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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구라
         [[딴지일보|딴지일보 웹토이]] 인터넷 방송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을 필두로 《김구라의 진실게임》 등을 진행하였다. 이후 다시 라디오 DJ 자리를 제안받고 공중파로 재입성하였다.
  • 김어준
         [[대한민국]]의 [[언론인]][* 2008년에 언론사 등록을 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도 딴지일보는 정식 인터넷 언론사이다.], 인터뷰어. [[딴지일보]] 총수. 초기 [[황색언론]]을 표방하는 인터넷 미디어 [[딴지일보]]의 창립자였으나 이후 조중동이나 기타 언론에서 밝히지 않는 정권이 불편해 하는 뉴스에 대해서 심층 취재하였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의 대중적 인기로 대한민국 팟캐스트 붐의 시초로 여겨진다. 2016년 9월 26일부터 아침 시간대 시사 프로인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고 있는 언론인이다.
         === 딴지일보 창간 ===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IMF 때 정리해고를 당한 후,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했다. 원래 딴지일보는 김어준 개인 사이트로 시작을 했고, 스스로 기사를 만들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고 코드를 짜는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방문 안 해서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는 짓을 했다고 하나, 결국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당당히 1999년 언론사 영향력 순위에서 당당히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B급 정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초창기 [[인터넷]] 문화 형성에 나름의 공이 있다. 이 점은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에 비할 만하다. 명확한 정치지향이 없다가 이후에 보수 쪽으로 커밍아웃한 [[김유식]]과 달리 김어준은 확실히 처음부터 진보-개혁세력 지향이었고,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적 포지션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쪽이 좀 더 빨랐으며 초창기에는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유력 정치인, 대권 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형식의 인터뷰로 유명했다. 유명 정치인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빤스가 사각이냐, 삼각이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다. 2012년 새롭게 시작한 웹 월간지 더딴지에서도 파토 등의 주요 필진이 물어본다.
         딴지일보의 직설적인 논조 - 음담패설과 욕설을 운영자 자신이 인터넷 수면 위로 끌고 올라온 첫 세대 매체다 - 와 과감하게 당시 기성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까지 거침없이 다루었기 때문에 매우 큰 관심을 받았다. 예를 들어 그동안 하급문화 취급을 받아 아무도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으며 저평가되었던 국산애니나 고전만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발굴운동을 벌였다든지 하는 일은 꽤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1990년대 후반은 묘하게 고급 필진들이 모여드는 시기였다.[* 사실 1998년 정도면 아직 PC통신이 전성기일 때라, 인터넷 매체는 많지 않았고 갈 곳도 적었으며, 그 비싼 인터넷 자원 - 미국의 인터넷이 상업화되는 시기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 을 가지고 황색저널을 표방하는 데 쓸 생각을 한 사람은 더 적었다. 시기를 아주 잘 탄 것.]
         딴지일보의 성공으로 기성언론에 대한 비꼼과 날카로운 풍자를 내세우며 인터넷 문화와 언론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매김한다. [[IT 버블]]이 한창이던 리즈시절에는 국내모벤처기업에서 800억 원에 딴지를 인수하겠다는 오퍼도 있었는데 거절 했다고 한다. 하지만 딴지일보가 서서히 지면서 같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딴지일보 외에 여러 풍자 사이트와 유머 사이트가 등장했던 것. 특히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들은 이용자끼리 생산-소비를 하는 형태로 사용자들의 지속적 참여로 성장을 거듭한 반면 일방적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소비하는 포맷의 딴지 일보는 이들 사이트들에 이용자를 많이 빼앗기게 된다. 이후 상황은 [[딴지일보]] 항목 참조. 딴지 커뮤니티가 엄청나게 흥했지만 그것을 성장동력으로 삼지 못했고, 소수 필진이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하고 싶은 말 다 쓰고는 보완없이 - 애초에, 필진도 독자도 컨텐츠를 즐기는 곳이었다 -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라 점점 정보보다는 잡설을 보는 곳이라는, 재미있게도 처음 시작하며 내건 이미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
         딴지일보의 몰락 후(2000년대 중반)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혼도 이 시절. 딴지가 리즈시절일 때 지나친 확장을 해서리 그게 다 빚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 딴지일보에서 여성용 성인기구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딴지 몰락하에서도 진보적 논객으로 활약하면서 김어준의 지명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스스로 야매 상담가라고 자칭하기도 했으며, 한겨레 신문에서는 "그까이꺼"라는 상담 코너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를 묶어 "건투를 빈다"라는 저서로 펴냈다. 이와 함께 대학이나 기관의 각종 강연에도 얼굴을 내밀었는데, 주된 논지는 "남의 눈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하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자주 불려다닌 것으로 봐서는 이런 연사로서 평가는 꽤 좋은 편. ~~의외로 이런 데 나와서는 "씨바" 같은 욕을 안 한다. "[[존나|XX]]"는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가카]] 얘기할때는 좀 했다~~
          * 2016년 6월 30일,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지 3년 7개월 만에 7:2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았다. 딴지일보에선 김어준 총수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며 헌재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물론 장난에 가까운 [[반어법]]. [[http://www.ddanzi.com/ddanziNews/108340320?t=20160630183520|김어준, 주진우 무죄는 물론, 헌재의 위헌 결정 속에 담긴 의도마저 규탄한다]]
          * 2017년 12월 7일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열린 재판에서 [[http://news1.kr/articles/?3173360|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딴지일보에서는 [[https://twitter.com/ddanzis/status/938591816059781121|'젠장 헌법은 죽었다']]라며 성토(?)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위에 나온 것과 같은 [[반어법]]이다.
          * 딴지일보의 과거 여행 전문 섹션으로 딴지관광청(노매드21)이 있었는데, 그는 사이트 내에 대형 여행 전문 섹션을 만들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딴지관광청의 경우 2003년도에 노매드21로 이름을 변경한 후 전문 여행사로 독립했다. 또한 현재 [[딴지일보]]에서 완전히 경영 분리가 된 상태이다. 다만 칼럼 기고나 공동 상업인증 서비스 등의 형식으로 느슨한 업무협조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 상담칼럼을 모은 건투를 빈다라는 책자를 쓴 바 있다. 이 책자에서 남한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나라였던 옛 고대 이스라엘이 무슨 대제국이니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냐면서 성경이라는 소설책을 신의 말씀이라고 받드는 자들의 종교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이 많다고 풍자한 바 있다. 건투를 빈다를 썼을 당시 인터뷰에서, 향후 모바일 세대에 맞춰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다들 딴지일보 모바일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꼼수가 등장해 대박이 난 것. 그리고 이 인터뷰에서 다음 저서는 인간의 동물적 속성을 파헤치는 책을 내겠다고. 가제로 '인간은 동물이다'라고 지었었다. 실제로는 그 책은 다음으로 미뤄지고 '닥치고 정치'가 발간되었다.
          * 노무현 추종자. 딴지일보의 과거 대선후보 인터뷰는 총수가 항상 동행하여 직접 인터뷰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취재차 여러 번 만나고 그의 인간성에 반한 듯 보인다. 스스로 밝히길 [[이명박]]에 대한 순수하리만치 한 증오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는 최고의 정치인으로 김대중을, 최고의 '남자'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남자 중 최고의 남자- 로 노무현을 뽑았다. 그리고 둘 모두를 이명박이 직접 살해했다고 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 후 8년째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검은 넥타이만 멨다. 그러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첫 [[김어준의 파파이스]] 방송에서 흑과 백의 스트라이프 무늬의 넥타이를 착용했다.
          * 나꼼수로 SNS 정치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지만, 사용하는 휴대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피처폰. 다만 목격된 바에 의하면 2012년 초반 쯤에 아이폰4/4S로 갈아 탄 듯하다. 거기다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안 한다고 한다. 그래서 김어준의 동향은 [[김용민(1974)|김용민]]이나 [[탁현민]], [[주진우(1973)|주진우]]의 SNS를 통해 나온다. 하도 김어준 행세를 하는 가짜 트위터 계정들이 날뛰어서 딴지일보에서 '공식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 같이 나꼼수를 했던 [[김용민(1974)|김용민]]이 그를 취재하며 쓴 '김어준 평전'이 있다. 김어준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김어준을 만든 부모님 이야기, 그의 인생이야기, 딴지일보를 창간한 스토리나 나꼼수시절 에피소드 수많은 논객들과의 일화 등 김어준이 어떤사람인지 이해하는데 좋은 책이다. 정작 김용민이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김어준의 반응은 '내가 아직 살아있는데 무슨 평전이야 씨바 미친 개독먹사 돼지새끼야!!!!'이었다고 한다.~~음성지원되는~~
          * 별명으로는 총수, 시사요정, [[공장장#s-4|공장장]] 등이 있다. 특히 시사요정의 경우 [[https://youtu.be/5Bd7AaHswuU|캐릭터 상품(?)화 되기도 했다.]] OME 주의. 본진인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서는 시사요괴, 털보형으로도 불리고 있다.
  • 서민 (학자)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2002년부터는 [[딴지일보]]에 '마테우스'란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2004년엔 [[한겨레신문]]에서 실명 칼럼니스트로 데뷔했다. 2013년에는 [[윤창중]]을 소재로 [[경향신문]]에 쓴 풍자 칼럼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가 화제를 끌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121742271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ref>
  • 신정아(큐레이터)
         [[한겨레]]에서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인터뷰를 했다. [[http://news.nate.com/view/20110428n06175?mid=n0410|'참 괜찮은 사람' 또는 '여자 허경영']] --여자 [[허경영]]은 맞는듯-- 제목에서 보듯이 신정아에게 상당히 옹호적이다. 신정아가 죄질에 비해 과도하게 매를 맞았음을 전제로 깔고 인터뷰를 하고있다. 당연히 댓글들의 반응은... 직접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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