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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세원
         고세원은 [[박찬호]] 군대 조교를 했었다고 박찬호와의 인연을 들려줬다. [[1999년]]부터 [[2000년]] [[8월]]까지 충남 공주 육군 3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했고 그때 [[박찬호]]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후 [[1999년]] [[10월]] 이곳에 입소해 4주간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라면 끓일 뜨거운 물로 라면을 포기하고 [[박찬호]]의 허리 찜질을 해 줬다는 얘기도 들려줬다.<ref>{{뉴스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904|제목=탤런트 고세원 "박찬호 軍조교가 바로 나"|성=|이름=|날짜=2007-10-30|출판사=경인일보|확인날짜=2010-04-20}}</ref>
  • 김동건 (야구인)
         서울성동초등학교와 잠신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입학하였다. 시절 고교야구 [[유격수]] 1,2위를 다투는 유망주였으며 [[채태인]], [[김태균 (1982년)|김태균]] 등과 함께 [[박찬호]] 장학금을 수여받기도 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57851 고교 야구선수 7명, 박찬호 장학금 받아] - 연합뉴스</ref>
  • 김상엽 (야구인)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출신 [[영남대학교]] [[권영호]] 감독의 제안으로 [[영남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 [[투수]] [[박찬호]]의 주선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077 오릭스 김상엽 코치 “박찬호야말로 진정한 위너다”] - 이영미 칼럼</ref> 연수 후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 김연경(배구선수)
          * 그런데 왜 2012년 8월 19일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와의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경기에 시구자로 나온 거냐고? 다름아닌 [[박찬호]]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고. 2011년에 [[박찬호]]는 [[오릭스 버팔로즈]] 소속으로, 김연경은 JT 마블러스 소속으로 활약했다. 두 팀 연고지가 모두 [[오사카]]여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경은 이날 [[한화 이글스/유니폼|한화 유니폼]]에 61번을 달고 시구를 했다. 원래 김연경은 소속팀, 대표팀에서 모두 10번을 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실 배구 선수는 평생 61번을 다는 일이 없다. 배구 선수는 규정상 1~20번까지만 달 수 있다. 또한 랠리 때마다 매 선수의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의 유니폼 번호를 심판과 기록석에서 끊임없이 챙겨야 하는 배구의 특성상 이러한 번호 규정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 즉 배구 선수에겐 영구결번 따위는 없다. 따지고 보면 평생 못 달 번호를 야구장에서라도 한 번 달아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190cm가 넘는 김연경이 마운드에 서자 키가 185cm인 박찬호가 작아보였다고. ~~박찬호 [[지못미]]~~ 시구 역시 큰 키에서 내려 꽂는 시구를 했다.~~폼도 보아하니 오버스로에 팔도 길고 키도 큰 만큼 맘먹고 던지면 장난 아닐듯..~~ ~~자네 야구해볼 생각 없나?~~ 참고로, 김연경의 신장은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의 평균 신장과 같다.
  • 김재중(1986년 1월)
          * 2013년 12월 23일, [[충청남도]] 공식 트위터에 충남의 아들로 올라왔다. ~~이제는 존재 자체가 흑역사가 된~~ [[안희정]] 전 [[충청남도지사|충남도지사]]가 인증샷으로 마무리. 재중도 [[동방신기]] 시절에 출연한 [[KBS]]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서 공주의 3대 자랑으로 [[박찬호]], [[박세리]], 김재중이라는 발언을 했다.
  • 김헌곤(야구선수)
         프로 입단 초기 팀내 별명은 '몬데시'. [[박찬호]]의 특급 도우미로 알려진 그 [[라울 몬데시]]다. [[라울 몬데시]]같은 외야수가 되라는 뜻에서 붙은 별명. ~~못할 땐 눈먼곤으로 불린다(...). 반대로 잘할 땐 눈뜬곤~~
  • 김현태 (1967년)
         * 2000년 [[박찬호]] [[메이저 리그]] 현지 중계
  • 민훈기 (언론인)
         스포츠조선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1990년]] [[스포츠조선]] 미주 특파원을 지내면서 각종 스포츠를 취재하다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를 비롯해서 [[박찬호]] 및 코리언 빅리거들 관련 전담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박찬호의 전담 기자로 박찬호 주장으론 "취재하지도 않고 악의적인 기사를 썼다"하여 팬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으나, 오해를 풀고 박찬호가 게시물을 즉시 삭제했다.
         이 후 [[스포츠조선]] 야구부 부장을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KBS N 스포츠]]와 [[경인TV]] 야구 해설가로써도 활동하였고 현재는 [[SPOTV]], [[MBC]]에서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KBO의 상벌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고, 다양한 방송의 패널과 인터뷰이로 활동하며 다양한 강연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야구의 역사를 총 정리한 방대한 양의 저서 《민훈기의 메이저 리그 메이저리거》와 《박찬호 124승의 신화》,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나의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등의 저서와 함께 《희망사전 365》, 《세계 4대신문 성장사》 등의 역서가 다수 있다.
  • 박동희(기자)
         2014년 리틀 리그 월드 시리즈에 한국 대표팀이 진출하면서, 한국의 리틀 야구 역사와 리틀 리그 월드 시리즈 기사들을 계속 쓰고 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438&issue_item_id=10460&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16|84년, 85년 우승]],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438&issue_item_id=10475&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21|한국 리틀 야구]] 이 기사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리틀 야구에 대한 국내 언론들의 주목을 불러 일으키는데 성공했으며, '''최종적으로 MBC 스포츠의 결승전 중계까지 이끌어냈다.''' 박동희 이전에 이 대회를 주목한 언론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이다. 사실 이 대회 취재하러 한국에서 간 기자가 박동희 한 명밖에 없었다. 그밖에 선수들 응원하려고 간 [[박찬호]] 정도. 그런데 이전부터 리틀 야구에 대해 취재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야구인들~~로부터 “프로야구 취재나 열심히 하라” 는 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만 해도 박동희 본인의 입장은 사실 어느 정도는 의무감으로 썼다고 한다. 박동희 기자 본인도 이 대회를 취재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진 걸로 보인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46|리틀야구 결산, 이것이 국가대표팀이다!]] 상당히 잘 쓴 기사들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현지에서 한국팀을 응원했던 어느 교민 분의 증언에 의하면, 박동희 기자는 발로 뛰며 취재하고 기사 쓰느라 식사도 거의 컵라면으로 때웠다고. 당시 어린 선수들의 사기 충전을 위해서, 코치진들이 응원 온 교민[* 이 분들도 비범한 게, 경기가 열렸던 이 지역에는 한국 교민들이 거의 살고 있지 않는 곳이다. 응원 온 교민들 대부분은 다른 지역에서 차로 몇 시간씩 온 사람들이었다.]들에게 부탁해서 현지에서 직접 만든 한국 음식을 공급했는데, 이를 같이 먹을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박동희의 표현대로 결국 '아이들(선수들)은 더 이상 외롭게 야구하지 않게' 되었다.
  • 박철우(배구)
         [[2011년]] [[9월 3일]], [[신치용]] 감독의 딸로 알려진 신혜인[* 前 여자농구 선수였다.]과 결혼하게 됐다. 스포츠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졌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신치용|장인어른]]한테 주구장창 깨지겠지.~~ 그런데 [[신치용]] 감독에게 [[홍길동|장인을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감독님이라 부르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박철우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면 신치용이 삼성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신치용 감독이 박철우에게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그런다고. 사실 이건 [[신치용]] 감독이 잘 한 것이다. 사석에서야 장인-사위지만, 선수단에서 있을 때는 공적인 자리인만큼 되도록이면 서로의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슷한 예로, 최고참급 현역선수가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으면 코치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예. [[김병지]], [[박찬호]])]
  • 배영수
         수술 소식을 들은 [[박찬호]]는 배영수에게 "(재활기간)2년 생각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게다가 배영수는 선천적으로 간수치가 높아 예정보다 2달 가량 늦게 [[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news/sports/200701/20070129/71912005.htm|수술]]했다. ~~하지만 [[선동열|당시 감독]]은 박찬호의 말을 무시하고 말았는데...~~
          * 2013년 3월 30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과 [[김현수(1988)|김현수]]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한만두|개만두]]를 시전하였는데 그 다음 등판인 4월 7일 NC전에서 '''"개만두 아십니까. 저, 개만두 됐습니다. 개만두!"'''라고 기자들한테 말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영수의 멘탈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 --그리고 깨알같은 선배 [[박찬호]]의 디스까지--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8825&date=20130409&page=1|#]]
  • 백차승
         [[2008년]]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샌디에이고]]의 5선발로 등판해 역대 최고 성적인 6승 10패,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부모의 국적을 따라 대표팀 출전이 가능한<ref>[[박찬호]]의 전담 포수로 유명했던 [[마이크 피아자]]의 경우 이탈리아계여서,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했다.</ref>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그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선발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2008년]] 엔트리 구성 때 병역 기피 논란 등이 일어 결국 합류하지 않았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812221848333&sec_id=510101&pt=nv 추신수 참가, 백차승 불참 …WBC 대표팀 윤곽 드러나] - 스포츠칸</ref> [[2009년]]에는 팔꿈치 부상이 재발해 단 1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했고, 10월에 방출됐다.<ref>[http://www.ukopia.com/ukoSports/?page_code=read&uid=129128&sid=21&sub=2-9 백차승,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깨진 링크|url=http://www.ukopia.com/ukoSports/?page_code=read&uid=129128&sid=21&sub=2-9 }} - 유코피아</ref>
  • 서건창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해 왔고 두각을 나타내며 [[2001년]]에 [[박찬호]] 장학금 4기 수상자로 선정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10&aid=0000034935 박찬호의 배품, 서건창 손에서 열매 맺다] - MK스포츠</ref> 광주일고 시절에는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황금사자기 우승과 대통령배 우승 멤버로 고교 시절 유망주였다. 특히 1학년 때는 2년 선배 [[강정호]]와 같은 팀에서 활동했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20619/47144606/3 서건창, 투아웃서 쏜 野생 2막 “신인왕? 욕심 납니다!] - 스포츠동아</ref> 그러나 야구 선수로서는 왜소한 체구와 수술 경력 때문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외면받았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79018 '개막전 결승타' 서건창의 방출생 입단 비화] - OSEN</ref>
  • 서재응
         이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LA 다저스]]를 거쳐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활동하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통산 118광주에 등판해 28승 40패,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8년 아시안 게임|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 [[미국]]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도 참가했고,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를 거친 [[대한민국]] 출신 [[투수]]들 중 [[박찬호]]와 [[김병현]] 다음으로 메이저 광주에 많이 출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7&aid=0000004252 ‘달콤 씁쓸’한 메이저 리거들의 귀환] - 주간동아</ref>
  • 양파 (1979년 가수)
         * 2000년 8월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박찬호]] 선발 등판 전 미국 및 캐나다 국가를 부른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 양파 다저스타디움서 미국가 불러|날짜=2000-08-25|출판사=[[경향신문]]|확인날짜=2010-08-22}}</ref>
  • 유진(배우)
         유진의 솔로 실패는 음악적인 부분보다는 그녀 스스로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THE BEST》는 물론이고 유로 댄스의 뻔한 프로세스를 새롭게 인코딩 해놓은《차차》마저도 시원찮았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Lovely Day》가 알려질 리는 없겠지만 이 노래는 유진이 들려줄 수 있었던 가장 최적의 음악이었다. 만발한 리듬 사이로 발랄한 발걸음을 옮기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유진의 기분 좋은 하루는 이 곡을 듣는 남자 팬들 역시 한 번쯤 꿈꿔볼만한 하루였을 것 같다. 흔히 그룹에서 솔로로 독립할 때에는 변신을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들기 마련이지만 유진 같은 경우는 마치 [[박찬호]]가 좋았던 시절의 투구폼을 되찾듯 본인의 좋았던 때의 이미지를 다시 되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Lovely Day》는 그런 유진의 화사한 이미지를 다시 환하게 꺼내놓기에 적당한 곡이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RPqPd5MMdq0|Lovely Day]]
  • 은지원
         ||<#000000> '''{{{#FFFFFF 별명}}}''' ||<(> G, '''G1'''[* 실제로 자신의 모든 솔로 앨범표지에 Eun G1이라는 예명을 쓴다. --무한도전에서는 [[김재덕]]에게 [[장수원|장로봇]]이 형은 덕2로 하자...--], =G1, '''은초딩''', '''은각하'''[* 데뷔 초에 멤버들끼리 놀리듯이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과 달리 외모와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여담으로 [[은초딩]]과 [[은각하]]를 쳐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절대자, 은간지,[br]은까리, 은리더[* 방송 자막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은대장, 은리다,[br] 지니어스원, 은둘리, 여의도돌싱[* 신서유기 시즌1에서 이승기가 붙여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여의도 이혼남이 있다.], [[외계인]][*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너무 가진 것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공주편에서 은지원이 공상과학 이야기 중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데 "형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 사람 몸속에 아무 흔적없이 마이크로 칩을 넣는데?"라고 발언 한 것. 이후 은지원이 강호동의 엉덩이를 나무로 때리고 이후 [[박찬호]]가 은지원보고 외계인 아니냐며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팜스테이 편에 등장하는 일심동체 게임에서 김C가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문제에서 은지원을 적은 것. 이후 전국일주에서 UFO 관련해서도 빨리 사진 지우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br]거칠이, 극한직업 젝키리더(...)[* 옛날부터 멤버들과 예능 나오면 마음 졸이며 수습하고 관리하기 바빴다. 최근 나온 방송들을 보면 멤버들이 산만한 편...],[br]젝키 유일 일반인[* 밖에선 미친자, 도른자, 돌아이, 외계인 취급받지만 젝키에선 가장 평범한 일반인 포지션이다. 그 정도로 동생들--특히 이재진--이 남다르다(...).], 섭섭이(...)[* [[1박 2일]]에서 얻게 됐다. 후에 --[[MC몽]]--이 섭섭이 라인에 합류하면서 은지원은 일섭이, --MC몽--은 이섭이로 불리게 됐다.], 미친者(...)[* 신서유기에서 얻게된 별명이다.], 구美[* [[안재현|이 사람]]이 합류하자마자 그에 못지않은 미친者의 면모를 보여서 신美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은지원은 기존의 미친者를 뜻해서 옛날을 뜻하는 한자 舊(옛 구)를 넣은 셈.], 찌오니[* 본인의 이름을 모에화하여 팬들이 부르는 별명, 본인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은먹금[* 본인의 칭찬이 나오면 황급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외면해서 붙은 별명. 방송생활 20여 년간 본인 칭찬을 한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은요물[* 촉이 좋아서 미션의 흐름을 한번에 이해하고 진행해나가 신서유기 제작진들이 붙여준 별명], 은왜은[* 연예인 중에서 유일한 [[은(성씨)|은씨]]와 흔하지만 세련된 '지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팬들이 은지원은 이름도 잘생겼다며 '은지원은 왜 이름도 은지원인가'를 줄여서 만든 별명.] ||
  • 이승엽
         방출 후 [[2010년]] [[12월 2일]] 1년간 1억 5,000만엔에 옵션이 포함된 연봉을 계약했다. 이 때 투수 [[박찬호]]와 같은 팀이 됐다. 이로써 [[200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퍼시픽 리그]]로 돌아와 등번호도 3번으로 정해졌다. 그는 연봉을 대폭 낮추는 등의 백의종군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로 교체해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을 받아 2할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팀의 꼴찌가 확정된 후반기 들어 맹활약하며 시즌 총 15홈런을 쳐 퍼시픽 리그 홈런 순위 8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모습도 보여줬으나 타율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규정 타석 미달로 인해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 이시영(배우)
         2016년 8월,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고 있는 중, 권투했던 기초체력으로 같이 입소한 남자동료들을 제치고 지구력 1위를 과시하는 중이다. ~~[[박찬호]]를 제쳐버리는 체력.~~ [[http://tvcast.naver.com/v/1079529|영상1]], [[http://tvcast.naver.com/v/1079521|영상2]]
  • 장원삼(야구선수)
         ~~산적?? 도인??~~ ~~[[박찬호]]?~~ ~~[[김태우(god)|김태우]]?~~
  • 정준호(배우)
         연기 외에 인맥으로도 유명하다. [[박찬호]], [[장동건]], [[신현준(배우)|신현준]] 등등 연예, [[정치]], [[사회]]계를 망라하고 친분이 깊은 사람들이 많아 그의 [[핸드폰]]에 [[전화번호]]가 등재된 인물 수만 [[무려]] 3,000여명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 정지원 (1968년)
         [[1995년]] [[SBS 스포츠|한국 스포츠 TV]] 개국멤버로 방송인 활동을 시작했고, [[1997년]] iTV 인천방송(현, [[경인방송|경인방송 iFM]]의 전신)이 개국하자 인천방송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8년]]부터 인천방송이 [[박찬호]]의 선발등판 경기를 비롯한 [[미국]] [[메이저 리그 야구|MLB]] 중계권을 획득하면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메이저 리그 캐스터로 활동했으며, MLB 중계권이 만료된 [[2001년]]부터 경인방송이 폐업하는 [[2004년]]까지 [[KBO 리그]] 캐스터로 활동했다.
  • 최양락
          * 과거 한참 [[LA다저스]]에서 [[박찬호]]가 주가를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때 같은 충청도 출신에 야빠기질을 가진 최양락은 우리 충청도의 자랑 이라며 박찬호를 찬양하고 있었다.하루는 박찬호가 선발등판해 대량실점해서 완패를 당한적이 있었는데 그날 속상해서 가진 [[남희석]][* 역시 충청도의 아들을 자처하며 골수 한화 이글스팬이자 박찬호팬으로도 유명하다.]과의 술자리에서 한다는 말이 "그...투수라는게 말이지... 아무리 150,158 던져봤자 아무의미 없는겨 [[스트라이크(야구)|그 직사각형 있지... 그 네모난거...]] [[제구(야구)|거기에 넣어야]] 진짜 투수인겨"라며 남희석에게 푸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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