은퇴. 관광지 [[정동진역]]을 남기고.~~ [* 김종학 감독은 연기력이 아까워 결혼을 말렸다고 이후에 인터뷰한 바 있다.] 김종학 감독은 20대 초의 고현정을 두고 한 줄의 대사로도 파급력을 갖는 배우라고 이야기했으며 복귀 후의 고현정은 봄날의 실어증 여주인공, 여우야 뭐하니의 음란 잡지 기자, 히트의 강력 형사 등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를 펼쳤다. 트레이드마크인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디테일한 연기[* '무언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미덕(단순히 매력이 아닌)을 지니고서도 나쁜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미실을 얼굴의 오른쪽과 왼쪽, 입과 눈과 눈썹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며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로 강렬하게 소화해낸 고현정은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이자 일등공신이다.' -이영미(문화 평론가). 시사IN 기사 중] 는 선덕여왕 때 처음 화제가 되었다. 비결에 대해, '사극이라 몸이 안움직이니 얼굴이라도 움직여야 시청자들을 잡겠다 싶어서...'라고 코멘트. 같이 촬영했던 [[이순재]]도 인상적이었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이순재]]는 헐리우드로 지금 당장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김명민]], [[김희애]], 고현정을 꼽았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주인공에 비해 많지 않았던 분량임에도[* 어느 팬의 편집 결과에 의하면 62부작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나온 시간은 1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주요 시상식을 휩쓸고 그해 실시된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38%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51965|#]] 차기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대물은 방영 내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작가, 감독이 바뀌는 등 내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드라마 내용은 산으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의 연기는 호연이었다는 응과 함께 2년 연속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때 2위와의 격차가 무려 23%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156691|#]] 여왕의 교실은 시청률 면에서는 고현정 필모그래피에서 최하를 기록했지만 무표정에서 종종 보여지는 미세한 표정 연기(일명 나노 연기)는 미실을 능가했다는 응도 얻어 원작과 다른 마여진을 만들어냈다며 호평을 받았다.
          * 고현정의 이름이 제목인 노래가 있다. 밴드 [[뜨거운 감자]]의 1집 앨범 수록곡인 <고현정>. 작사 작곡은 모두 [[김C]]가 했다. [[김C]]가 길에서 우연히 배우 고현정을 보고는 한눈에 해서 그때의 감정을 곡으로 쓴 것이라고. 1집 앨범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곡이라고 한다. 다만 '''특정인 찬양으로 방송금지곡'''(…)에 해당한다.
  • 김성주(축구선수) . . . . 14회 일치
         4월 11일 [[선문대학교]]와의 [[대한축구협회 FA컵/2015년|FA컵]] 3라운드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전 30분 오창현의 드로인을 머리로 받은후 오른발로 접어 상대 수비와 골키퍼를 속인 뒤 왼발슛으로 첫골을 기록했다. 팀은 2:0으로 승리하여 32강전에 진출했다.
         4월 18일 [[아산 무궁화|안산 경찰청]]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해서 전 7분 프리킥 상황에서 높이 찬 공이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발 앞으로 뚝 떨어지면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침착하게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도움을 기록하고 75분에 라이언 존슨과 교체되어 나가며 팀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5월 13일 [[강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51분 이재안 선수와 교체되며 투입되었다. 후 종료직전에 보비와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 사이로 패스를 보냈고 이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받은 후 드리블로 수비를 속이고 오른발 슛으로 득점에 성공하지만 팀은 결국 2:4로 패하고 만다.
         5월 16일 [[충주 험멜]]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전 34분 엄청난 개인기에 이은 크로스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헤딩으로 골을 넣으며 도움을 기록하고 48분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개인기에 이은 힐패스를 받아 수비와 키퍼 사이로 패스, 이를 타라바이가 골을 넣으며 2도움을 기록하고 첫 MOM을 달성했고 팀은 4:0 완승을 거두고 리그 홈 첫승을 달성했다.
         6월 10일 [[충주 험멜]]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하고 팀은 보비의 동점골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후 종료직전 극적인 역전 결승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고 5연승에 성공했다. 7승 4무 2패, 리그 2위 유지.
         6월 13일 [[FC 안양]]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몇번의 슈팅만 시도하고 팀은 후 종료직전 타라바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0으로 승리, 6연승을 달린다. 8승 4무 2패, 리그 2위 유지.
         6월 28일 [[안산 경찰청]]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후 주민규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이번 승리로 원정 7연승을 달성하며 K리그 챌린지 역대 원정연승 기록과 동률을 이루게 되었다.[14] 1득점을 기록한 주민규가 MOM 선정. 9승 4무 3패, 리그 2위 유지.
         7월 1일 [[대구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후 종료직전 조나탄에게 실점하며 0:1 패배를 당했다. 이번 패배로 원정 연승기록은 7연승에서 끝나게 되었다. 9승 4무 4패, 리그 3위로 한계단 하락.
         7월 4일 [[강원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전 15분만에 헤난에게 2실점한 후 [[조원희]]가 1골을 따라붙었으나 경기 종료직전 벨루소에게 쐐기골을 실점하며 1:3으로 패하여 창단이후 첫 2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9승 4무 5패, 리그 3위 유지.
         7월 8일 [[고양 Hi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후 타라바이의 PK골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추가골로 2:0으로 승리, 연패를 끊었다. 1득점을 기록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MOM 및 리그 21라운드 MVP 선정. 10승 4무 5패, 리그 3위 유지.
         7월 12일 [[경남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전 선취골을 넣었으나 곧바로 동점골을 실점한 이후 양팀 키퍼들의 동 선방쇼로 서로 수많은 찬스들을 놓치면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김영광(축구선수)|김영광]]이 MOM 선정. 10승 5무 5패, 리그 3위 유지.
         8월 3일 [[FC 안양]]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캡틴 김재성의 결장으로 세트피스를 전담했지만 득점에 관여는 못하고, 후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선제 결승골로 1:0 승리했다. 1득점을 기록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MOM 선정. 11승 5무 5패, 리그 2위로 한계단 상승.
  • 김승대 . . . . 14회 일치
         김승대만의 특징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는 라인 브레이커에 걸맞는 움직임과 골 감각이다.''' 이는 한국 선수로는 거의 독보적인 능력이며 과거의 한국 축구 레전드들도 쉽게 가지지 못한 강점이다.[* 80년대 이전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구성하는 전술 자체가 빈약했고 90년대 이후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기보다는 피지컬과 발기술로 찍어누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1:1 상황에서의 결정력도 좋아서 질 좋은 패스까지 배급되면 거의 골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다만, 뒤에서 [[영 좋지 않은]] 패스가 공급되면 별다른 활약을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김승대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해주던 [[이명주]]가 2014년 여름에 이적하자 그 뒤로 힘을 못쓴 전례가 있고 2015년에는 전기에 부진하다가 여름에 [[신진호]]가 복귀하면서 패스의 질이 높아지자 김승대도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슈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골은 많지만 거의 모든 골이 가볍게 밀어넣은 골이고 강력한 슈팅으로 넣은 골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데뷔 시즌 한정으로, 그 이후 시즌에는 슈팅 성공률 66.6%를 전기 넘어서까지 유지했을 정도로 일취월장해서 [[감아차기]], 툭 밀어넣기 등 다양한 슛을 구사했다. 그리고 위의 부정적인 평가는 좀 억울할 법 하기도 한 것이, 플레이 스타일 상 골키퍼와의 1대1 경합이 주로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경우에는 [[손흥민|손세이셔널]]같은 강슛보다 정확하게 차 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옳은 평가가 아니라는 것. -- [[풋볼매니저|선호 플레이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침투' , '패스하듯 정확한 슛팅을 구사'가 달려있다 하더라]]--
          * 2017시즌 후기 [[옌볜 푸더]]에서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 복귀하였다.
         같은 포지션에 쟁쟁한 선배들[*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황진성이 있었고 스트라이커 자리에는 박성호가 있었다.]이 있었기에 기회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황진성]]이 다시 [[유리몸]]화 되고 [[신진호]]는 [[카타르]]로 임대 가고 [[박성호(축구선수)|박성호]]가 전기에 죽을 쑤는 바람에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진성이 스플릿 라운드를 앞두고 무릎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 되면서 주전 자리를 꿰어찼다.
         2014년 전기 [[이명주]]와 더불어 포항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그리고 이명주는 월드컵 휴지기를 지나고 후기가 시작하면서 중동으로 50억에 팔려갔다.~~ ~~그리고 다음 시즌 본인도 포항의 다른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20억에 중국으로 팔려갔다~~
         같은 포지션인 황진성이 계약 만료로 방출되어서 주전자리를 꿰차나 했지만,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이 팀에 복귀하면서 주전경쟁은 계속 될 듯 했다. 그런데 자신의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이명주에게 넘겨주고 원톱으로 올라갔다. 전 시즌에는 가짜 9번(False 9)으로 뛰면서 제로톱의 역할을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아예 포처로 뛰고 있는 것. 그래서 다들 실험적인 전술이라며 의 하던 상황이었다.
         결국 공미와 중미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하게 되면서 2014 전기에 보여주었던 득점력은 하락, 그나마 예전 이명주가 맡던 역할에 서서히 적응해가며 새롭게 김재성, [[강수일]]과 호흡을 맞추며 서서히 전기의 폼을 회복하는가 했으나. 포지션이 바뀌면서 득점력은 하락. 그리고 [[손준호]]와 함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으나, 한 달간 팀을 떠난 동안 '''포항은 그대로 폭망했다.''' 본인도 더 이상 득점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막판에는 체력 저하까지 보이며 10골 8어시로 시즌을 종료. 2014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이명주]], [[고무열]]에 이어 3연속 포항 선수들이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그나마 징계가 풀리고 나서는 바로 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 시절의 폼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2년 계약이기 때문에 2017 시즌 후 심동운의 입대가 결정되고 양동현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2018 시즌에는 포항 공격진의 한 축을 확실히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복귀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10월 28일 대구전 홈경기에서 룰리냐의 만회골을 돕는 도움을 기록하였고, 11월 18일 광주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아쉬우나 김승대의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확인한 년이었고 손준호와의 호흡이 잘 맞음을 과시해 내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손준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면서 김병수의 제자들 중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준호야 가지마~~
         2014년 전기 리그에서 이명주와 함께 발군의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일각에서 월드컵 엔트리 승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으나 결국 탈락했다.
         2015년 8월 2일 중국전에서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유럽파를 차출하지 못해 [[기성용]]이 빠진 상태에서 미드필러 라인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우려가 많았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뜻밖에도 원톱 이정협 밑에 김승대 [[이종호(축구선수)|이종호]] [[권창훈]] [[이재성(1992)|이재성]] 등 드리블러가 아닌 공간 침투와 패스에 능한 선수들을 배치하며 4-5-1과 4-3-3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형을 선보였다. 경기 초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보였으나 차츰 이들의 연계가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중국 미드필더들은 속수무책, 글자 그대로 능욕을 당했다.
         영남대 시절 김승대는 골잡이보다는 도움에 능한 선수였다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든 수비진을 따돌린 다음에 동료들에게 연결하는 능력이 좋았는데 득점은 3학년 때부터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유럽을 노크할 만한 골 결정력과 함께 [[강수일]]에게 제발 김승대의 절만 닮으라고 할 정도다.~~
  • 김준현(코미디언) . . . . 14회 일치
         tvN의 [[예능 프로그램]]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당뇨병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사실 정확히는 방송이라 그런지 당뇨병이라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의사]] 및 당뇨병 환자들이 그 방송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덕분에 몇몇 사람들은 김준현 정도의 수치가 나와도 정상인줄 알고 있는 케이스도 있었다. 당뇨를 한참 넘어선 김준현의 수치에 비해 자기가 낮으니 당뇨임에도 혹은 당뇨전단계임에도 자기 수치가 지극히 정상인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참고로 방송에 공개된 수치는 당화혈색소 8.2에 공복혈당 196이었는데.. 당화혈색소 6.5, 공복혈당 126이 당뇨 기준임을 생각해보면 아득히 높다.] 직계가족에 당뇨병 가족력이 있고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태어났다고 하는데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냥 가족력과 식습관 때문일뿐. 거기에 초고도 비만[* 다만 BMI 상으로만 초고도 비만이지 [[야구선수]]나 무제한급 [[역도]] 선수, 백두급 [[씨름]]선수 등처럼 체지방도 많으면서 근육량이 상당히 많은 [[케이스]]이기 때문에 같은 체중의 일 비만인보다 관리가 좀 쉬울수는 있으나 이미 당뇨가 나이대 대비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음으로 크게 의미 있는 사실은 아니다.]까지 있으니..... 김준현 본인도 그러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듯 검사결과 내용을 듣는 내내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데뷔 초기에는 궁녀, 악단 멤버([[악성 바이러스]]), 유치원생 소망이([[워워워]]) 등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연기를 하는 언밸런스한 배역을 하는 한편 [[DJ변]]의 광고성우, [[씁쓸한 인생]]의 김실장 등 중저음의 두꺼운 목소리를 살리는 배역도 소화하였으나 귀여운 역할은 [[2011년]] [[9시쯤 뉴스]]에서 유치원생 역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사실 9시쯤 뉴스에서의 유치원생 역할도 그리 귀여운 역할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대사가 [[애늙은이]]스런 대사였기 때문.] 이후에는 [[비상대책위원회(개그 콘서트)|비상대책위원회]]의 [[소장(계급)|소장]], [[네가지]]의 뚱뚱한 사람 역 등 육중한 덩치에 알맞는 두꺼운 목소리를 잘 활용한 개그에 올인하고 있고 응은 이 쪽[* 비상대책위원회의 소장 이후의 역할들.]이 더 좋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초에는 [[김원효]]에 밀리던 듯 했으나 사실상 투탑 체제를 굳혔으며, 라디오 [[CF]] 개수는 "고뤠?" 쪽이 "안돼!~"보다 앞서고 있었다.~~[* 물론 점차 [[인지도]]를 높인 건 사실이지만, 사실 투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김준현이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도 상관없지만, [[김원효]]가 빠지면 비상대책위원회 코너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김원효와 김준현의 비중이 7:3 정도로 차이가 난다... [[라디오]] [[CF]] 개수가 많다고 해서 인기가 더 많다고 볼 수도 없다. "고뤠?"는 한마디로 간단하게 끝나지만 "안돼!~"는 [[유행어]]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현란한 대사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짧은 CF엔 "고뤠?"보다 약간 부적합할 뿐.]
          * [[9시쯤 뉴스]] - 개콘유치원 잎새 김준현 ~~'''오'''린이~~ 어린이 역
          * [[감수성]] - 시작할 때 코너 소개하는 멘트 담당. 초에는 [[오랑캐(감수성)|오랑캐]]의 동생 역으로 나온 적도 있었고, 중부에는 오랑캐의 부하 1 역, 900회 특집에서는 오랑캐의 형 역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날 김준현이 [[비밀]]을 대놓고 발설하자, 오랑캐가 빡쳐서 [[하극상]]을 감행했다.--
          * [[배스킨라빈스]] : [[고창석]], [[샘 해밍턴]] 등과 동 출연.
          * 주로 뚱캐 성향의 개그를 하나 다른 뚱캐 기믹의 개그맨들처럼 소모성으로 사그라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지만 특유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원패턴 비호감 소모성 캐릭터를 버럭뚱캐, [[갭 모에]] 뚱캐 등 다양한 호감형 캐릭터로 잘 살리는 능력을 발휘하여 사랑받고 있다. 때문에 역시 뚱캐 컨셉인 유민상과 겹치는 일이 많은데, 유민상은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인상으로 나가는 면 김준현은 우직하고 강한 인상으로 나가고 있다. 참고로 김준현 [[본인]]에 따르면 둘의 배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 2014년 12월을 끝으로 끝난 [[큰 세계]]를 마지막으로 개콘을 떠난 김준현은[* 다만 그 코너(큰 세계)를 끝으로 바로 떠나지는 않았었다. 한달 뒤(2015년 1월)에 [[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에서 유민상을 돕기 위해 잠시 나왔다. --하지만 유민상의 (김준현과) 닮았다는 말 때문에 (김준현이) 개[[빡]]쳐서 빡친 표정으로 나가 버리면서 끝에 안 좋게 끝난 게 좀 그렇긴 했지만...-- --게다가 [[사족]]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유장프는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소득도 남기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2015년]]이 가히 [[본인]]의 전성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수의 프로그램들에 출연하고 있다. [[SNL 코리아]], [[맛있는 녀석들]] 외에도 2015년 8월, 9월에만 비법, 3대천왕, 내 나이가 어때서 등 세 프로그램의 [[MC]]로 나설 정도. 면 그가 떠난 개콘은 여러 논란들과 함께 [[시청률]] 두 자리가 무너지며 최악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돌아와요 김준현씨!--
          * 2015년 먹방, 쿡방이 대세가 되며 프로 먹방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정 방송인 [[백종원의 3대 천왕]]과 [[맛있는 녀석들]] 2개 외에도 각종 쿡방, 먹방 프로그램 게스트 섭외 1순위이며 식품 관련 CF도 꾸준히 들어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수(채소)|고수]], 삭힌 [[홍어]] 등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도 다 잘 먹는 편이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을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지에 대해 연구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남다르기 때문.[* 실제로 [[중학교]] 시절부터 집에 오면 [[라면]]을 끓이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는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다만 라면 끓이는 정도를 제외하면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 게시판을 보면 방송을 보고 다이어트를 포기했다던지, 장 수술후 입맛이 없어서 고생이었는데 방송을 보다가 침이 나와서 깨끗이 나았다던지 하는 응이 많은데 그걸 보면 그렇게 뿌듯하다고 한다.
          * 고교시절 [[검도]] 대회에서 검도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고[* 20대 초까지는 날씬했다. 덧붙여 모교인 [[광명고등학교|광명고]]도 ~~그나마 내세우는 게 검도.~~ 검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광명고 학생들은 매주 1회 검도 수업을 한다. 게다가 맛있는 녀석들에서 [[본인]]이 언급한 바에 의하면 [[http://m.ytn.co.kr/ent_view.php?s_mcd=1406&key=201512052151017860&ref=10|초등학생 시절부터]] 검도시합을 하러 [[일본]]에 갔다온 적이 있다고 한다. 상당한 엘리트 체육인이었던 셈.][* 이름이 무슨 피구왕 통키스러워서 우스워 보이지만 김준현이 참가했던 SBS 검도왕대회는 개최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내 검도대회 중 가장 큰 규모의 대회다.], [[http://media.daum.net/entertain/enter/newsview?newsid=20130205154907565|비만체형인 지금도 근육량은 운동선수급이라고 한다]].[* 사실 특정 부위 비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전적으로 비만인 사람들은 원래 근육이 많다. 살 찌면 지방만 잔뜩 늘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육중한 체구를 움직이기 위해 몸이 근육을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 이런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하면 몸도 일종의 구조조정을 해서 근손실이 엄청나게 일어난다.]
          * 다만 근육량에 있어서 이전에도 뒷태가 유민상 등 다른 비만 개그맨들과는 달리 역삼각형 체형에 승모근 등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고 복부보다 가슴쪽이 더 튀어나온듯한 모습들이 인간의 조건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의 상의 탈의에서 공개되었던 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체형은 백두급 씨름선수, [[스트롱맨]] 등에서 흔히 볼수 있으며, 실제로 김준현의 경우 [[강호동]] 등과 더불어 연예계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으니 관리를 잘한다면 괜찮아 질수 있다.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확실하며, [[보디빌딩]]식의 트레이닝보다는 [[파워 리프팅]]식의 [[스트렝스 트레이닝]]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의 자격]] 철인 3종 특집에서 [[송일국]]과의 무릎씨름 대결에서 평소 연예계에서 스포츠 매니아로 유명한 [[송일국]]을 가볍게 발라버리기도 했다. 애초에 엘리트 체육인 출신인 사람과 스포츠 애호가인 일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지만. --체급이 다르잖아 체급이..----물론 김두한하고 싸우면 승부는 알 수 없다...--
          * [[장염]]에 걸리면 [[막걸리]]를 먹는다고 한다. 먹고 난 다음날 [[똥|황금색 변]]을 보며 깨끗하게 낫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와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장난으로 하는 말은 아닌 듯. [[https://www.youtube.com/watch?v=x6fJQ_DaMbw|#]] [[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6698626|# 1분 15초부터]]...] --하지만, [[일인]]들은 절대로 따라하지 말자!--
  • 드래곤볼 . . . . 14회 일치
         토리야마 아키라 원작의 만화. 한 시대를 풍미한 소년만화의 왕도격인 작품이었다. 스토리상으로 초에는 '서유기'를 기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 '닥터 슬럼프'를 섞어넣은 듯한, 슬랩스틱 코메디가 섞인 로드 무비 방식이었으나 점차 소년 격투만화 스타일로 변모해 갔다.
          * 75화 : 개구리가 된 기뉴가 드래곤볼을 하나 가져가려 하지만, 개구리라 힘이 너무 약해서 실패. 드래곤볼을 지키고 있던 손오에게 들키고 나서 도망친다. 이후 분홍색 암컷 개구리(…)에게 쫓겨다닌다. 포룽가가 나타났을 때 포룽가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키스마크)을 보아 당한듯?
          * 76화 : 포룽가로 되살아 날 수 있는 것이 한 번에 한 명 뿐이라는걸 알게 되자, 야무치, 천진, 챠오즈가 추한 다툼(…)을 벌인다.
          * 88화 : 오공과 프리더의 대결 와중에, 치치가 나메크별에 가서 오에게 숙제를 주겠다느니 피콜로가 갔다는 말을 듣고 또 오이 불량해지겠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역시 애니판은 상당히 치치의 이미지 악화에 일조한 듯 하다.(...)
         나메크 별에서 전투력 이상 응이 나타나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프리더가 드디어 죽었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 발언을 하자마자 광선 총에 무수히 맞아서 시체도 안 남기고 소멸한다. 숙청을 한 것은 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망토 장비).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이 캐릭터가 "우리가 우주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건 프리더 님 덕분, 언젠가는 우리 종족을 부흥시켜 주신다고 약속했다. 프리더 님이야 말로 전 우주의 구세주다!"라면서 열렬한 프리더 빠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초사이어인 오공의 전투력을 계측한 순간 계측기가 폭발하여 기지채로 전멸.
         오이 피콜로를 오공의 우주선에 데려다 놓자, 브리프 박사가 감시장치로 누군가 탑승한 것을 감지. 통신장치로 치치가 말을 걸고 가만 있으라고 하지만 오은 부르마를 데리러 무시하고 나가버린다.
         손오이 뜬금없이 뛰쳐나가서 프리더와 싸우는 에피소드가 추가. 오공이 죽은 줄 안 오이 프리더는 어차피 사이어인을 전멸시키러 지구로 올 테니까 오공의 아들 답게 싸우겠다고 나선다.
         본래는 나메크별이 폭발할 떄까지 시간을 끌어서 프리더에게 타격을 주려다가, 프리더가 오공과 같은 무덤에 묻어주겠다고 도발을 하자 분노하여 잠깐 공세를 퍼붓는다. 오이 잠깐 분노했다고는 하지만 최종형태 풀파워 프리더를 후드려 팬다.--밸붕--
         오이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는 장면이 있다. 오공이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저녁 찬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크리링의 여자친구인 마론이 등장한다.
  • 리그컵(K리그) . . . . 14회 일치
         || 회차 || 연도 || 기구분 || 타이틀 ||
         || 6 || 1997 || 전 || 아디다스컵 ||
         || 7 || 1997 || 후 || 프로스펙스컵 ||
         || 8 || 1998 || 전 || 아디다스코리아컵 ||
         || 9 || 1998 || 후 || 필립모리스코리아컵 ||
         || 10 || 1999 || 전 || 대한화재컵 ||
         || 11 || 1999 || 후 || 아디다스컵 ||
         || 12 || 2000 || 전 || 대한화재컵 ||
         || 13 || 2000 || 후 || 아디다스컵 ||
         리그컵이 갖는 의의는 제법 큰데, 한국프로축구계에서 돌아가는 상업시스템과 現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격축구를 향한 도전정신"(...)의 기은 어느 정도 이 리그컵에 시행되었던 부분들을 다수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대회부터 10만 달러라는 거액을 유치한 것 까지는 좋은데, 일정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여 리그가 진행되고 있던 6월부터 수요일에만 경기가 열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중경기는 주말경기보다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흥행을 위해 진행한다는 취지는 처음부터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었던데다가 상금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주중경기 편성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거의 모든 팀이 이 대회를 처음에 엄청 싫어했다. 그리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댓가로 리그컵에 대한 위상이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구단들의 감을 사는 요소만 한가득 얻었다.
         게다가 첫 아디다스컵 이후에도 흥행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회 운영방식을 바꾸는데, 하나같이 팀이나 팬이나 지치게 만드는 요인밖에 안 되어 결국은 흥행은 흥행대로 날려 종국에는 "리그컵은 종이컵"이라는 조롱을 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공격축구를 하겠다고 무승부시에 승부차기를 한다거나 서든데스제도를 도입하는 등, 골 수를 늘려보겠다고 별별 짓거리를 다 했지만, 1회차 대회부터 수비축구를 한 일화가 우승을 함으로써 지나친 실험정신은 변화를 꾀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말았다.[* 첫 대회때 우승한 일화는 3승 4무 2패에 골득11 골실10로 공격축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오히려 일화보다 더욱 공격적인 축구를 했던 LG가 4승 1무 3패 골득15, 골실11로 2위가 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촌극 끝에 결국에는 승점체계가 국제경기에서 일적으로 사용하는 승3무1 방식으로 감으로써 당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흥행이라는 미명하에 한 행동이 모두가 뻘짓이 된 것.
         아디다스컵이 처음 열렸던 시점만 하더라도 K리그와 사실상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과거 한국프로축구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리그컵이 처음 열렸을 당시에는 정규리그보다는 아디다스컵 관련기사를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10만달러 규모의 상금은 당시 국가대표 대회로 간주할 수 있었던 대통령배 대회를 빼면 축구계 최고액이었으니 당연히 화제를 몰고 올 수 밖에 없었고 일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상황. 물론 이건 총 상금규모고 실제로 우승팀은 3000만원, 준우승팀은 1500만원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백히 K리그와 차별할 수 있는 위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K리그도 상금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K리그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만 어쨌거나 현재로써는 공식 기록을 찾기가 가장 어려운 대회가 되었다. 리뉴얼 이전 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에서도 이 대회에 대한 정보를 찾는건 상당히 어렵다. 비교적 협회보다 자료정리가 더 잘 되어 있고, 일에 공개하는 자료양이 훨씬 많은 연맹임에도 그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다.[* 협회쪽은 FA컵의 위상이 상당함에도 경기 관중 수나 카드 이력등을 별도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협회가 비판받는 대표적인 부분.]
  • 블랙 클로버/110화 . . . . 14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이 "자기 자신도 모르는 멍청이"라 했던 말을 곱씹어 본 아스타는 자신과 마법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를 포착한다.
          * 마법의 검에서 나오는 기를 자신의 몸에 수용해 다시 한 번 마법 상태가 된 아스타는 유트림 화산에 퍼져있는 천연의 마나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 "돌아가도 좋다"는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의 포기선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의 활약도 마법의 검에 의존한 "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여기에 자극 받은 아스타는 거의 포기할 뻔 했던 마음을 다잡고 "절대로 정상에 오르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다음. 큰소릴 친 건 좋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근성만으로 올라갈 수 없는건 자명. 아스타는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마법 상태말고는 수단이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끌어내지?
          * 혼자 남은 아스타는 어떻게든 마법 상태를 끌어내려고 궁리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는 단지 "죽기 직전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힘을 끌어낸 거였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그럼 마그마에 무작정 뛰어들어보면 어떨까?"같은 말도 안 되는 발상도 나왔다. 하긴 그는 샐러맨더의 폭탄 속에도 뛰어든 적이 있으니 마그마 정도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쩌면 이미 자신이 가진 힘을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자신이 가진 힘을 하나씩 헤어려 본다. 첫째, 마법의 검이 있다. 마법은 벨 수 있지만 이 환경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체력과 근력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유트림 화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셋째, [[야미 스케히로]]가 전수한 "기"를 읽는 능력. 이걸로 화산재 정도는 베어버릴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 이것이 돌파구다. 아스타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가는 기의 흐름에 주목했다. 그의 몸에는 본래 자신이 가진 기만 있는게 아니었다. 마법의 검에서 흘러나와 조금씩 몸 안으로 들어오는 기도 있었다. 아스타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렇게 흘러오는 마법의 검의 기를 전신으로 순환하도록 해봤다.
          * 결과 대성공. 기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록 마법의 기는 뚜렷한 형상이 되어갔다. 마침내 라드로스전에서 나타났던 마법을 두른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상태가 된 것은 좋은데, 마법의 흐름을 타고 날아가는 특성 때문인지 아스타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의 몸은 유트림 화산의 마나의 흐름을 따라서 무작정 날아가기 시작했다.
          * 마나의 흐름은 화산분출구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이대로 가면 그대로 마그마 속에 처박힐 판이었다. 그때 정상에 기다리고 있던 메레오레오나가 나타난다. 그녀가 마력을 방출하자 마법의 검은 강한 마력을 감지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거라면 아스타가 마그마에 처박히진 않지만 메레오레오나를 찌르고 만다. 아스타가 도망쳐달라고 외치자 그녀는 코웃음을 친다.
          * 거의 순간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아스타의 배후로 돌아온 메레오레오나는 우격다짐으로 안면 훅을 꽂아넣어서 아스타를 벽에 꽂아버린다. 이걸로 아스타가 마그마에 처박힐 일도, 그녀가 마법 검에 찔리는 일도 없긴 하지만...
          아스타는 벽에 처박힌 채 메레오레오나의 전력에 감탄하는데, 컨트롤은 안 돼도 이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좀 더 강해져서 로얄 나이츠에 드시 합격해 주겠다고 다짐한다.
  • 블랙 클로버/97화 . . . . 14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블랙 클로버의 마도서에 깃든 마법의 악마와 만난다.
          * 마법의 악마는 아스타의 육신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아스타는 자아를 빼앗기지 않고 흘러넘치는 마법의 힘을 제어한다.
          * 마녀의 여왕은 아스타를 치료하면서 단마의 검에서 나오는 마법의 힘이 쉽게 분출될 수 있도록 조작을 가했다.
          * 지금 아스타는 마법의 힘 자체가 빙의한 상태로 마력이 없는 "단순한 결함품"으로 태어난 아스타만이 가능하다.
          * 샐러맨더의 힘을 흡수하고 기고만장했던 [[라드로스]]지만 각성한 마법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 라드로스가 발사한 마법은 오히려 아스타의 마법이 돌격하는 길을 열어준 격이었고 아스타는 그대로 마법을 타고 올라가 라드로스를 격파한다.
          어느새 아스타의 정신이 돌아와있다. 그의 오른팔을 비롯한 우신은 단마의 검에서 나온 검은 그림자에 잠식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스타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다시금 일어선다.
          * 여왕은 그냥 의식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스타가 제대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놀란다. 지금 그를 휘감은 검은 그림자는 "단마의 검"에서 나온 마법의 힘이다. 본래 단마의 검은 마법의 에너지가 항상 흘러나오고 있다. 그 때문에 그 검을 들 수 있는 이는 극소수. 아스타는 "마력이 없다"는 천성 덕분에 아무런 제약없이 검을 사용해왔다. 그러면서 무의식 중에 마법의 힘을 제어하는 감각을 익혔다.
          여왕은 아스타를 치료하면서 한 가지 조작을 가했다. 그녀는 완력을 강화시켜줬다고 했는데, 그거말고도 마법의 힘이 더 빠르게 흐르게 해 출력을 높인 것이다. 그래서 마법의 힘이 격류처럼 아스타의 몸을 휘감고 일종의 "빙의체"로서 작용한 것이다. 아스타는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면서도 차가운 호수에 들어간 것 같은 서늘한 감각과 놀랄 정도로 선명해진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넘치는 힘에 내심 놀라고 있다.
         >넘쳐나는 마법은 마력을 뒤쫓는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14회 일치
          * 탈락한 역자들은 특별석이란 이름의 우리에 갇혀서 관전.
          * 역자 군단의 최후의 카드는 놀랍게도 [[잇시키 사토시]]. 십걸의 자리를 잃었다곤 하나 여전히 고학년으로서 이런 자리에 나올 필요가 없는 그였다. 하지만 후배들을 돕기 위해 매우 정상적인 차림으로 레분토까지 날아왔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은 잇시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한다. [[사카키 료코]]는 이 승부에서 지면 잇시키까지 퇴학처리 되는거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잇시키는 귀여운 후배들을 위해 그런건 싸우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일동을 감동시킨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탈락한 역자들에게 전용석을 안내하는데, 어느모로 보나 우리다. 카와시마는 어차피 보러 올 수도 없는 입장인데 [[나키리 아자미]]의 자비로 올 수 있엇던 거지 불평하지 말라며 역자들을 처넣는다.
          * 각 대결은 메뉴가 적혀진 제비를 뽑아서 결정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첫 대결의 메뉴선택을 상대인 [[키노쿠니 네네]]에게 양보한다. 하지만 그녀는 공정한 승부를 원한다며 소마 쪽에게 우선권을 준다. 그녀는 속임수를 싫어하는 성격으로 같은 십걸인 에이잔도 부정한 짓을 저지른 녀석이라며 경멸한다. 관중석에서 역자를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것도 "더러운 야유는 싫다"고 차갑게 노려보는데 어쩐지 관중석의 남학생들은 그 차가운 시선이 더 좋다며 심쿵한다. 그리고 쿠가는 왠지 구경하는 주제에 "저 땋은 머리는 언제나 날이 서 있고 오늘은 아마도 생리"일 거라고 도발해댄다.
          * [[나키리 에리나]]는 네네에 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복기한다. 주력 요리는 일식 전이며 특히 "소바"에 관해선 적수가 없는 달인이다. 본가는 칸다에서 소바가게를 하고 있으며 "에도 소바"의 전통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초일류 가게. 그런 본가에서 어려서부터 일식의 정수를 교육받은 그녀는 일식계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타쿠미 알디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거라 짐작하며 십걸로서 6석에 있었으니 단순 비교로는 잇시키보다 위가 아닐까 추측한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메뉴 선정. 마치 조작이라도 가해진 것처럼 최악의 카드가 뽑혔다. 정적에 휩쌓이는 대회장. 역자 측은 물론 센트럴을 응원하는 관객들과 네네 조차 얼어붙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환호성. 카와시마와 관객들은 벌써 네네의 승리가 정해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한편인 잇시키와 메기시마는 태연하게 카드를 뽑을 뿐. 잇시키는 "변함없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뜻모를 소릴하고 메기시마는 흥미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헤프닝처럼 시작돼버린 연대식극.
          * 네네는 커다란 코네바치(죽용 그릇)을 공수해서 죽부터 시작했다. "물먹이기"라는 과정으로 체에 친 메밀가루에 물을 뿌리고 손으로 젓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면 면이 끊어지지 않고 목넘김이 좋은 소바가 된다.
          소마의 악운에 울상짓던 역자들은 곧 네네의 탁월한 기술에 정신이 팔린다. 네네의 손이 죽그릇 안을 춤추는 것처럼 화려하게 휘젓자 메밀가루가 빠르게 모양이 잡히면서 이상적인 죽으로 변해간다. 아자미는 이거야 말로 기술이라고 중얼거리며 승부에 자신감을 내비친다.
          타도코로는 네네의 죽이 예쁘다고 감탄하며 "요리사라기 보단 장인에 가까운 느낌"이라 평한다.
          * 넋을 놓고 솜씨를 지켜보던 역자들은 그게 곧 소마의 패배로 이어진다는 참담한 현실을 떠올린다. 애초에 정공법으로 이기는건 바라지도 않고 변화구를 던져서 별난 걸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이제 소마가 어떤 소바를 만들지가 관건이다.
  • 식극의 소마/217화 . . . . 14회 일치
          * 연대식극 1라운드도 한 대결만 남은 상황. 2승을 확정지은 [[유키히라 소마]]와 역자들은 득의양양한데 [[카와시마 우라라]]가 찬물을 끼얹는다.
          * [[유키히라 소마]]와 [[잇시키 사토시]]의 연승으로 1라운드는 어느새 역자 팀의 2승. 이미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알몸 변태의 삶을 살던 잇시키가 멀쩡한 얼굴로 승리를 거두자 불신으로 가득했던 후배들도 그를 갑게 맞이한다. [[이부사키 슌]]은 남이 만든 식재를 멋대로 썼다 지면 어쩔 생각이었냐고 심드렁하게 묻지만 잇시키가 "너희 식재료를 쓰는 이상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쑥스러워한다.
          * 십걸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에 가까운데 [[시라츠 쥬리오]]는 너무 심하게 압살 당한 탓인지 좀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해 들것에 실려나간다. [[코바야시 린도]]는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뒷 일은 나에게 맡겨라"고 소란을 피운다. 정작 쥬리오는 잇시키만 찾으며 "너무나 멋지다"는 말만 하고 듣질 않는다. [[츠카사 에이시]]는 누가 봐도 맛이간 시라츠의 상태를 보고도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는 핀트가 빗나간 평을 남긴다. 옆의 [[사이토 소메이]]는 "잇시키의 강렬함이 작렬"한 대결이었다 총평한다. 특히 그의 "후배들을 위해 싸운다"는 대의에 감동한 듯 하다. [[에이잔 에츠야]]가 "그런게 아니라 대세에 거스르는 자신에 취한 것"이라 혹평하는데 사이토는 딱히 박하진 않지만 "자신의 방식을 관철한다는 강한 각오"를 느꼈다고 덧붙인다. 같은 2학년이 3학년 사이토에게 이정도까지 평가를 받자 에이잔은 물론 그에게 패한 [[키노쿠니 네네]]도 할 말이 없어진다.
          * 그렇다면 역자 진영의 2학년이자 전 십걸 [[쿠가 테루노리]]는 어떨까? 놀라게도 아무 생각이 없다.
          * 어쨌든 1라운드는 역자팀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이대로 1승을 더 추가할 가능성도 타진한다. 소마도 거기에 호응해 그렇게만 된다면 꽤 큰 차이를 내는 거라고 하는데, 이 좋은 분위기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MC인 [[카와시마 우라라]]다. MC 주제에 마이크까지 내던져 놓고 호쾌한 뻐큐부터 들이민다. 그녀는 역자팀의 전승 가능성을 "그렇겐 안 된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연대식극은 각 대결 대결에서 한두판 앞서 가도 최종승리하고는 상관없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센트럴에 넘어간 관중들이야 이 드립에 크게 호응하지만 역자팀의 분위기를 죽이진 못했다. 쿠가가 태연하게 "그러다 얼굴에 주름 생긴다"고 극딜을 넣자 이성을 놓고 Fuck을 연발, 역으로 도발 당한다.
          * 역자들로선 꿈도 꾸지 않았던 전. 1st BOUT 역자팀의 전승 선언이 울려퍼진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키리 아자미]]는 순식간에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보람이 없다"는 허세를 작렬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역자와 센트럴 측. 사이토가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현재 남은 인원은 역자 8에 십걸 5.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3라운드에서 십걸의 전멸이다. 괜한 호들갑이나 떨던 린도지만 "그건 곤란하다"며 조금은 진지하게 듣는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네네에게 "너무 책임감 느끼지 마라"며 위로인지 부담을 주는 건지 알 수도 없게 격려한다.
          * 허세력을 뽐낸 아자미 총수가 객석에서 일어나 1라운드의 종료와 1시간의 휴식을 선언한다. 그 동안 양 진영은 대합실에서 다음 시합에 나올 인원을 협의해야 한다. 잠시 뒤 대합실로 자리를 옮긴 역자들. [[나키리 에리나]]가 아버지의 말이 맞다며 "전승했다고 기뻐할게 아니라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못박는다.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가 십걸 측이 어떤 인물로 승부할지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히사코의 분석으로는 1라운드 결과로 적도 초조해할 테니 갑자기 1석 츠카사나 2석 린도가 나오는 것도 상정할 법하다. 그 말에 얼굴이 파래지는 유키와 료코.
  • 식극의 소마/227화 . . . . 14회 일치
          * 심사는 역자 팀부터 시작해 엄청난 호평 행진을 이어갔다. [[미마사카 스바루]]의 초밥은 샤름, [[메기시마 토스케]]의 라면은 이스트와르 담당.
          * 초에 [[쿠가 테루노리]]의 탕수육을 아리송해 했던 [[안(식극의 소마)|안]]은 막상 맛을 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술에 더 취했다"는 정체불명의 평을 남긴다.
          * 츠카사의 요리를 먹은 안은 거의 겁내는 것같은 응을 보이며 심지어 심사를 거부하는데, 츠카사가 그녀를 다그치며 요리를 마저 먹인다.
          * 전광판에는 역자팀의 전패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있었다.
          * 드디어 시작된 2nd BOUT 최종 심사. 시작은 역자 측부터. 이스트와르가 [[메기시마 토스케]]의 라멘을 맡고 샤름이 [[미마사카 스바루]]의 초밥, [[앤(식극의 소마)|앤]]은 [[쿠가 테루노리]]의 탕수육이다. 역자들의 요리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 [타도코로 메구미]]는 자기가 심사받는 선수들보다 더 긴장해서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짓을 복하고 있다. [[요시노 유키]]나 [[사카키 료코]]도 같은 심정. [[유키히라 소마]]는 비교적 차분하게 선전을 기원하는 중.
          맛의 일제사격에 지격 당한 샤름과 이스트와르. 심사위원들이 쓰러지는 걸 보면서 역자들이 환호를 질렀다. 샤름은 모든 초밥이 맛있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정수리살 스시"를 꼽았다. 짚과 목초로 향을 입힌 참치 정수리살. 본래 참치에서도 가장 희소성 높은 특수 부위다. 깊으로 구운 덕에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없고 순수한 기름의 향기만이 남아서 날뛰고 있다. 이 평을 들은 [[하야마 아키라]]는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그만큼 완벽했다고 평하고 승부의 향방은 어레인지를 가한 마지막 초밥, "군함말이"에 있다고 단언했다. [[나키리 아리스]]도 의견을 같이하며 과연 어떤 맛으로 완성시켰을지 주목했다.
          군함말이를 집어든 샤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함말이에 올라간 네기토로는, 사실 머렝이었던 것이다. 맛을 본 샤름은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발견했다. 훈제 간장이었다. 단지 쿠가에게 조력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게 아니었다. 최후의 어레인지를 위한 회심의 카드. 미마사카가 내놓은 어레인지 초밥은 "메추리살 노른자와 훈제 간장을 섞은 나카오치 군함말이"였다. 나카오치란 참치의 양쪽 살을 발라내고 남은 등뼈 부분의 살을 의미한다. 훈제 간장이 첨가된 밥과 김이 나카오치의 기름기와 만나 절묘한 향을 내고 그 위에 올려진 머렝, 메추리알 노른자, 파가 네기토로를 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연출한다. 샤름은 이것을 "궁극의 네키토로 메추라기밥 군함"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호평. [[카와시마 우라라]]가 이를 갈면서 분해했지만 그녀 또한 미마사카의 초밥을 맛 봤기 때문에 박할 여지가 없었다.
          * 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호평 행진. 이제 관건은 안이 담당한 쿠가의 탕수육이었다. 시식 전에 안이 내키지 않아했던 인상이 마음에 걸리는데.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절정에 도달한 안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런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안은 그렇게 주장했다. 좌우간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격찬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흑초 탕수육"이었다. 흑초 소스가 발라져 장식물처럼 짝이는 탕수육. 그걸 먹는 순간 숨겨져 있던 녹차의 강렬한 향이 시야를 신록으로 물들이는 극상의 맛. 관건은 흑초 소스다. 발사믹 소스에 미마사카가 준 훈제 간장을 함께 졸여 향을 극대화했다. 쿠가는 기존 탕수육의 틀을 철저히 파괴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텁텁한 뒷막과 기름기를 신맛과 감칠맛으로 잡았다. 그 자리를 녹차의 향으로 채우면서 돋보이게 만들어 단연 요리의 주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 쿠가의 파격행보는 적과 아군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센트럴 측의 [[코바야시 린도]]는 "그 쿠가가 프렌치"라며 [[츠카사 에이시]]에게 놀라운을 표현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상황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역자 측에선 [[미토 이쿠미]]가 해볼만하게 됐다고 환호했다. 역자 측에서도 한결같이 중화요리 전문인줄 알았던 쿠가가 이렇게까지 폭넓은 아이디어와 테크닉을 구사한 것에 감탄했다. 그건 전적으로 츠카사 에이시 때문이었다.
          단상 위에서 소마를 내려다 보는 츠카사. 그를 노려보는 소마. 전광판에는 3 대 0, 역자 측 선수 전원이 3 대 0으로 패한 처참한 스코어가 떠올라 있었다.
  • 우현(배우) . . . . 14회 일치
         물론 논란이 될 사항은 아니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도 [[1987(영화)|1987]]에서 [[전두환]]의 심복이자 [[안기부]]의 수장이었던 [[장세동]] 역으로 출연했는데(...) 정작 문성근 씨는 진보 성향인데다 과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또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단체|시민운동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진보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고, 현재도 [[진보]] 진영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만 영화, 드라마 등 작품에서는 대 성향의 역할을 맡아왔다([[군부]] 정권 시절의 친 정부 성향 경찰 간부나 [[정보기관]] 수장, 부패한 정치인, 언론인 등등). 본인 스스로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에서 “그 영화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라고 밝혔다.
         그러다가 2003년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황산벌(영화)|황산벌]]에도 출연한다. 2004년 [[시실리 2km]]의 해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일인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관심도 받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ChRUT0rck9A|니가 94야 그럼?]] 흥행한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제일 늙은 막내 조폭'이라는 역할 설정의 매력으로 영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도 그 장면이 나오는 등, 출연자 중 우현만큼은 대중에게 얼굴을 꽤 알린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현재 [[성노을]] 역을 맡았는데 매우 충격적이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응은 좋지 않다. 물론 외모가 다소 비슷하고 노을이의 말투나 행동을 연구했는지 유사하게 연기해서 호평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응은 "제작진들이 너무 무리수를 뒀다", "다 된 밥에 재(우현) 뿌리기냐", "너무 어색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이런 이유로 우현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영화 '니 말을 믿으라는 거야' 라는 작품에서 성인용품 인형을 사용하는 장면 이후로 최대 [[흑역사]]로 남을 것 같다. 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당시에도 이 부분을 언급하였다.
         친구인 [[안내상]]과만 몇 번 출연하다가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 가족과 함께 출연한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능에 진출했다. 본래 예능 울렁증이 있다 보니 우현보다는 가족들의 활약이 대단했었고 빵빵 터졌지만, 어느 정도 예능을 하다보니 본인도 평타를 치기 시작했다. 또한 극초에 드라마 촬영 일정 때문에 아내와 외아들만 출연하다가, 잠깐 하차했다가 다시 매주 고정출연 중이다. 그 후 장모님이 타계 후 잠깐 쉰 적이 있지만, 그 후에도 프로가 종영할 때까지 꾸준히 참여하였다.
         또한 [[시트콩 로얄빌라]]에 콩트를 펼치기도 하였고, 아내 조련과 함께 <내 나이가 어때서> 후속 코너인 <리그 오브 차일드>에서 동출연한다.
         그 외에도 [[TV 동물농장]]과 [[1 대 100]][* 2013년 10월 22일, 2016년 4월 19일]이라든가 [[히든싱어]]-남진편(장모님과 동출연), [[퀴즈쇼 사총사]], [[해피투게더]], [[라디오스타]][* 2012년 9월 19일, 2016년 3월 9일]에도 출연했다.
          * 헤드 (2011) - 박씨 역[* 여담이지만 감독 조운은 우현의 처남이다. 또한 아내와 동출연인데 드디어 부부로 나왔다.]
         === 전 내역 ===
         평생 가난은 몰랐고, 술집을 운영할 때도 연극을 할 때도 사실 치명적 경제 사정이나 배고픔의 경험은 없었다고 한다. 후일 [[안내상]]은 우현을 가리켜 '최고의 전남'이라고 표현하였다.
         상기했듯이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했다. 그것도 연세대 수석입학자에다 총학생회 사회부장직까지 맡은 수재였으니. 그렇게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외모에 놀 수도 없고 운동도 싫어해서 공부밖에 할 게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집안 환경이 공부 잘하는 가족들도 많고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였다고. 그에 해 아들 준서는 공부에는 영 관심 없고 게임에 너무 빠져서 고민이라고 한다.[* 그 이유로는 게임도 있지만, 우현 부부 자체가 공부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키운 것으로 보인다.]
         본래 가족과 방송 출연은커녕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그나마 아내는 인터뷰나 [[라디오스타]] 등에서 자주 언급했었고 부부가 영화 동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유자식 상팔자]] 계기로 온 가족이 방송에 출연했다. 하지만 출연 후에도 아내는 방송에서 자주 모습을 비추는 것에 비해 아들은 고정 프로그램인 <유자식 상팔자>와 [[무한도전]]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잠깐 출연한 것 이외의 다른 프로그램에는 전혀 출연하지 않는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는데 친구 [[안내상]]이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오히려 안내상의 대가 심했다고 한다. “련이가 너무 예쁘니까 안 될 것 같았다. 네가 어디다가 들이대느냐. 들이댈 곳에 들이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실제로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우현이 장기간 아내에게 호감을 표시하였으나 아내가 알면서 적잖이 모른 척하거나 거부했고, 그걸 그전부터 조련과도 친분이 꽤 있던 안내상도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안내상과 조련 두 사람이 같이 부부 역할로 연극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당시 조련이 상당히 미인이라서, 주변 남자 배우들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안내상은 우현이 상처만 크게 받고 끝날까 걱정되어, 어떻게든 일찍 포기하게 하려고 공격적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한다.
          * 엄청난 마성의 매력 소유자다. 본인 말로는 "처음 볼 때는 엄청 싫어하다가, 몇 번 보고 나면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도 이런 매력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배우 [[조민희]]나 박남정 딸 [[박시은(2001)|박시은]]도 잠시 동안에 빠졌었다. 그래서 못친소에 나온 것이 싫었다고.[* 못친소에서 밝히길 아들 준서도 처음엔 엄청 싫어했지만 5살 즈음에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우현의 아들은 못친소 특집에 우현이 나간다고 하자, "아빠가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고 우현이 왜냐고 발하자, "아빠가 잘생긴 걸로 1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못생긴거)로라도 꼭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과 본인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사실 단순히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의 마성이라기보다, 실제로 인성이 훌륭하고 부드러우며 심지도 곧은데다가 포용력과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쉽게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즉 [[진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청춘을 던진 것만 봐도 정신이 올바른 것이 보인다. 본인도 삶의 목표가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온다고 하면 기분 좋아지고 환영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단지 본인의 외모와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 표독스럽거나 독특한 성격의 느낌을 준 적이 많아, 사적으로 보면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친소에서도 결국 그 대인친화적인 인성으로 우승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노홍철]]이 1등을 했던 못친소 1과 다르게 우현이 나온 못친소 2는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남자' 컨셉으로 출연자들이 정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을 뽑았던 사실상의 인기투표였다.]
  • 유키히라 소마 . . . . 14회 일치
         아버지의 언급에 의하면 평범한 요리사는 뛰어난 요리사를 보고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재능있는 놈에게 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승부를 포기하고 마음에 뚜껑을 닫아버리지만, 소마는 평범한 재능이면서도 그런 뚜껑이 없다고 한다. 상대방의 쩌는 타이틀/실력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악착같이 달려들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 요리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때까지 골두하고 시행착오를 복한다. 설사 그럼에도 패배하다고 분한 마음은 분한 마음이고 그것과 별개로 그런 실패/패배 조차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실력을 증진시킨다. 단지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정말 그대로 실천한건 소마 뿐. 이런 재능은 천재인 소마의 아버지조차 없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선천적인 천재라기 보단 [[노력하는 범재]] 타입인 셈. 초이야 그렇다치고 쟁쟁한 이벤트를 거치며 실력을 증명했는데도 소마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소마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그 처럼 노력하지 못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로 생각하면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다른 이들(하야마, 료 등)에 비해 소마는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가을 요리대회 결승전에 들어서자 서서히 소마를 인정하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한다.]
         메구미는 상하기 시작한 콜리플라워의 문제를 보완하려고 와인식초로 데치는 방법을 썼는데, 재료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것을 칭찬은 못할망정 '''자신의 르세트(레시피)를 망가트렸다며 주저없이 퇴학'''시켜버린 것이다. 소마는 메구미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며, 식재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시노미야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전 주석에서는 테스트로 보기에는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 시노미야가 작중에서 말하듯 콜리플라워는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리플라워를 챙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태가 나쁜 콜리플라워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시노미야는 당황하여 이 점을 망각한 학생들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누군가가 꼭 떨어져야 하는 '상대평가'였다면 말이 되는 테스트고, 학생들의 역량을 공평하게 실험하는 '절대평가'였다면 말이 안 되는 테스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험관 재량에 따라 퇴학시킬 학생의 숫자를 0부터 무진장 많이(...)까지 고를 수 있어 보이므로, 그냥 시노미야의 성격이 더러운 걸로 해석하는 게 옳다.] 론하나 시노미야는 '''조리장은 자신이라며 소마의 의견을 묵살. 더이상 대들면 조리장 권한으로 소마마저 퇴학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도지마는 메구미가 메인으로 요리할 것을 요구한다.[* 원래 식극은 1대1이지만 이번은 소마와 메구미 페어 vs 시노미야의 형태였다.] 소마는 발하지만 도지마는 '유키히라.. 네 요리로 이겨서 타도코로가 살아남았다고 치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남의 뒤나 쫓아다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결국 다른 과제에서 떨어져 버리겠지. 그때도 네녀석이나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건가? 토오츠키에선 자신의 가치는 그 팔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타도로코가 토오츠키에 남아야 하는 인재인지 아닌지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요리가 끝나고 완성된 시노미야의 요리는 '닭가슴살 슈 파르시.[* 슈 파르시는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전통요리로 양배추 잎으로 잘게 썬 고기나 야채 등을 채워넣은 츠메모노(조류, 생선 등의 뱃속에 다른 조리품을 채워넣은 요리)를 감싸 쪄낸 요리이다. 양식점의 '양배추 롤'과 비슷한 요리이다] 이 슈 파르시는 시노미야가 프랑스의 일 가정에서도 자주 해먹는 일적인 향토 요리지만, 시노미야의 감성과 기술로 고쳐내어 고급 레스토랑에 내놓을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서 다들 '야채의 마술사'다운 요리라 평가했다.
         무수한 미식 경험으로 엄청나게 깐깐한 심사위원[* 이들 중 대표는 센다와라 쌍둥이 자매로 각각 A,B블록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이 자매는 작중 대기업인 카레를 주로 생산하는 하우비 식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언니인 나츠메는 CEO, 동생인 오리에는 COO를 맡고 있다. 둘 다 '''고금동서의 카레를 전부 다 알고 있어서''' 예선 주제인 '''카레'''로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도 전세계의 요리들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일류 미식가들이다.]에 좌절하는 사람[* 심사위원들의 기준이 어찌나 높은지 자신들의 말로는 '''50점 이상''' 받으면 훌륭한 요리라고 하는 데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40점도 못 넘었다.(...)''' 특히 A블록 심사위원장인 나츠메는 [쿠로키바 료|료]의 프렌치 왕새우 카레를 먹기 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단 1점도 주지 않았다.''' [흠좀무].]과 그럼에도 감탄사를 끌어내는 실력자들[* 앞서 얘기한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으로 전부 이 까다로운 심사위원들한테서 '''80점 이상'''을 받았다.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A블록은 '''아키라''', '''소마''', '''료''', '''스바루''', 슌, 젠지, 니쿠미, 료코 / B블록은 '''아리스''', '''히사코''', '''타쿠미''', '''메구미''', 미요코, 이사미, 유우키, 나오이다. 강조처리한 애들은 본선 진출자들.]이 등장하는 예선에서 후부에 드디어 요리를 완성. 직접 만든 망고 처트니를 숨김 맛으로 쓴 카레 리조또 오므라이스로 심사위원의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성공, 하야마가 날카로운 창이라면 소마는 맛의 파상공격이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아키라의 홀리 바질 카레에 1점 못미치는[* 단 하야마보다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이 심사위원 5인 중 3명이었다. 즉 이게 점수 합산 방식이 아닌 식극처럼 다수결 방식이라면 오히려 소마가 이겼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93점으로 [쿠로키바 료|료]와 함께 공동 2위로 본선 진출 성공.
         2회전 당일, 타쿠미 때와 마찬가지로 스바루에게 속속들히 읽혔고 임기응변으로 다양한 고기를 조합해봤자 시간을 들여 숙성한 자신의 요리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 스바루에게 소마는 내가 했던건 임기응변이 아닌 조리가 끝날 떄까지 계속해서 사고를 멈추지 않고 최상의 맛을 조합을 찾아내고 또 그걸 조리에 영한 것 뿐이라고 말한다. 즉 스바루의 요리가 상대의 요리를 카피한 뒤 그걸 약간 개선하는 정도인데 소마의 요리는 애초부터 완성 직전까지 계속 진화하는 요리였던 것. 중간에 사고를 포기한 건 오히려 스바루 쪽이었고 메인인 꼬리고기 뿐만이 아니라 소의 수많은 다른 부위를 전부 활용한 유키히라식 비프 스튜, 가을 선발 스페셜로 스바루를 이기고 그 후에 패배를 인정하면서 요리인을 그만둘려 하는 스바루를 요리인의 인생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격려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후리카게 밥을 시식한 에리나는 소마와 꼭 닮은 천사들에게 희롱당하면서 몸(혀)이 응해버리는(…) 리액션을 맛보게 된다. 다만 소마가 너무 깐쭉거린지라 횟김에 맛 없다고 발언하면서 불합격을 한다.
         시식자는 112호실의 사카키 료코, 116호실의 요시노 유키, 그리고 십걸의 7석인 [[잇시키 사토시]]. 리액션은 크고 아름다운 '''움틈'''. 이후 잇시키는 "아름답다…, 눈이 녹았어, 소마…!" 라고 악수를 청한다. --'''라의 모습으로'''.-- 그리고 대결은 무승부가 된다.
         여담으로 이때 사용한 재료는 특판하던 700엔짜리 '서로인 스테이크'. 20%할인에 액 스티거까지 붙어있었다. 상대인 니쿠미의 A5 소고기와 비교할 수 없는 고기였기에, 당연히 이 고기를 본 관중들은 분노에 물건들을 던졌다(…). 승자는 소마로, 이쿠미는 강한 와규 맛에 대항해 밥까지 강하게 만들어서 맛이 서로 싸우게 되었고, 소마는 대로 맛끼리 조화를 이루어 승리를 얻었다. 이때 이쿠미는 소마의 덮밥을 먹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알몸으로 덮밥에 파묻힌 듯한 리액션을 취했다(…).
          2. ①의 닭날개와 A를 냄비에 넣고 강불에 놓은 다음 한소끔 끓으면 (약불에 놓고 국물이 으로 졸아들 때까지 끓인다.) 거품을 걷어낸다.
  • 이기택 . . . . 14회 일치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대하며 ~~비장한 표정이 인상적인~~김영삼 전 대통령(가운데)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오른쪽은 [[김상현(1935)|김상현]] 당시 신민당 의원.
         그러나 1978년 신도환 계보에서 이탈하였고, 1979년 5월 [[전당대회]] 때에는 따르는 의원 1명도 없이 원외인사들로만 독자 계보를 형성하여 1차 대회에서 신도환을 뛰어넘는 92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전당대회 2차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사퇴하여 자신의 표들을 김영삼에게 몰아 주어서 김영삼이 이철승을 꺾고 신민당 총재로 선출되는 데 기여하였다.[* 이때 신민당 내에서는 중도통합론을 내걸고 사실상 독재정권과 야합하던 이철승에 대한 감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래서 2차 투표를 앞두고 [[선명야당]]을 내걸고 박정희 정권과 정면대결을 공언하고 있던 김영삼으로 이철승 세력들이 결집한 것이다. 이기택의 후보사퇴는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도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철승을 떨어뜨리고, 김영삼을 총재로 당선시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김영삼은 이들의 표를 모두 모아서 [[중앙정보부]]의 정치공작 속에서도 총재경선에서 승리하였다.]이 때 박정희 정권은 이기택이 이철승이 아닌 김영삼을 지지하려 하자 자형 이임용이 운영하는 태광그룹의 장부를 압수하기까지 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로 출마할까 말까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못 이기는 척(?) 전국구 상위순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다. 면에 [[노무현]]과 [[김정길(1945)|김정길]]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부산에 출마해서 [[지역감정]]의 역풍 속에서도 처절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노무현은 4번, 김정길은 총 7번을 떨어졌으나, 김정길은 장관이 되었고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면서 죽을둥 살둥 싸우는데, 정작 격전지에 출마해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당대표는 유유자적 전국구 상위 순번으로 편하게 금뱃지를 달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지역구 당선가능성을 보고 간을 보다가 지역감정으로 안 될 거 같으니 전국구로 도망간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실제 당대표이자 영남권에서 가장 정치경력도 길고 지명도가 높은 이기택이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면서 민주당의 영남권 선거전략이 제대로 꼬인 건 사실이다. 결국 노무현, 김정길과 몇몇 정치지망생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모조리 낙선하였다. ~~뭘하던 당시 부산에서 김영삼을 넘기는 힘들었겠지만...~~]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 고문으로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가 이끌던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만[[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2|#]], 기존의 30석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으로 의석이 토막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였고, 같은 야권의 경쟁상대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양천구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몇 개의 의석을 건지긴 했으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과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김대중의 국민회의도 이때 상당히 부진했으나, 무엇보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50석으로 크게 약진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1997년에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재보궐선거]]에서 죽어가는 당의 명운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정치적 생명을 걸고 출마하였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태준]]에 밀려 낙선. 사실 태어나기는 포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정치적 기을 부산에서 잡은 이상 당선되기는 어려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포항의 경제를 쥐고 있는 [[포항제철]]의 창립자이니 이건 처음부터 안되는 싸움이었다.]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독선에 발하여 [[김윤환]], [[이수성(정치인)|이수성]], [[신상우]], [[조순(1928)|조순]] 등과 함께 탈당하여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부산광역시 [[연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권태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기택뿐만 아니라 김윤환, 신상우, 조순, [[김상현(1935)|김상현]], [[김동주(정치인)|김동주]] 등이 모두 낙선하였으며, 지역구에서 홀로 당선된 [[한승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민국당 인사들이 결국 낙선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계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안습]]인 인물이 재야에 있다가 뜬금없이 김윤환 등과 손을 잡은 장기표. 어쨌든 이때 이기택은 [[망했어요]].-- ~~아무 실익도 없이 통합민주당만 갖다바친 꼴~~ ~~통합민주당을 그냥 지키고만 있었어도 이런 꼴은 보지 않았을 것을~~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해운대) || '''[[통일민주당]]''' || '''54,223 (48.30%)''' || '''당선 (1위)''' || 1990년 탈당[br]([[3당합당]] 대) ||
         || 1997 || 1997년 7.24 재보궐선거 (15대 국회 경북 포항 북)[* 전임자 [[허화평]] [[12.12 군사란]]으로 피선거권 상실] ||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 35,137 (28.33%) || 낙선 (2위) || ||
  • 이인영(정치인) . . . . 14회 일치
         제20대 국회 후기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 후기 정보위원회 위원
         제20대 국회 후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제20대 국회 전기 정보위원회 위원
         제20대 국회 전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 후기 여성가족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 후기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제19대 국회 전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민주당 4대강 대운하 대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7대 국회 후기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제17대 국회 전기 교육위원회 위원
         한도재단 동북아전략연구소 소장
         - 지역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최근 각 종교단체는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는 종교시설을 활용하여 문화복지의 증대를 도모하는 봉사적 차원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도들과 일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고 있음. 특히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종교시설은 부족한 문화기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 그러나, 현행법에 따른 생할문화시설의 범위에는 종교시설이 누락되어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상·재정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종교시설은 유휴공간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음. 이에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종교시설을 포함하고 공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임(안 제2조제5호)]
  • 이철희(1964) . . . . 14회 일치
         한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고, 중앙 정계의 언저리를 있으면서 민주당 쪽 정치인들과도 두루 인연을 쌓았지만, 일 대중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라는 작은 정치 컨설턴트 사무소의 소장으로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나 역시 그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높여준 건 [[JTBC]] [[썰전]]이다. 이 시기 보수 진영의 패널을 맡았던 [[강용석]]과 더불어 진보 진영의 패널로서 ~~열심히 MB를 까며~~ [[썰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진담 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책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김한길(정치인)|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는데, 언제부터 일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대 중에는 확실히 의원 보좌관이었다. 2008년 전후로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는데, 정작 이후에도 대학 출강을 한다든지,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한다든지, 민주당 당내 정책연구소에서 부원장을 지낸다든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정치 스펙을 쌓았다. 본인의 말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끝내 공천되지 못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http://m.news1.kr/news/category/?detail&593920|서류심사에서 탈락해서]] 면접도 못 봤다. [[http://mnews.joins.com/article/7703750|공천 과정에 대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의 코멘트]]] 2016년 기준으로 보면 전화위복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썰전의 고정 출연한 이후 상당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썰전의 최대 수혜자라 할 만 하다. 썰전 덕분에 팬클럽(!)도 생겼다고 한다. [[김구라]]와 [[강용석]], [[이준석(정치인)|이준석]]과 '하드코어 뉴스깨기'를 맡았다. 보수 성향의 강용석, 이준석에 맞서 진보 성향의 의견을 대변한다. 사회비판적, 이상지향적인 말을 많이 하는 편. 이에 대되는 성향을 가진 강용석과 꽤 심각하게 대립할 때가 있다.
         전적으로 온건 합리적인 리버럴 스탠스를 가진 것과는 달리 사관엔 [[이덕일]]류 노론사관을 맹신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저서 <뭐라도 합시다>와 썰전에서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는 노론으로, 이는 [[친일]] 단정 [[박정희|군사]] [[전두환|독재]]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렇게 첫인상이 좋지 않던 상황에서 인재 영입 당시 대부분의 인물들이 '당이 원하면 어디든 가겠다' 라고 하며 개인의 욕심을 보이지 않았던 면, 이철희 전 소장의 경우에는 [[http://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174997|'지역구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13분 25초부터)라고 발언하며 낙선의 위험을 안아야 하는 지역구보다 상대적으로 당선이 수월한 비례대표를 노리고 있던 것 때문에 이미 정치 세계에 대해서 알 만큼 알고 있고, 또 [[썰전]] 등을 통해 충분한 인지도와 지지를 확보한 사람이니 지역구 선거로 나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년 비례대표 논란이 있는데, '더벤저스'라고 불리며 당내 활동에 적극적이던 영입 인사인 [[http://m.moneyweek.co.kr/view.html?no=2016031507208018613|김빈 디자이너가 예심에서 5분 면접 후에 탈락]]당한 면, [[http://news.donga.com/ISSUE/Vote2016/News?m=view&gid=77018257&date=20160315|더민주 당직자가 첨삭지도를 해 준 것]]과 [[http://mnews.joins.com/article/19388510|과거 국민의당 발기인]]이었던 상황임에도 청년비~~리~~례대표 결선대상자로 지정되어서 논란이 된 최유진 예비 후보가 이철희 전 소장의 대학원 시절 제자라고 밝혀지면서 '자기 사람 끼워넣기'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김빈 디자이너는 비례대표 심사 이전에 비례대표 예비후보로서 자신을 홍보하면서 자신의 본명인 '김현빈'이 아닌 예명 '김빈'이라는 이름을 쓴 적이 있다. 본명을 기재하지 않았다면 선거법 위 사항이다. 이것 때문에 탈락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3월 15일, 이러한 루머들에 대해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190562&CMPT_CD=Mnew#cb|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박하는 글을 올렸다.]] 간단히 말한다면 자신은 공천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박영선]] 문서에 적혀 있기도 한 녹취록 건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며 그 당시 이야기한 내용은 외부 상황의 심각함과 기자들의 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고. 후에 유시민 작가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
         20대 총선에서 [[더민주]]의 비례대표 8번 후보로 나서서 당선되었다. 국방위원회 간사와 정치발전 특별위원회를 거쳐 2017 대선 민주당 전략기획 부본부장으로도 활동했으며, 20대 국회 [[국방위원회]]의 전기 여당 간사로 일했다.
         이후 국방위 소속 의원으로 MB 정부 시절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문건을 결제한 사실을 공개하는 등 여당의 공격수로 군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해 치며 정력적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KEPD 350]] 도입이나 [[중고 치누크 도입 논란]]을 지적했는데 잘못 짚으면서 이미지를 좀 까먹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같은 당 출신인 [[김광진(정치인)|김광진]] 전 의원이 박하기도 했다.
          * 썰전 출연 당시 [[강용석]]을 확실하게 압도한 적이 몇몇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메르스]] 사태 관련해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적절히 들어가며 메르스 발병 당시 공직자들의 행적을 시간 순으로 조목조목 박한 것. 이때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말을 아주 후련하게 잘 했다 하여 '사이다'라는 칭송을 받았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10580|관련글 참조]]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14회 일치
         범인은 [[부엌칼]]을 가지고 2학년 남쪽(2年南組)에 들어가서, 여자아이 5명을 말 없이 찔러죽이고, 테라스를 통하여 서쪽(西組)에서 어린이들을 습격, 다음에는 복도로 동쪽(東組)에 들어가서 4명을 습격했다. 동쪽에서 밖으로 나와서 태클을 걸어온 교사(1학년 남쪽 담임)의 가슴을 찔러서 중상을 입혔다. 교사는 "도망쳐라!"고 소리쳤으며,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뜰 쪽으로 달아났다. 남자는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아가다가 발길을 돌려서 1학년 남쪽 칠판 옆에 있는 4명의 아이들을 찔렀다. 그리고 겨우 부교장, 그리고 밖에서 엇갈렸던 2학년 남쪽 담임이 달려와서 붙잡혔다.
         단 5분~10분 정도 사이의 짧은 시간에, 타쿠마 마모루는 8명의 아이들을 살해하고, 13명의 아이와 2명의 교사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피해자는 처음 들어간 2학년 남쪽에서 5명, 그 옆의 2학년 서쪽에서 2명 사망 6명 부상, 2학년 동쪽에서 4명 부상, 붙잡힌 1학년 남쪽에서는 1명 사망 3명 부상이다.
         체포 직후 타쿠마는 "한큐이케다역(阪急池田駅)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100명 정도 난도질해왔다.", "요즘 계속 잠을 못 잤다. 초등학교에는 가지마."같은 이상한 발언을 복했다. 타쿠마의 집에서는 진정제 등 10여 종류 200정 가량의 약품이 발견됐다. 체포되고 얼마쯤 지나서, "정신장애가 무거운 것처럼 위장했다."고 인정했다. 두 차례의 정신감정 결과 '인격장애'로 진단 받았으나, 책임 능력이 있음이 인정되었다.
         9월 14일에 살인죄, 살인미수죄 등으로 오사카 지방 법원에 기소되었으며, 12월 27일에는 첫 공판이 시작되었다. 타쿠마는 재판에서도 기행을 복했는데, 검찰이 기소를 읽어주고 시작했을 때 "여어, 앉으면 안됩니까"라고 말하여 재판관은 엄격하게 서서 들으라고 말하면, 노려보기도 했다. 첫 공판에서 혐의사실을 인정하고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했으나, 나중에 왜 그런 말을 했냐고 추궁당하자 "신문기사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라서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2003년 12월에 타쿠마는 와카야마 출신의 여성과 5번째 결혼을 했다. 여성은 사형 폐지를 호소하는 국제사면위원회 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지원자 가운데 1명으로 변호사를 통하여 타쿠마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결혼은 타쿠마에게 접견, 서신 권리를 얻으며, 타쿠마에게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설득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여성은 가족에게 맹렬한 대를 받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의 성을 바꾸고 타쿠마도 이 성을 쓰게 되었다.
  • 전인범 . . . . 14회 일치
         === 생애 초 ===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에 의한 [[탈레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상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상황실에서는 유학시절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7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문재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ref name="b"/> 왜 문재인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이) 저를 한번 보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만났다. 그 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만나보니까 좋은 분이고, 지적이더라. 공부하는 분이고. 근데 그날 제가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했다. (- 안보관을 지적했나) 음…. 하여튼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다 받아주더라.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득하는 건 둘째고, 일단 잘 들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범 중장의 전역식 때 전역사를 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정호용을 고마운 선배로 언급한 것에 관해서는 “저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잘못된 부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거지, 5·18과 관련해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5·18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호남 분하고 이야기를 하며 ‘저는 언젠가 광주 5·18묘역에 그때 죽은 군인들이 같이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무도 모르잖나.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당시 군의 잘못이지 하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 특전사가 살인마처럼 비춰지는 건 바뀌었으면 한다. 하여튼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감옥에도 가고 그런 것 아닌가. 정호용은 그런 책임이 있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건 그분이 인간적으로 부하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본받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그의 5·18에 대한 견해에 우파 언론인임에도 5·18을 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는 “여러 번의 국가적 수사와 조사에서 광주 사태 초기엔 상급 지휘부의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으며 현장 상황이 워낙 급하여 자위적 차원의 대응발포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물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전인범의 발언을 옹호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5656 제목으로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末期 증세], 《뉴데일리》, 2017년 2월 10일</ref>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2017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전인범 중장은 이례적으로 [[예비역]] 한국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현직 육군 최고 수뇌부가 참석하는 이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예비역으로는 유일하게 발표했는데, 현직 미군 주요 지휘관들은 물론 전직 미군 수뇌부들로부터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 연합전력 극대화 해법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출신으로 평가받고 있어 이 심포지엄에도 초청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528010015215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미 군사 혈맹, 한국군 주도적 역할 중요”], 《아시아투데이》, 2017년 5월 28일</ref> 그는 발표문에서 “한미간 긴밀한 연합작전과 지휘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⁴I)가 기되어야 하며 양국간 언어장벽의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리나라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46579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美 'LANAPC'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 및 발전 방안 발표], 《뉴데일리》, 2017년 5월 26일</ref> 또한 심포지엄이 끝나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군 발표자들 대부분은 기조연설과 발표문에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rising adversary)’으로 지칭했다”면서 “미국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질주하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292284 "美, 아태 지상군회의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 지칭"], 《연합뉴스》, 2017년 5월 25일</ref>
         1년 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그는 케네소 주립 대학교, 템플 대학교, [[:en: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외교정책연구소]] 등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로펌을 찾아 한도 갈등이 미국 국민들의 일상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강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025928 한국전쟁 미국에도 도움안돼… 참화 막을 외교적 노력 필요],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2017년 10월 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을 하기 전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그는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는 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도 갈등이 미국에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 또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025816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상도 심각"],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한 달 후인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오청성 하사가 국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던 것은 북한 신속대응군 추격조가 오 하사를 급히 쫓느라 호흡 조절에 실패해 급소를 가격하는 소위 ‘킬 샷(kill shot)’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34661 <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뛰어온 北추격조 숨 헐떡여 급소 못 맞혀… 천운”], 《문화일보》, 2017년 11월 24일</ref> 전 전 사령관은 “CCTV 영상을 보면 전력 질주하는 오 하사를 쫓느라 AK 소총을 든 두 북한 경비병은 300m 이상, 권총을 든 두 경비병 추격조는 200m 이상 전력 질주했다”며 “추격조는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되지만 오래 뛰다 보니 총을 쏠 때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 하사가 추격조의 사격에 노출된 시간은 10초가 채 안 돼 정확한 조준 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덕에 심장, 대동맥, 정동맥 등 출혈을 많이 일으키는 곳이나 신경계인 머리 척추와 같은 급소를 맞지 않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총탄은 몸에 박히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간이나 비장,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주도록 설계된다”며 “그런데 오 하사와 추격조 간 거리가 살상 효과가 높은 50m보다 짧아 관통한 총알이 많아서 살상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탄이 몸을 관통할 경우 출혈을 빨리 멈추게 하고 패혈증만 막으면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급소만 피하면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보다 관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통역이 필요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주한미군 지휘부와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리고 있다.<ref>[http://news.donga.com/People/3/06/20110512/37149041/1 ‘전작권 전환 기여’ 전인범 소장이 받는다], 《동아일보》, 2011년 5월 12일</ref>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그를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0/2013042000200.html 박지만씨 육사 37기 동기들, 청와대·국정원·軍 요직 올라], 《조선일보》, 2013년 4월 20일</ref> 주한미군사령관 [[:en:Curtis Scaparrotti|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그를 일컬어 ‘가장 절친’이라 칭할 정도로 미군들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116010009522 주한미군사령관 "한도 평화·안정 온힘 쏟겠다"], 《아시아투데이》, 2014년 11월 16일</ref> 미 8군사령관 버나드 샴포 중장 역시 ‘한국 군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절친이며 항상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고문(顧問)이자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라고 강조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208010005247 주한 미8군사령관 "한미 군사동맹 강력하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8일</ref>
         2014년 9월 특전사 13공수여단에서 포로체험 훈련 도중 부사관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훈련의 도입을 지시한 사람이 그였던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었다. 2017년 2월 [[국민의당]] [[김영환 (1955년)|김영환]] 최고위원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그에 대해 “이분은 취임 후인 2014년 9월 공수여단에 포로처럼 고문훈련을 시켜 두 명의 군인을 사망시킨 전력이 있다”며 “문재인 전 대표는 왜 ‘특전사 코스프레’를 포기하지 않고 집착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52597 김영환 "文캠프 전인범, 고문훈련으로 군인 두 명 죽었는데…"], 《뉴시스》, 2017년 2월 6일</ref>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가 전역 직후인 2016년 9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포로체험 훈련 중 사망한) 조용준·이유성 하사. 나는 당시 부대 지휘관으로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죽을 때까지 새기고 가야 한다는 벌을 받았다”며 지휘관으로서 도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ref name="a"/> 문재인 지지 선언 직후인 2017년 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당시 사고의 핵심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지와 부주의, 그리고 감독 부실이다. 그리고 당시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보도됐는데, 군 생활 당시 매뉴얼이란 표현을 쓰던가. 에프엠([[FM]], filed manual, 야전교범)이란 표현을 쓴다. 사고 직후 장교가 기자에게 ‘매뉴얼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받고 ‘못 봤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만약 ‘에프엠이 있었나’라고 물어봤으면 그렇게 답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가 책 만들 때 초고가 있잖나. 그때 (엄지와 검지를 4cm 정도 떨어뜨린 손을 내보이며) 이렇게 두꺼운 초고가 있었다.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고 답했다. 이어 “이런 사고가 나선 절대로 안 되지만, 어처구니 없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책임만큼의 처벌만 받도록 이해해줬으면 한다. 2017년 1월에 제가 특전동지회 총재로 취임했는데, 취임식 때 희생된 두 부하의 아버지가 축하해주러 오셨더라. 그러면서 ‘사령관님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일순직이 아닌 특수직무순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잘 처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더라. 제 마음이 어땠겠나”라고 덧붙였다.<ref name="b"/> 이에 대하여 특전사 관계자는 “그들은 아들들이 비록 희생됐지만 포로체험 훈련의 취지에는 공감했기 때문에 사고 당시 사령관이었던 전인범 전 중장의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식에 참석이 가능했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763911 [단독] “포로체험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특전사 비밀리에 계속 실시], 《경향신문》, 2017년 2월 12일</ref>
  • 진격의 거인/94화 . . . . 14회 일치
          파르코는 라이너를 의식해서 힐끗힐끗 돌아봤던 건데, 가비는 그걸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이걸 "역의 예조"라며 부대에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파르코가 "이게 누구 때문인데!"고 항변한다. 가비가 알아듣지 못하자 라이너와 지나가던 병사들이 "가비 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사자만 의미를 몰라서 발하느라 파르코에게서 관심이 떨어진다.
          상황을 모면한 파르코는 라이너가 무심한 듯한, 혹은 신뢰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걸 본다. 파르코는 아직도 의한 상태다.
          라이너도 그리운 어머니와 재회했다. 그녀의 이름은 [[카리나 브라운]]. 친척들도 함께다. 가비의 가족들도 브라운 일가와 친척지간이다. 가비가 그녀를 알아보고 갑게 인사한다. 카리나는 오늘 밤은 파티를 열거라고 말한다.
          * 가비는 카리나에게 "전사대가 섬의 악마들로부터 엘디아인을 지킬 거야"라고 안심시킨다. 팔라디섬에 대한 의견은 엘디아인 전에서 공통적이다. 그들은 마레에서 가르친 대로 섬의 악마들이 언제든 대륙으로 돌아와 모든 걸 멸망시킬 거라고 믿고 있다. 이 식탁에 모인 사람들도 그랬다. 엘디아인이 멸시 당하는 것도 바로 그들 때문이라 생각했다. 화제가 이렇게 돌아가자 자연히 그 섬에서 5년이나 생활했던 라이너에게 화살이 쏠린다. 은연 중에 그 섬에 대해서 묻는데, 가비가 그런 걸 물으면 안 된다며 가족들을 말렸다. 애초에 팔라디섬에 대한 정보는 기밀인데다, 그 지옥 같은 섬에서 잠복했던 경험을 누가 말하고 싶겠냐는 것이다. 가비의 아버지가 조카의 입장을 생각 못했다며 사과하지만, 사실 라이너가 난처한 것은 가비의 발언 쪽이었다.
          [[사샤 브라우스]]의 일이었다. 교관이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때 조차 "맛있어 보여서 훔쳤다"고 대답하던 그녀. 이런 악당인데다 상황이 위험하다가 판단되자 교관을 매수하려고 감자의 을 제시했다. 하지만 거기서 내민 양은 절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다. 정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야비함. 이 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 가더니 뭘 싸러 갔는지 잊어버려서 그냥 돌아오는 얼간이, [[코니 스프링거]]도 있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 안 쓰는 불성실한 [[장 키르슈타인]]. 대로 남을 끔찍하게 챙겼던 [[마르코 보트]]. 그리고...
          >내가 드시 아홉 거인을 계승해보이겠어!
          그는 라이너가 발한 틈도 주지 않고 쉴 틈 없이 공세를 이어갔다. 라이너는 도저히 장점이 없다. 체력은 마르셀에게, 두뇌는 피크에게, 사격과 격투술은 각각 베르톨트와 애니에게. 그가 뒤처지지 않는 분야는 없다. 그가 평가받은 부분은 오로지 하나, 필기 시험 때 적어낸 "마레에 대한 충성심" 뿐이다. 포르코는 그거 하나는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그 충성심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장에게 아첨하기나 "섬의 악마들은 드시 내가 죽인다"는 허풍에 지나지 않더라도.
          라이너에겐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 당한 거나 다를 게 없었다. 라이너가 "우리 임무를 바보취급 하는 거냐!"고 몰아붙인다. 라이너의 격이 포르코를 엘디아 복권파로 몰고 대장에게 보고하겠다는데까지 가자 포르코가 정색하고 주먹을 휘두른다. 마르셀이 말려보지만 늦었다. 주먹과 함께 포르코의 독설도 멈추지 않는다.
         그때도 완장을 대쪽에 착용하고 있었고, 94화에서 파르코가 완장을 제대로 착용시켜 주었다.
  • 차선우 . . . . 14회 일치
         [[B1A4]]의 멤버로 랩을 담당하고 있다. 저음의 랩을 구사한다는 점이 [[T.O.P]], [[방용국]]과 유사하다. 랩 메이킹을 직접 하고 있다.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히 곡에 녹아드는 랩을 작사해서 팬들의 응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랩 실력은 미지수다. 랩에 대한 서술은 아래를 참고.
         === 음 활동 ===
         랩 실력은 미지수. 라이브에서의 호흡마저 불안한 편이었으나 매력적이고 독특한 저음과[* 음악에서 음색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해서.] 독학으로 새로운 랩 스타일을 꾸준히 시도하는 모습은 발전 가능성이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랩을 잘해도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없다면 진정으로 랩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바로는 스타일만큼은 확실한 편. 소프트 랩이 주 장르이나 톡톡 튀는 랩까지도 무난하게 소화한다. 스스로 많이 연습하는지, 해가 갈수록 라이브에서의 랩이 안정적으로 굳어졌으며 랩 메이킹은 주로 그 시대의 트렌드를 영하거나 곡의 주제를 축약해 담는 등 곡에 맞게 쓰는 편이다. 래퍼답게 힙합을 좋아하는 듯 하나 경연프로그램에는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고 음도 발매한 적 없으니 아직까지는 아이돌 래퍼에 머무는 포지션.
         ||<:> '''03''' ||<:> 너에게 한 번 더 하는 순간 ||
         [[정글의 법칙]] with 프렌즈 특집에 고정 출연해 [[팔라우]]로 떠났다. 주제가 친구와 함께 떠나는 [[야! 신난다~|신나는]] 정글 탐험이기에 [[손호준]]과 파트너를 이루었다. 때때로 안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촬영 내내 끈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기도. ~~[[BL|여자들의 응]]에 [[게이|남자들은 기겁]]을 했다~~
         103회 [[이을용]]의 제자들과 족구하러 가서 몸풀기로 ~~축구를 잘한다는 바로를 띄워주기 위한 의도까지 포함된~~ 풋살을 했는데, 초에 안정환으로부터 패스를 받아 골을 넣었다.
         10월 23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 MLT-37에서는 빅마마 이혜정 방에 게스트로 투입되어 전전에서는 김장하는 걸 돕고, 후전에는 김치로 요리를 만드는 걸 돕는 보조 역할을 했다.
         ||<:> 드라마 ||<:> [[tvN]] ||<:> [[응답하라 1994]] ||<:> 빙그레 (김동준) 역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뜰 연예인은 뜬다]]''' [* '빙그레' 역할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연기도전치고는 나쁘지 않은 평이였고, 다만 극중 충청도 사투리는 어색하다는 평이 있다. 또한 아무리 봐도 호평을 주긴 힘들었고 여러 명장면일 수 있던 장면들이 있었으나 잘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 또한 강하다. ~~그래서인지 극중 후부로 갈수록 사투리 없이 표준어를 쓰며 연기를 하였다.~~ 바로의 말로 중부터는 빙그레의 고향인 충북 괴산면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연기를 했다고 한다. 드라마도 상당한 수작이였으니 귀중한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응답하라 1994]] 항목 참조.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B1A4의 대중성을 높였다. 하지만 광고는 못찍었다. 대신 응사 덕을 톡톡히 봐서 정규 2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여담이지만 B1A4 멤버들이 자신의 연기를 신경 써주기보다는 남편 찾기에 혈안이 되있어서 씁쓸하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
         ||<:> [[2014년]] ||<:> 드라마 ||<:> [[SBS]] ||<:> [[신의 선물-14일|신의 선물 - 14일]] ||<:> 기영규 역 ||<:> 6세 지능아 연기 도전 [* 6세의 정신연령을 가진 '기영규' 역으로 출연한다. 이 작품으로 첫 지상파 드라마에 진출했다. 후부로 접어들수록 더 자연스러운 지적장애인 연기를 보여줬다.] ||
         현재 [[러블리즈]]로 활동 중인 '''그 [[유지애]] 맞다.'''[* 해당 곡은 [[유지애]]가 [[러블리즈]]로 데뷔하기 전 개인 활동을 하던 시절에 발표한 곡이다.] ~~전적으로 팬들은 산뜻한 분위기의 움짤을 얻었지만 오글거림 또한 떨쳐내지 못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FWPJtK10O4|메이킹필름 A]] [[https://www.youtube.com/watch?v=PLVwYeVNaB8|메이킹필름 B]]
          * 가끔 바로의 행동을 보다보면 동갑내기 [[산들]]과 경쟁의식을 가지는게 보인다. 물론 산들쪽도. 어쩌다가 92년생끼리 맞붙다보면 최선을 다해서 이기려고 든다. 전적을 따져 보자면 매치업에서 2012년 후 공백기때, 심심타파에서 둘이 팔씨름을 하다가 바로가 산들에게 진적이 있고, [[헬로 베이비]]에서 바로가 [[산들]]을 씨름으로 이긴적 있다. 론리 활동때 [[주간 아이돌]]에서 허벅지 씨름 결승에서 또 둘이 붙다가 바로가 산들로부터 이긴적이 있다. 산들은 상체 쪽 힘이 좋고,[* 물론 비포 내에서는 [[진영(B1A4)|진영]] 상체 힘이 제일 좋다.] 바로는 하체 쪽 힘이 좋은듯.~~또 둘이 걸어본다 활동할때 참참참을 했다가 바로가 산들 마음을 다 읽어 열번넘게 이겨서 완승을 한적도 있다~~ 또한 거짓말이야 활동 중에 컬투쇼에 나와서 산들과 바로가 외모 경쟁을 했다.(산들이 졌지만 인정못했다카더라.가 아니라 영상을 찾아보면 있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14회 일치
         ||<#878787> '''{{{#EEE156 신체}}}''' ||<(> 184cm[* 누구나 다 아는 상당한 머리 크기 때문에 키가 작아보여 논란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장신으로 유명한 [[강동원(배우)|강동원]], [[조인성]]하고 비슷하며 심지어 이들보다 크다는 소문도 있다.][* 하정우의 아버지인 김용건이 70대임에도 178이다. 유전자의 위대함일지도...그리고 사람이 나이를먹으면 키가준다는논리까지합하면.. 전성기시절 김용건의 키는 180초중이었을지도 모른다.], 75kg, [[A형]], 295~300mm ||
         중학교([[전라북도]] [[임실군]]에 소재한 [[예원예술대학교]] 출신)때 전교 선도부장을 맡으며 학교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더욱 멋진 것은 하정우는 남자 후배들에게도 흔히들 선배가 잡는 허세나 똥군기를 하나도 안 잡고 살갑고 따뜻하게 대해줌으로써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학생으로 기억된다는 것. 그래서 동문들 사이에서는 하정우의 성공을 두고, "성훈이 형이 잘 되어서 정말 좋다."라는 응이 대부분이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분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시절 성적이 안 나오자 담임이 '[[김용건|너희 아버지]]가 [[패드립|그러니 니가 그 모양이지 않느냐]]' [* 당시 [[김용건]]은 에로 영화에도 간간히 출였했었고,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빨간 양말을 신고 다니며 춤을 가르치는 [[제비족]]으로 출연 중이었다.] 라는 식으로 혼을 내 충격을 먹고 성적을 올려 모범생이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대학은 일학과로 진학하고 졸업 후 탤런트 공채 시험[* 물론 연극과 진학 후 1998년에 공채시험을 보긴 했는데, 떨어졌다. 그리고 그 해 연말에 입대하여 24살 초인 2001년에 제대하였다.]을 봐서 스펙을 갖춘 엘리트 연기자가 되려 했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역사#s-2.4|그 해 모두가 그랬듯이 수능을 망쳤고]],[* 1997년 희대의 불쇼 수능 수험생이였다... 총점 300점 이상만 되어도 예원예술대학교 하위과에 지원이 가능했을 정도.] 수능이 끝난 후 뒤늦게 실기 준비를 시작해 [[중앙대학교]] --뭐?-- [[연극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출신 고교는 임실군의 임실고등학교로 고등학교 재학 시절 경희신문부에서 부원 활동을 한 적이 있다.
         하정우가 비로소 이슈몰이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MBC 드라마 《[[히트(2007)|히트]]》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이 드라마의 성공 덕에 하정우는 드디어 메이저 연기자 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라하의 연인》에서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여성 팬층을 확보했다.
         다음 해인 [[2008년]] 영화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드라마 《히트》와 영화 《추격자》는 둘 다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하정우는 《히트》에서는 검사 역을, 《추격자》에선 대로 살인마 역을 맡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실제 사건에 대한 분위기가 흡사하게 조성된 《추격자》와 달리 《히트》는 경찰, 검찰과 범죄자의 심리 싸움 등이 주된 서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그냥 유영철 사건에서의 모티브만 따온 것이고 내용이나 분위기나 인물들 자체가 실제 사건과는 차이가 많이 있어 그렇게 유영철 사건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은 아니다.] 《추격자》는 하정우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엄중호 역할이었던 [[김윤석]]도 살벌한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연기인지 실제인지도 모를 무아지경의 장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지영민이 중호에게 쫓기며 한밤중 골목길 추격전을 벌이다 코너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장면은 원래는 NG였는데 너무 리얼했던 나머지 [[나홍진]] 감독이 그 장면을 버리지 않고 그냥 썼다는 일화는 상당히 유명하다. 이렇게 영화는 성공했지만, 그 덕(?)에 험악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돼 고생 좀 했다고 한다...[* 실제 살인마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사실 브라운관의 악역 역할을 맡는 배우들이 시장에서 험한(?) 꼴 당한다더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세계 어디서나 다사다.] 주변에서 연쇄살인마 역할을 맡는 것을 말렸으나 전작 《프라하의 연인》에서의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싫어서 이 역할을 선택했다고 한다.
         [[2011년]] 연말,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2011년]] [[5월]]에 열린 제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작년도 수상자로서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와서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되면 국토대장정을 떠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황해(영화)|황해]]> 하정우.'''' 라고 발표하며 어색하게 웃었고 '''진짜로 갔다.'''[* 이 당시 그와 함께 시상자로 참가했던 [[하지원]]은 그 이후로 공약에 대해서 묻지 않는단다. ~~하정우처럼 했다 또 그러면?? 그 땐 하지원도 가야지.~~]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국토대장정 하는 소재로 --쯤 다큐인 영화-- '577 프로젝트'가 [[2012년]] [[8월 30일]]에 개봉했다. 제목이 지어진 배경은 이 프로젝트를 --작당-- 계획한 장소가 압구정의 '577술집'[* [[영화]]에서도 회의 장소로 나온다. 하정우의 단골집이기도 하다.]이기 때문.--577km 아니었어?--
         하정우 라이트 팬이 신분을 속이고 친구 대신 다녀온 캠프 인증글이 디시인사이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에 올라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각종 사이트로 배달되며 화제가 된 사건. 하정우가 더 테러 라이브, 군도 촬영 전 팬미팅 성격의 캠프를 주최하였다. 하정우와 정경호를 비롯한 후배들 대거 참여(전날 롤러코스터 크랭크업을 했다고) 피의 선착순 댓글을 뚫고 캠프에 당첨된 하정우 팬 80명은 경기도 모처 살얼음이 낀 논두렁 위에서 팀을 나누어 단체 티셔츠를 입은 후 각종 게임을 하였다. 퀴즈 1등 상품은 하정우 그림액자(하정우가 직접 시상). 참가 후기에 따르면 하정우는 동네 형과 싱크로율이 100%라는 이야기가.. 본인이 질식할 만큼 말보로 화이트를 석션했다카더라.. 80명의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털털하게 소맥을 마는데 이 때 머리 크기가 배우치고가 아니라 일인 치고도 크고 아름다운 사이즈라 카더라. 마지막날 1대1 딥포옹 셀카 촬영 등 지옥의 팬서비스. (하정우에겐 호된 경험이었는지.. 그후 2차 캠프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없는 실정이라고) 이후 하정우 캠프에 대타로 참가한 글쓴이는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마다, 하정우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하정우 앞에서 단체 줄넘기 하던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캠프 이후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썰이 있다.
          * [[힐링캠프]]에 따르면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기 전까진 대학교 생활에 대한 낭만을 기대했는데 막상 대학교에 가고 나니 20대 초밖에 안 된 선배들이 인생 다 산 듯이 행동해서 충격을 받은 듯 하다. 어떤 학기는 집합만 받고 끝난 듯 하다고.([[똥군기]]) 그래서 오히려 군대가 대학 생활보다 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젠 그리 놀랄 것도 없는 [[대한민국]]의 대학교 문화~~ ~~연극하는 것들 얘기겠지~~
          * [[LG 트윈스|LG]] 팬이어서 [[두산 베어스|두산]]을 싫어한다는 루머가 있다. 러브픽션 시사회 당시 두산 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했는데 하정우가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 팀'''만 시구할 겁니다." 라고 디스했다 [[카더라]]. 이유인 즉슨 두산과 LG의 오랜 연고지 다툼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당시 [[MBC 청룡|MBC]]가 서울, 두산(당시 [[OB 베어스|OB]])이 대전을 연고지로 했었는데, 두산은 3년 뒤 서울 이전을 조건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터라 1985년부터 연고지를 공유했었다.[* 프로야구 출범 준비 시점 이전에 이미 [[문화방송|MBC]]는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1981년 6월 자체 프로야구단 창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프로야구 창립 계획 준비시점에 MBC가 전북 연고 기업 1안으로 선정되고 두산은 구단주의 연고지가 전북인데도 2안으로 밀려 경남 연고지를 부여받는다. 이에 두산이 강력하게 발하여 3년 뒤 [[연고지 이전]]을 약소하는 조건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하게 된 것. [[http://blog.naver.com/soonil39/|출처 : '홍순일(서울신문 주간스포츠 기자, 주간야구 창간편집장)의 야구이야기/프로야구 탄생비화']]] 비록 1990년 MBC가 [[LG그룹|럭키금성그룹]]에 구단을 매각했으나, LG 팬들은 원년부터 전북 연고였으므로 진짜 서울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두산 베어스도 원래는 서울로 팀을 하겠다 하고 안 된다니까 3년 뒤에 하겠다라고 했으니까, 실제로는 전북 연고지가 맞다. 어디까지나 진정한 주인이라는 거지 그렇다고 두산 보고 나가라고 하는 LG 팬들이 말하듯이 두산이 진짜 서울 밖으로 나갈 이유는 없는 것.]실제로 청룡의 역사를 계승한 팀이 맞고. 하지만 [[이범수]] 주연의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OB 베어스]]의 외야수 [[김우열]] 역을 맡은 적이 있다(...) --LG 팬의 [[흑역사]]-- 그래서 그런지 출연 내내 못마땅힌 얼굴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대두 배우로도 유명하다.[* 머리 크기가 작은 연예계에 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는 론도 있으나, 실제로 본 사람들에 의하면 일인들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큰 편이라고 한다.] 덕분에 키가 184cm가 넘는 큰 키인데도 그렇게 안 보인다. [[지못미]]. [[선글라스]]도 하정우가 끼면 그냥 '눈알 가리개'로 변신할 정도다. 하지만 팬들은 "좋은 건 크게 봐야 돼" 라며 하정우의 큰 머리를 좋아하는 분위기이다. 디씨의 하정우갤에서는 특별히 하정우의 얼굴 크기에 어울리는 큰 선글라스를 따로 주문제작해서 선물하기도 했다.
         공안부장 최 검사로 출연한 [[1987(영화)|영화 1987]]에서는 등장부터 압수품 양주([[로얄 샬루트]])[* 직전에 [[요릿집|요정]]에서 [[장세동|장 부장]]이 박 처장에게 따라주던 술이다. 당시의 5공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은유.]를 몰래 [[힙 플라스크]]에 옮기다가 흘린 걸 아깝다고 핥아먹는(...)다. 직후 배달시킨 짜장면이 도착하자 이어서 [[짜장면]] 먹방을 시도하지만, 막 먹으려는 찰나에 공안경찰들이 찾아오면서 젓가락만 들었다놨다 끝나버린다. --밥먹을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또한 극 후 지나가듯 등장한 장면에서는 밥집에서 [[4.13 호헌조치]] 뉴스를 보더니 꼭지가 돌아서 이빨로 소주병을 까고 --안가 쒸바-- 호쾌하게 병나발을 분다.
         || 2014 || [[군도: 민란의 시대]] || 주연 || 돌무치/도치 || 4,775,811 || 손익분기[* 순수 국내 관객수만 하면 550만 명이지만,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611449|해외 흥행 등의 성적이 영되어 약 470만으로 손익분기점이 내려갔다고.]]] ||
  • 고유민 . . . . 13회 일치
         || '''응원가''' || 마이티마우스 - Energy(2015-16 전기)[br]The Fox - Ylvis(2015-16 후기 ~ ) ||
         지명한 [[황현주(배구)|황현주]] 전 감독은 최대한 많은 경기를 출장시켜주려고 레프트-라이트-원포인트 블로커 등으로 이러지러 포지션을 변경해가며 팀의 상황에 맞추어 기용했다. 이런 방침을 따른 결과 그해 지명된 신인들 중에서는 신인왕을 탔던 도로공사의 [[고예림]] 다음으로 많은 세트를 소화했다. 시즌 중까지 고예림의 출장보다 출장경기 수가 더 많았지만, 고예림이 시즌 후 자리를 잡고 좋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신인왕 경쟁에서 리타이어 되고 말았다.
         2차전에도 1세트를 제외하고 2세트 부터 선발출장을 하여 괜찮은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폴리 몰빵 상태여서-- 큰 활약이 없었다. 다만 교체되어 나온 세트에 팀 분위기가 전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 앞에서 까다로운 서브를 '''갑자기''' 구사해 경기를 전시킬 뻔 했으나 팀은 3-1로 패배. --팬들은 이럴거면 스타팅으로 넣지 왜 세트 헌납질 하냐고 감독을 깠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상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영)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상태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상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컵대회 초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상태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컵대회 후엔 아쉬웠지만 2013-14시즌 이후 박슬기[* 전 현대건설 레프트. 현 대구시 체육회 실업배구 선수. 공격수로는 작은키(176cm)에 공격력은 발군이었으나 수비력은 별로--절망에 가까운--였다.]가 자의로 팀을 나가 팀의 공세를 담당할 공격형 레프트가 없었는데 이번 컵대회때 보여준 활약으로 현대건설은 외국인 트라이아웃 제도로 약화된 공격력을[* 폴리나 라히모바는 세계적인 공격수였으나 올해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은 수비력에 중점을 둔 선수라고 평가받아 선발되었다.] 어느정도 보완해줄 선수를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말해 가능성이 있으나 보여준게 적었던 선수에서 한계[* 리시브 능력]는 노출하고 있지만 공격력이 어느정도 검증이 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신인드랩 최종 승자인 건 덤[* 2015 컵대회 조차 고예림은 폭망 준결승 까지 공윤희는 25득점, 고유민은 40득점(결승 포함 48점)으로 공윤희 득점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
         '''리시브 성공률, 공격성공률 30%-30% 달성, 절의 성공'''
         고질적인 문제를 이겨내지 못해서 시즌 후엔 내내 닭장에 있었고, 2016년 3월 13일 흥국생명과의 플레이 오프 2차전에서 [[한유미]]와 [[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이 수비라인이 동시에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에 양철호 감독이 2세트부터 선발 출장을 시키는 강수를 뒀고 4세트엔 여지없이 붕괴되어 한유미와 교체되었지만, 그런대로 근근히 3세트까지 버텨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특]][[대전 KGC인삼공사|정]]팀들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정시영의 공격을 블로킹하여 포스트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챔피언 결정전에 교체멤버로 분류되었으나 2차전에 교체출장으로 생애 첫 챔피언 결정전에 무리없이 출장했고, 3차전 마지막 세트에 출장하면서 팀의 우승에 한몫 거들었다.
         1월 4일 4라운드 첫 경기였던 계양체육관 흥국생명 전에서 범실을 너무 많이 해서[* 팀 범실 19개 중에 무려 '''12개'''가 모두 고유민의 범실이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양철호 감독은 한유미가 빠진 자리에 고유민을 꽤나 오랫동안 기용했다. 심지어 등의 기회가 될 수 있는 3세트 22:22에서 지고있다가 팀의 추격조라 할 수 있는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와 [[이다영]]을 다시 고유민과 [[염혜선]]으로 교체하며 결국 자멸했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13회 일치
         [[나인뮤지스]]로 알려지기 전 소속사 선배인 [[V.O.S]]의 <[[http://youtu.be/axeDOQGccdg|대로만 살자]]>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카라(아이돌)|카라]] - '''[[구하라/음 목록|CUPID]]'''
          * [[구하라]] - [[구하라/음 목록|어때? (Feat. 허영지)]]
          * [[구하라]] - [[구하라/음 목록|하라구]]
          * [[윤채경]]&[[김채원(APRIL)|김채원]] - '''[[시계(음)|시계]]'''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LOL(여자친구 음)#s-4.8|나의 일기장]]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LOL(여자친구 음)#s-4.11|바람에 날려]]
         ===== 음 발매 =====
         ====== 참여 음 ======
         2017년 4월 11일 ~ 6월 27일, 참가자로 출연했다. 데뷔 후 첫 개인 고정 출연. 정확한 대사구사력과 감정변화의 표현력이 풍부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초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5월 16일자 방영분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마지막 회에서도 평소와 같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아쉽게도 2위를 기록하여 1위를 놓치는 바람에 1등 혜택이었던 웹드라마 출연도 놓치게 되었다.
         || 2014 || [[V.O.S]] || <[[http://youtu.be/axeDOQGccdg|대로만 살자]]> ||
          *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함께 영입되며 2013년 [[Wild|WILD]] 당시만 해도 개성이 강하던 [[나인뮤지스]]가 주류 [[걸그룹]]과 컨셉이 같아져서 아쉽다는 평이 있다.--영원히 고통받는 소금라인-- 그러나, 이 둘의 영입 후 친근함과는 벽이 있었던 모델돌[* 너무 키가 커서 기가 쌔보인다거나, 섹시하기만 한 아이돌 등.]이라는 이미지에 환기를 준 건 사실이다. 일적인 걸그룹 색을 더하여 [[나인뮤지스]]의 [[마인(나인뮤지스)|팬덤]]이 상승세를 겪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실제로 LOST의 초동 판매량이 [[나인뮤지스]] 커리어 상 최대치를 찍기도 하였다. 또한 이 둘이 리얼리티에서 보여주는--공룡 로봇과 능청 변태 막내-- 등의 모습이 팬들에게 매력을 끌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금조의 영입 후 곡과 컨셉 스타일도 변화했다. 둘의 영입 전에는 [[PRIMA DONNA|GUN]]과 [[Wild|WILD]] 등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돌의 곡들을 들고 나왔으나 새 멤버 영입 후에 발표한 [[DRAMA]]나 잠은 안오고 배는 고프고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자신이 먼저 이별은 선언했지만 후회하는 여성의 모습 등 전에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보여줄만한 곡은 아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MQQxGbDbYc4|철저하게 자신을 믿지 못하는 프로 전러]]이다. 2분 05초 쯤에 자신을 믿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아니요!" 라고 답했다.
  • 마재윤 . . . . 13회 일치
         3 해처리 운용을 기으로 한 '운영형 저그'의 완성을 이끌어냈으며, 단순히 전성기 기량과 커리어를 바탕으로만 본다면 '최고의 저그'로 평가받을 수 있으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하여 이 평가는 적절치 않게 되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의 우승 일주일 후인 2007년 3월 3일 마재윤은 5회 연속 진출한 MSL 결승에서 당시는 신예였던 김택용(당시 [[MBC게임 히어로]], 현 [[SK 텔레콤 T1]])과 맞붙게 된다. 마재윤의 2006 시즌 프로토스전 성적은 21승 3패, 승률 87.5%에 달했던 것은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와 시청자들은 마재윤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03030023 [[OSEN]], 2007년 3월 3일]</ref><ref>[http://www.pgr21.com/zboard4/zboard.php?id=humor&no=46911 이러한 평가에 대한 팬들의 응의 예]</ref>.
         === 2008년 상기 ===
         마재윤의 기량 난조는 2008년 상기까지 이어졌다. 양대 리그 조기 탈락에 이어 오프라인 예선까지 추락하는 것은 물론, 프로리그 08시즌에서도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면서 가끔씩 팀플에서만 활약하는데 그쳤다. 결국 2008년 6월, CJ 엔투스는 특단의 조치로 마재윤에게 2군 강등을 통보했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26292&c_no=5&control=view [[파이터포럼]], 2007년 7월 7일]</ref> 이후 3주간 2군 숙소에서 훈련을 소화한 마재윤은 그 성과와 태도가 인정되어 2008년 7월 21일부로 1군에 전격 복귀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26545&c_no=5&control=view [[파이터포럼]], 2007년 7월 21일]</ref>
         === 2008년 하기 ~ 2009년 상기까지의 재기 ===
         마재윤의 재기는 2008년 하기에 시작된다. 2008년 블리즈컨 2연패를 달성함으로써, 부활의 전조를 알렸고, 프로리그에서도 3연승를 거두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천적 이성은에게 완패를 당하고 난 뒤, 계속 아쉬운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6승 6패의 성적을 냈다.
         === 2009년 하기 ~ 2010년 4월 ===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09-10|신한은행 위너스리그 08-09]]에서 마재윤은 2번 연속 3킬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어 마삼킬이란 별명과 함께 팬들에게 기대를 안겨주었고 로스트사가 MSL 2009 16강에서도 신희승에게 압승을 거두며 부활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2009년 7월에는 e스타즈 스타크래프트 헤리티지 대회에서 이윤열을 2:1로 꺾고 우승까지 하였으나 위너스리그 종료 이후 점차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스타리그 예선을 계속 뚫지 못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며, 저그전에서는 기량 난조를 보였다. 그러나 10월 29일 서바이버 토너먼트를 뛰어난 경기력으로 전승 통과하며 13시즌 연속 MSL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어지는 [[NATE MSL 2009]]에서 32강 2패로 초 탈락하며 오프라인 예선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 양대리그 예선에서 모두 탈락하였고, 프로리그에서도 출전할 때마다 어이없는 졸전을 펼치며 전부 다 연패하는 등 데뷔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그리고 2010년 3월에는 로스터에서 말소 되는 등 최악의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면에 김택용은 MSL 결승에 최연소, 최초 진출한 프로토스로 4강전에서 [[강민 (프로게이머)|강민]]을 격파함으로써 리그의 흥행을 망쳤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은 선수였으나, 마재윤은 예상을 뒤엎고 김택용에게 0:3으로 완패한다. 이 혁명과도 같은 승리로 말미암아 김택용은 '혁명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면에 마재윤은 이 날 이후 슬럼프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이후 이성은이 부진하는 모습과는 정대로 마재윤은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최근 2009년 4월 19일 4라운드 배틀로얄에서 마재윤은 이성은을 압도적으로 제압하게 된다.
         2010년 4월 몇몇 팬들로부터 [[2010년 스타크래프트 불법 베팅과 승부 조작 사건|승부 조작]]에 마재윤이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되면서 '마재윤 vs 이신형'전의 배팅 사건 등등이 제기되었지만, e스포츠 팬들의 응은 마재윤이 맞다고 주장하는 쪽과 확실하진 않으니 검찰 조사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나뉘면서 서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검찰은 마 모 프로게이머가 연루되었다고 발표하였는데, 실제 케스파에 등록된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이 유일한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마재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이 밝혀졌다. CJ 엔투스는 검찰 수사 공식 확인 하루 전 마재윤을 팀 선수 명단에서 제명하였고, 한국 e스포츠 협회는 그를 다른 승부조작을 꾸민 [[진영수]], [[원종서]], [[최가람]],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 [[신희승]], [[김성기 (프로게이머)|김성기]], [[문성진]], [[박찬수]],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 [[정진현]]을 모두 영구제명 조치하였다. 검찰 수사 발표 이후 MBC게임 해설진은 경기 중계 도중 과거 경기를 언급하며 마재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마재윤은 승부 조작 혐의로 인하여 벌어진 재판 당시 재판장이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마재윤은 프로게이머라고 답하여 무직이라고 대답했던 [[원종서]]와 대조를 보였다. 마재윤은 e스포츠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승부조작에 개입하여 고의적으로 경기를 패배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문무왕 . . . . 13회 일치
         [[태종 무열왕|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김유신]]의 둘째 누이)의 맏아들로, [[김 (성씨)|김]](金)이고,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도]] 전 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당나라]]의 군대를 [[나당 전쟁]]에서 격퇴함으로써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다. 왕후는 파진찬 [[선품공|김선품]]의 딸 [[자의왕후]]이다.
         {{Cquote|어느 날 김유신의 맏누이인 [[영창부인|보희]](寶姬)가 서형산(西兄山)<ref group="주">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의 [[선도산 (경북)|선도산]](仙桃山)</ref> 꼭대기에 올라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온 나라 안에 흘러 펼쳐지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잠에서 깬 뒤에 동생인 문명왕후에세 꿈 이야기를 했다. 문명왕후는 자신이 언니의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며 비단치마를 주었다. 며칠 뒤에 김유신이 뒷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金春秋)와 축국(蹴鞠)을 하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김유신은 자신의 집으로 김춘추를 데리고 와서는 주연을 베풀며 맏누이인 보희에게 옷고름을 달게 했다. 하지만 보희는 마침 일이 있어서 나오지 못하고 동생인 문명왕후가 대신 나와서 바느질을 하였다. 김춘추는 그녀의 어여쁜 모습에 하여 곧 청혼을 하여 결혼하였고, 그녀는 곧바로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뒷날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金法敏)이다.|《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
         2년([[662년]]) 봄 정월에 당은 문무왕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 [[신라]]왕으로 책봉했다. 2월에는 [[탐라국]] 임금 도동음률(徒冬音律)이 항복해 와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2"/> 이때 [[신라]]에서는 [[백제]]에 주둔하고 [[고구려]]를 치는 당군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식량을 보내고 옷을 보내고 하느라 창고에 쌓아둔 양식은 고갈되고, 농사 때를 망쳐 백성들이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대로 [[웅진도독부]]에 있는 당군의 군량 창고에는 쌀이 남아돌다 못해 썩어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에서는 그 뒤로도 수시로 [[신라]]에 군량을 요구하였다. 3월에 내린 대사면령은 이러한 가운데서 오는 민심이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된다.{{출처|날짜=2018-06-27}} 7월 왕은 왕제(王弟) [[김인문|인문]](仁門)을 사신으로 당에 보내는 한편, [[웅진도독부]]의 당군은 지라성(支羅城)과 윤성(尹城), 대산(大山)과 사정(沙井)의 [[백제]] 목책을 깨뜨리고 [[신라]]군과 합세해 진현성(眞峴城)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신라]]의 군량수송로를 열었다. 8월<ref group="주">《[[동사강목]]》에는 7월로 표기됨</ref>에는 [[김흠순|흠순]] 등 19장군을 시켜 내사지성(內斯只城)의 [[백제]] 부흥군을 깨뜨렸고, 대당(大幢) 총관(摠管) 진주(眞珠)와 남천주(南川州) 총관 진흠(眞欽)이 병을 핑계로 한가로이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를 물어 처형하고 그 일족까지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62"/>
         5년([[665년]]) 가을 8월에 왕은 당의 칙사 유인원,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ref group="주">지금의 충남 공주시 연미산(鷰尾山)</ref>에서 모여 다시 맹약을 맺었다.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고 “서로의 경계를 넘어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맹약의 글은 유인궤가 지은 것으로 제물들은 취리산 제단의 북쪽에 묻고, 맹약문은 신라의 종묘에 보관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5">《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5년(665)</ref> 또한 그 회맹한 지점을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삼고 푯말을 세워 백제와 신라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71"/> 이는 전쟁이 끝난 뒤 평양 이남의 땅은 신라에 귀속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긴 당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였다. 같은 달, 왕자 정명(훗날의 [[신문왕]])을 태자로 책봉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5"/> 겨울에는 일선·[[거열주|거열]] 두 주의 백성들을 시켜 군수물자를 [[명주 (9주)|하서주]]로 운하게 하면서 고구려와의 전쟁을 준비했다.<ref name="삼국사기-665"/>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백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백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백제의 남은 세력이 배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백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순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백제령을 모두 백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백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년([[672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봄 정월에 백제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기고, 2월에는 다시 백제의 가림성 공격을 시도했다.<ref name="삼국사기-672">《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2년(672)</ref> 7월, 당나라 장수 고간(高侃)의 한병(漢兵) 1만, 말갈족 출신의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 3만이 함께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머물렀다.<ref name="삼국사기-672"/> 이들은 8월부터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馬邑城)을 쳐서 이기고 백수성(白水城) 5백 보 거리까지 전진해 주둔하는 등 신라 땅을 침식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72"/>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이들을 쳐서 이기고, 추격하는 당병을 석문(石門) 벌판까지 뒤쫓아가 싸웠지만, 군 내부에서의 논공행상 및 전략에 대한 견해차로 분열된 사이에<ref name="김원술">《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전 부록 원술(元述)</ref> 당병의 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대아찬 효천(曉川), 사찬 의문(義文)·산세(山世), 아찬 능신(能申)·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安那含)·양신(良臣) 등이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72"/> 태대각간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원술]]도 여기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아버지 유신은 자신의 아들을 군법으로 처형해야 한다며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ref name="김원술"/> 한편 각자 맡은 곳을 지키며 방어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자는 유신의 진언에 따라, 한산주에 둘레 4,360보 되는 주장성(晝長城)을 쌓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ref name="삼국사기-672"/> 9월에는 앞서 신라 땅에 억류하고 있던 웅진도독부 소속의 백제인 관원들과 앞서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면서 왕이 직접 표문과 많은 물품을 바치는 등 당에 대해 유화책을 폈다.<ref name="삼국사기-672"/>
         13년([[673년]]) 2월부터 9월까지, 문무왕은 당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서형산성(西兄山城)과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비롯해, 국원성(國原城)<ref group="주">옛 완장성(薍長城)</ref>, 북형산성(北兄山城), 소문성(召文城), 이산성(耳山城), 수약주(首若州)의 주양성(走壤城)<ref group="주">질암성(迭巖城)이라고도 한다.</ref>, 달함군의 주잠성(主岑城), 거열주(居烈州)의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 삽량주(歃良州)의 골쟁현성(骨爭峴城) 등 여러 성을 쌓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3">《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3년(673)</ref> 한편 이 사이에 국가의 원로이자 재상이었던 태대각간 김유신이 죽고, 아찬 대토(大吐)가 모하여 당에 붙으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났다.<ref name="삼국사기-673"/> 거듭되는 전쟁에서 신라는 말갈·거란의 병사까지 끌어들인 당군과 맞서 아홉 번의 전투를 통해 2천 명을 죽이고, [[임진강|호로하]](瓠瀘河)와 왕봉하(王逢河)에서도 당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3"/> 겨울에 당병은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을 쳐서 함락시키고, 거란·말갈의 병사들은 대양성(大楊城)과 동자성(童子城)을 쳐서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73"/> 한편 신라는 주(州)와 군(郡)에 처음으로 외사정(外司正)을 두고, 백제 멸망 뒤 [[무열왕]]에 의해 폐지되었던 수병제(戍兵制)를 부활시키는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갔다.<ref name="삼국사기-673"/>
         14년([[674년]]) 1월 당에서 숙위하다 귀국한 대나마 덕복(德福)이 가져온 신력(新曆)을 포했다.<ref name="삼국사기-674">《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4년(674)</ref> 같은 달 문무왕이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이고 백제령을 지배하에 두는 것을 보고 화가 난 고종은 조서(詔書)로 문무왕의 관작을 깎아 없애려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4"/> 왕의 동생으로 당에 머무르고 있던 우효위원외장군(右驍衛員外大將軍) 임해군공(臨海郡公) 김인문을 신라왕에 봉하면서, 그를 귀국시키는 편에 많은 군사를 딸려보내 대규모로 신라를 치려 했다.<ref name="삼국사기-674"/>{{refn|group=주|인문은 이를 간곡히 사양했으나 고종이 들어주지 않았다.<ref name="김인문">《삼국사기》 권제44 열전 제4 김인문</ref>}} 문무왕은 8월에 서형산(西兄山) 아래에서 대규모 사열식을 벌이고, 9월에는 영묘사(靈廟寺) 앞길에서 다시 대규모 사열식과 함께 아찬 설수진(薛秀眞)의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관람하는 등의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이 달에 고구려왕 안승을 다시 [[보덕국|보덕왕]]으로 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4"/>
         16년([[676년]]) 7월 당군이 도림성(道臨城)을 공격해 현령(縣令) 거시지(居尸知)를 죽였다.<ref name="삼국사기-676">《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6년(676)</ref> 11월에 사찬 [[시득]](施得)이 수군을 거느리고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 해전|기벌포]](伎伐浦)에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라는 패했지만, 다시 나아가 22회에 걸친 크고 작은 싸움에서 모두 승리하여 당군 4천여 명을 목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6"/> 이후 당은 백제령 안에 있던 웅진도독부를 [[요동]]의 [[건안성]](建安城)으로 옮기고, 평양에 두었던 안동도호부도 [[요동성]](遼東城)을 거쳐 신성(新城)으로 옮기는 등 한도에서 자국의 병사들을 철수시켰다.<ref name="자치통감-677">《자치통감》 권202 唐紀十八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儀鳳 2년(677)</ref>
         {{Cquote|과인은 나라의 운(運)이 어지럽고 전란의 시기를 맞이하여,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능히 영토를 안정시켰고 배하는 자들을 치고 협조하는 자들을 불러 마침내 멀고 가까운 곳을 평안하게 하였다. 위로는 조상들의 남기신 염려를 위로하였고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았으며,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두루 상을 주었고,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벼슬에 통하게 하였다.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살게 하였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요역을 줄여주니,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들이 풍족하며 민간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게 되었다. 곳간에는 언덕과 산처럼 쌓였고 감옥에는 풀이 무성하게 되니, 혼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았고 관리와 백성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스스로 여러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마침내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고, 정치와 교화에 근심하고 힘쓰느라고 다시 심한 병이 되었다. 운명은 가고 이름만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갑자기 긴 밤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는가? 태자는 일찍이 밝은 덕을 쌓았고 오랫동안 태자의 자리에 있어서, 위로는 여러 재상에서부터 아래로는 뭇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죽은 사람을 보내는 도리를 어기지 말고, 살아 있는 임금을 섬기는 예의를 빠뜨리지 말라.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므로, 태자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또한 산과 골짜기는 변하여 바뀌고 사람의 세대도 바뀌어 옮겨가니, 오(吳)나라 왕의 북산(北山) 무덤에서 어찌 금으로 만든 물오리의 고운 빛깔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위(魏)나라 임금의 서릉(西陵) 망루는 단지 동작(銅雀)이라는 이름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지난날 모든 일을 처리하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면,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판다. 헛되이 재물을 쓰면 서책(書冊)에 꾸짖음만 남길 뿐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넋을 구원하는 것이 못된다. 가만히 생각하면 슬프고 애통함이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이와 같은 것은 즐겨 행할 바가 아니다. 죽고 나서 10일 뒤에 곧 고문(庫門) 바깥의 뜰에서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 장례를 치르는 제도를 힘써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변경의 성·진(城鎭)을 지키는 일과 주현(州縣)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 율령격식(律令格式)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다시 고치도록 하라.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 이 뜻을 알게 할 것이며, 주관하는 자는 시행하도록 하라.|《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21년(681)}}
  • 백정현 . . . . 13회 일치
         ||<:><#fff> '''한국시리즈 우승 지'''||
         2012 시즌 초 2군에서 5경기에 등판해 1.6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5월 8일 부진했던 [[정인욱]]을 대신 1군에 올라왔다. 허리통증으로 이미 2군으로 내려갔던 [[권혁]]을 대신해 좌완 계투요원으로 활약을 기대했으나, 볼질만 일삼으로 5일만에 다시 2군행. 그러나 불과 1년 전 팔꿈치 수술을 받고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당시엔 [[양일환]] 2군 투수코치도 백정현의 콜업을 대했었다고 한다.
         '''전기 [[클레이튼 커쇼|백쇼]], 후기 백린탄'''
         장원삼이 30대 중을 향해가고 박근홍이 좌완 불펜 No.1을 하고 있는 삼성인지라 큰 기대를 걸고 육성하는데 당최 안터져서 안타까운 선수. 동갑내기 차우찬은 부침이 있었지만 결국 리그 수위급 선발투수로 정착하는데 성공했기에 더더욱 아쉬운 상황.
         '''전기 그 어느때보다 완벽했던 백쇼'''
         '''전기 막판/후기 초에는 Again 백린탄'''
         8월 12일 NC전에 등판하여 6이닝 2실점 8삼진을 잡아내며 초 잠깐 흔들리는듯 햇으나 타선 지원을 받으며 멘탈을 추스린 후 백쇼모드로 돌변, QS와 더불어 시즌 5승을 챙기며 다시 한번 [[엔나쌩]]임을 증명해냈다. 아시안 게임 휴식기를 앞두고는 등판할 일이 없어 8월 14일 1군에서 제외됐다.
         원래 150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이었지만, 본인 스타일 변화와 십자인대 파열 여파로 최고 147, 평균 140 초대로 구속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준수한 구종가치에 힘입어 많은 탈삼진을 기록하는 좌완 투수. 통산 K/9이 9를 넘어간다. (285이닝 288탈삼진)
         인스타를 하고 있는데 여행가며 찍은 사진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는 듯. [[https://www.instagram.com/baek_junghyun/|보러가기]] 그 사진이 굉장히 높은 퀄리티라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선 야구 선수가 안 됐으면 사진작가가 됐을 거란 얘기가 종종 나올 정도. 아예 '백작가'라고 부르며, 그가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이 종종 개념글로 올라온다. 일부는 농담으로 [[라팍]]에서 백정현이 찍은 사진을 넣은 달력이나 엽서를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블랙 클로버/122화 . . . . 13회 일치
          * 드디어 시작되는 2회전 1시합. 네르슈는 초부터 벚꽃마법을 스테이지 전체에 깔아 아스타 팀의 기동력을 봉쇄한다.
          * 그런데 아스타는 마법의 마력을 몸에 흡수한 상태로 변신, 그 마력으로 스테이지를 휘젓으면서 네르슈의 벚꽃마법과 잭스의 함정마법 모두를 분쇄한다.
          * [[챠미 퍼밋슨]]도 유노의 귀환을 겼다. 전투 후의 디저트를 받치는 최고의 예후였다. 그녀로서는 먹을 걸 양보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지만 충분한 보상이 주어졌다. 에너지 보급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유노는 "소중히 받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 순간 심정지를 일으킨 챠미는 불가사의한 각도로 약 1미터 후방으로 날아가 움직이지 않게 됐다. 여한이 없는 최후였다.
          * 아스타는 노엘의 설욕도 축하했다. 그가 보기에도 어지간히 열받는 오빠였다. 노엘은 특유의 세침한 태도로 제대로 했으면 상신이 날아갔을 거라고 잘난 척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마나 스킨 특훈 이후 그녀의 마력 컨트롤은 상당히 향상됐다. 마력 용량도 늘어서 "해룡의 포효"도 앞으로 두 번 정도는 너끈히 쓸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활약해서 로얄 나이츠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니다.
          그건 다른 함정도 설치했었다는 것. 정확한 추론이었다. 잭스는 새삼 아스타가 "기"를 읽을 수 있다는 걸 상기하며 성가셔했다. 하지만 여기서 숨기거나 얼버무리는 건 무리수. 그는 깔끔하게 그렇다고 인정했다. 사전에 정보를 긁어모아서 이 장소를 찾아냈고 어제 미리 함정을 설치해놨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미모사는 거기서 또다른 의문점을 찾아냈다. 로얄 나이츠 시합 장소는 극비 중의 극비. 어떻게 잭스가 그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걸 추궁할 기회를 놓쳤다. 아스타가 "그건 칙"이라며 발했던 것이다. 잭스는 정보전도 실력의 일부라 우기며 비난을 일축했다. 애초에 그런게 안 된다는 룰이 있지도 않고 실제로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는 논리. 궤변이지만 아스타에게 박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미모사는 순식간에 논파되고 분개하는 아스타가 귀여웠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스타가 고작 생각해낸 론은 함정 위치를 공개하라는 거였다. 정말로 전술이고 팀 플레이의 일환이라면 어째서 그 위치를 숨기는가? 잭스는 그것도 "너한테 알려주면 적도 알아차린다"는 핑계로 넘어갔다. 그는 철저히 자기 방식대로 할 생각이었다.
          마법 모드였다. 미모사와 잭스가 전혀 상정하지 못했던 아스타의 힘. 그는 전보다 이 상태의 힘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 아스타는 마법의 힘을 전신에 휘감고 벚꽃의 홍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벚꽃도 결국은 마력. 마력을 추격하는 마법 모드라면 결과는 한 가지 뿐이었다. "블랙 허리케인". 작은 폭풍이 된 아스타가 벚꽃 마법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벚꽃이 바람에 날려가듯 벚꽃마법의 흔적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지워지는건 벚꽃마법 만이 아니다. 잭스는 성가신 벚꽃마법이 사라지는데도 조금도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가 설치한 함정마법까지 한꺼번에 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르슈는 자신이 아름다운 마법이 시커먼 덩어리에 무력화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아스타가 마법 모드를 풀었을 땐 대부분의 벚꽃 마법이 지워진 뒤였다. 그리고 잭스의 함정마법도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의 두꺼운 마스크로도 더이상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사실 숨길 생각도 없어보였다.
          정확히 아스타가 바라던 응이었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13회 일치
          * 레분 섬 결전 2일차. 대회장 출발에 앞서 역자들이 대기하는 동안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나타나 [[유키히라 소마]]와 정담을 주고 받는다.
          * 모모는 의외로 역자들을 친근하게 대하며 별명을 붙여주는 놀이를 한다. 그녀는 귀여운걸 엄청나게 좋가해서 파티셰를 하는 것도 "과자가 가장 귀엽다"는 이유.
          * 레분 섬 결전의 1일 차 종료. 그리고 다음 아침이 밝았다. 역자의 숙소는 센트럴 측과 같은 레분 섬 내의 리조트 시설 "설원화" 호텔이었다. 토오츠키 계열의 리조트였다. 2일차 결전의 아침. 대회장으로 향하는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역자들은 호텔 로비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출전이 결정된 [[타쿠미 알디니]]는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요시노 유키]]는 그가 긴장감에 짓눌리지 않나 우려했지만 동생인 [[이사미 알디니]]는 저건 주방에서 집중할 때 보이는 표정이라며 안심했다. [[사카키 료코]]는 다른 출전자들의 상태를 걱정했는데 적어도 [[미토 이쿠미]]의 눈에는 아주 괜찮아 보였다.
          *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이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아라토 히사코]]의 지도를 받으며 때아닌 서예 삼매경이었다. 백지에 쓰는 건 사람 인. 이제와서 때아닌 복수전공 지망인가? 하지만 손바닥에 사람 인 자 써서 삼키는 짓을 매번 하던 차였으니 거기서 스케일만 좀 커졌을 뿐 문제는 없었다. 대로 [[유키히라 소마]]는 풀어야할 긴장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분명했다. 태평하게 설원화 호텔의 아침식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으며 트럼프를 펼치고 있었다. 상대는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소마를 뺀 둘은 제법 본격적인 심리전을 펼치며 역시 복수전공을 고려 중인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역자의 대장 [[나키리 에리나]]는 이 놀이에 끼지 못한 채 우두커니 구경 중이었다. 이 모든게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 문제는 없었다. 이쿠미는 새삼 어제의 대전카드 추첨 결과를 떠올렸다.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놀라봐야 소용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메구미는 사람 인을 쓰며 연대식극 2일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 상황이 놀자판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없자 이쿠미가 에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에리나는 긴장해서 굳어 있는 것 보단 낫다고 했지만 트럼프에 끼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히 생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쿠미한테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아리스의 카드패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끼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사건건 훈수를 두다가 면박을 당했다. 아리스는 에리나를 떨궈낸 후 애꿎은 히사코를 건드렸다. 트럼프를 하고 싶지 않냐고 운을 띄우자 역시 이쪽도 과민응이었다. 몹시 끼고 싶어했던 듯 하지만 "에리나 님의 특훈을 받고도 진 주제에 그럴 순 없다"는 네거티브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리스는 그런 생각을 하는건 이제 히사코 뿐이고 에리나도 아무 생각 없으니 잊어버리라고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 사이 대충 치던 것 같은 소마가 쿠로키바를 상대로 패가 나면서 판돈을 쓸어갔다. 따고 보니 제정신이 들었는지 소마가 슬슬 출발할 때라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직 십걸 멤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언급해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현
          * 소마가 적과 정담을 나누고 있자 다른 역자들의 관심도 쏠렸다. 어느 정도 십걸과 친분이 있는 히사코가 모모가 평소와 달리 말이 많다고 한 마디 했다. [[잇시키 사토시]]도 거들었는데 원래 모모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제법 수다스럽다고 한다. 타쿠미도 이때만큼은 정신집중 상태를 풀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이토가 냉수마찰로 목욕재계했다는 말을 듣고 "고풍스럽다"면서도 역시 그러면 컨디션이 안 좋아지지 않겠냐고 쥐가 고양이 생각을 해줬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모모가 타쿠미를 "타쿠먕"이라 부르며 "소먕"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소먕은 분명 사이토를 부르는 말. 타쿠먕은 타쿠미를 부른 것인 듯 했다.
          타쿠미가 갸웃거리자 그녀는 "방금 전 붙인 별명"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녀는 귀여운 걸 좋아하는 소녀. 파티쉐인 것도 "모든 음식 중 가장 귀여운 건 과자니까"라는 이유. 그렇게 귀여운걸 좋아하기 때문에 남을 부를 때도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게 그녀의 취향이었다. 내친 김에 그녀는 역자가 보이는 족족 별명을 붙였다. 이사미는 이사먕, 이쿠미는 왠지 본명이 아니라 별명인 "니쿠미"를 한 번 더 변명해서 "니쿠먕".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게 "먀" 돌림이었다. 가장 귀엽다고. 이 자리엔 었지만 [[쿠가 테루노리]]도 별명이 있다. "테루냥". 쿠가처럼 나행이 들어간 이름도 좋다. "냥"도 먕 못지 않게 좋아하니까.
          이런 이론으로 치면 소마의 이름도 적격이다. 마지막이 "마"행이라 "소먕"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문제는 이게 사이토랑 겹친다는 건데, 어쩔 수 없이 피휘해서 "유키향"으로 결론을 본다. 지어준 사람도 붙여진 사람도 뭔가 어중간한 응. 소마는 "향"도 귀여운 거냐고 물었다. 일단 아슬아슬하게 귀엽다는데 뭔가 석연치 않다.
          * 3rd Bout의 준비가 끝났다. 대전자 전원과 모든 관계자가 입석. 역자들도 우리에 들어갔다. 센트럴 측의 참전자는 사이토와 모모, 3학년 콤비와 2학년이자 현 7석 [[에이잔 에츠야]]였다. 사이토는 모모가 증언한 대로 팔팔하게 회복했다. 그가 입장하며 에이잔에게 적이 하급생이라도 강적이니 의기건양하게 임하라 충고하자 에이잔은 충분히 의기건양하다며 살의와 짜증때문에 그렇다고 눈을 번뜩였다. 이제 자리에 앉은 심사의원들이 최종 마이크 테스트 중. 결전이 코 앞이다.
          >내가 하겠다고 한 거니까. 어떻게든... 아니! 드시! 끝까지 할 게!
          그리고 제 3카드. 모든 과자의 스페셜 프로페셔널 아카네가쿠보 모모. 이에 맞서는 역자의 출전자는 역시 타도코로 메구미. 카와시마는 메구미를 "명백히 버리는 카드"라며 평가절하했다. 관중의 여론도 비슷. 메구미 또한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인재건만 매우 평가가 박하다. 그녀에겐 아직도 "만년 낙제생"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사실 지금까지 거명된 라인업 중에선 가장 약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야유가 퍼부어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메구미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레분 섬 결전이 시작되기 전 [[사이바 죠이치로]]와 [[도지마 긴]]이라는 양대 일류 셰프에게 특훈을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훈련이 한 가지 더 있었다.
  • 이연희(배우) . . . . 13회 일치
         (2011년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에서 이연희가 부른 --그 유명한 귀염터지는 발걸음과 말투와-- 콧노래.[* [[존박]]이 [[방송의 적]]에서 했던 [[https://www.youtube.com/watch?v=eMTTt3Hxblw|니나니뇨]]의 원본(...)이다. 사실, 여기서는 [[최강창민]]도 발연기에 한몫했는데 이연희의 발연기 때문에 그냥 묻혀버렸다. 그래서 응이 "누가누가 더 발연기 하냐?"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만큼은 연기를 비롯해서 대사 전달이 그럭저럭 자연스럽다. 그래서 최강창민이 더 연기를 못했다는 의견도 많다.''' ])
         그리고, 2년 만의 복귀작 [[다시 만난 세계(드라마)|다시 만난 세계]]와 [[더 패키지]]에서는 연기력이 많이 발전하고 괜찮은 응을 보여줘서 이제는 고질적인 발연기 배우라는 오명을 점점 씻어내는 중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평균 이상의 대본 퀄리티를 가졌다고 인정받은 드라마 [[유령(드라마)|유령]]에서 1, 2회 때는 연기가 그럭저럭 나아졌다는 평을 들었으나 그 이후에는 별로 좋지 못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좋지 않은 응 때문에 드라마 후부에는 애초 기획된 분량보다 비중이 현저히 줄어드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 시기에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5221609221110|"악플은 한귀로 듣고 흘린다!"]]라는 식의 발언으로 많이 까였다.
         그녀의 연기자로써 결정적 신체 결함은 '''짧은 혀'''에 있다. 감정 연기나 표정 연기는 특별히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데, 대사 전달력 때문에 발연기 소리를 듣는다는 평도 있다. 즉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인 대사 전달력이 안 되는 것이다. 앞서 비교한 박재정은 발음이 어눌해도 목소리 자체는 굵고 힘 있는 목소리이고, [[황정음]]은 그래도 가수 출신이라 그런지 이연희보다 발성은 더 나은 편이다.[* 연기 활동 초에 연기력으로 까이던 황정음은 나중에 훌륭한 연기자로 인정받으며 자리 잡게 된다.]
         2013년 4월 MBC 드라마 [[구가의 서]]에 특별출연해 주인공 최강치([[이승기]] 분) 생모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는데, 1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인 건 아니지만,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감정 기복은 컸어도 대사톤 자체가 낮은 편이라 드러나지 않은 것이었고, 2화에서 목소리 볼륨이 올라가자 어눌한 대사 처리를 드러내며 다시 원상복귀해버렸다는 평이 나왔다. 하지만 좋은 응들도 꽤 많이 나오고 있어서 뭐라고 확실하게 얘기하기 힘들다. 물론 좋은 연기력은 아니었지만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열심히 연기하려는 것이 짠해 보였다는 사람들도 있다. 연기력을 떠나서 상대역인 [[최진혁]]과의 케미와 연출 덕에 드라마는 3회부터 꾸준히 월화극 시청률 1위를 달렸다.
         여담으로 이 당시에 [[구가의 서]]에서 보여준 이연희의 연기가 같은 시간대에 SBS에서 방송되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김태희보단 낫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 팬들은 MBC가 자사 드라마 홍보를 위해 언플을 하는 것뿐이라며 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MBC 사극 [[화정]]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tta7-CAXSUY|다시 뒤떨어진 연기력을 선보인다.]] 화정에서의 억지스러운 표정 연기 때문에 '''[[이연걸]]'''을 닮았다는 응까지 나왔다.[* 심지어 이연걸 드립은 남초 사이트들에서 나왔던 것이라서 여자들이 질투심에 몰아간다는 식([[여자의 적은 여자|여적여]])의 변명도 불가하다...] 상술했듯 연기력이 잘 나아지나 싶더니 도리어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비판을 받았다. 이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2년 가까이 공백기간을 가졌다.
         물론, 아직까지 아쉽다는 응도 있어서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더구나 같이 출연하는 주연 배우 중에서 자신과 같이 연기력 논란이 있는 [[안재현]]도 같이 출연했다. 사실, 이연희는 본인 스스로가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지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바꿨었다고 인터뷰를 했었다.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정말로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윤아 급의 외모와 노래 실력을 더 갈고 닦는다면 태연 급의 능력을 갖춘 인재로 전후후무한 [[대한민국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영원히 남았을지도 모르고, 명도 여러 장을 남겼을지도 모를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 음 목록 ===
          * 화장품 브랜드 [[SK-ll]]의 모델이 되어 찍은 CF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paranzui/50140489926|#]] 실제로 이연희는 이 CF에서 발음이 상당히 안 좋다. 특히 맑고 '투명'한 피부가 '투영'으로 들린다며 발음을 까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http://www.purepitera.co.kr/PiteraStory.aspx|그러나 놀랍게도 공식 사이트에서 '투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TV CF만 본 사람들은 '투영'을 '투명'의 발음 오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애매한 단어는 상술된 외부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SK-ll]] 공식 사이트에도 명기되어 있으며, 이미 2010년 부터[[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LeisureLife/Article.asp?aid=20100625002223&subctg1=20&subctg2=00|신문사에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와 [[http://postfiles10.naver.net/data33/2008/6/21/233/image-3_abzero.jpg?type=w3|지면 인쇄 자료]]에도 '투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맑고 투영한'은 한국어 문장에서 일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형태인데, 이것은 회사 측에서 본사인 일본식의 한자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연희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단어가 그런 것이다.
          * 키가 크고 마른 체구 때문에 [[운동치]]일 것처럼 보이겠지만, 의외로 운동 신경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학교 동창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어지간한 남자아이들보다 [[축구]]를 잘 했다고 하며, 고1 때는 에서 체육부장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 이지아(배우) . . . . 13회 일치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상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감을 사기도 한다.
         생각해 볼 것은 '''대한민국은 헌법상 [[연좌제]]가 없는 국가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상의 친일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적이 없거나 조상이 친일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부당하게 물려받고 국가에 환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덕망 있는 명문가,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는 옹호 아닌가......?~~
         하지만 이지아는 [[대중문화]] 속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으로서 대중문화라는 매체를 접하고 판단하는 '''일 대중들의 불편함과 따가운 시선''' 역시 어떻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나쁘게 봤음 나쁘게 봤지 좋게 보일 리는 만무하니~~ 이는 이지아 본인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거사에 매우 민감한 우리나라에선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웬만한 스캔들에는 응 안 하는 매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는데 인터넷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한 스포츠서울은 기사 제목에 당당히 [[특종]]을 박았다.~~15년 전의 복수~~ '믿을 수 없어''서태지와 이지아라니!'말부터 '애도 2명이나 낳았대'라는 미확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후에 아이는 없었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티즌]]들의 전형적인 억측으로 인한 [[마녀사냥]]으로 볼 수 있다. 이지아는 세간에 알려지기 이전, 정우성에게 이미 밝혔으며 정우성은 이에 대해 "나도 10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응해서 이지아가 굉장히 감동받았다고. 건승하시길 빈다는 말을 덧붙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Mcr9EEzgMOM|참조]] 하지만 이 영상의 내용은 전적으로 이지아의 의견.
         그러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결혼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디스패치]]의 [[http://www.dispatch.co.kr/107147|박 기사]]가 나왔다. 디스패치가 네바다 등기소까지 뒤져서 취재한 결과 결혼식의 증인이 다름아닌 이지아의 이복 언니였다는 것. 이는 “양 측이 동의를 했고 많은 지인들은 두 사람의 교제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는 서태지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기사에서 확인된 이지아의 교통법규 위 사실이나 쇼핑, 가족 왕래 증언 등으로 볼 때, 결혼생활에 자유가 없었다는 이지아 측의 주장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SBS [[힐링캠프]] (2014.8.11) ~~ 여기서 '''[[서태지|전 남편]]'''을 디스 했다.~~ 출연 전부터 광복절 앞두고 친일파 후손을 부르다니 제정신이냐며 힐링캠프의 섭외 자체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대로 이지아의 팬들은 방송 전부터 문제없다고 주장하며 포털 사이트를 옹호 댓글로 도배했다. 방송 후 댓글란에선 같은 여자로서 동정한다는 등 주로 여성층이 이지아의 불운한 결혼생활을 동정한다며 고무적인 응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네이트, 다음 등 댓글란만 보면 매력적이라며 감탄했다는 응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대다수 남초 성향 커뮤니티들과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선 비판하는 여론이 훨씬더 많았다. [*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서 비판적인 것은 할아버지의 실체를 알린 글이 석연찮은 이유로 삭제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친일파 건으로 인해 여전히 비판하는 시선들이 많으며 특히 친일파 논란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많다. 자기가 해명하고 싶은 루머만 해명하고 본인한테 불리한 논란은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것.[[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626402|#]] 이지아 팬들중 일부의 지나친 동정론과 쉴드로 오히려 더 감을 느낀 사람도 많다. 특히 이지아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물타기하거나 그냥 넘어가자는 사람들에 대해선 너나할 것 없이 비난이 많다. 말하는게 지적이다는 의견도 있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두루뭉술한 문어체로 말해서 답답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방송상에서 앞으로는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음 ===
  • 이홍렬(코미디언) . . . . 13회 일치
         그리고 1990년대는 [[임하룡]]과 함께 했던 '[[귀곡산장]]'을 빼놓을 수 없다. 테마송이 인상적이다. '망태망태망망태 망구망구망망구 우리는 산장지기 괴상한 노인. 망태~ 꺼지지 않는 불꽃, 망구~ 밤에♩ 피는 장미~♪ 누구든지 환영해요 귀곡 산장. 간이 커도 와우! 겁 많아도 와우! 기절 안 하곤 못 배기는~ 귀~곡~산~장~. 뭐 필요한 거 없수!? 없음 말고. 뭐 필요한 거 없냐니까!? 없음 말랑께롱 께롱!께롱!께롱!께롱!' 후술할 음에도 수록되었다. 길이는 좀 짧지만. 당시 괴담물 단행본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공포특급'이 불러온 공포 마케팅 열풍을 타고, 공포 컨셉 게스트 코미디 쇼를 만들었는데 이게 대히트를 친 것. 귀곡산장은 나중에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1990년대 중에는 [[이홍렬쇼]]라는 [[토크쇼]]로 나름대로 토크쇼 MC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서세원쇼]]가 토크박스 하나에 의지한 것과 달리 다양한 코너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해 전성기에는 자타공인 최고 인기 토크쇼였지만 이홍렬 본인의 사정으로 100회를 채우고 그만뒀다가 2000년대 초에 다시 부활, 또 200회까지 채우고 막을 내렸다.[* 부활했을 당시에도 인기는 좋았다.] 프로그램 코너들 중에서는 특히 '참참참'이 유명세를 탔는데, 당시 유명 스타가 나와서 [[밤참]]을 만들면서 토크를 하는 방식이었다. 주재료는 [[라면]], [[만두]], [[참치]] 통조림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 맞아 맞아 참참참이라는 제목으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989|책]]까지 발매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이 책을 발견하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인근 도서관을 뒤져보자. 이때 게스트와 같이 했던 놀이 '참참참'을 전국에 유행시켰다. [[롯데월드]]에는 이 코너에서 만들었던 메뉴를 상품화해서 파는 참참참 레스토랑도 있었다. 특히 참참참은 당시 일본 버라이어티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숱하게 시도되었던 [[쿡방]]들이 우리나라 사정에 안 맞아 몽땅 망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장수했던 코너였다는 점도 특색이다.
         또 이홍렬하면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속 코너였던 '한다면 한다'. 세계나 국내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며 도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조상격인 프로라 생각하면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 [[번지점프]]'''는 그 이후 2000년대 초까지 예능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많은 충격을 주었고 당시 40대였던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고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 뉴질랜드로 가서 찍었는데 같이 간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나 PD는 높이를 보고 겁에 질려 번지점프로 뛰길 포기했다. 이홍렬도 이거 긴장되네... 이러면서 고민하던 응이지만 결국 그 홀로 뛰어내렸다.]은 많은 중년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엄청난 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려 20년 전인만큼 예능 프로도 지금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점잖고 얌전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야 이놈들아아아아아아!' 처절한 저주의 외침을 토하며 뛰어내렸으니 당시 시청자들이 받았던 쇼크는 상상을 초월했다.
         일적으로 방송국에서는 연예인들이 비상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주차 자리를 한두 자리 비워 놓는데 때마침 스케줄 때문에 방송국에 늦게 도착한 이홍렬에게 경비가 "주차장에 자리 부족해요. 나가세요."라면서 진입을 막았고, 이홍렬은 결국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때 경비의 대응에 서운함을 느껴서, 내가 MBC에 바친 열정이 얼만데...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SBS로 옮길 때는 SBS에 전용 주차석을 요구했다고. ~~경비원 입장에선 자리가 없는데 어쩌라고...~~
         2000년 말부터 2002년 초까지는 SBS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했다.[* 사실 시트콤에 출연하게 된 배경이 재밌는데, 당시 진행하던 자신의 토크쇼가 MBC의 [[세 친구]]에 시청률이 추월당한 후, 종영을 하게 되었다. 이에 오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시트콤에 도전한 게 해당 작품이라고 한다.] 진지한 배역을 주로 맡다가 코믹한 배역에서 맹활약했던 [[노주현]]과 [[신구(배우)|신구]]와는 대로, 기본 베이스는 코믹하지만 중년의 로맨스와 관련되어 진지한 연기를 할 때도 많았던 노홍렬이란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밑에 CF 항목을 보다시피 20세기 후 상당히 유명하고 큰 인기를 끌었던 레전드급 코미디언 방송인이어서 찍은 광고의 수가 그야말로 엄청나다. 젊은 세대들은 어릴 적 TV를 키면 그가 나오는 여러 개의 CF들을 아주 쉽게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출연한 프로를 전혀 보지 않은 어린 애들도 "어? 저 아저씨 어느 어느 광고에서 본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
          * 과거에 음악활동을 한적이 있으며, 1998년에는 음을 낸 적도 있다. 일종의 자선 음으로 기획하였고, 일부 기존 노래를 커버한 노래(ex. 트로트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도 좀 있다. 그외에도 Friends라는 곡은 함께 한 아티스트가 아홉이고, 마지막 트랙인 발라드 넘버 '다시 한번 해봐요'는 그를 비롯한 당대 유명가수들과 합창했는데, '''함께 한 아티스트가 열아홉이나 된다.''' 그러나 흥행은 [[흑역사]]. 지금은 정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영희네 담벼락에 누가 써 놓은 이야기>라는 곡은 그럭저럭 유명하다. [[http://excf.com/bbs/view.php?id=EX2&no=234|들어보기]] 해당 곡의 작곡자는 그 유명한 [[김창완]]이다. 이 앨범 전곡을 이홍렬은 대인배스럽게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http://bbangco.com/board/zboard.php?id=song&page=1&page_num=20&category=&sn=off&ss=on&sc=on&keyword=&prev_no=15&sn1=&divpage=1&select_arrange=headnum&desc=asc|공개]]해놓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들어보자. 몇몇 곡의 경우 이홍렬의 라이너노트도 곁들여져 있다.
          * 이외 음악활동의 경우 '초콜렛'이라는 남녀혼성 듀오에 거의 모든 곡을 제공한적도 있으나 그룹이 망해서 자선음보다 더 잊혀졌다. [* [[작곡가]]가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검증 필요.]
          * [[1대 100]] 345회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가했으며, 이 날 그는 우승 상금 5000만원을 타게 된다면 아프리카에 [[우물]]을 기부할 거라고 이야기했으며, 100인 중 하나로 출연한 대[[후배]] [[장효인]]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 대결 2번째 문제에서 91명 중 57명이나 떨어지는 등 평소와는 달리 문제가 극악을 달리던 난이도 속에서도 7단계에서 최후의 1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결과는 [[1대 100/1대 1 문제#s-5.2|여기]] 참조. 참고로 후전에서는 이보다 난도가 높아서 5문제를 풀고 우승자가 나왔다.
  • 일곱개의 대죄/177화 . . . . 13회 일치
          * 이 멜리오다스를 일으켜 세워 준다.
          * 십계는 의 등장을 경계하지만 에스타롯사는 메라스큐라의 시체를 보며 "이 녀석은 감히 내 형제의 혼을 먹으려 했던 녀석"이라며 당해도 싸다는 태도를 보인다.
          * 오히려 에게 "네가 처리하지 않았으면 내가 했을 것"이라며 감사해 한다.
          *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나 은 멜리오다스를 지키지 못한다.
          * 에스타롯사의 무기는 "역검" '''리벨리온'''.
          * 이 폭스 헌트로 공격하지만 오히려 의 손이 망가질 뿐 꿈적도 하지 않는다.
          * 은 에스타롯사를 막으려고 목을 조르며 매달리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다.
          * 은 헌터 페스를 써서 목을 조르는데 여전히 통하지 않고, 에스타롯사는 태연히 멜리오다스의 심장을 찌른다.
          * 에스타롯사는 도 "거슬린다"는 한 마디로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낸다.
          * 메라스큐라 사망 확정. 에스타롯사가 이 안 죽였으면 자기가 죽였을 거라고 인증까지 해준다.
          * 은 불사신이므로 재생할 거라는 의견이 많지만 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재생되는 기미가 없어서 또한 완전히 죽거나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13회 일치
          * 리오네스 왕국의 고성을 울린 굉음은 인근 주민들에게도 들렸다. 굉음을 낸 당사자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그로키시니아]]의 시련을 마친 이들이 일행과 합류하려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던 것이다.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의 예지를 듣기 위해 고성에 모였던 멤버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으나 그것도 잠시. 곧 서로를 알아보고 갑게 재회의 인사를 주고 받는다.
          멜리오다스가 살아난 걸 몰랐던 이들을 단장 귀신이 나왔다고 소란을 부리고 [[(일곱 개의 대죄)|]]과 [[에스카노르]]가 "귀신이 아니라 진짜"라고 알려주고 나서야 진정된다. 이런 소동 때문에 바트라는 끼어들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그의 사과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데다, 할리퀸의 날개에 더 관심을 뺏겼다. 과 같이 다가와서 그의 날개를 보고 "이제 너도 어른이 됐구나"라는 둥 애송이 취급을 해대는데다 도 "작다. 어린애 사이즈"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결국 분개하는 할리퀸. 하지만 디안느가 "두 사람도 나름대로 기뻐하는 것이니 화내지 말라"고 타이르자 고분고분해진다. 멜리오다스와 이 그걸 지켜보다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하는데, 할리퀸은 "연인 같아졌다"고 지례짐작해서 으스대지만 곧 "너 말고 디안느가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무안해진다. 디안느는 그게 맞다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진짜냐고 놀란다. 그리고 디안느의 기억을 지운 당사자, [[고서]]도 응한다.
          지금의 고서는 자신이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 조차 잊어버린 상태. 그래서 디안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멀린은 디안느가 무심코 말한 "3천 년 전"이란 단어에 움찔했다. 은 "꿈이라도 꾼 거겠지"라고 별거 아니라 여기지만 멀린은 진지하게 가능성을 점쳐 본다. 그녀도 여신족의 시간회귀술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디안느가 정말 3천 년 전으로 갔었을 거라 추정한다.
          * 고서는 기억해냈다. 소중한 약속과 [[나자 리오네스]]. 단편적인 기억들이 스쳐갔다. 그러나 고서의 다음 행동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대로 고성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도망쳐 버렸다. 바트라가 기다리라고 말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 일행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은 오줌이나 똥이 아닐까 하는 한심한 추리나 하고 있었다. 디안느는 바트라가 보여준 물건이 그를 도망치게 했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건 고서 자신의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일곱 개의 대죄/고서 외전|그가 바트라의 누나 나자에게 주었던 물건]]. 원래 고서의 가슴 속에 있어서 마법의 마음을 주었던 물건이다. 에스카노르는 "마법의 마음"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상을 떠올린다. 멀린은 그보다는 실용적인 착상이 떠올랐는지 바트라에게 그 물건을 잠시 보여달라 한다.
          * 마법의 심장이 어떻든, 우선은 고서를 쫓아갸아 한다. 디안느가 그렇게 성화를 부리며 멀린에게 자신을 작게 만들어 달라 부탁한다. 은 여전히 위기의식 없이 "먼저 고서를 잡는 사람한테 한 잔 쏘기" 내기를 제안, 할리퀸이 한심하게 여긴다. 에스카노르도 얼른 쫓아가자고 건의하자 멜리오다스도 일곱 개의 대죄의 네 번째 규칙을 들어 허가한다.
          * 멜리오다스와 은 같은 방향을 수색했다. 은 가던 중 과일장수의 사과를 하나 슬쩍하며 단장에게 "고서가 인형이란걸 알았냐"고 묻는다. 물론 멜리오다스는 알고 있었고 진짜 십계 고서와도 아는 사이였다. 십계 고서는 마신왕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 실력으로 "무욕"의 계금을 받고 십계로 발탁됐다. 무욕의 계금은 욕심을 품는 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빼앗는다. 이걸 부여해준 마신왕도 예외는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서는 자신의 분신인 인형 고서를 만들었다. 그 용모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쏙 빼닮게 만들었지만... 정욕을 품는 일이 없어야 했기에 남자로 만든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을 알고 있는 은 "참혹한 얘기"라며 씁쓸하게 중얼거리고 멜리오다스 또한 동감한다. 어쨌든 그들의 수색은 계속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다. 지금의 고서는 인형이라서 기척으로 찾기도 어렵고 부르고 다닌다고 대답할 리도 없었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13회 일치
          * "돼지의 모자"정이 리뉴얼되고 [[멜리오다스]]와 [[(일곱 개의 대죄)|]]은 방 배정 때문에 티격태격한다.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돼지의 모자"정의 리뉴얼 오픈을 앞두고 한껏 흥분했다. 자신있게 낙성신을 선언했으나 정작 보러온 것은 [[멜리오다스]]와 [[(일곱 개의 대죄)|]] 둘 뿐. 모처럼 일곱 개의 대죄도 다 모이지 않았냐 따지니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일정이 있어 오지 못했다 한다. 차가움을 느끼는 호크. 게다가 개막 역할도 자신이 하려고 했는데 멜리오다스와 이 얼렁뚱땅 가로챈다.
          * 이래저래 빈정 상한 호크가 "돼지에 치어 죽어라!"고 욕한다. 이 오늘 저녁 연회 때 최고의 잔을 먹게 해주겠다고 달래자 "만 용서한다"는 걸로 완화된다. 과 멜리오다스에겐 호크의 분노 같은것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안방을 차지하는 거였다. 치고 받으며 스위트룸으로 달려가는 두 남자. 거의 동시에 방문을 열어재낀다. 서로 "우리방"이라며 자신과 연인의 침실로 삼으려고 성화인데 일단 승기를 잡은건 . 사이즈의 차이로 딱 한 발 먼저 방에 밀어넣었다. 멜리오다스는 "개축비를 낸게 누군거 같냐"고 떡밥을 던지는데 은 [[바트라 리오네스]] 국왕이 낸걸 뻔히 알았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멜리오다스가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내자고 하는데.
          * 과 재회한 이후로 엘레인은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겐 "생각을 닫아도 안절부절하는 기분은 다 전해졌다"고 핀잔하고 디안느에겐 "[[킹(일곱 개의 대죄)|오빠]] 생각 뿐이라 금방 들켰다"고 핀잔한다. 물론 그 이상으로 연인 생각만하는건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지만. 인사를 마친 엘레인은 "정말 오빠로 괜찮겠냐"고 디안느를 걱정한다. 그러고 보니 문제의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할리퀸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랑 남자의 대화를 한다며 술집으로 향했다 한다. 오늘밤 연회가 있는데 낮부터 술집이라니. 엘레인은 역시 오빠로 괜찮은지 고심해본다.
          * 혼자 북치고 장구치다 잠들어 버린 할리퀸. 고서는 서치 라이츠로 그의 생각을 엿본다. 그의 머리 속은 디안느에 대한 생각과 돋아난 날개의 자랑스러움, 그리고 고서가 싫다는 감정이다. 그러나 거기에 이어서 자기가 계속 오해만 해왔던 것, 그리고 자신고 같은 짓을 해왔다는 것에 대한 성이 함께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는 감정.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13회 일치
          * 엘레인은 머지않아 자신의 수명도 다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보다 [[(일곱 개의 대죄)|]]의 앞길을 더 걱정한다.
          * 그녀의 예지에는 앞에 지금껏 죽은 줄 알았던 [[메라스큐라]]가 나타나는데.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게 걸린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과 접촉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놀랍게도 그 마력을 통해 저주를 건 당사자와 연결된다.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는 듯 한데. 그는 엘리자베스를 자신을 형 [[멜리오다스]]를 괴롭히는 "저주받은 여신"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로서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 뿐. 젤드리스는 "저주는 진짜였다"고 중얼거리며 그녀가 얽혀있는 진실을 폭로한다. 성전 시대로부터 3천년 간, 엘리자베스가 몇 번이나 전생을 되풀이하며 멜리오다스와 이별과 만남을 복하고 있다는 것.
          젤드리스의 응은 차갑고 삐딱했다.
          * 돼지의 모자 정이 갑작스럽게 빛을 발한다. 옥상에서 자던 [[디안느]]가 그 바람에 깨어난다. 산에서 내려오던 멜리오다스와 [[(일곱 개의 대죄)|]],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돼지의 모자정이 발하는 심상치 않은 빛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건 엘리자베스가 발하는 마력의 빛이었다.
          * 이제 대죄는 온전한 성기사로서 임전태세를 갖췄다. 오랜만에 갑옷차림으로 모인 그들. 멜리오다스가 단장으로써 대원들을 소집해 작전 개요를 설명한다. 그들의 목적은 전날 설명한 대로 십계에 점령 당한 카멜롯의 해방과 인질 구출. 하지만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멀린에게 부가설명을 부탁한다. 멀린은 카멜롯에 특수한 보호수단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한다. 직경 백 마일에 달하는 차원의 뒤틀림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텔레포트도 앱솔루트 캔슬도 불가능해 접근이 몹시 어렵다. 은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냐고 묻는데 당연한 말이다. 멀린은 리오네스 왕국으로부터 남동으로 250마일 지점에 차원의 뒤틀림을 유발하는 발현지점이라 특정했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할리퀸은 막연히 이스탈보다 남쪽이라는 것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 멜리오다스가 그곳이 "성새도시 코란도"라고 알려준다. 몇 백년 전 대학살이 일어나 멸망한 폐도시다. 에스카노르가 "대학살"이란 말만 듣고 무서워 벌벌 떤다.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코란도 자체 보다는 "남동쪽"이란 단어에 응을 보인다. 그는 그 방향이라면 "거기"도 통과할 거라면서 조금 옆길로 샐 순 없겠냐고 건의한다. 어차피 하루이틀 거리도 아니니까.
          * 회의가 끝난 후. 은 베란다에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슬쩍 부탁한다.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일이었다. 내색하진 않고 있지만,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다면서. 엘리자베스에게 그녀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 은 엘레인을 걱정하지만, 엘레인이야 말로 이 걱정됐다. 그녀가 예지한 일행의 앞날. 엘레인은 그들이 그걸 알아차렸을 때 어떻게 될지가 걱정이라 말했다. 그들의 앞에 있는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십계 [[메라스큐라]]. 터무니없이 흉흉하게 부활한 모습이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13회 일치
          * 코메리카 합중국도 [[에스퍼]]에 대한 감이 확산되어 규제 강화 여론이 강해진다. 배후에는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과 [[블랙 팬텀]]이 있다.
          * 코메리카 합중국은 에스퍼 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는 "노멀 우선 주의"를 제창하며 초능력자에 대한 규제 관리를 강화하고 에스퍼 시대 이전의 질서로 되돌리려 한다.
          * [[J.D.그리섬]]을 비롯한 코메리카 소속 에스퍼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크게 우려하지만 손쓸 방도가 없다. [[찰스 해밀턴]]과 [[아담 해밀턴]]의 아버지 해밀턴 상원 의원은 친 에스퍼 정치가로 낙인찍혀 지지를 잃었다. 특히 코메리카 내의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에스퍼 정서에 찬동하고 있다. [[켄 마크가이어]]와 [[메어리 포드]]의 "리버티 벨"도 현장에서 제외돼서 서류 작업만 떠맡는 중.
          문제는 이런 정세 속에선 에스퍼의 능력을 활용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에스퍼 개개인의 손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리섬은 시대상으로 보면 에스퍼 능력을 제약하고 격리시킬 수록 사회의 능률은 떨어진다. 그는 대로 이런 상황을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려는 자들은 없는가 자문한다. 그건 에스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해 에스퍼 자원을 독점하려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 작전 실패 후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호에서 은둔하고 있는 칠드런 일행. Tv에선 에스터 규제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일본도 국제적인 에스퍼 흐름을 이어받아 에스퍼에 대한 관리 및 규제 강화 법안이 통과됐다. 바벨의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는 다시 세뇌됐는지 넉살 좋으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판도라의 [[츠쿠시 미오]],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도 함께 시청 중. 미오는 이 모든 상황이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의도대로가 아니냐고 분개한다. 카오루와 시호는 [[미나모토 코이치]]와 [[효부 쿄스케]]가 애먹은 상대인 마당에 자신들이 격하려 해봐야 상황만 악화될 거라며 그녀를 진정시킨다.
          * 효부는 지금부터 작전 회의에 참가하자며 칠드런 일행을 데리고 도서실로 향한다. 그곳에선 [[쿠모이 유리]]의 정보를 기으로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우츠미 세이시로]]가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작전이 정해지면 곧 판도라의 젊은 에스퍼들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 우츠미는 유리의 능력으로 격의 실마리를 잡을 것 같다고 칠드런 일행에게 말한다. 유리는 이미 오염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돼서 정면 승부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로 정신오염 네트워크를 이용한 격이 가능하다. 정신오염에 당한 사람들은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 감응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이 네트워크 포탈을 몇 군데 점거하는 식으로 전체 정신오염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자면 포탈의 절, 적어도 3분의 1을 점거할 필요가 있다. 그 숫자는 약 10개 안팍. 문제는 아직 그 위치가 불분명해 정보를 더 모아야 한다. 카오루는 그 말을 기대 아쉬움 으로 여기며 마음 속에서 미나모토에게 좀 더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 정인숙 (1945년) . . . . 13회 일치
         === 생애 초 ===
         정인숙은 [[1945년]] [[2월 13일]] [[대구직할시|대구]] 남산동에서 후일 해방 뒤 대구직할시 부시장을 지낸 [[정도환]]과 부인 전덕조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도환은 자수성가형 인물로, 행정공무원으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권에서 대구부시장까지 올라갔다. 아들만 넷을 둔 정도환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그의 형제는 7남매로 위로 오빠 다섯 명과, 쌍둥이 자매가 1명 있었다. 쌍둥이 딸이 태어나자 정도환은‘금이야 옥이야’길렀는데 이름도 금지(金枝)와 옥지(玉枝)로 했다. 두 쌍둥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옥지는 생후 1년 만에 병사하고, 살아남은 금지가 후일의 정인숙이다.
         [[1962년]] 신명여고 졸업 후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명지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에는 가는둥 마는둥 하다가 중퇴하였다. 뛰어난 미모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아버지의 실직과 대학 낙방은 그의 방황을 부추겼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꿈에 영화감독을 만났으나 1년만에 헤어지고, 임신한 아이는 낙태하였다. 이후 요정에 들어가 요정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 뒤 그는 다른 요정에도 출입하는 등 여러 요정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주 무대는 처음 들어갔던 곳이고, 마담 김씨가 경영해 오던 한남동의 고급 요정이다. 정인숙은 2류급 여배우와 가수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마담 집 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접대부로 나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콧대가 높았다. 인기를 끌면서 그는 드시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기도 했다. 한 회고에 의하면 당시 불려가는 여배우와 가수를 포함한 접대부 중 그의 미모가 1위였다 한다.
         [[국무총리]]였던 정일권을 만난 뒤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데, 유독 정인숙을 좋아했던 정일권은 그녀의 집에 수시로 출입하다가 주민들의 눈에 목격되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유포되었다. 그 뒤 그녀가 임신사실을 알리자 정일권은 낙태를 권유하려다가 대신 애를 낳으라고 하였다. 정인숙은 가족들의 대를 무릅쓰고 출산하였다.
         [[1968년]] 12월 30일자로 발급된 출입국 회수여권을 받았다. 아기를 낳은 이후 고급 요정과 비밀요정을 그만두었고, 출입하는 곳에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타워호텔, 사보이호텔, 도조선 아케이드 등에는 자주 나타났다. [[1969년]] 봄 [[일본]]에 다녀온 뒤 그해 5월에 [[서울특별시|서울]]시내의 고급 코로나를 매입하였다.
         === 생애 후 ===
         출국을 한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갑갑해 한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국내로 들어온 정인숙은 홀로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이 때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 쓰는 사람들을 상대했고, 재일교포와 사업가 등 유력 인사들이 그녀를 거쳐 갔다. [[1969년]] [[10월 10일]] [[국무총리]] [[정일권]]의 주선으로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주변에게“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 한때는“이젠 미국 안 갈래”라고 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17일]] 낮, 자동차 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 6기통짜리를 흥정을 했다.
         당시 그를 목격한 연예기자 정홍택의 회고에 의하면 '그 날도 나는 남산 중턱에 있는 타워호텔 18층 나이트클럽에 갔다. 밤 8시 쯤 되었을까? 나는 만나기로 한 일행보다 먼저 도착했고 클럽 안에서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젊은 여자 한 분이 카운터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술집에서 카운터 앉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 여인과 몇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가까이 보니 아주 미인이었다. 그리고 얼굴이 하얀 것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은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하고 난 뒤 "동생과 관계했던 고위층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는 아버지(정도환)의 회유로 거짓 자백을 했을 뿐, 집앞에 있던 괴한들이 동생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숱한 의문점 때문에 정인숙 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이라는 수사기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권력기관에 의한 살인’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다.<ref name="jon01"/> [[2010년]] 2월 [[중앙일보]] 측에서 어렵게 만난 오빠 정종욱은 "억울해서가 아니라면 수감생활까지 다 마치고 나와 '내가 쏘지 않았다'고 얘기하겠냐"며 그의 결백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장했다. 70대 중에 들어선 그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마지막으로 재심청구를 통해서라도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ref name="jon01"/>
         제작진은 이를 근거로 오빠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만든 결정적인 증거였던 탄도검사와 화약흔 응 등이 또 다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봤다. 당시 수사기관은 소매 끝에서 나온 화약흔 응을 근거로 총을 쏘지 않았다면 오빠의 소매끝에서 화약흔이 나올리 없다며 오빠 정종욱씨의 범행을 확신했다.<ref name="jon01"/> 하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이 당시 사고차량의 내부와 동일한 크기의 세트를 바탕으로 총기발사 실험을 한 결과, 정종욱씨의 주장처럼 직접 총을 쏘지 않은 상황에서도 화약흔이 검출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ref name="jon01"/>
         [[1989년]] 가석방된 [[정종욱]]은 정성일이 정일권의 아들이 틀림없다고 말한다.<ref name="kum109">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9페이지</ref> 그에 의하면 '정일권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서교동 집으로 찾아왔지요. 그리고 동생이 '그이가 아들 하나만 낳아달라고 한다'며 상의를 해 처음엔 가족들이 극구 대를 했지요. 출산 후에는 일 주일에 한번 꼴로 찾아와 성일이를 안고 즐거워했으며, 늘그막에 아들을 얻어 소원을 이뤘다는 뜻에서 성일이란 이름까지 직접 지어왔어요. 성일이도 자기 아빠가 TV에 비치면 '아빠'라고 소리치며 좋아했지요.<ref>임은순, <오빠 정종욱 씨가 밝힌 '정인숙 사건'의 진상>, 경향신문 1991년 01월 16일, 14면</ref>'라는 것이다.
  • 창작:치킨교 . . . . 13회 일치
         모두 근본이 되는 닭의 튀긴 형상을 숭배하고 먹는 것을 종교활동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신앙구조를 갖고 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각종 양념을 통한 이념화가 진행되면서 치킨의 "특정형태"를 주로 신앙생활의 근본으로 삼는 종파로 분열되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똑같이 "치킨"을 숭배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고 있으나, 어떤 형태의 치느님이 신앙적으로 우월한지 끝없이 논쟁을 일삼으며 오늘도 주문하기 전에 서로를 비방하며 "이걸 주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싸운다. 이는 마치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가 똑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싸우는 것과 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의 종교전쟁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 흔히 "제1차 외식전쟁"에서 죽을 쑤자 나타난 종파였다. 제1차 외식전쟁은 미국의 위대한 선지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한도에 선교를 하러 오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애매한 하이브리드인 롯데리아가 참전하면서 시장통을 지배하던 후라이드 치킨교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 결과로 치킨교는 제법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피해로 인해 후라이드 교는 일종의 종교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부에서도 별도의 총대주교(소스) 세력에 불과하면 양념파가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
         === 무마니교 ===
         그러던 중에 이름 없는 선지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전능하신 치느님은 그 몸을 나누시어 한 몸에 양념 후라이드 을 실현하사 분쟁을 멈추셨다"는 주장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가르침은 "양념 치느님을 영접한 혀로 후라이드 치느님의 미묘한 은사를 접할 수 있을리 없다"는 박이 부딪혔다. 쓰러져가는 파를 구제한 것이 성자 무마니였다. 무마니는 치킨무의 묵묵한 헌신을 가르치며 "양념 치느님을 영접했으면 치킨무로 혀를 씻고 후라이드 치느님을 영접하라"는 신묘한 가르침을 창시하였다.
         이로써 신도들은 무마니의 이름을 더해 "무마니"의 주언을 외우게 되어 후라이드 치킨교와 양념 치킨교의 온전한 공존을 이끌어낸 것이다.
         양념치킨교가 후라이드 종파의 내부 세력중 "소스 총대주교"의 성향에서 출발하여 "가장 완벽한 치킨은 양념을 두른 치느님"이라는 교리를 제시하였고, 이는 후라이드 치킨의 강력한 내부 분파중 하나였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이다. 즉, "치느님은 강력하시나 무기를 든 치느님은 더욱 강력하시다"는 걸 바탕으로 "치느님은 강력하시나 양념이란 무기를 온몸에 두른 치느님은 더욱 강력하시다"는 기존의 교리를 재해석하였기에 사실 큰 발 없이 치킨교도로 인정받는 것이 가능했었다.
         면에 이 순살 치킨교는 기존의 교리를 거의 완전히 뒤엎으며 "치느님은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보다 순수하도록 노력하시며 뼈 없는 형상이야말로 극진한 모습으로 화하신 것이다"는 아예 새로운 교리를 들고 온 종파였다. 이들은 무기를 거의 들지 않는 후라이드든, 양념이란 무기를 든 양념 치느님이든 상관없이 치느님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뼈 없는 형상"으로 규정지었으며, 이는 치킨교도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오게 되었다.
  • 청도군 . . . . 13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1A4E5><bgcolor=#F0F8FF><table width=90%><:> [[파일:청도 시.png|width=95%]] ||
         ||<bgcolor=#F0F8FF> 청도 시 ||
         [[감(과일)|감]]이 가장 잘 알려진 특산물이다. 감은 지금도 교외로 나가면 집집마다 감나무 하나씩은 보일 정도로 흔하다. 그 중에서도 시가 유명한데, 시는 홍시의 일종으로 납작한 감을 일컫는 말이다. 특이하게 청도의 시는 씨가 없는 감으로 유명한데 씨없는 [[수박]]처럼 품종개량에서가 아닌 자연적인 현상이다. 다른 지역의 감나무를 청도에서 심으면 씨가 없어지고 청도의 감나무를 다른 지역에 심으면 그 열매에 씨가 난다.(...)
         그 외에 [[복숭아]]도 유명했으나, 복숭아 농장이 점차 줄어들어서 지금은 현지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아졌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청도 시와 청도 한재 [[미나리]]가 등록되어 있다.
         사실 이 사건의 경우, 사회의 민주적 의식기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적 제도를 시행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사례로써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해당 사건들의 배경으로 금권, 관권, 부정선거가 판치는 시기를 겪었던 노인층의 도덕적 해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실제로 금품을 살포한 후보자 및 선거본부가 제일 나쁜 놈들인 건 분명하지만, 선거라고 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런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하여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에게 '''뭔가 없냐'''고 채근하고, 금품을 줄 수 없다고 하면 '''그러면 선거에 왜 나왔느냐'''고 힐문하기까지 했다는 지역주민들의 책임 역시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금품 살포가 공공연히 일어난 최악의 [[부정선거]]가 일어난 것이다.''' 인구 5만명이 채 안 되는 청도군에서 동()단위로 금권 선거운동 책임자가 500명, 금품을 받은 주민 수가 5000명에 이른 상황은 실로 참극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선거 몇 번 하고 나니 지역 주민의 10% 이상이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자살자 2명의 사례 역시 한심하면서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위 기사 링크에 나온 이야기처럼 전문 선거꾼이나 협잡꾼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도 얻었던 그냥 동네 아저씨들이 이런 인맥구조에 얽혀 선거운동원이 되었다가, 결국은 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살포한 범죄자가 되어 경찰 수사를 받던 끝에 자살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하여 비꼬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차라리 전문 선거꾼이라면 이런 일로 자살 안 한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당시 금품을 받은 주변 주민들 중에는 돈을 전달한 자살자를 상대로 '''"네가 준 걸 받았다가 과태료를 내게 되었으니 네 책임이다. 그러니 과태료는 네가 물어내라"'''고 따지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잘못을 따진다면 당연히 돈 주고 받은 사람 모두가 잘못한 것이다) 어리석음과 도덕적 해이가 범죄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귀한 생명마저 잃게 된 슬픈 상황이 다시 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결국, 청도군 군수 선거 부정 사건은 얼핏 보면 촌극 같지만 지독한 비극으로 끝맺게 되었으며 민주주의의 확립은 제도적인 개선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도덕적인 의식 개선이 함께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면교사로 기억되게 되었다. 하다 못해, 선거가 진행되는 시기에 불미스런 일과 관련되어 금품을 수수하는 것은 범죄이고, 처벌대상라는 점이 명확하게 홍보되기만 했더라도 문제가 이 정도까지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가능성은 분명 있다.
          * [[재현]]
         송전탑 건설 문제로 대측 주민이 마을회관을 이용하지 못하여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에게 호소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49073|홈페이지]]
  • 최성원(가수) . . . . 13회 일치
         '''전인권과 상된 소년의 순수한 감성으로 들국화 음악의 핵심을 이끈 아티스트.'''
         한국의 포크 록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음 프로듀서 겸 디렉터이다. 록 밴드 [[들국화(밴드)|들국화]]의 [[베이시스트]]로 유명하다. 비록 밴드 내에서는 [[전인권]]에 묻힌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당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임은 분명하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 73학번으로 입학했을 때부터 이상훈, 이승희, [[김현식]][* 최성원보다 나이가 네살 정도 어렸지만 일찍부터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정광태]] 등과 몰려다니며 음주가무를 즐기고 날라리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다닌 곳은 명동의 르 시랑스, 내시빌, 오비스 캐빈이었다. 대학교 1학년때 양병집의 음작업에 통기타 주로 참여했고 이때부터 프로 세션맨으로 활약했다. 뚝섬스튜디오에서 [[조동진]]의 후임으로 월급 세션맨을 했고, [[이장희(가수)|이장희]]가 DJ를 맡고 있던 '0시의 다이얼'에 년 정도 고정출연을 하기도 했다.
         1983년 들국화에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였다. 이후 잠시 빠졌다가 다시 합류하여 1985년 [[들국화(앨범)|들국화 1집]] 앨범작업에 참여하였는데,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리스트 1위를 차지한 전설적인 명이 되었다. 최성원은 여기서 1집에서 가장 유명하며 아직도 명곡으로 회자되는 '[[그것만이 내 세상]]', '[[더 이상 내게]]', 1집에서 전인권과 최성원이 유일하게 듀엣으로 부른 노래인 '[[사랑일 뿐이야]]', 자신이 메인보컬이 되어 부른 노래이고 그것만이 내 세상과 함께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곡 '[[매일 그대와]]' 등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였다.
         이후 1986년 [[너랑 나랑|들국화 2집]]을 발매하였으나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그래도 최성원이 만든 노래인 '[[제발]]'은 히트했으며 '[[내가 찾는 아이]]'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등은 2집에서도 좋은 응을 얻었지만, 1집의 카리스마에 비하면 2집은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최구희와 손진태의 영입으로 들국화가 완전한 록밴드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많은 팬들과는 달리 오히려 더욱 말랑말랑해진, 포크와 팝 정도의 사운드 후하게 쳐줘도 포크록에 그치는 사운드가 나와 실망한 팬들이 꽤 많았다.] 결국 밴드내 불화[* 전인권과 최성원이 하루도 싸우지 않을 날이 없었다고 한다.] 등으로 들국화는 1987년 해체하고 만다.
         '''단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모두 명으로 만든 마이더스의 손.'''
         1990년 '어린 왕자'[* 1985년 우리노래전시회에서 강인원이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솔직할 수 있도록' 등이 수록된 2집을 발매하였다. 사실 이 음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명곡들이 상당히 많다. 도입부의 나레이션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어린왕자'와 낙관적인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솔직할 수 있도록'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들국화 초기 시절의 추억을 담은 '생각이 나는지', ccm풍이 물씬 풍기는 '행복의 열쇠'와 최성원 특유의 음색과 곡의 멜로디가 잘 어울려져 있으며 손진태의 기타솔로가 인상적인 '네 눈 앞에만' 등 수록된 모든 곡들이 명곡이다
         === 음제작 활동 ===
         이후 1990년대에는 음제작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이적(가수)|이적]]과 [[김진표]]의 '[[패닉(가수)|패닉]]'을 프로듀싱했으며, 그밖에 박주연, [[테라]] 등을 기획한 기획자이자 제작자로 활동하였다.
          * 2000년도 초에는 충북 청주에 있는 주성대학의 실용음악과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 태종무열왕 . . . . 13회 일치
         [[선덕여왕|선덕]](善德) · [[진덕여왕|진덕]](眞德) 두 조정에 걸쳐 국정 전, 특히 외교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진덕여왕]] 때는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飡)에 이르게 되고 [[진덕여왕]] 사후 [[대리청정]]으로써 국인의 추대를 받은 [[알천]]의 사양으로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며, 그렇게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첫 왕이 된 [[김춘추]]는 아들 [[김문왕|문왕]](文王),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각각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湌)으로 관등을 올려줌으로써 자기의 권력기을 강화시켰다. 이후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김유신의 주도와 김춘추의 동조로 이루어진 정략적인 측면이 강했던 이 혼인을 통해,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진지왕계와 옛 금관가야계 귀족간에 정치 · 군사적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지왕계(김용춘 · 김춘추)는 김유신계의 군사적 능력을, 금관가야계([[김서현]] · 김유신)는 진지왕계의 정치적 위치를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상호 이익에 입각해 이루어진 정치적 결탁은 신라의 중고(中古) 왕실의 진골 귀족 내에서 하나의 신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성골]](聖骨)계로 대표되는 기존의 구 귀족집단의 견제와 발을 받았다. 무열왕은 부계가 진지왕의 자손이고 모계가 진평왕의 자손으로 양쪽 모두가 왕족인 성골에 속했지만, 무열왕 이후 부계만이 왕족인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그를 상징적인 진골 최초의 임금으로 평가한다.{{출처|날짜=2018-06-29}}
         선덕여왕 11년([[642년]]) 8월, [[백제]](百濟)의 장군 윤충(允忠)이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경상남도]] [[합천군|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대야성의 성주였던 이찬 김품석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의 남편으로 김춘추의 사위였는데, 앞서 그에게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백제군과 내통한 부하 검일(黔日)의 배으로 궁지에 몰린 김품석은 처자를 죽인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삼국사기》는 당시 김춘추는 이찬의 관등에 올라 있었고, 대야성에서 딸과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대야성의 일을 계기로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원병을 빌리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갈 것을 왕에게 건의한 김춘추는 고구려의 국왕 [[보장왕]]과 실권자 [[연개소문]]을 만나 원병을 청했지만, 원병 파병 조건으로 과거 [[진흥왕]](眞興王) 때에 신라가 획득한 죽령(竹嶺) 이북 땅의 환을 내세운 고구려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김유신의 무력 시위,<ref name="선덕왕-1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선덕왕 11년(642)</ref> 그리고 고구려 대신 선도해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대로 왕에게 아뢰어 땅을 돌려주게 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ref name="김유신-상">《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상</ref>
         고구려 뿐만 아니라 《일본서기》에는 [[고토쿠 천황]](孝德天皇) [[다이카]](大化) 3년([[647년]])에 김춘추가 왜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김춘추의 관등은 상신(上臣) [[대아찬]](大阿湌)으로 표기되어 있다.<ref name="일본서기-647">《일본서기》 권25 天萬豐日天皇 孝德天皇 大化 3년(647)</ref> 한편 신라에서는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란이 김유신에 의해 진압되고, 선덕여왕의 사망으로 진덕여왕이 옹립되었다. 춘추와 유신은 진덕여왕을 보위하여 정권을 완벽하게 장악하였다.<ref name="신라-647">《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1년(647)</ref>
         [[신채호]]는 민족주의적 견지에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다 똑같이 '신성한 부여족', 즉 '조선 한민족의 형제'라 부르며, 당과 손을 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친 김춘추(태종 무열왕)의 행동을 “도적을 끌어들여 형제를 죽인” 격으로, “다른 민족을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 백제를 없앤 역사의 죄인”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특히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4천 년간의 민족사는 [[부여족]] 소장성쇠(消長盛衰)의 역사라 하여 [[부여족]]이 주족이라는 인식하에 긍정적으로 평가되던 ‘[[삼국통일]]’의 대업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비판해 [[김유신]](金庾信)·[[김춘추]](金春秋) 및 [[김부식]](金富軾)의 공죄(功罪)를 논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고대사를 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를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보았기 때문이다.<ref>신채호, [[:s:ko:독사신론#제9장 김춘추의 功罪|〈독사신론〉 제9장 김춘추의 功罪]] 《대한매일신보》</ref>
         [[1993년]] [[성균관대학교]]의 김영하 교수는 [[천리장성]]의 예를 들어 축소된 강역으로 [[만주]]의 요동땅을 밟지못하고 고토를 잃고 살다가 [[조선]]에 와서야 겨우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를 내놓으면서 당의 [[한도]] 경략에 발맞추어 외세와의 공조로 [[백제]]만을 겨우 정복한 [[신라]]는 "통일을 완수할 힘도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고 '통일신라 시대' 대신에 '신라와 발해' 내지는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 부정론에 대한 론 ====
         [[박노자]]는 부정론에 대한 론을 펼쳤다. 그 주장은 다음과 같다.
         《[[구당서]]》 등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이 서로 말과 풍속이 같았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를 '동류'로 파악하는 의식이 있었을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부여]] 계열인 고구려, 백제<ref group="주">토착세력은 [[삼한]] 중 [[마한]] 계열</ref>와 [[삼한]](三韓) 중 [[진한]] 및 [[변한]]([[가야]]) 계열인 신라는 시조 신화나 제사, 정치 체계 및 혼인풍속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었고, 특히 수백년에 걸쳐 계속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특화된 이질성과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적대감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다. 4세기 백제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는 당시 백제와 대립하고 있던 고구려와 연대했지만,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5세기 후에는 다시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서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나제동맹 역시 552년 한강 유역을 둘러싼 갈등으로 파탄났으며, [[554년]] 백제의 [[성왕]]이 신라의 매복에 걸려 전사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백제]]의 영토를 흡수하고 [[한도]]의 중남부 지역을 차지하게 된 신라는 후대의 한도 통일국가인 [[고려]], [[조선]]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에 7세기 말에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삼한일통'이나 '삼국통일'과 같은 말은 [[19세기]]까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계속 쓰였다.<ref>박노자,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163000/2008/07/021163000200807160719009.html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인가]. 《한겨레21》 제719호 (2008년07월16일)</ref>
  • 트로피코 4/칙령 . . . . 13회 일치
         == 일 ==
         트로피코는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대통령 각하가 원하는 때에 선거할 수 있다. 정책 시행 1년 후 선거를 시작한다. 연설을 동한 선거를 할 것인지, 그냥 선거를 할 것인지 정할 수 있다.
         시민의 마음을 선동하는 정부적 서적을 모두 태워버린다. 지식인의 수가 50% 줄어들며 지식인이 될 확률도 50% 감소한다. 불태워버릴 책에는 교과서도 들어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숙련도가 50% 감소한다.
         정치에 밝은 성직자 앞에서 피고를 심문한다. 시위, 폭동, 쿠데타가 줄어들지만 역자의 활동이 증가한다. 자유도와 관광 평가가 하락하며, 시민이 교회를 방문하는 빈도가 두배가 된다.
         역자들에게 사회로 복귀시켜준다고 설득한다. 섬의 전체적인 생활 환경이 몇년간 크게 향상되었을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무학력자도 병사가 될 수 있게 만든다. 무학력자 병사의 전투 능력은 고졸 병사의 전투 능력보다 떨어진다. 섬에서 나가거나 란군이 되려는 시민이 늘어난다.
         === 란군 낚기 ===
         군대가 쇠약해졌다는 소문을 흘려 역자들의 공격을 유도한다. 군사력이 안 좋을 때 쓰면 건물 하나가 날아가니 군사력을 잘 가늠하자.
         역자들이 서로 연락할 수 없도록 만든다. 3년간 역자의 수가 늘어나지 않으며, 역자의 공격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식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충성파 절에게 고등학교 학위를 뿌린 후, 일부에게는 대학 학위도 뿌려준다.
         하루종일 채팅, 포럼, 네트워크 등에 애국적인 댓글을 다는 경찰 댓글부대를 편성한다. 란군의 공격을 예상할 수 있지만 자유도가 하락한다.
  • 김석훈(탤런트) . . . . 12회 일치
         원래 [[금남리토종순대국]](구 가평예전)에 들어가 연극영화를 전공했었다. 본인의 회고에서 금남리토종순대국는 실전 연기와 실기를 충실히 단련해 지속적으로 익히는 점에서 최고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에 머물지 않고 연기내면의 깊이와 표현력을 높이는 한 방식인 이론 탐구도 갈구해 [[금남리토종순대국]]에 입학한다. 입학 후 연기이론에 정통해 진 것 외에도 철학과 심리 등 인문계통 학문을 여럿 접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했다. 거기다 학문소양도 차근차근히 다져, 자신의 연기로도 폭 넓게 영 하고 배울 수 있어 뜻 깊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배우에게는 인간에 대한 관심 및 인간심리, 각종 군상들을 다각도의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다지는 일이 필수다. 이런 사안을 본인이 이미 그 중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연기폭이 넓은 점에 대해 의외라는 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연기가 아닌 일(내레이션, DJ)에서도 탐구를 하는 인물인데, 연기인 캐릭터를 탐구해 폭이 넓어진 것은 당연하다. [* 위엄있고 의연한 연기도 소심한 연기도 잘해도 너무 자연스레 잘한다.] 표정연기와 감정표현에서 미묘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폭 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위엄과 지도력이 넘치는 이순신 역과 소심한 현대시민 등 다양한 연기영역의 경을 넘나들고 넓혀가며 호평을 받고 있다.
         || 2011년 || MBC || [[짝 빛나는(드라마)|짝 빛나는]] || 송승준 ||
         || 2013년 || KBS2 || [[루비지]] || [[배경민]] ||
         || 1999년 || 북경점 || 양한국 ||
          * [[2011년]]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짝 빛나는》
          * [[2013년]] [[KBS 연기대상]] 일일극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루비지》
  • 김재박 . . . . 12회 일치
         감독 임기를 끝내고, 바로 다음 시즌인 2010 시즌부터 [[KBO]]의 경기감독관 자리에 앉았는데 팬들에게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천취소]] 결정에 있어서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본인이 꼴리면~~ 비가 안 와도 때려버리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해대고 있기 때문에 발이 심하다. 오죽하면 [[고척 스카이돔]]에서 경기 열어도 관중 오기 불편하단 핑계를 대고 우천취소 때려버릴 양이라는 말이 나올까.
         쌓이고 쌓여서 2015년 6월 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릴 경기를 비가 그쳤음에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l&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414294&date=20150605&page=1|우천 취소를 때려버려]]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급기야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284855&cpage=&mbsW=search&select=sct&opt=1&keyword=%C0%E7%B9%DA|SBS 스포츠]]에서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298498&cpage=&mbsW=&select=&opt=&keyword=|우천취소 메뉴얼]]까지 제안해가며 김재박을 깠다. 2015시즌 후부 월요일 경기 및 더블헤더 임시 도입에 이 사람의 우천취소 남발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 LG감독 첫 해인 2007년 4월 22일 삼성전 2-3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2사 1루에서 [[이대형]]의 2루땅볼이 1루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을 받자 엄청나게 분노해서 어필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내내 그 상황을 가지고 불만을 표출하다가 심지어는 '''"설사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때로는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도 있지 않냐"'''[* 사실 한미일 통틀어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http://news.donga.com/Sports/3/05/20150707/72336135/1|규정상 세이프]]다. 김재박 외에도 이 규정을 모르는 관계자 및 팬이 많은 편.]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LG가 이기고 있고 삼성이 오심으로 져도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양아.~~ 심판 판정은 모든 팀에게 공정해야 적용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오심도 불사하라는, 야구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망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박도 존재한다. [[김인식]]감독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025078|“기술적으로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하며 대표팀 발탁에 대한 만큼 [[추신수]]의 대표팀 탈락은 김재박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었으며, 당시 대표팀에 최종선발된 외야수는 [[이병규]], [[이용규]], [[이진영]], [[이택근]], [[박재홍(야구)|박재홍]] 총 5명으로 [[김인식]]감독의 말대로 모두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외야수들로서, [[추신수]] 대신 이들이 대표팀에 선발된것이 대표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못한 박으로서, 당시 추신수는 AAA에서 OPS .893 메이저리그에서 OPS .812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으로 온 어떤 용병타자보다 좋은 기록이었으며, 리그의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OPS만 비교한다 해도 이택근을 제외한 다른 국가대표 외야수들보다 OPS가 더 높았다. 명백히 급이 다른 선수를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뽑지 않은것이 맞다.
          * 웹툰 [[삼국전투기]]에서도 패러디 캐릭터로 특별출연한다. 우천취소를 쉽게 결정하는 모습을 영하여, 요동전투 편에서 폭우가 내리자 철군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관구검]]이 대장이었을 때는 ~~우천취소~~철군을 받아들이나, [[사마의]]가 왔을 때는 철군 주장을 하자마자 바로 처형당한다.(...)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5&no=8203959&page=1|창단 팀과의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대광고등학교 야구부, 영남대학교 야구부, 한국화장품 야구단 모두 창단된 팀이었고, [[MBC 청룡]]도 후기 13경기 뿐이지만, 프로야구 원년에 경기에 활약했다. 그리고 감독도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 2000년 시즌 후 [[박종호]]의 타격 1위를 굳히기 위해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5경기에서 박종호를 출전 제외했으며, 10월 12일 SK전에서 타율 2리 차이로 근소하게 추격하고 있던 [[틸슨 브리또]]에게 고의적인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부상시켰다. 결국 열받은 브리또는 "더러워서 타격왕 안 해먹는다" 라며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다음날 출국해버린다.
          * 2008년 5월 29일, [[이재우]]가 [[야맹증]] 때문에 항상 쓰고 나오는 [[고글]]을 지적하였다.[* 고글 착용은 규정상으로 위이나, 어쩔 수 없거나 별 이상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례다.] 이 일로 흔들렸는지 그 해 [[방어율]] 1점대를 기록하고 있던 필승계투 이재우는 안타를 맞고 강판되었고, LG는 이와 같은 "감독님의 활약" 덕에 [[잠실시리즈|잠실 라이벌]]인 두산전 5연패를 그날 끊었다.(...)
         ||<table align=center> '''한국시리즈 우승 지'''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12회 일치
          * 그의 계획대로 난전이 되었고 걸물고교 학생들은 힘을 온존하고 있다가 후에 포인트를 모아 8명 전원 통과한다.
          * A은 11명이 통과되고 9명이 남은 가운데 야오요로즈 모모는 이이다 텐야를 걱정한다.
          * 이이다는 통과보다는 낙오된 A 학생이 없나 살펴보고 다녔던 것. 아오야마 유가를 발견해 동행하고 있다.
          *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흩어져 있던 A 생존자들을 집결시켰고, 네빌 레이저를 보고 온 적들에게서 포인트를 따내 웅영고 전원이 합격하게 된다.
          * 대기실에서는 먼저 통과한 A 학생들이 이들을 맞이한다.
          * 현재 A은 11명이 통과하고 9명이 남은 상황. 남은 자리는 18개 뿐이다.
          * 이이다는 자신의 통과보다는 A 학생 중 낙오하거나 위기에 처한 사람이 없나 살펴보고 다니고 있다.
          * 그는 장으로서 시간과 다리가 허락되는 한 에 공헌하고 싶다며 자신의 형도 그랬을 거라 말한다. 그의 행위는 바로 그 꿈의 형태이기도 한 것.
          * 대기실의 A 학생들도 이젠 9자리 밖에 남지 않았다며 전원은 무리였나 하고 낙심한다.
          * 대기실에 모인 A. 전원 통과를 자축한다.
          * 하가쿠레 토오루도 어딘가에 패널을 붙이긴 했을 텐데, 어디에 붙인 건지 알 수가 없다.--거의 칙 아니냐--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12회 일치
         장탄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재장전 키를 꾹 눌러서 장탄수를 확인 할 수 있지만 "꽉 참/ 이상 참/거의 빔"으로만 표시된다.
          정예 소총수.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병과. Frontline Solder 등급까지 올라가면 권총(C96/TT33)이, Veteran 등급까지 올라가면 적국의 자동소총(SVT-40/G41)이 해금된다.
          저격수. 조준경 달린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병과. Frontline Solder 등급까지 올라가면 권총(C96/TT33)이, Veteran 등급까지 올라가면 조준경 달린 자동소총(Scoped G41/Scoped SVT-40)이 해금된다.
          공병. 기관단총, 대전차 수류탄, 휴대용 폭약으로 무장한 병과. Frontline Solder 등급까지 올라가면 권총(C96/TT33)이, Veteran 등급까지 올라가면 자동소총(G41/SVT-40)이 해금된다.
          * 자동소총
          Elite Rifleman의 주무장. 자동이기에 노리쇠를 당길 필요가 없다.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총검이 해금된다.
          Marksman의 주무장. 소총과 자동 소총에 조준경을 달아놓은거다. 조준 상태에서 6을 눌러 기계식 조준기로 전환할 수 있다. 볼트액션 방식의 경우 클립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한발씩 장전하므로 장전 속도가 느리다.
          Anti-tank Soldier의 주무장. 전차의 약점에 맞추면 피해를 줄 수 있다. 들고 쏠 수 없기에 드시 거치해서 사용해야 한다.
          일적인 파편수류탄. 마우스 휠을 눌러 짧게 던질 수 있다. 꾹 누르고 있으면 수류탄 쿠킹이 되지만 너무 오랫동안 쿠킹하다가는 손 안에서 터져 죽는다.
          연합군이 공격, 주축군이 방어인 맵. 평야에서 시작해 시가지로 들어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주축군의 방어가 거센 곳은 초 평야 지대와 마지막 포인트 바로 앞의 강. 연합군에게 지형적으로 불리한 위치인지라 소련 측은 T-34를 사용할 수 있다.
          * 레드 오케스트라는 독일군 내 친소련 공산주의 체제조직의 명칭이기도 하다.
  • 로힝야 . . . . 12회 일치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영국 통치 이후 미얀마에 이주하게 된 방글라데시 인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을 방글라데시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 정부는 '벵갈리'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를 차별하는 배경에는 [[종교]]가 있는데, 미얀마 [[불교]] 신도들의 ' 이슬람' 감정이 강하기 때문이다.
         면 로힝야 측에서는 자신들이 7세기 라카인주에 정착한 [[아랍]] 계통 [[무슬림]] 상인들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 박해는 20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1962년 군부 쿠데타 집권한 네윈 정권은,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다수 불교도 위주의 정책을 펼쳤으며, 소수민족 탄압이 본격화 되었다. 1978년 네윈 정권은 무슬림 군 토벌을 명분으로 하여, ‘킹 드래건 작전’ 을 펼쳐서 로힝야를 대규모로 체포했다. 로힝야 2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갔으나, 방글라데시에서도 지원을 별로 받지 못하여 1만 2천명이 아사나 병사했으며, 생존자는 미얀마로 송환됐다.
         2013년 3월 20일, 미얀마 중부 메이크틸라 지역에서 무슬림 금은방 주인과 불교도 손님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져서, 폭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승려]]들이 선도하여 무기를 든 불교도들이 무슬림을 공격하였고, 무슬림을 산 채로 불길에 밀어넣기도 했다. 2007년에는 평화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한 바 있는 군경은 이번에는 사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이 무슬림 폭동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2016년 10월 9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마웅토 등의 국경 검문소가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아 경찰관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를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격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100여명의 사망자가 있었고, [[성폭행]] 사건과, 다수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위성사진을 분석하여 진압과정에서 1,200채의 민가가 불에 탄 것으로 분석하였고, 유엔은 난민의 수가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미얀마 정부는 민간인 학살과 인종청소를 부인하였으며, 저 타이 미얀마 대통령실 대변인은 유엔의 주장을 부정하고, 확실한 증거에 기하여 발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얀마 군부와 정부는 민가 방화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려는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응하여 2016년 12월 19일, 아웅산 수치는 [[아세안]] 회원국 외무장관을 미얀마 양곤으로 초청하여, 미얀마군 무장세력 토벌작전과 로힝야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어서 수치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국 외무장관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응을 보였다.
          *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지만, 아직 군부 세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 로힝야 탄압은 수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군부와 그에 유사한 성향을 가진 극렬 버마 민족주의자, 종교인이 함께 움직이고 있어 수치가 억제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2016년 12월 29일, 데스몬드 투투 주교와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 노벨상 수상자 22명은 유엔 안보리에 공개서한을 보내서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와 인륜 범죄를 중단시킬 것을 요청하고, 아웅산 수치 정부가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 미얀마 불교의 무슬림 운동 ===
         미얀마 승려 위라투는 이 음모론에 대응하는 '969 운동'을 시작했는데, 9는 붓다, 6은 법륜, 9는 붓다의 제자, 승려를 뜻한다. 969 운동은 무슬림의 '786 음모'에 맞서는 운동임을 주장한다. 위라투는 2003년 버마 중부 만달레이주 카욱세의 무슬림 폭동에서 배후를 자처했다. 이 때 위라투를 비롯한 5명의 승려가 경찰에 '증오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 그는 민간 정부 출범을 기념한 대사면으로 석방됐으며, 이후로 미얀마 전역의 불교 사원을 순례하며 무슬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운영하는 회사나 무슬림 상점에 보이콧을 선동하고, 신심있는 불교도라면 969 운동의 [[스티커]]가 붙은 가게에서만 물건을 사야 한다는 식이다.
  • 붐(연예인) . . . . 12회 일치
         '''하지만 각종 사건 사고들이 터지면서 점점 비호감 이미지로 변해갔다'''. 처음 몇 번이야 어찌 넘길 수 있었지만, 온갖 악명들이 다 누적되면서 안 그래도 [[비호감]]이었는데, 사고가 터지자 예전애 있던 논란들까지 다시 튀어나오며 더 밉상으로 보이게 되--면서 밑바닥까지 뚫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해서 복되었다. 결국 [[연예병사]] 논란과 [[도박]] 사건으로 치명타를 먹고 제대로 몰락했다.
         중3 때 혼성그룹 "키"로 데뷔했다. 이후 1999년과, 2001년 각각 뉴클리어, 레카[* 붐이 방송에서 과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요계를 이끌어가는 [[렉카차]] 드립을 치고 자막에서도 '렉카'로 표기해 '렉카'인 줄 아는 사람이 많으나,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인 '[[레카]]'의 실사판 그룹이다. '레카'가 나름 인기를 얻자 업체 쪽에서 여러가지 사업 시도를 했었는데 그 중 하나. 물론 결과는(...)... 참고로 [[거북이(혼성그룹)|거북이]]의 금비가 이 그룹 멤버였었다.]의 멤버로 활동했으나 셋 다 쫄딱 망했다. 이후 그룹명을 '가요계의 열쇠가 되자'고 해서 '키' 라고 했는데 자기네가 잠기고, '핵폭탄급 응을 일으키자' 해서 뉴클리어라고 했는데 자기네들이 터지고, '가요계를 이끌어보자' 해서 렉카라고 했는데 끌려갔다고 스스로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Key 2집 타이틀인 'Forever love'는 청각장애인인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의 친형을 모티브로 뮤비를 만들었다. --정작 열쇠가 된 건 [[샤이니]]의 [[Key(샤이니)|키범이]]...--
         그러다 워케이블 방송의 [[VJ]]로 활동, 공중파를 비롯한 100여 명이 넘는 취재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시 톱스타였던 [[김희선]]의 [[인터뷰]]를 당당히 따내어 [[유명세]]를 탔다. 이를 계기로 [[MBC]]의 연예 정보 프로그램 섹션TV에 [[리포터]]로 발탁되어 다시 [[공중파]]에 입성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각종 프로그램에서 감초로 활약하며 활동경을 넓혀갔다. 이 [[섹션TV 연예통신]]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알리고자 마이크에 자신의 예명인 BOOM을 크게 새겨넣고 소개시 "붐이에요!"라는 자체 [[유행어]]를 제작,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해서 예능 속 이미지를 확실히 굳혔다.
         아래에 언급된 일들이 생긴 뒤엔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역 후 첫 출연 당시엔 응이 '''폭발적이었다'''. 아니, 전역하기 전부터 ~~이제 와서 보면 쓸데없이~~ 그의 전역일 카운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예능 입지를 확실히 정착시킨 상태에서 자리를 비워서 입대 후 그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군에서 예능 아이템을 400개 이상 생각해 왔다.'로 개념 있는 군인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군대 다녀오더니 남성스러워졌고 멋져진 거 같다는 응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그리고 2013년, 저 세 명의 안양예고 동문들은 나란히 [[연예병사|군 관련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나마 기이 탄탄했던 [[비(연예인)|비]]는 복귀 후 여론이 나쁘지 않지만, 붐과 [[SE7EN|세븐]]의 경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때문에 [[스갤]]은 폭발했고 붐은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있어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팬들 입장으로선 [[한국]]에선 [[일인]]도 [[프로게이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비하]]하는 그릇된 편견이 존재해서 민감한 마당에 쇼프로에서 대놓고 바보 취급까지 당하니 팬들은 제대로 폭발한 것.
         다만, 원래 쇼 자체가 10대들 대상의 개그 코드가 주로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는 참작의 여지가 있다. 게시판 도배라는 바르지 못한 행위로 항의의 뜻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도 역시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있어 아쉬운 대목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오히려 스타크래프트 팬덤에 대한 감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오프를 뛰는 [[신화창조]]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되고 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루머에 지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설마 전진이랑 붐과 약간 닮기는 했어도 [[목소리]]도 다르고 한데 속을 리가?"라면서 [[실드]]를 치는 사람도 상당했다. [[일인]]들도 거기에 의견을 맞춰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소란을 일축했고, 그 사건은 루머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적어도 붐 제놈이 <스친소>에서 바보같이 자랑스럽게 떠벌리기 전까지는'''... 이후, 이 사건이 진짜인 게 자신의 입으로 확인이 되면서 신화의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열라]]게 까인 바가 있다.[* 사실 스친소에서 붐이 [[바보]]같이 스스로 말하기 전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전진이 이 루머에 대해 해명한 것도 있다.]
         국방부에 의하면 그는 복무기간 중 [[무려]] '''150일의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보통의 육군 현역들은 정기휴가에 포상을 몇 개 받아도 21개월의 복무기간 동안 총 50일도 나가기가 힘든 면, 그는 여러가지 특혜를 받으며 근무하는 연예병사인데 휴가까지 3배 정도나 더 받았다. 630일 동안 군복무를 하면 약 90주인데, 휴가를 길게 써서 공휴일이나 주말에 나간 것을 포함해도 평일 중 최소 하루 이상은 휴가로 보냈다는 소리. 즉 21개월의 복무 기간동안 평균적으로 일주일 중 3~4일만, 그것도 연예병사로 근무를 한 셈이 된다. 현역 까방권을 제대로 날려먹었다.
         [[덤]]으로, 2012년 9월 군인들이면 누구나 먹는 [[건빵]] 시리얼을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 [[야간매점]]에 나와 본인 이름을 딴 붐플레이크라고 소개해 많은 질타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감을 얻었으나 예능에서 자신의 자리는 계속 유지했다. '''하지만'''...
         연예 오락채널 E채널의 용감한 작가들의 녹화를 했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6&sid2=224&oid=108&aid=0002349214|기사]]. 그리고 2014년 10월 30일 결국 방송에 나와 자필 사과문을 공개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2&aid=0002538776|기사]]. 같은 방송의 11월 6일 방영분에선 이승훈 PD와 [[김준호(개그맨)|김준호]]를 찾아가 회초리를 맞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57&aid=0000497251|기사]][* 당연히 응은 '''좋을 리가 없다'''.].
  • 서영춘(코미디언) . . . . 12회 일치
         [[1961년]] [[MBC]]의 개국과 더불어 방송가에 입문하였다. '[[웃으면 복이와요]]' 등 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이를 계기로 60년대에 스타덤에 오르며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구봉서]]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60년대를 시작으로 1970년대 후까지 이어졌던 그의 극장식 패키지쇼. 이른바 서영춘쇼 또한 큰 히트를 치게 된다. 당시 별명은 살살이.
         1970년대 중 [[동양방송|TBC]]로 자리를 옮기며 [[고전 유모어극장]] 등을 통해서 70년대 중후 부터, 80년대 초 [[이주일]]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코미디계 부동의 1인자 자리를 유지하였다. 1960,70년대 [[구봉서]], [[배삼룡]] 등과 코미디 트로이카로서 인기를 나눠 가졌다고는 하나, 당시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들 중 누가 1인자였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영춘]]을 첫 손가락으로 꼽을 것이 분명하다. 여담으로, [[이주일]]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도 바로 서영춘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방송국 대기실에 들어온 이주일을 본 서영춘은 속으로 '저 놈 방송에 나오면 무조건 뜬다!'라고 예상했는데, 약간의 곡절을 겪은 후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사실상 말이 트로이카지 사실상 구봉서, 배삼룡의 인기가 조금 식어갈 시기에 서영춘이 원톱급으로 발돋움한 시기가 맞물렸으며 사실상 당시를 보면 완전한 트로이카 체제보다는 구봉서, 배삼룡 - 서영춘으로 이어진 세대교체로 봐도 좋을 정도였다.[* 정확히는 악극단 시절부터 70년대 초까진 구봉서, 배삼룡이 우위였고 70년대 중후 경부터 서영춘의 우위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다만 서영춘 역시 악극단 시절부터 최고의 톱스타였으며 구봉서, 배삼룡 역시 70년대 중후에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렇듯 전성기 시절 3명이 팽팽하게 인기를 가져갔으며 트로이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다.] 즉, 시대적으로 약간의 개인차가 있었을 뿐 누구 한 명이 어느 특정 시대에 완전히 압도했던 상황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이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던 시기가 한동안 지속되던 때에 [[이주일|다들 알다시피 어느 얼굴천재가 홀연히 나타나 모든것을 뒤바꿔 버렸으니....]]
         60년대 극장쇼 무대에서 콤비로 활약했던 [[백금녀]][* 악극단 출신의 코미디언. 드센 뚱녀 컨셉으로 1960-197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음도 취입했다. [[이국주]]와 흡사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노래도 매우 잘 해 지금의 이국주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다. 1995년 작고.]와 함께 한 음. 이런 음엔 주로 재미있는 가사의 노래가 들어갔는데, 노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꽁트, 개그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서영춘의 대표작 "시골영감 서울 가는 기차..."노래가 이런 판에 들어간 종류.
         그러나 사적으로 [[주당|음주를 자주 하는]] 영향으로 [[간]](肝) 건강이 나빠져 [[간암]] 발병으로 긴 시간 병고(病苦)를 치루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단체로 문병 온 후배 코미디언 중 [[심형래]][* 그런데 이 일화를 얘기하는 사람마다 그 당사자가 다르다. [[이경규]]이기도 하고 [[최병서]]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 당사자만 아는 일일 듯.]의 낯빛이 유독 어둡길래 서영춘이 "형래야, 요새 어떻게 지내냐?" 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심형래가 무심코 "네 선생님,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죽지 못해 사냐? 이놈아! 나는 살지 못해 죽게 생겼다!"'''라며 일갈했고, 이 한마디에 병실에 있던 후배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꺽꺽댔다고 한다... 게다가 서영춘이 세상을 떠난 후 영결식에서 후배 개그맨 [[엄용수]]가 "살살이 고 서영춘 선생님께서는 생전 국민들의 웃음과 즐거움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대표적인 [[유행어]]로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 붑빠라밥빠 붑빱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마십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 이라는 내용의 고인 약력을 눈물을 삼키며 읽어 내려가는데, 정작 조문객들은 슬픈 분위기임에도 평소 서영춘의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생각이 났는지 키득키득 거렸다고... ~~죽어서도 사람을 웃기는 역시 뼈그맨~~
         가족으로는 [[딸]] [[서현선]]과 [[아들]] [[서동균]]이 있고 둘 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코미디언]], [[배우|연극배우]]의 길을 밟았다. 서현선은 1990년대 초 [[KBS]]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레귤러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봉숭아 학당]]'에서 [[오서방]]([[오재미]])과 합을 맞추는 미녀 [[코미디언]]이 바로 그녀이다. 동료들이 서영춘의 성대모사를 시전하자 발끈하는 모습을 (물론 개그로) 보여주기도 했다. 서동균은 [[개그콘서트]] 초중기 멤버로 참가하며 로보캅 연기로 인지도를 쌓았으나 이후 [[이정수(1979)|이정수]]처럼 연극 및 뮤지컬 배우로 전업하였다.
  • 신민아 . . . . 12회 일치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90년대 후 당시에는 각종 패션잡지가 창간되고 '패션잡지 전성시대'였고, 10대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달별로 패션잡지를 사서 학교에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배두나]], [[김민희]], [[김효진]] 등 잡지 모델들의 인기도 상당했으며, cf모델등을 거쳐 연예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잡지 부록 경쟁도 한창 치열하여 다이어리, 화장품, 가방등 다양한 부록이 선보였다.] '키키'(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상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잡지(쎄씨, 신디더퍼키, 유행통신, 피가로 등)에 인기있는 모델로 얼굴을 도배했고, 촉촉한 초코칩, 네스카페, 코오롱 샴푸, 위스퍼, 매직 스테이션 등 tv광고도 수없이 많이 찍을 정도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대중에게는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 이 '당부' 뮤직비디오는 1999년에는 [[엠넷]]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영상음악대상]]에서 당시의 대세였던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쳐버리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다.] 로 "저 처자는 누구냐"는 응을 끌어내며 얼굴을 널리 알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알려주는 VJ로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되었다.
         버거 소녀로 유명한 배우 [[양미라]]와 이름이 비슷해, 신민아로 활등명을 개명했다.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서 [[이병헌]]의 여동생으로 첫 연기를 시작한 이래, 영화 [[화산고]]를 찍는 등 고교시절까지도 유망주로 잘 나갔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도 부정확한 발음과 국어책 읽는 연기로 드라마와 영화 모두 흥행에는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모델 출신 다운 늘씬한 몸매와 감각적인 패션센스, 볼륨있는 몸매와는 상된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로 꾸준히 광고에 등장하다가 2008~2009년에는 드디어 포텐이 터져 cf퀸으로 떠올랐다. 2015~2017년의 [[AOA]] [[설현]] 정도 입지라고 생각하면 될 듯. 진로의 소주 J광고부터 [[포텐]]이 만개하여 주점 앞에 광고를 위해 세워둔 등신대 입간판이 사라지는 등의 해프닝이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귀여운 외모에 늘씬하고 굴곡있는 몸매로 베이글녀로 유명세를 탔으며 특히 골과 힙라인, 뒤태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연기력이 서서히 나아지고는 있으나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똑같이 잡지모델로 출발하여,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역시 발연기로 까였던 김민희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김민희는(불륜으로 유명세를 치룬 것과는 별개로) 절차부심한 끝에 발연기의 오명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하여 끝내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은데 해 신민아는 여전히 연기력에서는 인정을 받았다고 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표정연기의 문제이기보다는 발성과 발음의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때려 이후의 첫 작품 [[이 죽일놈의 사랑]]. [[공효진]]과 상두야 학교가자로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키고, [[송혜교]]와 [[풀하우스(드라마)|풀하우스]]등을 통해 최고의 열에 오를 뻔하였던 [[비(연예인)|비]]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명필을 휘날린 [[이경희]] 작가와 함께한 [[이 죽일놈의 사랑]]은 사상 최대의 폭망은 아니지만 시작도 하기 전 엄청났던 기대치를 단숨에 잠재우며 조용히 와서 조용히 떠나갔다. 사실 [[소지섭]]과 [[임수정]]을 톱스타 열에 올려 놓은 미사의 위용을 이을 거라 생각했던 시작 전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망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리고 시작 전 엄청난 기대를 받았고 그나마 나름 TV커리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으나 그 초의 압도적인 기대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이 드라마 압도적인 기대를 모은 것은 작가가 홍자매인 점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바로 바로 상대역이 무려 [[이승기]]. [[소문난 칠공주]]로 연기 데뷔하고 [[한효주|동생으로 유명한 그분]]과 함께 한 찬란한 유산이 기대 이상의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고 [[1박2일]] 시즌1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강심장]]으로 인기를 끌던 그야말로 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TV를 종횡무진하던 그와 함께 하여 정말 이번에는 안망할 줄 알았다. 사실 2010년 위 이승기라면 마이더스의 손으로 하는 족족 앨범 드라마 예능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16회 중 20%를 넘거나 근접한 것은 막판 4회 뿐이고 거의 나머지 기간동안은 10%초을 찍었다. 결국 평균 시청률은 15%(TNms기준)였다. AGB 기준으로는 12.6%이다. 시청률 20%는 거의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자매]]와 시청률이 전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2014년도와는 거리가 한참 있는 2010년도에 작품을 했음에도 이거밖에 못 거둔거면 사실 망했다고 보는게 맞다. 홍자매의 전작인 [[미남이시네요]]도 사실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이는 홍자매 또한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그닥 높지 않은 시청률을 생각했다고 밝혔으나[* 방송사에서도 시청률이 제일 중요하지만 매번 대박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일선에서 뛰는 모PD의 블로그-[[일지매]]PD-에 따르면 심지어 엄청난 대작이 상대방에서 나올 경우 일부러 시간 떼우기로 폭망할 작품을 넣는 경우까지도 있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편성을 안하진 않는다. 쓸만한 작품이 없어서 방송은 계속 해야 되는 거니까.. --그러니 푸쉬받고 세 번이나 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니깐--] [[쾌도 홍길동]]과 더불어 홍자매가 이건 뜰 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인데도 안됐다. --물론 쾌도 홍길동도 20%은 못넘겼지-- 물론 동시 방영하던 타방송사 작품이 [[제빵왕 김탁구]]였긴 했으나 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것저것 변명대면 남는 게 없다. 홍자매 또한 [[미남이시네요]]로 할 거 다 해보고 여기서는 다시 뜰 줄 알았으나 그냥저냥 했던 홍자매는 바로 이후 작품인 [[최고의 사랑]]이 AGB 기준 20%를 넘기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이더스의 손, 이승기는 이후 [[더킹 투하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다. 영화계를 떠나서 드라마만 봐도 이정도면 흥행 블랙홀이다.
         연기를 잘 한다고는 할 수 없는 편이기에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에 맞춰 캐릭터를 선별하는 방향으로 작품들을 선택해서 나아갔어야 했는데 경력 초에는 오히려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로 하는 이죽사나 마왕을 했고 이후 나름 자신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작품들을 선택했으나 이미 이런 작품들의 시대는 지나간 지가 오래였다. 연기력을 키워 자신의 연기의 폭을 넓혀 다양한 작품을 고르고 골라 선별해야하는데 이제 그걸 받쳐줄 연기력 없이 작품만 꾸준히 찍으니 이러한 참사가 계속 복되고 있다. 연기력을 기르든지 아니면 최근의 [[전지현]]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줄 만한 작품들을 잡아가든지 둘 중의 하나의 방향으로 선택해야 좋은 결말에 이를 듯 싶다.[* 사실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연기 스펙트럼이 좁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스러운 연기, 멜로 연기는 상당한 연기 수준을 가지고 있으나 확실히 다른 작품에서는 부족함을 보여준다.]
  • 영천시 . . . . 12회 일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분지에 위치하여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심한편이며, 연평균 기온은 12.5℃, 최저기온은 영하 18℃이다. 연중 강수량 평균은 1,052.7㎜로 다른 지역보다 적게 내리는 편이며, 6,7,8월에 1년 강수량의 이상 내린다. 최고기온은 2004년 37.2℃, 2005년 37℃, 2006년 37.2℃ 2007년 36.5℃이며 최저기온은 2004년 -13.6℃ 2005년 -14.5℃ 2006년 -13.3℃ 2007년 -10.8℃ 이다. 평균 해면기압 1,016.7hPa, 이슬점 온도 6.7℃ 일조 시간 2,168.4h, 평균 풍속 1.6m/s 최대풍속 10.6m/s, 최대순간풍속 20.7m/s 상대습도는 평균 69.1, 최소 10.0이다.
         지역특성으로 [[경상북도]] 동남부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경부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철도]]([[대구선]], [[중앙선]]), [[국도]]([[4번 국도]], [[28번 국도]], [[35번 국도]])가 통과하여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다. 그러나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실제 차량과 철도는 그냥 지나쳐 가기만 할 뿐이라 정작 도시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나마 과거에는 구미 - 대구 - 포항 으로 이어지던 국도를 이용할 때 드시 영천을 통과해야 했지만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위로는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 아래로는 [[경부고속도로]]라는 완벽한 육지의 섬으로 탈바꿈...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나서 국도 주변의 기사식당과 휴게소들 태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상주영천고속도로]]도 열렸다.
         그나마 이마트[*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맞은 편에 있다.]가 있다는게 위안이다.....~~그 이마트도 잘 안간다~~[* 주로 평일이나 대구의 대형마트 휴일날을 제외하면 인근의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에 있는 야월 이마트로 많이 가는 편이다. [[신서혁신도시]] 코스트코가 2018년 3월 개점하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혁신도시 코스트코는 개장 한달 전부터 망정동의 창신아파트근처에서 회원가입까지 받았다.]]
         ||<|2> [[정동윤(정치인)|정동윤]]/재선[br][[민주정의당]] ||<|2> [[박헌기]]/초선[br][[민주자유당]] ||<|2> 박헌기/재선 [br] 신한국당 ||<|2> 박헌기/3선 [br] 한나라당 || --이덕모/초선--[* 05.2.1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 [br] --한나라당-- ||<|2> 정희수/재선 [br] 새누리당 ||<|2> 정희수/3선 [br] 새누리당 ||<|2> [[이만희(정치인)|이만희]]/초선 [br] 새누리당 ||
         시장통에 있는 말죽거리터에는 육군 공병대와 함께 [[6.25 전쟁]] 초인 1950년 7월 미 25사단 산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이곳에서는 친공포로와 공포로를 수용했었지만 전쟁 중후 친공포로와 공포로의 대립이 절정에 달하자 문제를 인식한 미군이 친공포로와 공포로를 분리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주로 공포로와 민간인 포로를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곳은 이승만 대통령이 시찰차 방문한 적이 있었고 훗날 공포로 환영식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었을 만큼 규모가 큰 수용소였는데 규모가 있는 수용소였던 만큼 탈도 많았는지 1952년 5월 29일에는 포로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었고 그 후에도 포로들의 시위가 간간히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군들이 공산당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모의했다며 경북도의원을 무단 체포, 납치하는 사건도 발생해 지역민들의 빈축을 샀었다고. 그 외에도 격전지였던 영천전투에서 발생한 인민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서 현재의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부지 근처에 임시수용소를 설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 원빈(배우) . . . . 12회 일치
         사슴같은 눈망울에 [[여성]]들의 [[마더(영화)|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가냘픈 분위기]],[* 데뷔초에는 확실히 이런 분위기였으나 후에는 남성적인 모습을 보인 작품들도 있다.]그리고 미묘하게 항적인 태도 등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스타일로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 변화에 따라 '마초' 와 '꽃미남'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레벨에 이르러서 은근히 영화마다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능력까지 발휘하고 있다.
         같은 해 [[가을동화]] 당시만 해도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똥~~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가 칭찬 놀림 으로 화제가 되었으나[* 잘생기면 사랑도 똥(...)으로 사냐며 많이 패러디되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를 거치고[* 이때만 해도 [[장동건]]에 묻어간다, 조연 배우 일부발로 나온 이야기 중 싸가지 없다더라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원빈의 성격은 나름대로 겸손한 편이라고 알려져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영화)|마더]](2009년)에서 연기력 논란을 확실히 떨쳐버렸으며 [[아저씨(영화)|아저씨]]에서는 영화 한 편을 혼자서 끌고 나갈 수 있는 원톱 흥행 배우로서 자리매김했다.
         결국 광고는 계속 찍고 연기는 안 하냐는 식의 기사도 나왔다. 사실 [[2018년]] 현재 기준으로 [[아저씨(영화)|아저씨]]가 개봉한지 거의 8년이 다 되어가는데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 아저씨의 상대역이었던 [[김새론]]이 아역배우인 것을 감안해도 차기 영화 7편, 드라마 11편으로 현저히 비교된다. 김새론 기사가 올라오면 '''얘가 이렇게 클 동안 원빈은 작품을 하나도 안했다니...'''같은 네티즌들의 응이 줄을 잇는다. 심지어 황정민은 원빈이 아저씨 한 편 찍는 동안 영화 15편 드라마 한 편에 뮤지컬까지 찍고 있다.
         2013년 7월에 나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은 [[경기도]]의 소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연쇄살인자]]와 [[연쇄살인자]]를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창녀|몸을 파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 형식의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하며 [[연쇄살인자]] 역할에 원빈을, [[형사]] 역할에 [[설경구]]를, [[창녀]] 역할에는 [[장쯔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내용은 전적으로 [[구원]]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 본인이 이 프로젝트를 엎었다고 한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43337|이창동이 배우들에게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인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31022092808979|파인하우스 필름의 관계자가 뉴스엔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 '제작 무산이라고 볼 수 없으며 제작이 열려 있는 작품' 이라고 해명]]했다고 하니까 좀 기다려봐야 할 듯. 2014년 1월 말부터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탈고된다는 루머가 여러 웹사이트에 떠돌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없다. 2014년 5월에 원빈 본인은 한 인터뷰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12249|당장은 아니지만 차기작은 분명히 있다]]라고 밝혔다. 그 차기작이라는 것이 이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하는 영화인지는 불확실.
         2015년 10월 [[신과함께(영화)|신과함께]]를 고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공백기가 길어지자 팬들 뿐만 아니라 여론들도 점점 회의적인 의견이 많아지는 중. 댓글에서도 보이지만 원빈이 고사한 신과 함께 출연을 확정지은 [[하정우]]와 친한 사이인 [[강동원(배우)|강동원]]이 꾸준히 작품을 촬영하며 필모그래피를 쌓는 것과 비교되고 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785953|#]] (..하지만 후자의 배우는 수많은 졸작 때문에 원빈과 대의 이유로 비판받는다. )
         물론 비판 자체가 거세지는 않고, 안 좋게 보는 이가 존재는 하기에 복귀작을 이창동의 영화로 선택해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과시한다거나, 혹은 본인 스스로 쿨하게 왜 그동안 영화를 안 찍었는지를 말해줄 필요정도는 있지 않나 싶다는 의견이 많다. 하다못해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절 가수 분야의 신비주의의 끝판왕으로 평가받았던 [[서태지]]도 이은성과 재혼 이후 현재는 신비주의를 많이 줄인 상태이고 몇 년마다 음은 내고 방송에는 나오고 있다.
         그러나 원빈이 근무한 지역은 '''[[http://cfile236.uf.daum.net/image/17748E384D86B9ED29A392|이따위로 생겨먹은 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http://cfile222.uf.daum.net/image/1879FA384D86B9EC1A407C|오르고 내리기를 몇 달 동안 매일 복해야 되는 곳이다]]'''.[* 저긴 한두 번만 왔다갔다 해도 사고가 나기 쉬운데 그 이유는 겨울철에 빙판길이나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고 좁은 지역에 총은 긴데 기둥들이 많아서 기동이 힘들다. 특히 겨울철 밤에 몸이 얼어있는 경우에 시야가 차단되어 갑자기 움직일 때 조그만한 사고라도 큰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원빈이 근무하던 곳은 속칭 '네발 계단', 처음엔 두 발로 걷다가 나중엔 네 발로 걷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무시무시한 곳이었으며 현재는 그 험준함 때문에 해당 구역이 폐쇄되고 길을 새로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그나마 나은 길로 변경되었음에도 무릎 혹은 허리에 이상이 생겨 후송되거나 진료를 받은 사람이 많다. 게다가 무릎 십자인대는 파열시 완치가 되지 않는 부위로 '''평생 통증과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된다.'''. 쉽게 설명하면 대한민국 가장 험준한 지역중 하나인 7사단 GOP에서 가장 힘든 8연대구역으로 발령받고 거기서도 워스트로 드는 최악의 곳에 발령 받은셈이다. 일인도 장기간 복무하면 쉽게 다치는 곳에 환자가 직접 찾아갔으니...
         하지만 원빈이 다친 후에 육군에선 가능한 한 배려해줬다. 민간병원에서 수술 이후 [* 군 복무중 중대한 부상이나 수술을 해야 될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부상당한 군장병은 사비로 민간병원에 치료할 것인지, 국비지원으로 국군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통상 국비지원 민간병원 위탁치료는 지방소재 국군병원 군의관의 진단에 의해 결정된다. 원빈은 국군수도병원 후송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비로 민간병원에서 수술받은 것으로 보이나, 실제 민간병원 수술이 이례적으로 국비지원 하에 이루어졌는지, 사비 부담인지는 당시 기사에서 정확히 다룬 것이 없어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요양은 군병원이 아니라 병가를 얻어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다만 재활치료는 춘천병원에서 받았다. 의병제대 판정도 여기서 받았고.] 군복무 중 중대한 부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일적으로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하였더라도 요양이 필요한 군장병은 수술이 끝나고 나면 군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일적이며, 자택에서 장기간 요양하거나 장기 병가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례적이다.--쉽게 말해 수술을 위해 병가 10일 정도 혹은 가지고 있는 휴가를 합쳐도 20일을 넘기기 힘들고 그 안에 수술을 마치고 복귀해야 한다.-- 게다가 걸을 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 단순히 다리를 절고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의 후유증이면 의병제대를 받지 못하고, 요양은 커녕 자대에서 군복무기간을 마저 채우고 만기전역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2010년 이후나 되어서야 후자(걸을 수 있으나 후유증과 통증)와 같은 유형을 [[복무 부적격자]]로 판명하여, 아예 군병원에서 환자에게 한 달짜리 휴가증을 줘서 집에 보내고 전역일까지 계속해서 휴가증을 연장 발급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제대시키는 편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공식적인 의병제대와의 차이점은 전역일까지는 군인 신분이라 만약 휴가 기간에 사고를 치면 헌병대에 끌려간다는 것과, 전역 전에는 여권 발급이 제한된다는 점, 그리고 '''예비군이 면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원빈의 경우는 그러한 경우에 비해서는 이례적으로 혜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 소문에 따르면 집안에 모든 종류의 콘솔 및 매니저에게 부탁해 매년 업그레이드하는 현존 최고사양의 PC 가 구비되어 있고 각종 촬영시엔 인근 PC방에 들리거나 게이밍 노트북을 사용하는 게 일상이며 방에 게임 디스크가 빽빽히 들어찬 모습이 행여나 TV에 노출될까봐 누나가 걱정할 정도라는 이야기가 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나가서 조기축구를 하거나 간혹 연예인 친구들을 초청해 작은 위닝 대회를 여는 정도가 그의 취미 생활이라고. 거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스캔들이 생기지 않는 비결이라고 한다.[* 밖에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일인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들조차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방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에 집중하기 쉬운 것으로 보인다.] 단 2012년 11월에 개최된 팬사인회에서 한 팬이 '아직도 게임하세요?' 라고 묻자 '요새 게임 안해요' 라고 말한 일화가 있긴 하나 이미지 관리에 불과할수도 있다.
  • 원피스/873화 . . . . 12회 일치
          * 상황을 맞춰본 간부들은 역자들의 음모를 거의 다 밝혀내지만 어째서 성이 붕괴했는지, 옥갑의 진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 [[샬롯 카타쿠리]]는 [[몽키 D. 루피]]가 장차 빅맘 [[샬롯 링링]]에 위협이 될지 모른다 보고 드시 자기 손으로 목을 따겠다 다짐한다.
          * 나미는 [[샬롯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빼앗겼으나, 사실 그건 미리 찢어둔 쪽. 나머지 쪽은 잘 가지고 있어서 다시 킹 바움을 지배해 탈것으로 쓴다.
          [[샬롯 몬도르]]에게 사실을 전해들은 [[타마고 남작]]이 분통을 터뜨린다. 그는 벳지의 실력만 보고 좋게 평가하고 있었으나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샬롯가의 장녀 [[샬롯 콩포트]]도 얼굴을 보였다. 그녀는 결국 어떻게 말을 맞춰봐도 성을 붕괴시킨 폭발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잘 생각해 보면 역자들 짓은 아니다. 자기들도 성내에 있었는데 그런 짓을 했다간 동자살 밖에 안 된다. [[샬롯 오븐]]은 그렇게 판단한다. 여전히 옥갑의 진실에 대해서는 오리무중.
          * [[샬롯 카타쿠리]]에게 탈출자들, 밀집모자 일당과 파이어탱크 해적단을 추적 중이라는 정보가 도착했다. 그밖에도 별동대가 편성되거 제르마 왕국 측으로 향했다. 카타쿠리는 곧바로 [[샬롯 브륄레]]를 데리고 직접 루피를 뒤쫓기로 한다. 브륄레는 그동안 철저하게 이용 당한 동으로 밀집모자 일당이라고 하면 이를 가는 판국이다.
          결과적으론 절의 성공, 혹은 절의 실패. 생각지도 못한 제약이 걸렸다. 하지만 페로스페로가 다른 걸 시도할 시간도 없이, 빅맘은 제우스를 타고 루피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뜩이는 권총. [[상디]]를 쏘려던 그 총이다. 항상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푸딩만 알았던 시민들은 이렇게 돌변한 모습에 당황하지만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연연할 수가 없었다. 푸딩의 "작전"은 계속된다. 그녀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예견이나 한 것처럼 마지막 난관도 타파한다. 재료 문제. "환상의 식재"라면 예비분이 있다. 그것도 푸딩이 거주하는 카카오섬 "쇼콜라 타운"에. 그녀는 페로스페로에게 빅맘이 루피 일행을 처치한다면 이후엔 쇼콜라 타운으로 오게 유도해달라 부탁한다. 방금까지 죽는 줄만 알았던 페로스페로가 색하며 "고맙다"고 말한다.
          나미는 일행을 루피가 상디를 기다렸던 그 벌판으로 인도했다. 거길 가로질러 유혹의 숲을 돌파하는게 최단 경로. 루피는 그 숲에 또 들어가도 될지 걱정한다. 그런데 전방을 보니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에 탈것으로 애용했던 킹 바움이었다. 그런데 "레이디 트리"라는 여자 나무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의 간호를 받으며 상처를 치료하던 차였다. 루피와 나미는 킹 바움을 금방 알아봤다. 물론 킹 바움도 그들 얼굴을 알아봤지만, 한 쪽이 일방적으로 가워하는 관계였다.
          잠시 뒤, 킹 바움은 또다시 나미에게 지배 당하는 신세가 됐다. 일행을 태우고 그대로 유혹의 숲으로 직진. 그 바람에 레이디 트리와는 눈물을 삼키며 헤어졌다. [[샬롯 로라]]가 준 비브르 카드를 뺏긴 줄만 알았는데, 나미는 그걸 으로 쪼개서 하나는 잘 보관하고 있었다. 유혹의 숲의 주인인 킹 바움만 데리고 있으면 그 숲도 무사통과, 나미의 절약정신이 빛을 봤다.
  • 이순재(1935년 10월) . . . . 12회 일치
         ||<#878787> '''{{{#EEE156 신체}}}''' ||<(> 165cm[* 작지 않냐 싶은데 저 당시 한국남자의 평균키는 160대 중후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68kg, A형 ||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전국 노래자랑]]의 [[송해]](1927년 생)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연예인'''이자[*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유일하게 형님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원로 배우.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했으며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상도(드라마)|상도]], [[야인시대]], [[거침없이 하이킥]], [[이산(드라마)|이산]],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했다. 빈틈없는 자기관리와 신념, 그리고 대체로 선역을 맡아서 이미지가 좋다. 연극부 출신이면서, 집음 장비가 나빴던 옛날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고령인데도 발성과 발음이 아직까지도 뛰어나다. 복합모음인 ㅙ와 단모음인 ㅚ 발음을 구분할 만큼.[* 보통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시켜봐도 10에 9는 제대로 발음 못한다. 아나운서들을 제외한 일인들은 ㅙ, ㅚ 는 커녕 장모음 단모음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에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업(애니메이션)|업(Up)]]'''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칼 프레드릭슨)'''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적인 [[비성우 더빙]]' 수준이 아니라 '역대 애니메이션 [[비성우 더빙]] 사상 최고의 목소리 연기', '원작 초월' 소리를 들을 정도의 평가를 받을 만큼 절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강수진(KBS 성우)|강수진]] 성우가 맥심 인터뷰에서 '대가는 어디를 가나 통하더라'며 칭찬을 했다.[[http://news.maxmovie.com/74030|#]]] --이것이 바로 이순재의 업(業, Karma, 카르마, 운명)이니라.-- 한 평론가는 "[[초콜렛]]"이 아닌 "쪼꼬렛"이라는 할아버지 캐릭터에 맞는 발음을 구사한 것을 극찬하기도 했다.[* 사실 이순재는 옛날의 후시녹음 체제 때부터 활동해온 배우라 발음과 발성이 좋은 편이고,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었던 옛날 젊은 시절에는 성우로 일하면서 더빙을 해서 얻는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환경이 개선되면서 오래도록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그냥 이순재의 자기 관리와 연기력이 뛰어난 거다. 본인은 카메라 연기와는 방식이 달라서 쉽지 않았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comment_srl=2358142&listStyle=gallery&mid=movietalk&page=997&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764826|#인터뷰]] 적당히 유명세 마케팅으로 투입된 배우, 아이돌, 개그맨들과는 내공이 다르다. 애초에 가벼운 마인드로 연기하시는 사람이 아니다.]이순재가 맡은 배역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에드워드 애스너.]도 연극활동은 1940년대[* 대학생이던 [[1947년]]도부터 활동했다.], 영화산업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베테랑 명배우다.
         가상의 대통령 역도 몇 번 맡았는데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대물(드라마)|대물]], [[한도(드라마)|한도]] 등이 그 예. 그런데 이렇게 가상의 대통령일 때는 주로 차기 대선을 앞둔 임기 후이고, 후임 대통령이 될 등장인물에게 우호적이다. 대체역사물인 [[마이 프린세스]], [[더킹 투하츠]]에서는 국왕이 아닌 국왕의 최측근 역을 맡았다.
         최근에는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http://mnews.joins.com/article/22423348#home|일침]]을 날렸다. 한 방송에서 '미투운동을 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제자나 부하를 내 마음대로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사실화됐다"며 "관객들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꿈을 접은 후배들을 향해서는 "자기 탓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연기) 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연기 재개를 권유했다. 면 가해자들을 향해서는 "이 분야를 다 떠나야 한다. 다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다들 깊이 성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금 한 약속을 잘 지키고 '나 죽었소'하고 평생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했다.[* 그래도 본인 역시 구시대를 살아와서 나이가 있다보니 걱정되었는지 한 방송에서 하이킥에 같이 출연한 후배 배우 [[박해미]]와 같이 식사하면서 하이킥 찍을 때 자신도 그런 적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참고로 박해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인 적이 있다.) 근데 오히려 박해미는 "당시 별명이 '''야동 순재'''였음에도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정치적 성향은 전적으로 보수이다. [[2011년]] [[10월 22일]] [[KBS 1TV]]에서 진행한 [[4대강 정비 사업]] 홍보 방송 '특별생방송 4대강 새물결맞이'에 출연하여 5분 50초간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산에 나무가 무성하고 강에 물이 풍부하게 흐르면 우리 삶도 풍부해진다'라며, 4대강 사업을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새로운 행복이 만들어지게 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그는 2012년 대선에서도 박근혜를 지지했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어려운 한 해, 불운의 한 해였다. 드시 극복되리라 믿는다"는 인사말을 건넨 바도 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701042245356710]]
          * 배의 장미(1990, MBC)/김원일
          * [[동서식품]] [[맥심(커피)]] : [[1980년대]] 초.
  • 이승엽 . . . . 12회 일치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다쓰노리]]는 그를 개막전 4번 타자로 파격 기용했는데, 이에 부응해 일본 진출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면 그의 맹활약과는 대로 팀은 주전 선수들의 잇따른 부진과 부상자가 속출해 2005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이듬해 [[2007년]] 1월, 모친상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ref name="sword"/>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기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와의 첫 대구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ref name=world>{{뉴스 인용|제목=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구열|날짜=2007-10-22|확인날짜=2008-06-01}}{{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 }}</ref>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였다.
         시즌 초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11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ref>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79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ref><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0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ref> 그러나 그 해 45대구에 출장해 2할대 타율, 7할 5푼 5리의 OPS를 보였으며,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7대구 동안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이나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방출 후 [[2010년]] [[12월 2일]] 1년간 1억 5,000만엔에 옵션이 포함된 연봉을 계약했다. 이 때 투수 [[박찬호]]와 같은 팀이 됐다. 이로써 [[200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퍼시픽 리그]]로 돌아와 등번호도 3번으로 정해졌다. 그는 연봉을 대폭 낮추는 등의 백의종군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 발력이 적은 공인구로 교체해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을 받아 2할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팀의 꼴찌가 확정된 후기 들어 맹활약하며 시즌 총 15홈런을 쳐 퍼시픽 리그 홈런 순위 8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모습도 보여줬으나 타율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규정 타석 미달로 인해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그는 시즌 시작 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7년]] [[5월 21일]] [[송창식 (야구 선수)|송창식]]을 상대로 [[KBO 리그]] 첫 450호 홈런을 기록했고<ref>[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21&newsid=01666246615931216&DCD=A20102 '이승엽, 통산 450홈런'삼성, 661일만에 시리즈 스윕(종합)] - 이데일리</ref>, 2달 뒤인 [[7월 29일]]에는 [[김성민 (1994년)|김성민]]을 상대로 [[KBO 리그]] 최초로 4000루타를 달성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707291933932974&ext=na '라이언킹' 삼성 이승엽, KBO리그 최초 4000루타 돌파] - 마이데일리</ref> 시즌 후기부터 소속 팀을 제외한 9개 구단에서 그를 위해 은퇴 투어를 진행했고 그 여정이 끝난 [[10월 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대구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그 대구에서 [[한현희]]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그의 은퇴를 바라보는 이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대구 후 팀은 그에 대한 성대한 은퇴식을 열었고, 그의 등번호인 '36번'은 구단 역대 세번째로 영구 결번 처리됐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612121051081031 ‘일구대상’ 이승엽 “마지막 1년, 떠날 때 후회없도록”(일구상 시상식)]</ref> 그는 은퇴 후에는 야구 관련 직종에 종사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며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 관련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3/0200000000AKR20170113128700007.HTML?input=1195m 이승엽 "은퇴 이후 일? 야구 관련 아니면 안 한다"]</ref>
         ** [[해피투게더 (텔레비전 프로그램)|해피투게더]] - 쟁노래방 (2003년 12월, 게스트 [[윤도현]], [[장나라]]와 동출연)
  • 이준(배우) . . . . 12회 일치
         현대 무용수 출신이다. 국내 최고 예술대학인 [[영진고등학교]] 무용과 출신이다. 중3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진고등학교]] 졸업 후 [[영진고등학교]] 무용과를 입학하였으나, 이 학교는 졸업전까지는 방송 및 연예활동이 금지 되기 때문에 도중에 자퇴했다.[* 장동건이 한예종에 있던 과거에는 완전불가였으나 현재 연기과는 1학년은 여전히 불가, 2학년 교내작품은 가능(영화과 작품 출연 등) 3학년 교외활동도 가능하다. 무용·음악원은 여전히 금지. 영상·전통·미술원은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한 신경쓰지 않는다.] 워낙 들어가기 힘든 것으로 잘 알려진 한예종을 자퇴했다는 사실이 잊을만하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아예 '''한예종의 위엄'''이라는 유명한 짤방 시리즈가 존재한다. 당초엔 수석입학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일입학이었다고 정정했다. "왜 그동안 정정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가 낸 소문도 아니고, 좋은 얘긴데 굳이 제가 나서서 정정할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박할 수가 없다~~
         배우가 되기위해 오디션을 계속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 [[우린 안될꺼야 아마|난 아마 안될거야]] 상태로 제이튠에 오디션을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고 한다.[* 정식 데뷔는 2008년에 방송된 MBC시트콤 [[그 분이 오신다]]를 통해 단역으로 데뷔하였다.]2009년 [[닌자 어쌔신]]에서 비의 아역으로 출연하였고 최연소 헐리우드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극 중 대사인 "You shouldn't do that." 을 예능에서 종종 써먹기도 한다. 닌자어쌔씬을 계기로 비와 친해져 방송에서 비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알게 될 수 있어서 시청자들도 호감적인 응이었지만 방송 분량이 잘리겠다 싶을 때 비의 이야기를 절묘히 꺼낸 것 같다는 이유로 몇몇 시청자들의 비난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2010년 8월 29일 런닝맨에 첫 출연했다. 당시 경복궁에서 촬영한 방송분에서는 그냥저냥한 무난한 활약상을 보였으나, 2012년 5월 20일 박지성 특집에서는 그룹 엠블랙 멤버들과 함께 송지효를 제거하는 킬러로 파견되었다. 높은 자리에서 정탐하고 저격을 시도하는 등 그럭저럭 멋진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나, 런닝맨 멤버들이 격을 해올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방심하다가 등짝을 내주며 허무하게 탈락. 이 때 내지른 '''"오와아아아아악!"''' 이란 비명소리는 건물 옥상에서 내질렀으나 지상에서도 똑똑히 들릴 정도로 컸다(…).
         2012년 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태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상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순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태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순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상황.
         1월 12일 방송된 '''우결에서 오연서가 직접''' 이준에게 스캔들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를 하였다. 이부분에 대해 시청자들은 "어차피 연기면서 ㅉㅉ"라는 응도 있지만, 오연서의 사과를 받을 때 이준의 표정이 진짜 심각해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이준 어떡하냐 진짜 불쌍하다"라는 응. ~~그리고 이장우는 엄청 까이고 있다~~ 특히 위의 고영욱과의 일까지 겹쳐서 정말 불쌍한 이미지가 돼버렸다.
         2017년 2월 18일, [[소녀시대]] [[서현(소녀시대)|서현]]과 함께 [[아는 형님]] [[아는 형님/방영 목록/2017년 상기#s-2.7|63회]]에 출연했다.
         웃을 때 팔자주름이 생기는 것이 특징. 사막여우를 닮았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듯한 솔직한 발언과 백치미스러움, [[정신줄|정줄]] 놓고 망가지는 모습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성격은 매우 소심하다. 막내인 [[미르(엠블랙)|미르]]가 [[천둥(가수)|천둥]]과만 논다고 삐져있다던지... 방송에서는 밝고 명랑한 천연 & 백치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면면을 살펴보면 속이 깊고 생각도 많으며 얌전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녔음을 간파할 수 있다. 방송에선 [[비글]]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말이 별로 없는 스타일. 하지만 의외로 애교도 많다 ~~오십이후로는 애교부리는것이 민망해졌다고 한다~~ 쉴 때면 거의 잠만 자고 조용해서 멤버들 사이에서 별명이 식물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듯하다. ~~멤버들이 예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고영욱]]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 불거진 후, 이준이 2011년 3월에 방송된 [[강심장]]에서 고영욱에게 여자친구를 두 번 뺏겼다는 발언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2315925|해당 기사]] 방송 당시에는 선배인 고영욱에게 버릇 없이 군다며 야단을 맞는 등 굉장히 억울한 대접을 받았다.[* 그 당시 예능이라고 옹호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예의 없다며 곱지 않은 시선이 더 많았다. [[http://loganel.tistory.com/entry/%EA%B0%95%EC%8B%AC%EC%9E%A5-%EC%9D%B4%EC%A4%80-%EB%8C%80%EC%84%A0%EB%B0%B0-%EA%B3%A0%EC%98%81%EC%9A%B1-%EB%82%A8%EB%B4%89%EA%BE%BC-%EB%A7%8C%EB%93%A0-%EC%B5%9C%EC%95%85%EC%9D%98-%EB%94%94%EC%8A%A4|그 당시 올라온 글 참고.]] ~~글쓴이 이불킥 각~~ 유투브에서도 리플을 보면 과거와 현재의 응 차이를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AjN0XJdESlg#!|유투브]]]
         엠블랙 탈퇴하자마자 일인 동창과 연애설이 났으나, 사진한장없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제레기짓이 아닌가 싶다.~~
  • 조응천 . . . . 12회 일치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며 전직 자영업자. 그리고 '''[[문재인]]의 남자 2호'''[* 남자 1호는 [[김병기(정치인)|김병기]] 의원이라고 한다. 김병기 의원의 경우 자신이 친문 인사임을 스스럼 없이 인정하고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해 ~~물론 말로만~~ "나는 친문 인사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문재인]] 대통령은 당대표 사퇴 후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병기와 조응천 두 사람을 본인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으며, [[박근혜정부]]에서 핍박 받은 두 후보를 드시 당선시켜 달라고 직접 트위터에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 다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며, 훗날 요긴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김병기(정치인)|우병기]] [[조응천|좌응천]]~~ ~~최초의 셔터맨 출신 국회의원~~
         그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면서 기소되었는데 그때 유출된 그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으로 오랫동안 보좌해왔던 [[정윤회]]가, 야인이 된 지금도 박 대통령에게서 특별히 더 신뢰받는 비서관들에게 여전히 지시를 내리며, 국정 전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자리에 함께 있던 부인은, 조응천 의원이 자주 입고 다니는, 땡처리로 구입한 ~~[[김영란법]]에 안 걸리는~~ 몇 천 원짜리 회색 후리스 스웨터를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뜻의 징표'라며 [[문재인]] 대표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는 그 후리스를 자주 입고 다니며 커플룩을 인증하기도.[* 해당 후리스는 [[문재인]], 조응천 지지자들에게 있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심지어 같은 후리스를 사서 단체로 입고 별주부짱을 방문하여 인증샷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 참고로 부인은 남편이 정계 입문한다고 하자 "미친놈", "이혼하자" 등 격한 언사를 퍼부으며 강력하게 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당시 대표의 눈빛에 감전되더니, "쓸 만한 놈이니 잘 써달라"고 하면서 정계입문을 허락했다고(...)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지를 받아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상대 후보인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는 [[남양주시]]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던 지역 토박이였던 데다가 지역구 관리를 상당히 갈고닦았던 면, 조응천 후보는 [[남양주시]]와는 어떠한 연고도 없는 정치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최종 개표 결과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를 249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꺾고 신승했다.[* 조응천이 [[수동면]]과 [[화도읍]]에서 심장수에 밀렸지만 젊은 층 인구가 많이사는 [[호평동]]과 [[평내동]]에서 심장수를 앞섰다.] 이는 경기도 내에서는 최소표차로 당선된 것이다. 또한 정권 심판론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베]] 용어를 잘 알고 있으며[* 특히 '레이디 [[가카]]'(= [[박근혜]])라고 쓰는 일은 많지만 '레카'로 줄여 쓰는 경우는 일베 외에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용어이다.][* '내일 오전 레카가~걱정하면 좋지 '''않겠노''' '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않겠'''노'''를 쓰고 있으며 일베식 표현에 맞춰서 일부러 잘못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다.] [[정게할배]]들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318716667084&id=100008669135751|페북으로]]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439779988311&id=100008669135751|일베 드립]]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정도다. 이후 일인에겐 생경한 일베드립을 친 것에 대해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488903316732&id=100008669135751|양해를 구하였다]]
         [[일베]]에선 고소각을 재느라 평소대로 막말을 내뱉지 못하는 [[정게할배]]들이 약이 올라 부들부들대고 있으며, [[친이]] 틀딱 성향의 일베 이용자들은 "응천게이 일베충이었노!", "틀딱들 부들부들", "[[박근혜]] 비서관 시절에 분명 2자릿수 고레벨 활동 이용자가 틀림없다"는 응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전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정부 성향이 강해진 인터넷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이러한 조응천의 드립은 다시금 주목받았고, [[주갤]]에서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1&no=4508912|통쾌하고 호감간다는 말들이 나왔다.]] 애초에 더민주에서 이 사람을 영입한 가장 큰 이유가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다는 이유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을 수년 전부터 접했던 사람이라는 이유인데, 공직상 기밀 누설 혐의로 형사소추 당하지 않는 선에서 청와대, 검찰의 대응 플랜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분석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어서[* 특히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에 대한 감이 글에서 드러난다. 아무래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사건 때문이다.]]] 현재 정국에서 관심도가 매우 높은 의원 중 하나.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운 와중에, 10월 26일 "조응천 의원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던 시절 [[최순실]]이 주[[이탈리아]] [[대사]]에 [[통일교]] [[유럽]] 총책이자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S씨를 밀었지만, 조응천 당시 비서관이 강력하게 대해서 대사 취임을 무산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 비서관 시절의 경험에 대해서 발설하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저촉될 수 있다"며 사실여부에 대해 함구하는 중이다. ~~사실 논란거리는 아니긴 한데~~
          * [[TV조선]]의 [[강적들]]이란 프로그램에 나와서 밝힌 바에 의하면 조응천은 본래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차관급 공직 아무 곳에나 임명되어 기사가 모는 관용차를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어찌됐건 꿈은 이루었다고 인정하였다.[* 국회의원의 지위는 일적으로 장관보다는 낮지만 차관보다는 높다.]
          * 사복 센스가 의외로 뛰어나다(!) [[박근혜 퇴진 운동]] 촛불 집회에 참석했을 때 목도리와 신발의 오묘한 깔맞춤이 한 네티즌의 인증샷으로 공개되었는데, 응이 폭발적이었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12회 일치
         2011년 카다피에 대하는 란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리비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로 귀환하여, 동부 벵가지 지역에서 란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2012년 7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61.58%, 1,764,840명 투표)를 통하여 주로 [[터키]]와 [[카타르]]의 후원을 받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일 국민회의(the General National Congress)가 성립하여 리비아를 통치하게 되었다.
         2014년 2월, 하프타르는 TV를 통하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 국민회의에 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라고 선언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로 공격하여 의회 권한 정지를 선언했으며, 국민군은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 샤리아' 등 이슬람계 세력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사실상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리비아 국민군에는 세속주의 군 세력이 모두 결집하게 된다. 2014년 6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를 거쳐 동부지역에서는 대표자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가 2014년 8월 4일 창립되어 일 국민회의를 대체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국민군(the Libyan National Army)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015년 12월에, UN의 증재로 동부와 서부의 일부 세력이 합의하여 국민합의 정부가 창설되었다. 하지만 동부지역은 대파가 많이 합의가 승인되지 못하고 있다. 하프타르의 지지자들은 국민합의 정부에 대하여 하프타르의 지위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리비아 국군의 지휘권을 넘기지 않고 있다. 국민합의 정부는 동부지역 군 사령관 가운데 한 명인 마흐디 이브라힘 알 바르가티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고 하프타르를 소외시키는 중.
         2016년 3월 30일, 임명된지 무려 3개월이나 지나서 국민합의 정부의 총리 세라즈가 튀니지에서 해로로 트리폴리에 들어왔으며 해군기지에 머물고 있다. 세라즈는 리비아 내에서 정치, 군사 지지 기이 거의 없어, 트리폴리 정부 역시 세라즈의 입성을 대하면서 공항을 폐쇄할 정도였기 때문.
         2016년 5월에 세라즈는 미스라탄 부대를 중심으로 -IS 센터를 트리폴리에 창설하였으며, 5월 중순에 미스라탄 부대는 하프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국군과 시르테 남부 질라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 킹덤/525화 . . . . 12회 일치
          후위에 있는 병사들은 마남자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왕분이 펼치는 창술 앞에 부질없이 목숨을 잃었다. 옥봉대의 공격이 쐐기처럼 박히고 상황이 난전으로 전환됐다. 왕분은 현장을 [[관상]]에게 맡겼다. 이대로 적의 후위가 올라오는걸 막고 적장의 고립 상태를 유지한다. 그동안 자신은 직접 적장의 목을 취할 것이다. 관상은 이 같은 지시에 별 대 없이 무운을 빌었다. 그리고 [[영강]]에게 부탁에 왕분의 호위를 맡겼다. 늘 한 마디씩 토를 달던 관상이었다. 아무 대도 없어 미심쩍기도 했으나 왕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 [[양]]과 함께 출발했다.
          * 그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이상한건 [[흑금]]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던 그가 다가와 "별 일이다"고 말을 걸었다. 관상은 자기가 사사건건 대만 하는건 아니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아광이 내린 대기명령을 대놓고 위하지 않았나? 깐깐한 관상이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흑금이 그렇게 말하자 관상이 "고립유군으로서 틀린건 아니다"고 대답했다. 마남자의 돌격은 아광군의 큰 위기였는데, 옥봉대가 끼어들면서 그 고비를 넘겼고 오히려 적장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대로 적장을 쓰러뜨린다면 진군 우익의 싸움은 초부터 크게 우세해지는 격. 지시야 어떻든 전술적으로 틀린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흑금은 새삼 왕분의 전술안이 보다 날카로워진다 감탄했다. 관상도 그게 틀림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흑금이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말에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떨떠름하게 "맞아"라고 대답하는데.
          * 조군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던 영강은 불길한 느낌에 왕분 주위의 호위를 두텁게 했다. 양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영강은 그저 "아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대답했다.
          * 마남자가 휘두르는 한 칼이 전방의 병사들을 으로 갈랐다. 영강은 철구를 들어 재빠르게 막았지만 힘에서 밀려났다. 영강은 무기가 부러졌지만 낙마했을 뿐 경상에 그쳤다. 옥봉대 병사들의 떨어져 나간 몸뚱이가 흩날렸고 돌격은 저지됐다. 병사들이 왕분을 지키려고 모여드는 동안 왕분은 죽은 부하들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마침내 왕분과 마주한 조군 우익 삼장 중 하나 마남자. 열세에 처한 장수라고 볼 수 없는 기백이 흘러넘쳤다. 마치 이쪽을 몰아붙이고 있었던 양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마남자. 여전히 적진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진군 병사들은 [[몽무]] 장군에 비견되는 체구에 압도되고 있었다. 양은 그가 삼장 중 하나면서도 직접 왕분을 치러 왔다는 점에 놀라고 있었다.
          * 새파란 젊은이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마남자의 낯빛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진짜 아수라장 속에선 번드르한 말따윈 의미가 없는 법. 그는 곧 "진짜 아수라장"을 소개한다. 그것은 조나라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이야기. 대 흉노족 최전선인 "안문"의 이야기다. 나라 안팎으로 명성을 떨치던 장수들이 차례로 파견되었다가, 한 달도 채우지 못해 시체가 되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양도 접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기마민족 흉노와 전쟁으로 대륙 중앙의 난전은 비할 것도 없는 "사지"였다. 양은 마남자가 그 안문에서 온 장수라고 짐작했다.
          주나라의 천하가 펼쳐진지 500여 년. 한때 백에 이르렀던 나라들이 도태와 규합을 거듭해 지금은 고작 일곱이 남았다. "일대국". 분명 대륙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진왕이 품은 꿈은 곧 역사가 바라는 "해답"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조군이 발했다. 왕분도 그들의 입장은 이해했다. 그러나 이곳은 전장. 그런 말뿐인 대립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킹덤/531화 . . . . 12회 일치
          * 그러나 정해진 승부는 뒤바뀌지 않았다. 마광의 혼신의 칼날보다도 빠르게, 이목이 내리친 칼이 마광의 목과 팔을 단칼에 잘랐다. 기수군을 몰아가는데 골몰하던 진군은 저희 대장의 목이 굴러디는 걸 보지 못했다. 면 언덕에 있던 기수와 그 부관들, 조군 병사들은 똑똑히 보았다.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 믿기지 않기로는 목이 떨어진 당사자 못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부관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기수를 돌아보았다. 그도 눈 앞의 광경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리라 알고 있었는데도.
          * 기수는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작전을 통보받았다. 조군 총대장이 별동대를 직전 운용하겠다고 했을 땐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그 자리에 있던 기수나 [[마정]]은 물론 이목의 측근 [[금모]]까지. 카이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직한 마정도 "총대장이 갑자기 본진에서 없어지는건 좀 그렇다"며 난색을 표했다. 금모가 맞장구치며 개전 첫날엔 이목이 드시 본진을 지켜야하고, 하물며 그 왕전이 상대인 이상 더욱 그렇다 강변했다. 그러면서 굳이 별동대를 쓴다면 자신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누가봐도 이치에 맞는 론이었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이었다.
          마남자는 그것을 "필살"이라 표현했다. 어느 시점부터 흉노는 이목이란 이름을 듣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더라고, 그렇게 증언했다. 이렇듯 마남자는 절대적인 자신을 보였지만 카이네는 여전히 대였다. 몇 번을 해봤든 큰 위험을 떠안는 것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남자의 말이 맞았다. 이목은 안심하지 못하는 카이네의 의중을 정확히 읽었다. 그녀에게 상대가 "그런 수"를 쓴다는걸 모르는 이상 드시 성공할 거라 장담했다.
          >이 첫날에 드시
          * 진군에 마침내 마광이 죽었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조군은 현실을 인정하는 환호성이 퍼져나갔다. 기수는 이쪽을 향해 포권을 하고 말을 돌리는 이목을, 조나라의 삼대천을 보며 그 역량에 감탄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을 할 차례다. 기수가 기름처럼 끓기 시작한 병력에 불을 질렀다. 전부대, 전병력을 향해 조군 총대장 삼대천 이목이 직접 적장의 목을 쳤음을 선언했다. 그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전령을 통해 모든 하급부대에 급파했다. 마광의 목이 떨어졌다. 그 이상의 지시는 필요가 없었다. 위축을 거듭하던 군대가 단숨에 살아났다. 면 진군은 대혼란. 마광이 죽었다는 말과 거짓선동이란 말이 뒤섞였다. 최전방은 마광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백 배 기세로 돌격하는 조군을 상대하면서 후방의 진위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럴 수록 조군이 외치는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는 구호는 섬뜩했다.
          * 마정은 이 기회를 몰아서 대대적인 격을 개시했다. 그도 이목이 마광을 쳤다는 소식에 의할 뿐이었다. 그러나 진군이 동요하고 기수가 공식적으로 선언을 하고 나자 믿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목이 왕전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이 뭐였나 싶었다.
          >우리 대장이 제일 대단한 양이잖아?
          * 전황의 변화는 역류라고 할만 했고 조수가 바뀌는 것처럼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신과 비신대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 언덕으로 몸을 빼냈다. 그 위치에서 보이는 전장은 뛰어들기 직전과는 정대의 양상. 조군의 압도적인 파도가 진군을 들이치고 있었다. 이신은 그 장면을 노려보며 이목의 이름을 곱씹었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12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시코쿠]] 남쪽에 있는 토사를 본거지로 한 가문. 난이도 쉬움. 튜토리얼은 초소카베 가문으로 진행된다. 토사의 원래 주인이던 이치조 가문을 쯤 쫓아낸 상태이기에 이치조 가문의 란군이 존재한 상태로 시작된다. 동쪽에 있는 미요시 가문과 무역 중이며 북쪽에 있는 코노 가문과 전쟁 중.
         실제 역사에서는 [[큐슈]]까지 뻗어나갔으나 오다 가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오다 가문의 다이묘이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통수맞고 죽어버리는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으로 활동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간의 분쟁에서는 도요토미 가문 지지 세력인 서군을 이끌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 상대로 빠르게 딜을 하고 빠져나갔다. 그 결과 모리 가문은 초소카베 가문처럼 망하지 않고 영지 대다수를 몰수당하는 선에서 끝나게 된다. 모리 가문은 자신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도왔음에도 영지를 몰수당했다는 것에 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 원한은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200여년 뒤에 폭발하게 된다.]]
         현대의 나고야 근처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 오와리. 동남쪽에 있는 도쿠가와 가문, 그 동쪽에 있는 이마가와 가문, 오다 가문의 북쪽에 있는 사이토 가문과 죄다 전쟁중이다. 오다 모리타카의 란군도 있다. 서쪽에 있는 기타바타케 가문과는 무역 관계. 주변 가문에게 존경받지 못해 외교에 패널티가 있다.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보통. 본거지는 겁나 넓은 이와테. 서쪽에 있는 모가미 가문과 전쟁 중이며 남쪽에 있는 하타케야마 가문과 무역 관계. 다테 타네무네가 이끄는 란군이 있다.
         현대의 니가타 현 부근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는 에치고. 봉신인 야마노우치 가문과 무역 관계이며 진보 가문과 전쟁 중. 자신이 다이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한 것에 발한 나가오 하루카게의 란군이 있다.
         불교의 한 분파인 일향종을 기으로 한 농민 란 세력. 에치젠을 본거지를 두며 카가도 다스리고 있다. 난이도 보통. 잇코라는 별개의 불교를 믿기 때문에 종교 차이로 인한 외교 패널티를 기본적으로 퍼먹는다. 그럼에도 아네가코지와 무역 중.
         제대로 된 다이묘가 아니라 농민 란 무리이기 때문에 메츠케를 고용할 수 없으며, 사무라이 대신 낭인을 사용한다.
          [[교토]]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아시카가 막부를 꺾고 새로운 막부를 세우는게 게임의 승리 조건인지라 드시 멸망시켜야 한다.
  • 트로피코 4 . . . . 12회 일치
         >변혁하는 세계 속에 Tropico도 함께 움직입니다. 각국의 세력이 등락하고, 세계 시장은 새로운 수요와 공급을 원하는 새로운 세력에 의해 지배됩니다. 이제 바로 당신이 위대한 지도자 각하의 역할을 맡아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수많은 대론자들을 넘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만 할 것입니다. 당신의 선택이 국가의 미래를 형성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해외 비밀 계좌도 잔뜩 불릴 수 있고 말이죠!
         == 란군 ==
         무력으로 대통령 각하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시민들. 각하를 지지하지 않는 시민 중 일부가 란군이 된다.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일정 주기마다 튀어나와 건물을 공격한다. 보통은 목장, 광산, 공장 같은 산업 건물을 노리지만 대통령 영묘 같은 체제 선전 건물도 노린다.
         이들의 습격이 시작되면 병사, 장군, 대통령 각하가 란군에 맞서 싸운다. 전투는 어느 한쪽 모두가 죽거나 도망칠 때 까지 지속된다. 정부군이 승리하면 별 탈 없이 끝나지만, 란군이 승리할 경우 습격당한 건물이 폭파된다. 대부분의 경우 다시 지으면 되지만 대통령 관저가 폭파되면 게임오버.
         란군을 상대하는데 도움이 되는 칙령이 일부 있다. 섬이 발전했을 경우에는 "사면" 칙령을 내려 란군의 수를 줄일 수 있고, 란군의 수가 불어나기 전에 밟아놓고 싶다면 "란군 낚기"로 지금 당장 공격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통신 차단"으로 란군의 행동을 봉쇄할 수도 있다.
          * 1951-1953: 한국전쟁 - 모든 군사 건물의 가격이 절으로 줄게됨
          * 외국의 대규모 역자 침공을 막아내는 "평화, 사랑, 그리고 이해" 미션 추가
  • 홍인한 . . . . 12회 일치
         노론 내 벽파의 주도로 사도세자 및 세손 제거론이 나올때 동조하였으며, 세손 제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1775년]] 이후 세손의 대리청정을 극력 대하였으며 [[1776년]] [[조선 정조]] 즉위 후 [[정후겸]] 등과 함께 유배, [[전라도]] [[완도군]] [[고금도]]로 유배되었다가 위리안치된 후 [[처형]]되었다. 1855년(철종 6) [[조선 철종|철종]]이 그를 복권하였으나 여러 차례 대로 취소되었다가 다시 1858년(철종 9) 복권되었다.
         === 생애 초 ===
         {{인용문2|홍인한이 감사(監司)로 있을 때 언제나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끝날 즈음이 되면 기생의 잘못을 트집 잡아 곤장을 쳐서 피를 본 뒤에야 통쾌해하였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할 때면 뜰 한쪽에 드시 형구를 마련해 놓고 기다렸으니, 이는 석수(石邃)가 미녀들을 치장하여 잔치를 즐기고는 결국 삶아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체로 여자에게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남자에게 재주가 있는 것과 같으니, 하늘이 쓸데없이 그들을 낸 것이 아닌데 포악하게 대한다면 어찌 천도를 어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을 무시하면서 잘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유독 기생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더구나 일부러 곤장을 쳐서 통쾌해하는 것은 시랑보다 더 포악한짓이니, 그가 역적으로 몰려서 패망한 것은 당연하다.}}
         [[1774년]] [[우의정]]에, [[1775년]]에 [[좌의정]]에 각각 임명되었으며, 1775년 세손(훗날의 정조)이 대리청정을 맡게 되자 이를 대해 [[영조]]가 세손의 대리청정을 명할 때 세손은 세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 강변하며, 승지와 사관의 대필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대리청정 뜻이 확고해지자 [[혜경궁 홍씨]]는 사전에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한중록]]에 의하면 대조의 뜻이 그러함을 편지로 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인한은 벽파의 당론에 따라 벽파, 외척당, [[정후겸]] 등과 함께 세손을 대하였고, 홍인한은 영조의 면전에서 세손의 대리청정을 대했다. 이후 [[정후겸]], [[심상운]] 등과 함께 [[홍국영]] 등을 모해하는 상소를 올렸다. 또한 부사직 심상운을 시켜 세손의 대리청정 대 여론을 조장했지만, [[홍국영]]의 부탁을 받은 부사직 서명선이 역탄핵상소를 올려 논박했고 오히려 심상운은 유배되었다.
         아버지 [[홍봉한]]이 탄핵당할 때는 결사적으로 대하던 [[혜경궁 홍씨]]도 그의 사사에는 대하지 않았다 한다.
         후에 [[조선 철종|철종]] 때인 1855년(철종 6) 철종이 그의 혐의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그를 복직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홍문관과 양사의 대를 받았다. 결국 여러차례 대로 철종은 홍인한 복권 명령을 취소하였지만 1858년(철종 9) 10월 25일 복권되었다.
  • 김부식 . . . . 11회 일치
         [[고려 인종|인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인 [[이자겸]]은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이자겸의 전횡에 비례(非禮)를 이유로 대한 일<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고려사》 권98, 열전11, 김부식전.</ref> 이 있으나 직접적으로 대항하지는 않고 묵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자겸 집권기에 순탄하게 승진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Ⅰ)》, 집문당, 1999년.</ref> 또한 [[1126년]]과 [[1127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하여 송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박승중(朴昇中)·정극영(鄭克永)과 함께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 어사대인(御史大人)·호부상서(戶部尙書)·한림원학사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승진하였고, 수사공(守司空)을 더하였다.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이 피살됨으로써 그의 전횡은 끝났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궁궐의 소실 등을 이유로 서경파가 득세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승진하여 재추(宰樞)의 열에 오르는 등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묘청]] 등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천도운동]]은 [[1129년]](인종 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인종도 자주 행차하였다. 서경파의 [[정지상]] 등은 묘청과 [[백수한]]이 성인이니 모든 정치를 그들에게 물어서 행하자고 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다. 조정 신료 가운데 오직 평장사 김부식, 참지정사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ref>《고려사》 권127, 열전40, 묘청전.</ref> 그러나 서경의 서기(瑞氣)를 조작한 일이 탄로나고, 행차 때의 악천후 등이 잇따름에 따라 김부식 등의 대파 의견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부식 일파는 [[1134년]](인종 12년) 인종의 서경 행차를 막는 데 성공하였다.<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
         서경 천도가 불가능해지자 묘청·조광·유담 등은 [[1135년]](인종 13년) 서경에서 란을 일으켰다. 김부식은 토벌군의 원수가 되어 일단 개경에 머물고 있던 서경파 정지상, 김안(金安), 백수한을 처형하고 출전하였다. 김부식은 중군장으로서 좌군장으로 [[김부의]](金副儀)<ref>김부식의 동생</ref>, 우군장으로 이주연(李周衍)을 거느리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인들은 묘청·유담들을 죽이고 항복하였으나, 조광(趙匡)이 또 하므로 서경을 포위하고, 그 이듬해인 [[1136년]]에 잔당을 소탕하였다. 란을 진압한 김부식은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 칭호와 검교태보수태위[[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감수국사상주국 겸 태자태보(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監脩國史上柱國兼太子太保)로 임명되었다. 김부식은 이 전공을 이용하여 정적(政敵)인 [[윤언이]](尹彦頥)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송나라의 사신 노윤적(路允迪)이 왔을 때 관사(館伴使)로서 그를 맞아들였고, 같이 왔던 [[서긍]](徐兢)이 그의 《[[고려도경]]》에 김부식의 집안을 실어 송나라 황제에게 진상함으로써 김부식의 이름은 송나라에도 유명하였다.
         [[신채호]]는 그가 왕명을 받아 서경 란군 토벌을 지휘한 것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인용문|고려부터 조선까지 1천 년간 ‘[[묘청의 난]]’보다 지나친 대사건이 없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역사가들은 왕의 군사가 역자를 친 전쟁으로 알았을 뿐이었으니….(중략) 만일 이와 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이며 진취적으로 진전했을 것이다.|{{서적 인용|저자=[[신채호]]|장=조선역사상(朝鮮歷史上) 일천년래(一千年來) 제일대사건(第一大事件)|제목=《[[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연도=[[1929년]]}}}}
         면 한국 사학 1세대로 평가되는 역사학자 [[이기백]] 전 이화여대·서강대 교수는 아래와 같이 그의 저술에 대해 호평하였다.
  • 김상조 . . . . 11회 일치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최순실 국정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최순실 특검]]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조금씩 그 이름을 인식시켰다.]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아주 오랫동안 재벌개혁 시민운동을 계속한 인물로 한국 재벌과 관련해서 학문적인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고 언론 기고 또한 활발했으며 독자적인 저술은 한 권밖에[* 제목은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을 읽어보면 통계적 근거와 [[경제학]]적 통찰을 근거로 한국 경제 전에 대해 담백하게 논하는 대중 서적이다. 일적으로 한국의 진보인사라고 하면 거리를 둘 법한 주장도 많이 보인다.] 없는 듯하지만 [[알라딘]]에서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1%e8%bb%f3%c1%b6&x=0&y=0&|김상조]]를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경제, 재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저술에 저자로 참여해왔다. 공정위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이전 소장으로 적을 두고 있던 경제개혁연대에서 수많은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언론에서 흔히 이력이나 일부 발언들을 인용하여 '재벌 저격수' 등의 별명을 붙여 강경한 (反)재벌주의자 내지는 좌파(?)로 여기기도 하는데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김 교수의 학문적 베이스부터가 주류경제학이고 그가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운동을 하며 내놓은 주장이나 연구자료를 봐도 과격하거나 급진적인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도입을 주장하는 정책도 해외 [[선진국]]의 선례를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은 편.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스탠스의 경제학자인 것은 맞으나 그 바탕이 주류경제학이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 내지는 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6월 4일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전성인 교수가 언론과 야당의 의혹공세를 박하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197|김상조를 위한 변명]]이라는 지지글을 발표했다. 이후 전 교수의 주도로 선, 후배, 동료 경제학자 및 사회 각계 각층의 498명이 김상조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7664.html|#]] [[주진형]]의 말에 의하면 하루 남짓한 기간 동안 500명 가까이 함께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전 교수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물론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를 놓고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보다못해 지지 선언까지 내는 것 자체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6월 6일 기준, 7일로 예정되어 있는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진통을 겪는 중이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대, 국민의당은 의원총회 후 당론 결정 이라고..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93128&ref=A|관련기사]] 결국 [[http://www.fnnews.com/news/201706121657206165|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면서]] [[자유한국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6월 12일 결국 자유한국당의 대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었지만, 청와대에서 임명을 진행하여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이 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피링에서 길어진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며, 각종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이미 국민의 청문회를 통과했다는 발언을 하며, 공정거래의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원래부터 찬성 입장이었던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모두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7/06/20170613327266.html|차가운 응을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투쟁해나가겠다"며 맹렬하게 비난하였으며, 바른정당은 "오만한 문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 비판하였다. 국민의당은 당초 김상조 후보자의 임명 자체에는 대가 없었던 터라, "국회 청문회 보고서 통과없이 임명되는 것에는 유감스럽지만, 이는 여당의 고집과 야당의 아집이 빗어낸 것이다"며 공동책임론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여론의 응은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9334195&date=20170613&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9|대체적으로 야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3741|문 대통령의 연설 중 조는 모습]]이나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8&aid=0003847763&date=20170612&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24|원내대표 회담에 불참]]하는 등 애초에 협치를 바라지 않는 듯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애초에 협치를 바란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많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4년 동안 두 자릿수에 머물던 공정위 소송 패소율이 작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공정위가 직접 수행한 소송에서는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았고, 외부에 맡긴 소송 패소율도 전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 중 법원이 공정위가 제재한 행위를 법 위이 아니라고 판단한 패소는 작년 15건(9.2%)이었다. 패소율은 4.2%를 기록한 2013년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0039529|*]]
         다만 이 의혹제기에는 좀 문제가 있다. 기사와는 달리 실제 외국계 기업이나 금융권에서 1개월 수준의 체험형 단기 인턴 과정에서 학점은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않으며, 게다가 일적으로 같은 학교 기준에서 이과 전공 학점은 문과 전공 학점보다 크게는 +1.0~+1.5 정도를 더 높게 쳐주는 경우도 있다. 만약 하단의 경우처럼 조건 자체에 학점 몇 이상이 제시되어 있었다면 논란의 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논란이라고 할 만한 건덕지가 그리 없는 분야라는 의견 또한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11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06. '''1학년 A'''
          * 세로는 그런 상황이라면 A도 모여봐야 메리트가 없는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 따라서 A 전원 합격이 가능한 상대 인원을 미리 포획해서 확실하게 패널에 볼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
          * 게다가 A은 범위 공격이 가능한 멤버가 많으므로 모이면 유리해지는 상황이다.
          * 바쿠고는 적당히 "눈이 가늘어서 상대의 실력도 못 본다는 소리다"라고 드립을 치는데 본인이 콤플렉스인지 "내 눈은 잘 보이고 크다"고 발한다.
          * 사걸고교 학생은 "웅영고는 존경하지만 1학년 A은 그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등 뒤에서 손가락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생성한다.
          * 아이자와는 미도리야와 바쿠고를 거론하며 그 둘이 A에선 큰 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 그 둘은 의 리더도 중심인물인 것도 아닌데다 사이 조차 최악.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의 열기가 으로 전파되고 있다.
          * 아이자와는 걱정이 아니라 "기대"를 하고 있다며, 그 두 사람은 의 최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한다.
          * Ms. 죠크는 "홀딱 한 거네"라며 기분 나쁘다고 디스한다.
  • 박홍 (신부) . . . . 11회 일치
         '''박홍'''(朴弘, [[1941년]] [[2월 27일]],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며 [[천주교]] [[예수회]] 소속 성직자이다. [[천주교]] 신부로서 정치 관여 발언을 많이 했고, 서강대 총장을 지냈으며 [[극우 공주의|공주의]], [[보수주의]] 성향의 언론인이기도 했다. [[1994년]] [[주사파]]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다.
         [[1997년]] [[5월]] 박홍이 제소되자 언론인 [[이도형 (1933년)|이도형]]은 [[노재봉]], 변호사 [[오제도]] 등 보수인사 70여명이 후원회를 꾸렸는데 이때 당시 후원인단 대표를 맡았던 그는 '대표적인 좌익인사인 박 전 총장에 대한 탄압을 물리치기 위해 후원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강기훈은 법원으로부터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와 정황에 따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으나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13일]]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ref name=gg>{{웹 인용|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제목=강기훈 유서대필의혹 사건 진실규명결정|출판사=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저자=정책홍보팀|날짜=2007-11-13|확인날짜=2012-04-29}}{{깨진 링크|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 }}</ref> 이에 따라 2012년 대법원의 재심이 개시되었으며, 2014년 2월 13일 재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혐의·무죄로 재판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137599</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41789</ref>
         1994년 대한민국은 [[우루과이라운드]] 비준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다. 당시 농민과 대학생등은 [[우루과이라운드]]가 통과되면 농가 몰락으로 이어진다며 격렬한 대 시위를 벌였다. 학생과 농민들의 대시위가 증폭되며 야당까지 대에 가세하며 [[우루과이라운드]] 통과가 불투명해 보였다.<ref>{{뉴스 인용
         }}</ref> 그 때 [[예수회]] 박홍 신부(당시 서강대 총장)가 7월 18일 "[[우루과이라운드]] 대 시위 배후에 [[주사파]]가 있고 주사파 배후는 김정일이다"는 발언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ref>{{뉴스 인용
         박홍 총장의 발언 이후 공안정국이 조성되며 [[우루과이라운드]] 대 시위는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그해 12월 국회에서 [[WTO]]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 [[공주의]]
         [[분류:194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공주의자]][[분류:서강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예수회]]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1회 일치
          * 면 [[유키히라 소마]]의 소바는 풍미가 살아있고 전체적인 맛이 네네의 것보다 앞섰다. 차이를 납득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네네.
          * 소바의 향은 휘발성 알데히드에 기하는데, 현재 경기장은 상당히 추워서 휘발성 알데히드가 응이 적어지면서 향이 줄어버린 것.
          * 잇시키는 네네는 배운 기술을 복할 뿐이지만 소마는 매일 손님을 상대하며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웠고 이것이야 말로 그의 강점이라 지적한다.
          * 심사의원 이스트와르가 그렇게 외쳤다. [[유키히라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대결. 양측 소바의 심사까지 끝난 상황에서 그는 한쪽 요리가 현저히 향이 뛰어나다고 발언한다. 역자들이 술렁거린다. [[아라토 히사코]]와 [[이사미 알디니]]는 어느 쪽을 지칭한 건지 몰라 혼란스럽다. [[사카키 료코]]는 "소바를 더 잘 다루는 쪽은 네네 선배"라며 [[키노쿠니 네네]]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사실 그녀의 9할소바가 이끌어낸 리액션이 워낙 뛰어났다. 아직도 정신없이 먹던 심사의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타도코로 메구미]]를 비롯한 역자들도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 물론 네네 본인도 그랬다. 그녀는 "뭐가 어쨌다는 거야"란 태도로 젓가락을 집어든다.
          네네가 놓친건 대회장의 환경 만이 아니었다. 얼빠진 그녀에게 잇시키는 쉴 틈도 주지 않고 쏘아붙인다. 네네가 수많은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는 재능가이긴 하나 바르게 말하면 "현상의 본질은 보지 않고 가르쳐주는 것을 그저 복하는"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부터 만드는 소바가 손님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풍미가 제대로 전해질지, 기술에서 알려주지 않는 부분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잇시키가 [[식극의 소마/210화|"너는 소마에게 진다"]]고 했던 발언은 이 걸 꼬집은 말이었다.
          전세가 완전히 뒤집힌 것은 우리에 갇힌 역자들도 체감할 수 있었다. 승부가 시작되고 거의 처음으로 밝게 웃는 역자들.
          >승자는... 역자 측, 유키히라 소마.
          1라운드 첫 번째 승리는 역자 측에 돌아갔다. 소마는 머리끈을 풀어헤치며 승리 선언을 한다.
  • 식극의 소마/236화 . . . . 11회 일치
          * 쇠고기 시구레니가 메인인 [[타쿠미 알디니]]의 피자. 그런데 그건 만 맞는 표현이었다. 피자의 절은 시구레니가 듬뿍 올라가 있지만 나머지 쪽은 치즈 온리. 즉 치즈와 쇠고기 시구레니 하프 앤 하프 피자였다. [[에이잔 에츠야]]도 이런 부분은 의외였던 모양이지만 심드렁하다. 과연 이것만으로 타쿠미가 공언한 대로 시나린 성분과 상관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걸까?
          * 심사위원 샤름이 이 피자는 어떻게 먹는 거냐고 묻는데 타쿠미는 어떻게 해도 좋지만 "시구레니가 올라간 오른쪽부터" 먹으라고 조언한다. 그건 에이잔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행동. 역자들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응이 나오고 에이잔은 아예 자포자기한 거라 폄하한다. 심사위원들도 원래는 맛있었을 피자인데 애석하게 됐다며 시식에 들어가는데... 전이 일어난다.
          * 타쿠미의 피자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절제된 단맛이 느껴지는 품위있는 맛. 이게 타쿠미의 자신감이었다. 비결은 유자된장소스. 사전에 피자죽에 유자된장소스를 발라 시나린의 효과를 억제한 것이다. 본래 양념에 쓰는 백된장, 설탕, 미림의 양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유자과즙의 양을 대폭 늘려 신맛을 보충. 유자의 껍질을 갈아넣어 쓴맛과 떪은 맛을 첨가한다. 이것은 심사위원들이 에이잔의 로스트비프를 먼저 맛본다는 걸 전제로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심사위원 안은 알디니가 자신의 피자를 메인디쉬로 만들기 위해 에이잔의 음식을 전체로 취급해버린 거라 극찬한다.
          타쿠미의 계산은 이랬다. 에이잔이 상대의 음식맛을 방해하는 요리를 하는건 필연. 그렇다면 어떤 재료를 선택할 것인가? 우선 그는 자신이 쇠고기 시구레니를 들고 나오면 드시 단맛에 장난을 칠거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지금 재료창고엔 어떤 재료가 있는가? 단맛을 방해하는 식재료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다른 대결에 영향을 주지 않고 단기간에 쓰일 재료는 아티초크 뿐이었다. 가령 미라클 후르츠도 단맛에 영향을 주지만 지속시간이 몇 시간에 달해 다른 십걸의 요리까지 방해할 것이 뻔하다. 고로 선택지는 처음부터 아티초크 하나 뿐. 타쿠미는 이같은 결론은 에이잔을 유심히 관찰해 "트레이스"한 결과라고 말한다. 결국 트레이스대로 움직여준 에이잔이야 말로 타쿠미의 "노림수"에 걸린셈.
          * 에이잔은 그같은 설명을 헛소리로 일축하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장면들 뿐이다. 가령 자재창고에서 마주쳤을 때, 타쿠미가 노려보고 있다, 복수심을 불사르고 있다고 생각했던건 실제로는 그를 면밀히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3rd ABOUT이 시작된 내내 계속됐다. 그는 타쿠미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기 요리에 정신이 팔려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정대. 타쿠미는 에이잔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자신의 유도에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 심사위원들은 상대의 함정을 역이용한 타쿠미의 수완을 격찬하며 "탈출불가의 일루전"이란 표현으로 에이잔과 동급 이상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승부를 이걸로 끝내기엔 부족하다.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도 극상의 맛이긴 마찬가지. 이스트와르는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거기서 타쿠미의 다음 비장의 수, "제 3의 요리"가 공개된다. 사실 [[유키히라 소마]]는 그의 피자를 봤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것 같다. [[타도고로 메구미]]에게 타쿠미의 피자가 "달 두 개를 겹쳐놓은 듯한 모습"이라 하는데. "메짜루나"(달). 타쿠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요리, "도피오 메짜루나 피자"(두 개의 달이 빛나는 피자"를 소개하며 진정한 맛을 보라고 하는데.
  • 유인촌 . . . . 11회 일치
         정치인이 된 이후 행보를 보면 꽤나 괴리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2000년대 초중까지만 해도 유인촌은 딱히 정치 성향 여부로 평가되는 인물이 아니었고, 오히려 <역사스페셜> 진행자로서 공정한 이미지가 큰 편이었다.[* 한 예로 유인촌은 김대중 역으로 삼김시대에 출연한 시기(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해)에 역사스페셜 진행자도 맡고 있었다.] 유인촌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잣대로 인해 엇갈리게 된 것은 그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본격화하고, 이후 장관으로 입각한 2000년대 후부터의 일이다.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 [[문학구장]]에서 개막전 시구를 두 차례 한 적이 있다.(2008, 2009) 2008년에는 날씨 때문에 관중이 적긴 했지만 응이 나쁘지 않았던 것에 비해 2009년에는 만원 관중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받았다. 왜냐면 아래의 찍지마 X발 때문에...
         [[이명박]] 정권 초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 국정감사 도중, 야당 측의 [[이종걸]] 의원의 질의에 기분이 단단히 상했는지 '''"[[사진]] 찍지마! [[씨발|X발]] 찍지마!"'''라고 [[기자(직업)|기자]]들을 향해 [[말]]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이종걸 의원의 질의부터가 굉장히 무례했다. 'MB 정권의 휘하, 졸개' 운운한 것도 모자라서 그래 '사기극', '삼켜먹어버렸다.' 등의 과격한 [[단어]]들을 대놓고 내뱉었으며, 심지어는 [[호칭]]도 안 쓰고 그냥 '이명박의~'라고 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욕설, 특히 기자들에게까지 [[막말]]을 했다는 것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 아니었고, [[인터넷]]에서는 이종걸의 발언은 묻혀지고 이 욕설만 남고 말았다.국감이라는게 그런것이다. 질문자인 국회의원은 무슨 개같은 질문을 하든 묻히고, 발끈한 정부만 남는게 국감이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질문들을 개같이 한다. 유인촌입장에선 억울할법도. 연기하는 배우라서 오히려 카메라를 신경쓰지 못했나 싶을 정도. 아이돌 출신이면 카메라 신경썼을텐데..
         위에서 말한 욕설 외에 [[막말]] 및 [[말]], [[망언]] 등으로도 구설수에 올랐다. [[한예종]] 협동과정 서사창작과의 폐지에 대하는 피켓을 든 학부모에게 [[세뇌]]라는 [[https://youtu.be/3LjZwalkUxY|막말]]을 했으며, [[국립오페라단]] 폐지에 대하는 단원들의 시위 현장에서 단원들에게 [[https://youtu.be/kU9q6mi24Ps|말]]했다. 그 외에도 2009년 11월 17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65521|'대동아전쟁' 발언]], 2011년 7월 22일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5184859|을미사변 '경복궁 담장'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 윤흔 . . . . 11회 일치
         '''윤흔'''(尹昕, [[1564년]] - [[1638년]] [[12월 1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무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해평. [[윤두수]]의 둘째 아들, [[윤훤]]의 형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초명은 양(暘)이고, 자는 시회(時晦), 호는 도재(陶齋) 또는 청강(晴江), 계음(溪陰)이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 당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하였으며, [[병자호란|병자]], [[정묘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협상을 대하며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당색은 [[서인]](西人)으로, [[광해군]] 때 [[승정원]][[우승지]] 등을 지냈으나 한때 첩의 남동생이 칠서지변의 서양갑이라서 [[계축옥사]]로 파직되었다가, [[1623년]](광해군 15년) [[인조정]] 뒤에 관작이 복구되어 [[예조]][[참판]]·[[중추부]][[지사]],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에는 [[조선 인조|인조]]를 [[공주시|공주]]까지 호종하였고, 왕을 공주로 호종한 공으로 가의대부에 오르고 예조참판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는 [[후금]]과의 협상을 강력 대하였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에는 [[1632년]] [[인목대비]]와 [[1635년]] [[인열왕후]]의 [[국상]] 장례를 주관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도 임금을 호종하였으며, [[1636년]](인조 14년) [[정묘호란]] 때에도 [[남한산성]]으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 [[김상헌]]과 함께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사후 [[병자]], [[정묘호란]] 때의 [[호종]] 공로로 [[증직|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윤웅렬]](尹雄烈), [[윤영렬]](尹英烈) 형제는 그의 7대손, [[윤치호]]는 그의 8대손이다. [[이이]]·[[성혼]]·[[정철]]의 문인이다.
         === 생애 초 ===
         [[1620년]](광해군 13년) 서(西班)의 무관직에 여러 번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직상소를 올려 물러난 뒤, 당시 [[북인]] 정권이 장악하고 있던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 인조정 이후 ===
         {{참고|인조정|이괄의 난}}
         [[1623년]](광해군 15년) [[3월]] [[인조정]] 이후 [[김류]], [[이귀]] 등의 요청으로 조직에 복귀하였으며 [[동지중추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한성부]][[좌윤]],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李适) 등이 거병하여 도성으로 쳐들어와, [[이괄의 난]]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즉시 [[공주시|공주]]까지 달려가 [[조선 인조|인조]]를 호종하였으며, 그 뒤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그 뒤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을 거쳐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강화로 호종하였으며, [[청나라]]와의 강화, 회담을 강력히 배척하는 소를 올렸다. 그의 결사항전 주장은 묵살되었찌만 주화에 절대 대한 점으로 [[사림]]의 지지를 받았다.
         [[1636년]](인조 13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병자호란]] 당시 그는 [[김상헌]] 등과 함께 [[청나라]]와의 강화를 강력히 대하는 소를 올렸다. [[1637년]](인조 15) [[정축하성]] 후 관직을 사퇴하고 칩거했으나 거듭된 출사 요청으로 [[한성]]에 되돌아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특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해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다시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 [[인조정]]
  • 이민우(배우) . . . . 11회 일치
         유아기 시절인 [[1980년]]부터 CF모델로 활동하다 6살 때 정식으로 드라마 데뷔를 하게 되는데 데뷔작이 MBC의 [[조선왕조 오백년]]([[1981년]])이다. 배우 경력이 벌써 '''30년이 넘는''' 본좌 중에 본좌. [[홍경인]]([[1988년]] 데뷔), [[김정현(1976)|김정현]]([[1994년]] 데뷔) 등 경력이 나름 길다는 동년배 배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유명한 왕 전문 배우(...) '''[[최수종]]'''(1962년생, [[1987년]] 데뷔) 등 1960년대 초 출생인 연기자들마저 이민우에게는 경력 때문에 어려워한다는 것이 [[라디오 스타]]에서 드러났다. [[http://m.news.nate.com/view/20130425n00128|#]] 이 정도 경력은 5살 때 데뷔했다는 [[안성기]]나 6살 때 데뷔했다는 [[하춘화]]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경력이다.
         [[한명회]]에서 [[연산군]]을 맡았다. 주인공 한명회가 죽은 이후를 다루는 후 4회분에서 극을 사실상 주도하는 역할이며, 연산군 연기로 호평받으면서 이를 기점으로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이 '''19세'''에 이런 연기를 한다(...)[* 상술하였듯, 이 연기로 아역상을 받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r7eVSaqU59Q|# 기생씬]] 특히 [[폐비 윤씨]]([[장서희]])가 사사된 사실을 알고 오열하며 눈물콧물 흘리고 할머니인 [[인수대비]]에게 가서 한맺힌 절규를 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http://flvs.daum.net/flvPlayerIn.swf?vid=bYfGnkJ3L-U$&ref=bbs.movie.daum.net|# 절규신]] --배우들 다 굶어 죽으라고--
         중학교 3학년이던 [[1991년]]에 [[우리들의 천국]]에 출연을 했는데, 그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선수 역을 맡았으며, 쌍둥이 동생 미수 역을 맡은 최상진과 더불어 밝은 이미지로 당시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52400329120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5-24&officeId=00032&pageNo=20&printNo=14059&publishType=00010|당시 인터뷰 기사]]). 밝은 이미지로 인한 인기를 영해서인지 [[http://youtu.be/mNchHIw8CbA|최상진과 같이 광고에도 출연했다]].
         2000년대 접어들며 트렌드가 된 기럭지와 비율에 방점을 두는 그런 세련된 외모가 아니어선지 20대 중을 넘어가면서부터 현대극에서 카이스트의 이민재 역 같은 주연 오퍼는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민우는 은근히 머리가 큰 편이다.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옷빨이 더 잘 받는 이유도 사실은 그 때문(…))
         대신 아쉬운 대로 [[메리대구 공방전]], [[열아홉 순정]], [[살맛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등에서 30대 초 직장인 역할, 다소 찌질하고 철없는 남편 역할, 강력에서 형사들을 괴롭히는 지독한 범죄자 악역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조용히 연기 커리어를 쌓았다. 이런 연기도 잘 소화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연기에서는 도가 텄다고 할 지경.[* 특히나 [[살맛납니다]]에서의 그 찌질하면서 사악한 김기욱 역은 장인식(임채무 분)과 더불어 극을 지탱하는 2대 악역으로 꼽혔을 정도..]
         본인은 사극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하지만[* 하지만 사극을 아예 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며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도 배역에 대한 흥미를 따라간다고 한다.] 2011년 또 사극 [[공주의 남자]]에 출연하게 되면서 이제 사극이 아닌 현대극에서의 이민우는 기약이 없게 되었다. 그의 예전 사극연기를 보지 못했던 10대~20대 초에게는 사극에서의 이민우가 깊이 각인되었고, 30대 이상에게는 이민우의 기존 사극 이미지가 더욱 단단히 굳어지게 되었기 때문. [[거열형]]씬도 허리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찍었다고 한다.
         아역으로 데뷔하여 20대 초까지 괜찮은 연기 커리어를 쌓았지만, 그 이후 비주얼이 어중간한 탓에 주연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다행히 30대 중에 접어들어 [[공주의 남자]]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어필할 기회를 알렸고, 비주얼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는 30대 후 이후로 가면 오히려 연기자로 대성하고 명성을 떨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2> 2011년 ||<|2> KBS2 || 강력 || 이동석 || 특별출연 ||
  • 이시영(배우) . . . . 11회 일치
         그러나 2010년 맨즈헬스 인터뷰에 따르면 프라모델 수집은 상당히 오래된 취미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프라모델 모두 본인 소장품인 듯 하며[* 30여 개 이상 모았단다.], 배우 데뷔 초에 일거리가 없어 취미 삼아 시작했다고 한다. 홍석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베어브릭이 장식된 걸 보고는 가웠다고. 일적인 [[서브컬쳐]]의 매니아들처럼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프라모델을 접한 게 아니라, 프라모델을 먼저 접한 케이스. 때문에 우결의 경우 이시영의 취미를 오타쿠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제작진측의 캐릭터 만들기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하는 거지 서브컬쳐를 즐기는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인데 프라모델을 다루는게 오타쿠가 아니냐고 하면 사실 미묘한 부분이다. 일 밀리터리물이나 자동차 프라모델러에서 건프라로 넘어온 사람들이 특히 자신은 '''건프라는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는 거나 남이 만든 완성품을 모으는 게 아니고 만드는 과정도 즐기는 쪽이다. 일본에서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좋아하면 훌륭한 오타쿠이기 때문이다. 단지, '서브컬쳐 -> 피규어' 순으로 빠져든 매니아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피규어 모으기가 취미"라고 하면 이쪽인 경우도 적지만 있다.[* YG의 [[양현석]]이나 MBK의 [[김광수(음기획자)|김광수]], 드림팩토리의 [[이승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아톰인형 매니아로 알려진 [[조민기]]도 아톰의 스토리 자체를 파고들기 보다는 '아톰 인형(피규어)'에 꽂혀사는 경우이다. 베어브릭 같은 류의 캐쥬얼한 피규어쪽으로 빠지자면 그 수는 더 많다. [[이승연]]도 남편의 취미를 따라 베어브릭을 모으고 빅뱅의 [[탑]] 역시 베어브릭 수집매니아. [[원피스(만화)]]같은 경우에도 피규어 퀄리티가 좋은 편이라 만화책은 제대로 안 읽고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건담과 일 인형 매니아를 동일시 하면 곤란하다. 여자아이들의 인형 취미와 건프라가 똑같겠는가? 어찌 부정해도 건프라를 좋아하는 이상 일단 오타쿠라 봐야 할 점은 사실이겠다. [*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3/read/31977670|여기서도 그렇지만]] 건프라를 좋아하면 충분히 오타쿠로 여겨진다.]
         2013년 2월에 출연한 [[런닝맨]]에서 과도한 민폐로 게시판 지분을 다수 습득했다. 원래부터 이런 캐릭터이긴 했지만 한동안 예능 출연이 뜸했고 복싱 등으로 호감도가 올라간 상태에서 보여준 모습이었던 탓인지 작용으로 비난여론이 좀 있었다.
         2016년 10월 8일 [[JTBC]]의 예능 [[아는 형님]] [[아는 형님/방영 목록/2016년 하기#s-2.15|45회]]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2017년 7월 13일 [[속도위|임신]] 4개월이라 밝히며 9월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629502&gid=999339&cid=1066270|#]]
         2013년 10월 21일 51kg 로 체급을 올려서 처음 참가하는 제94회 전국체전 복싱 여자 일부 플라이급(51㎏) 8강전에서 김하율[* 4월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맞붙은 김다솜 선수와 같은 사람이며, 김다솜 선수가 개명한 것이다.] (충주시청)에 1대2로 판정패 했다. 3라운드에서 다운을 내주며, 승패가 거의 결판났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409392|관련기사]] 3라운드에 어깨 탈골을 당했으나 스스로 다시 끼고 경기를 진행했다고.
         갑자기 배우와 병행해 복싱 선수의 길을 걷자 당연히 논란이 있었지만 대다수 네티즌들의 응은 대단히 호의적인 편. 사실 연예인이 이런 투잡(?)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레이서로 활약하고 있는 [[류시원]], [[이세창]] 뿐만 아니라 연예인 중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으면 OO홍보대사를 맡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연예인들 중 상당수가 간판만 그럴싸하게 달고 실제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해 이시영은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꾸준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물론 종목과 난이도,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솔비의 피겨스케이팅과 비교할 때 이시영의 성장은 매우 뚜렷하게 결과로 증명된 것이다.]
  • 조원진 . . . . 11회 일치
          * 관련 문서: [[친박]], [[미국병/사대주의]]([[미빠]]), [[친미파]], [[극우]], [[박근혜 탄핵 대 집회]]
         || '''병역''' ||[[육군]] [[하사]] 만기전역[* 병사출신 일하사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280106|#]]||
         2017년 4월 8일 [[자유한국당]]을 탈당하여 [[새누리당(2017년)]]에 입당했고 [[박근혜 탄핵 대 집회]] 현장에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추대되었다.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 당시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상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영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영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송영선은 비례대표로 옮겨가 당선되었고, 이후 남양주시 갑으로 옮겨서 현직 당협위원장인 심장수의 지역구를 빼앗아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송영선은 이후 비리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2017년]] [[4월 8일]] 탄핵대 집회에서 [[자유한국당]]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753080|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로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조원진의 대선출마에 대한 여론은 꽤 싸늘하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2519|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뉴스타운은 대선후보로 [[남재준]]을 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난할 수밖에 없다.] 그의 대선출마로 인해 보수진영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버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보다 더 극우인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국정원장인 [[남재준]] 역시 출마함에 따라 보수표도 성향에 따라 강성친박 표인 조원진과 남재준, 온건친박 표인 홍준표, 비박 또는 박의 중도보수 표인 유승민과 이재오 이렇게 다섯 갈래로 갈려져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낙선이 확정되었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절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 이탈하여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남, 호남, 충남,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순위는 6위]
         홍준표는 지역구를 납했지만 아직도 강효상이 지역구에 있으며 언론계에서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TV조선 보도본부장을 맡으며 잔뼈가 굵기라도 한 강효상과는 달리 조원진은 아무 것도 없는 수준인지라 더더욱 낙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강효상, 조원진, 바른미래당 후보가 셋이 보수표를 갈라먹어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달서구 병에서 당선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2017년에만 4개의 당적을 기록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2017년)]]→[[대한애국당]]) 모두 6개월 동안 일어났으며, 이는 10년 전인 [[김한길(정치인)|김한길]]과 김한길계 정치인들과 타이를 이룬다.[* 같은 6개월이어도 김한길계가 조원진보다 약 2주 빠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당적 갈아 치워도 특이하게도 [[철새]] 취급은 받지 않는다. 철새는 커녕 변경된 당적의 공통점이 전부 친박, 탄핵 대 집회 쪽 노선이라 오히려 그가 가진 정치색이 더욱 진해졌다고 봐야 한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11회 일치
          * 타이바 가문은 100년 전 거인대전에서 처음으로 프리츠 왕가에 역하고 마레 측에 힘을 빌려준 귀족 가문. 지금도 특별 취급을 받고 있다.
          * [[라이너 브라운]]과 [[가비 브라운]]은 이른 아침부터 본부로 향했다. 그들은 시장을 가로질러 출근을 했는데 지나가던 엘디아인 시민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기고 우러러보며 인사를 건넨다. 출입구를 통제하는 마레인 병사들 조차도 그들에게만은 친근하게 대하며 안부를 물을 정도. 그런데 평소와 같은 라이너와 달리 가비는 어쩐지 침울하고 풀이 죽은 모습이다. 마레인 병사도 그걸 눈치챘다. 그는 "이번에는 활약했다며?"하고 말을 붙이나 가비가 응이 없자 조금 집요하게 말을 건다. 가비는 그게 들리지도 않는지 "평소대로 본부에서 훈련한다"고 적당히 대답하고 통제소를 통과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병사들은 가비의 우울한 기색이 마음에 걸려서 왜 저러는 건가 고민할 정도다.
          피크와 라이너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지크는 가끔씩은 쉬는 것도 좋다며 커피를 돌린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는 결코 쉴려고 그런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지크가 본론을 말한다. 그는 거두절미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수년 간 계속된 "자원쟁탈전 시대". 마레는 거인의 힘으로 승리하고 역시 그 힘으로 주변국의 발을 억눌러왔다. 그리고 그 첨병역을 하는 거인,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은 역대 최악으로 과거 엘디아제국 시절에 견줄만 하다. 지크는 분명 엘디아 민족이 분명한 성의 뜻을 표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속죄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엘디아인의 멸절을 바라고 있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과학병기가 거인병기를 앞지르는 것은 시대적 필연. 거인은, 엘디아인은 멀지 않은 장래에 전술적 가치를 잃는다. 거인에 의존하는 마레가 국력을 상실하는 건 뻔한 일이고 마레가 약해지면 엘디아인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사라진다. 엘디아인을 존속시킬 필요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세계에 던져지는 것이다.
          "망치의 거인"의 타이바 가문. 그 이름은 일행에게 민감한 응을 일으켰다. 그들은 100년 전 거인대전의 영웅 가문이다. 최초로 프리츠 왕가에 역했으며 마레에 협력했다. 일찌감치 "명예마레인" 타이틀을 거머쥐고 정치나 전쟁, 모든 사회적인 이슈에서 불간섭을 표방하며 안락한 삶을 누렸다. 그런 그들이 "마레와 엘디아의 미래를 걱정해" 일어나 주었다, 지크는 그렇게 "스토리"를 설명했다.
          지크는 그의 의견에 부정도 긍정도 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들이 조국 마레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거라고 다그친다. 포르코는 역시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포르코가 좀 더 박하려 했지만 라이너가 기회를 뺏었다.
          >너라면 드시 해낼 수 있어.
          * 망치의 거인을 가진 타이바 가문이 새로운 떡밥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른 거인들은 마레의 군사병기이자 엘디아인으로서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데 비해 타이바 가문은 단지 최초의 전향자란 이유로 아무런 불이익도 없을 뿐더러 전쟁터로 내몰리지도 않아, 포르코처럼 감을 가진 자도 있다. 오히려 그들이 선동역으로 나설 정도면 사실상 엘디아인이 아니라 특별취급 받는 기득권 계층에 가까운 묘사. 전세계적으로 이들만큼은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 이들이 왜 프리츠왕가를 배했는지, 프리츠왕가는 왜 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그저 팔라디섬으로 도망쳤는지, 결과적으론 나머지 귀족 가문들도 프리츠왕가를 배신했을 텐데 왜 타이바 가문처럼 대우받지 못하고 거인을 빼앗겼는지 등 다양한 떡밥이 파생되고 있다.
  • 창작:티겔 왕국 . . . . 11회 일치
         이러한 성과의 결과는 (달제가 원하진 않았겠지만)상티겔 왕국 멸망이후 하티겔 왕국의 형성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하티겔의 형성이후까지 이뤄지는 사냥꾼과 티겔 왕국의 협력에 기을 닦아두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후 남쪽에 탐험가를 보내어 동부 대륙 남쪽에 농사짓기 좋은 평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의 티겔 평원] 그곳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다만, 거리가 거리다보니 대부분 일부만 겨우 도착했다.] 한편으론 동북쪽의 강자들인 하이엔 왕국과 츄프 왕국과 연합해 남진을 시도하는 레잉 왕국의 침략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 특히, 북티겔 언덕에서 벌어진 회전에선 레잉의 왕과 태자까지 사살할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국경선에 요새를 쌓고 방어를 준비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상티겔 왕국은 달휴의 사후 점점 기울어져 갔는데, 우선 달휴가 죽고 그의 맏아들 '불운한' 달계가 즉위했으나, 그는 한달도 안되서 의문사하고(...) 그의 둘째 '천벌의' 달연이 왕위에 오른다.[* 호칭을 보면 알겠지만, 달계 암살의 유력 용의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왕위에 오르고 약 이틀도 안되어 그의 동생 달혜가 그를 암살하고(....) 또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나흘이후 그의 제수의 명을 받은 암살자에게 죽을뻔 한다(...) 그에겐 다행히, 암기가 급소를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하가서 살았고, 얼마 안돼 제수는 교수형, 그리고 그의 여동생은 가택연금을 시키는걸로 마무리시킨다. 달혜는 상티겔 왕국의 왕들중 최악의 왕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그전까지 충실한 우방이었던 하이엔 왕국을 괜히 외교적으로 도발해 적대관계로 가게 하고, 북쪽의 라이엘기스 대공국[* 레잉 왕국이 멸망하기전 마지막 왕의 동생(적자가 아닌 서자였다.)이 세운 국가.]에겐 지속적으로 병력을 갈리면서(...) 국력을 낭비했으며, 그나마 우방이었던 츄프왕국과는 지속적으로 국경 분쟁이 벌어지는 상태인 불안한 동맹관계였다.[* 상티겔 왕국이 메롱한대도 츄프왕국이 굳이 티겔과의 관계를 끊지않은 이유는 북쪽의 숙적 크누고 공국과 그들을 지원하던 하이엔왕국 때문이었다. 즉, 크누고 공국을 제압하면 얼마든지 티겔과의 관계도 끊을 수 있었다는 애기.] 이렇게 외교적으로 불한한 상태에서 내정을 잘한 편도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사자족 토벌이라면서 상당한 량의 세금을 걷어갔고, 이는 지속적인 란의 원인이 되었다.[* 사서에만 기록된 란의 횟수는 약 20여회정도이다... 사서가 훼손되어서 기록되지 못한 란까지 포함하면 이횟수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달계의 아들이었던[* 달계가 죽었을당시 아직 태어나지 못해 계승받지 못했다.] 달유가 귀족들에 도움을 받아 왕위를 찬탈하고 왕위에 오른다.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상이었으나, 남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상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상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상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남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절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상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상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이문제는 당장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레이먼 제국이 무력으로는 호랑이족을 복속시킬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조카 루이를 끌어들여 '태겡 대공국'을 만들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레두아는 북부파의 군소영주를 구워삶아 자신이 티겔을 공격할때 이들이 자신에게 협력한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물론 보상으로 옛영토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결국 츄프 왕국이 언제나처럼 남쪽의 대귀족들이 일으킨 란에 고생해 티겔을 도와주기힘들때 공격해왔다. 레이먼으로부터 상당한 량의 군자금과 용병대를 지원받은 태겡의 공세는 날카로웠고, 군소영주들의 협력까지 이루어져 순식간에 탈환한 영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기에 이른다. 그나마 섭정인 계형이 직접나서서 태겡과의 일전에서 태겡 병력의 을 한번에 분쇄시켰기에 공세를 막아내고 탈환지 영토의 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태겡(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레이먼 제국) 대공국과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은 군소영주들의 란역시 계속되었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태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상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남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태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란을 일으키며, 태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란에 따랐으며, 태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11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선봉 스킬 요구.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의 정확도 +5,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함선의 정확도 +5%, 해군 화력지원의 경 -10m
         >게이샤는 숙련된 연주자이자 무희이기도 하며, 또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접대 및 정신적인 고양을 위해 자신들의 기예를 이용합니다. 이들의 재능은 군사적인 일에도 도움될 수 있습니다: 일부 남자들은 약하며, 쉽게 이성을 잃기도 합니다. 또 다른 남자들은 여자에 빠져 배하기도 합니다.
          * 다른 번의 성에 침투시 백성들을 선동해 란을 일으킬 수 있음
          투쟁자 스킬 요구. 란 선동 시 열의 +1, 이 요원이 머물고 있는 적 지방의 행복도 -2
          선동자 스킬 요구. 란 선동 시 열의 +1,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15%
          과격파, 선동자 스킬 요구. 암살 시 열의 +1, 란 선동 시 열의 +1, 열정 주입 시 열의 +1, 이 요원의 성공확률 +5%, 모든 유신지사의 행동스킬 비용 -15%, 이 요원이 배속된 군대의 캠페인 이동력 +10%
          * 다른 번의 성에 침투시 백성들을 선동해 란을 일으킬 수 있음
          지방 개종 시 열의 +1, 란 선동 시 열의 +1
          포 전문가 스킬 요구. 건물 파괴 시 능력 +1, 해군 화력지원의 경 -15m
          * 마티니-헨리 후장식 소총 - "이 총은 동이 심하지만 좋은 군인이라면 마다치 않을 것이다."
  • 하이큐/266화 . . . . 11회 일치
          * 야마모토는 의욕적으로 나서지 않는 코즈메의 플레이를 "근성이 없다"고 거슬려했고 대로 코즈메는 근성 타령만 한다고 야마모토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런 말이 끌어내는 응은 쯤은 뜨악함, 쯤은 황당함. 그 기억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서 야마모토가 훈련에 매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걸 알지도 못하고, 안다해도 이해할 수 없는 코즈메로서는 언제나 근성을 외치며 웨이트를 하고 있는 야마모토가 우주인처럼 보였다.
          그런 노력이 실적으로 나오느냐 하면, 또다른 문제였다. 코즈메가 일찌감치 에이스 세터로 낙점된 데 비하면 야마모토는 낙제점이었다. 1학년들이 첫 실전에 나선 네코마 대 마루구치 연습시합. 코즈메는 안정적이고 치기 쉬운 세트를 올린다고 호평을 받으며 팀 승리에 조력했다. 면 야마모토는 네트아웃을 남발한 데다 플레이 중 우측의 쿠로오와 부딪히기까지 하는 등 최악이었다. 쿠로오는 "첫 시합이란 그런 것"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야마모토의 조바심까지 지워주진 못했다.
          >근성처럼 조잡한 게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성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거기서부터는 플레이에 대한 토론이 아니었다. 야마모토는 더이상 스포츠맨 답게 나오지 않았다. 코즈메의 멱살을 잡으며 그러는 너는 어땠냐고 박했다. 코즈메는 오늘 시합에서 좋은 평가를 내긴 했지만 잡을 수 있는 공 몇 개를 그냥 보냈다. 딱히 생각없이 놔둔 건 아니었다. 대체로 그런건 고생해서 잡아봐야 상대편 찬스볼이 될 것 같은 공들이었다. 하지만 얼른 박하지 못하는 건 "피곤했다"는 이유도 있긴 했기 때문이다.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인 만큼 그의 전술을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는 타입이었고 그런만큼 일적으론 가장 포텐셜이 높은 선수를 쓰기 마련인 세터 자리에 "그렇지 않은" 선수를 기용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코즈메처럼. 네코마타 감독이 보는 세터의 절대조건은 두뇌와 센스. 그건 팀의 수비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면승부에서 그걸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지만, 조금씩 깎아내리는건 가능했다. 강고한 수비라도 조금씩 스트레스를 주고 흔드는 걸로 세터의 연약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론을 입증하듯 2세트 중에 이르러 사루카와는 최초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대진영의 제자와 그가 길러낸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 제자들이 자신의 방침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 That 70's show . . . . 10회 일치
         시즌 1 에피소드 1은 1976년 5월 17일로 되어 있다. 1시즌에서 [[제럴드 포드]]가 재선을 위해서 공화당원들을 모아서 선거 운동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로 보아서 1시즌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76년으로 보인다. 1시즌 후부에는 [[스타워즈]](1977년작)가 개봉되어 보러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리고 최종회는 1970년대의 마지막 밤을 지나서, 1980년대가 밝아오면서 끝난다.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 재선을 위하여 포인트 플레이스에 선거 유세를 하러 온다.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에 키티는 엄청나게 흥분하고, 밥 핀시오티, 재키 아버지 등 마을 유지들의 위원회는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질 '일 시민'으로 레드를 선정한다. 한편, 에릭과 하이드, 켈소, 페즈는 항의 시위로서 알몸으로 벗고 달리는 스트리킹 시위를 하기로 결심한다.
         여주인공. 에릭의 이웃집에 사는 소녀. 기가 세고 활발하며 스포츠를 잘한다. 중 이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라디오 DJ로서 활동하게 된다. 닉네임은 '핫 도나'. 시트콤 답게 에릭과 도나가 일단 작중의 메인 연애라인인데, 8시즌 동안 밀고 당기고 하면서 진행된다.
         여주인공2.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 미모에 자신감이 넘치고 [[공주병]]이 강하다. 도나와 친구, 켈소와 연인 관계라서 그룹에 끼어들었지만 사실 초에는 아무도 재키를 좋아하진 않았다(…). 시즌이 갈수록 우정으로 그룹의 일원이 되어간다. 작중 내내 켈소, 하이드, 페즈를 오가다가 8시즌 최종화에서 페즈와 맺어진다.
         에릭의 베프. 항하에 시니컬한 성격으로서 아프로와 선글래스가 특징. --왠지 [[도우너]]가 연상된다.-- 가정사가 매우 복잡한데, 어머니만 있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나마 어머니도 도망가서 에릭네 집 지하실에서 집세를 지불하며 얹혀 살게 된다. 실종됐던 아버지 버드가 돌아오면서 잠시 아버지네 집에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또 실종되면서 다시 지하실에 돌아온다. 6시즌에서 버드는 생부가 아니었고 윌리엄 바넷이란 사람이 생부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흑인]]으로 레코드 체인점을 소유한 [[부자]]였다. 흑백혼혈이었던 것, 하이드 본인은 자신의 항적인 혈통의 기원을 찾았다며 아주 기뻐한다. 또 배다른 여동생 엔지 바넷이 생기게 된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단 지구 대편이고, 영국과 네덜란드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외국인 유학생. 뜨거운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여자에게 열심히 들이대지만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5시즌에서 추방 위기에 놓이지만 로리와 결혼하여 회피에 성공,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걸 위탁부모 가정에 알리지 않고 그냥 살다가 들켜서 쫓겨나고, 에릭네 집에서 몰래 얹혀살다가 들킨다. 이후 켈소와 룸메이트가 된다. 미용실에서 샴푸보이를 하게 되는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게 된다.
         본래 직업은 자동차 공장 노동자였지만, 초 시즌에서 폐업하는 단계가 되면서 한동안 무직이 되었으며 밥의 가게에서 일했던 적도 있다. 프라이스마트가 들어서자 관리직으로 취업했으나, 로리와 페즈가 결혼을 발표했던 충격으로 [[심장마비]](…)에 걸리면서 그만두게 된다. 이후 에릭의 학자금을 털어서(…) 자동차 머플러 가게를 차렸으나 그다지 잘 되지는 않았고, 대형 머플러 체인이 들어서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 때 체인점에 항의하러 갔다가 거액의 돈을 받고 주차장으로 팔아버리고 대신 노후자금을 득템한다.
         에릭의 [[누나]]. 섹시하지만 사생활이 매우 문란한 [[빗치]](…). 에릭과는 대로 키티와는 사이가 나쁘고, 레드에게는 귀여움 받는 딸이다. 에릭과는 견원지간으로 사이가 나쁘다. 시즌 초에는 대학생이었지만 중간에 뭔가 문제로(…) 대학에서 짤리게 된다. 재키와 사귀던 켈소를 유혹하여 켈소와 관계를 맺고 삼각관계가 됐다가, 재키와 켈소 사이를 파탄내기도 했다. 5시즌에서는 페즈와 캠핑장에서 관계를 했다가 강제출국 위기에 놓인 페즈를 구해주려고 결혼을 해버렸는데 이 때문에 레드는 심장마비 발작을 일으켰다.
  • 강타 . . . . 10회 일치
         == 음 목록 ==
         {{본문|강타의 음 목록}}
         ==== 정규 음 ====
         * [[Polaris (강타의 음)|Polaris]] (2001년 8월 16일)
         * [[Persona (강타의 음)|Persona]] (2005년 3월 4일)
         * [[Eternity (강타의 음)|Eternity - 永遠]] (2008년 3월 12일)
         {{참고|H.O.T.의 음 목록}}
         * [[Scandal (강타 & 바네스의 음)|Scandal]] (2006년 5월 19일)
         *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골든디스크 시상식 ‘해외음특별상’ 수상
         오랜 기간 사랑받으며 활동해온 만큼 개인적인 모습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이 모든 일은 변명의 여지 없이 저의 부족함과 불찰로 비롯된 것입니다.앞으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며 깊이 성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김갑수(배우) . . . . 10회 일치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2018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의병장 역으로 출연했는데, 첫화부터 작품 후부에서까지 등장하면서 드디어 오랜만에 끝까지 생존하나 했으나 마지막화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 2011년 4월 12일 방영된 [[김승우의 승승장구]]를 끝으로 [[예능]] [[은퇴]] 선언을 했다...~~그러면 [[시트콤]]부터 접어야겠지?~~ 그런데 [[XTM]]에서 2011년 하기부터 방송하는 [[탑기어 코리아]]의 멤버 중 1인으로 발탁되었다. ~~뭐??? 예능 은퇴한 거 아니었어??~~ 탑기코 시즌1에선 큰 형님 포지션 겸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을 좋아하는 기믹으로 활약. 그럭저럭 무난한 진행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자동차에 관한 식견이 수준급이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폭스바겐 골프]]를 엔진종류 별로 딱1번만 주행해보고 정확하게 차종을 구분하는 미션을 완벽하게 완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1의 백미로 꼽히는 슈퍼 카 택시 에피소드에서 [[험비]]의 민수형인 허머(Hummer) 택시를 담당하여 주목 받기도. 그러나 개인사정 상 시즌1에서만 나오곤 하차했다. 그러나 후임들이 워낙 평이 안좋은 지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으로 보인다.
          * [[군기장]]이기도 한데, 어느 정도냐면 김갑수처럼 군기장인데 그 악명이 자자한 [[이경실]]([[이경규]]와 [[홍기훈]]조차도 꼼짝 못한다.)이 알아서 눈치를 볼 정도다.
         || 2006년 || 공필두 || 조 장 || 특별출연 || ||
         ||<|2> 2003년 || [[똥개(영화)|똥개]] || 차 장 || 주연 || ||
         || MBC || [[영웅시대]] || 천사국 || 조연 || 사망[* [[애초에]] [[모델]] 자체가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다. '''첫회'''부터 사망. 후부에 다시 등장 예정이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하여 중간에 종영되었기 때문에 출연은 아예 그것으로 끝이 되어 버렸다. [[지못미]].] ||
         || KBS2 || TV소설 새엄마 || 허동택 || 조연 || 사망[* [[전주시]] 출신 알[[부자]]로, 어린 여주인공을 [[임신]]시킨 것도 모자라서 그래 [[재산]]까지 [[사업]]으로 날려먹질 않나, [[노름]]으로 날려먹질 않나... 결국 집안을 대차게 말아먹다가 [[내연녀]]인 오마담과 [[야도주]]하지만, 노름빚에 쫓겨다니고 결국엔 오마담에게 버림받고 '''길거리에서 [[객사]]한다'''.] ||
         || KBS2 || 203 특별수사대 || 강영준 장 || 주연 || ||
  • 김효원 . . . . 10회 일치
         [[이황|퇴계 이황]]과 [[조식 (1501년)|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식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훈구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소장파 관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심의겸]]의 대를 무릅쓰고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다음해 [[심충겸]]이 [[이조]][[전랑]]에 천거되자 외척임을 들어 적극 대하여 사림을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으로 갈라지게 하였다. 노수신과 이이의 조정책으로 외직으로 전출된 후 10년 간 한직(閒職)을 전전했다.
         김효원은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이조]][[전랑]]직에 천거되자 외척이 인사권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며 대하였다. [[심의겸]]과 [[심충겸]]은 [[조선 명종|명종]]비 [[인순왕후]]의 동생들로, [[선조]]가 [[조선 명종|명종]]의 양자 자격으로 임금이 되었으므로 그의 주장이 인정되었다. 사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이조판서]]로 [[추증]](追贈)되었다. 교산 [[허균]]과 [[허난설헌]]의 인척으로, [[허균]]은 그의 사위이며 [[허균]]의 형 [[허봉]]의 딸이 그의 맏며느리였다. [[동인]]과 [[서인]]의 붕당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지만, 생전에는 청렴한 선비로서 신진 인사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 뒤 병조좌랑·[[정언]]·지평을 지냈으며 사헌부 지평으로 재직 중 김효원은 [[문정왕후 윤씨]]가 죽고 [[척신계]]가 정계에서 몰락하면서 새로이 정계에 진출한 신진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1574년]](선조 7년) 이조전랑으로 있던 오건(吳健)이 자리를 옮기면서 이조전랑으로 [[오건]]이 그를 추천하였으나<ref>1575년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이조 전랑의 임명은 전임자의 후임자 천거로 임명되었다.</ref> 과거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문객이었다는 이유로 이조참의 [[심의겸]](沈義謙)이 강하게 대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는 외척도 아니고 [[이황]]과 [[조식]]의 문인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심의겸]]의 대를 견뎌내고 [[이조]][[전랑]]이 되었다. 또한 그는 [[심의겸]]이 외척으로 그의 집안이 [[윤원형]]의 집안과 인척이고 가까이 왕래한 것과, [[심통원]]의 부패, 비리를 지적하며 공격하였다.
         이후 그는 이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심의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 뒤 김효원의 후임으로 [[이조]]에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전랑 후보로 천거되자, 그는 [[심충겸]]이 [[조선 명종|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남동생인 척신이라는 이유로 극력 대하였으며 이조전랑직이 외척집안의 물건이냐며 [[심의겸]]과 [[심충겸]]을 공격하였다.
         [[1574년]] 이조전랑을 지냈고 이듬해인 [[1575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전랑으로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전랑의 관직은 절대로 척신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대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후 그는 [[심의겸]]과 [[심충겸]]을 외척이라며 비난하였고, [[선조]]가 [[조선 명종|명종]]의 양자 자격으로 즉위한 것과 같으므로 그의 주장이 공론으로 받아들여졌다.
         한편 [[심의겸]]과의 대립은 사림의 분열로 이어지고 점차 심해지자 우의정 [[노사신]]과 부제학 [[이이]] 등은 분쟁 완화의 조정안으로 두 사람을 한성을 떠나 외직으로 보낼 것을 선조에게 건의하여 김효원은 [[경흥부사]]로, 심의겸은 [[개성부유수]]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김효원이 더 먼곳의 외직에 배치되었다는 [[동인 (정치)|동인]]의 발로 그 조정안은 실패로 끝났다.<ref name=autogenerated1 /> 김효원을 지지하던 측에서는 일부러 배경이 없던 그를 더 먼곳으로 축출한 것이라 발하여 다시 부령부사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부령이 변방이라 하여 발하므로 다시 [[삼척]][[부사]]로 옮기게 되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10회 일치
          [[아마지키 타마키]]는 벽에 붙어 있는 주제에 잘도 그 말을 듣고 "그게 너희의 한계"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일인들은 프로 복서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여기긴 해도 뭐가 어떻게 대단한 건지는 모른다. 밀리오가 지금껏 쌓아온 연구와 노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강하다, 무적이다"라고만 여긴다면 대결은 커녕 한 방 먹이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 그때 [[미도리야 이즈쿠]]는 조금 다른 응을 보인다. 그는 밀리오가 그렇게 사기적인 개성을 가졌기 보다는 "속임수"가 가미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워프"에 기해 "빠져나가기"로 응용하는 것과 "빠져나가기"에 기해 "워프"로 응용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카운터를 노리다 보면 직접 접촉도 가능한 시점이 있을 것. 미도리야는 현재 취합되는 정보를 냉정히 분석하면서 기회를 노리자고 제안한다.
          *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 사실을 예측하고 카운터를 노린다. 밀리오는 미도리야가 기척을 감지하기도 전에 격을 준비하는 걸 보고 감이 좋은게 아니라 철저하게 "예측"한 결과임을 파악한다. 그렇지만 그정도로 밀리오에게 카운터를 먹일 수는 없었다. 밀리오는 그대로 미도리야의 몸을 통과하더니 핀 포인트로 미도리야의 눈을 찌른다. 미도리야가 자세를 무너뜨리자 그는 명치를 쳐서 제압, 사실 대부분 카운터를 노리는 적들은 그런 방식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카운터에 대응한 역 카운터.
          "통과"의 개성은 전신으로 발동할 수 있으며 일단 발동하면 "지면이나 기체를 포함한 온갖 사물을 통과"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가 지면으로 잠수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혹시 통과해서 "떨어지는" 거냐고 묻는다.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이렇게 통과, 떨어지는 중에 개성을 해제하면 신기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겹쳐있던 부분끼리 발하는 것처럼 "튕겨 나가"버리는 것이다. 즉 워프의 원리는 그가 지면 등을 통과하고 있다가 해제하면서 그 발력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개성을 해제할 때의 자세나 상황에 따라 나타날 장소를 조절할 수도 있다.
          아시도는 이런 발을 "게임의 버그"같다고 표현하는데 꽤 적절한 표현이다. [[아스이 츠유]]는 받는 공격은 통과하고 자신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무적"의 능력이라고 감탄하는데, 밀리오는 원래 그런 개성이 아니라 "강한 개성으로 만든 것"이라고 정정한다.
          게다가 말로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 이 능력으로 사물을 통과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가령 벽을 통과한다고 하면 한쪽 발을 제외한 전신에 개성을 발동해서 벽을 통과하고, 대쪽으로 빠져나간 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개성을 유지하면서 마저 빠져나온다. 세세한 컨트롤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쓰기엔 매우 까다롭다. [[카미나리 덴키]]는 자신도 실전에선 자꾸 실수를 한다고 공감하고 [[미네타 미노루]]는 아무 것도 못 느끼면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 이들의 생각대로 처음엔 밀리오도 개성을 활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금방 남들보다 뒤쳐졌으며 옷 조차 제대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위"를 노리려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성의 약점을 끊임없는 연구와 "예측"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가능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보다 대련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직업체험에서는 말하자면 "손님"으로서 견학하는 것 뿐이지만, 인턴에 참가하면 한 사람의 "사이드킥"으로서 "프로"로 취급된다. 그건 엄청난 공포와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지만, 대로 학교에선 절대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 남보라(배우) . . . . 10회 일치
         완도사랑채마지막칼국수였던 [[2005년]]에 11남매[* 2005년 당시에는 11남매였다. 방송 당시 셋째와 아홉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송에 거의 비치지 않았다.]의 일상 생활을 담은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천사들의 합창"에 맏딸로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출연 직후에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관계자들의 제의도 거절했으나 부모님의 설득과 계속된 소속사의 러브콜 끝에 연예인이 되기로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060812000512864?f=m|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남보라는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이 진행하는 "천사들의 합창"을 계기로 얼굴을 알려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0곳 이상의 기획사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08191711172510|연예인 제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미니홈피 게시글을 토대로 보면 학교(혹은 교회)에서 성극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사들의 합창 당시, 웬만한 눈썰미를 가진 시청자는 남보라의 집안이 [[개신교]] 집안임을 알 수 있었을 듯. 원래 초등학교를 장안동에 위치한 불교계 학교를 다니다가 저학년 무렵 전학을 갔었다.]
         평소 부모님의 식당 일을 밝은 모습으로 도우면서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돕는게 부끄럽지 않다"는 발언을 했고, 연예인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개념 연예인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지하철 이용건에 대해선 '임산부, 영유아 동자 배려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배려석에 앉다니 무개념이다"라고 까는 의견과 "저 좌석은 일인도 앉아있다가 주변에 임산부나 영유아 동자가 있을 때 양보해주면 괜찮은 거다"라며 옹호하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통약자 배려를 위해 설치된 좌석들은 좌석이 부족한 경우 노약자, 임산부, 영유아 동자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즉시 양보해 주면 된다.] 써니 이후 친해진 배우 [[박진주]]를 태우고 가는 장면이 나간 [[나 혼자 산다]]에서는 [[현대 아떼|AD]] 1.6 디젤을 몰고 다니는 듯. 탑기어 코리아7 8화에서 본인의 첫 차가 [[폭스바겐 CC]]이며 10년 탈 생각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동안]]''' 외모의 소유자 중 하나다. 하지만 [[동안|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모양. 2018년 현재 30살인데, 아무리 봐도 20대 초으로 보이며, 교복 입고 중고등학생 역을 해도 아무 위화감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차차 해결될 문제이긴 하다.
         ||<|3> [[2015년]] || [[내 마음 짝]] || 이순정 || ||
         || [[2014년]] || [[소유]]×[[어자카파]] || 틈 ||
  • 둠 패트롤 . . . . 10회 일치
          본명 나일스 콜더(Niles Caulder) 박사. 하신 마비이다. 특별한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다.
          * 둠 패트롤이 스탠 리의 [[판타스틱 4]]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론도 있다. 판타스틱4는 1961년에 첫등장했다.
          * 양자 모두 특별히 비밀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대도시 중심가의 일 건물에 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NEW 52]] 이후 <[[포에버 이블]]> 타이인 이슈에서 멤버들이 [[크라임 신디케이트]] 멤버인 쟈니 퀵과 아토미카에 의해 의해 몰살당하다시피 패했다. 이후 치프로 보이는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군'이라 말한다. 결국 포에버 이블 이후 등장 암시가 나오더니 [[저스티스 리그]] #31화 막바지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치프는 새로운 [[할 조던(지구-3)|파워 링]]인 제시카 크루즈 역시 팀에 넣을 생각인듯 싶었으나 숙주(제시카 크루즈)를 죽여서라도 [[볼툼]]의 지를 얻으려는 것 같으며 민간인이 다치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네거티브 맨, 로봇맨, 엘라스티 걸, 엘레멘트 우먼이 불난 빌딩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치프는 "파워 링을 제압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며 민간인을 놔두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간신히 파워 링을 얻을 기회가 생기지만 [[렉스 루터]]가 치프를 붙잡는다. 치프와 루터의 대화로 볼때 둘은 잘 아는 사이인듯.[* 이때 루터가 치프에게 "네 척추에 구멍을 내기 전에 파워 링을 넘겨라." 라고 협박하는 것으로 봐선 곧 휠체어에 탈 운명인듯 싶다.]
         멤버 구성이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여러모로 대되는 인물들로 되어있다. 당장 리그 멤버였다가 합류하게된 엘리먼트 우먼도 마찬가지. 저스티스 리그가 사람들에게 호감받을법한 자들이라면 둠 패트롤은 기피대상이 될것같은 자들.
          나일스 콜더. 현 매드 사이언티스트. 볼툼의 지의 새 숙주가 된 제시카 크루즈의 앞에 둠 패트롤을 이끌고 등장했다. 루터가 말하길 새로운 파워 링이 된 제시카 크루즈 또한 실험체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 확보대상에 속하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치프는 루터의 모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팀원들에게 휘말린 민간인들 냅두고, 볼툼의 지에 집중하라 하면서 이를 따르지 않으면 자기가 준 생명을 다시 거둬갈거라 위협하고, 제시카가 지에 지배 당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뇌에 손을 대는거라 주장하며 이 막장 선택지를 실행하려 한 막장 인물. 이를 보아 루터의 언급의 진위 여부는 둘째 치고, 현재의 그가 막장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한편 폭주하는 제시카를 배트맨이 저지한다.
          자신은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메타휴먼을 위한다고 루터에게 강변한다. 다른 멤버들은 치프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일부러 다른 멤버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른 멤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재라고 복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정말일지는 의문스럽게 하는 인물. 일단 치프에 대한 묘사는 치프 스스로의 말과 루터의 말이 엇갈리고, 리붓 이후의 치프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스티스 리그와 대면한 에피소드에서 보인 행동이나 내뱉는 말들을 보면 최소한 지금의 그는 확실히 영 아닌 인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둠 패트롤 멤버 중에서 가장 괴물같은, 혹은 진짜 괴물인 인간.
          [[플래시 포인트]]에 처음 등장했던 좀 특이한 정신구조를 가진 히어로. 전직 의대생. 왜 둠 패트롤에 들어갔냐면 치프[* 휠체어없이 멀쩡히 걸어다닌다.]가 엘리먼트 우먼을 가둬 놓고 "저스티스 리그는 엘레멘트 우먼을 원하지 않아. 넌 둠 패트롤에 어울린다."고 강제적으로 설득하여 팀에 끌어들인것.
  • 맥스 페인/줄거리 . . . . 10회 일치
         3년 전, 맥스 페인은 뉴욕 미드타운 북구에 근무하는 형사였다. 그는 친구인 마약단속 요원 [[알렉스 볼더]]에게 마약단속으로 오라는 권유를 들었지만 아내 미셸과의 사이에서 막 아이가 생긴 참이었기에 거절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1940년대 초에 폐쇄된 오래된 구역이었다. 맥스는 이곳에서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알렉스가 자신을 부른 이유였다고 생각했다.
         맥스는 기폭장치를 찾아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괴한들이 벽에 큰 구멍을 뚫어놓은걸 목격한다. 그 구멍은 은행 금고와 연결되어 있었다. 괴한들은 [[은행강도]]를 벌이고 있던 것이었다. 맥스는 강도들을 처리한 후에 금고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뉴욕 경찰청의 [[짐 브라부라]] 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브라부라 장은 전화를 받은 맥스에게 당장 항복하라고 하지만 맥스는 "애들이랑 대화 좀 해봤는데 다신 이런 일 안하겠데", 라는 말만 하고는 끊어버린다.
         호텔에 도착한 맥스는 그 호텔을 경영하는 피니토 형제에게 루피노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피니토 형제는 맥스가 잠입 경찰이라는걸 알고 있었고, 루피노는 여기 없다고 하며 그를 공격해온다. 맥스는 황급히 벽 뒤로 숨은후 격을 가해 피니토 형제를 쓰러뜨린다. 이후 총성을 들은 피니토 형제의 부하들이 찾아오지만 이들도 맥스에게 몰살당한다.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정문은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지하실로 통하는 뒷문을 통해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마피아들을 해치우며 루피노의 사무실로 올라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앙 홀에 있는 공중전화서 [[알프레드 우든]]이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 우든은 맥스에게 경찰들이 오고 있고, 맥스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린다. 그로부터 몇분 뒤, [[짐 브라부라]] 장이 이끄는 경찰들이 루피노의 본거지를 포위하고 SWAT을 진입시킨다. 맥스는 SWAT과 벽 하나를 놓고 대치하는 상황까지 가지만 결국 경찰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한다.
         맥스가 루피노의 부하들을 모두 처리하자 루피노가 모습을 드러낸다. 루피노는 자신은 타악천사의 살을 맛보았고, 악마의 초록색 피를 맛보았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고는 자신은 죽음 여신의 아들이며 그녀에게 대적할자들은 드시 죽을것이라고 외치며 맥스에게 달려든다.
         맥스는 마피아들을 처리하며 대형 창고를 통과한다. 대형 창고 너머에는 수많은 양의 컨테이너가 쌓여있었다. 맥스는 컨테이너 운용 기중기를 타고 건너편 창고로 가, 부두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카론이 정박해 있었다.
         맥스는 단서를 찾아 자폭 경고음이 울리는 시설을 돌아다닌다. 용병들은 발키리 제작자들을 쏴죽인 후 시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맥스는 그들과 대 방향, 더 깊은 곳에 위치한 실험 시설 감방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발키리를 빼돌렸다가 감방에 갇힌 발키리 제작자 한명이 있었다. 맥스는 그에게 멸균실을 통과하게 도와달라고 협박한다. 맥스의 호위를 받은 제작자가 멸균실을 가동하자 맥스는 그가 도망갈 수 있게 해준다.
  • 박준규(1925) . . . . 10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달성군-고령군-[[경산시|경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박주현(1923)|박주현]]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9년까지 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종기]]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1979년 민주공화당 당의장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대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일민주당]] [[목요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89년 1월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에 임명되어 1년 동안 재임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13대 국회 후기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4대 국회가 개원하자 13대 후기에 이어 다시 [[국회의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여 공직자 재산 공개를 할 때 재산이 문제가 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이후 1995년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그와 손을 잡고 자민련에 합류하여 당 최고고문이 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철언]]과 함께 자민련 내 대구경북세력을 대표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이는 박준규가 1공화국과 2공화국 시절 [[김대중]]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몸을 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기인한다.~~하지만 김대중은 신파, 박준규는 구파~~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준규는 여당으로, 김대중은 야당으로 진로를 달리 했지만 인간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박준규의 활약은 대구경북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이 상승하는 데(8.7%에서 13.1%로 상승)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에다 김대중과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15대 국회 후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국회의장 단일후보로 지명되었고, [[경선]]에서 무려 3차 투표까지 간끝에 당시 [[한나라당]]의 란표가 쏟아져 나오며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준규는 이로써 의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 3선의 고지에 올랐다. 면 [[한나라당]]은 [[오세응]]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패배하고 [[조순(1928)|조순]] 총재 이하 지도부 전원이 국회의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 '''[[민주정의당]]''' || '''85,854 (54.92%)''' || '''당선 (1위)''' || '''7선''' 1991년 [[3당합당]][br]하기 국회의장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 '''[[민주자유당]]''' || '''35,083 (50.07%)''' || '''당선 (1위)''' || '''8선''' 상기 국회의장[br]1993.6.30 사퇴[br](고위공직자[br]재산공개 파동)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중) || '''[[자유민주연합]]''' || '''17,631 (33.26%)''' || '''당선 (1위)''' || '''9선''' 하기 국회의장, [[김영삼]], [[김종필]]과 더불어 국회의원 '''최다선 기록 달성''' ||
  • 식극의 소마/204화 . . . . 10회 일치
          * 쿄쿠세이 측이 승리하면 아자미 정권 퇴진, 센트럴 측이 승리하면 역자 전원 퇴학이라는 전제조건을 재확인.
          * 십걸들은 각자 패배시킨 역자들의 학생수첩을 소지하고 돌려받고 싶으면 이기라고 선언한다.
          * 에리나는 십걸 자리를 납하고 "평범한 에리나"로서 센트럴에 맞서기로 결의한다.
          소마는 그 사이에 에이잔의 얼굴을 발견하고 속도 없이 가운 기색을 보이지만 지쩍은 완전히 임전태세다. 아자미는 키노쿠니에게 센트럴 측에서 검토한 상세사항을 발표하도록 한다.
          * 최종시험인 6차 시험이 결행되는건 한 달 뒤. 레분 섬 남단에 특설회장을 설치하고 연대식극을 거행한다. 현재 진급시험을 받고 있는 학생들도 최종적으로는 여기에서 식극을 관전하게 된다.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결국 역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거리로 삼겠다는 악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회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이 십걸 자리를 전부 가져가는 심플한 결론. 그리고 대전에 참가할 인원은 딱히 규정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자미 측에서 먼저 [[사이바 죠이치로]]의 1대50 연대식극을 예로 들며 제안한다. 정말로 쿄쿠세이측에 가세하려는 인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도 좋다는 호기.
          [[도지마 긴]]은 승부에 걸린 배팅을 다시금 강조한다. 쿄쿠세이 측이 승리한다면 그대로 아자미 정권은 퇴진, 아자미가 주창하던 야망도 그대로 백지화한다. 대로 센트럴이 승리하면 역자 전원이 퇴학, 죠이치로는 아자미의 부하가 되어 야망에 협조한다.
          * 아자미는 그것도 잊지 않고 있다며 패배한 역자들에게서 빼앗은 학생수첩을 꺼낸다. 패배한 그들에게 필요없는 물건이라 회수했다면서 십걸들에게 각자 쓰러뜨린 학생의 수첩을 나눠준다.
          * 만족스럽게 상황을 지켜보던 아자미는 들떠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며 말한다. 에리나는 당연히 센트럴 측의 선수라는 것. 소마가 발하자 오히려 이쪽이 할 말이라고 받아친다. 원래 십걸의 10석인 그녀는 센트럴의 일원이니 여기서 싸우는게 당연하지 않냐는 논리다.
         >'''납하겠습니다.'''
  • 육성재 . . . . 10회 일치
         === 음 ===
          * [[주간 아이돌]](140226)을 통해 아버지가 도체 기업의 CEO인 것이 밝혀졌다.
          * 고등학교 시절 워너원의 [[옹성우]]와 같은 이었다고 한다.추가로 [[VICTON]]의 [[허찬]]도 같은 이었다.[* 옹성우와 허찬은 3년 동안 같은이었다.]온앤오프의 [[와이엇]]도 같은 학교 실용무용과 출신이다.
          * 열애설 기사가 난 직후 있었던 단체 스케줄에서 열애설에 대해 언급했다. 오디오가 물리는 것에 단련된 팬들은 그 정신없었던 7명의 멘트 중에서 육성재의 '오늘 실검 많이 오르네' 라는 말을 캐치해 냈고, 종이컵 바닥에 적혀 있던 [[병먹금|'먹금']] 이라는 단어를 보고 '역시 육잘또', '여러분 먹금합시다.' 등의 응을 보였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설날 아육대]]에서 [[주몽|육몽]] 코스프레(…)를 선보이며 혼성 양궁 경기에 출전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서은광|같은 팀 리더]]는 [[켄타우로스|말]] 코스프레를 했다~~ ~~타 팬들은 역시 [[BTOB|비투비]]라며 칭찬을, 멜로디들은 역시 내 새끼들(....)이라는 응을 보였다~~
         20대 초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비교적 감성이 올드한 편이다. 대기실 비하인드 영상, 직접 촬영하여 트위터에 업로드한 영상 등에서 자신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었을 시기인 90년대 중후~2000년대 초의 곡들을 즐겨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각종 비하인드 영상에서 부른 곡들은 '제비([[김건모]])', '너를 보내고([[윤도현]])', '열정([[스티브 유|유승준]])', '가위(유승준)', '마지막 콘서트([[이승철]])' 등이 있다. ~~선곡만 보면 1995년생이 아니라 95학번이래도 믿을 수준~~ [[https://youtu.be/yKsTJNQIjnI|#]] (0:00~0:21)~~누나팬들은 이렇게라도 세대 차이를 덜 느껴서 좋다고 한다~~
  • 은혼/613화 . . . . 10회 일치
          * 이러한 상황에서 칭코가 작아 설움 당하던 신하 단이 란을 일으키고 상황은 꼬이게 된다.
          * 대 파벌은 하타 황태자의 형 바루카스 황태자를 옹립하려 한다. 그들의 대표인 단이란 신하가 네스의 발언을 비웃으며 "그런건 왕에 어울리는 소질이 아니다."라고 디스한다. 군략도 정치도 능한데다 장남이기까지 한 바루카스야 말로 후계자에 적합하다고 강변한다. 그 말대로지만 정작 오우고쿠왕은 바루카스에게 승계한다고 명언하지 않았다. 단은 이 점을 따지는데 네스가 그를 비웃는다. 바루카스의 재능이야 네스도 인정하는 바지만, 그에겐 단 한 가지 결점이 있다.
          네스는 이런 풍습을 무시하는 거냐고 압박하자 단은 바루카스도 "발기"하면 나름 훌륭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런 와중에도 왕은 "발기"라는 표현에만 신경스며 그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 경고한다. 네스는 하타 쪽이야 말로 "봘기"하면 더욱 대단하다고 박한다. 역시 왕은 "봘기도 안 돼"라고 제지할 뿐 다른 부분엔 개입하지 않는다.
          단은 문화를 무시할 수가 없으니 그 자체에는 박을 못하지만 칭코가 큰 것만으론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안보론으로 맞선다. 그러나 그 자신이 열폭해서인지 "칭코따위가 다 뭐냐"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네스는 "지금 폐하도 칭코 큰 것만으로 왕위에 오르셨는데 무시하냐"고 따진다.--예송논쟁이네-- 네스는 은근슬쩍 "칭코 큰거 빼면 물만 남는 양"이란 폭언도 끼워넣는데 단은 어떻게든 박하기 위해 달리 좋은 점을 찾아내려 하지만 택시를 잘 잡는거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네스는 그 조차도 칭코가 큰 덕이라며 논쟁의 승기를 잡아간다.
          * 잠자코 있던 영감, 네스가 "당신 지시"라고 말하다 "멸종돼도 좋은 종이란 보호해야 하는 종도 구분 못하냐"고 욕을 먹는다. 빈정이 상한 네스는 알겠다며 "거기 흰 돼지랑 상위비비를 함께 없애라"며 답지 않게 하드보일드한 자세로 명령한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며 한순간 생긴 권력에 취한다. 그는 지금 황태자의 목숨을 쥐고 있는건 자신이라고 과시한다. 그러면서 "대답 안 하냐 돼지"라고 갈구고 하타 황태자가 "꿀꿀"이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대답하자 "저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돼지를 연기하며 자신과 상위비비를 쏘라는 의미"라고 갖다 붙인다. 이 양 어떻게든 하타 황태자를 치워버릴 생각이다.
          무전으로만 상황을 듣던 사카모토는 총성을 듣고 다급히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지금 가츠라 측은 대답할 겨를이 없다. 함께 듣던 자작 제독은 심상치 않은 눈빛을 빛낸다. 완전히 꼬인 것 같았던 상황이 한 번 더 꼬인다. 단은 바루카스 황태자가 추방 당했을 때부터 역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타 황태자가 인질로 잡힌 건 그야말로 호기. 단은 바보같이 칭코만 큰 녀석들을 구축하고 "작은 칭코국"을 세우겠다고 선언한다. 하타나 네스 같은 무리에게 나라를 맡기면 당연히 망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지구와 동맹을 해버리면 나라는 커녕 행성이 망할 기세. 그는 시간에 맞춰 역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만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라며 쓸데없이 큰 칭코와 함께 사라지라 말한다.
         소라치가 예송논쟁을 아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에피소드. 전부의 병림픽은 마치 예송논쟁을 은혼버전으로 만든 듯하다.
  • 이갑성 . . . . 10회 일치
         === 생애 초 ===
         [[3월 1일]]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벌어지자 학생시위운동 및 전단살포 등 중책을 맡아 수행하던 중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대표 33인들은 태화관(泰華館)에 모였고 이갑성으로 하여금 조선총독부에 미리 의견서를 제출한 뒤, 회합 장소를 떠나지 않고 조용히 포박당하기로 약속한다. [[3월 1일]] 오후 이갑성은 조선총독부에 [[민족대표 33인]]의 의견서를 제출하러 갔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 회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석방 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에 가입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재단 이사, 세브란스의약(醫藥) 지배인이 되었다. [[1925년]] [[2월]] 이창제(李昶齊), 현신덕(玄信德), 조철호(趙喆鎬), 배집(裵執), 변성옥(邊成玉) 외 5인과 함께 [[공산주의]] 계열의 [[기독교 운동]]에 저항하기 위해 [[시사구락부]](時事俱樂部)를 조직하여 사회주의자들의 기독교 주장에 저항하였다.<ref>김준엽, 김창순 공저,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9)</ref>
         ==== 친일 의혹과 론 ====
         이갑성은 광복 후에는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945년]] [[10월]] 탁운동을 위해 결성된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에 참여하고 [[독립촉성국민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45년]] [[10월 5일]] 조선 각지에 파벌다툼이 심한 점을 지적, 이를 개탄하며 정당통일기성회를 결성하였다. [[12월 14일]] 김여식(金麗植), [[권동진]] 등과 함께 신한민족당(新韓民族黨)을 창당하고 [[권동진]]을 당수로 추대했다.
         ===== 이승만 정부 초 =====
         === 생애 후 ===
         3·1 운동 당시 [[김창준 (1890년)|김창준]], [[박희도 (1889년)|박희도]]와 함께 30대 초으로 가장 연소한 편이었으며, 93세까지 장수함으로써 33인 중 가장 늦게까지 생존했다. 광복 이후 [[독립유공자]] 대표로 매년 3·1절 행사와 광복절 행사에 초청되었다. [[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낸 정치외교학자 [[이용희 (1917년)|이용희]]가 이갑성의 아들이다.
         [[분류:1889년 태어남]][[분류:1981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국의 약학자]][[분류:한국의 약사]][[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종교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의학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약사]][[분류:대한민국의 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민족대표 33인]][[분류:대한민국 임시 정부]][[분류:한국의 군정기]]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10회 일치
          * , 에스카노르, 멀린은 아직도 서먹해하는 멜리오다스를 위로한다. 멜리오다스는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리는 듯 한데.
          * 리오네스 왕국의 민가. 아버지가 늦잠자는 아들을 깨우고 있다. 어느 가정이나 비슷할 법한 아침풍경. 부지런한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겨우 아침잠을 쫓으며 세수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칠칠맞고 여자한테 인기도 없다고 디스하는데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 아들은 바로 성기사 하우저. 평민출신 답게 서민적인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우저는 출근하기 전에 앞으로 수도 복구 때문에 늦게 올 거라고 말하는데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런거보다 왕궁에서 사자가 와서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고 전한 일을 말한다. 하우저는 "마신족 놈들 때문에 나라가 붕괴했는데 그런거라니"하고 발하는데 아버지는 하우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출근이나 하라고 내보낸다.
          * 성에서 목욕을 즐기는 멀린. 에스카노르는 하인처럼 목욕시중을 들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마에 열중하는 중. 멀린도 대만족. 멀린은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왕국이 원상복구된 일에 대해 질문을 들은 모양인데 "원래대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녀가 복원한건 어디까지나 "건물"이라는 것. 사실 애초에 정도는 멀린이 부순 셈이니 고쳐주는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물이 돌아왔다고 해서 마신족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까지 낫는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계금에 걸린 성기사들와 백성들이 카멜롯으로 달아났는데 그 말은 카멜롯이 잔존한 십계의 근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 말하는 멀린. 그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일단 일곱개의 대죄임에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멜리오다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아직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지 못했다고 짐작한다. 그때 잠자코 있던 이 멜리오다스의 목을 조른다. 어젯밤에 축배를 들 때 멜리오다스가 없어 흥이 나지 않았다는 것.--흥이 깨졌으니 단장이 책임져-- 은 그런 식으로 서먹함을 풀려고 한다. 멜리오다스에게 "어제는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무슨 표정으로 말을 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멜리오다스의 뭔가가 바뀐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멜리오다스는 이 잘못한게 아니라고 하는데.
          * 은 멜리오다스가 풀어지는 듯싶자 "그렇지. 단장은 언제나 그 멍청한 얼굴인데 괜히 걱정했다"고 드립을 치다 얻어맞고 벽에 처박힌다. 이 피떡이 되자 에스카노르는 갑자기 자작시를 읊기 시작한다. 멜리오다스를 "긍지 높은 분노"라 칭하는 그 시는 어떤 저주가 걸리더라도 각자의 마음을 침범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에스카노르는 주제넘게 단장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건 아니라면서도 같이 저주에 걸린 입장에서 그 괴로움만은 이해할 수 있다고 위로한다. 그런데 멜리오다스는 그 시에 "8점"을 붙이는데 몇 번 만점인지는 언급을 피한다. 게다가 시를 읊고 나서 주절주절 설명을 하고 있다고 까기도 하는데, 에스카노르는 "아름다운 장미란 나에겐 멀린씨고 단장에겐 엘리자베스"라고 쓸데없는 설명을 더 덧붙인다.
          * 아무튼 멜리오다스는 과 에스카노르의 노력으로 다시 예전처럼 웃음 짓는다. 엘리자베스도 한시름 덜은 듯 살짝 눈물을 보인다.
  • 임채무 . . . . 10회 일치
         원래는 해병대 제대 후[* 기수는 228기였다.] 70년대 중 데뷔하여 70년대 후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주로 MBC)에서 선 굵은 배역을 자주 맡은 연기파 배우로 중장년층에게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까지 TV 드라마계의 남자배우 투톱이던 [[노주현]][* 60년대 후까지는 미남 주인공 역할은 노주현 원탑이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갔다 올때쯤 한진희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 임채무까지 등장하며 원톱의 자리는 내려놓게 된다.], [[한진희]]의 미남역할 주인공 독점을 사실상 임채무가 막은 셈일 정도였고, 본인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영역을 늘렸었다.[* 물론 그들보다 선배였던 노주현은 "아무리 한진희, 임채무 걔네가 잘 나갔어도 나한테는 안 됐지"라고 방송에서 너스레를 떤 적도 있으나, 그도 사실 그들의 커리어를 인정해온 편이다.] 맡은 역할 이미지가 젠틀맨 이미지로 겹치면서도 각자 조금은 다른데, 노주현은 잘생기고 부드러워보이는 신사지만 때로 터프하고 호쾌한 이미지, 한진희는 큰키의 훤칠하고 부드러운 멋쟁이 꽃미남 이미지, 임채무는 중후하고 우수에 찬 남성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셋 다 외모도 시대상과 어울리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애정 연기와 잘 어울려, 여성 시청자에게 엄청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미녀스타들이나 인기 배우들과 연기했으나, 그들보다 임채무의 인기가 더 많았다. 꽃미남과는 아니지만 멜로 드라마에서의 중후한 표정 및 목소리 연기, 그로 인한 이미지 때문에 20대 후부터 40대 후까지 폭넓은 여성시청자의 인기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80년대의 레전드급 임팩트 배우 중 하나'''. 그래서 70년대 후부터 80년대까지는 드라마쪽은 노-한-임 트로이카 남주시대라 봐도 될 정도.[* 물론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던 노주현, 한진희에 비하면 당대에도 커리어가 살짝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최소한 당대 다른 남자배우들은 압도할만한 인기와 경력을 쌓았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채시라와 멜로 연기를 한 작품도 있다. 당시 가십지에서 키스신을 어떻게 찍었는지 자세히 써낸 기사도 있을정도. 입술에 테이프를 붙이고 찍었다고..최근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듯. ~~그래야 놀이공원 빚을 갚지요~~
         노래도 잘 해서 2016년 6월 14일 현재 무려 13장의 음을 발매했다고 한다. 임채무가 부른 MBC 주말연속극 '사랑과 진실'의 주제곡은 1984년 발표된 곡임에도 아직도 부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2015년 천생 연분이라는 노래를 발표했었다.
         == 음 ==
         || 연도 || 음 ||
  • 주현미 . . . . 10회 일치
         ||<tablealign=center><#FFD7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D700><-5> [[골든디스크 시상식|[[파일:골든디스크 시상식_로고.png|width=50]]]][br]'''{{{#ffffff 음 대상}}}''' ||
         대중가수로서 처음 알려진 것은 [[1981년]] 제 2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주현미가 소속된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음악그룹 '''인삼뿌리 2기'''가 장려상을 수상하면서부터이다. 사실 그 이전 중학교 2학년때 이미 첫음을 발매한 적 있다. 이때 첫 음은 작곡가 정종택이 맡았었는데, 주현미가 성인이 되어 발매한 앨범도 정종택이 맡았다.
         솔로 데뷔 전인 [[1984년]] 무렵에 김준규랑 같이 부른 메들리 앨범 '쌍쌍파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같이 듀엣으로 녹음한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녹음한 걸 편집에서 합친 앨범이지만 편집한 둘의 호흡이 워낙에 대단했기에 80년대 중 돌풍을 일으켰고, 이때의 흥행을 발판으로 솔로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 기세를 타 [[1985년]] 1집 앨범 ≪비내리는 [[영동대교|영동교]]≫로 데뷔하여 단번에 트로트 탑 그룹에 올랐으며, 그 후에도 연이은 성공으로 히트곡이 상당히 많다. [[1988년]]에는 '신사동 그 사람'의 대 히트에 힘입어 MBC, KBS 연말 가요대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9년]]에도 '짝사랑'으로 MBC 연말 가요 대상을 2년 연속 제패하기도 했다.
         트로트계에서는 이미 넘어설 수 없는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곡의 스타일이나 가창법도 기존 가수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만큼 음판매, 히트곡의 수, 실력, 자기 관리 면에서 흠 잡을 곳이 없다. 음색이 얇으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워 ~~음색계의 깡패보스~~ 애절하거나 높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기억하기 쉽지만 성량이 굉장히 풍부해 라이브를 들어 본 사람은 놀랄 정도. 여기에 특유의 고음 뿐 아니라 중저음이 굉장히 탄탄하고 매력있어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보컬리스트이다.
         특히 1980년대 중은 이미 젊은이들에게 트로트는 어른들의 노래가 되었고 흘러가는 장르가 되었는데도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역대급 보컬리스트를 논할 때 발라드나 알앤비 위주의, 소위 디바 스타일 가수들보다 비교적 언급이 적을 수도 있었는데 이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한 전적인 낮은 시선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현미는 락밴드 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했으며 클래식, 락, 알앤비,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저 트로트의 여왕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넘사벽급의 실력과 표현력을 가진 가수.'''
          * 1980년대 초 기준으로 '''1억원'''의 빚이 있었다. 승용차가 100만원하던 시대에 그 정도의 빚이 있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었지만 워낙 인기있는 가수이다 보니 비교적 빠르게 빚을 다 갚았다. 사실 1년에 364일을 공연했다고 할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로 돈을 벌었으니 그 정도의 빚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 음 활동 ==
          * 2011년 주현미의 러브레터 프로젝트 음 <내일 가면 안되나요/ 여백>
  • 진격의 거인/91화 . . . . 10회 일치
          * 아군 참호로 돌아온 형제. 소년의 이름은 "파르코", 형은 "콜트"였다. 참호엔 비슷한 또래의 소년소녀들이 파르코의 생환을 긴다. 파르코는 뇌진탕으로 일시적인 기억상실 증세를 보이고 있다. 친구들은 기억하지만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 조피아는 파르코 머리에 난 상처를 살펴보며 "해군이 어떻게든 해주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러자 붕대를 감아두던 "우도"란 안경잽이 소년이 흥분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마레의 해군은 양적으론 대단했던 모양이지만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4년이나 걸렸다. 전쟁이 총 4년 걸렸으니 아주 최근에야 제해권을 잡은 모양이다. 게다가 그렇게 많았던 전함을 이상이나 잃었다. 그런 주제에 육군을 상대로는 "육군이니까 요새 하나 정도는 따내봐라"는 아니꼬운 소리를 해댔나 보다. 우도는 그런 말을 하면서 격앙한 나머지 파르코의 머리를 졸라 터뜨릴 뻔한다.
          가비는 누가 선택될지 기대된다는 얼굴이지만, 매우 자신감에 차있다. 모든 것이 기억난 파르코. 그는 가비의 표정을 보고 "너 말고는 비교대상이 없다는 말투"라며 장난을 건다. 그러자 가비는 시시할 정도로 깨끗하게 "그야 달리 없잖아"라고 인정한다. 우도와 조피아도 현재 성적상으론 그렇다고 아무런 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비는 그들의 말에 박한다.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면서.
          * 그때 관측병이 "놈"이 나타났다고 알린다. 그것은 "장갑열차"다. 거기에 달려있는 열차포는 "대거인포"라 불리는 연합의 신병기다. 장갑열차에 총 4문이 장착돼있다. 100mm짜리 철갑포로 보통 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홉 거인"이라 해도 한 방이면 처리할 수 있는 괴물. 마가트가 우려한 것이 저것이었다. 콜트는 턱과 차력은 재빠른 거인이므로 목덜미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마가트는 도박의 여지를 두고 싶지 않다. 만약 당하면 어쩔거냐는 문에, 콜트는 거인의 힘과 전사를 잃고 거인의 힘을 되찾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가트 대장은 거기에 9년 전 있었던 "시조탈환 계획"의 처참한 실패를 덧붙인다. "여성형 거인" [[애니 레온하트]]와 "초대형 거인" [[베르톨트 후버]]를 잃은 실패 말이다. 이 전력의 상실이 지금의 전쟁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다. 마레의 군사력이 저하됐다고 본 주변국들과 분쟁으로 전쟁이 시작,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팔라디섬 공략은 한없이 뒤로 밀렸다.
          거인의 힘은 절대적이다. 지금껏 마레를 초대국으로 만들어준 것도 거인의 힘이었다. 그러니 이 이상 상실할 경우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 마가트 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전사대"에 돌격준비를 지시한다. 콜트는 발한다. 하지만 마가트는 코웃음을 친다.
          잔인한 이야기였지만 지휘관으로서 박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콜트는 미련이 남는다. 마가트는 그런 콜트에게 '''[[지크 예거|짐승 거인]]을 이어받는 자'''라면, 위에 서는 자로서 각오를 다지라고 핀잔을 준다. 콜트는 이 작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상황은 고스란히 전사후보생들에게도 보여진다.
          참호에 정적이 감돈다. 마가트 대장은 "너흰 훈련시키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아냐"며 각하한다. 그래도 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처럼 유능하고 예쁜 전사는 두 번 다시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이 성공하면 800명의 전사대를 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마가트는 콜트에게 한 것처럼 "실패하면?"이라고 문해본다. 가비는 콜트와 달리 거기에 대한 답도 가지고 있었다.
          >드시 제가 갑옷을 계승하기에 어울리는 전사라는걸 증명하고 오겠습니다.
          이렇게 민간인이나 투항자로 위장한 "편의병" 운용은 국제법 위이지만, 마가트는 그것도 적이 살아있을 때 얘기라며 나름대로 도박을 건다. 파르코는 대체 가비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진격의 거인/98화 . . . . 10회 일치
          * 잠시 뒤 빌리 타이버가 나타나는데, 과연 타이버가의 사람답게 전세계의 요인들과 친분이 대단하다. 심지어 마레의 대사가 파티를 축하하는 말을 해도 냉담한 기류만이 흐르다가, 빌리가 나서서 축사를 하자 열광적인 응이 이어진다. 그는 세계인들이 엘디아인의 근절을 바라는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자신이 한 가지 답을 냈고 내일 수용구에서 열릴 축제에서 그걸 공개하겠다고 선언하고 축배를 들어올린다.
          예거 박사의 입을 통해서 그의 숙부뻘 되는 인물이 엘디아 복권파의 간부였고 그 바람에 일족 전체가 연좌제로 고생한 사실이 밝혀진다. 정황으로 보면 그 숙부가 그리샤 예거를 가담시킨 "그라이스"란 인물. 콜트가 짐승의 거인을 계승하게 된 덕에 겨우 사정이 나아졌는데 대로 현 짐승의 거인 계승자인 지크의 가족과는 다소 불편한 관계가 된 모양이다.
          파르코가 가비를 꺾는 걸 보고 기뻐하지만 "그래도 가비가 유력한건 변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썰렁한 분위기를 만든다. 포르코가 "당국의 기준은 애매하다"며 꼭 가비가 유리한 것도 아니란 늬앙스로 말하자 발하면서 자기가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데 파르코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말해 지크에게 한 소리 듣는다. 하지만 지크는 그가 형이라서 동생을 생각해 한 말이라는걸 이해해준다. 이때 대화를 들은 포르코는 자기 때 일이 떠오른 건지 생각에 잠기는데.
          파르코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파르코가 "널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려 한다"고 사실상 고백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걸로 나를 위한다는 거냐"고 응하며 전혀 의미를 읽지 못한다. 이후 우도, 조피아와 수용구 안에서 준비 중인 무대 건설 현장을 보는데, 가비는 타이버가의 선전포고 선언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도나 조피아가 회의적인 의견을 어필하자 "그럴 수록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인다. 전야제에선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우도가 히즐국 부인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식겁한다. 가비가 그 부인을 보고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다음날 축제에선 완전 별천지를 본 것처럼 즐거워한다. 요즘엔 "처음 있는 일" 뿐이라며, 앞으론 뭔가가 변할 것 같다는 말을 라이너에게 하고 동감을 받는다.
          파르코가 가비를 처음으로 이기자 조피아와 함께 기뻐해준다. 수용구에서 축제 준비와 무대 건설이 한창인 걸 보게 되는데, 가비가 희망적인 발언을 하자 일이 쉽게 풀릴리가 없다고 회의적으로 응한다. 이때 원래는 국외의 엘디아인 수용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외국의 엘디아인 감정은 더 심한데다 수용구에서의 처우도 열악하다고 한다. 그렇게 악감정이 심한 세계인들이 빌리 타이버의 연설 한 번으로 협조해줄리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축제 전야에 파티가 시작되자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큰 실수를 한다. 주변에서 "엘디아인이 급사다"고 험담을 하자 거기에 신경쓰자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에게 흘리는데, 그 부인이 뜻밖에 너그럽게 처리해준다. 부인은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을 문제삼지 않는데가 그가 이 일로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감싸주기까지 한다. 조금 후에 가비가 "그녀는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다음날엔 가비 등과 함께 즐겁게 축제를 즐긴다.
          에피소드 초에 라이너가 참모들에게 의견을 피력하는 자리에 동석. 하지만 진행 중인 이야기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라이너가 조금 이상하게 여길 정도. 그의
          축제 전야제에 나타났을 땐 전세계 요인들과 격의없이 안부를 주고 받는 친분을 과시한다. 마레국의 대사도 매우 냉담한 응을 받는데, 그가 연사로 나서자 열화와 같은 성원이 쏟아진다. 그는 세계인이 가진 엘디아인의 근절을 바라는 마음을 이해한다면서 내일 수용구 연설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는 말로 열광적인 응을 끌어낸다. 축배를 들면서 "위대한 극작가와 역사의 목격자에게"라고 축사하는데 의미심장한 문장.
          그리샤 예거의 부친이자 지크 예거의 할아버지인 그 예거 박사. 병원을 방문했다가 크루거에게 동석하기를 청한다. 사실 그가 파르코에게 수상한 심부름을 시키는 것과 실제론 병이 없는걸 눈치채고 경고하러 왔던 것. 그라이스가의 속사정이나 콜트가 짐승거인을 계승하게 된 이후 예거가 사람을 불편하게 대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다. 자신이 대화하는 크루거가 실제론 손자라는걸 눈치채진 못한 듯 하다. 처음에는 자신을 군의이며 가끔 이 병원을 방문한다고 밝혔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크루거에게 "슬슬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경고하는데, 크루거가 "당신은 가족에게 후회할 만한 일을 했는가"라고 문하자 상태가 안 좋아진다. 그리샤가 여동생과 벽을 넘어간 날, 딸이 죽은 날로부터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토로하고 그리샤 가족의 운명도 다 자신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기어이 비명을 지르며 정신이 무너지는데, 직후에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병실로 데려가는걸 보면 오래 전부터 입원 상태였던 듯 하다.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인걸 아는 크루거는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 츠라츠라 와라지 . . . . 10회 일치
         에도 시대의 제도인 '[[산킨고타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당시 일적인 '다이묘 행렬'의 상세한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츠라츠라 와라지'란 말은 다이묘 행렬 수행원들이 짚신 신고 걷는 모습을 '짚신(와라지) 행렬(츠라리츠라리)'이라고 묘사한 것.
          * 쿠마다 이즈미 : 수행 가로. 하루타카의 가신으로 쿠마다 종가인 '아마키 쿠마다 가'(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가문)의 자손. 기본적으로 학식이 깊고 영민하지만 17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로 불과 4개월 전에 가로가 되어 미숙한 면이 있으며 쿠마다 종가의 긍지와 체면을 매우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가문의 기풍 때문에 매사에 과민한 응을 보이곤 한다. 꽃꽂이가 취미.
          * 큐사쿠 : 에도성 오니와(밀정)의 일원으로 본명은 '쿠라치 큐타로'. 과거 에도에서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혼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하루타카가 홀로 소방용 복장을 하고 진화를 지휘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막부의 명을 받아 인부로 위장하고 하루타카의 다이묘 행렬에 잠입해 일행을 염탐한다. 말을 잘 다룬다.
          * 이와타 토메지로 : 오오고쇼가시라. 루스이(留守い. 참근교대 때문에 영주가 비운 거성을 관리하거나, 또는 대로 에도에 있는 영주의 저택을 관리하는 직책) 출신으로, 온화하고 여려보이지만 배후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며 유능하게 일처리를 해낸다. 다만 야마와키와는 달리 하루타카의 속내까지 읽어내는 정도는 아니다.
          * 쿠라치 마사노스케 : 큐사쿠(쿠라치 큐타로)의 부친으로 '고큐소쿠오니와노모노시하이'(御休息御庭之者支配. 오니와슈의 우두머리 직책으로 '고큐소쿠오니와노모노'는 오니와의 정식 명칭). 큐사쿠를 하루타카의 다이묘 행렬을 염탐할 밀정으로 추천했다. 정치적인 판단을 일절 배제하고 오로지 밀정의 본연 임무를 중시하는 인물.
          * 관백 : 후지와라 씨의 혈통을 지닌 다섯 가문 중 하나인 이치죠 가문 출신 공가(公家. 귀족). 형제가 없어서, 종제(從弟)인 이즈미(관백의 모친이 이즈미의 백모)가 수행 가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고 싶어하여 거짓 칭병(稱病)을 하였다. 조정과도 사이가 소원한 사다노부에게 감을 갖고 있으며, 대로 하루타카의 인품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 나카야마 : 조정의 의주(議奏. 칙명 출납을 담당하는 직책)로, 당시 코카쿠 덴노(전대 덴노의 양자가 되어 즉위했다)의 부친에게 상황(上皇)의 존호를 내리도록 막부에 강하게 요구하여 이를 대하는 사다노부와 대립하고 있다.
          * 협본진 찬모 : 고오리야마 본진(本陳. 에도 시대의 숙박 시설 중 다이묘와 그 수행원들이 이용하던 숙사의 통칭)의 찬모(찬을 비롯한 음식을 만드는 여자). 누명을 쓰고 탈번(脫藩. 번을 이탈하여 낭인이 되는 것. 당시 무단으로 탈번하는 것은 중죄였다)한 관리와 정을 통한 사이로,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관리가 숙사를 수배하러 온 선발대에게 들켜 처형당하자 쿠마다 가에 원망을 품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하루타카가 그녀 뱃속의 자식을 자신의 사생아인 것으로 꾸미고 이를 인정하는 듯한 연기를 하여 협본진에서 계속 일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원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하루타카의 배려에는 감사하게 된다.
  • 폐비 윤씨 . . . . 10회 일치
         [[1473년]]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의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廢妃)되어 사사되었다. 아들 [[연산군]] 즉위 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중종정]] 이후 삭탈되면서 죽을 당시의 폐서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남편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된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를 추숭시켰다. 그러나 [[중종 정]]이 일어난 후 왕후(王后)의 호는 삭탈되었다.
         == 생애 중 ==
         폐비(廢妃)된 이후 조정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원자의 생모이자 조강지처가 되는 윤씨를 다시 왕비(王妃)로 복위시켜야 된다는 상소와 시위가 끈임없이 복되었으며, 많은 조정대신들이 파직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
         여기서 윤씨를 복위시켜야 된다고 하여 유배를 갔거나 파직당한 대신들은 [[연산군]]이 즉위함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대로 윤씨 폐위에 앞장 섰거나 복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대신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 [[한치형]] [[윤필상]] 등이 있다.
         == 생애 후 ==
         당시 조정에서는 그녀가 폐비(廢妃)가 된 이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는 성하는 점, 세자의 생모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그녀를 살려 두고자 하였으나, [[귀인 엄씨|숙의 엄씨]]와 [[귀인 정씨 (성종)|귀인 정씨]] 등의 사주로 인해 [[궁녀]]들이 성종의 모후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성종에게 허위 보고를 하였다.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 정]]으로 [[조선 연산군|연산군]]이 폐위되어 [[조선 연산군|연산군]]이 그의 어머니 윤씨에게 올린 관작과 존호는 모두 삭탈되었고, 회릉 역시 회묘로 격하되었다.
         * [[중종 정]]
         그의 평가는 투기심과 질투심이 많은 여자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유교적 가치관에 기한 부녀자의 덕을 중시한 시어머니 [[인수대비]]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분방하고 사랑을 중시하였다고도 한다.<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091 네이버캐스트 인수대비]</ref>
  • 헌터X헌터/369화 . . . . 10회 일치
          * 크라피카는 엠퍼러 타임의 지속시간은 세 시간이며 한계를 넘으면 세 배의 동을 받는 걸로 추측하나 변수는 더 있을 듯하다. 마치 폭음같은 맥동이 전조 증상.
          * 13왕자 마라얌 측에선 헌터 협회 소속 "베레리인테", 세치 왕비 소속 "바리겐"이 파견. 바리겐 측은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왕비가 보기에도 크라피카의 안색이 좋지 않았나 보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살피며 정말 괜찮은 거냐고 확인했다. 거짓말도, 허세도 부릴 수 없었다. 크라피카는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대답한 뒤 그러니 자신이 신호를 주면 드시 돌핀에게 능력 해제를 지시하라고 당부했다. 거기에 수긍하고 메모를 살피던 왕비.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돌변했다.
          오이토 왕비의 비명이 세어나갔다. [[바비마이나]]를 포함해 경호원 전원이 달려온 걸 보면 꽤 먼 곳까지 들린게 틀림없었다. 바비마이나가 설명을 요구하자 크라피카는 "왕비님이 악몽을 꾸셨다"고 둘러댔다. 마침 그녀는 침대에 있었으니까. 바비마이나는 납득한 것같진 않았지만 트집을 잡을 구실도 없었다. 결국 경호원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왕비는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상황을 설명했다. 통풍구에 나타난 여자. 아마도 바퀴벌레는 먹혔을 것이다. 마침 왕비 곁의 돌핀이 "리틀아이가 강제 해제됐습니다"라고 알렸다. 오이토가 그 사실도 전달하자 크라피카는 이제 해제명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으로 엠퍼러 타임은 종료. 장장 12시간, 그 중 9시간이나 허비한 결과 아무 수확도 없는 헛수고를 했다. 왕비가 발견한 통풍구 속의 여자가 수확이라면 수확일까? 보안상 통풍구에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넨수, 체리드니히의 넨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크라피카는 갑자기 밀려드는 피로감에 몸이 휘청거렸다. 아무리 제약을 둔 넨이라도 몸에 아무런 동도 없을 순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라지만, 정말 성가신 능력이다.
          왕비는 왜냐고 되물었지만, 어느 정도 짐작했던 것 같다. 역시 마이너스가 더 큰 거냐고 물은 걸 보면. 하지만 크라피카가 사죄한 이유는 그런게 아니었다. 오히려 정대의 의미였다. 완전히 정대. "사후승인"이 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스틸체인은 강제적으로 넨능력을 부여하는 특수한 넨이다. 따라서 거기엔 일정한 부작용이 따르는데, 비능력자에게 사용했을 경우는 "잠자는 능력을 강제로 깨우는" 것이 된다. 오이토 왕비는 그 의미를 금방 깨달았다. 단지 확인만 구했을 뿐이다.
          13왕자 마라얌 측에선 "베레리인터"라는 헌터 협회 출신 경호병과 세치 왕비 소속 "바리겐"을 보냈다. 베레리인터는큰 키에 코가 큰 남자. 당연히 넨능력자였지만 "제대로 가르치는지 확인"을 위해서 파견됐다. 베레리인터는 개인적으로 세치 왕비를 좋아하는지 "꼼꼼히 확인해라"고 당부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귀엽다"고 히죽거리고 있다. 바리겐은 땅딸한 키에 몸집이 옆으로 불어난 남자다. 넨능력 습득을 명령 받았고 그걸 큰 기회로 여기고 있다. "웰게"라는 경호병을 라이벌시하는 듯 한데, 그를 재치고 선발된게 꽤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 11왕자 후게츠와 10왕자 카쵸는 나란히 시녀를 보냈다. 경호원이 아닌 시녀. 두 자매는 어떤 협의를 한 걸까? 어쨌든 두 왕자의 시녀들은 대조적이었다. 후게츠의 시녀 "이랄디아"와 "라디오라스"는 왜 전투원도 아닌 자신들이 여기에 있는지 영문을 몰라하고 있다. 면 카쵸의 시녀 "로베리"와 "유리"는 이유가 뭐든 그 카쵸 밑에서 몇 시간이나 떠나있을 수 있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다.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10회 일치
         남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현직업학교[* 현재는 아현산업정보학교로 [[개명]]했다. 특히 [[실용음악과]]가 매우 [[인지도]]가 높고 학생들의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비스트(아이돌)|비스트]]의 [[이기광]], [[양요섭]], [[K팝 스타]]의 백지웅, [[K팝 스타 시즌3]]의 [[남영주]], 허니핑거식스의 황예린 등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매우 많다.]라는 위탁고등학교 실용음악과를 다녔다.[* 직업학교라서 본교인 광문고등학교는 일주일에 한번 가는 식으로 가끔씩 방문하고, 나머지 일수에 아현직업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듣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거다. 사실 여느 [[인문계고등학교|인문계고]]의 직업들도 이런 식으로 운영이 된다.] [[휘성]], [[박효신]], [[UV]]의 [[뮤지]][* 그런데 서로 같은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잘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등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휘성은 당시 A4라는 그룹으로 이미 가수 활동을 하는 중이었고, 박효신은 워낙에 학교에서 유명하던 터라 어린 마음에 '나보다 잘하나'하는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엔 과와 이 달라서 그리 친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데뷔 후에 방송에서 자주 만나며 친해졌다고. 휘성의 말에 따르면 당시 환희는 대형 기획사([[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잘생긴데다 노래와 춤이 기가 막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학교에서는 보여주질 않아 더 전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현재의 터프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에 비해서는 말이 없고 조용한 ~~자발적 아싸~~ 모범생 타입이었다고.
         휘성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꽤나 친한지 매번 앨범의 땡스투에 서로의 이름을 적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일명 '저마다의 길' 이전 마지막 방송인 절친노트에 휘성이 중재자로 나오기로 했다. 2009년과 2010년엔 환희와 휘성의 활동 시기가 겹쳐 예능이나 행사에 동 게스트로 자주 나갔다. 2018년에 환희와 휘성은 엠넷 음악예능 더콜에서 그들의 20년 가까이 되는 우정을 지켜 볼수있던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박효신]]과는 환희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년 동안 사적으로 만난 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한다. 그래도 박효신 말로는 환희는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편한 사이라고.
         3집부터는 얇게 내던 목소리를 버리고[* 3집의 경우 창법 변화 과도기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일부 노래는 아직 얇은 목소리가 확연히 남아있는 걸 느낄 수가 있다. 그 예로, sea of love에서 들리는 굵은 목소리에 해 rain에서 환희의 목소리는 조금 얇은 편이다.] 4집 즈음부터 [[소몰이창법]]을 구사했다. 훗날 회상하길 Missing You 당시엔 [[소]]를 한 2만마리 정도 몰았다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8&aid=0000354994|#]] 기본적으로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 흉성을 가미하여 매우 깊이있는 중저음을 가진 보컬이 되었다. 음역폭이 매우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유의 기교와 애드립은 수준급. 이 때문인지 [[김구라]]의 [[가요광장]]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바이브레이션]] 부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KBS라디오 쿨FM 4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였다. 그 외 수상자들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14154|기사]]에서 확인]
         과거 굵직하게 내던 창법에서 현재 바뀐 노래 부르는 방식에 걸쳐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면 여린 가성에 약하다는 부분이다. 완전 하이 노트로 올려버리는 센 소리의 가성은 정말 잘 구사하는 면, 진성-가성을 오갈 때 한번씩 나오는 여린 가성의 경우 진성에 비해 음의 질이나 양 자체가 따라가질 못한다. 센 가성의 대표적인 예로는 남자답게 라이브 클라이막스 애드리브 부분을 들어보면 되고, 여린 가성의 경우는 내 사람 라이브를 들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신인 시절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출연하여 최후의 5인까지 살아남았으며 ~~유승준~~-이범수-박경림-김성수 다음으로 오래 생존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도 꽤 적응이 됐는지 임창정, 김조한이 게스트로 와 R&B 브라더스를 결성, 영원히 계속되는 애드립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가장 막내라(중간에 2001년을 맞아 스물한 살이 됐다) 다른 출연자들이 게임을 살살 해주는 등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준 것이 생존에 가장 크게 기인한 듯 하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초 광탈.
         [[화요비]]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촬영했었다. [[화요비]]에게 지어준 별명은 다름아닌 개똥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쁜 남자 기믹이었으나 ~~네티즌들이 무서웠는지~~ 점점 온순해졌다. 당시 "싸가지 없다"라거나 "차갑다"라는 식의 여론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는지 이후에 방송에서 예능이라 그런 점이 과장됐을 뿐, 실제로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쁜 남자는 아니라며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게다가 후에 나쁜남자 기믹을 좀 죽였더니 이번엔 전보다 재미없다며 난리~~ 결국 금방 하차했다. 가장 빨리 하차한 커플 중 하나. 현재도 [[화요비]]와는 음악적 동료이자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 중이다. 화요비의 [[화요비/음 목록|앨범]] 인터뷰 당시, 앨범 공개전에 미리 노래도 들려줘서 환희의 조언도 받고, 다시 우결을 해도 환희와 다시 하고 싶다는 등을 언급했었다.
         데뷔 이전부터 습관성 어깨탈골을 겪고 있다. 예능 촬영하다가는 물론이고 콘서트 중에 춤추다가도 빠진 적이 있다. 예능에서 게임 중 빠졌을 때는 공교롭게도 다른 연예인이 같은 게임을 하다 부상을 당한 적이 있어 기사가 나는 등 해당 프로그램이 조금 욕을 먹었으나 본인은 "자주 그런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응을 보였다. 학창 시절에 야구부를 하고 싶었으나 탈골로 실격 당했다고 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멤버 물망에도 올랐었으나 같은 결과. 주변 사람들도 적응이 되어서 어깨가 빠지면 두어명이서 같이 힘 모아 끼워 넣는다고(...) 현역을 위해 재검을 받았으나 결국 공익판정을 받았다.
  • 황치열 . . . . 10회 일치
         * 경북 구미 지역 유명 댄스팀 스윙 출신으로 댄서로 활동하다 군복무를 대체하여 산업기능요원으로 공장에서 2년간 일을 하다가 2005년 9월 24일 부모님의 대를 무릅쓰고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
         * 2015년 3월 5일 케이블 방송 [[Mnet]]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2회에 자칭 '[[임재범]]이 인정한 보컬트레이너, 황치열'로 참가, '[[고해]]'를 불러 개성 강한 허스키한 보이스로 방청객과 시청자들을 매료시켜 큰 향을 일으킴. 이후 일 참가자에서 가수 '황치열'로 패널로서 동일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함.
         == 음 활동 ==
         === 정규 음 ===
         === 미니 음 ===
         === 싱글 음 ===
         === 기타 참여 음 ===
         * 2015년 8월 15일 -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고 야월 편) - 〈울고 넘는 박달재〉
         |2018년 1월11일 제32회 골든디스크 음부문
  • Victoria II/POP . . . . 9회 일치
          * Nationality(민족): 크게 주류 민족, 주류는 아니지만 받아들여지는 민족, 갈굼당하는 민족으로 나뉜다. 주류 민족가 아닌 이들은 민족주의 란을 일으켜 독립을 꾀할 수도 있다. 또한 "타국 영토에서 살고있는 우리 민족"은 위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 예시의 POP는 조선인이다.
          * Militancy(투쟁성): 해당 POP가 얼마나 빡쳐있는지의 정도. 화염으로 표시된다. 이게 높을 경우 란을 일으키거나 다른 나라로 탈출할 확률이 높아진다. 지지하는 운동이 무시당하거나, 주류 민족이 아니거나, 여당이 마음에 안 들거나, 어쨌건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증가한다. 또한 자국이 열강에서 탈락할 경우에도 쪽팔려서 증가한다.
          * Life Needs(생명 욕구):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것들. 물컵으로 표현된다.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하려 하는 욕구로, 만약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식도와 투쟁성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POP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대로 생명 욕구를 충족하고 거주 프로빈스의 생활등급이 30 이상이라면 어떻게든 애를 낳고 기르면서 산다. 그러니까 인구가 증가한다.
          * Rebel Faction(군 세력): 해당 POP가 지지하는 운동. 이들이 지지하는 운동은 참정권 운동에서 파쇼 란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예시의 POP는 정치 집회 자유화 운동을 지지한다.
         모든 욕구를 충족한 POP는 문제를 일으키려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남아나는 돈을 모으거나, 예금하거나, 국립 은행에 투자한다. 이런 이들 중 의식도가 높은 POP는 좀 더 상위 등급의 POP로 승진하기까지 한다. 면 오랜 기간 불만족한 POP들은 (실업자일 경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주나 국가로 이주하거나 직업을 바꾸게 된다.
          * 일상 욕구: 석탄, 유리, 종이, 담배, 차, 술, 일 의류, 가구
         만약 군인 POP가 란에 동참한다면 해당 POP에게 지원을 받던 연대들도 란에 동참하게된다.
  • 강동우 . . . . 9회 일치
         ||<-2><table align=center> '''한국시리즈 우승 지''' ||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조범현]]의 양아들이라는 욕을 대차게 먹으면서도 시즌 초 잠깐 동안은 꾸준히 기용되었지만 타율 1할대를 기록하였고, 부상당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커리어 로우 기록을 남기며 줄곧 2군 신세를 졌다.(...)
         '''한화의 암흑기 초 1번타자 자리에서 맹활약해줬던 최고령 1번타자'''
         2008 시즌 종료 후 [[신종길]]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009 시즌 붙박이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기용되면서 놀랍게도 맹활약을 펼쳤고, 1998년 이후 12년 만에 3할 타율과 준수한 출루율을 기록하였다. 또한 팀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보이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한화가 간만에 건진 수준급 1번 타자. 농담으로 [[FA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2009 시즌 종료 후 [[FA 제도|FA]]를 선언했고, [[한화 이글스]]와 1년 총액 3억 원(계약금 1억 5천+연봉 1억 5천)의 조건으로 재계약에 합의했다. 팬들은 짝 활약이 아니기를 바랐으나...
         스프링캠프에서 몸이 안 좋아 훈련을 제대로 못 했고 시즌 시작 시점에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간염으로 인해 하와이에서 1주일만에 귀국하여 대전시는 모 병원에서 잠시 입원 생활을 했다. 결국 체력부족으로 1할대를 넘나드는 극악의 타격과 심각하게 좁은 수비범위를 보여주며 [[FA로이드]] 부작용 의혹을 받다가 결국 2군에 내려갔다. 그러나 5월 초에 2군에서 복귀해서 타율을 2할 7푼대로 끌어올리는 등 준수한 성적을 냈다. 6월 27일 개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했고, 후기에는 1군과 2군을 왕복하였다.
         후기에 타율을 많이 끌어올린 덕분에 타율 0.288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 내 '''타자 고과 1위(!!)'''에 홈런 개수로 커리어 하이고, 타점도 순도높은 타점들이 상당히 많아 38살 나이임에도 차기 시즌에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한편 [[FA 제도|FA]] 대상자였지만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봉은 고작 5천만원이 올랐는데, 강동우의 생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인상액이 너무 적다는 인상이 짙다. 물론 노장선수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은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시기 한화 프런트진의 연봉 인상 정책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강동우는 물론이고 [[이대수]], [[박정진]] 등 A+급 활약을 보인 선수들의 연봉 인상폭이 똑같이 5천이었다. 이는 선수들의 동기부여 실패로 이어졌고, 2012년 한화가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는데 적지 않은 일조를 한다.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이었다. 은근히 1990년대 중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저니맨들이 많다. 그의 전임 1번타자였던 [[최익성]]과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 [[신동주(야구)|신동주]] 등.
         O형 수염 자국이 선명한, 살짝 [[마초]]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중년]]이다. 2014년 4월 19일까지 미혼(!!)이었다. 2011 시즌 중부터 굉장한 활약을 펼치던 때의 스포츠신문 인터뷰 중 '체력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내 주는 [[인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팬들은 '저런 건 친구가 아니라 와이프가 챙겨줘야 되는데...'라며 심히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우햄 장가 보내기'는 새 시즌 한화팬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류택현]]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미혼의 프로야구 현역 선수였다. 위의 사례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제는 노총각 코치(...). ~~삼성에서 뛰던 소싯적에 선배였던 [[양준혁]]을 그렇게 잘 따랐다더니 엉뚱하게 노총각 운명까지 따르는 걸까~~
  • 권희동 . . . . 9회 일치
         || '''응원가''' || ~~[[미션 임파서블]] 주제곡~~ [* 본인이 타격에 집중이 안된다고 응원가 변경을 요청했었으나 팬덤의 응이 워낙 좋았던지(...) 다시 부활했다.][* 동~동 동동 N~C 희동 동~동 동동 N~C 희동 권희동~권희동~안타!x2][*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저작권 문제]] 때문에 2017년 들어서 쓰지 않는다.] [br] ~~[[체리필터]]-Show Time~~[* 응원가 변경을 요청했을 때 당시의 바뀐 응원가. 가사는 이봐 친구 날 위해 싸워주리~ 권희동 안타~권희동 안타~화끈하게 다 날려버려~x2. 이 응원가는 만들고 조금 후에 바로 사라진 탓에 이 응원가를 모르고 응원가가 없어진 줄 알았다는 사람도 많다.] [br] [[Colonel Bogey March]][* NC! 권희동 날려라! NC 권희동 날려라! NC! 권희동 안타! 오오오오오오오오오][* 2017년 6월부터 사용, 잘 알다시피 [[에릭 테임즈|테임즈]] 응원가 재탕이다...] ||
         NC가영입함에 따라, 2014 시즌은 주로 백업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나성범 역시 중견수 이외 포지션의 수비는 미숙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택근, 전준우 등 예외적인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일적으로 중견수의 코너 외야수 전향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었다. 나성범도 이들처럼 외야수 전향 경력이 짧은 피지컬에 의존하는 중견수라는 점 또한 사실이긴 했지만...] 이종욱이나 김종호가 코너 외야로 갈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라... 이후 언론에서 나성범이 우익수로 전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김종호 이종욱 나성범으로 이어지는 외야 라인에서 백업으로 뛸 가능성이 커졌다. 2014시즌에 선수 본인의 분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2014년 초에는 백업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의 어깨 부상과 부진으로 5월달부터 좌익수 주전으로 출장하였다. 김종호가 돌아온 뒤에는 좌투수 선발 시 주전 출장중.
         이번시즌에는 한화, 정확히는 대전구장 원정에서 유별나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전구장 타율은 4할대 후에 달하며, 홈구장이라 훨씬 많은 경기를 치르는 마산구장보다도 더 많은 타점을 기록했다. 덕분에 [[한화 이글스 갤러리]] 등지에선 올시즌 가장 짜증나는 선수로 자주 거론된다. 한화와의 경기가 아닌 다른경기에서 삽이라도 푸면 더더욱(...).
         4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 1안타 2삼진(!!) 을 기록했다 !!! 솔로홈런을 친 LG의 4번타자 [[루이스 히메네스]]에 해 [[김경문]] 감독의 완벽한 선수기용 실패가 되어버릴 뻔 했지만 다행히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안타를 뽑아내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10월 22일 플레이오프 2차전 7번타자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의 성적으로 경기중 [[김준완]]과 교체됐다. 22일 기준 타율은 1할4푼3리. 타격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2경기 연속 선발 기용한 [[김경문]] 감독의 예상과 달리 최악의 부진을 계속해서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당일 기아와의 경기 짝 활약 이후로 계속 기용되어 모든 NC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근데 이건 팀 타선이 다 부진했던 상황이라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허리 부상의 여파로 인해 시즌 중까지 최악의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부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후기부터는 펄펄 날기 시작했고, 9월부터는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김성욱]]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생긴 중견수 공백까지 준수하게 메워주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343타수 97안타 8홈런 57타점 타출장 .283/.352/.414.
         루키 시즌(2013년 시즌)때는 타율과 출루율은 심각하게 낮았지만 장타력은 여전히 좋았던 타자였다. 1군 데뷔 시즌 맞이한 397타석에서 '''15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을 정도로 힘이 있는 선수. 특히 2사 후 타점이 [[http://sports.donga.com/3/all/20130913/57652988/1|많고]], 홈런 상당수가 2점차 이내의 접전에서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599691.html|나오는]] 등, 타점의 영양가가 높아 [[공갈포]] 논란이 거의 없다. 이런 장점을 갖고 있기에 2013 시즌은 뎁스가 얇은 신생 팀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즌 내내 주전으로 뛰었었다.[* 사실 2013년의 타격이 공갈성이 있긴 했지만 [[BABIP]]이 0.214에 불과할 정도로 운도 따라주지 않던 시즌이었다. 이는 압도적인 리그 꼴지의 기록. 그 이후에는 3할 초중 대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동아에서는 1할 타율을 가지고 있던 당시 공포의 1할 타자, 숫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32146|타자로 소개했다.]] 힘있는 타자는 상당히 귀하고 귀하기 때문. 2013 시즌에는 팀의 뎁스가 워냑 얇았고, 일발 장타력이 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낮은 타율과 출루율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출장 기회를 부여받았다.
  • 기동전사 건담 . . . . 9회 일치
         당시 만연했던 '로봇 프로레슬링'[* 매 화마다 특정 메카와 1대 1, 혹은 1대 다수로 일회성 대결을 펼치는 방식. '마징가 Z' 등을 떠올려보면 쉽다.] 플룻에서 벗어나 전쟁 서사적인 면을 다룬 스토리로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마니아 층에게 어필하여 초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인기를 끌어모아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로봇물에서 이른바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이라는 구분법이 생겨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 21세기 시각에서 돌이켜 보면 여전히 옛날 로봇애니의 요소들도 많이 담고 있기도 한 '과도기적 작품'이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21세기 작품들이 '옛날 로봇애니 요소'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유행은 돌고 돈다)~~]
         전적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태동된 우주개발 붐 문화('아폴로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작품[* 아폴로 붐 당시 우주개발에 대한 열기는 경제적인 문제로 본격적인 우주개발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현대와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이다. 또한 당시 인기를 끌었던 SF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다. 소년병들이 다수인 집단이 지구와 우주 각지를 떠도는 부분은 '15소년 표류기'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마징가Z가 이미 10가지 이상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고, 콤바트라 V 같은 것은 수십종류 이상으로 무기 만으로도 도감을 차릴 수 있을 정도. 이러한 로봇물에서 후 20여분 대의 핵심 전투씬은 매화마다 적절한 무기 뱅크씬을 돌려쓰고, 무기가 적당히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대사를 외치다가, 최종적으로 필살기로 마무리 하는 형식이었으며, 때때로 '신무기 추가'라는 이벤트로서 뱅크씬을 교체했다.
         그러한 면에 건담은 TV판 40화 이상 혹은 극장판 3편이라는 장기 작품을 사실상 단 세가지 무기만 가지고 밀도 있는 액션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무기의 숫자는 줄었지만 오히려 액션은 훨씬 다채롭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졌다.
         적군 유닛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신형 메카들이 일회성으로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초 적 기체인 '자쿠'의 경우 초 악역은 일회용 취급당하던 과거의 패턴을 깨고 건담과 함께 건담 시리즈의 대표적인 메카 디자인으로 자리잡는다. 이는 마케팅적으로 소수의 주역 메카'만'이 상품성이 있었던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적아군을 모두 합쳐 거의 20여가지 이상의 상품 라인업을 갖출 수 있었다. 단지 소수의 주역 로봇(많아봤자 2,3체)만이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적의 로봇은 1회용으로만 쓰이며 상품화 되지 않고 낭비되다시피 했던 대부분의 다른 로봇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적의 로봇 역시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게 되었으므로 훨씬 다양한 상품을 프라모델로 출시하고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마징가Z의 경우, 마징가Z 이외의 로봇은 거의 상품화 되지 않았다.(적 메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보스보로트나 아프로다이A는 마이너한 인기가 있는 정도) 면 건담은 프라모델 생산 라인으로 수십가지 상품군을 갖출 수 있었고, 이를 매년 신 시리즈를 내고 갱신하면서 2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훗날 신경향 건담들이 나오면서 '건담 우려먹기'가 시작되어, 건프라도 건담 계열에 치중된 라인업 우려먹기로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 1년 전쟁 : 우주세기 0079년에서 0080년 사이에 벌어진 지구연방과 지온 공국의 전쟁. 해당 작품의 배경으로, 초에 지온 공국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지구권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기도 했으나 지구연방의 격과 공국의 내분으로 인해 결국 지구연방이 전세를 역전시켜 최종 방어선인 아바오 아 쿠 요새 함락 후 종전 협정을 체결해 끝난다.
  • 김경준(축구선수) . . . . 9회 일치
         || 출신학교 || 야월초등학교(2006~2008) [br] 백암중학교 (2009~2011) [br] [[신갈고등학교]](2012~2014) [br] [[영남대학교]] (2015~2016) ||
         [[박주영]]이 졸업한 야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백암중학교를 거쳐서, 축구 명문 [[신갈고등학교]]를 거쳐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이끄는 영남대로 진학했다.
         야월초등학교 시절에 수비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가끔 공격수를 보기도 했는데, 백암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고 조남의 감독이 포지션을 물어보자 공격수라고 대답했고, 공격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2학년은 경기 출전보다는 체격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키가 20cm나 성장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 경기를 출전했고, 18골을 기록했다.
         4월 15일 토요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클래식]] 6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64&gid=&cpage=1&spage=1|원정 경기에 후 교체 출전]]했다. 오광진과 교체되어 들어갔는데, 김경준의 투입으로 공격라인을 끌어올렸다. 참고로 이 경기가 김경준의 리그 처녀 출전이다. 팀은 1:2로 패배했다.
         5월 6일 토요일 [[전북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81&gid=&cpage=1&spage=1|홈 경기에 교체 출장]]했다. 전 15분에 에드로의 부상으로 최전방 공격수로 교체되어 들어갔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활발히 움직이며 슛을 날리고, 돌파를 시도했지만, 골은 기록하지 못하고 0:3으로 패배했다.
         2018년 4월 27일,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8라운드 [[FC서울]]과의 경기에서 후 43분경 [[고요한]]의 정강이를 스터드로 가격하는 과격한 행위를 하여 퇴장 당했다. 이 일로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로부터 제재금 300만원 징계를 부과받았다.[[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90150|#]]
         [[K리그2]]18라운드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 선발출장해 후 13분 안양의 2:1 승의 역전골을 넣어 안양에게 2연승을 안겨다 줬다.
         22라운드 [[안산 그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전 35분 동점골을 넣으며 안양의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었다.
  • 김숙자 (1389년) . . . . 9회 일치
         김숙자는 12세 때부터 [[길재]](吉再)로부터 『소학』과 경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역학에 밝은 당시 [[조선]] 유학자 별동 윤상(別洞 尹祥)이 황간현감으로 임명되어 내려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걸어가서 배움을 청하자 윤상은 그 열의를 보고 『[[주역]]』의 깊은 뜻을 힘써 가르쳐주었다. 윤상은 다시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생 중 한 사람인 조용(趙庸)이 [[1392년]](태조 1) [[역성혁명]]을 대하다가 [[예천]]에 유배되어 오자, 조말생(趙末生)·배강(裵杠) 등과 함께 조용을 찾아가 그를 사사하여 문인이 되었다. 김숙자는 [[길재]] 외에도 윤상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정몽주]]의 학통을 이었다. 그밖에 그는 조용, 김말 등과도 교류하였다.
         [[1440년]](세종 22) [[선교랑]], 1441년(세종 23) [[1월]] 김해교수관 노호(盧浩)와 보직상환 변경되어 [[김해]]로 내려갔다. 이듬해 2월 남부령(南部令)이 되었다가 특별히 동직을 받아 승의교위(承義校尉)에 제수되고,중군섭부사직 겸 성균관주부(中軍攝副司直兼成均注簿),남학교수관(南學校授官)이 되었다가 그해 11월 승훈랑(承訓郞)이 되어 고령현감(高靈縣監)으로 나갔다. [[1445년]] [[2월]] 승의랑이 되었다가, 지방의 수령들의 직급을 1계급씩 강하한다는 명에 따라 강임되었다. [[1447년]](세종 29) 10월 다시 승의랑으로 환급되고, 11월에 [[성균관]]주부 겸 남학교수관, [[1448년]] [[7월]] [[교서관]]교리가 되었다가 한달만에 전제경차관(田制敬差官)에 임명되어 [[전라도]] [[남원]], [[옥과]], [[장흥]], [[순천]], [[장흥]] 등을 순시하고 그해 [[10월]]에 봉훈랑으로 승진한 뒤, 12월에 도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ginyon"/> [[1450년]](문종 즉위) [[8월 13일]] 지풍기군사(知豊基郡事)로 발령, 부임하였다.
         === 생애 후 ===
         [[1453년]](단종 원년) [[12월]] [[사재감]]부정, 54년 2월 성균관사예(司藝)를 거쳐 8월 봉렬대부로 승진하여 성주교수관이 되어 내려왔다. 그해 12월 봉정대부(奉正大夫)로 승진, 중훈대부(中訓大夫)로 승진되었으나, [[1455년]] [[12월]] 사직하고 [[1456년]] 처가가 있는 [[밀양]]으로 내려가서 그 해 [[3월 2일]]에 [[밀양군]] 대동리 정침에서 죽었다. [[1455년]](세조 1년) [[12월 12일]] [[세조정]]에 참여하거나 기여한 관료들을 [[좌익공신|좌익]][[원종공신]]으로 포상할 때 [[좌익공신|좌익]][[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16세기에 사림에 의해 확립된 도통(道統)의 계보에서 길재의 학문을 아들 [[김종직]](金宗直)으로 하여금 잇게 하였고 [[성리학]]의 계보 중, [[정주학]](程朱學)을 발전시켰다.
         가르칠 때에는 처음에 『동몽수지(童蒙須知)』 유학자설정속편(幼學子說正俗篇)을 모두 암송시킨 다음 『소학』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효경]]』·『[[사서오경]]』·『[[자치통감]]』 및 제자백가의 순을 밟았다.『소학』을 앞세우면서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자세는 [[고려]]의 유학자 [[길재]]에게서 물려받았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적인 것이 되었다.
         김숙자는 스승 길재의 가르침에 확신했고,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의 이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지켰다. 어릴 때부터 책 목록을 정해 놓고, 그 순서대로 읽는 습관을 따랐다고 한다. ‘소학’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실천 강조 학풍은 김숙자-[[김종직]]을 거쳐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적인 것이 될 정도로 큰 설득력을 발휘했다. 뒤에 영남사림파의 큰 학자로 드러난 [[김굉필]]은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지칭하면서 30세까지 ‘소학’에만 천착했을 정도였다. [[길재]]에서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에 이르는 [[정주학]](程朱學)의 학통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길재]]는 많은 제자를 길러 냈는데, 가장 먼저 입지를 세운 이가 김숙자였다. 이후 그의 제자들이 속속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특히 세조 때부터 김숙자와 [[김종직]] 부자 등 여러 신진 사류가 과거 급제 등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른바 ‘영남사림파 ’의 등장이었다. 이후에 [[이중환]]이 ‘[[택리지]]’를 통해 “조선 인재의 은 영남에서 나왔고, 영남 인재의 은 선산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김숙자 이후에 ‘영남사림파 ’의 발흥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628.010110742170001 영남사림의 기을 구축한 김숙자(金叔滋)] 영남일보(2013.06.28) 기사 참조</ref>
  • 김진(배우) . . . . 9회 일치
         1973년 8월 23일 [[경기도]] [[안산시|단원구]] 출생의 탤런트이다. 본명은 [[김경진]]. 90년대 중 [[좌회전]]이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으나 뜨지 못하고[* 그래도 [[가요톱10]]에서는 10위권 안에 들었다. 대표적인 타이틀 곡은 '예행연습' [[김홍순]]과 [[이승철]]이 작사 작곡했다.] 이후 방위 복무[*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마지막 방위' 세대로 같은 날 [[유재석]]과 [[이정재]]가 입대했다.]를 마친 뒤 연기자로 ~~좌회전~~전향. 좌회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동안은 놀림거리 비슷하게 됐다.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에서 [[이제니]]와 엮이는 ~~지나가는~~ 단역으로 나오다가 크게 인기를 끌게 되어 일약 주연급으로 발탁되 전성기를 맞았다. 그렇다고 정말 생각없이 투입한 지나가던 단역이었는데 우연히 인기를 얻은 것은 절대 아니고 피디가 처음부터 레귤러 혹은 준레귤러로 생각해두고 투입했었다. 다만, 안녕맨으로 등장해서 응이 좋으면 고정을 시킬려고 했던 거였다고. 초에는 큰 응이 없어서 레귤러까지 생각했던 배역을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PC통신 MBC게시판이 뒤집어 질 정도로 난리가 나는 바람에 무사히 레귤러로 안착했다. 당시엔 이제니와 마주치면 항상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어서 별명은 안녕맨. 레귤러로 합류하고 나선, 워낙 피부가 하얘서 당시 별명은 '[[밀가루]]'.
         당시 한국에선 보기 드문 형태의 [[미남]]으로 상당히 큰키에 엄청 호리호리한데다 하얗고 중성적인 미소년 타입(동인녀들의 손에 걸리면 '수'가 될듯한)으로 순정만화에나 어울릴 듯한 외모로 90년대 후에 인기를 끌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워낙 외모가 개성이 강해 역할이 한정된데다 특별히 연기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던지라 남자셋 여자셋 이후로 눈에 띌만한 연기 커리어는 쌓지 못하고 이후 방송인으로 사실상 전향하여 예능에서 활동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예능에서 꽤나 자주 볼 수 있었으며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초기 MC를 맡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2000년대 초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 인물의 근황이 꽤나 충격으로 다가올 듯.
         하지만 결국 방송인으로서도 안착에 실패했으며 2000년대 중 이후에는 예능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면서 사실상 연예계를 떠나게 되었다.
         * [[오뚜기]] 북경점 짜장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9회 일치
          * 1층에선 [[버블걸]]과 [[센티피더]]가 경찰과 협조해 시에핫사이카이 조직원을 거의 체포했다. 버블걸은 설마 전원이 방해하러 올 줄은 몰랐다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한다. 이래서는 잡히러 온 것 밖에 안 되니까. 조직원들은 "제정신이라 잡히러 왔다"고 박한다. 얌전히 있으면 오버홀에게 드시 죽었을 거라며. 그들은 오버홀, 아니 치사키가 권력을 잡으면서 모든게 변했다고 털어놨다. 원래 지금의 두목은 야쿠자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시에핫사이카이도 빌런집단과 선을 긋고 어디까지나 "협객"으로서 양지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그런 두목의 뜻을 따랐다. 기를 든 것은 두목의 아들이었던 치사키. 그가 오버홀이란 이름을 걸고 조직을 장악했다. 그러고 나서는 빌런 같은 이름을 대고 행동을 했으며 빌런과 힘을 합쳤다. 개성 관련 금지 약품을 유통한 것도 치사키. 항은 할 수 없었다. 조직원들은 현두목이 와병생활을 하게 된 것도 분명 오버홀의 짓이라고 수군댔다. 버블걸은 그렇게 치사키를 싫어하면서도 그가 잡힐 거라고, 실패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 거냐고 문한다. 조직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 키리시마가 먼저 응했다. 그가 본 것은 주먹. 키리시마는 곧바로 "레드 라이오트 언브레이커블"을 발동한다. 적의 주먹 따윈 맞아서 부러뜨릴 각오였다. 패트껌과 키리시마에게 폭풍처럼 떨어지는 러쉬. 패트껌은 문제 없다. 두터운 지방층 덕이다. 그렇지만 상당한 충격. 일순 움직이지 못한다. 새로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그렇게 놀라워하지도 않는다. 주먹을 거둔 그는 상당한 무투파로 보인다. 패트껌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덩치다. 무투파답게 총이나 칼을 쓰는 싸움은 "멋모르는 짓"이라고 입을 연다.
          * 패트껌의 격은 투명한 장막을 뚫지 못한다. 한 명 더. 덩치가 작은 사내가 무투파 뒤에서 나타난다. 이건 그의 개성으로 보인다. 왜소한 남자가 한 눈에 패트껌과 키리시마의 개성을 꿰뚫어 보고 둘다 "방어를 잘하는 개성"이라 평한다. 그러면서 옆의 사내, "랏파"에게 "아쉽게 됐다"고 말한다.
          배리어를 펼쳤던 남자는 자신들을 "창과 방패"에 비유하고 대로 패트껌과 키리시마는 "방패와 방패"에 빗댄다. 랏슈는 그래서는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곤란한다고 빈정댄다. 배리어를 친 남자가 쯤 동의했다.
  • 모레아 전제국 . . . . 9회 일치
         현재의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도 지역에 있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국이다. 이 지역은 본래 전통적으로 비잔티움의 유럽 방면 영토였으나, 통치력이 잘 미치지 않아 독립성향이 강했고 [[제4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이 지역에 세워진 '아카이아 공국'의 영향으로 비잔티움의 봉신국이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2세]] 시절에 구축된 [[헥사밀리온]] 성벽으로 펠로폰네소스 도의 그리스 중부를 잇는 코린토스 지협을 방어하였고, 수도는 고대 [[스파르타]] 인근에 세워진 요새도시 미스토라스였다.
         [[오스만 제국]]의 성장으로 트라키아와 발칸 도 북부가 오스만의 지배 하에 넘어가면서 수도 콘스탄티노플과의 육상교통이 단절되어 '위요지'가 되었다. 하지만 위요지라고는 해도 모레아는 영토, 인구 면에서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콘스탄티노플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제국의 핵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지닌 정치적, 종교적 상징성 탓에 모레아 전제국은 어쩐지 무시당한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제국의 영토가 사실상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아예 무시(…)하고 설명하거나, '모레아도 공격받았다. 모레아도 망했다.'는 식으로 고작 한 줄 남짓 언급되는 등.
         이러한 모레아의 국력을 바탕으로 콘스탄티누스 전제공은 [[헝가리]] 중심의 [[십자군]]에 호응하여 출병, 오스만에 복속되어 있던 아테네 공국을 복속시켜 아티카를 지배 하에 넣고, 테살리아 남부까지 세력을 확대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십자군이 패퇴하자 다시 도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1446년 11월에는 오스만의 강렬한 격을 받게 된다.
         1446 년 11월, [[무라트 2세]]의 침공으로 [[헥사밀리온]]이 파괴되어, 모레아는 오스만에 유린되었다. 제국 말기에 짝했던 모레아의 발전과 팔레올로고스 르네상스는 여기서 한계를 보이고 만다. 1448년 10월 황제 요하네스 8세 파레올로고스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전제공은 비잔티움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로 선출되어, 1449년 1월 모레아의 수도 미스토라스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콘스탄티노플로 떠난다.
         모레아는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떠나고, 후임으로 동생 드미트리오스와 토마스, 두 명의 전제공의 공동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 두 명은 개인적으로 사이가 나빴고, 정치적으로 드미트리오스는 친 오스만, 토마스는 친 라틴, 종교적으로 드미트리오스는 동서교회합동대, 토마스는 합동찬성파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대립하였다. 일단 오스만의 위협에 대항하여 1453년 메흐메트 2세의 공격을 공동 작전으로 격퇴하기도 했지만.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이후 모레아는 유일한 비잔티움 제국의 잔존 영토로 남게 된다. 그러나 두 전제공의 대립, 영토 내 토착민과 알바니아 인 등의 대립, [[베제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간섭으로 위태롭게 된다. 1453년 가을에는 알바니아 인이 란을 일으키고, 1458년에는 오스만 군이 침공을 벌였다. 심지어 토마스가 부하 유력자들에게 떠밀려서 드미트리를 공격하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가운데 두 전제공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을 놓치지 않고 메흐메트 2세는 모레아에 친정하여, 1460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7년 만에 수도 미스토라스가 점령되고, 그 해 여름까지 도의 거의 전역이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어 모레아 전제군주국은 멸망한다. 드미트리는 오스만 제국에 복속하였고, 토마스는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 모레아의 그리스인은 산악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서 저항하거나, 이 당시 모레아 각지에 거점을 가지고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에 투항하였고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리스 인 군단을 편성하여 오스만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거점들 마저도 오스만-베네치아 전쟁에서 궤멸하면서 그리스는 베네치아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코르푸를 제외한 모든 지방이 오스만의 지배하에 들어서게 됀다.
  • 몬스터 페어런트 . . . . 9회 일치
          * 특정 원아를 같은 으로 하지 않도록 요청한다.
          *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낮아졌다. 1990년대 부터 이러한 종류의 보호자가 증가했는데, 이들이 부모가 되는 1965년대 전후 출생은 1970년대 후~1980년대 초의 학교 폭력이 격렬한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애초에 희미했다. 버블 경제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기 때문에 당시 교직은 인기가 낮았다. 버블 이후의 구조조정으로 사회적 지위를 잃은 사람들은 종신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 교사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 일대일로는 대응하지 않는다. 드시 상세한 기록을 가지고 가능한한 대화를 녹음한다. 대화에 맞장구 칠 때는 결코 상대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몬스터 페어런트의 자녀로서, 부모의 영향을 받아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부모에게 주로 의지하며 교사에게 항적이고 위협적,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를 몬스터 칠드런(モンスターチルドレン)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항기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고생 시기에 많았다면, 몬스터 칠드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항적인 경향이 많다고 말해진다.
         한편, 피고의 부모는 학교 측과 언론 보도에 불만을 품고 박을 하였는데, 연락장의 문구 내용은 아무리 써도 답변이 없고, 학교에 전화를 해도 끊어버려서, 교육위원회에 상담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폭행에 대해서는 딸이 선생님이 등을 때렸다고 호소했지만, 교사는 허리를 가볍게 만진 것 뿐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교장도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상담했지만 피해 신고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건으로 불만을 품은 부모는 딸에게 IC레코더를 항상 소지하고 있도록 지시하고, 10월에는 교사가 갑자기 아이들 전원을 기립시켜서 "거짓말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전원이 선 채로 수업을 받도록!" 지시하고 사과를 강요하는 사건까지 있었으며, 이후로 딸은 신발을 버려지는 등의 괴롭힘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언론의 취재에 녹취록을 공개하였다.
  • 박신혜 . . . . 9회 일치
         박신혜는 2009년,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로 이후 1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극중 속세와 차단된 수녀원을 나와 쌍둥이 오빠 고미남을 대신해 비밀과 가십, 계산과 계약으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살아 나가는 고미녀 역을 연기하며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맞이했고, 일본 및 중화권에서도 인지도를 높히며 한류 퀸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51058 |title=‘미남이시네요’가 ‘아이리스’에 기죽지 않는 이유 |출판사=일간스포츠 |저자= 정지원|날짜=2009-10-30 |확인날짜=2016-12-29}}</ref><ref>{{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jang-geun-seok-you-re-beautiful-beats-winter-sonata-33223.html |title=Jang Geun-seok "You're Beautiful" beats "Winter Sonata" @ HanCinema :: The Korean Movie and Drama Database |publisher=Hancinema.net |date=2011-09-14 |accessdate=2016-12-29}}</ref> 나중에 박신혜는 인터뷰에서 “성인이 돼 처음 한 작품으로, 아역이 아닌 ‘박신혜’라는 한 여배우의 시작을 알리게 해준 작품”이라고 ‘미남이시네요’에 대해 말했다.<ref name="mbn" /> 이듬 해, 2010년 박신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연애 조작 요원 오민영 역을 맡아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과 공연하며 영화는 26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대만 드라마 《선풍관가 旋風管家》에서 샤오즈 역을 맡아 출연하였고, 2011년 방영되었다.
         박신혜는 2011년 드라마 《[[넌 내게 했어]]》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는 상큼한 여대생 이규원 역을 연기해, [[정용화]]와 다시 공연했다. 예술대학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내겠다는 취지로 시작 됐지만 연이은 시청률 부진으로 15회로 조기 종영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시청률 부진 속 <넌 내게 했어>, 15회로 종영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8457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미나 |날짜 = 201-08-09 |확인날짜 =2013-09-01 }}</ref><ref>https://www.soompi.com/2010/09/01/george-hu-is-park-shin-hyes-combat-butler/</ref> 이듬 해, 2012년에는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에서 본인이 귀신이란 걸 자주 망각하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생기 넘치는 귀신 연화 역을 연기해 호평을 받아 [[KBS 연기대상]] 단막극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13년 초 개봉 되어 역대 여덟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에 성인 예승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english.yonhapnews.co.kr/culturesports/2013/03/15/27/0701000000AEN20130315007900315F.HTML|work=[[연합뉴스]]|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30315000902|work=The Korea Herald|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last=Ji|first=Yong-jin|title=MIRACLE IN CELL NO. 7 Passes MASQUERADE to Become 3rd Most Successful Korean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2324|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013-03-20|date=19 March 2013}}</ref> 같은 해 1월 첫방영 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에서 사람 만나길 두려워 하는 히키코모리 고독미 역을 연기했고, 제 나이와 성격에 어울리는 밝고 씩씩한 여대생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f name="mbn" /><ref>{{웹 인용|url=http://www.soompi.com/2012/10/31/park-shin-hye-and-yoon-shi-yoon-to-star-in-new-drama-flower-boy-next-door/|title=Park Shin Hye and Yoon Shi Yoon to Star in New Drama "Flower Boy Next Door"|date=June 26, 2012|accessdate=February 7, 2012|publisher=soompi}}</ref> 박신혜는 코오롱스포츠 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된 '웨이 투 네이처 필름 프로젝트 단편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가위바위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356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선필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14년 11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에 캐스팅 되어 《[[천국의 나무]]》 PD였던 조수원 감독과 9년만에 재회하게 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피노키오' 박신혜 "작품 기다리는 배우, 취준생의 심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404814|출판사 =엑스포츠뉴스 |저자 =김승현 |날짜 = 2014-11-06 |확인날짜 =2014-11-10 }}</ref> 이 작품은 방송국 사회부 기자들의 삶과 24시간을 함께 하며 전쟁같이 보내는 이들이 설레는 관계로 발전해가는 풋풋한 청춘을 그린 드라마로 박신혜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증후군인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최인하 역을 연기하였고, 실제 사회부 기자들의 실상이나 문화를 현실적으로 잘 영해 호평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40904000373|title=Park Shin-hye confirmed to star in ‘Pinocchio’|publisher=The Korea Herald|accessdate=2014-09-08}}</ref><ref>{{웹 인용|title=Cultural Exports to Surpass 1 Trillion Won This Year|url=http://www.businesskorea.co.kr/english/news/lifestyle/8231-culture-trade-balance-cultural-exports-surpass-1-trillion-won-year|work=Business Korea|accessdate=2015-10-24|date=2014-12-26}}</ref><ref>{{웹 인용|title=‘Pinocchio’ sells distribution rights to China for record price|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411241750324868840_2|work=Kpop Herald|accessdate=2015-10-24|date=2014-11-24}}</ref> 박신혜는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과 베스트 커플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다. 또한 제5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인기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5년 연속 인기상 수상…대세 여배우 입증 [51th 백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1208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이은지 |날짜 = 2015-05-26 |확인날짜 =2017-09-20 }}</ref> 같은 해 12월, 개봉 된 사극 영화 《[[상의원]]》에 왕비 역을 연기하였다.
         2016년 6월, 첫 방영 된 메디컬 드라마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에 캐스팅 된 박신혜는 학창시절 무기력한 항아에서 사랑이 충만한 국일병원 신경외과 펠로우 의사로 성장하는 유혜정 역을 맡아<ref>{{뉴스 인용|제목=박신혜·김래원, '닥터스' 본방사수 독려 "오늘 첫방 아시죠?"|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10100156110010947&servicedate=20160620|출판사=스포츠조선|저자=정유나|날짜=2016-06-20|확인날짜=2016-06-20}}</ref> 한층 더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1.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따뜻한 감성 드라마로 호평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이게 바로 인간 승리…'공부의 신' 됐다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2374|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김수현 |날짜 = 2016-06-21 |확인날짜 =2016-06-21 }}</ref> 연출을 맡은 오충환 감독은 제작발표회 당시 박신혜에 대해 “촬영장 공식 명칭이 ‘우리 신혜’다. 오전, 오후로 미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배우를 잘 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도 좋고 인성도 좋다”고 말했다.<ref name="mbn" /> 박신혜는 연말 [[SBS 연기대상]] 장르&판타지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우며, 제5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는 20대 여배우 중 가장 주목 받는 한류 스타이자 대표하는 ‘흥행배우’로 성장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종영기획②] '3연속 흥행퀸' 박신혜, 믿고 보는 20대 女배우 우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807409|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최지예 |날짜 = 2016-08-24 |확인날짜 =2016-09-01 }}</ref><ref>{{뉴스 인용 |제목 =[SS이슈]'닥터스' 박신혜,안방 흥행여왕+20대 CF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934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조현정 |날짜 = 2016-07-12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11월 개봉 된 코미디 영화 《[[형 (2016년 영화)|형]]》에서 국가대표급 오지랖 유도코치 이수현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만났다하면 케미퀸…이번엔 조정석x도경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23745|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6-11-08 |확인날짜 =2016-11-10 }}</ref>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박신혜는 또한 2011년부터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결연아동 아네를 결연후원 해오고 있으며 팬들과 해외 빈곤국에 센터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팬과 함께 봉사활동 나선 별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196660|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김원겸 |날짜 = 2014-04-08 |확인날짜 =2014-04-09}}</ref> 국내외 팬들과 전 세계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호 센터로 서부 아프리카 가나 ‘신혜센터(Shin Hye Center)’가 2013년 11월 완공되어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기아대책 홍보대사 박신혜, ‘러브백’ 특별행사 참여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5291628173210|출판사 =뉴스엔 |저자 =김찬미 |날짜 = 2014-05-29 |확인날짜 =2014-05-30}}</ref> 2014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189349|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이슈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42515493577725|출판사 =스포츠투데이 |저자 =김은애 |날짜 = 2014-04-25 |확인날짜 =2014-04-26 }}</ref> 또한 자신의 SNS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변경, 노란리본 캠페인에도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기부 이어 노란리본 캠페인 동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242446|출판사 =스포츠경향 |저자 =온라인뉴스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 }}</ref> 2015년, 박신혜는 ‘2015 Dream of Angel’ 타이틀로 아시아투어에 나섰고, 상해 팬미팅 수익을 [[NGO]] 단체 ’기아대책’의 별빛천사마을 만들기와 중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 ‘타소원’에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상해 팬미팅 수익금 전액 기부.."한류스타 이례적 행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217288|출판사 =이데일리 |저자 =강민정 |날짜 = 2015-03-30 |확인날짜 =2013-09-01 }}</ref> 4월, 박신혜는 큰 피해를 입은 [[네팔]] 국민들을 위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를 통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네팔 지진 희생자 위해 3천만원 후원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54697|출판사 =OSEN |저자 =정유진 |날짜 = 2015-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7월, 박신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혜센터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의 건립을 진행했다. 이에 박신혜와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센터건립에 앞서 필리핀 쌈빨록 지역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었고, 지난 3월 박신혜는 필리핀의 결연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아동결연센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센터 건립에 앞서 건축기념식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9585|제목=박신혜가 또… 필리핀에 아동복지시설 ‘신혜센터’ 건립|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홍세영|날짜 = 2016-07-22|확인날짜=2016-12-09}}</ref>
  • 블랙 클로버/98화 . . . . 9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게 격파 당한 [[라드로스]]는 마력이 고갈되고 무리하게 샐러맨더의 마력을 흡수한 동으로 쪼글쪼글해진다.
          * 전투가 끝난 후 마법에 빙의했던 상태는 풀리고 몸은 상처투성이에 엉망. 동료들도 죄다 널부러져 있다.
          * [[라드로스]]는 마법에 빙의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 의해 쓰러졌다.
          * 라드로스는 마법에 모든 마력을 빨리고 무리해서 샐러맨더의 마력을 흡수한 동으로 쪼글쪼글하게 쪼그라든다. 라드로스는 설마 이렇게 당하게 될 줄 몰랐다고 한탄하지만 곧, 역시 자신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던가 하며 자조한다. [[판젤 크루거]]는 한때 제자였던 라드로스의 몰락을 씁쓸해한다.
          * 아스타를 휘감고 있던 마법 빙의는 곧 풀린다. 아스타는 그 상태가 무엇인지 아직도 확신하지 못했고 방금 전 싸움도 "꿈 속에서 싸운 듯" 뭔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신기한 힘을 얻었다는 감각은 있으며 언젠가는 그 힘을 완벽하게 써보이겠다고 다짐한다.
          * 여왕으로부터 뻗아나온 혈류가 거대한 피의 호수를 만든다. 동료들은 그 호수 위에 솟아난 십자가에 구속된다. 아스타는 발하지도 못한 채 여왕의 또다른 마법에 걸린다.
          * 여왕은 처음부터 아스타를 조종하는게 목적이었다. 여왕이 마법을 발동하자 아스타는 저항할 틈도 없이 몸을 장악 당한다. 마법의 검은 자신이 쓸 수 없지만, 그걸 쓸 수 있는 자를 조종하면 된다. 여왕은 아스타의 싸움법을 칭찬하며 자신의 검이 되어 평생 싸우라고 말한다.
          * 바네사는 뒤늦게 여왕의 진짜 목적이 마법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한다. 아스타를 회복시킨 여왕은 그를 이용해 나머지 동료들을 전부 처리하려 든다.
  • 산킨고타이 . . . . 9회 일치
         [[에도 시대]]에 시행된 제도. 다이묘들이 에도에 처자를 두고 본래 부임 영지와 에도를 왕복하도록 한 제도이다. 지방의 다이묘들로 하여금 가족들은 에도에 머물게 하는 한편 다이묘 본인도 1년은 에도에, 1년은 본래 번에 있도록 정하고, 복해서 오가도록 한 제도이다. 각 다이묘들은 에도에 출장소를 만들게 된다.
         이전부터 사무라이들은 일종의 군역으로서, 중앙에 상경하여 귀인을 호위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교토대번역(京都大番役)이라고 하여 지방무사들이 교토에 상경하여 호위를 맡는 관습이 있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가마쿠라 대번역(鎌倉大番役)이라고 하여 가마쿠라에도 상경하도록 어성패식목(御成敗式目,가마쿠라 시대의 무가법률)에 지정되어 있었으며, 교토에 상경하여 호위하는 임무도 무사들마다 균등하게 분배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일본에서 어느 정도 통일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복되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서도 오사카에 각 영주들을 상경하여 주둔하고 가족을 인질로 두게 만들었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서 도쿠가와 막부가 열리고 에도 시대가 시작되자, 다이묘들은 에도에 처자를 두고 영지와 에도를 오가면서 생활하는 관행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무질서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에 폐해가 많아,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포한 간에이령(寛永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의 제2조에 지정되어 공식적인 제도가 되었다. 법령으로 정해진 까닭은 이전까지는 참근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아 오히려 다이묘들이 불편[* 일일이 참근할 것인지, 영지에 돌아갈 것인지를 막부에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하였기 때문에 1년 간격으로 하도록 명확하게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법령이 정해짐으로서 다이묘들이 막부에 '인사'를 오는 것이 명확하게 결정되어, 막부와 다이묘의 상하관계가 완성되었다.
         일적으로 행렬을 통해 각 번의 경제력을 소모시켜 란을 막는 것이 목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결과론적인 얘기로, 실제 모 방지는 다이묘의 가족들이 에도에 머무르는 것으로 충분했고, 다만 다이묘들이 체면을 중시하여 행렬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집착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과도한 지출로 이어진 것이다.
         일적으로 육로 이동이 대부분이지만 규슈와 시코쿠 지역의 다이묘들은 배로 이동하기도 했는데, 해로의 경우 당시의 낙후된 선박 및 항해기술의 한계로 인해 육로와는 달리 일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도 장거리 항해는 꺼리고 되도록 육로 위주로 이동했다.
         이러한 인질 정책 때문에 오히려 다이묘의 가족(본처와 적자)들은 지방 영지에 내려가지는 것이 금기시 됐다. 그래서 다이묘들은 지방에 [[첩]]과 [[서자]]를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막부 말기에는 이 금제가 해제되었는데, 그 때문에 인질 걱정없이 란을 일으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본래 영지가 지방에 있는 다이묘가 '상경'하는 현대의 관점에 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오히려 본래 수도 출신이었던 다이묘가 지방으로 '하향'하는 이미지에 가깝게 된다. 다이묘들은 대부분 에도에서 태어나서, 유년기를 에도에서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적자가 대를 이을 수 없는 경우가 되서 지방에 있던 서자가 대를 이어받게 된 경우라면 '상경'하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이처럼 각 번의 재정에 부담을 주던 제도였으나, 대로 이러한 '다이묘 행렬'을 접대하는 숙박시설과 역참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이를 통해 일본 내 상업 및 서비스업이 발달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 당시 상업의 발달에 대해서는 "오사카 상인이 노하면 전국의 다이묘들이 벌벌 떤다"는 말이 대변해 준다. 다이묘들이 너도나도 거상들에게 돈을 빌리다 보니 나중엔 그들에게 번의 재정까지 목줄을 쥐이고 만 것.] 오가는 길마다 다이묘가 체면치례를 위해서 돈을 뿌리고 다녔으니 당연한 일이다. 각지에서는 다이묘 행렬을 접대하고 팔기 위하여 '특산물'을 만들었다. 이로서 전국의 부가 집중된 에도는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 식극의 소마/209화 . . . . 9회 일치
          * 이들에게 주어진 주제는 장어. 양식은 장어를 다루는데 서툴 거란 편견이 있지만 쥬리오는 초부터 멋진 솜씨를 뽐낸다.
          * 면 잇시키는 느긋한걸 넘어 겨우 준비만 끝내놓고 "진다면 애들하고 장어양식을 하자"같은 망상이나 즐기고 있다.
          *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똑같이 1회전 멤버인 [[잇시키 사토시]]가 아예 이쪽 조리대에 와서 관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마가 자기 요리는 어쨌냐고 묻자 어차피 숯불을 달구고 있는 중이라 한가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태평하다. 그는 소마의 요리를 흥미롭고 기특하게 바라본다. 그는 아군을 고무시키는 것도 팀워크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자기 혼자 고무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십걸인 [[메기시마 토스케]]는 대로 아주 성실하고 묵묵히 조리를 하고 있다가, 이쪽을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따지고 보면 상대측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태도. 당연히 잇시키의 대결 상대가 발한다. 그는 더이상 한눈팔지 말라며 타당한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이쪽도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은지 요리에 대한 예술론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말에 따르면 요리란 식탁 위에 놓여진 것만이 아니라 요리 중 요리사의 행동, 즉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예술인 것이다. 이같은 예술론은 잇시키와 자신이라면 서로 마주해 하나의 예술을 만들 수가 있다며 꽤 오글거리는 소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왠지 조리 초인 주제에 "필살기"라는걸 사용하는데, 센트럴 측 학생들은 세뇌된 영향인지 이짓도 좋다고 환호하고 있다. 필살 "페퍼밀의 론도".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필살기랜다.
          아리스는 어쨌든 조리복으로 보아 일식 계통이라고 추정하고 그렇다면 일식 장어요리에 일가견이 있지 않겠냐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쿠로키바는 부정적이다. 소바 요리에 "칼질 3일, 밀기 3개월, 죽 3년"이란 말이 있다지만 장어도 그에 못지 않다.
          키노쿠니는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명가의 낙오자"라는 것은 후배들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꽤 폭탄발언인 셈인데, 잇시키는 "사실이라 박도 못하겠다"며 웃고만 있다. 한 번 독설이 시작되자 더는 주체할 수 없는지, 쥬리오는 이어서 자존심도 없냐, 수업 빼먹고 밭만 만지니까 칠석 자리를 뺏긴 거다라고 수위를 높여간다. 결국은 해선 안 될 말까지 한다.
          무언가가 변했다. 부처같은 얼굴로 묵묵히 장어를 손질하던 잇시키의 움직임이 변했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는 놀라운 속도로 장어를 가른다. 키노쿠니의 죽이 그랬던 것처럼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시끄럽게 떠들던 쥬리오가 입을 닥치고 그의 역량을 의심하던 쿠로키바는 할 말을 잃는다.
          소마도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예전에 그와 식극을 한 잇시키는 진짜 실력의 절도 채 발휘하지 않았었다는 걸.
  • 식극의 소마/223화 . . . . 9회 일치
          * 슬슬 중을 넘어서고 있는 2 라운드 대결. 제 2카드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의 대결이 무르익는 가운데 제 3카드 쪽은 아직 진행이 더디다.
          * 면 츠카사는 엽차, 옥로, 현미차, 찐 엽차, 총 네 가지 찻잎을 최상의 현태로 블랜딩하며 맛을 이끌어 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 거기에 "글쎄"라고 박하는건 쿠가가 아닌 [[미마사카 스바루]]. 자기 조리를 한참 하다 말고 쿠가에게 검은 액체가 든 병을 넘긴다.
          * [[나키리 에리나]]는 "역자의 연대를 보여주자"고 팀원들을 격려한다.
          * 이제 2라운드 대결도 중으로 접어든다. "녹차"를 소재로한 1카드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 "고추"를 소재로한 2카드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 "참치"를 소재로한 3카드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
          항간에는 츠카사가 식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군림한다는 말이 퍼져 있으나, 지금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정대라는 걸 알 수 있다. [[나키리 아자미]]는 그걸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 츠카사는 우리는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서인지 쿠가 쪽 조리대에 훈수를 둔다. 쿠가는 분명 찻잎에는 손도 대지 않고 중화 철냄비로 고기만 다루고 있었다. 츠카사가 이런 부분을 꼬집으며 "하나에 집중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자기 필드에 틀어박히는건 나쁜 버릇"이라고 충고했다. 지금 쿠가는 녹차, 일본의 식재를 덤으로 여기고 있다. 소재를 살리기 위해선 자기 스타일을 억누르는 것도 필요한데 자기 고집에만 연연하면 새로운 맛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말로는 쿠가가 지닌 열의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나에게는 못이긴다"며 통렬한 도발을 날린다. 쿠가는 이에 대해서 단지 눈을 한 번 흘겼을 뿐, 별다른 론을 펼치지 않는데.
          * 적이었을 땐 밥맛이지만 아군이 되면 믿음직한 스킬 퍼펙트 트레이스. 역자팀이 환호한다. 그런데 문제는 쿠가를 너무 정확하게 트레이스한 바람에 눈갱스러운 짓까지 따라한다는 점이었다.
          * 이런 전개도 [[나키리 에리나]]의 안배였다. 그녀는 지금이야 말로 역자들의 연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여긴다.
  • 식극의 소마/234화 . . . . 9회 일치
          * 역자진영은 분하지만 에이잔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이잔은 이미 한 번 쿄쿠세이 기숙사를 없애려 했던 원한이 있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역자들은 에이잔의 상대 타쿠미에게 저 "인텔리 야쿠자"를 무찔러 달라고 혼신의 응원을 보냈다. 그것은 에이잔에게도 들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녀석들 기숙사에 몹쓸 짓을 하긴 했다"며 선선히 인정한다. 원래 자기는 여기저기 원한을 산 적이 많고, 생각해 보면 타쿠미한테도 그렇다며 말을 걸었다. [[미마사카 스바루]]와 타쿠미의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 건으로 타쿠미가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 말하는 한편 [[잇시키 사토시]]를 보증인으로 내세워서 "그건 미마사카가 신청한 식극이었고 나의 개인적인 의사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쿠미가 에이잔에게 원한이 있는 걸 전제로 한 소리였는데, 정작 타쿠미는 "그런 말로는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며 무시한다.
          * 타쿠미는 모두의 예상대로 시구레니를 얹은 피자를 만든다. 펼친 죽 표면에 가볍게 소스를 바르고 시구레니와 흰파, 모짜렐라 치즈를 뿌린다. [[이사미 알디니]]가 보기에도 완벽한 작업. 이제 오븐에서 240도로 12분 간 구우면 끝이다. 그리고 순조롭게 오븐에 투입. 이제 시간 문제다. 이렇게 상대가 완벽한 마무리에 돌입했으나 에이잔은 시종 여유롭다. 그는 문득 타쿠미에게 "네 피자는 아주 섬세한 요리 아니냐"고 물었다. 특히 오븐에서 꺼낸 뒤엔 맛을 조정하는게 어렵지 않냐고. 타쿠미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에이잔이 대뜸 말했다.
          * 역자팀에선 당연히 성토했다. 그런데 심사의원 안은 이번만큼은 역자의 편을 들지 않았다. 승부의 조건은 "내놓는 요리"와 자신들의 "혀". 한정된 시간 안에 적의 요리를 간파해 맞춤 전략을 펼친 거라면 아무 문제도 없다. 심사의원의 재개까지 받은 이상 거칠 건 없다. 에이잔은 여기서 아티초크를 더욱 추가한다. 이제 조리의 마무리. 에이잔은 타쿠미가 근시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때"도 "지금"도. 적에 대한 분노로 시야가 좁아진 것이다. 그가 "메짜루나"를 미마사카에게 뺏긴 일도 만일 미마사카의 상대가 소마였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조롱했다.
          지난 회에 가지러 간다던 식재료는 아티초크. 타쿠미가 단맛이 강한 피자를 만들 걸로 예상하고 미각을 조작하는 식재료를 고르러 간 것이다. 아티초크의 시나린 성분이 미각을 조작해 단맛을 더욱 달게 느끼게 하므로, 자신이 요리를 먼저 먹인다면 타쿠미의 피자맛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역자들은 당연히 비겁하고 자존심도 없다고 극딜하는데 어차피 이기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놈이라 노데미지. 어쩐지 심사의원 안도 그래도 상관없다고 허락해줘서 완전히 기세등등하다. 자신잇게 화이트 소스가 들어간 로스트비프를 내놓고 승리를 자신한다.
          시작부터 에이잔이 "미마사카에게 진 그 식극은 내 책임이 없다"는 둥 도발을 늘어놓는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사이토는 명백하게 분노한 티가 난다고 한다. 순조롭게 조리를 마치고 최종공정에 들어갔을 때 에이잔이 아티초크를 이용한 함정을 공개하는데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이후에 에이잔이 "미마사카와 첫 승부 때 소마가 상대였으면 너와는 달리 극복했을 것"이라 모욕을 퍼붓지만 역시 무응. 돌부처가 다 됐다.
          한동안 역자팀에게 유리한 듯한 상황을 조성해줬는데 에이잔이 대놓고 함정을 팠다고 선언하는데도 문제될 게 없다고 판정한다. 판정기준은 완성된 요리와 자신들의 미각 뿐이므로, 그 조건 안에서 어떤 전술을 펼치든 상관없다는 것. 요시노 유키가 발했을 때 이렇게 말하는데 표정이 얼음마녀같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9회 일치
         코너와 랜스는 보스턴에서 만나 랜스가 운영하던 목공소로 찾아간다. 하지만 목공소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3주 전에 도제인 패트릭이 목공소를 팔아치워버린 것. 랜스는 패트릭을 찾아가 따지지만 패트릭은 안 돌아올줄 알아서 도구도 가게도 다 팔아치웠는데 어쩌겠느냐, 라는 응. 랜스는 목공이 생명선인 도구를 팔리가 없다며 패트릭이 어디다가 꿍쳐뒀을 거라고 추측한다.
         코너는 절벽 위로 기어올라가 야생화를 꺾어온다. 노리스는 프루던스가 야생화를 추천했다는 말을 듣고는 "아닌 것 같은데"라는 응을 보인다.
         노리스가 다시 코너를 만났을 때, 노리스는 미리암에게 줄 선물을 잘못 골랐다고 한다. 그냥 버려버렸다고. 노리스는 미리암이 꽃을 좋아하지 않을거라는걸 알고 있었다는 응. 코너는 미리암이 뭘 주면 좋아할지 알아내겠다고 한다. 노리스는 그런 코너에게 들키면 미리암이 수상하게 생각할테니 들키지 말라고 한다.
         해전이 벌어진 이후 부상입은 선원들을 치료하던 라일은 자기 혼자서는 시간 안에 치료할 수 없겠다며 도움을 청한다. 코너는 적합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다이애나를 데려온다. 전에 다이애나가 사람들을 보살피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녀가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 라일 또한 그녀가 치료에 소질이 있다며 가워한다.
         >(장교가 죽고 나서 코너는 장교 손가락에 끼워진 지를 발견한다.)
         1778년, 카리브해. 니콜라스 비들이 발견되었다. 아퀼라는 비들의 역을 끝내기 위해 출격한다.
         >비들: 고통. 난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대자들을 제거하고 애국자들에게 힘을 주었지. 내가 제독의 자리에 올랐으면 어째서. 이 혁명은 사람이 필요했고 내가 거기 알맞는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알맞는 사람. 내가 아니었으면 대륙 해군은 땟목 한줌으로 남았을거다. 네놈의 선견지명에도 불구하고, 너희 암살단이 진실을 가리는군.
         1773년, 동해안. 아퀼라는 악명높은 사략선 세인트제임스를 추격한다. 세인트제임스는 아퀼라가 암초지대를 돌파해 쫓아오자 적 함대와 함께 격해온다. 아퀼라는 이들을 격퇴한다.
         1777년, 카리브해. 아퀼라는 그레이하운드와 그 함대를 추격해 섬멸하기 위해 출항한다. 암초지대를 거쳐 지나가는 그레이하운드를 따라잡은 아퀼라는 아군 함대와 함께 격해오는 그레이하운드를 해치운다.
  • 이성희(배구감독) . . . . 9회 일치
         전년도의 우승으로 2008-2009 시즌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그는 베띠 데라크루즈를 앞세워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어창선]] 감독대행이 이끌던 ~~당시 굉장히 어수선했던~~ 흥국생명에 지며 준우승에 그쳤다. 2009-10 시즌에는 베띠가 떠나고 성적이 맛이 간 것을 후기 합류한 [[데스티니 후커]]의 맹활약과 후기 일정 덕[* 이 당시부터 GS칼텍스가 연고지를 서울로 옮겨 홈으로 [[장충체육관]]을 쓰게 되었는데, 전기 때 홈 경기가 단 2번(그나마 한 번은 천안에서 했다.)에 불과했다. 즉, 대로 후기가 두 경기 빼고 모두 홈 경기였던 거.]으로 겨우 3위로 올렸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대전 KGC인삼공사|훗날 감독 자리를 맡을 팀]]에게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내주며 감독직에서 사퇴하였다.
         2014-2015 시즌은... '''말 그대로 2012-13 시즌의 재림'''. 뚜렷한 전력보강도 전무했고[* 다른 팀들이 FA 영입, 보상선수 이적 등으로 정신없이 오프 시즌을 보낸 면 KGC는 조용한 것도 모자라 은퇴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김세영이 [[한유미]]와 같이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로 이적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겨우 1명([[문명화]])만 지명하는데에 그쳤다. [[안양 KGC인삼공사|농구단]]과 마찬가지로 KGC 고위층의 투자 의지가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떠돌 정도. --농구단은 [[양희종|누구]]한테 [[화폐|돈]]이라도 썼지...--], [[백목화]]와 [[이연주(배구)|이연주]]의 기량 하락, 조이스만 바라보는 팀 공격진,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센터 [[이보람]]의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겹치며 --늘어나는 [[흰머리]]처럼--[* 실제로 인삼공사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흰 머리였으나, 2016년 1월 9일, 검게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패만 줄창 쌓이면서 8승 22패를 기록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점에서 2점 모자라 최하위에 그쳤다.
         그의 [[노답]] 행각은 12월 16일 화성 원정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헤일리에게 몰빵지시도 모자라 작전 타임때 수비는 안할거냐는 둥 안 그래도 '''공격 점유율도 높은 선수에게 수비까지 전담'''하게 하는 정신병자급 작전을 선보여 인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대관절 이 인간에게 뇌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 '''안 그래도 국내 선수층이 얇은 팀 전력의 절 이상을 책임지는 헤일리가 [[야도주]]라도 한다면 대체 이 팀에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이같은 막장스런 행각 때문에 심지어 2012 - 13 시즌 부상을 핑계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배째다 퇴출된 드라간 마린코비치가 재조명받는 사태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팬들이 헤일리에게 야도주해도 되니까 하루 빨리 팀에서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을까? '''그것도 타 팀 팬들이 아닌 인삼 팬들이!!!''' 이 사실들만 봐도 돌성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 일곱개의 대죄/185화 . . . . 9회 일치
          * 몸을 회복한 에스타롯사가 에스카노르의 태양을 어둠으로 삼키고 풀카운터로 격, 에스카노르를 죽인 듯 했다.
          * 에스카노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에게 서쪽 문 밖에 페이네스 호이 있지 않냐고 묻는다.
          * 이 그렇다고 하자 에스타롯사를 그 방향으로 날려 보낸다.
          * 페이네스 호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릴 정도로 강렬한 열기와 폭발.
          * 에스타롯사는 죽지는 않았지만 상신이 쯤 불에 탄 상태로 나타난다.
          * 그의 어둠이 태양을 삼킨 걸 보면 마력 면에선 자신이 앞서며 물리력도 풀카운터로 격할 수 있다.
          * "정오의 에스카노르"가 에스타롯사와 동급인게 아니라 "정오도 안 된 에스카노르"가 이미 에스타롯사와 동급이라는 어마어마한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9회 일치
          * 봉우리 뒤편의 언덕에서 불청객이 기어나왔다. [[(일곱 개의 대죄)|]]과 할리퀸이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무슨 짓을 저질렀냐"고 은근히 힐난했다. 분명 엿듣고 있던게 분명하다. 둘은 사랑싸움이냐느니, 왕녀가 울고 있던거 같다느니 쓸데없이 참견해온다. 멜리오다스가 여긴 왠 일이냐고 묻자 이 "킹이 요정 주제에 프로포즈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고 대꾸했다. 혹시 전부 들었냐고 묻자 둘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지만 이 곧바로 "사랑 싸움의 원인은 뭐냐"고 짖궂은 얼굴로 물었다. 요즘 연애를 시작했다고 너무 기가 산 할리퀸 쪽도 "여자 마음을 좀 더 공부해야 한다"고 거들먹거린다. 부하들의 따뜻한 관심에 감격한 단장.
          * 단장을 우롱한 부하에겐 참교육 뿐이다. 우선 의 배에 통기성 좋은 구멍을 뚫어준다.
          잠시 뒤 그녀가 멀린의 방으로 불려온다. 멀린을 살펴본 엘리자베스는 일단 해보겠다며 멀린의 이마로 손을 뻗는다. 이어서 밝은 정화의 빛이 빛나기 시작하는데. 에스카노르는 왕녀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과연 저주에도 통하는 건지는 의했다. 핸드릭슨도 어쩌지 못하는 저주인데다 엘리자베스의 힘은 드루이드의 그것과 다르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그 존재"들과 같은...
          난데없이 나타난 어떤 남자. 엘리자베스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십계의 [[젤드리스]]. 분명 멜리오다스를 죽이는데 일조했던 남자. 자신의 마력에 개입하는 존재를 느끼고 나타난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손님이라 부르더니 정말로 갑다는 양 "오랜만이다"라고 인사한다. 엘리자베스는 십계가 나타난 것도 그랬지만 그가 구면인 것처럼 구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 응을 보더니 젤드리스가 "소문은 사실이었다"며 불쌍한 여자라고 빈정거린다. 무엇두고 하는 말일까? 엘리자베스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달라 소리치자 젤드리스의 태도가 험상궂게 바뀐다. 그리고 그의 발설하는 엘리자베스의 비밀.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9회 일치
          * 그 아들 "페리오"가 여기에 발해 자신이 마신족을 전부 물리치겠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하급 마신이 잔인한 보복을 가한다.
          * 몇 날을 보내며 도착한 코란도. 멜리오다스는 서둘러 차원의 비틀림을 처리하고 카멜롯으로 향하려 하나, 그를 기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 마신족이 브리타니아를 점령하고, 그 압제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그들이 시키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해야했다. 인간의 영혼을 먹고 사는 마신들은 마을 주민들을 살려두는 조건으로 그만큼의 인간 영혼을 요구했고, 각 마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당량을 채우려 들었다. 한때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아만드"란 이름으로 은거했던 마을에서도 그랬다. 이 마을 촌장은 여행객들을 속여 마신족에게 바쳐왔다. 그렇게 생긴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마을 공동묘지는 묘비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촌장의 어린 아들 "페리오"는 그런 아버지의 방식에 발했다. 촌장으로선 마을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선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며, 아버지나 어른들은 모두 겁쟁이고 자신이 마신족들을 다 물리치고 말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촌장은 자식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그런 말을 틀어막으려 했다. 그 말이 누구 귀에 들어갔다간...
          * 방금 전 고서의 명령을 받았던 하급 마신은 쯘 죽은 채로 도망치고 있었다. 명령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녀석이다. 마신은 드시 복수하겠다고 중얼거리며 꼴사납게 기어다녔다. 그러다 덩치 큰 남자와 부딪히는데 그는 마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마신이 다가온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침 잘 나타난 화풀이감이다. 그렇다면 죽어, 그렇게 말하며 하급 마신이 주먹을 휘둘렀다. [[(일곱 개의 대죄)|]]은 그런 주먹이라도 실컷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가벼워질까 했지 했지만 하급 마신의 주먹은 너무 시시껄렁했고 자신이 친구에게 저지른 짓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뭐라고 했던가?
          은 눈 앞의 쓸모없는 것을 치워버렸다. 자신에게 치미는 화를 어찌할지 몰라 연인에게 호소를 보내봤다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돼지의 모자정에 있으면서도 그의 고통과 죄의식을 고스란히 느끼고 작은 목소리로 책망했다.
          * 이들을 중재한건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였다. 팀의 잔당번은 지극히 타당한 말로 이들의 다툼을 말렸다. 지금 가장 괴로운건 멜리오다스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냉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왜 벌써 희망을 버리는가?
  • 정충원 . . . . 9회 일치
         '''정충원'''(鄭忠源, <small>일본식 이름:</small> 烏川忠源, [[1896년]] [[5월 22일]] ~ [[1977년]] [[3월 12일]]<ref>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는 정충원의 출생일이 [[1893년]] [[5월 22일]]로 표기되어 있으며 사망일은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다.</ref>)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금융인으로 본관은 연일이며 다른 이름으로 '''정종원'''(鄭宗源, 1949년 10월 개명한 이후부터 사용한 이름)이 있다.
         평안남도 보안과 경시로 재직 중이던 1937년에 발발한 [[중일 전쟁]] 당시 공습에 대비한 방공 사무를 수행하는 한편 군용 자동차를 징발하고 운전수를 징집하여 [[관동군]]의 군사 작전에 협조했다. 또한 시국 범죄 위 단속 차원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검거하여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공로 을(功勞 乙)과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1년 3월 31일 평안남도 성천군수, [[1943년]] [[3월 29일]] 평안남도 순천군수로 각각 임명되었고 [[1942년]] [[4월 8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광복 이후인 [[1947년]] [[조흥은행]] 취체역을 역임했으며 [[1956년]] 10월부터 [[1961년]] 4월까지 조흥은행 은행장, [[1958년]] [[금융통화위원회]] 정위원을 역임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과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6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7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일 정씨]]
  • 지석진 . . . . 9회 일치
         [[대한민국]]의 [[개그맨 #s-1|개그맨]] 겸 [[MC]], '''왕코형님.'''[* 지금의 지석진을 대표하는 캐릭터지만 유재석 말로는 처음에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응이 좋으니 라디오같은데서 자칭하고 다니는 걸 듣고 서운했다고]
         생각보다 경력이 다양하다. 원래 85년부터 연극배우/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었고, 메인스트림 연예인 데뷔는 1992년에 [[가수]]로 하였다. 장르는 [[발라드]]이고 앨범 제목은 '''우울한 오후엔 미소를'''. 애초에 다른 개그맨들처럼 개그 소스로 만들기 위해 음을 낸 것이 아니라 당시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정말, 진지하게 가수로 활동하려고 낸 음이었기에 생각보다 노래가 괜찮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자신을 두고 기획사 3곳이 경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제는 활동 후속 곡의 제목이 하필이면 '''[[난 알아요]]'''였다는 것. 심지어 1집 데뷔 시기와 데뷔 프로그램도 서태지와 같았다.[* 유튜브 등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프로인 MBC의 "특종TV연예"를 검색해 보면 음 소개로 잠깐 나온다.] 결국, 그의 가수 활동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일으킨 폭풍으로 철저하게 묻혔고 훗날 그의 개그 소재로 쓰이게 되었다. 나중에는 지석진 본인도 '''"여기서 서태지랑 대결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으로 농담삼아 여러 번 써먹는다.
         가수 활동이 좌절되자 지석진은 같은 [[해군홍보단]] 입대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김용만]]의 권유로 1993년 KBS 개그맨 공채에 도전하여 10기로 합격, 개그맨이 되었다. KBS 공채 시험을 볼 때 [[박수홍]], [[김용만]] 등이 그의 대본 작성 및 연기 연습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유재석]]보다 나이도 많고 같은 KBS 공채 개그맨이라는 출신 때문에 지석진이 [[유재석]]의 KBS 동기나 선배로 생각하지만 [[유재석]]은 공채 7기로 지석진의 선배이다. 다만 지석진은 이미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공채 전부터 유재석과 알던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 희극인의 실세인 [[심형래]]는 이런 지석진을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어느 날은 심형래가 [[유재석]]과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을 불러서 지석진을 혼내라고 했는데 유재석과 김수용은 자신들보다 연장자인 지석진을 구타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 큰 소리를 내며 갈구는 연기를 했고 그것을 본 심형래가 무척 화를 내며 세 명 모두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하게 구타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드러나는 [[심형래]]의 노답성~~ .[* 이 때문인지 심형래가 후일 [[런닝맨]]에 출연했을 때 지석진은 심형래의 되도 않는 억지에 멤버들 중 가장 불쾌해 하는 응을 보여 주었다.]
         MC 공채 출신답게 재치넘치는 입담이 전매특허로 [[송은이]]와 더불어 유재석의 방송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주로 [[사이다]], 여유만만, 진실게임[* 본래 유재석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지석진이 이어받아 진행했다.] 등 토크쇼 프로그램의 MC를 많이 맡았으며, 설날이나 추석 등의 특집 프로그램 MC 경력도 많다. 이 중 많이 알려진 프로그램은 '[[보야르 원정대]]', '[[스타골든벨]]'[* 스타골든벨에서는 메인보다는 현장에서 분위기를 조절하는 분위기 메이커역을 주로 맡았다. 소속사가 PD에게 로비를 한 것이 드러나서 잠시 구설에 올랐고 그 시기가 개편과도 맞물려서 잠시 프로그램을 하차한 적이 있지만 메인 MC가 여러 차례 교체됐음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 시즌2에 해당하는 '스타골든벨 1학년 1'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실은 숨겨진 실세~~], '[[여걸 파이브]]', '[[여걸 식스]]'[* 여걸식스의 후속작 하이파이브에서도 MC를 맡았으나 프로그램 자체가 사실상 여걸식스의 끝물빼기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던지라 오래 가지 못하고 증발했다.], '[[런닝맨]]'.
         [[런닝맨]]의 인기를 발판으로 중국, 대만 등에 성공리에 진출한 한류스타다. [[http://tvcast.naver.com/v/259041|해피투게더에서 인증]]. 대만 팬미팅이 10분 만에 매진됐고 현장 응도 뜨거웠다. [[웨이보]]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5020411394144327&type=1&outlink=1|팔로워가 100만]]에 '좋아요' 누른 팬도 최대 14만.[*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0587296|참조]].]
         주변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 중 하나로, 김용만과 함께 '''팔랑귀'''로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유재석이 '임팔라'란 별명을 붙인 것도 여기저기 온갖 소리에 나서서 응하는 모습이 초원에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응하는 임팔라와 꼭 닮았다는 이유. 유명한 사건으로, 김용만과 해외여행 가서[* 황당한 것은 날짜 맞추다 보니 이게 '''허니문 코스'''였다고 한다(...).] 잠시 휴식하던 사이, 가이드가 사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도 현지 장사꾼들한테 속아서 ~~호구 왔는가~~ 가짜 악어 지갑 수십 개를 그 자리에서 샀다고 한다. 사실 압축 종이로 만들어진 지갑이라 물에 젖더니 순식간에 찢어졌다고... 유재석한테도 선물로 줬는데 모르고 썼던 유재석은 뒷주머니에 넣어 뒀더니 땀 때문에 퉁퉁 불어서 돈이랑 엉겨붙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모양. 이 방면에서 워낙 유명하다보니 세일즈맨들 사이에선 "김용만이나 지석진한테 물건 못 팔면 이 바닥 떠나라"는 말까지 돌았다고...이 때문에 주식이나 사업도 여러번 날려먹은 뒤로는 사업은 안하고 주식도 안전한 주식만 한다고 한다.
  • 창작:맹수인 . . . . 9회 일치
         ''' "같은 신에서 나왔다는 맹수인들마저 서로 증오하고 죽이고 싸운다. 하물며, 태생부터가 원수지간인 우리와 저 북쪽의 조인들은 또 어떻겠는가?"- 아발론제국의 '변방왕' 아서, 안덴 원정을 대하는 신하들에게 '''
         사자족은 맹수인들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며, 현실의 사자와 비슷하게 수컷들은 수북한 갈기를 자랑하며, 이 갈기가 수북하고 아름다울수록 미인으로 취급된다. 사용하는 언어는 레잉어이며,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북부와 그곳에 연결된 지방인 아프 도.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도.
         늑대족은 보통 다른 종족에게 도적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크게 두개의 부류로 나뉘는데, 북극인근의 '눈늑대섬'과 아프도 북부, 대륙 북부일부에 서식하는 '눈늑대족', 그리고 대륙 중부 '메말사막'과 대륙 중북부를 나누는 '등퍼산맥' 인근에 사는 '늑대족'으로 나뉜다. 메말사막에 사는 이들은 메말사막 북쪽 초원에서 말을 공급받아 그 말들로 노략질을 하는것으로 유명한데, 츄프의 몇몇 대귀족들까지 연관되있어 뿌리뽑기 매우 힘들다. 츄프 왕국은 티겔 왕국과 동맹관계기에 이 부정한 동맹을 뿌리뽑으려 노력했지만 현재까지도 잘 근절되지가 않는 실정이다.
         눈늑대족은 대륙 역사의 중심이 중북부일때부터 유명했는데, 이는 그때부터 대륙 북부에 '곰의 턱뼈'라 불리는 터그퍼산맥 인근에 살면서 약탈을 해왔기때문이다. (보통 피해국은 인근 해안을 장악한 펭공국과 상티겔 왕국.)한때 라이엘기스를 정복하려 시도해봤으나, 라이엘기스의 첫대공인 '불꽃갈기' 로베르에게 격퇴당하고 이후 해안가 일대를 약탈하는 소규모 해적때로 전락했다. 아라스 제국이 동부대륙 북부를 장악하면서 이들의 운명은 둘로 나뉘는데, 아라스 제국에 저항하면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아라스제국과 북부 거인족들 사이에 끼여 전멸하거나, 아라스 제국에 자발적으로 복속하거나, 그들을 피해 '눈늑대섬'이라 이름붙여진 섬으로 숨다가 복속되거나. 이세가지로 나뉜다. 이중 두번째 길을 택한 자들중 '게트롬'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이자가 아라스제국의 지원을 받고 아프 도 북부를 장악. '게트롬 왕국'을 세운다.
         하이에나족은 '하이엔'지방에 서식하는 족속들로, 등에 갈기가 있다. 이들은 한때 중북부에 '하이엔 왕국'이란 상당히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레이먼 제국의 창시자인 샤를 대제에 의해 멸망당하고 레이먼제국의 피지배민족으로 있게된다. 이후 이들은 수많은 란을 일으키지만 모두 실패하고, '유일황제'샤를이 아라스 제국에 패배하면서 하이엔등 '상 하이엔'지방은 아라스 제국에게, 그외 ''하 하이엔'지방은 레이먼 제국에게로 분열된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9회 일치
         예상했듯이 집안의 구조는 우리 집과 별 차이가 없다. 좁은 현관은 거실 겸 응접실로 이어지고 그 뒤에 주방이 있다. 거실과 구분되는 벽 같은 건 없으므로 한 눈에 주방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나는 토트넘이 꽤 이른 시기에 당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집 안에서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실 쪽이 어수선하게 떨어진 물건들이 많은 데 비해 주방 쪽은 깨끗하다. 사용감을 느낄 만한 흔적이 없다. 그야 녀석들은 주방을 쓸 줄 모를 테니까. 대로 토트넘이 오래 버텼다면 주방에 흔적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장롱 밑에 무언가가 있었다. 거기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마치 망가진 마네킹 같은…… '''하신'''이었다.
         순간적으로 마비되어 있던 감각들이 깨어났다. 다리가 굳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하신이다. 게다가 녀석들 쪽이다. 생존자가 이런 꼴이 됐더라면 필시 피가 흐르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이 방이 빨간 방으로 보일 정도로 화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체액이 튄 흔적은 없다. '''절단면'''에 검은 끈끈이 같은게 엉겨 있는게 전부다.
         하신은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몸체에서 떨어진지 오래됐을 것이다. 허리 아래 거의 전부가 여기에 있으니 남기고 간 쪽도 움직이고 있으리라 보긴 어려울 것이다. 기어다니는 정도는 하겠지만, 녀석들 신체가 그리 튼튼하진 않으니까. 손이 닳아 없어지지 않았을까?
         '''그 생존자가 이 놈의 상신을 잘라을 거란 얘기가 된다.'''
         자 보자. 좀비 아포칼립스가 일어나기 바로 얼마 전에 옆집 아줌마는 수상한 병으로 한 달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집 아저씨만 수상한 약을 지어다 먹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에 사단이 일어나고 우연히 옆집의 생존자가 탐색하러 왔는데…… 죽은지 오래된 녀석의 하신이 덩그러니 있다.
         "좋아 그대로 문피아에 올리는 거야. 출판도 가능하겠네 작가 양. 계약은 '''좀비와 지성사'''랑 하면 어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쳐낼 수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아저씨는 토트넘이 되었다.''' 살아있는 채로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엉성한 부분이야 어쨌든 아저씨가 토트넘이 되어버린 결과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 그가 아줌마를 깔아뭉게고 잘라내는 과정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았을 거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면 이미 "아줌마"라고 무의식적으로 부르고 있는 저것은 왜 상신이 사라진 걸까? 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점점 더 확인된 사실처럼 여겨지는 걸까?
         이런 정신상태에서도 다이너스티 키를 찾기 위한 수색은 계속되었다. 나는 혹시라도 상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며 작은 방도 살펴봤고 화장실까지 열어놨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열쇠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 때려치고 돌아가 버릴까? 몸에 엉겨붙은 토트넘의 체액이 너무 역겹다. 돌아가서 샤워와 함께 오늘의 기억도 말끔히 흘려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 물론 식량도 챙기고.
  • 최세창 . . . . 9회 일치
         [[1953년]] [[경동고등학교|서울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57년]]에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77년]] 육군 특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장으로 보임되었고 [[1979년]]에 일어난 [[12·12 군사 란]] 당시 [[하나회]]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제3공수특전여단을 지휘했다.
         [[1980년]] [[5월 20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했으며 나중에 사단장, 육군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대한민국 국방부]]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장관]] 등을 역임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란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란 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됐다.<ref>{{뉴스 인용
         * [[미국 육군 보병학교]] 초등군사 졸업
         *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 졸업
         * [[12·12 군사 란]]
         {{12·12 란 주동자}}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란자]][[분류:하나회]][[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주 최씨]][[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역죄 기결수]]
  • 크립토나이트 . . . . 9회 일치
         [[렉스 루터]]나 [[배트맨]]이 이 물질을 소지하고 있다. 렉스는 지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고, 배트맨은 배트케이브에 보관해 두고 있다. 크립토나이트의 방사능은 인간에게는 해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너무 오래 지를 끼고 있었던 렉스 루터는 방사능 과다 노출로 암에 걸려서 클론 시체를 만들어야 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장기간 노출은 인간에게도 위험하다.
         배트맨 역시 지를 만들어 갖고 다닌다. 배트맨: 허쉬에서는 슈퍼맨과 맞짱뜰 때, 벨트에서 이걸 꺼냄. 그런데 이걸 꼈음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이 주먹으로 서너 대 때리니까 '''"더 때렸다가는 내 손이 아작나겠군"'''이라고 중얼거린다.
         대로 슈퍼맨의 전 버전인 [[울트라맨(DC 코믹스)|울트라맨]]처럼 이것을 섭취할 수록 강해지는 생명체도 존재하며, 슈퍼맨의 적 중 하나인 [[메탈로]]는 동력원으로 이 크립토나이트를 사용한다. [[포에버 이블]] 이슈에서 울트라맨은 강해지기 위해 자신의 세계뿐만 아니라 프라임 세계에 있는 거의 모든 크립토나이트까지도 빨아들여 먹어버렸는데, 이후 더욱 강해지기 위해 [[크라임 신디케이트|데스스톰]]에게 인공적으로 크립토나이트를 합성하여 만들 것을 지시한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데스스톰은 [[렉스 루터|알렉산더 루터]]에 의해 끔살당했기 때문에 그가 크립토나이트를 만드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포에버 이블 이후의 이야기들에서도 지속적으로 크립토나이트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인공적으로 크립토나이트를 만드는 방법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슈퍼맨의 불완전한 복제체인 [[비자로]]에게 그린 크립토나이트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면 그린 크립토나이트는 비자로에게 효과가 없다. 슈퍼맨이나 다른 크립톤인들에게 쓰이는 장면은 확인하지 못해서 어떤 능력인지 알수 없다.
         [[스몰빌]]에서는 이걸 지닌 크립톤인들은 일인이 된다. 이때는 그린 크립토나이트도 안통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크립토나이트에 의해 슈퍼맨이 인간처럼 변하는 줄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 알고있는 것. 일단 약해지는 건 맞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 상태에서 힘이 들어가지 않고 능력도 사용할 수 없으며 맞을 경우 피해를 배 이상 입기는 하지만 몸의 피부, 근육의 단단함이라던가는 그대로이다. 쉽게 말해서 크립토 나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개기며 슈퍼맨을 때릴 경우에는 슈퍼맨도 피해를 입지만 자기 손도 '''박살'''난다는 것. 실제로 배트맨도 슈퍼맨과 싸울때 크립토나이트 지를 끼고 약화시켜서 일방적으로 때린 적이 있었지만 중간에 그만뒀다. 이유는 더이상 때리면 오히려 자기 손이 박살날것 같아서...
          * 지구-3의 슈퍼맨의 전 버전인 수퍼빌런 [[울트라맨(DC 코믹스)|울트라맨]]은 크립토나이트를 섭취함으로써 힘을 얻는다. 약점은 태양계의 태양 광선.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9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덴노 지지자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무너진 질서는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쇼군은 현 상황을 좀 더 개선하고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필 것이고 알지 못했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덴노 주변의 얼간이들을 무너뜨리고 일본에 대한 명예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쇼군은 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무역 관계는 수립되었지만, 화친조약은 서구열강들에게 유리한 협정이었습니다. 경제는 흔들거렸고, 백성들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1863년, 덴노는 쇼군의 결정을 뒤엎었습니다. 모든 서구 세력을 축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일본은 더이상 서구화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격할 때가 왔습니다. 서구 세력들은 이러한 격에 대해 보복을 감행했습니다. 기만적인 서양인은 우리 백성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쇼군은 더 이상 존경이나 충성을 받지 못합니다. 우린 덴노 중심의 왕정복고를 성공시켜야만 합니다. 덴노는 현 상황을 좀 더 개선하고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영국과 화해했습니다.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필 것이고 알지 못했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쇼군을 무너뜨리고 일본에 대한 명예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덴노는 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덴노를 드높이고 오랑캐를 내몰자고 외치며 도쿠가와 막부에 기를 든 세력. 실제 역사에서는 이들이 승리해 [[일본 제국]]의 성립으로 이어진다.
         본래 야마우치 가문은 보신 전쟁의 발발을 기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존왕파의 초슈 번과 사츠마 번이 더욱 강대해질게 뻔했기 때문. 그래서 도쿠가와 막부가 덴노에게 권력을 넘기기를 요구해왔지만 결국 전쟁으로 결판이 나게되자 존왕파에 들어간다.
         모리 가문이 다스리는 번. 나가토를 본거지로 두고있다. 모리 가문은 도쿠가와 가문이 도요토미 가문과 일본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싸우던 당시 도요토미 가문의 편에 섰었다. 하지만 오사카 성 전투 당시 싸우지 않고 후퇴하며 도쿠가와 가문이 승리를 거두도록 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막부는 모리 가문을 형편없게 대했고, 이로 인해 모리 가문은 막부에 감을 가지게 된다. 막부가 서구에게 개항하자 이를 빌미로 막부를 상대로 들고 일어났다.
         스팀판에서는 초슈 번으로 플레이 하며 한 캠페인에서 유신지사로 란 선동을 3회 하는 Agent Provocateur 도전과제가 있다.
  • 하이큐/268화 . . . . 9회 일치
          * [[네코마 고교]]가 [[사루카와 공고]]의 전략을 눈치챈 시점은 1세트 중. 첫 번째 TO에서 [[코즈메 켄마]]는 자신을 이용한 유인책을 입안한다.
          * 1세트 중. [[네코마 고교]]는 [[사루카와 공고]]의 부자연스러운 플레이를 눈치챘다. 첫 번째 TO는 그 위화감의 정체가 뭔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것. 우선 정체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적은 네코마의 뇌이자 심장인 [[코즈메 켄마]]를 지치게 만들 심산이었다. [[야마모토 타케토라]]가 그렇게 상황을 정리했는데 [[하이바 리에프]]가 이해하지 못했다. [[시바야마 유우키]]가 적당히 설명. 그래도 그의 머리로는 알기 어려운 얘기였다.
          * 코즈메의 작전은 바보같은 리에프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위험했다. 일부러 리시브를 흔든다. 전례가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을까? 코즈메는 유효한 국면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야쿠는 코즈메의 의향이 그렇다면 따를 테지만, 이미 휘청거리는 상태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문했다. 물론 코즈메는 매번 엔드라인까지 뛰어가기는 싫었다. 하지만 못 움직일 상태인 것도 아니고, 진짜 부담이 많아가는건 후위라고 했다.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져야 하는 데다 자신이 지정한 위치로 넘기기까지 해야 하니까.
          아무도 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야쿠는 마지막으로 달리 더 주문할 건 없냐고 물었고 코즈메는 될 수 있는 한 높이 올려달라고 답했다. 리에프를 제외한 전원이 대답했다.
          * 이후는 코즈메가 생각한 대로였다. 사루카와의 움직임은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쿠로오와 리에프의 존재 때문에 상대측은 센터선을 경계하고 있으므로 블록은 MB 쪽에 집중될 것이다. 그들은 코즈메를 무너뜨리는게 목적이므로 적당한 신호를 준다면 "흔들린 리시브"라고 철썩 같이 믿을 것이다. 그때가 기회. 블록을 공과 MB 위치로 끌어들은 뒤에 멀리 돌리는 토스. 혹시 사루카와가 눈치를 챈다면 "대편"을 활용한다. 그렇게 그려져 있던 그림이 2세트 후, 지금 작렬했다.
          2세트 종의 싸움은 한층 치열해졌다. 보는 사람의 숨이 막히는 랠리의 연속. 두 팀의 마음가짐은 한결같았다.
          * 야마모토의 리시브는 언제나 한 가지 원칙에 출실했다. 걸음 빨리 공에 도달하는 것. 그 걸음 만큼 공을 조작할 여유가 늘어난다. 그 차이는 코트 바깥의, 다른 학교 선수들이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은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저런 정성스런 리시브가 가능한지 감탄했다. 코즈메의 주문 대로다. 높게 네트 앞으로 띄워진 공. 정확히 코즈메의 머리 위. 상대는 코즈메의 유도와 양 사이드의 공격에 모두 유의하고 있었다. 들어갈 구멍이 있을까? 그렇다면 정중앙. 심플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쿠로오가 스파이크. 이것이 허를 찔렀다. 네코마의 득점. 스코어 29 대 28. 네코마가 마침내 역전. 매치 포인트에 도달한다.
  • 허준호(배우) . . . . 9회 일치
         원로 배우 [[허장강]]의 아들로도 유명하긴 하지만 스스로의 연기력으로 올라선 인물로서, 20대 무명시절을 겪고난 후 30대 초이던 1990년대 중부터 청춘스타 열에 오른 배우들과 함께 비중있는 조연으로 얼굴을 내 비추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6년 드라마 "주몽"에서 맡은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 역이 유명하다. 주몽의 훌륭한 멘토이자 과거 [[세계관 최강자]]였던 인물의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신인 시절인 1990년대 후까지만 해도 정이 많고 편안한 이미지의 캐릭터도 많이 맡았다. 뮤지컬 배우인지라 노래에도 자신이 있었는지 1994년에는 동료 탤런트 김대희와 함께 가수 활동을 한 적도 있고, 그가 부른 솔로곡 중에 '어머님의 자장가'('사랑과 평화'가 부른 노래를 리메이크)가 어느 정도는 유명하다.
         [[실미도(영화)|실미도]]를 촬영할 때 북파 공작원으로 캐스팅을 받았는데 '''명령에 충실했을 뿐인 북파 공작원 교관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공작원이 아닌 교관역을 자청하여 매섭고 냉정하지만 사실 속정은 깊은 조돈일 중사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초에는 정말 악질 교관의 모습을 보이며 구타를 일삼았지만 후에 북파 공작원들이 버스를 탈취했을 때 이를 진압하는 진압군 앞에서 공작원들을 변호하며 어떻게든 자신이 훈련시킨 공작원들을 살려보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자폭한 공작원들의 이름을 쉰 목소리로 외치며 오열하는 호연으로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특히 사탕봉지를 떨어뜨리는 장면의 애잔함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쟤들 무장공비 아닙니다!~~
          * 2005년 《강력3》... 문봉수 역
          * 2006년 《중천》... 수 역
          * 2001년 ~~KBS2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건 맞지만,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는 [[이미연(배우)|이미연]]의 당시 소속사인 GM기획이 음 제작을 주도하면서 드라마 제작진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실제 뮤직비디오 속 배우와 드라마 속 배우들이 몇몇 배역의 경우 다르다. 대표적으로 뮤직비디오의 사실상 남자주인공이었던 [[정준호]]도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 화표 . . . . 9회 일치
         일적으로 아래에 대좌(臺座), 용이 새겨진 기둥 모양의 룡주(蟠龍柱), 기둥 위에 놓여지는 승로(承露盤), 기둥에 앉아 있는 준수[* 작은 짐승]으로 구성된다.
         화표 기둥은 육각 기둥 형태이며, [[구름]]을 바탕으로 하여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를 룡주(蟠龍柱)라고 부른다.
         화표의 최상단 쯤에는 구름을 새겨넣은 운판(雲板)이 횡으로 설치되어 있고, 맨 꼭대기에는 쟁같은 원형 석판이 있는데 이를 승로(承露盤)이라고 한다. 승로은 본래 [[신선]] 사상의 도구로서, [[이슬]]을 받아서 마시고 장생불사를 기원하는 도가 양생법에 쓰이는 도구이다.[* [[한무제]], 위명제 조예 등이 승로을 설치하여 이슬을 받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천안문 화표에는 승로 위에 '후'라는 작은 동물[* [[용생구자]]의 하나이다.]이 올라타고 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8회 일치
          * General Equipment(일 장비): 아이콘은 드럼통 두개. 돌격소총 같은 소화기들은 Artillery가 아니라 이 전공과 관련있다.
          * Large Task Force Tactics(대규모 기동부대 전술): 아이콘은 7개의 점.
          * Small Task Force Tactics(소규모 기동부대 전술): 아이콘은 3개의 점.
         대부분의 연구진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일부 연구진은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일정 년도가 되면 그대로 사라진다. 이는 실제 역사상에서 해당 연구진이 사망/해체/파산된 것을 구현한 것이다. 대로 새로 생겨나는 연구진도 있다. 그런데 이거 좀 어거지로 되어있어서 1950년대 일본 제국은 겨우겨우 살아서 제국주의짓 해도 일본군 관련 연구진들은 싹 쓸려나가고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가 그 자리를 메꾼다.
          * AEG(Allgemeine Elektricitäts-Gesellschaft, 일전자회사)
          대숙청으로 처형당한 것을 영해 대숙청 이벤트가 발동하는 즉시 사라진다. 만약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면 그대로 취소된다.
          미국으로 망명한 행적을 영해서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사라진다.
          * Giovanni Messe(지오니 메세)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8회 일치
         이게임시작지점에서 가장 많은 땅덩어리를 지니고 있으며, 가장 높은 총개발도(developement)를 지닌 국가. 상당히 많은 고유시스템을 들고있는데, 고유 팩션인 천조국 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관료, 사원, 환관이 행정, 군사, 외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각 팩션의 영향력이 가장 높을경우 그 팩션이 보너스를 주는 형식이다. 그리고 고유 정부체제인 천조국(Celestial Empire)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기술비용과 안정도 비용을 10%줄여주며, 모든 땅의 수입이 이된다. 천명이란 시스템으로 란도를 5줄여준다. 만약에 정통성이 70이하이거나 안정도가 음수가 될경우엔, '천명을 잃음'이 뜨면서 천명의 보너스가 사라지고 란도가 5상승해 최종적으로 란도 10이 늘어난다(...) 거기다가 중국계 문화권이 엄청 세분화되어 천명한번 터질경우엔 오나라, 촉나라, 연나라, 제나라등 소국들이 죄다 란일으키고 독립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기도 한다...~~안습~~ 내적 완결성등 명한테 들어있던 수많은 디버프들이 전부 사라져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여전히 천명이란 고유시스템덕에 빵빵터지는 군들을 맛볼 수 있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서구화를 하도록 하자
         난이도는 상당히 쉽다. 실제역사대로라면 조선이 남만주를 먹는 즉시 명나라에서 견제가 들어오겠지만 이게임에서는 그런게 없다보니(...) 초애 훈춘(hunchun)이나 헤투 알라(Hetu Ala)정복 미션을 받고 남만주를 먹고난뒤, 지린에 클레임을 걸고 먹어둬서 지린노드를 장악하면 된다. 다만, 예전에는 조선과 명에 역사적 친구 보정이 있어서 명과 동맹을 걸고 편하게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을 집어삼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보정이 삭제되어 명과의 관계도를 미리미리 올려둬서 침공의 가능성을 줄여둬야 할것이다. 결국 조선의 난이도는 명이 얼마나 빨리 갈라지느냐에 있다. 명이 초에 천명이 터져서 조각조각 갈라진다면 게임은 굉장히 쉬워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고달픈 난이도가 될것이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8회 일치
         양 팀은 단 한번도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기에 클래식에서 쌓은 내공이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었다. 게다가 수원 FC는 후 6분경에 수비수 임하람이 거친 백태클로 경고 없이 레드카드를 받아 나가는 상황까지 겹쳤지만 경기는 단 1골로 승패가 가려졌고, 수원 FC가 선승을 가져가면서 2차전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게 된다.
         부산은 1차전의 패배 때문에 드시 2골 이상을 넣어야지만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면에, 수원FC는 1차전(홈)에서 1골을 넣었기 때문에 역으로 1골만 넣어도 3실점 이상 먹이지만 않는다면 승격이 눈앞에 있던 상황.
         이런 이유로 1차전에서는 수원이 점유율을 가져가는 축구를 했던 면에, 2차전은 부산이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며 강력하게 압박하는 축구를 구사하였다. 전만 보면 부산의 점유율은 60%에 슈팅 숫자는 4개(유효슈팅 3)였던 면에, 수원은 점유율 40%에 슈팅 2(유효 0)뿐이었다.
         하지만 조덕제 감독이 구상한 칙을 통한 흐름을 끊어주는 전략이 유효했고,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해 경기 종료 즈음하여 2골이 터지면서 수원의 승격이 확정된다.
         [[오프사이드]]를 제외하고도 양 팀 합계 칙이 43개나 나올만큼 승강이 갖는 '''생존'''이란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경기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 길용우 . . . . 8회 일치
         태민영과 많이 닮았다. 태민영은 유작이 된 [[태조 왕건]]에서는 초에 신강 역으로 나왔다.[* 오래 갈 만한 캐릭터였는데,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 하였는지라...][* 또한 용의 눈물에서는 정종 이방과를 연기하기도 했다.] 길용우는 [[복지겸]]으로 나왔다. 15회에는 둘이 같이 출연한다.
         [[짝 빛나는]]의 황남봉 역처럼 망가지는 역보다는 주로 점잖은 중년 신사 역으로 훨씬 더 많이 출연하였다.
         이에 길성진은 "손님 또는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이 일 대중에 공개된 옥상에 자발적으로 올라가 음식물을 취식한 것이지, 옥상에서 영업한 사실이 없다"며 소송을 냈다. 또 구청의 처분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 판결 조사 결과 "당시 건물 옥상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비치됐고 조명도 설치됐으며 옥상에 가기 위해선 해당 맥줏집 내부를 통과해야만 한다"며 "단속을 전후해 건물 옥상에서 나오는 음악·이야기 소리로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된 점을 들어 불법 영업을 옥상에서 했다는 증거가 된다라고 짚었다.
          * [[짝 빛나는(드라마)|짝 빛나는]] - 황남봉 역
  • 김상중(배우) . . . . 8회 일치
         일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타급 연기자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1996년]] KBS 주말연속극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고고한 독신주의자였던 목욕탕집 맏딸 김윤경([[배종옥]] 분)을 능글능글함으로 쥐락펴락하면서 마침내 결혼에까지 골인하는 노총각 강호준 역할을 맡으면서부터이다. 그 후 SBS 드라마 홍길동에서 주인공 김석훈과 대립하는 이업 역, 경찰특공대에서의 대장 역, 제국의 아침의 광종 역, 추적자의 강동윤 역, 개과천선의 차영우 대표변호사 역 등 중량감 있으면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냉철한 역할로 이름을 알렸다. 특유의 강렬한 눈빛 연기는 위 작품들을 거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데, 이때부터 쌓인 내공을 [[나쁜 녀석들(OCN)|나쁜 녀석들]]에서 제대로 폭발시킨다...
         잘 안어울릴것 같지만 의외로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홍상수의 작업방식이나 영화 등에 회의적인 입장이라 깔 겸 캐스팅에 응했다고한다. 하지만 함께해보니 배우들이 왜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의외로 잘 어울렸다.'''[* 사실 이런 응은 홍상수 영화 캐스팅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고현정이라든지 김승우 이기우 등등 의외로 좀 있다. 이중 고현정과 이기우는 몇 편을 더 주조연으로 홍상수와 작품을 함께했다.] 아무래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다져진 배우의 힘일 듯. 보통 나오는 기존의 남자상에 비해 좀 더 점잖고 젠틀하게 나왔긴 했는데 홍상수 영화 분위기 상... 영화 북촌방향 후부 리얼했던 취한 연기[* 참고로 이런 장면을 찍을 때 홍상수는 배우들에게 진짜 술을 먹인다. 술에만 한정이 아니라 자다깬 장면이있을 시 진짜로 배우들을 좀 재우기도 하고 심지어 배우가 몸이 좀 안좋다 하자 한의원 신을 넣어 치료와 촬영을 동시에 하는 감독(...)]나 우리선희에서 제자와 만나는 교수의 모습은 브라운관에서만 김상중을 봐온 일부 팬들에게 신선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그런데’라고 말을 이었지만 시청자에게 말하는 느낌인 것 같아 긴장감과 기대감을 주는 느낌으로 직접 개발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년탐정 김전일|중년탐정 김상중]][* 줄여서 중탐이라고도 부른다.]으로도 불리고 있다. 한 예로 [[추적자 더 체이서]]의 홍보를 위해 출연한 한밤의 TV연예의 직구 인터뷰라는 코너에서도 그것이 알고싶다를 연상시키는 말투로 '중년탐정 김상중'이 직업병에 걸린 것이 아니냐 하는 우스개도 있었다. 대본이니 진지하게 논할 부분은 아니다. 특히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자주 하는 대사로 '''그런데 말입니다.''' (예전에는 그런데 말인데요)가 있다. 네이버에서 김상중의 연관검색어로 뜬다. 2014년 하기 이후로는 "그런데요"라고도 하여 변화도 슬쩍 보이고 있다. 그외에 "~는 무엇을 의미하는걸까요?"도 제법 쓴다.
          * [[해병대 수색대]] 출신이고 [[병장]] 출신이다.[* 참고로 자신의 먼 친척인 [[김광규]]는 해병대 병 출신이 아니라 육군 부사관([[중사]] 만기전역) 출신이다. 김수로는 1990년대 중까지 아버지가 없는 외아들에게 주어졌다는 병역(부사망 독자)인 6개월 방위 출신이다.]
          * [[최민수]]가 인정한 착한 남자. [[무릎팍도사]]에 김상중의 [[친구]]이기도 한 [[조재현]]이 출연했을 때 [[최민수]]와 만났던 이야기를 했는데 김상중이 착하다는 언급이 나왔다(?). 최민수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최민수가 "재현아, 상중이 아냐? 저번에 상중이 만났는데 상중이가 착하더라"라고 해서 조재현이 "네 형, 상중이 착해요."라고 했는데 최민수가 계속 '상중이 착해'라는 언급을 복해서 짜증났다고 한다. '이 형 왜 자꾸 내앞에서 상중이 얘기만 하시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한도]](2006) - 고종황제 역
  • 김원주(가수) . . . . 8회 일치
         [[2011년]] 하기 포맨 신용재와 MIII의 노래인 '그남자 그여자'의 MV에 출연해 [[달샤벳]]의 [[지율]]과 함께 꽤 괜찮은 연기를 펼쳤다.데뷔 전 댄서 출신이어서 그런지 춤을 잘춘다.[* 지금도 단독 콘서트에서 솔로무대를 할때 가끔 춤을 보여주는데, 당시 댄서로 활동하던 댄스팀 이름은 레볼루션이었다고 한다.]
         [[2013년]] [[5월 13일]] 컴백한 음의 타이틀곡인 '지우고싶다' 에서 주인공으로 열연을 했는데 대사가 없어서 꽤 [[http://osen.mt.co.kr/article/G1109852598/|편했다고 한다.]]
         신용재와 가창력 면에서 의외로 상되는게 많다. 김원주는 중저음역대는 안정적이지만 고음역대가 안정적이지 않고, 신용재는 김원주보다는 고음역대가 안정적이며 신용재는 구슬픈 음색이지만 김원주는 구슬프지않고 담백한 음색이다. 둘다 노래할땐 기교를 많이 넣는데 신용재는 애드리브를 많이 넣고 김원주는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넣어서 부른다.
          * 전역 이후 복면가왕 66차 경연에서 [[누르면 나옵니다 노래자판기]]라는 가명으로 참여해서 준결승에 올랐다.([[내맘을 들었다 놨다 인형뽑기]]에게 승리, [[널 깨물어주고 싶어 초록악어]]에게 패배[* 참고로 이 대결에서는 [[뜨거운 심장 양철로봇|가왕을]] [[신비주의 아기천사|배출]]한 그룹의 팀원이 대결했다.]) 그는 전역 이후 솔로 무대는 처음이고 떠나간 팬들이 이 무대를 보고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참고로 이 경연에서 그와 같이 듀엣으로 [[잘자요 꿈의 요정 드림캐처|음 활동을 했던 가수]]도 참여했으며 가왕 도전자가 되었다.
         == 음 ==
         === [[포맨]] 음 ===
         === 솔로 음 ===
          * 겨울연가 [* 멤버중 첫번째로 OST가 아닌 자신의 음을 냈다.]
  • 김종훈 (1952년) . . . . 8회 일치
         [[2010년]] [[12월 13일]] [[한미 FTA]]와 관련된 세미나에서 FTA에 가장 강력하게 발했던 농민을 두고 '정부관리를 매수하여 농업보조금을 타는 다방 농민'이라고 비판하였다. 민주당 부대변인 [[김현 (정치인)|김현]]은 "김종훈 본부장이 숭미사대주의에 빠져 쌀값 폭락과 구제역에 피눈물을 흘리는 농민들의 아픔은 아랑곳 않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언사를 듣고 있자니 김 본부장이 어느 나라 머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하였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662115 김종훈 '다방 농민' 발언 일파만파] 《노컷뉴스》 2010년 12월 14일</ref> [[진보신당]]도 "통상교섭본부장 그만 두고 다방에서 커피나 마시는 게 더 국익에 도움이 될 것"과 "한미FTA로 인해 고통당할 농민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공식적으로 비판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2141521251&code=940100 김종훈 ‘다방농민’발언에 “다방에나 가라” 역공] 《경향신문》 2010년 12월 14일</ref>
         또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훈은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서 강북 출마설에 대해 묻자 강북을 저 어디 어두컴컴한 데'라고 묘사하여 물의를 빚었고,<ref>[http://www.mt.co.kr/edition/se_vote2012/vote_view.php?no=2012032014002808265&sec=news&gb= 김종훈 '강남아니면 컴컴한 곳'? SNS'폭발'] 《머니투데이》 2012년 3월 20일</ref> CBS와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20년이 됐다”며 “이것이 한-미 에프티에이(FTA)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발언으로 대한민국내 영세업자들의 발을 사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5380.html “컴컴한 데” 발언 김종훈 “구멍가게 20년전에…”] 《한겨레》 2012년 3월 26일</ref>
         새누리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4.11 총선거를 앞두고 홍사덕, 김종훈 후보 등 새누리당 후보들의 트위터 계정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며 트위터 계정폭파를 신종 사이버 공격으로 규정하고, "검찰은 트위터 계정폭파 범죄에 대해 즉각 수사에 나서 선거를 방해하려는 집단의 배후를 밝혀내라"고 촉구했다.<ref>[http://news1.kr/articles/608133 새누리 "김종훈 트위터 폭파는 조직적 테러"] 《뉴스1》 2012년 3월 28일 차윤주 기자</ref> 그러나 "트위터 계정폭파란 존재하지 않으며,<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745518&ctg=1200 트위터 본사 "계정폭파?...이용규정 위으로 정지는 된다"] 《중앙일보》 2012년 3월 30일</ref> 오히려 사용자가 복된 글을 일방적으로 보내는 등 이용규정 위할 경우 정지된다"는 트위터 본사 측 박<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330800080 트위터 측 “새누리당, 복 글 보내 정지된 것” 박] 《서울신문》 2012년 3월 30일</ref> 으로 새누리당 측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329031607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새누리당, 새 됐네"] 《프레시안》 2012년 3월 29일 이명선 기자</ref><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84981 보수지 신봉하던 새누리, '국제적 대망신' 자초] 《뷰스앤뉴스》 2012년 3월 29일</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5874.html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당했다더니…“국제적 망신살”] 《한겨레》 2012년 3월 29일</ref>
  • 김진우(WINNER) . . . . 8회 일치
         사실 데뷔초에는 계속 겸손한 자세를 취하다가 연배가 쌓이고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 잘생겼다고 말할때 재미있게 받아치면 좋을거 같아서 얼굴 잘생긴거 안다고 대답한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만히 있다가 입술이 너무 크다고 디스당한 강승윤은 덤...~~ 최근엔 특기가 얼굴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달친구에서 김동현 선수가 팀에서 보컬을 맡고 있냐고 물어봤는데 당당히 얼굴이라고 대답했다. ~~당황하던 김동현 선수의 표정이 킬링포인트~~
          * 멤버들 공인 심각한 길치--였--다. 호텔 로비에서 출구를 찾느라 30분을 헤메다가 --결국 스태프에게 물어봤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걸리는 가게에 1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10분 거리인 도쿄타워를 3시간 넘게 헤메고 도착했다. 심각한 길치인 듯.[* 시즌그리팅 디비디에서 본인은 길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한번 외운 길은 잊어먹지 않는다고. (그러나 멤버들 응은 흠)] 위너 티비 상속자들 패러디에서도 길치 속성이 그대로 김라헬 캐릭터에 영되어 "여기 출구가 어딨어!"라는 대사를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꽃보다 청춘 위너편에서는 조금 만회한듯하다. 지도를 보며 멤버들을 길안내 하기도 했다. 실제로 강승윤이 진우형 이제 길치 아니다!!라고 인스타(?)에서 말하기도 했다.
          * 공허해 활동이 끝나고 1년 이 넘는 공백기 동안에는 외국어, 연기, 드럼레슨을 배우며 지냈다고 한다.
          * [[고양이]]를 키운다. 회색+흰색 스핑크스와 베이지색 스핑크스. 둘 다 수컷이라고 한다. 고양이들의 이름은 베이지색이 베이, 그레이색이 레이다. 참고로 레이는 [[강승윤]]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팬들은 베이지의 베이, 그레이의 레이를 따서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닌가 궁예했지만, 레이는 그레이에서 따온 것이고, 베이의 이름은 [[스페인어]]로 왕을 뜻하는 단어라고 팬싸인회에서 말했다. 궁예는 만 맞은 셈. ~~[[스페인어]]로 Rey가 왕이라는 뜻인데.. 바뀐 거 아닌가~~
          * 아직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데 칠레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이유는 칠레가 일자로 긴 나라이기때문에 쭉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싶기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일자 나라이기때문에 도로도 일자라고 생각한 듯한데, 라디오스타 MC들에게 나라가 일자라고 도로가 쭉 일자로 뻗어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아 그래요?"라는 응을 보였다.[* 칠레 5번 도로가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뻗어있긴하다.] ~~그저 김모지리..~~
         || 10월 27일~ || [[MBC]] || [[전지적 참견 시점]] || [[송민호]]와 동게스트 출연 ||
  • 김처선 . . . . 8회 일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 [[중종정]]이 일어나면서 다시 복권되기에 이르지만 [[중종(조선)|중종]]은 그를 썩 좋게 보지 않았던 듯 싶다. "김처선은 술처먹고 주정부리다가 죽은 건데 무슨 놈의 [[공신]]?"이라고 문했다는 기록이 있어서인지 중종은 김처선의 행적을 기리고자 하는 사림들의 상소를 모두 무시한다. [* 《중종 실록》 권17 7년 12월 4일 갑진 2번째 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712004_002]] ]
         어쨌든 그의 최후는 '''진정한 [[왕의 남자]]'''로서 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충신]]답다 할 수 있어서 중종 정 직후부터 그의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며 240년 뒤 영조에 이르러 그의 고향에 공적을 기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사극 [[장녹수]]에서는 [[고인]]이 된 배우 [[이낙훈]] 씨가 김처선을 맡았으며 불멸의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최후는 야사의 기록을 영해 화살을 여러 발 맞으면서도 연산군에게 끝까지 목숨을 바쳐 직언과 충언을 던지다가 죽음을 맞는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장항선(배우)|장항선]] 씨가 연기하였으며, 연산군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몇 되지 않는 충실한 심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장생과 [[공길]] 일당이 왕에게 풍자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자 왕을 정신 차리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들을 궁중에 스카웃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되려 연산군의 광기만을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 역사에서처럼 [[연산군]]에게 직언했으나 분노를 사서 쫓겨났으며, 후부에 정 세력들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절했고 [[정]]이 일어나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 이때 연산군은 처선이 어디 있냐며 술마시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가 결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BS [[사극]]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 각색이 심하게 되어 실제 김처선의 일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려진다. 당장 활동 연대부터 실제 역사와는 크게 달라 성종 즉위 이후부터 내관을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론 손녀 뻘인 [[폐비 윤씨]]와 비슷한 나이로 설정되어, 그녀를 평생 동안 사모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폐비 윤씨의 자식인 연산군을 어려서부터 돌봐준 인물로 중종 정으로 귀양가 있던 연산군이 어린 시절 김처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후회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로, [[배우]]는 [[오만석]].
  • 김효기 . . . . 8회 일치
         조감독의 기대대로 김효기는 미포조선에서 가공할 골결정력을 보여주었는데, 2011년 내셔널리그 정규리그를 후기만 출장하고, 12경기 중 7경기를 교체투입 되었음에도 6골 2도움을 올리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김효기의의 활약 덕분에 미포조선은 후기리그 1위를 질주할 수 있었으며, 특히 2011년 11월 20일, 고양 KB와의 내셔널리그 결승전에서도 2차전 교체투입으로 결승골을 뽑아내 미포조선의 내셔널리그 우승의 1등공신으로 발돋움하기까지 하였다. 그야말로 6개월간의 임대 생활동안 내셔널리그를 씹어먹고 온셈.
         결국 2012년 6월 또다시 김효기는 미포조선에 임대되었고, 2012시즌 후기 내셔널리그 무대에서 다시금 골 폭죽을 터뜨리며 활약하였다.
         2015년 전역 후 [[FC 안양]]으로 임대 이적하였고, FC 안양에서는 15시즌 전기를 부상으로 날렸지만, 후기 부상에서 복귀한 후 15경기에서 8득점 2도움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면서 후기 FC 안양의 상승세에 일조했다.
         3월 17일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K리그1 3라운드 경기에서 전 추가시간에 [[김신]]이 오른쪽에서 패스를 찔러 주자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시즌 첫 골을 기록했으며, 4월 15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1 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팀이 0-2로 지고 있던 후 16분 중앙 미드필더 [[하성민]]을 대신해 그라운드에 투입되어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하면서 처진 공격수까지 두 역할을 소화하였으며, 특히 후 28분 쿠니모토가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한 가로지르기를 받아 그림같은 오른발 오버헤드킥으로 골망을 갈랐다.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8회 일치
         --[[북유럽 신화]]--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란, [[나치 독일]] 시기의 독일국방군(Wehrmacht)이 [[전쟁범죄]], 인종 학살([[홀로코스트]], 소련인 학살) 등과 무관하며, 이러한 범죄 행위는 전적으로 [[나치 친위대]](Schutzstaffel)에 위하여 자행되었다는 역사적 주장을 뜻한다. 이는 20세기 후 까지 통설적으로 널리 통용되었으나, '''21세기 시점에서는 이미 깔끔하게 논파되어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사라진 주장'''이다.
         [[전간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독일방위군은 구 독일제국군의 직계로서, 독일제국군의 인적 자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제국군 당시 독일군의 장교단은 주로 [[프로이센]] 귀족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한편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기사도적 충성 사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또한[[유대주의]]나 [[슬라브 민족]]에 대한 [[인종차별]] 같은 사상도 널리 퍼져 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독일 정부와 독일군의 관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았다. 독일군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나 에리히 루덴도르프 같은 이들이 주장한, 그리고 전간기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믿어지게 된 [[내부중상설]]에 따라서 '''자신들은 아무 것도 잘못 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자들의 란으로 독일이 멸망했다'''고 굳게 주장했다. 그리고 황제를 몰아낸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독일 사회민주당]]을 배척했다.
         1945년 [[카를 되니츠]]는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온 힘을 다해 영웅적으로 명예롭게 싸웠다.”는 내용으로 마지막 국방군 보고서를 제출했다. 1945년 11월 미군 장성 윌리엄 도너번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독일 국방군 장성들이 [[각서]]를 제출하게 하였는데, 이는 “육군이 나치당 및 나치친위대와 대립했고, 히틀러의 중요한 결정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전쟁 범죄에 대한 명령에 대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는 국방군 최고사령부나 참모부는 [[범죄 조직]]으로 선고되지 않았고, 나치당과 친위대 등 나치당 휘하의 직계 조직만이 '''범죄 조직'''으로서 단죄되었다.
         독일군 장성들은 마음껏 자신들의 지휘관으로서 전문적 식견, 군사 기술을 칭송하고, 독일군 장병의 용기와 인내심을 강조했다. 모든 전쟁 범죄의 책임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돌렸고, 독일 국방군은 "'''어쩔 수 없이''' 나치스에 남용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범죄를 대하고 억제했다'''."는 자기 변호를 '역사 기록'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일 독일 국민들 역시 전후의 화해와 수습을 위하여, 이 같은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1996~1997년에는 전시회 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기독교민주당]], [[기독교사회당]], [[민족민주당]](NPD), 그리고 퇴역군인 단체가 나섯다. 하지만 결국 국방군 전쟁범죄는 공식적으로 추궁받게 되었고, 마침내 독일 국방부가 국방군의 전쟁범죄 참여를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들의 전쟁범죄는 숨기는 면, 소련군의 전쟁범죄는 철저하게 기록하고 묘사하여 소련군을 전쟁범죄 천국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8회 일치
          * B은 임시면허 시험에 전원 합격, [[모노마 네이토]]가 으스댄다.
          그러나 기숙사 생활이고 담임인 이상 이들을 그냥 둘 수도 없는 일. 아이자와는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확인한 다음 바쿠고에겐 4일간, 미도리야는 3일간 근신과 기숙사 공동구역 청소 및 성문 제출을 구형한다. 그 밖에 상처가 심해지면 [[리커버리 걸]]에게 가라는 둥 잔소리를 해대는 걸로 이날의 싸움은 완전히 종결 되었다.
          둘은 어색한 분위기로 청소를 하는데 미도리야가 먼저 말문을 연다. 자신의 슛 스타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는데, 평소의 바쿠고와는 달리 "예비 동작이 크고 아슬아슬하게 응할 정도는 되기 때문에 난타전엔 불리하다"는 도움이 되는 조언이 돌아온다. 게다가 "펀치랑 맞춰서 한 건 짜증났다"고 나름 긍정적인 체크도 해준다.
          * 시업식을 위해 이동하는 중. B의 [[모노마 네이토]]가 나타나 시비를 건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너네 쪽에서 떨어진건 너겠네"라고 받아치는데 모노마는 한바탕 웃을 뿐 말없이 돌아선다. 그런데.
          놀랍게도 B은 전원 합격. 모노마 조차 합격했다. 이 탓에 토도로키가 자책하느라 키리시마가 위로한다.
          * 사실 B 학생 중에 시비를 거는건 모노마 뿐이다. [[츠노토리 포니]]는 일본어가 서툰데도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모노마가 이상한 일본어를 가르쳐줘서 실언을 하고 만다. [[켄도 이츠카]]가 모노마를 제재.
          * 이렇게 떠들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길막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려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신소 히토시]]. 미도리야와 대결했던 일과 학생이다. 그런데 그를 본 [[세로 한타]]는 어딘지 "터프해진 느낌이다"라고 평하는데.
          올마이트의 은퇴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뒤따르겠지만 무엇보다 히어로 학과 학생들에게 현저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네즈는 2, 3학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히어로 인턴" 참가자들도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1학년 A 학생들은 아직 히어로 인턴제도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8회 일치
          * 나이트아이가 인턴을 받는 조건은 "드시 그를 웃길 것"인데, 원래 유머감각이 없는 미도리야는 필사적으로 연마하던 "올마이트 흉내내기"를 시전한다.
          * 하지만 그게 오히려 "올마이트를 바보취급하는 거냐"고 발을 사고 마는데.
          *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는 근래에 화제가 되었던 "히어로 인턴 제도"에 1학년들이 참여하는 방안에 대한 회의 결과를 알려준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우선 교장 [[네즈]]부터가 "하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 애초에 완전 기숙사제로 전환한 이유 자체가 "히어로 학생들을 육성기간 동안 보호"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을 인턴제도에 투입하는건 취지에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턴제도에 관심을 보였던 학생들은 모두 실망하고 혼자 근신 받느라 뒤쳐져 있던 [[바쿠고 카츠키]]는 "꼴좋다"고 웃어재낀다. 그러나 아이자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호만 해서는 강한 히어로를 키울 수 없다"는 대의견이 나왔고 결과적으론 이런 방침이 되었다.
          이유는 세 가지. 우선 올마이트는 회의에서 대파였다. 작금의 사회상을 볼 때 1학년의 참가는 이르다는게 그의 뜻. 지나가던 [[미드나잇(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미드나잇]], [[13호]]도 같은 입장.
          >드시 이겨서 드시 구하는
          >'''드시 한 번은 서를 웃기는 거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8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는 드시 에리를 구하겠다고 다짐하나 현실적인 여건은 좋지 않다.
          * [[아이자와 쇼타]] [[서 나이트아이]]에겐 "예지 능력으로 미래를 봐달라"고 요청하나 나이트아이는 한사코 거절, 일적인 수사력만으로 착수한다.
          천금 같은 기회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날린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 그것이 자극이 되어 둘은 "이번에야 말로 드시"라고 각오를 다지게 된다.
          * 나이트아이도 그 부분을 난점으로 지목한다. 아직은 전체 계획도 목적도 불분명. 한 번에 확실히 노리지 않으면 격의 기회를 허용한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현재 시에핫사이카이가 소유한 모든 부동산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조직들의 영역을 전부 리스트로 만들었다. 거의 전국적인 규모의 리스트. 각지의 마이너 히어로들까지 소집한 건 이 때문이었다. 해당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토박이들이 조사에 유리할 터. 나이트아이는 각자 할당된 지역을 살피고 거점이 될 만한 곳을 지목해 달라고 요청한다.
          *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는 나이트아이의 신중론에 동조한다. 패트껌을 진정시키며 히어로 살해자 [[스테인]]의 사례를 거론한다. 결과적으론 그의 체포극이 히어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그러고 보면 일개 양아치들에게도 개성파괴 무기를 공급한 것은 비슷한 의도에서 했을지 모른다. 패트껌도 지지 않고 "비약이 심하고 그렇게 전제하면 뭘 할 수가 없다"고 발한다.
          키리시마가 이제와서 그러기냐고 따진다. [[빌런 연합]]이 개입해 있다면 그래야 마땅하다. 이레이저 헤드가 그 점을 지적한다. 아무도 박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레이저 헤드는 미도리야를 걸고 넘어진다. 그가 아직 자신의 신뢰를 되찾지 못했다면서. 미도리야는 그가 [[바쿠고 카즈키]] 탈환전 직후 "정규 수순을 밟아 정규 활약으로 신뢰를 회복해 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명 아이자와는 방금 전 회의에서, 밀리오와 함께 "드시 에리쨩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던 미도리야를 떠올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8회 일치
          * 그리고 뜬금없이 진행되는 A 베스트 센스 결정전.
          * 별로 하나씩 건물이 있다.
          * 아이자와는 이들의 응으로 사실 모든 학생이 알고 있었다는걸 간파한다.
          * 어찌되었든 이들이 교사들의 신뢰를 배한 건 사실이기 때문.
          * 하이츠 얼라이언스는 한 이 하나의 동을 쓰되 좌우로 분리되어 있다.
          * 미네타는 욕탕과 빨래가 공동 구역에 있다는 것에 격하게 응하다 아이자와에게 제지 당한다.
          * 이이다는 책이 많을 뿐 대체로 평범한데 왠지 선마다 예비 안경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 뜬금없이 시작되는 A 베스트 센스 결정전.
  • 박경석(1933) . . . . 8회 일치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영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남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절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식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창고 임관식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부터 위관, 영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영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영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태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965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과 월남의 파병 요청 형식으로 [[조문환]]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주월 한군군]] 군사원조단 비전투부대 [[비둘기부대]]가 파병되었고, 뒤이어 미국의 대 한국 군사원조 약조인 [[브라운 각서]] 체결과 야당의 대 등 진통 끝에 전투병력의 파병이 이루어졌다. [* 야당과 여당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월남 파병에 있어 한국군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특히나 집권 여당 공화당의 초대 당 의장을 지낸 [[정구영]]변호사는 "이 장관 엄밀히 따지면 호지명의 월맹은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우리가 그들과 총칼을 맞대야 하는거요. 내가 보기엔 그간 프랑스는 자신의 식민지 정책의 일로 싸웠고,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 위세를 떨치려 월남에서 군사적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도와주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소. 물론 이 장관 말대로 우리는 가난하오. 월남전 파병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러나 더러운 전쟁에다가 피를 뿌리며 돈을 벌기보다는 궁핍하지만 깨끗하게 사는것이 옳다는 생각이오."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576|[[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발췌. [[http://gyuraeman.blog.me/110018127454|(대한 군사 원조의 약속인 브라운 각서)]]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포함한 경제적 원조와 월남이라는 특수 시장 개척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다는 파병의 조건으로 협상하였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박철우(배구) . . . . 8회 일치
         국가대표 선배인 [[김세진]]에 비하면 세세한 테크닉이 부족하고 건강문제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점이 조금 아쉽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토종 공격수중 1명이다. 특히 국내 공격수중 최고수준의 사이드블로킹 높이덕에 중요한 순간 블로킹으로 분위기를 전시키는 점은 보너스.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다만, [[신치용]] 감독은 선수들이 서브 실수할 때 [[김호철]] 감독과는 다르게 별다른 응을 보이지 않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서브는 마음 편하게 하는 듯.
         단순히 4일 개막전 경기만 보면 오로지 가빈에게만 공격이 가면서 리그 후에 체력부족에 시달렸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박철우가 있기 때문에 초 1,2세트에는 박철우와 가빈이 공동으로 공격을 맡고 중요한 순간에는 박철우를 빼고 수비에 능한 레프트를 투입, 가빈을 라이트로 전환시켜 닥치고 가빈 모드로 돌릴지도 모른다. --박철우는 단순히 가빈 체력보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박철우는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기흉]]을 앓아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고, 특히 2007년에는 3번이나 기흉 수술을 받아 폐활량이 많이 떨어진다. 이를 영하는지 '''가빈 몰빵 모드'''는 2009-2010 시즌에 이어 2010-2011 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가 많았지만, 2014년 월드리그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포로 자리잡게 됐다. 박철우 이외의 날개 포지션에는 [[서재덕]], [[전광인]], [[송명근]] 등 후배들이 리시브를 잘 받아 주며 박철우는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20점대 중후 대의 득점을 올리는 경기가 많아졌다. --몰빵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전광인]]에 이어 147점으로 팀 내에서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 배경 세계 공유 . . . . 8회 일치
         미국 만화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향 탓에 서양권의 주류라 생각하기 쉬우나 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서 동양권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이 있다. 만화가 [[미나기 토쿠이치]]의 만화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이 그런 경우.
          마블 코믹스 기 영화 세계. 배경 세계 공유 영화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큰 인지도를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블의 엑스멘 기 영화 세계. 현재 종료된 시리즈다.
          DC 코믹스 기.
          DC 코믹스 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영화쪽보다 이전에 나왔다.
          DC 코믹스 기 드라마 세계. 드라마 <애로우>가 첫번재 드라마이며 이후 배경 세계가 확장되었다.
          * 밸리언트 코믹스(Valiant Comics) 기 영화 세계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트랜스포머 시리즈 기. 현재 리부트 준비 중이다.
  • 솔비 . . . . 8회 일치
         [[2006년]] 한국의 대표적인 K-pop 혼성 그룹 [[타이푼 (음악 그룹)|타이푼]]의 메인 보컬리스트로 데뷔하였으며, [[2007년|2008년]] 솔로 음 'Do it' 을 발매 후 홀로서기에 나섰다. 같은 해 연기도 병행하며 연극과 뮤지컬 등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도 1년마다 음 및 음원을 발매하며 꾸준하게 음악을 해왔다.
         2010년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미술에 흠뻑 빠지며 화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Trace'의 '공상'을 시작으로 셀프 콜라보레이션(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인 권지안과 솔비가 협업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선보였다. 셀프 콜라보레이션은 2016년 '블랙스완', '직지 코리아 국제 페스티벌' 초청작가, 2017년 '하이퍼리즘-레드',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까지 총 다섯 작품이다. 특히 솔비는 '하이퍼리즘'(정보와 콘텐츠의 홍수로 인해 현대인들의 욕망과 높아진 기대치들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대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상실감 등의 부작용이라는 시대적 현상을 솔비가 정의한 용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현대인의 우울과 상처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이퍼리즘-레드'<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069|제목='다양성 가요계' 솔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성=정진영 기자|이름=|날짜=2017년 6월 1일|뉴스=|출판사=한국스포츠경제|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는 여성의 상처를 주제로 KBS 2TV '뮤직뱅크'에서 파격적인 [https://tv.naver.com/v/1717804 '레드' 퍼포먼스]를 펼치며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2018년 3월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 음원을 본인 유튜브채널에만 공개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8년 6월 플레이런TV '로마공주의 수상한 미술관' MC로 발탁됐다. 솔비는 방송과 SNS를 통해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밝혀왔다. 매년 봉사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술 교육도 한 바 있다. 이처럼 솔비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과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자신의 일부가 된 미술를 결합해 아동 미술이라는 영역에도 도전했다. 그결과 '수상한 미술관'은 현대 미술을 기으로 보고, 듣고, 만지는 경험을 통해 창의적 표현을 배워가는 기존에 없던 미술 프로그램이자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653218|제목=솔비, ‘수상한 미술관’ 신개념 교육프로그램 탄생…팔색조 변신|성=조유경 기자|이름=2018년 6월 13일|날짜=|뉴스=|출판사=스포츠동아|확인날짜=2018년 7월 3일}}</ref>
         !음 및 활동
         * 1집 'Do IT' , '하얀 입맞춤' 솔로음을 내서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로 변신을 했다.
         'LOVE+CHERISH+KEEP' 려동물과 유기견을 위한 기획전
         * 2006년 제40회 가수의 날 모범 가수상, 문화관광부 7월의 우수 신인음
  • 슈퍼히어로 . . . . 8회 일치
         여기서 초인이란 [[초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걸로 볼 수 있지만, 드시 그런 것은 아니며 [[일인]]보다 월등한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체로 초인적인 존재로 보게 된다. 슈퍼맨처럼 초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일인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춘 배트맨이나, 특수장비를 쓰는 [[그린 랜턴]], [[아이언맨]] 같은 사례도 있다.
         슈퍼히어로는 대체로 [[손오공(드래곤볼)|전투 그 자체를 목적을 삼고 있지 않으며]], [[경찰]]이나 [[소방관]]과 같은 역할을 --[[원펀맨|개인적으로 취미로]]-- 하고 있다. 물론 히어로가 다양해지면서 전투광도 있긴 하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장르와는 달리 슈퍼히어로는 '[[일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배경이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설사 주인공인 슈퍼 히어로가 아무리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된 존재라고 하여도 하여도, 그 활동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 특성상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사회는 일적인 경찰이나 군인이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미치광이 과학자가 거대한 로봇을 만들어 도시를 공격한다던가, 사악한 목적을 가진 비밀결사가 암약한다던가, 파괴적인 외계인이 침공해온다던가, 엄청난 괴력을 가진 슈퍼 빌런이 날뛴다던가. 그러다보니 경찰이나 군대조차 버거워지고, 그러기에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부패해서 빌런은 물론 경찰, 군대와 싸우게 되기도 하며 이럴 경우 슈퍼히어로는 부패한 권력에 맞서서 무고한 약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혁명가이자 자유의 투사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적으로 가장 많은 슈퍼히어로의 활동은 [[자경단원]] 활동이다. 때때로 인기인으로서 묘사될 경우 사회의 안녕보다는 인기를 목적으로 슈퍼히어로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라도 자경단원 활동을 필수적으로 하게 된다.
         여담으로 슈퍼히어로 장르의 작품은 일적인 [[배틀 만화]]보다 오히려 [[파워 밸런스]]가 상당히 엉망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저스티스 리그]]를 압도하던 하얀 화성인을 일인들이 [[라이터]] 하나로 제압당하거나.(…) [[뱃신]] 같은 사례가 있다.[* 다만 이 경우는 화성인들의 약점이 불이라서다.]
  • 스틸오션/일본 . . . . 8회 일치
         >순잠 갑형 개2(巡潛甲形 改2, Type AM)는 순잠 갑형 개1(巡潛甲形改1, Type A2)에 기을 두고있다. 건조가 시작된 후 함재기 두대를 싣기 위해 설계가 변경되었다. I-13은 미해군에 의해 격침되었고 I-14는 전쟁이 끝나자 바다에서 항복했다.
         >해대3형(海大三形, Kaidai IIIa) 잠수함은 1922년 당시 워싱턴 해군 조약 하에서 진행되던 8-8 함대 계획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번호는 S26였다. 해대2형(海大二形, Kaidai II)에 기을 둔 이 함급은 더 깊은 잠수한계와 추가적인 그물 절단기를 가지고 있었다. 해대3형은 제18전대와 제19전대 소속으로 자바해 전역에 배치되어 일곱척의 상선을 격침시켰다. 모든 해대3형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순잠3형(巡潛三形, Junsen III)을 기으로 여덟척의 병형(丙形, Type-C)이 건조되었다. 어뢰 발사관과 어뢰 탑재량은 증가했지만 일본 잠수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수상정찰기가 제거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갑표적(甲標的, Ko-hyoteki) 모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왕립해군의 아레투사(Arethusa)급의 영향을 받은 텐류급 경순양함은 당시 제일 빠른 순양함이었다. 구축함을 상대하기 위해 140mm 함포와 어뢰발사관으로 무장했다. 텐류급 순양함 두척 모두 중일전쟁에 참가했다. 텐류는 1941년의 사보섬 해전에도 참가했다. 전쟁 후기에는 훈련 및 수송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국 순양함의 영향을 받은 쿠마급 순양함은 일본제국해군이 처음으로 운용한 5,500톤급 경순양함이었다. 텐류급에 기하여 무장과 속도를 향상시켰으며 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 태평양전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했으며, 키타카미와 오오이는 추가적인 어뢰발사관을 장비하고 고속 수송선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A-30으로도 알려진 카와치급 전함은 일본의 첫 (半)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함포는 305mm 구경이지만 예산 문제로 전(前)드레드노트급처럼 두 종류의 다른 주포를 장비하는걸로 변경되었다. 카와치는 1918년 발생한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고, 세츠는 워싱턴 해군 조약에 의해 비무장 표적함으로 개장되었다. 세츠는 1945년 당시 미군 항공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토사급은 1920년대 초에 88함대의 일각으로 주문된 고속전함이었다. 토사급의 원래 목적은 나가토급 전함의 후계자였다. 하지만, 워싱턴 해군 조약에 의해 건조중이던 토사급 두척의 건조가 취소되었다. 카가는 지진으로 파괴된 아마기를 대신하기 위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토사는 장갑 성능 실험용으로 사용된 후 1925년 자침되었다.
         >유바리급은 히라가 유즈루가 설계한 실험용 경순양함이었다. 오로지 한척만이 건조되었다. 연장 포탑의 사용과 연장 어뢰 발사관 두개를 중심선에 배치하는 걸로 갑판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유바리의 설계는 이후 일본 군함 설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1차 상하이 사변에 참가하였고, 1937년 광저우에서 중국 순양함 차오호에게 피해를 입혔다. 제1차 솔로몬 해전에서는 미국 순양함 빈센스(Vincennes)를 뇌격했다. 1944년 초 대규모 개장 이후 뛰어난 대공 성능을 보였다. 1944년 4월 26일, 수송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국 잠수함 블루길(Bluegill)에게 격침되었다.
  • 식극의 소마/205화 . . . . 8회 일치
          * 그렇게 센트럴 측과 헤어지고, 에리나는 처음 해본 항의 영향으로 대흥분 상태. 다른 학생들을 종자취급하며 "내가 진정한 여왕이 되는데 협조해라"고 말한다.
          * 얼마 뒤 역자 일행은 남은 시험과정을 마치고 결전의 땅, 레분토 섬에 도착한다.
          * 십걸의 10석 자리를 납하겠다고 선언한 [[나키리 에리나]]. [[나키리 아자미]]는 태연한 듯이 웃어보이지만 얼굴이 어두워보이는걸 숨길 수가 없다. 아자미는 그녀의 의견은 존중한다고 하지만 패배시에는 다른 조건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에리나가 센트럴로 돌아와 아자미의 야망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것. 결국 다시는 자신에게 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에리나는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 센트럴 측의 기차가 떠난 뒤 소마는 에리나에게 "드디어 말했구나"라고 말을 붙이는데, 에리나의 상태가 이상하다. 생애 첫 항이 지나치게 자극이 됐는지 뭔가 폭주하고 있다. 에리나는 아드레날린 과잉 상태가 돼서 "내가 현 십걸을 쓰러뜨리고 1석에 앉아 진정한 여왕이 되는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소마를 포함한 학생들은 자신의 종자인 셈이니 영광인줄 알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해댄다.
          에리나는 감격을 받은 것 같지만 소마가 곧바로 "그래도 1석이 되는건 별개 문제"라고 꼬투리를 달자 발해서 다시 싸운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한 달 뒤. 일 학생들의 4, 5차 시험이 진행된다. 그 사이 눈 등으로 열차 운행정지가 다섯 번 정도 있었지만 일정은 차질없이 진행됐다. 소마 일행은 그러는 중에도 특훈에 전념했고 이윽고 최종시험,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센트럴과 역자팀은 모두 레분토 섬에 도착.
  • 식극의 소마/226화 . . . . 8회 일치
          * 그때 [[카와시마 우라라]]가 마이크를 씹어먹을 기세로 폭발한다. 그녀는 역자들이 갇힌 감옥까지 오더니 "건방진 소리만 한다"며 철창을 두드려 댄다. 한 마디로 "감히 사이토 선배를 이길 생각도 하지 마라"는 것. 그녀는 초밥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숙련이 필요한 일인지 역설한 뒤 그저 흉내쟁이일 뿐인 미마사카가 제대로 맛을 냈을리 없다고 폄하했다.
          카와시마는 이 초밥 밥이야 말로 이 절묘한 맛의 바탕이라고 지목한다. 미마사카의 초밥 간에는 식초 특유의 모난 맛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맛에 평범한 밥이 아님을 직감하는데. 미마사카는 친절하게 그 비결을 스스로 밝혔다. "붉은 식초". 일적인 초밥용 식초는 쌀, 밀, 콩 등을 혼합 발효해 만들지만 붉은 식초는 장기 숙성한 "지개미"를 이용한다. 본래 에도 시대의 초밥에는 이 붉은 식초가 필수품이었지만, 제조에 5, 6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고급품이 된 것. 그러나 희소한 만큼 그 맛은 지금 확인한 대로다. 물론 그건 사이토의 비결이기도 했다.
          박식한 [[아라토 히사코]]는 단지 그거에 그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붉은 식초는 일 식초에 비해 단맛이 적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있다. 밥알이 딱딱해지지 않게 하는 효과는 덤. 하지만 붉은 식초로 간을 하면 재료간의 하모니나 깔끔한 맛을 살리려 할 땐 매우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미마사카는 그런 기술을 카피하는 영역까지 성장한 걸까?
          역자들은 기다리던 희소식에 색이 된다. 하지만 카와시마 자신은 죽을 맛이다. 여전히 미마사카를 "스토커 자식" 취급하고 있지만 이제는 명백히 수준이 달라졌음을 인정했다. 뱀 같은 주도면밀함 속에 루비처럼 빛나는 정렬.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때까지 카와시마는 "리액션만은 피한다"는 신조가 있었으나 피해갈 수 없었다. 이스트와르의 코멘트 때문인지 오이란의 모습. 미마사카의 뱀같은 솜씨에 꽁꽁 묶인 오이란의 모습이었다.
          * 아직 심사가 시작된 것 조차 아니건만 역자 팀은 벌써 축제 분위기.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성공적인건 사실이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그것은 미마사카가 어레인지한 마지막 한 조각의 초밥에 달렸다. [[나키리 에리나]]와 소마는 친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말없이 승부를 주시한다. 소마는 항상하던 대로 까불거릴 만도 하건만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데.
          * 명 "녹차"를 주제로 대결한 쿠가와 츠카사는 각기 컨셉이 뚜렷했다. 쿠가는 흑초를 사용한 탕수육 풍의 요리. 하지만 장식이나 플레이팅은 고급 이탈리아 음식을 연상시키는 세련미가 있었다. 과연 쿠가는 자신의 주전공인 사천요리로 살리기 어려운 차의 맛을 어떤 식으로 요리했을까?
          * 츠카사의 음식은 4종류의 샤베트처럼 보이는 차가운 요리. 뜨거운 중화요리인 쿠가의 요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요리도 은은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는데. 그 이색적인 모습부터가 역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 식극의 소마/233화 . . . . 8회 일치
          * 숙소에 남아있던 [[쿠가 테루노리]]와 [[키노쿠니 네네]]가 로비에서 마주친다. 약간 껄끄러워하다가 쿠가가 입을 열고 네네는 쿠가에게 대회장에 안 가냐고 묻는다. 쿠가는 자기가 할 일은 다 했고 지금은 "뒷일은 젊은 애들끼리"라고 말하는데 네네는 그 말투가 중매쟁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한다. 쿠가가 그러는 네네야 말로 왜 호텔에 있냐고 멘탈이 두부라서 그러냐고 쏘아붙이고 네네는 "[[미마사카 스바루]]랑 같이 덤벼놓고 진 쪽이 더 불쌍"하다며 디스를 주고 받는다. 쿠가는 으르렁거리다 상대가 [[유키히라 소마]]였던걸 후회하라며 그가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1학년이라고 추켜세운다. 네네는 의외로 그 말에 수긍하고 소마의 강함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패배 이후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면서 정말 소마는 보통 1학년인 거냐고 문하는데, 진지한 네네와 달리 쿠가는 "이 땋은 머리가 뭔 소리야" 정도로 성가셔하고 있다.
          * 이 시구레니는 알디니가 스타지엘을 수행했던 요정 "후지사메"에서 익혔다. 후지사메에선 계절 회식의 마무리 요리로 밥과 된장국, 절임에 더해 이것을 냈는데 특히 시구레니가 인기가 많았다. 선물로 따로 요청 받을 정도로 호평인걸 보고 타쿠미도 슬쩍 맛을 보는데, 그 맛에 깜짝 놀라서 이걸 만드는 기술을 드시 훔쳐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기회가 생겼다. 어느날 후지사메의 주인이 그를 부르더니 왜 자기 식당의 시구레니에 "바늘썰기"한 생강을 넣는지 아냐고 운을 띄웠다. 바늘썰기는 보통 채치기 보다 압도적으로 가늘게 썬 것을 말하는 것. 그는 다소 두서없이 그렇게 해야 시구레니 전체에 생강의 풍미가 퍼진다고 알려주는데, 이 기술을 먼저 익히지 않고는 다른 기술을 훔치고 어쩌고도 없다고 조언했다. 주인장이 타쿠미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슬쩍 조언을 해준 셈이다.
          * 그 후 타쿠미는 보란 듯이 그 기술을 훔쳐냈다. 이 식극회장에서 그 기술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타쿠미가 눈부신 속도로 생강 바늘썰기를 시연하자 언제나 역자를 야유하던 관중석이 쥐죽은 듯 고요했다. 심사의원 안은 "어메이징"이란 표현으로 아름답고 섬세하고 대단하다는 극찬을 남겼다. 대호평의 바늘썰기 이후 타쿠미가 착수한 것은 밀가루 죽. 피자 도우를 만드는 공정이었다. 시구레니를 토핑으로 쓴 피자가 타쿠미의 계획. 이 역시 기대가 동료들과 심사의원으로부터 기대가 된다고 격찬을 맏는데, 왠지 동생 이사미만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 타쿠미의 상대인 [[에이잔 에츠야]]는 시구레니 조리부터 피자 도우 죽에 이르는 타쿠미의 행보를 지켜 본 뒤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갑자기 회장을 빠져나가는데 필요한 재료를 늦었다며 다시 대형창고로 향한다. 하지만 그의 속뜻은 따로 있었다. 그는 타쿠미가 가을 선발에서 굴욕을 딛고 일어나서 훌륭히 "성장의 증명"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 답지 않게 "요리사의 귀감"이라고 내심 칭찬하는데. 그 칭찬은 또 다시 패배할 타쿠미에 대한 유감의 표시였다.
          동료들과 연계해서 조리 중. 중간에 타쿠미 알디니가 피자 죽 중일 때 괜히 성가시게 굴었다. 한편 키노쿠니 네네는 그의 강함에 어던 위화감이 느껴진다며 정말 보통 1학년이냐고 의문을 가지고 있다.
          숙소에서 쉬고 있다가 카페가 가려고 로비로 나왔더니 쿠가 테루노리랑 마주쳤다. 본래 친분이 있었지만 적이 된 사이고, 전날 사이좋게 패배한 판이라 꽤 어색해한다. 쿠가하고는 서로 멘탈이 약하다고 디스를 퍼붓는데 쿠가가 문득 유키히라의 강함에 대해 입에 올리자 그걸 인정한다. 그런데 그의 강함에는 위화감이 있다며 그가 정말 보통 1학년이냐고 문하는데, 진지한 태도의 네네와 달리 쿠가는 되게 성가시게 여긴다.
          태평하게 목욕하고 마사지 기계 위에서 뒹굴다 네네와 마주쳤다. 서로 대회장에 못 간걸 멘탈이 무너져서 그렇냐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쿠가가 먼저 "소마가 상대였던걸 후회해라"며 소마를 추켜세우는 발언을 한다. 의외로 네네가 거기에 수긍하면서 소마의 강함에 대한 걸로 화제가 넘어가는데, 그녀가 정말로 보통 1학년일 뿐이냐고 묻자 "이 땋은 머리가 뭐래는 거냐" 정도로 가볍게 응한다.
  • 실업팀 . . . . 8회 일치
         실업팀의 운영 실태는 모 회사나 운영단체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일 종업원과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잔업 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만 연습과 시합을 하며 어디까지나 부가 활동으로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상 실업팀 활동이 주가 되며 활동이 거의 프로 스포츠 [[클럽팀]]과 같은 수준으로, 형식만 실업팀일 뿐이지 종업원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만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의 기준에 따라 준프로 내지는 세미프로로 규정되기도 하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다.[* 축구의 경우, KFA에서는 세미프로로 규정된 실업팀들은 대학팀 같은 완전한 아마추어 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FA컵]]에서 1라운드 예선을 면제받고 2라운드부터 참가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근대 팀 스포츠는 노동자의 여가 생활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대로 개인 스포츠는 귀족적인 여가 생활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은 주로 소속된 공장, 회사 단위로 스포츠 클럽을 조직하였는데, 이런 형식의 스포츠 클럽이 훗날 실업팀의 모체가 되었다. 공장 단위로 조직된 것은 서로 스케쥴이 맞고 연락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서는 [[프로 스포츠]]화가 진행되기 전 까지 기업 실업팀 실업리그가 '최상위 리그'로서 명성을 누렸다. 야구와 축구는 1980년대 프로가 출범하기 전 까지, 농구와 배구는 1990년대 후과 2000년대 초 프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실업리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종목에서 프로 리그 출범 이후로 많은 실업팀 선수가 프로선수로 전환했다. 축구의 경우는 [[중공업]],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팀이 많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 나간 중심은 금융팀이 금융단 축구를 박정희의 비호 아래 육성하면서 본격적인 세미프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야구는 한 때 실업리그가 존폐 상태에 놓일 정도로 쇠퇴했으나 2010년대에는 [[프로야구]] 붐을 타고 아마추어 야구단이 새롭게 설립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농구, 배구는 실업팀이 고사 위기에 놓인 상태이다.
         자전거 경기, 모터 스포츠 같은 경우는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목적에서 실업팀 활동이 이루어진다. 실업팀을 위한 레이스 차량 개발이 일 제품 개발에 연결이 되며, 대회의 성과는 회사의 홍보와 상당히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게다가 프로 스포츠는 전 세계적으로 "지역밀착형 중심의 운영"을 강조하고 있는 면에 실업팀은 기업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기업이 주소지를 이전하면 그 지역과는 관계청산"이라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코레일이 본사를 옮기자 팀도 같이 움직이면서 [http://www.fnnews.com/news/201401161713584684|인천 연고였던 팀은 어느새 대전으로 가게 되는] 것.
         축구는 아예 "프로화"를 FIFA와 대륙급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권장함은 물론이고 [[AFC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드시 법인화가 완료되었으며 프로선수로 구성된 "완전한 프로팀"만이 참가가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등, 사실상 프로와 아마추어의 간극을 넓게 만들고 있다.
         20세기에는 '사내'에 조직을 두는 것을 우선시 하던 한국, 일본에서도 21세기에는 스폰싱과 그로 인한 홍보 성과 계산이 일화 되었다. 이로 인하여 조직이 분리되는 것이 실업팀의 쇠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일본의 경우는 과거의 실업팀들은 법인화를 통해 독자적인 클럽팀으로 전환하고, 기존의 실업 모체는 스폰서로 전환되어 조직이 아예 분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8회 일치
         [[1990년대]] 후 IMF 사태로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자 [[한국방송공사|KBS]]로 이적, '서세원쇼의' 내부 코너 '시사 투나잇' 등 심야 쇼프로에서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이다도시]], [[앙드레 김]] 등 유명인들의 [[성대모사]]를 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김준호(개그맨)|김준호]][* 심현섭과 SBS 공채 동기였으나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김대희]],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황승환의 경우는 10월 말경에 사고로 팔을 다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2002년 11월 초경의 그의 출연 장면을 보면 깁스를 한 채로 출연하고 있다. 황승환은 약 1년 후에 개콘에 복귀하지만 특유의 '여장연기'를 계속 하는 바람에 '식상하다'는 응을 얻고는 곧 하차했으며, 이후에는 엔터기술의 최대 주주 겸 황마담웨딩컨설팅 [[CEO]]로 [[연예인]] 주식부자 겸 CEO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11&aid=0000175748|회사자금 횡령으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이때 황승환의 [[본명]](오승훈)과 그가 사실은 [[바지사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병진]], 이태식, 김미진, [[김숙]], [[강성범]] [* 심현섭, 김준호와 SBS 공채 동기였지만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등의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을 개콘에서 이탈하게 한 것을 주동한 계기로 해서, 정치적인 면과 연예적인 면 양쪽에서 [[어그로]]를 끌어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심현섭 [[본인]]도 친정으로 돌아오려고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4년 [[KBS 2TV]] 코미디 프로그램 [[폭소클럽]]에서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패러디한 '윤또현의 무비레터'를 통해 2년 만에 친정인 KBS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이 코너가 [[가수]] [[윤도현]]을 [[비하]]하는 [[패러디]]'라는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에 밀리면서 종영되었다. 그는 공연 현장 응이 좋았는데 종영해서 안타까워했다.
         2000년대 후부터는 본인도 개그 외 분야에 더 전념하면서 개그맨으로선 거의 잊혀졌다.
         [[2000년대]] 후, 의외로 개그보다는 정극 [[드라마]]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몇몇 드라마에서는 약간 비중있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했다. 재독 작가 이미륵의 일대기를 다룬 [[SBS]]-[[독일]] 합작 특집극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일본]] [[장교]]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종영하기 전 [[김구라]] 채널에 패널로 등장. 자신의 개인기들을 선보이며 [[팟수]]들을 웃기려고 시도했으나... 결과는 지못미. 자세한 사항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 참조. 이 날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김경민(개그맨)|김경민]]과 함께 김구라 방 '비운의 천재 특집' 편에 출연했다. 사실 개그 커리어만 봐도 셋 중에서 '비운'과 '천재'라는 단어에 모두 가까웠던 사람은 20세기말 한국 개그의 레전드 심현섭 뿐이다. 단, 그날은 심현섭이 준비한 개그들도 기본적으로 타율 2할 미만이었던데다가, 중부터 마지막까지 김경민의 알수없는 [[드립]]에 전체 방송 분위기가 다 말려버리면서, [[김구라]]의 진행도 종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되었고 김경민과 김수용 모두 심현섭보다 [[선배]]이다 보니(심지어 김경민은 [[군대]]도 선배다) 그가 컨트롤도 할 수 없게 되어, 원래 항상 틀을 점잖게 잡고 시작하는 스타일의 정석 개인기형 개그인 심현섭의 희극 연기도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초에는 심지어 그저 선배일 뿐 공개코미디 시절 [[인기]] 커리어로는 심현섭에게 상대가 안 되는 김경민한테 '얘네(김수용, 심현섭)들은 나한테 (개그로) 상대가 안 된다. 김수용은 말은 하는데 옹알이처럼 하고, 심현섭은 [[남보원]] 선생님 시절 개그를 하고, 개인기라고 하면서 공룡 흉내내기나 하는 애다'라는 말까지 듣는 굴욕까지 당했다.
         전남 광주 출신이다. [[아버지]]가 호남전기 사장, 전남매일신문 사장, 광주일보 회장이자 [[대한민국 국회의원|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던 [[심상우]]로,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심상우가 떠나기 전 아들에게 당시 돈으로는 상당한 2천 원을 용돈으로 줬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버렸고, 심현섭은 지금도 그걸 간직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돈가치로 따지면 9만 원~10만 원 정도이다.] [* 훗날 테러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듣었는데,[[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0271525151001|평소 밝고 활달했었던 아버지가 테러 당일에는 표정이 어두웠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그것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목에 실린 참석자들의 마지막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래서 한때 잘 나가던 부잣집 도련님(할아버지부터가 호남전기공업[* 1945년 창립 이래 심씨 가문이 소유했으나, 1970년 큰아버지 심상하 회장 사후 부인 진봉자의 전횡으로 회사가 어려워져 1976년에 남봉 김남중(1917~1987) 전남일보 회장 등 호남 연고 기업가 6명에게 팔렸으나, 경영권 분쟁 발생 후 1978년에 김남중이 단독으로 인수해 1982년부터 '로케트전기'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에너자이저 등 해외 건전지들에 밀려 1998년부터 '로케트' 브랜드를 질레트에 팔고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2015년에 회사가 정리되었다. 면 같은 '로케트' 브랜드를 쓰는 자동차 배터리 부문은 1978년에 세방기업 매각 후 '세방전지'로 분리되어 현재 잔존중이다.] 창업주 심만택이었다.)이었다가 아버지 타계 이후로 상경하여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1976년에 숙모 진봉자 여사의 전횡과 사촌 심홍근 사장의 운영미숙 등으로 호남전기를 팔았으며, 1980년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전남매일을 잃게 된다.]
  • 원피스/870화 . . . . 8회 일치
          * 하지만 시저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해서 논쟁이 일어난다.
          * 선원들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지만 당장 벳지가 죽어가는 판국. 루피가 자기들 몫까지 벳지가 공격 받고 있지 않느냐고 박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벳지가 고통 속에서 간신히 입을 연다. 그는 자기 쪽 결과는 이 지경인데 밀집모자 일당만 대성공을 거뒀다며 씁쓸하게 말한다. 브룩이나 [[시저 클라운]]은 그가 행여 길동무 삼는 짓을 하지 않나 떨지만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패거리의 안전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여기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도 걸려있었다.
          감격에 겨워하는 벳지의 패밀리. 놀랍게도 벳지는 딱 한 가지 탈출루트를 구상해냈다. 사실 지금 이들이 있는 방은 벳지의 열매 능력. 벳지가 인간으로 돌아가도 아무 영향이 없다. 그래서 벳지는 일행을 넣어둔 채로 "인간" 모드로 돌아가, 시저가 자신을 들고 하늘로 도망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럴듯하지만 시저는 "내 목숨을 희생하는게 전제지 않냐"고 발, 자살행위라고 치를 떤다. 틀린 말 만은 아니다. 이미 샬롯가의 형제들이 진치고 있으니. 벳지가 인간체로 돌아가는 순간 벌집이 되는 미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장색 패기 구사자도 차고 넘치니 가스화한 시저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건 덤.
          * 이윽고 저지는 돌아서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다시는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이스트 블루"의 발라티에도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로써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됐다. 레이쥬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었는지 작게 미소짓는다. 그러는 동안 탈출방법에 대한 논쟁은 답도 없이 치열해졌다. 무조건 성공확률 0%라고 주장하는 시저, 어차피 이대로도 죽는다는 벳지의 의견이 평행선이었다.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저지. 그는 제르마가 호위가 될 테니 작전을 실행하자고 한다. 시저는 왜 너희 맘대로 하냐고 발하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벳지는 듣고 보니 제르마도 하늘을 날 수 있었다며, 다만 그럴 경우 제르마를 두고 가게 될 텐데 괜찮겠냐고 문한다.
          * 이제 작전에 대하는건 시저 뿐이다. 하지만 벳지는 그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지긋이 눌러주는 것만으로 시저의 발을 억눌렀다. 그리고 작전 실행. 빅파더가 사라지고 벳지와 시저, 그리고 빈스모크 일가가 바깥으로 나왔다. 시저의 말이 맞았다. 기다리다 지쳐가던 샬롯가의 형제들이 일제사격으로 겨준다. 빅맘의 즐거운 웃음 속에 쏟아지는 총알 세례. 시저가 눈물콧물을 쏟으며 움츠러들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빈스모크 형제들이 단 한 발의 총알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 윤상현(배우) . . . . 8회 일치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내조의 여왕]] 이후 첫주연작을 맡으며 기대를 모으며 동시간대 1위로 막을 내렸지만 내조의 여왕만큼 국내에서 뜨거운 응을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본, 쿠바, 남미 쪽에서 응이 터졌다.
         [[갑동이]]에 출연[* 너목들 감독이 형사시절 차변의 모습에 해 윤상현을 캐스팅하기 위해 영화촬영장까지 찾아갔다한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남성적인 형사 이미지로 변신에 선공하여 극전체를 이끌며 연기 호평을 받았다.
          * 내조의 여왕이 잘 되어 일본에도 방영이 됐고 결국 일본에서 음 제작을 하기도 했다. 앨범 발표 당시 많은 기자들이 모였는데 윤상현은 일본어를 하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그 탓에 옆에 통역관에게 수다 본능을 보였고 통역관은 윤상현의 말을 통역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일본의 기자들은 그의 말 하나하나를 기사화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일본 측에서 한류스타 최초로 이렇게 말을 많이 한 분 처음이라고 했으며 친절하고 재미있다라는 내용으로 우호적인 기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4E84B0><rowbgcolor=#4E84B0> {{{#white '''발매 연도'''}}} || {{{#white '''아티스트'''}}} || {{{#white '''음'''}}} || {{{#white '''곡명'''}}} ||
         || 2018년 || MBC FM4U ||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 게스트[*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의 주연진인 [[한혜진(배우)|한혜진]], [[김태훈(배우)|김태훈]], [[유인영]]과 동출연.] ||
          * [[농심그룹]] 무파마 탕면[* [[선우선]]과 동 출연]
         == 음 ==
  • 윤휘 . . . . 8회 일치
         과거 급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쳐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에 관련, 삭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18년 동지겸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이 [[명나라]]에 구원군을 보낼 때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을 지지했다가 [[인조정]] 직후 파면되었다. [[1626년]] 복관되고, 성주목사, 청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어가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고, 주화론에 참여하여 [[조선]]측 대표로 [[청나라]]군과의 사이를 오가며 타협을 주관,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 생애 초 ===
         ==== 인조정 전후 ====
         [[1623년]](인조 1) [[3월]] [[인조정]] 때 [[환관]]과 결탁하여 인사권을 주무르고, [[요동]]을 정벌하려 할때 [[후금]]과의 화의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서인]] 간관들의 탄핵을 받아 [[예조]][[참판]]에서 파면되고 [[장흥]](長興)으로 유배되었다. 그해 [[4월]] 임피(臨陂)로 이배된 뒤 다시 [[아산]] 등지로 [[유배지]]가 이배되었다.
         정 초 같은 [[서인]] 당원임에도 버림받았으나 정 공신인 훈신들의 특별 사면 건의로 [[1625년]] 사면되었다. 그러나 계속 서인 간관들은 그를 처벌하거나 [[문외출송]]시킬 것을 상소하였다. 사면된 후 [[1626년]] [[용양위]][[부호군]]이 되고, 그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그가 [[광해군]] 조정에 참여한 일로 탄핵 상소와 비난이 계속되었다.
         === 생애 후 ===
  • 은혼/647화 . . . . 8회 일치
          * 신스케가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했으나 이미 한계를 넘은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엔쇼는 한 팔로도 포기하지 않고 격의 기회를 잡는다.
          * 그의 몸은 [[사루가쿠]]가 발견했을 당시 시체나 다름 없었으나 [[키지마 마타코]], [[카와카미 사이]], [[다케치 헨페이타]]를 생각하며 무리를 했던 것.
          * 중추 시스템의 하부에서 신스케를 발견한 사루가쿠는 난감했다. 그는 제일 먼저 참모 [[다케치 헨페이타]]에게 무전을 날렸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먼저 갑다면 가운 소식을 전했다.
          신스케는 몸상태를 걱정하는 헨페이타에게 너스레로 대답했다. 그에게 걱정을 끼치는 걸 보면 자신도 참 망가졌다면서. 그는 다른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키지마 마타코]]의 구조와 보호를 부탁했다. 그녀는 자신이나 헨페이타 같은 악당이 아니라 악운만으론 살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귀병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 죽으면 [[카와카미 사이]]가 드시 화를 낼 테니까. 그 외의 지시는 없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꿈은 언젠가 드시 깨기 마련이지.
          한 발의 총성이었다. 엔쇼의 미간으로 정확히 향하는 총알. 그가 고개를 꺾자 머리채를 끊으며 대편으로 날아갔다. 작은 틈. 신스케의 목숨을 살린 틈. 엔쇼의 시야에 젖혀지는 신스케의 상체와 자신의 꿈을 깨뜨린 한 발이 날아온 곳, 그걸 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타코가 헨페이타와 함께 도착해 있었다.
  • 이민호(1987) . . . . 8회 일치
         짝스타가 아니고 아역부터 올라온 연기자다. [[박보영]]과 함께한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 [[문채원]]과 호흡한 SBS '달려라 고등어',[* 여담이지만, [[박보영]], [[문채원]]과는 여러 편 같이 한 바 있다. 박보영과는 '비밀의 교정', '달려라 고등어', 영화 '울학교 이티'에서 같이 나왔으며, 문채원은 여기서 '비밀의 교정'을 뺀 나머지 두 작품에 같이 나왔다.] [[박민영]]과 함께하는 [[아이 엠 샘(드라마)]] 등등으로 드라마 주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사랑찬가]]'나 '[[논스톱]]', '[[올림(드라마)|올림]]' 같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단막극 '나도 잘 모르지만'에서 주연을 맡거나 영화는 '울학교 이티'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도 출연했다.[* 중견기업으로 위장한 조폭 두목인 [[정재영]]이 키우던 건달 ~~유스~~ 유망주 중 하나였는데 건달짓에 회의를 느낀 이민호를 오른팔 [[김남길]]을 시켜 살해하고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담으로 꽃보다남자 에서 이민호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김현중(SS501)|김현중]]은 이민호를 '''아 그 영화에서 나오자마자 칼맞고 죽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우주소녀]]의 [[성소]]가 [[아는 형님]]에서 [[김수로(배우)|김수로]]에게 이민호와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성소]]는 이민호의 팬이며, [[인생술집]]에 출연했을 때 이상형도 이민호라고 밝힐 정도여서 이민호 닮은꼴에 대해 좋아하는 응을 보였다.
         || 2004년 || KBS2 || [[올림(드라마)|올림]] || 미술학원 학생 || ||
         == 음 ==
         === 참여 음 ===
  • 이승현(농구선수) . . . . 8회 일치
         ||||||||||||||||<tablealign=center>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지'''||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최진수, 장재석과 함께 동부 공격의 중심인 로드 벤슨과 웬델 맥키네스의 멘탈을 뒤흔드는 압박을 선보였고, 시즌 중 매우 떨어졌던 외곽 성공률 때문에 수비를 등한시했던 동부 수비수들에게 빅엿을 날리는 3점슛을 1,2차전 합계 5개나 성공시키면서 홈 2연승의 주축으로 평가받았다. 3차전에서는 2쿼터 중 무릎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가서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지만, 승부에 쐐기를 박는 4쿼터 3점슛 2방으로 동부를 스윕하고 울산행 티켓을 거머쥐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3차전 기록은 3점슛 4개 포함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인 20점을 득점하였다. ~~이승현 3점 갯수의 절밖에 못 넣은 동부 선수들은 성해야된다. 25개 던져서 2개가 뭐냐?~~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상대 빅맨들이 이전까지 붙었던 빅맨들의 상위호환이어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 더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매치업 상대가 하승진인 것을 이용하여 3점을 던지고 있고, 붙으면 돌파까지도 하는 동시에 수비에서는 그동안 갈고 닦았던 대인 방어와 박스아웃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 덕분에 정규시즌에선 잘 나오지 않았던 파울트러블을 많이 기록하기도 했다. 4차전에서는 9점 5리바운드에 그쳤지만 하승진을 9점(필드골 3/9) 9리바운드로 막았고, 5차전에서는 오리온이 패하긴 했지만, 감기몸살에도 불구하고 23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필드골 7/10, 3점슛 5/8)을 기록하면서 하승진(8점 7리바운드 필드골 4/6)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진정한 졌잘싸~~ 6차전에서는 4쿼터 막판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어버리는 연속 5득점 포함 14득점 7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그 결과 그 동안의 개고생[* 4쿼터 중 허일영의 3점 세레머니 때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한 보답으로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였다!!''' 평균 기록은 [[조 잭슨(농구선수)|조 잭슨]]이, 임팩트 면에서는 [[김동욱(농구선수)|김동욱]]이 좀 더 앞서는 느낌이 있어 수상에 약간의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도 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최고조의 컨디션을 보이던 하승진을 잠궈버린 수비공헌도와 기록,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수상에 부족함은 없다.
         헌데 오세근이 11-12시즌에 가장 근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15-16시즌부터 시작된 기자들의 과도한 언플때문에 이에 대한 발심으로 안티팬들이 대거 양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암투병 소식을 접한 이후 오리온의 경기가 있을때마다 매번 아버지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에 팬들의 시각도 영 좋지는 못하다. 이런 와중에 동료 포워드들의 활약으로 이승현이 없이도 승수를 착실하게 쌓는 장면이 연출되자 안티팬들은 '''스탯도 오세근보다 낮으면서 고평가를 하는데 [[종범(인터넷 속어)|이승현한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도 있냐?]]''' 라면서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세 번째 장점은 발전속도이다. 14년 아겜 국대에서 낙마하게 된 원인이 신체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공격툴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외곽슛을 연마하기 시작해 신인 시즌에 3점 성공률 2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현재 시점인 2017년말에는 동포지션 대비 상급의 슛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슛 뿐만 아니라 포스트업 기술이나 대인수비나 박스아웃 등 공수 전적으로 꾸준하게 발전을 보이고 있어 [[전준범]]과 함께 국대에서도 핵심 멤버로 등극하게 되었다. 상무 복무자의 경우 훈련하는 공인구가 달라 국대 경기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오히려 시즌때보다 정교한 필드골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는것도 고무적이다.
          * 2010년대 초 고려대학교 왕조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선수가 누구였냐는 문제로 농갤이 시끌벅적해지는 때가 많다. 2013~17년 드래프트까지 [[박재현|지명된]] [[김지후(농구선수)|가드]] [[이동엽|선수들이]] [[믿고 거르는 고대가드|프로에서 제 기량을 내지 못하고 있고]] 이종현마저도 대학교에서 4년간 뭘 배웠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함께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사실 고대왕조의 핵심은 이승현이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79&aid=0002923366|평소 스파링 상대를 해왔던 김준일의 증언]]~~
  • 이현우 (가수) . . . . 8회 일치
         그는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1988년 [[미국]] [[뉴욕주]] [[뉴욕 시티]]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로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89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에 잠깐 놀러 왔다가 당시 [[가수]] [[강수지]]의 소속사 매니저의 소개를 받고 1990년 10월에 실험적인 [[테크노 팝|테크노]] [[댄스 팝]] [[대중음악|음악]] 장르 곡인 데뷔곡 《꿈》이 수록된 《12 Inch Dance Version》이라는 싱글 [[음]]으로 첫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 1집 [[음]] 《Black Rainbow》로 정식 데뷔하였다.
         * [[2013년]] [[KBS 2TV|KBS2]] 일일연속극 《[[루비 지]]》 - 노동팔 역
         == 음 ==
         === 정규 음 ===
         === 비정규 음 ===
         === O.S.T 음 ===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미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미국의 개신교도]][[분류: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문]][[분류:경원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라크 전쟁 전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이현우(배우) . . . . 8회 일치
         2012년 3월 방영된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다시 한 번 [[엄태웅]]의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나 캐릭터와의 싱크, 발성의 한계 및 대사조절에서 아역 연기를 벗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드덕들 사이에 연기에 대한 논란을 안겨주었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때와는 달리 이제 얼른 아역 분량이 끝나고 [[엄태웅]]이 나오기를 바라는 응이 나왔을 정도. 사실 적도의 남자에서의 김선우는 그동안 이현우가 해왔던 역할과는 좀 많이 다른 성격이긴 했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같은 아역으로 나왔던 [[임시완]]의 연기가 예상외로 훌륭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8월 방영되는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드라마)|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차은결[* 일본 원작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남 파라다이스]]에서 [[이쿠타 토마]] 역.]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이로서 일본 드라마 원작 드라마에서 두번째 출연을 달성. 2012년 12월 16일부터 2014년 2월 9일까지 [[아이유]], [[황광희]]와 함께 [[SBS 인기가요]]의 진행자를 맡았다.
         영화판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리해진]]'''역을 맡고 영화 관객수가 500만이 넘어간 상황이 되면서 10대 여성 및 20대 초중 여성층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본 영화 내에서도 여전히 학생 역이지만, 아역 이미지는 어느 정도 벗은 듯 보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흥행을 끌면서 이현우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져, 2014년에 기대가 되는 배우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약 1년만에 영화 [[기술자들]]로 돌아왔다. 귀여운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차기작을 나름 신중히 선택한 듯 하다. 해커 박종배 역으로 분해 연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가 [[에이브러햄 링컨|김우빈의 김우빈에 의한 김우빈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에 이현우 분량이 상당히 안습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인지도를 높였으나 그것은 이현우 자신의 외모적 매력에 힘입은 것이므로 성인 연기자로서 아역이미지를 벗고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검증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전 작품에서 이현우가 보여준 가능성과 어느정도 흥행된 작품들을 기으로 더 탄탄한 시나리오를 고르는 안목을 갖춘다면 최근의 우려도 잠재울 수 있을 거라는 시선이 많다.
          * [[디시인사이드]]에 갤러리가 생성되었으나, 생성 초엔 [[이현우(가수)|동명이인 모 개막장 가수]]와 같은 이름이란 탓으로 종종 털렸다(...). [[지못미]].
          * [[노래]] 실력이 나쁘지 않은 듯 하다.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OST 청춘예찬을 불렀었는데, 목소리가 이현우 목소리 같지 않다는 소수의 평을 제외하면 괜찮다는 평. --노래 자체가 트로트 같긴 하지만 중독성 있다.-- --청춘예차아안 두두두두두뚜우두두두-- 칠성사이다 광고 모델에 발탁됐을땐 광고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사가 좀 오글거지만--- 응이 괜찮았는지 뮤직비디오 상의까지 하여 팬들에게 김칫국을 투여했으나... 1분 30초도 안되는 짧은 분량으로 등장했다.
          * 2015년 하기 즈음해서는 [[박보검]]이 이현우 닮은꼴로 나왔다. 93년생 동갑내기고 실제로도 친한 편이라고. 둘 다 상냥한 소년미가 특징인 외모지만, 박보검이 이현우에 비해 선이 날카롭고 남성적인 편인 면, 이현우는 좀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외모이다.
         == 음 ==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8회 일치
          * 그런 식으로 영원히 헤매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복하는 것이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운명.
          마신족을 다스리는 "마신왕", 그리고 여신족을 이끄는자 "최고신". 성전을 통해 목과 학살을 주고 받던 두 존재가 한 연인을 처벌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들의 무서운 힘 앞에서는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의 저항도 보잘 것 없었다. 그는 벼락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불려가 싸웠으나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긴다. 죽어가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
          그저 많이 닮은 타인이 아니었다. 멜리오다스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다시 태어난 엘리자베스라는 걸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인간의 모습이었고 멜리오다스를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상관 없었다. 그는 무수히 걷어차이고 거부 당하기를 복하며 그녀의 곁을 따랐다. 결국 그의 열성에 엘리자베스가 항복했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진 못했지만, 둘은 친구가 되었다.
          * 마신왕과 최고신은 힘을 합쳐 무서운 저주를 내렸다. 영원의 삶과 영겁의 윤회. 멜리오다스는 죽음 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는 더는 자라지도 않게 된 그 육신으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인간으로 되살아나 극히 짧은 삶을 복하며 그때마다 모든 기억을 잃는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는 순간 그 누가 어떻게 보호해도 그녀는 3일 후 드시 죽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저주가 정말 잔인한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전생할 때마다 나는 너와 드시 만나고 사랑에 빠지며
          >네 눈 앞에서 드시 목숨을 잃어.
          * 그들의 진실을 알게 된 단원들은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소리를 죽여가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지난 3천년 동안 107명의 엘리자베스를 만나 106번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봤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안으로 107번 째의 마지막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몇 번을 복해도 이것 만큼은 적응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이 고통을 끊어야 한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마신왕이나 최고신에 필적하는 힘이 필요하다. 앞으로 상대할 [[젤드리스]]가 마신왕에게 빌린 힘도 적당하겠다. [[바트라 리오네스]]가 예견했던 십계의 부활과 대죄의 집결도, 멜리오다스의 입장에서는 이 저주를 끊기 위한 포석들의 하나였다. 그게 결과적으로 단원들을 속이는 게 돼버렸다며 그가 사과했다.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8회 일치
          * 나머지 일행은 "원혼의 법"으로 만들어진 해골병과 싸우게 되나 허약한 몬스터라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한다.
          * 메라스큐라와 악연이 깊은 [[(일곱 개의 대죄)|]]이었다. 그는 그 검은 구체가 멜리오다스를 감싸는 걸 보고 메라스큐라의 속셈을 눈치챘다. 다른 일행보다 한 발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하지만 한 발 늦었다. 멜리오다스를 삼킨 구체가 코란도의 지면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은 간발의 차이로 구체를 놓친다.
          곧이서 호크와 에스카노르가 졸도할지도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 해골들이 스스로 일어나 원한어린 말을 내뱉기 시작한 것이다. 디안느는 이것들이 자신의 골렘과 비슷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고서가 보기엔 이것들은 "적의"라는 자아가 있었다. 멀린이 이것은 죽은 이의 원한을 악용한 술법, "원혼의 법"임을 간파한다.
          * 일어난 해골병들이 대죄 일행을 공격한다. 그러나 단순한 해골일 뿐이라서 지금의 일행에겐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다. 이 맨 처음 덤벼든 녀석을 깨부수며 딸리 차원의 뒤틀림을 처리하고 단장을 구하러 가자고 목청을 높였다. 단원들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해골병들을 분쇄했다. 그 약해 빠진 호크 조차도 필살 "초지조 스트라이크"라는 필살기로 때려부술 수 있는 수준이었다.
          * 귀찮게 몰려드는 적들을 쓰러뜨리던 대죄 일행. 해골의 머리통을 후려친 이 이상함을 느낀다. 이제 부서지지 않는다. 심지어 격의 제법 매섭다. 다른 일행도 느낄 수 있었다. 해골병들이 강화되고 있다. 이제는 통상적인 공격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멀린은 이들의 공격, 방어, 대마법 능력이 눈에 띄게 올라가는 걸 확인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것이 메라스큐라가 던진 수수깨끼의 답이었다.
  • 장서희(1972) . . . . 8회 일치
         바로 2002년 여름에 방영되기로 예정된 《[[인어 아가씨]]》의 '''주인공'''으로 추천되었던 것이다. 《[[온달왕자들]]》에서 [[임성한]] 작가가 장서희가 마음에 들어 차기작 주연을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작품 후에 타임워프가 나오니 여배우들은 그 때에 맞춰 헤어 스타일을 바꾸라는 [[임성한]] 작가의 요구에 장서희가 유일하게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를 서브도 아닌 주인공으로 쓰는 것을 MBC에서 찬성할 리가 없었고, 결국 MBC와 임성한의 신경전 끝에 '''“장서희 아니면 드라마를 갈아엎겠다”'''고 임성한이 엄포를 하고 나서야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MBC 고위층들은 첫방 전까지 《인어 아가씨》를 냉대했고, 남자 주인공도 캐스팅이 잘 되지 않아 신인을 찾아야 했다.
         《인어 아가씨》 종영 직후에도 드라마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더불어 《인어 아가씨》가 중화권에서 인기를 끌면서 [[중국]]에 진출했는데, [[중국 드라마]]인 《경자풍운》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특히 [[청나라]] 황실 복장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줘 좋은 응을 이끌었다.]
         《[[아내의 유혹]]》 이후 드라마 《[[산부인과(드라마)|산부인과]]》에서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지적인 의사로 변신, 호연을 펼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청률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꽤 괜찮은 성적이었고[* 그래도 《[[인어 아가씨]]》 이후 줄줄이 말아먹던(...) 드라마들보다야 훨 나았다.], 드라마 자체도 진지한 분위기에 구성도 좋아 호평을 받았다.[* 장서희 본인도 “새로운 연기를 선보일 수 있어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자평했다.] 다만 경쟁작 《[[추노(드라마)|추노]]》에 밀려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10%대 초의 시청률로 중박은 쳤다. 《산부인과》 이후에는 [[독립영화]] 《사물의 비밀》과 중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이색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4년 6월 3일, [[KBS2]] 일일 드라마 《[[뻐꾸기 둥지]]》로 4년 만에 컴백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6&sid2=224&oid=079&aid=0002584796|#]]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친오빠를 죽음으로 몬 여자의 대리모가 되어 애를 낳아줬다가 다시 빼앗아온다는 내용(...). 다만 여기서 맡은 역할은 복수와는 거리가 멀고 [[혈연 때문에 개고생]]하는 쪽에 가깝다. ~~이걸로 대상 타면 막드 지상파 3사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다~~ ~~[[막장 드라마]]의 여신~~ 그러나 [[유동근|경쟁]][[조재현|자들]]이 워낙 강력한데다가, 작품 자체도 그닥이었던 탓에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시청률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후에 동시간대 1위, 시청률 자체도 20%를 넘기며 호조를 보이긴 했지만, 드라마가 초에 워낙 질질 끄는 전개를 보여줬는지라(...) 시청률이 14%까지 떨어지며 다소 위태스로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20%까지 올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장서희의 덕이었다’'''는 평이 많을 정도이니... --혼자 멱살 끌고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에는 《[[언니는 살아있다!]]》에 출연, [[김순옥]] 작가와 약 9년만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중 1화부터 《[[아내의 유혹]]》의 셀프디스가 대놓고 나온다(...). ~~그 대사를 하는게 하필 또 장서희인 게 매우 절묘하다~~] [[아내의 유혹|작가와 협업했던 전작]]에서의 캐릭터와는 달리 다소 코믹하고 유쾌한 캐릭터지만, 그런 역할에서 나오는 사이다성 활약과[* 확실히 장서희가 분한 [[민들레(언니는 살아있다!)|민들레]]가 세 주인공 중 가장 비중이 높고 활약성 또한 대단한지라, 시청자들에게도 사실상 유일한 진주인공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강하리|이분]]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가끔 [[구은재]] 표정이 나올 때는 소름이...-- 드라마 자체도 크게 성공했으며[*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인터넷상에서의 응이 매우 뜨거웠다.], 이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다만, 이 연기력이 주로 [[막장 드라마]]같은 자극적인 연출 내에서 빛을 제대로 발하는지라 약점 아닌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누구든 장서희를 떠올리면 복수의 화신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니...[* 복수극이 아닌데도, 장서희만 나오면 어르신들이 '''“그래서 쟤는 언제 복수한대니?”'''와 같은 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젊은층도 그렇다~~] 그래서 복수극을 촬영한 다음에는 색다른 작품에 출연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왔으나, 이상하게도 비(非)복수극들은 작가의 삽질이나 안습한 대진운 등이 겹쳐서 인기를 끄는 데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장서희의 연기력이 좋긴 하지만, 작품을 고르는 안목은 연기력에 비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같은 작품을 보다보면 안목이 부족해도 연기력이 저 정도면 무슨 문제랴 싶은 생각이 든다. 너무나 개연성이 부족한데 신애리를 용서하고 다시 애정어린 관계로 돌아간다. 일일드라마라 티가 덜 났나 하는데 2018년에 하루에 4편씩해주는걸 보다보면 정말이지 배우들의 연기력에 치얼쓰하고 작가의 막장력에 기브업하게된다.
          *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기아체험 특집방송에 출연하여 '''“몸무게가 50kg씩이나 나간적이 있다.”'''(…)는 --천인공노할-- 발언을 해 방청객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들었다. 장서희는 자기 키에 50kg 넘으면 엄청난 거라고 변호했지만 야유는 더 거세질 뿐(…). 그러나 《[[인어 아가씨]]》 방영 당시에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하면 장서희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 지금이야 장서희만큼 마른 여배우들이 많아졌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금 시대처럼 마른 몸매에 집착하는 풍조가 덜한 편이었다.] '거식증 걸린 것 같은 연예인'에 자기 이름이 포함된 기사가 나와 콤플렉스가 생긴 적이 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 정형돈 . . . . 8회 일치
         * [[KBS N 라이프|KBS KOREA]] 《한도 유머총집합 - 무성영화, 개그로 보는 단편 문학선, 무제, 처세술 시리즈, 추억의 영화 Best5》
         * [[Mnet]] 《[[그는 당신에게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그는 당신에게 하지 않았다]]》
         * [[KBS]] 《해피투게더 쟁노래방 128회 (4월 22일) : 게스트》
         * [[MBC]] 《2008 베이징올림픽 - 女핸드볼예선 한국:헝가리 / 전전 (8월 17일) : 해설 보조》
         === 참여 및 발매 음 ===
         * 2011년 2월 20일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90693 《Jump♡》] - [[일밤]] 오늘을 즐겨라 록 프로젝트 - with [[루나 (가수)|루나]]<ref>{{뉴스 인용|제목=루나-정형돈 '전', 혹평 딛고 '록스타' 등극|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2163479|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연예뉴스팀|날짜=2011-02-20}}</ref>
         * 제89회 [[전국체육대회]] [[에어로빅]] 동호인 일부 6인조 '''2위'''
  • 진종채 . . . . 8회 일치
         대대장 월북 거짓 보고 사건의 여파로 [[1979년]] [[제2작전사령관|제2군사령관]]으로 보직 이동했다. 보안사령관 후임자로 전두환을 적극 추천하였고, 갓 소장에 진급한 전두환이 핵심 요직인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면서, 이 결정은 나비효과처럼 12.12 군사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10.26 사태 후 규정에 의거하여 보안사령관이 대통령 시해 합동수사본부장이 됨으로써 전두환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후원자여서 그런지 12.12 군사 란 이후 세 명의 야전군 사령관 중 유일하게 유임되었고[* 12.12 군사란 당시 야전군 사령관은 김학원 제1군사령관(중장), 진종채 제2군사령관(대장), [[이건영]] 제3군사령관(중장)이다. 이 중 란군에게 호의적이었던 진종채 제2군사령관을 제외한 제1, 3군사령관은 란 이후 보직 해임되었다. 그리고 제1군사령관에는 란군의 회유에 넘어갔던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이, 제3군사령관에는 란군의 핵심 맴버였던 [[유학성]] 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가 임명되었다. ] [[1980년]] [[대장(계급)|대장]]에 진급하였다. 제2군사령관 임기 중이던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의 계엄군의 지휘계통 상에 있었지만 발포 명령 여부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유혈 진압에 있어서 진종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1981년]]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이후 진해화학(1987년 [[한일합섬]]에 인수) 사장을 맡은 것 외에는 다른 직책을 맡지는 않았다. [[1995년]]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의해 [[12.12 군사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검찰 소환조사를 받고 고소되었으나 결국 불기소처분 되었다. 이 때 사위인 조준웅 검사[* 2007년 삼성그룹 특별검사였다.]가 해당 수사팀에 속하였다가 장인이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제외되었다.
  • 최공웅 . . . . 8회 일치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부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7월 27일 밤에 같은 재판부 구성원인 이범렬 부장판사와 동부서기 이남영과 함께 "1심에서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이 선고된 제주 김녕중학교 교장 이방택의 [[국가보안법]], [[공법]]위 피고사건의 항소심 증인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갈 때 피고인의 하경철 변호사로부터 왕복 항공료 3만3천원과 향응 비용 등 9만7천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조 사상 최초로 현직 판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800099203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1-07-28&officeId=00009&pageNo=3&printNo=1657&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1971년 7월 28일자]</ref> 이후 해당 피고인의 재판은 원심이 파기되어 징역1년6월 자격정지1년6월이 선고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900209207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29&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26&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1년 7월 29일자]</ref> 관행으로 이루어진 변호사의 경비 부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은 1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721000060]</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18부에서 배석판사로 재직하던 1969년 11월 3일에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법학 박사인 박노수(37세) 피고인과 전 국회의원 [[김규남]](40세), 사진업을 하는 임문준(30세)에게 [[국가보안법]], [[공법]], [[형법]] 간첩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하면서 사형이 구형된 여관업을 하는 김희병(48세)에게 무기징역, 박노수의 처인 전명희(28세) 등 14명에게 징역7년~징역1년과 같은 형량의 자격정지를 병과하면서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91103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9-11-03&officeId=00020&pageNo=1&printNo=14790&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69년 11월 3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2월 5일에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유세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위해 총통제를 기도하고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1971년 7월 26일에 기소된 사건에 대해 "재판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2월 5일자</ref> 3월 4일에 [[긴급조치]] 1호, 4호 위, 법정모욕 등으로 1,2심 군법회의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이 선고됐다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미 폐지된 [[긴급조치]] 면소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파기환송된 [[강신옥]]에게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형사 피고인에 대한 자유로운 방어권 행사없이 형식적인 변론만 인정한다면 사법권읜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말 것"이며 "공개재판에서 변론은 재판 방해를 하려는 폭력이 없는 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30400329211003&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3-04&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05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3월 4일자]</ref> 5월 27일에 내란 예비죄 피고인인 [[박형규]] 목사에게 "10여명의 선동만으로 국가 전복을 우려한다는 것은 전혀 합리성이 없다"며 징역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2700329211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5-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12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5월 27일자]</ref> 5월 31일에 1974년 세검정 동굴에서 북한방송을 듣고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에 대해 "똑똑한 학생이 왜 나쁜 짓을 하겠느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위으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선고받은 박규신 피고인에게 대법원에서 파기된지 13년만에 공법위 무죄, 긴급조치 위은 면소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3100289107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5-31&officeId=00028&pageNo=7&printNo=14&publishType=00010 한겨레 1988년 5월 31일자]</ref>
  • 추경호 . . . . 8회 일치
         * 2016년 6월 ~ 2017년 1월: 제20대 국회 전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 2016년 6월: 제20대 국회 전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2016년 7월: 제20대 국회 전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위원
         * 2016년 7월 ~ 2018년 5월 : 제20대 국회 전기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 위원
         * 2017년 1월 ~ 2018년 5월: 제20대 국회 전기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 2018년 7월 : 제20대 국회 후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 2018년 7월 ~ : 제20대 국회 후기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 2018년 10월 ~ 2019년 6월: 20대 국회 후기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간사
  • 카치구미 . . . . 8회 일치
          * 카치구미(勝ち組)는 '승자조'라는 의미로서, 일적으로 사용할 때는 "어떠한 분야,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을 뜻한다. 댓말은 마케구미(負け組)로서 '패자조'라는 의미이다. 21세기에는 [[연애]]나 [[인생]] 같은 분야에서도 흔히 쓰이게 되었으며, 특히 [[중산층]]이 '격차사회'가 되면서 '카치구미'에는 '인생의 승자', '성공한 1%' 같은 의미가 따라붙게 되었다. 한편, 또 다른 의미의 '카치구미'가 있는데.
         일본의 승리를 믿었던 자들은 자신들을 카치구미(勝ち組), 대로 패배했다고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 있었던 사람을 '마케구미(負け組)'라고 부르며 적대시했다. 혹은 전승파(戦勝派)나 신념파(信念派)라고도 한다.
         브라질 경찰은 신도연맹(臣道連盟) 회원을 닥치는대로 검거하고, 일부는 감옥에 보냈으며, 추방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실제로는 실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8월 27일에는 브라질 연방헌법 제정회의에서 "일본인 이민을 금지하는 조항"을 '''헌법'''에 넣는 것을 심의하기도 했다. 가부동수를 이뤘다가 의장이 대표를 던져서 부결되었는데, 대 이유는 일본인 이민 금지에 찬성이지만 이런 규정을 '헌법'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다는 이유일 뿐이었다.
         미야코시는 유력자들을 모아서 문서를 공개하고, 일본이 미국에 패배했다는 것을 알렸다. 미야코시는 즉시 카치구미에게 '''비국민(非国民), 국적(国賊)'''으로 몰려서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본래 각지를 강연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문서를 인쇄하여 포하였다.
         인식파의 활동과 다방면의 노력으로 이 혼란은 1947년 1월 10일 암살 사건이 있었던 것을 마지막으로 진정되는 국면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 대립은 1950년대 중까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8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 일 테크트리 ====
         === 사회기시설 계열 ===
          * 매 턴 이 지방의 사회기시설로부터 얻는 마을 성장 +2
          * 매 턴 이 지방의 사회기시설로부터 얻는 마을 성장 +5
         ==== 난 무역 테크 ====
         ===== 난 무역항(Nanban Trade Port) =====
         ===== 난 무역지구(Nanban Quarter) =====
  • 한창희(전공기업인) . . . . 8회 일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이원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이시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시종의 충주시장직 사임으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으로 같은 해 9월 충주시장직을 상실하였다. [* 한나라에서 [[영구제명]]되어 아직까지도 복당이 안된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현:[[더민주]])으로 소속을 바꿨다고 한다.출처:[[http://blog.naver.com/choongjuhan/90195670102]] ]2011년 4월 [[한국농어촌공사]] [[감사]]로 임명되었다.
         [[우건도]]의 충주시장직 상실로 치러진 [[2011년 하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현 한국당)[[이종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현 한국당) [[조길형(1962)|조길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윤진식의 국회의원직 사퇴로 치러진 [[2014년 상기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이종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시종을 시작으로 맹정섭까지 이어지는 충주시 보수정당 인사의 민주당계 전향자 라인이다.[* 웃긴건, 이시종, 한창희, 맹정섭 3인은 17대 총선에서 각각 다른 소속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넘어온 이시종이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한창희가 한나라당 후보로, 맹정섭은 무소속 후보로.] [* 아울러 한창희나 맹정섭이나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어지간히 섭섭했던 모양인지 그쪽 정당에서 있었던 일 자체를 거의 흑역사 취급하고 있다.]한창희 본인만 해도 열린우리당으로 갈아탄 이시종에게 패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조차 민주당으로 넘어와서 선거를 치뤘다. 그만큼 민주당계 정당이 충주에서 자생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증일지도. 현재도 차기 총선의 민주당 유력 후보군이다.
         || 2004 || [[2004년 재보궐선거|2004년 상기 재보궐선거]] (민선 3기 충주시장)[* 전임자 이시종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사직]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북 충주시장) || ~~'''[[한나라당]]'''~~ || ~~'''49,294 (60.15%)'''~~ || ~~'''당선 (1위)'''~~ || [* 2006.9.28 공직선거법 위으로 당선무효]||
         || 2011 || [[2011년 하기 재보궐선거]] (민선 5기 충주시장)[* 전임자 우건도 당선무효] || 무소속 || 9,072 (13.07%) || 낙선 (3위) || ||
         || 2014 || [[2014년 상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충북 충주)[* 전임자 [[윤진식]] 충청북도지사 선거 출마로 사직] || [[새정치민주연합]] || 16,4920 (29.60%) || 낙선 (2위) || ||
  • 허화평 . . . . 8회 일치
         육군사관학교 동기 [[김진영(군인)|김진영]], [[허삼수]]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특히 허삼수와는 단짝이었다.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란]] 당시 [[전두환]]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대령]])이었다. 말하자면 개국 공신 중의 공신인 셈이다. 1980년 9월 [[준장]] 진급 및 동시 예편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김영삼]] 지지를 선언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 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95년 김영삼의 [[12.12 군사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법처리 조치로 기소되었다. 이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2.12 군사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유죄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후 사면되었다.
         '''그렇다면 왜 최태민을 잡아넣거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의 문에, 허화평은 [[박정희]] 대통령과 [[10월 유신]]의 결과물인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산하는 일이었다는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51768&iid=1140067&oid=449&aid=0000114843&ptype=052|#]]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대로 수사해서 청산하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와 비리의 온상이 [[새마음봉사단]]이라고 보았으며, 그 결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서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 달라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묻어버린 것.
         작중에서 허화평이 [[금융실명제]]에 대하자, [[이학봉]]이 [[김재익]]에게 "우습네요. 그렇게 개혁 개혁 노래 부르더니."라며 뒷담화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5공시절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매체에 노출되는 빈도가 매우 적은 데 해 허화평은 방송 등 언론 노출 빈도가 높은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쾌도난마(채널A)|쾌도난마]]에 출연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윤선]]이 11개월 동안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자 "정무수석쯤 되면 대통령이 안 만나 주더라도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 된다."고 일갈했고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본인들이 앞장서서 이 정국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우기만 하면 안 된다."며 비판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문고리 3인방|권력의 문고리만 잡으면]] 출세할 수 있는 나라라며 ~~문고리 잡아본 사람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북) || '''무소속''' || '''48,251 (44.2%)''' || '''당선 (1위)''' || '''옥중출마 당선'''[br]1997년 의원직 상실[br](12.12 군사란 재판) ||
  • 헌경왕후 . . . . 8회 일치
         |출생지 = 송방(盤松坊) 외가
         조선 선조때의 문신 [[홍이상]]의 7대손이다. 모계로는 [[조선 선조|선조]]의 외6대손으로, 선조의 부마 영안위 [[홍주원]]과, 선조와 인목대비 소생 [[정명공주]]가 5대조부와 5대조모가 된다. 그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 [[홍현보]]는 태몽을 꾸고, 그가 태어나자 아들 내외에게 특별한 아이라고 예상하였다. [[1735년]](영조 11년) 한성부 에서 [[홍봉한]](洪鳳漢)과 한산부부인 이씨의 둘째 딸로 태어나, [[1743년]](영조 19년)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할아버지 홍현보는 예조판서까지 역임했지만 [[한중록]]에 의하면 아버지 [[홍봉한]]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했고, 그의 가계는 빈한하여 언니를 시집보낼 때와 그가 출가할 때 혼수품이 넉넉하지 않았다 한다. 그가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릴 때,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친척들이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출처|날짜=2010-10-31|임오화변의 원인으로 영조가 노론을 견제키 위해 키운 외척계 탕평당인 홍봉한 계열과 영조의 탕평에 발하던 노론계의 대립으로 기행을 일삼던 사도세자 문제가 정치적으로 떠올랐는데 탕평파에서 홍봉한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약점이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치 문제화 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홍봉한은 이를 덮기 위해 뇌물까지 제공하며 은폐하려 했지만 나경언의 고변까지 들어가고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태까지 오자 영조가 종사를 위해 아들을 포기했고 손자를 지키기 위해 홍봉한에게 자신의 명을 따르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당시 상당한 상소에서 사도세자의 비행을 은폐하는 홍봉한에 대한 공격이 나온다.
         [[1775년]](영조 51년)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자 홍인한은 극력 대하였고, 이 문제로 정조의 미움을 사서 정조 즉위 후 사사된다.
         홍봉한은 [[1770년]](영조 46년)경 대파 김귀주, 정후겸의 공격으로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고 봉조하의 직함으로 교외에 거주했으며 이후에도 이복동생이던 홍인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형을 배신했다고 정조가 말한적이 있다. 사도세자 생전부터 있었던 정순왕후 외척가문과의 정쟁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에도 김귀주 정파의 홍봉한 탄핵이 여러번 있었으며 정조 즉위초에도, 정조 사후에도 이들이 홍봉한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다. 사도세자의 추숭에 대해 당시 세손이던 정조와 사석에서 홍봉한이 나눈 이야기를 김귀주가 영조에게 고자질해서 홍봉한을 역적으로 몰기도 했었다.
         === 생애 후 ===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7회 일치
         2015시즌 양 팀의 상대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한 수준이었던데다가 무승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홈팀에게 유리한 "무승부시에는 홈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이라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예측이 많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무승부가 나왔고, 이에 3위팀(홈)인 수원 FC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광의 실책으로 발생한 자책골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김영광은 전후 90분동안 21개의 슈팅중에 15개나 유효슈팅이었던 수원 FC의 날카로운 공격을 잘 막아냈을 정도로 활약은 준수했다. 자책골에 묻혀버렸을 뿐.
         대구는 [[K리그 챌린지]]에서 후기 부진으로 [[K리그 클래식]] 자동진출권을 놓쳤기 때문에 사기가 상당히 저하된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2015시즌 대구는 수원을 상대로 1승 1무 2패로 상성마저 최악이었는데다가 대구가 챌린지에 합류했던 2014년부터 수원 FC와의 홈경기는 '''단 1승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을 믿을 수 있는건 무승부로 시합을 종료하여 승강 플레이오프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자파가 역전골을 넣으며 대구는 급격히 무너졌고, 수원FC는 특유의 적절한 칙으로 대구의 흐름을 끊는 경기운영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날 나온 총 칙수는 오프사이드를 제외하고 48개였고, 이 중 31개가 수원FC가 저지른 칙이었다. 오프사이드까지 포함하면 총 50개가 넘는 칙수를 기록한 경기였다.
  • MoniWikiACL . . . . 7회 일치
          * 일부 POST액션은 관리자 비밀번호로 제한을 걸어둘 수 있는 액션은 protect 가능한 액션입니다. protect 액션은 ''제한된 allow''이며, 일부 POST액션만 지원합니다. 예) do_post_savepage()는 post 액션이며, 일 do_goto()같은 액션과는 달리 관리자 비밀번호로 액션을 제한을 할 수 있습니다.
         // 모든 페이지(*)를 일 가입 사용자에게(@User) 허락(*)
         # <?php exit()?> // 파일은 php이지만 형식은 php가 아닌 일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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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ny edit}}} + {{{allow *}}}은 그 대로 {{{Order deny,allow}}}가 된다.
         앞절의 설명은 priority가 같은 경우에 대한 일적인 설명이었다. 그룹의 priority를 두었을 때는 어떻게 적용될까?
          * 일 등록 사용자(@User)는 edit,savepage 허락.
  • 김륵 . . . . 7회 일치
         '''김륵'''(金玏, [[1540년]] ~ [[1616년]])은 조선 [[조선 선조|선조]]·[[조선 광해군|광해군]] 때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예안 김씨|예안]],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시호는 민절(敏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안집사와 체찰부사로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으며, 진주에서 [[이순신]]을 만난 뒤 그가 백의 종군할 때 구명 운동을 벌였다. 광해군 때는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추숭을 대하기도 했다.
         === 생애 초 ===
         [[1602년]](선조 35) 경상도 변방으로부터 왜의 재침 기미가 있다는 보고가 들려오자, 조정에서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로 보내 청병하였다. 그러나 [[만력제]]는 '재역불가의 5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 그는 오조를 들어 설득하니 [[만력제]]가 이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벼루]]와 [[비단]] 등을 하사하며, 지금 출병은 어렵지만 왜에 대한 경계의 칙지를 내릴 것을 약속받고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는 [[북인]]들의 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인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조식 (1501년)|조식]]이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고 그의 이황, 이언적 문묘 종사를 대했는데, [[북인]]과 [[남인]]간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자신의 생모 [[공빈 김씨]]를 왕후로 추존하려 하였으나, 그는 생모를 왕비로 [[추증]]하려는 [[광해군]]의 뜻을 비판, 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고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좌천되었다.
         이후 영주시내에 귀학정과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천운정을 짓고 시문으로 소일하며 이수광·한석봉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했는데, 이때 석봉 한호로부터 친필 글씨로 귀학정 현판을 선물로 받았다. 1616년(광해군 8) 병으로 사망했다. 묘소는 경북 봉화군 상운면에 있다. [[1623년]] [[인조정]] 후에 [[광해군]] 시절의 행동이 참작되어 1653년에 이조 판서로 증직되었다.
  • 김지수(배우) . . . . 7회 일치
         이후 2008년 드라마《[[태양의 여자]]》에 출연하여, 어렸을 때 입양되었으나 동생이 태어난 이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구박만 받다가 동생을 버리고 마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기 아나운서 '[[신도영]]'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주목을 받았다. '[[신도영]]' 역이 선악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어려운 역이었지만 심경변화 등을 잘 살린 데다가, 이 드라마의 [[한재석|다른]] [[이하나|주]][[정겨운|연]] 배우들이 그렇게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돋보였다. --물론 [[정애리(배우)|정애리]] 님은 예외로 칩니다--[* 정애리는 이 드라마에서 입양한 딸인 신도영을 구박하면서 친딸을 끊임없이 찾는 최정혜 교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솔직히 《태양의 여자》는 [[정애리(배우)|정애리]]와 김지수의 투탑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하나]]는 극 후에 들어서야 자리를 잡았다.]
         2013년 12월 2일, [[SBS]]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 [[송미경]] 역으로 캐스팅 되어 [[근초고왕]] 이후 2년만에 지상파 복귀를 했다. 역시 김지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연기에 대한 시청자 응은 좋았으나, 드라마가 흥행하지 못했고 아무런 수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12월에 방영한 탓도 있다.
         게다가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 촬영 중 눈 주위가 파랗게 멍이 들어서 나타나 특수제작팀이 동원되어 그녀의 눈의 멍을 지워야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자고 나오다가 넘어져서 그랬다는데, 보통 그런 경우에 눈 주위에 멍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눈 주위에 멍이 드는 이유는 맞아서인데(...)] 프로 배우답지 못한 김지수의 태도도 문제였지만, 보통 이런 거 잘 기사화 안 되는데 그 당시 근초고왕 팀의 분위기가 얼마나 개차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비단 김지수뿐만 아니라 [[감우성]] 또한 스태프들과의 폭행시비로 구설수에 올랐었고, [[서인석]]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석 입건되는 등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은 이래저래 김지수의 [[흑역사]]로 남을 듯(...)
         나무액터스 측은 "김지수씨가 그동안 스케줄 때문에도 (술을) 못 먹었는데 어제 영화를 보고 그간의 촬영했을 당시에 힘들었던 것들이 생각났던 것 같다. 그래서 어제 [[주#s-2|주]]를 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본격 음주 해명전문기획사-- 이후 자신의 SNS에 응원의 댓글을 단 사람에게 답변을 하면서 음주 인터뷰 건으로 자신에게 오는 비판을 '''일방적 폭격'''이라 표현하며 또다시 논란에 기름을 퍼부었다(...)
          * 故 [[김주혁(배우)|김주혁]]과 6년간 사귀었으며, 2005년 故 [[김주혁(배우)|김주혁]]의 아버지인 故 [[김무생]]의 죽음 때에도 빈소를 지킬 정도로 연예계 공식 커플이었다. 그러나 2009년 10월 7일에 3개월 전 결별했다고 보도되었다. 헤어진 후에 故 김주혁이 미안해했다는 듯하다. 무릎팍 도사에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 있는 결혼 적령기를 보내고 그냥 헤어졌다는 것이 미안하다” 라고 심정을 밝혔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90916221&code=960801|#]] 2017년 10월 김주혁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빈소에 찾아와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지수 본인은 [[주당]]인 면 故 김주혁은 술을 못마셨다고...
          * 가녀린 외모와 달리 좋아하는 스포츠는 [[스노보드]]. [[제트스키]], [[수상스키]]까지 즐긴다. 2000년대 초부터 탔기 때문에 연예인 중에서는 보드를 잘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족으로, 배우 [[김혜리(배우)|김혜리]]는 김지수가 그랬던 것처럼 가녀린 외모와 달리 스포츠광이면서 두 번 이상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전과[* 김지수는 [[KBS 1TV]] [[태조 왕건]]에서 김혜리가 맡았던 강비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가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백혈병]]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선행을 베풀었으며, 이 과정에서 어린이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지 2013년, 소아암 환자 진료비를 위한 자선행사에도 기부했다.[[http://www.humanmp.co.kr/news/news_index.php?vDown=news_read&vKey=14910&vBid=02&vTable=BBS|#]] 이로 인해 이미지는 어느 정도 개선된 듯(...)
  • 김형기 (법조인) . . . . 7회 일치
         [[전두환 정부]]의 간첩 조작 사건으로 밝혀진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재재 상고심에서 주심 대법원 판사를 맡은 이유로<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3342.html]</ref>를 맡은 이유로 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가 2016년 11월 13일에 발표한 헌법 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었다.<ref>[http://moneys.mt.co.kr/news/mwView.php?type=1&no=2016071408268072968&outlink=1]</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공법]]위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으로 기소된 영화배우 [[박노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순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7회 일치
          * 서로 코스튬을 보여주며 노닥거리는 A.
          * 그때 B이 들이닥친다.
          * 시험에서 A을 마구 떨궈줄 작정인가 본데, 어차피 시험은 A과 B이 따로따로 친다.
          * A은 통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 불리한데다 훨씬 많은 훈련을 받은 학생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 이이다랑 키리시마를 곱한거 같다고 하는 A 학생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7회 일치
          * 이레지어 헤드, 아이자와 쇼타의 그녀 등장? 아이자와의 지인 Ms.조크 등장. 아이자와는 일방적으로 프로포즈 당하고 거절하길 복하고 있다.
          * 오랜만이라며 갑게 인사하는 미인. 그런데 아이자와의 표정은 썩는다. 미도리야는 그녀를 아는 듯 한데?
          * 걸물학원고교 2학년 2. 선생만큼이나 묘한 사람들이다.
          * 신도라는 학생은 올해 이어진 웅영고의 트러블에 대해 위로하며 A 학생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눈다.
          * 이런 응에 A 학생들도 기분이 업돼있는데, Ms.조크는 이런 걸 보고 미심쩍어 하며 "말하지 않았냐"고 아이자와에게 묻는데.
          * 미도리야는 여기서는 일단 같은 학교끼리 뭉치는게 유리하다고 보고 A 인원들에게 한조로 움직이자고 제안한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7회 일치
         그는 노르망디의 소귀족인 오트빌가의 탕크레드의 12아들중 6째로 그가 후처 프레센다 사이에 낳은 6아들중에서는 첫째다. 당시 할일없고 영지를 상속받을 가망도 없는 노르만 귀족들이 으레 그랬듯이 '용병'으로 복무하기 위해 남이탈리아로 건너갔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내에서 '용병'이란 '용병대'가 아니라 영지를 봉급으로 외부의 기사들을 복무시켜 비잔티움 편제로 훈련시키는걸 말한다.] 그리고 그곳의 노르만 용병들이 그의 셋째 형인 '강철팔'기욤을 중심으로 란을 일으킬때, 기스카르는 형을 따라 종군하면서 비잔티움에 맞써 싸운다.
         기스카르를 유명하게 만든건 1053년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교황청에서 저지하려했던 치비타테 전투에서였다. 치비타테 전투에서 기스카르가 이끄는 좌익은 전투 초 아베르사 백작 리카르도가 이끌던 상대 좌익을 성공적으로 격파했고, 옹프루이가 이끌던 중군이 교황령의 중군을 성공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자 즉각 좌익을 그곳으로 투입시켜, 전투의 승기를 잡는데 크게 공헌했다. 치비타테에서의 이러한 영웅적 활약으로 인해 기스카르는 1057 4월에 옹프루이가 죽자 그의 작위였던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백작위를 상속 받을 수 있었다.
         기스카르에게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비잔티움의 황후가 될 수 있으니 상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제위계승에 끼어들 수 있는 명분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훈장을 받는건 미하일에게 뇌물을 받는 꼴이라 좀 찝찝하긴 했지만 감수못할 위험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신부감이 젖먹이 약혼자가 결혼할 나이로 자라기전 신부수업을 받기위해 콘스탄티노플로 떠났다[* 떠난 신부감은 곧 그리스식으로 세례를 받은뒤 헬레나로 개명했고, 정교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그러나 1078년에 니케포로스 보타네이아테스에 의해 미카일 7세가 폐위되고 그가 니케포로스 3세로 즉위하자, 헬레나가 황후가 될 일은 막혀버렸다. 퇴위된 미카일은 수도원에서 은거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10세를 닮아 학자기질이 다분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생활은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의 며느리가 될뻔했던 기스카르의 딸에게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을 삶이었을것이다. 이는 기스카르에게 좋은 개전 명분이 되었다. 마침 남이탈리아에 란이 일어나 원정이 지체 되었지만, 1080년 여름에는 전쟁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 제국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빠져 아나톨리아를 잃는등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었기에, 개전이 늦어지는건 그에게 큰 상황이 없었다.
         이후 기스카르는 그해 12월에 콘스탄티노플에 대사로 퐁투아즈 백작 라뒬프를 보냈는데, 표면적으로 그가 온 이유는 니케포로스 3세에게 헬레나에게 만족스러운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기위해서였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수도에 있던 노르만 용병들의 세력을 결집시켜 원정에 끌어들이는것과, 당시 내무대신이자 실세로 떠오르던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예상치못하게 알렉시오스가 니케포로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해 알렉시오스 1세로 즉위해버렸고, 노르만족들을 결집시킬 역할을 했어야될 라뒬프 백작은 오히려 알렉시오스에게 감화되어서 그와 우호관계를 구축하자는 기스카르의 의도와는 정대인 답을 해버린다(....) 라뒬프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스카르는 라뒬프를 ~~갈군~~호되게 질책한 뒤, 브란디쉬와 오트란토에 이미 모여있던 그의 원정군들을 아드리아해 너머 비잔티움령에 보내려 했다.[* 이미 아드리아해 너머에는 그의 장남 [[보에몽 1세|보에몽]]이 이끄는 선봉대가 상륙해 있던 상황이었다.]
         디라키온 함락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꺾일줄을 몰랐다. 그의 군세는 순식간에 일리리아 전역을 장악했고, 카스토리아를 지키던 수비대는 기스카르에게 항복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마 비잔티움의 멸망은 약 400년정도 앞당겨질 상황이었지만...''' 그때 ''' 이탈리아에서 사절이 왔다.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캄파니아에서 대규모 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사절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서신을 가져왔는데, 주교서임권 문제로 그와 다투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공성중이니 한시바삐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할 수 없이 기스카르는 병력을 나눠 보에몽에게 지휘를 맡기고, 그리스로 돌아올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그의 아버지인 탕크레드의 영혼을 걸고 맹세한뒤 서둘러 아드리아해를 건넜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런 완벽한 타이밍에 신성로마제국이 교황을 공격하고, 아풀리아에 대규모 란이 일어나 기스카르를 방해한것일까?
         답은 바로 비잔티움 전통의 외교술이던 이이제이였다. 예전부터 비잔티움은 외국의 이민족들이 자국을 위협하면 천혜의 무역입지를 통해 쌓인 돈과 보물로 경쟁이민족을 끌어들여 견제하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외교술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것이다. 우선 그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피신해있던 기스카르의 조카인 아벨라르를 끌어들여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쥐여 이탈리아로 비밀리에 보내 란을 일으키게 했고, 한편으로는 하인리히 4세에게 사절을 보내 아풀리아 공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장차 위험해질거라고 충고하면서 금괴 36만개와 진주가 박힌 황금 가슴장식, 그외 수많은 귀중한 보물들을 선물해 그를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 마기/349화 . . . . 7회 일치
          * [[우고(마기)|우고]]가 나타나 "차원 연결"은 엄청난 마고이를 소모하므로 알리바바의 "적은 마고이로 가능"하다는 주장은 불가능하다고 격렬히 발한다.
          *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아주 적은 마고이로도 차원 간의 벽을 부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알리바바 사르쟈]]. 그는 자신이 저 세상에서 돌아올 때 쓴 "대마법"으로 세상을 감싸고 있는 가로의 벽과 세로의 벽 모두를 파괴해 세상의 다중 구조를 없애고 루프도 전부 통합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아르바(마기)|아르바]]는 획기적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의하는 듯한데, 특히 아르바는 여전히 미심쩍은 인상이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우고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며, 지금까진 그저 일 일라를 악당이라 여겼지만 단지 편견일 지도 모르겠다고 성한다.
          * 이들이 내놓은 의견은 저마자 근거도 있고 어느 정도 타당했지만 분명히 어느 의견이 옳다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알라딘은 벽을 부순다면 대체 어디까지 부술 것인지를 지적했다. 아르바는 일 일라 같은 존재들을 단순한 에너지체로 취급한 알라딘이나 우고 등을 "거만하다"고 까며 그분에겐 의지가 있고 자신에겐 그게 들린다고 주장했다. 우고는 "같은 인격체"일 뿐이라는 아르바의 주장에 박해 "상위의 존재들은 하위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못박고 신드바드의 말대로 세로의 벽을 부숴 그들을 타도해야 한다 주장한다. 아르바는 여기에 박, 계속 솔로몬이 한 것처럼 상위의 신을 쓰러뜨리고 그 힘으로 새 세상을 만든자면 자기도 세상을 계속해서 멸망시킨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논쟁은 격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최종적으론 "운명을 쟁취하자"는 입장으로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자는 우고 와 알리바바, 대로 "운명은 독립해야 한다"며 차원간의 벽을 더 두껍게 만들어 서로 분리되자는 알라딘과 아르바의 입장이 대립했다.
  • 막부 . . . . 7회 일치
         중국에서 이러한 부의 개설은 란의 평정이나 대외 원정 등. 중대한 군사 작전 사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일적인 행정조직으로서는 대응하기 어려워, 장군이 전권을 행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설치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전장에서 평시 행정조직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중앙 정부에 모든 사안을 보고하고 지시를 따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
         일본에서 막부 체계가 나타난 이유는 일단 조정이 군사적으로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헤이안 시대 초기에 일단 도호쿠 지방까지 정벌이 완료되자, 일본 조정은 막대한 군비가 드는 국군(國軍) 제도를 폐지해버리고, 군사를 수도의 경비대와 [[한도]]와 가까운 큐슈 다자이후의 경비병 수준으로 축소하였다. [[섬나라]]인 일본은 일단 혼슈 평정이 완료되자 당장 외적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고, 군사력의 필요성이 낮았기 때문에 이 같이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국가의 재정을 아끼게 된 것이다.
         이렇게 치안이 악화되었지만, 조정에서 일 서민이나 호족들의 민생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이러한 사투는 거의 방치되다 시피 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 말기에 정권을 장악한 귀족 세력이나 지방 세력가인 [[호족]]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막대한 [[장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각자 개인적으로 호위병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용되어 고위 귀족을 모시게 된 [[사병]] 격인 '무사'들이 [[사무라이]]의 기원이 되었다.
         [[에도 막부]]는 1800년대 후기에 미국을 위시한 서양의 포함 외교에 굴복하게 된다. 이 때문에 막부 감정을 가졌던 번벌들의 발에 직면한다. 결국 내전 끝에 '대정봉환'이라 하여 막부의 권한을 조정에 납하면서 에도 막부는 사라지게 된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7회 일치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이 끝난 후, 맥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처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알프레드 우든]]은 약속대로 모든 책임을 지워주고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를 버티지 못한 맥스는 마약단속국을 떠나 뉴욕 경찰청 강력으로 돌아온다.
         전날 밤, 맥스는 한 창고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건 강력이 맡을 일이 아니었지만, 그 창고는 전의 사건으로 알게 된 [[블라디미르 렘]]의 소유였다. 맥스는 보고를 접수한 후 차를 몰아 창고로 향한다.
         창문을 연 맥스는 대편 건물에서 대기하던 저격수를 발견한다. 저격수의 공격이 시작되자 모나는 놈들이 자신을 찾아낸 것 같다며 도망친다. 맥스는 윈터슨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한 후 청소부들이 습격한 아파트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 30층 엘레베이터 옆의 집 문을 건드리면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아마 [[성관계|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아니 이 양들아 밖에서는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 대일 것이다. 왕자는 자신이 꾸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키스했을 것이다.
         우든은 휠체어에 탄 채로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스는 우든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이너 서클에 대해 질문한다. 우든은 자신이 암으로 시한부 인생이 되며 내분이 발발했고, 내분을 벌인 무리들이 저항하는 회원들을 암살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맥스는 그 일의 주동자가 [[비니 고그니티]]냐고 물어보지만, 우든은 비니가 아니라 [[블라디미르 렘]]이 주동자라고 말한다. 오랜 기간을 이너 서클의 회원으로 있었던 블라드가 기를 든 것이었다. 우든은 블라드가 비니를 죽이고 나면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라고 말한다.
          * 또다른 맥스를 쫓아가다 보게되는 TV에서 비니와 블라드가 나온다. 비니가 총기 밀매를 포기할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블라드는 게임을 제안한다. 블라드가 내는 문제를 맞추면 인형탈 머리에 설치된 폭탄 부품을 제거해 주겠다는 것. 비니는 첫번째 문제[* Q: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덩치 큰 악당은 누구인가? A: 맥스웰의 악마.]를 맞춰 폭탄의 을 제거받지만 두번째 문제[* Q: 현실에서 [[맥스웰의 악마]]를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비니가 낸 답: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각본가인 새미 워터스. 정답: 19세기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에서 틀려서 폭사한다.
  • 박녹주 . . . . 7회 일치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상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남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23세인 [[1928년]]부터 음을 취입[* 콜럼비아에서 취입한 것으로 단가 대관강산과 심청가 중 선인 따라가는 대목을 취입하였다.]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성악연구회에도 참여하여 춘향전, 흥보전, 심청전, 숙영낭자전, 배비장전 등 창극의 여주인공으로 자주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44세가 되던 [[1948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어 당시 창극 활동을 했던 여성 명창의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고, 국극의 연출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1948년 눈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해방 이전부터 접했던 [[아편]] 중독 증세로 인해 병고와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본인이 보유하고 있었던 바탕소리 녹음을 많이 남겼다. [[1963년]] 기독교방송에서 춘향가를 녹음하고, [[1972년]] 자택에서 기록보존용으로 심청가를 녹음하였다 흥보가는 총 4차례나 전판을 녹음하였는데 이 가운데 [[1967년]] 녹음(고수 : 정권진)과 [[1973년]] 녹음(고수 : 김동준)은 음화 되었다. 전자는 [[지구레코드]]에서 출되었으며, 이후 CD로도 복각되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문화재보호협회 소장 녹음으로 여러차례 음으로 제작되었으나 CD로는 제작되지 않아 지금은 듣기 어렵다. 그 외에 출되지 않은 녹음으로는 [[1976년]] 문예진흥원 판소리 조사 사업당시에 녹음한 것(고수 미상)과 녹음시기 미상의 기독교 방송 소장의 녹음(고수 : 정철호)이 있다.
         이처럼 판소리, 그 가운데에도 흥보가 전승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자 당대의 슈퍼스타였는데 일 대중들에게는 [[김유정(소설가)|김유정]]의 스토킹 상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시대가 시대였고 김유정이 훗날 소설가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한동안 짝사랑으로 포장되었으나, 사실 김유정의 행동거지는 악질 스토커의 그것이었다. 김유정은 박녹주가 자신의 마음을 안 받아준단 이유로 그녀에게 혈서를 보내는가 하면, 박녹주가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납치하려고도 들었다.[* 심지어 명목상이지만 박녹주는 그때 유부녀였다. 임자가 있는 몸인데도 저랬다는 소리다!] 그러다보니 박녹주는 김유정이라면 질색을 했다. 특히 김유정 때문에 박녹주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가 한 행동은 사랑을 핑계로 극심한 민폐를 끼쳤을 뿐이다. 그래도 결국 김유정에게 동정심이 없진 않았는지 김유정의 친구인 안회남이 김유정이 죽고 난 뒤 오히려 자신더러 김유정을 죽인 살인자라며 매도하는 안회남에게 그때 손 한번 잡아주기만 했더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거라고 동정했다고 한다. 스토커에 시달리다 못해 그의 친구마저 되려 자신을 매도하려 했음에도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어찌보면 정말 대인배다.
  • 백일섭 . . . . 7회 일치
         * [[1989년]] [[KBS2]] 미니시리즈 《[[절의 실패]]》
         * [[1996년]] [[MBC]] 일일연속극 《[[자고등어 (드라마)|자고등어]]》 ... 유복조 역
         * [[2006년]] 《[[한도 (영화)|한도]]》 ... 북한국방위원장 역
         | 현재 요약 아래 = [[자고등어 (드라마)|자고등어]] 유복조 역
  • 보루토/1화 . . . . 7회 일치
          * 가정을 소홀히 하는 나루토 때문에 발하고 있다.
          * 과학닌자의 신제품으로 술법을 봉인해서 발사할 수 있다.
          * 결과를 보고하러 온 코노하마루에게 나루토는 닌자로서 자세를 설교한다
          * 보루토는 발하며 "그런 것 보다 히마와리의 생일을 잊어먹으면 안 된다"고 말을 돌린다.
          * 그때 과학닌자도구의 카타스케라는 남자가 들어오는데, 그는 중닌시험에 인술을 발사하는 새로운 닌자도구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 하급닌자에게 가혹한 수련을 시킬 필요도 없어지고 포퍼먼스도 화려해질 거라며 적극 추천하는데, 나루토는 중닌시험은 닌자를 키우기 위한 거지 포퍼먼스가 아니라며 대한다.
          * 사스케가 간단히 격하자 "역시 굉장하다"며 놀라워한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7회 일치
          * 하지만 마나라곤 전혀 없고 마법도 마법 밖에 없는 아스타는 몸으로 때우며 전진하다 쓰러진다.
          * [[레오폴트 버밀리온]]은 특유의 포지티브한 마인드 덕에 금방 마음을 다잡고 아스타에게 "정상까지 누가 먼저 가나 승부"라고 선언한다. 아스타도 일단은 의욕을 내본다. 레오폴트는 아스타와 함께 유노에게도 선전포고를 하는데 아스타에게 "나의 라이벌"이란 소개를 받고 "그렇다면 나의 라이벌이기도 하다!"는 이상한 비약으로 전개, 유노한테도 정상까지 승부하자고 제안하지만 "멋대로 하라"는 매우 심심한 응이 돌아오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 두 단장에겐 단원들과 같은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미는 그저 "누님레온한테서 도망칠 수가 없으니 후딱 해버리자"는 정도의 귀찮음 때문에, 샬롯은 "술 기운도 깰 겸, 그리고 이정도도 못하면 여자의 이름이 운다"는 정도의 적당한 기분으로 거침없이 등에 나선다. 야미는 분출과 함께 쏟아지는 화산바위를 가볍게 베어내고 샬롯은 가시덩쿨 마법을 몸에 둘러서 빠르게 이동한다.
          * 통찰력에선 조금 늦었지만 유노도 레오폴트의 방법을 따른다. 곧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바람의 마나로 마나스킨을 전개, 심지어 시원하고 쾌적하게 등할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순식간에 일행을 앞질러 가며 아스타에게 "내가 온천에서 뻗기 전에 올라와라"고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레오폴트도 아스타에게 먼저간다며 유노의 뒤를 쫓고 마론도 "샬롯과 온천에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마나스킨을 유지하며 아득바득 발을 옮긴다.
          * 일행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전진하는 동안 아스타는 멀찌감치 뒤쳐졌다. 이건 근성이나 근육으로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마법의 검으로 열기를 베어낼 수는 없었다. 원래 마력이 없는 아스타로선 열기를 전혀 방어할 수가 없었다. 아스타는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고 절감하면서도 한 발씩 옮기다 결국 쓰러진다. 그때 메레오레오나가 나타난다.
          * 메레오레오나의 도발을 당한 아스타가 이를 악물고 일어난다. 그저 "운"이라는 말에 박하듯이 마법제는 결코 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꾸하자 메레오레오나가 "그렇다면 올라가봐라. 바보에겐 무리겟지만."이라고 재차 도발한다. 아스타는 드시 올라가보이겠다며 "우리들의 꿈은 실적 위에 있다"고 일갈한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7회 일치
          * 미모사가 팀의 사령탑을 맞아 적을 감지, 아스타의 마법 검으로 적의 마법을 베어내며 크리스탈을 사수한다.
          * 한편 A팀은 의외의 파훼법이 발견되자 당황한다. 릭이 상대편도 감지타입 마법 구사자가 있다고 판단하고 적의 접근을 경고한다. 이제 두 팀은 서로의 크리스탈이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까지 좁혀졌다. 카타스는 팀원들을 진정시킨다. 이미 B팀의 크리스탈은 너덜너덜한 상태. 면 자신들은 노 데미지. 적이 원거리 공격을 쓰지 못하는 한 우위가 바뀌진 않는다.
          그런데 그 우위가 바뀌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B팀이 진격을 멈추고 허물어진 담벼락 뒤로 엄폐한다. 미모사가 최근에 익혔다는 공격마법. 그게 사정거리가 긴 중거리 마법이었다. "마포의 꽃". 거대한 꽃봉우리가 돋아나 A팀의 크리스탈에 포격을 가한다. 카타스가 급히 암석마법 "락 포트리스"로 벽을 세운다. 위력이 만만치 않다. 이것은 미모사가 이전에 생각했던 "아스타의 곁에서 함께 싸울 수 있는 마법". 함께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해지겠다는 "맹세의 꽃"이었다. 미모사는 이제 자신이 앞장서서 격에 나서겠다고 선언한다. 아스타는 그녀가 굉장히 믿음직해졌다고 생각한다.
          * A팀으로선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다. 카타스가 셋이 동시에 덮쳐 포위할 것을 제안하지만 포르티가 대한다. 그는 아스타가 마법 검을 구사한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가까이서 직접 본 적도 있는데 접근전에서는 상대가 안 되는 수준이다. 섣부른 접근은 패배. 그들은 그것까지 고안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그런데 위험한 에너지 응이 또 나타난다. B팀의 뒤쪽. 미모사의 등 뒤 좌우로 강력한 마력 응이 나타났다. 카타스에게 정신 팔린 동안 배후까지 이동한 포르티,
  • 블랙 클로버/84화 . . . . 7회 일치
          * 여왕은 계획을 수정해 아스타의 마법의 검을 손에 넣기 위해 그의 저주를 풀어준다.
          * 아스타는 또 무모한 짓을 되풀이하려 하는데 바네사는 칼을 붙들며 "그렇기에 동료가 있는 것"이라며 사실 여왕을 이용해 저주를 풀고 나면 그 마법의 검으로 영왕을 따돌리고 도망치려 했다고 고백한다. 바네사는 뒤늦게 여왕이 바로 옆에 있는 걸 떠올리고 뜨끔해하는데, 마침 여왕은 그런 말보다는 아스타가 가진 마법의 검에 흥미를 보이느라 제대로 듣지 않았다.
          * 하지만 여왕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바네사와 아스타의 마법의 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바네사는 원래 여왕을 속여먹이고 아스타의 마법의 검으로 어떻게든 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자신을 희생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마녀의 숲의 여왕을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며, 애초에 바네사가 숲에 억류된 상태에서 아스타와 재접촉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바네사를 숨겨두고 아스타의 저주만 풀어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
         여왕은 마법의 검을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고 선언하는데 그게 아스타를 세뇌하겠다는 건지 마법 자체를 빼앗겠다는 건지는 불분명하다. 일단 저주를 풀어준 것 같긴 한데 완전히 풀어준 건지, 다른 리스크가 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7회 일치
          * 마르스는 [[판젤 크루거]] 일행을 보호하며 일시 퇴각, 라드로스를 처리하면 허용용량을 넘어선 강대한 마력이나 "마법"만이 답이라고 말하는데.
          *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는 자신들의 목표는 마녀의 숲이지 쓸데없는 살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라드로스]]는 다이아몬드 왕국을 배신한 배신자들인데 어째서 그걸 못 본척 한다는건 왕국을 배신하는 짓이라고 박한다.
          >마법입니다.
          * 마르스가 마법까지 알고 있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란 젤. 하지만 의문은 뒤로 미루고 우선은 그 사용자가 대편에 와있다며 라드로스를 유인하자고 한다.
          * 숲의 대편, 검은 폭우 일행은 [[증오의 파나]]를 거의 제압한 상태다. 파나는 한 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은데 주변을 불사르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아스타는 이미 포위됐으니 그만 좀 하라고 마지막 항복권고를 날린다. 그러면서 "자꾸 그러면 고향의 부모님과 친구들도 슬퍼할 거야"라고 하는데 그것이 파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 아스타는 젤 일행이 마르스, 라드로스와 함께 나타나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린다. 파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령마법을 날린다. 젤은 재빨리 아스타가 얘기해준 적이 있던 "마법을 튕겨내는" 마법 검의 특성을 떠올리고 아스타에게 자기들 쪽으로 마법을 튕겨내게 한다.
  • 블랙 클로버/95화 . . . . 7회 일치
          * 라드로스는 아스타를 회유해 마법을 다이아몬드 왕국으로 데려가 이용해먹으려고 한다. 물론 아스타는 거절.
          * 라드로스는 아스타의 동료애를 비웃으며 남은 "이용"해야 하는 존재라 주장하지만 아스타가 마법의 검을 투척하는 변칙 공격을 하자 어이없이 당한다.
          * 라드로스는 갑자기 저자세를 취하며 싸움을 피한다. 그는 아스타가 "마법을 쓰는 기사"인 줄로 짐작하고 갑자기 친근한 자세로 나온다. 자신도 "무속성 마력"의 소유자라 홀대를 받아왔고 그래서 "마력이 없는" 아스타의 처지를 이해한다며 억지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스타가 대체 무슨 소릴하고 싶냐고 하자, 뜻밖에도 그는 "동료가 돼라"는 드립을 친다.
          그는 "재능만 가지고 으스대는 녀석들을 물리치자"는 그럴듯한 명분과 다이아몬드 왕국 측에는 자신이 잘 설명해서 출세가도를 달리게 해준다는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속셈은 언젠가 아스타의 마법의 힘도 자신이 독차지하려는 것.
          * 라드로스는 [[판젤 크루거]]에게 사용했던 마법탄 폭격을 다시 구사한다. 그는 아스타의 전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핀랄 룰러케이트]]의 공간마법 보조가 없으면 아스타의 공격 범위는 크게 감소한다. 라드로스는 그 점을 들어 아스타를 "좋은 표적"이라 조롱한다. 아스타는 폭격을 쳐내고 사해 보내는 식으로 대응하는데 라드로스는 자신의 마력도 재흡수할 수 있어서 아무런 타격도 되지 않는다. 라드로스는 더욱 거세게 공격의 고삐를 죄며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 이미 승리한 것처럼 폭소를 터뜨리던 라드로스에게, 폭연 속을 꿰뚫으며 마법의 검이 날아와 꽂힌다. 단마의 검은 순식간에 라드로스의 마력을 무효화 시킨다. 라드로스는 자신이 무슨 공격에 당한건지 파악을 못한다.
          * 결국 힘이 빠진 라드로스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신세가 된다. 기습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무거운 마법의 검을 그런 높이까지 던지는 놈이 어딨냐고 황당해한다. 라드로스는 겁에 질린 나머지 아스타가 다가오자 비굴하게 기어다닌다.
  • 손예진 . . . . 7회 일치
         손예진의 다음 작품으로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외출 (영화)|외출]]》(2005)로 두 편의 영화 모두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였으며,<ref>{{웹 인용|title=The Best Selling Films of 2004|url=http://www.koreanfilm.org/kfilm04.html|work=Koreanfilm.org|accessdate=2013-08-08}}</ref><ref>{{웹 인용|title=A Moment to Remember breaks Japanese record|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326|work=Korean Film Council|date=14 December 2005}}</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to Star Alongside Bae Yong-joon in New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163|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4 December 2004}}</ref>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국내에서도 25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각각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본에서 개봉 된 역대 [[대한민국]] 영화중에서 흥행 기록 1, 2위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예진, ‘日 2005 외국영화 흥행 톱10’서 2관왕|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32332|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5-12-16}}</ref><ref>{{웹 인용|title=Films Starring Sohn Ye-jin Attract 10 Mil. Viewers in Korea, Japan|url=http://english.kbs.co.kr/hallyu/entertainment_news_view.html?No=147|work=KBS Global|date=28 December 2005}}</ref> 특히 《외출》에서 손예진은 20대 중 주부이면서 남편과 불륜 관계였던 여자의 남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자 서영의 감정을 잔잔하면서 깊이 있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알고, 이 영화로 제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은 최고의 선수, 작업계의 고수 한지원 역을 맡아 이 작품에서 과감한 섹시 댄스를 선보이는 등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고, 23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오싹한 연애> 손예진, <작업의 정석> 뛰어넘을까?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9139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하성태 |날짜 = 2011-12-17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6년 노자와 히사시의 동명 소설을 기으로 한 TV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수영강사 유은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대본 보고 이런 게 사랑이라 생각했죠"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40659|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백나리 |날짜 = 2006-03-09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드라마는 ‘이혼후 다시 시작하는 연애’라는 참신한 소재로 호평을 받았으며, 20대 여배우가 선뜻 마음먹기 힘든 이혼녀를 연기, 더 이상 예쁜 얼굴만 무기가 되는 여배우가 아님을 인정 받았고, 이혼 했지만 묘하게 남아있는 미련, 헤어진 뒤 비로소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럽고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4241121121116|제목=손예진, "'연애시대'통해 현실적사랑 생각하게됐다" |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4-24|확인날짜 =2017-09-09}}</ref> [[SBS 연기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제4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 |url=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7042514301218841&type=1&outlink=1|제목='연애시대' 손예진, 백상 TV부문 최우수여자연기상 |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7-04-25|확인날짜 =2017-09-09}}</ref> 2007년 손예진은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주인공 여우비의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성인 목소리 나올까봐 걱정했죠"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1910455|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홍성록|날짜 = 2006-12-22|확인날짜 =2017-09-09}}</ref>
         이 시기 손예진은 빠르게 스타덤에 오른 만큼 동시에 끊이지 않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313364&year=2008|제목=무릎팍도사` 출연한 손예진 "루머, 모두 오해에요|출판사=매일 경제|날짜=2008-05-15|확인날짜=2017-09-09}}{{깨진 링크|url=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313364&year=2008 }}</ref><ref>{{뉴스 인용|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80515/5493692.htm|제목=무릎팍도사’ 손예진, ‘루머해명, 대학시절 계획표 공개’|출판사=아이비 타임즈|날짜=2008-05-15}}{{깨진 링크|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80515/5493692.htm }}</ref> 하지만 손예진은 루머에 적극적인 대응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성실함과 연기력을 인정 받았고,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안정적인 관객동원력을 증명한 손예진은 20대 중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va.co.kr/uhtml/read.jsp?idxno=431533§ion=S1N99§ion2=S2N602|제목=손예진이 '충무로 최고 흥행퀸'인 이유?|출판사=아시아 경제|날짜=2008-11-03|확인날짜=2017-09-09}}{{깨진 링크|url=http://www.newsva.co.kr/uhtml/read.jsp?idxno=431533§ion=S1N99§ion2=S2N602 }}</ref>
         2008년, 손예진은 TV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드라마)|스포트라이트]]》로 2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8/05/201_24097.html "Spotlight Shows Lives of Reporters"]. ''The Korea Times''. 13 May 2008.</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as a Criminal Kingpin|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741|work=Korean Film Council|date=26 July 2007}}</ref> 같은 해 영화 《[[무방비도시 (2008년 영화)|무방비도시]]》에서 소매치기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리더 백장미 역을 연기했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섹시함 유지, 가장 힘들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0088606|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김경민 |날짜 = 2008-01-04 |확인날짜 =2017-09-16 }}</ref><ref>{{웹 인용|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02223903/http://twitchfilm.com/2006/09/alone-in-love-review.html|title=Alone in Love Review|성=|이름=|date=1 September 2006|work=Twitch Film|출판사=|확인날짜=2018-04-12}}</ref><ref>{{웹 인용|title=Actress Son Ye-jin's Movie Picks|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2317340286147|work=10Asia|date=23 December 2011}}</ref> 박현욱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기으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조건으로 달고 결혼한 후에도 다른 남자를 사랑하길 멈추지 않는 주인아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SON Ye-jin puts a new spin on marriage|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914|work=Korean Film Council|date=11 February 2008}}</ref> 그녀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제2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1210837541003|제목=눈물의 손예진 유일무이 3관왕 석권 기염, 청룡 여우주연상-인기스타상-베스트커플상 |출판사=뉴스엔|날짜=2008-11-21}}</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제목=손예진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출판사=한국일보|날짜=2008-12-11|확인날짜=2014-02-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24030924/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보존날짜=2008-12-24|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411169|제목=김윤석.손예진, 영화학도가 뽑은 최고 배우|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8-12-15}}</ref><ref>{{뉴스 인용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022720042800689&type=1&outlink=1|제목=손예진, '아내가 결혼했다'로 여우주연상 3연패 |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09-02-27}}</ref> 2009년, 동명의 소설을 기으로 한 영화 《[[백야행 (영화)|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욕망으로 가득찬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 유미호 역을 연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차기작 ‘백야행’서 고수와 멜로호흡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1996689|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남안우 |날짜 = 2008-12-15 |확인날짜 =2017-09-16 }}</ref><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9/11/141_53971.html "Son Ye-jin, Ko Soo to Bring Mystery Romance"]. ''The Korea Times''. 21 October 21 2009.</ref>
         2010년, 손예진은 이새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기으로 한 TV 드라마 《[[개인의 취향]]》로 1년 9개월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고, 개인 날 태어났다고 개인이란 이름을 얻은, 이름처럼 밝고 털털하고 유쾌한 캐릭터이자 무늬만 여자인 덜렁이 아가씨 박개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개인의 취향' 손예진 "나이에 맞는 역 하고싶었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023820|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김현록 |날짜 = 2010-03-25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듬 해, 2011년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 (드라마)|시크릿 가든]]》의 최종회에서 톱스타 역할으로 특별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시크릿가든' 카메오…'숨길 수 없는 폭풍 미모'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11619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강선애 기자|날짜 = 2011-01-17}}</ref> 같은 해 손예진은 호러 로맨스 코미디 영화 《[[오싹한 연애]]》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고, 기를 쓰고 쫓아다니는 귀신 때문에 연애는 커녕 가족과 친구로부터 버림받은 여자 강여리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오싹한 연애’로 컴백…그녀, 인생을 말하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245920|출판사 =서울신문 |저자 =임일영 |날짜 = 2011-11-29 |확인날짜 =2017-09-16 }}</ref> 영화는 300만 관객수를 기록해 자신이 출연한 모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흥행시키며 '로맨틱 코미디의 퀸'임을 입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역시 손예진, '오싹한 연애' 300만 개인 최고 흥행기록 달성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005946|출판사 =스포츠월드 |저자 =김용호 |날짜 = 2012-01-17 |확인날짜 =2017-09-16 }}</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94703987|제목=<오싹한 연애> 최근 6년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중 최고 성적 |출판사=맥스무비|날짜=2012-01-03|확인날짜 =2017-09-16}}</ref> 2012년에는 재난 영화 《[[타워 (영화)|타워]]》에 출연하였고, 영화는 518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ref>{{웹 인용|title=Queen of romance returns in disaster flick|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21217000947|work=The Korea Herald|date=17 December 2012}}</ref>
         2017년 5월, 손예진은 스릴러 영화 《[[협상 (영화)|협상]]》에 캐스팅 되었다. 영화는 서울지방 경찰청 위기협상팀의 유능한 협상가가 상사를 납치한 인질범과 대치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위기협상팀 경위 하채윤 역을 연기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스타와치]덕혜옹주→경찰, 제복 입은 손예진에 거는 기대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706231109536710|출판사 =뉴스엔 |저자 =배효주 |날짜 = 2017-06-23 |확인날짜 =2017-09-16 }}</ref>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동명의 영화]]를 기으로 한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년 영화)|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캐스팅 되었다. 영화는 1년 후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믿기 힘든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내가 기억을 잃은 채 남편과 아들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2018년 개봉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취중토크③] 손예진 "치열했던 20대 보다 30대가 더 좋아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2769 |출판사 =일간스포츠 |저자 =김연지 |날짜 =2017-06-16 |확인날짜 =2017-09-1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70917033455/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2769# |보존날짜 =2017-09-17 |깨진링크 =예 }}</ref>
  • 스틸오션/사령관 . . . . 7회 일치
          * 고폭탄 폭뢰(High-explosive DC) - 폭뢰 폭발 경 25% 증가.
          * 울프팩(Wolf Pack) - 액티브. 3CP 소모. 30초간 경 1km 내 아군 잠수함의 속도와 소나 범위를 강화. 강화되는 수치는 범위 내 아군 잠수함 수에 따라 정해짐. 1척에 3%. 이후 5척까지 0.5%씩 증가.
          * 고폭탄 폭뢰(High-explosive DC) - 폭뢰 폭발 경 25% 증가.
          영국 제독. 미들네임이 브라운(Browne)이라 ABC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 양이다.
          * 함대방어선(Fleet Defensive Line) - 액티브. 3CP 소모. 45초간 경 1.5km 아군(자신 포함)의 대공포와 기관총 데미지 15% 증가. 동시에 소나 빈도 0.5초 증가. 쿨타임 75초.
          * 고폭탄 폭뢰(High-explosive DC) - 폭뢰 폭발 경 25% 증가.
          * 고폭탄 폭뢰(High-explosive DC) - 폭뢰 폭발 경 25% 증가.
  • 식극의 소마/173화 . . . . 7회 일치
          * 소마팀의 멤버는 소마, 타도코로 메구미, 나키리 아리스, 쿠로키바 료, 요시노 유키. 대체로 역자 집단끼리 조를 짰는데 에리나만 센트럴 측에 배정된다.
          * 시험 주제는 연어. 아자미 총수의 특별수업에 나온 연어요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당연히 역자팀에겐 불리한데다 재료까지 형편없는 것이 주어진다.
          * 노골적으로 센트럴의 역자를 모아놓은 구성으로 다른 기숙사생도 비슷한 조 배정을 받았다.
          * 타도코로는 아리스까지 역자로 몰린 것에 놀란다.
          * 에리나만 센트럴 측의 학생들과 한 조인데 이는 역자들만 걸러내고 에리나는 진급시키기 위한 조치.
          * 하지만 역자팀에 주어진 연어는 산란을 마치고 품질이 떨어진 최하급품이다.[* 홋챠레. 산란후의 연어를 가리키는 말인데 식용으로 안 쓴다고 한다.]
          * 이곳만이 아니라 모든 역자팀에겐 불리한 조건의 재료가 주어졌다.
  • 식극의 소마/216화 . . . . 7회 일치
          * 게다가 그가 사용한 "비장의 재료"란 쿄쿠세이 기숙사 후배들이 만들던 특기 재료들. 발하는 후배들 앞에서 "훔쳐왔다"고 뻔뻔하게 밝힌다.
          * 그의 방식에 발하던 쥬리오지만 맛을 보고 나니 도저히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장어에 휘감기는 리액션과 함께 사죄를 밝힌다.
          * 이로써 1라운드 제 2 카드의 대결도 역자 측의 승리.
          * 그런 과거를 뒤로하고 멀쩡한 인물인 양 대중 앞에 나타난 잇시키. 그는 심사의원 앞에 자신의 요리를 내놓는다. 그의 장어요리 "히츠마부시 쿄쿠세이 기숙사풍미". 히츠마부시는 일본식 장어덮밥으로 찬과 함께 먹거나 육수나 차를 부워 오챠즈케 스타일로 즐길 수도 있다. 전형적인 일식이지만 그가 내놓은 한 그릇은 일식이라 부르기엔 대단히 이질적이다. 우선 플레이팅부터 양식 접시를 이용했고 쌀밥이 아니라 "치즈 리조또" 위에 장어구이를 올려놨다. 관중과 [[카와시마 우라라]]가 "어떻게 봐도 평범한 히츠마부시가 아니다!"고 경악한다. 게다가 쿄쿠세이풍이란건 또 뭔가? 별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코바야시 린도]]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자신없는 시험품에 손을 댔기 때문에 료코가 격분한 나머지 "그러지마라!"고 말로 따질 지경인데 잇시키는 그것도 매력적이라고 딴소리나 한다.
          * 이쯤에서 잇시키가 조리한 장본인으로서 재료 해설에 들어간다. 우선 마늘. 그건 이부사키가 만든 특제 훈연 마늘칩이다. 어패류의 맛을 돋궈주는 호두나무 장작으로 만든 마늘칩. 이걸 가볍게 으깨서 토핑으로 추가하면 아삭한 식감까지 추가한다. 이 마늘칩을 추가할 수 있었던건 장어를 "칸사이풍 장어구이"로 조리했기 때문이다. 관동에서는 장어를 쪄서 조리하기 때문에 부드럽지만 기름은 많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관서에선 찌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기름기가 있고 향이 강하게 완성되기 때문에 마늘칩 처럼 향이 강한 재료를 첨가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런 요소 이상으로 이부사키, 아오키, 사토의 정열과 땀이 베어 있어서 맛있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후배들은 잘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 때문에 발.
          * 기숙사의 위신을 지키고 승리도 거둔 잇시키.1라운드 제 2카드의 승리는 역자팀에게 돌아갔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후배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잇시키.
  • 식극의 소마/228화 . . . . 7회 일치
          * 2rd Bout결과는 역자팀의 전패. [[미마사카 스바루]]가 결과에 불복하자 [[사이토 소메이]]는 그가 칼집 넣기를 미처 트레이스 못한 점을 지적한다.
          * [[메기시마 토스케]]와 [[코바야시 린도]]는 박빙이었으나 결국 린도의 승리. 역자들은 십걸 상위 멤버의 실력을 새삼 실감한다.
          역자들은 껄끄러워하면서도 맞는 말이라고 수긍했다. 어쨌거나 1석 [[츠카사 에이시]]와 2석 [[코바야시 린도]]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얼마나 승리하든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에리나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말을 이었고, 소마에겐 꽤 인상적인 말이었다.
          * 2rd Bout종료. 그 결과는 3 대 0. 전패라는 충격적인 결말. 최종스코어는 물론 세부평에서 조차 단 한 점도 따내지 못한 완패였다. [[미마사카 스바루]]가 발하고 있었다. 어째서 완벽한 트레이스에 어레인지까지 가미한 자신이 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심사한 샤름은 담담한 어투로 패인은 "칼집 넣기"라고 단정했다. 더욱 모를 말이었다. 칼집이라면 미마사카도 철저하게 트레이스했다. 초밥에서 칼집은 먹는 순간 밥과 재료가 녹아 섞이는 것 같은 식감을 주며 참치의 맛을 입안 전체로 퍼뜨린다.
          * 그야말로 압도적. 역자들은 센트럴의 힘을, 십걸 상위 멤버의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rd Bout 이후 침체돼 있던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카와시마가 그만한 전력을 보내놓고 전멸 당했다며 꼴좋다고 조롱했으나 에리아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츠카사의 한 마디는 승전보로 뜨거워진 센트럴 측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쿠가와 승부가 예상보다 힘겨웠고 그만큼 "소모"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3rd Bout를 쉴 것이다. 린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린도는 한심한 소리나 한다고 갈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키노쿠니 네네]]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구급이 들것을 가져오고 있었다. 츠카사의 말이 맞았다. 린도도 메기시마의 라면은 정말 굉장했고 기진맥진해졌다고 인정했다. 츠카사는 아무 내색이 없는 사이토에겐 역시 터프하다고 감탄했지만 그도 허세는 부리지 않았다. 메기시마와 일전은 마치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 같았으며 자신도 예상이상으로 소모를 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제 센트럴 측에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을 시점이었다. 소마는 이제 에리나가 말했던 상황이라고 깨달았다.
          소마의 말에 타쿠미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동의했다. 역자팀의 3rd Bout 출전자는 이 셋으로 확정. 1학년 삼총사가 나간다. 잘 부탁한다고 외치는 소마. 이걸로 양측 모두 5명의 선수를 남긴 채, 연대식극 제 1일차가 종료됐다. 그런데 소마는 또다른 제안을 했다.
  • 식극의 소마/230화 . . . . 7회 일치
          * 월광호에서 연대식극 대비 특훈에 돌입하려던 [[유키히라 소마]] 일행은 뜻밖의 방문자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전 십걸출신 셰프 [[시노미야 코지로]]였다. 소마가 "시모니야 사부"라 부르며 가움을 표했다. 여전히 당사자는 아니라고 질색했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에게도 그를 소개했다. 꽤 흥미롭게 그를 살펴보는데. 면 시노미야는 같은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죠이치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 연대식극 2일차. 3rd Bout의 시작. 대결 제 3카드 메구미 vs [[아카네가쿠보 모모]]의 대결주제를 선정한다. 메구미가 추첨용지를 집었다. 결정된 주제는 "사과". 역자 팀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본래 사과라면 요리에도 많이 쓰는 만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초일류 파티셰 모모. 사과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특기 중의 특기 분야. 하다못해 채소였더라면 메구미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실망이 우세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특훈에 돌입한 것은 메구미조. 시노미야는 일단 뭔가 만들어서 현재 실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메구미는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상 조리를 시작하자 실수연발. 소금과 설탕을 헛갈리고 재료를 태워먹는 초보적인 실수를 복했다. 원래 풍부하지도 않은 시노미야의 인내심이 삽시간에 바닥났다.
          * 몇 시간 뒤. 결국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시노미야는 쯤 좌절했고 메구미는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행동을 무한히 복하느라 특훈은 진전이 없었다. 덤으로 타쿠미와 소마는 휴식시간마다 메구미조를 기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진전은 요원했다.
          이제와서 근성론. 지켜보던 타쿠미와 소마 모두 글러먹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구닥다리 일갈이 메구미의 내부에서 예상치 못한 화학응을 일으켰다.
  • 신성우(가수) . . . . 7회 일치
         AR을 틀든 ,MR을 틀든,무대에 오를 때는 언제나 자신의 밴드인 '내일뉴스' 를 뒤에 배경으로라도 두었다.[* 한참 가요프로그램에선 '신성우와 내일뉴스'로 소개된 적도 있다.] [* 실제로 1집은 기타리스트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의 공동작업이며 밴드 형태의 음이다. 형인 이근형의 프로듀스하에 동생인 이근상과 실제 밴드 로 데뷔 하려고 했으나, 제작중에 신성우의 솔로 앨범으로 변경 됐다는 얘기가 있다. 동생 이근상은 내일뉴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1집 앨범 뒷면에는 신성우, 그리고 드러머와 함께 사진도 실려있다. 1집부터 5집까지 이 형제는 편곡자로서, 기타리스트로서, 몇곡에서는 공동작곡가로 꾸준히 크레딧을 올리고 있다.] 다행히 LA메탈 풍의 <내일을 향해>의 인기가 워낙 오래 갔기에, 앨범의 활동도 오래 할 수 있었고, 1집 활동 막바지에는 발라드 <꿈 이라는건>도 소폭 히트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락 뮤지션의 이미지 때문에 신성우는 아이돌이 겉멋만 들어서 락커를 흉내내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성우 본인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굉장히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모양..
         이후 2집은 자기의 원류인 헤비메탈/하드록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복장도 헤비메탈 시대의 끝물인 LA메탈 시대 보컬리스트의 상징인 가죽점퍼/가죽바지/롱부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타이틀곡 <노을에 기댄 이유>는 마이너의 헤비한 록 발라드인데 그리 대중적인 곡은 아니었지만, 후부의 샤우팅에서 신성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1집에 비해 영 신통치 않았고, 급하게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밝고 부드러운 미드템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건>으로 주력노래를 바꾸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한다. 2집에는 특이한 곡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을 연상시키는 첫 곡 <요람에서 무덤까지>, [[데이빗 커버데일]] 의 솔로 시절을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브래스 사운드가 가미된 셔플리듬의 록넘버 <민아의 일기>등 앨범 발매년 1993년을 무색케 하는 세련된 넘버들로 가득하다.
         신성우 3집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과 발표 시기가 거의 같았는데, --같은 3집이라서 그런지-- 서태지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 록으로 발매되었다. 실제로 몇몇 방송에서 서로를 '같은 실험적인 장르로 돌아온 동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터너티브 록에 맞추어 춤을 춘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신성우는 제대로 록밴드의 형태를 갖추고 방송과 무대를 누빈다.
         당시 활동에서 특이한 점은 타이틀곡으로 두 곡을 밀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카세트 테이프 기준 A면 첫번째 곡인 <기쁨이 될것을>,다른 하나는 B면 첫 번째 곡인 <'''서시'''>. 업템포에 경쾌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면서도 실험적인 성격이 있어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익히 알려진 서정성으로 금새 많은 인기를 끌었고, 결국 그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 (역대 가요 중에 좋은 가사를 뽑는 순위에선 늘 상위에 랭크된다.) 그런데 묘하게 유명세를 잘 못타는 성격이 영 되었는지 노래를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고 아는 사람들도 제목이나 가수는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참고로 <서시>도 신성우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는데 [[감자탕]]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기타리스트 이근상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친 멜로디를 기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3집 또한 <서시>하나를 빼면 대중적인 앨범으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본인의 말마따나 정통 얼터너티브록 앨범이다.[* 록음악 팬이 아닌 TV에서 서시 나 내일을 향해 등의 팝 성향의 히트곡으로 그를 처음 접한 팬들이 앨범 구매후, 한 두곡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중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실험적인 넘버들에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대로 그를 흉내내기 록커로 착각했던 록매니아들은 그의 앨범을 접하고 나서는 그의 외모에 가려진 음악성을 안타까워 했다.] <초연>은 퍼즈톤이 두드러지는 질펀한 마이너 록이며, <천사여 울지 마세요>는 그런지가 구현할 수 있는 따뜻함과 온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건달의 허세>는 얼핏 코믹하지만 당시에도 존재했던 취업난을 풍자하여 작은 인기를 끌어서 2000년대로 넘어와 (신성우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플래시 영상물로도 만들어졌다.
         비록 키를 낮춰 부르긴 했었지만, 예전 초창기 2집시절 노을에 기댄이유의 라이브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굵직하고 어두운 톤에 무겁고 탁한 목소리를 가진 그가 3옥타브를 거뜬히 넘겨서 실제로 불러보면 굉장히 어려운 그 노래를 소화하는 모습은 상당히 절륜하다. 서시 라이브에서 삑사리가 난 이유는 아마도 신해철처럼 엄청나게 성대를 혹사시키며 락 스타일의 고음을 질러대다보니 성대가 무리하게 되어 목소리가 저음에 가까운 쪽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 가수의 노래들을 잘 살펴보면 음역대가 매우 비슷하다.[* 가요대전에서 신해철의 "라젠카 세이브 어스"라는 곡을 아주 깔끔하게 그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기도 했다.] 실제로 신성우의 앨범 초창기부터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음역대를 잘 듣고 살펴보면 가면 갈 수록 음역대가 낮아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여정남 . . . . 7회 일치
         * [[1964년]] [[6월 3일]] [[한일회담]] 대투쟁 주도 학생운동으로 3번 제적, 군입대.
         * [[1972년]] [[11월 10일]] 유신대 포고령 위으로 구속.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 [[국가보안법]] 위, [[내란죄|내란예비음모]], [[공법]] 위)
  • 영창대군 . . . . 7회 일치
         조령(鳥嶺) 길목에서 도적이 행상인을 죽이고 은자(銀子) 수백 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수괴인 서얼(庶孽) 박응서(朴應犀) 등이 체포되었다. 박응서는 자신들이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자금을 모아 무사들과 결탁하여 란을 하려 했다고 자백하였으며, 이 사건에 연흥부원군 김제남과 영창대군 이의가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크게 보자면 (1) 정항에 의한 아사설, (2) 정항에 의한 증살설, (3) 이정표에 의한 독살설이다. 상세를 보면 알지만 2번과 3번은 완전히 모순인데, 인조정 당시에는 어찌됐든 정항과 이정표가 모두 벌을 받아 파직을 당했다. 이후 이정표는 효종 때 손자 이후선이 파직되었다가 일단 무죄가 입증된다.
         실행자로 지목된 정항은 인조정 이후 관직을 빼았겼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독살설은 인조실록 8권에 나오는 영창대군의 비문 기사에서 나온다. 여기서는 실행자가 별장 이정표이다. 증살설과는 대로 오히려 불을 때지 않았다고 언급되어 있고, 음식에 잿물을 먹여서 죽였다고 되어 있다.
         [[인조정]]으로 인조가 복위한 지 이틀만인 3월 15일에 임해군(臨海君), 연흥 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 능창군(綾昌君) 이전(李佺)과 함께 복권되었고, 3월 17일에는 예장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조는 영창대군에게 시호를 내리라고 명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영창대군은 어린 나이에 죽어서 시호를 내리는 이치에 대하였다. 인조는 몇번이나 명령을 내렸지만 일이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까먹었는지(…) 영창대군의 시호에 대해서는 흐지부지 됐다. 여담으로 이 때 인조가 언문(한글)로 된 행장을 내려주며 시호를 논하라고 한 것도 예법이 아니라며 까였다.
         if 시나리오로, 만일 영창대군이 인조정이 성공할 때까지 살아 남았다고 해도 역시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창대군은 '선조의 적장자'이며, '왕실의 큰어른인 인목대비의 아들'이다. 이러한 영창대군의 지위는 고작 '선조의 서자 정원군의 손자 능양군'에 불과한 인조보다 훨씬 정통성이 강하다.
  • 예천군 . . . . 7회 일치
         지형에서는 대다수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도시들과 같이 [[소백산맥]]이 있어서 산악지형을 띄고 있지만, 이 곳은 상대적으로 평지가 많다. 인구로 보자면, 70년대 중에는 한 때 인구가 16만 명이 넘는 [[리즈시절]]도 있었지만 성장동력 부재와 [[농업]]종사 인구 감소로 인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 크게 감소했고 이후 90년대 중부터는 6만 명에서 4만 5천여 명으로 더디지만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상북도|경북도청]] 이전으로 안동, 예천 접경지역에 [[경상북도청신도시]]이 조성되어 큰 성장동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드디어 13년만에 인구 50,000명을 넘기게 되었다.
         회룡포, 삼강주막, [[용문사]], [[석송령]], 학가산 등이 있다. 석송령은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나이가 6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294호로 지정되었다. 나무의 나이나 웅장한 외형도 유명하지만, 일인들에겐 일명 '부자 나무'로 더 유명하다. 1930년대에 한 주민이 이 나무를 매우 아껴서 자신의 토지(약 6600제곱미터)를 이 나무에게 상속했다고. 일제 강점기 때는 사람이 아닌 사물에도 명의를 붙여서 상속하는게 가능했고 이것이 현대까지 계승되어 온 것이다. 이 토지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 경작해서 그 수익으로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을 내며, 나머지는 마을의 교육 장학금으로 사용한다.
         || [[형식]]/재선[* 93.6.11 재보궐선거][br][[민주자유당]] || [[신영국]]/재선 [br] 한나라당 ||
         이걸로 정부가 안동, 예천 통합을 제안했지만 예천에서는 예천읍 주민들을 중심으로 대하고 나서고 있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 다만 대구 - 경산과 같이 연담화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통합은 요원하지만 대신 도청신도시의 행정구역 이원화로 인한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 버스요금 단일화 및 광역환승, 택시영업구역 일원화 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통합을 한다고 해도 면적이 너무 커져서 문제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다소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이현준 군수 주도로 1981년 건립된 현 군청 청사 대신 신예천군청을 건립하고 이전하였다. 신부지는 예천읍 대심리 353번지, 구 엽연초생산조합 부지이다.[[http://www.ycg.kr/open.content/ko/administrative/news/headline/?id=986407f875b54364aa54a89bda326e86|#]] 2015년 말 착공, 2018년 2월 5일 준공되었다. 2015년 5월 설계 공모작을 선정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29/0200000000AKR20150529063100053.HTML|당선작 조감도]] 하지만 현 군청 청사가 위치한 노상리와 인근 노하리, 서본리, 동본리, 백전리 주민들은 '''군청 이전 후 해당 지역 경제 위축'''을, 그외 지역 주민들은 '''부채 증가, 도청 이전과 연계한 각종 사업의 선행 추진 등'''을 이유로 대하고 있다. [[http://www.kbsm.net/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306&idx=118103|#]] 한편, 현 군청 청사가 위치한 예천읍내는 배산인 흑응산과 임수인 한천 간 폭이 좁은터라 더이상 확장가능한 공간이 없어서 예전부터 쭉 이전의 필요성이 강하게 피력됐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이전하게 되면 으레 [[도심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구 군청 청사 인근 지역 경제가 위축되지 않게끔 정책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 [[형식]] : 전 민주자유당 국회의원(경북 예천)
  • 오세창 . . . . 7회 일치
         이후 [[대한협회]](大韓協會)의 부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 [[1909년]] [[대한협회]]가 창간한 일간지로서 일 논조를 분명히 한 《[[대한민보]]》 사장도 맡았다. 천도교 내부에서는 [[권동진]]과 함께 개화에는 찬성하되 일본과의 합병에 대하는 이른바 문명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합병 청원으로 개화할 것을 주장하는 [[일진회]] 계열과는 대립하여 결국 [[이용구]]를 몰아냈다.
         ==== 일제 강점기 초 ====
         ==== 일제 강점기 후 ====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최종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어 투옥하였다. [[1923년]]에 석방되었다.
         일제강점기 중 이후 자택에 칩거하며 서예, 서체, 서화가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 밖에도 조선 초기부터 근대에 걸친 서화가, 서예가, 문인학자들의 날인(捺印)된 낙관, 인장 혹은 관련 정보들을 모아 《근역인수 (槿域印藪)》를 편찬하였으며, 여러 서화가들의 다양한 낙관과 아호 연구의 자료가 되었다. 그는 [[1918년]]에 근대적 미술가 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가 결성될 때 13인의 발기인으로 참석하였으며, [[서화협회]]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생애 후 ===
  • 원피스/852화 . . . . 7회 일치
          * [[샬롯 스무디]]는 징베의 모을 보고 받으니 빅맘 [[샬롯 링링]]의 심기를 거스를 것을 우려해 루피 일행을 몰살하는 걸로 덮으려 한다.
          * 레이쥬는 상디에게 출생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데 그들의 어머니는 [[빈스모크 저지]]의 계획에 대했고 아이들이 감정없는 병기로 태어나길 원치 않았다.
          나미는 징베가 이 섬에 있는 까닭을 묻는데,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태양 해적단이 빅맘 산하에 들어갔으며 지금 자신의 행동은 "모"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성 내에는 죄수도서실의 파란이 전파되며 병력들이 몰려온다. 루피는 전투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데다 공복까지 겹쳐 시들시들한데 [[샬롯 푸딩]]이 상디를 속이고 있는 걸 전해줘야 한다며 억지로 일어나 죄수도서실을 박차고 나선다. 징베와 나미는 성내엔 강자가 쫙 깔렸다고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레이쥬는 상디는 그냥 밀집모자 일행과 도망치라고 말한다. 상디는 "발라티에" 의 제프는 어떻게 하냐고 박하는데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다 죽을 뿐이니 그건 도망치면서 생각하라고 대답한다.
          * 레이쥬는 문득 어떤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의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와 어머니 [[빈스모크 소라]]가 크게 싸웠던 기억.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아직 상디와 형제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출산을 앞두고 아이들을 무감정한 전쟁기계로 만들려는 저지의 계획에 발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분노였지만 복수와 제르마의 재건에 눈이 먼 저지에겐 들리지 않는 얘기였다. 결국 강화시술은 어머니의 대에도 실행됐다. 하지만 어머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신 것이다.
          보물전 앞에서 경비를 총괄하고 있는 [[샬롯 스무디]]는 이 또다른 난동을 접하고 골치 아파한다. 그녀는 징베의 모 사실을 은폐하기로 결정한다. 기분파인 빅맘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고 내일의 "계획"도 장담할 수 없다. 스무디는 보물전이 있는 4층을 철저히 봉쇄하고 3층 이하에서 루피 일행을 몰살하는 걸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 원피스/858화 . . . . 7회 일치
          * 누군가 정문에 나타나자 루피는 그가 벳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건 부하인 "괴총" 비트였다. 그는 상디와도 구면. 제르마의 팬인 만큼 상디를 "빈스모크 상디"라고 부르며 가워한다. 비트는 다른 일행도 이미 도착해 있다며 일행을 안내한다. 비트 뒤에서 쵸파도 나타나는데 목욕을 해서 뽀송뽀송해졌다. 태평하게 루피한테도 목욕을 하라고 해서 루피가 "시간도 없는데 뭔 짓이냐"고 한 마디 한다. 하지만 비트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파더(벳지)는 결벽증이 있는 건지 "지저분한 인간"과는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 시폰은 로라가 어째서 결혼상대를 찾아 바다로 나갔는지 경위를 설명해준다. 빅맘은 어떤 이유 때문에 전세계 거인족들과 적대하고 있었다. 지금도 토트랜드에 거인족은 없는건 그때의 일 때문이다. 콜렉터인 빅맘에겐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딱 한 번 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있었다. 엘바프 족의 왕자 "로키"가 로라를 보고 한 눈에 해서 청혼했기 때문이다. 이 결혼이 성사된다면 빅맘과 거인족 간의 원한은 단숨에 해소되는 데다 빅맘은 세계 최강국 엘바프의 강력한 군사력과 거인족 가족이 생긴다.
          빅맘의 분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폰까지 학대하기에 이른다. 만날 때마다 로라가 생각난다는 이유로 그녀를 때려서 벳지와 결혼하기 전까진 상처가 끊이지 않는 나날이었다. 시폰은 정말로 빅맘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지금은 그녀를 그저 괴물이라 여긴다. 물론 로라는 설마 빅맘이 이렇게까지 하리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미는 로라가 비브르 카드를 준 일이나 빅맘의 응 등이 모두 이해가 된다.
          그들이 아무리 발해봐야 빅맘 암살을 논하기 위한 "회의"는 시작된다.
          >그럼 앞으로 3시간 이다.
          그러나 웃음소리도 그대로라 전혀 의미없는 위장이다. 상디는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쵸파는 기껏 바꾼 이름이 "가스티노"여서 두 번 놀란다. 그런데 이런 성의없는 변장에도 루피는 한 번 속는다. 나미가 "시저가 맞다"고 지적해주고 나서야 다시 발끈한다. 루피 조차 속지 않자 시저도 위장은 때려치우고 루피일행 탓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고 원망한다. 그러면서 [[트라팔가 로]]에게 다음에 만나면 드시 죽인다고 전하라며 아우성을 친다.
          이렇게 되자 단숨에 난장판이 된다. 루피로서는 아무래도 친구인 페콤즈를 죽이려 한 벳지를 용서할 수 없다. 벳지의 부하들은 그를 공격하려는 루피에게 발해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기세다. 중재하던 징베는 그들에게 한 마디 던진다.
  • 원피스/859화 . . . . 7회 일치
          * 벳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암살계획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그건 [[시저 클라운]]의 포획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시저... 현재명 "가스티노"가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지 말라며 발한다. 행여나 빅맘 앞에서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며 암살만 잘 끝나면 심장을 돌려받을 것이고 그럼 제일 먼저 벳지를 죽이겠다고 아우성친다. [[샬롯 시폰]]은 "걱정하지 마 가스히코"라며 벳지는 약속을 지킬 거라고 박한다. 또 이름이 잘못 불리자 발하는 가스히코. 하지만 나미는 "쓰레기니까 아무래도 좋지 않냐"고 해서 쓰레기를 닥치게 한다.
          나미는 미끼나 다름 없는 일이라고 발한다. 그때까지 벳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던 시폰 조차 [[샬롯 로라]]의 은인인 이들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는 없다고 발한다.
          브륄레는 한패 인것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발하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빅맘에게 죽을 거라고 생각한 브륄레는 어떻게든 소식을 알리려고 한다.
          * 이것으로 작전회의는 종료. 각자의 위치에서 실행을 준비하기로 한다. 현재 시각은 다과회 개시로부터 2시간 전. 상디는 신랑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벳지 해적단도 호위 준비에 들어간다. 루피는 등장할 때를 위해 뭔가 부탁할게 있다고 하다가 벳지가 "재미에 집착하지 마라"고 일갈한다.
  • 원피스/875화 . . . . 7회 일치
          * [[브룩]]은 [[몽키 D. 루피]] 일행과 다른 루트로 써니 호에 접근 중이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함께 타고온 잠수정. 이번엔 [[쵸파]]가 페드로와 자리를 바꿨다. 이쪽도 루피 일행 못지 않게 힘겨운 여정이었다. 스위트 시티를 덮친 산사태, 아니 케이크 사태가 잠수정을 정박한 "쥬스 강"까지 파묻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크림 더미에서 잠수정을 파내고 보니 브룩과 쵸파도, 잠수정 내부도 끈적거리는 생크림 투성이. 심지어 키를 미끄럽게 만들어서 브룩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면 쵸파는 달콤한 생크림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대만족.
          * 루피는 "태양" 녀석이 다가오자 킹 밤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무장색을 두른 "JET 개틀링"으로 프로메테우스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언뜻 프로메테우스의 몸이 흩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주 잠깐. 아무 소용도 없었다. 루피는 당황해하며 패기 조차 통하지 않으면 "자연계"보다 성가신 적이 아니냐고 소리쳤다. 다행히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데리고 가는게 우선이어서 그런지 일행에게 격할 기미는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거듭 마마에게 돌아가자고 재촉하자 헤롱거리던 제우스도 조금 정신을 차렸다.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단, 마지막으로 맛있는 구름을 원껏 먹고 나서. 부모를 똑닮은 자식.
          * 해안의 맞은 편, 섬의 정대편에서 [[샬롯 푸딩]]과 [[샬롯 시폰]] 자매가 마법의 양탄자로 날아오고 있었다. 상공에서 유혹의 숲을 발견한 둘은 제우스가 날뛰는 모습을 보고 과연 루피 일행이 무사할지 장담하지 못했다. 푸딩이 시폰에게 자신이 억지를 부렸다고 사과했다. 시폰이 푸딩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시폰은 괜찮다며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건 오랜만이라고 대답했다. 남편 [[카포네 갱 벳지]]는 마지막까지 대했다. 하지만 시폰은 친자매인 로라를 져버릴 수 없었고, 그들의 은인도 져버릴 수 없었다. 벳지는 위험하고 걱정된다며 결사대했지만 결국 이긴건 그녀였다.
          시폰의 말에 벳지는 박하지 못했다. 여자의 의리. 그리고 사람의 의리. 의리를 지킨다는건 이런게 아니냐고 윙크를 보내는 아내를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아내의 결의는 진짜였고 갓난 아들조차 떼어놓고 갈 정도로 단호했다. 그녀는 아들을 부탁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푸딩과 함께 대편, 남서쪽 해안을 향해 날아갔다.
  • 유동근(배우) . . . . 7회 일치
         이외에도 세간에 '''아내가 미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바로 탤런트 [[김을동]]이다.[* 원래는 방송가 사람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었는데 여러 번 스포츠신문 연예란이나 예능 등에서 가볍게 언급되다 보니 어느 새 일 대중들도 이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연예인 중에서는 [[남희석]]이 '자신의 이상형은 전인화'라며 이를 이용한 드립을 방송에서 많이 치고 다녔다. 심지어 결혼 이후에도 한동안...] 대표작으로는 '[[여인천하]]'를 들 수 있으며('''나 거성의 안주인이야'''라는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여기서 [[문정왕후]] 역으로 출연했다.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조 500년'의 '인현왕후'에서 [[장희빈]] 역으로 출연했다.
         유동근은 1989년에 [[전인화]]와 결혼했는데 결혼 당시에는 "천하의 전인화가 왜 유동근이랑 결혼을?"이라는 응이 더 많았지만 이후 유동근의 연기 커리어가 매우 화려해지면서 이런 소리는 쑥 들어갔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역이 주력이지만, 재미있는 사람도 잘 연기한다.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개그 캐릭터 연기를 보고 있으면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이성계(정도전)]] 역할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드라마에서는 엄숙하거나 카리스마있는 역할을 자주 하는 편인데, 대로 영화에서는 주로 [[코미디]] 영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성공한 코믹 영화로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가문의 영광(영화)|첫번째 작품이 있다.]]
         대로 아내 전인화는 유동근이 장난으로 자신을 놀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정 내에서도 질서와 권위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주변인들을 집에 데리고 와 손님 접대를 시키는 건 '남자는 그런 허세 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며 잘 받아주는 편이라고. 평소 가사 분담은 거의 안 하는데 어느 날은 장난삼아 '라면 좀 끓여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끓여주었고 맛도 훌륭했으나 생색이 쩔어줬다고 한다.
         정황을 따져보면 '왕과 나' 촬영 당시 쪽대본 & 이런 저런 사유 때문에 그 날따라 몸도 아픈 상태이던 아내 전인화가 너무 힘들어서 눈물까지 흘리는 바람에 유동근씨가 화가 나서 따지러 간 거 같은데...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아내가 걱정되어서 항의하는 와중에도 CP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고. [[http://star.mt.co.kr/stview.php?no=2007122719592056123&type=3|당시 인터뷰]]. 자기 자신도 연기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항의한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완력을 사용한건 아무래도 잘못이 맞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이 터진 후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故 [[김재형]] PD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극 제작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그리고 이걸 보고 온라인 상에선 '''용의 주먹'''이라며 조롱하는 응도 있었다. 이 바람에 [[SBS]] 드라마는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가, [[SBS]]의 [[아테나:전쟁의 여신]]에 NTS국장 권용관 역으로 출연이 확정되면서 4년만에 SBS 드라마로 컴백하게 되었다.(여기서 유동근 외모가 스플린터 셀 컨빅션 샘 병장과 닮았다.)
         정도전이 종방한 후 정말 짧은 휴식기를 가지고 바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하였었다. 바로 전작에서 박력 넘치는 무골 이성계를 연기했던 것과 정 대로 여기서는 나이들어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자식 걱정에 마음을 쏟는 순박한 아버지 [[차순봉]] 역할로 나와서 정도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보면 엄청난 괴리감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유동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과 그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야말로 1년 내내 KBS 드라마의 주역으로 미칠듯한 활약을 했고 그 열연의 결과로 2014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 3번째 대상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이번 대상을 수상한 당시 나이 만 58세로 [[김혜자]]의 뒤를 잇는 최고령 연기대상 수상자로 남자 배우 중에선 두번째로 최고령 수상자.[* 2014년 수상 당시에는 남자배우 중 최고령 수상자였으나, 2017년에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열연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의 대상 수상으로 그 기록이 깨졌다.(수상 당시 만 64세.)]
         ||<|3> 2002년 ||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배우자인 [[김을동]]가 [[여인천하]]로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면서 부부가 같은 해에 동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 ||
  • 유미(가수) . . . . 7회 일치
         당시 뮤직비디오에는 [[정우성]], [[전지현]]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수의 CF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노래와 뮤직비디오의 인기에 해, 가수 유미의 방송 활동은 거의 없었다.[* 앨범 발매 후 뒤늦게 동일 앨범 수록곡인 '차라리'와 함께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엠넷, KM, MTV 등에 몇 차례 출연한 것이 전부다.]
         2012년 12월 10일 녹화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엄정화]] 편[* 무대의 방영은 2013년 1월 12일.] 2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당시 함께 출연한 [[손호영]]은 방송에서 "실력이 좋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배의 장미'를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출전으로 우승은 못 했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몰랐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하루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고 불후의 명곡 시청자 게시판이 폭주할 정도로 그녀의 재출연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2월 16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 [[김민종]] 편에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수 활동 영역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불후의 명곡 [[임재범]] 편, [[들국화(밴드)|들국화]] 편, [[설운도]] 편, [[장미화]]&임희숙 편, [[최진희]] 편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종 출연 중이다. 또한 '눈물나는 얘기(나인 OST)', 'Last One([[주군의 태양]] OST)' 그리고 2013년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싸구려 지'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음 목록 ==
          * 2008년 우리집에 왜왔니 OST (03.대말)
          * 2012년 [[허밍 어 스테레오]] - Give me your tonight (Give me your tonight (Feat.Youme))
          * 2013년 싸구려 지 (Digital Single)
  • 율리우스 네포스 . . . . 7회 일치
         네포스의 출신은 일치하지 않는 사료가 많아서 확실하지 않은데, 달마티아 지역의 로마 귀족 출신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의 삼촌은 달마티아 총독 마르케리누스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스트라테고스|서로마 제국의 군사장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부하로서 아에티우스가 발렌티아누스 3세에게 암살된 뒤 란을 일으켜, 달마티아 지방[* 이탈리아 대편에 있는 아드리아 해 해안 북부.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일대.]을 영지로 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마르케리누스의 통치는 여러 황제들에게 승인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네포스는 동로마 황제 레오 1세의 조카와 결혼하여, 동로마 제국의 권력 중심부에 들어가게 된다.
         네포스는 서로마 제국과 대립하던 여러 게르만 부족들과 화해 조치를 하고, 나름대로 제국 서부에서 기을 다지려고 애썻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은 동로마의 간섭을 싫어하여 네포스와 대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네포스는 훈 족의 아틸라를 모시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를 [[스트라테고스|제국의 군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크나큰 실책이었는데, 475년 8월 28일, 오레스테스가 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어린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옹립했으며, 네포스는 자신의 고향이자 삼촌의 영지였던 달마티아로 도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네포스를 쫓아냈던 오레스테스는 오도아케르의 란으로 살해당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역시 폐위당하고 만다. 476년, 오도아케르는 로마 원로원을 통하여 제논 황제에게 서로마 제국 제위를 환하고,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제논은 오도아케르의 요구를 대체로 받아들여, 그를 "이탈리아 장관(Dux)"으로 임명하여 이탈리아 통치권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네포스에게 배려를 하여, 서로마 황제에게도 충성을 바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오도아케르는 네포스와 제논에게 모두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일단 당대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다른 갈리아의 로마 장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참칭자'로 여겨졌으며, 네포스가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잃은 상태였음에도 네포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간주했다. 로물루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인정한 것은 로마 원로원, 아버지 오레스테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폐위한 오도아케르[* 오도아케르는 네포스가 있는데도, '서로마 황제 제위 납'을 행했으므로 일단 당시 시점에서는 로물루스의 제위를 합법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정도였다. 그리고 로물루스 폐위 이후로는 당대에는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오도아케르 조차도 일단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는 네포스라고 여겼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대 시점에서 단 1년도 재위하지 못했고 대립황제로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던 로물루스[* 심지어 이 소년은 폐위된 뒤에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보다는 동로마에 인정 받고 달마티아라는 영지를 보유한 네포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컷던 것은 분명하다.
  • 은혼/630화 . . . . 7회 일치
          자작 제독은 구속이 풀린 직후 자신을 따르던 병사들을 포섭한다. 자작 제독은 그들에게 란에 휘말리게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부하들은 자신들은 처음부터 자작 제독을 따르던 자들이니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그것보다 현재의 해방군이, 엔죠 제독이 큰 문제라고 하는데.
          >그리고 드시 살아서 지구에서 만나자고.
          엔죠가 팬던트를 닫는 순간 숨겨져 있던 화기가 불을 뿜는다. 사령실의 각 벽면마다 설치된 비상장치였다. 란을 도모했던 자들은 방아쇠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쓰러진다. 엔죠는 죽어버린 역자와 살아남은 방관자들, 그리고 화면 속의 겐가이 영감에게 말한다. 증오와 슬픔을 치유할 길도 없어진 자신들은 전쟁이란 불길로 그걸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증오도 슬픔도 전부 타서 재만 남을 때까지. 그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엔죠는 지구인들에게 주어진건 이대로 날이 밝기 전에 먼지가 되거나, 아니면 그 전에 나노 바이러스를 거두고 해방군을 맞이해서 도륙이 나거나. 두 가지 멸망 뿐이라고 말한다. 그때 그에게 새롭게 나타난 란자들이 보고된다. 이번엔 숨겨진 총으로 진압할 수 없는 규모다.
          * 다츠마와 [[무츠(은혼)|무츠]], 자작 제독이 선두가 되어서 란 부대를 이끈다. 다츠마는 아직 소요와 연결된 무전기를 가지고 있다. 그녀도 무전을 통해 자작 제독이 전한 비보를 들었다. 소요가 그게 무슨 의미냐고 거듭 묻자, 싸움을 준비하던 다츠마는 넉살 좋게도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대답한다.
          >염려마라. 에도는... 이 나라는 드시 이 몸이 지켜내겠다.
  • 은혼/639화 . . . . 7회 일치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플하고도 거대한 음모. 모든 걸 파멸시키려는 [[우츠로(은혼)|우츠로]]의 계획은 우주에서 싸우는 [[귀병대]]에도 전달된다. [[다케치 헨페이타]]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자 [[키지마 마타코]]가 귀를 의심한다. 그녀는 병력을 이끌고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해진 아르타나의 폭주. 마타코는 에도의 가부키쵸 연합군이 어떻게 됐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거기까지는 헨페이타도 알 수 없는 일. 그저 많은 별들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사태가 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배후가 우츠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카와카미 사이]]가 우츠로의 진짜 목적은 뭐냐고 물었다. 헨페이타가 알아낸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지상의 해방군 잔당을 일소하고 본대가 히노카구츠치로 보복하는 걸 유도하는 것. 거기에 지구의 전 아르타나를 모은 아르타나 캐논을 작렬, 막대한 힘을 충돌시켜 지구를 부수고 전우주에서 모인 해방군과, 잘하면 이 은하까지 부수는 걸 노리고 있다.
          * 마타코와 사이의 병력이 합류. 하지만 모퉁이 바로 뒤에 적의 대병력이 진치고 있다. 적의 화력과 무장 상태가 좋아 진격이 막힌 상태. 뚫자면 골치 아프게 생겼다. 마타코는 이 고생을 해가며 히노카구츠치를 막아도 거기서 끝나는게 아닌 거냐고 문했다. 사이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르타나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결국 지구는 끝. 하지만 이미 폭주 상태에 들어간 지구를 돌이킬 수 있을까? 적어도 한 사람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귀병대 대장 [[다카스기 신스케]]가 적들의 머리 위에서 천장을 뚫고 습격한다. 전방의 사이, 마타코의 병력에 집중하던 해방군 부대는 위에서부터 공격에 급속히 와해된다. 신스케는 어떤 방어진이든 돌파할 구멍이 있는 것처럼 지구가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애초에 지구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신스케의 기습으로 적의 화력이 분산되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마타코와 사이의 병력이 진격한다. 진형이 무너진 해방군은 앞뒤에서 몰려드는 귀병대 병력에 끼어서 압살 당한다. 신스케는 지상의 동료들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방해를 해왔던 녀석들이 쉽게 죽게 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다시금 시작된 귀병대의 진격. 신스케가 선두로 나선다. 끝없이 밀려드는 적을 끝없이 베어넘기는, 문자 그대로 지옥. 하지만 신스케는 지옥이야 말로 귀병대에게 어울리는 무대라고 단언한다. 사이는 참모인 헨페이타가 "희망"이란 불확실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고 빈정댄다. 하지만 마타코는 맨날 로리만 입에 달고 사는 변태 보단 방금 전 그게 훨씬 정상이라고 대꾸한다. "평소답지 않다". 그런 거라면 헨페이타가 문제가 아니다. 헨페이타는 사실 자기도 그들과 함께 진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답지 않은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 이미연 (배우) . . . . 7회 일치
         1995년에는 배우 [[김승우]]와 결혼했지만, 2000년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김승우-이미연 이혼 속사정은…|url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출판사 = 한국일보|날짜 = 2007-10-11|확인날짜 = 2013-10-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501104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보존날짜 = 2013-10-05|깨진링크 = 예}}</ref> 이미연은 1990년대 중후에는 영화 《[[넘버 3]]》, 《[[모텔 선인장]]》, 《[[여고괴담]]》,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영화에만 주로 출연하다 1999년 단만극 《[[TV영화 러브스토리]]》로 3년여만에 드라마에 컴백했고, 이후 2001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명성황후 (드라마)|명성황후]]》에서 젊은 명성황후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당시 소속사였던 [[김광수 (1961년)|김광수]] 대표의 프로젝트로 《이미연의 연가》라는 [[컴필레이션 음]]을 발매해 166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 PR비 파문 등 여파 가요계 ‘불황의 늪’…2002 한국 음시장 결산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31324 |출판사= 국민일보|날짜= 2002-12-24 }}</ref>
         2000년에는 영화 《[[물고기자리 (영화)|물고기자리]]》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02년 영화 《[[중독 (2002년 영화)|중독]]》으로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7년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로 6년여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했지만 흥행에 참패했고, 2010년 드라마 《[[거상 김만덕]]》 역시 좋은 응을 얻지 못했다. 그 후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인터뷰식으로 최근 모습의 성덕선을 연기함과 동시에 호평이 많았다.
         === 음 표지 ===
         * 《이미연의 연가》 (2001) ※ 컴필레이션 음 표지 모델
         * 《90 사랑 이야기》 (1990) ※ 토크송 음 표지 모델
  • 이소선 . . . . 7회 일치
         당국은 이재민에게 천막 하나를 주고 [[도봉동]] 개울가로 내몰았다. 이소선의 가족은 [[쌍문동]] 공동묘지 근처 208번지로 이사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2175815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5) - 판자촌에 다시 모인 가족], 경향신문, 2009년 4월 22일</ref> 이소선이 살던 쌍문동 집은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간혹 단속이 와서 헐고 갔기 때문에 시멘트 블럭만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들었다가 헐리면 다시 세웠다. 전태일은 단속이 집을 헐며 블럭을 부수면 다시 사야하기 때문에 단속이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미리 집을 헐어 두었다고 한다.<ref name="경향46">[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317454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6) - 쌍문동 208번지], 경향신문, 2009년 4월 23일</ref> 이 무렵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되었으며 동생 순옥이 만한 어린 소녀들이 퀴퀴한 다락방에서 쉴 새 없이 일하다 폐병을 앓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전태일은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자세히 말하곤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6185902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7) - 춥고 배고픈 어린 시다들], 경향신문, 2009년 4월 27일</ref>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친구들과 자신의 집에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여러 사람이 앉아야 해서 전태일은 단속 때문에 집을 헐었다 지을 때 마다 방을 조금씩 넓혀 지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 /> 쌍문동 판잣집은 1980년 재개발 때 철거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9184720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8)], 2009년 4월 29일</ref> 1969년 6월 남편 전상수는 지병으로 사망하였다.<ref name="연표">[http://www.chuntaeil.org/?r=home&c=1/12/18 이소선 어머니 걸어오신 길], 전태일재단</ref>
         국회의원이 된 딸 [[전순옥]]은 어머니를 10대에서 70대까지 누가 찾아와도 갑게 맞이하던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하면서 스스로도 민주화 운동 시절 경찰서에서 취조 받으며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늘 어머니라고 대답했다고 회고하였다.<ref name="연합_전순옥" /> 《가톨릭 신문》은 이소선의 삶을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삶에 비견하였으며<ref>[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어머니, 이소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년
         * 1980년 10월 포고령위 등으로 구속됨.
         * 1981년 2월 2일 계엄 포고령,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등으로 구속. 징역 10월을 받음.
  • 이재학 . . . . 7회 일치
         최근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자신의 변호사를 교체해 팬들은 "이러다 진짜 박현준 되는 거 아니냐?"는 응들을 보이고 있다.
         11월 7일 승부조작 수사 발표에서 이재학의 승부조작건은 무혐의로 발표가 났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바로 2011년 [[두산 베어스]] 시절에 불법스포츠 베팅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민체육진흥법에 규정된 도박 처별 규정이 신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 형법상 단순도박죄 혐의가 적용되었고, 이 법에 대한 공소시효 5년이 지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일단 불법 스포츠도박은 KBO 조항상 제명까지 가능한 상황. 정확히는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진야곱]]에게 160만원을 건네 대리 베팅을 한 것. 진야곱은 이미 베팅 사실을 시인한 상황이나 이재학은 단순히 돈을 빌려준 것 일뿐 도박에 쓰일 줄은 몰랐다며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두산 시절에는 정통 사이드암 투수로 140km/h 초중대의 빠른 공과 준수한 서클 [[체인지업]]으로 주목받았다.[* 보통의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투구폼으로 구속과 분당 공 회전수를 줄여 타자의 타이밍을 망가뜨리는 방식이나 이재학은 되려 회전수가 높은 변형 서클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좋은 컨트롤과 준수한 탈삼진 능력으로 즉시전력감으로 주목받았으나, 프로에 입단해서는 현격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23이닝 5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서클 체인지업을 이용한 삼진 능력은 당시에도 인정받았으나 지나친 코너웍을 의식하다가 사사구를 내주며 자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만 개선하면 롱릴리프 및 중간 계투로 일익을 담당하리라 기대되는 준수한 유망주였다. NC에 와서는 두산 시절에도 준수했던 서클 체인지업이 더 강력해졌으며, 이를 필두로 탈삼진 능력이 뛰어난 편. 통산 K/9가 8.2에 달하고, 2016년에는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규정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팀 내에서 삼진을 가장 많이 잡았다.
         허나 [[최일언]] 투수 코치는 다른 지적을 했는데, 투피치보단 몸의 중심 이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패스트볼]]의 구위도 저하되고 [[체인지업]]의 떨어지는 각도도 무뎌졌다는 게 부진의 원인이라 했다.[[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77&aid=0000083591&redirect=false|#]]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는데 ''''이재학은 직구 없으면 안되는 선수''''. 즉, 어정쩡하게 새로운 구종을 쓴답시고 밸런스 무너질 바에는 확실한 투피치가 더 낫다는 것. 이 인터뷰가 나온 2017 시즌 후기부터 이재학이 연일 호투를 하고 그동안의 부진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하던 [[엔갤]]에서도 이 인터뷰 하나로 투피치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일언|일언갑]]이 그렇다 하면 그런거다~~
         2018 시즌에는 확실한 투구폼 교정에 이어, 드디어 보여주기 식에 그쳤던 슬라이더를 서드 피치로써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폼의 안정화로 인해 BB/9가 예년보다 절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만큼 제구가 안정되기도 했고, 슬라이더의 구사율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 우타자 상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되면서 우타자 상대 약점을 극복한 모습.
          * [[물수제비]]를 10개까지 튀겨봤으며, [[포대교]] 시작점부터 해서 맨 끝에 걸어가던 사람 뒤통수를 맞혔다고 '''본인이 주장한다'''(...) ~~재학아 [[허갤]]하니~~[[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96&aid=0000455235|관련 기사]]
          * [[최정]]을 상대로 [[저승사자]]의 면모를 보인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정은 이재학을 상대로 한 전적이 '''32타수 5안타, 타율 0.156, OPS 0.385, 0홈런 2타점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삼진은 15개나 당했다!''' 이재학이 한때나마 [[슼나쌩 클럽]] 멤버였던 것도 최정의 공이 컸다. 대로 2018 시즌부터는 [[제이미 로맥]]에게 완벽히 농락당하고 있는데 시즌 상대 기록이 무려 13타수 11안타 1홈런 1볼넷 1삼진 2타점 '''타출장 .846/.857/1.231'''이며, OPS는 무려 '''{{{#RED 2.088}}}'''![* 통산 기록은 20타수 12안타 2홈런 타율 0.600.]
  • 이지은(2000) . . . . 7회 일치
         당시 송한희는 고등래퍼 티저의 참가자이자, SNS에서 이미 유명세가 있던 참가자로, 여성 최강자 기믹이 있었다. 그에 해 이지은은 철저히 신예에 언더독 이미지로 그려져, 대부분 송한희를 띄워주기위한 연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경연에서 송한희가 아쉽게 연속된 가사 실수를 하게되고 이지은은 훌륭하게 경연무대를 펼쳐, 멘토들의 찬사를 받아 194점으로 최종 5위로 다음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서울강동에 스타성이 있는 참가자들이 유독 많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빼어난 외모덕도 있겠지만... 찰진 리액션 때문이기도 하다.
         믹스나인 5회의 최고의 수혜자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그에 걸맞는 분량을 몰빵받았다. 5화는 순위발표식과 포지션 배틀의 준비와 경연의 절을 보여준 에피였다. 포지션 배틀은 댄스, 보컬, 랩 곡 하나를 선택해, 남녀간 배틀을 붙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랩퍼인 이지은은 랩을 선택했고, 노래는 [[치타(가수)|치타]]의 My number.
         남자 연습생에게 랩이 가장 인기가 있었지만[* 본헤이터 곡에 15명이 몰려, 즉흥 싸이퍼로 8명을 떨궜다고 함.] 대로, 여자 연습생에게는 랩이 가장 인기 없었던 듯하다..
         방송 상에서 공개된 허니조는 그나마 편집이 살려준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초 주목을 받았던 인형을 컨셉으로 한, 안무는 익스프레션 마리오네트의 어설픈 카피였고[* 그걸 의식해서인지, 본방에서는 편집으로 날려버린다. 물론 현재 춤이라는 영역에서 익스프레션에게 완벽하게 자유로운 팀은 없겠지만.] 그 컨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 채, 컨셉이 붕떠버리게 된다. 그에 더해 확실한 보컬이 없는 관계로, 후부 벌스에서는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 게다가 의상컨셉이 최악인 상황 도중 수란의 "지은이 랩하는데 의상이... 허.." 라고 탄식하는 장면이 뜬다. 이 와중에 이지은은 나름 노래에 맞게 랩[* 방청러들의 말에 따르면, 심사위원들에게 노래에 맞는 랩을 했다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근데 방송에는 통편집]을 하게 되었다. 최악의 평을 들은 공연에서 [[유키카]]의 엔딩과 함께 유이하게 살릴만한 퍼포먼스였던 것.
         이래저래 Dangerous girl의 무대에서 랩은 다양한 보이스로 풍성했지만 분량 상 랩 파트 모두 다 손해를 본 상황. 게다가 초 적응 문제까지 겹치며 해당 미션 8위를 하게된다.
         === 박 ===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7회 일치
          *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를 죽이기 직전 [[(일곱 개의 대죄)|]]을 떠올리고 공격을 멈춘다.
          >은 네가 내 동생인 걸 알고 일부러 도발해서 창을 맞은 거야.
          * 그것은 [[(일곱 개의 대죄)|]]의 모습. 자청해서 창에 맞으려는 듯한 로우의 모습을 보고 을 떠올렸다. 그리고 [[엘레인]]과 그의 관계, 그때문에 그가 할리퀸에게 속죄하려 했던 일들.
          할리퀸이 그런 대답을 한 이유는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들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정에 의해서 타락하고 악에 몸담았다. 그리고 . 비록 자신에겐 쓰레기같은 남자로 보이지만 여동생 [[엘레인]]에겐 소중한 존재이다. 그로키시니아와 같았던 부분은 바로 거기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7회 일치
          * 한 발 늦게 도착한 [[멜리오다스]]와 [[(일곱 개의 대죄)|]]. 마지막으로 [[에스카노르]]가 합류. 멀린의 제안으로 오늘을 기념하는 연회를 열기로 한다.
          *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나쟈 리오네스]]의 기억이 떠오르려 할 수록 부정하며 또다시 기억을 수정하려 했다. 때마침 나타난 [[디안느]]가 그것을 저지하고 "기억을 지우려 했다는건 뭔가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고서가 "단지 노이즈일 뿐"이라고 대꾸하지만 디안느는 "그거야 말로 네 마음일 수 있지 않냐"고 거듭 지적한다. 고서는 디안느의 방해를 뿌리치기 위해 공격하는데 디안느는 춤을 추며 간단하게 피한다. 고서는 그녀가 춤을 출 수록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 수치가 무려 15100에 달했기 때문. 그녀의 마력이 급격히 올라가는건 인근에서 수색 중이던 [[멜리오다스]]와 [[(일곱 개의 대죄)|]]도 감지할 수 있었고 곧 고성 쪽으로 향한다.
          눈물을 지운 고서는 포옹으로 가움을 표현하려 했지만 할리퀸이 제지했다.
          * 사건이 일단락된 후, 디안느는 그럼 "마법의 심장"은 뭐였던 거냐고 멀린에게 물었다. 그녀는 십계 고서가 자신을 인형이라 한탄하는 아들을 위해 준비한 부적 같은 거였을 거라고 답변한다. 그러는 동안 멜리오다스와 이 도착한다. 하지만 상황이 끝나서 그들의 차례는 없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서 [[에스카노르]]도 도착. 지쳐서 다죽어가는 판이다.
          멀린은 오늘은 일곱 개의 대죄에 있어 경사스러운 날이라며 연회를 제안한다. 은 얼렁뚱땅 멜리오다스가 쏘는 걸로 떠넘긴다.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7회 일치
          *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디안느]]가 격하고 [[에스카노르]]마저 정오에 가까워지며 힘을 되찾자 강해진 해골병이라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 일행 중 아직 고전하는 건 호크를 제외하면 [[(일곱 개의 대죄)|]] 뿐이었다. 그의 특기는 해골병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데다 하나하나의 힘도 강해져서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다 머릿수까지 불어나자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허용하고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그때 호크를 따라 도망치고 있어야 할 [[에스카노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심하군요 "폭스신" .
          오만한 목소리. 하지만 은 그의 뒤로 뛰쳐드는 해골병의 부대를 보았고 그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지금의 에스카노르에겐 필요없는 충고였다.
          * 격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 돼지의 모자 정은 아직 코란도로 향하는 다리 앞에 있었다. 안정을 취하고 있던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과 그 일행에게 일어난 일을 느꼈다. 디안느의 의식이 공포와 분노의 소용돌이에 잠식되었다. 이대로 두면 자신과 이 겪었던 일이 디안느와 오빠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일념으로 엘레인은 불편한 몸을 침대에서 끌어냈다. 동료들에게 가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으나 걷지도 못하는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위태롭게 기어다가 쓰러지는 그녀에게, 누군가 손길을 뻗었다.
  • 정광용 . . . . 7회 일치
          * 상위 문서: [[친박]], [[박사모]], [[박근혜 탄핵 대 집회]],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 [[정치깡패]], [[범죄자/목록/한국]]
         2017년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허나 얼마 안가 열린 [[19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를 밀지 않고, 대선 막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면서 새누리당 내부 분열을 자초했다. 직후 대파에선 정광용 회장의 [[공금]] [[횡령]] 의혹까지 제기하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으로 보인다. 일단 [[박사모]] 내에서는 이전의 정광용을 비난하던 여론을 누르고 [[변희재]], [[정미홍]] 등의 조원진 지지파가 배신자로 몰리며 상황이 역전된 모양새다.[* 정광용은 박사모를 10년 넘게 운영해 사실상 박사모 회원들의 실질적 교주 역할을 하고 있다. 변희재, 정미홍이 바깥세상에선 정광용에 비해 유명인사라 하더라도 박사모 내부에선 철저한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며, 정광용은 카페 매니저라는 시스템적으로도 자신의 생각과 책임회피를 늘어놓는데 있어 둘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사실상 박사모 내부에서의 여론전은 정광용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이후 [[조원진]] 지지파는 [[대한애국당]]을 만들고 분리되었다.
         탄핵대 집회 관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박사모 집회에서 계엄령 선포요구, 폭력집회 선동, 내란 선동, 경찰관 폭행, 기자, 시민 폭행 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불법행동을 많이 저질러졌다. 심지어 3월 10일 박근혜 파면이 결정된 날에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폭동이 격화되는 바람에 사망자가 3명이나 나왔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박근혜 탄핵 대 집회의 주동자 정광용은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지만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책임지지 않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7885974|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결국 2017년 5월 25일 같이 폭력 시위를 선동한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와 함께 구속되었고 2017년 12월 1일 1심 재판에서 손상대와 함께 실형 2년을 선고 받았으나 2018년 5월 31일,2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http://naver.me/GGVzj1Wi|#]]
         2017년 4월 10일 정광용은 40억원대 기부금법 위 및 사기‧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후 친박 단체간 내홍은 더욱 격화되어 5월 13일 대선이 끝난 직후 벌어진 첫 주말집회에선 정광용 찬성파vs대파 인원들간에 험한 욕설과 몸싸움이 빚어지는 꼴사나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991276|#]]
          놀랍게도 그는 과거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박사모 회장인데 왜 이런 책을 쓰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그동안 책을 몇 권 쓴 작가다. 박사모 회장이라는 직책과 작가라는 직업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박사모 회장으로서 이런 책을 편 것은 절대 아니다. 작가는 어떤 글이든 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는 진실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걸 아는 양이~~ 물론 기독교에서는 난리가 났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3&oid=003&aid=0003583796|#]]
  • 정승환(가수) . . . . 7회 일치
         다만 때로는 흉성에 기을 둔 파워에만 의존해 무리하게 고음을 올리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이건 [[박진영]]이 지적한 부분. 중간평가 도중에는 목에 힘을 주고 고음을 올리는 습관에 안 좋은 컨디션이 겹쳐져 음이탈과 음정 불안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는 어느 정도 고쳐진 상태. 고등학생 재학중 부른 '말리꽃'을 보면 '''2옥타브 라♯(A♯4)'''[* 키를 하나 내렸기 때문에 라♯이 맞다.]까지 음이 올라간다.
         감정표현 역시 많은 이들이 칭찬한다. 일적인 오디션 참가자들의 경우 노래를 완곡하는데 중점을 두고 다소 발성이나 기술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큰데 정승환의 경우 어느 정도 발성 기을 닦아놓은 상태에서 연습을 거듭해 노래에 섬세한 강약조절과 표현력까지 상대적으로 능숙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위에 서술한 발성적인 능력보다도 오히려 이 표현력과 감성이 정승환의 숨겨진 큰 무기. K팝 스타에서도 이런 섬세함이 다른 참가자들과 정승환을 구분짓는 크나큰 개성이자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본선 2라운드인 '랭킹오디션'에서 김조한의 '사랑에 빠지고 싶다'를 놀라운 가창력과 감정으로 열창했다. 심사평으로 유희열은 "가요로, 특히 남자 참가자가 심사위원 셋의 마음을 뺏어간 건 정승환이 처음이다. 바로 음을 내도 된다"고 극찬했다. 이어 "내가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발라드 남자 가수 특집을 하면 정승환을 가장 마지막에 넣어서 스페셜 무대를 꾸미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3주에 걸쳐 음원차트 1위를 했는데, 이는 오디션계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또한 '사랑에 빠지고 싶다' 네이버TV의 조회수도 680만을 돌파했는데 이는 2014년 전체동영상 조회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고 아직도 조회수는 올라가고 있으며 역대 조회수 순위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 유희열이 7집 <Da Capo>를 발표했었는데 '사랑에 빠지고 싶다'에 자신의 앨범이 음원차트에서 밀렸다. --그 사실에 박장대소하는 박진영--] 한편 작곡가 윤일상 역시 정승환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선물을 전하는 등 고마움을 표했다.
         4월 19일에 방송된 케이팝스타4 스페셜에서 그가 만들었었던 유일한 자작곡 '어린왕자' 가 공개되었는데 이곡은 소설 '어린왕자'를 읽고 영감이 떠올라 시를 쓰고 멜로디를 썼다고 한다. 곡의 주제는 평화를 바란다는 내용이였는데 응도 매우 좋아서 싱어송라이터로도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안테나 V앱에서 곡을 쓰고 있다고 본인이 언급했다. ~~애초에 유희열은 자작곡을 쓰지 않으면 데뷔를 안 시켜주는 듯하다~~
         201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복면가왕]] 91회에 '지방방위대 디저트맨'이라는 닉네임으로 첫 [[MBC]] 출연을 했다. 이후 1라운드를 이긴 다음 2017년 1월 1일 새해의 첫 복면가왕 92회에 나와서 2라운드에 '이별택시'를 불러서 [[하얀시 눈이군 쌓이면 우리마을]]을 꺾고 올라갔으며 3라운드에 '가질수 없는 너'를 부른 뒤 [[신비주의 아기천사]]에게 밀리면서 준우승했다. 정체를 밝힌 뒤에 [[안테나 뮤직|자신의 소속사]] [[유희열|사장]]에게 이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고 신분을 가리고 도전해 음악을 즐기면서 노래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날 판정단인 [[김현철(가수)|김현철]]은 20대 초의 나이라서 실력에 비해 원곡 해석에 소홀해지기 쉽지만 절제미가 돋보여 가수로서의 최대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극찬을 했다.
         == 음 ==
  • 정웅인 . . . . 7회 일치
         정웅인은 1971년 1월 20일에 [[대구광역시]] [[달서구|경상북도 달서구]]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재학 시절 우연히 연극에 들어가 연기를 접한<ref>{{뉴스 인용
         |제목= 인기절정의 순간 떠나는 '세친구'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42263 |출판사=국민일보|날짜= 2001-02-07 }}</ref> 이후 영화 《칙왕》(2000년), 《두사부일체》(2001년), 《돈 텔 파파》(2004년), 《투사부일체》, 《마법사들》(2006년), 《유감스러운 도시》(2009년) 등과 드라마 《홍국영》(2001년), 《발칙한 여자들》(2005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선덕여왕》(2009년), 《커피하우스》(2010년), 《오작교 형제들》(2011년) 등에 사극과 여러 장르의 현대극을 넘나들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align="center"| 《[[칙왕]]》
         |align="center"| 《[[북경점 (영화)|북경점]]》
         * 2002년 [[KBS2]] 《해피투게더 - 쟁노래방》
         === 음 ===
  • 정종원 . . . . 7회 일치
         대구로 내려온 그에게 [[조병옥]] 경무부장이 경북경찰국장 자리를 권유했으나 부인의 완강한 대로 공무원 복직을 단념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6</ref>
         민 씨 가문은 1957년 하기부터 1958년 상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가게 됐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 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식]]을 배출한 바 있다.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
         1950년대 중 [[정재학]] 가문과 [[민영휘]] 가문의 [[조흥은행]] 최대주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급부상한다. 이병철은 장내 외에서 조흥은행 주식을 대량 매수하여 무려 50%를 확보한다. 그뿐 아니라 한일은행 80%, 상업은행 30% 등 주요 시중은행 주식까지 대거 차지했다. 금융계를 독점하려는 재벌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ref>경향신문 1982년 7월 27일 5면 삼성총수 이병철</ref> 기타 은행 지분까지 사들이며 이병철은 전체 시중은행의 주식 50%를 확보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종원 행장은 행장 자리를 유지했다.
         이병철은 당시 대구에서 서울 장충동1가 110번지 <ref>매일경제 1974년 9월 11일 7면 고액재산세 부과대상자</ref> 로 거처를 옮겼다. 정종원 자택 인근이었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22일 9면 경제인록 22 재벌전횡 부른 귀속주 공매</ref><ref>매일경제 1987년 11월 20일 11면 이병철 그의 생애와 경영세기</ref> 이웃이 된 이후 정종원과 이병철의 부인들은 친분이 두터워졌고 그로 인해 자손들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정종원의 막내사위인 [[장유상]] KDI정책대학원 교수 (전 보스턴대 교수)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삼성의 미국 진출에 기여했다.<ref>매일경제 2011년 1월 16일</ref>
         정종원은 공교롭게도 1961년 5.16군사혁명 발발 보름 전 4년 동안 이어온 행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후 검찰이 추진한 3.15부정선거자금에 대한 특검에서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공소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종결됐다.<ref>경향신문 1961년 3월 5일 3면 특검천하 42일 (3)</ref> 그러나 [[군사혁명]] 발발 직후 [[이병철]]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시중 은행 주식을 모두 강제 환수당했다. 이병철은 [[조흥은행]] 70%, [[한일은행]] 60%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ref>경향신문 1961년 10월 15일 1면 대주주소유 오개은에 환수통고</ref>
         '법시' 창간 이후 1968년 11월 '법륜'이 선을 보였고, 1974년 '불광'이 창간된데 이어 1979년에는 '여성불교'가 탄생했다. 불교 잡지는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불교계의 미디어는 신문 쪽으로 이동한다. 다양한 불교신문들이 등장하면서 불교잡지들이 설 땅이 좁아지며 1990년대 초 대부분 정간됐다.<ref>불교전문지 월간 '해인', 1992년 12월 130호 '불교잡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ref><ref>[월간 선원 지령 200호] 1980~90년대와 2000년대 불교잡지 비교</ref>
  • 조안(배우) . . . . 7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중학생 시절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고 만화를 그려 주며 만화가의 꿈을 키워 오다가, 고3 때 방송국에 놀러갔다 우연히 방송 작가의 눈에 띄어 KBS 2TV <드라마시티 - 첫사랑>에 출연하게 되면서 배우가 되었다.
         이후 아래와 같은 다수의 영화, 드라마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연기생활 2015년 기준으로 15년이 되었지만 딱히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아직 없다. 굳이 따지자면 작품 내외적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은 [[특수사건전담 TEN]] 정도.
         || [[OCN]] || 특수사건전담 TEN2 || 남예리 || ||
         ||<|2> [[2011년]] || [[OCN]] || [[특수사건전담 TEN]] || 남예리 || ||
         배우 [[박용우]], [[오만석]]과의 스캔들로 더 유명한 여배우이다. 예전에 11살 연상인 연기자 박용우와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박용우의 친구이자 연극배우인 오만석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귀게 되었다. 초엔 열애설 이후 부인하더니 [[http://v.media.daum.net/v/20100717010704467|동 일본여행]]이 들키자 결국 [[http://v.media.daum.net/v/20100717192305019|인정했다]]. 누가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 아직 박용우와 조안이 연인 사이였을 때 박용우가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여자친구와 드라마에 출연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으로 절친한 친구였던 오만석을 뽑은 적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런데 오만석과도 결국 헤어졌다.[[http://v.media.daum.net/v/20120103110514616|기사]] --[[김건모]]가 부릅니다. [[잘못된 만남]]--
          * [[http://v.media.daum.net/v/20161010090131697|최근 결혼 기사가 떴다.]] 2016년 10월 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3살 연상 일인과 결혼한다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댓글들..--
  • 진격의 거인/86화 . . . . 7회 일치
          * 어른이 된 그리샤에게 체제 조직 "엘디아 복권파"가 접촉해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고 그를 동지로 영입한다.
          * 이들은 그리샤가 의사이며 마레 정부에 원한이 있는 것에 주목해서 체제 조직 "엘디아 복권파"에 그를 가담시키려 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리샤 예거가 멋대로 추정한 역사. 올빼미라는 정부 측 인물이 빼돌린 자료를 기으로 구성한 것인데, 정작 그리샤 본인도 고대어는 전혀 할 줄 몰랐고 몇 가지 삽화와 자신들의 망상을 기으로 꾸며낸 것이다. 일단 다이나 프리츠가 가져온 자료와 대조해 볼대 대체로 맞았던 걸로 보이는데, 사실 다이나 프리츠의 정체에 대해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며 자료와 다이나 모두 올빼미가 보냈다는 점에서 사전에 조작된 정보를 주었을 가능성도 높다.
         무엇보다 1700년의 역사 동안 거인화 능력을 가진 가문들끼리 대립하고 그걸 왕이 중재하는 걸 복해온 걸로 나오는데, 이렇게 전쟁을 일삼는 모습이 문명과 부를 가져다 주었다는 해석과는 전적으로 대된다.
         올빼미가 제공한 정보 상에선 벽 안의 거인들이 대략 천만 정도나 있고, 프리츠 왕가는 마레가 그들을 건드리면 이 거인들을 깨워 격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벽의 규모를 생각하면 과연 천만이나 되는 거인이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 진격의 거인/87화 . . . . 7회 일치
          * 당국에 잡혀간 그리샤에겐 혹독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안당국은 그에게 올빼미의 정체를 캐지만 그는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걸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당국의 고문기술자들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끈질기게 심문을 복한다. 이미 그리샤의 남은 손가락은 세 개 뿐이다. 그리샤가 아는건 전부 말했다고 애원하는데도 관리들은 또 하나 손가락을 자른다.
          * 엘디아 복권파는 눈이 가려진 채 배로 옮겨진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땐 낙원, 파라디 섬 해안가의 거대한 벽 위였다. 약 30미터에 달하는 벽이 항구와 섬을 분단하고 있다. 복권파들은 이 벽 위에 꿇어 안아있다. 클루거는 그리샤의 안대를 벗겨주면서 이곳이 "엘디아인 역자의 귀양지"인 파라디섬, 그 경계선 위라고 알려준다. 이제부터 역자들은 종신형에 처해지는데 지성도 없고 수명도 없는 거인이 된 채로 이 섬을 헤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떠돌며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으로 살아야 하지만 정작 거인은 죽을 일이 거의 없다. 결국 영원히 지옥에서 해방될 수 없다.
          * 역자들 뒤에는 한 사람씩 관리들이 붙어 있었는데 글로스가 지시하자 일제히 주사제를 투약한다. 엘디아 복권파의 동료들은 주사를 맞고 벽 아래로 떨어진다. 그라이스가 그랬듯 언덕을 타고 굴러떨어지던 동료들은...
          *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는 엘런 예거. 여기는 징벌방이다. 엘런은 창살 안에 있고 옆방엔 미카사 아커만이 자고 있었다. 아르민 알레르토는 그 앞의 의자에서 함께 밤을 지내고 있었는데 엘런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모두가 깨어난다. 엘런은 꿈 때문인지 기억이 혼선된 상태인데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아르민은 여기가 징벌방이고 미카사랑 같이 병기위으로 벌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엘런은 천천히 기억을 되찾아가는데 아르민은 방금 전 "나는 왜"라고 중얼거린걸 지적하며 일인칭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기억이 애매하다.
          * 아버지의 기억. 다이나가 변한 직후 글로스는 그리샤를 조롱한다. 다이나의 거인이 보통 거인들처럼 그라이스를 쫓아가 버리자 "사실은 저 남자에게 마음이 있었다"고 빈정거린다. 분노한 그리샤는 닥치라고 욕하며 15년 전 여동생을 죽인게 바로 너라고 폭로한다. 하지만 글로스는 혀를 찰 뿐 동요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마지막 죄수를 인계 받아 자신이 처리할 테니 부하들은 배로 돌아가라 지시한다. 부하들은 관련되는걸 꺼리며 그 지시에 따른다. 이미 글로스의 "취미생활"은 유명한 듯한데 지금도 글로스가 "취미생활"을 할 생각이라고 여긴다. 부하들도 그리샤의 폭로를 들었는데 "아무리 엘디아인이라도 어린 소녀까지 손을 대다니"라고 진저리를 치지만 특별히 다른 응은 없다.
          글로스는 그렇게 강조한다. 그는 마음이 아플리 없지 않나며, 마치 인간처럼 말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살인자는 오히려 복권파 쪽. 그들이 마레인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냐고 문한다. 엘디아제국과 같은 짓을 되풀이하려고. 그건 마음이 아프지 않았냐고 묻는다.
  • 최두선 . . . . 7회 일치
         광복후 교육계를 떠나 경성방직주식회사 사장, [[1947년]] [[동아일보]]사 사장에 선임되었다. [[동아일보]]사 사장 재직 중 유엔총회에 한국대표의 한 사람으로 파견되었다. [[1946년]]에는 [[김구]], [[김성수 (1891년)|김성수]], [[조소앙]] 등의 신탁통치 대 운동, 미소 공위 대운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그 뒤 형 [[최남선]] 등이 일제 강점기 후 친일행위를 했다고 비판, 매도되었으나 다행히도 그는 형 [[최남선]]에게 연좌되지는 않았다. 또한 그에 대한 부당한 비판을 우려한 [[김성수 (1891년)|김성수]],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등이 그를 각별히 신경쓰고 배려하였다.
         [[1947년]] [[1월 26일]] [[경교장]]에서 열린 탁독립투쟁회 결성에 참여하고 탁투쟁회 지도위원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었다.
         본래는 1963년 출범한 박정희 정권에 부정적이었으나 박정희의 포용정책으로 국무총리에 지명되어 박정희 정권의 첫 국무총리를 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2938731& <박前대통령 서거 30주기> ③이만섭 前의장 인터뷰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이후 민정이양 후의 민심의 수습에 노력하다가 야당의 대일 굴욕외교 대 등으로 6개월만에 사퇴했다. 그러나 야당 대열에 동참하기를 거부하고 교육, 집필, 강연활동에 전념하였다.
         |전임자 = [[김현철 (1901년)|김현철]]<br />(내각 수)
  • 최문식 . . . . 7회 일치
         [[4월 24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경기서 대전 서포터즈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등의 항의를 표했지만 대전이 승리를 거두며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으며, 이후 연패에 대한 후유증을 털어내고, 연승으로 팀 분위기를 전시켰으며, [[9월 19일]] [[부천 FC 1995]]와의 홈경기서 무승부를 거두면서 한시즌동안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 구단의 한시즌 최다 홈무패 기록을 갱신하였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62578/ 대전, ‘선두 눈 앞’ 부천에 0-0 무… 홈 12경기 무패] </ref>
         최문식은 대전 시티즌의 감독 당시 현실과 이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대전 감독을 역임하면서 대전 구단의 사정을 전혀 모르채 현실을 외면하였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가난한 시민 구단인 대전의 현실을 외면하고 2014년의 우승 및 승격 주역들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을 내보내고 영입하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복하며 팀의 조직력을 약화시키였으며, 특히 그는 대전은 당시 강등 위기에 몰려있었던 터라 당장의 성적과 승리에 신경써야하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위권에 있는 팀이 경기력에 신경쓰는 듯한 행보를 선보였으며 지금 당장의 경기의 승리를 위해 수비 위주의 역습 위주의 경기보다는 당장의 성적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자신 특유의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축구철학만을 고집하며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펼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만을 채우려 했었다.
         최문식은 선수들, 팬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상당히 부족했다. 2016시즌 중에는 [[서동현 (축구 선수)|서동현]]이 최문식과의 불화로 년만에 팀을 떠나기도 하였었고, 선수들은 최문식의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 2016시즌 중 이후 간담회에서의 팬의 요구에 따라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 종료 후 서포터즈석을 앞을 찾아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팬들과의 퍼포먼스에 같이 참여하는 등 팬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였다.
         ==== 취약한 지지기 ====
         최문식은 앞선 소통 부재나 책임 회피 등의 문제들 탓에 팬들이나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으며, 팬들과 선수들로부터의 지지기이 상당히 취약했었고, 팬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지 못하였었다. 그로 인해 재임 기간 내내 많은 팬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 최재만 . . . . 7회 일치
         |소속사=[[플럭서스뮤직]]|관련활동=[[어자카파]], [[The Nucleus]]
         최재만(崔載晩, [[1988년]] [[5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2009년]] 7월 2일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 [[어 자카파]]의 EP 앨범 '커피를 마시고'로 데뷔하여 [[2010년]] 3월까지 [[어 자카파]]의 멤버로 활동하였고, [[2014년]]과 [[2015년]]에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 [[The Nucleus]]에서 활동하였다. [[2017년]] 4월 25일에 솔로로 데뷔하였다.
         == 음 목록 ==
         * '''[[어 자카파]]: 커피를 마시고 (EP)''' <2009.07.02 발매> (공동 디렉팅 및 프로듀싱)
         * '''[[어 자카파]]: Sweety You (EP)''' <2009.12.10 발매> (공동 디렉팅 및 프로듀싱)
         * '''[[어 자카파]]: 01 (1집)''' <2011.05.17 발매> (공동 프로듀싱)
  • 최창홍 . . . . 7회 일치
         [[1937년]] [[2월 20일]] [[평안북도]] 경찰부 보안과 경시로 임명된 뒤부터 군용 자동차 징발 및 운전수 징집, 지하자원 개발 및 공출, 시국 범죄 위 단속 및 검거, 국내 물자 조사에 관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1938년]] [[3월]] [[평안북도]] 방공위원회 간사를 역임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5년]] [[5월 11일]] [[충청북도]] 참여관 겸 광공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45년 8월 광복 때까지 고등관 3등과 정6위에 서위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 도 참여관 부문,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8|연도=2009
         [[분류:1903년 태어남]][[분류:1951년 죽음]][[분류:대한제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츠츠모타세 . . . . 7회 일치
         그러나 전은 예정되로 되었으나, 쵸하치가 집을 뛰쳐나와서 안심하고 술을 마시고 잠들어 있는 동안, 타케하치는 자신과 함께 살면 [[기모노]]도 사주고 이것도 사주고 저것도 사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 말을 듣고 가난한 데다가 자신을 사기에 끌어들이는 쵸하치에게 질려버린 오코마는 저런 남편과 살면 평생 고생을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겨, 타케하치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별 편지를 쓰고 떠나버린다.
         [[원조교제]], [[아저씨 사냥]]과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미성년자 여성을 18세 이상으로 속여서 만남을 가지게 하는 등 츠츠모타세에 이용하고, 피해자에게 "원조교제로 [[경찰]]에 신고한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게 하고, [[부인]]에게 알려 [[가정]]을 파괴하고,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준다." 등의 [[협박]]을 가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다. 피해자 본인이 법률을 위한 범죄자이기 때문에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여성은 경계심이 강하므로, 일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과 만나거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만나서 성관계를 맺고자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전하는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빨리 만나서 돈을 뜯어내려는 속셈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데, 돈을 내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성도 아닌 이상 일적으로 여성은 돈을 받는 쪽이며,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적지 않으므로 외모가 그리 좋지 않은 여자도 돈을 쓰면서 까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려 할 가능성은 낮다.
          일적으로 여성은 경계심이 강하고 방범 의식이 높기 때문에, 처음 보는 대다가 친하지 않은 남자를 집에 불러들이지 않는다. "호텔비가 아깝다."같은 말을 하면서 집에 불러들일 경우, 그 집에서는 남편이나 남친을 자칭하는 남성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성병]]이나 [[임신]]의 위험을 생각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과 피임 없이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임 없는 성행위를 복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는, [[임신]]과 [[낙태]]를 명분으로 위자료를 청구해오는 유형일 가능성이 있다.
          * 코토크 : https://kotobank.jp/word/%E7%BE%8E%E4%BA%BA%E5%B1%80-571996
  • 카쿠스 . . . . 7회 일치
         카쿠스가 죽고 에드로스의 지휘 아래 살던 시골 사람들이 헤라클레스를 기리며 8월 12일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축제를 만들었다. 이 축제는 여자는 누구도 희생제의 고기를 나눠 가질 수 없었고, 다른 신들이 환기될 수 없으며, 개들은 경내에서 추방되어야 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다른 신들이 환기되지 않는 이유는 헤라클레스가 신이기 때문이며, 개가 들어올 수 없는 이유는 케르베로스가 시련을 주었기 때문이고, 여자들이 제외되는 이유는 [[카르멘타]]가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2세기의 다른 판본에서는, 소떼들은 레카라누스(Recaranus)나 가라누스(Garanus)라는 그리스 양치기의 것인데, 그는 몸집과 힘이 대단해서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소떼를 에드로스의 노예 카쿠스가 훔쳐갔는데, 에드로스가 소를 발견하고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카쿠스도 처벌을 위하여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우화로 보인다. 레카라누스나 가라누스는 게리온의 변형으로 보인다. 에드로스는 '선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나이우스 겔리우스에 따르면, 카쿠스는 에트루리아 인 정복자로 나온다. 티베르 강 근처에 거주했으며, 마르시아스 왕이 프리기아 인 메갈레스와 함께 에트루리아의 [[타르콘]](Tarchon) 왕에게 사절로 보냈다. 타르콘 왕은 그를 감옥에 넣었으나, 카쿠스는 도망쳐서 고국으로 돌아왔고 에트루리아를 공격하여 불투르누스와 캄파니아 지역을 지배했다. 카쿠스는 에트루리아 인이 아르카디아 인(에드로스 등)에게 양도한 지역도 장악하려 했는데 우연히 그곳에 있던 헤라클레스를 만나 죽게 된다. 메갈레스는 사비니 인에게 점성술을 가르쳤다.
  • 킹덤/520화 . . . . 7회 일치
          * 기수는 진격 중 낙화대의 병력이 절으로 줄었단 첩보를 받고 주춤하는데 때마침 군의 우측에서 몽념이 이끄는 기마대의 습격을 받는다.
          * 기수가 움직인다. 그 소식은 곧 낙화대에도 도달했다. 장교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몽념은 "어쩔 수 없다"고 담백하게 응한 뒤 출진을 결정한다. 압도적인 물량차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덤덤한 응이다.
          * 기수가 이끄는 조군 우익은 진격이 딸라서 어느덧 예정의 절 이상을 왔다. 그런데 진군은 초기 배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된다. 장교들 사이에선 왕전이 멍청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 기세라면 좌익은 고사하고 본진까지 순식간에 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수는 신중하게 판단했다. 우선은 현재 위치에서 군을 멈추고 한동안 상태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주]]의 기마대 1천을 내보내 정찰을 맡긴다.
          * 이때 새로운 첩보가 도착했다. 당연히 적이 움직였다는 보고일 줄 알았으나 엉뚱하게도 낙화대의 절이 모습을 감췄다는 내용이다. 수상하다. 마정의 말처럼 이제 사라진 절이 어디로 갔느냐가 중요해졌다.
          사라진 절의 행방은 금새 드러났다. 군의 우측에서 한 무리의 기마대가 들이친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7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다이묘를 제외한 장군들은 충성심이라는 수치가 있다. 충성심이 낮은 장군의 경우 상대 가문에 붙거나 란을 일으켜 독자적으로 세력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 기병 지휘관(Cavalry Commander) - "영광으로 충분하지 않다. 영광의 뒤엔 드시 강인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 자신의 성에 배치시 시야를 늘리고 란 확률을 줄임
          * 다른 가문의 성에 침투시 신토-불교도들의 란을 선동할 수 있음.
          * 다른 가문의 성에 침투시 잇코 신자들의 란을 선동할 수 있음.
          * 다른 가문의 성에 침투시 기독교도들의 불안을 선동해 란을 일으킬 수 있음.
  • 프로 스포츠 . . . . 7회 일치
         프로 스포츠 선수는 전통적으로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주 소득을 얻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면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선수란 [[취미]]로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에 아마추어 스포츠는 상당히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 무렵에 아마추어를 프로 스포츠와 구분한 이유는 프로선수는 돈 받고 전념하니까 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같은 틀에서 경쟁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프로 선수를 낮게 보았고[* 일종의 '사회적 차별'로서, '유산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에서 '노동자 계급'과 같이 여겨진 프로 선수를 배제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올림픽에 '아마추어' 규정이 들어가게 되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남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현대에는 [[스포츠 마케팅]]의 발전으로,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에도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이 경계가 상당히 애매해졌다. 준프로라는 개념도 잘 살펴보면 프로선수와 별 다를게 없기 때문. 가령 [[K리그]]에 뛰는 선수들은 명백히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구단으로부터 급여를 받음은 물론이고 성적에 따라 연맹에서 추가적인 상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용품 회사로부터 스폰받는 돈도 있다. 하지만 세미프로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만 봐도 이런 면에서 K리그와 별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통적인 분류는 상당히 무의미해 진 상황이다.
         프로 스포츠 마케팅에서 강한 선수, 강한 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관객들이 강한 선수나 강한 팀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로 강한 선수나 강한 팀이 흥행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누구누구만 나오면 이기니까 재미가 없다.", "어디 팀만 무조건 이기니 재미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 시장에서는 이러한 '흥행'을 고려하여 리그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을 변경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대회운영과 일정 관리 등, 스포츠 대회를 열었을 때 수되는 각종 어려운 부분들이 발생함으로써 영리기업은 보통 여기에 별도로 운영하기 위한 부서를 두는게 비용적인 면에서 불리함이 있기 때문.
  • 하이큐/239화 . . . . 7회 일치
          테라도마리도 "맞추려면 나 빼고 맞춰라"고 웃어넘긴다. 히메카와가 가장 의식했던 2학년 츠키오카도 3학년 마루야마에게 "종부터 서브가 어설펐다"고 쓴소리를 퍼부울 뿐, 아무도 히메카와의 실책을 문제삼지 않는다. 히메카와는 예상과는 다른 응에 조금 어리둥절하다.
          * 관중석에서 시시덕거리던 커플 뒤에 있던 아저씨가 "츠바키하라는 긴장감이 없다"며 가벼운 분위기의 벤치를 질타한다. 하지만 커플은 그 말에 박하며 "심각해져봐야 카라스노가 딴 1세트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침체된 분위기를 하고 있는 쪽이 오히려 패배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
          이후 선수들 간의 간단한 성회가 이어진다. [[니시노야 유]]는 막판 토스가 너무 네트에 가까웠다고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사과한다. 아즈마네는 별일 아니라며 아직도 이 체육관의 감각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으로 여긴다. 우카이 코치는 그 점을 마음에 걸려하는 듯 하다.
          일적인 서브와 달리 강력한 파워도 응하기 어려운 스피드도 없다. 그저 높이 올라갔다 떨어질 뿐인 서브. 하지만 이 점이 오오사도 감독의 노림수였다.
          오오사도 감독은 이게 의외로 먹힌다며 웃는다. 천장 서브는 배구 역사 초기에 등장했지만 현대엔 사장된 기술이다. 딱히 장점이 없기 때문인데, 대로 이것이 허를 찌르는 수단이 된다. 현대에는 잘 쓰지 않는다는건, 이 서브를 "익숙하게 받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의미. 게다가 이 체육관이라는 낯선 환경까지 합쳐지면 좀처럼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공격이 된다. 따라서 이 1회전에서 히메카와를 기용한건 단순한 도박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 하이큐/250화 . . . . 7회 일치
          * [[미야 아츠무]]는 퍼스트 터치에서 바로 세트를 올리는 묘사를 선보이며 초 기세를 잡아간다.
          * 절호의 속공 찬스를 어이없이 놓친 [[히나타 쇼요]]. 중계석에서는 [[카라스노 고교]]의 경기 초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그런데 히나타가 답지 않게 죽을 만큼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물론 상대편 [[미야 아츠무]] 조차 "너무 풀죽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코트 바깥의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실수했다고 저렇게까지 좌절한 적이 있던가? 의문을 표시한다.
          아츠무는 퍼스트 터치와 동시에 그대로 새트업, 약속이라 한 것 처럼 [[오지로 아란]]이 총알같은 스파이크로 점수를 벌어간다. 카게야마가 블록을 뛰어 보지만 무리. 그외 카라스노의 다른 선수들은 응하지도 못했다. 오지로는 성공해 놓고도 아츠무에게 "놀라게 한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응원단은 선수들 이상으로 기세가 오른다. 중계석은 이나리자키에 칭찬 일색.
          * 경기를 보러왔던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 보쿠토 쪽은 "아란 제법이다" 정도의 짧고 단순한 응. 아카아시는 사뭇 냉정하게 분석을 내린다. 방금 퍼포먼스는 쇼맨쉽만은 아니다. 시작부터 이런 공격을 성공시켜서 "우린 첫경기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여유롭다"는 걸 과시하는 것이다. 지금은 바깥에 있는 입장이라 이렇게 냉정하게 분석하는 거지만, 코트에서 마주치면 싫을 거라고 생각한다.
          * 되돌아온 공은 [[니시노야 유]]에게. 안정적으로 리시브한다. 공은 다시 카게야마의 세트업으로. 그런데 곧바로 뛰어 오를 줄 알았던 히나타가 "앗"하고 움찔한다. 정면에 있던 이나리자키의 오미미가 거기에 주의를 뺏긴다. 그리고 순간. 히나타는 폭발적인 가속으로 코트 대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도약. 아츠무가 그랬던 것처럼 한순간 체육관의 모든 이목이 히나타에게 쏠린다. 카라스노를 얕봤던 미야 형제는 똑같은 타이밍에 "우와"하고 탄성을 뱉는다.
          * 그들이 대등한 "도전자"임을 입증하듯, 이나리자키의 좌현을 관통하는 스파이크. 코트 위의 선수들은 응하지도 못했고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얼어붙은 듯이 서서 야유하는 것도 잊었다. 관객들은 물론 관중석 조차 한순간 정적. 마치 시간을 멈추로 때린 것 같은 스파이크였다. 단숨에 기세를 되찾는 카라스노 고교.
          * 아츠무가 보여준 묘시를 그대로 갚아준 셈. 그런데 호시우미는 딱 한 번 봤을 뿐인데도 히나타의 점프를 보고 불편함을 어필한다. 히나타가 그의 점프를 표절한 걸 눈치챘기 때문일까? 그 밖의 강호교들도 방금 전 플레이에 후한 평가를 내린다. 보쿠토는 당연히 호들갑을 떠는데, 아카아시는 아츠무의 플레이 때와는 상되게 단순명쾌하게 정의한다.
  • 하이큐/251화 . . . . 7회 일치
          *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가 우연히 탄생시킨 이동공격이 이나리자키로 기울던 경기 분위기를 전시킨다.
          * 스코어는 4 대 3. 이나리자키의 1점 리드. 그러나 경기 초부터 이나리자키로 기울던 분위기가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이동공격으로 뒤집힌다. 그동안 이나리자키의 플레이에 관심이 집중됐던 관객들은 새삼 카라스노 고교와 1학년 콤비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경기 시작전 카라스노 고교를 형편없이 얕봤던 [[미야 아츠무]]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멋지다고 감탄한다. 놀라운 순발력과 민첩성, 그러면서도 점프 높이는 전혀 줄지 않는 탄력 등. "직접 보니 더 멋지다"고 감탄하고 있으려니 동생 [[미야 오사무]]가 옆에서 "너는 시합만 하면 정신연령이 5살 이하"라고 빈축한다.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종전보다 빠르고 높아진 야유. 다른 관객들은 품위가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높고 빠른 소리가 다른 소리를 묻어버린다. 그런데 방금 전 우연찮게 파인 플레이를 선보인 주인공, 히나타는 묘한 희열을 느끼느라 그런 소리에 일일히 응할 틈도 없다. 아니, 오히려 저쪽 응원단의 안달난 응이 기쁘기까지 하다. 그는 전국 2위의 이나리자키 고교가 전력을 다해 카라스노 고교를 무찌르고자 하는 상황에 도취된다.
          * 이번엔 오사무의 서브. 그런데 [[스나 린타로]]가 [[하이큐/250화|호각 소리에 맞추다시피]] 바로 서브를 때린 것에 비해, 오사무의 움직임은 느긋하다.[* 주심이 서브 신호를 보내고 8초 안에 서브 해야 한다.] 거의 8초를 꽉 채운 뒤 서브. 이건 고의적으로 넣은 "간격"이다. 작전이 먹혔는지 카라스노의 리베로 [[니시노야 유]]가 걸음 느리게 응한다. 그래도 제대로 리시브. [[타나카 류노스케]]가 놓치지 않고 스파이크로 연결, 1점 따라붙는다.
          이나리자키는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성장 중인 팀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기세를 후까지 허용하면 매우 힘들어진다. 하지만 상대 응원에 대항해야할 카라스노 응원단은 벌써 기가 죽었다. 상대편 응원을 응원이라기 보다도 "원호사격"에 가깝다고 평하고 코트 안팎의 요소들, 시간과 소리까지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팀을 부양하고 있다.
  • 하이큐/261화 . . . . 7회 일치
          * 이것은 처음부터 아츠무의 서브를 끊고 격하는 걸 노렸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전략. 그것이 맞아떨어졌다.
          * 코사쿠의 서브가 [[사와무라 다이치]]의 리시브를 튕겨내고 높이 치솟는다. 그대로 [[이나리자키 고교]] 진영의 외야로 날아가는 공. 그러나 아직 공은 살아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상대편 코트를 가로지르면서까지 쫓아가 받아낸다. 아슬아슬하게 [[카라스노 고교]] 진영으로 돌아오는 공. 여기서 [[아즈마네 아사히]]가 과감히 날아오른다. 강렬한 스파이크가 이나리자키의 블록에 맞고 아웃되면서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3 대 24. 카라스노의 1점 리드를 지켜내고 세트포인트에 도달한다. 꼼짝없이 재역전이라 생각했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한숨 돌린다. [[니시노야 유]]는 "에이스 같았다"고 격찬, [[츠키시마 케이]]는 "아즈마네 선배는 에이스가 맞다"며 새삼스러울게 뭐냐는 응. [[타나카 류노스케]]는 동료 선수들이 "물이 올랐다"고 감탄하며 자신도 분발한다.
          * [[타키노우에 유스케]]는 [[시마다 마코토]]가 자리를 비웠다 좋은 장면이 다 지나가고 돌아오자 대차게 깐다. 아까 [[야마구치 타다시]]가 대활약했는데, 그 선생님인 시마다가 왜 자리를 비웠냐는 이유다. 물론 그는 시마다가 경기장 대편까지 열심히 뛰다 온 걸 모른다. 그리고 그가 자기 태블릿을 무단으로 빌려갔던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마다는 그 짧은 순간에 "봉투 안에 타블릿을 끼워서 켜면 더 잘 보일 거다"는 계산까지 염두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스나 린타로]]의 눈치가 빨랐다. 여지없는 셧다운. 공이 카라스노 진영의 코트를 찍는다. 카게야마가 세트업이 살짝 짧았다고 사과하지만 타나카는 그를 탓하지 않는다. 자신도 될 줄 알았던 스파이크였다. 오늘 타나카는 묘하게 풀리지 않는다. 면 번번히 타나카를 방해하는 스나 린타로는 이제 발동이 걸린 것처럼 펄펄 뛴다. 면 타나카는 실책이든 불운이든 좋은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관중석에선 그럴 "활발 빡빡이"라 칭하고 구멍 취급이다. 어떤 선수든 안 풀리는 날이 있기 마련이지만...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열 받아서 로우 텐션 모드가 됐다"고 중얼거린다. 옆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그걸 본인이 알긴 알았던 건가 하며 충격을 받는다.
          * 미야 아츠무의 서브가 무섭다는건 전날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우카이 코치는 그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으며 선수들이 질릴 때쯤 "그 서브에 격하는 로테이션"을 꺼냈다. 아츠무가 서브일 때 중앙의 니시노야가 요격하는 수비. 거기에 더해 서브를 끊을 방법도 연구했다. 그는 "이것저것 여러 방법"으로 끊었으면 좋겠다며 지금껏 공식전에서 한 번도 안 했던 걸로 그걸 해보자고 한다.
          * 사와무라는 지금 만큼은 백어택이 익숙하지 않은 걸 잊어버리고 때렸다. 블록의 응이 늦다. 완전히 속였다. 스파이크가 이나리자키 코트를 깊숙히 관통한다. 완벽한 코스. 카라스노가 아츠무의 서브를 단칼에 끊으며 1점을 추가한다. 아츠무도 여기에는 "제법"이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스코어는 24 대 25. 다시 세트포인트. 후쿠로다니의 콤비가 "사와무라가 백어택 치는건 처음 봤다"며 눈이 휘둥그래하다.
  • 하이큐/262화 . . . . 7회 일치
          * 선배들을 진정 강한 사람으로 인정한 타나카는 삭 금발이었던 머리도 지금같은 빡빡머리로 바꾸고 심기일전해 선배들을 따라왔다.
          * 오지츠 중학교 출신으로 막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한 [[타나카 류노스케]]는 인상부터가 존재감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1학년인데도 삭 금발. 제법 험악한 인상에 목소리마저 우렁차서 자기소개 시간엔 옆의 [[엔노시타 치카라]]나 [[나리타 카즈히토]]가 눈에 안 띌 정도였다. 당시 2학년이었던 [[사와무라 다이치]], [[아즈마네 아사히]], [[스가와라 코시]]는 이 신입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아즈마네는 거의 겁 먹었고 스가와라는 언제나처럼 속을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와무라는 간단하게 표현했다.
          그런 타나카가 보기에도 카라스노의 경기성적은 좋지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빴다. 인근 학교와 연습시합에서도 번번히 패했다. 3학년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은퇴했다. 남겨진 입장이 된 타나카는 "수수한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말로 심정을 표현했다. 이 시기 카라스노는 전용 체육관은 커녕 체육관을 쓰게나 해주면 감사해야 하는 처지였다. 타나카는 이런 대우에 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주장을 물려받은 사와무라는 "작년보단 낫다"거나 "밖에서도 할 수 있는게 있다"면서 말을 돌렸다. 타나카에겐 "느슨"하게 보였다.
          * 얼마 뒤에도 또 졌다. 오기미나미 고교였다. 꽤 큰 차이로 져서 마지막 세트는 19 대 25로 내줬다. 이땐 이미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던 길, 오기미나미 고교 선수들이 떠드는 날이 타나카의 귀를 괴롭혔다. 다음주에도 카라스노랑 연습시합한다는 대화였는데, 그들은 상대가 카라스노여서 실망이라는 응이었다.
          다시 사와무라의 웃는 얼굴은 돌아왔지만 타나카가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도 거든다. 스가와라가 지는건 일상 다사니 익숙해지라고, 아즈마네가 공식전에서도 이러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사와무라도 무슨 얘긴지 알았다. 셋이 입을 모아 말했다.
          다음날 나타난 타나카는 단숨에 스가와라의 장난감 취급을 당했다. 그때까지 트레이드 마크였던 삭 금발을 지금의 빡빡머리로 바꿨기 때문이다. 본인은 "기합을 넣는 차원에서 바꿨다"며 나름대로 의지표명을 했건만 스가와라는 자비없이 만지작 거리며 장난감으로 전락시켰다. 씁쓸한 기억이다.
          * 히나타가 보여준 것만큼은 아니지만 린타로의 응도 뛰어났다. 세트업은 [[츠키시마 케이]]를 페이크로 쓰고 좌측의 타나카에게 전해진다. 아직 츠키시마의 페인트 모션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린타로는 벌써 타나카 앞으로 뛰고 있었다. 츠키시마가 빠르다고 감탄하는 스피드. 타나카가 스파이크를 쳤을 땐 오사무의 바로 옆에서 블록을 뛰고 있었다. 그 린타로의 블록에 맞고 튀어나오는 공. 타나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이 타이밍으로 뚫어왔다. 그러지 못했다는건, 블록의 완성이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카라스노 코트로 떨어지는 공은 니시노야가 수습. 카라스노 응원단은 갈 수록 강화되는 블록을 보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타나카 사에코]]가 "류는 이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외치며 분위기를 다잡는다.
  • 허가윤 . . . . 7회 일치
         === 음 ===
         {{참고|포미닛의 음 목록|설명= 허가윤이 포미닛 음악 그룹에서 부른 음에 대해서는}}
         {{참고|투윤|설명= 허가윤이 투윤으로 발매한 음에 대해서는}}
         * 《[[배의 장미 (영화)|배의 장미]]》 (2018년) - 배의장미 역
  • Crusader Kings 2/DLC . . . . 6회 일치
         가상역사인 [[아즈텍 제국]]의 서유럽 침공을 다룬 DLC. 이 DLC를 구매할 경우 게임 중 아즈텍 제국의 대군이 등장해 모로코,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에 상륙한다.
         876년 시작하는 시나리오인 "태고의 신들"이 해금된다. 또한 란 시스템이 개편되어 농노 란, 종교 란, 해방 란, 이단 란 중 하나의 형태로 일어나게 되었다. 가끔씩 어디서 굴러들어온 모험가가 영지를 요구하며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는 이벤트도 추가되었다.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6회 일치
         K리그는 2011시즌까지 상당한 잡음이 일어왔었는데, 그 잡음 중 하나가 바로 관중 수 집계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은 좋지만 인기가 정말 없기로 유명했던 구단으로 성남 일화 천마를 꼽을 수 있었는데, 이 성남의 홈 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수용 가능 인원은 2만여명이 넘지만,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러 들어온 관중은 2000여명이 채 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경기장 전광판에서는 전전이 끝나고 관중 수를 발표하는 걸 보면 4,000 ~ 5,000명을 발표하는데... 이건 경기장에 최소한 20~25%는 채워져야 가능한 이야기임에도 방문한 팬들조차 갸웃거릴 정도였다.[* 가령 2010시즌 경남과의 홈 경기에서 당시 발표로는 5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결코 그 정도로는 아니었다.]
         이게 성남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남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남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경기장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경우에는 거의 100% 해당 경기장을 찾았다고 간주할 수 있겠으나 시즌권을 구매했다고, 혹은 무료티켓을 얻었다고 매번 경기장을 찾는 것은 아님에도 이를 합산시켰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시즌권을 구매했어도 어떤 개인사정으로 인해 경기장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고, 또 무료티켓을 가졌다고 드시 자신의 시간을 경기장에서 보내야 하는 필연성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무료티켓을 어느 정도 뿌렸는지 팬들이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팬들이 구단에게 공평함과 내실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2016시즌 기준, 수원 삼성의 경우는 무료티켓을 거의 발행하고 있지 않아 실제 관객수 당 지불비용이 가장 높은 "객단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평균관중이 줄었음에도 입장 수익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신기한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무료티켓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연맹의 요청으로 군경활동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구단은 무료티켓을 발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연고지에서 지원하는 유소년 클럽의 경험 향상차원에서도 매 경기마다 무료티켓을 일정 이상 발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수되어야 하기 때문. 거의 각 구단마다 경기당 최소한 수백장 정도 무료티켓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팬들도 이런 구단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수긍하고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인구 수를 매년 잘못 파악한다고 치면 해당 도시의 인구가 왜 늘어났는지, 혹은 대로 왜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초현상이 발생했으면 왜 여초현상이 발생했는지, 여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헌데 2011시즌까지의 K리그는 사실 이게 불가능한 정도를 넘어 구단들이 알아서 뻥튀기를 했고, 또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걸 공식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K리그가 지금 흥행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대대적인 실패를 하고 있는건지 진단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 Q.E.D. 증명종료 . . . . 6회 일치
         사람이 팍팍 죽어나가지도 않고[*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엔 페이지가 부족해서 그랬는데 독자들의 응이 좋아서 살인 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도 만들게 되었다고. 35권처럼 살인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뭔가 성적인 소재가 사용되지도 않으며, 사건이 끝난 뒤에 깔끔하게 해결되는 편. 그러나 문헌 오염, 증명에 실패한 위상 수학자, 지쳐버린 작화감독, 환자와 의사로 비유하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라는 등 씁쓸함과 여운을 남기는 해결도 상당히 많다. 해결추리 만화에 흔히 나오는 '불가능 트릭'도 그리 많지 않으며(가끔 나오기는 한다) 다음 권으로 사건의 답 등을 넘기는 경우도 없다.
         인물설정 때문인지 오일러의 공식이라든지 초끈이론이라든지 일인으로서는 머리아픈 수학, 과학적 이론이 많이 나오는데 작가는 건축과 출신으로 과학은 취미로서 좋아한다고 한다.[* 현학적이라 장점이자 단점. 팬들은 좋아하지만 골치아프다고 포기하는 독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만화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기타 추리물처럼 오류가 있다. 이를테면 4권에서 클란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를 공격한다는 장면에서 '''MIT'''출신자인 토마와 로키가 원자력 발전소, 미사일 사일로 등을 걱정하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내용. 기술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어지간한 중요 시설은 '''물리적'''으로 일 네트워크와는 분리되어 있다.[* 즉 아예 물리적인 서버 자체가 따로 구축되어 있다. 은행권의 경우 인터넷 뱅킹 등으로 외부 전산망과 연결되어 있고 그 틈을 노릴 수 있지만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는 네트워크'''는 공개 전산망에 이어지는 회선 자체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폐쇄 네트워크를 공격하기 위한 [[스턱스넷]]과 같은 공격기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약정한 공격행위를 하는 것뿐으로 외부에서 원격 조종하는 개념은 아니다.] 즉 직접 가서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일개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인의 통념이라면 모르겠는데 '''MIT''' 현역이 저런 소리를 하니..
          * 작품 초부에는 주인공들이 어느정도 정상적인 시간 흐름을 보였지만 그 이후로는 자연스래 여타 추리 계열 만화들과 처럼 [[사자에상 시공]]에 접어들었다.
          * 작품 자체의 소재가 일인들은 접해보지 않은 개념들이 많아. 상당히 상식적인 면에서 읽어볼만하나 원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많기도 하고, 일본어 특유의 외국어 표기법(ex, 마구도나루도)으로 번역자가 그대로 해석해서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연속체 가설에서 만화책에서는 '아레후'라고 나오지만 제대로 된 명칭은 [[알레프]].
  • 고경표(배우) . . . . 6회 일치
         데뷔 전 영화 소개 프로그램인 SBS 접속 무비월드 '영화는 수다다' 코너에서 영화 [[쩨쩨한 로맨스]]를 본 일 관객의 한 사람으로 인터뷰한 내용이 나온다.([[https://youtu.be/T9uKOlhvB5k?list=PLGPoxas8n3q9_mB8PVv56z_IBUpVIhRhy|1분25초, 3분50초]])
         2015년 11월 이루어진 고경표의 페이스북에서는 "너무 나대서 불편하고만"이라는 글과 함께 tvN 초인시대에서 [[응답하라 1988]]을 풍자하는 [[유병재]]에 대해 비난조의 글을 게시한다. 당시 tvN 드라마 '초인시대'에서 유병재는 "올해 하기에 '응답하라 1988'이 방영합니다. '너무 옛날로 돌아가는 거 아니야', '그래서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 뭐 이런 우려들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조금 더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답하라 1894', [[동학농민운동]] 때로 돌아가서 그 안에서 벌어졌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여자 주인공 전봉준과 탐관오리 조병갑 사이에서 누구한테 갈까 이런 내용으로 시청자들과 밀당한다면..."이라는 등 응답하라를 풍자하는 내용의 콩트를 하였는데, 당시 응답하라를 출연 준비중이었던 고경표가 이에 대해 '너무 나대서 불편하고만'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SNS에 대해 안 좋은 면만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 고경표는 [[무한도전]] 외주화 대([[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41356175352168002|'새파란 신인' 고경표는 왜 '무한도전' 외주화를 대했을까]]), [[건국대학교|건대]] 영화과 통폐합 1인 시위 참여 등 사회적 문제에 있어 자신의 소신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꽃보다 청춘]] 1회에서 그 동안 일어난 논란에 대해 소회를 밝히며, "너무 죄송하다. '꽃청춘'처럼 좋은 프로그램에 나는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당시 언행이 너무 창피하다."라면서 다시 한 번 더 성의 눈물을 흘렸다([[http://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108&aid=0002502084&rankingType=memo&rankingDate=20160219|'꽃청춘' 고경표 "과거 언행 너무 부끄러워" 눈물]]). 또한, 인성을 까다롭게 평가하기로 자자한 [[나영석]] PD가 이러한 장면을 그대로 내보낸 것은, 적어도 그가 고경표를 직접 겪으면서 진심으로 성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918484|나영석 PD 인터뷰]]).
  • 광해군 . . . . 6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순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순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상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영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영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영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영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영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이이첨과 정인홍 등의 [[대북]]을 중용했으며[* 다만 유희분과 박승종 등의 [[소북]]도 이 시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또한 대로 정치적인 중용과는 별개로 이이첨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강성해가는 후금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당시 사르후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던 강홍립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동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다만 광해군 본인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대동법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다만 세자 시절에 겪었던 전쟁 때문에 PTSD가 걸렸는지 지나치게 많은 궁궐과 성을 쌓아 국고를 탕진시키기도 했으며, 이는 민생에 커다란 부담을 주었고 현대 연구자들 역시 비판하는 요소이다. 왕권을 강화하는 방도로 한번 역음모가 생기면 관계자들을 지나치게 국문하기도 했다.
         결국 광해군의 지나친 대북 밀어주기에 발한 서인들이 [[인조정]]을 일으켜 왕위에서 쫓겨난다. 광해군은 유배되었으며 각지를 전전하다가, 최후에는 제주도로 유폐되어 거기서 죽는다.
  • 구자욱 . . . . 6회 일치
         [[2013년]]에는 3번이나 5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시즌 중에는 3할 중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3할대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장타율이 늘었고 볼넷/삼진 비율도 꽤나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13 시즌 말 동아시아컵에 [[상무 야구단|상무]]-[[경찰 야구단|경찰]]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거기서 좌익수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수비에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하였다. 이전 두 시즌 동안은 부상을 달고 살았으나, 이 시즌에는 부상 없이 전 경기에 출장하였다. 그 덕에 기록이 상승하였다. 특히 장타 비율이 가장 많이 늘어났지만, 그에 해 삼진 비율도 많이 늘어났다. 이 시즌에 100득점-100타점 기록을 세웠다.
  • 김광석 . . . . 6회 일치
         '''김광석'''(金光石<ref>[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11220915531&code=900307 '대중음악 100대 명'25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경향신문》, 2007년 11월 22일 작성, 2011년 2월 14일 확인.</ref>, [[1964년]] [[1월 22일]]<ref>{{저널 인용|제목=[추억의 LP 여행] 김광석(上) 시대의 감성을 일깨운 우울의 미학 해맑은 미소로 기억될 '거리에서'|저널=주간한국|이름=|url=http://weekly.hankooki.com/lpage/enter/200407/wk2004070211320337570.htm|날짜=2004-07-02|출판사=|저자=최규성|확인날짜=2010-03-12}}</ref> ~ [[1996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장이 추서되었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나 [[부산광역시|부산]]로 상경하여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 (1951년)|김민기]]의 음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 (밴드)|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6년 1월 6일 사망하였으나 사인 관련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을 내놓았으며,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인 4집을 발표하였다. 정규 음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91년부터 꾸준히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였으며, 1995년 8월에는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
  • 김대환 (법조인) . . . . 6회 일치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3월 5일에 "보행자가 녹색 신호를 보고 횡단보도에 들어선 이상 횡단 도중에 적색 신호로 바뀌더라도 다 건널 때 까지는 도로교통법 제48조 제3항에 의한 운전자가 보호해야 할 보행자에 해당되어 이런 의무를 위해 사고를 낸 이상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3월 5일자</ref> 7월 30일에 [[전대협]] 의장으로서 교내외에서 각종 시위를 주도하여 1심에서 징역1년6월 자격정지2년을 선고받은 [[이인영]]에 대해 징역6월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8년 7월 1일</ref> 1989년 6월 8일에 변호사법위으로 구속
         되어 1심에서 징역1년 추징금 550만원을 선고받은 [[전두환]] 대통령의 사촌동생인 전우환에 대해 징역10월 추징금 55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9년 6월 8일</ref> 6월 22일에 삼양교통에서 사규위 등으로 해고되자 서울북부지방노동사무소에 구제신청을 하고 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회사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작성해 배포하고 다른 회사 쟁의에 지원을 다니다가 구제신청이 기각된 이후 해고되자 [[노동쟁의 조정법]] 제3자 개입 금지 등으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에서 자기 회사에서의 활동에 대해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다른 회사 노동쟁의에 개입한 부분에 대해서만 징역1년 벌금 5만원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89년 6월 23일자</ref>
         서울민사지방법원 합의15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9년 11월 17일에 투서 사건으로 54억원 상당의 재산을 강제로 국가에 헌납했던 전 [[민정당]] 대표 [[정래혁]]의 국가 상대 재산의 환을 요구한 소송에서 "이유없다"며 기각했다.<ref>경향신문 1989년 11월 17일자</ref>
         대한 항소심에서 "공판 전 증인신문은 무효"라며 원심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공판 전 증인신문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받은 이후 첫 판결이다.<ref>동아일보 1998년 4월 20일자</ref> 4월 28일에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운동기간 전에 선거기획단을 운영하여 법정선거운동 비용을 초과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명박]]에 대해 [[공직선거법]]과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각각 벌금400만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4월 29일자</ref> 6월 30일에 사전 선거운동으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박계동]]에 대해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7월 1일자</ref> 11월 4일에 "[[이회창]] 후보 아들 이정연이 고의로 체중을 감량해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했던 전 서울병무청장 직원 이재왕에 대해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으로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11월 5일자</ref> 11월 30일에 1심에서
         자격정지3년을 선고하면서 박일룡 전 안기부 1차장에게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자격정지2년, 임광수 전 101실장과 임경묵 전 102실장 등 전직 안기부 간부 4명에게 징역8월~1년6월 집행유예2~4년 자격정지1~2년을 선고하면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X파일 시리즈를 게재한 격주간지 인사이더월드 발행인 손충무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1월 23일자</ref> 4월 26일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선거공보에 실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벌금150만원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4월 27일자</ref> 5월 20일에 [[자민련]] 후보가 시장 후보를 결정하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새정치 국민회의]]의 추천을 받았다며 선거운동을 했던 경기 안성시장 [[한영식]]에게 원심대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5월 21일자</ref> 8월 31일에 성남시 지하상가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오성수]] 전 성남시장에 대해 징역5년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선고하면서 공직선거법 위에 대해 벌금100만원, 업무상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9월 1일자</ref>
  • 김미숙(1959) . . . . 6회 일치
         어린 시절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알고보니 돈만 주면 합격하는 학원이었다고... 눈물이~~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思考)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배우는 포기했다. 그 당시로써는 큰 키와 마른 체구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세터. 그래서 손 힘이 굉장히 센 편인데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 영화 [[말아톤]]의 DVD 메이킹 필름에서 세차게 --강스파이크로--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아웃된 듯한 [[백성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드라마)|기분 좋은 날]] 9회 초에 극중 집 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멀쩡한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마지막엔 결혼에 골인하고 [[내 딸, 금사월]] 44회에서 손창민은 김미숙과 여고 동문인 [[신득예]]에게 낭떠러지에서 위협받는다 뺨에 강스파이크~~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이 대회 대상은 [[원미경]].]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다. 상태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Fail.'''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 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
          * [[목소리]]가 '''정말''' 좋다! 그로 인해 일찍이 DJ로 활약했다. 라디오 진행 경력만 20년이 넘는다. 대본을 직접 쓰기도 하고, 방송할 때는 DJ 인기 투표 순위에도 항상 순위권. 우아한 목소리와 뛰어난 딕션, 그리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포인트. 연극에도 여러 번 출연했고, 연륜으로 인해 더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목소리는 정말 타고난 듯. 떡잎부터 달랐던 건지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본인도 놀랐다는 썰. ~~자랑인데 박할 수가 없다...~~ 시 낭송 앨범을 여러 번 내기도 했다. [[감성애니 하루]] 내레이션.
          * 굉장히 오래 된 '''여성 스토커'''가 있다. 90년대 초부터 촬영장마다 나타났는데 점점 도가 지나쳐 유치원이나 집까지 들어왔다고. 웬만하면 선처를 하려고 했으나 스토커가 본인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돈을 요구하거나 가족들의 안위까지 위협해 결국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몇 년을 주기로 나타나기는 한다는 썰. ~~소오름!~~
          * 한때 '''[[노처녀]]의 아이콘'''이었다. 지금이야 워낙 늦게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 마흔살에 결혼하는 사람도 종종 보이지만, 그때는 여자 나이 20대 후만 되어도 노처녀란 소리를 들었다. 물론 여배우들은 원체 직업 특성상 일인보다는 늦게 결혼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런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꽤나 늦은 편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한국나이 41살에 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래 출산을 40대에 두 번이나 했으니, 그 시절에는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 [[1993년]] [[KBS2]] 《[[서른 한 살의 란]]》
  • 김소혜(1992) . . . . 6회 일치
         2015년에 [[내 마음 짝]] 9회에 천금비([[손은서]] 분)와 말다툼을 하는 혜원 역을 맡았고 이마저도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 김소혜의 인지도는 크게 상승하게 된다!'''
         2월에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책을 좋아하고 헌책방에서 알바하는 학생인 한수연 역을 맡았고, 자신의 동급생이자 방송 아나운서인 박은빈([[강성아]] 분)과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촬영 후 김소혜는 소감을 밝혔는데 자신의 연기가 성소수자에게 행여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고 말하였다. 수연의 감정이 애절하게 다가왔다고 평하였다. 수연의 사생활의 누군가에 의해 짓밟히고, 은빈에게 매달리고 울기도 했지만, 은빈을 위해 쓸쓸히 퇴장하는 장면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수연은 은빈을 정말 사랑해서 떠났지만, 김소혜 자신이 수연이라면 사랑하는데 떠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신은 딸기우유를 급우에게 맞은 장면이라고 한다. 날씨도 추웠고 그 장면을 복 촬영하느라 몸살이 왔다고 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643970|TV리포트]]
         ||<|4> 2015년 || SBS || [[내 마음 짝]] || 혜원 ||
  • 김종호(1935) . . . . 6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태(정치인)|김완태]]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경질되었다.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세력, 학생운동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해서 [[박종철]]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으론 김종호 장관이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다. 정치일정이 있으니까 3월 개학 때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선 경찰들은 장관이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개학전까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무리한 강압수사(=[[고문(범죄)|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1998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00년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탄핵 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에 대하였고[* [[이낙연]]과 함께 탄핵안에 대한 2명 중 1명이다. 이낙연은 노무현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 당연히 탄핵에 대할만했지만 김종호는 매우 의외인데 이는 단순히 자민련 의원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출신 자체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민정당 계열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하면 했지 도저히 대할만한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 [[민주정의당]] || '''95,781표(67.0%)''' || '''당선''' || [*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태(정치인)|김완태]] 후보와 동 당선] ||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6회 일치
         [[2004년]] 하기 한빛 스타즈(현 [[웅진 스타즈]])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홍진호와 펼친 최고의 저그 대 저그 경기로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었다. 이후 3시즌에 걸쳐 사용된 섬맵 '815' 시리즈의 데뷔 경기였던 홍진호와 김준영의 대결은 장장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종래의 뮤탈리스크 저글링 위주의 단조로운 저그전 양상을 탈피한 다양한 유닛들의 각축으로 이루어졌다. 디바우러, 디파일러, 퀸, 심지어는 히드라리스크와 스탑 럴커까지 동원되는 혈투가 벌어졌고, 김준영은 초 유리한 전개를 만들었으나 홍진호의 뒷심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 경기는 역대 최장시간 저그 대 저그 경기이자, 역대 최고의 저그 대 저그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으며, 비록 김준영은 이 경기에서 지긴 했으나, 이 경기로 인해 아직 신예급이었던 김준영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 김준영의 별명 '대인배'는 2005년 11월 12일 김준영이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승자전 대 [[김근백]](당시 [[삼성전자 칸]], 은퇴) 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해처리 버그(해처리로 변태하다가 취소한 상태의 저그 드론이 소실될 경우 게임 자체가 멈춰 버리는 현상)가 발생하자 재경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인배(大人輩)'라는 용어는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던 [[김성모]]의 만화 중 등장한 '소인배'와 대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 본래 표준어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소인배', '무뢰배', '폭력배' 등의 단어에서 보이듯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김준영을 '대인'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 김준영이 줄곧 보여준, 경기 후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내는 물량을 빗대어 그의 팬을 비롯한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들은 '개떼 (저글링 떼)', '새떼 (뮤탈리스크 떼)', '소떼 (울트라리스크 떼)' 등의 별칭을 지었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로는 소(울트라리스크)를 애용하는 그에게 '한우 저그', '광우병 저그'라는 별명도 붙였다.
         이영호 또한 '[[이제동]]보다 후 운영은 웅진저그가 더 뛰어나다.' 라고 말하고 있고, [[KT 롤스터]]의 저그라인 또한 웅진저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6회 일치
          * 웅영고 A은 무난하게 시험을 통과한다. 그러나 바쿠고 카즈키, 토도로키 쇼토는 고배를 마신다.
          * 고대하던 결과발표. 웅영고 A 인원들도 하나둘 합격이 확인된다. 미네타 미노루 조차도 명단에 들어가 있어 거진 다 합격한 듯 한데, 정작 A 투탑 중 하나인 바쿠고 카즈키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 A 사이에서 토도로키의 탈락 소식도 전파된다. 하필이면 A 투톱이 전부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카미나리 덴키는 바쿠고에게 폭언 때문이라며 깐죽거려서 화를 돋군다. 미네타는 둘다 "자기 본위의 플레이가 발목을 잡았다"는, 밥맛없지만 정확한 팩트폭력을 시전하다 이이다 텐야에게 치워진다. 야오요로즈 모모와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마음을 신경써 주지만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한다.
          * 미도리야는 사걸고교의 리더에게 질문할 것이 있다며 수첩을 꺼내든다. 그리고 다짜고짜 "기척을 지우는 훈련"이란걸 묻는데 케미를 상대하면서 들은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걸의 리더는 그런 훈련같은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애초에 그런게 뭔지도 모른다는 응. 미도리야는 케미가 그런 말을 했다며 그녀를 찾는데 왠지 몸이 안 좋다며 한 발 먼저 귀가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사걸의 리더도 한 3일 전부터 그녀의 행동이 묘하게 평소와 달랐다고 찜찜하게 여기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6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는 그가 명실상부한 "넘버1에 가까운 남자"이라며 조심하라고 하는데, 단 몇 초만에 A 인원 대부분이 K.O당한다.
          * 웅영고 재학생 중에서도 최강으로 불리는 "빅3"의 등장. 그 존재에 관해서는 A에도 소문이 전해져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건 대부분 처음이다. [[카미나리 덴키]]는 여학생을 보고 "예쁘지만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론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도 아마지키 못지 않게 괴짜같은 면모를 드러낸다. 인턴 제도의 설명을 부탁받고 왔다면서 곧바로 A 학생들을 뜯어보며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기 시작한다. 우선은 앞에 있던 [[쇼지 메조]]에게 마스크를 왜 썼냐고 묻는다. 근데 쇼지의 대답도 듣지 않더니 다음은 [[토도로키 쇼토]]에게 얼굴의 화상 자국 같은 민감한 부분도 마구잡이로 질문한다. 또 대답도 듣지 않고 다음 학생, 그런 식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게 신기하거나 이상하다고 말하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카미나리나 [[아시도 미나]]는 천연스럽고 유치원생 같다며 귀여워하는데 대부분은 불편해한다. [[미네타 미노루]]는 "나의 알(머리에 생성되는 알)에 대해 묻다니 성희롱이다"는 개드립을 치다 제지 당한다.
          그는 A 학생들을 완전히 얕보며 누가 먼저 덤벼보겠냐고 묻는다. 당연히 키리시마가 자기가 나서려고 하는데 잠자코 있던 미도리야에게 선수를 빼앗긴다. 키리시마는 의외라고 생각하는데 [[우라라카 오챠코]]는 미도리야가 "뒤처진 시간을 만회한다"고 의욕에 불탔던 걸 떠올린다.
          그가 A을 제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5초 남짓. 여유롭게 벗겨진 바지를 입는 시간까지 포함이다.
  • 단기선교 . . . . 6회 일치
         [[대한민국]] 교회의 단기해외선교 활동은 1989년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만 1990년대 중까지 단기선교는 일 참가자가 아닌 해외 선교사 육성을 위하여 선교사 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체험여행에 가까운 형식으로 일인을 모집하여 단기선교를 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는 일종의 이벤트 사업으로서 대형교회의 재정적 이유가 배경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명한 것으로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단기선교에 나섰던 분당샘물교회 신도와 인솔자들이 [[탈레]]에 납치당한 사건이 있다. 해당 일행은 대한민국 정부와 탈레의 협상으로 풀려났지만 협상이 이루어지기 전 두명이 탈레에 의해 처형되었다.
  • 디도(성우) . . . . 6회 일치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대원 재더빙판에서 [[치바 마모루|턱시도 가면]] 역을 맡게 되었다. 사실상 첫 주역 데뷔작이지만 '''평가가 좋지 않았다.''' 본인도 그 점을 알고 더 정진하겠다는 ~~[[대인배]]~~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하지만 [[하트 캐치 프리큐어!]]에서 [[최종보스]]인 [[듄(하트 캐치 프리큐어!)|듄]]을 연기할 때 캐릭터성을 잘 살리지 못한 면 쿠루미 류노스케([[쿠루미 에리카]] 아빠), [[묘도인 사츠키]]([[묘도인 이츠키]] 오빠)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감안하면 과묵한 캐릭터와는 다소 상성이 안 맞는 듯.[* 대로 [[파워레인저 캡틴포스]]의 [[제라싯트]]나 [[가면라이더 W]]의 [[마쿠라 슌]] 같은 [[개그 캐릭터]]에는 강점이 있다는 평. 목소리 특색은 부드러운 미남톤인데, 디도 본인이 워낙 밝고 개성있는 역에서 강점을 보이니 진지한 캐릭터보다는 밝은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듯 하다.] 하지만 3기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S]]에서는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여전히 원판 성우인 [[후루야 토오루]]에 비하면 아쉽다, [[김일(성우)|김일]]이 더 낫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등 비판적인 의견이 있는 걸 보면 아직은 진지한 배역보다 밝고 가벼운 배역을 더 잘 소화하는 듯. 그리고 의외로 발성이 좋아 [[잔크로우|열혈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 걸 보면 과거의 [[최재호(성우)|최재호]]와는 대로 소리지르는 연기엔 강하나 진지하고 과묵한 배역엔 약한 것 같다.]
         대원판 세일러문이 종영된 후에는 더 이상 애니메이션에서 새롭게 주연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이 대원방송에서 더빙되었다면 턱시도 가면 역할로 계속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투니버스에서 자막으로 방영하는 바람에 그나마 맡고 있던 주연 캐릭터에서도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주인공 송진우를 맡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원판 세일러문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맡은 다른 성우들([[치비우사|꼬마 세라]] 역의 [[이유리(성우)|이유리]] 제외) 및 [[김일(성우)|김일]]의 또다른 대표배역인 [[원피스(만화)/애니메이션|원피스]]의 [[상디]] 역할을 이어받은 [[박성태(성우)|박성태]]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커리어도 초라하다 보니 디도의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통 특정 배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 심하게 혹평을 듣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많이 나아지면 해당 성우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 [[이용신]]의 [[코야마 미츠키|루나]]나 [[서유리]]의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엔비]]처럼 해당 성우를 대표하는 배역으로 자리잡아 그 성우가 스타 성우로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디도는 세일러 문 시리즈에서의 레온 연기가 후에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성우와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세일러 문은 디도의 출세작이 되지 못했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아진 레온 연기조차 KBS판의 김일과 같은 큰 호평은 끝내 못 받았던 점이 한 몫한 셈. 결국 하트 캐치 프리큐어와 대원판 세일러문이 크게 작용 한 듯하다.
          * [[밀랍인형성 살인사건]] - 도 쿠사부로
          * [[연애일기 for kakao]] - [[에]]
  • 마기/328화 . . . . 6회 일치
          * 알라딘은 그의 말은 결국 "신드바드가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옳은 왕"이라 생각하게 만든 거라고 지적한다.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알라딘은 그렇게 못 박는다. 하지만 신드바드는 자기가 한 일이 솔로몬 왕이 한 것과 같다고 항변한다. 그고 루프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 전세계에 배분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 왕의 의지에 하는 자는 "타전"이란 형태로 배제된다고 말하는데 알라딘도 뾰족하게 론하지 못한다.
          * 신드바드는 이거야말로 잔혹한 세상이 아니냐며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지지하는 거냐고 문한다. 알리바바는 오가는 설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 알라딘은 박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신드바드의 의견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둘 사이의 평행선이 계속되고 알리바바는 그 사이에서 어쩌지 못한다. 신드바드는 주저하는 그에게 의견을 묻는다. 알라딘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의 입을 주시한다. 갑자기 의견을 요구받은 알리바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알라딘이 분노하는 이유는 신드바드가 그의 사고방식의 롤모델이었기 때문. 자기가 루프를 다시 썼다는 신드바드에게 바르바드에서 한 얘기로 받아친 부분을 봐도 알 수 있다. 알라딘으로선 부모님이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고 전혀 대되는 말을 하는 거나 다름 없기 때문.
         알리바바에게도 비슷한데 그의 사고에는 신드바드와 알라딘, 두 사람이 모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둘이 대대적으로 목하게 된다면 알리바바는 쉽게 입장을 정리할 수가 없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6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작업용 [[로봇]]. 로봇이지만 조작원 1명이 탑승해서 조작해야 하는 물건이다. 일적인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며, 3개의 레버와 4개의 스위치로 조작이 가능하다. 형태는 상자 모양의 본체에 양팔과 양다리가 붙은 모양이며, 머리가 있어야 할 지점에는 조작원이 탑승하는 좌석이 오픈형으로 설치된다.
          중력장치로 비행하는 보라색 도토리 같은 비행물체. 멀리서 보면 물을 담는 잔 같이 생겼다. 수직이착륙이 가능하고 기본적인 방탄성능이 있다. 착륙 시에는 3기의 수납 가능한 다리가 나온다. 매우 유용한 물건이지만, 과거의 유산이라서 양산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손상에 취약한 문제점이 있어서, 일단 약간이라도 손상되면 제대로 된 조종이 불가능하다는 약점도 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등장하는 국가로 공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작 중에서 유일하게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적에 따라 1등시민, 2등시민, 3등시민으로 나뉘어 지는 데 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프카에 대한다는 이유로 레프카에 의해 정치범[* 작 중에서 레프카 본인은 지하거주민들을 역자, 쓰레기라고 부른다.]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하거주민들의 이마에 정치범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사각별 형태의 낙인이 찍혀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대참사 이전의 유산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각변동으로 가라 앉게 될 징조가 보이면서[* 때문에 지하도시의 정치범들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레프카는 답없는 행보를 바꾸지 않는다.] 25화에서 침몰하게 된다. 작 중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옛 시대의 마지막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침몰은 옛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삼각탑]] 문서 참조. 여담으로 시민과 정치범 간의 괴리감은 심한데 시민은 정치범을 마구잡이로 대해 함부로 총질하기도 한다. 결국 나중에 레프카가 쫓겨날때 같이 쫓겨난다.
          라나의 고향으로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전원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참사 이전에는 주민들이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에 종사하지 않았지만 대참사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다만 국가의 형태를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오로와 같이 전원생활에 대해 불만이 있는 항적인 청년들이 독자적으로 무리를 이룬 경우도 있다. 17화에서 하이하버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나를 잡아가려는 데 혈안이 된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20화에서는 점령군으로 왔었던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이 하이하버의 주민이 되어 일을 하며 정착한다. 라오박사의 중력 비행정이 하이하버에 있었는 데 인더스트리아에서 파르코 비행정에 의해 격추된다.
  • 박승임 . . . . 6회 일치
         '''박승임'''(朴承任, [[1517년]] ~ [[1586년]])은 [[조선]] [[조선 명종|명종]], [[선조]] 때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남 박씨|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이자 수제자였다.
         === 생애 초 ===
         ****** 장녀 : 남박씨
         퇴계의 제자였던 그는 임흘(任屹), 권문해(權文海), [[김개국]], [[김륵]], [[이여빈]], 오운(吳澐)·배응경(裵應褧)·김중청(金中淸) 등의 제자를 배출하여 이황학파의 학맥을 이어갔으며, 일부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동인-남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하기도 했다.<ref>그의 문하생들은 대부분 북인 이이첨, 정인홍의 인목대비 폐모론, 영창대군 사사론에 발하여 남인으로 들어갔다.</ref>
         [[분류:조선의 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상북도 출신]][[분류:병사한 사람]][[분류:남 박씨]]
  • 박옥수 . . . . 6회 일치
         박옥수는 지난 45년간 딕욕 선교사를 통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딕욕 선교사는 “박씨에게 안수를 준 적 없으며 목사 제도를 대하는 입장”이라 답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는‘Shield of Faith Mission’ 선교학교에 입학(1962~1964년) - 딕욕, 말론 베이커 등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신학교 졸업, 딕욕(Dick York) 선교사로부터 목사 안수(1971년)라고 게시되어 있다. 하지만 딕욕 측이 운영하는 ‘믿음의 형제들’ 홈페이지에는 박씨에게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자신(박옥수)이 자신에게 안수를 준 것”이라 덧붙였다.
         >제가 박옥수에게 ‘목사’안수를 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웹사이트에도 게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목사’라는 직위는 제가 대의 권면을 했음에도 그 자신이 붙인 것입니다.''' 그의 직위에 대한 신임장은 없으며 그러니까 '''그 자신이 자신에게 안수를 준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교회와 교회의 체계는 그와는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목사에 대한 관점은 그와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 질문에 대한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그 주제는 나중에 언제 더 얘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딕 욕은 2010년 9월 30일 사당 청소년 문화의 집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교회에는 성직제도가 없어야 된다고 그들(故[[유병언]], [[이요한]], [[박옥수]])에게도 가르쳤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6월 2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진○○(박씨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측 변호사는 박씨가 딕욕 선교사에게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박했다.(박씨는 4월 20일 수백억 원의 주식을 사기로 판매했다는 혐의로 전주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현재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다.) 진○○ 측 변호사는 미국의 딕욕 선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딕욕 선교사가 박씨에게 목사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답해왔다며 박씨는 가짜 목사라고 밝혔다. [[http://hdjongkyo.co.kr/news/view.html?section=22&category=1007&no=14622|기사 전문]].
         결국 암치료를 받지 않고 또별만 먹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문제가 되었다. [[http://christian.nocutnews.co.kr/show.asp?idx=1850923|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4777|또 다른 기사.]] 또한 [[한국방송공사|KBS]] 추적 60분 2012년 3월 21일자 방영분에서도 또별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추적 60분 보도 이후 KBS와 신동아에서 론 보도를 냈다. [[http://m.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1450|기사 전문]] [[https://youtu.be/hNhIUwPlWKk|론 보도 영상]] 결국 박옥수는 식품위생법 위으로만 벌금을 받았다고 한다.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52944|기사]]
  • 반지닦이 . . . . 6회 일치
         2011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그린 랜턴 : 지의 선택]]>(이건 한국 개봉 당시 제목이며 원제는 그냥 Green Lantern.)의 오역이 넘치는 팬자막.
         정확하게는 그냥 영화 그린 랜턴의 팬자막으로 지닦이라는 제목이 없었으나 자막중 "모든 랜턴들은 지를 착용했고, 그중 지를 닦는 자도 있었다." 라는 오역 때문에 지닦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원래 자막은 "모든 랜턴들은 지를 착용했고, 그중 가장 빛나는 자도 있었다."
  • 북유럽 신화 . . . . 6회 일치
         [[북유럽]] 일대에서 [[게르만 민족]]을 중심으로 전해진 신화를 뜻한다. 주로 [[스칸디나비아 도]]나 [[독일]] 등 게르만 계열 민족이 활동했던 영역에 전파되었다. 북구신화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북구'는 '북 [[구라파]](=유럽)'의 준말이다. 사실 북유럽에는 게르만 민족 말고도 다른 민족도 살았지만 게르만 계열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체계적인 내용이라 '북유럽 신화'라고 하면 곧 게르만 계열의 신화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일적으로는 가장 체계적으로 남은 [[스칸디나비아 도]] 지역의 [[에다]], [[사가]] 등의 문헌을 바탕으로 신화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 시대에 게르만 민족에 대한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와 함께 언급이 등장하며, 단편적인 기록이나 유럽의 민속에서 신화의 흔적을 찾기도 한다.
          * [[요툰]] : '서리거인'으로 번역된다. 신들과 맞먹는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고 묘사되며, 가끔 사고를 쳐서 신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항하다가 토르한테 묘르닐로 처맞고 골통 터져서 "일격에 헬님 곁으로"(…)가길 일수이며, 라그나로크에서는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죄다 불타죽어버린다. 어떻게 보면 불쌍한 얘들(…).
          * 발할라 : 오딘이 모은 전사 '에인헤야르'들이 가는 곳. 일단 [[천국]] 취급이지만 [[무간지옥]]과 비슷하여 매일매일 싸우다 죽고 강제 부활하여 다음날 다시 싸우다 죽기를 복한다. 대신 일 지옥과는 달리 [[술]]과 [[고기]]가 제공되며 [[발키리]]가 시중을 들어준다는 점에서 100% 나쁜 곳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상인들은 도저히 천국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괴이한 곳이다.
  • 블랙 클로버/104화 . . . . 6회 일치
          * 푸른 들장미 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는 추근대던 버밀튼 남작을 죽음 시킨다.
          * 야미는 강한 여자는 좋아하지만 "가끔은 남한테 의지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를 해방시키는데, 그때 야미에게 하게 된다.
          * 샬롯이 이런 꼴은 다른 단장들에겐 못 보여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소란이 일어난 걸 듣고 [[야미 스케히로]]가 찾아온다. 일전에 드러났다시피 사실 야미에게 해있는 샬롯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쓴다. 야미는 샬롯이 평소에 안 하던 드레스 차림을 한 걸 보고 "짝거리는걸 다 입었다"라며 웃는데 샬롯은 가까스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야미 쪽이야 말로 묘한 의상이라고 지적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냥 훈도시 차림이다.
          * 그때 야미를 찾아다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나타난다. 역시 평소 습관대로 진탕 마시고 헤롱거리는 상태다. 그녀는 야미를 알아보고 갑게 다가오다가, 그 옆에 있는 샬롯과 눈이 마주친다. 여자의 육감 탓일까? 두 여자는 무의식 중에 상대를 연적으로 간주한다. 바네사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져선 안 된다"고 막연히 직감하고 샬롯은 "묘하게 야미한테 친하게 구는 여자"라며 질투한다.
          무슨 운명이었는지, 저주를 푸는 열쇠는 "남자에게 마음을 뺏긴다"였다. 온 마음을 집어삼킬 기세로 뻗어나가던 장미덩쿨이 서서히 바스라들었다. 지금도 샬롯은 하필 저렇게 야만스럽게 열불터지는 남자에게 했는지 알 수 없다.
  • 블랙 클로버/121화 . . . . 6회 일치
          알렉드라가 일갈했다. 바람의 정령 "벨"은 그 말에 발했다. 자신에게 선택받은 것도 유노의 힘. 벨이 그렇게 말하며 저 열받는 녀석을 해치우라고 부추겼지만 유노는 지극히 냉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벨더러 물러나라고 하는데. 그 태도 또한 알렉드라를 자극하고 있었다.
          * 링가드 덕분에 노엘은 무사히 적 크리스탈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할 무렵엔 솔리드가 그녀를 추월해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자신이 온 이상 노엘은 크리스탈에 상처 하나 낼 수 없다 자신하는 솔리드. 거기에 박한 것은 노엘이 아니라, 그녀 어깨에서 돋아난 싸나이다운 면상의 버섯이었다. 버섯은 적보다는 아군인 노엘을 놀래켰다. 버섯은 그 뻔뻔한 면상으로 나불거리며 노엘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이것은 "말하는 버섯군"이란 링가드의 마법이었다. 링가드의 목소리를 전하는 통신기 같은 것이었다. 편리한 마법이지만 기괴한 형상 탓에 노엘은 왜 이딴걸 붙여놨냐고 기겁했다.
          >평범하게 때려눕히면 안 되네! 두 번 다시 항 못하게 해치워 버리게!
          >인간도 동물이니 한 번 자기 위치를 일깨워주면 두 번 다시 항하지 않으니 말이야!
          * 대편에서 싸우고 있는 알렉드라도 자제심이 바닥났다. 정령을 뒤로 물린 유노의 행동에 격분해 어디까지 자신을 모욕할 거냐며 노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자신의 마법에 자부심이 있었고 유노가 정령 마법 없이 그걸 막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웠다.
          여동생은 더이사 사양하지 않았다. 해룡의 포효가 그의 보잘것 없는 물뱀과, 못난 오빠와 적의 크리스탈을 때려눕혔다. 두 번 다시 항하지 못할 정도로.
  • 블랙 클로버/70화 . . . . 6회 일치
          * 바네사의 실 마법과 핀랄의 공간마법, 그리고 아스타의 마법의 콤비네이션으로 절망의 베토를 수세로 몰아간다.
          * 그러나 곧장 격을 받는데 바네사 에노테이커의 신속한 대처로 재빨리 회피한다.
          * 마법의 검이 자가재생을 촉진하는 마나의 흐름을 끊어버린 것이다.
          * 베토는 현재 자신을 쓰러뜨릴 유일한 수단이 아스타의 마법 검이라 본다.
          * 훗날 랜길스는 금색의 여명단의 부단장까지 되지만, 핀랄은 대외적으로 최약의 기사단인 검은 폭우의 운책 노릇을 한다.
          * 아스타가 마법 검으로 "관통"한 최초의 사례. 아스타가 죽인 첫 번째 적이 될지도?
  • 블랙 클로버/78화 . . . . 6회 일치
          * 아스타와 챠미가 발하는데, 이번엔 핀랄이 그들 앞으로 나서며 "나는 무시해도 좋지만 검은 폭우 단원을 무시하지 마라"고 일갈한다.
          * 아스타는 국민을 버리려는 거냐고 발, 부상 중임에도 챠미, 핀랄과 함께 나선다.
          * 후방에 준비된 챠미의 마법에 몸을 날리는 아스타. 그 발력으로 총알처럼 튀어나간다.
          * 여전히 마구잡이 전투법이라고 감탄 한탄 으로 평한다.
          * 코치카메 완결 헌정 컷은 아스타. 검은 폭우가 탁아소냐고 비꼬는 랜길스에서 발하는 중.
  • 블랙 클로버/89화 . . . . 6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89. '''배자와 속죄'''
          * [[마리엘라]]와 [[도미넌트 코드]]는 각기 마녀들을 이끌고 격에 나선다.
          * 젤이 무모하게 달려든 것 같지만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작전이다. 아군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는 쉽게 격하기 어려운 법. 마르스와 라드로스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젤의 예상대로 둘은 상황을 관망하고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혼자서 이 대병력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자신의 려자와 제자에게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 부응하듯 다이아몬드 측이 전열을 재정비하려 할 때, 아래 쪽 숲에서 일제히 마법의 사격이 가해진다.
          * 젤의 제자 [[마리엘라]]가 마녀들을 이끌고 격에 나선 것이다. "기습을 하려면 상대의 3배의 병력을 준비해라", 그녀는 스승 젤의 가르침대로 많은 병력을 모아왔다. 젤의 움직이도 마구잡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숲으로 유인하기 위한 것. 다이아몬드 측에서 대응하려 해도 그들의 진형과 움직임이 너무나 쉽게 간파 당한다.
          마리엘라는 적의 지휘관에게 사실 자신은 다이아몬드 왕국의 암살부대에 있었으며, 지금 이들은 너무 약해 빠졌다고 밝힌다. 마리엘라는 한때 자신의 삶을 위해 남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와서 무엇을 하든 그 죄는 씻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이아몬드의 횡포를 막는 것, 그게 자신의 속죄라고 생각한다. 다이아몬드의 지휘관은 그녀를 배자라 욕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6회 일치
          * 자폭 마법이 작동하는 중에도 샐러맨더의 화염덩어리가 사방에 뿌려진다. 아스타는 마법 검으로 베어내지만 마르스는 격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 공격을 그대로 맞는다. 젤은 마법으로 방어하라고 소리치지만 마르스는 한 번 파나를 죽였던 자신은 방어할 자격도 없다며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아스타가 후련하게 태클을 넣는다.
          젤은 둘 다 자신의 제자니까 마르스가 사형격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도 마르스도 막내인 마르스에게 혼이 났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지금의 마르스라면 드시 파나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노엘 실버]]는 자신의 물마법으로 파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핀랄의 공간 마법도, 바네스의 실 마법도 파나의 근처에는 접근할 수가 없고, 노엘의 물 마법으로 직접 공격을 가하면 발 때문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노엘은 역시 아스타의 마법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 아스타는 절망의 베토 때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실패를 거듭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마르스는 드시 파나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 블루 마블 . . . . 6회 일치
         한국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해병 출신에 뛰어난 과학자다. 연구하다가 실수로 물질을 만들어서 네거티브 존에 빠지게 되었고, 그 안의 네거티브 존 방사선에 의해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 [[슈퍼맨]]과 비슷한 능력에 [[물질|물질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조작할 수 있고, 일적인 상태의 센트리에게 어느정도 대항하는 초음속의 스피드와 93,000톤 가량의 물체를 감당해내는 힘, [[센트리]]를 지구 밖으로 날려보낼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갖춘 초인. 같은 마블 코믹스 캐릭터인 [[하이페리온(마블 코믹스)|히페리온]], 센트리처럼 슈퍼맨과 비슷한 캐릭터.
         강력한 능력을 지녔으나 60년대쯤 히어로로 활동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에게 불려나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기를 종용 당했다[* 흑인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이후 잠정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중단하다 [[피어 잇셀프]]에서 잠시 등장. '[[인피니티(마블 코믹스)|인피니티]]'에서는 뉴욕 한복판에 소환된 [[슈마고라스]]의 일부를 무찌르는데 일조했으며 [[루크 케이지]]의 마이티 [[어벤저스]]에 합류한다고 한다. 물체를 원자 단위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물질을 조작해 체내의 양성자가 양성자로 인해서 분해되는 상태의 [[스펙트럼(마블 코믹스)|스펙트럼]]이라는 여성 히어로를 구하기도 했다.
  • 서상일 . . . . 6회 일치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결국 1954년 이승만의 3선저지를 위해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던 서상일은 [[박기출]], [[장택상]] 등과 함께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대하는 [[조병옥]], [[김준연]], [[장면]], [[박순천]] 등에게 항의하고[[호헌동지회]]를 탈퇴했다.그런데 그후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조봉암이 원래 서상일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기로 했던 두 사람간의 밀약을 깨고 조봉암 자신이 대통령후보로 나서려하자 이때문에 심기가 상한 서상일은 조봉암과 사실상 결별의 수순에 들어가 후일자신을 당 대표로 한 민주혁신당을 창당하였다
         5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론에 떠밀려 제일야당 민주당과 진보당은 후보단일화협상을 갖게 되었는데 협상장에서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은 민주당 [[대통령]] [[신익희]]에게 양보의사를 밝히는대신 [[부통령]] 후보는 중요하지 않으니 민주당측이 양보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ref name="서158">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8 페이지</ref> 일단 [[신익희]]는 이 제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응을 보였으나 [[민주당 (1955년)|민주당]] 으로서는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왜냐하면 당시 신구파연합체였던 민주당은 당내경선에서 구파의 영수 신익희와 신파의 영수 장면을 나란히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던 것인데 신익희가 신파를 설득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익희ᆞ조봉암 회동이 이루어진지 6일만에 호남유세에 나섰던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안에서 뇌출혈로 급사함으로써 사실상 후보단일화는 엉뚱하게 조봉암으로 되어버렸지만 민주당은 당차원에서 조봉암을 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민주당 최고위원 김준연은 조봉암의 사상적 문제점을 들어 이승만 지지를 공개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때 서상일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놓고 [[조봉암]]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좋은 결론을 심사숙고하려 했다. [[조봉암]], 서상일 등은 원래는 선거가 종전에 들어갈 때 정부통령 후보를 모두 민주당측에 양보하는 것에 합의했으나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조봉암이 사실상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자 선거말미에 가서 부통령 후보 박기출만을 사퇴시켰던것이다. <ref name="서158"/> 대선이후 서상일은 겉으로는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결성 운동을 추진했으나 이미 대선후보 결정당시 [[조봉암]]과 감정이 상했기 때문인지 [[진보당]] 결성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사실상 1인정당인 민주혁신당을 창당했으나 이 당이 사실상 힘을 쓰지 못하자 서상일 또한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지게 되어 정계은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1962년]]에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간장염]]으로 사망했다.
         [[분류:1885년 태어남]][[분류:1962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공주의자]][[분류:조선의 사회 운동가]]
  • 소진은 . . . . 6회 일치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경시 부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와 경찰 부문에 수록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8|연도=2009
         [[분류:189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진주 소씨]]
  • 송진현 . . . . 6회 일치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항소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0월 24일에 [[인천역]]에서 다른 승객이 놓고 간 35000원 상당의 공구함을 들고가다 붙잡힌 피고인에 대해 "지하철이 종착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점유권이 지하철공사에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징역10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f> 1998년 1월 10일에 일음식점 영업 허가없이 통조림, 캔류 등 안주류를 파는 24시간 편의방을 운영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1월 11일자</ref> 1999년 1월 10일에 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줘 공문서 부정행사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정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운전면허증을신분증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9년 1월 11일</ref> 4월 24일에 서울대 캠퍼스에서 집단 농성을 주도한 한국통신 서울본부 위원장에 대해 "서울대 총장이 한국통신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학내 출입을 금지했음에도 무단 진입했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4월 26일자</ref> 5월 17일에 [[한총련]] 범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위과 건조물 침입죄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1년이 선고된 노래패 '희망새에 대해 단장 조모씨(31세)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라고 하더라도 공연의 목적으로 참석했고 구호를 외치거나 연설을 하는 등 집회,시위를 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집시법]]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5월 18일자</ref> 10월 7일에 폭력배를 동원해 채무 해결사 노릇을 했던 [[홍수환]]에 대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부탁으로 후배를 연결해준 점은 인정되지만 채권을 회수하기로 후배와 공모한 일은 그 뒤에 이뤄져 피고인이 개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10월 8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식극의 소마/210화 . . . . 6회 일치
          * 네네는 잇시키의 도발적인 선언에 발하지만 곧 소마의 이해할 수 없는 조리를 보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 세뇌된 채인 [[카와시마 우라라]]. 역자팀에 대해서는 저주에 가까운 악담만 늘어놓던 그녀가 [[잇시카 사토시]]가 솜씨발휘를 하자 대번에 달라진다. 잇시키는 장어를 고정함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배가르기를 마친다. 카와시마는 그것을 "일섬"이란 한 마디로 표현하면서 괜히 십걸의 7석이었던게 아니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세뇌모드로 돌아가 "결국 센트럴의 적은 되지 못할 것이다"라며 패배할 때의 표정이 기대된다고 말을 바꾼다.
          * 잇시키의 솜씨에 놀란건 카와시마만이 아니다. 적 십걸들 조차도 그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으며 에이잔 같은 경우는 저 실력만 잘 활용하면 돈을 무한대로 벌 수 있는데 왜 센트럴에 역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탄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다. [[코바야시 린도]]는 [[시라츠 쥬리오]]에게 지지말고 실력을 보여주라고 응원하는데, 정작 시라츠는 잇시키의 본실력에 감동해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다. 이 위험분자는 잇시키의 기술이 아름답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자기 조리까지 잊어버린다. 어쨌든 린도는 쥬리오가 기죽지 않고 의욕이 생긴거 같다고 잘됐다고 생각한다.
          * 쿄쿠세이 기숙사 멤버들도 경악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아라토 히사코]] 같은 경우 그저 알몸 에이프런의 변태라고 생각했던 그가 놀라운 솜씨를 선 보이자 믿을 수가 없다는 응이다. 그녀는 잇시키가 배가르기를 저런 정밀도와 속도로 처리하는데 경악한다. 배가르기는 장어의 배를 따고 내장을 제거하는, 보통 생선 손질과 기본적으로 같은 작업이다. 그러나 장어는 갈비뼈가 없어서 정확히 배를 따기 어렵고 싱싱한 장어일 수록 힘이 좋아서 도마 위에서 요동치기 마련. 보통 생선처럼 손쉽게 손질하는게 불가능한 생선이다.
          그러는 동안 네네는 다음 조리 단계로 넘어간다. 그녀가 준비하는 재료는 벚꽃 새우와 튀김옷. 그렇다면 벚꽃 새우 카키아게를 올린 카키아게 소바(튀김소바)가 유력하다. 네네는 튀김 준비를 해놓고 죽 썰기에 들어간다. 역시 이 또한 정밀기계를 방불케하는 뛰어난 솜씨다. 에리나는 단련된 장인은 면을 0.1mm로 썰 수 있는데 네네는 당연히 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욕적이기까지 한 선언에 네네가 얼굴을 붉힐 정도로 발한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6회 일치
          * 연대식극의 진행되면서 바깥의 날씨도 더 춥고 가혹하게 변했다. 실내에 있던 역자들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차가워졌다.
          *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유키히라 소마]]가 내놓은 소바가 [[키노쿠니 네네]]의 소바를 넘을 수 있을지 기대 우려 으로 지켜보고 있다. [[나키리 에리나]]는 단지 소마에게 부탁한다고 되뇌인다.
          * 그리고 시식. 사회자 [[카와시마 우라라]]는 "보나마나 풍미고 뭐고 사라졌을 것"이라 예측한다. 그런데 심사의원들의 응은 달랐다. 하나같이 진한 메밀의 풍미에 감탄한 얼굴. [[이스트와르]]는 소바의 풍미가 잘 살아있다고 발언한다. 네네는 뜻밖의 결론이 나오자 경악한다. 이어서 [[샤름]]이 "구운 부분이 바삭바삭해서 소바의 식감을 배가한다"고 발언하고 이스트와르는 "오리고기의 기름이 소바의 감칠맛을 강화시킨다"고 짚어낸다. [[안]]은 소바 자체의 풍미가 잘 전해진다고 총평. 소마는 좋았어, 라고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가 기대한 응이 나오고 있다.
          설명해놓고 보면 간단하지만, 매우 대담하고 실험적인 발상이다. 역자팀은 환호하고 센트럴측 학생들은 풀이 죽는다. 십걸이지만 [[코바야시 린도]]는 소마의 선전에 솔직하게 감탄한다.
  • 식극의 소마/224화 . . . . 6회 일치
          * 이렇게 해서 [[츠카사 에이시]]는 실질 쿠가와 미마사카라는 두 명의 적과 싸우는 셈. 쿠가는 이렇게 해서라도 드시 츠카사를 떨구겠다 선언한다.
          아무래도 [[요시노 유키]] 등 후배들은 사이토의 특기 분야에 대해선 몰랐던 것 같았다. 하필이면 그런 상대랑 싸우는데 "참치"같은 주제를 뽑다니, 미마사카도 어지간히 운이 없다. 역자들이 그렇게 성토 아닌 성토를 이어가고 있을 때, 사이토 또한 미마사카의 불운을 불쌍히 여겼다.
          * 소마는 허둥대는 역자 동료들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미마사카의 얼굴을 보라면서 "뭔가 저지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마사카는 강적을 눈앞에 두고도 대단히 여유로운 웃음을 띄고 있다.
          * 침울하기 이를 데 없던 역자 팀의 분위기가 바뀐다. 미마사카의 새로운 필살기는 기존의 트레이스를 아득히 넘어선 기술이다.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타쿠미 알디니]] 조차 "믿음직하다"고 말할 정도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저 감탄. 소마는 이 상황을 츠카사가 쿠가와 미마사카라는 두 명의 요리사와 싸우는 거라고 요약한다.
          * 센트럴편인 관중들은 쿠가가 비겁하게 나왔다고 욕한다. 그는 츠카사와 일 대 일로 붙고 싶던게 아니냐는 것.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쿠가는 마이웨이. 오히려 자신은 어른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자존심은 세우지 않는다고 응수한다. 자신의 바람이 어떻든, 지금은 역자 팀을 대표해 싸우고 있는 입장. 그의 뒤에는 후배들이,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내 목적은... 여기서 드시 당신을 떨어뜨리는 거니까, 츠카씨.
  • 식극의 소마/232화 . . . . 6회 일치
          * [[에이잔 에츠야]]는 여기서도 역자팀에게 시비를 걸지만 [[타쿠미 알디니]]가 유연하게 대응하고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협조를 요청해 물러난다.
          * 한편 장외의 역자들은 [[유키히라 소마]]가 맡은 "버터요리"에 대해서 우려하는데 [[나키리 에리나]]는 특훈 기간 중에 전문가급 지식을 쌓았을 테니 안심이라 하지만, 사실 같이 특훈을 들은 동료들은 수업 중 잠이나 자던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역자팀과 같은 시점에 재료 창고에 왔는데 역시나 시비를 트고 다닌다. 타도코로 메구리를 걸리적거린다고 위협하고 타쿠미에게 노려본다고 틱틱거리다가 타쿠미가 "위대한 선배에게 배우는 거라 힘이 들어가서 어쩔 수 없다"고 능글거리자 "눈이 그렇지가 않다"며 십걸을 존경하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갈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모가 쇼핑 도우미 노릇 좀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투덜거리면서 "그 인형을 카트에 넣으면 카트도 밀고 다닐 수 있다"고 냉담하게 굴지만 모모가 "인형이 아니라 붓치"라고 압박하자 결국 고분고분해진다. 이후 모모의 셔틀 노릇을 하느라 얌전히 끌려다닌다.
          한동안 비중이 늘어난 것의 동인지 이케아스러운 창고의 카트를 소개해주는 거나 에이잔에게 어물쩡거리지 말라고 갈굼 당하는 걸로 등장 끝.
          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의아했는데 뜬금없이 센자에몬을 방문하고 있었다. 시합을 보지 않아도 되겠냐고 떠보는 발언을 하다가 "그들을 신뢰해서 필요없다"는 답변을 듣고는 그걸 비웃는다. 그리고 지금 역자팀의 주축인 토오츠키 92기를 센자에몬이 직접 모은 "옥의 세대"라고 폭로하는데.
          시합이 이루어지는 동안 일절 관여도 관전도 하지 않고 있다. 근처 여관에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자미가 방문한다. 아자미가 떠보는 말에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그들을 신뢰하고 있어서 관전할 필요도 없다"고 대답하는데 아자미가 그걸 비웃으며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역자들의 주축인 토오츠키 92기생들이 사실 센자에몬이 직접 모은 "옥의 세대"라는 것을.
  • 신지애 . . . . 6회 일치
         2017년 전기에는 아직 JLPGA 승전보가 없었다. 꾸준한 경기력으로 상금 순위 TOP 10급의 경기력을 보여 주고 있으나 본인의 목표 중 하나인 JLPGA 상금왕은 올해도 쉽지 않을 전망.
         3라운드까지 전년도 KLPGA 전관왕이자 새로운 대세인 [[이정은6]]에게 밀렸으나 마지막 날 2언더를 기록하며 전적으로 타수가 줄어든 경쟁자들을 눌렀다.
         장타자는 아니지만 매우 정교한 샷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 작은 키 때문에, 하체를 사용한 풀 샷을 날리지만 장타를 날리기는 힘들다. 대신에 송곳같은 드라이버 샷으로 정확도를 높인다. 페어웨이 안착률이 100%을 기록하는 대회가 나올 정도. [[미셸 위]] 등의 지르는 타입의 프로와는 정대의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슬로우 플레이어라는 평가가 많다. 이 때문에 "신지애의 골프 실력은 인정하지만 게임은 재미 없어 응원하지 않는다"라는 평가도 꽤 있는 편. 하지만 이 부분은 오랜 세월 본인 만의 루틴으로 다져진 것이고 결정적으로 플레잉 타임에 있어 룰 위은 하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에 비난과 별개로 자신의 경기력을 위해서라도 리듬은 꾸준히 지켜야 할 것이다.
         2009 LPGA 투어 Evian Masters[* 현재는 LPGA의 5번째 메이저대회가 되었으나 당시에는 일 대회였음]
          * 예능에도 몇 번 출연했으며 <무릎팍 도사>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진솔하게 털어놓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오늘을 즐겨라>에도 출연하여 [[정준호]], [[신현준(배우)|신현준]], [[정형돈]] 등과 같이 골프를 치기도. 또한 MBC 스페셜 다큐멘터리에서도 출연했다. [[1대 100]] 229회 후전 방송에서는 1인으로 나와 8단계에서 최후의 3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여기서 5000만원과 적립금 835만원 모두 안드로메다로......[* 만약 우승했다면 역대 최연소 1인 우승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당시 25세, 최연소 기록은 28세)]
  • 안기효 . . . . 6회 일치
         2003년 데뷔한 올드 프로게이머로 판짜기 능력과 전략성이 탁월해 2005년경에는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와 함께 '신 4대 프로토스'의 물망에 오르내릴 정도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단점도 뚜렷했는데 매크로/마이크로 콘트롤과 멀티태스킹 능력, APM 등 게이머로서의 기본기가 전적으로 모두 부족했다. 그와 함께 투나 - 팬택의 주축 멤버였던 [[심소명]]과도 비슷한 특성. 어쨌든 이것이 그의 성장을 가로막게 되어 결론적으로는 그를 제외한 프로토스 신예 3인이 신 3대 토스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그의 전략마저 뒤떨어지기 시작한 2008년 이후로는 프로리그 16연패 등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경험했다.
         중부 소수질럿, 드라군, 리버 올인이라는 전성기 시절 자주 보여줬다고 [[강민]]과 [[박용욱]]이 얘기해주는 깜짝 전략으로 [[김성대]]를 훅가게 할 줄 알았으나... OME급 컨트롤로 커세어와 리버를 헌납. 자신이 훅 갔다. ~~'''리버 : "아 ㅅㅂ 김씨 아니고 찹씨잖아 그런데 왜?!"'''~~
         중까지 위기를 잘 넘기는 듯 했으나, 역시나 부족한 멀티태스킹 능력과 판단미스, 발전투 등 미숙한 점을 드러내면서 순식간에 게임이 말리고 결국 패배하면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 상대는 [[피디팝 MSL]] 우승자 [[신동원]]. 안기효는 빌드에서 유리함을 가져가기 위해 앞마당을 가져갔지만 초 저글링 난입을 당해 전세가 기울어 패배하고 말았다. 비록 1승에 그쳤지만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해 주었다.
         2018년 7월 트위치에서 리액션으로 인기가 대박나면서 트위치 방송 비율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트위치 유저들이 갑작스럽게 늘어나자 7월 17일 방송에서 트위치 유저들과 소통하던 중 영상 도네를 시도해보았고, 2017년도에 유행했던 자신의 클립을 보며 재밌다, 신세계를 발견했다며 긍정적인 응을 보였으며, 영상 도네에 적극적으로 리액션해주며 첫 날부터 수 많은 클립을 만들어냈다. 영상 도네 두 번째 날인 7월 18일에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트게더 핫클립 순위를 싹쓸이하는 등 응이 뜨겁다. 7월 20일에는 트위치 단독 송출을 하였고, 앞으로 플랫폼에 대해 고민이 많은거 같다.
  • 안내상 . . . . 6회 일치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소외계층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사회 혁명"을 꿈꾸며 사회운동에 나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8년 2월 26일 광주직할시 (현재 전라북도 고창군) [[미국]] 문화원 내 도서관 진열장에 사제 시한폭탄을 설치한 혐의가 드러나 총포 도검 화약류 단속법 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 [[국가보안법]] 위혐의로 구속됐다. 8개월 동안 수감된 후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 2005년 《[[강력3]]》 ... 박실장 역
         * 2005년 [[KBS2]] 청소년드라마 《[[올림2]]》 ... 학생주임 최성범 역
         * 2006년 [[KBS2]] 청소년드라마 《[[올림3]]》 ... 담임선생님 최성범 역
  • 안석환 . . . . 6회 일치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순정에 하다]]》 ... 마태석 역
         * 1996년 《[[꽃잎 (영화)|꽃잎]]》 ... 장 역
         * 2000년 《[[싸이렌 (2000년 영화)|싸이렌]]》 ... 양 장 역
         * 2001년 《[[천사몽]]》 ... 김욱 장 역
         * 2002년 《[[공공의 적]]》 ... 강동경찰서 감식과 장 역
         * 1997년 [[한국연극협회]] 97상기 최고인기배우
  • 양키 . . . . 6회 일치
         일본에도 불량소년 소녀를 가리키는 은어는 많이 있지만 양키는 1980년대 후에서 1990년대 전에서 나타난 말이다.
         간사이에서는 1980년대 전기에 이미 '양키'라고 부르는 사례가 나타났는데, 당시 오사카 남구(南区)(현재의 츄오구(中央区))에는 아메리카 마을(アメリカ村)이라는 지역이 있어서, 이 지역에서 화려한 알로하 셔츠나 폭넓은 바지들을 즐겨 입는 불량소년이 나타나 이들이 ‘양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무렵에 같은 남구(南区)의 유로파 마을(ヨーロッパ村)이라 불리는 곳에서는 약간 다른 패션을 가진 「유로피(ヨーロピィ)」라는 집단이 나타났지만 양키 족의 융성으로 동화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북부 미국인을 뜻하는 양키(Yankee)와의 관계는 애매하지만, 당시 미국인=화려하다 는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1983년 7월 21일 발매된 카몬 타츠오(嘉門達夫)의 양키 오빠의 노래(ヤンキーの兄ちゃんのうた)는 ‘나쁜 남자’를 뜻하고 있었다. 이 노래를 전후하여 전국에 양키라는 단어가 일적으로 퍼지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1980년대 당시의 양키 패션은 특이한 패션 센스가 유행하였다. 양키 남자는 앞머리를 크게 부풀리고 파마를 한 [[리젠트 헤어]]를 하고, 학생복을 입지만 '도캉'이나 '본탄'이라 부르는 폭이 넓게 개조한 바지를 입는다. 화려한 셔츠나 샌들을 입기도 했다. 양키 여자는 1970년대 ‘스케’이라 불리던 시대의 연장으로서, 교복 사복을 불문하고 꽉 죄이는 롱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 양키 고 홈(Yankee Go Home) : 미국인에게 집에 가라고 하는 말. 주로 [[미]] 시위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6회 일치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게임 중 하나. 자신의 말을 대각선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상대 말을 뛰어넘어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상대 말을 제거한 말은 근처 말을 한번 더 뛰어넘어 제거할 수 있다는 것에 주의. 면 상대 말을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것밖에 못 한다. 상대의 말을 모두 제거하면 승리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잃어버린 연감 페이지. 지도에서 종잇장으로 표시된다. 페이지는 보스턴과 뉴욕 양쪽에 널려있는데 페이지에 접근하면 플레이어의 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이게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잡지 못하고 사라진 페이지는 얼마 후에 리젠되니 그때 다시 도전하자. 연감은 네장씩 세트로 존재한다. 한 세트를 모두 모으면 해당하는 프랭클린의 발명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사냥감은 플레이어가 접근하면 도망가는 종류와 달려드는 종류로 두 가지가 있다. 달려드는 종류는 [[QTE]]로 격을 먹일 수 있다.
         === 일인의 백과사전 ===
          * 아퀼라의 속도는 세가지로 조절할 수 있다. 정지, Half Sail, Full Sail. 정지는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다. Half Sail은 돛을 쯤 편 상태로, 속도는 비교적 느리지만 조타에 용이하다. Full Sail은 돛을 모두 편 상태로,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조타가 어렵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 메인 스토리상 드시 영입된다.
  • 영주시 . . . . 6회 일치
          * 사람이 줄어든 탓인지 밤에 별로 할 게 없다. 늦은 저녁이 되면 시내의 상가들은 문을 다 닫아버리기 때문. --그래도 17시만 되도 가게 닫는 호주, 뉴질랜드 같은 곳보단 그나마 양-- 심지어 PC방마저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어 분명 금요일 밤인데도 정말 사람들이 어디갔나 싶을 정도로 늦은 저녁의 영주 시내는 정말 조용하다. 그래도 육거리 경북전문대 근처가 나름 대학가라고 밤에는 정말 활발해진다. 기차역에서 죽 이어지는 나름 신도시(80, 90년대 건설한 지역이다)이고, 바로 앞에 현대아파트가 있어 인구가 많은 탓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가흥동 택지 개발이 되면서 거기도 사람들이 몰리는 추세. 하지만 학생들은 육거리 위주고 여행객이나 직장인인 경우엔 택지 쪽을 더 찾는 것으로 보인다.
          * [[경상북도]]에서는 [[경주시]] 다음으로 [[양]]이 많았던 곳으로, ~~[[안동시]]는?~~ 전국에서는 경주, 목천[* 현재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및 그 주변.] 다음의 3번째 순위였다.
          * 작은 지방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까지만 해도 [[플라모델]] 매니아가 많았다. 영주시 거주 플라모델 동호인들 자체적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잡지 [[취미가]]의 정기적인 취재가 있기도 했다. ~~한국의 [[시즈오카]]~~ 하지만 2010년대로 접어든 지금은 [[플래툰]]을 갖다 놓는 서점도 없다.
          * [[선비]] 명칭 사용 때문에 --양-- [[안동시]]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안동시와 영주시 간의 [[지역감정]]이 꽤 있는 편이다.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474|이런]][[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59|저런]]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61|내용]][[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21|의]] 시사만평이 지역언론에 실리는 것을 보면[* 이 시사만평의 작가는 영주 모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2015년 기준 같은 재단의 모 여고 교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제는 선비 명칭 뿐 아니라 전적으로 안동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듯. ~~[[우리의 주적은 간부|우리의 주적은 안동]]~~
          * [[PC방]] 가격이 비싼 편이다. 대부분 1시간에 1,200원이고 5,000원에 4시간 30분, 10,000원에 9시간 30분이다. 과거 영주시에 사람이 많을 때는 PC방이 상당히 많이 있었으며 1,000원 미만의 피씨방 또한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들어 많은 PC방이 문을 닫게 되었고, 남은 PC방들 중 일부는 24시간 운영을 위해 가격을 평균보다 비싸게 받게 된다. 일례로 꽃동산 회전교차로쪽 PC방을 가보면 가격이 저렴한 대신 새벽시간 때가 되면 문을 닫으며 1,200원 이상을 받는 곳은 24시간 영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기에는 더 싼 곳이 있지만 가는데 교통비가 더 든다는 게 함정~~ ~~그런데 풍기도 별 다르지 않은 게 동양대, 경북항공고 주변 PC방은 회원가입해도 5천원 5시간이다~~ 여담으로 시내의 PC방 2곳은 업주가 부부라 가보면 모니터도 똑같고 의자, 탁자, 본체 등도 같다고 한다.
  • 울진군 . . . . 6회 일치
         외딴 [[섬]]이나 [[도]] 지형이 아니면서도 [[철도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과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 구]](정확히는 금강송면 서부지역에 200m가량 영동선철도가 지나긴 한다. 하지만, 정차역은 없다.) 에 모두 이름을 올린 얼마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과거에는 [[승부역]]이 울진군에 속해 있었다. [[양원역(영동선)|양원역]]이 군 경계에서 가깝기는 하나, 교통 오지의 역이므로 그 마을에서만 이용하는 실정, 그나마 울진군 이용객이 있는 역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있는 [[분천역]]이기는 하다. [[분천역]] 서쪽으로는 [[영동선]]보다 [[36번 국도]]가 좀더 나은 관계로 울진군의 철도 이용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의외로 거리는 서울-영주-봉화-울진이 서울-동해-삼척-울진보다 짧다. 전자는 300km, 후자는 340km. 하지만 [[36번 국도]]의 상태는 굉장히 나쁘다. 면 [[7번 국도]]는 거의 준 고속도로급이기 때문에 [[강릉시]]에서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으며 예전에 3시간 가까이 걸리던 [[포항시]]도 역시 버스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무정차에 한해서지만....완행노선은 여전히 3시간 정도 걸린다
         백암[[온천]], 덕구[[온천]], 성류[[동굴|굴]], 불영계곡, [[불영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이 가운데 불영계곡을 지나가는 불영계곡로는 매우 구불거려 이곳을 처음 지나가는 초행자는 자칫하면 토할수도 있다.--[[흠좀무]]-- 아예 이곳을 지나가는 [[시외버스]]에는 [[M6724|비닐봉지를 달아놨을 정도다.]]그러나 대로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계속되는 왕복2차선짜리 곡선도로을 지나가는 스릴또한 있어서 나름 [[버스 동호인]]한테 유명한 코스이며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언어학적으로도 삼척과 울진은 [[동남 방언]]과 [[강원도 방언]]의 전이(transition) 지역으로 여겨지는데, (대로 삼척은 경상도 방언스러운 면이 있는 영동 방언 지역이다.) 울진과 삼척 남부까지는 [[동남 방언]]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김중권 후보가 이런 테크를 타게 된데에는 3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의 낙선이 크게 작용했는데, 당시 지역 발전을 위해 유치한 원전에 대하여 울진 지지층 상당수가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울진의 주변지역에 비해 상대적 번영을 생각하면 역설인 셈이다. 그래도 밑에서 보이듯 이탈한 표는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탄핵 역풍이나 다른 지역의 새누리 지지로 끝내 당선은 늘 실패했다.
         다만 다른 성향을 보인다는 것도 경북 내에서는 그렇다는 것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준을 생각하면 안된다. 단적인 예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79.99%를 득표했다. 다만 이게 경상북도의 군 지역에서는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옆동네엔 영덕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87.11%를 득표했다. 읍면별로 뜯어보면 득표율 격차가 군치고는 꽤 나는 편인데 남쪽 끝인 후포면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90.9%(...)라는 어마어마한 득표율을 기록한 면 강원도랑 인접해 있으며 원전이 있는 북면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30.68%를 득표하였다. 이건 강원도의 영향이 아니라, 원전으로 인해 젊은 층이 많아서 이다. 그 이외 지역들은 울진읍을 제외하고는 박근혜 후보가 전 지역에서 8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그나마 울진읍도 76% 이상 득표하였고.
  • 원피스/857화 . . . . 6회 일치
          나미는 독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일단은 잊겠다"며 한 발 물러나며 드시 돌아와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죽어가는 것 같았던 상디가 "그건 프로포즈냐"며 거의 원상태로돌아온다. 루피는 마침 자신도 [[빈스모크 레이쥬]]에게 해독을 받은 일을 언급하고 일행은 빈스모크 일가를 꼭 구하기로 결정한다.
          루피 조차도 그런 이야기는 오싹하다고 하는데, 그 오싹한 부분은 조직 운영에도 그대로 영돼있다. 벳지는 영역이나 지위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항상 다른 조직의 "보스의 목"만을 노렸으며 항쟁때에도 보스의 목만을 노리는 기괴한 취미를 보였다. 그렇게 상대를 무너뜨리고 철저하게 금품을 빼앗고 이후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패권경쟁이나 뒷배경이 되어주던 권력자들이 당황하는걸 보고 즐기는 것이었다.
          루피는 질색하는 것 같았지만 곧 생각을 정리해 "그도 그렇다"며 징베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징베는 그럴 줄 알았다며 껄껄 웃는데, 사실 사전에 나머지 일행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고 일행은 4대2로 이 동맹에 대했다. 상디 조차도 제정신이냐고 발, 징베와 나미, 루피를 제외한 일행은 이 해적동맹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부하들은 정말로 밀집모자 측이 동맹에 응할지 의하지만 벳지는 징베를 신용해서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밀집모자측과 마찬가지로 빅맘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 또다른 적을 만들기도 꺼려진다. 다만 정말로 이 동맹이 성사될지 어떨지는 지금부터 루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고, 만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없애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 윤주상 . . . . 6회 일치
         * [[2005년]] 《[[6월의 일기]]》 ... 양 장 역
         * [[2000년]] [[SBS]] 일요드라마 《[[메디컬센터]]》 ... 일외과 과장 최국현 역
         * [[2007년]] [[MBC]] 미니시리즈 《[[에어시티]]》 ... 엄 장 역
         * [[2012년]] [[TV조선]] 미니시리즈 《[[한도 (드라마)|한도]]》 ... 석주환 역
         *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기행]]》 (2019년) 내레이션
  • 은혼/609화 . . . . 6회 일치
          * 여전히 사카타 긴토키의 신경을 긁어대며 "세계의 절 정도는 맡아줄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는 투로 말한다.
          * 그는 세상의 을 맡기겠다며, 절 쯤은 불완전한 은이라도 어떻게든 될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 히라가 사부로는 사람 돕는 기계를 만드는게 좋다던 아버지가 살인병기를 만드는 것에 발했다.
         겐카이포는 EMP 종류로 보이는데 문명이 몇 배나 진보한 해방군 측이 EMP에 무방비했다는건 의외지만, 대로 겐가이 영감이 그만큼 고출력 고성능의 EMP를 완성한 걸로 볼 수도 있다. 이래봬도 겐가이 영감은 지구측에선 손꼽히는 기술공학자인데 그런 사람이 평생을 투자해 만들었고 스스로 "천인의 기술을 흡수해 진화시켰다"고 자부할 만한 물건이니 그럴 만도 하다.
         결국 다음 에피소드인 [[은혼/610화]]에선 단순한 EMP가 아니라 나노머신 기의 기계말살 병기임이 밝혀졌다.
  • 은혼/611화 . . . . 6회 일치
          * 그녀의 짐작대로였고 겐카이는 타마과 킨토키의 시신을 수습하며 드시 고쳐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오토세 여사 또한 그들은 드시 돌아올 거라며 전 우주의 기계들과 한판 하고 온 거니 잠시 쉬게 해주자고 말한다.
          * 해방군이 무력화되며 활로가 뚫린다.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선봉으로 치고 나가며 해방군을 무찌른다. 진선조와 오니와슈도 기세를 올리며 거침없이 돌격한다. 겐카이포 덕에 기계가 내장된 총기까지 전부 무력화되었으며 재정비가 되지 않은 해방군을 상대로 쾌진격이 가능했다. 진선조 대원들은 겐카이 영감이 정말로 세상의 절을 구했다고 칭송한다. 하지만 사루토비 아야메는 타마가 희생했다는걸 알기 때문에 좋아하지만은 못하고 핫토리 젠조는 모처럼 죽을 각오를 했는데 묘한 기대를 갖게한다고 툴툴댄다.
          * 핫토리는 과연 그들이 열세였던게 과학병기 때문이었냐고 문하며 "숫적으로도 열세"라는 점을 냉정히 지적한다. 그 말대로 해결사 일행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해방군의 보병부대를 발견하고 아연해한다.
         한대 타마에게 했던 야마자키 사가루는 타마의 안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데다 은근슬쩍 통상폼으로 돌아와 있어 역시 야마자키는 안 된다는걸 느끼게 해준다.
  • 은혼/623화 . . . . 6회 일치
          >그런 바보들을 복하는 당신들을 보다가 알게 된 일이 있어.
          * 지로쵸는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타츠고로를 강물에 처박는다. 지로쵸는 타츠고로에게, 이제 이 마을의 얼굴인 주제에 한 여자를 악당에게 넘기느냐며 빈정거린다. 하지만 타츠고로는 그가 한 여자를 위해 손을 씻을 인물이라 본다. 지로쵸는 자기는 한 적도 없고 오토세랑은 악연일 뿐이다 말하는데 타츠고로는 그 악연도 끝까지 가면 부부라고 받아친다.
          타츠고로는 자신은 혼자 멋대로 사는데 너무 익숙하지만 지로쵸는 가족을 꾸리는데 이미 익숙한 오야붕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지로쵸는 피차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지 모르는 얼간이들이지만, 눈 앞에 있는 놈이야말로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거라 믿는다고 자조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겐 더 빠른 길이 있다.
          >여주인이 한 남자를 날려버린 남자도... 들어가게 해주겠나?
  • 은혼/628화 . . . . 6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는 범용 오니형 결전병기 헤도로곤을 이끌고 당당히 한 세력을 차지한다.
          * 그러나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가 이끄는 오니와슈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애초 그들의 목적은 정전 협정이 채결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구태여 치고나가서 적들을 몰살시킬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적들은 어찌됐든 대군이며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미지수다. 젠조는 거기에 확인되지 않은 용병 부대가 하나 더 있는 것도 신경 쓰인다며 신중론을 펼친다.
          * [[야규 빈보쿠사이]]의 야규진음류 일가는 그 의견에 동감한다. 빈보쿠사이는 이 승리가 기적적인 것이었다는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야규진음류는 확실히 가장 큰 출혈을 본 파벌이라 할 수 있다. [[니시노 츠카무]]가 한 팔을 잃고 빈사, 후계자인 [[야규 큐베]]도 [[오우가이]]에게 당해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빈보쿠사이는 기적같은 승리 뒤에는 그만한 대가도 있는 거라 말하며 이 이상을 바라면 드시 잃는 것도 더 나올 거라고 경고한다.
          * 그러고 보니 안 보이던 [[사카타 긴토키]]는 해결사를 졸업하고 범용 오니형 결전병기 '''헤도로곤'''의 파일럿으로 돌아왔다.
          다른 파벌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진선조는 이럭저럭 아직 이르다는 쪽으로 모이고 오니와슈와 백화 쪽은 "가고 싶다면 냅둬라" 정도로, 사천왕도 "에바는 젊은 사람이 알아서"라는 쪽으로 결론. 그외에는 "에바가 아니라 헤바 아니었나" 라던가 "헤바가 아니라 노바 아니었나"하는 둥 여러가지 난색을 표명하다가 결국 하나로 압축된다.
          >그것이 바로 범용 오니형 결전병기 헤도로곤이야.
  • 은혼/643화 . . . . 6회 일치
          * [[카와카미 사이]]와 [[다케치 헨페이타]]의 희생을 딛고 [[다카스기 신스케]]와 [[키지마 마타코]]는 마침내 중추 제어실에 침투한다.
          * 거기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역시 신스케를 쫓는 남자가 있었다. [[카와카미 사이]]는 생사를 넘은 책략으로 추격대의 발을 묶었다. 적들은 불사신 같은 저력에 경이를 표했다. 그러나 사이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감췄던 최후의 수가 드러나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치있는 남자를 쫓고 있다고 믿었다.
          시스템은 중앙에 있었고 거기까지 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신스케가 그 길로 달리는 동안, 외곽에서 그걸 노리고 포격을 가했다. 신스케는 몰라도 발 밑을 무너뜨리면 어쩌지 못할 테니까. 그는 무너지는 잔해들과 적들의 시체 속와 함께 떨어졌다. 과연 신스케도 하늘을 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게 곧 그를 멈추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신스케는 적이 가지고 있던 화기로 손을 뻗었다. 바주카였다. 그는 근처에 떨어지고 있는 잔해에 사격했고 동을 받아서 중추 시스템으로 접근했다.
          * 이제 목표에 다 왔다. 아니, 목표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신스케는 몸을 돌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동을 받은 검을 중추 시스템에 꽂아 넣는 동안, 자신에게 던졌던 물음의 답을 떠올렸다. 사실 그건 처음부터 자신 안에 있었다.
  • 은혼/654화 . . . . 6회 일치
          아네는 사다하루가 지키고 싶은건 해결사 일행, 진짜 가족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네는 다시는 사다하루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드시 가족에게 돌려보내주겠다"는 약속까지 맺는다. 그러니 끝까지 함께 해달라는 말을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어째 사다하루가 심하게 작아졌다?
          * 아네는 줄어든 동생의 두뇌를 탓하다가 한 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미처 정리할 틈도 없이 살기를 느낀다. 위쪽. 아네가 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사다하루와 모네를 밀어냈다. 하늘로부터 장대비처럼 석장이 내린다. 모네와 사다하루는 무사했지만, 아네는 그렇지 못했다. 석장이 아네의 옆구리를 찢어놨다. 아네는 뒤늦게 실수를 깨닫는다. 용맥을 진정시키는데 정신이 팔려 진정한 적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츠로(은혼)|우츠로]]가 시생인 부대를 이끌고 자매를 처리하러 왔던 것이다. 건물 위로부터 시생인 부대가 쏟아지는 순간, 아네는 모네의 부축으로 일어나며 "뛰어"라고 소리쳤다.
          하타는 제독의, 형님의 제안을 듣고 할 말을 잊었다. 그는 확인한 것처럼 문했다.
          자작은 자신도 모르겠다며 대답을 아꼈다. 단지 그가 알 수 있는 건, 누구 손을 빌리지 않아도 어차피 선내의 인원들은 죽을 거라는 것. 지구와 함께. 대로 하타가 자신들을 죽이면, 지구는 살 거라는 것.
          우츠로가 양이 사천왕도 방치하고 있는 마당에 친히 처치하러 나와서 주역급 주목도를 받았다. 열심히 뛰어댕긴 덕에 에도를 날려먹을 것 같았던 용맥의 폭주는 진정. 하지만 본류에 해당하는 용혈 그 자체의 폭주는 아직도 남아 있다. 아네는 한때 사다하루를 버리고 일족의 사명도 팽개쳤던 관계로 죄책감이 심한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다하루를 드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사다하루와 코마코가 검력을 너무 소진해 쪼그라든걸 발견했고 덮친격으로 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까지 습격하면서 치명사을 입는다. 일단 모네가 데리고 열심히 도망쳤는데, 결국 용혈은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돌입하고 앞으로 코마코와 사다하루가 계속 검력을 쓰면 아예 존재가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처지에 처한다.
          그런데 해방군 모선이 지구로 향하는 걸 보고 돌입했던 일행이 전리품을 들고 튄다고 오해해서 접근했다고 우주의 운명을 건 선택지를 받고 만다. 그의 형인 자작 제독이 모선을 도저히 멈출 수 없고 차라리 자기들이 탄 채로 우주공간에서 날려버리는게 낫다고 판단, 그 날리는 역할을 하타황태자에게 맡긴 것이다. 하타 황태자는 "나더러 사람을 살리라는 거냐 죽이라는 거냐"고 문했지만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힘든 선택이 눈 앞에 놓였다.
  • 의성군 . . . . 6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군. 2018년 6월 기준 인구는 약 5만 3천여명이다. 북쪽에 안동시, 동쪽에 청송군과 영천시, 남쪽에 군위군, 서쪽에 구미시와 상주시가 위치해있다. 의성군의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며, 낙동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인 위천이 의성 군내를 관통하며, 경작지가 넓고 평야지대가 비교적 많다. 때문에 농업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1970년대 중에만 하더라도 인구가 20만을 넘을 정도로 제법 큰 군이었으나 이후 농촌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리즈 시절]]보다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철도 교통은 [[안동역]] 외의 역이 모두 통과역이 된 안동과는 달리 [[의성역]]과 [[탑리역]](금성면)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다만 [[중앙선]]의 이설[* [[안동역]] ~ [[영천역]] 구간은 복선노 단선 전철로 건설한다. 단선이긴 하지만 나중에 별도의 토목공사 없이 선로만 옆에 하나 더 깔고 [[가공전차선]]도 추가로 올리면 그대로 복선이 되는 구조다.] 과정에서 [[탑리역]]은 폐역될 예정이다.
         국내 컬링계는 현재 [[경기도]]와 [[경상북도]]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기도(의정부)는 엘리트 체육, 경북(의성)은 생활 체육 기이라는 점도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의 실업팀은 남녀에 믹스더블까지 있는 면, 경기도의 실업팀은 여자팀만 있지만.]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 선수들도 마땅히 연습할 시설이 없어 '''의성에서 훈련한 뒤에 의성에서 경기를 치를 정도'''였다. 2018년 [[의정부컬링훈련장]]이 완공됐고 그에 앞서 [[진천선수촌]] 컬링장도 완공됐지만[* 다만 진천은 국가대표팀의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이미 의성의 [[경북컬링훈련원]]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등 비교적 컬링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대표팀이 찾아와 훈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컬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의성에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2423&cid=51938&categoryId=54649|의성 마늘배 전국 컬링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컬링 보급에 힘쓰고 있다.
         ||<|2> [[정창화(정치인)|정창화]]/3선[br][[민주정의당]] ||<|2> 김동권/초선[br][[민주자유당]] || --[[김화남]]/초선--[* 97.12.26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 [br] --자유민주연합-- ||<|2> 정창화/5선 [br] 한나라당 ||<|2> [[김재원(정치인)|김재원]]/초선 [br] 한나라당 ||<|2> [[정해걸]]/초선 [br] 무소속 ||<|2> 김재원/재선 [br] 새누리당 || --[[김종태(1949)|김종태]]/재선--[* 17.2.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br]--새누리당-- ||
  • 이경실 . . . . 6회 일치
         [[이성미]], [[박미선]], [[조영남]] 등과 가깝다. 거센 성격으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꺼리거나 두려워한다. 무서운 [[군기장]]으로 유명한데다 선배인 이성미조차도 예전에는 이경실을 피했다가 [[이홍렬]]의 중재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역시 군기장인데다 선배인 [[이경규]]조차도 유독 그녀에겐 한 수 접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이경실보다 연상에 [[선배]]들이다. [[박명수]] 역시 그녀를 두려워한다. 박명수는 자신보다 선배인 사람들 앞에서는 특유의 사나운 캐릭터를 못 살려서 얼어붙는다. [[http://youtu.be/GNautvauUcA?t=4m52s|요즘은 호통 컨셉 믿고 떨면서도 들이댈 때도 있다]]. 예전에 이경실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명수는 웬만해서는 이경실과 방송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세바퀴]]에서 상황극도 해봤지만, 박명수가 시작부터 굳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동갑이지만 5년 후배인 [[지석진]]도 이경실을 굉장히 어려워 한다.[* 사실상 남자들은 [[군대]] 문제 때문에라도 동갑내기 여자들보다 [[기수]]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김구라]]조차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거의 최초로 기를 못 편 게스트다.[* 다만, 일상생활까지 포함하면 이순재의 큰아들에게도 독설하다 맞을 뻔했다고 한다.]
         참고로, [[신인]] 시절 [[홍기훈]]이 꽤나 유명한 [[터프가이#s-1|터프가이]]로 [[대전광역시|대전]]에서 알아주는 [[주먹]]에 군기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아현|전 여친]]도 팼나?-- 게다가 [[나이]]도 많고 성깔도 더러워서 웬만한 선배들조차도 쉽게 터치를 못 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그런 홍기훈조차도 한방에 [[군기]]를 잡아버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 이경실이다. 또 하나는 군기장은 아니지만 [[이재포]]. 이재포도 [[유도(스포츠)|유도]] 전공자답게 주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경실 역시 개그계에서는 알아주는 군기장이다. 방송에서 김구라의 [[턱]]을 최초로 잡은 [[연예인]]이기도 하니...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의 말을 끊고 진행을 몰아붙이는 김구라가 짜증이 났던지 가까이 와보라고 한 다음 턱을 잡고 흔들었다. 이후부터 김구라를 능욕할 때 김구라의 턱을 잡고 흔들거나 소원을 비는 김구라의 턱하르방 컨셉이 여기서 생겨났다.
         그렇지만 이런 이경실도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군기장계의 히든보스이자 원로배우인 [[이순재]]와 중견배우들인 [[김갑수]], [[김병기]] 등이다.
  • 이경희 (1880년) . . . . 6회 일치
         그뒤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23년]] [[조선총독부]] 폭파를 목적으로 [[김시현]](金始顯) 등과 함께 총기와 폭탄, [[신채호]]의 격문과 [[조선총독부]] 관료들에게 보낼 투항권고문 사본 등을 국내로 입, 격문 수백장을 받아 배포하였고,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미수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 후 [[신간회]](新幹會)의 조직에 참여했고, [[신간회]] 경북지부, 대구지부 등을 조직했으며, [[밀양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소년기에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895년]](고종 32) 대구 공산의 소학교에 입학하고, [[1901년]](광무 4) 공산 소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부]]로 상경, [[경성부]] [[기호중학교]](畿湖中學校)에 입학했다. [[1905년]] 한성 기호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그해 [[11월 17일]]의 [[을사 보호 조약]] 체결에 대하였으나 조약이 강제로 통과되자, 관직의 꿈을 접고 교육계에 몸담았다. 그는 자신의 아호를 지오라 하였는데 이는 나라 잃은 나는 못난 이라는 뜻이었다.
         [[1909년]](융희 3) [[윤치호]],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결성하고, [[청년학우회]] 경성부지회의 회원이 되었다. [[1910년]] [[5월 13일]] 독립운동가 [[구찬회]]가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구찬회와 같은 고향 출신이던 그는 한국통감부와 일본의 눈을 피해 [[구찬회]]의 시신을 [[미역]] 속에 숨겨서 경성에서 대구 무태로 운하여 [[구찬회]]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전달하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1910년]](융희 4) [[10월]]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청년학우회 한성지회의 일원으로 [[이동녕]](李東寧), [[윤치호]], [[안창호]], [[윤치소]], [[이회영]](李會榮), [[윤기섭]](尹琦燮), [[이승훈]], [[김좌진]](金佐鎭),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고 회원이 되었다. 이후 [[신민회]]의 비밀회의에 참여, 독립군 기지창건을 목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동참했고, [[105인 사건]]을 피해 바로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여 무관학교(훗날의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장사와 노동에 종사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돈을 모았다.
         [[1923년]] [[의열단]] 단원으로 비밀거사를 준비하여 5월의거를 계획, 국내에 잠입하였다. [[1923년]] [[김원봉]] 의 지령아래 [[김지섭]], [[김시현]](金時顯), 유시태(柳時泰), 홍종우(洪鍾佑), 황옥(黃鈺) 등과 모의하여 [[중국]]과 [[만주]]로부터 무역 목적으로 [[안둥현]]에서 [[쌀가마]]에 숨겨서 국내로 입해온 폭탄 36개, 권총 13정, 폭탄장치용시계 6개와 뇌관 여러정, 수류탄 10발,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서]](革命宣言書)의 인쇄 사본 및 [[조선총독부]] 관공리에 대한 투항권고 격문 사본 2,000매 등을 입, [[1923년]] [[3월 15일]] 이를 국내에 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 이광수(배우) . . . . 6회 일치
         초창기 때는 해괴한 바가지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모습이였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절과 런닝맨 초창기에는 외모가 눈에 띄지도 않고 런닝맨 멤버들에게도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름 잘생긴 편이라서, 20대 초 화보가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런닝맨 중부 이후로는 수염도 밀고 머리도 다듬다 보니 꽤 훈남화됐다. 다만 망가지기도 많이 망가질 뿐더러, 멤버들이 친구 송중기와 자꾸 비교하다보니 못난이 캐릭터가 지속되는 현상이 나온다. [[2007년]]에 데뷔했지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KT의 'SHOW' CF(공대 아름이 편)였고 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에 캐스팅,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다. 모기춤도 이때 생겼다. 당시 수염 때문인지 [[노안]]으로 보였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 살 많은 [[누나]]인 [[유인나]]보다 '''[[오빠]]'''로 나온다.] 하지만 [[수염]]을 제거했고 수염이 없는 현재는 [[동안]]까진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젊어 보인다. 허나 여전히 노안 캐릭터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룡]]이나 [[에브라]], [[김상중]] 등 런닝맨에 출연할 당시 40대 같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수염을 밀 때였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https://youtu.be/zSErcEAvu8E|춘]] 춤으로 당시에는 화제성이 전혀 없었는데 워낙 시간이 짧기도 하고 임팩트도 없어서 당시에는 아무도 몰라봤다. 거기다가 [[놀러와]]에서 [[줄리엔 강]]과 같이 모기춤을 추었으나 MC인 [[유재석]]도 이 춤이 뭔지 잘 모른 눈치였고 응도 엄청 썰렁했었다.
          *[[tvN]] [[현장토크쇼 TAXI]] - 게스트 출연([[지성(배우)|지성]]과 동 출연)
          *[[SBS]] [[두시탈출 컬투쇼]]- 지성,주지훈과 동 출연
          물론 제작진이 '꽃뱀'을 대단한 수위라 판단하지 않고 육성을 건드리지 않은 것이, 해당 욕설이 농담으로 해소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이 논란은 '꽃뱀'이란 표현이 우리 사회에서 현재 어느 정도 수위의 욕설인가에 대한[* 예를들어 방송에서 육성은 그대로 나가는 '등신'이나 '돌아이'같은 수준인지, 아니면 아예 소음검열을 해버리는 [[씨발]] [[지랄]]같은 수준의 고강도 욕설인지] 인식이 먼저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고, 런닝맨 제작진들이 농담으로 해소될 수준이라 판단하고 육성을 내보낸 면, [[트페미|페미니스트들]]은 결코 입에 담아선 안 될 고강도 욕설이라 판단했다는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볼 수 있다.
  • 이명주 (축구선수) . . . . 6회 일치
         [[2012년]] [[4월 8일]] [[성남 FC|성남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시즌 초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후로도 [[6월 27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전과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에서 1도움씩을 기록했고 팀의 [[FA컵 2012]] 우승에도 일조했지만 7월 1일 이후로 공격 포인트가 없어 "출장 수로만 신인왕 후보"이라는 비아냥을 받다가 10월 28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 38분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했고 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 MVP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 11월 1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전 1골, 11월 25일 [[경남 FC|경남]]전 1골 1도움, 11월 29일 [[FC 서울|서울]]전 2도움, 12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 1골을 터뜨리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5골 6도움 11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이명주는 [[12월 3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광주 FC]]의 [[이한샘]], [[전남 드래곤즈]]의 [[박선용]]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K리그 영플레이어상|신인 선수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대상) ‘신인왕’ 이명주 “포항의 축구스타일, 나랑 잘 맞았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45236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2-12-03}} }}</ref>
         [[2014년]] [[6월 9일]], 포항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주의 [[알아인 FC|알아인]] 이적을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총 95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총액 95억원' 이명주 알아인 이적, K리그 이적사 다시 썼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406100100083460005726&servicedate=20140609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4-06-9}} }}</ref> 7월 '알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9월 30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 (리야드)|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CL) ‘이명주 선제골’ 불구 알아인 결승 좌절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1108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4-10-1}} }}</ref> 한편 정규리그에서는 12월에 열린 10, 11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13라운드 [[샤르자 스포츠 클럽|샤르자]]와의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15년 AFC 아시안컵|아시안컵]] 이후 복귀한 14라운드 [[알샤바브 (두바이)|알샤바브]]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알아인 FC|알아인]]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2014-15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홍명보]] 감독 하의 대표팀에서도 초 꾸준히 승선했으나 [[2014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탈락하였다. [[2014년]] [[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0-1로 뒤지고 있던 전 33분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감아차기를 시도하여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어 후 17분 상대 진영에서 수비의 공을 가로채 곧바로 크로스를 올려 이동국의 쐐기골에 기여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이명주, 우리가 바라던 공격형 MF 모습 보였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1020 |출판사=베스트일레븐 |date={{날짜한글화|2014-09-05}} }}</ref>
  • 이상백 (1904년) . . . . 6회 일치
         사학자로도 활동하였고 각종 사회단체와 문교부 고시출제위원, 중앙공무원교육원 명예교수 등을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 중의 농구선수였으며 각종 올림픽 대회의 선수단 대표와 대표단장을 역임하였다. 학회 활동으로는 [[진단학회]], [[연경학회]], [[대한민국 학술원]]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생애 초 ===
         상백 형제의 할아버지 이동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구]]에 신식 학교인 우현서루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남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교사를 초빙, 수학, 역사, 국어, 영어, 일본어 등 신식 학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이동진의 뒤를 이어 큰아버지 이일우가 우현학교의 일을 맡아보았다.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했는데, [[2000년]]대 초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학 학장 3명, 교수 10명, 의사 30명, 장군 2명, 언론·출판분야 11명을 배출하였다.<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또한 사촌 [[이상악]]은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육당 [[최남선]]과 사돈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 중에는 '박작대기' [[박중양]] 집안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하였다.<ref name="daemyonh"/>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에 의해 양육되었다.
         ==== 일제 강점기 후 ====
         광복 직후에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활동하였다. 건준의 해산 이후 별다른 정치적 입장표명은 하지 않았고 [[1945년]] [[9월]] [[조선 체육 동지회]]를 결성하여 회장에 취임, 본격적인 체육단체 조직 및 체육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해 [[12월]] [[조선 체육회]] 상무이사가 되었다. 그 뒤 IOC 가입을 목표로 활동하였으며, 탁 시위에 휘말리지 않고 IOC 가입 문제를 논의하였다. [[1946년]] 초 IOC 가입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고 부위원장에 위촉되었다.
         === 생애 후 ===
  • 이예린 (1974년) . . . . 6회 일치
         == 음 목록 ==
         === 정규 음 ===
         * <1997.03.00> - 3rd Album《[[if (이예린의 음)|if]]》
         * <1998.03.00> - 4th Album《[[Stay (이예린의 음)|Stay]]》
         === 비정규 음 ===
         === 싱글 음 ===
  • 이종배(국회의원) . . . . 6회 일치
         민주당 [[우건도]] 시장의 시장직 상실 판결로 인해 치뤄진 [[2011년 하기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영입되어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당시 충주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이시종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이후로 후임 시장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하는 헬게이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시종 사퇴 이후 재보궐에서 당선된 [[한창희]]가 겨우 2년(...), 그나마 후임 김호복이 재보궐로 당선되었지만 다음 선거에서 패하여 낙선. 그리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우건도가 당선되었으나 1년여만에 또 당선무효.(...)
         당시 한나라당이 충주에서 낼 수 있는 강력한 카드인 [[윤진식]]은 [[2010년 재보궐선거#s-2|2010년 상기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상태였고, 김호복은 2010년 선거의 패배로 경쟁력이 의심되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충주 출신 고위관료 테크를 탄 이종배를 적극적으로 영입한 것. 이후 재선 국회의원 출신의 [[민주당(2008년)|민주당]] [[박상규(정치인)|박상규]] 후보, 그리고 이종배 영입에 발하여 미래연합 후보로 출마한 김호복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당선, 민선 5기 충주시장이 되었다.
         임기가 다 끝나가던 2014년 3월 31일, 시장직을 사퇴한다. 이는 지역구 국회의원 윤진식이 충북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그 자리를 대신하여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2014년 상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 옛 한나라당 출신 시장인 [[새정치민주연합]] 한창희 후보에게 승리하고 당선되었다. 정작 이종배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물려준 윤진식은 도지사 선거에서 석패했다.[* 전국에서 제일 박빙이어서. 다음날 새벽4시까지 개표가 진행됐다.].(...) 이후 [[친박]]계에 속하였다. [[정우택]]의 최측근이며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 2011 || [[2011년 하기 재보궐선거]][br](민선 5기 충북 충주시장)[* 전임자 우건도 당선무효] || '''[[한나라당]]''' || '''34,899 (50.31%)''' || '''당선 (1위)''' || '''초선'''[* 2014.3.31 사퇴(국회의원 선거 출마)] ||
         || 2014 || [[2014년 상기 재보궐선거]][br](19대 국회 충북 충주시)[* 전임자 윤진식 충청북도지사 선거 출마로 사퇴] || '''[[새누리당]]''' || '''35,699 (64.08%)''' || '''당선 (1위)''' || '''초선''' ||
  • 일곱개의 대죄/176화 . . . . 6회 일치
          * 제리코는 영혼을 뽑는 술법을 쓸 거라고 생각해 을 찾는데, 이때 은 엘레인과 포옹하고 있다.
          * 바로 그때 나타난 . 십계도 그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한다.
          * 십계는 뒤늦게 경악하는데 격의 여지도 주지 않고 "폭스헌트"로 메라스큐라의 숨통을 끊어 버린다.
          * 멜리오다스는 "왕바보자식"이라며 비난 아닌 비난을 하고, 은 "바보 끼리 마음이 맞는다"고 응수한다.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6회 일치
          *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는 진짜 3천년 전으로 옮겨진게 아니라 의식만 옮겨진것. [[헬브람]]이 킹을 깨워보려 하지만 응이 없다.
          * 디안느 또한 [[드롤]]의 몸에 빠르게 적응한다. 킹이 만든 틈을 놓치지 않고 "기가 픽"이란 기술로 발을 묶는다. 둘은 힘을 합쳐 끝장을 보려 하는데 카르마디오스도 호락호락 당하지 않고 "이블 브레스"를 내뿜어 격한다.
          * 그것을 가로 막으며 나타난 [[멜리오다스]]. 카르마디오스는 그의 등장에 동요하는데 멜리오다스는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과 함게 풀카운터로 이블 브레스를 날려보낸다. 때를 맞춰 킹이 영창 10형태 "에메랄드 옥토"로, 디안느가 "기가 크래쉬"로 협공을 펼쳐 카르마디오스를 쓰러뜨린다. 카르마디오스는 쓰러지면서도 어째서 멜리오다스가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그를 공격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그는 비록 지금은 쓰러지지만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드시 동포들을..."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데.
          * 십계를 아주 손쉽게 처리한 셈인데 현세에서 그 십계들 때문에 숨어있던 킹과 디안느는 믿기지가 않아 흥분한다. 면 멜리오다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단 격퇴했다"고 할 뿐이다. 킹은 이럴 때가 아니라 다른 병력도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뒤돌아 보니 하늘을 가득 메울 것 같았던 마신족의 군세가 사라져 있다. 그 자리엔 엘리자베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날고 있을 뿐인데. 그녀는 어떻게 된거냐는 물음에 "돌려보냈다"고 답한다. 킹과 디안느는 방금 전까지 마신족들이 날뛰던 걸 봤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 싸움이 끝나자 인간 생존자가 하나둘 나타난다. 그 중에 "로우"라는 젊은이가 다가와 감사를 표한다. 어딘지 현세의 [[(일곱 개의 대죄)|]]을 닮은 젊은이다. 그는 일행을 "스티그마"(빛의 성흔)가 아니냐고 묻는다. 물론 이 시대가 처음인 디안느와 킹은 알지 못하는 이름이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6회 일치
          * 하지만 킹은 이 사이에 그로키시니아의 여동생 [[게라이드]]를 방치하게 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숲은 인간들에게 맡겨달라며 로우가 나선다. 로우는 구해준 은혜를 갚겠다고 하는데, 그의 모습이 [[(일곱 개의 대죄)|]]을 너무 닮아서, 킹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과 달리 좋은 녀석"이라 말하며 게라이드와 숲을 꼭 지켜달라고 하는데.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말하자 몬스피드는 차분하게 자신들의 용건을 말한다. 근래에 마신족의 수만 가량이 차례로 사라졌는데 이후에 이 숲에서 마신족 특유의, 그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마력이 발신되고 있다. 그들은 사라진 동포들이 여기에 포로로 잡혀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듣고 짚이는 데가 있지만 일단은 뤼드셀이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으니 돌아가 달라고 요청한다. 사대천사 뤼드셀의 이름은 십계들도 알고 있다. 데리엘은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냐고 박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증거는 없지만 믿어달라고 사정하며 "이 싸움을 끝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데리엘이 현대에서 엘리자베스를 발견하고 보인 응이 설명이 된다. 성전 당시 엘리자베스를 알고 있었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6회 일치
          * 요정왕의 숲에서 눈을 뜬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오랜만에 재회한 [[오슬로]]가 갑게 얼굴을 핥는다. 그 바람에 일어난 할리퀸은 아주 행복한 꿈을 꾸었다며 "[[디안느]]가 나에게 키스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데, 마침 당사자가 옆에 있었다.
          >다음 생애에는 드시 너를 지킬게.
          * 한편 왕국에 있던 일곱 개의 대죄, [[멜리오다스]], [[(일곱 개의 대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 [[고서]], [[에스카노르]]는 한 자리에 모여있다. 그 장소는 과거 일곱 개의 대죄가 성기사장 [[자라스트로]]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았던 고성의 꼭데기였다. 이들을 불러모은 장본인은 멀린.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가 본 새로운 예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한낮의 달이 짝이고
          >우리를 왕국의 역자로 만든 그 성의 정상에
  • 임은정(법조인) . . . . 6회 일치
         위의 일기 내용은 영화 ‘[[도가니(영화)|도가니]]’가 관객에게 충격을 주며 돌풍을 일으키던 2011년 10월 뒤늦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큰 향을 일으켰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 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 몸으로 민주주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 위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 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는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2년 12월 28일,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죄로 1962년 유죄선고를 받은 [[윤길중]][* [[윤길중]]은 죽산 [[조봉암]]과 가까운 사람으로,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오랜 세월 옥살이를 한 정치인이다.] 진보당 간사장에 대한 재심 결심공판에서도 무죄를 구형했다.[* 무죄 구형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물론 법원도 당일 무죄를 선고했다.
         역시나 대검 감찰본부는 2013년 2월 직무상 의무 위, 품위 손상 등으로 법무부에 임 검사의 정직을 청구했고, 같은 달 법무부는 그에게 정직 4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임은정 검사는 이에 대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2월 21일 징계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법무부에서는 항소하였으나, 2014년 11월 6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법무부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법무부는 상고했고 대법원은 2년 10개월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22245|2017년 10월 31일에 선고할 것이라고 한다.]] 대법원은 결국 2017년 10월 31일 상고를 기각하여 임은정 검사가 승소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판결 이유는, 무죄구형이나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린 행위는 징계 대상이 될 수 없고, 근무시간 위만 징계사유가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징계의 정도가 과중하여 위법하다는 취지이다([[http://www.law.go.kr/precInfoP.do?mode=0&precSeq=186092|대법원 2017. 10. 31 선고 2014두45734 판결]]).
  • 장범준 . . . . 6회 일치
         {{참고|버스커 버스커|설명=버스커 버스커로 발매한 음에 대해서는}}
         === 정규 음 ===
         === 참여 음 ===
         ! 아티스트 !! 음명 !! 발매일
         == 음 외 활동 ==
         * [[2019년]]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 고정출연 ([[송지수]]와 동출연)
  • 전혜빈 . . . . 6회 일치
         안타깝게도 그룹 LUV 자체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체했고, 이후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전혜빈만 솔로 앨범을 내게 되었다. 왕성한 예능 활동을 하며 다이어트 운동 비디오 출시 및 프리 싱글곡 'Love Somebody'를 동시 발표하는 등 쉴틈없이 달려오다 2005년, 섹시하고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중무장했던 정규 1집 타이틀곡 '2AM'을 선보이며 호평[* 물론 안티도 있었던 면, 당시 솔로 여가수 중 단연 돋보이는 퍼포먼스로 특히 춤선이 예쁘다는 응으로 뜨거웠다. 아직까지 이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전혜빈의 끼와 퍼포먼스를 그리워하기도.]에 가까운 중박 정도를 거뒀다. 사실 본인도 밝혔듯이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가수로 데뷔한 케이스이니, 딱히 가창력이나 음악성에 대해 말할 게 없는 전형적인 '예능형 댄스 여가수' 정도로 소비되었다.
         명절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정글의 법칙 W]]에서 [[김병만]]을 연상케 하는 뛰어난 생존 스킬을 보여줘 좋은 응을 었었고, 이를 발판으로 오리지널인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마다가스카르]]편에 출연했다. 여기서 [[김병만]]을 보좌하는 여전사로 맹활약해 기존 2인자였던 리키김의 위치를 위협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줬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에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는 여성 게스트들은 전부 전혜빈과 비교당할 정도.
         정글의 법칙에서 보여준 호감가는 모습으로 여러 드라마에 캐스팅되며 2000년대 후 긴 암흑기를 보내던 전혜빈에게 '''제2의 전성기'''가 열린 셈. 실제로 2013년에는 [[KBS 2TV]]에서 방영하는 미니시리즈 [[직장의 신]]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 중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인 [[금빛나]]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는 형님]] 30회의 게스트에 출연하였다. 춤은 여전히 잘 추는 편이었고, 그와 대로 조곤조곤한 말투로 아재들을 감동시키는 코너도 진행했다. 특히 연애편지나 강심장 등 신인시절 자신을 잘 챙겨준 [[강호동]]에게 고마운 마음에 세족까지 해 줬다. 면 [[민경훈]]에게는 [[유준상]]의 아내 [[홍은희]]의 지인이었던 과거 썸녀 이야기 폭로로 녹화장 자진 퇴장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희철에게 '요즘 [[여장]]하고 춤춘다며!?!' + [[홍석천|석천오빠]] 말이 맞았어! 등의 독한 발언으로 그 희철마저 작살내는 활약을 보여줬다.
  • 절대가련 칠드런/452화 . . . . 6회 일치
          * 마기, 모미지, 요우는 효부의 자청해서 죽으려는 행동이나 타인과 거리를 두는 행동에 대해 발한다.
          * 효부는 여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잡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는데 발한 마기가 옆방에서 처들어온다.
          * 모미지도 여왕을 만나는 것 뿐이라면 굳이 잡힐 필요가 있냐고 문하는데 효부는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편이 낫다고 말한다.
          * 모미지는 발하는 마기를 진정시키며 "소령은 가까운 시일 안에 죽을 생각이냐"고 묻는다.
          * 마기는 또 발하는데
          * 마기는 발심으로 효부가 계속 꼬맹이로 있더라도 자신이 그보다 성장해서 "어른이 되지 못한 망령" 쯤은 짊어져주겠다고 다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6회 일치
          * 현재 그녀가 생각하는 미래는, 이대로 에스퍼에 대한 적대나 탄압이 강화된 결과 발한 에스퍼들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이 지금의 세상을 파괴하는 것.
          효부는 사적으로 이마의 흉터를 누르며 당혹해한다. 그의 동요에 미나모토는 냉정을 찾으라고 말한다. [[후지우라 요우]]와 [[아카시 카오루]]도 효부의 상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효부는 평정을 되찾는다.
          * 카오루가 나서서 블랙팬텀의 음모라는걸 안다며 하지만 어째서 후지코를 비롯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묻는다. 후지코는 블랙팬텀의 세뇌는 본심을 거스르게 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동료"가 되면 알 거라며 오히려 칠드런 일행도 함께 세뇌 당하자고 제안한다.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가 발한다. [[쿠모이 유리]]는 힙노를 전개하며 본심이었다면 후지코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며 "원래 자신"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후지코는 "본래의 자식"이란게 뭐냐는 식으로 문하고 미나모토가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그녀는 국민의 의지를 영해 조직을 재편한 거라며 초능력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에스퍼에게 관용적인 지휘관을 경질한다, 이것이 모두의 바람대로가 아니냐고 묻는다. 지금의 그녀에겐 소수 에스퍼의 안녕보다는 사회 전체의 평화가 중요한 문제다. 만약 그녀가 이대로 블랙 팬텀이나 "보통 사람들"같은 조직을 분쇄하면 그걸로 끝날까? 인간은 배타적인 생물이다. 설사 그들이 사라져도 또다른 조직이 나타나 에스퍼를 배척할 것이다. 교육이나 홍보로 그걸 극복할 수 없고 그런데 연연하는건 시간낭비다. 그럼 차라리 그들이 원하는 대로 둬버리면, 대로 에스퍼도 "원하는 대로" 해버릴 명분이 생긴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면 결국 이기는 건 에스퍼. 세상은 한 번 망하겠지만 에스퍼의 주도로 재건될 것이다.
  • 절연금 . . . . 6회 일치
         일적으로 테기레킨은 ‘위자료(慰謝料)’로 번역된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자료라고 번역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테기레를 ‘절연’으로 번역하면서 ‘절연금(絶緣金)’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위자료는 법률적에서 정의된 손해배상의 일종으며, 민사상의 불법행위, 정신적 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하는 것이다. 이에 하여 절연금은 인간 관계의 청산에 따라서 임의로 지급하는 금전을 뜻한다. 따라서 위자료를 절연금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강제적인 지불 의무의 유무이다. 위자료는 상대방이 청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지불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면, 절연금은 지불의무가 없으므로 강제력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임의로 손해보상 요구에 부응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이 때, 합의가 서면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같은 사안으로 절연금 청구를 복하는 일이 없도록, 합의 내용을 각서나 서약서 등의 문서로 남겨놓는 것이 추천된다.
         코토크 -테기레(手切れ)
         코토크 - 테기레킨(手切れ金)
  • 정명훈 (지휘자) . . . . 6회 일치
         [[서울]]<ref>{{뉴스 인용|제목 = 운명처럼 다가왔던 베토벤 '운명' 들고 태어난 부산방문 설레|url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509.22023204805 |출판사 = 국제신문 |날짜 = 2013-05-08 |확인날짜 = 2013-05-09}}</ref>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찍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를 배운 지 3년만인 일곱 살 때인 [[1960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피플Q 정명훈의삶&음악] 정명훈은 누구?|url=http://news.donga.com/3//20100120/25520037/1|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0-01-20}}</ref> [[1961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킹 군 (워싱턴주)|킹 군]]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 워싱턴 대학가에서도 한식당을 경영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63110|출판사=mk뉴스|날짜=2009-12-25}}</ref> 정명훈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의 식당에서 부엌 일을 도왔고 새벽 신문 배달과 잔디 깎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신문을 돌리고서 나중에 구독료를 받으러 다니는 '수금'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北 악단장도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최고 명기) 쓴대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3/2012041300179.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2-04-13}}</ref> 14세에 첫 개인 리사이틀을 가진 정명훈은 연주 도중 곡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복해서 연주한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ref>유동철, 《아들아 너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북로그컴퍼니, 2009, p.94, {{ISBN|978-89-962617-3-5}}</ref> 그의 선생이었던 제이콥슨은 정명훈에게 "네가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ref>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두 누나([[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고,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유명 성악가들의 리사이틀이나 독창곡 녹음에서 피아노 주자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들들인 정선과 정민도 각각 재즈 기타리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 홀로 [[북한]]으로 건너가서, 북한 국립 교향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을 [[지휘]]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정명훈, 평양에서 북한 교향악단 지휘|url = http://www.ytn.co.kr/_ln/0101_201109141856110294|출판사 = YTN |날짜 = 2011-09-04 |확인날짜 = 2013-05-10}}</ref>, [[북한]]의 음악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합동 관현악단의 연주회 개최를 제안 하는 등, 음악면에서 남북 융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라디오 프랑스]]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이끌고 자신이 [[음악 감독]]을 맡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합동 연주회를 실현하였다.
         * 1995년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승리상 중 최고의 지휘자상과 최고의 음상, 프랑스 최고 오페라 연출상
  • 정승화(육군) . . . . 6회 일치
         '''[[10.26 사건|파란만장한]] [[12.12 군사란|현대사]]에 휘말려 [[이등병]]으로 강제 강등 및 예편 당했던 비운의 [[육군참모총장]]'''.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의 [[12.12 군사란]] 때 신군부측에 납치당하고 만다. [[10.26 사건]] 문서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대령]]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대통령이 연회가 있으면서도 정승화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궁정동으로 불러냈다.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정 차장과 저녁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의 치밀한 계략인지, 순간적인 기지인지, 본능적인 직감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 피살 현장에서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김재규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다만 뭔가 수상쩍다는 건 느꼈는지 차 안에서 김재규가 "목이 마를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라." 하면서 준 사탕을 바로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사탕 대신 껌을 준다.]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통령이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고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시도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사실은 정승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훗날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현장에서 막지 못한 죄인이니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인데 뻔뻔하게도(?) 자리를 보전하길래 의로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이에 대해 정승화는 청문회 등에서 평소 차지철의 행보와, 당시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이 차지철이라고 오판해서 수경사 병력을 장악해 차지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고 자기 변호하였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후 기소되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 않고 온갖 고문을 동한 수사를 받고, 군사재판의 판결에 의해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자그마치 17계급이나 강등당하는 굴욕적인 처분을 받으며 [[불명예 전역]](강제 예편)해야 했다. 한평생 뼛속까지 군인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처분이자 수치였으며, 그간 받은 장교 급여분도 이병으로 동일 기간을 복무할 시 받을 [[화폐|돈]]을 제외하고 전부 몰수당하고 군인[[연금]] 수혜 권리도 박탈되어 경제적인 위기도 겪었다. 수감기간 중 [[한미연합사|한미연합]][[사령관]] [[존 위컴]] [[장군]]이 [[생일]][[케이크]]와 축하카드를 보내 준 것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결국 정승화는 노태우가 당선되자 조용히 정치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이어 전두환 정부에서 강등 조치된 장교들의 계급 환원 처리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예비역 장군들의 계급 복권 대상에 포함되어 [[이규광]], [[강문봉]] 등과 함께 정승화도 '''예비역 육군대장의 자격'''을 되찾았고 몰수된 돈과 군인연금 수급권도 돌려 받았다. 1988년 시작된 5공 청문회에서는 12.12사태 당시의 피해자로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하여 사태의 전말을 직접증언 했다. 1993년에는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육본 헌병감), 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 등 12.12 사태 당시 육본 진압군 측 장군들과 함께 전두환, 노태우 등 당시 신군부(하나회) 출신 인사들을 검찰에 군사란 혐의로 고발 했으나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좆논리|모종의 이유를 들어]] 고발된 인사들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이것으로 기세등등해진 신군부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을 검찰에 고발한 정승화를 포함한 육군본부 측 장군들을 외려 군사란, [[무고]] 혐의 등으로 역고소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이 무고 혐의 역시 기각됐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구속 사건]]이 87년에 제정된 헌법이후 최초로 발생하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증언하였다. 그의 기대대로 [[전두환]]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평생의 한을 푸는 듯 했으나,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가 [[특별사면]] 혜택을 받아 풀려나자 "성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래도 풀어준다니 이 나라가 진정으로 법치주의 국가입니까?" 라며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 존 헨리 . . . . 6회 일치
         19세기 당시 살았던 흑인으로, 직업은 철도 노동자이다.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했던 [[노동자]]의 긍지와, 기계문명에 밀려나는 노동자의 비애를 동시에 영하는 인물이다.
         >존 헨리가 장에게 말했네,
         >장님의 증기 드릴이 날 짓이기기 전에,
         이와 비슷하게 기계운동을 영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단편소설로는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이 있고, SF에서는 듄의 버틀레티안 지하드. 현대에는 비슷한 이야기로 이세돌과 알파고 등이 있다.
         민담에서 비슷한 인물로 벌목꾼의 영웅적인 인물인 '폴 버니언' 같은 것이 있다. 다만 폴 버니언은 미국 서부 개척사를 대변하는 상징인 면에 존 헨리는 산업화의 여파로 희생당하는 하층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 주상욱 . . . . 6회 일치
         주상욱은 1남 2녀중 둘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서 주상욱이 7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공직 생활을 하시며 삼남매를 키우셨다. 친구의 모델활동 현장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에이전트로 부터 부탁을 받았던 주상욱<ref>[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힐링캠프' 주상욱, "배우 데뷔? 모델 여자친구가…"]{{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ref> 은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대 중까지 아역으로 활동했다. 제대 후 젠틀하고 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실장님서 장님… 다음은 허당 공무원이죠"|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저자=신정엽|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2-01-16|확인날짜=2013-05-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3073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보존날짜=2013-10-04|깨진링크=예}}</ref> [[2012년 7월]] [[김준호 (희극인)|김준호]]와 함께 《[[남자의 자격]]》에 합류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2011년 [[OCN (텔레비전 채널)|OCN]] 《[[특수사건 전담 TEN]]》 - 여지훈 역
         * 2013년 [[OCN (텔레비전 채널)|OCN]] 《[[특수사건 전담 TEN 2]]》 - 여지훈 역
         * 2013년 웹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 - 형사 장 주진욱 역 (특별출연)
  • 진격의 거인/97화 . . . . 6회 일치
          * 오늘 임무는 진작부터 실패했던게 분명하다. 성할 시간은 없다. 빠져나갈 방법이 필요하다. 애니가 먼저 택한 방법은 드라마였다. 그녀는 여인숙에서 태어난 소녀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난 건 단 하룻밤 뿐.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질릴 때까지 해줬고 그래서 한 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아버지를 만났다는 걸. 그 이야기는 목 베는 케니도 감동시킬 만한 했다. 케니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허그가 필요하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다. 애니는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 확신하냐고 물었다. 케니의 대답은 "할 수 있다"였다. 그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농담이었으니까. 이제 확실히 포기할 시점이다. 죽이지 않고 상황을 모면하는 걸.
          * [[베르톨트 후버]]는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동료들의 평화로운 아침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공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들은 그의 특이한 잠버릇을 다소 신성하게 여겼다. 그의 하신과 상신이 놓인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 가령 오늘처럼 거꾸로 매달린 사형수의 모습은 두 가지 해석이 대립했다. 벽에 기댄 하신으로는 "눈", 뒷짐을 진채 등을 바닥에 댄 상신은 "밝은 하늘"이었다. 그 분야에 가장 정평난 [[라이너 브라운]]은 그것을 "우박"으로 해두자고 한 뒤 동료들을 챙겨 아침 점호를 준비했다. 익숙해진 일과였다. 그의 인솔에 따라 [[코니 스프링거]], [[마르코 보트]]가 베르톨트 앞을 떠났다. 라이너는 마지막으로 베르톨트를 깨웠다.
          명 마레인인 마가트는 신랄한 감상을 남겼다.
  • 창작:왕국 . . . . 6회 일치
         || 정부수 || 엘리엇 입스위치 총리(Elyot William of Ipswich) ||
         북부 언더월드 남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국가. 북부의 해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띄고있으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사막의 비율이 높아진다. 현재 왕국은 "사막에 대한 전쟁"을 선포, 세기에 걸쳐 농경지를 넓히는 작업을 하고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국왕의 통치에 대하는 자가 소수 존재한다. "국가주의자"라고 불리는 이들 중에는 과격한 행동 양상을 보이는 자들도 있기 때문에 국가의 적으로 여겨진다. 그렇기때문에 "국가주의자"로써의 의견을 내는 자는 방첩기관과 경찰, 국가헌병대에 의해 제재된다.
         심각한 인구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노동력을 어떻게든 수입해오려고 하는 편. 이 때문에 다민족 국가의 면모를 보인다. 이에 대하는 왕국인들도 존재하며, 과격파의 경우에는 총기를 들고 이민족을 사냥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방첩기관과 경찰, 국가헌병대에 의해 제재된다.
  • 창작:좀비탈출/5-1-1 . . . . 6회 일치
         토트넘을 내려다 보니 생각보다 생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접점이라곤 밥맛 떨어지는 일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되고 나서 만난 최초의 '''지인'''이었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였어도 조금은, 쥐꼬리만큼은 가운 기분이 생길법 하지 않은가?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옆집 앞에 모였다가 근처 초등학교에서 친선경기를 뛰고나서 탕수육에 소주를 들이붓는 사람들이다. 뛰어서 소모한 칼로리보다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들. 뱃살이 늘어지고 머리가 벗겨진 비슷비슷한 얼굴들. 똑같이 토트넘 유니폼을 걸치고서……. 운동신경이란 단어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긴 토트넘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가? 죽어서도 담을 뛰어넘을 정도로 체력이 좋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니면 생전에 밥 먹듯이 복한 행동이다 보니 죽어서도 무의식적으로 복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때 나는 담 너머를 슬쩍 보았다. 그 집은 벽을 따라서 안 쓰는 화분, 손수레 따위가 계단처럼 쌓여있었다. 토트넘이 담을 넘은 수수께끼가 밝혀졌다. 그렇다면 대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그 비밀도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집 담 아래에도 안 쓰는 커다란 장독이 뒤집혀서 벽 앞에 있었던 것이다. 거의 벽의 절까지 되는 높이였다. 아무렴 죽은 몸으로 이 담을 뛰어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체가 발달된 토트넘은 그 절 정도의 높이는 올라갈 수 있었고 다시 거기서 담을 넘는건 가능했던 것 같다.
  • 최광식 . . . . 6회 일치
         [[허원제]] 한나라당 의원은 “교수에서 장관 내정까지 걸린 시간은 3년 에 불과하다”며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이라 발탁됐다는 말도 있다”고 지적했다.<ref>[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10915000197 최광식 '초고속 승진', 임채민 '전문성 결여' 도마위]《아주경제》2011년 9월 15일 정경진 기자</ref>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은 "특정 대학교를 운운하면서 거기다 화살을 쏟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공직사회에 K대보다 S대가 더 많은데 그럼 S대는 다 낙하산이냐"며 대 의원들을 꼬집었다.<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267560&thread=11r04 최광식 내정자=낙하산 인사 '종결자']《아시아뉴스통신》2011년 9월 15일 노호근 기자</ref>
         ==== 매장문화재보호법 위 논란 ====
         김제윤 민주당 의원은 최 후보자가 문화재청장 시절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 승인과 관련‘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하 ’매장문화재보호법‘)을 위했다고 주장했다. 제주해군기지 부지에서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수혈주거지(움집터), 유구 등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으나 문화재청이 해군 측의 공사를 중지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일부 조사완료구역에 대해서는 공사 시행을 승인까지 해주었다는 것이다.<ref>[http://www.newsjeju.net/news/articleView.html?idxno=69369 최광식 '제주해군기지 책임론' 유탄 맞을 듯]《뉴스제주》2011년 9월 14일 고병택 기자</ref><ref>[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04297 최광식 후보자 ‘제주해군기지 유탄’ 맞나?]《제주의소리》2011년 9월 14일 좌용철 기자</ref><ref>[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10914000169 최광식 장관후보,‘제주해군기지 유탄’맞나 ?]《아주경제》2011년 9월 14일 박현주 기자</ref>
         2011년 9월 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전재희]])는 인사청문회를 마친 최광식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최 후보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의 “부적격하다”고 의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수적 우위로 장관자리에 앉게 됐다.<ref>[http://media.paran.com/hotissue/view.kth?dirnews=3088095&year=2011&titlekey=PARAN_2011_3089993&clusterid=IiQmMjszUV5DVCtARVhTVktUK0NH&kind=0&pg=1&t=0&date=20110916&tq=%C0%CE%BB%E7%C3%BB%B9%AE+%C0%E5%B0%FC+%C3%A4%C5%C3+%C3%BB%B9%AE 최광식 인사청문보고서, 야 대에도 ‘채택’]《미디어스》2011년 9월 16일 권순택 기자</ref><ref>[http://m.pdjournal.com/articleView.html?idxno=32615&menu=1 최광식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야당은 ‘부적격’]《PD저널》2011년 9월 16일 김세옥 기자</ref>
  • 최덕희 . . . . 6회 일치
         * [[4학년 2 아이들]] ([[EBS]]) - '''낸시'''
         * [[올림포스 가디언]] ([[SBS]]) - '''아프로디테''' ※초
         * [[사브리나]] ([[KBS]]) - 사브리나(중) ([[멀리사 조앤 하트]])
         * [[이유없는 항]] ([[KBS]]) - 주디 ([[내털리 우드]])
         * [[신세기 에게리온|신세기 에게리온 강철의 걸프렌드]] - '''[[카츠라기 미사토]]'''
  • 최석민 . . . . 6회 일치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6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민족행위결정이유서|연도=2006
         [[분류:1858년 태어남]][[분류:191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조선남작]][[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최씨]]
  • 최지우(영화배우) . . . . 6회 일치
         ||<bgcolor=#D76181> {{{#FFFFFF '''학력'''}}} ||<(> 완주고등학교[br]전북대학교 무용과 (중퇴) [br]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중퇴)[* 01학번.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036399|특별전형]]으로 입학하여 학교 축제 사회도 보는 등 늦깎이 대학생활에 의욕을 보였으나 바쁜 스케쥴에 휴학을 복하다 결국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0887132|제적]]당했다.] ||
         2000년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진실(드라마)|진실]]>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스타 열에 오른다. 이 드라마에서 최지우는 자신의 아버지가 운전기사로 일하던 주인집 딸([[박선영(1976)|박선영]] 役)과 일생동안 서로 갈등을 겪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여주인공 이자영 역을 맡았다.
         그리고 최지우는 2002년 '''<[[겨울 연가]]>'''에 출연하였고 배용준과 함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당시 겨울연가의 당시 시청률은 20프로 초중으로 2002년 기준으론 그냥저냥한 중박쯤의 작품이었다. SBS의 [[여인천하]]가 워낙 대세였고 MBC의 [[상도]]도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실제 겨울연가의 감독인 윤석호 또한 20~30대 여성들을 공략하는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지우의 숏커트 머리는 하나의 유행이 될 정도로 <겨울연가>는 적당한 성공을 거두었었는데... 이 <겨울연가>는 일본에 수출되며 최지우는 그 유명한 '''욘사마'''와 더불어 '지우히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기 몰이를 하였다.[* [[이나가키 고로]]가 [[혼코와 클럽]] 진행 당시 최지우를 처음 실물로 본 경험을 얘기하며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도. 서브남주인 박용하의 인기 또한 폭발적이었으니 말다했다]
         [[황금의 제국]] 후속작인 [[수상한 가정부]]에서 여주인공 [[박복녀]]로 출연하기로 확정되어 초 분량은 촬영을 마친 상태. 이성재와 짝을 맞추어 극을 이끌어 나간다. 다만 연기력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작인 [[가정부 미타]]의 팬들은 최지우가 여주인 것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 하는 중.
         2015년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 주인공 '하노라' 역으로 대중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극 초 수동적인 캐릭터에서 후부 적극적이고 활달한 이미지까지 잘 소화해 내면서 좋은 시청률과 연기력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제작진 역시 '하노라 캐릭터는 최지우 씨 말고는 할 수 없다'라고 하는 등, 여러 모로 의미깊은 작품을 찍었다.
  • 최채흥 . . . . 6회 일치
         한양대학교 진학 후, [[김한근]] 한양대 감독에게 투수가 아니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김한근 감독은 너를 투수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투수로 전업하여 1학년 때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팀의 마무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67.2이닝 동안 피홈런 없이 54삼진 6사구 16볼넷 평균자책점 0.93을 기록했다. 1학년이던 2014년부터 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는 팀을 17년만의 대통령기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투수상을 수상했고 바로 U-21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승선했다. 투수 전업 첫 해에는 평균구속이 130km/h 중대에 불과했지만, 빠른 성장세로 평균구속을 10km/h 가까이 끌어올리면서 탈삼진 능력도 늘어나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2015년에는 27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활약했다. 2016년에는 학점 관리한다고 8월 이후에는 경기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 U-23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임지섭]]과 원투펀치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혹사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
         이렇듯 엄청난 퍼포먼스로 뛰어난 커리어를 쌓으면서, 대졸 선수들의 연속된 실패로 대학 졸업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여론이 굉장히 부정적임에도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신인드래프트]]에 참가 예정인 투수 중에서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 [[안우진]]과 함께 전체 1번을 겨룰만한 선수로 거론되었다. 거기에 삼성이 이 해 1차지명 후보로 최채흥 외에 강력한 후보가 없었던 만큼, 지명 전부터 최채흥의 1차 지명은 기정 사실 수준의 평가를 받았고 2017년 6월 26일, 2018년 1차 지명에서 고향팀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퓨처스리그에서 시즌을 시작, 첫 경기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시즌 중 이후 선발진에 가세 가능한 희망을 되살리고 있다. 외국인은 차치하고라도 믿을 만한 선발이었던 윤성환마저 노쇠화의 징후를 드러내는 시점에서 양창섭과 최채흥의 가세는 큰 도움이 될 전망.
         6월 2일 1군에 등록돼 당일 [[NC 다이노스]] 원정전에서 5이닝 동안 87개의 공을 던지며, 3탈삼진 2자책(2피홈런)으로 호투를 펼치며 데뷔 승을 거두었다. 시즌 초 포심구속이 나오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날 경기에는 140대 중에 형성이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상황. 비록 실투가 가운데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2피홈런으로 이어졌지만, 삼성은 [[양창섭]]과 함께 미래를 이끌 좋은 선발 자원을 얻었고, 2018시즌 [[백정현]]-[[장원삼]]-[[최채흥]]으로 이어지는 좌완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면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 마운드를 갖출수 있게 되었다. 장원삼이 노쇠화가 오며 10일 로테나 계투 강등이 필요해진만큼 양창섭까지 돌아온다면 선발진은 정말 무적일 듯.
         주목할만한 점은 9월 25일 복귀한 이후 시즌 끝날 때 까지 선발 1번, 구원 4번하여 총 5번의 등판에서 --분식회계를 빼고-- 총 16⅔이닝동안 단 2자책만 했으며, '''방어율이 무려 1.08'''로 6월 8일 LG전까지[* 1군 엔트리 말소 이전] 6.35였던 방어율과 0.365였던 피안타율을 각각 3.21과 0.270으로 낮춘 점을 봤을때 [[양창섭]]보다도 내년이 더 기대케 되는 피칭을 보였다. ~~최채흥은 대졸인데 당연하지~~ 그리고 후기 탈삼진은 무려 16개를 뽑는 동안 볼넷은 단 3개만 내주었다는 부분에서 내년을 확실히 기대하게끔 하는 투구를 보였다. 특히 투구폼을 교체한 이후 확실히 진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년 2019 시즌에는 큰 부상이 없는 한 [[양창섭]]과 함께 나란히 선발 로테이션에 들 가능성도 충분히 보인 9~10월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18시즌 중 오치아이 코치의 도움으로 투구폼을 수정하며 팀 선배 [[장원삼]]의 폼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 콜 오브 듀티 . . . . 6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FPS [[게임]]. 플레이어는 [[미군]] 마틴, [[영국군]] 에스, [[소련군]] 이바노비치를 차례대로 이끌어 전투를 벌인다.
          * 에
          에스와 프라이스를 티르피츠로 침투시킨 보급선 운전자. 미션 도입부에 시체를 바다에 내다버리는 걸 보니 보급선을 강탈한 걸로 보인다.
          >접이식 개머리판이 달린 .30구경 자동 소총인 M1A1 카빈은 보통 공수부대원들에게 보급됩니다. 대형 소총과 같은 저지력은 없지만 가볍고 정확하고 휴대하기 좋습니다.
          >M1 개런드는 강력하고 정확한 자동 소총입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탄창을 다 쓰기 전에는 장전할 수 없다는 겁니다.
          스탈린그라드 미션 초에 나눠주는 물건. 쓸모 없다.
  • 킹덤/534화 . . . . 6회 일치
          * 몽념의 예상대로 마정은 본대로 오지 않았다. 조군의 우세를 타고 군을 정비한 마정군은 비신대를 치러 간다. 마정은 이미 마광이 없는 본진 따윈 무가치하고 격의 거점인 비신대를 치는게 먼저라고 본 것이다. 조군 본진에서도 이 움직임을 두고 좋은 판단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기수(킹덤)|기수]]만은 석연치 않은 듯한 얼굴이다.
          * 비신대는 마정군의 접근을 인지하고 응전할 태세를 취한다. [[이신(킹덤)|이신]]은 자신이 마정을 상대하겠다고 벼르나 [[강외(킹덤)|강외]]가 제지한다. 마정과 정면승부는 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몽념이 "마정과 맞생다하지 마라"고 지시한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비신대의 진짜 역할은 진군의 사기진작이며 지금 전력으로 마정군 본대를 당해낼 수도 없다. 강외는 원군으로 기마대가 온 걸 들어서 이동하면서 마정을 더욱 끌어들이는게 합당하다고 한다. 이신은 그 말에 따른다.
          * 비신대가 마정을 끌고 나가자 몽념이 진짜 승부수를 띄운다. 낙화대 본진의 등장이다. 몽념이 신호하자 좌측 숲에 숨어있던 기마대 3천이 일제히 돌격한다. 기마대는 그대로 [[육선]]의 진군 좌측으로 향한다. 육선이 이끄는 마광군과 합류한 낙화대는 그 기세를 몰아 조군 중앙으로 진출한다. 이제 몽념이 있는 중앙의 마광군도 돌격한다. 조군 중앙을 향해서였다. 이것이 몽념의 진짜 포석. 처음부터 마광군 전체를 살리는건 포기하고 있었다. 좌측에 여력을 모아서 격을 꾀하고 오늘을 버텨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가운 얘기였다.
          후에는 기수 본대의 역습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과 낙화대를 앞세워 마광군을 보호한다. 여기까지는 다 작전대로 잘됐지만 이 공습을 막아낼지는 확신이 없는 듯했다. 실제로 난전 중에 낙마해 시체들 사이에 쓰러져 있던걸 이신이 발견한다. 다행히 무사히 생환. 전에 장담한 대로 진군 좌익의 싸움의 주역이 되었다.
          명색히 몽념과 대장군 자리를 겨루는 입장이면서 여전히 몽념의 전술안을 따라가지 못한다. 비신대를 이끌고 진군 우측을 점거한 건 좋았지만 몽념이 내린 지시를 이해 못 해 마정이 처들어왔을 땐 일기토까지 할 작정이었다. 다행히 강외가 작전을 잘 설명해준 덕에 적절한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후에 힘겨루기 국면으로 넘어가자 잘 버텼다. 몽념이 기수 본대와 격돌하고 의식을 잃었을 무렵에도 잘 싸우고 있었고 조군이 물러날 때까지 제대로 전선을 지켜냈다. 몽념이 쓰러져 있는걸 발견해 데리고 왔다.
  • 트로피코 4/인물 . . . . 6회 일치
         모던 타임즈 캠페인에서는 대통령 각하가 휴가가면서 맡긴 트로피코를 말아먹는다. 란군을 없앤다고 농장을 죄다 불태웠고, 그 결과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난 것.
         == 에스테 신부 ==
         캠페인에서 영국 정부가 대하는데도 무명의 섬을 냅다 영국 식민지로 만드는 걸 보면 한가닥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막장 블랙코미디물이라 그런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 브룬힐데 후프 ==
         대통령 각하의 사업 파트너였지만 대통령 각하가 몰락하자 "난 당신 모르오"라며 내쳐버린다. 결국 각하의 첫번째 복수 대상이 되어 프루타스 주식의 과수를 빼앗기고 해고당한다. 마지막 발악으로 올림픽 개최지 후보 세곳을 후원했으나 트로피코가 올림픽 개최지가 되며 알거지가 된다.
         Marco Moreno. [[체 게바라]]처럼 생긴 남자. 바스퀘즈 동무와 달리 장발이다. 미국에서도 수배중이 란군의 수장으로 이상주의자, 몽상가다.
  • 하이큐!! . . . . 6회 일치
         기존의 배구 만화들이 에이스 스파이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면, 하이큐!!는 세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배구에서는 흔히 하는 말로, '[[야구]]를 [[투수]] 놀음이라 한다면 [[배구]]는 세터 놀음' 이라 한다. 그만큼 배구에서 세터란 포지션이 중요하며, 이는 작중에서 [[코즈메 켄마]]가 '세터는 가장 능력이 좋은 사람이 하는 포지션' 이란 대사로도 언급된다. 이처럼 현실 배구에서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임에도 그 특성상 화려함은 떨어지는 포지션[* 아예 [[히나타 쇼요]]는 세터에 대해서 '수수하고 어려운 포지션'이라고 말한다.]이라, (시각 매체인) 만화에서 세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작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이큐!!는 이 세터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묘사한다. 그래서인지 작중 등장하는 세터들은 유독 [[사기캐]]와 [[먼치킨]]들이 많은데, 그 정점에 본작의 투탑 주인공 중 하나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다.
         작품에 대한 평가로는, 대체적으로 '''평작 이상'''이라는 응이다. 이전에 연재를 한 경험이 있어 그림체가 호불호가 갈린다곤 해도 상당히 안정된 편이고, 캐릭터가 주연 조연 모두 매력적이며 구성도 탄탄하다. 뿐만 아니라 만화 특유의 페이지를 넘겼을 때의 칸 연출에 상당히 능숙한 편. <하이큐!!>의 최대의 강점은 그 연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허무맹랑한 필살기나 기술명이 난무하지 않고, 스포츠를 가장한 특수 [[능력자 배틀물]]의 성격을 띄는 경우[* 대표적인 만화가 테니스의 왕자다. 필살기 난무, 특수능력 난무로 만화 자체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후 이작품은 매너의 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를 모욕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테니스 한 번 치면 사람이 다치고 인사불성~~]가 많은 점프계치고는 [[주인공 보정]]이나 만화적 연출을 제외하면 상당히 현실성 넘치는 경기 묘사[* 많은 [[덕후]]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스포츠물]]에서 진짜 100% 현실적인 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100% 현실적인 묘사로만 이루어진다해도 정말 ~~[[암]]을 유발할 것 같은~~ 답답한 전개가 펼쳐지기때문에 그야말로 독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는 현실의 스포츠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그나마 현실적인 묘사를 하더라도 약간의 판타지는 섞여있을 수 밖에 없다. 리얼계 스포츠물의 [[레전설]]로 불리는 <[[슬램덩크]]>도 사실 100% 현실적인 건 아니다. 비슷하게 현실적이라는 호평을 듣는 스포츠물인 <[[크게 휘두르며]]>도 100% 현실적이진 않다.]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호감을 사는 면도 있다.
         연재 초에는 '''호러배구'''란 이명이 있었다. 스포츠물 답지 않은 연출과 그림체가 한몫해서, 섬뜩한(...)장면들이 간간이 나왔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는 평소엔 겁이 많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패기를 내뿜는다는 설정인데, 이 때 짓는 표정이 심히 [[얀데레]]스러워 ~~도저히 소년만화 주인공이 할만한 표정이 아니다~~ 순식간에 장르를 호러로 만들어버린다.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작가의 전작]]이 본격 [[괴담]]만화였다는 걸 알고 납득한 사람도 있다[[카더라]]. 애니메이션도 이 점을 잘 살려서, 애니메이션 11화는 어떤 씬을 작정하고 호러로 연출했는데 [[원작초월]]급이 나와버렸다.
         작중 배경은 작가의 전작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처럼 [[미야기]]현이다. 미야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정도 되는 곳인데, 그 중에서도 [[카라스노 고교]]가 있는 곳은 시골이다. ~~괜히 얘네들이 패스트푸드점 대신 [[만두]]를 사먹으러 가는 게 아니다~~ 카라스노 학생들이 촌사람이라는 걸 영한 연출인지, 도쿄에 간 [[카라스노 고교]] 부원들이 눈에 보이는 철탑 마다 [[도쿄 타워]]냐고 묻거나, [[타나카 류노스케]]는 [[관동]]의 학교들을 가리켜 '시티보이 연합'(...)이라 부르거나 한다.
          *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후루다테 작가가 졸업한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졸업 후 찾아왔었다는 포스팅이 어떤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댓글에서 어떤 팬이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을 묻자 '작가님이 직접 공개하지 않으신 사생활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철통방어(...)를 하기도 했다. 종합 1000만 부 이상 팔린 만화책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심지어는 인터뷰조차도 그의 활동은 적어 필명이 본명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품들이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을 작중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으므로 출신지가 그 쪽인 것은 분명하다. 작가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팀메이트 간의 감정 묘사, 이름 및 생일의 의미와 관련성까지도 계산한 ~~설정덕후의~~ 섬세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면 작가가 남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wiki:"니시노야 유" 니시노야]와 [wiki:"타나카 류노스케" 타나카]의 [wiki:"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빠질을 저렇게 완벽하게(...)그려내는 것은 남자밖에 하지 못한다.', '[쿠로코의 농구]도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등을 근거로 남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점치고 있다.
         2015년 2월 기준 13권까지 강동욱의 번역에 의해 정발되었는데, 그 사이에서 원어판과 비교해 오역이 많이 드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일어가 가능하다면 원서를 사서 보라고 할 만큼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1권 신젠 고교에서의 합숙 줄거리 중 보쿠토와 쿠로오보다 한 살 어린 아카아시가 뜬금없이 말을 하거나, 오이카와의 그 유명한 '이와짱은 우리 엄마에요?'[* 원어로는 「岩ちゃんは俺のお母ちゃんですか?」.] 대사는 '''네가 내 엄마라도 되냐?'''라는 대사로 바뀌어 오이카와에게 일진카와(...)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대화에서 자주 쓰여진다고 보기 어려운 '~예요' 체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고, 당당하고 맹한 느낌을 주는 '[~슴다체]'가 번역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일단 번역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너무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큰 문제. ('''츠키시마: 짜식 멋있는데.''') 당장 몇 년만 지나도 어색할 유행어 집어넣는것은 덤. (시합중의 멘탈은 '''갑 오브 갑'''이지만.) 번역가가 글자를 못 읽는 경우도. ('''네코마 농구부''' ~~쿠로오의 농구?~~ '''호쿠토. 아카아시 케이시''') 더 많은 오역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람].
  • 하이큐/224화 . . . . 6회 일치
         [[하이큐]] 224화. '''환'''
          * 여느때처럼 플라잉 한 바퀴로 성하고 돌아온다.
          * 우카이 코치는 이걸로 "카게야마는 제대로 불평을 말하게 됐다"고 한숨 돌리는데, "대"는 어떨지가 또다른 고민.
          *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가 즉석에서 분석해서 "확실히 오늘은 적다"고 직격탄을 날려서 박도 할 수 없게 만든다.
          * 츠키시마에게 토스를 올리는데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공 하나 개 정도 높게 올린다.
          * 권두 컬러는 사토리가 나와서 "애니 3기 1화는 와카토시는 실은 30대 후, 와시죠 감독과 우카이 감독의 게이트볼 승부, 히나타 공중부양 습득의 3부작"이란 개드립을 치고 들어간다.--귀중한 컬러로 뭐하는 짓이야--
  • 하이큐/244화 . . . . 6회 일치
          * 매점에는 봄고 관련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히나타는 눈을 짝이며 "에이스의 마음가짐"을 담은 티셔츠를 S사이즈로 구매, 야마구치도 연습용 티셔츠를 산다.
          어차피 보쿠토가 항상 컨디션이 좋은 적은 거의 없다. 사실 이런 풀죽음도 그의 배구에 대한 열정, 성실성에 기한 것이지만, 대로 긴장이나 압박감 때문에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일은 없다.
          * 그 말처럼 여기서부터 후쿠로다니의 격이 시작된다. 보쿠토는 여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지만 다른 동료들이 분발하면서 한 점씩 따라잡기 시작, 어느새 스코어는 15 대 14로 한 점차까지 따라온다. 중계석에선 에이스가 저조한데도 착실하게 점수를 버는 후쿠로다니를 칭찬한다. 대로 에이와 고교는 에이스가 봉인됐는데도 선전하자 혼란스러운 양상.
          아까 아카아시가 궤변을 늘어놓긴 했지만, 완전히 거짓말만은 아니었다. 서브 아레나는 경기장이 작은 만큼 그 안의 환호성이 더 가깝고 크게 들리는 효과가 있었다. 아카아시의 언변이 효과를 거둬 보쿠토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하이텐션 모드로 돌아왔다. 후쿠로다니 응원석 측에서는 열광. 사정을 잘 모르는 히나타와 야마구치오 그의 파인 플레이에 환호한다. 면 에이와 측은 파랗게 질린다.
  • 하이큐/264화 . . . . 6회 일치
          * 타나카가 [[시미즈 키요코]]에게 한건 입부한 첫날의 우연한 사건. 막 체육관으로 뛰어들어오던 그녀에게 첫눈에 했다.
          * 하루 전. 봄고 1일차를 마친 [[카라스노 고교]]의 숙소에선 타나카의 소꿉친구인 [[아마나이 카노카]]가 화제에 올랐다. 2학년 [[엔노시타 치카라]], [[나리타 카즈히토]],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린 라이트"라며 이대로 타나카에게 여친이 생기겠다고 수다를 떨었다. 정작 당사자인 타나카는 왜 그렇게 되냐며 "이기지도 못할 상대에겐 덤비지 말아야 하냐"고 항변한다. 자신에겐 [[시미즈 키요코]]라는 한 상대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동기들은 하나같이 회의적이다. 그보단 애초에 타나카가 진심으로 키요코를 좋아하는 건지도 처음 알았다는 응. 타나카는 카노카가 그린라이트라고 갑자기 그쪽으로 갈아타냐는 말이냐고 따진다. 그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동기들의 여론은 대체로 그런 편. 나리타는 "고백 받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인다. 잠자코 있던 [[니시노야 유]] 조차 "차려진 밥상을 안 먹으면 남자도 아니다"고 드립을 치며 타나카를 압박한다. 타나카로서도 그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도 착하고 예쁜 누님들이 놀자고 하면 얼씨구나 따라나서겠지만, 이건 문제가 좀 다르다, 그렇게 절규했다.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하지만 타나카에겐 그 말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좋아한다를 자제한다"는게 무슨 말이냐고 문하는 타나카. 엔노시타는 아예 설명을 포기했고 키노시타 또한 "입부한 첫날부터 이런 사람이란걸 알았다"고 씁쓸하게 회상한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공을 보낸다. 오른쪽에서 [[히나타 쇼요]]도 뛰어오르지만 이나리자키 블록들은 낚이지 않았다. 특히 번번히 타나카를 물먹인 [[스나 린타로]]는 카게야마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응이 빨랐다. 뒤쪽에서 우려하는 [[츠키시마 케이]].
  • 한선교 . . . . 6회 일치
          | 경력 = [[문화방송]] 아나운서<br>[[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전기 [[대한민국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br/> 제7대 [[한국농구연맹]] 총재<br/>자유한국당 사무총장
         * 2014년 6월 ~ 2016년 5월: 제19대 국회 후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 2016년 6월 ~ 2018년 5월: 제20대 국회 전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 2018년 7월 ~ : 제20대 국회 후기 정보위원회 위원
         * 2018년 7월 ~ : 제20대 국회 후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 도로교통법위(음주운전): 벌금 100만원 - 2002년 8월 9일 선고<ref>{{보고서 인용|저자=이옥남·김도연|url=http://www.cubs.or.kr/new/lib/down.asp?gubun=util_bbs3&files=20160415PPPPPPPPP25237%2Epdf|제목=4·13 총선국회의원 당선자 전과현황|출판사=바른사회시민회의|날짜=2016년 4월}}</ref>
  • 한지우(배우) . . . . 6회 일치
         2011년, [[문화방송|MBC]] [[주말 드라마]] [[짝 빛나는(드라마)]]에서 금란이의 [[무개념|개념없는]] 여동생 미란이로 출연하며 많은 욕을 먹었다. 짜증을 유발하는 악역 특성상, 배우의 실명까지 거론되며 여러가지로 까였다.
         ||<|2> 2011년 ||<|2> MBC || [[짝 빛나는(드라마)|짝 빛나는]] || 황미란 || 조연 ||
  • 한창수 . . . . 6회 일치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남작]] 작위를 물려받은 아들 [[한상기 (조선귀족)|한상기]], 서자 [[한상억 (1898년)|한상억]]과 함께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07년]] [[5월 2일]]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한창수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ref>
         }}</ref> 했고, [[11월 22일]]에는 [[친일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제3자에게 처분한 재산에 대해서도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ref>
         [[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
  • 한확 . . . . 6회 일치
         === 생애 초 ===
         ==== 세조 정 ====
         {{참고|세조 정}}
         한확은 세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이었다. 그는 그의 누나가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황실의 벼슬을 받고 외교채널이 된다.<ref name="ky">[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702 <nowiki>[</nowiki>王을 만나다·16<nowiki>]</nowiki>서오릉-경릉 ( 추존 덕종·소혜왕후) : 남존여비 '女訓'과 상된 '여성상위능'] 경인일보 2010.01.14</ref> 그리고 누이동생 또한 명나라 선종(宣宗)의 후궁으로 간택돼 더욱 외교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사실 한확의 두 누이이자 인수대비의 고모들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가슴 아픈 사연을 지녔다. 한확은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 1등에도 올랐는데 세조의 왕위 찬탈을 승인하지 않던 명나라에 들어가 단종이 왕위를 물려준 양위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한확은 골치 아픈 외교 문제를 해결하였다.<ref name="ky"/>
         동생 한전(韓磌)·한질(韓)이 모두 일찍 죽었는데, 한확이 그 고아를 무육(撫育)하기를 자기 자식과 다름이 없었다. 작품으로는 [[고려]]말기의 문신 [[차원부]]를 애도하는 치제문이 있다. 그가 죽자 [[조선 세조|세조]]는 9월 22일까지 정사와 조회를 중단하였다. 이때 강무까지 중단하려 하였으나 [[승정원]]의 대로 강무는 계속하였다.
         * [[세조 정]]
  • 현진건 . . . . 6회 일치
         현진건의 할아버지 학표(學杓)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내장원경(內藏院卿)직을 지냈고, 다시 경운(炅運)·철운(轍運)·영운(映運)·양운(暘運)·붕운(鵬運)의 다섯 아들을 두었다. 그 중 경운이 바로 현진건의 아버지이며, 봉호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까지 올라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화국|전보사장]]을 지냈다. 그의 집안은 계몽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였으나 후에 [[친일파]]로 변절하게 되는 [[윤치호]],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내무장관,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을 지낸 [[윤치영]], 4대 대통령 [[윤보선]] 집안과 이중으로 혼관계를 형성하였다.
         [[1927년]] 1월부터 3월까지 『조선문단』에 중편 「해 뜨는 지평선」을 기고하였다. 같은 해 1월 2일자 「동아일보」는 현진건을 "산뜻한 표현의 미를 가진 단편작가"로, "표현에 노력을 빼앗긴 면에 그 내용적 가치가 너무도 희박하다"고 하면서도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서 보여준 그의 새로운 모습을 향한 노력을 높이 사면서, "그의 자연주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그의 제재 방면도 분명히 향토로, 민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끝맺고 있다. [[1928년]]에는 드디어 「동아일보」 입사 3년만에 사회부장이 되었다(~1936년). 사회부장 시절의 현진건에 대해 당시 "대장을 놓고 제목을 붙이는데, 편집 칠팔명이 모여선 중에 붉은 잉크를 붓에 덤뻑 찍기만 하면 민각을 누연치 않고 진주 같은 제목명을 이곳저곳에 낙필 성장으로 비치듯 떨어져서, 선후배들로 하여금 그 귀재에 혀를 둘러 감탄케 할 지경"이라는 명성이 나돌았다고 한다.<ref>방인근도 그의 제목 붙이는 '민활하고도 묘미있게 붙이는 재주'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다.(「빙허회고기」, 『현대문학』 1962년 11월호.) 제목을 붙이는 것뿐 아니라 휘하의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지면에 적절히 배치하여,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기사는 신속하게 취하는 언론계의 명인같은 존재였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4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러나 이 해 1월, 상하이에서 한인청년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형 현정건이 체포되어 본국으로 이송되어 복역하였다.<ref>"원래 불면증이 있는 까닭에 어떤 때에는 무리하게 오전 삼시까지도 독서를 한다"(현진건, 「각 방면 명사의 일일생활」, 『별건곤』 17호, 1928. 12.)는 현진건 자신의 말에서 이때의 현진건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찾아볼 수 있다.</ref>
         * [[이무영 (소설가)|이무영]] - [[1955년]] 8월 30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된 이무영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1932년]] 처음 중편소설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을 때 별다른 응이 없이 문단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와중에 "오직 빙허(현진건) 선생이 꾸준히 읽어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먼동이 틀 때」를 연재할 수 있도록 서항석과 더불어 힘을 써준 것도 현진건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다만 이무영이 친일로 돌아선 것을 현진건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후 이무영과 현진건이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 부부생활과 관련해서는, 지인 대부분이 "아내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실 그 시절에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하며 따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었으며, [[김동인]]처럼 아예 자기 아내를 버리고 평양에서 서울로 거처까지 옮겨서 기생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기만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내를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을 뿐이요, 다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었다"고 했으며, 방인근은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기생이 옆에 와서 지근덕거리면 미남에다가 신문기자라면 기생들이 홀딱 해서 덤벼드는 시절이니 그러면 빙허는 좋아하는 체 대꾸를 하면서도 쌀쌀하게 범접치 못할 기상으로 난잡하게 굴지 않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현진건의 아내 이순득도, 남편이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황라 두루마기와 비단 마고자가 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들어와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f>문인들의 이러한 '딴집 살림'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교육을 받은 소위 '구여성'과의 조혼을 괴로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데서 온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8~5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 유일하게 살아남은 외동딸 현화수를 귀여워 한 면 엄하게 교육시켜, 딸에게 극장 출입도 엄금했을 뿐 아니라 어려운 살림을 돕겠다며 취직하는 딸을 한사코 대하였고, 가졌던 많은 장서들도 딸에게는 소설 한 권 읽지 못하게 했을 정도라고 한다.(장서들은 모두 고려대학교에 기증되었다)<ref name="cho"/>
  • 홍경인 . . . . 6회 일치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1996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바로 슬럼프를 겪게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역할을 맡아서[*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던것.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응을 얻지 못한다.[*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남자셋 여자셋에서도 노래를 하는 씬이 몇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묻혔다...게다가 90년대 후에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범람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심지어 음향장비가 좋지 못해서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발라드 가수들까지 종종 방송에서 립싱크를 시키는 시절이고, 라이브를 하는 가수를 신기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즉, 젊은 가수들의 절대다수에게 가창력보다는 외모와 춤실력이 강조되던 시절. 오죽하면 가수는 커녕 일인치고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 [[최창민]]같은 가수들이 '''솔로가수'''로 나왔을까... 이 상황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려면 가창력이 신승훈이나 김건모같이 본좌급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성이 윤종신처럼 탁월해야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노래잘하고 외모는 떨어지던 홍경인이 발붙힐 자리는 없었다.]
         2013년 11월 중부터 12월 중까지 EBS 라디오연재소설에서 최민석 원작의 '풍의역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물을 --심지어 열여섯 소녀까지-- 미친연기력으로 소화했는데, 특히 '오중사'가 압권. 라디오 연재소설의 공개방송인 낭독의 힘에서 현장낭독을 할 때는 원작자인 최민석 작가가 경인씨의 신들린 연기에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며 제책이 이렇게 재밌었나 싶었다고 할 정도. 하지만 본인은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역할이 뭐냐는 질문에 '앞잡이'--고자 두목--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공개방송에서 어느 낭독 전날 술을 마셨다고 밝히며 자긴 목소리가 잠겨서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날 제작진은 목소리가 더 듣기 좋아졌다며 좋아했다고. --술의 파워--
  • 홍승목 . . . . 6회 일치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06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 강점기 초기의 [[친일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민족행위결정이유서
         [[분류:1847년 태어남]][[분류:192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
  • 홍주찬 . . . . 6회 일치
         == 음 목록 ==
         {{참고|골든차일드의 음 목록|설명=골든차일드 그룹으로 발매한 음에 대해서는}}
         == 음 외 활동 목록 ==
         {{참고|골든차일드의 음 외 활동 목록|설명=골든차일드 그룹으로 참여한 음 외 활동에 대해서는}}
  • 홍학표(배우) . . . . 6회 일치
         1987년 MBC 드라마 '푸른교실'에서 주요인물 배역으로 첫 모습을 보인 홍학표는, 이듬해인 1988년 MBC 베스트극장 '[[샴푸의 요정]]'에서 신예 탤런트 [[채시라]]와 호흡을 맞추는 남자 주인공[* 극중 CF모델 채시라를 흠모한 나머지 그녀가 나오는 CF를 제작하는 광고회사에 취직하는 어리숙하고 선한 이미지의 남자 주인공이다. 그의 대학동기인 탤런트 [[이효정(남배우)|이효정]]은 홍학표와 정대의 이미지로 채시라를 [[스토킹]]하는 괴한으로 나와 후부에 홍학표와 격투씬도 벌인다. [[지못미]]]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깨알같은 [[이홍렬]]과 [[윤석화]] ㅋㅋ-- 이후 신인배우임에도 베스트극장 차기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까지도 주인공 역할을 거푸 따내는 행운을 얻었고, 그때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를 펼쳐 '과연 그 사람은 누굴까' 하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부풀려 놓았다.
         재미있는 점은 홍학표가 처음에는 주인공인 진수가 아니라 오성대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점인데, 진수로 내정된 배우 [[안정훈]]이 첫회분이 방송되기 직전 교통사고를 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출자인 이진석 PD의 설명에 따르면 첫 방송을 특집 프로그램으로 메웠지만 교통사고로 다리골절 부상을 입은 [[안정훈]]은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때 홍학표가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진석 PD는 동의했지만, 그 당시 홍학표는 아직 검증되지않은 신인 탤런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작진의 윗선에서 부정적인 응이 많았다고 한다. 어려움은 있었으나 결국 홍학표는 주인공 진수로 캐스팅 되었고,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들의 천국'은 인기몰이를 시작하며 홍학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청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결국 오성대 역에는 정명환이 캐스팅되는데, 그 역시 실제 나이보다 훨씬 아래인 배역을 맡았다.]실제 이 당시 홍학표가 누린 인기는 엄청나서 '''TV의 원작인 소설 '우리들의 천국'의 표지모델로 낙점'''받기까지 했다.
         한 연예계 선배의 감성어린 호소에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압구정동에 있던 집을 날리고 2년간 미국에서 원단장사를 했다고 한다. 2년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으나, 다행히 수지가 맞았고 환율이 폭등했을 때라서[* 이 당시 1달러당 '''2천원대'''까지도 찍었고 점차 안정되면서 1천원대 중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들어 지금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교적 빠르게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선배와 연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한다며, 이자는 안받을테니 원금이라도 받고싶다고...[[지못미]]
         홍학표의 친구 중에 미술학원 원장이 있었는데, 그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홍익대 미대 1학년인 '''9살 연하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홍학표는 아내의 모습에 첫 눈에 했으나 당시에 최고의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내 때문에 8개월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이 차이도 많은데다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마음에 안들었던 장인, 장모의 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너무 나이차가 많다 보니 심지어는 장모가 "애 데리고 그러지마"라는 충고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중간에 헤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중간에 홍학표의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졌고 아내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다시 마음이 돌아섰다고 한다. 결국 대학 1학년때 처음 만나 졸업하고나서까지 5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한 믿음과 성실한 모습을 통해 결국 장인, 장모로부터 결혼승낙을 받아내고, 1994년 아내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다고 한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6회 일치
         1999년 개봉했던 영화 [[쉬리]] 에서는 후부에 한석규를 추궁하는 정부 요원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미리 섭외된 것이 아닌, 그야말로 촬영 직전에 아는 선배의 전화 호출로 일감 생겼다고 달려가서 찍을 정도의 안습 시절을 겪었다.
          * [[마산]]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강호동]]과 같은 이었는데 강호동을 "얼굴이 하얗고 귀여웠던 아이"로 기억한다고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 있다. [[덤]]으로 [[김창렬]]을 착하고 순진한 아이라고 말했다.
          * 2016년 1월 29일에 인터뷰를 했는데 대표 연기파 배우로 인식되어 있는 사람이 무려 '''연기력에 자신 없다. 드라마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밝혀 베댓창이 드립으로 난무하는 중(...) --박지성: 축구에 자신없어 축구 잘하는 사람이 해야, 김연아: 피겨 자신없어 피겨 잘하는 사람이 해야-- 희대의 망언에 올랐다는 응이 많다[* 아마 [[쪽대본]]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 같다. 쪽대본 때문에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는 고충은 많은 배우들이 토로한 바 있으니 마냥 망언만은 아닌 셈]. --아이돌 드라마 주연 의문의 1패--[[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250242|#]]
         ||2012||[[TV조선]]||[[한도(드라마)|한도]]||서명준||주연||1.6%||
         ||<:>2007년||<:> [[KBS]]||<:> 한가위 쟁 노래방|| ||
  • 황효진(기업인) . . . . 6회 일치
         응은 좋은 편. 스꼴들의 호응도도 높고, 더구나 '''참여 선수들의 이름값이 장난 아니다.''' 거기에 경기의 흥행도에 따라 경기를 하던 전 프로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몽군, 전태규, 박세정 등이 랭크되어 본 적이 있다. 특히 몽군의 그 경기는...] 단, '''과거 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
         심지어 이렇게 대금 지불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작 황효진 자신은 법인 명의로 [[페라리 458 이탈리아|페라리 458 스페치알레]], [[벤틀리 컨티넨탈]],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메르세데스-벤츠 CLS]] 등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외제차들을 마구 뽑았으며 심지어 피소 직전까지도 [[여자친구]]에게 2,000만 원 정도의 [[피아트 500]]을 선물하고[* 2,000만 원 정도의 소형차라 고가의 차량이라고는 볼수 없지만 [[결혼]]이나 [[약혼]]한 사이도 아닌 [[여자친구]]에게 주는 선물로는 상당히 과하다고 볼 수 있다.] 4억 원을 훌쩍 넘기는 [[롤스로이스 레이스]] 등 다른 고급차들을 뽑고 있었다.[* 황효진이 사용한 방법은 법인리스로 [[스베누]] 명의로 자동차를 리스 구입한 것이다. 차는 황효진이 타지만 소유주와 대금 지불은 [[스베누]] 회사 몫이다(아닌 경우도 있으니 자세한건 추가바람). 일적인 경영자라면 회사가 큰 이익을 보지 않는 이상 리스차량을 마구 지르지 않는다. 회사가 리스금액을 낸다는 것은 곧 회사 순이익이 그만큼 줄어듦을 말하기 때문.][* 중소규모 사업자가 법인리스로 비싼 차를 사는 경우는 대체로 버는 금액에 비해 쓰는 돈이 적을 경우 세금이 왕창 나오기 때문에 그 세금 낼 돈으로 리스값을 비용 처리 하는 경우이다. 그래봤자 보통은 EQ900, 더 쓴다면 S클래스 한 대 뽑는 정도지, 어지간히 장사가 잘 된다 해도 저 차량 모두 비용처리를 해야 할 만큼 버는 게 많았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황효진이 [[코무로 테츠야|이 인간]]을 몹시 따라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똑같이 사기꾼으로 전락한 것도 함정~~[* 하필 이 둘은 자신이 얻은 돈을 툭하면 흥청망청 써버리기 일쑤고 평소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매우 나빴다는 점도 똑같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이 개정되어 비영업용소형승용자동차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고 법인차량과 개인사업자의 차량에 대해 감가상각비와 그 자동차의 유지에 관련된 모든 비용에대해 제재가 가해지게 되었다. 요약하면 법인명의 차량으로 이런 고가의 차량을 구입해서 대표이사가 개인목적으로 타고다니면 업무 미사용으로 보아 법인세법상 감가상각비,자동차세,수선유지비는 물론이고 리스료나 렌트비용 등 일체의 비용을 부인하여 법인세를 물리며 그 법인의 대표이사에게는 자동차를 운용하면서 얻은 이익상당액을 소득으로 보아 소득세까지 왕창 물려버린다[* 예를들어 2억짜리 고가의 차량인경우 감가상각을 5년 정액법으로 강제상각시켜 4천만원의 감가상각비용을 계산하고 그에대한 유지비용까지 전부 가산해서 상여처분을 때려버린다. 만약 위에서 계산된 금액이 감가상각비 4천만원을 포함해서 5천만원이고 업무에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거나 전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5천만원을 대표이사의 근로소득으로 보아 소득세를 물린다. 대표이사는 이미 법인에서 근로소득을 얻고 있으므로 저렇게 상여처분이 된 금액이 더해져 높은 한계세율이 적용되면 만만치 않은 소득세를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직장에 취업해서 연말정산영수증을 떼어 본 사람들은 그 영수증에 인정상여라는 칸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저런 상여처분을 때려맞은 금액이 찍히는곳이다. 보통의 일 근로자들이 인정상여처분을 받을 일은 없으니 당연히 0원으로 찍혀있다. 한편 위 5천만원이 법인세법상 손금부인되어 5천만원에 대해 법인세를 법인이 별도로 부담하는건 덤.]. 또한 이러한 자동차를 팔아서 손실이 난다고 해도 연간 800만원 한도로 손실을 인정하여 처분할 때 까지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세법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황효진~~
         2016년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7년 초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죄로 고소당했으며, 결국 2017년 10월 11일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273538|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5&aid=0002772185|게다가 서울시가 공개한 지방세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팬들의 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 이후 [[던전 앤 파이터]], [[클로저스]] 등의 여러 게임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스베누 스타리그]] 개최, [[롤챔스]], [[GSL]], [[SSL Series|Starcraft 2 StarLeague]] 등의 스폰을 맡을 때만 해도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e스포츠를 후원해 주는 것에 대다수 팬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스베누 사태로 인해 실체가 밝혀지면서 이 또한 결국은 게임/e스포츠에 진심으로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지 세탁을 위해 e스포츠를 이용해 구원자 행세를 했다, e스포츠를 후원해 준 건 스베누가 아니라 부산의 신발공장이었다는 여론이 대다수이다. 하다 못해 훗날 갑질과 폭언으로 물의를 빚은 구원자 중 하나인 [[에밀리 리 조]]도 e스포츠만큼은 황효진보다도 더 애정을 쏟았다.
         2016년 상기에[* 자세한 날짜는 [[추가바람]].] [[조선일보]]에서 "성공한 '''강소기업''' 대표"로 황효진을 취재한 적이 있다.[* 본지의 별도 부록으로 나왔으며, 기사 1면을 차지했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이미 스베누에 관련된 진실들이 차츰 드러나면서 한창 좋지 않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던 때였다. 인터뷰 당시에 황효진은 "사업이 어렵고 빚이 조금 있긴 하지만, 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런 거 없다|신발은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인 만큼 금방 성장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말로 비판을 무마하듯 답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시궁창이었고, 이 인터뷰는 그의 마지막 변명이 되었다.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5회 일치
         그러나 이러한 변경은 여타 스포츠 종목에서 일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던 대회운영방식과 동일하였기에 딱히 큰 문제는 되지 않았으나[* 가령 전/후기 통합우승결정전이나 플레이오프는 미국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일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에서도 그대로 적용하여 행하고 있을 정도.] 문제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행하고 있지 않는 '''다득점을 승점 다음가는 순위결정 요인'''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분데스리가의 10-11시즌부터 14-15시즌까지 과거 5시즌동안의 평균 골 수와 골당 관중 수의 변화추이를 확인하면 위의 링크한 기사와는 달리 연맹의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걸 알 수 있다. 13-14시즌을 제외하면 '''골 수가 줄어들었는데 전년보다 관중이 늘어나고, 골이 늘었는데 관중이 직전년도보다 줄어드는''' 상황이며, 이 13시즌조차도 증감폭에 의미를 두기 어렵다. 14-15시즌은 골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평균관중은 수십명 수준의 변화폭만 보여 여기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상황.[* 그마저도 그래프를 그려보면 대방향을 그린다.] J리그도 사정은 별 다르지 않아서 2012시즌부터 2015시즌까지는 골이 얼마가 되었든지간에 평균관중은 17000명에서 500여명 정도의 변화밖에 없고, 오히려 2011시즌에는 경기당 2.8골이 넘었지만 평균관중은 15000명 수준이었던 것이 2012시즌에 2.8골 미만으로 줄어들었음에도 17000명까지 평균관중이 증가한 것은 연맹의 주장이 뭘 어떻게 봐도 틀렸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5회 일치
          * 소면만 먹으면 "야채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츠케멘을 하기로 결정하자 히나도 언제 대했냐는 듯 대찬성한다.
          * 옆에서 대국 중인 미스미도 그 상을 주시하며 "나메리카와가 푹 빠질만 하다"고 평하는데, 그렇다고 나메리카와가 봐줬으면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런데 바로 그때 나메리카와가 그의 상도 흥미를 보인다.
          * 미스미는 부담스러워하며 옆 상에만 신경쓰면 자기가 대국하는 타나카씨에게 실례라고 생각하는데
          * 분명 장기두는 만화일 텐데 주인공이 어렵게 일전을 치르는건 뒷전이고 카와모토 자매가 배터지게 국수 먹는 내용이 을 넘는다.--뭐하는 만화인가--
  • Crusader Kings 2 . . . . 5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제작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중세]]의 수많은 [[영주]]들중 하나를 골라 그 영주가 속한 [[가문]]의 번영을 위해 플레이하는것이 목표다.[* 대로 말하면 영지를 가진 가문원이 없거나 단절되버리면 게임오버다. 주의.]
         샤를마뉴와 그의 동생 카를로만이 주요 인물인데, 이게임에서 샤를마뉴는 미친듯한 사기능력치와 함께 12기사들이 속속들이 합류하는 이벤트, 카를로만의 아들이 망명하는 곳[* 보통 롬바르디아, 가끔 아스투리아(...)]에 클레임이 생기는 이벤트, 작센을 정복하는 이벤트까지 겹쳐 사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힘을 보여준다. 면 그의 동생인 카를로만은 어머니가 찾아와 독약을 건네주는 이벤트등 온갖 디버프가 쏟아지는 안습인물. 그래도 가~끔 샤를마뉴가 전쟁에 선봉으로 나섰다가 전사하거나(...) 수행불능이 되버리거나 해서 카를로만이 실권을 잡는경우가 있기는 하다.
         비잔티움쪽은 안습하기 짝이 없는데, 우선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5세가 성상파괴주의자이어서[* 게임 시스템상 성상파괴주의는 정교회의 이단으로 취급된다] 종교권위가 개판이라 란이 넘쳐나고, 불가리아와 아바스가 영토를 노리고 침공해오는 경우도 잦아 살아남기 힘들다. ~~몇안되는 비잔티움의 양심 시나리오~~
         그외에 북유럽쪽에는 게르만 신화를 믿는 영주들이 난립하는데, 이들중 특이할만한 자가 있다면 스비요르드 대족장 지의 시구르드. 시작부터 최상위 유전 트레잇중 하나인 '영재'[* 전능력치 +3]을 달고 있는데다가 그의 아들은 그 유명한 [[털바지의 라그나르]]다.
  • Europa Universalis 4/아나톨리아 . . . . 5회 일치
         -초 병종이 말그대로 깡패다. 다른 국가들이 군사 테크 10렙을 찍어야 겨우 보병에 사격능력치가 들어가지만 아나톨리아계 국가들은 군 4렙때부터 사격능력치가 들어가기 때문. 이때문에 군4렙찍은 오스만은 예니체리버프와 아나톨리아 초 사기 병종덕에 그 어떤 국가와도 동수에서 우위를 취할 수 있다.
         -초 병종은 정말로 쎄지만 중부터 힘이 점점 빠진다는게 문제. 거기다가 후병종은 다른 테크에 비해 가장 약한 병종이기에 이때 군사들은 말그대로 종이 호랑이(...)라 볼 수 있을 정도다.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5회 일치
         2012년 방영한 미국의 다큐드라마.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존 D.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등 19세기 후~20세기 중 미국의 거물 사업가를 다룬 전기물이다.
          [[민주당]] 정치인. 대선에 나와 (反)기업을 외치며 기업가들에게 위협이 된다. 처음으로 전국 순회를 한 대선 후보라고.
          공화당 정치인. 전쟁 영웅. 뉴욕 주지사 시절 기업을 엿먹이는 법안을 내놓는 독점론자였다. 이에 기업가들은 잉여로운 자리인 부통령에 앉혀 무력화시켰으나 대통령이었던 매킨리가 무정부주의자에게 총맞고 죽으며 대통령으로 승격. 트러스트 법안으로 기업가들을 엿먹인다.
  • 거유 . . . . 5회 일치
         큰 가슴을 뜻하는 말. 일 평균보다 큰 가슴이라는 뜻이다.
         1985년 극장공개 된 미국 성인영화의 일본 타이틀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후에는 성인잡지, 비디오의 자막에서 자주 쓰이게 되어 일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AV여배우 마쓰자카 키미코(松坂季実子)의 등장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마쓰자카 키미코는 당시 공칭 110.7cm(실제로는 90cm)라는 가슴으로 [[일인]]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며, 거유라는 단어가 일본 문화에 일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 기간트 . . . . 5회 일치
         레프카의 최종병기. 작품의 후부에 등장한 강력한 비행체다. 플라잉 머신이나 몬스리의 팔코 [[비행정]], 하이하바에서 코난 일행이 사용한 비행체와는 차원이 다른 거체를 지닌 비행요새나 다름없는 존재로 곳곳에 무기가 설치되어 있다.
          * 무장도 다양하며, 수량이 많다. 작품 전개상 방어용 대공화기 위주로만 등장하지만 총탑만 따져도 100기가 넘어가며, 여기에 대포를 갖춘 선회포탑이 있고, 동체 중심부 근방에는 [[레이저]] [[포탑]]까지 있다. 일단 요격하려는 [[전투기]]를 상대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으며, 레이저 포탑의 경우 지상 목표도 사격이 가능한데, 단 1격에 삼각탑의 사경 1개를 개발살내고 삼각탑을 신불수로 만들었을 정도로 위력이 세다. 그리고 이런 총탑과 포탑은 모두 수납이 가능하므로 사용시에만 돌출하기 때문에 비행성능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 비행능력도 탁월하다. 우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직이착륙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주선]]도 아닌 주제에 '''단독으로 대기권 돌파 및 우주공간 진입도 가능하다.''' 물론 우주공간에서 다시 지구로 재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우주공간으로 올라가면 태양 에너지를 직접 받으므로 동력원 문제가 해결되면서 영구적으로 지속비행이 가능해지고, 따라서 항속거리는 이론상 무한대에 가깝다. 덤으로 태양 에너지로 초자력 병기를 충전해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단한 스펙과는 달리 안습한 처지에 놓인지라 절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추락한다.
  • 김동욱(배우) . . . . 5회 일치
         사실 신과함께 이전까진 작품이 들어오질 않아 집에서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481887|전전긍긍했고]]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4076074|배우의 길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김용화 감독에게 제의를 받았다. 물론 제작자들, 투자자들의 대가 있는 듯 했으나 김용화 감독은 이미 일찌감치 수홍 역으로 낙점한 상태라서 김동욱을 투입시키기 위해 오로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본인도 마지막 기회하고 생각하고 승낙했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는 대성공했다. --[[말년병장]] 포스 뿜뿜-- 김동욱에게는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3006805|새로운 전성기가 왔고]] 김용화 감독도 재기에 성공한 동시에 본인의 [[덱스터 스튜디오|회사]]의 기술력을 더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서로 윈윈하게 된 셈.
         || [[가운 살인자]] || 최정민 || 주연 ||
         || Fly away || 가운 살인자 OST(심은경 듀엣곡) ||
          * 일상을 공개한다는 것이 어색한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SNS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핸드폰에 셀카 기능이 없어 셀카 사진 한 장도 없다고 한다.[* 팟캐스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동욱의 핸드폰은 아이폰6로, 당연히 셀카 기능이 있다. 아마도 셀카 기능이 있어도 어딨는지 모른다는 뜻으로 보인다.] 당연히 셀카 찍는 법을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차태현은 셀카를 자연스럽게 찍는 면 김동욱과 하정우는 셀카를 매우 어색하게 찍었다.] 그래도 미니홈피는 존재한다.
          * 피부가 민감해 햇빛에 노출되면 알러지 응(두드러기)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모자를 꼽았고 실제로 모자를 많이 착용한다.
  • 김문집 . . . . 5회 일치
         |url=http://www.artnstudy.com/zineasf/Nowart/penitence/lecture/03.htm}}</ref>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기타=민족문제연구소 엮음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일본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일본인]]
  • 김준 (배우) . . . . 5회 일치
         | [[강력 (2011년 드라마)|강력]]
         == 음 활동 ==
         {{참고|티맥스 (음악 그룹)#음|설명= 티맥스로 발매한 음에 대해서는}}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5회 일치
          * 대체로 무난하게 구조활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려했던 웅영고 A도 야오요로즈 모모의 지휘 아래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 교사는 이걸 성의 기회로 삼으라며 "너무 영향을 받는다"고 디스한다.
          * 웅영고 A은 야오요로즈 모모의 지휘 아래 구조활동을 펼치는 중.
          * A은 완벽하진 않지만 상당히 잘 적응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아직 시험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 나머지 A 학생들은 몇 개의 조로 나뉘어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합력하는게 좋겠다고 결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5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와 [[토오가타 밀리오]]의 인연은 타마키가 초등학생이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친구였다.
          * 타마키의 사무소 후배 [[키리시마 에지로]]가 "혼자 맡겠다"는 말에 발한다. 이럴 때일 수록 공동대응해야 한다는데. 이때 핫사이슈 중 검은 마스크를 쓴 단발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날붙이를 든 녀석이다. 형사가 그 녀석은 "세츠노"이며 "화기를 쓸 수 없는 상대"라고 하는데. 무슨 개성인진 모르지만 성가신 모양이다. 세츠노가 바로 손을 올려 개성을 쓰려고 하니 [[아이자와 쇼타]]가 선수를 친다. 세츠노가 개성을 쓰지 못하자 옆의 대머리가 "개성을 지우는 개성"임을 간파한다. 그는 그걸 "에리의 열화 개성"이라 말하는데.
          * 키리시마와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타마키를 혼자 두는 패트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 그러나 패트껌은 실력으로 치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중 타마키가 제일이라고 단언한다. 단지 마음이 약하고 네거티브가 심한 것이 흠이었는데, 대로 말하면 그런 상태로도 웅영고의 빅3 중 일각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밀리오는 타마키와 정대였다. 당시 밀리오는 벽을 통과하는 것도 무리였고 손은 겨우 빼내도 얼굴이 걸려버리는 등 엉망이었다. 그런 추태를 보일 땐 그저 놀림감으로 전락했지만 밀리오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놀려대는 친구들에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고 항변하면서 "그래도 다음번에는 성공한다!"고 꺾이지 않았다.
          * 귀갓길. 타마키는 밀리오의 그런 강인함을 부러워한다. 면 자신은 실패할 걸 생각하면 머리 속이 새하애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며 "나는 틀렸다"고 자학한다.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5회 일치
         2006년 [[허밍 어 스테레오]] 2집의 객원보컬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인디 밴드 아키버드의 1집 《All Allowed》로 데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4&aid=0000130133 '핫'한 레이디제인! 그녀가 궁금하다.], 《스포츠경향》, 2010년 11월 8일</ref> 300 대 1의 경쟁률을 극복하고 발굴되고 나서 2009년 아키버드에서 탈퇴했다. 동년 [[홍대 (지명)|홍대]] 유명 실력파 밴드 [[티라미스 (음악 그룹)|티라미스]]의 멤버로 디지털 싱글 ‘슈팅스타’를 발매하였다. 이때 홍대에서의 많은 활동으로 ‘홍대여신’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2010년 10월 첫 솔로앨범 《이별 뭐 별거야》를 발표하였다. 인디 밴드를 벗어나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는 만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노래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2&aid=0002197578 '홍대여신' 레이디제인, 솔로 데뷔 선언], 《세계일보》, 2010년 10월 27일</ref> 2011년 11월 미니앨범 《Jane, another Jane》을 발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복고풍의 경쾌한 댄스 곡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2012년 前 남자친구인 [[사이먼 도미닉]]과 ‘여섯시 ’을 발매했으며, 이어 8월에 [[닥터심슨]]과 ‘Clinic 12.5%’를 합작, 발매하였다. 2013년 1월 9일 ‘Hello’의 발매에 이어 2월 15일 [[원써겐]]과 ‘New Story Part 5’의 발매, 9월 5일에는 싱글 음원 ‘일기 (Diary)’를 발매하였다.
         == 음 ==
         {{참고|티라미스 (음악 그룹)|설명=티라미스로 발매한 음에 대해서는}}
         * 2012. 《여섯시 》 (with [[사이먼 도미닉]])
  • 마기/330화 . . . . 5회 일치
          먼저 샤를르칸이 나서서 의견을 말한다. 그들은 두 사람보다 먼저 이 계획을 들었다. 알리바바는 전부 죽어버리는 이런 계획에 대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제자의 기대와 달리 샤를르칸은 "모두 찬성"이라고 답한다. 알리바바는 하늘이 무너진 것같은 표정으로 진심이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샤를르칸은 오히려 알리바바에게 "코 앞의 일에 연연하지 마라"고 설교한다. 그 자신은 물론 가족들과 엘리오트 합국의 국민들마저 전부 죽는 것도, 샤를르칸에겐 "눈 앞의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샤를르칸은 국왕인 자신이 당장의 평화만 지키는 걸로 만족해도 좋은지 문한다. 분명 자신들이 죽고 나면 세상은 다시 혼란스러워질 거라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왕이 된 후엔 그런 "미래"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씁쓸하게 자조한다. 또 "미래를 생각한다"는 말, 알리바바는 그 말을 이미 여러번 듣었다.
          * 알라딘은 모두 신드바드의 생각에 조종 당하고 있다고 외치지만 야무라이하는 자기 자신이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며 샤를르칸은 루프가 고치지거나 말거나 원래 자신은 신드바드를 존경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모든 팔인장이 이들과 같은 입장.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이들의 광기에 갇혀 버린 듯하다. 알라딘은 이들이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알리바바는 그 대라고 말한다. 이들은 모두 제정신이다.
          >다 함께 동자살을 하자고...
          * 신드바드의 미치광이 행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저세계로 중계되고 있었다고 밝힌다. 스크린에는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신드바드와 벌인 논쟁이 고스란히 비추고 있다. 황제국의 [[연홍옥]]이나 뢰엠의 [[티토스 알렉키우스]] 등 각국 지도자들은 물론 일 시민들과 유배된 마기인 [[유난]]까지 모두가 이것을 지켜보고 있다.
  • 마기/340화 . . . . 5회 일치
          *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물음. [[연백룡]]은 동료를 믿어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건 신드바드에겐 만족할 만한 답이 되지 못했다. 그는 곧 "책임 포기"라고 박한다. 왕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해 남을 이끌어주는 사람인데 그 자신의 정의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라면 다른 이들이 믿고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자 연백룡은 "왕의 정의 자체가 잘못되었다면?"이라고 문한다. 옳고 그름은 불변하는 가치가 아니다. 백룡은 황제국의 예를 들며 한때는 군사력에 의한 세력 확장이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황제이던 시기엔 복수가 대의였지만 대상이 사라지자 한계가 드러났다. 백룡은 이제 신드바드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로 그의 정의가 흔들리지 않을 것인지를. 혹시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선건 아닌가 하는 불안은? 신이 된 그는 그런 불안감에서 해방된 것인가? 백룡은 오히려 자신이 묻고 싶다며 신드바드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 백룡은 거기에 의문을 표한다. 설사 실패를 최소화하더라도 어째서 힘을 신드바드 개인에게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가? 왜 자신 외의 존재와 힘을 나눌 수 없는가? 백룡의 그러한 질문에, 신드바드는 자신이 실패할거 같냐는 문으로 답한다. 자신이 실패할거 같아 불안한게 이유라면 적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 앞장서 던전에 들어온 알리바바는 이번에도 기이한 던전 속의 풍경을 목격한다. 이곳은 결혼식장 같은 분위기의 던전. 재단 앞에 한 쌍의 남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17세의 신드바드와 그의 려였던 [[세렌디네 파르테비아]]다.
          * 그 자체로 충격적인 이야기였고 신드바드의 입에서 카심의 이름이 나오자 알리바바가 격렬하게 응한다. 하지만 그것이 잠시, 곧 신드바드와 세렌디에는 동시에 전신마장을 사용하며 던전 제파르에 주어진 질문을 외친다.
  • 무라하치부 . . . . 5회 일치
         전통적인 무라 사회에서 무라하치부를 당하면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기본적으로 에도 시대에는 산이나 숲을 무라의 공동 소유로 보았는데, 이런 공동 소유지인 산이나 숲에서 땔감, 비료(낙엽 퇴비 등)을 입수할 수 없게 되면 농업은 커녕 일적인 생활도 어렵게 된다.
         가마쿠라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는, 총촌에서는 회합으로 소우오테키(惣掟) 등의 독자적인 자치 규약을 만들고, 이 규약은 지배 영주와 무라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맺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치 규약을 위할 경우에는 무라에서 자체적으로 추방, 재산몰수, 신체형(태형), 심지어 사형 등과 같은 엄격한 형사 처벌을 시행하였다.
         전국시대에 자검단은 전국 다이묘의 지배가 강화되면서 겉으로는 소멸, 감소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겉으로만 폐지되었을 뿐, 영주로서는 무라에 과도하게 간섭해서 발을 부르는 것보다 회유하여 연공을 받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었다. 에도 시대에도 무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자검단은 거의 묵인되고 있었다.
         이 긴 문단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라하치부의 배경이 되는 향촌자치는 언듯 생각하듯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것만은 아니며, 농촌 사회 지배층이 주도하는 ‘작은 사회’ 지배에 수되는 무라의 폭력적인 처벌이 함께 뒤따랐다는 것이다. 무라하치부는 이러한 ‘처벌’의 형태 가운데 하나로서, 이 처벌 방식이 다른 것들과는 달리 비교적 오래 남게 된 것은 추방, 신체형, 재산몰수, 사형 등의 다른 처벌과는 달리 근대 형법 제도에 크게 배척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라하치부 사건 가운데서는 가장 유명한 사례이다. 이 마을에서는 1952년 이전부터 조직적인 대리 투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을의 토나리구미(隣組, 관 주도의 자치회)의 조장이 공공연하게 각 가정을 방문하여 기권하면 대신 다녀오겠다고 강제적으로 입장권을 회수하거나, 기권할 사람이 있으면 조장의 집에까지 입장권을 가지고 오라는 회람판을 돌렸다.
  • 문희옥 . . . . 5회 일치
         1969년 7월 27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학업을 위해 상경하였고, [[강원도]] [[태백시]]에서 위치한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인 1986년 당시 학교 장기자랑에서 가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의 응이 좋자 문희옥은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게 된 이후 둘째 언니의 주선으로 작곡가 안치행 씨를 만나게 된다.[* 안치행 씨는 [[최헌]]의 <오동잎>,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다.] 그 뒤 안 씨의 소속사 안타 프로덕션에서 1년 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87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사투리를 소재로 창작곡을 모은 <8도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메들리 음은 발표되자 마자 360만 장이 팔리게 된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주최로 학교 강당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것 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하이틴 스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좀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문제는 당시 시대상으로 사투리는 공중파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1987년 그 해에 <빈손>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빈 손 가사도 왠지 그 노래를 부른 10대 여학생과는 맞지 않았다~~ 1988년 문희옥은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였고, 꾸준히 더 많이 음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슬로우 템포의 <가는 님 가는 정>을 발표하고 1989년 원래 가수 정재은이 1984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를 2집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가수로서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교민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1990년 <강남 멋쟁이>가 히트하여 문희옥이 최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 현철과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잘했군 잘했어는 아는 사람은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하춘화 - 고봉산의 노래다. 그리고 여러 메들리를 발표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문희옥]]의 정통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이후 2018년 3월 18일 사건은 무혐의로 끝나긴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2&aid=0000305603|관련 기사]] 이렇게 결과가 나왔지만 아직 주변 응은 혼란스럽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결과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문희옥에 대해 비난하느냐 응원하느냐 따라 설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네티즌들과 수많은 팬들은 실망감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다. 여담으로 소속사를 옮겼다는 기사가 떴을때 전부 비난글이었다고..
          * 2013년 달손톱
  • 박세직 . . . . 5회 일치
         [[육군사관학교]] 제12기 출신이다. [[박희도]][* 1979년 12월 [[12.12 군사란]] 당시 제1공수여단장이었으며, 1985년 12월부터 1988년 6월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박준병]][* 1979년 12월 [[12.12 군사란]] 당시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이었으며, 이후 국군보안사령관과 국회의원([[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소속)을 지냈다.]과 함께 [[하나회]] 회원이었다. 그리고 박희도, 박준병, 박세직 등을 가리켜 '''쓰리 박'''이라고 하였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채명신]] 초대 파월사령관이 미군들과 파병 관련 한국 지원 및 작전 구역 설정, 그리고 지휘체계 설정 협상하는 과정을 지원하며 활약하였다. 이후 1976년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1979년 군사정보 참모를 지냈다. 박희도나 박준병과는 달리 하나회였음에도 [[12.12 군사란]]에 가담하지 않아서 [[김영삼]] 정권 때 화를 겪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2017년 10월 10일, 다시 큰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박세직의 손녀와 수영선수 [[박태환]]의 교제 사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 축하한다는 응도 많지만 교제 상대의 조부가 [[하나회]] 출신 주요인사라는 것이 주목받으며 부정적인 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 박영진(코미디언) . . . . 5회 일치
         특히 봉숭아 학당의 궤변론자는 [[디시인사이드]]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에서 아주 폭발적으로 응이 좋은데 애칭은 '디스박'. 어느 정도냐 하면 봉숭아 학당에 박영진이 등장하면 '디스박 ㅋㅋㅋ' 로 2페이지 가량이 도배된다.
         참고로 자신이 짠 아이디어는 굉장히 잘 살리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는 가장 못 살리는 개그맨 1위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코너를 만들었는데, 정작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주목을 못 받고 연기를 한 사람만 주목 받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미안해하기 때문이라고... 면 아이디어는 안 내고 다른 사람들의 개그를 주워먹는 개그맨 1위로는 [[박성호(1973)|박성호]]가 뽑혔다[* [[다중이]] 역시 본래는 [[김준호(개그맨)|김준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두분토론]]에서 '남하당' 의 대표로 나왔는데 역시나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역할이다. 여기 나와서는 '''구한말 어르신들이나 간간히 하실 말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욕을 엄청 먹었는데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이라고 했던 것이 의외로 응이 좋아서 계속 쓰게 되어 대박 유행어가 되고 이미지도 바뀌게 되었다. 역시 인생 한방.
         박성광과 박영진은 개그 코드가 너무 맞아서 그다지 싸운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MBC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볼 당시 최종시험에 '''박성광만 붙고 박영진은 떨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박성광은 시험을 포기. 그리고 그 다음해에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볼 때 대로 '''박영진만 붙고 박성광은 떨어졌다'''. 그런데 '''박영진은 그냥 혼자서 봤다'''(...)
          * [[귀막힌 경찰서]] - 박
  • 박윤경(가수) . . . . 5회 일치
         데뷔 당시 트로트곡〈부초〉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아버지〉도 함께 인기를 얻었다. 데뷔와 동시에 톱 가수로 성장하게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국에 박윤경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95년]] 박윤경은 본격적으로〈알리바이〉라는 경쾌한 리듬의 곡으로 두 번째 음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대표적인 음악프로그램《[[열린음악회]]》에 출연하여 가창력을 인정받고 대중들에게 각광받았다.
         [[1996년]] 3집 음을 발표하였으나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후 4집을 거쳐 [[1999년]]에 5집 음을 발표하였다. 그 음의 타이틀곡이자 신나는 성향의 트로트곡〈두리두리〉가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박윤경은 또 한번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2002년]], 6집 앨범까지 히트시키며 트로트 가수의 맥을 이어나갔다.
         == 음 ==
  • 배슬기(배우) . . . . 5회 일치
         2010년 1월 시점 다음 팬카페 회원이 '''26,000명'''이 넘는다. 사실 대부분은 비활동 중이겠지만 일단 탈퇴는 안 했다. 참고로 같은 시기 최고 유망주인 [[아이유]]가 2만 명이 될까말까한다. 한때는 유망주였다는 유일한 증거라고 해야할까... 물론 2010년 하기 이후로는 아이유가 너무 커버려서 비교 대상에서 제외다. [[안습]].
         2017년 5월 30일 엑소(EXO) 콘서트에서 [[채연]]을 포함한 볼링 팀과 함께 관람했다. 이 가운데 현장에 있던 팬들은 일행들이 공연 중 음식물을 먹거나[* 그 중에는 공연장에서는 입이 안 되는 맥주도 마셨다.], 공연 도중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고, 공연이 끝나기 전 단체로 자리를 뜨는 등 매너 없는 관람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해 도마에 올랐다. [* 게다가 채연과 배슬기도 가수인데도 후배 가수의 공연에서 비도덕적 행동을 한 것이다. 같은 가수로써 공연 비매너가 얼마나 불쾌하는지 그 누구보다 아실 분들이 비매너를 저질렸다.] 그 사건 이후 [[채연]]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607|해당기사]]
         == 음 ==
          * 2007년 5월 22일 《Flying》(정규 음 2집, 슬기 Say)
          * 2006년 9월 29일 《First Album》 (정규 음, 말괄량이)
  • 변요한 . . . . 5회 일치
         == 음 ==
          *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군 복무를 마친 육군 예비역이다. 연기를 위해 예고를 진학하려고 했으나 아버지의 대로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 입대한 뒤 한예종에 24살의 나이로 늦게 진학했다고 한다. [[http://sports.donga.com/3/all/20150111/69029903/3|관련 기사]] 여담으로 TAXI 미생편에 출연하였을 때, [[강소라]]가 변요한을 해병대 출신으로 소개해 당황한 적이 있다. 알고보니 주변 사람들이 강소라에게 거짓말을 한 것. 이에 대해 강소라는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호감도가 높았다며 울컥했다.
          * 20대 초 연기하기 전 길거리 캐스팅된 적이 있으나 아버지가 '빠른 길 말고 바른 길로 가라'며 대하셨다고 한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501060945053410|관련 기사]]
          * 류준열이 '''[[류준열/논란#s-1|일베 논란]]'''에 휩싸이자 2016년 2월 24일 인스타그램에 '미풍에 흔들리지 말고, 정진. 화이팅'이라는 응원하는 듯한 문구를 올려 네티즌들에게 싸잡혀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해당 배우의 소속사가 강경하게 박 및 대응하고 있으며 과거 행적으로 볼 때 악의적인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시점으로 봤을때는 변요한이 잘못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류준열의 무고가 다 밝혀진 현재 시점에선 옳은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5회 일치
          * 아스타는 사적으로 마법의 검으로 그 마법을 베어버리는데, 이 짧은 공방의 여파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 정도다.
          [[마법제]] 율리우스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올해 신인 중 별획득수가 1, 2위를 다투는 유망주다. 그것도 입단 후 년 만에 쌓은 성과. 둘은 같은 고향 출신 동기지간으로 불과 16세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어린 나이에 두각을 보인다고 하자 청중들 사이에서 둘의 평가가 더욱 올라간다.
          * 유노는 잡다한 론보다는 단순한 해결책을 생객해 낸다. 그는 바람의 정령 벨에게 최대한 힘을 끌어내라고 한다. 그 순간 같은 단상의 단장들이 놀랄 만큼 강대한 마력이 방출된다. 마법덕후인 율리우스는 정령마법이 발동하자 눈을 빛낸다.
          * 아스타가 사적으로 마법을 베어버린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작은 격돌의 여파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스타가 "왜 맨날 느닷없이 이런 짓을 하냐"고 발끈한다. 유노는 살아있으니 됐고 죽으면 그것 뿐인 녀석인게 아니냐고 얼버무린다. 둘에겐 일상같은 장난이지만 그걸 지켜 본 시민들은 인식이 바뀐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이고 그걸 또 간단하게 막아내는 걸 보고 더이상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사라졌다. 셋케 또한 자신이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른 둘을 보고 경악한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5회 일치
          잭스의 함정마법이 발동. 랜길스의 공간마법들이 사되어 날아갔다.
          어린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12세. 진짜 이름은 "조라 이데아레". 다만 자신은 그 정체성을 버린 듯 하다. 지금 모습은 아버지가 어릴 적 만들어준 히어로 인형 "슈퍼 마도사 조라"에게서 따왔다. "입은 거칠지만 한 말은 드시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란 설정이다. 조라가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는걸 걱정한 아버지가 "꼭 이렇게 될 필욘 없지만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봐라"는 격려의 의미에서 만들어줬다. 실패가 많지만 항상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으면서 크게 낙담한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의 동료라고 믿었던 마법기사들이 실은 아버지를 매도하고 아니꼬와하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봉사하던 아버지를 팀킬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자 정신줄을 놔버린다. 이후 슈퍼 마도사 조라의 모습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다녔다. 지금 이름인 잭스 류그너도 실제론 인간말종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박살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 로열 나이츠 시험에 난입한 것도 마법기사들을 박살내려주려는 의도였던 듯. 아버지가 동경하고 있었던 마법기사의 이미지를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으며 마법기사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아버지의 이상에 맞지 않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해서다.
          랜길스를 상대로 마법진을 펼치나 랜길스는 간단하게 우회, 잭스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나 그것 자체가 페이크. 진짜 함정마법진은 자기 몸에 설치해놨다. 마르크스는 그런 짓을 하는건 자신을 공격하는 거나 다름 없다고 경악해 하는데 이런 독한 짓을 하는건 그 말고는 없었는지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악한다. 함정마법은 사 마법이었고 랜길스의 공간마법들이 몇 배로 커져서 사된다. 랜길스의 공간마법에 맞았을 땐 "오늘 처음 나에게 공격을 성공시켰다"며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확실히 2회전에서 구덩이 파느라 개고생하긴 했지만 공격에 맞은건 처음.
          역대 가장 쓰레기같은 마법기사단 인증. 이전에도 단장이 비리를 저지르다 마법제 차원에서 조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부단장인 잭스 류그너가 인덕으로 유명하다는 둥의 얘기가 나와서 이미지 쇄신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에피에서 하층민이 동료가 됐다는 것만으로 팀킬을 자행하질 않나 그 성자라던 잭스는 인간말종이질 않나 최악의 기사단으로 전락했다. 사실 하층민 동료를 차별하는 묘사는 마법기사들 전에 흔했지만 대놓고 팀킬을 해버리는 예는 이번이 처음. 금색의 여명이나 은익의 참수리 조차 선민의식은 쩔어도 아스타 등이 대활약하자 생각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쪽은 만회의 여지가 없다.
  • 블랙 클로버/68화 . . . . 5회 일치
          * 마력이 해방된 노엘은 물 창성마법 "해룡의 포효"를 날리고 베토의 우신이 날아갈 정도로 강력한 타격을 준다.
          * 베토는 우신이 날아가는 치명상을 입는다.
          * 그리고 날아간 우신이 깨끗하게 회복된다.
          * 일적인 회복마법은 그저 상처를 막는거지 재생이 되진 않는다.
          * 노엘은 해룡의 포효를 쓴 동으로 마력이 고갈된 상태. 무방비한 상황에서 그대로 공격을 받는다.
  • 블랙 클로버/73화 . . . . 5회 일치
          * 카호노와 키아토도 회복 중. 키아토는 노엘 실버에게 해버린다.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노엘. 하지만 카호노는 신전을 지켜줘서 고맙다며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드시 치료해서 아이돌이 되겠다고 의욕을 불사른다.
          * 노엘이 돌아간 뒤 키아토는 노엘에게 해서 "드시 다리를 고쳐서 구애의 춤을 추겠다"는 목표가 생긴다. 하지만 카호노는 "노엘은 좀 어려울 것"이라고 회의적인 응.
  • 삼감의 난 . . . . 5회 일치
         [[주나라]] 초기에 일어난 란.
         [[상나라]]의 왕족으로 [[주왕]]의 아들인 무경(武庚)은 [[주나라]]에 항복하여 옛 상나라 영토에 봉해지고, 이를 [[주문왕]]의 아들들([[주무왕]]의 동생들)이 감시하게 되었다. 감시를 맡은 주나라 왕자들을 삼감(三監)이라고 한다. 무경은 덕(德)이 있어 옛 상나라 영토를 부흥시켰고, 본래 감시를 맡은 주나라 왕자들은 오히려 무경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면 주나라는 주무왕이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어린 [[주성왕]]이 즉위하며 [[주공단]]이 섭정을 맡아 보좌하는 상태가 되었다.
         본래 주공단의 동생인 삼감은 주공단이 정권을 잡고 섭정을 하는데 발한다. 삼감 가운데 관숙선(菅叔鮮) 등 2인이 무경을 옹립하고 란을 일으켰는데, 명분은 주공단이 주성왕이 어린 것을 이용하여 자의적으로 국정을 운용한다는 것이며, 주나라를 대신하여 상나라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류:중국 역사]][[분류:란]]
  • 서신애 . . . . 5회 일치
         [[1대 100]] 476회 후전 방영분에서 1인으로 참여했으며 5,000만원을 타게 되면 등록금 지불하는 데 쓰고 싶고 차를 사서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녀는 뛰어난 실력, 적절한 시기에 사용한 찬스, 그리고 모르면 3번을 찍겠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푼 결과 8단계에서 최후의 3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여기서 1, 3번을 고민하다가 3번이 너무 많이 나와서(선지분배 2:0:5) 정답 3번 대신 1번을 고르는 바람에 적립금 616만원과 우승 상금 5000만원 모두 [[안드로메다]]로......(최후의 3인 결과를 먼저 공개)
         ||<tablebordercolor=#8F6594><rowbgcolor=#8F6594><-6> '''{{{#F7E67A 476회 후전 결과}}}''' ||
         || [[2011년]] [[12월 16일]]~[[2011년]] [[12월 25일]] || 동탄복합문화센터 석아트홀 || 악역배우 남달구 || 남지원 || 연극 ||
          다만 [[남초]]와 [[여초]] 커뮤니티 모두 공통되게 [[무리수]]였다는 응을 보이고 있다. 드레스 자체도 전혀 안 어울렸고 몸매나 비주얼 자체도 글래머러스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애기가 어른 옷을 입고 나온 것같다는 응이 많다. 2018년 2월 28일에 방송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밝히기를, 본인은 이게 예뻐 보여서 선택했다고...
  • 성시경 . . . . 5회 일치
         == 음 목록 ==
         |《[[Thank You (토이의 음)|Thank You]]》
         |《[[Da Capo (토이의 음)|Da Capo]]》
         |《[[Da Capo (토이의 음)|Da Capo]]》
         == 음 외 활동 ==
  • 송지효 . . . . 5회 일치
         드라마 강력 제작발표회의 송지효
         | 《[[강력 (2011년 드라마)|강력(強力班)]]》
         * 리스피아르 조사 연구소 - 2011년 하기 여자 탤런트/영화배우 부문 10위
         * 리스피아르 조사 연구소 - 2013년 상기 여자 탤런트/영화배우 부문 10위
  • 스틸오션/미국 . . . . 5회 일치
         >1930년대 발생한 경제 위기는 미국의 조선 공업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1934의 뉴딜 계획에 따라, 신형 디젤-전기식 고속 잠수함인 P급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기술의 발전에더 불구하고 P급 잠수함은 뇌격 능력이 부족했다. 훗날 설계된 많은 잠수함이 P급의 설계에 기을 두고있다. 10척의 P급 잠수함이 세개의 배치(batch)를 거쳐 건조되었다. 각각의 배치는 이전 배치보다 근소한 성능 향상을 보였다.
         >영국 구축함에 기을 두어 건조된 패러것급 구축함은 전간기 설계를 사용한 첫 미국 구축함이다. 대형 선실과 연돌 두개를 장비한 패러것급 구축함은 5인치 함포와 Mk.37 사격통제장치로 무장하였다. 초기 패러것급은 다섯개의 포탑을 장비했다. 모너핸(Monaghan)은 진주만 공습 당시 폭뢰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켰다.
         >기어링급 구축함은 알렌 M. 섬너급의 하위 개량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기에 건조된 이 배들은 카미카제 공격에 맞서 피켓 레이더함으로 활동했다. 종전 이후, 많은 기어링급이 미사일과 레이더를 업그레이드했고, 몇몇은 해외로 매각되었다. 오늘날 최소 한척의 기어링급 구축함이 대만에서 사용되고 있다.
         >애틀랜타급 순양함은 원래 선도구축함으로 설계된 경순양함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효과적인 대공구축함이라는걸 증명해냈다. 애틀랜타급 순양함 총 네척과 개선형인 오클랜드급 순양함(Oakland-class) 네척이 발주되었다. 애틀랜타는 1942년 11월 13일에 일어난 과달카날 해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격침되었다. 주노(Juneau)는 인디스펜서블 해협에서 후퇴하던 도중 일본 잠수함 I-19에게 격침되었다. 이때 사망자에는 설리 오형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설리 오형제의 죽음으로 미 전쟁성은 솔서바이버 정책[* Sole Survivor Policy. 형제들 중 전사자가 있을 경우 병역이나 전투병과에서 제외되는 정책.]을 채택한다.
  • 식극의 소마/170화 . . . . 5회 일치
          * 에리나 조차도 생소한 음식인데다 내용물이 흰지가 살짝 굳고 노른자가 숙 상태인 이상적인 상태라 놀라워한다.
          * 숙란에 튀김옷을 입혀 튀겼다고 생각해 보지만, 그러면 이런 숙 상태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
          * 죠이치로는 새로운 요리를 할 때는 언제나 쯤만 확신이고 쯤은 도박이라며 확실한건 없다고 한다.
  • 식극의 소마/175화 . . . . 5회 일치
          * 소마팀을 포함 무리없이 시험을 통과한 역자팀.
          * 시험관은 이번에야 말로 역자를 일소하겟다고 벼르는데
          * 시험관은 이들을 떨구지 못해 통탄하는데 다른 방에서도 역자들은 누구도 탈락하지 않았다.
          * 그리고 역자 전원 통과라는 이변에 술렁거리는 시험관 일행.
          * 다음 시험에선 역자를 일망타진하겠다고 벼른다.
  • 식극의 소마/176화 . . . . 5회 일치
          * 시험관 엔도의 농간으로 역자 일행은 제대로된 재료를 제공받지 못하고 눈보라에 가로막혀 재료를 구할 갈 수도 없어진다.
          *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순번이 밀리는 역자 그룹.
          * 엔도는 이번에야 말로 역자들이 전멸할 거라고 장담한다.
          * 역자들이 뭔가 하고 있다는데?
          * 소마팀 뿐만 아니라 역자들은 전혀 아랑곳 않고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 식극의 소마/177화 . . . . 5회 일치
          * 열악한 상황임에도 감자와 전분가루로 면을 만들기 시작하는 역자 군단
          * 감독관은 에리나 덕분에 요행을 얻은 거라고 폄하하지만 에리나는 직접 나서 "이들은 당신에게 질 요리인이 아니다"라고 박한다.
          * 소마를 비롯한 역자들은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면 만들 채비에 들어간다.
          * 엔도 감독관은 허세일 뿐이라고 잘라 말하지만 각 시험장 마다 역자들이 남아 면을 만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 결과는 역자 전원 생존.
  • 식극의 소마/181화 . . . . 5회 일치
          * 쿠가는 하야마는 도발하면 드시 응할 테니 적당히 말로 때우면 된다고 부추긴다.
          * 린도가 연락을 했으니 전혀 응이 없었는데, 막상 출발할 때가 되자 돌연 나타났다.
          * 지금까지 쭉 역자팀이 칙을 당했기 때문인지, 이번엔 소마의 칙타임. 흡사 오픈북 시험 치는데 작년에 과탑했던 선배가 와서 도와주는 격이다. --이놈의 학교는 정상적으로는 시험 진행이 안 되나--
  • 식극의 소마/190화 . . . . 5회 일치
          * 시오미 준은 하야마의 센트럴행을 크게 대하며 그렇게까지해서 세미나를 유지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야마는 고집을 부려 결국 지금에 이른다.
          * 그가 배틀로얄에 승리해 샌트럴에 들어갔을 때, 나키리 아자미는 결코 약속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는 "첫임무"로서 소마의 진급시험에서 그를 밟아버리라고 지시한다. 당연히 하야마는 거절하며 약속과 틀리다고 하지만 아자미는 권력을 내세워 "센트럴에 들어온다는건 나에게 충성하는 것"이라며 발을 용납하지 않는다.
          * 이 같은 상황은 당연히 시오미 준에게도 전해진다. 시오미는 당장 센트럴에서 나오라며 하야마를 타이른다. 하야마는 이 방법 말고는 프로젝트를 존속시킬 방법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시오미는 어차피 아자미가 그런 걸 허용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박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어떻게든 세미나를 유지하고 준을 지키고자 하는 하야마는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다그치던 시오미는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길 바라지 않았다"고까지 말하는데, 거기에 상처를 입은 하야마는 어떻게든 세미나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된다.
          * 그렇게 오전엔 닥치는대로 소재를 끌어모아 오후에 실험작을 만들기를 복. 이런 과정 속에서 단맛을 내는 소재와 떪은 맛, 혹은 쓴맛을 내는 소재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해봤다. 그 결과 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다시 "쓴맛을 가진 꿀"인 황벽나무 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 정말로 아슬아슬할 정도로 시간을 쓴 결과물이었다.
          * 도지마는 그의 실력과 요리의 완성도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이 정열을 담아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완성했다고는 할 수 없고 결정적으로 "누군가에게 맛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그 정신이 빠져있다고 평가한다. 하야마는 거기에 아무런 박도 하지 못한다.
  • 식극의 소마/192화 . . . . 5회 일치
          * 뿐만 아니라 다른 루트의 쿠로키바 료, 나키리 아리스를 비롯한 역자 전원이 패배. 퇴학처분 되었단 소식이다.
          * 절망에 빠져있는데 소마는 오히려 간단한 상황이라며 "우리들이 십걸의 과수를 이겨버리면 된다"는 무지막지한 발언을 하는데.
          * 에리나는 아무튼 두 명은 살아남았다고 안도하는데 눈치 빠른 타쿠미는 "두 명은"이란 말을 듣고 무슨 얘기냐고 묻는다. 결국 에리나가 상황을 설명한다. 다른 루트의 역자들은 전멸. 타쿠미는 이런걸 보고만 있어야 하나며 분노를 터뜨린다.
          * 그런데 소마는 뭔가 어정쩡하게 분노하고 있다. 타쿠미가 왜 그리 태평하냐고 갈구니 "어쨌든 요리승부로 진 것"이라며 적을 욕할 일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타쿠미도 그 점에는 박을 못하지만 이 판국에 누구 편이냐며 까댄다. 그러자 소마는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십걸은 학교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지 않냐는 것.
         십걸 과석을 우리가 따내버리면 되는 거야. ||
  • 식극의 소마/212화 . . . . 5회 일치
          * 먼저 심사를 받는건 [[키노쿠니 네네]]. 적과 아군의 모든 이목이 그녀의 한 그릇으로 모인다. 갇혀있는 역자들 조차 너무 맛있게 보인다고 혀를 내두르는 소바. [[샤름]]은 면의 윤기와 결을 "우아한 여성의 살결"에 비유하며 [[이스트와르]]는 에도소바의 가계 답게 기술을 멋지게 계승했다고 평한다.
          * 그리고 심사의 시작. 안이 젓가락을 들자 부하들도 따라 시식한다. 우선은 면부터. 일적으로 9할 소바는 찰기가 부족해 퍼석거리는 식감이기도 한데 네네의 소바는 매우 부드러운 목넘김을 선사한다. 그리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메밀의 향. 이들이 먹는 모습에 역자들도 침을 삼키며 저녁은 꼭 소바로 먹겠다고 다짐할 정도다.
          "태백 참기름"은 저온에서 만든 참기름. 일적인 참기름은 고온에서 만들어 강한 향과 맛을 가지지만 이쪽은 저온에서 만들어 참깨 특유의 향보다는 무미무취에 가까운 담백한 맛이다. 그러나 기품이 있고 점잖은 맛을 내는데, 이 기름을 고온으로 가열해 튀기면 원재료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 부드러운 튀김옷이 완성된다.
          개드립은 여기까지하고, 아무튼 샤름은 심사의원을 대표해 "일식의 저력을 맛봤다"고 표현할 정도로 깊은 감동을 표한다. 적이 이렇게 극찬을 받는다는 것은 역자 팀의 위기. [[나키리 에리나]],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 식극의 소마/218화 . . . . 5회 일치
          * [[마루이 젠지]]는 상급생들이 질 경우 사기가 꺾일 걸 우려해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결국 결정권은 [[나키리 에리나]]에게.
          * 2라운드 시작. 역자팀은 메기시마, 쿠가, [[미마사카 스바루]]로 결정. 강하긴 하나 하지만 센트럴이 3학년을 투입하면 전부 스윕도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다.
          * 2라운드 대전자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 역자의 대기실이 떠들썩하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건 [[나키리 아리스]]. 그녀는 [[사토시 잇시키]], [[메기시마 토스케]], [[쿠가 테루노리]]로 현재 낼 수 있는 최강 전력을 구성해 "최대 전력을 단번에 투입해 적을 빠르게 제압한다"는 이론을 주창한다. 그녀는 이 이론을 강조하기 위해 별 상관없는 수식까지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는 열성을 보였다. 여기에 대항해 [[마루이 젠지]]는 강한 카드를 순식간에 소모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고했다. 상황을 보면서 전력을 온존하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 그 옆의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별 의견이 없다.
          >드시... 내가...!
          * 연대식극 2회전의 무대가 시작됐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역자 측에서 나타난 출전자들은 이 셋. 쿠가, 메기시마, [[미마사카 스바루]]다. 셋 모두 더할나위 없이 자신감에 차 보이지만 관중들의 평가는 미묘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는건 역시 전 3석 메기시마. 그를 누구와 싸우게 하느냐가 2라운드 승패를 가늠할 것이다. 미마사카는 그저 "기분 나쁘다" 외에는 논외. 그리고 쿠가는 전 십걸 출신인데도 "3학년을 꺼내면 무난하게 이길 상대"라고 상당히 평가 절하 당한다. 어느 정도는 쿠가 자신도 그런 평가를 알지 모른다. 센트럴 측 출전자가 발표되려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재점검하고 소마의 승리를 떠올린다. 소마도 이겼는데 여기서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쿠가 테루노리의 이름이 운다면서. 그는 호기를 부려서 센트럴 측을 향해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 식극의 소마/220화 . . . . 5회 일치
          * 외부의 주목도가 어떻든 메기시마는 느긋하다. 그는 주제를 적은 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고추로 뭘 만들지 고민해 본다. 면 린도는 거침이 없다. 벌써 주재료를 정하고 메기시마에게는 "고민할 틈이 있냐"고 도발한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악어]]. 일본에선 매우 희귀한 재료다. 린도가 살아있는 악어를 고르자 지켜보던 이들이 술렁거린다. 물론 구하지 못할 재료는 아니지만 식극이란 무대에서 이런 특수한 소재를 고른다는건 대단히 자신이 있다는 얘기. 감옥에 갇힌 역자들이 수군대자 카와시마가 괜히 기세등등하다. 그녀는 린도가 토오츠키 학원 역사에서도 드문 "희소식재료 마스터"라고 소개한다. 희소식재료란 말에 [[유키히라 소마]]가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하던 와중에 린도가 악어를 놓친다. 새끼 악어지만 상당히 빠른 몸놀림으로 카와시마에게 돌격,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 어찌됐든 악어는 린도에게 다시 포획.
          * 이래가지고 정말 악어를 써먹을 수는 있나? 그런 의혹이 퍼진다. 그러나 걱정할 필욘 없었다. 다시 악어를 손에 넣은 린도는 해체용 칼을 능숙하게 돌리며 메기시마에게 승부욕을 어필한다. 함께 십걸이었을 때도 즐거웠지만 적대하기로 한 이상 용서없이 쳐부수겠다는 것. 메기시마도 그럴 생각이라며 전력으로 나오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린도는 "네 목숨을 감사히 받아가겠다"고 선언한 뒤 악어 해체에 들어간다. 그리고 린도가 보여주는 솜씨는 역자팀이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 린도는 평소의 장난기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악귀같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악어의 단단한 껍질이 떨어져나가고 탄탄한 육질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다양한 칼을 바꿔가며 악어의 껍질을 벗기는 솜씨는 눈으로 따라가기고 어렵다. 손질에서 피뽑기까지. 조금의 시간 낭비도 없이 마쳤다. 역자들은 그 속도는 물론 모든 부위에 가장 적합한 칼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솜씨에 경악한다.
          * 상대인 린도가 놀라운 호조를 보이며 좌중의 이목을 쓸어간다. 면 메기시마는 묵묵하다고 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다. 관중석은 메기시마가 린도에게 쫄은거 아니냐고 야유를 퍼붓는다. 그때 카와시마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 안재욱(배우,가수) . . . . 5회 일치
         이후 MBC에서 [[짝]], 전쟁과 사랑, 자고등어 등의 드라마를 찍으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나가다,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서 그의 [[포텐]]을 터뜨리며 톱스타의 열에 오른다. 이 드라마에서 안재욱은 당대의 최고배우 중 한 명인 '''故''' [[최진실]]과 호흡을 맞추며 가수 강민 역할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역할 덕분에 실제 가수로 데뷔까지 하게 된다. 더불어 맥가이버 머리까지 하면서, 젊은 남성들한테는 뒷머리 기르기가 유행이기도 했다. --실사판 [[야가미 이오리]]--
         '''뜬금없이 하기 드라마 [[마의(드라마)|마의]]로 나타난 [[조승우]]에게 거의 강탈수준으로 상을 내줘버린다'''. 심지어 조승우는 그 직전에 최우수상을 받은 뒤라 누구도 조승우의 대상을 예상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당연히 안재욱이 대상을 받아야 할 상황. 그런데 MBC는 '''대상 후보를 최우수상 수상자들로 한정'''지어버렸다. 즉 안재욱이 최우수상을 못받은 순간부터 대상도 날라간 셈.
         || 자고등어 || 상우 || ||
          * 1996년 MBC 연기대상 우수연기상 《자 고등어》
  • 양예나 . . . . 5회 일치
         때론 포스 있어 보일 수 있지만 멤버들과 있을때는 꽤나 장난꾸러기이며 웃을 때는 영락없이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멤버들에게 스킨십으로 애정 표현을 한다. 본인 말로는 팀에서 리액션을 맡고 있다고 한다. --사신경은 [[이나은]]이 압승-- 그리고 팀에서 애교도 가장 많다고 한다.
         하지만 포근함과 차가움 두가지 상된 매력을 자연스럽게 모두 갖춘 캐릭터는 아마 예나가 유일할 것이다.
         미니 2집 Spring 활동을 하며 [[이나은]]과 함께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는데 팬들의 응이 매우 좋았다. 염색하니 더 예쁘다는 평이 대다수.
         [[레이첼(APRIL)|레이첼]]이 발레를 전공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춤선을 가진 면, 예나는 박자감이 두드러지는 칼박스타일로 춤을 추며 주특기가 남자&여자아이돌 [[댄스 커버]]이다. 또 에이프릴 안무담당이기도 하다.
         oh no "이파트에서 역대급 청순하고 아련하고 여리여리한 목소리를 냈다. 그 가냘프고 여리여리하고 포근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소속사 내에서도 인정 받았는지 도입부에서 후렴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파트를 하나씩 배정받아 어색함 없이 잘 소화해내고 있다. --그게 다인게 함정-- 때문에 보컬 파트에서의 활약도 팬들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있는 중. '동요구출작전'에서도 레이첼과 정대의 음색으로 노래한다.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5회 일치
         상대방이 근접 공격을 걸어올 때, 상대방의 머리 위에 붉은 삼각형이 뜨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막기가 가능하다는 뜻[* 삼각형이 안 떠도 공격을 막을 수는 있다.]으로, 격키(PC 기준 보통 설정 "E")를 눌러 막을 수 있다. 이렇게 공격을 막고 난 후에는 몇가지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대표 없이 조세 없다,"를 외치며 영국에 대항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당시 식민지인의 40~45%가 애국자를 지지했다고 한다. 초에는 보스턴 한구석에만 자리잡고 있다가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왕당파를 몰아내기 시작, 스토리가 끝난 시점에는 전 지역을 차지한다.
          애국자의 역에 맞서 영국을 지지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식민지인 다섯명 중 하나는 열성 왕당파였다고 한다.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며 점점 세력권이 좁아지다가 메인 스토리 완결 후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 미국 독립 이후 왕당파는 아직 영국령으로 남아 있던 [[캐나다]]로 도주했다.]
          머스켓과 단검, 혹은 토마호크로 무장한 병사들. 건물을 기어오를 수 있으며 평타와 방어파쇄에 격할 수 있다. 그래봤자 카운터킬에 푹찍. 애국파 경보병은 민병이랑 알아보기 힘들게 생겼다.
          머스켓과 도끼로 무장한 병사들. 카운터를 먹이려고 하면 박치기로 격한다. 방어파쇄 저항이 없다.
  • 원피스/835화 . . . . 5회 일치
          * 토트랜드 쇼콜라 타운. 이 나라의 국민들은 년에 한 번씩 "어떤 질문"을 받는다.
          * 나미는 재빨리 크리마 텍트를 꺼내서 격한다.
          * 게다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공격이 튕겨져 나와 오히려 격 당한다.
          * 거울로 향하는 공격 등을 사할 수 있는 능력.
          * 빅맘은 일행이 멋대로 하게 둬도 좋지만 "상디와는 만나게하지 말 것. 그리고 기를 든 사실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지시했다.
  • 원피스/862화 . . . . 5회 일치
          >하고 개이면서 상처입으며
          * 상디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번진다. 그가 방심하는 동안 푸딩은 치마 속에서 총을 준비한다. 그대로 상디의 이마를 꿰뚫어줄 차례인데... 상디의 응이 예상을 초월했다.
          상디는 새삼 한 듯이 홍조를 띄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푸딩의 응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는다. 이게 카타쿠리가 본 미래. 상디가 당황해서 "가까이에서 보니 해버렸다"고 수습하는데 푸딩은 그 말에 또 한 번 감동 받는다.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빅맘은 조바심을 낸다. 하지만 푸딩은 고백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 원피스/863화 . . . . 5회 일치
          * 돌입 세 시간 전. [[몽키 D. 루피]]는 숲에서 잡은 대량의 동물을 [[샬롯 브륄레]]의 능력으로 자신의 모습으로 바꿔 케이크에서 뛰쳐나오게 했다.
          * 작전 개시로부터 세 시간 전. 그러니까 일행이 아직 [[카포네 갱 벳지]]의 아지트에 있을 때의 일이다. [[몽키 D. 루피]] 자신이 자신하던 [[원피스/859화|재미있는 등장법]]을 벳지에게 설명한다. 그는 웨딩 케이크 안에 커다란 거울을 넣어뒀다가 거울 세계를 통해 케이크 안에서 튀어나오는 연출을 구상했던 것이다. 벳지는 당장 좋다 아니다 말은 안 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는지 거절하지도 않는다. 그 자리엔 [[샬롯 브륄레]]도 있었는데, 빅맘 [[샬롯 링링]]이 케이크가 박살나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기 때문에 절대해선 안 된다고 성화를 부린다. 하지만 루피는 브륄레가 하는 말 보다는 그녀의 능력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근처 숲에서 동물들을 잔뜩 잡아온 다음, 유혹의 숲에서 한 것처럼 자기 모습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다. 브륄레는 당연히 질색하지만 결과적으론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 곧이어 나미, 캐럿, 쵸파도 회장으로 돌입. 시저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나미는 그에게 "뒷정리를 부탁해 인간쓰레기"라며 빈정 상하는 소릴 한다. 캐럿이 그 말을 듣고 그렇게 글러먹은 사람이냐고 놀라자 쵸파가 나미에게 맞장구치며 "저 자식은 최악"이라고 매도한다. 시저는 딱히 박할 기회도 없이 그저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나미 일행도 미러 월드 바깥으로 나간다.
          >상디는 드시 되찾아가겠어!
          * 빅맘은 그의 등장과 행동에 잠깐 놀라지만 곧 코웃음을 친다. 그녀는 징베에게 이건 역행위로 간주해도 좋겠냐고 묻자 징베는 "제발 그렇게 봐줬으면 한다"고 한술 더 뜬다. 그리고 자신은 빅맘 산하를 나와 밀집모자 일당에 들어가고 싶다고 선언한다. 기자정신에 불타는 모간즈가 이것을 놓치지 않는다.
  • 원피스/872화 . . . . 5회 일치
          * 한참 역자들을 처형할 생각으로 들떴던 빅맘 [[샬롯 링링]]이 성이 기울고 자신도 추락하기 시작하자 어안이 벙벙하다.
          * 성이 완전히 무너졌으나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는데, 안도할 틈도 없이 달아난 역자 추격에 나선다.
          * 그렇게해서 현재. 다과회와 암금왕 루 펠드와 스튜시 등이 얽혀서 복잡한 경로로 개봉된 옥갑은 재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성 밑으로 떨어진 옥갑이 깨지면서 기폭장치가 작동, 홀 케이크 성 절을 날리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홀 케이크 아일랜드 바깥에서 관측될 정도의 대폭발. 성 안은 난데없는 폭발음과 성 일부의 소실, 이어지는 기울음으로 아비규환이다. [[타마고 남작]]이 상황을 종합해 보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능성이 떠올라 버렸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둘이다. 그 둘,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스튜시와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건즈는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스튜시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로 옥갑이 이 사태를 일으킨 거 같다고 말하자 모건즈가 달리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성의 붕괴는 다과회장의 구도를 많이 바꿨다. [[샬롯 카타쿠리]]에 제압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빈스모크 이치디]]가 해방됐다. 역시 포위됐던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 루피도 탈출 성공. 레이쥬는 급변한 상황의 원인을 궁금해하지만 상디는 그딴건 됐으니 우선 도망치자고 다그친다. 가장 경황이 없는 건 빅맘. 역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처형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그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온통 쓰러지고 뒤엎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 사이 사로잡혔던 [[빈스모크 니디]], [[빈스모크 욘디]]가 무사히 빠져나와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무사히 구출했다. 의식을 잃은 채지만 목숨까지 잃진 않았다. 물론 최종적으론 이 무너지는 성에서 벗어나야 그렇겠지만.
          벳지는 한숨 돌리게 되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되짚어 본다. 괴총 비트가 성이 케이크가 됐다고 보고한다. 그 얘기를 들어보니 탈출 이후의 상황은 추측이 갔다. 우선 성을 케이크로 바꾼 건 슈트로이젠의 솜씨일 거다. 벳지는 그의 능력은 몰랐지만 대로 나머지 녀석들의 능력은 전부 알았다. 그들 중에 저런 묘기를 부릴 능력자가 없으니 저건 슈트로이젠이 한 짓이 된다. 벳지는 전부터 슈트로이젠의 능력은 몰라도 꽤 강자일 거라고 추측하던 터였다. 그리고 아마 빅맘 해적단은 전멸을 면했을 것이다. 다만 성이 날아갔으니 이럭저럭 속이 후련하긴 하다.
  • 원피스/874화 . . . . 5회 일치
          * 놀라운 위력으로 킹밤의 좌신을 소멸시킨 빅맘. [[몽키 D. 루피]]는 당장 내려서 빅맘을 저지해야겠다고 작정하나 [[나미(원피스)|나미]]에게 작전이 있다.
          [[몽키 D. 루피]]는 좋지 않은 낌새를 차리고 일행에게 경고하고 킹밤에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빅맘이 자신의 모자 "나폴레옹"을 검형태로 바꿔서 쓰는 기술 "위국". "엘바프의 창"이란 명칭대로 빅맘이 팔을 휘두른 방향으로 직선의 충격파가 꿰뚫고 지나간다. 충격파는 킹밤의 좌신을 깨끗하게 삭제하고 계속 나아가 홀 케이크 아일랜드 외곽의 절벽에 구멍을 냈다. 터무니 없는 위력. 일행은 직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위력을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루피는 그 순간에도 엘바프 거인족의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을 간파한다.
          나미의 판단이 정확했다. 느긋한 얼굴로 빅맘을 태우고 다니던 제우스는 근처에 떠다니는 작고 검은 뇌운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빅맘이 다시 한 번 위국을 쓰려고 나폴레옹을 치켜들었던 그때, 제우스는 임무도 팽개치고 블랙볼을 따라 방향을 돌렸다. 빅맘은 발 밑이 흔들리면서 땅바닥에 위국을 꽂았고 자신도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주인을 닮아도 너무 닮은 제우스는 빅맘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줄로 늘어선 블랙볼을 차례로 맛보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때까지 상공에서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이 어이없는 실수에 뜨악해한다. 나폴레옹도 황당해한다. 둘이서 질책해도 간식에 정신 팔린 제우스는 들은 척도 없었다. 그 사이 킹밤은 토막난 몸으로도 바람 같이 달려서 유혹의 숲으로 향했다.
          * 나미는 유혹의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쪽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맞는 판단이었다. 유혹의 숲의 나무들, 지형들은 그들의 주인인 킹밤이 나타나자 경례를 붙이며 길을 텄다. 그들이 열어준 길 끝에 해안에 정박 중인 사우전드 써니호가 보였다. 이제 해안까지 일직선. [[캐럿(원피스)|캐럿]]이 역시 나미는 대단하다며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상디]]도 눈이 하트가 돼서 나미를 찬양하는데 여념없다. [[징베]]는 달리 칭찬하진 않았지만 "빅맘이 제우스를 타지 못하면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나미의 작전에 감탄한 듯 하다. 나미는 징베의 말에서 방금 자신이 농락한 구름이 "제우스"란 이름인 걸 알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려서일까? 제우스가 일행을 쫓아왔다. 징베는 벅찬 상대라며 경계했지만 이 구름에겐 싸울 의사가 없었다. 먹을 걸 구걸하러 왔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자기가 먹은 "작은 먹구름"에 극찬을 늘어놨다. 그런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며 더 달라고 청했다. 아주 농후하고 목넘김이 훌륭한 구름이라나. 루피는 대뜸 "그런것 보단 태워달라"고 요구하는데 제우스도 썩 싫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한테 혼을 준 마마 밖에 못 태우니까 무리"라고 대답한다. 루피는 "단순한 구름"이라고 실망. 하지만 쭉 듣고 있던 나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짝인다.
          * 푸딩의 요구는 만 이루어졌다. 시폰은 벳지의 몸 밖으로 나서지 않았고 푸딩은 작은 창을 통해 그녀와 대화했다. 푸딩이 빅맘의 폭주와 웨딩 케이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시폰은 바로 알아들었다. 자신의 시폰 케이크가 필요할 것이다. 전이라면 기꺼이 응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시폰이 거절했다. 그녀는 [[샬롯 로라]]처럼 이 땅을 떠날 것이다. 빅맘도, 이 나라도 더는 알 바 아니다. 벳지도 그 말에 맞장구치며 "썩 꺼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푸딩은 물러나지 않았다. 시폰이 오해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했다. 빅맘을 위해서도, 토트랜드를 위해서도 아니다.
  • 위안부 소녀상 망치 테러 사건 . . . . 5회 일치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 대! 대학생행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협상결과를 대하고 특히 소녀상 철거 요구에 민감하게 응하였으며, 2015년 12월30일부터 소녀상을 경비하고 있었다.
         === 대 집회 ===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 대! 대학생행동'은 오후 5시, 소녀상 테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소녀상 테러를 사주한 배후를 철저히 수사해 진실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유하나(1986) . . . . 5회 일치
         2011년 당시 [[KIA타이거즈]]의 선수였던 [[김대한]]와 갑작스런 열애설이 터지면서 두 사람의 연인 관계가 확인되었다. 2011년 6월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한 뒤 연인 관계로 발전하였고, 만난 지 3개월만에 결혼소식을 알리면서 매우 빠른 진도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일련의 상황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다보니 당시에는 [[속도위#s-2|속도위]]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왕왕 있었다. [* 실제로 아들인 도헌군은 2013년 9월에 출산했으니 근거가 없는걸로...] 결혼 이후에는 연기생활을 중단, 이용규의 소속팀 연고지인 광주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내조에 전념했다.
         [[그실일|'''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결국 2013년 11월 17일 이용규는 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근데 한화 이글스는 수도권이 아니잖아-- 문젠 이 과정에서 과도한 언플로 인해 잡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적이 결정된 후 이용규의 행보에 실망한 일부 팬들이 유하나의 블로그에 댓글로 불만을 토로해 잠시 블로그를 닫기도 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당시 댓글에 인신공격이나 욕설이 난무했다. 심지어 아기사진에도 욕설을 달았다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와전된 이야기고, 실제로는 이용규와 관련해서 응원과 섭섭하단 글이 주였다. 이후 블로그를 닫은 것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던 공간에 남편과 관련된 글이 더 많이 올라온 탓에 부담을 느껴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그 전까지는 유하나가 팬들과 함께 단관을 추진하는 등 팬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 안타깝다는 응이 많았다.
         2015년 7월 30일, 아들 딸과 함께 야구장에 갔다가 남편 이용규의 사구 이후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되었다.[[http://cfile1.uf.tistory.com/image/216B1C4F55BD6A6414B9FF|#]] [[박정수(투수)|상대 선수]]가 [[빈볼|고의적으로 사구를 던졌다]]는 뉘앙스가 문제가 되었고, 해당 글은 삭제되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공개된 곳에 ~~저격~~글을 올린 것은 경솔했다.'는 응.
         2010년대 중 이후부턴 mbn [[속풀이쇼 동치미]] 같은 종편프로나 sbs [[싱글 와이프]] 같은 곳에 게스트로 참가해 배우보단 [[방송인]]으로 입담을 선보이고 있다. 입담 자첸 나쁘지 않은 편이나, 다만 이용규 팬들은 괜히 방송 나가서 구설수에 오를까 조마조마해하기도 하는 모양. 하지만 유하나가 방송을 1~2년하는 신인도 아니며, 그동안 이용규의 내조도 잘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괜한 걱정이긴 하다.
  • 윤보라 . . . . 5회 일치
         2011년 8월 12일 [[KBS 2TV]] [[뮤직뱅크]] 촬영 중 사고로 화상을 입어서 이후로는 다리에 넓은 창고를 붙이고 활동하고 있다. 그 뒤로도 잘 보면 다리에 화상 흉터가 약간 남아 있다.
         양궁에서도 우승 2회를 기록하여 양궁 레전드 열에 들었지만,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4년|2014년]] 이후 [[권소현]]을 앞세운 [[포미닛]]에게 밀리기 시작했다.--그리고 이듬해 [[포미닛]]은 새로운 양궁 맞수로 [[EXID]]를 만나게 되고.....--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5년|2015년 추석 아육대]] 때 [[다솜(배우)|다솜]] 대신 양궁에 나섰던 [[효린]]의 대삽질로 [[씨스타]]가 예선에서 [[마마무]]에게 패해 양궁 예선에서 [[광속 탈락|광탈]]한 게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서 보여 준 보라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그리고 스타쉽은 딱 1년 후 출격한 [[우주소녀|후배 걸그룹]]이 [[리듬체조]]에서 [[성소|센세이션을 일으킨다]].
         == 음 ==
         ||<|3> [[2018년]] || [[JTBC]] || [[아는형님]] || 출연 || [* [[권나라]], [[연우(모모랜드)|연우]], [[주이(모모랜드)|주이]]와 동 출연.] ||
         || [[SBS]] || [[런닝맨]] || 출연 || [* [[제니(BLACKPINK)|제니]], [[지수(BLACKPINK)|지수]], [[윤보라]], [[한은정]], [[표예진]], [[황치열]]와 동 출연.] ||
  • 은혼/624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사카타 긴토키]]와 협력해 순식간에 상황을 전, 신라 부대를 뿌리치고 역으로 베어버린다. 그와동시에 긴토키는 소타츠를 처리.
          * 예상에 없던 격에 신라 부대는 싱겁게 쓰러지기 시작한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선봉을 날리며 다가오는 적들을 쓸어버린다. 그런데 연거푸 베어나가는 와중, 신라의 지휘관 [[소타츠]]는 동포의 시체를 방패막으로 삼으며 지로쵸를 노린다.
          카츠오가 격하게 발하지만 지로춍은 지로춍이라 부르지 말라고 할 뿐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카츠오는 이런 취급에도 굴하지 않고 레귤러나 되는 양 회상 파트로 진입한다. 원래 그도 가부키쵸에서 설치던 애송이였던 모양이지만 지로쵸에게 박살나고 그 휘하로 들어간 과거가 있었다.
          질질 늘어질게 뻔한 회상을 단칼에 쳐낸 지로쵸. 회상 속에서 회상을 잘라내는 신기술을 보여준다. 카츠오는 지난 주에 두목은 잔뜩 회상해 놓고 너무하다고 투덜댄다. 아무튼 그가 그날부터 지로쵸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그의 부재기간 동안 조직을 이끌어온 것이 사실인데 부두목 자리를 양보하라는 거냐고 발한다. 그러자 지로쵸도 "애초에 그런 약속 안 했다"고 진실을 밝힌다. 하지만 피라코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언젠가 지로쵸가 "너라면 부두목 노릇도 충분히 한다"고 한 말을 끄집어 내서 물고 늘어진다. 지로쵸는 딸을 야쿠자 시키는 아버지가 어딨냐며 만약에 그렇다는 말이었다고 발뺌한다.
          >너를 그런 편이인 사람으로 만들면 만들면 딸을 나한테 맡기고 가버린 아내한테 혼나버려.
  • 은혼/627화 . . . . 5회 일치
          >''위험했군. 조금만 늦었어도 모든 것이 끝날 뻔 했다. 이 빚은 드시 갚겠다 인류.''
          다시 선한 헤도로의 목소리도 들린다. 사악한 헤도로를 "헤도라"라고 지칭하며 자신이 드시 그의 음모를 막겠다고 한다. 또다시 악한 헤도로, 헤도라의 목소리가 이미 헤도로의 신은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고 곧 이 신체와 우주도 어둠에 물들여주겠다는 흉흉한 선언을 한다.
          지로쵸는 냉정하게 상황을 설명한다. 설사 적을 물리쳤지만 그건 일시적인 상황에 지나지 않는다. 적의 전체 병력에는 조금 금이 간 수준의 영향 밖에는 없으며 대로 가부키쵸는 많은 소모를 치렀다. 막부군이 퇴각한 적을 요격하며 시간을 벌고 있지만 진짜로 작정해서 잔존 세력을 규합, 다시 한 번 들이친다면 버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짧은 휴전기간에 우주에 있는 [[가츠라 고타로]] 일행이 본대의 작전을 바꿔야할 필요가 있다.
          흑역사를 자극 당한 신파치가 과민하게 응한다. 그러나 판데모니엄은 게도마루의 말마따나 상처치료에 효과적인 만능 재료. 이 시기에 매우 필요한 보급품임에 틀림없다. 신파치는 징그러운 것이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귀찮게 해버렸다며 방해하지 않겠다는 판데모니엄씨에게 다시 심쿵해 버린 신파치는 결국 인외의 길로 들어서 판데모니엄에게 프로포즈하고 만다.
  • 은혼/634화 . . . . 5회 일치
          * 역시 해방군을 상대 중인 [[카와카미 사이]]도 "그놈"들이 나설 차례는 없을 거라고 호언한다. [[키지마 마타코]]는 어차피 자신들이 나선 이후 세상을 지키든 부수든 둘 중 하나라며 히노카구츠치의 해석은 어떻게 되었냐 묻는다. 사실 이들은 대책없이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뒤쪽으로는 기술자를 잠입시켜 해방군 모함의 데이터를 해킹하고 있다. 이 자료는 그대로 헨페이타의 전함으로 송신, 적 병기의 헛점을 찾을 단서가 됐다. 헨페이타는 "별을 파괴할 수 있는 병기"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구식 병기라며 데이터를 분석하면 파고들 틈이 있다고 장담한다.
          * 겐가이 영감을 찾으러 나섰던 [[사카타 긴토키]]와 [[진선조]] 일행은 뜻하지 않은 적들과 만나 발목이 잡힌다. 해방군의 지상군 잔당이 엔죠 황자의 파괴선언 이후 기어나와 발악하고 있다. 긴토키는 일단 싸우고는 있으나 좀처럼 적의 수가 줄지 않아 히스테리를 일으킨다. 아무리 베도 똑같은 얼굴을 가진 놈들이 얼굴을 들이민다며 "킨타로 아메"사탕에 비유한다.[* 죽을 길게 늘여 같은 얼굴이 계속 나오도록 자르는 일본의 사탕]
          * 이제 지구의 봉쇄도 끝이다, 노사는 그렇게 말했다. 겐가이가 제공한 실린더에는 나노머신 "벌"을 멈출 물건이 들어있다. 이것은 "벌"을 파괴하는 나노머신. 겐가이의 말대로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부수는 유일한 창"이다. 이 녀석을 뿌리면 에도를 장악한 나노머신이 멈추지만, 이걸 뿌릴 기계를 사용할 수 없는 모순된 상황. 그래서 필요한 것이 대량의 폭약이다. 폭발을 이용해 이 안티나노머신을 연쇄적으로 확산시켜서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 거기를 기으로 에도에서 벌을 지워버린다. 시간이 들더라도 이 방법이 최선이다.
          노사의 공격으로 힘이 빠진 가구라가 쓰러지자 병사들이 마무리를 지으러 온다. 격할 수단이 없는 가구라.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 맨 앞줄에서 달려들던 병사의 목을 걷어찬다. 목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힘으로.
          >드시 그 지구에 가보자고, 그런 약속을 했던 바보는 혼자가 아니야.
  • 이근택(1865) . . . . 5회 일치
         [include(틀:관련 문서3, top1=매국노, top2=친일민족행위자, top3=을사오적)]
         [[조선]]과 [[대한제국]] 후기의 군인이자 [[정치가]]. 그리고 [[을사오적]], [[민족 역자]], [[매국노]]이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한규설]]의 딸이 이근택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서 [[사돈]] 관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규설은 을사 조약을 대한 애국자이다. 그래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이근택에게 딸을 따라온 교전비(여종)가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와 꾸짖기를
         [[분류:친일민족행위자]][[분류:대한제국의 군인]][[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을사오적]] [[분류:1865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 [[분류:조선의 란자]]
  • 이병욱(스트리머) . . . . 5회 일치
         ||<bgcolor=#A50000> {{{#EEE156 신체}}} || 175cm, 74kg[* 유튜브 생방송에서 언급함. 아프리카TV 방송 초창기에는 저체중일 정도로 무척 말랐었으나 2017년 중기를 들어서면서 살이 급격하게 찌기 시작하였다. [[https://youtu.be/svyp7QMoyLk|참고영상]]] ||
         [[4월 15일]] 유튜브에서 가이드라인 위으로 3개월 스트리밍 정지 처분을 받은 이후로 [[https://www.youtube.com/channel/UCF7C3RLjl2zSZCA-5cTbzQQ|스트리밍용 계정]]으로 방송을 하고있다...가 트위치에서도 동시 송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월 이후로 트위치에서 방송은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다시 할지도 모른다.--]
         [[성급한 일화의 오류|자신을 팩트로 까려는 사람을 메갈리아 유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한 유저에 따르면 무작정 메갈이라며 활동정지를 당한 경력이 있다. 사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신태일, 푸워 등등은 칭찬하고 좋아한다면서 이병욱은 어떠냐고 그 사람의 지인이 묻자 [[구안와사|"그 안면마비 장애인새끼"]]라며 여러가지 욕설을 한것을 이병욱이 알게되자 심각하게 화를 낸적이 있다. 헌데 그 사람이 여자라 이 일이 있는 이후로 그냥 까기만 하면 무시하는데 [[성급한 일화의 오류|프로필이 여자거나 하면 메갈이라며 싫어한다.]]
         게다가 비슷한 사건을 벌인 김윤태는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면에 이병욱은 법정 출두 관련 이야기 조차도 없다. --푸워와 다시 친해져서 그런건가...--
  • 이중환(법조인) . . . . 5회 일치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하였으며 대리인단의 대변인이자 대표 대리인 역할을 맡았다. 탄핵 심판 초에는 대리인단의 대변인으로서 언론에 박근혜쪽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뷰와 브리핑을 전담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밉상으로 찍혀서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탄핵 심판 중부터 대리인단의 일부 [[서석구|변]][[김평우|호]][[조원룡|사]]들이 막말 변론을 해대고 탄핵에 대하는 [[친박집회]]에 나가 헌재를 마구 비난하는 등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무난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대중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탄핵 심판 중 이후 상황이 박근혜에게 많이 불리해지자 대리인단의 몇몇 변호사들이 변론의 기본을 무시한 채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헌재를 모욕하고 협박하는 등, 대리인단 간에 의견 통일이 전혀 안되고 변호사들끼리 각자 변론을 하는 수준으로 팀웍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대리인단을 추스려야 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이에 대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90067|"벼룩 10마리 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만큼 힘들다."]]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법조인들은 대리인단의 팀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 대리인단이 무료로 변론을 한 탓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제대로 돈을 받고 변론을 했다면 일단 의뢰인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자신의 신념이나 기분을 앞세워서 마구잡이로 변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고 심지어 구속까지 당한 후에도 제대로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고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의 몰락은 결국 제대로 댓가를 제공하지 않고 누군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도와줄거라고 믿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박근혜의 성격에 대해서는 박근혜 저격수 [[전여옥]]이 지적한 바가 있다.]
         비록 국민 정서에 하는 변호를 맡았던 탓에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대리인단의 일부 변호사들처럼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품격을 잃지는 않았고 소통이 전혀 안되고 돈도 안주는 의뢰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나름 동정표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박근혜같은 중범죄자도 자기 입장을 말할 권리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왜 하필 저런 사람을 변호하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어차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누군가가 이 일을 맡았어야 한다는 것은 상기하자.][* 물론 '변호사 전원 퇴진'이라는 카드를 보여주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래도 '법조인'으로써 할수 있는 선에서의 카드였고 결국 이 카드를 쓰지는 않았다. 후에 박근혜 재판의 대리인을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변호인 전원퇴진을 진짜로 강행하여 재판을 지연시켜버리며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것을 보면 여러모로 대조적인 부분.]
  • 이훈(배우) . . . . 5회 일치
         헬스로 인해 탄탄하게 다져진 몸 때문에 터프가이, 마초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2010년대 중 들어와 예능에서 하는 발언들을 보았을 때 실상은 '''굉장한 삐돌이 [[소인배]].''' 이 소인배 캐릭터는 2000년대 말 놀러와 게스트 출연 당시에도 이미 나왔지만 그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다 2010년대 들어서 널리 알려졌다.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나왔는데 [[정준하]]와 [[유재석]]이 본인들이 환영회를 책임지고 해주겠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자기들 놀기에 바쁜걸 보고 화가 나서 "늬들은 형도 아니야" 라고 섭섭함을 표하면서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로 [[무한도전]]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고. 또 [[정글의 법칙]]에 캐스팅됐다가 나중에 제작진의 말이 바뀌면서 출연이 무산되자 역시 그 뒤로 정글의 법칙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어째 이해는 가는데?--
         이훈은 한 해 아래지만 탤런트 특채이지 개그 특채가 아니긴 한데, 시사코미디 패널로 출연했다가 들어온 거라 개그 기수를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훈이 20대 초에, 살면서 유일하게 [[헌팅]]을 한 여자가, "나는 연예인이랑 사귀고 있음 ㅈㅅ" 라면서 거절하자, 그게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박명수예요."라는 한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상술했듯이 가수 [[조규찬]]과 폭행시비가 붙었는데 당시에는 조규찬의 이미지가 거만하다, 건방지다는 식이여서 맞아도 싸다는 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그의 일방적인 폭행으로 밝혀졌으며 그 사유가 조규찬이 잘난체한다는 이유였다. 이후엔 조규찬과 가족들에게 사죄하고 합의금으로 1000만원을 물어주는 거로 마무리되었다. 그 뒤 술집에서 일인을 폭행해서 또 물의를 일으켰으며 합의금 1억원을 물어주고 끝냈다.
         [[1대 100]] 267회 전전에서 1인으로 참여했으며 5단계까지 생존했다.(7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그 뒤 405회에서 1인으로 다시 참가했을 때 상금을 받으면 빚을 갚는데 쓰겠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마지막 9단계에서 최후의 1인과 접전을 펼친 [[1대 100/1대 1 문제 #S-6.1|결과는 여기 참고.]]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5회 일치
          일행이 뒤로 넓게 흩어지며 공격을 피했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발빠르게 분석에 들어갔다. 디안느의 상태는 통상의 세뇌나 최면과 달랐다. 할리퀸이 보기에 디안느를 조종하는 것은 단순히 메라스큐라의 마력이 아니라 성채도시 코란도에서 학살 당한 사람들의 원혼이었다. [[(일곱 개의 대죄)|]]은 그런걸 어떻게 쓰러뜨리내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헬브람]]이 이상했다. 이 모든 상황은 자기 책임이라며 할리퀸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 멀린은 "다소 죽일 생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은 거부감을 느꼈지만 디안느의 힘이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도 결국 "나쁘게 생각마라 디안느"라며 멀린의 지시에 따른다. 할리퀸 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디안느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일행과 디안느 사이를 가로막았다. 헬브람은 원념에겐 물리적 공격은 물론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그 말대로라면 설사 디안느를 다치게 해도 원념을 쓰러뜨릴 순 없다. 킹은 그런 말을 하며 일행을 말리고 디안느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원념에게 삼켜지지 말라고. 그러나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측정해 보니 디안느의 전투력은 점점 올라 4만 8천에 육박했다. 킹이 위험했다. 고서의 경고는 애타는 할리퀸에겐 들리지 않았다. 헬브람의 경고도 마찬가지. 그러나 디안느는 아랑곳 없이 무자비한 발길질을 보냈다.
          * 원념이 일행을 괴롭히는 방법이 직접 공격만은 아니었다. 고서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가 소중한 동료의 멋대로 하게 두지 않겠다고 말하자 원념은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흉악한 크기의 전투망치는 쓸모가 많다. 가령 이 날카로운 모서리로 사용자의 머리를 찍는다던가. 원념은 그걸 실행에 옮겼다. 일행은 기겁하면서도 쉽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 "스내치"를 사용해 보지만 힘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할리퀸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그것도 할리퀸 밖에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화살은 디안느를 관통하면서 그 안에 깃든 온갖 부정한 것들을 끄집어 냈다. 화살이 산산히 부서지면서 디안느의 눈이 본래의 맑은 빛을 띄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디안느. 그녀가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잠시 잠깐 못 봤을 뿐인데 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 전소민(배우) . . . . 5회 일치
         데뷔 약 10년만에 임성한 극본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의 (오디션을 통해) 여주로 캐스팅되었다. 이 때까지 원 없이 연기해 보고 싶은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소원대로 일일드라마의 비중 높은 여주 역을 맡아 고난의 행군과 같은 촬영 분량과 기간을 감내해야 했다. 깡마른 체격임에도 툭하면 날밤을 꼬박새우는 등 한여름 무더위와 살을 에는 추운 겨울까지 밤잠없는 촬영 강행군, 이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시간, 종종 끼니마저 컵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좋은 연기를 해내었다. 이 드라마 초의 풋풋한 모습이 드라마 종으로 갈수록 제법 성숙한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7년 4월 16일 [[런닝맨]]에 고정멤버로 합류했다. 런닝맨에 고정 합류 이후 응이 상당히 좋다. 특히 전소민에게는 그동안 이광수가 가지고있었던 각종 롤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청순한 이미지가 아닌 엉뚱한 매력에 19금 개그 등 --돌+아이--가 따로 없다는 평가.
         현재 주로 런닝맨에서 활약 중이며 폭발적인 응으로 수많은 국외 안티팬들을 팬으로 만들며 나름 선방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러다 연말에 상받는 거 아니냐고 했고 신인상을 수상했다.
          * 2016년 JTBC 《[[아는 형님]]》 [[아는 형님/방영 목록/2016년 상기#s-2.24|28회]][* 게스트로 출연할때 여기서 [[희철|김희철]]이 '소민씨 그코 [[니코니코니]]?'를 시전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5회 일치
         attachment:역혐의.png
          * 심지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국가역죄'''로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attachment:역해라.png
          * 그래도 항과 역은 정도가 다르니, 우선은 이렇게 해보라며 다른 방안을 알려준다.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5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60th sense. '''역자들 (3)'''
          * 격의 진용을 갖춘 [[미나모토 코이치]]와 더 칠드런 일행.
          * 그녀는 시호의 능력을 기으로 구현화, 미나모토에게 전쟁 직후 후지코에게 일어난 일과 블랙 팬텀이 어떤 점을 파고 들었는지 밝힌다.
          * 긴 시간만에 재회한 [[미나모토 코이치]]와 더 칠드런 일행. 모두가 갑게 인사하며 흐뭇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와중 한 사람만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카키 슈지]]는 [[산노미야 시호]]에게 처절하게 밟히고 있다.
          그 정체는 바로 단행본 35권에서 등장한 적 있는 "츠보미 후지코의 유언". 후지코가 잠들기 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남겨놨던 사념체였다. 이제는 "과거의 후지코"라고 지칭해야 하겠다. 과거의 후지코는 현재의 후지코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사과하고 자신은 시호의 능력에 기해서만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점을 시호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시호는 과거의 후지코가 없었다면 자기들만으론 대응책을 마련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5회 일치
          * 블랙 팬텀의 오염물질에 잠식된 BABEL의 수뇌부는 "전 에스퍼 등록격리법안"이란 인권적 법안에 적극 찬성한다.
          * 한때 일본 정부는 "전 에스퍼 등록격리법안"이란 것을 추진했다. 문자 그대로 모든 에스퍼를 등록, 격리해서 관리한다는 방침으로 명목은 비 에스퍼 국민의 안전. 당연히 에스퍼를 보호하는 BABEL에서는 발할 수밖에 없었다. [[키리츠보 타이조]]는 단숨에 테이블을 엎으려 격분.
          * 당연한 응이지만, 장관은 당혹해하면서도 에스퍼에 의한 범죄나 부정은 엄연한 사실이고 대다수인 노멀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고 응수한다. 하지만 [[츠보미 후지코]]는 범죄발생률과 능력은 별개 문제라고 정론을 펼치며 "에스퍼는 국민도 아니라는 거냐"고 꼬집는다. 물론 장관으로서는 그렇게까진 말할 수 없는 입장이므로 표면적으론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카시와기 오보로]]가 조용히 자료를 제출한다. 정권의 비위를 조사한 자료로 보이는데 양 격리법안이 상정된다면 이걸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날의 제의는 무효화.
          * 장관의 퇴장 후 척보기에도 수상한 무리가 나타난다. 더 칠드런 일행과 판도라의 간부들이 작전에 나선 것이다. [[미나모토 코이치]]는 관리관이 상대지만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고 팀원들에게 주의를 준다. [[효부 쿄스케]]가 거기서 리더 인양 굴지 말라고 끼어든다. 미나모토는 판도라는 용병 입장이 아니냐고 따지는데 효부는 자기가 능력, 경험, 기술, 인격 면에서 모두 앞선다고 대꾸한다. 물론 미나모토는 "적어도 인격은 아니다"고 격렬하게 박.
  • 정광조 (1883년) . . . . 5회 일치
         }}</ref>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천도교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천도교단은 정광조와 [[김병제 (1894년)|김병제]] 등 천도교 지도자들의 친일 논란에 대해, "일제의 총체적 강압 강요" 하에서 "교단이 해체나 와해되지 않고 교단을 유지 보존시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므로 친일민족행위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f>{{웹 인용
         [[분류:1883년 태어남]][[분류:195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교역자]][[분류:대한민국의 천도교 교역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규수(배우) . . . . 5회 일치
         * [[2015년]] [[SBS]] 주말 특별기획 《[[내마음 짝]]》 ... 한영표 역
         * [[2001년]] 《[[킬러들의 수다]]》 ... 김 장 역
         * [[2006년]] 《[[조용한 세상]]》 ... 조 장 역
         * [[2018년]] 《[[식구 (영화)|식구]]》 ... 장 서씨 역
  • 정만조 . . . . 5회 일치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해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동생 [[정병조]]도 세 명단에 들어 있다.
         |저자=민족문제연구소
         [[분류:1858년 태어남]][[분류:1939년 죽음]][[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개화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운용 . . . . 5회 일치
         정운용 조흥은행장은 미 [[군정청]] 골든 재무부장(중령)과 친밀한 관계였다. 해방 후 중앙은행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조흥은행은 강력한 중앙은행 후보로 꼽혔다. 조흥은행은 민족자본비중이 절을 넘은데다 일본자본의 침투가 가장 적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하지만 1946년 광복1주년을 맞이하여 미 군정청 내각 전원이 한국인으로 채워진다. 골든 재무부장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윤호병이 신임 재무부장으로 선임됐다. 조흥은행 대신 조선은행이 중앙은행으로 선정됐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237</ref> 정운용 행장 역시 1947년 10월 군정장관의 명령에 의거 행장에서 물러났다.<ref>경향신문, 1947년 10월 18일 2면 정운용 행장 해임</ref>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재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씨 가문은 [[민덕기]]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씨 가문은 1957년 하기부터 1958년 상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갔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첫 아내와 사별한 뒤 김분조와 재혼했다.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7면</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도피하다 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먼 친척관계인 [[정운일]](鄭雲馹)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아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 지훈(TRCNG) . . . . 5회 일치
         == 음 ==
         ||<table align=center> 솔로 및 단독 참여음만 기록합니다. [[TRCNG]] 멤버들과 함께 참여한 음은 [[TRCNG/음 목록]] 문서에 기록해주세요. ||
         === 참여 음 ===
  • 진격의 거인/89화 . . . . 5회 일치
          * [[엘런 크루거]]는 그리샤가 시조의 거인을 탈환하는거 말고 방법은 없다며 그렇지 않으면 "같은 역사, 같은 실수"를 복할 거라고 말한다.
          * 한지가 그리샤의 수기에서 얻은 정보대로 "엘디아 인", 그리고 "유미르의 백성"에 대해서 발표하는 동안 엘런은 또다시 그리샤의 기억으로 불려간다. 기억 속의 [[엘런 크루거]]는 마레 당국이 계획대로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는다면 더이상 수용소도 유지하지 않을 거라고 밝힌다. 그는 그로스가 말했던건 전부 사실이라며 엘디아가 무지성의 거인을 병기로 이용했던 사실을 밝힌다. 이들은 시조의 거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단순히 살육을 복할 뿐인 짐승들이지만, 대로 말하면 그 자체로 두려움도 멈춤도 모르는 자동살상병기인 것이다. 과거 엘디아에서는 이것을 양산해 값싼 전력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엘디아인들을 팔라디섬에 가두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지금에 와선 마레 측에서도 이 방생한 거인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섬에 접근하는건 제한되고 있다.
          >드시 찾아내서 왕으로부터 시조의 거인을 탈환하는 것.
          * 기억 속의 엘런 크루거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그리샤에게 놓을 주사제를 준비하며 벽 안에 도착하면 꼭 가족을 만들어서 위장하라고 지시한다. 그리샤는 자신에겐 다이나가 있고 거인이 되고 나면 기억이 불분명해지는거 아니냐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크루거는 누가 됐든 벽 안의 인간을 이용해서 사명을 달성하라고 말한다. 그게 안 되면 같은 역사를 복할 뿐이라고 말하면서.
  • 진격의 거인/90화 . . . . 5회 일치
          픽시스의 지적은 타당해서 누구도 박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들은 여왕 히스토리아, [[크리스타 렌즈]]가 결론을 짓는다.
          * 조사병단의 정보는 언론을 통 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제는 일시민들도 엘디아인의 진실과 벽 바깥에 있는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리바이 아커만]]과 [[한지 조에]] 신문사의 로이 사장과 뷰레 기자와 만나 이후의 여론에 대해서 묻는다. 대중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도 있는가 하면 웃어 넘기는 자도 있고,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정권을 매도하는 자도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혼란의 도가니. 한지는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정보가 납세자에게 맡겨지는게 이전 왕보다 좋은 점이라고 자조한다.
          * 왕궁에서는 이번 작전의 전사자들을 기리고 생존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의전이 진행되고 있다. [[히치 도리스]]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다. 104기 생들은 그녀에게 인사하지만 마냥 가워할 수만은 없다. 그녀는 이미 [[마를로 센드]]의 전사 소식을 전해받았다. 생존자인 이들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과연 지하실에 있던 것은 무엇인가? 희망인가, 아니면 절망인가? 적은 강대하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 참상"은 복된다. 엘런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에겐 히스토리아를 희생할 각오가 없다고 자조한다. 그러는 사이 히스토리아가 그에게 훈장을 걸어주고 손을 내민다. 엘런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는데.
          그러는 동안 아르민은 바닷 속의 소라를 들어올린다. 미카사도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들어온다. 하지만 차갑고 계속 밀려오고 나가기를 복하는 파도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미카사는 신중한 표정으로 아르민의 표정이 놀라움에서 웃음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본다. 아르민은 너무나 만족한 목소리로 그 앞에 있는 엘런에게 말한다.
  • 최재성(배우) . . . . 5회 일치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했다. 젊은 시절 잘생기면서도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외모 덕분에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으며 충무로의 대배우로 아직까지도 유명한 [[박중훈]]이 중년 이후에도 젊은 시절 가장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배우로 항상 언급할 정도로 잘나가던 청춘스타였다. 당시 마치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강한 인상의 미소년 외모를 가진 항기 가득한 고등학생' 이미지로 크게 사랑 받았으며[* 이장호의 외인구단 개봉 당시5살 연상인 [[이보희(배우)|이보희]]와 동갑내기 커플로 나온 최재성을 보고 사람들이 내린 평가가 '최재성은 항기 가득한 청소년같은데 이보희는 아무리 봐도 20대 중은 되어 보여서 둘이 동갑으로 보이지 않는다'였다고 한다.]이 이미지는 80년대 초중 그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된다.
         [[2012년]]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으로 캐스팅 되었으나 무릎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그 배역을 [[동이(드라마)|동이]]에서 [[장희재]]로 악명을 떨쳤던 [[김유석]]에게 넘겨주고 부상이 회복되자 극 중부터 등장하는 계백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 추미애 . . . . 5회 일치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인데, 당시만 해도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라 영남의 집에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서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이에 추미애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대하였지만, 추미애는 이를 무릅쓰고 결혼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33635|#]]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시|대구]]의 딸, [[전라도|호남]]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영입한 이후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http://app.yonhapnews.co.kr/YNA/Basic/SNS/r.aspx?c=AKR20160827036600001&did=1195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3792967|#]] 슬하에는 3명[* 1남 2녀]의 자녀가 있다.
          * [[2016년]] [[제20대 국회]] 전기 법제사법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으나 2016년 8월 당 대표에 선출됨에 따라 상임위 활동이 어려워져, 상대적으로 부담이 작은 외교통일위원회로 이동(사보임)했다.] 위원
          * [[KBS]] 2TV '슈퍼맘 다이어리'라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시청자의 응은 "평소에 정치인으로서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여장부[* 이 때문에 정치인 스타일 중에서는 탱커형으로 종종 분류된다.]의 면모와 달리, 해당 프로그램 속의 주부 추미애는 대한민국의 여느 아줌마들과 같은 모습"이라는 평. [[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261|#]] 그리고 2017년 7월에는 KBS 2TV의 오락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출연하여 진행자인 [[이경규]]와 대화를 나눴다.
          * 2017년 [[더불어민주당]]의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때는 [[아재개그|줌마개그]]를 선보였다. 호남권 경선 대회 때 개표 발표를 맡았던 [[홍재형]]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은 후보의 이름이나 총 득표율을 잘못 말하는 실수를 여러번 하였다. 이에 이름이 잘못 불리워진 후보 측에서 발이 생기자 이후 충청권 경선 대회 때 자신의 말 실수를 공식 사과했다. 이후 추미애는 홍재형 위원장의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달라고 말하며 "제 이름을 거꾸로 하면 애미가 되겠지요?"라는 농담을 했다(...).
          *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선]] 기간 동안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문재인 1번가]]를 홍보하는 [[https://youtu.be/8mKZ9xM1Hvs|홍보 영상]]에 [[금태섭]] 의원과 함께 직접 출연했다. 물론 추미애가 전문 배우는 아닌 관계로 발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금태섭의 발연기가 더 심해서 묻힌 감이 없잖아 있다. 금태섭 의원의 연기에 대해서는 "금씨 성을 가진 더민주 인사는 무기한 출연 금지 요청합니다."라는 응도 있었다.(...)
  • 킹덤/509화 . . . . 5회 일치
          * 잘 싸우고 있는건 맞지만 익숙하지 않은데다 여전히 왕의 장군의 창이 무거워서 되는대로 휘두르는 것에 가까웠다. 평소라면 맞지 않았을 격에도 맞고 자잘한 상처가 늘어가는데 신기할 정도로 치명상만은 피하고 있다. 미평이 "여전히 창의 무게에 휘둘리는 건가"라고 중얼거리자 강외는 "호쾌할 정도로 그렇다"고 덧붙인다.
          * 나절 뒤. [[환의(킹덤)|환의]]와 [[왕분(킹덤)|왕분]]의 군대가 열미성에 도착했는데 이미 성이 함락된 걸 보고 경악한다. 이 열미성을 공략하는데 개전부터 불과 나절, 그것도 최소한의 부대로 이뤄낸 성과였다.
          * 열미로부터 나절 거리인 적마 언덕엔 [[공손룡]] 장군이 조군을 이끌고 행군 중이다. 진격 중에 열미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가 도착한다. 조군은 단 하루만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 술렁대지만, 곧바로 들이쳐서 탈환하면 그만이라고 사기를 끌어올린다. 이들 계산으론 그렇게 무리한 일정으로 공성을 했다는건 현재 온전한 병력이 남지 않았을 것이고, 이때를 노린다면 손쉽게 탈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 그들은 "성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손룡은 뜻밖의 지시를 내린다. 바로 행군을 멈추고 양토까지 후퇴한다는 것이다. 부장들은 열미를 버리는 거냐며 발한다. 거기에 대해 공손룡은 태연하게 대답한다.
  • 킹덤/521화 . . . . 5회 일치
          * 몽념은 조군이 새로운 기마대를 보냈고 그 대장이 유독 덩치가 크다는 보고를 듣자 마정임을 직감한다. 다시 전해서 병력을 뺀다. 그걸 보고 마정은 더욱 도발 당해 추격의 고삐를 조인다. 기수는 몽념이 분명 흑양전의 정보를 가졌을 거라 보고 어떻게든 마정을 불러들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의 짐작이 맞았다. 몽념은 흑양전에서 얻은 귀중한 정보를 살려서 기수나 마정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특히나 마정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기수의 두 팔 중 하나. [[유동]]이 죽은 지금은 기수에게 남은 유일한 측근이고 그가 죽는다면 기수의 힘은 절 이하가 될게 자명하다. 따라서 이건 더할나위 없는 기회. 몽념은 여기서 마정을 드시 처리하겠다 마음먹는다.
          * 마정이 포위. 적 복병의 등장. 기수군에 좋지 않은 소식만 줄을 이었다. 낙화대 병력이 이제 몽념의 별동대로 모여들면서 총 5천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 명 황각과 마정이 이끄는 기마대가 합류해도 병력차는 두 배 이상. 마정을 잃을게 불 보듯 뻔하다며 부관들이 원군을 보내자고 아우성친다. 기수는 그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으나 조용히, 냉정하게 상황을 다시 되짚는다. 벌써 1천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적의 수가 적다고 얕본게 문제였다. 분명 몽념은 수많은 전략을 능수능락하게 구사하는 인물일 것이다. 지금 펼치는 전술도 기마대의 기동력으로 치고 빠지기를 복, 조군의 병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방치하면 외측의 보병대의 출혈을 피할 수 없고 어중간하게 기마대를 써도 덫에 걸린다. 뛰어난 전략적 안목을 옅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타오파이파이 . . . . 5회 일치
         레드리본군 편에서 등장하며, [[블루 대령]]을 [[혀]]를 사용하여 살해하는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레드리본군의 의뢰를 받아 손오공과 대결하여 한 차례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카린탑]]에서 수행하고 내려온 손오공에게 패배. 복수를 노리고 [[사이보그]]가 되어 부활했으나 [[천진]]에게 패배한다.
         잔인하고 비겁한 성격으로, 자신을 거슬리면 별다른 죄도 없는 일인도 서슴치 않고 살해한다. 자신의 옷을 만들어준 재봉사가 옷 값을 요구하자, 기분에 거슬렸는지 대신 누구든 바라는 사람을 죽여주겠다고 말하고 재봉사가 거부하자 그대로 손가락으로 머리를 꿰뚫어서 살해했다.
         천하제일무도회에 등장했을 때는 사이보그로 개조되면서 스스로 더욱 강해졌다고 자부했으나, [[천진]]
          * [[천진]] - 본래 타오파이파이를 존경해서 살인청부업자가 되려고 했다. 손오공이 자신이 타오파이파이를 이겼다고 말하자, 천진은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정도. 하지만 학선류에 실망하면서 존경심이 퇴색하게 되며, 천하제일무도회에서 만났을 때는 타오파이파이의 비열한 모습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 토이 솔져스: 콜드 워 . . . . 5회 일치
         플레이어는 포탑을 건설해 적군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적군의 목표는 장난감 상자로, 장난감 상자에 20명의 적이 들어가거나 보스가 들어가면 실패한다. 대로, 적의 모든 공세를 막아냈다면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미국은 M40 무동총. 소련은 B-10 무동총.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시에는 장탄수가 3발이 된다.
          특수부대. 주무장으로 기관총을 부무장으로 로켓 발사기를 장비한 보병. 일적으로 볼 수는 없고 Barrage에서 Spec Ops가 나오면 일정 시간 동안 쓸 수 있게 해준다. 매우 강해서 왠만한 지상 유닛은 한큐에 썰어버린다. 미군 스펙 옵스는 [[존 람보]]의 패러디인 듯 보이며, 소련군 스펙 옵스는 "암호명: 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5회 일치
         [[위플래쉬]]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마일즈 텔러가 '리드 리차드/[[미스터 판타스틱]]'을, [[케이트 마라]]가 '수잔 스톰/[[인비저블 우먼]]', 크로니클에서 학생 회장이자 초능력자인 스티브로 열연했던 마이클 B. 조던이 '쟈니 스톰/[[휴먼 토치]]'를 맡으며 [[제이미 벨]][*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 역, [[설국열차(영화)]]의 에드가 역.]이' 벤 그림/[[씽(마블 코믹스)|씽]]'의 역할을 맡는다. [[닥터 둠]]의 역에는 [[혹성탈출 : 격의 서막]]의 [[코바]] 역을 맡은 바 있으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듀로탄]] 역을 맡을 예정의 배우 [[토비 캡벨]]이 맡는다.
         로튼토마토 지수가 20%로 시작하더니 그것이 14%로 하락했다.(...) 그리고 이후 더 하락.(...) 이외에도 각지에서 안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개봉했는데 역시 평이 안좋다. 지닦이에서 유래해 고무닦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린 랜턴: 지의 선택]], [[배트맨과 로빈]]보다 형편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단 사람에 따라 평에 차이가 생길 수는 있으나 적어도 앞의 두 영화와 같은 대열에 서게된 것은 확정되었을 듯.
         영화도 영화인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감독도, 폭스도 영 아니게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각본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지금의 영화와 많이 다르다고 하며 이에 호의적인 응도 있지만 저건 저거대로 좀 그렇다는 식의 응도 있다. 더불어서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도 거짓말이거나 부풀려졌다는 추측도 있는 듯 한데 이에 관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영화가 망했다는 현재의 사실은 바뀌지 않을 듯.
  • 페어리 테일/528화 . . . . 5회 일치
          * 위기의 순간 나타난 [[제라르 페르난데스]]. 엘자를 구하고 격을 퍼부으나 아크놀로기아는 그 마법 자체를 먹어치우며 비웃는다.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가 일행을 구하고 "아크놀로기아를 특정 지점으로 데려가면 승산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하는데.
          * 이어서 천체마법을 연달아 사용해 격한다. 육연성, 구뇌성, 칠성검을 쉴 틈 업이 몰아치며 아크놀로기아를 몰아붙인다.
          * 제랄의 주력 마법을 연이어 맞으면서도 아크놀로기아는 전혀 당황하지 않을 뿐더러 웃음까지 터뜨린다. 그는 [[나츠 드래그닐]]이 불을 먹는 것처럼 마법 그 자체를 먹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일적인 멸룡마도사에겐 있을 수 없는 일. 웬디가 무슨 속성인 거냐고 경악하자 아크놀로기아는 태연하게 속성 따윈 자신에겐 없다고 말한다.
          * 크리스티나호를 몰고온 건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였다. 이치야는 설명은 나중에 하겠다며 곧 엘자 일행을 태우고 부상한다. 그런데 이치야는 그저 엘자일행을 구하는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크놀로기아를 특정 지점으로 유인할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크리스티나호로 주위를 끌어 마그놀리아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5회 일치
          * 막 네오 이클립스를 통과하려는 제레프, 그때 나츠가 [[마카로프 드레아]]의 입버릇 "맹세해라, 드시 돌아오겠다고, 드시 살겠다고"를 중얼거리며 일어선다.
          >이만큼 간섭해도 응이 없다니...
          하지만 이것이 작전이 크게 어긋나는 단초가 됐다.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가 황급히 창 밖을 가리킨다. 안나와 엘자, 그리고 멀미로 누워버린 [[웬디 마벨]]도 바깥에 나타난 시간의 틈새를 "목격"했다.
          >"이 문을 나설 땐 맹세해라. 드시 돌아오겠다고."
  • 페어리 테일/542화 . . . . 5회 일치
          *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이 하르지온 항구에서 적당한 배를 섭외하는데 성공한하고 [[엘자 스칼렛]]이 드시 마룡을 추락시켜 배에 떨구겠다고 결의한다.
          * 매그놀리아를 침공한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신. 그것을 막기 위해 페어리 테일을 비롯한 마도사 길드 연합군이 작전을 수립한다. [[미네르바 올랜드]]가 이끄는 연합군이 아크놀로기아를 작전지역인 하르지온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받았지만 솔직히 마땅한 방법이 없다. 마룡은 자아를 잃고 무차별 공격을 해대는데 이쪽의 격은 마법이든 물리적 공격이든 무효. 그렇다고 마룡을 유도할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다.
          *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태운다는 계획을 위해 하루지온으로 급파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 등 항구에서 휴식하던 아군의 도움으로 배를 수배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본래 알바레스 제국이 타고온 군선. 거대한 갤리온 함선이다. 그동안 [[엘자 스칼렛]]과 [[카나 알베로나]]를 비롯한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도 도착. 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 하나가 끝났다. 이제 문제는 이 배에 어떻게 아크놀로기아를 태우냐는 것. 엘자가 그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다. 어떻게든 상공에서 아크놀로기아를 떨어뜨리겠다고 하는데.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마법도 물리공격도 안 통하는 상대에게 그게 가능할지 의심했다. 엘자는 드시 해보이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코브라의 소중한 동료들, 오라시온 세이스도 지상의 아크놀로기아를 무찌르기 위한 작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추론대로였다.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은 마력을 숨긴 채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차례로 마력을 해방했다. 순차적으로 해방되는 마력을 따라서 아크놀로기아가 응, 그들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미네르바와 유키노가 안전하게 하루지온에 안착한다. 엘자가 그녀들을 긴다. 둘은 아크놀로기아가 마력을 쫓는 습성이 있다고 알리곤 힘이 다해 쓰러진다. 엘자는 뒤는 자신들에게 맡기라며 둘을 피신시키는데. 그때 아크놀로기아가 또다시 이터널 플레어를 준비한다. 길다트의 경고로 모두가 몸을 납짝하게 업드리지만, 아크놀로기아가 노리는 건 그들이 아니었다. 이터널 플레어가 항만시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항구에 있던 배라는 배는 전부 파괴되어 한 척도 남지 않는다.
  • 피우진 . . . . 5회 일치
         1956년 8월 20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직업군인의 딸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위로 언니 2명, 아래로 여동생 1명과 남동생 1명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여, 대학도 [[체육교육과]]로 진학했다. [[청주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야간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당시는 돈이나 뒷배경으로 교직을 얻는 교사들이 많았으나, 피우진의 아버지는 그런 일을 단호하게 대하여, 피우진은 일 중고등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군]] [[사관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직업군인]]을 결심했다고 한다.
         2017년에 [[양승숙]] 준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을 지지하였고,[* [[여군]]들은 보통 진보적인 친 [[더불어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대로 [[남군]]들은 보통 보수적인 친 [[자유한국당]] 성향이 강하다. (다만 남군의 경우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민주당 성향이 강한 경우도 있는데, 보통 장병 복지 및 처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민주당 쪽으로 지지하게 된다. [[백군기]] (예)대장이 그 예시.) 하필 피우진이 [[여군]] 인권 이슈를 내놓을 수 있던 자리에서 [[문재인/2017년#s-4.1|동성애자 난입]]이 일어나, 피우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실패하는 씁쓸한 일화가 있다.] 대선이 끝난 후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가보훈처]] 처장에 임명되었다. 그 이전까지 전임 국가보훈처장은 모두 예비역 중장이었지만 [[문재인]]이 주요직위자의 문민화를 위해 여군 출신의 피우진을 이 자리에 보직시켰다.
         [[여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여성의 병 복무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군 간부직을 늘려달라는 여성단체의 요구에 대하여 "군대를 모른다"고 비판하며 "내가 겪은 '남자들로만 이뤄진 징집 군대'로선 여군 간부는 자리가 비좁다. 여군 간부직을 늘리자면 여군이 더 필요한데, 여자는 죄다 간부직만 차지할 것이냐."고 한 바 있다. 위 일화도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현 국군 안에서 여군들이 마주하는 부당한 처우와 차별들에 대해서 직접 겪고 싸워본 사람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발언. 다만 일 여군들이 병 복무 시 마주하게 되는 부당처우 및 성차별적인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이 같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모범 군인으로서 소령까지 진급했음에도 번번이 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피우진 본인의 일화만 생각해봐도...)
          * 앞서 말한 대로 2006년 건강검진 때 [[유방암]] 절제수술 건으로 강제 전역 당했다가 2년 뒤 소송을 통해 복귀한 경력이 있는데 [[카라 헐트그린]]의 동료였던 [[F-14]] 여성 파일럿 캐리 로런츠(Carey Lohrenz) [[미합중국 해군]] 대위의 행적과 비슷하다. 두 사람 다 [[여군]] 1세대 파일럿[* 캐리의 경우 정확히는 카라 헐트그린과 함께 여성 최초의 전투기 F-14 파일럿이다.]이며 억울하게 자리에서 쫒겨나[* 피우진의 경우 유방암 절제수술의 장애 판정으로 강제 전역, 캐리 로런츠의 경우 최소한의 재심사도 없이 강제 [[그라운딩]]을 당했다.] 2년간의 법정 소송을 통해 그 보직과 자격을 회복했다. 다만 피우진의 경우 소송에서 이기고 육군항공학교에서 중령으로 전역할 때까지(정년까지) 커리어를 이어갔던 면[* 대신 앞전의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등의 일로 미운털이 박혀서 진급이 막혔다.] 캐리 로런츠의 경우는 소송에서 이겼음에도 높으신 분들 때문에 끝내 함상 근무로 복귀하지 못하고 1999년 [[미 해군]]을 떠났다.
  • 하이큐!!/등장인물 . . . . 5회 일치
         ※단행본화가 되지 않은 최신 연재본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니 열람 시 주의할 것.[* 스포일러 틀 → 정발/원서/잡지에 상관없이 중요한 전이 있을 경우]
         [[카게야마 토비오]]가 이 학교를 일 입시로 가려고 했으나 떨어져서, [[히나타 쇼요]]에게서는 그냥 '''카게야마가 떨어진 학교'''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시라토리자와 학원은 일 입시도 어렵다고. * 3학년
          일본 고교 선수들 중 베스트 3 안에 들고, 미야기 현에선 혼자서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다. 관동의 선수들도 '우시와카'의 이름은 알고 있을 정도. 카라스노가 봄 배구를 하기 위해서 드시 넘어야 할 상대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는 중등부 시절 부터 악연의 상대였다. 라이트 자리에서 각도 내기에 적합한 왼손잡이 공격수.
         남자 배구부와 다른 체육관을 사용한다. 제 1체육관을 농구부와 코트를 으로 나누어 쓰고 있는 중.
  • 하이큐/254화 . . . . 5회 일치
          *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아츠무. 면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는 더 격렬하게 대항심을 불태운다.
          * 물론 충격은 당사자들이 가장 컸다. 로테이션 때문에 코트 밖에 있던 히나타는 말할 것도 없이 표정이 구겨지고 카게야마는 딱딱하게 굳는다. [[스나 린타로]]는 정말로 한 거냐고 뜨악한 응. 아츠무는 "토비오군 만큼 정밀하진 않다"고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인 듯 하다.
          * 관중석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방금 전 카게야마가 놀라운 페이크 플레이를 선보였을 때처럼 아츠무의 플레이를 섬뜩하게 여긴다. 상대의 특기를 굳이 따라해서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것, 그걸 해내고자 하는 센스와 하고자하는 결단력이 질투심이 들 정도다. 면 [[보쿠토 코타로]]는 "아아" 정도로 대꾸하고 말 뿐이라서 정말로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무관심한건지 모를 일이다.
          * 카라스노 아즈마네의 서브. 위치에 선 아즈마네는 이전에 우카이 코치가 알려준 요령을 되새긴다. 사실 연습 때는 그도 좋은 서브를 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서 컨트롤이 좋지 않다. 그런 사정을 들은 우카이 코치는 주먹을 꾹 쥐었다 펼치는 근이완법을 조언한다. 이런 동작을 복하는 것으로 쓸데없는 힘을 빼낼 수 있다. 수영선수들도 어깨를 추켜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하는데 마찬가지 원리.
          * 속절없이 막히는 속공. 선수들 사이에, 응원단에, 벤치에 낭패한 얼굴이 스쳐간다. 면 얄미울 정도로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아츠무. 중계진의 멘트가 카라스노를 잔인하게 찔렀다.
  • 하이큐/265화 . . . . 5회 일치
          * 봄고 1일 차의 밤은 살아남은 모든 팀에게 주어졌다. 당연히 [[네코마 고교]]에게도 싱숭생숭한 밤이 왔다. 3학년 [[쿠로오 테츠로]], [[카이 노부유키]], [[야쿠 모리스케]]는 숙소 로비의 쇼파를 차지하고 시시덕 거렸다. 그들에게도 첫 전국대회였다. 인터하이와는 또다르게 들뜨는 밤이었다. 야쿠가 좀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칸센을 타고 싶다면서. 카이는 은퇴하고 나면 올해 인터하이 때 응원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야큐가 나갈 수는 있겠냐고 쯤 빈정대자 쿠로오가 후배들을 좀 믿으라고 면박했다. 마침 그 후배가 근처에 있었다. 카이가 자판기에 들른 [[코즈메 켄마]]를 발견했다. 음료를 뽑으려는데 다른 학교 학생 둘이 그 앞에서 잡담 중이었다. 숫기가 없는 코즈메는 비켜달라고도 못하고 뒤에서 머뭇대고 있었다. 그러자 학생들 쪽에서 먼저 그를 발견, "자시키와라시"인 줄 알고 자리를 양보해준다.
          *야쿠는 그 말을 곱씹어 봤다. 돌이켜 보니 코즈메는 확실히 체력은 없지만 실제 연습에선 어지간하면 다 따라왔다. 가끔 땡땡이를 치는 정도로. 마침 쿠로오가 전에 했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빨리 일어나기 사건. 코즈메는 게임 때문에 맨날 늦게 잤는데, 쿠로오가 런닝하려고 일찍 일어나 보면 그때도 코즈메 방에 불이 들어와 있는 일이 많았다. 그때가 대략 오전 5시 경. 처음엔 철야로 게임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철야가 아니라 "일찍 일어난" 거였다. 무려 오전 2시 기상. 철야를 하면 부모님이 게임을 죄다 버려버리니까, 대로 아주 일찍 일어나서 게임하는건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러나 카이는 코즈메가 최근 더 의욕이 생긴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카라스노 고교]]과 연습시합을 하면서부터다. 야쿠도 "거기 꼬맹이"랑 죽이 맞아서 같이 다니더라고 맞장구 쳤다. [[히나타 쇼요]]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둘이서 완전 정대 타입이면서 잘도 죽이 맞는다고 했다. 쿠로오는 희안하게 생긴 친구라 그렇다 했다. 코즈메 입장에선 "실존하는, 귀중한 공략 대상"일 거라고 추측했다. 히나타도 코즈메는 꼭 쓰러뜨리고 싶은 라이벌 중에 하나일 테고. 비록 야쿠는 "켄마는 져도 신경 안 쓰니 이겨도 보람이 없을 거다"고 쯤 빈정거리긴 했지만, 히나타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것이다.
          * 다이쇼가 정확한 통찰을 내렸다. 네코마는 2점 리드를 지키며 22 대 20점. 1세트 후까지 몰고왔다. 겉보기에는 네코마가 안정적으로 기세를 올려가는 걸로 보였지만 시시오 감독의 복심에 따르면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은 희생에 불과했다. 설사 그때문에 1세트를 내주더라도 아깝지 않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작전 목적은 적 세터에게 부하를 거는 것. 그가 본 코즈메는 멘탈이 무너지진 않더라도 피지컬 쪽은 무너지는 쪽이었다. 지치면 표가 나는 타입. 경기가 풀세트로 가게 되더라도 좋았다. 오히려 그 쪽이 유리하기도 하다.
  • 학대의 연쇄 . . . . 5회 일치
         학대가 연쇄되는 경우는 학대 경험을 그대로 의심없이 자신의 아이에게 복하는 것과, 학대 받은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자신의 아이에게 투영하는 경우가 있다.
         복하는 경우는 자신의 학대 경험에 대해서 자신이 나쁜 아이였기 때문에 혼이 났다고 믿어버리고, 학대라는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훈육 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며, 이것이 학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학대를 복하는 부모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회상하지 않으려 하며, 이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언급하기를 거부한다. 학대를 복하지 않는 부모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회상하여 솔직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학대를 복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
  • 한상대 (검사) . . . . 5회 일치
         한 후보자의 부인과 두 자녀는 각각 1998년 5월, 2002년 9월에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용산구 이촌동으로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8181.html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 ‘재산 25억’]《한겨레》2011년 7월 19일 석진환 기자</ref> 위장전입 덕에 큰 딸은 이촌1동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모 외고에 진학한 뒤 아버지와 같은 고려대를 나왔다. 둘째 딸은 그러나 성악을 희망, 일중학교가 아닌 예술계중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위장전입 두 달 만인 같은 해 11월 주소를 다시 서빙고동으로 옮겼다. 한 내정자는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며 "딸이 친한 친구와 함께, 같은 이웃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주소를 이전했던 것"이라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그는 그러나 "부동산 투기 등 다른 사유는 전혀 없다"며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결과적으로 위장전입을 한 것이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7147 "딸이 친구와 학교 다니고 싶어해", MB지명 총장 '전원 불법']《뷰스앤뉴스》2011년 7월 18일 김동현 기자</ref>
         한인대는 사찰총장 취임사에서 "오늘 검찰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땅에 3대 전쟁을 선포하고자 한다"며 "하나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이고, 둘째는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이며, 마지막으로는 우리 내부의 적과의 전쟁"이라고 '전쟁'이란 표현을 연거푸 사용했다. 또한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 기을 마련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공안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덧붙였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0657 "한상대의 '전쟁 선포'... 박영선이 옳았다"] 《오마이뉴스》 2011년 8월 13일 박주현 기자</ref> 경향신문은 칼럼에서 "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했습니다. 총장은 종북좌익세력인가요, 아닌가요. 노동, 경제, (反)복지 정책 등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면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종북세력입니까"라며 한상대의 발언을 비판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151805021&code=940301 검찰과의 전쟁] 경향신문 2011년 8월</ref>
  • 한승조 . . . . 5회 일치
         일본 보수언론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 조약|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글의 내용 중에 "[[식민지 근대화론|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절 등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ref>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3/h2005030411490221950.htm 한국일보 - 한승조 "일본 식민지 지배는 축복"]</ref>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친일파|신친일파]]<ref>[http://www.hani.co.kr/section-007100002/2005/03/007100002200503132126035.html 한겨레신문 - 한-일 우익 ‘역사왜곡’ 연대조짐] :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을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 잡지에 등장하는 한국 우익들의 입에서 한도 강점이 부당하다는 논조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들의 북 논리는 그동안 암약하던 한국 내 ‘신친일파’의 본격적인 커밍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f>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주장에 책임을 지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42805 오마이뉴스 - 한승조, 고대 명예교수직 사퇴] : 한승조는 "최근 저의 글 '친일행위가 민족행위인가'로 인해 사회적 물의가 일었고 이로 인해 고려대에 간접적인 피해를 입힌 데 대해 책임을 지고 명예교수직으로부터 사임하고자 하니 선처가 있기 바란다"라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ref> 그러나 한국 국내의 움직임과는 대로 일본의 우파는 “양심적 한국인”이라고 평가를 했다.<ref>[http://myhome.cururu.jp/doronpa/blog/list/bt0_ct3_dc_pg4 Doronpaの独り言-CURURU] - 이 사람은 일본의 우파적 시민 단체의 회장이다.</ref>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친일파]][[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학자]][[분류:청주 한씨]]
  • 헤이안 시대 . . . . 5회 일치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 다이호 율령(大宝律令)가 제정되어 있던 시기에 나라의 토지는 모두 덴노의 것이라는 왕토사상 아래, 농민에게는 토지를 빌려주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구분전(口分田)이라고 하였으며, 개별 농민에게 과사게 이루어졌다. 새롭게 개간한 토지는 사유지로 삼을 수 있었으나, 1대에 한하여 납하여야 했다. 이를 전수수법(班田収授法)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개간한 토지를 1대만 소유할 수 있는 것에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이에 발을 고려하여 3대 까지 소유할 수 있는 삼세일신의 법(三世一身の法)이 만들어진다. 이 역시 불만이 많았으며, 농민들은 개간지를 피해서 유력자에게 도망쳐 숨게 된다. 결국 개간지를 영구 보유할 수 있다는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이 만들어진다.
         호농이 늘어나고 농민들의 호적 파악이 되지 않아 구분전 제도는 형해화 되었으며, 전수수법을 대신하여 대규모 장원에 직접 과세를 하게 된다. 즉, 소작농은 과세가 되지 않고 호농을 통하여 간접 과세가 된 것이다. 이를 명전(名田)이라고 부른다. 명전을 보유한 호농들은 조세를 대납할 의무를 지게 되어 부명(負名)이라 불리게 된다.
         본래 전수수법으로서 각 쿠니(国)[* 헤이안 시대의 행정구역으로서 국은 현재의 한 현 정도의 크기이다.]에 보내지던 쿠니시(国司)는 호농들에게 조세를 간접 징수하는 정도의 존재로 바뀐다.
  • 헤이즈 (가수) . . . . 5회 일치
         == 음 ==
         === 미니 음 ===
         === 싱글 음 ===
         === 콜라보레이션 음 ===
         *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 베스트 힙합 어 뮤직상
  • 현제명 . . . . 5회 일치
         [[대한민국]]의 음악가, 성악가(테너), 작곡가. 1902년 12월 8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남산동(現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남산동) 출신.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아호는 현석(玄石)이다. 그리고, [[친일민족행위자]]다.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계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이수하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창설하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 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한 조선문예회 정회원으로 가입하다가, 독립 계몽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친일 성향 단체인 대동민우회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친일민족행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총독부의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음악가협회를 해체하고 이후에도 시국대응전선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등에도 가입하면서 친일 행위를 하였던 전적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특히 친일 찬양적인 성향의 '''[[후지산]]을 바라보며'''에 작곡자로 개입하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가입해서 극우 보수파로 활동하여 공, 북 운동을 전개하였고 1946년에는 경성음악학교([[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전신)를 설립하여 교장이 되었다. 1953년 한국음악가협회 위원장,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영구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가 1960년 10월 16일 [[간경변]]으로 생을 마감했다.
         [[분류:성악가]] [[분류:작곡가]] [[분류:친일민족행위자]] [[분류:중구(대구) 출신 인물]] [[분류:1902년 출생]] [[분류:1960년 사망]]
  • 홍국영 . . . . 5회 일치
         == 생애 초 ==
         1778년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이 된다. 이때 원빈 홍씨의 지위는 유례 없는 것이었다. 후일 이 모든 이례적인 처사는 모두 홍국영의 세도로 인해 일어난 일이란 식으로 설명되게 된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홍국영이 자교(이 경우 후궁 간택령)를 내리게 했다"라고 쓰고 있다. 《한중록》에서는 이어 원빈의 입궁에 대해, 홍국영이 세도를 탐내어 제 누이를 들여보낸 것으로 자신은 이에 대하는 입장이란 식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정조)어제인숙원빈행장》(정조가 원빈 사후 작성한 원빈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에서는 혜경궁 자신의 진술과는 대로 혜경궁이 원빈에 대해 각별한 정의(情誼)를 나타냈다고 한다.<ref>[http://yoksa.aks.ac.kr/jsp/aa/HajeView.jsp?aa10up=kh2_je_a_vsu_20664_000 어제인숙원빈행장(御製仁淑元嬪行狀)]</ref> 《순조실록 혜경궁 행장(김조순 저)》에서 혜경궁은 원빈에 대한 각별한 정의를 지녔던 혐의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 강조한 대목이 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wa_11601021_002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 1월 21일 신축 2번째기사]</ref> 홍국영 일가의 인물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고전소설 《숙창궁입궐일기》는 원빈의 입궐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혜경궁은 효의왕후 쪽인 인상을 준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1844|제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창궁입궐일기|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정조는 홍국영을 퇴진시키고 숙위소를 혁파시켰으나 동시에 그의 백부 [[홍낙순]](洪樂純)을 정승에 임명했다. 따라서 한동안 그의 세력은 조정에 계속 건재했으며 그 자신도 계속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에 홍국영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대로 조정에서 축출 당한다. [[1780년]] 1월에는 홍낙순이 파직과 문외출송되고, 다음달 26일 김종수의 탄핵상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다. 김종수의 탄핵 상소를 시작으로 하여 홍국영에 관한 탄핵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중록》은 김종수의 상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원도]] [[횡성]], 그 다음에는 [[강릉]]으로 방출되었던 홍국영은 결국 이듬해인 [[1781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홍국영의 몰락에 대해서는 각종 설만 난무할 뿐,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탄핵의 포문을 연 김종수의 상소에서 언급된 공식적인 탄핵 사유는 '후궁 간택을 막았다'라는 것이었다. 또한 (원빈의 수원관)완풍군을 정조의 양자로 들여 동궁으로 삼으려 했다는 가동궁 사건설도 몇몇 군데에서 언급된다. 정조7년 문양해 란사건 당시 '왕비의 목숨을 위협했다'라는 기록도 있고,《정종대왕묘지문》에는 홍국영이 [[은전군 이찬]]([[조선 정조|정조]]의 이복 아우)을 죽게해서 몰락했다고 정조가 원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속설 중에 홍국영이 완풍군을 원빈의 양자로 삼았다거나, 효의왕후 김씨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던 것이 발각되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는 19~20세기에나 등장한 야사로 짐작된다.
  • 황두성 . . . . 5회 일치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적하였으나, 1군 1경기에 그쳤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진은 상당히 탄탄했었기에 그에게는 기회가 찾아오지 못하고 그의 선수 생활은 주로 2군에 많이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투수]]들이 부진함에 따라 2군에서 선수 생활을 쭉 해오던 황두성은 비로소 1군에 올라와 기회를 잡게 되는데, 처음에는 불펜으로 자주 등판한 것을 시작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마당쇠 같은 역할을 하여 [[2005년]] 1군 60경기 11승 9패에 방어율 3점대 초의 성적을 거두어 두각을 나타낸다. 데뷔 첫 승도 그 해에 기록했다. 그는 140 중후대의 묵직한 직구와 체인지업 위주로 구사하면서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그는 [[2006년]] 시즌 처음에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2005년]]에 지나치게 등판하여 혹사한 탓에 후유증으로 크게 부진하여 2군에서 재활하게 된다. 그 뒤 시즌 중에 1군으로 올라와 불펜 투수로 뛰면서하면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한다. [[2006년]] 시즌 3.91 평균자책을 기록하였다.
         [[2008년]]에는 선발로 활약하다가 시즌 중에 소속 팀이 마무리 부재로 불펜진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자진해서 잠시 마무리로 전향했다. 그러다 [[일본]]인 마무리 [[투수]] [[다카쓰 신고|다카쓰]]의 입단으로 선발 보직으로 다시 옮겼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으로 뽑혔지만 컨디션 난조로 중도 하차하여 [[임태훈 (야구 선수)|임태훈]]과 교체되었다.
         [[2009년]] 시즌에는 처음에 마무리 [[투수]]로 보직으로 활동하다가 구위 난조로 잠시 2군에 잠시 갔었다. 그 후 시즌 중에 선발 보직으로 활약하여 3.51 방어율에 40게임 등판, 8승 3패 9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0년]] 스프링 캠프 도중 어깨 통증을 호소하여,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하고 있다가 재활에 실패했고 무릎 부상까지 겹쳐 1군에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2011년]] [[11월 25일]]에 보류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방출되자마자 곧 은퇴하고 자신이 처음 지명받았던 [[삼성 라이온즈]]의 잔류군 코치로 옮겼다.<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1316335552729 황두성, 삼성에서 지도자로 변신…잔류군 코치 계약] - 아시아경제</ref> [[2014년]] 3월부터 8월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연수하였다.
  • 황희두 . . . . 5회 일치
         2009년 하기 드래프트에서 [[MBC게임 히어로]]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Gas[fOu]'''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종족은 [[테란]]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정치 검찰의 비정상적인 판단을 보며 현직 대통령을 고발한 내용이다. 청년문화포럼 민주참여위원회 김민성 위원장과 함께 국회 앞에서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더불어“국회탄핵무효“ “계엄을 선포하라” “촛불시민을 다 죽이라”는 등의 선동과 내란 유발도 서슴지 않는 국가적 장소에 나가고, 국회의 기정사실인 탄핵입장을 대해온 국회의원까지 국회 윤리위제소 및 징계를 요구한 사건이다. <ref>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긴급> 모두행복실천단 국회 앞 기자회견</ref>
         적폐청산과 국가 대개조를 위한 모임으로 트럼프 방한 대, 사드 배치 대, 박근혜 탄핵, 촛불 정치학교 등을 진행중에 있으며, 현재 상임 공동대표로 선임되어 활동 중이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3095|적폐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위한 주권자전국회의 개최</ref>
  • 효령대군 . . . . 5회 일치
         === 생애 초 ===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고, 많은 사찰을 순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 생애 후 ===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KBS]], [[1994년]]~[[1994년]], 배우:석진)
         * [[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 - 보물 제771호
  • 히나타 쇼요 . . . . 5회 일치
         ||<tablebgcolor="#ECECEC"> 학교, 학년 || 카라스노 고교 1학년 1 || 생일 || 6월 21일 ||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박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경기에 대한 집념과 미숙한 세터가 토스미스한 공을 쳐낼 정도의 뛰어난 사신경에 감탄한다. 하지만 히나타 외엔 누구도 의욕도 실력도 없었던 유키가오카 중은 불과 31분만에 세트포인트 2-0로 키타가와 제1중학교에 참패. 이 때 카게야마는 중학교 3년 동안 무얼 했냐며 히나타를 질책한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설욕을 다짐하며 남은 중학교 시간을 여자 배구부, 동네 아줌마 배구팀과 훈련한다. 그리고 그렇게 설욕을 다짐하며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러나 배구부가 있는 제2 체육관에 있던 건 바로 원수 카게야마였다.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태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절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사 신경과 순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상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 155밀리 롱 톰 . . . . 4회 일치
         무게가 30,600 파운드(약 14톤)나 나가서 인력으로 운하기 어려웠으므로, [[트럭]]이나 [[트랙터]]로 운했다. 전기에는 트럭으로, 후기에는 M-4 18톤 고속 트랙터로 운했다. 10-14마일 거리에서 곡사 공격을 날리는 것을 기준으로 제작되었으나, 직사용도로 쓰인 적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에서 디자인 된 M1917, M1917A1, M1918 GPF (Grande Puissance, Filloux)의 후속작으로 [[미국]]에서 도입했다. GPF를 기으로 하여 개량하면서 M1 155mm 야포가 개발되었다. 1940년에 디자인이 개선되어 M2 155mm 야포가 만들어졌으며, 이 야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사용하여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M2를 개량한 모델이 M59 155mm 견인포가 된다.
  • Crusader Kings 2/특성 . . . . 4회 일치
         번역명은 스팀 창작 모드의 [[https://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1214460624|Korean Language Pack(Europa)]]를 기으로 했다.
          ''"인내"는 일곱가지 미덕의 다섯 번째이며 분노와 상합니다. 인내를 지닌 인물은 모든 면에서 조금은 더 나은 모습을 보입니다.''
          * 내족(Clubfooted)
          * 농민 란 주동자(Peasant Lader)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4회 일치
          역사적 연도가 현재 연도보다 미래일 경우 패널티가 붙는다. 면 역사적 연도가 현재 연도보다 과거일 경우 보너스가 붙는다.
         연구는 강대국들이 유리하다. 강대국(특히 독일, 영국, 미국)의 연구진이 우수한데다가, 공업력도 좋아 많은 기술을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면 약소국 연구진은 레벨도 별로고 공업력도 딸리기 때문. 솔직히 이 게임은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기에 약소국이 여러모로 불리하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모든 연구를 하는건 무리이다. 그러므로 필요하다 싶은 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게임 끝날 때 까지 안 쓸 것 같은 연구의 경우에는 적당히 하고 내다 버리는게 권장된다.
          행동 경은 짧지만 빠르고 강한 로켓 요격기를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트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Aircraft 탭의 Interceptor 1940 연구와 Rocket Test and Research Facility 트리의 Rocket Engine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해군 유닛 전의 효율을 올려주는 연구들. Engagement Theories 트리 중 Naval Firepower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Fleet-in-being과 Indirect Approach 두 테크로 분리되었다가 Modern Firepower를 통해 통합된다. 보통 해군이 빠방한 나라는 Fleet-in-being을, 해군이 적은 나라는 Indirect Approach를 선택한다.
  • NTX . . . . 4회 일치
          * 해외응: 특정 사건에 대한 해외의 응이 올라오는 게시판. 국내 사건에 대한 해외 응 외에도 해외 사건에 대한 해외 응을 다루고 있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4회 일치
          * 일 의류 공장을 건설 가능하게 함.
          * 일 의류를 해금시킴.
         === Semi-Automatization( 자동화) ===
         == Infrastructure(사회기시설) ==
  • 강구열 . . . . 4회 일치
         2005년 하기 드래프트에서 POS(현 MBC게임 히어로)의 4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MSL에는 8강에 오른 선수들에게 그 특징을 살린 별명, 문구를 붙여주는 관행이 있다. 당시 강구열에겐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 BLADE TERRAN'이란 수식이 붙었는데, 이는 기본기나 운영보다는 초 빌드에 집중하는 강구열의 플레이 스타일에 착안한 것이었다. 5판 3선승제로 치러진 8강에서 강구열은 예의 그 '날카로운 빌드'를 시전했으나 송병구의 탄탄한 운영에 모두 막히면서 0: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혹시모를 이변을 기대했던 팬들은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에 크게 실망했고, 시드를 획득한 강구열이 곰TV MSL 시즌 3 32강에서 [[손주흥]]과 [[김윤환 (1988년)|김윤환]] (KTF)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맥없이 탈락하자 "거품이다", "천운 8강이다" 등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같은 강구열의 행보를 그대로 답습한 선수가 이후에도 계속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CJ 엔투스의 [[주현준]],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 등이 '시드 확보→졸전→광속 탈락'의 전례를 밟은 것. 팬들은 이들을 한데묶어 '강라인'이라 칭하기 시작했고, 이는 커뮤니티 사이에서 폭발적인 응을 이끌어내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 [[신희승]]([[이스트로]]) : 2010년 6월 영구제명. 신희승의 강라인 가입은 험난(?)했다. [[EVER 스타리그 2007]] 4강 2007에서 [[이제동]]([[르까프 오즈]])에게 0-3으로 완패, 3,4위전에서 김택용과의 졸전 끝에 2-3으로 패배했지만 시드가 없었다. 당시에는 스타 챌린지를 통과한 선수가 D조의 시드권을 잡았기 때문에 신희승은 시드를 잡지 못했다. (스타챌린지가 없어지면서 시드권은 박카스 이후 공동 3위에게 넘어감) [[곰TV MSL 시즌4]] 8강에서 마침내 시드를 딴 이후 [[허영무]](삼성전자 칸)에게 0-3으로 완패하는 '삼고초려' 끝에 강라인의 일원이 되었다. 항간엔 "신희승의 네임밸류는 기존의 강라인과 다르다"는 론이 일어 논쟁에 휩싸였으나, 신희승 본인이 "나는 강라인이다"고 인정하면서 '공인' 강라인이 되었다. 팬들은 전략가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 '와룡희승'이란 애칭을 붙였다. 이 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선 [[안기효]], [[김민제 (프로게이머)|김민제]]에게, 아레나 MSL에서 고인규, [[박찬수]]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최종전에서 이제동에게 발목을 잡혔다.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와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는 각각 16강에 진출하였다.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1승 2패로 탈락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또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2패로 탈락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3화 . . . . 4회 일치
          *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바 키리에는 초부터 치고 나가며 경쟁한다.
          * 도마 우마루는 지금까지 벼락치기 단련으로 체육도 커버하고 있었지만, 마라톤은 연습량이 솔직하게 영되는 종목이라 통하지 않는다.
          * 총성과 함께 "이에요!"라 외치며 전력질주하는 실핀. 일단은 1위로 달리게 된다. 에비나 나나는 빠르다고 감탄하고 우마루는 초부터 저렇게 달려서 괜찮을지 걱정한다. 키리에는 마라톤을 모른다며, 저래서는 중에 지쳐버릴 거라고 디스한다.
  • 그루베니아 . . . . 4회 일치
         이주민의 대부분이 서유럽계 주민들로 이루어졋다. 레시마스 은하의 젤베르츠 행성으로 이주한것이 그루베니아의 시초이다. 그 후 빠른 속도로 확장을 시작해 스콜피오스 섹터의 거의 모든 행성에 터전을 넒히고 현재의 그루베니아 공화국의 기을 새웠다.
         그루베니아의 교육의 과정은 초급학교, 상급학교, 대학교로 구성되어있다. 초급학교의 교육기간은 6년으로 기초 학문을 가르친다. 상급학교는 인문학교, 일학교, 실업학교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 교육기간은 인문학교는 6년이고 일학교 실업학교는 4년 이수이다. 인문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입학 할 수있으며 ,일학교, 실업학교의 경우도 졸업 이후 합격시험을 거치면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
  • 그린 랜턴 . . . . 4회 일치
         그린 랜턴은 [[지구]]의 그린 랜턴과 우주에서 [[외계인]]들이 만든 그린 랜턴이 존재한다. 이들은 특별한 힘을 가진 녹색 지와 그 지에서 나오는 녹색 에너지를 이용해 싸우며 이 공통점 외에는 그 기원이 전혀 다르다.
         할 조던, 존 스튜어트, 카일 레이너, 가이 가드너 등이 해당되는 우주의 그린랜턴 군단은 가디언이라는 외계인들이 만든 파워링이라는 녹색 지를 써서 악당들과 싸우는 우주경찰이다. 현제의 시점에서 그린 랜턴이라 하면 이쪽이 더 유명하다.
         [[그린 랜턴: 지의 선택]]
  • 긴나라 . . . . 4회 일치
         인도학자 아스코 파폴라(Asko Parpola)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고대 드리비다어에서 기원했으며, 소리를 뜻하는 킬(Kil)과 현악기를 뜻하는 나람(Naram)을 합성한 것으로, 이는 곧 '악사(樂士)'를 뜻하는 단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대로 킴푸루사가 고대 산스크리트어 킨나라를 산스크리트어로 음차한 것이다. 제사의 희생물로 '킴푸루샤'를 제단 밑에 묻었다는 단서로 보아 악사들을 희생 제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마이어호퍼(Mayerhoper) 역시 긴나라는 악사를 뜻하는 말이었을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마두인신(馬頭人身)으로 묘사된다.
         왕자 수다나는 이 나라에 초대를 받아 가는데, 제물로 잡혀온 마노하라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수다나는 이웃 나라의 왕에게 불법을 설교하여, 마노하라를 죽이지 말고 살려서 구출하고 자신의 왕궁에 데려온다. 둘은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히스티나푸라 왕국의 사제는 수다나 왕자가 왕이 되면 자신이 사제로서 남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계략을 꾸민다. 사제는 왕에게 왕자를 위험한 변방으로 보내서 란을 진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간언하여, 수다나 왕자는 변방으로 떠나게 되는데 [[야차]]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4회 일치
         2006년 상기 드래프트에서 SouL(현 STX SouL)의 3차 지명으로 입단해 그 해 프로리그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현존하는 프로토스 유저들 중 전략적인 플레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2008년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여섯 명의 프로토스 선수들을 가리키는 '육룡'의 일원이다 (김구현, [[송병구]], [[김택용]], [[도재욱]], [[허영무]], [[윤용태]]). 2009년 후기에 저그의 강세로 인한 육룡의 총체적인 부진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MSL에서는 김구현, 도재욱 스타리그에서는 송병구 등이 활약하며 전을 꾀하고 있다. 리쌍에게는 매우 약하나 택뱅을 상대로는 강한 면을 보이고 있다.
         2011년 9월 22일, 단 한 명만을 모집하는 2011년 8회차 공군 e스포츠병 전형의 최종 합격자로 선정됐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 1R 중부터 [[공군 ACE]]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김기수(코미디언) . . . . 4회 일치
          * 2회만에 조회수 100만을 돌파하는 등 응은 좋은편이다. 영상이 2분 내외로 짧은 편이라 간단하게 보기 편하고 내용은 내용대로 꿀팁, 거기다 개그맨 출신다운 입담이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 듯.
          * 여초 커뮤니티 등의 응이 좋지않다. 여성들의 기준에는 김기수의 화장 실력이 초보 수준으로 서툴고 어설프다는 게 일적인 평이다. [* 여성 뷰티 크리에이터만 아니더라도 맨즈 뷰티를 주제로 하는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와의 비교를 해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김기수한테만 어울리지, 남자 누구에게나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데일리 메이크업이나 피부 관리 위주도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 이런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지 '남성' 개그맨이라는 이유로 이 분야의 유명세를 얻고 있으며 전문가인 척 하고 있어서 비호감으로 전락했다. 또한 자신의 화장 방식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비꼬며 좋지 못한 리액션을 보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 자신이 런칭한 썬 스틱 화장품 영상에선 [[https://youtu.be/Usd6i4iJAlk?t=1m42s|시연자의 피부에 바르는 '시늉'만 하는 장면을 보여줘]] '블루투스 선스틱'이라는 부정적인 응도 나타났다. [* 이에 관련 제조업체는 '촬영 전 연출된 부분' 이라 해명했고 김기수는 '홈쇼핑 생방에서는 제가 직접 화장 위에 시연한다. 본의아니게 실망드려 죄송하다.'며 곧바로 사과 댓글을 썼지만 애초에 연예인의 이름을 걸고 광고할 때 소비자는 연예인을 신뢰하고 사기 때문에 조심했어야하는 부분.]
  • 김다솜(배우) . . . . 4회 일치
         외국의 [[양덕후]]들은 다솜을 제일 좋아하는 듯하다. 정규 1집 타이틀곡 <So Cool> MV에서도 "머리 단발인 애가 제일 이쁘다."라는 응이 많았다. 디씨인들도 다솜을 제일 좋아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효정]]과 [[나르샤]]에 밀려 [[소유(가수)|소유]]와 함께 계속 비주류를 맴돌았지만 <Loving U> 때부터는 [[효정]]과 [[나르샤]]의 뒤를 잇는 인기 멤버가 되었다. <Loving U> 활동의 최고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막내보다 늦게 뜬 [[소유(가수)|소유]] 지못미.(...)~~ ~~다만 당시 파트가 딱 한 소절이었다.~~
         데뷔 후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지만 다른 멤버들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다고 방송 중에 울먹인 적이 있다. 언니들은 연습기간이 서너 해인데 본인은 년이었다고...[* 이 때 자신의 약한 피부가 콤플렉스라고 하기도 했다. 실핏줄이 다 보일 정도라서.] <나 혼자>로 활동할 때 자신의 파트가 하나뿐이라서 마음고생이 심한 듯하다. 하지만 실력이 상승하고 있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으며, [[유밴드|소속사]]에서도 푸시가 늘어나서 예능이나 연기활동에도 시동을 걸었다.
         [[씨스타]]가 막 데뷔했을 당시 '[[일진]] 아이돌'이라는 설이 가장 많았던 멤버다.[* 데뷔 초에는 [[소유(가수)|소유]]와 [[효정]] 역시 일진 논란이 있었다. 그 중 제일 심했던 게 다솜이라 그렇지(...)... ~~면 [[나르샤]]는 일진루머가 없어서 빵셔틀이라고 놀림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 역시 [[강지영]]에게 파주퀸 루머를 만들어 뿌렸던 [[http://theqoo.net/index.php?mid=square&filter_mode=normal&document_srl=150168230|모 커뮤니티발 조작임이 밝혀졌다]], 심지어 유포자들은 '''[[중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끼리 뭉쳐다니던 걸 일진처럼 조작해서 유포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진설이 돌던 때 증거랍시고 나오던 것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다솜은 진짜로 '''초등학생 때 소화기 들고 사람을 폭행한''' 불량학생이 된다. 상식적으로 10살 안팎의 여자 초등학생이 그 정도 완력을 지니고 있을 리가...] 그런데 2012년에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다솜이 [[류화영]]과 친하다는 사실이 부각되자 다솜의 [[이미지]]가 좋아졌다.
         2017년 4월부터 방영하는 [[김순옥]] 작가의 신작~~이자 '''희대의 개[[막장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 [[양달희]]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생애 첫 [[SBS]] 드라마인데, 이번에는 [[신애리]], [[연민정]], [[오혜상]] 계열을 잇는 '''[[악녀]]''' 배역을 맡게 되었다. 초에 [[발연기]]라고 꽤나 까였고 [[영고라인|영구히 고통받았다]]. ~~참고로, [[고양이]]가 병을 떨어뜨려 사람을 죽이는 참으로 [[엽기]]적인 [[드라마]]다.~~ 그러나 갈수록 연기가 자연스러워지고 [[악역]]을 상당히 잘 살리는 모습을 모이며 다른 [[주연]] [[배우]]들이나 [[선배]] 악역 배우들에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방출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마지막에는 명연기라고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2017 [[SBS 연기대상]]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김범룡 . . . . 4회 일치
         | 직업 = [[싱어송라이터]] <br> [[대중음악|음]]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br/> [[배우]]
         [[1982년]] 연포가요제에서 [[보컬]] 듀오 빈 수레의 [[보컬]]리스트로 참가하여 자작곡 《인연》으로 우수상을 수상하여 첫 데뷔하였고 그 후 [[1985년]] 개인 음 1집에 수록된 자작곡 《바람 바람 바람》으로 솔로 [[가수]] 데뷔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85년]] [[KBS 가요대상]] 신인가수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에는 [[MBC]]와 [[KBS]]에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잠시 영화배우와 뮤지컬배우로도 활동하였는데 히로뽕과 대마초를 흡입했다는 이유 때문에 [[1995년]] [[2월 21일]] 서울지검 강력부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ref>{{뉴스 인용
         == 음 ==
  • 김병옥(배우) . . . . 4회 일치
         홀어머니가 시장에서 청과 가게를 하시면서 하루하루 온가족이 연명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연극 배우 생활을 이어가면서 15년 동안 짜장면, 짬뽕만 먹었다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장례비가 없어 시장 상인들이 십시일 장례 물품을 대고 친구들도 돈을 갹출해 도와줬다고. 44세 때 출연한 올드보이 전까지 정말 빈곤했단다. 성공한 후에도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에 보증도 많이 서줘 돈을 많이 못 모았단다.
         || 2017년 || [[보안관(영화)|보안관]] || 강 장 || ||
         [[맥심(잡지)|맥심]] 2015년 9월호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는데, 악역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느와르]] 컨셉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실제 범죄를 연상[* 일적인 느와르 느낌보다는 그냥 강력범죄 설정에 가까운 화보들이었다. 남자끼리 총격전을 하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 조폭 설정으로 스타일링한 김병옥이 납치한 여성을 트렁크에 실어서 차로 옮겨 땅에 묻는 설정의 사진이었다. 실제로 잡지사 여직원이 피해자(?) 역할까지 했다. --[[취향|여긴 왜 자꾸 자기네 여직원들을 시켜]]--]시켜서 혐오감과 공포감을 일으킨다고 논란이 되었다. 다만 이것이 배우 본인의 잘못은 아닌지라, 어쩌다 논란에 끼여 버린 피해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동명의 웹툰원작 시트콤 [[마음의 소리(시트콤)|마음의 소리]]에서 주인공 조석의 아버지 조철왕역으로 출연[*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몇 안 되는(...) 선역 중 하나로 꼽힌다. 게다가 그의 연기 인생 중 '''첫 코미디 역'''이라고 한다.--한두번 해본건 아닌거 같다--]했는데 원작과의 싱크로율이 높아 호평을 받는 중. 조철왕 역을 수락하는 데에 둘째딸[* 마음의 소리 특별판에서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굉장한 미인이다. 17년 기준 19세. ~~아버지가 전화를 걸자 무뚝뚝한 목소리로 학원 수업 들어가야한다고 말하는 게 포인트~~]의 권유가 컸다고 한다. 덕분에 사람들이 예전처럼 무서워하지 않고 갑게 인사를 해준다고.
  • 김상훈 (1963년) . . . . 4회 일치
         * [[2013년]] [[4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 전, 후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 [[2014년]] [[6월]] ~ [[2015년]] [[2월]] : 제19대 국회 후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
         * [[2016년]] [[6월]] ~ [[2018년 5월]] : 제20대 국회 전기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 [[2018년 7월]] ~ : 제20대 국회 후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 김성곤 . . . . 4회 일치
         박정희의 친위대를 자처하면서 3선개헌에 회의적이던 김종필계와 대다수 공화당 인사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3선 개헌]]을 성사시켰다.[* 3선개헌이 처음 불거졌을때 김종필을 선두로 해서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를 대했다. 장기집권한 이승만의 최후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부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회유, 협박해서 결국 모두 찬성으로 돌려놨다. 당내에 막강한 독자계보를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압박하는데 선봉에 선게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4인방][* 한때 60명이 넘던 공화당내 개헌대파 국회의원은 결국 3명 [[정구영]], [[예춘호]], [[이만섭]]만이 남았고, 결국 정구영-강제 정계은퇴, 예춘호-제명, 이만섭-낙선으로 모두 숙청되었다. 예춘호는 야당으로 넘어가서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만섭은 야인으로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이후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총재로 재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와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박정희를 대리해서 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재벌]]에게 해외차관과 정부발주공사의 10%를 무조건 자신을 통해서 상납하게 하면서 ~~[[뇌물]]의 제도화~~ 정권의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재벌,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그가 [[쌍용그룹]] 회장(재벌총수), 동양통신 사장(언론인)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정치인)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한 나머지 1971년 민주공화당의 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등과 함께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가결시킨 '''[[10.2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박정희 분노를 산 김성곤 회장은 [[길재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랑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범죄)|고문]]을 당하고, 정계에서 쫓겨났다. 당시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이 뽑힐 정도로 수모를 당했고, 심지어 시중에는 개처럼 두들겨 맞아서 생으로 변을 지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오죽했으면 신민당에서 문제삼으며 정권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살해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3선 개헌 이후에 소위 4인체제의 힘이 커지자 기회만 보고 있던 박정희가 항명파동을 계기로 싸그리 숙청해버린 것이다. 집권당 국회의원도 박정희한테 대하면 잡혀가서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본 이후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과 정권내에는 박정희한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완벽한 1인 독주체제가 된다. 이 때문에 노골적인 종신집권 의욕을 보인 [[10월 유신]] 때는 집권세력 내에선 전혀 대가 없었다.
  • 김성민 (1994년) . . . . 4회 일치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후 [[KBO (야구)|KBO]]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공식적인 항의 서신을 보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이러한 규정 위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월 15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사무국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벌금 징계를 부과하였고 그와의 계약을 30일 간 잠정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31426 美볼티모어 부사장 “김성민 계약 파문 공식 사과”],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2&aid=0002272362 MLB 사무국, 김성민 영입 볼티모어에 벌금 징계], 《해럴드POP》, 2012년 2월 16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계약은 미루어졌고 결국 [[6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의 계약 불발을 보도하면서 [[7월 7일]]에 공식적인 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그는 국제 미아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196271 볼티모어, 김성민 계약 위해 MLB 승인 기다려], 《스포츠조선》, 2012년 3월 2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64872 '스카우트 파동' 김성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재계약 실패], 《OSEN》, 2012년 6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999 댄 듀켓, “김성민과 계약하고 싶지 않다”], 《OSEN》, 2012년 7월 8일.</ref> 결국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는 2013년 초에 일본의 [[후쿠오카 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14&aid=0000227125 고교야구 유망주 김성민 일본 대학 입학 왜?], 《MBC》, 2013년 1월 11일.</ref>
         [[2014년]] [[2월 26일]] [[대한야구협회]]가 그에 대한 자격 정지를 해제함에 따라 차후 국내에서의 선수 활동이 가능해졌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4&aid=0003103089 KBA, ‘선수등록 규정 위’ 김성민 자격정지 징계 해제], 《파이낸셜뉴스》, 2014년 2월 26일.</ref>
  • 김수용(코미디언) . . . . 4회 일치
         제1회 [[한국방송공사|KBS]] 대학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7기 취급.[* 감자골 이적 사태로 공식적인 기수명단에서 제외된 상태지만 선배들의 [[괘씸죄]] 때문이라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실이라 최근엔 사실상 그런 건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같은 방송사 후배들에게 선배 대접도 잘 받고 있고...][* 김수용은 감자골 사태가 일단락되고 난 후 1994년부터 각종 [[한국방송공사|KBS]] 코미디프로에서 활동했으므로 사실 기수명단에서 제외랄 것도 없다. 1996년 코미디 일번지에서 신세대 동작그만이라는 코너에 주연급으로 나오기도 했고, 특히 1998년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유재석과 함께 귀농일기라는 코너에 공연하기도 했다. 게다가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11기로 들어온 [[김숙]]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방송공사|KBS]]에 복귀한 이후로는 코미디언실에서 엄연히 선배로 대접 받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다.(개그계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등과 비슷한 세대의 [[개그맨]]이며 갈갈이 패밀리([[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 [[정종철|옥동자]], [[김시덕]])나 옹달샘([[유상무]], [[유세윤]], [[장동민]])처럼 김수용을 포함한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까지 넷이서 "감자골"[* 팀명은 4명 다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감자에서 따왔다고...그러나 2008년 12월 20일 방송 된 명랑히어로에서 김국진을 제외한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은 강원도와 상관 없는 강원태생이라고 말했다. ]이라는 팀으로 활동했었다. [[한국방송공사|KBS]]에서는 비교적 콩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흔히 소재는 좋은데 잘 살리지 못하는 류) [*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으나, 비중이 거의 없다든지 단역으로만 나오던 급은 아니었다. 1996년 토요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마법의 디스켓이라는 코너에 단독으로 주연을 맡을 정도로 나름 비중이 있었다. 확인큐 베일을 벗겨라나, 비디오 챔피언 같은 예능 프로그랭의 서브MC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동시기 신동엽, 김용만은 진행, 박수홍이나 김국진은 예능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며, MBC와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기에 묻혔을 뿐이다. 1995-1997년 사이 SBS에서는 코미디 전망대와 웃으며 삽시다, MBC에서는 오늘은 좋은 날과 테마게임이 있었지만 [[한국방송공사|KBS]]는 한바탕 웃음으로 폐지 후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없이 폐지와 신설을 복하고 있었다.] 나중에 MBC로 이적하면서 예능 MC로 갈아타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각종 예능에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세대의 예능 MC들이 으레 그렇듯 배려형 MC 스타일이였다. 특유의 진한 [[다크서클]]도 트레이드 마크. 그래서 별명이 팬더다.
         이후 선배에게 당한 배신감+빚에 대한 압박감으로 방송을 접고 우울증에 걸려 무기력하게 지냈다고 언급되었다. 이 기간 중에 온라인게임 [[리니지(게임)|리니지]]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아이디는 '겸댕이'. 연예인임에도 [[혈맹]] 모임에 대놓고 나가고 PvP관련해서 [[현피]]까지 할 정도였다고[[https://www.youtube.com/watch?v=FCaSUZ9wNwI|김수용 현피드립]]. 리니지를 접은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시가 몇 백만 원짜리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지인이 잠깐만 껴보겠다고 해서 김수용이 별 생각없이 아이템을 넘겨주었는데 그 사람이 아이템을 받자마자 '''[[닌자#s-11|그대로 로그아웃을 해서 잠수 타버렸다.]]'''[* 흔히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집 한 채값인 [[진명황의 집행검]]은 아니다. 집행검은 2010년 이후인 비교적 최근에 나온 무기로 김수용이 리니지를 하던 2000년대 초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배성재의 텐]]에 출연했을 때 "+9 무기라서 빛이 나는 검이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빛이 나는 무기는 애초에 축복받은 무기이지 강화 수치와는 무관하다.]
         주식에도 손을 댔었는데, 주식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초에 뭣 모를 때만 손해를 좀 봤고 나중에는 어느 정도 수익을 얻었다는 듯. [[SBS CNBC]]에서 아나운서로 여러 주식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나중에 [[매직아이]]에서 출연해서 주식으로 1억 벌려면 2억을 투자하라면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정보'의 위험성과 주식방송에 출연하는 주식 전문가를 예를 들면서 주식의 허상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555316|#]] 참고로 2012년에 주식방송에서 짤렸을 때 김수용의 다크서클을 보고 윗분들이 보기에 하한가 느낌 같아서 짤렸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그해 2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는데, [[김경민(개그맨)|김경민]]의 삽질로 인해 방송이 묻힐 위기에 놓였다. 그나마 [[본인]]은 시청자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본방 방영 분량에선 그 채팅의 캐리로 뜨거운 응을 끌어냈다.
  • 김승목 . . . . 4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과 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부산직할시 [[서구(부산)|서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김영삼과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박찬종]]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였다. 1974년 [[정일형]] 등이 화요회라는 계보를 창설하자 화요회에 속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남구(부산)|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재홍(1932)|김재홍]]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해운대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흥수(1928)|이흥수]]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이기택]] 후보와 민주정의당 [[유흥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1978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남구(부산)|남구]]) || || || '''당선'''[* 민주공화당 [[김재홍(1932)|김재홍]] 후보와 동 당선] || ||
         || 1981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해운대구]]-남구) || [[민주한국당]] || || '''당선'''[* [[민주정의당]] [[이흥수(1928)|이흥수]] 후보와 동 당선] || ||
  • 김정재 . . . . 4회 일치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한나라당 중앙여성위원회 기획분과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이 과정이 좀 특이했는데 4회 지선에선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는데 5회 지선에선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국회나 지방의회나 보통 비례대표로 당선된 사람들이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선거에 나서는 것과는 정대. 덕분에 5회 지방선거에서 괴멸당하다시피 한나라당 서울시의회의 몇 안 되는 재선이었다. 이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5회 지방선거 및 19대 총선으로 서울, 그것도 자신의 활동영역이던 서대문 지역에서는 보수정당으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듯 고향인 포항으로 지역기을 바꾼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려 하였으나 [[컷오프]]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5년까지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역임하였다.
         자유한국당 원내 대책회의에서 "[[안경환]]건 계속요. 집요하게. 오늘은 그냥 [[조국(인물)|조국]] 조지면서 떠드는 날입니다”, "[[문정인]]. [[무슬림]]인지. [[미]] 생각 가진 사람이 특보라니”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은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논란이 되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99574.html|#]]
         계파로는 범 [[친박]]계로 분류된다. 실제로 탄핵 표결에서 [[전희경]]과 함께 대표를 던진 여성 의원이기도 하다.
  • 김지훈(배우) . . . . 4회 일치
         || 2017년 || 역모: 란의 시대 || [[이인좌]] ||
         그리고 여담이지만 그가 맡은 배역들을 가만히 보면, [[현종]]으로 맡았던 사극에 같이 출현한 이덕화처럼 후대에 연결되는 상황이다. 아닌게 아니라 강감찬의 후손인 민희빈 강씨와 소헌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가담한 [[이인좌]]와 당장 다음해에 [[조선X파일 기찰비록]]에서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의해 속하게 된 기찰비록에서 후에 능양군이 보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게 된 남주역을 맡았다. 인조정은 안 나왔지만, 광해군에 대한 감과 예언 및 함경도 실태를 합친다면 정 참여라는 생각을 갖기 충분하다.
  • 김진환(iKON) . . . . 4회 일치
         춤 습득력이 굉장히 빠르다.[* MIX&MATCH에서 멘탈붕괴 춤을 연습할 때 인원이 너무 많아 먼저 외운 사람은 나가기로 했는데,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익혀 첫번째로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지나니 나가!!!~~[[https://www.youtube.com/watch?v=ifV6I53Nh9M,|영상]]] 춤선이 매우 파워풀하면서 깔끔하다. '리듬타'나 [[https://www.youtube.com/watch?v=BTlTZmkENi4|'BLING BLING', '벌떼']] 같은 힙합곡을 출 때는 느낌을 살려서 추는 면, '죽겠다' 같은 댄스곡에서는 파워풀하게 추고, [[https://www.youtube.com/watch?v=I46liAHRwhw|'이별길']]같은 발라드 곡에서는 선을 잘 살려 추는 등 곡의 분위기에 맞춰서 추는 능력이 탁월하다. 또한 춤을 출 때 눈빛을 잘 살려서 춘다.
          * 발이 작아서인지 잘 넘어지며 무대에서도 자주 뿌당탕. 걸을 때는 뿌장뿌장 걸으며 무대에서는 드시 캣워크를 한다(?)
          * 잘 하는 운동을 발견할 수 없다. 족구, 스케이트보드, 암벽등 등... ~~요정에겐 험난한 인간 스포츠의 세계~~ 하지만 수영을 잘 한다고 한다. 물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깊은 물은 무서워한다. ~~상어때문에~~
          * 랩을 즐긴다. 랩퍼인 바비와 비아이와 1년 동안 셋이서 연습생을 하는동안 어떻게 놀았는지 대충 알 수 있다. 바비와 비아이는 '지나니형 랩 잘하잖아', '랩을 제일 잘한다'라는 식으로 부추겨 기어이 ~~타령같은~~랩을 하게 한다. 과거에는 실제로 랩 가사를 본인이 쓰는 등 랩을 진지하게 시도해보았다고 하는데 그 당시 썼다는 가사, '너는 진주 너는 다이아몬드'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 김취경전 . . . . 4회 일치
         [[계모]] 안씨(安氏)는 남매를 사랑하다가 자신의 아이 설애(雪愛)를 낳고 나자 시기하고 모함을 한다. 결국 취경은 집에서 쫓겨나고, 선애는 안씨에게 대하는 이복동생 설애[* 보통 계모 소설에서 계모 자식은 계모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취경전에서는 계모에게 대하는 역할로 나온다.]와 함께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김형국 일가에서는 선애의 시비 채향이 선애가 야도주하자 안씨를 무서워하여, 어사 서윤택(徐潤擇)에게 집안의 흉사를 고발한다. 서윤택은 김형국과 안씨를 국문하고 취경 남매를 모함한 윤도익을 체포하려고 하지만, 윤도익은 흉계를 꾸며 서윤택은 대당파의 모함으로 삭탈관직과 유배를 당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왕이 진실을 간파하여 서윤택은 복직되었다.
  • 김홍미 . . . . 4회 일치
         역사와 제자백가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경연에서 드시 옛 사례를 인용하여 당시의 일을 정정함으로써 왕의 찬탄을 받았다. 선박 제조 기술이 있어서 [[조선 선조|선조]]는 그에게 [[판옥선]] 설계 제조와 [[거북선]] 설계 제조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 생애 초 ===
         [[1589년]]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누군가 그가 [[정여립]](鄭汝立)의 모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지목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파면되었다. 이후 [[상주]]에 내려가 몇년 간 집에서 칩거하였다. 그 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뉠 때에는 그는 [[남인]](南人)이 되었다. [[1589년]] 그에 대한 복권 여론이 나타나자 [[사헌부]]가 이를 지적하며 그가 이진길(李震吉)의 집에서 유숙한 일을 들었고,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복관되어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그해 [[7월]] [[경상좌도]][[도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어머니 창녕조씨의 상을 당해 사직하였다. 그러나 상중으로 내려간 뒤에도 선조는 [[정경세]]를 시켜 그와 그의 형의 안부를 묻고, 그의 학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기도 했다.
         === 생애 후 ===
  • 나가 . . . . 4회 일치
         인도신화에 나오는 은 뱀이고, 은 인간인 괴수.
         이들은 22세 이상의 성인 여성들이 중심인 가문으로 뭉치는데, 이 성인 여성들중 한명을 가주로 한다. 작중에선 가주에 대한 투쟁은 쯤 전쟁수준으로 묘사되는데,[* 현실의 작위계승 관련을 생각해보면 쉬울듯.] 나이와 딸이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인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듯 하다.
         냉혈동물이란 한계로 인해 자신들이 한계선 이북으로 활동할 수 없는것에 상당히 거부감을 보이며, 이때문에 작중 시도떄도 없이 북쪽으로 확장하려는 야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야욕으로 인해 멸종된 생물이 흑사자. 작중에서 털을 보온용으로 쓰기 위해 멸종에 이르기까지 사냥했다고...] 결국 작중 시간대에서 상당히 지난 시점에서 [[전령자]]를 이용해서 쯤은 성공한듯.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1화 . . . . 4회 일치
          * 슈츠의 개량을 위해 공방을 찾은 A 일행. 그러나 공방의 유망주 하츠메의 기행에 휘둘려 엄청 피곤해진다.
          * 하츠메 때문에 엄청 지친 A 일행.
          * 개량한 슈츠도 하신에 개조가 몰려 있다.
          * 그래서 그런지 팜므파탈까진 아니지만 A 일행을 마구 휘어잡으며 혼란을 야기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4회 일치
          * 바쿠고 카즈키는 사걸고교 시시쿠라 세이지의 개성 "정육"에 당해 죽이 된다.
          * 카미나리 덴키는 비장의 신장비를 이용, 시시쿠라를 격파하고 죽이 됐던 동료들을 되돌린다.
          * 이 덩어리는 닿으면 그대로 끝. 대상을 고기죽처럼 뭉쳐버린다.
          * 시시쿠라는 "그것은 자각"이라며 성하라며 공격을 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4회 일치
          * 추레해 보이는 아저씨의 독백으로 시작. 이마에 깊은 흉터가 있는 아저씨다. 그는 창가에서 아메리칸 스피릿을 피워물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이것이 늘하는 일과일 뿐이라 여기는 한편 "특별한 일"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의 거주지는 카나가와현 카미노구. 그 싸움 이후 올마이트가 은퇴한지 달이 지난 시점이다.
          * 미디어에서는 연일 히어로 사회의 위기를 떠든다. 드물게 미야기 캐스터처럼 진지한 의견을 내놓는 언론인도 있다. 아저씨도 그만은 인정하는데, 한편으론 또 인정 못한다. 언론에서 말하는건 결국 "올마이트란 존재가 너무 큰 존재"였다는 것. 그의 존재로 인해 가려져 있던 것들이 은퇴와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엔데버가 그렇다. 지금은 명실상부 No.1 히어로지만 적어도 일시민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민들은 엔데버로 딱히 안 되는건 아니지만 올마이트와 비교된다고 말하한다. 아저씨가 보기엔 너무 거친 인물이며 범인이 초인인척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를 초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는 불가항력으로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올랐다. 그건 그의 불행이다.
          * 그는 미야기 캐스터가 말하는 부분은 파워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또 파워를 말하는 거라고 모순되게 생각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상된 두 개의 생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저씨는 신경질적으로 닥치고 있으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올마이트의 존재가 성실한 사람들에겐 든든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에겐 저주에 불과하고 그 저주가 풀린 지금은 폭주하게 된다고 본다. 그의 말처럼 그가 외출하자마자 한 무리의 빌런이 상가를 약탈하는 모습이 보인다.
          * 웅영고 A이 한창 임시면허 시험을 치르고 있을 무렵, 올마이트는 "어떤 빌런"을 방문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4회 일치
          * [[마그네]]가 발해서 덤볐지만 오버홀의 "개성"에 당해 순식간에 사망, [[Mr. 컴프레스]]가 보복하려 하지만 역시 팔을 당한다.
          [[토가 히미코]]는 극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Mr. 컴프레스]]는 "넌 중졸이라 모른다"고 은근히 디스하며 자세하게 설명한다. 원래 야쿠자들은 뒷세계를 기으로 강성한 세력을 자랑했지만 "히어로"들이 보편화되고 특히 [[올마이트]]가 나타나면서 철저하게 분쇄되었다. 지금은 잔존세력만 남은 정도인데, 그 조차도 "예비 빌런"으로 취급돼서 경찰과 히어로들의 감시를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오버홀은 이런 설명도 틀린건 아니라고 인정한다.
          * 하지만 오버홀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며 "계획은 있냐"고 문한다. 생각보다 비협조적인 태도에 시가라키는 "동료가 될 맘은 있냐"고 묻는다.
          * 그런데 그 순간, 오버홀은 마그네의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마그네도 그걸 느끼는데 어떻게 된다고 자각하기도 전에, 마그네의 상신이 거품처럼 터져버린다. 경악하는 빌런연합. 오버홀은 "너희가 먼저 손을 댔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4회 일치
          * 키리시마의 활약은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역시 큰 활약을 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와 함께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 빌런은 등으로 칼날을 집중시켜서 지면을 박찬다. 늘어나는 동의 속도로 키리시마를 지나쳐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또다시 빌런에게 속은 키리시마는 "난 바보인가!"라고 자학하며 빌런이 지면에 꽂은 칼날을 부러뜨린다. 그러나 한 발 늦은 대응이었다. 빌런은 키리시마를 순진하다 비웃으며 막 골목을 벗어나는 참이었다.
          * 이튿날 키리시마가 등교했을 땐 화제의 인물이 되어있었다. [[카미나리 덴키]]가 키리시마의 활약이 매스컴을 탔다고 호들갑을 떤다. [[바쿠고 카츠키]]는 자격지심을 느껴서인지 이를 간다. [[아시도 미나]]도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의 활약을 기사로 읽었다. 이들은 친구들의 부러움이 대상이 된다. [[이이다 텐야]]는 그래도 학업엔 충실해야 한다며 졸지 않고 수업을 들으라고 장같이 설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4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에 대한 수사에서 "에리쨩 구출작전"으로 변경된 [[서 나이트아이]]의 수사. [[미도리야 이즈쿠]]를 비롯한 웅영고 1학년 A의 인턴 히어로들 또한 참가가 결정, 구체적인 작전이 실행되기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대외적으론 극비. 작전에 참가하는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는 겉으로는 평범하게 수업에 참가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태도가 달랐다. 이는 학업 성적에도 영향을 줘서 다른 학생들이 "인턴조는 뭔가 다르다"고 감탄할 정도였고 질투가 심한 [[바쿠고 카츠키]]는 "인턴에서 뭘 알아낸거 아니냐"고 그 비결을 알려달라 닥달하지만, 이미 "극비"처리된지라 누구도 발설하지 않았다.
          * 우라라카는 그를 "이레이저 헤드"라 부르며 벌떡 일어난다. 츠유도 마찬가지였다. 담임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물러날 수가 없다, 그녀들의 입장은 확고했다. 우라라카가 격하게 입장을 표명하자 츠유는 선생님이 대하지 않는데다 어린 소녀가 상처입고 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조력할 의사를 표명한다.
          이이다의 위로가 미도리야가 억누르고 있던 후회나 슬픔을 흘러넘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눈물을 지워버린 미도리야는 넘친 것을 채울 기세로 입 안에 밥을 밀어넣는다. 이이다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를 쳐다본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가 한 말을 놓고 "아니, 히어로도 울 때는 운다, 아마도"라고 대답하며 자기가 몫의 소바를 나눠주는 배려를 보인다. 이이다도 자기 몫의 비프 스튜를 나눠주고 미도리야는 고맙다며 주는대로 마구 먹어치운다.
          >이번에는 드시!!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4회 일치
          * "태양 조차 먹는 자". 선 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먹은 것을 재현하는 개성"을 최대로 활용한다. 호죠의 "결정"은 조개 껍질로도 막기 어려운 강력한 공격. 그러나 문어 다리의 강한 근육으로 팔을 강화, 그 끝을 조개껍질로 감싸서 호죠의 주먹을 틀어막는다. 호죠가 대단한 활용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며 뿌리친다. 타마키도 그저 저지할 생각만은 아니다. 그가 웅영에서 2년 동안 쌓은 건 그정도가 아니다. 사이즈 변화, 복수동시 재현, 특징 자유선택. 그가 익힌 모든 기능. 그 모든 것을 아우른 필살기.
          그 목소리에 응해 타베가 일어난다. 타베의 개성 "식". 문자 그대로 모든걸 먹는 개성. 어떤 것이든 씹을 수 있는 턱과 이, 먹자마자 소화시키는 위장. 타마키의 강화된 문어 다리 조차도. 타베는 "맛있다"면서 삶은 문어처럼 씹어삼킨다. 세츠노가 그 꼴을 보며 "타베의 배가 차는 일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말처럼 타베와 타마키, 둘의 "상성"이 아주 좋았다.
          세츠노가 문한다. 그들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호죠는 딱히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타베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버림 받은 인물이다. 세츠노는 연인에게 배신 당하고 막대한 빚까지 떠맡겨졌다. 자신은 결정으로 생성하는 보석 덕에 돈에 환장한 인간에게 이용 당했지만, 그게 돈 가치 없는 가짜라고 판명되자 철저하게 박살났다. 그들은 처음부터 필요없는 인간이었고 미래는 없었다. 그가, 오버홀이 손을 내밀기 전까지는.
          * 타마키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의 장점도 약점도 모두 파악했다. 그들의 전술은 서로의 신뢰가 돋보이는 좋은 연계였다. 비록 자신은 그들의 슬픔도 분노도 사연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게 그들의 "굳건한 유대"를 만든다는 건 잘 알았다. 그게 이들이 패착이다. 타마키는 허벅지 아래를 문어다리로 바꿔 그대로 뻗었다. 달려들던 타베, 눈을 못 뜨는 세츠노, 손아귀의 호쇼. 전원이 일직선이다. 타베는 밀고들어오는 발을 먹어치우지 못했다. 그러기엔 호쇼가 방해였다. 그들은 대편 벽까지 무서운 힘으로 떠밀려 처박혔다. 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4회 일치
          * 명 키리시마와 패트껌은 모두 방어적인 능력으로 조합된 "방패와 방패"라서 상성면에서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는다.
          * 키리시마는 "경화가 깨지자 마자 다시 경화"하는 대항책으로 랏파의 러쉬를 버텨내고 격까지 시도하나 텐가이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패트껌이 랏파의 러쉬를 버티고 격을 가하자 배리어로 막는다. 랏파는 자기 성미에 맞지 않는다며 배리어를 치워달라고 하지만 텐가이가 오버홀의 명령은 그런게 아니라고 거절한다. 이쪽은 "창과 방패"의 조합, 저쪽은 "방패와 방패"의 조합이라 상성상 유리하니 이 콤비네이션으로 처리하자고 말한다.
          키리시마는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뜸 랏파를 향해 "나도 전에는 무투파"였다며 그쪽이 지쳐서 공격을 멈추는 것과 자신이 버티지 못하는 것, 창과 방패 중 어느 쪽이 강할지 승부하자고 도발한다. 당연히 기쁘게 응하는 랏파. "착한 돼지"라고 극찬한다. 하지만 아깐 소모전으로 나가면 드시 진다고 하지 않았나? 패트껌의 심정은 절박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4회 일치
          * 히어로 측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전략 수정이었다. 한참 몰아세우고 있던 중에 압박을 풀고 일행을 흩뜨려 놓는다? 그리 두꺼운 벽도 아니었다. 대편에서 록록이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혹시 압살이 불가능했던 건가? 그런것 치곤 지금 벽 형태는 일행이 움직이기에 아주 편리하다. 나이트아이는 그 답으로 "그렇게하더라도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대체 뭘까? 오래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나이트아이의 짐작대로 답이 직접 찾아왔다.
          * 록록은 오른팔을 들어 방어했다. 칼날이 손에 박혔다. 그 순간 "잠금". 이제 나이프는 쓸 수 없다. 나이프에 매달린 토가도 멈칫. 록록이 왼쪽 손으로 주먹을 날린다. [[빌런 연합]]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스트레이트가 토가를 맞췄다고 생각한 순간, 그건 단순한 죽 덩어리일 뿐이다. 진짜는 이미 배후에서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틀렸다. 무효화가 발동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일목요연해졌다. 미도리야는 록록의 얼굴이 녹아내리며 토가 히미코의 얼굴이 튀어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가 사적으로 이름을 외치자 토가가 좋아 죽으려고 몸부림 친다. 그런 와중에도 나이프를 휘두르는 손만큼은 멈추지 않는다.
          * 아이자와는 최악의 상황이란 생각과, 그래도 여기서 한 명을 처리하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붕대를 끌어당겼다.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은 토가가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무효화는 잘 작용하고 있었지만, 토가의 전투력은 개성에서 나오는게 아니었다. 토가는 아이자와가 팽팽하게 당기는 붕대를 잡고 축으로 삼아 공중제비를 돌았다. 몸이 재쳐지면서 아이자와의 머리 위를 지났다. 그때 미도리야를 찌르려던 나이프가 아이자와의 어깨 뒤쪽에 깊이 박힌다. 아이자와가 나이프를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 격했으나 붕대만 잘려나갔을 뿐. 토가는 아이자와의 후방에 착지하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 몸에 감긴 붕대를 팽개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4회 일치
          겨우 기어다니는 처지였지만 한 발 쏘는 정도라면 충분. 네모토는 놀라운 속도로 탄환의 수령부터 장전까지 마쳤다. 의외로 시간을 허비한 것은 조준이었다. 누구를 노리나? 철포옥 핫사이슈는 쓰고 버리는 장기말이었지만 네모토는 조금 달랐다. 지금 오버홀이 넘겨준 탄환이 무엇인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발이라도 낭비할 수는 없다. 이 상황에서 노려야할 건 당연 밀리오로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통과"하는 개성. 일적인 방법으론 맞출 수 없다. 몰래 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오버홀이 탄환을 넘기는 시점에서 눈치채버렸다. 쿠로노는 기절한 상태.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저 투과 개성을 무력화할 수 있을까?
          오버홀의 격은 히어로 루밀리온에게 스치지도 못했다. 그는 격했고 오버홀은 대책없이 얻어맞았다. 네모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적의 개성은 사라졌고 사카기의 만취 개성에 노출되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족쇄까지. 왜 쓰러지지 않는가? 왜 약해지지 않는가? 그는 여전히 오버홀을 압도하고 있엇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모토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계속 고민했다.
          오버홀이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하려 했다. 밀리오는 복부를 찌른 꼬챙이에서 몸을 빼냈다. 아직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나이트아이를 생각했고 타마키와 모든 동료들을 생각했다. 그가 단호하게 치사키의 이름을 외쳤다. 오버홀은 다시 그 이름에 과민응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4회 일치
          * [[네모토 신]]을 먹고 파워업한 오버홀은 원 포 올 풀카울 20%로도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 [[미도리야 이즈쿠]]는 파편이 되어 오버홀이 접촉되지 않은 지면을 벽으로 삼아서 돌진한다. 그래도 오버홀은 자기 근처의 지면을 촉수처럼 뻗어서 공격을 가하는데 매우 빠르고 정교해서 피하기 쉽지 않다. 오버홀이 죽어도 공격을 머뭋지도, 에리를 포기하지도 않을 인물이라고 직감한 미도리야는 단기결전으로 치명상을 주는 걸 노린다. 미도리야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천장을 박차고 떨어지며 정수리를 노려서 공격을 가하나 오버홀은 몸을 비틀어 피해서 오른팔을 다치는데 그쳤다. 오버홀은 지금 미도리야가 빠르고 강하긴 해도 루밀리온 [[토오가타 밀리오]]나 [[서 나이트아이]]에 비하면 너무 움직임이 단순해 오히려 쉬운 상대라 평하며 격을 가한다.
          오버홀의 격도 미도리야에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오른팔과 왼발을 당한 미도리야. 그렇지만 오버홀은 자신도 꽤 타격을 입은 데다 미도리야가 밀리오처럼 죽을 힘을 다해 버텼기 때문에 더는 싸울 생각이 사라졌다. 그는 어딘가에 있을 에리를 향해서 "너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 에리는 이미 길고 긴 "실험"기간 동안 체력이 떨어지면 부숴지고 수복되길 복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 에리의 마음엔 일말의 희망도 품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몇 명이나 죽고 다치는 상황 속에서 완전히 절망했다. 결국 에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와 오버홀 앞에 나타난다.
          원 포 올을 20%까지 끌어올렸지만 오버홀을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오버홀의 에리를 말로 농락해 돌아오게 만들었지만 그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압박해도 굴하지 않고 드시 아무도 죽지 않게 에리를 구하겠다고 응수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4회 일치
          * 처음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깨달은 "에리". 에리의 도움으로 마침내 [[미도리야 이즈쿠]]는 에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접촉하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관통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인지할 틈도 없이 [[오버홀]] 치사키가 다시 한 번 흉수를 뻗쳐온다. 미도리야는 아직 공중이라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그 순간 [[토오가타 밀리오]]가 물었던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던 물음이 떠오르고 "드시 이기고 드시 구하는 히어로"라는 대답이 떠올랐다.
          * 류큐 팀은 오버홀을 저지해보려고 하지만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그때 [[서 나이트아이]]는 류큐팀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고 이 다음 오버홀은 다른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곧바로 미도리야를 쫓아가 그를 죽일 거라고, 그런 미래를 "봤다"고 고백한다. 류큐팀은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나 나이트아이는 어차피 그녀들 몸으로는 무리라고 잠자코 있으라 말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크게 발하며 "미래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일갈하고 나이트아이는 그녀의 대답에서 "미래를 비틀겠어"라던 [[올마이트]]의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 [[아스이 츠유]]에겐 근처에 있을 밀리오의 구조를 요청하고 류큐, 우라라카에겐 자신을 데리고 위로 올라가 달라 부탁한다.
          오버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원 포 올 100%의 여파가 몸에 미치는 순간, 에리가 개성으로 "되돌려"준게 분명하다.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미도리야는 에리의 개성은 "매우 상냥한 개성"이라며 대로 "돌아가는 이상의 속도로 몸이 상처입는 상태를 유지"하기로 한다. 원 포 올 풀 카울 100%. 미도리야는 힘을 개방하며 에리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4회 일치
          * 여자방으로 넘어가는데 여자들도 사정은 남자 방과 별 다르지 않다.
          * 얼렁뚱땅 방투어를 이어가는 A.
          * 그리고 내 인기인 토도로키는 여자들이 기대를 많이 하며 들어가는데
          * 아스이 츠유의 심리를 통해 탈환에 대하거나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의 심리를 표현한 에피소드.
  • 니세코이/228화 . . . . 4회 일치
         == 응 ==
         [[http://ntx.wiki/bbs/board.php?bo_table=ch&wr_id=18 228화 2ch 응 번역]]
         이자식 언제나 성도 안하고 사람으로서 어떨까 생각한다
         탈락한 히로인들의 사후관리가 영 좋지 않았고 특히 마리카 팬들은 두 번 세 번 대못질을 당하고 오노데라도 만만치 않은 상황. 전적으로 혹평이 줄을 잇고 있다. 완결이 1화 남은 상황에서 이 모양이라면...
  • 니쿠쟈가 . . . . 4회 일치
         도고 헤이이치로 발상 일화를 기으로, 니쿠쟈가의 원조를 놓고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쿄토 부 마이즈루 시(舞鶴市)와 히로시마 현 쿠레 시(呉市)의 대결이다.
         === 도고 헤이이치로 기원설에 대한 론 ===
         니쿠쟈가 도고 헤이이치로 기원설 자체에 론도 존재한다.
         일단 데미글라스 소스를 사용한 하야시라이스(하이라이스)가 메이지 시대 초기에 나오고 있었으므로, 정황상 이 시대는 이미 서양 요리가 일본 요리사들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독 같은 높으신 분이 비프스튜를 주문했는데 간장이나 설탕으로 소스를 대체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어디까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론이다.
  • 다크 유니버스 . . . . 4회 일치
         [[미이라(2017년 영화)|미이라]]가 2017년에 개봉했다. 늑대인간을 다룬 울프맨도 각본을 준비 중이라 하며 투명인간도 리메이크 소식을 밝혔다. 좀 더 진행되는 것을 봐야 알 터이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길맨, 헬싱도 영화화될 듯. 다만 미이라의 실패 이후, 계획이 취소되었다가 다시 재게되는 등 진행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상황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예정된 상황. 현재 투명인간이 나온 상황이다.
          * 헬싱(Van Helsing) (가칭)
          드라큘라의 등장인물인 헬싱 영화라 예상된다.
          * 사실 유니버설의 고전 괴물 콜라보는 이 다크 유니버스가 처음이 아니다. 1943년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Frankenstein Meets the Wolf Man>이 나왔으며 휴 잭맨 주연 영화 < 헬싱>은 흡혈귀에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한 스크린에 등장한다. 다만 배경 세계 연계는 아니었다.
  •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 . . . 4회 일치
         주사위 굴림에 대한 중요도가 전작에 비해 비중이 떨어졌다. 타워 오브 둠(이하 TOD)과 마찬가지로 모든 공격과 방어시에 피해를 입게 될때마다 주사위 굴림이 이루어지지만 전작만큼 엄청난 수준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똑같은 일 공격인데 대미지가 2배이상 차이난다거나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
         커맨드 입력기술이 [[천지를 먹다]]와 마찬가지로 캡콤 커맨드로 바뀌었다. TOD에서는 돌진기의 경우 ↓J, A+J를 해야 하는 등 조작성이 과거 캡콤의 횡스크롤 액션게임보다 복잡할 뿐더러 빠른 응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면에 돌진기는 ↓↘→A, 대공커맨드는 ↓↑A 등으로 상당부분 변경점이 있었다. 또한 발악기(A+J)가 도입되었으며, 아무런 아이템이 없을 때 사용하던 효율성 제로로 평가받은 기술들은 삭제되었다.
         === 일 아이템 ===
  • 독친 . . . . 4회 일치
         학대의 종류로는 크게 육체적 학대, 정신적 학대, 양육 의무의 포기 등이 존재한다. 정신적, 육체적 학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일적으로 아이의 성장이나 독립적인 인생,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에 유익하지 않은 행동을 복하는 부모를 뜻한다.
         욕설, 모욕 등으로 정신적인 학대를 하는 행동을 복한다.
         부모와 자식으로서 인연을 끊겠다는 위협을 복한다.
  • 라이징 스톰 . . . . 4회 일치
         장탄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재장전 키를 꾹 눌러서 장탄수를 확인 할 수 있지만 "꽉 참/ 이상 참/거의 빔"으로만 표시된다.
          주축국. [[일본군]]으로 상징은 만세가 써진 [[욱일기]]. 특수 병과로 Assault와 Light Mortar가 있다. 자살시 증원 포인트가 소모되지 않으며, 페널티도 없다는 특이점이 존재. 근접공격키를 누르면서 전력질주하는 것으로 [[자이 돌격]]이 가능하다.
          * 자동소총
          100식기관단총. 주축군 Assault의 기본 주무기.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동 감소와 고성능 조준기가 해금된다.
  • 랄프 알거 배그놀드 . . . . 4회 일치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배그놀드는 다시 현역이 된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LRDG|장거리 사막 정찰대]](Long Range Desert Group, LRDG)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한다. LRDG는 기존의 자석을 이용한 [[나침]]이 대원들이 타고다니는 트럭 등에 교란될 것을 우려해 태양을 이용한 나침을 사용했는데, 이 나침 또한 배그놀드가 설계한 것이었다. 그는 전쟁 도중이었던 1941년에도 또다른 책을 펴내었다. 모래의 이동에 대한 연구를 담은 《바람에 부는 모래와 사막 사구의 물리학》[* The Physics of Blown Sand and Desert Dunes. 국내 정발된 책이 아니기에 임의로 번역한 제목이다.]이 그것이었다.
         [[https://www.iwm.org.uk/collections/item/object/30028094|(영문)제국전쟁박물관의 배그놀드 태양 나침 설명]]
  • 마기/325화 . . . . 4회 일치
          * 다윗과 신드바드, 그리고 성궁 시스템을 배한 7인의 진들은 힘을 합쳐 루프를 탈출한다.
          *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글씨가 더럽다"고 팩트를 던지는데. 행방불명됐던 쥬다르다. 갑자기 돌아왔다 싶었는데 홍옥을 보자마자 할망구라고 부르질 않나 화장이 옅어졌다고 하지 않나 실례되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알리바바가 가움 황당함 으로 언제 돌아왔냐고 묻는데, 사실 돌아오긴 백룡하고 같이 전날밤에 돌아왔다. 그런데도 어디 처박혀있었는지 얼굴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 마기/334화 . . . . 4회 일치
          * 그를 데려온 [[쥬다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대충 기억이 나는데. [[유난]]이 암흑대륙에서 알리바바를 구해줬을 때 이야기한 세 명의 수배자 중 한 명이다. 귀왜국의 [[야마토 타케루히코]]와 황제국의 [[연백룡]]의 뒤를 잇는 뢰엠의 금속기 사용자. 그는 본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등 기존 지도자들을 타도할 목적으로 금속기를 은닉한 채 란을 도모하고 있었으나 그 거창한 설명과는 달리 철저히 존재감이 없이 살아왔다. 쥬다르의 설명으로는 일단 이 녀석도 타전을 해서 검은 루프를 쓸 수 있다는데.
          * 어쨌든 동료가 추가되는건 가운 일이라 알리바바가 악수를 청하는데, 네르바는 무례한 태도로 거부한다. 자기는 장차 위대한 황제가 될 텐데 소시민인 알리바바가 격의 없이 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쥬다르를 "나의 검은 마기"라 부르며 친한척한다, 정작 쥬다르는 무시로 일관한다. 자기는 네르바의 마기가 아니라는데.
          사실 네르바가 란을 도모한건 쥬다르의 충동질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알리바바가 뢰엠에 갔을 때 [[티토스 알렉키우스]]가 한 말도 있다. 원래 부추기기 쉬운 도련님이라 누가 선동한거 같다는 이야기. 그게 쥬다르의 작품이었다.
          * 알리바바가 말하자 백룡은 "살아서 돌아온다면"이라고 토를 단다. 알리바바는 드시 살아서 돌아오자며 어떻게 될진 몰라도 "근사한 미래를 손에 넣기 위해"라고 다짐한다.
  • 마기/341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신드바드의 예상과 달리, 알라딘은 그런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은 솔로몬, 우고는 물론 알리바바, 모가메트,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 그리고 신드바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응이 나오자 잠시 당황하지만 곧 코웃음을 친다.
          알라딘의 말은 이어진다. 그는 "내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고 인정하며 처음엔 루프의 인도에 따라 주어지는 대로만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그는 변했다. 사고방식은 변한다. "다른 누군가"와 만날 때마다. 신드바드는 "그럼 결국 누군가에게 끌려가야만 한다고 말하는 거냐"고 박한다.
          * 알라딘은 그저 박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신드바드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지, 어떤 괴로움에 처할지를 헤아려 말한 것이었다. 신드바드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대답하기 보다는 미소를 짓는다. 알라딘은 뜻밖의 응에 놀란다. 신드바드는 그제서야 입을 연다. 그에게 "신이 된 이후의 고독까지 걱정해주는 거냐"고 묻는다. 알라딘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신드바드는 알라딘이 "착하다"며 자신에게 "지배자의 고독"은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한다. 알라딘은 우고도 그것 때문에 미쳤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재차 묻는다. 그러자 자신에겐 다윗과 아르바가 있어서 괜찮다고 말하는데, 알라딘은 믿지 않는다.
  • 마기/344화 . . . . 4회 일치
          테스는 곧 알리바바에게 관심을 거두고 아버지와 하던 돌맹이 쌓는 놀이로 돌아간다. 부자는 번갈아가며 돌을 쌓아올리는 놀이를 복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왜 그런 걸 하냐고 묻자 달리 할게 없어서 그렇다고 답한다. 잘 보면 이들 뿐이 아니다. 대부분 돌을 쌓거나, 아니면 도미노처럼 늘어놓거나 자신의 변함없는 기억을 멍하니 감상한다. 그저 보기만 해도 무기력하고 지루한 모습들. 그래서인지 이들의 몸에는 버섯같은 것이 마구 피어나고 있다.
          * 다윗은 두말할 것도 없는 원수고 증오해 마땅한 대상이건만,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생전의 감정을 급격히 잃었다. 즉 지금 알리바바가 보는 것처럼 무기력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매우 의기양양한데다 쾌활하기까지 했다. 그는 "확신"을 가진 채 "예상대로 타전의 특이점이 연결됐다!"고 환호했다. 그는 종종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이름을 언급했다. 차원에 구멍이 생기면 이 특이점과 일체화하는 것으로 현세로 돌아갈 수 있으며 자신은 드시 그렇게 될 것을 안다고 했다.
          >녀석이 확신한건 드시 실현된다.
  • 마기/346화 . . . . 4회 일치
          *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아리바바 사르쟈]]가 들려준 이야기에도 심드렁하게 응한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자신이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마친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일 일라에 대한 이야기도 잊고 "다윗의 확신은 드시 실현된다"는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 알리바바의 말대로 다윗은 자신이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고 성궁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그걸 막기 위해 되살아난 건데, 정작 그 두 가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 점을 지적하며 다윗이 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긴 커녕 회유당해 하수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는 김에 [[우고(마기)|우고]]와 일곱 진들 조차도 그의 편이 되어버린 것도 다시금 강조한다. 신드바드는 새삼 그동안 성궁에서 일어난 일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멍한 표정을 짓던 아르바는 "앞으로 어쩔 거냐고?"라고 문조로 대답한다.
          알리바바는 그때를 떠올림과 동시에 다윗이 저세상에서 "타전의 특이점과 이어졌다"고 말한게 바로 이때의 사건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데 그건 이런 뜻도 된다. 다윗의 "확신"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 마누엘 고도이 . . . . 4회 일치
         하지만 이것은 이베리아 도에 프랑스 군이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이라,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내셔널리즘이 고양되던 스페인 국민의 발을 불렀다.
          * 코토크 : https://kotobank.jp/word/%E3%82%B4%E3%83%89%E3%82%A4-65472#E4.B8.96.E7.95.8C.E5.A4.A7.E7.99.BE.E7.A7.91.E4.BA.8B.E5.85.B8.20.E7.AC.AC.EF.BC.92.E7.89.88
          * 세계사의 눈 : 호야와 도전쟁 : http://www.kobemantoman.jp/sub/173.html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4회 일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프랜차이즈.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영화만이 아니라 영화 기 [[만화]], [[드라마]]를 포함하는 배경 세계 공유 프랜차이즈다. 케빈 파이기가 총지휘를 맡고 있다. 줄여서 MCU라 부르기도 한다.
         큰 인기를 얻고있다보니 영화의 요소가 코믹스에 영되기도 한다.
          * 마블 코믹스의 영화들이기에 마블의 캐릭터와 세력, 설정이 등장하며, 내용 중에는 코믹스에 기을 둔 경우가 많으나 그렇다 해서 코믹스를 100% 영하지는 않고, 그렇기에 호불호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코믹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에 전혀 상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코믹스에 나온 것을 기본 소재로 두면서 MCU에서 독자적인 전개를 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 바키도/117화 . . . . 4회 일치
          * 피클은 일도양단될 듯 보였으나 안면근육과 상신 근육으로 칼날을 잡아 버린다.
          * 피클의 격으로 일격에 그로기가 된 무사시. 피클은 무사시가 떨어뜨린 칼을 집어드는데
          * 피클은 안면근육과 상신 근육 전체를 집중해 날이 닿는 순간 잡아버린 것이다.
          * 피클이 오른손 훅으로 격한다.
  • 박상면(배우) . . . . 4회 일치
         2000년대 초, 오랜 무명 생활끝에 본인의 첫 집을 마포구의 57평 아파트로 마련하기도 했다.[[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gNoh&fldid=Dnnh&datanum=153|#]]
         ||<|2> 2005년 || 강력3 || 파출소장 || 특별출연 ||
         || [[칙왕]] || 태백산 || ||
         || 2013년 || KBS || [[드라마 스페셜]] - 유리 창고 || 서경도 || ||
  • 박상원(배우)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로 MBC 공채 18기 출신이다. 대표작으로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등이 있다. ~~명작만 찍었다~~ 선역전문배우. 같은 선역전문배우인 [[김동현(1950)|김동현]]이 험악한 인상으로도 선역만 담당하는 면 박상원은 인상이 선해서 선역전문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단 [[드림(드라마)|드림]]에서 악역인 강경탁의 역할을 맡았을 때, 선해 보이는 인상을 역으로 이용한 위선자의 역할을 너무도 훌륭히 보여주기도 했다.
         나이에 비해 꽤 젊은 이미지를 오래 가지고 간 배우이다. 첫사랑에서 대학생-대학원생 역을 맡을 당시 30대 후이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주어진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 캐릭터가 꽤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1990년대 전에 [[에이스침대]] [[광고]]에 출연해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연하지만, 침대는 가구가 맞다. 그러나 이 멘트 때문에 한 초등학교의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으로 문제가 나왔는데 모두 "[[침대]]"라고 썼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1990년대 어린이들은 침대는 사이언스로 알고있다.~~
          * 용병 이(1996년)
  • 박정수(배우) . . . . 4회 일치
          * [[짝 빛나는(드라마)|짝 빛나는]] - 진나희
  • 박창달 . . . . 4회 일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탄핵역풍 속에서도 자신이 영입한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텃밭 대구 동 을 지역구 공천을 받아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으로 1년 여만에 의원직 상실 크리.(...) 그리고 그의 지역구는 바로 [[유승민]]이 차지하게 된다. 이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특사로 사면복권되었지만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미 지났다.(...) 사면복권되기 전에는 당원이 될 수 없기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후보 및 유세단 경호 등에 참여했다.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 ~~'''[[한나라당]]'''~~ || ~~'''45,245 (55.09%)'''~~ || ~~'''당선 (1위)'''~~ || 2005.9.15 의원직 상실[BR](공직선거법 위) ||
  • 박하나(배우) . . . . 4회 일치
         === 음 ===
          * [[빛나라 은수]]에서 극중 연령이 초부에는 18세로 나오는데, [[동안]]이라 전혀 위화감이 없다.~~13년 만에 입어 보는 교복이 참 가울 것이다~~ 다만 여기서도 맡은 역할이 악녀라서...
          * [[2018년]] [[7월 25일]] 언론을 통해 일인 [[한의사]]와 열애설이 보도됐고, 소속사인 FN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열애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109&aid=0003830365|#]]
  • 변신합체로봇 . . . . 4회 일치
         변신과 합체를 통하여 2번, 3번 즐길 수 있다. 변신과 합체만 복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흥미가 있으며, 단순한 로봇 장난감 보다 오랫동안 흥미를 가지고 놀 수 있게 된다.
         복잡한 구조 때문에 내구도가 낮다. 변신과 합체가 주된 용도이지만 정작 변신과 합체를 복하면 빠르게 손상을 입어 더 이상 변신 합체를 할 수 없게 된다.
         동물을 기으로 한 변신합체로봇. [[사자]], [[호랑이]] 등의 [[맹수]], [[독수리]] 등의 [[맹금류]]가 대표적이다. [[코끼리]] 역시 메이저한 동물.
         탈 것을 기으로 변신합체를 하는 구조. [[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이 대표적이다.--그냥 그거 타고 다니면 되지 않냐는 질문을 하면 안된다.--
  • 보에몽 1세 . . . . 4회 일치
         그는 로베르의 장남으로, 그의 전처 알베리다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는 1081년에 [[비잔티움 제국]]을 침공하면서 그를 데려가고, 그의 영지인 아풀리아를 동생인 루지에로에게 상속하는 대신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하면 그곳의 영지를 상속해주겠다고 한다. 이후 보에몽은 아버지가 남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란을 진압하러간사이 분열된 군대를 이끌고 계속 제국과 맞서지만, 테살로니카에 라리사란 곳에서 알렉시오스 1세에게 격퇴당하고 쫓겨난다.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많은 군사적 공적을 세웠으며, 특히 안티오크 공방전에서 안티오크를 영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년에 걸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안티오크 점령에 성공, 안티오크 공작 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안티오크 시내의 이슬람이나 시리아계 기독교인 다수를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현대까지도''' 지속되는 악명을 쌓았다(…). 안티오크를 획득한 보에몽은 예루살렘 원정에서 이탈하여 안티오크 공국의 기을 다지는데 전념한다.
         그러자 알렉시오스 1세는 그에 대응해 남이탈리아에 자신은 십자군을 배한적이 없다면서 보에몽의 공작을 최대한 무마한 후, 베네치아 공화국을 끌어들여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자유무역을 미끼로 보에몽의 보급선들을 공격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만큼 교활하고 위험한' 보에몽의 군대와 직접맞붙는걸 피하면서 최대한 농성을 하는 전략으로 나섰고, 보급이 차단되면서 진격이 지지부진해지자 보에몽군의 사기는 날로 떨어져간다.
  • 블랙 클로버/105화 . . . . 4회 일치
          * 올해 공적 발표는 [[마법제]] 율리우스가 몸소 행차해 거행한다. 마법제는 시민들의 환호를 잠재우며 잠시 기념사를 한다. 올해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만큼 공적발표는 마법제 자신이 직접 맡고 잠시 뒤에는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참석, 간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응이 뜨겁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법제의 발언들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번영하는 듯 보이는 클로버 왕국은 내외 양면에서 많은 악재에 처해있다. 외교적으로는 다이아몬드 왕국과 스페이드 왕국의 침략을 받고 있고 내부에선 "백야의 마안"이란 테러조직의 횡행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싸움이 계속되면서 국민들 중에서도 희생자가 생기는 등 민생과 치안, 안보가 악화일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성과제를 개최하는게 바람직한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 문제는 시민들의 응. 놀라는 건 잠시고 과연 이게 제대로 산정된 건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카호노]], [[키아토]]처럼 순수하게 기뻐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소수. 대부분 여론은 부정을 저질렀다는 쪽이다. 하지만 거기에 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레베카처럼 검은 폭우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거라고 변호한다. 그 중엔 왕도에 백야의 마안이 침입했을 때 구원 받은 꼬마도 있다. 이런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군중들도 쉽게 검은 폭우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때 마법제가 중재를 해서 비록 검은 폭우는 작년엔 마이너스 50이란 전대미문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올해는 분발해서 성과를 낸 거라고 설명한다. 그게 가능했던 건 검은 폭우의 신인 덕인데, 소개를 할라치니 단장은 커녕 관계자 조차 참석하지 않아 난처해졌다. 마법제는 군중을 향해 누구 관계자 없냐고 묻기에 이른다.
          * 군집한 군중의 맨 뒤쪽으로부터, 한참을 날아서 단상까지 날아간 아스타. 공중에서 마법의 검을 뽑아서 착지한다. 그가 떨어진 위치는 마침 딱 적당한 자리였다. 그의 친구 앞이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4회 일치
          * 같은 금색의 여명단의 선배 [[클라우스 류넷]]도 자리에 있었다. 그는 미모사가 쓸데없이 다른 참가자와 트러블을 만든다고 지적하는데 괜한 지적질을 했다가 "괜히 진지하고 걱정많고 안경이다"는 격을 당한다. 그 역시 최근 실력이 급상승한데다 무슨 이유인지 근육단련까지 해서 인지도를 쌓았다.
          * 미모사가 다들 너무 긴장했다고 한소리 하는데, 마침 유노를 보러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나타난다. 클라우스가 그를 갑게 맞이하는데 그에게 한 미모사는 당황해서 허둥지둥거린다.
          아스타가 유트림 화산 때 등 경쟁했던 일을 언급하며 "그땐 졌으니 오늘은 이긴다"고 승부욕을 불사르자 유노는 찬물을 끼얹듯 "졌을 때의 이미지 트레이밍은 했냐"며 울면 곤란하다고 대꾸한다. 어쨌든 둘 모두 오늘 시험을 즐겁게 맞이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4회 일치
          * 이제 작전 2단계. [[하몬 카세우스]]가 시합장 전역에 유리마법 "벨 디텍션"을 펼쳤다. 시합장 구석구석에 거울이 깔리고 거기 맺힌 상들이 사를 거듭해 하몬에게까지 전해졌다. 시합장을 손바닥 보듯 할 수 있는 탐색 마법. G팀의 세 번째 멤버 [[프라길 토르멘타]]가 탑 안에 숨어있는게 보였다. 크리스탈을 지키고 있었다. 핀랄이 공간마법으로 탑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핀랄이 랜길스의 공격을 막는 동안 레오폴드와 하몬이 공격, 이것이 작전이다. 지금까지는 매우 순조롭다. 하지만 레오폴드와 하몬이 탑 안으로 들이닥치는 순간 함정이 발동했다. 프라길 또한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는 성미는 아니었다. 그녀는 방 전체에 눈 마법 "환설의 정원"을 발동시켰다. 일종의 환각마법으로 대상의 감각을 조종해 강제적으로 잠들게 하는 마법이다. 그녀는 이 마법의 사정거리 안에서 자신을 공격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장담했다.
          * 하몬은 그 장담대로 일찌감치 쓰러졌다. 하지만 레오폴드는 조금 더 질겼다. 그는 마나스킨을 펼쳐 저항하는데다 그 와중에도 불꽃마법 "나선염"으로 격을 가했다. 프라길이 크리스탈과 함께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크리스탈에 손상이 갔다. 보통 이상으로 날카로운 감각. 프라길은 오래는 못 버티겠다고 생각했다.
          * 면 랜길스 쪽은 볼일이 길어질 모양이다. 핀랄이 기대이상으로 잘 막고 있었다. 랜길스가 날리는 공간마법을 자신의 마법으로 족족 지워버리며 크리스탈에는 손끝 하나 닿게하지 않았다. [[마법제]] 또한 공간마법 공방은 쉽게 볼 수 없다며 둘의 기량을 칭찬했다. 항상 형을 깍아내리던 랜길스 조차 "형이 천적이 될 줄은 몰랐다"고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우세한건 여전시 자신 쪽이라 확신했다. 이쪽은 얼마든지 공격을 날릴 수 있지만 핀랄은 한 방이라도 놓치면 그걸로 끝. 과연 언제까지 막고 있을 수 있을까?
          * 셋케가 "시시하고 시원찮은 마법"이라며 그런게 물이 오른 자신에게 맞겠냐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탈것의 궤도를 살짝 비틀어 가볍게 회피,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에 탄 랜길스는 비켜나간 마법이 원을 그리고 뒤따라 오는걸 볼 수 있었다. 호밍 기능.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랜길스가 셋케를 버리고 뛰어내렸다. 셋케는 조금 늦게 눈치챘지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방어마법 "셋케매그넘 캐논볼"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럴 거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마법이 닿는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건 랜길스 조차 예상치 못했던 공격. 하지만 이걸 시전한 핀랄은 스스로를 안스럽다고 자조했다.
  • 블랙 클로버/55화 . . . . 4회 일치
          * 백야의 마안은 클로버 왕국을 목표로 하는 50여명의 마도사가 모여있는 조직이다. 6년전 리히트가 창설하여 수장이 되었으며 그와 삼마안이 최강의 전력.
          * 그러나 기를 읽을 줄 아는 데다 마법까지 쓰는 아스타에겐 아무 소용도 없는 발버둥이었다
          * 겔도르의 투과마법은 "마법"까지는 투과하지 못했다. 즉 아스타의 마법은 사실 "마법의 범주에서 벗어난 무언가"일 가능성이 있다.
  • 블랙 클로버/65화 . . . . 4회 일치
          * 베토는 아스타의 마법의 검을 두고 "어지간한 마도사의 필살마법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린다.
          * 베토는 해저신전에 있는 자들을 몰살시킨 다음엔 마석을 찾으면서 일 주민들까지 학살하겠다고 예고한다.
          * 베토는 둘의 협공도 여유롭게 막으며 가볍게 격하는데, 스쳤을 뿐인데도 굉장한 위력이다.
          * 그 공격은 베토에게 먹히는 듯 했지만, 결국 격 당하고 둘은 만신창이가 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4회 일치
          여왕은 "점괘"가 있었다. 그건 "바네사가 여왕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살아 돌아온다"는 점괘. 그렇기에 억지로 바네사를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물론 그게 마법의 검을 가진 아스타일 줄은 여왕도 몰랐다. 그런 면, 여왕은 바네사는 자신에게 항한 대가로 뭘 얻었냐고 묻는다.
          * 바네사는 마녀왕의 "내 가족"이란 말에 박한다. 그리고 그녀의 "진짜 가족"이 사라지려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들이 사라진 이후의 모습도. 바네사는 이걸 멈추지 못할 바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는 거냐고 자문한다. 그리고 그녀를 평생 옭아맸던, 여왕이 그토록 바라던 "운명을 다루는 힘"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나와주기를 바란다.
  • 블리치/691화 . . . . 4회 일치
          * 하쉬발트의 능력은 "더 밸런스". 운이 좋은 자에게 동량의 "불운"을 부여하고 자기 자신에게 오는 불운은 사시키는 능력
          * 우류의 슈리프트는 "안티서시스"(완전립)
          * 우류와 하쉬발트는 서로 능력 사라 무지개사 배틀이나 다름없다.
  • 사택 . . . . 4회 일치
         회사가 직원에게 저렴한 임대로로 대여하는 주택. 가족 지향은 사택, 단신자용은 기숙사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사택은 기업이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와, 일 임대 주택을 기업이 빌려서 직원에게 임대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후자의 경우, 이를 아웃소싱 해서 처리하는 사택 대행 서비스도 있다.
          1. 전근지원: 전근을 하게 될 경우 이사를 수하게 되는데, 사택을 이용하면 직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2005년에 회계기준이 바뀌어서, 자산가치가 하락한 부동산은 장부에 시가를 공개하도록 되었기 때문에 사택의 노후화로 인한 자산이 손실이 영되었다. 이 때문에 보유하던 사택을 매각하고 임대형태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었다.
         이다. 이 때문에 감가상각이 가해지지 않은 사택은 정상가격이 엄청나게 높아진 면에 회사는 임대보증금을 적절히 조절하면 아주 간편하게 조세회피를 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적정임대료를 회사가 대신 내 준다고 하면, 여기에 따른 비용은 회사가 직원을 위해 그만큼 지출을 감행한 것이 된다. 부동산 가치가 올랐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정부 입장에선 조세조달이 악화되니(...).
  • 서강준 . . . . 4회 일치
         서강준은 2013년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웹 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정식 데뷔하였고, 이후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에서 은한결([[김소현]] 분)의 밴드부 선배 최수혁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당초 다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수상한 가정부》 오디션을 권유 받게 되었고 얼떨결에 합격했다고 한다.<ref name="enews24">{{뉴스 인용|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300988|제목=[인터뷰] 서강준, "대형신인이요? 천천히 가고 싶어요"|저자=안소현|날짜=2013-12-09|출판사=enews24|확인날짜=2014-05-17}}</ref> 그러다가 [[MBC]] 단막극 《[[드라마 페스티벌|드라마 페스티벌 - 하늘재 살인사건]]》을 연출한 최준배 감독이 서강준이 출연한《수상한 가정부》를 보고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문소리]]의 상대역인 윤하 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enews24"/> 2014년 초, 서강준은 [[MBC]] 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에서 여주인공 나애라([[이민정]] 분)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연하남 국승현 역을 연기해 좋은 응을 얻으며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그는 2014년 5월 4일부터 2015년 4월 14일까지 [[S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 [[룸메이트 (텔레비전 프로그램)|룸메이트]]》에 고정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서강준, ‘룸메이트’ 멤버들과 쫑파티 인증샷…“자주 봐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47007|출판사 =OSEN |저자 =정소영|날짜 = 2015-04-21|확인날짜 =2017-09-07}}</ref> [[삼성그룹]]에서 제작한 웹드라마 《[[최고의 미래]]》에 이어,<ref>{{뉴스 인용|제목=‘최고의 미래’ 서강준 “민아 첫인상, 신기했다…동갑이라 빨리 친해져”|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336999|출판사=매일경제|저자=|날짜=2014-10-27|확인날짜 =2017-09-07}}</ref> [[KBS2]]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했다. 이후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 영화)|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연달아 출연하며 차근 차근 연기 내공을 쌓아갔다.
         === 음 ===
         {{본문|서프라이즈 (그룹)#음}}
         | 어코드 더클래스
  • 선조 . . . . 4회 일치
         왜란 이후에도 그의 삽질은 계속되어, 당시 세자인 '''광해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인목왕후를 들이지 않나[* 사실 이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충공깽이지만, 관례적으로 중전의 지위를 공석으로 놔둘 수 없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중전은 궁녀들의 모임인 내명부를 통솔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은 단순히 사적인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업무를 통솔하는 직책이기도 하므로 중전이 부재하면 궁궐의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일적으로 중전은 정치적으로 왕권과 후계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문종 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단종이 '수렴청정'을 통한 왕권 수호를 받지 못한 것이 세조의 쿠데타를 쉽게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인목왕후는 오히려 불안정만 불러왔지만--],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인 [[영창대군]]을 [[유영경]]등과 영합해 나중에 영창대군이 좀더 장성할 때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것때문에 광해군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왕위에 집착하게 되고, 영창대군의 최후와 [[인조정]]의 원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능력도 있고 사람보는 눈은 있으나, 왜란같은 거대사태를 대응해내는 능력은 부족했고, 말년에는 자기 아들에게 허수아비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모든 능력을 정치질에 돌린 양이라 할 수 있겠다.
         전적으로 왜란으로 약화된 왕권 때문에, 갖은 무리수를 두면서 견제에 집착했고 그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 세이와 겐지 . . . . 4회 일치
         츠네모토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과 관련이 있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이런 놈이 조상이다.-- 그러나 다행히 곧 마사카도가 모을 일으켰기 때문에 허위 밀고가 현실이 되어 풀려나게 된다.
  • 세조 . . . . 4회 일치
         단종이 즉위한 뒤에는 [[한명회]] 등을 비롯한 모사나 왈패들을 모으며 정국 불안을 주시하다 동생 [[안평대군]] 일파가 정변을 꾀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수를 쳐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참살하고 궁을 장악하여 실권을 잡는다(계유정난). 그 후 수양대군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고 단종을 협박하여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재위 기간동안 민생을 돌보는 정치를 했다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의 치세에 일어난 각종 옥사나 란(이징옥의 난, 이시애의 난 등)은 조선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고, 또한 이러한 변란의 여파로 인해 세종 조에 개척한 북방 영토 중 일부(4군 지역)를 관리를 포기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정통성이 완벽했던 조카를 상대로 찬탈했다는 사실은 정치와 관계없던 민초들에게도 감을 사기에 충분하여 세조와 관계된 야사나 민담은 좋은 게 없을 정도이다.
         민생을 돌보았다고 하나, 한편으로는 정권 탈취에 일조한 자신의 가신들에게 무제한적인 특권을 부여하여 훗날 훈구파의 횡포를 낳게 된다. 비록 본인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권신들을 제어할 수 있었으나, 세조 서거 이후 왕통상의 혼란 등으로 인해 성종 시기에 들어서면 왕이 신하들에게 쥐여사는 '군약신강' 체제가 만들어지고, 그 동으로 [[연산군]]이라는 막장 폭군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고 만다.
  • 송상진 . . . . 4회 일치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 [[국가보안법]] 위, [[내란죄|내란예비음모]], [[공법]] 위)
  • 스쿼키 청소회사 . . . . 4회 일치
         맥스가 처음으로 이들을 목격한 것은 [[블라디미르 렘]]의 창고에서 들린 총성을 조사하러 갔을 때였다. 이때는 일적인 청소회사 직원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맥스가 허점을 등을 보이자마자 공격을 시작했다. 블라드의 애인인 총기 제조업자 애니 핀을 살해한 이들은 경찰이 오자 도망쳤다. 맥스가 해당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블라드를 찾아갔을 때, 블라드는 이들이 펀치넬로 패밀리의 마피아인 [[비니 고그니티]]의 부하들일거라고 주장했다.
         [[모나 색스]]가 맥스가 사는 아파트로 찾아오자 둘을 죽이기 위해 아파트를 습격하지만 실패한다. 맥스에게서 해당 사건을 보고받은 [[짐 브라부라]]는 "다음엔 뭔가? 가방엔 총을 가득 담고 머리는 비디오 게임으로 가득 찬 아이가 집을 사격장으로 바꿔놓는건가? 가슴이 아프군,"[* What next? A Kid with a bag full of guns and a head full of videogames turns the house into a shooting gallery, breaks my heart.]라는 응을 보였다.
         맥스와 모나가 사랑을 나누는 현장을 급습한다. 하지만 오히려 격퇴당하고, 후퇴하는 청소회사 밴에 맥스가 기어들어가 본거지를 습격당한다. 이 과정에서 맥스는 수많은 무기들과 폭발물, 수많은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는걸 보고 이들이 일적인 떨거지들이 아니라는걸 알아낸다. 이 순간부터 청소 회사 위장을 그만두고 검은 복장으로 나오는 놈들이 생긴다.
         이후 맥스는 [[알프레드 우든]]에게서 블라드가 이너 서클 내에서 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블라디미르 렘이 청소부를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 스트라테고스 . . . . 4회 일치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 스트라테고스는 투표로 선출되는 장군직이었다. 스트라테고스(복수형으로 스트라테고이)는 10인이 선출되었고, 투표로서 전략적 방침을 정했으며, 매일 1명씩 돌아가면서 정무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민주정을 채택한 아테네에서 스테라테고스는 실질적으로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들이었으며 현대의 내각과 비슷한 위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평시에는 정무를 보며 전쟁에서는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전선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다만, 10명의 스트라테고스가 전부 다 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대체로 1,2명 정도가 원정에 나서고 나머지는 정무를 보는 것이 일적이었다.--"후후. 그놈은 우리 10인의 스트라테고스 가운데 최약체지."--
         결국 제국 말기에는 마기스테르 밀리툼과 황제의 권력관계가 역전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리키메르는 거꾸로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마음대로 죽이고 폐위를 복하며 농락하였다. 서로마 최후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은 [[훈 족]]의 [[왕]] [[아틸라]]를 따르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로서, 그는 자신을 마기스테르 밀리툼으로 임명한 [[율리우스 네포스]] 황제를 몰아내고 자신의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삼았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게르만 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패배하여 사망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면서 서로마 제국은 소멸한다. 이로서 서로마의 마기스테르 밀레툼 역시 사라지게 된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스테라테고스는 일적으로 한 '테마'(주州)의 군사-행정 장관의 지위였으며, [[장군]]이나 [[제독]]으로 번역된다. 스테라토게스는 군사직위의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었는데, 아치스테라테고스(archistrategos ,대장군), 프로토스테라테고스(protostrategos , 제1장군)이나 히포스테라테고스(hypostrategos, 하위-장군) 같은 지위가 나타나게 된다.
         서로마와 마찬가지로 지방 테마의 스트라테고스는 지방 방위에 필수적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황제의 권위에 가장 큰 위협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야심만만했던 스트라테고스들이 황위찬탈을 목표로 란을 일으킨적이 잦았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4회 일치
          Alex DeLarge. 베토벤을 좋아하는 불량소년. 솔직히 불량소년은 순화된 표현이고, 린치, 패싸움, 난폭운전, 윤간 등을 벌이는 범죄자다. 패거리의 리더격 자리를 맡고 있으며, 자신에게 항한다는 낌새가 보이는 동료는 봐주지 않는다.
          정부적인 성항을 가진 작가와 그 아내. 집에 쳐들어온 알렉스 일당에게 남편이 구타당해 쓰러지고 아내는 윤간당한다. 이로인해 아내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남편은 보호자가 필요한 몸이 되었다.
         알렉스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어떤 집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에 구타하고 윤간했던 작가 부부의 집이었다. 정부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작가, 알렉산더는 알렉스에게 루드비코 요법에 대한 경험담을 듣고 이를 받아 적는다. 하지만 알렉스가 목욕하면서 부르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듣고 그가 자신의 아내를 강간해 죽이고 자신을 신불수로 만든 자인걸 깨닫는다. 알렉스가 그의 아내를 강간할 때 "사랑은 비를 타고"를 불렀기 때문이다.
  • 식극의 소마/179화 . . . . 4회 일치
          * 역자의 3차 시험은 "십걸"과 정면승부라는 린도의 선언.
          * 이후 히사코와 연락으로 역자 팀이 4개로 나뉘었다는걸 알게 된다.
          * 오히려 소마에게 "지금까지 뭘 한 거냐"고 문한다.
          * 시오미를 배신한 걸로 보이는데 대로 시오미가 인질로 잡혀서 포섭된 거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 식극의 소마/202화 . . . . 4회 일치
          * [[나키리 아자미]] 진영은 마찬가지로 열차로 이동 중. 십걸들은 역자들을 일소할 기회라며 즐거워한다.
          * 한편 십걸 측도 열차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나키리 아자미]]로부터 연대식극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는다. 아자미나 소마측처럼 흥분된 분위기는 없지만 "한꺼번에 란자를 일소할 수 있으니 좋다"는 정도의, 뜨뜻미지근한 호응이다.
          하지만 에이잔만큼은 유독 격렬하게 응한다. 한 번 소마에게 패한 적이 있는 그는 이번 연대식극을 복수의 장으로 삼을 작정이다. 그런데 정작 1석 츠카사는 그의 등판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또 지면 곤란하니까.". 츠카사 옆에서 통화를 듣던 [[코바야시 린도]]는 "후배에 대한 배려가 없는 놈"이라 매도하는데 "에이잔은 1학년 꼬마한테 완벽하게 진 불쌍한 놈"이라고 말하며 에이잔을 두 번 죽이는데 일조한다.
          * 에리나는 이 모양이면 제대로된 요리가 나올리가 없다며 번뇌한다. 이젠 소마의 생각도 전혀 읽을 수가 없어서 에리나는 쯤 포기 상태에 이른다. 그 순간 에리나는 발상을 전환한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4회 일치
          * 토오츠키 학원에서 퇴학을 당하고도 [[나키리 아리스]]는 구김살 하나 없이 밝다. 다른 퇴학처리된 역자들은 모두 침울한 기색이 역력한데 오히려 그걸 "음침해서 기분 나쁘다"고 할 정도로 밝다. 그 중에서도 [[아라토 히사코]]는 중증이다.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나키리 에리나]]의 이름만 중얼거리고 있다.
          아리스를 비롯한 역자 일행은 [[유키히라 소마]]의 연대식극을 관전하기 위해 레분토 섬에 도착했다. 막 연대식극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 특설회장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관객들이 가득차 있는데 모두 진급시험을 통과한 일 학생들이다. 히사코는 이들 전부가 센트럴의 승리를 바라는 자들이라 말한다. 그때 슬슬 무대가 막이 오른다. 사회를 맡은 토오츠키 학원의 아이돌 [[카와시마 우라라]]가 무대에 올라오는데... 심하게 맛이 가있다. 센트럴 측의 세뇌를 당한 것 같은데 뭘 어떻게 당했는지 아이돌 컨셉은 때려치우고 심하게 펑크해져 있다. 그리고 대놓고 "아자미 정권의 승리를 바란다"는 멘트를 하는 둥 매우 편파적이다.
          * 다시 특설회장. 카와시마는 역자를 구토물에 비유하며 그들의 등장을 알린다. 마침내 등장하는 소마측 요리사들. 소마와 에리나,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 [[미마사카 스바루]], [[잇시키 사토시]], [[쿠가 테루노리]], [[메기시마 토스케]]. 이상의 8인이다. 현재 비센트럴 생존자 중에선 최고로 신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인데다 잇시키, 쿠가, 메기시마는 전십걸 출신. 격으로는 상대측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4회 일치
          * WGO는 기독교 신앙에 기한 단체인지 미식과 자기네 평가서를 "교전"라 지칭하고 [[나키리 아자미]]와 비슷한 광신적인 행태를 보인다.
          * [[카와시마 우라라]]도 어쨌든 토오츠키의 학생인 탓인지 소마의 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 일축한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서 연대식극의 심사를 맡은 3인의 심사의원을 소개한다. 그동안 심사의원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도 어떤 사람들이 나올지 주목한다. 그런데 나오라는 심사의원은 안 나오고, 왠 여성이 전화번호부만한 책 뭉치를 낑낑대고 옮긴다. 그녀는 소마의 조리대 옆에 책뭉치를 내려놓고 한숨 돌린다. 소마는 황당해하는데, 그때 관중석에서 여성이 내려놓은 책을 보고 동요를 일으킨다. 역자가 갇힌 감옥에서도 잡학다식한 이부사키는 그 책이 뭔지 알아보고 거품을 문다. 하지만 소마는 그런 분위기에 영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상황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 이부사키는 그들이 틀림없이 WGO 집행관이라고 단언한다. WGO란 "월드 그루메 오가니제이션"의 약자. 세계의 모든 맛집에 별 세개로 평가를 남기며 1년에 한 번 이 결과를 모아서 책으로 엮는다. 이들에게 별 하나라도 받는 것은 요리사로서 대단한 영광이며 대로 별을 하나라도 잃게 되면 아무리 장사가 잘 되던 가게라도 망하고 없어진다. 요리사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조직이 이들 WGO인 것이다.
          * 역자 동료들은 긴장된 얼굴로 두 사람의 심사를 지켜본다.
  • 식극의 소마/215화 . . . . 4회 일치
          * 그런데 역자들이 갇힌 감옥 곁에 멀뚱거리고 서있는 [[나키리 에리나]]는 츤츤거리며 거부한다. [[미마사카 스바루]] 조차 흥쾌히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말이다.
          면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는 대놓고 분통을 터뜨리며 [[시라츠 쥬리오]]에게 복수를 기원해본다.
          마침 맛 첫 한 입을 맛본 [[안(식극의 소마)|안]]에게서 탄성이 나온다. 장어의 맛과 기름이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의 향으로 더욱 끌어올려졌다. 그녀는 "카피토네를 완벽하게 조리했다"고 평한다. 타쿠미의 예상대로 "카피토네"란 그냥 장어가 아니었다. "암컷 대형 장어"를 뜻하는 말로 크리스마스 식탁에 오르는 재료. 사이즈가 크고 두꺼우며 기름기가 많아 고급품으로 취급한다. 일적으로 쓰는 장어는 "앙길라"라 지칭.
          * 심사의원 [[이스트와르]]와 [[샤름]]은 많은 이탈리아 요리사 중에서도 이렇게 장어라는 "고기"의 맛을 끌어낸 요리사는 없었다 평한다. 그의 별명처럼 여러개의 선율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론도"와 같다. 그리하여 이 맛은 마치 "압도적인 고기(가슴)에 푹 빠지는 기분". 마치 빈약한 안의 몸매도 글래머인 듯이 보이게 만든다. 안은 성희롱이라고 발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두 사람이 자신의 몸매를 "초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 식극의 소마/219화 . . . . 4회 일치
          * 연대식극 대회장. 예상대로 센트럴측은 가지고 있는 최강의 카드를 꺼냈다. [[츠카사 에이시]], [[코바야시 린도]], [[사이토 소메이]]. 십걸 1석, 2석, 4석으로 이어지는 클린업. 역자측도 쿠가, [[메기시마 토스케]], [[미마사카 스바루]]로 결코 만만치 않은 강자를 준비했지만 이목이 쏠리는 걸 어쩌진 못했다. 이 대결의 주역인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잠자코 승부의 동향을 지켜본다.
          * 대결 상대가 정해졌으니 이제 주제를 정해야 할 때. 사이토가 뽑기 차례를 역자측에 양보하자 린도가 정색한다. 왠지 이게 꼭 하고 싶다고. 하도 적극적이라 별 수 없이 메기시마의 양해를 구해 이쪽만 린도가 뽑기로 합의한다. 그동안 사이토는 메기시마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까지 같은 십걸이던 자신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것. 메기시마는 요리사로서 내세우는 마음가짐이 다 다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대꾸한다. 사이토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언제나 자기 길을 걷던 메기시마가 "저 하급생" 편을 드는 건 의외였다고 말한다. 메기시마도 동감이다.
          * 쿠가 대 츠카사, 메기시마 대 린도, 미마사카 대 사이토. 어느 것 하나 역자 측에 유리한 대결은 없다. 감옥에 갇힌 후배들은 특히 츠카사와 싸우는 쿠가의 승산이 낮은 걸로 본다. 하지만 소마는 의외로 쿠가가 "집념의 미라클 펀치"를 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최종적으로 엔트리를 만든 [[나키리 에리나]]는 말이 없다.
          * 쿠가가 츠카사에 가진 감은 1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패배". 그 패배가 있은 뒤 쿠가는 넋 나간 상태로 뒹굴거렸다. 10일이 넘도록 그 상태가 이어지자 동급생인 [[에이잔 에츠야]]가 빈정거렸다. 애초에 1석한테 식극을 거는 거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 "건방떨지 마라 꼬맹이"라고 까지 도발했는데 쿠가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에이잔도, 옆에 있던 네네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다.
  • 식극의 소마/225화 . . . . 4회 일치
          * 종래의 한계를 뛰어넘은 [[미마사카 스바루]]의 새로운 필살기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강적 중의 강적인 십걸 4석 [[사이토 소메이]]의 기술을 완벽하게 따라하며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선전을 펼쳤다. 환호하는 역자 동료들.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도 감탄을 마지 않는다. 아무리 동료와 연계가 허용된 연대식극이라지만, 동료를 서포트하는 행동은 리스크가 크다. 십걸들 조차 자기 조리에 매진할 뿐 동료와 협조하진 않는 것도 그 탓. 이런 상황에서 서포트와 자기 조리를 양립할 수 있는 미마사카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이스트와르는 미마사카야 말로 역자 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최고의 전력이라 단언한다.
          미마사카의 비꼬기를 재하더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얕잡아 보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역자팀에선 잘난척이라고 불쾌해하기도 하지만 막상 권유를 받은 미마사카는 망설이지 않고 이사나키리를 받아든다.
          * 이사나키리를 쥔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그랬든 한 번의 기합으로 남은 참치해체를 단숨에 끝마친다. 사이토는 거기에 만족스러워하며 진짜 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따라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미마사카도 지지않고 그 태도에 대항한다. 둘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됐건 간에, 지금 둘은 깨끗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역자들은 저 미마사카가 군소리없이 사이토의 권유를 받은 것에 놀란다. 그도 자기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렬한 요리사가 아닌가? 하지만 타쿠미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쿠가 테루노리]]처럼 체면 따위는 내던져놓은 것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필사의 노력. 그 말대로 사이토의 조리 순간마다 미마사카의 눈이 빛을 내뿜었다. 끊임없는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 식극의 소마/235화 . . . . 4회 일치
          * 역자들은 시나린의 효능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키리 아리스]]가 설명에 나선다. 시나린 성분은 미각수용체, 즉 혀의 미뢰에 직접 작용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 성분이 입안에 들어가면 혀에서 단맛에 대한 응을 억눌러서 쓴맛이 부각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이 효과는 일시적이라 곧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문제는 이때 억눌렸던 미뢰가 예민해져 단맛에 더욱 민감하게 응한다는 것. 즉 시나린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쓴맛을 느꼈다가, 다음에 오는 요리에 대해서는 단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에이잔이 선보인 마술같은 요리는 그를 이명인 "연금술사"가 납득가는 수준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만족하고 경악하는 가운데 타쿠미의 피자가 완성된다. 에이잔은 심사의원에게 물이라도 줘서 혀를 씻게하면 어떻겠냐고 조롱하는데, 정말로 왕창 퍼먹이라고 외치는 역자들과 달리 타쿠미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냥 이대로 심사에 들어가도 좋다고 하는데.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4회 일치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성격이 약간 다르다. 원작에서 아멜리아의 성격 묘사는, 사실 왕녀로서 이지적이고, 무녀로서 신비함이 있으며, 거기에 약간 4차원 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전적으로 원작의 아멜리아 묘사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정의를 외치면서 추락하거나 하는 것은 사실 부분적인 묘사. 그러니까 본래 아멜리아는 "전체적으로 멀쩡한 인간인데 가끔 이상한 짓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와는 대로 약간 망가진 상태가 거의 디폴트(…)가 되고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리나보다 어린 나이로 설정되면서, 정신적으로도 어리고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묘사가 많아졌다. 제르가디스와 마찬가지로 [[개그 캐릭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본래 어느 정도 개그를 하던 캐릭터니까 그렇게까지 위화감은 없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비교적 출연이 적은데, 1부의 중에서 후 정도 까지 [[제르가디스]]와 함께 리나, 가우리와 행동을 함께 했다. 회복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바스퍼링크, [[라틸트]] 같은 정령 마법에도 능숙하여 뛰어난 대마족 전투원으로서 활약. 피브리조의 음모가 구체화된 시점에서는 리나와 헤어져서 제르가디스와 독자적으로 [[사일라그]]를 탐색하기도 한다.
  • 악당 . . . . 4회 일치
         나쁜 짓을 하는 사람. 창작물로 가면 영어단어에서 보듯이 빌런이 되며, 그 중에서도 도가 지나친 부류를 초악당(슈퍼빌런)이라고 한다. 대로 악당 짓거리도 최후도 못났을 경우 소악당이라고 한다.
          해당 인물이 악당이라는 말은 대로 그 친인척들이 (상대적으로) 선인이라는 말이 되므로, 그 친인척들은 십중팔구 피해자나 적대자가 된다.
          크게 쌍둥이 둘 다 사악할 경우, 혹은 한 쪽만 사악할 경우로 나뉜다. 둘 다 사악할 경우 일 악당에 '쌍둥이'란 설정을 입힌 셈이라 임팩트가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다른 쪽으로 개성이 필요하다. 대로 한 쪽만 사악할 경우 그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깨달았다든지 하는 식으로 충격을 줄 만한 요소가 많다.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4회 일치
         로도리안 행성 출신의 전사. 인간 기계의 사이보그. [[일본도]] 같은 검을 사용하여 싸우는 여검사이다. 고향 행성이 멸망한 뒤에도 기계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으며, 지무사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 기계들과의 싸움에서 궁지에 몰린 인간들을 위하여 최후까지 싸우게 된다.
         전에는 전형적인 기계와의 전쟁, 초능력 구세주 전설로 흘러가다가, 후에는 남매 간의 금단의 사랑에 집중하는 스토리가 되서 약간 안드로메다로 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4회 일치
         코토크 - 미와산전설(三輪山伝説)
         코토크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
         코토크 - 야마토토토히모모소히메노미코토(倭迹迹日百襲姫命 やまとととひももそひめのみこと)
         『고사기(古事記)』중권 「황후선정(皇后選定)」에서 미와산(美和山=미와산)의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는, 세야다타라히메(勢夜陀多良比売)를 보고 첫눈에 하였다.
  • 오중기 . . . . 4회 일치
         [[경상북도]] [[포항시]]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에서 과일, 해산물 도매상을 하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자매는 2남4녀의 육남매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 둘만 대학의 진학하고 누나들과 여동생은 일찍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도 중학생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위해 과일배달 리어카를 끌면서 죽도시장에서 '''오씨 아들'''로 통했으며 지금도 상인들이 겨준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대동중학교(경북)|대동중학교]]와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6년 내내 장을 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4.19혁명론'이라는 책을 보고 선생님께 '4.19는 의거인가요? 혁명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가 핀잔을 들었는데, '''정의'''라는 단어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영남대학교]] 철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인생 망친다'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집회 현장에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책자를 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 철학과 학생회장, 문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구경북지역대장까지 맡았다. 결국 탄압이 심하던 당시, 1990년 국가보안법 위으로 수배를 받고 7개월 가량 도망다녔으나 붙잡혀 구속되었다.--잡히지 않기 위해 여장까지 했다고 한다.-- 몇달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3년에 특별복권되었으나 전과가 남았다.
         경북도당위원장 경선을 앞둔 2016년 8월 4일 오후 10시 30분께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 지역위원회 간부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5만원 상당 음식물과 현금 5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정당법 위으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16/0200000000AKR20170216180200053.HTML|관련기사]] 당세가 약한 경북지역 특성상 고생하는 지역위원회에 대한 격려 및 경비 지급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당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사려깊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 오토메 . . . . 4회 일치
         『[[만연집]]』에서는 미혼 여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실 만연집이 쓰여졌던 [[헤이안 시대]]의 [[일본 귀족]]들은 10대 초에 [[결혼]]을 하는 것이 일적인 [[조혼]] 사회였으므로, 이 시대의 미혼 여성 역시 대략 10대 초 정도로 정말 어린 여자아이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 정도 나이를 지나면 [[노처녀]] 취급이었으니까.
         파생된 말로 히오토메(非乙女)라는 말이 있는데, [[비처녀]]라는 뜻이 아니고 오토메에서 '사랑을 하는 여자'라는 뜻을 따와서 그와는 대로 두근거리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 우건도 . . . . 4회 일치
         1949년 충청북도 [[괴산군]] 상모면(현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태어났다. 수안보초등학교, 충일중학교, [[충주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교통대학교]] 일대학원 행정학과의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충주고등학교 졸업 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충주시청, 충청북도청 등에서 근무하였으며 2000년대 후 음성군 부군수, 충주시 부시장 등을 지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김호복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허위사실 유포([[공직선거법]] 위)로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2011년 시장직을 상실하였다.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북 충주시장) || ~~'''[[민주당(2008년)|민주당]]'''~~ || ~~'''45,522 (49.06%)'''~~ || ~~'''당선 (1위)'''~~ || [* 2011.7.28 공직선거법 위으로 당선 무효] ||
  • 원 포 올 . . . . 4회 일치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순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상태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상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식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 엄청난 힘을 올마이트는 무리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해왔으며 미도리야는 힘을 넘겨받은지 얼마 안된 입장이라 큰 힘을 쓰면 항상 부상을 입었다. 이 약점에 대처하기 위해 원 포 올을 손가락 하나에 집중시켜 쓰는 방식으로 피해를 줄이고 있다.[* 그렇다 해서 미도리야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USJ편에서 힘을 사용하고도 동이 없는 등 점차 성장하고 있다.[* 일단 힘의 일부만 발휘되었을 수도 있으며 USJ편의 경우는 '사람에게 쓴다'는 점에서 마음 속으로 브레이크가 작동된 듯.] 일단 체육제편까지를 기준으로 미도리야가 쓸수 있는 힘의 안전선은 전체의 5% 정도. 그러나 이후 미도리야의 성장 덕에 8%까지 상향되었다.
         웅영제편에서 올마이트의 언급을 보면 이미 개성을 타고난 사람이 물려받을 경우, 그 개성과 원 포 올이 별도로 존재하는 모양.[* 토도로키 쇼토를 예시로 들며 그가 원 포 올을 계승하면 연에 원 포 올을 발휘하는 슈퍼히어로가 되었을 것이라 한다.]
  • 원피스/837화 . . . . 4회 일치
          * 브륄레는 나미를 잡으려 하다 파운드에게 방해받고 선더볼트 템포로 격 당해 도주.
          * 유혹의 숲의 나무들을 뚫고 대편에 처박힌다.
          * 브릴뤠와 킹 바움은 나미를 비웃으며 "최악의 세대"는 그저 신세계의 전부에서 좀 추켜세워준 놈들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 브릴뤠는 당황해서 "파운드 아버지"라고 불렀다 다시 "파운드"라고 정정하며 지금 행동은 "마마에 대한 역"이라고 비난한다.
  • 원피스/843화 . . . . 4회 일치
          * 루피는 갑다고 무작정 달려가는데 인질과 동료의 안전을 생각한 상디는 폭언을 내뱉으며 루피 일행을 내쫓으려 한다.
          * 루피는 가워하지만 상디는 일행을 발견하고 사색이 된다.
          * 나미도 손을 흔들면서 가워하는데,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이 눈이 하트가 되며 정신을 못 차린다.--형제 맞네.--
          * 루피는 당연히 납득하지 못하고 발하는데 욘디가 나서서 "내가 쫓아내줄까?"하고 말한다.
  • 원피스/860화 . . . . 4회 일치
          * 이런 행동은 모두 징베의 안배였다. 징베는 페콤즈에게 빅맘 암살 작전과 제르마 암살 작전을 듣게된 건 기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몽키 D. 루피]]는 드시 [[상디]]를 구하려고 무리를 할 것이며 밀집모자 일당은 위기에 처할 거라고 내다본다. 그걸 두고 볼 수 없는 징베는 그들을 돕기로 결정한다. 그 말은 그저 빅맘 해적단 산하에서 빠지는 걸 넘어 "모"을 꾀하는 것에 해당한다.
          징베는 일이 이렇게 되었음을 설명하면서 어인 해적단 동료들은 다과회로 경비가 홀 케이크 성 근처에 집중되는 틈을 타서 도망치라고 지시한다. 부선장 알라딘은 여기에 발하는데 그대로 뒀다면 징베도 밀집모자 일당과 함께 죽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징베는 알라딘에게 차분히 말한다.
          그는 사탕으로 옥상으로 가는 "캔디 에스컬레이터"를 만든다. 그의 사탕 공예는 귀빈들은 물론 몰려든 일 시민들에게도 인기만점이다. 페로스페로를 빅맘은 지각을 싫어한다며 귀빈들을 에스컬레이터로 모신다. 그리고 몰려든 꼬마들에게는 직접 만든 사탕을 나눠주고 3분 쯤 지난 다음에는 캔디 에스컬레이터도 먹어도 된다고 허락한다.
  • 월하노인 . . . . 4회 일치
         두릉(杜陵)에 위고(韋固)가 살았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 빨리 아내를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여러 갈래로 구혼을 해봤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정관(貞観, 당태종 때의 연호) 2년, 청하로 여행을 떠났을 때, 송성(宋城)의 남쪽에 있는 점(店,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먼저와 있던 손님에게 청하사마(清河司馬) 방(潘昉)의 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점의 서쪽에 있는 용흥사(龍興寺)의 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위고는 그것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밤에 외출을 나갔다. 달이 밝을 때였다.
         노인이 말하길, "네가 오는 것이 빨랐다. 와서는 안될 것은 아니다. 무릇 저승의 벼슬아치(幽吏)는 모두 사람이 사는 다루고 있는데, 어찌 이 세상에 와서는 안되겠는가. 지금 길을 가는 자는, 인귀(人鬼)가 . 나눌 수가 없다."
         위고가 기쁘게 말하길, "나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빨리 장가들고, 후사를 잇기를 바랍니다. 그러기를 십년, 여러가지를 해보았습니다만, 뜻한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사람과 만나기를 약속하였는데, 사마(潘司馬)의 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성사가 되겠습니까."
  • 유해진(배우) . . . . 4회 일치
         ||강력3||개스통||특별출연|| ||
         [[2010년]] 벽두부터 [[김혜수]]와의 교제 때문에 연예계 최고의 사건 주인공으로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2120158|등극했다]]. --오오 [[인생의 승리자]] 오오--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2808|광고로 확인 사살]].[* [[대우증권]] CF에 김혜수를 닮은 꼴로 알려졌던 배우 [[이엘]]과 함께 출연했다.] [[공형진]] 왈 [[김혜수]]가 유해진에게 먼저 했다고 한다. 유해진이 그렇게 다식해 대화가 안 끊길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그렇게 그러나 [[2011년]] [[4월 4일]], 3년만에 결별 소식이 보도되었다. --초콜릿 복근도 다 필요 없어!-- 함께 [[건강검진]]만 받아도 [[결혼]]설이 나도는 수준이었으나 연기에 매진하면서 자연히 멀어졌다고 한다.
         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김두수 역으로 출연했을 때 신들린 악역 연기를 보여주면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그가 서울예대 재학시절 단골로 찾았던 백집에서 주인 할머니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 할머니가 하신 말이 압권인데, "불쌍한 서희 좀 그만 괴롭혀!". 유해진이 정승혜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로는 그 말을 하신 다음 하시는 소리가 더 압권이었다. "이거 많이 먹고 그만 좀 못되게 굴어!"
         매니아들은 옷만봐도 알듯이 등산매니아이다.[* 삼시세끼 고창편을 할때도 폭염에 불구하고 산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삼시세끼에서 자주 입고 나오는 바람개비 이태리 메이커 (몬츄라) 입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2010년대 초 유행했고 지금까지 많이입는 메이커이다.
  • 윤다훈 . . . . 4회 일치
          * 1984년 MBC [[수사장(드라마)|수사장]] - 사건 목격자 역 (단역)
         무릎팍 도사에서 본인의 전생을 회고한 바에 따르면 배우가 너무 되고 싶어 방송국을 기웃거리다가 경비아저씨와 친해져 방송국을 자기 방처럼 들락날락거렸다거나, 엉겁결에 드라마 엑스트라로 캐스팅됐다거나, 그 드라마(공물)에 인민군으로 폭격당하는 장면에서 각본대로 안하고 오버하다가 감독에게 따귀맞고 잘렸다거나 하는 별의별 에피소드가 많다. 또 한때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정수기 외판원으로 일했는데 본인의 연기와 전략이 잘 먹혀 꽤 수입을 벌었다고. 또한 무릎팍도사의 초기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런 에피소드를 맛깔스럽게 잘 풀어냈는데 당시 윤다훈이 폭행사건을 일으켜 복귀한 참에, 이미지가 엄청 회복이 된 계기가 됐다.
  • 윤인조 . . . . 4회 일치
         * [[2016년]] [[KBS1]] 단막극 《짝 작은 별》
         * [[2018년]] [[KBS2]] 단막극 《짝 들리는》 - 라디오 DJ 역
  • 은혼/581화 . . . . 4회 일치
         attachment:격성공.png
         * 이후 카무이는 매일 같이 나타나 호우센에게 덤비고 죽임당하길 복한다. 어느날인가 드디어 호우센에게 한 번 격하는데 성공한다
  • 은혼/610화 . . . . 4회 일치
          * 타마와 킨토키는 드시 동료들과 재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시스템을 필사적으로 유지한다.
          * 중추회로 안의 킨토키는 벌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기계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죽음보다 괴로운 선택을 하게 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꽁무니는 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히라가 겐카이가 만든 기계들이니까'''. 그는 타마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왔냐고 말을 건다. 타마 또한 벌의 영향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들이 사력을 다하는 사이 해결사 일행도 가부키쵸의 동료들도 격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 타마는 킨토키의 말에 "아니요"라고 답한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해방군의 힘을 억제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드시 세계를 구할 것이다. 파괴되고 빼앗긴 것들을 되찾을 것이다. 분명히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킨토키는 그들이 할 수 있겠냐고 미심쩍은 말투로 말하지만 타마는 "칙칙하던 금빛을 세계의 절을 구해낼 정도로 빛나게 만든 사람들"이라며 틀림없다고 답한다. 그 말을 듣고 킨토키는 어차피 해결사가 한 번 구해준 목숨이미 맡아주겠다고 말한다.
  • 은혼/615화 . . . . 4회 일치
          * [[오우가이]]의 지상군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에 돌입. [[진선조]]와 [[오니와슈]]가 적진으로 돌격하고 [[가부키쵸]]는 농성전에 들어간다.
          그대로 진격하는 오우가이군을 [[오니와슈]]가 요격한다.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가 선봉에서 이끌고 있다. 오우가이는 발목잡기가 아니라 정말로 저지하러 온 거냐고, 기책도 아닌 우책이라고 비웃는다.
          하지만 워낙에 대군이라 그정도만 가지고는 완전히 저지하는건 기대할 수 없다. 결국은 요격을 뿌리치고 가부키쵸를 격파할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주민들은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적이 오니와슈의 공격을 막아내서 서서히 진격, 가부키쵸의 목전까지 도착했다. 남쪽 제 3문에서 신호가 오자 가부키쵸 측은 투석기를 동원해 요격을 개시, 가부키쵸 공방전이 개막한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첫 공격의 희생자는...
          * 예상치 못했던 분전. 전황이 고착되려는 양상을 보이자 오우가이가 움직인다. 그를 상대하던 오니와슈의 닌자들이 초주검이 되어 있다. 그는 날아오는 투석도 벌레잡듯이 쳐내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쏟아지는 공격 사이로 무인지경인듯 걸어온 그는 굳게 잠긴 가부키쵸의 문 앞에 선다.
  • 은혼/645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엔쇼는 예상이나 한 것처럼 양손의 라이트 세이버를 교차해 후방을 찌른다. 빛의 칼끝이 가츠라와 다츠마의 복부와 어깨를 찌른다. 칼날은 그대로 둘을 밀쳐낸다. 적당히 거리가 벌어지자 엔쇼가 돌아서며 역공을 가한다. 둘은 피하는데 급급하다. 엔쇼의 불이 다츠마와 가츠라의 불을 끌 수 없다면 그 대로 마찬가지.
          * 개방된 공간이었던 통제실과 달리 좁은 통로에서는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가 더욱 유리했다. 신축자재에 광탄으로 전환까지 가능했기에 다츠마와 가츠라에겐 피할 공간이 부족했다. 다츠마가 공격을 피해 몸을 날리며 총을 갈겼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으로 변환해서 대응사격한다. 치명상은 주지 못했지만 왼쪽 허벅지에 부상을 입힌다. 가츠라는 엔쇼가 다츠마를 공격하는 동안 도약해 있었다. 엔쇼는 머리로 떨어지는 가츠라의 내려치기를 오른손 라이트 세이버로 막았지만 무기를 놓친다. 엔쇼가 주춤했다. 가츠라에겐 더할나위 없는 기회였다. 엔쇼의 우측에 착지한 가츠라는 재빨리 우상단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무너진 자세로 무방비해진 엔쇼의 목으로 곧바로 칼날이 닿았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엔쇼의 왼손에는 여전히 라이트 세이버가 들려있었다. 엔쇼는 그 라이트 세이버로 가츠라의 칼날을 쏘아맞춘다. 방해가 되는 자기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빛의 경로가 꺽어지게 해서 겨우 가츠라의 칼날을 저지한다. 부러지는 가츠라의 칼. 엔쇼는 그대로 가츠라의 왼쪽 어깨를 찔러 대편으로 밀어낸다.
          >몇 번이고 복할 거다.
          * 승부가 났다. 엔쇼는 가츠라의 공격으로 복도 대편까지 나가떨어졌다. 게이트를 화려하게 박살내며 떨어진 곳은 탈출용 소형정이 대비 중인 도크였다. 엔쇼를 지나쳐갔던 병력들은 엔쇼가 패하고 가츠라, 다츠마가 추격해오자 경악한다. 병력들은 둘이 다가오는 복도를 향해 총구를 모았다. 그들이 오게 두어서는 안 된다. 탈출을 저지 당하면 자신들도 이 배와 함께 침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탈출하려는 배 위에서, 예상치 못했던 병단이 나타난다. 마타코가 막 구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 은혼/648화 . . . . 4회 일치
          * 이때 [[도쿠가와 노부노부]]가 나서 싸움을 멈추고 증오의 연쇄를 끊자 강변하나 엔쇼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그건 불가능하다며 박한다.
          * 형을 함정에 빠뜨리고 형수를 아내로 취한 엔쇼는 깊은 자기 혐오에 빠져 전장으로 달아나기를 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타나 사변이 일어났다.
          * 권유처럼 들리는 노부노부의 말에 수긍하는 이는 없었지만 부정하는 이도 없었다. 대의를 짊어지고 사람들을 이끌어온 남자들, 다츠마와 가츠라가 그랬고 신스케가 그랬다. 신스케는 지금껏 밟아온 시체를 생각했다. [[카와카미 사이]]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 시체들이 발 밑에 있는데 참으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직 손에 칼이 들려있었다. 그때 엔쇼가 한 말은 신스케의 심정을 대변했을지도 모른다.
          엔쇼는 의식이 남아있었다. 그는 몸의 고통따윈 잊은 것처럼 노부노부의 권유를 조소했다. 거기에 박하는데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오래 전에 한 번 떠올린 말이었고, 이미 한 번 했던 말이었다. 이젠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했던 말.
  • 의천도룡기(영화) . . . . 4회 일치
         각색이 상당히 많이 되서 원작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또 의천도룡기 원작을 모르면 줄거리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초부 스토리는 [[그림]]과 [[나레이션]]으로 때운다. 영상 장면은 장취산과 은소소 부부가 무당산에 도착하고, 육대문파가 무당산에 결집하여 도룡도와 사손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요 무공은 구양신공, 건곤대나이. 그리고 태극권. 원작에서 마냥 착하기만 한 장무기와는 달리 다소 뻔뻔스럽고 악랄한 느낌이 있다. 사실상 '''성격이 거의 정 대'''라고 봐도 좋다.
         본래 의천도룡기에서는 오래전의 인물로서 언급만 자주 나오고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여기에서는 소림사에서 무공을 훔쳐배운 뒤, 장삼봉과 대결하여 패배한 것으로 되어있다. 무당산의 계곡에 추락하면서 허리가 부러져서 신불수의 몸이 되었고, 자신의 몸을 거대한 [[바위]]에 묶어서 내공력으로 날아다니는 기괴한 괴인이 되었다.
         상당히 재미있고 좋은 응을 얻었지만, 속편은 제작되지 않았다.--광명정에 언제 도착하지.--
  • 이동흡 . . . . 4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의 [[고성 이씨|고성]](固城) 집안에서 [[1951년]] [[1월 27일]]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여 5기 [[사법연수원]]과 군 법무관을 마친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종교는 [[불교]]이다.<ref>허신열,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701495&sid=E&tid=1 박근혜 인사에 불교계 민감응], 내일신문</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7일에 무학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대선주조 지분에 대한 매도를 요구하는 시정조치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7702]</ref> 10월 28일에 돈을 주고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신상공개 처분을 받은 정모씨(29)가 "범죄사실이 알려지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신상공개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91305]</ref> 2005년 1월 5일에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서해교전]] 직전에 대북정보를 지나치게 변형 보고하고 "기무사가 표적 조사했다"고 주장하여 비밀누설과 명예훼손, 품위유지위 등을 이유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린 것이 부당하다"며 한철용 소장(예비역)이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낸 정직처분취소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4&aid=0000015524]</ref>
         * [[서울고등법원]] 선거 전담 재판부인 형사10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3월 22일에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03년 9월 선거구 아파트 조기축구회 창단식에 참석해 고사상에 현금 20만원을 기부하고 같은해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이장단 단합대회에 두차례 참석해 1100만여원 상당의 음식값과 술값을 후배를 통해 지급하여 기소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이장단 단합대회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여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19344]</ref>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2년이 선고된 정용천 전국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에 대해 징역6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51]</ref> [[열린우리당]]을 대하는 내용의 글을 [[시스템클럽]]에 게시하여 1심에서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군사평론가 [[지만원]]에 대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74]</ref> 3월 29일에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경선 당시 인쇄물을 배부한 대상은 입당 원서가 지구당이나 중앙당에 제출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진정한 의미의 당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21828]</ref>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 집회 금지의 헌법 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에 헌법불합치로 결정할 때 "야간옥외집회 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정당한 입법목적 하에 규정된 것"이라며 합헌이라고 했다.<ref>백나리, 차대운,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8473.html 헌재,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연합뉴스]]</ref><ref>{{뉴스 인용 |제목 = 盧 지명한 2인 등 위헌, 검찰출신·한나라 지명자 합헌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41805005&code=940301 |출판사 = 경향신문 |저자 = 조헌철 기자 |쪽 = |날짜 = 2009-09-24 |확인날짜 = }}</ref>
  • 이만섭 . . . . 4회 일치
         그 해 11월에는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6대 국회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고,<ref name="경향_6311">共和黨,過半數線넘어, 《경향신문》, 1963.11.27</ref> 그 후 제7·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ref name="동아_67">當選確定者, 《동아일보》, 1967.6.9</ref><ref name="경향_78">10代總選당선154人의얼굴들, 《경향신문》, 1978.12.13</ref> [[1968년]]에 개최된 국제의원연맹 제5차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국회에 사사건건 간섭하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갈등을 겪었고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후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으로 권력을 휘두른 [[이후락]]과 [[김형욱]]을 연이어 탄핵하였고 [[박정희]]가 그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들을 낙마시키기도 했다. [[1979년]] 제10대 총선에서 [[대구 중구의 국회의원|대구시 중구]]·[[대구 서구의 국회의원|서구]]·[[대구 북구의 국회의원|북구]]에서 당선되었고 그해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의 당무위원이 되었다.
         8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이 중 4번은 [[비례대표제|전국구]]로 당선되었고, 3번은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 제도로 당선되었으며, 3번의 중대선거구 당선 중 2번은 2위로 당선되었다. 즉 8번의 국회의원 당선 중 대부분은 유권자의 직접적인 정치적 의사를 영하지 않은 결과로, 전국구 및 중대선거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만섭의 사례가 인용되기도 하였다.<ref name="신동아_01_9">[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9/politic04.html 비사·全國區 39년], 《신동아》, 2001.9.</ref>
         |직책 =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전기 국회의장]]
         |직책 =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전기 국회의장]]
  • 이보희(배우) . . . . 4회 일치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유방이 풍만하다. 그런 데다가 허리는 가냘프고 다리는 날씬하며 아래로 곧게 뻗었다. 물론 피부도 매우 곱다. 아쉬운 것은 힙이 좀 작다는 것 정도...]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영화)|공포의 외인구단]]'을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 하자 항상 그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맏던 이보희가 자동적으로 [[최엄지|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배우)|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 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KBO 리그]]와 얽힌 흑역사가 하나 있다. [[김재박]]이 선수 시절인 1986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시상자인 이보희가 '''김재박을 유격수 수상자 김재전이라고 부른 해프닝이 것.'''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안습-- [[김재박]] 항목 참조. 1959년생인 이보희는 박정희정권의 한글전용정책의 일환으로 학교교육에서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초까지 신문 등의 활자매체는 한자단어는 한자로 표기하고 조사나 순우리말 정도만 한글로 썼으므로 몰랐다는게 조금 무식하다는 평을 들을 수는 있겠으나 이보희처럼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은게 아닌, 한자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 세대에게 김재박의 이름을 한자로 써주고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전성기가 짧은 편.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뒤 88년 초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러나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등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함께 8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소리를 들은 원미경이나 이미숙[* 단 이미숙은 결혼으로 1987년부터 1990년대까지 잠시 은퇴했다.]이 80년대 후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3-40대 들어서도 주연 작품을 흥행시킨데 비해, 이보희는 잠정은퇴 뒤 복귀 후 주연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중장년 조연급으로 밀려났다.
  • 이요원 . . . . 4회 일치
         | 종교 = [[유교|성리학]]<ref>{{뉴스 인용|저자=김범석|제목=이요원 “이런 ‘된장같은’ 응은 없어야 할텐데” (인터뷰①)|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0190115151003|날짜=2010-10-19|확인날짜=2016-12-06|뉴스=뉴스엔}}</ref> ([[세례명]] : [[마리아]])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순정 (드라마)|순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 음 ===
         ! 음
  • 이채영(fromis_9) . . . . 4회 일치
          * 그룹 내에서 제일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아이돌학교 내에서 팔씨름을 걸었을 때도 3판 다 이겼고, [[송하영|하영]]이 육성회원 과제로 닭싸움을 걸었는데, 하필 '''마지막 상대가 이채영'''이라서 패한 기록이 있다. 또한 [[fromis_의 방]] 3화에서는 사과를 '''맨 손으로 쪼갰다.'''] 근데 이런 이미지와 대로 겁이 가장 많다.[* [[fromis_의 방]] 3화에서 공중 로프 코스에서 자신이 고소공포증이 있는걸 처음 깨닫고 코스 하나 겨우 넘어왔지만 결국 다음 코스에서 못 하겠다면서 ~~눈물 싹 빼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려와서도 그 여운이 남아있는 걸 보면 고소공포증이 심한 듯.] 여기서 나온 별명이 겁'''챙'''이.
         ~~[[https://youtu.be/f3BY5yxCtHE|잘 정리된 박영상]]~~(현재는 볼 수 없는 상태인 영상) 하지만 이채영을 학교폭력 가해자라 생각하고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이 많은 만큼 초기에는 이채영 본인이나 소속사의 해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활동에 큰 장애가 올 만큼 커지진 않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로, 이채영이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루머라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이러한 론을 제기하고 있다.
  • 이철우(1955) . . . . 4회 일치
         2018년 1월 31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경선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계획을 돌연 철회했는데, 당에서 국회의원직 사퇴를 강력히 만류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사퇴로 인해 다른 광역단체장 출마를 희망하는 국회의원들의 줄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경북지사 선거 경쟁 후보자들이 국회의원 사퇴에 대해서 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한국당 김천당협위원장을 사퇴했다. 사실상 배수진을 친 셈이다. 4월 9일 경선에서 32%로 1위를 했다. 자유한국당의 경선은 결선투표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경북도지사 후보로 확정됐다. 당원 투표에서는 김광림 후보에 밀렸지만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1위가 됐다.
         2018년 7월 1일 영천호국원을 찾아 충혼탑을 참배하는 것으로 첫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동남권에 약속했던 제2청사 건립을 위해 포항 환동해안본부를 제2청사로 승격시키는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공약 이행을 하려고하자 안동을 비롯한 북부권의 대가 심해 난항을 겪고 있다.
         [[2018년]] [[6월 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3617afe4b08c3a8f6976f8|"‘결혼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을 갖게 하자"]]라는 범국민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네티즌의 응은 "어쩌라고?","(미혼인)내가 죄인이야?"+"부모나 영감들에게 작은 죄는 지어도, 아이들에게 가난의 되물림이라는 더 큰 죄는 짓지는 않겠다"라는 응. 추가로 [[장세용]] [[구미시]] 시장 당선인이 선언한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 재조정 검토를 도지사로써 막겠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넌씨눈]] 정치인~~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4회 일치
          * 과 데스피어스는 황당해서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
          * 몬스피드의 설명으론 "마신족의 어둠과 상된 빛의 힘"이며 빛의 입자로 대상을 분해해버리는 마법이라고 한다.
          * 여신족이 흑막이고 최종보스라는 설이 강하게 대두되는데 네로바스타가 졸렬한 짓만 한데다 전적인 묘사가 썩 좋지 않다. 사실 이전에도 멜리오다스를 죽이겠다고 에게 엘레인의 목숨을 담보로 암살을 사주하거나 구대전에서 마신족의 통수를 치고 나머지 세 종족을 규합, 마신족을 봉인해 버리는 등 비겁해 보이는 일을 마구 해댔던게 이미지가 좋지 않다.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4회 일치
          * 멀린이 심드렁하게 쳐내려 하자 그레이로드의 계금을 아는 이 황급히 말리려한다.
          * 은 "너는 인간이 아니냐"고 묻지만 "같은 취급하지 마라"고 대답한다.
          * 그리고 십계조차 "칙"이라고 입을 모은다.
          * 듣고 있던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은 설사 그렇더라도 갈란의 계금을 푼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박한다.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4회 일치
          * 호크가 잔 브레스를 발사해 프라우드린이 악취 때문에 방심하는데, 그 틈에 자라트라스가 접근에 성공한다.
          * 핸드릭슨은 드레퓌스를 죽일 셈이냐고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대한다.
          * 그때 호크가 잔 브레스를 내뿜고 그 흉악한 냄새는 프라우드린 조차 치를 떤다.
          * 자라트라스는 쯤은 언데드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데스 퍼지를 써도 괜찮은 건지 애매하다.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4회 일치
          * 은 "단장 답지 않은 방식"이라며 의문을 느끼는데.
          * 은 멀린에게 "무슨 생각이 있어서 부추기는 건가?"라고 묻는데 멀린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 성기사들은 그 잔인함에 경악하고 과 멀린은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멜리오다스가 배하며 죽인 십계는 아라나크와 제노. 드롤과 그로키시니아가 대체한 걸로 추정된다.
  • 임성은(가수) . . . . 4회 일치
         그녀는 그룹 데뷔 이전에 '이렇게 슬픈 마음으로'이라는 음을 1992년에 낸 적이 있는데 기획사의 홍보 부족으로 적극적인 유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다음 2집에서는 힙합 풍을 접합한 'My love'로 활동했으며 영턱스 때 보여준 비보이 댄스 실력을 선보이면서 신나는 무대를 연출했지만 2세대 아이돌로 인기가 넘어가는 시대였던데다가 갑작스럽게 이미지를 급전환해서 그런지 별다른 응을 얻지는 못했다. 후속곡으로 '짝사랑' 활동을 하였는데 트로트댄스 풍의 곡으로 돌아와 타이틀곡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노래방이나 전국노래자랑에서 이 노래가 많이 불려졌었다.
         3집에서는 성인층에게 어필할 만한 트로트 쪽으로 전환해서 '마지막 배려'로 활동했으며 과거를 기억하고 있던 팬들에게 어느 정도 사랑을 받았다. 이 음에서는 박미경의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의 리메이크도 실려 있다.
         3.5집에서는 작곡가 윤일상과 작사가 윤사라와 의기투합한 테크노 곡인 'Set Me Free'로 활동했으며 본인도 의상 이미지를 바꾸는 등 많은 준비를 했지만 별 다른 응을 얻진 못했다.
  • 장수원 . . . . 4회 일치
         2016년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2"에서 [[젝스키스]]가 재결합하였다. 이후 [[YG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체결하여 《[[2016 Re-ALBUM|Re-Album]]》, 《The 20th Anniversary》 등을 발매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제이워크]]로의 활동은 당분간 휴식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젝스키스]]가 해체하고 재결합하기 이전까지, 일인이 된 [[고지용]]을 포함하여 모든 멤버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며 멤버들간의 우정을 유지하는 데에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 1997년 - 대한민국 영상음 대상 골든 디스크부문 본상
         * 1998년 - 대한민국 영상음 대상 골든 디스크부문 본상
         * 1999년 - 대한민국 영상음 대상 골든 디스크부문 본상
  • 장혁주 . . . . 4회 일치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전시 체제에 협력하는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9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민족행위자]][[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재일 한국인]]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4회 일치
          * 자신의 불리함이나 약점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는 것이며 그의 전술 전이 어린애와 같은 허세로 이루어져 있다.
          * 세일즈를 위해 군의 아지트를 방문한다.
          * 본래 정부군에 접근했었는데 그쪽은 강대국에 보낼 돈 밖에 없다고 상대해주지 않았고 이번엔 군 쪽에 세일즈를 하러 왔다.
          * 효부는 헐값이라며 자신을 고용하라 하는데 문 측은 애송이한테 큰돈을 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4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9th sense. '''역자들 (2)'''
          * 마침내 칠드런 일행이 아파트에 합류, 격을 위한 채비에 들어간다.
          * 미나모토는 ESP록을 사카키의 왼팔에 채운다. 이것으로 무의식 수준에서도 세뇌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 사카키의 세뇌는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지만 본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사카키는 관리관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고 미나모토에게 뒷공작을 한 것도 자신이었던 거냐며 좌절한다. 미나모토는 다 적의 계략일 뿐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정보"로 사태의 확산을 막았으니 제대로된 격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사정을 듣지 못했던 사카키는 그 "누군가"나 "정보"가 뭐냐고 묻는데 미나모토도 사실 그 이상은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정보를 아네 모르네 잠시 옥신 각신.
          * 도쿄로 돌아온 미나모토. 그러나 이들이 마련한 격의 전초기지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연립주택. 너무 초라한 아지트에 조금 실망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4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62th sense. '''역자들 (5)'''
          * BABEL의 의료시설에 잠입한 [[사카키 슈지]]는 드디어 완성단계에 이른 혈청을 자신에게 주입한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산노미야 시호]와 [[노가미 아오이]]. 시호는 눈에 띄는 응이 없자 실패가 아니냐고 다그친다. 하지만 사카키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하는데.
          이대로 텔레포트할 수도 있지만 이런 "오물"을 입하고 싶지 않으니 나중에 일어나면 씻겨서 데려가는 걸로 결정. 작전 결행은 내일로 미뤄진다.
          * 이것으로 칠드런 측의 승리가 보이는 걸까?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츠보미 후지코]]는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격을 기다리고 있는데.
  • 정난정 . . . . 4회 일치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차실(次室) 남씨(南氏)의 2남 3녀 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모친은 본래는 상민이 아니었으나 난신에 연좌된 부녀로서 노비가 되었고, [[정윤겸]]의 집에 분배되었다. 그는 정윤겸과 노비가 된 가 여성 사이에서 서녀(庶女)의 신분으로 태어났다.<ref>그러나 그 모친의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ref> 그리고 정난정은 어릴 때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정난정은 윤원형과의 슬하에 4남 2녀를 남겼는데, 정난정이 정실부인이 됨에 따라 그 자녀들도 적자가 되었다. 양가에서는 그녀의 권세에 힘입으려고 사돈이 되자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많은 재산을 모으며 부귀를 누렸고 문정왕후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은 정난정에 대한 감이 극심하여 그 후원자인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 (조선)|보우]]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다.
         * 정난정의 동복 둘째 오빠는 담(淡)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정난정이 드시 화근이 될것이라 예상하고, 일체 그녀와 왕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찾아올까봐 집 입구의 담을 꼬불꼬불하게 쌓아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정난정은 늘 가마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가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문에 정난정은 그의 집에 가볼 수가 없었고, 덕분에 [[윤원형]]과 정난정이 몰락한 뒤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
  • 정대석 . . . . 4회 일치
         {{일인 정보
         정대석은 전통적 기위에 현재의 감성을 입혀 새로이 재구성하여 거문고를 일인에게 알리고 보급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연주자다. 출중한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그동안 고고하게 기품을 유지해 온 거문고를 일 계층에게 전파시키는데 기여해온 바 크다. 그는 거문고와 더불어 연주자 및 창작자로서의 삶을 일관하여 온 사명의식을 갖고 있는 국악인이다. 정대석은 일찍이 거문고의 창작음악에 몰두하여 많은 거문고 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곡들은 거문고의 고유한 특징과 매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을 받고 있다. 거문고연주자 정대석은 이런 관점에서 면면히 자기완성을 의지하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국악인으로서의 자태를 유지해온 예술인이다. KBS국악관현악단 수석 및 악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서울악회 동인, 거문고연구회 동보악회 대표이다. 2003년 KBS국악대상 대상 및 현악상과 제2회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3/11/20070311000979.html 거문고 명인 정대석씨 ''非음대'' 첫 서울음대] 교수세계일보(2007.03.12)</ref>
  • 정성룡(야구선수) . . . . 4회 일치
         ||<:>'''한국시리즈 우승 지'''||
         1992년 시즌 종료 뒤 ~~왼손 유망주라면 사족을 못쓰는 [[김응용|코감독]]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 그해 해태가 삼성에게 완봉을 당한 경기가 있었는데 그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기 때문인 것이 유력하다. 즉 그 시즌 홈런 3개중 2개를 코감독 앞에서 그것도 연타석으로 쳤으니 [[인생경기]]를 한 셈.[* 다음 해에 김성래와 양준혁이 괴물활약을 한 것을 보면.. 프로생활을 3년이나 연장하고 한국시리즈 우승지도 꼈으니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1993~1995년까지 해태의 몇 안되는 좌타자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원조 10번이었던 [[장효조]]에 대한 올드 삼빠들의 대한 그리움과 그 이후 10번을 단 [[양준혁]]의 인기에 의해 지금은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태에서 10번을 물려받은 선수는 당시 신인이였던 [[장성호]]였지만 1년만에 1번으로 갈아탔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10번을 단 선수가 [[최훈재]] 그리고 [[양준혁]].
         김응용 감독은 정성룡의 스윙을 보고 "저 스윙으로 3할을 못 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큰 기대를 했으며, 1993년 시즌에는 해태 타선의 몇 안 되는 좌타자로서 원포인트 대타나 지명타자로 쏠쏠한 활약을 하여 해태의 우승에 공헌했다. 이 해 타율은 0.246이고 홈런은 10개. 타율은 별로였지만 전기에는 규정타석만 채우면 [[양준혁]]과 [[강기웅]] 등을 위협할정도로 3할1~2푼 수준을 유지했으나 후기에서 까먹은 것. 홈런을 심심찮게 터뜨렸으며[* 1993년이 126경기 체제에서는 가장 적은 18명의 두자릿수 홈런 타자를 배출했다.]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한방이 많았다. 프로 데뷔 후 최다 출장인 107경기에 출장했다. 그리하여 당시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도 유력했으나 [[김기태(1969)|김기태]]의 지명도에 밀려[* 팀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김기태 본인의 성적이 별로였던 점을 감안하면..] 타지 못했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4회 일치
         엄밀하게 해석하자면, [[국제연합]]의 결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중화민국]]'의 지위를 [[중화민국|장개석 정권]]으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에게 [[국가승계]]를 시킨다는 결의였다. 이에 따라 중화민국은 한큐에 가입국 지위까지 잃어버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로 가입은 물론이고 중국의 외교적 정통성, [[상임이사국]]까지 한꺼번에 따먹었다.
         이로서 [[대만]]의 [[중화민국]]은 국제적 지위가 붕 떠버리게 된다. 정식 국가가 아니라 일개 '정권'으로 취급받게 되는 것. 이에 발하여 하다못해 '쫓겨나는 굴욕'만은 모면하려고 중화민국은 국제연합에서 스스로 탈퇴하게 된다.
         이 사건을 환점으로 하여, [[중화민국/외교|중화민국의 외교]]는 그야말로 [[안습]]의 절정에 달하게 된다. 그나마 이 당시는 아직 [[냉전]]과 중화민국의 경제력 덕분에 그럭저럭 많은 수교국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력이 상승하면서 그마저도….
         [[대한민국]]에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6.25 전쟁]]에서 [[적]]으로 여겼던 [[중공]]이 아군으로 여겼던 [[UN군]]에 들어가서 단번에 유엔 상임이사국의 자리까지 차지해버렸기 때문. 대한민국은 애초에 유엔가입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대표를 던지지도 못했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4회 일치
          그리샤는 그가 어떻게 혈액검사가 동된 마레의 검증 과정을 통과해 당국에 잠입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워한다. 답은 의외로 쉬웠다. "의사" 중에 협력자가 있으면 되는 것. 물론 그 의사도 신분을 위조한 엘디아인이다. 혈액검사만 통과되면 나머지는 일처리가 쉬운 헛점을 이용한 공작이다.
          크루거는 유미르를 "유기생물의 기원"과 접촉한 소녀라 부르는 자도 있다는 말과 함게 진실 같은건 없다고 일축한다. 그것이 현실이며 누구든 악마이자 신일 수 있다. 마레 측에서 말하는 1700년에 달하는 민족정화도 사실이라 볼 수 없다. 그랬다면 지금의 마레인은 존재할 수도 없으니까. 대로 거인의 힘이 오로지 번영만 주었다는 엘디아 측의 기록도 믿을 수 없다. 그건 "그가 아는 인간"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다. 이미 한 번 섣부른 해석을 내린 적이 있던 그리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고 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행동에 수되는 "고통"을 모르고 있었다. 동료를 잃는 것도, 아내와 자식을 잃고 손가락마저 잃는 것도. 알았더라면 이런 대가를 지불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단언한다.
  • 집단등하교 . . . . 4회 일치
         일본의 학교에서 안전을 위하여 아이들이 등하교을 짜서 집단으로 등교, 하교하는 제도이다.
          * 같은 지역에 사고 통학로가 같은 아이들을 모아서 수명~10명 내외 정도의 숫자로 등하교을 편성하며, 고학년과 저학년을 같은 으로 묶는다.
          * 등교 시에는 특정한 집합 장소에 등교에 소속된 아이들이 모이고, 고학년 학생이 깃발을 들고 인솔한다.
  • 차용학 . . . . 4회 일치
         * 《[[짝 빛나는 (드라마)|짝 빛나는]]》 (MBC, 2011년) - 광수 동생 역
  • 창작:IDF . . . . 4회 일치
         IDF는 모병에 있어서 선진국의 사관학교 출신자, 군복무 경험자를 우대하며, 특히 장교급 지휘관이나 특수부대 출신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다. 그 결과, IDF의 영관급 이상 장교는 선진국 사관학교 출신자나 퇴역장교 출신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면 병사들은 상당수 생계를 위해서 IDF에 개인적으로 참가한 제3세계 출신이며, 선진국 출신자 역시 저소득 계층 출신이 많다.
          * 사무국 : IDF에서 자체적으로 고용된 사무 직원으로 구성된다. IDF의 운용 업무와 행정 실무를 담당한다. 일적으로 국가조직에서 '국방부'에 해당한다. 관료주의적 경향이 강하며, 사령부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파견 주둔지에서 민사작전을 담당한다. 공병대와 의무대로 구성되며, 피해 복구와 재건 작업, 민간인 구호 등을 진행한다. 배급소와 진료소를 설치하고 운영하여 민간인들에 대한 식량, 의료 서비스 공급 등의 업무를 한다. 파견 지역의 치안 확보와 재건에 기여하고 군의 성장을 막는다. 각종 국제 구호 조직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재해지에 나타나는 볼란티어(자원봉사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임무도 맡는다.
         평화-전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에서는 국제기구의 탈을 쓴 현대판 용병, 사실상 [[PMC]]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IDF는 전쟁에 투입되는 자국민의 '희생'을 제3세계에 전가함으로서, 선진국의 분쟁 개입 빈도를 늘리고 이에 따라 세계의 전쟁을 오히려 더욱 가속화 한다는 것이다.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4회 일치
         작중 기억을 절이나 잃어버리고 눈을 뜨니 이상한 동굴에서 눈을 뜬 탓에 공허함을 느끼며, 자칭 동굴의 130대 수호용이라는 타츠카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로 맞이했다. 이후 자신의 기억을 찾기로 맹세하며 모험의 길에 오른다. 또한 여러 모험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개인 신상 : 과거의 기억의 절 정도를 잃어버렸으나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보구인 천경원양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집안에서 물려준 드레스인 홍염의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게다가 어째선지 원치않게 라이벌과 엮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고군분투와 파란만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종족은 인간과 선녀 사이에서 태어난 선녀이다.
  • 최다빈 . . . . 4회 일치
         '''최다빈'''([[2000년]] [[1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다섯 번의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 은메달 세 개와 동메달 두 개를 차지했다. 2015-2016 주니어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모두 동메달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시니어 데뷔 무대인 2016 4대륙 선수권에선 8위, 2017년 대회에선 5위, 2018년 대회에선 4위를 차지하며 꾸준히 순위를 높혔다. 본격적으로 시니어에 데뷔한 2016-2017 시즌엔 초 부진을 딛고 2017 [[동계 아시안게임]](일본, 삿포로)에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우승했고, 이어 열린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선 10위(Top10)에 오르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티켓 2장을 확보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김연아]] 이후 역대 최고 성적인 7위에 올랐다.
         === 선수 생활 초 ===
         시니어 그랑프리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최다빈은 2차 대회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선전했으나 종합 7위에 머물렀고 6차 대회인 [[NHK 트로피]]에서는 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종합 9위에 그쳤다. 이후 랭킹전에선 [[박소연]]에 이어 5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티켓을 놓쳤다. 또한 2017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도 동료 선수인 [[김나현]]에 밀려 종합 4위를 차지해 메달 획득 및 피겨 세계선수권 티켓 역시 놓치고 말았다. 시즌 초중 잇따른 악재로 실망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특유의 강한 정신력으로 절치부심하여 이어 출전한 동계체전 고등부 피겨 여자싱글 1위를 차지했다.
         * [[칼린카]] <br>{{small| by [[이 라리오노브]] }}
  • 최선 (정치인) . . . . 4회 일치
         '''최선'''(崔善, [[1974년]] [[1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서울시 강북구 삼양동에서 태어났으며 [[서경대학교]] 일어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시 강북구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민주통합당]] 소속이다. 2005년 어린이집 [[꿀꿀이죽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2006년 5월 31일 기초의회선거의 강북구 구의원에 출마하여 당선하였으며 이후 '보육조례개정안'제정 활동등을 하였다. 최근 강북구 의회의 의정비 인상에 대하는 활동을 벌여 주목을 받고 있다. 2009년에는 강북구청장이 공공근로 인력을 동원하여 부인 땅을 경작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MBC 뉴스데스크 등 언론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서울시 강북구 기초 의회는 총 14명의 구의원을 위한 2007년 의정활동비를 3천284만원에서 5천495만원으로 67%인상하였다. 이때 대의 압력과 강북구청정의 재의 요청에 따라 월 10만을 삭감하고 인상안을 기권1, 찬성11표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최선은 이를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못하였으며 과도한 금액이라고 주장하고 1월치 의정비 중 인상분을 구청에 납하였다. 하지만 구청은 수령할 이유가 없다고 수납을 거부하였으며 민주노동당은 이 인상분을 [[법무법인공탁]]처리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2008년 2월 5일 서울시 강북구 의회의 의장 윤영석및 다른 의원들은 의정비 인상이 정당했으며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하고 MBC 라디오등의 인터뷰에서 동료의원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는 이유로 임시회 본의회를 열어 최선 의원을 징계하기 위한 윤리특별위 구성결의안을 처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의견이 거세어 회의는 무산되었다. 최선은 과다하다는 이유로 서울시 강북구의 재정자립도가 30%이며 서울의 25개 자치구중 22번째로 하위권임을 들고 있다.
  • 최영미 (시인) . . . . 4회 일치
         '''최영미'''([[1961년]] [[9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섬세하면서 대담한 언어,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직시하는 신선한 [[리얼리즘]]으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향을 일으켰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에 따르면 "최영미는 첫 시집이 너무 성공한 탓에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행한 시인이다”. 1992년 등단 이후 시와 소설, 에세이를 넘나들며 5권의 시집을 펴내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을 출간하고 미술과 축구에 대한 산문을 많이 썼지만, 한국에서 그녀는 여전히 시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2학년이던 198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 시위에 가담하여 [[서울관악경찰서|관악경찰서]]에서 구류 10일을 살고 1년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졸업 후에 독재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합법 조직 '제헌의회그룹'의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레닌]]의 저작물을 공동번역했다. 십 여명이 번역과 교열작업에 매달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해방 이후 최초로 현대 한국어로 옮긴 《자본 1》이 1987년 이론과실천사에서 김영민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역자로 내세워 출판되었고, 출판사 대표는 사회주의 원전을 출판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80년대 말 [[소련|소비에트 정권]]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최영미는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변화를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최영미는 인간의 조건을 풍자적인 언어로 파헤친 시집 《돼지들에게》로 2006년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수문학상 심사위원 유종호교수는 “최영미 시집은 한국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이유를 구현한다”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돼지들에게》의 추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자칫 관념적 교훈적으로 될 수도 있는 알레고리적 방법이 시에 활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점도 주목을 끈다”라고 썼으며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진정성과 언어의 조탁이 돋보인다”라며 심사평을 전했다.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2013년 상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세 명의 한국 작곡가- 이건용, 김대성 그리고 안치환이 최영미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서울오페라단]] 단장인 이건용이 작곡하고 전경옥이 노래한 아트 팝 겸 클래식 음 《혼자사랑》 (1998년)에 최영미의 시 4편을 노랫말로 삼은 〈선운사에서〉,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슬픈 카페의 노래〉, 〈북한산에 첫눈 오는 날〉의 4곡이 포함되었다. 무형문화재인 국악인 강권순의 창작 가곡집 《첫마음》(2007년)에 김대성이 작곡한 노래 '선운사에서'가 수록되었고, 안치환의 10집 앨범인 《오늘이 좋다》(2010년)에 안치환이 작곡하고 부른 노래 〈선운사에서〉가 실렸다.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4회 일치
         참고로 오카모토 요시키가 '게임 비평'의 칼럼에서 "원작의 짝 인기처럼 애니메이션도 짝 인기 후 본국에서 조기 종영 되었던 것처럼, 게임 버전도 '''사업적인 면에서(게임성이 아니라)''' 말아 먹었다."는 식의 술회를 한적이 있다.
         후속작인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두번째 대격변(Cadillacs and Dinosaurs: The Second Cataclysm)"이 세가CD와 PC판으로 나왔는데, 그래픽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복되는 플레이와 지나친 급커브 등으로 문제가 많았다.
         일 [[CPS]]기판이 아닌 [[CPS]]대쉬 기판을 사용하여, 화려한 스피드나 커맨드 기술, 화면을 채우는 공룡 등의 퍼포먼스를 구사할 수 있었다.
  • 캡틴 아톰 . . . . 4회 일치
         <[[왓치맨]]>의 [[닥터 맨하탄]]의 모티브적인 캐릭터지만[* 닥터 맨하탄의 능력은 [파이어스톰]과 캡틴 아톰의 능력을 절씩 섞은 것. 단, 둘의 능력을 합쳐도 닥터 맨하탄보단 약하다.] 초인 한 명도 없는 왓치맨 세계에서 닥터 맨하탄이 그야말로 [[킹왕짱]]이었다면 모티브가 된 캐릭터인 캡틴 아톰은...
         패턴만 벌써 네다섯 번 복된 캐릭터다.(...) 그래서 요녀석이 죽어봐야 "또 어디서 여행 중이겠지" 하고 다들 쿨하게 넘긴다. 그리고 장례식조차 안 치러준다! 캡틴 아톰은 절대 죽지 않을거라고 다른 히어로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기때문에...이거 기뻐해야 하나?
         참고로 열기나 냉기를 느끼지 못하고 먹거나 잠을 안 잔다고 한다. 확실한 지 확인되지 않았고 비관적인 의미에서 한 말이지만 죽지도 않을 것 같다고 본인이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파워걸]]과의 전투에서 [[부스터 골드]]의 말에 의하면 그가 높은 수준의 힘을 쓰면 [[방사능]]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대접은 이렇지만 [[wiki:"먼치킨(양판소)" 먼치킨]] 열에 들어간다.
         [[저스티스 리그]]에 가입한 초부에 임무 때문에 블루 비틀 II에게 초대 블루 비틀과 친했다고 했다가 거짓말인 것이 들통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보면 거짓말이 아닌 것이 사교관계가 어쨌든 두 캐릭터는 찰턴 코믹스에 있다가 DC 코믹스에 흡수되었다.
  • 컬트 종교 . . . . 4회 일치
          * [[마인드 컨트롤]], [[세뇌]]와 같은 심리적 기법으로 신도의 의지를 꺽고 다수의 신도를 지도부의 명령에 따르도록 조종하여, 일 사회와 유리된 가치관을 가지게 만든다.
          * 외부의 사회에서 고립된 장소에서 공동 생활을 하도록 하고,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한다. 이 집단에서 종종 폐쇄성을 이용하여 사회적 행동을 벌인다.
          * 종교 조직이 개입된 [[범죄]], [[테러]] 등 사회적 활동이 다수 발생한다.
          * 코토크 : https://kotobank.jp/word/カルト-178058
  • 킹덤/517화 . . . . 4회 일치
          * 그는 끝내 한단군을 움직이는데 대하는데 한단성만 틀어막으면 다른 곳이나 백성들이야 어찌되든 자기만은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
          * 왕전이 이렇게 계산한 이유는 이목이 드시 알여군에 들어가 공격해올 거라 예측했기 때문인데, 그 예측대로 이목은 알여군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태자는 다시 한 번 이목에게 업성을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이목에겐 태자야말로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는 도양왕 앞에서 삭힌 것과 정대의 말을 속에 새긴다.
          >이목은 드시 알여군에 들어가 공격해올 것이다.
  • 킹덤/518화 . . . . 4회 일치
          첫째, 자신이 합류하는 알여나 공손룡의 요양, 둘 중 하나가 움직여 드시 진군을 쳐야 한다는 것. 즉 눈 앞의 양단화군을 격멸하라는 지시다. 다만 산민족은 미지수인 점이 많은 군대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실제로도 양단화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작은 교전이 몇 회 있었는데, 그때마다 큰 손해를 본 건 공손룡군 쪽이었다.
          공손룡은 순수수가 언제 도착하는지를 확인한다. 그는 1천 정예병을 데리고 나절 안에 도착할 것이다. 공손룡은 이목의 지시를 전부 따르기로 하고 공격 대형으로 전환한 채 새로운 총대장이 오는 즉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라 명령한다.
          * 상황을 파악한 양단화. 그렇다면 산민족군은 버티는 진형을 취할 법도 하다. 그런데 양단화가 내린 명령을 정대. 그녀는 처음부터 이것말고는 없었다는 듯이 전군을 향해 "시작한다!"고 호령한다. 그녀의 호령을 들은 산민족들이 들끓어 오른다. 마치 당장이라도 적진에 처들어갈 것처럼. 이 상황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전령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당황한다.
          못알아듣는 바지오를 향해, 양단화가 너무 괴물이라 억지로 취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밑에서 전과를 올려 멋진 모습을 보이면 양단화가 해서 결혼해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폭소를 터뜨리는 휘고왕. 바지오는 그 말을 흘려버리며 "인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휘고왕은 카푸로를 멀리 날려보낸다.
  • 킹덤/522화 . . . . 4회 일치
          * 왕전이 마광과 몽념을 불려놓고 작전을 하달하던 자리에서 몽념은 드시 작전을 성공시킬 것이고 마광이 어정거리면 자신들이 주역을 뺏겠다고 호언한다.
          * 조군의 우익을 맡고 있는 기수군. 치고 빠지길 복하며 외곽을 괴롭히던 [[몽념(킹덤)|몽념]]에 정신이 팔린 사이 마광의 5천 병력이 좌측을 깊게 찔렀다. 그 공격을 수습하기도 전에 그 뒤에 다시 5천 병력. 적은 1군을 굳이 두 부대로 나누어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고 있다. 파상공세. 마치 적이 끝없이 몰려오는 듯하다.
          몽념은 당돌하게도 그 말을 자르고 그러지 않아서 자기들 힘만으로 드시 "파상공세"를 이룰 수 있게 돕겠다고 말했다.
          >이 숫자의 차이와 리안병의 질로 하여금 드시 승리하리라!
  • 킹덤/526화 . . . . 4회 일치
          * 옥봉대의 장교들은 눈 앞의 적도 잊어버리고 왕분의 눈부신 기량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에 한 번 왕분을 사경으로 몰고갔던 위화룡 [[자백(킹덤)|자백]]. 왕분은 본래 자신의 기교와 속도에 더해 이제 파괴력은 그 자백을 연상시키게 했다. 그런 파괴력까지 습득한 지금의 왕분은 분명 자백 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장교들이 입을 모은다. 함께 있던 왕분의 부장 [[양]] 또한 의견을 같이 했다. 자백을 꺾고 더욱 성장한 왕분의 창술은 분명 중화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경지다.
          * 왕분이 그정도로 당황할 장수는 아니었다. 침착하게 창을 쳐내는 순간, 마남자가 그때를 노렸다. 그의 손이 왕분의 팔을 낚아챘다. 예상 밖의 실책. 양이 경악하고 왕분 또한 당황한 기색이다.
          * 왕분도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땅바닥을 때린 마남자의 팔을 휘감아 부러뜨리려 했지만 마남자가 금새 뿌리쳤다. 멀찍이 밀쳐진 왕분. 마남자는 예상치 못한 격에도 대응한데다 자신의 주먹까지 피한 것에 감탄한다.
          * 마남자의 부하들이 서둘러 그를 둘러쌌다. 이젠 정말 물러나야 할 시간이다. 마남자 또한 강자 둘을 상대로 데려온 병력이 너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퇴각할 기색을 보이자 아광은 이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거 같냐고 쏘아붙였다. 그 동안 왕분은 양의 도움으로 다시 말에 올랐다.
  • 킹덤/529화 . . . . 4회 일치
          * 견융왕 [[로조]]는 상황을 아주 쉽게 봤다. 산민족 진영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그의 병사들은 거침없이 그들을 분쇄했다. 견융의 영역을 침범한 벌, 로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조군 지휘관 [[순수수]]를 향해 이제부터 산민족군 후미를 쳐서 절을 몰살시키겠다고 장담했다.
          벽에겐 무모한 돌진으로 보였다. 전술의 기본은 무시하는 공격이었다. 곧 언덕의 견융족 기마대가 양단화를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벽은 끔찍한 결과가 나오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끔찍한 결과는 견융족에게 일어났다. 보란 듯한 정면돌파. 양단화는 강했다. 그녀의 용기가 해냈다. 고지를 점한 군대가 유리하다는 병법의 기본이 그녀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듯 했다. 양단화가 선두에서 견융족을 난도질하며 고지를 빼앗았다. 바로 뒤에는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메라 족 기마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가면을 벗으며 견융 같은 낡아빠진 기마민족에게 개차으론 당할 수 없었다고 빈정거렸다. 그말대로 이루어졌다.
          로조의 예측대로 진행됐다. 양단화는 퇴각하기 위해 산등성이를 따낸게 아니었다. 이곳은 격의 거점이었다. 양단화는 직접 콘 족의 군기병을 통솔해 산 아래를 향해 일제오사를 명령했다. 궁사들이 한 번에 화살을 다섯 개씩 죄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밑에서 한창 열을 올리던 견융족은 불현듯이 쏟아지는 궁시로 쓸려나갔다. 당황한 견융족 기마대가 고지를 탈환하고자 달려들었지만 이는 기다렸던 바. 양단화는 다시 선두에 서서 이번엔 산 아래로 들이쳐갔다.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는
          * 그때 언덕의 대편, 기수군 후미를 요격하는 희고 붉은 깃발의 무리가 보였다.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였다. 몽념은 [[육선]]을 앞세워 우측으로 돌격시켜 기수 본진의 방어를 뚫고자 했다. 낙화대의 진격은 이미 기수군 후방의 2진까지 돌파하고 있었고 기수에게 급보가 올라갈 지경이었다. 부하들은 [[마정]]을 불러들여 본군을 사수해야 한다 주장했으나 기수는 그럴 경우 전방이 무너지는 사태가 일어날 거라 여겨 한사코 거절했다. 대신 기수는 자신이 직접 낙화대를 저지하러 나서는데.
  • 킹덤/530화 . . . . 4회 일치
          기수는 후방의 진을 풀고 최종방진까지 후퇴하도록 지시했다. 부장들은 난색을 표했다. 퇴로를 버리는 결정이었다. 차라리 후방을 그대로 두고 전방의 [[마정]]을 불러들여 본진을 방어함이 시급했다. 하지만 기수는 단호했다. 지금 국면에서 어떤 곳을 다른 곳보다 우선할 순 없다. 정면도 바늘 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명이 무너지면 그거야말로 끝. 부장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현실의 다급함을 지적했다. 지금 최종방진으로 물러난다 해도 채비를 다하기 전에 비신대가 들이닥친다. 기수도 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그때 유동장군의 친위대 200기가 기수의 고민을 덜어줬다. 그들이 비신대를 저지하기를 자청했다. 아니, 드시 비신대 대장 이신과 부장 [[강외]]의 목을 따오겠다고 자청했다. 기수는 그 결의를 만류하지 못했다.
          * 정면의 마광군도 비신대의 출현은 뜻밖이었다. 부관들은 왕전의 안배가 비신대였던 것가하고 쯤 실망했다. 마광이 그런 부하들을 달랬다.
          부장들이 다시금 마정에게 원군을 청하자고 고하고 있을 때, 마침내 비신대의 선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신이 기수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부장들이 기수를 둘러싸고 수비병을 동원하러 할 때 대쪽에서 낙화대가 3진을 돌파하고 여기까지 육박한다는 보고가 왔다. 두 부대는 마치 경쟁하듯 기수를 향해 몰려왔다. 이렇게 되자 부장들의 의견이 둘로 갈랐다. 당장 본진을 버리고 물러나가는 쪽과 버텨야 한다는 쪽. 후자는 여기서 본진만 빠져나간다면 마정군은 홀로 남아 괴멸할 것이므로 도망칠 거라면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전자는 그럴 겨를이 없고 우물쭈물하다간 같이 격멸될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쪽이든 기수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고 그의 결단은 한결같았다.
  • 탈북자 망명정부 . . . . 4회 일치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탈북자 망명정부 설립운동 측이 '김정남'과 접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정남은 망명정부 수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자신이 망명정부 수이 되는 것 역시 3대 세습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김평일'과도 접촉했다는 설[[http://ifreenk.com/87121 (참조)]]이 나오면서, 망명정부가 김씨 일가를 '구심점'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망명정부는 한도 통일을 추진하는 주체로서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http://news.donga.com/MainTop/3/all/20161006/80664378/1#csidx6390859011994e7a8d6c822b9a35888 (참조)]]
          * 구심점이 없다. 북한 주민들 다수가 인정할 만한, 정부 수의 자격을 갖춘 인물의 부재.
  • 토리코/381화 . . . . 4회 일치
          * GOD를 먹은 네오는 팔왕을 압도하는 힘을 과시한다. 마왕의 목을 떨어뜨리고 오왕의 신을 뜯어먹는다.
          * 오왕의 눈이 가려진 틈을 타 좌신을 뜯어먹는다.
          * 오왕은 지지 않고 격을 가하는데 모조리 네오의 먹이가 된다.
          * 게다가 죠아의 구르메 식운까지 복사해버렸다는데? 격의 시작인가?
  • 토리코/388화 . . . . 4회 일치
          * 이렇게 합류한 일행들. 상황은 전되어 토리코 일행에게 유리해졌다.
          * 그는 모두 부활해서 만의 태세라고 생각할 테지만, 오히려 준비가 끝난건 자신이라고 말한다.
          * 적귀는 토리코에게 먹히면서 완전히 흡수된 듯이 묘사되고 토리코 본인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카시아와는 정대.
          * 아카시아의 응으로 보면 이건 상당히 중요한 차이인 듯.
  • 토리코/393화 . . . . 4회 일치
          * 그로부터 얼마 후. 아카시아는 페어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이고 네오의 봉인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페어에게 이것저것 지식을 얻던 아카시아는 문득 "식욕의 악마에게 잠식 당하지 않는 법"에 대해 묻는다. 아카시아는 그것이 네오에게 먹힌 식혼들을 구하는 열쇠가 될지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만약 그 식혼들이 네오 안에서 살아 있는 거라면 드시 꺼내줄 방법도 있을 거라고 역설하는데 페어는 쓸데없는 소리라 일축하며 혹시 네오 때문에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냐고 묻는다. 페어는 과거 네오의 소행은 악행도 뭣도 아닌 그저 식사이며 지금와서 아카시아가 책임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아카시아는 그저 자신 안의 식욕에 대한 수수깨끼를 해결하고 싶은 거라고 항변하지만 페어는 귀담아 듣지 않고 풀코스의 출연이 가까웠으니 플로제의 설득이나 신경쓰라고 말한다.
          * 페어에겐 무시 당했지만 아카시아의 의문은 씻겨지지 않는다. 그는 달을 바라보며 네오가 왜 자신에게 깃들었는지 자문해 본다. 네오는 이미 수십억년을 먹고 먹기를 복했다.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그저 먹고만 있는 것이다. 생각을 거듭하던 아카시아는 마침내 "네오는 사실 이미 배가 부른게 아닌가?"라는 발상에 도달한다.
          *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카시아는 엄청난 발견을 알린다. "네오가 싫어하는 맛"에 대한 것. 아카시아는 이것이야 말로 네오 안의 동포를 구할 단서라고 말한다. 페어는 또 그딴게 집착하냐고 쏘아붙이지만 아카시아는 확고한 자세로 "그럴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식욕의 에너지가 무한한 것은 만고의 법칙이고 구르메 세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건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에너지의 절대량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며 끝없는 순환을 복한다. 그렇다면 네오에 먹힌 식혼들 또한 사라진게 아니라 어딘가에 갇혀 있는게 맞다는 것.
          * 페어는 비록 지구의 붕괴는 막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맛의 바톤"이 두절되는 것. 구르메 세포로 조리된 행성은 숙성을 거듭하다 어느 시점에 한계에 달하고 폭발한다. 초신성의 폭발도 능가하는 그 엄청난 에너지는 우주공간으로 뿌려지고 대량의 중원소가 합성되면서 "골든 메테리얼" 같은 "구르메 메테리얼"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원소들이 맛과 함께 고도로 농축되어서 새로운 식재의 탄성으로 이어진다. 다시 이것들은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복하며 새로운 "풀코스"로 탄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지구의 풀코스도 그런 식으로 다른 행성들로부터 이어진 것.
  • 페어리 테일/535화 . . . . 4회 일치
          마룡은 조금 휘청이는 듯 했지만 곧 제랄의 마력을 빨아먹어서 무력화시킨다. 제랄은 마력이 급격히 떨어져 갔고 격 당하기 딱 좋은 위치에 노출되었다. 엘자는 빨리 떨어지라고 외쳤지만 제랄은 듣지 않았다.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도 그를 희생시킬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엘자의 말도 듣지 않는 그를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함교에서 크리스티나호가 추락한다는 연락이 온다. 크리스티나호는 수면 위로 곤두박질쳤고 탑승자들은 엉망으로 나뒹군다.
          제레프는 격하며 "그걸 내가 만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냐"고 박한다. 나츠는 그것은 궤변이라 생각한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4회 일치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회생한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또 살아남아 버렸다 한탄한다.
          아직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END의 서를 계속 수정하고 있었다. 본래 이것은 책 자체에 씌인 악마의 힘이 수정자를 침식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미 루시의 오른팔 전체가 침식 당했고 서서히 우신 전체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루시는 펜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마침내 책의 수정이 끝났다. 책이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던 문자들이 책으로 돌아온다. 해피와 그레이는 그 모습을 신비롭게, 그리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루시는 펜을 놓으며 말했다.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물리쳤다. 그러나 마룡을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기 위해 두 사람도 함께 휘말리고 말았다. 살아남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과 [[엘자 스칼렛]], [[제라르 페르난데스]], [[웬디 마벨]]. 그들은 바다를 건너 작은 바위섬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마룡과 싸우며 만신창이가 됐던 제랄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엘자의 무릎에 누운 채로 또 살아남았다고 한탄조로 말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쉬고, 정리가 끝나고 나면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루시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전부터 아쿠에리어스의 열쇠를 되찾는 여행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레이와 해피도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데 뜬금없이 아쿠에리어스가 물고기인지 어인인지를 놓고 논쟁으로 이어졌다. 정답은 그냥 "인어".
  • 페어리 테일/541화 . . . . 4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는 머지않아 자신의 바람인 궁극적인 파괴가 이루어질 거라 유쾌해하나 [[나츠 드래그닐]]은 이 세계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박한다.
          * 시간의 틈새에 집결한 멸룡마도사들. [[아크놀로기아]]의 마력으로 갇힐 뻔 했으나 친구들의 부름을 듣고 극적으로 풀려난다. 드시 아크놀로기아를 타도하기를 맹세하는 이들. 그러나 일곱이나 되는 멸룡마도사를 눈앞에 하고도 아크놀로기아는 여유롭다.
          * 아직 일행이 큰 피해는 받지 않았지만 아크놀로기아는 그 이상이다.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리고 격하는데 고작 손가락 하나 까딱했을 뿐이다. 일행이 새삼 그 위력을 실감하는 동안 마룡은 오만함을 드러낸다.
          * 루시 일행은 길드 도서관에서 페어리 스피어의 발동법을 찾기 위해 책이란 책은 전부 뒤지고 있다.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팬서 리리]], [[샤를(페어리 테일)|샤를]]도 합류했다. 마카로프도 거들고 있으나 단서가 될만한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마카로프는 초대 마스터 [[메이비스 버밀리온]]가 분명 "있다"고 했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루시는 드시 그 기록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 페이데이 2/적 . . . . 4회 일치
         == 일적인 적 ==
         민간군사업체 머키워터의 용병들. 머키워터가 관련된 하이스트 초에 등장한다. 군인스러운 복장에 페이스가드가 포인트.
         === 인질구조 ===
         인질구조의 변종.
  • 폴리스 . . . . 4회 일치
         1893년에 파울러(W.W.Fowler)는 [[도시국가]](city-state)라는 말을 단어로서 폴리스를 표현하게 되었다. 이 표현은 프랑스어(cite-Etat), 이탈리아어(citta-stato)로 퍼져나갔으며,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도시국가(polis-kratos)라는 표현이 나타나게 된다. 면 독일에서는 '도시국가'와 '폴리스'의 차이점에서 주목하여 폴리스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농촌 지역은 코라(Chora)라고 불린다. 영토 내에 예속된 촌락(Kome)이 있는 경우도 있다. 폴리으스는 도시와 농촌이 한 단위로 연결되어, 시민들은 농촌에 경제 기을 두고 자급자족(Autarkeia)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폴리스는 완전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여 외국과의 상업거래가 필요했으나, 자급자족은 하나의 이상으로 여겨졌다.
         [[스파르타]]는 군사력으로 원주민을 복속하고 지배하여, 군사적 결합이 강고해지며 폴리스가 형성되었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소수의 정복자가 다수의 피정복민을 지배하기 위하여, 정복지를 일정한 면적으로 분할하여 농촌을 기으로 한 생활 기을 이루었으며, 구성원들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동등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 하이큐/222화 . . . . 4회 일치
          * 대로 블로커가 산개한 상태에서 네트 전을 지키는 것이 "스플렛 시프트".
          * 일적으론 스플렛 시프트의 효율이 좋지만, 대로 번치 시프트를 쓰는 측이 기량이 높고 경험치가 높다면 고확률로 공격지점을 예측하므로 어려워지게 된다.
  • 하이큐/223화 . . . . 4회 일치
          * 카게야마의 지적에 발하는 니시노야 유. 그러나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락된다.
          * 니시노야도 지지 않고 발한다.
          * 초엔 사이드에서 올리는 공격 때문에 분산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익숙해지면서 다테의 블록은 더욱 견고해졌다.
          * 츠키시미가 즉각 발하면서 "임금님은 기분이 언짢은 모양이다?"라고 빈정거린다.
  • 하이큐/225화 . . . . 4회 일치
          * 전적으로 카라스노의 기세는 올라갔지만 여전히 다테는 탄탄하고 견고한 위용을 보여준다.
          * 대로 아즈마네 아사히는 "나한테는 차라리 말해달라"는데,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공이 줄었다는걸 알면 충격을 받는 섬세한 타입이기 때문.
          * 다테의 후쿠타치 켄지는 오늘 카라스노가 전적으로 저조하다고 여기고 있다.
          * 다테의 전략은 서브로 폭격하고 블록으로 격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서브&블록
  • 하이큐/233화 . . . . 4회 일치
          * 선수들은 긴장감은 떨쳤으나 달라진 체육관 환경에 초 고전한다.
          * [[츠바키하라 학원]] 측은 2년 연속 출전에 2년차 출전을 맞이했다. 작년 이들은 첫 출전 당시 [[시라토리자와]]와 격돌한 듯 한데, 그때가 첫 전국이었던 마루야마는 "정신차려보니 돌아가는 버스"였다며 같은 악몽을 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츠바키하라 측에선 이들이 시라토리자와를 꺾고 올라왔다고 긴장하고 있는데 주장인 [[에치고 사키에]]는 "시라토리자와랑 붙는게 나았겠냐"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렇다고 하는 선수는 없다. 에치고는 경기 내용상 저들이 시라토리자와를 압도한 것도 아니며 세상엔 "우연"이란 것도 존재한다고 분위기를 바꾼다. 마루야마는 좀 팔랑귀인지 그런 설명을 듣고 나자 "우시와카랑 안 붙게 돼서 럭키"라고 태세전환한다. 사실 주장인 에치고는 "이긴건 이긴 것"이니 만큼 카라스노의 실력을 얕보지 않는다. 단지 "작년의 복"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격려한 것이다.
          * 테라도마리는 190cm에 이르는 장신. 다소 흐트러진 상황에서도 칠 수 있고 후위에서도 공격적이다. 우카이 코치는 사전에 "블록 위로 맞는 상황을 피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첫 공격부터 블록 위로 쳐대는 테라도마리. [[니시노야 유]]가 아슬아슬하게 막아낸다. [[아즈마네 아사히]]가 타나카에게 토스를 올리지만 평소보다 길게 올라갔다. 공은 츠바키하라에게 넘어가고 격이 스파이크를 막아내지 못한다. 츠바키하라의 연속득점. 스코어는 0대2.
  • 하이큐/241화 . . . . 4회 일치
          * 카라스노도 3학년 [[아즈마네 아사히]]와 [[사와무라 다이치]]가 주축이 되어 격.
          * 아즈마네의 2회차 서브. 마루야마는 큰소리쳤던 만큼 묵직하게 내리찍는 서브를 받아낸다. 공은 어떻게든 네트 쪽으로 올라가고 그때 에치고가 마무리한다. 에치고는 능숙한 밀어넣기로 츠키시마가 응할 새도 없이 득점에 성공, 벼랑 끝에 몰렸던 스코어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 다시 주고받는 랠리가 이어지고 카라스노의 결정적인 득점 찬스. 그런데 여기서 실수가 일어난다. 카게야마가 올린 공이 츠키시마의 타점을 빗나간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가 지쳤다고 생각하고 대로 츠키시마는 카게야마가 잘못 올렸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타점이 빗나간 것은 사실. 이대로 실점한다면 2세트는 끝난다. 바로 그 순간.
          사와무라가 공을 살린다. 일단 주먹으로 되는대로 공을 튕겨넣는데 이게 제대로 먹힌다. 네트 대편에 떨어지는 공.
  • 하이큐/243화 . . . . 4회 일치
          * [[후쿠로다니 학원]]은 경기초인데 어째서인지 [[보쿠토 코타로]]가 일찌감치 풀죽음 모드에 돌입하는데.
          * [[사와무라 다이치]]는 선수들을 이끌고 카라스노 응원단 쪽에 인사하려던 참에 졸업생 타시로와 쿠로카와가 와있는걸 눈치챈다. [[아즈마네 아사히]]나 [[스기와라 코시]]는 경기 중 쯤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와무라는 끝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자신이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 키요카와는 이렇다할 격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결국 결승점을 허용, 후쿠나가의 스파이크로 시합이 종료된다. 세트 스코어 2 대 0. 네코마 고교의 완승이었다. 히나타는 라이벌 고교의 승리를 기쁘게 바라본다.
          * 한편 E 코트의 [[후쿠로다니 학원]]은 경기가 묘하게 어그러진다. 에이스 [[보쿠토 코타로]]의 스파이크가 막히면서 그대로 카운터 어택을 허용, 스코어가 6대4로 뒤처진다. 하지만 경기 초이라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 하이큐/255화 . . . . 4회 일치
          * 대부분은 카라스노에 대단한 쇼크가 될 거라고 예측했으나 괴짜 콤비 [[히나타 쇼요]]와 [[카가야마 토비오]]는 물론 [[우카이 케이신]] 코치도 덤덤한 응.
          * [[카라스노 고교]]의 간판이자 필살기라 할 만한 괴짜 속공.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아츠무]]는 즉흥적으로 그 기술을 카피해서 [[미야 오사무]]와 성공시킨다. 거기에 격하러 온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원조. 이또한 아츠무의 천부적인 센스로 철통같이 리드 블록, 철저하게 봉쇄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스코어는 13 대 10으로 이나리자키의 3점 리드.
          * 그리고 이번 경기는 전일본 남자 대표팀의 감독 "히바리다 후키" 감독도 관람 중이다. [[하이큐/210화|카게야마의 전일본 유스 합숙]]에서도 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동행한 코치가 카라스노의 10번, 히나타를 거명하며 "키는 작지만 득점율이 높다."고 평한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필살기가 카피 당해서 풀이 죽은거 같다고 말하는데, 히바리다 감독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는 별다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카게야마하고만 선수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괴짜 속공을 아츠무도 올릴 수 있다는게 증명됨으로써, 대로 말하면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도 그 속공이 가능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코치는 그럴 정도는 아니지 않냐고 박하는데, 히바리다 감독은 또다른 증거도 가지고 있었다.
  • 한진희(1949) . . . . 4회 일치
         현재는 이미지나 무거운 톤의 목소리 덕에 [[높으신 분들]](회장이나 사장) 전문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엔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덕에 [[노주현]]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미남으로 불리며 드라마 남자 주인공역을 독차지했었다.[* 노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한진희씨, 임채무씨가 나오기 전까지 (미남 남자 주인공 역할은) 나뿐이었다. 내가 군대갔다오니까 한진희 나오고 조금 있다가 임채무 나오더라"하며 직접 한진희를 언급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노주현이 두 사람보다 형이고 선배이다.) 그러나 상술된대로 둘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임채무]]도 70년대 후부터 합류해서 이 두 사람의 영역을 나름 가져갔다. 정 말하자면 드라마 남자 주인공으로 3대 트로이카 정도 된다.][* 1990년대부턴 [[개그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노주현과 한진희가 함께 1980년대 초에 양복 모델을 한 적도 있다. <안녕 자두야> 대한전선 사건편에서 컬러 티비로 티비를 보면 티비가 더 재밌지 않겠냐는 자두의 질문에 자두 엄마 이난향이 "그래~저번에 혜리네 집에 가서 <결혼 행진곡>을 봤는데, 한진희가 더 잘생겨보이더라ㅋ"라고 답하며 언급하기도 했다. [[http://bbs1.telzone.daum.net/gaia/do/board/photo/read?articleId=573735&bbsId=A000010|#]]
         [[동양방송|TBC]] 출신이라서 그런지 1980년대까지는 [[동양방송|TBC]]를 언론통폐합 조치 때 인수한 [[한국방송공사|KBS]] 위주로 계속 출연하다가 1980년대 후부터 타 방송사에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청춘의 덫]]이, 70년대 후의 보수적인 국민정서로 인해 미완성인 상태로 종영되자 직후 만들어진 극장판 청춘의 덫(1979년)에서 출세를 위해 연인 윤희(유지인)를 배신하는 동우 역할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90년대 리메이크된 TV판에서 [[이종원]]이 맡았던 바로 그 캐릭터. 참고로 여주인공 윤희 캐릭터를 연기한 여배우는 [[이효춘]](TV판), [[유지인]](극장판), [[심은하]](TV 리메이크판)로 이어진다.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남일호]]라는 [[범죄자]] 블랙기업인을, [[문화방송|옆 동네]]의 내일도 승리에서는 천사 그 자체인 자상한 아버지 [[서동천]] 회장님을 연기하는데 이중인격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전 두 캐릭터가 성격이 대이다. 분명 동일인물이 연기를 하는데도 소름끼칠 정도로 [[서동천|절대 선]]과 [[남일호|절대 악]]으로 분리되어 있다. [[남일호]]가 한 짓을 [[서동천]] 회장님이 알면 참 볼만해질 것이다. 또한 [[남일호]]가 한 짓을, [[금 나와라, 뚝딱!]]의 [[박순상]]이나, [[왔다 장보리]]의 [[이동후]]가 봐도 볼 만해지실 것이다. 참고로 한진희보다 선배급 탤런트인 [[이정길]]도 2015년 즈음에 동시 방영된 내일도 승리의 전작인 이브의 사랑에서는 [[남일호]]처럼 악하게 생긴 악덕 블랙기업인 [[구인수(이브의 사랑)|구인수]] 회장을, 9월 쯤 방영된 [[내 딸 금사월]]에서는 [[서동천]] 회장처럼 인자하게 생기시고, 자상하고, 도덕관이 투철하고 투명한 생각을 가진 [[신지상]] 회장님을 연기한 적이 있다.
  • 헥사밀리온 . . . . 4회 일치
         중세 그리스의 성벽. 펠로폰네소스 도와 그리스 중부를 연결하는 비좁은 코린토스 지협에 세워진 성벽으로서, 헥사밀리온이란 '6마일의 성벽'이라는 뜻이다. 이 지협은 좁아지는 구간이므로 방어에 유리하여 성벽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최초로 건설한 것은 비잔티움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로 여겨진다. 그는 야만족에서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헥사밀리온을 건설했다. 헥사밀리온은 여러 차례 파괴, 수복을 복하며 오랫동안 펠로폰네소스의 방어 거점이 되었다.
         헥사밀리온이 마지막으로 활약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11세]](당시는 왕자)가 지금의 그리스 남부 펠로포넨소스 도에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령 [[모레아 전제국]]을 지배하던 시기에, 모레아 도의 방어를 위하여 헥사밀리온을 대규모로 수복하였던 것이다.
  • 혜은이 . . . . 4회 일치
         대표곡으로 《당신은 모르실 거야》, 《열정》, 《감수광》, 《제3한강교》, 《당신만을 사랑해》, 《뛰뛰빵빵》, 《독백》, 《비가》, 《파란 나라》 등이 있는 그녀는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라는 곡이 수록된 1집 음을 발표하여 데뷔하였다.
         [[2007년]]에는 혜은이의 팬들이 후원한 새 음 <강해야 돼(홍진영 작사/곡)>를 발표하고 콘서트, 무대 공연에 출연했다.
         [[2014년]]에는 데뷔 40주년을 맞아 [[3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열린 서울 공연(연세대)을 전석 매진으로 대성황리에 마쳤다. 4월부터 계획된 전국투어는 국민의 슬픔과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면 수정하였으며 발표 예정이었던 신보 음도 연기되었다.
         [[2015년]] [[5월 26일]] 데뷔 4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한 번 팬클럽이 음을 제작했고, 동료 가수 최백호, 후배 음악인 이채운(작곡가 이호섭의 아들), 김시연 등의 작품 헌정으로 정규 앨범에 앞선 미니 앨범 혜은이 Pre-Listening를 내놓았다.
  • 홍명희 . . . . 4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이후 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 내각 부수상 등으로 주요정치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전쟁에 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북한 부총리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부분 월북 인사들이 숙청당한 것에 비해 홍명희는 성공한 삶을 누렸다고 볼 수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와도 개인적으로 친하였다. 실제로 김일성은 벽초를 극진히 존경하고 예우했다. 홍명희의 계모는 홍명희를 따라가지 않고 괴산의 집을 지키다가 6.25 전쟁 중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는데 북한군이 후퇴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그 시신의 수습을 명령했을 정도였다.
         한용운이 홍명희보다 9살이나 많음에도 저렇게 서로 격의없는 것이 좀 의아할 수도 있을텐데, 지금은 1, 2년 차이로도 형동생이 나뉘지만 당시에는 위아래로 10년 정도는 그냥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 年長以倍(연장이배) 則父事之(즉부사지) - 나이가 배나 더 많은 사람에게는 아버지 섬기듯 하고, 十年以長(십년이장) 則兄事之(즉형사지) - 십년이 더 많으면 형님 섬기듯 하며, 五年以長(오년이장) 則肩隨之(즉견수지) - 오년이 더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되 조금 뒤서서 따라간다. 群居五人(군거오인) 則長者必異席(즉장자필이석) - 다섯 사람이 한데 모여 있을 때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드시 자리를 따로 하는 것이다. - 예기]그런데 홍명희의 장남 홍기문은 아버지와 열다섯 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자기 친구가 알고보니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행사 때 아버지 친구이자 자기 친구인 사람이 오면 대하기가 꽤 곤란했다고.
         [[괴산군]]에서 그의 생가와 업적을 조명하려 하자 주민들이 월북한 '빨갱이'가 뭐가 위인이냐고 격렬히 발하기도 했다.
  • 홍세화 . . . . 4회 일치
         === 생애 초 ===
         그러나 [[1967년]] [[10월]] 자퇴하였다. 그 뒤, 다시 재수하여 [[196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문리대에서 연극 활동을 하였다. [[1972년]]에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되었다가, 다시 복학하였으며, [[1977년]]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ref>동숭동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사회과학대학 소속으로 변경</ref>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사상가]][[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파시스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중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대한민국의 학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사회민주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체제자]][[분류:홍세화|*]][[분류:아웃사이더]][[분류: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한겨레]][[분류:민중민주파]][[분류:프랑스어-한국어 번역가]]
  • 화완옹주 . . . . 4회 일치
         정조 즉위 후 양자 정후겸이 세손시절부터 정조를 제거하려 하여, 그는 정후겸과 함께 이른바 "《명의록》의 의리"에 한 죄인으로 취급되어 몰락하였다. 양자 정후겸은 사사당하고 그는 옹주의 호를 삭탈당하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정치달의 처(정처)'라고 불리게 된다.
         {{인용문|“병신년 이후 24년 동안 이 대궐에 와서 이 날을 지날 때마다 어느 것을 보든지 부모님을 추모하는 생각이 솟구쳐 올라 어떻게 억누를 수가 없다. 병신년의 처분은 바로 선왕의 뜻을 밝힌 것이었고, 오늘 용서해 석방하려고 하는 것도 선왕의 뜻을 몸받아 하는 것이다. 만약 선조(先朝)의 성심(聖心)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 이때에 이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면 이 일에 대해 조정의 신하들도 드시 알아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니, 어찌 혹 다른 말이 있겠는가. 서울 집에 둔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진위 여부가 애매 모호한데 죄안(罪案)은 아직도 있기 때문에 오늘 드시 사유(赦宥)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치달 처(鄭致達妻)의 죄명을 없애고 특별히 완전히 용서하여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펴는 방도로 삼겠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1권, 1799년(정조 23) 3월 4일}}
         화완옹주는 영조의 여러 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영조는 옹주가 시집간 후에도 자주 그의 집에 거둥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8권, 89권, 112권 등. 영조가 해산을 앞둔 화완옹주의 집을 방문하거나, 환궁 도중에 옹주의 집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다</ref> 또한 문과에서 장원을 차지한 정치달의 형 [[정원달]]에게도 많은 특혜를 하사하였으며<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8권, 1756년 10월 2일</ref>, [[1757년]](영조 33) 정치달이 세상을 떠나자 곡을 하였고 이를 말리는 신하들을 파직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9권, 1757년 2월 15일</ref>
  • 황두진 . . . . 4회 일치
         평양 출신의 아버지와 원산 출신의 어머니 사이 서울에서 태어났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kr/books?id=_EHEAwAAQBAJ&printsec=frontcover&dq=%EB%8B%B9%EC%8B%A0%EC%9D%98+%EC%84%9C%EC%9A%B8%EC%9D%80+%EC%96%B4%EB%94%94%EC%9E%85%EB%8B%88%EA%B9%8C&hl=ko&sa=X&ved=0ahUKEwjwoLqgxa_bAhWDVLwKHeIxBacQuwUIKDAA#v=onepage&q=%EB%8B%B9%EC%8B%A0%EC%9D%98%20%EC%84%9C%EC%9A%B8%EC%9D%80%20%EC%96%B4%EB%94%94%EC%9E%85%EB%8B%88%EA%B9%8C&f=false |인용=그의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고무공장을 하는 사업가였으며 해방 전에 사업을 서울로 옮겨 성북동 청암장(현재의 길상사)에 살면서 일종의 사설도서관을 운영했고, 해방과 전쟁으로 이북의 사업기을 잃고 난 후에는 당시 창경원의 장서각 사서로 일했다.|제목=황두진,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p20|성=|이름=|날짜=|출판사=해냄|확인날짜=}}</ref>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수련하였다. 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ref>{{웹 인용|url=https://gwangjinlib.seoul.kr/gjinfo/recommendBookDetail.do?bookIdx=2149&recommendTypeCd=general|제목=가장 도시적인 삶|저자=황두진|날짜=|웹사이트=광진정보도서관|출판사=비}}</ref>
         발코니, 테라스, 옥상마당, 중정 등 건물의 비워져 있는 부분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이다. 채광과 환기,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특히 한도의 기후조건에 적합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공성 건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옥이다. 황두진건축은 그간의 한옥 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다공성을 확보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 다공성의 개념은 배치와 공간에서 시작하여 입면과 단면, 그리고 세부적인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porosit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다공성 porosity|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4/2015091400130.html?Dep0=twitter&d=2015091400130 |뉴스=조선일보|제목='구멍 숭숭' 벽돌 건물 차가운 유리도시 녹이다|저자=김미리 기자|날짜=2015-09-14|출판사=|확인날짜=}}</ref>
         * 2017 「가장 도시적인 삶-무지개떡 건축 탐사 프로젝트」, 비, {{ISBN|9788983718921}}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3회 일치
          * 올해도 8월이 찾아왔다. 장기회관을 찾은 [[니카이도 하루노부]]와 [[키리야마 레이]]. 니카이도가 게시판에서 가운 소식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 니카이도는 뭘 모른다는 식으로 대진표를 일일히 짚어주며 설명한다. 그 내용 상으론 니카이도와 [[소야 토지]] 명인이 한 조로 편성, 니카이도가 1승만 거두면 2회전에서 대전한다. 이거야 말로 니카이도가 꿈꾸던 대결. 니카이도는 자기가 키리야마보다 먼저 소야 명인과 공식전을 치르게 됐다고 으스댄다. 키리야마는 공식전은 자기가 먼저 했다고 항변하지만 니카이도가 그건 기념 대국일 뿐이지 공식전도 뭣도 아니라고 박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또 하나 니카이도가 기대하는 것은 키리야마와 대 블록에 있다는 것. 즉 둘이 대결한다면 대회 결승이다. 게다가 그가 결승까지 나갔다는건 무려 "소야 명인을 쓰러뜨린 기사"라는 얘기가 되어버린다. 니카이도는 엄청 흥분해서 키리야마에게 절대 지지 말고 결승에게 붙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키리야마는 드라이한 톤으로 "왜 네가 소야 명인을 이겼다는걸 전제로 하냐"고 딴죽을 건다.
  • DC's Legends of Tomorrow . . . . 3회 일치
         [[DC 코믹스]] 기 드라마이며 [[애로우버스]] 소속 드라마 중 하나다. 시즌 1이 끝나고, 시즌 2가 방송 중. 방송국은 [[애로우]], [[플래시(드라마)|플래시]]와 동일한 [[The CW]].
         타임 마스터 [[립 헌터]]가 [[달 새비지]]를 저지하기 위해 과거로 와서 히어로들을 모아 대항한다는 내용. 그러다보니 현 시대의 히어로들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기도 하기에 시간여행물이기도 하다.
          * 달 새비지
  • MC메타 . . . . 3회 일치
         90년대 중부터 [[블렉스]]라는 하이텔 PC통신 흑인음악동호회에서 활동했고, 거기서 [[나찰]]과 만났다. 97년도 블렉스 멤버들과 '푸른굴 양식장'이란 공연장에서 공연하다가, 98년부터 '푸른굴양식장'이 이름을 바꾼 클럽 [[마스터 플랜]]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MC 메타는 [[SHOW ME THE MONEY 2]]에 메타크루의 수장으로 출연했다. 인터뷰에서 시즌 1에 불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즌 1에 나왔던 래퍼들이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것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일단 ~~이현도와 비교되면서~~ 출연자를 대하는 태도나 심사평에 대한 응은 좋다.
         가리온의 앨범이 워낙 긴 주기로 발매되는데--1집 7년, 2집 6년--, 1집 전까지 피처링 참여가 드물었던 나찰에 비해 MC 메타의 경우 여러 피처링 작업으로 입지를 다진 면이 있다. 때문에 2000년대 중에 MC 메타의 피처링 트랙들을 모은 앨범이 그 당시의 한량사에서 추진된 적이 있으나, 각 소속사에서의 판권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로 실제 발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 강원 FC . . . . 3회 일치
         원래 강원도는 축구 열기가 정말로 높은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강릉시에 위치한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와의 대결인 [[강릉 축구 정기전]]이 고등학교 축구경기임에도 강릉시의 단오제 행사 중,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890|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K3리그]]에 참가하는 [[춘천시민구단]]의 개막전 3000명 관중 사례만 봐도 강원도의 축구열기는 분명 전국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역적으로 산세가 험해 원정을 가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팀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과거 천안 일화가 천안시의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강릉으로 연고를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타 팀들이 "연고 이전은 상관 없는데, 강원도는 불편해서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는 요청이 들어왔었던 사실은 제법 유명하다. 결국 일화가 강릉이 아닌 성남으로 옮기자 이를 기는 타 구단들의 입장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초기 선수단 구성에 이을용, 정경호가 포함되어 상당한 이슈를 끌기도 했다. 이 둘은 강릉상고[* 現 강릉제일고] 출신으로 널리 퍼진 명성뿐만 아니라 농상전으로 강원도민에게 친숙한 선수들이었기에 초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 갸루 . . . . 3회 일치
          * 만바(マンバ) : 야만바의 진화형. 2003년 부터 2012년 쯤 까지 유행. 야만바보다 더욱 진하게 태닝을 하고, 이를 곤구로(ゴングロ)나 바치구로(バチグロ)라고 부른다. 메이크업은 아이라인 등이 더욱 하얗고 넓게 되어 거의 페이스 페인팅에 가깝다. 바비인형 같은 패션을 한 스타일은 바(バンバ) 세레브(セレブ)계 패션을 도입한 것을 세렌바(セレンバ)라고 부른다.
          * 시로갸루(白ギャル) : 2000년대에 나타난 스타일. 서퍼 패션과 LA패션에 영향을 받아 태닝을 좋아하던 이때까지의 갸루 패션과는 대로, 하얀 피부와 금발에 가까운 염색 등으로 미백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 코갸루(コギャル), 마고갸루(マゴギャル) : 1990년대 중-말엽까지 쓰이던 단어. 코갸루는 갸루패션을 하는 여고생, 마고갸루는 역시 갸루패션을 하는 여중생이다. 여담으로 코는 아이, 마고는 손자를 뜻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사장된 용어이다. 다만 해외에서는 Kogal이라는 용어가 아직 쓰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8화 . . . . 3회 일치
          * 그 프로그램의 굉장한 팬이었던 키리에. 하지만 고등학생이나 돼서 그런걸 본다고 하면 응이 나쁠거 같아서 일코를 감행한다.
          * 일인이라면 알 리 없는 자잘한 요소까지 아는걸 보니 어지간히 오덕.
          * 전에 출판사에서 편집자랑 스승님(코마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깬다는 응만 돌아왔던 흑역사가 있는 탓에 키리에는 자중하기로 한다.
  • 검은 조직 . . . . 3회 일치
         일단 코난의 주요 악역이자 최후의 적으로서, 잡힐듯 말듯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는 중. 얘들이 잡히면 만화가 끝날 것 같다는게 일단 일적인 의견.
         정말 무서운 점은, '''어차피 얘들이 딱히 없어도''' 코난 월드에서 살인은 일상사이며, 신이치는 정기적으로 살인범을 잡고 다녔을 것이고, 얘들이 없어진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초에 작중에서 '''검은조직이 죽인 사람보다 그냥 일인이 빡돌아서 죽인 사람이 훨씬 더 많다.'''--잡든 말든, 딱히 변하는건 없다.--
         오히려 검은 조직은 상당히 신중하게 처신&보기에도 수상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이 동네의 일 살인범은 아무리 봐도 멀쩡해보이던 인간이 갑자기 분노하면 트릭을 써서 사람을 쓱싹 해치우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 경순왕 . . . . 3회 일치
         [[935년]] 10월에 경순왕은 민심이 신흥 [[고려]]로 기울어짐에 따라,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 하기로 결심하자, [[마의태자|태자]]와 막내아들 [[김덕지]] 및 이순유(李純由) 등이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였으나, 경순왕은 이들의 대를 뒤로하고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에게 국서를 보내 [[고려 왕건]]에게 항복을 청하였다. 일설에는 어전에서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두왕자는 양국(讓國) 대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통곡하며 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그 길로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이후 [[마의태자|태자]](太子)는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풀을 캐어 먹다가 일생을 마쳤는데 후대에 [[마의태자]](麻衣太子)라 부르며, 둘째아들 황(굉,나주김씨) 왕자는 [[화엄종]]에 귀의하여 중이 되어 법수사(法水寺)·[[해인사]](海印寺)에 주석(駐錫)하며 망국의 한을 달랬는데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한다.
         그가 죽자 그의 시신을 다른 [[신라]]의 왕릉이 있는 [[경주]]로 운구하려 하였으나, [[고려]] 왕실에서 왕의 영구는 도성 밖 100리를 넘을 수 없다고 하며 대함으로써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현재의 묘자리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의 묘소는 [[임진왜란]] 이후 실전되었다가 [[1747년]](영조 23) 다시 되찾아 정비하였다.<ref name="dk01"/> 경북 경주 황남동의 숭혜전, 하동 청암면의 경천묘 등에 제향되었다.
  • 고성국 . . . . 3회 일치
         [[고려대학교]] 정외과 강사 시절인 1986년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위 혐의로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270032921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617&publishType=00020</ref> 당시 공안당국은 다산기획 대표이던 고씨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좌익]] 서적 100여 권을 들여와 번역한 뒤, 이를 [[백산서당]] 대표 이범(현 [[흥사단]] 일본특별위원장)에 넘겨 대학가와 시중에 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4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4&officeId=00020&pageNo=1&printNo=19855&publishType=00020</ref> [[1988년]] [[2월 27일]]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된 사면복권에서 특별사면복권 대상자가 되어 풀려났다.
         2013년부터는 여러 방송에 다수 출연해 뉴스해설, 정치평론 등을 맡았다. 이후엔 영역을 넓혔다. tvn 오마이갓의 경우 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고, tvn 빨간의자는 시사 보다는 일적인 토크쇼에 가까웠다. 한편으로는 친박근혜에 가깝다는 논란 때문에 KBS '글로벌 대한민국', '시사 진단'의 진행자로 섭외되었다가 자진 하차하는 일도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28|제목=KBS, '친박평론' 고성국 MC 기용 철회 - 미디어스|언어=ko|확인날짜=2018-04-10}}</ref> 2017년 들어서는 출연하던 대부분의 방송을 그만두게 된다. 특히 고성국 라이브쇼는 [[방통심의위]]의 지적을 받고 TV조선에서 자체 폐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5916|제목=방통심의위에서 ‘변화’ 약속한 TV조선, 얼마나 변할까|성=미디어오늘|날짜=2017-03-29|뉴스=미디어오늘|언어=ko|확인날짜=2018-04-10}}</ref>
         * 《동북아경제권과 한도 발전전략》(공저), 길벗, 1994
  • 고아성 . . . . 3회 일치
         === 음 ===
         ! 음
         * 곽태훈 부장의 Limited Edition '홍대입구' (참여)
  • 고인범 . . . . 3회 일치
          * 2012년 TV조선 월화드라마 [[한도(드라마)|한도]]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순정에 하다]] (특별출연)
  • 곽희성 . . . . 3회 일치
         * [[2012년]] [[TV조선]] 월화드라마 《[[한도 (드라마)|한도]]》 .... 민동기 역
         == 음 ==
  • 권영해 (1888년) . . . . 3회 일치
         그리하여 그는 1919년 4월 25일을 기하여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 관련으로 징역 1년 10월형을 언도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4월 26일을 기하여 특별사면 석방되었다.
         [[분류:1888년 태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안동 권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공주의자]][[분류:한국독립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그랜드 테프트 오토 2/무기 . . . . 3회 일치
         == 일 무기 ==
          단발 권총. 일 갱단원이나 SWAT 대원이 들고 다닌다.
          쏘면 맞은 사람만 응하는 기관총. FBI 요원이 들고 다닌다.
  • 김대륙 . . . . 3회 일치
         6월 12일 [[SK 와이번스|SK]]를 상대로 데뷔 첫 선발 출장을 했지만 결과는 2타수 무안타.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방송사에서도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U_0DjYducY|#깔끔한 도의 수비, 김대륙]]
         백업으로 간간히 나오고는 있다. 주로 3루나 유격쪽으로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신본기]]가 초 타격 부진이 심각할 때 잠깐 주전으로 나왔지만 타격을 그 신본기보다 못해서 영원히 백업으로 남아있다. 향후 타격 발전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까지 1군에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 수비는 상당히 잘하지만 그 절을 공격이 못 받쳐주니 문제. 수비는 왠만한 사람들이 다 인정하지만 공격 툴은 주루 빼고는 많이 안 좋은 편이다
  • 김대호(축구선수) . . . . 3회 일치
         || '''모교''' || 야월초 - 청구중 - [[포철공고]] - [[숭실대]] ||
         처음에는 센터백이 주 포지션이었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2010시즌 5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측면으로 위치를 옮긴 2011년 후기부터 [[황선홍]] 감독의 눈에 띄기 시작, 24라운드 광주 FC와의 경기에서 5:1 승리에 기여하며 생애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게, 수비적인 능력이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센터백으로 실패한 게 이 때문. --공격도 그리 매끄럽진 않잖아-- 풀백으로 뛰면서 공격적인 재능이 꽃핀 덕분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수비 쪽에서 단점은 여전. 피지컬로 비벼서 뺏어내는 스타일이라 카드수집이 엄청나다. 사실 2013년도 이런 단점 때문에 박희철과 번갈아가며 나오다가 그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주전이 된 경우. 이전에는 [[황지수]]가 이 부분을 잘 메꾸어줬지만 2014년 초 황지수가 부상으로 빠진 사이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는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 [[손준호]] 등이 주전으로 뛰는 바람에 그의 단점이 극대화, 수비가 좋은 [[박희철]]과 5월부터 급성장한 [[박선주(축구선수)|박선주]]에게 밀렸고 2015년에도 초에 주전으로 출전하다가 7월 이후에는 여름 이적 시장에 이적한 [[최재수]]가 대신하면서 사실상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 김만수(정치인) . . . . 3회 일치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방향을 바꿔,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홍건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본래는 3차례 연속 낙선을 하고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정계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일어섰다고 당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여론의 전과, 현직 시장이었던 홍건표의 연이은 실정으로 인한 심판론으로 인해 22%, 7만표 차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당선되었고, 드디어 선거 첫 승리를 맛봤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 출마 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부천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다만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면 3월까지 시장직을 사퇴하여야 하는데, 본인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중도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번 공헌했고, 실제로 공직자 사퇴시한까지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차기 총선 출마 쪽으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였던 소사구의 현직 국회의원인 김상희나, 자신의 선임이었던 오정구 국회의원 원혜영, 서울에서 부천 원미구 을로 옮겨온 동교동계 중진 설훈 의원 모두 고령이라 다음 총선 공천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일찌감치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네 번째 국회의원 도전을 준비하는 것. 아마도 본래 지역구가 소사구였던 지라 차명진 전 의원과의 3번째 대결이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인이 시장직을 재임하면서 2016년 일구를 폐지했기 때문에 갑을병정식으로 선거구 명칭 변경은 물론 선거구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 2006 || [[2006년 재보궐선거|상기 재보궐선거]] (경기 부천 소사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 11,712 (30.32%) || 낙선 (2위) || [* 전임자 김문수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로 사퇴] ||
  • 김시진 . . . . 3회 일치
         [[2008년]]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에서는 [[이광환]]을 경질하고 그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구단과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8억원에 계약을 맺으면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8년 [[10월 10일]] 감독 취임식을 가졌다.<ref>《한겨레》, 2008, 10, 11.</ref> [[2009년]]에 6위를 기록하였지만,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치열한 4위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시즌 초에는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특히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와 [[강정호]], [[황재균]] 등의 젊은 선수들은 [[이택근]],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의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파동|트레이드 파동]] 때 "트레이드 불가"로 못박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2009년]] [[8월 6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감독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시즌 초 상위권에 있었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경질되었다.
  • 김정혁 . . . . 3회 일치
         시즌 초에는 3루수로 출장하다가 [[정현(야구선수)|정현]]의 3루 출장 비율이 늘면서 1루수로 출장했다. 8월 초부터 결장하면서 2군 시즌을 마쳤지만, 0.302의 타율로 2011년 이후 3년 만에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10월 8일 [[조동찬]]이 허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정식선수로 재전환됨과 동시에 3년 만에 1군에 올라왔다.
         8월 18일 [[이승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9일 두산전에서 9회초에 2사 후 2루타를 친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2사 1,2루 상황에서 [[김재현(1991)|김재현]]의 좌전 안타를 치자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하며 추가점을 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면 타격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면서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 김태룡(정치인) . . . . 3회 일치
         1963년 [[국민의당(1963년)|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 민주당, [[민중당(1965년)|민중당]] 등의 야당에 몸담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김용태(1926)|김용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용태 후보와 [[민주통일당]] [[박병배]][* 재검표로 당선 확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되었다. 1977년 [[이철승]] 대표최고위원의 온건노선에 발하여 신민당야당성회복투쟁위원회 공동의장 겸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광역시|대전시]] [[중구(대전)|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강창희]]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1987년 1월 [[홍사덕]]의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4월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고 통일민주당에서도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대전광역시|대전시]] [[중구(대전)|중구]]) || [[신한민주당]] || - || '''당선'''[* [[민주정의당]] [[강창희]] 후보와 동 당선] || ||
  • 김필곤 . . . . 3회 일치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3월 31일에 모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판자로 가려줘 자동차관리법 위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모텔 종업원에게 항소심에서 "해당 조항에서 처벌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 근거 조항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의 일적인 특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관리와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일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7248.html]</ref> 7월 8일에 "지하철에서 장갑을 팔았다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한다"며 강제연행하려는 서울메트로 질서기동팀 소속 공익근무요원을 폭행한 홍모씨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한 피고인을 강제 연행하려 하거나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체포한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의 정당한 직무상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에 대항해 폭행을 가했다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0907080856516671?t=y]</ref> 12월 9일에 비자발급 심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부러 직무를 포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전 영사 황모씨에 대해 "중국 현지 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가 보완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자의적인 비자 발급으로 불법 체류자가 생긴 만큼 죄질이 나쁘지만 그동안 국가에 헌신해 왔고 나태한 마음으로 범행을 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09120911405515959&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2010년 2월 11일에 면허정지 기간에 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되자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차를 몰아야 성립하는데 최씨가 정지처분 통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경찰 당국이 통지를 대신하는 공고를 거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면허 정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002110848419738?t=y]</ref>
  • 김현성(가수) . . . . 3회 일치
         1978년 1월 10일 ([age(1978-01-10)]세).[[전라남도]] [[진도군]] 6집까지 발표하면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을 풍미했던 [[가수]].
         제물포고등학교40회 졸업생이다.[* [[김광진(가수)]]은 27회, [[지상렬]], [[김구라]], [[염경환]]은 33회다.]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 2학년 재학 중이던 1997년 제18회 [[강변가요제]]에서 '스톱'을 불러 금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그후 [[김형석]]에게 스카우트 되면서 소원, 이해할께, heaven 등의 히트곡을 남겼으나 [[성대결절]]로 인해 한동안 음악활동을 하지 못했다. 블로그의 글이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야기한 것에 따르면 2000년대 중 연예계를 은퇴했으며 이후 여행 및 저술 활동등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참고로 [[2015년]] 기준 미혼이라고...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유희열팀의 슈가맨으로 출연하였다. 슈가송은 대표곡인 'Heaven'. 여전한 [[외모]]와 [[미성]]을 뽑냈다. 초부에는 [[30대]]가 가장 많이 알았고 후렴구가 터져나온 직후 [[20대]] 이상에게는 확실히 기억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10대 쪽에선 단 2개의 불이 들어왔다. 또, [[유희열]]의 추천으로 '소원'을 불렀으며 [[10대]] 중에는 [[엔(빅스)|엔]]을 닮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거의 삼촌뻘인데 [[엔(빅스)|엔]]이 김현성을 닮은 거겠지..~~ ~~본인도 자주 들었다고 자화자찬한건 덤~~
  • 김현철(교수) . . . . 3회 일치
         2015년 1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최고위 경제분석과정 강의에서 “수출 부진과 가계부채 증가로 한국 경제는 파국에 접어들고 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경제]]가 1990년대 중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일본경제와 닮았다고 평가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소니가 삼성 때문에 쓰러졌다고 생각하지만 소니는 삼성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무너뜨린 것"[* 소니가 안 무너졌다는 론은 있다. 오히려 등에 성공했다는 지표도 있다. [[http://it.chosun.com/news/article.html?no=2819018|링크참조]] 그러나 맥락상 포인트는 소니가 무너졌다 안무너졌다의 단순 팩트 체크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법인세율 인상 정책 때문에 소니가 피해를 입었다는 맥락이다.]이라며,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을 망가뜨리게 되고 나아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혜선(배우) . . . . 3회 일치
         요즘은 억센 아줌마 캐릭터로 알려진 [[배우]]지만,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과 [[조선왕조오백년]]-한중록,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남자 청소년들에게 김혜수, 하희라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기세를 이어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히로인]]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93년의 대히트 드라마였고 그녀의 연인 역할로 나왔던 주인공이 그 유명한 터프가이 [[최민수]]였다.[* 최민수와는 앞서 1991년 [[무동이네 집]]에서 커플로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왔었다. [[무동이네 집]]에서의 최민수가 이후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을 연상케 하는 허당 이미지였다면 [[걸어서 하늘까지]]의 배역은 전형적인 터프가이 항아였던 것에 비해, 김혜선은 두 작품 모두 청순가련 형 여주인공이었다.] 더불어 김혜선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었다. '김혜선 과거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 그 시절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80년대 후에 다른 동료 연기자들과 같이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1963902|음을 낸 적이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3회 일치
          * 2회전은 재해 현장에서 바이스탠더[* 현장에 있던 사람이란 뜻으로 일 시민을 뜻함]로서 구조활동을 하는 시험.
          * 자기가 뭔가 했냐고 묻는데, 요아라시는 역시 응이 날이 서있다.
          * 우라라카 오챠코는 미도리야의 모습을 보고 중요한 상황임에도 개인적 감정으로 멍때리고 있던 자신을 성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8화 . . . . 3회 일치
          완전히 몰아넣었다고 생각했지만, 미도리야는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안면으로 향하던 공격을 피하고 격한다.
          * 격을 맞은 바쿠고가 쓰러지자 미도리야가 손을 내민다. 그때 어린시절처럼. 그리고 바쿠고도 그때처럼 뿌리친다.
          *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그 이상으로 고뇌하고 끌어안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달려드는 바쿠고를 바라보며 이 싸움엔 의미 같은건 없을지 모르고 승자도 패자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진심으로 격을 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3회 일치
          *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자와 쇼타]]는 본격적으로 별 조회시간을 통해 본격적인 신학기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아시도 미나]]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잡담을 한다. 대담하게도 [[아스이 츠유]]를 돌아보며 "그 얘기"가 없다고 소근거린다. 아이자와가 그걸 놓칠리 없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럼 웅영제 때 고생한건 의미가 없는거 아니냐고 아우성친다. 너무 격한 응이라 [[사토 리키도]]가 진정시킨다. [[이이다 텐야]]도 그런 제도가 있으면 웅영제 때 스카웃을 받기 위해 아득바득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자와의 설명으론 바로 그 웅영제에게 쌓은 인맥에 기한게 인턴제도다. 게다가 이건 수업도 직업 체험도 아니라 "진짜 히어로 활동"이기 때문에 미리 지명을 받지 않은 학생은 인턴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 본래 사무실 별로 인턴을 모집하는 제도였지만 웅영고 학생들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다소 편법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아이자와의 설명을 들은 우라라카는 흥분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앉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3회 일치
          * 다음주 아침. A은 주말을 보충강습으로 보내고 상처투성이로 복귀한 [[바쿠고 카츠키]]와 [[토도로키 쇼토]]로 말이 많다. 임시면허 보충강습이 엄청 스파르타라 이꼴이 되었다는데. 그리고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가 공결이다. 인턴활동과 관련된 모양. 그리고 [[키리시마 에지로]]도 결석이다. 그도 인턴과 관련된 걸까?
          * [[미네타 미노루]]는 미도리야에게 인턴활동이 어땠냐고 물으며 야한 여성 히어로는 없었냐는 흑심 가득한 질문을 던진다. [[아시도 미나]]가 은근슬쩍 끼어든다. 바쿠고는 자기가 뒤떨어진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는걸 병적으로 기피한다. 은 언제나처럼 부산스럽지만 미도리야는 붕 뜬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수업 중에도 초조함이 더해져 집중이 되지 않고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연발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자와 쇼타]]에게 쓴소릴 듣기도 한다.
          올마이트는 사람들이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이상 가야한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나이트아이는 냉정하게 충고한다. 폐를 당한 그는 전처럼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상태로 계속 히어로를 해도 보는 사람들이 괴로울 뿐이며, 전설인 채로 은퇴하는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네즈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원 포 올의 후계자는 웅영고에서 찾으면 된다고 설득에 함께한다. 나이트아이는 드시 그를 닮은, 밝고 강하며 친근감 있는 인물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3회 일치
          * [[올마이트]]가 [[미도리야 이즈쿠]]을 후계자로 정했을 때 거기에 발한 [[서 나이트아이]]는 발심으로 [[토오가타 밀리오]]를 육성하기 시작한다.
          * 올마이트는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미도리야를 후계자로 정했을 때 당연하겠지만 [[서 나이트아이]]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무개성의 중학생이 그 주인공이라고 하자 나이트아이가 크게 발했다. 그런 아이가 뭘할 수 있냐는 나이트아이에게,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의 "남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마음 만으론 구할 수 없고 달리 적합한 인간은 얼마든지 있을거 아니냐고 정론을 펼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3회 일치
          * 궁지에 몰린 빌런은 팔뚝에서 칼날을 뽑아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키리시마의 경도를 이길 수 없었다. 칼날이 깨져나가고 키리시마가 "레드 카운터"로 손쉽게 때려눕힌다. 키리시마는 다소 경멸적인 어조로 "얌전히 잡혀라 권총자식"라고 내뱉는다. 그런데 널부러진 빌런이 일어날 생각도, 다시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상대의 응이 예상과 다르자 키리시마는 금방 당황한다.
          * 키리시마가 한 발 늦게 약의 존재를 눈치챘지만 대는 늦었다. 빌런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이 뒤집히고 몸을 비튼다. 키리시마가 무슨 약을 놓은 거냐고 묻지만 대답이 없다. 비명이 이어지더니 한순간 응이 멈춘다. 정상으로 돌아온 걸까?
          어쨌든 키리시마의 고민은 이렇다. 지금 자신에겐 이거다 할 만한 뭔가가 없다. 프로가 됐을 때 바쿠고나 친구들과 어깨를 마주하려면 뭘하는게 좋을까? 듣고 있던 세로가 "너 좀 비겁하다"고 디스한다. 키리시마는 한탄이고 궁리라고 발한다. 그때 의외로 바쿠고가 그럴 듯한 조언을 시작한다. 자신들과 맞서니 뭐니하기 전에는 "흔들리지 않는 기마" 같은 소릴 하지 않았냐면서. 그리고 그는 키리시마가 올마이트의 최후, 카미노에서의 격전에서 보여준 모습을 높이 평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3회 일치
          * 밀리오와 미도리야는 자리를 박차며 "다음에는 드시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이것이 나이트아이가 이번 작전의 목표로 삼는 바였다.
          * 레게풍의 프로 히어로는 이 자리에 프로 이외의 인물이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꼬맹이가 있으면 회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자 패트껌이 발하며 "이들은 '''슈퍼''' 중요 참고인"이라며 키리시마와 타마키를 소개한다. 정작 둘은 영문을 모르는 상태. 특이 타마키는 이 장소 자체가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이번에야 말로 드시 에리짱을, 보호하겠어요!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3회 일치
          * [[패트껌]]의 선언대로 창과 방패의 대결은 방패와 방패,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의 승리로 끝났다. 키리시마가 지키고 패트껌이 완성한 최강의 창이 텐가이의 배리어도 랏파의 포텐셜도 뚫고 대편 벽에 커다란 크리에이터를 만들었다. 적들의 완패. 키리시마가 의식을 찾은건 그때였다. 그러나 아직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곁에 있는 패트껌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지경에서도 키리시마는 "패트... 지키겠어"라고 중얼거린다. 패트껌은 감격하며 새삼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바보취급하는 건가? 패트껌은 함정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랏파는 자기가 그런걸 설치할 법한 남자냐고 문한다. 확실히 그럴 만한 두뇌는 아니다.
          * 패트껌은 박할 기분도 별로 나지 않았다. 일단은 이제 랏파는 체포될 거고, 감옥행이 될 테니 재시합이고 뭐고 그냥 진거라고 말해 본다. 랏파는 그것도 알바가 아니다. "아무도 죽지 않으면 무승부", 그런 지론이었다. 그는 패트껌이 움직이지 않자 먼저 문으로 향한다. 그쪽이 의무실인 모양이다. 랏파는 기인이긴 하지만 기인 나름의 방식을 지키는 부류였다. 욕구에 충실한 인간인 만큼 하는 말이 딱히 숨기는게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이나 키리시마가 이 몸으로 일행과 합류하기는 글렀다. 패트껌은 키리시마를 안아든 채로 랏파의 뒤를 따랐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3회 일치
          "뭘하면 되느냐"는 질문에, 오버홀은 일 조직원처럼 지시에 따라주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간단한 대답 뒤에는 "그러기 위해서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에 대해 알려달라"는 속이 뻔한 단서가 붙어왔다. 명목은 "만일의 때"가 왔을 때 연계를 쉽게 하기 위한 정보교환이었다. 토가는 우선 튕기고 본다. 정말 그런 거라면 "만일의 때"가 왔을 때 알려주겠다는 것. 이유는 오버홀 만큼이나 간단했다.
          대답은 당연히 No. 토가와 트와이스 모두 망설임없이 답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대답일지? 적어도 오버홀은 그걸로 만족했다. 그들을 시에핫사이카이의 새 식구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 뿐. 수배범인 그들을 자유롭게 둘 수 없으니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지하의 거주 공간에서 생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둘이 연금이 아니냐고 발하지만 오버홀은 "신용할 수 있게 되면 좀 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공수표 같은 말로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이리나카가 우쭐거린다. "언제까지 그런 태도면 안 된다는 말"이라며 으스댄다.
          * 그 시점보다 조금 전. 밀리오는 보기보다 발이 빨랐다. 대로 오버홀이 발이 느린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전력질주를 거듭한 밀리오가 따라잡는데 오래걸리지 않을 만도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리키야는 [[이리나카]]에게 밭은 개성 부스트 약물을 복용한 상태. 제압된 상태임에도 공기를 흡입하는 것만으로 주변에 있던 경찰과 류큐팀의 활기를 흡수하게 된다. 기운을 되찾은 데다 구속까지 풀리자 다시 날뛰는 리키야. 대로 활력을 빼앗긴 류큐팀과 경찰들은 기운이 없어서 대피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 류큐가 드래곤폼으로 리키야를 붙들고 우라라카가 상공으로 띄운다. 그걸 아스이가 혀로 잡아끌고 십자로까지 이동. 네지레가 그 위에서 전력을 다한 충격파를 날려 류큐째로 리키야를 바닥에 처박아 버린다. 류큐와 거대화한 리키야의 무게 때문에 지이 무너지면서 단숨에 미도리야와 [[오버홀]]이 격전 중인 장소로 떨어진다.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상"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상태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상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3회 일치
          * [[빌런 연합]]은 [[마그네]]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 "자력"을 발동, 자기를 기준으로 일정 범위 안의 남성에겐 S극을, 여자에겐 N극을 부여해 자석처럼 붙이거나 발시키는 개성이다.
          * 자력의 발력으로 미도리야 일행을 추적하려 하나 그때까지 쓰러져 있던 마운틴 레이디가 기상, 빌런연합을 몸으로 막는다.
          * 또 한 번 발력으로 추격하려는데, 이번엔 [[그랜토리노]]가 따라와 막아선다.
  • 남명학파 . . . . 3회 일치
         이상소는 아마 자신의 스승을 깊이 존경했던 정인홍이 자신의 스승이 학문적으로 퇴계에 비해서 전혀 밀리지 않는데 오히려 그가 문묘에 모셔지지 못하고 학문적으로 대방향이었던 퇴계가 모셔진것에 불만을 품어 낸것이지만, 이로 인해 두학파의 사이는 거의 완전히 갈라졌다.
         붕당이 형성되면서 이들은 처음에는 퇴계등 기타 영남학파와 함께 [[동인]]을 형성했으며, 이후 정철의 처리문제로 인해 류성룡등 퇴계파와 갈라져 북인을 형성하다. 이후 유영경등 일부 소북인사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결국 대북으로 완전히 갈라진다. 선조 말기 이들은 후계로 [[광해군]]을 지지했고, 광해군의 가장큰 지지세력으로 남았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광해군 즉위뒤 유영경등의 탁소북이 제거되고 난뒤, 그들은 청소북과 함께 광해군 시기 정국을 장악했으며, 광해군 중기때엔 아예 국정의 중심을 대북이 잡기까지 한다. 아예 광해군 말기때는 그가 대북을 견제하기 위해 서인의 세를 키운 행적까지 보일 정도였다. [* 그 보답은 인조정으로 돌아오지만....]
         그러나 인조정으로 인해 광해군이 쫓겨난뒤, 남은 대북들은 정인홍등 중심인물들이 모두 참수당하는 등 철저하게 서인들에게 숙청되었고, 그결과 정국에서 완전히 제거된다.
  • 노경주 . . . . 3회 일치
         '''노경주'''(盧敬柱, [[1965년]] [[3월 14일]])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84년]] [[문화방송|MBC]] 1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으며 [[1984년]]부터 [[1989년]]까지 [[수사장]]에 여순경으로 출연하였다.
         * [[수사장]] 여순경 역 (1984년 - 1989년 [[문화방송|MBC]])
         * [[배의 장미]] 정화 역 (1990년, [[문화방송|MBC]])
  • 니엘(가수) . . . . 3회 일치
         셀카고자 소리를 듣는 멤버인데 셀카를 정말 안 찍다 보니 팬들 입장에선 셀카고자여도 좋으니 제발 그냥 찍어달라는 응이 대부분이다.
         2016년 5월 일인 여자친구와 열애설 스캔들이 났으나 자필 사과문을 공개하며 지인일 뿐이라고 부인하였다.
         ||<#FBF2EF><:> [[인피니트H#s-3.2|Fly Again]] ||<#FBFBEF><:> '''oNIELy''' ||<#F5FBEF><:> [[빅스/음 목록#s-1.2.5|Boy's Record]] ||
  • 단종 . . . . 3회 일치
         즉위 초에는 주로 의정부의 보좌를 받아 정치를 행했는데, 단종실록 초기에는 의정부의 논의를 그대로 따르는 기록이 무척 많다. 하지만 즉위년 후에는 점차 스스로 하는 정치가 많아지며 즉위 1년 쯤에는 이미 의정부의 의견에도 론하고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즉위한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비롯한 정치적 대파들을 숙청하고 실권을 잡으면서 사실상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고, 그 후 금성대군과 손잡고 수양대군을 견제하려다 실패하고 나머지 친위세력이 모조리 거세된 뒤 이 일을 빌미삼은 수양대군 일파의 압력에 밀려 결국 즉위 3년만에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밀려난다.
  • 데스 소스 . . . . 3회 일치
          * 블레이즈 살사 데스 소스 : 매운 맛은 일 핫소스([[타바스코]])의 3배 가량.--[[계왕권]] 3배다!--
          * 애프터 데스 소스 : 그 강도가 50,000 [[스코빌]]로서, 일 타바스코의 20배 강도를 지니고 있다.--[[계왕권]] 20배다! 으아아아아!--
          * 서든 데스 소스 : 현존 최강. 최강인 서든 데스 소스는 100,000 스코빌에 이르며, 이는 일 타바스코 핫소스의 40배에 해당한다.--크리링이란 말이냐!--
  • 동군연합 . . . . 3회 일치
         한 왕이 두개 이상의 국가의 왕이 되는것. 국가의 왕조가 바뀌는 일이 흔했던 유럽에서 일어났다. [* 그외지방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추가바람.]왕조교체-국가멸망으로 보통 받아들여지던 동양권에서는 익숙치 않은 개념. 상당히 횡행했던 일이지만 대로 분할상속제가 대부분이던 서구권에서는 이렇게 국가를 늘려놓고는 분할상속으로 날려먹던 일이 흔한지라(...) 전부다 적진 못하고, 유명했던 경우만 기술한다.
          * 중세 유럽에서 행정은 분권적으로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인구조사, 빈민구휼 같은 현재의 일적인 대민행정은 [[교회]]가 담당했으며, 도시의 행정은 시민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이루어졌다. 납세는 징세권은 영주나 국왕이 보유했으나 실제 징세업무는 [[징세청부업자]]가 대리했다. 법률은 각 지방의 관습이나, 역시 교회법에 따라서 처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본래 중세적인 구조에서 '귀족'이나 '왕실'은 일 행정에서는 크게 하는 개입할 일이 없고(…) 징세권에 따라서 세금을 거둬가서 군대를 조직하고 외침을 방어하는 역할("싸우는 자")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했던 것이다. 이렇게 분권화된 행정체계였으며, 행정체계가 왕실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왕실을 '갈아끼우는 것'이 용이했던 것이다.
  • 듄 2 . . . . 3회 일치
         RTS 형식이지만 완전한 RTS라고 하기는 약간 과도기적인 모습이 있다. 유닛의 움직임이 상당히 딱딱하고, 응이 느리기 때문에 생각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초기 버전은 한번에 한 유닛만 조종할 수 있기에 컨트롤이 어렵다. 또 싱글 플레이에서 게임 중에 생산되는 유닛이나 건물을 전환할 때는 일시적으로 건물이나 유닛 일러스트가 큼지막하게 뜨는 큰 화면으로 바뀌면서 게임이 정지된다.
         플레이중에 "멘타트" 메뉴를 클릭하면 멘타트와 대화하여 게임의 세계관이나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이긴 하지만, 문제는 멘타트 메뉴바가 쓸데없이 큼지막한 면에 정작 게임 내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게임 내 로어를 알아볼 용도가 아니면 별로 클릭할 필요가 없다. 근데 하도 버튼이 커서 마우스 클릭을 열심히 하다가 잘못 눌러서 들어가기 쉬운 일종의 트랩 스윗치가 되버린다.(…).
         웨스트우드 사에서는 이후에 듄 2의 시스템을 기으로 하여 오리지널 시리즈인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로 발전시킨다. 이 때문에 듄 RTS 시리즈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와 게임 체계 면에서 유사점이 많다. 건설소에서 건물 테크트리가 시작하며, 사이드바를 사용하여 건물 생산과 유닛을 조종하는 게임 인터페이스, 그리고 자원 채집도 유사하여 듄에서는 빨간색 지형에서 채집하던 스파이스가 커맨드 앤 컨커에서는 녹색 지형에서 채집하는 [[타이베리움]]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게임 인터페이스 가져다 쓰려고 지구가 타이베리움에 침식당하게 되버렸다(…).]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3회 일치
          * 나가 : 주인공. 용신이 산다는 호수를 들여다보다 물에 빠진 뒤 이세계인 해리건 일족이 목욕중이던 [[온천]](...)에 떨어졌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렸으나 단편적인 기억은 이따금 떠오른다. 이 세계의 마녀들의 외모 때문에 지나치게 솔직한 응(...)을 보여주는 못미더운 모습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에 임해 냉철한 판단력과 장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과감한 행동력을 보여주는 범상치 않은 인물. '나가'란 이름은 자신의 이름 중 일부밖에 기억나지 않아 쓰게 된 이름인데, 공교롭게도 이것이 마녀들 사이에선 '전설의 용왕'의 이름이라 마녀들이 이것을 매우 흥미로워 한다. 2권에서 그 정체가 드러나는데, 그 정체는 [[오다 노부나가|짐작하다시피]]...[* 작가는 후기에서 한 동료작가가 "뒷이름만 비슷한 다른 인물은 아니겠죠?" 하고 물어본 것 때문에 이걸 써먹을까 했다가 '''실패하면 뒷감당이 안될, 작가 인생을 건 한방 개그'''가 될 것이라서 포기했다고 한다.]
          * 해리건 해리웨이 하인드라 : 주인공이 떨어져내린 곳인 하인드라 일족의 마녀들을 통솔하는 인물. 주인공이 감탄했을 정도의 폭유(...)다. 젊은 나이(20대 초 즈음으로 추정)에도 마녀들을 통솔하는 지도자답게 진중하고 침착한 성격. 머리카락을 이용해 대상을 직접 타격하거나, 혹은 마력을 담은 머리카락을 심은 물건(목각인형 등)을 조종하는 등의 마법을 구사한다.
          * 비타 솔샤르 슬레이마야 : 해리건의 영역과 인접한 슬레이마야 일족의 지도자. 로리한 외모와는 달리 나이는 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를 조종하는 마법을 구사하며, 마녀들에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제시하는 나가에게 흥미를 느끼고 해리건 일족과 연합한다. 본인도 나이를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나가가 맘에 들어서인지 나가가 그녀를 보고 귀엽다느니, 나이가 많은 게 믿겨지지 않는다느니 하니까 기분좋은 응을 보여준다.
  • 라데츠 . . . . 3회 일치
         해당 시점에서 강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얼빠진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오공과 베지터가 기를 모아서 전투력을 증폭시키자 매우 놀라서 당황하며, 분노한 손오이 예상외의 파워를 보이는 걸 목격하고도 굉장히 당황한다.
         손오공에게 [[사이어인]]이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손오공은 어린 시절 머리를 부딪치고 기억을 잃어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라데츠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라데츠는 손오공에게 동료로 들어오라고 강요하며, 손오공이 거부하자 손오을 납치해간 다음 지구인을 죽여서 쌓아놓으라고 요구하고 떠난다. 하지만 오공은 라데츠의 사악한 모습을 보고 거부감을 느껴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형'이라는 중요한 포지션의 존재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악당이라는 점에서 매우 안습한 캐릭터. 그래도 프리더편 까지는 은근히 언급이 자주 된다. 심지어 프리더도 손오을 보고 "라데츠의 아들인가?"라는 대사가 있었을 정도니.
  • 라무네 . . . . 3회 일치
         일본에서 라무네라고 하는 음료는, 레모네이드를 기으로 한 탄산음료로, 유리구슬로 탄산이 나오지 않도록 막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유리구슬병(ビー玉ビン)에 담는 것이 특징이다.
         1872년에 [[영국]]에서 유리구슬로 막는 병이 발명되고, 1887년에 일본에서 이 병을 사용해서 레모네이드를 담게 되어 이것이 '라무네'로서 일인들에게 널리 팔리게 되었다.
         1953년에 라무네는 일본 내에서 팔리는 탄산음료의 절을 차지할 정도로 널리 팔렸으나, 여기에서 생산 피크에 도달해서 이후로는 다른 음료에 쉐어를 빼앗겨 점차 생산량이 감소하였다.
  • 레스터 길리스 . . . . 3회 일치
         1931년 시카고에서 은행 강도를 벌였다가 체포된 길리스는 졸리엣(Joliet)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벌였던 또 다른 은행강도의 재판을 받으러 잠시 이송되었는데, 돌아오던 중 탈출해 캘리포니아 주 소살리토(Sausalito)로 도망친다. 그곳으로 도망친 길리스는 존 폴 체이스(John Paul Chase)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지역 갱단원으로 밀주 운을 돕고 있었다. 길리스는 체이스와 함께 밀주 운차의 호위를 하게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7월 22일, 딜린저 갱을 이끌던 [[존 딜린저]]가 FBI에게 사살된다. 레스터 길리스와 체이스, 그리고 가석방된 헬렌 길리스는 시카고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들은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도중 속도 위으로 체포되기도 했지만 벌금 5달러만 내고 풀려난다.
  • 로버트 켈리 . . . . 3회 일치
         2017년 초, [[기문]] 사무총장의 귀국과 대통령 후보 논란에 대하여, "그는 구식 관료이며 그 점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그를 선택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기문을 변화를 가져올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매우 '대가 약한 사람'(milquetoast)", "올해는 수십만 명의 한국인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한 '격동의 해'(big year)"라는 언급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남겼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2/0200000000AKR20170112199600009.HTML (참조)]]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 대하는 입장이며, 수업중에 흥분하여 비판 발언을 날리고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된 날에는 수업을 잠시 중단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오자, "박근혜 탄핵으로 브렉시트, 트럼프 현사응로 인한 세계적인 민주주의 쇠퇴 현상이 멈춰졌다. 이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트위터]]에서 발언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4/2017031402097.html (참조)]]
  • 마기/305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는 "그게 뭐가 나쁘냐"며 오히려 박한다.
          * 그러자 신드바드는 흥분하며 "솔로몬왕은 무책임하다"고 박한다.
         - 알라딘. 자신이 겪은 모든 괴로움은 "성공을 위한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는 신드바드에게. 달편으로 일관하던 신드바드도 여기에는 박조차 하지 못했다.
  • 마기/319화 . . . . 3회 일치
          * 발하는 참석자들이 나오자 무우는 "현 국제동맹의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대안적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펼친다.
          *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신드바드에게 물어보라고 하는데, 당연히 그는 박할 수 없다.
          *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측의 격을 예상하는데, 무는 괜한 걱정이라고 선을 긋는다.
  • 마기/332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에게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타도할 것을 맹세한다. 모르지아나는 모든 사람들이 루프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박하지만 알리바바는 단호한 태도로 "내가 아는 모르지아나는 그딴 소린 죽어도 안 할 여자"였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 신드바드가 장악한 세계는 누구 할 것 없이 신드바드의 말을 신조로 삼고 있다. 황제국의 [[연홍옥]]도 주문이라도 외듯 신드바드를 친양하는 말만 복한다. 알리바바는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누구 하나 원하지 않아도 드시 모두의 진짜 마음을 되찾겠다"고 굳은 맹세를 한다. 하지만 알라딘은 그의 뒤에서 침울하게 고개를 숙인다.
  • 마기/333화 . . . . 3회 일치
          쥬다르는 그가 너무 자신만만한거 아니냐고 투덜거리는데 [[연백룡]]은 알라딘은 구세계(알마트란)과 신세계의 마법을 전부 통달했으니 현재 실력은 그 솔로몬 왕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불만스러운 듯 하지만 한 마디도 박을 못한다.
          * 알라딘은 성궁에 가기에 앞서 일단 거기에 가면 자신이 [[우고]]와 결판을 내겠다고 말한다. 그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우고는 미쳤다"고 언급한걸 신경쓰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우고가 협조해서 신드바드가 성궁을 주무르고 있을 거라고 보고 꼭 그와 만나겠다고 말한다. 백룡도 신드바드의 힘을 감하는 일이라면 해볼만하다고 맞장구친다.
         네르바는 티토스의 집권 이후 중앙 정계에서 벗어나 외곽에서 란군을 모으고 있다고 했는데 "누군가"의 꼬드김을 당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게 쥬다르였던 듯.
  • 마기/350화 . . . . 3회 일치
          우고는 크게 당황한다. 생각끝에 그는 작은 목소리로 "알라딘과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그는 옳고 그른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제 혼자 있긴 싫고 알라딘과 함께 있고 싶다. 스스로도 한심하지만 정말 그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걸 "하찮은 소원"이라며 솔로몬이 사람을 잘못 봤다고 독설을 날린다. 우고에겐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은 말이지만 달리 박하지도 못하는데, 알리바바와 알라딘은 그를 위로한다. 알리바바가 "소원에 크고 작은게 어디있냐"고 격려하고 알라딘도 그의 의사를 받아들여 함께 힘내자고 다짐한다. 그러자 우고를 감싸고 있던 탁한 기운이 사라지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신드바드는 완전히 허무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던 그가 눈을 짝이게 됐다며 또다시 감탄한다.
          * 이런데 분명 마법은 멈췄을 터인데, 주변의 루프가 심상치 않다. 이변은 계속되는 건가? 이것은 신드바드도 알 수 없는 응이다. 바깥에선 먼산에 걸려 있던 해가 그대로 저물어 버린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깜깜한 밤으로 변하는데,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백룡과 쥬다르는 그저 아연한 표정으로 성궁이 바뀌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마치킨 . . . . 3회 일치
         일적으로 마치킨은 돈을 빌릴 때 특별히 사용처 제한이 없지만, 그 만큼 금리가 높다. 사무실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로 대출을 받는 것이 일적이며, 상환 할 때는 사무실에 직접 현금을 가져가거나 계좌이체로 하는 것이 일적이었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3회 일치
         일본의 런앤건 [[슈팅 게임]] 시리즈. 로널드 모덴 원수가 일으킨 란군 및 사이비스러운 불법 무장 단체, 괴생물체, 외계인, 그 외 등등에 대항해 싸우는 특수부대를 다루고 있다.
          메탈슬러그 시리즈에 자주 나오는 란군인 모덴군의 두목.
          모덴 원수의 란군. 매 시리즈마다 털리고도 다시 나타난다.
  • 무협/용어 . . . . 3회 일치
          * 음양인(陰陽人) : '남녀 양성을 모두 가진 자'라는 의미. 중국어에서는 속칭으로 쓰이는 말이며, 보다 일적인 호칭은 쌍성인(雙性人)이다.
          * 혈겁(血劫) : 최소 [[멸문지화]]를 동하는 대량학살을 묘사할 때 쓰인다. 중국어 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으며, 무협소설 이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로 보인다.
          * 무복(武服) : 무림인(武林人)이 입는 옷을 무복이라 부른다. 하지만 독자적인 조어에 가까우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본래 중국에는 특별히 무술인을 위한 복장이 있는게 아니었으며 일인이 입는 것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 소림사의 경우 특유한 무승복(武僧服)이 있거나, 도가 문파의 경우 도복(道服)을 입지만 종교에 관련된 복장이지 무술을 위한 복장이 아니다.
  • 문문 . . . . 3회 일치
         음악 활동 이전엔 본래 [[직업군인]]이었으며 부사관으로 5년간 복무하다가, 20대 중에 음악에 대한 꿈 때문에 전역을 하고 [[여주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절에 '저수지의 딸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계에 진입했으나 밴드 활동이 잘 되지 않자 잠정 해체되고, 그 후 2016년 7월에 싱글 앨범 [Moon, Moon]으로 데뷔했다. 대표곡으로는 '''물감'''과, [[비행운(노래)|비행운]] 등이 있다.
         비행운의 가사 중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이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의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과 비슷하다며 표절 시비가 붙었었다. 제목도 똑같은 데다, 노래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박의 여지가 적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가사 전체나 노래 자체가 표절된 것은 아니고 한 소절을 변형한지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오마주]]나 [[패러디]]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소설이나 인문학계에서는 존경하는 이의 글에서 이름을 따온 뒤 구절이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의 단어 위치를 재배열하거나 변경함으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문장 구성은 같지만 주로 [[주어]]를 바꾼다. 하지만 존경의 의미로 인용했다면 허락을 구하는 건 당연한 자세다. 진정으로 존경해서 인용한 건지 의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774327|인터뷰]]에서 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음원 발매 사전에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이였고 문제가 된 후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답했다. 논란이 터지기 전엔 인스타로 악플러의 덧글을 캡쳐해서 저격했다가 논란이 되고나서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기존의 팬들조차 대다수가 ‘실망이다,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다’는 응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문문의 팬카페 또한 폐쇄된 상황이다.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3회 일치
          지하 거주자들의 리더격인 사나이. 라오 박사와도 안면이 있다. 23세. 레프카에게 대하는 입장이며 그래서 이마에 낙인이 있다. 코난 일행에게 협력. 최후에는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한다.
          코난의 할아버지와 똑같은 외모의 노인. 아들처럼 레프카에게 대하고 있다.
          샐비지선에서 일하는 노동자. 2등 시민이 되려하며 자기 등급 점수를 10점 깍은 샐비지선 리더인 파치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품성에 문제가 있는 인물인 것이 실수를 저질러서 큰 피해가 났는데 파치는 등급 점수를 깍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관대한 처분에 적하장격으로 굴어서 루카가 한마디 할 정도. 이후 몬스리에게 파치가 라오 박사라는 것을 밀고하나 이외에는 딱히 이용가치가 없다보니 몬스리가 정보만 듣고 가버리면서 무시되었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루카에 의해 사고로 크레인에 깔려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왔다.
  • 바키도/134화 . . . . 3회 일치
          * 모토베는 당연히 그런 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자학적인 말을 한다.
          한마 바키가 문병온다. 바키는 모토베에게 용서를 구하며 "지키고 싶다"는 말을 비웃고 모욕적으로 여긴 일을 성한다.
          * 바키는 현대의 투사들을 대표해 그간의 저평가가 완전히 오판이었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무사시의 역량까지 잘못봤다고 뼈아픈 성을 한다. 바키는 자신의 식격이 모자랐다고 인정하며 정중한 태도로 고개숙여 사과한다.
  • 박정민(배우) . . . . 3회 일치
         ||<#4682b4> {{{#white '''학력'''}}} ||<(> 중탑초등학교[br][[하탑중학교]][br][[공주]] [[한일고등학교]][br][[고려대학교]] 인문학부(중퇴)[* 부모님께서 연기하는 꿈을 대하셨지만 본인은 연기를 너무나도 하고 싶어했었다, 그리고 2005년도에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자퇴 후 수 끝으로 다음해(2006년)에 [[한예종]]에 입학하였다. 본인은 꿈을 위해서 들어간게 맞다고 보면 된다.][* 물론 [[고려대]]는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이 있을 곳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물론 한예종,고려대 외에도 한국외대, 서울대, 중앙대도 원서작성했으나, 한예종과 서울대는 광탈하고, 나머지는 예비가 나왔다, 하지만 고려대만 [[추가합격]]해서 꼴등으로 입학하고, 자퇴했다][* 대학 자체를 아예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br][[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학사[* 전과했다.] ||
         [[파수꾼(영화)|파수꾼]], [[전설의 주먹]], [[감기(영화)|감기]], [[사춘기 메들리(드라마)|사춘기 메들리]], [[너희들은 포위됐다]], [[일리있는 사랑]], [[들개]] 등에 출연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단역으로 [[성보라]]와 헤어진 남자친구 박종훈 역으로 출연했다. 10분 남짓 되는 시간의 단역이었지만, 본인이 바람을 피웠으면서 오히려 [[성보라]]에게 적하장으로 화를 내고 궤변을 하는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야말로 쌍욕이 나올 정도의 엄청난 연기력과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
  • 박칠용 . . . . 3회 일치
         * [[1983년]] [[KBS]] 《[[개국 (드라마)|개국]]》 ... [[조 (1341년)|부흥군(복흥군) 조]] 역
         * [[1985년]] 《여자의 란》
  • 백남억 . . . . 3회 일치
         1960년대까지는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대하는 등 ‘바른말 잘하는’ 소신파로 불리었다. 그러나 결국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길재호]] 등과 김종필 4인 체제를 형성하였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연합하여 1969년 [[3선 개헌]]을 주도하였다. 1971년에는 민주공화당 의장을 지냈다.
         항명파동으로 박정희의 분노를 사면서 자연스레 4인체제는 무너졌고, 백남억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상주시|상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김윤하]]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박정수(정치인)|박정수]] 후보와 정휘동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자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 백진희 . . . . 3회 일치
         1990년 2월 8일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김천시) (봉산로) 에서 태어났다. 2008년 독립영화 《사람을 찾습니다》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두비]]》로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1=윤희성|제목=백진희│My name is…|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538|날짜=2013-06-18|확인날짜=2016-01-27|뉴스=텐아시아}}</ref><ref>{{뉴스 인용|저자1=최은화|제목=[쿠키人터뷰]‘어쿠스틱’ 백진희, “한국판 아만다 사이프리드? 좋죠~”|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88698003&cp=nv|날짜=2010-11-02|확인날짜=2016-01-27|뉴스=쿠키뉴스}}</ref>
         | 《[[두비]]》
         | [[두비]]
  • 법요 . . . . 3회 일치
         법요를 올림으로서 고인이 극락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고인을 공양하기 위하여 드시 필요한 의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외적으로, 정토진종(浄土真宗)에서는 임종하는 순간에 극락왕생 한다고 생각하며 법요의 의미는 고인을 그리워하며, 불법에 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파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일적으로 일본 불교에서는 고인이 죽고 나서 49재까지 내세의 목적지가 정해진다고 믿는다.
         사후 7일(初七日)에 가족과 친인척, 지인이 모여서 공양을 하고, 그 후 7일 마다 공양을 하며 49재 까지 일정한 시기에 공양을 한다. 49재에서는 마지막으로 납골을 하는 것이 일적이다. 이후 사후 100일 째에 다시 가족 친지들 끼리 법요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 변정수(배우) . . . . 3회 일치
         제가 사용하는 걸 변정수도 사용한다고 하니 가운 마음에...
          * SBS [[아내의 란]](2004) - 김정강
          * KBS [[루비지]](2013) - [[정초림]]
  • 보스 트롤 . . . . 3회 일치
         후부 아레프갈드에서는 일 조우 몬스터로 등장한다. FC판은 타겟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2마리가 나오면 그룹으로 대미지가 분산되는 것과 막강한 자동회복이 겹쳐서 굉장히 쓰러뜨리기 어렵게 된다.
         SFC판에서는 HP가 1500으로 늘었으며, 2회 행동을 하고 [[루카난]]을 쓰게 되었다. 공격 + 루카난 → 통한의 일격 + 공격 → 공격 + 통한의 일격 → 루카난 + 공격으로 패턴이 바뀌었다. 또 아레프갈드에서는 일 조우 몬스터로 나오지 않게 됐다.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3회 일치
         >불륜하거나 뇌물 받거나 부채 만드는 녀석 골라서 국회의원을 절 모가지 하고 재원 만들어라.
         [[아사히 신문]]의 기자가 이메일로 블로그 소유자와 연락한 바에 따르면, 블로그 소유자는 [[도쿄]]에 거주하는 30대 초 여성이라고 자칭했으며, 남편과 1세가 되는 남자아이와 3인 가족이서 생활하고 있고, 사무직 정규직으로 4월에 복직할 예정이었으나 보육소에 아이를 넣을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하였다.
          * 코토크 - 대기아동 : https://kotobank.jp/word/%E5%BE%85%E6%A9%9F%E5%85%90%E7%AB%A5-190925
  • 보증 . . . . 3회 일치
         일부에서는 보증 제도를 파괴하고자 보증 제도에 대하여 나쁜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동양 사회의 인간성을 파괴하려는 서구금융자본의 음모라는 의견이 일적이다. 현실에서는 보증을 서주는 사람을 생각하여, 보증을 받은 사람은 드시 돈을 갚기 위하여 노력하기 마련이고, 보증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증 대론은 극소수의 예외 사례를 과장하여 말하는 것일 뿐이다.
  • 브로포스/브로 . . . . 3회 일치
          짧은 거리에 빛을 짝한다. 빛에 맞은 적은 혼란상태가 되어 아군을 공격한다. 효과음은 맨인블랙 영화에서 그냥 뜯어왔으니 컬럼비아 픽처스에 이르지 말아달라고. 아마 농담일거다.
          * 보조무기: 총알
          일정 시간동안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알을 사한다.
  • 블랙 블록 . . . . 3회 일치
         2014년 마이클 브라운 사살 사건 이후로 이에 항의하는 퍼거슨 시위 등 시위현장에서 출몰하면서 언론에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주로 트럼프 시위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트럼프 취임식에 대한 항의 시위나, 버클리 대학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우익 인사를 저지하는 항의 시위에 나타나서 주목을 받았다.
          파시즘 시위 활동으로서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블랙 블록 집단이 폭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 --코드 기어스 역의 를르슈 - 흑의 기사단--
  • 블랙 클로버/108화 . . . . 3회 일치
          * 그러면서 전임 단장이자 동생인 푸에고레온도 "니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니 그놈도 형편없는 단장"이라 깎아내리는데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발한다.
          진짜 폭력을 동한 팩트폭력이었다. 결국 레오폴트를 비롯한 단원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야미는 들어오자마자 "검은 폭우보다 밑에 있는 단장들"이라고 어그로를 시전한다. 올해는 검은 폭우가 2위를 했으니 사실상 금색의 여명의 [[윌리엄 벤전스]] 외에는 전원이 대상. 은익의 참수리의 [[노젤 실버]], 자줏빛 범고래의 새 단장, 취록의 당랑의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는 유독 아니꼬와한다. 잭이 "만년 꼴찌 주제에"라고 받아쳐보지만 "그 꼴찌한테 졌다"는 격엔 할 말이 없다.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은 그보단 지각한 것을 지적해 보지만 딱히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 블랙 클로버/119화 . . . . 3회 일치
          * [[릴 부아모르티에]]는 어리숙한 첫인상과 달리 분명 단장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팀의 총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상대측의 두 마법기사를 간단히 제압, 손쉽게 I팀의 승리로 연결시킨다. 동료들도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두말이 없어졌지만, 정작 그는 방금 전 "한 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쓴 회화 마법은 시합장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으나 그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구석이 많다며 성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좀 더 시합에 집중해주질 바랐지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집사 "발터"는 이런 태도 조차도 "도련님이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니까 주변 사람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는 거다"고 이 또한 그의 재능이라고 포장한다. 어리숙한 걸론 안 빠지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설명이었다.
          * 이제 6회전 시합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초부터 난타전이었다. 양팀 모두 필드 중앙에 진출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육박전에 돌입했다. 클라우스 류넷은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돌적인 싸움에 나섰다. 적 마법기사가 공격을 가하자 자신의 강철 마법으로 방벽을 세워 막았다. 하지만 부정형의 액체를 다루는 적의 마법은 방벽을 돌아서 크리스탈을 덮쳤다. 이때 잽싸게 움직인 것이 락 볼티어. 크리스탈을 옆구리에 끼고 적을 뛰어넘었다. 아스타는 그의 마법 형태가 바뀐 걸 눈치챘다. [[매그너 스윙]]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모어에 추가 페이지를 채워넣어서 모습을 강화한 거라고 한다. 그 위력은 보는 그대로였다. 락은 크리스탈을 가진 채로 필드 중앙을 안마당처럼 누볐다. 거의 활공에 가까운 점프를 거듭하며 건물 뒤에 숨은 적 크리스탈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의 장기인 벼락 마법 "진뢰의 붕옥". 백병전 타입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위력과 탄속을 자랑하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근, 원거리를 가리지 않는 공격력. 필드 바깥의 선수들이 "하급 기사의 실력이 아니다"고 하나같이 감탄하는 가운데 매그너는 자신도 락도 [[야미 스케히로]]에게 몇 달에 걸쳐 지겹게 부려먹힘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한다.
          로브의 강함은 락의 힘을 더욱 끌어냈고 한 차례 더 가속시켰다. 락은 로브도 응하지 못하는 속도로 쐐기같은 킥을 꽂아넣었고 로브와 크리스탈을 단 일격에 파괴한다. K팀의 승리. 락은 엄청 재밌었다고 만족한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3회 일치
          * 선수가 모이자 마법제가 바로 시합을 셋팅한다. 각 진영의 크리스탈을 스타팅 위치에, B팀의 경우 바로 이 자리, G팀의 것은 대편에 놓았다. 시합 규칙은 "먼저 상대방 크리스탈을 파괴한다"를 유지. 이상의 설명을 마치고 시간 구속 마법이 해제된다. 시합 돌입.
          * 랜길스는 시작부터 B팀의 크리스탈을 노렸다. 아스타가 참격으로 베어냈다. B팀은 당장은 1회전의 전술 그대로 아스타와 미모사가 크리스탈을 지키며 적의 크리스탈로 돌진, 잭스가 원호하는 포메이션을 취한다. 랜길스는 아스타의 마법 검을 경계해서 저쪽이 G팀의 크리스탈에 도달하기 전에 크리스탈과 B팀 인원을 한꺼번에 짓뭉개기로 결정한다. 그는 핀랄에게 썼던 구체 공간마법을 무수히 형성, B팀에 날리며 자신도 돌격한다.
          * 랜길스의 공세가 격해지고 아스타의 움직임으로도 전부 떨궈내는건 불가능했다. 아스타가 상처를 입은 속도가 빨라지고 크리스탈에도 손상이 갔다. 미모사의 회복마법은 한계에 달해 다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아스타는 거기에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랜길스는 "승자는 뭘하든 옳다"고 했다. 아스타는 핀랄이 했던 말, 언제나 구해줘서 감사하다는 아스타의 말에 "오히려 내가 구해졌다. 아스타는 드시 마법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던 일을 떠올렸다.
  • 블랙 클로버/130화 . . . . 3회 일치
          * [[잭스 류그너]]는 자해를 감수하며 감행한 작전으로 [[랜길스 보드]]의 공간마법이 사된다. 사된 마법은 위력이 배가되어 시전자인 랜길스를 향해 날아가고. 궁지에 몰린 랜길스는 마법제 율리우스 조차 예상치 못한 저력을 발휘한다. 튕겨나온 마법을 모조리 공간마법으로 요격해 버린 것. 마력을 지금까지보다 두 배 이상 순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말이었다. [[클라우스 류넷]]은 그 저력에 경악하는 한편 그의 마력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데.
          블랙 모드가 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잭스의 뒤에서 뛰어올랐다. 그의 마법검이 랜길스의 마법을 모조리 베어버린다. 동시에 [[미모사 버밀리온]]이 마력을 쥐어짜내 잭스를 치료. 잭스는 왕족에게 치료받길 거절하지만 미모사는 그 거절을 거절한다.
  • 블랙 클로버/53화 . . . . 3회 일치
          * 레베카는 돌아오지 않는 아스타를 걱정하지만 노엘은 "아이들을 구해서 드시 돌아온다"고 말한다.
          * 절망의 베토는 아스타의 마법 공격으로 "리히트에게 걸린 봉인"이 풀려 버렸다고 한다
          * 마르크스는 마법의 힘으로 "어떤 두 사람"의 보호마법을 깨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만 된다면 백야의 마안의 정체가 밝혀질 거라고 한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3회 일치
          * 베토는 자기 흉내를 내는 거냐면서 흥쾌히 공격을 가하는데, 락은 놀라운 센스로 피하고 격한다.
          * 바로 그때 현장에 도착한 아스타가 마법의 검으로 막아선다.
          * 아스타는 "너를 쓰러뜨리는 역할은 후배인 내가 이어 받는다!"면서 두 개의 마법 검을 꺼내든다.
  • 블랙 클로버/69화 . . . . 3회 일치
          * 아스타는 "아까 너는 포기하지 않는게 약점이라고 했지만 그거야 말로 유일한 무기"라고 박한다.
          * 노엘에게 쓰러진 동료들을 맡기고 핀랄과 함께 서포트할 테니 아스타의 마법의 검을 먹여주라고 한다.
          * 아스타가 격 당하기 직전 바네사가 실을 조작해 공격을 피한다.
  • 블랙 클로버/86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아스타는 강화마법이 걸린 덕인지 공격의 빈틈을 파고 든다. 어느새 잘려나간 나무 줄기를 타고 접근하더니 샐러맨더에게 일격을 먹이는데 성공한다. 가볍게 베인 정도지만 샐러맨더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힌다. 바네사는 정령은 본래 마나의 결정체인 만큼 아스타의 마법 검이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아스타도 스피드나 탐지능력이라면 절망의 베토 쪽이 위였다며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호언한다.
          * 파나는 아스타의 마법 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지 어째서 샐러맨더가 타격을 입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바네사는 이때를 노려 격의 고삐를 죄려 하는데 아스타는 갑자기 칼을 내려놓고 대화를 청한다. 바네사는 뭔 짓이냐고, 대화가 안 통하는 상대라고 꾸짖지만 아스타는 아랑곳 없이 말을 건다. 미워죽겠다고 계속 중얼거리는데 대체 뭐가 그리 밉고 클로버왕국을 미워할 이유가 뭔지 묻는다. 맨날 싸우기만 했지 왜 싸우는지, 뭐가 문제인지 서로 너무 모르지 않냐는 얘기.
  • 블리치/695화 . . . . 3회 일치
          * 아이젠은 유하바하에게 대항하여 선전하나 경화수월이 부러지면서 격 당한다.
          * 이치고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격을 시도하나 천쇄참월이 완전히 부러지고 배에 구멍이 뚫린다.
          * 그때 렌지가 쌍왕 사미환을 해방해 달려드나 가볍게 격 당한다.
  • 샬롯 링링 . . . . 3회 일치
         다만 이와는 대로 '''부하를 최소한 한 명은 잡아먹었다.''' 그런데 이 부하들이라는 것이 인간이 아닌 과자로 된 병사들일 수 있다. 만화책에서는 651화에서 자세히 나오지 않았으나, TVA에서는 [wiki:"보빈" 과자로 만들어진 듯한 부하]가 빅 맘에게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빅 맘은 과자 같은 무생물을 사람처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인지도 모른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730화에서 빅맘의 배'''[[선수상]]이 노래를 불러서''' 이 무생물에 생명 부여 설이 강화되었다. 무엇보다도 빅 맘이 정말 [[wiki:"식인" 사람을 잡아먹는]] 사악한 인물이었다면, 그 [[징베]]가 머리를 숙이고 산하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 단, 징베의 경우 [[사황]] 페이지에도 언급되었듯이 속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빅 맘 본인이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자일 필요는 없고 그냥 해적단의 간부 중 하나가 그런 능력자일 수도 있다.] 또한 오다가 제일 존경하는 작가이고 콜라보도 함께한 [[토리야마 아키라]] 의 [[드래곤볼]]에 나온 [[마인부우]]도 인간을 과자로 만들어 먹는 기술이 있어 여기서 따왔을수도 있다.
         여담으로 등장하기 전에 나온 실루엣과 본모습이 다른데, 본모습의 얼굴이 실루엣보다 둥글고, 외모도 약간 다르고, 실루엣의 턱 자국(?)이 본모습에는 없다.[* 같은 사황인 카이도도 실루엣과 컬러 표지에서 본인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다른데, 본 실루엣의 얼굴이 넓적하고 머리칼이 복슬복슬한 면 추정 실루엣은 입과 한쪽부분으로만 봐서는 좀 말라보이고 생머리이다.]
         그리고 730화에서 [wiki:"망했어요" '''드레스로자에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루피 해적단 멘붕~~ ~~칠무해에 해군 대장에 사황이라니~~[* 배가 거의 웬만한 해왕류 만한 크기로 아일랜드 고래의 1/2~ 1/3 정도의 엄청난 크기이다. 게다가 배의 선수상이 말을 하고 있다. 위의 생명 부여 능력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 게다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써니 호에 남아있던 사람은 상디(부상 입은 상태), 나미[*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다.위의 로라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쵸파, 브룩, 모모노스케, 그리고 인질인 시저 뿐. 일당의 총 전력 중 절 이상을 섬에다 두고 와 버린 최악의 상황인 판이다.
  • 서수민 . . . . 3회 일치
         유명 사진작가 조선희와는 같은 [[경상북도]] 출신[* 조선희는 [[칠곡군]] 출신이다.]에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동기라고 하며 연대 입학 후 만난 두 사람은 지하방에서 자취하면서 룸메이트 생활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기획을 맡은 KBS2 드라마 '최고의 한방'의 포스터를 촬영했다고 한다.
         물론 단발적으로 호응이 좋은 코너를 가지고 성공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호응을 얻기 힘든 것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시청자들이 질리게 만들었으니 매니악한 팬들만 질리게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PD로서의 역량은 높지만 개그를 보는 눈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개그는 본디 "개그맨이 짜고 개그맨이 연기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개그를 선별하여 방송에 내보내는 개그 프로그램 감독으로서의 [[무능력한 상사|역량은 무능하다 보는게 일적인 시선이다.]]
         또 라디오 스타에서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라는 제안을 받은 김대희에게 출연을 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 어디가?는 2013년 1월에 방송이 시작되었는데 사실 해당 방송과 개콘의 방송시간을 감안하면 경쟁 프로그램도 아닌데 막은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응도 있다. 전통의 개콘 녹화일인 수요일에 녹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수민이건 다른 PD건 막을 명분이 없는데 전후사정을 떠나 김대희는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을 듯.
  • 세속주의 . . . . 3회 일치
         [[정교분리]]를 통하여 [[종교]] 기관과 [[국가]] 정부 기관을 분리, 종교가 대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 모든 종교가 국가의 법 앞에서 평등해야 취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속주의에 기을 둔 국가를 [[세속국가]]라고 한다.
         세속주의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특정 종교의 규범이 국가기관을 통하여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대한다. 세속주의는 국가기관이 어떤 형태로든 종교 단체와 관련되는 것을 비판한다.
         세속주의 사상에서는 특정 종교를 가졌다는 신념의 문제 떄문에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을 대한다. 이는, 특정 종교의 신자가 특혜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봄과 동시에, 모든 종교의 신자는 물론 [[무신론]] 역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 소냐(가수) . . . . 3회 일치
         == 음 목록 ==
         === 정규 음 ===
         === 싱글 음 ===
  • 소지섭 . . . . 3회 일치
         == 음 목록 ==
         !음 정보
         ! rowspan="2" | 수록 음
  • 손지현(배우) . . . . 3회 일치
         ||<#7C43B1><:>{{{#FFFFFF '''데뷔'''}}}||2009년 포미닛 디지털 싱글 [[포미닛/음 목록#s-1.1|Hot Issue]]||
          * 컴백곡 '미쳐'에서도 후부 킬링파트를 잡았다. 다른 멤버들은 무대 뒤로 물러서고, 지현 혼자 집중 받는다. 활동 후부는 멤버들이 모두 나와서 같이 춘다. 하지만 아직도 어색함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무대로 보아 라이브의 문제는 개선됐다는 게 증명됐으나...
  • 송가인 . . . . 3회 일치
         == 음 ==
         * 2009년 제1회 광양 남해성 전국 판소리경연대회 일부 대상
         * 2011년 제23회 목포 전국국악경연대회 일부 문화관광부 장관상
  • 송금식 . . . . 3회 일치
         * 2006년 《[[한도 (영화)|한도]]》 ... 일본 부대사 역
         * 1994년 《[[자정 이후]]》 ... 최 장 역
  • 숙년이혼 . . . . 3회 일치
         숙년이혼(熟年離婚). 황혼이혼이라고도 한다. 일적으로 50세 정도를 '숙년(熟年)'이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에 이혼하는 것을 숙년이혼이라고 한다.
         이 단어 자체는 1990년대 후부터 비슷한 나오기 시작하다가, 2005년 10월에 숙년이혼이라는 드라마가 나와서 다른 동의어와 유사어를 통합할 정도로 인기 있는 유행어가 되었다.
          * 왜일까 우리나라에는 '황혼이혼'이라는 말이 더 널리 퍼져서 일화 되었다. '숙년'이라는 표현이 없어서 이 말을 소개한 대중지 등이 '황혼이혼'을 사용한 것과, 드라마의 영향으로 널리 퍼진 것과는 달리 일본 드라마에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이유인 듯 하다.
  • 스이츠 . . . . 3회 일치
         일본에서는 어린이용 과자와 구별하여, 고급 양과자 점에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만드는 과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1990년대 후부터 ‘티라미스’ 같은 고급 양과자가 잡지 소개 등으로 붐을 타고 널리 퍼지게 되었다.
         스위츠 유행 같은 유행을 주도하는 잡지, TV프로그램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응하고, 그러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모두 받아들이는 여성을 조롱하는 말. 스위츠가 대상이 되는 것은 케이크나 과자라고 하면 좋은데, 굳이 멋을 내려고 스위츠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코토크 스위츠
  • 스틸오션 . . . . 3회 일치
          어뢰와 잠수 둘만 믿고 적진 깊숙히 잠입해 항모와 전함을 까부수는 함종. 가지고 있는 산소를 소모해 잠수를 할 수 있다. 잠수는 두가지로 나뉘는데, 어뢰를 쏠 수 있지만 어뢰와 폭뢰에 당할 수 있는 일 잠항 모드와 아무 공격도 할 수 없고 산소가 기하급수적으로 소모되지만 폭뢰 외에는 당하지 않는 깊은 잠항 모드가 있다. 잠항에는 시간이 걸리니 주의할 것.
          * 일 모드
         [[욱일기]]가 사용 가능하다. 면 나치 독일의 전쟁기는 중앙의 갈고리십자가 철십자로 바뀌어져 있다.
  • 스틸오션/독일 . . . . 3회 일치
         >7형(Type VII)의 기본 시험형이었던 7A형(Type VIIA)은 독일 해군의 공격 잠수함으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3형에 기술적 기을 둔 VIIA형 유보트는 1933년 설계되었다. 7형은 뛰어난 성능과 빠른 잠항 속도를 자랑했다. 모두 합쳐 11대의 7A형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이중에는 대서양 해전의 첫 희생양인 여객선 아테나(Athena)를 격침시킨 U-30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32는 배수량 42,348톤 정기선 엠프리스 오브 브리튼(Empress of Britain)을 격침시켰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손실된 7A형 잠수함은 U-29와 U-30 단 두척이었다. 살아남은 7A형 잠수함은 모두 자침되었다.
         >필라우는 러시아 제국의 주문으로 단치히에서 건조중인 경순양함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이 순양함을 독일에 의해 몰수되어 독일 해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전시에 필라우는 제2 정찰대에 배속되어 북해와 발트해에서 활동했다. 1915년 리가 만 해전에 참가해 러시아 해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뤘다. 1916년 5월, 필라우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해 대구경탄에 맞아 큰 손상을 입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전투순양함 자이들리츠(Seydlitz)가 항구까지 도달하는걸 도왔다. 1917년 헬리골란트 바이트 해전에도 참가했다. 종전후 전쟁보상함으로 이탈리아에 양도, 바리(Bari)로 개명되었다. 바리는 제2차 세계대전 초에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엠덴은 바이마르 시기 건조된 첫 경순양함이다. 전체적으로는 쾰른(Köln)급과 닮았지만, 배수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제거했다. 계획되었던 어뢰발사관 네문은 연합국의 대에 부딫혔다. 엠덴만이 건조가 완료된 엠덴급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훈련함으로 개장되어 사용되었다. 1940년 4월의 노르웨이 침공에 동원되었으며 그후 어느 전투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독일이 항복한지 2틀 후에 킬에서 자침되었다.
  • 스틸오션/영국 . . . . 3회 일치
         >HMS Argus는 일적인 항공모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최초의 왕립해군 소속 항공모함이었다. 원래는 콘테로소(Conte Rosso)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1918년 9월, 콘테로소는 갑판 전체에 비행갑판을 두르고 Argus로 명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기에 Argus는 독일 함대의 공습을 받았다. 전간기에는 느린 속도로 인해 훈련 임무에만 머물러 있어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HMS Argus는 몰타와 지브롤터에 보급품을 보내는 하푼 작전(Operation Harpoon) 동안 H 기동부대의 항공 지원을 맡았다. 1942년, Argus는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에서 항공 지원을 맡았다. 이 함선은 주로 훈련용으로 사용되다가 1946년 퇴역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이후, 영국은 두척의 대형 경순양함 HMS 뱅가드(HMS Vanguard)와 HMS 커레이져스(HMS Courageous)를 항공모함으로 개장시켰다. 이는 1920년대 있었던 HMS 퓨리어스(HMS Furious)의 개장에 기을 두고있었다. 우현에 연돌을 추가한 두 선박은 당시에는 최신 항공모함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한 후, HMS 커레이져스는 아일랜드 해안 초계 중 독일 U-보트 U-29에게 공격받았다. 어뢰 두개가 좌현에 명중했고, 커레이져스는 침몰했다. 글로리어스(Glorious)는 그라프슈페(Graf Spee) 수색을 위해 지중해에 파견되었다. 1940년 4월에는 노르웨이 해전을 도왔다. 1940년 6월 8일, 나르비크에서 귀환하던 중 독일 순양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에게 격침되었다.
  • 식극의 소마/174화 . . . . 3회 일치
          * 시험관은 성공적으로 역자팀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데 시험종료 30분을 남기고 소마 일행이 돌아온다.
          * 종료까지 30분 밖에 남지 않자 시험관은 역자 떨구기가 성공했다고 희희낙락하다.
          * 하지만 역자를 처단한답시고 1학년 베스트8을 한 팀에 몰아놓은 인선 덕에 역관광을 당한다.
  • 식극의 소마/185화 . . . . 3회 일치
          * 쿠가 테루노리는 아무리 역자들이 강해졌어도 상대가 십걸인 이상 전원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 적이 전원 십걸인 이상 역자들이 모두 살아나가는건 불가능하다는 것.
          * 소우에도 어지간히 자신이 있기에 고른 레시피라고 평하며 소마에게 격할 기회도 주지 않을 셈이라 말한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3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는 과의 십걸 자리를 따내자고 제안하지만 타쿠미 알디니는 현실성이 없고 뭣보다 센트럴에게 아무 메리트도 없는 제안이라 일축한다.
          >십걸평의회의 과수를 뺏자고?
          * 황당하기까지한 유키히라 소마의 제안. 소마는 하야마 아키라가 퇴학됐으니 남은 십걸 자리는 9. 나키리 에리나가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앞으로 네 자리만 차지하면 십걸의 과 이상을 점거하는 거라고 설명한다. 살아남은 자신들이 말이다.
  • 식극의 소마/194화 . . . . 3회 일치
          * 연대식극(레짐 드 퀴진). 학생 집단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식극 룰이다. 두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 선수를 내보내고 생존한 자들끼리 승부를 복, 한 쪽 진영이 전멸할 때까지 계속한다.
          * 하지만 아자미는 차갑다. 이미 [[나키리 센자에몬]]에게서 총수 자리를 빼앗고 계획의 90%를 완료한 상황. 그런 거래에 응할 "메리트"가 전혀 없다. 지금 역자들을 처리하는 것도 "뒷처리"일 뿐, 계획의 완성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자 죠이치로는 뜻밖의 미끼를 던진다.
          * [[도지마 긴]]은 타쿠미와 타도코로에게 연대식극 소식을 듣는다. 사실 도지마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센자에몬과 죠이치로가 만나도록 주선한 것도 그이며 그 둘이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 것도 그의 복안이었다. 죠이치로가 나서면 아자미도 승부에 응할 거라고 본 그의 계획. 십걸의 과을 따내서 정권을 뒤엎는 것도 그가 구상한 대로다. 사실 그들의 진급시험 자체도 계획 안에 있던 것.
  • 신고은(가수) . . . . 3회 일치
         그 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41~50회 #s-4|2016년 2월 21일]]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4차 경연에서 [[만나면 좋은 친구 엠빅]]이라는 가명으로 나와 파트너인 [[부활한 백투더퓨처]]와 3표 차 접전을 벌였다. 이 때 연예인 판정단 대부분은 가수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나중에 리포터로서의 모습만 알고 있는 판정단은 "리포터가 저렇게 노래를 잘 하다니..."라는 응을 보였다.[* 88명의 일인 판정단에선 동점이었고 연예인 판정단에서 승부가 갈렸다.]
         이에 본인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많은 전문가들과 대중 앞에서 한 번 더 인정받는 계기가 된 무대로 자신감을 갖고 다시 음악 활동을 재개하기를 바란다는 팬들의 요청이 많다. 이후로도 복면가왕에 계속 연예인 판정단으로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연예인들을 취재해본 리포터로서의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로 추리하는 편. 그 뒤 2016년 초중에 복면가왕 패널로서 종종 참여했다.
  • 신현준(군인) . . . . 3회 일치
         만주군 복무만으로도 이미 '일제 부역'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가 항일 독립운동가들과 그 항일조직들을 소탕하고 잡아 죽이는 일을 하기위해 만들어진 부대인 [[간도 특설대]] 간부였고, 그것도 창설 멤버였다는 점이다.[* 신현준의 간도 특설대 활동 증거는 다름아닌 만주군 동기생이자, 훗날 그의 후임으로 제2대 해병대 사령관이 되는김석범의 저작 <만주국군지>다.] 해병대의 창설 지휘관이자 초대 사령관이 간도 특설대의 창설 간부이자 친일민족행위자라는 사실은 해병대의 흑역사일수밖에 없다.
         해병대 창설의 계기도 신현준의 건의에서 시작됐는데, 1948년 여순 제14연대 란사건 직후 신현준은 해군본부에 "육전대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진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 신현준의 보고내용에 주목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해군본부가 해병대 창설을 결심하게 되었다.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친일민족행위자]][[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3회 일치
         [[고려]] 말기에 한도 남부를 침공하였던 [[왜구]]의 장군 [[아기발도]]가 대표적인 아기장수 설화의 하나인 [[아기장수 우투리]]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전에는 [[인터넷]] 상에서 간간히 주장되던 이야기였으나, 2016년 1월에 이를 다룬 논문이 나온 바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조선 왕조의 억압이나 소외자, 패배자들의 '발 심리'로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인물에 이성계를 투영하고, 조선왕조 중심의 왕권 정당화 설화에서 이성계('체제')의 대적자로 여겨진 아기발도를 '체제'의 상징으로서 삼게 되었던 것이다는 것이다.
  • 안영준 . . . . 3회 일치
         ||||||||||||||||<tablealign=center>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지'''||
         지금까지 활약상으로 봤을 때 본인의 좋은 피지컬에 기한 적극적인 수비력과 리바운드에서 강점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평.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해 활약이 절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 안지만 . . . . 3회 일치
         4월 17일, 안지만 소유의 [[수성구]] [[파동 (대구)|파동]]에 있는 5층짜리 다세대 주택과 [[청도군]]에 있는 토지가 법원 경매에 올라왔다는 기사<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3857893</ref>가 나왔다. 스포츠 뉴스가 아닌 경제 뉴스로 올라왔으며, 이 과정에서 해당 부동산들에 대해 삼성 구단이 21억 원의 가압류를 걸어둔 사실도 밝혀졌다. 가압류를 했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구단에서는 계약금의 일부인 21억 원의 환을 요구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가압류를 한 것으로 보인다.
         8월 24일, 지난해 1월 제기된 FA 계약금 환 소송에서 삼성 구단 측이 승소했다. 대구지법은 안지만에게 삼성 구단이 선지급한 FA 계약금 21억 2,000만 원을 환하고 소송 비용을 부담하라는 판결을 내렸다.<ref>http://news.donga.com/3/all/20180824/91664207/1</ref>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3회 일치
         ==== 일 무기 ====
         일적으로 무기에 신경을 안 쓴다면 쓰게 될 무기. 헤이덤은 자주 본 듯한 방식으로 검을 잡지만 코너는 한손에 검, 한손에 단검[* 암살검의 날. 분리된다.]으로 운용한다. 장교와 예거가 들고 나온다.
          작고 붉은 나무통. 이걸로 상대를 공격할 수는 없고 운할 수만 있다. 총으로 쏘면 폭발한다. 보통 요새의 화약고를 파괴할 때 사용한다.
  • 여자력 . . . . 3회 일치
         짝 빛나는 삶을 사는 여성이 가진 힘. 여성이 자신의 삶을 연출하는 힘. 또한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 좋은 센스를 눈에 띄게 하여 존재를 드러내는 힘. - 출처「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일적으로 메이크업이나 패션 감각 등을 뜻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배려를 하거나, 인품이 좋은 면을 나타낸다. 요리를 잘 하면 여자력이 높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며, 아무튼 매력이 있다면 여자력이 높다고 보기도 하고 등등. 모호한 면이 많은 단어이다.
  • 연광철 . . . . 3회 일치
         이후 [[청주대학교]] [[사범대학]]음악교육과에 진학하였고 이후 중앙음악콩쿠르, 동아음악콩쿠르에 준우승하였다. 오페라 상설무대의 <베르테르>, <페도라> 등의 무대와 국립오페라단 무대 등에 서며 가수로서의 기을 다졌다.
         가곡의 해석에도 일가견이 있어 정명훈의 주로 <겨울여행(Winterreise)>를 소니 레이블로 출하기도 했다. 그의 독일어에 대한 해석은 시대와 지방에 따른 뉘앙스와 억양의 차이까지도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분석적인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JCC아트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성악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 오냥코 클럽 . . . . 3회 일치
         [[일인]] [[여고생]]을 프로그램 내에서 오디션 하여, 다수의 아이돌을 배출하였다. 대표곡으로 세라복을 벗기지 말아줘요(セーラー服を脱がさないで)가 있다.
         다수의 멤버를 모으고, 일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특징. TV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기으로 한 기획이었다는 것도 특징으로서, 이 때문에 결국 [[시청률]] 저하에 영향을 받아 활동을 중지하게 되었다.
  • 오다 노부나가 . . . . 3회 일치
         그 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격파하고 미노 지역을 흡수한 뒤 상락을 단행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일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에치젠 지역을 공격하다 매제 [[아자이 나가마사]]의 모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포위망'을 펼쳐 견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치 및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차례차례 타개해 나가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후에 서쪽의 [[모리]] 가를 공략하던 도중에 혼노지에서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에서 사망하고 만다.
         사실상 일본을 지배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는 극적인 모습이나, 인물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가 남아 있어 현대까지 역사를 기으로 하는 창작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창작물에서도 이미지가 극적이라 무슨 마왕 같은 걸로 나오는 빈도가 매우 높다.
  • 오오반후루마이 . . . . 3회 일치
         오오부루마이
         원래는 밥과 전복, 매실장아찌, 해파리, 식초와 소금을 차린 밥상인 '오'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국시대 시기까지는 정월에 아랫사람이 이 '오'을 윗사람에게 헌상하는 것이 의례였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부하들을 대접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3회 일치
         "머릿 속에서만 구상하는 이상적인 체계"가 "망했다"고 표현되는 것은 현실에서는 있기 어렵다. 왜냐하면 '''망한다'''는 표현은 일적으로 '''실존하는 체제'''에만 쓰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실존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도 않는 것'''은 망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설사 99%의 인간이 이 체제는 공산주의가 맞다고 주장해도, 아마 그때도 누군가, 삐딱한 사람 한둘은 해당 정의에 대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두가 동의하는 완벽한 공산주의 체계가 실존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 월E : 후부에 나오는 밥먹고 똥만 싸는 인간들
  • 왝더독/줄거리 . . . . 3회 일치
         대통령 선거 2주일 전 밤, 콘래드 브린(로버트 드 니로)이라는 남자가 [[백악관]]에 찾아온다. 백악관을 방문했던 "딧불 소녀단"의 단원 중 하나가 대통령과 단 둘이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이후 그 소녀는 대통령이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브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것. 그는 시간을 끌기 위해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던 대통령이 희귀병에 걸린걸로 위장해 귀국을 지연시킨다.
         다음날, 대통령이 병에 걸려 귀국이 지연되었다는 뉴스와 딧불 소녀단 단원이 대통령의 성희롱을 고발했다는 뉴스가 연이어 방송된다. 브린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알바니아]]와 [[전쟁]]이 난 것 처럼 꾸미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를 위해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인 스탠리 모스(더스틴 호프만)를 찾아간다.
         대통령이 딧불 소녀단 단원을 성희롱한게 사실인지의 여부는 영화 끝날 때 까지 안 나온다.
  • 외척 . . . . 3회 일치
         동양사에서 '외척'이라는 용어가 나오면 대개는 '군주의 외척'을 뜻한다. 그야 일인이나 신하의 외척이라고 해봤자 역사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의미가 없으니까.
         전통적으로 중국의 왕조는 외척의 권세가 강했는데, 특히 [[전한]], [[후한]] 시기는 외척의 권세가 아주 강력했던 시기이다. 황제들은 이것을 제어하려고 [[환관]]과 손을 잡고 외척을 타도하기도 했으나, 이로 인해 이번엔 환관이 대로 지나치게 강해져서 환관 세력이 창궐하게 된다.
         더군다나, 환관의 화는 외척보다 훨씬 오래 가서 나중에 명나라까지 좀먹었으니... 면 외척 문제는 후한의 막장화 이후 이를 본보기로 삼아 역대 왕조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으며, 외척이 나대면 욕먹는 풍조가 널리 퍼지면서(…) 외척이 크게 억제되는 등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
  • 요괴:선풍기 . . . . 3회 일치
         우리는 한달 동안 그 방을 샅샅히 뒤졌습니다. 아마도 그 여관을 설계한 사람보다 우리가 더 자세히 알고 있을 겁니다. 물론 그게 설계도라는게 존재하기나 할때 얘기겠지만. 뜯을 수 있는 거면 장판부터 벽지, 못자국 막은 스티커 하나까지 다 뜯어 봤어요. 할 수 있었으면 틱틱대는 주인양 머리통도 뜯어버렸을 겁니다. 그 빌어먹을 요강 속에 든게 우동사린지 확인해 봐야죠.
         감식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찝찝했어요. 현장은 내집보다 자주 들락거리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먹고 자는건 아니니까요. 화장실에서 밥먹고 식당에서 세수하는건 어색하잖아요. 현장은 아직도 우리가 그어 놓은 표시가 남아있었어요. 며칠 내로 치워줘야겠지만 그때까진 살인현장이라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죠.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그저 사무적으로 바라봤던 그 공간이 거슬리기 시작하더군요. 뭐랄까, 그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느낌... 비유가 이상했군요. 그건 일종의 냄새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혼자 있는데 내가 뛰지 않은 방귀를 맡는 기분. 이것도 이상한 비유군요. 어쨌든 그랬어요. 이상한 긴장감 속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죠.
         그때까지도 나는 그게 문제를 일으킨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그저 이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침대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문까지 불과 한 평도 안 되는 거리를 기어가는데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그 바람. 뜨거운 바람이 계속 얼굴에 닿고 있는 거에요. 나는 침대에서 대방향으로 기어가고 있었는데. 그리고 번쩍 생각이 났어요. 잠들기 전까지는 회전시켜 놨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침대를 향해 고정돼 있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벼락에 맞은 것 같았어요. 탈출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들었죠. 그래요 그놈은 또 거기에 있었어요. 마치 지키고 있는 것처럼 문 앞에요. 시야에는 돌아가는 날개만 보였지만, 나는 그걸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어요. 이쪽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게 가물거리는 시야에서는 마치 커다란 눈알처럼 보이더군요. 숨이 점점 막혀오는 데도 눈을 뗄 수 없더군요. 못으로 박아놓은 것처럼 멈춰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짜맞춰보려고 별별 가정을 다해봤어요. 하지만 침대 앞에 있던 선풍기가 문으로 가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저렇게 노려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이 될 리가 없었죠.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놈이 "행동"을 보여준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산통 다 깨졌다"고 본게 아니었을지 모르겠네요. 내가 깨어났다는걸 좀 늦게 알아차린 거에요. 그러고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범한 기계로 돌아간 척 했던 거죠.
  • 우라가에시 . . . . 3회 일치
          * 대 되는 입장이나 대 시점에서 보는 것.
          * 자신의 감정 등을 정대로 나타내는 것.
  • 우츠미 사토루 . . . . 3회 일치
         의료에 있어서 약물이 불필요하다는 약물주의자이며, 그 외 여러가지가 복합되어 있다(…). 그의 클리닉에서 펼치는 의료를 살펴보면 대략적인 주장을 알 수 있는데….
         >장애아가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낳기 전과 임신 전에 부모의 음식과 생활이 흐트러져 있었는가 하는 증거, 그것은 평생에 걸쳐서 성해야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 아이를 평생 지켜 나가는 것이 진정한 부모에게 주어진 시련입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장애아를 낳은 부모는 출산 전에 음식과 생활이 어지러웠던 증거이며, 평생 성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에게 비판을 당했다.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3회 일치
          크라이슬라우 서클의 리더. 독일 아이젠슈타트 출신으로 아버지를 나치에 의해 잃었다. 전쟁 당시 나치 집행관 한스 그뢰세에게 총을 맞아 척추를 다쳤다. 이 때문에 하신을 쓸 수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다닌다.
          일적인 산탄과 벽과 바닥에 튕기는 파편탄을 사용할 수 있다.
          조준경이 달린 자동 소총. 먼 거리의 적을 상대하는데 적합하다.
  • 워저드 . . . . 3회 일치
          나문 일족의 장이자 오나와의 두령. 주군의 명에 따라 지팡그에 나타난 4척의 흑선을 파괴하러 나가지만, 주군의 명에 의심을 품고 독자적으로 사태를 조사하러 떠난다. 성우는 [[키시노 유키마사]].
          특이 사항이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루안을 클리어 했을 경우 플레이어중 루안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이며[* 레오와 타오의 경우는 서로 대화하면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타바사의 경우는 타바사가 찾는 지식은 위험하다고 말하며 타바사도 거기에 대답을 한다. 하지만 무쿠로의 경우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하늘로 올라갈 뿐이다. 무쿠로가 대화하는 상대는 주군의 또다른 부하.] 두번째로 특수 피니쉬 연출 3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다.[* 세로 쪼개기는 레오, 타바사도 있지만 가로 쪼개기와 심장 뽑기는 무쿠로 전용 피니쉬이다. 대로 타오는 특수 피니쉬가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공룡처럼 생긴 [[드래곤]]. 불을 뿜는 것이 주공격. [[포켓 파이터]]에서는 류가 엔딩에서 대결하게 된다. 결국 류는 하우저에게 개발린다. [[타츠노코 VS 캡콤]]에서는 카라스의 엔딩에 나오지만 류와는 대로 카라스에게 죽는다.(…) 캡콤 파이팅 잼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로 나오기도 했다. 보스를 상정하고 만든 캐릭터를 별다른 수정 없이 넣은 탓에 덩치가 타 캐릭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탓에 피격 판정도 거대해서 보통은 약캐릭터 취급이다.
  • 원피스/831화 . . . . 3회 일치
          * 나미, 캐럿, 쵸파는 숲속을 헤매다 쯤 묻혀 있는 거인이 사과쥬스를 가져다 주면 상디의 정보를 준다고 한다.
          * 마침 근처에도 또 상디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지만 상디는 이번에도 남의 일처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응도 없다.
          * 루피는 가워하며 당장 달려가려고 하는데, 또 한 명의 루피도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
  • 원피스/850화 . . . . 3회 일치
          *"왜 결혼을 하지않겠다고 했냐면, 완전히 나한테 해버린 그 바보를 결혼식 도중에 죽여버릴거라서야. 너희들도 어찌되었던 살아서 돌려보내지 않을거야. 안녕 안타까운 생쥐들아"
          >이건 헛된 죽음이다. "세계의 여명"이 찾아올 날이 가깝다. 난 드시 가야 해.
          * 레이쥬는 쇼파에 묶여 있는 채로 폭언을 듣고 있다. 잠자코 있는 듯 하지만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뭔가 흘러내리는 듯 한데? 눈치채지 못한 푸딩은 빅맘이 제르마의 "클론병단"과 "과학력"을 노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빈스모크 일가와 손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그들은 항적이라 도저히 말을 듣게 할 수 없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제르마는 그 영토를 포함해 "모든 것"이 빅맘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푸딩은 이들을 "정략결혼이란 달디단 과자에 꼬여든 파리"라고 빈정거린다.
  • 원피스/854화 . . . . 3회 일치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현명한 선택이라며, 그건 돌리는 이상 "드시 죽게 되어 있는" 룰렛이었다고 설명한다.
          * 홀 케이크 성은 침입자와 탈주자들로 어수선하다. [[징베]]는 [[나미(원피스)|나미]]를 태우고 경비들을 피해 이동하는 중이다. 이미 성내에는 징베의 모에 대한 소식이 퍼지고 있다.
          총 여섯 명의 침입자 중 둘이 남는다. 루피와 나미. 그런데 이들은 분명 죄수도서실에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이들도 탈출했다는 소식이 도착해 있다. [[샬롯 몬도르]]는 경비를 서고 있었던 [[샬롯 오페라]]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크게 발하며 "사실 무근인 헛소문"이라 일축한다. 지하엔 아무도 오지 않았으며 빅맘의 명령대로 [[샬롯 로라]]의 위치를 캐내기 위해 고문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태워죽여버렸다는 얘기다. 오페라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빅맘에게 모든 수명을 뺏길 거라고 두려워해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몬도르는 미심쩍어하지만 형인 오페라를 대놓고 의심할 수는 없어 넘어간다.
  • 원피스/864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샬롯 카타쿠리]]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걸 보고 "빅맘 진영에 크게 불리해지는 예지"를 본 걸로 짐작, 더이상 숨기지 않고 역을 일으킨다.
          * 혼란에 빠진 다과회장. 빅맘 해적단이 태세를 정비하지 못한 사이, 벳지는 루피를 생포한 척 연기한다. 일단은 자신이 경비 책임자이기 때문에 손놓고 있으면 수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가 루피를 사로잡았다고 외치자 누군가 "죽여버려!"라고 받아친다. 루피는 벳지의 처사에 발하지만 그는 상황이 좋지 않다며 손발을 맞춰줄 것을 요구한다.
          * 그땐 혼란한 다과회장을 "살려줘"란 다급한 목소리가 뒤흔든다. 루피는 그 목소리를 듣고 벳지의 "연기"를 뿌리치고 달려가려 하고 상디는 "얘기가 다르다!"고 분개한다. 어느틈에 샬롯가의 형제들이 빈스모크 일가를 둘러싸고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제야 암살계획을 알아차린 [[빈스모크 저지]]가 빅맘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악의 세계에도 인의는 있다"는 말을 하는데 누구하나 수긍하지 않는다. 그의 자식들 조차도.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은 자기들도 머리에 총알을 박을 판인데 오히려 냉소한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웃으며 어차피 이제 살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그들의 몸을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무기도 레이드 슈츠도 지금은 없다고 내뱉고 [[빈스모크 니디]]는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 하하하"라고, 게임에 진 정도의 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지는 자식들의 냉담한 태도에 "제정신이긴 하냐"고 대꾸하지만 [[빈스모크 레이쥬]]는 그것도 자업자득이라 여긴다. 그들을 감정없는 기계로 기른 것은 저지 자신이다. 설사 가족이나 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무감정할 수밖에 없다.
  • 원피스/871화 . . . . 3회 일치
          * 빅맘은 역자 전원을 처형하겠다 선언하나 성 밑으로 떨어진 옥갑이 폭발을 일으키고 이 여파로 홀 케이크 성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 빅맘과 전면전은 계획에 없던 일. 그러나 레이쥬가 당할 것 같자 상디와 루피가 앞뒤 없이 뛰쳐나갔다. 그걸로 레이쥬를 구했으니 다시 퇴각 대열에 합류해야 할 일. 그러나 깔끔하게 돌아선 상디와 달리 루피는 돌아가려 하질 않아 억지로 끌고 가고 있다. 빅맘의 도발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인섬 때와 죄수도서관 때의 일을 운운하며 "너를 날려주마! 마지막에 이기는 건 우리다!"고 떠든 주제에 도망치는 거냐며 "겁쟁이"라고 조롱했다. 상디가 저런 뻔한 도발에 응하지 말라고 타이름 , 꾸짖음 으로 설득했지만 루피는 성미를 누르지 못하고 상디의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 "한 방만!"이라 약속하고 빅맘에게 달려든다.
  • 월드 인 컨플릭트 . . . . 3회 일치
          파커와 배넌, 웹이 소속된 대대의 지휘관. 계급은 대령. 유럽 전선에서 파커, 배넌과 함께 복무했다. 파커를 우수한 장교로 여기는 면 배넌을 못마땅해 한다.
          올로프스키 휘하의 중대장. 올로프스키의 조카로 소련과 사회주의에 대한 충성심이 충만한 장교이다. 미국에 감을 가지고 있으며, (말라셴코가 보기에) 답답한 명령을 내리는 올로프스키에 대해도 감을 가지고 있다.
  • 유병수 . . . . 3회 일치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2011년]] [[7월 23일]], [[알힐랄 (리야드)|알힐랄]]이 유병수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알 힐랄, 유병수와 3년 계약 공식 확인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7250100208830017535&servicedate=20110724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박상경 |날짜=2011년 7월 24일}}</ref> 입단 초 부상으로 고전하였으나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2011-12 시즌 크라운 프린스 컵에서 4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라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AFC 챔피언스리그 2012|2012 ACL]] 16강 경기에서는 무려 4골을 몰아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유병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의 승선이 거론되었다.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도 그에 대해 관심을 숨기지 않았으며, 마침내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3연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806415&code=980201 |제목=신인 유병수, 허정무호에 ‘깜짝 승선’|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향뉴스}}</ref> 그리고 [[2009년]] [[6월 3일]]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평가전에 후 교체 출전하여 A매치에 데뷔하였지만<ref>{{웹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90604122105§ion_code=10&key=%C0%AF%BA%B4%BC%F6&field=gisa_title&search_key=y |제목=A매치 데뷔 유병수, UAE전 승리 위한 '비밀병기'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탈코리아}}</ref> 오만전이 A매치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삭제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2009/0804/20090804101020201000000_7288524317.html |제목=6월 허정무호 오만전, FIFA A매치서 제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서울}}</ref> 이후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10월 4일]], [[조광래]] 감독이 [[10월 12일]] 열릴 한일전을 앞두고 유병수를 발탁하면서 다시 기회를 잡게 되었고<ref>{{웹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0041004362234&ext=na |제목=한일전 명단 발표…유병수-신형민 대표팀 복귀 |확인날짜=2010-10-04 |출판사=마이데일리}}</ref> 경기가 끝나기 9분 전에 교체 투입되며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 유승옥 . . . . 3회 일치
         2015년에 SBS의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하고, 게임 [[철권 7]] 런칭쇼에서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신 캐릭터 [[카타리나 아우베스]]의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나와 유명해졌다. --하지만 신캐 응이 썰렁해서 묻혔다.[* 실제로 그녀의 소속사 사이트를 가보면 다른건 다 기록되있어도 철권 런칭에대한건 나와있지 않았다(....)].-- 롯데월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철권 7 이벤트 매치를 벌이기도 했다. 플레이 당시 유승옥이 선택한 캐릭터는 홍보할 때 코스프레했던 캐릭터인 카타리나였고, 대전 상대는 한국의 여성 철권 고수로 유명한 카니스 (본명 양이섭)의 [[스티브 폭스]].
         2015년 1월경 [[정아름]]이 유승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비판을 올렸던 일이 조명된 바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95170|링크]] 정아름은 뒤늦게 논란이 되자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18991|이는 디스나 폄하가 아니며]] 유승옥에 대해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기 비판에 인용하게 되었을 뿐이란 입장을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77514.htm|밝혔으나,]]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과 연관되게 되자 다시금 안 좋은 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태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유승옥 디스 건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부터도 정아름이 골프 선수 시절 '''누드 화보를 찍었던 당사자가 남 말하듯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응을 보였었다.'''[* 일단 [[정아름]] 본인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찍었더고는 하지만[[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19901]] 그 사진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유통된 것이라(...) 논란이 좀 있다[[http://www.koreatimes.com/article/199436.]] ]
         7월 15일 모 온라인 매체의 '''기승전유승옥'''이라 불리는 기사 시리즈가 화제가 됐다. 인터넷상의 화제에 대해 서술한 후 유승옥의 응을 덧붙이는 식으로 기사를 무한 생산한 것이다. [[http://me2.do/xzIctqPl|이런 기사가 뜬 이유]] ~~만물의 전문가 유승옥~~ 소속사는 "기자가 물어오면 코멘트를 전달하는 식으로 응대한 적은 있다"며 홍보 목적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http://m.mt.co.kr/renew/view.html?no=2015071516054343015&ca=society|해명기사]]
  • 유열 (가수) . . . . 3회 일치
         |직업 = [[가수]] <br /> [[작사가]] <br /> [[뮤지컬 배우]] <br /> [[뮤지컬]] [[제작자|감독]] <br /> [[음]]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 음 ==
         다른 음악가의 [[팝]] 및 [[재즈]] 곡들을 다시 부른 [[리메이크]] 음이다.
  • 유한식 . . . . 3회 일치
         [[2007년]] [[10월]]에 [[이기봉]] 전 [[군수]]가 공직선거법 위으로 당선이 무효되자 연기군수 재보궐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같은 당의 최준섭에게 공천에서 밀려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3위로 [[낙선]]한다. 그런데 최준섭 군수 또한 선거법 위으로 당선이 무효되면서 다시 보궐에 선거에 국민중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선진당]]에 속하였다.
         || 2012년 || '''[[2012년 상기 재보궐선거 #s-3.1|4·11 재보궐선거]] [BR]세종특별자치시장 1대 (민선 5기)''' || 자유선진당 || '''19,387표 (41.73%)''' || '''당선(1위)''' || '''초선'''[* 초대 세종시장^^[세종시 교육감]^^의 임기는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세종시법)^^''의 부칙 제2조에 따라 2014년 6월 30일까지로 한정하고 있다.(약 2년)] ||
  • 윤주희(배우) . . . . 3회 일치
         2004년 말, [[DHC(화장품)|DHC]] 코리아의 제1회 DHC 스베스베퀸 선발대회[* 우승상금으로 5백 만원과 DHC 적립금 2백만원 외 전속계약금 별도로 김희선과 함께 CF 및 지면 광고모델로 활약하게 되는 특전이 주어졌다.]에서 우승을 차지. 2005년도 초부터 [[김희선]]과 함께 CF를 찍으며 대중에게 존재를 알리게 된다.
         당시에 최고의 배우들이 머물던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배우 연습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채널V, M-net등에서 방송활동을 하며 착실히 연기수업을 하던중[* 배우 연습생 윤주희 씨에 관한 취재를 했던 [[씨네21]]의 당시기사.[[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37186|기사]]], [[싸이더스HQ]]의 간판 [[김선아]]가 영화 [[목요일의 아이]]에 캐스팅되었고 같은 소속사 배우로서 함께 촬영에 참여했으나, 영화촬영이 중에 엎어지는 바람에 모든 촬영분을 들어내야 하기도 했다.
         또한, [[목요일의 아이]]가 엎어지고 난 뒤 공식데뷔 이전까지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들 중에 발견된 작품이 두 작품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김수현(작가)|김수현]]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 7화에서 [[이훈]]의 상대역으로 약10초간 등장. 또다른 하나는 드라마 [[히트(2007)|히트]]에서 극 후부에 간호사 역할로 등장했다 납치되어 살해당하는데 당시에 얼짱 간호사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 윤진식(국회의원) . . . . 3회 일치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대중]] 정부 후기에는 [[관세청]]장,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장관 역임 당시에는 대북송금 특검을 대할 정도로 꽤 진보적이었다. 기회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 2010 || [[2010년 재보궐선거|2010년 상기 재보궐선거]][br](18대 국회 충북 충주)[* 전임자 [[이시종]] 지방선거 출마로 국회의원 사퇴] || '''[[한나라당]]''' || '''43,367 (63.65%)''' || '''당선 (1위)''' || ||
  • 윤진영(코미디언) . . . . 3회 일치
         개그맨의 꿈을 안고 상경해서 대학로에서 공연하다가 2003년 말 [[김필수]], [[김재우]], [[엄승백]], [[심진화]]와 한 팀으로 SBS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으며 SBS 7기 희극인으로 방송계에 입문한다.[* 이 멤버 중에서 김필수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 사이. 둘이 함께 상경해서 지하 생활을 하며 얼음 배달, 김밥 만들기, 공사장 노가다 등 온갖 잡일을 하며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다. 이때 이 둘과 같은 지하에 살았던 사람은 [[김병달]].] 팀의 수상작 '''병아리 유치원'''으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데뷔하는데, 선생님만 없으면 본색을 드러내는 조폭 유치원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너로 인기를 얻게 된다.[* 선생님은 심진화, 두목은 김재우, 나머지 셋은 똘마니 유치원생들이었다.]
         박승대 사건 이후 예전 같은 활약은 보이지 못하다가 2009년 3월 3일 입대했다.[* 같은 날, 오랜 단짝인 김필수도 입대했다. 하지만 동 입대는 아니었다. 김필수는 강원도에, 윤진영은 경기도에 입대했기 때문.]8사단 수색 대대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야 무릎 상태가 심각해서 공익으로 복무할 수 있었지만 본인이 현역 복무를 선택했다는 게 알려진다. 연예병사로서 군 복무를 끝마쳤는데, 선임으로는 [[강타]]가 있었다고 한다. 전역하니 웃찾사가 사라져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다가 TVN [[코미디빅리그]]가 신설되자 김필수, [[조우용]], [[박충수]]와 함께 '''따지남'''으로 방송계에 복귀한다. 동기들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 자신의 이름을 알리다가 [[환상거탑]]과 [[푸른거탑]]에 [[윤진영(푸른거탑)|고정 출연]]한 것을 계기로 현재는 배우 활동 중이다.
  • 은혼/584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긴토키는 "안 들리냐? 전부 꺼내놓으라고 하잖아."라며 격한다.
          * 한동안 출연이 없던 동인지 긴토키가 명대사를 막 쏟아낸다.
          * 긴토키와 카무이가 대결하는 거에 감을 가지는 팬들도 있는데, 카무이는 우미보즈나 가구라가 처리했어야 맞지 않겠냐는 논리.
  • 은혼/593화 . . . . 3회 일치
          * 어느날 속박에서 풀려난 우츠로는 복수하듯 살육을 복해온 끝에 그 실력을 높이산 텐쇼인 나락으로 거두어지게 된다.
          * 그렇게 무수한 죽음과 삶을 복하던 그는 그 끝나지 않는 고통을 넘기 위해 무수한 인격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 이후 정권이 바뀌어가는 동안에도 우츠로는 여러 주인 밑에서 살인을 복한다.
  • 은혼/596화 . . . . 3회 일치
          * 벌써 1시간이나 사투를 벌이고 있으려니 시민들은 경찰양까지 부르기에 이른다.
          * 그때의 공포가 겨우 사라질 쯤 다시 같은 일이 복된 것이다.
          * 침략자의 정체는 "아르타나 해방군". 천도중에 기를 든 세력이며 우츠로가 획책한 터미널 붕괴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 은혼/598화 . . . . 3회 일치
          * 격에 나서는 가부키쵸. 마침내 주민들까지 앞장서 천인세력과 싸운다.
          * 격의 시작.
          * 다시 격을 개시하는 해결사.
  • 은혼/620화 . . . . 3회 일치
          * 다키니는 지휘관을 잃자 혼란에 빠져 [[츠쿠요]]의 백화와 힘을 합친 가부키쵸 주민들의 격에 격퇴된다.
          츠쿠요는 백화 부대의 대장이란 책무를 져버릴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히노와는 그녀가 이미 할 만큼 했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도 좋다고 설득한다. [[세이타]] 또한 갑옷을 걸치고 백화 부대원들과 함께 나타나 자신들이 요시와라를 꼭 지킬 테니 츠쿠요는 바람대로 하라고 거든다. 둘의 설득으로 마음이 움직인 츠쿠요는 자신을 따르는 백화 부대원들을 이끌로 가부키쵸로 향한다. 히노와는 세이타에게 "이렇게까지 거창한 핑계를 대주지 않으면 한 남자를 만나러 가지도 못한다"고 농담한다.
          * 츠쿠요는 그런 독백을 하며 전장을 누빈다. 지휘관을 잃은 다키니 부대는 혼란에 빠져 가부키쵸 저항군의 격에 퇴각하기 시작한다. 츠쿠요는 여자를 얕봐놓고 여자를 피해 달아나는 적들을 빈정거린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큐베도 "여자한테 대장의 목이 따였는데 원수도 갚지 않느냐"고 호통친다. 우연히 같은 소릴하게 된 두 여자는 마주보고 웃는다.
  • 은혼/625화 . . . . 3회 일치
          * 오우가이는 다시 전장에 서서 와해되는 해방군을 추스리고 격을 가하려 하는데
          * [[사카타 긴토키]]를 중심으로 격을 펼쳐온 가부키쵸 주민들은 전황이 차츰 바뀌어감을 체감한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적들이 지휘계통을 잃고 사기가 꺾여 도주하기 시작했다고 논평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상황은 좋지 않다. 당장 전투에서는 이기고 포위를 풀었지만, 지구가 우주 전체에 의해 포위된 상황은 변함이 없다. 이 가부키쵸 하나만 놓고 봐도 마을 내부로 진입한 적들이 후퇴하는 것일 뿐, 이들이 다시 마을 밖의 본대와 합류한다면 원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여전히 마을은 포위되어 있고 코끼리한테 바늘을 찔러넣은 정도의 격을 한 것 밖에 안 된다.
  • 은혼/629화 . . . . 3회 일치
          * 마츠다이라의 바람과는 달리 소요 공주는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창밖으로 불꺼진 에도의 밤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 옆엔 [[이마이 노부메]]가 있다. 부상으로 전선에서 이탈했지만 공주의 경호역을 맡았다. 노부메는 창가를 서성이는 공주에게 잠이 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요는 대답 대신 노부메씨도 그렇냐고 문한다. 노부메는 부상으로 발목이나 잡는 마당에 염치없이 쉴 수 없다면서 공주를 위해서 보초를 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주가 사양하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선채로 잠들어 버려서 별 설득력이 없다.
          [[핫토리 젠조]]는 이 상황을 너무 마셔서 사마귀가 터진 걸로 수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게다가 왠지 동료들이 드시 와줄거라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치질용 좌약을 내미는 시점에서 믿었던 동료들은 남아있지 않다.
          일행은 너무 퍼마셔서 하신이 못쓰게 된 책임자들을 전부 버린 채 다시 추적에 나선다. 히지카타가 다 너네들이 퍼마신 탓이라고 돌리는데 긴토키는 추리가 틀렸으니 곱창을 꺼내라고 응수한다. 히지카타는 그런 논리라면 오키타도 할아버지를 데려와야 하지 않느냐고 방어한다. 오키타는 어차피 자기 할아버지는 옛날에 죽었으니 히지카타도 죽어야 한다며 패드립을 감수하고 히지카타를 공격한다. 이젠 추리도 뭣도 아니게 된 초딩 말싸움. 보다 못한 신파치가 그딴 소리나 할 때가 아니라고 중재한다.
  • 은혼/635화 . . . . 3회 일치
          * 야토족 용병부대의 대장 "노사"는 일족 내에선 "장로"라 불리며 기공으로 가사상태를 복해 200년 이상 살고 있는 괴물.
         >드시 지구에 가자고 그렇게 약속했던 바보는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그 대를 선택한다.
  • 은혼/636화 . . . . 3회 일치
          가구라는 그 말을 받아들여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눈이 아닌 피로 적을 포착하는 방법. 그러나 갑자기 잘 될리는 없고 그저 캄캄할 뿐. 대로 카무이는 적이 아주 잘 보인다. 구체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가구라의 얼굴이다. 딱밤을 먹이며 "이걸로 비겼다"고 선언하는 카무이. 참 관대한 처사다.
          * 오빠의 전술을 이해한 가구라가 곧바로 응용한다. 가구라는 다시 노사의 후방을 향해 뛰어드는데 노사는 이정도의 정직한 기습에는 이골이 난 인물이다. 기공을 오른발로 옮기면서 돌려차기로 격하는데, 이번엔 가구라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 발을 밟고 대편으로 넘어간 가구라. 텅 빈 머리통이 목표다.
  • 은혼/638화 . . . . 3회 일치
          *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은 에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각지에서 흩어져 싸우던 가부키쵸 연합군이 퇴각한다. [[츠쿠요]], [[사루토비 아야메]]가 백화와 오니와슈를 수습하고 [[도로미즈 지로쵸]], [[도로미즈 피라코]] 부녀와 [[사이고 다카모리]]도 병력과 함께 퇴각하나 어디로 가야할까? 폭발은 빠른 속도로 뒤따라온다. 가부키쵸의 고지대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오토세]] 여사. 그녀와 함께 전황을 지켜보던 가부키쵸 주민들 사이에서 [[시무라 타에]]가 조심스럽게 걸어나온다. 그녀의 눈은 믿기지 않는 광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 허둥대던 해방군의 지상부대는 폭발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모든 상황을 대기권 밖에서 지켜보던 해방군 본대가 지구 지표의 고에너지 응을 감지했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이 양상은 그들이 한 번 씩 겪었던 "그 일"을 연상시킨다. 보고를 받는 [[엔죠]] 황자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미치광이 동자살.
  • 은혼/644화 . . . . 3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는 [[귀병대]] 동지 [[다케치 헨페이타]]와 [[카와카미 사이]]의 희생으로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시스템을 파괴한다.
          *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에 돌입한 [[귀병데]]가 전멸하고 동지였던 [[다케치 헨페이타]]와 [[카와카미 사이]] 마저 희생시킨 [[다카스기 신스케]]는 그들의 유지를 받드는 일념으로 [[키지마 마타코]]와 결사의 돌격을 감행, 히노카구츠치의 시스템룸에 진입한다. 신스케가 시스템 유닛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고 있을때, 방어병력들은 발악하는 심정으로 다리를 파괴하고 신스케도 추락한다. 그러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 적 병사의 바주카를 무너지는 잔해에 쏘고 그 후폭풍으로 중추 시스템에 접근한 신스케. 병사들은 중추 시스템이 파괴되면 해방군만이 아니라 이 배 자체와 귀병대, 양이지사 일행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소리친다.
          >알겠냐? 우리도 너희와 별 차이없어. 다들... 똑같은 기분이라고.
  • 은혼/646화 . . . . 3회 일치
          그러나 사루가쿠는 바보였다. 거대한 원수를 상대로 어떻게 해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동료의 원수를 갚아줄 수 있을지 궁리할 수가 없었다. 동료의 빚을 갚는건 해적들만의 자존심은 아닐 것이다. 귀병대도 비싼 희생을 치르지 않았던가. [[카와카미 사이]]라는 희생. 그래서 다케치가 죽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사루가쿠는 자신과 부하들을 써 승리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다케치에게 부탁했다.
          >그 남자는 드시 살아있을 겁니다.
          * 녀석들은 정작 자기 등 뒤는 챙기지 못했다. 다츠마와 가츠라가 다카스기의 후방을 청소했다. 마침내 나란히 선 세 사람. 피투성이의 세 남자. 엔쇼와 격전을 치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말할 것도 없었고 다카스기의 상태도 심각했다. 그는 멀쩡히 서있는 것 같았지만 발아래로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는 막 회복됐다. 일시적인 출력 저하가 복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걸 점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다. 그가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의 형태로 바꾸자 부하들이 후방에 늘어서 원호사격 진형을 취했다. 엔쇼가 광탄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일렬로 늘어선 해방군이 일제 사격을 취한다.
  • 이병규 (1983년) . . . . 3회 일치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011년]]에는 재활군에 머무르다가 후기에 복귀하여 33경기에 출전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95995 LG는 왜 최희섭에 관심이 없을까?] - OSEN</ref>
         [[2012년]]부터 다시 본업인 [[1루수]]로 [[최동수 (야구인)|최동수]]와 번갈아가며 출장했고, [[2012년]] 시즌 후 10월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했다. [[넥센 히어로즈]]전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13년]] 2012년 10월에 무릎 수술 후 2013년에는 초에 복귀하지 못하고 2군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후기에 복귀하였다.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홈런을 기록했다.
  • 이성계 . . . . 3회 일치
         한국사의 명장 열에 드시 낄 정도로 군사적인 역량과 개인의 무용이 후덜덜했던 인물로, 이러한 업적을 통해 정계의 거물로 성장하였고, 그 후 명과의 외교 마찰로 인해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추진하자 이에 대하였으나 묵살당하자 최영이 우왕을 달래느라 정벌군을 직접 이끌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국경지대의 하중도(河中島)인 '위화도'에서 군대를 물려 쿠데타를 단행해 최고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 후 정몽주 등의 저항을 뿌리치고 마침내 조선을 건국한다.
  • 이수민(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아시아 윈터리그에서 간만에 모습을 보였는데, 겨울이다 보니 150km/h까지 찍던 투수들도 140 초중에서 맴돌았다지만 이수민은 120 중후대에 130을 간신히 찍을 정도로 구속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성적은 8경기(1선발) 15.2이닝 1패 방어율 8.62.
         정규시즌은 2군에서 시작했다가, 4월 20일 전날 경기 중 타구에 맞은 [[우규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하지만 4월 22일 시즌 첫 등판에서 속구 최고 구속이 130km/h 중대를 겨우 기록할 정도로 구속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었고, 2⅔이닝 3실점으로 경기 내용도 별로였다. 결국 23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그 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 이윤열 . . . . 3회 일치
         2000년도 경 iTV 고수를 이겨라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인규를 격파한 것이 데뷔전이었으며 이후 2001년 상기, Game-i(이후 [[화승 OZ]]의 전신인 IS와 합병)에 입단하면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2년 12월엔 KTF 매직엔스(현 [[KT 롤스터]])로 임대 이적했고, 이듬해 2003년 12월 24일 투나 SG(현 [[위메이드 폭스]])로 복귀한 이후 2010년까지 활동했다.
         2001년 데뷔 후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당시 임요환의 뒤를 잇는 새로운 신예 테란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들어 전성기를 맞이한 이윤열은 그 당시 개인리그 중 하나였던 iTV 랭킹전에서 임요환과 변길섭을 꺾고 2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KPGA(MSL의 전신)에서 3연속 우승을 하면서 기염을 토했다. 특히 2003년 초엔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배스킨라빈스배 2002 KPGA 4차리그는 물론 GhemTV 3차 스타리그까지 동시에 석권하면서 전무후무한 그랜드 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2015년 11월 9일 일인 여성과 교제의 끝에 혼인의 길을 맺었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측은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스타크래프트 II: 공허의 유산]] 출시행사에서 결혼식을 가지게 되어 전세계로 생중계 되어 많은 팬들이 축하를 남겼다.
  • 이종혁 (배우) . . . . 3회 일치
         * [[2005년]] 《[[미스터 소크라테스]]》 - 신장 역
         * [[2011년]] [[KBS2]] 미니시리즈 《[[강력 (2011년 드라마)|강력]]》 - 정일도 역
  • 일곱개의 대죄/171화 . . . . 3회 일치
          * 정면에서 나선다면 드시 경계하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대싸움축제에 참가자로 들어와 방심을 노렸던 것.
          * 고우서는 자신에겐 마음이 없다고 하지만 에스카노르는 "과연 그럴까?"라고 문한다.
          * 조차도 이런 전개는 예상도 못했는지 시종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일곱개의 대죄/182화 . . . . 3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어린 엘리자베스에게 "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보고 현실로 돌아온다.
          * 그때 과거의 멜리오다스는 어린 엘리자베스에게 "드시 살아서 네 곁으로 돌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 엘리자베스는 현실로 돌아온 이후 "드시 돌아온다고 약속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3회 일치
          * 에스카노르의 격. 마치 태양같이 거대한 이미지.
          * 하지만 멜리오다스의 것은 "마력"만을 받아치는데, 이쪽은 대로 "물리력"만을 받아친다.
          * 에스타롯사도 풀카운트를 쓰는데 멜리오다스와는 정확히 대. 순수한 물리력만을 튕겨낸다.
  • 일곱개의 대죄/186화 . . . . 3회 일치
          * 호수대편 어딘가에서 폭발하는 태양.
          * 은 허세부리지 말라고 만류하는데 덴젤은 그에게 뒤를 맡기고 나선다.
          * 은 케르논노스의 뿔피리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기척을 느낀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3회 일치
          * 기라는 베로니카 왕녀를 피신시키려 하나 베로니카는 "네 동생 질을 드시 지켜야 하고 너도 무사해야 한다"며 가지않는다.
          * 은 폭스 헌트로 구근을 제거하려 하지만, 갓 태어난 마신족의 구근은 깨알처럼 작아서 실패.
          * 정체가 비비안이란건 길프로스트가 차고 있는 지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사실. 하지만 전혀 갱생한 면모가 없고 또 길선더만 살리겠다고 도망쳐버리는 졸렬함을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3회 일치
          그러나 진상을 아는 [[게라이드]]는 어두은 얼굴이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불편한 얼굴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그로키시니아]], 그 몸을 가진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에게 경호를 부탁받았던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혹시 인간인 자신이 호위라 불안한 거냐고 묻는다. 게라이드는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라며 당치 않다는 응을 보인다. 로우는 그녀의 오빠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지 않느냐며 자신을 의식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빠로서 그로키시니아는 어떤 인물이냐고 묻기도 한다. 게라이드가 다정하고 자기가 곤란해하면 언제든 달려와준다고 말하자 로우는 아주 흐뭇하게 웃는다. 그런데 게라이드는 그 웃음을 보면서 무언가 미심쩍은 점을 느끼는데.
          할리퀸은 여신족이 생각보다 호전적이고 고압적이란 점도 몰랐다고 말한다. 디안느도 동감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렇지 않았고 멜리오다스도 마신족 답지 않은 마신족이라고 말한다. 할리퀸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 현대에서 자신이 멜리오다스에게 한 일을 성한다. 분명 그에게도 복잡한 사정이 있었을 텐데 그가 마신족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걸 부정했던 것이다.
          악당처럼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그는 일순 표변해서 "어때? 방금 건 꽤 악당 같았지?"라며 연기였다고 한다. 어처구니없어하는 디안느와 할리퀸. 두 사람의 황당해하는 표정에 만족한 고서. 두 사람에게 좋은 응 고맙다며 박수까지 쳐준다. 이런 "덧없는 대화"가 유쾌하다고 하는데. 그리고 악의는 없었다며 용서를 구한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3회 일치
          * 싸움은 피할 수 없다. 할리퀸은 어쩔 수 없이 디안느에게 고서가 정신을 조작하는 마법을 쓰며 그녀의 기억을 지운 장본인이라고 말해준다. 고서를 경계시키기 위함이었는데, 디안느는 뜻밖의 응을 보인다.
          살짝 열린 문으로 쇠사슬이 휘감겨 있는 기이한 풍경. 네로바스타는 그 문과 메라스큐라의 응, 양쪽 모두 의아하다.
          메라스큐라가 발하며 장난치지 말라고 외치는데, 고서가 손을 뻗어서 그녀의 입을 틀어 막는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3회 일치
          * 나자는 고서가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고서는 옛날부터 여기 있었을 뿐 다른 기억이 없다. 그건 설명이 되지 않는 얘기다. "여기"는 "리오네스 성"의 지하였다. 그러니 고서가 "처음부터 여기에" 있다는 걸 나자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대로 고서는 리오네스라는 나라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다. 나자는 리오네스는 다나폴 왕국과 맞먹는 대국인데 모를리가 없지 않냐고 말한다.
          >나자 공주. 달빛이 짝이는 오늘 밤, 나와 여행을 떠나자.
          * 나자는 낮부터 기력이 없어서 방에 누워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고서는 걱정말고 푹 쉬라면서 다음에는 페네스의 호까지 가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나자는 화제를 돌려 고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그때 고서는 갓 태어난 산양 같았다고 한다. 지금은 누구도 그를 "인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서는 자신은 인간이 아니며 몸도 마음도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몇 백년이든 몇 천년이든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하는데.
  • 일장청 호삼랑 . . . . 3회 일치
         수호전의 대표적인 미녀 여검사. 수호전이 중부로 들어서면서 군담물이 되어, 두령 개개인들의 활약 묘사가 줄어드는 시점이라 인물상을 알기 어렵다.
         포로로 잡히고, 가족은 몰살당하고, 강제로 결혼하게 된 신세지만 왕영과 사이는 좋았던 듯. 후부에는 왕영과 함께 출진하는 장면이 많고, 왕영이 쓰러졌을 때는 분노하여 돌격하는 묘사도 나온다.
  • 일즙삼채 . . . . 3회 일치
         1종류의 국(汁,즙)과 3종류의 찬(菜,채)로 구성되는 상차림을 뜻한다. 3채는 [[회]](膾), 조림(煮物), 구이(焼き物)로 구성한다. 다만 일상 가정요리에서는 요리의 종류는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일즙일채(一汁一菜)는 1종류의 국과 1종류의 찬으로만 구성된 간소하고 소박한 식단을 뜻한다.
          * 일즙오채(一汁五菜)는 찬을 5가지 쓰는 호화로운 식단을 뜻한다.
  • 자시키로우 . . . . 3회 일치
         감금된 대상은 일적으로 장애인, 미치광이 같은 정신질환자, 행실이 불량한 자, 그 외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바깥으로 내보내기 부적절하다고 생각된 자 등이다. 하지만 기준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도 많으며, 후계자가 아닌 아들,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연애를 한 자 등도 자시키로우에 감금될 때도 있다.
         일적으로 다다미 방이며, 철이나 나무 격자 등으로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둔다. 사적인 감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출입 자유는 박탈하지만 일단 생존에는 지장이 없도록 음식 등을 공급하며 관리하는 것이 관습이다.
         그러나 대개 감금된 사람은 겨우 음식만 먹으면서 최소한의 생존만을 유지할 뿐, 위생관리 등은 되지 않아 생활이 지극히 비참하며 알몸으로 오물에 덮혀 살아가는 경우도 많이 보고되었다. 공간 역시 부족하여 한평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지어 환자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우므로 그러지 못하도록 벽에 빽빽하게 못을 박아두는 경우도 있다.
  • 장기오 (공무원) . . . . 3회 일치
         [[대한민국 육군|육군]] [[3성 장군|중장]] 예편 이후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장관]]을 역임하였고 [[1996년]] 12·12 군사 란이 [[문민 정부]]에 의하여 사법처리가 확실시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1997년 12월 22일 12·12 군사 란 가담자가 사면된 뒤 대한민국과 미국의 범죄인 인도 협정이 발효될 예정을 보이자 [[1998년]] 귀국해 자수했다.
         {{12·12 란 주동자}}
  • 장민호 (1962년) . . . . 3회 일치
         * [[1982년]]~[[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입학 및 졸업, 미군의 그라나다 침공 대 시위로 투옥되었다는 설이 있음.
         * [[2007년]] [[12월 13일]] 대법원, 국가보안법 위으로 징역 7년에 추징금 1900만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간첩 사건]][[분류:대한민국의 학생 운동]][[분류:전 운동]][[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수상자]]
  • 저스디스 . . . . 3회 일치
         == 음 ==
         === 프로젝트 및 컴필레이션 음 ===
         !음
  • 전태규 . . . . 3회 일치
         [[1999년]] 하기부터 프로게이머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1년]] 상기 KOR에 입단하였다.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2002년]] 하기부터 방송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쳐서는 양대 방송대회에서 4강, 결승까지 진출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32화 . . . . 3회 일치
          * 효부는 레어메탈을 미량씩 섭취시켜 자신도 모르는 틈에 조종하는 방식을 썼을 거라고 판단, 용의자들의 혈액을 채취해 염파로 응을 살피는 검사를 한다.
          * 고로 길리엄을 도발할 수 있는 사념파를 보내는 걸로 응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 미나모토를 조사하던 중 격렬한 응이 나온다
  • 절대가련 칠드런/433화 . . . . 3회 일치
          * 미나모토 코이치가 격렬한 응을 보이지만 그 응은 미야모토가 아닌 마츠카제 코우이치의 것이었다
          * 검사결과 누구도 양성 응을 보이지 않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3회 일치
          * 타니자키가 이곳에 온 것은 년 전 일 때문인데, 평상시와 같이 나오미에게 "결혼하자"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 나오미는 언제나 그렇듯 정색하고 대응하려는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나쁘지 않은 얘기라는 응을 보인다.
          * 어쨌든 그 이후로 년에 걸쳐 사과 메일을 보내며 연락을 하고 있는데, 미묘하게 누그러진 것 같기는 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3회 일치
          * 유리는 다중차원 이용자라면 텔레포트 기의 합성 능력자일 거라고 예측하는데, 마츠카제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텔레포터(아오이)를 어떻게 포획할 수 있었던 건지 의문스러워한다.
          * 마츠카제는 인근 순시선에 연락해 일사양의 ECM이라도 좋으니 작동해 달라 요청한다.
          * 적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인데, 칠드런은 적이 숨어있는 곳 자체를 찾을 수는 없고 자신들의 능력도 약히진다는 점을 들어 대하지만 강행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3회 일치
          * 효부일행은 언터쳐블 엠프렌스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론 큰 피해는 없이 끝났지만 이들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크다. 특히 요우는 마기가 모미지를 공격한 일로 이를 간다. 한편 치료 중인 모미지는 설득실패를 자기탓으로 돌린다. 효부는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다고 말하지만 내심 최악의 상황이라 여긴다. 같은 상황이 복된다면 길리엄과 싸우는건 불가능하다. 효부는 뭔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기존의 레어메탈 감염자들이 단순히 마음이 일그러져 폭주하는 것에 그친 데 해 마기는 대놓고 길리엄 측에 붙는다고 선언하여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지인들을 소중히 여기는 효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인 만큼 더욱 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효부가 거의 최초로 싸움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평했다. 언제나 "어떻게든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대.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3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61th sense. '''역자들 (4)'''
          * [[우메가에 나오미]]는 화물 속에 [[사카키 슈지]]와 [[쿠모이 유리]]를 숨겨 BABEL의 의료연구실에 입한다. 유리의 위장 최면은 감시카메라까지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
          * 나오미는 자신의 검진용 ID와 비밀 코드를 사용해 연구시설로 접근시켜준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미지수. 사카키는 곧바로 혈청을 제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사카키는 완전히 잠식된게 아니므로 혼자만 두지 않으면 작업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고 혈청만 잘 만들어지면 [[츠보미 후지코]] 관리관을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사카키는 오명을 납하겠다며 사명감에 불탄다.
  • 정기고 . . . . 3회 일치
         '''정기고'''(Junggigo, {{본명|'''고정기'''}}, [[1980년]] [[9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큐빅 (Cubic)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정기고는 2002년 [[넋업샨]]의 제의로 [[아이에프]]의 "Respect You (Urban Night Mix)"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ref name="interview">[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94151.htm 피처링으로 경력 다진 정기고 "이제 제 이름 알려야죠"], 《스포츠서울》, 2011년 12월 18일</ref> 그 후에도 [[데프콘]], [[재지 아이비]] 등 여러 힙합 뮤지션의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명성을 쌓아가던 정기고는 2005년 재지 아이비와 2인조 힙합 그룹인 서울스타 (Seoulstar)를 결성하고 1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나 그 후에 서울스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2006년 [[더 콰이엇]]의 "그 남자 그 여자"에 참여하며 정기고 (Junggigo)라는 예명을 큐빅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ref name="interview"/> 정기고는 그 후에도 [[이루펀트]], [[에픽하이]], [[매드 클라운]], [[도끼 (가수)|도끼]] 등과 작업을 지속하며 보컬 피쳐링 아티스트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 "Byebyebye"를 발표했고, 2012년까지 총 5장의 싱글 음을 발매했다. 2011년에 발매한 "Waterfalls"는 영화 《[[오싹한 연애]]》의 공식 티져 영상에 삽입되어 화제를 모았다.<ref>[http://www.newstown.co.kr/?m=newstown&bid=bd&cat=bdj&uid=108452 정기고, 영화 오싹한 연애 OST 'WATERFALLS' 발매], 《서울타운》, 2011년 12월 2일</ref> 2013년 12월에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47433 "정기고, 매드클라운 이어 씨스타와 한솥밥 “숨은 보석”" 《스포츠월드》, 2013년 12월 4일]</ref> 그 후 2014년 2월 7일, [[씨스타]]의 [[소유 (가수)|소유]]와 "썸"이라는 곡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썸"은 공개 즉시 8대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음 ==
         <!--KBS, MBC, SBS, M.net에서 방영되는 가요프로그램 주간 1위 내역만 기록해 주시고, 나머지 내역들은 '그 외' 문단으로 분류하여 기재해주세요.(상기 및 연간 1위도 '그 외' 문단으로 기재.)-->
  • 정좌관심 . . . . 3회 일치
         유교의 정좌는 [[불교]]와의 대립, 영향 관계에서 나타난 수행법으로 보인다.--[[좌선]] 퍼가요~-- 실제로 주희는 자신의 저작에서 유교의 '정좌'는 [[불교]]의 [[좌선]]과는 목적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불교와의 관련성을 지적받게 되었다. [[정약용]]은 주희가 강조한 '본성'과 '명덕'이 『능엄경』의 '여래장'과 동일하며, 주희가 주장한 공부 방법 역시 불교의 [[좌선]]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주희가 불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론도 있지만,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주희의 스승 이동(李)은 "하루의 은 독서 하루의 은 정좌"(半日讀書 半日靜坐)라고 하여 정좌를 강조하였다. 주희 역시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서 정좌를 강조하였으며, 정좌의 이론적 체계를 세웠다.
  • 조재윤 . . . . 3회 일치
         * 2011년 [[KBS2]] 《[[강력 (2011년 드라마)|강력]]》
         * 2017년 《[[역모: 란의 시대]]》 ... 도만철 역
  • 주윤발 . . . . 3회 일치
         '''주윤발'''({{zh|order=t|t=周潤發|s=周润发|p=Zhōu Rùnfā|h=저우룬파}}, Cantonese Yale: Jàu Yeuhn Faat, '''Chow Yun-Fat''', '''Donald Chow''', '''Aman Chow''', [[1955년]] [[5월 18일]] ~ )은 [[홍콩]]의 [[영화 배우|영화배우]], [[영화]] 각색가, [[음]]을 발표하기도 한 [[가수]]이다.
         * [[조조: 황제의 란]] - 조조 역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콩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가수]][[분류:홍콩의 작사가]][[분류:홍콩의 불교 신자]][[분류:중국의 공주의자]][[분류:싱가포르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계 영국인]][[분류:하카계 홍콩인]][[분류:1972년 데뷔]][[분류:홍콩의 억만장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진격의 거인/84화 . . . . 3회 일치
          * 엘렌은 엘빈이 살아서 돌아올 거라는건 전혀 예상 못한거 아니냐고 박하자 "어쨋든 엘빈이 살아있는 이상 엘빈에게 쓴다"고 번복하지 않는다.
          * 엘렌은 쓰러진 채로 그 말에 박한다.
          * 모두 죽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때 엘빈은 격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 진격의 거인/85화 . . . . 3회 일치
          *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 이건 피사체의 빛의 사를 특수한 종이에 세기는 것, 사진이라 한다."
          * 거인에 대해서도 보다 폭넓은 추론이 가능해지는데, 레이스 왕가의 거인화 활용이나 일 거인 조종이 어설픈 수준인데 비해 짐승거인은 거인화 상태에서도 언어를 구사하며 거인을 조종하는 능력도 훨씬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 즉 이럴 경우 바깥 문명은 굳이 벽을 쌓을 필요 없이 거인화된 인류가 일 거인들을 조종하며 벽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3회 일치
          갤리어드의 형은 9년 전 라이너와 함께 팔라디섬에 침투했던 "마르셀"이다. 본래 턱의 거인의 계승자였다. 라이너가 침투 도중 일 거인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내고 대신 잡아먹혔는데, 그때 우연히 턱의 힘을 계승한 것이 [[유미르(진격의 거인)|유미르]]. 그리고 지금 갤리어드가 그 힘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술주정이나 다름없는 연설이었지만 청중의 마음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이미 한 전씩들 꺾은 듯하고, 어린 동포가 헌신한 이야기는 더할나위 없이 감동적이었다. 엘디아인 전사대는 모두 흥분해서 함성을 내지르고 가비의 이름을 연호한다. 이런 소란은 마가트 대장과 마레 장교들이 있는 일객실에도 들렸다. 지크와 피크, 갤리어드도 여기에 있다. 부관은 소리를 듣고 그만두게 해야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마가트는 "오늘밤만 눈감아 주자"고 넘어간다. 이 조치는 마레의 전사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것 같다.
          파르코가 아차할 틈도 없이 라이너는 추궁이 이어진다. 거의 협박조다. 이 발언은 곧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 들었다면 밀고할 감이라는 것. 이렇게 되면 콜트가 짐승의 거인을 계승하기는 커녕 그의 그라이스 일가가 모두 역자로 몰려서 "거인병기행"이다. 다음 작전에서 비행선에서 투하되는건 다름아닌 파르코와 콜트, 부모님이 될 것이다. 겁에 질린 파르코는 뒤늦게 발언을 정정하겠다고 한다. 라이너는 다시 아홉 거인을 계승하는 명예를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 진격의 거인/96화 . . . . 3회 일치
          * 성공적으로 잠입하고 벽 안 생활을 시작한 라이너 일행은 결속을 다지고 드시 임무를 완수호 돌아갈 것을 함께 다짐한다.
          정말 애니와 베르톨트는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런 확신에 근거가 있냐고 라이너가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현실은 아팠다. 라이너는 거길 계속 파고들었다. 턱을 회수한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 넓은 섬을 헤매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녀석이 턱을 손에 넣었다면 더 빠르고 잽쌀 것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있을까? 속도에서 턱에 비할 수 있는건 피크의 차력의 거인 뿐. 베르톨트가 설사 힘을 얻었다 해도 바로 거인을 쓸 순 없을 거라 지적했다. 라이너는 다시 필사적으로 박했다. 그 말을 한 베르톨트 자신은 처음부터 초대형 거인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같은 케이스가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턱의 거인을 회수하지 못한 채 탈진하기라도 하면, 그래서 또다시 무지성 거인에게 누군가 먹힌다면 그 실책은 몇 배로 불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미래는 뻔하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뭔가 "실적"이 필요하다. "시조의 거인"의 획득 말이다.
          라이너는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갔다. 윌 마리아를 파괴했지만 진짜 왕은 움직이지 않았다. "타이버 가"에서 나온 정보가 정확하다면 벽의 왕은 "부전의 맹세"에 묶여 있다. 애니가 맞장구치며 "그러니 바로 결판을 내자"고 말했다. 라이너도 무슨 말인지 안다. 윌 로제와 윌 시나까지 전부 파괴하는 것. 그래서 벽의 왕을 끌어내자는 것. 하지만 그 방법은 애초에 틀렸다. 그런 식으로 시조의 거인을 끌어낸다면 전혀 승산이 없다. 그 시조의 거인이 한 번 소리치는 걸로 모든 것이 뒤집힐 것이다. 거인을 조종하는 힘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할 것이고, 그 분노의 격은 섬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우리에게 간섭하면 벽에 숨은 몇 천만의 거인이 지상을 전부 평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프리츠 왕이 대륙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
  • 차희식 . . . . 3회 일치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정책을 시행하여 농민들의 권리를 박탈하였고, 간척공사를 비롯해 송충이 잡는데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등 노동 착취가 심하였다. 또한 1907년 염업조사를 실시하여 한국인 제염업자의 경영 기을 해체시켰는데 이는 농업과 함께 이 지역의 주요 경제적 기이었던 염업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일제의 수탈정책은 다른 지역보다 소작농의 비율이 높고 여건이 열악한 이 지역민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민들의 경제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시위 후 일제는 장안면, 우정읍내 25개 마을을 포위하고 선생을 비롯한 204명을 시위 주모 혐의로 검거하였다. 차희식 선생은 소요 등 보안법 위으로 징역 15년 형을 언도 받았고 9년 2개월 만에 출옥하였다. 출옥 후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6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 창작:좀비탈출/0-1-2 . . . . 3회 일치
         우리집 담벼락은 다름 집보다는 한 뼘 이상이 더 높고 그 위엔 뾰족하게 휘어진 창살도 박아놨다. 이 녀석은 실제로 한 번 도둑을 막기도 했는데, 그 무모한 양은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했는지 뛰어넘지 못하고 영 좋지 않은 곳이 걸려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뭐, 감옥에 가는건 차라리 별 일이 아니었겠지.
         그런 호기심은 다른 일기상태에 대한 관찰욕구도 자극했다. 가령 눈이나 비같은 것에는 어떻게 응할 것인지. 날씨가 춥거나 더워지는게 영향을 줄지. 하지만 그런걸 관찰할 수 있을 정도면 계절이 바뀌도록 구조되지 못한다는 얘기니까 우울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나는 다이제스트를 쪽씩 나눠 가며 먹고 있다. 남기로 한 이상은 졸라 맬 수 있는데까지 졸라 매야지.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3회 일치
         민구는 더듬거리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박민구. 이녀석은 나와 1년 전에 같은 이었던 녀석이다. 조용하고 말이 없고, 사실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다. 얘는 누구하고도 별로 친하진 않았지만.
         "여, 여기서 살고 있었어. 바, 가워."
         학교에는 수십명 가량의 학생만 남겨졌는데, 이 지경이 되서도 야간자율학습에 보내는 부모를 둔 녀석들인 만큼 다들 조금 무기력한 데가 있어서 다음날 대낮이 되도록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걸 깨닫고 하나 둘 무단으로(?) 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도 물론 돌아오지 않았다. 얘들도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런 공부벌레들이 이런 좀비가 우글거리는 거리를 헤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고, 돌아갔다고 해도 집은 이미 안전한 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남아 있던 녀석들 가운데 이상이 조용히 학교를 나가기를 선택한 다음,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소식도 없자 나머지 녀석들도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 챈슬러 (음악가) . . . . 3회 일치
         == 발매 음 ==
         | rowspan="2" | 정규 2집 [[Hands Up (음)|Hands Up]]
         | 정규 2집 [[Give It To Me (음)|Give It To Me]]
  • 천호진 . . . . 3회 일치
         | 차 장 역
         | [[드시 잡는다]]
         | 차
  • 청년 튀르크 당 . . . . 3회 일치
         === 란과 집권 ===
         1908년 7월 3일, 제3군단의 아메드 니야지 소령이 1876년 헌법의 부활과 의회 소집을 요구하며 란을 시작했다. 란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 전국 각지로 확산되면서, 술탄은 버틸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1876년 7월 23일 헌법을 부활시키겠다고 발표, [[의회]]를 재수립했다.
  • 청송군 . . . . 3회 일치
         [[경상북도]] 중동부에 있는 군. 인구는 약 2만 6천여명이다. [[아오안|전국적으로 매우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하나로]], 이웃한 [[봉화군]], [[영양군]]과 함께 [[BYC#s-2|BY'''{{{#red C}}}''']](...)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전국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낮은 동네이기도 하다. 청송 출신 [[연예인]]인 [[심진화]]가 농 국내 3대 [[오지(지리)|오지]] 중 하나라고 칭할 정도니 말 다 했다.
         ||<|2> [[황병우]]/3선[br][[민주정의당]] ||<|2> [[김찬우(1933)|김찬우]]/재선[br][[통일국민당]] ||<|2> 김찬우/3선[br][[신한국당]] ||<|2> 김찬우/4선[br][[한나라당]] ||<|2> [[김재원(정치인)|김재원]]/초선[br]한나라당 ||<|2> [[정해걸]]/초선[br]무소속 ||<|2> 김재원/재선[br][[새누리당]] || --[[김종태(1949)|김종태]]/재선--[* 17.2.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br]--새누리당-- ||
  • 최민호(유도선수) . . . . 3회 일치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상대인 [[오스트리아]] 파이셔 선수의 고간을 잡아 들어 업어 메치는 명장면[* 속된 말로 '''그냥 잡아 뽑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딱지치기라고도 했다.][* 다만 현재 룰에서 이는 칙이다. 띠 아래쪽을 잡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파이셔 선수는 패배 후 최민호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을 때 가 일으켜 안아주고 마지막엔 최민호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축하해주는 매너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으로 금메달을 땄고, 국내 60kg급에선 2003년서부터 쭉 본좌 자리를 유지하고, 오로지 유도만 바라보며 사는 자타공인 유도 바보.
         2003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약 동 체급 최고의 선수로 부상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체중 감량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에 빠지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다시 말하지만 '''컨디션 난조'''로 올림픽 동메달이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 일주일 동안 -7kg을 뺀 것을 감안하면 동메달이라도 딴 것이 기적일 정도다.[* 일인이 이런 페이스로 다이어트를 하면 급격한 에너지 부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평생 한 번 나가보기도 어려운 올림픽을 앞두고 운동선수로서 막바지 훈련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마어마한 정도의 체력 손실을 감내한 것이다.] 그 뒤로 한 때 66kg급으로 증량을 검토하다가 결국 60kg에 남았지만 2003년 무렵처럼 세계 강호가 아니라 3위권 선수가 되었다. 스스로도 동메달만 따서 지겹다고 할 정도였다.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순박해 보이는 인상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남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상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최민환 . . . . 3회 일치
         == 음 ==
         '''{{참조|FT아일랜드#음|설명=[[FT아일랜드]] 음에 대해서는}}'''
  • 최승자 . . . . 3회 일치
         한바탕 난장이 훓고 지나간 후의 권태와 상념에 대한 뒤돌아봄,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허무를 담은 시로, 우리나라 현대시인들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인기 작가가 됐다. 작품세계가 끔찍할 정도로 어둡고, 자기 과거에 대한 노출이 적나라하다. 비극적 사랑에 의한 슬픔 혹은 인생의 덧없음에 의한 공허감, 자기연민 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이를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찢어발기며 냉소한다. 그런데 그러한 어둠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게 전이다.
         그 앞에는 짝 웃는 나의 얼굴
  • 최은석 (배우) . . . . 3회 일치
         * 《[[자칼이 온다]]》 (2012년) - 박 장 역
         * 《[[강력 (2011년 드라마)|강력]]》 (2011년, KBS2) - 대도 역
  • 최재웅 (배우) . . . . 3회 일치
         |[[마마 돈 크라이]]<ref>[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81098§ion=sc169 [인터뷰] ‘마마 돈크라이’ 김재범-최재웅 “18년 지기 향한 기대감? 과감하게 만족시킬게요”]</ref><ref>[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81274§ion=sc165 [더하기컷] 18년 동안 쌓은 믿음을 무대 위로, ‘마마 돈크라이’ 김재범-최재웅]</ref><ref>{{웹 인용|url=http://m.viva100.com/view.php?key=20160607010001677#ba|제목=[비바100] 꼭 닮았지만 또 다른 18년 지기 단짝친구, ‘마마돈크라이’ 최재웅·김재범|웹사이트=100세시대의 동자 브릿지경제|확인날짜=2016-06-16}}</ref>
         |안경, 남대생, 단속
         * 《특수사건전담 TEN 시즌 2》 (OCN, 2013년) - 신영근 역
  • 최정호 (성우) . . . . 3회 일치
         *[[조조: 황제의 란]]([[KBS]]) - 조비([[구심지]])
         * 2001.11.25 개를 위한 파
         * 2012.05.21 ~ 2012.06.01 세르테스 <돈키호테> (돈 페르난도)
  • 추자현 . . . . 3회 일치
         2012년 [[중국]] [[드라마]] '마랄여우적행복시광'에 [[중국]] 배우 [[조동혁]]과 함께 출연하여 연인으로 발전<ref>[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8&aid=0002595616 추자현, 조동혁과 4월 아닌 올 하기 결혼 "일정 때문"] 스타뉴스. 2017년 03월 07일</ref>, 2016년 9월 연인 관계임을 알렸다. 2017년 1월 18일에 배우 조동혁과 혼인신고를 했다.<ref>{{웹 인용|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996073|제목=[룩@차이나] "조동혁♥추자현, 1월 18일 결혼" 中매체 관심 보도|언어=ko-KR|확인날짜=2018-03-26}}</ref>
         * [[2003년]] [[KBS2]] 청소년드라마 《[[성장드라마 올림|성장드라마 올림#1]]》 ... 옥림 나레이션 역
  • 츠키시마 케이 . . . . 3회 일치
         ||<tablebgcolor="#ECECEC"> 학교, 학년 || 카라스노 고교 1학년 4 || 생일 || 9월 27일 ||
         || 최근의 고민 ||||||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또 주위 사람들이 이름을 물어보는 것[* 蛍(딧불이 형)은 [[wiki:케이]]로도 읽을 수 있지만 [[wiki:호타루]]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둘 다 사람 이름으로 쓰일 수 있다. 단 호타루로 읽을 경우 여자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 ||
  • 카네다 쇼타로 . . . . 3회 일치
         철인 28호 FX에서는 왕년의 영웅인 중년 탐정.[* 철인 28호 FX의 배경 세계는 초대 철인 28호 이후의 시대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미인 천재 과학자인 사카키 요코와 결혼했으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카네다 마사토를 얻었다. 이 마사토가 시리즈 3기인 FX의 주인공. 그런 이유로 주역의 자리는 내줘야 했지만 소년 시절부터의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지 활약도 많다. 중부터는 인터폴의 장관이 되며, 그에 따라 카네다 탐정 사무소 전원이 인터폴 소속이 된다.
         2004년 철인 28호에선 2004년판이 초대 철인을 다루기에 소년탐정으로 활약하며 초부터 무라사메 일가를 추적한다. 그러다 철인과 만나게 되는데 처음엔 무기로 만들어진 철인을 괴물이라 부르며 싫어했지만 결국 마음을 연다. 그리고는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나 최후에는 철인이 녹아버린다.
         복장은 블레이저에 바지 차림. FX에서는 정장에 트렌치 코트 등 서양 느와르의 탐정풍 복장을 입다 이후 인터폴 장관이 되면서 장관복을 입는다.
  • 칼렉시트 . . . . 3회 일치
         트럼프에 대하는 트럼프 시위와 동시에 칼렉시트를 내건 시위가 벌어지고, 실제로 연방 탈퇴 선언을 노리는 'Yes California'라는 웹사이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 에 로우 - 민주당 캘리포니아 의원. "캘리포니아 독립 과정을 시작하는 법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3회 일치
          * 초에 아이언맨은 소코비아 사태의 생존자들에게 욕을 먹는다.
          * 캡틴 아메리카는 소코비아 협정에 대하며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대립각을 세운다.
          * 교전 도중 '''워머신이 비젼의 오인사격으로 추락. 신불수가 되는 최악의 사고가 난다.'''
  • 콩고(소설) . . . . 3회 일치
         배경은 1970년대, 장래 레이저 산업 분야나 도체 분야에서 유망한 용도가 전망되는 블루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서, 미국의 지구자원개발연구소는 콩고의 정글로 탐사대의 파견하지만 목적지에 거의 도달한 상태에서 미지의 존재에게 기습당해 전멸된다. 단서라곤 연결되어 있던 영상 통신에 잠깐 잡힌 이상한 고릴라의 모습 뿐.
         어찌됐든 앞서게 된 일행은 잃어버린 도시 진즈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즈의 원주민들이 경비를 위해서 남겨놓은 회색 고릴라 집단이 살고 있었고, 곧이어 회색고릴라 무리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된다. 첫교전에선 전기철조망과 자동사격기관포로 막아내지만 탄약이 절이상 소모된데다 고릴라들의 전기철조망에 한번 당하자 나무 막대로 철조망을 젖혀놓고 들어와 대원 하나 살해할 정도로 높은 지능과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이후로 영장류가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사용해[* 에이미도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급류를 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야하자 피터에게 똥 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도 파고 보유량이 넉넉한 최루탄으로 밀어내는 등 선전을 펼치고 고릴라 무리를 선제 공격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방법도 찾지만 고릴라 수가 너무 많이 총으로 무장했어도 십여명 수준으로는 대책이 없었고 퇴로도 다 매복한 상태라 오도 가도 못하며 탐험대는 희생을 내며 궁지에 몰린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탄약도 떨어지고 비까지 내려 최루탄도 무력화되고 도랑은 고릴라가 나무를 걸쳐 통과해버리면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는데 에이미의 도움으로 엘리엇은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여 그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아프리카 출신 백인 [[용병]]. 일명 캡틴 먼로. 탐험의 무력을 책임진다. 의외로 에이미와 사이가 좋은데 고릴라 취급 안하고 평범한 10대 여자애들처럼 대하기 때문. 인정도 많아서 피그미 마을에 낙오된 백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정이 촉박한 와중에도 도와주려 나섰다. 이때 카렌이 시간 없다며 대하는데 극중 먼로가 유일하게 화낼 때가 이때였다. 이후 그 백인이 먼저 투입됐던 탐사대원이라는 걸 알고 카렌도 군말 없어디긴 하지만.
  • 콩고릴라 . . . . 3회 일치
         황금 고릴라의 몸에서 뛰어난 신체능력, 힐링팩터를 발휘한다. 이전에는 마법 지를 문질러서 황금 고릴라와 정신을 교대하는 방식이라 이 당시에는 몸을 교대하면 원래 몸에는 고릴라의 정신이 들어갔다. 이후 그의 인간 몸은 사망했으며 그는 고릴라의 몸에 남게 되었다.
         과거에 사용했던 마법 지는 추장이자 주술사이며 그의 친구였던 '카올로(Kawolo)'가 죽기 직전에 건네줬다. 이후 [[지진]] 탓에 동굴에 갇혔으나 지의 힘으로 모면했다.
  • 크림 전쟁 . . . . 3회 일치
         "크림 전쟁"이라는 이름은 전장 중 하나였던 [[크림 도]]에서 따왔다. 하지만 크림 도 뿐만 아니라 [[태평양]]과 [[발트해]]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었다.
         [[흑해]] 연안이 아닌 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영국과 프랑스의 함대가 [[발트해]]의 [[크론슈타트]]를 봉쇄하고 [[백해]]의 [[콜라(도시)|콜라]]를 포격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캄차카 도]]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롭스크]]를 공격했지만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철수한 이후에야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점령할 수 있었다.
  • 킹덤/498화 . . . . 3회 일치
          * 창평군은 조나라와 총력전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며 절대 겁먹지 말고 드시 승리하라고 연설한다. 곧이어 군을 통솔할 장군을 발표하는데, 우선 단상에 오른 것은 환의 장군이다. 환의하곤 좋은 추억이 없는 비신대로서는 드러내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데 환의 측의 부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시대가 열린다고 외친다. 이미 정해진 바니 비신대도 떨떠름한 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 그들 중에 가운 얼굴을 발견한 신은 바지오, 타지흐와 손을 맞잡으며 인사한다. 바지오는 신의 성장을 기뻐해주고 타지흐는 놀랍게도 중원의 말을 배워 더듬거리며 몇 마디 정도는 하게 된다. 비신대의 신참들은 신이 산민족과 인연이 있다는걸 알리가 없기에 그저 놀라며 칭송한다.
          * 그런데 자기들 대장이 총대장이 된줄 알았던 환의군은 불만이 폭주한다. 일단 산민족도 맘에 안 드는 모양인데 총대장이 두 명인 경우가 어딨냐고 나름 타당한 불만을 제기한다. 산민족을 기던 비신대의 고참들도 냉정을 되찾아 환의군과 산민족군이 동시에 나선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처음부터 사정을 알던 신은 그 두 군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 킹덤/500화 . . . . 3회 일치
          이목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조치라고 평한다. 부저는 그 남의 일 말하는 듯한 태도에 "적을 칭찬하고 있을 때냐"고 지적한다. 특히 부저는 양단화가 이끄는 산민족이 개입한 것을 의식하고 있다. [[순수수]]는 이목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태도로 "대로 이긴다면 큰 타격을 주는 셈"이라고 말한다.
          그 시각 하료초는 오랜만에 만난 양단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으로 펼칠 전략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듣고 있던 양단화는 그런 이야기를 벌써부터 하러 왔냐고 시큰둥하게 응한다. 하료초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응인데, 양단화는 갑자기 화제를 바꿔버린다.
  • 킹덤/513화 . . . . 3회 일치
          * [[환의(킹덤)|환의]]군은 장교들의 의견이 갈린다. 이 작전으로 진군이 전멸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흑앵은 환의의 의견을 묻는데 그는 단지 "지면 전멸"이라고 질문을 회피한다. 뇌토는 대로 이기면 그만이란 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길지는 환의도 모른다. 마론은 그걸 꼬투리 잡아 "두목도 이기는 법을 모른다면 결국?"이라고 전멸이 확정된 것처럼 구는데, 뇌토가 발해서 신경전을 벌인다.
          * 아무 말 없이 말을 달릴 뿐이었던 왕전은 마침내 열미에서 출병한 이후 최초의 지시를 내린다. 그는 [[양단화]]의 산민족 군단을 분리했다. 현재 진군의 위치 북동쪽 양토에는 [[공손룡]]이 전선을 펼치고 있다. 왕전은 양단화의 산민군 5만으로 공손룡의 9만 병력을 요격하게 지시한 것이다. 이신은 이게 좋은 판단인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우선 공손룡군이 4만이나 많고 자군 병력은 분단됐기 때문이다. 하료초는 현시점에선 상책이라고 보는데 진군이 업으로 가는데 최대 장애물이 공손룡의 9만 병력이었다. 양단화가 공손룡을 막는 동안 진군은 추격 당할 걱정없이 업까지 도착할 수 있다. 이신은 또 아군을 방패로 삼는 거냐고 달갑지 않아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는 하료초에 말에 박하지 못한다.
  • 킹덤/519화 . . . . 3회 일치
          그런데 일이 쉽지많은 않을 모양이다. 대편의 [[뇌토] 부대가 좋지 않은 소식을 보냈다. 그쪽에서 삼천인 부대를 만나 압도했으나 거기서 다시 좌우로 이천씩 도합 사천의 부대가 접근 중. 이에 뇌토가 흑앵의 기병 1천을 증원으로 보내달라 요청했다. 방금 전까지 "여유롭다"고 너스레를 떨던 마론의 표정이 구겨진다. 환의는 옆에서 쓴웃음을 짓는다.
          * 왕전이 머리 속의 상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마침내 진군 전원이 도착했다. 왕전은 곧바로 장교들을 불러 자신의 구상을 실현코자 한다.
          * 진군의 지휘관들은 총사령관의 기상천외한 명령을 하달받고 안색이 흐려진다. 우선은 포진부터가 이상하다. [[비신대]]의 [[이신(킹덤)|이신]], [[하료초]], [[강외(킹덤)|강외]]가 모두 어처구니 없어한다. 정말로 이게 왕전이 지정한 자기들의 위치인가? 그보다 더 기가 막힌건 [[몽념]]의 낙화대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배치. 신은 몽념과 낙화대를 걱정하지만 몽념은 호들갑떨기 보다는 잠자코 포진을 살핀다. 깊이 생각을 마친 그는 일언구도 없이 "알겠습니다"라 대답하고 부대로 돌아간다. 오히려 웃음마저 보이는데. [[왕분]]도 몽념처럼 지도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킹덤/523화 . . . . 3회 일치
          * 아광이 교전은 자신들만으로 하고 기회가 생기면 옥봉대에 전령을 보내 참전하게 하겠다고 작전을 전하자 왕분이 "특별취급"이라며 발한다.
          * 진군의 우익이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먼저 옥봉대의 전방에 포진했던 아광군이 넓게 횡진을 펼쳤는데 마치 옥봉대를 뒤에 숨기려는 듯한 배치다. 아광군이 한참 부산한데 옥봉대에는 아무런 지시사항이 오지 않았다. [[상]]이 여기에 안달이 났다. [[관상]]을 붙들고 정말 아광군에서 전령이 오는게 맞긴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관상이라고 더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므로 그만 죽을 맛이었다.
          * 가령 제 2장 마광은 왕전군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나 의외로 책략을 잘 쓰는 인물. 면 아광은 "정면에서 당당하게 적과 부딪히는" 성격이었다. 아광의 병사들 또한 마치 지휘관의 복사판 같은 인물들. 겁이라는 걸 모르듯 그저 장군을 따라 적진으로 향하는 자들이다. 옥봉대에도 몇 번 아광 밑에 편성됐던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한결 같이 "악몽 같은 경험. 다시는 편성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증언을 입증하듯 조군의 전열이 가속하자 아광군도 맞서서 가속, 한 복판에서 그대로 충돌한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3회 일치
         이 무렵 [[세이와 겐지]]의 시조 미나모토노 츠네모토가 무사시국에 부임한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
  • 토리코/365화 . . . . 3회 일치
         attachment:격.png
         attachment:격2.png
          * 블루 니트로들도 혼신의 힘을 다 한 격을 가하지만 지로는 끄떡도 없다.
  • 토리코/374화 . . . . 3회 일치
          * 청귀가 버텨준 덕에 멀리 날아가지 않았고, 블루 스핏이란 기술로 격까지 한다.
          * 아카시아는 GOD의 혀 공격에 정통으로 맞는다. 이 혀 공격은 지면을 뚫고 지구 대편까지 관통할 정도로 강한 공격.
          * GOD는 장난치듯이 혓바닥으로 지구 대편을 관통하며 땅 속의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 토리코/384화 . . . . 3회 일치
          * 아카시아는 플로제는 회복시킬 생각이었고 "너의 바보짓" 때문에 죽은 거라고 박한다.
          * 그래서 아카시아는 "머나먼 땅"으로 가는 계획에 대했다는 이유로 플로제를 죽였다.
          * 대기권까지 날아가는 아카시아. 부모에게 대들면 벌을 받아야 한다며 격한다.
  • 토리코/387화 . . . . 3회 일치
          * 스타쥰은 아카시아에 의해 완전히 토막이 난다.
          * 토막 나는 스타준.
          * 플로제는 자신이 임신했을 때 태째로 적출해 백채널에 넣어 바다로 흘려보냈다.
  • 토리코/389화 . . . . 3회 일치
          * 미도라는 식욱을 전부 먹히고 격 당해 위기에 처한다. 페어는 폭주하는 듯한 아카시아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 대로 "싫어하는 맛"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분노".
          * 네오의 색이 밝혀지면서 토리코 내면의 제 3의 악마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해졌는데, 네오와 같은 "검정"이라는 의견과 대되는 "하양"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 토리코/390화 . . . . 3회 일치
          * 아카시아가 플로제를 모욕하자 미도라는 분노를 터뜨리며 격한다.
          * 분노에 찬 미도라의 격. 지금껏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듯 했던 아카시아지만 이빨이 털리고 피를 흘린다.
          * 그런데 토리코는 대로 공격을 "먹일"거라고 말한다.
  • 토탈워: 쇼군 2 . . . . 3회 일치
          * '''전국포위망''': 플레이어의 가문이 다른 가문들을 쓰러뜨리고 쇼군에 가까워질수록 들어오는 견제. 매 턴마다 추가된다. 게임의 후부에는 전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야 할 정도.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군이 연설하고 병사들이 환호하는 컷신이 나온다. 이 컷신은 스킵할 수 있으며 란군을 상대할시에는 나오지 않는다. 컷신이 끝나면 자신의 부대를 맵에 배치한다. 대부분의 부대는 자신의 지역에만 배치할 수 있지만 일부 특이한 부대는 중립 지역에도 배치할 수 있다. 방어측은 이 시기에 궁병이나 조총병들로 여러가지 방어용 장애물을 설치할 수 있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전투 시작 징을 클릭해 전투를 시작한다. 인근에 다른 아군 군대가 있었다면 전투가 시작하고나서 지원군의 형식으로 난입한다. 지원군이 오는 방향은 해당 군대가 있던 방향과 같다.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는 사기이다. 사기는 공격을 받거나, 아군이 패주하거나, 장군이 전사하면 감소한다. 사기가 0이 된 부대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전장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그걸 본 아군 부대는 또 사기가 떨어진다. 이런 일이 몇차례 복되다보면 더이상 싸울 부대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 . . 3회 일치
         감독은 팀 스토리. 배우는 리드 리처드에 이안 그루퍼드, 수 스톰에 제시카 알바, 휴먼토치에 크리스 에스, 씽에 마이클 치클리스가 맡았다. 그리고 슈퍼 빌런인 닥터 둠은 줄리언 맥마혼이 연기.
         해당 영화에서 휴먼토치를 연기한 크리스 에스는 후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에서 휴먼토치와 정대의 성격인 [[캡틴 아메리카(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했다. 참고로 휴먼토치는 국내에서 이름이 '파이어'가 되었다.
  • 페어리 테일/494화 . . . . 3회 일치
          *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그걸 보면서 "우정이란 좋다"고 오거스트에게 말을 붙이는데, 차가운 응만 돌아온다.
          * "내일을 위해 드시."
          * 그런데 사실 브랜디쉬는 디마리아에 비하면 포로 대우가 좋았기 때문에... 게다가 쯤은 페어리 테일의 협력자.
  • 페어리 테일/504화 . . . . 3회 일치
          * 나츠에게 END인게 맞냐고 묻는데 쯤 폭주상태인 나츠는 제레프를 쓰러뜨리겠다는 말만 복한다.
          * 드시 길드로 돌아가야 한다며 의지를 모아 싸워줄 것을 당부한다.
  • 페어리 테일/510화 . . . . 3회 일치
          포박된 디마리아는 정신이 들었는지 "녀석은 악마"라고 기분 나쁜 말을 중얼거린다. 루시는 그렇다 않다고 발한다.
         스팅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엔 "빛 속성"이란 설명이 있었지만 곧 이어 "성 속성"으로 바뀌더니 먹을 수 있는게 뭔지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다.[* 초기엔 화살촉 같이 짝이는걸 먹었다.] 결국 "하얀 것"을 먹을 수 있는 걸로 정리된 듯. 아무래도 그냥 빛속성이면 사방에 있는 아무 빛이나 먹을 수 있어서 밸런스가 안 맞아서 취해진 조치 같다.
         나츠의 마음 속에 나타난 스팅은 진짜가 아니라 나츠 안에서 구현된 이미지로 보이는데 어째서 스팅이 나츠를 "대답"으로 이끼는 역할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로 제레프는 진짜 제레프의 정신이 간섭한 걸로 보인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3회 일치
          * 서쪽의 드래곤은 수가 많았고 이슈갈에서도 인간과 공존을 원치 않는 드래곤 무리가 배하면서 전황은 날로 위태로워진다.
          * 드래그노프는 드래곤과 인간이 화합해서 공존하는 나라였다. 아이린은 안뜰에 있다가 돌아온 베르세리온을 긴다. 그녀는 베르세리온의 안색이 좋지 않은걸 눈치 챈다. 그가 털어놓길 서쪽에선 이미 드래곤들이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했고 곧 동쪽, 이슈갈로 침공할 것이다. 베르세리온은 이슈갈에선 그런 사상 자체가 통용될 수 없다고 말하며 이곳에선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해왔음을 강조한다. 아이린은 서쪽 드래곤들이 침공하면 그들의 사상으로 이슈갈 지역의 공존이 일그러지는게 아닐까 우려하는데 베르세리온은 그렇게 두지 않겠다며 인간은 자신들이 지키겠다고 선포한다.
         떡밥이 우수수 풀린 에피소드. 멸룡마도사의 기원과 원리가 밝혀졌다. 지금까지 페테 세계관에는 세 종류의 멸룡마도사가 있었는데 모두 아이린이 개발한 인챈트 마법에 기한 것이었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3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은 격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나 웬디와 인연을 떠올리고 "이번엔 제가 당신을 지킬게요"라고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차마 손이 나가지 않는다.
          * 웬디는 아이린 본체에 남아있던 마력을 기으로 강력한 공격을 가하고 분리 인챈트로 자신의 몸을 되돌려 받는다.
          * 하지만 웬디는 곧 아이린의 몸도 마력도 능숙하게 다룬다. 그녀는 아이린 본체의 마력이 굉장하다면서 이걸 포기하고 자신의 몸에 들어간건 실수라고 단언한다. 웬디는 곧 강력한 마력이 담긴 마법탄을 날린다. 마법탄은 놀라운 속도와 위력으로 아이린에게 날아간다. 아무리 웬디의 마력 잠재력이 높아도 역시 아이린 본체에 따를 수는 없었다. 웬디의 몸에 있는 아이린은 그 마력탄을 받아내는 것도 버거워한다. 면 웬디는 마법탄으로 압박을 가하며 다른 한 손으론 분리 인챈트 마법까지 실행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 페어리 테일/519화 . . . . 3회 일치
          * 아이린이 주저하는 사이 엘자는 칼에 찔리는걸 감수하며 격하지만 역시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 그러나 엘자는 바닥으로 추락하며 기력이 다한다. 웬디도 방금 전 인챈트로 마지막 체력을 소진해 버렸다. 면 아이린은 타격을 입긴 했지만 싸우는데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엘자가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고 엘자를 겨눈다.
          * 등을 찢고 들어간 칼이 옆구리를 뚫고 나온다. 엘자는 과감히 몸을 날려 아이린의 턱을 들이받는다. 방심하고 있던 아이린은 불의의 일격을 당한 셈이지만,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몸을 가눈다. 대로 엘자는 그렇게해서 검을 뺏으려고 했던 것 같지만 아직도 검은 아이린의 손에 있다. 이번에야 말로 기력을 소진해 꼼짝하지 못하는 엘자. 아이린은 마무리가 어설프다며 칼을 들어올리는데.
  • 페어리 테일/522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오거스트에겐 통하지 않았고 길다트는 격을 당해 한 방 먹는다. 그때 [[카나 알베로나]]가 조력하러 온다.
          * 그레이는 제레프가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마력으로 뭘 하려는지 듣지만 "그런 일"이 될리가 없다고 박한다.
          * 오거스트는 한술 더 떠서 그 산산조각난 몸을 날려 돌격해 온다. 분해된 채로 퍼즐조각처럼 날아온 오거스트는 길다트의 눈 앞에서 재조립, 온전한 신체로 돌아오면서 격의 주먹을 먹인다. 길다트는 멀리 날아가 처박히고 오거스트는 자신을 이기는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 페어리 테일/524화 . . . . 3회 일치
          * 오거스트는 제레프가 사람의 미래를 위해 움직인다고 발언하는데 카나는 그들의 행위는 침략일 뿐이라 발하며 "페어리 글리터"로 공격한다.
          둘의 주먹이 부딪힌다. 잠시 힘이 균형을 이루는 것 같지만 나츠가 제레프를 밀어내고 첫 공격을 때려박는다. 제레프는 가볍게 몸을 빼내서 격하고 나츠는 이전 염룡왕의 힘을 썼을 때와는 달리 맥없이 날려보내진다.
          * 카나는 오거스트의 말에 크게 발한다. 아무리 정의를 주창해도 그들이 하는 짓은 침략과 정복. 그 결과는 이 전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결국은 마스터 [[마카로프 드레아]]까지 잃고 말았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3회 일치
          * [[안나 하트필리아]]의 설명 후, [[웬디 마벨]]은 그녀와 단둘이 이야기한다. 웬디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데 안나는 그것도 이클립스의 영향으로 추정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웬디는 뭐라도 떠올리려고 애쓰나 안나는 무리하지 말라는 투로 자제시킨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떠올릴 거라면서 입버릇대로 "일에는 순서라는게 있으니까"란 말을 복한다.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가 시간의 틈새가 가깝다는 소식을 전한다. 히비키, 이브, 렌, 제니는 조종에 총력을 다한다. 자신들도 시간의 틈새와 접촉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끝장이다. 시간의 틈새는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안나가 지정해준 좌표를 기준으로 시간을 재며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히비키의 계산에 따라서 시간의 틈새 쪽으로 계속해서 전진한다. 아크놀로기아가 턱 밑까지 따라붙고 시간의 틈새가 바로 직전에 나타난 상황. 크리스티나호는 불과 몇 m를 남겨두고 선체를 급격히 비틀어 시간의 틈새를 피한다.
          * 나츠는 제레프의 마법에 휘감겨서 옴짝달삭도 못하는 상태. 제레프는 "너로는 날 못 막는다"고 자신있게 단언한다. 그때 누군가가 길드로 들어서며 박한다.
  • 페어리 테일/540화 . . . . 3회 일치
          * [[안나 하트필리아]]와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가 시간의 틈새를 통해 생환
          * 나츠 또한 이 기둥에 갇힐 뻔 했으나 지상의 동료들의 응원을 들은 멸룡마도사들이 깨어나면서 상황이 전된다.
          * 현실세계에서 웬디를 빼앗아간 아크놀로기아의 거체는 방향을 돌려 매그놀리아로 향한다. [[엘자 스칼렛]]가 분통을 터뜨리나 손쓸 수단이 없다. 그때 다시 하늘이 갈라지면서 시간의 틈새로 사라졌던 [[안나 하트필리아]]와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가 떨어진다. [[제니 리아라이트]]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이 그들에게 헤엄쳐간다. 이치야는 자신도 왜 여기로 돌아왔는지 어리둥절해하지만 기뻐하는 블루 페가수스 멤버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3회 일치
          * 짧은 시간 만에 그녀는 전 대륙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링크마법은 전대륙, 전국민에게 빠짐없이 부여됐다. 페어리 테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링크 마법을 통해 힘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세계 전체의 힘. 거기에는 이 자리에 도착하지 못한 동료들도 있었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와 [[안나 하트필리아]],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와 [[블루 페가수스]], [[바커스]]와 [[콰트로 케르베로스]], [[머메이드 힐]], [[코로나 플레어]]와 태양의 마을 주민들, [[피오레 왕국]] 일동까지.
          * 멸룡마도사들이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스팅과 로그는 세이버투스의 동료들과 재회했다. 렉서느는 뇌신중, 코브라는 오라시온 세이스의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가질은 [[레비 맥거딘]]과 [[팬서 릴리]]와 얼싸안았고 웬디는 샤를과 셰리아가 겨주었다.
          루시와 해피는 기꺼이 겼다.
  • 페이데이 2 . . . . 3회 일치
          * 전리품이나 물품은 가방에 싸서(F) 운할 수 있다. 가방의 무게에 따라 운 중 이동 속도와 투척 가능 거리가 달라진다.
          [[염소 시뮬레이터]]와의 콜라보 DLC. 염소를 이용한 마약 운 중 일어난 사고를 수습하는 Goat Simulator 하이스트, 산탄총(GSPS 12G), 갈퀴, 칼, 가위, 지팡이가 들어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3회 일치
         >이 네곳의 가게에서는 몇번의 강도가 발생했던 면, 이웃 가게에서는 강도가 발생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계산대를 털고 빠르게 도주하는 히트 앤 런 방식을 사용하였다.
         >내 매형 있지, 그 쓸모없는 쓰레기놈 말이야. 그놈이 눈을 운해주기로 했어. 알잖아. 콜롬비아산 눈, 크리스마스에 쓸 것. 그런데 뒤에 경찰이 따라붙어서 좆되었지. 놈은 미드타운 쇼핑몰로 도망쳤지만 경찰이 놈을 잡은 것 같아. 좆같은 미국 짭새들, 이 나라에는 크리스마스 정신이라고는 쥐뿔도 없어! 난 친절한 사람이야. 크리스마스는 용서의 날이지. 하지만 이건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다고! 친구들, 날 도와줘야겠어.
          * 양철 소년 장난감 - 장난감 가게: 두가지 경우가 있다. 일적인 경우에는 장난감 가게 내 상자들을 열어 확보하면 되지만, 일정 확률이 모든 장난감이 팔린 경우가 나온다. 이 경우에는 쇼핑몰 곳곳에 쇼핑백을 열고 장난감 상자를 꺼내야 한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3회 일치
         세무서 직원이 FBI 요원들을 피해 리무진으로 도망가자, 알렉스가 자석 달린 크레인을 조종해 리무진을 건물 옥상으로 올려놓는다. 이 때 리무진이 운되는 위치는 셋으로 나뉜다. 리무진이 옥상에 안착하는 경우, 리무진이 옥상에 안착했지만 지붕이 무너지며 건물 내부 계단에 걸리는 경우, 리무진이 발코니에 걸리는 경우. 이후 플레이어들은 세무서 직원과 서버를 끌어내기 위해 리무진에 전동 톱-호스트가 기본적으로 소지함-을 설치하고 농성전을 벌여야 한다.
         암호를 입력하면 베인이 해킹을 시작한다. 이때 경찰들이 방 안으로 쳐들어와서 해킹을 중단시키고 건물 어딘가에 있는 배전을 내려버리는 방식으로 해킹을 방해한다. 방의 벽을 C4로 터뜨려서 길을 만들기도 하니 주의. 이들을 적당히 막아내며 해킹이 계속되도록 하면 된다. 암호를 알아야 하는 경우가 두번 더 있는데 세무서 직원에게-패지 말고-계속해서 물어보면 대답한다.
         먼저 마약 거래로 위장해 갱단의 본거지인 아파트로 들어가게 된다. 마약 거래가 끝나면 마스크를 쓴 다음 갱단의 뒷통수를 찰지게 후려주면 된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없으니 드시 해야한다. 낮은 확률로 갱단들이 먼저 뒷통수를 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 이 경우에는 아파트 입구에서 대기하다가 기관단총을 쏴갈긴다.
  • 포리(이노센트 투어) . . . . 3회 일치
         주인공들 중 유일한 원거리 물리공격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상당히 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보드 상에 있는 적들과 조우했을 때 드시 먼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장비만 잘 갖춰줘도 특별한 전략 없이 배틀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초에는 공격력과 명중률이 낮아 부각되기 어렵다. 하지만 1-1면만 잘 풀어나가면 이후에는 성장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다.
         관련신화가 켈트이기 때문에 카드사용에 제약이 좀 있다. 켈트신화는 북유럽 신화나 헤브라이 신화에 비해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카드가 있는 게 아니라서 한방에 역전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 또한 정령력을 충전할 수 있는 카드 역시 켈트 신화에는 없기 때문에 엘프는 이런 면에서 신화보정이 약한 편이다. 이런 이유로 배틀 이외의 상황에서는 공격보다는 방어적인 측면을 드시 고려해야 한다.
  • 하수빈 . . . . 3회 일치
         | 직업 = [[가수]] <br> [[작사가]] <br> [[작곡가]] <br> [[음 프로듀서]] <br> [[건축]][[디자이너]] <br> [[경영|경영인]] <br>
         그녀는 전 곡을 직접 프로듀스, 작곡, 작사, 연주해 '''싱어송라이터'''로의 역량을 완벽히 표현하고 있으며,특히 스티비 원더의 기타리스트이자 머라이어 캐리. 제니퍼 로페즈. 마돈나 등 수없이 많은 세계적 뮤지션들의 명에 연주 기록이 있는 '''미국 기타리스트 모리스 오코너 <big>Morris O`Connor</big> 가 그녀의 새 음악에 참여됨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더욱 다양한 예술적 재능의 그녀를 확인할 수 있어 대중들은 더없이 가움을 표현할 것이다. 프로듀서, 작곡 작사가, 해외건축디자인, 조형장식미술가, 패션경영인으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
  • 하이큐/212화 . . . . 3회 일치
          * 우카이 코치는 팀의 승리를 위해 멤버 누구도 빠뜨릴 수 없는 팀구성이 되었지만, 대로 히나타 본인에겐 플레이를 한정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 상대방의 볼 임팩트를 본 순간 발을 지면에서 떨어뜨려 움직임을 리셋. 착지 동으로 한걸음을 내딛는다.
          * 제목의 시점은 히나타가 플레이를 보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초부에 나온 우카이 코치와 타케다 고문의 "교육자로서의 관점"이란 의미도 있다.
  • 하이큐/217화 . . . . 3회 일치
          * 히나타는 저렇게 체력을 온존하다 후에 폭발시키는게 무섭다고 변호해주는데 "그래도 너무 편하게 하려고 한다"는 불평이 나온다.
          * 햐쿠자와 유다이는 멤버 중 유일하게 2미터의 신장을 가지고 있지만 테크닉이 낮아 전적인 플레이는 중학생 수준.
          * 대로 햐쿠자와는 스스로가 느끼기에고 조잡하고 빈틈이 많은 플레이. 자존감이 완전히 붕괴된다.
  • 하이큐/226화 . . . . 3회 일치
          * 매치 포인트인데도 히나타 쇼요가 움직이지 않자 다테 공고 측은 예민하게 응한다.
          * 히나타는 블록에게 무시 당하는건 더 못 참겠다며 드시 돌아보게 만든다고 투지를 불사른다.
          * 리드 블록은 공만 쫓는게 아닌데 코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행동들을 전적으로 서치한다.
  • 하이큐/231화 . . . . 3회 일치
          * 카라스노 선수들은 타학교의 가운 얼굴들과 재회하며 정신없는 개막식을 치른다.
          히나타는 전에 타나카가 "여왕"[* 니야마 여고는 여자배구계의 여왕으로 통한다.]이랑 아는 사이라고 자랑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 타나카는 "니야마 여고의 차기 에이스는 내가 키웠다"고 허풍을 떨었는데 은 맞는 말이었다. 타나카의 소꿉친구로 초등학교 동창. 4학년 때까지 같이 놀았던 모양이다. 그때도 타나카보단 훨씬 컸다.
          * 한편 체육관까지 전철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전철이 멈춘다. 카라스노는 잠깐이지만 패닉 상태에 빠질 뻔하지만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사전이 대체 이동수단을 확인해 놨고 재시설을 달달 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체육관으로 이동한다.
  • 하이큐/234화 . . . . 3회 일치
          * 시행착오 끝에 괴짜 콤비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지기 시작, 격이 시작된다.
          * 야마구치는 전국대회 레벨이 되면, 자신은 서버 이외에는 활용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대로 그 서버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는 그걸 위해서 이 "첫공"을 수백 번도 넘게 시뮬레이션했다.
          기세를 몰아 야마구치의 세 번째 서브. 이번엔 마이코의 리시브가 아테마에게 연결되면서 격을 허용한다. 스코어는 12대 9. 그러나 카라스노의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추격의 채비를 갖춘다.
  • 하이큐/245화 . . . . 3회 일치
          카게야마는 정직으로 호시우미를 소개한다. 카모메다이 학원 2학년인 호시우미 코라이. 등번호 5번에 포지션은 WS고 키는 불과 169cm. 전일본 유스에선 카게야마 앞에서 놀라운 기량을 선보여 히나타의 성장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 상대를 의식한건 히나타 뿐이 아니었다. 호시우미는 소개를 끝내자마자 히나타에게 포지션과 키에 대해 묻는다. 히나타는 경쟁의식 때문인지 포지션은 제대로 MB라고 대지만 키에 대해서는 165cm라고 살작 올림해서 대답한다. 원래는 아직도 164cm. 호시우미는 최고도달점도 묻는데 현재 히나타는 333cm다. 호시우미는 그 대답을 듣고 이겼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날선 문에 여기자가 당황한다. 호시우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가 작아서 주목 받은 겁니까"라고 몰아세운다. 동료는 그가 제일 싫어하는건 "작아서 졌다"는 말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팀으로 돌아온 히나타. 우카이 코치가 돌아와서 막 짐을 꾸리는 중이다. 야마구치가 왔느냐고 말을 거는데 그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다. 히나타가 호시우미를 의식하게 된 걸 눈치챈 3학년들은 그의 응을 주의깊게 살핀다.
  • 하이큐/249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플레이에 들어가는 아츠무. 그런데 기껏 만큼 정적에 잡음이 끼어든다. 이나리자키 응원석 쪽의 쌍둥이 자매가 아츠무의 플레이에 맞춰 "오오오오"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아츠무라고 써진 부채를 나란히 들로 있는 걸로 봐서 그의 개인적인 팬이다. 하지만 팀문화에 까막눈인지 금기를 저질렀다. 자기들은 응원이라고 여기지만 옆에 있는 응원단도, 선수들도, 오사무도 뜨악한 응이다.
          다소 뒤숭숭한 채로 들어가는 2회차 서브. 이 작은 소동이 영향을 준 탓일까? 서브는 여전히 카라스노의 응보다 한 박자 빨랐지만 라인을 벗어난다. 서브 실패. [[스가와라 코시]], [[야마구치 타다시]] 등은 안도의 한숨. 아츠무가 낙담하며 "이런"이라고 고함친다. 오사무가 "허접하다"고 디스하자 아츠무가 신경질을 낸다.
          * 경기가 초부터 신경전이 거세자 중계석도 바빠졌다. 해설자는 이 경기는 고교 No.1 세터 아츠무와, 역시 전일본 유스 출신의 유망주 카게야마의 "동서 세터 대결"로 정의한다. 그러는 사이 양 진영을 오가던 공이 이나리자키에서 카라스노 쪽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랠리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힘차게 뛰어오르는 히나타. 한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점프다. 히나타 자신도 "좀 괜찮은 느낌!"이 오고 카게야마와 중계석 모두 놀랄 정도로 눈에 띄는 점프.
  • 하이큐/258화 . . . . 3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이나리자키 고교]]가 자군의 괴짜속공을 따라잡기 시작하자 싱크로 공격을 해금해 전을 꾀한다.
          히나타의 성공을 알리는 니시노야의 기합. 히나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면 오사무의 표정이 흐려진다. 방금 전은 직선으로 "유도" 당했다.
          * 기회가 왔다. 히나타는 곧바로 코트 중앙까지 와서 전한다. 공은 카게야마에게. 이나리자키 블록은 당황한다. 속공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지만 10번, 히나타가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섞인다. 싱크로 어택. 타나카, 히나타, 사와무라가 같은 타이밍에 날아오른다. 이들 중 진짜는 사와무라. 우측을 찌르는 스파이크. 산지마의 리시브를 뚫고 나간다. 카라스노 고교의 브레이크 선언. 20 대 20, 다시 동점으로 올라선다.
  • 하이큐/259화 . . . . 3회 일치
          * [[타나카 사에코]]가 타이밍 좋게 분위기를 띄운다. [[카라스노 고교]]의 기세가 더할나위 없이 높아진다. 일 관중들 속에서도 카라스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바보 커플 중 남자 쪽은 진지하게 역전 가능성을 점친다. 면 여자 쪽은 "미야 형제를 질투해 적을 응원하는거 아니냐"며 시들한 응이다.
  • 하이큐/260화 . . . . 3회 일치
          * 그때 야마구치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온다. 3층 비상등. 시마다였다. 카라스노 고교 응원석에서 완전 대편인 [[이나리자키 고교]] 응원석까지 한 걸음에 달려갔다. 그는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무언가를 흔들고 있다. 야마구치는 그걸 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집중했다. 그건 시마다 마트의 비닐 봉투. 마스코트인 돼지 캐릭터가 선명하게 보였다. 시마다가 처음 리셋포인트를 전수할 때 표지로 삼았던 그 봉투였다.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그 묘한 꼴을 보고 수근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마다의 의도는 명백했다.
          * 지금 플레이가 봄고 참가 이래 최고의 서브다. 야마구치의 폼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공이 깨끗한 원을 그리며 [[마지로 알렝]]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리시브 실패. 바로 옆을 스쳐가는 공에 손을 뻗어보지만 닿는게 어설펐다. 빗맞은 공이 그대로 코트에 닿는다. 야마구치의 서브 에이스. 카라스노 득점 성공. 22 대 23. 경기 시작 후 최초의 역전. 더불어 끈질기게 이어졌던 추격전이 뒤집혔다. 동료들의 환호. 지금은 카라스노냐 이나리자키냐를 놓고 티격태격했던 바보 커플도 대동단결해서 환호한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투토 코타로]]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 서브의 일등공신이었던 시마다는 적진 한가운데인 것도 잊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쏟아지는 눈총에 곧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 카라스노의 역전으로 경기의 흐름이 전됐다. 과연 카라스노는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야마구치에게 달렸다. 야마구치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공은 오지로에게. 하지만 그도 두 번은 실패하지 않는다. 정확힌 리시브. 아츠무가 방금 전 무안준 것을 보상하듯 "나이스 리시브!"라고 힘차게 외친다. 그와 동시에 세트업, 강렬한 스파이크로 카라스노 진영에 돌아온다. 이번엔 야마구치의 리시브. 공인 야마구치를 날려보내다 시피하며 멀리 튕겨나간다.
  • 하이큐/267화 . . . . 3회 일치
          * 코즈메는 2세트 후까지도 잘 따라왔으나 체력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내고, "뇌"가 흔들린 네코마는 자잘한 실책을 범하며 헛점을 보인다.
          * [[다이쇼 스구루]]의 여친 "미카"는 세터를 소모시킨다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게 가능하다면 노헤비 학원도 같은 방법으로 쓸 수 있지 않았냐는 얘기였다. 다이쇼는 그 질문에 두 가지로 답했다. 첫째, 일적으로 세터는 두 번째로 공을 받는다. 따라서 세터의 체력소모를 노린다면 간접적인 수단을 써야하는데 그건 상당한 끈기와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둘째, 네코마의 카운터 어택을 견딜 수비력이 필요하다. 네코마는 톱 클래스의 수비력과 랠리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제일 핵심적인 요소다. 사루카와는 어쩌면 둘 모두를 겸비했을 지도 모른다.
          연습 후 늘어선 선수들 앞에서 네코마타 감독은 자신의 경기론을 펼쳤다. 한 번 셧다운을 먹여주는 것보다 다섯 번의 원터치가, 열 번의 압박이 더 낫다. 한 번 완벽한 A패스를 구현하는 것 보다 드시 올리는 다섯 번의 B패스[* 세터 정위치에서 1, 2m 이내로 보내는 패스], 열 번의 C패스[* 1st템포 공격이 어려운 리시브]가 훨씬 낫다. 상대가 강할 수록 시합 전체의 흐름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 하나같이 지금의 시시오 감독이 있게 한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한 줄로 요약됐다.
  • 하이큐/271화 . . . . 3회 일치
          * [[스나 린타로]]의 비기, 블록을 통과하는 듯한 스파이크의 비결은 상대 블록을 "조종"하는 특기 덕이었다. 린타로는 스파이크 시 타점의 가로 폭이 넓어 보통 선수의 약 두 배 정도가 된다. 이는 스파이크를 상신 전체를 활용해 때리는 기술 덕. 팔의 움직임만 보고 블로킹을 하면 블로커가 "분명 맞게 블록했는데 통과해버렸다"고 착각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이나리자키 고교]]의 팬이었고, 스나 린타로 개인의 팬이었던 노인 관객은 일행에게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 린타로가 날아오르는 순간, 츠키시마와 카게야마는 정확한 위치에 블록을 펼쳤다. 일적인 선수의 경우라면 그랬다. 하지만 린타로의 상체 전을 쓰는 스파이크는 타점이 보통과 다르다.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카게야마의 우측을 크게 빗겨 떨어진다. 그 위치에서 [[사와무라 다이치]]가 손을 뻗었지만 팔에 맞고 아웃. [[이나리자키 고교]]의 득점. 아츠무는 수준이 높은 블로커일 수록 린타로에게 유도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다시 18 대 9로 더블 스코어.
  • 하이큐/273화 . . . . 3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온화 모드" 발동으로 분위기가 전됐다. 스코어는 20 대 12. 카게야마의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을 기점으로 [[이나리자키 고교]]가 첫 번째 TO를 쓴다. 중계진은 경기가 서브 경쟁으로 흐름이 바뀌는 걸로 보고 있고 과연 카게야마의 서브로 [[카라스모 고교]]의 격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완벽한 서브. [[미야 오사무]]가 손을 뻗었지만 리시브 실패. 연속 서브 에이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세 번째 서브에 임한다. 이번엔 긴지마 쪽. 리시브에는 성공했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공은 [[오지로 아란]]에게 연결. 2세트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오지로.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의도도 그것이다. 아주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 피로감이 평소 플레이를 조금씩 뒤흔든다. 그리고 지금 미스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오지로의 스파이크엔 블록 세 장이 따라붙었다. [[사와무라 다이치]], [[히나타 쇼요]], [[타나카 류노스케]]. 오지로는 우카이 코치가 노린대로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블록을 의식하게 됐고 우측으로 길게 찌른 스파이크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0 대 14. 우카이 코치는 이것이 전환의 1점임을 단언한다. 관중석의 [[다이쇼 스그루]]와 여친 미카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그 아웃은 오지로에겐 "꺼림직한 아웃"이다.
          후엔 오지로 대신 서버로 기용된 주장 키타 신스케 앞에서 그야말로 얼어붙는다. 언제나 까불거리던 두 형제가 키타 앞에선 기합이 꽉 들어찬 모습.
  • 한냐 가면 . . . . 3회 일치
         한냐(般若)는 [[불교]]의 [[야]]라는 뜻인데, 왜 원령 가면에 '야'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몇가지 설이 있는데….
          * [[원령]]이 [[야심경]](般若心経)으로 심기일전 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 한비야 . . . . 3회 일치
         2001년 10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 한국에서 9년간 일하였다. 2000년 대 초 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일하다 2012년부터는 ‘인도적 지원 전문가(Humanitarian Assistant Specialist)’로 일하게 되었다. 2011년부터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남수단,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1996, 1판)
         ** 3권 ** 인도차이나 도, 남아시아
  • 한성호 . . . . 3회 일치
         ** [[2011년]] [[MBC]] [[MBC 월화미니시리즈|드라마]] 《[[넌 내게 했어]]》
         * [[2013년]] 제27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음]]부문 [[제작자]]상
         * 드라마 OST - [[온에어 (드라마)|온에어]], [[미남이시네요]], [[넌 내게 했어]] 등이 있다.
  • 한운사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작가]].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 [[본명]]은 한간남이다. [[종교]]는 [[불교]]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니만큼 징집 당해 [[학도병]]이 되었다. [[운전병]]을 거쳤으며 해방될때까지 계속 운전병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아로운 3부작에 그대로 영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대학을 다니던 때에 방송 극작가가 되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아로운 3부작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승자와 패자' 등을 썼으며 이 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영(1919)|김기영]] 감독이 영화로 연출하기도 했고 후에 TV [[드라마]]로도 나왔다. [[빨간 마후라]]의 시나리오도 한운사가 썼다. 후엔 자전적 에세이 '구름의 역사''를 썼다.
         특히 아로운 3부작은 작가 자신의 군경험이 녹아있는 자전적 작품으로 아로운(阿魯雲, [[영어]]로 alone) 자체가 한운사 [[본인]]이나 다름 없으며, 13부대 자동차 중대 제6내무에서의 군생활을 다루었다. 참고로 같은 [[내무]]의 동료 지하라(千原) [[이등병]]의 경우 실제 모델이 천응렬로 후에 한운사 작가의 자서전 '구름의 역사'에선 실명으로 등장한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모리 지로(森次郞) 일등병도 실존 인물이며 원래 실제 인물의 이름도 모리.
  • 허안나 . . . . 3회 일치
         허안나는 [[1984년]] [[11월 15일]] 생으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고 연극배우를 꿈꾸다 개그우먼을 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에 의해 개그우먼 시험을 봐 합격하였다.'''2005년''',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2007년, MBC 16기 특채 개그우먼'''으로 들어갔다, 2008년 당시 개그콘서트 감독이었던 김석현 감독에 의해 걸투홀에서 발견돼 특채로 들어갔으나 2009년 다시 시험을 봐 '''KBS 공채 24기 개그우먼'''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나를술푸게하는세상》, 《슈퍼스타 KBS》 코너를 연속으로 히트 시키며 '''KBS연예대상 2010년코미디부분우수상, 2014년코미디부분우수상'''을 받고 2016년 이후 코미디빅리그로 이적한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망원동짐승녀'''라는 웹툰을 연재중이며,'''안나Tv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2019년 1월 일인남자친구와 결혼을한다.
         *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코리아]] 《마이 펫 TV》- 실제 려동물이자 고양이 흰돌이와 함께 인터뷰 출연
         * 2014 코스모폴리탄 화보 (려동물)
  • 홍순언 (1530년) . . . . 3회 일치
         === 생애 초 ===
         그가 [[장안]]에 도착하여 [[조선]]이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조국 정벌 음모를 접했음에도 이를 거절하다가 침략을 당했다며 사정을 설명하였으나 [[명나라]]의 관리들은 조선이 일본과 짜고 명나라를 토벌하려 하는 것은 아니냐며 조선 지원을 대하였다. 하지만 당시 병부시랑으로 있던 석성의 도움으로 홍수언은 [[명나라]] 군사 5만 명의 파병을 성사시킨다. [[석성]]을 통해 그의 의기를 접하게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그를 믿고 선뜻 가겠다고 자청했고, 선조가 이여송을 만날 때에도 그가 통역했다고 한다.
         홍순언의 일화는 [[조선]] 후기의 소설 《[[이장백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그의 행적은 [[정재숭]]과 [[박지원]], [[이익]]의 저서를 통해 일부 알려졌으나,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일화가 일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20년]]대였다.
  • 홍지호 . . . . 3회 일치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 [[서초구]] [[포동]] <br/> [[대한민국]] [[경기도]] [[여주시|여주]](前) <br/> [[김포시|대한민국 경기도 김포]](前)
         본관은 [[남양 홍씨|남양]](南陽)이고 [[서울특별시|서울]] 출생이며 [[경기도]] [[여주시|여주]]와 [[김포시|경기도 김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 [[포동]]에 있는 서울 홍지호 치과의원(舊 서울 홍지호·이신정 치과의원) 원장을 지내고 있다.
         * 형: 홍성호<ref>홍성호(洪聖鎬) 의학박사의 [[본관|본관(관향)]]은 [[남양 홍씨|남양(南陽)]]이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학위를 거쳐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의학석사·의학박사 학위하였고 한때 [[영화 배우|영화여배우]] [[이미숙]]과 결혼하였다가 이혼하였으며 이후 전진숙이라는 일 여성과 재혼한 그는 한때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겸임교수]] 겸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전임강사]]를 역임 이후 현재 경기도 용인 홍성호 성형외과 원장을 지내고 있다.</ref> (洪聖鎬, 1947년 ~ ) - [[성형외과]] [[의사]] 및 의학박사
  • 황병기 . . . . 3회 일치
         1965년 4월 22일-5월 2일에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열린 '금세기 음악 예술제(Festival of Music and Art of This Century)에 초청되어 작곡 발표 및 가야금 연주를 했다. 최초의 독집 음(LP) Music From Korea: The Kayagum』(East-West Center Press) 취입하기도 했으며, 6월-8월 [[워싱턴 대학교]]에서 하계 학기 강사로 한국음악을 강의했다. 샌프랜시스코, 로스앤젤리스, 시애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었고, 샌프랜시스코 하계음악제에서 Lou Harrison 작곡의 「Pacific Rondo」를 연주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9050145/|제목=가야금 깊은 울림, 세계를 울린다…황병기 창작앨범 英美 동시발매|뉴스=[[동아일보]]|저자=전승훈|날짜=2007-09-05|확인날짜=2008-04-07}}</ref><ref>{{뉴스 인용|url=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739590|제목=`가야금 사랑` 세기 삶, 우리 가락에 담다
         가야금곡 〈[[미궁]]〉(1975)은 그의 대표작으로, 현대 음악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2000년대 초에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와 함께 퍼져서 ‘무서운 곡’으로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으며,<ref>{{뉴스 인용|url=http://mn.kbs.co.kr/news/view.do?ncd=310472|제목=가야금곡 미궁의 뜬소문 확산|뉴스=[[KBS]]|저자=나신하|날짜=2002-04-12|확인날짜=2008-04-07}}</ref> 게임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화이트데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 황준국 . . . . 3회 일치
         * 외교부 [[한도평화교섭본부장]]
         |직책 = [[한도평화교섭본부장]]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한도평화교섭본부장]]
  • 3월의 라이온/125화 . . . . 2회 일치
          * 일견 무계획하게 함정을 늘어놓은 걸로 보이지만 그가 천일수[* 바둑이나 장기 등에서 똑같은 행마가 복되는 국면이 되면 무효판을 선언하고 다시 두는 룰.]를 염두한 것을 알아챈다.
          * 나메리카와는 그가 천일수를 피해서 실망하지만 이 강렬한 격을 보고 "얌전하게 생겨서 엄청난 새디스트"라며 더 즐거워한다.
  • AFC 회원 랭킹 . . . . 2회 일치
          1. 단, 플레이오프(=예선전)의 승무패는 점수에 영할 수 없다.
         사우디는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지난 4년동안(2012~2015) ACL 준우승을 두번 차지한 적이 있으니 그럭저럭 인정할 수 있겠고, 이란은 국가대표가 준수하게 활약하고 있어 국대점수를 최대로 받았으니 이 부분도 충분히 납득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주와 중국이 아랍에미레이트보다 낮게 나오는 점수는 그 누구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2013시즌, 2015시즌 ACL을 우승한 중국과 2014시즌 ACL을 우승한 호주의 2015년 클럽 점수가 각각 46.793에 41.273이다. 면에 동 기간동안 준우승 1번밖에 없는 아랍 에미레이트는 54.503이다(...).
  • DQN 보복 . . . . 2회 일치
         자신이 당했던 일에 대해서 [[DQN]] 같이 과격하고 저열한 수단으로 보복을 가한다는 뜻이다. 일적으로 [[정당방위]]로서는 지나친 행위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DQN 격의 내용에 따라서는 상쾌하다고 칭송을 받거나,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 EM 드라이브 . . . . 2회 일치
         EM 드라이브를 사용하면 기존의 로켓과는 달리 작용에 필요한 연료 없이 영구적으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으나, 그 원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2006년 처음 개념이 등장해서 일단 실험 결과 실현 가능성은 나타났으나, 구체적인 원리는 수수께끼인 부분이 많다.
  • EZ2AC . . . . 2회 일치
         ==== EZ2DJ 1st 기 ====
         ==== EZ2DJ 2nd 기 ====
  • Europa Universalis 4/동구권 . . . . 2회 일치
         소국들이 적다. 그래서 적당히 확장해둬도 국가연합으로 고통받기는 어렵다.
         서구권다음으로 테크가 빠른 편이라 그래도 테크차이로 고통받을 확률은 적은 편이다. 중때까지는 서구화가 필수적이지 않다.
  • Europa Universalis 4/서구권 . . . . 2회 일치
         Western. 가장 빠른 속도로 테크를 올릴 수 있으며, ~~망할~~ 신롬덕분에 소국들이 굉장히 많다. 그것때문에 확장하기 힘들다(...).~~뭐만 하면 국가연합이 걸리는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소국들이 굉장히 많다. '''아주 많이''' 이것덕분에 생각없이 확장하다가는 소국들이 국가 연합을 형성해 처벌전쟁을 일으켜 쫄딱 망할 수 있다. [* 게임 시스템상 땅 하나짜리 소국 10개가 땅10개먹고 있는 국가보다 훨씬 쎄다. 강한 국가를 동맹으로 들고 있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된다.]
  • FrontPage . . . . 2회 일치
          * 달리즘 행위에 대해서는 IP차단을 하며, 식별 된다면 NTX 아이디에도 제제 조치가 가해집니다.
         5) 1) 2) 3) 4) 의 규칙에 위되는 항목은 최대한 빨리 규칙에 일치하는 형태로 수정되어야 한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2회 일치
         K리그 클래식에서 챌린지로 떨어지면 천단위 관객이 '''백단위'''로 줄어들고, 대로 승격되면 백단위가 '''천단위'''로 늘어나는 마술을 지켜보게 된다. 또한 강등되면 보통은 지원금이 뚝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주축선수를 팔아버리는 상황도 각오해야 하며 '''팀이 언제 올라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영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식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2회 일치
         두 팀은 광주의 강등 이후 2시즌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했으나 상대전적을 생각해보면 2011시즌부터 2012시즌까지 4경기 모두 경남이 승리했었다. 이런 측면에서 광주가 불리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경남은 당시 2연패로 리그를 마쳤던 면, 광주는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2014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을 달리고 있었기에 분위기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실제 경기 양상도 광주가 동점골을 먹고 전을 종료했음에도 분위기를 쇄신하여 연달아 2골을 넣으면서 플레이오프 3연승이라는 분위기를 탐과 동시에 2골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창원축구센터 원정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2회 일치
         광주는 강원에 밀려 4위였지만 2014시즌에 한정해서 기록을 고려해 보면 두 팀의 상대전적은 강원 기준으로 1승 1무 2패로 다소 광주가 앞서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승부만 거둬도 된다고 생각하면 강원은 1무를 1승으로 충분히 여길 수 있었으므로 두 팀의 경기력은 팽팽하다고 봐도 될 정도. 하지만 끝내 "호남의 아들" 김호남이 후 8분(53분)에 임선영의 어시스트로 골을 넣으면서 광주가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자격을 받게 되었다.
         안산은 2014시즌에 광주를 상대로 패배 자체가 없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규정을 생각하면 무승부만 되어도 안산의 진출이 확실했는데 광주의 돌풍이 매서웠다. 여름과 후 20분경에 교체되어 들어간 파비오가 2골 1어시스트로 3골을 모두 기여함으로써 안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도전권을 획득하게 된다.
  • USS 피닉스 (CL-46) . . . . 2회 일치
         영국 국방부는 벨그라노가 전쟁 구역인 포클랜드 경 200 마일 내에 들어왔을 때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벨그라노가 격침 당할 당시 전쟁 구역에서 36 마일 떨어져 있었기에 벨그라노에 대한 공격 행위는 전쟁 범죄라고 주장했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 . . . . 2회 일치
         === Anti-Rationalism( 합리주의) ===
         === Revolution & Counterrevolution(혁명 & 혁명) ===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 . . . . 2회 일치
         === Market-Determined Exchange Rates(시장 기 환율) ===
         === Guild-based Production(길드 기 생산) ===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 . . . . 2회 일치
          * '''Flexible Counterattacks(유연한 격)'''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3.4| 자동화]]''' 기술 연구시 +1%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 . . . . 2회 일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3.4| 자동화]]''' 기술 연구시 '''{{{#green +1%}}}'''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3.4| 자동화]]''' 기술 연구시 '''{{{#green +1%}}}'''
  • Victoria II/상품 . . . . 2회 일치
         === Regular Clothes(일 의류) ===
         비단과 일 의류를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 head to head . . . . 2회 일치
         일적인 의미로는 맞대면, 스포츠용어로는 "직접 경쟁"을 의미한다. 축구에 한정하면 "승자승 원칙"이라는 용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상대전적 그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흔히 쓰이기도 한다.
         이 여섯 경기를 바탕으로 평가하게 된다. 누적득점 집계방식에선 사실상 승무패로 갈리기보다는 득점과 원정골 여부만 생각하면 되는 면에 3팀 이상을 고려해야 하는 헤드 투 헤드는 득점과 원정골보다 원정승의 여부가 정말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 가석방 . . . . 2회 일치
         형이 확정된 수형자가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 자신의 죄를 성하고 있어 출소하여도 재범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형기보다 일찍 석방하여 사회에 복귀시키는 제도.
         가석방은 형기가 종료되어 풀려나는 석방과는 다르다. 가석방 일에서 형기종료일까지 기간 동안은 관할경찰서나 보호관찰소의 보호와 감독을 받게 된다. 가석방자는 이 떄 준수사항을 위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가석방은 취소, 혹은 실효된다.--[[한군두|한감두]]-- 물론 남은 형기를 채워야 하며 당연히 저지른 범죄는 가석방 중에 저지른 것이므로 매우 질이 좋지 않게 본다.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2회 일치
          * 기본적으로 한명에 한능력같지만 타고난 개성에 따라 만능적인 특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스이 츠유]]의 <개구리>가 좋은 예시. 토도로키 쇼토의 경우 아예 상되는 힘을 타고 났다. 그래도 아스이의 개성은 결국 다방면에서 활약이 가능할 뿐이지 하나의 개성이며 토도로키도 부모의 유전으로 두가지 특성을 가진 하나의 개성을 타고난 것이다. 이와 구별되는 복수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기본적으로는 없는 듯 하다.
          * 개성의 영향 탓인지 보편적인 인간과 다른 이형적인 외모를 볼 수 있는데 조금 특이한 외모인가 하면 아예 이종족으로 보일 정도로 동떨어진 경우도 존재한다. 개성이 일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별일 아닌 듯하나 이형계를 혐오하는 세력도 나오고,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빌런 연합의 스피너가 이런 경우.]
  • 거대로봇 . . . . 2회 일치
         말 그대로 '''거대(巨大)한 로봇'''. 어느 정도 크기가 되야 거대 로봇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일적으로 인간보다 수배 이상 거대하면 거대로봇으로 취급한다. 10m 이하이건, 200m 이상이건 일적인 사람보다 거대하기에 거대로봇의 범주에 든다.
  • 건담 동물원 . . . . 2회 일치
         [[다이 남코]]에서 나오는 『건담 익스트림 버서스(機動戦士ガンダムエクストリームバーサス)』의 플레이어를 나쁘게 말하는 말.
         >대측을 향해서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써있는 오락실 벽보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4화 . . . . 2회 일치
          * 우마루가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는데, 타이헤이는 응이 그냥그렇다.
          * 우마루는 열심히 애교를 떨어 보는데 오히려 타이헤이는 떨떠름한 응이다.--친남매면 당연하지--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2회 일치
          * 드디어 도착한 게임. 히카리는 설명서부터 착실하게 읽으면서 시작하는데 우마루는 적당 적당 감과 경험으로 플레이하는 타입. 우마루는 전사를 택하고 히카리는 마법살를 택한다. 히카리는 그냥 설명서에 추천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이유로 마법사를 고르는데, 우마루는 그것을 은근히 얕본다. 실제로 마법사는 초엔 체력이 낮아 고생하는 직업이므로 우마루는 자비를 베풀어 서포트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 한참 게임을 하고 쉬는 우마루. 히카리는 집에 가서도 혼자 플레이해도 되겠냐고 하자 우마루가 그러라고 답한다. 자기도 짬짬이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론 식음을 미뤄놓고 게임에만 전념한다. 그저 레벨을 잔뜩 올려서 다음 번에 히카리가 왔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들 목적. 하지만 후이 되자 우마루 조차 고전하는 적들이 나오는데, 그걸 깨면서 히카리를 도와주고 우쭐 댈 생각에 젖는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특별편 8화 . . . . 2회 일치
          * 항기가 온건 아닌지, 가정환경이나 혹은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된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 "이젠 서른에 가깝다"는 언급이나 10년 전 학창시절이었던 걸 보면 현재는 20대 후.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2회 일치
         떠그타운은 이미 좀비들의 소굴이 되어있었다. 좀비들을 해치우며 가던 카놀리는 좀비들에게 포위당한 생존자를 구하게 된다. 떠그타운에서 전당포를 경영하고 있던 그 생존자는 카놀리에게 떠그타운의 절을 지배하던 보니노 마피아들이 프랭키를 잡아갔다고 알려준다.
         한편, 벨루치오 빌딩에 도착한 프랭키는 벨루치오에게 카놀리가 모두를 죽이려 한다고 설득한다. 이에 속아 넘어간 벨루치오는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카놀리를 드시 막으라고 명령한다. 이를 확인한 프랭키는 벨루치오를 뒤에서 쏴죽이고 탈출 도구와 돈을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 경대수 . . . . 2회 일치
         [[1958년]]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에서 태어났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대한민국 육군]]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이수하였다. 그리고 검사로 근무했다. 검사장까지 승진 해 대검찰청 강력부장 당시 [[바다이야기]] 수사를 한창 지휘 했다. 그러나 윗선에서 수사를 중단 시키고 대검찰청 중수부로 수사를 넘길 것을 지시했다. 이에 발 해 사표를 제출하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 2009 || [[2009년 재보궐선거|2009년 하기 재보궐선거]][br](18대 국회 충북 진천/음성/괴산/증평)[* 전임자 [[김종률]] 피선거권 상실] || [[한나라당]] || 22,077 (29.64%) || 낙선 (2위) || ||
  • 고대 그리스 . . . . 2회 일치
         일적으로 고대 그리스라고 하면, 고전기 그리스에서 폴리스 전성기, 헬레니즘 시대를 뜻한다. 이후 [[로마 제국]]에 정복되어 그리스가 정치적 주체성을 상실할 때까지를 고대 그리스로 묶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철학, 정치, 과학, 미술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현대 서구 문명으로 이어지는 기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구인들의 고대 그리스에 대한 존경심은 뿌리깊은 것이다. 또한 불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는 동양에도 영향을 미쳤다.
  • 고독사 . . . . 2회 일치
         인간관계가 고립된 사람이 [[의사]]나 [[가족]], 이웃 등 주변 사람들에게 간호를 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사망하는 경우를 뜻한다. 주로 [[독거노인]]에 많으며, 지역사회에서도 고립된 경우가 일적이다.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사망을 면할 수 있었을 사람도 많다.
          * 코토크 - 고독사 : https://kotobank.jp/word/%E5%AD%A4%E7%8B%AC%E6%AD%BB-503029
  • 고독의 요새 . . . . 2회 일치
         초창기에는 거창한 [[설정]]은 없고 단순히 슈퍼맨이 내가 이렇게 큰 건물도 만들 수 있다는 일종의 [[자뻑]]으로 만든 기지였다. 그래서 진지한 비밀기지 연구소 같은 [[배트 케이브]]와는 대로 그냥 슈퍼맨의 신비로운 비밀 요새같은 이미지였다. 요새 안에 표창장 트로피 방도 존재했을 정도.
         이런 SF틱한 설정과는 대로 보안은 굉장히 심플한데 그냥 열쇠구멍에 열쇠 넣고 돌리면 들어갈 수 있다. 열쇠도 그냥 문 근처에 존재해서 구하기도 쉽다. 문제는 이 열쇠가 '''슈퍼맨을 제외한 존재는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초창기에는 사이즈도 더럽게 커서 구멍에 넣기도 힘들었다가 근래에 들어서 단순한 열쇠 사이즈가 되었지만 무게가 몇 조(!) 톤이나 되어서 문앞 매트 밑에 넣어놨다.[* 보통 가정집 열쇠 보관하는 그 방식으로.] 슈퍼맨의 인간다움을 부각시키려는 장치의 일종이었는데 아무래도 고독의 요새라는 간지나는 네이밍과는 안 어울려선지 지금은 완전 SF틱한 분위기가 되어 열쇠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NEW 52 이후 부터는 슈퍼맨의 목소리와 DNA 검사로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공주님 안기 . . . . 2회 일치
         이런 관계로 때때로 그림으로 그려진 이 포즈를 보면 안기는 쪽의 몸 크기가 일적으로 서 있을 떄의 이하로 축소(…)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고무고무 열매?-- 괜히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찜찜해지는 사례.
  • 구성윤 . . . . 2회 일치
         2013년 성인 팀으로 승격하였으나,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 입었던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전기를 날렸고, 여름에 재활을 마친 후 다시 엔트리에 복귀했으나 전지훈련을 떠나는 당일에 또 부상을 당하며 다시 [[벤치워머]]가 되었다. 이후로도 2009년부터 꾸준히 [[세레소 오사카]]의 골대를 지키고 있던 선배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에게 밀리면서 2014년까지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다. 이후 삿포로로 이적한 장면을 보고, 세레소팬들은 구단한테 [[김진현]]선수의 후임이라고 했으면서 육성을 실패한다는게 말이되냐면서 비난이 이어졌다. 물론 그 비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꽤 인정을 받는 골키퍼기 때문에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대표팀에 구성윤이 뽑히지 않자 한국의 두터운 골키퍼 층을 부럽다는 일본 네티즌들의 응도 있었다.[[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sports&wr_id=281364]]
  • 국부펀드 . . . . 2회 일치
         국가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목적의 국영 펀드. 국부펀드는 주로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으며,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가지고 운용한다. 자금투자운용은 일적인 투자펀드와 비슷하게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 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미국 텍사스 주, 오레곤 주의 주에서 보유한 펀드는 주정부 소유의 공유지 토지임대수익으로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
         펀드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대상국에서 감을 초래하여 보호주의 성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지적도 있으며, 실제로 이 같은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 기동전사 건담 실루엣 포뮬러 91 . . . . 2회 일치
         코믹스는 사이버 코믹스(CYBER COMIX)[* 다이에서 발매한 SF 만화 잡지. 건담계열 작품이 많이 연재되었는데, '''온갖 괴작'''이 넘쳐나는 잡지였다. 건담으로 닌자물이 되어버린 G의 인영이나, 마법의 소위 블래스터 마리 등등(…)]와 MS SAGA에서 발표되었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시. 소설은 MJ 지에서 발표되었다.
         처음에는 토키오 일행을 연방군으로 오해하여 교전을 벌였으나, 나중에는 협력하는 관계가 된다. 후에는 실루엣 건담을 타고 토키오와 협력하여 가렘슨을 쓰러뜨려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
  • 김가은(1989년 5월) . . . . 2회 일치
         || [[2012년]] || [[용의자X]] || 석고 장 ||
  • 김규철(배우) . . . . 2회 일치
         친근감 가는 마스크에다 안정적인 연기력 때문에 수요가 많은지 굉장히 다작을 하는 배우로, [[2013년]] [[1월 5일]] 기준으로 출연한 TV 드라마수가 62편이나 된다.~~[[공무원]]?~~ 다만 [[전설의 고향]]이나 [[드라마시티]] 출연이 많은 편이었음을 영해야 한다. 하지만 주요작만 해도 한해 평균 3~4편을 맡는 편이다. 특히 2010년은 2009년의 부진을 만회라도 하듯 무려 주요작품에 7편, 총 9편에 출연했다.
          * [[2002년]] KBS2 [[매직키드 마수리]] - 마풍운 : [[마수리]]의 아빠. --하지만 결국 절 쯤에서 [[리타이어]]. 이후 나올수도 있었지만 무산--
  • 김근백(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2000년]] 상기부터 활동을 시작해 [[2002년]] 상기, [[CJ 엔투스|GO]]에 합류하였다. [[미남]] 군단으로 유명한 GO의 선수답게 준수한 외모로 인기가 있었다.
  • 김동석 . . . . 2회 일치
         1920년에 진영학원을 설립하였다. 이후 화원청년회 회장을 역임하고 진우연맹을 조직하였다. 한편 [[무정부주의]] 노선에도 참여하였다. 1926년 7월 진우연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되었다. 치안유지법 위이란 죄명으로 1927년 6월 대구재판소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이후 오상중고교 운영에 전념하였다.
  • 김민희(1972) . . . . 2회 일치
         이 인기를 모아서 [[캐럴]] 송 음을 출시하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응답하라 1988/삽입곡|크리스마스 폴카]]가 BGM으로 나오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역]] 시절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게 되어서 그랬는지 성인 연기자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간간이 [[드라마]]에 [[조연]]으로나 출연하는 편이며, [[살림 9단의 만물상]] 같은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 푼수 스타일의 [[아줌마]]로도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2003년~2004년 MBC 사극 [[대장금]]에 내의녀 비선역으로 출연하였다. 장금이 의녀로 입궁했을때 내의녀로 들어왔지만, 8년후에 어의녀로 승진하였다.
         가장 최근 드라마 출연은 2011년 [[KBS 1TV]] 일일연속극 [[당신뿐이야]]다. 2013년 ~ 2014년 [[왕가네 식구들]]에 특별출연으로 잠시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의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는 조연급 배우일 뿐이지만, 50대 이상 어르신들의 중에는 [[1982년|82년]] 생 [[김민희(1982)|김민희]]는 모르면서도[* [[김민희(1982)|김민희]]는 중년층 이상을 겨냥한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출연한 경력이 거의 없다. --하지만 [[홍상수|거하게]] [[불륜|일을 저질러서]]...--] 이 김민희는 [[1980년대]] 초의 똑순이 하면 아 하면서 기억하시는 분도 꽤 된다. ~~다만 예명 김민희보다는 똑순이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하실 뿐이란 게 또 문제지만(...)...~~
  • 김성현 (1989년) . . . . 2회 일치
         2011년에는 넥센의 4선발로 낙점받았다. 4월 20일 기준으로 1점재 후이라는 무시무시한 방어율 및 예전보다 현저히 줄어든 볼질로 성공적인 [[선발 투수]]로서의 모습을 보였지만 2패를 기록하였다.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절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상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영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 김승관 . . . . 2회 일치
         이후 롯데에서 이런저런 보직을 맡다가, 2017년 시즌 초 타격 부진으로 인해 [[훌리오 프랑코]] 타격코치와 자리를 맞바꿔 1군 타격보조코치로 올라왔다. 시즌 후기에 메인 타격코치였던 [[김대익]]이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이 바뀌자, 1군 메인 타격코치로 보직 변경됐다. 시즌 막판에는 [[이승엽]]의 사직구장 은퇴 투어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항상 [[이승엽]]을 따라다니다가 본인이 스스로 무덤을 파 버린 비운의 천재. 당시 고교 코치들 말에 따르면, 이승엽은 부드러운 스윙을 휘두르는 면, 김승관은 뻗어나오는 거친 스윙이라서 절대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 김연수(작가) . . . . 2회 일치
         ||<:>[[구효서]][br]명두[br](2006) || → ||<:>'''김연수[br]달로 간 코미디언[br](2007)'''|| → ||<:>수상작 없음(2008)[* 본심에 오른 작품 중 수상할 만한 작품 없음. 독자의 응을 의식한 편향성이 명확하며 완성도가 수상에 부합할 수준에 못 미침.] ||
         초기 작품에서는 젊은 날의 상실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혹은 <꾿빠이, 이상>,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밤은 노래한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장치를 첨가하기도 한다. 굉장히 유려한 문장이 특징이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다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대로 독자들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역할로도 작용한다. 사람의 심리를 잘 파고드는 문장을 구사하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외국어로 번역하기 편한 글을 구사한다고 하며, 동시에 번역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사실 내용도 소설을 가볍게 읽는 사람들이 읽기엔 지나치게 현학적인 데가 있다. 김연수는 문학적 허세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며, 작가가 오히려 풍부한 독서를 바탕으로 문학 측면에서 어렵게 씀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 김우중 . . . . 2회 일치
         [[1960년]] 25세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32세에 [[서울특별시|서울]]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여 [[1970년대]] 초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1974년]]에 1억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며 신흥 재벌이 되었다. [[1981년]]에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1982년]] [[1월]]에는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4위에 올랐다.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금융사건|IMF 구제금융]]으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400% 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쌍용을 인수하는등 확장정책을 이어나갔지만 [[일본]] 노무라 증권이 [[1998년]] [[10월 25일]]에 발표한 '[[대우인터내셔널|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 1장으로 사실상 [[대우그룹]]이 위기를 맞게 된다. 후에 계열사를 41개에서 4개업종 10개 회사로 구조조정 단행과 [[삼성그룹]]과의 빅딜도 추진하나 둘다 실패했다. [[1999년]] [[8월 26일]] 이미 구조조정으로 회사 41개중 16개가 매각되었고 남은 25개 회사중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하였다. 당시 부채는 500억 달러였다. 당시 [[대우그룹]]은 금융부문을 중점으로두고 사업확장을 하여 내부적으로 부채가 많았다. 사실상의 그룹 해체였다. [[1999년]] [[11월 1일]] 김우중은 13명의 [[대우그룹]] 사장단들과 함께 경영포기 및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는 주장과, 대로 [[유럽]] 등지의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대우그룹]]은 당시 [[김대중 정부]]가 정치적으로 탄압했다는 설과 단순한 [[구조조정]] 실패라는 의혹이 있다.
  • 김윤환 . . . . 2회 일치
         고등학교 동창인 노태우의 권유로[* 사석에선 [[전두환]], [[노태우]]와 서로 말하면서 술 마시는 사이라고 한다.] [[민주정의당]] 창당 멤버로 들어갔다. 민주정의당 전국구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아래 [[청와대]]와 집권당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면서 정치권을 주무르는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한다.
         [[전두환]] 정권 후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식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상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 김장섭 . . . . 2회 일치
         1958년부터 1959년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1959년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김익노]]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상북도)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민주주의자로 결정되었다. 이에 공민권 제한 대상자가 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민족행위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19년 출생]][[분류:1993년 사망]]
  • 김중혁 . . . . 2회 일치
         동진은 자신이 사라지면 중혁이 드시 조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개설하여 비밀글들을 숨겨두었고 예상대로 중혁은 동진의 블로그속 마녀의 법칙을 찾아낸다. [* 이때 아이디는 중혁의 주민등록번호였으며 비밀번호는 'Shine on you'였다.]동진의 조사가 유독 오래 걸린 이유가 미정을 조사함과 동시에 대학시절부터 중혁에 관해서도 눈치채고 같이 역학조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혁과 관계된 여성 리스트가 나오는데 수십명~~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부럽다'''. 게다가 다 남녀공학이야~~가까이 중혁을 좋아하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글은 이 글을 볼 중혁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중혁아. 네가 사랑해야 돼.''' 라는 말, 즉 해결책을 써준 동진에 대한 크나큰 고마움을 느낀다.
         마지막 법칙을 서로가 알 경우 이건 대로 강력한 협박이 된다. 김중혁이나 박미정이나 둘 다 심성을 고려하면 본인에게 고백한 사람에게서 떨어지려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 죽여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고서야.
  • 김지석(배우) . . . . 2회 일치
         그리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이동경로에 따라 자식을 낳으셨는데, 세 아들의 이름을 각각의 출생지를 따서 김[[북경]] - 김장충[* 이전 버전에서는 중국 [[장춘]]을 말하는건데 자막이 잘못 나온것 같다고 했는데, 라스에서 장충동에서 태어나서 김장충이라고 말했다.] - 김[[온양]]으로 지으셨다고. 심지어 김보석의 형은 신사동에서 태어나서 김신사[* 현재 이름은 김석. 문제적 남자에 출연했을 당시 공개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김석으로 나와있다. '신사'라는 이름은 아주 어렸을때 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촌은 [[런던]]에서 태어나서 김런던.~~런던에 사는 런던 킴~~ 김지석도 형과 같은 신사동에서 출생했는데 [[부활절]]에 태어나서 김부활로 하려다가 ~~빨리 발음하면 뭔가 [[부랄|문제가 될게 틀림없는 이름이다]]~~ 형의 새 이름과 맞춰 김보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집안의 작명은 할아버지의 센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러모로 대담한 집안이다.
  • 김지혜(1980) . . . . 2회 일치
         === 음 ===
         * 용병 이([[1997년]])
  • 김진향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정치인)|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NSC 한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ref>원희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2094 (원희복의 인물탐구)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주간경향. 2016년 1월 16일.</ref>
  • 김형태(정치인) . . . . 2회 일치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허나 선거 기간부터 과거 [[제수]]씨 [[성폭행]] 미수 의혹으로 곤욕을 치뤘다. 이후 조카에게 사과하는 녹취록이 유포되어서 큰 망신을 당했다. 동생의 아내와 외도를 한 [[라이언 긱스]]를 빗대 '포항긱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하여 당선 직후 출당되어 [[무소속]]으로 지내다가 [[공직선거법]]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169&yy=2013|위]]으로 2013년 7월 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 || ~~'''[[새누리당]]'''~~ || ~~'''45,775 (41.24%)'''~~ || ~~'''당선 (1위)'''~~ || [* 2012.4.18 제명 조치, 2013.7.25 공직선거법 위으로 당선 무효] ||
  • 김혜옥 . . . . 2회 일치
         대학 진학후, 내성적인 성격탓에 연기가 아니라 분장이나 디자인쪽으로 바꾸라는 핀잔도 들었지만 오기가 생겨 욕을 먹으면서도 죽기살기로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연극무대에서 2년 남짓을 보낸 후, 생계를 위해 TV쪽으로 노선을 바꿔 1980년 MBC 특채 탤런트로 들어갔다. MBC 수사극 《[[수사장]]》의 범인 역이나 조연으로 전전하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서울댁으로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ref name="월간조선"/>
         * [[2008년]] [[KBS2]] 아침드라마 《[[난 네게 했어]]》 ... 손점순 역
  • 김희애 . . . . 2회 일치
         1966년 4월 23일 생.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사와서 자랐으며, 혜화여고 1학년 때 의류CF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일 년 뒤인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로 데뷔했다. 10대 시절 하이틴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85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알수없는 일들"로 브라운관에 데뷔했고, 이후로는 TV 쪽에 주력했다. 1986년에 KBS 일일드라마 "여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고 스무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10대부터 60대를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센세이션한 응을 일으키며 하이틴급 청순가련형은 아니지만 대학 동창 [[전인화]]와 신세대 스타로 급부상한다.
         가능성은있다. 실제로 애플사원인 사람이 가족중에 한명이라도있으면 연말이나 중요한날마다 폰은 물론이요, 패드 하나씩 새로 들고오는게 다사다. (경험담)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2회 일치
          * 토도로키 쇼토 등장. A의 아시도 미나, 토코야미 후미카게, 오지로 마사라오가 함께 도착한다.
          * 요아라시는 토도로키가 엔데버의 아들이라는 점을 공격하는데 토도로키가 과민하게 응하다 시멘트 탄을 얻어맞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성장한 만큼 자신도 성장했음을 자각하고 원 포 올을 8%까지 끌어올려 격에 성공한다.
          * 미도리야가 원 포 올 풀카울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같은 변칙적인 움직임엔 따라갈 수가 없다. 뒤에서 내리꽂히는 깨끗한 보디 블로우. 미도리야가 가드레일 쪽으로 몰린다. 충분히 충격을 줬을 텐데 바쿠고는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다시 추격한다. 미도리야는 문자 그대로 숨 쉴 틈도 없다. 코앞까지 따라온 바쿠고. 미도리야는 난간을 붙잡고 뒤로 넘어가려고 하지만 바쿠고가 짐승같은 응속도로 잡아채서 내동댕이친다. 그러다가 본인도 난간에 몸을 부딪히며 잠깐이나마 공격에 틈이 생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2회 일치
          * 나이트아이는 실컷 이야기하고 나서 미도리야가 방문한 목적, "인턴 채용" 건에 대해서 듣는다. 미도리야가 가져온 서류에 나이트아이가 도장을 찍음으로 성립한다는데, 나이트아이는 일적인 기업에서 하는 인턴과는 다르다며 학교 수업에도 영향을 미쳐 출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도리야는 "발을 맞추고 있는 것만으론 톱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당당히 서류를 제출한다.
          미도리야는 드시 인감을 찍어서 인정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2회 일치
          나이트아이는 아무나 하는 말이 아니냐고 박한다.
          >설령 그의 의지에 하더라도, 지금 누가 그 힘에 어울리는지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2회 일치
          * 그래서 가버린 깡패들을 쫓아가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이 선수를 쳤다. 4의 [[아시도 미나]]였다. 학교의 유명인이었던 그녀는 강패들이 삥 뜯는 현장을 발견하거니 일단 꾸짖는다. 그리고 특유의 붙임성으로 그 깡패들과 금새 친해지더니 뜬금없이 춤을 추다가 모두를 화해시켜 돌아가게 만들었다. 뭔가 정체불명의 전개였지만 이런 일은 흔한 듯했다.
          * 그리고 낮에 봤던 일이 복된다. 아시도 미나가 달려왔다. 거인 앞에 당당히 끼어들어 스프링거의 사무소는 요 앞 모퉁이를 돌아 왼쪽으로 2km를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제야 거인이 화를 거두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으로 향하면서 묘한 말을 남겼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2회 일치
          * [[시가라키 토무라]]가 시에핫사이카이와 협력을 결정했을 때, 이들을 비롯해 [[빌런 연합]] 멤버들의 발이 거셌다.
          *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시가라키가 오버홀과 접촉한 직후. 시라가키가 어떤 뉴스를 가져오자 빌런 연합의 멤버들은 크게 발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2회 일치
          * 전장에는 [[뇌무]]도 있었다. B 인원을 구조하러 갔던 [[야오요로즈 모모|야오요로즈]]가 당하고 위기에 처한다
          * 야오요로즈 모모는 돌아가는 뇌무를 보고는 바쿠고가 결국은 적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판단, 이어서 현 시점에서의 최선의 판단을 위해 마지막 힘을 다 해서 단추 같은 소품을 만들고 함께 있던 B 학생인 [[아와세 요세츠]]의 개성으로 뇌무에게 부착시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2회 일치
         학생들끼리 구상하는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 계획에 [[이이다 텐야]]는 적극 대한다.
          * 이이다는 왜 자신이 폭주할 때 말려준 두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하려는 거냐며 힐난하는데 미도리야가 박하려 하자 그를 때리며 "네가 쓰러져 있는 모습에서 형이 떠올랐다"며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어떻게 되겠냐며, 자신의 걱정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냐고 묻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2회 일치
         [[바쿠고 카즈키]]를 빼앗긴 A은 소수의 인원이 바쿠고 탈환 작전을 실행하기로 한다.
          * [[키리시마 에지로]]와 [[토도로키 쇼토]]는 일단 다른 급우들과도 작전을 얘기했으나 더 말리려는 사람 뿐이었다. 특히 [[우라라카 오챠코]]는 "바쿠고는 모두에게 도움 받는게 더 굴욕이라 여길 것"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미도리야 조차 그 말에는 박하지 못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2회 일치
          * 이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베스트 지니스트]]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사용, 직격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했기 때문.
          * 그럼에도 격을 하려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2회 일치
          * 그 위력으로 올마이트는 튕겨져 나가는데 거의 도시 대편까지 날아간 걸로 보이낟.
          * [[이이다 텐야|이이다]]는 처음엔 대했지만 "교전은 하지 않는다"는 미도리야의 설명과 상황의 어려움을 보고 결국 동의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2회 일치
          * 잡은 뇌무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응이 없고 애당초 제조공장 자체도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 탈환에 참가한 다섯은 나절 뒤에 마을에 도착해 각자 귀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2회 일치
          * 어머니는 대사건 조차 "바쿠고가 약해서 폐를 끼친 것"이라고 할 정도로 강인한 성격. 대로 아버지는 미도리야가 연상될 정도로 유약하다.
          * 미도리야는 발하지만, 어머니는 "응원은 하겠지만 걱정하지 않겠다는건 아니라고 말했다."고 못을 박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의 어머니는 단호한 태도로 대한다.
          * 미도리야의 어머니는 단호한 태도로 웅영고의 정책에 대한다.
  • 나체의 마하 . . . . 2회 일치
          * 당시 누드화는 누드의 '미美'를 드러내기 위하여 [[여신]]이나 고전 조각상 같은 완벽한 인체비례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나체의 마하는 그냥 일 여성의 관능적인 누드를 드러내고 있다.
          * '''[[음모]]를 그렸다'''. 중세의 윤리관으로 체모 등은 남성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보아 금기시 되었고, 여성의 음모는 나체라고 해도 순수한 미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그리지 않는 것이 일적이었기 때문에 나체의 마하에서 음모를 그린 것은 매우 파격적인 사례였다.
  • 나폴레옹: 토탈워/유닛의 종류 . . . . 2회 일치
          값싸고 빨리 뽑히는 싸구려 보병. 성능도 싸구려다. 전열보병에게 있는 사기충격 저항도 없으므로 전투에 직접 투입하는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치안 유지 보너스가 있으니 후방이나 점령지에 쑤셔넣어 폭동이나 란을 예방하자. 수성전을 치를 때에는 무장 시민(Armed Citizenry)이라는 유닛들이 무더기로 추가되는데 얘네들은 그냥 아무 총이나 들고 나온 군중들이니 총알받이로 써먹자. 어차피 수성전에만 나타나는 애들이다.
          직선 거리의 적에게 포탄을 쏴갈기는 직사포. 일적으로는 구포탄을 발사한다. 이 구포탄은 보병 상대로는 피해가 약간 떨어지지만 기병 상대로는 끔찍한 위력을 발휘한다. 탄종을 유산탄으로 변경할 수 있는데 유산탄은 사정거리가 짧지만 보병에게 강력하다.
  • 남윤정(탤런트) . . . . 2회 일치
         * [[1985년]] [[KBS]] 일일연속극 《꽃지》
         * [[1990년]] [[KBS2]] 어린이드라마 《5학년 3 청개구리들》
  • 낭만 주먹 . . . . 2회 일치
         사실, 애초에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들이 낭만주먹이었다는 것 자체가 허구로서,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시기의 조직폭력배는 [[칼]]이나 [[도끼]]는 물론, [[권총]]이나 [[폭탄]] 같은 화기 까지 동원할 정도로 과격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야인시대]]에도 묘사된 심영 습격사건 등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일인의 시점에서는 이 무렵 치안 상황이 굉장히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낭만주먹과 비슷한 조폭들이 "일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싸우고, 쉬쉬하면서 폭력을 숨기는" 풍토는 5.16 쿠데타 이후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조직폭력배를 대대적으로 검거, 소탕하면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는 말하자면 조폭들이 군대가 무서워서 몸을 사리면서 나타난 [[불문율]]일 뿐이었다. [[이정재]], [[임화수]]를 비롯한 거물급 조폭 두목들이 여럿 잡혀가면서 겁먹은 조폭들이 무서워서 당국의 눈에 뛰는 것을 걱정해서 이러한 불문율이 나타났던 것이다.
  • 노동기준감독서 . . . . 2회 일치
         어디까지나 명확한 노동법 위에 대하여 움직이는 기관으로서, 노동기준법에 위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명확하지 않으면 실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노동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은 노동기준감독서의 관할이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조건 이나 법적판단이 미묘한 문제에서는 [[상담]]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 니세코이/221화 . . . . 2회 일치
          * 치토게가 이치죠와 결혼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자 마리카가 격하게 발한다.
          * 다음날 치토게는 떠나기 전 오노데라에게 열쇠를 양도하며 "오노데라를 드시 행복하게 해달라"고 이치죠에게 당부한다.
  • 니세코이/222화 . . . . 2회 일치
          * 츠구미는 "상처를 입을 거라면 마음껏 상처를 입으면 될 일" 그러나 "드시 다시 일어나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어줄 거라 믿는다"고 말한다.
          * 츠구미는 "클로드님이 보는게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박한다.
  • 니세코이/224화 . . . . 2회 일치
          * 이치죠가 온다는 말을 듣고 치토게는 풀죽은 응을 보인다.
          * 마리카는 그녀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또 10년 전과 같은 일을 복할 거냐"고 꼬집는다.
  • 단신부임 . . . . 2회 일치
         이와는 달리 배우자의 전근에 따라서 가족이 모두 [[이사]]를 복하는 것을 [[전근족]]이라고 한다.
         단신부임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별거 수당이나 귀가 교통비 같은 경제적 원조를 해주는 회사도 있다. 1984년에 단신 부임으로 남겨진 처자가 가족동자살한 사건이 있었으며, 1985년에는 구 국철 간부가 종교적 이유로 단신 부임 명령을 거부하고 퇴직하는 사건이 있어, 단신부임의 문제점이 일본 사회에서 널리 주목받았다.
  • 대한민국 . . . . 2회 일치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국가. [[한도]]의 남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단은 도국가지만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가라고 주장하는 무장집단]]이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섬나라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2회 일치
         대략적인 평가는 늘 그래왔듯이 이변이 속출하였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K리그 클래식 팀 중에 절에 가까운 5개팀이 탈락하였으며, 총 16경기 중에 하위리그팀이 상위리그팀을 잡아먹은 경기가 4경기가 나옴에 따라 하극상 비율이 25%나 되었기 때문. 다만, 대진운 때문에 내셔널리그팀은 본선에 진출한 5개 팀들 중 리그 1위인 용인시청만 살아남게 된 면에 K3리그팀인 경주시민축구단은 같은 K3리그팀인 포천시민구단을 이기고 올라오는 등 선전을 보였다.
  • 데모데모닷데 . . . . 2회 일치
         2채널에서는 주로 가정, 육아 판에서 사용한다. 현실에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짜증난다고 하거나, 스레드에 상담을 하러 온 사람이 이런 발언을 복하여 뭐하러 상담하러 왔냐고 욕을 먹기도 한다.
         2채널에서는 흔히 데모데모닷테(デモデモダッテ)라고 가타카나로 써서 나타내거나, 데모데모닷테(デモデモダッテ)라고 각 문자로 나타낸다.
  • 데미안(드라마) . . . . 2회 일치
         1시즌 종에 수녀들에게 잡혀가서 죽을 뻔 하다가 각성. 완전히 조절이 되지는 않지만 초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명칭은 --D&D마법에서 다와서-- 임의로 붙였다.
         아무래도, 오멘과 666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매우 지루할 드라마. 주로 데미안의 심리적 갈등에 촛점을 두고 있기 때문인지 초부 에피소드가 약간 루즈하다.
  • 도게자 . . . . 2회 일치
         현대에는 일적인 예법이 아니게 되어, 일적인 상황에서 도게자를 할 일은 없다. 하지만 기업 측에서 대규모 사고를 일으켰을 때 등, 심각한 상황이라면 도게자를 하기도 한다.
  • 동북중고등학교 . . . . 2회 일치
         중앙문과 좌우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좌측문 또는 중앙문에 따라 1학년 6~10 교실 복도와 1~5 교실 복도가 분리되있어 신입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 동왕부 . . . . 2회 일치
         동왕부는 서왕모에서 파생된 신으로, 한나라 시기에 나타났다. 본래 서왕모는 독립적으로 묘사되었으며, [[수]], [[양성구유]]로 묘사되거나, 천제(天帝) 혹은 상제(上帝)가 지상으로 강림할 때 지상에서 그를 맞이하는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
  • 레오(워저드) . . . . 2회 일치
         칼을 쓰는 통상기들은 밀착해서 맞출시 데미지와 스턴치가 토막나는 페널티가 있으므로 거리 조절이 관건. 엄청난 리치의 점프 약K과 앉아 중K으로 견제하며 서서 중K이나 앉아 강P로 대공을 처리하는 식의 싸움이 주가 된다.
         전적으로 필살기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가끔 앉아 강P에서 약 마즈 슬래시를 연속기로 써주는 정도. 철저하게 견제 플레이 위주로 운영해야하다보니 커맨드 잡기인 가이아 드라이버도 쓸 일이 별로 없다.
  • 로어셰크 . . . . 2회 일치
         왓치맨 1권 후부에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경찰에 붙잡힌다. 이후 [[싱싱 교도소]]에 수감. 본명은 월터 조셉 코백스(Walter Joseph Kovacs). 작중 중간중간에 "THE END IS NIGH"[* 종말이 머지 않았다.]라고 써진 팻말을 들고 나타나던 붉은머리 남자다.
         아버지 없이 [[매춘부]] 어머니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그는 10살 때 자신에게 패드립을 친 소년의 눈을 실명시켰다. 이 일로 집안이 경찰 조사를 받으며 보호소행. 어머니에게 쌓인게 많은지라 6년 후 어머니가 끔찍하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잘됐군요,"라는 말 만을 남겼다. 면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 마기/302화 . . . . 2회 일치
         * 사실 황제국의 처지는 일본의 처지와도 별 다르지 않다. 사실 매우 상식적인 응이기도 하고.
  • 마기/303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는 분하지만 박조차 할 수 없었다.
          * 그 자리에 일던 일동은 자신들이 불과 3년 전 침략국으로서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은 사실을 인정하며 상대국들의 응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 마기/306화 . . . . 2회 일치
          * 어쩐지 그 얼굴의 절은 웃고 있다?
          * 대로 마지막 페이지의 편집자 멘트가 "복수를 극복한 아들 백룡에게 끓어오르는 애증"이라고 되어 있는 점, 백룡 백영만큼은 자신이 낳은 친자식이라고 인증한 점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모성애"가 발현된 것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아르바의 마지막 대사(그 분만이 소중하다. 그것 뿐이다)의 의미도 자연스러워진다.
  • 마기/312화 . . . . 2회 일치
          * 그녀는 "솔로몬의 오만을 영원히 간하겠다"고 맹세하는데 알라딘은 솔로몬은 죽었고 솔로몬이 만든 세상이라 해서 솔로몬 자신이나 아르바의 것은 아니라고 박한다.
          * 아르바의 정신체는 다른 차원에 있고 그걸 절만 이 차원으로 옮겨 간섭하는 것이다. 무한 재생도 저쪽에서 제공되는 마고이를 쓴 것.
  • 마기/313화 . . . . 2회 일치
          * 백룡은 처음에는 별것 아닌것처럼 응하지만 곧 머리를 감싸고 아르바가 침입하는거 같다고 말한다.
          * 둘은 서로의 성장을 칭찬하며 가움을 표한다.
  • 마기/316화 . . . . 2회 일치
          * 목소리는 그래서 이종족의 사고를 빼앗는 "그누드"를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신드바드는 "똑같은 취급하지 마라.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박한다.
          * 알라딘이 실종된 내막을 몰랐던 피피리카는 알라딘과 모르지아나를 크게 긴다.
  • 마기/327화 . . . . 2회 일치
          * 사건은 조금 전에 있었던 어떤 "말다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알리바바가 연홍옥이 국제동맹을 탈퇴하는걸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그 일로 연일 회의 중인데 알리바바는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평한다. 그런데 거기서 모르지아나가 대한다. 모르지아나는 황제국의 이탈이 국제동맹의 붕괴를 초례할 것이며 결국 힘이 분산돼 전쟁을 일삼는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홍옥은 자국의 내전까지 겪었으면서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냐고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한다. 알리바바는 당황하며 홍옥도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옹호하는데 그러자 버럭 소리를 지른다.
          * 국제동맹 탈퇴를 선언했던 홍옥이 불현듯 번복을 결정한다. 이야기를 들은 알라딘과 알라비바는 한참이나 이해를 못하다가 귀를 의심하게 된다. 알라딘은 그렇게 숙고해서 결정했던걸 뒤집어도 되겠냐고 묻는데 홍옥은 모두가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이번엔 연홍명이 나서서 말하는데 동맹을 탈퇴하면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 백 년 천 년 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자기들 사후의 먼 미래, "백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까지 지키기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홍명. 홍옥도 거기에 동의하며 황의 내전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 한 명"이 힘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신드바드냐고 문한다.
  • 마기/331화 . . . . 2회 일치
          알리바바는 알라딘에게 이대로 성궁에 가서 신드바드와 싸울 거냐고 묻는다. 그런 한편 어째서 신드바드가 자신을 막을 수 있도록 시간 여유를 준 건지 의문을 표한다. 그런데 말 없이 걷던 알라딘이 "정말 그게 옳은 일일까?"라고 묻는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길 원하는건 알라딘과 알라비바, 단 두명 뿐이다. 대로 말하면 그들은 모두가 원하는걸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싸움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알라딘은 그 점을 묻는다.
          신드바드의 중계는 전세계로 전파됐다. 당연히 모르지아나도 알고 있다. 모르지아나는 알리바바가 자신의 바람과 세상의 바람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선택할 거라는 걸 꿰뚫어 본다. 알리바바는 낭패한 표정을 짓지만 아무 박도 하지 못한다.
  • 마기/335화 . . . . 2회 일치
          >"위대한 흐름"의 역자들이여
          신드바드는 그 미련이란 것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고 알리바바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예상 밖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언제나 무슨 이유든 달아 신드바드와 대적하는걸 피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알리바바는 지금까지와 다르다. 신드바드의 말을 듣고는 아몬의 검을 들어 신드바드를 가리키며 "드시 쓰러뜨리겠다"고 맹세한다. 신드바드는 만족스럽게 "기다리고 있겠다"고 화답한 뒤 진들과 함께 모습을 감춘다.
  • 마기/339화 . . . . 2회 일치
          * 신드바드는 백룡은 "운명에 농락 당하고 패한 왕의 그릇"이라 자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백룡의 발 밑으로 어떤 원이 나타나게 한다. 그 원엔 "백룡이 지키지 못했던 것", 황제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 마기/343화 . . . . 2회 일치
          알라딘은 여전히 맞설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 신드바드는 다시 한 번 "그건 솔로몬 왕의 의지에 대한 역. 넌 솔로몬 왕의 사자가 아니냐"고 꼬집는다. 알라딘은 그 말에 이전에도 그가 자신을 "멸망한 세상(알마트란)의 사자"라고 지칭했던 일을 떠올린다. 알라딘은 그때 대답을 지금하겠다고 말한다. 신드바드가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래도 알라딘의 대답은 이어진다. 자신은 멸망한 세상의 사자도 솔로몬 왕의 사자도 아니며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 세상을 위해 자그마한 이상론을 세우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의 동료들도 각자의 신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으며 자신도 마찬가지다.
          알라딘이 설마 알마트란과 솔로몬을 부정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신드바드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알라딘은 그 존재 자체가 알마트란의 상징 같은 것 아니냐고 박하려 하지만 알라딘은 단호하게 상관없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알라딘으 망설임을 버렸다는걸 깨닫는다. 이제 그들에겐 싸움이 남았을 뿐이다.
  • 마기/345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살아돌아가고 싶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고 그와 통성명한 [[와히드]], [[셋타]], [[테스]] 조차도 돌 쌓는 놀이나 하라며 심드렁하게 응한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포기 않고 보이는대로 현세로 돌아갈 방법을 묻고 다닌다. 테스는 셋타에게 "살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어떤 거냐고 묻는다. 셋타는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원래 그건 테스 또한 가지고 있던 거라고 대답한다.
          >드시 하겠어요.
  • 마기/348화 . . . . 2회 일치
          * 신드바드와 알라딘이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그 개혁안은 어떤 것일까? 알리바바는 둘의 차이부터 지목한다. 우선 신드바드는 세상을 수직 구조로 보고 "세로로 연결하는 작전"이다. 계속 천장을 뚫고 올라가 거기서 운명을 쥐고 있는 신을 쳐부순다, 더이상 쳐부술 신이 없을 때까지 그걸 복한다. 결과적으론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가 사라지지만 모든 생명이 루프로 환원된다. 알라딘이 맞장구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데, 알리바바는 일단 제지하고 자신의 설명을 이어간다.
          * 그의 "대마법"은 차원과 차원을 순간적으로 연결하는 마법이었다. 이론적으론 일 일라가 있는 차원 조차 현세로 연결할 수 있고, 알리바바 자신이 실증했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말한다. 그의 주장은 마치 파르테비아의 고층건물처럼 높은 건물을 1층부터 꼭대기까지 주파하는 식이다. 대마법을 사용한다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층 그 자체"를 없앨 수 있으니까. 각 층의 천장이 없어지면 맨 꼭대기에 있던 존재 조차 "같은 층"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모두 같은 층에 있게 되면 누가 누구의 운명을 쥐고 있는건 불가능하다. 신드바드의 방법은 "거대한 힘"이 필요한 면, 알리바바의 방법은 적은 힘으로도 가능성이 있다.
  • 마더콘 . . . . 2회 일치
         처음 나타난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1965년대에 이미 일적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1973년에 현대 용어 기초 지식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어머니 애착증"이라고 밖에 언급되저 잇지 않다. 1970년의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 사자에상의 작가)의 4컷 만화에서는 효도를 하는 것이 마더콘으로 여겨진다는 풍자 소재가 있다.
         1화에서 길에 넘어져서 손가락을 다친 후유히코를 보고 (시)어머니 역인 에츠코(悦子, 배역 노기와 요우코野際陽子)가 '다친 손가락을 순간적으로 입에 물고 빨아주는 애드립'을 실행. 그것이 응이 좋아서 계속 마더콘 전개가 증폭되었다고 하는 뒷 이야기가 있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2회 일치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절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태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 코토크 : https://kotobank.jp/word/%E3%83%9E%E3%83%AA%E3%82%A2%E3%83%BB%E3%83%AB%E3%82%A4%E3%82%B5-137371
  • 마의 2세아 . . . . 2회 일치
         2세가 되면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여, '항'을 하기 시작한다는 의미. '1차 항기'라고도 불린다. 아직 언어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뭐든지 싫어(イヤ)라는 말로 대응한다고 하여, 싫어싫어기(イヤイヤ期)라는 표현도 있다.
  • 마이클 페이 . . . . 2회 일치
         1994년 당시 18세였던 마이클 페이는 싱가포르에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지는 기행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마이클 페이에게 태형 6대와, 35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발 여론이 있었으며, 미 국무부는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 [[빌 클링턴]] 대통령 까지 나서서 "태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여담으로 미 연방정부의 조치와는 달리, 정작 미국 일인들은 마이클 페이가 태형에 당한 것에 대해서 오히려 환영(…)하는 여론도 있었다. 1994년 봄에 USA투데이가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53%가 태형의 도입을 찬성했다. [[엄벌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사회의 경향 때문인듯.[[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27/2007072700998.html (참조)]]
  • 맥스 페인 . . . . 2회 일치
          풀피 맥스를 한방에 날려보낼 정도로 강하다. 날아오면 드시 피하자.
          Rico Muerte. 펀치넬로 패밀리의 구성원. 맥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일적인 [[유주얼 서스펙트|카이저 소제]]"[* a regular Keyser Soze]. 시카고에서 일을 망친 후에도 펀치넬로 패밀리가 빼낸 걸 보면 나름 중요 인물로 보인다. 유사성행위 상대에게 웃으면서 사람 죽인 이야기를 하는걸 보면 제정신은 아니다. 바에서 캔디 던에게 [[펠라치오]]를 받던 중 맥스가 난입하자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도망가다 죽는다. 잉그램을 쏴갈기며 도망가기 때문에 무섭다.
  • 메시마즈 . . . . 2회 일치
         [[메시우마]]의 대. "타인의 행복으로 오늘도 밥이 맛없다(메시가 마즈이)."의 약칭.
         메시우마와는 대로 타인의 행복을 보고 밥이 맛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상태를 보고 질투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은 아주 슬픈 소식이 들어왔을 때도 사용한다.
  • 메일빙 . . . . 2회 일치
         일 [[택배]]와는 달리, 택배 물품을 수취인의 우편함에 그냥 집어넣고 신경끄는 서비스(…). 배달 일시 지정이나 수취인에게 제대로 갔는지 확인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대신 요금이 싸다. 주로 [[책]], [[잡지]], [[상품 카탈로그]] 등 경량 소형 화물을 대상으로 하며, 메일빙으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은 크기나 무게가 제한되어 있다. 쿠로네코 메일빙의 경우 최대 크기 B4, 두께 2센티미터, 무게 1 킬로로 제한되어 있다.
         택배와는 달리 일 우편물과 비슷하게 화물 추적이나 등록 등이 엄밀하게 진행되지는 않으며, 이 때문에 분실이나 배달 지연 등의 위험이 약간 높다.
  • 모리오리 족 . . . . 2회 일치
         1835년 12월, 수백년간 평화롭게 살던 모리오리 족은 갑자기 뉴질랜드에서 나타난 [[마오리 족]]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11월 19일, [[총기]]와 [[곤봉]], [[도끼]]로 무장한 500명의 마오리 족이 채텀 제도에 나타났으며, 12월 5일에는 400명이 추가로 나타났다. 채텀 제도를 공격한 약 900명의 마오리 족은 수적으로는 당시 모리오리 족(2000명으로 추정)의 절 정도에 불과했으나,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모리오리 족은 단합된 정치 조직이 없었으며, [[무기]]를 비롯한 전쟁 기술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오리 족은 장기간의 전쟁으로 조직화된 전쟁 문화, 정밀하게 만들어진 원주민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서양인들과의 교류로 [[총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마오리 족은 모리오리 족이 자신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항하는 자는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몇일 만에 수백명의 모리오리 족이 살해되었고, 몇년 동안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났다. 모리오리 족의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마오리 족은 [[식인]] 풍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모리오리 족은 문자 그대로 '''잡아먹혔다.'''
  • 무선호출기 . . . . 2회 일치
         [[휴대전화]]보다 먼저 상용화 되었으며, 가격이 초창기 휴대전화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었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보급과 함께 호출 기능 밖에 없는 무선 호출기는 빠르게 사라졌다. 대략 1990년 초중에 청소년에게도 널리 퍼질 정도로 상용화 되었으나 1990년대 후부터는 휴대전화의 보급에 밀려서 사라진 편.
  • 무신 . . . . 2회 일치
         한국의 경우에도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무력 쿠데타를 통한 조선 건국의 영향, 그리고 조선 초의 각종 내란으로 인해 무신에 대하여 강하게 견제를 하였고, 이러한 부분이 훗날 임진왜란 당시 초에 왜군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한 원인이 되었다.
         물론 좀 미묘하게 낮은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무신 역시 국가의 지배층이므로 일 백성들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잘 나가는 신분이다.
  • 문경시 . . . . 2회 일치
         문경 관음리 석조미륵보살가사유상
         문경 관음리 석조미륵보살가사유상
  • 미니게임기 . . . . 2회 일치
         2000년대 중까지 흔하게 보이던 [[게임기]]의 일종.
         2008년 8월 3일 부터 학교 경 200m 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27609.html|설치가 금지되었다.]] 그 이후 멸종.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그러나 미즈우치는 경찰관 신분이나 오사카에서 온 것을 밝혔으나, 후에 아내가 될 여성과 간사이에서 이미 교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즈우치는 년도 되지 않아 시라타 히카루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이 해 가을 무렵 시라타 히카루는 친구에게 미즈우치가 연락을 무시하고 데이트도 자주 취소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라타 히카루는 "어차피 나는 '센다이의 여자'일까", "(미즈우치가) 스노 보드만 하고 있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걸까."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미즈우치는 교제에 불성실해져서 시라타 히카루는 12월에 생일을 맞았지만, 미즈우치는 생일인데도 만나주지 않고, 놀아주거나 선물을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에 시라타 히카루는 "괴롭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2015년 10월 6일, 오사카 지방법원은 미즈우치 타카시에게 징역 18년(구형 20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미즈우치 피고가 흉기로 쓰인 가죽 벨트를 지참하는 등, 계획성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장은 사전에 살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고 계획성은 부정하였다. 하지만 미즈우치 피고가 살려달라고 하는 피해자의 목을 집요하게 조르는 등의 행위에 대하여, "경찰관으로서 사람의 생명을 지킬 의무를 위하여 생명을 빼앗은 것은 강하게 비난받을 만 하다."고 하였다.
  • 바르나바 복음서 . . . . 2회 일치
         바르나바 복음서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책은 내용적으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고, 대신 [[가롯 유다]]가 십자가에 매달린다. 전적인 내용은 4대 공관복음서와 유사하나, 이 같은 차이점은 [[기독교]] 전통보다는 오히려 [[이슬람교]]에서 묘사하는 예수와 유사함이 많다. 또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부정하고, 메시아의 이름은 [[무함마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사본은 문헌 비평 등으로 미루어보아,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로 된 바르나바 복음서는 대략 14세기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문서의 생활상 묘사나 지식으로 미루어보아, 일적으로 [[중세]] 시기에 만들어진 문헌으로 추정하고 있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2회 일치
         그는 유약한 미카엘을 교모히 충동해 바르다스가 그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거라고 이간질했으며, 그에게 바르다스를 제거하는게 그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부추겼다. 음모는 바르다스가 크레타에 원정을 갈 준비를 할때 준비되었던걸로 보이는데, 바실레이오스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암살음모가 바르다스의 첩보망에 걸려버렸다. 그러자 바르다스는 원정을 취소하고 수도로 가서 미카엘에게 따졌으며, 결국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성모 마리아 칼코프라테이아 성당에서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공식 선언서에 서명하게 된다.[* 바실레이오스는 글을 몰라서 서명란에 십자가만 그리게 된다.] 이후 바르다스는 크레타 원정전 막사에서 황제에게 작전을 의논하던중 바실레이오스에게 죽는다.[* 죽기전에 미리 칼을 뽑았으나 바실레이오스가 그냥 맨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고(...)] 해당 행위는 미카엘도 어느정도 관여를 했던게 확실한듯 한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포티우스에게 바르다스가 역죄로 즉결 처분되었다고 암살이 실시된 후 바로 알린것으로 알 수 있다.이후 포티우스의 조언에 따라 수도로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돌아갔고, 이후 성령강림절에 바실레이오스는 공동황제로 임명된다.
         paradox interactive사의 시뮬레이션 게임인 [[crusader kings 2]]에서도 등장한다. 그의 힘을 나타내기위해서인지 '강인함'특성이 붙어있으며, 그외에 야망, 기만적, 용감함 등 그의 생애를 잘요약한 특성들이 붙어있다. 처음 능력치는 크게 좋지는 못하나, [* 오죽하면 숙련자들은 발칸도밖에 영토가 없지만 사기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있는 알렉시아드 시나리오가 더 좋다고 할까(...)] 전쟁터에서 굴려주면서 성장시키먼 상당히 높은 능력치가 되준다. 다만, 시스템상 비잔티움은 황제가 되고 난뒤에 태어난 아이인 '자주색 혈통'특성을 가진 후계자가 우선 상속하기에, 십중팔구 콘스탄티노스가 살아있어도 레온이 황위에 오른다(...)
  • 바캇타 . . . . 2회 일치
         트위터는 쓰는게 쉽고, 동료들 가운데서 폐쇄적인 커뮤니티로 느끼는 사용자가 많아, 트윗이 전 세계로 발신되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않고, 비상식적인 내용이나 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문제성이 있는 트윗을 날리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2013년에 여름에 아이스크림 케이스 안에 누워 있거나, 아르바이트 냉동고에 들어가는 인물의 이미지가 트위터로 널리 퍼져서 바캇타라는 말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2013년 부터 바캇타라는 말이 일적으로 쓰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바키도/132화 . . . . 2회 일치
          * 터무니없는 타이밍에 이루어진 격에 방심한 것인가? 무사시는 슬리퍼 홀드까지 허용한다.
          * 이미 모토베의 우신은 없어진 거나 다름 없다. 무사시의 일격으로 쇄골이 부러지고 폐가 내려앉아 오른팔은 이미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제와서 오른쪽 어깨가 좀 찔린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목을 조른다. 소매를 문 턱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 바키도/136화 . . . . 2회 일치
          * 무사시의 모습이 일대중 앞에 낯낯히 드러난다.
          * 이 방송은 당연히 일 대중들에게도 전파된다. 길거리의 대형 스크린에 무사시의 모습이 나타나자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춘다. 막연히 시대극 배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얼마 전 무사시가 보도된 뉴스를 보고 "거기 나온 놈"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 몇 명이나 "진짜 무사시"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 바키도/138화 . . . . 2회 일치
          * 강력범죄의 두 형사는 이 영상을 놓고 의견이 갈린다. 타쿠 켄이치는 "역시 무리"라고 고개를 젓고 장인 히키키 에이이치로는 "쓰러진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결국 결론이 나지 않다 제 3의 의견을 구한다.
  • 박두을 . . . . 2회 일치
         {{인용문|처음 본 인상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고 세기여를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내자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왔다. 예의범절에도 밝아 대소사가 두루 화목하다. 지금까지 몸치장 얼굴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인용문|'어떠한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이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낚시를 하면서 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살려 가느냐에 있다.'(호암 평전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 박상규(정치인) . . . . 2회 일치
         [[이명박]] 정권 때인 2010년 [[민주당(2008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2011년 하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종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2011 || [[2011년 하기 재보궐선거]][br](민선 5기 충북 충주시장)[* 전임자 [[우건도]] 당선무효] ||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 16,492 (23.77%) || 낙선 (2위) || ||
  • 박승호 (야구인) . . . . 2회 일치
         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0 시즌]]에는 [[지명 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0.307의 [[타율]], 75 [[타점]], [[홈런]] 20개, 0.505의 [[장타율]]을 기록하였고,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지명 타자)|골든 글러브 지명 타자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에 있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1990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선 대체로 2할 중후대의 타율과 4할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아주 뛰어난 선수로 기억될 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그는 비록 1980년대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와 같은 커다란 업적을 남긴 수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한 선수로서 통산 11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방’이 4강권 이끈다"]</ref>
         [[200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0 시즌]]부터 박승호는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겨 4년간 타격코치로서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고, [[2004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4 시즌]]부터는 팀을 옮겨 [[KIA 타이거즈]] [[김성한 (1958년)|김성한]] 감독, [[서정환]]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타격코치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027357 기아 김성한 감독 재계약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481897 <프로야구소식> 박관용 국회의장, KS 1차전 시구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9800 KIA, 서정환 2군감독 1군코치 임명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09720 최하위 기아 코칭스태프 개편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KIA 타이거즈]] 코칭 스태프 개편을 통해 [[서정환]]이 감독으로, 박승호가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190864 <프로야구소식> KIA, 코칭스태프 보직 확정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7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7 시즌]] 전기에는 팀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6월에 대대적인 코칭 스태프 개편이 있었고, 수석 코치로 있었던 박승호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ref>[[마이 데일리]] - 2007년 6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6181438192229 "KIA, 조범현 전 SK 감독 영입 등 코칭 스태프 개편"]</ref><ref>[[한겨레]] - 2007년 6월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216991.html "기아 1·2군 코치진 맞교체… “분위기 쇄신” 효과 관심"]</ref> 2007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KIA 타이거즈]]는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을 경질하였고, [[2007년]] 시즌 중 배터리 코치로 영입했다가 새로 선임한 [[조범현]] 감독이 코칭 스태프를 새로 구성하면서 그는 구단과 재계약하지 못했다.<ref>[[스포츠 칸]] - 2007년 10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212230173&sec_id=510201 "조범현 감독 KIA 코치진 물갈이"]</ref> 하지만 그가 키워냈던 [[이용규]]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우뚝섰다.
  • 박용우(배우) . . . . 2회 일치
         이후 2006년의 개봉 [[영화]] 조용한 세상과 [[2007년]]의 뷰티풀 선데이에서는 연타로 냉철한 형사 역할을 맡으며 몸으로 뛰는 연기를 소화하는가 하면 [[2009년]] 개봉한 [[핸드폰]]에서는 정대인 [[찌질이]] 악역도 멋지게 소화하는 등, 극과 극을 오가며 연기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설이 있다. 여친이었던 조안이 박용우의 배바지와 엄청 큰 메이커 버클벨트(...)를 하고 나온 모습에 했었다는 발언(자기 딴에는 멋부린다고 부린거였다. [[유재석]]이 그 이야기를 듣고 동조했다.)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월드컵]]이 지나도 한참 지난 어느 해, 고깃집에서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봤다는 [[안선영]]의 목격담 때문에. 그런데 [[정장]]을 입은 모습은 제대로 [[간지폭풍]]이다.
  • 박재홍(1941) . . . . 2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칠곡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현규]]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김현규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 박정수(정치인) . . . . 2회 일치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백남억]] 후보를 누르는 한편 무소속 [[정휘동]] 후보와 동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참고로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은 1973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되어 남편 박정수보다 일찍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변정일]], [[김수(정치인)|김수]], [[박용기]], [[함종빈]], [[윤재명]], [[정휘동]], [[임호(정치인)|임호]], [[임영득]], [[한갑수(정치인)|한갑수]], [[홍성우(1941)|홍성우]], [[권오태]] 등과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나서도 정치규제를 당하지 않아서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정휘동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정의당 [[김상구]] 후보와 [[신한민주당]] 이재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반하면 패배 . . . . 2회 일치
         [[일본]]의 연애 격언. 좋아하게 된 쪽이 패배. 한 쪽이 패배. 라고도 한다.
         '한 쪽이 패배'라는 말은 연인관계에서 애정의 크기가 서로 다르거나, 주도권이 한쪽에 있는 경우를 뜻한다.
  • . . . . 2회 일치
         인체의 신체부위중 가장 하단에 위치한 아름다운 부위로써, 다리와 더불어 인간의 몸을 지탱해주는 하신의 중추이자 미의 정점이다. 동물이 직립보행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신체부위이고 기본적인 그 골격 구조는 상신의 손과 같으나 복사뼈, 족저근막 위의 아치형 구조등, 좀 더 충격흡수를 효율적으로 하기위하여 예술적이고 독보적인 모양으로 변화되었다.
  • 발달장애 . . . . 2회 일치
          * 전적 발달장애 : 자폐스펙트럼장애,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등. 의사소통이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으며, 특정한 행동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발달장애를 주위에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오해나 잘못된 대응을 복하는 경우. 자신감을 상실하여 [[부등교]], [[히키코모리]] 등이 될 수 있다.
  • 배소연 . . . . 2회 일치
         == 음 ==
         * [[2004년]]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가수부문 일무대상 수상
  • 배천석 . . . . 2회 일치
         [[K리그 클래식 2013|2013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하여 3월 2일 [[FC 서울]]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며, 3월 30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4월 13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는 후 18분 교체투입된 뒤 6분 만에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AFC 챔피언스리그 2013]]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데에 이어 3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뒤 결승골을 넣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2014 시즌 첫 경기였던 [[AFC 챔피언스리그 2014]] [[세레소 오사카]]와의 홈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전기를 넘기지 못하고 양 정강이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게 됨에 따라 사실상 시즌아웃 되었다.
  • 버블 시대 . . . . 2회 일치
         [[일본]]에서 [[버블 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1980년대 후에서 1990년대 초의 초호황기를 뜻한다.
  • 베이지 . . . . 2회 일치
         === 발매 음 ===
         === 참여한 음 ===
  • 벤 존슨 . . . . 2회 일치
         벤 존슨은 자신의 도핑 파문이 음모였다고 주장한다. 벤 존슨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스폰서는 이탈리아의 스포츠 메이커 '디아도라'로서, 당시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에 비하면 작은 기업이었으나 벤 존슨 자신의 활약으로 급성장 하였다. 당시는 유명 선수에 대한 도핑 테스트는 기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누구나 다 하고 있었으며, 감기를 이용하여 몸을 '클린' 하게 하고 검사를 받는 것이 일적이라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벤 존슨은 칼 루이스도 약물을 했는데 걸리지 않았고, 자신만 기습적으로 걸린 것은 자신을 저격하여 디아도라의 성장을 막으려는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벨트스크롤 게임 . . . . 2회 일치
         버튼은 주로 2개, [[점프]]와 [[공격]]에 할당한다. 또 [[점프]]와 [[공격]]을 동시에 누르는 것으로, 일종의 필살 공격을 쓸 수 있는 것이 일적이다.[* 90년대 오락실에서 탈출기라든가 필살기, 발악기 등으로 부르는 공격이 그것.]
         주로 [[아케이드 게임]]으로 많은 게임이 나왔다. 3D 기술의 발전으로 3D 게임이 일화 되면서 제작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꾸준히 제작은 되고 있는 장르이다.
  • 병 속의 악마 . . . . 2회 일치
         안에 악마가 들어 있는 마법의 병은 뭐든지 소유자의 소원을 들어주지만, 죽을 때까지 이 병을 소유하고 있으면 소유자는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히 불타게 된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드시 다른 사람에게 병을 팔아야 하는데, 소유자가 주고 산 값보다 싼 값에 병을 팔지 않으면 안된다.
         하와이의 선언 케아위(Keawe)가 한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부유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왠지 슬퍼보였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자신의 모든 재산은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Imp)가 들어있는 마법의 병(magic bottle)으로 얻은 것인데, 이 병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만 죽기 전에 이 병을 팔아버리지 않으면 소유자는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병은 드시 자신이 삿던 것 보다 싼 값으로 팔아야 한다. 케아위는 50달러를 주고, 노인에게 이 병을 사게 되며….
  • 보루토/2화 . . . . 2회 일치
          * 마치 봉인흡인처럼 미수옥을 빨아들이는데, 대편 왼손은 검은 색이고 거기에도 윤회안이 따로 있다.
          * 킨시키는 킬러비를 버리면서 "보다 큰 차크라 응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한다.
  • 보루토/5화 . . . . 2회 일치
          * 나루토는 심지어 "닌자실격"이란 말까지 하며 나중에 설교한다고 하는데 보루토는 "제대로 설교할 시간이나 있냐. 그리 해줬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발한다.
          * 보루토는 "제대로 설교 당했으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다"고 발한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2회 일치
         이러한 주장은 남한과 외국의 일적인 역사적, 고고학적 견해와는 배치된다.
         2016년에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하고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에서, 박문을 올리며 인천상륙작전에서 북한이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 불단 . . . . 2회 일치
         불단의 내부에는 불상이나 족자, 혹은 만다라 등으로 된 ‘본존’을 모신다. 본존은 신자가 소속된 종파 본산에서 배포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본존의 좌우에는 종파에서 모시는 고승의 초상을 놓는다. 이 본존과 고인을 기리는 ‘위폐’를 모시는 것이 일적인 불단의 구조이다.
         일적으로 매일 1회 불단을 청소하고, 종파에 따라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의식과 염불을 올린다.
  • 브레이니악 . . . . 2회 일치
         역사가 오래된 캐릭터이다보니 시기에 따라, 매체에 따라 차이점이 있다. 초기에는 콜루 행성의 [[외계인]]이었다가 이후 설정이 변경되어 콜루 행성의 [[컴퓨터]]가 만든 기계인간이 되었다. 정신 능력을 지닌 [[천재]] [[과학자]] 브릴 독스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 이후 크라이시스라는 대형 이벤트를 거치면서 재설정되었는데 이 설정에서 브릴 독스는 콜루 행성 정복을 이루려다 행성을 다스리는 대형 컴퓨터에게 역죄로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남으 새로운 몸을 얻어 브레이니악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애니메이션]] [[슈퍼맨 TAS]]와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서도 등장했는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는 클립톤 행성의 멸망을 알리지 않고 그들이 멸망하게 방치했다는 설정이 생겼으며 이후 렉스 루터를 부려서 자기 몸을 만들게 했다. 이후 JLU에서 재등장했는데 이때 브레이니악은 정말 치밀하기 짝이 없는 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 브레이니악은 몸이 만들어지자 렉스를 공격했는데 이때 이 공격은 렉스를 죽이지 못했다. 애초에 그에게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 이때의 공격은 브레이니악의 일부를 렉스에게 옮기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이 일부는 렉스의 안에 잠복하게 된다. 그러면서 렉스라 크립토나이트 오용으로 얻은 암을 치유하고 괴력을 줬는데 렉스가 아마조를 기으로 한 나노머신 로봇 몸에 의식을 옮기는 때를 기다렸다가 그게 좌절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저스티스 리그의 눈을 피하는 동안 렉스에게 설득되어 이전에 지구를 침공한 외계의 병기를 흡수하고 렉스 루터와 융합되었다. 그러나 플래시의 활약에 의해 패배.
  • 블랙 클로버/101화 . . . . 2회 일치
          * 사건이 일단락된 후 마녀왕은 귀걸이로 쓰던 마석을 넘겨주고 고대 종족 "엘프"와 그들이 불러냈던 "마신", 그리고 아스타의 마법 검에 대해 설명해준다.
          *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검은 폭우단의 아지트. 아스타는 힘차게 대문을 열며 깨끗하게 나은 두 팔을 들어보인다.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로 [[야미 스케히로]]에게 팔이 다 나았다고 소리친다. 아지트에는 단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야미만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아스타의 나은 팔을 보고도 "오 그러냐" 정도로 심드렁하게 응한다. 심지어 마석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는데 그런 것 보다는 술심부름부터 보낸다. 참 더럽게 바람직한 단장이다.
  • 블랙 클로버/103화 . . . . 2회 일치
          폭탄선언일 수도 있는 얘기는 아무렇게 던지자 응이 즉각적으로 돌아온다. 순식간에 열이 달아오른 노엘이 당황하며 물마법으로 아스타를 날려버린다. 카호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며 날아간 아스타는 내버려두고 "이번엔 노엘과 데이트"라며 여자들끼리 놀러 간다.
          * 거의 대편으로 날아가 일행과 동떨어진 아스타. 투덜거리며 돌아오는데 야외 테이블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테이블에 대단한 미인이 홀로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말을 걸어볼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어지간히 둔감한 아스타도 대단한 미인이라고 생각하며 [[핀랄 룰러케이트]]의 취향이라고 중얼거린다.
  • 블랙 클로버/113화 . . . . 2회 일치
          * [[솔 마론]]을 비롯한 마법기사들이 그의 불손한 태도를 비난했다.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도 마법제에게 무슨 짓이냐고 언성을 높였는데, 공분을 산 잭스는 적하장으로 "너네나 마법제를 존경하지 나는 아니다. 너네 가치관을 나에게 강요하지 마라!"고 꾸짖는다. 그로인해 대회장의 분노지수는 최고조.
          * 아스타의 B팀과 A팀의 대결. A팀은 오만불손하고 마법제를 모욕했던 잭스에게 이를 갈고 있다. 그 분노로 일치단결한 A팀과 달리 B팀은 시작부터 개판. 우선 아스타가 텐션을 높이고 있으려나 어김없이 잭스가 빈정거리며 실제 승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부터 찾으라고 정론으로 공격한다. 팩트폭력에 부들거리는 아스타. 미모사는 콩깍지 모드라 부들거리는 꼬락서니에도 헤롱거린다. 그래도 일단 이 중에선 제일 자기 할 일을 찾아한다. 그녀는 곧 자군의 전력을 파악하자며 각자의 능력을 확인한다. 미모사는 회복, 서포트, 원호 등이 가능한 식물마법사. 아스타는 마법을 사용하는 근거리 검사다. 잭스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그녀가 잭스에게 어떤 마법을 사용하냐고 묻는데 공교롭게도 그 대답을 들을 기회를 놓친다.
  • 블랙 클로버/115화 . . . . 2회 일치
          * 패배가 확실시 됐을 때 [[잭스 류그너]]의 함정이 발동, A팀 세 사람의 최강마법이 그대로 사되어 전세를 역전시킨다.
          * 잭스는 승부에 흥미를 잃은 듯 크리스탈 파괴를 포기하는 듯 하다 결국 박살내서 A팀을 두 번 우롱하는데, 이 같은 행동은 아스타에게 감을 산다.
  • 블랙 클로버/118화 . . . . 2회 일치
          * 이런 사태를 릴이 원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건 좀 더... 아름다운 것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렇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그 점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느냐고, 이젠 그림 자체를 그리지 말라고 강요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데도 그림을 끊을 수는 없었고 강요를 받을 수록 발심은 커졌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깨어난 릴의 눈 앞에, 상처투성이의 발터가 있었다. 릴이 무아지경으로 그려대던 그림들은 하나하나가 무서운 파괴를 일으켰다. 발터는 아랑곳 없이 그의 방을 찾아왔다. 마법에 맞아 온몸에 성한 데가 없고 이마에 깊은 상처가 생겨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집사로서 도련님에게 따끔하게 가르쳐 줄게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 받으면 아프다는 것. 지금 릴이 맞은 뺨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다치는걸 두려워한다. 정체모를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 것에 다가가고 싶지 않아 한다. 같은 짓을 복한다면 누구도 영영 그에게 다가오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 정말로 남에게 이해받고 싶다면 그가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도 모처럼 그린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아닌가? 발터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단지 릴이 남을 이해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 블랙 클로버/120화 . . . . 2회 일치
          * 딱히 작전도 없이 시작된 8시합. 유노팀이 아직도 의견 조율 중인데 해 상대팀은 시작부터 합체마법으로 재빠르게 속공을 걸어온다.
          * 노엘도 아무 생각없이 공격조를 자원한건 아닌데, 그녀가 치고나가면 드시 솔리드가 쫓아올 거라는 계산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됐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2회 일치
          * 잭스의 독설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만큼 상대의 상태도 가리지 않았다. 아스타의 일격으로 네르슈는 기절. 계속 마력을 빨리도록 그 위에 마법의 검을 얹어 봉인조치까지 했다. 그래도 잭스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원시적인 함정"에 걸렸으니 기사단이고 부단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라고 빈정거린 그는 "어쨌든 기분 나쁜 나르시스트"라는 원색적인 욕설까지 잊지 않았다. 이 상황을 합작한 아스타 조차 적당히 봐주라고 한소리했다.
          잭스가 혼자 고생한 척은 다 했지만 사실 함정은 아스타가 판 거였다. 마법의 검은 삽 대신으로도 훌륭했다. 아스타가 유인하던 동굴 입구 쯤이 함정의 위치였다. 잭스는 초장부터 그렇게 설친데다 이런 함정까지 하고도 전혀 지치지 않는 아스타를 "체력 괴물 꼬마"라고 불렀다. 정작 잭스가 바쁜 건 지금부터다. 네르슈가 다시 일어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다. 그는 함정이 있는 동굴 입구에 새로운 함정마법을 걸었다. 누가 그를 구하러 접근하면 꽈광. 아스타도 알 수 있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예방 조치였다.
  • 블랙 클로버/125화 . . . . 2회 일치
          * 잭스는 자군 크리스탈 자체에 사마법을 설치했고 이 마법은 상대의 마법 특성까지 사하기 때문에 크리스탈을 노린 매그너는 자기 마구에 맞아 당하고 만다.
  • 블랙 클로버/50화 . . . . 2회 일치
          * 풀 리플렉션은 신벌의 빛줄기를 사해 리히트에게 돌려 보낸다
          * 사된 마법에 맞기 전 리히트가 고슈의 왼쪽 눈을 보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흘리는데...
  • 블랙 클로버/54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가 마법의 검으로 보호 마법을 깨자 마법제가 세뇌 마법을 걸어 자백을 받는다
          * 물빛의 환록의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최연소 단장이고 "막내인 내가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데 응은 언제나 신통치 않다.
  • 블랙 클로버/58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보름달 밤. 아스타는 대로 "아예 마력을 있는대로 방출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폭주하면 자신이 무효화 시켜줄 거라고 하면서.
          * 특히 노젤 실버의 감이 강한 편.
  • 블랙 클로버/61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는 마법을 쓰므로 애초에 그런 마법이 통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 아스타를 발견한 마도사는 그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알고 있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2회 일치
          * 그러니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는데, 노엘은 친구와 어떻게 싸우냐고 문한다.
          * 그 위력은 해룡의 둥지도 뚫을 정도였고 당황한 노엘은 물의 마력덩어리를 던져서 격하는데 도무지 명중하지 않는다.
  • 블랙 클로버/75화 . . . . 2회 일치
          * 팔휘장 중 한 명, 선두의 깐깐해 보이는 남자가 격을 가한다.
          * 유노에게 해있는 챠미도 환호. 아스타는 유노의 활약을 기뻐한다.
  • 블랙 클로버/79화 . . . . 2회 일치
          * 유노는 아스타가 자신의 자랑이자 라이벌이라며 장차 마법제가 되자는 약속을 했다고 박한다.
          * 유노에게 저런 녀석들하고 어울리면 창피하지 않냐고 묻는데, 유노는 "그런 생각 해본 적도 없고 아스타는 나의 자랑이자 라이벌"이라고 박한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2회 일치
          * 영 응이 좋지 않자 농담이고 실은 공짜라고 수습하는 도미나.
          * 아스타는 자신은 말겨도 없고 몸도 성치 않지만 "가족을 짓밟는 녀석 보단 양"이라 쏘아붙인다.
  • 블랙 클로버/93화 . . . . 2회 일치
          * 자폭 모드로 들어간 [[증오의 파나]]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의 접근에 예민하게 응한다. 자폭 주문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파나를 둘러싼 샐러맨더의 마력은 파염구를 토해내며 두 사람의 접근을 방해한다. 아스타와 마르스를 각자 화염구를 베어내며 돌진한다. [[판젤 크루거]]는 저정도 위력의 공격을 능숙하게 베어내는 것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과연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워한다.
          * 타들어가는 것과 회복되는 것을 복하며 마침내 한 발 앞까지 다가온 마르스와 아스타. 마르스는 파나를 향해 손을 뻗지만 그 순간 자폭 마법이 완성된다.
  • 블리치/682화 . . . . 2회 일치
          * 제라드는 토막난 몸을 복구하기 시작하는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내뿜는다.'''
          * 분명 초엔 미완성이라 얼음꽃이 지면 끝이라고 했던거 같은데...--그런 식이면 켄파치 상시해방형은 뭐가 되냐--
  • 빗치 . . . . 2회 일치
         현재에도 bitch는 일적으로 대단히 모욕적인 욕설로 쓰인다.
         페미니즘 문화에서는 bitch를 재정의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에서는 bitch라고 불리는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적이지 않으며 그 때문에 남성에게 발을 사지만, 그러나 강인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으로 정의한다.
  • 사쿠라 . . . . 2회 일치
         본래 노점상의 은어였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 일 사회에 퍼졌다. 한자로는 위객(偽客)이라고 쓰기도 했다.
          * 에도 시대에 연극 오두막에서 배우에게 말을 거는 구경꾼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화려하게 분위기를 돋구고 확 사라지기 때문에, 확 피고 사라지는 벚꽃의 성질에서 따와서 사쿠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점상의 은어를 거쳐서 일적으로 퍼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 서림 . . . . 2회 일치
         야사 <연평일기>에 따르면, [[이괄의 난]]에서 패전 뒤 [[이괄]]의 목을 베어 바친 자들에게 대간이 역죄를 주장할 때, 권신 이귀가 “선왕 때 서림(徐霖)이 대간의 아룀으로 인하여 비록 공훈은 삭탈당하였으나, 특명으로 동지(同知)에 임명되어 녹을 받은 사실이 있었으니 이제 이러한 전례에 따라 익헌 등의 죽음을 용서하여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 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간사한 배신자' 서림은 임꺽정 이야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서림은 원초적인 완력을 강조하는 '[[백정]]' 임꺽정과 대비되어, 몰락양이나 아전 등 [[지식인]] 계층의 인물로 등장한다.
  • 서명선 . . . . 2회 일치
         영조 후기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오르고 의주부윤으로 나갔다가 이후 강원도관찰사와 [[이조참의]]를 거쳐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도승지]] 등을 지낸다. 이어 강원도[[Javascript:hplink('18365')|관찰사]] 등을 거쳐 [[Javascript:hplink('78690')|부제학]](副提學)에 오르고 1774년 [[Javascript:hplink('127923')|이조]]참판 때, 세손(世孫: 正祖)의 대리청정을 대하던 재상 [[Javascript:hplink('172387')|홍인한]](洪麟漢)을 탄핵, 파직시키고 [[Javascript:hplink('136845')|정조]]를 즉위하게 했다.
  • 서상기 (1946년) . . . . 2회 일치
         [[2004년]] 5월 ~ [[2008년]] 5월 제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17대 4년동안 국회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이자 전기 간사를 맡았다.
         [[2012년]] [[7월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19대 전기 정보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070918443765916&outlink=1 서상기 국회정보위원장 프로필], 머니투데이, 2012년 7월 9일 변휘 기자</ref>
  • 서태화 . . . . 2회 일치
         * 2012년 [[TV조선]] 미니시리즈 《[[한도 (드라마)|한도]]》 ... 김태성 역
  • 서훈 (1942년) . . . . 2회 일치
         경북대학교 법대 재학시 총학생 회장으로 6.3 한일 굴욕회담 대 투쟁을 주도하였고 ROTC 대위로 전역한 이후 신민당 시절 김영삼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번번히 낙선하였다. 영남지역 재야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 가난한 지역학생들을 위해 팔공 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랬동안 운영하였다. 1990년에 김영삼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때 이를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 총재와 결별하게 된다.
         이를 기으로 [[대한민국 제15대 총선|15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2000년]]의 [[대한민국 제16대 총선|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신청했으나 [[1997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15대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의 비토론자였다는 이유로 낙천되었고, 이 후 [[김윤환 (1932년)|김윤환]]을 따라 [[민주국민당 (2000년)|민주국민당]]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 선원 . . . . 2회 일치
         과거 영국은 군함의 선원을 강제 징집해서 충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극초에는 미국 선박을 습격, 선원들을 끌고가 자국 군함에 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사이트에서 소개된 "선원 직업의 매력"을 인용하려 했으나 대대는 불편한 점을 찾지 못해서 그냥 포기 함.
  • 세미스텔스 . . . . 2회 일치
         보통 전투기가 2-5제곱미터의 RCS를 가지고 있다면, 세미 스텔스기는 0.1 - 1제곱미터의 사면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흔히 세미스텔스라고 불리는 기종들은, 스텔스를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본격적인 스텔스기와는 달리 기체 설계 전에 본격적인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스텔스 기술을 상당히 고려하고 도입하여 RCS를 줄이는 것을 설계 목표에 포함하고 있다. 즉 본격적인 스텔스 전투기가 스텔스를 위하여 어느 정도 전투력 약화도 감수하는 설계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세미스텔스기는 기존의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스텔스 기술의 혜택을 얻는 설계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소명(가수) . . . . 2회 일치
         == 음 ==
         * 2005년 [[아이넷TV]] 성인가요 차트 50 상기 6회 1위 수상
  • 손지창 . . . . 2회 일치
         == 음 ==
         <!--KBS, MBC, SBS, M.net에서 방영되는 가요프로그램 주간 1위 내역만 기록해 주시고, 나머지 내역들은 '그 외' 문단으로 분류하여 기재해주세요.(상기 및 연간 1위도 '그 외' 문단으로 기재.)-->
  • 송원근(배우) . . . . 2회 일치
         이후 소속사를 제리 엔터테인먼트에서 [[로엔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면서 '런'이라는 예명으로 개명하고 2009년 10월 16일 '강력한 그녀'라는 곡으로 컴백했다. ~~이름 바꾸면 모를줄 알았지?~~ 이 시기에 당시 무명이던 '''[[아이유]]'''(!)가 피처링한 곡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응은 역시나 시원치 않았다는 듯. 배우 [[강소라]]와 [[멜론]]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2년에는 아이유의 노래 '좋은 날'의 일본어 버전인 'Good Day'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이후 MBC 예능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7차 경연에서 [[오필승 코리아]]라는 닉네임으로 참가해서 2라운드까지 갔다.[* 참고로 2라운드에서 9표 차로 가면을 벗었으며 일인 기준으로는 2표 앞섰다.] 과거의 가수 활동에 많은 상처를 받아 다시 무대에 서기가 두려웠는데, 복면덕분에 무대에서 노래부르는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공교롭게도 메인 악역을 맡은 [[최필립]] 역시 [[한 꼬마 인디언 보이]]라는 이름으로 복면가왕에 참여했다. --결국 [[나홍주|남주인공]]과 [[차선우(내일도 승리)|최종보스]]만 복면가왕에 출연했구만--
  • 송재호(배우) . . . . 2회 일치
          * [[살인의 추억]] - 신장역
          * [[그때 그 사람들]] - [[박정희|각하]] 역[* [[박정희]]를 대놓고 풍자한 역할이라는 점에서 후에 보인 정치색과는 다소 상된 연기를 한 것이다. (물론 [[박정희]]는 싫어하고 [[박근혜]]를 좋아하는 것은 가능하다.) --2016년 이후로 좋아하긴 [[최순실 게이트|어려워졌다]]...--]
  • 송주훈 . . . . 2회 일치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유럽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김영권]]의 대체 선수로 송주훈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이적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8&aid=0002571906|#]] 광저우에서 [[김형일(축구)|김형일]]을 대신 영입함에 따라 광저우 이적은 무산되었고, 결국 2017년 임대가 만료되어 본래 팀인 니가타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819043605956304899|#]][* 그러나 2017년 슈퍼 리그의 외국인 쿼터가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각 구단들은 더욱 고연봉인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벤치워머]]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중국 이적이 무산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 실제로 송주훈 대신 이적한 김형일 역시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방출되었고, 대로 송주훈은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있으니 정말로 일본에 남은 것이 이득이 된 셈이다.]
         2018년에도 시즌 초부터 주전 센터백으로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가 장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소속팀인 니가타마저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어 이적 가능성 또한 점쳐지고 있는 상황.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2회 일치
          인간, 기계로 된 --짝퉁 아이언맨 같은-- 적이 나타나, 슈퍼맨에게 상실의 고통을 알려주고 싶다고 소리치며 카라에게 도전을 한다. 카라와 대결하던 적은 아머가 손상되자 도주한다.
  • 시로우토 동정 . . . . 2회 일치
         성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으나, 그 대상이 어디까지나 풍속 여성 등 성매매 업계 종사자이며 일인(素人)과는 했던 경험이 없다는 것. 즉 성경험은 있으나 연애 경험은 없는 사람을 뜻한다.
          * --댓말은 프로페셔널 동정이다.--
  • 시프트제 . . . . 2회 일치
         시프트제가 없는 경우는 미리 모집공고를 낼 때 근무시간도 함께 제시하는 면, 시프트제를 채용하는 직장에서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한달~2주 전에 희망근무시간(시프트)를 제출하고, 점장은 거기에 맞춰서 근무시간표(시프트표)를 작성하여 근무시간을 각자에게 할당한다.
          * 일본에서는 일적이라고 한다.
  • 식극의 소마/167화 . . . . 2회 일치
          * 그는 바뀐 진급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본래 이 제도는 대상자의 절가량이 퇴학당할 정도로 가혹한 제도.
          * 히사코는 "잔당사냥을 통과한 발세력을 시험으로 떨어뜨리려는 수작"이라 평하면서 결국 시험에서 아자미 정권에 따르지 않는 학생들을 솎아내기 위한 방편이다.
  • 식극의 소마/178화 . . . . 2회 일치
          * 에리나는 한 번 그녀를 내쳤던 일을 성하고 여전히 자신을 존경해주는 이쿠미에게 감사한다.
          * 역자팀의 3차 시험은 전원 십걸이 상대.
  • 식극의 소마/184화 . . . . 2회 일치
          * 시오미 세미나가 센트럴에 항하자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기업들이 일제히 교류를 중단, 시오미 세미나를 압박한다.
          * 도지마는 어떻게든 시오미 세미나를 지키려 하고 그렇기 위해서 소마를 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것.
  • 식극의 소마/186화 . . . . 2회 일치
          * 무엇보다 곰고기의 중후한 야성미와 노간주열매의 향이 혀를 자극하는데, 그 맛을 "야생동물 고기의 거친 맛이 누구나 할 만큼 매혹적인 향으로 조교됐다"고 평한다.
          * 소마는 흘려듣는 것처럼 굴면서도 "마무리 지어야할 녀석이 있으니 드시 살아남겠다"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2회 일치
          * 도지마의 노력으로 시간에 늦지 않게 심사에 도착했다. 같은 날 도지마는 십걸 6석에, 죠이치로는 7석에 임명된다. 쿄쿠세이 기숙사로 돌아온 두 사람을 겨주는 기숙사생들. 죠이치로는 후배들의 찬사를 받으며 건들거리는데 고생은 도지마가 다 해서 기진맥진해있다.
          어쨌든 이 셋이 쿄쿠세이 기숙사의 유망주 삼인이자 여학생들의 인기도도 가장 높은 삼인조. 셋은 일과가 끝나면 따로 모여 식극을 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전적으론 죠이치로가 언제나 우위.
  • 식극의 소마/199화 . . . . 2회 일치
          * 아자미의 대두와 토오츠키의 위기는 도지마 긴이 사전에 감지한 바였다. 그는 죠이치로에게 이런 사실을 상담했으며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죠이치로임에 의견이 일치했다. 두 사람은 그런 야망이 이루어지도록 둘 수 없다고 보고 만약 아자미가 내세운 명분의 발단인 죠이치로가 자신을 걸고 식극을 청하면 드시 넘어올 거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하지만 타쿠미 쪽에서 단호한 태도로 사과를 거절한다. 오히려 이들의 작전이 없었다면 이번 식극이 성립하지도 않았을 테니 도움을 받은 거라며 말이다. 타쿠미는 타도코로와 함께 아자미 정권을 드시 타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타도코로도 여느 때와 다르게 적극적인 태도로 동참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참을 인자를 손바닥에 새기는게 영 불안하다.
  • 식극의 소마/203화 . . . . 2회 일치
          * 다음날 아자미는 츠카사, [[코바야시 린도]]를 거느리고 역자 측과 접촉을 시도한다.
          * 에리나는 팀 도지마의 아쉬 파르망티에가 애드립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의외로 맛의 베이스가 탄탄하며 그걸 기으로 연주자들이 경연을 펼치는 뛰어난 재즈 밴드 같다고 평한다. 이런 완성도 높은 요리에 비하면 자신들의 조리는 미치지 못하고 맛을 볼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2회 일치
          * 그렇게 승부를 거듭해, 마침내 날이 바뀌었다. 소마는 또다시 패배했다. 계속된 승부로 체력은 바닥났다. 면 메기시마는 분명 집중력이 떨어지진 않았으나, "이젠 충분하지 않냐"고 말하게 됐다. 그는 소마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무의미한 승부를 받아들인 자신도. 소마의 눈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 버리고 만다. 메기시마는 그 점을 곱씹으며, 아무리 동료를 구하고 싶어도 이런다고 실력차가 뒤집히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마가 이렇게 나오는건 동료들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소마는 왜 센트럴을 싫어하는가? 그 이유는 명확하다. 소마는 모든 요리를 사랑한다. 그게 덮밥이든, 꼬치든, 카레든 전골이든. 각양각색의 요리사가 만드는 각양각색의 요리가 좋다. 경쟁하고 싶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추구한다. 아자미와 센트럴이 추구하는건 정대다. 용납할 수 없다. 그가 싸우고 지켜내야 하는건 단지 동료가 아니라 더 큰 무대다.
  • 식극의 소마/238화 . . . . 2회 일치
          * 모모의 과자가 완성. 그 모습은 장미꽃이 가득 잠긴 꽃바구니. 바구니에 담긴 장미꽃들이 그녀가 만든 과자다. 자세히 보면 장미꽃은 타르타 죽으로 만든 꽃받침 위에 사과로 세공한 장미가 올라가 있다. 즉 이것은 장미꽃 모양으로 만든 사과타르트.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 매료되는 환상적인 과자다.
          * 샤름은 향기의 정체가 "다마스크 로즈"라는 특수한 장미의 향임을 알아챈다. 이것은 모모가 가장 좋아하는 꽃. "장미의 여왕"으로도 불리며 가장 우아한 향을 가졌다고 한다. 일설엔 클레오파트라가 목욕물에 띄웠다고 하는 장미가 바로 이것. 모모의 사과타르트는 이 다마스크 로즈의 향을 사과에 베게 해서 만든 것. 하지만 [[하야마 아키라]] 등은 의문을 표한다. 일적인 조리법으로 장미향을 사과에 베게하려면 사과가 푹 무를 때까지 함께 삶아 형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 모모는 "삶지 않고 베게했다"고 설명한다. 우선 꽃잎을 정성들여 씻고 대량의 꽃잎을 한 번에 졸여서 장미시럽으로 만든다. 이 장미 시럽을 얇게 썬 사과와 함께 물에 담가두는 것으로 장미의 향과 색이 그윽하게 베이도록 만든 것이다.
  • 신동미 . . . . 2회 일치
         * 2007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시티]] - 그녀의 별이 짝일때》 ... 이연희 역
         * 2008년 [[KBS2]] 아침드라마 《[[난 네게 했어]]》 ... 조민선 역
  • 신영식(만화가) . . . . 2회 일치
         [[1949년]] [[2월 11일]]에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고등학교[* 현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 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다니다 중퇴한 뒤 1971년 소년한국일보에 <승리의 그날>을 시작으로 만화계에 데뷔한 뒤 주로 공, 전쟁 등을 소재로 한 극화만화를 그려오다 1980년에 소년동아일보(현 어린이동아)를 통해 4쪽짜리 만화 <돌배군>을 장기간 연재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2004년 6월, [[부안]] 핵폐기장 유치대 기자회견을 가진 뒤 식사 도중에 목에 걸린 듯한 통증을 느껴 진단을 해 보니 [[식도암]] 말기라는 판정이 내려져 [[식도]] 절제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원]]에서 방사선 수술을 권했으나 환경운동가인 그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살던 [[강화도]]로 돌아갔다. 이후 [[말라리아]]에 걸리고 [[암]]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자연요법으로 버티며 환경운동 활동과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다가 [[2006년]] [[1월 19일]]에 그간 앓던 식도암과 말라리아 증세로 인해 그토록 어린이들이 원했던 '짱뚱이 시리즈 7권'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만 56세.
  • 신적강하 . . . . 2회 일치
         이와는 극적으로 대조적인 사례가 [[명나라]]이다. 명나라의 경우는 황족에 대한 대우가 비교적 후하고 황족을 정리해고하는 제도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약 200여년간 황족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낳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 재정으로 후한 복지 혜택을 받고 있었다. 그 결과 너무 많이 불어난 황족들 탓에 말기에는 재정 압박이 상당히 심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황족들은 거의 다 복지제도에만 의존하고, 란을 명나라에서는 의도적으로 황족의 관직 진출 등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니트족]]으로 살고 있어 사회 문제가 심각했는데 명나라는 법률적으로 이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기도 어려웠다.
         결국 재정난에 시달리던 [[숭정제]]는 재정건전화를 위해서 역졸을 대대적으로 정리해고했다가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이 란군으로 변질되어 [[이자성의 난]]을 일으켜서 멸망했다. 물론 그 많은 명나라 황족들은 명나라가 멸망하는 와중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명]] 정권에서도 유력 황족들이 서로 싸움질이나 할 뿐, 제대로 협력해서 가문을 일으켜보려는 사례는 찾을 수가 없다.--역졸이 아니라 황족을 해고했어야지.-- 그들의 조상 [[주원장]]이 가난하고 빈곤한 떠돌이의 신분이었음에도 가문의 도움 따윈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정말 '헝그리 정신'의 차이처럼 보일 정도.
  • 신쥬 . . . . 2회 일치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했던 행위로, 남녀가 동자살하는 것을 이른다.
         일가가 동으로 자살하는 것을 일가심중(一家心中)이라고 한다.
  • 신혜진 . . . . 2회 일치
         [[2016년]] [[8월 25일]],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식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식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식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식증]]의 기본 증상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식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식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식단 조절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상태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식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상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저희 [[오마이걸]]이 다시 여러분 앞에!! 드디어! 멤버들 정말 예쁘죠? 저도 보고 했다는 [[소문]]이... [[Coloring Book(오마이걸)|이번 앨범]]은 저도 너무너무 [[기대]]되고 빨리 [[무대]]로 만나보고 싶어요! [[미라클]] 여러분들과 함께 첫방! 본방사수! 준비도 벌써 하고 있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만큼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고 [[사랑]]해주셨으면 해요~
  •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 . . . 2회 일치
          1. 심판의 판정에 있어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결코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 판정 번복 자체가 이 일관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득을 본 팀에게는 찝찝함을 주고, 손해를 본 팀에게는 억울함을 주기 때문에 이런 응은 지극히 당연하다 평할 수 있다.
          1. '''EPL, 분데스리가, 라 리가, 세리에 등과 달리 K리그는 팬들의 희망과는 달리 심판의 징계에 대해 대대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지만, 연맹과 KFA의 응은 사실 팬들의 기준으론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 아기발도 . . . . 2회 일치
         [[고려]] 말 [[한도]]를 침공한 [[왜구]]들 중 한 무리의 장수였던 인물이다. 음차로는 '아지발도'라고 한다.
         이성계가 고려 정계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한 부분 때문에 [[조선]] 역사에서 오랫동안 그 이름이 회자되었으며, 이 때문에 고려를 멸망시킨 주역인 이성계에 대한 감을 토벌당한 아기발도에게 투영하여 그를 동정적으로 보는 설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문서 참고.
  • 아워맨 . . . . 2회 일치
          본명 리처드 "릭" 타일러(Richard "Rick" Tyler). 첫등장은 DC Sampler #2(September 1, 1984)[* 정보에 따라 Infinity Inc. #20(1985)에 등장하고, 아워맨 데뷔는 그 다음인 #21에서 이루어졌다는 정보도 있다.] 초대 아워맨의 아들이며 한시간동안 무작위로 미래를 보며 미러클로를 이용해 힘, 스피드, 민첩성, 사신경, 내구력을 한시간동안 증가시킨다. 다만 미러클로가 건강에 불친절한 약이라 하루에 한번만 사용한다. 그외 시간이 정지한 곳으로 보내주는 모래시계 타임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바쁘다 보니 항아로 컸으나 결국은 2대 아워맨이 되었다. 자니 퀵과 초대 리버티 벨의 딸인 리버티 벨II와 결혼했다.
  • 아이언맨 . . . . 2회 일치
         21세기 초 최고의 인기 히어로 가운데 하나로, 국내에서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이언맨 실사 영화 시리즈 등이 흥행하면서 인지도를 얻었다.
         아이언맨 아머를 자작/코스프레하는 사람도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있다. 묘하게 이것도 어디서나 응이 좋다.
  • 악마의 대변인 . . . . 2회 일치
         논쟁이나 제안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대측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
         악마의 대변인은 논쟁 집단이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하여, 의도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악마의 대변인을 지명하는 경우도 있다. 토론 문화가 부족하여, 대 의견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풍토에서는 존속하기 어렵다.
  • 안숙선 . . . . 2회 일치
         [[1997년]] 향사 박귀희 사후 40대 중의 젊은 나이에 그의 뒤를 이어 국가지정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인간문화재 열에 올랐다.
  • 알 카에다 . . . . 2회 일치
         [[오사마 빈 라덴]]이 조직한 이슬람계 테러 조직. 미-서방 이념을 가지고 있다.
  • 알프레드 우든 . . . . 2회 일치
         병원에서 탈출한 맥스가 그를 찾아가 이너 서클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를 물어보자, 우든은 [[블라디미르 렘]]이 범인이라고 지목한다. 몇년간 우든을 위해 더러운 일을 하던 블라드는 우든이 암으로 죽어가며 권력을 잃게되자 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후 블라드에게 저택을 습격당한다. 블라드는 이미 우든의 경호원을 매수해두었다. 그는 자신의 저택에 쳐들어온 블라드를 목졸라 죽이려 하지만, 결국 블라드의 격에 사망한다.
  • 애니 일본어 . . . . 2회 일치
         남자가 여자 캐릭터의 말투를 사용하거나 대로 여자가 남자 캐릭터의 말투를 사용하거나 하는 경우도 제법 흔하다.
         가까운 일본어 학원에서 회화이라도 다녀보는게 낫다.
  • 애니멀-베지터블-미네랄맨 . . . . 2회 일치
         상단의 서술대로 그 외관이 상당히 괴랄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모습이다. 몸의 은 인간이나 은 공룡같은 모습이고, 팔다리는 한쪽은 나무인데 한쪽은 광물인 형태.
  • 애니프사 . . . . 2회 일치
         == 트위터 애니프사 계층에서 보는 애니프사 ==
         트위터 애니프사 계층에서는 대체로 애니프사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오타쿠 혐오]]와도 관련이 있다.
  • 애로우 . . . . 2회 일치
         티아 퀸의 남자친구. 이러니 저러니 해서 올리버와 팀을 이루게 된다. 과묵한 편이며, 젊고 혈기왕성한 성격이다. 티아의 잠자리 응을 보면 정력도 출중한듯(…). 올리버와 같은 디자인에 붉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악당들에게 플래시와 혼동당하는(…) 장면도 있었다. 3시즌에서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당하게 된 올리버를 대신해서 자신이 애로우라고 하면서 자수, 구치소에 갇혔다가 디글이 동료 인맥을 이용해서 죽음을 가장하여 빼낸다. 이로서 '애로우'는 사망한 것이 되고, 다음 시즌부터 올리버는 그린 애로우로서 활동하게 된다.
         레전드 오브 토모로우에서도 어째 고난의 연속이다. 미래 세계에서 아톰 기술이 달 새비지가 후원하는 독재자에게 접수되어 아톰형 로봇이 독재자의 경찰로봇으로 쓰이질 않나, 자신의 업적이 몽땅 자신의 형편없는 동생이 이룬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질 않나(…), 호크맨이 사망한 뒤 과거 세상에서 고립되었을 때 호크걸과 연인이 되지만 호크맨이 부활[* 엄밀히 말하면 미래에 환생한 호크맨]하면서 좌절(…)하질 않나.
  • 야마우바 . . . . 2회 일치
         '야만바'는 [[갸루]] 패션의 일종의 이름으로도 쓰인다. 1990년대 후부터 2000년대 초 무렵에 유행했으며, 새까맣게 태운 피부에 하얀 아이새도우와 아이라인을 그리고, 머리를 탈색하여 마치 야마우바처럼 보인다고 하여 야만바라고 했다. 보다 발전하여 메이크업이라기보다는 페이스페인팅 수준이 된 것을 '맘바(マンバ)'라고 불렀다.
  • 얀데레 . . . . 2회 일치
         이성에게 해서 [[스토커]]처럼 집착하고 위험한 행위를 일삼는 행동을 뜻하는 모에 속성.
         얀데레적인 행동으로는 스토킹이나 감금 같은 것을 한다. 정도를 벗어나면 [[신쥬|동자살]], [[살인]] 등에 이른다.
  • 양시칠리아 왕국 . . . . 2회 일치
         19세기에 [[이탈리아 도]] 남부에 위치한 [[부르봉 왕조]]의 [[왕국]].
         하지만 민족주의, 개혁사상을 배척하는 부르봉 왕조의 통치는 불안정하여, 1820년, 1848년에 부르봉 왕조의 통치에 발하는 혁명이 일어났으며, 결국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천 명의 [[붉은 셔츠 부대]]가 시칠리아 왕국에 상륙한 것을 시작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붉은 셔츠 부대가 시칠리아 왕국군에게 승리를 거두자, 이미 불만이 팽배하던 시칠리아 전역에서 호응이 일어나 양 시칠리아 왕국은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상실한다.
  • 에릭 (가수) . . . . 2회 일치
         * 2005년 [[SBS]] 《[[X맨|X-Man:전드라마]]》
         * [[2005년]] 삼성 애니콜, 현대 [[아떼]], 비발디 파크, NII, 린나이 코리아, 도미노 피자, 롯데삼강 구구단, CJ[[스팸]]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2회 일치
         한 임무를 끝낼 때, 플레이어가 파괴한 중립 타겟이 살려둔 중립 타겟보다 많으면 스타일 미터가 왼쪽으로 이동한다. 그 대의 경우에는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정도는 파괴한 양과 살려둔 양의 차이에 비례한다.
         벨카 전쟁을 일으킨 국가. 나라가 쪼개지는 와중에 극우파가 득세, 우스티오의 자원이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우스티오를 침공했다. 전설적인 공군력으로 전쟁 초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 연소조 연중조 연장조 . . . . 2회 일치
         [[일본]]에서 [[유치원]], [[보육원] 등에서 아이들을 나이대에 따라서 나누는 ''의 이름.(조는 한국에서는 이라는 의미)
  • 영국 요리 . . . . 2회 일치
         [[영국]] 요리는 켈트족의 전통에 기하여, 각종 [[유럽]] 요리를 섭렵하고 동시에 [[대영제국]] 시기에 세계 각국의 요리의 전통을 흡수하여 만들어낸 지고의 요리이다. 영국 요리는 인류사의 보물로 기록되어, 요리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일본에서 세계 X대 요리 등의 랭킹을 만들지만 영국 요리는 절대로 포함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넷상에서 영국 요리에 대한 악평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영국 요리에 대한 여러 유럽 나라들의 잘못된 험담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정작 영국에서 여행한 사람들은 영국 요리에 극찬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을 여행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편견에 영향을 받아 이를 박하여, 영국 요리의 평가는 넷 상에서 점점 나빠지는 악순환을 보이고 있다.
  • 영덕군 . . . . 2회 일치
         원래 일제강점기 말기에 [[동해선]]([[동해중부선]]) 계획이 있었고 노까지 남아있을 정도였으나 해방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결국 70년이 넘는 세월을 걸려서 [[동해선]]이 개통되어 영덕군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KTX]]가 정차하는 [[포항역]]을 출발해 [[장사역]], [[강구역]], [[영덕역]]에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영해역]]을 지나 [[강원도]] [[삼척시]]의 [[삼척역]]까지의 공사가 진행중인데 영덕역 북쪽 구간이 완공되면 [[부산]]부터 영덕을 지나 [[강릉시]]까지 동해선 철도가 쭉 이어질 예정이다. 남쪽으로도 [[모량역]]부터 [[신경주역]]을 지나 [[태화강역]]까지 이어져서 최종적으로는 동해선의 실질적인 종점인 [[부전역(동해선)|부전역]]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개량중이다. 2018년 2월 기준으로는 중간 일부 구간들이 미완성이다. 동해선 외에 김천에서 의성을 거쳐 영덕을 이어주는 [[경북내륙선]]이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 이다.
         이후 2017년 예산에 다시 영 되었다.
  • 영양군 . . . . 2회 일치
         수비면 수하 계곡은 한때 짝 피서지로 각광받던 적이 있었지만, 몰려드는 관광객을 맞이할 만한 편의시설이 매우 부족했고, 무엇보다 그 관광객들이 온갖 쓰레기를 유기해놓고 가는 바람에 환경이 상당히 나빠져 결국 시들시들해졌다.
          * 공기가 깨끗하고 빛 공해가 적어 별이 잘 보인다는 특성 때문인지, 수비면에는 "영양 딧불이 천문대"가 있다.
  • 오국영 . . . . 2회 일치
         출신지는 [[경상북도]]이다. 경성학당을 졸업하고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다. [[함경남도]] 내무부에서 근무하던 중 [[1910년대]] 후에 총독부 군수로 발탁되었다. [[이원군]] 군수로 수년 동안 재직했다가 병으로 퇴관했다. 이때 정8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이후 [[경성부]]에서 잡지 《천민》을 발행하면서 청년 지도에 뜻을 두었다. [[1920년대]] 후부터는 의성양조주식회사 전무취체역과 사장을 지내고 의성군주조조합장을 맡는 등 의성군에서 양조업 기업을 운영했다.
  • 오늘만 산다 . . . . 2회 일치
         내일 일어날 일은 생각하지 않고 오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스피노자가 연상되는 철학을 보여주는 말이다. 항상 규칙적으로 복되는 [[일상]]에서 내일을 생각하며 사는 각박한 현대인에게 오늘 하루의 일탈의 자유를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중국]] 동진 시기에 역술가가 란을 일으킨 대장군 [[왕돈]]에게 불려가서, 점을 치게 되었는데 당당하게 '실패한다'는 점괘를 내놓고, 왕돈이 "너는 그럼 얼마나 살겠냐?"고 위협하자 "오늘까지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있다. 물론 역술가는 왕돈에게 살해당했다. 오늘만 사는 사람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승훈 (축구선수) . . . . 2회 일치
         [[2010년]] [[도쿠시마 보르티스]]에 입단하였다. 첫 시즌 중까지는 팀의 3옵션 골키퍼였으나 시즌 막바지 7경기를 연속으로 출전하며 입지를 다져나갔다. 두 번째 시즌부터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였으며, [[2013년]]에 [[교토 상가 FC]]로 이적하여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박주원에게 잠시 주전을 내주었으나, 시즌 중 후 [[전북 현대 모터스]], [[전남 드래곤즈]]와의 두 경기서 박주원이 7골을 실점하는 부진하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새로 부임한 [[최문식]] 감독의 신임을 받아 9월 13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 출전하며 다시 주전으로 거듭났고,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무실점으로 선전하며 대전에 2015 시즌 홈 첫승을 이끌었다. [[부산 아이파크]]와의 곧이은 홈경기서도 선전하며 대전의 2:1 승리이자 시즌 첫 연승을 이끌었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였고, 2015 시즌을 끝으로 대전 구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군 복무를 위해 [[상주 상무]]에 입단하였다. 그 후, 2017 시즌 중 전역하여 남은 기간동안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가 2018년 1월 8일 [[울산 현대]]에 입단하였다.
  • 오충훈 . . . . 2회 일치
         2006년 하기 드래프트에서 SK텔레콤 T1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2007년 중기에 서울력이 하락하여 2군으로 강등되었고, 소문에 의하면 거기서 몰래 [[바람의 나라 (온라인 게임)|바람의 나라]] 게임을 하다가 걸려서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 요시다 세이지 . . . . 2회 일치
         아사히 신문은 2014년 4~5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70대 후에서 90대까지 약 40여명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건어물 제조 공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사라졌다"고 기록한 제주도 북서부의 마을에서는, 생선을 다루는 공장이 1개 박에 없었고 경영자의 아들은 "통조림 밖에 만들지 않았다. 여자 종업원이 사라진 일은 없다."고 증언했으며, 요시다 세이지가 '초가지붕'이라고 썻던 공장의 지붕은 한국에서 당시 수산산업을 연구했던 리츠메이칸대학 역사지리학 전공 가와하라 노리후마 교수에 따르면 함석판과 기와로 되어 있었다.[* 원래 제주도는 바람이 강하고, 벼농사가 되지 않아 초가집이 적었다.]
         전시중 조선도 동원을 연구한 토노무라 마사루 도쿄대부교수는, 요시다가 소속되었다고 주장한 노무보국회는 [[후생성]]과 [[내무성]]의 지시로 만들어진 명령으로서, 지휘계통을 생각해보면 군이 동원명령을 내리는 것도, 그 직원이 직접 조선에 가는 것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 원피스/830화 . . . . 2회 일치
          * 샬롯사 29녀 "샬롯 플라리네". 빅맘의 딸인 귀상어 어인이다.
          * 그래서 이번 작전은 상디의 탈환과 함께 "로드 포네그리프의 탈취"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섬에 도착한 이후 잠시 시간을 준다면 자신이 드시 가지고 오겠다고 말한다.
  • 원피스/833화 . . . . 2회 일치
          * 상디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격을 "콜리에 슛"으로 격하는데, 저지에게 다리를 붙잡혀 던져진다.
          * 초에 등장했던 모건도 아들을 쓰레기 취급하긴 했지만, 적어도 학대하진 않았다.
  • 원피스/842화 . . . . 2회 일치
          * 크래커가 나미를 원망하는데 나미는 해적끼리 싸우는 판에 "약점이 들켰다고 남의 병사를 탓하지 마라"라고 박한다.
          * 이건 붓기를 빠르게 빼는 팩인데 몸의 정상적인 응을 억제하는 방식. 따라서 실제로 상처가 낫는건 아니고 오히려 몸에 나쁘다.
  • 원피스/844화 . . . . 2회 일치
         || 드시 돌아와 상디! 네가 없으면
         게다가 우솝 때는 각자 의견이 달라서 목했던 것인데 지금 경우는 루피가 상디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는걸 짐작하고 있으므로 그때처럼 치고받게 되는 상황이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 원피스/849화 . . . . 2회 일치
          * 병력을 끌고 다니던 페드로는 마침내 안뜰까지 쫓겨온다. 그를 추격한 [[타마고 남작]]이 기다리고 있다. 타마고 남작이 밝힌 그의 전 직함은 "녹스 해적단 선장 캡틴 페드로". 그는 비록 적이라도 페드로를 "너른 자"라 인정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오랜만에 숙적을 마주하니 "왼쪽 눈의 상처"가 쑤신다고 말하는데. 그는 빅맘에게 사로잡혔던 "5년 전"엔 그토록 삶에 집착했던 페드로가 어째서 똑같은 짓을 복하냐고 묻는다. 하긴, 그는 이미 "제대로 살아있을 수도" 없는 몸이다. 5년 전 그날 페드로는 50년 치 수명을 바치는 대가로 살아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선글라스를 벗는 타마고 남작. 그는 왼쪽 눈이 없는 애꾸였다.
         네타와 함께 오다 에이치로의 인터뷰 내용도 공개. 다과회편은 이미 중부에 돌입. 팬들의 예상보다 빨리 끝날 거라고 한다. 앞으로 전개속도도 대폭 빨라진다고.
  • 원피스/851화 . . . . 2회 일치
          * 그녀의 말을 들은 부하 "젤리" 니트로와 "양탄자" 라비앙도 맞장구를 친다. 이들은 상디는 푸딩이 자신에게 했다고 철석 같이 믿을테니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볼만할 거라고 시시덕거린다.
          * 보물전에서는 몇 번이나 쓰러졌던 [[브룩]]이 다시금 일어선다. 빅맘 [[샬롯 링링]]은 "상디가 아닌 '''돌'''을 원하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하지만 브룩은 상디가 너무 착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박한다.
  • 원피스/866화 . . . . 2회 일치
          * 이 셈라 맛에 한 링링은 6일 째까지는 필사적으로 배고픔을 참으며 단식했지만 7일 째부터는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려 마을을 박살낸다.
          * 링링이 양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설립한지 37년 째가 되던 해였다. 이때 마더 카르멜의 나이는 80세. 카르멜은 링링을 받아들이며 "부모님은 곧 오실테니 여기서 함께 기다리자"고 안심시킨다. 양의 집에 사는 아이들도 그녀를 갑게 맞이한다. 마더 카르멜이 공약했던 대로 이곳엔 다양다종한 종족의 고아들이 모여있었다. 신분과 처지도 그랬는데 카르멜을 안고 있는 왕관을 쓴 아이는 어느 나라의 왕족이지만 폭동으로 내몰려 여기까지 흘러왔다. 선글라스를 낀 뚱뚱한 아이는 부모가 빈곤한 나머지 노예로 팔려갈 뻔했던 과거가 있다. 이외에도 부모 손으로 벅차다 여겨졌던 문제아들이 대부분이다.
  • 원피스/867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진짜 끝은 아직 나지 않았다. 요를은 빈사상태에 이르러서도 링링을 죽이란 말을 복한다. 그 말에 따른 것은 엘바프의 또다른 웃어른, 산수염 [[야를]]이었다. 그는 직접 칼을 들어올려 링링을 찌르려한다. 카르멜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야를에게 있어 요를은 300년이나 함께 한 전우. 그도 링링을 죽이는게 기꺼운 일은 아닌 듯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요를의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지만, 저 나이를 생각하면 구해낼 수 없을 거다. 아무리 전사에게 오래 사는건 중요하지 않다지만, "어떻게 죽느냐"는 중대한 문제다.
          >다섯 살에 엘바프 마을을 쯤 뭉개버릴 정도의 인재라고!
  • 원피스/876화 . . . . 2회 일치
          * 동요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상디가 시폰에게 작업장소를 물었다. 시폰은 쇼콜라 타운을 골랐다. 거기에 모든 재료가 있었다. 완성된 케이크는 배로 옮길 생각이었다. 루피 일행은 빅맘을 바다까지 유인해야 한다. 그녀가 바다 한 가운데서 고립될 수 있도록. 바다에는 빅맘 해적단의 해상병력도 대기하고 있어서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그들이라면 버티리라고 시폰은 믿었다. 이걸로 작전 브리핑은 끝. 작전 개시다. 상디도 라비앙으로 옮겨가려. 같이 쇼콜라 타운으로 가야하니까. 그런데 푸딩이 거기서 당황해버렸다. 손사레까지 쳐가며 거절하는 푸딩. 그때 후방에서 빅맘이 "위국"을 쓰기 위해 나폴레옹을 치켜들고 있었다. 일행은 그 공격을 피하면서 둘로 갈라졌다. 쇼콜라 타운으로 향하는 상디, 시폰, 푸딩 일행과 써니호로 향하는 나머지 일행. 상디와 루피는 바다 위에서 다시 만날 걸 기획하며 서로 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상태가 회복된 "프로메테우스"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제우스"를 닥달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기들까지 말려들게 했냐고 꾸짖자 제우스는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시무룩해했다. 조금은 성하는 것 같더니만 금방 "그 구름 알 맛있었다"고 군침을 흘리는 걸 보니 전혀 정신을 못차렸다. 하긴 그 주인도 웨딩 케이크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판이었다.
  • 원피스/877화 . . . . 2회 일치
          * 페르소페로는 곧바로 루피 일행도 사탕으로 묶으려 하나 루피가 레드 호크로 격, 페로스페로에게 불을 붙여 물러서게 만든다.
          * 카타쿠리가 루피를 상대하는 동안, 페로스페로는 구태여 배에 오르는 일행을 요격하지 않았다. 대신 전보벌레를 들었다. 대편에선 [[샬롯 몬도르]]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군함으로 해안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루피 일행이 아직도 살아남았다는걸 안 몬도르는 지체없이 지시를 이행했다. 곧 그의 명령만 기다리던 빅맘의 해상병력들이 움직일 것이다. 밀집모자 일당은 이 배와 함께 해안에서 수장될 것이고.
  • 원피스/879화 . . . . 2회 일치
          무슨 일인지 바다로 나와있다. 배로 이동 중. 그런데 상공으로 시폰을 태운 양탄자가 날아가는 걸 보고 딸을 알아본다. 파운드는 의하면서도 딸의 이름을 불러보는데, 시폰 일행은 바쁜 탓에 모르고 지나쳐간다.
  • 원피스/881화 . . . . 2회 일치
          * 미러 월드의 빅맘 해적단 병력들도 그 소식을 접했다. [[샬롯 카타쿠리]]의 전보벌레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오자 루피는 믿기지 않는 듯이 거울조각으로 일행을 부른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다. 밀집모자 일당의 전멸이 기정사실화되고 [[샬롯 브륄레]는 새로운 거울로 진군할 필요도 없겠다며 작전을 중지시킨다. 그런데 부하들은 여전히 거울 너머에 아무런 일도 없다고 이상해 하는데, 그때 갑자기 거울이 깨진다. 그리고 미래를 예지하는 카타쿠리 만큼은 페로스페로의 공지에도 아무런 응이 보이지 않는다.
          * 루피가 눈치 빠르게 빅맘 해적단의 눈을 피해 응답한다. 곧 일행이 무사하다는 소식과 배의 모든 거울이 깨졌다는 소식을 받는다. 일행은 루피가 귀환할 수 없게 됐다고 하지만 루피는 "어떻게든 하겠다"고 대답한다. 나미가 아무 대책도 없이 잘 되겠냐고 잔소리한 뒤 자신들은 곧 카카오 섬으로 향한다고 알린다. 도착은 약 10시간 뒤. 심야 1시가 될 예정. 나미는 드시 "그녀석"을 날려버리고 카카오섬으로 이어지는 거울을 찾으라고 말한다. 나미는 거기서 만나자고 확인하듯 루피의 대답을 기다리지만, 루피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카타쿠리의 공격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공격의 여파로 루피가 가지고 있던 거울 조각이 부스러진다.
  • 원피스/882화 . . . . 2회 일치
          * 브륄레는 사실 루피가 [[나미(원피스)|나미]]와 하는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 곧바로 오빠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밀집모자 일당이 살아있다는 것과 카카오섬으로 향할 거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페로스페로는 아직도 빅맘 [[샬롯 링링]]과 함께 바다를 건너는 중. 써니호가 파도에 삼켜지는 걸 봤기 때문에 브륄레의 정보를 의하나 어차피 [[샬롯 푸딩]]이 카카오섬에서 웨딩케이크를 굽고 있는걸 알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빅맘은 페로스페로의 뜻과 달리 근처에 있는 "너츠섬"으로 향하려고 해서 곤란해진다.
  • 위저드리 6 . . . . 2회 일치
          * 이벤트에 필요한 중요 아이템은 버릴 수 없다. 후에 가면 아이템 칸과 중량이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된다.
          * 바드 : 초기 아이템으로 '류트'를 가지고 있는데, 류트에는 슬립 효과가 있다. 초에는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도중에 바드로 전직하는 방식으로는 류트를 손에 넣을 수 없다.
  • 위키 템플릿 . . . . 2회 일치
         == 일 템플릿 ==
          * [[GeneralTemplate]] - 일항목 템플릿
  • 유니콘남 . . . . 2회 일치
         유니콘계 남자란, 고학력, 고수익, 높은 사회적 신분, 잘생긴 얼굴, 좋은 성격과 신사적인 태도를 모두 갖춘 '''완벽한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 면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남자이기 때문에, 오직 순수하고 아름다운 처녀만이 만날 수 있다.
         이 글에 대한 일본 넷 상(주로 트위터)의 응은 그냥 '그런 것도 있냐? 웃기네' 수준이었다.
  • 유태웅(탤런트) . . . . 2회 일치
          * [[방시혁]], [[김성민(1973)|김성민]]과 [[경기고등학교]] 87회 동기다. 학교 연극 출신이며 연극 출신 졸업생들의 모임인 화동연우회가 주최하는 공연에도 출연하고 있다.
  • 윤균상(1987) . . . . 2회 일치
         [[전라북도]] [[전주]] 출신. 전주 서신중학교와 영생고등학교 출신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1년 동안 모델 일을 했었다.[* 런웨이에 섰던 것은 세 번 정도라 인터뷰 할 때마다 모델 출신이라는 말이 쑥스럽다고 덧붙이곤 한다.] 그리고 '''[[제대]] 후'''[* [[운전병]] 출신이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세한대학교 뮤지컬학과에 재학하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남다른 동물 사랑을 보이기도 하는데 쿵이, 몽이, 또미(고양이) 라는 려동물들을 키우고 있다. 과거 양이라는 강아지도 키웠으나 현재는 친가에서 부모님과 남동생이 키우는 중이다.[* 쿵이와 몽이는 삼시세끼 어촌편3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너구리처럼 굵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특징. 어촌편 촬영 당시 쿵이는 꼬리에 자꾸 변이 묻어서(...) 끝부분을 제외하곤 꼬리의 털을 전부 밀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둘은 삼시세끼 바다목장 편의 마스코트로 한번 더 출연하게 되는데 그사이 쿵이는 꼬리털이 풍성해진 대신 장모종이라 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의 털을 밀어 왔다. 헌데 촬영 중 더운 날씨 때문인지 몽이가 개구호흡을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고, 이로 인해 몇몇 네티즌들 사이에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균상이 인스타그램으로 확고한 입장표명을 하면서 사그라 들었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3를 정주행 했으면 알겠지만, 균상이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고, 감독판에서 공개된 윤균상의 집만 봐도 쿵이와 몽이, 또미는 말그대로 호의호식(...)을 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전자동 고양이 화장실도 '''두 대나''' 구비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고양이들에 신경을 쓰는 윤균상에게 몽이의 일은 오히려 실례가 되는 비난이었다.] ~~[[똠양꿍]]~~ 최근 솜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분양 받았다고 한다.
  • 윤석용 . . . . 2회 일치
         [[2012년]] [[2월 14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8275만원 상당의 옥매트 250개를 횡령해 지역 복지단체와 동료의원 사무실 등에 임의로 전달한 혐의,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동을) 선거구민과 연관된 단체에 축구공 100개와 30여만원 상당의 김ㆍ빵을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한 혐의,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장애인체육회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단계적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내용의 투표 운동을 시켜 주민투표법을 위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횡령혐의는 무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었다.<ref>{{웹 인용|제목=옥매트 횡령 윤석용 의원 불구속 기소(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2434.html|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2-02-14}}</ref>
  • 윤선우 . . . . 2회 일치
         | 《[[강력 (2011년 드라마)|강력]]》
  • 윤정희(1944) . . . . 2회 일치
         그러나 [[문희]]가 [[미워도 다시한번]]의 흥행 이후 1969년에는 [[벽속의 여자]], [[꼬마신랑]] 등을 대거 흥행시키며 1970년대부터 윤정희를 능가하여 조금 위축된 감을 보여줬지만 1971년 문희, 남정임이 은퇴한 면 윤정희는 결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1976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에는 윤정희를 탐낸 [[박정희]] 대통령의 바람기 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말도 있다. 어찌됐든 부부금슬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1977년에는 야행이 그 해 흥행영화 5위권 안에 들어가며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영화 말고 드라마가 크게 성장했는데 윤정희는 드라마에서도 활약을 한 적이 있다.
         국내외의 각종 영화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만 무려 24번이나 수상한 대배우이다.[* 최근 언론에 언급되는 원로배우 그 누구도 윤정희의 발끝에 못 미친다. 그도 그럴것이 윤정희는 젊은 시절에 무명이었던 이들과 달리 젊은 시절에도 연기력, 흥행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사실 원로배우들 중에서는 단순히 상 몇번 타거나 광고 몇번 출연한 것 가지고 연기의 화신처럼 대접받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원로배우들 상당수가 젊은 시절에 무명인 경우가 많다.][* 대로 젊은 시절에 정점을 찍은 배우들 상당수는 말년에 잘 활동을 하지 않거나 아예 은퇴를 해서 대중에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미 인기에서 정점을 찍어 더 이상 연예계에 미련이 없기 때문.]
  • 윤진솔 . . . . 2회 일치
         == 음 ==
         {{참고|쥬얼리|설명=그룹 쥬얼리 활동 시 발매한 음에 대해서는}}
  • 윤태동 . . . . 2회 일치
         [[충주시]]가 윤태동의 생가를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하여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민족행위자|친일파]]의 생가에 정부가 돈을 쓴다는 논란이 일었다.[[https://archive.is/VRcc0|#]].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133번지에 위치한 이 [[한옥]]은 [[사헌부]] 감찰을 지낸 윤양계(윤태동의 조부)가 1873년 지은 것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135호로 지정돼 지금까지 3억원 이상의 관리 비용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 담당자는 인물과는 무관하게 건축양식의 가치를 기준으로 지정됐을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분류:친일민족행위자]] [[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분류:1900년 출생]]
  • 윤태진(아나운서) . . . . 2회 일치
         前 KBS N SPORTS의 [[아나운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주 중의 알럽베를 책임졌었다. [[최희]], [[정인영(방송인)|정인영]] 등과 함께 KBS N SPORTS의 여성 아나운서 3대장이라고 불렸다. 단아한 이미지의 [[최희]]와 모델급 몸매를 가진 [[정인영(방송인)|정인영]]에 비해 윤태진은 --정대로-- 아담하고 귀여운 이미지 담당.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는 입사 동기이다.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껏 같이 붙어다닌다고 한다. 나이는 [[정인영(방송인)|정인영]]이 2살 더 많다. 의지할 수 있는 언니 같은 스타일이란다. 그런 [[정인영(방송인)|정인영]]을 보고 윤태진은 '대나무 숲' 이라고 한다.
         2016년부터 [[SBS 파워FM]](107.7mhz) [[배성재의 TEN]]에서 화요일 코너 아재판독기 코너를, 2018년 8월부로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 코너를 진행 중이다. 기존 팟수들은 채팅창에 "두사람 다 잘 어울리니 결혼해도 딱이다!! 결혼해라"라고 성화였는데....친해지긴 했었던 거 같은게 2016년 11월 방송에서 나미춘이 배디에게 말하다가 살짝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를 팟수들은 놓치지 않고 마구 놀렸었는데 언제부턴가 썸은 사라지고 이젠 비지니스만....2018년 3월 잡지 <bnt>와 찍은 화보 촬영에서는 인터뷰에 배성재 얘기가 나오자 '따뜻하고 좋은 분이다. 좋은 여자 만나셨으면 좋겠다'라고 거리를 뒀다. 아무튼 나미춘, 흥미춘으로 [[배성재의 TEN]]의 아재여신 인정.
  • 은혼/578화 . . . . 2회 일치
         * 우츠로는 "당신은 개구리 따위가 아니고 수 많은 생물의 성쇠를 보아온 내가 하는 말이나 정확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생물의 이치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드시 멸종된다. 생물의 이치를 벗어난 나를 가로막았기 때문에"라며 달려든다
         attachment:격.png
  • 은혼/582화 . . . . 2회 일치
         * 우츠로와 우미보즈의 대결을 지켜보던 [[아부토]]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꼼짝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개구리가 꼼짝 못하는건 두려워서가 아니라 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대결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 우츠로는 "당신이 내 심장을 부수는 것과 내가 당신을 양단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빠를 것 같냐"고 문하는데
  • 은혼/586화 . . . . 2회 일치
          * 긴토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어나 "그게 너의 한계다 바보오빠님아"라며 격한다.
          * 일적인 야토에게선 볼 수 없는, 우미보즈와 코우카의 자식이기에 가진 재능인 듯
  • 은혼/594화 . . . . 2회 일치
          * 폭주 직전 터미널이 습격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던 것. 명백히 천도중에 역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다.
          * 그들은 우츠로가 란분자 숙청을 위해 원정을 갔음을 지적하며 사실상 원정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 은혼/599화 . . . . 2회 일치
          * 가구라는 자기들더러 가신이 되라는 거냐고 발하지만 노부노부는 "이용만 당하는 장군에게 가신이란 없다"고 선을 긋는다.
          * 노부노부의 선역화는 이런 상된 평가를 절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은혼/600화 . . . . 2회 일치
          * 다른 해방군측 지휘관들은 자신들을 적대하겠다는 말이냐고 문하는데 변의에 몸부림치는 노부노부는 이것을 일축
          * 노부노부는 히스테릭하게 응하며 이이상 자기를 묶어두면 "발사해 버린다"고 협박한다.
  • 은혼/602화 . . . . 2회 일치
          *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결코 무익한 싸움을 원하지 않고 드시 천도중의 수급을 들고 오겠다고 장담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장군인 자신의 목을 바치겠다고.
          * 드시 적의 목을 가지고 돌아오겠다, 그는 그렇게 맹세했었다. 그만이 아니라 해방군에 몸담은 모든 사람은 그렇게 복수를 맹세한 자들.
  • 은혼/606화 . . . . 2회 일치
          * 지금 해방군은 교통법 위 뿐 아니라 건물파괴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 그동안 진선조는 전국의 란분자를 규합하고 구막부의 연줄을 총동원, 이국의 지원까지 받아내 새로운 전력을 확충했다.
  • 은혼/612화 . . . . 2회 일치
          * 진선조도 지상군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전령이 준비가 끝났다고 알리자 곤도 이사오가 움직인다. 이들은 지상군 병력이 가부키쵸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게 목적. 쭉 늘어진 병력의 허리를 끊어 분단시키고자 한다. 곤도는 자신이 신호하면 "그것"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이후는 1인당 200명 씩만 베어버리면 되는 심플한 작전. 곤도가 200명만 베면 보너스를 준다고 하자 오키타 소고가 "그럼 1000명을 베면 부장자리는 내것"이라고 말한다. 왠일인지 히지카타 토시로는 "생각해두겠다"고 쿨하게 응한다. 대원들은 오키타다 부장이 되는 날엔 세계가 멸망하는거 아니냐고 드립을 치고 야마자키 사가루는 어차피 망할거 그 편이 재미있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곤도가 망하고 안 망하고는 중요하지 않은 거냐면서, 자신도 사실 그런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 한편 우주. 해방군 본진의 도쿠가와 노부노부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다시 감옥으로 옮겨진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무츠는 지구의 동향과 현상황에 대해 묻는다. 다츠마는 기적적으로 잘 버티고 있지만 병력차가 너무 커서 한계가 있다며, 그들이 버티는 동안 자신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대편 감옥에서 "무슨 수라도 있냐"고 말을 거는 이가 있는데.
  • 은혼/617화 . . . . 2회 일치
          * 큐베는 스마일 아가씨들과 타에를 데리고 다키니의 추격에서 도망친다. 타에는 큐베에게 드시 와줄 거라 믿었다고 말한다. 큐베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한때는 그저 타에를 데리고 지구를 떠날 생각까지 했지만 "너만이 아니라 너의 미소도 다른 모두도 데려갈 수 있는 강한 남자, 상냥한 여자가 되자고" 다짐했고 고백한다.
          * 마을 중심부로 향하던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은 맞은 편에 나타난 가운 얼굴과 마주친다. 타에 일행을 성공적으로 구조한 큐베가 사천왕과 토쿠모리와 함께 긴토키와 합류한다. 긴토키는 기다리다 지쳤다고 농담을 던진다.
  • 은혼/618화 . . . . 2회 일치
          * 격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던 가부키쵸 방위군. 그러나 [[오우가이]]의 무력 앞에선 속수무책
          * 오우가이는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도 있는걸 보고 전장은 여자나 애들의 놀이터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전쟁은 남자들이 목숨과 명예를 건 신성한 의식인데 이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큐베는 싸움을 모르는건 네놈들이라며 그 말을 칼같이 박한다.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남자든 여자든 어린애든 구분없이 잿더미에 집어던졌다. 이제와서 갓난애나 여자들의 목을 벨 각오도 없이 전장에 서있냐면서 이들은 이미 걸만한 명예도 없고 그 목숨도 얕보던 여자한테 빼앗길 거라고 선언한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2회 일치
         2013년 3월 13일 [[AFC 챔피언스리그 2013]]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데뷔하였고, 후 22분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비록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였으나, 당시 팀은 어린 선수 위주로 출전 명단이 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주목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데뷔골’ 이광훈, 측면 공격수 경쟁 점화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61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3-14}} }}</ref>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년 만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이란과의 8강전에서는 결승골을 성공시켜 한국의 4:1 승리에 기여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FC U-19챔피언십)한국, 이란 꺾고 4강 진출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4822065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12-11-12}} }}</ref>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는 후 5분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왔으나 실축해 한국의 4강 진출이 실패되었다 .<ref>{{뉴스 인용 |제목=(U-20 월드컵) 빛나는 용병술, 이광훈 천금 동점골...현재 2-2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2001848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3-07-08}} }}</ref>
  • 이근직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친일민족행위자]]이다. 초명은 이수록(李秀錄)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민족행위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이기열(배우) . . . . 2회 일치
         * 1989년 《[[구로 아리랑]]》 - 이 장 역
         * 1997년 《[[쁘아종]]》 - 마약 형사 역
  • 이노센트 투어 . . . . 2회 일치
         한때 [[무인도 이야기]]로 유명세를 떨쳤던 [[KSS]]에서 제작한 [[보드 게임]]이다.[* T-RPG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다이스 때문에 운이라는 특성이 이상 작용하는 걸 고려하면 순수한 전략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1996년]]작.
         위의 정령 능력치에서 설명했듯이 각 정령력을 일정 포인트 이상 모으면 그 정령의 속성에 해당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턴에서 사용하는 마법은 실피드를 제외하고 공격마법이며, 대로 타 캐릭터가 쓴 마법은 방어마법으로 대응 가능하다.
  • 이별대행업체 . . . . 2회 일치
         일적인 경우, 이별공작은 탐정사 측의 공작원이 정보를 바탕으로 대상에게 접근하여 '유사연애'를 복하여 마음을 빼앗은 다음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 이병후 . . . . 2회 일치
         부산민사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72년 5월 17일 부산은행 대표가 청구한 약속어음금 환소송에서 이자에 대한 이자 청구는 이자제한법에 따라서 무효라고 하면서 원금에 대한 이자만 더해 지급하도록 했으며<ref>경향신문 1972년 5월 18일자</ref>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73년 5월 31일 혼인 당사자가 동성동본이라고 하더라도 신고서에 '혼인 당사자는 각각 시조를 달리함'이란 사실만 기재하면 구체적인 입증 소명자료가 없더라도 혼인신고를 받아줘야 한다"고 하여 동성동본 금혼을 규정한 민법을 무력화했다.<ref>동아일보 1973년 6월1일자</ref>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75년 4월 15일 대리투표를 했다고 폭로한 전 공화당원과 통장 등 3명에게 국민투표법 위죄를 적용해 징역6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5년4월16일자</ref>
  • 이애란(가수) . . . . 2회 일치
         그 이후로도 굴곡이 심했다. 특히 '[[못 간다고 전해라]]'로 유명해진 <[[백세인생]]>은 원래 1995년 경주 엑스포에서 부른 곡으로, 원래의 이름은 <저 세상이 부르면 이렇게 말하리>이다. 그러나 그 후로 10년간 제대로 된 가수 활동을 못 하였고, 2006년에야 가수로서 첫 음인 <천년의 사랑>--[[박완규|이 분이랑 상관없다.]]--을 취입하였으나 실패를 맛보았다.[[http://news.joins.com/article/19122364|#]] 트로트계에서 쌓은 인맥덕에 시장 등 불러주는 곳에서 노래하며 버텼다고 한다.
         == 음 ==
  • 이원석(1981년) . . . . 2회 일치
         * 《[[한도 (드라마)|한도]]》 (2012년, TV조선) - 김정식 역
  • 이재용(배우) . . . . 2회 일치
         날카로운 용모 때문에 주로 [[악역]]을 맡으며,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장동건을 스카웃한 조직 보스 차상곤 역할로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가끔은 가뭄에 콩 나듯(...) [[선역|좋은 역할]]을 하기도 하며, 주인공과 대립하지만 악역은 아닌 배역도 많은 편인데, 이런 배역을 맡을 땐 보통 완고한 원칙주의자나 보수파라 원칙을 벗어난 주인공이 못마땅하거나 오해가 있어 대립했으나, 후엔 조력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개그 캐릭터]]에도 일가견이 있어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이다.
          * '''굉장한 [[노안]]이다.''' [[놀러와]]에서 배우 [[이계인]] 씨는 [[본인]]보다 나이가 적다는 사실을 알고 놀랬다. [[제5공화국(드라마)|드라마 제5공화국]] 후부에서 안기부 실세 콤비로 함께 호흡을 맞춘 [[장세동]] 역의 배우 '''[[홍학표]]보다 2살 동생'''이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공깽]]. 물론 이건 [[홍학표]]가 상당한 [[동안]]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학봉]](1938년생)이 장세동(1936년생)보다도 2살 동생이다.] 사실 그거보다 더 [[충공깽]]인 게 있는데,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이재용의) 부인 역으로 나온 서승현은 사실 이재용보다 '''20살 누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딱 3개월 차이이긴 하지만, '''[[최수종]]보다도 한 살 어리다'''[* [[최수종]]은 1962년 12월 생이고 이재용은 1963년 3월 생이다.]. 그래도 본 위키에 항목이 있는 [[동명이인]]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다.
  • 이주승(영화배우) . . . . 2회 일치
          * 군대까가지 갔다 왔고 잘 보면 딱히 동안은 아닌데, 체격이 작은 편이고 평범한 인상이라 20대 후까지 고등학생이나 그 나이 대의 백수 역을 맡는다. 27세에 17세 역을 맡았는데 별 위화감이 없다.
         ||<|2> 2016년 || 졸업 || 더빙 || 정우 ||
  • 이준섭(군인,정치인) . . . . 2회 일치
         이후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로 복무하였다. [[5.16 군사정변]] 당시 란군의 일원으로 [[한강대교]]에 있던 [[헌병]]들을 제압하였다. 이후 해병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그리고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대덕군-[[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 [[유한열]]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하였다.
  • 이지현(1983) . . . . 2회 일치
         연애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449608|3개월]]만에 2013년 3월 24일에 7살 연상의 일인과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208117|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결혼 7개월 후 득녀한 것으로 보아 [[속도위]]한 듯.
  • 이태현(씨름) . . . . 2회 일치
         1990년대 중후~2000년대 초 씨름판을 지배했던 천하장사. [[의성고등학교]]를 거쳐 1993년 청구건설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 씨름계에 데뷔했다. 1993년 데뷔부터 2006년 1차 은퇴까지의 전적은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고,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 지역장사 12회, 백두장사 20회를 기록했다. 특히 백두장사 20회 기록은 [[이만기]]의 백두장사 18회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2006년까지 역대 총 상금 역시 5억 9,000여 만원으로 1위. --모래판의 황태자의 위엄. 오오!--
  • 이헌일 . . . . 2회 일치
         [[분류:1917년 태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희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육군 장교]][[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공주의자]][[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광복군]][[분류: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이현보 . . . . 2회 일치
         이때에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안동에 유배됐으나 중종정으로 지평에 복직된다.
         * 해제: 자연을 벗하며 고기잡이를 하는 한가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는 "가어옹(假漁翁)"으로, 실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어옹"이란 속세를 떠나 강호에서 낚시하면서 시나 읊고 술잔을 기울이던 양을 이르는 말로, 작품에서도 실제 어부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천심녹수(千尋錄水)", "만첩청산(萬疊靑山)"과 같이 상투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관념적으로 어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의 어부의 삶이란 곧 자연 속에서의 은둔 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5수의 초장과 중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다.
  • 인종개량 . . . . 2회 일치
         정치가 카토 히로유키(加藤弘之)는 1886년 「인종개량의 변(人種改良ノ弁)」이라는 주장으로 타카하시 요시오의 인종개량론에 박하였다. 그것을 위해서는 [[의식주]] 등의 환경을 개량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종 생산을 통한 인종개량의 비현실성도 지적하였다. (1) 어떤 조합으로 인종을 개량해 나가야 할지, 그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하다. (2) 많은 세월이 걸려서 비현실적이다. (3) 몇대나 잡종을 복하다보면 일본인의 피가 멸종해버린다.
  • 일곱개의 대죄/173화 . . . . 2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은 가까스로 버티며 멜리오다스에게 격한다.
          * 킹은 또 "원래 십계랑 아는 사이처럼 보인다"고도 하는데, 으 그 말을 받아 "십계는 단장이 마신족의 배신자라고 했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174화 . . . . 2회 일치
          * 드레퓌스가 십계의 일원임이 일행에게 확인되고 메라스큐라의 건재함도 이 확인.
          * 하지만 큰 타격은 되지 않는지 격.
  • 일곱개의 대죄/175화 . . . . 2회 일치
          * 옥신각신하며 길선더는 길프로스트가 끼고 있는 지를 발견하고 놀라고, 길프로스트는 황급히 손을 감춘다.
          * 에스타롯사는 초에 멜리오다스 수배서에 나온 얼굴과 동일인물. 멜리오다스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 일곱개의 대죄/183화 . . . . 2회 일치
          * 선두에 있던 은 단장을 죽인 네가 무슨 얼어죽을 "자애"냐고 빈정댄다.
          * 그는 죽인줄 알았던 이 살아있는걸 보고 의아해하지만 어쨌든 성기사 모두를 "그 고통에서 구해주마"라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194화 . . . . 2회 일치
          * 드레퓌스는 드시 유언을 전하겠다고 다짐하고 핸드릭슨은 편히 쉬라고 작별의 말을 한다.
          * 멜리오다스는 프라우드린과 싸우기 시작하는데 프라우드린은 얻어맞으면서도 결사적으로 격한다.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2회 일치
          * 가까스로 피한 할리퀸은 급격한 체력저하를 보인다. 그 상태에서도 진 영창 샤스티폴을 제 5형태 인크리즈로 변환해 격하지만 전혀 맞추지 못한다. 게다가 체력도 한계라 그로키시니아가 접근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대로 길선더가 멜리오다스와 적대하는 척 했던 부분을 들어서 그 사투 또한 십계의 눈을 속이기 위한 장치였다는 의견도 있다.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2회 일치
          게다가 이 멜리오다스는 할리퀸과 디안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게 없다. 자신들이 드롤과 그로키시니아가 아니고 사정이 있다고 해도 "평소의 너희"라고 말할 뿐이고 "킹과 디안느가 누구?"라고 문한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는데.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목적은 여전히 불명. 그들이 인간을 배신한 계기를 알아야 설명이 될 것 같다. 그들이 사용한 술법은 자라스트로가 사용한 것과 비슷하지만 그저 멜리오다스의 기억을 봤을 뿐인 면 이쪽은 과거 시간대의 당사자의 몸에 정신을 집어넣는, 매우 고차원 술법. 주문으로 보아 이것도 드루이드의 마법으로 사료된다.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2회 일치
          * 스티그마의 본부에서는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여신족 지도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그녀는 [[뤼드셀]]이 마신족을 근절할 때라고 선언한 것에 크게 발한다.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지위가 높은지 그녀는 뤼드셀과 [[네로바스타]]를 하대하지만 그들은 경칭을 쓴다.
          * [[디안느]], 지금의 [[드롤]]은 거인족 남녀의 수행에 어울려주고 있다.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덤비지만 디안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둘의 체술공격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가볍게 격하자 둘이 나가떨어진다. 이번엔 대지를 조종하는 술법으로 도전하는데 이또한 디안느의 실력에는 따를 수도 없다. 디안느가 대지를 움직이자 두 거인족의 술법을 집어삼키고 간단히 승리를 거둔다.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2회 일치
          * 사대천사 [[타르미엘]]과 [[사리엘]]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십계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타르미엘은 세 개의 머리가 사방을 주시하며 사각이 없다. 그가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갈란]]이 덤벼들자 왼쪽의 노인의 얼굴에서 또다른 마법을 발사해 갈란을 밀어낸다. 대편에서 데리엘이 달려들자 이번엔 오른쪽의 젊은이의 얼굴이 마법을 발사해 데리엘을 격추한다. 그리고 본체가 준비하던 강력한 마법탄은 그대로 바닥에 추락해 있는 갈란에게 날아간다.
          * 데리엘과 몬스피드가 함꺼번에 덤비지만 공격이 닿기는 커녕 격에 당한다. 사리엘과 타르미엘에겐 승부욕을 불사르며 덤볐던 십계들도 그의 등장에는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2회 일치
          * [[뤼드셀]]은 그녀의 결정에 발하며 마신족을 멸절해야 한다 주장한다.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숙적인 마신족, 십계에서 정을 줄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타르미엘이 마신족을 구할 가치가 어디에 있냐고 묻자 엘리자베스는 "그런 가치는 누가 정하며 그런걸 누군가가 정해놔도 되는 거냐"고 박한다.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2회 일치
          * 디안느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그의 비겁함을 비난한다. 할리퀸은 디안느와는 달리 그 점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전쟁엔 비겁이고 뭐고 없으니까. 뤼드셀은 그가 편들어 준다고 생각해서 색하지만 결국 그도 뤼드셀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는다. 비록 십계라지만 엘리자베스가 목숨을 걸고 구해냈는데, 지금 뤼드셀의 행동은 그걸 짓밟는 것이다. 그 말에 뤼드셀은 박도 못하고 표정을 구긴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그런 설명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할리퀸은 고서의 설명을 끊고 방금 전 인형 쪽의 입으로 "문이 완성될 때까지 접근시킬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을 추궁한다. 대체 은총의 빛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할리퀸이 강하게 추궁한다. 고서는 숨길 생각은 없다며 "인간들의 란"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로우를 비롯한 인간 전사들은 처음부터 스티그마에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스티그마 내부에 침투할 목적이 있어서 고서와 협력했다. 이들은 목숨을 건 연극으로 [[멜리오다스]]와 할리퀸 일행의 신뢰를 사서 스티그마에 침투했다. 고서는 그들이 목적을 위해 마신족을 이용한 거라고 말해서 메라스큐라처럼 조종 당한게 아님을 암시한다.
          잠자코 있던 디안느는 그 말에 뭔가를 느낀다. 면 할리퀸은 더이상 대화해 봐야 쓸데없다고 판단한다.
  • 일곱개의 대죄/213화 . . . . 2회 일치
          * 스티그마를 배하고 싸움을 시작한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와 인간 전사들. 단 네 명 뿐이지만 스티그마가 전멸 위기에 처해있다. 로우는 피투성이가 된 채 천사족 전사와 싸운다. 전사가 로우를 강하게 몰아붙이며 자세를 무너뜨린다. [[게라이드]]는 울고 있지만 싸움을 멈추라고 외친다. 그러나 천사족 전사를 그녀를 겁쟁이라 매도하면서 "울틈이 있으면 싸워라"고 일갈한다. 그 잠깐의 틈이 승부를 갈랐다. 로우는 자세가 무너진 채로 칼을 던져서 전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성격과 태도로 보아 로우가 의 전생일 것 같다는 여론이 많다
  • 임현식(배우) . . . . 2회 일치
         대표적인 [[이병훈(PD)|이병훈]] [[사단#s-3]]의 배우로, 이병훈씨가 연출한 사극에는 타방송의 동출연을 마다하고 [[카메오]] 출연[* [[상도(드라마)|상도]]에서는 46회와 49회에 석공(다리 건설)으로, [[이산(드라마)|이산]]에서는 지상렬을 가르치는 [[춘화]]고수(!)로 출연했다.]으로라도 드시 출연한다고 한다.
  • 장갑차 . . . . 2회 일치
         장갑차라는 의미가 장갑이 달린 차라는 의미기에 일 승용차도 장갑을 달면 장갑차라 부를 수 있으나 일적으로 장갑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군대에서 쓰는 군용 장갑차량이 많다. 그리고 군용이라 해도 흔히 탱크라 부르는 현대의 전차와도 구분하는 이미지.
  • 장남교 . . . . 2회 일치
         일적으로, 무엇이든 "장남이니까 ~해야 한다.", "장남의 아내니까 ~해야 한다."고 부모나 친척, 주변에서 자식 측에게 강요하는 것을 '장남교'라고 부른다.
         즉, 이 시기의 법률에서는 호주의 동의 없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물론 결혼을 인정받지 못해서 사랑의 도피를 하거나 동 자살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 또한 호주는 거소에 대한 지정을 따르지 않은 가족에 대해서 제적할 수 있었다. 설사 그 거소가 자시키로우라고 해도(…). 당시부터 사회적으로 호주의 권리를 남용하는 가장이 적지 않아, 호주의 권리가 남용되므로 제한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였다.
  • 장다경 (영화배우) . . . . 2회 일치
         * 《[[한도 (드라마)|한도 ]]》 (TV조선, 2012년) - 오현진 역
  • 장도 (1876년) . . . . 2회 일치
         |저자=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민족행위결정이유서|연도=2007
  • 장문규 . . . . 2회 일치
         * 《[[무신 (드라마)|무신]]》 (2012년, MBC) - 란군 역
         * 《[[특수사건 전담 TEN 2]]》 (2013년, OCN)
  • 장세현 (배우) . . . . 2회 일치
         |소속사 = 카라이앤엠
         《[[성균관 스캔들]]》에서 '성균관 상유 3인방' 중의 하나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서 주목을 받은<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2315234 성스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지" 감초 3인방은 누구?]</ref> 장세현은 《[[내일도 칸타빌레]]》에서 마수민을 맡아 유진([[주원]])에 첫눈에 한 '유진바라기'로 설내일([[심은경]])과 경쟁관계에 놓이는 역할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532683 신예 장세현, '내일도 칸타빌레' 캐스팅…심은경과 천적관계]</ref>
  • 장은숙 (가수) . . . . 2회 일치
         199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활동 후 1995년 일본 [[토라스레코드]]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로 일본 무대로 진출하였고, 그 후부터 '장수(チャン・スー)'라는 예명을 사용하였다.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첫해 일본 유선 방송 신인상을 받았고,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 으로 방송 및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상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장의 앨범 판매 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지금까지 20장의 음을 발표했으며 2015년 5월에 발표한 "눈물의 공항 대합실"을 포함해 총 14곡이 유선방송 1위에 랭크되었다.
  • 장진수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2000년 하기부터 '''AMD 트림팀'''과 '''헥사트론 드림팀''' ([[이스트로]]) 소속으로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였으며, 2004년 하기에 은퇴를 선언하였다.
  • 장태영(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처음 포지션은 유격수로 시작했고 그의 첫 고교무대 데뷔전이었던 1946년 제1회 [[청룡기|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왼손잡이 유격수로 출전해 허종만, 정상교, 조성일, 박정표, 송주창등과 함께 팀의 준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1947년, 故 고광적 당시 경남중 감독은 당시 선발이었던 장갑영 대신 그를 [[투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경남중등학교를 전국 최고의 팀 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상대는 [[김양중(야구)|김양중]]이 이끄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서중]]. 광주서중은 전라도 지역의 최고의 팀으로 불리긴했지만[* 이때 [[군산상고 야구부]]는 창단되기 전이다. 군산상고 야구부가 만들어 진것은 1968년이다.] 전국대회 수준에서는 미치지 못한 수준의 야구팀이었고 에이스 김양중의 분투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중학]]과 대전사범중을 상대로 힘든 승부끝에 결승전에 올라왔다. 언론들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경남중학교의 우승을 점쳤고 경남중학교 측에서도 이 분위기에 흠뻑 취해 이미 이긴것이나 다름 없다며 전날 미리 축하연을 펼쳤다. 면 광주서중은 이기든 지든 김양중을 믿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결의했다.
  • 전가의 보도 . . . . 2회 일치
         그러나 이렇게 귀한 가치가 있는 면, 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전가의 보도였다. 가문 대대로 물려줄 정도의 보도라면 가치가 매우 높지만, [[일본도]]는 관리하기가 어렵고 실전에서 사용하면 손상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가의 보도에는 높은 가치가 있는 만큼 실제로 사용하다가 손상을 입히면 그만큼 깍여나가는 피해액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한국 인터넷에서는 "'전가의 보도는 옛날에 '양가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검'을 뜻하는 말이다. 아들이나 아내가 불미스러운 일로 집안에 누가 되는 행동을 범했을 때 이를 처단하는 도구로도 사용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근거는 낮은 것 같다. 애초에 이 말은 한국 문화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http://www.vop.co.kr/A00000768894.html (민중의 소리)]]
  • 전기안전관리법 . . . . 2회 일치
         이전까지는 전기제품만 받던 KC인증(국가통합인증)을 의류나 잡화 등 신체와 접촉하는 모든 품목으로 확대되었는데, KC인증비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들고 위시 과태료가 500만원이다. KC인증을 받지 않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은 제조, 수입, 판매, 구매대행, 판매중개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서 영세상인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발 논란에 따라 1년간 시행이 유예되었다.[[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3125037 (참조)]]
  • 전락원 . . . . 2회 일치
         '''전락원'''(田樂園, [[1927년]] [[5월 16일]] ~ [[2004년]] [[11월 3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겸 교육가, 관광업자이다. '카지노의 대부'라는 별칭도 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1451.html ‘카지노 대부’ 전락원씨 유족, 증여 · 상속세 430억원 신고 : 경제일 : 경제 : 뉴스 : 한겨레<!-- 봇이 따온 제목 -->]</ref>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장로교]]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의 아들이며, 수필가 [[전숙희]]의 남동생이었다. [[파라다이스그룹|파라다이스 그룹]]의 창업주이며, 카지노업과 교육 사업을 하였다. 본관은 [[담양 전씨|담양]]. 호는 우경(宇耕)이며 [[서울특별시]] 출신. 종교는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이다.<ref>[http://news.joins.com/article/2028144 '파라디이스 그룹 창업주' 전락원 회장 별세], [[중앙일보]], 2004년 11월 3일.</ref>
         1993년 외화밀출 혐의로 옥고를 치루었으며 이후 사면복권되었다.<ref name="카지노"/>
  • 전형필 . . . . 2회 일치
         '''전형필'''(全鎣弼, [[1906년]] [[7월 29일]] ~ [[1962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다. 자는 천뢰(天賚), 호(號)는 간송(澗松), 지산(芝山), 취설재(翠雪齋)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훈민정음]] 원본 등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찾아와 1938년 조선 최초의 근대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웠다. 해방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중에 한국의 문화재들을 지켜내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사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유족들과 지인들에 의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으로 개편되었고, 간송미술관에서는 [[1971년]] 봄부터 '겸재전'(謙齋展)주제를 시작으로 2014년 가을까지 일년에 2차례씩 무료 일공개를 하였다. 현재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간송컬렉션을 선보이고자 동대문디자인프라자&파크에서 간송문화전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2012년 12월 14일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전형필의 가옥]]을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하여 지정 관리하고 있고, 2014년 10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1962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화포장]] 과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들을 연구정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로 개편되었고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의 이름으로 봄과 가을 일년에 두차례 일공개를 하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36화 . . . . 2회 일치
          * 후지코는 의외로 얌전하게 식사나 하고 있다. 칠드런 일행을 평범하게 긴다
          * 사카키 슈지가 후지코에게 왜 깨어났냐고 묻지만, 오히려 사사키가 깨운게 아니었냐고 문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2화 . . . . 2회 일치
          * 어쨌든 역의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됐고, 앞으로도 계속 감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 후지코는 항하는 것 같다면 "처리하겠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미나모토나 사카키를 죽이려 든다는 것 자체에 위화감을 느낀다.
  • 절대가련 칠드런/447화 . . . . 2회 일치
          * 효부의 버릇을 숙지하고 공격하지만 효부는 그걸 피하는데도 능숙해 격 당한다.
          * 효부도 지지 않고 격, 슬슬 탐색전은 끝내고 본게임으로 넘어가자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2회 일치
          * 약간 4차원인지 자기에게 한거냐고 수다를 떠는 소녀. 아카시 카오루의 언니인 아카시 요시미였다.
          * 후지코는 그 점은 인정하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 미래의 책임이 있다고 박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2회 일치
          * 효부는 이상의 계획을 "머슬이나 스모키도 떠올리지 못한 대담한 계획"이라고 칭찬한다. 효부는 판도라를 마기에게 맡기며 지금까지 "시로"라고 불렀던 호칭을 "마기"로 고친다. 마기는 호칭 같은건 아무래도 좋다고 하지만 이것은 효부가 그를 파트너이자 오른팔로 인정한다는 중요한 증거다. 효부는 그의 성장을 대견해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데 마기는 조직을 맡길 거면 이런 짓 좀 하지 말라고 발한다. 그러면서도 효부가 호칭을 고쳐준 탓인지 자신도 "효부"라고 부르던 호칭을 "소령"으로 고치고 깍듯한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다.
          * 그러는 사이 마기일행은 차량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효부는 헤어지기 전 "네 덕에 내게 집이라 부를 곳이 남아있다"고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 바로 마기 덕에 안심하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됐으니 대로 마기가 방황하는 순간이 되면 언제든 "시로"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다며.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2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8th sense. '''역자들 (1)'''
          * 상황은 진정되었지만 미나모토는 이들을 가워하는 한편 은근히 경계한다. 바벨이 보낸 추격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츠네는 바벨에서 보낸게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나오미는 자신들이 수뇌부 몰래 왔다고 밝힌다. 타니자키는 바벨을 배신해서라도 자길 구하러 온 거냐고 날뛰가 제재 당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2회 일치
          * [[노가미 아오이]]는 다른 대책은 없는 건지 묻지만 미나모토로서는 투항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쪽은 초능력을 온전히 운용할 수 없는 데다 부상자까지 끼고 있다. 부딪히게 되면 저쪽은 사력을 다해 저지하려 할 테니 사상자가 나오지 않고 돌파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투항해서 효부와 후지코를 의무실로 보내는 것이 최선. 요우는 자기들더러 돼지우리에 들어가라는 말이냐고 발한다. 하지만 미나모토의 계산으로는 일단 후지코의 세뇌를 제거했으니 제정신만 돌아오면 금방 내보내 줄 거라 본다.
          마츠카제는 지휘관인 미나모토가 남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발한다. 차라리 자신이 남아서 폼을 좀 잡게 해달라고 드립을 친다. 카오루가 심쿵할지도 모른다고. 정작 카오루는 관심이 없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2회 일치
          둘은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들이 칠드런에게 구해지는 일이 빈번하다. 이것이 둘의 강박관념을 자극해서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 "대로 지켜지는건 싫다", "모두를 지킬 힘을 얻기 위해선 블랙 팬텀에 의탁하는게 최고다"라는 비약적인 사고로 돌아간다. 평소 바보로 일가견 있는 미오가 보기에도 앞뒤가 엉망진창인 전개.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블랙 팬텀이 그들의 "마음의 틈"에 세뇌를 집어넣은 거라고 본다. 미오는 떨어져 버린 카즈라 일행도 염려하는데 모모타로는 텔레파시로 그들도 교전 중임을 알린다.
          [[타니자키 이치로]]가 입힌 심각한 트라우마는 그녀가 아저씨라는 인종 자체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녀는 아재개그도, 성희롱도, 아재냄새도 없는 크린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 진지하고 격렬한 응으로 보아 정말로 블랙 팬텀에 세뇌된 건지, 평소 상태랑 어떻게 다른 건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만 의상이 바뀌지 않은건 본질이 드러났다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2회 일치
          * [[츠쿠시 미오]]가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를 데리고 [[미나모토 코이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단이탈, 그 미오 일행을 쫓아 [[히노 카가리]], [[타마키 카즈라]], [[파티 크루]]도 이탈. 이들이 위기에 처하자 더 칠드런 일행까지 적의 함정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효부 쿄스케]]에게까지 전해진다. 사념체 형태로 겨우 운신만 하던 효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본체의 인공심폐가 일시 정지한다. 상황을 보고한 것은 [[쿠구츠 타카시]]. [[우츠미 세이시로]]는 효부의 상태에 악영향이 갈 줄 알고 전달을 대했지만 쿠구츠는 "어떻게 그러겠냐"며 강행한다.
          * 모미지, [[머슬 오오카마]], [[후지우라 요우]] 등이 백업팀으로 구성. 모미지는 여기까지 온 이상 드시 일행을 무사히 데려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정력 . . . . 2회 일치
         일적으로 인간의 기력이나 활동력 전을 이르는 말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남성의 성적 능력을 이르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거기 당신, 당신, 당신 말이지!!~~
  • 정명재 . . . . 2회 일치
         * 1991년 [[우주의 용사 달가면]] - 한 박사
         * 1991년 [[위기의 용사 달가면]] - 한 박사
  • 정서임 . . . . 2회 일치
         * 《도패션 죠느망》
         * 칭찬합시다 운동중앙회 2017 방송부문 연기대상(한도 통일위원회 주최)
  • 정시제 고등학교 . . . . 2회 일치
         정시제와 대비하여 일 고등학교를 전일제(全日制)라고 부른다.
         일적으로 전일제는 매일 50분×6시간/7교시의 수업을 하지만, 정시제는 매일 45분×4교시의 수업을 한다. 그 대신 졸업에는 4학년 정도가 걸리는 경우가 보통이다.
  • 정욱(1973) . . . . 2회 일치
         * 2012년 《[[한도 (드라마)|한도]]》 (TV조선) - 신창석 역
  • 정재호 (1964년) . . . . 2회 일치
          - 2016.06 ~ 2018.05 제20대 국회 전기 정무위원회 위원
          - 2018.07 ~ 제20대 국회 후기 정무위원회 간사
  • 정진(1976) . . . . 2회 일치
         * 《[[한도 (드라마)|한도]]》 (TV조선, 2012년) - 정용기 역
  • 정진욱(코미디언) . . . . 2회 일치
          * 2016년 2월 16일 7살 연하 일인과 결혼하였으며, 같은 해 6월 28일 득녀하였다. 게다가 [[속도위]]이다!
  • 정치공학 . . . . 2회 일치
         이에 대해서는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미국 남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던 주관중(朱冠中) 교수가 1960년대 후 '정치공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냈는데, 이 책이 청와대에서 모두 회수하고 박정희 정권은 주관중 교수를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임명했다. 그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공학적 수완'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31758521&code=990326#csidxb914cb4e3f87ea0a4d75944b31219dc (참조)]]
          * 특히 [[지역감정]]을 기으로 하여, [[영남]], [[호남]], [[충청도]]의 표를 이리저리 떼었다가 붙였다 하면서 세력 재편을 시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정치공학으로 여겨진다.
  • 조선활자본 삼국지통속연의 . . . . 2회 일치
         [[명종]] 년간(1534~1567)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금속활자로 간행되었고, 병자자(丙子字)를 썻다. 드문드문 굵기와 크기가 다른 목활자가 끼어 있어 '후기 병자자'로 추정된다. 활자로 볼 때 1552년 이후 1560년대 초중 사이에 인출된 것으로 추측된다.
          * 현존하는 최고 판본인 '가정본'보다 오래된 텍스트를 영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 주다영 . . . . 2회 일치
         * [[2011년]] [[MBC]] 주말드라마 《[[짝 빛나는]]》 ... 주혜린 역
  • 주토피아 . . . . 2회 일치
         주인공은 총격전을 벌이고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지만, 대중들은 무관심하게 응하는 결말이다.
         이 문서 왜 아무도 수정을 안해요 이거 달 아닌가요
  • 지무시 . . . . 2회 일치
         초에는 자신이 살던 섬에서, 라나를 찾으려는 코난과 어찌어찌 얽혀 그 섬을 떠나게 되어, 코난을 내켜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친 사고에 대한 징벌(나무판으로 볼기 맞기)을 술로 인사불성이 된 자신 대신, 코난이 맞아[* TV판 4화에서, 지무시는 바라쿠다 호에서 다이스 선장의 음식과 술 등을 훔쳐 먹고 주방장을 기절시키는 등 사고를 쳤다. 만취한 지무시를 데리고 코난은 달아났으나, 잡혀서 이전의 로보노이드 파손 등의 죄목과 합쳐져, 교수형과 볼기 맞기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게 된다. 볼기 맞기를 견디면 이 배에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두들겨 맞는데, 만취한 지무시는 단 한 대에 기절해버린다. 이에 코난이 대신 맞겠다며 나선다. 지무시가 맞을 몫인 20대까지 떠맡아, 코난은 선원 한 명당 40대씩 맞았는데, 바라쿠다 호의 선원들이 대략 30명이라 쳐도 1,200대, 곤장을 건강한 성인이 맞아도 보통 10대가 넘어가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이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전, 코난과 우정을 쌓으면서 코난을 돕게 된다. 모험 이후에는 코난, 라나처럼 신대륙이 된 코난의 고향에 정착한다.
  • 지증왕 . . . . 2회 일치
         즉위 초부터 그는 제도와 체제 개편을 추진하였다. [[504년]] 음력 4월 상복법을 제정하고, 음력 9월에 파리, 미실, 진덕, 골화 등 12성을 쌓는 등 고대 국가로서의 기을 다졌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五年 夏四月 制喪服法頒行 秋九月 徵役夫築波里 彌實 珍德 骨火等十二城(5년(504)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포하고 시행하였다. 가을 9월에 인부를 징발하여 파리성(波里城), 미실성(彌實城), 진덕성(珍德城), 골화성(骨火城) 등 12성을 쌓았다.)}}</ref>
  • 진격의 거인/78화 . . . . 2회 일치
          * 미카사가 베르톨트를 습격하지만 마치 딴사람처럼 능숙하게 격한 뒤 빠져나간다
          * 한지이 베르톨트 근처에 있다 휘말리고 만다
  • 진격의 거인/81화 . . . . 2회 일치
          * 너희들(인간들)의 "이 세상의 기억"이 왕에 의해 벗겨진건 비극이라며 "그 때문에 역사는 복된다"고 말한다.
          * "역사는 복된다"고 한 발언이 진격의 거인이 루프물이라는 기존 설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 진격의 거인/83화 . . . . 2회 일치
          * 쟝은 "한지씨 답지 않다"는 말을 하며 박한다.
          * 엘런이 발하지만 리바이는 "인류를 구하는 쪽을 택하겠다"고 고집한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2회 일치
          * 거인의 자유낙하는 마레의 전사의 약 6할을 소모시킨다. 그렇지만 거인이 약 4할만 살아남아도 충분하다. 요새는 파되었고 기능을 잃었다. 살아남은 거인들은 운 좋게 폭격을 피한 병사들, 생존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다. 요새의 병사들은 참담한 얼굴로 다가오는 거인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폭격으로 죽는 것이 운 좋은 일이었을 수도 있다.
          * 지크를 향해 집중된 포격을 라이너가 대신 맞는 동안, 연합함대가 괴멸한다. 함대의 괴멸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갑옷 거인의 신이 날아가는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마레의 병사들은 작전의 성공도 전쟁도 끝도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은 패배를 당한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서진 갑옷 거인이 쓰러지는 걸 바라본다. 가비는 망연자실하게 "이럴 수가"라고 중얼거린다.
  • 진창현(음악인) . . . . 2회 일치
          *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아마티]], [[과르네리]] 등 전설의 명기가 가진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이 악기들을 소유한 수많은 명연주가들이 내일 공연을 했을 때 대기실을 들락거리면서 악기의 본을 뜨거나 직접 켜보거나 하기도 했다. 이 일화는 훗날 일본 언론에 연재되었고, 한국에 출간된 구술 자서전 후에도 나온다.
          * [[1970년]]의 한국 방문에서 당한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는지, 자서전에도 그 경위를 상세하게 적어놓고 있다. 일본으로 떠난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가난했던 삶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충 조사를 마무리지은 뒤 회식비를 자신에게 모두 떠넘겼다거나 1976년에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다시 귀국했을 때 자신이 만든 악기가 위조품으로 간주되어 입 불가를 당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어서 당시 한국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한국이 [[민주화]]되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념적 재단 같은 편파적인 잣대가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 국민훈장을 수상하면서 공식적으로도 명예회복을 이루었다. 말년에는 한국 언론들과 자주 인터뷰나 대담 등을 가지기도 했고, 생전에 마지막으로 언론과 접촉한 것도 타계 열흘 전인 5월 3일에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이 병상을 찾았을 때였다.
  • 차민수 . . . . 2회 일치
         차민수는 198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세계바둑계에서는 미국 이민 이후 프로기사로서 별다른 대회 참가가 없었던 차민수가 일본 프로바둑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사 [[마이클 레드먼드]]를 꺾고 미국의 대표로 선발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여겼다. 하지만 차민수는 대회가 열리자 일본의 두 기사를 연파하고 8강에 오르더니, 8강전에서는 친구이기도 한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 일보 직전까지 가며 바둑계를 경악하게 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검토실에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은 "종 30수 이상 실수를 거듭한 것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라며 격노하였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제목=19*19 인생퍼즐|저자=이홍렬|출판사=명상|연도=2002|isbn=9788972323914}}</ref>
         * [[루이나이웨이]] 9단이 미국에 망명중일 때 한국 기원행을 권유하며 조훈현에게 소개시켜 준 이가 차민수이다.<ref name="hani">{{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43818.html |제목=‘상’에서 천국을 쫓다 한국에서 행복을 찾다|저자=김창금 기자 |출판사=한겨레 |날짜=2009-03-12}}</ref>
  • 차성훈 . . . . 2회 일치
         * 《[[강력 (2011년 드라마)|강력]]》 (2011년, KBS2) - 검시관 역
  • 차수연 . . . . 2회 일치
         || 2015년 || SBS || [[내 마음 짝]] || 차예린 || ||
  • 차오루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는 [[장나라]]와 같은 기획사에서 활동했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555331 차오루 "중국 활동당시 장나라와 같은 소속사"] - 엑스포츠뉴스</ref> 장나라가 [[대한민국]]에서 중문 에디션 음인 《비상》을 발매할 당시 홍보 활동을 도우면서 [[대한민국]]과 인연을 맺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0067007 장나라, 이번엔 합류 대사?] - 쿠키뉴스</ref>
         == 음 ==
  • 창작:Project NA . . . . 2회 일치
         > * 응이 시원찮아서(...) 이대로 이름을 쓰기로 했습니다. 대신에 [[창작:바벨 코스트|바벨 코스트]]라는 상위 설정을 쓰고 있습니다.
          * 그리스어가 적힌 지 [http://ntx.enha.xyz/bbs/board.php?bo_table=write&wr_id=816 #]
  • 창작:좀비탈출/3-2 . . . . 2회 일치
         학교 역시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고, 도시가 불안하다며 아예 시골로 피난간 가족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등교하길 그만뒀을 때는 이미 수 이상이 등교를 멈춘 상태였다.
         그럼에도 학교로 자전거를 움직인 것은 그저 익숙한 길이기 때문일까, 매일 같은 일과를 복하다가 생겨난 빌어먹을 습관 때문일까.
  • 창작:좀비탈출/5-2 . . . . 2회 일치
         얼마나 세게 닫은 건지 집안이 흔들거렸다. 지금 낸 소리는 미사일이 때려박는 것 보단 조금 작은 소릴 것 같았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이번엔 대편에서 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났다.
         정오엔 사라지지만 햇빛이 약해지면 어느새 나타나 문에 부딪히기를 복했다. '''쾅!''' 내가 여기 있는건 알면서 소용없다는건 왜 모르는 걸까?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2회 일치
         비닐 시트는 일적으로 하우스에 치는 것만큼 얇고 약한 소재가 아니었다. 다루면서 보니 그보다는 방수포에 가까운 두꺼운 물건이었다. 실험 삼아서 손으로 당겨서 찢어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녀석을 다듬는 역할은 방금 찾은 전지가위에 맡겼다. 하지만 재활용도 염두해야 하고 나는 재단 일에도 문외한이다. 최대한 길고 네모낳게 잘라냈다. 잘라낸 비닐을 팔다리에 둘둘 감고 그 위에 철사를 감아서 고정시켰다. 몸통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했고 그 외에 비닐로 감을 수 있는 곳은 전부 감았다. 제일 얼려운건 머리였다.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적당한 크기의 패트병이 있었고 주인공은 디자이너였다. 어떻게 해도 방도면같은 형태는 되지 못했고 그냥 머리에 둘둘 감은 후 눈구멍과 숨구멍만 뚫었다. 숨쉬는게 다소 불편했지만 어쨌든 호흡이 가능하고 앞도 보였다.
         알고 있다. 어느 쪽도 확실한건 없다. 지금 어느 쪽의 가능성이 높은지를 따진다는건 순전히 내 심리가 얼마나 낙천성을 회복하고 있는지에 따를 뿐 객관적인 어떤 지표도 영하고 있지 않다.
  • 천장호 . . . . 2회 일치
         최근 조무성 전 광운학원 이사장의 자녀 조○○씨 이사 추대를 대하는 광운대 학생과 동문들 시위로 진통을 겪고 있는 광운대가 최근 실시한 교수평의회 소속 전임교수(전임교수 331명 중 313명 응답) 대상 '천장호 총장의 사퇴여부에 대한 찬'에 대한 설문에서 60.1%가 사퇴해야한다고 밝혔다.
  • 초식계남자 . . . . 2회 일치
         연애에 있어서 수동적, 물욕이나 출세욕이 적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남자. 그 소극적인 모습을 [[초식동물]]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댓말은 육식계(肉食系). 일본에서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으로, 소비욕구가 얕고 이성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세대가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원인의 한가지로는 환경 교육이나 젠더 교육의 영향도 있다고 여겨진다.
         2006년 니케이 비지니스 온라인(日経ビジネスONLINE)에서 「초식남자(草食男子)」라는 표현이 등장했으며, 2008년에는 여성잡지 등에서 초식계남자의 공략법(草食系男子の攻略法)같은 기사를 내놓고, 일 매스컴에도 침투하게 되었다.
  • 총기 . . . . 2회 일치
         총기는 [[탄환]]을 발사할 때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하는데, 폐쇄된 관에서 화약이 폭발하면 폭발적인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대량의 가스가 갈 곳을 잃고 고압으로 압축되는 상황이 된다. 이 때 약실이 충분히 튼튼하지 않거나 뭔가 결함이 있다면 약실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여 발사자가 오히려 [[끔살]]당한다. 정상적인 총기에서는 오직 탄환이 있는 곳만이 밀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므로 연소가스의 압력은 탄환을 밀어내게 되며, 탄환은 초고속으로 총신을 따라서 튕겨나가서 총신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된다. 이렇게 발사과정을 거쳐서 날아오는 탄환은 인간의 신경으로는 포착하거나 응할 수 없으며, 정확하게 명중한다면 대개 '''그대로 죽는 수 밖에 없다.'''
         [[20세기]] 중후의 [[AK-47]], [[M-16]] 등의 대표적인 [[돌격소청]]의 발명 이후로 개인용 총기는 기술적 발전에 정체를 겪게 된다. 개인 화기로서는 이미 위력과 성능이 충분하고, 개인 화기라는 한계 때문에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중량한계, 그리고 [[예산]] 등 다양한 문제로 개량이 지지부진하기 때문. 미래의 총기로는 무탄피소총이나 자력을 이용하는 [[코일건]], [[레일건]] 등이 개발되고 있지만, 개인용으로는 아직 효용성이 낮다는 판단 때문인지 새로운 발명이나 개선은 정체되고 있다.
  • 최재환(배우) . . . . 2회 일치
         || [[2012년]] || [[TV조선]] || [[한도(드라마)|한도]] || 박광태 || ||
  • 최재희 . . . . 2회 일치
         == 음 ==
         {{참고|마임 (음악 그룹)|설명=그룹 마임의 발매한 음에 대해서는}}
  • 최종원(국회의원) . . . . 2회 일치
         '''1990년대 초 한국영화 중흥기 최초의 신스틸러.'''
         || 2010 || [[2010년 재보궐선거|상기 재보궐선거]] (18대 국회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 '''[[민주당(2008년)|민주당]]''' || '''32,661 (55.3%)''' || '''당선 (1위)''' || [* 전임자 [[이광재]] 강원도지사 출마] ||
  • 최태원 (야구인) . . . . 2회 일치
         우여곡절 끝에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은 해체 후 [[SK그룹]]에 인계되어 [[SK 와이번스]]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단했고 [[인천광역시|인천]]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2000년]] [[SK 와이번스]]의 초대 주장을 맡았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10160242 “갑다 인천…이겨라 광주!”최태원 코치의 특별한 가을] - 동아일보</ref> 그러나 이미 30대 초에 접어든 그는 빈볼의 후유증으로 인해 [[2001년]]에는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고, 프로야구판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탓에 [[SK 와이번스|SK]] 프런트의 안 좋은 시선을 받았다.
  • 충완 . . . . 2회 일치
         '''충완'''(충완, Chungwan, 홍충완, 1990년 12월 14일(1990-12-14) ~ )는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2013년에 아이돌 보이그룹 [[언더독]]에서 싱글음 [[Can't Stop]]으로 데뷔하였으나, 이듬해 탈퇴를 선언,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이후 2015년 05월12일 솔로 데뷔앨범 [[분홍길]]을 발매,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 음 활동 ==
  • 캬바쿠라 . . . . 2회 일치
         캬바쿠라에서는 법률적으로 가개 내에서 손님과 아가씨의 접촉은 금지되며 원칙적으로 접촉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同伴)이라는 은어로 불리는 점외 데이트 서비스를 실시하기도 한다.
         1980년대 중에 나타난 유흥업소. 서비스 요금은 기본적으로 시간제이며, 접대를 맡는 캬바죠우가 테이블에 동석한다. 대충 아가씨 끼고 노는 술집이라고 보면 된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소련군 . . . . 2회 일치
          말 그대로 벽. 일적인 공격을 가로막는다. 보병의 총탄에 부서지지 않는다.7
          * 크레이지 이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스킬 . . . . 2회 일치
         사일러스가 사용하는 레인저가 조각된 레인저(Engraved Ranger)로 대체된다. 조각된 레인저는 일 레인저에 비해 사정거리가 25% 길며, 동이 30% 적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2회 일치
         사일러스 그리브스 역시 링컨 카운티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빌리와 같은 편에 참전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사일러스가 복수하려는 녀석이 대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일러스를 본 빌리는 그를 "아미고"라고 부르며 소총을 건네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잭이 사일러스(현재)에게 빌리 더 키드랑 친구였던 거냐고 물어보자, 사일러스는 "응…그런 셈이지…."라고 대답한다. 어쨌든 사일러스는 소총을 받아 인해전술을 시전하는 가렛의 부하들을 쏴죽인다. 하지만 대편을 담당하던 보우드레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가렛의 부하들이 개틀링을 가지고 와 농가에 쏴갈기는 상황까지 되자 빌리는 도망쳐야 하니 마구간에 가서 말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사일러스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니 명령에 따라야하는데ㅅㅂ"같은 생각을 했지만 일단 빌리의 말을 듣기로 했다. 사일러스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데이브를 지나, 농가 뒷문을 박차고 나와 마구간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가렛의 부하들을 해치운다. 결국 마구간에 도착한 사일러스, 하지만 그곳에서 가렛을 만나게 된다.
  • 쿨 비즈 . . . . 2회 일치
         쿨 비즈란, 여름 실내 온도를 28도로 설정하여 [[냉방]]을 억제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한편, 28도의 온도에서도 시원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여름에는 [[넥타이]]와 [[재킷]]을 벗고 팔 와이셔츠 차림으로 활동하자는 비즈니스 모델 제안이다.
         2005년에 일본 환경성에서 일에 응모하여 용어를 설정하고, 캠페인과 함께 공표하였다.
  • 키라키라 네임 . . . . 2회 일치
          * 키라키라 네임 : 키라키라 네임(キラキラネーム, 키라키라=짝)은 DQN네임과 같은 뜻이다. DQN네임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이름을 붙인 부모에 대한 비하적인 의미는 들어있지 않고, 특이한 이름이라는 뜻에 가깝지만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쓰인다. 공공 보도에서 DQN네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이 같은 이름을 부모를 일률적으로 DQN으로 비하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러한 대체 용어를 사용한다.
  • 키모이 . . . . 2회 일치
         키모이(きもい)라는 말 자체는 1970년대 후 부터 있었던 말로서, 1990년대 후 부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사용빈도가 늘어났다고 여겨진다.
  • 키이치 보우겐 . . . . 2회 일치
         분노한 키이치 보우겐은 여동생의 남편 단카이(湛海)를 보내서 요시츠네를 추격하게 하지만, 육도삼략의 무공을 습득한 요시츠네는 단카이를 죽이고 만다. 요시츠네에게 배당한 보우겐의 막내딸은 실의에 빠져서 슬퍼하다 죽게 되고, 키이치 보우겐은 비탄에 빠졌다.
         코토크 : https://kotobank.jp/word/%E9%AC%BC%E4%B8%80%E6%B3%95%E7%9C%BC-472142
  • 킹덤/499화 . . . . 2회 일치
          * 조 서부 공략군으로 지칭된, 실제론 "업 공략"을 위한 연합군이 출병한다. 수도의 병사들은 함양이 떠나갈 듯이 성원을 보낸다. 꺼림직하게 여겨지던 산민족이나 환의군 조차 엄청나게 응원을 받는다. 비신대의 활형제를 비롯한 신병들은 긴장으로 위축. 대로 연을 비롯한 고참들은 자기들이 출세하긴 한 것 같다는 너스레를 떤다.
          * 신은 그걸 휘두룰 수 있겠냐고 묻자 오히려 자기가 휘둘릴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쓰면서 익숙해지겠다고 다짐한다. 이러는 사이 행렬이 꽤 정체돼 뒤에서 불평이 도착한다. 다시 행렬로 돌아가는 신에게 정은 "언제나처럼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격려하고 신은 드시 이 창으로 이목의 목을 날려버리겠다고 장담한다.
  • 킹덤/504화 . . . . 2회 일치
          >연합군에 바란 강점이 발휘되겠지. 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길리 없어.
          >너희의 힘이 필요해지는 국면도 드시 있을 것이다.
  • 킹덤/506화 . . . . 2회 일치
          * 산민족 진영에서 유독 빠른 한 무리가 튀어나온다. 이들은 비마족. 일 기마의 몇 배에 달하는 속도로 미적미적 성 안으로 들어가던 열미의 기마대를 급습한다.
          산민족들도 벌서부터 적을 죽였다며 비마족의 용맹을 칭송할 뿐, 다른 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다리가 성벽에 걸리면서 본격적인 공성으로 전환된다.
  • 킹덤/510화 . . . . 2회 일치
          * 술이 돌면서 딱딱했던 분위기도 풀린다. 간두는 숭원에게 낮에 신세진 일이 감사했다고 말한다. 숭원은 고마우면 강해지라며 "입만 산 간두"라는 별명을 부르며 쏘아붙인다. 그러자 송좌가 신병들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며 그의 과거사를 운운한다. 사실 검의 달인인 숭원도 첫 출진때는 쫄아서 오줌을 지린데다 누구 하나 베지 못했던 것이다. 신병들은 물론 미평 같은 고참들도 몰랐던 일이라 왁자지껄하게 놀림거리가 된다. 송좌도 그때 옆 부대에 있다가 우연히 들은 일이었다. 숭원은 다소 민망해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숭원이 17살이었고 오줌을 참고 있다가 적에게 기습을 당했었다. 그 뒤 한 동안 "오줌싸개 숭원"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미평은 드디어 숭원의 약점을 잡았다며 좋아라한다. 심지어 자기 첫 출진 때보다 심하다고 마구 놀려대는데 숭원이 살짝 열받아서 "놀린 놈은 죄다 쯤 죽여놨다"고 날을 새우자 조용히 찌그러진다.
          * 창담은 막사에 홀로 있다. 열미성에서 받은 임무 직후, 형은 혼신의 사격으로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좌절한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그에겐 창인이 성하라며 따귀를 때렸다. 창담은 이후로 막사에 틀어박혀 있다. 홀로 훌쩍이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 킹덤/511화 . . . . 2회 일치
          신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뛴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지휘관들, 그리고 성을 면밀히 살펴본 하료초는 진작부터 알던 내용이었다. 하료초는 말해봐야 시끄러울 테니 일부러 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왕분은 직접 공격한 주제에 그런 것도 몰랐냐고 핀잔한다.직접 싸워보면 국문치곤 손맛이 없는 걸 알았을 거라면서. 신은 비신대와 산민족이 강해서 그런 거라고 박한다.
          만일 함곡관처럼 난공불락의 요새였다면, 대로 조나라로서는 업의 코 앞에 적의 전진기지가 생긴 꼴이다. 하지만 쉽게 빼앗겨도 쉽게 되찾을 수 있게 만든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적이 열미를 뚫고 왕도에 진입했을 때 조는 그 병력에 대응하는 한편 미리 태행산맥에 잠복시킨 병력을 운용해 열미성을 급습, 열미를 탈환함과 동시에 적이 후퇴할 "출구"를 차단해 버린다. 이것만으로도 적 병력은 포위섬멸되는 형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 킹덤/514화 . . . . 2회 일치
          이신은 학살을 막은 왕전의 지시로 그를 좀 다시 본 것 같지만, 군사인 하료초는 이제 참는게 한계에 달했다. 병량이 있으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이런 소도시를 털어봐야 20만 대군이 먹을 양으로는 턱도 없다. 게다가 여기를 치면서 나절 넘게 시간을 허비했는데 이는 조군에게 그만큼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하료초가 불같이 화를 내자 이신도 할 말을 잊는다. 몽념도 내심은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가 드러내놓고 발하지 않는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 때문이다.
  • 킹덤/515화 . . . . 2회 일치
          * 공손룡군을 막으러 간 양단화군은 마평평야에서 그들과 맞선다. 그러나 진을 펼친 채 특별히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룡군이 꾀어낼 요량으로 자극해 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격렬하게 응하긴 했으나 전면적인 접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단지 공손룡군의 발을 묶겠다는 전략일 수도 있었으나, 상황은 대다. 오히려 공손룡이 그들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열미를 막은 시점에서 진군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다. 뭘할 생각이든, 지금부터는 한 시 한 시가 목을 죄어온다. 공손룡은 이런 사실을 들어 곧 생각없이 왕도권에 들어온 걸 뼈져리게 후회하게 될 거라 장담한다. 그때 부하가 새로운 보고를 가져온다. 적들이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가? 공손룡은 잠시 헤아려 봤으나 곧 "상황은 변한게 없다"는 답을 내고 그쪽이 조금씩 움직이면 이쪽도 조금씩 따라가면 그뿐이라 여긴다.
  • 킹덤/528화 . . . . 2회 일치
          [[로조]]라고 자신을 밝힌 견융왕. 존재감에 압도된 조군 장수들을 돌아보던 그는 바로 옆에 있는 공손룡을 "애꾸눈"이라 부르며 이 군의 총대장이냐고 물었다. 뜻하지 않게 무시를 당한 순수수는 그 대편에서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냐"고 빈정거리며 자신이 총대장이라 밝혔다. 그러자 견융왕이 그렇냐고 웃으며 "볼프"라는 부하 장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순수수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다. 견융왕은 거기에 박을 미뤄둔 채 순수수가 이민족말을 구사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순수수가 밝히길 그건 흉노의 말이었다. 견융왕은 그 솜씨가 유창하다고 칭찬하는 한편 순수수의 행색을 면밀히 살폈다. 갑옷에 새겨진 늑대 문양. 견융왕의 시선이 거기에 멈췄다.
  • 타루 . . . . 2회 일치
         == 음 ==
         * [[허밍 어 스테레오]] - 〈스웨터〉
  • 태영호 . . . . 2회 일치
         2000년 12월에 [[영국]]과 북한이 수교를 맺고, 2003년 4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이 정식 개설되자, 1등 서기관 신분으로 런던에 파견되었다.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 대사의 뒤를 잇는 2인자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일적인 견해이다.
         20년간 중요 외교관으로 지내던 태영호는, 2016년 갑작스럽게 탈북하게 된다. 태영호는 2016년 여름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태영호와 친분이 있었던 [[BBC]]의 스티브 에번스 한도 특파원은, 개인적으로 태영호와 만나면서 직전까지 탈북을 하려는 어떤 눈치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 토리코/376화 . . . . 2회 일치
          * 네오는 낭왕 기네스의 앞발 한 쪽을 뜯어먹지만 그 이상으로 격 당한다.
          * 레이저는 네오의 족을 스치며 우주까지 날아가 몇 개나 되는 별을 부순다.
  • 토리코/391화 . . . . 2회 일치
          * 하신이 사라진 코마츠 일행.
         다른 팔왕들은 변변한 활약도 없이 그대로 리타이어. 사천왕은 그 팔왕 만큼의 기여도 못해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뭔 일이 생겨도 절대 위험하지 않던 코마츠도 하신이 사라지는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대로는 사망 확정?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2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 일부 부대가 자이!(Banzai!)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됨
  • 톤데모 . . . . 2회 일치
         가타카나로 '톤데모'라는 것은 매우 강한 의미가 있어서, 특히 커다란 오해, 망상에 기하여 세워진 이론을 주장하고, 일적인 학문계의 상식과 어긋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뜻한다. [[유사과학]]이나 [[유사역사학]], [[음모론]] 등의 부류가 여기에 들어간다.
  • 트로피코 4/진영 . . . . 2회 일치
         각각의 진영은 각기 다른 요구를 하며, 이들을 만족시켰을 경우 존경심이 올라간다. 면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존경심이 내려가는데 관계가 험악한 지경일 경우 특정한 행동을 해서 플레이어에게 지장을 줄 수 있다. 이 행동은 해당 진영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면 사라진다.
          * 역자보다 많은 수의 병력
  • 특별고등경찰 . . . . 2회 일치
         일제시대의 [[정치경찰]]. 천황제에 대하는 사회운동과 사상을 단속한 [[경찰]] 조직이다. 특고(特高)라고 약칭되며 악명을 떨쳤다.
         1910년의 통칭 '대역사건'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의식이 심화되어 설치되었다. 당초 사회주의자에 대한 감시를 맡았던 특별고등경찰은 점차 조직이 비대해지고 권력이 강화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일 국민들에 대해서도 감시가 심해져서 악명을 떨쳤다.
  • 특촬물 . . . . 2회 일치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는 '''특수촬영물'''(特殊撮影物)의 약자. 넓은 의미로는 특수촬영기법이 사용된 모든 영상물을 말하지만,[* 오죽하면 [[닥터후]]나 [[히어로즈]]와 같이 특수효과로 점철된 [[드라마]]들도 특촬물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크게 보자면 틀린말도 아니긴 하다)--한 술 더 떠서 [[텔레토비]]도...--][* 대표적으로 몇 년 전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에서(여기선 특촬물 관련 글도 같이 취급한다) 일부 회원들이 저 두 작품을 두고 '이것도 특촬이다'라며 도배하면서 논쟁이 일어났다가 잠시 동안 특촬 관련 게시글이 금지가 됐었다.] 일적으로 '특촬물'이라고 하면 전대물, [[괴수]]영화 같은 일부 장르의 영상물에 한정된다. 특수효과를 뜻하는 약어인 SFX(Special Effect)가 영상물 전의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SF]]와 헷갈리지 말자! [[디워]]의 경우가 --애초에 이 영화 자체가 여러가지로 까이지만-- SF와 SFX를 구별 못한 대표적 사례로, SF영화라고 홍보했다가 엄청난 빈축을 사기도 했다.
  • 페어리 테일/491화 . . . . 2회 일치
          * 제이라는 메이비스의 마력이 리셋되면서 그녀의 무의식을 기으로 부활. 그래서 그녀가 제이라를 인지하게 되면 사라진다.
          * 대로 "아이린 쪽이 딸"이라는 가능성도 생겼다.
  • 페어리 테일/500화 . . . . 2회 일치
          * 동맹군도 스프리건 12을 상대로 수세에 몰리면서 전적인 전황은 좋지 않다.
          * 브랜디쉬는 스프리건12의 진정한 무서움을 모른다고 하지만, 나츠는 오히려 "페어리 테일의 무서움을 모른다"고 박한다.
  • 페어리 테일/501화 . . . . 2회 일치
          * 격으로 걷어차이는 루시.
          * 루시는 붙잡힌 상황에서도 격을 가한다.
  • 페어리 테일/507화 . . . . 2회 일치
          *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시 공격을 감행한다. 코브라가 오거스트의 마음을 읽는데 오거스트도 똑같이 코브라의 마음을 읽는다. 공격은 해보지도 못하고 지팡이에 맞고 날아가는 코브라. 완전히 리타이어한 듯 했던 레이서도 다시 한 번 스피드를 살려 접근해 보는데 오거스트는 "느리다" 한 마디로 일축하며 기절시킨다. 미드나잇은 "스파이럴 페인"이란 기술로 오거스트 주변의 땅으로 옭아매는데, 그는 "재미있는 마법이지만 나도 습득한 것"이라며 그들이 있는 일대를 회전시켜서 격한다. 꼼짝도 못하고 당하는 일행. 제라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한다.
         오거스트는 상대방의 마법을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치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데 위력이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오거스트의 마법이 사실은 사&배가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떡밥이 나온다.
  • 페어리 테일/509화 . . . . 2회 일치
          * 라케이드 드래그닐과 대치하고 있는 카구라 미카즈치. 제레프의 아들이라는 말에 문한다. 라케이드는 정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제레프의 아들이라고 강조한다. 유키노 아그리아, 렉터와 프로시는 "드래그닐"이란 성을 듣고 나츠 드래그닐을 떠올린다. 라케이드는 내친 김에 그가 제레프의 동생이며 자신의 숙부에 해당한다고 폭로한다. 충격을 받는 유키노와 카구라. 라케이드는 그들에게 나츠와 만나는걸 기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 카구라의 공격은 여지없이 막히고 단 한 순간에 라케이드의 격이 날아든다. 라케이드의 손짓만으로 카구라가 베인다. 그 카구라 조차도 이 일격으로 무너진다. 라케이드는 그 고통도 곧 쾌락으로 변할 거라며, 카구라의 "품위없는 마법"이란 말에 수긍한다. 하지만 그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는 거니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 페어리 테일/513화 . . . . 2회 일치
          아이린은 여유롭게 방어, 격하는데 엘자는 발로 마검을 휘두르는 등 묘기에 가까운 기술까지 선보인다.
          * 엘자는 폭발을 뚫고 상공에서 "요란의 검"으로 무수한 검격을 날려 격을 가한다. 폭발과 참격의 난무로 어마어마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웬디는 섣불리 해치웠다고 생각하지만 엘자는 이정도로 당할 상대가 아니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18화 . . . . 2회 일치
          * 엘자는 400년이나 묵은 불행 같은건 없지만 자신도 나름의 불행과 싸우며 지금의 삶을 손에 박한다.
          * 엘자는 그녀의 불행은 알겠지만 그래도 자신은 지지 않겠다며 격한다. 아이린은 네까짓게 뭘 아냐며 발광하지만 엘자에게 치명상을 주진 못한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2회 일치
          그건 이클립스를 사용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뛰어넘은 여파로 시간이 뒤틀렸는데, 시간 자체에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수정력"이 존재하는 듯 하다. 그것이 작동하면서 시간의 틈새와 그 안에 있는 무의 마력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 시간의 틈새 속은 완전한 "무" 자체이며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아크놀로기아]]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제랄은 그녀의 계획이 "아크놀로기아를 유인해 시간의 틈새에 가둔다"는 것임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런 힘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안나는 자신이 그걸 숨겨놨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웬디는 정말로 그 공간이 시간의 틈새냐는 질문을 한다. 안나는 1년 전 [[대마투연무]] 때 이클립스가 다시 열리고 그 "구멍"이 응했었다고 대답한다.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가 다시 복도로 나와서 일행에게 작전개요를 전달한다. 크리스티나호는 시간의 틈새를 우회한 뒤 그 앞에서 아크놀로기아를 기다린다. 아크놀로기아는 시간의 틈새가 있는 줄 모르므로 그대로 직진, 자기도 모르개 틈새에 접촉한다. 그러면 소멸. 바보같이 간단한 작전이다. 엘자는 정말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웬디와 제랄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하지만 안나는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부족해 보이는데, 유일하게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가 남아 힘을 보탠다.
          * 하지만 이미 엉망인 배는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추락한다. 히비키는 다시 무리라며 그 배는 자신들만 몰 수 있다고 소리친다. 안나는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고 다시 키를 잡기 위해 힘을 내는데, 누군가 그녀보다 먼저 키를 붙잡는다.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다. 자신에게 조종을 맡기라고 말한다. [[제니 리아라이트]]과 [[이브 티름]]은 그가 보이지 않는걸 눈치챈다. 그가 이런 형태로 희생하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뜻밖이라는 얼굴의 안나에게 이치야가 말했다.
  • 페어리 테일/539화 . . . . 2회 일치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마룡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봉인하고 모든 것이 끝난 것 처럼 보였다.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봉하고 크리스티나호의 생존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상륙해 상태를 추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의 틈새가 닫힌 있을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한다. [[웬디 마벨]]이 이것을 발견. 웬디가 하늘의 균열이 있다고 말하자 일행이 술렁인다. 저것은 아무리 봐도...
  • 페어리 테일/545화 . . . . 2회 일치
          * 웬디는 여전히 [[샤를(페어리 테일)|샤를]]과 함께 지내며 종종 라미아 스케일을 방문하고 있다. 본인은 딱히 하고 싶어하진 않지만 아이돌 노릇도 계속 하는 중이다. 올해도 [[셰리아 브렌디]]와 감사제에서 공연했다. 그보다 가운 소식은 셰리아가 조금씩 마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웬디는 그런 소식을 빠짐없이 루시에게 말하곤 했다.
          * 다른 길드들은 대체로 전쟁 전과 다를 게 없다. 세이버투스는 매년 하는 푸드 파이터 대회를 또 개최했고 또 [[미네르바 올랜드]]가 석권했다. 최종 경쟁자였던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를 압도적으로 앞지르는 스코어. 블루 페가수스는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가 IOY 자리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 중. 변동이 심한건 머메이드 힐. 주간 소서러의 전속 모델팀으로 발탁되면서 [[카구라 미카즈치]]가 관심도 없던 모델 일을 시작했다. 어쨌든 다들 잘 지내고 있다.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2회 일치
          * Technician - Breacher - Fire Trap: 트립마인이 폭발하며 4m 경에 10초간 불을 지르게 된다.
          * Technician - Breacher - Fire Trap Ace: 트립마인이 폭발하며 6m 경에 20초간 불을 지르게 된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2회 일치
         === 일적인 에셋과 사전계획 목록 ===
         3일에 한번 등장하는 하이스트. 안전가옥을 습격한 경찰들이 안전가옥 어딘가에 쌓아둔 돈더미를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하이스트이다. 경찰들이 일정량 이상 현금 가방을 가져가면 실패. 일정량의 수준은 선택한 난이도 마다 달라진다. 면 현금을 뺏기지 않고 경찰의 어썰트를 세번 막아내면 성공한다.
  • 포렴을 팔로 밀다 . . . . 2회 일치
         조금도 응이 없어, 보람이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노렌(暖簾)이란, 상점의 입구 같은 곳에 천을 커텐처럼 쳐둔 포렴(布簾)을 뜻하는 말이다. 포렴을 팔로 밀어봤자, 아무 응도 없이 곧 원래대로 돌아오니 '포렴을 팔로 밀다'란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 포스탈 리덕스 . . . . 2회 일치
          >맹렬한 딧불이들이 동굴 벽에 나타나 지구를 먼지로 만든다. 와라, 작은 벌레들아. 와서 우리가 짠 거미줄을 보거라!
          정육면체형 로켓발사기. 일 로켓과 열추적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적이 쏘는 로켓은 F키로 엎드려서 피할 수 있다. 보통은 그냥 달려서 피하겠지만.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2회 일치
         '''프라이머리'''(Primary, {{본명|최동훈}}, 1983년 1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DJ 겸 음악 프로듀서이다. 과거 [[다 크루|Da Crew]]의 레이블 [[가라사대]] 소속이었으며, 이후 [[빅딜 레코드]], 타일뮤직을 거쳐 현재는 [[아메바컬쳐]]의 전속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프라이머리 & 마일드 비츠 (Primary & Mild Beats), [[프라이머리 스쿨]] (Primary Skool), 프라이머리 스코어 (Primary Score) 등 여러 프로젝트 그룹으로도 활동하며 밴드 음악을 베이스로 한 힙합 장르를 기본으로 재즈, R&B 등을 섞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빅딜 레코드]]를 동료 뮤지션들과 설립해 [[데드피]]의 《[[Undisputed LP]]》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힙합씬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힙합 싱글을 수상한 [[가리온]]의 《[[무투 (음)|무투]]》, [[다이나믹 듀오]]의 《[[Band of Dynamic Brothers|죽일 놈]]》, [[슈프림팀]]의 1집 《[[Supremier]]》 등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절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상가상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절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백…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 하리수 . . . . 2회 일치
         [[2001년 3월]]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였으며 같은해 1집 '템테이션'을 발표하고 가수가 되었다. 이후 영화배우, 방송 출연 등을 하였다. .<ref name="Transsexual entertainer testing the boundaries of South Koreans' Confucian ideals" /><ref name="Harisu Superstar">Markus Augustus, "Harisu Superstar", ''Giant Robot'', issue #28 p.56-59.</ref> 한편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삶 자체의 엄청난 변화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한 언론사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나름의 ‘상품가치’를 설파하였다. 그는“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으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요? 자신의 상품가치를 뽐내는 건”이라 했다.<ref name="repircj">[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65613 “성전환 상업적 이용 심하지않나” “내 상품가치 뽐내는게 어때서요?”] 국민일보 2001.07.18</ref> 기자는 또 그에게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수술후유증이라도 나타나면 몸이 상할텐데…”.그녀에 대한 관심이 최근 폭발하면서 화장품 CF,드라마,영화 출연에 이어 음까지 준비하고 있는 상황.“걱정은 고맙지만 모든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피곤을 몰라요”라고 답했다.<ref name="repircj"/>
         [[2003년]]에는 [[중화민국]] [[중국 텔레비전 사업|CTV]] 채널의 드라마 《하이 내사랑》 에도 출연하였다. 한편 그는 데뷔 초부터 꾸준한 안티팬을 유지하고 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264372 연예인, 이럴 때 악플 양산한다!] 조이뉴스 2007.05.30</ref> [[2004년]] [[7월 2일]]에는 2년간 [[성남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ref>[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0407/sp2004070213570332380.htm 하리수는 고향 성남시 홍보대사] 스포츠한국 2004.07.02</ref> 이후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등의 방송에 출연하여 활동하였고, [[2006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 하이큐/214화 . . . . 2회 일치
          * 우카이 코치는 이번 세트는 전적으로 서브가 엉망이었다며 굳은 표정으로 한 세트 연장전을 신청한다.
          * 플레이 중 카게야마는 평소(히나타)의 응을 생각하고 토스를 올리는데 아무도 받지 못한다.
  • 하이큐/218화 . . . . 2회 일치
          * 츠키시마가 토스를 올리는데 높이가 어정쩡해서 격에 실패한다.
          * 고시키가 대놓고 허접하다고 갈구는데 츠키시마는 실책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박도 못한다.
  • 하이큐/219화 . . . . 2회 일치
          * 카게야마는 "주위의 능숙함에 이끌려간다"고 생각할 정도로 팀원 전의 수준이 높다.
          * 하지만 가장 짝였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줬다는 평을 받는다.
  • 하이큐/220화 . . . . 2회 일치
          * 카게야마는 호시우미의 점프를 기으로 히나타의 점프를 개량할 방법을 모색한다.
          * 이 훈련 덕에 선수들의 서브 실력이 전적으로 향상되었다.
  • 하이큐/227화 . . . . 2회 일치
          * 시합 후, 히나타 쇼요는 보다 능숙하게 "뒤섞이는" 플레이로 적진을 교란, 아즈마네 아사히의 득점으로 연결한다.
          * 종에 들어선 아즈마네가 완전히 부활. 특유의 파워로 블록을 격파하며 자신감을 회복한다.
  • 하이큐/228화 . . . . 2회 일치
          * 히나타가 하는 연습은 혼자하는 리시브 연습법인데 우선 높이 튕긴 공을 받아 위로 패스하고 공이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지면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복한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면 여러 동작을 중첩해야 해서 만만치 않은 훈련. 당연히 나츠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지만 히나타는 능숙하게 복한다. 여동생에게 자랑하는데 지나던 어머니는 "허무하지 않냐"고 딴죽을 걸어서 김을 빼버린다.
  • 하이큐/230화 . . . . 2회 일치
          아니나 다를까 카게야마 토비오가 런닝을 하겠다고 숙소를 이탈하려 한다. 히나타까지 편승해서 나서는데 엔노시타는 제일 문제아 두 명을 콘크리트 정글에 풀어놓을 수 없어 대한다. 게다가 쓸데없이 밤잠을 설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진짜 곤란하다. 엔노시타는 츠키시마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말도 꺼내기 전에 거절부터 당한다. 츠키시마의 짐작대로 그에게 인솔을 부탁하려는 것. 엔노시타는 어차피 츠키시마도 괜히 어슬렁거리는게 진정이 안 되는거 아니냐고 꼬집는다. 츠키시마는 부정은 못하면서도 "내가 저 바보들을 따라갈 수 있겠냐"고 대꾸하는데 거기에 대한 대비는 완벽하다.
          카게야마는 "작은 거인 시절은 요요기 쪽"이라며 찬물을 끼얹는데 히나타가 분위기 좀 맞추라고 극렬히 발한다.
  • 하이큐/238화 . . . . 2회 일치
          점수는 20 대 18로 2점차. 여기서 츠바키하라가 두 번째 TO를 사용한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적의 흐름을 끊고 자군 선수들을 격려하려고 하는데 TO에서도 선수들이 신경스는 건 마이너스 템포. 보고 응은 할 수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늦어버린다.
          * 아무튼 이토록 중요한 타이밍에 데뷔하게 된 이와무로. 같은 포지션이라 자연히 키노시타와 [[야마구치 타다시]]의 이목도 쏠린다. 그런데 둘은 이와무로의 얼굴을 보자 마자 한결 같은 응을 하는데.
  • 하이큐/246화 . . . . 2회 일치
          [[엔노시타 치카라]]가 이것을 놓치지 않는다. [[키노시타 히사시]]와 [[나리타 카즈히토]]는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엔노시타가 망쳤다고 원망한다. 하지만 엔노시타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썸 수준이 아니라 응으로 보면 이미 타나카를 좋아하는게 틀림없다는 폭로를 저지른다.
          * 원래도 몰라보게 자라버린 카노카를 어색해했는데 낮에 엔노시타가 "썸이다"라고 했던 얘기가 의식돼 엄청나게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둘은 쮸뻣거리며 영양가 없는 이야기나 주고 받으며 변죽만 울린다. 그러다 갑자기 카노카가 속도위을 한다.
  • 하이큐/248화 . . . . 2회 일치
          * [[야치 히토카]]가 1시합이 2세트로 접어들었다고 알려온다. 카라스노도 슬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시합 준비를 마친다. 오늘은 카라스노가 세컨드 유니폼. 이나리자키 측은 검은 색 유니폼이다. 히나타는 세컨드 유니폼이라도 [[니시노야 유]]는 주역 같은 맛이 난다고 감탄한다. 대로 카게야마한테는 오렌지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가 "넌 전신 귤색"이라는 따가운 팩트폭력을 당한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그렇게 음침한 소릴 하자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는 그가 실성한 줄 안다. 하지만 정대였다. 그런 엄청난 "격차"가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 하이큐/252화 . . . . 2회 일치
          * 이런 변화는 벤치에 모인 카라스노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그 소리만 듣고도 누나가 왔음을 짐작하고 움찔한다. 선수들의 이목이 응원단으로 모였다. [[히나타 쇼요]]가 맨 처음 [[타나카 사에코]] 누님을 발견했다. 이 태고팀은 사에코가 결성한 팀으로 원래는 축제날 공연하려고 준비한 것이다. 그녀가 태고를 두드리는 모습에 했는지 시마다와 타키노우에는 자기들 보다 연하인 사에코를 누님이라 부르고 있다.[* 둘은 25세. 사에코는 21세.]
          * 자리를 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번에도 리시브가 문제다. 딱 한 박자가 늦어서 헛리시브. 공이 그대로 떨어지나 싶었는데, 천운인지 어떤지 히나타의 발등을 때리고 솟아오른다. 완전히 들어갔다고 생각하던 카라스노 벤치에선 [[시미즈 키요코]]가 "발에 맞았다"고 말하면서 안도한다. 대로 이나리자키에겐 선수부터 감독까지 "저게 뭐꼬!"라고 입을 모아 황당해한다.
  • 하이큐/256화 . . . . 2회 일치
          * 카라스노의 벤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진행 중이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츠키시마가 저렇게 대단하지만 언제나 전열에 있는 건 아니며 그 자리에 들어갈 [[히나타 쇼요]]는 응만 좋지 쓸데없는 데서 뛰어오르곤 한다고 가열찬 지적을 가한다. 찔린 히나타가 과민응. 그때 [[엔노시타 치카라]]가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히나타를 찾는다며 부른다.
  • 하이큐/257화 . . . . 2회 일치
          * 히나타를 따로 불렸던 우카이 코치는 그에게 "쌍둥이 하나를 맡기마"라는 말을 건냈다. 즉 미야 오사무를 전담마크하라는 얘기. 솔직히 히나타에게 츠키시마 수준의 블록을 요구하는건 완전 무리. 사신경이 좋긴 하지만 상대의 페이크에 화려하게 걸리는게 단점. 리드블록에 열심히 참가하는 건 좋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팩트폭력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히나타. 하지만 그렇기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
          * 이나리자키의 첫 TO에서 코치가 이런 방침을 전원에게 전달한다. 카라스노의 괴짜 속공은 히나타의 기동력을 전제로 언제 어디서 어떤 각도로든 때려넣는게 장점. 하지만 미야 형제는 오사무의 원래 포지션인 우익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히나타가 아츠무를 전담마크하고 카게야마와 [[타나카 류노스케]]가 좌익과 센터를 리드 블록으로 막는 걸로 대응해본다. 히나타가 오사무를 얼마나 틀어막느냐가 관건인데, 히나타가 제대로 도움닫기만 하면 도달점이 팀내에서 가장 높고 응도 빠르니 기대해볼만하다.
  • 하일권 . . . . 2회 일치
         2009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3단합체 김창남>을 연재하기 전에 기획하였던 수영만화를 조금 수정, 각색하여 준비하였다. 중학교 때 1등과 장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배수구는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수영복을 달라고 하여 변태로 오인받게 된다. 결국 배수구는 아버지가 교감선생님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배수구는 수영복사진을 찍다 담임선생님에게 들키고 만다. 수구부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수영장에서 벌어진 일을 눈 감아주는 대신 여장을 하고 수구부에 들어오라고 배수구에게 제안한다. 결국 배수구는 김소녀라는 가상의 이름을 가진 소녀로 수구부에 들게 되고, 수구부에 들어오면서 자기와 같은 갈등과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면서 그 갈등을 견디어 나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WATERCUB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목욕의 신' 기 쿠키런 브랜드 웹툰
  • 하재숙 . . . . 2회 일치
          * [[SBS]] [[내 마음 짝]](2015) - 천은비
  • 하춘화 . . . . 2회 일치
         하춘화의 재능을 알아본 하춘화의 아버지는 그녀를 서울 동아예술학원에 다니게 했고 거기서 8개월 동안 노래를 배우게 한 뒤 가수로 데뷔시켰다. 이후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를 발표해 크게 성공하면서 하춘화의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음은 [[1971년]]에 처음으로 냈는데 이 음의 노래인 '물새 한마리'가 히트하면서 꽤 많이 팔렸고 [[1971년]] 고봉산과 '잘했군 잘했어'를 듀엣으로 불러서 이걸로 TBC에서 4년 연속 여자가수상을 수상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배 가수였던 [[이미자]], [[패티김]], [[김상희]], 문주란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정상급 여가수로 성장했다.
  • 한동욱 . . . . 2회 일치
         2003년 하기, KOR(온게임넷 스파키즈)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 중, 한동욱은 재차 슬럼프에 빠지며 개인리그 및 프로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소속팀과의 원만치 못한 관계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이를 둘러싼 e스포츠 팬들의 거센 논쟁과 관심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한동욱, 온게임넷 스파키즈, 이명근 감독을 둘러싼 이른바「한동욱 사태」는 2007년 9월 7일, 한동욱이 [[위메이드 폭스]]로 이적하면서 일단락되었다.
  • 한방의학 . . . . 2회 일치
         4세기 중엽 [[한도]]의 도래인을 통하여 일본에 한방이 전파되었다.
         [[일본]]에는 [[금나라]], [[원나라]] 시기에 정립된 금원의학(金元医学)이 전래되었는데, 이러한 의학을 후세방(後世方)이라고 부른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사회 전적으로 일본 국학 부흥과 복고 열풍이 불어, 『상한론(傷寒論)』과 『금궤요락(金匱要略)』을 중시한 고방(古方)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양자를 절충하겠다는 절충파, 더욱 고문헌의 고증에 중점을 두겠다는 고증파가 나타난다.
  • 한병주 . . . . 2회 일치
         [[한성부]] 출생이며 1884년에서 1886년까지 [[충청도]] [[청원군|청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1886년에서 1892년까지 [[청주시|충청도 청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1892년 [[한성부]]로 귀향하였고 줄곧 [[한성부]]에서 성장한 한병주는 1898년에서 1911년까지 경기도 시흥 양천향교에서 유교 성리학 훈도를 지냈으며 1919년 [[경성부]]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하였고 1920년 2월 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성지부 교통국 국장 대리(大韓民國 臨時政府 京城支部 交通局 局長 代理)으로 활동하였다. 이어 같은 해 1920년 2월 25일 자택에서 김태규(金泰奎)로부터 김창의(金昌義)가 보내온 인쇄물 100여 장을 받았다. 김창의는 당시 임시정부 산하 평북 독판부(督辦府)의 내무참사(內務參事)로 국내 [[연통제]] 조직 예하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쇄물은 군무부 포고 제1호라는 제목 아래에 '서로 함께 분기하여 일본 제국의 기을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한병주는 이것을 받고서 1920년 2월 29일, 김순원(金純元), 오정주(吳政柱) 등에게 각 5매씩을 교부하고, 독립 시위 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로 인하여 체포된 한병주는 1920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1년 만기출감하였다. 이후 1922년 3월, 한국독립당 입당하여 이후 조선 광복(1945년)이 지난지가 3년 후인 1948년 3월까지 한국독립당에 당원 직위하였고 1948년 3월, 한국독립당을 탈당하고 낙향을 하였다.
  • 한상원 . . . . 2회 일치
         ;개인 음
         == 세션 참여 음 ==
  • 한성식 . . . . 2회 일치
         * [[2000년]] 《[[칙왕]]》 ... 링 아나운서 역
         * [[2010년]] 《[[가운 살인자]]》 ... 보급소 역
  • 한용덕 . . . . 2회 일치
         [[2006년]] 시즌 중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지연규]]의 1군 합류와 함께 1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41623& 한화, 우완 조성민 1군 올리고 최동원 코치 2군행] 《Osen》, 2006년 7월 24일 작성</ref> [[2006년]] 시즌 종료 후 열린 전지 훈련에서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법을 전수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249270 신인 삼총사, '신무기 장착으로 2년차 징크스 넘는다'] 《조이뉴스》, 2007년 2월 21일 작성</ref> [[2007년]] 시즌 중 [[이상군]]이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됨에 따라 재활군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733318& 한화, 1군 투수코치에 이상군]《연합뉴스》, 2007년 8월 22일 작성</ref>
  • 함인섭 . . . . 2회 일치
         [[일제 강점기]] 후 [[황해도]] [[황주군]] [[춘광원예학교]](黃州春光園藝學校, 6년제, 소학교 과정) 교사와 [[경기도]] [[자동농업학교]](自東農業學校) 교사로 교단에 섰다.
         === 생애 후 ===
  • 함중아 . . . . 2회 일치
         기업가를 겸직하기도 한 그는 2002년 해외산 양주 판매 관리법 위 혐의로 적발된 바 있다.
         === 음 ===
  • 핫라인 마이애미 . . . . 2회 일치
          이동키가 전된다.
          칼을 착용하면 들고 나오는 근접무기. 일적인 공격으로는 상대를 기절시킬 수 밖에 없다. 처형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
  • 해원군 . . . . 2회 일치
         [[인성군 이공]]의 3남(三男)으로 출생한 그는 일찍이 [[1619년]] '''해원정'''(海原正)에 책봉되었는데 아버지 [[인성군]]이 정공신 이귀(李貴)의 핍박 섞인 모함으로 인하여 모역모 혐의를 받자 [[1628년]]을 기하여 형 해평군 · 해안군, 아우 [[해양군]] 등과 아울러 역신의 후손이라 하여 [[제주도|전라도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뒤 [[1635년]] [[제주도|전라도 제주]]에서 [[울진군|경상도 울진]]으로 이배되었고 2년 후 [[1637년]] 석방되었다.
  • 허건엽 . . . . 2회 일치
         직구 평균 구속이 140km대 후이고, 볼넷 비율이 낮아 상대 타자의 출루를 막는데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2014년]] 2군에 2점대 후이라는 준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1군에 콜업되지 않아 [[안치용(야구선수)|안치용]]처럼 "불교 등의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왔고, 여기서 나온 별명이 '''[[석가모니|허가모니]]''', '''[[이슬람|허슬람]]'''~~허슬두가 아니다!~~ 이 있다. 다만 2군 기록 기준 30이닝을 던져 삼진(18개)보다 볼넷(22개)가 많은 점이 흠.
  • 헤소린 가스 . . . . 2회 일치
         이 에피소드는 텐도무시 코믹스 판 25권, 후지코 F. 후지오 대전집에서는 19권에 수록되어 있다. 잡지 개재는 1979년 「테레비 군(てれびくん)」10월호[* 일적으로 도라에몽이 개재되던 학습지가 아니다.].
         사실 이 단편이 발표된 1979년은 일본에서 [[각성제]](히로뽕)이 남용되어, 제2차 각성제 남용기라 불리던 시기이다.[* 제1차 각성제 남용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물자로 남은 히로뽕이 남용되던 시기.] 이러한 세태를 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헤타레 . . . . 2회 일치
         은어로서 쇼와 시대에서 부터 쓰였으며, 간사이 지방에서는 이전부터 일적으로 쓰였다. 헤이세이 시대 이래로는 TV방송에서 쓰이게 되면서 젊은이들을 시작으로 전국의 일인들에게 퍼졌다.
  • 현정건 . . . . 2회 일치
         '''현정건'''(玄鼎健, [[1887년]] [[6월 29일]] ~ [[1932년]] [[12월 30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ㆍ교육자이다.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 독립운동가로서의 다른 이름(아호)은 '''읍민'''(揖民)이며, 소설가 [[현진건|현진건(玄鎭健)]]의 형으로 현진건의 일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혼인을 통해 [[박종화]](朴鍾和) 가문, [[윤치호]](尹致昊), [[윤치영]](尹致暎), [[윤보선]](尹潽善) 가문과도 겹사돈관계가 된다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을 하나로 집결시키려 애썼으나 [[1928년]] 봄에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 패륵로(貝勒路) 항경리(恒慶里)에서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 11월 9일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변동화(邊東華)ㆍ황의춘(黃義春) 등과 함께 공판이 열렸다. 이때 변호를 맡은 것은 최창조(崔昌朝)ㆍ이희적(李熙迪)ㆍ탁창하(卓昌河) 등 신의주 변호사 세 명과 손홍팔(孫洪八)ㆍ현석건(玄奭健)<ref group="설명">현정건의 친형이다.</ref> 등 진주 변호사 두 사람이었다. 현정건은 자신은 회합에 참여한 적도 없고 관련도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으나, 12월 12일에 신의주 지방법원은 [[치안유지법]] 제령(制令) 제7호 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언도하였다. 이에 불복하였으나 [[1929년]] 1월 19일에 평양으로 압송, 6월 10일에 열린 민사 제1호 법정 복심에서 원심의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0일에 만기출옥하였으나,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얻은 [[복막염]]으로 12월 30일 의전병원에서 향년 45세로 사망하였다.
  • 현주엽 . . . . 2회 일치
         서울 도성초등학교 6학년 시절 우연히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휘문중학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하였던 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 휘문중학교로 학교를 배정받아 농구특기생이 아닌 일학생으로 휘문중학교를 입학하고 다시 농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휘문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현주엽은 1학년 동안은 늘 벤치를 지켰으며 2학년이 돼서야 코트에 첫 출전을 하게된다. 현주엽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머니를 현주엽의 농구 코치가 알아보는것이 계기가 되었다.<ref name=sports>SPORTS 2.0 2008년 10월 3호</ref> 운동선수 생활을 하였던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선수가 된 후 항상 주위 사람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주엽은 그 당시 NBA 농구 비디오를 보면서 농구연습을 했고 그의 롤모델 농구선수는 매직 존슨이었다. 매직 존슨을 동경하여 2008년까지 줄곧 백넘버 32번을 달았다.
         현주엽이 대학진학후 첫 출전한 대회인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대는 연대를 맞아 28점차로 대패하게 된다. 이 경기후 고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라와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다시 최종결승전에서 고대는 연대에 시종일관 리드를 당했으나 시합종료 1분을 남기고 고대 양희승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동점상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하였고 연대 김택훈의 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고대의 우승을 이끌었다.<ref>경향신문 1994년 4월3일 “안암골 호랑이 "大(대)역전쇼””</ref> 대학무대 첫 대회에서 세간의 기대만큼의 활약을 벌이지 못한 현주엽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면에서 선배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ref>스포츠서울 1994년 4월 2일 [http://kids.olivercho.com/SportsLeisure/148 “현주엽,고려 우승의 "일등공신",인터뷰”]</ref> 그러나 이 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의 팀내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고, 고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무대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 홍광호 . . . . 2회 일치
         * 2018년 《맨오브라만차》 - 돈키호테/세르테스 役
         * 2012년 《맨오브라만차》- 돈키호테/세르테스 役
  • 홍병주 . . . . 2회 일치
         그의 동생 [[홍영주 바오로]] 역시 [[순교자]]이다. 그들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홍낙민 루카]]의 손자들이며, [[1839년]] 말에 순교한 [[홍재영 프로타시오]]의 조카들이다. 그들은 모두 명문 [[양]]의 후손이며, 그 가문 사람들 중 여럿이 [[한국 천주교]]에 기여한 바가 크다.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는 [[한양]]의 한 명문 [[양]]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홍낙민]]이 [[순교]]하자,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의 [[여사울]]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이어온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자로서 살았다.
  • 홍아름 . . . . 2회 일치
         | 소속사 = 어힐스컴퍼니
         | 웹사이트 = [http://www.urbanhils.co.kr/sub02/sub02_01.php 어힐스컴퍼니 홈페이지]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2회 일치
         1937년, 토오노에서 어느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경찰관이며, 아내와 아들, 두 딸로서 5인 가족이었다. 이 가족은 토오노 초등학교 바로 뒷편에 있는 경찰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경찰관인 아버지는 여자 버릇이 나빠서, 어느날 창녀와 둘이서 온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을 알게 된 아내는 질투한 나머지, 가족동자살을 하고 말았다. 먼저 아들과 둘째 딸을 교살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이었던 이쿠코(いく子)는 무서워서 관사에서 학교로 도망쳐서 체육관 뒤에 있던 공동 화장실에 숨었다.
         그런데 그것을 청소부 아저씨가 목격하였고, 어머니가 찾아와서 무서운 얼굴로 딸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자 아저씨는 이쿠코가 화장실 개인실 안쪽 세번째 칸에 있다고 말해버렸다. 어머니는 무서워하는 이쿠코를 데려갔는데, 다음날 아침 가족은 동자살한 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 황병일(1960) . . . . 2회 일치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1982)|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까지 삼성의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2년]] [[11월 4일]] [[두산 베어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애초에 삼성의 마무리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걸 보면 보다 전에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든가,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에 대한 [[두산 베어스]] 팬들의 평가가 안 좋으면서, 상대적으로 황병일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 한 때는 [[김진욱(야구)|김진욱]]을 경질하고 황병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후기 두산의 성적이 좋아지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 황석두 . . . . 2회 일치
         황석두는 [[1813년]]에 [[충청도]] [[연풍면|연풍]]에서 부유한 [[양]]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그가 [[과거 제도|과거 시험]]에 합격토록 그를 공부시켰다.
         황석두는 그의 아내를 [[천주교]]로 개종시켰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죽이려 들었다. 그러한 위협에 대한 응으로, 황석두는 3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온가족은 그의 무언증을 고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그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온가족은 애달퍼했고, 결국 황석두의 권면으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되었다.
  • 황옥 (1885년) . . . . 2회 일치
         의열단은 황옥, 김시현 등이 밀입시킨 무기류를 통해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 등을 동시에 테러하는 제2차 국내 거사를 준비했지만 김재진이 밀고하여 실패했다. 김재진은 재판 이후 흔적이 증발하는데, [[유석현 (1900년)|유석현]]은 1983년 [[중앙일보]]에 기고한 회고록에서 김재진은 가명이고 [[권태일]]이 본명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원봉, [[김지섭]] 등 소수만 탈출했고 황옥, 김시현, [[김진기]], [[조동근]], [[홍종우]], [[홍종무]], 유석현 등은 1923년 3월 15일에 체포당한다.
         황옥은 재판정에서 자신이 일본 경찰의 지시를 받고 의열단에 [[프락치]]로 잠입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유죄를 선고받고 1924년 징역 12년형에 처해졌다([[황옥 경부 폭탄사건]]). 1924년 [[김지섭]]이 [[도쿄 어소 투폭사건]] 때 사용한 폭탄도 황옥이 총독부 물건이라는 소인을 붙여 세관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후 [[결핵]]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1925년 12월 가출옥하였다가 1928년 5월 재수감, 1929년 다시 가출옥한 이후 해방될 때까지 행적은 불분명하다. [[일본 제국]]이 패망한 뒤 [[민특위]], [[조선독립운동사편찬발기인회]]에서 활동하다가 [[1950년]] [[한국 전쟁]] 때 납북되어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다.
  • 황의종 . . . . 2회 일치
         [[1973년]]에 〈대금과 아쟁을 위한 실내악〉 제1번을 발표한 이래 많은 창작 국악을 작곡해 왔다. [[1984년]] [[5월 18일]]에 첫 작곡 발표회를 열었다. [[1992년]]에 첫 작곡집 음을 낸 뒤, [[2001년]] 5집까지 발매했다.
         == 발표 음 ==
  • 회고록 . . . . 2회 일치
         개인이 자신의 삶이나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회고(回顧)하여 기록(録) 한 문서 혹은 서적. 개인적인 기록이므로 개인의 주관이 영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들이 말년에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물들의 회고록은 사료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회고록에도 개인의 주관이 영되어 있어서 [[자서전]]만큼이나 회고록의 기록은 검토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 히키니트 . . . . 2회 일치
         니트라고 해서 드시 히키코모리는 아니며, 히키코모리라고 해서 드시 니트는 아니다.
  • 1만 시간의 법칙 . . . . 1회 일치
         따라서 우리들은 선천적 재능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부에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노력이 가장 많이 영되는 게임에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 2세대주택 . . . . 1회 일치
          * 코토크 : https://kotobank.jp/word/%E4%BA%8C%E4%B8%96%E5%B8%AF%E4%BD%8F%E5%AE%85-349937
  • 3월의 라이온/120화 . . . . 1회 일치
         * 라이도는 캬바레 아가씨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했다고 믿고 있었지만 딸과 아내가 보기엔 '''철저히 호구 잡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아가씨는 라이도의 시합을 다 보지도 않고 사라져서 문자나 보내고 있다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1회 일치
          * 한편 상 위의 형세는 묘하게 굴러가고 옆에서 지나가던 기사들도 그걸 보고 깜짝 놀란다.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1회 일치
          * 시마다를 초대한 진구지 타카라 회장이 겨준다. 회장은 하야시다를 시마다의 친구인줄 아는데 옆에 있던 마담 미사키가 그를 알아본다.
  • DC 확장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DC 코믹스]] 기 [[영화]] 시리즈. 영화는 물론 [[드라마]], [[코믹스]] 등도 포함되어 있다.
  • DQN . . . . 1회 일치
          * 저학력, 저소득, 지성적
  • Europa Universalis 4 . . . . 1회 일치
         제작사가 와패니즈로 유명하다(...) 일본의 왠만한 다이묘들은 전부다 있으며, 몇몇 다이묘들은 서양에서 유명한 명군들보다 능력치가 높기도 하다. 거기다가 일본한테 붙어있는 사기 전통인 규율[* 쉽게 말해서 공격력+방어력. 규율이 높을수록 한번의 전투로 더 많은 상대군사를 잡을수 있고 더 늦게 패주한다.] 10%는 진짜(...)~~조선하면서 이것때문에 고통을 몇번 받은건지...~~[* 프로이센이 이념을 다열어야 규율 7.5%다. 이쪽은 개신교개종을 드시 하게되있기에 2.5%추가되서 10%긴 하지만.]
  • GLA . . . . 1회 일치
          *
  • I Didn't Raise My Boy to Be a Soldier . . . . 1회 일치
         미국의 전(反戰)가. 작사 알프레드 브라이언. 작곡 알 피안타도시.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이 참전하지는 않았던 1915년에 만들어졌다.
  • K리그 . . . . 1회 일치
         이와 관련하여 당연히 기존 K리그 회원들의 발이 거셌고, 특히 강등할 가능성이 높은 시민구단들이 가장 거셌는데 이에 대해 연맹이 내 놓은 해결책은 사실상의 세미프로인 군경팀을 일단 확정적으로 강등시키며, 군경팀을 제외한 최하위 팀을 추가로 강등하는 1+1 강등안을 발표한다. 때문에 군경팀인 상주 상무는 자동으로 강등되었으며, 추가로 상주를 제외한 팀들 중 최하위를 기록한 광주가 사상 첫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이런 이유로 응원팀이 K리그 챌린지에 있는 팬들은 ㅋㄲㅈㅁ를 외치는 중. 물론 여기와 관련없는 클래식 팬들은 매번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팝콘뜯고 구경하는게 다사다.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1회 일치
          1. 만23세이하 선수의 출전의무규정이 강화되었다. 2015시즌은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 중 U23선수가 교체명단을 포함하여 2명 이상이 포함되어야 교체카드를 3장 활용할 수 있었던 면에 2016시즌부터는 여기에 더하여 1명 이상은 선발출전이 의무화되었다. 단, 해당 선수가 연령별 국가대표팀이나 성인국가대표팀에 호출되어 공백이 발생한 경우에는 호출된 인원만큼 규정을 완화하여 적용한다.[* 수원 삼성을 예로 들면, 2016년 기준 23세 이하 선수인 권창훈이 국가대표팀에 호출될 경우엔 교체선수 명단에 23세이하 선수를 하나만 둬도 교체카드를 모두 활용할 수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1명이 더 차출되면 출전명단을 연령제한 없이 꾸릴 수 있다.]
  • LDK . . . . 1회 일치
          * 코토크 : https://kotobank.jp/word/LDK-447078
  • M25 최루탄 . . . . 1회 일치
         시위 진압용 [[최루탄]]의 일종. [[대한민국]]에서는 "사과탄"이라고 불렸다. 무게는 200g 쯤 되었으며 경 5m 가량을 최루가스로 뒤덮을 수 있었다.
  • MoniWikiTutorial . . . . 1회 일치
          * 사용자 ID: 영문으로 사용자 ID를 만들 경우 보통 소문자 구성된 사용자 ID를 만드는 것이 일적이지만, 위키위키에서는 FooBar같은 낙타식 사용자 ID를 종종 사용합니다. 한글로 만드셔도 됩니다.
  • OK 본 . . . . 1회 일치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 교육 과정을 밟으며, 1996년부터 랩 메이킹을 시작하며 [[힙합]]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NOMZ 프로젝트, 개놈 프로젝트 등 비정규 음에 참여했다. 1집 발매 이전에는 [[힙합플레이야]]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곡을 올리며 활동하였으며, 2005년 라디오 프로그램 Open Mic의 선발자로 출연했고, 이어서 구단지 독서실 1집 앨범을 발매했다. 이후 여러 언더 힙합 앨범에 참여하며, 2008년 구단지 독서실 2집 '라임왕'을 발매했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를 졸업하였다.
  • Oui Oui Marie . . . . 1회 일치
         [[프랑스]]로 파병간 미국 군인 "조니"가 프랑스 여성인 "마리"에게 해 청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RecentChangesMacro . . . . 1회 일치
         대부분의 위키위키에서 RecentChanges 문서는 위키의 가장 중심이 되는 뷰이며 위키위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 게시판에서 게시판 목록을 보는 것과 거의 같은 기능을 담당합니다.
  • T.O. 모로우 . . . . 1회 일치
         New 52에서는 [[스타 연구소]] 소속이며 [[사이보그]]의 아버지인 스톤 박사의 동료이기도 하다. 뉴52 저스티스 리그의 초을 다룬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워에서도 등장.
  • USS 뷰캐넌 . . . . 1회 일치
         취역한지 1년도 안 된 뷰캐넌은 대서양을 떠나 태평양에서 활동한다. 이후 뷰캐넌은 퇴역과 재취역을 복했다. 1922년 7월 7일 퇴역했지만 1930년 4월 10일 USS 소머즈(USS Somers)가 퇴역하며 재취역했다. 이렇게 태평양에서 활동하던 뷰캐넌은 1937년 4월 9일 다시 퇴역한다. 1939년 9월 1일,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미 해군은 해군력을 불리기 시작한다. 1939년 9월 9일, 뷰캐넌은 3번째 취역을 맞는다. 이후 뷰캐넌은 대서양에서 활동하다 1940년 9월 9일, 미국과 영국이 맺은 조약[* Destroyer for Bases Deal. 영국이 미국에게 기지를 대여해주는 대신 미국은 영국에게 구축함을 지원하는 조약.]에 의해 영국 해군에게 넘겨진다.
  • V-22 오스프리 . . . . 1회 일치
         2016년 12월 14일 주일미군 MV-22 오스프리가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60105&code=11141100&sid1=int|훈련중 오키나와 앞바다에 추락했다.]] 이전부터 오키나와의 전단체들은 오스프리가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더욱 불이 붙었다.
  • 가족같은 . . . . 1회 일치
         이러한 사례가 흔히 있다보니, 오히려 '가족같은 분위기입니다.', '가족같은 회사입니다.'라는 소개에 냉소적으로 응하는 분위기도 나타난다.
  • 가치제이 . . . . 1회 일치
         댓말로 엔조이제이(エンジョイ勢)가 있다. 이들은 게임에서 점수나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는 것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 강세정 . . . . 1회 일치
         == 음 ==
  • 강예빈 . . . . 1회 일치
         * 《전드라마》 (2005년, SBS)
  • 강중인 . . . . 1회 일치
         《[[삼천리 (일제 강점기의 잡지)|삼천리]]》에 〈최근의 도의 경제사범 ­국민의 신경제 윤리의 파악을 위하여­〉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경제사범을 "미증유의 국난"을 돌파해 "대동아를 건설하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순간에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집단으로 묘사하고, 이들은 국민의 일대수치이므로 엄벌주의로 대처할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관민이 일체가 되어 "일사보국의 성을 다함"으로써 성업을 어서 완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 강호 . . . . 1회 일치
         강호와 비슷한 무림(武林)이라는 말은 [[중화민국]] 시기에 나타난다. 강호와 무림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데, 강호가 일적으로 다양한 무법자의 세계를 가리킨다면 무림은 무술 문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로서 좀 더 한정적인 의미가 있다.
  • 강화종실 . . . . 1회 일치
         [[정조]] 시기에 권세가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였는데, 그녀를 원빈이라 하였다. 1980년 원빈이 사망하자, 홍국영은 은언군의 장남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서 장차 정조의 왕위를 이어받게 하려 했으나, 1786년(정조 10년) 담은 모죄로 유폐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은언군은 강화도에 유배된다.
  • 개미 . . . . 1회 일치
         인간만이 서로를 죽인다는 주장을 박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 개밥 . . . . 1회 일치
         과거 농촌에서는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를 개에게 먹으라고 줬으며, 현대에도 특별히 개를 신경써서 기르지 않는 경우에는 먹고 남은걸 대충 섞어서 개한테 먹으라고 준다. 음식 찌꺼기이므로 영양분은 있지만, 남은 잔을 마구 섞어버렸으니 사람이 먹기에는 겉모습이 이상하고 맛도 좋지 않아서 "개밥"이라고 하면 이러한 음식을 뜻하게 됐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1화 . . . . 1회 일치
          * 셋이서 신작 건슈팅을 하는데 봄바는 '''15만점 골렘'''이란 별명을 대며 으스대놓고 초 광탈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4화 . . . . 1회 일치
          * 우마루는 척 보기에도 너무 큰 TV테이블을 사자고 하는데 타이헤이가 대하지만 우마루는 "나를 못 믿는 거야?"라며 우겨서 결국 산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5화 . . . . 1회 일치
          * 타이헤이는 그걸 보고 "둘이 닮았다"고 하는데, 당사자들이 격렬하게 발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9화 . . . . 1회 일치
          * 베란다에 있었다고 만 맞는 말을 하는 우마루.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6화 . . . . 1회 일치
          * 그녀는 실핀에게 창피를 주지 않으려면 "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 일 것"이란 묘한 승부욕에 불타고 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1회 일치
          * 이것도 의외로 응이 좋다. 완전 동감하는 타이헤이. 회사에선 존대하던 것도 잊고 편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 건포인트/도전과제 . . . . 1회 일치
          일 경비원만 있는 임무를 선택해 들키지 않고 클리어하면 된다. 들킨다면 목격자를 죄다 패죽이면 되고.
  • 검은방 시리즈 . . . . 1회 일치
          전 시리즈의 개근하는 조력자. 강력 형사로, 1편의 사건 당시 허강민의 의도와 상관없이 납치당했다. 어쩌다가 납치당한 하무열로 인해 몰살로 끝나야 했던 허강민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 경기도 . . . . 1회 일치
         [[2017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경기도의 각 시와 인구와 면적은 다음과 같다. 인구는 12,783,741명이고 남여비율은 1.01로 전적인 [[성비|남초]] 지역이다. 시군별로는 [[포천시]] (1.11)와 [[연천군]] (1.11)가 가장 높고, [[시흥시]] (1.10), [[화성시]] (1.07),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1.06), [[오산시]] (1.06), [[안산시]] (1.05), [[안성시]] (1.05), [[가평군]] (1.05), [[이천시]] (1.04), [[안성시]] (1.04), [[양주시]] (1.03), [[파주시]] (1.03), [[양평군]] (1.02), [[여주시]] (1.02), [[수원시]] (1.01), [[하남시]] (1.01), [[김포시]] (1.01), [[남양주시]] (1.00), [[부천시]] (1.00), [[의왕시]] (1.00), [[구리시]] (0.99), [[군포시]] (0.99), [[동두천시]] (0.99), [[안양시]] (0.99), [[용인시]] (0.99), [[광명시]] (0.98), [[성남시]] (0.98), [[고양시]] (0.97), [[의정부시]] (0.97), [[과천시]] (0.95) 순으로 높다.
  • 경주시 . . . . 1회 일치
         |align="center"|그룹 사랑과평화 건
  • 고수희 . . . . 1회 일치
         * [[2012년]] : [[SBS]] 《[[패션왕 (드라마)|패션왕]]》 - 장 역
  • 골든 위크 . . . . 1회 일치
         골든 위크라는 이름은 이 시기에 "자유학교"라는 영화를 개봉하고 흥행이 정월, 오봉 연휴 이상으로 대성공한 것을 기념하여, 다수의 관객 동원을 목적으로 영화사 다이에이(大映)가 1952년 무렵에 만든 선전 용어였다. 이 용어가 각계에 퍼지게 되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선전 용어라는 이유로 골든 위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일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 공기교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주변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파악해서 행동하는 것을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고 표현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일적으로 이 같이 '공기를 읽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마치 [[종교]]나 신념 같이 이야기하고 [[동조압력]]을 격렬하게 발산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로 공기교라는 말이 태어나게 되었다.
  • 공명(배우) . . . . 1회 일치
         === 음 ===
  • 공산당 지도 원리 . . . . 1회 일치
         공산주의의 결정적인 민주적 요소이다. 소련의 영향을 받은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 지도 원리를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몇몇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이에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친 인물로는 [[카를 카우츠키]]나 [[로자 룩셈부르크]], --소련에서 쫓겨난 이후의-- [[레프 트로츠키]] 등이 있다.
  • 곽성문 . . . . 1회 일치
         * 제17대 국회 전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괴인 통카라통 . . . . 1회 일치
          * 통카라통에게 베인 자는 붕대에 전신이 감겨서 통카라통이 되어버린다. 통카라통을 만나면 드시 통카라통이 되며 집단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구성 . . . . 1회 일치
         결혼이나 입양 같은 일로 소속된 가(家)가 변경 되기 이전의 성씨를 가리킨다. 일본의 민법은 남편 또는 아내 중 하나의 성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 여성이 결혼하기 전에 가졌던 성씨를 구성이라고 한다. 대로 남편이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경우도 성씨가 바뀐다. 대체로 남편의 성으로 하는 경우가 90%.
  • 구자춘 . . . . 1회 일치
         1974년 9월 2일부터 1978년 12월 21일까지 제16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원래는 영등포-왕십리로 계획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거대 순환선으로 만든 사람이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만에 만들었다는 레전설이 나름 유명. 웃긴건 그렇게 날림처럼 노선이 정해졌음에도 정작 공사할 때 [[영등포역]] 경유 예정 구간이 [[신도림역]] 경유로 바뀐 것, 딱 한 곳만을 제외하면 딱히 난공사라 할만한 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자춘 시장이 포병 출신이어서 지도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레전설 일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근데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손정목]] 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다만 이는 좋게 봐줘도 2호선 한 노선 한정이고, 바로 다음 노선인 3호선부터 서울 지하철 노선의 선형은 '''온갖 병크'''가 터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서울/강남|강남]]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 이외에도 [[강남8학군|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의 명문고 이전]], 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다만 본인이 기안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고속터미널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지하철 3호선|3호선]]을 무리해서 끌어오느라 3호선의 선형에 '''지랄맞은 ㄷ자 드리프트'''가 생기는 원흉이 된다.], 금화터널 건설 과정에서의 [[독립문]] 이전, [[한양도성]] 일부 복원, 도심부 주차장 확충--당시 도시계획국장 [[손정목]]의 말을 안 듣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등을 추진하였다. 이런 그의 별명은 대표적으로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0110020920202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0-11&officeId=00020&pageNo=2&printNo=17237&publishType=00020|황야의 무법자]]'''였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별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1190032920600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1-19&officeId=00032&pageNo=6&printNo=9891&publishType=00020|붙었다]].~~관료계의 [[김태균(1982)|김별명]] [[박용택|별명택]]~~
  • 국제복싱기구 . . . . 1회 일치
         역사가 짧아 프로복싱 주요 4개 단체(WBA·WBO·WBC·IBF)에는 크게 밀리는 마이너 단체이다. 하지만 본부가 있는 미국이 프로복싱이 활발하여, 프로복서로서 경력 닦기의 일환으로서 IBO 타이틀에 도전하는 선수가 많다. 패전이나 납으로 타이틀을 잃은 선수가 IBO 타이틀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의외로 유명한 선수가 이 단체를 거쳐갔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나 [[매니 파퀴아오]]도 한때 이 단체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러다보니 타이틀이 공석이 되어 있는 때도 많은 편.
  • 궁가 . . . . 1회 일치
         일본의 궁가인 미야케는, 역사적으로 다소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게 된다. 본래 고대에 천황가의 방계후손은 [[신적강하]]라는 절차를 거쳐서 성씨를 받고 천황가에서 이탈하여 신하의 가문이 되는 것이 일적이었다. 하지만 후대에는 신적강하를 하지 않고 천황가의 일원으로 남으면서, 천황가의 분가를 창설하는 것이 허용되게 되었는데 이를 미야케라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천황가의 분가로서 미야케는, 천황가의 본류 혈통이 단절되면 양자로 입적하는 형식으로 천황가를 계승,유지하는데 공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 권민중 . . . . 1회 일치
         === 음 ===
  • 권수현(배우) . . . . 1회 일치
         * 《[[여교사 (2017년 영화)|여교사]]》 (2017년) - 장 역
  • 권은희 (1959년) . . . . 1회 일치
         * 2014년 6월 ~ 2016년 5월: 제19대 국회 후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권해효 . . . . 1회 일치
          * 아버지는 퇴역군인이셨고 3남매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권해효는 대학 재학시절 드시 장학금을 받아야했다고 한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한채 공부에만 전념했고 이것이 부채의식으로 남아 현재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 규동 . . . . 1회 일치
         밥의 양이 너무 많아서 규동을 비빔밥처럼 비벼서 먹으면 뭔가 답이 없는 상태가 되며(…) 밥과 고기를 조금씩 섞어가며 같이 먹는 것이 일적인 요령이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 . . . . 1회 일치
          2008년 발매. 발칸 도에서 리버티 시티로 온 밀입국자 니코 벨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1회 일치
         >이제 90년대 초이 되었습니다. Carl은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어머니는 살해당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어릴 적 친구들은 그저 재앙의 입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1회 일치
          그냥 쓰면 휘두르고 달리다가 쓰면 가아앙한다. 일 상태는 물론이고 이 상태로도 어그로를 안 끌지 않는다. 차 문을 떼어내기 좋다.
  • 기축통화 . . . . 1회 일치
         서독/독일의 마르크화는 1980년대 초에서 1999년 유로화 출범까지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비중을 늘려나갔다.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한편 [[친일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행정 심판 위원을 역임한 바가 있고,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하여 《서해안기름유출사고와 삼성중공업의 배상책임》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였다. 2008년 10월에는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에 대한 형사 소송 사건에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취지의 증언을 하였고, 2009년 6월에는 [[2009년 대한민국의 시국 선언|법률가 시국 선언]]에 참여하였다.
  • 김기철 . . . . 1회 일치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충주군 청년연맹위원장, 대동청년단 충주군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동청년단]]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대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무소속 조대연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후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독재에 대하여 자유당을 탈당하여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홍병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김대휘 . . . . 1회 일치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2월 11일에는 민혁당을 결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된 하피고인에 대해 국보법상 국가단체 구성죄 등을 유죄로 인정,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26118]</ref> 6월 15일에 1994년말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추종하는 국제사회주자들이라는 조직에 가입한 뒤 이 조직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노동자연대 등을 소지한 혐의 등으로 4월달에 구속되어 징역 3년이구형된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의 이적단체 가입혐의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는 것으로 보여 보석을 허가한다"고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44671]</ref>
  • 김덕현 (변호사) . . . . 1회 일치
         *친일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 김도균 . . . . 1회 일치
         [[JTBC]] 예능 프로 [[헌집줄게 새집다오]] 3월 3일 방영분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10년 넘게 살아 온 집을 공개 했는데 가히 충격영상급 주먹만한 먼지+머리카락이 온갖 구석을 굴러다니고 있으며 침대를 포함 먼지와 잡동사니들이 무진장 쌓여있다. 방이 있고 침대가 있는데도 거실에 이불 깔고 잘 정도. ~~그냥 청소를 하면 될 텐데~~ 유통기한이 2년 넘은 햇들이 그대로 식탁에 올라가 있으며 서랍장은 열어놓은 상태로 그냥 사용하고, 세탁한 빨랫감은 벽 옆에 산을 이루고 있다.
  • 김동준(제국의아이들) . . . . 1회 일치
         데뷔 초 "[[한가인]]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귀여운 얼굴과는 대로 근육이 탄탄해 [[맨즈헬스]] 모델이 된 적도 있다. 영상 등을 보면 보정 없이도 멋진 몸매를 갖고 있다.
  • 김미경(강사) . . . . 1회 일치
         양장점을 하는 어머니와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부모에 강한 대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음대를 나와서 광고 음악 등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으나 적성이 맞지 않아 월급을 타는게 미안했다고 한다. 후에 대출금을 받아 피아노 학원을 개설하여 운영하였고 여기서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29살 때부터 강연을 하고 싶어 강사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공부하는 생활을 7년 동안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보여준 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김민서(배우) . . . . 1회 일치
         중학교 3학년 때인 [[1999년]]에 '민트' 라는 3인조 [[걸그룹]]으로 데뷔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저 [[흑역사]]. [[2000년]]까지 활동한 후 해체했다. 김민서가 팀 내 큰언니였으며, 당시에는 "김세하"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이 사실이 해품달로 한참 뜨던 때 밝혀진 일이라 "[[왕비|중전]]에게 이런 과거가?"라는 응이 대부분이었다.
  • 김민제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김민제'''([[1986년]] [[11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이다. 종족은 [[프로토스]]이며 아이디는 '''BestGod'''이다. 2005년 하기 드래프트에서 Plus(현 [[화승 OZ]])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김병기(배우) . . . . 1회 일치
         * [[1982년]]~[[1985년]] [[KBS1]] 공드라마 《[[지금 평양에선]]》 ... [[김정일]] 역
  • 김상엽 (야구인) . . . . 1회 일치
         [[1993년]] 시즌 170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올랐으며, [[김시진]]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2번째로 기록한 탈삼진 1위였다. [[1995년]]에는 17승을 거둬 1990년대 초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상대적으로 투수진이 열악하였던 소속 팀 [[삼성 라이온즈]]의 특성상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했으며, 어깨 및 허리 부상으로 지속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1998년]] 이후에는 전력에서 이탈했다.
  • 김상희 (가수) . . . . 1회 일치
         | 데뷔작(곡)= KBS 전속가수로 데뷔 <br /> 1집 데뷔 음 《삼오야 밝은 달》
  • 김새해 . . . . 1회 일치
         * [[코파장의 동화수사대]] ([[KBS]])
  • 김석원 (금융인) . . . . 1회 일치
         [[행정고시]] 19회로 재무부 이재국•국제금융국에서 근무하였고, 재정경제부 중소금융과장, 금융•부동산실명단 총괄장, 보험제도과장 등을 거쳐, 일본 대장성에 파견 연구관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재정경제부]] 본부국장, 한국국제조세교육센터 소장, 미국 미시간대(금융연구센터)의 Visiting Scholar로서 활동하였으며, 금융감독위원회 기획행정실장, 금융감독위 및 [[금융감독원]] 합동대변인,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김석형 (역사학자) . . . . 1회 일치
         *《봉건지배계급을 대한 조선농민들의 투쟁(전4권)》(1960)
  • 김성겸(탤런트) . . . . 1회 일치
         2000년대 초 어린이 시청자들에겐 [[매직키드 마수리]]의 [[마파람]]으로도 기억이 남을 것이다.
  • 김성민 (1991년) . . . . 1회 일치
         | 이호의 적자 제준
  • 김수자 . . . . 1회 일치
         '''김수자''' ([[1957년]] ~ )는 [[뉴욕]], [[파리]], [[서울]]을 기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개념 미술|개념 미술가]]이다. 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특별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품하였다.<ref name="biography">Kimsooja Biography: http://www.kimsooja.com/biography.html</ref>그의 작업은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를 넘나들며 가장 첨예한 회화적 질문으로부터 예술과 삶의 조건들을 연계하여 다루어 왔고 이 시대를 치열하게 직면해 왔다. 구겐하임 빌바오(201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3), 밴쿠버 아트 갤러리(2013), 국제 갤러리(2012), 뉴욕PS1/현대미술관(2001)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30여 회의 주요 국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artndesign&idx=11956&pageNum=3|제목=SPACE Magazine|웹사이트=www.vmspace.com|확인날짜=2016-11-18}}</ref>
  • 김승환(배우) . . . . 1회 일치
         ||<|2> [[1996년]] || MBC 일일드라마 [[자고등어]] || 원준 ||
  • 김영준(1941) . . . . 1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시]]-제원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해원(1930)|이해원]]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 당직개편에서 인권옹호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2년 민주한국당 충청북도지부장에 임명되었다. 1983년 민주한국당 부총무에 임명되었다.
  • 김용준 (1904년) . . . . 1회 일치
         [[1928년]] 귀국한 후로는 [[서울특별시|서울]]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길진섭]]과 함께 [[목일회]]를 창립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작품 활동 뿐 아니라 미술사 연구와 미술 평론계에서도 선구자 격의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본래는 서양화가로 출발하였으나 목일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된 1930년대 후부터 [[조선화]]의 기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 그린 말년의 작품들은 조선화가 대다수이다.
  • 김운용 . . . . 1회 일치
         * 1961년 : [[장면]] 내각의 수 의전 추서관을 역임함.
  • 김유현 . . . . 1회 일치
         '''김유현'''([[1987년]] [[1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배우 김유현은 2015년 6월 7일 대구에서 9살연상 일인 사업가(건설회사 부사장)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당분간은 신혼생활에 충실할 예정이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7050100050700003393&servicedate=20150704 김유현 결혼, 9살 연상 건설회사 부사장과…'전우치' 등서 청순연기]]</ref>
  • 김인철 . . . . 1회 일치
          * 2017년 7월 청주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장정순은 상습 폭행건으로, 경질되고, 심정진이 새로 부임했는데, 과거 폭력전과가 있어서 해임되었다.]나온 기사에 따르면 은퇴 후 한화의 전력분석원, 스카우트를 맡을 때도 틈틈이 공부를 하는 '공부하는 야구인'이었으며, 현재 대학원 입학을 위해 공부 중이라고 한다. 나중에 꿈은 대학 강단에 올라서 제대로 된 야구인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또한 심판, 기록원, 스카우트 등 야구계 전에서 활동할 이들에게 체계적인 야구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일엽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귀국 이후 수술을 복하여 재활하였고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복무하던 중에 [[KBO 리그]] 복귀 유예 기간 규정이 지나 [[대한민국]]에서 활동이 가능해졌고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친 후 [[2007년]] [[1월 4일]]에 [[롯데 자이언츠]]에 [[신고선수]]로 입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0278662 롯데, 마이너 리그 출신 김일엽과 계약] - 뉴시스</ref> 하였으며,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1군에는 [[2008년]]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여 [[2008년]]에는 2승 1패 1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 3.21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에 들어서는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2009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선발 보직도 겸하였다. 그러나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아 [[2009년]]에는 승리 없이 5패, 평균자책 7.36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9년]] [[6월 21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KIA]]와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했음에도 단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5실점하여 강판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6210116 ‘데뷔 첫 그랜드 슬램’ 김현수 “만루포 처음이야!”], 《동아일보》 [[2009년]] [[6월 21일]]</ref> [[2012년]]에는 1군 1경기에 그쳤고 그마저도 대량 실점하여 평균자책 40.50을 기록한 후 방출되었다.
  • 김재권 (철학자) . . . . 1회 일치
         '''김재권'''(金在權, 제이슨 킴, Jayson Kim(or Jaegwon Kim), [[1934년]] [[9월 12일]] ~ )은 [[한국계 미국인]] [[철학자]]이다. [[브라운 대학교]] 석좌교수인 그는 [[심신수론]]을 창시한 이로도 유명하다.
  • 김정난 . . . . 1회 일치
         || 2008년 || KBS1 || [[너는 내 운명(드라마)|너는 내 운명]] || 소영 || ||
  • 김제남 . . . . 1회 일치
         광해군 시기에 서자들의 역모 고변에 연루되어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여 했다는 혐의로 사사되었고, [[인조정]] 이후에 복권되었다.
  • 김주승 . . . . 1회 일치
          * [[1991년]] 《10대의 항》
  • 김주환(탤런트) . . . . 1회 일치
         단역 - 뱃놀이 양 자제놈 4
  • 김지훈(1993) . . . . 1회 일치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고]] 역사상 처음으로 드래프트 지명을 받은 선수로서, 178cm에 75kg의 투수로서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최고 구속 148km, 평균 구속 140km 중대의 공을 던지면서 상위 지명이 예상되었으나 예상 외로 3라운드까지 밀렸다. 투타 양면에 재능을 보여 2011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는 내야수로 선발됐다.
  • 김찬돈 . . . . 1회 일치
         *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10월 30일에 영덕 오십천 제방 공사 등과 관련하여 지역 건설업체 이사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1600만원의 뇌물을 받은데 이어 지역 건설업자 2명한테 예산확보를 위한 중앙부서 방문 경비 명목으로 모두 13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뇌물수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우연]] 영덕군수에 대하여 징역 2년6월 추징금 16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29917]</ref>
  • 김청(1962년 6월) . . . . 1회 일치
         1998년, 늦은 나이에 중견사업가 배모 씨와 결혼하였으나 3일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후 5년여간 자숙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00년대 초에 복귀하여 지금까지 왕성히 활동 중이다.
  • 김충공 . . . . 1회 일치
         [[808년]](애장왕 9) [[당나라]]로부터 문극(門戟)을 하사받았다. 그뒤 [[각간]]을 거쳐 [[817년]](헌덕왕 9년) 이찬(伊湌)에서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였다. [[822년]] 헌덕왕이 동생 수종을 세자로 임명할 땍 [[상대등]](上大等)으로서 세자를 도와 정권을 장악했고, 당시 집사시랑(執事侍郞)인 녹진(祿眞)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823년]](헌덕왕 15년) 토벌대에 참여하여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김헌창]](金憲昌)의 란을 진압하는 데 가담했다.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집사부]][[시중]]을 지냈다. [[822년]]부터 [[835년]]까지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 김태환(1943) . . . . 1회 일치
         [[새누리당]]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를 두고 살생부가 현실이 되었다는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당연히~~ 후보는 강력 발하고 있다.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새누리당 [[장석춘]] 후보에게 밀려 떨어졌다.
  • 김현정 (1979년) . . . . 1회 일치
         * [[2012년]]부터 [[세계일보]] 미술[[칼럼]] '''''배우화가 김현정의 그림 토크'''''를 연재했다. 이 칼럼은 작가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평론하며 미술이론, 미술사 등에 관한 작가의 의견을 영하고 있다.
  • 김형인(코미디언) . . . . 1회 일치
         웃음충전소에 출연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웃찾사에 복귀했는데 웃음충전소 당시에는 삭 머리였다가 웃찾사 복귀 때는 머리가 많이 자란 걸 보니 녹화한 지 꽤 된 것 같다.
  • 김형일(배우) . . . . 1회 일치
         특이하게도 같은 시대를 다룬 드라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와 [[왕과 비]]에서 두 번 다 [[홍윤성]] 역을 맡았다. 한명회에서는 의리 있고 호쾌한 쾌남 역할이었으나, 왕과비에서는 대로 의리라고는 쥐뿔도 없이 박쥐처럼 이리저리 권세에 붙는 찌질이로(특히 세조 말 ~ 성종 초 부분에서) 표현되었다.
  • 김호근 . . . . 1회 일치
         * [[군산대학교]] 사무국장(일직고위공무원)
  • 김효진 (배우) . . . . 1회 일치
         * [[2013년]] : [[MBC 다큐스페셜]] 《사람과 동물, 려 인생 이야기 2부작》1부. 내 눈에만 보여요. - 내레이션
  • 까마귀 . . . . 1회 일치
         짝이는 물건을 모으는걸 좋아한다.
  • 나용찬 . . . . 1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괴산군수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전임자 [[임각수]]의 [[군수]]직 상실로 치러진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으로 2018년 4월 군수직을 상실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2016년 상기에 진행 중.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1회 일치
          * 집중 공격 속에서 잘 버티는 A 학생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는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격하려 하지만 또다시 그녀가 사라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1회 일치
          * 올 포 원은 타르타로스의 이름에 빗대서 "아무리 나라도 신에게 역하는건 고생스럽다"고 푸념투로 말하는데 [[올마이트]]는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며 정정해준다. 올 포 원은 그래서 뭘 원하냐고 묻는다. 이 면회가 그란토리노의 판단인지, 아니면 올마이트의 독단인지 묻고 또 왜 원 포 올을 쓰지 못하는 지금도 히어로 코스튬을 걸치고 있냐고 빈정거린다. 올마이트가 잘도 지껄인다고 쏘아붙이자 "오랜만의 대화"라며 기분이 들뜬 척 한다. 실제로 그는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어 "인간"과의 대화는 오랜만인 듯 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는 들어서 어쩔 거냐고 문한다. 바쿠고는 이미 확신에 찬 상태다. 그는 자신도 올마이트를 동경했는데 계속 돌맹이라고 생각했던 미도리야가 모르는 사이에 올마이트에게 인정받았음을 한탄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1회 일치
          * 올 포 원 풀 카울 8%의 위력은 [[미도리야 이즈쿠]]의 예측마저 벗어났다. 수치적으론 5%에서 8%로 올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약간의 차이가 [[바쿠고 카츠키]]의 응 속도를 초월하게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1회 일치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골목으로 들어오자 오버홀은 앞서 걷는 척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 에리에게 항기가 왔다며 고민이 많다고 푸념한다. 미도리야는 은연 중에 학대를 의심한다. 밀리오는 "힘들겠다"고 맞장구쳐주며 대화를 이어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1회 일치
          * A의 인턴은 한 명이 더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관서 지방의 "에스하"시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히어로네임은 "레드 라이오트". BMI히어로 [[패트껌]]의 사무소였다. 이곳은 빅3의 일각 [[아마자키 타마키]]가 인턴활동을 하고 있다. 히어로네임은 "선 이터". 왜소하고 음침한 모습의 타마키와 달리 패트껌은 엄청난 거구에 비만 체형. [[타코야키]]를 판 째로 들고 다니며 먹는 타입이다. 원래 키리시마는 직업체험 때 신세진 [[포스카인드]]에게 인턴 활동을 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걸 마침 무투파의 신인을 찾고 있던 패트껌이 픽업, 먼 관서에서 인턴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이것도 타마키의 중계가 있던 모양인데, 타마키는 [[토오가타 밀리오]]에게 떠넘기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나 보다. 키리시마가 너무 댓쉬해와서 무서웠다고 약한 소릴 한다. 패트껌은 "그 멘탈만 어떻게 하면 인재"라며 껄껄 웃는데 그 점이 더욱 타마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1회 일치
          >이제 복하지 않겠어. 나는...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1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은 당하는 중에도 밀리오가 자신을 "치사키"라 부르자 그 이름은 버렸다고 과민하게 응한다. 그의 본래 이름은 "치사키 카이"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1회 일치
          * [[아스이 츠유]]는 만신창이의 아이자와를 부축하고 있었다. 아이자와가 때마침 정신을 찾는다. 아이자와는 곧바로 무효화 개성으로 에리의 폭주를 제압, 긴장의 끈이 끊어진 탓인지 미도리야와 함께 에리도 쓰러지고 만다. 이로써 시에핫사이카이 급습 작전은 완전히 종료. 피해자의 확인과 뒷수습으로 이행한다. 우선 본래 목표였던 에리의 구출은 무사히 완료.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무실에 있던 [[키리시마 에지로]], [[패트껌]]도 구조된다. 랏파도 이때 같이 있다가 어이없이 제압. 오버홀이 감추고 있던 두목도 발견된다. 미도리야는 먼저 정신을 수습해 에리를 구급에게 넘기는데 마침 들것에 실려가던 [[서 나이트아이]]와 마주친다. 그는 호흡기를 단 와중에도 미도리야를 불러세우고 그가 자신이 예지한 것과 다른 미래를 만드는데 성공했음을 인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8화 . . . . 1회 일치
         교전 허가를 받은 학생들은 [[빌런 연합]]에 격하기 시작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2화 . . . . 1회 일치
          * 다비는 "[[올마이트]]와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고]]를 계속 흔들면 결국 사회 전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겠냐"며 자신들의 활동이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들을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3화 . . . . 1회 일치
          * 친구들이 문병을 오는데, [[지로 쿄카]]와 [[하가쿠레 토오루]], [[야오요로즈 모모]]는 아직도 퇴원하지 못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1회 일치
          * 아이자와는 원래 언론을 싫어하는 성미라 유도심문을 해대는 기자들에게 발할 것 같았지만, 깨끗하게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 인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1회 일치
          * 올 포 원은 머슬폼인 오른팔로 받아칠 거라고 예상해서 충격 전을 치지만 빗나갔다. 그는 올마이트의 속셈을 깨닫고 "오산했다"고 중얼거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1회 일치
          * 올 포 원은 격을 준비하는데 올마이트는 오른손으로 다시 원 포 올을 옮긴다.
  • 나폴레옹: 토탈워 . . . . 1회 일치
          도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캠페인을 추가한다.
  • 나폴레옹: 토탈워/러시아 . . . . 1회 일치
          * 이 바실리에비치 사바네예프(Ivan Vasilievich Sabaneev) - ☆×3
  • 난치병 모금사기 . . . . 1회 일치
          * 부유층에 대한 감.
  • 날갯죽지 조르기 . . . . 1회 일치
         체포술의 하나이며, 상대를 체포하거나 싸움을 말리는데 사용한다. 대로 범죄자가 피해자의 움직임을 봉쇄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 날조트랩 -NTR- . . . . 1회 일치
         오카자키 유마의 남자친구. 유마와 사귀면서 진도를 나가려고 하지만, 호타루와 유마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잘 풀리지 않는다. 1학년 때는 호타루와 같은 이었다.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호타루를 걱정하기도 한다.
  • 남능미 . . . . 1회 일치
          * 금련
  • 남명렬 . . . . 1회 일치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순정에 하다]]》 - 이정구 역
  • 남성진 . . . . 1회 일치
         * 2017년 《[[비정규직 특수요원]]》 ... 구 장 역
  • 남일해 . . . . 1회 일치
         == 음 ==
  • 남효온 . . . . 1회 일치
         [[조선]] 초기의 학자. 재야 [[사림]] 학자의 일원으로서, [[생육신]]의 일원이다.[* 단, 생육신은 사육신과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류한 점이 있는 개념으로, 당대에 세조의 집권에 대한 이들은 생육신으로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몇 명 더 존재했으며, 특히 남효온은 다른 생육신들에 비해 한두 세대 이후의 인물로 시대 차이가 매우 커서 논란이 있다. (당대에는 '권절'과 같은 인물들의 인지도가 더 컸다.)]
  • 네드 켈리 . . . . 1회 일치
         1855년, 빅토리아 주 베버리지에서 [[아일랜드]] 출신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0대 중후 때부터 중국인을 습격하거나 산적의 공범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지만, 두 경우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 노영하 . . . . 1회 일치
         * [[2004년]] 맥심배 입신최강전 본선(정수현 상대로 백집승 이후 상대 박영훈을 패배)
  • 노예 . . . . 1회 일치
         19세기 경에 미국이 노예제를 폐지하려고 하자, 노예를 부리던 남부 주의 대다수가 "우리의 권리와 이권을 빼앗으려고 한다 빼애액!"을 외치며 미국에서 탈퇴해버렸다. 미국은 [[남북전쟁|이 란군들을 철저히 짓밟은 후]]에야 다시 미국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다.
  • 노현정 . . . . 1회 일치
         * [[2005년]] : [[KBS1]] 《[[전국노래자랑]]》 상기 결선
  • 농가 . . . . 1회 일치
         농가(膿家)적 사고방식을 상기와 같은 행동 양식을, 절대지상으로 여기며 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제하는 생각. 또는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농가뇌(農家脳)」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농가(膿家)」와 같이, 최저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농업 종사자는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1회 일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다(落ちる)"가 옳지만, "눈에서 비늘을 떼내다(取れる)"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널리 쓰이는 면에 그 유래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 듯 하다.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1. [[아니에스(이노센트 투어)|아니에스]] - 관계는 최악. 상성 자체가 맞지 않는다. 아니에스는 엄청나게 순진해서 니나가 놀려먹어도 응을 하지 않아 니나 입장에선 최악의 상대.
  • 니세코이/213화 . . . . 1회 일치
         * 아마 팬들도 잊어버렸을 초의 친구노트가 재등장했다.
  • 니세코이/216화 . . . . 1회 일치
          * 사실 하루와 이치죠의 어머니, 코사키의 어머니와 마리카의 어머니도 모두 고교 동창. 심지어 한 이었다.
  • 니세코이/223화 . . . . 1회 일치
          * 클로드가 격렬하게 대한건 "츠구미가 아가씨(치토게)와 결혼하길 바래서."
  • 니세코이/226화 . . . . 1회 일치
          * 오노데라의 열쇠로 자물쇠가 열리고, 안에서는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편지와 지가 나온다.
  • 니세코이/229화 . . . . 1회 일치
          * 오노데라 외에도 전적으로 탈락 히로인들 대우가 좋지 않다.
  • 다운증후군 . . . . 1회 일치
         [[머리]], [[귀]], [[손가락]]이 작고, 얼굴이 편평해진다.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다. [[심장병]], [[지적장애]], 내장 이상 등을 수한다.
  • 다음 . . . . 1회 일치
         == 일 명사 ==
  • 단기대학 . . . . 1회 일치
          * 코토크 - 단기대학 https://kotobank.jp/word/%E7%9F%AD%E6%9C%9F%E5%A4%A7%E5%AD%A6-94934
  • 단축 도메인 . . . . 1회 일치
         일 도메인 주소를 약 15자 이하로 줄여주는 서비스, 무조건 140자 이하로 글을 작성해야 했던 초기 [[트위터]]에서 많이 쓰였다.
  • 대구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효정]] - 북구(대구)
  • 대군 . . . . 1회 일치
         [[조선왕조]]의 [[작위]]. [[태종]] [[이방원]] 시기에 만들어졌다. [[왕자]], 적손에게 주어진다. 적손이 아닐 경우에는 그냥 군(君).[* 이 '군'이라는 칭호는 그 외에 정으로 폐출된 왕에게도 붙여진다. [[연산군]]이나 [[광해군]], 왕좌를 빼앗긴 뒤 '노산군'으로 격하당한 [[단종]] 등이 그 예.]
  • 대잠비행정 . . . . 1회 일치
         일본은 소련 잠수함의 위협에 대처하려는 목적으로 1960년대 후에 대잠비행정을 개발하였다. 이렇게 하여 개발된 신메이와 PS-1은 막대한 설계비와 제작비를 들였으나, 기대한 만큼 대잠성능이 나오지 않아 돈낭비(…)였다는 비판을 받았다.--플레이스테이션 1은 잘나갔는데--. 결국 일본은 육상대잠초계기로 방향을 돌렸으며, PS-1은 US-1, US-2 등의 수상기로 개량되어 해상구조 임무 등에 사용되었다.
  • 대한민국 FA컵 . . . . 1회 일치
         AFC 챔피언스 리그에 올라가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국제 무대에서 팀의 이름을 알려서 팀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면에 특별히 보상을 줄 수 없었던 리그컵 대회는 점차 인기가 떨어지다가 폐지되는 수순을 밟으면서 FA컵과 명암이 교차하였다.
  • 더 선 . . . . 1회 일치
         이 신문은 타블로이드 신문 답게 뻘 기사가 많으므로 쯤 걸러듣는게 좋다.
  • 데부스 . . . . 1회 일치
          * 물론, 뚱뚱하다고 드시 추녀라고 할 수는 없다.
  • 데키콘 . . . . 1회 일치
         번역으로는 속도위 결혼 등이 있다.
  • 도서관 . . . . 1회 일치
         현대의 도서관은 책을 대출할 수도 있게 해준다. 납 기한은 지키는게 좋다. 안 지키면 연체료를 물거나 일정 기간 대출이 불가능해진다.
  • 도지한 . . . . 1회 일치
         |2016||KBS2||[[화랑 (드라마)|화랑]]||박류||
  • 돌비 . . . . 1회 일치
         일적으로 액체를 데우면 온도가 끓는 점에 도달했을 때, 거품이 나오며서 점차 부글부글 격렬하게 끓어오르게 된다. 그러나, 액체가 끓는 점에 도달했음에도 드물게 거품이 일지 않고 끓지 않는 과열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과열된 액체는 진동이나 이물질을 혼입하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게 된다.
  • 돗자리 . . . . 1회 일치
         용도는 상술한 대로 맨땅바닥에 까는 것. 맨땅에 그냥 앉으면 흙이나 먼지 등이 옷에 묻기에 이러한 것을 막으려면 드시 필요하다. 사람이 쓰는게 아니라 고추 등을 배치해서 말리는데 쓰기도 한다.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1회 일치
          * 신체 자체가 기본적으로 체온변화에 대응하는 폭이 넓다. 파충류는 인간이라면 쓰러질 정도인 체온에서도 활동할 수 있고, 대로 인간이라면 얼어죽을 체온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 드라콘 . . . . 1회 일치
         벨로흐(K.J.Beloch)는 드라콘이란 그리스어로 [[뱀]]을 뜻하는 말이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테네인들은 아크로폴리스에서 본래 [[뱀]]을 숭배하였으므로 드라콘법이란 이 뱀신을 모시던 사제들이 뱀신의 종교적 권위에 따라서 포한 법이라고 한다.
  • 등신대 패널 . . . . 1회 일치
         [[등신대 피규어]]처럼 [[키모이]]하지 않은, 일적인 상품. 물론 이 상품에 [[키모이]]한 행위를 저지르면 매우 도를 넘은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 딩크 . . . . 1회 일치
         아이를 양육하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보다, 수익을 늘려서 개인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선택을 하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건전하게 양육하는데 많은 돈과 노력이 소모된다는 어려움도 영되어 있다.
  • 딴따라 . . . . 1회 일치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20세기 후 까지도 연예인에게 [[저작권]], [[초상권]] 등의 권리가 제대로 존중되지 않았고 연예계는 [[조폭]]이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에, 연예인이라고 해도 돈도 제대로 못 벌고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등 [[3D]] 업중에 가까웠다. 결국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고달플 수 박에 없었고, 그래서 이런 인식이 부모님 세대에게 뿌리깊이 남아 있었다고 보면 된다.
  • 떠있는 섬 . . . . 1회 일치
         현실에서 물 위에 떠있는 섬은 실제로는 [[물풀]], [[물이끼]], [[이탄]] 같은 것이 뭉쳐서 떠다니는 것이다. 위에 풀이 자라서 언듯 보기에는 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지이 연약하여 땅과는 다르다.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1회 일치
          갱단 보스. 영화 극초에 경찰의 습격으로 운영하던 술집 하나를 폐쇄당했다. 이후 밀고자의 갱단을 살해, 그 장면을 목격한 조와 제리가 도망치는 계기가 되었다.
  • 라늬 . . . . 1회 일치
         == 음 ==
  • 라미란 . . . . 1회 일치
         ||<|3> [[2006년]] || [[괴물(영화)|괴물]] || 발동동 아줌마[* 괴물이 나타난 초에 송강호를 붙잡고 딸 구해달라고 애원하던 아줌마.](단역) || - ||
  • 라오우 . . . . 1회 일치
         [[북두신권]]을 사용하는 인물로, [[켄시로]]의 사형. 동생이자 사제로 [[토키]]가 있으며, [[쌍둥이]] 형으로 [[수라국]]을 다스리는 [[카이오우]]가 있다. 후부에는 라오우의 아들도 등장한다. 그 외의 혈연으로 여동생 [[사야카]]가 있다. 항상 타고 다니는 애마 흑왕호가 있으며, 자신의 사후에 흑왕호는 켄시로에게 물려준다.
  • 라이트노벨 . . . . 1회 일치
         문학의 한 장르로, 말 그대로 가볍게 읽고 즐기는 것이 목적인 소비지향적인 [[소설]]을 뜻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라이트노벨은 몰라도 최근에는 주로 오타쿠들이 소비하는 소설로 여겨지고 있다. 장르의 특성상 러브코메디나 또는 전쟁물 등 말초적인 자극을 주는 내용들이 자주 보인다. 2000년대 중~2010년대에는 국산 라이트노벨도 만들어졌으나 인기 저하 및 웹소설의 부흥으로 사실상 멸망했다고 보고 있으며, 여전히 시장에선 일본산 라이트노벨의 영향력이 크다. 또한, 작품들 중 인기있는 라이트노벨의 경우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 랑그릿사 . . . . 1회 일치
         대로 파이어 엠블렘 역시 랑그릿사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전의 계보(1996)에서는 먼저 나온 랑그릿사 2[* 정확히는 멀티엔딩 요소와 더불어 분기에 따른 연애까지 갈라지게 만드는 [[슈퍼패미컴]] 이식작 데어 랑그릿사를 가리킨다. 메가드라이브판 랑그릿사 2는 빛의 후예 엔딩 하나만 있는 리아나 일직선이다.]를 연상케 하는 '연애 요소'를 도입한데 더해서, 단순히 엔딩에서 맺어지는 상대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2대에 걸치는 싸움을 묘사하는 등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 램즈혼 달팽이 . . . . 1회 일치
         하지만 대로 너무 대량으로 번식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일명 '폭풍번식'이라고 부른다. 생존능력이 강해서 쉽게 번식하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번식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는 평가.
  • 러시안 룰렛 . . . . 1회 일치
          *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은 5/6의 높은 쪽이 아니라, 1/6의 낮은 확률을 맞춘 것인데, 여러 게임의 일론에서 낮은 확률 쪽을 더 높이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러시안 룰렛을 할 사람은 이 점을 진지하게 고려해보도록 하자.
  • 런던 . . . . 1회 일치
         20세기 중에는 대규모 황산 안개가 발생,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 레프카 . . . . 1회 일치
         나중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라오 박사를 확보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최고위원회를 위협해 이용하는데 결국 코난 일행의 대활약으로 실패하며 몸이 망가진 라오 박사와 대화할수 있는 라나를 끌고 도망치려 하나 역시 코난에 의해 실패하고 추락한다. 그러나 사실은 살아있어서 최후의 부하들[* 이중에 한명은 대 의견을 냈다고 사살했다.]과 같이 기간트를 움직이는데 이것조차 코난 일행에 의해 실패한다. 최후에는 기간트 선두 쪽의 소형 탈출선으로 탈출하려 하나 이것조차 실패하고 결국 기간트와 같이 바다에 침몰한다.[* 코난이 손을 잡아주기는 했으나 이때 다른 부하들이 몰려와 매달렸고, 이에 손을 놓쳐버렸다.]
  • 렉스 루터 . . . . 1회 일치
         [[대머리]]인데 사실 처음에는 대머리가 아니었으나 스케치 미스가 일어나고, 이게 응이 좋아서 대머리가 되었다.(...)
  • 로라 로라 . . . . 1회 일치
         구엔의 정략적 선택은 효과가 발군이라서 지구와 문레이스 일부를 제외하고 일 병사들에게 수염([화이트돌])의 파일럿 = 로라라는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구엔의 사심도 들어가 있는 것이 구엔은 로랑을 로라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길 바랬던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의 존재로 구엔은 빼도박도 못하는 ~~[[로리콘]]~~[[쇼타콘]]으로 확실시되었다. ~~잠깐. 첫 만남때가 로라가 15살때잖아?~~
  • 로리타 패션 . . . . 1회 일치
         주로 갈색 등 수수한 색조를 기으로 한다. 과거 서양의 아동복을 이미지 한 의상.
  • 로미오 메일 . . . . 1회 일치
         주로 이전까지 갑자기 오만하게 굴고 상대를 얕보고 있던 려자가 이별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상냥하게 대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웃음 평가가 높다. 스스로 곤란에 처해있는데도 허세를 부리면서 강한 척 하면 더욱 웃음 평가가 높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1회 일치
          * 산악민족 : 제국의 판도 하에 들어온 소수민족 중 하나. 특정한 지역에 정주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이 때문에 납세 의무 같은 것도 지키지 않아 일적으로 제국 내에서는 천대받고 있다.
  • 류원정 . . . . 1회 일치
         == 음 ==
  • 리듬게임 . . . . 1회 일치
         일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저걸 다 보고 맞추는건지 신기한 게임. 고수의 경지로 갈수록 이 정도는 심해진다.
  • 리스트 컷 . . . . 1회 일치
         리스트 컷은 주로 사춘기에서 20대 젊은이, 그 중에서도 미혼 여성에게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손목에 2,3회 상처를 입히는 것이며, 손목 이외에 팔다리, 얼굴, 복부 등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리스트 컷은 복되거나, 습관화 하는 일이 많지만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참조링크(일본어)
  • 리얼리즘 FPS . . . . 1회 일치
         이런 특성 하나하나가 진입장벽을 크게 높이기 때문에 게임을 가볍게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기피되는 장르이다. 대로 [[밀덕]]이나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좋아한다.
  • 리전 오브 몬스터즈 . . . . 1회 일치
          [[늑대인간]]. 강력한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후각도 뛰어나다. 외모가 [[언더월드]]나 [[ 헬싱]] 등에서 나온 완전히 늑대형 머리를 지닌 늑대인간과 달리 고전영화의 늑대인간과 닮았다.
  • 마기/294화 . . . . 1회 일치
          * 지금 알리바바가 하려는건 국제 조례 위이라며 단호히 제지하는데.
  • 마기/299화 . . . . 1회 일치
         알리바바는 티토스를 비롯, 가운 얼굴들과 재회한다.
  • 마기/307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이끌어주고 존경을 받는 임금이지만, 알리바바는 정대로 함께 나아가고 백성을 존경하는 임금.
  • 마기/314화 . . . . 1회 일치
          * 벌써 한 번 죽어서 실망시킨 만큼 드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알리바바.
  • 마기/315화 . . . . 1회 일치
          * 사실 백룡이 퇴위를 전후로 부자연스러운 사건이 많았는데 너무 정확하게 같은 시기에 란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 마기/317화 . . . . 1회 일치
          * 한편으론 연홍염이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던 것도 가족간의 유대였다는 점, 그리고 알리바바가 신드바드의 대안으로서 부각되는 이유 또한 유대라는 점에서, 유대에 의한 대립과 목이 마기의 주된 테마임을 확인할 수 있다.
  • 마기/318화 . . . . 1회 일치
          * 무의 입장은 바뀌지 않고 동맹국들은 격하게 발한다.
  • 마기/321화 . . . . 1회 일치
          * 그는 "그래도 할 거야"라고 하면서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신의 승인은 필요치 않고 드시 성궁에 갈 거라고 다짐한다.
  • 마기/322화 . . . . 1회 일치
          * 자신의 마법을 사 당해 타격을 입는 신드바드.
  • 마기/323화 . . . . 1회 일치
          * 우고는 한 번 정점에 달한 것은 드시 쇠하며 "옛 왕"은 "새로운 왕"으로 대체되는 법이라 한다.
  • 마기/324화 . . . . 1회 일치
         우고가 [[정신줄]]을 놨다는게 밝혀지면서 유력한 최종보스 후보로 확정되나 싶었지만 신드바드가 소멸한게 아니었다는 전이 나오면서 모호해져 버렸다.
  • 마기/326화 . . . . 1회 일치
          * 그때 유난이 이상하게 응하는데 몸이 덜 회복된 탓으로 여기고 조사를 마친다.
  • 마기/329화 . . . . 1회 일치
          * 그 말을 들은 신드바드는 생각에 잠겼다가 "너와 내가 동등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문하다. 알리바바는 그렇기에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거고 승부에 있어 부딪히고 고민하고 기뻐하며,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즐겁고 설레는 것이다.
  • 마기/336화 . . . . 1회 일치
          * 바알은 이 던전은 신드바드가 14살 때 공략한 던전이며 지금은 그의 신념을 영해 재창조되었다.
  • 마기/337화 . . . . 1회 일치
          * 옥염은 그때와 같은 뻔뻔한 얼굴로 쥬다르에게 다가온다. 쥬다르의 내면을 영한 듯 파괴와 굴복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주위를 멤돈다. 신드바드는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어린 쥬다르는 당장 죽이라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마침내 옥염이 그의 몸에 손을 대자 쥬다르는 자신의 결론을 내보이는데.
  • 마기/347화 . . . . 1회 일치
          * 그때 알리바바가 신드바드의 말에 박한다.
  • 마기/351화 . . . . 1회 일치
          * 방금 전까지 세상의 앞날을 놓고 열띈 토론을 하고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생각마저 돌려놓았던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 갑자기 던전이 사라지고 성궁에 밤이 찾아온다. 성궁의 관리자 [[우고(마기)|우고]] 또한 영문을 알 수 없는 사태. 우고는 혹시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이 발동된게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지만 알라딘은 방금 전 신드바드가 그 마법을 막지 않았냐고 박하는데, 그 신드바드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 마기/352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 [[알라딘(마기)|마기]], [[연백룡]], [[쥬다르]]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배신하고 적으로 나타난 [[다윗(마기)|다윗]]을 집중 공격한다. 그러나 어떤 공격으로도 신이 된 다윗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윗은 자신이야 말로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완성해 보다 상위의 신들을 계속 타도해나가겠다 선언한다. 만일 그걸 막고 싶거든 여기서 자신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알리바바 일행은 드시 그를 타도하겠다고 말한다.
  • 마로 . . . . 1회 일치
         [[미토 고몬]]의 등장인물. 특별히 이름은 없고 일적으로 이치조 삼위(一条三位)라고 불린다. 통칭 '마로'.
  • 마마토모 . . . . 1회 일치
          * 코노크 : https://kotobank.jp/word/ママ友-635692
  • 마블 퍼즐퀘스트 . . . . 1회 일치
          이 게임은 따로 피로도 게이지 같은 것은 없으나, 히어로들은 전투시 소모된 체력이 바로바로 회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매 전투시 피해를 적게 입도록 해야 최대한 많은 전투를 수행할수 있으며, 전투시 회복스킬을 사용해도 소위 트루힐링이라고 불리는 몇몇 회복기를 제외하고는 임시체력만 부여받고 전투가 종료되면 회복스킬로 얻은 체력은 증발한다. 따라서 전투를 일정이상 수행하고 너덜너덜해진 히어로를 빠르게 회복시키려면 헬스팩이라는 아이템을 사용하여 체력을 채워주게 되는데, PvE에서는 그럭저럭 모자라지 않게 운용할수 있는 면 상대점수 경쟁제인 PvP이벤트에서는 상당히 모자라게 된다. 헬스팩 갯수가 5개 미만이면 헬스팩도 천천히 충전되지만 본격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면 헬스팩의 부족을 곧잘 느끼게 되며 이는 트루힐링 캐릭으로의 쏠림현상을 만들었다.
  • 마블 퍼즐퀘스트/1성 . . . . 1회 일치
         절이다.
  • 마왕이 나타났다 . . . . 1회 일치
          * 창세기전 1,2 : 실버 애로우와 다크 아머의 대결로 시작하더니, 베라모드의 정체와 신들의 음모가 밝혀지고 나서 전부는 거의 없던 걸로 되고 마왕 엔딩으로 돌진한다.
  • 마철준 . . . . 1회 일치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순]]의 [[상주 상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영입은 적절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상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 마츠자카소 . . . . 1회 일치
          * 2010년 5월 12일 발표에 따르면, 2006년에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는 마츠자카육(松阪肉), 마츠자카소(松阪牛) 등으로 중국에서 상표 출원을 하였으나, 중국 국가상표국에서는 '이미 2001년 9월 마츠자카 문자와 소의 얼굴 일러스트로 상표가 등록되어 있음', '마츠자카소는 일적인 식재료 명칭', '마츠자카는 외국의 지명'이라는 3가지 이유로 출원을 기각하였다.
  • 마터니티 마크 . . . . 1회 일치
         의료 건강계 사이트 플라스알의 조사에 의하면, 마터니티 마크를 사용해서 좋았다는 질문에는 '예'는 43.4 %, '아니오 '는 56.6 %에 달했다. 면에 마터니티마크를 붙여서 곤란했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는가는 '예'가 9.3 %,'아니오 '가 90.7 %로서 약 10%의 적지 않은 사용자가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고 대답했다.[[http://news.ameba.jp/20140331-108/ (참조)]]
  • 마터니티 포토 . . . . 1회 일치
         본래 영미권에서 스타 연예인의 임신 누드 사진 공개가 속속 이어지다가, 이렇나 풍속이 일인에게 까지 퍼지면서 나타나게 되었다.
  • 맥닐의 법칙 . . . . 1회 일치
         1518년, 스페인 이주민이 퍼트린 [[천연두]]가 에스파뇰라 섬의 아라와크 원주민의 절을 살해한다. 천연두는 아메리카 본토에도 상륙하여 1530년대부터 팜파스에서 [[오대호]]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초토화시킨다. 16세기 멕시코에서는 천연두로만 1800만명이 사망, 의학사가들은 이 시기에 천연두 사망자를 8천만명에서 1억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무렵 1999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1500년대의 인구는 약 5억명으로 추산되므로, 천연두가 세계 인구의 1/5을 죽인 것이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회 일치
          10발을 장전할 수 있는 자동 산탄총. 다른 산탄총과 탄약이 호환되지 않는다.
  • 맥시 제우스 . . . . 1회 일치
         [[그리스 신화]]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를 제우스라 생각하게된 사업가. 번개 무기를 사용하여 고담을 공격하려다 배트맨에게 패하고 붙잡혀 [[아캄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런데 그 응이 가관인 것이 갇혀있는 빌런들을 보고는 [[헤르메스]]([[조커(DC 코믹스|조커]]), [[야누스]]([[투페이스]]), [[데메테르]]([[포이즌 아이비]]) 등 그리스 신화의 신들로 보고 자기 방에 오고나서는 자신이 [[올림푸스]]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배트맨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를 [[하데스]]라 불렀다. 여러모로 미친 놈들이 많이 나오는 시리즈지만 독보적으로 현실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미쳤다.
  • 메시우마 . . . . 1회 일치
         2채널에서 타인의 불행을 다룬 뉴스에 사용되는 인터넷 속어. 댓말은 "메시마즈(メシマズ)"이다.
  • 명예백인 . . . . 1회 일치
          *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하는 여성을 '명예남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 줄여서 '[[명예]]'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 목꺾기 . . . . 1회 일치
         주로 창작물에 많이 나오는 살인 기술. 상대방의 [[목]]을 꺾어서 즉사시키는 기술이다. 영상물에서 등장할 때는 "우드득"하는 사운드 효과가 동된다.
  • 목소리가 뒤집히다 . . . . 1회 일치
         우라가에테루(裏返ってる)란 사물이 뒤집혀서 뒷면이 드러난 상태를 뜻한다. '겉면'에는 일적이고 정상적인 상태, '뒷면(우라,裏)'에는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의미가 있어, 목소리에서 뒷면이 드러났다는 것은 곧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 무언의 귀가 . . . . 1회 일치
         바깥에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 [[관]]에 넣어져서 집에 돌아가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해외에서 사망하여 시신이 [[공항]]으로 운되는 경우는 '무언의 귀국(無言の帰国)'이라고도 한다.
  • 문연주 . . . . 1회 일치
         == 음 ==
  • 문옥주 . . . . 1회 일치
         192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36년 16살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가 만주와 동남아시아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하였다. 1991년에는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저축한 돈의 환을 요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위안부 피해자 故문옥주 증언, 기록 일치"|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7/0200000000AKR20160517091600073.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1996년 10월 26일 새벽 대구동산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日軍위안부 문옥주할머니 숨져|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184&yy=1996|출판사=매일신문|날짜=1996년 10월 26일|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 문호월 . . . . 1회 일치
         문호월은 3박자 대중가요와 트로트, 신민요에 고루 능하여 다양한 음악을 구사했으나, 신민요 히트작이 많아 초기 신민요의 대표적 작곡가로 꼽힌다. [[1940년]]에 발표한 〈달 뜨는 밤〉 이후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작품 활동이 드물어졌고, 사망 시기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문희(배우) . . . . 1회 일치
         * 1968년 《[[칠보지]]》
  • 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 1983년 1월에 국내에 '미래소년 쿤타-버뮤다 5000년'이라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왔는데 많은 의미에서 미래소년 코난을 참고한 것이 보인다. 심지어 성우 배치까지. 좀 웃기는건 중부부터 [[거대로봇물]]이 된다. 실제 포스터에서도 거대로봇이 등장.(쿤타가 원시소년이므로 모션 트레이싱 하는 방식이다.) 일단 이 미래소년 쿤타는 과거 한희작 원작의 '신세계 소년 디노'의 애니화인데 이 디노와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신세계 소년 디노의 내용은 주인공 디노는 이로 물어서 쇠사슬을 끊을 정도로 무는 힘이 센 원시소년이며 인공지능 로봇과 손잡고 다수의 인류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디노가 대항한다는 이야기다.
  • 미미도시마 . . . . 1회 일치
         미미(耳)는 귀, 토시마(年増)는 노처녀를 뜻한다. 노처녀라고 해도 [[에도 시대]]에는 10대에 결혼하는 것이 일적이었기 때문에 이 말은 대략 20세 전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현대에는 30대를 가리킨다.
  • 미이라(2017년 영화) . . . . 1회 일치
          * 마르 켄자리
  • 미저리 . . . . 1회 일치
         소설가 폴 셸던은 자신이 새로 쓴 소설을 출판사에게 전해주기 위해 차를 운전한다. 그는 "미저리"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시리즈 "미저리"[* 작중 묘사에 의하면 근세 배경의 신데렐라 스토리 소설인 것 같다.]로 성공을 거둔 작가지만 폴은 그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새로 낸 미저리 시리즈인 "미저리의 아이"의 최후부에 아이를 낳던 미저리가 사망하는 내용을 넣어 시리즈를 끝내버린 후, 차도둑을 소재로 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한다. 소설을 완성한 폴은 자신이 쓴 소설의 작품성에 흥분하며 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빙판길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한다.
  • 민효린 . . . . 1회 일치
         | [[유호석|에]]
  • 바레브 라인 . . . . 1회 일치
         [[이스라엘 군]]이 [[시나이 도]]를 점령하고 [[수에즈 운하]]의 대안에 건설한 [[요새선]]. [[모래]]를 쌓아서 운하의 제방을 높여 장애물로 삼고, 수십개의 진지를 일렬로 배치하여 건설한 방어선이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군]]에게 돌파되었다.
  • 바키도/108화 . . . . 1회 일치
          * 오로치는 "너도 하지 않았냐"고 문하고 바키는 솔직하게 "하긴 했다"고 답한다.
  • 바키도/110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각(15분) 전부터 따라오던걸 알고 있었다면서 무슨 볼일이냐고 묻는다.
  • 바키도/111화 . . . . 1회 일치
          * 면 가이아는 얼어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 바키도/116화 . . . . 1회 일치
          * 드디어 무사시가 애도를 찬 채 등장하고 미동도 않던 피클이 응한다.
  • 바키도/125화 . . . . 1회 일치
          * 그대로 브릿지로 넘겨 대편 바닥으로 내팽개친다.
  • 바키도/127화 . . . . 1회 일치
          * 그 놀라운 사신경에 관객들이 경악한다.
  • 바키도/129화 . . . . 1회 일치
          * 모토베는 과거의 무사도는 주군을 위해 죽는 걸로 완성됐지만 지금은 대로 자신과 선량한 이웃의 생존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 바키도/140화 . . . . 1회 일치
          *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는 총기를 소지한 경찰에게 다리를 노리고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겨누기가 무섭게 무사시의 격이 들어온다. 꼬챙이가 날아와 경찰의 눈 밑에 박힌다.
  • 박경석 (1960년) . . . . 1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영남대학교]] 재학중이던 [[1980년]]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입대, [[대한민국 해병대 수색대|수색대]]로 복무하였고 복무 당시에도 스킨스쿠버, 수영, 낙하산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ref name=park>[http://na-dle.hani.co.kr/arti/issue/501.html 니들의 잣대로 구별짓지 마라 - 손아람이 본 박경석], 《[[한겨레]]》, 2013년 11월 4일</ref> 전역 후 대학교 행글라이더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 중이던 [[1983년]] 8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던 중 추락 사고로 하신이 마비되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ref name=park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92 하루 '5억원짜리' 삶, 이 사람 부럽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6일</ref>
  • 박경석(1937) . . . . 1회 일치
         1981년 초 민주정의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3월 치러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진우(1934)|이진우]] 대신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서종렬]]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 박노식(1971) . . . . 1회 일치
         ||<|4> 2017년 || [[역모 - 란의 시대]] || 철물점 주인 || ||
  • 박상돈(정치인) . . . . 1회 일치
         선거기간 중에 재보궐 발생비용을 부담하라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한 양승조를 공격했다가, 그럼 8년 전 재보궐비용부터 물어내라는 박에 데꿀멍했다.(...) 8년 전에는 역으로 자신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했던 터라. 사실 이건 양승조를 공격하기보단 시장 경쟁자인 구본영을 공격하려는 의도였는데, 구본영이 비리혐의로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 낙마할 경우 천안시장 재보궐을 치룬다!로 연결하려 했던 것.
  • 박수영(연극배우) . . . . 1회 일치
         * 《[[무정도시]]》 (JTBC, 2013년) - 양장 역
  • 박순석 . . . . 1회 일치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참의원]] 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61년 [[3.15 부정선거]] 연루를 이유로 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 박술희 . . . . 1회 일치
         그러나, 이후 호족 세력과 왕권, 그리고 [[왕규의 난]] 사이에 얽힌 복잡한 권력 투쟁은 정치가가 아니라 군인이었던 박술희에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왕무|혜종]]의 세력 기은 미약하였고, 이복동생인 [[고려 정종 (3대)|정종]]와 [[고려 광종|광종]]은 외할아버지의 세력인 충주 호족 세력과 [[왕식렴]]을 중심으로 한 [[서경 (고려)|서경]] 세력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외척인 [[왕규의 난]](王規)도 왕위를 탈취하려고 하고 있었다.
  • 박정근 (법조인) . . . . 1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형사부에서 배석판사로 있던 1968년 12월 5일에 [[동백림 사건]] 항소심에서 정규명 정하용에 대해 대법원이 파기환송하기 전의 서울고등법원 판결대로 공법 잠입,탈출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12050020920101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12-05&officeId=00020&pageNo=1&printNo=14509&publishType=00020]</ref>
  • 박지일(배우) . . . . 1회 일치
         * 2000년 《호모 파메르》, 《칙왕》
  • 박진석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2012년 상기 드래프트에서 삼성전자 칸(현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삼성 갤럭시]])의 3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박진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08년 2차 3순위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2008년 포스트시즌 탈락 이후 후 신예들을 주로 기용한다는 [[조범현]] KIA 감독의 방침에 의해 9월부터 김종국과 함께 주로 2루수로 기용되어, 26타수 8안타 0.308 타율를 기록하였다.<ref>[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layer.asp?player_id=78606 박진영 기록 페이지, 한국야구위원회]</ref>. 상무에서 퓨처스리그 등 2군 리그에서 주로 활약하다 2012년 시즌 이후 팀에서 방출당한다.
  • 박진주 . . . . 1회 일치
         | rowspan=2 | 《[[루비지]]》
  • 박학기 . . . . 1회 일치
         이후 1990년대 후까지 정규 앨범 6장과 베스트 앨범 1장을 발표하며 포크 가수로 자리매김하다가 [[2002년]] 이후 활동이 뜸했던 박학기는 [[2008년]]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고 자신의 두 딸 박승연, 박정연과 함께 부른 〈비타민〉이 인기를 끌었다.<ref>
  • 박홍우 . . . . 1회 일치
         대전고등법원으로 재직하던 2015년 2월 대전고등법원 제3행정부 재판장으로서 행정본안재판의 일부를 직접 맡았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 시절인 1995년 시위 진압과정에서 최루탄에 도망가다가 넘어져 질식사 사망한 성균관대 학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망인의 위자료를 5000만원 인정한 것과 2004년 [[세녹스]]의 석유사업법 위 사건에서 1심에서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을 들었다.<ref>[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509100056]</ref>
  • 박휘순 . . . . 1회 일치
         ** 《명사특강》 햇스님 역
  • 박희부 . . . . 1회 일치
         정치경력은 분명 원로급이지만 총 7차례의 총선 출마 중 당선은 1번, 그것도 14대 총선에서 공천에서 떨어지자 충청도서 비교적 약진한 통일국민당에 입당한 덕분이었다. 이는 상도동계 주류가 PK, 일부가 수도권에 기한 것과 달리 고향 출마를 고집한 덕분이었다. 그는 7차례의 총선을 모두 고향 연기군(세종시도 연기군의 후신이니...)에서 출마했다.
  • 방실이 . . . . 1회 일치
          * 몇 년 뒤 같은 팀원이던 박진숙, 양정희가 [[결혼]] 때문에 활동을 중단하자 서울 시스터즈는 공식 해체되었고 방실이는 데뷔 4년만인 1990년에 솔로로 전향하였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방실이의 솔로 데뷔곡이자 방실이의 1집 앨범의 타이틀곡 〈서울탱고〉는 탱고리듬으로 된 가요였다는 점과 그룹 활동 때 갈고 닦은 그녀의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낯선 곳을 떠도는 나그네의 쓸쓸한 넋두리를 부질없는 세상사에 연관지어 관조하듯 표현해 특히 중장년층과 기성세대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92년, 2집 앨범 〈여자의 마음〉도 유행하여 다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후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던 방실이는 1994년에 사업가인 김연국과 결혼하고 한동안 잠정 은퇴하였다.[* 이 결혼은 당시 소속사 때문에 강제로 했다고 한다. 당시의 남편은 [[일본인]]이었다고...] 그러던 1997년, 선행 연예인으로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을 받은 적 있다.
  • 배성룡 . . . . 1회 일치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절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순으로 상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 배트맨 . . . . 1회 일치
         초능력은 없다. 그러나 뛰어난 전투실력과 머리, 막대한 재산이 기이 된 배트모빌과 같은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해서 싸운다.
  • 백낙청 . . . . 1회 일치
         1962년부터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부임하였고, 1966년부터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인을 맡아 진보적 평론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4년 유신에 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으나, 1980년 복직되었고, 2003년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이후에도 통일운동의 일선에서 일하며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는 범여권후보 단일화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 백성현 . . . . 1회 일치
         | [[달곰 내 사랑]]
  • 백승주(정치인) . . . . 1회 일치
         [[최순실 청문회]]의 새로운 X맨으로 등극 중이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우병우 증인 등 변호하는 듯한 답변 유도와 태블릿PC에 집중하고 야당 의원에게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 백미는 왜 최순실의 PC를 조사했냐는 것. 그리고 [[노승일]]이 멋대로 문서를 복사해 갔다고 범죄행위로 몰았다. --노승일은 쿨하게 처벌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승일에게 무슨 의도로 문서를 복사했냐는 등 어떻게든 물타기를 시도했다가 의도와 정 대로 답변이 나와서 모두 실패했다. 박근혜와 친족관계임이 밝혀지면서 '친박 이완용을 넘어서는 친족 백승주가 왔다' 는 평이 나왔다.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1회 일치
         이후 몽골대사(1957∼1960년), [[국제원자력기구]] 상임대표(1960∼1961년)을 역임, 1962년 은퇴했다. 1964년 6월에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당 행위를 비판받아 모든 당적을 박탈당했다고 발표되었다. 이후 조용히 살다가 1984년 명예회복, 복권되었다.
  • 베이식 (가수) . . . . 1회 일치
         ===음 활동===
  • 베타보레 . . . . 1회 일치
         사실 한국 오덕계에서 흔히 쓰는 [[메가데레]]는 실제 일본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말. 일적으로 상대방에게 홀딱 빠졌다는 표현을 할 때는 베타보레를 쓴다.
  • 변질자 . . . . 1회 일치
          * 일본어에서는 길가에서 뭔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피해를 당했을 경우, 「변질자가 나타났다(変質者が現れた)」고 표현한다. 일적으로 「변태가 나타났다(変態が現れた)」고는 하지 않는다.
  • 변현제 . . . . 1회 일치
         2010년 상기 드래프트에서 [[STX SouL]]의 4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2012년 4월 Tving 스타리그 8강 진출로 2012년 6월 Kespa 랭킹이 대폭 상승하였다. 그러나 스타2에서 부족한 실력과 약점을 많이 보여 한때 KeSPA랭킹이 가장 높았을 때에 비해 10계단 정도 낮았다. 변현제는 패배만 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때문에 '패배왕 변현제'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 보루토/7화 . . . . 1회 일치
          * 회복된 나루토는 가세하며 인술을 쓰려 하는데 보루토가 인술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린다. 한편 모모츠키는 달아나려 하지만 사스케가 퇴로를 막으면서 사면초가가 된다. 사스케는 모모츠키의 전투법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데 그는 타인의 술법을 흡수해 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이 공격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과학닌구의 신제품과 같은 원리. 이런 원리가 까발려지자 인술을 쓰지 않고 제압하면 된다는 답이 나온다. 나루토 부자, 가아라, 다루이, 사스케에게 포위 당한 모모츠키.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1회 일치
         문제의 회사는 보스턴 주민들에게 소송 폭탄을 맞고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었고, 이후 건축물 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보스턴 시의회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확대 시행되었다. 한편, 끈적한 당밀 시럽은 물로도 잘 씻어지지 않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 총 10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그 동안 보스턴 시내는 곳곳에 당밀 냄새가 진동하여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았다고 한다.
  • 보쿠걸 . . . . 1회 일치
         같은 의 후지와라를 좋아하고 있지만, 우연히 장난의 신 로키와 얽히면서 진짜 여자애의 몸이 되고 마는데...
  • 보쿠걸/95화 . . . . 1회 일치
          * 토르는 로키의 유일한 친구이자 라이벌. 로키가 장난을 치면 토르가 붙잡아 가는 일을 복해왔다
  • 봉준호 . . . . 1회 일치
         == 영화에 복 출연한 배우 ==
  • 부녀자 . . . . 1회 일치
         주로 만화 · 애니메이션 등에서 미소년끼리의 연애를 애호하는 여자를 뜻한다. 이러한 취미를 보이즈 러브 (BL), 야오이(801) 라고도 부른다. 의미가 확장되어 BL 야오이 취미만이 아니라 여성 오타쿠 전에서 쓰이기도 한다.
  • 불심자 . . . . 1회 일치
         수상한 사람, 괴한이라는 뜻. 일적으로 방범 분야에서 쓰인다. [[일본]]의 경우, [[경찰]]과 [[소방서]], [[지자체]] 등에서 이러한 불심자 정보를 수집하여 [[E메일]] 등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서비스가 있다.
  • 브라우닝 하이파워 . . . . 1회 일치
         20세기 초 [[존 M. 브라우닝]]이 설계를 시작하였다. 브라우닝 사후에는 [[FN 에르스탈]]의 총기 제작자인 [[디외도네 세브]](Dieudonne Saive)가 몇년간 설계해 브라우닝 하이파워의 설계를 끝맞췄다.
  • 브로포스 . . . . 1회 일치
          * 일 무크
  • 브리프 팬티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일적으로 이런 속옷을 브리프(ブリーフ)라고 한다.
  • 브이원 . . . . 1회 일치
         1996년 뮤지컬배우 첫 데뷔한 그는 [[대구광역시|대구]] 태생으로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전문학사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학위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대중예술학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브이원'이라는 예명으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강현수는 임채홍과 함께 [[2010년]] [[3월 27일]]부터 서울 서초구 포동에 입시 전문 방송아카데미 '배우&배움'을 열기도 했다. 평소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오랜 준비 끝에 개업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거나, [[2003년]] 방영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복학생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3/h20100325062909111780.htm|제목=강현수·임채홍 방송아카데미 오픈|성=|이름=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날짜=2010-03-25|출판사=한국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 블라디미르 렘 . . . . 1회 일치
         맥스가 사건의 답을 알기 위해 [[알프레드 우든]]을 찾아갔을 때, 블라드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는 오랜 기간 이너 서클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든이 암에 걸려 권력을 잃기 시작하자 이너 서클 내에서 란을 일으킨 것. 스퀴키 청소 회사 또한 그가 부리던 자들이었다. 맥스는 블라드를 쫓아 보드카를 뒤집어 엎고, 블라드가 노리던 비니의 집에도 찾아가보지만 블라드는 없었다. 단지 블라드의 함정에 빠져 폭탄이 설치된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을 입은 비니가 있었다.
  • 블랙 클로버/100화 . . . . 1회 일치
          * [[마녀왕]]은 바네사에게 기대하고 있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각성한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걸 시험하기 위해 조종하던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게 [[노엘 실버]]를 죽이게 한다. 바네사가 안 된다고 외치자 고양이는 그 목소리에 응한 것처럼 뛰어올라 아스타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저 아스타를 만진 것 뿐, 어떤 영향을 준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1회 일치
          * 마법제는 다시 민중들을 향해 "로열 나이츠는 나도 기대하고 있다!"며 화제를 돌린다. 청중들은 어느 새 마법제를 연호하며 마치 처음부터 그가 발표를 한 것처럼 따른다. 국왕이 나섰을 때는 아무 응도 없었던 기사단장들이 눈빛을 빛낸다. [[노젤 실버]]나 잭처럼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둔 단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최하위의 오명을 쓴 [[릴 부아모르티에]] 설욕을 다짐하며 의욕을 낸다. 국왕도 이런 상황을 뻔히 보고 있으니 속이 터져도 어쩔 수 없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1회 일치
          * 키르슈와 같이 있는거 자체가 고통인 매그너는 일단 무조건 공격하고 돌격하고 본다. 한 시라도 빨리 끝나야 이 고통이 끝날테니까. 하지만 적측의 견제가 거세다. 적동마법 "체인스 자칼"이란 마법으로 매그너의 돌격을 방해한다. 매그너가 성가셔하며 일단 적동으로 만들어진 자칼을 때려잡고 본다. 그때 키르슈가 짝거리며 다가온다. 매그너에게 조언해주기 위해서였다. 말투는 여전히 니글거리지만, 의외로 상식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선 매그너는 근원거리를 가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데 무작정 돌격하는건 합당치 않다. 적의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자연스럽게 마나를 운용하고 근원거리를 적절히 나눠서 공격할 필요가 있다.
  • 블랙 클로버/117화 . . . . 1회 일치
          레오폴드는 홍련의 사자와 소속 2등 중급 마법기사. 하몬은 금색의 여명 소속 2등 중급 마법기사다. 하몬은 유리마법을 구사하며 이름처럼 하몽 이베리코 돼지를 닮은 통통한 녀석이다. 성격은 쌈빡한 걸 선호하는 레오폴드하곤 정대로, 키르슈를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믿는 별종 중 하나다. 나서기 좋아하는 점만큼은 둘이 똑같아서 하몬이 "나의 유리마법을 주축으로 키르슈씨 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싸울 것을 주장하고 레오는 자기 불꽃 마법을 주력으로 아무튼 다 박살내면서 호쾌하게 가자고 티격태격한다.
  • 블랙 클로버/123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마법의 검을 십자로 교차해 함정에 빠진 네르슈에게 처박는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1회 일치
          마법제가 냉담하게 내뱉자 랜길스는 그나마 억누르고 있던 호전성을 폭발시킨다. "그 자식", 핀랄과 함께 있어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아스타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아스타도 피차 일.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으르렁거린다.
  • 블랙 클로버/52화 . . . . 1회 일치
          * 푸른 들장미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 야미에게 독설을 퍼붓지만 사실 츤데레. 야미에게 했지만 기사단 내의 입장 때문에 고백을 못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56화 . . . . 1회 일치
         * 마법제는 강마지대에 진입하기 위해선 마법의 힘도 필요할 거라며 아스타에게도 당부한다.
  • 블랙 클로버/57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고자같지만 사실 수영복 입은 여자들을 보고 코피도 흘리는 건전한(?) 청소년. 하지만 노엘에겐 응이 없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1회 일치
          * 야미는 활약할 차례라며 아스타더러 마법의 검으로 베어버리라고 한다.
  • 블랙 클로버/77화 . . . . 1회 일치
          * 그는 야미를 알아보고 "그때보다 더 강해졌다"고 경악하는데, 대로 야미는 "처음 보는 다이아의 아저씨"라며 몰라본다.
  • 블랙 클로버/80화 . . . . 1회 일치
          * 일단 뼈 자체도 산산조각 상태라 일적인 상처였어도 회복은 어려운 상태.
  • 블랙 클로버/81화 . . . . 1회 일치
          * 핀랄과 노엘은 마력도 없는 아스타가 전혀 포기를 모르고 그 모습이 자신들에게 싸울 힘을 준다며 드시 아스타가 싸울 힘을 되찾아주자고 결의한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1회 일치
          * 뒤이어 두 여성이 나타나 노엘과 갑게 인사한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1회 일치
          * 파나는 급히 두 번째 불구슬을 토해서 막아낸다. 아스타는 그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는데 핀랄과 바네사가 보조해 무사히 착지한다. 파나도 폭발에 휘말리긴 마찬가지. 아스타를 드시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아스타는 몇 번을 와도 몇 번이든 튕겨내주겠다고 호언한다.
  • 블랙 클로버/88화 . . . . 1회 일치
          * 마녀의 숲의 여왕은 검은 폭우 일행의 활약을 보고 입만 산건 아니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숲의 대편, 다이아몬드 왕국의 대군이 당도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은 무슨 생각인지 판젤 크루거(젤)가 홀로 대군을 맞서고 있다.
  • 블랙 클로버/90화 . . . . 1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90 '''배자와 속죄'''
  • 블랙 클로버/94화 . . . . 1회 일치
          * 마르스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다며 자책한다. 파나는 그의 탓도 아니고 이젠 이렇게 만났지 않냐고 말하고 마르스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커플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화제를 좋아하는 [[바네사 에노테이커]]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격하게 응하는데, 특히 저런 소꿉친구도 드라마틱한 썸씽도 없는 핀랄은 피눈물을 흘린다. [[노엘 실버]]도 괜히 "나는 전혀 부럽지 않다"며 아스타를 두들겨팬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아스타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항상 생각없어 보이는 아스타지만 라드로스가 강하며 혹시라도 뺐다가 격 당하면 승산이 없을 테니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물론 라드로스는 이대로는 죽을 거라며 징징대는데 아스타는 "그정도로는 안 죽는다"고 확실하게 못박는다. 라드로스는 감정에 호소하면 먹힐 거라고 여겼지만 그게 완전히 오산. 아스타는 여러 수라장을 헤쳐오면서 단련돼서 그정도 심리전은 먹히지 않았다.
  • 블랙기업 . . . . 1회 일치
         이런 야쿠자 기업을 돌려서 표현하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는 노동환경과 관련하여 명백하게 노동기준법을 위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거나 불법은 아닐지라도 보편적인 윤리 및 도덕적 시각으로 볼 때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들이 태연히 일어나고 있는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 블리치/673화 . . . . 1회 일치
          * 이치고 일행이 유하바하에게 가는 동안 오리히메는 눈물을 보이는데, "이시다가 정말로 배한 줄 알았다"면서 이제는 안심했다고 한다.
  • 블리치/674화 . . . . 1회 일치
          * 표지부터 요루이치의 엉덩이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니까 유독 이 장면을 업로드한건 작성자의 독단이 아니다. 작가의 의지영이다.--
  • 블리치/678화 . . . . 1회 일치
          * 아스킨은 고작 그 정도 예측으로 아란칼을 끌어들였냐고 하는데, 우라하라는 "그게 싸움이란 거다. 죽고 싶지 않으니까 만의 준비를 한다"고 대답한다.
  • 블리치/679화 . . . . 1회 일치
          * 호프눙은 아마 데미지 사 능력인 듯.
  • 블리치/681화 . . . . 1회 일치
         * 제라드는 만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별로 바뀐 것도 없고 칼 마저 토막 났다며 비웃는다.
  • 블리치/692화 . . . . 1회 일치
          * 하쉬발트는 처음부터 기쁘고 어쩌고가 문제가 아니라 유하바하 쪽에 서는데 "이득"이란 말을 하는 거라고 박한다.
  • 블리치/697화 . . . . 1회 일치
          * 바로 유하바하와 닮은 영압의 응이 포착된 것이다.
  • 블리치/698화 . . . . 1회 일치
          * 이치카와 카즈이는 생각보다 응이 좋다.
  • 비니 고그니티 . . . . 1회 일치
         이후 맥스의 악몽에 나오는 TV 속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블라드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해 기회를 얻는다.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에 관한 문제들을 맞추면 인형탈에 설치된 폭탄을 제거해주겠다는 것. 비니는 첫번째 문제인 "캡틴 베이스볼배트 보이의 덩치 큰 악역은 누구인가?"의 답인 "맥스웰의 악마"를 맞춰 폭탄 쪽을 해체받지만, 두번째 문제인 "현실에서 맥스웰의 악마를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인가?"를 틀려 폭발한다. 비니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작가인 새미 워터스라고 대답했지만 정답은 "맥스웰의 악마"라는 사고실험을 만들어낸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이었다.
  • 빈스 맥마흔 . . . . 1회 일치
         이러한 광적인 퍼포먼스에 일 팬들은 그냥 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설마 공개적으로 방송되는 WWE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미친 놈이 있을 리가 없다는 선입견 때문에 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던 숨은 게이들은 이에 열광하였고, WWE의 매상은 급상승, WCW를 물리치고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 사혈 . . . . 1회 일치
         사실 무려 20세기 초 까지도 사혈은 상당히 흔히 있는 치료법이었다. 그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세우는데 공헌한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가 “사혈은 폐렴 치료에 좋은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 동안 너무 사용을 적게 했다.”는 기술을 남겼을 정도.
  • 사회 . . . . 1회 일치
         그런데 [[애덤 스미스]]가 어쨰서인지(…) 서로간에 특정한 이해관계나 안면조차도 없는 일인들의 광범위한 상호작용까지도 소사이어티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의미로 확장되었는데, 이러한 의미의 소사이어티는 사실상 본래 뜻과는 거의 아무 상관도 없는 단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애덤 스미스는 왜 이상한 용도로 단어를 썻는지 모르겠다.
  • 산바람 . . . . 1회 일치
         2012년 [[시드노벨]] 상기 공모전에 입선하여, 2012년 12월달에 [[용사 더하기 마왕은!?]]이 출간되었다.
  • 삼류무공 . . . . 1회 일치
          * 삼류무공 한계설 : 삼류무공은 익혀도 결국 삼류 수준의 실력 밖에 가지지 못한다. 드시 상승무공을 익혀야 한다. 사실 가장 흔한 삼류설이다.
  • . . . . 1회 일치
         [[나침]]이 없어도 방향을 알 수 있다.
  • 생령 . . . . 1회 일치
         죽은 사람의 영혼을 사령이라고 하는 면, 살아있는 사람이 육체를 떠나서 날아다니는 것을 생령이라고 한다. 생령은 사령과 마찬가지로 어떤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현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때로는 사람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섀도우문 . . . . 1회 일치
         가면라이더 블랙 후부에서 악역으로 활약하며 최종화 직전까지 라이벌로서 싸운다. 최종화에서 가면라이더 블랙에게 패배하여 쓰러지지만, 가면라이더 블랙이 고르곰의 수령 최종보스 창세왕과 블랙이 대결할 때, 무기 사탄샤벨을 던져서 창세왕을 처치하고 블랙을 도운 다음 무너지는 기지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 서비스 잔업 . . . . 1회 일치
         서비스 잔업은 불법이며 법률위이다. 적발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 서울특별시장 . . . . 1회 일치
         수도라는 특성과 국가의 최대도시로서 행정적 특수성을 영하여, 서울특별시장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장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1962년 1월 27일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1988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이를 개정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서울특별시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 서윤아(배우) . . . . 1회 일치
         |2009||MBC드라마넷||[[하자전담 제로]]||소주리||
  • 서지석(배우) . . . . 1회 일치
         2017년에서 [[KBS]] [[일일 드라마]] [[이름 없는 여자]]에서 [[김무열(이름 없는 여자)|김무열]] 역으로 출연했는데 엄청난 발연기를 선보인다. '''걸음걸이, 표정연기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어색한 최고의 발연기를 펼쳐서''' 초에는 욕을 먹었지만 이제는 네티즌 사이에서 엄청난 발연기 때문에 본다는 사람들도 많은 듯...
  • 선거인단 . . . . 1회 일치
         선거인단 제도는 과거 미국의 영토가 매우 넓고, 인구가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고안된 제도이다. 대통령은 각 주가 아닌 '연방'의 대표라는 측면도 영하고 있다.
  • 성격 . . . . 1회 일치
         각 개인이 지닌 특유한 성질이나 품성. 현실에서건 가상에서건 '그 인물(경우에 따라서는 생물)'을 규정짓기 때문에 각 인물(생물)이 드시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해당 없다 카더라.~~ 개성(Character)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사회적 영향이나 입장 등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변형되는 것과 달리 개성은 선천적인 것이라서 그러한 경우가 거의 없다([[http://wp.chch.kr/marry1219/?p=4637|참고]]).
  • 성역 도시 . . . . 1회 일치
         시애틀의 에드 머리 [[시장]]은, “오늘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강제수용 이후 미국 이민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이라면서, 트럼프의 헌법적 행정명령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시애틀시의 가치를 지킬 것이라고 주장, 킹 카운티의 다우 콘스탄틴 수석행정관은 “킹 카운티는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음지로 몰아넣지 않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을 것”, “다른 여러 지자체들과 함께 불법체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대응장치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http://ny.koreatimes.com/article/20170126/1036862 (참조)]]
  • 세이브 노가다 . . . . 1회 일치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비기.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세이브를 한 후,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로드를 복하는 행위를 뜻한다.
  • 세종 . . . . 1회 일치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을 창제한 왕이기도 하며,북방의 여진족을 경계해 이징옥과 김종서를 보내 정벌하기도 했다. 음악(예악), 과학 기술 분야에도 힘을 쏟은 등 다방면에 걸쳐 주요 업적을 주도하여 조선 왕조를 기에 올려놓았다. 본인도 독서와 공부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신하들도 그 학문적 깊이에 밀려 쩔쩔맬 때가 많았다.
  • 세컨드 오피니언 . . . . 1회 일치
         세컨드 오피니언이라고 하여도 완전히 대 되는 말을 하거나, 환자가 오히려 혼란을 겪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환자의 선택을 지원하는 직업으로 '의료 코디네이터'가 있다.
  • 소금대응 . . . . 1회 일치
         차가운 대응. 소금처럼 짠 느낌이라고 하여 이런 말이 생겨났다. 댓말은 「신대응(神対応)」.
  • 소말리 족 . . . . 1회 일치
         하지만 이후 (프랑스 령이었던) [[지부티]], 에티오피아 동부, 케냐 북서의 소말리 인 거주 지역까지 모두 결집시켜 궁극의 소말리 인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주변국들이 발하게 된다.
  • 소벌도리 . . . . 1회 일치
         [[일연]]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와 돌산고허촌의 촌장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연합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47848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기원전 69년]]에 6부의 촌장들이 모여 덕(德)이 있는 자를 찾아 왕으로 삼고 수도를 정해 나라를 열 것을 결의하였는데 나정(蘿井)에서 이상한 기운이 비치는 것을 보고 찾아가서 붉은 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알에서 나온 아이가 [[박혁거세]]이며, [[기원전 57년]]에 왕으로 옹립하여 [[신라|사로국]]을 건국하였다. 《[[삼국사기]]》는 나정에서 알과 혁거세를 처음 발견하여 양육한 것이 소벌공이라 기록하고 있다. 고허촌은 [[신라 유리왕|유리왕]] 때 사량부(沙梁部)로 개칭되고 최씨(崔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면 《[[삼국유사]]》에는 정씨(鄭氏)의 조상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 손석우(작곡가) . . . . 1회 일치
         | 직업 = [[작사가]] <br /> [[작곡가]] <br /> [[기타 연주자]] <br/> [[영화 음악]]감독 <br /> 前 음 기업가
  • 손요리 . . . . 1회 일치
         물론 가정에서 만든다고 해도 [[재료]]까지 모두 직접 조달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 직접 [[DIY]]한 비율이 높으면 손요리로 본다. 그래서 슈퍼에서 사온 찬이나 즉석 식품인 [[레토르트]] 식품은 포함되지 않는듯.
  • 손해보고 이득얻다 . . . . 1회 일치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에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뜻이다. 눈 앞의 이득만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고, 대로 지금의 손해를 참으면 오히려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 송정현 . . . . 1회 일치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상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순진 영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남, 9년 만에 FA컵 품었다…송정현·김태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컵 2연패 가능케 한 전남의 영웅 ]</ref>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기 단발 계약]</ref>
  • 송창현 . . . . 1회 일치
         데뷔 초에는 속구와 슬라이더 두 개의 구종만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즌 후에 체인지업과 커브를 장착한 것으로 보아 구질 습득도 빠른 편인듯 하다.[* 체인지업은 [[송진우(야구)|송진우]], 커브는 [[정민철]] 혹은 [[이대진]] 코치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한화 이글스의 팟캐스트 방송 이글스캔들에서 본인이 밝힌 바로는 체인지업은 송진우 코치가 그립만 가르쳐준 것을 실전에서 사용했더니 통했다고 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1회 일치
         캣 그랜트는 레슬리를 불러서 슈퍼걸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두라고 경고한다. 사람들은 레슬리의 독설적인 이야기보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방송을 부정한다. 레슬리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다고 발하지만, 그랜트는 레슬리의 방송을 취소하고 교통방송 리포터로 보내버린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회 일치
         비행순찰하던 카라는 서로 싸워대며 과속 운전하던 운전수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들을 칠 뻔한걸 막아낸다. 운전수는 자기 차가 망가졌다며 [[적하장]]으로 카라를 때리려다가 제압당한다. 그런데 그것이 뉴스에 뜨게 되어서 카라는 폭행을 휘둘렀다는 악성 보도에 시달리게 되고, 맥스웰 로드도 거기에 한몫 끼게 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1회 일치
         알렉스는 행크에게 의혹을 드러내며, 행크의 지시를 어기고 젬과 상대하러 나가려고 한다. 알렉스는 젬의 능력에 대항할 수 있는 신경 차단기가 행크의 말과는 달리 아직 작동하는 것을 발견한다. 도노 대원이 젬에게 조종당하여 알렉스를 쏘려고 한다.
  • 슈퍼머슬봄버 . . . . 1회 일치
         그러나 레슬링게임이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해보면 나름대로 꽤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대쉬와 로프 동을 이용한 스피디한 공방은 이 게임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백미.
  • 스쿨 카스트 . . . . 1회 일치
         이라는 가사에서도 잘 나오듯이 생각보다 이런 인식은 상당히 많은 퍼져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일본 외 국가에서도 별 다르진 않다. 몬스터메탈그룹 Lordi의 Hard Rock Hallelujah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서구권의 스쿨 카스트가 묘사되고 있다.
  • 스탈리늄 . . . . 1회 일치
         이 와중에, 소련 전차&항공기들이 비정상적인 방어력을 뽐내는 상황이 목격되자 유저들은 저것들의 장갑은 일적인 금속이 아니라 스탈리늄이라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었다고 드립을 치기 시작한다.
  • 스파이더 슬레이어 . . . . 1회 일치
         국내에 방영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 스마이시 부자 둘다 등장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만들었는데 스파이더맨보다 훨씬 큰데다 합체(!)하는 종류도 나왔다.[* 사실 합체라기보단 그냥 위에 올려놓기.] 그리고 앨리스터 스마이시가 변화된 모습인 스파이더 슬레이어도 등장. 그가 성과를 못내는 등 갈등이 생긴 [[킹핀]]에 의해[* 수행은 그의 지시를 받은 학자가 했는데 이전의 [[엑스멘]]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뮤턴트 주의자다.] 스파이더 슬레이어가 되었다. 이후 킹핀과는 적대 관계가 된다.
  • 스파이더맨 . . . . 1회 일치
          언듯 보면 호리호리한 체격이라 그리 강할 것 같지 않지만, 초인적인 [[괴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헐크, 씽 등의 파워맨 스타일에 비하면 약간 뒤지는 걸로 나오기도 한다. 또한 스피드와 사신경 등이 놀라운 수준이다.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1회 일치
          * 날개에 피해를 입어 전 기동(Inverted Maneuver)이 불가능 하게 된다.
  • 시장경제지위 . . . . 1회 일치
         정부의 간섭으로 제품 가격을 조정하여 저렴한 가격에 수출할 경우, 수입국의 해당 산업은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가격 차별로부터 제품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덤핑 규제를 받기 쉽다.
  • 식객 . . . . 1회 일치
         맹상군, 신릉군 같은 전국사군자는 수백명의 식객을 육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식객들은 이 귀족들의 정치적 기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점차 정부에서는 식객들을 위험시 하여 왕족이나 귀족이 식객을 두는 것을 정책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 식극의 소마/152화 . . . . 1회 일치
          * 해체대상 동아리가 식극을 신청할 경우 드시 받아들여야 하며, 이기면 동아리가 존속, 지면 폐부. 심사의원은 외부에서 초빙한 공정한 인사여야 한다는 룰
  • 식극의 소마/154화 . . . . 1회 일치
          * 소마와 타쿠미는 "우리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정하지 마라"며 발한다
  • 식극의 소마/163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유키하라 정식집 같은 곳도 해당하냐고 문하고, 츠카사는 단호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 식극의 소마/165화 . . . . 1회 일치
          * 맛밤을 쓴 것도, 일 밤보다 달게 처리됐기 때문인데 보통 밤이라면 이렇게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
  • 식극의 소마/166화 . . . . 1회 일치
          * 니쿠미는 승리 후 소마의 축하를 받는데, 이때 "네가 덮밥연에 들어가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어필하지만 패배감에 찌든 소마는 시큰둥한 응.
  • 식극의 소마/168화 . . . . 1회 일치
          * 그때부터 요리는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때로부터 딱 년 후부터 아버지 아자미의 "교육"이 시작되었던 것.
  • 식극의 소마/180화 . . . . 1회 일치
          * 시험관들은 에리나는 일 수험생과 같은 과목이 준비되어 있다며 우격다짐으로 끌고 간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1회 일치
          * 함께 시식했던 소마도 이 점에는 전혀 박을 하지 못한다.
  • 식극의 소마/189화 . . . . 1회 일치
          * 이 완화와 강조는 하야마가 선발 시합에서 승리했을 때 심사의원에서 했던 말이다. "완화와 강조, 상된 조리를 이 한 그릇 위에 동시에 보여드린 것입니다." 소마는 그때의 앙갚음을 완벽하게 이뤄냈다. 쿠가는 그런 승부에 끈질긴 면을 "싫지 않다"며 웃는다.
  • 식극의 소마/191화 . . . . 1회 일치
          * 정신을 차려 보니 놀랍게도 그의 눈 앞엔 시오미 준이 나타난다. 하야마가 어리둥절해있는 사이 도지마는 그녀에겐 볼권리가 있어 초대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야마는 퉁명스럽게 뭐하러 왔냐고 투덜거리는데 시오미는 단호한 태도로 하야마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생각보다 파워풀해서 하야마가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보인다. 하야마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처음으로 시오미에게 맞은 거라 정신적 충격이 더 강했다. 시오미는 자신이 하야마의 부모 역할도 하고 있으니 훈육의 차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야마는 아직 애니까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야마는 거기에 발해서 자기가 없으면 업무 진행도 안 되면서 애취급을 하냐고 대든다.
  • 식극의 소마/198화 . . . . 1회 일치
          * 소문이 자자한 [[사이바 죠이치로]]가 나타나지 않자 The BULE 회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스텝들은 어떻게든 죠이치로를 찾기 위해 허둥대고 해외에서 그를 보러 왔던 요리사들은 어이가 없다며 "겁 먹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토오츠키 학원에선 그의 실종 소식이 전달되면서 "맨날 수업을 빼먹더니 더 블루까지 빼먹은 건가"라며 경악해 한다. [[시오미 준]]은 그렇다쳐도 이유가 뭔지, 왜 참석 조차 하지 않은 건지 의아해한다. [[나키리 아자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에비사와 리코]]는 그가 적어도 새벽에는 모습을 감췄을 거라고 추론하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더 블루가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면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니냐"고 불길한 소릴 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응이던 학생들도 진지하게 자해나 자살을 떠올리며 우려한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1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를 비롯한 역자 후배들은 드디어 그의 실력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한다. 사실 1라운드에서도 기회는 있었지만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격전에 주목하는 사이 볼 것도 없이 끝나있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는 어떤 라면을 보게될지를 놓고 고조된다.
  • 식극의 소마/239화 . . . . 1회 일치
          * 사과 도라야끼는 평범한 외견과 달리 매우 섬세하고 산뜻한 맛을 냈다. 와삼봉 설탕에 벌꿀과 두부를 넣고 만든 빵죽에 부드러운 백앙금의 풍미와 톡톡 튀는 사과의 산미가 더해져 있다. 안은 이것이 "뇌수까지 퍼지는 초노급 촉촉함"이라 표현한다. 이스트와르가 한 가지를 더 발견한다. 그것은 빵 안 쪽에 바른 "사과버터". 간 사과에 레몬즙과 설탕, 버터를 넣고 가열해 녹여서 만드는데 보통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재료다. 그게 가능했던건 시노미야에게 사사한 "몽테 오 뵈르", 프랑스 요리의 기법 덕이다. 시노미야는 이 기술을 가르치면서 몇 번이나 호통을 치고 "굼벵이"라고 다그쳤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서 "굼벵이지만 결코 얼간이는 아니다"며 내심 타도코로를 인정한다.
  • 식물인간 . . . . 1회 일치
         SF소설에 나오는, 식물을 기으로 한 인간.
  • 신동일 (언어학자) . . . . 1회 일치
         * 〈시험개발의 기술: 시험-문항작성 세부계획서를 기으로〉(공역) ([[2009년]])
  • 신웅 . . . . 1회 일치
         '''신경식'''(1953년 11월 30일 ~ )은 예명 '''신웅'''으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아들은 가수 [[신유 (1982년)|신유]]이다. 현재는 아들인 신유의 프로듀서 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ref name="신웅">{{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495486.html|제목=뽕짝뽕짝~우리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웹사이트=[[한겨레]]|날짜=2011년 9월 8일}}</ref> 비공식 집계로 3,000만장의 음을 판매하였다.<ref name="신웅"/>
  • 신종령 . . . . 1회 일치
         [[2017년]] [[9월]], 두 차례에 걸친 취중 상태에서의 묻지마 폭행을 벌이고 이에 대해 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물의를 빚었으며,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457793</ref>
  • 신형철 . . . . 1회 일치
         [[2005년]] 《[[문학동네]]》 봄호에 평론 〈당신의 X, 그것은 에티카〉를 발표하면서 평단에 등장했다. [[2007년]]부터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2014년]]부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으로 제5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으나, 현대문학의 소설 거부 사태로 인해 상을 려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22015575&code=960100 문학평론가 신형철] 경향신문, 2014-05-02</ref>
  • 신혜성 . . . . 1회 일치
         * 금영(KY) 가요 주기(단독)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1회 일치
         2011년 12월 중과실 치사 및 해안법 위 혐의로 아내와 친구 6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 심판 . . . . 1회 일치
         [[스포츠]]에서 경기의 과정을 진행하는 사람. 득점과 실점을 판정하고, 선수들의 [[칙]] 여부와 그에 대한 제재를 판단한다. 뭐 아무튼 중요하다.
  • 심학봉 . . . . 1회 일치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런데 성폭행 의혹을 사면서 형사법 위 여부를 떠나 품위에 맞지 않는 성관계 (기혼이면서 기혼여성과 성관계)로 제명위기에 몰리자 2015년 본회의 표결 당일 자진사퇴하였다.
  • 십자군 전쟁 . . . . 1회 일치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망할 두카스 놈들때문에~~[[셀주크 술탄국]]한테 박살난 이후에 폰토스일대의 거점 일부를 제외한 '''아나톨리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상황에서 남이탈리아의 노르만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가 아들인 [[보에몽]]을 데리고 비잔티움을 두번이나 침략하기도 했다. 당시 황제였던 [[알렉시오스 1세]]가 아풀리아지방에 지방귀족들을 부추겨 란을 일으키게 해 기스카르의 병력을 둘로 나뉜뒤 둘로 나뉜 병력중 비잔티움 원정군을 지휘하던 보에몽의 군대를 라리사에서 격파해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기스카르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다시한번 보에몽을 데리고 원정을 나서게 된다. 알렉시오스에게는 다행히도, 악천후를 뜷고 그리스에 도달한 기스카르는 역병으로 인해서 케팔로니아 섬에 사망하고, 그의 장남이자 그리스일대 기스카르의 정복지를 상속받은 보에몽도 역병으로 인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어렵지않게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 싸움 . . . . 1회 일치
         크게는 둘 이상의 개체가 물리적으로 대립하는 현상 전을 이를 수 있으나 보통은 둘 이상의 인간이 물리적, 사상적인 형태로 대립하여 충돌하는 것을 이른다. 이것의 스케일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고 격화되면 '[[전쟁]]'이라고 하게 된다.
  • 아게만 . . . . 1회 일치
         [[일본]] 연예계에서 사용하는 [[은어]]로, '사귀는 [[남자]]의 운을 올려주는(혹은 출세를 돕는) 여자'라는 뜻. 대로 남자의 운을 깎아먹는다고 생각되는 여자는 '사게만'(さげまん)이라고 한다.
  • 아데랑스 . . . . 1회 일치
         2017년 2월 10일, 가발 업계의 경쟁 심화와 수익 악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영진에 의한 인수를 통하여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하고, 비상장화와 사업기 강화를 하게 되었다.[[http://www.nikkei.com/article/DGXLASFL09HEH_Z00C17A2000000/ (참조)]]
  • 아동수당 . . . . 1회 일치
         [[일본]]의 복지정책의 하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국가에서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 물론 부모가 받아가서 양육 등에 쓰라는 목적이다. 2000년대 초에 민주당 정권에서 추진되어 실행되었으나, 이후 일 가정에서 저소득 가정 대상으로 범위가 축소되었다.
  • 아웃워드 작전 . . . . 1회 일치
         1940년, 대규모 돌풍이 불어서 많은 양의 방공기구가 해방(?)되었다. 이 방공기구들은 동쪽으로 날아가버렸는데, [[북해]]를 건너 [[스칸디나비아 도]]까지 날아가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의 전선과 라디오 방송국 안테나를 덮쳤다. 스웨덴 정부는 영국 정부에게 이 사태에 대해 항의했다.
  • 아이박 . . . . 1회 일치
         아이박이라는 이름은 인류 역사의 악인들의 이름 첫글자로 구성된 것. 그 각각은 공포의 이(Ivan the Terrible), 보르지아(Cesare Borgia), 훈족의 아틸라(Attila the Hun), 칼리귤라(Caligula).
  • 아이언맨(영화) . . . . 1회 일치
         천재이자 재수없는 부자인 토니 스타크는 텐 링즈라는 조직에 의해 큰 부상을 입은 체, 납치되었다가 의사 호 인센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아직 납치된 상황인데다 자길 납치한 텐 링즈측에서 토니에게 무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고, 이에 토니는 인센의 도움을 받아 기계 수트를 만들어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구조되어 생환한 토니는 비서인 페퍼 포츠, 친구인 제임스 로즈, 아버지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오베다이아 스테인과 재회하게 되며 피랍 사건을 계기로 자기 인생을 성하고, 무기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
  • 아테지 . . . . 1회 일치
         일적으로 말하는 한자의 음차 표기와 비슷하지만 일본어의 아테지는 좀 더 복잡하다. 일본어는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 있어, 음독은 한자의 '음' 자체를 읽고, 훈독은 한자를 고유어 뜻 표기로 읽는 것을 말한다. 음독으로는 오음(呉音), 한음(漢音), 당음(唐音)이 있어 이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테지에서는 음독과 훈독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테지가 아니면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아토믹 스컬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도 등장. 지하격투장에서 등장했는데 [[와일드캣]]과 싸웠다가 패했다. 이후 [[고릴라 그로드]]의 대규모 빌런 집단에도 합류해 재등장. 후부에 [[다크사이드]]의 군대가 지구를 침공하자 히어로와 빌런들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아포콜립스의 전력에 대항했다.
  • 악평등 . . . . 1회 일치
         사전에도 있는 용어지만 이명과 마찬가지로 그리 자주 쓰이진 않는다. 불평등과의 차이점은 불평등은 조건을 달리 적용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면에 악평등은 모두에게 같은 조건을 제시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적용받는 모두에게 부당한 결과를 이끌어 낼 때 쓰인다.
  • 안동준 . . . . 1회 일치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초에 이승만 정권 때의 행적을 이유로 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알프레드 페니워스 . . . . 1회 일치
         집사의 전형적인 인물. 말이 집사이지 일적인 집사의 업무에 브루스의 배트맨 활동도 보좌하고, 뒤치닥거리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말솜씨도 뛰어나서 배트맨도 이길 수 있으며 독설적 농담을 쓴다. 딱히 싸움을 잘할 듯한 인상은 아니나 박쥐 동굴에 침입자가 발생하면 샷건을 쏘기도 한다.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1회 일치
         * 살생님은 한 달에 한 번 뿐이라며 평소엔 성인군자처럼 하고 있으니 가끔 늘어지는 거라고 변명하지만, 평소에도 빨간책 읽고 있지 않냐고 박 당한다.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1회 일치
         * 점수가 높은 사람은 아즈키 부인이 직접 "허그"를 해준다는 얘기가 나오자, 암살자 일동은 격한 응을 보인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살생님은 "내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이느냐"며 문한다.
  • 압박면접 . . . . 1회 일치
         압박 면접은 압박을 당했을 때 지원자의 응을 보고, [[정신력]]과 순발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업무는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상사에게 혼나거나 고객의 클레임을 받는 등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압박면접을 실시한다.
  •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 . . . . 1회 일치
         [[야규 무네토시]]((柳生 宗厳 石舟斎)의 아들. [[야규 무네노리]]의 형. 세키슈사이의 적남이지만, 젊은 시절 전장에 나갔다가 총상을 입어 신불수가 되었으며 생애 불구의 몸이 된다.
  • 야설록 . . . . 1회 일치
         * [[1997년]] 《화객》{{ISBN|978-89-8051-240-9}}<br />《천객》{{ISBN|978-89-8328-114-2}}<br />《불객》{{ISBN|978-89-8328-100-5}}<br />《시객》{{ISBN|978-89-8051-336-9}}<br />《용객》{{ISBN|978-89-8051-220-1}}<br />《인기》{{ISBN|978-89-8051-308-6}}
  • 양일환 . . . . 1회 일치
         '''양일환'''(梁日煥, [[1961년]] [[6월 10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투수코치이다. [[1990년]]부터 잠깐의 휴식기였던 [[1999년]] ~ [[2000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의 팀 이동 없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투수]]코치로 재임 중이다.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입원하여 시즌을 마감한 [[장효조]] 2군 감독을 대신해 후기 [[한국 야구 퓨처스리그|퓨처스 리그]]를 이끌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1회 일치
          영국 장교. 상인에게서 보호비를 뜯고, 도둑질도 좀 해보고, 훔친 물건도 팔아보고, 원주민을 붙잡아서 노예로 팔아치우기도 하는 양. 개인적인 조수로 "절단마"[* 무언가를 자르기 좋아해서 붙은 별명. 주로 인간의 신체를 자르는걸 좋아했다.]를 데리고 있다. 보호비를 뜯어내기 위해 처치를 납치했다. 이후 모호크의 협조가 필요했던 헤이덤 일당에게 붙잡아 두었던 노예들을 모두 털리고 처치의 손에 죽는다.
  • 엉클 샘 . . . . 1회 일치
         기원은 미극 민담에 등장하는 브라더 조너선(Brother Jonathan)과 양키 두들을 합친 것이라 한다. 뉴욕의 샘(새뮤얼) 그라고 윌슨이라는 고기납품업자가 [[쇠고기]] [[통조림]]에 United States 라는 뜻으로 U.S. 라는 도장을 찍기 시작했던 것을 납품고기를 검사하던 부대 감독관이 U.S → Uncle Sam으로 알아서 엉클 샘이라는 캐릭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대로 납품업자가 자기 별명인 엉클 샘의 이니셜인 U.S.를 찍어 보낸 것을 감독관이 United States인 줄 알았다는 설도 있다.[* 이 엉클 샘에 대한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도 실린 이야기다.]
  •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 . . . 1회 일치
         대체로 그리 많은 비율은 아니지만,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품행에 문제가 있으면 퇴학되거나 추천이 삭제 되기도 하고, 가정 사정이 어려워진 경우에는 비싼 학비 때문에 학교에 다니가 어렵게 되기도 한다. 대로 더 높은 수준의 학교에 합격하여 내부 과정에서 떠나는 경우도 있다.
  • 엥겔 지수 . . . . 1회 일치
         일적으로 소득이 높아지면 엥겔 지수가 낮아지고,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엥겔 지수는 높아진다.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이게 되었다.
  • 역적 . . . . 1회 일치
         전근대 시절에 내란이나 외환 등의 수단으로 국가나 왕실을 전복시킬 것을 기도하는 이를 칭하던 명칭. 또는 한 지역이 통일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을 때에 자신의 정통성이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역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대파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역적으로 모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 역행 . . . . 1회 일치
         역행이 여러 차례 복하면 [[루프물]]이 된다.
  • 연경흠 . . . . 1회 일치
         1군 붙박이로 있으면서 주전 좌익수로 출전하면서 주로 2번 타선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선구안이 좋지 않고 약점도 극명해서 삼진으로 말아먹기 일쑤였다. 볼넷이 34개인 면 삼진은 '''88개'''.
  • 연분홍 . . . . 1회 일치
         == 음 ==
  • 연정훈 . . . . 1회 일치
         == 음 ==
  • 연하장 . . . . 1회 일치
         조선시대에는 ‘세함(歲銜)’이라고 하여, 신년 초에 직접 찾아가 인사하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시켜서 서찰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관아에 속한 장교나 병졸은 자기 이름을 적은 쪽지를 상관의 집으로 찾아가서 세합장에 넣었다.--셀프 우편배달-- 양 집안 여인들은 바깥 출입이 어려워, 친지에게 덕담을 담은 글을 써서 여종을 시켜 배달하게 했는데,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불렀다.
  • 영생 . . . . 1회 일치
         다소 사이비 스러운 [[간증]]에서는 천국에서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크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등 상당히 세속적인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묘사가 흔히 있는 면, 엄격한 종파에서는 극도로 경건하고 종교적인 모습의 이상향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 오마모리 . . . . 1회 일치
         대개 1년 정도 사용하며, 그 기한이 지나면 다른 오마모리로 교체한다. 사용이 끝난 오마모리는 이를 구입한 사찰, 신사에 환하며, 사찰이나 신사에서는 불에 태워 소각하여 처분한다. 개인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불에 태워서 처분하는 경우도 있다.
  • 오세정 (교수) . . . . 1회 일치
         | 경력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 원장<br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기분과 위원<br />[[한국연구재단]] 이사장<br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br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과 교수<br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오승근 (가수) . . . . 1회 일치
         사업에 전념하던 오승근은 지난 [[2001년]], 《있을 때 잘해》(이건우, 김정혜 작사/ 박현진 작곡)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복직하였다. 《있을 때 잘해》는 아이넷TV 성인가요 7주 연속 1위란 기록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오승근은 두번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곡은 모든 연령층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노래방 애창곡, 성인가요 애창곡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3년]]에 발표한 《장미꽃 한 송이》(하지영 작사/ 이호준 작곡)는 쉬운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중, 장년층들이 즐겨 부르는 곡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잘 될 거야》, 《사랑하지만》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다 최근 [[2012년]]에 발표한 《내 나이가 어때서》(박무부 작사/ 정기수 작곡)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곡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트로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12 상기 트로트계 최대 히트곡으로 주목받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 대표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KBS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 많이 불렸던 참가곡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근 성인가요 메들리의 메인 타이틀로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2014년]]에는 [[홍진영]]이 리메이크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오시만 . . . . 1회 일치
         [[1689년]] [[승지]]에 머물렀다. 그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복귀하자 [[1691년]]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로 전임되었다. [[1692년]] [[좌승지]]가 되었다가 우부승지 이현조가 오정위를 공격하자 피혐으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숙종이 려시켰다.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되자, 바로 삭탈관직되고 유배당하였다. 지조가 깨끗하고 겸허 담백하였으나 [[1694년]] 당화(黨禍)(갑술환국)를 입어 [[전라북도]] [[전주시|전주]], [[전라남도]] [[무안군|무안]] 등지로 10여년간 유배살이를 하였다.
  • 오싱 . . . . 1회 일치
         작중에서 오싱의 인생이 참으로 파란만장한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일꾼으로 쌀도매상에 팔려가거나, 어른이 되어 상경한 다음 미용사가 되었다가 옷장사를 하는 남편과 만나고 상업재능을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쑥밭이 되서 망하거나, 그 때문에 시골로 내려나 시집살이를 하는데 학대 당한 탓에 자기 아이는 사산되고 시누이가 낳은 아이의 젖을 물리게 되거나, 2차대전으로 남편과 장남을 잃고 생선 장사를 시작하여 자기 가게를 일으켜 세우지만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면서 발하거나 등등.
  • 오유나 . . . . 1회 일치
         * [[2012년]] 《[[창꼬]]》 ... 지영 역
  • 오준영 (1955년) . . . . 1회 일치
         |직업 = [[가수]] <br /> [[작사가]] <br /> [[작곡가]] <br /> [[편곡|편곡가]] <br /> [[음 프로듀서]] <br /> [[영화 음악]][[영화 감독|감독]] <br /> [[영화 음악|영화음악]][[연출가]]
  • 오지호(배우) . . . . 1회 일치
         잘생겼지만 연기 못하는 배우 중에서도 무명급인지라 활동 지속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캐스팅[* 작가가 완강히 대했으나 감독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촬영 직전에서야 겨우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된 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어 연말 시상식에서 남자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로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며 코믹한 역할을 상당히 많이 맡게 된다. 특징적으로는 원톱 여배우와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 편으로 [[환상의 커플(2006)|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 [[직장의 신]] 등 히트한 드라마 상당수가 그런 작품이 많다. ~~본격 원톱여주드라마 받침 남주역 전문~~ 얼빵하거나 코믹한 연기가 상당히 잘 어울리는데 본인은 코믹한 연기보단 진지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 결혼 한 2014년 이후로 코믹한 역할로 출연한 작품이 거의 없다.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 말로는 성실하고 정이 많은 성격 등 인간성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듯.
  • 오창경 . . . . 1회 일치
         * 《[[두비]]》 (2009년) - 오 형사 역
  • 오타쿠 서클의 공주 . . . . 1회 일치
         오타서(オタサー)는 오타쿠 서클의 줄임말이다. 댓말로는 「오타쿠 서클의 왕자(オタサーの王子)」「공주님 서클의 왕자(姫サーの王子)」 등이 있다.
  • 오태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입단 당시 100m를 10초 후대에 끊을많큼 발이 빨랐다.
  • 옥중결혼 . . . . 1회 일치
         === 수감자와 일인의 결혼 ===
  • 온죠우지 . . . . 1회 일치
         불타고 재건하길 복하여 일본에서는 [[피닉스]] 염상사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주로 불태운건 대립하는 [[엔라쿠지]].
  • 온주완 . . . . 1회 일치
         || 2006년 || 제27회 더국제영화제 || '''남우주연상''' ||
  • 와일드캣 . . . . 1회 일치
         드라마 [[스몰빌]]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관련 에피소드에서도 짧게 등장. 이후 드라마 [[애로우]]에도 등장하는데 거의 카메오 수준인 [[스몰빌(드라마)|스몰빌]]과 달리 확실하게 등장한다. 다만 코스튬은 코믹스와 차이가 많다. 큐트한 고양이 가면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가리는 일적인 검은 마스크를 쓰게 됐다. 주인공 올리버가 '애로우'로 활동하기 전부터 도시의 빈민가에서 활약하며 악당과 싸우던 가면의 영웅이었으나, 애로우가 등장하기 전에 은퇴한 몸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사이드킥'이었던 자가 악당이 되면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는 줄거리로 등장한다.
  • 왕당파 . . . . 1회 일치
          * 왕당파는 대개 [[공화제]]나 [[민주주의]], [[의회주의]]에 대하여 전통주의,보수주의,절대주의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 왝더독 . . . . 1회 일치
         대통령 선거 2주 전, 재선에 도전하던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딧불 소녀단"의 단원 중 하나를 [[성희롱]]했다는 소문이 터진다. 이에 대통령은 정치 문제 해결사 콘래드 브린을 시켜 이 스캔들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 외도 . . . . 1회 일치
          * 불교용어. 불교 이외의 가르침이나, 그러한 가르침을 믿는 사람. 댓말은 내도(内道). 외교(外教), 외법(外法)이라고도 한다. 이학(異学), 이견(異見)으로도 번역된다. 산스크리트어 (anya‐)tīrthaka에서 나왔다.
  • 요괴:파워블로거지 . . . . 1회 일치
         1990년대 후부터 [[한국]]에서 출몰했다고 알려진 요괴.
  • 욕창 . . . . 1회 일치
         피부의 혈류가 줄어들거나 멈추면, 피부가 가장 바깥쪽 표피부터 죽어가게 된다. 죽은 피부 조직이 터져서 상처가 생겨 [[궤양]]이 발생한다. 가려움과 통증을 동하지만 신경이 둔해졌거나 마비된 사람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붉게 염증이 생기다가, 피부가 손실되어 표피가 떨어지거나 물집이 잡힌다. 다음 단계에서는 피부 전층이 손상되어 [[피하지방]]에 도달하고, 최종저으로 그 아래에 있는 [[근육]], [[힘줄]], [[뼈]]까지 노출된다.
  • 우메보시 . . . . 1회 일치
         [[일본]]의 매실장아찌. 일본에서는 흔한 [[찬]]이다.
  • 운명의 붉은 실 . . . . 1회 일치
         일적으로 중국 고전인 『태평광기(太平広記)』 159권, 『속유괴록(続幽怪録)』에서 인용된 「정혼점(定婚店)」이라는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붉은 끈으로 남녀를 묶어서 맺어주는 신비한 신령인 월하노인(月下老人)에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진다.
  • 운전기사 . . . . 1회 일치
         이 때문에 높으신 분들 역시 운전기사와의 관계를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고. 대로 그 높으신 분의 성격이 상당히 이상하거나 안 좋으면 운전기사 역시 고달프다.
  • 원우(가수) . . . . 1회 일치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모든 랩 메이킹에 참여하는데, 보통 네 멤버 중 가사를 가장 빨리 내놓는 멤버가 바로 [[원우]]이다.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언어유희]]에 관심이 많다는 본인의 특성이 가사에도 영되어 펀치라인에 라임을 많이 맞추는 편이고 추상적인 표현과 은유법을 많이 사용한다. 본인이 가장 생각이 많았을 때 쓴 가사가 <[[Al1]]> 수록곡 "Check-In"의 "꽉 차 있던 머리 위에 쓸모없는 짐에 불 지르는 듯이"부분이라고 한다.
  • 원피스/816화 . . . . 1회 일치
          * 라이조가 조우 주민들의 동료였다는 전.
  • 원피스/824화 . . . . 1회 일치
          * 샬롯 푸딩에게 한 눈에 한다.
  • 원피스/826화 . . . . 1회 일치
          * 제르마66의 코드네임은 색깔에 기하는 듯.
  • 원피스/829화 . . . . 1회 일치
          * 일적인 상황에선 빅맘이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 듯.
  • 원피스/832화 . . . . 1회 일치
          * 상디는 저지가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발하며 자신에겐 부모가 없고 있어도 당신은 아니라며 막말을 한다.
  • 원피스/836화 . . . . 1회 일치
          * 킹 바움도 자기 팀은 단 한 번도 표적을 살려보낸 적이 없다며 루피가 버거운 상대라는 말에 박한다.
  • 원피스/839화 . . . . 1회 일치
          * 상디는 음식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멍청이도, 여자에게 손대는 남자도, 부하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왕족의 오만도 모두 자기 사상에 한다고 일갈한다.
  • 원피스/840화 . . . . 1회 일치
          * 그는 "밥짓는 여자 따위가 맘에 들었냐"고 빈정거리고 격하면 인질이 무사하지 않을 거라고 협박한다.
  • 원피스/846화 . . . . 1회 일치
          킹 바움고 엉겁결게 역자로 몰리는데 그가 상대하는 여성 검사, "귀부인" 아망도는 아무리 사정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가 쓰는 검은 명도 "시라오우". 슬로우 발라드라는 기술로 킹바움을 일도양단하려 든다. 원래 이 기술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베어서 상대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하는 기술. 킹 바움은 차라리 단숨에 끝내 달라고 애원한다.
  • 원피스/847화 . . . . 1회 일치
          >상디는 드시 돌려받겠어.
  • 원피스/848화 . . . . 1회 일치
          * 한편 죄수도서실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푸딩이다. 푸딩은 루피의 감옥을 지키고 있던 형제들에게 루피와 이야기할 수 없겠냐고 청한다. 의외로 형제들은 순순히 루피의 감옥을 열어준다. "책갈피"를 감옥 사이에 끼우자 엿가락처럼 옆으로 휘어져 버린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푸딩. 루피는 푸딩을 가워하며 해안에 갔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미는 다른 녀석들이 들으면 푸딩이 곤란해지니 그만하라고 진정시킨다.
  • 원피스/861화 . . . . 1회 일치
          모건즈는 그녀가 "해저의 대비보"를 손에 넣었다고 들었다며 가운 소릴 해준다. 빅맘은 기다렸다는 듯 어인섬의 비보 "타마테바코"를 꺼낸다. 게스트들은 호들갑을 떨며 장단을 맞춘다. 빅맘은 [[샬롯 푸딩]]의 결혼식이 끝나면 이 옥갑도 다른 선물들과 함께 개봉할 작정이다.
  • 원피스/865화 . . . . 1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 일행의 뒷처릴 마친 [[시저 크라운]]은 [[샬롯 브륄레]]를 데리고 거울 밖, 다과회장 정문 앞으로 나온다. 이제 작전이 성공하면 탈출용 거울로 일행을 탈출시키는 것만 남았다. 시저는 심장을 되찾고 "연합군"에 복수할 꿈에 부풀어 드시 이 임무를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원피스/868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일까? 이런 지위를 얻고도 여전히 항하는 어리광쟁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슬펐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단 하나 뿐인 마더의 사진을 찢어버린 녀석이 있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 원피스/869화 . . . . 1회 일치
          레이드 슈츠를 장착한 빈스모크 일가에겐 아무 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빅맘 해적단의 열매 능력자가 불꽃세례를 퍼부었지만 조금의 타격도 없이 건재. 레이드 슈츠는 제르마 왕국의 과학 기술력 결집체인 형상기억합금 아머. 페로스페로도 그 가공할 방어력에 감탄한다. 더 늦게 전에 사탕으로 굳히려 들지만 속도에서 따라갈 수가 없다. 이치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와 격한다. 니디는 오븐을 요격해 쵸파를 해방, 레이쥬가 스무디에게 독공격을 퍼부어 나미를 놓치게 한다. 욘디는 다이후쿠의 마인을 간단하게 제압, 그 틈에 캐럿도 풀려난다.
  • 원피스/878화 . . . . 1회 일치
          * 페드로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페로스페로는 건재했고 빅맘의 추격도 다시 시작된다. 그때 루피는 일행에게 뒤를 맡기며 드시 돌아온다는 말을 하는데.
  • 원피스/884화 . . . . 1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의 무장색 패기로도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무적의 회피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몽키 D. 루피]]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리가 없었다. 그 실체는 "견문색 패기". 패기로 미래를 예지하고 거기에 맞춰 효율적으로 신체를 변형해 회피하고 있던 것이다. 루피는 그 원리를 간파함과 동시에 "카타쿠리가 냉정을 잃으면 유효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성공시킨다. 자신의 본색을 들켜 당황하던 카타쿠리는 루피가 기어4를 앞세워 퍼붓는 공격에 얻어맞으며 밀리는 듯 보였지만 금새 냉정을 되찾고 격, 루피는 기어4 상태에서도 나가떨어진다. 다만 카타쿠리 또한 체력소모가 상당한 듯 보이는데.
  • 원피스/885화 . . . . 1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가 평정을 되찾자 [[몽키 D. 루피]]는 기어4 상태에서도 수세에 몰린다. 그럼에도 루피는 같은 찬스는 드시 다시 오고 그땐 기어4의 공격이 먹힐 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확신과는 달리 루피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기어4의 제한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카타쿠리가 그걸 비꼬자 루피가 그걸 자각한다. 루피는 곧바로 퇴각하며 패기를 재충전할 10분을 벌려고 한다. 카타쿠리는 곧바로 추격에 나서는데 지친데다 기어4까지 풀린 루피로선 떨쳐낼 수가 없다.
  • 원한해결사무소/4화 . . . . 1회 일치
         집에 간 마사토는 협박용 비디오와 주소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경악한 마사토는 바로 도망치려 하지만 야쿠자들에게 다시 붙잡힌다. 야쿠자는 자신을 죽일 거냐는 마사토에게, 자신의 거래처 '스네이크 헤드'에게 팔아넘겨 남색가들의 파트너로 만들 것이라고 말해준다. '잃을 게 없는 인간'이므로 대로 '증발해도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는 인간'이므로 팔아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1회 일치
         토사쿠라는 론 기사를 실으려고 하지만, 편집장은 '퇴사할 인간'의 기획을 왜 채택해야 하나며 토사쿠라를 제지한다. 원조 OL 버스터즈의 취재비는 26만이었으나, 토사쿠라가 영수증을 위조해서 21만을 지불하고 26만으로 영수증을 고쳤던 것, 그리하여 무려 70만엔이나 횡령을 했던 것이다. 본래는 징계면직이지만 편집장은 본인이 퇴직하는 대신 횡령 건은 추궁하지 않겠다고 하며 그만둘 것을 종용한다.
  • 원한해결사무소/7화 . . . . 1회 일치
         의료소년원에서 출소한 '키지마 마사루'[* 후부에는 '키지마 카오루'라고도 나오는데, 개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에게 원한해결사가 찾아온다. 16세에 동급생 집에 침입, 자매 둘을 살해하였으나, 4년간 의료소년원 송치를 판결받았던 인물이다. 키지마는 복수하러 왔냐고 하지만, 원한해결사는 당신이 마음에 든다면서 스카우트 하러 왔다고 말한다. 원한해결사는 일단 100만엔을 선물이라면서 준다.
  • 월경전 증후군 . . . . 1회 일치
         월경에 따른 호르몬 등의 신체변화 때문에 월경 주기에 수하여, 월경 2주일 내지 1주일 전부터 일어나서, 월경이 개시하는 것과 함께 소실하는, 일련의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나타내는 증후군.
  • 위의공 . . . . 1회 일치
         위(衛)는 [[삼감의 난]] 이후 구 상나라 영토를 분하여, 송(宋)과 함께 은의 유민을 나눠서 지배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본래 상나라의 수도였던 조가(朝歌)를 수도로 하였으며, 주 무왕의 동생 당숙(康叔)이 백(伯)으로 봉해져 유력 희성 제후국[* 주 왕실의 인물이 분봉된 국가. 주왕실의 성이 희(姬)였기 때문에 희성(姬性)의 제후국이라 한다.]으로 출발하였다.
  • 위키규정 . . . . 1회 일치
          * 달리즘 행위에 대해서는 IP차단을 하며, 식별이 된다면 NTX 아이디에도 제제 조치가 가해집니다.
  • 유기농 . . . . 1회 일치
         일 사회에서는 대개 '유기농=건강' 정도로 받아들여진다.--뭔지 잘 모르지만 비싸고 건강에 좋다니까 사먹는 것.--
  • 유다인 . . . . 1회 일치
         || [[2006년]] [[3월 19일]] || [[SBS]] || [[일요일이 좋다]] - [[동방신기]]의 전극장 || 다인 || ||
  • 유지인(1956) . . . . 1회 일치
         [[1970년대]] 후 TBC 전속 탤런트인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루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6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은퇴, 16년만인 [[2002년]] 이혼과 동시에 전격 복귀하여 지금도 활동 중이다.
  • 윤덕주 (농구인) . . . . 1회 일치
         [[1935년]] [[숙명여고]] 시절 선수로 농구와 인연을 맺은 뒤 대한농구협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각종 체육단체에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449350 윤덕주 농구협명예회장 별세] 매일경제 2005.07.08</ref> 1935년 숙명여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일제강점기 최고의 센터로 이름을 날렸으며 1940년대 초 결혼 후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코트에서 뛴 것은 유명한 일화가 되기도 했다.<ref name="dibigos"/>
  • 윤용현(1969) . . . . 1회 일치
         2007년 3월에 9살 연하의 피아니스트인 박수진씨와 결혼했다. 드라마에서의 인상이 강렬했는지 처가의 결혼 대가 심했다고 한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04/2014050400400.html|#]]
  • 윤진이 . . . . 1회 일치
         [[1990년]]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 (現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어릴 때 현대무용을 하였던 경력이 있다. 중학교 3년 간 미국 얼바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고,<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귀국 후를 졸업하고 영화예술학과 진학하였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였다.<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2011년, 학교로 오디션을 보러온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다.<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2012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 역으로 데뷔했다. 2018년 하기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데뷔 이래 최대의 악역을 맡았다.
  • 은혼/579화 . . . . 1회 일치
         * 가구라 엄마의 이름은 "[[코우카]]". [[카무이]]와 [[가구라]]를 씩 닮았다.
  • 은혼/580화 . . . . 1회 일치
         * 황안의 용맥의 힘만 공급된다면 불사신이나 다름 없지만, 대로 별을 떠나게 되면 살아갈 수 없다.
  • 은혼/585화 . . . . 1회 일치
          * 카무이의 공격에 긴토키는 또다시 쓰러지지만 눈빛은 조금도 꺾이지 않고 격하기를 거듭한다.
  • 은혼/592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또 하나의 고향으로 드시 돌아오라고 훈훈하게 마무리되려고 하는데
  • 은혼/595화 . . . . 1회 일치
          * 오보로는 비록 쇼요는 자기 자신에게 패했으나 제자를 남겼으니 그 제자들은 드시 우츠로를 쓰러뜨리란 말을 유언처럼 남긴다.
  • 은혼/601화 . . . . 1회 일치
          * '''장 클로드 담'''
  • 은혼/604화 . . . . 1회 일치
          * 복되는 전쟁과 거기서 살아가는 고통, 슬픔도 마찬가지. 이것들도 끝에 달해야만 해방이 왔다고 할 수 있다.
  • 은혼/607화 . . . . 1회 일치
          * 이것은 화기를 봉인하는 "화무"라는 연막. 고온에 응에 폭발하는 타입의 연막이다.
  • 은혼/608화 . . . . 1회 일치
          * 거대 기동병시 타케미카즈치. 일 함선의 수십배에 달하는 육중한 대포이다.
  • 은혼/616화 . . . . 1회 일치
          * 건물 옥상에서 투석기를 담당하던 캬바쿠라 "스마이루"의 아가씨들은 다키니의 투석에 밀려서 피신한다. 이들의 리더인 [[시무라 타에]]는 [[료우(은혼)|료우]]와 [[하나코(은혼)|하나코]]와 합류한다. 하나코와 료우 쪽도 투석기가 박살나면서 급히 피신했는데, 아직도 저항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타에는 이들을 피신시키도록 한다. 료우와 하나코는 "힘을 합쳐 마을을 지키기로 했다"고 발하지만 타에는 다키니의 힘을 체감하고 냉엄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 은혼/619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오우가이는 괴물같은 맺집으로 공격을 뿌리치고 긴토키에게 격하는데, 이때 어디선가 무수한 수리검이 날아와 오우가이를 맞춘다.
  • 은혼/621화 . . . . 1회 일치
          * 그 말이 당연하다고 받아치며 나타나는 [[혼죠 쿄시로]]와 "타카마가하라"의 호스트들. 이쪽 쓰지도 않던 안경을 끼고 인텔리인 척한다. 쿄시로는 자신이 저 대포를 만들었다며 자신을 데려가라고 한다. 그러면 나노 바이러스는 멈추겠지만 당신네 별의 여자들이 자기한테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이러스의 포로가 될 거라고 경고한다. 카츠오는 자신도 바이러스를 왕창 가지고 있다고 경쟁하듯 외치는데 쿄시로는 "당신이 가진건 그냥 성병"이라고 단정한다. 카츠오는 "누가 완선이냐"고 발하며 자신의 병명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 은혼/622화 . . . . 1회 일치
          흙탕쥐파의 [[쿠로고마 카츠오]]는 보스가 복귀한 기념인지 앞장서서 신라병들을 쳐나간다. 야쿠자들과 주민들이 합세한 병력이 신라 병력에 대대적으로 격한다.
  • 은혼/626화 . . . . 1회 일치
          * 그때 대편에서 사탄과 누라리횬의 마계대전을 정리하고 온 [[게도마루]]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등 음양사들이 지원하러 온다.
  • 은혼/에피소드 . . . . 1회 일치
         ==== 후전 ====
  • 의상 (신라) . . . . 1회 일치
         기(入法界品鈔記)》<br />《화엄십문간법관(華嚴十門看法觀)》<br />《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br />《제청문(諸般請文)》<br />《백화도장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br />《화엄일승발원문(華巖一乘發願文)》<br />《투사례(投師禮)》외
  • 이강돈 . . . . 1회 일치
         비록 한국시리즈 우승은 못 했지만, 선수 시절 이강돈은 1번 [[이정훈(1963년생)|이정훈]]의 뒤를 받치는 강한 2번 타자로서 맹활약했다. 1990년에는 .335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7사 차이[* 할푼리모 다음 오는 단위가 사. 1모 차이가 났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올림하면 0.3349로 모 단위까지 똑같았다.]로 [[한대화]]에게 밀려 타격 1위를 놓쳤고,[* [[한대화]] 0.334928, 이강돈 0.334862.] 1992년에는 다시 .320의 타율을 기록했다.
  • 이계순 (1927년) . . . . 1회 일치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만들었다. 1991년에는 그가 직접 나서서 공무원 연수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협조를 구했다. 이렇게 해서 개설되기 시작한 ‘여성관련’ 교과목은 ‘국가발전과 여성’ ‘여성문제의 현실과 정책방향’ 등의 과목명으로 1~2시간 특강 형식으로 배정됐다. 그러다가 정규과목으로 개설되고 교육훈련점수에도 영되어 선택과정으로 전환되고 전문과정으로까지 확대됐다. 초창기 교수요원의 확보와 교육자료의 개발 등은 한국여성개발원이 담당했다.<ref>[http://www.womennews.co.kr/news/48170#.VNroPaJFBzo 공무원 양성평등교육이 제도화되기까지]</ref> 1990년 12월 27일의 개각에서 유임되었으며, [[1991년]] 퇴임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에 위촉되었다.
  • 이광호 . . . . 1회 일치
         * 《위의 시학》([[문학과지성사]], 1994)
  • 이덕건 . . . . 1회 일치
         [[2008년]] [[12월]]에는 드라마 제작국 EP(총괄프로듀서)를 맡아 드라마 전을 총괄하였다.<ref>{{뉴스 인용
  • 이문식(배우) . . . . 1회 일치
         사실 그는 '''굉장히 독한 양이다.''' 일단 고등학교 때 진학하려고 작정했던 학교부터 대학교 중에서는 독하기로 소문난[* [[서경석]]이 수석합격을 해놓고도 견디지 못하고 자퇴한 또는 애초에 마음에 안들지만 안전빵으로 지원해뒀던 그 학교다.] [[육군사관학교]]였고[* 물론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합격은 못했지만.]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다가 1년을 못채우고 중퇴,
  • 이방원 . . . . 1회 일치
         고려 시절에 과거에도 급제한 등 문재(文材)도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훗날 백전노장이던 부친의 군대를 친정하여 제압할 정도로 군사적 재능도 있던 나름 먼치킨으로, 정치적으로 노회한 운영을 보여준다. 원경왕후 민씨의 일족이나 세종의 왕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일족을 멸족시키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진력하였으나, 숙청 대상을 확실하게 선을 그어 지나친 옥사는 자제하였으며 또한 사관이나 대간의 역할을 긍정하여 균형추를 맞추는 부분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민생 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여 개국 초부터 피바람 불었던 조선 왕조를 석에 올려놓았다.
  • 이병석(정치인) . . . . 1회 일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4년까지 제19대 국회 전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 이보림 . . . . 1회 일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 이상무(만화가) . . . . 1회 일치
          * 태양을 향해 던져라[* 위의 “울지 않는 소년”의 에니메이션 버전, 그러나 “울지 않는 소년”이 축구를 소재로 한 면 “태양을 향해 던져라”는 야구로 설정되었다]
  • 이상정 (1897년) . . . . 1회 일치
         [[분류:1897년 태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장교]][[분류:한국의 장군]][[분류:일 감정]][[분류:김구]][[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육군 장군]][[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자유 연애]][[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조각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공업대학 동문]][[분류:도쿄 예술대학 동문]][[분류:히토쓰바시 대학 동문]][[분류:고쿠가쿠인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
  • 이상화(1980) . . . . 1회 일치
         2004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 구속은 140km 초중 정도로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이 좋다고 평가되었다. 2006년 무려 121이닝을 소화하며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45경기 121이닝 5승 6패에 평균자책점은 3.87을 기록.], 이 때의 혹사 여파로 인해서인지 이후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금와서는 당시 [[서정환]]감독시절의 혹사로 [[한기주]], [[신용운]] 등만 거론되지만 어찌보면 이 둘보다도 더 심하게 굴려졌다. 2007년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였고, 2009년 시즌이 끝나면서 제대하였다. 하지만 혹사의 여파로 인한 부상으로 전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11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1회 일치
         프로야구 2013 시즌 중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치어리더팀인 블루팅커스에 합류해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프로배구 2013-14 시즌부터 2016-17 시즌까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서도 치어리더 활동을 했다. 보통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김연정]] 등과 함께 손꼽히는 치어리더.
  • 이승현 (1985년 7월)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야월초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윙어]]
  • 이열희 (1924년) . . . . 1회 일치
         === 생애 후 ===
  • 이영 (1494년) . . . . 1회 일치
         [[조선 중종|중종]] 때인 1514년(중종 9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으며, 절도사, 참판 등을 역임했다. 벼슬에 있으면서 염근(廉謹)하기가 무(武班)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자라는 평을 들었다. 1545년 [[조선 명종|명종]]이 즉위하자 단천 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정평 부사에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명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평부사 재직시 사적으로도 백성을 범하지 않아 감사가 포장(褒奬)하고 통정대부로 가자(加資)되었다. 1552년 회령부사로 있으면서 훌륭한 정치를 베풀고 청백리에 뽑혔다. 또한 야인을 회유하여 변방을 안정시켰다. 이듬해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군비 확충과 군사훈련에 공을 세워 동지중추 부사가 되었다. 1556년 평안도 절도사가 되었다. 그 후 병조참판과 제주 목사·경상우도 병마절도사·부호군·호군 등을 지냈다.
  • 이영희 (1936년)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한 그녀는 [[199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ref>[http://news.joins.com/article/18725617 평생 바친 한복, 한류 명품으로 키울 자신 있어요] 《중앙일보》 2015-09-23</ref> [[2001년]] [[6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직할시|평양]]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108528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인생 이야기] 《연합뉴스》 2014-09-06</ref> 또 2005년 APEC 정상회의 때는 APEC 정상회의의 이벤트였던 전통의상 부문에서 참가국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한 바 있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12674691 APEC 정상들의 두루마기 패션쇼] 《한국경제》 2016-01-26</ref>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이다.<ref>[http://news.ichannela.com/enter/3/06/20151004/73990365/1 ‘전지현 시할머니’ 이영희, 누구 한복 만들었나] 《채널A》 2015-10-04</ref>
  • 이은수(육군) . . . . 1회 일치
         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 이장경 . . . . 1회 일치
         성주의 호족으로 [[신라]] 말의 재상 이순유(李純由)의 12대손이며<ref>순유(純由)→광연(光演)→정신(正身)→견수(堅壽)→범(凡)→정거(廷居)→중경(仲京)→영(瑩)→효삼(孝參)→돈문(敦文)→득희(得禧)→이장경(李長庚)</ref>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장경의 아버지인 이득희는 태몽에서 문창성(文昌星)이 경산(京山)에 떨어지는 것을 본 후 이장경이 출생한 까닭에 이름을 장경(長庚)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경은 문창, 태백성의 다른 칭호였다. 그 뒤 성주군수로 부임한 [[합천이씨]] 이약(李若)은 이장경의 재능을 간파하고 후세에 드시 창성할 것이라 예상, 자신의 딸과 혼인하게 하였다. 부인 합천이씨에게서 아들 5명이 태어났다.
  • 이장훈(배우) . . . . 1회 일치
         == 음 활동 ==
  • 이장희 (시인) . . . . 1회 일치
         시인 생존시에 이루어진 평으로는 [[박종화]]와 [[이상화 (시인)|이상화]]의 것이 있다. 박종화는 《조선문단》 1925년 10월호 〈9월의 시단〉에서 《여명》에 실린 이장희의 시〈청천의 유방〉과 〈비오는 날〉을 평가하면서 〈청천의 유방〉은 "기괴를 쓰랴는 마음, 상징을 위한 상징시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작자에 착각적 정서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다만 한 때에 마취된 감흥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혹평했다.<ref>이기철, 〈이장희 연구(1)〉, 《인문연구》6권,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4, 179쪽</ref> 면, 이장희와 동향 친구였던 이상화는 같은 해, 《개벽》 6월호에서 이장희의 시 〈고양의의 꿈〉과 〈겨울밤〉을 이채 있는 시라고 하면서, 이상화를 정관(靜觀)시인이라고 고평하였다. 다만 생명에서 발현된 열광이 없음을 덧붙였다.<ref>{{서적 인용
  • 이재룡(1964) . . . . 1회 일치
         [[2000년대]] 초, 연예계를 휩쓴 X-File 논란에서 "유호정과 쇼윈도 부부이며, 곧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실렸고, 실제로 연예인들이 집단행동에 나섰을 때에도 같이 했던 것 같다. 정작 부부는 "우리보고 벌써 [[이혼]]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면서요? 허허허"하며 웃어넘기는 분위기. [[최수종]] - [[하희라]]부부와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얻었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지만, 눈에 띄는 일 없이 지금까지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듯.
  • 이재영 (뮤지컬배우) . . . . 1회 일치
         1988년 [[MBC 강변가요제]] 본선까지 진출했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는데 이듬해 1989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가수가 되었고, 1991년 [[라틴팝]]을 어레인지한 노래인 '유혹'을 발표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9D%B4%EC%9E%AC%EC%98%81+%EB%82%98%EB%A5%BC+%EC%9E%8A%EC%A7%80+%EB%A7%88|'유혹' 음에 수록된 곡들 중에는 좋은 노래들이 꽤 있다.]][* '유혹'은 '풍선', '새벽 기차'로 유명한 그룹 [[다섯손가락]]의 보컬리스트 이두헌이 작곡한 곡이다.] '유혹'으로 그 해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수상하는등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고 이후 '사랑은 유행이 아니야(1992)' '집시(1993)' '대단한 너(1996)'로 또한번 더 정상권 가수가 되었다.
  • 이재황(배우) . . . . 1회 일치
         === 음 ===
  • 이정호 (1982년) . . . . 1회 일치
         소집 해제 이후 바뀐 팀에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친정 팀과 맞붙었을 때 [[마일영]]의 뒤를 이어 등판, 1군에 복귀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71130302225&ext=na '잊혀졌던 유망주' 이정호의 가운 복귀] - 마이데일리</ref> 이 날은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상목]]이 100승을 거둔 날이기도 했다. 복귀 후 주로 불펜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도 부상으로 4경기에만 등판하여 1홀드만 기록했다.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자 시즌 후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 구단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하여 현재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임의탈퇴된 상태이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270006 '해외도전' 이정호, "추신수에 자극받은 것 아니다"] - OSEN</ref>
  • 이종근(1923) . . . . 1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해원(1930)|이해원]]과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시|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둘 다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단수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 [[이택희]]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1979년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이 되었다.
  • 이종희 (1942년) . . . . 1회 일치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겉보기에는 무척 부드러워 보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강한 추진력을 발휘,매사에 빈틈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대한항공]]이 사업정상화를 위해 제트기를 새로 도입할 당시 신입직원이던 이종희는 영어로 된 부품과 정비매뉴얼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전무한 상황에서 밤을 새워가며 정비매뉴얼을 완벽하게 번역하면서 오너로 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영업부에서 항공기 운항과 정비 등의 운항 종합정보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5년간 휴일을 포함해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사무실을 지켰다는 일화는 지금도 사내에 회자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한 · 프랑스 협력에 앞장서고 세계 항공시장에서 양국 간 경제협력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이종희에게 프랑스 정부 최고 훈장인 레종 드뇌르 슈발리에(La Legion d'honneur Chevalier) 훈장을 수여하였다. 레종 도뇌르 훈장은 ‘영광의 군단’이란 의미를 지닌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데 레종 도뇌르는 일적으로 코망되르, 오피시에, 슈발리에 등 3개 등급으로 구분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04년]] 이 훈장 가운데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인 레종 도뇌르 코망되르를 받은 바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12408021|제목=이종희 대한항공 사장‥40년 한국 민항 역사의 산증인|날짜=2009-11-25|출판사=한국경제|확인날짜=2010-04-12}}</ref>
  • 이준승 . . . . 1회 일치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에는 [[동백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상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상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 이평 (1572년) . . . . 1회 일치
         유학(儒學)으로 [[1612년]](광해군 4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1612년]](광해군 4년) [[5월 12일]] [[광해군]]의 즉위를 방해한 [[유영경]](柳永慶)을 강경하게 탄핵하였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 광해군일기에 그가 유영경의 죄를 탄핵한 기록이 실려 있다. 유영경(柳永慶) 등을 추형(追刑)하고, [[광해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공신(功臣)을 녹훈하고, 역당(逆黨)의 흉서(兇書)를 중외에 포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였다.<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일 을미 1번째기사, 이평이 유영경 등의 추형, 존호를 올리는 일, 공신을 녹훈하는 일 등을 상소하다</ref> 이에 그해 [[5월 29일]]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리는 일을 아뢰었는데 입계하였다. 광해군은 "임금은 부귀하기는 한 나라를 소유하였고 귀하기는 군왕이니, 그 영화와 높게 드러난 것이 그 이상 더할 수 없다. 저 존호를 올려 찬양하는 일은 하늘 끝의 한 점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명예에 대해 옛날의 지사(志士)들은 얻고 잃고 가고 오는 것을 역시 개의치 않았으니, 임금에게 헛된 칭호를 가하는 것이 무슨 털끝만한 보탬이라도 있겠는가. 도리어 손상만 시키는 것이다. 나는 감히 과장하지 못하겠으며 명예도 원치 않고, 다만 본분을 지키다 자연을 따라 죽고자 할 뿐이다. 더구나 지금 이평(李坪)의 상소 하나로 인하여 경들이 정청(庭請)을 그치지 않으니, 내가 더욱 통탄스럽게 여긴다. 내가 비록 불초하지만 어찌 한 애숭이 유자의 망언으로 인하여 경솔하게 당치도 않은 큰 칭호를 받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이럴 리는 없으니, 번잡하게 하지 말고 빨리 물러가도록 하라.<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9일 임술 3번째기사,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숭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ref>" 하였다.
  • 이하영(강사) . . . . 1회 일치
         [[수능개념]]의 경우 중학교 개념, 고1 개념 등등의 수능 비출제 범위이지만 수능 수학의 기초가 되는 부분을 초에 강의해 기초가 없는 학생들을 배려한다.이후 [[수능특강]], [[수능완성]]등에서 문풀을 할 때도, 어려운 공식 등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며[* 이 부분에서 최상위~~어차피 걔넨 ebs 무시하지?~~--무시하는게 아니라 자기들 공부커리에서 ebsi가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학생들은 잘 동의를 하지 않는다.] 공식을 잘 쓰지 않고 일일히 풀어 쓰는 편.
  • 이현 (1983년) . . . . 1회 일치
         == 음 ==
  • 이혜숙(영화배우) . . . . 1회 일치
         1987년 일본 방송계로 진출하여 [[후지 TV]] 드라마 《[[뉴욕]]의 사랑 이야기》에 출연하였고,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일본어]]로 번역한 후지 TV 《JOCX-TV2 - 서울 소울(SEOUL SOUL)》의 진행을 맡았다. 더불어 매주 토요일 밤 12시부터 2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인 《올 나이트 후지》의 MC로 발탁되는 등 80년대 후에는 예능쪽에서 활약했다.
  • 이호준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2007년 상기 드래프트에서 [[이스트로]]의 5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이휘향 . . . . 1회 일치
         * 1982년 [[MBC]] 주간드라마 《[[수사장]]》 ... 여순경 역
  • 인교진 . . . . 1회 일치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기업인 인치완<ref>[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152260&year=2013 인교진 아버지, 연 매출 200억 원대 CEO…‘전 집안’ 눈길↑], 매일경제 2013년 2월 28일자</ref>의 2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 인왕 . . . . 1회 일치
         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다. 2체의 금강역사를 묘사할 때는 한 쪽은 입을 벌리고, 다른 한쪽은 입을 다물고 있다. 입을 "아~!"하고 벌리고 있는 것을 아형(阿形), 입을 "훔~!" 하고 다물고 있는 것을 훔형(吽形)이라고 부른다. 아형은 나라연금강, 훔형은 밀적금강이라고도 부른다. 갑옷을 입은 형상으로 묘사되거나, 상신 나체의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오분율에 따르면 석가모니 곁에는 항상 500명의 금강역사가 있다고 한다.
  • 인조 . . . . 1회 일치
         인조는 [[조선]]의 16대 왕이다. [[인조정]]을 통해 집권했으며, 명과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표방한 [[광해군]]을 비판하면서 존명배금(명을 따르고 후금을 배척한다)를 내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명이 후금보다 여러모로 딸리는 상황이었기에 애매한 외교정책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다.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제리코 너 또한 힘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려 했지 않냐고 박하고 제리코는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거라며 "결국 상처입는건 너 자신"이라고 하지만 고서는 귀기울이지 않는다.
  • 일곱개의 대죄/170화 . . . . 1회 일치
          * 은 제리코와 호크까지 죽을 거라고 말리려 들지만 멜리오다스는 무슨 생각인지 "에스카노르를 믿어라"면서 제지한다.
  • 일곱개의 대죄/172화 . . . . 1회 일치
          * 싸움의 여파는 인질로 잡힌 이들에게도 전해지고 호크는 나가서 멜리오다스를 돕자고 하지만 은 "나가봐야 단장의 방해"라고 잘라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1회 일치
          * 자라트라스는 왕녀가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걸 대하지만 엘리자베스의 의지는 확고하다.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호크를 상대한 탓인지 멜리오다스에게 빈틈을 허용하고 격 당한다.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전혀 통하지 않았고, 격에 당해 공처럼 튕겨나간다.
  • 일곱개의 대죄/196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와 은 오랜만에 재회한 셈이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 일곱개의 대죄/205화 . . . . 1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데리엘]]에게 당해 추락하자 상공에 나타난 두 사대천사는 "잘도 무례한 짓을 했다"고 말하지만 별로 심각한 기색도 없다. 그들에게도 엘리자베스는 "당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혼나는 귀찮은 것" 정도에 지나지 않는 늬앙스다. 둘은 또 과연 "산 미끼"를 가지고 십계가 낚일지 어떨지 내기를 한 모양인데, 시종 존댓말을 쓰는 쪽은 자기 승리라고 주장하지만 대쪽은 "전원이 모이지 않았으니 무효"라고 우긴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회 일치
          * 뤼드셀은 격을 시도하나 전혀 먹히지 않고 점점 궁지에 몰린다. 몬스피드의 공격을 받은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상처를 입고 재생도 시작되지 않는다. 뤼드셀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내뱉는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1회 일치
          이 시대의 젤드리스는 [[고서]]의 감시자이자 "처형인"이다. 그는 십계 고서에게 마신왕의 노여움을 전하며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배자로 간주해 처리하겠다고 엄포한다. 고서도 그렇게 협조적인 태도는 아니다. 그는 다소 날선 태도를 내보이는데 최대한 마력을 온존하고 싶었지만 젤드리스 상대로는 그럴 수 없겠다고 말한다. 분명 싸울 태세다.
  • 일념발기 . . . . 1회 일치
         일적으로 쓰이는 일념발기는 어떤 것을 이루려고 결심하여,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고, 거기에 전력을 쏟아붓기로 한다는 뜻이다.
  •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 . . . . 1회 일치
         か행, た행, は행이 청음으로 분류되며 그중에서 は행은 원래 그 자체가 /p/소리였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로 순음퇴화 현상을 거치면서 현재의 /h/가 되었다. 현재 /p/음가는 '탁음'으로 분류하며 は행 위에 고리 모양의 기호를 붙여 표기한다.
  • 일요목수 . . . . 1회 일치
         [[가구]]의 제작이나 집의 리폼 같은 작업을 처리한다. 가구로는 [[개집]], 선, 의자 등을 만든다.
  • 임각수 . . . . 1회 일치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농지법]] 위 등 여러 비리로 2016년 [[군수]]직을 상실하였다.
  • 임백천 . . . . 1회 일치
         참고로 배우자는 1990년대 초 인기 MC였던 8세 연하의 방송인 [[김연주]]이며, 1993년 3월 27일에 [[결혼]]했다.
  • 임윤선(법조인) . . . . 1회 일치
         2015년 6월 24일 [[TV조선]]의 프로그램 <[[강적들]]> 85회 면세점 전쟁편부터 출연하고 있다. 9월 9일에는 [[KBS]] 드라마 <[[어셈블리(드라마)]]> 17회에 깜짝 출연, 주인공 [[진상필]]을 심문하는 검사로 열연, [[김서형]]에게도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2016년 11월 [[TV조선]] <박종진 라이브 쇼>에서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며, [[채널A]] <신문 이야기 돌직구쇼>에 매일 아침 9시 고정 패널로, 2017년 7월 KBS [[역사저널 그날]]에 고정으로 출연 중이며 2018년 1월 [[JTBC]] [[착하게 살자]]에 출연했다.
  • 임효성 . . . . 1회 일치
         [[2010년]] [[4월 11일]]에 결혼식을 올렸으며, 결혼 당시 이미 유진는 [[임신]] [[속도위#s-2|5개월이었다.]] 첫 아들을 봤는데, 이름이 임유. 유진의 에서 첫 자를 따온 것이라고 하며 서로에 대한 애칭은 베이비라고 한다. 어찌보면 [[인생의 승리자]]라고 볼 수 있다. ~~부럽다~~
  • 자손사고 . . . . 1회 일치
         자신의 부주의나 [[속도위]] 같은 경우에 사용한다.
  • 장계현 . . . . 1회 일치
         == 음 ==
  • 장대환 . . . . 1회 일치
         1988년 매일경제신문 사장 겸 발행인이 되었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으나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2080970403|제목=<nowiki>[張大煥서리 임명]</nowiki> 50세 總理… 평균59세 長官들|확인날짜=2015-10-10|날짜=2002-08-09|출판사=[[조선일보]]|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923224243/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2080970403|보존날짜=2015-09-23|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2/08/003000000200208281839318.html|제목= "'실정법 위' 명쾌하게 해명못해"|확인날짜=2007-10-28|날짜=2002-08-28|출판사=[[한겨레]]}}
  • 장발 (화가) . . . . 1회 일치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남대학교]] 교수 이태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 (1961년)|김민수]]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5-04-07|확인날짜=2008-03-05|제목=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저자=조호진|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7516}}</ref>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남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ref>{{뉴스 인용| url =| 제목 =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상에 일장기 부착| 저자 =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날짜 = 2001년 3월 3일| 출판사 = 오마이뉴스}}</ref>
  • 장순왕후 . . . . 1회 일치
         ***** 언니 : [[윤사로]]와 [[정현옹주]]의 아들 윤(尹磻)과 혼인
  • 장연주 . . . . 1회 일치
         * [[Décalcomanie (테라의 음)|Décalcomanie]] (2000.08)
  • 장우람 (가수) . . . . 1회 일치
         == 음 ==
  • 장우수 . . . . 1회 일치
         == 음 목록 ==
  • 장우혁 . . . . 1회 일치
         * [[2012년]] [[문화방송|MBC]] 《지의 제왕》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1994년 은행원과 [[결혼]]했지만 3년만에 [[이혼]]하였고, 그 후 2000년대 초 [[미국]]에서 15살 연상의 [[재미교포]] [[사업가]] 김상훈과 [[재혼]]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2976972 미스코리아 장윤정 15년만 영화 '트릭' 으로복귀] 세계일보. 2015년 12월 17일</ref> 장윤정은 2016년 9월 27일 [[TV조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업으로 미국을 자주 왕래하는 남편이 미국에 가자고하여 미국에서 살게 되었고 살다보니까 10년 정도 거주를 하게 됐다"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이 남자가 언제까지 나한테 못되게 구나 두고보자라는 생각으로 오기로 결혼을 했다”라며 무뚝뚝한 남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891291 미스코리아 장윤정 “15살 연상 남편 김상훈, 나한테 무심해 매력 느꼈다”] 서울경제. 2016년 09월 28일</ref>
  • 장은아 . . . . 1회 일치
         == 음 ==
  • 장익 (1933년) . . . . 1회 일치
         | 대자 =
  • 장진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 마 장 역
  • 장호 (1920년) . . . . 1회 일치
         10년간 여러 곳을 떠돌다가 [[1945년]]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 직후에 [[태평양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군정기]]가 시작되자 미군정을 대하여 곧바로 [[삼팔선]] 이북으로 월북했다. 특수 교육받고 [[강원도]] 지역으로 들어왔으며, [[남조선로동당]]이 불법화하자 입산하여 [[조선인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평양]]에 정착하고 《[[로동신문]]》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 장후영 . . . . 1회 일치
         [[4·19 혁명]]이 성공한 뒤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에서 특별검찰부장으로 내정되었다가 대가 심해 낙마하였다.<ref>{{뉴스 인용
  • 저변교 . . . . 1회 일치
         진학을 목적으로 하여 실적을 얻는 학교인 진학교와는 대로 저변교는 그 자체가 ‘되도록이면 진학하고 싶지 않은 학교’로 취급받는다. 일단 교육환경이 나빠서, 학생들이 대부분 학력이 없어서(고등학생인데 분수 계산을 하지 못한다 등) 교육의 질이 해당 단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낮다. 물론 비행청소년이 넘쳐나고, 심지어 학교가 평판이 좋지 않다보니 취업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이유가 있다.
  • 전국 BASARA . . . . 1회 일치
          농민 란의 리더인 여자아이. 여신님이 내려준 거대한 망치를 사용한다. 천하통일 모드에서 승리하면 이제 필요 없다며 망치를 여신님에게 돌려준다.
  • 전덕기 . . . . 1회 일치
         '''전덕기'''(全德基, [[1875년]] ~ [[1914년]])는 대한제국시절 독립협회, 을사늑약 대시위, 헤이그 밀사 파견, 신민회를 이끈 인물로 2014년 3월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 전민희 . . . . 1회 일치
         [[세월의 돌]]과 [[태양의 탑]]은 [[아룬드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이어질 같은 세계의 이야기에 속한다. 이는 5부작으로 다뤄질 것이라고 한다. [[세월의 돌]] 집필 이후 [[태양의 탑]]을 집필하다가 출판사의 계약 위으로 인해 5권에서 멈추고, 룬의 아이들 집필과 세월의 돌 개정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2009년 4월]] 개정작업이 완료되면서 2009년부터 태양의 탑이 재집필 되고 있다.
  • 전상우 (1953년) . . . . 1회 일치
         * 1998.03 ~ 1998 : 산업자원부 도체전기과장
  • 전수지 . . . . 1회 일치
         * 《[[신돈 (드라마)|신돈]]》 (2005년, MBC) - 야의 어머니 역
  • 전자사전 . . . . 1회 일치
         사전의 기능 뿐만 아니라 수첩 등의 기능도 가지고 있던 다용도 기기였다. 2000년대 후 나온 전자사전은 노래를 듣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동영상의 경우 인코딩이 필요했지만 그게 어딘가.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1회 일치
          * 카오루가 발하자 에스퍼 제압용 블래스터를 들이대며 "레벨7은 위험분자고 필요하면 제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3화 . . . . 1회 일치
          * 카오루는 납득하지 못하고 발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1회 일치
          * 마기는 발하지만 에스퍼에게는 에스퍼 가족이 필요하다는 지론을 펼치며 그렇게 해야 노멀들에게 굴복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1회 일치
          * 그는 자신의 시간은 세기도 전에 멈췄고 여기 있는건 "나를 죽인 자들에 대한 증오와 여왕을 기다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3화 . . . . 1회 일치
          * 그는 카오루를 매우 가워하지만, 정작 그녀가 효부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는 그도 알지 못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1회 일치
          * 후지코가 준비한 것은 신형 ECM. 이동이 가능하게 만들어 헬기로 운하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1회 일치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로 국장이 정신을 차린다. 블랙 팬텀의 수장도, 판도라의 2인자 [[마기 시로]]도 바벨의 정점 후지코 조차 이기지 못한 세뇌를 일인이 풀러낸 것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1회 일치
          * [[쿠모이 유리]]는 "이게 오빠의 목적인가"라며 당혹해 한다. 효부는 바닥에 떨어진 [[사오토메 에이지]]의 권총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눈 앞에서 후지코를 자살시킨다, 그것도 사오토메의 권총으로. 그게 "목적"인가? 효부는 아니라고 결론 짓는다. 그는 곧 카오루와 유리, [[노가미 아오이]]에게 퇴로의 확보를 맡고 자신은 [[산노미야 시호]], 미나모토와 함께 경비 시스템이 침투하겠다고 한다. 칠드런은 과연 그래도 괜찮을지 주저하는데 효부는 냉정한 태도로 "바보녀"의 처치는 "돌팔이"에게 맡기라고 잘라말한다. 그 말을 들은 "돌팔이" 사카키는 그 표현엔 발하지만 맞는 말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자신은 치료에 전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1회 일치
          * [[머슬 오오카마]]가 효부의 부상 소식에 사색이 돼서 달려온다. 효부에게 자신의 심장을 바칠 테니 써달라는 참 갸륵한 말을 하지만 역시 머슬이 하는 소리라 그런지 효부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거절한다. 머슬은 로비에트 정부가 블랙팬텀에 넘어갔는지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제 대사직도 없어진 자신이 조직에 헌신하는건 그런 것 정도라고 말하지만, 효부는 그 제안에 심전도가 떨어질 정도로 거부응을 일으켜서 결국 보류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1회 일치
         ECM도 작동하지 않고 사람도 없이 텅 빈 형무소 내부 상황을 보면 앞서 예측한 대로 의도된 함정. 일행을 함정에 빠뜨려 역시 정신오염시켜도 좋고, 만약 놓치더라도 이 일을 에스퍼들에 대한 경각심과 감을 부추길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 . 1회 일치
         === 격 ===
  • 정겨운 . . . . 1회 일치
         | [[불청객 - 가운 손님]]
  • 정경호(1972) . . . . 1회 일치
          * [[2011년]] [[문화방송|MBC]] [[넌 내게 했어]] ... 구정은 역
  • 정다정 . . . . 1회 일치
         이광낙은 SLR클럽에도 글을 써 문제 제기를 했고, 정다정은 “그림 한 장 그려주는 거야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한다면 제 입장에선 정말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일전에도 무보수로 홍보용 일러스트 그려 드린 적이 있고요. 문제는 제가 요청 메일을 받은 적이 없어요”라고 재차 밝혔다. 이에 이광낙은 “정다정 씨,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다른 많은 트위터 유저님들의 말씀도 새겨듣고 성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고, 정다정은 이 사과를 받아들였다.<ref name=xports /><ref name=chosun />
  • 정대선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K리그 2011|2011 시즌]] 중 [[경남 FC]]로 이적하였다.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정동현'''(鄭東鉉, [[1997년]] [[3월 20일]] ~ )은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투수]]이다. 그의 형은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 [[정대현 (1991년)|정대현]]이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434287 정대현-동현, 동 선발 등판 속 나눈 형제애]</ref>
  • 정무식(정치인) . . . . 1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영천시|영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권오태]] 후보와 동 당선되었다. 1978년 초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224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2-24&officeId=00032&pageNo=1&printNo=9921&publishType=00020|뇌물수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지종걸]]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에 임명되었다.
  • 정상희(정치인) . . . . 1회 일치
         1960년에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 정성곤 . . . . 1회 일치
         그러나 2016 시즌에는 시즌 초 선발 투수로 등판했을 때 성적이 상당히 안 좋아 6월부터 불펜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 정성현 (배구선수) . . . . 1회 일치
         배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에 배구부가 없어 시작하게 되었다.
  • 정수아 . . . . 1회 일치
         == 음 ==
  • 정영기(배우) . . . . 1회 일치
          * 2016년 《[[졸업]]》 ...동화 역
  • 정인선(탤런트) . . . . 1회 일치
         아역 출신 배우로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와 같은 친구로 등장했다. 의찬이, 정배 다음으로 비중있는 아역배우였다.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에서 한세은 역으로 출연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 정재안 . . . . 1회 일치
         전국고물상연합회 정책위원장직도 함께 맡고 있다. 올바른 재활용정책 방향에 대해 경향신문에 폐기물 운차량 규제 강화 ‘탁상행정’
  • 정재용(1973) . . . . 1회 일치
         2018년, 걸그룹 [[아이시어]]의 前 멤버 선아와 12월에 [[결혼]]할 것을 선언 했다. 2016년부터 교제해왔으며, [[속도위|혼전 임신]]이라고. 참고로 선아는 정재용보다 19년 연하.
  • 정정아 . . . . 1회 일치
         * 2002년 [[MBC]] 느낌표 <길거리 특강> 장 역
  • 정종 . . . . 1회 일치
         후궁 소생이라고 계승을 인정하지 않으면 후궁 제도는 혈통 단절을 막는 제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저 왕의 성욕 처리에만 동원되는 제도로 전락한다. 정종이 자기 자식에게 계승을 못한 것은 워낙 세력이 밀렸기 때문이지 서자만 있어서 계승을 못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그만큼 태종의 세력 기이 탄탄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 정채진 . . . . 1회 일치
         '''정채진'''(鄭埰鎭, [[1932년]] [[4월 27일]] ~ [[2008년]] [[7월 26일]] , [[대구광역시|대구]])은 공무원이자, 시민사회 운동가이다. 검정고시 출신 관료로 일 공무원 공채에 합격, 공무원 재직 중 다시 보통고시에 합격하였다. [[박정희]] 정권에서 [[대구직할시장]], [[경상북도지사]], [[부산직할시장]]을 역임하였다.
  • 정태성(정치인) . . . . 1회 일치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친 [[김종필]]계에 속하면서 [[3선 개헌]] 대 운동을 하다가 민주공화당에서 제명되었다.
  • 정혜선(배우) . . . . 1회 일치
          * [[왕꽃 선녀님]] : 해당 작품에서 공연했던 [[사미자]]는 정혜선이 출연한 [[KBS 2TV]] [[시트콤]]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에서 할머니 역[* 정혜선 분.]에 한때 거론되었지만, [[MBC]]의 [[보고 또 보고]] 녹화일과 겹쳐 고사했으며, 사미자 외에도 [[여운계]], [[전원주]], [[효정]] 등이 물망에 올랐다.
  • 젖소 . . . . 1회 일치
         젖소가 젖을 생산하려면 당연히 새끼를 배어야 하는 것이 기본 조건이라서, 젖소들은 새끼 출산하고 좀 지나면 다시 수정시켜서 새끼를 배기를 복한다. ~~인간으로 대입시켜 보면 이른바 '귀축물' 시츄에이션(...).~~
  • 제2편성제도 . . . . 1회 일치
         전시 상황에서 사단장은 완편 사단을 거느리고, 2명의 부사단장 가운데 1명만 데리고 전선으로 이동한다. 하부에서도 이는 복되어, 평시에 부사단장, 부참모장, 부연대장, 부대대장을 수행하던 사람이 각 1명씩 남게 된다. 이들은 동원명령을 받고 입소하는 예비군으로 새로운 사단을 편성한다. 새로운 사단에는 기존 사단이 무장을 교체하면서 남겨두었던 구식 무기들을 지급한다.
  • 제령 . . . . 1회 일치
          * [[야심경]]을 외운다.
  • 조진호 (축구인) . . . . 1회 일치
         [[2000년]] 대한화제컵 포항과의 A조 2차전서 멀티골, 연장전 골든골을 기록하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으며,5월 5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전남 드래곤즈]]와의 대회 결승전서 연장 전 4분 [[전경준]]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골을 기록하며 부천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 주아브 . . . . 1회 일치
         [[빈센트 고흐]]가 그린 그림 중에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53520&mobile&cid=46720&categoryId=46846|주아브 병사]]라는 그림이 있다.
  • 죽는다 죽는다 사기 . . . . 1회 일치
          * 창작물에서 확실하게 캐릭터가 사망하는 연출이나 언급이 있었지만 보였지만, 죽지 않았던 경우. 특히 이런 것이 복되는 캐릭터.
  • 줄리아나 도쿄 . . . . 1회 일치
         총 공사비 15억엔, 총면적 1000제곱미터, 댄스플로어 160제곱미터, 천장 높이 8미터, 좌석수 500, 최대 수용 인원 2000명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디스크 홀로서, 첫해 입장객 수는 32만, 이듬해에는 61만으로 증가했다. 전성기에는 일인은 최대 4시간은 대기해야 했으며, 최대 500명의 손님이 들어가지 못하고 입점을 거절당한 날도 있었다고 한다.
  • 지박령 . . . . 1회 일치
          * 갑작스럽게 죽어버려서, 자신이 죽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장소에 묶여버린 영혼. 괴담에서는 자신이 죽을 때의 상황을 복하기도 한다. 자박령(自縛霊)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진격의 거인/80화 . . . . 1회 일치
         * 원래 적당한 지형물이 없어 불가능해보였지만, 리바이는 짐승 거인 옆으로 차례로 도열한 거인들을 입체물로 이용하여 입체기동과 척살을 복한다.
  • 진격의 거인/99화 . . . . 1회 일치
          * [[빌리 타이버]]는 대중들을 상대로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사실 거인대전을 끝낸 주역은 타이버가도 마레인도 아닌 "프리츠 왕" 그 자신이며 평화를 위협하는 역자는 "엘런 예거"임을 폭로한다.
  • 진구 . . . . 1회 일치
         | [[순정에 하다]]
  • 진학교 . . . . 1회 일치
         사실상 댓말은 저변교(底辺校)이다.
  • 진헌식 . . . . 1회 일치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 정권에 발하여 민주회복국민선언에 서명하고 민주회복국민회의에서 활동하였다.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회 일치
         일본 대법원에서는 2심을 인정했다. 일본에서는 정당방위 등의 개념에 대해서 드시 나오는 판례로 유명하다.
  • 창작:6피트 계획 . . . . 1회 일치
         년이 지난 후, 주인공은 세상을 원래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세계로 흘러들어온다.
  • 창작:마스터즈 . . . . 1회 일치
         마스터 오브 오리온 기에서 시작했던 팬픽. 이젠 원작과 거리가 멀어져서 그냥 그런 SF로 선회.
  • 창작:좀비도시 . . . . 1회 일치
          * 대규모 화력을 동원한 도시 파괴는 내부의 생존자들이 사망할 우려가 너무 크며, 대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치적 관점에서 어렵다.
  • 창작:좀비탈출/0 . . . . 1회 일치
         이후로 그 소리가 사라진 적은 없다. 우리집의 튼튼한 담벼락이 무색하게 녀석들은 열려진 대문으로 들어와서 산책했다. 방송이 끊어졌지만 우리 동네도 '''위험구역'''에 들어갔다는걸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이 도 어딘가에 위험구역이 아닌 곳이 남아있을 때 얘기겠지만.
  • 창작:좀비탈출/0-1 . . . . 1회 일치
         사실 확인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재산도 아니지만, 몇 번을 세어봐도 현실감이 없어서 세기를 복한다.
  • 창작:좀비탈출/4-0 . . . . 1회 일치
          * {{{#red 적어도 의식주만큼은 드시 챙겨야 합니다.}}}
  • 창작:좀비탈출/5-1-1-1 . . . . 1회 일치
         정작 토트넘의 다이너스티는 '''일 모델'''이었다.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1회 일치
         '''아줌마.'''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 이렇게 있으니까 '''평범한 시체'''같군. 바글거리는 파마머리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상신에는…… 또 '''토트넘'''이냐? 이놈의 집구석은 토트넘 유니폼을 일상복으로 입고 있었어? '''그만 좀 해라!''' 좌우간 이게 이 집 아줌마였다는건 분명한 사실이군.
  • 창작:좀비탈출/5-1-2 . . . . 1회 일치
         좋아,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시간은 썩어나게 많으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잡지를 치웠다. 이 잡지는 안방에서 찾았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말을 말자. 인터넷도 전기도 끊긴 지금은 이게 유일한 찬거리다.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적어도 정신적 위안은 찾을 수 있다. 구식이라 고맙습니다 아버지.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1회 일치
         토트넘의 집은 우리 집하고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고 구조나 면적도 거의 비슷하다. 그렇게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앞마당이 이쪽이 좀 넓었는데 그건 차고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뒷문이 따로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문제의 차고는 차고문이 활짝 열려 있고 차는 보이지 않는다. 가만 토트넘네 차는 분명…… 그래 '''다이너스티'''. 분명 그런 차였다. 토트넘이 생전에 애지중지하면서 끼고 살았다. 이 불쌍한 양은 죽어서도 편히 눕질 못하더니 아끼던 차까지 털린 것이다.
  • 채동욱 . . . . 1회 일치
         [[조선일보]]가 혼외자식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법무부에서 감찰을 발표하자 감찰 발표 당일, 취임으로부터는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 등 혐의로 기소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수 의견이 있다.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40600055&code=940301 채동욱 "지난주부터 청와대에서 메시지 받았다…의혹 사실 아니라 해도 나가라는데 어떡하겠나"]《경향신문》</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3/2013091300178.html?related_all 蔡총장, 오늘 本紙 상대 정정보도 소송 제기]《조선일보》</ref>[[청와대]]는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며 검찰과의 갈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채동욱은 유전자검사를 하지 않으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정정보도 청구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아이가 미국에 체류중이고 혼외자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인 임모 씨가 잠적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이 채동욱의 아들이라 볼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2016년 법원은 혼외자 의혹은 결국 의혹을 구실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모종의 음모라 짐작되며, 국정원 상부 내지 그 배후세력의 지시에 따라 (개인 정보 조회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tvh&oid=437&aid=0000104506&sid1=291 "채동욱 뒷조사…법원, 판결문에 '배후·음모' 18번 언급"]</ref>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가 사춘기여서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친자로 확인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기로 아이 어머니와 합의한 상태라고 해명하였다.<ref>[http://www.etnews.com/20170705000358 채동욱 “혼외자 논란, 가슴아프고 다시 한 번 죄송하다”]</ref> <ref>인용:“2013년 9월 보도 이후 친자 여부에 대해 진행이 됐고 그쪽과 이야기해서 아이가 사춘기니 성인이 된 뒤에 DNA검사를 해서 확정을 짓고, 사실로 알려지면 당연한 책임을 지기로 합의를 했다”</ref>
  • 천운영 . . . . 1회 일치
         {{일인 정보
  • 철공소 . . . . 1회 일치
         소규모 철공소에서는 문, 난간, 계단 같은 철제 건축 자재나, 손수레 같은 것을 제작한다. 소규모 철공소는 주문제작 하는 경우가 많으며, 용접이나 선가공 등의 작업을 한다. 근래에는 철공소 별로 기술의 전문화, 분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 철인 28호(로봇) . . . . 1회 일치
         철인의 힘을 노리고 조종기를 노린 경우도 있다. 철인은 자율사고회로가 있으나 애니메이션 오프닝 가사에서도 언급되듯이 조종기에 의해 조종되고, 조종기는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종기 관리에도 주의가 따른다. 게다가 탑승이 아니라 외부에서의 원격조종이기에 철인이 아무리 파괴되어도 조종사는 무사하지만 대로 조종사만 해결하면 철인도 무력화된다는 약점이 있다. 이외에도 전파방해 등의 이유에 의해 조종사가 무사해도 철인을 조종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 체스 . . . . 1회 일치
          한번에 한칸씩만 전진할 수 있는 말. 대편 끝까지 도달하면 원하는 말로 승급할 수 있다. 보통 퀸으로 승급한다.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1회 일치
         좋아하는 음식 그루베니아 토속 음식 전, 술
  • 최계훈 . . . . 1회 일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교인 [[인천고등학교]]에서 야구부 감독을 역임했고, [[2011년]] [[LG 트윈스]]의 [[투수]] 코치로 돌아왔으나, 그 해 [[LG 트윈스]]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박종훈 (1959년)|박종훈]] 감독이 사임했을 때 동 사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야인으로 지냈다.
  • 최두호 . . . . 1회 일치
         |격투 기 = 스트라이커
  • 최성준 (법조인) . . . . 1회 일치
         그러다가 2012년 2월에 장인어른인 [[김용철 (1924년)|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1973년부터 2년간 법원장으로 근무한 춘천지방법원에서 제44대 춘천지방법원장 겸 제42대 강원도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도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명심보감 성심 편의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 든 구저기(反求諸己)니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법관을 단순히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고급 간부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국민을 심판하는 권한만 있다"며 "국민으로부터 받은 법관의 권한은 재판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목적이 특정된 만큼 취지에 맞게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취임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2/16/0200000000AKR20120216185000062.HTML]</ref>로 시작한 법원장을 재임하여 임기 2년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돌아와 재판 실무를 담당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2014년 4월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방송통신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양헌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인 최기준과 법무법인 양헌에서 공동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는 최경준이 동생이다.
  • 최수진 (무용가) . . . . 1회 일치
         |수상 = [[2007년]] 제37회 동아무용콩쿠르 일부 현대무용 여자부문 은상
  • 최아라 (모델) . . . . 1회 일치
         *서울컬렉션 조니 헤이츠 재즈, 르이, 폴앤앨리스, 달리스트 모델
  • 최영이 (종교인) . . . . 1회 일치
         최영이는 [[한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본받아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혼담을 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는 매우 독실한 교우여야 하지만, [[양]]이나 부자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44세의 늙은 홀아비인 [[조신철 카롤로]]와 결혼했다. 이듬해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 최정원(1981년 4월) . . . . 1회 일치
         참고로 동생 최정민은 푸드스타일리스트로 방송에 출연하였다.[* 대표적으로 죽 쑤는 여자 죽지 않는 남자에 출연하였다.] 또한 외모가 언니랑 상당히 닮았고 자매지간이 상당히 사이가 좋다. 또한 언니랑 함께 여행 프로인 Real Mate에 동 출연하였다.
  • 최진순 . . . . 1회 일치
         최진순은 [[1990년]]대 중 PC통신 천리안에서 정기간행물을 표방한 [[보테저널]]을 발행하며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과 1세대 PC통신 논객 대열에 올랐다. [[1999년]] 7월 인터넷 최초의 독립 일간지인 <온라인 뉴스> '뉴스24' 창간을 주도했다. 여기서 최초의 유급기자를 둔 웹진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 최태수(가수) . . . . 1회 일치
         == 음 ==
  • 최항석 . . . . 1회 일치
         [[1981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M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그 후 [[1986년]] [[영화]] 《입을 연 석류》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이후 [[문화방송|MBC]], [[KBS]], [[SBS]], [[EBS]]의 공중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그는 [[2002년]] [[MBC]] [[텔레비전 드라마]] 《[[리멤버 (드라마)|리멤버]]》의 오 주임 역과 [[2002년]] [[SBS]]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의 임동호 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2002년]] [[MBC]] [[시트콤]] 《[[연인들 (시트콤)|연인들]]》에서는 극중에서 [[연극]] [[배우]]인 [[김형자]]와 함께 [[배우]]와 [[연출가]]들의 사이로서의 호흡을 오래도록 동한 [[연극]] [[연출가]] 최항석 역, 연극연출가 이주헌 역, 연극연출가 김세호 역으로 각각 몇회간을 단역하였다.
  • 최혁 (1992년 3월) . . . . 1회 일치
         * 《[[위험한 상견례 2]]》 (2014년) - 감식 팀원 4 역
  • 최효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서울연희초등학교,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거쳤다. 빠른 스피드와 힘을 기으로 공격력이 뛰어난 수비를 펼친다. 대학때까지는 공격수로 뛰었고, 프로 데뷔후에는 오른쪽 미드필더로서 활약하며 공격이나 공미, 윙백, 풀백 모두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다. 체력이 좋아 마징가에 빗댄 '최징가' 라는 별명이 붙었다.
  • 추봉 (배우) . . . . 1회 일치
         [[1922년]] [[경성부]]에서 3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편집위원회). 이승학(李升學)의 문하에서 5년간 음악을 배웠으며, 1940년부터 극단 성군(星群)에서 활동했다. 영화데뷔는 1952년 손전 감독의 《공포의 밤》에 배우 양일민의 추천으로 출연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꾸준히 조,단역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1999년 제3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한겨레신문).
  • 취활 . . . . 1회 일치
         일본의 속어. 취직활동(就職活動)의 줄임말. 우리말의 취준과 비슷하다. 다만 국내에 국한되는 취준과는 달리, 재취업 등 사회 전의 취업 활동에 있어서 폭넓게 쓰이는 경향이 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781273.html (참조)]]
  • 츤데레 . . . . 1회 일치
         전형적인 츤데레 모델은 신세기 에게리온의 아스카.
  • 치킨 . . . . 1회 일치
          가장 일적인 치킨. "튀긴 닭고기 튀김"이라는게 이상하게 여겨지는지 "크리스피 치킨"이라고도 불린다.
  • 카라스노 고교 . . . . 1회 일치
         전적으로 수비력이 떨어지는 팀이었지만, [[후쿠로다니 학원|후쿠로다니 학원 그룹]]과의 단체 합숙 등으로 팀원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런 느낌은 많이 사라진 분위기. 다만 수비력이 떨어지던 시절에도 희대의 사기캐인 [[니시노야 유|주전 리베로]]와 윙리베로(...)급 활약으로 수비를 [[캐리]]했던 [[사와무라 다이치|주장]]이 있었다.
  • 카라아게 . . . . 1회 일치
         || 왼쪽부터 레드(매운맛), 레귤러(일), 치즈 ||
  • 카를로스 4세 . . . . 1회 일치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스페인은 모든 함대를 잃었고, 1807년에는 [[퐁텐블로 조약]]으로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군이 이베리아 도에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결국 국민들이 분노하여 1808년 3월 황태자 페르난도([[페르난도 7세]])가 이끄는 아란후에스 폭동이 일어나, 페르난도에게 양위하고 퇴위, 망명하였다.
  • 카맛테쨩 . . . . 1회 일치
         자신을 걱정하고 돌봐주기를 바래서, 이상한 언동을 복하는 사람. 인터넷에서는 [[SNS]]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 카시오리 . . . . 1회 일치
         사죄 방문을 할 때는 [[도게자]]와 셋트로 지참하는 것이 일적.
  • 카자미노 시 . . . . 1회 일치
         [[사쿠라 쿄코]]의 본래 주거지로서, 작중에서 [[미타키하라 시]] 부근애 위치한 도시로 언급된다. 드라마 CD인 《farewell story》와 극장판 《역의 이야기》에서 언급되었다. 《TDS》에서도 등장.
  • 카타르시스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흔히 일 사회에서 카타르시스는 그냥 '통쾌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카타르시스는 비극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요즘 기준으로는 거의 '''[[발암]]에 가까운 상황'''(…)을 카타르시스로 보는 경우가 많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1회 일치
          말 그대로 벽. 일적인 공격을 가로막는다. 보병의 총탄에 부서지지 않는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 . . . 1회 일치
          * 같은 RTS 장르지만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와는 상당히 게임의 흐름이 다르다. 자원채취에서는 하베스터 한 대 한 대가 중요하고, 자원수집이 느린 면 유닛의 생산속도는 무척 빠르다.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 . . . 1회 일치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특유의 시스템을 축소한지라 처음 나왔을 때는 "[[일렉트로닉 아츠|EA]] 놈들이 이상한걸 C&C라고 내놓았다!"라는 응이 흔했다. [[커맨드 앤 컨커 4: 타이베리움 트와일라잇]]이 나온후 6년째 신작이 안나오는 지금은 그런거 없지만.
  • 켄카양성패 . . . . 1회 일치
         이 관습은 본래 사무라이 계층의 것이었지만, 무로마치 시대에서 에도 시대에 걸쳐서 사무라이 계층의 풍습이 관습법적으로 여겨져 사회 전에 퍼지게 되었다.
  • 켄카킥 . . . . 1회 일치
         프로레슬러 쵸노 마사히로(蝶野正洋)의 경기에 기원이 있어, [[로프 동]]으로 돌아온 상대 선수에게 발차기를 날렸는데 이 때 해설이 "마치 야쿠자의 발차기 같습니다!"라고 외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 코난 월드 . . . . 1회 일치
          * 그 면에 범죄에 관한 지능과 능력은 괴이하게 높다.
  • 코난(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원작소설인 남겨진 자들에선 설정이 달라서 처음 나올때 10대 후이었다가 섬에서 표류하면서 20대 청년으로 자라났다. 물론 원작에서도 무인도에서 홀로 먹고 살며 지내서 매우 튼튼해 강인한 점이 돋보인다. 다만 발가락 힘은 없다. 코난 특유의 발가락 힘은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것이다.
  • 코토부키 퇴사 . . . . 1회 일치
         여성이 결혼을 계기로 하여 일을 그만두는 일이 일적이었던 시대 배경과, 여성의 행복=결혼이라는 관념에서 태어난 말이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1회 일치
          일적인 6연발 리볼버.
  • 콜만스코프 . . . . 1회 일치
         콜만스코프는 19세기 후에 [[다이아몬드]] 붐으로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이 지역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다이아몬드를 캐려는 광부들과 그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정착한 것. 콜만스코프가 성장하면서 거주민들을 위한 술집, 학교, 병원, 오락 시설 그 외 등등도 만들어지며 큰 마을이 되었다.
  • 콩조림 . . . . 1회 일치
         콩조림은 소스와 함께 콩을 삶아낸 요리다. 베이크드 빈즈(Baked beans)라고도 부르는데, 'Baked'에서 연상되는 '굽는다'라는 이미지와 달리 조림에 가깝다. 콩이 재배되는 거의 대부분의 지방에서 존재하는 요리 방식으로 대한민국에선 콩자이라고도 부르는 콩조림 요리가 있다.
  • 쿼터뷰 . . . . 1회 일치
         [[게임]]의 [[시점]] 표현 가운데 하나. [[맵 타일]]을 일적인 정사각형이나 육각형(헥스)이 아닌 120도 각도의 [[마름모]]로 표현하며, 캐릭터를 그에 맞춰서 그린다. 각 맵 타일은 정육면체를 모서리 쪽에서 바라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높이' 개념을 가지고 있다.
  • 키드르 . . . . 1회 일치
         중앙아시아 이슬람교에 따르면, [[독소전쟁|대조국전쟁]] 전야 키드르가 [[스탈린]](!)의 꿈에 나타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모스크를 다시 열게 하면 이기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스탈린은 부하들의 대를 물리치고 몇백개의 모스크를 다시 열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독일의 침공에 국내의 이슬람이 동조할 것을 우려하여 이슬람 탄압을 완화시켰다.]
  • 킹덤/497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왕분의 의견은 정대. 그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게 아니냐고 딴죽건다. 몽념이 예상한대로 왕분은 비관적인 입장이다. 업 자체도 한단에 버금가는 대도시에 강력한 군사도시가 즐비한 왕도원 안에 위치한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이 작전은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하료초도 속으로는 그 평에 맞장구친다.
  • 킹덤/502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 [[마남자]]는 오르도의 진로를 확인하는데 오르도는 무슨 일인지 남쪽의 중도시 "청가"를 향해 진군 중이라 한다. 이목과 마남자의 눈이 번쩍 뜨인다. 부하들은 어리둥절한다. 이목은 청가엔 "사마상"이 있다며 색한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도 사마상의 이름도 잘 모른다. 한 사람이 "청가성 성주로 병이 있어서 은둔하고 있다.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며 말하는데 이목은 그건 전부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건강하며 그저 중앙에서 오는 명령을 무시하기 위해 그런 명분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남자는 충격적인 말도 더한다.
  • 킹덤/503화 . . . . 1회 일치
          * 그때 좌측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군이 들이닥친다. 조나라의 선발 기마대다. 왕전, 환의, [[양단화]]가 민감하게 응한다. 적의 수는 3천에서 5천 사이로 부대를 둘로 나눠서 아군의 전방과 측면을 뚫으려는 속셈이다.
  • 킹덤/505화 . . . . 1회 일치
          * 한편 공성을 맞은 지휘관 이신, [[하료초]], 양단화를 만나고 있다. 양단화는 [[바지오]]와 [[타지후]]를 대동. 하료초는 왕전의 의중이 어떻든 진짜 자기들만으로 열미를 따낼 각오를 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이견은 없다. 하지만 하료초가 이틀안에 공성을 마치자고 하자 양단화는 나절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이신과 하료초를 놀라게 한다. 이신은 좋은 책략이라도 있는 거냐고 묻는데 그녀의 대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 킹덤/508화 . . . . 1회 일치
          * 열미가 기마대를 앞세워 아군에 격하자 한순간 동요가 심해지나 곧 [[이신(킹덤)|이신]]이 [[왕의(킹덤)|왕의]]의 창을 휘두르며 위엄을 떨친다.
  • 킹덤/512화 . . . . 1회 일치
          * 이목은 방금 전의 첩보가 진짜라면 조와 진, 양국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시작된 거라고 말한다. 이미 확인했듯 진의 목표는 업이다. 여기에 떨어진다면 왕도 한단의 목전까지 진의 칼날이 들어온다. 조나라는 진에 의해 분단되어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대로 진 연합군이 실패한다면. 업을 함락하지 못하고 궤멸한다면 진은 20만 병력과 대장군 왕전, 환의, 양단화에 유능한 장군과 참모들을 일거에 잃는다.
  • 타쿠마 마모루 . . . . 1회 일치
         1995년 11월 27일에는 같은 직장의 여성과 양자결연을 맺어 성이 바뀌었다가, 1997년 1월에 양자결연을 해소하고 타쿠마로 돌아왔다. 타쿠마는 여성에게 [[위자료]]로서 200만엔을 달라고 강요했다. 1997년 3월에는 39세 여성과 3번째로 결혼했다. 하지만 12월에는 이혼을 요구받고, 고베 지방 법원 히메지 지부에 이혼조정을 요청했다. 타쿠마는 이 여성과의 재결합에 집착하여 앙심을 품게 되었다. 1998년 6월에 이혼 조정이 성립되었은아, 타쿠마는 전처를 복해서 스토킹 하고, 교제중이던 다른 여성을 폭행하여 체포되었으며, 전처에게도 유사 사건을 일으켜서 체포되었다. 10월 18일에는 교제중이던 여성과 4번째 결혼을 했다.
  • 태보 . . . . 1회 일치
         태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사용하여, 에어로빅처럼 음악에 맞춰 춤추듯이 움직이고 동작을 복하여 트레이닝을 한다. 태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쓰기 때문에 운동만이 아니라 [[호신술]]로도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동작만 연습하는 것이고 실제 대련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에 무술로서의 성격은 희박하다.--대신 빌딩은 파괴할 수 있다.--
  • 테란 . . . . 1회 일치
         부패한 독재 국가인 [[테란 연합]]이 등장. [[저그]]와 [[프로토스]]를 비롯한 [[외계인]]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 틈을 타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이끄는 혁명 조직 [[코랄의 아들들]]이 세를 불리고, 마침내 테란 연합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코랄의 아들들의 일원이었던 [[짐 레이너]]를 포함한 일부는 멩스크가 보였던 끔찍하고 비열한 행위[* 테란 연합의 수도성인 타르소니스로 저그 떼거리를 유인했다. 자신을 따라왔던 [[사라 케리건]]을 저그 떼 사이에 내다버린건 덤.]에 감을 느껴 코랄의 아들들을 떠난다. 하지만 멩스크는 [[테란 자치령]]을 세우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앉는다.
  • 테미야게 . . . . 1회 일치
          * 코토크 : https://kotobank.jp/word/手土産-576875
  • 테헤페로 . . . . 1회 일치
         초창기에는 주로 히카사 요우코와 성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당시 [[케이온!]]의 성우 멤버들이 감염되었으며, [[토요사키 아키]]가 자주 썻다고 한다. 이후 성우계를 넘어서 연예인들에게 퍼지기 시작했고, 청소년들에게 유행어로 빠르게 퍼져나가서 일적으로 정착됐다. 히카사 요우코는 야망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텐프레 . . . . 1회 일치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영어에서의 템플릿(Templet, Templete)은 어떠한 판형을 의미하며, IT쪽에서는 좁게는 플로우차트에서 넓게보면 프로젝트 관리상까지 포함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관습 및 서식화된 표준을, 디자인에서는 일화된 패턴과 믹스[* 글렌체크라든가 스프라이트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본의 속어로는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 토니 고 . . . . 1회 일치
         브랜드 출시 첫 해, 4백 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ref name="포브스 프로필"/> 2000년대 초 닉스는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였다. 또 2008 금융 위기 시절, 저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오히려 불황은 기회가 되었다.<ref name="헤럴드"/> 또 토니는 사람들이 [[미셸 판]] 등 뷰티 유튜버에 영향 받는 모습을 보며,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SNS]]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ref name="헤럴드"/> 이후 15년 동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간 후, 2014년 [[로레알]]에 닉스를 5억 달러에 매각했다.
  • 토리코/358화 . . . . 1회 일치
          * 네오는 이 우주에서 소멸과 재생을 복해 왔다
  • 토리코/363화 . . . . 1회 일치
          * 기척을 눈치채고 격을 가해 NEO의 팔이 날아가지만, NEO는 그걸 먹고 다시 재생한다
  • 토리코/367화 . . . . 1회 일치
          * 지로는 "이게 얼마만이냐"며 가운듯 다가가지만 순식간에 노킹을 건다.
  • 토리코/368화 . . . . 1회 일치
          * 이것은 마치 구르메계로 오기 전, 치치의 집에서 "풀코스의 냄새가 묻은 사과"를 보았을 때와 같은 응이다.
  • 토리코/371화 . . . . 1회 일치
          * 죠아는 의외로 아카시아에게 말을 하면서 수평적 관계임을 어필한다.
  • 토리코/375화 . . . . 1회 일치
          * 죠아는 "내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겠느냐"는 스타준의 말에 "알리도 없고 흥미도 없다"며 심드렁하게 응한다.
  • 토리코/377화 . . . . 1회 일치
          * 스카이디어가 설치한 백채널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하는 일적인 백채널과 달리 "시간을 가속시키는 백채널".
  • 토리코/380화 . . . . 1회 일치
          * 근접 공격을 시도했던 원왕 밤비나는 신이 뜯어먹힌 채로 늘어져 있다.
  • 토리코/386화 . . . . 1회 일치
          * 미도라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회피하려 하나 이 공격은 처음부터 소수파를 감안하고 대 방향으로 날린 공격이었다. 결국 미도라에게 향하는 공격.
  • 토리코/394화 . . . . 1회 일치
         * 미도라는 자신의 힘을 속죄하는데 쓰겠다고 말하고 토리코와 스타준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들에게 "사이좋게 같은 식탁에 앉아라"라고 충고해주는데 토리코는 그가 기뻐 보인다고 말하고 미도라도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다. 미도라는 자신의 에너지를 맛으로 바꿔서 지구 전체를 향해 발사한다. "구르메 스파이스". 한때 인간계를 괴멸시켰던 미티어 스파이스에 대되는 힘이다.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간 미도라의 에너지는 식재로 전환되고 스파이스가 닿는 곳마자 울창한 숲이 생기고 새로운 식재가 풍족하게 피어난다.
  • 토리코/395화 . . . . 1회 일치
          * 지금까지 뒷모습만 보였던 플로제가 미도라를 향해 돌아선다. 미도락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 플로제는 그를 겨준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1회 일치
          * 말년에 얻은 자식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총애하였다. 어린 나이의 히데요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무리수를 썼고, 그 때문에 오히려 토요토미 정권의 기을 악화시켜 히데요리는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망하고 토요토미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고 평가된다. 손녀 [[김혜수]]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 . . . . 1회 일치
          * 기술을 연구하고 도시를 확장시킬수록 점점 근대화가 이루어진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면 연구 가능한 기술이 늘어나고 신식 유닛의 비용이 할인되지만 동시에 구식 유닛의 비용이 증가하며 불만도도 증가한다. 근대화로 인한 불만도를 통제하지 못하면 사무라이 계급의 란이 일어난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1회 일치
         한글명칭 등등은 스팀 창작 마당의 [[http://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545973851&searchtext=korean|Full Korean Localization (Steam Edition)]]를 기으로 했다.
  • 트럭 . . . . 1회 일치
         [[자동차]]의 한 종류. 화물운에 최적화된 차종이다.
  • 틀:스포일러 . . . . 1회 일치
         이 틀의 아래에는 <b>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전 요소</b>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div>
  • 티나 (1980년) . . . . 1회 일치
         == 음 ==
  • 파워 해리스먼트 . . . . 1회 일치
         사안에 따라서 가해자는 민법상의 불법 행위나 노동계약 위이 성립할 수 있으며, [[명예훼손]], [[모욕죄]] 같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해리스먼트 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1회 일치
         파이널 파이트 정식 속편들은 [[슈퍼패미컴]]으로 2탄과 3탄이 나왔다. 다들 1편만도 못한 함량미달로 묻혔으나 [[슈퍼패미컴]]용 2탄의 여성 캐릭터 '[[겐류사이 마키]]'가 [[CVS2]]에 등장하면서 잠시 재조명될 뻔 하기도 했다. 마키는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더블 어퍼 등의 이식작에서도 등장하는데, 이식작들 응이 좋지 않아서 역시 그냥 묻혔다.(...)
  • 페어리 테일/483화 . . . . 1회 일치
         제라르는 분노에 찬 격을 준비한다
  • 페어리 테일/486화 . . . . 1회 일치
          * 가질은 박치기로 격하며 "죽을 자리를 찾는 건 지쳤다"고 응수한다.
  • 페어리 테일/487화 . . . . 1회 일치
          * 단지 '''한 여자를 구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최후의 수단을 쓴다.
  • 페어리 테일/488화 . . . . 1회 일치
          * 그래도 레비가 접근하자 가질은 레비를 대편에 묶어 버린다.
  • 페어리 테일/492화 . . . . 1회 일치
          * 마력탄으로 격하는데 위력과 범위가 과거에 비해 상승.
  • 페어리 테일/493화 . . . . 1회 일치
          * 제목의 "화이트 드래그닐"은 라케이드 드래그닐을 뜻한다. 디마리아의 추격자들을 처리하면서 "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라는 표현을 쓰는데, 추격자들은 열에 드는 것처럼 희열을 느끼다 쓰러진다.
  • 페어리 테일/498화 . . . . 1회 일치
          * 멸악마법에 기한 얼음조형은 잉벨에게 타격을 준다.
  • 페어리 테일/508화 . . . . 1회 일치
         라케이드가 제레프를 "아버지"라고 폭로해버렸는데 이쪽도 "논란이 많을 테지만 중요한 에피소드"에 부합하는 부분. 우선 제레프 본인의 친자라는 의미인지, 단지 그 자신도 제레프 서의 악마라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다른 제레프 서의 악마들이 직접적으로 아버지란 호칭을 쓰지는 않는 점, 그리고 제레프 본인이 라케이드의 마법에 격하게 응한 점을 들어 전자로 추정하는 의견이 많은데 그렇다면 과연 어머니는 누가될지도 관심거리.
  • 페어리 테일/511화 . . . . 1회 일치
          라케이드는 비웃듯 자신이 드시 죽일 테니 나츠의 혼도 곧 자유로워 질 거라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23화 . . . . 1회 일치
          * 나츠는 전에도 똑같은 짓을 해서 말리지 않았냐고 그레이를 타박한다. 그레이는 한때의 감정에 휩쓸려 나츠를 죽이려들었던 자신은 길드에 있을 자격이 없고 이 길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항변한다. 나츠는 피차일이 아니냐고 소리친다.
  • 페어리 테일/525화 . . . . 1회 일치
          * 과거, 아직 메이비스가 봉인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페어리 테일의 2대 마스터 [[마스터 하데스|프레히트 게이볼그]]는 연구 도중 메이비스의 체내에서 말도 안 되는 응이 나타난걸 발견한다. 그는 어처구니없어하지만 데이터 상으론 그녀의 몸 속엔 "생명"이 자라고 있다. 프레히트는 곧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그 생명을 내버려 둬야하나? 죽여야 하나, 혹은 살려야 하나? 자문을 거듭하던 그는 겨우 결론을 내린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1회 일치
          * [[길다트 클라이브]], [[카나 알베로나]] 부녀는 합심해서 [[오거스트]]에게 공격을 퍼붓지만 어떤 마법으로도 오거스트의 몸에 상처를 낼 수가 없었다. 카나의 카드를 오거스트가 피하면서 빈틈이 생기고 길다트가 "올크래쉬"를 명중시키지만 이또한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격까지 허용하고 만다. 길다트는 자신의 마법은 물론 페어리 글리터 조차 통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지만 해답을 낼 틈도 없이 오거스트의 공격이 카나에게 향한다.
  • 페어리 테일/527화 . . . . 1회 일치
          메이비스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츠의 진실을 아는 것도 추측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츠는 드시 제레프를 이길 것이고 제레프는 자신의 손으로 없앨 거라고 예견한다. 그리고 그때가 됐을 때 나츠를 구할 수 있는건 여기 있는 세 사람, 동료들의 힘이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1회 일치
          * [[이치야 다레이 코토부키]]의 의도대로 [[아크놀로기아]]는 곧 크리스티나호를 쫓는다. 현재 크리스티나호의 운전은 [[히비키 레이티스]], [[이브 티름]], [[렌 아카츠키]], [[제니 리아라이트]]가 담당하고 있다. 이치야는 히비키가 호출하자 [[엘자 스칼렛]] 일행에게 이야기는 미루고 우선 목적지로 향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치야의 뒤에 서있던 "비책"을 가지고 온 여성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묘하게도 그녀 쪽에서는 엘자 일행을 잘 아는 듯 한데, 엘자로서는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1회 일치
          * 한편 아크놀로기아는 블루 페가수스의 크리스티나 호를 추격, 파시켰다. 블루 페가수스 길드원들이 열심히 수습해 보지만 역부족.
  • 페어리 테일/533화 . . . . 1회 일치
          루시는 이걸 "바꿔 쓸 수 있다면" 나츠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그레이는 말도 안 된다는 응이다. 단 1페이지를 열었을 뿐인데 그 정도의 정보량. 게다가 압축된 걸로 보였다. 그런 방대한 정보를 일일히 수정할 수 있을까?
  • 페어리 테일/543화 . . . . 1회 일치
          * 루시는 모든 유대의 힘이 나츠에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그 마음을 영한듯 시간의 틈새 속 나츠에게까지 닿는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로크 . . . . 1회 일치
         >목표는 머키워터 수송기야. 그 수송기는 돈을 운하고 있어. 너희들은 거기 숨어들어갈거야. 돈을 떨어뜨린 다음에 회수하자고.
  • 페이데이 갱 . . . . 1회 일치
         Payday Gang. 게임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와 [[페이데이 2]]에 등장하는 범죄 조직. 페이데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멤버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광대 가면을 쓰기 때문에 광대(Clown)라고도 불린다.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에서는 기껏해야 [[은행강도]], 금괴 운차량 탈취 정도나 하는 4인조 범죄집단이었지만 페이데이 2에서는 [[FBI]] 건물을 습격하거나 러시아의 비밀 연구소를 레이드 뛰는 뭔가 대단한 조직이 되어버렸다.
  • 편차치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편차치라고 하면 일적으로 학력편차치(学力偏差値)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의 표준점수(Standard score)와 비슷하다.
  • 표민수 . . . . 1회 일치
         * [[2011년]] [[MBC]] 《[[넌 내게 했어]]》 (극본 : 이명숙)
  • 풍계리 . . . . 1회 일치
         한도 서북쪽에 있는 지역. 함경북도 길주군에 위치한다.
  • 프로라 . . . . 1회 일치
         또한 이런 휴향시설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생각보다 국민 동원력은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민들이 전보다 더 놀고먹지 않는다면 지지율이 아주 노골적으로 떨어지고, 전보다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 민주 국가보다 강한 발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국민의 행복과 복지는 어지간한 국가보다 더 신경써야 했으므로 결국 이런 건물이 만들어지려던 것.
  • 프로페서 아이보 . . . . 1회 일치
         원래는 일적인 사람의 모습이었으나 불멸을 위한 혈청을 마셨다가 파충류 인간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이외에도 화상 환자처럼 얼굴이 망가진 모습도 있다.
  • 프릭쇼 . . . . 1회 일치
         [[미국]]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성행했다. 주로 카니발(순회 서커스) 등에서 흥행이 이루어졌다. 프릭쇼에서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장애인들을 있을 수 없는 '괴물'을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이들이 쇼를 하는 것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 [[학대]] 등의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대로 프릭쇼에 출연해서 많은 명성과 돈을 얻은 장애인도 있다.
  • 플래시(드라마) . . . . 1회 일치
         [[The CW]]에서 방송하는 [[DC 코믹스]] 기 드라마이며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 주연 드라마다. 동사에서 방송하는 드라마 [[애로우]]의 스핀오프이며 내용이 연계된다. 이는 다른 [[애로우버스]]와도 마찬가지.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1회 일치
          * 일적으로는 전혀 인기가 없었고 여성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남성이라도,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고 이 사실이 보도되면 엄청난 팬레터를 받는 기묘한 일도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옥중결혼]]을 올리고, 배우자가 임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 하이큐/210화 . . . . 1회 일치
          * 훈련이 스파이크로 넘어가는데, 히나타는 사적으로 그쪽으로 향하다 와시죠 감독의 제지를 받는다.
  • 하이큐/221화 . . . . 1회 일치
          * 코가네가와 칸지는 합숙에서 친해진 영향인지 츠키시마와 히나타를 유독 가워한다.
  • 하이큐/232화 . . . . 1회 일치
         키요코의 중학시절, 고교1학년 시절도 잠깐 나오는데 중학교 때는 안경을 쓰지 않았던것 같다. 1학년 땐 트윈테일에 안경이라는 실로 장스러운 속성.
  • 하이큐/235화 . . . . 1회 일치
          * 카라스노의 어태커들이 일제히 네트 앞으로 뛰어간다. 츠바키하라는 히나타가 움직이는걸 봤지만 "10번에만 신경쓰면 안 된다"고 의식한다. 하지만 이미 그걸 의식해 버린 시점에서 은 휘말려든 것. 카게야마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 하이큐/237화 . . . . 1회 일치
          * 졸업생들은 아즈마네가 늠름해졌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아즈마네는 츠키시마에게 좋은 토스였다고 칭찬하는데 츠키시마 본인은 겸손인지 "은 운이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렇지만 아나운서도 "치기 쉬운 좋은 세트업. 저런게 나오냐 마냐에 따라 팀의 완성도가 갈린다."고 격찬한다. 카게야마는 말 없이 츠키시마를 경계하는데 츠키시마는 그게 "경쟁심"을 발동시킨 히나타 같다며 디스한다.
  • 하이큐/247화 . . . . 1회 일치
          평소처럼 승부욕에 불타는 히나타. 하지만 요점이 다르다. "1위랑 2위 전부"랑 싸운다는건, 결국 2위 이나리자키를 이기겠다는 말이다. 너무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당해한다. 딱 한 사람만 아무렇지 않게 맞장구치는데 그것이 카게야마. 한술 더 떠서 1위 "이타치야마 고교"랑 싸우려면 대블록이니 결승까지 그쪽이 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히나타는 설령 이타치야마가 못 와도 "이타치야마한테 이긴 팀이 결국 1위"라는 논리로 아무튼 1위랑 싸우는건 변함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 하이큐/263화 . . . . 1회 일치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그걸 끝없이 올라간다. 그런 전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가도, 흐름은 어디서나 바뀐다. 턱없이 높은 계단. 도저히 딛고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계단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타나카도 멘탈이 한 없이 마이너스로 치닫는다. 약 년에 한 번 꼴. 그럴 땐 좀 심하게 절감한다.
  • 하이큐/272화 . . . . 1회 일치
          * [[오오미 타로]]는 오지로에게 "천천히 가자"고 지시한다. 이나리자키의 서브. [[스나 린타로]]와 교대해 1학년 서버 리세키가 투입된다. 이나리자키에선 그리 유명한 선수는 아니다. 중학교 시절엔 만년 벤치 신세에 딱 한 번 핀치 서버로 기용됐다가 서브 미스로 경기를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 고등학교에선 강호 이나리자키에 들어온 건 좋으나 여전히 기회는 적었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산도 있다. 미스하면 본전도 없다, 이런 부담을 안고 "일단 들어가는 서브"라는 안전빵을 택한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 됐다. 우선 자군 벤치에서부터가 시들한 응. 무난하게 아사히에게 떨어지는 것을 안전하게 리시브, 히나타의 스파이크로 이어지는데 하필이면 그게 리세키가 있는 위치로 떨어지면서 리시브까지 실패하고 만다. 간만에 손맛을 본 히나타가 기뻐날뛰려는데, 이나리자키 관중석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뻘쭘해진다.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자군 서버의 실수를 "볼보이는 안 불렀다"고 극언해가며 까대는 소리였다. 대부분 관중들은 딱히 실수한 것도 없는 자기편 선수를 디스하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단숨에 알아챘다. 이른바 "이나리자키 도깨비 응원단". 소심한 플레이를 인정사정없이 욕하는 묘한 기질이 있다. 사실 프로도 아닌 고교 선수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장외플레이. 적이라도 같은 서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마저 기를 죽일 정도로 무자비한 야유였다. 그리고 이 야유는 의외의 인물도 자극하는데, 바로 카게야마였다.
  • 하준영 . . . . 1회 일치
         * 2016년 고교 주말 리그 전기(서울권 A) 최우수 선수상
  • 하태웅(가수) . . . . 1회 일치
         == 음 ==
  • 한가빈 . . . . 1회 일치
         == 음 ==
  • 한동근 . . . . 1회 일치
         == 음 ==
  • 한보배 . . . . 1회 일치
         * [[2006년]] [[KBS2]] 단막극 《[[드라마시티]] - 가운 살인자》 ... 정하린 역
  • 한승엽 (1985년) . . . . 1회 일치
         2009년 9월 29일 군입대 예정이던 한승엽은 102 보충단에서 3일간 전적인 신체검사과정에서 발가락부분에 뼈이상이 발견되어 1차적 귀가조치를 받았다. 그 이후 10월 20일 정밀 검사를 받은 한승엽은 1년의 치료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병무청의 검사결과 및 신체검사 판결로 1년 뒤 재검사를 받게 된다. 이로써 한승엽은 2009년 10월 27일 공식적으로 방송에 복귀하게 되었다.<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00349&db=issue MBC게임 한승엽 해설 입대 연기로 방송 복귀]《포모스》, 2009년 10월 28일</ref>
  • 한승원 (만화가) . . . . 1회 일치
         | 《LONG LONG LOVE》(롱 롱 러브) || || 1999년 혜등 전7권 || 한승원 글, 김동화 그림, 원제 《사랑의 에제린》
  • 한승택 . . . . 1회 일치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조지훈 (야구 선수)|조지훈]], 2라운드 [[김강래]]에 이어 [[한화 이글스]]의 3라운드(전체 2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스프링캠프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눈에 들어와 좋은 전력으로 평가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3628 김응용 감독의 이례적 칭찬…“한승택, 물건이네”] - 경향신문</ref>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출장하는 등 유망주로 꼽혔지만 시즌 중 왼쪽 무릎 인대 부분 파열상을 당해 1군과 2군을 오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65331 KIA, 이용규 보상선수로 한승택 지명 이유는?] - OSEN</ref> 시즌 중 이후에는 [[엄태용]] 등에 밀려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고, 데뷔 첫 시즌 후 일찌감치 군 복무를 결정하여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28015 한화 한승택, '포수 양성학교' 경찰청 지원, 제 2의 최재훈 되나?] - 스포츠서울</ref> 2013 시즌 24경기에 출전해 1안타, 0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 한영이 . . . . 1회 일치
         한영이는 이른 나이에 한 [[양]] 집안의 권 [[진사]]라는 남성의 후처로 들어갔다. 권 진사는 중년에 들어 [[천주교]]에 입교 하였는데, [[임종]] 직전에 비상 [[세례]]를 받았고, 부인에게 입교하여 영원히 신자로서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영이는 딸과 함께 입교하였고, 매우 가난했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하느님]]께 감사하며 독실한 삶을 살았다.
  • 한요한 . . . . 1회 일치
         == 음 ==
  • 한용덕 (시인) . . . . 1회 일치
         * 《어둠에 쯤 묻은 빛에는》 (2012)
  • 한용희 . . . . 1회 일치
         [[1931년]]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경찰 출신인 그는 [[1954년]] [[한국방송공사]]에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동요 프로그램 '[[누가누가 잘하나]]'를 연출하는 등 동요 보급에 불씨를 지핀 장본인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동요 세기' 등 동요사 저작도 펴냈다. 한국음악협회 이사, 한국동요음악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옥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 한유주 . . . . 1회 일치
         * 《[[용감한 친구들]]》([[줄리언 스]] 著, [[다산책방]], 2015)
  • 한윤성 . . . . 1회 일치
         == 음 ==
  • 한재석(1973) . . . . 1회 일치
         그의 진정한 흑역사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재검을 받은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였다.[* 하필 이 직전에 드라마 [[해신(드라마)|해신]]에서 [[염문|염장]] 역으로 캐스팅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캐스팅이 취소되었다. 이 사건으로 아웃된 한재석의 [[대타]]로 출연한 [[송일국]]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어찌 보면 인기를 다시 등시킬 수 있었던 기회가 날라가버렸던 것.] 소집 해제 후 [[2007년]] [[SBS]] 드라마 [[로비스트(2007)|로비스트]]를 통해 복귀했다.(공교롭게도 해신에서 그 대신 대타투입되었던 송일국도 함께 출연했다.)
  • 한혜숙(배우) . . . . 1회 일치
         실제 성격이 직선적이고 도도한 편으로, 드라마에 영되어 주로 꼿꼿하고 도도하고 고집이 있는 여자주인공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70년대에 '브라운관의 [[김지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자랑했다. 올곧은 성격으로 인해 [[PD(방송)|PD]]들하고 트러블도 있었는데, 그로 인해 하차하거나 방송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1970 ~ [[1980년대|80년대]] 미모 순위하면 항상 순위권에 들었다.
  • 한호문 . . . . 1회 일치
         [[1637년]]에는 도정(都正)으로 그 해에 열리는 무과 정시(武科 庭試)에 좌참찬(左參贊) 이덕형(李德泂), 지사(知事) 변흡(邊潝), 동지(同知) 한명욱(韓明勖) 등과 함께 무과 정시(武科 庭試)의 명관(命官)으로 선발되었다. [[10월 13일]] 그 해의 무과 정시 합격자가 5천 수백명이라서, 본업무와 함께 합격자를 정하느라 보고가 40일이 지체된 것을 대죄하였으나 인조가 이를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13일(정미)자 16번째기사, "출방할 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잘못이 있으므로 대죄한다는 무과 정시 명관인 좌참찬 이덕형 등의 계"</ref> 이후 부총관(副摠管)으로 전직되었다. [[10월 21일]] 전시의 시관으로 논박을 나갔는데, 즉시 왔어야 하는데 궐문이 닫힌뒤 천천히 왔다 하여 추고를 청하는 승지 김휼의 계에 의해, 추고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21일(을묘)자 18번째기사, "전시의 시관인 부총관 한호문을 추고할 것을 청하는 김휼의 계</ref> 그해 [[12월]] [[도총부]] 부총관과 [[훈련원]]도정으로서 [[예조]]의 인사 포폄을 마감하는 좌기(坐起)에 참석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2월 14일(무신)자 2번째기사, "부호관 한호문이 예조의 포폄 좌기에 나아가므로 표신을 내줄 것을 청하는 도총부의 계"</ref> [[12월 16일]] 이를 두고 [[사헌부]]에서 그가 위인이 용렬하다며 대했지만, [[인조]]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하여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6일(갑진)자 6번째기사, "사헌부의 계에 대해, 정시웅은 체차하고 엄종남은 추고하라는 비답"</ref>
  • 한희 (연출가) . . . . 1회 일치
         | align="left" | [[MBC 수목드라마|수목드라마]] 《강력》 (연출 데뷔)
  • 할머니가 기른 아이는 세푼싸다 . . . . 1회 일치
         세푼쌈(三文安)으로 줄여서 쓴다.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푼이'에 가까울 듯.
  • 해쉬스완 . . . . 1회 일치
         2017년에 《[[Show Me The Money 6]]》에 출연하였다. 음원 미션 곡인 요즘것들에서 모습을 보여줬고, 8월 11일 [[킬라그램]]과의 마이크 선택에서 탈락하였다. 해쉬스완이 탈락으로 인한 미공개 곡은 올 하기 해쉬스완의 앨범 수록될 예정이다. <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3072919|제목=‘쇼미6’ 불꽃 튀는 대결, 네스·에이솔·해쉬스완·라이노 탈락 [종합]|날짜=2017-08-12|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8-12}}</ref>
  • 허근욱 . . . . 1회 일치
         * [[1976년]] [[6월 29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공문학상 소설 부문, 문화공보부장관상
  • 허미영 . . . . 1회 일치
         == 음 ==
  • 허위 . . . . 1회 일치
         SBS의 드라마 [[제중원(드라마)|제중원]]에서도 후부에 중요 조연으로서 등장한다. [[손현주]]가 연기하였고, 외유내강형의 인자한 인물로 그려진다. 총상을 마취 없이 치료하는데도 버텨냈으며 그 대가로 주인공 황정의 호를 지어준다. 주인공이 독립 운동가로 각성하도록 돕는 인물 중 하나.
  • 허준영 . . . . 1회 일치
         용산역세권 개발사업과 관련해 뒷돈을 챙긴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허준영은 현직 코레일 사장으로 재임하던 2011년 11월 용산역세권 개발과 관련해 업무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용산역세권개발 손모 전 고문에게서 뇌물 2000만원을 받고, 이후 3년여 동안 1억 3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 기소되었으며 2017년 3월 16일 정치자금법 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고심에서 불법 정치자금 1억원 수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317011002&wlog_tag3=naver|제목=‘용산 개발 뒷돈’ 허준영 징역형 확정|뉴스=서울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5-26}}</ref>
  • 헐크 . . . . 1회 일치
          * 파워 캐릭터라 그런지 빌런층에 파워 캐릭터가 많다. 다만 [[리더]]처럼 대적인 경우도 있다.
  • 현동완 . . . . 1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상태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상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 현실문화사 . . . . 1회 일치
         이후 "현실초점"이라는 이름의 계간지를 발간했다. 해당 잡지는 창간호에서 "우리 사회 내부의 무질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욕구 분출과 과격행동들이 빚어낸 민족의 재난을 경계하고 올바른 국가관·가치관을 뿌리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잡지 창간 목적을 밝혔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영] 해당 잡지의 내용은 재야와 [[운동권]]의 논리를 박하는게 주를 이루었다.
  • 현재현 . . . . 1회 일치
         * 2011년 Van Fleet상 수상. 현재현 회장은 한미재계회의를 이끌며 한미FTA체결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한미간 특허심사 하이웨이제도 도입 등 한미 양국의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2011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밴 플리트 상은 한미 우호증진과 양국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한 공이 큰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한국인 중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받았고, 미국인으로는 조지 W.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대사, 헨리 키신저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이 수상했다.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1회 일치
         형불상대부는 형벌은 대부(大夫)[* [[왕]](王)이나 [[제후]] 귀족 휘하의 고위직 신하들.]에 이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예불하서인은 예(禮)가 서인[* 귀족 계급이 아니며, 관직이 없는 일인.]에게 이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 혼모노 . . . . 1회 일치
          * 애니메이션 말투의 일본어를 부분적으로 사용한다.[* 애니에서 쓰이는 일적인 일본어 말투와는 사용되는 어휘, 어조가 다른데가 많다.]
  • 홍병선 . . . . 1회 일치
         [[한성부]]의 양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한학을 수학했다. 일본 기독교계에서 설립한 신교육기관인 경성학당에 입학하면서 신학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08년]] 일본에 유학하여 [[도시샤 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911년]] 귀국했다.
  • 홍소희 . . . . 1회 일치
         == 음 ==
  • 홍유경 . . . . 1회 일치
         한편 에이핑크 데뷔 이전인 2006년에는 동요 음 《119소방동요집(III)》에 수록된 해태 이야기를 불렀다.
  • 홍정욱 . . . . 1회 일치
         1998년 [[스탠퍼드 로스쿨|스탠포드 로스쿨]] 졸업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뉴욕의 [[리먼 브라더스|리먼브라더스]] [[인수합병]] 그룹에 입사하여 투자금융가로 몇 년간 일하다 사퇴하고, 벤처기업 스트럭시콘의 창업자 겸 CFO로 재직했다. 2001년 병역 이행을 위해 가족과 함께 귀국했으며, 2002년 12월 오랜 경영난에 시달려온 언론 지식기업 [[헤럴드 (기업)|헤럴드]]를 인수해 국내 최연소 언론사 CEO이자 [[헤럴드경제]] 및 [[코리아헤럴드]]의 발행인이 되었다. 2005년 인수 2년 만에 [[헤럴드 (기업)|헤럴드]]의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 [http://www.heraldcampus.co.kr/ 캠퍼스헤럴드], [http://junior.heraldcorp.com/ 주니어헤럴드] 등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고, 서울영어마을, 부산영어마을 등의 운영권을 획득하며 교육사업을 확장했으며, 2007년에는 프리미엄 여성채널 [[동아TV]]를 인수해 방송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2015년 [[LF (기업)|LF패션]]에 매각). 그러나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총선|제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헤럴드 (기업)|헤럴드]] 및 [[동아TV]] 회장직을 사임했다.
  • 홍준표 (1949년) . . . . 1회 일치
         * 일본 "다이캐스팅(Diecasting)" 생산 기업 동경이화, "(半)응고신주조기술"에 관한 연구<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581158 日 업체서 50만달러 받고 프로젝트 계약 .. 연세대 홍준표 교수팀]</ref>
  • 홍진기 . . . . 1회 일치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성=유진오|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 홍해성 . . . . 1회 일치
         그러나 [[1931년]]에 [[극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재기했다. 홍해성은 신극운동 단체인 극예술연구회의 공연작을 연출하며 연극계의 좋은 응을 끌어냈다. 극예술연구회에서의 연출작은 총 9편이다. 이 시기에는 [[경성방송국]] 라디오 드라마 연출을 병행하고, 연극과 관련된 기고 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 홍혜경 . . . . 1회 일치
         == 음 ==
  • 화석연료 . . . . 1회 일치
         화석연료로 묶여 있지만 석탄과 석유는 드시 연료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화학공업의 원료로 쓰인다. 그러나 아직도 생산된 화석 연료 중 적지 않은 비율이 연료로 쓰이고 있다.
  • 화염병 . . . . 1회 일치
         2006년작 한국 영화 괴물 후부에 등장했다.
  • 황광희 . . . . 1회 일치
         | [[강력]]
  • 황동주(배우) . . . . 1회 일치
          * 1997년 KBS2 타트 - 을수 역 ☆
  • 황보예 . . . . 1회 일치
         *동국대학교 일대학원 연극학과 석사
  • 황부인전 . . . . 1회 일치
         [[삼국지연의]]를 기으로 파생된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박씨전]]과의 유사성이 강하게 보인다. 구한말의 한글 삼국지 판본 가운데는 황부인전을 중간에 끼워넣은 것도 있다.
  • 황석하 . . . . 1회 일치
         * 고려대 일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공연∙영상 박사과정
  • 황연석 . . . . 1회 일치
         '''황연석'''([[1973년]] [[8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며 현재는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다. 현재 [[대전 시티즌]] 2군 코치이다. 선수 시절 장신의 키를 이용한 고공 플레이에 능하였으며 후전에 투입되어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특급 조커'로 이름을 날렸다.
  • 후예 . . . . 1회 일치
         자신의 아들, 딸, 그 손자.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모든 자녀들. 비슷한 말로, 자손(子孫), 후예(後裔) 등이 있다. 대말을 [[조상]], [[선조]].
  • 후지와라 섭관가 . . . . 1회 일치
         본래 이 무렵까지 황족이 아닌 신하, 후지와라 씨가 섭정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후지와라 씨는 천황가와의 혼인으로 인척관계가 강해졌고, 응천문의 변(応天門の変)이라는 사건을 처리한 것을 계기로, 씨(伴氏), 기씨(紀氏) 등의 라이벌 씨족을 배척하여 섭정이 될 수 있었다. 이 때부터는 오히려 후지와라 가문이 섭정을 차지하는 것이 관례화 되었다.
  • 후지와라 요시후사 . . . . 1회 일치
         본래 이 무렵까지 황족이 아닌 신하, 후지와라 씨가 섭정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후지와라 씨는 천황가와의 혼인으로 인척관계가 강해졌고, 응천문의 변(応天門の変)이라는 사건을 처리한 것을 계기로, 씨(伴氏), 기씨(紀氏) 등의 라이벌 씨족을 배척하여 섭정이 될 수 있었다.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범인 소년은 사립 남자 기숙사에 입주하여, 방향이 키타카와의 집과는 정 대였기 때문에 미리 [[흉기]]를 준비하여 계획적으로 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 흑역사 . . . . 1회 일치
         본래는 [[∀건담|턴에이 건담]]의 용어. 작중에서는 본래 인류가 과거에 복해온 '전쟁과 파괴의 역사'를 한동안 묻어두고 있었다가 이를 공개하면서 '흑역사'라는 용어로 지칭하였다.
  • 히모 . . . . 1회 일치
         [[일본어]]에서 히모는 일적으로는 '끈'이라는 뜻이다. 남녀관계에서 속칭으로 쓰일 때는, 여성을 일하게 하고 자신은 그녀가 주는 돈으로 놀고 먹는 [[정부]]를 뜻한다. 정식으로 혼인관계를 맺으면 히모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농담이나 놀림삼아 불릴 수는 있지만.
  • 히치하이킹 . . . . 1회 일치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일리야의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히치하이킹이 보편적이며 아무나 다 태워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소련]]에서는 [[택시]]가 보편화 되어 있지 않아서, 대중교통이 없는 곳이나 밤늦게 집에 갈 때는 히치하이킹을 이용하는 것이 일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히치하이킹이 되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고(…)[http://news.tf.co.kr/read/entertain/1476694.htm 참조]--훈훈한 소련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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