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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는 [[1917년]]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 조부 [[박성빈]] (朴成彬, [[1871년]] ~ [[1938년]])
         [[분류:박근혜]][[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분류:탄핵 절차가 진행된 공직자]][[분류:서강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후보]][[분류: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후보]][[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6공화국]][[분류:박근혜 정부]][[분류:박정희]][[분류:박성빈 가]][[분류:고령 박씨]][[분류:여자 대통령]][[분류:친박]][[분류:국가원수의 자녀]][[분류:보스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무신론자]]
  • 박상희(1906)
         '''[[박정희]]([[1917년]]생)의 친형(11살 차), [[김종필]]([[1926년]]생)의 [[장인]],''' 그리고 [[박준홍]], 박영옥, 박계옥의 아버지이자 김종필과 박영옥의 아들, 딸인 김진과 김예리 남매에게는 [[외할아버지]], [[박재옥]],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의 큰아버지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박재옥은 박상희가 죽기 전인 9년전인 [[1937년]]에 태어났고, 박상희가 [[대구 10.1 사건|10.1 대구폭동 사건]]에서 경찰의 총탄에 맞아죽었을 당시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이였다.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은 박상희가 사망한 이후인 [[195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들 박정희의 자녀 4남매들에게는 큰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박성빈]]에게는 셋째아들이다.
  • 백남의
         1872년 9월 22일[* 음력 8월 20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에서 농민 백낙춘(白樂春)과 고성 이씨(固城李氏)의 딸로 태어났다.[* 출처: 수원백씨 족보.] 본관은 수원으로[* 수원 백씨 28세 '남(南)O' 항렬로 아이러니하게도 손녀 박근혜의 집권기에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석했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과 형제 뻘이다.(...)] 조선시대 사림파로 [[이율곡|이이]], [[성혼]]의 스승이었던 당대 대유학자 백인걸[* 독립운동가 [[백정기]]와 [[백관수]], 그리고 국회의원 [[백남훈]], 북한의 경제학자 [[백남운]]이 백인걸의 후손이다. 백남의와 먼 친척 뻘. 항렬로는 백관수가 백남의의 할아버지 뻘이고, 백남훈, 백남운이 형제 뻘, 그리고 백정기가 백남의의 조카 뻘이다.]의 종증조부인 산음 현감을 지낸 백효연의 15대손이며 이천부사[* 伊川, 강원도 [[이천군]]이다.]와 경상좌수사를 지낸 백수일의 6대손, 그리고 낙안 군수와 내금위장을 지낸 백동신의 현손녀이다. 1살 연상의 고령 박씨 [[박성빈]]과 결혼하였으며 이후 8남매를 낳았는데 첫 사내아이는 2살 때 잃었으며, 넷째 사내아이는 13살 때 잃었다. 살아남은 남매는 총 4남 2녀, 그 중에 막내가 바로 박정희다.
         남편 [[박성빈]]은 조선 말 관직에 올라 효력부위[* 오늘날의 육군 중사]를 지내고 [[동학농민운동]]에도 참여했으나 실패하고 이후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져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실질적인 가장 역할은 백남의가 맡았다. 그래서 그렇잖아도 없는 살림에 많은 수의 식구들을 먹여살리느라 상당한 고생을 했다. 그러던 중 46세에 [[박정희]]를 [[임신]][* 남편은 나이가 50이 넘었다.]했다. 힘든 살림에 딸과 같이 임신한 것이 부끄러웠던 백남의는 막간장을 두 사발이나 마시며 [[낙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국 박정희는 태어났다. 이 영향으로 박정희는 미숙아로 태어나 어른이 되고 나서도 체구가 작았다.
  • 장승원(1852)
         대농토를 소유한 대지주로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은 한때 그의 집을 출입하기도 했는데, 이 인연으로 박성빈의 아들 박무희는 대지주이기도 했던 그의 농토를 7:3의 비율로 소작하기도 했다.<ref>[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8011470357 [박정희의 생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82)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봇이 붙인 제목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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