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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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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인숙 (1945년) . . . . 3회 일치
         신원조회는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이던 [[김형욱]]의 비서<ref name="hp104"/> 실장인 [[문학림]]이 맡았고, 고위층만이 가질 수 있었던 회수여권은 정일권의 비서관 [[신성재]]가 주선하였다.<ref name="hp105">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5페이지</ref> 여권 발급 날짜는 [[1968년]] [[12월 30일]]이고, 이후 정인숙은 [[1969년]] [[3월]] 큰오빠를 만난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10월]]에는 [[워싱턴 D.C.]] 한인회장 [[노진환]]의 안내로 미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다가 [[1970년]] 1월 21일 귀국했다.<ref name="hp105"/>
         {{인용문|그렇다면 초점은 그 아이가 정일권의 아들 정성일이냐, 아니면 박정희의 아들 박성일이냐로 좁아진다. ...(이하 중략)... 자, 문제의 아이 성일군이 정일권의 아들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아이의 정체를 알 수도 있었을 [[최대현]], [[노진환]], [[문학림]]이 정일권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박정희가 상당한 의혹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침묵을 지켰을 것인가? 당시 정일권은 과연 그만한 일을 강행할 만큼의 국정에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가? 그 후 정일권은 국회의원 자격도 없는 노진환을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밀어<ref name="kum108"/> 넣고 일등 공신 최대현을 청와대 사정 보좌관실에서 박정희의 비서로 일하게 할 만큼 정치적으로 강력했던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ref name="kum109">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9페이지</ref> 따라서 이 의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였다. 이렇게 보자면 성일군의 아버지는 누구였는지가 스스로 명백해진다. 또 하나 명백한 것은 성일군의 아버지가 성일군의 어머니인 정인숙 여인을 살해한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이걸 성일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골육상쟁극이었다.<ref name="kum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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