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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순이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조인성]]은 봄날의 종영 당시 고현정을 '[[고해성사]]를 받아 주는 [[수녀]]님 같은 분'[* 참고로 [[수녀]]는 고해성사를 줄 수 없다. [[미사]]와 [[7성사|성사]] 집전은 [[사제]]서품을 받은 성직자만이 가능하며, [[가톨릭]]에서 성직자(교황>추기경>주교>신부>부제)는 [[남자]]만 될 수 있다. 수녀는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이다. 수도자 중에서도 사제서품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 남성 수도자인 수사만 가능하다(수도사제, 성직수사, 수사신부 등으로 불린다).]이라고 했고, 지금은 각종 매체에 고현정을 스승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연기에 대한 평도 듣고 있다고. 싸이더스를 떠나 고현정의 1인소속사로 들어가는 등, 사제관계는 계속되는 모양이다. 참고로 [[지진희]]의 평은 "한마디로 대장부죠"[* 여담으로 지진희는 봄날 이전에 찍었던 [[대장금]] 종영 후 [[이영애]]에 대해 '60부작을 찍었는데 이렇게 안 친해진 상대 배우는 처음'이라고 고백(…)]
  • 권득인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 (기독교)|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권진이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 (기독교)|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김 로사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김 로사 (1784년)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김 루치아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김 루치아 (곱추)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김 바르바라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김수환(추기경)
          * 장례미사: [[2009년]] [[2월 20일]]
         [[조치 대학]] 문학부 [[철학과]]에서 수학하던 시절,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와중에도 자신을 차별하지 않은 [[독일인]] 신부에게 감명받아 사제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2016년 2월에 발매된 공식전기에 따르면, 신학교 시철 초기까진 진지하게 [[신부(종교)|신부]]가 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은 개인상회를 열어 여태껏 형제들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꿈이 있어서 그랬다고. 그러나 어머니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고 싶은 마음과 신학교 선생님들과 여러 친구들에게 여러 조언을 들으면서 꾹 참았다고 한다.] 당시 김 추기경의 은사였던 독일인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는 해방 후 한국에 건너가 [[서강대학교]]의 창립을 주도하여 초대 이사장이 되었다. 김 추기경은 [[2002년]] [[게페르트]] 신부가 사망했을 때, 직접 장례[[미사]]를 주례했다. [[게페르트]] 신부(1904~2002)의 일본 [[조치대학]] 시절 제자인 [[김수환]] [[추기경]]은 "게페르트 신부님은 사제로서 훌륭했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자상한 분이었으며, 특히 한국 유학생들에게 늘 자애롭게 대해주었다"고 회고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추기경 서임식에서[br]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비레타]]를 받는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미사에서[br]순명서약을 받는 김수환 추기경 ||
         [[마산교구]]장에 임명된 지 2년 만인 [[1968년]] 대주교로 승품되어 [[서울대교구]]장이 되었다. 이 일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어서 김수환 추기경 본인은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들이 자기에 대한 순명을 거부하면 어떡할까 고민하였지만, 착좌식 [[미사]]에 원로 신부를 필두로 한 서울대교구 사제단 전원이 아무런 이의없이 순명서약을 하는 것을 보자 그런 우려를 걷어내었다.
         군사정권 시절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인천교구]]장 [[윌리엄 존 맥나흐톤 굴리엘모|나길모]]([[미국인]]) 주교, [[안동교구]]장 [[두봉]]([[프랑스인]]) 주교, [[전주교구]]장 [[김재덕(주교)|김재덕]] 주교와 함께 사회참여파 주교로 활동하였다. 또한 다른 성직자보다 높은 권위가 있는 추기경으로서 많은 방면의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였다. 1971년 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성탄절 [[미사]]에서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며 [[박정희]]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 발언을 마침 듣고있던 박정희가 매우 격노했으나, 날이 밝자 [[대연각호텔 화재|세계구급 화재]]가 발생하면서 묻혔다.]
         장례는 당초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비록 자신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을 특사로 임명하여 '''교황장[* 교황 또는 교황이 임명한 특사가 직접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장례]으로 격상'''해서 치렀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뤄졌으며, 사망 당일과 장례 [[미사]] 당일을 제외한 3일의 조문 기간 동안 '''약 40만 명'''의 시민들이 [[명동성당]]에 줄서서 조문하였다. 당시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명동성당까지 줄지어 선 조문객 행렬의 총 길이는 300m였다고 한다.[* 김정남 저, 이 사람을 보라, 두레, 2012.12.05.] 이때 '''단 한 번도'''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 '''[[박정희]] 당신은 압니까? 정의와 사랑이 없는 곳에 평화와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가 없는 곳에 사회 안정과 질서는 없습니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입니까?''' [br] - [[1971년]]의 [[성탄절|예수성탄대축일]] 메시지.[* 유신의 징조가 보이던 시절이다. 이걸 보고 격분한 [[박정희]]는 [[미사]] 송출을 즉각 차단한다.]
         > '''그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새로운 빛이 되어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숨은 것뿐입니다.''' [br] - [[장준하]]의 영결 미사.
         > '''인간 박정희가 [[야훼|하느님]] 앞에 섰습니다.''' [br] - [[박정희]]의 장례 미사.
         >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 선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br] - [[박정희]]의 장례 미사.
         > '''아버지 이 죄 많은 박정희를 용서해주십시오.''' [br] - [[박정희]]의 장례 미사.
         > '''고인께서 군인과 대통령으로서 보여주신 애국심은 열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인은 국토 구석구석, 국민 생활 속속들이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고인은 산업화와 경제 발전에 실로 빛나는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충격적 사건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아집과 탐욕, 증오와 폭력을 우리 가슴 속에서 씻어 내고 용서와 화해, 사랑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나라는 국민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나라, 억압과 폭력의 공포가 없는 나라입니다. 이제 중요한 문제는 국상을 끝낸 후에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역사적 운명은 크게 발전할 수도, 침체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곧 갈림길이며 위기의 고비입니다.''' [br] - [[박정희]]의 추모 미사.
         다만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의 사이가 험악할 정도로 나쁘진 않았다고 한다.[* 김 추기경을 필두로 천주교 전체가 박정희의 독재에 항거했기에 박정희 입장에서는 천주교가 상당한 눈엣가시로 보였겠지만 정작 박정희와 천주교의 관계는 원만한 편이었다. 전쟁통이었던 탓에 결혼식장이 마땅치 않았다는 배경도 있지만 일단 본인과 [[육영수]]가 결혼한 곳도 [[계산성당|대구 계산성당]]이고 딸 [[박근혜]]를 천주교 계열 [[미션스쿨]]([[성심여자중학교|성심여중]]-[[성심여자고등학교|성심여고]]-[[서강대학교|서강대]])에 내리 보냈다는 것이 그 증거. 심지어 [[박근혜]]가 중학생 때 학교에서 세례를 받던 날에는 [[육영수]]를 직접 영세식이 열린 용산 원효로성당에 보내기도 했다.] 훗날 김수환이 회고록에서 "종이에 4대강을 그려가면서 몇 십 년은 족히 걸릴 법한 개발 계획을 설명해주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이 나라가 1인 장기 독재 체제로 갈 것임을 예상했다. 다음날 혼자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무척 우울했다. (중략) 박 대통령을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장기 집권의 야욕을 버리고 나머지 과제를 후임자에게 넘겼더라면 지금쯤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진정한 애국자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당시를 회고하였다. 또한 박정희가 죽은 뒤 [[명동성당]]에서 고 박정희 추도 미사를 봉헌했다.[* 출처 -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화신문 엮음.] [[육영수]] 여사에 대해서도 국모다운 면이 많은 훌륭한 영부인이었으며,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박정희의 통치가 한결 누그러졌을 거라 평했다.
         >'''주님께서 "너희 아들, 너희 제자,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자 "'탕'하고 책상을 치니까 '억'하고 쓰러졌으니 나는 모릅니다. 수사관들의 의욕이 지나쳐서 그렇게 되었는데 그런 것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국가를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실수로 희생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고문 경찰관 2명이 한 일이니 우리는 모릅니다."라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카인]]은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성경]] 최초의 [[살인자]]이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Am I my brother's keeper)?"라고 대답하였다.'라는 [[창세기]] 4장 9절을 인용한 발언.][br] - 고문 끝에 숨진 [[박종철]]의 추모 미사. [[http://www.youtube.com/watch?v=IPbju8zxV6c|실제 육성]].
         ||<:>[[2005년]] [[4월 24일]], [[베네딕토 16세]] 즉위미사(제대의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 김수환 추기경이다) ||
          * [[2004년]]에는 사제급 추기경 수석이 되었다. 이 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미사 때는 물론이거니와 [[베네딕토 16세|요제프 라칭어]]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후[* 김수환 추기경과는 인연이 있는 사이로, 김 추기경이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뮌스터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 라칭어 추기경의 강의를 수강하며 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많았다고 한다.] 교황의 좌우에 배석하는 2명씩의 추기경 중 한 사람으로서 [[http://www.americancatholic.org/news/benedictXVI/|즉위 미사를 집전하기도 하였다]]. [[https://youtu.be/3R8h6HdZcyk?t=8650|베네딕토 16세 즉위미사 영상. 2:24:10부터 김 추기경이 나온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추기경은 당시 가톨릭 교회의 원로 성직자 가운데 한 명으로, 즉위미사가 거행된 [[2005년]] 기준 사제급 추기경들 가운데서 서임 날짜가 가장 빨랐다. [[바오로 6세]]는 재위 기간 중 6차례에 걸쳐 추기경을 서임했는데, 그 중 2번째였던 [[1967년]] [[요한 바오로 2세|카롤 보이티와]]가 서임되었고 3번째였던 [[1969년]] 김수환이 서임되었으며 4번째인 [[1973년]] [[요한 바오로 1세|알비노 루치아니]]가, 마지막이자 6번째인 [[1977년]] [[베네딕토 16세|요제프 라칭어]]가 서임되었다.
  • 김임이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김효임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김효주 (종교인)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남명혁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 (기독교)|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민극가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박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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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원 (종교인)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박큰아기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박희순 루치아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손소벽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여흥부대부인
         [[천주교]] 신자인 민씨는 일과문(日課文)을 읽었으며, [[1863년]] 둘째 아들 [[대한제국 고종|재황]]이 임금이 되자 [[운현궁]](雲峴宮)에서 감사 [[미사]]를 올렸다 전해진다. [[1887년]] [[한불조약]]으로 [[천주교]] 신앙이 허용되자, [[1896년]] [[10월]] 불란서의 [[천주교]] 선교회인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인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세례]]를 받았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유모이며 자신과 같은 천주교 신자인 박(朴)마르타와 함께 프랑스의 천주교 주교인 [[베르뇌]]를 통해 [[프랑스]] 정부의 도움으로 남진(南進)하려는 [[러시아]] 세력을 꺾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98년]] [[1월 8일]]([[1897년]] [[음력 12월 16일]]) 사망하였다.
  • 유대철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유소사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유진길
         유진길은 특별 [[미사]] 중에 [[세례]]를 받았다. 사제가 낭송했다.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유진길은 마치 [[예수]]의 피가 전신의 [[혈관]]을 통해 흐르는 것처럼 느꼈다.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이 가타리나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이 바르바라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이 아가타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이간난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장성집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전경협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전장운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최영이 (종교인)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최창흡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한영이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허협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현경련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현석문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홍금주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홍병주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황석두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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