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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범 . . . . 44회 일치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2004년 12월에는 [[:en:Multi-National Force – Iraq|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공정한 선거업무의 주역으로 외국군(미국, 영국, 호주, 루마니아)을 지휘·감독,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이 [[이라크 전쟁|이라크전]] 때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냈는데 다국적군사령부 참모 중에 한국군이 그 외에는 없어 처음에는 직속 부하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낀 그였다. 그래서 바쁘다는 외국군 장군들 대신 브리핑을 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자 노력해 점차 조직을 장악하였다고 밝혔다.<ref name="a"/> 그는 [[:en:United States Armed Forces|미군]]과 [[:en:British Armed Forces|영국군]], [[:en:Australian Defence Force|호주군]] 장교 10여 명을 지휘해 5400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이라크 유권자 1400만 명의 투표를 지원 및 감독하였으며, 3500t에 이르는 선거 관련 물자를 각 투표소에 공급하고 치안 유지를 지원하는 일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30323 이라크 총선지원 전인범 대령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 기여에 자부심”], 《서울신문》, 2005년 1월 31일</ref> 선거가 무사히 끝난 뒤 이라크 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대한민국 국군|한국 군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정부]]로부터 [[:en:Bronze Star Medal|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046950 노 대통령 전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 《연합뉴스》, 2005년 7월 11일</ref><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50706&parent_no=7&bbs_id=BBSMSTR_000000000004 이라크 총선 성공지원 공로, 전인범 육군 대령 美 동성무공훈장 받아], 《국방일보》, 2005년 7월 6일</ref>
2009년 11월 [[2성 장군|소장]]으로 진급해 제27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다. 재임하면서 그는 전역하는 병사들을 위해 전역식을 열어주고 직접 참석해 “군 생활 하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줄 건 육군 소장의 경례밖에 없다”며 전역병들에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해주었고,<ref>[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95508 [김준범 ‘오늘과 내일’] 박찬주 대장 사태로 돌아본 ‘병사들을 사랑한 장군들’], 《시사위크》, 2017년 8월 14일</ref> 부대를 방문한 군수사령관 앞에서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슬리퍼의 열악함을 토로하며 보급에 대한 확답을 받을 때까지 사령관 앞에서 슬리퍼를 물고 있기도 하는 등 장병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96411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끝없는 미담 “능력과 인품 두루 갖춘 진짜 장군”], 《서울신문》, 2017년 2월 7일</ref> 2011년 5월에는 한·미 연합작전 태세를 발전시킨 공과 한·미 우호관계 증진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등급 훈장인 [[:en:Legion of Merit|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수훈하였다.<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72160 전인범 육군 27사단장 '美 공로훈장' 수상], 《브레이크뉴스》, 2011년 5월 13일</ref> 그는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단장으로 근무 중 한미가 2007년에 합의한 전작권 전환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면서 150개에 달하는 전환 과제를 계발하고 진행을 감독하며 미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추진, 복잡한 전환 과정을 관리하는 총 책임을 맡은 바 있다. 미국으로부터 이 훈장을 수훈한 외국인으로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영국 국왕 [[조지 6세]], 소련군 총사령관 원수 [[게오르기 주코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 등이 있다.
2011년 11월 18일 [[:en: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미국 국방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 《[[:en:Spider-Man in film|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시사하는 교훈을 언급하였다. 그는 “《[[:en:Spider-Man (2002 film)|스파이더맨 1]]》은 우리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en:Uncle_Ben#.22With_great_power_comes_great_responsibility.22|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것을 가르쳐 주고 《[[:en:Spider-Man 2|스파이더맨 2]]》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알려준다”며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미국인들은 《스파이더맨 1, 2》를 평생 동안 적어도 세 번 이상 보아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VrILCHQl1M Korean General tells Americans to watch Spiderman 1 & 2], 《USAG-Humphreys》, 2011년 11월 18일</ref> 같은 달 21일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영전했으며, 1년 5개월 뒤인 2013년 4월에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2013년 10월 [[3성 장군|중장]] 진급과 함께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동년 11월에는 한미연합방위체계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상호 유대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다시 한 번 수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05771 전인범 특전사령관, 美 최고 공로훈장 받아], 《연합뉴스》, 2013년 11월 19일</ref> 2013년 현재 그는 한미 양국으로부터 총 8개의 훈장을 받아 대한민국 현역 장성 중 최다 훈장 수상자로 알려져 있다.<ref>[http://www.gunsa.kr/bbs/board.php?bo_table=B01&wr_id=151 대한민국 특전사 사령관 전인범], 《군사저널》, 2013년 12월 31일</ref>
2015년 4월 5일부터 12일까지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와 [[:en:United States Army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방문, 미 통합특전사령관 [[:en:Joseph Votel|조셉 보텔]] [[:en:General (United States)|대장]]과 미 육군 특전사령관 찰스 클리브렌드 [[:en:Lieutenant general (United States)|중장]]을 만나 한·미 연합 특수작전에 대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저격용 소총과 미군 주력 소총인 [[:en:M4 carbine|M4]], 권총, 산탄총, 박격포, 방탄복 등을 점검하고 체험하는 등 미군 특전사의 장비와 무기를 현장 견학하고 실제 사격도 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413010008491 미군 주력 소총 M4 쏘는 전인범 특전사령관],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3일</ref> 이와 함께 방미 기간 동안 [[시애틀]]에 있는 6·25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참전용사비에 헌화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ZIB7y0ZvFJs 한미연합 특수작전사령부 시애틀 방문 6·25 참전용사비 헌화식], 《KOAM-TV》, 2015년 4월 10일</ref>
2016년 5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USSOCOM medal|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USSOCOM Medal)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4&ntt_writ_date=20160615 “전인범 장군, 미 특수전 발전에 혁혁한 공로”], 《국방일보》, 2016년 6월 15일</ref> 미 특수전 발전에 공로가 있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이 훈장은 1994년 제정된 이후 한국군이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미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의 특수전사령부를 지휘하는 3군 통합사령부로, 전 중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국 특전사령관 겸 연합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연합작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훈장 수여 증서를 통해 “연합특전사령관으로서 미 최정예 특수부대와 [[:en:United States Navy SEALs|네이비 실]](SEAL), 특수전 항공자산 등 1000여 명 이상의 미군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뛰어난 전문지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으로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615010007077 [단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최초 미군 통합특전사 훈장], 《아시아투데이》, 2016년 6월 15일</ref> 더불어 전 장군의 추진력과 창의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함께 장기 비전이 대한민국 방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 장군의 남다른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개인의 추진력은 대한민국과 한미연합사에 큰 기여가 됐다고 전했다.
2016년 7월 28일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3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졌고 같은 달 31일 전역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7227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이천 특전사서 전역], 《연합뉴스》, 2016년 7월 2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99207 [카드뉴스] "국회의원이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라"], 《조선일보》, 2016년 8월 5일</ref> 이날 전역식에는 한미연합사령관 [[:en:Vincent K. Brooks|빈센트 브룩스]] 대장, 미 8군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2사단장 테드 마틴 소장 등 [[주한미군]] 수뇌부와 이기백, [[정호용]], [[김동진 (1938년)|김동진]], [[김태영 (1949년)|김태영]] 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 중장의 전역을 축하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heebum-hong/story_b_11295018.html 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허핑턴포스트》, 2016년 8월 2일</ref><ref name="c"/>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의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국선장]]과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각각 받았으며, 특히 보국훈장 국선장은 그가 중위 시절 합참의장으로 모셨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이 걸어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435078 33년 전 목숨 건 구출… 다시 만난 장군과 중위], 《SBS》, 2016년 7월 28일</ref> 전 중장은 전역사에서 선배 장군들과 미군 장성들, 동기, 후배들을 거론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던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보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728010013908 전인범 중장 전역식 "부하 잘 보살피면 부하들이 알아서 윗사람 보살핀다"],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28일</ref> 그는 “군인들이 진급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약속을 지켰다.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은 베레 영원하라”는 특전 정신을 외치며 전역사를 마쳤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o9JyXV5Hyo 전인범 장군 전역사 영상(discharge speech of LTG. INBUM CHUN)], 《YouTube》, 2016년 7월 28일</ref>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상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영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상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2017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전인범 중장은 이례적으로 [[예비역]] 한국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현직 육군 최고 수뇌부가 참석하는 이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예비역으로는 유일하게 발표했는데, 현직 미군 주요 지휘관들은 물론 전직 미군 수뇌부들로부터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 연합전력 극대화 해법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출신으로 평가받고 있어 이 심포지엄에도 초청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528010015215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미 군사 혈맹, 한국군 주도적 역할 중요”], 《아시아투데이》, 2017년 5월 28일</ref> 그는 발표문에서 “한미간 긴밀한 연합작전과 지휘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⁴I)가 기반되어야 하며 양국간 언어장벽의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리나라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46579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美 'LANAPC'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 및 발전 방안 발표], 《뉴데일리》, 2017년 5월 26일</ref> 또한 심포지엄이 끝나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군 발표자들 대부분은 기조연설과 발표문에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rising adversary)’으로 지칭했다”면서 “미국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질주하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292284 "美, 아태 지상군회의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 지칭"], 《연합뉴스》, 2017년 5월 25일</ref>
1년 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그는 케네소 주립 대학교, 템플 대학교, [[:en: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외교정책연구소]] 등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로펌을 찾아 한반도 갈등이 미국 국민들의 일상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강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025928 한국전쟁 미국에도 도움안돼… 참화 막을 외교적 노력 필요],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2017년 10월 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을 하기 전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그는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는 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갈등이 미국에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 또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025816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상도 심각"],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한 달 후인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오청성 하사가 국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던 것은 북한 신속대응군 추격조가 오 하사를 급히 쫓느라 호흡 조절에 실패해 급소를 가격하는 소위 ‘킬 샷(kill shot)’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34661 <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뛰어온 北추격조 숨 헐떡여 급소 못 맞혀… 천운”], 《문화일보》, 2017년 11월 24일</ref> 전 전 사령관은 “CCTV 영상을 보면 전력 질주하는 오 하사를 쫓느라 AK 소총을 든 두 북한 경비병은 300m 이상, 권총을 든 두 경비병 추격조는 200m 이상 전력 질주했다”며 “추격조는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되지만 오래 뛰다 보니 총을 쏠 때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 하사가 추격조의 사격에 노출된 시간은 10초가 채 안 돼 정확한 조준 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덕에 심장, 대동맥, 정동맥 등 출혈을 많이 일으키는 곳이나 신경계인 머리 척추와 같은 급소를 맞지 않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총탄은 몸에 박히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간이나 비장,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주도록 설계된다”며 “그런데 오 하사와 추격조 간 거리가 살상 효과가 높은 50m보다 짧아 관통한 총알이 많아서 살상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탄이 몸을 관통할 경우 출혈을 빨리 멈추게 하고 패혈증만 막으면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급소만 피하면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보다 관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2018년 6월 예비역 신분인 그의 주도로 국회의원회관에서 특수작전 전술 및 장비 현대화를 위한 세미나 ‘제1회 특수작전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그간 국가 안보전략과 국방 관련 정책 토론회는 많았으나, 일선 전투원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술 및 장비 관련 세미나가 공개적으로 개최된 적은 없었기에 눈길을 끌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4045225 창끝 전투원들을 위한 '제1회 특수작전 세미나' 큰 호응], 《파이낸셜뉴스》, 2018년 6월 24일</ref> 세미나에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효율적인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육군의 특전사를 비롯해 수색·특공부대, 해군 및 해병대, 공군의 지상작전 부대의 정예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해외의 사례를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면서 “실전에 맞지 않는 전술 및 장비소요(구매 요청 및 구매)는 과감하게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중장은 세미나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형식과 틀을 깬 어법과 행동으로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해당 세미나는 특수·지상작전연구회, 군사전문지 플래툰 등 민간이 주도한 최초의 개방형 군사 세미나로, 세미나 준비를 해온 특수·지상작전연구회 소속 정진만 아세아항공전문학교 교수는 “당초 100명 미만의 규모로 세미나를 준비했는데 150여 명 이상이 참석했고 상당수 인원이 참석을 원했는데 장소가 비좁아서 받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같은 달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에 임명, 9월에는 그를 단장으로 하는 자유총연맹 대표단이 [[:en:West Potomac Park|웨스트 포토맥 공원]] 내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들어 설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 추모벽 건립에 1만 달러를 기증했다.<ref>[http://dckoreannews.com/featured/%ED%95%9C%EA%B5%AD%EC%9E%90%EC%9C%A0%EC%B4%9D%EC%97%B0%EB%A7%B9-%EB%AF%B8%EA%B5%AD-%EC%9B%8C%EC%8B%B1%ED%84%B4%EC%97%90%EC%84%9C-%EB%8F%99%ED%8F%AC%EA%B0%84%EB%8B%B4%ED%9A%8C-%EA%B0%9C%EC%B5%9C/ [한국자유총연맹] 미국 워싱턴에서 동포간담회 개최], 《워싱턴코리안뉴스》, 2018년 9월 12일</ref><ref>[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2597 한국자유총연맹,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건립지원금 1만 달러 기탁], 《월드코리안뉴스》, 2018년 9월 13일</ref> 그는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추모의 벽이 설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 차원에서 1만 달러를 즉석에서 마련, 기탁하게 됐다”면서 “한국자유총연맹은 특정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 중립을 지키면서 국가에 이익이 되고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국리민복을 기본 가치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ref>[http://www.koreatimes.com/article/1202198 한국전 참전 ‘추모의 벽 건립’ 1만달러 기증], 《미주한국일보》, 2018년 9월 11일</ref>
통역이 필요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주한미군 지휘부와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리고 있다.<ref>[http://news.donga.com/People/3/06/20110512/37149041/1 ‘전작권 전환 기여’ 전인범 소장이 받는다], 《동아일보》, 2011년 5월 12일</ref>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그를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0/2013042000200.html 박지만씨 육사 37기 동기들, 청와대·국정원·軍 요직 올라], 《조선일보》, 2013년 4월 20일</ref> 주한미군사령관 [[:en:Curtis Scaparrotti|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그를 일컬어 ‘가장 절친’이라 칭할 정도로 미군들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116010009522 주한미군사령관 "한반도 평화·안정 온힘 쏟겠다"], 《아시아투데이》, 2014년 11월 16일</ref> 미 8군사령관 버나드 샴포 중장 역시 ‘한국 군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절친이며 항상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고문(顧問)이자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라고 강조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208010005247 주한 미8군사령관 "한미 군사동맹 강력하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8일</ref>
** 고모부 : 고광림<ref>[http://library.snu.ac.kr/theme/2014_01_sub02.htm 고광림 박사 주요 이력].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ref> (高光林, 1920년 ~ 1989년,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주미한국대사관]] 특명전권공사)
*** 내종형 : [[:en:Howard Koh|고경주]]<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olink.asp?aid=14888937&serviceday=20140721 사명, 목적 있는 삶… 나를 이끈 건 부모 가르침], 《중앙일보》, 2014년 7월 21일</ref> (高京珠, 1952년 ~ , [[:en:United States Assistant Secretary for Health|미국 보건복지부 보건담당 차관보]])
*** 내종형 : [[:en:Harold Hongju Koh|고홍주]] (高洪珠, 1954년 ~ , [[:en:Legal Adviser of the Department of State|미국 국무부 법률고문]])
** 숙부 : 전주일 (미국 공무원)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정선 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리라초등학교 동문]][[분류:대경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합동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경남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장]]
- 박근혜 . . . . 31회 일치
2007년 4월 미국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면담을 가진 박근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가 있었던 2008년 6월 박근혜는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한 차례 한 뒤 줄곧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본격적인 거리 투쟁으로 비화된 5월에도 그는 당을 떠난 친박 측근들의 복당 문제 얘기를 주로 했다. 이후 계속되는 복당 요구에 네티즌들의 의해 '복당녀'라는 별명이 생기며 비판받기도 하였다.
국회의원 재직 중 대선 경선을 맞이하게 된 박근혜는 대선 경선 캠프 선대위원장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 '경제 민주화'의 입안자인 전 [[민주정의당]] 헌법개정위원 [[김종인]]을 임명하는 등 [[사회양극화]] 문제 해소에 적극적 의지를 보였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20628031405843] 김봉기 기자, '경제 민주화' 원조 김종인… 내달 출범 박근혜 캠프 맡는다, 조선일보, 2012.6.28.</ref> 박근혜는 재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경제력 남용을 바로잡는 데 방점을 뒀다.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긍정적 역할은 인정하자는 쪽이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820160408085] 이제훈, 재벌이 싫어하는 헌법 조항, 한겨레21,2012.8.20.</ref> [[사회양극화]] 해소가 목적인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세수확보가 중요한데 박근혜 의원은 2012년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법인세는 가능한 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야기했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6%(지방세 포함)보다 낮은 편이다. 일본과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각각 39.5%, 39.2%에 이른다.<ref name="hani.co.kr">[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42826.html] 류이근, 성연철 기자, 박근혜 "법인세 인하"…친박서도 "경제민주화와 모순", 한겨레신문, 2012.7.17.</ref> 현재 법인세는 내국세 총액 가운데 부가가치세(33.0%) 다음으로 높은 비중(28.6%)을 차지한다.<ref name="hani.co.kr"/>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법인세를 낮추겠다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에서 ‘박근혜식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ref name="hani.co.kr"/> '법인세 인하와 경제민주화 간의 모순성' 및 '법인세 감소분에 따른 대체 세수 확보' 등의 논란은 대통령 선거일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 미국 ====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2013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한 박근혜(2013년)
취임 후 박근혜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한편 보스턴 마라톤 현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박근혜는 2013년 5월 미국을 방문하였다. 이후 박근혜는 북한 문제 등에 관한 내용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회담을 하였고, 한미 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한미동맹 60주년 선언'등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박근혜는 2013년 4월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침략을 부인하는 등 우경화 노선을 취하려 하자, "역사 인식이 바르게 가는 것이 전제되지 않고 과거 상처가 덧나게 되면 미래지향적 관계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ref name="news.hankooki.com">{{웹 인용|url =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304/h2013042503401121000.htm|제목 = 박근혜 대통령 "일본 바른 역사인식 없이 미래지향 관계 어렵다"|저자 = 이동훈|날짜 = 2013-04-25|확인날짜 = 2013-04-27|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425095012/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304/h2013042503401121000.htm|보존날짜 = 2013-04-25|깨진링크 = 예}}</ref> 이후 한국일보를 비롯한 중앙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일본이 우경화로 가면 동북아와 아시아 여러 국가들 간 관계가 어려워질 것이고, 일본에도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만큼 깊이 신중하게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으며, "우리 세대의 아픔과 걸림돌이 후세에 이어지지 않도록 정리하고 끊어야 한다"며 "정부는 항상 일관되게 원칙을 가지고 한일관계를 풀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f name="news.hankooki.com"/> 이어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기후변화와 테러방지, 원전 문제 등과 같은 비정치적 분야부터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다자간에 더 큰 신뢰를 구축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즉 '서울 프로세스'를 내달 미국 방문 때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으며, "북한도 얼마든지 이에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하지 않더라도 신뢰 쌓기 노력을 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ref name="news.hankooki.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는 박근혜
2013년 5월 7일 밤(미국 기준시) 홍보수석비서관실의 [[윤창중]]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인 미국 방문 중 술을 마시고, 주 미국 한국대사관에서 지원한 인턴 여성의 둔부 근처에 손을 댄 행동과 다음 날 새벽 호텔에서 과도하게 노출된 상태로 해당 여성을 마주했다는 의혹이 발생, [[윤창중]]은 바로 성추행으로 미국 경찰에 신고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이 윗선에 보고되어 경질되었다는 내용이 언론에 유포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3/05/12/0501000000AKR20130512057900001.HTML "윤창중, 靑진술서 '엉덩이 터치·본인 노팬티' 시인"]《연합뉴스》2013년 5월 12일 신지홍 기자</ref><ref>[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33 윤창중의 출국 누가 도와줬나?]《시사인》2013년 5월 11일 김영미 국제문제전문 편집위원</ref> 이 사건으로 직속 상급자인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차관급)이 사과발표를 하였으며, 사의를 표명하였다. [[이남기]]의 사직서는 5월 중순 수리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1129691 靑 "윤창중 사건, 美측에 조속한 수사 진행 요청"]《뉴스1》2013년 5월 12일 장용석 기자</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586998.html 이남기 홍보수석 사의…허태열 "책임 피하지 않을 것"]《한겨레》2013년 5월 12일</ref> 또한,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과 윤창중 전 수석대변인 간의 진술 차이, 대통령에 대한 사과 표현 등이 문제시되어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장관급)이 공식사과를 발표하였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ewsflash/3281506_7612.html 靑 허태열 공식 사과…이남기 홍보수석 사의]《MBC》2013년 5월 12일</ref>
2014년 10월 말 한민구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은 2015년 12월 한미연합사령관에서 한국 합참의장으로 전환되도록 되어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을 3대 전환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연기하고, 주한미군을 한강 이북에 계속 주둔하게 하며, 용산 미군기지에 한미연합사를 계속 두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의 해체 및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였다. 또한, 양국 국방장관은 한미동맹을 전략동맹으로 더욱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전작권 전환의 무기 연기로 인하여 한미동맹, 한미 연합 방위 체계가 보다 굳건해지고, 북한의 위협에 대하여 지휘권의 단일화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한국을 방위할 수 있게 되었고,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더욱 확실하게 보장되었다. 또한 주한미군의 한강 이북 주둔에 대하여 합의함에 따라서 인계철선도 유지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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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중동순방 귀국 직후 미국대사 병문안, ‘종북 논쟁’ 과열,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
|메르스 사태 본격화, 미국 순방 연기 결정,
2008년 대선 이후 박근혜는 [[미국소 수입 협상]]에 대한 반발이 일던 가운데 이명박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거나, [[미디어법]] 상정시 "반대표를 던질것"이라고 말하거나, 이명박이 내놓은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 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거나, [[대한민국의 동남권 신공항 논란|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당시 이명박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차기 정권에서 계속 추진 할 것을 약속하는 등 중요한 사안에서 짧은 말을 던지는 일명 '한마디 정치'를 해왔다. 2010년까지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지켜온 박근혜의 이런 의견들은 당정에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친이계는 정부에 협조하지도,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는 박근혜의 모호한 행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박근혜를 당대표나, 국무총리로 추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왔지만 박근혜는 이를 모두 거부하였으며 친박계 의원이 당대표를 맡는 것조차 반대하는 등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지지율 1위를 지키기 위해 너무 몸사리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명박과 화해를 하거나, 아예 다른 노선을 선택하여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628010330371750020 박근혜, ‘친박계 해체’ 결단해야) 문화일보 2010년 6월 28일</ref> 이러한 비판들 속에서 이명박 정권 취임 초기에 실시했던 자기 대선 후보들 지지율 조사에서 50%에 육박하던 박근혜의 지지율은 2010년 이후로 30%까지 하락했다.<ref>(http://www.vop.co.kr/A00000301840.html 한나라당 지지율 '급하락'..지방선거 '여파' 여전) 민중의 소리 2010년 6월 15일</ref>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은 임기 초반에는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ref>'진행형' 세월호참사 속 박근혜정부 1년6개월 맞아, 연합뉴스 2014.10.19</ref> 임기 중반으로 가면서도 일본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한미일과의 군사적 동맹에서 한국이 소외된다는 비판과 함께 외교정책이 중국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ref>美·中 갈등 심화… 박근혜 정부 '3대 외교 정책(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모두 꼬일 수도, 조선일보 2013.12.02</ref><ref>박 대통령 ‘친중 반일’ 이면엔 미·중 사이 줄타기, 경향신문 2013-10-09</ref> 여기에 중국 또한 일본과의 관계회복을 도모하는 쪽으로 외교정책을 선회하여, 박근혜 정부 들어 동북아에서 한국만이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ref>[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45437 유연해지는 중국의 대일 외교, 우리는, SBS뉴스 2015.04.24]</ref><ref>[http://www.hankookilbo.com/v/374aee9c3ef94bacbe98e033f3245f76 말 한마디 못한 채… 한국 외교 속수무책, 한국일보 2015.04.27]</ref> 박근혜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은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일본의 아베 정권과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철저한 전략적 외교로 실속을 챙기는 가운데 한국만이 외교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ref>[http://news.jtbc.joins.com/html/407/NB10872407.html 고도의 외교술로 실속 챙긴 아베…한국외교는 수렁에, JTBC, 2015-04-30]</ref><ref>[http://kr.wsj.com/posts/2015/04/30/%EC%95%84%EB%B2%A0-%EC%B4%9D%EB%A6%AC%EC%9D%98-%EB%8A%A5%EC%88%98%EB%8A%A5%EB%9E%80%ED%95%9C-%EC%99%B8%EA%B5%90%EC%88%A0-%EB%B0%95%EA%B7%BC%ED%98%9C-%EB%8C%80%ED%86%B5%EB%A0%B9-%EC%95%95%EB%B0%95/ 아베 총리의 능수능란한 외교술, 박근혜 대통령 압박, 월스트리트저널, 30. April 2015]</ref><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51959901 박근혜 정부, 미-중 사이 갈팡질팡…아베의 '친미 외교'에 완패] 한국경제 2015-05-19 </ref>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27회 일치
=== 미국 ===
대공황으로 개판이 난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뉴딜 정책을 시행한다. 불만도가 5% 감소하며 정치 슬라이더가 중앙계획으로 한 칸 이동한다. 이 디시전을 발동시키면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1933년 대선 당선 연설이 BGM으로 나온다. "오직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하는 그 연설.
자금 20을 소모해 아메리카 대륙 국가 모두와 관계도를 50 올리고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또한 미국의 괴뢰국인 니카과라와 아이티를 해방시키며, 불만도가 2% 감소한다.
중화민국이 보유한 은화를 미국 국고의 금화와 교환할 수 있게 해주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보급품 1,500, 석유 250이 빠져나가고 자금 50이 들어온다. 중화민국과의 관계도가 15 증가하고 일본과의 관계도가 10 감소한다. 중화민국에 요격기 한 부대, 공군 지휘관 한 명, 그외 여러가지 등등이 지원되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 The Americans Control Chinese army(미국의 중국군 지휘)
* 발동 조건: 일본이 중화민국과 전쟁 중. 미국이 중화민국-일본 전쟁에 참전하지 않음. 중화민국과의 관계도가 0 이상.
* The Americans Control French army(미국의 프랑스군 지휘)
* 발동 조건: 프랑스가 독일과 전쟁 중. 미국이 프랑스-독일 전쟁에 참전하지 않음. 프랑스와의 관계도가 0 이상.
* US Occupation of Greenland and Iceland(미국의 그린랜드와 아이슬란드 점령)
덴마크가 독일에게 항복하며 영국군이 점령한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미군이 관리한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국민구역으로 주장하는 동시에 "미국의 그린란드 및 아이슬란드 지배" 이벤트로 해당 지역을 영국에게서 넘겨받는다.
* 미국이 독일과 전쟁 중
*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이며, 영국이 독일과 전쟁 중
* 타이오하에를 미국이 지배하며, 앵커리지를 소련이 지배함
* 우흐타를 미국이 지배하며, 앵커리지를 소련이 지배함
* 솔리캄스크를 미국이 지배하며, 앵커리지를 소련이 지배함
일본에게 중국 침략을 그만두라고 통보한다. 중국과의 관계도가 20 올라가며 일본과의 관계도가 50 감소한다. 정치 슬라이더가 강경파로 한 칸, 간섭주의로 한 칸 이동한다. 또한 평화시 공업력 페널티가 10% 감소한다. 이후 일본에게 이 통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지가 뜨는데, 미국에게 굴복하는 선택지는 인공지능이 안 고르므로 미국-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일본에게 엠바고를 거는 선택지로 직결된다. 이후 1년 내로 일본이 "진주만 공습" 디시전을 벌일 거라고 생각하자.
* 발동 조건: 평화, 미국의 간섭주의 수치가 7 이상
미국의 도시를 습격한 판초 비야 일당들을 조지기 위해 전쟁에 돌입한다.
* 발동 조건: 200 보급품, 미국의 간섭주의 수치가 2 이상
아이티의 반미 폭력 행동이 미국인의 사업에 위협이 되는데다가, 아이티 산업의 대부분을 독일인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한 대처를 정하는 디시전이다.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마찰을 감수하고 아이티를 괴뢰국화하는 선택지(간섭주의 +1)와 "우린 제국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하고 국민들에게 개까이는 선택지(고립주의 +1)이 있다.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24회 일치
[[미국]]은 M1A1 에이브람스, [[소련]]은 T-80U, [[NATO]]는 독일군 레오파르트2A4. 강력한 체력, 방어력, 공격력을 가진 유닛. 차량과 건물에는 주포를, 보병과 헬리콥터에는 기관총을 사용한다.
* 공격능력: 백린탄(미국, NATO)/파편고폭탄(소련) - 보병에게 치명적인 포탄을 발사한다. 백린탄보다는 파편고폭탄이 다루기 더 쉽다.
미국은 M60A3, 소련은 T-62, NATO는 영국군 치프틴 Mk.5.
* 공격능력: 실레일러 미사일(미국)/AT-4 스피곳 미사일(소련)/HESH탄(NATO) - 차량과 전차에게 강력한 대전차 미사일이나 점착유탄을 발사한다.
미국은 M551A1 셰리던, 소련은 PT-76, NATO는 영국군 FV101 스콜피온. 빠르지만 나약한 전차. 경전차 TA로 공수받을 수도 있다.
* 공격능력: TOW 미사일(미국)/AT-5 스팬드럴 미사일(소련) - 차량과전차에게 강력한 유선 미사일을 발사한다.
미국은 M2A2 브래들리, 소련은 BMP-2, NATO는 영국군 FV510 워리어. 기관포로 무장한 장갑차.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다.
* 공격능력: MK-19 유탄발사기(미국) - Mk.19 유탄발사기로 유탄의 탄막을 뿌린다.
미국은 AAVP7A1, 소련은 BTR-80, NATO는 독일군 룩스. 기관포로 무장한 장갑차.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으며 물 위를 이동할 수 있다. 쓸모없다.
* 공격능력: 헬파이어 미사일(미국)/AT-6 스파이럴 미사일(소련)/HOT 미사일(NATO) - 먼 거리의 차량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한다.
미국은 AH-64A 아파치, 소련은 Mi-24V 하인드, NATO는 이탈리아군 A129 망구스타. 로켓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공격헬기.
* 공격능력: 사이드와인더 미사일(미국)/빔펠 R-73 미사일(소련)/미스트랄 미사일(NATO) - 적 헬리콥터에게 강력한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한다. 플레어로 피할 수 있다.
미국은 AH-1W 슈퍼 코브라, 소련은 Mi-28 하보크, NATO는 SA-341 가젤.
미국은 OH-6A 카이유스, 소련은 Ka-25 호르몬, NATO는 BO-105 PAH-1. 로켓을 사용하는 소형 헬기.
미국은 UH-60 블랙호크, 소련은 Mi-8 힙, NATO는 SA-330 슈퍼 퓨마.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다.
미국은 [[HMMWV]], 소련은 UAZ-469, NATO는 영국군 D-90. 기관총으로 무장한 고기동 차량.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으며, 손상된 차량을 수리할수도 있다.
미국은 M939, 소련은 우랄 4320, NATO는 TRM 4000.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다. 그게 끝.
미국은 M730A2, 소련은 SA-13 고퍼, NATO는 롤랑. 대공미사일로 무장한 대공차량.
미국은 M163 VADS, 소련은 ZSU-23-4 실카, NATO는 독일군 게파드. 기관포로 무장한 자주대공포.
미국은 M270 MLRS, 소련은 2S7 피온, NATO는 독일군 LARS 110 SF 2. 미국과 NATO가 장기간을 쏟아붓는 다연장로켓포를 쓴다면, 소련은 한방이 강한 자주포를 사용한다.
- 토이 솔져스: 콜드 워 . . . . 22회 일치
장난감 병정 [[타워 디펜스]] 게임인 [[토이 솔져스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1편인 [[토이 솔져스]]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했다면, 토이 솔져스: 콜드 워는 미국과 소련 간의 [[제3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다뤘다.
미국은 M2. 소련은 PK. 적당한 기관총이다.
미국은 M60. 소련은 NSV.
미국은 M134. 소련은 발칸-1. 둘 다 부무장으로 유탄발사기가 달려있다. 미국이 미니건을 사용하는 대신 소련은 유탄기관총을 사용해서 컨셉에 차이가 약간 있다. 미국이 시원한 연사력으로 쇼부를 본다면 소련은 한방한방으로 쇼부를 보는 느낌.
미국은 M29. 소련은 82-PM-41. 피격된 적에게 스턴 효과를 먹이는 박격포.
미국은 M252. 소련은 (Describe here). 가스탄을 발사하는 박격포.
미국은 M120. 소련은 (Describe here). 소이탄을 발사하는 박격포.
미국은 M72. 소련은 RPG-7. 발사키를 계속 누르고 있는 걸로 로켓의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시에는 장탄수가 3발이 된다.
미국은 M40 무반동총. 소련은 B-10 무반동총.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시에는 장탄수가 3발이 된다.
미국은 BGM-71 TOW. 소련은 AT-4 스피곳. 발사키를 계속 누르고 있는 걸로 미사일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미국은 M102. 소련은 D-30 곡사포. 발사키를 계속 누르고 있는 걸로 포탄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미국은 (Describe here). 소련은 (Describe here). 발사키를 계속 누르고 있는 걸로 포탄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미국은 M270. 소련은 (Describe here).
미국은 (Describe here). 소련은 ZU-23-2. 소구경 대공포. 헬리콥터 정도나 노려볼만 하다.
미국은 (Describe here). 소련은 (Describe here). 유도가 가능한 미사일 발사대. 장탄수가 네발이지만 네발로는 헬리콥터 하나도 못 잡는다.
미국은 (Describe here). 소련은 (Describe here). 최대 4대의 항공기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미사일 발사대. 미사일도 쎄졌다.
미국은 Fog of War(전장의 안개). 소련은 Red Scare(적색 공포). 살충제.
미국은 (Describe here). 소련은 Red Menace(적색 위협). 스프레이를 이용한 급조 화염방사기.
미국은 (Describe here). 소련은 Mother Motherland(어머니 모국). 폭죽. 부무장으로 로만 캔들을 사방에 흩뿌릴 수 있다.
미국은 브래들리, 소련은 BMP. 주무장은 기관포, 부무장은 유도 미사일. 유도 미사일은 최대 두대의 적을 공격할 수 있다.
- 홍정욱 . . . . 19회 일치
'''홍정욱'''(洪政旭, [[1970년]] [[3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언론인]]이다. 현재 [[헤럴드 (기업)|헤럴드]] 및 [[올가니카]]의 회장이며, 사단법인 올재의 이사장이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 로스쿨 졸업 후 미국에서 투자금융가로 일했고 [[2001년]] 귀국 후 헤럴드를 인수해 기업가로 활동했다.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홍정욱은 1970년에 태어나 1985년 압구정중학교 재학 중 도미, 1989년 [[초트 로즈메리 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93년 [[하버드 대학교]]를 동아시아학 전공으로 [[마그나 쿰 라우데]]급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91년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1년 간 수학했고, 대학 졸업 후 1994년 [[베이징 대학|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생으로 잠시 정치학 석사과정을 수학했지만 곧 중퇴한 후 [[미국의 로스쿨|미국 로스쿨]] 입학을 선택했다. 1995년 [[스탠퍼드 로스쿨|스탠포드 로스쿨]]에 입학하였으며 1998년 법무박사 (J.D.) 학위를 취득하였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998년 [[스탠퍼드 로스쿨|스탠포드 로스쿨]] 졸업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뉴욕의 [[리먼 브라더스|리먼브라더스]] [[인수합병]] 그룹에 입사하여 투자금융가로 몇 년간 일하다 사퇴하고, 벤처기업 스트럭시콘의 창업자 겸 CFO로 재직했다. 2001년 병역 이행을 위해 가족과 함께 귀국했으며, 2002년 12월 오랜 경영난에 시달려온 언론 지식기업 [[헤럴드 (기업)|헤럴드]]를 인수해 국내 최연소 언론사 CEO이자 [[헤럴드경제]] 및 [[코리아헤럴드]]의 발행인이 되었다. 2005년 인수 2년 반 만에 [[헤럴드 (기업)|헤럴드]]의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 [http://www.heraldcampus.co.kr/ 캠퍼스헤럴드], [http://junior.heraldcorp.com/ 주니어헤럴드] 등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고, 서울영어마을, 부산영어마을 등의 운영권을 획득하며 교육사업을 확장했으며, 2007년에는 프리미엄 여성채널 [[동아TV]]를 인수해 방송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2015년 [[LF (기업)|LF패션]]에 매각). 그러나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총선|제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헤럴드 (기업)|헤럴드]] 및 [[동아TV]] 회장직을 사임했다.
2008년 4월 9일 노원구 병 선거구의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시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의 후보였던 [[노회찬]]을 누르고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이며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정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9년 9월 24일 [[한나라당]] 국제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2010년 8월 17일에 [[한나라당]] 2030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외에 [[한나라당]]에서 천안함대책위 위원, 북핵도발대책특위 위원, 서울시당공천심사위 위원, 지방선거기획위 위원, 2010 지방선거 중앙선대위 스마트유세지원부단장, 2010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선대위 O2유세지원단장,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홍정욱은 영화배우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남궁원]]과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 스튜어디스 출신의 양춘자 사이 1남 2녀 중 외아들이다. 누나인 홍성아는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헤럴드 (기업)|헤럴드]] 계열사인 헤럴드아카데미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동생인 홍나리는 독일 [[베를린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최초의 동양인 여성 연주자로 선발된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홍정욱은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http://www.jungheesohn.com/ 손정희](1974년~)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인인 손명원은 [[현대미포조선]], [[쌍용자동차]] 사장을 지낸 전문 경영인으로 정치인 [[정몽준]]의 손윗 동서이다. 처의 증조부는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제2대 의장을 역임한 [[손정도]] 목사이고, 처의 친할아버지는 [[대한민국 해군]] 창군 주역이자 전 국방부 장관인 [[손원일]] 제독이다. 처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前 외무부 장관이다.
손정희는 미국에서 태어나 학교와 직장을 다닌 미국인으로 2008년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했으며, 홍정욱의 세 자녀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 시민권자인 손정희를 따라 [[국적법]]에 의해 미국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다.
* 前 미국 벤처기업 스트럭시콘 CFO
* 前 미국 [[리먼 브라더스|리먼브라더스]] M&A그룹
미국 영주권자인 어머니를 통해 1985년 미국에 가게 되었으며, 미국 영주권자로 [[1987년]] 군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2001년 영주권을 포기하고 귀국해 군복무를 하였다. 30세를 넘긴 나이로 부모가 모두 환갑을 넘겼고 누나가 모두 분가한 이유로 2001년 12월 17일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육군 제30사단에 입대해 4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6개월간 서울용산초등학교에서 전산요원으로 공익근무를 한 후 2002년 제대하였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16회 일치
* Democratic Idealist(민주주의의 이상가) - 미국의 우드로 윌슨
* Democratic Idealist(민주주의의 이상가) -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주요 인물: 미국의 [[해리 S. 트루먼]], 일본의 [[고노에 후미마로]]
주요 인물: 미국의 [[해리 홉킨스|해리 l. 홉킨스]], 스페인국의 [[프란시스코 프랑코|프란시스코 프랑코 바아몬데]]
*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주 UN 대사) - 미국의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 Father of 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아버지) - 미국의 코델 헐
* Secretary of the Interior(내무장관) - 미국의 해럴드 익스
* Secretary of the War(전쟁부장관) - 미국의 헨리 루이스 스팀슨
* The Orthodox Economist(정통 경제학자) - 미국의 헨리 모겐소
* Director of FBI(FBI 국장) - 미국의 J. 에드가 후버
* The Cryptographer(암호학자) - 미국의 윌리엄 F. 프리드먼
주요 인물: 소련의 [[게오르기 주코프|게오르기 K. 주코프]], 미국의 [[조지 마셜|조지 C. 마셜]]
주요 인물: 미국의 [[조지 S. 패튼]]
주요 인물: 미국의 [[더글라스 맥아더]], 중국 공산당의 [[펑더화이]](팽덕회)
주요 인물: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 미국의 [[어니스트 킹|어니스트 J. 킹]]
주요 인물: 미국의 [[헨리 아놀드|헨리 H. 아놀드]]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16회 일치
워싱턴 D.C.에서 잠을 자던 [[미국 대통령]][* 배경 시기를 따지자면 아버지부시.]은 모건 장군의 전화에 의해 일어난다. 소련군이 시애틀에 상륙했다는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얼굴을 감싸쥐며 할 수 있는것을 묻지만 별다른 방책은 없었다. 소여 대령이 지휘하는 몇개 부대를 시애틀로 보냈다는 보고를 들은 대통령은 내각 회의를 준비한다.
한편, 시애틀에서 후퇴한 미군 부대는 서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이들을 지휘하는건 배넌 대위였지만 파커는 배넌과 가려는 방향이 같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이 침공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의 행렬은 이어졌고, 소련군이 미국을 침공하였다는 소식은 라디오 방송국의 방청자 제보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소련군은 공수부대를 시애틀 외곽에 투하하고 있었다. 배넌은 고속도로 다리에 방어선을 설치했다. 방어선이 돌파당한다면 소련군은 피난민들을 따라잡고, 워싱턴 주 전체로 뻗어나갈 것이었다.
시애틀에 상륙한 소련군 부대에 속해있던 올로프스키는 소련에 있는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에서 그는 미국인들은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감상과 미국인들을 과격하게 다루는 말라셴코에 대한 걱정을 아내에게 전한다.
소련의 선전 방송은 소련군이 미국 서해안 대부분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시애틀 외부로 빠져나가는데도 미군의 저항을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 소련 군인들이 미국 땅을 밟으며 느꼈던 환상적인 감정은 빠르게 사라졌고, 자신들이 적지에 있다는 불안감이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톰슨 이병은 국방부에 전화를 건다. 본래 워싱턴 주방위군이었지만 시애틀 함락 당시 정규군으로 편입된 바람에 봉급 체계가 혼선되어 봉급을 받지 못한 것. 톰슨은 시카고에 있는 전처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공무원은 중대 행정병에게 451-A 서류를 받아서 제출하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이에 톰슨은 지금 미국이 침공당했는데 무슨 서류니 법정이니 무슨 상관이냐며 따지지만 미국이 침공당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결국 전화는 말싸움으로 끝나버린다.
같은 날, 레베데예프 소령은 사기 관리반에게 넘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말라셴코 대위와 인터뷰를 한다. 미국 침공 후 몇주가 지난 시점에서의 감상을 묻는 레베디예프에게 말라셴코는 영광스러운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스럽지만 딱 한가지가 불만스럽다고 한다. 미국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소련군에게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매복 공격을 가해 인명피해를 낸다는 것. 그는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미국인들이 더 대담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베디예프가 생각해본 해결책은 있냐고 물어보자 그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매복을 당할 때 마다 민간인 10명을 무작위로 처형하는 것. 이에 레베디예프가 그래도 매복이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보자 말라셴코는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대답한다.
선전 방송은 미국에 상륙한 소련군이 북미의 서쪽 절반을 해방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소련군은 워싱턴 주의 민병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군은 네개 대대를 캐스케이드폴스라는 마을로 투입하였다. 그곳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소련군 지휘부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올로프스키 대령 마저도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몰랐지만, 소련군 장병들은 그 무언가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대대들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캐스케이드폴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올로프스키 대대는 시골에서 민병대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민병대 기지를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차량 지원과 항공 지원의 힘을 입어 기지를 점령한 로마노프 중대는 기지를 수색하는 동시에 방어전을 준비한다. 대규모의 미국 정규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레베데예프의 보고를 들은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가 중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민병대 지휘관은 미국 정규군이 반격을 시작하기 직전 부상을 입은 채로 생포된다. 이후 로마노프의 중대는 헬리콥터가 와서 민병대 지휘관을 싣고갈 때 까지 기지를 사수한다.
배넌 대위는 미군-NATO 연합 대대 간부들이 작전 계획을 짜는 현장에 나타난다. 배넌의 자기소개를 들은 소여는 배넌이 한시간이나 늦었다고 질책한 다음 파커 소위와 프랑스군 연락장교 장 사바티에 소령을 소개한다. 사바티에는 자신의 부하들을 만나러 자리를 뜨는 배넌을 보면서 저렇게 열렬한 것을 보니 오늘 내로 죽을 것이라고 평한다. 소여는 지휘관이 전사한 NATO 부대의 지휘를 파커에게 맡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바티에는 "미국놈들은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려한다"고 프랑스어로 불평하지만,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똑같이 프랑스어로 받아치는 소여를 보고 말문이 막힌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16회 일치
=== 미국 찬양 ===
미국을 찬양하며 양키 두들을 합창한다.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지만 소련과의 관계가 약간 나빠진다.
소련을 찬미하며 보드카를 대접해준다.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약간 나빠진다.
=== 미국의 개발 원조 ===
미국에게서 더 나은 설계도를 받아 발전소와 공항의 건설 비용을 50% 절감시킨다.
=== 무역 대표단 (미국) ===
워싱턴으로 무역 대표단을 파견한다. 2개월 후 랜덤으로 효과가 일어난다. 미국과의 관계가 좋을수록 좋은 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 미국과 동맹 ===
* 미국과 최고의 관계, 외교부 장관 필요
>동맹국 트로피코와 합의하지 않고는 미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주트로피코 소련군기지를 유치하고 매년 $2,000의 임대료를 받아먹는다. 그러면서 미국의 침략도 막는다. 미국과의 관계와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미국의 유명 자연 다큐 채널을 불러 트로피코를 주제로 다큐를 찍도록 한다. 3년간 모든 시민, 특히 환경주의자와 지식인의 존경심이 상승하며 관광 평가와 생태 관광객의 수도 증가한다.
죄수들을 플로리다로 보내버린다. 5년간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다.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
1980년에 쿠바 정부가 미국으로 가는 망명자 행렬에 범죄자와 병자들을 끼워넣은 것에 대한 패러디로 보인다.
- 이현우 (가수) . . . . 15회 일치
'''이현우'''(李鉉雨, [[1966년]] [[3월 6일]] ~ )는 [[미국]]의 [[가수]]이자, [[작사가]], [[작곡가]]이며, [[사회자|방송인]], [[영화배우]], [[연기자]], [[뮤지컬 배우]]이다. [[미국]] 국적 소유자이므로 군에 입대하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1988년 [[미국]] [[뉴욕주]] [[뉴욕 시티]]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로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89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에 잠깐 놀러 왔다가 당시 [[가수]] [[강수지]]의 소속사 매니저의 소개를 받고 1990년 10월에 실험적인 [[테크노 팝|테크노]] [[댄스 팝]] [[대중음악|음악]] 장르 곡인 데뷔곡 《꿈》이 수록된 《12 Inch Dance Version》이라는 싱글 [[음반]]으로 첫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 1집 [[음반]] 《Black Rainbow》로 정식 데뷔하였다.
* [[미국]] [[워싱턴 D.C.]] 위트 고등학교 졸업
* [[미국]] [[로스앤젤레스]] [[:en: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오티스 미술디자인대학교]] 중퇴
*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학사
1993년 1월 13일 자신이 알던 한 팬과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후 2월 1일 보석으로 석방됐으나, 그 해 3월 [[MBC]], [[서울방송|SBS]], [[KBS]]로부터 방송 출연 정지 조치를 받고 [[미국]]에 건너갔다가 11월에 방송 복귀했다.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미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미국의 개신교도]][[분류: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문]][[분류:경원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라크 전쟁 반전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트로피코 4/건물 . . . . 15회 일치
||병원은 모든 트로피코인의 의료적 만족감을 충족시켜줍니다. 시민들은 각하를 위해 더 오래 봉사하게 될 것이며, 미국인들은 섬의 환상적인 의료 시설을 보여 감탄해 마지 않을 것입니다.||
* 할리우드 고전: 미국 고전 명화 만큼 훌룡한 건 없지요! 자본주의자들의 존경심이 10 상승합니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트로피코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는 것쯤은 다 알지요. 이 입지를 지키기 위해선 후진국 놈들을 견제해야겠지요. 흔히 "초강대국"이라고 잘못 알려진 국가들 말입니다. 이 건물을 통해서 자본주의 미국이나 사회주의 소련과 관계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 친소정책: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집니다.
* 친미정책: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지만 소련과의 관계가 나빠집니다.
||화성인들에게 납치당하여 끔찍한 생체실험을 당하실 뻔한 각하께선 외계의 지적 생명체 탐색 연구에 매진하셨습니다. 미국 라디오를 감청하는 것밖엔 할 수 없었지만, 어떤 연속극에서 피터가 노르마랑 바람을 피운다는 결말을 알아낼 수 있었지요.||
* 돌격소총: 모두가 소총을 좋아합니다. 당하는 사람 빼고요. 또한 트로피코제의 값싼 무기와의 가격 경쟁을 위해 단가를 낮춰야 하는 회사들도 말이죠. 따라사 미국과 소련과의 관계가 -5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 지뢰: 지뢰는 제작하기는 쉬워도 제거하기는 힘들지요. 생산력은 10% 상승하지만 미국과 소련과의 관계는 10% 악화됩니다.
||이제 시민들은 더이상 정전 때문에 장장 50시간에 걸친 각하의 연설을 청취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저 크고 아름다운 풍력 발전기를 보십시오. 비록 유지비는 많이 들지라도 미국산 바람은 자유도를 30%나 더 함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지하 감옥은 미국이나 소련에게 임대해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각하의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데도 쓸 수 있죠.||
* 미국에게 임대: 미국과 동맹 칙령 필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될 작정이십니까?! 이 건물은 미국의 침략 발판을 만들어주고, 놈들은 사악한 음모를 위해 각하를 희생양으로 삼을지도 모릅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좋다면 군사 기지에서 매년 임대료를 받아낼 수 있습니다.||
미국과 동맹 칙령으로 지을 수 있는 건물.
- 정명훈 (지휘자) . . . . 14회 일치
[[서울]]<ref>{{뉴스 인용|제목 = 운명처럼 다가왔던 베토벤 '운명' 들고 태어난 부산방문 설레|url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509.22023204805 |출판사 = 국제신문 |날짜 = 2013-05-08 |확인날짜 = 2013-05-09}}</ref>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찍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를 배운 지 3년만인 일곱 살 때인 [[1960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피플Q 정명훈의삶&음악] 정명훈은 누구?|url=http://news.donga.com/3//20100120/25520037/1|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0-01-20}}</ref> [[1961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킹 군 (워싱턴주)|킹 군]]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 워싱턴 대학가에서도 한식당을 경영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63110|출판사=mk뉴스|날짜=2009-12-25}}</ref> 정명훈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의 식당에서 부엌 일을 도왔고 새벽 신문 배달과 잔디 깎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신문을 돌리고서 나중에 구독료를 받으러 다니는 '수금'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北 악단장도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최고 명기) 쓴대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3/2012041300179.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2-04-13}}</ref> 14세에 첫 개인 리사이틀을 가진 정명훈은 연주 도중 곡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ref>유동철, 《아들아 너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북로그컴퍼니, 2009, p.94, {{ISBN|978-89-962617-3-5}}</ref> 그의 선생이었던 제이콥슨은 정명훈에게 "네가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ref>
[[1968년]]에 [[미국]] [[뉴욕]]의 [[메네스 음악원]]에 [[입학]]해 나디아 라이젠버그와 칼 밤베르거에게 각각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다. [[1974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피아니스트]]로 참가해 2위로 입상해 화제가 되었고,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에도 초대되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김문관의 클래식 산책 스승의 노래|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39830|출판사=아시아투데이|날짜=2012-05-14}}</ref> 이 만찬에서 정명훈은 콩쿨 상금으로 [[러시아]]에서 산 [[캐비어]] 5 kg 중 일부를 [[선물 (물건)|선물]]로 들고 갔다. 당시 소련 정부는 국부 유출을 금지해서 받은 상금을 [[모스크바]]에서 모두 써야 했다.</ref> 이듬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추가로 [[공부]]한 후 [[1978년]]에 [[졸업]]했다.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정명훈은 19세 때부터 누나 [[정명화]]의 시누이로 다섯 살 연상의 구순열을 짝사랑했고, [[가족]]에게 숨긴 채 교제를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 3000루블로 비행기 티켓을 사서 [[카리브 해]]로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79년]]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식에는 어머니 이원숙 여사만이 참석했으나 나중에는 [[부모]]에게도 인정받았다.<ref>황호택, 《신동아》 [[2004년 2월]]호</ref>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 정진, 정선, 정민을 두고 있다.
[[북한]] [[함경남도]] [[원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루시여고]], [[대한민국]] [[배화여고]],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후 한 때 [[동덕여고]] 교사, [[이화여대]] 가정과 강사로 일했다. [[일본]]에서 [[유학 (교육)|유학]]하다 정준채 씨를 만나 [[결혼]]. [[1962년]] [[미국]]으로 이주해 한식당을 운영. [[1968년]] [[한국]]으로 돌아와 구미물산주식회사, 주식회사 원 등을 운영. [[1986년]]엔 [[미국]] 밸리포지신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 미들타운에 한인교회를 개척하였고 [[198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에서 목사로 활동.
4. [[정경화]] (대관령 국제 음악제 예술감독,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 교수) 1948.03.26. 서울특별시 출생 (바이올린)
5. 정명철 (클라리넷)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 1992년 [[올리비에 메시앙|메시앙]]의 ‘튀랑갈릴라 교향곡’으로 디스크 그랑프리, 미국 엑설런스 2000상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13회 일치
수장은 영국. 이외에 주요 회원국으로는 프랑스가 있다. 초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두 국가의 따까리들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며 미국의 참전, 영국의 중남미 국가 포섭 등으로 상당히 많은 회원국을 확보하게 된다.
인력이 엄청 느리게 늘어서 없는 것으로 치는게 낫다. 이 단계에서 생산이 완료된 모든 유닛들은 숙련도 80을 달고 나온다. 1936년 미국이 이 상태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는 Prolong Terms of Service(복무 기간 연장)디시전을 통해 징병제를 시행할 수 있다.
동원령 3단계. 일부만 랜덤으로 징집(선발제 복무)하거나 일정한 기간만을 복무(시간제 복무)하는 단계. 선발제복무의 예시로는 제비뽑기로 징병을 하는 현대의 [[태국]]이, 시간제 복무의 예시는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훈련을 받는 현대 [[미국]]의 [[주방위군]]이 있다.
미국의 경우 징병제를 시행하려면 이벤트를 통해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국회에서 높은 확률로 퇴짜를 놓는다.
==== USA(미국) ====
실제 역사를 따라가려고 할 경우 일본의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 디시전 발동→"난징 대학살", "파나이 사건" 이벤트→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 발동→일본의 "진주만 공습" 디시전 발동과 같은 절차를 걸쳐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보통 이렇게 되면 똑같이 일본에게 선전포고 당한 연합군 세력이 동맹에 초대한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발리고 강화조약을 맺으면 인도차이나 연방의 소유권을 넘겨 받을 수 있는 디시전이 발동한다. 이러면 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이 해금되는데, 미국은 중일전쟁과 그에 딸린 각종 이벤트 때문에 일본을 싫어할게 뻔하므로 이 디시전을 발동한다.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면 미국의 애완견[* 민주화, 중국 지역을 중화민국에게 반환, 모든 괴뢰국 해방, 한반도가 대한민국으로 독립, 영미와 군사 통행권&불가침 조약 체결, 불만도 +20%, 미국의 괴뢰국화.]으로 전락한다. 인공지능이 잡을 경우 100% 미국과 네덜란드령 동인도에게 엠바고 처먹기를 선택하고, 이후 "진주만 공습" 디시전을 갈긴다.
독일이 베저위붕 작전을 시행한 후 영토 안으로 조금만 진군하면 이벤트로 항복해 독일에게 합병된다. 이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토르스하운같은 해외 영토는 영국과 미국이 디시전을 통해 가져간다.
미국의 괴뢰국.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 마닐라가 함락되는 즉시 일본에게 점령 및 합병당한다. 이후 일본이 괴뢰국으로 다시 뱉어낸다.
- 정인숙 (1945년) . . . . 13회 일치
신원조회는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이던 [[김형욱]]의 비서<ref name="hp104"/> 실장인 [[문학림]]이 맡았고, 고위층만이 가질 수 있었던 회수여권은 정일권의 비서관 [[신성재]]가 주선하였다.<ref name="hp105">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5페이지</ref> 여권 발급 날짜는 [[1968년]] [[12월 30일]]이고, 이후 정인숙은 [[1969년]] [[3월]] 큰오빠를 만난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10월]]에는 [[워싱턴 D.C.]] 한인회장 [[노진환]]의 안내로 미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다가 [[1970년]] 1월 21일 귀국했다.<ref name="hp105"/>
{{인용문|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뒤 자꾸만 고위층(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정 여인은 어쩌면 박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청와대를 귀찮게 하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골치가 아파졌다.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내보냈으나 자꾸만 귀국하겠다고 해서 일본에도 머물게 했다. 그때 [[일본]]에서 박종규 실장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정건영 씨였다. 마치이로 통하는 이 교포 사업가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암흑가의 신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정건영 씨에게 정인숙 모자를 돌보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건영은 그 대가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도록 실력자인 박종규 실장에게 부탁했다.<ref name="hp104"/><ref>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216쪽</ref>}}
출국을 한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갑갑해 한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국내로 들어온 정인숙은 홀로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이 때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 쓰는 사람들을 상대했고, 재일교포와 사업가 등 유력 인사들이 그녀를 거쳐 갔다. [[1969년]] [[10월 10일]] [[국무총리]] [[정일권]]의 주선으로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주변에게“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 한때는“이젠 미국 안 갈래”라고 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17일]] 낮, 자동차 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 6기통짜리를 흥정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 평소 거느리는 주변 사람들의 여자문제에도 관대한 편이었다. 심지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직원을 시켜 정적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등의 사생활을 캐서 보고서로 제출하자 화를 내며 찢어버렸다. 그러나 자신과도 술자리 또는 잠자리를 같이 한 정인숙이 정일권과 관계를 맺어 자식까지 두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 직후 “정 전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위의 건의에 “남자가 여자 만나는 것은 예사”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후문이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민당]]의 정치 공세는 계속되었다. 정일권은 박정희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고, 바로 해임을 시키면 세간의 루머만 커질 것을 우려한 박정희는 정일권을 불러 자진 사퇴를 권고한 뒤, 정종욱이 구속된 이후 잠잠해질 무렵 정일권을 해임하고 바로 미국으로 내보냈다. 정인숙 문제로 박정희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한 정일권은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정성일은 정인숙의 사망 이후 외가에서 살다가 고등학생 때인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0년]]에 귀국했다.<ref name="hp107">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7페이지</ref> 정인숙을 죽이고 희생양으로 오빠 정종욱을 내세워 이 사건의 수사를 졸속으로 처리하게 한 배경, 배후는 오리무중이다.
[[1991년]] [[6월 5일]] 그의 아들 정성일은 [[서울가정법원]]에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6월 27일]] 외삼촌 정종구의 권유로 소송을 취하하고 다음날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러나 [[1993년]] 다시 [[정일권]]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친자확인소송을 냈으나, 소송 진행 중 정일권의 사망으로 무효화되었다.
정성일은 '저는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라는 책에서 [[1991년]] [[11월]] [[미국]]에서 [[정일권]]과 대화를 나눈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한 대화에서 정일권은 정성일에게 "아가야, 나는..... 나는 지금 가슴이 떨려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구나.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하고 다시 와주련?"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ref name="kum108">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8페이지</ref> 그러나 [[1993년]] SBS 주병진 쇼에 출연한 정성일은 "최근 정씨(정일권)가 나와의 직접 통화에서 '당신은 나의 아들이 아니며 내가 모시던 분의 아들'이라고 밝혔다."고 말해 자신이 [[박정희]]의 아들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ref name="kum108"/>
한편 정성일은 [[2005년]] 귀국하기 전까지 15년 이상 [[미국]] LA에 머물렀는데 당시 한인사회에서는 비교적 정 씨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교포사회의 한 관계자는 “이곳 현지 명문대 출신으로 화술이 좋고 생김새가 번듯했던 정 씨는 자동차 세일즈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하는 일에 비해서 씀씀이도 컸고, 스캔들도 제법 많았다. 자신을 ‘정 전 총리의 아들’이라고 자랑삼아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항간에는 정 전 총리로부터 많은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전했다.<ref name="ilyo01"/>
[[1991년]] [[6월 5일]] 정성일은 [[서울가정법원]]에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ref name="hp107"/> 정성일은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외삼촌으로부터 [[정일권]] 씨가 [[1967년]] 어머니와 교제해 다음해 나를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6월 27일]] 외삼촌 정종구의 권유로 소송을 취하하고 다음날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ref name="hp107"/>
19년 만에 출소한 [[정종욱]]은 [[정일권]]을 찾아가 만나겠다고 했으나, [[정일권]]의 면담 거부로 문앞에서 나왔다. 그 뒤에도 정종욱은 여러 번 [[정일권]]을 만나자고 했으나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정일권]]의 비서로부터 3,500만원을 생활비조로 받아냈다. 이후 [[정일권]]의 비서로부터 몇번의 생활비를 얻어냈다. 그러나 정성일이 자신의 친자라는 것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 정성일은 미국에서 귀국, 국내로 들어와 [[정일권]]을 만나려 했으나 정일권이 계속 만나주지 않자 친자확인소송을 벌였는데, 돌연 소송을 취하하였다. 소송 취하의 배경을 놓고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확실한 것은 없다.
- 차민수 . . . . 13회 일치
[[서울방송|SBS]]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이며, 미국 바둑 보급에 공헌하였다.
차민수는 198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세계바둑계에서는 미국 이민 이후 프로기사로서 별다른 대회 참가가 없었던 차민수가 일본 프로바둑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사 [[마이클 레드먼드]]를 꺾고 미국의 대표로 선발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여겼다. 하지만 차민수는 대회가 열리자 일본의 두 기사를 연파하고 8강에 오르더니, 8강전에서는 친구이기도 한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 일보 직전까지 가며 바둑계를 경악하게 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검토실에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은 "종반 30수 이상 실수를 거듭한 것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라며 격노하였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제목=19*19 인생퍼즐|저자=이홍렬|출판사=명상|연도=2002|isbn=9788972323914}}</ref>
다음해에도 역시 차민수는 미국 대표로 대회에 참가했는데, 1차전에서 [[조치훈]]을 꺾는 대파란을 일으키며 다시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루이나이웨이]] 9단이 미국에 망명중일 때 한국 기원행을 권유하며 조훈현에게 소개시켜 준 이가 차민수이다.<ref name="hani">{{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43818.html |제목=‘반상’에서 천국을 쫓다 한국에서 행복을 찾다|저자=김창금 기자 |출판사=한겨레 |날짜=2009-03-12}}</ref>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미국의 포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미국의 미술가]][[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미국의 불교 신자]][[분류:더 지니어스 참가자]]
- 박경석(1933) . . . . 12회 일치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위관, 영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영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영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태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965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과 월남의 파병 요청 형식으로 [[조문환]]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주월 한군군]] 군사원조단 비전투부대 [[비둘기부대]]가 파병되었고, 뒤이어 미국의 대 한국 군사원조 약조인 [[브라운 각서]] 체결과 야당의 반대 등 진통 끝에 전투병력의 파병이 이루어졌다. [* 야당과 여당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월남 파병에 있어 한국군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특히나 집권 여당 공화당의 초대 당 의장을 지낸 [[정구영]]변호사는 "이 장관 엄밀히 따지면 호지명의 월맹은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우리가 그들과 총칼을 맞대야 하는거요. 내가 보기엔 그간 프랑스는 자신의 식민지 정책의 일로 싸웠고,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 위세를 떨치려 월남에서 군사적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도와주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소. 물론 이 장관 말대로 우리는 가난하오. 월남전 파병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러나 더러운 전쟁에다가 피를 뿌리며 돈을 벌기보다는 궁핍하지만 깨끗하게 사는것이 옳다는 생각이오."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576|[[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발췌. [[http://gyuraeman.blog.me/110018127454|(대한 군사 원조의 약속인 브라운 각서)]]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포함한 경제적 원조와 월남이라는 특수 시장 개척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다는 파병의 조건으로 협상하였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월남에서 귀국 후, 1970년 8월 육군 제 [[1사단]] [[12연대]]의 연대장으로 부임하여 1사단 내 [[DMZ]]와 [[GOP]]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는데 당시 휴전선 부근을 담당하던 미국 [[2보병사단]] 예하 [[4보병여단]]의 근무 지역을 인수 받았다. 이는 그동안 휴전선 지역을 관할하고 수비하던 미군의 임무를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계기와 선례가 되었다. [[http://cafe.daum.net/pks6464/MnHf/109|DMG내 미군 관할 지역을 인수받은 육군 1사단 12연대와 연대장 박경석 대령이 말하는 비화]]
- 현이와 덕이 . . . . 11회 일치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1974년 서울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한 장덕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는 왜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수 없는가?'라는 생각에 우울해 하다가 그 해 가을 메모도 남기지 않고 무작정 친구집인 대구로 내려가 10일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장덕은 이내 수면제 10알을 먹고 음독 자살을 기도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장덕의 어머니는 장덕의 음악적 재능을 살려주고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당시 인기를 끌던 미국의 남매듀엣 [[카펜터스]]처럼 맏이 장현과 함께 남매 듀엣을 결성시켜 준다.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반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1년 장덕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옮기게 되며 그 곳에서 음악의 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한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도 하고, 한인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 한국의 샘터에서 MC로도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장덕은 리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이승언과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니에게 허락해 달라고 한다. 당시 어머니는 결혼은 감옥 같은 것 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대학 졸업 후 결혼하라고 충고했지만 10월 17일 미국에 온지 1년만에 장덕은 자신을 아껴주는 이승언과 [[내쉬빌]]에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리 패밀리의 일원으로서(밴드에서 장덕은 음악적 리더 역할을 하였고 퍼스트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다.) [[한인회]]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그녀는 서울에서의 화려했던 가수 생활의 추억을 점점 그리워 하게 된다.
미국에 머물던 이 시기 장덕은 [[미국]] [[가수]]에게 <[[여인이여 안녕 (노래)|여인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을 주어서 취입 시키기도 하였는데, 당시 장덕의 [[미국]] 내 창작활동은 [[미국]] 일간지 및 [테네시언]지에 크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 김국진(MC) . . . . 10회 일치
[[1993년]] [[2월]] 감자골은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였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별인사를 하고 [[미국]]행을 하기로 했는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였다!]]" 라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방송 3사 코미디언들 모두'''가 MBC로 쳐들어와서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태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김국진을 숨겨준 사람이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라고 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1980년대 말 ~ 90년대 초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코미디언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씁쓸해지는 대목. 감자골은 ~~[[이경규]]가 선처를 호소해서 선배들에게 줄빳다만 맞고~~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가는 것이다. ~~니들 밥줄 끊을 염려 없으니 놔줘라~~ 라고 설득해서 겨우 시청자들에게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자골은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들의 KBS 선배 개그맨 [[이봉원]]은 후일 방송에서 감자골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시 나는 SBS로 이적한 상태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파렴치한 변명을 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
그런데 미국행 직전에 박수홍은 입대 영장이 나왔고, 김수용은 미국 비자가 나오질 않아서(…)[* 2016년 10월 26일 라스에서 박수홍이 밝힌 바로는 귀차니즘으로 인해 비자 발급 인터뷰 문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마약 경험과 총기소지 상황에 '예'를 체크하는 바람에 실제로 미국에 몇년간 입국 금지처분을 받았다고(...). 김국진과 김용만은 처음엔 김수용이 미국에 오기 싫어 거짓말 하는 걸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김수용은 캐나다를 통해 밀입국(!)을 할 생각으로 [[밴쿠버]]로 건너갔다고 한다. 골프장을 가로질러서 국경을 건널 생각이었으나 절벽이라 못 넘었고, 멕시코 마약 밀매단에 섞여서 건너오는 방법(...)과 국경 근처에서 헤엄쳐서 건너는 방법 등을 알아보기만 하고 돌아왔다고...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 본인이 출연해서 직접 언급.] 결국 감자골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후 김국진은 김용만과 함께 미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이것저것 한 모양. [[이현도]]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트 클럽까지 인수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큰 규모는 아니고 쌀국수집 옆 지하의 작은 규모였다고.
[[1995년]], 미국에서 1년만에 귀국해 MBC에 자리잡은[* 귀국 후 처음에는 KBS에서 '오키도키쇼', '토요일 7시가 좋다' 등의 프로그램을 김용만과 진행하다가 1995년 중반 MBC의 '도전 추리특급'과 '[[테마게임]]'을 진행하면서 활동영역을 MBC로 옮기게 된다. [[청춘행진곡]] 폐지와 함께 개그계에서 은퇴한 [[박세민]] [[이원승]], '청춘행진곡'이 폐지되어 SBS로 이적했던 [[김창준]] [[김은태]] [[이웅호]] 등의 대안으로 김국진과 김용만을 영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국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 연예인 역사상 최고의 인기'''였다.
[[김구라]]같이 영문과 출신인데도 불구, 정작 [[영어]]에는 능통하지가 않다. 전성기에는 김국진에게 영어를 잘 한다고 얘기하면 김국진이 특유의 혀짧은 소리로 어설픈 짧은 영어 몇 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된 개그였다. 데뷔 시절 감자골 4인방(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몇년 뒤 김용만과 함께 [[미국]] 어학 연수를 갔건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진]]을 겪었을 뿐[* 그래도 [[남자의 자격]]에서 [[영어마을]]로 가는 에피소드에서 [[김성민(1973)|김성민]], [[이정진]], [[이윤석]] 등과 함께 그럭저럭 준수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당시에 밥과 고추장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로 궁핍했는데, [[1994 FIFA 월드컵 미국]] 때 [[미국]]을 찾은 [[고정운]], [[황선홍]] 등이 놀러와서 넌지시 용돈을 줬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 봉준호 . . . . 10회 일치
영화 《[[마더 (2009년 영화)|마더]]》가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비평가 협회에서 받은 외국어 영화상만 무려 7개로 보스톤평론가협회, 남동부비평가협회, 샌프란시스코 영화비평가협회 등에서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인 [[김혜자]]는 헐리우드 톱배우들을 제치고 LA 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2011년 미국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 [[2011년]] 미국 여성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2011년]] 미국 온라인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2011년]] 미국 캔자스시티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2011년]] 미국 센트럴오하이오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2011년]] 미국 남동부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201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2011년]] 미국 보스톤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2010년]] 미국 그린 플래닛 영화 시상식 최우수 외국영화 선정
- 카치구미 . . . . 10회 일치
>미국의 8배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원자폭탄]] 공격으로, 누보자키(犬吠崎沖) 앞바다에 집결해있던 미국, 영국 함대 400 척이 전멸.
>일본군이 발사한 구형의 불을 쏘는 무기(球状の火を出す兵器)로, 미국민 3,650만명이 사망.
>일본군함 30척, [[하와이]]에 입항. 미국 대통령은 일본이 지명.
>박하를 피부에 바르면 피부가 시원해진다. 이 같은 원리로 미국 전투기는 박하를 발라서 엔진을 식히기 때문에 성능이 좋은 것이다.
이러한 괴문서가 돌면서 당시 박하를 재배해서 미국에 수출하던 브라질의 일본인은 모두 미국에 무기를 보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들은 적에게 협력하여 일본을 공격하는 국적(国賊)이라는 논리였다. 이 괴문서 때문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박하 재배 농장, 박하 가공 공장에서 일본인에 의한 [[방화]]가 잇따라 일어났던 것이다.
미야코시는 유력자들을 모아서 문서를 공개하고, 일본이 미국에 패배했다는 것을 알렸다. 미야코시는 즉시 카치구미에게 '''비국민(非国民), 국적(国賊)'''으로 몰려서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본래 각지를 강연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문서를 인쇄하여 반포하였다.
10월 19일에 인식파는 상파울루의 미국 총영사관에 일본으로부터 [[신문]], [[잡지]]를 주문해달라고 의뢰하여, 1946년 3월 16일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이를 각 도시에 배포했다. 하지만 3월 이후에는 카치구미가 더욱 과격화하여 '특행대'가 조직되고 일본계 사회 지도층과 인식파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습격을 당하게 되었다.
아무튼 카치구미의 테러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식파 인사들 만이 아니라 미국 국무부, 일본 정부, [[GHQ]] 등에서 카치구미를 열심히 설득하였고, 일본 국내에서는 브라질에 친구와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호소가 퍼졌으며, 일본의 현재 영상을 브라질에 보내기도 했다.
- 빅터 차 . . . . 9회 일치
한국계 미국인.
미국 조지타운 대학 교수, 주한미국대사.
1959년 출생. 미국 이민자의 자녀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2017년 9월, 주한미국대사로 임명되었다.
아버지 차문영은 한국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도자기, 자개, 병풍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 가게를 열었으며, 동양 화병에 미국제 갓을 얹고 중국제 나무로 받침대를 한 --기괴한-- 동양램프라는 상품을 백화점에 납품하여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차문영은 2001년까지 40년간 아시아하우스를 운영하고, 2005년 타계했다.
[[분류:주한미국대사]]
- 유승민(정치인) . . . . 9회 일치
반면 [[대한민국 공군|공군]]력 건설, 특히 [[KFX]]나 [[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KFX 관련 주요 기술의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방사청과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며 여권 소속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대안으로 KFX F-35 도입으로 전환,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력 강화를 선호하는 이상주의적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산 무기의 여러 결함 때문에 검증된 미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현실주의적 [[밀덕]]들에게는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KFX의 경우, 실패하면 그대로 [[대한민국 공군]] 미래전력을 다 말아먹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차라리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접고 검증된 미국제 전투기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이 [[밀덕]]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많다.]
'이미 돈을 미국이 대기로 합의를 하고 끝난 사안이라서, 우겨도 돈을 줄 이유가 없다. 트럼프는 사업(비지니스)을 한 사람이라, 속칭 '지르는' 데 굉장히 능한 사람이다. '''즉,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데, 방위비 분담 쪽으로 얘기가 올 듯하다.''' 내가 대통령 되면 이거 협상해서 잘 해결할 거다." 라는 것. 실제로 이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한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며 방위비분담금 재협상을 시사하였다. 실제로 한미 FTA 개정협상과 각종 통상압박에 맞물려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동업자끼리 불공평한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것''' 이라는 주장으로 압박에 나서고 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좌파적인 발언을 했다고 하여 논란이 있다. 그런데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과거에는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의 모습이 강했는데 재벌정책에 대해서는 입장의 변화가 없고 다른 나머지 경제, 복지, 노동에 대한 생각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면서 많은 지역구 주민들과 만나고 그들의 삶을 접하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성장 동력이 점점 쇠진해가고 외환위기와 미국발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점점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현상을 보면서 전통적인 보수의 방법과 노선에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중부담-중복지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부담과 복지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정도 수준을 장기적 목표로 정하자는 의미입니다. 이는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현재의 [[미국]], [[일본]]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을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낮은 목표라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여야 간에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이 목표에 합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987 Dissertation Travel Fellowship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 1986 Distinguished Teaching Assistant Award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 전명운 . . . . 9회 일치
|사망지= {{국기나라|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국기|조선|1882}}→{{국기나라|대한제국}}→{{국기나라|미국}}
|별명= 아호는 죽암(竹嵒)<br />미국 이름은 맥 필즈(Mack Fields)
이곳에서 [[안창호]] 등이 조직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08년]] [[친일파]] [[미국인]]으로 [[대한제국]]의 외부 고문을 맡고 있던 [[더럼 스티븐스|더럼 화이트 스티븐스]]가 귀국하여 [[일본]]의 보호가 한국에게 유익하며 [[한국인]]들도 환영하고 있다는 망언을 늘어놓자, 이 사실에 매우 격분하였다. 스티븐스의 망언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고, 공립협회는 [[대동보국회]]와 공동으로 항의를 위한 4인 대표단을 구성했으나, 스티븐스는 대표들의 항의에도 극언을 계속하다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장인환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블라디보스토크]]로 잠시 이주했다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귀환, 그 곳에서 '''맥 필즈'''(Mack Fields)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1920년 결혼, 귀화하였다. 말년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ref>《미국의소리》 (2007.6.18) [http://www.voanews.com/korean/2007-06-18-voa18.cfm 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미국서 독립의거 - 전명운, 장인환 의사]</ref>
[[분류:1884년 태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으로 귀화한 사람]][[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담양 전씨]][[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한국의 암살자]][[분류:국민주의 암살자]][[분류:미국에 거주한 한국인]]
- 트로피코 4/인물 . . . . 9회 일치
트로피코를 세계 강국으로 성장시킨다는 원대한 야망을 가진 독재자. 미국 대통령 암살의 배후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몰락하지만 재기하여 복수극을 벌인다.
Ambassador Crane. 미국에서 파견한 대사.
게임 내에서는 미국의 주장을 대변한다.
첫번째 캠페인에서 대통령 각하를 지원하며 등장한다. 캠페인을 진행하다보면 미국 부통령이 되는데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하며 대통령까지 올라간다. 이후 대통령 각하를 미국 대통령 암살의 배후로 지목해 몰락시킨다.
각하에게 미국 대통령 암살 혐의를 뒤집어씌워 몰락시킨 흑막. 누명을 벗으려는 각하를 저지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Keith Preston. 미국인 억만장자. 프루타스라는 회사의 CEO.
Marco Moreno. [[체 게바라]]처럼 생긴 남자. 바스퀘즈 동무와 달리 장발이다. 미국에서도 수배중이 반란군의 수장으로 이상주의자, 몽상가다.
- 페이데이 갱 . . . . 9회 일치
[[미국]]인. [[성조기]]가 그려진 가면을 사용한다. 30대 때 시카고의 두 폭력단을 싸움붙인 전적이 있다. [[FBI]]는 달라스가 페이데이 갱의 우두머리거나 부관 격 되는 인물이라고 추측하는 중.
[[미국]]인. 청소년때부터 사고를 치고 다녀서 양부모의 집과 [[소년원]]을 오갔다. 이후 군대에 들어가 훌룡한 군인이 되었지만 군대를 나온 후 범죄자가 되었다. [[FBI]] DB에 따르면 큰 총과 많은 탄약을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미국]]인. [[페이데이 2]]에서 감방에 들어가있는 혹스턴을 대신해 혹스턴으로 뛰었다. 혹스턴이 구출된 이후 가명을 휴스턴으로 바꿨다.
[[일본]]인.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들 켄토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온 [[야쿠자]].
켈리 킹(Kelli King)이라는 이름의 [[오스트레일리아]]인. 어렸을 때는 [[멜버른]]에 있는 "딩고즈"(Dingos)라는 갱단 소속으로 깽판을 치고 다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페이데이 갱이 벌이던 [[은행강도]]에 난입, 돈가방을 들고 튄 적이 있다. 이 겁없는 미친 짓에 감명받은 베인이 페이데이 갱에 영입했다.
[[미국]]인. 본명은 톰 비숍(Tom Bishop). 배우 및 성우는 [[론 펄먼]]. 베인이 [[폭주족]] 단체인 오버킬 MC에 심어놓은 내부인이다. 정식 페이데이 갱단원이 되는 대가로 오버킬 MC의 동료들을 배신했다. 작중 나이는 61세. [[환갑]]을 넘었다.
멕시코 출신의 조직원. 페이데이 갱에 들어가기 전에는 몬테레이의 마약 카르텔 소속 암살자 겸 행동대장이었다. 이후 큰 한탕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페이데이 갱의 무기 공급책인 게이지의 주선으로 페이데이 갱에 입단했다.
미국 출신. 페이데이 갱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거스트 린덴허스트(August Lindenhurst)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미국 동부에서 활동하는 마약상.
- 피수영 . . . . 9회 일치
| 기타 이력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졸업]] <br /> [[소아과]] [[의사]] 겸 [[대학 교수|의과대학 교수]] <br /> [[소아과|소아내과의학교육 저술가]] <br /> [[미네소타 대학교|미국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대학 교수|객원교수]] <br /> [[서울아산병원|서울아산병원 예하 소아신생아병원]] 원장 <br /> [[울산대학교|울산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명예교수]]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이며 [[미네소타 대학교|미국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객원교수,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과장,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를 역임했다.
피수영 교수는 많은 극소·저체중 출생아(일명 '미숙아, 체중 1.5kg이 되지 않은 신생아를 이르는 용어)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낸 명의(名醫)로 불린다. 피 교수는 20여 년간 [[유타 대학교]] 부속병원 등 [[미국]] 내 여러 병원을 거치면서 의술을 쌓았다. 미국에서도 그의 의술은 명성이 높았다. 그가 살았던 미네소타에선 지금도 "피 박사(Dr. 피), 당신이 내 아이를 살렸어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피수영은 인터뷰를 통해 "미국을 떠나 10년 후에 내가 살던 동네 서점에 갔는데 어떤 남자가 오더니 ‘당신 피 박사 아니냐’고 그래서 ‘날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까, 12살 먹은 아이를 불러와서 ‘당신이 살려준 애다’하였다. 그때 의사 하길 잘 했다, 보람이 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피수영은 1995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면서 국내의 수많은 미숙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2000년엔 국내 의료진과 함께 468g 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미국 의사들이 "너희들은 이런 아이들까지 살리느냐"고 할 만치 위험한 상태의 미숙아를 살려내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도 백내장에 걸려 치료도 못 받는데 아기를 살려서 뭐하냐"는 아기 할아버지의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땐 피 교수가 "미숙아도 생명이다"라며 자기 돈을 들여 아이를 살려냈다고 한다. 피수영 교수는 '더 이상 경제적 이유로 미숙아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바람으로 유명 탤런트 등 몇몇 지인들과 몇백 만원씩 모아서 1억5000만원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71222083196938 피수영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머니투데이》, 2008년 7월 25일</ref>
* 피수영 교수는 미국에서 신생아과 전임의(醫)로 자리잡은 38살이 돼서야 결혼하고, 늦은 나이에 두 아들을 얻었다. 장남 피윤범·차남 피윤성이다. 맏아들 피윤범은 [[뉴욕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영화를 공부하였고, 차남 피윤성은 [[미국]] 명문인 [[코넬 대학교]] 법대를 다녔다.
- 김보름 . . . . 8회 일치
2013년 11월 8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3-2014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7초93의 기록으로 12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3090996|제목=‘빙속 여제’ 이상화, 캘거리 월드컵 500m 금메달|날짜=2013-11-09|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9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56초94 만에 결승선을 통과, 20명의 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ref>{{웹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3/11/10/1007000000AKR20131110013951007.HTML|제목=-빙속월드컵- '여제' 이상화 500m 세계신기록(종합) {{!}} 연합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양신영이 3분00초32로 5위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15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4초62로 15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6초12로 개인최고기록을 세우며 8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2분58초32로 7위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29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09초99로 6위를 차지했다. 30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12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3년 12월 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팀추월에 김보름은 노선영(24-강원도청), 양신영(23-전라북도청)과 함께 출전해 3분02초04의 기록으로 네덜란드(2분58초19), 폴란드(3분1초18)에 이어 3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493417|제목=전북도청 양신영 국제빙상 월드컵 동메달 - 전북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2014-2015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4분14초43으로 3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전예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15초39로 9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3분39로 6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5초05 6위로 마쳤으나<ref name=":26">{{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88/112286|제목=[스피드 스케이팅] 김보름, 전예진 여자 매스 스타트|성=daum.net|이름=|날짜=11/16/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ref name=":24" /> 2014년 11월 21일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에서 김보름은 7분26초63을 기록, 9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260|제목=[포토Q]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김보름 '아쉬운 9위' - 스포츠Q(큐)|날짜=2014-11-21|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2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 04초01로 3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전예진이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김보름은 9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5984206|제목=[영상] '전예진, 김보름 출전'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2차 여자 매스스타트|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2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3초78로 10위에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06/2014120600407.html|제목='질주 재가동' 이상화, 빙속WC 3차대회 500m 1차레이스 金|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6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전예진이 3분08초49로 7위를 차지했다. 7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24로 20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3초56 4위로 마쳤으나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 2014년 12월 12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실내빙상장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4분13초61로 13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m.nocutnews.co.kr/news/4340083|제목=이상화, WC 4연속 金…男 팀추월, 사상 첫 金 - 노컷뉴스|확인날짜=2017-03-22}}</ref> 1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전예진, 김보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8초33으로 6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43으로 18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이바니 블론딘(캐나다, 8분24초01)과 불과 0.02 차이나는 8분24초03의 기록으로<ref name=":27">{{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87|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전예진, 김보름 출전)|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28">{{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92|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시상식(김보름 은)|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김보름은 이날 월드컵포인트 80점을 추가, 총점 168점으로 클라우디아 페흐스타인(독일), 다카기 미호(일본) 등을 제치고 블론딘(350점), 이리네 슈텐(네덜란드, 320점),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 255점), 다카기 나나(일본, 200점)에 이어 5위로 뛰어올랐다.<ref name=":16">{{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121509490760404|제목=이승훈-김보름, 간발의 차로 은메달 거둬…“외모만큼 실력도 훈훈”|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4}}</ref> 2015년 1월 31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 15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2분00초99의 기록으로 13위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노선영(강원도청)은 2분01초39로 16위에 올랐다. 우승은 헤더 리처더슨(미국-1분56초30)이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099237&code=61161111&cp=nv|제목=[빙상 월드컵] 이승훈 부진한 출발… 스피드스케이팅 5차 월드컵 5000m 9위|확인날짜=2017-03-17}}</ref> 2월 1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2초38로 11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2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5년 11월 13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5-2016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8초95로 15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2분59초25로 5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83으로 20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6일 열린 매스스타트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8분36초04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위인 이레인 슈카우텐(네덜란드-8분36초09)을 0.05초 차로 제쳤다.<ref>{{웹 인용|url=http://imnews.imbc.com/replay/2015/nwdesk/article/3814817_17821.html|제목='막판 대역전' 김보름, 빙속 매스스타트 짜릿한 금메달|성=장유진|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김보름은 2013년 2월 월드컵 7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우승한 이후 2년 9개월만에 금메달리스트가 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16/2015111602395.html|제목=빙속 매스스타트 우승 김보름 "평창까지 이어간다"|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2015년 11월 2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5초55의 한국최고기록을 세우며 8위를 차지했다. 21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76으로 12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마지막 16바퀴째를 돌다가 넘어져 20명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렀다. 일본의 오시기리 미사키와 접촉이 있은 후, 넘어졌다. 김보름이 마지막 바퀴를 돌 때까지 선두 경쟁을 펼쳤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15바퀴까지의 기록만 인정받아 8분01초85를 기록했다. 우승은 8분27초19로 결승선을 통과한 이레인 슈카우텐(네덜란드)이 차지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한 노선영(26-강원도청)은 8분28초29로 12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123_0010432511&cID=10501&pID=10500|제목=::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김보름은 허리 부위의 핏줄이 터지고 연골을 다쳐 월드컵 3, 4차 대회에 나설 수 없게 됐다.<ref name=":19" />
2017년 2월 9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4분03초85를 기록했다. 순위는 6위에 그쳤지만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4분04초62)을 0.77초 앞당겼다. 우승은 3분59초05를 기록한 네덜란드의 이레인 뷔스트(31)가 차지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김보름의 뒷심이 발휘됐다. 첫 200m 구간을 20초45(9위)로 통과한 김보름은 레이스 중후반인 1800m 이후에도 랩타임을 줄곧 32초대로 유지하며 순위를 끌어올렷다. 메달 획득은 하지 못했지만 아시아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70210/82801694/1|제목=매스스타트 간판 김보름, 3000m서 ‘한국신 스퍼트’|날짜=2017-02-10|뉴스=동아닷컴|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가 3분02초95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2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출전해 8분00초97를 기록해 60점을 획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tv.co.kr/MYH20170213003000038/|제목=김보름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금메달 획득|날짜=2017-03-31|뉴스=연합뉴스TV: : 대한민국 뉴스의 시작. 채널 23|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레이스 동안 5위 안팎에서 벗어나지 못해 곡선 코스마다 선두 진입을 노리던 김보름은 마지막 바퀴에서 앞에서 달리던 네덜란드 선수가 일본 선수와 충돌해 넘어진 틈을 타 역전에 성공했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 코너워크가 장점인 김보름의 장점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자칫하면 김보름까지 휩쓸려 넘어질 수 있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인코스 진입을 시도해 선수들을 차례대로 제쳤다. 마지막 직전코스에서 1위를 달리던 일본 다카기 나나까지 따돌리며 태극기를 드높였다. 다키기는 8분00초90의 기록으로 2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3위는 8분01초36을 기록한 미국 헤더 베르그스마가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3070|제목=뉴스포스트|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2017년 8월 26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17 데저트 클레식에서 김보름은 여자 3000m에 나서 4분10초11을 기록, 미국의 페트라 액커(4분08초06)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27/0200000000AKR20170827028900007.HTML|제목='장거리 간판' 이승훈, 2017 데저트 클래식 5,000m 우승|성=이영호|날짜=2017-08-27|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8-27}}</ref>
11월 11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팀추월에 출전한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 노선영(콜핑팀)은 3분2초66으로 5위에 올랐다. 다카기 미호, 다카기 나나, 사토 아야노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은 2분55초77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105384|제목=日 빙속 女추월팀, 평창 앞두고 '무서운 질주'…ISU 월드컵서 '세계新' 우승|날짜=2017-11-11|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에서 김보름은 넘어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2/0200000000AKR20171112002800007.HTML|제목=빙속 이승훈, 월드컵 매스스타트 금메달…대회 2관왕(종합)|성=김경윤|날짜=2017-11-1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노르웨이에서 개최되는 2차대회에 김보름은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보름은 1차대회 1일차 매스스타트 준결승 경기 도중 다른 선수의 스키이트 날에 걸려 넘어 졌으며, 경기 후 허리에 통증을 느껴 1차대회 다른 경기 출전도 포기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xn--q20b51t9le1sh.com/sub_read.html?uid=19371§ion=sc51|제목=[전남방송] 스피드 김보름 선수, 월드컵 2차대회 출전 포기|뉴스=전남방송|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3차대회 여자 3,000m 디비전A(1부리그)에서 김보름은 4분06초4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4위를 차지했다. 3,000m에서는 다카기 미호(일본)가 3분57초09의 일본 신기록으로 우승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2/0200000000AKR20171202034500007.HTML|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3,000m 14위|성=이영호|날짜=2017-12-0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4일 열린 여자부 매스스타트에 나선 김보름은 11위에 그치면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김보름은 경기 초반 후미 그룹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6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끌어올렸지만 먼저 치고 나간 선두 그룹을 다라잡지 못했다. 하위권에서 막판 스퍼트를 노렸지만 이미 선두권과 격차가 너무 벌여져 결국 11위의 성적표를 받았다. 하편, 독일의 백전노장인 45세의 플라우디아 페히슈타인(독일)은 매스스타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49929a51806c4912ad5ee75e37e3b0d5|제목=이승훈ㆍ김보름, 월드컵 매스스타트에서 동반 부진|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1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4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9분00초72의 기록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일치감치 선두그룹을 만들어 질주한 프란테스카 롤로브리지다(이탈리아)가 8분 53초49로 금메달, 중국의 궈단이 8분57초54로 은베달을 목에 걸었다.<ref>{{웹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712110100073520005174&ServiceDate=20171210|제목='컨디션 회복'김보름 월드컵 4차 대회 매스스타트 동메달: 스포츠조선|확인날짜=2017-12-12}}</ref>
- 김재권 (철학자) . . . . 8회 일치
'''김재권'''(金在權, 제이슨 킴, Jayson Kim(or Jaegwon Kim), [[1934년]] [[9월 12일]] ~ )은 [[한국계 미국인]] [[철학자]]이다. [[브라운 대학교]] 석좌교수인 그는 [[심신수반론]]을 창시한 이로도 유명하다.
김재권은 1934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여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2년 수료 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에 편입하여 불문학 전공 및 철학 [[수학]]을 연계전공하여 학부를 마치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석박사과정) 학위를 취득하였다.
*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학사 (불어불문학 전공, 철학, 수학 연계전공)
*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석박사과정) [[철학박사]]
동양인으로서 최초로 [[미국철학회]] 회장을 맡았다.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다트머스 대학교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철학자]][[분류:21세기 철학자]][[분류:심리철학자]][[분류:경암학술상 수상자]][[분류: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분류:노터데임 대학교 교수]][[분류:미시간 대학교 교수]][[분류:브라운 대학교 교수]][[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분류:코넬 대학교 교수]]
- 김재규 . . . . 8회 일치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5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5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https://youtu.be/BSqOsrVdY3Y?t=12m31s|당시 실제 육성]]
또한 당시 [[한국]]과 [[미국]]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박정희]]가 미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경진압을 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37787|서울에도 계엄을 내리고 군을 투입할 계획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유혈사태로 번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재규 역시 박정희 사망 이후 비상계엄령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5개월 한정이라는 전재를 달았으며 부마민주항쟁 때도 유혈 진압을 비판했던 입장이기 때문에 강경한 방식으로 막가파 운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군부의 시각을 돌리기 위해 그럴싸한 핑계를 대려고 했다가 뽀록이 났다는 견해다.
2015년 박권흠 전 의원이 김영삼과 김재규가 단 둘이 나눈 대화 내용을 한 언론매체에 공개하였는데, 당시 현직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큰 인상을 남기고 있다. 1979년 김영삼은 <뉴욕타임스>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의 민주화를 위해 미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과 공화당은 김영삼의 발언을 '사대주의적 망언'으로 규정하고 국회의원직 제명을 시도한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양 측을 중재하고자 김영삼에게 만남을 요청하여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박권흠 전 의원이 공개한 둘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http://m.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876|#]]
가정이긴 하지만, 박정희가 살아있었다면 3저 호황을 통한 경제발전, [[핵무기]] 개발 등을 통해 [[리콴유]] 처럼 박씨 일가의 세습독재 체제를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다. 육사를 나와 장교가 된 박지만은 군부를 장악하여 [[리셴룽]]처럼 젊은 나이에 장성을 지내고 나서 정계로 들어와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고 박근혜는 최씨 일가의 도움으로 문화, 여성, 종교계를 장악했을 것이다. 반면, 박정희의 무리한 국가주도식 경제정책과 국민들에 대한 과도한 통제, 오랜 독재정치로 인한 선진국들과의 외교갈등 등의 요소들을 고려해보면 과연 박정희가 80년대의 격변기를 유연히 대처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당시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미국정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도 아니었으며 영국, 프랑스 같은 강대국도 아니었기에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하였다고 하여 미국 등의 강대국들이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박정희의 오랜 독재체제를 못마땅해하던 카터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봤을때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했을 경우 국제적인 경제제재가 가해져 외교뿐만아니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군사정권 전체적인 부분에서 보면, 박정희라는 머리가 따이면서 군사정권의 내실이 붕괴되었다. 박정희는 대통령 직선제에서 3선이나 한 인물이었다. 이후 10월 유신을 하면서 완전히 타락한 바람에 잊혀지곤 하지만, 3선을 한 자체로 어떻게든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제거당하고 전두환이 직선제는 경험도 못한 체육관 대통령이 되면서, 군사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따라서 군사정권의 공고함이 확실히 헐렁해졌으며, 독단적으로 전방병력과 특전사를 움직이고, 정치적 정당성도 없던 결과 전두환 정권은 미국에게 극도로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을 너무 믿었던가
- 성역 도시 . . . . 8회 일치
성역 도시는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들에게 차별 없이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방 이민국의 단속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선언한 지자체이다.
본래 미국의 교회에서 1980년대 내전을 피하여 미국으로 피난 왔던 중남미 불법체류자들을 추방 위기에서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6년 11월, 불법 체류자 추방을 공약으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미국의 여러 대도시들이 성역 도시 선언을 시작했다. 14일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뉴욕]](New York), [[시애틀]](Seattle),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가 성역 도시임을 발표했으며, 14일에는 [[시카고]](Chicago)가 참가했다.
2017년 1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역 도시들에 대해서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전국의 39개 도시와 364개 카운티 정부가 이에 대항하여 성역도시를 유지할 것을 선언했다.
시애틀의 에드 머리 [[시장]]은, “오늘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강제수용 이후 미국 이민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이라면서, 트럼프의 반헌법적 행정명령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시애틀시의 가치를 지킬 것이라고 주장, 킹 카운티의 다우 콘스탄틴 수석행정관은 “킹 카운티는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음지로 몰아넣지 않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을 것”, “다른 여러 지자체들과 함께 불법체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대응장치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http://ny.koreatimes.com/article/20170126/1036862 (참조)]]
[[분류:도시]][[분류:미국]]
- 스틸오션/사령관 . . . . 8회 일치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정확한 스펠링은 Kinkaid지만 넘어가자.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구축함 특화.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아시아계 피가 섞였다. 아버지가 중국계였다고.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 이지아(배우) . . . . 8회 일치
|| '''본명''' ||<(> 김지아,[* 여러 번의 개명을 거친 이름이라고 한다.] 개명 전 이름 김상은[* 조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순흥이다.][* 미국에서 Shea Lee(시아 리, 셰이 리,[* 외래어 발음규칙에 따른 정확한 발음] 세아 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
신문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93년 미국 공연에서 이지아의 언니 소개로 인해 두 사람은 처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 후 편지를 주고 받다가 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미국으로 건너 간 서태지는 이지아와 재회하고 97년 결혼. 당시 혼인신고에서는 서태지의 본명인 정현철과, 이지아의 본명이었던 김상은으로 나와 있었다. [[서태지]]와 부부로 산지가 2년 7개월, 이후 별거에 들어갔다. 2000년에 서태지 복귀 후 2006년에 이지아 측에서 홀로 이혼소장을 캘리포니아 법원에 냈다.. 그러므로 2011년에 낸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니라 위자료 청구소송.
2011년에 했던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닌 위자료 및 재산 분할소송으로 이지아는 국내법에 따라 2009년 이혼 성립을 주장, 서태지는 미국법에 따라 2006년 이혼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지아측 발표에 따르면, 이지아가 만 15세 때(1993년) 팬과 스타의 만남으로 서태지와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태지가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미국에서 서태지를 만나 친언니의 증인참석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어쨌든 그녀와 연관성이 짙은 남자만 해도 [[서태지|한국 굴지의 대중 뮤지션]], [[배용준|전설적인 한류 탤런트이자 사업가]], [[정우성|연예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미남 배우]]이다.
[[미국]]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http://m.news.naver.com/read.nhn?sid1=106&oid=108&aid=0002318291|데뷔할 예정이었으나]] 최근에 미국 현지 사정으로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98061|무산되었다고 한다.]]
- 정링컨 . . . . 8회 일치
'''정링컨'''({{본명|링컨 폴 램버트}} - <small>(Lincoln Paul Lambert)</small>, [[2007년]] [[10월 1일]] ~ )은 [[미국 시민권]]의 아버지와 [[대한민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계와 한국계 [[혼혈|혼혈인]] 아역 [[연기자]]이다.
[[분류:200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램버트, 링컨]][[분류:21세기 터키 사람|람베르트, 파울]][[분류:미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한양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침례교도]][[분류:미국계 터키인]][[분류:한국계 터키인]][[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터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브루나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칼리파 하프타르 . . . . 8회 일치
[[리비아]]의 [[군인]], 정치 지도자. [[카다피]]의 동료였다가, [[차드]]의 포로가 되었다가, [[CIA]]에 포섭되어 [[미국]]에 가고, 카다피 사후에 리비아로 돌아온 기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2014년 부터 리비아 동부 지역의 군사적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 미국으로 ===
포로 신세가 된 하프타르에게 접근한 것은 당시 카다피와 적대하던 [[미국]]이었다. 1990년 [[미국]]의 [[CIA]]는 난민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단에서 하프타르와 300명의 포로 병사들을 미국으로 입국시켰다. 하프타르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여 20년 동안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미국 정보부의 협력하여 카다피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 크리스토퍼 라킨 . . . . 8회 일치
| 국적 = {{국기나라|미국}}
'''크리스토퍼 라킨'''({{lang|en|Christopher Larkin}}, 1987년 10월 2일 ~ )은 미국의 배우이다.
크리스토퍼 라킨은 1987년 10월 2일 대한민국 대구직할시 (現 대구광역시)에서 '''윤하정'''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4개월이 되었을때, 미국의 일레인과 피터 라킨 부부에 의해 입양되어 [[코네티컷주]] [[히브런 (코네티컷주)|히브런]]에서 성장하였다.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양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코네티컷주 출신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 토니 고 . . . . 8회 일치
|거주지= [[미국]] [[로스앤젤레스]]<ref name="포브스 프로필">[http://www.forbes.com/profile/toni-ko/?list=self-made-women Profile], ''포브스'', 2016년 9월 23일 확인.</ref>
|국적= [[미국]]<ref name="포브스 프로필"/>
'''토니 고'''(Toni Ko)는 [[대한민국]] 출신 [[미국]]의 사업가로, 화장품 브랜드 닉스(NYX Cosmetics)와 선글라스 브랜드 퍼버스(Perverse)의 창립자이다. 2억 6천 만 달러 이상 순수입으로,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자수성가한 미국인 여성 60인' 명단에 들었다.<ref name="포브스">[http://www.forbes.com/self-made-women/#2f767e7f4177 AMERICA'S RICHEST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3살이였던 1986년, 부모님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ref name="헤럴드"/> 방과 후에는 부모님이 하시던 미용용품 사업일을 도왔다. 어릴 적부터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고급 브랜드의 화장품을 살 형편은 되지 않았고, 저렴한 화장품의 질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스스로 합리적인 가격의 질 좋은 화장품을 만들자 마음 먹고, 25세 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화장품 브랜드 "닉스"(NYX Cosmetics)를 설립했다. 인기 판매 제품인 립 펜슬은 3.5 달러 정도였다.<ref name="포브스 프로필"/>
브랜드 출시 첫 해, 4백 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ref name="포브스 프로필"/> 2000년대 초반 닉스는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였다. 또 2008 금융 위기 시절, 저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오히려 불황은 기회가 되었다.<ref name="헤럴드"/> 또 토니는 사람들이 [[미셸 판]] 등 뷰티 유튜버에 영향 받는 모습을 보며,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SNS]]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ref name="헤럴드"/> 이후 15년 동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간 후, 2014년 [[로레알]]에 닉스를 5억 달러에 매각했다.
{{토막글|미국 사람}}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USS 뷰캐넌 . . . . 7회 일치
USS Buchanan.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미국-영국 [[구축함]]. 인상깊은 최후로 인해 원래 이름인 "USS 뷰캐넌"보다 영국식 이름인 "HMS 캠벨타운"이 더 유명하다.
미국 메인 주에 위치한 배스 철공소(Bath Iron Works)에서 건조. 1919년 1월 20일,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찰스타운 해군기지에서 취역하였다. 함명의 유래는 미 해군 제독 프랭클린 뷰캐넌(Franklin Buchanan)으로, [[미국-멕시코 전쟁]]에 참가했으며, [[남북전쟁]]에서 남부 소속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취역한지 1년도 안 된 뷰캐넌은 대서양을 떠나 태평양에서 활동한다. 이후 뷰캐넌은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했다. 1922년 7월 7일 퇴역했지만 1930년 4월 10일 USS 소머즈(USS Somers)가 퇴역하며 재취역했다. 이렇게 태평양에서 활동하던 뷰캐넌은 1937년 4월 9일 다시 퇴역한다. 1939년 9월 1일,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미 해군은 해군력을 불리기 시작한다. 1939년 9월 9일, 뷰캐넌은 3번째 취역을 맞는다. 이후 뷰캐넌은 대서양에서 활동하다 1940년 9월 9일, 미국과 영국이 맺은 조약[* Destroyer for Bases Deal. 영국이 미국에게 기지를 대여해주는 대신 미국은 영국에게 구축함을 지원하는 조약.]에 의해 영국 해군에게 넘겨진다.
- 김운용 . . . . 7회 일치
김운용은 연희전문대(현재의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미국 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오며 익힌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1군사령관 [[송요찬]]의 부관으로 일했다. [[4·19 혁명]] 당시 계엄사령관인 송요찬의 부관으로 근무하였으며, 경찰의 실탄 요청을 송요찬이 거부하였다고 증언하였다.<ref>이문영,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3473.html “4·19때 경찰이 계엄사령관에 총탄 10만발 빌려달라 요청”], 한겨레신문</ref>
* 1952년 미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 1960년 미국 텍사스 웨스턴 대학교(텍사스 대학교 엘패소, University of Texas at El Paso) 학사
* 1976년 미국 메리빌 대학교(Maryville College) 법학박사 학위 과정 수료
* 1963년 ~ 1968년 : [[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 참사관, [[영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을 역임함.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메리빌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IOC 위원]][[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동덕여자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한성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교수]][[분류:서일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국민대학교 교수]][[분류:태권도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마이클 페이 . . . . 7회 일치
[[싱가포르]]에서 [[태형]]을 당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인]] [[남성]].
1994년 당시 18세였던 마이클 페이는 싱가포르에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지는 기행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마이클 페이에게 태형 6대와, 35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으며, 미 국무부는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 [[빌 클링턴]] 대통령 까지 나서서 "태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6대에서 4대로 [[감형]] 했을 뿐이었다. 당시 싱가포르의 고척동(吳作東) 총리는 "누구든지 싱가포르 땅에서 법을 어기면 싱가포르 법에 따라야 한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친서까지 보낸 점을 감안해 태형을 6대에서 4대로 줄여준다"고 말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22944 (참조)]]
여담으로 미 연방정부의 조치와는 달리, 정작 미국 일반인들은 마이클 페이가 태형에 당한 것에 대해서 오히려 환영(…)하는 여론도 있었다. 1994년 봄에 USA투데이가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53%가 태형의 도입을 찬성했다. [[엄벌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사회의 경향 때문인듯.[[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27/2007072700998.html (참조)]]
[[분류:미국인]]
- 서부개척시대 . . . . 7회 일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는 미국-멕시코 전쟁 등을 전후하여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서부로 이주하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 멕시코인 등과 충돌하며 미국의 영토로 확정해 나갔던 시기를 뜻한다. 현재의 초강대국 미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미국인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시대지만, 원주민에게는 백인들의 대침략이 벌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분류:미국사]]
- 손담비 . . . . 7회 일치
소속사에 들어가서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의 시트콤 《[[논스톱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준표도 담비도 출발은 단역 아이돌 스타 무명 시절 살펴보니 |url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나지연 |날짜 = 2009-05-03 |확인날짜 = 2009-09-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1011100530/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보존날짜 = 2009-10-11 |깨진링크 = 예 }}</ref> 이처럼 원래 손담비는 가수보다 배우가 꿈이었으며 기획사에 들어간 계기도 사실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ref name="news">{{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인터뷰③)|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유현진, 정유진|날짜=2009-04-17}}</ref> 2004년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크럼핑을 배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내 이름은 손담비, '몸치'였던 나의 이야기 들어볼래?"|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DCD=A606&newsid=02086086583165328&OutLnkChk=Yl |출판사 =이데일리|저자 =박미애|날짜 = 2007-06-25|확인날짜 = 2009-09-02}}</ref> 크럼핑을 배울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국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과 크럼핑 댄스의 창시자 릴C 등 유명인사들에게 배웠다.<ref>{{뉴스 인용|제목=미쓰에이 연습생 시절 보다 더 파워풀한 '손담비 연습생 시절' 영상|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출판사=ENS|저자=뉴스팀|날짜=2010-12-31|확인날짜=2010-12-31}}{{깨진 링크|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 }}</ref> 당시 릴C는 손담비에게 "너는 예쁘니까 그냥 연기나 해라"라고 할만큼 재능이 부족했지만, 오랜 연습끝에 춤을 잘 출 수 있게 되었다.<ref name="10아시아"/> 같은 해 2005년에는 CJ 뮤직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을 결성해 초창기 멤버로 발탁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 |제목 =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 |url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 =머니투데이|저자 =김원겸|날짜 = 2007-05-06 |확인날짜 = 2014-05-15}}</ref> 2007년 5월에는 [[가희]]와 함께 에스블러쉬 멤버로서 〈It's My Life〉를 발매했고, 미국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2위까지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5-06|확인날짜=}}</ref> 하지만 팀 내부 사정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이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데뷔를 준비했는데, 데뷔 전 바람의 〈사랑하다〉, [[메이비 (가수)|메이비]]의 〈다소〉와 같은 뮤직비디오와 [[삼성전자]], [[SK 텔레콤]]과 같은 대기업 광고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담비가 온다1]MSN 재팬이 주목한 거물 신인|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300&g_serial=260493|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7-05-04|확인날짜=2014-05-15}}</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데뷔전부터 잇달아 대기업 모델 '톱스타 예약'|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507444112344&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5-05|확인날짜=2014-05-15}}</ref> 또한 비보이 대회 'R16 코리아 스파클링 서울'에 출전했다.<ref name="seg1"/> 그리고 2007년 6월 14일, 손담비는 데뷔 싱글 〈[[Cry Eye]]〉를 발매했다. 〈Cry Eye〉는 손담비의 뛰어난 춤실력을 보여주는데는 충분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Cry Eye〉의 안무 중 [[크럼핑]]이라는 장르를 안무로 삼아 이 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렸다.<ref name="seg1">{{뉴스 인용| url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제목 = '여자비' 손담비, 댄스로 뜨고 가창력까지 장착| 날짜 = 2007-07-08| 저자 = 한준호 기자| 확인날짜 = 2007-08-07| 뉴스 = 세계일보|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416/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보존날짜 = 2007-09-30| 깨진링크 = 예}}</ref> 또한 크럼핑은 고난이도 댄스로 꼽혀 아시아에서도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한 뒤, 미국으로 떠나 L.A 밀레니엄 스쿨에서 발레, 재즈, 크럼핑 댄스 등을 배우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등 연습에 매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 여름 컴백 환영. 내 인생 최대의 도전”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51917202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현우, 정유진|날짜=2008-05-20}}</ref>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백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백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백…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영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반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백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백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상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상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절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영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절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절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손담비는 싱글 "[[Cry Eye]]"로 데뷔했을 당시 안무중 [[크럼핑]]이라는 고난도 댄스를 이용해 아시아의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 받았고, 이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seg1"/> 마돈나의 안무를 담당했던 미스 프리시는 손담비의 춤을 보고 "흑인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느낌과 동작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도 손색없는 실력이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돈나 안무가 손담비 춤 '극찬'|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810204|출판사=노컷뉴스|저자=이지현|날짜=2008-04-24|확인날짜=2012-05-12}}</ref> 그러나, 손담비는 데뷔 때부터 가창력에 대한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특히 2010년 "queen"의 MR 제거 영상으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ref name="아츠"/> 《[[티브이데일리]]》의 유진모는 "손담비의 가창력은 형편 없다. 온통 이펙터로 치장한 보컬은 도대체 사람이 부르는지 기계로 만든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토요일밤에〉에는 가창력 때문에 키를 내려 노래의 맛이 더 떨어졌다. 아이비의 폭발력마저도 없다"고 말했고, 이어 "아이비와 손담비의 음악성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라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손담비 아이비 서인영 '섹시 여가수' 성적표|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유진모|날짜=2010-06-28|확인날짜=2012-05-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52125/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 월드 인 컨플릭트 . . . . 7회 일치
World in Conflict.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제3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실시간전술게임.
이로부터 몇개월 후, 상선으로 위장한 소련군 수송선단이 워싱턴 주 시애틀에 소련군을 상륙시킨다. 유럽전선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던 미국은 주방위군을 동원해 소련의 침공을 막아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 미국 ===
일단 이 게임의 주인공 세력. 소련군의 시애틀 폭탄드랍 때문에 유럽과 미국 양 쪽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게임의 주인공. 미국이 침공당할 시점의 계급은 중위. 가족이 사는 시애틀로 휴가왔다가 소련군 침공에 대항하게 된다. 유능하기에 소여의 총애를 받고있다.
파커가 유럽 전선에서 복무했을 때 함께 싸웠던 프랑스군 연락장교. 조국 프랑스를 침공하고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은 소련군을 증오한다.지휘 체계로 인해 소여와 다투게 되자 그 자리에서 미국인들을 까버릴 만큼 터프하다. 기혼자지만 내연녀가 따로 있다.
올로프스키 휘하의 중대장. 올로프스키의 조카로 소련과 사회주의에 대한 충성심이 충만한 장교이다. 미국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말라셴코가 보기에) 답답한 명령을 내리는 올로프스키에 대해도 반감을 가지고 있다.
- 장발 (화가) . . . . 7회 일치
| 사망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우석 장발은 [[1901년]] [[4월 3일]] [[한성부]] [[종로구|종로]] 친척 집에서 인천세관의 관리 [[장기빈]]과 그의 부인이었던 황루시아의 아들로 태어났고 이후 [[인천광역시|인천]]에서 성장하였는데 그의 형은 후일 [[대한민국의 부통령]]을 역임하는 [[장면]](張勉)이다. [[인천광역시|인천]]의 개화한 집안에서 출생하였고, 초명은 지완(志完)이라 했다가 뒤에 발(勃)로 개명하였다. [[1920년]] [[일본]] [[도쿄 미술학교]]에서 유학한 뒤, [[1922년]]부터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수학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에 취임했으며, [[1961년]]까지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미술계와 미술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총리를 지낸 형 장면이 [[5·16 군사 정변]]으로 실각한 뒤에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여생을 보냈다.
[[2001년]] [[4월 8일]] 오전 4시(한국시각 오후 6시) 미국 피츠버그 자택에서 10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0064927 100세 화가 장발씨 타계(1보)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미학과 학사
[[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장면]][[분류:윤보선]][[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인동 장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보스턴 대학교 교수]][[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일제 강점기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55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63년) 당원]][[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인천박문초등학교 동문]][[분류:보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대한민국의 백세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이탈리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정찬성 . . . . 7회 일치
=== 미국 진출 ===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시기상 [[료토 마치다]] vs [[마우리시오 쇼군]]의 UFC 104, 프랭키 에드가 vs [[BJ 펜]] 의 UFC 112 등 판정논란으로 시끌시끌한 때였기에 더욱 그랬다. UFC 해설자인 [[조 로건]]은 심판들의 자질을 혹평하며 현재의 판정체계에 개선을 요구했고 파이트 메트릭의 분석에서도 정찬성의 압도적인 승리가 선언되었다.
2010년 10월 WEC 51에서 조지 루프와의 대결했다. 정찬성이 미국 입장에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전 경기가 너무나 재밌어서 단 1경기만을 치르고 이 경기부터 메인 매치에 편입되었다([[김동현]] 선수도 2전째인 UFC 88의 VS 맷 브라운 전부터 방송경기이긴 했다. 그러나 이쪽은 원래 메인 매치중 [[카로 파리시안]]의 경기가 있었으나 파리시안이 부상을 당해 해당 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다크매치였던 김동현의 경기가 메인 매치로 격상된 것). 다소 끌려다는 듯한 느낌을 주던 정찬성은 2라운드 초반 과감한 공세를 펼쳤으나 루프의 원투-하이킥 콤비네이션을 정통으로 허용하며 생애 첫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제발 가드를~~
경기 후 정찬성이 포이리에를 상대로 수술을 요하는 어깨 회전근 부상을 안고 싸웠던 게 뒤늦게 확인되었다. 수퍼액션 중계에서 김대환 해설위원이 미트조차 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고 말할 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중에 외신의 보도 등으로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감탄을 넘어 황당해할 정도였으며 이 소식을 전한 미국의 <어포우징 뷰스>는 정찬성을 가리켜 정말로 좀비 같은 근성을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2016년]] 10월 19일로 소집해제되었고 복귀전으로 [[BJ 펜]]을 원한다고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09&aid=0000006100|#]] 하지만 2월 5일(한국시간) 미국 휴스턴 도요타 센터에서 열리는 UFN 104의 메인이벤트에서 페더급 랭킹 9위 데니스 버뮤데즈를 상대로 복귀전이 확정됐다. 비록 원하던 BJ 펜은 아니지만, 부상 치료와 군복무 등으로 인한 장기간 공백에도 불구하고 복귀전이 메인이벤트로 잡히면서 미국내 정찬성의 인기는 여전함을 볼 수 있다.
[[2018년]] 7월 20일에 드디어 [[프랭키 에드가]] vs 정찬성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다만, UFC 229가 아닌 [[11월 11일]]에 열릴 UFC Fight Night 139에서 경기가 있을 것이며, 정찬성의 경기는 그 대회의 '''메인 이벤트'''로 결정됐다. 5라운드 경기로 에드가가 5라운드 판정 경기에 능숙하다는 점 때문에 불안감을 주고 있다. 게다가 이 경기의 장소는 [[미국]] [[콜로라도 주]]의 [[덴버]]인데, 이 지역은 해발 1,500m 정도의 상당히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정찬성이 이로 인해 체력이 저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http://naver.me/GJeUjkcH|#]] 만약 정찬성이 에드가를 이긴다면 타이틀전에 많이 가까워지게 된다. 정찬성의 말에 의하면 승리할 경우 타이틀전 보장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7회 일치
하지만 로마노프는 다른 생각을 품고있었다. 대서양에서 소련군 함선이 질주하는게 목격되었으며, 미국이 소련에 심어둔 첩보원들은 실종되거나 KGB 요원들과 함께 일하는게 목격되었다. 미국은 로마노프 근처에서 보이던 유리라는 남자가 미국의 첩보망을 와해시킨 장본인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북미방공사령부가 소련군의 대부대를 감지한다. 소련군 함대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오고 있었으며 소련의 지상군은 멕시코를 통해 북상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에대한 보복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했지만 유리가 미사일 사일로 장교를 세뇌시키며 실패한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뉴욕,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와 같은 미국 땅에 소련군이 상륙하기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
미국의 특수요원.
- 티나 (1980년) . . . . 7회 일치
티나는 해외 팬이 많다. 그녀는 21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과 춤 접하면서 성장했었다. 2004년 한국에서 "설레임"이라는 앨범을 발매하였으나, 이와 관련하여 일절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 한달 만에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순위는24위에 올랐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꾸준한 음악활동을 하였고, 그녀의 음악적으로 묘한 매력과 놀라운 춤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도 러브 콜을 여러 번 제의 받았었다. 리키마틴, 켈리클락슨의 프로듀서인 Suren과 함께 2008 C U 2nite 타이틀"Catch me” 앨범을 미국에서 제작 하였고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했었다. C U 2nite 앨범은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 노래 역시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는 도중 티나는 EDM 전설이며 보컬 겸 그래미수상 경험이 있는 유명 프로듀서 Kevin Irving에게서 오디션 제안을 받았고, 케빈은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인 Dr Dre, Beyonce, 50cent. Pink, Janet Jackson과 같은 수많은 뮤지션과 작업을 해왔었다. 케빈 프 로듀서는 티나의 재능을 보고 영어 앨범을 제작 했고, 대표 곡” Come Mr. DJ”를 작업했다. 케빈은 티나에게 마돈나한테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가수라며 극찬하였다. 그녀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면 2014년 귀국했고 트로트 장르로 변경 2016년 7월20일 콩 앨범 발표하고 현재 활동 중이다.
* 2008년 CU 2 Nite (한국 미국 동시발표)
- 스틸오션/미국 . . . . 6회 일치
>홀랜드(S-1, S-42), 레이크(S-2), 미해군(S-3, S-48) 세곳이 설계한 미국의 S급 잠수함들은 해안 방어용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1930년대 활동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많은 수가 현역이었다.
>1930년대 발생한 경제 위기는 미국의 조선 공업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1934의 뉴딜 계획에 따라, 신형 디젤-전기식 고속 잠수함인 P급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기술의 발전에더 불구하고 P급 잠수함은 뇌격 능력이 부족했다. 훗날 설계된 많은 잠수함이 P급의 설계에 기반을 두고있다. 10척의 P급 잠수함이 세개의 배치(batch)를 거쳐 건조되었다. 각각의 배치는 이전 배치보다 근소한 성능 향상을 보였다.
>영국 구축함에 기반을 두어 건조된 패러것급 구축함은 전간기 설계를 사용한 첫 미국 구축함이다. 대형 선실과 연돌 두개를 장비한 패러것급 구축함은 5인치 함포와 Mk.37 사격통제장치로 무장하였다. 초기 패러것급은 다섯개의 포탑을 장비했다. 모너핸(Monaghan)은 진주만 공습 당시 폭뢰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켰다.
>워싱턴 해군 조약의 제약 내에서 건조된 마지막 미국 항모 함급. 초기 항모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뛰어난 활용성과 내향성을 가지도록 설계되었다. 요크타운은 산호해 해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서둘러 수리를 받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했다. 호넷(Hornet)은 도쿄 공습에 참가했으며,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일본 구축함에게 격침되었다. "빅 E"라고도 알려진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는 어떤 미국 항공모함보다도 오랜 시간을 복무했다. 엔터프라이즈의 함명은 현대 미 해군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올-빅-건" 설계를 채용한 첫번째 미국 전함이다. 영국의 드레드노트급보다 먼저 설계되었지만, 드레드노트보다 늦게 완성되었다. 화력, 방호 능력, 항해 속도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 오랜 시간 사용되었다. 총 두척의 사우스 캐롤라이나급 전함이 건조되었다. 1921년 말~1922년 초 퇴역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 안숙선 . . . . 6회 일치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스승격인 인당 박동진, 운초 오정숙 명창의 뒤를 이어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완창하였으며 이후 [[1988년]] 유럽 8개국 순회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카네기 홀]] 공연, [[링컨 센터]] 여름축제 공연,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초청 공연, 제1회 윤이상 범민족 통일 음악회 평양 모란봉극장 공연 등 프랑스, 미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중국, 일본, 몽골, 터키, 폴란드, 러시아, 홍콩, 브라질 등 세계 40여개국의 초청 공연을 통해 우리의 소리를 알리는 동시에 세계적인 명창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86 유럽 7개국, 미국 7개주 판소리 완창 공연.
*1991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
*2009 미국 오바마 대통령 취임 축하 워싱턴공연.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러시아, 스웨덴, 벨기에, 폴란드, 네덜란드, 그리스, 스페인, 체코, 브라질,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중국, 몽골 등 40여개국 초청 공연.
- 양키 . . . . 6회 일치
[[미국인]]의 속칭, [[일본]]에서 양키(ヤンキー)라고 하면 불량청소년을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
=== 미국 ===
처음에는 뉴잉글랜드 주민을 뜻하는 말이었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영국군이 식민지군을 뜻하는 말로 썻다. [[남북전쟁]] 시기에는 남부 측에서 북부 측을 양키라고 부르며 경멸하였다.
북부 미국인을 뜻하는 양키(Yankee)와의 관계는 애매하지만, 당시 미국인=화려하다 는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1983년 7월 21일 발매된 카몬 타츠오(嘉門達夫)의 양키 오빠의 노래(ヤンキーの兄ちゃんのうた)는 ‘나쁜 남자’를 뜻하고 있었다. 이 노래를 전후하여 전국에 양키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퍼지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 양키 고 홈(Yankee Go Home) : 미국인에게 집에 가라고 하는 말. 주로 [[반미]] 시위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 이희근 (1929년) . . . . 6회 일치
* [[미국 공군비행학교]] 졸업
* [[미국 공군참모대학교]] 졸업
* [[미국 국방참모대학교]] 졸업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백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자본통제 . . . . 6회 일치
미국이 자본통제를 강화하자, 미국게 다국적기업들은 수출 대금으로 얻은 달러를 미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런던의 은행에 예금하여 마음대로 자금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로달러'이다. 유로달러가 크게 증대하고 이를 다루는 은행들은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국제금융업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하여, 미국, 영국, 일본 등이 자본통제를 철폐하기 시작한다.
1974년, 미국은 자본자유화가 국제무역을 증가시킨다는 견해로 자본통제 정책을 폐지했다. 선진국들은 자본자유화 정책을 대세로 삼았으며, 우리나라는 1995년 OECD 가입을 계기로 하여 자본통제를 풀기 시작했다. 1997~1998년에 IMF 사태를 겪으면서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채권, 금리, 외환, 주식 등의 금융자산을 기초로 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파생금융상품'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를 노리는 [[헤지펀드]]가 크게 성장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 "글로벌 자금 흐름의 단기적인 속성과 내재한 변동성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신흥 시장과 미국 등 국제 자본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국가들은 새로운 규칙과 과세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 장대환 . . . . 6회 일치
* 1974년 5월 : 로체스터 대학교(미국) 정치학 학사
* 1976년 2월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미국) 국제정치학 석사
* 1985년 2월 : 뉴욕대학교 대학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석사
* 1987년 6월 : 뉴욕대학교 대학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박사
* 1977년 9월 :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연구조교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흥덕 장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매경 미디어 그룹]][[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로체스터 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김대중 정부]][[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6회 일치
1987년 18살의 나이로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힌 후 1988년 [[미스 유니버스]] 2위에 오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90년대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MC로 활약하다 1999년 모든 방송 활동을 접고 연예계를 떠났고, [[미국]]으로 건너가 두 딸을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16년 만인 2016년 영화 《[[트릭 (2016년 영화)|트릭]]》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2667 ‘87년 전설의 미스코리아’ 장윤정, 잠정 은퇴 후 16년 만에 영화 ‘트릭’으로 돌아오다] 스포츠동아. 2016년 06월 22일</ref>
1994년 은행원과 [[결혼]]했지만 3년만에 [[이혼]]하였고, 그 후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15살 연상의 [[재미교포]] [[사업가]] 김상훈과 [[재혼]]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2976972 미스코리아 장윤정 15년만 영화 '트릭' 으로복귀] 세계일보. 2015년 12월 17일</ref> 장윤정은 2016년 9월 27일 [[TV조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업으로 미국을 자주 왕래하는 남편이 미국에 가자고하여 미국에서 살게 되었고 살다보니까 10년 정도 거주를 하게 됐다"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이 남자가 언제까지 나한테 못되게 구나 두고보자라는 생각으로 오기로 결혼을 했다”라며 무뚝뚝한 남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891291 미스코리아 장윤정 “15살 연상 남편 김상훈, 나한테 무심해 매력 느꼈다”] 서울경제. 2016년 09월 28일</ref>
- 장익 (1933년) . . . . 6회 일치
[[1956년]] 미국 메리놀신학교로 편입한 그는 그곳에서 [[인문학]]과 [[철학]] 학사를 취득하였고 [[1959년]]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3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형 : 장건 (張建, [[1932년]] [[2월 26일]] ~ , 미국 거주)
** 동생 : [[장순]] (張純, [[1935년]] [[10월 17일]] ~ , [[미국]] 보스턴 리지스대학교 정치학 교수, [[미국]] 거주)
** 누나 : 장의숙 (張義淑, 베네딕타, [[1930년]] [[2월 21일]] ~ 로마 가톨릭 수녀, [[미국]] 거주)
** 여동생 : 장명자 (張明子, 데레사, [[1941년]] [[10월 3일]] ~ [[198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빌라노바대학교]] 도서관학 석사)
- 정근모 . . . . 6회 일치
* [[1995년]] : 미국 Polytechnic대학교 명예공학박사
* [[미국]] [[미국 국무부|국무부]] 국제개발처(AID) 자문위원
* 미국 [[과학재단]] 에너지 수석 심의관
* 미국 [[프린스턴대학]] [[MIT]] 핵융합 연구원
* [[미국공학한림원]] 회원
- 진창현(음악인) . . . . 6회 일치
1976년 12월에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The Violin Society of America) 주최의 제2회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 참가해 여섯 개 부문 중 바이올린 세공 부문, 비올라 세공/음향 부문, 첼로 세공/음향 부문에서 [[http://www.vsaweb.org/Previous-Conventions|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세계구급 제작자로 명성을 확고하게 만들었고,[* Chang Heyern Jin이라고 표기된 수상자가 바로 진창현이다.] 1984년에는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에서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Hors Concours)[* 다른 악기 제작자나 감정가의 감사 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악기를 제작/판매할 수 있는 장인이라는 뜻.] 자격과 마스터 메이커(Master Maker) 칭호를 받았다.
이후에도 계속 초후의 센가와 공방에서 현악기 제작을 계속 했고, 2000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의 제작 참고 악기로 선정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 바이올린 '광주호'를 시작으로 이듬해 바이올린 '대구호', 비올라 '한라호', 첼로 '백두호'까지 네 점의 악기를 무상 기증하면서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 무감사 제작자 자격과 마스터 메이커 칭호 (1984)
* 인력거꾼으로 일할 때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주로 주일[[미군]]을 고객으로 맞이했고, 덕분에 수입이 꽤 좋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톰(Tom)이라는 이름의 [[루이지애나]] 출신 [[흑인]] 병사와 친해졌는데, 톰의 소속 부대가 [[한국전쟁]]에 투입되기 위해 일본을 떠나기 전에 같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미국에서 차별받던 흑인과 일본에서 차별받던 조선인의 심정을 나누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 최두호 . . . . 6회 일치
| {{국기그림|미국}} [[제레미 스티븐스]]
| {{국기나라|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 {{국기그림|미국}} [[컵 스완슨]]
| {{국기나라|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거스]]
| {{국기그림|미국}} [[샘 시실리아]]
| {{국기나라|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텍사스주)|오스틴]]
- 최홍만 . . . . 6회 일치
2010년 3월 즈음 일본의 괴물군이라는 드라마의 프랑켄 역으로 출연이 결정되었다. 분장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여기 저기서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냐는 악플이 달렸고 촬영을 위해 아예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까이기도 했다.[* 출신이 어떻든 일단 연예인으로 나선 만큼, 기괴한 분장을 마다하지 않고 연기하고 활동을 위해 해외에서 거주하는 것이 칭찬을 할 수는 있어도 잘못된 일은 전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메이저 리그 활동 야구 선수나 LPGA 활동을 위해 미국에 건너가 있는 선수들도 다 까야 한다.] 하지만 원작자는 더 없이 완벽한 싱크로라고 극찬했다.
~~5번 항목의 모든것이 설명된다.~~ [[미국]] 네바다 주에서 [[브록 레스너]]와의 경기를 가지기 위해 신체 검사를 받다가 [[뇌하수체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결과가 나와서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경기 일주일 전까지는 경기를 치루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였지만, 3~4일을 앞두고 최홍만을 포함한 대다수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장하여 큰 돈을 들인 다이나마이트 미국 대회가 망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일본에서 열었던 대회 때처럼 3~4일 전 대회 준비를 하려다가 미국 주 체육위원회의 대회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K-1의 병크다.(PRIDE도 미국 진출 당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미국 주 체육위원회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국내와 일본 격투 언론들은 '''UFC의 K-1 진출을 막기 위한 음모다'''는 음모론 기사를 쏟아내었다.~~UFC만 조금 봤더라도 그런 소리는 못한다~~] 최홍만 측에서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서 검사 결과에 반발했다.
- 칼렉시트 . . . . 6회 일치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주]]의 탈퇴와 독립 국가 캘리포니아의 건설을 요구하는 움직임이다. 칼렉시트는 캘리포니아와 exit의 합성어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 특별한 지역이다. GDP는 세계 6위 수준으로, [[대한민국]]이나 [[프랑스]]보다 높다. 미국 50개주 가운데서 가장 많은 인구(3900만명)와 가장 많은 선거인단(55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에도 소수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2016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움직임이 폭발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링턴은 61.5%의 지지를 얻었으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인종차별]]이나, 여성에 대한 모욕 발언 으로 구설수가 많은 후보였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불만이 터져나오게 된 것이다. [[트위터]]에서 ‘칼렉시트’(#Calexit), ‘칼리브포니아’(#Caleavefornia) 등의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급격히 퍼져나가게 되었다.
* 셜빈 피셔버(Shervin Pishevar) - 우버의 개발자이며, 하이퍼루프 원의 공동창업자. CNBC에서 "캘렉시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애국적인 일이고, 미국을 떠난 캘리포니아를 '뉴 캘리포니아'라고 부르겠다"고 주장했다.--[[뉴 캘리포니아 공화국]]?-- 셜빈 피셔버는 예스 캘리포니아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으며, 스페인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을 모델로 하여 2019년 국민투표를 제안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국가가 된 뒤에 다시 연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발언했다.
과거 [[남북전쟁]]에서 미국은 무력으로 연방을 탈퇴하려는 남부 주들의 연합을 저자한 바 있다.
- 톰 최 . . . . 6회 일치
|국적 = [[미국]]
'''톰 최'''({{llang|en|Tom Choi}})는 미국의 배우이다.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 [[일리노이주]] [[디모인]]으로 이민가 그 곳에서 자랐다.<ref>{{뉴스 인용|url=http://asiansonfilm.com/tom-choi-interview/|title=Tom Choi Interview – Asians on Film|date=4 January 2016|work=Asians on Film|access-date=2017-06-28|language=en-US}}</ref>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디모인 출신]]
- 한승주 (공무원) . . . . 6회 일치
[[1964년]] 미국 [[뉴햄프셔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고,
[[1970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ref>{{웹 인용
청와대는 2003년 4월 한승주를 주미대사로 서둘러 내정하였다. 여기에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용을 가급적 빨리 구축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시, 북핵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대두됐으나 양성철 당시 주미대사는 3년의 임기를 거의 마쳐가고 있는 상태였고 가능한 한 빨리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런 상태에서 한승주가 국내 인사로는 드물게 미국내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으며,1993년 북핵 위기 때는 외무부 장관으로서 평화적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점도 고려돼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북핵해결 위한 美지명도·인맥 고려…한승주 주미대사 내정 배경 |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18951804&code=11121200 |뉴스 = 국민일보 |날짜 = 2003-03-27 }}</ref> 이리하여 [[2003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제19대 주미대사를 지냈다.
|직책 =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주 미국 대사]]
[[분류:194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김영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고려대학교 총장]][[분류:욱일대수장 수훈자]]
- 홍지호 . . . . 6회 일치
| 학력 = {{USA}}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 학사 <br /> {{국기나라|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원 치의학 석사·치의학 박사
199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외래교수와 [[삼성의료원|삼성의료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치과 과장을 역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190605 <nowiki>[인물 포커스]</nowiki> 연예스타 꿈꾸는 치과의사 3인방] 2003년 6월 3일 동아일보</ref>
*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학사|사]]
*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원 [[치의학]] [[석사]]·[[치의학]] [[박사]]
** 아들: 홍진원 (2006년 ~ , [[미국]] 유학 중)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치과 의사]][[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경희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자유 연애]][[분류:남양 홍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Victoria II/디시전 . . . . 5회 일치
=== 미국 ===
>비공식적인 아루스투크 전쟁에 이후, 1842년 웹스터-애슈버튼 조약이 영국과 미국 간에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메인과 브런즈윅 사이 경계선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 결정안에는 오대호의 공동 사용과 49도선의 재확인, 대서양 노예 무역의 종결에 대한 약속이 담겨있었다.
* 미국과 평화시
* 미국과의 관계도 '''{{{#green +100}}}'''
* '''Caribou(카리부)'''를 미국에게 할양
- 마블 코믹스 . . . . 5회 일치
[[미국]]의 [[만화]] 회사. [[DC 코믹스]]와 더불어 미국 만화 시장의 양대 산맥이다.
미국 만화 회사이기에 내놓는 만화들도 영어 실력이 필요하나 몇몇 만화들이 번역되어 국내에도 정발되었다. '시크릿 워'가 그런 경우.
* [[미국 만화]]
[[분류:미국 만화]]
- 바나나 공화국 . . . . 5회 일치
중남미의 소국 가운데 [[바나나]] 등 1차 산업 제품을 대국(주로 [[미국]])에 수출하여 경제가 성립되고 있는 국가를 뜻한다.
20세기 초, 중남미 각국에 미국 자본에 의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었으며, 이들 국가의 재정은 미국의 대규모 농업 기업이 좌지우지 하게 되며 정치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바나나 수출을 위하여 [[농장]] 만이 아니라 [[철도]], [[항구]] 까지 미국 기업의 자본으로 개발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국가들에서는 다른 산업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미국 자본에 정권이 종속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유나이티드 플루츠(United Fruit) 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 박홍우 . . . . 5회 일치
* [[1991년]] ~ [[1992년]] 미국 [[코넬 대학교 법학대학원]] Visiting Scholar <ref>[http://www.kcllaw.com/prof/?no=667]</ref>
* 선거구획정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동향, 헌법논총 제5집, 헌법재판소 (1994)
* 미국 연방의 양형기준제도, 각국의 양형제도, 법조협회 (2002)
* 미국헌법상의 국교설립금지 원칙, 헌법논총 제13집, 헌법재판소 (2002)
* 미국헌법, 사법연수원 (2008)
- 스틸오션/일본 . . . . 5회 일치
> 병형구축함(丙形驅逐艦, Type-C destroyer)로도 알려져 있는 시마카제는 2차대전 중 건조된 일본 구축함중 가장 강하고, 가장 진보된 함선이었다. 일본의 수뢰전 중심 전략에 의한 산물이었지만 과도한 가격과 태평양 전쟁의 중심이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바뀌는 바람에 후속함은 건조되지 못했다. 1944년 11월, 오르목 만 전투에서 미국 항공기에게 공격받아 격침되었다.
>순수히 일본제국해군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함급이다. 그 당시 제일 큰 구경이었던 410mm 주포를 장비한 나가토급 두척은 미국의 콜로라도급 세척, 영국의 넬슨급 두척과 함께 "빅 7"이라고 불렸다. 1930년대 전면적인 현대화 개수를 거쳤다. 야마토급이 취역하기 전까지 나가토급은 연합함대 기함을 맡았다. 나가토급 두 척은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다. 1943년 6월, 하시라지마에 정박해있던 무츠가 후방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다. 나가토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미육군에게 나포되어 교차로 작전(Operation Crossroads)의 표적함으로 함생을 마쳤다.
이 녀석을 미국 항공모함 뇌격기로 때려잡는 도전과제 "Imperial Sunset"이 있다.
>유바리급은 히라가 유즈루가 설계한 실험용 경순양함이었다. 오로지 한척만이 건조되었다. 연장 포탑의 사용과 연장 어뢰 발사관 두개를 중심선에 배치하는 걸로 갑판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유바리의 설계는 이후 일본 군함 설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1차 상하이 사변에 참가하였고, 1937년 광저우에서 중국 순양함 차오호에게 피해를 입혔다. 제1차 솔로몬 해전에서는 미국 순양함 빈센스(Vincennes)를 뇌격했다. 1944년 초반 대규모 개장 이후 뛰어난 대공 성능을 보였다. 1944년 4월 26일, 수송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국 잠수함 블루길(Bluegill)에게 격침되었다.
- 유로달러 . . . . 5회 일치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관할 밖의 구역에서 거래되는 [[미국 달러]] [[화폐]]를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유럽]]에서 거래가 활발하여, 유로달러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1950년대, 브레튼우드 체제에서 미국은 막대한 달러를 무역적자의 형태로 전 세계로 '수출'했다. 그 결과 막대한 달러화가 미국 이외의 국가에 누적되었다. 1971년 [[닉슨 쇼크]]로 전 세계가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되자, 이러한 막대한 역외달러를 이용한 금융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역외달러 거래가 활발했던 지역은 당시 경제가 발전한 서유럽 국가였으며, [[프랑크푸르트]], [[취리히]], [[파리]], [[암스테르담]] 등이 역외달러 금융거래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독일의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프랑스의 BNP 파리바, 네덜란드의 ABN AMRO 등이 주요한 은행으로 성장하였다.
1986년, [[영국]]은 금융빅뱅(Big Bang)이라 불리는 대규모 금융개방정책을 실시했으며 달러 시장의 중심지가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자산동결을 우려하여 서유럽에 달러 자산을 보관하였다. 이를 '유로뱅크'라고 한다. 이렇게 유로달러의 기세가 강해지자 미국은 자본시장의 주도권을 찾기 위하여 뉴욕의 국제금융시장을 강화하였다.
- 이선희 . . . . 5회 일치
2006년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포기하고 2009년에 귀국해 14집 《사랑아...》를 발매하며 여러 방송과 행사에 출연했다. 특히 KBS의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였다.
|제목 = 이선희 한국가수 3번째 카네기홀 공연, 이서진-이승기 미국행 지원사격
2016년에는 [[SBS]] "판타스틱 듀오"의 첫방송에 출연하여 5주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최고의 아이돌 가수들과 경쟁하는 모습에 "역시 이선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016년 9월부터 2017년 3월까지 "The Great Concert LEESUNHEE" 전국 13개도시 23회 공연을 전회 매진으로 진행하였고 2017년 5월 미국 LA와 9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해외투어 공연을 열었다.
* [[2월 3일]] 미국 뉴욕 [[카네기 홀]] 단독공연 (국내가수로는 네번째)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8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새한국당]][[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계명문화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한산 이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존 딜린저 . . . . 5회 일치
대공황 시기 활동했던 [[미국]]의 범죄자. 딜린저 갱이라는 이름의 범죄 조직을 이끌면서 미국 중서부에서 [[은행강도]]를 벌였다. FBI에게 "공공의 적"으로 선포된 인물이기도 하다.
결혼까지 했음에도 딜린저는 에드 싱글턴(Ed Singleton)이라는 남자와 함께 무어스빌의 식료품에서 강도짓을 벌인다. 그리고 빠르게 체포ㅋ. 싱글턴은 법정에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해 징역 2년을 받았지만 딜린저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죄를 고백했다가 징역 2~14년+징역 10~20년[* 미국은 범죄를 여러개 저지르면 형량이 따로 붙는다.]이라는 선고를 받고 큰집에 처박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해리 피어폰트(Harry Pierpont)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7월 21일, 안나 세이지(Anna Sage)라고 자칭하는 여성이 경찰에게 연락해온다. 그녀의 정체는 인디애나 주 게리에서 포주일을 하던 아나 쿰파나슈(Ana Cumpănaș)였다. 이민 귀화국에서는 이 루마니아 출신 포주를 국외추방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쿰파나슈는 보상금을 주고 미국에 남게 해준다면 존 딜린저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연락한 것이었다. FBI는 보상금은 약속할 수 있지만 국외추방에 관한건 노동부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쿰파나슈는 이를 받아들였다.
[[분류:미국 인물]]
- 주주장 . . . . 5회 일치
'''주주장'''(Juju Chang, [[1965년]] [[9월 17일]] ~ )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다.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언론인]][[분류:미국의 기자]][[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에미상 수상자]][[분류:유대계 미국인]]
- 핑커톤 . . . . 5회 일치
[[미국]]의 보안회사. 고용인 조사, 수사, 보안, 정보수집 등 여러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쪽보다는 19세기에 벌였던 범죄자 사냥과 용역깡패 행위로 유명하다.
1861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서부개척시대]]에는 [[제시 영거 갱]]이나 [[와일드 번치]]같은 갱단을 추적하거나 열차강도를 잡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위해 [[신문]] 기사를 오려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리즈시절(?)인 19세기가 지난 후에도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되돌아가는 [[모나리자]]를 호위한다던가, [[홍콩]]에 지점을 세운다던가 하다가 1999년 스웨덴 보안회사인 세쿠리타스 AB(Securitas AB)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미국 최초의 여성 탐정인 케이트 와르네(Kate Warne)가 고용된 탐정 회사이기도 하다. 1856년 고용되었다고.
현재 핑커톤은 미국, [[멕시코]], [[브라질]], [[영국]], [[네덜란드]], [[독일]], [[체코]], [[UAE]],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중화민국|대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많네.
- 황병기 . . . . 5회 일치
1985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객원교수로 지냈다. 1986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기도 했다.
1965년 4월 22일-5월 2일에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열린 '금세기 음악 예술제(Festival of Music and Art of This Century)에 초청되어 작곡 발표 및 가야금 연주를 했다. 최초의 독집 음반(LP) Music From Korea: The Kayagum』(East-West Center Press) 취입하기도 했으며, 6월-8월 [[워싱턴 대학교]]에서 하계 학기 강사로 한국음악을 강의했다. 샌프랜시스코, 로스앤젤리스, 시애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었고, 샌프랜시스코 하계음악제에서 Lou Harrison 작곡의 「Pacific Rondo」를 연주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 [[1965년]]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강사
* [[1986년]]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 DC 코믹스 . . . . 4회 일치
미국의 만화 회사.
[[마블 코믹스]]와 미국 코믹스 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회사이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그린 랜턴]],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도 DC의 히어로이며 이러한 영웅들의 팀인 저스티스 리그가 유명하다.
* 미국 만화
[[분류:미국 만화]]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4회 일치
=== 미국 ===
* American Medical Assn(미국 의학 협회)
미국의 커티스-라이트와 합작해서 세운 비행기 제조회사.
미국으로 망명한 행적을 반영해서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사라진다.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4회 일치
2012년 방영한 미국의 다큐드라마.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존 D.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등 19세기 후반~20세기 중반 미국의 거물 사업가를 다룬 전기물이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는 OBS가 '''부(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틀어주는 중. 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총 4화짜리 물건의 분량을 8화 쯤 되게 뻥튀기 해놨다. 한 화를 여러 화로 쪼개놓은 듯. [[방송대학 TV]]에서는 '''거상(巨商)'''이라는 이름으로 방영 중. 2013년 경에는 [[TV조선]]에서 '''미국을 일으킨 거인들'''이라는 이름으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9/2013112903497.html|한 것 같기도 하다.]]
[[분류:미국 드라마]]
- 노예 . . . . 4회 일치
19세기 경에 미국이 노예제를 폐지하려고 하자, 노예를 부리던 남부 주의 대다수가 "우리의 권리와 이권을 빼앗으려고 한다 빼애액!"을 외치며 미국에서 탈퇴해버렸다. 미국은 [[남북전쟁|이 반란군들을 철저히 짓밟은 후]]에야 다시 미국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다.
- 니세코이/228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미국에 가 있을 때 어머니의 사업 쪽으로 진로를 정한 치토게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 치토게는 며칠 만에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결국 고교 중퇴로 본야리 고교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 츠구미도 함께 미국으로 따라간다.
- 박동진 (1922년) . . . . 4회 일치
<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1100329202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5-11&officeId=00032&pageNo=2&printNo=13112&publishType=00020| 제목 = 金鍾烈씨 議員職승계 朴東鎭 駐美대사 사퇴 | 날짜 = 1988-05-11| 출판사 = 경향신문 }}</ref>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주 미국 대사, 한국전력공사 이사장, 1996년부터 한국외교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직책 =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주 미국 대사]]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국토통일원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최규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베트남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브라질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민주정의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밀양 박씨]]
- 브레이킹 배드 . . . . 4회 일치
[[미국 드라마]]. 전체 5시즌에 걸쳐서 제작되었다.
>- 아버지의 질병과 함께 닥쳐오는 평범한 교사 화이트 일가의 고난을 통하여 미국 의료보험 체계에 질타를 가하는 문제작.
>- 제작 의도 : 미국에 만연한 약물 문제에 대한 경고를 환기하며, 현대 사회에 붕괴되어가는 가정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한다.
[[분류:미국 드라마]]
- 선거인단 . . . . 4회 일치
[[간접선거]] 제도에서 최종 선거를 실행하는 집단.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 제도가 유명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단은 각 주의 [[투표]]로 선출된다. 각 주에 할당되어 있는 선거인의 숫자는 각 주의 인구에 비례하여 차이가 난다. 현재 미국에서 다수의 주는 주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선거인을 독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선거인단 제도는 과거 미국의 영토가 매우 넓고, 인구가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고안된 제도이다. 대통령은 각 주가 아닌 '연방'의 대표라는 측면도 반영하고 있다.
- 슈퍼히어로 . . . . 4회 일치
주로 [[미국]]에서 발달한 장르로서, [[미국]]의 [[DC 코믹스]], [[마블 코믹스]]가 이 슈퍼히어로 장르로 유명하다. 특히 DC의 [[슈퍼맨]]은 대표적인 슈퍼히어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특촬 시리즈인 [[가면 라이더 시리즈]]와 [[슈퍼전대 시리즈]], [[울트라맨 시리즈]], 슈퍼전대의 미국판 리메이크인 [[파워레인저]]도 슈퍼히어로 장르로 분류할수 있다.
==== 미국 ====
- 양윤재 . . . . 4회 일치
*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 건축학 석사
* 미국 하버드대학 조경학 석사
* 1976 ~ 1981: 미국 Skidmore,Owings & Merrill 근무
* 1992 ~ 1993: 미국 워싱턴대학 교환교수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4회 일치
[[프렌치 인디언 전쟁]]부터 [[미국 독립 전쟁]] 까지의 30여년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대륙군 지휘관이자 초대 미국 대통령. 주인공의 조력을 받아 영국에 대항하는 입장이지만, DLC '워싱턴 왕의 폭정'에서는 에덴의 조각의 힘으로 원래 역사와는 달리 '왕'으로 등극해 폭정을 저지른다. 해당 DLC의 최종 보스.
보스턴의 변호사.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인물 중 하나다. 아킬레스와는 아는 사이인 듯. 코너에게 여론을 조작해 악명을 숨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 엉클 샘 . . . . 4회 일치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포스터에서 보는 이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백발에 흰 수염이 있고,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와 같은 컬러링의 의복을 입은 노인을 봤다면 그 캐릭터가 엉클 샘이다.
기원은 미극 민담에 등장하는 브라더 조너선(Brother Jonathan)과 양키 두들을 합친 것이라 한다. 뉴욕의 샘(새뮤얼) 그라고 윌슨이라는 고기납품업자가 [[쇠고기]] [[통조림]]에 United States 라는 뜻으로 U.S. 라는 도장을 찍기 시작했던 것을 납품고기를 검사하던 부대 감독관이 U.S → Uncle Sam으로 알아서 엉클 샘이라는 캐릭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반대로 납품업자가 자기 별명인 엉클 샘의 이니셜인 U.S.를 찍어 보낸 것을 감독관이 United States인 줄 알았다는 설도 있다.[* 이 엉클 샘에 대한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도 실린 이야기다.]
이러한 엉클 샘과 비슷한 캐릭터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국]]도 '존 불(John Bull)'이라는 캐릭터가 엉클 샘보다 먼저 등장했다.[* 첫 등장 시점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황소였으며 이후에 지금의 사람 모습이 되었다.] 또한 키치너 원수가 등장하는 모병 포스터의 경우에는 엉클 샘의 모병 포스터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 에릭 (가수) . . . . 4회 일치
에릭(Eric Moon, 문정혁)은 대구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1979년 2월 16일에 태어났다. 그는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바로 몇 개월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서를 졸업했다. 그는 미국에서 캐스팅되어 한국으로 귀국해 [[SM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는 연습생이었을 때 [[앤디 (가수)|앤디]]와 같이 [[S.E.S.]] 1집 수록곡인 'I'm your girl' 랩 피쳐링을 하였으며, [[S.E.S.]]와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에릭은 [[1998년]]에 [[신화 (음악 그룹)|신화]]에서 영어 랩을 담당하는 이국적인 외모 이미지로 데뷔를 하였다.
[[분류:신화의 일원]][[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왕당파 . . . . 4회 일치
[[미국]]의 경우,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 왕실을 지지하느냐, 영국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느냐에 따라서, 왕당파와 독립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독립전쟁이 미국의 승리와 독립으로 끝나자, 미국 지역의 왕당파들은 [[캐나다]]로 도망치게 되었다.
- 윤식 . . . . 4회 일치
| 학력 = [[베일러 대학교|미국 베일러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미국 [[하와이 대학교|하와이 주립 대학교 대학원]] 농업토목학과 농학석사
* 미국 하와이 주립 대학교 대학원 자원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 미국 [[베일러 대학교|베일러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은지원 . . . . 4회 일치
젝키 멤버 중 [[강성훈]]과 함께 유학파 출신으로 데뷔 당시 소속사가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배워 온 친구라고 소개했는데 유학 다녀온 곳은 [[하와이]](...).[* 물론 하와이도 엄연히 '''미국의 한 주'''인 만큼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거짓말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인식에서 미국 본토라고 보기에는 좀...] 본인 말로는 하와이 가서 얻어온 건 매튜라는 영어 이름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돌 현역 시절에는 랩 파트를 즉석으로 영어로 개사하여 소화하는 등의 센스를 보여준 적이 있다.
* 1박 2일에서 [[KBO 리그|한국 프로야구]] 구단의 모자를 쓰고 나온다. 1박 2일 촬영 중에서 [[넥센 히어로즈|넥센]]을 제외한 [[LG 트윈스|7]][[두산 베어스|개]] [[SK 와이번스|구]][[한화 이글스|단]] [[KIA 타이거즈|모]][[삼성 라이온즈|자]][[롯데 자이언츠|를]] 다 한 번씩 쓰고 나왔다. 2008년 [[1박 2일/사건사고|사직 구장 사건]] 촬영분에서 본인이 [[두산 베어스]] 팬이라고 말한 적 있지만 진짜 야구 팬인지는 알 수 없고, 그냥 코디해준 대로 쓰고 나온 게 아니라 한국프로야구단 야구모자의 모델로 활동했었다. 또한 [[퍼니셔]], [[수퍼맨]], [[배트맨]] 심볼이 그려진 윗옷을 입고 나오는 게 가끔씩 보인다. --미국 슈퍼 히어로 팬인가?--
- 이기택 . . . . 4회 일치
||<#6e7edd> '''경력''' ||<#c5cae8><width=250>고려대 학생위원장[br] [[신민당(1967년)|신민당]] 사무총장[br] [[신민당(1967년)|신민당]] 부총재[br]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정치학 객원 연구원[br] [[신한민주당]] 부총재[br] [[통일민주당]] 정무위원[br] [[통일민주당]] 부총재[br] 국회5공 비리조사 위원장[br] [[통일민주당]] 부총재 겸 원내총무[br] [[민주당(1991년)|민주당]]공동대표겸 상임고문[br]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총재[br] [[한나라당]] 상임고문 겸 총재 권한대행[br]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최고위원 ||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 이순재(1935년 10월) . . . . 4회 일치
그리고 [[대한민국]] 괴수물 <[[용가리#s-1|대괴수 용가리]]>([[심형래]] 괴작이 아니라 판문점에서 솟아난 원조)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1967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괴수물 매니아들에게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여러 나라에 각 나라의 더빙판이 수출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것은 [[대한민국]]에는 손상된 판본뿐이고, 오히려 [[미국]] 더빙판이 더 온전하다는 것. 2013년 7월 21일 EBS에서 HD 리마스터링된 [[미국]] 더빙판을 방영했다.]
[[꽃보다 할배]]에선 유럽을 누비는 와중에 남다른 시사상식을 뽐냈고 [[라디오 스타]]에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진행자와 게스트들 할것 없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여담이지만 이순재의 출생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 최다빈 . . . . 4회 일치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상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순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 2019 [[피겨 스케이팅 4대륙 선수권 대회]]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
| 2016 CS [[U.S. 인터내셔널 피겨스케이팅 클래식]]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 2016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미국, 보스턴)
- 추미애 . . . . 4회 일치
||<#1870B9> '''{{{#FFFFFF 약력}}}''' ||<(> 제24회 [[사법시험]] 합격[br][[춘천지방법원]] [[판사]][br][[광주고등법원]] 판사[br][[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br][[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교수[br][[민주통합당]] [[최고위원]][br][[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
*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미국]]/[[일본]] 특사'
* [[2004년]] ~ [[2006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 교수
* [[현재]] 국회 의원외교협의회 부회장(미국), 의원외교친선협회 회장(체코), 부회장(터키)
- 편의치적 . . . . 4회 일치
편의치적은 오래된 관행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라이베리아]], [[파나마]], [[소말리아]], [[온두라스]], [[레바논]], [[키프로스]], [[바하마]], [[버뮤다]], [[싱가포르]] 등의 소국이 외국 자본 회사의 설립을 쉽게 하는 회사법을 제정하고, 선박세를 저렴하게 하고 법적 규제를 완화하여 외국의 선박 회사와 선박을 유치하였다. 여기에 [[미국]]이나 [[그리스]]의 선주들이 대거 이들 나라로 옮겨가면서 편의치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대부분 미국의 석유 메이저 회사와 그리스 계 선주(특히 선박왕 오나시스) 였다.
|| 노르웨이, 미국, 홍콩 || 5% ||
[[파나마 침공]] 당시에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 정권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파나마 선적 선박이 제제를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널리 퍼지자, 파나마에서 [[라이베리아]]로 선적을 옮기는 사례가 빈발했다. 하지만 [[파나마 침공]]으로 마누엘 노리에가 정권이 허망하게 무너지자 이러한 움직임은 곧 멈췄다.
- 하쿠다 켄 . . . . 4회 일치
숙부인 [[백남준]]의 도움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하여 경제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고 장난감 판매, [[텔레비전]] 프로덕션 등의 사업을 하던 그는 [[1990년대]] 이후 숙부 [[백남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숙부의 작품 활동을 도왔다.
[[2006년]] 백남준이 타계한 후 그는 [[미국]] [[뉴욕]]의 백남준 스튜디오와 백남준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물려받아, 현재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의 이사이자 백남준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작품 관리와 기념사업 등을 책임지고 있다.
* [[미국]] [[하버드 대학교]] 졸업 (경제학 학사)
*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졸업 (경영학 석사(M.B.A.))
- 함신익 . . . . 4회 일치
'''함신익'''(咸信益, [[1957년]] - )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신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미국]]으로 유학해 [[라이스 대학교]] 석사 와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1991년 [[폴란드]]의 피텔베르크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밀브룩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와 퍼시픽 대학교 지휘 교수로 부임했다.199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에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린베이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와 예일 교향악단 음악 감독, 폴란드의 실레시아 오페라단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2001년~2006년까지 [[대전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2014년 현재, 혁신적인 재원 지원 정책 및 경영 방침을 근간으로 한 함신익의 심포니 송(Symphony S.O.N.G;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 오케스트라를 창단 후 창단연주회를 2014년 8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하였다.
그는 예일대 지휘과 교수로 1995년 이래 재직중이고, 대전시립교향악단 (2001-2006) 과 KBS 교향악단 (2010- 2012)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미국에서는 Abilene Philharmonic과 Tuscaloosa Symphony의 음악감독 으로 각 10여 년간 재직하였다. 또, Green Bay Symphony와 Milbrook Orchestra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미국 Seattle Times 는 "함신익은 생동감 있으면서도 감동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순수한 기쁨, 충격적인 음색으로 함신익의 오케스트라는 풍부한 음감, 따뜻한 소리로 웅장하면서도 편한 다양한 소리를 전달하였다" 라고 호평하였다.
- 허드슨 대학교 . . . . 4회 일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대학'''. 미국 창작물에서 자주 나타난다. 왠지 실제로 있을 법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없다.
* '''미국 픽션의 5대 병신 대학'''. '''10/10으로 허드슨 1위.''' http://www.salon.com/2011/07/22/fictional_colleges/
이런 취급을 받는 이유는 허드슨 대학이라는 명칭이 주로 '''범죄수사물'''에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 대학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묘사하면 실존하는 대학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착각 될 수 있으므로 허드슨 대학이라는 가공의 대학명을 선택한 듯 한데, 미국 범죄수사물 드라마가 워낙 강력한 사건을 소재로 다루다보니 '''천하의 개막장 대학'''(…)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범죄 수사극 드라마 Law and Order와 그 스핀오프 시리즈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학'''.
- 황정오 . . . . 4회 일치
[[1981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고,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8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결승전까지 올라갔으나 [[일본]]의 [[마쓰오카 요시유키]]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무르고 말았다.
[[1985년]]에 은퇴한 황정오는 [[1987년]]에 미국의 마린 대학교로 유학을 가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1997년]]에는 테네시 대학교에서는 대학교수로 발탁되었으며 2010년에는 미국태권도고단자회 관장을 맡고 있다.
- 5분의 3 조항 . . . . 3회 일치
미국 헌법 1조에 규정되어 있었던 조항.
남북전쟁 시기에 이 조항은 "미국 헌법이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는가?"하는 의혹과 논쟁을 낳게 된다.
[[분류:미국사]]
- AC-130 . . . . 3회 일치
AC-130 "Spooky" Gunship. 미국 공군이 운용하는 근접지상지원용 항공기이다.
미국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는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조종하는 AC-130이 [[F-22 랩터]] 두대를 박살내고 [[워싱턴 D.C.]]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미국 게임인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에 등장한다.
- Oui Oui Marie . . . . 3회 일치
Oui Oui Marie. [[미국]]의 가곡. "위 위 마리"라고 읽으면 된다.
[[프랑스]]로 파병간 미국 군인 "조니"가 프랑스 여성인 "마리"에게 반해 청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https://www.loc.gov/item/2013563233/|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보관중인 Oui Oui Marie의 악보(영문)]]
- That 70's show . . . . 3회 일치
[[미국]]의 [[시트콤]]. 1998년에서 2006년 까지 방송했다. 미국 FOX 채널에서 방송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요절복통 70쇼 등으로 케이블 TV 등에서 방송됐다. 1970년대, [[위스콘신]] 주의 포인트 플레이스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즌 1 에피소드 1은 1976년 5월 17일로 되어 있다. 1시즌에서 [[제럴드 포드]]가 재선을 위해서 공화당원들을 모아서 선거 운동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로 보아서 1시즌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76년으로 보인다. 1시즌 후반부에는 [[스타워즈]](1977년작)가 개봉되어 보러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리고 최종회는 1970년대의 마지막 밤을 지나서, 1980년대가 밝아오면서 끝난다.
- Victoria II . . . . 3회 일치
1861년 7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이탈리아는 통일을 완수하여 열강의 자리에 올라갔으며, 한때 열강이었던 스페인은 이탈리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탈락해버렸다. 아편 전쟁으로 홍콩을 강탈당한 중화제국은 천왕이 이끄는 태평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에게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강탈하고 현재의 국경선을 거의 완성했지만 독립을 선언한 아메리카 연합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튀니스와 트리폴리를 자국 영토로 합병하고 이집트에게서 중동 지방을 빼앗았다. 프랑스 역시 알제리를 완전히 먹어치웠고. 한편 일본은 미국의 영향권 내에서 근대화를 끝마쳐가는 중이다. 중앙아메리카 합중국은 분열되어 여러개의 나라가 되었으며, 페루는 에콰도르가 지배하고 있는 파스타사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 Interwar Spritepack : 12개국[* 오스트리아, 영국, 중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스페인, 스웨덴, 터키, 미국]의 1919년 이후 보병 스프라이트를 고증에 따른 전간기 군복으로 바꿔주는 DLC.
- 김민희(1982) . . . . 3회 일치
현재 [[홍상수]]와 함께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같이 있어?~~ 두 사람이 [[중혼]]이 합법인 [[유타 주]]에서 비밀 결혼을 올릴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으나 이것은 오보로, 당연히 [[미국]] 내 50개주 모두 중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동거]]라면 모를까 결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Sister Wives>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 [[몰몬교]] 일가의 [[일부다처제]] 허용 신청에 대해, 판사가 "법을 위반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사실상 중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애초에 이 판결은 이후 뒤집혔다. 어차피 재판 자체가 기각되었어야 할 사안이었고, 해당 사건 담당판사 역시 논란이 많은 인물인지라, 판사는 거의 전방위로 비판을 받았다. [[여담]]으로 [[유타 주]] 내의 중혼 금지 관련 규정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라 한다. 애초에 2013년 [[유타 주]] 연방지법의 [[중혼]]관련 판결은 중혼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그간 [[유타 주]]에서 금지되어 있던 부부+[[사실혼]] 관계 여성의 동거를 금지한 유타주 법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홍상수]]와 김민희가 유타 주에 간들 결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애초에 그들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또한 이 판결이 2016년 항소법원에서 무효판결이 나온 것의 근거는 유타주가 애초에 이런 종류의 동거집단이 범죄행위와 연류되지 않을 경우 기소를 하지 않는다는 유타주 검찰청의 정책으로 인해서 사실상 원고들이 피해를 볼 일이 없다는 근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유타의 중혼관련 법이 강해지기는 힘들 것이다. 애초에 이런 법 자체가 [[몰몬교]]에 시달려온 유타주의 독특한 사례이기도 하고.]
- 김희애 . . . . 3회 일치
[[한국계 미국인 ]]의 [[배우]].
[[분류:한국계미국인 배우]][[분류:1990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데뷔]]
[[분류:미국 드라마]]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3회 일치
[[6.25 전쟁]] 초기에 [[이승만]] 정부 측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민국의 망명정부를 일본에 설치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제안하고 일본 정부가 [[야마구치 현]][* 혼슈의 서쪽 끝, 큐슈와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다]에 설치하도록 추진했던 계획. 이 제안에 관한 기초적인 기록은 전 야마구치 현 지사, 전 통산성 장관인 다나카 다쓰오가 쓴 회고록과 미국 국무부가 발행한 <미국 외교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이틀 뒤, 1950년 6월 27일 오전 2시, 이승만은 [[대전]]으로 피신했다. 2시간 뒤인 오전 4시에 이승만은 [[수원]]으로 천도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존 무치오 주한미국 대사에게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울 수 있겠느냐?"고 문의했다. 이후 6월 28일 서울이 완전히 함락된다.
- 로힝야 . . . . 3회 일치
이러한 사건이 보도되어 타이 정부는 로힝야 뿐만 아니라 미얀마, 라오스 등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신매매와 이들을 이용한 불법조업 어선의 강제노동 문제로, 국제적 압력을 받게 되었다. 미국은 타이에 인신매매 최하등급을 적용하고, 유럽연합은 불법 조업이 6개월 안에 개선되지 않으면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불교 승려들로 이루어진 '마 바 타'(Ma Ba Tha, 민족종교 보호를 위한 애국연합)라는 단체가 로힝야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로힝야 보트피플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 미국 대사관이 논평을 내며 '로힝야'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로힝야 같은 종족은 없고 그런 말을 할거면 이들을 다 데려가라고 주장했다.
- 매카시즘은 이제 매카시워즘이다 . . . . 3회 일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농담]]으로 했다고 알려진 발언.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을 공산주의의 주구로 모함하고 다니며 개판을 치다 급기야는 미국 군부까지 공산주의 세력으로 모는 병크를 터뜨렸고, 전쟁영웅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카시 의원을 버리고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등 매카시를 정치적으로 거세[* 탄핵소추안 자체는 통과되지 않았으나, 명예를 존중하는 상원에서는 탄핵소추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로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인증 당한 것과 같다.]해 버렸다. 위의 발언은 이러한 '매카시즘의 종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발언.
- 박명수(MC) . . . . 3회 일치
싱글 와이프에서 박명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결혼전에 한수민이 미국에 공부하러 가야하니 헤어지자는 말을 했고 이에 명수는 그래도 여친이 잘되면 좋은거라고 생각해 받아들이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전화가 와서는 하는 말이 "나 미국 안 가. 안 간다고." 알고 보니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 장난친것. 당연히 짜증이 폭발할뻔했단다. 그리고 결혼후에도 딸과 놀아주는데도 더 재미있게 놀아주라는 아내의 요청에 짜증이 날려다가도 나를 위해 미국행도 포기해줬는데 이정도의 힘듦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아내의 말을 잘 따라준단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3회 일치
[[제네럴 셔먼호]]를 '미국의 군함'이라고 주장하며,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가 결사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공적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제네럴 셔먼호는 [[무장상선]]이었으며,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는 당시 어떤 기록에서도 제네럴 셔먼호 사건에 참여했음이 언급되지 않는다.[[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korean_history/sherman_ship-08032010161025.html (참조)]]
===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학살을 벌인 것은 미국 ===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미국이 학살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 빌리 블랭크스 . . . . 3회 일치
[[미국]]의 무술가, 트레이너, 연예인.
1955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출생.
[[분류:미국 인물]][[분류:연예인]][[분류:무술가]]
- 서상기 (1946년) . . . . 3회 일치
* 미국 [[웨인 주립 대학교]] 대학원 석사
* 미국 [[:en:Drexel University|드렉셀 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
* [[1976년]] ~ [[1981년]] : 미국 [[포드 자동차 회사]] 선임연구원
- 서태화 . . . . 3회 일치
| 학력 = [[미국]] [[맨해튼 음악학교|맨해튼 음악대학원]] 음악학 석사
* [[미국]] [[맨해튼 음악학교|맨해튼 음악대학]] 대학원 성악학과 음악학 석사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포시 출신]][[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맨해튼 음악학교 동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손지창 . . . . 3회 일치
| 소속사 = (주)Venica (미국지사 대표)
* (주)Venica 대표이사 사장 (2000년 ~ 2014년)<ref>현재는 대표이사직을 박재성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미국지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ref>
[[분류:손지창]][[분류:1970년 태어남]][[분류:198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송종익 . . . . 3회 일치
[[190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며 [[190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 한국인]]의 애국 계몽 운동 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1908년]] [[전명운]]과 [[장인환]]이 미국 외교관 [[더럼 스티븐스|D. W. 스티븐스]]를 암살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 재판후원회 재무로 활동하였다. [[1913년]] [[흥사단]] 창단 때 경상도 대표를 지냈으며 [[1919년]]에는 흥사단 이사장과 [[대한인국민회]] 재무를 지냈다.
[[1936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하와이 주|하와이]]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 때 북미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석하여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설립했고 집행부 위원 겸 재무를 맡았다. 1941년 12월에 열린 대한인국민회 총회에서 [[로스앤젤레스]] 대표로 참가하여 대한인국민회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44년]]에는 주미외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다. [[1945년]] 11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귀국했지만 몇 달 뒤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다. [[1956년]] [[1월 7일]] 사망했으며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 비디오 . . . . 3회 일치
America Funniest Home Video. 미국의 TV 프로. 시청자들이 보낸 홈비디오를 모아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영상 대부분에 사회자가 코멘터리인지 나레이션인지 모를 무언가를 하는데 미국식 말장난이 대부분이라 한국인들은 이해 못 한다.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에 American Stupidest Home Video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 안재욱(배우,가수) . . . . 3회 일치
2013년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졌다고 한다. 지주막하 출혈은 쉽게 말해 [[뇌졸중]]의 일종으로 심각한 질병이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잘 되어서 회복했다. 90% 이상 후유증이 발생하는 병인데도 후유증 없이 정상생활을 하고 있다. 본인은 하늘이 주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다만 수술을 미국에서 받았는데 병원비가 45만달러('''약 5억''')라고 한다. 물론 안재욱은 연예인이니 비싼 서비스를 받았을 가능성을 감안해야 하지만, [[식코|미국의 병원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 사실 지주막하 출혈 자체는 한국에서도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지만, 당시 안재욱은 미국으로 휴가를 갔다가 갑자기 발병해서 긴급하게 수술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병원비는 주위에서 다 내지 말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라고 해서 협상 중이라고. 2014년 3월 28일 [[JTBC]]의 [[마녀사냥(JTBC)|마녀사냥]]에 출연했다. 여기서 결혼에 대해 여러가지 말 했는데,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씁쓸하다, 이게 대체 결혼을 하라는 소린지 말란 소린지, 등등 말이 있었지만 결국엔 1년 후인 2015년에 결혼한다 (...)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3회 일치
>어쌔신 크리드 III는 당신을 미국 독립전쟁으로 데려다 줄 겁니다. 역사책에서 본 적 읽은적 없는 이야기로…….
2012년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5번째 작품. [[미국 독립 전쟁]]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애국자의 반역에 맞서 영국을 지지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식민지인 다섯명 중 하나는 열성 왕당파였다고 한다.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며 점점 세력권이 좁아지다가 메인 스토리 완결 후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 미국 독립 이후 왕당파는 아직 영국령으로 남아 있던 [[캐나다]]로 도주했다.]
- 왝더독/줄거리 . . . . 3회 일치
모스는 알바니아에 위치한 [[이슬람]] 테러조직이 [[핵무기]]를 숨기고 있고, [[캐나다]] 국경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각본을 짜낸다. 그리고는 이 일을 돕기 위해 동료 예술가인 패드 킹(데니스 리어리), 조니 딘(윌리 넬슨)을 부른다.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알바니아 소녀가 고양이를 안고 도망치는 영상[* 소녀는 섭외한 배우. 고양이와 배경은 [[컴퓨터 그래픽|CG]].]도 찍어 뉴스에 올리고, 미국에 사는 알바니아인들이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생방송 뉴스를 조작해낸다. 이 와중에 전쟁이 없다는걸 눈치챈 [[CIA]]에게 잡혀가기도 하지만 브린의 현란한 말빨로 풀려난다.
하지만 전쟁 발발(뻥) 3일 만에 미국과 알바니아가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뉴스가 올라온다. 속아 넘어간 줄 알았던 CIA가 뒤에서 손을 쓴 것. 이후 사실을 추궁하는 여론이 일자 일행은 망연자실하지만 모스는 포기하지 않고 또다른 계획을 짠다. 알바니아에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가 있다고 꾸며내는 것. 이들은 펜타곤에서 윌리엄 슈만 상사(우디 해럴슨)를 제공받아 슈만 상사를 전쟁 영웅으로 포장한다.
일행은 슈만 상사를 선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조니 딘이 만든 노래는 1930년대 노래로 포장해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노래"라며 퍼뜨리고 백악관 앞 나무에 슈만 상사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낡은 운동화를 던진다. 슈만 상사의 귀환을 바라는 물결은 미국 각지에 퍼져나가고, 성희롱 사건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잊혀진다.
- 이열희 (1924년) . . . . 3회 일치
[[미국]] 제25육군병원에서 [[하버드 대학]] 출신인 [[치과]]전문의 [[마틴 D. 해치]](Martin D. Hatch) 박사의 지도 하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수학하였다. 이후 그는 육군 제1병원에 근무하였으며, 제1병원 재직 중 악안면성형 및 구강외과를 창설했다. 당시엔 전쟁 당시 발생한 부상이나 상처 등으로 턱, 안면 등에 변형이 생긴 환자들이 있었다.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마틴 D. 해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그에게 수술할 때 사용했던 소수술기구와 성형외과학서적 5권을 그에게 특별히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53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군의관으로 재직 중 최영보 중령(국군제1병원 외과부장겸 수련부장), 오상근 대위(국군제1병원 정형외과 과장), 허경발 대위(주한미군의무관실 연락장교) 등의 주선과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 [[한국]]의 치과 군의관 신분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의 [[성형외과]] 수련 과정을 이수하고 귀국하였다.
- 장기오 (공무원) . . . . 3회 일치
1958년 창설된 특전사의 전신인 공수특전단의 창설멤버로 차지철 대위(포병간부 임관), 전두환 대위(육사 11기), , 장기오 대위(육사 12기), 최세창 중위(육사 13기)와 함께 1958년 미국에 유학하여 특수레인저 코스를 수료하고 한국군 최초로 윙뱃지를 달았던 군인으로 유명하다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12기]] 출신으로 [[하나회]]의 일원이었다.
[[대한민국 육군|육군]] [[3성 장군|중장]] 예편 이후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장관]]을 역임하였고 [[1996년]] 12·12 군사 반란이 [[문민 정부]]에 의하여 사법처리가 확실시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1997년 12월 22일 12·12 군사 반란 가담자가 사면된 뒤 대한민국과 미국의 범죄인 인도 협정이 발효될 예정을 보이자 [[1998년]] 귀국해 자수했다.
- 장민호 (1962년) . . . . 3회 일치
* [[1982년]]~[[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입학 및 졸업, 미군의 그라나다 침공 반대 시위로 투옥되었다는 설이 있음.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간첩 사건]][[분류:대한민국의 학생 운동]][[분류:반전 운동]][[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수상자]]
- 정기선 . . . . 3회 일치
[[1982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현대중공업]] 사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일외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에는 언론사([[동아일보]])에서 근무하다 아버지의 기업에 입사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 대학교]]대학원에서 MBA수업을 받았으며 잠시 컨설팅그룹에서 일한 뒤 다시 귀국하였다. [[2013년]] [[현대중공업]] 수석부장으로 재입사 후 [[2014년]] 상무 및 [[2016년]] 전무,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스탠포드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 2009년 : 미국 유학, MBA과정
- 존 루터 존스 . . . . 3회 일치
John Luther Jones. 19세기 [[미국]]의 철도 기사. 어린 시절을 [[켄터키]] 케이시(Cayce)에서 보내서 "케이시 존스"(Casey Jones)라는 별명이 있다.
구글에 Casey Jones를 치면 미국 [[만화]] [[닌자 거북이]]의 캐릭터만 줄창 나온다.
[[분류:미국 인물]]
- 존 헨리 . . . . 3회 일치
미국 민담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
민담에서 비슷한 인물로 벌목꾼의 영웅적인 인물인 '폴 버니언' 같은 것이 있다. 다만 폴 버니언은 미국 서부 개척사를 대변하는 상징인 반면에 존 헨리는 산업화의 여파로 희생당하는 하층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이라는 연구가 있다. 이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 중년 이후에 그 간 무리한 탓에 건강이 손상되어 고통을 받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서, 80년대, 셔먼 제임스라는 청년 연구가가 소작농 출신 존 헨리 마틴이라는 사람의 사례를 기초로 하여 “존 헨리 척도”를 제안했다. 이는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는 등의 문항에 얼마나 동의하느냐 하는 것으로 측정된다.([[http://newspeppermint.com/2017/01/31/john-henryism/ 참조]])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는 흑인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던 현상인데, 기계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이야기 속의 존 헨리처럼 존 헨리이즘은 현실과 싸우다가 스스로 피폐해진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 창작:치킨교 . . . . 3회 일치
본래 [[미국]]에서 [[노예]]로 착취 당하던 흑인 노동자들에게 평화와 영양을 전하시던 것이, 흑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지자 샌더슨의 입을 통해 증거되시어 [[KFC]]란 교단을 일으켜 한국에 전해지게 되었다.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 흔히 "제1차 외식전쟁"에서 죽을 쑤자 나타난 종파였다. 제1차 외식전쟁은 미국의 위대한 선지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한반도에 선교를 하러 오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애매한 하이브리드인 롯데리아가 참전하면서 시장통을 지배하던 후라이드 치킨교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 결과로 치킨교는 제법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피해로 인해 후라이드 교는 일종의 종교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부에서도 별도의 총대주교(소스) 세력에 불과하면 양념파가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
1. 소위 케이준 스타일이라 불리는 미국의 이단종파 KFC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
- 채형석 . . . . 3회 일치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보스턴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 장녀 : 채문선 - 미국 맨해튼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애경산업에서 근무했다.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와 2013년 결혼했다.
**** 차녀 : 채수연 - 미국 코넬 대학교를 졸업하고, 2016년 4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손자이자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의 아들인 선동욱과 결혼했다.
- 챈슬러 (음악가) . . . . 3회 일치
|국적 = {{국기나라|미국}}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브랜뉴 뮤직 음악가]][[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
- 최동 . . . . 3회 일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관직을 내놓고 [[일본]]에 망명 중인 [[박영효]]를 만나러 도일했다. 최동은 [[가톨릭]] 계열인 [[도쿄]]의 [[교세이학교]](曉星學校)에서 수학했다. 이때 아버지는 이미 [[미국]]으로 떠나 [[안창호]]와 함께 활동하던 시기라 고학을 하며 공부했다. 중등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가서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약 1년간 수학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38년]]에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을 지냈고 [[1941년]]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을 맡았다. 1941년에 [[동양지광]]이 주최한 '[[미영타도좌담회]]'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자격으로 참석해 [[황인종]]의 시각에서 [[미국]]과 [[영국]]을 비난하는 내용의 강연을 한 일도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제4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1947년 12월 4일 Severance 의과대학으로 승격시켜 6년제를 만들었고, [[1955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 최연제 . . . . 3회 일치
| 직업 = [[가수]], [[미국 한의사]]
'''최연제'''([[1970년]] [[5월 18일]] ~)는 [[대한민국]]의 전 [[가수]]이자 [[미국 한의사]](Licensed acupuncturist)이다.
[[1992년]] 1집 《소중한 기억》으로 데뷔하였다.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 너를 잊을 수 없어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배우 [[선우]]의 장녀이다. 2001년 정규 4집을 끝으로 미국에서 침구사로 활동중이다.
- 최희암 . . . . 3회 일치
| 학력 = [[아메리칸 대학교|미국 아메리칸 대학교 연합체육대학원]] [[체육|체육학]] [[박사]]
* [[아메리칸 대학교|미국 아메리칸 대학교 연합체육대학원]] 체육학 박사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최씨]][[분류:무주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연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동문]][[분류:아메리칸 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농구 해설가]][[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3회 일치
본디 원작은 마크 슐츠[* [[피너츠]]의 작가와 성씨가 같지만 혈연관계는 아니다. 나중에는 슈퍼맨&배트맨 vs 에일리언&프레데터 같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의 제노조익 테일즈(Xenozoic Tales). [[만화]]가 히트한 후 당시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자인 미국의 10대 소년, 소녀들에게 맞게 원작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을 삭제하면서 내용을 변형시키고[* 그러한 부분들을 삭제하니 내용 자체가 안 이어져서 그냥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스토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목을 바꿔서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바로 캐딜락&디노사우르스이다. 이후 애니메이션을 베이스로 [[마블 코믹스]]에서 이걸 다시 만화화했으며, 또 이 만화를 [[캡콤]]이 [[벨트스크롤 액션게임]]화한 것 또한 캐딜락&디노사우르스이다. 본 항목에서는 게임 위주로 서술한다.
서기 2513년 미국 동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환경 오염 등의 문제로 지구에서 생존이 불가능해진 인류는 지하 주거시설을 만들고 600여년 동안 틀어박혀 지냈었다. 그 후 600여년의 세월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인간이 없어진 지상은 자정 능력 덕분에 예전처럼 맑고 건강해져 있었다. ~~본격 인류 해충설 인증 성공~~
각 스테이지를 시작할 때마다 지도가 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wiki:"미국"이 동네]]가 틀림없다. 덧붙여 각 지형상의 명칭들 중엔 가칭도 있으므로 주의. ~~어짜피 중요성은 없지만.~~
- 콜 오브 듀티 . . . . 3회 일치
=== 미국 ===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개발된 스프링필드 M1903은 4배율 조준경이 부착된 저격소총입니다. 볼트액션 소총으로 느린 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번에 한발씩 밖에 장전할 수 없습니다.
미국 권총. 영국 공수부대도 애용한다는 설명처럼 영국도 이 권총을 사용한다.
- 크리미널 마인드 . . . . 3회 일치
[[미국 드라마]]. 수사물. [[프로파일링]]을 전문으로 하는 [[FBI]] 행동분석팀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크리미널한 드라마.
* FBI 답게 주역 팀은 [[비즈니스 제트]]를 타고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면서 활동한다.
[[분류:미국 드라마]] [[분류:수사 드라마]]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3회 일치
* 미국 무역지구(American Trading District) 필요
미국 해병대원 150명. 근위 보병대보다 근접전 능력이 높다.
* 미국 무역지구(American Trading District) 필요
- 트로피코 4/외교 . . . . 3회 일치
트로피코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보잘것 없는 섬나라일 뿐이다. 트로피코를 잘 키워 나가려면 강대국들, 특히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미국과 소련에게 잘 보여야 한다.
== 미국 ==
샌드박스 모드에서는 설정 중 하나로 미국과의 거리를 멀게 할 수 있다. 침략당할 확률이 낮아지지만, 관광객이 적게 온다.
- 피서영 . . . . 3회 일치
피서영은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로 유학을 갔다. 유학 시절에 [[이휘소]]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보스턴 대학교 교수]][[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동문]][[분류: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하수빈 . . . . 3회 일치
• 예민, Tommy Page, 심상원, 김형석 등의 뮤지션이 참여된 하수빈의 데뷰 앨범으로, 데뷰곡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예민의 발라드곡〈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스위트 팝 댄스곡〈NoNoNoNoNo〉, Tommy Page의 곡 〈I'm Falling In Love〉이다. I'm Falling In Love은 하수빈이 17세에 미국 POP Singersongwriter 토미페이지 Tommy Page로부터 아시아 스타 첫 예로 받은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Lisa:리사> 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특히 발라드〈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은 하수빈이 17세에 만든 자작곡으로 정규앨범에 실은 첫 타이틀이다.
이 앨범은 기획 단계부터 한국 미국 영국 등 국내외 최고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여 완성된 수작(秀作)으로, 최근 보기 힘든 프리미엄급으로 평가 받아 영원히 소장가치가 있는 또한 음악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앨범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전 곡을 직접 프로듀스, 작곡, 작사, 연주해 '''싱어송라이터'''로의 역량을 완벽히 표현하고 있으며,특히 스티비 원더의 기타리스트이자 머라이어 캐리. 제니퍼 로페즈. 마돈나 등 수없이 많은 세계적 뮤지션들의 명반에 연주 기록이 있는 '''미국 기타리스트 모리스 오코너 <big>Morris O`Connor</big> 가 그녀의 새 음악에 참여됨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 한승조 . . . . 3회 일치
'''한승조'''(韓昇助, [[1930년]] [[1월 13일]] ~ [[2017년]] [[7월 25일]])는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학자, 철학자, 언론인, 보수주의 운동가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등을 역임했다.
[[고려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를 딴 후, 1967년부터 1995년까지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 재임 중 정경대학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 명예교수로 있다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글을 쓴 것이 문제가 된 후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한국유신학술원 회원, [[한국정치학회]] 회장, 국민윤리학회 회장, 보수단체인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도 역임했다. <!--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보충 필요 --> 정년 퇴임 후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명예 교수에 선임되었다.
*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정치학]] [[박사]]
- 홍준표 (마술사) . . . . 3회 일치
* 2006년 미국마술협회 국제마술대회 Mystic Crag Award for Professional Promise
* 2006년 미국마술협회 국제마술대회 피플초이스
* 2006년 미국마술협회 국제마술대회 3위
- 황두진 . . . . 3회 일치
1992
'새로운 공원, 새로운 생각', 미국 뉴욕 어번 센터
2014
미국 4개 대학 순회강연: 네브라스카대학(UNL), 아이오와대학(ISU), 켄트주립대학(KSU), 로드아일랜드디자인대학(RISD)
2009
미국 5대 도시 순회강연: 보스턴 하버드건축학대학원 한국연구회,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워싱턴 스미소니안 아시아미술관(프리어갤러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과 유씨엘에이(UCLA) 건축 및 도시디자인 대학원, 시애틀 워싱턴주립대 건축대학
- 1986년 에드먼드 우체국 총기난사 . . . . 2회 일치
1986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에드먼드시의 [[우체국]]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 파트타임 우편[[배달부]]였던 패트릭 헨리 셰릴(Patrick Henry Sherrill)이 일으켰다.
총기 난사 사건은 전에도 있었지만,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go postal"(우체국에 가다)라는 말이 "미친듯이 화내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2회 일치
그러나 이러한 변경은 여타 스포츠 종목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던 대회운영방식과 동일하였기에 딱히 큰 문제는 되지 않았으나[* 가령 전/후반기 통합우승결정전이나 플레이오프는 미국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에서도 그대로 적용하여 행하고 있을 정도.] 문제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행하고 있지 않는 '''다득점을 승점 다음가는 순위결정 요인'''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 COCOM . . . . 2회 일치
1949년 11월, [[자본주의]] 국가들 측에서 공산권 진영에 대한 수출 통제기구로서 출범한 위원회이다. [[미국]]의 주장에 따라서 설립되었으며, 공산권에 대한 전략 물자와 기술 수출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였다. [[파리]]에 본부를 뒀다.
1948년 [[미국]]은 공산권 봉쇄를 위하여 금수품 목록을 발표하는 등 수출 통제 정책을 시작했으며, 이를 북대서양 조약기구 전체로 확대하려 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들과 논의를 거쳐서 1949년 11월에 출범하게 된다. 1957년에는 대 중국 수출 위원회를 흡수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2회 일치
연구는 강대국들이 유리하다. 강대국(특히 독일, 영국, 미국)의 연구진이 우수한데다가, 공업력도 좋아 많은 기술을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반면 약소국 연구진은 레벨도 별로고 공업력도 딸리기 때문. 솔직히 이 게임은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기에 약소국이 여러모로 불리하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모든 연구를 하는건 무리이다. 그러므로 필요하다 싶은 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게임 끝날 때 까지 안 쓸 것 같은 연구의 경우에는 적당히 하고 내다 버리는게 권장된다.
1936년 기준으로 미국이 선택한 테크. 이후 Air-Land Battle 연구를 거쳐 Unified NATO Doctrine 연구로 끝을 맺는다.
- FN 에르스탈 . . . . 2회 일치
1890년대에 소유권이 마우저 소총의 특허를 보유한 독일인들에게 넘어갔는데, 이때 [[자전거]]도 만들게 된다. 미국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미국 총기제작자 [[존 브라우닝]]과 관계를 쌓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 I Didn't Raise My Boy to Be a Soldier . . . . 2회 일치
미국의 반전(反戰)가. 작사 알프레드 브라이언. 작곡 알 피안타도시.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이 참전하지는 않았던 1915년에 만들어졌다.
- LORAN . . . . 2회 일치
[[미국]]에서 개발된 [[전파항법]] 시스템이다. [[MIT]]에서 개발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미 해군]]이 사용하였다.
LORAN 이외에도 [[소련]] 계열의 알파 항법 시스템, [[미국]]의 오메가 항법 시스템, [[영국]] 계통의 데카 항법 시스템 같은 다양한 지상파 전파 항법 시스템이 GPS의 민간 개방으로 상업성을 잃고 '''궤멸'''(…)하였다.
- Y2K 버그 . . . . 2회 일치
미국 연방준비의사회는 [[ATM]]이 작동하지 않을것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99년 말에 대량으로 현금을 인출할 것이라 예상, 500억 달러를 추가 발행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12200209101007&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11-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4046&publishType=00010|동아일보 1998년 11월 22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미국의 컴퓨터 관련 기업들은 Y2K에 대해 설명하는 사이트를 공동으로 개설하였으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51000099107012&ed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9-05-10&officeId=00009&pageNo=7&printNo=10363&publishType=00010|매일경제 1999년 5월 10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국내 컴퓨터 업계 또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였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60800329109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6-08&officeId=00032&pageNo=9&printNo=16453&publishType=00010|경향신문 1998년 6월 8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경비원 . . . . 2회 일치
[[미국]] 같은데서는 경비원도 기본적으로 [[권총]] 같은걸 장비하고 다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거 없다.
경비원에게 제압당할 정도면 영웅이나 수사관이 등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만, 도입부나 중간 전개에서 위기감을 강조하려고 애꿏은 경비원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매우 많다. 경비원이 등장하면 '''일단 죽는다'''고 보면 될 정도. 미국 수사물에서는 대개 경비원을 쓰러드리고 [[경찰]], [[SWAT]], [[FBI]] 순서로 테크가 올라간다.
- 국제복싱기구 . . . . 2회 일치
[[미국]] [[플로리다]]에 본부를 두고 있는 프로복싱 단체. 약칭 IBO.
역사가 짧아 프로복싱 주요 4개 단체(WBA·WBO·WBC·IBF)에는 크게 밀리는 마이너 단체이다. 하지만 본부가 있는 미국이 프로복싱이 활발하여, 프로복서로서 경력 닦기의 일환으로서 IBO 타이틀에 도전하는 선수가 많다. 패전이나 반납으로 타이틀을 잃은 선수가 IBO 타이틀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의외로 유명한 선수가 이 단체를 거쳐갔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나 [[매니 파퀴아오]]도 한때 이 단체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러다보니 타이틀이 공석이 되어 있는 때도 많은 편.
- 그랜드 펜윅 공국 . . . . 2회 일치
하지만 작품 내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다. 뉴욕을 침공한다던가, 미국 경제를 휘어잡는다던가, 미국과 소련을 제치고 달에 착륙한 첫 국가가 된다던가.
- 김범룡 . . . . 2회 일치
| 배우자 = 크리스 강([[미국]] 교포 출신)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데뷔]][[분류:과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
- 김성민 (1994년) . . . . 2회 일치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신분 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2회 일치
[[정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 [[1992년]] [[미국]] [[덴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 [[정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참가한 [[1994년 동계 올림픽|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전이경]] 등과 함께 여자 3,000m 계주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000m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1994년]] [[영국]] [[길퍼드]]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153531 쇼트트랙 김소희 은퇴] - 연합뉴스</ref>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We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스포츠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2012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 연구원 및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현장 실사에도 나섰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2회 일치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역시 맹활약했다. 조별리그-8강전 6경기 동안 평균 27.5점을 거두며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보였다. 게다가 김연경이 막힐 때마다 [[한송이(배구)|한송이]],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양효진]] 등이 10점 중후반 대의 점수를 올려주면서 ''''김연경과 아이들'''' 이나 다름없는 여자배구 국대팀을 밸런스를 갖춘 단단한 팀으로 만들어갔다. 결국 2012년 8월 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전에서 3-1로 이기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여자배구 국대팀을 4강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4강전에서 [[미국]]에게 지고 3, 4위전에서 과거 '김연경과 아이들' 시절의 경기력으로 회귀해 버리는 바람에[* [[양효진]]과 [[한송이(배구)|한송이]]는 체력이 떨어져서,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은 경험이 부족해서 고전했다.] 올림픽 4위로 마감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2위와 40점차'''로 [[http://www.london2012.com/volleyball/event/women/statistics/type=player-scorers/index.html|득점 1위]].
||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패배 후[* 이틀 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패한 후 인터뷰에서 “눈물이 날 뻔 했는데 참았다. 메달을 따면 울겠다”라고 말했던 김연경이었다. 코트 위에서 울지는 않았지만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간 후 지인들이 보내준 메세지를 읽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 김용국 (야구인) . . . . 2회 일치
그는 은퇴하면서 [[현대그룹]]의 [[대한민국의 실업 야구|실업 야구단]] [[현대 피닉스]]에서 [[1996년]]부터 바로 수비 코치를 맡았다. 1년 뒤엔 프로 구단 [[현대 유니콘스]]로 발령나기를 기다렸으나 도리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고, 실망감을 안은 채 어린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ref name="imaeil" />
[[1997년]] 그는 무보수 방문 코치로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루키 리그 야구단 [[헬레나 브루어스]] ([[:en:Helena Brewers|Helena Brewers]])에서 코치로 있다가 그해 9월 마이너 리그 내의 교육 리그, [[애리조나 폴 리그]] ([[:en:Arizona Fall League|Arizona Fall League]])에 속해 있던 야구단 [[메사 솔라 삭스|선 시티즈 솔라 삭스]] (Sun Cities Solar Sox; 現 메사 솔라 삭스 [[:en:Mesa Solar Sox|Mesa Solar Sox]])에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55979 <프로야구>김용국, 애리조나 폴리그 코치 영광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한 달간 경험을 쌓은 뒤 다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싱글A 야구단 [[스탁턴 포츠]] ([[:en:Stockton Ports|Stockton Ports]])에서 수비 및 주로 코치로 일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94321 <프로야구> 김용국, 미국 프로야구 지도자로 데뷔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1998년 말, 1년간 그를 지켜본 [[스탁턴 포츠]]는 그에게 연봉 3만 달러를 제안함과 동시에 1999 시즌부터 정규 시즌 코치로 일할 것을 제안하였다. 1999 시즌이 끝난 뒤엔 연봉이 3만 5천 달러로 오르면서 트리플A 야구단 [[인디애나 인디언스]] ([[:en:Indianapolis Indians|Indianapolis Indians]])의 코치로 승격되었다. 2000 시즌 도중에는 [[스카우트]] 자격으로 한국에 2주 동안 출장을 오기도 했는데, 그때 한국의 4개 프로 구단으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았다. 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코치에 도전해 볼 생각도 있었으나 [[LG 트윈스]]의 강력한 러브콜로 인해 국내 복귀를 택했다.<ref name="imaeil" />
- 김윤환 . . . . 2회 일치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식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상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이후 신장암 치료를 위해 [[국립암센터]]에 입원했고 미국까지 가서 투병했지만, 결국 회생불가 판정을 받고 귀국한 뒤 [[2003년]] [[12월 15일]]에 사망했다. 향년 71세.
- 김재엽 . . . . 2회 일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84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결승전까지 올랐으나 [[일본]]의 호소가와 신지에게 누르기 한판패를 당하면서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1986년에 열린 [[1986년 아시안 게임|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 [[서독]] [[에센]]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는 1984년 올림픽에서 패배를 안겨준 호소가와 신지와 또다시 결승전에서 맞붙어 통쾌한 허벅다리걸기로 한판승을 거두면서 패배를 설욕하였다.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에서는 전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한 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여유있게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경기를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1987년 세계 선수권자 김재엽과 198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호소가와 신지가 결승전에서 맞붙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으나 호소가와가 준결승에서 미국의 무명 선수 케빈 아사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손쉽게 판가름났다.
- 김태우(god) . . . . 2회 일치
2012년 11월에 출연한 고쇼에서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재직 중인 연구원인 아내를 "서울대 박사"라고 지칭한 부분을 두고, 몇몇 네티즌들의 학력위조 드립이 있었으나 별다른 문제 없이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미국]]에서 대학 졸업, 이대 대학원 생명공학부에 재학하면서 서울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서울대 박사 학위가 아님에도 '서울대 박사'라고 칭한 것을 문제시한 것. 하지만 [[청춘불패]]의 흑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태우 자체가 상식이 뚜렷한 편이 아니서 생긴 불찰. 일반적인 [[학력위조]]와 달리 학력을 사칭하여 이득을 꾀한 것도 아니다보니, 딱히 큰 논란은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 말부터 소속 가수인 메건 리와 계약 해지를 둘러싼 마찰이 일어났다. 메건 리는 미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모색하면서 소울샵측과 계약 해지를 주장했고, 길건은 메니징 소홀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김태우 처가 쪽 인물들의 경영 간섭. 오히려 이들은 김태우 [[본인]]에 대해서는 불만 없다는 식으로 밝힌 것으로 봐서는 본인의 [[인성]]은 원만한 모양.
- 노재헌 . . . . 2회 일치
'''노재헌'''(盧載憲, [[1965년]] [[11월 3일]] ~ )은 [[노태우]] 前 대통령의 아들로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미국법자문사이다.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7년 법무법인바른 미국법 자문사
- 니세코이/215화 . . . . 2회 일치
오노데라와 이치죠는 치토게를 찾아 미국까지 좇아온다.
* 이치죠는 치토게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그 즉시 미국행을 결심한다.
- 대잠비행정 . . . . 2회 일치
미군에서 운용한 P3Y, PBM, 영국의 쇼트 선더랜드(Short Sunderland), 소련제 Be-6와 Be-12 등이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력이 충실하여 대잠초계기와 대잠헬기에 주력하게 되면서, 1960년대 대잠비행정에서는 손을 뗐다. 미국이 여기에서 손을 뗀 뒤로 서구권에서는 특별히 눈에 뛰는 대잠비행정이 존재하지 않게 됐다.
- 돌턴 갱 . . . . 2회 일치
Dalton Gang. [[서부개척시대|미국 서부시대]]에 활동했던 8인조 갱단. 갱단 멤버 중 밥 돌턴(Bob Dalton), 그랫 돌턴(Grat Dalton), 에밋 돌턴(Emmett Dalton) 세명이 형제였기에 돌턴 형제(Dalton Brothers)라고도 불렸다. 이 세명은 연방보안관으로 활동하였으나 1890년경 무법자가 되었다. 이들은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돌턴 갱을 이루었고, [[오클라호마]]주와 [[캔자스]]주에서 [[은행강도]]와 [[열차강도]]를 벌였다.
[[분류:악의 조직]] [[분류:미국사]]
- 듀폰 . . . . 2회 일치
Dupont. [[미국]]의 기업.
2015년 12월,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211_0010473179&cID=10101&pID=10100|미국의 화학회사인 다우케미칼과 합병했다.]]
- 러시안 라이프 . . . . 2회 일치
Russian Life. [[미국]]에서 발행되는 [[러시아]] 관련 [[잡지]]. 러시아의 [[문화]], [[역사]], [[과학]], [[인물]]에 대해 다룬다.
소비에트 라이프처럼 러시아 내 미국 관련 잡지인 "아메리카"(Amerika)가 있었다.
- 레스터 길리스 . . . . 2회 일치
대공황 시기 활동했던 [[미국]]의 범죄자.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나 베이비 페이스 넬슨(Baby Face Nelson)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다.
[[분류:미국 인물]]
- 로버트 켈리 . . . . 2회 일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정치학 박사 출신, 2008년 9월부터 공개채용을 받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서 근무하고 있다.
2012년에 아내와 함께 한국 투표소를 찾아서 사진을 찍고 트윗을 올린 적이 있으며, 투표가 아주 빠르고 신속하여 미국과는 참 다르다는 감상을 남겼다.[[https://twitter.com/Robert_E_Kelly/status/281231957965279232 (참조)]]
- 무법자 . . . . 2회 일치
무법자라는 단어가 흔히 나오는 것은 [[서부개척시대]]인데, 이 무렵 미국 서부는 미국 연방 정부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고, 지방 주 정부는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결과적으로 공권력이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무법자들이 각지에 활보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 문숙(배우) . . . . 2회 일치
그러던 1975년. [[삼포 가는 길]]의 마무리 작업 중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그녀는 몇년 뒤 미국으로 떠난다.
2014년 8월 4일엔 MBN [[최불암의 이야기 숲 어울림]]에 출연하여 미국에 정착하자마자 외국인과 결혼했었음을[* 현재는 이혼함], 이만희 감독을 잃은 슬픔을 [[요가]]와 명상을 통해 치유했음을 밝혔다. 2014년에 하와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 바키도/135화 . . . . 2회 일치
* 트럼프는 단 한 명의 남자와 미국이 불가침 조약을 채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지 않는다.
* "그 개똥 같은 관례"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했냐는 트럼프. 시작은 80년대로 거슬러간다. 로널드 윌슨 레이건 대통령 시절 시작됐는데 그 말을 들은 트럼프는 "미국의 위대함이 사라진 타이밍"이라고 납득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 바키도/137화 . . . . 2회 일치
* 힐너리는 미국을 트럼프의 손에서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선서"를 하러 가는 길인데.
* 헬기가 호텔 옥상에 착륙한다. 힐너리는 선거에서 패했지만 그 자신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트럼프에게서 미국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다. 그녀는 유지로를 "무력 그 자체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의 방으로 향하는 손엔 성경이 들려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불가침조약"을 "선서"할 때 쓰던 것이다.
- 박옥수 . . . . 2회 일치
기쁜소식강남교회[*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때 보이는 그 [[교회]]이다. 참고로, 이 교회 건물은 불법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내에 건축제한이 있는데, 그걸 상큼하게 씹어먹은 것. 서초구청에서 강제 집행을 하려고 했었으나, 교인들이 죄다 나와서 막았다고...] 담임[[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외 기성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도 없고, 한국에 구원파 [[신앙]]을 들여왔다고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딕 욕에게 안수를 받았다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 선교사가 공식 선교사거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닌 등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세한 것은 [[구원파]] 참조. 게다가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목사안수 논란 문단을 볼 것.] 물론 어디까지나 [[신흥종교]]인 만큼 해당 교단 내에서 쓰는 직급으로 볼 수는 있다.
딕 욕은 2010년 9월 30일 사당 청소년 문화의 집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교회에는 성직제도가 없어야 된다고 그들(故[[유병언]], [[이요한]], [[박옥수]])에게도 가르쳤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6월 2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진○○(박씨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측 변호사는 박씨가 딕욕 선교사에게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박씨는 4월 20일 수백억 원의 주식을 사기로 판매했다는 혐의로 전주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현재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다.) 진○○ 측 변호사는 미국의 딕욕 선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딕욕 선교사가 박씨에게 목사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답해왔다며 박씨는 가짜 목사라고 밝혔다. [[http://hdjongkyo.co.kr/news/view.html?section=22&category=1007&no=14622|기사 전문]].
- 박정수(정치인) . . . . 2회 일치
1932년 2월 9일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던 195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958년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65년에는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과 함께 미국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1968년 무임소장관 보좌관을, 1973년 [[국민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 박태준 (작곡가) . . . . 2회 일치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이며 호(號)는 귀봉(龜峯)· 산남(山南)· 계산(桂山)이고, 종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개신교(예장통합)]]이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이후 미국 [[터스컬럼 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음대 및 대학원을 나왔다. 귀국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연세대학교]] 종교 음악과를 창설하였으며, 많은 작곡을 하여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술원 음악공로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64년 연세대학교 음대 학장을 지냈다. 작품으로 〈오빠생각〉 〈집 생각〉 〈사우(思友)〉 등 150여 곡이 있고, 동요곡집으로 〈중 중 때때중〉, 가곡집으로 〈박태준 가곡집〉 등이 있다.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동요 작곡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여자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투스큘럼 칼리지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
- 배경 세계 공유 . . . . 2회 일치
다양한 창작물이 하나의 세계를 배경으로 공유하는 방식. 어느 한쪽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쪽에 영향을 주는 식의 묘사를 볼 수 있다. [[마블 코믹스]], [[DC 코믹스]] 등의 미국 만화가 대표적이며 영상화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상당한 역사을 지니고 있으며 영상화쪽도 MCU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미국 만화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향 탓에 서양권의 주류라 생각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서 동양권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이 있다. 만화가 [[미나기 토쿠이치]]의 만화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이 그런 경우.
- 배영수 . . . . 2회 일치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 애초에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였던 [[장준관]]이 1999년 대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미 1차지명은 장준관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준관이 계속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던데다 지명을 앞두고 계약금을 올리고자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에선 배영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장준관은 [[LG 트윈스|모 팀]]으로 드래프트 지명이 되는데...--] 1999년 11월, 팀 고졸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던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이 금액은 1년 후 대구상고 [[이정호]]가 삼성에 입단하며 '''5억 3000만원'''이라는 계약금에 입단하며 경신된다.]
2017년 4월 27일 롯데전 [[https://youtu.be/d4GnOa4lvvg?t=1m35s|일정하지 않은 키킹 동작]]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잠시 멈췄다가 던지는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던진다. 명백히 다른 시간차로 던지는 동작은 부정투구이며 부정 투구를 떠나 타자를 농락하는 것에다 명백한 룰 위반이다. [[https://youtu.be/OcQCi86XpFI|SBS 주간야구]]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다. 이 사건을 두고 몇몇 소수의 악질팬들이 아니라고 반박~~난리부르스~~하지만 이는 더욱 더 배영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소수 악질 빠들이 해커를 예시로 반박하지만 해커는 꾸준히 같은 패턴으로 던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영수 역시 본인이 사과했지만 이는 배영수 커리어에 두고두고 남을 흑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100km 짜리 직구를 던졌다고 한다.~~
- 배지환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201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참가 한 시간 전에 미국 진출 때문에 지명받지 않았다. 이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300,000달러에 계약하였고, 교육리그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2014년에 불법 계약을 한 것이 드러나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81032 배지환 계약 파기 FA행… 애틀랜타 MLB 징계 확정] - OSEN</ref> 게다가 이면계약을 한것이 드러나 계약이 파기되었다. 이후 [[육성선수]] 신분을 인정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냈으나 [[KBO (야구)|KBO]]측에서는 강경대응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2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국가방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영국]], [[미국]]과의 동맹 체결, [[국제연합]]을 창설한 샌프란스시코 회의(1945), [[테헤란 회담]](1943), [[얄타 회담]](1945), [[포츠담 회담]](1945) 등 연합국의 각종 굵직한 회담에 모두 이름을 내밀었다.
1947년에는 [[미국]]의 [[마셜 플랜]]에 대항하는 동구권 국가들의 경제 협력 강화 계획인 몰로토프 플랜을 입안하였고, 1949년 1월부터 이것이 실행되었다.
- 벤 존슨 . . . . 2회 일치
[[미국]]의 육상선수.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9초 79의 경이로운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도핑 검사에 걸려서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분류:육상선수]] [[분류:미국 인물]]
- 브라우닝 시토리 . . . . 2회 일치
Browning Citori. [[미국]]의 총기회사 [[브라우닝]]에서 판매하는 [[더블 배럴 샷건]]. [[총열]]이 상하로 배열된 형태다. 사용 구경은 모델마다 다름.
2012년 공개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http://news.zum.com/articles/5453662|클레이 사격 사진]]에서 사용된 총기. 이 사진은 [[http://knowyourmeme.com/memes/obama-skeet-shooting-photo|합성요소로 활용되었다.]]
- 브라우닝 하이파워 . . . . 2회 일치
Browning Hi Power. 미국의 총기 제작사 [[브라우닝]]이 생산하는 [[자동권총]].
2016년 12월 기준 신상 하이파워의 소비자가격은 $1,100~1,200 정도. 당신이 미국 시민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정보다.
- 블랙 블록 . . . . 2회 일치
[[미국]]의 [[아나키즘]] 단체 혹은 운동전략.
아나키스트 웹사이트 A-Infos에 따르면, 1980년대 유럽에서 아나키스트 활동으로서 확산되었다. 미국에서는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WTO(세계무역기구)에 대한 항의 폭력 시위 이후로 2001년 무렵 부터 이 전술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찰의 공격을 피하고 체포당하여 탄압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전술이다.
- 서든어택 2/무기 . . . . 2회 일치
||1962년에 처음 등장한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돌격소총이다. 소구경 고속탄을 사용하는 컨셉으로는 세계 최초로 실용화된 돌격소총이었으며, 베트남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된 후 높은 성과를 올려 이후 서방 세계 돌격소총의 기본 컨셉이 되었다. 이전까지의 자동소총들에 비해 반자동 및 점사 반동 제어가 쉬운 편이지만, 연발에서의 제어는 어렵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착검 기능 등을 부여한 군용 버전을 구입해 사용해 왔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모듈화 개량이 가해진 개량형을 계속 구입, 사용하고 있다. 강력하고 우수한 반자동 산탄총이 다수 등장한 지금도 여전히 미군이 가장 애용하는 산탄총 중 하나이다,
- 서영춘(코미디언) . . . . 2회 일치
서영춘은 바보 연기에 특화된 [[배삼룡]], 노래와 신체 조건을 이용한 개그가 장기였던 [[이기동(코미디언)|이기동]], 미남 역을 자주 담당했고 선역과 정극 연기도 능했던 [[구봉서]]와 달리 강한 개성으로 어필하였다. 특히 얼굴 표정 연기에 능하였고 연기도 두루 잘 하는 편이었으며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예외로 미국 물(미군 8군 무대)을 먹은 [[곽규석]]이 미국식 스탠딩 개그와 성대모사, [[남보원]] [[백남봉]]은 성대모사를 장기로 한 쪽이다.
- 세정(구구단) . . . . 2회 일치
* 2018년 5월 10일, 동년 7월에 방송 예정인 tvN [[갈릴레오 : 깨어난우주]] 출연이 확정되었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세정이 게스트로 참여해서 좋은 호흡을 보였던 [[정글의 법칙]], [[주먹쥐고 뱃고동]]의 리더 [[김병만]]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며 SBS에서 tvN으로 이적한 이영준 PD가 연출을 맡게 된다. 촬영 장소는 미국 유타주에 있는 [[MDRS]](Mars Desert Research Station). 이영준 PD는 SBS 시절 [[주먹쥐고 소림사]]와 [[주먹쥐고 뱃고동]]을 연출한 바 있다. ~~주먹쥐고 화성행~~ 이후 [[하지원]]이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고 보도되었다. 5월 22일에 2PM [[닉쿤]]이 출연함이 보도되었다.
* 2018년 11월 14일, [[크록스]]의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 Come As You Are 한국 대표 홍보대사로 선정되었음이 공개되었다. 미국의 [[주이 디샤넬]], 영국의 [[나탈리 도머]], 중국의 진천(Gina Jin), 일본의 [[히로세 스즈]]와 함께 Come As You Are 글로벌 홍보대사 활동을 하게 된다. 화성체험 프로그램 갈릴레오 촬영 후 타 출연자들과 다르게 LA로 이동, 스케줄을 소화했던 게 바로 이 광고 촬영 때문이었다고 11월 14일 V앱에서 김세정 본인이 밝혔다. 무려 반 년 동안의 엠바고였던 셈.
- 소냐(가수)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성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주한미군]]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김천시|김천]]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고 어머니를 8세 때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김천시|김천]]에 있는 외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고학을 했고, 1998년 5월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을 통해 사연이 소개된 뒤 1999년 5월에 가수로 데뷔했다.
- 스캘러왜그 . . . . 2회 일치
미국사에서는 [[남북전쟁]] 직후 나타난 남부 출신 [[공화당]]원을 뜻하기도 한다. 당시 [[민주당]]이 강세였던 남부에서 배신자 취급을 당했다고.
[[분류:미국사]]
- 스틸오션 . . . . 2회 일치
=== 미국 ===
[[스틸오션/미국]] 페이지 참조.
- 신동일 (언어학자) . . . . 2회 일치
|학력= 미국 일리노이 대학 박사
호주 ISLPR (International Scale of Language Proficiency Rating, Griffith University, Australia), 영국 ELT and Assessment International Seminar (British Council, UK), Cambridge ESOL YLE (Young Learners of English) Examiner, 미국 ACTFL (American Council of Teachers of Foreign Languages, University of Pennsyvania, USA) 기관 등에서 영어평가 전문가 및 채점자/면접관 훈련 과정을 200시간 이상 이수했다.
- 신지애 . . . . 2회 일치
게다가 2008년에는 KLPGA 그랜드 슬램을 이루었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대회까지 모두 출전하는 강행군을 펼치면서도 LPGA에서 3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3승 중에는 LPGA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이 있었다.[* 그리고 이 때의 우승으로 신지애는 브리티시 오픈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 이 때 신지애는 LPGA 회원도 아니었다. 즉, 한국에서 잘하는 선수라고 초청을 받아서 간 것인데 그 선수가 오히려 주인이 되어 버린 꼴이다.[* 이후 [[김효주]], [[전인지]] 등이 비슷한 방식으로 해외 메이저투어에 초청 받아 우승하여 LPGA 출전 자격을 얻게 되었다.] --흠좀무..--
2011년에는 계속 첫 승을 올리는데 실패하며 준우승 또는 3위에 그치고 있다. 그 사이에 경쟁자인 [[청야니]]는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4승을 쓸어담으며 독주하고 있어서 많은 골프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는 상황. 사실 맹장 수술, 허리 부상, 손 부상이 잇따라 겹치고, 아래 서술할 남자친구 문제까지 겹치면서 슬럼프가 왔다.[* 엄밀히 따지면 너무 혹사당했다. 미국만 플레이하기에도 체력적으로 벅찬 LPGA 생활인데 거기에 한국 및 일본 무대까지 초청 받아 활약했으니 젊은 나이라고 해도 몸이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한쪽 방향으로 운동하는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상 스윙을 지탱하기 쉽지 않았을 터.]
- 아이린(레드벨벳) . . . . 2회 일치
* 2012년 미국의 [[ABC(미국 방송)|ABC]] 뉴스에 출연했다.[[https://youtu.be/xlfr2G-4Gfs|#]] [[강남스타일]]의 인기로 K-pop과 연습생 시스템에 관한 내용
- 애로우 . . . . 2회 일치
[[미국]]의 [[드라마]]. [[DC 코믹스]]의 히어로인 [[그린 애로우]]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이며 현재 시즌 7이 방송 중이다.
[[분류:미국 드라마]]
- 오준 . . . . 2회 일치
|학력 =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책학과 사회과학 석사
아버지는 독립 유공자로서 외교부의 창설 멤버인 [[오우홍]] 미국 초대영사이며, 어머니는 건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한 [[진인숙]] 여사다. 어머니의 고향이 [[개성시|개성]]이고 장인도 함경도에서 월남한 실향민이라 평소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저자=정희순|제목=오준 유엔대사 특별 인터뷰|날짜=2015년 2월|출판사=우먼센스|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89&contents_id=82676}}</ref>
- 오현근 . . . . 2회 일치
|국적 = 미국
|출신지 = 미국 [[서울특별시]]
- 윤종신 . . . . 2회 일치
하지만 본인은 예능인 윤종신과 음악인 윤종신의 괴리감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스스로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와 개그맨 [[비트 다케시]]와 같이 생각하면서 예능인과 음악인으로서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하지만 김장훈과 유희열은 이 얘기를 듣고 비웃었다.][* 물론 2시간 내내 방송에서 예능인 윤종신을 비웃다가 마지막에는 정색하고 어렵고 힘든 길을, 그것도 두 길을 모두 성실하게 묵묵히 걷는 윤종신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셋은 거의 형제같은 사이로 장난끼 넘치는 디스는 그들의 일상이다. 참고로 [[유희열]]이 잠시 미국 여행을 간 사이 윤종신은 자신의 공연에서 "희열씨가 드디어 빚쟁이의 등쌀에 못 이겨 라디오를 버리고 미국으로 도피하셨습니다"라는 드립을 쳤다.]
- 음모론 . . . . 2회 일치
* 미국은 외계인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이를 비밀로 하고,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을 요원을 보내 제거하고 있다.
* 프리메이슨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비밀 단체로, 미국 정부는 이들을 분쇄하기 위해 비밀리에 영국 침공 계획을 세웠다.
- 이갑성 . . . . 2회 일치
[[1915년]] 세브란스의전 부속병원 사무원이 되고, 그뒤 의전 부속병원 제약부 주임이 되었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감격, 이를 계기로 독립만세운동의 계획이 진행되자, [[1918년]] 말부터 [[박희도 (1889년)|박희도]](朴熙道) 등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획한다.
[[3·1 운동]] 당시 [[한국]]의 독립운동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해달라는 [[석호필]](스코필드)의 부탁을 받고 [[경성부|경성]] 시내에서 학생들의 만세 장면을 카메라 사진으로 여러장 촬영해서 주기도 했다. 학생들의 만세 장면과 [[조선총독부]] 헌병들의 사격장면 등을 담은 이 사진들은 [[스코필드]]와 [[조선총독부]] 치하 [[조선]]에 와 있던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서방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다.
- 이광수(배우) . . . . 2회 일치
* 미국도요타광고
* 런닝맨 '7개의 숟가락' 특집에서 이광수의 집이 공개됐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피규어로 덕밍아웃을 했다. 스타워즈, 마블, 디씨 뿐만 아니라 원피스, 드래곤볼 등등 미국, 일본 구분 없이 덕질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상백 (1904년) . . . . 2회 일치
[[1924년]] 일본의 [[일본 대학농구연맹]]을 결성하고 [[와세다 대학]] 농구팀 대표로 [[일본 대학농구연맹]]에 참여하였으며, 일본 대학농구연맹 농구부 주장으로 [[미국]]에 원정 경기에 출전하여 여러 번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밖에 축구, 야구에도 주전 선수로 실력을 보여주었다. [[1927년]]에 [[와세다 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모교인 [[와세다 대학]] 동양사상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그후 제11회 도쿄 올림픽 대회 유치위원과 준비위원으로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등을 방문하여 대회 유치와 준비에 협조를 구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체육계의 공로자로 칭송받았다. [[1939년]]부터 [[1941년]]에는 모교인 [[와세다 대학]] 재외특별연구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동양학을 연구했으며,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였으나 도쿄 올림픽 유치와 추진의 공로로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1944년]]에는 [[여운형]]이 결성한 지하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 임수정(탤런트) . . . . 2회 일치
2007년 잠시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이걸 한 기자가 과대해석하여 '임수정 연예계 은퇴선언'으로 기사를 올렸다.] 2007년 12월경부터 [[미국]] [[뉴욕]]에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2008년]] 1월 중순에서야 뉴욕대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게 보도가 되었다. 유학생들의 목격담으로는 스타의식을 티내지 않고 ~~옷을 불쌍하게 입었다는 말도 있었다.(...)~~ 평범하게 [[도서관]] 같은 곳에서 돌아다녔다고. 심지어 중국인 유학생의 목격담도 있었다. 그런데 찍힌 [[사진]]이 없다.
묘하게도 공유와 같이 2010년 김종욱찾기를 같이 촬영했다. 연예가중계에서 영화의 제작보고회에서 공유와 같이 인터뷰를 했는데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자 시간에 맡긴다고 말했다. 2011년 10월, 뜬금없이 미국에서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는 루머가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당연히 아니라는 보도자료가 나왔다. 애초에 이게 말이 안 되는게, 그 결혼했다는 날짜에 임수정이 콘서트 구경하러 간 걸 봤다는 얘기가 SNS에서 나왔기 때문.(...)
- 장갑차 . . . . 2회 일치
대표적인 APC로는 소련의 BTR 계열 차량들이나 미국의 M113, 대한민국의 K200이 있다.
대표적인 IFV로는 소련의 BMP 계열 차량들이나 미국의 M2 브래들리, 대한민국의 K21이 있다.
- 전민제 . . . . 2회 일치
* 미국 클락슨 대학교 명예 이학박사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구 전씨]][[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
- 정다정 . . . . 2회 일치
[[부산외국어고등학교|부산외고]] 재학 중 한국의 입시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갔다가, 미국에서 고교 졸업 후 2011년 귀국하였다. 2011년 9월경 블로그에 올린 그림, 레시피가 [[네이버]] [[웹툰]] 관계자의 눈에 띄어, 같은 해 네이버에 웹툰 《[[역전! 야매요리]]》를 연재하며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닭떡된 닭튀김? 괜찮아요 ‘야매요리’니까!|url = http://news.donga.com/3/all/20120802/48267162/1|출판사 = 동아일보|저자 = 신나리|쪽 = |날짜 = 2012-08-02|확인날짜 = 2012-10-27}}</ref> 가족관계로는 부모님과 정다정보다 5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 정종원 . . . . 2회 일치
행장 퇴임 직후 6개월 동안 록펠러재단의 초대를 받아 미국 유럽 시찰에 나섰다.<ref><<법시 제1호>>,(사단법인 법시사,1967) p.3</ref> 귀국 후 사단법인 [[법시사]] 운영에 최선을 다했다. 1977년 3월 1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4</ref>
이병철은 당시 대구에서 서울 장충동1가 110번지 <ref>매일경제 1974년 9월 11일 7면 고액재산세 부과대상자</ref> 로 거처를 옮겼다. 정종원 자택 인근이었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22일 9면 경제인록 22 재벌전횡 부른 귀속주 공매</ref><ref>매일경제 1987년 11월 20일 11면 이병철 그의 생애와 경영반세기</ref> 이웃이 된 이후 정종원과 이병철의 부인들은 친분이 두터워졌고 그로 인해 자손들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정종원의 막내사위인 [[장유상]] KDI정책대학원 교수 (전 보스턴대 교수)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삼성의 미국 진출에 기여했다.<ref>매일경제 2011년 1월 16일</ref>
- 조원진 . . . . 2회 일치
* 관련 문서: [[친박]], [[미국병/사대주의]]([[미빠]]), [[친미파]], [[극우]],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대구광역시]] 출신 [[친박]], [[지역주의]], [[미국병/사대주의|미빠]]의 대표적 인물'''
- 차광렬 . . . . 2회 일치
| 서훈 내역 = 미국 할리우드영웅들상
*1998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산부인과학교실 교환교수
- 창작:바벨 코스트 . . . . 2회 일치
1940~1950년대, 미국 서부 해안에 위치한 가상의 도시인 바벨 코스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설정이다. 시대 배경과 인구 분포는 게임 '마피아 2'의 주요 활동지인 '엠파이어 시티'에서 영감을 얻었고 대체적인 분위기는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 시,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 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국력이 커져가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음에도 유색인종 비율이 많은 탓에 거점 도시로의 역할이 주어지지는 못했다. 공업이 발달하기는 커녕 해군 부대가 들어서는 일도 없었다. 그저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업이나 소규모 상업 정도가 도시의 주요 산업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사람들의 재정 수준이 높아지자 고급 주택이 세워지고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이 생겨나며 휴양도시로의 이미지가 잠시 생겨났다. 공해도 적고 교통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곳에서 휴양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지라 수많은 부유층들이 들어오면서 경기가 활성화되었다.
- 최광수 (공무원) . . . . 2회 일치
| 학력 =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사회과학]] [[석사]]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1956년]] [[2월]]을 기하여 외무부에 입부되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의 [[외교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주미 3등서기관, 주일 2등서기관, 동북아주과장, 주미 참사관, 통상진흥관, 아주국장, 국방부 차관, 대통령비서실장, 제1무임소장관, 체신부장관,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주유엔 대사, 외무부장관, [[하버드 대학]] 아시아문제연구소 초빙연구원([[1992년]]-[[1993년]])을 역임하였다.
- 최문식 . . . . 2회 일치
동대부고를 졸업한뒤 대학진학 대신 [[1989년]] [[포항 아톰즈|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 고졸신인 최문식은 [[포항 스틸야드]] 개장 경기에서 첫골을 기록하였고, [[1989년]] [[성남 FC|일화]]와의 경기서 경기 종료 10초전 극적인 오버헤드킥 동점골을 기록한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군대를 갔다온 2년을 제외하고 [[1998년]]까지 포항에서 뛰었음은 물론이고 기술력 있는 축구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위주의 축구와 정확한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포항의 공격진을 책임졌으며,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 FIFA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4년 아시안 게임|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월드컵 출전 직후 합류한 첫경시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포항의 [[아디다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결국 [[1994년 FIFA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 출전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였던 [[김호]]의 부름을 받고, [[2001년]] 6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으며, [[2002년]]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SK]]로 이적했으며, 한해 동안 28경기에 출전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인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 최세창 . . . . 2회 일치
* [[미국 육군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졸업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반란자]][[분류:하나회]][[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주 최씨]][[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반역죄 기결수]]
- 최영미 (시인) . . . . 2회 일치
구겐하임상(Guggenheim fellowship) 수상자인 시인 제임스 킴브렐(James Kimbrell)과 유정열이 공동 번역한 3인 시집 《현대한국의 세 시인:이상, 함동선, 최영미》(''Three Poets of Modern Korea: Yi Sang, Hahm Dong-seon and Choi Young-mi> (2002,Sarabande books'')는 2004년 미국번역문학가협회상(ALTA Awards:American Literary Translators Association)의 최종 후보로 지명되었다.
미국의 계관 시인이자 [[버클리 대학]] 교수인 로버트 하스(Robert Hass)는 2009년 버클리에서 열린 시 낭송회 런치 포임(lunch poem)에서 " 최영미의 시는 추상표현주의 회화같다."라고 평했다. 2005년 일본의 청수사(靑樹社)에서 출간된 최영미의 시선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문화면 머릿기사로 다루며 《아사히신문》은 "다의성(多意性)이 풍부한 명석한 언어"라며 "시에 의해서 잉태된 언어를 이만큼 신중하게, 고독하게 기르고 있는 시인이 가장 이웃한 나라에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라는 사사키 미키로 시인의 평을 실었다.
- 최재우 . . . . 2회 일치
이듬 해인 2010년 1월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생애 첫 [[FIS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월드컵]]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38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12월에 캐나다 퀘벡 주의 발생콤 리조트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서 캐나다의 [[마르크앙투안 가뇽]]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모굴 부문과 듀얼 모굴 부문에 출전했다. 모굴 부문에서는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레이헤르트]]와 일본의 [[우에노 오사무]],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바르마쇼프]]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듀얼 모굴 종목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바르마쇼프와 일본의 우에노, [[쓰키타 유고]]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후 2012년에 [[캘거리]], [[나에바]] 등지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손드리오 현|손드리오]]의 마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2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미국의 [[브래들리 윌슨 (스키 선수)|브래들리 윌슨]], 스웨덴의 [[루드비그 피엘스트룀]]의 뒤를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의 듀얼 모굴 종목은 11위를 기록했다. 그 해 8월 16일에는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듬 해인 2013년에는 [[노르웨이]] [[보스 (노르웨이)|보스]]에서 열린 [[2013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50.00점을 획득하여 캐나다의 [[미카엘 킹즈버리]], [[알렉상드르 빌로도]], 미국의 [[패트릭 데닌]], 오스트레일리아의 [[맷 그레이엄 (스키 선수)|맷 그레이엄]]의 뒤를 이어 5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으며, 듀얼 모굴 종목에서는 14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3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모굴 부문 29위, 듀얼 모굴 부문 5위를 기록했다.
- 최재희 . . . . 2회 일치
* 미국 크레스킬고등학교 졸업
* 미국 [[버클리 음악 대학]] 작곡, 현대음악제작학과 [[학사]] 졸업
- 최진순 . . . . 2회 일치
[[1969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으며, [[1998년]] [[교수신문]]을 거쳐 [[2000년]] [[서울신문]]에서 본격적인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사)한국온라인신문협회 기획분과위원, 뉴스분과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4년]]에는 [[한국언론재단]] [[KINDS]] 태스크포스(TF) 팀장,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또 한국언론재단 [[뉴스ML]] 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미국언론연구원(API) [[온라인저널리즘]] 디플로마 과정을 수료했다.
* [[미국언론연구원API]]
- 칼 루이스 . . . . 2회 일치
[[미국]] 의 유상선수. 단거리와 멀리뛰기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빠른 남자의 대표자. 육상 선수로서 칼 루이스의 명성은 21세기 초의 [[우사인 볼트]]와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분류:육상선수]] [[분류:채식주의자]] [[분류:미국 인물]]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2회 일치
* 미국 전용
미국만이 사용 가능한 특수기능. 지정한 위치에 수송기가 날아와 GI 몇명을 공수한다.
- 콘도 마코토 . . . . 2회 일치
1973년 게이오 대학 의학부 졸업. 의사국가시험합격, 연수의가 되어, 방사선과 시험을 받고, 미국 의사자격을 취득.
1979년 미국 로스알라모스 파이중간자 시설(パイ中間子施設)에서 의사로서 채용.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 . . 2회 일치
트레이아크 제작. 전작인 월드 앳 워에서 이어지는 작품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국의 비밀 작전을 다루고 있다.
인피니티워드 제작. 전작 모던 워페어 2에서 이어지는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 그리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를 소재로 하고있다. 모던 워페어 스토리의 결말.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2회 일치
작중에서는 링컨 카운티 전쟁[* 서부개척시대 미국에서 있었던 분쟁. 잡화점 주인과 농장주가 가축의 소유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다.]에서 사일러스와 같은 편으로 싸웠다.
실존인물. 풀네임은 뉴먼 헤인즈 클랜턴. 갱단 "카우보이즈"의 리더로 멕시코에서 가축을 훔쳐 미국에서 파는 일을 했다. 이로인해 멕시코 루랄레스[* 가르디아 루랄(Guardia Rural). 1861년부터 1914년 까지 멕시코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했던 기마부대.]의 추격 및 기습으로 사망했다.
- 탈북자 망명정부 . . . . 2회 일치
주로 [[미국]], [[유럽]] 등지의 대한민국 국외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명섭 대한변호사협회 통일문제연구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이 유엔에 가입돼 있는 이상, 미국 등 다른 국가들도 망명정부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대신 망명정부활동을 묵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제기했다.[[http://news.donga.com/MainTop/3/all/20161006/80664378/1#csidx6390859011994e7a8d6c822b9a35888 (참조)]]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2회 일치
===== 미국 무역지구(American Trading District) =====
>미국은 진심이 담긴 국가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2회 일치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서양인들을 환대했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백성들을 저버리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2회 일치
[[미국]] [[영화]]. [[마블 코믹스]]의 [[판타스틱 포]] 실사영화다. 2015년에 개봉했으며 개봉일은 8월 7일(미국기준). 국내 개봉은 8월 20일.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 . . 2회 일치
수 스톰의 제시카 알바의 미모에 대한 호평은 전작과 마찬가지인데 아예 나오는 장면마다 수잔의 옷과 머리 스타일이 다르며, 카메라가 수잔을 중심으로 이동하며, 아예 모든 장면의 구도가 수잔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본격 '수잔 스톰 모에 영화'라는 설이 [[미국]] 현지의 만화 포럼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하지만 속편에서는 수수하게 나왔으니 [[안습]]).
가만 보면 좀 어이없는 장면이 있는데, 엄연한 [[러시아]] 영토인 [[시베리아]]에 '''미군'''기지가 있는다거나 [* 왜 그런지 이해가 잘 안 간다면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때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러시아가 동구권 내의 [[친미]]세력을 견제하는 걸 생각해 보자.] 마지막 결판을 치른 데는 [[홍콩]]인데 수잔과 리드의 결혼은 [[자포네스크|일본에서 기모노 입고]] 한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있다.
- 평론을 쉽게 쓰는 법 . . . . 2회 일치
* 작품이 미국에서 만들어졌을 경우
→ "미국적인 가치관을 주입하는…", "미 제국주의적인…", "헐리우드 특유의 상업적인…"
- 퓨어킴 . . . . 2회 일치
*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슴사이즈를 언급했는데, "어려서는 글래머 몸매가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타고난 것을 어쩌겠느냐", "노래보다 몸매만 회자되면 당연히 속상하겠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슴 사이즈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미국 속옷 가게에서도 찾기 힘든 사이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는 "가슴이 좀 많이 큰데, 예쁘게 큰 게 아니라 좀 특별하게 커요.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거 보면 ‘아유, 웃기네’, ‘음, 별 거 아니네?’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발언들로 미뤄 보아 최소 J컵 이상은 확정이고[* 화성인 바이러스 기준으로 가장 큰 컵사이즈가 I컵녀였다. 다만 해당 인물은 이후 축소수술을 통해 풀B컵 정도로 확 줄였다.] 통상적으로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사이즈 최대치를 한국 기준으로 환산한 [[초유|K~L컵 사이]]일 것으로 추측된다.
- 한동근 . . . . 2회 일치
[[1993년]] [[5월 9일]]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4년 동안 공부했다.<ref>{{뉴스 인용 |저자=손수영 |제목=한동근, 데뷔 전 무슨 일 했나?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url=http://news.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609092113433115096_1 |뉴스=헤럴드경제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9 |확인날짜= }}</ref> 한동근은 미국 유학 도중 성가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합창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고 피아노로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저자=김민서 |제목=‘가요광장’ 한동근 “美 유학 중 성가대 활동, 가수 된 계기” |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545114&cloc=rss%7Cisplus%7Centertainment |뉴스=일간스포츠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3 |확인날짜= }}</ref> [[2014년]] [[8월]] 데뷔 앨범을 준비하며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를 부르게 되었다. 데뷔 곡을 정하기 위해서 시험 삼아 노래를 부르는 자리였던 만큼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를 "자연스럽다"며 마음에 들어한 소속사 사장의 권유에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는 그 다음 달 발표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양승준 |제목=카메라 없어도 노래 자처…열정이 만든 ‘역주행 신화’ |url=http://www.hankookilbo.com/v/31eb3a7aa65e4987a1b22f33592d79a6 |뉴스=한국일보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1 |확인날짜= }}</ref>
- 한비야 . . . . 2회 일치
한비야는 1986년 홍익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유타 주에 있는 유타대학 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구호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2008년 현직 구호활동가들을 재교육하는 IDHA 과정을 수료했고, 2010년에는 미국 터프츠대학(Tufts University) 플레처스쿨(Fletcher School)에서 인도적 지원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아아
- 한준희 . . . . 2회 일치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과학철학 박사과정 중퇴
- 한현규 . . . . 2회 일치
*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석사]]
*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석사]]
- 함중아 . . . . 2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사이키델릭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키보드 연주자]][[분류:김현식]][[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명지전문대학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현재현 . . . . 2회 일치
* 197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1981년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 2011년 Van Fleet상 수상. 현재현 회장은 한미재계회의를 이끌며 한미FTA체결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한미간 특허심사 하이웨이제도 도입 등 한미 양국의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2011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밴 플리트 상은 한미 우호증진과 양국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한 공이 큰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한국인 중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받았고, 미국인으로는 조지 W.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대사, 헨리 키신저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이 수상했다.
- 홍진기 . . . . 2회 일치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성=유진오|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 외손녀 || [[이서현 (1973년)|이서현]] || [[1973년]] [[9월 20일]] || || [[제일모직]], [[제일기획]] 부사장,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위원
- 홍혜경 . . . . 2회 일치
[[줄리아드 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메트로폴리탄 콩쿠르 우승, 1983년 미국을 대표하는 4인의 젊은 성악가 선정, 1986년 워싱턴 오페라 가이드 선정 올해의 예술가상 수상, 2007년 노만빈센트필어워드를 수상하였다.
* [[1983년]] 미국을 대표하는 4인의 젊은 성악가 선정
- 황용식 . . . . 2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br>미국 [[터프츠 대학]] 플레처 대학원 석사
* 미국 [[터프츠 대학]] 플레처 대학원 석사<ref name="文大">{{웹 인용|title=名譽政治學博士 黃龍植先生 頌詞 |language=zh |publisher=[[중국 문화 대학|中國文化大學]] |url=http://www2.pccu.edu.tw/event/anniversary/pccu44th-anniversary/4_1.htm |archiveurl=http://archive.is/cxNyB |archivedate=2016-11-25 |accessdate=2016-11-25}}</ref>
- 1000가지 위기의 순간 . . . . 1회 일치
1000 Ways to Die. [[단막극]] 형식으로 사고사 사례를 보여주는 미국의 TV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는 케이블 채널인 [[스마일TV]]가 방송 중.
- 155밀리 롱 톰 . . . . 1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에서 디자인 된 M1917, M1917A1, M1918 GPF (Grande Puissance, Filloux)의 후속작으로 [[미국]]에서 도입했다. GPF를 기반으로 하여 개량하면서 M1 155mm 야포가 개발되었다. 1940년에 디자인이 개선되어 M2 155mm 야포가 만들어졌으며, 이 야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사용하여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M2를 개량한 모델이 M59 155mm 견인포가 된다.
- 1만 시간의 법칙 . . . . 1회 일치
미국 미시간 주립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력이 실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게임은 26%, 음악은 21%, 스포츠는 18%라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공부로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533053 (기사)]]
- AT4 . . . . 1회 일치
미국에선 어떤 얼간이가 군대에서 사용한 AT4 발사관을 집에 가져온 적이 있다. 경찰에서 총기 회수 캠페인을 벌일 때 가족 중 한명이 넘겨버렸다고. [[http://usnews.nbcnews.com/_news/2012/12/28/16221808-rocket-launchers-surface-during-los-angeles-guns-buyback?lite|링크]].
- DC's Legends of Tomorrow . . . . 1회 일치
[[미국]]의 [[드라마]].
- E-4B 나이트워치 . . . . 1회 일치
[[미국]]에서 운용하는 항공기. 별명은 심판의 날 비행기(Doomsday Plane). 보잉 747-200B 모델을 모체로 하여, [[핵전쟁]]이 발발 했을 때, 대통령이나 국방장관, 합참의장이 탑승하는 '공중지휘본부'로 쓸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 F-15 . . . . 1회 일치
F-15 Eagle. 미국의 맥도널 더글라스(McDonnell Douglas)가 제작한 전천후 고기동 전술전투기. 제공권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 GHQ . . . . 1회 일치
예) 일본인이 미국 문화를 추종하는 것은 GHQ의 세뇌에 의한 것 등등.
- GLA . . . . 1회 일치
Global Liberation Army. 미국의 [[RTS]] 게임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 등장하는 세력.
- House of the Rising Sun . . . . 1회 일치
[[미국]]의 [[민요]].
- Oh! How I Hate To Get Up In The Morning . . . . 1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노래. 작사 작곡 어빙 벌린(Irving Berlin).
- PW1200G . . . . 1회 일치
미국의 항공기 엔진 업체 플랫 앤 휘트니(P&W) 사에서 개발한 엔진. [[터보팬엔진]]이며, 회전하는 제트 터빈과 팬 사이에 기어를 넣는 기어드 터보 팬(GTF) 방식을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기어드 터보 팬을 사용하여 터빈과 팬이 각각 가장 효율적인 속도로 회전하게 만들었으며, 터빈과 팬을 연결하는 축의 회전이 감속되어 소음과 연비가 크게 개선되었다.
- Suicide is Painless . . . . 1회 일치
미국의 노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M*A*S*H]]의 주제곡이다.
- USS 피닉스 (CL-46) . . . . 1회 일치
이렇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피닉스는 미국 본토와 하와이 간의 수송 함대를 호위하는 임무나 호주 해역을 항해하는 병력수송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2월에는 당시 네덜란드 영토였던 [[자바]] 섬에 항공기를 수송하는 선박들[* USS 랭글리(USS Langley)와 MS 씨위치(MS Seawitch).]을 호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도양 초계, [[봄베이]]로 가는 수송선단 호위, 자바 섬에서 패배한 연합군 병력 구조 등의 임무에 참가하였다.
- Victoria II/개혁 . . . . 1회 일치
* 한 주에 두 표: 각 주마다 두명의 상원의원을 대표자로 두게한다. 현대의 미국이 이런 방식이다.
- 거유 . . . . 1회 일치
1985년 극장공개 된 미국 성인영화의 일본 타이틀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성인잡지, 비디오의 자막에서 자주 쓰이게 되어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AV여배우 마쓰자카 키미코(松坂季実子)의 등장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1회 일치
Guns, Gore & Cannoli. 1920년대 [[금주법]]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좀비 아포칼립스]] 런앤건 게임. [[벨기에]] 게임 제작팀인 [[http://crazymonkeystudios.com/press/index.php|크레이지 몽키 스튜디오]]가 제작했다. PC, 매킨토시, [[엑스박스 원]], [[플레이스테이션 4]]로 발매되었다. PS4 버전은 국내 유통은 [[인트라게임즈]]에서 담당했는데, 한글화도 되어있다!
- 경골목구조 . . . . 1회 일치
183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건축법]]. [[나무|목재]]로 골조를 만든 후, 그곳에 [[기계]]로 만든 목재를 기계로 만든 못으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이 건축법이 발명되기 전까지의 나무 집은 바람이 잘 들어오는 [[통나무집]]이나 비싼 공법으로 만든 나무 집이었다나.
- 경산시 . . . . 1회 일치
* [[김영기 (1962년)|김영기]] -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
- 고종(조선) . . . . 1회 일치
그 이후 10여년동안 조선은 청이 주류로, 그리고 일본이 보조로 마지막으로 미국등의 열강이 찔끔찔끔 이권을 뺏어먹는 형편이 되고(...), 결국 이는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으로 이어진다. 처음에 동학의 교주였던 최시형의 탄원시도로 시작한 이 운동은 결국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한 농민들이 황토현에서 관군을 박살내고 전주성을 점령하자 놀란 조정은 청군에게 병력을 급파해주길 요청한다. 그런데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홍계훈의 대포에 밀려 더이상의 북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청과 미리 텐진조약을 맺은 일본은 청이 조선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조선에 병력을 상륙시킨다. 어찌됐든 '''일본이 개입하자''' 놀란 농민군과 조정은 전주화약을 맺어 일단 농민군의 요구를 어느정도 수용해주는걸로 끝난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특히나 위자료에 대한 루머가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진 썰은 인사동 '''[[스타벅스]]'''의 소유주가 고현정이라는 것. 왜 하필 많은 지점중에 인사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널리 퍼졌다. 다만 스타벅스 코리아는 신세계와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50:50으로 투자한 합작회사[* 하지만 이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설명일 뿐이고 대부분의 자본 및 실질적인 투자는 신세계에서 거의 몰빵하고 있기 때문에 지분이 저렇더라도 이익배분 자체도 다를 것이고 사실상 합작회사라기보다는 좀 더 두둑한 로열티를 주는 형태에 가깝다.]인지라 고현정 본인에게 지점 하나를 내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님으로 근거없는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밝혀진 위자료가 15억원에 불과한데 고현정과 결혼 이후로 [[정용진]] 부회장의 재산이 급증한 점.[* 신세계의 지분과 관계없이 그 시기의 신세계의 주식은 IMF를 지나고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자녀도 둘이나 있는 점[* 아랫쪽에 나와있지만 두 자녀 모두 부모의 좋은 점만 따왔는지 외모가 매우 훤칠하다. 특히, 아들은 정용진, 딸은 고현정을 닮았다. 특히 딸의 경우 사려깊은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엄마와의 사이도 좋은 것 같다. 한 SNS에서 고현정의 딸과 지인이 나눈 대화록이 공개된일이 있는데 친엄마가 보고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고싶은 것은 아니며 그건 양엄마에게(그분이라고 호칭) 예의가 아니라고 답했다. 더구나 양엄마보다 친엄마가 예쁘시지 않냐는 질문에는 양엄마도 예쁘신 분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할 정도.], 사촌인 이건희 회장의 맏딸 [[이부진]]씨와 [[임우재]]씨의 이혼소송에서 이부진 씨가 대단한 변호인단을 이끌고 2심에서 완승을 거두었음에도 86억이라는 돈을 지급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15억의 위자료는 적어도 너무 적고 특히나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어하는 재벌가에서 고현정이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고작 15억이 위자료의 전부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 고현정이 이혼한 직후, 삼성가의 내부에 대해서 책을 쓰자는 제의도 물밀듯이 들어왔는데 물론 고현정 본인이 싫어서 안했을수도 있지만 했다하면 15억은 애들 장난수준으로 벌었을 것이다.] 원래는 신세계 백화점 하나를 달라고 했는데 스타벅스로 떼웠다는 얘기들도 있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루머가 많은 부분.
- 곽성문 . . . . 1회 일치
* 미국의소리(V.O.A) 방송요원
- 곽승준 . . . . 1회 일치
1960년 [[경상북도]]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서울[[한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구글 . . . . 1회 일치
미국의 검색 엔진.
- 구성재 . . . . 1회 일치
1960년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 세천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구자춘 . . . . 1회 일치
1950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교사 자격을 얻었다. 그 해 [[6.25 전쟁]]이 터지자 [[포병]] [[소위]]로 임관하여 전쟁에 참여하였다. 전쟁이 끝난 1954년 미국 육군학교를 졸업하였다.
- 국부펀드 . . . . 1회 일치
국가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목적의 국영 펀드. 국부펀드는 주로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으며,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가지고 운용한다. 자금투자운용은 일반적인 투자펀드와 비슷하게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 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미국 텍사스 주, 오레곤 주의 주에서 보유한 펀드는 주정부 소유의 공유지 토지임대수익으로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
- 권영준 (1952년) . . . . 1회 일치
* [[미국]] [[앨라배마 대학교]] 조교수
- 권희동 . . . . 1회 일치
* 본인의 응원가를 매우 싫어했다. [[http://youtu.be/ofid9L1pI6k|이게 충격과 공포의 권희동 응원가]].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장했지만 2경기 동안 안타 하나 치지 못했다. 그런데 본인 부탁으로 응원가를 끄고 나서는 2루타 폭발!! 참고로 이 안타는 NC의 순수 신인이 친 첫 안타다. 이후 다른 응원가로 바꿨으나 인기가 워낙 좋아서 결국 원래 응원가를 쓰게 되었다. 급기야 해설자들도 따라할 정도.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그러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2017년 들어서 쓰지 않는다]]. 현재는 미국으로 떠난 [[에릭 테임즈]]의 응원가를 받아 쓰고 있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 . . . . 1회 일치
1999년 발매. 제목 그대로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까지 나온 GTA 시리즈 중 유일하게 미국 배경이 아닌 작품.
- 기축통화 . . . . 1회 일치
1970년대 까지, 미국 달러화는 세계 경제의 2/3를 차지했다. 나머지 1/3은 영국 파운드화와 소련 루블이 양분(각각 1/6)하였다.
- 김광석 . . . . 1회 일치
또한, 부인 서해순의 말의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첫번째. 사후 얼마 안되어 딸과 미국으로 간 점 두번째. 고 김광석씨 가족과 재산 다툼을 한 점, 세번째. 고 김광석씨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이다.<ref>{{뉴스 인용|제목=고 김광석씨 부인 ‘저작인접권 침해’ 7,800여만원 배상 판결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은메달|2010 미국 [[로스앤젤레스]]|[[스타크래프트]]}}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시카고 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표현의 자유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
- 김만제 . . . . 1회 일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가서 덴버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를 졸업하고 [[미주리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졸업하였다.
- 김민서(배우) . . . . 1회 일치
2018년 5월 17일에 결혼했다. 남편이 일하는 [[미국]]에서 당분간 있을 거라고 한다.
- 김상조 . . . . 1회 일치
또 두 번째 사례인 1999년 2월 서울 양천구 목동 현대아파트를 거쳐 2002년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로 주소지를 변경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김 후보자는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 예일대 연수를 가면서 2004년 8월부터 다시 7개월간 목동 현대아파트로 주소지를 옮겼다. 이어 귀국한 2005년 2월 은마아파트로 주소지를 다시 변경했다. 중3 아들이 고교 진학을 앞둔 시기였다. 김 후보자 측은 “후보자가 해외연수 중 전세로 살던 은마아파트를 비워두고 우편물 등을 받아두기 위해 목동의 세입자에게 양해를 구해 주소지만 잠시 옮겨놓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상훈 (1963년) . . . . 1회 일치
* 2004년 8월 ~ 2006년 6월 : 미국 오리건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 김석원 (금융인) . . . . 1회 일치
[[행정고시]] 19회로 재무부 이재국•국제금융국에서 근무하였고, 재정경제부 중소금융과장, 금융•부동산실명단 총괄반장, 보험제도과장 등을 거쳐, 일본 대장성에 파견 연구관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재정경제부]] 본부국장, 한국국제조세교육센터 소장, 미국 미시간대(금융연구센터)의 Visiting Scholar로서 활동하였으며, 금융감독위원회 기획행정실장, 금융감독위 및 [[금융감독원]] 합동대변인,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김선길(국회의원) . . . . 1회 일치
1934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 에서 태어났다. 음성중학교,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3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가서 스태슨 대학교 정치학과, [[아메리칸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김성주 (기업인) . . . . 1회 일치
| 학력 =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 김우중 . . . . 1회 일치
[[1960년]] 25세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32세에 [[서울특별시|서울]]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여 [[1970년대]] 초반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1974년]]에 1억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며 신흥 재벌이 되었다. [[1981년]]에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1982년]] [[1월]]에는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4위에 올랐다.
- 김재박 . . . . 1회 일치
* 2017년 9월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5&no=8203959&page=1|대구광역시 엑스코에서 열린 ICT 융복합 컨피런스에 강연자로 출연]]했다. 특기할만한 내용은 본인이 감독을 할 시 추구하는 야구는 이기는 야구로 팬을 불러모으는 야구이며, 미국 야구가 그런 야구라고 생각하며, 명예 회복을 위해 '''감독직을 한번 더 수행해보고 싶다'''라는 것이다.
- 김정재 . . . . 1회 일치
||<bgcolor=pink> '''{{{#0C0C0C 학력}}}''' ||<(><bgcolor=#F6EDF8> [[포항여자고등학교]][br][[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br][[미국]] 프랭클린피어스대학교 법학 박사 ||
- 김종훈 (1952년) . . . . 1회 일치
* 1993년 :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 김준영이 줄곧 보여준, 경기 후반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내는 물량을 빗대어 그의 팬을 비롯한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들은 '개떼 (저글링 떼)', '새떼 (뮤탈리스크 떼)', '소떼 (울트라리스크 떼)' 등의 별칭을 지었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로는 소(울트라리스크)를 애용하는 그에게 '한우 저그', '광우병 저그'라는 별명도 붙였다.
- 김지석(배우) . . . . 1회 일치
예능에서 영어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음에도 소녀시대 티파니에게 영어 발음을 지적받았다는 영상이 여초 사이트에 돌았으나, 사실 여자친구 집안에 인사드리러 가는 컨셉의 김지석이 사위에 적합한지 외가 역할 패널들이 하나하나 트집잡는 과정의 꽁트였다. 티파니 뿐만 아니라 정형돈이 김지석보고 배를 내밀며 내가 너보다 더 몸매 좋다(...)고 놀리는데 당연히 진심이 아닌 예능상 컨셉. 김지석 본인도 연출이었다고 밝혔다. 애초에 미국인이 영국 영어를 못알아들을 리 없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tar&no=283285|해명글]]
- 김형철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김현식]][[분류:유재하]][[분류:신해철]][[분류:김성재]][[분류:이승환]][[분류:김광석]][[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1회 일치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가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냉전]]이다. [[미국]]과 [[영국]]은 [[소련]], 그리고 소련의 위성국 [[동독]]에 맞서서 [[서독]]을 재건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군을 전쟁범죄로 단죄하면 독일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또한 실용적 관점에서도 독일군이 해체하는 것은 공산 세력과 맞서는데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었다. 독일국방군 출신의 장성들 역시 자신들이 전쟁범죄자로 받게 될 비난을 두려워하여, 모든 죄과를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 [[나치 친위대]]에게 몰아놓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소년 점프]] 주간 연재작. 작가는 [[호리코시 코헤이]]. 일본에선 "히로아카"란 약칭으로 통하며 국내에선 "나히아"로 약칭.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 같은, [[미국]] [[슈퍼히어로]] 장르와 비슷한 배경 세계를 가지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1회 일치
* 올마이트는 현역 은퇴를 공식화. 미국의 히어로계에서도 동요하고 있다고 한다.
- 남성진 . . . . 1회 일치
* 2014년 《[[미국인 친구]]》 ... 피터 역
- 남유진 . . . . 1회 일치
1953년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현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서 태어났다. 선산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노 오디너리 패밀리 . . . . 1회 일치
[[미국]]의 [[드라마]]. [[ABC]]에서 방송했다. 총 20화이며 방송 시기는 2010년에서 2011년. 오디너리 패밀리(Ordinary Family)는 '평범한 가족'이라는 의미로서, No를 붙여서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라는 의미가 된다.
- 니세코이/214화 . . . . 1회 일치
* 장소는 미국. 치토게는 어머니의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 니세코이/217화 . . . . 1회 일치
* 미국에서 돌아온 이치죠는 방학인데도 최악의 기분
- 니세코이/224화 . . . . 1회 일치
* 치토게는 미국에 있다고 들은 마리카가 약속의 장소에 있어 놀란다.
- 니세코이/225화 . . . . 1회 일치
* 이치죠는 원인은 자신일 거라며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 닌자 거북이 . . . . 1회 일치
[[미국]]의 [[만화]].
- 다키스트 아워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6주만에 GG치고 연합국 뛰쳐나간 막장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민주주의]]의 유일한 보루가 되어버린 [[영국]]은 소련과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 때까지 존버를 시전해 [[나치 독일]]의 몰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자신들의 유구한 혐성질 역사 위에 덧칠...읍읍.
- 닥터 시바나 . . . . 1회 일치
New52에서도 등장하며 이전의 시바나와 달리 악인이 아니며 외모도 대머리에 안경 외에는 인상이 달라졌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마법]]을 찾아해매며 이때 블랙 아담의 무덤을 조사하다 번개에 맞아 마법을 보는 눈을 얻었다. 이 눈을 이용해 블랙 아담을 부활시키고, 그를 미국으로 안내한다. 이후 흩어져있던 7대 죄악을 모아 블랙 아담의 앞에 대령한다.
- 단기대학 . . . . 1회 일치
미국의 주니어 컬리지, 혹은 커뮤니티 컬리지에 해당하며, 한국에서는 전문대에 해당. 물론 나라마다 특징이 있으므로 세세하게는 차이점이 있다. 비슷하게 전문대학과 비교되는 ‘전문학교’와 ‘단기대학’은 또 다른 것이므로…. 혼란스럽다.
- 단축 도메인 . . . . 1회 일치
== 미국 ==
- 담철곤 . . . . 1회 일치
중학교 3학년 서울에 있는 Seoul Foreign School 로 진학했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를 졸업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SFS에서 만난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에게 10년이 넘는 구애를 한 끝에 결혼했다.
- 대구광역시 . . . . 1회 일치
미국의 대한군사원조(AFAK)를 통한 자재 원조로 지어진 대구시청사 감사식(1955년)
- 대부(소설) . . . . 1회 일치
[[미국]]의 소설가 [[마리오 푸조]]가 쓴 범죄 소설. 영화 [[대부 시리즈]]의 원작이기도 하다.
- 데드 스페이스 . . . . 1회 일치
'''Dead Space'''. [[미국]]의 [[EA 레드우드 쇼어즈]]에서 제작하고 [[일렉트로닉 아츠|EA]]에서 유통한 [[SF]] [[TPS]]. 정체불명의 상황으로 생지옥이 된 우주선 [[USG 이시무라]]를 배경으로 애인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에 자원한 엔지니어 [[아이작 클라크]]의 분투를 다루고 있다.
- 데미안(드라마) . . . . 1회 일치
[[분류:미국 드라마]][[분류:오멘 시리즈]]
- 도영(1996) . . . . 1회 일치
* NCT U 최애로 [[정우(NCT)|정우]]를 꼽은 적이 있다. 정우가 NCT U 최애가 된 것은 함께 Boss 뮤비 촬영을 하러 우크라이나에 갔을 때 정우가 의외로 여린 면이 많은 아이라는 걸 느껴서 챙겨주고 싶어져서라고. 정우가 비공개 연습생이던 시절부터 함께 연습을 했던 사이라 도영이 데뷔한 이후에도 종종 연습하는 것을 찾아갔다고 한다. 항상 동생이었던 정우가 연습생들을 이끌어 연습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정우가 127로 데뷔 한 후 미국 프로모션 차 함께 LA에 1주일 정도 머물렀을 때 룸메이트였는데 정우의 깔끔함에도 많이 놀란 것 같다. 정우는 도영을 '잘 돌봐줘요. 하지만 이 형을 다 헤아릴 수 없어요. 그래도 상냥해요'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 드라이브 스루 . . . . 1회 일치
[[미국]]에서는 1930년대 부터 시작하여, 1950년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한국에서는 1992년에 맥도널드가 처음으로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개설했으며, 2010년대부터는 널리 퍼지고 있다.[[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09/2013090901478.html?Dep0=twitter (참조)]]
- 드럭스토어 . . . . 1회 일치
1920년대 미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럭스토어는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1회 일치
Some Like It Hot. 1959년 개봉된 미국 영화.
- 렉스 루터 . . . . 1회 일치
엄청난 [[부자]]이며 [[브루스 웨인]]과 더불어 DC의 자본가 캐릭터 중 한명. 여기에 뛰어난 두뇌를 지녀서 높은 지략을 구사하거나 고급 기술력을 발휘한다. 두뇌파 캐릭터이나 뒤에서 머리만 굴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 슈트를 착용해 슈퍼맨과 정면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다 무너진 고담시를 재건하고, 미국 대통령도 되본 적이 있다. 이만한 인물이다보니 빌런 세력이 만들어지면 매번 높은 자리에 있다.
- 로손 . . . . 1회 일치
1974년 소매업계 대기업 [[다이에]](ダイエー)가 [[미국]] 식품회서 콘솔리데테드 푸즈(コンソリデーテッド・フーズ)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이 회사 산하에 있던 로손 밀크 프랜차일즈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 롤러 슈즈 . . . . 1회 일치
[[미국]]의 HEELYS 라는 제품이 시초이다. 2000년대에 유행하였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특성상 영화와 드라마에 단편 영상까지 많든, 적든, 크든, 작든 연결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영화에서 사건이 터지면 다른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이것이 언급되거나 한다. 미국 만화 스타일이 떠오르게 하며 이것이 영상화된 것이다. 일단 이러한 [[배경 세계 공유]] 스타일이 MCU가 최초는 아니나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인지도와 신용도를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막부 . . . . 1회 일치
[[에도 막부]]는 1800년대 후기에 미국을 위시한 서양의 포함 외교에 굴복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반 막부 감정을 가졌던 번벌들의 반발에 직면한다. 결국 내전 끝에 '대정봉환'이라 하여 막부의 권한을 조정에 반납하면서 에도 막부는 사라지게 된다.
- 맥닐의 법칙 . . . . 1회 일치
한 지역에서는 특별히 영향력을 가지지 않던 질병이, 인구의 이동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다른 지역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현상. [[미국]]의 역사학자 맥닐이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맥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 맥스 페인 . . . . 1회 일치
Max Payne. [[핀란드]] 회사 [[http://www.remedygames.com/games/|레미디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미국]] 회사 [[http://www.rockstargames.com/|락스타 게임즈]]가 유통한 TPS [[게임]]. 마약 중독자에 의해 가족을 잃고, 동료 형사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뉴욕]]의 [[형사]] [[맥스 페인(캐릭터)|맥스 페인]]이 사악한 음모를 밝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1회 일치
놀이공원 출입구 너머에는 60년대 미국 도시의 모양을 한 드라마의 배경 "느와르 욕"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곳은 음산한 음악. 여성의 시체 모형, 건물 안에서 방문자들을 감시하는 모형 등이 섬뜩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맥스가 길 끝에 놓여진 철장 안에 들어가자 의사 차림을 한 모형들이 나타나며 철장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메디나 . . . . 1회 일치
2016년 7월 4일 저녁(한국 시간 5일 새벽) 한 남성이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모스크]] 부근에서 자폭하여, 보안요원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우디에서는 같은 날 동부 카디프, 서부 제다 항구도시의 미국 총영사관 부근에서도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이는 이슬람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가 [[라마단]] 기간 동안에 테러를 무슬림들에게 호소한 것에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예언자 사원을 향하던 남성을 수상하게 여긴 치안 당국자가 제지를 했는데 몸에 두르고 있던 폭발물을 터트려서 테러를 일으켰다고 한다.[[http://www.47news.jp/korean/international_diplomacy/2016/07/141460.html (참조)]]
- 메탈멘 . . . . 1회 일치
젊은 천재 박사 '윌 매그너스'는 인간이 드나들 수 없는 곳에서의 구조 임무를 위한 로봇을 말들어달라는 미 국방부에 명령에 따라 '리스폰스미터'라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낸다. 그 인공지능을 각자 다른 액화된 금속 안에 담가 창조해낸 것이 바로 '메탈멘'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그런 로봇을 만드려는 목적은 구조 임무 뿐 아니라 적이 되는 대상을 암살하기 위해서였고, 그 사실을 안 메탈멘은 살인을 거부하며 도망간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1회 일치
풀네임은 마르쿠리우스 데니스 롯시. 미국 아이다호 주 출신으로 정부군 소령이다. 본래는 온화한 성격이지만 로널드 모덴 원수를 떠올리면 목숨을 잃은 친구들과 전우들이 떠올라 분노를 이기지 못한다고. 컴퓨터 과학이 취미로 장난삼아 만든 바이러스가 군대의 중앙컴퓨터 시스템에 침입, 핵미사일을 발사시킬뻔한 전적이 있다.
- 몽키 D. 루피 . . . . 1회 일치
|| 미국판 || [[추가바람]] || [[콜린 클링컨비어드]], Erica Schroeder, Chuck Powers ||
- 문맹 . . . . 1회 일치
[[미국]]이 원폭을 개발하던 시기, 뉴멕시코 주에 있던 어느 연구소에서는 잡무 처리 담당을 고용할 때 문맹인 사람으로 한정했다. 이는 [[쓰레기]]나 [[휴지]]를 읽고 기밀 사항을 알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시모브의 잡학 컬렉션, 호시신이치 편역]
- 미저리 . . . . 1회 일치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이 쓴 소설. 한 소설가의 작품을 추종하는 광신도에게 감금된 그 소설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박경림(MC) . . . . 1회 일치
* 2010년 말에 들어서 [[세바퀴]] 고정 패널, [[백점만점]] 메인 MC로 발탁. 예능계에 본격적으로 복귀하려는 듯 하다. 한편, 박경림이 '박고테' 이후 국내 활동을 잠시 접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 박종준 . . . . 1회 일치
1964년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서 태어났다. 공주중동초등학교, 공주봉황중학교,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경찰대학]] 행정학과,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학사]]과정을 졸업하였다.
- 박학기 . . . . 1회 일치
[[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밀양 박씨]]
- 박화요비 . . . . 1회 일치
|| '''출생''' ||<(> [[1982년]] [[2월 11일]] [[전라북도]] [[군산시]][* 아버지가 [[대한민국 군무원]]이라서 3살 때 [[경상북도]] [[포항시]]로 이사 가고 어린 시절은 포항에서 보냈다. 고등학교도 포항에서 다니다가 전학하여 졸업했다.][* 데뷔 초에는 창법이나 음색만 보고 [[윤미래]]처럼 [[미국]] 본토 교포 출신이라는 오해(?)를 받았으며 평상시 말하는 스타일도 우물쭈물 어리바리 컨셉으로 웅얼거리는 게 많아서 아직까지도 교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 반지닦이 . . . . 1회 일치
2011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이건 한국 개봉 당시 제목이며 원제는 그냥 Green Lantern.)의 오역이 넘치는 팬자막.
- 백낙청 . . . . 1회 일치
친가는 [[평안남도]] [[정주군]]에 있었지만, 외가가 있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백붕제|'''백붕제''']]는 친일관료로 6.25 때 납북되었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유학을 떠나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백승주(정치인) . . . . 1회 일치
[[카운터파트]]가 누구인지로 국방 차관의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 [[미국]]에 방문했을 때는 국방부장관[* United States Deputy Secretary of Defense. 국방부 장관이 아니라 국방 부장관이다.]인 [[로버트 워크]]와 군수차관[* 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Acquisition, Technology and Logistics. 언론에서는 획득차관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인 [[프랭크 켄달]]을 만났다. 일본 [[방위성]]과 만날 때는 [[카운터파트]]로 사무차관[* [[의원내각제]]라 국회의원이 임명되는 방위대신, 방위부대신, 대신정무관과 달리 방위성 [[내부승진]].] [[니시 마사노리]]를 만난다.
- 베로니카 마스 . . . . 1회 일치
[[분류:미국 드라마]]
- 변요한 . . . . 1회 일치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작품인 [[단편영화]] 《[[토요근무]]》로 데뷔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활동기간 동안의 작품활동이 대부분 [[독립영화]]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필모그래피에 등록된 영화보다 등록되지 않은 영화들이 더 많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약 30편 정도가 더 있다고. ~~역시 독립영화계의 송중기.~~ 그 예로 영화《[[들개(영화)|들개]]》로 이미 합을 한 번 맞춘 적이 있는 배우 [[박정민(배우)|박정민]]과 함께한 《어쩔 수 없어요》, 《FLAMINGO》 등이 있다. ~~《FLAMINGO》 감독님 내한 기원[* 변요한이 직접 《FLAMINGO》에 애착이 있으나 공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유는 감독님이 미국으로 가셔서 연락이 되지 않기 때문.]~~ 육룡이 나르샤 이후에는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한다.[* 육룡이 나르샤 촬영 시기와 겹쳐 1차, 2차까지 공개된 캐스팅 목록에 올라가 있지 않았다. 마침내, 4월 27일로 첫공 날짜가 정해졌다.] 이 작품은 평소에 외워 부르고 다닐 만큼 좋아하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1회 일치
문제의 회사는 보스턴 주민들에게 소송 폭탄을 맞고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었고, 이후 건축물 전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보스턴 시의회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확대 시행되었다. 한편, 끈적한 당밀 시럽은 물로도 잘 씻어지지 않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 총 10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그 동안 보스턴 시내는 곳곳에 당밀 냄새가 진동하여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았다고 한다.
- 보스턴 백 . . . . 1회 일치
여행용 가방의 일종. 보스턴 백은 일본에서 부르는 명칭으로 미국에서는 '클럽 백'이라고 부른다. 보스턴 대학 학생들이 사용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있다.
- 보통국가 . . . . 1회 일치
몇몇 일본 [[밀덕]]들은 보통국가화를 통하여 일본을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동등한 '세계의 경찰 국가'로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분류:슈퍼걸(드라마) . . . . 1회 일치
[[분류:미국 드라마]]
- 블러드와인드 . . . . 1회 일치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제이콥 휘트니라는 인물이 운영하는 면 재배지가 있었는데 그곳의 노예들은 모든 노예들의 불행과 눈물에서 창조된 블러드젬을 연마하기 위해 25일 밤 넘게 자신들의 혈액을 이용한 고대의식을 치루었고, 이후 블러드젬은 휘트니를 영원히 가두었다.
- 빅맥 . . . . 1회 일치
이걸 뻥튀기한 버전으로 [[메가맥]]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것의 축소판인 "맥 주니어"도 있다는 듯.
- 상디 . . . . 1회 일치
|| 미국판 || 크리스틴 아우텐 || [[에릭 베일]][* 늙은이가 켁켁하는 느낌으로 연기하여 평가가 안좋다.] ||
- 서정돈 . . . . 1회 일치
* 1980년 10월 ~ 1981년 6월 : 미국 [[예일 대학교]] 연구원
- 선원 . . . . 1회 일치
과거 영국은 군함의 선원을 강제 징집해서 충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극초반에는 미국 선박을 습격, 선원들을 끌고가 자국 군함에 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 성시경 . . . . 1회 일치
성시경은 [[1979년]] [[4월 17일]]에 [[대한민국]]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1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홍콩]]에서 산 적도 있었고, [[미국]]의 유명한 [[연예인]]인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별 어려움 없이 구사한다.
- 성훈(배우) . . . . 1회 일치
* 맡는 역할마다 어째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캐릭터가 많다. 거기다 입양아 역도 좀 있는 편이다. 가족의 탄생, 오 마이 비너스 둘 다 미국으로 입양된 역할(...) 아이가 다섯은 부모님이 있기는 한데 떨어져 사는 설정이라 절반 가량이 지났음에도 부모님의 아직 얼굴조차 안나오다가 드디어 40회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근데 이번에는 엄마가 [[박해미|이 분]]... 게다가 엄마는 상민과 태민을 차별하며 태민을 편애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이번에도.....?-- [[애타는 로맨스]]에서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혼 가정의 재벌 2세. ~~이 쯤 되면 그냥 팔자인 듯~~
- 송병구 . . . . 1회 일치
{{금메달|2007 미국 [[시애틀]]|[[스타크래프트]]}}
- 송언석 . . . . 1회 일치
1963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대구[[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시스템|뉴욕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송호창 (1967년) . . . . 1회 일치
'''송호창'''(宋皓彰, [[1967년]] [[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국회의원이자 인권 변호사이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8110317 민주당, 송호창·이학영·백혜련 전략공천] 프레시안 2012-02-28</ref>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TV토론에 출연해 촛불 정국으로 대변되는 촛불민심을 지지하여, '촛불 변호사' 로 활약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0662 '촛불 변호사' 송호창, 안상수 16년 아성 '탈환'] 오마이뉴스 2012.04.12</ref>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로 나선 [[박원순]]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65 ‘박원순 대변인’ 송호창, ‘보온병’ 안상수에 도전장] 미디어오늘 2012-02-06</ref>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의왕·과천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ref>[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깨진 링크|url=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ref>
- 슈퍼걸(드라마) . . . . 1회 일치
[[분류:미국 드라마]] [[분류:슈퍼걸(드라마)]]
- 스타 연구소 . . . . 1회 일치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세계 각지에 연구 시설이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에 있는 [[연구소]]다. 이 메트로폴리스는 [[슈퍼맨]]이 있는 도시인데... 좀 안좋은 의미로 유명하다. 툭하면 [[빌런]]들이 슈퍼맨하고 싸울 장비를 갖춘답시고 연구소를 털지(...) 심지어 [[렉스 루터]]가 [[현질]]한 적도 있다.
- 스트레인지리얼 . . . . 1회 일치
가상 세계이니만큼 [[미국]], [[러시아]], [[독일]], [[스페인]] 같은 실존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오시아, 유크토바니아, 벨카, 사핀 같은 이에 대응되는 국가가 존재한다.
- 스트리트 파이터 . . . . 1회 일치
* 미국
- 스파이더맨 . . . . 1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미국]]의 [[슈퍼 히어로]]들 중에서도 [[슈퍼맨]]과 더불어 큰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1회 일치
* 미국
- 시장경제지위 . . . . 1회 일치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였다. 이 때 가입 조건을 놓고 회원국들과 협상을 거쳤는데, 시장경제지위 부여는 WTO 가입 15년 뒤로 연기되었다. 이후 2016년 까지 한국, 러시아, 브라질, 뉴질랜드, 스위스, 호주 등이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였으나, 유럽연합, 미국, 일본, 캐나다는 인정하지 않게 된다.
- 시카고 컵스 . . . . 1회 일치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팀. 시카고를 연고지로 한다.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5.16 군사정변]] 후 해병 중장으로 예편했다. 미국 네바다주립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여 초대 [[모로코]] 대사, 초대 [[바티칸]] 대사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 신호권총 . . . . 1회 일치
[http://www.usatoday.com/story/news/nation/2014/01/15/teen-charged-fatal-fire-three-children-killed/4488059/|2014년 미국에서 18세 남성이 신호권총으로 불을 질러 아이 세명을 죽이고 아이 한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다.]
- 심학봉 . . . . 1회 일치
196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경북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1회 일치
[[2009년]]에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광화문에 방한했을 때 환영행사의 사회를 본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심현섭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난 40년 동안 이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했다.[[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111912124399784&type=1&outlink=1|#]]
- 씽(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 판타스틱 포 멤버들 중 가장 고생을 하면서도, 팀의 궂은 [[마당쇠]] 역할까지도 맡아주는 등 좋은 이미지 덕에, 국내의 [[제시카 알바]] 하악하악(…)인 형편과 달리 [[미국]]에선 팬들도 상당히 많은 편. [[판타스틱 포]] 멤버들 중 단독 주연극인 [[스핀오프]]들도 가장 많이 제작되고, 그 인기 덕에 아예 애니메이션으로 《프레드와 바니, 싱을 만나다》에서 주역 코너도 별도로 만들어질 정도이며, 특히 여기선 자기 의지로 [[인간]]으로도, 싱으로도 변할 수 있는 등 다 좋은데, 문제는 여기선 더 씽이 [[인간]]일 때는 빈약 고딩으로 나오는 게 안습.(…)
- 아데랑스 . . . . 1회 일치
2009년 5월, 아데랑스에 투자했던 미국계 투자회사 스틸 파트너스는 사외이사로서 오오츠키 타다오(大槻忠男)를 진출시켰다. 그는 일본 펩시콜라 등에서 활동한 전문경영인이다. 그리고 오오츠키 타다오는 2009년 10월 CEO로서 사장 취임, 다양한 새로운 경영 방침을 발표했다. 2010년 10월에는 사명을 "유니헤어(ユニヘアー)"로 변경, 아데랑스는 남성용 브랜드로 남기고, 가발 이외에 증모, 육모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https://facta.co.jp/article/201109066.html (참조)]]
- 아이언맨 . . . . 1회 일치
[[미국]] [[만화]] 회사 '[[마블 코믹스]]'의 작품 중 하나에 나오는 [[슈퍼히어로]]. ~~빨리 발음하면 '아연맨'으로 들린다.~~
- 안내상 . . . . 1회 일치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소외계층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사회 혁명"을 꿈꾸며 사회운동에 나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8년 2월 26일 광주직할시 (현재 전라북도 고창군) [[미국]] 문화원 내 도서관 진열장에 사제 시한폭탄을 설치한 혐의가 드러나 총포 도검 화약류 단속법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8개월 동안 수감된 후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 안종범 . . . . 1회 일치
* 1990 ~ 1991 : 미국 빈곤문제연구소 연구조교
- 알프레드 우든 . . . . 1회 일치
비밀조직 "이너 서클"의 일원인 애꾸눈 영감.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상원의원 자리를 맡고있다. 직위가 이런 만큼 집도 대따 크다.
- 애로우버스 . . . . 1회 일치
미국의 드라마 [[애로우]]를 필두로 한 [[배경 세계 공유]] 스타일 드라마 시리즈. 이후 플래시 등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 어머니의 날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1949년 부터 미국의 Mother's Day를 모방하여, 5월의 두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삼는다. 아버지 날(父の日)은 6월의 세번째 일요일이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회 일치
1770년 보스턴, 라둔하게둔은 커다란 도시인 보스턴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아킬레스는 그런 라둔하게둔에게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보낸다. 그러고는 미국 원주민의 이름이 아닌, 활동하기 편한 이름인 "코너"라는 가명을 준다. 라둔하게둔은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킬레스는 '''진실'''과 무엇'''인지'''가 항상 같은건 아니라고 한다.
- 연하장 . . . . 1회 일치
15세기 독일에서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하며, 신년을 축복하는 글을 담은 카드를 동판에 인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등으로 연하장 풍속이 확대되었다.
- 영천시 . . . . 1회 일치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인구에 대비해서도 절대적인 규모로 봐서도 5일장이 굉장히 크며 아직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덕에 시장으로의 출근길이나 시장을 통과하는 출근길이나, 성남여중•여고를 제외한 시내 주요 중•고등학교의 등교길은 평소보다 지각할 확률이 배로 늘어난다.][* 특히 [[영천IC]] 근처 가와인아파트쪽에서 오는 버스는 원래 등교길이나 출근길이 오래걸려 2,3분씩 늦기 마련인데, 장날은 지각하는날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런사정을 알고 학교선생님들이 넉넉히 10분내외로 봐주신다.]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품의 도매 거래활발하며 이를 통한 한약유통이 옛날부터 유명해 매년 한약축제도 벌인다.[* 한약은 생산량도많지만, 유통량이 조금 더많은데 큰 한약시장이 있기때문이다. 대구약령시장보다 더크며, 전국 유통량의 30%한약재중에 3분에1이 영천 것이라고 보면된다.] 내륙임에도 상어고기인 [[돔배기]]의 전국 물량 중 50%가 영천에서 팔린다. [[대구광역시|대구]]보다 높은 기온과 적게 오는 비로 포도를 많이 키워 '''전국 포도 생산량과 재배량 모두 1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똑같이 포도가 유명한 [[김천시]]는 생산량과 재배량이 2위이다.][* [[금호읍]]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미국으로 수출도 한다.'''] 이 때문인지 21세기 초부터 한약재 대신 포도를 시에서 밀어주며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별빛포도' 라는 자체 브랜드도 존재.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영천 포도는 53로 등록되어있다. 비는 적게 와도 수리시설이 발달한데다 전국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활용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유명하며, 우수 특산물에 '별빛촌'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 오경태 . . . . 1회 일치
*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 [[석사]])
- 오병희 . . . . 1회 일치
오병희는 심장질환과 고혈압 분야의 권위자다. 심부전·고혈압의 다양한 국제 임상시험 연구에 국가대표 연구자로 참여했다. 특히 2005년 국내 연구진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혈압 신약 다국가 3상 임상시험 총괄연구책임자로 선임됐다. 새로운 고혈압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받을 수 있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국내 임상시험 수준의 국제 신뢰도를 높였다.
- 오세정 (교수) . . . . 1회 일치
1984년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되었다. 이후 국제이론물리학센터 연구원과 미국 미시간대 객원 연구원, 일본 도쿄대 초빙교수 등을 두루 역임하며, 1995년에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기획연구실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로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장,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이사,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국민의당 비례대표 2번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2300144739514|날짜=2016-03-23|뉴스=포커스뉴스|확인날짜=2016-03-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712184756/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2300144739514|보존날짜=2016-07-12|깨진링크=예}}</ref> 서울대학교 총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 오세창 . . . . 1회 일치
[[1918년]] [[11월]]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손병희]], [[최린]](崔隣), [[권동진]](權東鎭)등과 함께 조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우선 동지를 포섭하기로 한다. 또한 일부 [[천도교]] 연락원들이 [[기독교]] 지도자 일부와 합의하자, 범거족적인 만세 시위 개최에 동의한다.
- 오승근 (1908년) . . . . 1회 일치
}}</ref> 이때 오승근은 일본의 사주를 받고 [[미국]]과 조선 사이를 이간질하여 친일 정권을 세우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간첩 사건을 담당했다가 전임 처리되었으며, 김용무가 간첩 혐의자를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 왓치맨 . . . . 1회 일치
WATCHMEN. 미국의 만화회사 DC 코믹스가 출판한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와 [[FROM HELL]]의 작가인 [[앨런 무어]]가 쓰고 [[할렘 히어로즈]], [[댄 데어]]의 작가인 [[데이브 기본즈]]가 그렸다.
- 왝더독 . . . . 1회 일치
Wag the Dog. 1998년 개봉한 미국 영화.
- 우현(배우) . . . . 1회 일치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를 졸업했다. 이로 인하여 2016년 우현이 1:100에 출연할 때 100인 중에 김천대화오일뱅크주유소 학생들이 초청되었고, 그 중 한 학생은 우승까지 했다! 재학 중 학생운동을, 그것도 운동 최전선에서 움직이던 간부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행했다. 그래서 옥살이만 2번을 해서 소집제외되어 군[[면제]].[[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2078/read?articleId=20656465&nil_id=14&objCate1=497&bbsId=G005&t__nil_ruliweb=best&itemId=143&t__nil_ruliweb=best&nil_id=14|#]] 학번상 [[6월 항쟁]]의 선봉에 섰는데,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이한열]] 열사 최루탄 사망사건 항의 집회에서 최선봉에 섰기 때문에 [[타임지|미국 시사잡지]]의 1면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회장이 이미 그전에 잡혀간 뒤라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여, 다른 간부였던 우현이 선두에서 지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1987년]] [[6월 항쟁]]에 최선봉에 섰던 우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영화 [[1987(영화)|1987]]에서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 역할로 등장했다.
- 울릉군 . . . . 1회 일치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가고자 한다면 대부분 [[포항시]]로 향하는 여객선을 이용, 포항에서 대구, 부산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 전세버스 등을 대절하여 대구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중국]], [[몽골]], [[동남아시아]], 극동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등) 등지로 향하게 된다. [[미국]]이나 [[중동]], [[유럽]], [[호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공화국|인도]], [[카자흐스탄]], [[아프리카]] 등지로 나갈 경우 [[포항공항]]에서 [[김포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 또는 [[에어포항]]의 국내선을 이용, 김포공항까지 내려온 다음 다시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버스,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바로 인천공항에 닿는다.
- 울진군 . . . . 1회 일치
그러나 울진은 항공교통의 요충지 중 하나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및 [[유럽]]/[[중국]]에서 우리나라 영공을 관통하여 [[일본]]으로 가는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울진 상공을 거쳐서 대한민국을 떠난다. 일부 예외가 있는데 이 경우는 강릉 상공을 통해 대한민국을 떠난다.
- 울트라 시리즈 . . . . 1회 일치
[[가면 라이더 시리즈]], [[슈퍼전대 시리즈]]와 함께 특촬물 업계의 대표적인 시리즈. [[울트라 Q]]가 나오고, 이어서 [[울트라맨]]이 등장해 거대 히어로의 대표주자격이 되었다. 그 거대한 인지도는 미국에 [[슈퍼맨]]이 있다면 일본에는 울트라맨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1회 일치
크라이슬라우 서클의 단원. 미국 출신 흑인 기타리스트.
- 워터보딩 . . . . 1회 일치
[[도널드 트럼프]]는 이 기술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다행히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후 이 고문이 부활하지는 않았다.
- 원 포 올 . . . . 1회 일치
올마이트는 공격을 날릴 때마다 '''"SMASH!!"'''라고 외치며 단순히 펀치 공격만이 아니라 어퍼컷, 로우 펀치, 손날치기, --[[오라오라]]--주먹 연발 러쉬까지 바리에이션이 다양하다. 바리에이션마다 미주리, 델라웨어 등 미국 주의 이름을 붙이는게 특징. 이즈쿠도 따라서 이런 명칭을 붙이는걸 보면 '''외웠나 보다.'''--역시 행동파 오타쿠--
- 원빈(배우) . . . . 1회 일치
* [[아저씨(영화)|아저씨]]의 대성공 이후 [[미국]] 진출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가 맡았던 역할이 원래에는 원빈을 염두에 둔 역할이었다고 한다. 왜 성사가 안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2년에는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가 맡았던 역할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거절하였고[* 다만 이 경우에는 원빈이 이재규 PD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깨지고 언론에 원빈의 [[더킹 투하츠]] 출연설이 나돌면서 하차하게 된 것이다.] 2013년에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거부하면서 차기작 선정은 2018년까지 미정이다.
- 월드 인 컨플릭트/전술지원 . . . . 1회 일치
미국과 NATO 전용. 대형 수송기가 날아와 7.7t 짜리 폭탄을 투하한다. 보병, 숲, 경장갑 차량에 효과적이다.
- 윌밍턴 . . . . 1회 일치
Wilmington.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항구 도시.
- 유니버설 픽처스 . . . . 1회 일치
[[미국]]의 [[영화]] 회사.
- 유인촌 . . . . 1회 일치
사실 TV 필모 초기에는 의외로 '''깡패'''나 '''잉여''' 역도 꽤 했다. 80년대 모 드라마에서는 사회 잉여였다가 '''[[삼청교육대]]에 간 후 착하게 되는''' 역할도 했고 전상국의 원작인 아베의 가족에서는 한국에서 동네 날건달들과 미성년자 성추행 등을 일삼다가 우연찮게 미국으로 이민가서 날라리로 살다가 입대하여 주한미군으로 귀국하여 모친의 과거와 이복형의 존재를 찾는 역할도 했다.
- 윤보라 . . . . 1회 일치
2010년 8월 28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나눔콘서트 도중 보라가 야외공연 무대 위에 남아 있던 빗물에 미끄러져 앞으로 넘어지면서 부상을 당했는데, 그 사고를 담은 영상이 [[독일]]과 [[미국]]에서 해외 토픽으로 소개되어 화제가 됐다. ~~월드스타!~~ 이 사건 이후 보라는 한동안 손가락에 캐스트를 하고 음악방송과 예능에 출연했다. 심지어 그 손을 하고 몸을 쓰는 예능도 했다.
- 윤진이 . . . . 1회 일치
[[1990년]]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 (現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어릴 때 현대무용을 하였던 경력이 있다. 중학교 3년 간 미국 얼바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고,<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귀국 후를 졸업하고 영화예술학과 진학하였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였다.<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2011년, 학교로 오디션을 보러온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다.<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2012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 역으로 데뷔했다. 2018년 하반기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데뷔 이래 최대의 악역을 맡았다.
- 윤천주 . . . . 1회 일치
192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래고등학교|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가나자와]]의 [[구제고등학교|제4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했으나 815해방으로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이경실 . . . . 1회 일치
--[[케이티 페리|그런데 어렸을 때 해외 입양한 딸이 미국을 조진다는 소문도 있다.]]-- (당연히 믿으면 안 되는 소문.)
- 이경희 (1880년) . . . . 1회 일치
[[대종교]]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로 신자들은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당했으나 그는 개종을 거부하였다. [[1939년]]부터 [[창씨개명]]령이 나오고 [[1940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경희는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1942년]] 여름 [[경성부]] [[돈암동]]을 떠나 대구로 내려가 야산에 숨어 밭을 갈고 농부로 생활하였으며, [[항일 단파 방송]]인 [[미국의 소리]] 방송을 비밀리에 밀청하고 해방을 예상하였다. 이때 그 몰래 그의 부인 조씨가 [[청도군]]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둘째 사위에게 [[보리쌀]]을 얻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 이국철 . . . . 1회 일치
2011년 9월, [[신재민]] 전 [[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그동안 수십억 원을 건넸다고 폭로했다.<ref>《시사저널》(2011.09.21),[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6092 <단독>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에게 수십억 원대 금품 줬다” ]</ref> 민주당 국회의원 [[박지원]]은 회장 이국철에게서 전 차관 [[신재민]]이 대선 전후 [[미국|아메리카합중국]] 출장 시 현지 법인카드를 사용한 내역을 가지고 있고 다른 여권 실세에게 돈을 주었다는 주장을 들었다고 밝혔다.<ref>《손석희의 시선집중》(2011.09.27), [http://www.imbc.com/broad/radio/fm/look/notice/?list_id=5667955 " 이국철 게이트 터지나"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 터뷰]</ref>
- 이동흡 . . . . 1회 일치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 집회 금지의 헌법 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에 헌법불합치로 결정할 때 "야간옥외집회 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정당한 입법목적 하에 규정된 것"이라며 합헌이라고 했다.<ref>백나리, 차대운,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8473.html 헌재,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연합뉴스]]</ref><ref>{{뉴스 인용 |제목 = 盧 지명한 2인 등 위헌, 검찰출신·한나라 지명자 합헌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41805005&code=940301 |출판사 = 경향신문 |저자 = 조헌철 기자 |쪽 = |날짜 = 2009-09-24 |확인날짜 = }}</ref>
- 이민호(1987) . . . . 1회 일치
특히 [[필리핀]]에서 이민호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어마어마한 스타라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팬미팅할 때 [[비욘세]]나 [[머라이어 캐리]]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려든다고 할 정도.[* [[필리핀]]에서 디바형 [[미국]] 가수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유튜브만 검색 해 봐도 남녀노소 디바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영상이 수두룩하다. 즉 이민호의 인기가 정말로 어마어마하다는 소리.]
- 이병석(정치인) . . . . 1회 일치
1952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및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강사]],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객원[[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1회 일치
||[[https://youtu.be/2_teU86-5tE|타르 18미리!! 딸기 감기약맛 미국 미니시가 담배 블랙스톤 스트로베리 솔직 후기]]||
- 이보희(배우) . . . . 1회 일치
1987년 8월에 LA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재미교포 함윤식[*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전념했다고 한다.]과 1988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활동에 복귀하였으나 아들은 다시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함윤식과는 이혼하고 한의사와 건설업체를 겸직하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이혼 사유는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 이상무(만화가) . . . . 1회 일치
드물게 느와르물을 그린 적도 있다. 검은 휘파람이라는 작품으로 무대가 미국이고 총격이 난무하는 마피아물이다 보니 독고 탁이 안 나오는데, 주인공이 모습도 그렇고 이름이 탁 데커.(...)
- 이수민(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상원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에는 '타 시도 전학생 출신은 1년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상 [* 동일학교급의 등록팀 수가 적은 시도로 이적하는 경우는 6개월이다. 그래서 전국체전을 제외한 정규 대회가 거의 마무리되는 9월을 전후해 선수들의 전학이 보통 이루어진다. 단 선수 수가 18명 미만인 팀으로 전학하거나, 창단 1년 이내의 신생 팀으로 전학하거나, 팀의 해체로 인해 부득이 전학한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바로 출전이 가능하다.]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량은 계속 성장하여 2012년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합류, 미국전과 캐나다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팀 내 유일한 2승 투수로 활약하였으며, 2013년 4월 7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대구고와의 경기에서 '''9이닝동안 무려 2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었으며, 10회에도 마운드에 등장, '''총 10이닝동안 2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 고교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종전 기록은 진흥고 [[정영일(야구선수)|정영일]]이 2006년 4월 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13⅔이닝동안 기록한 23+2개]
- 이시형 (1934년) . . . . 1회 일치
* [[1968년]] [[예일 대학교|미국 예일 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석사 (신경정신과학 연구원(PDF) 이력)
- 이신학 . . . . 1회 일치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행정대학원 AMP과정(수료)(1990년 12월)
- 이영세 (1947년) . . . . 1회 일치
* 1979.09~1981.06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초청교수
- 이인 . . . . 1회 일치
|임기 = [[1949년]] [[6월]]<ref>전임자인 [[장면]]이 1949년 2월에 주미국 대사로 부임하고, 1949년 3월에 종로구 을 선거구에 대한 보궐선거가 치러졌으며 이인은 1949년 6월 5일 법무부장관에서 해임되었으므로 임기가 1949년 6월경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ref> ~ [[1950년]] [[5월 30일]]
- 이제석 . . . . 1회 일치
* 미국 애디 어워드 금상
- 이종원 (1953년) . . . . 1회 일치
[[서울대학교]] 공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복역. 중퇴후 [[1982년]] 도일했다.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졸업. [[도쿄대학교]] 법학정치학연구과 정치학 전공 석사 과정 수료. 법학 박사 학위 취득. 도쿄대 법학부 조교, [[도호쿠 대학]] 법학부 조교수, [[릿쿄대학교]] 법학부 교수, 2012년 4월부터 [[와세다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 교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객원연구원. [[아사히신문]] 아시아네트워크 객원연구원.
- 이주호 (1961년) . . . . 1회 일치
* 2002년 9월 ~ 2003년 6월 미국 콜게이트대학교 석좌교수
- 이창동 . . . . 1회 일치
* 2011년 미국 시카고 트리뷴 최고의 영화상
- 이철희(1964) . . . . 1회 일치
E.E. 샤트슈나이더라는 학자를 좋아해서 그의 책과 이름을 자주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머 에릭 샤트슈나이더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보통 샤'''츠'''슈나이더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민주정의 발전은 다양한 정당들의 공정 경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당 정치에 깊이 관심 있는 사람치고 샤트슈나이더 영향 안 받은 사람은 드물다. 이철희는 샤트슈나이더의 책을 번역한 적도 있다. 참고로 샤트슈나이더는 대의제 민주정을 강력히 주장하는 입장인데, 현 새정련 주류인 친노계가 직접, 참여적 민주정 강화를 지향하는 입장임을 보면 애초에 정당 운영 면에서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 갖고 까는 건 아니지만~~][[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28769|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또한 학부 시절 [[최장집]] 교수에게 배운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장집 교수 역시 저서에서나 강연에서 대의제 민주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때문.
- 임대윤 . . . . 1회 일치
* 1984 ~ 1987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 졸업, 외교학석사 (학위논문명 - 국제정치의 개입주의에 관한 일연구 :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정책을 중심으로)
- 임윤선(법조인) . . . . 1회 일치
*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부당하게 대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 임채무 . . . . 1회 일치
젊은 세대에게 알려진 대표작(?)은 2006년 초 [[돼지바]] 광고. 싱크로 높은 [[비론 모레노|모레노 심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탈리아전의 그 심판 맞다] 코스프레로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를 계기로 그해 중순부터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원년 멤버로 출연하며 예능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 사실 그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보다 이전인 90년대에도 종종 심야 예능[* 물론 그때는 예능이라고 안 부르고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불렀지만..] 프로그램에 나와서 꽁트연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당시 나름 유명했던 건 KBS 꽁트에서 카바레 사장님 역할로 나와, 당시 쓰던 닉네임 '채무림'[* 임채무를 미국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임을 림이라고 한 것]으로 불리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 같은 코미디언들과 함께 연기했던 것.
- 전광우 . . . . 1회 일치
미국 [[미시간 주립 대학교]] 교수, [[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 [[국제금융센터 (대한민국)|국제금융센터]] 원장,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 코리아 회장, [[포스코]] 이사회 의장, 대한민국 국제금융대사 등을 거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초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2009년부터 2013년 4월까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였다. 2013년 5월 이후 현재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 전동휠 . . . . 1회 일치
미국 Inventist社의 솔로휠이 원조격이지만 거진 300만원대의 고가품이라 세계적으로도 중국산 짝퉁이 더 잘 나가고 있다.
- 전용덕 . . . . 1회 일치
1971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대학교를 졸업 후, [[금강기획]]에서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199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 입학하였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를 졸업후, 2001년 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빅아이디어 프로덕션에서 레이아웃 아티스트로 근무하였다. 2003년 8월 [[드림웍스]]에 입사하였다. 현재 드림웍스의 레이아웃 팀장을 역임하고 있다.
- 전재국 . . . . 1회 일치
|기타 이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출신 <br/>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행정학]] 박사 출신 <br/> [[군인]], [[출판|출판인]], [[기업가]] <br/> 삼육대학교 초빙교수 <br/> 동국대학교 특임강사
- 전재용 . . . . 1회 일치
|기타 이력 = 비엘에셋 대표 <br /> [[연세대학교]] [[정치학|정치외교학]]과 [[학사]] 중퇴 <br />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br />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대학원 경영회계학 석사 졸업 <br/> [[군인]], [[기업가]]
- 정서임 . . . . 1회 일치
===미국 활동===
- 정용화 . . . . 1회 일치
* [[2012년]] [[3월 26일]]에 기자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컴백 쇼케이스를 왜 아침에?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69721|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3월 23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음반 낼때 마다 부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3261244591132&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음원은 발표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헤이 유' 음원공개 직후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32608080291572&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앨범은 3일만에 4만장이상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3일 만에 4만장 돌파…'3월 전쟁' 최후의 승자 |url=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2년]] [[3월 29일]] }}{{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새 미니앨범 판매량 1위, 최단 시간 4만장 돌파|url=http://interview365.mk.co.kr/news/19427|출판사 = 인터뷰365|날짜 = [[2012년]] [[3월 30일]]}}</ref> 또한, 한터 주간 순위에서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EAR FUN’, 한터 주간차트 1위! '승승장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3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61211/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보존날짜= 2014-09-08 |깨진링크= 예 }}</ref> 컴백 무대를 가진 일주일 후 [[4월 5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무세운 상승세로 컴백 1주만에 '엠카 1위'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출판사= 엑스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4월 5일]]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ref> 《[[EAR FUN]]》의 타이틀 곡인 '''Hey you'''가 가온차트 4월 1주차에 1위를 등극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가온차트 4월1주차 1위 등극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78505|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4월 8일]]}}</ref> 그리고 [[2012년]] [[4월 10일]]에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EAR FUN Special Limited Editio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미국화보+DVD 수록된 'EAR FUN' 특별한정판 발매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6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925085809/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보존날짜= 2015-09-25 |깨진링크= 예 }}</ref>
- 정치공학 . . . . 1회 일치
이에 대해서는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미국 남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던 주관중(朱冠中) 교수가 1960년대 후반 '정치공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냈는데, 이 책이 청와대에서 모두 회수하고 박정희 정권은 주관중 교수를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임명했다. 그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공학적 수완'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31758521&code=990326#csidxb914cb4e3f87ea0a4d75944b31219dc (참조)]]
- 정칠성 . . . . 1회 일치
[[1922년]] [[부산]]에서 배편으로 [[일본]]에 다시 건너가, [[동경]]의 [[도쿄영어강습소]]에서 영어를 수강하였다. 그러나 비용 마련의 실패로 [[미국]] 유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 조진호 (축구인) . . . . 1회 일치
조진호는 [[대륜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아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남북단일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은 대부분 북한 선수들이었지만, [[서동원]]과 더불어 남한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조진호는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되며 당시 최연소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하였으며, [[1994년 FIFA 월드컵|미국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였으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과의 월드컵 직전 두차례 평가전서 연속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별리그 3라운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하였으며, [[구이도 부흐발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의 2:3 패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 존 웨스트 . . . . 1회 일치
19세기에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존 웨스트"가 설립했다. 초기에는 오리건 주 콜럼비아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절여 통에 담은 후 영국으로 수출했다나.
- 주아브 . . . . 1회 일치
이들은 미국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남북전쟁]] 중 남북 양쪽의 몇몇 의용군 부대가 주아브라고 자칭하거나 주아브식 복장을 입었다.
- 주윤발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콩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가수]][[분류:홍콩의 작사가]][[분류:홍콩의 불교 신자]][[분류:중국의 반공주의자]][[분류:싱가포르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계 영국인]][[분류:하카계 홍콩인]][[분류:1972년 데뷔]][[분류:홍콩의 억만장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창원시 . . . . 1회 일치
* [[미국]]
- 창작:IDF . . . . 1회 일치
주요 활동 지역은 미국-멕시코 국경, 아프리카 전역, IS(이슬람 무장 단체) 활동지역 부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지대이다. [[http://rigvedawiki.net/w/%EC%9C%A0%EB%A1%9C%EB%A7%88%EC%9D%B4%EB%8B%A8|유로마이단]]으로 인해 국가간 국경지역에 약간의 부대가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다..
- 채동욱 . . . . 1회 일치
[[조선일보]]가 혼외자식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법무부에서 감찰을 발표하자 감찰 발표 당일, 취임으로부터는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수 의견이 있다.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40600055&code=940301 채동욱 "지난주부터 청와대에서 메시지 받았다…의혹 사실 아니라 해도 나가라는데 어떡하겠나"]《경향신문》</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3/2013091300178.html?related_all 蔡총장, 오늘 本紙 상대 정정보도 소송 제기]《조선일보》</ref>[[청와대]]는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며 검찰과의 갈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채동욱은 유전자검사를 하지 않으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정정보도 청구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아이가 미국에 체류중이고 혼외자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인 임모 씨가 잠적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이 채동욱의 아들이라 볼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2016년 법원은 혼외자 의혹은 결국 의혹을 구실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모종의 음모라 짐작되며, 국정원 상부 내지 그 배후세력의 지시에 따라 (개인 정보 조회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tvh&oid=437&aid=0000104506&sid1=291 "채동욱 뒷조사…법원, 판결문에 '배후·음모' 18번 언급"]</ref>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가 사춘기여서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친자로 확인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기로 아이 어머니와 합의한 상태라고 해명하였다.<ref>[http://www.etnews.com/20170705000358 채동욱 “혼외자 논란, 가슴아프고 다시 한 번 죄송하다”]</ref> <ref>인용:“2013년 9월 보도 이후 친자 여부에 대해 진행이 됐고 그쪽과 이야기해서 아이가 사춘기니 성인이 된 뒤에 DNA검사를 해서 확정을 짓고, 사실로 알려지면 당연한 책임을 지기로 합의를 했다”</ref>
- 최계훈 . . . . 1회 일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교인 [[인천고등학교]]에서 야구부 감독을 역임했고, [[2011년]] [[LG 트윈스]]의 [[투수]] 코치로 돌아왔으나, 그 해 [[LG 트윈스]]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박종훈 (1959년)|박종훈]] 감독이 사임했을 때 동반 사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야인으로 지냈다.
- 최만린 . . . . 1회 일치
* 미국 뉴욕 [[프랫 대학교|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미술학과 학사(1967년)
- 최승자 . . . . 1회 일치
1994년 아이오와대학 초청으로 4개월간 미국에 체류하였다. 시 창작과 번역을 같이 해왔는데, 2001년 이후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하였다.
- 최은희 . . . . 1회 일치
그 후 북한에서도 영화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1985년에는 영화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1986년 3월 13일, [[신상옥]]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오스트리아)|빈]]에 있던 도중,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해 10년 넘는 망명생활을 하다가 1999년에 영구 귀국했다.
- 최준석 . . . . 1회 일치
최준석이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하게 되면서 [[미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윤석민(투수)|윤석민]]을 제외하고 2013 스토브 리그 FA 시장이 폐장했다.
- 추경호 . . . . 1회 일치
추경호는 [[1960년]] [[7월 29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계성고]]를 졸업했고 [[1986년]]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리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캐리 피셔 . . . . 1회 일치
[[미국]] 헐리우드에서 활동한 영화 배우, 작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아 오르가나 솔로]] 역할로 유명하다.
- 캡틴 아톰 . . . . 1회 일치
<[[킹덤 컴]]>에서는 마곡을 포함한 몇 명의 초인들과 함께 [[패러사이트]]를 쫓다가, 패러사이트의 공격으로 제어복이 찢겨져 폭발, 방사능으로 미국 중부지방을 살균(...)해 버린다. 그 결과로 전세계 식량부족크리...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 . . . 1회 일치
외계에서 날아온 자원인 타이베리움을 두고 GDI와 Nod 두 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타이베리움 , 타임머신으로 인해 연합군과 소련군의 전쟁을 벌이는 레드얼럿 사가, 세계적인 테러조직 [[GLA]]에 맞선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다룬 제너럴로 분류된다.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 . . . 1회 일치
[[RTS]] 게임인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작품. 2003년 발매되었다. 테러조직인 [[GLA]]에 대항해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고 싸우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 코미디언(왓치맨) . . . . 1회 일치
16세였던 1939년부터 뛴 고참 히어로. 초능력은 없지만 뛰어난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태평양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1977년 비정부 히어로의 활동을 금지하는 킨 법령이 발효된 이후에도 미국 정부를 위해 히어로 활동을 하였다.
- 코스트코 . . . . 1회 일치
[[미국]]에 본사가 있는 회원제 도소매 체인점. 식료품에서 전자제품 등 다양한 상품을 폭넓게 취급한다.
- 콜트 M4 카빈 . . . . 1회 일치
미국의 돌격소총. 미군이 사용하고 있다.
- 콩고(소설) . . . . 1회 일치
배경은 1970년대, 장래 레이저 산업 분야나 반도체 분야에서 유망한 용도가 전망되는 블루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서, 미국의 지구자원개발연구소는 콩고의 정글로 탐사대의 파견하지만 목적지에 거의 도달한 상태에서 미지의 존재에게 기습당해 전멸된다. 단서라곤 연결되어 있던 영상 통신에 잠깐 잡힌 이상한 고릴라의 모습 뿐.
- 템포라 . . . . 1회 일치
[[광케이블]]을 해킹해 전화 통화, 인터넷 접속 내역, 이메일 등을 수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빼낸 정보는 30일 이상을 저장된 상태로 분류되고 분석되었으며, 미국 정보기관인 [[NSA]]에 공유되기도 했다.
- 트럭 . . . . 1회 일치
트럭은 [[미국]]에서 쓰는 말로, [[영국]]에서는 로리(Lorry)라고 부른다. [[탱크로리]] 할 때 그 로리. Red lorry, yellow lorry라는 [[잰말놀이]]도 있다.
- 트레키 . . . . 1회 일치
[[미국]] [[SF 드라마]] [[스타트렉]]의 [[팬덤]]을 뜻하는 말이다.
- 특이한 세금 . . . . 1회 일치
=== 미국 ===
- 파머보이즈 . . . . 1회 일치
Farmer Boys. 미국의 음식점. 상표 밑에 써진 것에 따르면 [[햄버거]], 아침식사 그외 등등이 주력 메뉴인 것 같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1회 일치
님들이 생각하는 무장강도. 미국 영화 같은데 나오는 은행털이를 생각하면 된다. 총들고 들이닥쳐서 죄다 제압하고 요구 아이템 가지고 빠져나오는 방식.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1회 일치
>내 매형 있지, 그 쓸모없는 쓰레기놈 말이야. 그놈이 눈을 운반해주기로 했어. 알잖아. 콜롬비아산 눈, 크리스마스에 쓸 것. 그런데 뒤에 경찰이 따라붙어서 좆되었지. 놈은 미드타운 쇼핑몰로 도망쳤지만 경찰이 놈을 잡은 것 같아. 좆같은 미국 짭새들, 이 나라에는 크리스마스 정신이라고는 쥐뿔도 없어! 난 친절한 사람이야. 크리스마스는 용서의 날이지. 하지만 이건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다고! 친구들, 날 도와줘야겠어.
- 표창원 . . . . 1회 일치
>'매스미디아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오랜 관심과 우려는 흥미거리만을 �는 매스미디아의 '선택적 특성'과 이러한 보도가 사회의 범죄문제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그간의 숱한 미디아 프로그램 분석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미디아에 나타난 범죄가 특정한 범죄 - 강력사건 -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문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판적 범죄학자들은 매스미디아가 범죄문제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규정지으며 사회일반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범죄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매체上의 폭력'은 오랫동안 학계와 일반대중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엽기적인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거나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1980년대 이후에는 '미디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84년 BBC 방송국이 경찰의 도움을 얻어 미해결된 강력사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며 목격자나 제보자를 찾는 'Crimewatch UK'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자 기타 민방들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의 原型은 1960년대에 시작된 독일 ZDF 방송국의 "미해결사건 XTZ..."이며 영국 BBC에서 도입한 이후 미국,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세계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대한 대중적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내용,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경찰이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들에 범죄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찰관 및 경찰장비를 제공해 준다.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들은 사건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홍보매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재구성' 프로의 범람에 대해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을 조장하며 독거노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시청률 올리기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방송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그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방송사들은 이에 대해 "범죄퇴치에 협력한다는 공익에 이바지할 뿐"이란 논리로 대응해 왔다.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신고가 주요범죄를 해결했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집행의 대명사인 경찰의 걍력한 지지가 이러한 '공익논리'를 받쳐주는 주요요소이다. 본 논문은 영국전역에 산재한 28개 지방경찰청, 내무성 경찰국, BBC Crimewatch UK 제작팀, 민간기구인 Crimestoppers Trust 등 30여 관련기관을 방문, 60여명에 이르는 관계자와의 심도깊은 면담 및 관련자료 분석결과와 13편의 Crimewatch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종합분석하여 '범죄 재구성'프로그램인 Crimewatch UK를 통해서 본 영국경찰의 매스미디아관련 정책과 실행, BBC방송국의 다큐멘타리 제작 지침과 실태상의 불일치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 프레퍼 . . . . 1회 일치
2012년 [[미국]]에 가장 많이 존재하며, 300~4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나 [[매스미디어]]를 믿지 않고, 국제 자본가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매스미디어보다는 지역 커뮤니티나 라디오, 인터넷 등의 커뮤니티를 선호한다. 극단적인 경우는 이웃도 적으로 간주하고, 고립된 생활을 한다.
- 프로 스포츠 . . . . 1회 일치
특히 미국식 프로 스포츠에서는 '신규 참가자=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매우 경계하여 경기 리그를 매우 독립적, 폐쇄적으로 운영한다. 이것이 프로 스포츠의 본질을 보여주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 프릭쇼 . . . . 1회 일치
[[미국]]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성행했다. 주로 카니발(순회 서커스) 등에서 흥행이 이루어졌다. 프릭쇼에서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장애인들을 있을 수 없는 '괴물'을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이들이 쇼를 하는 것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 [[학대]] 등의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프릭쇼에 출연해서 많은 명성과 돈을 얻은 장애인도 있다.
- 플래시(드라마) . . . . 1회 일치
[[미국]]의 [[드라마]].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1회 일치
* 일반적으로는 전혀 인기가 없었고 여성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남성이라도,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고 이 사실이 보도되면 엄청난 팬레터를 받는 기묘한 일도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옥중결혼]]을 올리고, 배우자가 임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 학대의 연쇄 . . . . 1회 일치
예를 들어서, 1975년 미국 시카고의 parker,R&colimer,C의 조사에 따르면, 학대를 받았던 부모의 25%~35%가 아이를 학대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학대를 받지 않은 경우는 5% 로서, 학대를 받았던 살마이 부모가 되어 학대를 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6배 였다.[* 「親子の心のケアの現状と課題(西澤 哲)」『別冊発達26』P99)]
- 한성우 . . . . 1회 일치
* 2013년 12월 미국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입단
- 한승혁 (1993년) . . . . 1회 일치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608409 한승혁, 미국 진출 대신 KIA에 둥지] - 연합뉴스</ref>
- 함대 컬렉션 . . . . 1회 일치
군함을 의인화한 미소녀 캐릭터로 이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 이벤트를 뛰어서 얻거나, 심해서함을 잡아서 얻거나, 자원을 쏟아부어 건조하거나 해서 얻는다. 전투 중 굉침시키면 그대로 날아가버리는 것도 특징. 게임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일본제국 해군의 칸무스 밖에 없었지만 게임이 업데이트 되며 나치독일, 일본제국 육군, 이탈리아왕국, 영국, 미국의 칸무스가 소량 추가되었다.
- 함영준 . . . . 1회 일치
[[한양대학교]] 경영학과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오뚜기에 입사했다. 2000년 3월부터 2010년 오뚜기 사장이 되고 2010년부터는 회장이 되었다.
- 핫라인 마이애미/등장인물 . . . . 1회 일치
챕터 19에서 재등장. 가면쓴 사람들에게 지령을 내리고 있던건 이들이었다. 이들은 국수주의자로, 러시아[* 배경이 1989년 이므로 아직 소련일 때.]와 미국의 외교관계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러시아 마피아들을 습격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있던 것. 이 사실은 퍼즐을 모으고 맞춰야만 드러나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들은 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 허쉬 . . . . 1회 일치
[[미국]]의 초콜릿 회사.
- 허종 (1939년) . . . . 1회 일치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이 되어 각국 순회대사, UN 주재 [[북조선]] 대표단 부대사, 외교부 대변인, 다시 [[1994년]] 북조선과 미국 간 북미회담 시 외교단 대표, 그해 UN 주재 [[북조선]] 대표단 부대사, 외교부 순회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 허준영 . . . . 1회 일치
* 1987 : 미국 FBI National Academy 연수
- 허화평 . . . . 1회 일치
좌천된 상태에서도 저 정도의 위상이라면 실세로서 잘나가던 시절에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견제 기회로 인식하고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항명으로 비춰져 1982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허삼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와 [[미국]]에 체류하며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 현아 . . . . 1회 일치
2011년 4월 5일 [[포미닛]]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4Minutes Left]]》를 발매해 타이틀 곡 〈거울아 거울아〉로 활동했다.<ref name="아시아경제"/> 또한 비슷한 시기 [[임정희]]의 〈[[Golden Lady]]〉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임정희 ‘골든 레이디’ [[포미닛]] [[김현아]] 랩 피처링 지원사격 |확인날짜=2011-07-24|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030905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1-05-03}}</ref> 2011년 6월부터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6월 솔로컴백 동시 '댄싱위드더스타' 출연|확인날짜=2011-06-04|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5220943330511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영웅|날짜=2011-05-22}}</ref>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다섯 번째 탈락자로 결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댄싱 위드 더 스타’ 탈락..심사위원 “심사할 수 없는 지경”|확인날짜=2011-07-24|url=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78679§ion=sc4|출판사=브레이크뉴스|저자=한누리|날짜=2011-07-16}}</ref> 현아는 2011년 7월 5일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다. 이에 앞서 2011년 6월 30일 발라드풍의 수록곡 〈[[A Bitter Day]]〉를 공개했다.<ref name="Pop!">{{뉴스 인용|제목=김현아, 30일 발라드 ‘A Bitter day’ 선공개…‘솔로 출격’ 신호탄|확인날짜=2011-06-29|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629111326420&ts=130703|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곽민구|날짜=2011-06-29}}</ref>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가온 디지털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f name="가온">{{웹 인용|url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Bubble+Pop%21&x=43&y=19|제목 =가온 차트 > Bubble Pop! |출판사 =[[가온 차트]]|확인날짜 =2011-07-19}}</ref> 그러나, 201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Bubble Pop!"의 안무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인다며 안무를 수정할 것을 요정했지만, 소속사측은 안무를 수정하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활동중단 '또 선정성 논란, [[김현아]]가 추면 다 야해' |확인날짜=2011-08-05|url=http://artsnews.mk.co.kr/news/163166|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하얀|날짜=2011-08-05}}</ref> "Bubble Pop!"은 평론가들로부터 혼합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즘》에서 "캔디 팝의 요소가 잘 녹아들었음에도 제대로 방점을 찍지 못해 솜사탕같은 트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ref>황선업.[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3086&bigcateidx=8&subcateidx=10&cTp=4 이즘 - Bubble pop!] 《이즘》. 2011-07 작성. 2011-12-16 확인.</ref> 영국의 《팝저스티스》는 "오늘의 노래"에 선정했고,<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英 팝사이트 '오늘의 노래' 선정… "가장 섹시" 찬사 |확인날짜=2011-07-22|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107/sp2011072010252095510.ht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성한|날짜=2011-07-20}}</ref> 미국의 《스핀 매거진》은 "2011년 올해의 베스트 노래 20" 순위 중 〈Bubble Pop!〉을 9위에 선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美스핀 선정 '2011 베스트송20'|확인날짜=2011-12-16|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121209445192085&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박영웅|날짜=2011-12-12}}</ref> 이후 2011년 8월부터 [[도끼 (가수)|도끼]]가 피처링한 노래 "[[Just Follow]]"로 후속곡 활동을 잠깐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김현아 just follow 무대 공개, 선정성 '제로' 카리스마 '폭발' |확인날짜=2011-08-13|url=http://artsnews.mk.co.kr/news/164401|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풀잎|날짜=2011-08-13}}</ref>
- 현제명 . . . . 1회 일치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계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이수하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창설하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 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한 조선문예회 정회원으로 가입하다가, 독립 계몽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친일 성향 단체인 대동민우회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총독부의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음악가협회를 해체하고 이후에도 시국대응전선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등에도 가입하면서 친일 행위를 하였던 전적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특히 친일 찬양적인 성향의 '''[[후지산]]을 바라보며'''에 작곡자로 개입하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 혜은이 . . . . 1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호준석 . . . . 1회 일치
* [[2004년]] ~ [[2005년]] :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객원연구원
- 홍병선 . . . . 1회 일치
홍병선은 신흥우와 함께 [[1927년]] [[덴마크]]와 [[미국]]의 농촌사업을 시찰하고 돌아온 뒤, 농촌 협동조합 및 구락부를 조직하는 사업에 열중했다. 덴마크식 농촌사업을 위해 [[1931년]] 서울 [[신촌]]에 농촌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고등농민수양소를 세우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 홍상수 . . . . 1회 일치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예술공예대학|캘리포니아예술공예대학]](California College of Art and Crafts)에서 학부 과정을 마쳤으며, [[시카고 예술학교|시카고예술대학교]](The 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연출한 단편 실험영화로 《개미 보는 여인》이 있다<ref name='kmdb' />. 에릭 로메르,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세잔|폴 세잔]]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 홍서범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8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홍준표 (1949년) . . . . 1회 일치
* 1987년 ~ 미국금속학회 정회원
- 홍학표(배우) . . . . 1회 일치
한 연예계 선배의 감성어린 호소에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압구정동에 있던 집을 날리고 2년간 미국에서 원단장사를 했다고 한다. 2년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으나, 다행히 수지가 맞았고 환율이 폭등했을 때라서[* 이 당시 1달러당 '''2천원대'''까지도 찍었고 점차 안정되면서 1천원대 중반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들어 지금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교적 빠르게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선배와 연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한다며, 이자는 안받을테니 원금이라도 받고싶다고...[[지못미]]
- 화염병 . . . . 1회 일치
불을 사용한 무기인지라 사람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힌다. 이는 제작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미국에서는 이란인 대학생이 화염병을 만들다가 몸 90%에 화상을 입고 사망한 사례가 있다.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575346/Iranian-student-burns-death-Molotov-cocktail-Georgia-Tech-University.html|데일리메일 링크]].
- 황연대 . . . . 1회 일치
[[1966년]]에는 사단법인 한국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를 설립하여 상임이사로 취임했으며 [[1974년]]에는 [[미국]] [[뉴욕 대학교]] 재활의확과 연수 과정을 이수했다. [[1975년]]에는 소아마비 장애인을 위한 재활 시설인 정립회관(正立會館)을 건립하여 관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장애인의 권익 향상 활동에 참여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여의사회 홍보부장 겸 잡지 《여의사회보》 편집인을 맡았다.
- 황준국 . . . . 1회 일치
* 주미국대한민국대사관 정무공사
- 황치열 . . . . 1회 일치
* 2016년 8월 12일~13일 미국 PECHANGA 콘서트
- 황태연 . . . . 1회 일치
|언어 = 한국어, 영어(영국, 미국 및 기타)
- 휴먼 토치 . . . . 1회 일치
570호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잦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져 팬들의 불안을 야기했으며 결국 587호에서 백스터 빌딩 안에 [[네거티브 존]]이 어나이얼레이션으로부터 강제로 열려지자 [[인간]]으로 돌아온 [[씽(마블 코믹스)|씽]]과 백스터 빌딩에 거주하는 학생들과 식객 그리고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네거티브 존에 남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 만화 특성상 결국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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