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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경(가수) . . . . 8회 일치
| 이름 = 박윤경
'''박윤경'''([[1970년]] [[8월 28일]] ~ )은 대한민국 가수이다.
박윤경은 [[1970년]] [[8월 28일]]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에 재학 당시 모친 [[심영진]]과 친분이 두터웠던 작곡가 [[임종수]]와의 만남으로 4년간 연습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1989년]], 제10회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입상하고 그 다음해 [[1990년]]에 제4회 MBC 신인가요제에 출전하여 가창상과 대상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이를 계기로 [[1991년]]에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당시 트로트곡〈부초〉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아버지〉도 함께 인기를 얻었다. 데뷔와 동시에 톱 가수로 성장하게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국에 박윤경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95년]] 박윤경은 본격적으로〈알리바이〉라는 경쾌한 리듬의 곡으로 두 번째 음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대표적인 음악프로그램《[[열린음악회]]》에 출연하여 가창력을 인정받고 대중들에게 각광받았다.
[[1996년]] 3집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후 4집을 거쳐 [[1999년]]에 5집 음반을 발표하였다. 그 음반의 타이틀곡이자 신나는 성향의 트로트곡〈두리두리〉가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박윤경은 또 한번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2002년]], 6집 앨범까지 히트시키며 트로트 가수의 맥을 이어나갔다.
끊임없이 꾸준히 활동해오다가 지난 [[2006년]] [[7월 21일]]에 [[위암]] 수술을 받았다. 당시 박윤경은 암이 많이 전이돼 4시간에 걸쳐 위의 80%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약 3개월 간 휴식을 갖게 되었다. [[2008년]] [[3월 3일]]에 8집 앨범을 발표하고 다시 가수로 복직하였다. 8집 타이틀곡〈1,2,3,4〉는 [[추가열]]이 작곡, 작사한 곡으로 한 여성이 일생에 단 한번 만난 사랑에서 느낀 행복을 노래한 내용이다. 최근에는 5년 3개월 만에 9집 앨범《도도한 여자》로 컴백하였다.
* [[1995년]] 2집 - 박윤경 2
- 인천광역시/인물 . . . . 3회 일치
* [[박윤배(정치인)|박윤배]] - 부평구
* [[박윤]] - 연수구
- 오정태 (희극배우) . . . . 2회 일치
* [[박윤경 (가수)|박윤경]] - 도도한여자 (2013년)
- 전라북도/인물 . . . . 2회 일치
군산시 - [[강근호]] [[강봉균]] [[남능미]] [[박윤경(가수)|박윤경]] [[박화요비]] [[이정재(배우)|이정재]]
- 김혜은(탤런트) . . . . 1회 일치
||<|3> 2012년 || KBS2 || [[적도의 남자]] || 박윤주 || ||
- 박희광 . . . . 1회 일치
|| 가족 ||<(> 아버지 박윤하, 부인 유문기, 장남 박근용, 차남 [[박정용]], 박정희, 박선용, 박수용 ||
- 서지석(배우) . . . . 1회 일치
* '''[[열아홉 순정]]''' (2006 - 2007) - '''박윤후''' 역
- 성현아 . . . . 1회 일치
| 다음명 = 박윤정
- 오유나 . . . . 1회 일치
* [[2001년]] [[KBS1]] 일일연속극 《[[우리가 남인가요]]》 ... 박윤미 역
- 이전환 . . . . 1회 일치
|전임자 = [[박윤준]]
- 장서희(1972) . . . . 1회 일치
|| 2002 || '''[[인어 아가씨]]''' || '''은아리영'''[* '''실질적인 데뷔 첫 주연작.''' '실질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1990년대 초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송했던 시대극 <비가비>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방영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애초에 단독 주인공도 아니었던 터라... 참고로 공동 주인공을 맡은 이들은 <[[전원일기]]>의 응삼이 역을 맡았던 [[박윤배]]와 <[[태조 왕건]]>의 [[유금필]] 역을 맡았던 [[강인덕]]이다. ] || 47.9% ||
- 정승환(가수) . . . . 1회 일치
캐스팅오디션에서 박윤하와 '감성돔' 을 구성해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를 불렀다. 깊은 감정과 연기로 또 한 번의 큰 호평을 받으며 여성 보컬과의 목소리 케미도 확실하게 입증했다. 이날 그는 YG의 캐스팅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부른 곡은 또다시 음원차트를 1위를 2주일넘게 쓸게된다.
- 최동수 (야구인) . . . . 1회 일치
[[2010년]] 시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그는 그 해 [[7월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내야수]]가 필요하였던 [[SK 와이번스]]와 [[투수]]가 필요하였던 [[LG 트윈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는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LG 트윈스]]는 [[SK 와이번스]]로부터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 [[김선규 (야구 선수)|김선규]], [[포수]] [[윤요섭]]을 받았다. 그 때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3연전 중이어서, 트레이드 된 선수들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7월 28일]] 당일, 트레이드 당사자인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그는 같이 이적한 [[안치용]]과 함께 선발 출장하였고 [[권용관]]은 도중에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선수 중 [[윤요섭]]이 대타로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경기에서 그는 3점 홈런을 쳐 내는 등 4타점을 쓸어담아 맹활약하였다. 그 날 [[SK 와이번스]]는 연장전에서 [[권용관]]이 [[정성훈 (1980년)|정성훈]]의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여 패했다. 특히 그에겐 프로에서 눈을 뜨게 해 준 [[김성근 (야구인)|김성근]]과의 재회여서 더 의미가 컸으며, 2차 드래프트가 있기 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감독직에서 경질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해 시즌 후 32번을 쓰고 있었던 [[외야수]] [[박윤]]이 보류 선수에서 빠져 [[신고선수]]로 전환되자, 자신의 번호였던 '32'번을 되찾았다. [[2011년]]에는 [[박경완]]의 재활이 장기화되어서 10년 만에 그의 본업인 [[포수]]로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이후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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